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전북 민심투어’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독일 아우토슈타트 가봤더니
“정권 초 인사 안배 부족 곧 해답 마련” 자동차 예술철학 숨쉬는 테마파크 Focus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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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Biz 18~19p
양궁 여자 컴파운드 종목에서 최보민이 2관왕에 올랐다. 최보민이 27일 인천 계양아시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정종욱 통일준비위 부위원장
아드 양궁장에서 열린 개인전 결승전에 출전해 동료 석지현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 앞서 열린 단체전 결승에선 석지현·김윤희와 함께 대만을 229대 226으로 꺾었다. [뉴시스]
“박 대통령, 흡수 아닌 평화통일 추구 남북 고위급 회담 재개 땐 제재 풀 수도”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박근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통준위)의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은 “북한이 제2차 고위급 대화에 나온다 면 정부는 5·24 제재 해제를 포함해 남북관계 활성화에 필요한 조치를 취 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 했다. 북한에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우리 정부도 북한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그는 중앙SUNDAY와 24, 27일 두 차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 히고, 박 대통령의 통일관과 이를 뒷 받침하기 위한 통준위의 활동 방향을 공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통준위 활동을 주도하며 정부의 대북 전략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 정 부위원장은 “북한은 과거 천안 함 폭침과 금강산 관광객 사살에 대해 사과 비슷한 의사를 표명할 뜻을 비춘 바 있다”며 “북한이 고위급회담에 나 와 그같이 한다면 우리도 5·24 제재 해 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인도적 지원 확대 등 전향적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북한은 빨 리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했다. 통준위는 박 대통령이 국정 화두로
던진 ‘통일대박론’의 비전과 방법론 을 제시하기 위한 기구로, 박 대통령 과 정 부위원장을 포함해 총 50명의 위원으로 7월 15일 출범했다. 정 부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통일관 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흡수통일 아 닌 평화통일을 추구하며, 북한을 대 화·협력의 대상이자 통일의 동반자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 “핵 문제를 맨 앞에 뒀던 전 정부와 달리 이를 조 금 들어 (옆에) 놓고 환경 같은 작은
“북한을 통일 동반자로 인식 박 대통령, 신뢰 지속축적 강조 내년 京平축구 등 행사 계획” 분야들에서 협력하며 신뢰를 축적해 가면 궁극적으로 남북이 합의를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박 대통령 의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핵에 대해선 “6자회담 등을 통해 지속적으 로 폐기를 추진해갈 것”이라고 강조 했다. 그는 “지난달 청와대에서 통준위 원 가운데 일부가 ‘대통령이 흡수 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직접 밝힐 필
미술의 섬, 제주
S Magazine
요가 있다’고 건의하자, 박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지 않나’면서도 ‘우리는 북 한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취지 로 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분단 70 주년을 맞는 내년에 남북한에서 경평 (京平)축구를 포함해 다양한 문화 행 사를 열 계획”이라고도 했다. 정 부위원장은 사견을 전제로 “북 한은 앞으로 상당 기간 핵을 포기하 기 힘들 것”이라며 “그렇다고 북한 과 대화를 안 할 순 없으니 북한 정책 에서 핵의 비중이 점점 작아지게 유 도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선 사전 물밑 접촉으로 북한에 반대 급부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협상했지 만 박근혜 정부는 밀실흥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며 “두 정부 시절에 비해 북한 핵 능력이 크게 커진 점도 중요한 차이”라고 말 했다. 그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해도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원칙적으로는 (핵실험을 해 도) 인도적 지원이 바로 동결되는 건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핵실험은 워
낙 심각한 도발이니 인도적 지원 계 속 여부는 부차적 문제”라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남북관계가 진전 되면 종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 꿀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통준위는 이에 대비해 ‘신평화체제’ 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는 태스크 포스를 가동 중”이라고 공개했다. 이 와 함께 “신평화체제하에서도 한반 도 안보에 취약성이 존재하는 한 한· 미동맹은 존속할 것”이라고 했다. 통준위가 구상하는 대북 전략에 대해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국제정치학) 고려대 교 수는 “큰 틀에서 반대하지 않지만, 성 과를 내려면 북핵 동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경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을 통한 대 북 접근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 부위원장은 “통준위는 내 년 8월 한반도 통일 헌장과 통일 방 안 및 통일 로드맵으로 구성된 ‘통 일 청사진’을 제시할 계획”이라며 “통준위 자문단에 진보단체들을 여 럿 수용해 이념을 초월한 국민적 합 의를 통해 청사진을 도출할 방침”이 관계기사 3p 라고 말했다.
폐허 같던 영화관과 평범한 상가, 낡은 모텔이 근사한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아라리오 김창일(63) 회장의 제주도 뮤지엄 프로젝트 덕분이다. 그는 지난 9 월 1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오픈 한 데 이어 10월 1일에는 제주도에서 세 곳의 미술관을 새로 개관한다. 그 현 장을 미리 둘러봤다. 1부 1000원 / 월 5000원 | 정기구독 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한국 낭자들 정교한 ‘손맛’ 양궁사격서 금메달 셋 추가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스키트 개인 전에서 김민지(25·KT) 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 다. 사격 종목에서 한국의 8번째 금 메달이었다. 27일 열린 결승전에서 김민지는 중국의 장헝과 연장 슛오 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대 3으로 이 겼다. 앞서 열린 단체전에서는 곽유 현(34·상무)·손혜경(38·제천시청) 과 함께 은메달을 따냈다. 이날 오전에는 궁사들이 금메달 을 휩쓸었다. 이번 대회에 새로 채 택된 양궁 여자 컴파운드 종목에서 금메달 두 개가 나왔다. 단체전 결 승에서는 최보민(30·청주시청)·석 지현(24·현대모비스)·김윤희(20· 하이트진로)가 대만을 229대 226 으로 꺾고 시상대의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맏언니 최보민은 지난해 터키 안탈리아에서 뇌출혈로 세상 을 떠난 신현종 감독을 떠올리며 “감독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자랑 스러워 할 것”이라며 눈물을 터뜨 렸다. 이어 열린 개인전에서는 최보 민과 석지현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 다. 144대 143, 한 점 차로 최보민이 이겼다. 양궁 남자 컴파운드 대표팀은 은 메달을 추가했다. 최용희(30·현대 제철)·민리홍(23·현대제철)·양영호 (19·중원대)로 구성된 남자팀은 인 도에 224대 227로 패했다. 이날 승리 한 인도 대표팀의 젊은 궁사 라자트 차우한(20)은 “훈련하느라 졸업시 험도 네 번이나 떨어졌다. 엄마가 금
장신구를 팔아 사준 활로 연습했다” 고 말해 화제가 됐다. 배드민턴 남자 복식 세계 1위인 이용대(26·삼성전기)-유연성(28·수 원시청) 조는 말레이시아와의 준결 승에서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이겼 다. 28일 오후에 결승전이 열린다. 유 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 농구 대표 팀은 최강 필리핀을 상대로 고전 끝 에 2연승을 거뒀다. 두 점 차의 승리 였다. 28일 열리는 카타르와의 경기 에서 이기면 조 1위로 준결승에 오 른다. 김연경을 필두로 하는 여자 배 구 대표팀도 약체 홍콩에 이겨 준결 승에 진출했다.
배드민턴 남복식 결승 진출 야구는 오늘 대만과 결승전 축구는 16년만 AG 한일전 야구 대표팀은 중국을 7대 2로 꺾 고 결승에 진출했다. 28일 오후 6시 30분에 대만과 금메달을 놓고 겨룬 다. 같은 날 오후 5시에 열리는 축구 8강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승부를 가린다. 두 팀이 아시안게임에서 만 난 건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16년 만 이다. 당시에는 한국이 2대 0으로 승 리했다. 4년 전 광저우 대회 축구 우 관계기사 8p 승팀은 일본이었다. 국가별 메달 순위 순위 국가 1 중국 2 대한민국 3 일본 4 카자흐스탄 5 북한
(27일 현재)
금 96 35 32 9 8
은 58 42 43 10 8
동 41 40 38 18 9
2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사설
Inside
대북 전략, 현실주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News
행정장관 선거 무늬만 직선제에 홍콩 시위 점점 격렬 홍콩 시위사태가 격렬해지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들은 2017년 행정장관 선거 와 관련, 베이징 정부의 영향력 행사를 막겠다며 거리에 나섰다. 홍콩 당국은 경찰과 충돌한 시위대 50여 명을 체포했다. 4p People
노르웨이 배우 된 한국 입양아 세 살 때 노르웨이로 입양된 뒤 정신 적 방황을 거듭했던 모나 그린이 지 난주 오슬로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담 은 연극을 공연했다. 그녀를 만나 그 동안의 마음고생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12p Focus
Column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③
세상을 바꾼 전략 ①
런던의 비틀스 흔적들
최악 피하는 전략적 사고
매일 수천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애 비 로드의 비틀스 건널목을 찾아온 다. 비틀스 미국시장 진출 5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비틀스의 향수가 어 린 성지에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14p
이기심에 근거해서 전략적으로 행동 하는 인간을 분석하는 새 기획. 첫 회 엔 만년 2등 DJ를 박정희 대항마로 만든 전략적 투표의 힘을 조명해본다. 최선 고집 않고 최악 피하는 게 바로 전략적 사고라는데…. 28p
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 국빈 방문과 유엔총 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동안 쌓인 각종 현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 지 국민적 관심이 크다. 현안 가운데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차 대한 사안은 역시 통일이다. 박 대통령은 유 엔총회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통일,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넘어 지구촌 행복시대를 구현하는 것 을 외교 비전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 비전 이 외교적 수사에 그쳐선 안 된다. 우리가 비 전 실현을 위해 어떤 가시적 조치를 취할지 국 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결국 꽉 막힌 남북 관계의 개선이 그 첫걸음 이다. 이를 위해 대북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 어 이번 정부에서도 북한과의 관계는 지리멸 렬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박 대통령의 남은 임 기 3년 반 동안 아무런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 다. 우리는 우리대로 답답하고, 북은 북대로
좌절을 느낄 것이다. 그러는 새 일본은 북한과 급속히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데 이어, 중국 과도 해빙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만 꼼짝 않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가 흡수통일을 추진할 의 도가 없다는 점은 여러 경로로 확인된 바 있 다. 그렇다면 대화를 해야 할 텐데, 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게 북한의 핵이다. 근본적인 책임은 핵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북한에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핵을 넘지 못하고선 어떤 대화도 진행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선 우리가 먼저 이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북핵 폐기를 무조건 ‘대화의 최 우선 전제조건’으로 못 박는 대신 동결과 투 명화를 교류협력의 시발점으로 삼고 대화를 주도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도 우리의 대화 의지에 발맞춰 핵 문제에 진전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 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길이 열린다. 남북한 이 서로를 상대하면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한일 정상회담, 일본이 충분히 준비되면 가능 정부 고위급, 뉴욕서 기류변화 시사 “한·일 관계 개선 원하는 미국 의식” 분석도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열 번째 10월 19일 서울·부산·대전서 국내 최대의 벼룩시장, ‘2014 위아자 나눔장터’가 10월 19일(일) 서울·부산· 대전 3개 도시에서 일제히 열립니다. 2005년 시작해 열 번째를 맞는 올해 행 사의 슬로건은 ‘더워지는 지구, 나눔으로 시원하게’입니다. 올해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장터 면적을 자랑합니다. 광화문광장은 물론 세종로 양방향 12차로 가운데 9개 차로까지 장터를 넓 혔습니다. 시장이 넓어진 만큼 다양한 물건과 볼거리, 먹거리 등이 시민들께 다가갑니다. 재사용품이 많아진 만큼 지구를 식히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 까요. 올해는 특히 재사용품 판매장터(어린이 및 시민장터, 기업·지자체·단체장 터, 보부상, 외국인 벼룩시장), 스타 및 명사들의 기증품 경매가 활성화될 것 으로 기대합니다. 또 문화공연,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체험존, 친환경·나눔 이 벤트, 풍물시장, 농부의 시장, 자활장터, 사회적 경제 장터, 외국인 먹거리 장 터, 의료상담코너까지 장터 곳곳에서 풍성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행사의 모
or nothing)’로 흐르는 것은 무모하다. 어차 피 가야 할 길 위에 당장 깰 수 없는 큰 돌이 가 로막고 있다면, 그 돌을 잠시 옆으로 비켜 놓 는 방법도 있다. 돌은 천천히, 확실히 깨 없애 야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냉철 히 인식해야 한다. 북핵을 인정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북한 비핵화 노력을 중단하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북핵은 우리의 안보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 는 핵심 이슈다. 다만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대화와 교류를 병행하면서 장기적으로 풀자 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긴밀한 한·미 공조의 틀 속에서 해야 한다. 중국에도 북핵 억제에 나서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는 보수정권이기에 더 현실성 있는 일이 다. 보수여론을 설득해 동의를 얻어가며 추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북 전략은 철저히 리 얼리즘에 입각해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 리얼리즘은 지금 북한에 대한 요지부동의 원 칙론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부 내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미묘한 기류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6일(현지시간) 워싱턴에 서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한·일 정상회담 의 연내 성사와 관련, “일본이 충분히 준비가 된 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의 수 사(修辭)가 최근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가 원 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 기 전에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것으로 이를 기 다리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조 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전 제한 뒤 “이는 그런 조치가 없으면 (정상회담 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며, 일본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우리가 노력할 수 있다는 의 미”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양측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 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서 윤병세 외교장관과 대화하는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기류변화 조짐 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결국 정상회담 을 수용할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힘 겨루기에서 일본이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반 면 외교가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기존 방침 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한·일 관계 개선 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유연한 모습 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아베 신조(安 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는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 상회담을 하기로 이미 합의했으며, 시진핑(習近 平) 중국 국가주석과도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 는 만큼 한국 정부가 그 같은 흐름에 걸맞은 전 략을 짜기 위해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 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앞선 25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 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뉴욕 유엔본부 에서 만나 양국 관계와 위안부 문제 등을 논의했 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진 못했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정성이 있 는 노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자민당 내 새 로운 담화 발표 요구 등은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기시다 외 무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해결을 위해 노력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고노 담화 수정에 대해서도 “수정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든 기부금은 사단법인 위스타트와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저소득층 어린이들 을 돕는 데 전액 사용됩니다. 위아자는 위스타트, 아름다운가게, 자원봉사 등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사회공헌활동 세 가지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시민들 의 많은 관심과 참여 당부드립니다. 일시
2014년 10월 19일(일) 오전 11시~오후 4시
장소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일대 / 부산 부산시민공원 뽀로로도서관
IAEA 북 영변원자로 재가동 강력 규탄 결의안 위성사진으로 증거 포착 미 핵경제 병진 불가능, 김정은 이상설 정보는 없어
앞 / 대전 대전시청 잔디광장 놀이터 어린이·시민장터 판매자리 신청 10월 12일(일)까지 위아자 홈페이지(weaja. joins.com)에 접수. 추첨을 해 10월 15일(수) 홈 페이지에 공지 스타 및 명사들의 소장품 기증, 기업·단체장터 신청 전화나 e메일로 별도 문의 당일 관람 입장료 대신 ‘내가 안 쓰는 물건 1가지’ 기증(별도의 입장료는 없음) 문의
서울 02-2115-7331, 부산 051-867-8701~2, 대전 042-486-9008 / e메일 fleamarket@bstore.org / 홈페이지 weaja.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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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재 기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6일(현지시간) 북 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와 관련, 북한을 규탄하고 모든 핵 활동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 을 채택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IAEA는 이날 오스트리아 빈의 총회에서 “영변 5㎿급 흑연 감속로의 재가동과 우라늄 농축시설 확장 등 북한이 벌이고 있는 핵 활동을 강력히 규탄한 다”고 밝혔다. IAEA는 또 “2009년 사찰요원 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추방당해 북한의 원자 로 가동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며 “하지만 이달 초 연례보고서의 위성사진을 통 해 북한이 영변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했다는 증거인 수증기와 냉각수 배출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핵 시설을 확장하 거나 재배치하는 활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영변 흑연감속로는 최근 몇 년간 가동이 중단 됐으며 2008년에는 북한 당국이 6자회담 합의 사항 이행을 위해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했다. 그 뒤 회담이 지지부진하자 북한은 지난해 4월 핵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영변 핵 단지에 있는 흑 연감속로를 재가동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 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무기·탄도미 사일 개발과 함께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국제법 및 국제사회와 약속한 합의를 지키고 한 반도의 번영을 추구하는 길로 간다면 미국과 동 북아 국가들은 북한 경제재건에 적극적으로 협 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서는 “아는 바 없다”며 “과거에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건강과 관련된 소문과 의혹들은 일종의 (상대를 압도하려는) 파워게임 양상을 보였다”고 진단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26일 뉴욕 유엔본부에 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부 장관 과 만나 북한 문제 등을 논의했다. 양국 외무장 관이 만난 것은 2008년 이후 6년 만이다. 이 자 리에서 윤 장관은 “이란 핵협상이 오는 11월 24 일로 정해진 기한 내에 타결돼 이란이 국제사회 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 협상은 핵 개발을 추진하는 북한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주민생활 안정에 주력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 라”고 당부했다. 이에 자리프 장관은 “핵무기는 절대로 안보를 보장해주지 못하며 한반도에 핵무기가 존재해 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란 정부의 분명한 입장” 이라고 답했다. 또 “현재 이란은 북한과 어떤 군 사적 협력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이수용 북한 외무상은 27일 유엔총회 연 설을 마친 후 곧바로 러시아를 방문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다.
News 3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출범 두 달 넘긴 통일준비위원회 정종욱 부위원장
큰 문제 옮겨 놓고 작은 신뢰부터 쌓자는 게 대통령 생각 <북핵>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남북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핵무기 개발을 그치지 않 는 북한과 분단 고착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 다는 게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 원장의 지론이다. 그런 상황 인식을 바탕으 로 그는 전향적인 대북 접근을 제안했다. 북 한 비핵화 원칙을 철통같이 견지하면서도 대 화와 교류의 길을 터보자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관은 뭔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전혀 다른 전 제에서 출발한다. 흡수통일이라든지 북한의 몰락을 전제하고 있지 않다. 대신 남북이 대 화하고 교류해서 함께 평화통일을 추구한다 는 게 대통령의 통일관으로 안다. 북은 대화 와 협력의 대상일 뿐 아니라 통일의 동반자 라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선 남북 간 당국자 회담이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에 도 움이 된다면 정상회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 냐는 생각을 대통령은 여러 번 피력했다. 사 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2002년 5 월) 북한 최고지도자(김정일)와 만난 유일한 인물 아닌가.” 현 상태선 남북 현안 일괄 타결 어려워 -하지만 집권 1년 반 동안 북한과 대화다운 대화가 없었다. “박 대통령은 2년 전만 해도 ‘밥상론’을 폈 다. 이것저것 다 차려놓고 먹는 한식 밥상처 럼 남북이 여러 현안을 일괄 타결하자는 구 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 간에 워낙 신뢰 가 없어 일괄타결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조그만 합의들을 축적해 신 뢰를 쌓아가는 방식을 구상하는 듯하다. 일 례로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민생·문 화·환경통로를 제안했다. 실용적 분야에서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이런 게 하나씩 실현되면 고위급에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는 거다.” -박 대통령이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 핵은 심각한 위협”이라고 비판한 건 어떻게 봐야 하나. “그동안 정부가 얘기해온 수준과 같은 언 급이다. 핵 문제가 안 풀리면 대화 안 하겠다 는 얘기가 아니다. 핵 문제가 안 풀려도 인도 적 지원이나 환경·민생 같은 소분야 협력은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핵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게 (박 대통령 대북정책의) 핵심이다.” -유엔 연설에서 북한 인권에도 우려를 표 시했는데. “인권을 비켜가긴 어렵다. 국제사회의 보 편적 이슈 아닌가. 유엔이 북한 인권을 계속 압박하니 북한도 인권보고서를 내는 등 태 도가 달라지지 않았나.” -3년 반 남은 임기 내에 대화를 진척시키 려면 인권을 거론하지 않는 게 방법이란 지적 도 있다. “그런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은 중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내 년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북한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빨리 대화에 나서야 한다.” -내년이 중요한 시기인 이유는. “분단 70주년이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 사에서 남북이 공동 주최하는 문화축제를 제안했다. 이걸 계기로 통일준비위원회는 내 년 8·15를 전후해 남북이 공동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여는 방안을 통일부·문체부 등 과 기획 중이다.” -남북 공동축제엔 경평(京平)축구도 포함 되나. “물론이다. 그런 행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남북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또
지난 24일 서울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에 위치한 통일준비위원회 집무실에서 정종욱 부위원장이 통일 청사진 구상 등 통준위의 활동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핵 안 풀린다고 대화 안 하진 않아 북한 성의 보이면 전향적 대응할 것 평화협정 전환 대비책도 구상 중 남북 교류협력해 공동발전하면 박 대통령, 합의 통일 가능하다 여겨 통일 준비 청사진엔 진보도 참여
내년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 내부 사정 때문 이다. 4~5년 전부터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 다. 중국도 자신들이 개방을 개시한 1970년 대 말~80년대 초의 모습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거부한다면 북·중관계는 더욱 경색될 거다. 그래서 북한은 외자를 갈구하 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돈을 줄 나라는 한국 뿐이다. 북한이 우리가 제의한 2차 고위급회 담에 나와 성의를 보인다면 5·24 제재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가능해진다. 그러니 북 한은 빨리 회담장에 나와야 한다.” 5.24 조치, 이미 미세조정 들어가 -성의를 보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은 과거에 에둘 러서 사과 비슷한 의사를 표명할 뜻을 비춘 바 있다. 금강산 관광객 사살에 대해서도 어 느 정도 사과 비슷한 의사를 표시한 게 있다. 이번 회담에 나와 그같이 한다면 우리도 전 향적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는 걸로 안다.” -북한의 거부로 5·24 해제가 불발돼도 내 년에 남북 공동행사를 할 수 있나. “남북관계는 항상 뭐든지 가능하다. 이미 5·24 조치는 미세조정에 들어갔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우리 기업이 러시아 지분을 사 들이는 방식으로 5·24 조치를 우회해 북한과 교류하고 있는 셈 아닌가. 이명박 정부 때 남 북관계가 경색된 가장 큰 이유가 ‘비핵 개방 3000’이었다. 핵 문제를 맨 앞에 두니 대화가 안 된 거다. 그러나 현 정부는 핵 문제를 조금 들어다가 (옆에) 놓고 북한과 대화 통로를 열 려는 점에서 다르다. 박 대통령은 ‘핵 문제와 별도로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다’는 입 장을 분명히 밝혀 왔다. 북한 산모·영유아들 을 지원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통준위에서 도 앞으로 남북대화가 본격화되면 산림녹화, 철도 연결, 개성공단 확대, IT 투자 등 여러 카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2015년 김정은 정권 붕괴설’을 주장했다. “정부의 대북관엔 대통령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생각하 지 않는 걸로 본다.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국제적으로도 아주 복잡한 문제를 낳 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좌시하 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남북이 교류·협력해 공동 발전해가다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합 의를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박 대통령 은) 생각하는 걸로 안다. 남북을 막론하고 과 거의 타성에 젖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 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통일관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길밖에 없다고 본 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 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어머니 육 영수 여사가 북한과 연루된 재일교포 문세광 의 흉탄에 목숨을 잃은 사건을 두고 ‘이런 비 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남북 간에 평화통 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본 인이 직접 겪은 비극을 바탕으로 얻은 통일 관이라 책을 읽고 형성한 철학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게 박 대통령이 통준위를 출범시킨 배경이다.” -통준위는 지난달 7일 청와대에서 박 대 통령 주재로 1차 회의를 열었다. 무슨 말이 오 갔나. “일부 위원이 ‘북한이 흡수통일이란 말에 반발이 심하니 대통령이 흡수통일을 하지 않
겠다고 직접 밝혀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 자 박 대통령은 ‘흡수통일 하지 않겠다는 얘 기를 할 순 없지 않나. 대신 우리는 북한의 급 변사태를 전제로 한 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 을 추구한다’는 선으로 답변하더라. 대단히 심오한 뜻이 있다고 본다. 또 통준위에 참여 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 개를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직접 답하지 않 는 대신 ‘남북관계란 게 항상 상대가 있기에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즉답을 하기란 매우 위 험스러운 일’이라며 ‘우리는 북한을 평화통 일의 동반자로 간주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통령이 ‘흡수통일 안 하겠다는 말을 할 순 없지 않나’고 한 건 무슨 뜻인가. “고심의 결과 아니겠나. 우리 내부엔 엄청 난 숫자의 보수층이 있다. 그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보수층을 자극할까봐 그렇게 말했지만, 진짜 방점은 평화통일에 있다는 건가. “그렇다. 대통령도 흡수통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분명히 이해하고 있을 거다.” 대북 정책서 북핵 비중 작아지게 해야 -그러면 북핵은 어떻게 할 건가. “이 문제에 대해선 내가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하는 입장이 아니다. 통준위 차원에서만 얘기한다면 북한은 핵을 스스로 포기하기 힘 들다고 본다. 그러니 북한 정책에서 핵의 비 중이 점점 작아지는 상황을 우리가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 전적으 로 핵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지만 경제가 성 장하면 자신감이 커지고 핵에 대한 의존도가 줄 거다. 그러면 핵 문제에 유연한 자세를 갖 게 되지 않을까.” - 그런 논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슷 한 것 같다. “큰 차이가 있다. 그때는 대화 전에 물밑 흥 정을 했다. 북한이 ‘남측 제안을 받아줄 테니 얼마를 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들어줘야 대 화에 나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밀실거래는 안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또 다른 차이는 그때에 비해 북한의 핵능력이 엄 청나게 커졌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김춘식 기자
2000년만 해도 북한 핵은 국제사회의 주목조 차 받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핵무기를 갖는 단 계까지 왔다. 자연히 핵 문제 해결엔 긴 시간 이 걸릴 텐데 무조건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 다는 판단도 작용한 거다. 물론 6자회담 등을 통해 핵폐기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해도 인도적 지원 을 계속할 것인가. “원칙적으로는 (핵실험을 한다고 인도적 지원이) 바로 동결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핵 실험은 워낙 심각한 도발이니 인도적 지원 지 속 여부는 부차적 문제다. 핵실험은 안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밖에 통준위에서 준비 중인 것은.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남북관계가 진전되 고 어느 단계에까지 이르면 종전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 다. 먼 미래의 일일 테긴 하지만, 북·미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이 워싱턴에 대사관을 둘 가능성도 있다. 이런 평화협정에 대한 구 상이 우리가 준비 중인 로드맵의 한가운데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준위에서도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주도로 ‘신 평화체제’란 TF를 가동 중이다.” -신평화체제에서도 한·미동맹은 유지되나. “한반도 안보에 취약점이 존재하는 한 한· 미동맹은 물론 존속해야 한다” -평화협정 얘기만 나오면 ‘주한미군 철수 하라는 주장’이라는 반발이 나오는데. “여러 전문가들이 (그 문제에 대한 답을) 검토할 것이다.” -통준위에 대해 대통령이 주문한 게 있나. “통일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주고, 구체적인 통일정책과 민관 협력 구조 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통준위는 이를 위해 내년 8월에 통일 헌장과 방안 및 로드맵으로 구성된 ‘통일 청사진’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 념을 초월해 국민적 합의로 만들 거다. 122개 단체들로 자문단을 구성했다. 진보단체도 여 럿 포함시켰다. 통일에 대해선 보수와 진보 간에 의견 차가 크지 않나. 통일 청사진 논의 과정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 거다. 고 함치는 사람도 나오지 않겠나.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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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2017년 행정장관 선거’ 놓고 둘로 갈라진 홍콩
베이징서 ‘무늬만 직선제’ 밀어 붙이자 일각선 “독립” 주장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18.7%→2.96%. 1996년과 2013년 중국의 국내총생산 (GDP)에 대한 홍콩 GDP의 비율을 비교한 수치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돌려받 을 당시만 해도 중국에 홍콩은 절실했다. 하 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홍콩은 중국 에 자본과 노하우를 전수하던 ‘갑’에서 중국 으로부터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원하는 ‘을’ 로 바뀌었다. 지난달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 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홍콩 반환 20년 만에 시행되는 오는 2017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직접선거에서 반중(反中) 인사를 배제시키기로 결정했다. 홍콩 대학생들은 이 안이 고도의 자치권 보장을 명시한 홍콩기본 법에 위배된다며 지난주 대규모 동맹 휴업을 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2일 홍콩 중문대학 본부 앞 ‘백만대 도(百萬大道)’ 광장에는 홍콩 대학 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 聯會·HKFS) 소속 24개 대학 1만3000여 명 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식민주의 반대(抗 殖), 예비 선별 반대, 홍콩 자주노선 지지”를 외치며 닷새 동안 휴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베이징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후보로 친중 국 인사를 내세워 자치권을 침해하려 한다” 고 주장했다. “전인대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 는다”는 구호를 외친 학생들은 이튿날 흰색 상의를 입고 노란 끈으로 손을 묶은 채 정부 청사가 위치한 타마르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동맹 휴업을 이어갔다. 교수들은 휴업 참가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공원에서 무료 시민 강의를 열었다. 홍콩 정부는 친중 단체의 집 회 사전 신청과 규정을 내세워 시위대가 3일 이상 공원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이 에 학생 4000여 명은 25일 밤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관저로 몰려 가 노숙 시위를 이어갔다. 금요일인 26일에는 중고등학생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소 속 학생 3000여 명이 정부청사 인근에 모여 일일 휴업에 동참했다. 시위대는 26일 밤 홍콩 정부청사사 진입 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최루액 스프레이를 뿌리며 시위 진압에 나서 50여 명을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29명이 부 상했다. 체포된 학생 중에는 학민사조를 이 끄는 학생운동가 웡지풍(黃之鋒·18)군도 포 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회보 “미국이 관리한 인물이 휴업 선동” 홍콩 범민주파도 학생 휴업을 지지하고 나섰 다. 타이유팅(戴耀廷) 홍콩대 법학과 부교수 는 23일 페이스북에 “남들이 국가의 생일(중 국 건국일 10월 1일)을 경축할 때 우리는 홍 콩의 민주주의를 쟁취할 성대한 잔치를 벌이 자”는 글을 올렸다. 타이 교수는 2011년 미국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착안해 지난해 홍 콩의 금융 중심지인 센트럴을 장악하자며 결 성된 ‘센트럴을 점령하라’ 조직의 공동 설립 자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시위 주도자 들의 국외 탈출을 도왔던 추이우밍(朱耀明) 목사 역시 10월 1일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센트럴 차터로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 며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학생 시위대 도 국경절 센트럴 점령 시위에 동참을 예고 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반격도 만만찮다. 지난 8월 17 일 ‘보통선거 보호·센트럴 점령 반대 대연 맹’ 소속 19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가두시위 가 그 시작이었다. 반(反)중국파의 시위에 맞 불을 놓은 것이다. 학생 휴업에 대해서는 미 국 개입설을 흘리고 있다. 친중국계 신문 문 회보는 25일 3년 전 학민사조를 결성한 웡지 풍이 주홍콩 미영사관의 돈을 받아 가족과 함께 마카오로 호화 여행을 다녀왔다고 폭로
홍콩에서 2017년 실시될 행정장관 선거를 둘러싼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과 시민들은 “행정장관 선거를 통해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권 을 강화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27일 경찰들이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고 있다.
반중 인사 출마 봉쇄에 시위 확산 대학가서 “자치권 침해” 동맹휴업
결정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은 53.7%, ‘찬 성’ 답변은 29.3%가 나왔다. ‘이민을 고려하 고 있다’는 답변도 21.2%를 차지했다.
지식인중고생도 반중 대열에 가세 26일 시위 진압과정서 50여명 체포
했다. 신문은 “미국이 향후 ‘색깔혁명’(공산 주의 붕괴 후 동구와 중앙아시아에서의 민주 주의 쟁취 혁명)을 주도할 정치 스타로 키우 기 위해 관리한 인물이 휴업을 선동하고 있 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 문대가 이달 중순 광둥어를 사용하는 주민 1006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 과 ‘센트럴을 점령하라’를 매우 지지한다 는 의견이 14.2%인 반면, 매우 반대한다는 33.8%를 차지했다.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신 임도는 중간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 ‘완전히 지지하지 않는다’를 0점, ‘완전히 지지한다’ 를 10점으로 한 질문에 대한 답은 평균 4.05 였다. 반중여론이 중간을 조금 넘는다는 해 석이 가능하다. 홍콩 시민들의 정치성향은 범민주파(39.5%), 중간파(24.1%), 무당파 (21.5%), 친중파(9.1%) 순이었다. ‘전인대의
반환 17주년 행사 땐 옛 홍콩국기 등장 민주화가 독립 요구로 번지는 데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영국 스코틀랜드가 독립투표 실시를 결정하자 홍콩대 학생회지 ‘학원(學 苑)’ 9월호는 ‘홍콩민주독립’을 커버스토리 로 다뤘다. 지난 7월 1일 홍콩 반환 17주년을 기념한 민주화 시위에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 국기였던 용사기(龍獅旗)를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까지 등장했다. 추리번(邱立本) 홍콩 아주주간 총편집장은 “과거 대만이 겪었던 홍역을 홍콩이 앓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쟁 취하는 과정에서 공산당 반대가 중국 반대로 이어지는 ‘탈중국화’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대만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본의 점령이 대만의 현대화를 가져왔고, 국민당에 의한 광복이 대만인에게 불행이었다는 주장 까지 나왔던 ‘괴현상’이 홍콩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콩 독립 주장은 시민들 의 반발과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중국은 대(對)홍콩 정책을 주도 면밀하게 준비해왔다. 영국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총독 이 지배하던 식민지 시절 홍콩 시민들은 자 유로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은 상대적 으로 약했다. 홍콩인들은 “정치는 나의 소관 이 아니다”는 타성에 젖어 자유만을 만끽했 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사건이 이를 바꿨 다. 중국 정부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 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영국은 보수 당 의장을 역임한 보수파 크리스토퍼 패튼을 마지막 홍콩 총독에 임명했다. 95년 9월 실시 된 입법회의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역대 홍콩행정장관 이름 둥젠화(董建華)
중국은 선전(深圳)에서 따로 입법회을 구성 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에 익숙한 공산 정권이 정치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모두 수 용하겠다는 중국의 정책)’를 갑작스레 받아 들이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시진핑, “홍콩에 대한 중국 정책 불변” 그동안 홍콩은 선거위원회에서의 간접선거 로 세 명의 행정장관(임기 5년)을 선출했다. 중국은 이를 개혁하기 위해 차근차근 2017년 첫 직선제 방안을 마련했다. 2012년에는 홍콩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친중국적 정체 성 강화를 내세운 국민교육 과정을 도입하려 했다. 지난 6월 10일에는 ‘일국양제 백서’를 발표해 “애국인사가 주체가 되는 ‘항인치항 (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을 견 지한다”고 못박았다. ‘일국(하나의 중국)’이 ‘양제(두 개의 체제)’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정부는 외교권·국방권만 갖지만 홍 콩의 입법기구에서 제정된 법이라 할지라도 전인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라는 규정이 홍콩기본법에 명시돼 있음을 다시 확인한 것 이다. 1200명의 추천위원회가 민주적 절차로 2~3명의 행정장관 후보를 선출하며 각 후보 는 추천위원회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야 한다 는 8월 말 전인대의 결정은 예정된 다음 수순 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추천위원회가 실질적 으로 민주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인사의 행정 장관 임명을 막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조치의 배경에는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식 민주주 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21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65 주년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는 장식품이 아 니다. 밖에서 가져다 진열하는 것도 아니다.
홍콩시민 여론조사 임기
득표
득표율
1997년 7월 1일~2002년 6월30일
320/400
80% 1인 후보로 자동당선
도널드 창(曾蔭權)
2005년 3월 12일~5월 25일
자동당선
헨리 탕(唐英年) 행정장관서리
2005년 5월 25일~6월 21일
자동당선
33.8
2005년 6월 21일~2007년 6월 30일
자동당선
매우 반대
렁춘잉(梁振英)
2007년 7월 1일~2012년 6월 30일
649/800
81.1%
2012년 7월 1일~현재
689/1193
57.8%
(단위:%)
행정장관 보통선거 쟁취를 내건 ‘센트럴을 점령하라’행동을 지지하십니까?
2002년7월 1일~2005년 3월 12일
도널드 창 행정장관서리
[로이터=뉴스1]
14.2
12.5 약간 반대
모르겠음 2.1
매우 지지
16.9 약간 지지
20.5 중립 자료: 홍콩 중문대
국민이 풀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선거 투표권이 아니라 일상의 참정권으로 정의해야 한다” 며 “전체 사회가 원하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22 일에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둥젠화(董建 華) 초대 행정장관과 리카싱(李嘉誠) 청쿵 (長江)그룹 회장 등 중국 공상계 지도자 40명 을 만나 “홍콩에 대한 중앙정부의 기본 방침 과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 시 위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이다. 시 주석은 이날 “행정장관의 인선 방안 에서 중앙의 신임과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 을 사랑하는 인사를 뽑는 것이 핵심”이라며 “보통선거는 균형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 했다.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것 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전인대 선거안은 후보자 수가 당선자보다 많은 상태에서 치르는 중국식 차액선거의 변 형이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은 “후보자와 당선자 수를 동수로 하는 등액선 거가 일반적이었던 중국에서 차액선거가 도 입된 것은 민주화를 의미하지만, 폭넓게 자 유를 누리던 홍콩인들은 정치 퇴보로 여기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전인대 안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될 것”이라고 말 했다. 중국 정부는 느긋하다. 중국의 협상 특기 인 ‘시간은 내 편’ 전략을 구사 중이다. 데이 비드 램턴 미국 존스홉킨스대 중국연구소장 은 올해 초 펴낸 저서 지도자를 따라서에 서 ‘일국양제’를 중국식 협상술이라고 풀이 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상대와 협상할 때 기본 원칙, 정책, 목적, 제안 등을 내놓는다. 대만·홍콩 문제에 있어 ‘하나의 중국’은 원칙 이다. 원칙을 건드리면 협상은 파탄난다. 평 화 통일은 목적이다. 이에 따르면 ‘일국양제’ 는 원칙도 정책도 아니다. 단지 제안에 불과 하다. 협상이 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홍콩 범민주파가 독립을 언급하며 하 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건드릴 경우 중국은 강경책도 불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회 불안정으로 홍콩 경제 추락 우려 변수 중 하나는 경제다. 정세가 불안해지면 아시아의 금융 허브 중 하나인 홍콩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진다. 이럴 경우 홍콩과 중국 모두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전문 가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안정을 어떻 게 조화롭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향후 홍콩 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중국과 홍콩의 경제협력 강화방안도 적극 시행되고 있다. 특히 다음 달 13일부터는 상 하이와 홍콩거래소 사이의 교차 매매를 허 용하는 ‘후강퉁(滬港通)’이 시행된다. 위안 화 세계화의 전진기지로 홍콩을 활용하겠다 는 전략의 확대 조치다. 광저우(廣州)·홍콩· 마카오를 묶는 주장(珠江)삼각주 일체화 전 략도 진행 중이다. 시진핑 이후 총서기직을 노리는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당서 기가 주도하고 있다. 그의 전략은 이를 성공 시켜 포스트 시진핑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 이다. 추리번 총편집장은 “홍콩 민주화 세력은 경 험을 바탕으로 중국 개혁파와 힘을 모아 중국 의 민주화에 자극을 줘야 한다. ‘일국양제’를 ‘일국양제(一國良制·좋은 체제로 다스려지 는 한 나라)’로 바꿔 14억 중국인 모두가 동일 한 민주·자유·법치라는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콩의 권 위지인 명보는 최근 사설에서 “홍콩은 사회적 컨센서스를 모아 경제를 재건해 홍콩의 가치 를 높여야만 다음 단계에서 민주화 진전을 일 궈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굴기(崛起)하는 중 국에 압력에도 불구하고 생존하려면 자신의 협상 실력을 높이는 길뿐이란 얘기다.
News 5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한국 방문한 WSJ 중국경제 수석에디터 밥 데이비스
중국처럼 대출 급증한 국가에선 예외 없이 금융위기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예전 같지 않은 성장률, 아슬아슬하게 부풀 어 오른 금융대출, 모두들 불안하게 지켜보 는 부동산 시장, 사회 결속력을 좀먹는 부정 부패, 여기에다 홍콩에서 불어오는 민주화 바람까지. 중국 지도부가 풀어야 할 현안은 한둘이 아니다. 일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 가주석의 반(反)부패 드라이브는 국민의 지 지를 받는 분위기다. 하지만 진정한 경제구 조의 개혁보다 관료와 기업에 겁을 주는 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적 고민을 현장 에서 지켜본 밥 데이비스 월스트리트저널 (WSJ) 중국경제 수석에디터는 그 현안들을 결코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3년간 중국경 제 수석에디터로 활동하다 워싱턴으로 복귀 하던 그가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 초청으로 방한해 지난 26일 중앙SUNDAY 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중국과 같은 규모로 대출이 급증한 나라에선 예외 없이 금융위기가 닥쳤다”며 “섀도 뱅킹(규제받지 않는 금융)과 연계된 부 동산 버블이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 라고 주장했다. 중국 개인 돈거래, 얽히고설킨 시한폭탄 -섀도 뱅킹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나.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다. 최근 국제통화 기금(IMF)이 중국 경제 보고서를 내놨는 데, 지난 50년간 들여다본 43개국 중 4개국에 서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출 증가 현상 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4개국은 모두 금융위 기를 겪었다. 중국 당국도 섀도 뱅킹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대출 남발을 억제하는 일련 의 조치를 취하고는 있다. 그래서 그 증가세 가 줄긴 했지만, 그 역시 아직은 경제성장률 보다 훨씬 높다. 섀도 뱅킹 자체가 중국 경제 를 완전히 주저앉게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여태까지 중국이 해온 것처럼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 급락 가능성은.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철강산업, 가 전산업 어디 하나 안 엮인 데가 없다. 다 더하 면 중국 경제의 4분의 1에 육박할 것이다. 입소 문으로만 돌던 얘기들이 통계로 확정되고 있 다. 얼마 전 파산한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일부 지만 디트로이트만 보고 미국 경제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어느 도시에 가 도 외곽에 빈 아파트 단지가 유령처럼 서 있다. 부동산 문제는 성장률에 직격탄을 내리꽂을 것이다. 올해 성장률이 7.5% 타깃에 못 미치면 문제가 더 악화될 거다.” -그래도 중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금융상품이 없지 않나. “중국 당국자들도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다르다고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그건 상황을 제대로 본 게 아니다. 중국인들은 돈을 친척 과 친구들에게서 빌린다. 서로 엮인 정도가 어떻게 보면 미국보다 심각하다. 은행 시스템 이 안 무너지더라도 부동산 문제가 한 번 발 발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다.” -올해 성장 목표인 7.5% 달성이 가능할까. “중국 당국은 금리를 낮출지 논의하는 등 성장 목표를 맞추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 그런 데 성장 목표라는 것 자체가 괜한 짓이다. 달 성을 못 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경제에 악영향 을 미칠 것 아닌가. 솔직히 7.5%와 7.3%가 뭐 가 다른가. 사실 중국의 통계수치는 믿기도 힘들다. 지방정부에 목표를 하달하는 계획경 제의 유산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실업률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 시스템적인 문제를 해결 해야지 숫자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시진핑 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이 화제다.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고, 중국인들은 그
의 정책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 다. 하지만 경제 개혁보다 관료와 기업에 겁 을 주는 데 치중하는 게 문제다. 지방 관료들 은 괜히 민영화에 나섰다가 민간업자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찍힐 수 있어 아무것도 안 한 다. 소비심리도 위축돼 명품 시계·고급 자동 차 구입도 확 줄었다. 반면 부패 혐의를 받은 사람은 반박이나 항소의 기회도 없이 99% 유죄 판결을 받는다. 부패를 척결한다는 소 리는 요란하지만 함께 진행돼야 할 금융·법 률 개혁은 진전이 없다.” -최근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 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 개발은행(NDB) 같은 중국 중심의 기구를 만든다는데 남미·아프리카 등지에도 이미 개 발은행이 있다. 또 위안화가 더 국제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흥미롭게 지켜봐 야 할 것은 IMF 같은 메이저 국제 금융기구 의 지배구조를 중국이 바꾸겠다고 나설 가 능성이다. 현재는 미국·유럽 중심인데 갑자 기 중국에서 총재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요구할 수도 있지 않겠나.”
섀도 뱅킹이 키운 부동산 버블 중국경제 발목 잡을 수도 있어 위안화 기축통화는 아직 먼 얘기
-위안화가 달러 대신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 손자의 손자 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얘 기다.” 홍콩 직선제 갈등, 미영 개입 여지 없어 -중국이 홍콩 행정수반을 사실상 임명하려 고 해서 논란이다. “미국과 영국 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화 운동 중 하나다. 미국과 영국이 실질적으로 선택 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어떤 중국인들 은 ‘영국은 홍콩을 100년 동안 식민지로 삼 아놓고 무슨 민주화 얘기를 하느냐’고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론 대국이지만 민주화의 잣 대로는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홍콩은 고사 하고 중국 자체의 민주화나 다당제는 말을 꺼내기도 무색하다.” -상하이FEZ를 실패작으로 보는 이유는. “거기에 가면 창고밖에 없다. 아주 전통적 인 공단의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 은 FEZ가 출범할 때 뭔가 기회가 열리지 않 겠느냐고 희망을 잔뜩 가졌다가 지금 어이없 어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FEZ 에서 엑스박스(Xbox)를 수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론칭을 며칠 앞두고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며 내년으로 연기했다. 뭔가 규제당국과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FEZ에 가면 공단 에 등록하라고 서류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닌다. 중국은 상하이FEZ를 통해 서구식 시스템 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명확한 목 표 없이 무작정 추진했다 뒷걸음치고 있는 모 습이다. FEZ안을 발표한 리커창 총리는 정작 오프닝 행사엔 참석하지 않았다. 시진핑과 손 발이 안 맞았을 수도 있는데 지금 중국의 모습 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밥 데이비스 1982년 월스트리트저널 입사, 워싱턴·브뤼셀·라틴아 메리카 총국장, 국제경제 수석에디터. 99년 아시아· 러시아 금융위기 분석기사로 퓰리처상 공동수상.
밥 데이비스 수석에디터는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부패와의 전쟁’이 소리는 요란하지만 금융·법률 개혁은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6 Focus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인턴기자가 사흘간 체험한 ‘단기 알바’
밤새 박스 6000개 옮기고 8만원 허리가 끊어질 듯했다 강승한 인턴기자 kshwvv@naver.com
‘단기알바’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이 말은 단 기간 아르바이트의 줄임말이다. 취업을 하려면 학점 관리에 ‘스펙’을 쌓아 야 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대출을 갚을 일이 막막한 세상. 요즘 대학생들에게 단기알바는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 쉬운 것은 일을 구 하는 것까지만이다. 실제 돈을 손에 쥐기까지 상상 이상의 고통이 따른다. 대학에 재학 중 인 중앙SUNDAY 인턴기자가 3일에 걸쳐 단 기알바 체험을 해봤다. 그중에서도 이상하고, 특이하고, 고된 일 한 가지씩을 택했다. 이상한 알바, 특이한 알바, 겁나는 알바 “택시비는 드릴 테니 바로 터미널로 가세요.” 결혼식장 지하에서 만난 ‘팀장’은 침을 튀 겨가며 통화 중이었다. 오늘 할 일은 ‘이상한’ 단기알바, 결혼식 하객 대행 알바다. 오후 6시 가 되자 젊은 커플 두 쌍과 20대 남녀 각 세 명 이 모였다. 바로 ‘업무 전 미팅’이 시작됐다. 식장에 올라가는 순서와 역할도 정했다. 알 바들이 한꺼번에 올라가면 어색하기 때문이 다. 졸지에 생면부지인 신부의 대학 선배가 됐 다. 먼저 커플 두 쌍이 올라갔고 팀장과 나머 지 알바들이 시간을 두고 올라갔다. 업무 시 간은 오후 7시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실에서 느닷없이 ‘대학 후배’가 된 신 부를 만났다. 북적거려야 할 대기실엔 신부와 사진기사 둘뿐이다. 어색한 ‘인사 연기’를 마 친 뒤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예식장 은 청첩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고 급스러웠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식이 시작됐다. 멍 하니 앉아 있는데 ‘진실된 결혼’이라는 사회 자의 멘트가 귓전을 때린다. 식이 끝나고 사 진 촬영 순서가 됐다. 알바들이 출동해야 할 순간. 미소 가득한 하객들의 표정과 무심한 알바들의 표정이 대비를 이룬다. 표정이 어색 했는지 사진기사가 분위기를 띄운다. “여러 분 표정이 왜 이렇게 무서워요. 혹시 알바 아 니죠?”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신랑신 부는 웃지 않았다. 촬영의 하이라이트인 부케 던지기. 사진기사가 부케 받을 친구가 나오길 종용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팀장이 신 부 옆자리를 지키던 ‘대학 여자 선배’의 등을 쿡 찌른다. ‘대학 여자 선배’는 1인당 7만원짜 리 저녁에 알바비, 부케까지 덤으로 받았다. 퇴근 시간. 처음 만났던 지하에 20명 남짓 한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모두 말없이 봉투 하나씩을 들고 흩어졌다. 팀장에게 ‘역할 대 행 알바’에 대해 물어봤다. -어떤 역할 대행이 있나. “모든 역할이 있다. 청첩장을 뿌린 상태에 서 신부가 도망가 알바 신부를 부른 적도 있 다. 부모 역할도 있고 무당 역할을 맡아 운수 를 알려주기도 한다. 가짜 불륜 상대도 있다.” -부모 대행은 평생 해야 하나. “그럴 수도 있다. 대개 이혼했다거나 돌아 가셨다거나, 이민 갔다고 둘러댄다. ‘선녀와 나무꾼’처럼 시간이 흐른 뒤 진실을 얘기해주 기도 한다. 오늘 결혼식에도 당신이 모르는 역 할이 있다.” -뭔가. “오늘 신랑 어머니. 그분도 알바다.” 주말 아침 출근길은 한산했다. 하지만 종묘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단기알바를 위해 모인 이들이다. 이날 종묘에선 묘현례(廟見禮) 재 현 행사가 열렸다. 세자빈이 가례를 마친 뒤 왕비와 함께 종묘를 참배했던 조선왕조의 국 가의례다.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특이한’ 알바,
결혼식 하객 대행 알바는 짧은 시간에 괜찮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화려한 결혼식이지만 하객은 물론 신랑 어머니까지 가짜다.
엑스트라 알바는 나이에 상관없이 할 수 있는 ‘특이한’ 알바다. 강승한 인턴기자(왼쪽 첫째 가마꾼)가 지난 20일 서울 종묘에서 열린 묘현례 재현 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결혼식 하객 대행은 요지경 세상 보수보다 근사한 식사 대접 매력 종묘 행사에 동원되는 엑스트라 출연시간 10분 ‘가마꾼’이 꿀보직 고되기로 소문난 택배물류 알바 박스에 발 찍히고 무릎엔 타박상
학자금 대출 연체자 추이 (단위: 명, 괄호 안은 누계금액)
9만5182 9만3510
(4924억원) (5044억원)
6만2829 5만3008 (3045억원) (2394억원)
4만682 (1759억원) 2008년
09
10
11
12
자료:한국장학재단, 통계청
아르바이트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됐나
(단위: %)
70
75.4
60 50
57.1
경제적 사회생활 진로선택 도움 안 됨
40 30 20 10 0
19.8
8.8 5.2 2.7
6.3 4.3 2008년
09
10
11
12 자료:한국고용정보원
고용주의 횡포, 착취 경험 없다 22
30 연장근로
있다 78
기타 9 성희롱 3 10 폭언과 욕설
26 임금체불 22 계약보다 낮은 임금 자료:대학내일
이른바 ‘엑스트라’ 알바다. 재현 행사인 만큼 아예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람도 있었다. 팀장이 즉석에서 ‘신분’을 정했다. 50대 이상 은 당상관, 몸이 왜소한 두 명은 내시가 됐다. 그럴 듯한 벼슬을 기대했지만 가마꾼 역할이 주어졌다. 전에도 가마꾼을 해봤다는 동료(?) 는 ‘꿀보직’이라고 귀띔했다. 당상관급은 하 루 종일 뙤약볕에 서 있어야 하지만 가마꾼은 10분만 가마를 지고 올라갔다 내려오면 되기 때문이란다. ‘고위직 엑스트라’는 땡볕서 고생 주렁주렁 장신구가 달린 당상관 관복과 달리 가마꾼은 두루마기 한 벌이 전부. 이마저도 초짜들은 옷고름을 맬 줄 몰라 쩔쩔맸다. 수 염까지 기르고 온 베테랑들은 이미 의관을 정 제한 뒤 여유를 부린다. 옷을 갈아입자 팀장 이 가마꾼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절대 로 왕비를 쳐다봐선 안 된다는 것. 시선을 땅 에 두니 왕비와 궁녀들의 치맛자락밖에 보이 지 않았다. ‘이런 게 조선시대 신분사회인가’라는 재 미를 느낀 것도 잠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현실로 다가온다. 8명이 나눠 가마를 졌는데 도 땀이 줄줄 흘렀다. 리허설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 었다. 좀 전까지 쳐다볼 수도 없었던 왕비와 문무백관들도 가마꾼들과 함께 열심히 젓가 락을 놀렸다. 호위무사 역할을 한 25살 학생 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엔 어떻게 왔나?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어 삼수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연기 아카데미 학비를 벌기 위해 일 을 해야 했다. 전에는 화장품 영업을 했는데 쉽지 않더라.” -엑스트라 알바는 할 만한가.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편하다. 엑스 트라를 하면 적어도 촬영장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서 왔다.” 오후 1시. 드디어 본공연을 위해 분장을 했 다. 누구는 수염을 그리고, 누구는 수염을 붙 인다. 신분 차이다. 가마꾼은 먹칠을 한 스펀 지로 쓱 문지르면 끝. 절대로 수염을 그려선 안 되는 배역도 있다. 내시다. 오후 1시45분. 접시닦이를 그만둔 대학생, 중소기업 총무, 구청 하도급업체 직원과 함 께 구령에 맞춰 왕비가 탄 가마를 들었다. 관 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진다. 괜
히 으쓱해져 땀 나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정 전(正殿)으로 올라가는 왕비를 뒤로하고 대 기실로 돌아왔다. 저고리를 벗고 일반인으로 돌아왔다. 이날 온 엑스트라 중엔 20대가 많았다. 대 학생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생계를 위해, 꿈 을 위해, 하루 4만원을 위해, 젊은이들은 땡볕 에 서 있거나 가마를 짊어졌다. 일요일 하루를 쉬었다. 오늘은 ‘단기알바 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택배물류 알바를 하 는 날이다. 알바생들 사이에서도 고되기로 소 문난 알바. 야간 11시간 동안 택배물류를 싣 고 내리는 일이다. 정차해 있던 버스에서 30대 중반의 인력업 체 직원이 나타났다.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짧게 한마디를 던진다. “고정 앞으로. 새로 온 사람 뒤로.”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고 버스에 올랐다. 충북과 대전을 지나 두 시간 반 만에 옥천 택 배터미널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내려서도 담 배만 피울 뿐 말이 없었다. 일은 단순했다. 분 류돼온 택배 박스를 받아 트럭에 쌓는다. 이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택배물류 상차(上車)다.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저녁 식사 시간 이 시작됐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오후 8시 정 각. 주어진 시간은 20분이다. 미역국에 조밥 을 말았다. 농산물 수확 시즌인 9월이 최악 잠시 후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됐다. 고참(?)은 최악의 날을 골랐다며 웃었다. 농산물 수확 시즌인 9월에다 주말 물류가 쌓이는 월요일이 란다. 이런 얘기를 들을 짬도 없었다. 레일을 타고 오는 택배 박스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유의해야 할 박스는 세 가지다. 액체 박스, 아 이스박스, 그리고 마대다. 액체 박스는 잘못 던지면 터져 흐른다. 감당 할 수가 없다. 아이스박스에는 김치·젓갈·반 찬 등이 들어 있다. 박스가 깨져 내용물이 흐 르는 순간 다른 택배까지 ‘끝장내는’ 무서운 녀석이다. 그리고 마대. 500g에서 1㎏ 정도 되 는 작은 박스 20개가 들어 있다. 사각형인 일 반 박스와 다르다. 모양을 만들어 정리할 수 가 없다. 허리를 180도에 가깝게 돌려 던져야 한다. 두 배로 힘들다. 물류창고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 레일에 박 스가 뜸해질 때 교대로 2분가량 쉰다. 자정쯤
단기알바의 ‘끝판왕’ 택배물류 알바. 11시간 동안 6000개의 택배 박스를 트럭에 싣는다.
에 물도 떨어졌다. 쉬는 시간엔 전속력으로 달려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셨다. 땀 을 많이 흘린 탓인지 소변도 마렵지 않았다. 새벽녘 물류 레일은 박스들로 꽉 찼다. 일이 서툰 옆 라인 대학생은 고참에게 욕설을 들었 다. 받는 일당은 같고, 시간은 정해져 있다. 신 참이 못하면 고참이 더 해야 한다. 무시로 욕 설이 터진다. 새벽 두 시 반. 작업반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레일이 멈췄다. 무슨 일인가 둘러보니 분류 일을 하던 알바생이 레일 밑에 빠졌다. 다 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넋이 나간 알바생은 직 원의 부축을 받으며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웅성거리는 순간도 잠시. ‘삐익!’ 하는 소 리와 함께 다시 레일이 돌아간다. 작업 재개. 새벽 다섯 시 반. 작은 박스만 남았다. 레일에 부딪힌 무릎. 박스에 찍힌 엄지발가락, 몇 시 간째 펴지 못한 허리, 목과 팔 마디마디가 비 명을 지른다. 이날 밤 고참과 나는 옥천에서 구미로 가는 택배 박스 6000개를 트럭에 실었 다. 사람들은 올 때처럼 말없이 버스에 올랐 다. 해는 이미 밝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동 갑내기에게 물었다. -택배 알바는 어떤 일인가. “욕 나오는 일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나. “차 사고를 냈다. 200만원 정도 빚을 졌 는데 갚을 길이 없다. 좋든 싫든 또 나와야 한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온몸이 아 팠다. 사흘간의 알바로 번 돈은 15만원. 전공 책 3~4개를 간신히 살 수 있는 돈이다. 한 학기 에 평균 5과목을 수강한다 치면 나머지 1~2 권 살 돈을 더 마련해야 한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거짓 박수를 치고, 가마를 메고, 6000개의 박스를 다시 들어야 한다. 일요일에 만난 대학 동기는 알바때문에 인 턴십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알바를 그만두기 엔 한 달 동안 생활비가 막막했다고 했다. ‘쳇 바퀴 인생’이라고도 했다. 싫어도 먹고살아야 한단다. 먹고살기,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대학 을 졸업하면, 취업에 성공하면 뭔가 달라질까. 아버지·삼촌 세대들은 우리에게 많은 충고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난 묻고 싶다. “혹시 대학 생 때 박스 6000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Focus 7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국민대통합위 ‘전북 민심투어’ 동행 취재
“전북 출신 장차관 0명, 대통합되겠나” 도민들 부글부글 전주=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부슬비가 내리던 24일 낮 전북도청 중회의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의 얼굴 이 굳어졌다. ‘지역 소통 공감 릴레이’란 이 름으로 전북 도민 20여 명을 초청해 연 간담 회에서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질타가 이어지 면서다. 환영사를 하기로 했던 김광수 전북도의회 의장부터 “바로 쓴소리를 하겠다”며 운을 뗐 다. “대통합의 핵심은 인사다. 박근혜 정부도 인사 탕평을 공약했다. 그래 놓고 정부 내 장· 차관 중 전북 출신은 제로다. 인사에서부터 도민들의 상실감은 대단히 크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서늘한 발 언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권순택 전북일보 편집국장=“김영삼 (YS) 정권 때인 1994년 전북 출신은 장·차관 에 한 명도 발탁되지 않았다. 20년 만에 다시 그렇게 됐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도 없다. 암 울한 시대다. 총리실 산하엔 새만금 사업을 논의하는 새만금위원회가 있다. 공동위원장 이 총리인데 참석을 안 한다. 총리가 그러니 장관들도 참석을 안 한다. 한·중 경협 단지도 논의하지 못하고 맹탕 위원회밖에 안 된다.” 김정자 여성단체협의회장=“200만 도민 중에 장·차관이 하나 없는데 ‘너희, 대통합에 참여해’하면 되겠나. 지도자부터 갈등 요인 을 해결해야 한다.” 하현수 상인연합회장=“한 위원장이 대 선 때 와서 전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 다. 전통시장 영세 상인들이 다 어려운데 정말 어디 전화 한 통화 할 데도, 비벼볼 데도 없다.” 조상규 농민회 의장=“소외된 농민의 목 소리가 중앙정부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내년 쌀 관세화가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다.” 이밖에 “새만금에서 포항을 잇는 고속도 로, 새만금에서 김천을 잇는 철도가 뚫려야 하는데 막혀 있다”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상 식을 뛰어넘는 (지역 감정) 이야기가 오가는 데 국민 의식을 개선해야 하지 않느냐” 등등 의 지적도 나왔다. 한광옥 위원장 건배사에 뼈있는 응수 인사 편중에 비판이 집중되자 한 위원장은 “이 고장(전주) 출신으로 송구스럽다”며 해 명에 나섰다. “정권 초라 지역 안배가 안될 수 있다. 내가 김대중(DJ)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할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현 정부 임기가) 3년 넘게 남았는데 인사 전체를 평가하기 이 르다. 곧 해답을 반드시 올리겠다.” 자리를 옮겨 진행된 오찬 분위기도 썰렁했 다. 한 위원장이 건배사로 “소, 화, 제,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고 하자 송하진 전북지사가 “진, 통, 제, 진짜 소통이 제일이다”는 건배사 로 맞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식사 중에도 뾰족한 소리는 이어졌다. 한 참석자=“그나마 안전행정부에 전북 출신 이경옥 차관이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 때) 나갔다.” 송 지사=“(한 위원장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주 출신이라고 이야기하 지만) 김 실장은 뭔가 부탁하거나 해결해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분위기를 살리려 김현장 대통합위 통합가 치분과위원장이 “청와대 정무수석(조윤선) 이 전북의 며느리”라고 웃음 섞인 이야기를 했지만 좌중에선 헛헛한 웃음만 나왔다. 식 사가 끝나 일어서는 자리에서도 송기순 여성 경제인협회장은 한 위원장을 향해 “전북 경 제는 죽고 있다. 먹고살 게 없다는 말을 마지 막으로 하고 싶다”고 쓴소리를 했다. 다음 날 지역 언론은 “전북은 장관도, 차 관도, 청와대 수석도, 비서진도 없는 ‘4무 (無)시대’”라고 꼬집었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가 개최한 지역
간담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출범 후 강원·충북·경남·부산 등의 10개 시·도 에서 열렸다.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발언자도 많고 비판 강도도 거세 호남의 불만이 상당한 것 같다”는 게 대통합위 관계자의 말이다. “화두 포괄적이라 빠른 성과 어려워” 대통합위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100% 대한민국 달성’을 공약하면서 만들어 졌다. “사회에 내재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 고, 상생 문화를 정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하는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였 다. 이념·계층·지역·세대 갈등이 해결 과제다. 전주 출신으로 DJ 비서실장을 지낸 한 위원 장이 수장을 맡은 것도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출범 후 1년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실적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지 역 감정을 감안해 운전면허증 지역 표기 삭 제를 제안해 올해 7월 이후 신규 발행 면허증 부터 시행하도록 하고 병원 입원, 기업체 취 업 지원 시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관행을 개 선하도록 한 정도다. 이에 한 위원장이 지역을 순회하는 버스에 기자가 동승해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직접 물 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통합위의 지난 1년2개월에 스스로 점 수를 매긴다면. “70점 정도다. 노력만 보면 90점을 줄 수도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 후 활동하기 어려운 환 경이었다.” -대통합위의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인데. “대통합이란 화두가 워낙 광범위하고 포 괄적이다 보니 성과가 빠르게 도출되지 않는
환영사 때부터 쓴소리 마구 쏟아내 “시장 어려워도 비빌 곳 없다” 한숨 위원장, 예상 밖 비난 수위에 진땀 “정권 초기라 그럴 것 곧 해답 마련”
다. 시골에 가면 구들장이 있다. 불을 때면 천 천히 달궈지지만 방안의 온기를 유지해준다. 구들장처럼 점진적으로 성과가 나올 거다.” -박 대통령에게 인사 탕평을 건의할 건가. “간담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보고 서를 작성해 청와대로 보낸다. 정무수석이 간사 역할을 한다. 대통령에게 연락할 일은 있지만 한 건 한 건 갖고 대통령에게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향후 계획은. “통합이란 단어는 형이상학적이다. 그걸 형이하학적으로 끌어내리는 게 우리가 할 일 이다.” “자문기구론 한계 집행기구 돼야” 대통합위는 핵심 사업으로 ‘우리는 대한민 국 국민입니다’는 슬로건으로 펼치는 ‘작은 실천 큰 보람 운동’을 내세운다. 폭력과 막말 하지 않기, 존중과 배려하기처럼 작은 일을 실천하는 게 대통합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9·11 테러 후 펼친 ‘나는 미국인입니 다’라는 국민 통합 운동이나 독일이 동·서독 갈등 해결을 위해 벌인 ‘당신이 괴테다, 당신 이 베토벤이다’ 캠페인과 유사하다. 대통합위는 이외에 갈등 관리 전문가를 양 성하고 통일 친화적 사회를 만들겠다는 내 용 등을 담은 ‘국민대통합 종합계획’을 6월 에 발표했다. ‘국민통합 의식조사’를 통해 국 민이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 음을 느낀다는 점을 밝혔고, 파워엘리트들 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념 인식조사’에서 진 보나 보수 인사가 중시하는 이슈가 크게 다 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국민통합지수’ 도 개발해 10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조만간
서울·대전·부산·광주 권역별로 250명씩 총 1000명이 참여하는 국민대토론회를 열어 국 가 미래 비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작 국론을 분열시키는 갈등 현안 에 대해선 별 역할을 못했다는 평가다. 서울 시로부터 중재 요청이 들어온 용산 화상경마 장 문제는 물론이고 영남권 신공항, 밀양 송 전탑 문제, 지역 편중 인사에 대해선 변변한 입장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도덕성 회복 운동, 안 전 불감증 자성 운동 등을 펼쳤지만 정작 뜨 거운 쟁점인 희생자 유가족이 제기하는 문제 등에 대해선 “정치권이 할 일”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았다. 대통합위 관계자는 “현재 위원회라는 조 직은 만들어졌지만 조직 성격상 자문기구이 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집행 기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위만 있을 뿐 실권이 없다는 얘기다.
24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국민대통합위원회 간담회에서 한광옥(왼쪽) 위원장이 전북 도민 20여 명으로부터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듣고 있다. 오른쪽은 송하진 전북지사.
[뉴스1]
8 Focus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영웅들의 아름다운 퇴장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투혼 불사를 뿐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더글 러스 맥아더가 남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 만 사라질 뿐”이라는 명언이 이번 인천 아시 안게임에도 나왔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역 전의 용사들이 인천 아시안게임을 빛내고 있 다. 선수로서 황혼기를 맞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노장 선수들의 눈물과 땀 가 득한 사연들을 모았다. 돌아온 이현일, 배드민턴 단체 金 견인 23일 인천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남 자 옴니엄 경기. 조호성(40·서울시청)은 여섯 종목 점수를 합치는 옴니엄에서 5번째 경기 까지 마친 뒤 중간 합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40㎞ 포인트 레이스에서 하시모토 에 이야(21·일본)에게 역전을 허용해 아쉽게 은 메달에 머물렀다. 노련한 플레이로 꼼꼼하게 점수를 관리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힘과 집중 견제는 어쩔 수 없었다. 조호성은 한국 사이클의 대들보였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부터 5개의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에서 당할 선수가 없었던 그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힘과 순발력이 뛰어 난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거둔 엄청난 성과 였다. 2005년 경륜으로 전향했던 그는 한 해 2억원이 넘는 상금을 받았지만 2009년 다 시 아마추어로 돌아왔다. 마지막 남은 올림 픽 메달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조호성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11위에 머물렀지만 현 역 생활을 2년 연장했다. 인천에서 열리는 대 회에서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어서였다. 그러 나 끝내 금메달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경기를 마친 조호성은 벨로드롬을 돌며 팬 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며 마지막을 장식했 다. 아내와 두 아이를 안은 조호성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조호성은 “만감이 교 차했다. 27년 선수생활을 정리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트랙을 돌았다”고 말했다. 관중들 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조호성의 이름을 외쳤다. 배드민턴 남자 대표팀은 23일 단체전 결승 에서 3-2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선 수들은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선 이현일(34·MG새마을금고)을 얼싸안았다. 이현일은 중국의 신예 가오후안 (24)을 물리치고 5시간이 넘는 혈투의 마침 표를 찍었다. 이현일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 에 실패(4위)한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팀 경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정상 복귀를 위해 돌아와달라는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대표팀 훈련에는 합 류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 전하며 감각을 익혔다. 그리고 가장 중 요한 순간에 승리를 따냈다. 이득춘 대 표팀 감독은 “나이가 많은데도 이현일이 대표팀에 복귀해서 제 몫을 다해줬다. 고 맙다”고 말했다. 경기 뒤 이현일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그는 “2006 년 도하 대회와 2010년 광 저우 대회에서 중국에 연 달아 졌는데 12년 만에 금 메달을 따 기쁘다. 2002년 부산 대회 때 형들이 잘 이 끌어줘 금메달을 땄다. 나 도 후배들을 돕고 싶었다” 고 환하게 웃었다. 한국 복싱의 희망 한순철(30·서 울시청)은 삼세번째 아시안게임 금 메달에 도전한다. 한순철은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60㎏급에서 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노장들의 얼굴. 왼쪽부터 이현일, 김주성, 우선희 순. 작은 사진은 이들의 초창기 시절 모습이다.
경륜 선수 접고 대표팀 합류 조호성 인천에서 27년 사이클 선수 마감 복싱 한순철, 30세에 다시 글러브 ‘우생순’ 마지막 현역 멤버 우선희 30대 중반이지만 코트서 펄펄 날아
조호성
메달을 목에 걸었다. 병역을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그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아내 임연아(24)씨에게 멋진 프러포즈도 했다. 가 장 빛났을 때 은퇴도 결심했다. 178㎝의 큰 키라 더 이상 체중 감량을 이겨내는 것도 쉽 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예 운동을 쉬었던 그는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글러브를 꼈다. 대한아 마추어복싱연맹은 2회 연속 아시안게임 노 골드에 머무른 한국 복싱의 중흥을 위해 다 시 뛰어달라고 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한순 철은 2차 선발전과 최종 선발전에서 열 살 가 까이 어린 후배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태극 마크를 달았다. 한순철 자신에게도 아시안게임은 의미 있 는 도전이다. 그는 도하에서 은메달, 광저우 에서 동메달에 머물렀다. 아웃복싱을 주로 구사했던 그는 공격적인 선수에게 유리한 규 정에 적응하기 위해 파워 복싱에 초점을 맞추 고 있다. 한순철은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 임창용, 농구 김주성 ‘형님 리더십’ 김성근(72) 전 고양원더스 감독은 베테랑을 중용한다. “베테랑의 역할은 고비 때 빛을 발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단체 종목에서 는 고참들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야구 대표팀이 대표적인 예다. 대표팀은 병 역을 마치지 않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 다.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 도 나온다. 그래서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임 창용(38·삼성)에게 뒷문을 맡겼다. 올해 미 국에서 돌아온 임창용은 올림픽과 월드베이 스볼클래식(WBC) 등 국제경기 경험이 풍부 하다. 그의 리더십은 지시를 일일이 내 리는 ‘장군’보다는 몸으로 움직이 는 ‘형님’ 같은 스타일이다. 봉중근 (34·LG)은 “창용이 형이 구심점이 되어준다. 사실 나이 차가 많아서 후 배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는데 생활 적인 측면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신경 써주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 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대표팀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당시 덴마크와 결승에서 승부던지기까지 한 뒤 졌던 대표팀 멤버 중 지금까지 뛰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선수단 주장을 맡은 우선희(36·삼척시청)다. 4번째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우선희는 골키퍼 송미영(39)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그러나 돌 파력과 점프력은 여전히 20대 선수들에 뒤지 지 않는다. 우선희는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 서 4년 전을 떠올렸다. 한국은 광저우 대회 준결승에서 일본에 28-29로 져 아시안게임 6 연속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우선희는 “광저 우 대회에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생각했 는데 4강에서 패한 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이번에는 꼭 이기겠다”고 했다. 농구 대표팀 김주성(35·동부)도 태극마크 를 반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인 1998년 국가대표가 된 김주성은 5회 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 아선수권 뒤 더 이상 대표팀에 뽑히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던 그였지만 유재학 대 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김주성은 2002 년 부산 대회에서 일어난 기적을 재현하고 싶 어한다. 당시 김주성은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2m29㎝의 센터 야오밍(34)과도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김주성은 훈련이 끝날 때마다 양 무릎과 발 목에 얼음 주머니를 차야 하지만 여전히 투지 가 넘친다. 그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 다. 목표는 당연히 제일 높은 시상대에 오르 는 것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뛸 때마다 최선을 다해 상대를 이겨야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마 지막 힘을 다 쏟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여자 배구팀 세터 이효희(34·도로공사)도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한다. 그는 전성기를 누려야 할 20대 시절에는 대표팀과 인연이 없 었다. 간혹 뽑히더라도 주로 벤치를 지켰다. 그러나 지난해 프로배구 MVP에 오르는 등 30대가 된 뒤 절정의 기량을 뽐냈고, 당당히 대표팀 주전 자리도 꿰찼다. 김연경(26·페네 르바체)과 양효진(25·현대건설) 등 공격수들 에게 볼을 배급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이효희는 “이렇게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뛸 줄은 몰랐다. 언제 또 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김)연경이가 주장 역할을 잘하 고, 선수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잘한다. 나는 선수들이 편하게 경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 다”고 했다. 일본 카바디 대표엔 46살 현역 선수 “지금 뛴 선수는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살입 니다.” 체조 여자 도마 경기에 나선 옥사나 추 소비티나(39·우즈베키스탄)의 연기가 끝난 뒤 관중들은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박수 를 보냈다. 추소비티나는 1992년 소련 소속으로 바르 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 지는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참가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 림픽에서 독일 국기를 달고 출전했다. 림프종 혈액암을 앓는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자신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독일에서 훈련하면 서 내린 결정이다. 올림픽 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추소비티 나는 다시 매트 위에 섰다. 진짜 조국인 우즈 베키스탄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서 였다. 24일 열린 도마 종목에서 홍은정(북한) 에 이어 은메달을 따낸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02년 부산 대회 때보다 실력이 더 좋아졌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에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색 스포츠인 카바디에서는 일본 팀이 화 제다.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부터 정식 종 목으로 채택된 카바디는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인도 전통 스포츠다. 격렬 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카바디는 종목 특성상 젊은 선수들이 유리하다. 강국인 인도와 파 키스탄 등은 20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렸 다. 그러나 일본은 평균 연령 33세의 선수들 로 대표팀을 꾸렸다. 이 종목 최고령 선수 쓰 즈키 아쓰코는 무려 46세다. 38세의 승려로 주장을 맡고 있는 이토 고케이는 “카바디 선 수와 승려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종교는 내 영혼을 이끌고, 카바디는 내 몸을 강하게 만 든다. 둘 다 인도에서 유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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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자살보험금 비상 걸린 생명보험업계
약관 서로 베꼈다 발목 자살보험금 최소 2179억 더 줘야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 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동안 답은 이랬다. 가입한 지 2년이 안 됐다면 한 푼도 못 받지만, 2년이 지났으면 일반사망보험금 을 받는다. 단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면 재 해사망보험금을 받게 된다. 2001~2010년(일부 보험사는 2007년 또는 2008년까지) 종신보험 재해사망특약에 가입 했다면 답이 달라지게 됐다. 가입한 지 2년이 지났다면 정신질환 여부와 상관없이 일반사 망보험금의 2~3배인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나온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 이 그렇다. 생명보험업계는 비상이다. 약관 해석 때문 에 17개 생명보험사가 이미 자살한 계약자에 게 추가로 내줘야 할 보험금이 최소 2179억원 에 달한다. 황당한 건 이 사태를 초래한 약관 문구가 보험사의 실수로 생겼다는 점이다. “대법 판례 따라 재해사망금 줘야”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8월 금감원의 ING 생명 종합검사다. 금감원은 2001년 5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판매한 종신보험 재해사망 특약 약관을 보험사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 을 적발했다. 12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 하는 보험사고’에서 “2년이 경과된 후에 자 살하거나…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문구가 문제였다. 가입 2년 뒤 자살은 그러하 지(재해사망보험금 지급에서 제외하지) 않 는다고 했으니, 특약에서 정한 재해사망보험 금을 주라는 해석을 내렸다. ING생명은 항변했다. 자살이 재해가 아니 라는 건 상식적으로도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애초에 재해가 아니니 재해사망특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란 논리다. 약관에 나온 ‘재해분 류표’에 적힌 32개 항목에도 자살은 없었다. 그간 똑같은 약관을 쓴 다른 생명보험사도 재 해사망보험금을 준 경우가 없었다. 금감원이 이를 문제 삼은 것 역시 처음이었다.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달 금 융위원회는 ING생명에 4억5300만원의 과 징금을 부과했다. 다만 고의가 아닌 실수였 다고 보고 임직원에겐 경징계만 내렸다. 보험 사가 특약 보험료를 계산할 때 자살 위험률 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실수로 판단한 근 거다. 금감원은 다른 생명보험사에도 자살가 입자 유가족에게 약관대로 보험금을 주라는 지도 공문을 보냈다. 제재 결정의 근거는 2007년 대법원 판례 다. 당시 대법원은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A씨의 딸이 교보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 구소송에서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A씨가 가 입한 ‘차차차교통안전보험’의 재해보장특약 에 이번 ING생명 경우와 똑같은 문구(2년이 경과된 후 자살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 다)가 들어 있었다. 재판부는 “평균적인 고객 의 입장에서 보면 2년이 지난 뒤 자살하면 보 험금을 준다고 이해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약관이 모호하다면 보험사가 아닌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재익 금감원 생명보험검사국장은 “설사 보 험사의 실수라 하더라도 일반인 눈높이에서 볼 때 보험금을 준다고 기대할 여지가 있는 약관이라면 보험금을 줄 책임이 있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예전엔 몰랐다 구차한 해명 금융당국 제재가 확정되면서 불똥은 생명 보험업계 전체로 옮겨 붙었다. 다른 생명보 험사도 ING생명과 같은 약관을 써왔기 때 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01년 재해사망특약 약관을 처음 만든 건 당시 동아생명(현 KDB 생명)이다. 그 시절 보험사들은 특약을 새로
지난 5월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참여연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자살보험금을 재해사망특약 약관대로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가입 2년 뒤 자살은 재해사망’ 조항 2001~2010년 종신보험 특약에 명시 금감원 “실수했지만 약관 지켜야” 문구 베껴쓰기 관행에 17개사 걸려
만들 때 편의를 위해 서로 나눠서 약관을 작 성한 뒤 짜깁기해 썼다. 예컨대 재해사망특 약은 A사, 재해입원특약은 B사, 재해상해특 약은 C사가 약관을 만든 뒤 이를 다 같이 공 유하는 식이다. 동아생명은 일반 사망을 보 장하는 주계약 약관에 들어 있던 ‘2년 경과 후 자살’ 관련 문구를 재해사망특약 약관에 그대로 따서 썼다. 아무도 이 문구가 문제될 거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약관 베끼기 관행 탓에 대부분의 생명보 험사 약관엔 똑같은 조항이 들어갔다. ING 생명뿐 아니라 빅3 보험사(삼성·교보·한화생 명)를 포함한 17개 생보사가 줄줄이 미지급 자살보험금 사태에 엮인 이유다. 당시 약관 을 따라 쓰지 않았거나 이후에 신설된 8개 생 명보험사(동양·KB·IBK·푸르덴셜·라이나· 카디프생명, 교보라이프플래닛)엔 문제된 약관 조항이 없다. 보험상품 인가 업무를 담당하는 금감원도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금감원 책임론이 나
17개 보험사의 미지급 자살보험금 (자료:김기준 국회의원실) 소급 지급해야 할 재해사망보험금
생명보험사
문제의 약관 있는 재해사망특약 보유 건수(건)
건수(건)
금액(원)
삼성
713
563억
95만4546
ING
471
653억
36만7984
교보
308
223억
46만6818
한화
245
73억
16만235
신한
163
103억
13만9099
알리안츠
152
150억
11만9371
KDB
119
68억
8만5971
현대라이프
118
69억
7만2166
동부
98
108억
7만7207
흥국
93
46억
16만9650
메트라이프
91
61억
12만9
PCA
30
36억
3만483
미래에셋
22
14억
2만5902
우리아비바
14
3억
1만3695
ACE
7
7억
8155
농협
2
1억
4064
하나
1
1억
1818
동양·KB·IBK·AIA·푸르덴셜·라
없음
이나·카디프·교보라이프플래닛 합계
2647
최근 크게 늘어난 자살
2179억
(자료:통계청)
281만7173
자살자 수(명)
1만4427 30
10000
28.5
6444 5000
자살률(10만 명당)
20
13.6
2000년 2001
25
15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오는 이유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약관 을 승인해서 상품 인가를 내주는 게 금감원 인데, 마치 제3자처럼 얘기하고 있다”고 불만 을 토로했다. 금감원은 “그런 약관이 있는지 예전엔 몰랐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기존에 팔던 보험상품과 비슷한 구조이면 일일이 승 인받을 필요 없이 보험사가 알아서 팔게 하 는 게 과거 관행이었다는 설명이다. 보험사가 이 약관을 고치기 시작한 건 2007년 9월 대법원의 교보생명 판결이 나온 뒤다. 당시 대법원 판결 내용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은 건 보험사로선 다행이 었다. 보험사들은 재빨리 약관에서 ‘2년 경 과한 뒤 자살하거나’란 문구를 뺐다. 주요 보 험사의 과거 약관을 확인한 결과 교보·ING· 신한생명은 2007년, 알리안츠생명은 2008년, 삼성생명은 2010년에 약관을 고쳤다. 금감원 이 표준약관을 고친 건 2010년이었다. 자살 부추긴다 vs 별 영향 없다 약관은 고쳐졌지만 이미 문제 된 약관의 재 해사망특약이 282만 건이나 팔린 뒤였다. 금 감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7개 보험사가 소급해서 줘야 할 자살사망보험금만 2179억 원(4월 말 기준)에 달한다. ING생명이 가장 많고(471건653억원), 삼성생명(713건563억 원), 교보생명(308건223억원) 순이었다. 보 험금을 늦게 줄 때 지급해야 하는 지연이자까 지 합치면 금액은 더 불어난다. 가입자 중 앞 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액수가 1조원까지 늘 수 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종신보험이 아닌 다른 생명보험상품까지 따져보면 더 늘어난다. 약관을 확인한 결과 1999년 3월 이전에 판매된 삼성생명 ‘퍼펙트 교통상해보험’과 교보생명 ‘차차차교통안전 보험’의 재해보장특약엔 문제의 약관이 들어 있다. 두 상품 모두 당시 100만 건 이상 팔린 인기 상품이다. 한 중소형 생명보험사 관계 자는 “일부 생명보험사는 암 보험상품에서 도 ‘2년 경과 뒤 자살은 면책하지 아니한다’ 는 약관을 두고 있다”며 “금융당국 논리대로 라면 암 치료비 보장 상품인데도 자살보험금 을 줘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자에게 고액 재해사망보험금을 주면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보험업계에 서 제기한다. 예컨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라면 재해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자살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주장 이다. 실제 자살보험금 관련 보도가 나온 뒤 일부 대형 생명보험사 콜센터엔 “내가 자살
[사진 참여연대]
해도 재해사망보험금에 해당되나요”라는 문 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이창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적으로 생명보험 가입 3년 째 자살률이 유독 높은 걸로 볼 때 경제적 인 센티브(보험금)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며 “자살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면 자살 시도가 크게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 은 “이미 몇 년 전 약관을 고쳤기 때문에 보 험사 주장처럼 자살을 크게 부추기진 않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금감원 역시 “2007년 대법원의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판결이 나온 뒤에도 자살률이 높아졌단 통계는 없다”는 입장이다. 소송 낼까 말까 눈치 살피는 보험사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약관에 대한 전면적인 특별검사를 지난 6월 예고했다. 연루된 보험 사가 많아서 어떻게 손댈지 몇 달째 고민 중 이다. 문재익 국장은 “형평성을 위해선 모든 생명보험사를 한꺼번에 검사해야 하는데, 수 십 명의 검사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할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이달 초 금감원 분쟁조정국 은 자살보험금 관련 민원 40건을 어떻게 처 리할지 30일까지 정하라고 보험사에 통보했 다. 민원인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줄지, 소 송을 낼지 정하란 뜻이다. 기한이 다 돼가지 만 어느 보험사도 선뜻 입장을 밝히지 못하 고 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자살은 재해 가 아니라는 기본 입장엔 변함이 없지만 어 떻게 하면 입장을 세련되게 표현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매를 먼저 맞은 ING생명 이 총대를 메줬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했 다. 외국계 회사 관계자는 “괜히 나서면 집중 포화를 맞을까봐 각 사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며 “미지급 액수가 가장 많은 ING생명 이 (소송에) 나서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 람”이라고 말했다. 정작 ING생명은 제재에 불복하는 행정소 송을 낼지 말지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소송 을 냈다가 자칫 회사 이미지만 상할까 염려해 서다. ING생명 관계자는 “소송을 낸다고 해 도 평판 하락에 따른 손해를 보상받을 순 없 어서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선 지난해 ING생명을 인수한 MBK파트너 스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고 ING그룹으로 부터 그 돈을 받아내는 걸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행정소송은 제재 결과를 통 보받은 지 90일 안인 11월 말까지 제기할 수 있다.
Focus 11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딸과의 약속 지키려 ‘웰다잉’ 전도사 나선 원로 언론인 최철주
웰빙과 웰다잉은 반대 개념 아닌 삶의 한 묶음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웰빙(well-being)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넘 치는 사회에서 내놓고 얘기하기도 꺼리는 웰 다잉(well-dying)을 천착하는 이가 있다. 중 앙일보 편집국장·논설고문을 지낸 원로 언 론인 최철주(72)씨다. 현재는 호스피스와 웰 다잉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웰빙과 웰다 잉에 대해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웰빙 안 에 웰다잉이 존재한다”며 “몇 년 전 딸과 아 내를 잇따라 암으로 잃은 것을 계기로 웰다 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04년 자궁암 환자이던 딸은 말기 상태 에 들어가면서 수술을 마다했다. 중환자실 에 들어가는 것도 완강히 거부해 가족들을 자주 울렸다. 딸은 메모지에 “더 치료할 방 법도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고통이나 마찬가지”라고 적 었다. 당시 32세이던 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주부였다. 이런 딸 이 너무 일찍 죽음을 맞게 된 상황을 그는 이 해할 수 없었다. 딸은 아빠에게 호스피스 아 카데미 교육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웰다잉 강사 교육에 50대 여성 몰려 그가 6개월 과정인 호스피스 교육을 받던 중 딸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에도 그는 호스피스 교육에 참석했다. 죽음 교육을 잘 받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집사람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게 독이 됐다. 딸이 숨진 지 4년 뒤 아내도 암에 걸려 모녀 관계는 참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 의 눈이 촉촉해졌다. 부인은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센터를 나와 8개월간 집 에서 머물다 임종했다. 그는 요즘 말기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웰다잉 강사로 활동 중이다. 웰다잉 강사 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보통 10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 인데 그는 이 중 한 강좌를 맡는다. 수강생 은 80명 정도. 큰일을 치른 뒤 삶에 대한 회 의를 느낀 여성 수강생이 많단다. 50대 이후 여성이 수강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웰다잉 전도사가 되려는 남편 과 함께 다른 나라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했 다. 투병 중에도 남편이 웰다잉 강사로 나가 는 일을 적극 권하기도 했다가 어느 때는 씁 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병이 심해질수록 감정의 기복이 커졌다. 웰다잉 강사에게도 ‘좋은 죽음이란 무엇 인가’는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답을 구 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일본 등의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하고 죽음을 앞둔 30 여 명의 말기 환자를 만났다. 현역에서 은퇴 한 원로기자가 다시 취재수첩을 들고 ‘좋은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의 차이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 결과물이 2008년 출간된 해 피엔딩-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란 책이다. 부인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도 미국 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 리하는 많은 환자를 보고 나서였다. 그 후 부 인은 “딸이 편안하게 갔다. 그것도 제 복이 지”라고 자주 중얼거렸다. 연명 치료 거부한 소설가 최인호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그의 취재에 순순히 응해줬을까. “한국에선 힘들었다. 열에 여덟·아홉 사람 은 자신의 말년을 남에게 드러내길 꺼렸다. 기자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 저널리스트 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말기 환자들은 달랐다. 기타 치고 노 래 부르고 담소하고 죽음을 평화로운 상태에
중앙일보 편집국장논설고문을 지낸 최철주씨는 현역 은퇴 후 웰다잉을 바로 알기 위해 미국일본 등 해외까지 나가 말기 환자 30여 명의 사연을 들었다.
딸부인 암으로 잃고 웰다잉에 관심 해외 호스피스 방문, 말기 환자 취재 자신에게 남은 시간 알게 됐다면 마무리할 일, 해보고 싶은 일 하며 평온하게 죽음 받아들이는 게 최선
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질문에도 잘 답변 해줬다.” 그는 웰다잉을 실천한 저명인사로 고(故) 최종현 SK 회장을 먼저 꼽았다. “죽음을 앞둔 최 회장을 직접 만난 건 아 니다. 현역 기자 시절부터 최 회장의 죽음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다. 돈·명예·권력을 모 두 가졌던 최 회장이 대학병원에서 치료 받 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 6개월 동안 통증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궁금해 서였다. 당시 나는 중앙일보 도쿄총국장이 었는데 일본 기자들이 오히려 최 회장의 죽 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게 취재했다. 나중에 최 회장의 동반자였던 SKT 손길승 명예회장으로부터 죽음의 과정을 전해 들 었다. 손 회장에 따르면 최 회장은 폐암 수 술 뒤 암이 재발하자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를 거부했다. 통증이 심해지면 통증 완화제 를 맞으면서 호흡 훈련을 하며 자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새 항암제를 써보자는 주변의 권유도 뿌리치고 조용히 죽음을 받 아들였다. 최 회장이 생을 마감한 당시(1998 년)만 해도 토장(土葬)을 당연시하는 분위 기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자신을 화장해 자 연에 뿌려줄 것을 당부했다. 그의 유언은 우 리나라의 화장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 점이 된다.” 유명 작곡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조념 씨의 죽음도 그에겐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기도 포천의 한 호스피스 센터에서 조 선생을 만난 것은 2008년 그가 숨지기 닷새 전이었다. 그는 지인들이 마지막 눈도장을 찍 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을 피곤해하고 나중 엔 다 거부했다. 그러던 분이 내 책을 보고 공 감했다면서 나를 위해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직접 연주해줬다. 지금 생각해 도 눈물이 난다.” 그는 소설가 최인호씨도 임종 전에 만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번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나를 만나
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최 작가의 친구로부 터 ‘그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을 갖기 시작 했으며 계속 글을 쓰고 싶지만 죽음이란 운 명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 다. 그는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그럼 죽음을 앞둔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어 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그는 자연스러 운 대화를 권한다. “병문안 와서 자신도 모르게 살아 있는 우 월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환자에게 위 로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역 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당 가실 거다’ ‘극락왕생 하실 거다’ 같 은 말은 환자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하느님· 성경·화엄경·금강경 등 종교와 관련된 말도 너무 많이 하는 건 피하는 것이 좋다. 신앙을 지닌 환자들도 종교 얘기를 하는 것은 싫어 했다. ‘우리 지난봄에 놀러갔을 때가 생각난 다. 그런 행복한 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약간 괜찮아지면 차나 한 잔 마시자’ ‘커피 향 좋지’ ‘장미가 참 예쁘지’와 같이 평소처 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시인 이해인 수녀에게 들은 얘기가 인 상 깊다.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김수환 추기 경이 ‘잠깐 오라’고 했단다. 자신을 종교적으 로 위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김 추기경은 종교 언어 하나 쓰지 않고 ‘이해인 수녀, 대단 하다! 정말 대단하다!’ 하며 인간적인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고 했다. 김 추기경이 가난하 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 서 터득한 위로의 말일 것으로 이해인 수녀 는 말했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죽음 교육 시작 질병으로 여명이 제한돼 있는 이들은 어떻 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웰다잉일까.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 으면 고통스럽다.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 해지고 생명도 연장될 수 있다”고 답했다. 평 온한 죽음, 즉 평온사(平穩死)에서 답을 찾
김춘식 기자
자는 것이다. “웰다잉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생존 가능한 시 간을 주치의에게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한 뒤 남은 시간에 마무리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을 다 하고 떠나는 것이 웰다잉의 좋은 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처럼 죽기 전에 꼭 해 야 할 일을 실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말기 환 자 중엔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멀 리는 못 가지만 일본·중국 등 가까운 나라를 여행한다. 이들은 진통제를 처방 받아 통증 이 심해지는 상황에 대비한다. 배낭을 메고 가족과 함께 국내 여행을 하거나 서예 등 취 미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환자에게 여명을 말해주지 않는 의사가 꽤 많은 게 현실이다. 나중에 있을지 모를 환자나 보호자들의 항의를 꺼려서라고 한다. “의료진이 예상하는 이상으로 오래 사는 환자들도 꽤 많다. 나는 주치의가 여명을 말 해주지 않으면 담당 레지던트에게 물어볼 것 을 권한다. 의사가 죽음을 모르고 환자를 치 료하는 것은 난센스다. 의사라면 환자의 치료 (cure)와 관리(care)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 는데, 국내 의대에선 죽음 교육이 거의 이뤄 지지 않아 안타깝다. 지난해 가을부터 울산 대 의대가 전국 최초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서구에선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초등학교 때 그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선 초등 교사가 테이블 위에 화분 을 놓고 삶과 죽음의 개념을 가르친다. 꽃은 열흘이면 시드는데 그게 꽃의 인생이란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가족처럼 대하 는 애완견도 10∼20년이면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도 그는 “웰빙 의 삶을 살려면 웰다잉을 알아야 한다”고 강 조했다.
12 People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노르웨이 이방인에서 배우로 성공, 한국인 입양아 모나 그린
연기 덕에 새 삶 내 속의 ‘한국 유산’ 아들에게 줄래요 오슬로=박재현 기자 abnex@joongang.co.kr
그녀는 “한국인이 나를 찾아왔다는 게 기쁘 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서 TV 및 연극 배우, 성우로 활동 중인 모나 그린(38· 사진). 노르웨이의 한 내비게이션 제품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음성의 주인공이기도 하 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세 살 때인 1979 년 이곳으로 입양됐다. 한국 이름은 장윤진 (Jang Yoon Jin). 23일부터 27일까지 오슬로의 한 극장에서 ‘Journey to the east(동쪽으로의 여행)’란 제목의 연극 무대를 열었다. 공연을 앞두고 노르웨이의 한 신문에 그린이 ‘이방인’ 의 삶 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마 침 출장차 노르웨이에 머물고 있던 기자는 기사와 함께 실린 한글로 된 ‘여행증명서’ 사진을 보고 그녀가 한국인임을 알게 됐다. 현지에 있던 한국인을 통해 연락처를 수소문 한 끝에 오슬로 시내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킥보드를 타고 나타난 그린 은 “내 얘기가 한국 신문에 실린다는 게 꿈만 같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극 포스터에 ‘동쪽으로의 여행’이라고 한글로도 적어 놓은 것을 봤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인가. “이번 공연은 ‘나’라는 인간의 본질과 정 체성, 가치를 찾기 위한 것이다. 입양당한 경 험을 처음으로 공론화하고 싶다. 내 인생의 답을 얻기 위해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인 서 울에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 었다. 당시 나는 나의 ‘생물학적 엄마’를 찾기 를 원했다. 알 수 없는 공허감을 채우고 싶어 2007년 고국 땅을 밟았다. 여행은 아름다웠 지만,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동쪽으로의 여 행은 감상적이었고 힘든 경험이었다. 입양아 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소 속감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 으면 한다. 입양은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문제다.” 그린은 2007년 한 입양단체의 주선으로 서울에서 열린 세계입양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중학교 때인 1991년 노르 웨이 걸스카우트 단원 자격으로 설악산을 찾 은 적이 있었지만 느낌은 180도 달랐다. ‘나 와는 상관없는 나라에 놀러 왔다’는 생각은 두 번째 방문에선 ‘나를 낳아준 엄마를 찾 고, 이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알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바뀌었다. 한국 경찰의 도움으 로 그린의 엄마로 추정되는 ‘박씨 아줌마’를
Weather
찾았다. 하지만 박씨는 “나는 아들이 두 명 이고, 딸은 없다”며 “나도 당신의 엄마였으 면 좋겠는데 안타깝다”는 말만 전해왔다. 그 린은 “그 박씨 아줌마가 나의 엄마로 생각되 지만 더 이상 찾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의 나 라’인 노르웨이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한국에 갔다가 오히려 마음의 상처만 받 은 꼴이 된 것 같다. 한국에 대한 감정도 부정 적으로 바뀔 수 있을 텐데. “이번 연극의 주제처럼 ‘나는 누구인가’ 라는 나의 끝없는 숙제를 풀고 싶었던 것이 지, 한국에 대한 미움이나 애정은 별 의미가 없다. 나는 여전히 서울이라는 ‘아시아의 정 글’ 같은 도시에 틀을 맞추고 나의 뿌리와 자 존감을 찾고 싶다. 나에게 서울은 과거와 현 재와 미래가 만나는 신비로운 곳이다. 물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나’라는 사람은 사랑 을 받지 못해 버려져 외국으로 입양을 당한
연도별 국내외 입양 현황 (단위: 명)
2000
236 0 2006년 07
미국 생활하며 자유 찾고 재능 발견 생모 찾아 7년 전 방한 끝내 못찾아 지난주 자기 경험 담은 연극 공연
것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노르웨 이라는 먼 나라 에서 살게 된 것 은 분명한 사실 이다. 하지만 비 합리적이고, 비이 성적이고, 표현하 기 어려운 가슴속 응 어리가 나의 영혼에 마 치 못처럼 박혀 있는 것을 부 인할 수 없다. 나에게 남겨진 ‘블랙홀’
모나 그린이 지난주 공연한 연극 ‘Journey to the east(동쪽으로의 여행)’의 포스터. 왼쪽 사진은 모 나 그린이 노르웨이로 입양될 당시인 세 살 때의 모 습과 손목에 찼던 인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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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의 TV 프로그램 제작사와 비디오 업체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전국 적으로 방송되는 TV2의 연속극인 ‘일곱 자 매’에 조연으로 나왔다. 그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 고,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촬영을 하면서 갑자기 영감을 얻게 됐다. ‘그래 지금까지 나 는 카메라의 반대 방향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거야…’. 1999년 노르웨이-아메리칸 협회로 부터 장학금을 받아 미국 LA로 유학 가 드 라마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4년간 극장과 연기는 나의 룸메이트였고, 나의 연인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연습하며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베벌리힐스와 할리우드, 스타벅스 등을 보며 미래를 꿈꿨다.” -앞으로의 계획은. “‘동쪽으로의 여행’의 과정은 여전히 순 탄치 않을 것이고, 한 아이의 엄마라는 신분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이런 ‘블랙 홀’을 내 마음의 한 구석에 옮겨놓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나에겐 중요하다. 앞으로 나 의 인생을 밝은 눈으로 볼 것이다. 압박과 자 포자기, 절망이 다시는 내 마음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겠다. 대신 한국으로부터 받은 유 산인 사랑과 긍지를 내 아들에게 전달할 것 이다. 내 마음속에는 관용이 차 있고, 내 아 들과 가족을 위해 계속해 전진할 것이다.”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17개월 된 아들을 안개 후갬 비후갬 두고 있는 그린에게 ‘수잔 눈브링크의 아리랑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여성의 불행한 삶을 다룬 영화)’의 잔상은 이미 사라진 듯 보였다. 기본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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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별세 토요일(13일) 추상화풍의 한국화로 유명한 남계(南溪) 이 (23/17) (23/17) (27/19) (27/19) 규선(사진) 이화여대 명 예교수가 26일 오후 11 (25/17) (25/17) 시 경기도 양주시 자택 (26/21) (26/21) 에서 별세했다. 76세. 인 (27/20) (27/20) 천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 미술대학장을 지냈 (26/20) (26/20) 다.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으나 지난 4~6 월 경기도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시창청공(詩窓淸供)’ ‘서창청공(書窓 9일(화) 10일(수) 11일(목) 淸供)’ 시리즈를 선보이는 등 화업에 꾸준한 열정을 보여 왔다. 유족으로 부인 이종선씨와 호석(동양화가)·호성(대학강사)·호영(제일기 획)씨가 있다. 발인은 28일 오전 11시 서울대병 원, 02-207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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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모나 그린]
부모님은 나에게 아주 알 수 없는 억압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TV 친절하고 관대했다. 하 미디어 학교를 함께 다니며 나의 재능을 알 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 것 같았다.” 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1997년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린의 모습은 것을 느꼈다. 여기에 맞지 않고 같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은 커뮤니티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 가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 도전했다. 다. 외톨이였다. 군중들 밖에 내가 서 있는 것 “노래와 무용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 이 노르웨이에선 당연한 기준이었고, 그게 지 않았지만 네 번의 오디션을 통과해 10명만 나한테도 좋았다.” 뽑힌 최종 선발전까지 갔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녀가 자유를 찾은 곳은 한국도 노르웨 나에겐 마지막 기회가 오지 않았다.” 비 / 천둥 비 / 소나기 등 흐려져 비 눈 또는 비 흐림 흐린 후 갬 이도흐려짐 아닌 미국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렇지만 인생의눈전환점은 이미 시작됐다. 그린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995년부 -이후 당신의 삶과 인생에 대한 태도가 완 터 2년간 보모 일을 했다. “나를 억눌러왔던 전히 달라졌을 것 같다.
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다’는 것이었 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린의 주장처럼 그녀가 성장 과정에서 겪 맑음 구름 조금지나 20대 구름 중 많음 었던 정신적 방황은 사춘기를 반까지 계속됐다. “어릴 때 오사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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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건복지부
^김임진씨 별세, 주정민(전남대 신문방송 학과 교수)씨 모친상=26일, 여수제일병원 장 례식장 VIP 2호실, 발인 29일 오전 8시30분, 061-692-4444
연휴 등 부고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AD 13
14 Focus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③ 런던의 비틀스 흔적들
기념비 없어도 ‘비틀스 건널목’ 찾는 순례자 매일 수천 <애비 로드>
런던=조현진 국민대 특임교수·미래기획단장 gooddreams@hanmail.net
더 비틀스! 영국 리버 풀 출신의 이 4인조 밴 드는 1962년 10월 5일 발 (비틀즈 미국 진출) 50주년 표한 첫 싱글곡 ‘Love Me Do’와 함께 주목받 기 시작하더니, 이듬해 1월 11일 선보인 싱글 곡 ‘Please Please Me’의 성공과 함께 로큰 롤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여 세를 몰아 그들의 첫 정규 음반이 될 ‘Please Please Me(63년 3월 22일 발매)’ 녹음 작업 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비틀스는 고향인 리버풀을 떠나 수도 런던에서 더 많은 시간 을 보내게 된다. 이후 런던은 비틀스의 제 2의 고향이 되 면서 세계적인 명소부터 존재 여부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장소까지 방문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일 년 내내 끊기지 않는 다. 팬들이 관심 갖는 비틀스 관련 장소들만 도 469곳으로 집계된다. 곳곳의 비틀스 기념 품점과 매일 밤 펼쳐지는 비틀스 관련 무대 는 늘 인기다. 런던 소재 로큰롤 랜드마크 방 문이라는 특화된 관광 상품을 개발한 ‘액세 스 올 에어리어스(Access All Areas)’사의 브루스 체리 대표는 “다른 상품들은 관광객 모집이 안 돼 운영을 못 하는 경우가 더러 있 지만 비틀스는 언제나 성황”이라고 말한다. 대중음악은 런던의 중요한 관광자원이고 그 중심에는 비틀스가 자리 잡고 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2
4 1 런던 애비 로드 건널목에서 비틀스의 표지 앨범 사진을 흉내내는 관광객들. 위 작은 사진은 애비 로드를 배경으로 한 비틀스의 11번째 정규음반 표지. 2 비틀스의 첫 영화 ‘A Hard Day’s Night’의 배경이 된 매 릴레본 기차역 광장. 3 비틀스 멤버들이 살았던 34 몬테규 스퀘어 집에 모여든 관광객들. 4 비틀스 뮤지 3
1969년 8월 8일 오전 11시 35분 딱 10분간 음반 표지 촬영한 장소 영원한 ‘비틀스 성지’로 기억돼 골수 팬들이 찾는 몬테규 스퀘어 레논이 살았던 집 중 유일한 명판 오노와 누드 음반 표지로도 유명
영국 도서관
비
애 드
로
영화 찍으며 배필 만난 조지 해리슨 비틀매니아(Beatlemania)가 절정이던 64 년, 비틀스는 그들의 첫 영화인 리처드 레스 터 감독의 ‘A Hard Day’s Night’를 발표한 다. 영화 대부분은 런던에서 촬영됐는데 매 릴레본(Marylebone) 기차역이 중심 역할을 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수많은 비틀스 팬들 이 밴드를 뒤쫓는 인상적인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된 바로 그 기차역이다. 간혹 런던의 또 다른 기차역인 패딩턴역이 이 장면의 배경이 었다고 소개되는데, 로큰롤 사가(史家)들이 늘 지적하는 그릇된 정보다. ‘A Hard Day’s Night’는 음악 영화의 새 로운 획을 그었다. 음악방송 MTV가 개국하 기 수십년 전에 뮤직비디오 탄생의 밑바탕 이 된 영화로도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영화 는 영화 외적으로도 로큰롤에 큰 영향을 미 쳤다.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은 이 영화 촬영장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여성 모델 페티 보이드에게 첫 눈에 반한다. 조지 의 첫 데이트 신청을 당시 약혼자가 있던 페 티는 거절하지만 결국 둘은 66년 1월 결혼한 다. 비틀스의 ‘애비 로드(Abbey Road)’ 음 반에 실린 ‘Something’은 조지가 페티를 그린 곡이다. 페티는 “비틀스 ‘Help’음반의 ‘I Need You’도 조지가 나를 위해 쓴 곡”이 라 밝혔다. 둘의 결혼 이후 페티에 반한 또 한 명의 남 자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기타리스트 에 릭 클랩턴이었다. 에릭은 비틀스의 음반에 참여해 기타를 연주하고 조지가 숨진 순간 까지 돈독한 우정을 나눴지만, 페티를 향 한 마음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 릭은 자신이 이끌던 밴드 ‘데릭 앤드 더 도 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가 발표 한 ‘Layla’를 통해 절친의 여자에 대한 자 신의 사랑을 로큰롤의 형식을 빌려 전세계 에 알린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록 발라드 ‘Wonderful Tonight’도 에릭이 페티의 아 름다움을 노래한 곡이다. 둘은 79년 결혼했 다가 10년 뒤 헤어지게 된다. 이때 에릭의 심 경을 담은 곡이 89년 발표한 ‘Old Love’였으 니 페티가 영감을 준 로큰롤 명곡들은 따로
1
리젠츠 공원
애비 로드 스튜디오 매릴레본 기차역
런던
몬테규 스퀘어
컬 ‘Let It Be’ 공연의 극장 광고판.
음반으로 발매해도 될 정도다. 페티의 동생 제니는 한때 록밴드 ‘플릿우 드 맥(Fleetwood Mac)’의 드러머 믹 플릿우 드와 결혼했었다. 영국의 포크록 가수 도노 반이 불러 국내서도 사랑받은 곡 ‘Jennifer Juniper’는 바로 이 제니를 그린 곡이다. 이 들 자매처럼 로큰롤계를 뒤흔들며 수많은 곡 에 영감을 준 자매는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 도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다. 비틀스 불화 시작된 몬테규 스퀘어 매릴레본 지역의 34 몬테규 스퀘어는 골수 비 틀스 팬들이 성지처럼 생각하고 방문하는 곳 이다. 링고 스타가 65년부터 소유했는데 조지 해리슨을 제외한 비틀스 멤버들이 모두 한때 살았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는 이 곳에 살면서 ‘Eleanor Rigby’ 곡을 썼고, 지 미 헨드릭스도 한때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68년부터 이 집에 살았던 한 커플에 집중되는데 바로 존 레 논과 오노 요코다. 둘이 만난 이후 처음 동거 한 곳으로, 요코의 등장과 함께 비틀스 멤버 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 시점도 이 무렵이다. 둘은 이 집 안에서 전라(全裸) 상태 로 한 음반 표지를 촬영하는데 로큰롤 역사 상 가장 논쟁적인 음반 표지로 꼽히는 ‘Two Virgins’의 표지였다. 후에 존과 요코 커플은 이 집에서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존이 런던에서 살았던 집 중 유일하게 기념 명 판이 붙어있는데, 제막식이 열린 2010년에는 이 곳에 대한 향수를 차마 잊을 수 없었는지 요코 자신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폴이 사진작가 출신의 린다 매카트니와, 그 리고 링고가 첩보영화 007시리즈 본드걸 출
[사진 조현진]
신의 여배우 바바라 바흐와 결혼한 장소도 매릴레본 지역이다. 린다는 98년 숨질 때까 지 폴의 공연에서 키보드를 치며 무대를 함 께 했는데, 오는 11월에는 그녀가 남긴 작품 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에서의 첫 사진전이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링고 결혼식(81년 4월 27일)은 존 레논이 미국 뉴욕에서 암살 (80년 12월 8일)된 이후 남은 비틀스 멤버들 이 공개적으로 처음 모인 자리여서 당시 세 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비틀스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살다가 숨진 스 테포드가의 집은 수많은 기자회견과 행사가 열린 곳이다. 취재진과 팬들을 피해 비틀스 멤버들이 종종 뒷문을 이용해 몰래 빠져나와 즐겨 찾던 바 ‘Horse and Groom’은 지금도 영업중이다. 존이 요코의 개인전에 초대받아 둘이 처음 만난 매손스 야드 소재의 인디카 갤러리가 있던 장소도 비틀스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둘의 만남이 결국 비틀 스의 해산을 초래했다는 원망은 오늘날에도 계속되면서 이 장소를 저주하는 팬들도 많 다. 그러나 이 갤러리가 시작될 때 재정적으 로 지원한 사람이 다름 아닌 폴이었다는 사 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영국 도서관엔 비틀스의 흔적 보관 한국에서 과거에 고급 양복은 세비로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이는 런던의 고급 수제 양 복점들이 들어선 세빌로(Savile Row)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비틀스 팬들에게 이 곳은 양복이 아닌 그들이 설립한 애플社(Apple Corps)로 기억된다. 비틀스는 66년 8월 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 유료공연을
끝으로 라이브 공 연 활동을 중단하 고 음반 작업에만 몰두한다. 2년 반 이 지난 69년 1월 30일, 비틀스는 점 심 시간을 이용해 애플 본사 건물 지붕 위에 모여 공연을 한다. 그 유명한 옥상공연(Rooftop concert)이다. 경찰이 도착해 공연을 중단시키기까지 짧은 42분 동안 5곡을 연주했는데(일부 곡은 중 복 연주) 이 공연이 결국 이들의 마지막 공연 이 되면서 전설로 남게 됐다. 마지막 곡으로 ‘Get Back’을 연주했는데, 비틀스는 끝내 무대와 팬들 곁으로 ‘Get Back(돌아오지)’ 하지 못하고 몇 달 뒤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런던 비틀스 관광에서 생각하지 못한 큰 즐거움은 영국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존 리트블래트 갤러리는 영국 도서관이 가장 아 끼고 자랑하는 200여 점의 보물들을 전시하 는 공간으로 영국 대헌장(Magna Carta)과 1455년의 구텐베르크 성서 등이 포함돼있다. 여기에는 존이 그의 첫 아들 줄리안의 생일 카드 뒷면에 쓴 가사나 조지 해리슨이 폐지 뒷면에 쓴 곡 등 7점의 진귀한 품목이 전시돼 있어 비틀스 팬들이라면 놓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곳이다. 전 세계 아티스트 영감의 원천된 애비 로드 런던에서 비틀스 관광의 백미이자 브리티시 로큰롤 투어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단연 ‘애비 로드’다. 비틀스가 69년 발표한 11번째 정규음 반(영국 발매 기준)의 타이틀이자 이 음반을 포함해 그들의 거의 모든 곡들을 녹음한 스튜 디오로 31년 문을 연 이후 로큰롤과 늘 함께해 온 곳이다. 원래 ‘EMI 스튜디오’로 불렸지만 음반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애비 로드 스튜 디오’로 이름을 정식으로 바꿨다. 비틀스는 원 래 이 음반을 ‘에베레스트(Everest)’로 명명 할 계획이었는데 마음을 돌린 것이 스튜디오 측에 큰 축복이 된 셈이다. 69년 8월 8일 오전 11시 35분. 비틀스 멤버 4명은 음반 표지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 바로 앞에 위치한 횡단보도에 모였다. 경찰이 차 량 통행을 제한한 시간은 단 10분. 이 짧은 시 간에 존 레논의 친구인 사진작가 이아이언 맥 밀란(Iain Macmillan)은 그의 하셀블라드 카메라로 6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 중 다섯 번째로 찍은 사진이 로큰롤 역사상 가장 많 은 화제를 몰고 다닌 음반 표지로 남게 됐다. 폴이 맨발로 걷고 있는 등 음반 표지를 놓고 나온 다양한 추측, 해석과 상상력은 여전해 서 지금까지도 그의 사망설이 제기되고 있다. 사망설을 일축하듯 폴은 그의 1993년 라이 브 음반을 ‘Paul is Live’로 이름 짓고 음반 표지도 자신이 애비 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문제의 장면을 썼다. 이후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장소를 활 용하거나 영감을 얻은 음반 표지를 선보였 다. 2011년 6월에는 K팝 아이돌 샤이니가 스 튜디오를 방문하고 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 진을 남기기도 했다. 애비 로드에는 화려한 박물관이나 거창한 기념관 심지어 그 흔한 기념비도 하나 없다. 스튜디오는 지금도 상 업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 면 일반 개방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아 담에 낙 서를 남기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기념 사진을 찍고 기뻐한다. 애비 로드 스토리의 힘이다. 비틀스에 대한 경의다. 로큰롤의 매력이기도 하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 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 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Focus 15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아함경 해설서 출간한 학담 스님
“아함 속에서 삶의 휴식과 창조적 영감 얻을 수 있지요” <전해내려온 부처의 가르침>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원조(元祖)에는 힘이 있다. 불교의 ‘원조 경전’ 은 아함경(阿含經)이다. 아함경은 부처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초기 경전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아함의 뜻은 ‘전해내려 온 가르침’이다. 한문으로 된 아함경의 원본 인 산스크리트어 판본은 실전(失傳)됐다. 아 함경에 해당하는 남방불교 경전은 팔리어로 기록된 니카야다. 최근 아함경에 비평과 주석을 붙여 12권으로 된 학담평석 아함경 이 출간됐다. 30여년에 걸친 연구의 산물이다. 저자인 학담 스님은 만나 아함경의 세계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방대한 책이다. 쉽고도 전문가에게도 유 용한 내용으로 말씀해 달라. “가장 정확하고 바른 게 쉬운 거다. 쉽지만 틀린 말에는 해독이 있다.” -말이 쉬워야 해탈로 가는 길이 쉬운 게 아 닌가.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숨쉬기 는 쉽다. 하지만 숨을 잘못 쉬면 죽는다. 어 려운 것도 잘 들어가 살펴 보면 쉬운 것도 있 다. 쉽고 어려운 것은 서로 갈라지는 것이 아 니다. 아함경의 경우도 무슨 말씀인지 바로 알아들으면 좋겠지만 전문가들이 읽어도 무 슨 말인지 모른다. 부처가 설법하실 당시에는 그의 인격적인 감화로 바로 알아 들을 수 있 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쉬운 것 속에 쉽지 않 은 게 있다.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쉽다고 해 서 섣불리 채택하면 안 된다고 본다.” -불교와 언어, 아함경의 관계를 간략하 게 정리한다면. “선불교가 나오게 된 필연적 배경에는 언 어의 문제가 있다. 언어는 진리를 밝히면서도 가린다. 언어는 진리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닫아 버리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선 (禪)은 여래가 깨친 바가 표현되기 전에 진리 그 자체가 있었다고 본다. 진리로 바로 들어 가자는 게 선불교다. 학담평석 아함경은 ‘언어에 대한 집착’ 과 ‘언어에 대한 부정’이라는 양 측면을 넘어 서려고 시도했다. 언어의 진정한 방향을 찾 아 여래가 제시한 해탈의 길로 가기 위해서 다. 여래의 뜻을 이 시대에 맞게 개현(開顯) 하는 데 아함경이 가장 올바른 길을 제시 한다고 본다. 거짓과 환상이 사라진 지혜로 중생을 복귀시키는 게 아함이기 때문이다.” -아함경의 경(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좁은 의미의 경은 여래의 말씀이다. 하지 만 누구나 진실에 접근하면 그 사람도 법을 말할 수 있다. 실천적으로 경험했던 분의 언 어도 경이다. 아함경의 30~40%는 부처의 말 씀이 아니다. 부처와 같이 깨치고 같이 알아 들은 아난다라든가 사리푸타 같은 제자들의 말이나 제자들끼리의 문답도 들어 있다.” -아함경을 둘러싼 논란은. “양대 근본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한쪽은 니카야만 불교의 원전이고 모든 대승경전 은 부처가 가르친 말이 아니라고 본다. 다른 한 쪽에선 아함경이 ‘자신의 깨우침에 편 중하는 가르침’인 소승교(小乘敎)에 속한다 고 본다. 우리 해석은 제3의 입장이다. 대승 불교의 관점에서 아함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 하면, 대승 교리와 아함 속 부처의 본 뜻이 둘 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잘못된 것은 아함 에 대한 치우친 해석이지 아함 그 자체가 아
니다. 진정한 아함의 뜻은 대승의 뜻과 일치 한다.” -그렇다면 아함경은 왜 전통 불교에서 홀대 받았는가. “모든 불교 교리의 출발, 불교 철학의 출발 은 부처의 육성인 아함이다. 중국의 대승불교 종파불교 때문에 아함이 홀대를 받았다. 예 컨대 중국의 어떤 지역에 화엄경이 번역되 면 수백년 동안 화엄경만 봤다. 어떤 지역에 법화경이 들어가면 법화경만 봤다. 이런 배경에서 중국 불교는 종파화된 불교로 발전 했다. 그러다 보니 아함이 잊혀지게 됐다.” -아함경과 남방불교 니카야의 차이는? “내용의 큰 줄기는 같다. 편집 과정에서 강 조점이나 길이의 차이가 생겼다. 아함경 과 니카야를 저술한 두 집단은 서로 교류 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시기상으로는 아함 경』이 니카야보다 훨씬 이르다.” -부처의 말씀이 남쪽과 북쪽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전승돼 내려갔다고 볼 수 있는지. “그렇다.” -어떤 언어로 된 텍스트를 쓰느냐에 따라 해석상의 차이가 발생하는가. “경이라는 것은 지혜를 위한 것이기 때문 에 눈이 바르면 언어를 초월해 바로 볼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 아함경이 한글로 번역된 적 이 있는지. “없다. 최초의 번역은 동국역경원에서 이 뤄졌다.” -기존 번역에 오류는 없는지. “번역은 어렵다. 특히 초기 번역은 어렵다. 일정한 오류가 있더라도 초기 번역의 성과는 높이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번역은 멈춰
부처 육성 담긴 불교 최초 경전 소승불교와 가깝다고 홀대 받아 30년 연구 통해 12권 분량 집필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 ‘쉬운 것’
있으면 안 된다. 늘 비판적인 검토 과정을 통 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학담평석 아함경 의 경우 사상적실천적 입장에서 뜻을 검토하 는 가운데 번역하고 편집했다. 지명인명 표 기에서는 최대한 산스크리트어를 복원했다.” -아함경에 나타난 부처는 어떤 존재인가. “모든 중생이 쓰고 있는 삶의 진실, 세계의 모든 진실을 깨친 분이 부처다. ‘말할 길이 끊 어졌다’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표현 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분이 역사 속에 존재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분 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20세기, 21세기 현대 철학이 밝히지 못한 것도 부처가 미리 밝혔 다. 또 부처님처럼 많은 고난을 받은 분도 없 다. 고향이 멸망했고 살해의 위협도 있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교화를 했다. 언설로 다가갈 수 없는 분이다. 몸으로 부딪힐 수 밖 에 없다.” -왜 아함인가. “많은 정보가 넘치는 가운데 인간의 사고 도 찰나에 생멸하고 있다. 정보가 아무리 많 아도 인간의 해탈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 다. 아함은 인간에게 사유와 관념, 언어의 벽 을 넘는 길을 제시한다. 아함 속에서 삶의 휴 식을 얻고, 안락을 얻고 또 어떤 창조성 구현
학담평석 아함경. 한길사 창립 38주년을 기념해 기획출간됐다.
을 위한 영감을 얻어야 한다. 해탈은 단순히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늘 살아 움직이 는 것이니까.” -언어의 벽은 어떻게 넘을 수 있는가. 체험 을 말해 달라. “실제로 출가해서 참선하고 염불을 하다 보면 경에서 말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 다. 어떤 인식의 전환은 점차적으로 오는 게 아니다. 말씀을 듣거나 공부하다가 어떤 계 기가 오면서 순간적으로 인식의 전환이 온 다. 19세에 출가한 후 9개월만에 그런 체험을 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체험을 체험으 로 붙들어 쥐면 함정이 된다. 1980년 여름에 해인사 선방에 있었다. 법화 경을 읽다가 10년간 참선한 것이 ‘뭔가 잘못됐 다’, ‘방향을 잘못 잡았구나’ 하는 것을 홀연 히 알게 됐다. 법화경 안락행품(安樂行品) 에서 이 구절을 읽고 그렇게 깨닫게 됐다. ‘온 갖 모든 법은 있는 바가 없어서, 늘 머물러 있 는 것도 없고 나고 사라진 것도 없다.’”
학담 스님은 학승이자 선승이다. 운동가로서 학술운동과 실천불교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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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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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화산재 뿜어내는 일본 온타케산
화산섬으로 이뤄진 일본에서 화산이 분화해 최소 15명이 부상했다. 27
렸다. 화산재는 남측 사면을 따라 3km 가량 흘러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일 오전 일본 나가노(長野)현과 기후(岐阜)현에 걸쳐 있는 온타케산(御嶽
뉴욕 방문 후 이날 귀국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자위대 파견을 지시했
山·3067m)에서 많은 양의 화산재가 분출됐다. 갑작스런 사태에 등산객들
다. 이 산은 1979년에도 분화해 농작물에 피해를 줬으며, 2007년 분화 때는
은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구조요청을 했으며, 당국은 입산규제 조치를 내
규모가 작아 큰 피해가 없었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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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세계 최대 자동차 테마 파크, 아우토슈타트 직접 가보니
보고 만지고 먹고 타고 자동차 예술에 빠지다 볼프스부르크(독일)=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신나고 설레죠. 입양하는 막내 동생 보러가 는 기분이랄까요.” 들뜬 표정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아우토슈타트에서 만난 20대 청년 라이스 라이나르의 표정이 그랬다. 그는 아버지·어머니와 같이 이곳을 찾았다. 사겠다 고 예약한 소형 해치백 승용차를 직접 찾기 위 해서였다. 그의 가족이 사는 도시는 뒤셀도르 프. 무려 400㎞나 떨어져 있지만 “덕분에 오랜 만에 온 가족이 놀러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풍경, 우리에겐 낯설다. 한낱 기계 덩 어리인 자동차를 ‘입양하는 가족’이라고 운 운하는 것도 그렇고, 그 자동차를 받기 위해 온 가족이 총출동하는 모습도 그렇다. 무엇
보다 신차를 배송받지 않고, 직접 찾으러 가 는 게 영 이상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자동 차 공장에 뭐 볼 게 있느냐는 말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날려 버린 게 독일 폴크 스바겐이 만든 아우토슈타트(Autostadt)다. 폴크스바겐의 본사이자 신차 출고장과 자동 차와 관련된 볼거리·놀거리를 묶어 놓은 전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자동차 테마 파크다. 2000년 개장 이후 자동차 매니어의 성지로 불렸다. 이곳이 최근 새삼 주목을 받게 된 건, 현대자동차가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1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인수하면서 “한국 의 아우토슈타트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기에 현대차가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인가. 아우토슈타트 현지를 중앙 SUNDAY가 찾아갔다. 25일(현지시간) 오전, 하노버 공항에서 한
아우토슈타트의 본부라 할 수 있는 그룹 포럼(Group Forum)의 전경.
시간 남짓 자동차를 타고서 아우토슈타트 안 에 있는 리츠 칼튼 호텔에 도착했다. 언뜻 살펴봐도 자동차는 좀체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자동차 로고도 없었다. 그렇다 고 테마 파크 분위기에 맞는 짜릿한 놀이기 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적한 풀밭 사 이에 독특한 외형의 건물이 군데군데 있었 고, 그 사이로 잔잔한 호수가 흘렀다. 꽤 근사 한 대형 미술관에 온 듯싶었다. 어린이도 운전 체험할 수 있어 본부에 해당하는 그룹포럼(Group Forum) 을 우선 들렀다. 외관은 투명 유리였다. 1층 에 들어가자 중앙 천정에 지름 12m의 원형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아래 거울 바닥엔 지구본 모양의 수십 개 구(球)들이 있었다. 전세계 차량 대수, 배기가스 배출량, 교통 체 증 등을 담아낸 일종의 설치 미술품이었다. 어린이들의 자동차 놀이터 역할도 톡톡히 했다. 소형차를 갖고 만지고 주무르며 타 보 는 건 기본이요, 5~11세 어린이 면허증 취득 프로그램도 있었다. 폴크스바겐 비틀을 본 떠 만든 모형차로 아이들이 직접 운전 교육 을 받는 실습 코스도 마련돼 있었다. 한 달 전 새롭게 오픈했다는 ‘오토워크’는 차량을 7개 부분으로 분리시키고, 예리하게 잘린 각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새삼 자 동차 생산 과정이 얼마나 정교하고 여러 사 람의 손이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레벨 그린’(Level Green)이란 공간도 특이 했다. 입체형 터치 스크린에선 “내가 먹는 바 나나 하나에 총 몇 ㎏의 물이 사용되는지”
폴크스바겐 본사의 획기적 도전
북해 함부르크
14년 만에 방문객 3000만명 돌파 지역경제 발전의 핵심지로 부상
베를린
독일
“현대차도 독창적 콘텐트 담아야”
볼프스부르크 벨기에
(아우토슈타트) 프랑크푸르트
“생산과 환경은 늘 충돌하는지”와 같은 한편 으론 뜬금없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질 문이 이어졌다. 그럴듯한 인문학 강좌를 듣 는 기분이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자 동차 회사가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줄곧 주 창하는 게 단순히 이미지 세탁만은 아닌 듯 싶었다. 아우토슈타트의 최고 명물은 카 타워(car tower)였다. 고객에게 전할 새 차가 보관되는 장소인데 20층짜리 48m 쌍둥이 빌딩이다. 한 빌딩에 400대씩 총 800대를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7인용 승강기를 타고 20층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순간은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한복 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람보르기니·부가티·포르셰 등 이름만으 로도 매니어를 흥분시키는 8개 브랜드 전시 관도 독특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자동차 기능과 성능 전달을 몽환적인 공간 활용으로 풀어냈다. 자동차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다. 1880년대 이후 엔진과 디자인 역사상 의미 있는 클래식카 200여 대가 망라돼 있다. 한 대에 수십억원하는 차를 실컷 구경할 수 있는, 눈
폴란드
브레멘
체코
이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뮌헨 프랑스 정적인 눈요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드라 오스트리아 이빙 익스피리언스에선 인공적으로 만든 오 프로드·비포장도로를 SUV 차종으로 체험 했고, 미래의 자동차로 할 수 있는 전기차를 타고 외부로 달려나가는 코스도 있었다. 한전 부지보다 세 배 이상 넓어 원래 볼프스부르크에는 폴크스바겐의 본사 와 공장만 있었다. 1994년 그룹의 페르디난 트 피에히 의장이 이곳을 찾는 고객은 물론 일반인들도 친근하고 흥미로운 곳으로 여길 자동차 테마 파크를 구상했다. 그러자 “너희 가 디즈니냐, 웬 놀이시설이냐”라는 비아냥 이 적지 않았다. 마침 인근 하노버 시가 2000 년 엑스포 개최권을 획득하자 폴크스바겐 그 룹은 아우토슈타트 프로젝트를 결정했 다. 그리고 2000년 6월 문을 열었다.
클레이 모형 깎는 걸 지켜보고, 직접 운전도 해본다.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게 넘쳐난다.
아우토슈타트(Autostadt) ^개장: 2000년 6월 ^면적: 28헥타르(약 8만4700평 한전 부지는 약 2만4000평) ^건립비용: 4억3500만 유로(약 5785억원) ^하루 방문객: 평일 6000명, 주말 1만5000명 ^주요시설: 그룹 포럼, 카 타워, 자동차 박물관, 브랜드 전시관, 운전 체험장 ^문화행사: 무비멘토스 페스티벌, 여름·겨울 이벤트 ^입장료: 성인 15유로(약 2만원), 학생어린이 6유로(약 8000원) 오프로드, 카타워 투어 등 체험 프로그램은 별도 요금
10조5500억원 현대차 베팅 이후 달라진 삼성동
상가 매매호가 3.3㎡당 1000만원 ‘껑충’, 한전 옮기면서 임대료는 ‘뚝’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매입에 10조5500억원 ‘통 큰 베팅’을 하면서 일대 부 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당장 상업용 건 물의 매매호가가 3.3㎡당 1000만원 이상 올 랐다. 한전 후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 윤희 공인중개사는 “상업용 건물의 경우 평 당 7000만~8000만원이던 호가가 현대차라 는 새 주인을 맞은 지 일주일 만에 8000만 ~9000만원으로 올랐다”며 “일부 건물주는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상가들도 “용적률 높여달라” 건물주들 사이 조합 결성 움직임 의료원 부지 새 주인에 관심 쏠려
매매가와 달리 상가 임대료는 떨어지고 있다. 한전이 이주 채비를 갖추고 하청업체 와 관련 회사들이 이주를 시작하면서 인근 사무실의 공실률이 높아져서다. 특히 한전 과 관계사 직원들을 주고객으로 영업하던 인근 식당이나 소규모 점포의 경우 상권이 크게 위축되면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테헤란로의 한 부동산 중 개업자는 “코엑스를 기준으로 개발이 잘 된 공항터미널 쪽과 개발계획에 묶여 노후건물 이 많이 방치됐던 한전 부지 쪽과는 사무실 이나 점포 임대료가 20% 이상 차이가 났다”
며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한전 인근의 임대 료는 단기적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차인들의 경우 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한전 부지 개발과 함께 노 후 상가들도 재건축을 완료하면 보증금과 임 대료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전 인근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 모(43)씨는 “건물이 노후했지만 상권에 비해 임대료가 낮아 7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는데 재건축이 완료되면 다시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임대료 수준이 비슷한 외곽 지역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건물주들간에는 조합 결성 움직임이 나타 나고 있다. 한전부지의 경우 용적률이 800% 까지 올라갈 전망이지만 인근 3종 일반 주거 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300%에 그친다. 용적 률은 재건축할 건물의 층수를 좌우하고 개발 이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전 인근에 4층 건 물을 소유한 이 모(55)씨는 “건물주들 사이 에 조합을 결성해 협상능력을 높여 용적률을 높이거나, 아니면 한전부지와 마찬가지로 상 업용지로 풀어달라는 요구를 하자는 공감대 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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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휴대폰 떴다방
왕의 망명
머니 플러스(Money+)
다음 주 preview
홍콩 중심가에 휴대폰 떴다방 수십 명 출현. 여행가방
채권 왕 빌 그로스, 43년간 일했던 핌코에서 야누스 캐
알리바바 대박은 ‘돈 이상(Money Plus)’의 재료에서
9월 미국 고용지표(3일·실업률 6.1%, 고용창출 21
에 아이폰 6를 채워, 완판 안내문을 내건 애플 스토어
피털로 이직. 주식 왕 워렌 버핏과 쌍벽을 이루며 최근
생성. 중국의 잠재력과 마윈 회장의 리더십 위에 골드
만 명) 및 중국 제조업 지수(30일)에 주목. 후발국
앞에서 대놓고 호객. 적지 않은 얼리어댑터들은 한화
엔 低금리-低변동성의 新중립(New Neutral)론 설파.
만삭스의 1차 투자, 손정의 회장의 2차 투자가 이에 해
리더인 인도의 정책금리 결정(30일)과 중진국 리
5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현장 지급. 중국 저가폰과 애
야누스 캐피털 43% 주가폭등, 핌코의 모회사 알리안
당. 돈만이 아닌, 돈 이상(Money Plus)의 기여와 파트
더인 한국의 무역수지(1일)도 관전 포인트. 엔·달러
플 사이에서 한국 휴대폰의 고투(苦鬪) 예상.
즈 -4.75% 급락으로 이름값.
너십 구축이 비결.
110 고지는 2차 화폐전쟁 발화점 우려.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금리 인상에 요동치는 시장, 그 이유는 이종우
800대 신차가 대기중인 카 타워. 20층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SF영화를 연상시킨다.
아우토슈타트 글로벌 홍보책임자인 리노 산타크루즈는 “우린 고객과 소통하는 새로 운 문법을 창출했다”고 말했다. 개장 이후 해 마다 200만 명이 방문한다. 다음달이면 누적 방문객 3000만 명을 돌파한다. BMW·도요타 등이 벤치마킹하며 자동차 테마파크 붐을 이 루기도 했다. 무엇보다 독일 관광청이 아우토 슈타트를 10대 관광 명소의 하나로 선정했다.
금리를 인상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경기가 둔화하고 주가가 떨어질까? 1980년 이후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 상한 경우가 네 번 있었다. 2004년이 가장 최근의 예인데 기준금리를 1%에서 5.25% 로 올렸다, 네 번 모두 금리 인상에도 경기 가 좋아졌다. 경기가 둔화하기 시작한 건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이 되고 난 후, 기간 상으론 처음 금리 인상이 있고 5년이 지나 면서부터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금리 인상은 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 회 복이 확실해진 후 시작된다. 이때에는 경 기가 확장되는 힘이 금리가 누르는 힘보다 강해 경기 회복과 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 타날 수밖에 없다. 금리가 낮아 여러 차례 인상을 하더라도 부담이 없는 점도 역할 을 했다.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에 걸림돌 이 되는 건 기준금리와 시중금리가 비슷해 진 후부터였다. 이때에는 기준 금리가 경 제성장률이나 물가 등을 모두 반영한 상태 가 되므로, 금리 인상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 미국의 기준 금 리가 0.25%를 기록하고 있다. 시중 금리는 2.7% 정도로 둘 사이에 2.5%P 정도의 격 차가 존재하고 있다. 0.25%씩 금리를 올린 다고 가정할 때 10번의 인상을 견딜 수 있 는 여력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아직 미국 경제는 금리 인상과 무관한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기준 금리 인상이 시중 금리에 미치는 영향도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대부분 투자자가 기준 금리 인상에 따라 시중 금 리도 덩달아 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1994 년을 제외하고 그런 사례가 없었다. 미국의 경우 금리 인상이 있기 3개월 전부터 시장 금리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금리 인상이 이루어지고 나면 시중 금리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의 12배 수준을 기록
[블룸버그]
인구 12만 명의 독일 중북부 소도시 볼프스 부르크가 황량한 자동차 생산지에서 세련된 자동차 문화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역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산타크루 즈는 “아우토슈타트 내 10개 레스토랑에서 쓰는 고기와 유기농 채소는 모두 볼프스부르 크 인근에서 나오는 것이고, 1500여 명 직원 도 대부분 이 지역 출신”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인수했다는 건 이들 에게도 알려진 소식이었다. 서울 금싸라기 땅 과 독일 외지를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아우 토슈타트 건립비용은 한전 땅값에 비해 20분 의 1이며, 땅 크기는 세 배 이상 넓다. <표 참 조> 폴크스바겐 마케팅이사인 크리스티안 부머는 “현대차의 영리한 선택이지만 12개 브랜드를 가진 폴크스바겐과 달리 현대차가 2개 브랜드만 갖고 있으며,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건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타크 루즈 역시 “독창적인 콘텐트를 담아낼 수 있 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강일구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금리인상, 경기회복 후 시작 시장 흔들리는건 공포 때문 주식시장 문제는 금리 아닌 주가 하고 있다. 과거 금리 인상이 시작되는 시 점에 둘 사이의 격차가 두 배 정도였던 걸 감안할 때, 국채 금리가 상당히 높은 상태 라 보는 게 맞다. 기준 금리는 미국 정부의 저금리 정책으로 지나치게 낮아졌지만, 최 근 경기 회복을 반영해 시장 금리가 상승 한 결과다. 둘의 격차를 고려할 때 내년 하 반기에 Fed가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금리 와 경기가 따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왜 시장은 금리 얘기만 나오면 요동을 치는 걸까? 우선 막연한 두려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금리와 주가의 관계를 보면, 금 리 인상이 시작될 때까지는 불확실한 상황 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가가 흔들리지만, 실 제 인상이 이루어진 뒤에는 원래 상태를 회 복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번만의 특이한 요인도 있다. 기준금리 가 바닥에 머물고 있는 시간이 길고, 그 시 간 동안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2008년 12월에 Fed가 기준금리를 처음 0.25%로 낮 췄다. 지금까지 70개월을 금리가 최저 수준 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 된다. 첫 번째 인상 을 내년 상반기 말쯤으로 가정하면 그 기간 이 80개월을 넘을 수도 있다. 이전까지 기준 금리가 바닥에서 가장 오래 머문 때는 92년 9월에서 94년 1월까지 17개월이었다.
기준 금리가 0.25%에 머물고 있는 동안 주가가 세 배 가까이 올랐다. 과거 금리가 바닥을 친 후 첫 번째 금리 인상이 이루어 질 때까지 주가 상승률이 20%를 넘지 않았 던 것과 비교된다. 90년대는 미국 주식시장 이 유례없는 활황을 기록했던 시간이었다. 미국 경제가 80년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경쟁력을 회복했고, IT, 금융 같이 미국이 강점이 있는 산업이 세계의 핵심으로 부상 했다. 그 결과 다우지수가 처음 1만을 넘었 고 나스닥도 5000을 돌파했다. 당시 미국 의 주가 상승률은 68개월 동안, 203.4%였 다. 금리가 0.25%에 있었던 지난 5년간 미 국 주가가 172% 상승했다. 과거 같으면 경 기가 바닥을 친 후 수차례 금리 인상을 통 해 경기 회복이 마무리될 때까지 주식시장 에 나타났던 모습이 금리 최저점에서 다 나 타나 버린 것이다.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주가는 떨어질 수 있고, 금리 인상 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시장이 과거 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주식시장의 문제는 미국 금리 인상이 아 니다. 주가다. 주가에 따른 부담이 남아있 어 언제 금리 인상이 시작되더라도 결과가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9개월 넘게 선진국 주식시장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이 그나마 나은 상태지만 작년보다는 상승률이 현저히 낮다. 한 달 전만 해도 박스권 돌파를 당연시하던 우리 주식시장이 다시 박스권으로 들어왔다. 미 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 높은 주가에 따른 부담이 국내외 시장에 작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 주식시장에서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말만큼 거짓이 없다고 한다. 눈 앞에서 일 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는 지금이 과거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특이한 상황인 것처 럼 생각되지만, 시간이 지나 결과를 보면 지금도 과거와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이 금리와 주가의 동시 상 승이라는 정형화된 결과를 남길지, 아니면 진짜 다른 형태가 될지에 관한 해답은 금리 보다 주가가 쥐고 있는 것 같다.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43년만에 회사 떠나는 빌 그로스 핌코회장
삼성동 주민들은 서울의료원 부지의 매각 향방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영동 MICE’라는 대형 개발 계획 에는 한전·한국감정원·서울의료원·잠실종합 운동장이 포함돼 있다. 한국감정원 부지는 삼성생명이 이미 매입을 완료했다. 따라서 탄 천 서쪽 지역 개발은 서울의료원 부지의 새 주인이 결정되면 본격 시작될 전망이다. 한국감정원 부지와 바로 붙어있는 서울의 료원의 경우 소유주인 서울시가 내달 매각 공고를 낼 예정이다. 주민들 사이엔 “감정원 과 의료원 부지가 사실상 한 덩어리여서 결국
삼성이 매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대차 그룹은 한전 부지에 독일의 아우 토슈타트를 능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센 터(GBC)’를 지을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 는 “자동차 도시로 유명한 미국의 디트로이 트나 독일의 볼프스부르크의 인구가 각각 70 만, 12만 명이다. 일본의 도요타시도 인구가 40만 명에 불과하다”며 “인구 2000만명이라 는 수도권을 배후로 들어서는 현대차그룹의 GBC는 대규모 행사 유치 등 부가가치를 극 대화하는 사업을 펼치는데 매우 유리할 것” 이라고 말했다.
15년간 수익률 6.2% ‘채권왕’ 전격 사임
중앙포토
아우토슈타트의 출입구 모습. [사진 폴크스바겐 코리아]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 핌코를 이끌어 온 ‘채권왕’ 빌 그로스 회장(70·사진)이 사 임한다. 회사를 세운 지 43년 만이다. 그로스 회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성 명을 내고 “핌코를 떠나 야누스캐피털그 룹으로 둥지를 옮길 것이며 그곳에서 글로 벌 채권펀드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임 이유로 “크고 복잡한 조직을 관 리하는 데서 나오는 여러 문제를 접어두고, 고정자산 투자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야누스를 두 번째 집으 로 선택한 것은 최고경영자(CEO) 딕 웨일 에 대한 존경과 오래된 친분 때문”이라며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고객들 자산 관리 에만 쓰겠다”고 덧붙였다. 그로스는 1971년 핌코를 공동 창립한 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토털리턴펀드’를 운용해왔다. 토털리턴은 지난 15년간 연 평균 6.22%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 자
산이 한때 2250억달러(약 225조원)에 달하 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월까지 토털리턴 펀드에서 16개월 연속 자금이 순유출되면 서 위기를 겪었다. 특히 그로스는 독단적 으로 투자를 결정해 회사 내 다른 매니저들 과 수차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핌코는 최근 자사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을 부풀린 혐의로 미국 당국의 조사 를 받았다. 그로스 회장이 직접 운용하는 핌코의 간판 상품 ‘토털리턴 ETF’가 문제 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그로스 회장 사임에 대해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만한 ‘블랙 스 완(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 났다는 의미)’급 이벤트라며 “(그로스가) 최근 실적 악화로 이사회로부터 여러 차 례 사퇴 압박을 받아 왔다”고 전했다. 미국 CNBC는 “그가 점점 엉뚱한 행동을 반복 해 해고가 예정돼 있었다”며 “다른 직원들 은 그가 나가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나가겠 다는 최후통첩을 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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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비주얼경제사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⑭ 산업재해의 탄생
석탄과 기계가 낳은 산업재해 선진국이 고안한 해결책은? 런던의 한 주택가를 한 어른과 두 아이가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세 사람 모두 등에 부대자루를 메고 있으며 손에 솔이나 부 삽을 들고 있는 허름한 행색이다. 특히 잿 빛의 칙칙한 옷차림이 두드러진다. 이들 의 얼굴과 다리조차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림 3 광산사고로 혼란스런 현장을 묘사한 그림.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이 그림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삽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토머스 롤런드슨(Thomas Rowlandson)의 작품이다. 그는 하층민의 생활상을 해학과 풍자를 곁들여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등장인물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힌트는 그림의 왼편 윗부 분에 있다. 솔과 부삽을 든 채 굴뚝 위로 상체 를 내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 들은 바로 굴뚝청소부이다. 이들은 지금 거 리를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맞추어 “뚫어!”를 외치는 중이다. 굴뚝을 정기적으로 청소해야 하는 이유는 연료로 석탄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런던 의 경우 1666년 대화재로 1만3000여 채의 가 옥이 잿더미가 된 후 벽돌을 주재료로 재건 축하는 과정에서 땔나무 대신에 석탄을 쓰는 가구가 크게 늘어났다. 속도가 더뎠을 뿐 다 른 도시들에서도 석탄을 쓰는 가구가 점차 많아졌다. 석탄 연기가 잘 빠져나가게 하려면 굴뚝 내부를 좁게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몸 집이 작은 아이에게 일을 시킬 필요가 있었 다. 당시 영국에서는 각 마을(교구)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기술을 익힐 자리를 알선해주는 ‘교구도제’ 제도가 널리 퍼져 있었다. 돈 없 고 기댈 곳 없는 빈민 아동은 굴뚝청소 도제 로 받기에 딱 좋았다. 굴뚝청소는 사고 위험이 큰 작업이었다. 아이들은 좁디좁은 굴뚝을 오르내리며 검댕 을 떼어내고 가루를 쓸어담아 밖으로 끄집어 냈는데, 공기가 통하지 않아 질식하기도 하 고, 옷가지가 엉켜 목이 조이기도 했다. 굴뚝 이 뜨거운 상태에서 작업하다 화상을 입기도 했고, 굴뚝이 약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림 2에서 아이들의 노동여건이 얼마나 열 악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굴뚝청소 아이들은 사고뿐만이 아니라 직 업병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팔꿈치와 무릎에 난 상처가 감염되어 악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댕과 늘 접촉하였던 탓에 각종 암의 발병도 많았다. 아이들은 더러운 주거 환경, 휴식할 시간의 부족, 불량한 영양 상태 탓에 건강 악화를 피하기 어려웠다. 더욱 본격적으로 사고와 직업병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였다. 노동자들은 공장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장시 간에 걸쳐 고된 일을 했다. 환기시설이 형편 없고 조명이 불량한 공장 안에서 수많은 동 력 기계와 공작 기계가 아무런 안전설비 없이 굉음을 내며 엄청난 속도로 돌아갔다. 순간 의 실수로 손발이나 머리카락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오히려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이상할 지경이었다.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면 공장의 경우 기계 화가 진전되면서 남성의 근육보다 섬세한 여 성의 손놀림, 기계 사이로 오가면서 끊어진 실을 잇는 아동의 민첩함이 필요했다. 여성 과 아이들은 성인 남성에 비해 임금이 낮고 규율을 강제하기도 쉬웠다. 이들은 폐질환, 근골격계 질환, 감염성 질환에 시달렸는데, 모두 열악한 노동조건과 관계가 깊은 질병들 이었다.
그림 1 19세기 초 영국에서 삽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토머스 롤런드슨이 그린 그림. 굴뚝 청소부들이 거리를 돌며 “굴뚝 뚫어”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공장의 비참한 노동조건에 경악 아동·여성 보호 필요성 커져 산업재해 줄이기 위해 책임 강조 공업화된 독일이 가장 적극적
광산도 마찬가지였다. 석탄과 각종 광물 을 캐기 위해 수많은 광부들이 칠흑같이 어 둡고 비좁고 무덥고 습한 갱도 안에서 분진 이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했다. 채굴 량이 증가하면서 갱도가 점점 깊고 복잡해지 자,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더 많이 고용되었 다. 당시 여성과 아동 광부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한 의회보고서에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가 득하다. 광부들은 석탄덩이 운반차량에 치이 고, 무너지는 갱도 천정에 깔리고, 수직갱도 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시력을 손상 하기도 하고, 폭발사고로 인해 수백 명의 광 부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림 3>
그림 2 어린이들이 굴뚝을 청소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좁은 굴뚝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묘사했다.
석탄 분진을 호흡해 생긴 진폐증은 일을 그 만둔 이후까지도 이들을 괴롭혔다. 석탄과 기계를 사용하기 이전에도 재해는 존재했다. 농장, 가내 수공업장, 마차와 배에 서 재해는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그러나 공 업화는 재해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작업이 소수에 의해 이루어지던 시 절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의 성격 과 잠재적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따라 서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의 잘못 혹은 운명 의 소관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런데 공장과 광산의 규모가 커지고 철도와 같은 운송수단 이 도입되면서, 많은 사람의 작업이 서로 밀 접하게 연계되고 작업 공간이 중첩되는 현상 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아무런 잘못 을 하지 않았는데도 타인의 잘못이나 시스템 의 오류로 인해 재해를 입는 사례가 많아졌 다. 이것이 본격적인 ‘산업재해’가 탄생한 계 기였다. 이제 업무상 발생한 사고와 직업병에 대 해 과거처럼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 려워졌다.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피
해자에 대한 동정심과 사고방지에 대한 요 구로 여론이 들끓었다. 예전에는 재해를 당 한 노동자가 고용주의 개인적 선의와 자선단 체의 빈민구호에 의지하거나 심지어 운이 없 으면 아무런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하곤 했 지만, 이제 고용주에게 정식으로 피해 보상 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념이 확산하였다. 법 정에서의 판결도 점차 고용주의 책임을 인정 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19세기를 거치면서 결집력이 커진 노동조합에서는 돈 없는 피해 자에게 소송에 필요한 비용과 정보를 제공하 였다. 여러 정치가, 사회운동가, 종교 지도자 들이 산업재해의 실상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 고, 안전장치의 의무화와 보상의 강화를 입 법화하기에 힘썼다. 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 와 같은 이는 대중 강연을 통해 이런 움직임 에 힘을 보탰다. 산업재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노력 은 공업화된 국가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났 다. 그중에서도 출발이 늦었지만 철강·기계· 화학·전기 등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급속 한 공업화에 성공한 독일이 가장 적극적이었 다. 노동자 수가 급증하면서 노동조합의 규 모와 활동력이 증가하고 사회주의 운동이 대 두하자, 비스마르크 총리는 1871년 고용주 보 상책임법을 제정하고 이어서 1884년에 산재 보험 제도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산재정책 을 폈다. 재해를 줄이고 피해구제를 보장하 는 제도는 이렇듯 노동자의 과실 여부와 상 관없이 재해의 책임을 개인으로부터 고용주 및 사회로 전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한편 영국은 자유방임주의와 개인적 자선 의 전통이 강했던 탓에 공적 제도의 마련이 독일보다 늦었다. 영국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고율이 가장 낮은 산재선진국이 된 것은 느 리지만 지속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산업재해에 대한 독일식 대응체제는 곧 다 른 국가들에게 전파되었다. 1910년까지 서 구 20개국이 산재보험 제도를 갖추게 되었 고, 일본·태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도 1940년 이전에 이 제도를 도입하였다. 2차 세 계대전 이후 독립을 쟁취하고 공업화를 추진 한 국가들도 순차적으로 산업재해 관련 입법 들을 정비하였다. 안전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특히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안전이 행복의 필 수조건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구 산업사 회는 공업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산업재해를 입었던 경험을 교훈 삼아 내실 있는 대응책 을 마련해 왔다. 오늘날에도 크고 작은 산업 재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우리 현실 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 사회 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며 행복 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제대로 갖추고 있 는가?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 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회학회 이사를 맡고 있 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 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 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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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노르웨이 성장 이끄는 연어 양식사업의 현장
수산물 수출액 연 10조원 국민소득 세계 3위 밑바탕 스타방게르(노르웨이)=박재현 기자 abnex@joongang.co.kr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파는 연어와 고등어 의 상당수는 노르웨이에서 건너왔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노르웨이 가 하루에 생산하는 수산물은 3700만 명이 동시에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양이다. 인구 50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에서 수산물로 만 세계 140개국에 75억3000만유로(약 10조 원)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어떻게 세계적 수산물 생산국 이 됐을까. 식량 전쟁의 시대를 맞아 KMI와 중앙SUNDAY는 이달 중순 노르웨이 현지 를 찾아 양식산업의 현황과 우리가 벤치마킹 해야할 것들을 알아봤다. 취재에는 KMI의 김대영 박사가 동행했다. 현지에선 노르웨이 생명과학대학 바이러스 백신 분야 박사과정 에 있는 김성현씨가 도움을 줬다.
1 사진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
과학적 관리로 최상의 수산물 생산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남서쪽으로 500 ㎞ 가량 떨어진 항구 도시 스타방게르. 이 나 라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는 연어 양식과 원 유 산업의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에르피요르 드사의 연어 양식장에 가기 위해 연안부두에 서 요트를 타고 60㎞ 가량의 바닷길을 한 시 간 정도 달렸다. 이 도시에 있는 50개의 섬 중 17개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자 연상태로 각종 생태계의 보고라고 한다. 김성 현 박사는 “피요르드 해안이라는 천혜의 자 연적 조건을 갖춰 연어양식에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며 “섬지역에서 나오는 각종 폐기 물을 처리하기 위해 육지에서 파이프를 설치 할 정도로 환경오염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200~700m에 달할 정도로 수심이 깊 은데다 청정해역이어서 수산물의 육질도 좋 고 위생상태도 최고라는 것이다. 1시간 여의 항해 도중 바다 곳곳에 연어 양식장들이 널 려 있었다. 킬라바겐이라는 지역에서 연어 양 식장의 책임자로 있는 비야르너 오르후스는 “최상의 연어알을 만들기 위해 품종관리에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입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 학계 등과도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형 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름 30m 가량의 원 통형 양식장에는 알에서 막 깨어난 5~7㎝ 가 량의 어린 연어 ‘스몰트’ 들이 별도로 관리되 고 있었다. 여기엔 바닷물 대신 민물이 끊임없 이 공급됐다. 양식장 관계자는 “연어들이 서 로 부딪히면서 상처를 입을 경우 오염이 될 우
청정지역서 연어 양식 자동 관리 위생·영양 치밀한 점검이 경쟁력 지속 성장의 배경은 정책 뒷받침
려가 있어 백신을 개발했으며, 양질의 품종을 유지하기 위해 사료의 질도 끊임없이 개선되 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양식장을 떠나 다시 30여분간 물살을 가르며 도착한 곳은 바다 중심에 있는 연어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앞 바다에서 연어양식장을 관리하는 한 직원이 선박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를 쳐다 보며 연어들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다.
양식장. 마치 접선하듯 요트에서 양식장 관 리 직원의 작은 어선으로 옮겨탄 뒤 모선(母 船)으로 향했다. 배에는 6명의 직원들이 나 와 바닷속 양식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연어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있었다. 관리팀장인 뵈른은 “바닷가에 떠 있는 양식 장은 모두 자동화 돼 있으며, 우리는 각종 기 기를 통해 온도와 연어 등의 상태만 체크하 고 있다”고 말했다. “신이시여, 연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은 스타방게르 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에 있다. 연어와 고 등어, 홍합 등이 주요 특산물로 이 지역 카페 의 최고 별미는 홍합요리와 해물 스파게티다. 항구 근처에 일렬로 들어선 목조건물은 유네 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오 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이 노르웨이의 수산물, 특히 연어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수산물 가판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중년 남자는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 뭔 줄 아 느냐”고 자문한 뒤 “‘신이시여, 우리에게 연어 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표현”이
연어 양식으로 일자리 2만3600개 창출 오슬로에 있는 통상·산업·수산부는 수산물 양 식산업의 정책과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수산 담당 부서의 책임자로 있 는 마틴 브리드는 “연어 양식의 경우 시작한 지 40년 정도된 젊은 산업이어서 향후 먹거리 개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 했다. 그에 따르면 노르웨이에는 180여 개의
크고 작은 양식 회사가 있으며, 이로 인해 2만 36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이 나라가 세 계 3위의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데 연어 산업 이 크게 기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 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노르웨이 국민 1인 당 GDP(국내총생산)는 10만1271달러로, 한 국의 2만3837달러에 비해 4배 이상이다. 노르 웨이 정부는 “지난해에만 132만t의 연어가 생 산됐으며, 이로 인해 71억 달러의 매출을 거뒀 다”고 밝혔다. 브리드는 “정부 차원에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연어 양식이 지속 가능한 산업 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와 산업적 연구를 하는 것”이라며 “수산업계와 정부, 학계의 공 동작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연어 양식 산업이 지나치 게 많아져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사 업면허권 발급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국가 산업의 이미지가 훼손 될 것을 우려해 지금까지 어폐류의 질병 방지 를 위해서만 1조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됐다 고 한다. 정부의 체계적 지원, 학계의 정교한 연구, 사업자들의 과학적 경영…. 노르웨이가 보여주는 수산 강국의 비결이다.
자동화 등의 연구를 통해 성장이 빠른 종(種) 을 개발했다. 업계도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 화와 개발된 양식기술을 현장에 빨리 적용하 는 체계를 마련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깨끗하 고 품질 좋은 노르웨이산 양식연어가 세계인 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양식산업의 강점과 문제점은.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으로 해조류(海 藻類)를 제외하면 세계 14위의 양식국가다. 삼면이 바다이고 모두 해양환경이 달라 다양 한 양식이 가능하다. 서해안에선 갯벌과 연 안을 이용한 바지락김해삼 등을, 남 해안에선 전복미역조피볼락넙치 등을 기른다. 동해안에선 가리비해삼 강도다리 등을 양식한다. 수산물 소 비도 늘고 있다. 2012년 1인당 54.9kg의 수산물을 소비해 2008년에 비해 60.3%나 늘
었다. 천혜의 바다환경과 수산물 소비는 우리 나라 수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돼 왔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새로운 인력이나 자본 진입이 제 한돼 있고 노동력 고령화로 생산기반도 약해 졌다. 양식어장 오염이나 시설 노후화도 생산 성을 떨어뜨린다. 새로운 양식방법과 사료, 질 병대처 등 기술개발이 미흡하고 투자도 부족 하다. 수출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선 양식수 산물의 상품개발이나 마케팅, 시장개척 등이 필수적이다.” - 정부당국이 어떤 지원을 해야 하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규모화산업 화를 지원해야 한다. 종자산업과 사료, 질병 관리, 자동화 양식 등 기술혁신도 유도해야 한다. 친환경 양식과 위생 관리, 마케팅 및 수 출시장 개척 등도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이를 통해 우리 양식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 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만큼 연어는 노르웨이 경제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각종 양식장에서 생산된 연어의 건강 상태와 품종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수산물 연구 및 영양을 위한 국가 협의회를 찾아갔다. 이 곳에선 각 종 수산물의 위생 상태 등을 집중적으로 점 검하고 있다. 책임 연구관인 에이드 그라프 박 사는 “우리 기관에서 수산물의 품종과 위생 상태에 대해 꼼꼼히 챙기고 살피는 것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당 수산물에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경우 즉각 관련 정부 기관에 알리고, 당사자에게도 결과를 통보한 다”고 말했다. 국책기관의 투명성이 가장 중 요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가 말하는 수산강국 노르웨이의 비결
“정부·연구기관·업계 삼위일체돼야 양식업 발전” 박재현 기자
한국 해양수산개발원(KMI) 김대영(사진) 박 사는 “양식산업은 수산식량의 보고(寶庫)이 자 미래산업의 블루칩”이라며 “노르웨이를 본받아 국내 양식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 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일 본 나가사키대학에서 수산학 박사학위를 받 았다. -세계 양식산업 실태는 어떤가. “세계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개발도상국 의 경제도 발전하면서 수산물 소비추세도 함 께 증가하고 있다. 국제기구 자료에 따르면 세 계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1990년 13.5kg에 서 2000년 15.8kg, 2010년 18.9kg로 늘었다. 특히 중화권을 중심으로 수산물 수요가 늘고 있다. 수산물 공급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인 고기잡이는 줄어드는 추세다. 과도한 어획경
수산물 소비 증가, 양식업 수요 늘어 노르웨이, 체계화·기업화로 강국 부상 한국, 천혜의 환경 제대로 활용 못해
쟁으로 수산자원이 고갈되고 국제사회의 규 제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반면 양식업은 1990 년대 이후 크게 늘어 2012년에는 전체 수산 물 공급의 49.5%인 9000만t을 기록했다. 유 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6년부터 5년 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 수산물 수요 증가세 는 인구 증가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고 한다. 2020년에는 공급이 수요보다 2300t 가량 부 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산물 수급 불균형 으로 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피쉬플레이 션’이 나타나기도 한다.” -노르웨이 양식산업의 강점은 무엇이고,
우리가 중점을 두고 벤치마킹을 해야 할 부 분이 뭔가. “노르웨이 수산업의 중심에는 양식산업이 있다. 연어송어대구홍합 등을 양식하는데 연어양식은 70년대 이후 세계시장을 선도하 고 있다. 지난해 기준 180개의 양식업체가 매 년 132만t의 연어를 생산해 대부분 수출한다. 우리와 다른 점은 기술집약적 자동화된 생산 공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면허규제 완화, 진입장벽 철폐, 최대 생산량 규제 등 정부와 연구기관, 업계의 협력적 파트너 관계가 잘 만들어져 있다. 정부는 규제와 장벽을 없애 시장원리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어장환경 관리, 과감한 연구·개발투자와 함께 적 극적인 수출시장 개척으로 산업기 반을 마련했다. 연구기관에선 사료, 질병관리 백신, 양식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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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Biz Report 서울 강남 중심 복합 타운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
인근엔 법조타운 단지 안에는 첨단 보안시설 닭고기 값(㎏ 당) 추이 (단위: 원) 한애란기자 aeyani@joongang.co.kr
6241 6015 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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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농수산식품공사
25일 수만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는 전북의 한 양계 농가. 병아리를 농장에 들여오는 입식에서 출하까지 일반적으로 한달 여가 걸린다.
[사진 하림]
수요 줄고, 공급 과잉 양계농가들 한숨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전북 익산시 낭산면에서 양계농장을 운영 중인 심순택(60)씨는 요즘 부쩍 한숨이 늘었다. 심씨를 한숨짓게 만 드는 건 바닥까지 떨어진 닭값 때문 이다. 수요 감소에 공급 과잉까지 겹치면 서 닭 값이 최근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10만여 마리의 닭을 키 우고 있다는 그는 “양계장을 한 이후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는 양계농가에 가혹한 한 해 가 되고 있다. 우선 1월 조류인플루엔 자(AI)가 발생하면서 닭고기 수요가 큰 폭으로 줄었다. AI는 7월 말까지 위력을 떨쳤다. 피해금액도 사상 최대치인 4000억원 에 달할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보고 있다.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로 꼽히는 삼계탕 수요도 예년만 못했 다. 여기에 세월호 사태의 여파로 관 광객과 여행객이 큰 폭으로 감소하 면서 닭고기 소비도 덩달아 타격을 입었다.
㎏당 거래 가격 5년 만에 최저 육계 사육 수는 1억 마리 달해 울며 겨자 먹기로 냉동 비축
소비 반등을 기대했던 월드컵도 큰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팀의 성적 부진 탓에 월드컵 특수는 기대로만 남았다. 바캉스철인 8월 초에는 태 풍 나크리와 할롱 등이 주말마다 비 를 뿌린 것도 양계농가에는 타격이 됐다. 양계농가의 어려움은 대형마트 매 출로도 확인된다. 이마트의 경우 올 들어 8월까지 닭고기 매출이 3.1% 가 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 트도 같은 기간 동안 닭고기 매출이 9.2%나 빠졌다. 진짜 문제는 공급과잉이다. 닭 공 급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양계농가
들이 여름철 보양식 수요와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병아리 입식을 늘린 탓이다. 실제 올해 2분기 기준 육계 사육 수는 전 분기보다 30% 늘어난 1 억 마리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 니 닭고기 가격은 사상 최저 수준으 로 폭락했다. 한 국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올 9월 닭고기(1㎏·중품 기준) 평 균 소매 가격은 4985원으로 나타났 다. 지난해 9월 닭고기의 ㎏ 당 가격 은 5728원이었다. 값이 가장 좋았던 2011년 3월의 경우 ㎏당 6983원이었 다. 닭고기의 값이 ㎏당 4000원대까 지 떨어진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농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냉동 비축을 해야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 다. 닭고기를 냉동할 경우 생닭보다 맛이 떨어져 인기가 없어진다. 때문 에 냉동 닭고기로 팔 경우 생산원가 의 3분의 1 정도 밖에 건지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냉동 비축을 택하는 양계농가가 늘면서 비축 물량은 전 년 동기보다 136.5%가 늘어난 1000 만 마리에 달한다.
닭고기 업계는 자구책 마련에 나 섰다. 닭고기 가공업계 1위 업체인 하 림이 대표적이다. 하림은 전국 600여 개 계약 농가에서 닭을 공급받고 있 다. 하림은 계육협회와 토종닭협회 등과 함께 수시로 시식행사를 진행 중이다. 가금류의 안정성을 널리 알 리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자존심을 접고 롯데마트와 손잡고 PB(자체 브랜드 상품)를 내 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간 유 통업체의 PB상품은 업계 2~3위 업체 나 시장 점유율이 낮은 곳에서 만드 는 게 일반적이었다. 1등 업체가 유통 업체 PB상품을 만들어 내놓으면 기 존 상품의 매출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었다. 양계농가의 희망은 아시안게임이 다. 올해 마지막 특수를 기대하는 것 이다. 김환웅 롯데마트 닭고기MD는 “닭고기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 해 산지 농가의 피해가 계속 늘고 있 어서 걱정”이라며 “닭고기가 안전하 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 소비를 늘리려 한다”고 말했다.
7·24에 이어 9·1까지. 연이은 부동 산 대책 발표로 가을 부동산 시장 이 들썩인다. 특히 서울 강남지역 은 대출규제 완화 덕을 톡톡히 보 고 있다. 26일 견본주택을 연 삼성물산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서초 우성 3차 아파 트를 재건축하는 단지다. 삼성타운·테헤란로·법조타운 이 인접한 강남의 중심지다. 지하 철 2호선·신분당선 강남역이 가 깝고 강남대로·올림픽대로·경부 고속도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입지다. 인근 롯데칠성 부지가 업무·호 텔·쇼핑시설로 개발되면 생활여 건이 더 편리해진다. 바로 옆 우 성 1·2차 아파트 재건축도 삼성물 산이 맡아, 2000가구 넘는 ‘래미 안 타운’을 형성할 예정이다. 삼성 물산 관계자는 “주변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 개발이 마무리되면 반포와 맞먹는 5000가구 이상의 대단위 신흥 아파트촌이 탄생하
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하 2층, 지상 33층의 4개 동 총 421가구 중 49채가 일반 분양 분으로 배정된다. 83㎡ 16가구, 101㎡ 15가구, 139㎡ 18가구다. 중앙 잔디광장과 산책로 같은 친환경 조경에 신경 썼다. 단지엔 첨단 보안시설이 적용된다. 보육 시설이 단지 중앙에 들어설 예정 이어서 어린 자녀를 키우기 적합 하다. 실내골프연습장과 작은 도 서관, 피트니스 센터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평균 분양가는 3.3㎡당 3100만원 대이다. 삼성물산은 분 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인근 시세 대비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설명 했다. 견본주택은 26일 서울 문정동 래미안 갤러리에 열었다. 첫날부 터 방문객들로 붐벼, 상담을 받 기 위해 20~30분을 기다리기도 했다. 다음달 1일 특별공급을 시작으 로, 2일 1·2순위, 6일 3순위 접수가 진행된다. 당첨자 발표일은 다음 달 13일, 계약은 20~22일이다. 입 주는 2016년 12월 예정이다.
서울 서초동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 조감도.
[사진 삼성물산]
Focus 23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27끝> 선비정신과 미래 리더십
참다운 인간상 지향하면 누구에게나 선비의 길 열려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kr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를 지닌 독서인. 유교철학이 설정한 이상적인 인간상(像)이 바로 선비다. 최고통치자인 왕도 이런 선비의 전형에서 벗어날 순 없다. 세종과 정조는 대 표적인 선비 군주였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 은 선비 리더십이 발휘된 국가였다. 벼슬길에 나갔건, 사림에 머물렀건 선비들은 당대의 공 론의 장을 이끌었다. 이런 조선시대의 선비정 신에 대한 뜨거운 토론의 장이 열렸다. 지난 26일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아산 서원 개원 2주년 기념 학술회의장. ‘선비정신 과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 의에서는 선비정신을 통해 미래의 리더십을 찾으려는 열띤 토의가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로 드러난 관료사회의 적폐와 리더십 부재의 대안을 전통가치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한국인 74.5% “선비정신 중요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선비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시작했다. “문명 교체기라 할 수 있는 개화기에 이르면 선비들의 의식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시대사 조를 읽을 안목도 없었고 중화(中華)에서 서 구로 눈길을 돌릴 의지도 없이 ‘갈라파고스 거북증후군’에 머물러 있다가 망국을 초래했 다. 현재 우리 학계가 예찬하는 실학자들이 야말로 몰락한 지식인들이다. 개화기에 동서 문명이 충돌할 때 실학자들은 그야말로 ‘풀 잎 하나 움직일 바람’도 일으키지 못했다.” 김석근 아산서원 부원장은 선비정신이 다 시 부각된 때를 1960년대로 잡았다. 52년에 발표된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가 나온 이 후, 조지훈 같은 고전적 교양을 갖춘 논객들 이 지식인의 윤리적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 선 비정신을 공론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 대가 선비정신을 다시 불렀다”며 “일제 강점 기와 광복 후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지식인 들이 보여줬던 무능함과 현실 타협적인 처신 은 전통시대의 꼿꼿했던 선비를 그리워하게 했으며 이런 경향성은 아직까지도 여전하다 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된 설문조사도 공개했다. 아산서 원이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74.5%가 선비정신이 중요 하다고 응답했다. 선비정신이 필요한 이유로
조선의 대표적인 선비와 선비군주로 불리는 윤두서(왼쪽), 최익현(가운데)과 정조(오른쪽). 윤두서 (1668~1715년)는 윤선도의 증손으로 숙종 때 과거(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당쟁을 피해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과 서화로 생애를 보냈다. 최익현(1833~1906)은 구한말 학자로 74세 때 의병을 일으킨 독립운동가다. 정조(1752~1800년)는 조선의 22대왕으로 왕정체제를 강화해 위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재산신지식 없던 구한말 선비는 중화만 찾다 갈라파고스 거북 신세 마음 비우고 거리낌 없이 묻는 淸問 현대판 선비의 덕목으로 내세워야
는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의 인격수양 부족, 엘리트층의 사리사욕 추구, 정치권의 잦은 분 열과 갈등을 꼽았다. 김 부원장은 “현대 사회 의 문제점들을 선비정신을 빌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 선비의 몰락 이유에 대한 논의도 활 발했다. 신복룡 교수는 우선 토지와 신지식 부족을 들었다. 자본주의가 시대정신으로 바 뀌었을 때, 궁핍한 선비의 가치는 무기력했고 중화주의에 눈멀어 신지식을 능동적으로 흡 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래 가난하면서
인의(仁義)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실’이 라고 모질게 나무란 사마천의 사기「화식 열전」을 예로 들며 청빈, 곧 ‘착한 가난(good poor)’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선비에 해당하는 영국의 지주계급인 젠트리(Gentry)는 탄탄 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지방 의원직과 치안판 사 등을 독점했다. 뿌리 깊은 영국신사의 전 통이 이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젠 트리의 자격 요건으로 빚 없는 경제적 여 유 존경 받을 만한 교육 품위 있는 생활 종교로 다듬어진 관용 사회 공헌 의지와 봉사 3대에 걸친 원만한 가족관계 등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소개했다. 종교·계층에 관계없이 선비 나와야 성리학자인 이형성 전주대 교수는 참다운 인 간상을 지향하면 누구나 선비가 될 수가 있다 고 강조했다. “공자의 제자들은 선비(士)에 뜻 을 뒀지만 각기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안연(顔
淵)은 학문을 좋아하면서 인(仁)을 어기지 않 으려 했고, 증점(曾點)은 기수(沂水)에서 목욕 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이나 쐬며 시나 읊 으려고 했으며, 자로(子路)는 용맹을 좋아하여 삼군(三軍)을 진두 지휘할 수 있었고, 자공(子 貢)은 화식(貨殖)에 능하여 재물을 잘 축적했 다. 우리 시대 선비상은 경제·과학·문화·종교 등에 걸쳐 훨씬 다양해야 옳다. 목사나 신부, 스님 가운데서도 선비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고정된 선비상은 없으며 ‘때에 따라 중도를 취하면 선비에 가깝다’는 수시처중(隨時處中)에 의미를 부여했다. 유광호 연세대 교수의 주장은 논란이 컸 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 령으로서 동서고금에 정통했던 이승만 전 대 통령,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했을 때 산업화 에 박차를 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고(故) 이병철·정주영 회장 같은 창업자들도 ‘통유 (通儒)’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유는 세 상사에 통달하고 실행력이 있는 유학자에 붙 이는 칭호다. 체(體)도 잘 갖추고 용(用)에도 능해야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객석의 한 노교수는 “현대사를 움직인 인물 들이지만 통유라기보다 신(新)실학자라면 어 떨까”라며 “선비의 덕목인 학문과 수신에는 다소 미흡한 면이 있었지만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며 리더로서 우선해야 할 바를 한 것 은 큰 업적”이라고 말했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들어 “여말선초에 주자학을 받아들
인 건 주자학이 송대 강남 농업혁명의 철학 적 토대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성리학 에 산업의 발달과 민생의 풍요를 꾀하는 이 용후생(利用厚生)의 측면이 있음에도 19세기 문명의 전환기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 이지 못한 건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본격적인 학술토론에 앞서 아산서 원에서 교육을 받은 서원생들은 “동양고전 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를 결합한 고전 중 심 교육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기숙 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부하고 국궁과 국악, 서예는 물론 해외연수까지 했다. 우리 시대에 맞는 선비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들은 또 ‘청문(淸問)’이라는 아주 오래됐지만 매 우 참신한 화두를 던졌다. 동양고전 서경에 나오는 이 말은 지도자가 마음을 비우고 백 성에게 거리낌 없이 묻는 걸 뜻한다. 미래에 리더가 될 서원생들의 청문은 또 있었다.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 무엇인가’였다. 이날 학술회의는 “지금은 세 계시민정신에 부합하면서도 한국인의 혼을 지닌 우리 시대 선비의 덕목을 제시해야 할 때이며 그것이 진정한 전통의 재창조”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구하기보다는 윗사람을 섬기는 것에 충실하 다. 또 생명을 존중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시 하는 측면이 강하다. 중국의 사대부는 과거 에 합격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즉, 관직 에 오른 특수계층으로 이들은 대중과 격리돼 있다. 반면 한국의 선비는 관직을 갖지 못했 어도 그 지위를 유지한다. 이들은 특정된 사 회적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과는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대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념과 의리가 있다는 것이다. 외 국 학자로서 선비를 볼 때 이들은 매우 다이 나믹한 존재였다. 사회적 명분과 정의에 충실 하기 위해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저항적 집단 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이들은 일 본의 사무라이나 중국의 사대부보다 긍정적 인 역할을 많이 했다.” -선비정신을 통해 현대인들이 배울 점은. “선비정신을 현대에 접목시켜 좀더 공공 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사회가 훨씬 효율적이며 공평하게 될 것이다.
성장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가장 중시되는 학문 중 하나다. 하지만 현대의 과 학은 인격을 함양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학을 추구하더라도 선비정신 을 함께 곁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 엄성을 중시하고 사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데 선비정신이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갈등이나 사 건도 선비정신으로 해결이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이다. 선비정신이 사회를 주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불합리한 사건이나 행 동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이 런 정신이 없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큰 혼란을 겪었다. 일본의 경우 선비와 같은 중 간층이 없고 국가와 국민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대지진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한 후 국 가가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 국민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처럼 선비정신 은 국가적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긴요한 역 할을 할 수 있다.”
중앙SUNDAY와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했던 문화대탐사는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그 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분들께 감 사 드립니다.
일본 도호쿠대 가타오카 류 교수가 본 선비정신
“조선의 선비정신, 원활한 사회적 소통에 큰 기여”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조선(한국)의 선비정신은 사회가 원활히 소 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권력자들뿐 아니 라 민중들과도 호흡을 함께하며 합의를 거친 통일된 여론 형성을 주도했던 것이 선비들이 며 이들이 가진 철학이 바로 선비정신이다.” 26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학술회의에 참석한 가타오카 류(片岡龍·49·사진) 일본 도호쿠(東北)대학 교수는 선비정신에 대 해 이렇게 평가했다.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동양사상사를 전공한 그는 일본 내 한국사 상 전문가다. 숙명여대에서도 교편을 잡았 으며「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공공’ 용례 의 검토」등 한국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 을 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비정신을 정의한다면. “공공성이 강한 ‘통합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이 온몸 곳곳에 전달돼
권력층민중과 호흡하며 여론 주도 일본 사무라이, 중국 사대부와 달라 인간존중과 공공성 강조 계승해야
야 하듯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신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선비정신은 사회가 바람직하게 움 직이는 데 필요한 ‘사회적 생명 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예전에는 상류층이 주로 사회 를 대변했는데 이를 보완한 것이 선비정신이다. 민중들 의 의견을 상층에 전달했 기 때문이다. 또 선비정 신은 생명에 대한 사랑 을 담고 있다. 모든 인
간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퇴계 이 황 선생은 선비정신을 ‘원기(元氣)가 깃들이 는 장소’라고 규정했다.” -선비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만 본 것은 아 닌가. “실례로 들어 설명하겠다.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헌이 바로 조 선왕조실록이다. 여기에만 1000여 건이 등 장한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불과 40여 건 밖 에 찾아볼 수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이 공공성을 많이 강조하 는데 실제 역사적으로 공공성에 가장 큰 의미를 뒀던 나라는 한국 이었다. 그 중심에 선비가 있다.” -외국 학자로서 선비정신 에 대한 평가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일본 과 중국에는 없는 독특한 정신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공공의 이익을 추
24 Column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8 에런 코플런드 음악에서 무엇을 들을 것인가
작곡가 눈으로 쓴 ‘고전음악 공포증’ 치료 처방전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갖가지 콤플렉스가 있지만, ‘고전음악 콤플렉 스’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치열하게 사느라 고전음악과 친할 기회가 없었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지금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 고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고전음악증(恐古典音樂症)’탈출에 효험 이 검증된 책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에 게 추천할 책이 있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을 것인가(What to Listen for in Music)(1939 이하 무엇을』)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 에런 코플런드(1900~1990)는 20세 기 미국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무엇 을은 에드워드 핼릿 카(1892~1982)의 역 사란 무엇인가(1961)와 마찬가지로 강연록 을 바탕으로 집필됐다. 1936~37년 뉴욕에 있는 명문 더 뉴스쿨(The New School)에 서 행한 강의가 배경이다. 아쉽게도 아직 한 글판이 없다. 한 출판사에서 현재 번역 작업 을 하고 있다. 미국 최초로 미국다운 음악 작곡 코플런드는 뉴욕 브룩클린의 러시아 출신 유 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브룩클린은 알 카포네, 루돌프 줄리아니, 에디 머피, 바브 라 스트라이샌드, 우디 앨런 등 세계적인 명 사(名士)들의 고향이다. 코플런드는 미국 최 초로 미국다운 음악, ‘민족적’ 음악을 작곡했 기에 ‘미국 음악의 목소리’로 평가된다. 지금 이야 미국적인 게 곧바로 글로벌적인 경우가 많지만, 20세기 초 미국은 유럽과 차별화되는 나름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는 나 라였다. 코플런드는 퓰리처상(1944)오스카 상(1950)대통령자유메달(1964)을 받았고 하 버드대 석좌교수(1951~52)를 지냈다. 명예박 사학위를 33개나 받았다. 겸손한 성격이라 누 구하고도 잘 지냈다. 꽉 찬 인생을 살았다. ‘음악에 대해 몰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 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의견도 있다. 무 엇을의 견해는 다르다. 음악을 깊게 음미하 기 위해서는 음악 지식을 바탕으로 한, 듣기 스킬(skill)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수도 있지만, 보다 의식적인 음악
듣기도 필요하다 주장이다. 풍요로운 언어 생활과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읽기듣기 말하기쓰기 스킬이 받쳐줘야 하는 것과 마 찬가지다. 코플런드는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 음악 당에 가는 것은 ‘좀 아니다’고 봤다. 그의 지 론은 사회경제적 신분이나 학벌 같은 배경 과 무관하게 음악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초는 필요하다. 19개 장(章)으로 구성된 무엇을 은 곁가지는 잘라내고 꼭 필요한 음악 감상의 ABC를 담았다. 초급에서 중급자용이다. 하 지만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음악학도나 전문 가들도 건질 게 많은 책이다. 요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이 라는 말이 부쩍 유행이다. 코플런드에 따르 면 음악은 작곡가연주자청중이라는 삼위 일체의 협업을 요구한다. 협업이 잘되려면 당 사자들이 서로 요구를 잘 들어줘야 한다. 작 곡가는 연주자와 청중에게, 청중은 작곡가 연주자에게, 연주자는 작곡가청중에게 뭔 가 요구하는 게 있을 것이다. 무엇을은 코플런드가 작곡가로서 청중 에게 요구하는 것을 정리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보다는 아마추어 청중이 내 안 의 작곡가를 자극한다”고 말한 그는 작곡가 들과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 불편했다. 그 간격을 메우는 무엇을은 생기 (生氣)를 요구한다. 코플런드는 말한다. “음 악을 듣는 사람이 생기가 있어야 음악도 생 기가 있다.” 청중의 생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체험이 제 일 중요하다. 남이 대신 들어 줄 수는 없다. 그는 독자들에게 ‘과거보다 음악을 훨씬 많 이 듣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요구한다. 음악 이론서 수십 권을 읽는 것보다 피아노로 치 는 음(音) 딱 한 개를 듣는 게 더 낫다는 게 코 플런드의 생각이다. 어떻게 들을 것인가. ‘진정으로’ 들어 야 한다. 미국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1918~1990)은 “청중의 문제는, 음악을 지나 칠 정도로 많이 ‘듣지(hear)’만 음악을 진정 으로 ‘듣지(listen)’는 않는다는 것이다.”라 고 말한바 있다.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의 제목에 실마리가 나 와있다. ‘listen for’는 ‘뭔가를 들으려고 귀
▶음악에서 무엇을 들 을 것인가의 영문 판 표지. ◀에런 코플런드. 그는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으 로 고생했지만 90세까지 살았다. [미 국회도서관]
청중에게 요구되는 내용 잘 정리 전문가와 음악학도가 봐도 유용 “음악엔 위로 탈출 이상의 것 존재 제대로 감상하려면 지식스킬 필요” 를 기울이다’는 뜻이다. 무엇을 ‘listen for’ 할 것인가. 무엇을에 나오는 음악의 핵심 요소들인 멜로디리듬화성음색이나 주요 음악 형식에 대해 배운 다음, 이것들이 실제 작품에서 어떻게 등장하고 구현되는지 살펴 야 한다. ‘멜로디→리듬→화음→음색’순으로 수준 높여야 코플런드식 음악 듣기는 입체적이다. 코플런 드에 따르면 음악 듣기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감각적인 차원(sensuous plane) 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차원이다. 가장 많은 수의 청중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기분 좋은
감정과 느낌이 생겨나는 가운데 그저 무작정 듣고 즐기는 것이다. 뇌를 전혀 쓸 필요가 없 다. 음악을 식사나 독서의 배경으로 활용하 는 차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첫째 차원을 ‘악용’한다고 코플런드는 지적했다. 음악을 위로나 탈출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둘째, 표현적 차원(expressive plane)이 있다. 모든 음악은 후회건, 승리감이건, 분노 건, 기쁨이건 뭔가를 표현한다. 작곡가의 뜻 이 담겼다. 작곡가의 뜻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수록, 들을 때마다 읽혀지는 ‘스토리’ 가 새로울수록 그 작곡가는 더 위대한 작곡 가다. 셋째, ‘음악 그 자체’의 차원(sheerly musical plane)이 있다. 최고급 차원이다. 음 (音note)이 어떻게 조작(manipulation)되 는지를 따져보는 차원이다. 초급자에겐 우선 멜로디가 들린다. 그 다음에는 리듬이 포착 된다. 화음과 음색까지 들려야 최고급 수준 에 도달한 것이다. 고급 음악 애호가는 이 3차원을 넘나든
다. 한데 최고급 차원에 다다른 전문가급 애 호가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지나치게 따 지다 보면, 정작 음악을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의 여러 요소들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알게 된 음악 애호가들은 어떻게 될까. 음악 감상을 넘어 음악을 평가하게 된다. 감상은 결국 평가로 귀결된다. 예컨대 이런 평가 기 준이 있다. “멜로디는 완성과 불가피성의 느 낌을 제공해야 한다.” 전체적인 완성도에 기 여하지 못하는 군더더기 멜로디는 없어야 한 다는 뜻이다. 클래식 음악도 그렇지만 현대 음악은 더더 욱 접근이 어렵다. 현대음악의 경우에도 반 복적규칙적 듣기가 이해의 핵심이라고 코플 런드는 강조한다. 고전음악이건 현대음악이 건 음악의 모든 현현(顯現)과 친숙해지는 사 람이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작곡가는 어떤 사람인가. 코플런드에 따르 면 “작곡가는 그 자신을 우리에게 내준다”. 그 는 또 작곡가들에게 작곡이란 식사하고 취침 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활동이라고 했다. 코플런드는 대중 음악과 소수 전문가 청 중을 위한 음악을 모두 작곡했다. 50대에는 주로 지휘를 했다. 작곡보다 지휘가 돈벌이 가 더 잘 됐다. 대학에 다닌 적이 없었기 때 문에 지식인을 대하는 게 불편한 경우도 있 었다.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1887~1979) 에게 작곡을 배웠는데 유학시절부터 ‘불필 요한 적은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코 플런드는 1930년대에 진보적인 단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용공(容共communist sympathizer)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평생 독신이었다. 90회 생일이 지나고 2주만 에 세상을 떴다.
김대수의 수학 어드벤처
‘내땅’ 찾기서 출발한 기하학 유클리드가 토대 확립 [문제 1] 두 자연수의 합이 15이고 차이가 1인 두 수 중 작은 수는 무엇인가요?
김대수 교수 한신대 컴퓨터공학부
[문제 2] 다음의 나눗셈에서 네모 안에 알맞은 수를 넣으시오. 5 17 2
5
1
7 8 8
17 2
5
1
7
5
5
5 0
8 5 [문제 3] 다음 표의 물음표에는 어떤 숫자가 들 8
5
어가야 할까요? 같은 선상에 있는 수들의 조합 0 ? 봅시다. 6 을 여러 가지로 방법으로 유추해 1 4 3 3 2 6 ?3 12 1
4
3 3 12
2 3
고대에는 수학이 도형을 다루는 기하학과 수 를 다루는 대수학의 두 가지로 분류됐다. 특 히 기하학은 고대 농경사회에서 홍수로 인해 토지가 범람한 후에 땅 영역을 구분하거나 측정하는데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기하학은 일찍부터 발달했 는데,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의 알렉산드리아 에서 활동한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BC 325 ∼BC 265)는 기하학의 획기적인 토대를 확립 한 공로로 ‘기하학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우리가 유클리드란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는 학창 시절 유클리드 호제법을 익힐 때일 것이다. 이것은 수들 간의 최대공약수를 구하 는 알고리즘인데, 가령 24와 36의 최대공약수 를 구하기 위해서는 공약수로 계속 나누어가 서 12란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방법을 말한다. 유클리드의 가장 탁월한 업적은 그리스의
기하학과 정수론을 요약한 기하학원론(The Elements)을 저술한 것이다. 13권으로 이루 어진 이 책은 유클리드 이전의 그리스 수학자 들의 연구를 정리하고 집대성한 것으로서, 그 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그림) 또한 이 책은 정의· 공준· 공리 등으로 이
루어진 논리적 구성과 내용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는데, 아라비아 지역을 통하여 후대에 전해지면서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발간되 었다. 우리나라에는 1807년에 기하원본(幾 何原本)이란 제목으로 번역되면서 그 후 기
하학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 한다. 유클리드는 소수(prime number)에 대해 관심이 커서 소수의 개수가 무한함을 증명하 였다. 소수는 자신과 1과 자신 외에는 나누어 지지 않는 정수로서 2, 3, 5, 7, 11, … 등을 말 하는데 이것은 현재 암호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기술이다. 또한 그는 평행사변형의 인접한 두 내각의 합이 180도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는 “주어진 직선 위에 있지 않은 한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 만 존재한다”는 매우 중요한 공리(axiom)도 제안했다. 그가 주창한 이 공리는 19세기에 접 어들어 새로운 기하학의 체계를 세운 러시아 의 수학자 로바체프스키(Lobachevskii) 등 에 의해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이 만들어지 기까지 기하학 체계의 유일한 표준이 되었다.
x, 작은 수를 y라 하면 x+y=15, x-y=1과 같은 식을 풀면 된다. [문제 2]에서는 나눔 수 17과 25의 관계를 살펴보면 1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고, 나 머지를 추리하면 5가 들어감을 알 수 있다. [문제 3]에서 중앙의 원에 있는 숫자 3과 두 번째 작은 부채꼴 칸의 숫자를 곱한 값이 반 대편의 가장 큰 부채꼴 칸의 값이 됨에 착안 한다.
정답 1. 작은 수 y=7 2. 위 1, 아래 5 3. 3×3=9
서울대 사대 수학과·동 대학원 수료,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 컴퓨터 공학 석·박사, 인공지능과 신 경망 등을 연구해 온 컴퓨터공학자이자 두뇌 과학
[문제 1]에서는 두 수를 직접 추리하여 구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큰 수를
자다. 창의 수학 콘서트와 컴퓨터공학 관련 1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Science 25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29 인공 광합성 시대
우주왕복선에 실린 밀알은 지구 밖 ‘생명유지 장치’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2001년 12월 5일.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선 발사센터에서 카운트다운을 기다리 는 우주 왕복선 ‘엔데버’호에 특이한 물건이 하나 실렸다. 밀알이었다. 한 번 발사하는데 소요비용이 엄청나고 우주정거장에서의 연 구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인데 왜 흔하디흔한 밀알을 싣고 갔을까? NASA가 실시한 연구 는 바로 지구의 장래와 직결되는 것들이다. 쌈 짓돈으로 주식투자라도 하려면 최소한 미래 유망분야를 알아야 한다. 20년 전에 IT 주식을 못 샀던 아쉬움을 이 번에 풀어 볼 수 있을까? 고교 시절엔 공부 잘 하는 친구가 무슨 문제를 놓고 끙끙거리고 있 는지 그의 노트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이 시험 잘 보는 비결이다. 기말시험에 나올 문제를 미 리 아는 횡재를 할 수도 있어서다. NASA 연 구원의 노트엔 ‘빛식물에너지’란 단어가 쓰 여 있었다. 무슨 기술일까? 설악산과 내장산의 단풍이 다른 이유 10월의 설악산은 내장산과 컬러가 조금 다르 다. 온통 붉은 내장산에 비해 설악산은 노랑· 빨강·녹색이 뒤섞여 화가의 팔레트보다 색이 더 다채롭다. 낙엽이 지는 단풍나무(활엽수) 와 녹색을 유지하는 소나무(침엽수)가 뒤섞여 있어서 설악산 천불동 계곡이 울긋불긋한 것 이다. 날이 추워지고 물이 부족한 가을이 되 면 나무는 곧 겨울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몸으 로 체득한다. 넓은 잎을 가진 활엽수는 스트레 스에 적응하기 위해 생기는 식물호르몬인 ‘엡 시스산(ABA, abscisic acid)’으로 신호를 보 내 월동(越冬) 준비를 한다. 빛과 물을 이용한 ‘광합성’을 해서 여름 내내 나무를 먹여 살리 던 잎은 이제 그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 잎의 공기구멍을 통해 겨울에도 물이 계속 증발한다면 물이 부족한 겨울에 나무는 말라 죽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활엽수가 잎과 줄기 사이를 땜질하면, 물 공급이 끊긴 잎 내부에 선 광합성의 주역들인 엽록소가 하나 둘씩 죽 음을 맞는다. 먼저 녹색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녹색이 사라진다. 남아있던 안토시아닌의 붉 은 색이 비로소 나타난다. 그동안 다수의 녹 색에 가려져 있던 이 색소가 마지막 순간에 ’ 나 여기 있었소!‘라고 하면서 산을 붉게 물들 인다. 10월에 볼 수 있는 이 붉은 색소도 11월 이 되면 사라진다. 그러면 원래 골격인 리그닌 성분 때문에 잎은 갈색을 마지막으로 땅에 떨 어진다. 불교에선 큰 스님이 입적하면 불로 모든 것 을 사르는 ‘다비식(茶毘式)’을 한다. 다시 맞 을 봄을 기약하며 붉게 물들었다 떨어지는 낙 엽과 윤회의 새로운 삶을 위해 몸을 태우는 불 교의 다비식은 모두 내일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긴 겨울을 지나서 기온이 오르고 태 양이 강해지는 봄이 되면 식물은 사이토카인 성장호르몬을 만들어서 겨우내 잠자고 있던 세포들을 깨운다. 땅속에서 겨울을 버티면서 극소량의 물을 나무에 공급하던 뿌리도 다시 활발하게 펌프질을 한다. 새롭게 잎을 만들어 ‘광합성 공장’을 다시 돌리기 시작한다. 지구를 떠받치는 식물의 광합성 식물의 잎엔 수백만 개의 ‘초미세 광합성 공 장’이 점점이 박혀있다. 하나의 공장은 두 개 의 모듈(module)로 나뉜다. 첫째 모듈엔 빛 의 광자에너지를 잡는 안테나 같은 녹색 엽록 소 분자가 있다. 이 분자는 아주 약한 단백질 로 구성돼 있지만 ‘도끼’처럼 강력하다. 빛의 에너지를 잡아채서 도끼로 내리치듯 한방에 물(H2O)을 쪼갠다. 이 도끼질로 만들어진 산소(O2)덕분에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다. 둘째 모듈에선 도끼질로 튕겨 나온 고(高)에너지
식물의 ‘광합성 공장’인 엽록체들.
빛을 받은 인공 광합성 패널이 물을 분해해 산소와 태양 전지패널로 전기 대신 포도당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주정거장 내에서 식물 키우면 광합성 작용으로 천연 산소 생산 우주 공간에서도 장기 체류 가능 반도체 물질 이용해 빛 잡아채면 식물의 광합성 ‘인공화’ 가능해져 포도당 생산 메커니즘도 연구 중
광합성은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신의 선물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의 전자로 수소(H)와 공기 속의 이산화탄소 (CO2)를 합쳐서 포도당(C6H12O6), 즉 쌀·사과 같은 곡식을 만든다. 1772년 영국의 생물학자 프레스텔리는 유 리 용기에 쥐를 넣고 밀봉하면 쥐가 질식해 죽 지만, 밀폐된 유리 용기에 식물을 함께 넣으면 산소 덕분에 산다는 원리, 즉 광합성을 증명 했다. 수억 년 전부터 식물은 산소와 곡식을 만들어 지금까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 만 인간들의 욕심 탓에 지구는 서서히 녹초가 돼 더워지고 있다. NASA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주 정거장 에서 무엇을 해보려고 평당 수십억 원인 우주 선에 밀 씨앗을 싣고 갔을까? 우주 비행에선 무게가 돈이다. 장시간의 여 행에 쓸 산소를 모두 싣고 가기보다 산소를 스스로 만들면 어떨까? 우주 정거장에 장기 체류하거나 미래에 달·화성 등에 사람이 거주 할 때 산소는 어떻게 공급할까? 답은 아파트 거실에 있다. 필자의 아파트는 이중 창문으로 완전 밀폐가 가능하다. 만일 집안 전체가 모두 완전 밀폐돼 외부와의 공기 출입이 불가능하다면 죽지 않고 어떻게 몇 십 년을 살아남을까? 장기 생존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은 창 옆 에 식물, 예를 들면 콩이 자라도록 하는 것이 다. 콩은 햇볕을 이용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 소와 물을 산소와 포도당(콩)으로 만들어 준 다. 이렇게 되면 완전 밀폐돼도 살아남을 수 있다. NASA 연구원도 우주정거장 내에서 외부 공급 없이 스스로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폐쇄 생명유지 장치’를 만들기 위해 밀알을 우주선에 실은 것이다. 인공 광합성으로 청정에너지 제조 우주 정거장의 내부처럼 지구도 밀폐된 공간 이다.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공장 굴 뚝·자동차가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모 두 흡수해 다시 산소로 변환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조금씩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태 양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고 지구가 더워 지는 ‘지구 온실-온난화’ 현상이 심화된다. 점점 더워져 남극의 얼음마저 모두 녹아 지구 에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식물의 광합성 원리를 모방해 태 양열을 잡아채는 ‘인공 광합성’을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필자의 지인은 자신의 집에 친구들을 부른
수소 가스를 만들고 있다.
뒤 꼭 옥상으로 데려간다. 그 집 옥상엔 탁구 대 5개 크기의 태양 전지 패널이 설치돼 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전기를 집에서 사용한 뒤 남은 것은 한국전력에 파는데 그 수익이 쏠쏠 하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전기는 저장·운반이 어렵다. 빛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수소가스를 만들면 어떨까? 수소가스를 액화시키면 저 장·운반하기 쉬워진다. 또 수소가스는 태우 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생기는 무공해 청정 연료다. 이미 수소로 발전해 움직이는 수소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됐다. 하지만 현재 수소는 땅 속의 원유를 분해해 만들므로 지구의 원유 고갈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광합성을 이용해 수소를 만 들 수 있을까?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면 생 긴다. 전기는 광합성의 첫 모듈에서 만들 수 있다. 잎의 광합성에 사용되는 색소 대신 반 도체 물질 등을 이용해 잎의 광합성을 모방 하는 ‘인공 광합성’이 미래기술로 뜨고 있다. 그 첫 단추인 ‘빛 에너지 잡아채기’ 기술 분 야에서 놀라운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올 8 월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매터리얼(Nature Materials)’엔 나뭇잎 속에 초미세(超微細) 나노카본튜브(nano carbon tube)를 삽입해 전기 발생속도를 3배나 증가시킨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또 독일 연구팀은 새로운 금속 복합체를 이 용하면 잎의 광합성이나 지금의 태양 전지 패 널보다 6.5배나 빨리 빛을 잡아챌 수 있다고 밝혔다. 식물의 잎은 인간의 기술보다 몇 수 위 인간이 신의 창조물인 잎의 성능을 앞선 것일 까? 그렇진 않다. 잎은 인간보다 몇 단계 고수 다. 빛을 잡을 때도 무리하는 법이 없고 느긋 하다. 잎으로 쏟아지는 태양 광자의 10%도 채 잡지 않는다. 특히 녹색 빛을 잡지 않고 반사 하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잎은 태양 의 열선(熱線)인 적외선도 잡지 않는다. 왜 식물은 빛을 몽땅 잡아서 사용하지 않을 까? 식물은 굳이 힘들여 빛에너지를 100% 잡 지 않아도 충분한 양의 포도당을 만들 수 있 기 때문이다. 식물은 자신들이 생존하고 자자 손손 이어가는 데는 지금 상태로도 전혀 문제 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오히려 빛을 100% 다 잡는다면 열로 인해 잎이 타 버릴 것이다. 연구자들이 잎으로부터 진짜 배우고 싶은 것은 잡아챈 빛에너지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를 포도당으로 만드는 두 번째 모듈 기술이 다. 그래야만 지구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고 재순환되기 때문이다. 인공 광합성의 첫 모듈 은 ‘도끼질’ 한 번의 간단한 반응인 반면 둘째 모듈에선 고난도의 연속 합성 반응이 일어난 다. 정교함이 요구되는 20단계를 거쳐야 포도 당이 만들어진다. 빛의 광합성 분자를 모방해 첫 번째 모듈인 빛에너지 잡아채기를 성공해 탄력을 받은 과 학자들은 요즘 두 번째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간단한 유기물 인 포름산·메탄올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비록 생산 효율이 식물 광합성의 20%에 머물 러 있지만 과학자들이 확실하게 믿고 있는 구 석은 따로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 찬범 박사는 “식물의 광합성은 수억 년 동안 진화해온 보배로 여기에 답이 있다” 고 말한 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나뭇잎을 뚫어지 게 쳐다보고 있는 이유다. 감귤은 제주에서 나주로, 사과는 상주에서 평창으로 재배지가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한 국이 아열대 지역으로 급변하고 있는 증거란 해석도 나온다. 지구촌의 지구 온난화·원유고 갈은 이제 시간문제다. 확실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하느님이 이 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성 경의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을 창조한 하 느님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지구에 햇빛을 비 추는 일이었다. 이후 식물을 만들어 에덴동산 에 모든 것을 세팅하고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 과란 유혹을 준다. 원죄를 짓고 쫓겨난 인간 이 반항이라도 하듯이 지구를 망쳐놓는다. 하 느님은 ‘빛’이란 열쇠를 다시 준다. 과학자들 이 ‘빛-인공 광합성’의 열쇠를 갖고 에너지 위 기를 풀기 전까지 우리는 먼저 낙엽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스스 로 팔을 자르는 낙엽처럼 우리도 에너지 소비 를 줄여야 한다. 한 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지내는 아파 트, 문을 열고 에어컨을 돌리는 건물들, 이곳 주인들은 모두 설악산에 가서 직접 봐야 한다, ‘식물의 다비식’인 불타는 가을 단풍을.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 에게 알리고 있다.
26 Column
반상(盤上)의 향기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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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바둑의 시작
625 난리통에 싹 튼 기원문화, 혼돈의 시대 살게한 힘 <棋院>
문용직 객원기자전 프로기사 moonro@joongang.co.kr
“기원이 많은 것을 보니 대체로 시간이 많으 며 또 그만큼 먹고 살기가 힘들 것 같다.” 1970년 내한한 사카다 에이오(坂田榮 男·1920~2010) 9단이 지나가듯 말했다. 당시 서울에는 기원이 넘쳐흘렀다. 모두 273개였 다. 인구는 543만. 전국적으로 바둑 인구는 100만을 넘었다. 당시 1000만 인구 도쿄(東 京)엔 기원이 150개에 못 미쳤다. 그건 사실이다. 기원에는 실업자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장이 한창일 때는 인플레가 있는 법. 60~70년대 바둑이 그랬다. 65년 고려대 정문 앞엔 기원이 셋이 나 있었다. 해방 직후 바둑 인구는 2000~3000명 정 도에 불과했다. 한국 바둑의 대부 조남철 (1923~2006) 선생은 “당시 바둑 팬은 남쪽에 2000명 정도나 되었을까” 라고 의문했고, 신 호열(1914~93·한학자·프로 2단) 선생은 “읍, 군 같은 지역에는 바둑판 하나 변변한 게 없 었다”고 탄식했다. 조남철이 “돌과 책을 구하 려고 철수하는 일본사람들을 찾아 다닌” 이 유였다. 조선시대에 바둑은 양반과 지식인의 도락 이었다. 20세기 초에도 다르지 않았다. 1930 년대에 발간된 조선위기총람(朝鮮圍棋總 攬)이나 군산위기총람(群山圍棋總攬) 등 을 보면 애기가들은 거의가 유지였다. 은행 원·경찰관·세무서 공무원·신문기자…. 해방 후 20여 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70년대 중반 한국기원 일반회원실 모습. 이성범(시인부락 동인·서 있는 사람)과 천상병(맨 오른쪽에 얼굴이 보이는 이)이 보인다.
부산 피난시절 ‘사랑방’으로 자리 ‘조남철 기원’은 전국 대회도 열어 산업화와 함께 전국 도시로 확산
기원다방은 피난민들의 ‘심리적 고향’ 첫 번째 답은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6·25 전 쟁. 전쟁이 발발하자 사람들은 남쪽으로 피 난을 떠났다. 철로의 끝 부산역에 내린 사람 들은 갈 데가 없었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전선(戰線)은 험하지만 일상도 영위해야만 했다. 일상 중 하나는 ‘만나는 것’이었다. 김동리(1913~95)의 소설 ‘밀다원시대’ (1955)에서 시인 박운삼이 남긴 “잘 있거라, 그리운 사람들”, 그 정서가 살아있는 공간. 초량동 부산역 앞에는 스타 다방, 아리랑 다 방이 있었다. 광복동에는 밀다원이 있었다. 51년 부산에 모인 기객들은 바둑구락부 (기원)를 만들었다. 53년엔 7~8개가 성업 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기원은 절로 생겨나는 걸 까. 전쟁 직후 입대했던 조남철은 고지 탈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전역했다. 상이용사인 그는 다시 바둑돌을 잡았다. 상이용사 요양 원에 방 한 칸짜리 기원을 차렸다. 하지만 상이군인들이 을러대는 바람에 중 앙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료(棋料)를 받았 다. 패자가 승자 몫까지 내는 식이었다. 돈이 제법 돌자 그는 서울에 남아 있던 가족을 불 렀다. 김명환·김봉선 등 동료들도 기원을 차 렸다. 전국대회까지 열었다. 조남철은 “각 일간 지의 성원으로 선전이 잘 된 덕인지 임호 2단, 김재일 초단 등을 비롯하여 쟁쟁한 실력자들 이 운집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부산에서 전국 아마대회를 2번 개최했다”고 당시를 회 고했다. 부산에 바둑 붐이 일었다. 56년 중앙기원 은 의자식 기원으로 바둑판을 40조(組)나 구비했다. 이전에는 다다미방에 앉아서 두었 다. 60년대엔 광복동 남포동 등 밀집지역에 바둑단지가 형성되었고, 동서지역개발에 따 라 서면로터리 일대에도 붐을 이뤘다. 부산 의 영향을 받아 진주에 첫 번째 기원이 생긴 것은 55년. 60년대 중반 서울엔 기원이 80개 를 넘었다.
70년대 서울 기원 수, 도쿄의 두배
의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부산의 기객(棋 客)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흩어지면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기원은 확산되었을까. 두 번째 답은 한국의 근대화에 있었다. 근대 화는 부산에서 뿌린 씨앗이 자랄 토양이었다. 문인, 화가 지식인들 ‘명동 기원’으로 출근 60년대 근대화를 따라 도시화가 본격화됐 다. 근대화의 노변 풍경은 공장과 시장(市場). 공장이 서면 노동자가 필요하다. 노동자는 시골에서 올라오고 이들은 모인다. 도시의 탄생이다. 팽창하는 도시 속에서 소외는 촉 진된다. 뿌리를 뽑힌 개인이 정(情)을 나눌 대 상이 없는, 무의미하고 고독한 감정이 소외. 보상이 필요하다. 지근(至近)거리의 만남 이 보상 방식 중 하나였다. 너와 내가 만나서 존재감을 확인하는 그것. 노동자는 청춘. 낮엔 일하지만 늦은 밤엔 외롭고 피곤하다. 소주가 필요하다. 술집이 마련된다. 다방도 문을 연다. 다방은 이미 하나의 문화였다. 1930년대부 터 지식인들의 집합소였다. 낙랑·아세아·비 너스·제비… 지적(知的) 산책을 하던, 엽차만 마시던, 좌우간 모였다. 그런 문화에 기원도 참가했다. 기원은 놀이를 더했다. 권투도 한
1978년 전일컵(全日盃) 전국 아마추어 대회 풍경.
때는, 레슬링도 한때는 국민의 오락이었지만 그것은 개인이 직접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 었다. 소외의 극복에는 접촉이 중요하다. 휴식 없이 노동은 없는 법이다. 오락이 없었던 시 대에 도시로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바둑은 유 용한 놀이였다. 바둑은 외로운 청년들의 대 화 속에서 정서를 먹고 살았다. 기원과 다방은 한국 사회의 풍속도를 이루 었다. 다방 있는 곳에 기원 있으며 기원 있는 곳에 다방 있었다. 68~94년 관철동 한국기원 1층에는 유전(有田)다방이 자리를 잡았다. “조남철 선생이 명동에 송원기원을 열자 그곳은 문인· 화가· 교수· 기자들의 새로운 살롱으로 각광을 받았다. … 관철동에 한국 기원 빌딩이 서자 송원기원의 수많은 애기가 들은 이곳으로 흡수되었다. … 일반회원실에 는 유명한 문인들이 여럿 드나들었다. … 그 곳에 온갖 천재, 기인, 학자들이 다 있었다.” (노승일 그리운 관철동) 사진은 일반회원실의 하루 풍경이다. ‘귀 천(歸天)’의 시인 천상병(1930~93)이나 ‘관 철동의 디오게네스’ 민병산(1928~90) 선생 을 보고 싶다면 유전다방엘 가면 됐다. 없다 면 기원 3층 일반회원실을 찾아가면 만날 수 있었다. 위안을 준 다방, 휴식을 준 기원 기원과 다방은 외양은 비슷해도 힘은 달랐 다. 전쟁은 혼돈(混沌). 혼돈은 신화적 차원 의 변동이다. 근대화도 혼돈을 야기해 존재 의 질서를 위협한다. 전쟁과 근대화로 꺼져 가는 존재감은 정신의 밑바탕을 뒤흔든다. 다방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차와 음악, 대 화가 섞이는 다방은 감정을 어루만져 준다. 하지만 감정 차원의 이해로는 전쟁과 같은 격 변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수동적 위안에 그친다 . 기원은 어떻게 대응하 는가. 놀이 속 휴 식을 권한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1872~1945)의 고전 놀이하는 인 간(Homo Ludens)(1938)이 밝혔듯 놀이는 현실이 아니다. 완전 딴 세상이다. 인간은 약하다. 자신의 의식에 자신이 휘 둘린다. 자기 자신을 먼 거리에서 바라볼 힘
은 갖기 쉽지 않다. 바둑은 놀이. 놀이 속에 들어간 자, 자신을 잊고 내면의 긴장으로부 터 멀어진다. 휴식을 취하도록 한 다음, 힘이 생길 때 돌아오도록 한다. 시인 김정림의 경험 또한 그랬다. “하루 종일 굶고, 연거푸 엽차나 홀짝거리 면서 바둑에 미쳤던 시절, 그 시절을 회상하 면 나는 약간 히스테릭해지고, 우울해질 때 가 많지만 한편으론 그 때 내 손에 바둑알이 쥐어지지 않았다면….” 그렇다. 삶이 휘청거릴 때 인간은 잠시나 마 놀이로 들어가야 한다. 전쟁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근 대화는 전통으로부터의 단절을 안겨준다. 삶 의 터전을 잃고서 도시로 알알이 흩어지는 사람들. 현실은 무너진 질서다. 황폐한 들판에 선 인간은 착근(着根)이 필 요하다. 인간이 질서 찾는 방식은 둘. 하나는 질서를 상정하고 현실을 그 질서의 투영으로 보는 것이다. 현실이 질서로부터 얼마나 멀어 졌느냐. 그것을 본다. 서양이 택한 운명으로 기독교의 세계관이 대표적이다. 바둑의 놀이성이 동양의 질서 되찾게 해 동양은 다르다. 질서는 혼돈으로부터 나온 다. 예를 들어 태극은 한편으로 혼돈이다. 그 로부터 둘(양의·兩儀), 넷(四象), 여덟(八象), 64괘가 나온다. 숫자는 질서 자체다. 한자문 화에서 숫자를 나타내는 상형문자는 산가지 를 하나하나 쌓은 것으로부터 왔다. 일(一), 이(二), 삼(三). 혼돈은 불쾌한 일면이 아니 다. 생명의 원천이기에 우리는 가슴 깊이 받 아들인다. 혼돈은 ‘천자문(千字文)’의 우주 관인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 荒)’의 내용이다. ‘천자문’의 관념은 주역 곤괘(坤卦) 상효 (上爻)에서 왔다. 龍戰于野, 其血玄黃.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 검고도 누렇다. 글자 하나하나가 은유다. 용은 형상이 없는 것. 그 러므로 변화를 상징한다. 신뢰할 만하고 또 가장 오래된 주석인 문언전(文言傳)의 설명 을 보자. “현황(玄黃)이라는 것은 천지가 뒤 섞인 것이니, 하늘을 검다(玄) 하고 땅은 누 렇다(黃) 말하자.” 음양이라 칭하든 천지라 부르든 이항(二項) 대립적인 것은 서로 뒤섞
[사진 한국기원]
여 우주를 이룬다. 혈(血)은 한 몸임을 나타 낸다. 천지는 이름만 이리 불리고 저리 불릴 뿐 실은 하나다. 하나는 곧 상대적인 것이 뒤 섞인 거다. 바둑의 놀이성은 동양의 질서 찾기에 걸맞 다. 첫수부터 모호한 반상은 혼돈과 다름없 는 세계지만 포석을 하고 전략을 짜면서 질 서를 형성해 간다. 기원의 속성도 다르지 않았다. 전국 바둑 대회도 다르지 않았다. 사진을 보자. 도떼기 시장 같은 혼돈이지만 생명력 넘치는 축제 다. 어느 아마추어 대회를 가더라도 저런 풍 경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기원은 그런 혼돈이 축약된 곳이었다. 60년대 많은 기원이 봄·가을로 바둑대회를 열곤 했다. 금반지·쌀가마니·주전자·공책 한 묶음…. 대회는 혼돈을 여는 잔치판이었다. 한데 모여 잔치마냥 대회를 치르고 승자에게 상품과 승급을 수여한다. 바둑은 단급(段級) 이 있기에 가끔 사회적으로 정돈하지 않으면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소도시의 기원 주최 대회는 질서를 재편성하는 공물(供物) 체계 였다. 대회가 끝난 밤 기객에겐 안온감이 찾 아 든다. 대회를 통해 바둑 공동체를 일으키 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았다. 세상은 이런 식으로 질서를 잡아가는 것. 종교의 의례도 안팎의 논리는 같다. 어수선한 혼돈은 오히려 생명이었다. 그러 므로 소외에 힘든 60~70년대 청년들은 누구 나 되고 싶었다. 사진 속 현실이 되고 싶었다. 프로는 선망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관철동 한국기원을 오가며 삶을 지탱했다. 바둑평론가 이광구(59)의 묘사처럼 “한국 기원 3층의 일반회원실은 문화의 소광장이 다. 각양각색의 연령과 인물들이 이렇게 매 일같이 모이는 곳도 없다. 수많은 인생행로 가 제각기 뚜렷한 개성을 주장하며 간단없이 교차하고 있다. 교통의 지휘자가 따로 없어 매우 불규칙하고 무질서하지만….”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 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 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Column 27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삶과 믿음
부자가 천국 가기 힘든 까닭 김영준 목사 pastortedkim@gmail.com
정격음악 붐을 일으켰던 지휘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지난 24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Marco Borggreve]
詩人의 음악 읽기 24일 타계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원전에 충실한 ‘정격음악 붐’의 지휘자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하이든 시절에 창안된 교향곡은 한 20여 명 의 악사들이 궁정의 오밀조밀한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지휘자도 따로 없이 누군가가 막대기로 바닥을 두드려 박자를 맞추어 나 가는 수가 많았다. 당시 사용하던 악기들은 음량도 작고 소박했지만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워낙 비좁은 공간에서 연주되었으 니까. 열 명 스무 명 단위의 가족 같은 관객 들은 음료를 마시고 담소를 즐기며 공연을 들었다. 2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하이 든의 교향곡은 연주된다. 빈의 무지크페라 인이나 뉴욕의 카네기홀, 런던 로얄 알버트 홀 혹은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들. 왕이나 대 공 일가족이 모여 앉아 듣던 조촐한 궁정무 대에 비하자면 이들 공연장은 광활한 벌판 같다. 무려 100 명 가까운 오케스트라 단원 들이 엄청나게 큰 음량이 나오도록 개량된 악기로 지축을 울리며 장대한 사운드를 뿜 어낸다. 스타 지휘자는 고고한 몸짓으로 수 백 수천을 헤아리는 관객들의 열광을 자아 낸다. 엄청나게 멋지고 대단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게 과연 옳은 걸까?’하는 의문 에 사로잡힌 음악가가 생겨났다. 1960년대 경이다. 칼 뵘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 스트라 100명 단원의 장관을 두고서 캠브리 지 펨브로크 칼리지의 교수 써스턴 다트는 저 엄청난 사운드가 하이든모차르트의 음 악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고민했 다. 개조를 거듭한 커다란 악기들이며 비브 라토를 극대화시키는 연주방식이 과연 옳 은 걸까. 의문을 품은 음악학자들은 정격음 악(Authentic Music)이라는 개념을 창안 해 냈다. 원전으로 돌아가자! 그 음악이 창
안된 최초의 구성, 악기, 연주방식을 찾아나 가자. 200년의 시차가 있었지만 자료는 많 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결과는 이랬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전혀 다른 음악을 하 고 있다. 그 변화의 이유는 단 하나, 감성을 극대화시키는 대중취향 때문이었다!’ 바흐 연구의 대가였던 키보디스트 써스 턴 다트 교수 문하에 데이비드 먼로라는 체 구가 아주 작은 학생이 들어온다. 리코더를 불던 그는 지휘를 겸하며 고음악 악보 발굴 과 연주법 연구에 진력한다. 하이든모차르 트의 활동기 훨씬 이전을 찾아 들어가니 마 치 미답의 보물섬 같은 영토가 생겨난다. 14 세기 플로렌스 시대의 음악, 십자군 시대의 음악, 막시밀리안 1세 시대의 음악 등은 모 두 먼로의 선구적 연구를 통해 레코딩 된다.
먼로의 활동은 음악계에 적지 않은 충격 파를 불러일으키지만 아직은 전문가 세계 의 관심에 가까웠다. 더욱이 데이비드 먼로 는 서른 세살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가 생전에 열성으로 이끌던 고음악 연주단이 ‘얼리 콘소트 오 브 런던’이다. 이 팀의 하프시코드 주자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라는 귀족 가문 출신 의 아주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먼로의 죽 음으로 얼리 콘소트는 해산되고 호그우드 는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을 창단
해(1973년) 활동하는데 이때부터 날개를 단 다. 음악계 지각변동의 시작이다. 어떤 신문기사에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를 두고 ‘정격음악의 카라얀’이라고 표현해 많이 웃었다. 그만큼 대중성이 있다는 의미 리라. 그런데 이게 참 웃기는 중의법이다. 정 격연주 혹은 원전음악을 한다는 것은 카라 얀식의 과장된 장대함에 느끼함을 느껴서 시작된 일이다. 카라얀류가 싫어서 하는 일 인데 카라얀 같다니…. 그런데 또 그렇게 틀 린 말도 아니다. 정격음악은 듣는 사람도 연 주하는 사람도 죄다 고고한 지성파들이다. 음악깨나 들었다 하고 교양이나 품격 따위 를 엄청 챙기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비대중 적 영역이다. 한데 호그우드가 그런 음악을 대중적 인기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의 활약은 정말로 눈부신 것이어서 데카 산하 의 르와조 뢰르 레이블이나 고음악 전문 아 르모니아 문디 레이블로 출시한 음반들 가 운데 베스트셀러가 엄청나게 많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는 니콜라우스 아 르농쿠르, 존 엘리어트 가디너와 더불어 정 격음악의 붐을 일으킨 핵심인물이다. 당연 히 원전을 통한 고음악 발굴에 주력했지만 ‘신바로크’라고 불리는 현대음악 연주도 그 못지 않게 펼쳐나갔다. 가령 코렐리의 17 세기 곡과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의 20세 기 곡을 한 무대에 올리는 식이다. 저술이 나 방송 진행자 활동도 왕성했고 캠브리지 대학 교수이기도 했다. 마이너 분야에 뛰 어들어 그 분야를 메이저로 일으키고 본인 스스로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가 9월 24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 다. 먼로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지만 아쉽고 이른 죽음이다. 엠마 커크비와 함께 한 모 차르트 레퀴엠(작은 사진)과 비발디 글로 리아, 최고의 평가를 받았던 헨델 메시아, 그리고 마르티누의 현대음악 음반을 찾아 들어야겠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은 기독 교인이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다. 예수의 말 씀 중 인류의 정신적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 을 끼친 말씀 중 하나가 이것이다. 구약성경 에는 부(富)의 위험을 경고하는 구절이 거의 없다. 유대인은 부를 좋아했고, 부를 축복의 결과로 여겼다. 아브라함이든 야곱이든 솔 로몬이든 심지어 욥도 부자였다. 그들의 부 는 영혼 구원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부터 부에 대한 사상이 현 격하게 바뀌었다. 신약의 사상은 부자에게 사회적 책임이라 든가 도의적 책임을 묻는 수준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부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의 인이라고 해서 금세에서도 특권을 누리고, 내세에도 VIP 대접을 받으며 들어간다고 명 기하지 않았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 돈이 없어 금세에서도 고생을 하고, 내세에도 좋 은 곳에 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고 못 박지 않 았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 행인지 모른다. 예수는 “부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명쾌하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부의 위험 자 체만을 언급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와 달 랐다. 오늘날 목사는 부자 가르치기를 좋아 한다. 그것이 천국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듯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특별히 부자를 찾 아가려 하지 않았고, 부자에게 별도의 과외 수업도 하지 않았다. 오직 부자가 천국에 들 어가는 게 어렵다는 말씀만 전했을 뿐이다. 돈이 많은 자체가 영혼에 위험하다는 말만 언급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 면 부자가 음부에 떨어진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거지 나사로가 좋은 곳 에 간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부자는 그냥 부자라는 이유로 음부에 갔고, 거지는 거지 였기 때문에 좋은 곳엘 갔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부자가 되면 영혼 에 위험이 될까. 이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 니고 상대적이다. 2000년 전 부자는 오늘날
기준으로 봤을 때 부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 다. 전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는 시대에 살지 않았나. 스스로 부자라고 여기는 사람의 상당수는 객관적으로 볼 때 부자가 아니다. 그저 넉넉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은 큰 부자도 아니면서 자기 영혼을 잃 어버린다면 그것처럼 억울하고 아찔한 일이 있을까. 그렇다면 왜 부자는 위험한가. 부는 인간 을 교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죄악을 추구할 수 있는 도구가 되며, 불의를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힘을 가지 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보다 땅에 연연하게 하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부자 는 어쩌면 진짜 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 짜 부자는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영 원히 땅에서 살고 싶어 한다. 영원히 영화를
엄청난 부는 인간 교만하게 하고 때론 죄를 실행하는 힘까지 발휘 천국보다 현실에 더 집착하게 해 누릴 수 있는데 굳이 천국을 찾을 필요가 없 다는 말이다. 과거 모 재벌기업 총수는 아래 직원이 “백수하십시오”라고 건배를 하자, 고깝게 생각해 그를 해고했다는 소문이 있 다. 100세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 다는 뜻 아닌가. 부자는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 다. 자기 얼굴이 그려진 돈, 자기 이름으로 지 은 건물, 자기 말을 듣는 사람들로 세상을 채 우려 한다. 그러기에 진짜 부자는 하늘나라 에 관심이 없다. 하늘나라에선 모두가 원천적 으로 평등해지지 않던가. 반대로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다. 그는 잠시 물질을 맡은 사람에 불과하지 그것을 영원히 누릴 권세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다. 이것이 진짜 겸손이요, 신앙이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 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儒
<유>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오늘 9월 28일은 공자(孔子)탄신 2565주년 되는 날이다. 공자는 ‘유가(儒家)’를 일으킨 창시자이자, 동아시아 정신문명을 열어간 대스승이다. 그의 학파를 두고 왜 ‘儒(유)’라 고 표현했을까. ‘儒’는 선비를 뜻한다. 굳이 오늘 말로 표 현하자면 ‘학자’다. 그러나 글자가 등장한 고 대 중국에서 ‘儒’는 장례사를 일컫는 말이었 다.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儒, 柔也, 術士之稱’이라고 했다. “글자 ‘儒’는 부드러 움을 뜻하며, 술사(術士)를 지칭한다”는 뜻 이다. 여기서 말하는 술사가 바로 장례를 주 관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술사의 지위는 높 지 않았다. 언제나 남에게 순종해야 했고, 낮 은 자세로 일했다. 그러니 ‘부드럽다’는 뜻이 나온 것으로 중국의 언어 학자들은 해석하 고 있다. 장례사는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도사(道士)다. 이들은 ‘무엇인가 아는 게 많 은 신통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 다. 이런 이유로 춘추시대(BC770~BC403) 에 들면서 ‘儒’는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漢)나라 시기 학
자였던 양웅(揚雄·BC53~AD18)이 편찬한 양자법언(揚子法言)은 “하늘·땅·사람의 도에 통한 사람을 가르켜 유라한다(通天地 人曰儒)”고 했다. 단순한 장례사 직업을 뜻 하던 단어가 지식이 있는 사람, 즉 학자라는 뜻으로 진화된 것이다. 공자는 제자 자하(子夏)에게 “너는 군자 학자가 되어야지, 절대로 소인 학자가 되어서 는 안된다(汝爲君子儒, 無爲小人儒)”고 말 했다<논어(論語) 옹야(雍也)편>.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처음 등장한 ‘학자들의 무리 (群)’였고, 후대 이들을 일컬어 ‘儒家(유가)’ 라고 표현한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우리가 흔히 읽는 삼국지(三國志)의 영 웅 제갈공명은 공자가 말한 ‘君子儒, 小人 儒’를 이렇게 설명한다. “군자 학자는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 랑하며 정의를 지키고 사악을 멀리한다(君 子之儒, 忠君愛國, 守正惡邪). 반면에 소인 학자는 글을 쓸 때는 온갖 화려한 단어를 구 사하지만 정작 가슴 속에는 아무런 실질적 대책이 없다(小人之儒, 笔下雖有千言, 胸中 實無一策).”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라는 얘기다. 공자 가 2565년이 지난 오늘, 이 땅의 학자들에게 던지는 충고이기도 하다.
28 Column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세상을 바꾼 전략 ① 전략적 투표의 힘
‘2등 DJ’를 박정희 대항마로 만든 건 전략적 표심 <1971년 신민당 대선 후보>
DJ가 아니라 차선의 후보 YS를 지지함으로 써 결선에서 YS가 최악의 후보 TW에게 승 리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또한 전략적 투표다. 유권자가 프로라면 D와 Y 모두 YS를 줄곧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DJ와 YS 간의 단일화 투표라 는 예비 대결은, 한 수를 미리 내다보면, 결국 DJ 대신 TW 그리고 YS 간의 최종대결인 셈 이다. 즉 전략적 국민의 투표에 의한 야권 후 보 단일화는 본선에서의 YS 당선이고, 그런 방식을 주장할 측은 바로 YS 진영이다. 물론 87년 당시에는 선거 여론조사가 잘 공개되지 않아 모든 유권자들이 몇 수를 내 다보고 투표할 여력이 없었다. 실제 단일화 투표를 하지도 않았다. 유권자들도 자신의 선호나 지지성향에 따라 투표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들에게 속속 알려지고, 또 각 진영에서도 전략적 투 표를 독려한다.
이종욱 전 서강대 총장의 ‘다시 쓰는 고대 사’에 이어 금주부터 김재한 한림대 교수의 ‘세상을 바꾼 전략’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한 전략적 행동을 규 범적 잣대가 아닌 게임이론의 틀에서 주로 분석하는 글입니다.
김재한 교수 한림대 정치학
세상사는 대개 개별 인간들의 전략적 선택 의 결과로 진화돼 왔다. 전략이라고 해서 모 두 위법과 위선으로 흐르는 것으로 볼 필요 는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으 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인 관점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전제하는 담론 자체를 비난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자기 이익을 전 략적으로 추구하는 행위가 공공이익에도 도 움이 되도록 하는 제도가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 전략의 정석이 통하도록 하는 것이 합 법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구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딱 44년 전인 1970년 9월 29 일 서울시민회관.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두 고두고 회자되는 역전극이 벌어졌다. 당시 제1야당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얘 기다. 1차 투표에서 김영삼(YS)은 421표를 얻어 김대중(DJ, 382표)에 앞섰지만, 투표자 885 명의 과반수 획득엔 실패했다. 82표는 이철 승을 포함한 다른 사람을 지지했던 무효표였 다. 같은 날 2차 투표가 치러졌는데, 이를 앞 두고 이철승 측 대의원들에 대한 양김의 적극 적인 지지 호소가 있었다. 특히 DJ가 적극적 이었다.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해 주면 해줄 약속을 명함에 적어 준, 이른바 명함각 서 등 많은 정치적 거래가 그 짧은 시간에 이 뤄졌다. 몇 시간 후 실시된 2차 투표에서 총 투표 884표 가운데 DJ는 과반수인 458표를 얻어 410표를 얻은 YS를 눌렀다. 불과 몇 시간만에 대의원들의 지지 성향 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DJ의 기세였을 까, 호남의 바람이었을까. 물론 그 날의 역 전극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키려면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는 차선의 후보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즉 2차 투표 당시, DJ가 자신에게 최선의 대안은 아니지만 적어도 YS보다는 나은 대안이라 고 판단한 대의원들이 최소한 76명(DJ의 1,2차 득표차)이 있었다는 의미다. 이들이 71년 대통령 선거의 신민당 후보를 결정했 다고 보면 된다. 그로부터 17년 뒤이자 지금으로부터 정확 히 27년 전인 87년 9월 29일 서울 남산외교구 락부. 이번엔 DJ와 YS가 제13대 대통령 후보 단일화 담판을 했다. 하지만 결렬됐고, 두 사 람 모두의 출마는 기정사실화됐다. 실제 둘 다 출마했다. 살얼음판 승부 좌우하는 ‘전략’ 87년 대통령 선거의 실제 득표율은 어땠나. 노태우(TW) 36.6%, YS 28.0%, DJ 27.0%였 다. DJ, YS 두 후보가 DJ로 단일화해 TW와 겨뤘다면 TW가 당선됐을 것이고, YS로 단 일화했다면 TW가 낙선했을 것이라는 여론 조사가 있었다. 만일 그 조사가 정확했고 또 DJ가 그 조사 결과를 믿고 YS에게 양보했다 면, YS는 단일후보가 되어 제13대 대통령으 로 당선됐을 수도 있다. 야권 단일후보 DJ가 TW에게 패하는 반 면, 단일후보 YS는 TW에게 승리하도록 하 는 유권자의 선호도 조합은 여러 가지다.
1970년 9월 29일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의 김대중(왼쪽)과 김영삼이 나란히 앉아 있다.
1차 투표서 YS에 뒤졌던 DJ 짧은 시간에 ‘제3의 표’ 잡아 승리 단순한 ‘대가성 표’로 해석 못 해 자신에게 최악인 경우 피하거나 가능성 높은 차선의 성공을 위해 최선 고집하지 않는 게 ‘전략 투표’
가장 간단한 조합의 예는 유권자 전체를 각 각 3분의 1씩 차지하는 세 후보의 지지집단 D, T, Y의 후보 선호 순서가 다음과 같을 경우다. D: DJ > YS > TW (DJ, YS, TW의 순으로 선호) T: TW > YS > DJ (TW, YS, DJ의 순으로 선호) Y: YS > TW > DJ (YS, TW, DJ의 순으로 선호) 이에 따르면 DJ와 TW의 일대일 대결이 벌 어진다면 D만 DJ에게 투표하고 나머지 T와 Y는 TW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DJ는 TW에 게 패배하게 된다. 반면 YS는 TW와의 대결 에서 D와 Y의 지지로 TW에게 승리한다. <그림>처럼 야권이 먼저 단일화를 추진하 고, 이를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한다고 가정
1987년 9월 29일 외교구락부에서 후보 단일화 담판을 앞두고 악수하는 김영삼(왼쪽)과 김대중.
[중앙포토]
<그림1>야권단일화 국민투표 후 대통령선거 (가상 상황)
DJ
YS
TW
해 보자. 선호 후보에 따라서만 투표한다면, DJ와 YS 간의 예선에서 유권자 집단 T와 Y 는 YS에게 투표하는 반면, 유권자 집단 D는 DJ에게 투표할 것이다. 만일 YS가 예선에서 승리하여 TW와 최종결선을 치르게 되면, 유 권자 집단 D와 Y가 YS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YS가 최종승자가 된다. 이때 TW는 어떤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까. DJ와 YS 가운데 결선에서 자신에게 질 사람 으로 단일화되도록 행동할 수 있다. 즉 TW 를 지지하는 유권자 집단인 T는 DJ보다 YS 를 더 선호하지만, 야권후보 단일화 투표에 서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후보인 DJ에게 투표할 수 있다. 그러면 TW가 최종대결에서 야권 단일후보인 DJ를 이기고 당선될 수 있 다. 이는 TW가 자신의 천적인 YS를 DJ로 이 이제이(以夷制夷)하는 셈이다. 이처럼 자신 의 선호대로 단순하게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최종결과를 염두에 두고 투표하는 것을 전 략적 투표(또는 전략투표)라 한다. 그럼 선거가 TW의 의도대로 진행될까. DJ 가 결선에 가면 TW에게 패배한다는 사실을 유권자 집단 D도 안다면, D 역시 다르게(전 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D는 야권 후보 단 일화 투표에서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DJ에 게 투표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최악의 후보 인 TW의 당선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한다 고 하자. 그렇다면 D는 예선에서 최선의 후보
여론조사 발달로 전략투표 더 쉬워져 YS가 승리한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일부 유 권자들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후보에게 투 표하는 대신 당선가능한 차선의 후보에게 투 표하기도 했다. 이 또한 전략적 투표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이회창 이인제 간의 각축이 벌어졌다. 선거운동 기 간 내내 이회창 측은 “이인제에게 투표하면 김대중이 당선된다”고 강조했고, 이인제 측 은 “이인제에게 투표하면 이인제가 당선된 다”고 반박했다. 득표율은 DJ 40.3%, 이회창 38.7%, 이인제 19.2%였다. 이회창과 이인제 가 얻은 표를 단순 합산하면 DJ의 득표를 웃 돈다. DJ가 일대일로 대결해서는 이회창에 게 이기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결과였 다. 그런 의미에서 97년 대통령 선거는 DJ가 이인제 후보로 이회창 후보를 제압한 이이제 이(以李制李)였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야권 후보 단 일화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박근혜·문재 인·안철수의 3자 동시 출마의 경우엔 박근혜 가 가장 앞서고 ^박근혜와 문재인 간의 양 자 대결에서도 박근혜가 앞서며 ^박근혜와 안철수 간의 양자 대결에선 안철수가 앞서고 ^야권후보 단일화 경쟁의 단순 지지도에선 문재인이 안철수를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있 었다. 만일 문재인과 안철수 간의 국민경선이 치 러졌다면 어땠을까. 물론 자신이 가장 선호 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유권자가 많았을 것 이다. 그와는 달리 안철수보다 문재인이 본 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서 문재인에게 투 표하는 안철수 지지자도 있었을 것이고, 반 대로 안철수가 박근혜에게 승리할 후보라고 판단해서 안철수에게 투표하는 문재인 지지 자도 있었을 것이다. 또 두 사람 가운데 박근 혜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투표하 는 박근혜 지지자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 전략적 투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인식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더 큰 차선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투표 행 위는 오늘날 민주정치에서 흔히 일어난다. 전략적 투표는 겉으로 2등이나 3등, 심지어 꼴등이던 대안이 1등을 제치고 최종승자가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전략적 투표는 유 권자들로부터 강한 호불호(好不好)를 받는 후보 대신에 차선으로 선호되는 후보에게 기 회를 주어,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정치를 가 능하게 만드는 민주적 행위이기도 하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 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Column 29
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3>
변소 청소하는 황제의 부인 그나마도 일자리 못 구해 <리위친>
황제건 뭐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가련한 인생이긴 마찬가지였다. 1945년 8월 15일, 일 본이 패망하자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부의) 는 피신처를 물색했다. 갈 곳이라곤 일본밖 에 없었다. 4일 후 일본 관동군은 일본행 비 행기를 타기 위해 선양(瀋陽) 공항에 도착한 푸이를 소련측에 넘겼다. 소련군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시베리아로 압송했다. 황후 완룽(婉容·완용)과 네 번째 부인 리위 친(李玉琴·이옥금)은 조선이 빤히 보이는 린 장(臨江) 언저리에서 팔로군(八路軍) 소속 조선족 부대와 조우했다. 팔로군은 리위친을 가족들이 있는 창춘(長春)으로 가라며 풀어 줬다. 리위친은 창춘으로 가지 않았다. 톈진(天 津)에 있는 청 황실의 후예를 찾아갔다. 몰락 한 3류 황족은 리위친을 창고에 가둬버렸다.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고, 밥도 굶어 죽지 않 을 정도만 줬다 “너는 황제의 귀인이다. 외간 남자의 눈에 띄면 안된다. 세수도 하지 말고, 머리에 빗질도 하지 마라. 잘 먹고 몸단장 하 다 보면 딴 생각 할 나이다.”
이유 모른 채 툭하면 쫓겨나기 일쑤 노예 같았지만 황궁 생활 그리워해 “남편 찾아달라” 마오쩌둥에게 편지 10년 만에 푸이 편지 받고 면회 요청 국공전쟁에서 승리한 중공이 톈진에 입성 하자 리위친은 황족의 집을 빠져 나왔다. 부 모가 있는 창춘에 와 보니 친정은 엉망이었 다. 쓰러져가는 집에 오빠는 빈털터리였고, 올케와 조카는 폐병과 뇌막염으로 죽을 날 만 기다리고 있었다. 리위친은 일자리를 찾았다. “시(市) 노동 국은 내 신분을 알고 있었다. 변변한 직장을 알선해주지 않았다. 식품 공장에서 땅콩 까 는 일과 사탕 포장, 변소 청소, 인쇄 노동자가 고작이었지만 길어야 한달, 거의 며칠만에 쫓 겨났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직장 동 료들은 “한간(漢奸)의 부인, 반혁명 가족, 아 직 결혼하지 않고 버티는 것을 보니 만주국 이 다시 수립되기를 기다리는 눈치”라며 리 위친을 조롱했다. 리위친은 말이 부부지, 노예나 다름없던 황궁 시절이 새삼 그리웠다. 생사 불명인 남 편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 54년 여름, 겨우 여 비를 마련해 베이징으로 갔다. 푸이의 다섯 째 여동생 집에 여장을 풀고 중앙인민정부를 찾아갔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주석 과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총리에게 할
1956년 12월 초, 중공은 푸이를 석방하며 베이징에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베이징으로 가기 위해 열차에 오른 푸이.
말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단 서면으로 이유를 작성해라. 우리가 책임지고 전달하겠 다”는 답변을 듣고 시키는 대로 했지만, 며칠 을 기다려도 정부의 회신은 없었다. 돈이 떨 어진 리위친은 창춘으로 돌아왔다. 푸이에 관한 온갖 소문이 파다했다. 동북 토박이 친구들은 푸이를 기다리지 말라고 리 위친에게 권했다. “한간들은 처형되거나 감 옥에 갇혀 있다. 푸이는 한간의 우두머리였 다. 아직 소련에 있다 해도 죽을 날이 멀지 않 았다. 푸이와 이혼을 하겠다고 발표해라. 그 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리위친의 모친은 완고했다. “너는 캉더 (康德·만주국 황제 시절, 푸이의 연호)의 여 자다. 어디에 있건, 살아만 있다면 기다리는 게 옳다.”
푸이도 리위친을 잊지 않았다. 한때 리위 친이 결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실망한 적이 있었지만 소문을 믿지 않았다. 55년 6월 중 국인 전범들에게 서신왕래가 허락되자 “친 애하는 리위친”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보냈 다. 답장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 았다. 리위친의 답장도 첫머리가 “친애하는 푸 이”였다. “10년 간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 면 회가 가능하면 당장 달려가겠다”는 구절을 발견하자 푸이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 았다. 전범관리소 측에 면회를 허락해 달라 고 요청했다. 전범관리소는 푸이의 청을 들어줬다. 조선 족 소장 김원(金原)의 명의로 “방문을 환영 한다”는 편지를 리위친에게 보냈다. 위치를 그린 약도까지 첨부했다.
리위친은 준비를 서둘렀다. 사탕 두 봉지 와 헝겊신발 한 켤레를 장만했다. 푸순(撫順) 에 가려면 선양을 경유해야 했다. 당시 선양 역전은 조무래기 좀도둑들의 천하였다. 리위 친은 싸구려 여관방에서 사탕과 신발을 품 에 끼고 잠을 잤다. 새벽녘에 말라 비틀어진 빵 두개를 사먹고 푸순행 열차를 탔다. 8월 16일 오전 푸순전범관리소 소장 부인 정영순(鄭英順)은 관리소 문전을 서성이는 여인을 발견했다. 훗날 구술을 남겼다. “허 름한 농촌 부녀자 모습이었다. 남편 푸이를 만나러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경비 실에 달려가 소장실에 전화를 했다. 여인은 내게 조선족이냐고 물었다. 소장도 그렇다 고 하자 10년 전 이맘때 린장에서 조선족 군 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며 친근감을 표시했 다.” <계속>
당첨확률이 0%인 로또는 아무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첨확률이 0.00001%로 올라간다면 사람들은 로또를 구매할까. 일 반적으로 0%와 0.00001% 간의 차이는 거의 무시해도 될 수준으로 보인다. 로또의 당첨 확률(814만분의 1)을 백분율로 환산해 보면 0.00001%에 불과하다. 벼락 맞을 확률(50만 분의 1)보다 낮은 당첨확률에도 기꺼이 지갑 을 여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나라 로또 판매 금액은 매주 수백억에 이른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 발생 가능성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 향을 ‘가능성 효과’라 한다. 다음을 보자.
지 않았던 상황에서 운만 좋으면 1억원을 받 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는 점에서 우 리의 뇌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B는 1억원을 받을 확률이 수학적으로 두 배 나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기대감이 곧바로 두 배로 커지진 않는다. 이처럼 객관 적으로 동일한 수치의 변화라도 우리의 뇌 에서 받아들이는 가중치는 기준점에 따라 다르다. 위와 유사하지만 기준점이 다른 예 를 보자.
D는 그러한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기 때 문에 동일한 변화량이라도 우리의 뇌는 D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처럼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 에도 불구하고 100% 확실하지 않다면 객관 적 발생 확률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발생 확률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확실성 효 과’라 한다. 즉 가능성 효과로 인해 우리의 뇌는 실제 발생 가능성이 낮은 확률을 과대 평가하는 반면, 확실성 효과로 인해 실제 발 생 가능성이 높은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것 이다. 가능성 효과와 확실성 효과는 손실 상 황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다음을 보자.
[사진 김명호]
푸이를 몇 차례 면회한 후 이혼을 결심한 리위친.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0%와 100%는 생각의 중력
A. 1억원을 받을 확률이 0%에서 5%로 상승. B. 1억원을 받을 확률이 5%에서 10%로 상승.
A와 B 모두 1억원을 받을 확률이 5%포인 트 높아졌다. 하지만 A의 경우 전혀 기대하
C. 1억원을 받을 확률이 90%에서 95%로 상승. D. 1억원을 받을 확률이 95%에서 100%로 상승.
C와 D 역시 확률적 변화량은 각각 5%포 인트로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의 뇌가 주관 적으로 느끼는 가치는 C보다 D가 더욱 크다. C와 같이 1억원을 받을 확률이 95%수준으 로 아무리 높다고 해도 운이 나쁘면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반면에
E. 1억원을 잃을 확률이 0%에서 5%로 상승. F. 1억원을 잃을 확률이 5%에서 10%로 상승 G. 1억원을 잃을 확률이 90%에서 95%로 상승 H. 1억원을 잃을 확률이 95%에서 100%로 상승
E와 F는 손실 가능성이 각각 5%포인트씩
동일하게 증가하였다. 하지만 손실 가능성이 0%인 상황에서 일단 손실 가능성이 생겼다 는 점에서 우리의 뇌가 느끼는 주관적 가중 치는 F에 비해 E가 더욱 크다. 마찬가지로 G 와 H 모두 손실 가능성이 90%이상으로 높 기는 하지만 100% 손실을 확정시킨 H의 변 화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숫자 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0%와 100%는 ‘확실 성 선호’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닿아 있 기 때문에 이 지점의 변화에 우리의 뇌는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완 전히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0%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여는 최초의 도전에 주목한다. 또 한 불확실한 세상에서 100% 확실성을 보장 하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0%와 100%는 마치 우리의 뇌에 작동하는 ‘생각의 중력’과 같다.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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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인문학이 돈 있는 사람들 놀이터인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hwesook7@naver.com
대학 3학년을 코 앞에 두고 있던 이말삼초(二 末三初)의 겨울, 내 삶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가져온 계기가 있었다. 인문학과의 만남이었다. 당시 나는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야학 교 사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 일주일에 한 번씩 교사들이 모여 인문학 공부를 했다. 고교 시 절부터 공부는 작파하고 동서양의 온갖 소설 을 독파했던 나는 독서량에 있어서만큼은 내 나이 또래의 누구와 비교해도 자신이 있었 다. 하지만 소설 이외의 책은 별로 읽지 않았 다. 당시 유행하던 에리히 프롬 류의 책이 당 시 내가 읽은 유일한 비소설이었다. 이런 나에게 인문학 공부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때 역사·철학·종교·사회·경제· 교육·문학 등 여러 분야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했는데,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 운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소설만
읽던 나에게 인문학 책은 어렵고 지루했지만 그 결과 얻어지는 지적 포만감은 세상 어떤 것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컸다. 그 전까지 연애소설인 줄 알고 있었던 스탕 달의 적과 흑이 사실은 프랑스 왕정복고 시 대의 사회상을 그린 것이고, 오마 샤리프 주 연의 영화로만 기억하던 닥터 지바고가 러 시아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소 설이라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새로운 세 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져 나는 학창 시 절 매를 맞으면서도 하지 않았던 노트 정리까 지 해가며 극성스럽게 공부했다. 내 일생을 통틀어 그때처럼 열심히 공부했던 적은 없었 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읽은 책의 한 구절도 생각나 는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지적 원동력이라고. 그 때 축적해 놓은 지적 자산이 내 무의식 어딘 가에 박혀 내가 글을 쓸 때나 어떤 일에 대한 사고력과 판단력이 필요할 때 암암리에 영향 을 미칠 것이라고. 젊은 시절 나는 겉멋만 잔뜩 들었지 정신
질소 과자’의 두 모습 박태균 칼럼 식품의약 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요즘 온라인에선 ‘과자 뗏목’이 화제를 모 으고 있다. ‘행동파’ 대학생 3명이 과자로 뗏목을 만들어 28일 오후 3시에 서울 잠실 한강공원에서 출발해 한강을 건너겠다고 공언해서다. 이들은 양면 테이프와 공업용 테이프로 180개의 과자봉지를 이어 붙여 ‘과자 배’를 제조했다고 한다. 대학생들의 퍼포먼스 예고를 보면서 품 게 된 첫 번째 의문은 ‘‘과자 배’가 물에 떠 서 한강을 건널 수 있을까다. 가능하다. 서 울시 소방재난본부는 물놀이를 하다 사람 이 빠졌는데 구할 도구가 없으면 대용량 과 자 봉지를 활용하라고 소개한 바 있다. 두 번째 의문은 “대학생들이 왜 이런 이 벤트를 벌이는 것일까’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따라오더라’란 대학생들의 표현에 서 엿볼 수 있듯이 ‘과자 배’ 이벤트는 과대 포장이 심한 국산 과자 업체들의 행태를 고 발하기 위해서일 것으로 짐작된다. 세 번째 의문은 ‘그렇다면 왜 과자 회사 들은 제품에 빵빵하게 질소를 채우는 것일 까’다. 과자 회사들은 과자의 안전성을 확보 하고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기 대신 질소를 채운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 예 컨대 스낵류에 함유된 해바라기씨기름이나 들기름은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 이지만 이들이 공기에 노출되면 산화(산패) 돼 유해물질인 과산화 지질로 바뀐다. 따라 서 공기를 질소(공기의 5분의 4 차지)로 바 꾸면(치환 충전) 이 같은 반응을 막을 수 있 다(홍승균 롯데안전센터장). 과자가 운반·유통·보관 중 부스러져 상품 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도 식품회사들 이 포장지 내에 질소를 채우는 이유다. 소비자들은 식품회사들이 과자 등에 질 소를 채워 과자 무게를 늘리려는 속셈이 있 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과자의 총 중량에 질소 무게도 포함되므로 이유 있는 지적이 다. 하지만 포장에서 질소를 전부 빼버리면 쭈글쭈글해진 포장에다 일부가 바스러진 과자를 사 먹어야 한다. 네 번째 의문은 ‘질소를 채운 과자가 안 전한가’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전성엔 문제 가 없다. 질소와 과자의 반응성이 거의 없
부활 바람 타고 수백만원 강좌 등장 수강생은 무조건 재미있게 주문 TV 예능프로처럼 될까봐 걱정도
적 성취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 나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 게 되었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한심하게 살 아왔는지, 살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 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 문 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형편 없는 사람이 되 어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조차 인문 학을 홀대하는 풍조가 만연했었다. 다행스
해외 만평
럽게도 얼마 전부터 사회 일각에서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일반인을 위한 인문학 교양도 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역시 일반인 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도 많이 생겼 다. 인문학 강의를 들은 노숙자들이 자존감 을 회복하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되 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이렇게 인문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지만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인문학은 그다지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힘들고 어렵고, 때로 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처음 인문학의 세계에 들어섰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 공부한 내용을 모두 이해했 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책은 너무나 어려워 서 반쯤은 이해 못한 채로 그냥 의무감에 책 장을 넘긴 것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 웠기에 그 깨달음이 더욱 값지고 소중했다.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요즘 인문학 강좌가 많이 생겼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때론 이것 이 유한계급의 또 다른 놀이터로 전락해 버 린 경우를 보게 된다. 수강료가 수백 만원에
달하는 한 인문학 강좌의 강사가 얼마 전에 나에게 이렇게 털어 놓았다. 수강생들이 너 무 어렵다고 좀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해달라 고 주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깐에는 재미있게 한다고 온갖 원맨쇼를 다 한단다.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한다고 해도 인문학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문학 강의가 TV 예능프로는 아니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문학에 대한 열정을 인문학 공부가 아닌 인문학 책 수집으로 풀 고 있다. 지적 허영심에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도대체 몇 권인가. 지금 그 책 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어려운 책을 읽 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인문학이 고프 다. 젊은 시절,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내 지 적 욕구를 채워주었던 인문학의 바다에 다시 한 번 빠져 보고 싶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 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비 기다리다 말라 죽겠군 유엔기후정상회의를 계기로 기후변화 전망이 갈수록 비관적이라는 지적 제기.
어서다. 단 한 가지, 질소가 들어 있다는 이 유로 위생 관리를 소홀히 했다간 클로스트 리듐·바실러스 등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잘 자라는 세균(혐기성 세균)이 자랄 수는 있 다(동국대 식품생명공학과 신한승 교수). 질소는 스낵류 등 대형 과자에만 채우는 기체가 아니다. 분유통 안에도 들어 있다. 햄·소시지 등 육가공 식품 포장에도 질소를 넣는다. 고기가 산화돼 색깔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부 채소류 제품에도 신선 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질소를 넣는다. 식품 포장 안에 질소를 채우면 부피와 무 게가 늘어나므로 과다하게 넣는 것은 소비 자 기만 행위가 될 수 있다. 식품 포장에서 빈 공간의 차지하는 비율(포장공간 비율)과 포장 횟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이에 따 르면 스낵류와 케이크의 포장공간 비율은 35% 이하, 제과류는 20% 이하, 음료·주류 는 10% 이하여야 한다. 이를 위반한 제품이나 업체는 처벌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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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옴부즈맨 코너
과자 뗏목 만들 정도로 과대 포장
대한민국 혁신 어젠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 필요
식품 보관보호에 꼭 필요한 질소 무게 늘리는 부작용도 있어 논란
질소를 넣는 행위 자체에 두려움을 가질 필 요는 없다. 차제에 ‘생생우동’ ‘생냉면’ 등 에서 식품의 모양을 잡아주기 위해 포장 안 에 들어간 사각 트레이(받침접시)의 빈 공 간은 ‘포장공간 비율’을 계산할 때 제외시 키는 것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주얼(전 체 크기)에 비해 양이 턱없이 적다는 소비 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말이다. 현재 법으론 가공식품의 포장 횟수는 최 대 2회로 제한돼 있다. 포장을 뜯으면 작은 포장 하나가 더 나오는 것까지만 허용한다. 하지만 일부 비싼 과자는 하나씩 개별 포장 한다. 개별 포장은 포장 총 횟수에 포함시키 지 않는데, 이 또한 자원을 낭비하고 소비자 에게 괜히 더 높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 행위 일 수 있다. 이번 일요일, 대학생들이 설사 한강을 못 건너더라도 과다포장에 대한 경 각심을 높이는 데엔 성공하길 바란다.
9월 21일자 중앙SUNDAY는 1면에서 새정 치민주연합의 내홍을 계기로 현재 한국 정 당정치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정치학자 들의 의견을 실었다. 하지만 이 복잡한 문제 를 소화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해보였다. 이 번 기회에 중앙SUNDAY가 선거구제 변 화, 비례대표 확대 등 한국정당의 개혁 어젠 다를 지속적으로 끌고가면 좋겠다. 영국 클래식 음악축제인 ‘BBC 프롬스’ 현장 스케치 기사는 축제 참가자들이 클래 식 공연을 편안하고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세세히 전했다. 풍성한 해외 예술 축제가 부 러웠고, 한편으론 한국 현실에 대한 궁금증 도 자연스레 들었다. 두 면에 걸친 기사 중 한국 클래식 실외 공연의 현주소나 개선점 을 지적한 대목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아쉬웠 다. 대중과 친숙해지려는 클래식 공연계의 노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클래식 연 주공연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비싼 당신’ 이고 문턱을 낮춘 거리 실외공연은 드물다. 대중이 클래식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 법을 중앙SUNDAY가 찾아주길 바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판결에 대한 현직 부장판사의 비판 이후 법조계 반응을 담은 기사는 법원 내부와 외부의 고민과 목소리 를 생생하게 들려줘 가독성이 높았다. 특히 김동진 부장판사와 함께 근무했던 부장판 사, 임관 5년째를 맞는 판사, 합의부 배석판 사 등 현직 판사들의 구체적인 고민이 눈길 을 끌었다. 인천아시아게임 ‘눈길끄는 선수와 종목 들’ 기사는 다양한 이력과 사연의 선수들 을 소개해 흥미로왔다. 하지만 기사 중간중 간에 삽입된 소제목들의 위치가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을 듯하다. 관심끄는 소제 목을 보고 소제목과 연결된 아래문단 기사 를 읽었지만 소제목이 언급한 내용이 없었 다. 윗 문단 기사에서 언급된 내용을 소제목 으로 뽑은 것이다. 한면을 차지하는 긴 기사 이다 보니 관심이 가는 소제목을 보고 제목 아래 기사를 먼저 읽거나 선별해 읽는 독자 들도 있다는 점을 편집자가 고려해주면 좋 겠다. S매거진에서는 새로 연재를 시작한 칼럼
들이 눈에 띄었다.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은 이어령 교수와 기자가 주고받은 대화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 독특한 형식으 로 시선을 잡았다. ‘세상의 멋진 도서관’ 에 실린 건축물 사진들은 현장에 가보지 못한 독자들이 건축물에 대한 평가가 담긴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다음호에 선보일 독특한 공공 도서관이 기다려진다. ‘만화로 보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걸작 선’은 최근 S매거진에 등장한 첫 만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재밌고 의미 있는 만화가 S매거진에 실려 어려운 기사를 접한 독자들의 머리를 식혀주기를 기대해 본다. 호흡이 긴 기사 속에서 ‘쉬어가는 코 너’ 같이 짧고 가볍게 읽히는 칼럼들이 안 보인 점은 아쉬웠다. 유희연 2000년부터 2007년까 지 문화일보 정치부·사회부·국제 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전업주부로 일곱 살, 네 살 두 아 들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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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
신흥시장,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신장섭의
시대공감
세계경제 성장 진원지 될 신흥국 한국 기업 진출은 점점 뒷걸음 민간 역량 발달 부족한 국가에선 대우 스타일 세계경영 활용할 만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신 흥국의 세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곧 경 제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한다. 인도도 현재 의 성장세를 지속할 경우 21세기 중반에 미 국을 추월한다. 아프리가, 중남미, 동남아 국가들도 계속 커나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신흥시장 진출은 경쟁국들에 비해 계속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이 1980년 대에 앞서 진출했던 아프리카, 미얀마 등에 서는 이제 중국에게 한참 밀려났다. 동남 아에서도 일본이 반격을 하며 자신들의 ‘텃 밭’을 회복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그 페 이스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G20의 가교국(架橋國)이 되겠다며 개발원조도 크게 늘리고 개발경 험 전수 사업도 많이 벌이고 있지만 별 성과 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정부 따 로, 민간 따로 일이 진행되면서 효과도 떨어 지고 해당국들은 실제로 필요한 것을 제대 로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은 민간 대 민간의 비즈 니스만으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 실이다. 신흥국에서는 민간부문이 별로 발달 해 있지 않다. 그 쪽의 정부를 상대할 수 밖에 없다. 중국에서 큰 사업을 하려면 중국 공산 당을 상대해야 한다. 중동도, 아프리카도 마 찬가지다. 그래서 신흥국 진출은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것들을 패키지로 제공하 면서 그 과실을 함께 나누는 ‘정치-경제-기 업의 오케스트라’가 돼야 한다. 대우그룹은 비록 15년 전에 해체됐지만 신흥시장 진출의 선구자였고 ‘세계경영’을 통해 신흥국 투자를 어떻게 세계적 범위에 서 엮어내는지에 관한 교본(敎本)을 제시했 다. 한국과 같은 중진국에서 출발해 다른 신 흥국으로 진출하려는 다국적기업들은 선진 국 출신 다국적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술력· 자본력에 대항할 다른 무엇인가를 갖고 있 어야 한다. 대우는 그 경쟁전략을 ‘복합화’ 와 ‘상생’에서 찾았다. 김우중 회장은 신흥국 지도자들을 만나 “당신 나라에 한국을 건설시켜 주겠다”고 얘기하며 큰 사업들을 따냈다. 만약 IBM이 나 GM의 회장이 “당신 나라에 미국을 건설 시켜 주겠다”고 말하면 신흥국 지도자들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이들은 기업경영은 잘 했을지 몰라도 경제개발 경험은 없다. 신 흥국들이 당장 미국 수준의 선진국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다.
그렇지만 한국은 최근에 ‘경제기적’을 일 군 나라였기 때문에 그들이 따라하고 싶은 자본주의였다. 또 대우는 다각화된 비즈니 스 그룹이었기 때문에 경공업, 중화학, 무 역, 자원개발, 금융 등 경제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다 갖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중 화학 부실을 해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체 제전환국의 공업시설을 시장경제에 맞게 바꾸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대우는 또 80년대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 부터 ‘50대 50 원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익의 절반은 처음부터 현지국가를 위해 쓴다는 것이다. 교육, 인프라, 병원시설 등 현지국가가 필요한 일들을 해 줬다. 김 회 장은 “처음에 돈을 적게 버는 것처럼 보여 도 신흥국은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그 렇게 하는 것이 돈을 더 크게 버는 방법”이 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이렇게 하는 것 이 “리스크를 처음부터 관리하는 것”이라 고 말했다. 현지 국가에 필요한 일들을 해주 는데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최소한 불이익 받을 일이 없고, 그 쪽에서 고마와하게 되면 더 큰 사업을 준다는 것이다. 대우는 이 경영전략과 역량을 바탕으로 96년에 신흥국 출신 세계 최대 다국적기업 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에 세계경제 성장 이 신흥국 발전에 의해 이끌려왔던 사실을 감안할 때에, 대우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세 계적 다국적기업으로 계속 뻗어 나갔고 한 국경제도 그 과실을 많이 거두었을 것이라 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대우가 시도했던 ‘세계경영’의 정신과 전 략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한국경제가 21 세기에 얼마나 잘 뻗어나갈 수 있는지 여부 는 신흥시장 공략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 치지 않다. 신흥시장에는 자본시장이나 하 청업체 등 민간 역량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 문에 복합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정부와 지 역주민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상생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세계화와 선진화가 선진국 따라하기, 재벌구조 개혁, 정경유착 끊기 등의 단어들과 많이 연결됐다. 그러나 대우의 해외진출, 특히 신흥국 진출 경험은 오히려 독창적인 진출 전략, 재벌구조 활용, 정경협력 강화를 통해서도 세계화와 선진 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 다.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어느 길이 바람 직한지 재검토해 봐야 할 때다.
언제 한눈 팔지 모를 삼성팬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터키의 중·고등학교에서 컴퓨터 입문교육 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2001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컴퓨터 수업을 담당했던 선생님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 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한다. 컴퓨터 관련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해 항상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예 물리학 이나 수학을 전공했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 이다.” IT(정보기술) 분야의 기술 진보 속 도에 대한 농담 섞인 푸념이다. 그 선생님 이 말했듯이 IT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올림피아드대회에 참 가하기 위해 터키 국가 대표팀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선배가 있었다. 그는 미국 에서 소니의 ‘MD(Mini Disk)’라는 제품을 구입해 돌아왔다. 당시는 테이프를 재생해 음악을 듣는 ‘워크맨’을 애용하던 시절이었 다. 그 선배는 손바닥보다 훨씬 작은 MD를 항상 자랑삼아 가지고 다녔다. 나도 어린 마 음에 MD를 사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용돈 을 모았다. 거의 1년 정도 용돈을 모아 MD 를 구입하려 할 때였다. 친구 한 명이 “이젠 더 이상 MD를 쓸 필요가 없다. MP3 시대가 왔다. MP3 플레이어는 훨씬 작고 테이프나 디스크가 필요없다”고 설명해 어리둥절해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당시 MP3 플레이어를 본 적이 없었 다. MP3를 사기 위해 터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이즈미르의 전자제품 상가를 다 뒤졌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일부 상점 주인들 은 MP3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이듬해 나는 이스탄불에서 MP3 플레이 어를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 입학 직전에 구입하려 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첨단 전자제품의 천국인 한국으 로 유학을 오게 됐다. 유학을 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매우 뛰어 난 IT 기술과 사업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 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소니 가 MD 기술을 통해 워크맨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려고 했지만 한국 기업이 MP3 기술 개발을 주도하면서 MD 시대는 불과 2~3년을 가지 못했다.
한국의 IT 산업은 스마트폰 분야에서 더 큰 활약을 보였다. 물론 초기엔 삼성전자도 썩 좋은 출발을 하진 못했다. 첫 제품인 ‘옴 니아’는 애플의 ‘아이폰’과는 비교할 수 없 을 정도로 조악했다. 이후 2010년 애플이 아이폰4를 출시하자 삼성도 갤럭시S로 맞섰지만 역시 역부족이 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삼성의 부상 은 2011년 갤럭시S2 덕분이었다. 아이폰보 다 얇고 속도가 빠른 갤럭시S2는 디자인에 서도 아이폰4를 능가했다. 2012년 갤럭시 S3가 출시되자 나는 “드디어 동양의 스마 트폰 기술이 서양을 앞섰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삼성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 장을 석권해 왔다. 이젠 누구도 스마트폰을 생각할 때 노키아나 에릭슨을 떠올리지 않
IT 분야에선 기술발달 너무 빨라 혁신 제때 못하면 시장서 도태 소비자 요구 수용, 새 시장 만들길
는다. 이들 기업들은 혁신 경쟁에서 밀려 소 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의 갤럭시는 애플의 아이폰과 함께 스 마트폰의 대명사격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에 대한 불길한 얘 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 입지가 흔들리고 있 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과 포화 상태의 스마트폰 시장 때문이다. 단순 기능 만 쓴다면 저가 중국제품도 그럭저럭 쓸만 하다. 좀 있어 보이려는 친구들은 새로 나온 아이폰6에 군침을 흘린다. 결국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소비 자다. 품질이 뛰어나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지금이야말로 삼성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나 같은 골수 삼성팬조차 언제 한눈 팔지 모 른다. 알파고 시나씨 2004년 한국에 유학 와 충남대 정 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On Sunday
말말말
세월호특별법 협상, 어려운 일 아니다
“북한, 핵과 경제성장 동시 추진은 착각”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2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북 한이 주장하는 경제·핵 병진노선은 불가능하다며.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offramp@joongang.co.kr
세월호특별법을 취재하기 시작한 건 지난 7 월초였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피해자 가족들 과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안을 마련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다. 법안 초안을 입 수해 읽어봤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진상조사 위원회에 검사의 지위를 부여해 기소권을 주 겠다는 것이었다. 짧은 법조기자 경험으로도 ‘이건 쉽지 않겠다’ 싶었다. 법안 마련에 참 여한 대한변협 박종운 변호사와 통화했다. -검찰 외에 기소권을 준 전례는 일종의 보충수사인 특검 밖에 없었다. 여야가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여야 모두 기소권을 주긴 쉽지 않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일단 우리는 가족들의 의견 을 반영하고, 현행 법과 배치되지 않도록 법 리를 세운 거다.” -만약 끝까지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받아주지 않으면 대안을 생각해 봐야할 거다. 그런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한 달이 흘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 녀가고, 여야 협상은 결렬됐다. 피해자 가족 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가족 대책위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 호사와 다시 통화했다. -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 야 한다는 건 물러설 수 없는 요구인가. “이미 3주 전부터 ‘가족대책위안에 버금 가는’이란 표현을 썼다. 독립적인 사람이 수 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권한이 발휘되는 기 간이 보장되며 진상조사위 활동과 유기적 으로 연계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특별검사의 형태여도 된다는 의미인가. “세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다른 형태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런 내용을 기사 화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 부여 필수 아니다’(중앙SUNDAY 8월 24일자 6 면)라는 가족들과 대한변협의 의견을 전했 고, ‘특검후보 추천에 가족 의견 반영하면
위법 아니다’는 위철환 대한변협 회장의 인 터뷰(9월 7일자 7면)도 전했다. 그 사이 가족대책위 집행부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이 일어났고, 새 집행부가 들어섰 다. 일부 언론에선 ‘가족들, 수사·기소권 양 보 가능성’ 기사가 나왔고, 27일에는 ‘대책 위안에 버금가는 안’이란 보도가 나왔다. 세월호특별법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이미 한 달 전, 아니 그 이전에 가족들은 양보의 뜻을 밝혔다. 위철환 회장은 “생각하는 것만 큼 이견이 큰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미 협상 의 저울추는 특검에까지 기울어져 있었다. 왜 해결이 되지 않는 걸까. 새누리당이 특 검후보 추천에 가족들의 뜻을 반영하기로 한 발만 물러섰다면, 새정치민주연합과 야 권이 ‘대통령의 7시간’에 집착하지 않았더 라면 한 달 전에 끝났을 문제다. 결국 정치 권의 당리당략이 일을 망쳤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을까. 왜 우리 사회는 막지 못했을까. 꽃다운 아이들의 희생이 헛 되지 않으려면 정치권이 양보해야 한다. 특 별법 협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독님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셨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7일 금메달을 딴 컴파운드 양궁 여자대표팀 최보민 선수 인터뷰. 지 난해 10월 세계선수권대회 도중 쓰려져 숨진 고 신현종 대표팀 감독에게 영광을 돌린다며.
“이것은 확실히 애들 장난이 아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홈페이지와 유투브에 올린 요원 모집 광고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 요원의 말. 모사드는 채용방식을 비공개에서 공개채용으로 바꿨다.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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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사업체 수. 전년보다 2.1%(7만6115개) 늘었 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93년 이후 20년 동안 59.6%(137만 개) 증가했다. 대표자가 50대인 사업체가 1년 새 11.4% 늘었다. 60대 이상인 경우도 4.4%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 대가 은퇴한 뒤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으 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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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호 2014년 9월 28일~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