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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증권맨,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장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노벨상과 한국의 인연

“신문 주식시세표 56년 째 챙겨요” Focus 8p

한국 출생 노벨상 수상자 둘인 까닭

http://sunday.joongang.co.kr

Focus 7p

朴 대통령, 도발엔 단호 대처 남북 대화 동력은 살려갈 것”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통일준비위원 회 제2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 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남북 간 대화 동력은 계속 살려나갈 것”이 란 입장을 재확인할 예정이라고 여 권 고위 관계자가 11일 전했다. 박 대 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11일로 38일 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김정 은의 권력체제엔 이상이 없다는 판 단이 깔린 것으로 관측된다. 익명을 원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통준위에서 시국 상 황을 감안해 무게 있는 발언을 할 것”이라며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 선(NLL) 침범이나 연천 총격 등의 도발엔 단호히 대처해 안보를 든든 히 하겠다는 원칙을 먼저 강조하고, 이어 남북 대화 무드는 계속 유지해 2차 고위급회담의 동력을 살리겠다 는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대통령의 입장으로 안다”고 설 명했다. 정부는 지난 4일 황병서 총정치 국장 등 북한 권력 실세 3명이 인천 을 방문해 2차 고위급회담 재개에 전 격 합의한 지 사흘 만에 북한 함정이 NLL을 침범하고, 또 사흘 뒤(10일) 엔 경기도 연천에서 민간단체의 대 북 전단 풍선에 북한군이 총격을 가 하는 등 북측의 엇갈리는 행보에 대 해 가용 정보망을 총동원해 분석해 왔다. 그 결과 김정은 체제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

원회(조평통)가 11일 우리 민간단체 들의 전단 살포와 관련해 “2차 고위 급 접촉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 게 됐다”고 비난한 데 대해서도 “공식 문건이 아닌 개인 필명 차원에서 작성 된 글인 만큼 고위급 대화 합의를 뒤 집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이 관 계자는 풀이했다. 임병철 통일부 대 변인도 이날 “남북 합의는 반드시 지 켜져야 한다. 예정대로 10월 말~11월 초에 일자를 골라 북한에 2차 고위급 접촉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등 민간 단체들은 11일에도 연천에서 대북 전 단 살포를 시도했으나 북한의 도발

13일 통준위 회의서 밝힐 듯 외교가선 실각설 계속 확산 정부는 “권력에 이상 없어” 을 우려한 주민들이 가로막자 오전 11시쯤 경기도 포천시 산정호수 인근 에서 전단을 담은 풍선 1개만 날리고 귀가했다. 김정은의 신병에 대해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북한에서 쿠데타 가 일어났거나, 김정은 권력 체제에 이상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실세 3인의 전 격 방남이나 NLL 침범, 연천 총격은 모두 김정은의 재가를 받아 행해진 조치임이 분명하며 이는 그의 권력 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해준다”는 것 이다. 이어 “김정은이 걸렸다는 통풍 은 금방 낫는 병이 아닌 데다 앓는 와 중에 군사훈련 참관 등 무리한 행보 를 계속하다 발목을 접질리자 외국

의사들을 여럿 불러들여 수술을 받 은 만큼 입원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 의사들은 대부분 돌아 갔지만 11일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온 의사 1명이 북한에 머무르고 있는 것 으로 전해져 김정은은 그에게서 추가 치료를 받으면서 병상에서 집무를 보 고 있는 상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과 일부 미국 전직 관리들이 “김정은이 정신 병을 앓고 있다” “여동생 김여정이 한시적으로 북한을 대리 통치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이 관계 자는 “미국 언론이나 전직 관리들은 북한 정보에 대한 접근 능력이 깊지 않고 성향이 대부분 보수적임을 감 안해야 한다”며 일축했다. 미국 백악 관도 10일 “북한 쿠데타와 관련한 루 머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 은 권력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에선 11일에도 김정은이 모습 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달 3일 모 란봉악단 음악회 참석 이래 38일 연 속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열린 당 창건 기념 전국도 대항 군중체육 대회 폐막식에 최용해 비서 등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사실을 보도하며 북한이 평온한 상황임을 부각했다. 그러나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제목에 김정은의 이름이 3일 연속 전혀 언급 되지 않는 등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 나기도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13일 통준위 회 의를 마치고 14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서 열릴 제10차 아시아·유럽 정상회 의(ASEM)에 참석 차 출국한다. 관계기사 4~5p

북한군 총격의 흔적

10일 경기도 연천에서 날린 대북 전단을 향해 북한군이 쏜 14.5㎜ 고사총 실탄이 군부대 위병소 앞에

떨어져 보도블록이 파인 가운데 11일 오전 현장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오른쪽 분필 표시는 실탄이 떨어져 있던 자리다.

YS, 17일 퇴원  1년 반 만에 상도동 복귀 건강 회복, 대화 가능하고 정치 현안에도 관심 표명 강찬호 기자

폐렴과 합병증으로 서울대병원에 1년6개월 넘게 입원해 온 김영삼 (YS·87그림) 전 대통령이 17일께 퇴 원할 예정이라고 아들인 김현철 한 양대 특임교수가 11일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4월 5일 폐렴 증세로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음식 흡입이 어려운 연하장애와 뇌졸 중 초기 증세 등의 합병증으로 한때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지난해 11월엔 혼수상태 직전까지 가는 등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약 투여 등 집중 치료에 힘입어 지난 2~3 월께부터 호전되기 시작해 지난달 중 순 병원 측으로부터 “퇴원해도 문제 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김 전 대통령은 폐

렴 증상이 완치됐 고, 연하장애와 뇌 졸중 증상도 크게 회복돼 통원 치료로 관리가 가능한 수 준”이라며 “지난달 중순 병원 측과 협의해 퇴원을 결정했 으며 17일께 병실을 떠나 상도동 사저 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퇴원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 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문병 온 인사들이 말 을 걸면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만 큼 힘겨워했던 김 전 대통령이 지난 8 월 말~9월 초부터는 정상적인 대화 능력을 회복해 가족들과 농담도 할 정도”라고 공개했다. 이어 “최근 미 국을 다녀온 뒤 귀국 인사를 했더니 ‘미국 있는 동안 내 걱정은 안 되던

가’라고 웃으며 묻는가 하면 ‘퇴원에 대비해 상도동 집 수리를 마쳤다’고 하자 ‘집 수리만 하고 내 수리는 안 하나’고 농담할 만큼 회복된 상태”라 고 전했다. 그는 또 “김 전 대통령은 입에 음식을 넣으면 가래가 나오는 연하장애(삼킴장애)로 인해 코에 연 결된 호스로 유동식을 먹어야 했으 나 지금은 호스를 떼고 입으로 식사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의 의식이 정상으로 돌아옴에 따라 한 달 전부터 비서진 이 매일 정치 현안을 보고하고 있으 며,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경청하며 깊 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김 교 수는 “퇴원한 뒤 안정을 찾으면 언론 과 인터뷰를 하며 (정치 현안에 대 해) 언급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 했다. 3p에 계속

S Magazine

강수진표 발레 실험 지난 2월 취임한 국립발레단 강수진 (47) 예술감독의 첫 레퍼토리가 16 일 막을 올린다. ‘교향곡 7번’과 ‘봄 의 제전’은 강수진 감독이 30년간 몸담았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클래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소 낯선 모던 발레다. 무 용수들에게 색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히느라 여념이 없는 강 감독을 찾 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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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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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사설

Inside

남북관계, 냉정차분하게 접근해야

Column 김미경의 마이웨이 그림 그리는 과정을 예술로 만든 남자

그림 감상이 아니다. 그림 그리기 감상이다. 세계 최초로 드로잉쇼를 만들어 낸 김진규 예술감독. 빈곤·우울증·공황장애를 이겨내고 그가 시작한 ‘미친 짓’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K아트가 됐다. 24p Special Report

자판 멀리하고 펜 드는 사람들 손 글씨에도 체온이 배어 있는 걸까. 차 가움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시대, 만년 필을 들어 글을 쓰는 사람이 늘었다. 어떤 타이핑으로도 나올 수 없는 멋스 러운 글씨체들도 각광받고 있다. 손 글 씨의 매력을 들여다봤다. 14~15p Money & Biz

Column

시진핑 시대 7% 성장의 비밀

세상을 바꾼 전략 ②

중국의 ‘개혁·개방’은 경제를 성장시 켰지만 ‘분배’는 중국을 발전시킨다. ‘영웅’(덩샤오핑식 성장)을 죽이고 개혁을 선택한 중국의 미래는? 디플 레 우려에 빠진 유로존의 앞날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18~19p

다수결은 국민의 뜻인가 50%만 넘으면 다수결로 국민적 합의 를 본 것인가. 아니면 만장일치를 봐 야 하나. 뭐가 더 민주적인가. 또 각각 의 제도에서 나타나는 전략적 행동을 통해 그 답을 구해 본다. 28p

알림

최근 일주일 새 남북한 간에 벌어진 사태들을 지켜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북한은 10일 경기도 연천에서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14.5㎜ 고사총 10여 발을 남쪽으 로 발사했다. 우리 군도 이에 맞서 북쪽을 향 해 K-6 기관총 40여 발을 대응 사격했다. 이 에 앞서 지난 7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을 넘어온 북한 함정과 이에 맞선 우리 해군이 경고사격을 주고받았다. 평화를 외치다가도 순식간에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남북 한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들이다. 지난 4일 북한 고위 대표단의 인천 방문을 계기로 모처럼 조성됐던 남북 해빙 분위기도 다시 싸늘해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1일 “우리의 존엄 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는 전단 살포로 남북이 합의한 제2차 고위급 접촉이 물 건너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김정은의 장기 부재를 둘러 싸고 난무하는 갖가지 설(說)이 상황을 불투

제5회 일하는 사람 사진 공모전이 개최됩니다. 노동의 아름다움을 전 국민과 함 께 나누기 위한 이번 공모전은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고용노동부, 캐논코리아, 중 앙SUNDAY가 후원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월별 수상자에게는 캐 논카메라 EOS 700D 등 푸짐한 경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응모를 원하시는 분은 우리 주변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짧은 사연과 함께 공모전 사이 트(http://pic.joins.com/workpeople2014)에 게재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올려 주신 사진 한 장 한 장이 많은 사람에게 노동의 참의미를 되새겨줄 것입니다. 기간

2014년 9월 ~ 2015년 8월까지

참여방법

일하는 사람을 주제로 한 사진을 공모전 사이트에 사연과 함께 등록

주최/주관 후원

고용노동부, 캐논코리아, 중앙SUNDAY

문의

e메일 contest@joongang.co.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workpeople2014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1 고민 더 필요한 공무원연금 개혁

극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북핵 불용 원칙 아 래 굳건한 안보 태세를 다지는 동시에 한반도 긴장 완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자는 것이 다. 내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통일준 비위원회 2차 회의가 우리의 그런 의지를 천명 할 좋은 기회다. 이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1일 “가능한 한 북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남북교류협력대화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 있다. 또 10일 우리 군 이 북한군 고사총 발사 상황을 분석하고 경고 방송에 이어 제한적인 사격을 가한 것 역시 긴 장 관리를 위한 대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위기는 미리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우 연이나 순간적 판단 미스에 의해 전체 일을 그 르치는 경우를 역사에서 숱하게 봐 왔다. 남 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에피소드에 그칠 작은 일들이 통제 불능의 대형 사태(事態)로 비화 해선 안 된다. 남북관계의 큰 흐름은 역시 평 화 안정과 교류 협력을 향해 흘러가야 한다.

에볼라 사망 4033명  3~4주마다 환자 배로 증가 감염 공포 전 세계로 확산  아프리카컵 축구대회 연기할 듯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제5회 일하는 사람 사진 공모전

명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몇몇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다시 소모적인 대결과 갈등의 원점으 로 되돌아가면 안 된다고 본다. 남북 모두 대 화가 절실한 시점인 만큼 좀 더 냉정하고 차분 한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은 모험주의적인 군사 도발이 전략적 우위를 가져온다는 허망을 버려야 한다. 북한 권력 실세들이 방남한 이상 대화의 의지와 진 의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가자” 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말이 단순한 교란전술이 아니라면 말이다. 북한은 이번 기 회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 는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인식하고 그에 상응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상황을 냉철히 지켜보면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 발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하되, 불필요한 자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 세계에 서 4000명을 넘어섰다. 감염 환자가 아프리카 대 륙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발생해 에볼라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10일(현지시간) 세계보 건기구(WHO)를 인용해 “8일까지 에볼라 바이 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7개국 8399명에 달하며 이 중 403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 르면 라이베리아에서 2316명이 사망해 가장 많 았고 시에라리온 930명, 기니 778명을 기록했다. 이들 서아프리카 3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 서의 희생자 수는 9명이었다. 나이지리아인 8명, 미국인 1명이다. 특히 미국에선 최근 라이베리아를 방문한 것 으로 확인된 환자가 8일 숨지면서 보건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국은 이 환자와 접촉했던 주변 인물 50여 명의 감염 여부에 대해 정밀조 사를 벌이고 있으며 이 중 4명을 격리 조치했다. 스페인에서는 최근 간호사가 에볼라 환자 치 료 중 감염된 사례가 보고됐다. 이 간호사는 아 프리카 이외 지역에서 감염된 유럽 내 첫 환자로

하지만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0억 달 러(약 1조700억원)를 목표로 유엔이 모금하고 있는 에볼 라 확산방지 기금은 현재까지 목표액의 25%가 모였을 뿐이 다. 미 의회는 에볼라 퇴치를 10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 응급구조대원이 에볼라 의심환자 위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수송을 위해 특수복과 방독면을 착용하고 대기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요청한 국방예산 전용 요구안 중 7억5000만 달러를 승인했 현재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에볼 다. 당초 오바마 행정부가 요청한 10억 달러에서 라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했다. 브라질 보 2억5000만 달러는 보류됐다. 미 국방부는 이를 건당국은 “환자는 기니 출신의 40대 남성으로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치료시설 건립 등을 지 병원에서 정밀 검진과 함께 치료를 집중적으로 원하는 미군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에볼라 확산으로 국제축구대회인 ‘2015 아프 유엔에 따르면 각국 보건당국의 노력에도 불 리카 네이션스컵’이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구하고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3~4주마 언론들은 대회를 유치한 모로코 정부가 내년 1 다 배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나 월 열릴 예정인 이 대회를 연기해 달라고 아프리 바로 유엔 에볼라대책 조정관은 “에볼라 바이 카축구연맹(CAF)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 러스의 확산이 꺾이지 않고 점점 기세를 더하고 다. 모로코 정부는 “아프리카 각국의 선수와 응 있다”며 “더욱 강화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상 원단이 몰리는 통에 에볼라가 더욱 창궐할 가능 황”이라고 말했다. 성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2 잠재력에 투자하는 이스라엘, 실적에 투자하는 한국 3 “나도 피해자” 우기던 푸이, 일제 만행 확인하고 통곡 4 아시안게임 유감 5 페달 활용하면 실수 덮을 수 있지만 왠지… sunday.joins.com

한·일 경제 수장들 2년 만에 다시 만난다 도쿄 재무장관 회의 합의  최경환 부총리 한일관계, 정치와 경제 분리

ch15 하이라이트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박태희 기자 adonis55@jongang.co.kr

‘낭랑 18세’를 부른 가수 한서경이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공수한 제철 해물로 집 밥 식구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한서경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은갈치 조림과 성게 보말국, 씻은 묵은지찜을 준비해 역대 최강의 집밥을 선사한다.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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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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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재무장관회의가 2년 만에 재개된다. 국제 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 획재정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아 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 면 담하고 이같이 합의했다. 양국 재무장관이 따로 만난 것은 2012년 11월 박재완 장관과 조지마 고 리키 재무상의 면담 이후 2년 만이다. 이번에 양측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일본 도쿄에서 만나 양국의 각종 정책현안을 협의하 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최근 한국 정부의 경제 동향과 정책 방향 등을 소개했고, 아소 부총리도 소비세 인상 등 일본 경제의 주요 이슈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총리 는 또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부조화에 따른 금

최경환 경제부총리(오른쪽)가 10일 워싱턴에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융시장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 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것 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일본 통화정책의 향방 과 엔저 현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완곡하게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재무장관회의는 2006년부터 특별한 사 정이 없는 한 매년 1회 양국에서 번갈아 개최하 며 2012년까지 다섯 차례 열렸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 등 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다. 한·일 재무장관회의가 재개되면 부총리를 수석 대표로 기재부 1차관과 분야별 담당 국장 등으 로 구성된 대표단이 일본 대표단을 만나 경제정 책·예산·세제·금융·국고 등 양국의 현황과 주요 이슈를 논의하게 된다. 이에 앞서 최 부총리는 워싱턴 주재 한국 특 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유 때문 에 한·일 관계도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며 “정경 분리 입장에서 정치는 정치대로 풀어나가는 노 력을 계속하고 경제관계는 양국 간 협력할 수 있 는 부분을 협력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을 (아소 다로 부총리에게)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News 3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막 오른 ‘개헌 프레임 전쟁’ 의미와 전망

대통령 블랙홀 논리에 국민 70% 개헌 논의해야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 회원 155명 (가나다순)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새누리당 (58명) 강기윤, 강석호, 권성동, 김동완, 김성찬, 김영우, 김용 태, 김을동, 김장실, 김재경, 김정훈, 김제식, 김종훈, 김태호, 김학용, 김한표, 김회선, 나성린, 박덕흠, 박명 재, 박민식, 박상은, 배덕광, 신동우, 신성범, 신의진, 심 재철, 안덕수, 안효대, 여상규, 염동열, 원유철, 윤명희, 이군현(간사), 이명수, 이병석, 이에리사, 이이재, 이인 제, 이장우, 이재오(고문), 이주영, 이한구, 정갑윤, 정병 국, 정우택, 정의화, 조명철, 조해진, 주영순, 주호영, 진 영, 최봉홍, 하태경, 함진규, 홍문표, 홍일표, 황진하

새정치민주연합 (95명)

헌법 개정, 어떻게 하나

거론되는 새 헌법개정안

1.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 2. 국민 알 권리 충족 위해 20일 이상 헌법개정안 공고 3. 국회 의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필요 4. 의결 후 30일 이내 국민투표: 만 19세 이상 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 필요 5. 확정된 개정안 대통령 공포

1. 분권형 대통령제 국민 직선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국민통합 담당 국회 선출 국무총리가 그 외 일반 행정 담당 2. 4년 중임제 대통령 임기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고 재선 가능 3. 분권형 국회(양원제) 민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지역대표) 상호 견제

여론조사 결과 논의 시기엔 이견 박 대통령 경제 우선 강조하지만 여의도선 제2 민주화 운동 공세

박근혜 정부 2년차 후반기인 2014년 10월, 개 헌론이 또 등장했다. 그런데 과거와 여건이 다르다. 국회에서 먼저 일어났고, 이에 동조 하는 의원 수만으론 개헌선(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것처럼 보인다. 여야 의원 155명으로 구성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 임’이 선봉에 있다. 이들은 1일 “이달 중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 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개헌에 반대할 강력 한 차기 주자도 없다. 국가개조 여론이 높은 데다 총선·대선 국면이 본격화되기 전이어서 내년 상반기까지 “하늘이 준 기회”라는 게 개헌론자들의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반대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키면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 킬 수 있다”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개헌론자들 은 “국회의 개헌 논의는 대통령이 간섭할 수 없는 사안”이란 입장이다. 청와대와 국회가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강창일, 권은희, 김경협, 김관영, 김광진, 김기식, 김 동철, 김민기, 김성곤, 김성주, 김승남, 김영록, 김영 주, 김영환, 김용익, 김윤덕, 김재윤, 김춘진, 김현, 노 영민, 노웅래, 문병호, 문희상, 민병두, 민홍철, 박남춘, 박민수, 박범계, 박병석, 박수현, 박영선, 박완주, 박 지원, 박혜자, 배재정, 백군기, 백재현, 변재일, 부좌 현, 설훈, 신경민, 신기남, 신학용, 심재권, 안민석, 양 승조, 오영식, 오제세, 우윤근(간사), 원혜영(고문), 유 대운, 유성엽, 유인태(고문), 윤관석, 윤호중, 윤후덕, 이목희, 이미경, 이상민, 이상직, 이석현, 이언주, 이원 욱, 이윤석, 이종걸, 이찬열, 이춘석, 이학영, 인재근, 임내현, 임수경, 장병완, 전병헌, 전순옥, 전정희, 전해 철, 정성호, 정호준, 조경태,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최규성, 최동익, 최민희, 최원식, 최재성, 추미애, 한정 애, 홍영표, 홍의락, 황주홍, 강기정, 신정훈, 김기준

정의당 (2명) 중앙포토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내각제론자였 다. JP는 1997년 대선 정국에서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하면서 내 각제 개헌을 약속받았다. 집권 2년 뒤 개헌을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DJ는 약속을 지키 지 않았다. DJ정부 초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변호사는 8일 중앙SUNDAY의 통화에서 “야당이 반대해 국회에서 개헌선이 확보되지 않았다. JP도 나에게 ‘국회 과반도 안 되는데 어떻게 개헌이 되느냐’고 했다. 현 실적으로 개헌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 었다”고 말했다. 내각제 개헌론은 JP의 부침 과 함께 정치권에서 사실상 소멸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09년 하반 기, 집권 2년차 후반에 개헌을 처음 언급했 다. 하지만 직접 드라이브를 걸진 않았다. 2010년 특임장관에 임명되면서 그를 대리해 개헌을 추진한 이재오 의원이 밝힌 속내는 이렇다. “MB는 임기 중 12차례나 개헌을 이 야기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고 싶어 했지 만 대통령이 개헌 방향을 정하는 것보다 국 회 논의를 지켜보는 게 맞다고 봤다. 하지만 여당 반대가 더 심했다.” 박근혜계는 개헌론 이 박근혜 대표의 입지를 흔들려는 게 아니 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정권 초엔 대 통령 눈치를 보느라 못하고, 임기 말엔 유력 대선주자 눈치를 보느라 못한다”는 ‘개헌 무 산의 법칙’은 이때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여야 핵심에 개헌론자 두루 포진 정기국회 뒤 특위 구성할 가능성

대통령국회 서로를 개조 대상으로 여겨 박 대통령의 발언에 거세게 반격한 건 새정 치민주연합이다. “청와대가 의회민주주의의 블랙홀”(문희상 비대위원장), “제왕적 대통 령이 국가 발전의 싱크홀”(박지원 비대위원), “지금이 개헌의 골든타임”(원혜영 정치혁신 실천위원장)이라는 말이 잇따랐다. 새누리당은 한발 물러섰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8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세월호특별 법 논의가 끝나면 이 문제(개헌 논의)를 시작 할 때”라고 했다. 그러다 지난 1일 기자간담 회에선 “개헌 논의는 이번 국회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며 말을 바꿨다. 이어 박 대통령의 ‘블랙홀’ 발언이 나오면서부터 개헌에 대한 언급을 삼간다. 이재오 의원과 일부 친이계 만 “개헌은 제2의 민주화 운동”이라며 공론 화에 적극적이다. 결국 개헌 특위 구성은 늦춰질 전망이다. 9일 당선된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안에 개헌 특위를 구성하자”며 독 촉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가 응하지 않을 가 능성이 크다. 다만 정기국회 이후엔 특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개헌론자들이 각 당 핵심 에 고루 포진해 있어 특위 구성 자체가 무산 되긴 어렵다. 새누리당 김태호·이인제 최고위 원, 이군현 사무총장 외에 새정치연합에서도 문희상 비대위원장, 박지원 비대위원,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가 개 헌모임 소속이다. 문제는 그 뒤다.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 우선 대통령과 국회의 생각이 다 르다. 의원 중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 독식 구도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며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이가 많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4년 중임제’ 를 주장해왔다. 여당 일각선 야당 개헌론 진의 의심 서로를 개조의 대상으로 보는 근본적인 입장 차도 있다. “일하지 않는 의원은 세비를 반납 해야 한다”며 국회를 비판해온 박 대통령으 로서는 국회 주도로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

는 개헌이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국회 안에서도 조율이 필요하다. 친박계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우 원내대표는 “의 원 중엔 분권형 대통령제 추진파가 다수지만 4년 중임제 주장도 상당하다”며 “추진 시기 도 내년이 다수지만 2016년 또는 2017년에 하 자는 의견도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현행 헌법은 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 이다. 장기 집권을 견제하는 데 치중했다는 평이 많다. 당시 개헌 협상에 참여했던 이중 재 전 의원은 “상식적으로는 4년 연임제가 맞 지만 양김(兩金, 김영삼·김대중)은 8년 임기 로 이어질지 모르는 제도에 의해 상대방이 당선되는 걸 꺼렸다”고 밝힌 바 있다. 여당 일각에선 개헌론의 진의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야당의 개헌 추진엔 정국 주도 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개헌이 성공한다면 대선 구도는 확 바뀐 다. 분권형 개헌이 되면 유력 주자 간 합종연 횡이 가능하다. 정치권은 반기문 유엔 사무 총장과 다른 주자가 결합하는 분권형 모델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 또한 개헌이 가능했을 때의 이야기다. 스스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과거 거듭된 실패로 인한 학습효과 때문에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도 많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병준 국민대 교수는 개헌을 ‘판도라의 상자’ 라고 표현한다. 그는 인식론 수준의 개헌론을 현실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들 개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논의가 시작되 면 진영 논리로 들어간다. ‘나는 노무현이 싫 으니 노무현이 말하는 개헌도 싫다’고 한다.

서기호, 김제남 자료: 새정치연합 우윤근 의원실(10월 2일 기준)

결국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동력이 분산되 니 대통령과 여야 모두 개헌 논의에 적극 참 여해야 한다.” 개헌 논의하면 기본권 강화도 다뤄야 관건은 국민의 마음을 누가, 어떻게 얻느냐 다. 국회가 개헌에 속도를 낸다 해도 결국 국 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박 대통령도 국민 여 론이 개헌으로 기울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 다. 이 때문에 향후 민심을 얻기 위한 프레임 전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재로선 박 대통령의 ‘블랙홀’ 프레임 이 여야 개헌론자들의 ‘제2의 민주화 운동’ 프레임을 누른 형국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 문업체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3%가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도 시기에 대해선 38.4%가 “내년 이후로”라 고 답했고, 31.9%가 “올해 안에”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을 1년도 남기지 않고 4년 연임제로 바꾸자 는 ‘원 포인트(One Point) 개헌’을 제안했을 때 대선 정국을 흔들려는 ‘꼼수’로 규정하고 ‘참 나쁜 대통령’ 프레임으로 받아쳤다. 지금 일고 있는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에 만 초점을 맞춘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국회 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 철수(헌법학)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회는 대 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안에 집중하고 국 회 권한을 분산하는 양원제 개헌엔 소홀하 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 하는 개헌도 필요하니 국민도 개헌에 적극적 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올해가 이르다면 내년 국회의원 선거 때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YS, 83년 단식 뒤 입원한 병실서 치료  상도동집 계단 없애고 리프트 설치 1면에서 계속

현재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이인 제·김태호 최고위원 등 지도부 5명 중 4명(1 명은 여성 몫으로 당선된 김을동 최고위원) 이 김 전 대통령 문하에서 정치인으로 성장 한 상도동계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 친이계 리더인 이재

오 의원 등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15 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으로 정계에 입문 한 YS계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민정수석·내무부 차관 등을 지낸 김무성 대표는 지난 8월 20일 관훈 클럽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이) 큰 업적 을 많이 남겼지만 여론조사에서 가장 저평가 된 대통령으로 나와 안타깝다. 언젠가는 역

사가 제대로 평가할 것”이라며 “7·14 전당대 회에서 당선되고 일주일쯤 뒤에 병실을 찾아 가 누워 있는 김 전 대통령에게 큰절로 인사 드렸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퇴원을 앞두고 상도동 사저 에선 입구의 계단을 없애고 휠체어용 승강기 (리프트)와 레일(난간)을 설치해 실내 통행 과 재활치료에 지장이 없도록 공사가 마무리

된 상태라고 김 교수는 전했다. 376.9㎡(114평) 규모인 사저는 김 전 대통 령이 69년부터 45년간 살아온 곳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 김종필 전 총리의 청구동 사저와 함께 ‘3김 정치’를 상징해온 현장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재산 50억 원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면서 사저를 김영삼 민주센터에 기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서울대병원 본관 12층 VIP 병실은 그가 83년 민주화를 요구하 며 23일간 단식한 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 제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김 전 대 통령도 문병 온 인사들에게 “이 방이 내가 단 식하다 실려온 바로 그 방이라고 한다. 나와 인연이 깊은 방”이라 얘기하곤 한다고 김 교 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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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김정은 잠행 38일째 북한 전문가들 진단은

김정은의 신진 엘리트들이 체제 이끌어 가는 듯

북한 노동당 창건 69주년인 10일 학생들이 평양대극장 광장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김정은은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지 37일째인 이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재가 장 기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공연에 참석한 이후 40일 가까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동당 창건 69주 년인 10월 10일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 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도 걸렀다. 이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건강 이상 설이 유력한 가운데 쿠데타설, 여동생 김여 정의 대리 통치설 등도 떠돌고 있다. 이어 북한 함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경고사격,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한 사 격으로 긴장이 고조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내부에 어떤 일이 벌 어지고 있는지, 김정은이 정권을 제대로 유지 하고 있는지, 향후 남북한 대화는 어떻게 진 행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1일 북한 문제 전문가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와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 원을 만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분석을 들어봤다. -김정은이 38일째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 러내지 않고 있다. 고유환=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사실로 보인다. 병명이나 치료 기간이 문제다. 유고 라든지 치명적 상태라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 김정은의 가장 큰 적은 아마도 자기 자신일 것이다. 김광진=발이 아픈 것은 확실하다. 외부 적인 타박이나 충격 등 부상을 통한 것이 아 니고 고도비만이나 지병으로 인한 증상이다. 문제는 아픈 정도와 치료 경과다. 황병서 등 고위급 3인방을 남쪽에 내려보낸 것은 김정 은만이 결심할 수 있는 일이다. 통치 상태에 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당 창건 기념일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어 떻게 봐야 하나. 김광진=아픈 몸이라 육체적 활동이 원 활하지 않아 당연히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김정은은 자신의 왕성한 활동을 실 시간으로 북한 주민과 외부세계에 알려 왔 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그가 아프지 않았 다면 당연히 나왔어야 할 행사다. 고유환=당 창건 기념일이라고 항상 최 고지도자가 참석한 건 아니다. 전례에 비춰 보면 ‘꺾어지는 해(5 또는 0으로 끝나는 해)’ 등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해인 경우 대체 로 나온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나. 고유환=김정일은 북·미 간 긴장 국면 때 삼지연 지하벙커에 머물면서 장기간 은둔할 때도 있었다. 김정일은 자주 그랬다. 그때마 다 여러 가지 설이 나돌았다. 김광진=김정일은 1994년 7월 20일 김일 성 영결식에 등장한 후 87일간 공식석상에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통치 상태엔 문제 없어 보이지만 건강상태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김정은 통치 스타일 굴곡 심해 냉·온탕 오가는 새 도발 가능성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다. 2008년 8월에도 50 여 일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뇌졸중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초췌한 모습이라 도 자신의 건재한 모습을 꼭 보여줘야 할 필 요가 있을 때는 대중에 나타났다. 한번은 김 일성종합대 수영장에 발을 질질 끌고 나온 적도 있었다. -김정은 부재 시 정권은 어떤 식으로 운영 되는가. 고유환=김정은 체제는 한 사람이 움 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6~2007년 후계 과정을 준비하면서 그를 떠받치는 그룹을 이미 양성했다. 김정일 사 후 그들이 바로 권력을 장악하고 김정은을 옹립해서 북한 체제를 움직이고 있다. 상층 부 최고위직은 새로운 통치 엘리트 위에 있는 인물들이다. 40대 중후반 인사들이 실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더라. 김광진=여동생인 김여정 대리 통치설이

나돌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불가능 하다고 본다. 고유환=대리 통치설은 김정은이 모든 것을 혼자 하고 있다는 관점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외부세 계에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당의 부부 장급이랄까 새롭게 부각되는 인물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 북한 체제는 최고지도자 뜻 에 따라 움직인다. 황병서 등 군·대남·당의 책임자를 남쪽에 내려보냈다는 것은 남북 한 관계 복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극적인 반전을 통해 꺼져가는 불 씨를 살려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거꾸로 보면 그 일꾼들이 “우리를 살려달라”고 호소 하기 위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2월 고 위급회담에서 상호비방 중지가 약속됐는데 그 이후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당시 협상 담 당자들이 최고지도자는 물론 신진 엘리트들 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는 대상이 될 수도 있 기 때문이다. -쿠데타설은 근거 없는 것이라 보나. 고유환=그래서 고모부인 장성택을 정리 한 게 아닌가. 누구라도 대들면 그렇게 된다 는 것을 보여준 거다. 북한 권력 내부의 쿠데 타나 반란보다는 이익 갈등을 주목해서 봐 야 한다. 장성택이 최종적으로 정리되는 것 도 권력 갈등과 이익 갈등이 결합된 문제였 다. 북한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라 하지만 국 가자본주의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누가 이권 부서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권력이 그쪽으로 쏠리게 돼 있다. 내부의 쿠데타도 새 세력이 기득권 이익집단을 흡수할 수 있어야 가능한 데, 지금은 그런 힘을 가진 세력이 없다고 봐 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사회 내에서 의 신흥 시장세력이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북 전단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거나 붕괴시킨다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체제 결속을 강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김광진=쿠데타나 감금, 이런 것들은 없 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이 정상적인 통치 행 위를 하고 있다. -그래도 김정은의 부재가 장기화되면 북한 에 동요가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김광진=당연히 그렇다. 김정일 때도 봐 왔지만 최고지도자 수뇌부의 공개활동은 북 한 통치, 그리고 나아가 외부세계에 주는 메 시지 의미가 대단히 크다. 김정은이 혹시 병 이 악화돼 부재가 장기화하면 그 파장이 엄 청 클 것이라 본다.

[신화=뉴시스]

고유환=우리 사회는 북한 지도자의 건 강 변수를 급변사태로 연결해 보는 관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김정일 뇌졸중 이후 급변사태론이 부각됐다. 김정일이 죽으면 북 한도 붕괴될 거라 봤고, 거기서 기다리는 전 략이 나온 거다. 그런데 지금 다시 김정은 때 문에 다시 건강 변수가 나올 수 있게 됐다. 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김정은의 최대 적은 자신일 것 현재로선 건강 이상설이 유력 대북 전단으로는 북한 못 바꿔 내년 2월까지가 관계 복원 기회

러다 보면 시간을 다 놓친다. -향후 남북관계 전망은. 김광진=북한은 고위급 접촉을 통해 자 기들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해결하려 할 것이 다. 경비정을 NLL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것 이나 대북 전단 풍선에 사격을 가하는 행위는 우리의 뜻을 떠보기 위한 전술일 수 있다. 김 정은의 통치 스타일은 굴곡이 심하다. 냉·온 탕을 왔다 갔다 한다. 그가 이를 어떻게 반복 할지도 중요한 변수다. 하지 않던 행동도 많이 하고 있다. 새로운 도발이 있을 수도 있다. 고유환=NLL을 의제화하기 위한 도발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풍선 사격의 경 우 북한이 그동안 수차례나 원점타격 경고를 해온 점을 미뤄 본다면 상응하는 조치가 필 요했던 것 같다. 이를 고위급회담과 연결 짓 는 것은 무리다. 확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어떻게 수습하느냐다. 간단치 않다. 2차 고위급 접촉에서도 서로 운신의 폭

은 크지 않을 것이다.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김광진=큰 틀에서 보면 지금은 남북관 계의 전환점이다. 판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북이 해달라는 대로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북 한은 우리에게 대북 전단을 날리지 말고 최 고 존엄을 모독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도 포함시킬 것이다. 하 지만 쉽게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유환=접점을 찾기 어려워지면 각자 주 권국가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5 년과 박근혜 정부 1년6개월을 지나면서도 남 북관계 복원이 되지 않고 있다. 신뢰는 꾸준 히 쌓아나가야 하는 것인데 한번 틀어지면 다 시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박근혜 정 부에서 복원이 어렵다면 상당 기간 두 개의 국가로 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이 분기점인 것 은 분명하다. 북도 분기점이라고 보고 대반전 을 꾀하기 위해 온 거다. 박근혜 정부는 곧 임 기 3년차에 접어든다. 내년 3~4월에 또 한·미 군사훈련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내년 2월 사이에 틀을 마련하지 못하면 어렵다. 김광진=북한은 수령 절대주의 국가여서 수령 권위와 타협하지 않으면 어렵다. 타협 안 하면 대화란 있을 수 없다. 김씨 왕조와 정치적 으로 타협하느냐 마느냐가 본질적인 문제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김광진=북한의 요구는 대북 전단 하나 만이 아니다.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 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거다. 우리 가 이것을 한꺼번에 다 수용하기는 어렵지 않 겠나. 우리가 수용한다 해도 북한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까.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하 지만 북한의 지금 전략이나 행태를 보면 기 대하기 어렵다. 고유환=우리 정부도 대북 인식을 정리 해야 한다. 북한을 국가보안법상으로는 반국 가단체로 보고, 남북 기본합의상으로는 잠 정적 특수관계로 본다.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두 개의 주권국가라는 관점도 있다. 지금 대 북 전단을 막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본다는 것이다. 그 렇다면 북한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는 거다. 적어도 대화하고 관계를 설정하려면 우리 내 부의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북한과의 관계 복원 의지가 있으면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지금이 중대 기로인데 어떤 방향성을 잡느냐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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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김정은 잠행 38일째 노동신문 지면 분석해 봤더니

김정은 사진 게재‘0’ 최근 사흘 연속 제목에도 이름 없어 <10월 5~7일>

최민우 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minwoo@joongang.co.kr

북한의 4대 국경일의 하나다. 노동신문은 이 날을 기념하는 사설을 1면에 실었다. 김일 성-김정일 부자 사진이 정면에 크게 실렸다. 지난해 판박이다. 지난해 신문을 그대로 내 보낸 듯하다. 하지만 2면은 다르다. 지난해 2 면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 께서 조선로동당 창건 68돌에 즈음하여 금 수산 태양궁전을 찾으시었다’란 제목과 함 께 하단에 김정은이 주요 인사를 이끌고 참 배하러 걸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실었다. 반면 올해 노동신문 2면엔 김정은 대신 김일 성과 김정일의 생전 모습들만 화보로 메워 져 있다. 김정은의 ‘실종’은 11일자에도 이어진다. 신문은 전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장, 박봉주 내각 총리,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전했지 만 김정은에 대해선 ‘꽃바구니를 보냈다’고 만 언급했다. 김정은이 참배하지 않았음을 공식 확인해준 셈이다.

북한 김정은의 장기 부재를 노동당 기관지이 자 북한 매체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가진 노 동신문은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와 중앙SUNDAY는 김정 은이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9월 4일부터 10 월 11일까지 38일치 노동신문을 살펴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김정은에 대한 언 급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했다. 1950~80년 대 미국 정보기관이 철의 장막에 싸인 소련 의 최고지도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모스 크바 관영매체인 프라우다나 타스 통신 기 사를 한 자 한 자 분석하며 행간을 추적했던 ‘크렘리놀러지’(Kremlinology)의 북한판 인 셈이다. 분석 결과 김정은의 장기 부재는 노동신문 지면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38일 동안 신문 1면 제목에 ‘김정은’이 언급되지 않은 날이 16일에 달했다. 아예 노동신문 전체 6면 에 걸쳐 제목에서 김정은이 한 번도 언급 되지 않은 적도 7일이나 된다. 이 가운 데 10월 5~7일은 연속으로 ‘김정은’ 2013년 10월 10일자 2면 이 사라졌다.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김정은 동지가 금수산궁을 해 같은 기간엔 김정은이 전혀 언급 찾으시였다’란 제목과 함께 되지 않은 기간은 4일뿐이었다. 걸어가는 모습을 실었다. 지면의 절반을 채울 만큼 큰 사이즈 로 게재돼 온 김정은 사진도 9월 3일 모란 봉악단 음악회 관람 모습을 게재한 4일자 이 후로 37일간 사라졌다. 대신 그가 국내외에 서 한·선물을 보냈거나 외국 고위 인사들로부터 축전을 받은 소식은 1면에 집중 소개됐다. 과 거엔 주로 2∼4면에 실렸던 내용이다. 활자로 라도 김정은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뒷면에 싣던 편지선물 기사 1면에 등장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 69주년 으로 김일성(4월 15일)과 김정일(2월 16일) 생일 및 공화국 창건일(9월 9일)과 더불어

당 창건일에도 김정은 소식 실종 김일성김정일 사진으로 12면 메워 9일엔 ‘건강 축원’ 축전 1면 배치

창건일 전날인 9일자 보도도 흥미롭다. 1 면 왼쪽 상단에 해외 축전 소식을 소개했다. ‘팔레스티나 국가’(북한에서 팔레스타인을 일컫는 명칭) 대통령과 주 평양 외교단이 김 정은에게 꽃바구니와 축하 편지를 보낸 사 실을 연달아 보도했다. 지난해 이와 유사한 기사는 2면에 실렸던 만큼 비중이 높아진 셈 이다. 눈길을 끄는 건 “꽃바구니 댕기에는

는 3면에 배치했다. 김정은이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신문이 왜 ‘살 아있는 권력’을 우선해온 지난해까지의 편집 스타일을 뒤집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신문이 평상시 같으면 김정은이 다뤄 질 게 분명한 지면에 김일성·김정일 관련 기 사를 싣는 현상은 지난달 초순부터 여러 군 데에서 발견됐다.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백두혈통’을 강조해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일 장기 잠행 때는 사진은 게재 김정은 사진이 37일간 한 번도 실리지 않 10월 8일은 3년 전 숨진 김정일이 당 비서에 았다는 점도 과거 김정일과 대비되는 부분이 추대된 지 17주년 기념일이다. 노동신문은 1 다. 김정일도 2008년 8월 15일부터 10월 5일 면에 김정일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설을 실었 까지 50여일간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적이 있 고, 2면엔 관련 중앙보고대회를 게시했다. 하 다. 하지만 당시 노동신문은 8월 25일과 9월 지만 지난해 같은 날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9일 김정일의 과거 활동 사진을 소개했다. 활동상을 전면에 부각했다. 1면과 2면에 걸 지난해 같은 기간 노동신문 1면을 주로 장 쳐 김정은이 국가과학원 중앙버섯연구소를 식한 건 김정은 현지 지도 사진이었다. 김정 방문하는 모습을 실었다. 김정일 관련 기사 은이 노동자나 주민을 격려하고 화통하게 웃 는 모습이 12회 실렸다. 올해 그 자리를 대체 한 게 김정은이 편지나 선물을 보냈다는 기사다. ‘서신 통치’인 셈이다. “‘고산 과수농장’에 보내신 선물”(9월 5일), 2014년 10월 10일자 2면 “고 김남오 영전에 화환을 보내시였 김정은이 사라지고 다”(9월 12일) 등이다. 9월 20일자엔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전 사진 초급 일꾼대회 참가자들이 김정은에 11장으로 편집돼 있다. 게 보낸 서한도 1면에 실렸다. 과거라 면 2면 이후에 실릴 기사들이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노동신문이 ‘외 국 인사들이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냈다’ ‘김 정은이 국내외에 서한이나 선물을 보냈다’ 는 기사를 1면에 집중적으로 전진 배치하고 있다. 김정은의 장기 공백과 관련한 의혹을 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9월 16일자와 10월 1일자 1면에 ‘김정 은이 노작을 출판했다’는 기사가 실린 건 그 의 신변에 큰 이상이 없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라며 “김정은의 활동은 노동신 문이 조작해서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 각하의 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글발이 씌어져 있었다”라 는 말미 대목이다. 두 기사에 동시에 적시돼 있다. 지난해엔 없었던 내용이다. ‘김정은 건 강 이상설’이 공공연히 퍼져 있는 현 시점에 서 이런 문구를 썼다는 점, 1면 톱기사로 예 년에 비해 비중 있게 보도한 점 등은 김정은 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의식해 ‘외국 요인들 의 김정은 건강 기원’을 의도적으로 부각했 다는 분석이 나온다.


6 Focus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검찰이 불붙인‘사이버 망명’

카톡 사찰보다 두려운‘실시간 감청’ 가능 vs 불가 팽팽 카카오톡이 불신의 중심에 놓였다. 계속되는 검열·감찰 의혹에 다음카카오는 최근 보안을 강화하는 ‘외양간 고치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메시지 서버의 보관 주기 를 기존 3~7일에서 2~3일로 줄이고 수신 확인된 메시지가 사라지는 ‘비밀 대화’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카카오톡에 대한 감청 요청(통신제한조치)이 지난해 86건, 올 상반기 61건 있었다는 등의 ‘투명성 보고서’까지 공개했지만 이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카카오톡이 이토록 이용자들의 미움을 사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카카오톡의 추락  25일 동안 무슨 일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

9월 16일

18일

20일

10월

22일

25일

1일

6일

7일

8일

9일

텔레그램 한국인 이용자 100만 명 돌파 검찰,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검찰 “사적인 내용 감시하지 않는다”고 해명

단속 전담수사팀 설치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 발언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이용자들이 분노한 가장 큰 이유는 ‘압수수색 영장만 있으면 주고받은 메시지가 모두 공개된 다’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해 다음카카오 측은 서버 보관 기간이 3~7일에 불과해 옛 메시지까 지 저장하기 힘들다고 밝혔고 그 기간마저도 줄이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보관 방법 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바로 암호화 문제다. 다음카카오 측은 “사용자들의 메시지를 서버에서 암호화하고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누군가 서버를 열었을 때 별다른 절차 없이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셈이다. 내용은 물론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주고받은 주소와 날 짜까지 모두 기록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 음카카오는 “서버 내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 하는 기술적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 는 (암호화를 하는 대신) 서버 주변에 방화벽 과 같은 보호막을 겹겹이 쳐서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반발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다음카카오는 ‘종단 간 암호화(endto end encryption)’라는 기술을 연내 시행 하겠다고 밝혔다. 텔레그램(telegram)이나 바이버(Viber), 아이메시지(iMessage) 등 주로 외국계 메신저들이 차용하고 있는 방식 이다. 단말기에서 자체적으로 암호키를 만 들기 때문에 해커가 누군가의 텔레그램 메 시지를 보고자 한다면 사용자의 휴대전화에 도 직접 침투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 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헐거 운 종단 간 암호화는 충분히 뚫을 수 있다. 제 대로 된 암호화를 하려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고 사용자들에게도 불편한 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표준 알고리즘 형태로 암호화” ‘스마트폰에서 서버까지 가는 도중 실시간 감청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의문도 제기됐 다. 다음카카오는 “스마트폰에서 서버까지 가는 통신 구간은 암호화돼 있다”며 “실시간 감청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 가들의 의견도 찬반으로 나뉜다. 가능하다고 보는 측에서는 ‘패킷(Packet) 감청’을 예로 든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 준환 교수는 “내 IP주소와 다른 IP주소 사이 에서 파일을 잘게 자른 형태의 데이터 조각 들이 들어오고 나가게 되는데 이 조각들을 모으면 하나의 파일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것이 패킷 감청의 원리라고 했다. 이렇게 추출한 데이터가 암호화돼 있다면 이 암호를

이석우 대표 “서버 암호화

카톡 측선 실시간 감청 불가 주장 이래서 감청 가능

“데이터 조각 모으면 파일 완성 기계로 암호 풀면 대화 볼 수 있어” 이래서 감청 불가능

“메신저 정보 암호 형태로 전송 수신자 전화서 해독돼 감청 못해”

‘다카오톡’ 패러디물 인터넷에 유포

풀 암호키를 찾아내면 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암호화는 RSA나 SHA와 같 은 전 세계 표준 알고리즘 형태를 취한다. 형 식이 일정하기 때문에 해커들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암호키를 생성해 침투하는 경우가 많다. 쉬운 예로 네 자리 비밀번호 창에 0~9 까지 마구잡이로 넣다 보면 얼떨결에 비밀 번호를 맞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발 자들은 “사람이 일일이 코드를 작성해 넣어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자동으로 돌아가 며 맞히기 때문에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중간에 메시지를 가로채 암 호를 풀어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많은 정보가 제3자가 절 대로 알아볼 수 없는 함수 형태(Encryption Send)로 메시지를 전송하고 수신자의 휴대 전화에서 해독되도록 하는 형태(Decryption Receive)를 취한다”며 “암호학적으로나 수 학적으로도 추출이 불가능한 암호문이다. 절 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치인CEO ‘망명’ 땐 외국에 정보 주는 꼴 ‘메신저 망명’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서버가 외국에 있으니 한국 정부가 압수수 색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모아진다. 그러 자 역으로 외국 서버에는 우리의 정보를 줘 도 된다는 말이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국내 기관의 감찰을 피하기 위해 외국 기업에 거대 한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라는 것이다. 데이터저널리스트 이준행씨는 “외국에 서도 센서십(Censorship)이라고 불리는 검

카카오톡 메시지 어떻게 서버까지 가나

App Annie가 밝힌 아이폰 무료 앱 이용 순위 1 1

카카오톡 전송

암호화 상태로 전송

1

2

텔레그램

5

7 카카오톡 서버 도착 10

암호화 상태로 전송 카카오톡

상대방 단말기 도착

카카오톡 “외양간 고치기 프로젝트 하겠다”고 발표

여부 몰라” 답변

텔레그램 다운로드 페이지에 한국인 몰려들기 시작

“스마트폰~서버 통신구간 암호화”

“카카오톡 데이터 3일만 보관해도 사실상 실시간 감청 가능” 주장 제기

‘다음카카오’ 출범 …

카카오톡 “카카오톡은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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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과 도·감청이 늘 문제가 됐다”며 “결국 데 이터는 돌고 도는 것인 데다 어디서든 캡처 (Capture)가 가능한데, 단지 우리 정부의 눈 을 피하겠다고 생각해 유행처럼 메신저 망명 을 택하는 것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원형감옥에 있듯 정부라는 빅브러더(Big brother)에게 모든 것을 읽히는 것 아니냐 는 질문에 대해서도 “타당성은 있지만 기 우(杞憂)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 는 “CCTV와 같은 이치다. 정부에서 범죄 발생을 줄인다는 이유로 국민의 동의 없이 CCTV를 대거 설치했고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감시당하며 살게 됐다. 하지만 이것을 대다수의 사람은 별로 의식하 지 않고 산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이버 감 청도 마찬가지다. 이를 감수하며 살 것인가 아닌가는 결국 이용자의 생각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혹자에게는 큰 두려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기우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 다”고 말했다. 김승주 교수도 “정치인이나 대기업 CEO 들이 사이버 망명을 할 경우 오히려 외국에 국내 주요 정보를 내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9·11 테러 이후 인터 넷 검열을 하는 ‘프리즘 프로젝트(PRISM Project)’를 시행했는데, 주요 창구가 구글과 페이스북인 것이 알려지자 오히려 독일 국민 이 크게 반발했다”고도 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에 있는데 불똥이 애먼 데로 튀었다는 말도 있다. 김인성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사 물인터넷(IoT)을 통해 빅데이터를 모아 활용 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며 “진작에 제대로 암호화를 하는 등 카카오 톡 스스로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검찰에서 사이버 검열을 하겠다고 드는 바 람에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됐 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말 한마 디에 사정기관이 부화뇌동했다는 비판도 있 다. ‘대통령 연애’에 대한 말이 정치권과 인 터넷에서 불거지자 지난달 16일 박 대통령은 “도를 넘었다”고 말했고, 바로 다음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사이버상의 허위사실 유포와 관련한 유관기관 회의를 지시했다. 지난달 18 일에는 카카오톡과 네이버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 회의가 열렸고 서울중앙지검에 전담 수사팀까지 생겼다. 네티즌들은 “발 빠 른 검찰”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카카오톡 등에 대한 통신 감청 영장 기각비

율도 일반 구속영장 기각률에 비해 턱없이 낮 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열린 국회 법제 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내현 새정치민 주연합 의원은 “일반 영장 기각률은 지난 5년 동안 23% 기각된 반면 통신 감청 영장은 평균 4%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김인성 교수는 “카카오톡이 데이터를 3일간 보관한다면, 검 찰은 이틀에 한 번꼴로 데이터를 요구하면 된 다. (매 순간에 대한 기록이 모이기 때문에) 사 실상 실시간 감청이나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메신저 여러 개 쓰는 패턴 자리 잡을 듯 카카오톡이 사과문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 서기는 했지만 10일 현재 모기업인 다음 (DAUM)의 주식은 이틀 연속 폭락했다. 전 날보다 4%포인트가량 내린 14만3800원대에 서 거래가 시작된 뒤 하락폭이 커지더니 최 종 13만92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오 후에는 최고 10%포인트 떨어지기도 했다. 랭키닷컴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톡 이용자 는 지난주 2646만 명에서 41만 명(1.54%)이 줄어든 2605만 명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텔 레그램의 한국인 사용자는 150만 명을 돌파 했다. 이 와중에 텔레그램의 CEO 파벨 두로 프가 러시아 정부의 개인정보 공개 요청을 거 부했다는 일화도 국내에 알려졌다. 파벨 두 로프가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vk.com’을 운영하던 중 러시아 정부로부터 “우크라이 나 시위에서 반러시아 운동을 한 이들의 개 인정보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당 시 두로프는 이 요구를 거부한 것은 물론 해 당 공문을 자신의 페이지에 전체적으로 공개 해 파장이 일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두로프 는 CEO 직에서 쫓겨났고 현재 독일에 서버 를 둔 텔레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상황 과 맞물려 비교 대상이 된 셈이다. 많은 이용자가 감정적으로 카카오톡을 이 탈했다는 분석도 많지만 동시에 이용자들이 완전히 카카오톡을 끊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미 한국인의 메신저 사용 습 관이 카카오톡에 길들여져 있고 많은 이용 자가 한꺼번에 다른 메신저로 옮겨가기도 현 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이번 기회에 사용자들은 다 른 대안을 경험해보게 됐고 카카오톡 입장에 서는 본인들이 경쟁 업체에 비해 어떤 강점이 있는지를 역으로 확인할 수도 있게 됐다”며 “사람들이 메신저를 한 개만 쓰지 않고 여러 개 섞어서 쓰는 식으로 행동 패턴 자체가 바 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Focus 7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전문가 눈으로 본 노벨과학상

파괴적 혁신 부르는 기초응용 연구가 노벨상의 비결 의 질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파 괴적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 도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 연구개발사업에서 도 민간기업에서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시장을 장악할 파괴적 혁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들은 시장에서 중국 제품에 추월당하고 기업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갈팡질팡 하고 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실장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를 지켜보면서 몇 년 전 방문했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연구소(Cavendish Laboratory)가 생각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리학 연구소 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공부했거나 연구했 던 사람들 가운데 29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 자가 배출된 노벨상 수상자의 산실로 유명하 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일본이 수상한 노벨 과학상 19개보다 많은 숫자다. 그런데 연구 소 소개를 청취하다 갑작스러운 의문이 생겼 다. 1904년 대기 중 희소 기체 가운데 하나인 아르곤을 발견하고 분리한 레일리 경(Lord Rayleigh)을 선두로 해서 지속적으로 배출 되던 노벨상 수상자가 89년 원자의 정확한 준위를 밝혀 10조분의 1초까지 측정 가능한 정밀 시간 측정법을 개발한 노먼 램지를 마지 막으로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노 먼 램지는 캐번디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뿐이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당시 소장은 기 초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실 생활에 직접 응용 가능한 기초연구 성과가 미약해지면서 노벨상 수상의 명맥이 끊긴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정부·민간 연구 혁신 안 보여 누구나 알고 있듯이 노벨상은 ‘인류의 복지 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독창성 있는 최초 의 발견, 발명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대부 분 기초연구 분야에서 위의 조건에 맞는 탁 월한 연구자가 수상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러한 노벨상 수상 영역에서 우리가 간과하 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인류의 혁신을 주도한 산업적 응용이 높은 첨단기술을 개발한 연구 자들의 수상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물리학상은 청색 발광다이오드 (LED)를 개발해 조명기술의 혁명을 불러온 일본 과학자 3명이 수상했다. 1909년 무선전신 기술을 개발한 굴리엘 모 마르코니를 필두로 79년 노벨 의학생리학 상 수상자인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CT 진 단기법을 개발했으며, 87년 수상자인 찰스 피더슨은 인공효소 개발 업적으로 노벨 화 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관련 업적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85) 일본 메이조(名城)대 교수(왼쪽)와 아마노 히로시(天野浩·54) 나고야(名古屋)대 교수가 지 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산업응용 높은 첨단 기술이 수상 투자만 많이 한다고 상 받지 못해 인류 삶 변화 주도하는 노력 필요

은 물리학상에 집중돼 있다. 2000년 수상자 인 잭 킬비는 반도체 공정을 이용한 집적회 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전자회로와 부품의 경량화,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고 2007년 수 상자인 알베르 페르와 페터 그륀베르크는 컴 퓨터 하드디스크 소형화 및 빠른 저장을 가 능하게 한 거대 자기저항을 발견했다. 2009 년 수상자인 찰스 가오는 광섬유 전송 기술 을 개발해 현재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의 활 용을 가능하게 했고, 윌러드 보일·조지 스미 스는 광학적 영상 이미지를 전기적 데이터 로 전환하는 디지털카메라의 필수 부품인 CCD(Charge coupled device)형 이미지 센 서를 개발한 공로로 수상했다. 노벨 과학상 은 결코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파괴적 혁신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올해엔 톰슨로이터(Thomson Reuter)가

[나고야 AP=뉴시스]

노벨상 후보로 예측한 명단에 유룡·찰스 리 교수 등 한국인 또는 한국계가 포함됐으나, 결국 최종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다. 많은 사 람이 아쉬워했다. 노벨 과학상 수상을 위해 기초연구와 고위험혁신적 연구의 강화, 과학 외교 확대, 우수 신진 연구자 지원 강화, 교육 시스템 개혁 등 적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반 면 노벨 과학상 수상을 갈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모두 맞는 얘기다. 기초 응용 개발 산업화 모델은 비효율 물론 노벨 과학상 수상은 매년 정부가 18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목적이 될 수 없다. 투자를 많이 한다고, 노벨이란 단어가 들어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노 벨 과학상이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 다. 과학기술정책 추진의 본질은 국민의 삶

구글에서 노벨상 수상자 나올지도 파괴적 혁신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는 기초연 구응용연구개발연구산업화라는 4단계 과 학기술혁신 선형 모델(linear model)에 익숙 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는 동일한 목 적의 연구를 몇 개의 부처에서 나누어 수행 하게 하는 등 원활하지 못한 연구 과정의 연 계와 투자의 비효율성을 낳고 있다. 이러한 선형적 연구개발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연구자들을 탓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연 구자나 정책담당자 입장에서 봐도 특정 연구 가 어느 단계에 속해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는 파괴적 혁신을 위해 선형 모델 보다는 상호작용 모델(interactive model)을 생각해볼 때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가 바로 산업화로 연결돼야 한다. 그리고 각 단계가 상호작용함으로써 혁신이 탄생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해야 무한 경쟁 의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과학 기술 혹은 산업 분야별 융합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 혁신 창출 단계에서도 융합이 필요 한 시대다. 우리나라는 62년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 획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과학기술정책이 추 진됐다. 이제 막 50년이 지났다. 이제 한번쯤 은 냉정하게 우리가 지나온 길과 현실을 돌 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파괴적 혁신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다. 물론 파괴적 정책 없이는 파괴적 혁신도 없 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사물인터넷으로 혁 신을 주도하는 구글의 제품과 계획에 주목한 다. 구글의 파괴적 혁신의 원동력은 원천기술 보유 기업 대상의 인수합병(M&A)과 연구개 발 및 업무 시스템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 점에 구글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노벨상과 한국의 인연

DJ와 또 한 명  노벨위원회엔 ‘한국 출생 수상자’ 2명 기록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왜 한국인 수상자는 없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과학상을 수상한 한국 인은 아직 없다. 하지만 노벨위원회에서 ‘한 국 출생’으로 분류하는 화학상 수상자가 있 다. 1987년 수상한 노르웨이계 찰스 피더슨 (1904~89)이다. 노벨위원회가 피더슨을 ‘한국 출생’으로 분류하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국적을 따 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01년 첫 노벨상이 수여된 이래 ^전쟁과 독립 등으로 폴란드· 벨라루스·소련·러시아처럼 같은 지역이 다 른 나라로 바뀐 경우 ^출생지와 국적이 다 른 경우 ^이중 국적 소지자 등 국적 문제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들 의 출신 지역을 밝힌다. 피더슨은 구한말인 1904년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부산에서

전쟁독립이중 국적 등 이유로 수상자 출신지역 따져 등재 1987년 화학상 받은 찰스 피더슨 1904년 부산서 출생, 8세 때 떠나

찰스 피더슨

태어났다. 해양 엔지니어였던 그의 아버지 브레더 페데르센은 증기선을 타고 극동에 왔다가 당시 영국이 관장하던 대한제국 세 관에 취직했다. 그 후 평안도 운산 광산이 개 발되자 그곳으로 가서 골드러시 대열에 합 류했다. 피더슨의 어머니 다키노 야스이는 대두(大豆)와 잠사 무역에 종사하던 가족을 따라 조선으로 이주했다가 피더슨의 아버지 를 만나 결혼했다. 89년 사망한 피더슨이 노벨위원회에 남긴 자신의 전기(傳記)에 따르면 당시 운산 광산 은 미국이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외 국인 학교가 없었다. 피더슨은 “운산은 시베 리아 호랑이가 어슬렁대고 추운 겨울엔 늑대 가 어린아이들을 공격하던 곳이었다”고 회 고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8살이 되던 해 일 본 나가사키에 있는 수녀원 학교에 보냈고 2 년 뒤 요코하마 소재 성 요셉 칼리지로 전학 을 가 중·고교를 졸업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 유로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로 하고 성 요셉 칼리지와 같은 마리아회에서 운영하는 오하

이오주 데이턴대로 떠난다. 화학공학을 전공 한 피더슨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유 기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더슨은 “석사 과정까지 아버지가 부쳐준 돈으로 다녔다. 이 제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며 박사과 정에 진학하지 않고 종합화학회사 듀폰에 취 직했다. 피더슨은 훗날 박사 학위가 없는 최 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된다. 그는 53년 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듀폰의 잭슨 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67 년 다른 실험을 하다 우연히 ‘크라운 에테 르(crown ether)’라는 새로운 유기화합물 을 발견한다. 피더슨은 이 유기화합물이 산 소 원자 한 개가 탄소 원자 두 개 사이에 끼 어 있는 형태에 원형으로 배열돼 있다고 해 서 크라운 에테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 다. 특정 원자를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맞듯 끌어당기는 점에서 크라운 에테르는 효소 (enzyme) 같은 다른 생화학적 물질이 복잡 하게 수행하는 작업을 비교적 간단하게 흉내 낼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크라운 에테

르의 발견에 탄복하며 체내 나트륨·칼륨 운 반 원리 등의 제약 연구, 대기 중에서 방사성 스트론튬을 제거할 수 있는 환경기술 연구 등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피더슨은 69년 듀폰에서 42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정년 퇴임했지만 그의 연구에 기반해 후속 연구를 한 도널드 크램, 장마리 렌과 함 께 크라운 에테르를 발견한 지 20년 만인 87 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83세의 고 령에 암 투병으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그는 뉴저지의 집에서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날아 가 상을 받았다. 피더슨은 수상 소감에서 “상 업성이 없어 보이는 연구에 대해서도 9년 동 안이나 원하는 연구를 하게 해준 듀폰의 경 영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피더슨의 누나는 일제시대 조선에 남아 스 탠더드오일의 제물포(인천) 사무소에서 일 했고 64년 사망했다. 피더슨은 노벨상을 수 상한 지 2년 만인 89년 세상을 떠났다. 듀폰 측은 피더슨의 업적을 기려 사내 우수 과학 자에게 수여하는 ‘피더슨 상’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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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한국 증시 산 역사,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장

주식시세표 56년째 정독  삼보는 아직도 가슴 뛰는 단어 꼭 증시 투자자가 아니어도 경제에 조금만 관 심 있는 사람이라면 기막혀 할 이야기 한 토막. 1964년 3월 27일, 증권거래소는 보유 중이 던 한증권(韓證券한국증권거래소 출자 증 권)과 증금주(證金株·증권금융회사 주식)를 매각했다. 거래소 직원들에게 월급 줄 돈이 부족해지자 현금 확보를 위해 취한 조치였다. 주가 하락세를 지켜보던 투자자들이 분노하 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거래소에 투자자 수 백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한·일 국교 정 상화 회담을 반대하는 대학생들 시위로) 온 나라가 비상사태에 빠져 주가가 연일 떨어지 고 있는데 거래소마저 대규모 매물을 내놔 폭 락을 부채질한다”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 다. 그러고는 증권거래소 이사장실에 난입해 집기와 기물들을 부숴버렸다. 결국 송대순 당 시 증권업협회장이 단상에 올라가 “내가 책 임지고 한증권과 증금주를 반대매매하겠다” 고 설득했다. 그러고 나서 사상 초유의 ‘증권 야시장(夜市場)’이 열렸다. 야간에 주식시장 을 연 것이다. 거래소는 정규시간에 판 주식을 야시장에서 반대매매로 다시 사들였다. 그제 야 투자자들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이날 객장 한쪽에서는 37세의 젊은 증권사 경영자가 소동의 전말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달 초 삼보증권 최고경영자(CEO) 로 취임한 강성진 사장이다. 그는 64년 삼보증 권을 인수한 뒤 19년간 업계 선두를 지키고 경 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엔 증권업협회장을 지 낸 ‘증권 대부(代父)’이자 한국 증시의 산증 인이다. 강 전 회장은 “50년 전, 그러니까 한국 경제 가 부흥의 기지개를 막 켜려던 시절엔 증시 운 영 경험이 부족하고 제도도 미비해 시장 운영 이 이처럼 파행적이었다”며 “그날 나는 증권 사 경영자로서 앞으로의 삶이 평탄할 수 없을 것을 예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는 20일 자신이 반세기 동안 겪은 증 권가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증권 반세기 강성진 회고록’을 출간할 예정이다. 여의도 63 빌딩에서 미수(88세)연을 겸해 열리는 출간 회는 (사)함께하는 경제 배창모 회장, 명호근 삼보증권 동우회장, 장남 강완구 일동여행사 회장, 차남 강흥구 (사)태평양시대위원회 이 사장, 사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겸 대한상 공회의소 회장이 함께 주관한다. 경제기사 매일 아침 꼼꼼히 챙겨 읽어 중앙SUNDAY는 지난 8일 강 전 회장이 사 무실 겸 접견실로 쓰는 서울 도곡동의 한 오 피스텔을 찾았다. 미수의 강 전 회장은 카랑 카랑한 목소리로 취재진을 맞았다. 테이블 한쪽에는 주요 일간지와 경제신문이 쌓여 있 었다. 동석한 차남 강흥구 이사장은 “아버님 은 지금도 매일 경제기사를 챙겨 보신다. 단 하루도 주식시세표를 꼼꼼히 훑어 보지 않는 날이 없다”고 귀띔했다. 강 전 회장은 답변이 길어질 땐 잠시 쉬면 서 숨을 가다듬으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나 열하며 한국 증시 발전사를 풀어놨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60년대 한국 증시는 한마디로 ‘좌판 수준’이었다. 객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휴장했고 증권사들 사이엔 ‘책동전’(주식 시 세를 조정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이름의 투 기 광풍이 불었다. 서울 증권거래소가 개설 된 지 8년이 지난 64년까지도 상장회사는 5 개, 시중은행까지 포함해야 모두 15개에 불 과했다. 56년 거래소 개설 당시 증권업협회 추천으로 상장된 회사가 16개였으니 ‘주식시 장을 통한 산업자금 조달’이라는 증시의 목 적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던 때였다. 그나마 순수한 민간기업은 경성방직과 유한양행 등 5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회사들의 주식은 대 부분 정부가 보유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

김춘식 기자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증시 살면 부동산 시장도 살아나 외국인 30% 된 증시, 제도 손봐야 정부 규제는 하지 말라서 벗어나 뭐든 허용하되 페널티 세게 줘야 증권사, 지점 축소 직원 재배치할 때

1989년 11월 주가 하락에 분노한 투자자들이 증권시 세 전광판 불을 끄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위). 90년 5 월 증권시장 안정기금 현판을 거는 강 전 회장(왼쪽) 과 배창모 증권업협회 부회장. [사진 금융투자협회]

다 보니 유통주식 수가 비교적 많고 주식 분 산도 제대로 돼 있는 한증권과 증금주에 거 래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증금주는 6개 월 사이 300배가 오르기도 했다. 한전주와 미 창주(米倉株·미곡창고 주식), 해공주(海公 株·해운공사 주식)도 갑자기 10배 이상 급등 하곤 했다. 오를 땐 탈이 없었지만 주가 급락 땐 투자자들의 시위가 잇따랐고 그럴 때마다 증시는 문을 닫았다. 그는 “주식시장이 경제 의 바로미터라고 하지만 그건 경제가 어느 정 도 궤도에 오른 뒤의 일”이라며 “60년 우리나 라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 65년이 돼서야 105달러를 기록했을 정도니 증권시장이 제 대로 돌아가기에는 기본동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삼보증권 1년 만에 업계 1위 돌풍 한국 증시는 70~80년대는 도약기를 맞았다. 68년 1월 ‘자본시장육성법’이 만들어지면서 기업공개가 줄을 이었다. 72년에는 사채 동 결 조치라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긴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이 발 표됐다. 기업이 안고 있는 모든 사채를 정부 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기업은 신고했으나 사채업자가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돈을 갚지 않아도 됐다. 이때 신고된 사채는 출자전환 시켰는데 그 규모가 3555억원에 달했다. 사 채 동결로 갈 곳을 잃은 자금이 증시로 몰리 면서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같은 해 12월 ‘기업공개촉진법’이 이어지 면서 발행시장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강 전 회장은 “증시가 발전하지 않으면 72년 시 작될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제대로 추 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메시지가 선명 했다”며 “증권업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걸 직감하고 당시 경영 5년째 접어들던 삼보 증권을 대형 회사로 키울 준비를 시작했다” 고 말했다. 삼보증권은 83년 대우그룹 계열사이던 동 양증권과 합병(합병 회사는 이후 대우증권 이 된다)될 때까지 증권업계에서 각종 ‘최 초’ 기록을 잇따라 세웠다. 단순히 거래 규모 만 1위였던 게 아니라 최신 경영 기법으로 주 목받았다. 72년 증권업계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하고 직원 급여를 두 배로 올렸다. 기 획조사부를 처음 만들어 시장과 기업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시작하는가 하면 전국 지점망 을 갖췄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미국 경영 대학원(MBA) 출신과 공인회계사들을 채용 하고 국제부를 신설해 해외 진출 준비도 했

다. 국내사 최초로 ‘사무라이 본드’ 국제 공 동인수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잘나가던 삼보증권은 직원이 돈에 손을 대는 ‘창구 사고’가 ‘시재금 부족 사태’ 로 비화하면서 합병의 운명을 맞게 된다. 당 시에는 금융기관의 창구 사고가 빈발하던 시 절이어서 삼보증권의 운명을 놓고 ‘정권 기 획설(說)’도 나왔다. 강 전 회장은 “앞만 보 고 달리면서 내부 단속을 소홀히 했던 내 탓 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청춘을 바친 회사여서 지금도 ‘삼보’라는 단어만 들 으면 가슴이 마구 뛴다”고 했다. 가장 보람된 일은 증안기금 설립 그는 ‘증권 인생’ 가운데 가장 잘한 일로 증 시안정기금 설립을 꼽았다. 증시안정기금은 증시가 급락할 경우 이를 막는 데 쓸 공공기 금이다. 배경은 이렇다. 89년 3월 31일 사상 처음 종합주가지수 1000을 돌파한 증시가 불 과 1년 사이 3분의 2토막이 났다. 3저(금리· 환율·유가) 호황을 구가했던 경기가 가파르 게 내리막을 타고 있었고 부동산 투기로 시 중자금이 온통 아파트 청약과 땅 사재기에 쏠렸다. 기업공개가 잇따르면서 주식시장엔 ‘공급’이 넘쳐났다. 지수가 600 중반대까지 밀리던 90년 3월 말 그는 증권업협회장에 취 임했다. 그는 증권회사 사장들을 상대로 기 금 필요성 설득에 나섰다. 25개 증권사로부 터 모두 2조원 출연을 약속받았다. 이어 은행 과 보험회사, 주요 상장기업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마침내 4조원의 돈이 모아졌고 5월 4 일 세계적으로 사례가 흔치 않은 민간 주도 의 증권시장안정기금이 만들어졌다. 당시 주 식시장 시가 총액이 90조원이 안 되던 시절, 이 기금은 고비 때마다 주가 하락을 방어하 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한국 증시 역사의 주요 사건을 들은 뒤 남 는 궁금증 몇 가지를 물었다. 짧은 답변에도 ‘증시 고수’의 투자 철학, 경제를 보는 안목 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도 주식 투자를 하시나요. “90년 증권업협회장에 취임하면서 손을 뗐습니다.” -개미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주가는 천장 3일, 바닥 100일입니다. 일확 천금 기대는 금물이지요. 은행 정기예금이나 채권보다 조금 더 이익이 나는 정도의 목표를 세우고 투자해야 합니다. 여유자금으로 하되 기업실적,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건전성 지표를 따질 실력을 개인도 갖춰야 합니다.”

-요즘 증시는 글로벌 자본의 놀이터가 됐 습니다. “글로벌화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다만 달라진 환경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요. 외국인 투자가 없을 때 만들어 둔 증시 정 책으로 외국인들이 30%나 차지한 시장을 다 스리는 데 문제는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규제 개혁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부의 모든 정책은 ‘절대 하지 말라’가 아니라 ‘뭐든 하되 잘못될 경우엔 페널티를 세게 주겠다’는 방식의 규제라야 시장 발전 에 도움이 됩니다.” -내수 경기 침체가 심각합니다. “증시가 활성화되면 소비도 살아납니다. 증시가 활성화되면 부동산 투자로 옮겨 붙지 요. 집도 사고 콘도 회원권도 사는 겁니다. 건 설 경기 살리는 데만 관심 둘 게 아니라 증시 활성화가 경기 선순환의 출발이라는 점에 주 목해야 합니다.” -증권시장이 위기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인재들이 증시 를 떠났어요. 기업 간 합병 같은 큰 딜을 외국 회사들이 도맡고 있어요. 국내 증권사들이 실력도 없고 데이터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영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 게 됩니다.” -현직 증권사 CEO라면 어떤 일을 하시겠 습니까. “삼보증권 시절 전국 지점망 구축을 내가 선도했어요. 지금은 당시와 반대 상황입니 다. 인터넷 시대가 왔어요. 일부 주요 지점만 남기고 과감하게 폐점하는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인력을 영업이든 신상품 개발이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업무로 돌 려야 해요.” -한국 증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증권사들이 협회를 중심으로 자주 머리 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각 사가 해 야 할 일, 정부에 건의할 내용 등을 꼼꼼히 검 토해야 해요. 정부도 증시 활성화에 대한 관 심을 더 가졌으면 합니다.” 강성진 전 회장은 1927년 충남 예산 출생. 경성상 고를 졸업한 뒤 동아건설에 입사해 경리부장을 지 냈다. 58년 동아건설이 인수한 동명증권 상무이사 로 증권업에 몸을 담았다. 이후 영화증권을 거쳐 64년부터 83년까지 삼보증권을 경영했다. 경영 일 선에서 물러난 뒤 대한증권업협회장, B&G증권 명 예회장을 지낸 뒤 2013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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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④ 맨체스터, 매드체스터!

미친 듯 강렬하게  1990년대 록의 역사 쓴 바로 그곳 런던=조현진 국민대 특임교수· 미래기획단장 gooddreams@ hanmail.net

맨체스터(Manchester) 가 ‘매드체스터(Mad chester)’로 불리던 시 (비틀스 미국 진출) 50주년 기가 있었다. 1980년대 말 이 지역 출신 밴드들 이 로큰롤의 대세가 되고 이 지역 소재 클럽 들이 조명을 받으며 90년대 초까지 영국의 음악신(scene)을 주도해 나갔다. 아무도 이 기세를 막을 수 없고 성난(mad)듯이 전 세 계로 확산되자 음악계와 언론은 맨체스터를 아예 매드체스터로 부른 것이다. 음악도시 이전에 맨체스터는 한때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번성한 산업도시였다. 세계의 첫 기차역과 컴퓨터도 이 도시가 선보 였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섬유산업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지역 경제도 활력을 잃게 된다. 이즈음 도심의 빈 창 고들에는 기타를 멘 젊은 음악인들이 찾아와 낮에 리허설하고 밤에는 공연하기 시작했다. 음악도시의 종자가 배양되기 시작한 것이다. 맨체스터 음악사 투어(The Manchester Musical History Tour)의 공동저자이자 록 밴드 인스파이어럴 카페츠(Inspiral Carpets) 의 드러머인 그레그 질은 “맨체스터는 런던이 나 리버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하고 독특 한 로큰롤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이라고 설명한다. 도시 중심부 올드햄가 일대 에는 음반 상점들과 라이브바들이 몰려 있는 데 맨체스터를 빛낸 음악 아이콘들을 기리기 위한 명예의 거리가 90년 조성됐다. 62년 결성된 맨체스터 출신의 더 홀리스 (The Hollies)는 더 비틀스, 더 롤링스톤스와 함께 60년대 영국을 대표했던 밴드였다. 밴 드를 결성한 그레이엄 내시는 60년대 말 수퍼 밴드인 크로스비 스틸스 앤드 내시(Crosby, Stills & Nash) 탄생과 함께 떠나지만 홀리스 는 이후 지금까지도 해산한 적 없이 꾸준한 음 악활동을 하고 2010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 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이들의 노래 가운데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는 록밴 드 들국화가 전성기 때 라이브 공연에서 자주 불러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 진출 전날 세상 떠난 이언 커티스 맨체스터에는 골수 팬들이 찾는 로큰롤 성지 가 제법 많은데 이 지역 출신의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과 관련된 곳도 많다. 이언 커 티스가 이끌던 조이 디비전은 79년 데뷔 음반 인 ‘Unknown Pleasures’ 발표 이후 펑크록 이후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일찌감치 낙점받 으며 단숨에 대중과 평단 양측의 사랑과 관심 을 받았다. 영국 내에서 인정받고 성공 가도를 달리던 조이 디비전은 80년 5월 세계 최대 음 악 시장인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밴드의 성공과 함께 커티 스의 우울증과 간질 증세가 심각해지고 있었 다. 커티스는 어린 나이인 19세에 결혼했는데 공연 중 만난 한 여인과 가까워지면서 아내와 관계가 불편해진 점도 그의 삶을 어렵게 만들 고 있었다. 커티스는 결국 5월 18일 메클레스 필드 바톤가 77번지 소재 그의 집에서 스스로 브리티시 인베이전

록밴드 더 스미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스미스 방. 샐퍼드 래드스 클럽 안에 있다.

런던이나 리버풀과 다른 오묘함 중심가엔 음반숍·라이브바 집결 빈 창고에서 연주하던 젊은이들 음악 통해 침체된 도시에 활력

맨체스터

영국

목숨을 끊는다. 이혼하자는 아내를 설득했으 나 별 성과가 없자 “내일 아침 떠날 테니 혼자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는 아내가 집을 비운 밤 새 영원히 혼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글로 벌 스타로의 도약이 점쳐졌던 조이 디비전의 미국 출국 예정 바로 전날 일어난 사건이라 안 타까움은 더했다. 그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음악은 이 기 팝(Iggy Pop)의 ‘바보(The Idiot)’ 음반 이었다. 커티스는 화장된 뒤 고향 공원묘지에 묻혔다. 한눈 팔면 놓칠 정도로, 어쩌면 묘지 내에서도 가장 작을 듯한 그의 묘는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티스트에게 오히 려 어울리는 듯싶다. 묘비는 2008년 도난당해 새 묘비가 마련됐는데 조이 디비전의 대표곡 인 ‘Love Will Tear Us Apart’가 새겨져 있 다. 진정 사랑이 결국 커티스를 세상과 갈라 놓았을까. 조이 디비전은 2008년 베스트 음반을 발 매하는데 밴드 생존 시 맨체스터에 있는 ‘에 핑 워크 다리’에서 찍은 사진을 표지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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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 지역 출신의 한 정치인은 커티스 사 망 30주년을 맞아 2010년부터 이 다리 이름을 ‘이언 커티스 다리’로 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의 사망 이후 남은 멤버들은 밴드명 을 뉴 오더(New Order)로 개명해 오늘날까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샐퍼드 클럽엔 더 스미스 편지와 사진 모리세이가 이끈 더 스미스는 얼터너티브 록에서 확실한 한 획을 그은 밴드로 역시 맨 체스터 출신이다. 3집 음반인 86년작 ‘The Queen Is Dead’는 80년대 최고 음반 3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이 음반에 사용된 한 사진은 맨체스터 근교의 한 건물을 로큰롤의 중요 랜드마크 반열에 올렸다. 1903 년 이후 지역 어린 남학생들의 축구나 농구 등 여가활동 교육기관으로 운영된 샐퍼드 래 드스 클럽(Salford Lads Club)이 바로 그곳 이다. 스미스는 이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음반 내부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는데 음반의 성공과 밴드의 인기와 함께 이 건물 역시 명 소로 자리 잡았다. 당시 클럽 측은 사전에 통보하지 않고 사진 을 찍었다며 밴드를 고소하기도 했다. 지금은 밴드와 화해했고 밴드도 클럽에 호의적이 되 어 클럽 발전을 위한 기부도 아끼지 않는다. 클럽 측은 2004년 체력단련장으로 사용하던 방을 스미스 방(Smiths Room)으로 지정해 팬들이 남긴 편지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런던의 애비로드<9월 28일자 소개>와 함께 샐퍼드 클럽은 영국 내에서 록밴드가 발매한 음반에 사용된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기록된 다. 건물의 돌 외벽은 팬들이 기념으로 가져 가려고 조금씩 뜯어가 곳곳에 깨지고 뜯긴 자 국들이 선명하다. 건물은 2003년 등록문화재 건물로 지정됐다. 더 스미스는 맨체스터 출신의 수많은 후배 밴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더 스톤 로

사진 조현진

지스(The Stone Roses)와 오아시스(Oasis)가 대표적이다. 90년대 최고의 로큰롤 밴드에 오 르는 오아시스는 아직도 시내 곳곳에서 흔적 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92년 1월 14일 처음 공연한 더 보드워크(The Boardwalk) 클럽은 이미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오아시스 광팬들 이 꼭 방문하는 지역 명소다. 맨체스터 로큰롤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장 으로는 프리 트레이드 홀(Free Trade Hall) 이 꼽힌다. 지금은 호텔이 됐지만 이곳에서 열 린 두 공연은 로큰롤 역사에 남아 있다. 첫째 는 66년 5월 17일 밥 딜런의 공연이다.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전자 기타 를 들고 나오자 성난 관객이 “유다!(Judas!)” 라고 외친다. 이 공연 실황은 30여 년 동안 비 공식 음반으로 유통되다 98년 공식 발매되 는데, 당시 딜런을 비난하는 야유가 생생하 게 녹음돼 있다. 오랫동안 로열 앨버트 홀에 서 녹음됐다고 알려졌고 음반 타이틀도 그렇 게 발매(Bob Dylan Live 1966: The ‘Royal Albert Hall’ Concert)됐으나 사실은 프리 트레이드 홀 녹음 실황이다. 두 번째 사건은 76년 6월 4일 펑크록의 전 설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공연이다. 이들의 런던 밖에서의 첫 공연이었다. 당시 유 료 관객은 단 42명에 불과했는데 여기에는 맨 체스터를 세계 로큰롤 지도에 올린 사람, 토니 윌슨(Tony Wilson)이 포함돼 있었다. Mr. 맨체스터’로 추앙받는 토니 윌슨 맨체스터 지역의 그라나다 방송 뉴스 앵커이 자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안정적인 방 송인의 삶을 살던 윌슨은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 공연을 본 뒤 섹스 피스톨스 의 팬이 됐고 이들을 방송에 출연시킨다. 이 는 섹스 피스톨스의 첫 TV 등장으로 기록되 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윌슨은 이어 78년 팩토리 음반(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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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s)을 공동 설립했다. 조이 디비전과 그 후예인 뉴 오더, 해피 먼데이스 등이 팩토리 소속이었다. 한때 최고의 음반사였던 팩토리 건물은 지금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당시 모습을 아직도 어느 정도는 간직하고 있다. 윌슨은 82년 전설적인 클럽 하시엔다 (Hacienda)를 연다. 팩토리 소속 밴드들은 물론 더 스미스와 더 스톤 로지스 등이 모두 이 무대를 거쳤다. 이 무렵부터 맨체스터 출신 밴드들은 얼터너티브록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기분 좋게 섞은 음악을 선보이며 로큰 롤 팬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하시엔다는 영 국에서 처음으로 하우스 음악을 본격적으로 틀기 시작했고 DJ 시스템을 본격화해 큰 반 향을 일으켰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무 렵 “하시엔다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클럽” 이라고 보도했다. 록의 중심 하시엔다는 고급 콘도 변신 멋쟁이들이 클럽을 찾으며 지역 패션산업도 자연 주목받기 시작했다. 엑스터시 같은 환 각제의 확산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른바 ‘매드체스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같 은 인기에 힘입어 당시 영국 내 진학 선호 대 학에서도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보다 맨체 스터대가 강세를 보였다는 기록도 있다. 마이 클 윈터바텀 감독은 2002년작 ‘24시간 파티 하는 사람들(24 Hour Party People)’에서 당 시 매드체스터의 폭발적이고 열정적인 분위 기를 스크린에 개성 넘치게 담았다. 한때 세계 로큰롤 중심지였던 광란의 하시 엔다는 이제 차분한 고급 콘도가 됐다. 하시 엔다를 빛냈던 주요 밴드들을 출연 시대 순에 따라 콘도 뒤편 벽에 조각해 놓은 배려가 그 나마 위안이 된다. 윌슨이 암으로 사망한 2007년 8월 10일 맨 체스터 시청은 조기를 게양해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느 음반사와 마찬가지로 팩토리 음 반 역시 모든 발매 음반에 고유 번호를 매겼 는데, 마지막으로 매긴 번호는 FAC-501번이 었다. 음반이 아닌 윌슨의 관이 그 대상이었 다. 로큰롤은 윌슨을 바꿨고 윌슨은 맨체스 터를 바꿨다. 아직도 그를 ‘미스터 맨체스터’ 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 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1 맨체스터 중심부. 이 뒤로 중심도로인 올드가 주변에는 음악 관련 상점과 음악 명예의 거리 등이 조성돼 있다. 2 오아시스 최종 정식 멤버가 첫 공연을 한 보드워크 클럽의 안내판. 골수팬과 관광객들이 여전히 많이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

찾아온다. 3 맨체스터 시내에 그려진 토니 윌슨의 초상. 그는 아직도 ‘미스터 맨체스터’로 불린다. 4 이언 커티스의 묘. 록스타치고 너무 작아 오히려 큰 여운을 남긴다.

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Focus 11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아시아의 가치 주장한 전 유엔안보리 의장 키쇼어 마부바니

영국, 중국 땅인 홍콩 반환하며 민주화 요구한 건 모순 키쇼어 마부바니(68)는 아시아 출신으로 국 제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이 큰 몇 안 되는 인 물이다. 서양 매체들은 그에게 ‘아시아의 토 인비’‘동양적 윤리를 설파하는 막스 베버’라 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부바니는 1984~89년, 98~2004년 모두 10여 년에 걸쳐 주유엔 싱가 포르대사를 지냈다. 싱가포르의 정치·경제는 리콴유(李光 耀) 전 총리가, 외교 및 국제적인 위상은 마 부바니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99년 Can Asians Think?라는 책에서 “아시아의 시 대가 도래했다”며 “서양 중심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아시아의 가치를 우위에 둬야 한다” 고 주장했다. 지난 1일 그가 원장으로 있는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스쿨(공공정책대학 원)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아시아의 상황을 곡해하는 앵글로색슨 미디어의 포로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우선 홍콩 시위에 대해서 안 물어볼 수가 없다. “홍콩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발언 을 원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시 에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 홍콩 사람들은 중 국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많은 자유를 누 리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 실적이다. 중국 정부는 700만 홍콩 인구보다 13억 중국 인구의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시 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홍콩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보 다 중국이 갑자기 선거 방식을 바꾸려는 것 아닌가. “영국과 서방세계는 매우 기만적이다. 자 기들은 홍콩에 민주적 자유를 주려고 생각 한 적조차 없으면서 이제 와선 중국에 자유 를 보장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내 말을 그대 로 인용하라.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 면서 독약(poison pill)을 집어넣었다. 홍콩 과 중국 사이에 민주화라는 갈등 요소를 만

들어놨다는 얘기다. 홍콩이 왜 영국 땅이 됐 나. 1842년에 영국은 중국이 아편을 사지 않 는다며 전쟁을 일으켜 홍콩을 강제 합병해 버렸다. 그 후 150년간 홍콩을 수탈하고 권위 적으로 지배했다. 그런데 당연히 중국의 영 토인 홍콩을 반환하면서는 민주적 권리를 보 장하라고?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서방세 계의 이중 잣대다. 중국·홍콩뿐 아니라 아시 아인 모두가 이런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 경제발전으로 개인 자유 신장 한국은 北 변화 희망 갖고 투자하고 ‘동북아 연합’ 창설해 번영 주도해야

-중국은 언제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까. “자꾸 민주, 민주 하는데 국제 뉴스를 접 하면서 앵글로색슨 미디어의 포로가 돼선 안 된다. 그들은 아시아에 대해 곡해된 세계관 을 주입하고 있다. 중국은 언젠가 민주국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 붕 괴 이후 러시아를 주목했다. 하루아침에 민 주주의로 바꾸자 러시아 경제가 무너져 벨기 에보다 경제 규모가 더 작아졌다. 급작스러 운 개혁은 재앙을 불러온다는 교훈을 줬다. 중국의 국정 운영은 굉장히 성공적이다. 국 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80년에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은 25%, 중국은 2.2%였다. 하지만 중국의 비중은 곧 미국보다 높아질 걸로 예상된다. 이건 정말 놀라운 역사적 전환이다. 중국인들은 완벽 한 정치적 자유를 얻지는 못했지만 지난 35 년 동안 많은 개인적 자유를 얻었다. 생활수 준도 높아졌다. 매년 1억 명의 중국인이 해외 여행을 떠난다. 한국 인구의 두 배 아닌가. 서 방 언론은 중국의 이런 측면을 애써 외면하 고 권위주의 정권이라고만 강조한다.” -북한도 중국과 같은 변화가 가능할까. “중국의 변화는 북한에 ‘국민 개개인에게

불룸버그 뉴스

싱가포르=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키쇼어 마부바니  1948년 싱가포르 출생. 부모는 1947년 인도 신드 지방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자 이주  싱가포르국립대 철학 학사. 캐나다 댈하우지대 철학 석사  1971년 싱가포르 외교부 입부. 캄보디아말레이시아미국 대사관 근무  주유엔 대사, 유엔 안보리 의장 역임  저서『Can Asians Think?』 『The New Asian Hemisphere』 『The Great Convergence』등

자유를 줘도 권력을 계속 가질 수 있다’는 시 그널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도 예전 공산당 정권이 건재하지만 개혁·개방에 성공했다. 북한 경제가 중국·베트남처럼 성장하면 그 만큼 한반도의 평화적인 변화 가능성도 커진 다. 한국은 북한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 북한 에 대해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적 도발은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큰 군사적 갈등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 다른 점은 개인 숭배가 국 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큰 걸림돌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극단적으로 통제된 사회를 개혁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덩샤오핑 개혁 이전의 중국

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문화대혁명을 거쳤 다. 수많은 사람이 정치적인 이유로 유린당 했고 굶어 죽기까지 했다. 중국이 그걸 견뎌 내고 고속 성장을 이룬 것처럼 북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펴낸 책 The Great Conver gence(위대한 통합)에서 세계인의 가치가 이념 대신 ‘중산층의 삶’으로 모아져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라 보인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현재 국가 간 전쟁 으로 죽는 사람 수가 최저다. 이라크·시리아 등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2010년 아시아의 중산층은 5억 명이었다. 불과 6년

뒤인 2020년엔 그 3.5배쯤인 17억5000만 명 에 달할 전망이다. 2030년엔 49억 명으로 세 계 인구의 절반이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영위 하게 된다. 경이롭지 않은가. 나는 그 책을 통 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역사에 대해 포괄적 인 분석을 해보려고 했다.” -당신 글 때문에 백악관에서 화를 낸 적도 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베이징에 갔을 무 렵 내가 뉴스위크에 글을 썼다. 미·중 관계에 서 미국은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둔 전략만 있 고, 중국은 장기 전략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미국의 친구로서 그런 조언 겸 주장을 했다. 세상엔 무비판적인 애인과 사랑스러운 비판자가 있는데 나는 후자다. 그런데 나와 개인적으로도 아는 제프리 베이더 당시 백악 관 안보특보가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틈만 나면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 내가 비 판적 견해를 내놓자 닥치라고 한 것이다. 이 해할 수 없다.” -일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화를 이뤄 서양 국가와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보 여줬다. 하지만 과거사에 대해 명확하게 반성 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크나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 다. 일본은 자꾸 역사를 번복하면서 스스로 부담을 지우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북한·중국·일본·몽골을 한데 묶는 ‘동북아시아 국가연합’을 주도해야 한다. 싱 가포르가 속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적인 지역 연합체다. 67년 출범할 땐 인 도네시아와 싱가포르 간의 분쟁이 있었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의 연방에서 탈퇴 하는 등 갈등이 컸다. 서로 의심하는 5개국이 연합체를 만들었는데 그로부터 50년 후 의 심이 사라지고 회원국도 늘었다. 동북아에선 한국만이 이 같은 평화와 번영의 연합체를 주도할 명분과 역량이 있다.”


12 People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한국어 전도사’ 김중순 고려사이버대 총장

결혼 이주여성 15만 중 11만이 우리 강좌로 말 배워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157만 명. 전체 인구의 3.1%다. 지금 속도면 2030년 엔 500만 명, 총인구의 10%를 차지해 명실상 부한 다문화 시대로 접어든다. 이 중 가장 빨 리 늘어나는 그룹은 결혼 이민자. 2003년 4만 4000명이던 게 10년 만에 15만 명으로 3.5배 로 급증했다. 외로운 농촌 총각 구제에 외국 인 신부가 큰 역할을 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국 제결혼 부부의 이혼 역시 폭발적으로 늘었 다. 2000년 1400여 건에서 2012년 1만800여 건으로 7.7배가 됐다. 문화적 차이에다 말까 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빚어진 비극이다. 사회인류학자인 김중순(77) 고려사이버대 총장은 이에 주목해 7년째 다문화가정 부인 들을 위한 한국어 무상교육을 하고 있다. 지 난해부터는 교육 대상을 해외 외국인들로 넓 혔다. 568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그 를 만나 한국어 보급운동에 뛰어든 계기와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7~8년 전 신문에 시골 사진이 났는데 한 국 여자는 없고 죄다 다문화가정 부인이었 다. 한국에 그렇게 많은 외국인 신부가 있다 니 깜짝 놀랐다. 동시에 이들이 국내에서 적 응하는 데 문제가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36년간 미국에서 살아 외국생활의 애 환을 잘 안다. 뭐니 뭐니 해도 말이 안 통하면 무척 힘들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실상 파악을 위해 영호남을 돌았다. 외국 인 신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긴 하는데 죄 다 이벤트성 단기 과정이었다. 게다가 서울에 서 하는 것처럼 강좌를 운영했다. 서울에선 쉽게 모이겠지만 시골은 다르다. 수십 리 떨 어져 사는 게 보통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온라인으로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온 라인 한국어 강좌를 개발해 ‘다문화가정 e배움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각계에 도움을 청했더니 포스코에서 연 간 5억원씩 15억원을 선뜻 지원해줬다. 이 돈 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봤더니 컴퓨터가 없는 집이 많더라. 그래서 포스코에 사정해 구형 컴퓨터 2000~3000대를 받아 나눠줬다. 컴맹인 다문화가정 부인도 많았다. 컴퓨터부 터 가르쳐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갓

Weather

최정동 기자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namjh@joongang.co.kr

난아이 한두 명씩 키우고 있어 각 지역을 돌 “대학 때 법학을 공부했는데 졸업 후 마땅 아다니며 밥도 해주고 애들도 봐주면서 가르 한 취직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 쳐야 했다. 다행히 전국 어디에나 우리 학교 학했고, 아시아재단 지원으로 전국적인 법의 학생들이 있어 이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 식 조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1960년대 렇게 해도 안 배우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 는 과학적 조사방법을 아무도 모를 때였다. 서 ‘컴퓨터를 배우면 친정과 연락할 수 있고 학교 은사가 ‘미국에 가서 사회조사방법론 고향 TV도 볼 수 있다’고 설득해 컴퓨터를 을 배우고 오라’고 권유해 에머리대에서 사 배우게 했다.” 회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조사방법 이렇게 탄생한 e-배움 강좌는 기대 이상 론은 석사 정도면 되지 본격적으로 파고들 의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 수강자는 11만 분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조지 명을 돌파했다. 결혼이민 여성이 15만 명 정 아대로 옮겨 인류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도고, 이 중 우리말을 구사하는 조선족이 2만 박사 학위를 딴 그는 71년 테네시대의 종 ~3만 명이라고 한다. 결국 한국어 교육이 필 신직 정교수를 거쳐 석좌교수가 된다. 그러다 요한 외국인 신부의 대다수가 김 총장이 마 2001년 고려사이버대 재단 측에서 총장으로 련한 프로그램을 수강했다는 뜻이다. 모셔왔다. 그는 학교 기틀이 어느 정도 안정 -인류학 공부가 한국어 보급운동에 앞장 되자 다문화가정 부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서는 요인이 됐나. 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난해부터는 그 지평 “인류학 전공자는 그 사회에 깊이 들어가 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문제를 파악하도록 훈련받는다. 깊이 침투 배우려는 이들까지 돕기로 작정한 거다. 그 하지 않으면 표피적 문제에 매달리게 된다. 렇게 시작한 사업이 ‘바른 한국어 프로젝트’ 중국 출신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슈(Francis 다. 사이버대 총장 경험에다 오랜 외국생활 L.K.Hsu)의 말을 빌리자면 ‘해안에 가서 조 덕인지 그는 세계 굴지의 IT기업 구글의 지원 약돌을 백 번 분석한들 조수간만의 이유를 알 도 얻어냈다. 교재는 여러 외국 명문대에서 비 / 천둥 눈 비 / 소나기 등 흐려져 비 눈 또는 비 흐림다문화가정을 흐려짐 인류학자의 흐린 후 갬 수 없다.’ 입장에서 채택됐다. 들여다보니 언어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됐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온라인 교육을 하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게 된 계기는.

7년째 온라인 무상교육 이어와 교재 개발하고 컴퓨터도 보급 작년부터 외국서도 한국어 교육 다문화 자녀들은 2개국어 손쉬워 앞으론 어머니 나라말 교육 계획 성 김 같은 인재로 키울 귀한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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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음력 2014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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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울(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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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22/16) 제주(20/18)

제주(20/18)

울릉도/독도(18/14)

상하이(23/18)

후쿠오카(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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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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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임정순씨 별세, 이기형(셀트리온 이사)· 토요일(13일) 주형·두형(노루페인트 과장)·태형(신한은 행 차장)씨 모친상, 장희수(서울아산병원 약 (23/17) (23/17) (27/19) (27/19) 과장)씨 시모상=11일 사)·김경화(신한은행 오전 3시, 보령아산병원 장례식장 특실, 발 (25/17) (25/17) 인 13일 오전 8시, 041-930-5645 (26/21) (26/21) ^심재철씨 별세, 규선(HMC 부장)·중선 (27/20) (27/20)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실 보좌관)씨 부친상 =10일 오후, 강화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26/20) (26/20) 032-933-1024 ^정헌씨 별세, 반채운(AJ렌터카 대표이 사)씨 모친상=10일 9일(화) 10일(수)오후, 충북음성농협장례 11일(목) 식장 201호, 발인 12일 오전 8시, 043-872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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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많아짐 (26/13) 구름 많아짐 (26/13)

“2012년 자매 결연 차 베트남 하노이대에 갔는데 현지 삼성 공장이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베트남인이 한국어 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대학 한국어 과에는 교수가 단 5~6명뿐이더라. 묘안을 찾 아달라고 하노이대 총장이 부탁해왔다. 고민 끝에 온라인 수업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 했다. 그동안 다문화가정을 위해 교육한 경 험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 했나. “기왕 할 바엔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원장을 역임한 연세대 남 기심 교수에게 부탁해 ‘바른 한국어’ 콘텐트 와 교재를 개발했다. 이 온라인 강의는 한국 어·영어·중국어·일본어·스페인어 등 5개 언 어로 제작돼 1~4급까지 수준이 구분돼 있으 며 수준별로 20~30강좌로 구성된다. 지난해 12월 첫선을 보인 후 큰 인기를 끌어 현재 114 개국에서 수강 중이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외국어 온라인 강좌를 만드는 데 스페인 어 능통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페인어가 공 용어인 온두라스의 주한 대사 부인이 한국계 라는 얘기를 듣고 부탁했더니 기꺼이 도와주 더라. 대사 부인은 온두라스 대통령의 초청 을 받아 간 태권도 사범의 딸로 현지에서 태 어났지만 한국어도 잘했다.” -해외 반응은 어떤가. “MIT·컬럼비아·웨슬리 등 미국 명문대와 영국 런던대 등에서 우리 교재로 한국어 수업 을 한다고 들었다.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뜻 아니겠는가. 또 지난 5월에는 우리 사업의 뜻 에 공감한 구글에서 이 회사 소유 유튜브에 바 른 한국어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줬다. 이 덕에 번거로운 홈페이지 가입 없이 누구든 한국어 콘텐트를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외가 언어를 가 르치고 싶다. 요즘엔 제2 외국어가 힘 아닌 가. 현재 한국엔 67~68개국에서 온 외국인 신부들이 있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일본이 못 가진 재산이다. 이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말을 교육하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 는가. 한국말도 잘하고 외가 말도 완벽하고. 앞으로 베트남이 외가인 아이가 베트남 대사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 김 대사도 그런 케 이스 아닌가. 사춘기를 지나면 외국어를 완 안개 눈 후 갬시간이 별로 비후갬 벽하게 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많지 않다. 우리가 가진 유용한 자산을 제대 로 쓰지 못하는 실태가 안타깝다.” 기본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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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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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다시 부는 손 글씨 바람

잊을 수 없는 펜촉의 감각  펜은 컴보다 강하다 오래 쓴 만년필은 사용자의 습관에 맞도록 변형이 된다. 이런 경우를 두고 만년필 매니 어들은 “길이 났다” 또는 “꽃을 피웠다”고 표 현한다. 나열된 글꼴 가운데 하나를 골라 색 을 지정해 인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년필에는 자신의 필체에 맞게 오랜 기간 길 을 들이는 맛이 있다. 만년필은 손 글씨의 대명사로 불린다. 국 내 최대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 회장 박종 진(43)씨는 “만년필을 쓰다 보면 글자의 선 하나에서도 잉크의 음영을 볼 수 있고, 글씨 가 종이에 새겨질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필기라는 행위 자체 에 시각·청각적으로 확장성이 생긴다는 것 이다. 한글을 쓰기에도 적합한 필기구라고 한다. 만년필은 펜촉 끝인 펜포인트가 종이와 면대 면으로 닿기 때문에 직선을 긋기에 매우 편 리하다. 영어는 a, b, c 등 곡선이 들어가는 글 자가 많은 반면, 한글은 이응(ㅇ)과 히읗(ㅎ) 을 제외하고 글자 대부분이 직선으로 이뤄져 있다. 영어 필기체나 수려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한글에 더 어울리는 필기구인 셈이다. 만년필은 기본적으로 손에 힘을 빼고 써야 하는 필기구다. 검지 손가락 마디를 힘주어 구부리지 않아도, 손가락에 펜혹(펜을 오랫 동안 힘주어 잡아서 중지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 생기지 않아도 쓸 수 있다. 모세관 현

상을 이용해 잉크가 나오는 원리이기 때문에 압력을 주지 않아도 된다. 손목이나 어깨가 아플 리 없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따뜻함 매력 디지털 시대에 손 글씨 인구 늘어 교보문고 만년필 매출 20% 늘어

가격과 필기감은 비례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만년필은 졸업·입 학 선물의 아이콘이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뜻도 있었고, 성인으로 의젓하게 크 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선물도 시대를 탔 다. 90년대 중반부턴 워크맨과 MP3 플레이 어가 만년필의 자리를 대신했고, 이후엔 디 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졸업식장에서 건 네졌다. 만년필은 한동안 중요한 서명을 할 때나 쓰는 아이템으로 여겨졌다. 영화 ‘태양은 가 득히’에서 알랭 들롱이 쓰던 몽블랑 마이스 터스튁(Meisterstuck) 시리즈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때 등장한 파커 51처럼 ‘명품’의 이미지도 강했다. 하지만 최근 대중의 입맛 을 노린 만년필이 대거 나왔다. 라미의 사파 리 라인은 3만원 안팎으로 구입할 수 있고, 펠리칸의 트위스트나 빠이롯트의 카쿠노는 1만원대면 살 수 있다. 플래티넘에서 나온 프 레피는 3000원이면 살 수 있다. 저렴한 만년필은 그만큼 필기감도 떨어지 지 않을까. 이에 대해 박종진씨는 “어느 만년 필이든 종이에 닿는 펜포인트에는 이리도스 민이나 오스미리듐이리듐 등 백금계의 단 단한 금속을 쓴다”며 “만년필을 필기구로 보

손 글씨 교정 온라인 강의도 등장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외벽에 걸린 글씨와 막걸리 상품 이름 등을 쓴 박병철 작가.

최정동 기자

느냐 또는 장신구로 보느냐에 따라 자신에 게 맞는 것을 고르면 될 뿐, 글씨를 쓰는 부분 은 모두 같기 때문에 가격에 따라 필기감 자 체가 크게 다르진 않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국내에선 수입 만년필의 가격이 외국의 두 배가량이어서 아직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있 다”며 “꼭 고급의 취미는 아니다. 점심값이면 만년필 세계에 입문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종이를 고를 땐 뒷면에 배기지 않는, 두껍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게 좋다고 했다. 관리하기에 까다롭다는 말도 있다. 이에 대해 만년필 매니어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 이 꼭 사용하기 편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펜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조심해서 써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도 반문한다. 막상 써보면 손이 가 는 부분도 그리 많지 않다. 5년에서 많게는 10년에 한 번 정도 펜촉(nib) 내부에 쌓인 종 이 부스러기를 닦아주고, 안 쓸 땐 잉크가 마 르지 않도록 뚜껑만 꼭 닫아주면 된다. 만년필을 소통의 매개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한 정유업계에서 일하는 이모 상 무는 딸들에게 종종 만년필로 편지를 써준 다.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시어머니가 며느 리에게 내훈(內訓)을 직접 써 주듯 부모가 자식에게 마음을 전달하기엔 이만한 방법 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상무의 ‘만 년필 편지’는 직원들에게도 전달된다. 이 상 무는 “손으로 쓴 글씨에는 따뜻함이 묻어 있

다. 소통의 부재가 만연한 시대엔 차가운 인 쇄체보다 손 글씨가 답이라고 본다”고 했다. 글씨를 쓰는 이들의 입맛은 단지 노트에 끄적거리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요즘은 캘리그래피를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많다. 국립국어원은 2012년 캘리그래피의 순화어로 ‘멋글씨’를 제시했다. 일반 손 글 씨와는 달리 글씨의 멋스러운 영역이 강조 됐다.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 글씨와 ‘대박’ 막걸리 등 캘리그래피 작업을 한 박병철(49)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좋은 글씨가 폭발적 으로 많이 나왔다. 손으로 쓴 멋스러운 글씨 들이 대중의 심리를 자극한 것 아니겠느냐” 고 말했다. 캘리그래피 배우는 인구도 늘어 캘리그래피의 기본은 문방사우(文房四友) 다. 먹을 벼루에 갈고 붓으로 찍어 화선지에 써 내려가는 것이다. 얼핏 서예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캘리그래피는 특정한 목적 을 가지고 미적인 부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와 마찬가지로 만년필이나 두꺼운 펜을 이용한 캘리그래피 가 왕왕 보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권에서는 묵을 이용한 글씨문화가 더 친숙하 게 형성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주류부터 영화 포스터, 책 표지, 간판 할 것 없이 한글 캘리그래피는 곳곳에 있다. 최 근에는 둥글고 귀여운 글씨체보다 복고풍의,

뇌과학자들도 주목하는 손 글씨

뇌의 사고언어정보 담당 부분, 글씨 쓰는 동안 활발한 활동 유재연 기자

손 글씨는 단지 손만 움직여 글자만 나열하 는 것이 아니다. 쓰는 동안 머릿속도 복잡하 게 움직인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뇌인지과 학 연구진은 손 글씨에 주목하고 있다. 키보 드나 터치패드로 옮겨가면서 인류가 잃어가 는 뇌 기능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글씨 쓰기와 관련해 뇌 과학자들이 가 장 많이 언급하는 부분은 ‘망상 활성계 (RAS·Reticular Activating System)’다.

망상 활성계는 각성에 관여하는 신경계다. 이 미지와 소리맛 등의 감각 정보를 대뇌로 전 달하는 경로다. 초당 들어오는 200만 비트 (휴대전화 벨소리 한 곡 용량)가량의 데이터 가운데 대뇌로 보낼 적절한 정보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자칫 잘못해 파괴되기라도 하면 혼수상태에 이르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 워싱턴대 버지니아 베르닝거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어린아이들의 글씨 쓰기 학습 을 관찰해 손 글씨 쓰기와 인지 능력의 연관 성을 밝혀냈다. 베르닝거 교수는 “펜을 쓰는

‘글씨 쓰면서 암기’ 과학적 근거 자신이 세운 목표 글씨로 쓰면 목표 달성률 현저하게 높아져

아이들은 키보드를 쓰는 아이들보다 더 빠르 게, 더 많은 양의, 더 정확한 문장들을 써 내 려갔다”고 말했다. 2008년 인지과학 저널에 실린 연구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펜과 종이를 쓸 경우 새로운 철자(외국어)나 그래픽 디자인을 습득하기에 훨씬 좋다는 결 과도 나왔다. 베르닝거 교수는 “키보드로 글을 쓸 땐 단 지 몇 개의 키를 선택하는 게 전부다.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뇌 운 동을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인체에는 모두

206개의 뼈가 있는데 이 가운데 54개가 양손 에 몰려 있다. 글씨를 쓰려면 이 손가락을 수 차례 움직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뇌 내부 의 사고와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 그리고 정 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부분이 더욱 활발 하게 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글씨를 쓰면서 정보를 외운다는 것이 뇌 과 학적으로도 증명된 셈이다. 손 글씨 쓰기를 통해 ‘뉴로빅스(Neuro bics·뇌의 ‘에어로빅’)’를 유도하는 경우 도 많다. 미 듀크대 의대의 무라리 도레이


Special Report 15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손 글씨 매니어 가수 김종진

손으로 글씨 쓰는 건 자기와의 대화 마음과 마음 이어주기도 하지요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대중음악계에서 소문난 손 글씨 매니어. 빈 티지 만년필 수집가이기도 한 봄여름가을 겨울의 김종진(52)씨를 지난달 29일 서울 연건동 서울재즈아카데미 1층 ‘앙코르’ 카 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노트북을 사이에 두 고 마주 앉아 웃음부터 터뜨렸다. 손 글씨 에 대한 인터뷰를 노트북으로 받아 적는 아이러니. 그는 “e메일을 보내거나 빠른 글 을 써야 할 때는 컴퓨터 자판을 사용한다” 며 웃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취재용으로 갖고 다니는 몽블랑 마이스터 스튁 145를 슬쩍 꺼냈다.

캘리그래피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두 단 어를 합친 조어)의 산물이라고도 불린다. 대개의 경 우 붓으로 쓴 뒤 포토샵과 같은 디지털 도구로 마무 리한다. 사진은 박병철 캘리그래피스트의 작품.

오래된 느낌의 글씨체가 인기라고 한다. 일반 인들도 초등학교 시절 붓을 들어 획을 긋던 추억을 되살려 시도하는 경우가 늘었다. 온 라인 강좌는 물론 문화센터와 일일강좌, 기 존 서예학원과 디자인 학원 등에서 캘리그래 피 수업을 하고 있다. 캘리그래피 붐이 일어난 만큼 우려도 있 다.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글씨가 해당 제품이나 스토리에 잘 어울리는 지를 이해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다. 박병철씨는 “똑같은 ‘사랑’이라는 글자 도 갓 스무 살이 된 풋풋한 연인들의 사랑과 떠나보낸 이를 그리워하는 사랑, 오래 묵묵 히 나눈 노부부의 사랑이 모두 다른 글씨로 표현돼야 한다”고 예를 들었다. 캘리그래피 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은 좋지만, 안목 대신 기술 위주의 캘리그래피만 강조될 경우 한계 에 부딪힐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선 일찌부터 손 글씨 외면 현상 우려 요즘은 글씨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온라인 수업도 등장했다. 모든 학습 비품과 교과서 마저 ‘스마트’하게 바꿔가는 공교육과는 달 리, 트렌드를 보다 빠르게 빨아들이는 사교 육 시장에 먼저 반응이 왔다. 한 온라인 교육 업체에서 고등학생을 대상 으로 필기 교정을 가르치는 이병대씨는 “요즘 교육현장을 보면 학생들은 터치패드를 이용 하고 선생님들은 판서 대신 PPT를 활용해 수

업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몇 글자만 줘도 줄을 맞춰 쓰지 못하고, 더구나 빠르게 써야 하는 논술 시험 때는 아예 읽을 수 없는 글씨 를 쓴다”고 했다. 아이들의 글씨쓰기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공교육 현장에선 노하우가 없어 ‘제대로 쓰라’고 윽박지르거나 명조체나 궁서체 같은 어려운 서체만을 강요 한다”며 “오히려 사교육 시장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 제대로 된 글씨를 쓰게 하는 교육법을 개발해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손 글씨에 대한 우려는 일찌 감치 시작됐다. 글씨를 쓰지 않다 보니 이제 는 필기체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졌 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스티브 그레이엄 교수는 “사람들은 당신의 글씨를 보고, 이를 바탕으로 당신이 쓴 글의 아이디어를 판단하게 된다”고 했다. 손 글씨 의 중요성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셈이다. 태블릿PC를 이용해 글씨를 따라 쓰게 하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나와 있다. 전문가들은 “흰 종이에 선뜻 선을 긋지 못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일단 손 필기부터 시 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전에는 ‘가운데 정렬’을 하지 않아도 종이 한가운데에 글자 를 늘어놓을 수 있었고, Shift키를 누르지 않 아도 자 없이 올곧게 선을 그을 수 있었다. 너 무도 자연스럽게 했던 행위들을 잠시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즈워미 교수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종이에서 컴퓨터 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글씨 쓰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다”며 “인지 능력을 키우기 위해 손 글씨 쓰기 운동을 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사람의 글씨를 통해 신경 장애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도 꾸준히 연구되 고 있다. 미국에서 ‘글씨 쓰기 열풍’을 주도하는 헨 리에트 앤 클로저 박사는 “당신이 자신의 목 표를 글씨로 쓰면, 당신의 뇌는 그 목표를 달

성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계속해 신호를 보 낸다”고 주장했다. 손으로 쓴 메시지가 망상 활성계를 통해 대뇌 피질로 전달되는데, 이 때 대뇌 피질은 “깨어나라, 집중하라, 디테 일을 놓치지 말아라”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도미니칸 대학의 심리학 연구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직접 글씨로 쓰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 에 비해 33%만큼 더 많이 목표를 달성한다 는 결과가 나왔다.

-글씨체가 아름다우면서도 개성이 있 다. 시각적이랄까. 원래 글씨체가 그랬나. “나이가 들면서 꼼꼼함이 풀어졌다. 동 양화 같아졌다고 할까. 시각적이란 말이 맞 는 것 같다.” -만년필은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중학교에 들어갈 때 공부 잘하는 아이 들은 파커 만년필을 선물받았는데 나는 공 부를 못해서인지 국산 ‘빠이롯트’를 받았 다.(웃음) 1992년에 라디오 DJ를 할 때 방 송사 문구점에서 펠리컨 만년필을 다시 사 봤는데 자주 쓰게 되진 않더라. 한동안 잊 고 있다가 2000년께 책상을 보니 펜꽂이에 온통 볼펜만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불현듯 중학교 때 갖고 싶던 파커 만년필이 생각 났다. ‘손으로 글씨 쓰는 걸 좋아하는데 왜 만년필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만 년필과 한 번 친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흔한 한글 캘리그래피와 비슷한 듯 하 면서도 다른 서체다. “영문 캘리그래피는 수천 년 역사를 거 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 폰트, 이탤릭이나 고딕, 세리프 같은 게 모 두 손글씨에서 나온 거다. 불과 50년 전까 지는 손으로 직접 쓰던 것이다. 한글 캘리 그래피는 붓으로 쓰는 게 가장 잘 어울리 지만 펜으로도 충분히 멋진 서체를 개발할 수 있다. 일본은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 여서 펜의 역사가 오래됐고 일본 글씨에 맞 는 유려한 서체도 많이 개발했다. 아직 한 글은 그런 부분이 아쉬운 게 사실이다. 하 지만 우리 서체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 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펜글씨를 기가 막히게 잘 쓰셨다. 볼펜처럼 꾹꾹 눌

러쓰는 게 아니라 붓처럼 종이에 얹어 흐르 듯 쓴다. 한글도 손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 이 길을 닦아 줄 필요가 있다.” -손 글씨의 매력은 무엇인가. “기타 치는 사람이어서 평생 손을 사용 했다. 모든 예술은 손을 사용한다. 악기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다. 손 글씨의 매력은 예술의 도구인 손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악기 연주는 남에게 들려줘야 한 다는 강박이 있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 지만 손 글씨는 그런 게 없다. 나 스스로에 게 들려주는 예술이랄까.”

부모님 세대 펜글씨 서체 아름다워 만년필은 뜻대로 움직여주는 친구 젊은 세대 손 글씨의 매력 알았으면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 김종진은 소문난 만년필 매니어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오 선지를 펼쳐 아래의 글귀를 써줬다.

김씨는 백팩에서 오선지와 필통을 꺼냈 다. 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 그레질 만년필들이 보였다. 그가 가장 아 끼는 것은 40년대에 만들어진 몽블랑 마이 스터스튁 136. 손글씨의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연성(軟性) 니브(nib)가 달린 아름 다운 만년필이다. 또 다른 것은 미국 ‘셰퍼 (Sheaffer)’가 20년대에 만든 제품. 간결한 모양의 금빛 클립과 하드러버 배럴(몸통)

에 새겨진 격자무늬가 미려하다. -갖고 있는 펜은 몇 개나 되나. “100개쯤 되는데 주로 오래된 것들이 다. (몽블랑 136을 집더니) 옛날 펜들은 니브 끝이 이렇게 벌어져 힘을 얼마나 주 는지, 얼마나 오래 획을 긋는지에 따라 잉 크가 흘러나오는 게 달라진다. (셰퍼 만년 필을 보여 주며) 이 펜은 니브 끝이 더 많 이 벌어진다. 감(感)이 생기면 내 뜻대로 움직이는 친구가 된다. 요새는 아예 캘리 그래피용 니브가 있지만 그건 요즘 생긴 거지. 예전 만년필들은 모두 캘리그래피 가 가능했다.” -요즘은 필압(筆壓)을 정확히 인식하는 태블릿 마우스나 태블릿 PC도 있는데. “집에서 가끔 컴퓨터로 태블릿 마우스 를 사용하긴 한다. 수없이 고칠 수 있는 게 재미있긴 하다. 레이어를 쌓아 중간에 수정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펜을 잡고 종이 의 마찰을 느끼는 손 글씨가 더 좋다. 다양 한 잉크를 쓰는 것도 매력적이다. 잉크마다 ‘신(sheen·광택)’이란 게 있다. 빛에 비춰 보면 영롱한 빛깔을 내고 응고되면서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일은 많지 않겠다. “어쩔 수 없을 때, 편리하게 사용할 때 컴 퓨터로 글을 쓰기는 한다. 하지만 답답한 건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거다. 악보를 밴드 멤버들에게 나눠 줄 때도 손으로 그리면 어떤 부분은 진하게 쓰고, 동그라미를 그 려 강조하기도 하고 화살표를 죽 긋기도 하 는데 아무래도 컴퓨터로 악보를 쓰면 밋밋 하다.” -호텔 객실에 있는 메모지를 수집한다고 들었다. “좋은 호텔에는 좋은 종이를 비치해 둔 다. 좋은 호텔일수록 메모지에 글을 써 보 면 잉크가 많이 번지지 않고 잘 써진다. 옛 날 방식으로 만든 종이다. 최근 발리의 리 조트를 갔다왔는데 최고의 종이를 가져다 놨더라.” -컴퓨터로 글 쓰는 데 익숙한 요즘 세대 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손으로 글을 쓰는 건 자기와의 대화다. 또 손에는 큰 마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 식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 연인을 어루만 지는 손. 손 글씨에는 마음으로 전달되는 염원 같은 것이 있다. 젊은 세대들도 이런 것들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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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말랄라의 나라 파키스탄 소녀들 “총탄은 우리를 침묵시키지 못한다.” ‘탈레반 피격 소녀’로 잘 알려진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17)의 외침은 지난해 뉴욕의 유엔총회 장을 휘어잡았다. “한 명의 어린이,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 세계를 감동시킨 바로 이 소녀가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말랄라는 이슬람국 가인 파키스탄에서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벌였다. 2012년 이에 반감을 가진 탈레반 대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았지만 영국 에서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사진은 11일 말랄라의 조국인 파키스탄의 민고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한 여학생이 ‘알라신의 이름으로, 축복과 자비를’이라는 내 용의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공부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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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세계 4대 경제권역 경기 긴급점검 <하>

중국 경 제 성 장 률

*전년 동분기 대비

7.9 7.8(%)

7.6

600

0.4

500

0.0 -0.2

7.4 7.2

7.2 7.0 1분기 2012년

3 1분기 2014년 (전망)

1분기 2013년

300

1분기 2013년

3 1분기 2014년 (전망)

300(억 달러)

292 255

476 200

400

1분기 2012년

-0.2

735

700(억 달러)

0.6

0.2 7.4

0.8

0.8(%)

경 상 수 지

286

200 100

-0.4

100

-0.6

0

-0.8

2012년 2 -100 1분기

-1.0

-200

83

3

4

3

4 2014년 2 1분기

2013년 2 1분기

0

2012년 2 1분기

-246

3

4 2013년 2 1분기

3

4 2014년 2 1분기

7

소 비 자 물 가

2.0(%)

상 승 률

1.0

*전년 동월 대비

*전년 동월 대비(중국은 전년 분기 대비) 12(%) 11.8

2.5

11.7

11.7

11.6

11.6

11.5

11.5

11.5

10

2.0 1.5

실 업 률

8

0.8

6

0.5

0.3

0.0 2014년 1월

4

4.1

4.1

4.1

2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2014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자료: 블룸버그

중국,‘영웅’을 죽이고‘개혁’을 선택하다

독일도 침체,

<덩샤오핑식 고속 성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후진타오(胡錦濤) 정부 10 년간 연평균 10.7% 성장했 던 중국 경제가 시진핑(習 近平) 정부 집권 이후 7.5% 대로 성장률이 하락하자 중국 경제 경착륙 과 위기론이 넘쳐났다. 전 세계가 중국 경제 를 걱정하고 중국이 언제 대규모 경기부양 을 할까 추측하고 난리지만 정작 중국은 미 동도 없다. 중국은 성장률을 10%대에서 7% 대로 떨어뜨렸지만 중국 정부는 국민을 더 잘살게 하는 민생정치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중국 경제 7% 성장의 비밀은 무 엇일까.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은 중국 을 성장시켰지만 ‘분배’는 중국을 발전시킨 다는 것이 시진핑 정부가 중국 경제를 보는 시각이다. 지금 중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첫째가 환경, 둘째가 국유기업 개혁, 셋째가 고속 성장이 아닌 안정적인 성장 유지다. 중국은 지난해 앞이 안 보이는 독 스모 그가 전 국토의 7분의 1을 뒤덮었던 기간 만 150일이다. 중국은 최근 30년간 연평균 9.9%의 고성장으로 G2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은 바로 중국 인민의 폐와 심장을 담 보로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시진핑 시대 7% 성장의 비밀 지난해 말 시진핑은 전국 31개 성장과의 회 의에서 “국내총생산(GDP) 영웅을 죽이고 개혁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과거 지방 성장들이 중앙으로 진출할 때 업적평가는 GDP를 얼마나 올렸는가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지낸 30년간 묻지마 투자로 GDP를 올렸고 G2를 만들었지만 제 조업의 공급과잉, 치명적인 환경오염, 지방 정부의 과도한 부채 문제를 발생시켰다. 시진핑은 2014년부터 성장들의 업적평가 에 환경과 부채를 추가했다. GDP를 올리는 것은 좋지만 부채를 늘리거나 물·공기·토양 을 오염시키면 감점 요소다. 그러자 중국의 31개 성 중 지난해보다 GDP 목표를 높여 잡

은 성은 단 1개뿐이었고 21개 성이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그래서 2014년 중국 GDP 성장 률은 지난해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7%대 성장에도 경기부양을 하지 않는 이유는 시진핑의 국정 어젠다 ‘중국의 꿈’과 관계가 있다. ‘중국의 꿈’의 실천 목표 는 향후 10년간 중국 GDP를 두 배로 늘리 는 것이다. 복리의 법칙인 ‘72의 법칙’을 적 용하면 연평균 7.2%씩 성장하면 10년 뒤에 는 GDP가 두 배가 된다. 이는 시진핑 정부 의 GDP 성장의 최저 마지노선은 7.2%란 얘 기다. 따라서 GDP가 7.2% 이하로만 내려가 지 않으면 대대적인 경기부양은 없다는 것 을 의미한다. 올해 초 7.4%대의 성장률에도 리커창 총리가 미동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9일에도 유럽 3개국 순방을 앞두고 경제 성장에 7.5%라는 숫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국무 원회의에서 “외부에서 (중국이) 7.5% 성장 을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며 “나는 예전부터 중국 경제성장률 이 7.5%보다 많거나 적어도 괜찮다는 입장 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다음은 분배 문제다. 중국은 국가자산의

시진핑, 고속성장보다 안정성장 추구 연평균 7.2% 성장해도 충분 분배 개선 위해 부정부패 단속 강화 한국 소비재산업 키워 중국 진출을

68%를 국유기업이 가지고 있어 10%대의 고 성장을 해도 분배 성장률을 보면 정부가 7% 를 가져가고 민간은 겨우 3%만 가져간다. 따 라서 국가는 돈이 많지만 민간은 가난한 것 이다. 시진핑 정부는 환경 문제 때문에 성장 률은 7%대로 낮추지만 국민은 더 잘살게 하 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 답은 분배 구조 개선이다. 10%보 다 7% 성장이 좋다는 중국의 논리는 분배 구조를 7대 3에서 5대 5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민간의 분배 성장률은 과거 후진타 오 시대 10% 성장 때 3%였지만 시진핑 시대 에는 7% 성장을 해도 3.5%를 가져가 후진 타오 시대보다 매년 16%를 더 가져가는 것 이다. 이것이 중국의 구조 개혁, 분배 개혁의 핵심이고 집권 이래 2년째 지속하고 있는 부 정부패 단속의 진짜 이유다. 산 호랑이 이빨 뽑으려는 시진핑 그런데 중국의 국유기업 개혁은 “산 호랑이 의 이빨을 뽑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중 국의 모든 국유기업의 배후에는 중국의 주 석·총리·장관 등 최고위층의 자녀인 태자당 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제 거하지 않으면 중국의 분배와 국유기업 개혁 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진핑이 철도부 장 관, 석유방의 대부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 위원 등 호랑이들, 즉 거물들을 부패 혐의로 구속한 것도 부정부패를 저지른 세력을 개혁 에 저항하지 못하게 압박하자는 것이다. 전 세계 G2였던 국가 중에서 7% 이상 성 장한 나라가 없다. 그런데도 중국이 7% 성 장한다면 큰일난 것처럼 떠드는 것은 난센 스다. 이젠 중국은 GDP 절대 수치가 아니라 중국의 구조 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답이 나 온다. ‘못살면 혁명’이고 ‘잘살면 쇼핑’이다. 시 진핑이 집권한 2012년 하반기 이후 GDP를 보면 서비스업 비중이 제조업 비중을 넘어 섰다. 중국은 지금 서비스대국이다. 중국은 연간 1억 명이 해외여행을 가고 전 세계 명품 의 28%를 사들이는 소비대국이 되었다. 지 금 포춘 500대 기업이 중국 돈 벌겠다고 모

조리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 경제의 구조 변화로 한국 경제에 적 신호가 오고 있다. 지금 중속(中速) 성장하 는 중국이 위험한 게 아니라 중간재 수출에 목숨 걸었던 중간재 대국 한국이 위험하다. 중국 제조업의 구조조정으로 중간재 수요 가 줄자 당장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몇 달 째 마이너스다. 중간재에서 중국 쓰나미가 온 것이다. 중국, 더 이상 제조업 대국 아니다 중국이 세계의 소비대국으로 부상하고 1 억 명의 인구가 해외 관광을 하면서 명품 과 브랜드에 눈뜨자 한류 제품이라고 폼 잡던 한국의 소비재는 추풍낙엽이다. 한 국은 중간재에서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소 비재에서는 세계 톱10 안에 들어가는 브 랜드가 하나도 없다. 한국의 브랜드 없는 소비재산업도 중국에서 이제 눈물 흘릴 일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금융에서도 변화가 있다. 중국은 우 리에게 대인(大人)에서 되놈(6·25 때), 중국 노동자(수교 이후)를 거쳐 이젠 요우커(遊 客)님, 그리고 지금 자본시장에서 다시 대인 으로 등장하고 있다. 올해 한국 증시에서 최 대 큰손은 중국 투자가다. 10월 27일부터 한 국의 개인도 중국 본토 주식을 살 수 있는 후 강퉁(�港通) 제도가 실시되고 그러면 중 국으로 자금 유출도 불가피하다. 그리고 내 년쯤이면 중국이 MSCI 신흥국 지수에 포함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신흥시장 최대 비 중인 한국 증시에 외국인의 한국 비중 축소 로 큰 충격이 올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은 중 국의 경제 위기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실물 경제와 금융에서 위기를 걱정해야 할 때다. 전병서 소장은 대우증권 리서치, IB본부 상무이사, 한화증권 리서치본부 전무이사를 지냈다. 중국 베이 징의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석사), 상하이의 푸단대 관리학원(석사·박사)을 졸업했다. 한국의 신국부론, 중국에 있다: 2014 5년 후 중국:2012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2010 중국 금융산업지도:2011 등의 저서가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최근 유럽에서는 영국과 유 로존의 경제 상황이 뚜렷이 대비된다. 영국은 미국과 더 불어 금리 인상 시점을 저울 질할 정도로 경기회복세가 호조다. 영국 경 제에 대한 전망 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 치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3% 수준이다. 반면에 그동안 더디나마 회복세를 유지하던 유로존 경제는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지난 2 분기 성장률은 0%에 그쳤다. 3분기 들어서도 소비·투자 등 각종 경기지표들이 좋지 않아 소폭의 성장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와 내년 유로존 의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9%, 1.6%로 이전 보다 하향 조정했다. 유로존 골칫거리, 이탈리아프랑스 유로존 경제에 대한 우려는 우선 그동안 호조 였던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의 성장세가 크 게 둔화하는 데서 비롯된다. 독일의 경우 2분 기 성장률이 -0.2%(전 분기 대비)를 기록했 다. 독일 경제의 부진은 지난 1분기 온화한 날 씨 덕분에 건설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고성장 했던 데 대한 상대적인 영향이 크다. 3분기에 는 독일 경제가 다시 회복될 것이지만 유로존 전체적으로 성장세를 제약할 요인이 적지 않 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빚어진 러시아와의 갈 등으로 급감하고 있는 대러시아 수출이 단시 일 내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러시아 의 에너지 공급 차단 가능성에 따른 심리적 불 안감이 투자·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크다. 11.5%에 달할 정도로 높은 실업률과 소 득 정체 역시 구조적인 소비 위축 요인이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 9월 전년 동월 대비 0.3%에 그치는 등 계속 낮아 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일본과 같은 경기 침 체와 물가 하락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장 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디플 레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6월과 9 월 초 금리 인하에 나선 데 이어 양적완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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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VIX(공포지수) 재림

요우커노믹스(遊客-nomics)

2승8패

다음 주 preview

공포를 먹고사는 옵션 트레이더. 가파르게 치솟은 변

요우커(遊客)로 불리는 중국 관광객 30명당 신규 일자

지난 10영업일 다우지수 성적표는 ‘2일 상승 vs 8일 하

월요일 미국 콜럼버스데이 및 일본 건강의 날 휴장.

동성(Volatility)에 매수포지션(Long Position)은 큰 폭

리 1개 창출 효과. 싹쓸이 쇼핑으로 이름난 요우커는 방

락’. 이 중 100포인트 넘는 하락 4회, 상승 2회. 롤러코

본격 어닝 시즌 돌입한 가운데 14일 독일 ZEW 경

의 이익. 연초 취약국 환란 위기 때와 맞먹는 공포 도래

문국 경제기여도 1위에 올라. 민주화 시위로 국경절 포

스터의 직접 원인은 수퍼달러 및 유로존 경기침체. 하지

기전망지수(10월, 예측치 1) 주목. 15일 한국은행의

에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표 VIX, 선행

함 20여 일째 요우커가 사라진 홍콩 쇼핑가. 몇몇 쇼윈

만 시장의 불안장애 뿌리는 10월 말 예정된 미국 연방

금융통화위원회 또한 메인 이벤트. 미국의 9월 주

지수로 각광.

도에는 때 이른 폐업정리 안내문.

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졸업식.

택 착공실적(17일) 100만 호 넘길지도 관심.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위례 청약경쟁률 ‘139대 1’이 남긴 것들

유럽

숫자로 본 위례신도시*괄호 안은 판교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요즘 주택시장에서 가장 달아오른 곳은 단 연 위례신도시다.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하남시에 걸쳐 개발되는 2기 신도시 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의 하나인 송파구가 포함돼 있고 강남권 주택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조성되는 곳이어서 ‘강남권 신도시’로 불린다. 애초 이름이 송파신도 시였다가 성남과 하남을 아우르는 이름으 로 바꾸기 위해 공모를 거쳐 ‘울타리’란 뜻 을 가진 위례로 바뀌었다.

677만2950㎡(892만1788) 인구 10만8200명(8만7789) 인구밀도 160인/ha(98) 주택 수 4만3590가구(2만9263) 조성원가 1132만원/3.3㎡(743만) 사업비 11조1009억원(8조7043억) 면적

자료: 국토교통부

판교 이후 가장 뜨거운 청약 열기 집값 회복세 힘입어 가치 상승 기대 지나친 쏠림은 시장 비정상 우려

1년4개월 새 27대 1→139대 1 위례에서 2006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 시 분양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아파트 청 약경쟁률인 1순위 평균 139대 1이 최근 나 왔다. 지난 8월 1층을 음식점 등으로 쓰는 점포 겸용 단독주택 용지가 평균 390대 1, 최고 2746대 1의 신청 경쟁률을 기록한 곳 도 이곳이다. 위례자이의 경쟁률에는 훌쩍 큰 주택시 장 회복 기대감이 배어 있다. 인근에서 지 난해 6월 분양된 래미안 위례의 1순위 경쟁 률은 평균 27대 1이었다. 1년4개월 새 경쟁 률이 세 배 넘게 뛰었다. 그 사이 지난해 8·29 대책, 올해 9·1 대책 등 정부의 강도 높은 주택경기 부양책이 있 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올 상반기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방침 발표 등으로 약세를 보 였는데도 2% 올랐다. 지난달 서울에서 거 래된 아파트가 8800여 가구로 2008년 금 융위기 직후 반짝 상승세였던 2009년 이후 가장 많은 9월 거래량이다. 올 들어 전매제한이 풀리면서 앞서 분양 된 위례 아파트 분양권에 수천만원에서 1 억원이 넘는 웃돈이 붙었다. 래미안 위례 청약 때 긴가민가하던 웃돈이 현실이 됐다. 위례자이 청약자들은 2~3년 뒤 입주할 무 렵에는 이보다 더 많은 웃돈이 붙을 것이란 자신을 가졌다. 완공되기 한참 전인 착공시 기에 미리 집을 파는 선분양 구조에서 가격 상승 기대감이 없으면 청약하기 힘들다.

디플레 우려 빠진 유로존

2분기 경제성장률 제자리 걸음 물가 상승률은 0.3%에 그쳐 은행들, 위험 대출 나설지는 의문 노동 유연화 등 구조 개혁이 과제

중장기적인 성장 활력 회복을 위해 유로 존은 노동의 유연화, 인프라 투자 확대, 상품 시장의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한 구조 개선 과 제를 안고 있다. 위기 상황에 직면했지만 구 제금융을 모면한 이탈리아는 구조조정에 소홀했고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세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제로 성장의 정체 상태인 프랑스 역시 장기간 경쟁력이 약화 하면서 이제 유로존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상 황이다. 유로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7%를 차지하는 두 나라의 경제가 부진을 지속하는 한 유로존 경제의 회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럽 시장서 한국 수출 여건 악화 올해 1~8월 중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유로존 과 유럽연합(EU)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5%, 9.6%다. 유럽 전체로는 13.2%에 달한 다.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이지만 미국 의 12%, 일본의 5.8%보다는 높다. 최근 몇 년 간 유럽 경제의 침체가 지속하면서 우리의 대 유럽 수출도 역성장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올해 1~8월 중에는 대EU, 대유로존 수출이 각각 10.8%, 9.6% 증가하는 호조를 보였다. 성장세가 높아진 영국과 일부 유로존 국가에 대한 수출이 급증한 때문이다. 유로 화 강세의 효과도 작용한 바 크다. 그러나 유로존 경제가 다시 부진에 빠져들 고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유럽 지역에 대 한 수출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 다. 원-유로 환율의 경우 지난해 한때 유로당 1500원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유로당 1300원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원화는 유 로화와 연계돼 움직이는 여타 유럽 통화에 대 해서도 강세여서 향후 유럽 시장에서 우리 수 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을 전 망이다.

“자국 경기 띄우려고 환율 경쟁해선 안 돼”

이창선 수석연구위원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 사·석사, 미국 UC Davis 경제학 박사. 1991년 LG경제연구원 입사 이후 경제연구실, 금융재무 연구센터에서 근무. 금융연구실장 역임. 현재 금 융재무담당 수석연구위원

강남권 주택 수요 흡수·분산 대책 필요 서울·수도권 분양시장은 1%대 99%의 양 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남권에선 1순 위 수십 대 1의 경쟁률이 예사지만 다른 지 역에선 아무런 청약자격 제한 없는 3순위 까지 접수해도 모집 가구 수를 채우지 못 하는 아파트가 적지 않다. 주체할 수 없는 강남권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재건축 등 강남권 내 주택 공급을 늘 려야 한다. 주거 선호지역 분포에서도 ‘1% 대 99%’가 나타나지 않도록 강남권 이외 지역의 업그레이드도 수반돼야 한다. 그러 잖아도 정부의 9·1 대책이 강남권 등 인기 지역에 규제 완화 혜택을 몰아줘 지역 간 불균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글로벌 환율전쟁 경고한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

Ap=뉴시스

나설 의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러나 중 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부실채권에 발목 잡 혀 있는 은행들이 문제다. 유로존 내 은행들 의 부실채권 비율은 10%를 넘는다. 2% 남짓 한 여타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자체 생존이 위태로운 은행들이 위험 대출에 적극 나설지 는 의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유로존 내 기업 대출은 마이너스 증가세고 가계 대출도 정체 상태다. 글로벌 위기 이후 영국이나 미 국에서와 달리 유로존에서는 부실은행에 대 한 지원과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한 탓이다. 양적완화로 인해 지난 3월 초 1유 로당 1.39달러 수준이던 유로화가 최근 1.26 달러대로 10%가량 하락하면서 수출 여건은 개선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높은 역 내교역 비중으로 인해 유로화 약세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드라기 총재는 통화완화 정책 외에도 재정의 역할 증대와 경제의 구조조정 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른바 유럽 판 아베노믹스인 셈이다. 그러나 경기부양 목 적의 재정 완화에 대한 독일의 거부감이 크 다. 재정 완화가 가능해지더라도 유로존 특 유의 더딘 의사결정 구조를 감안할 때 시간 이 걸릴 수밖에 없다.

주택시장의 훈풍이 강남권 신도시라는 위례의 상품가치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27대 1에서 139대 1로 청약경쟁률이 오른 만큼 시장 온도가 상승하고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언제든 주머니를 열 수 있는 대기 수요가 많다는 것도 이번 위례자이 청약에서 확인 됐다.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2년 이상인 1 순위자 6만2670명이 위례자이에 신청했다. 당첨되면 청약일로부터 불과 2주 정도 뒤 인 15~17일 1차 계약금 4000만원을, 한 달 쯤 뒤인 11월 17일 2차로 4000만~1억2500 만원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이 모두 당첨될 경우 바로 동원할 수 있는 6조원가량의 돈이 장롱에 쌓여 있는 셈이 다. 바닥 수준의 저금리에서 주택시장으로 흘러 들어올 돈이 넉넉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 자리 숫자의 청약경쟁률을 두 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청약 과열” “투기”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위례를 ‘투 기과열지구’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 다. 2011년 12월 강남3구가 마지막으로 해 제되면서 투기과열지구는 현재 이름만 남 아 있고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다. 집값 상 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고 청약 경 쟁이 치열한 지역을 대상으로 청약자격과 분양권 전매제한을 강화해 청약경쟁률을 누르는 것이다. 투기과열지구 용어가 보여

주듯 그 바탕에는 청약경쟁률이 높은 주택 의 신청자는 ‘투기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위례 청약자는 투기꾼인가. 이들은 내 집 이 필요해서, 집을 갈아타려고 혹은 직접 거주할 생각 없이 분양권을 팔거나 시세차 익을 노리고 청약했을 것이다. 집을 사용하 면(사용가치) 건전한 실수요이고 살지 않 고 팔면(교환가치) 가수요이자 시장을 흐 리는 투기로 봐야 하나. 중국계 경제학자인 천즈우는 자본의 전략에서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투기’가 없으면 시장은 없고 주식이나 부 동산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돈을 벌려는 목 적의 투자가 없다면 시장이 활성화될 수 없 다는 것이다. 돈을 벌려는 수요에 불법적이고 부도덕 한 뉘앙스가 짙은 투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시장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한 해에 거래되는 분양권 건수는 주택 매매 거래량 의 30~40%에 이른다. 투기는 법 테두리 밖 의 행위로 제한하고 그런 투기에 대해선 강 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천정부지의 청약경쟁률은 불법이 아니 고 부도덕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나친 쏠림 이 ‘정상’은 아니다. 시장이 비정상화돼 있 다는 뜻이다. 한 군데로 쏠린 수요를 분산 시켜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경기부양을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경쟁 적으로 떨어뜨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 제이컵 루(59·사진) 미국 재무장관이 글로벌 환율 전쟁 가능성을 경고했다. 루 장관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서 개막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WB) 연차총회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교 역 상대국들이 자국 경기부양을 위해 통 화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통화가치 약세 유도 경쟁을 막기 위해 지속 적인 환율 불균형을 피해야 하 며 환율을 정책 목표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루의 발언은 달러 강세 흐 름이 견고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교역 대상 국에 미리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분석된

다. 현재 10대 통화에 대비한 미국 달러의 가치는 지난 6월 말 이후 6.7% 평가절상됐 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 말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내년 중엔 기준 금리 인상에 나설 방침이어서 달러 강세 는 지속할 전망이다. 루 장관은 앞서 7일엔 ‘중국’을 직접 언 급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이날 한 토론회 에서 루 장관은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할 여지가 여전히 있다”며 “중국이 통상적으 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온 것을 끝내고 투 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도 시장 환율에 더 다가가는 것이 장 기적 이익에 들어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강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 는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 시스템을 시 장 기반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환율에 대한 정부 개입 수준을 거의 제로(0)로 낮췄다”고 주 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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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중앙은행 오디세이 ② 위조화폐, 국가 이념에까지 영향 미쳐

해방 직후 벌어진 위폐 사건 계기로 한국은 반공사회로 차현진 한국은행 커뮤니케이션국장 hyeonjin.cha@bok.or.kr

일찍이 볼셰비키 혁명 이후 레닌은 “자본주 의를 붕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을 타 락(debauch)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돈을 타 락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짜 돈을 유통 하는 것이다. 돈은 신뢰를 바탕으로 주고받 는 것이며 가짜 돈의 범람은 그 신뢰를 파괴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교환과 무역도 안 심할 수 없다. 가짜 돈은 요즘과 같은 불태환화폐 제도뿐 만 아니라 금속화폐 제도하에서도 골칫거리 였다. 기원전 6세기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화 폐가 발명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가짜 돈 또는 불량 화폐와의 전쟁을 치러왔다. 그 전쟁을 일으킨 범인은 진짜 ‘전범’과 다름없 는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위조범에 대한 가장 가혹한 처벌의 하나는 1690년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토머스 로저 스라는 사람은 가짜 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딸과 함께 은화 40개를 고의적으로 깎아서 약간의 은가루를 챙겼을 뿐이었다. 로저스는 교수형을 당하고 그 시체는 물에 담갔다가 토 막 난 채 버려졌다. 그리고 그의 딸은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명예혁명을 통해 등장 한 영국 최초의 민주정부가 한 일 치고는 전 혀 명예롭지 못했다. ‘돈을 타락시키는 것’은 그만큼 용서될 수 없는 역모로 간주한다. 베른하르트 작전을 소재로 해 2007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카운터페이터. 나치친위대 소속 베른하르트 크뤼거 소령은 140여 명의 인쇄기술자들을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로 집결시켜 4년간 1억3000만

16세기 인쇄술이 가져온 변화 위조화폐에는 고도의 기술이 동원된다. 북 한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100달러짜리 ‘수 퍼노트’는 너무나 정교해 감별기로도 식별 이 안 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140여 명의 유대인 최고 기술자들을 강제수 용소에 잡아 가둔 뒤 필사적으로 파운드화 를 위조하도록 했다(베른하르트 작전). 영국 로저스 부녀의 사례가 개인 차원의 일탈이었 다면 북한과 나치의 사례는 타국을 향한 국 가 차원의 공작이었다. 그렇다면 ‘가짜’ 돈 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화폐전쟁이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진짜 돈에도 최고 수 준의 과학기술이 동원된다. 화폐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조폐기술은 1550년께 독일 남 부에서 시작됐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100년 전 인쇄업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 했을 정도로 금속과 기계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해 있었다. 그 이전에는 모든 나라가 귀금속을 녹여 돈을 만들었다. 그래서 모양이 균일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쉽게 변형되고 마모됐다. 그 런데 1550년께 인쇄기술에서 파생된 압축공 법이 개발돼 과거보다 훨씬 단단하고 정교한 모양의 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때마침 남미 대륙에서 거대한 은광을 발견한 스페인은 국 왕 펠리페 2세가 통치하던 당시 신성로마제 국의 독일 지역에서 압축 기계를 가져와 은화 (작은 사진) 제작에 적용했다. 세고비아 지방 에서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새 돈은 정교함과 단단함, 그리고 균일함 면에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주변국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 는 가운데 스페인 은화는 자연스럽게 기축통 화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스페인의 은화는 ‘톨라르’라는 이름으로 유럽과 신대륙으로 퍼졌다. 이것이 오늘날 ‘달러’라는 화폐단위 가 널리 보급된 발단이었다(dollar는 한 나 라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문자로 쓴다). 그 돈은 임진왜란 이후 필리핀과 일본 을 거쳐 한국과 중국에까지 유입됐다. 중국 인들은 스페인 은화를 보고 놀라운 듯 ‘은원 (銀圓)’이라고 불렀다. 가운데가 뻥 뚫어진 그들의 엽전과 달리 가운데가 막혀 있어 둥 그런 은쟁반 같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둥글

파운드어치의 위조지폐를 제조했다. 이것은 모든 물건을 통틀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짝퉁 생산이었지만 여기에 동원된 유대인들은 나중에 무죄로 풀려났다.

조선공산당, 위조지폐 대량 제작 이 사건으로 공산주의 추방 위조지폐는 사회체제 붕괴 불러 현대에선 화폐 남발이 더 문제

해방 직후 조선은행 일본인 간부의 결정으로 급하 게 발행된 조선은행 을(乙) 100원권. 인쇄원판이 공산당원의 손에 넘어감으로써 조선정판사 위조 화폐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북한군도 한국전쟁 발 발 직후 똑같은 돈을 위조해 대량 살포했다. 해방 전에 발행된 갑(甲) 100원권에 비해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조잡한데도 조선은행은 안이하 게도 이를 계속 유통시켰다.

다’는 뜻의 한자가 한·중·일 3개국의 화폐단 위로 쓰이게 된 계기가 됐다. 이 모든 것이 16 세기 독일의 인쇄술에서 출발한 사건이었다. 불태환 시대로 접어들면서 화폐와 인쇄술 은 더욱 가까워졌다. 불태환 시대에는 주화보 다 은행권, 즉 지폐를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위조량은 금속화폐 시대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해방 직후 우리 가 겪었던 위조지폐의 경험은 나치가 저지른 베른하르트 작전보다도 극적이다. 한때 모조지 화폐 발행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자 일본은 대한제국의 상징이던 원구단(圜丘壇)을 허물고 그 자리 에 조선철도호텔(오늘날의 조선호텔)을 지 었다. 인천항에서 경인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 착한 일본인들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는 곳이 었다. 그 주변에는 조선은행(오늘날의 한국 은행 화폐박물관)을 포함한 주요 국가시설들 이 밀집했다. 그중에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 사(교과서 인쇄)와 근택(近澤)인쇄소(신문 인쇄)도 있었다. 그리고 조선의 흔적을 지우 기 위해 태종의 딸(경정공주)이 태어났던 그 동네의 이름을 ‘작은 공주골(소공동)’에서 ‘하세가와마치(長谷川町)’로 바꿨다. 하세가 와는 조선총독의 이름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은행권은 원래 대장성 인쇄국에서 인쇄됐다. 그러나 패전이 가까워 오면서 일본 본토가 극심한 물자 부족에 빠 지자 제작 장소가 서울로 바뀌었다. 이 무렵 조선도 정상은 아니었다. 대장성인쇄국 서울 출장소는 화폐용지를 조달하지 못해 시내 지 물포에서 모조지를 구입한 뒤 조선서적인쇄 주식회사를 통해 은행권을 제작했다. 교과서 인쇄기를 통해 급하게 만들어진 조악한 지폐 는 이후 수십 종의 위조지폐가 출몰하게 되 는 원인이 됐다. 그런 상태에서 해방이 찾아왔다. 철수작전 에 돌입한 조선은행의 일본인 간부들은 조선 서적인쇄주식회사에 있던 100원짜리 인쇄원 판을 빼돌렸다. 그리고 인근의 근택인쇄소에 서 미 군정청과 조선인 직원들 몰래 지폐를 인쇄한 뒤 귀국길에 나선 일본인 예금주들에

게 지급했다. 그 바람에 불과 며 칠 동안 100원권 발행액은 두 배로 늘었다. 그런 불법은 한 번으로 끝 나지 않았다. 그 인쇄소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철수하기 바쁜 일본인들 손에서 다시 인 쇄원판을 빼돌려 똑같은 일을 저 지른 것이다. 그 직원은 조선공산당 당 원이었다. 해방 직후 남조선에서는 공산당이 합법 단체였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압수한 재산을 불하할 때도 미 군정청은 근택인쇄소 를 조선공산당에 넘겼다. 거기서 근무하는 직원의 상당수가 조선공산당 당원이었기 때 문이다. 조선공산당은 근택인쇄소를 조선정판사 (朝鮮精版社)로 개명한 뒤 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를 인쇄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 면적인 활동이었다. 인쇄소의 임직원들은 빼 돌린 인쇄원판을 이용해 건물 지하에서 대량 으로 위조지폐를 제작했다. 그리고 공작금 으로 썼다. 그 후 다른 사람에게 인쇄원판을 팔아 넘기려다 적발됐다. 소공동 74번지 지하에서 위폐 제작 1946년 5월 검거된 10여 명의 피고인들은 ‘용 공 조작’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법정에서 는 사상 최초의 재판부 기피신청과 법정 소 요사태가 발생했다. 법정 밖에서는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이 의문사하거나 담당판사가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사건까지 발생했 다. 극도의 혼란이 수개월간 계속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공산당은 철저히 외 면받았다. 당시 신탁통치 찬반 문제는 지식 인들끼리의 관념적인 문제였던 반면 위조지 폐 문제는 전 국민을 금방 빨아들여 흥분시 키는, 무섭도록 폭발적인 문제였다. 은행에서 100원짜리 지폐 수취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 생하는 가운데 공산당은 불법 단체로 낙인찍 혔다. 주범 박낙종과 이관술은 종신형에 처 하고(한국전쟁 중 처형), 조선공산당 당수 박 헌영은 북으로 도망갔다. 해방일보는 매각돼 오늘날 경향신문으로 전환됐다. 이것이 ‘조

◀정교한 디자인과 견고함을 가진 스 페인 은화. 아프리카 노예의 노동 력으로 남미에서 채굴된 은을 유 럽의 기술로 제조한 뒤 아시아 로부터 수입품을 구매하는 데 쓰였다는 점에서 이 돈의 유통은 진정한 글로벌 현상이었다.

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전말이다. 해방 직후 순진했던 남조선은 소공동 74번 지(오늘날의 조선호텔 앞) 지하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반공사회 가 됐다. 돈의 타락은 자본주의를 붕괴시키 지만 그 실패는 공산주의를 추방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의 ‘짝퉁’은 그 어떤 ‘짝퉁’보 다도 위태롭다. 그런데 ‘돈의 타락’은 원래 위조화폐를 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닌이 말한 돈의 타락 이란 진짜 돈의 범람이었다. 레닌은 인플레이 션이 극심해지면 자본주의가 붕괴한다고 믿 었다. 즉 무능한 중앙은행에 의한 화폐 남발 이 화폐 불신을 초래해 자본주의의 씨앗인 화폐를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 무능한 중앙은행은 사회 전체를 구렁텅이로 떨어뜨린다. 제1차 세계대전 직 후 독일의 라이히스방크는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탈이었고, 대공황 때 미 연방준비제 도(Fed)는 돈을 너무 적게 풀어 탈이었다. 화 폐경제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물질로서의 돈 을 잘 만드는 것 말고도 사회제도와 신념체 제로서 돈을 잘 가꾸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조상은 그런 것을 잘 몰랐다.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도 금융과 중 앙은행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나머지 돈의 재 질을 개량하는 데만 매달렸다. 그런 면에서 레닌보다도 더 유물론적이었다. 이것이 다음 이야기의 주제다. 차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올해로 30년째 한국은 행에서 근무 중이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금융 오디세이 등 금융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conomy 21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Biz Report SK창조경제 현장을 가다

대전 연구단지 특허 활용  한국판 실리콘밸리 키운다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스타트업 현황

대전·세종=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크레모텍은 스마트폰용 프로젝터를 만드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삼성전자 출 신인 이 회사 김성수 대표는 2007년 세계 최 초로 휴대전화용 프로젝터를 상용화해 대한 민국 10대 기술상을 받았다. 기술력을 인정 받았지만 상업화에 실패하는 등 굴곡도 많 았다. 중국 현지에서 프로젝터를 출시했다가 시련을 겪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것은 SK텔레콤의 ‘브라보! 리스타트’ 프로그램 이다. 이 프로그램은 45세 이상의 창업 유경 험자들의 재활을 돕는 걸 목표로 한다. 지난 해 이 프로그램의 1기 참여 기업인으로 선정 된 그는 SK텔레콤이 가진 특허 9건은 물론 창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고가의 장비들 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프로그램에 참여 한 지 1년여 만인 현재 크레모텍은 19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재기에 성공했다. 올해 매 출 목표는 28억원이다. 현재 SK텔레콤 융합 기술원과 공동으로 HD급 화질을 낼 수 있는 레이저 프로젝터 개발에 한창이다. 김 대표는 “SK그룹은 단순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창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원해 줘 다시 한번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여건을 만 들어줬다”며 “새롭게 개발한 프로젝터를 통 해 국내 디지털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일궈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SK그룹 보유 기술 창업자에게 제공 SK그룹이 스타트업 도우미로 나섰다. SK그 룹이 가진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활용 해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들을 조기에 발굴하 고 이들이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으로 도약 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는 계 획이다. 창조경제 실현을 돕는 일종의 ‘키다 리 아저씨’다. 그 첫 단추는 10일 대전시 유성 구 KAIST 내에 문을 연 ‘대전창조경제혁신 센터’다. SK그룹은 일찍부터 대전에 주목했다. 대 전은 대덕연구단지와 대전산업단지 등에 1600여 개의 기업과 기관, 14개 정부 출연연 구소, KAIST와 충남대를 비롯한 19개 대학 이 포진해 인적 자원이 풍부함에도 ‘대박’ 아이템을 내지 못한 지역이다. SK그룹 측은 10일 “대전 일대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할 수 있는 인적·물적 여 건을 갖췄지만 이런 다양한 자원을 유기적 으로 연결하지 못해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며 “SK그룹이 그간 축적한 노하우 와 물적 지원을 바탕으로 대전을 미국의 실 리콘밸리 못지않은 곳으로 개발해 SK식 창 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설명했다.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센터)는 이런 계획의 전진기지다. 센터는 1788㎡(542평) 규모로 막연한 아이디어를 사업화로 이끌어 주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스페 이스’를 비롯해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공간 을 갖췄다. 디자인 씽킹 스페이스는 SK그룹 내 창업 전문가들이 상주하면서 예비 창업자 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주는 일종의 상담 공간이다. 센터의 핵심은 기술사업화 장터다. 대전 인 근 출연연구원과 SK그룹이 보유한 기술을 창업자들이 무료 내지는 실비로 활용할 수 있 도록 하는 게 기술사업화 장터의 목적이다. 올해 말까지 2400건의 특허(출연연구소 2000건, SK그룹 관계사 400건)가 장터에 등 록된다. 이후로도 매년 1100건 이상의 유망 기술을 이곳에 등재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을 비롯한 그룹 내 계열사들은 어떤 특허 기술이 어느 출연연구소에서 출연 됐는지를 효과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플랫폼 을 개발·제공해 특허의 검색과 활용 편의성

업체명

사업 분야

케이에이치 인베스트먼트

ICT 기반 저전력 동산 담보물 감시 시스템

엠투브

클라우드 소싱 기반 블랙박스 서비스

더에스

멀티채널 스포츠 Wifi 카메라

씨메스

산업용 3D 스캐너 시스템

알티스트

고신뢰 실시간 운영체제

엠제이브이

영상 자동제작 시스템

나노람다 코리아

초소형 나노분광센서

테그웨이

웨어러블 플렉시블 열전 발전기

엑센

Advanced CO2 센서

예비창업자 박지만씨

사물인터넷 센서 신호처리 제품 개발 자료: SK그룹

공해 2016년 완공 예정인 사이언스 빌리지에 는 사무실과 스마트 서비스 기술 전시장, 사 물인터넷 테스트 베드 등이 들어선다. ‘ICT를 활용해 잘사는 농촌을 만들 순 없 을까’. 세종창조마을시범사업은 이 같은 고민에 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SK그룹은 ‘농작물 기획생산과 근거리 소비’를 골자로 하는 ‘스 마트 로컬푸드 시스템’의 전도사로 나섰다. 한마디로 농작물 생산에서 유통, 판매까지 ICT를 통해 스마트화한다는 얘기다. ‘로컬 푸드 시스템’은 경작된 농산물이 근거리(반 경 5~10㎞ 내외)에서 즉각 소비가 이뤄지도 록 하는 게 목표다.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 을 공급받고 생산자는 안정적인 수요처가 생 기는 것이다. 원동력은 정확한 수요 예측과 탄력적인 농산물 공급이다.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둘러보던 박근혜 대통령이 ‘셀카봉’을 들고 혁신센터 내 청년 창업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특허 공유 ‘기술사업화 장터’ 설립 센터 내엔 창업기업 입주 기회 450억원 창업지원 펀드 조성 농촌엔 ‘스마트 로컬푸드 시스템’

을 높이기로 했다. 센터 내부엔 대전 지역 창업 기업을 위한 입주 공간도 마련됐다. 현재 클라우드 소싱 기반 블랙박스 서비스 개발업체인 엠투브를 비롯한 벤처 10곳의 입주가 확정됐다. 당초 180개 업체가 입주를 희망해 입주 경쟁률은 18대 1에 달했다. SK텔레콤 CSV실 장형일 매니저는 “대전 센터 내 창업 기업 입주 공간은 10개월간 무 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소정의 창업자 금 지원도 이뤄진다”며 “창업 지원에 대한 깊 이와 폭이 국내 다른 어떤 창업센터보다 우

대전=청와대사진기자단

수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공간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 전센터를 위해 총 450억원의 창업지원펀드 (이하 대전펀드)가 구성돼 자금 지원이 이뤄 진다. 대전펀드와는 별도로 최태원(54) SK 그룹 회장이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기부한 금액 중 일부인 104억원을 활용한 소 셜벤처 펀드도 창업자를 기다리고 있다. 혁신센터 인근에는 사이언스 빌리지가 신 축돼 예비 창업자들의 업무 편의를 돕기로 했다. 사이언스 빌리지 신축에만 총 490억원 (SK그룹은 250억원)이 투자된다. 내년에 착

SK그룹이 세종창조마을에 도입하려는 스마트팜을 직원들이 꼼꼼히 살피고 있다. 금붕어 배설물 등 친환 경 재료로 작물을 키우고 각종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일손을 최소화했다.

[사진 SK그룹]

창조경제로 잘사는 농촌 만든다 이를 위해 SK그룹은 ICT를 활용해 어떤 작 물이 인기가 있을지 사전에 예측하고, 농민 들에게 어떤 농작물을 얼마만큼 키워야 하 는지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농가 입장에선 한 해에 한 가지 농작물 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수박·참외 등 5~6가 지 작물을 1년 내내 키우고 팔 수 있어 고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농가들이 로컬푸드 시 스템에 참여토록 독려하는 일은 세종특별자 치시와 농업기술센터가 맡았다. 세종창조마을시범사업은 SK그룹과 지자 체 등이 힘을 합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 인 셈이다. 성과도 뚜렷하다. 지난해부터 로 컬푸드 시스템을 도입한 전북 완주군(1500여 농가 참여)의 경우 참여 농가의 평균 소득이 전년보다 100% 가까이 늘었다. 세종창조마 을시범사업이 제대로 이뤄지면 젊은 층의 귀 농도 늘어날 것이라고 SK그룹이 기대하는 이유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농산물별 출하 시기 를 조절하는 일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인근 농가가 이번 주에 참외를 많이 내놓는다고 하면 이를 사전에 파악해 농가별로 공급 시 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다. 자신이 내놓은 농 작물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만큼 팔리고 있는 지 손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로컬푸드 관련 사회적 기업인 행복ICT의 김석경 상임이사 는 “현재 우리나라 전체 농가의 50% 이상이 노인들이 농사를 짓는 고령농이면서 생산량 이 많지 않은 소농인 경우가 많아 중·대농 중 심의 농업 거래에서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 다”며 “체계화된 생산을 통해 소농들도 연중 꾸준한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되면 자연스레 농촌 인구 감소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 했다. SK그룹의 농촌 기여는 이에 그치지 않는 다. 사물인터넷 기술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농업 관련 시설을 원격 제어하고, 지능형 영 상 분석을 통해 농작물과 농기계 도난을 막 아 ‘힘들지 않은’ 농업이 가능토록 한다는 목표다.


22 Focus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여주 옹청박물관, 현대 순교자 시복·시성 위한 정자·동산 기공식

격동의 현대사 속 믿음 위해 목숨 바친 그들 위하여  여주=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시복(諡福)이란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아 공 경할 만한 사람을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것 이다. 복자는 교황이 최종 승인하는 데 심사 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보통 20년 이상 걸 린다. 복자의 다음 단계는 성인(聖人)인데 시 성(諡聖)은 성인으로 추대함을 뜻한다. 10일 오전 경기도 여주시 옹청박물관에서 는 ‘현대 순교자 시복·시성을 위한 현양 정 자·동산 기공식’이 열렸다. 현대 순교자란 한 국전쟁 등 격변기 우리 현대사 속에서 신앙 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지칭한다. 2002년 설립된 옹청박물관은 개관 12주년 기념 행사 로 이번 사업을 기획했다. 이곳은 인천 가톨 릭대학 초대 총장이자 신부인 최기복(69) 관 장이 한국 전통과 그리스도 정신을 융합해 선보이고 있는 일종의 예술 치유 공간이다. “한국 현대 순교자들, 찬미와 영광을 받으 소서. 이들의 시복이 남북한 화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화창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건물 앞 중 앙공터에서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의 나 지막한 기도문이 울려 퍼졌다. 100여 명의 신 도가 모인 경건한 분위기 속에 성수 예절이 치러졌고, 이어 최 주교와 사제들이 동시에 삽을 들었다. 전통그리스도 정신의 융합 옹청박물관 박물관 측이 현대 순교자에 초점을 맞춘 데 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올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해라는 점이 먼저 고려됐다. 교황은 지난 8월 16일 한국 천주교 사상 세 번 째 시복식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전한 바 있다. 대상이 된 124위의 복자는 모두 조선시 대 말 순교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복자가 되 면서 이제 현대 순교자들의 시복에 힘을 모 을 때가 됐다는 설명이다. 또 올해는 한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던 김선영 요셉(1898~1974) 신부의 순교 40주년 이 되는 해다. 김 신부는 1930년 중국으로 파

10일 오전 경기도 여주시 옹청박물관에서는 사제·신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현대 순교자 시복·시성을 위한 현양(顯揚) 정자·동산 기공식이 열렸다. 한국전 쟁 전후 신앙으로 인해 핍박받았던 118위가 그 대상이다. 박물관 측은 관내 정자와 동산 외에도 신약관(오른쪽 위) 건물 2층을 현대 순교자 기념관으로 만들어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김선영 신부 등 신앙 지킨 118위 기려 박물관 내엔 유품기록물도 전시 10년 내 시복 가능할 것 기대감

견돼 만주·하얼빈·옌볜 등에서 복음을 전파 했다. 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외국인 추 방 명령을 받지만 이를 거부하다 미국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15년 옥살이를 했고 결국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선종했다. 이번에 시복·시성 대상이 되는 ‘현대 순교 자’는 김 신부를 포함해 118위다. 2009년 주 교회의가 실시한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 한 시복 조사’로부터 선정된 80인, 그리고

최정동 기자

2007년 베네딕도회 소속으로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순교자 38위를 합친 것이다. 최 관장은 “국내에서 현대 순교자 현양 사 업이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 음”이라며 “10년 내에 시복이 가능할 것이라 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전했다. 박물 관 측은 관내 정자와 동산 조성 외에도 2층짜 리 신약관 건물 일부를 현대 순교자 기념관 으로 꾸며 그들의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순교자를 기리는 동상과 조각 작 품도 함께 설치한다. 박물관 일대 유네스코 유산 등재 추진 예약제와 회원제로 운영되는 옹청박물관 은 독특한 공간이다. 옹기 동산과 청학 박물 관을 줄여 이름을 붙였는데, 청학은 98년 세 상을 뜬 이청학 신자의 후손들이 박물관 설

기공식 사전 행사로 열린 성경 작품 축복식에서 최기복 박물관장이 성경 내용을 묘사한 나전칠화 7점을 설명하고 있다.

립 자금을 봉헌한 데서 비롯됐다. 9917㎡(약 3000평)의 너른 잔디밭 언덕 위에 한옥 세 채 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느 전통 가옥 과는 사뭇 다르다. 옛 가옥 자재를 다시 이어 붙여 지었다는 건물은 십자 형태로, 모서리

마다 내부에 굵은 기둥이 설치돼 있다. 모양새만큼이나 색다른 것이 전시물이다. 옹기와 토기, 청자·백자 같은 전통문화 유산 을 건물 안팎에 배치하면서 구약·신약 성서 를 상징하는 나전칠화 작품을 천장과 기둥 곳곳에 붙여놨다. “회개하라 구세주가 오신 다”고 외친 세례자 요한의 부르짖음을 전통 자개로 만든 ‘포효도’(마르코 복음서), ‘하 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마누엘의 의미를 담은 ‘인천도’(마태오 복음서)가 대 표적이다. 현재 성경 73경 나전칠화 작품과 도자기류 문화재 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 데, 이 모든 작품 제작은 김경자 한양대 명예 교수와 무형문화재 손대현·김의용·강정조 선 생이 맡고 있다. 10일 기공식에 앞서 신약 성경을 주제로 한 작품 5점과 사도기둥 작품 2점이 새로 공개됐 다. 전통의 오방색을 적용하고 그림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성경의 중요 테마를 녹여냈다. 최 관장은 이런 시도에 대해 “이것이 가톨릭이 추 구하는 방향”이라고 단언했다. 유교와 불교가 이 땅에서 토착화한 것처럼 천주교 역시 우리 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옹청박물관은 한국 예술과 우 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두 가지 계획 을 추진 중이다. 하나는 로마 교황청에 영구 보존될 나전칠화 작품을 제작하는 일.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시복식의 표어였던 ‘일어나 비추어라’를 제목 삼아 내년까지 작업을 마 칠 예정이다. 다른 하나는 박물관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박물관 설립 초 기부터 주문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문화유산 등재추진위원회(위원장 사공일)는 박물관뿐 아니라 박물관이 있는 여주시 산북면 전체를 등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변 해여림 식물원은 물론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였던 주 어사까지 담아낸다는 의미다. 최 관장은 “이 탈리아의 중세 도시 아시시가 성 프란치스코 와 함께 조명받는 것처럼 마을 전체가 하나 의 성지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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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Column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김미경의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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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드로잉쇼’ 만든 김진규 감독

관객 4명 놓고 시작한 ‘미친 짓’ 세계 속 K아트가 되다 쇼에 합류하면 몇 달 만에 멋진 그림을 척척 그려낸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는 고정관 념을 깨줄 뿐이죠. ‘우리 모두는 원래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겁 니다. 그러면 한두 달 만에 기가 막힌 표현들 이 나와요. 배우마다 어떤 색깔과 표현이 그림 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어줄 지도 고민합니다. 그런 식으로 내면의 막혔던 부분이 풀리니까 저절로 멋진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이죠.”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한 남자가 목탄을 들고 하얀 도화지 앞에 섰 다. 종이에 검은 목탄이 닿는 순간, 먹선이 춤 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지 스치고 지 나갔을 뿐인데 절벽이 나타나고 정자가 세워 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암벽 속에서 폭포가 모 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을 그리는 데 걸리 는 시간은 고작 1~2분.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 이 아니다. 조명이 꺼지고 마술 같은 일이 벌 어지기 시작한다. 그림 속 폭포에서 정말 파란 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이 휘둥그 레진 관객들이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낸다. 무 대 위에서 이런 놀라운 일을 연출해내는 이는 바로 세계 최초로 ‘드로잉쇼’를 만든 김진규 (45) 예술감독. 드로잉쇼는 말 그대로 ‘그림 그리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쇼다. 물과 기름이 섞이는 마 블링 기법을 이용해 고흐의 해바라기를 그리 기도 하고, 캔버스에 찍은 점 하나가 춤추면 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드로잉쇼는 2007년 초연 이래 누적 관 객이 1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국내는 물론 해 외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 일본·중 국·호주 등에서 K팝을 잇는 K아트로 주목받 고 있다. 무대 올리기까지 10년, 일주일 만에 매진 시작은 농담처럼 가벼웠다. 김진규 감독은 디 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 림에 대한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나만 의 예술을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었다. 그 갈 증을 이기지 못해 매일 술을 마셨다. 흥이 올 라 춤추며 그림을 그리던 그를 보고 친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쇼하고 있네.” 그 한마디 가 그의 인생을 바꾼 도화선이 됐다. “그 말이 귀에 확 꽂혔어요. 정말 쇼를 하면 되겠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겁 없 이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안 해본 게 없어요. 입으로 물감을 뿜어내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물감도 엄청 먹어봤고, 그림에 불이 붙는 장 면을 만들어 보려다 여러 번 불도 냈죠. 100가 지의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면 한 개도 못 건지

김진규 감독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김미경 대표의 집필실에서 손전등을 이용해 빛으로 그림을 그려보이고 있다.

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는 점점 드로잉쇼에 ‘미쳐’갔다. 한번 연 구와 실험에 몰입하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 자 신이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모를 지경 이었다. 어쩌다 술이 생기면 알코올중독자처 럼 마셔댔고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원하는 수준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가난하던 예술가의

디자인 강의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 만취해 흥에 겨워 그림 그리며 풀어 그 모습 본 친구 “쇼하네” 말서 힌트 그림 그리는 과정을 작품으로 승화

살림은 점점 더 궁핍해졌다. 수순처럼 우울증 과 공황장애가 그를 덮쳤다. 공황장애는 일종 의 ‘임사 체험’이었다. 몸이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버려서 호흡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끔찍한 공포 그 자체였다. 그의 필살기인 ‘스피드 드로잉’ 역시 잠시라도 공황장애의 공포에서 벗어나 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서 나왔을 정도였 다. 결국 보다 못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가난한 남자와는 살아 도 미친 사람과는 못 살겠다며.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정말 죽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다. 그 직 전 그는 온몸을 울리는 ‘거부할 수 없는’ 죽 음의 메시지를 들었단다. 다행히 어둠의 끝에 서 그는 실낱같은 빛을 발견했다. 눈을 떴을 땐 떠났던 가족들이 옆에서 울고 있었다. 삶 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 온 이후, 그의 인생은 많이 변했다. “어느 날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데 제 가 실실 웃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 있어 서 숨 쉬는 게 너무 고마운 거죠. 제일 중요한 건데 왜 한 번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못했을 까…. 그 뒤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드로잉쇼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걸 린 시간은 무려 10년. 2006년 대학로에서 드 로잉쇼를 처음 공연했을 때 찾아온 관객은 딱 4명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전석 매진’의 기적을 만들기 시작했 다.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김진 규 감독은 수십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는 CEO이자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됐다. 모든 것을 걸었던 그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진작가 김도형]

대화를 하면 할수록 드로잉쇼는 그의 천 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개그맨을 꿈 꿨을 정도로 그는 ‘끼’가 넘치는 사람이다. 말도 재미있게 잘하고 무용수처럼 몸을 쓸 줄 알며 배우 같은 연기력도 갖췄다. 작업실 에만 묻어두기가 아까울 정도로 원하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재능이 탁월하다. 이 모든 것은 이미 그 안에 이미 잠재돼 있던 재료들 이다. 그러나 내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걸 찾 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골라 쓸 것인가. 정말 만들고 싶 은 것이 무엇인가. 그 답을 찾으려면 자신을 깊게 끝까지 보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숨 막히는 슬럼프의 심연을 오랜 시간 헤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드로잉쇼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정’이다.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그림 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 다운지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이는 무대 뒤에 서 드로잉쇼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포함된 다. 배우나 창작자가 매 순간을 즐기고 살아 가야 관객들에게 그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전 달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우들의 연습시간 은 일종의 ‘미술치료’ 시간이 되기도 한다. 놀 랍게도 드로잉쇼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미술 전공자들이 아닌 일반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

간절히 원했던 길, 시간 지날수록 행복 그의 쇼에 치유 받는 것은 배우들뿐만이 아니 다. 몇 년 전 도쿄에서 공연하는데 한 회장님 이 그림을 꼭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본 래 그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그림을 찢어버리 곤 했다. 그림을 소유하는 순간 가슴 속 감동 이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진규 감독은 회장을 만나 미완성인 그림을 사 려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 미완성 그림이 바로 제 인생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 돌이켜 보니 인생이란 당신의 그림처럼 한 점에서 시작해 찰나로 끝나더군요. 저 그림 이 꼭 나와 같아 위로를 주니 제게 그 그림을 줄 수 없겠습니까?” 그 얘기를 듣는데 그림을 내주지 않을 도 리가 없었단다. 오히려 자신의 그림에 위로받 았다는 그분께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몇 년 후 돌아가신 그분은 바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 장. 드로잉쇼가 현란한 ‘그림 테크닉’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 된 것은 무 대에 그의 인생 전체를 담았기 때문일지 모 른다. 사람이 이유 없이 잘나갈 때는 내 길이 아 닌 다른 길로 갈 때가 많다. 훈풍이 너무 밀어 줘서 물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10 년간 발목을 잡히면서도 그 길을 기어이 갔 다면 그 길은 진정한 내 길이 맞다. 한 걸음씩 푹푹 빠질 때마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 는지 대답했을 것이므로. 이런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하다. 나이 오십에 이 길이 맞 나를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뱃속 든든한 게 없기 때문이다. 힘겨웠던 세월만 큼 깊게 물든 이 남자의 미소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가보다.

김대수의 수학 어드벤처

시력 잃어가면서도 수학 사랑 그래프 이론 터 닦은 오일러 [문제 1] 4개의 서로 다른 자연수를 모두 더하 면 18이고, 모두 곱하면 360이라고 한다. 이들 숫자는 무엇인가?

[문제 2] 다음 그림과 같이 공깃돌이 놓여 있을 때, 5단계와 6단계에서의 공깃돌의 개수를 각각 구하시오.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문제 3] A, B, C, D, E지점이 다음과 같은 거리 60

와 방향의 관계에30있을 때 A지점은 왼쪽에서 몇 번째일까요? C

김대수 교수 한신대 컴퓨터공학부

A 10 B

D

E

(1) A와 B는 10미터 거리이다. (2) B와 C는 30미터 거리이다. (3) C와 D는 60미터 거리이다. (4) B와 D는 바로 이웃에 있다. (5) A는 B보다 왼쪽에 있다. (6) E는 D의 오른쪽에 있다.

예전에는 자료를 숫자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 으나 요즘에는 그래프를 통해 표현하는 경우 가 많아졌다. 그래프 이론은 원래 수학 중 기 하학의 영역이었으나 연결 상태를 추상적으 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매우 다 양한 분야들에 응용되고 있다. 그래프 이론은 스위스 태생의 18세기 저명 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그리고 천문학자인 오일러(Leonhard Euler1707~1783)의 쾨니 히스베르크 다리 문제를 계기로 시작됐다. 오일러는 쾨니히스베르크란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그림과 같이 프레겔 강의 중간에 두 개의 섬과 7개의 다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다리를 두 번 건너는 일 없이 이들 다리 를 모두 건널 수가 있는가’란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이 해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

으나 실패해 당대의 저명한 수학자인 오일 러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그림에서의 A, B, C, D와 같이 섬과 강둑을 점으로, 다 리는 곡선으로 변환시켜 이 문제를 풀 수 없 음을 입증했다. 그 후 이 문제를 계기로 그 래프와 관련된 연구가 체계적으로 발전하 게 되었다. 그는 1743년 처음으로 함수를 나타내는 기 호 f(x)를 사용하며 미·적분학을 계승 발전시 켰으며 연결된 평면 그래프에서 꼭짓점의 수 에다 면의 수를 더하고, 연결선의 수를 빼면 항상 2가 나온다는 오일러의 정리를 고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확립한 오일러의 공식은 지수 형태의

초월함수를 다루는 것으로 건축이나 토목 등 공학적 응용에 널리 쓰이며, 전압이나 전류 등의 벡터 표시를 지수 함수 표시로 바꿀 때 도 매우 유용하다. 많은 사람이 오일러가 만든 공식을 ‘세상 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식’이라 부른다. 베토 벤이 말년에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아름답 고 위대한 음악을 남긴 것과 같은 맥락으로, 오일러는 29세에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말년 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도 그 후 17년 동안 수 학 연구에 열정을 바쳐 후대에 귀중한 연구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오일러의 연구로 시작된 오늘날의 그래프 이론은 수학에서의 위상학, 공학이나 사회학 관련 분야에서의 모델링, 반도체 관련 논리 회로 설계, 통신 분야의 최단 경로 네트워크, 컴퓨터공학에서의 운영체제 등 다방면에 걸 쳐 응용되고 있다.

몇 가지를 가정해 합과 곱을 만들어 본다. [문제 2]에서는 공깃돌의 단계별 개수가 +2 씩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5단 계에서는 2개 늘어난 9개이며, 6단계에서는 11개가 된다. [문제 3]에서는 B와 D가 바로 이웃에 있는 조건에 따라 C는 왼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 결과 왼쪽부터의 순서는 C, A, B, D, E다. 따 라서 A지점은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다.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정답 1. 3, 4, 5, 6 60

2. 9, 11개 3. 두 번째

30 C

A 10 B

D

E

서울대 사대 수학과·동 대학원 수료,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 컴퓨터 공학 석·박사, 인공지능과 신 경망 등을 연구해 온 컴퓨터공학자이자 두뇌 과학

[문제 1]에서는 서로 다른 자연수라는 점 에 착안해 식을 세우기보다는 작은 숫자부터

자다. 창의 수학 콘서트와 컴퓨터공학 관련 1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Science 25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김대식의 Big Questions 32 민주주의는 영원할까

‘유산적 문제’와 불평등이 미래 민주주의 최대 위협 <legacy problem>

김대식 KAIST 교수뇌 과학자 daeshik@kaist.ac.kr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얼마나 시험할 것 인가? 우리를 조롱하는 그대의 광기는 얼마 나 더 오래 갈 것인가? 그대의 끝없는 뻔뻔스 러움은 언제야 끝날 것인가?” 먼 훗날 소와 염소가 풀을 뜯고, 더 먼 훗날 엔 중국과 러시아 관광객들이 정신없이 셀카 를 찍고 있을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의 핵심 중 핵심이다.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집정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는 원로원에서 이 렇게 ‘카틸리나 탄핵’을 위한 연설을 시작 한다. 루치우스 세르주스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ilina). 그가 누구였던가? 뇌물 을 뿌려 로마 집정관이 되려다 실패한 카틸 리나는 시민들의 부채 전액 탕감을 공약으로 지지자를 모아 쿠데타를 도모한다. 음모를 간파한 키케로는 네 번에 걸친 원로원에서의 연설을 통해 쿠데타 지지 세력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민주주의의 힘. 공화국의 위대함. 지성의 영향력. 뭐 그런 걸 가르칠 때 늘 단골로 등장 하는 얘기다. 물론 멋지다. 하지만 몇 가지 논 리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로마 원로원은 민 주주의적 의회가 아니었다. 매년 2명씩 뽑히 는 새로운 집정관을 돕는 재력가, 유명인, 그 리고 과거 관료들로 구성된 자문기관일 뿐 이다. ‘세넥스(senex)’, 그러니까 ‘어르신’이 란 라틴어 단어에서 만들어진 ‘세나투스’(원 로원)는 말 그대로 힘 좀 쓰는 어르신들의 모 임이었던 것이다.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제의 영향을 받은 로마 공화정의 진정 한 의회는 서민들로 구성된 민회(Concilium Plebis)였다. 민회는 법을 통과시키고 집정관 과 원로원의 권력을 통제하며 군을 지휘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민회는 점차 어르신들과의 싸움에서 밀렸고, 급기야 “망해 가는 공화정 을 재건하겠다”는 옥타비아누스의 거짓말로 시작한 로마제국 건립 후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직접민주제 대부분 과두정치로 변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고, 잘사는 세상. 대 부분 사람들이 선호하는 세상일 거다. 적 어도 모든 사람이 불평등하고, 자유롭지 않 고, 못 사는 세상보다는 낫다. 문제는 ‘모두’ ‘평등’, 그리고 ‘자유’의 정확한 의미에서 시 작된다. 우선 ‘모두’의 뜻이 부정확하다. 아 테네의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는 ‘Isonomia’, 그러니까 ‘법(nomos) 앞에 평 등(iso)’은 모든 시민이 모든 결정에 참여하 고 논의하며 투표할 수 있는 직접 민주제에 서만 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당·국회· 직업 정치인 없이 랜덤(random, 아무렇게 나)으로 선택된 일반 시민들이 행정부를 담 당하게 했다. 4년마다 줄 서 기다리다 도장 한 번 찍는 미국·유럽·한국식 민주주의와는 달리 두꺼 운 전화번호부에서 무지막지로 이름을 뽑 아 장관·차관·대통령을 임명한다는 말이다. 물론 본질적인 문제가 많은 제도다. 아테네 의 시민들은 직접민주제 투표를 통해 현명 한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를 추방했 고 소크라테스를 사형시켰다. 랜덤으로 뽑 힌 대부분의 관료들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오늘 눈앞에 보이는 이득을 위해 미래를 등 쳐 먹는, 뭐 그런 전통적인 포퓰리즘의 문제 들 말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당연히 다양하다.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해야 하는 농부와 물려받 은 재산 덕분에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 말솜 씨가 좋은 사람과 말 없는 사람. 공동체의 마 당발과 외톨이. 부모 없는 고아와 잘나가는

부모 덕분에 능력 없이도 덩달아 잘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직접민주제는 그렇기에 서 서히 돈 많고, 능력 있고, 말 잘하고, 연줄 많 은 사람 위주의 통치, 그러니까 과두정치로 변신한다. 포퓰리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통적 인 대안은 물론 대의원제다. 투표로 뽑는 대 리인들을 통해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시민들 의 의견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평준화하겠다 는 말이다. 랜덤으로 섞인 잡음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신호를 평균화해 숨겨진 정보를 찾 아내는 통계학적 신호처리 방법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신호와 잡 음을 정확히 구별하기 위해선 객관적인 필터 (filter)가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필터에 ‘바 이어스(bias)’, 그러니까 편견과 성향이 포함 돼 있다면? ‘저주파 통과 필터’를 사용하면 오로지 낮은 주파수의 신호만 통과되겠고, ‘고주파 통과 필터’를 쓰면 오직 높은 주파수 의 신호들만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대부분 의 국회·의회·하원·상원 의원들은 편견 없는 ‘불편 필터(unbiased filter)’들일까? 물론 아니다. 역시 시간 많은 사람이 먹고살기 바 쁜 사람보다 선거에 출마할 확률이 높다. 말 못하는 벙어리는 어느 국회에서도 찾기 어렵 고, 하루 종일 비디오게임에 미쳐 타인과 어 울리지 못하는 오타쿠들이 상원의원으로 뽑 힐 리 없다. 독일 화가 조지 그로스. 조국을 위해 제 1차 세계대전에 자원했던 그는 패전과 함 께 시작된 독일의 첫 민주공화국, 바이마르 공화국(Weimarer Republik)에 모든 희망

않으면 자동으로 무효가 되도록 설계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미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 제는 초(超)대규모 불평등이다. 대부분 평범 한 농부들로 구성됐던 로마의 민회는 언제 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을까? 훗날 로 마제국의 직업군인들과 달리 공화정 시대 군대는 평범한 시민들의 집합체였다. 아내 의 남편. 딸·아들의 아버지. 봄에 씨 뿌리고 늦은 가을에 수확하기 전까지 전쟁터에서 돌아와야 하는 농부들. 하지만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지중해 주변 모든 영 토들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3개월의 종군은 3년, 10년이 돼 버린다. 병사들의 농가는 황 무지로 변한다. 군인들은 굶는 아이들을 위 해 돈을 빌려야 한다. 더 이상 빌릴 수 없으면 집과 땅을 판다. 파는 사람이 많으면 헐값으 로 사는 사람이 있다. 바로 ‘senex’, 돈 많은 어르신들이었다. 로마가 팽창하는 만큼 나 라는 부자가 되지만 로마는 더 이상 서민들 의 나라가 아니었다. 토론하고 투표하던 자 존심 강한 로마인들은 비굴하고 책임감 없 는 노예로 변해간다. 로마식 민주주의의 비 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토론하고 투표 하며 공동체를 책임졌던 자존심 강한 키케 로 시대의 원로원 의원들 역시 점차 황제의 노예로 변해갔다. 드디어 제국의 황제 역시 보이지 않는 신에게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신의 노예가 돼 버린다. 노예성은 감염성이 있는가보다.

윈도에 DOS 시절 코드 남아 있듯

인공지능 전성시대로 세상 바뀌면

유효기간 지난 유산, 사회에도 존재

인간은 혁신 멈추고 점차 노예화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

불평등 확대로 민주주의 변질 우려

을 건다. 하지만 희망은 곧 실망으로 변했다. 그의 분노는 ‘사회의 기둥’<그림>이란 작품 을 탄생시켰다. 형식적으론 완벽한 민주국 가 독일. 하지만 결국 그 사회를 지배하는 사 람들은 누구일까? 그로스의 작품 속엔 전 쟁과 침략만 생각하는 민족주의 파시스트 들, 요강을 덮어쓴 언론, 술 취한 성직자, 잔 인한 군인들, 머리에 똥만 가득 찬 정치인 등 이 등장한다. 정치인의 가슴에 붙인 종이엔 ‘Sozialismus ist Arbeit’, 그러니까 ‘사회 주의는 일자리다’라고 적혀 있다. 시민을 노예로 변하게 한 로마의 불평등 민주주의는 자동차도, 기차도, 배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자전거이며 비행기다. 멈추는 순 간 넘어지고 추락하는. 직접민주제·대의원 제·대통령제 모두 언제든 과두정치와 독재, 무질서와 카오스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주 의는 확률적으로 너무나도 불안전한 시스템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 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유산적 문 제(legacy problem)’와 불평등이겠다. 유 산적 문제란 무엇인가? 마이크로소프트사 의 윈도 운영체제가 좋은 예다. ‘무어의 법 칙’(Moore’s law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 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법칙) 덕 분에 컴퓨터 하드웨어는 지속적으로 빨라지 지만 사용자의 경험은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거기다 유닉스(Unix) 운영체제 기반 인 리눅스(Linux)나 애플의 OSX보다 언제 나 더 불안전하다. 문제는 윈도의 ‘유산적 문 제’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실과는 도무지 어

지나친 평등, 국가 간섭도 인간을 노예화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 하이에

독일 화가 조지 그로스(George Grosz)의 ‘사회의 기둥’(1926년).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시 작된 독일의 첫 민주공화국(바이마르공화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담고 있다.

체사레 마카리(Cesare Maccari)의 1888년 작품, ‘카틸리나를 탄핵하는 키케로’.

울리지 않는 과거 MS-DOS 시절의 코드들 을 계속 유지하다 보니 시스템이 불안전해지 고 느려지는 것이다. 비슷하게 1791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 수정 제2조를 생각해 보자. “잘 구성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안보에 필 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시민 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 이 조항이 만들어진 시기는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불과 몇 년 전에 치렀고, 아직 중앙 행 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미지의 땅들로 둘러

싸였던 18세기였다. 당시를 가정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법이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 문 화,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여전히 개인이 돌격 소총을 소유하고 공공장소에서 무기를 휴대 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난센스다. 전통적인 유산적 문제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유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모든 법에 ‘유효기간’을 도 입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법들의 중 요성에 따라 5년, 10년, 100년마다 갱신하지

크(Friedrich Hayek)가 저서 노예의 길 (Road to Serfdom)에서 언급했듯이 지나 친 평등, 국가의 개입, 개인성의 무시는 인간 을 국가의 노예로 만든다. 하지만 지나친 불 평등과 국가의 외면 역시 개인을 강한 자의 노예로 바꿔 버린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 불 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주장대로 자본의 이득이 노동의 이득보다 더 빠르게 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 실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장 위협할 불평등 의 근원은 따로 있다. 30년, 50년, 100년 후. 기 계가 드디어 정보를 이해하고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의 발명도, 혁 신도, 노동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아무도 인간의 노동·혁신·발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 어차피 기계가 더 빨리, 더 완벽하게, 더 저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실리콘밸리 에 위치한 10개의 인공지능 회사들이 만들 어낼 수 있다면? 지구는 무한으로 부자가 되 겠지만 99% 이상의 사람들은 직업도, 소득 도 없다면? 지구에서 소득세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단 10명뿐이라면? 100년 후의 인 공지능 시대에 과연 민주주의가 여전히 존 재할지 궁금해진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 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 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26 Column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함영준의 사람과 세상

14 ‘마이 웨이’ 마하티르

안팎 비난 속 개발독재 22년  퇴임 후엔 국민에게 존경 티르는 인터뷰 당시 “이번 총리직이 마지막 이며 후계자도 정해졌다”고 공언했다. 약속 대로 그는 2003년 10월 스스로 권좌에서 물 러났다.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총리가 된 후 단 한 번도 선거에서 패하지 않고 무려 22년 간 집권한 뒤 건강한 상태에서 자의(自意)에 의해 퇴임한 것은 그가 처음 아닐까 싶다.

함영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 jmedia21@naver.com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는 전 아시아를 쑥 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승승장구하던 아시 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이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서슬 퍼 런 처방을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단 한 나라, 말레이시 아만이 반기를 들었다. 마하티르 모하맛 (Mahathir Mohamad) 총리는 “서구 투기자 본 탓인데 왜 근면한 아시아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느냐”며 정면대결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말레이시아 경제는 회 복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는 그 여세를 몰 아 1999년 가을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20년 째 장기집권 중이던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2000년 3월 총리 집무실을 방문했다. “서구 대신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 당시 그는 전혀 75세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 나 격무와 삶의 황혼기에서 느껴지는 피로감 과 허탈함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존경하는 아시아 지도자로 중국의 마오쩌둥과 함께 이 승만·박정희를 언급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이었소. 그러나 단언 컨대 한국이 처음부터 민주화가 됐다면 오늘 의 한국은 없었을 거요. 늘 지도자가 교체되 고 어수선한….” 그는 특히 박정희에게 각별했다. “박 장 군은 매우 강한 지도자로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富)를 증진시켰습니다. 돈도 자원 도 없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적의 모델 이지요.” 그는 시종 ‘박 장군(General Park)’이라 고 불렀다. 마하티르는 박정희의 경제개발 모 델을 많이 차용했다. 81년 총리 취임 후 “일본 과 한국을 배우자”는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정력적으로 추진하면서 한국의 ‘하면 된다(Can Do Spirit)’ 정신을 ‘말레이 시아는 할 수 있다(Malaysia Boleh)’로 재생 시켰다. 박 대통령처럼 매일 아침 경제관료 회의를 주재하며 선글라스를 끼고 전국 현장 을 시찰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과도 친했다. 권위주 의적이기는 하나 그들의 열정, 애국심, 고민 에 같은 개도국 지도자로서 동병상련(同病 相憐)을 느꼈다. 당시 마하티르의 동방정책 은 노태우 ‘북방정책’의 단초가 됐다는 게 정 설이다. 두 사람은 비공식으로 만나면 미·일 등 강대국에 대한 비판을 실컷 나누는 사이 였다. 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 를 외치며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을 때 마하티르는 매우 상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난 김에 그때 이야기를 슬쩍 물었더니 우회 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국민의 원성을 들으며 죽을 때까지 권좌를 유지하고 싶은 지도자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은퇴한 뒤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 어 하죠. 문제는 퇴임 후 정치보복이요. 알다 시피 신생국 지도자들은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을 수 없거든요.” 이 대목에서 그는 책상에 놓인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만약 민주적이진 않지만 힘센 리더가 있 다고 합시다. 사람들은 그에게 권력을 포기하 고 민주화를 이룩하자고 설득합니다. 이후 막 상 민주화가 되자 사람들은 그를 감옥에 넣 습니다….” 마하티르는 이날 내게 점잖게 말했다. 그 러나 후일담이지만 전·노 구속 당시 그는 불 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들의 롤 모델이 었던 한국이 벌이는 ‘자기부정(自己否定)’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후 잘나

22년간의 집권 후 퇴임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한 이슬람 사원에서 금요 기도를 마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주위와 타협 않고 평생 소신 행보 새마을운동에 감명, 동방정책 추진 조국을 신흥공업국으로 이끌어 1997년 아시아 덮친 외환위기 땐

가던 한국 건설사의 말레이시아 공사 수주는 별 볼 일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 역시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있을까 싶다. 마하티르는 존경하는 서구 지도자로 매우 잔인했지만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룬 표트르 대제(1682~1725 재임)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처칠 총리를 꼽았다.

IMF에 반기  마이웨이로 돌파구 국제무대서 ‘아시아 대변인’ 자처

마하티르 총리(가운데)가 1983년 8월 11일 창원공 단의 삼성정밀 공장을 방문, 이건희 삼성그룹 부회 장(오른쪽)으로부터 기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유창한 영어와 냉철한 논리로 서구 비판 57년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는 우리보다 잘살 았다. 인구는 우리의 절반 정도인데 면적은 세 배나 넓고 천연자원이 풍부했다. 마하티르에게 과거 한국은 ‘희망 없는 나 라’였다. 그는 어린 시절 한국을 아주 낙후된 ‘은둔 국가(Hermit Kingdom)’로 배웠고 장 성해서는 분단·전쟁·가난과 같은 말로 인식 했다. 65년 초선 의원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서울은 불빛조차 많지 않았고 변 변한 산업도 없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조국을 발전시키자”며 벌이는 ‘새마을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 다. 한국인의 애국심·근면·자조자립·규율 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현대자동 차와 대우조선을 방문해서는 입이 쩍 벌어 졌다. 81년 총리로 집권하자마자 그는 서구 중심 국가발전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아시아의 일 본과 한국을 배우자는 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의 리더십 아래 말레이 시아는 만년 열대 빈국에서 벗어나 약진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는 지난 수백 년간 말레이를 지배 한 서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명문 ‘킹 에드워드7세 싱가포르 의대’를 졸업한 그는 영국식 교육에 힘입은 유창한 영어와 비판 논리로 서구의 오만과 독선을 지적했다. “서구인들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며 비 판적 토론을 옹호하면서도 정작 동양인이 그 러면 비난한다.” 상대방의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 人) 언변,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솔직하게 밝 히는 태도,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자 부심은 90년대 들어 국제무대에서 마하티르 를 ‘아시아의 대변인’으로 부상시켰다. 그는 97년 아시아위크(Asiaweek) 선정 ‘아시아

[중앙포토]

파워 50인’ 중 중국의 장쩌민에 이어 2위로 올랐다. 그러나 바로 그해 아시아에 몰아친 외환위 기로 동남아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엄청난 국부가 유출되기 시작했고 경제는 마비상태 에 빠졌다. 분노한 마하티르는 “서구 투기 자 본의 결과”라며 미국 뉴욕의 ‘큰손’ 조지 소 로스를 겨냥해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아시아 각국이 미영 주도의 IMF의 살인 적인 ‘고(高)금리·구조조정’ 처방을 받아들 였지만 마하티르는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다. 외과의사 출신답게 원인을 분석해 처방을 얻 으려고 했다. 마침내 98년 8월 그는 IMF 처방과 정반대 되는 ‘저(低)금리경기부양고정환율제’를 골자로 하는 신경제정책을 단행했다. ‘마하 티르의 마이 웨이(My Way)’로 명명된 이 조 치는 즉각 서구 언론과 금융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국가의 인위적 개입’을 핵심으로 하는 이 조치는 곧 홍콩·대만에서도 차용됐 다. 이후 추락하던 동남아 경제는 대반전에 성공, 아시아 외환위기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약속대로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는 내우외환(內憂外 患)의 위기에 빠졌었다. 그의 후계자인 부총 리 안와르 이브라힘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 다. 마하티르가 연일 미국을 공격하고 미국 언론도 마하티르를 독재자로 비판할 때 안와 르는 ‘친미(親美)’ 자세를 취했다. 98년 5월 이웃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 통령이 IMF 처방을 수용한 데 반발한 폭동 으로 32년 권좌에서 물러나자 부총리 안와르 측은 자신들을 ‘개혁세력’, 마하티르를 ‘물 러나야 할 구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 다. 미국 언론은 이런 안와르를 ‘말레이시아 의 희망’으로 치켜세웠다. 마하티르는 강공을 택했다. 98년 9월 안와 르를 부총리에서 해임한 후 동성애와 직권남 용,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해 버렸다. 예상대 로 서구 언론은 안와르를 피해자, 마하티르 는 가해자요 탄압자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경제 회복이 되면서 그의 입지는 다시 공고해졌고, 총선에서도 이겼다. 마하

경호원 없이 쇼핑 다니는 평온한 말년 최고 통치자로서 마하티르는 여러 얼굴의 소 유자다. 국가 발전의 올바른 비전을 갖고 온 갖 난관을 무릅쓰고 성취시키는 실천력은 박 정희를 닮았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상대로 호령하고 뛰어난 국제 감각을 보이는 모습에 선 이승만이 연상된다. 정치 초년병 시절에는 ‘독립의 아버지’인 툰쿠 초대 총리와 싸울 정도로 원칙주의자였 으나 집권하고서 중도실용의 길을 걸은 것을 보면 김대중이 떠오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신봉자인 김대중과 달리 마하티르는 개발독 재를 옹호한다. 그의 철저한 반미 노선은 일견 노무현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노무현이 감정적이고 국제관계에 문외한인 반면 마하티르는 냉철 한 프로다.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평하면 평생 ‘마이 웨이’로 살아온 삶이다. 일국의 정치가로서, 최고 권력자로서 맞닥뜨린 수많은 인물과 사 건, 상황 속에서 그는 예스(Yes)면 예스, 노 (No)면 노였지 에둘러 가지 않았다. 그는 기존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에 타 협하지 않으면서도 놀랄 만한 직관력과 솔직 함을 무기로 그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길을 걸 어갔다. 그런 그를 세상 사람들은 ‘독재자’ ‘독불장군’‘이단아’라고 불렀지만 그의 판 단은 대부분 옳았고 인생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조국은 번영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의 재임 기간(1981~2003) 중 말레이시아는 후진 농업사회에서 세계 17위 무역대국이자 산업국가로 부상했다. 지금도 5% 넘는 고도 성장을 하고 있다. 마하티르는 현재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 다. 구순(九旬)이 다 된 나이에 경호원도 없이 혼자서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쇼핑도 한 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시민 대부분이 다 가와 그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함께 사진 찍기 를 부탁한다. 마하티르는 귀찮아 하는 기색 없이 특유의 미소로 그들의 요구에 응한다. 지난해까지 주(駐)말레이시아 대사를 지 내며 그와 가까이 지냈던 이용준 경기도 국 제관계대사는 “국민으로부터 진심 어린 존 경을 받는 모습이 정말 부럽다”고 했다. 그런 말레이시아인들의 모습은 지금 내 편, 네 편 으로 갈려 살벌하게 싸우는 우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하티르의 삶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의 문이 떠오른다. 마하티르는 이토록 존경받고 평안하게 사는 데 비해 그가 롤 모델로 여긴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왜 그런 대접을 받 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잘못 때문인가, 마 하티르의 착각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편협함 때문인가.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작은 선택에도 늘 망설이고, 할 말도 제대로 못하며, 주위 눈치 나 보면서 소심하게 살아가는 범인(凡人)들 이 볼 때 마하티르의 ‘마이 웨이’ 성공은 신 기하기조차 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런 그를 만들었을까.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외곬이자 결단력이 있다.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확실한 목표와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 등을 역임하 고 국민대 겸임교수를 거쳐 청와대 문화체육관광 비서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 냈다. 저서로 마흔이 내게 준 선물 등이 있다.


Column 27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삶과 믿음

개천절은 개천절답게 차동엽 신부 ip81335@hanmail.net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28세의 쇼팽(1810~1849). 루브르박물관.

詩人의 음악 읽기 쇼팽 에튀드 ‘혁명’

격렬함에 정신 번쩍  삐따기 위한 안정제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내게는 삐딱하다는 평판이 꽤 따르는 편이 다. 소영웅주의로 앞뒤 분간 못하는 청소년 기도 아니고 이 나이에 웬일인가 싶다. ‘삐 따기’로 보는 시선 앞에서 나는 말 없이 표 정으로 항변한다. 내가 삐딱한 게 아니고 당 신이 기울어진 저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모 르는 것이라고. 이성적이고 나름 정의롭고 자 하는 태도에 대해 왜곡된 상식을 들이미 는 것이라고. 삐따기 시선은 대체로 정치적 사안 때문 에 받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령 오랫동 안 주장해 온 나의 효도 배척 주장은 언제 나 반박에 직면한다. 생방송에서 말했다가 미친 놈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녹화일 경우 는 예외 없이 통 편집을 당해왔다. 늙고 병 드신 부모님과 조상님을 극진히 섬기고 공 경하자는 미풍양속에 왜 딴죽을 거냐고? 뭔 가 심성이 크게 삐뚤어진 것 아니냐고? 효도라는 관념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 재한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러운 전통문화 라고 생각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 관념이 자 연스럽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희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내리사랑’이라 하듯이 사 랑은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내려가는 것 이 생명체의 진화와 순환원리에 부합한다. 부모세대에 쏟을 정성과 자원을 자기 자녀 에게 투여해야 세대의 이행과 성장이 원활 해진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효를 부각시 킨 것은 왕정시대 군사부일체를 통한 가족 국가를 기획했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사 회적 정체와 진취성 결핍의 원인이 되었다 고 본다. 공화정이 수립되고 시민사회가 등장한 지도 몇십 년인데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효

는 중심적 가치로 선양된다. 그 결과가 무 엇인가. 30~40대 젊은 층이 모험적 도전으 로 행사해야 할 온갖 사회적 권력이며 재부 가 노령층에게 집중돼 있다. 이른바 선진국 의 국가원수 대부분이 40대 나이에 등장하 고 의원·장관 등 요직을 40~50대가 주로 차 지하는 데 반해 우리는 스스로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 경륜의 노령층이 안정 적으로 세상을 이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 은 신화다. 상속받은 2세, 3세 말고는 젊은 창업자, 젊은 기업 오너의 꼴을 볼 수가 없 다. 노령층이 모든 걸 다 갖고 있고 모든 결 정권을 휘두른다. 온당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나는 뿌리 깊은 효문화와 경로우 대사상이 상위 중진국에서 더 앞으로 나아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하나라고 생 각한다. 사안이 이것뿐이겠는가. 숱한 논쟁 가운 데 소수자로 몰려 곤혹스러운 경우가 참 많 다. 스스로 옳다고 믿건만 별난 인간 취급을 받을 때 피난처는 역시 홀로 충만할 수 있 는 음악이다. 내 울화통 처리의 선율 가운데 익숙한 곡이 쇼팽의 연습곡(에튀드) op. 10 번 가운데 제12곡 일명 ‘혁명’이다. 피아니 스트들은 이 곡을 두고 ‘노가다 하는 곡’이

라고 우스개 삼는다. 매우 강한 포르테로 시 작해 손이 꼬여들도록 왼손, 오른손이 교차 로 옥타브를 넘나들어야 한다. 언젠가 누구 연습실에서 피아노에 턱을 괴고 이 곡 연주 를 들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혁명’의 배경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쇼팽이 독일에 체류할 때 고국 폴란드에 러 시아군이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 폭 발하며 단숨에 썼다는 것. 그런데 우국지사 와 쇼팽의 평소 이미지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다. 결핵으로 기신기신하는 몸에 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성정을 지녀 뭇 여인들이 모성 애로 사랑을 바쳤다는 인물. 그 때문에 더 욱 쇼팽 피아노곡은 연주자가 하류냐 상류 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조금만 방심해도 그 곡들은 호텔 라운지 무드음악 처럼 변질되기 십상이다. 특히 쇼팽 야상곡 처럼 뽕짝과 걸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곡 도 드물다. 내가 발견한 최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 는 이보 포고렐리치(56작은 사진)다. 그의 쇼팽은 뽕짝의 대척점, 그러니까 쇼팽의 헤 비메탈화라고나 할까. 반면 한때 인기 있던 유명 연주로 아담 하라셰비치의 베스트셀 링 레코딩들은 예쁘게 하기를 넘어 허무해 지기까지 한다. 사적 편견이겠지만 감미로 운 쇼팽은 질색이다. 쇼팽의 인생 행보는 별쭝스러운 삐따기 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귀족의 살롱에서 연 애하기 바빴고 그중 작가 조르주 상드와의 도피 행각은 그의 생애에서 빠지지 않는 주 요 일화다. 그런 인물의 울화통 음악이라니 각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약하고 겁 많 은 심성을 타고났는데 어쩌다 보니 세상 상 식과 잘 맞지 않아 삐딱거려야 하는 사람에 게 쇼팽의 혁명은 꽤 맞춤한 안정제다. 세 게, 더 세게, 누가 가장 세게 혁명으로 피아 노를 부수는지 찾아봐야겠다.

10월 1일 국군의 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돼 옛 날만은 못하지만 10월은 여전히 국경일의 달이다. 개천절과 한글날! 우리 민족의 정체 성과 자긍심이 얽혀 있는 기념일이니, 10월 은 맞는 심정은 반갑고 보내는 마음은 섭섭 하다. 그런데 나는 역사 관련 국경일 의식을 볼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유대인의 역사 기념의식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 국경일 행사를 보 면 대체로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관련자 내지 대통령 기념사 정도로 획일화돼 있다. 형식만 보아서는 그것이 삼일절 의전인지 제헌절 예식인지 구분이 어렵다. 8·15 광복 절도 그렇고, 개천절도 그렇고, 한글날도 그 렇다. 의전 예식의 특징이 없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예식마 다 그것을 통해 과거 역사적 사건을 더듬어 후대가 그 체험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씩 파스카 예 식을 치를 때에는 약 3300년 전에 있었던 조 상들의 이집트 탈출 경험을 상기시켜 준다. 그날은 일단 반찬이 다르다. 쓴 풀, 쓴 나물 을 먹는다. 자연히 각 가정의 아이들은 투정 을 부린다. “오늘 반찬이 왜 이래요?” “녀석아, 우리 조상님들은 이렇게 고생하 면서 이집트에서 나왔단다. 이날을 잊지 말 자고 오늘은 이걸 먹는 거야.” 또 무교병을 먹는다. 누룩 없이 그냥 밀가 루로 만든 부풀리지 않은 맛 없는 빵, 그것을 먹는다. “아, 또 이거야. 맛 없어요.” “이 녀석! 그땐 빵을 부풀릴 겨를이 없어 이걸 먹었단다. 감사히 먹으렴.” 그다음 양을 잡아 그와 함께 포도주를 마 시는 예절을 거행하면서, 이집트 탈출 당시 급히 양을 잡고 문설주에 피를 바르던 일들 을 부모가 자녀에게 생생히 다 이야기해 주 면, 아이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건을 반드시 기억하게 돼 있다. 또 하나 초막절을 예로 들어 보자. 이날은

광야 40년의 고생스러운 생활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래서 일부러 성인식을 치른 남자 들이 초막을 짓고, 야외 생활을 한다. “왜 그러죠?”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이처럼 힘들게 텐트 생활을 했던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이렇게 부모는 자녀에게 그런 상징 행위 들 속에 담겨 있는 뜻을 풀이해 준다. 그럼 으로써 역사를 회상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 이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만약 우리가 이런 지혜를 가지고 8·15 광 복절을 기념하면서 생생한 예식을 만들었 다면, 아마 우리 자녀들은 역사에 대한 인식 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 젊은이 들은 다 잊었다. 8·15가 무엇이고 6·25가 무 엇인지, 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과거다. 우리도 8·15 그날을 예로 들어, 보리밥만

우리 국경일 예식 너무 천편일률 815엔 보리밥, 개천절엔 쑥마늘 일상에서 역사 기억하게 했으면 먹는다든가 하면 어떨까. 그래놓고 아이들 이 “오늘 왜 이걸 먹어요”라고 질문하면 “일 제 강점기에는 이걸 먹고 살았단다. 그만큼 착취당해서 배를 곯아야 했어”라고 얘기해 주면 교육이 저절로 되지 않겠는가. 개천절도 그렇다. 국기에 대한 경례만 할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쑥과 마늘을 가지고 무슨 반찬을 만들어서 먹든지, 쑥떡을 먹든 지 하면 얼마나 깊은 해학과 뜻이 깃든 축제 가 되겠는가. 또 한글날에 다양한 ‘가나다 라’ 선물을 주고받는 상상을 해본다면 불경 스러운 발상일까. 선조들이 온갖 시련을 견디면서 깨달은 값진 교훈을 우리 후손에게 실효적으로 대 물림되는 축제적 교육의 날로서 국경일을 기렸으면 좋겠다.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 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 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粒粒辛苦

<입립신고>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날씨가 제법 선선한 게 완연한 가을이다. 중 국에서는 가을을 흔히 ‘금추(金秋)’라 부 른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누렇게 곡 식이 익어 가는 황금빛 전답을 떠올리며 ‘황금색 가을’이기에 그렇게 부르나 했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 서는 오행(五行) 사상에 따라 세상 만물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로 구 성된다고 봤다. 이때 목(木)은 동방(東方)과 봄철(春季)을, 화(火)는 남방(南方)과 여름 철(夏季)을, 금(金)은 서방(西方)과 가을철 (秋季)을, 수(水)는 북방(北方)과 겨울철(冬 季)을 각각 주관한다. 토(土)는 중앙(中央) 을 주관하며 목(木)·화(火)·금(金)·수(水) 의 기운을 돕는다. 금추(金秋)는 금(金)이 가을철을 주관한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그 냥 가을(秋天)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가을 하면 낙엽이 생각나고, 그러다 보면 ‘나뭇잎 하나 떨어짐에 천하에 가을이 온 것 을 안다(一葉落知天下秋)’는 구절이 되뇌어 진다. 이 구절은 작은 한 가지 일로도 전체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많이 쓰 인다. 그러나 ‘낙엽이 지는 데 따라 천하의 가을을 느낀다’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 또한 감칠맛이 있다. 그러나 가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결실의 계절이다. 농부들이 피땀 흘려 거두게 될 수확(收穫)이 떠오른다. 이와 관련해 입립신고(粒粒辛苦)라는 말 이 있다. 쌀 한 톨 한 톨이 모두 농민이 애써 고생해 일군 결과라는 뜻으로, 곡식의 소중 함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다소 의미가 확 장될 경우 고심해 일이 이뤄지기를 노력한 다는 의미 또한 있다. 이는 당(唐)대의 시인으로 민초들의 고달 픈 인생을 세속적인 언어로 노래한 이신(李 紳)의 작품 ‘민농(憫農)’에 나오는 글귀다. ‘벼를 호미질하여 해가 낮이 되니(鋤禾日當 午) 땀이 벼 밑의 흙으로 방울져 떨어진다(汗 滴禾下土) 뉘 알리요 상 위의 밥이(誰知盤中 飱) 알알이 다 피땀인 것을(粒粒皆辛苦).’ 민농은 농부를 딱하게 여긴다는 뜻도 되 고, 또 농사일이 힘든 것을 민망하게 생각한 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리 치나 저리 치 나 농사의 고됨과 농부의 어려움을 말하기는 매한가지다. 결실의 계절에 그 수확을 위해 애쓴 사람의 노고를 한 번쯤 되돌아볼 때다.


28 Column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세상을 바꾼 전략 ② 돌고 도는 ‘국민의 뜻’

26%의 힘을전체로 둔갑시킬 수 있는 과반의 마법 김재한 교수 한림대 정치학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논쟁에서 한쪽은 자 신의 의견을 ‘유가족 뜻’이라고 주장하고, 다 른 쪽은 자신의 주장을 ‘국민의 뜻’이라고 규 정한다. 모든 유가족의 입장이 100% 똑같지 는 않을 테고, 더욱이 국민의 생각도 똑같을 수가 없다. 생각이 어느 정도 공유돼야 ‘유가 족 전체의 뜻’ 또는 ‘국민 전체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27년 전인 1987년 10월 12 일 국회는 개헌안을 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 시켰다. 재적 의원 272명 가운데 258명이 표결 에 참여했고 254명이 찬성했다. 보름 후 실시 된 국민투표에서도 투표자의 93%가 찬성해 현행 헌법(제10호 헌법)이 탄생했다. 이 정도 면 국민의 뜻이라고 해도 별 이의가 없다. 민주주의와 어긋나는 유신헌법이나 제5공 화국 헌법에 대한 국민의 뜻은 어땠을까. 72 년 11월 실시된 유신헌법안 국민투표에선 찬 성표가 90% 이상 나왔다. 80년 10월의 제5공 화국 헌법안 국민투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정치 상황을 감안한다면 국민이 그 두 헌법안을 최선으로 봤기 때문에 찬성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국민 다수가 이전 헌법 보다 새 헌법이 더 나을 거라고 판단한 데 불 과하다. 헌법안에 대한 정당이나 사회인들 의 의견 개진이 금지된 상황에서 72년의 국민 다수는 정국 불안정의 제3공화국 헌법보다 유신헌법이 더 낫다고 생각했고, 80년의 국 민 다수는 장기 집권의 유신헌법보다 단임제 의 제5공화국 헌법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제5공화국 헌법의 추진세력은 국민 들 눈에 유신헌법보다 나은 헌법만 제시하면 된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어 87 년의 국민 다수는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하 는 제5공화국 헌법보다 직선제 대통령제의 현행 헌법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현행 헌법 대신에 내 각제(제2공화국형) 헌법이나 대통령 중임제 (제3공화국형) 헌법을 국민 다수가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재 5년 단임 대통령제보다 4년 중임 가능 대 통령제가 더 높은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 과 거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헌법이라 해도 시간이 지난 뒤엔 또다시 국민 다수가 지지 하는 새로운 헌법으로 교체될 수 있다. 국민 전체의 뜻은 돌고 돈다. 개헌이라는 국민의 뜻을 확인할 때 90% 찬성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반수 투표 와 투표자 과반의 찬성만 있으면 된다. 다만 국민투표 이전에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의 찬성이 있도록 규정해 가급적 더 많은 동 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개헌안 의결 외에 도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거나 국회의원을 제 명할 때에도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이 필요하다. 또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나 출석 의원 3분의 2 찬성을 요구하는 사안도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의결에는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 로 의결하는 게 현행 헌법 49조의 내용이다. ‘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자 과반 찬성’으로 전체의 뜻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흔한 민주 주의 원칙이다. 이 다수결 원칙에서는 극단적 인 경우 재적 26%가 전체의 뜻을 결정할 수 도 있다. 예컨대 재적 100명 가운데 찬성 26 명, 반대 74명이라고 하자. 반대파 가운데 25 명만이 출석하고 찬성파 26명은 전원이 출석 한다면 26대 25로 통과된다. 출석자 과반 찬성이 확실할 경우 반대파 는 어떤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까. 출석자가 과반에 미달해 의결 자체가 진행되지 않도 록 만드는 것이다. 아프거나 출장 중이라 출 석이 불가능한 의원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1987년 9월 18일 국회의장실에서 이재형 국회의장(가운데)과 여야 원내총무들이 6공 헌법안을 마주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국회에 접수된 개헌안엔 264명의 국회의원들이 서명했다. 왼쪽부터 신민당 의 정재원, 민정당의 이대순, 이 의장, 민주당의 김현규, 국민당의 양정규 총무.

‘재적 과반 출석, 출석 과반 찬성’ 조건 상대 세력 출석 막으면 민의 왜곡 과반보다 큰 다수결 방식 도입하면 국회선진화법처럼 기능 마비 초래 물고 물리는 일 다반사인 정치에선 순환관계 통한 천적 극복 전략 필요

오행의 순환관계

木 土

水 상생관계 상극관계

링컨 대통령은 주 의원 시절 출석자 과반 찬성을 확신한 상대 정파가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의사당 출입문을 봉쇄하자 의 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 리기도 했다. 국회 의결에 51% 대신에 대략 60%의 동 의가 필요하도록 만든, 이른바 국회 선진화 법은 어떤가. 폭력 국회를 예방하기 위해 도 입했다고 하지만 사실 몸싸움을 하고 안 하 고는 의결정족수와 별로 상관이 없다. 표결 에 지면 49%뿐 아니라 20%도 몸싸움을 벌일 수 있다. 지금의 국회는 의안이 통과되지 않 기 때문에 몸싸움이 없는 것뿐이다. 통과에 많은 찬성을 요구할수록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식물국회가 될 가능성은 높 다. 국회 선진화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헌법이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과반수 출석, 출석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한 다는 헌법 49조에 위배된다고 한다. 아렌트 레이파르트(Arend Lijphart) 같 은 여러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다수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인종·종교·언어·출신 지역 등에 의해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 간의 구분이 뚜렷한 사회에서는 소수 집단이 지속 적으로 정권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권력을 지 지의 비율만큼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도권 내에서 자신의 의사를 반영시킬 수 없는 소수 집단은 폭동 이나 시위와 같은 비제도적인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1%의 지지를 얻은 정파에 권력의 51%를, 49%의 정파에 권력의 49%를 부여하는 비례대표제나 각 정 파가 자치권을 갖고 전국적 이슈에는 거국적 합의로 추진되는 합의제를 제안한다. 다수결과 만장일치제를 포함해 어떤 결정 방식이 민주적일까. 7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 상한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는 민주 적 의사결정 방식이 존재하지 않음을 수학적 으로 증명한 바 있다. 애로가 말한 민주주의 조건은 ①어떤 후보끼리도, 어떤 정책 대안끼 리도 경쟁될 수 있어야 하고 ②그 경쟁의 결 과는 제3의 후보나 정책 대안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 하며 ③후보나 정책 대안 간의 우열 관계는 순환되지 않아야 하 고 ④전원이 더 선호하는 후보나 정책 대안 은 그렇지 않은 대안보다 우선적으로 선택되 어야 하며 ⑤집단의 선택이 특정 개인의 선 호와 늘 완전히 일치해서는 안 된다는 다섯 가지다. 애로의 ‘민주주의 불가능성 정리’를 달리

[중앙포토]

표현하자면 어떤 방식이 위 1, 2, 4, 5번의 네 가지 민주주의 조건을 충족시킬 때 그 방식에 의한 후보나 정책 대안 간의 우열 관계는 순 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민의 뜻이 대통령 중임제보다는 내각제를, 또 내 각제보다는 대통령 단임제를 원한다면 상식 적으론 대통령 중임제보다 단임제를 원하는 게 국민의 뜻이어야 한다. 이것이 위 3번의 비 (非)순환성 조건인데 현실은 늘 그렇지가 않 다. 국민이 단임제보다 중임제를 선호한다면 이는 세 가지 권력구조에 대한 국민 선호의 우열 관계가 순환되는 것이다. 심지어 만장일치제에서도 우열 관계가 돌 고 돌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통일 이슈에 대해 여당·야당·북한의 주장이 각기 다르고 그런 주장에 대해 국민이 각각 전체의 35%, 5%, 60%를 차지하는 ①, ②, ③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자. ①35%: 야 > 여 > 북 (야당, 여당, 북한의 제안 순으로 선호) ②5%: 야 > 북 > 여 (야당, 북한, 여당의 제안 순으로 선호) ③60%: 여 > 야 > 북 (여당, 야당, 북한의 제안 순으로 선호) 만장일치제를 채택하는 경우 여당안과 야 당안 가운데 양자택일하는 결과는 무승부다 (여≡야). ①+②의 국민 40%가 야당안을 지 지하지만 60%의 국민 ③이 여당안을 지지하 여 어떤 제안도 만장일치로 지지되지 않기 때 문이다. 만장일치제에 의해 여당안과 북한안 만 놓고 양자택일하는 결과도 무승부다(북 ≡여). ①+③의 국민 95%가 여당안을 선호 하는 반면에 ②의 국민 5%는 북한안을 지지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야당안과 북한안 간의 대결에서는 야당안이 채택된다(야≫ 북). ①, ②, ③ 세 집단 모두 북한안보다 야당 안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위 세 가지 우열 관계를 종합하면 ‘여≡야 ≫북≡여’다. 이는 순환되는 우열 관계다. 즉, 야당안은 북한안보다 만장일치로 더 선호되 고 그 야당안과 비기는 여당안 또한 북한안에 이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북한안은 야 당안과 경쟁한다면 존속할 수 없겠지만 여당 안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름 생명력을 갖는다. 이이제이(以夷制夷)와 같은 전략으로 결 과를 뒤바꿀 수 있는 경우는 대체로 이런 순 환 관계에서다. 고전적 순환 관계는 오행(五 行) 간의 상극 관계다.

수극화(水克火): 물이 불을 끈다. 화극금(火克金): 불이 쇠를 녹인다. 금극목(金克木): 쇠가 나무를 방해한다. 목극토(木克土): 나무가 흙을 황폐화시킨다. 토극수(土克水): 흙이 물을 흐리게 한다. 이에 따라 오행 간의 우열 관계는 다음처 럼 순환된다. … 》水(물) 》火(불) 》金(쇠) 》 木(나무) 》土(흙) 》水(물) 》…. 이 상극 관계 와 더불어 상생 관계도 존재한다. 목생화(木生火): 나무가 불을 지핀다. 화생토(火生土): 불탄 재가 흙을 살찌운다. 토생금(土生金): 흙은 광물을 만든다. 금생수(金生水): 광물은 좋은 물을 만든다. 수생목(水生木): 물은 나무를 돕는다. 물이라는 천적을 둔 불은 어떻게 해야 할 까. <그림>의 土-水-火 삼각형에서 불은 화생 토(火生土), 즉 자신이 도울 수 있는 흙(土)을 이용해 그 흙이 물을 극(土克水)하게 해 물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상생 관계 로 천적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략이 없다면 불은 물에 일방적으 로 당할 수밖에 없지만 순환적 상황을 이 용한 전략적 사고로 그런 천적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물(水)도 자신이 키우는 나무 (木)로 천적 흙(土)을 극복할 수 있다. 나무 (木)와 쇠(金) 역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약점은 있게 마련이 다. 그 물고 물리는 관계는 대체로 돌고 돈 다.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도 언젠가는 무너 진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쿠데타의 주역들도 자신 의 행위가 국민의 뜻이라고 말한다. 만장일치의 국민 뜻도 돌고 돌 수 있는데, 하물며 다수결이나 특정 집단에 의해 결정 된 뜻은 더더욱 무너지기 쉽다. 개인 의지의 총합과 구분되는 ‘일반 의지’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시대정신’이니 하는 말도 절 대적이지 않을뿐더러 언젠가는 바뀌는 법이 다. 그런 상대성을 활용해 세상을 바꾸는 것 이 바로 전략이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 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Column 29

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5>

남색홍색회색 용광로 황푸군관은 중국 리더 제조창 <국민당·공산당·군벌>

잡교(雜交)를 거쳐 만들어진 동식물이 모본 (母本)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낯선 문화와 사상과의 접촉도 마찬가지다. 혼혈아 들이 총명하고 예쁜 것처럼 견문 넓은 사람 은 생김새도 다르다. 고집과 신념을 적절히 배합할 줄 알고, 말만 잘하는 엉터리들과 전 문가를 식별하는 안목이 탁월하다. 가끔 괴 상한 사고도 치지만 결국은 남이 상상도 못 할 업적을 후세에 남긴다. 20세기 초반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의 작은 섬에서 국민당과 공산당, 지방 군벌들까 지 연합한 군사학교가 문을 열었다. 당시 중 국에는 규모나 시설이 비슷한, 고만고만한 군 사 교육기관이 많았다. 이 학교도 그냥 ‘육군 군관학교(陸軍軍官學校)’였지만 흔히들 지 역 이름을 본떠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 校)’라고 불렀다.

이질적 세력의 연합으로 문 열어 장제스저우언라이예젠잉 등 좌우의 정치군사 지도자 키워내 마오쩌둥도 생도 선발위원 지내

황푸군관학교는 연합과 잡교의 결정체였 다. 공산당의 홍색(紅色)과 국민당의 남색(藍 色), 군벌들의 회색(灰色)이 뒤섞여 만들어 낸 금색(金色)과도 같았다. 훗날 “국민당과 공산당은 뿌리가 같다. 양당의 대결은 황푸 군관학교 출신들끼리의 싸움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공 양당의 군 지휘관과 정치 지도자들을 무더기로 배출했다. 교장 장제스 (蔣介石·장개석)와 정치부주임 저우언라이 (周恩來·주은래)를 비롯해 쉬샹첸(徐向前· 서향전)·예젠잉(葉劍英·엽검영)·천껑(陳賡· 진갱, 한국전 참전군 부사령관 역임)·다이리 (戴笠·대립)·후쭝난(胡宗南·호종남)·린뱌오 (林彪·임표)…. 나이가 엇비슷한 그들은 교관 과 생도로 뒤섞였다. 국민당 대리선전부장에 선출된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생도 선 발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천하의 황푸군관학교는 시작부터 ‘국공 연합’ 네 글자가 따라다녔다. 성립 과정이 복 잡할 수밖에 없었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 명으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한 소련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됐다. 위기를 느낀 소비에트 정 권은 제국주의의 능욕 대상이었던 인접 국가 들과 제휴를 모색했다. 이듬해 7월 25일 ‘대 중국선언(對中國宣言)’을 발표했다. “러시아 제국 시절 중국과 체결한 모든 불평등 조약을 파기하고 만주(滿洲)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

1924년 1월 광저우에서 열린 제1차 중국국민당 대표자 대회 모습. 국민당과의 합작과 황푸군관학교 설립안을 통과시켰다.

서 취했던 이권을 일률적으로 포기한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선언서가 중국에 미 친 영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중국인들은 한 겨울에 불어온 훈풍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환호했다. 친소(親蘇) 바람이 대륙을 휘감 았다. 대학마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러시아 학과와 관련 연구기관을 개설했다. 공산주 의 소조(小組), 사회주의 연구사(硏究社), 마르크스주의 연구회 같은 단체들도 줄을 이었다. 1920년 3월 소련 공산당은 ‘코민테른 원동 국(遠東局) 서기처’ 주석단 위원 중 한 사람 인 보이딘스키를 중국에 파견했다. 상하이 에서 진보적 지식인 천두슈(陳獨秀·진독수) 를 만난 보이딘스키는 중국에 공산당 조직의 성립이 가능한지를 타진했다. 공산당 창당 에 골몰하던 천두슈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5 월에 공산당 임시 중앙조직을 만들고 전국에 기층조직 건립을 서둘렀다. 보이딘스키는 천 두슈의 민첩함에 경악했다. 어찌나 놀랐던지 레닌에게 “우리는 중국의 동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혁명을 수출하는 편이 더 수월하다”는 보고서를 발송했다. 1921년 6월 코민테른은 레닌이 추천한 네 덜란드 출신 마린을 중국에 밀파했다. 우여곡 절 끝에 상하이에 도착한 마린은 전국에서 온 13명의 대표와 함께 중국 공산당을 창당했다. 마린은 중공 성립의 주역이었지만 중공을 탐 탁해하지 않았다. 보이딘스키와 천두슈의 조 급증을 원망했다. “학술단체지 정당이 아니 다. 당원도 오륙십 명밖에 안 된다. 모였다 하 면 말싸움으로 시간만 허비할 뿐 5개월이 지 나도 결과물이 하나도 없다. 보이딘스키의 보 고서가 만들어낸 조산아에 불과하다.” 마린만 싫어하라는 법이 없었다. 중공 초 대 서기로 선출된 천두슈도 마린을 싫어하기 는 마찬가지였다. 중공이 코민테른의 하부 조직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금 지원도 거절했 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코를 끌려갈 수 없다. 내가 서기를 그만둘지언정 코민테른 이라는 모자를 쓰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 다.” 당원들은 마린을 두둔했다. “마린이 아

지난 9일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발표된 말랄라 유사프자이에게 이날은 제2의 탄생 일이었다. 17세의 최연소 나이로 노벨상을 받 아서만은 아니었다. 딱 2년 전인 2012년 그날 천국의 문턱까지 다녀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가 운영하는 쿠샬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던 스쿨버스 안에서였다. 검은색 콜트 45구경 권총을 든 남자는 얼굴을 가린 채 떨리는 손 으로 버스 후미에 탄 말랄라를 향해 세 발을 쏘았다. 그중 한 발이 말랄라의 왼쪽 눈 옆을 뚫고 들어가 왼쪽 어깨로 빠져나왔다. 말랄라는 BBC방송에 여자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금지한 탈레반을 고발하는 내용 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수시로 위협을 받아 왔다. 피격 사흘 뒤 파키스탄 이슬람 지도자 50명은 말랄라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불의 라는 내용의 파트와(이슬람 종교 해석)를 내 놨다. 탈레반의 무도한 행동이 이슬람의 본 질과는 무관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총을 맞은 말랄라가 사경을 헤매자 영국은 버밍엄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해 치 료해줬다. 그 뒤 이곳은 말랄라의 제2의 고향 이 됐다. 기적적으로 회복된 말랄라는 어린 이, 특히 여자 어린이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 한 활동에 매진했다. 16세 생일이던 지난해 7 월 12일 유엔에 초청돼 반기문 사무총장 앞 에서 이를 역설하는 연설을 했다. 말랄라가 총을 맞은 그의 고향은 아프가 니스탄에 가까운 파키스탄 서북 변경주의 스 와트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대 문명사의 현 장이다. 기원전 6세기에서 서기 11세기까지 존재한 간다라 왕국에서 그 유명한 간다라 미술이 꽃피었다. 이곳까지 쳐들어왔던 마케도니아의 알렉 산드로스 대왕이 남기고 간 헬레니즘 미술이 현지 불교 신앙과 결합한 동서 융합형 미술 양식이다. 불교의 스투파(불탑)와 불상이 즐 비하다.

니었더라면 우리 당의 창당은 1~2년 후라야 가능했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마린은 제 손으로 만든 공산당보다 쑨원 (孫文·손문)이 주도하는 국민당에 더 호감을 느꼈다. 공산당은 공개활동이 불가능한 비 밀정당이었지만 국민당은 달랐다.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춘 대정당이었다. 혁명의 역사도 유구했고 광둥과 광시(廣西) 일대에 기반도 단단했다. 10만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노동자

마린의 뒤를 이어 중국 땅을 밟은 보르딘(오른쪽). 별명이 광둥의 레닌이었다.

[사진 김명호]

와 시민들의 지지도 예상보다 컸다. 마린은 중공당원을 내세워 쑨원과의 접촉을 시도했 다. 북벌(北伐)을 준비 중이던 쑨원은 마린과 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남들 몰래 구이 린(桂林)에서 두 차례 만났다. 쑨원과 마주한 마린은 상하이의 공산당과 남방의 국민당을 비교했다. “공산당은 희망 이 없다. 국민당이야말로 사회주의 정당”이 라며 소련과의 합작을 전제로 대담한 제안을 했다. “첫째, 국민당을 개조하고 사회 각 계 층, 농민, 노동자와 연합하자. 둘째, 혁명기지 가 필요하다. 군관학교를 만들자. 셋째, 공산 당과 합당을 추진하자.” 상하이로 돌아온 마린은 중공당원들에게 국민당 입당을 요구했다. 당원들의 반발이 한결같았다. “국민당은 중증 환자다. 비적과 투기분자들의 집합처와 다를 게 없다. 타협 을 좋아하고 내부 문제도 복잡하다.” 마린은 중국을 떠났다. 새로운 사람을 물색하던 레닌은 마린보다 한 수 위인 보르딘을 파견했다. <계속>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말랄라와 스와트 밸리

기원전 6세기 이곳에 들어선 탁실라 대학 은 의학·천문학·군사학·상술·철학을 가르쳤 다. 859년에 모로코 페스에 들어선 알카라위 인 대학, 1088년에 설립됐다는 이탈리아 볼 로냐 대학보다 1000년도 더 전에 들어선 세 계 최초의 대학이다. 부처님의 주치의인 지바 카와 인도 대륙을 최초로 통합한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인 찬드라 굽타가 이곳에서 공부 했다고 한다. 나중에 불교대학으로 발전해 동서양에서 유학생을 받았다. 혜초 스님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스와트 밸리는 파슈툰족이 몰려 사는 자 치 지역이다. 인구가 5000만 명이나 되는 파 슈툰족은 파키스탄에 약 2940만 명, 아프 가니스탄에 약 1280만 명이 거주한다. 파키 스탄에서는 전체 인구 1억8600만 명의 약 15.8%를 차지하는 둘째로 큰 종족이며, 아프 가니스탄에서는 총인구 3200만의 40%를 차 지하는 최대 종족이다. 이들은 이슬람 초기

인 7세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6세기 인도 쿠 샨 왕조가 세운 인류문화유산 바미얀 석불 을 2010년 3월 로켓탄으로 파괴했다. 말랄라 의 자서전 나는 말랄라에 따르면 스와트 밸리의 탈레반도 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다이 너마이트로 부쉈다고 한다. 중국 5호16국시대 동진(東晉)을 거쳐 백 제 침류왕 1년인 384년에 지금의 전남 영광 군 법성포에 도착해 불교를 전래했다는 승 려 마라난타가 이곳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마라난타도 파슈툰족일 가능성이 크다. 전 천태종 총무원장인 운덕 스님은 2010년 고 대 탁실라 대학을 복원하는 종교화합운동 을 제창한 바 있다. 말랄라의 비극이 반복되 지 않게 하려면 극단주의에 맞서 화합을 이 뤄야 한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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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다자외교 속 파격외교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미국 시카고대의 존 미어셰이머 교수는 2000 년대 초반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이라는 책을 저술해 일약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그는 영국·중 국·러시아·독일·이탈리아·미국 등 역사상 강 대국들의 대외정책을 분석했다. 그는 지역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책으로서 육군력 및 해 군력을 포함한 세력 확대를 단행해 패권국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국제정치는 패권국을 지향하는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세력 경쟁이 펼쳐지는 ‘비극의 무 대’라고 보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과연 강대국들의 성향이 팽창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고 국제 정치가 비극의 경연장일까라는 의문이 생기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지역대국으 로 부상하는 중국과 기존의 대국을 자처하

던 일본이 동아시아 무대에서 펼치는 대외정 책의 양상을 생각하면 미어셰이머의 통찰이 어쩌면 정곡을 찌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제력과 군사력 면에서 세계 2위 수준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첨단 해군력과 공군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하 면서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에서 영유권 주 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그 주변 공역을 포함한 방공식별권을 일방적 으로 선포했다. 반면 이에 대해 일본은 지난해 말 공표한 국가안보전략서와 방위계획대강에서 중국 의 첨단 군사력 증강 및 해양 진출 동향을 잠 재적 위협으로 명기하면서 평화헌법 체제하 에서 보유 자체가 금기시됐던 해병대 전력의 창설을 선언했다. 한때 일본은 ‘종합안전보 장’의 개념을 제창하면서 비전통적 안보 개 념까지 포함한 포괄적 안보정책을 선도적으 로 추진한 국가였지만 현재의 일본은 오히려 군사안보에 편중된 대중 정책에 기울고 있다. 21세기의 동아시아는 중국과 일본 등 지 역 강대국들의 세력 확대 경향이 노골화되

베스트 닥터의 조건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명의(名醫)는 유명한 의사를 일컫는다. 하 지만 유명한 의사가 곧 좋은 의사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마케팅 활동으로 유명세를 탄 의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SUNDAY와 함께 1년 동안 명의보 다는 ‘훌륭한 의사’를 찾아 떠났다. 훌륭한 의사는 무엇일까? 송나라 의학 책 성혜방 에 따르면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고 했다. 큰 의사가 되라는 말 같지 만 사실 치병(治病)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 다. 의사에겐 치병과 치인, 치국이 같은 의 미일 수도 있다. 필자는 훌륭한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의 사들 스스로 판단하게 했다. 해당 병을 전 공하는 교수들에게 “당신의 가족이 그 병 에 걸리면 누구에게 보내고 싶은가?”를 물 은 뒤 최근 진료연구 실적을 반영해서 좋 은 의사를 추천받았다. 연인원 1200여 명이 추천에 응했고 30명의 국내 각 분야 베스트 닥터가 탄생했다. 여성 내분비질환의 명의 인 연세대 의대 이병석 학장은 대통령 주치 의여서 인터뷰를 고사하다가 사퇴하자마자 응했다. 베스트 닥터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깊고 넓었다. 대부분 문사철(文史 哲)의 소양이 있고 시사에 박식했다. 의사가 사람의 심신과 상대하는 전문인이기 때문 에 인문학이 바탕인 직업의식이 없으면 최 고가 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둘째, 일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일을 사랑 하고 시간을 아꼈다. 대학 시절 밤새 포커 게임을 즐겨 친구들을 우수수 낙제시키고 자신만 A학점을 받은 서울대병원 방영주 교수(항암치료)처럼 ‘천재형’도 있지만 그 천재조차도 결국엔 ‘노력형’에 합류했다. 연세암병원 송시영 교수(담췌장 질환), 한 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 등은 도대 체 언제 쉴까 궁금할 정도였다. 셋째, 늘 환자를 생각했다.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간 수술)는 어머니의 장례식날 밤 수술대로 향했다. 배상철 원장은 장인상 을 치르면서도 계속 원격으로 환자를 봤다. 이런 조건들이 필수 조건이라면 선택 조 건도 있다. 서울대병원 정회원 교수(뇌종양

동아시아서 강대국 경쟁 첨예화 한국 대통령이 중일 중재하고 북 끌어들이는 파격 제안할 필요

는 ‘비극적 국제정치의 무대’가 되고 있는 것 은 아닐까.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상 대적 중견국이 ‘아시아 비극’의 도래를 예방 하고, 나름의 안보와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서는 양자외교뿐 아니라 다자간 외교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정 희 대통령이 1966년 주도적으로 아시아·태평 양이사회(ASPAC)를 결성한 이래 역대 한국 지도자들이 동아시아 지역 내의 다자간 협의 체 결성과 활용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은 나름대로 중견국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현명 한 외교전략이었다고 할 것이다. 동아시아 비전그룹의 발족이나 한·중·일

해외 만평

정상회담의 정례화 및 협력사무국 발족 등은 지금도 여타 역내 국가들이 평가하는 한국 다 자외교의 성과들이다. 박근혜 정부도 기회 있 을 때마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및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다자간 협력 제안을 해 왔는데 이제는 구체적인 결실을 봐야 할 시기다. 다만 다자간 무대에서 입장이 다른 타국 들을 상대로 공감을 얻어내고 협력을 획득하 기 위해서는 가끔은 상대국들의 의표를 찌 르고 예상을 뒤엎는 메시지의 발신과 행동 이 필요할 때도 있다. 16일부터 이탈리아 밀 라노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ASEM)도 좋고 다음달에 베이징과 미얀마, 그리고 호주에서 연속 개최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동아시아 정 상회의, 그리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도 좋다. 중국과 일본의 계속되는 군사적 대 립을 완화하고 동북아 평화협력을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한·중·일 3국 정상 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것은 어떨까. 혹은 남 북한 신뢰프로세스를 가속화하기 위해 아시 아·태평양 지역의 다자간 회의에 북한 정상

을 옵서버로서라도 초대하자는 파격적인 제 안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파격의 제안을 통해 ‘아시아 비극 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중국과 일본을 화 해협력의 길로 유도하고 북한의 핵폐기와 개 혁·개방을 촉구한다면 평화적 가교국가로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보다 증진되는 효과도 클 것이다. 66년 6월 한국 최초로 주도한 아 시아 지역 다자기구였던 ASPAC이 결성될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참가 10여 개국에 ‘평화와 자유, 균형된 번영의 위대한 아시아· 태평양 공동사회’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다른 대국들의 정치가에게 과감한 역사 반성 을 통해 아시아의 지도자가 돼 달라고 요구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와 병행해 이제는 우 리 스스로가 ‘아시아·태평양 공동사회’를 견 인하는 다자외교의 구상력과 지도력을 발휘 할 시기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 초빙교수, 주요 연구로 제3의 일본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등.

“중국산 짝퉁 퍼레이드  PC, 브랜드 의류, 민주주의 홍콩서 민주화 시위대와 정부 간 대화 무산되며 혼미 지속.

수술)는 “자기 또는 가족이 크게 아파 본 것 이 명의의 조건 중 하나”라면서 “고교 때 여 동생이 뇌막염을 앓은 것이 내가 좀 더 좋은 의사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 했다. 경북대병원 김용림 교수는 의대 본과 2학년 때 급성신증후군을 앓은 것이 신장 병의 최고 대가가 되는 바탕이 됐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허승곤 교수(뇌혈관질환 수 술)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복통 때문에 병원 에 갔다가 씻은 듯 나았던 경험 덕분에 의사 를 꿈꿨고 최고의 의사가 됐다. 다수의 베스트 닥터들이 대체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을 극복한 경우도 있었다. 연세대 강남세브 란스병원 박정수 교수는 초등학교를 졸업 할 무렵 집안이 쫄딱 망해서 다른 식구들은 빚쟁이를 피해 시골로 가고 혼자 친구 집에 서 기거하면서 공부했다. 중2 때부터 입주 과외를 하면서 공부해 갑상선 수술의 최고 대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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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옴부즈맨 코너

1년간 연재하며 만난 의사 30명

북한 실세 감짝 방문, 순발력깊이 있게 보도

文史哲은 기본, 시사에도 해박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워크홀릭

최근엔 베스트 닥터가 정년을 연장해 서 근무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박정수 (70)·이승규 교수(65)와 경희대병원 배대경 (68·무릎 수술) 교수 등은 정년 이후 병원의 간청에 따라 수술 칼을 잡고 있다. 우리나라엔 19세기 말에 서양의학이 본 격적으로 들어왔다. 2010년대 들어와선 국 제학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국제 임상 시험을 주관하는 의사들이 나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진리가 있다. 바로 최고의 의사는 자나 깨나 환자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중앙SUNDAY와 함께 30 명의 베스트 닥터를 찾아다니면서도 이 사 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의료의 비약적 발전은 공짜로 이뤄지지 않았다. 불 철주야 환자를 생각하며 연구와 치료에 매 진한 베스트 닥터들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비가 새 고, 성화가 꺼지고, 한류 콘서트 같은 개막식 등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남북 축구 결승전 종 료 1분 전의 극적인 승부와 폐막식 국립무용 단의 품위 있는 춤 공연은 인상적이었다. ‘끝 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그래서 내심 일요일 아침 아시안게임 총정리 기사를 기 대했다. 그러나 10월 5일자 중앙SUNDAY 1 면은 아시안 게임을 깜짝 방문한 북한 황병 서 총정치국장, 최용해 비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사진과 관련 기사였다. 1면부터 3, 4, 5면으로 이어지는 북한 실 세 3인방의 방문과 뒷얘기, 숨가빴던 하루 등이 시간대별로 잘 정리돼 한눈에 들어 왔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과 김용현 동국 대 북한학과 교수 등의 전문가 대담도 적 절했다. 결과적으로 일요일자 신문으로 누 릴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했고, 독자의 입 장에선 급작스러운 사건에 대처하는 중앙 SUNDAY의 순발력과 깊이, 내공을 가늠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잔치이자 같은 날 폐막

한 인천 아시안게임 기사는 너무 적었다. 중 간 와이드샷도 화려했던 폐막식 공연이 아 니라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불꽃축제였 다. 아시안 게임 관련이라고는 14면 ‘국제대 회 뒤 대부분 승자의 저주… 인천은 예외 될 까’라는 제목의 경제 기사였다. ‘재정적자 가 결국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암 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31면 ‘아시안게임 유 감’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아시안게임이 열 리는 동안 일어났던 사건·사고, 문제점을 열 거하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선수단을 비 롯해 뛰어난 기량의 아시아 스포츠 선수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재미있고 감동적인 뒷이 야기도 많았을 텐데, 중앙SUNDAY는 지 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지나치게 엘리트 지 향적이지 않았나 아쉬웠다. 12면 ‘자기 강점 모르는 응시자는 취업면 접 때 탈락 1순위’라는 제목의 기사는 대학 4학년 진학지도를 맡고 있는 필자로선 크게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취업 3년 전 저자 와의 인터뷰를 통해 ‘취업, 3년 전부터 미리 준비하라’는 걸 강조했다. 1학년 때는 노력과

실패를 경험하고, 2학년은 복수전공·교환학 생 등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가지만 3학년 때 부터 인턴 등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 이었다. 취업에 성공하는 학생들은 무엇보다 절박함과 욕심이 있었고, 그들의 자기소개 서나 면접 때 뭔가를 만들어낼 것 같은 자존 감을 찾아보았다는 이야기는 수긍이 갔다. 24면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의 소 개 기사도 흥미로웠다. ‘그는 잰 체하며 매 사를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에고 (ego) 그 자체이자 지칠 줄 모르는 수완가’ 라는 표현은 마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 그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켰다. 앞 으로 우버가 운송뿐 아니라 금융·에너지· 교육·농업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놀라웠다. 조유현 서울대 신문학과를 나와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고대행사와 출 판사·잡지사 편집자를 거쳐 현재 세명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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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이혼 소송의 女女차별

노벨상에 냉정해야 할 이유

조홍식의

시대공감

문학상은 주관적, 평화상은 정치적 경제학상은 정통성편향성 논란 서방의 핵심 소프트 파워로 키운 스웨덴노르웨이 전략을 배워야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노벨상 발표의 계절을 맞아 사람들은 숨죽 이고 결과를 기다리며 박수 칠 준비를 갖춘 다. ‘간택된 별’의 나라는 민족적 축제를 벌 인다. 매년 가을이 되면 지구촌 스타 탄생의 이벤트가 펼쳐지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노벨상 수상이 항상 경사는 아니다. 중국 은 최근 여러 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2000년 노벨 문학상은 중국 작가 가오싱젠 에게 주어졌다.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반 체제 성향의 작가였다. 중국으로선 반갑지 않은 수상 소식이었다. 필자는 당시 베이징외국어대에 재직했는 데 가오싱젠은 이 대학 프랑스어과 출신이 다. 웬만하면 흉상이라도 세워 동문의 노벨 상을 자축해야 할 텐데, 교내에서 가오싱젠 은 침묵과 회피의 대상이었다. 호기심에 이 작가의 대표작 영혼의 산을 읽어 보았다. 훌륭한 소설이지만 솔직히 노벨상 수상감 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학상 선정에서도 서 구 정치의 입김을 느꼈다. 그로부터 10년 뒤 중국인이 다시 노벨상 을 받았다. 2010년 평화상 수상자로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결정된 것이다. 문 학상은 본질적으로 주관의 영역이고 심사 진의 취향이 결정한다. 하지만 평화상은 근 본적으로 정치적이다. 특히 류샤오보의 수상은 중국 정부의 권 위주의와 독재적 성격을 만천하에 공표하 는 결과를 낳았다. 1989년 달라이 라마에게 평화상을 준 데 이어 또다시 서방이 중국에 ‘삿대질’을 한 셈이었다. 중국 정부는 강력히 반발했고 한국을 포함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 류샤오보 시상식 불참을 요구했다(한국은 이를 일 축하고 관례대로 정부 관리들을 참석시켰 다). 중국과 노르웨이의 외교 관계도 급랭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류샤오보 는 감옥에 갇혀 있고, 중국 정부는 홍콩 시 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는 데 거침이 없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평화상 수상자 가운 데 미국 정치인이 눈에 띄게 많다는 사실 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러일전쟁 직후 양국 간의 평화교섭을 중재한 시어도어 루스벨 트 대통령(1906년)과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 한 윌슨 대통령(1919년)을 비롯해 헐(45년)· 마셜(53년)·키신저(73년) 등 국무장관과 고 어 부통령(2007년)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

(2009년)이 모두 수상자다. 이들은 대부분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그 만큼 많은 전쟁을 일으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 써 미국의 흑백 화합에 기여했고, 이라크 철 군 공약을 지켰다는 이유로 평화상을 수상 했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국가(IS)의 급부상으 로 미국은 이라크뿐 아니라 시리아까지도 공습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빠졌다. ‘전쟁 광’이라 비판받은 전임자 조지 W 부시보다 도 더 큰 전쟁을 벌이는 오바마가 된 것이다. 이미 준 평화상을 빼앗을 수도 없으니 노벨 상의 명성에 상처만 입힌 셈이다. 평화상을 수상하고도 자국에서는 욕 을 먹는 대표적 인물이 미하일 고르바초 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다. 그는 냉전 을 종결시켜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는 이 유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러 시아에서는 제국을 산산조각 낸 파괴자로 통한다. 그뿐인가. 노벨 경제학상은 엄밀한 의미 의 노벨상이 아니다. 공식 명칭이 ‘노벨을 추모하는 스웨덴은행의 경제학상’인 이 상 은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 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노벨상이 가진 국 제적·과학적 명성에 스웨덴은행이 경제학 을 내세워 편승한 셈인데, 심각한 문제는 학 술적 편향이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미국과 영국 경제학 자들이고 방법론적으로도 계량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 1997년 경제학상 수상자를 앞 세운 헤지펀드 LTCM이 이듬해 투자자들 의 자금을 날리고 망했다는 일화는 금융계 의 전설이다. 노벨상이라는 제도는 서방의 핵심적인 소프트파워다. 알프레드 노벨은 훌륭한 과 학자이자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 하도 아니다. 또 노벨상을 결정하는 기관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학술단체와 위원회다. 노벨상 을 넘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약 소국의 장점인 중립성과 객관성을 살려 글 로벌 소프트파워로 발전시킨 스웨덴과 노 르웨이의 국가 전략일 것이다. 별만 보지 말고 손가락과 손의 주인을 검토해보자는 말이다.

버틸 피터슨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지난 20년간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급상승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여성이 대학교육을 받게 됐고, 전문 직을 갖고 있는 여성 수도 크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남편의 퇴직연금과 관련된 대법원의 이혼소송 판결은 여성들 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은 최근 두 건의 판결에서 남편의 퇴직연금 분할 비 율을 각기 달리 산정했다. 전업주부에게는 35%를, 맞벌이 아내에게는 50%의 분할 비 율을 결정했다. 첫 번째는 34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부부 케이스다. 대법원은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 직한 남편이 매달 받는 314만원 정도의 연 금에서 35%를 아내에게 지급하라고 판결 했다. 아내는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두 자 녀를 키운 전업주부였다. 두 번째 케이스는 31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부 간 소송으로 남편이 퇴직연금의 50% 를 아내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 졌다. 아내가 의류 관련 자영업을 운영했던 만큼 가계소득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 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들은 향후 유사한 소 송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전의 퇴직연금 분할 재판 결과를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1995년 판례에서는 재판부가 향 후 받게 될 연금에 대해 이혼을 하더라도 분 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를 감안할 때 최근 판결은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연금 분할 비율의 기준이다. 전업주부와 맞벌이 아내 에 대한 평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 문이다. 직업을 가진 아내의 기여도를 높게 평가한 반면, 전업주부로서의 역할에 대해 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한 측면이 있다. 이 런 판단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과 거의 인식과도 맥을 함께한다. 한국에서 여 성의 경제적 지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 만 아직도 사회·문화적 관습으로 인해 아내 는 결혼생활에서 남편과 대등한 위치를 차 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여성의 사회 진출은 확대될 것이다. 이로 인해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과 아내의 역할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 있는 황지수씨는 이와 관련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발전 한다는 것은 기혼여성의 사회 진출 기회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 만 그만큼 가정주부로서의 역할 축소도 동 반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가 경제 에서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주된 이유로 임신과 출산, 자녀 양육 등 을 들고 있다. 여성이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여성의 사회적 성취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업맞벌이 주부 재산분할 큰 차 결혼 10년 넘었으면 똑같이 나눠야 출산양육 가치 저평가해선 안 돼

한국의 여성 취업과 관련된 몇 가지 특징 이 있다. 첫째로 OECD 국가들 중 한국은 대 졸 여성들의 취업률이 고졸 이하 여성 취업률 보다 낮은 유일한 나라다. 둘째로 한국의 여 성 취업 인력 중 파트타임 일을 하는 비율은 다른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셋 째로 경력 단절을 겪은 40대 여성들은 사회 에 복귀했을 때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난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한 전업주부 여성이 이혼할 경 우 노후 대비는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취 약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0년 이상 된 부부가 이혼할 경우 재산분할 비율을 50대 50으로 정하는 것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결혼은 동등한 부부 간의 결합이다. 각자의 기여도도 공평하게 평가돼야 한다. 가정과 사회를 위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여를 한 여성들이 불이익 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버틸 피터슨 보스턴 글로브 등 미국의 주요 신문 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집트 미국상공회의소 가 발간하는 월간 비즈니스 편집장을 지냈고 현 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On Sunday

말말말

계파주의와 돈

“에볼라 감염자 3~4주마다 두 배로 늘고 있다” 유엔의 에볼라 대책 조정관인 데이비드 나바로, 10일 유엔 총회에서 “에볼라 대응 노력을 10월 초보다 20배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 keysme@joongang.co.kr

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란 음성적인 정치자 금 통로인 경우가 많다. 2004년 ‘오세훈법’ 으로 후원금 모금에 제한을 받자 정치인들 은 출판기념회를 돈 모으는 기회로 삼곤 했 다. 물론 명분은 책값이다. 그게 사라질 ‘위기’다. 중앙선관위가 지 난 6일 정상 책값 외의 금품 모금을 금지하 기로 하고, 9일 새누리당 보수혁신위가 출판 기념회 원천 금지를 추진키로 했다. 좋은 취 지인데 벌써 “다른 검은 뒷거래가 횡행해질 것”이란 말이 나온다. “안 그래도 돈 없는 사 람은 지역구 관리와 의정 활동이 어려운데 더 숨통이 막히게 생겼다”는 이도 있다. 걱정은 엉뚱한 쪽으로도 튄다. 계파주의 가 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당에서 더 그렇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잔 뼈가 굵은 A씨의 말이다. “새누리당에 비해 새정치연합이 계파정

치를 죽기 살기로 하는 이유를 아나. 바로 돈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사람들은 새누리 당에 비해 물적 토대가 약하다. 그러니 ‘패 밀리’를 결성해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의 주장을 풀이하면 이렇다. 정치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새누리당엔 부자가 많 지만 새정치연합엔 적다, 그러니 계파를 형 성한다, 그러면 개인일 때보다 돈을 조달하 기 쉽다. ‘센 계파’에 있으면 계파 핵심에 줄 을 대려는 이들이 ‘스폰서’를 하기도 하고 지 방의원 등에게 공천 헌금을 받을 수도 있다. 설마 그럴까. 그런데 같은 당 중진 B의원 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안철수 의원이 자기 세력을 만드는 데 실 패한 이유가 뭔지 아나. 바로 돈을 안 써서 다. 요즘은 자기 돈 써 가며 다른 정치인을 위해 자원봉사하는 사람은 없다. 세력을 만 들려면 왔다 갔다 하는 비용도 들고 밥도 먹 어야 한다. 그런데 돈도 많다는 안 의원이 돈을 안 풀었다. 그러니 다들 떠나는 거다.” 실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와는 별도로, 그런 시각이 정치권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면서 B는 덧붙였다. “김대중 시절엔 자기 돈으로 정치인을 돕는 이가 많았다. 장 외투쟁이라도 있으면 의사들이 병원 문을 닫고 간호사를 데려왔다. 강남 유흥업소 종 사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 다. 이젠 45인승 버스라도 대절해줘야 사람 들이 집회에 온다.” 결국 돈이 있어야 사람 도 모인다는 얘기다. 과거 생계도 포기하고 정의감과 희생정 신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야당 인사들이 들으면 억울할 법하다. 뜻이 맞는 이들끼리 뭉쳐 신념을 위해 계파 활동을 하는 건데 감 히 돈 운운하니 말이다. 하지만 과거의 운동 투사가 요즘엔 계파 원을 지역위원장이나 당직에 심는 데 몰두 한다. 공천 같은 이익 투쟁에만 적극적인 이 도 있다. 그들은 “모두 대의를 위한 것”이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돈 때문’이란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계파에 목매 지 않고, ‘책값’ 수금 없이도 정치할 수 있 는 방안은 뭘까. 필요하다면 오세훈법 개정 도 고민해야 할 듯하다.

“김일성김정일 모두 각종 정신병을 앓았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피해망상과 나르시시즘 등 언급 하며 김정은이 정신병 때문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을 수 있다”고.

“우리 나라를 사랑하고, 우리 홍콩을 사랑하자” 친(親)중국 성향의 유명 배우 청룽(成龍),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에 “홍콩 시위로 인한 손실이 3500억 홍콩달러(약 46조원)에 달해 마음이 불편하다”며.

Numbers

유럽사법재판소(ECJ) 판결에 따라 지 난 4개월여간 신청받은 ‘잊힐 권리’ 건 수. 신청서에 포함된 웹 페이지 수는 49 만7507개이며 구글은 이 중 17만506건 에 대한 요청을 받아들여 이를 제거했다. 나라별로 ‘잊힐 권리’ 신청 건수는 프랑 스가 2만8898건, 독일 2만4979건, 영국 1 만8304건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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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호 2014년 10월 12일~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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