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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50년 50년 펴낸 전 외교관 조세영 교수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에볼라 확산 우려하는 WHO

한일‘65년 체제’벗어난 새 관계 필요 “이대로면 매주 1만 명씩 감염 우려” Focus 15p

http://sunday.joongang.co.kr

News 3p

판교 공연 기획 30대 투신 부상자 11명 중 8명 중태 <경기과기원 직원>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18일 저녁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 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 한 다발이 놓였다. 꽃다발 뒤쪽으로 폴리스 라인이 쳐진 참사 현장이 보인다.

[뉴시스]

박근혜 정부의 아이러니 ‘단통법’ 대통령은 규제 혁파  장관은 기업 압박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 지난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 신이 7시간여 동안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규제를 “경제 활력의 발목과 투자 의지를 꺾는” 존재로 규 정했다. “낡은 규제가 융·복합을 가 로막는 환경에서는 창조경제가 꽃필 수 없다”고도 했다. # 17일 오전 서울 반포동 JW메리 어트호텔.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 신위원회가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 대표들을 급하게 불러 모았 다. 이 자리에서 최양희 미래부 장관 은 “단통법을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이용한다면 정부는 극단적인 대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규제 혁파를 외치는데, 장관은 규제권력을 무기로 기업들 을 오라 가라 하며 닦아세우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경제의 실상이다. 미래부가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기조에서 결정적으로 이탈한 건 단 통법, 즉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 조 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을 통해서 다. 핵심은 휴대전화 할인규제다. 이 로써 요금규제(통신요금 인가제)와 함께 덩어리 통신규제가 완성됐다. 형식은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원입법이지만 실제는 미래 부 주도의 ‘청부입법’이다. 취지는 보조금 무차별 살포, 차등 적용 등의 폐해를 없애고 휴대전화당 보조금을 동일하게 묶어 모든 소비자 가 평등한 혜택을 누리게 함으로써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입법 전부터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 쟁을 제한해 소비자 이익을 갉아먹는 규제’란 반론이 끊이지 않았다. 법 시행 후 휴대전화 구입가격은 비싸졌다. 통신비 절감은커녕 ‘5000

보조금 규제 시행된 이후로 이통사제조사 규제 영향권 소비자는 손해, 내수도 타격 일본 언론 “중국 기업에 유리” 만 호갱(호구고객) 시대를 열었다’는 냉소가 쏟아지고 있다. 규제개혁위원 장을 지낸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 원 교수는 “규제란 의도했건 아니건 그로 인한 수혜자와 피해자를 만든 다”며 “단통법 규제로 이통사 간 보 조금 경쟁이 사라졌는데, 그 경쟁의 이득은 그간 소비자가 누려 왔던 것” 이라고 지적했다. 규제가 만들어 낸 이익의 대부분

서울의 속살 S Magazine

은 소비자가 아닌 이통사로 흘러드 는 구조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으로 올해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은 2조3367억원에서 내년 엔 4조7271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보조금이 1만원 내려가 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순이익은 각각 3.7%, 8.3%, 9.5% 늘 어난다고 한다. 피해자는 또 있다. 휴대전화 제조 업체들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달 하루 평균 4만2000대가량이던 스마 트폰 판매량이 이달 들어 2만 대 선 으로 급감했다. LG전자 역시 하루 평균 1만3000대 판매에서 4000대로 줄었다. 그러는 동안 중국 샤오미를 비롯한 해외 중저가 휴대전화 제조업 체들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해외 언 론도 유심히 지켜본다. 니혼게이자이 (日本經濟)신문은 지난 12일 “스마트 폰 판매에 관한 한국의 제도 변화는 중국 메이커에 유리할 것”이라고 보 도했다. 최 교수는 단통법을 ‘포획모형 (Capture model)’의 시각에서 봤다. 정부가 규제 대상 산업을 지배하기보 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지배당하거 나 포로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통신시장이 그렇다는 얘기다. 포획 은 ‘친(親)규제 블록’을 만든다. 규제

의 ‘떡고물’을 받아 먹는 집단이다. 미래부는 할인규제를 통해 이통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을 자신의 규제권 력 아래 묶어 두는 효과를 거뒀다. 17 일 간담회에 불려 간 한 업체 간부는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급하게 불러 모은 것 자체가 규제권 력”이라고 말했다. 결과론적으로 단통법은 친규제 블록의 한판승인 셈이다. 그 블록의 정점엔 ‘통(通)피아(통신부처+마피 아)’로 불리는 그룹이 있다는 게 정 설이다. SK텔레콤을 비롯한 이통 3 사의 공직자 출신 임원(25명) 중 절 반 이상이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이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래부뿐 아니라 정부부처 대부분이 관할 기업들과 ‘철의 삼각 관계(iron triangle)’를 형성하는 경 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료와 국회의 원, 기업이나 이익집단들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책 수립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인위적으로 경쟁을 줄인다는 점”이 라며 “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은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정 부는 이를 가로막으면서도 공익의 실 현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관계기사 6~7p 고 말했다.

1992년 런던에서 시작된 도시 건축물 개방 행사 ‘오픈 하우스 런던’이 뉴욕· 바르셀로나·아테네 등 세계 23개 도시에 이어 서울에서도 시작됐다. 13일부 터 일주일간 이어진 ‘건축 축제’에는 일반인이 쉽게 가보기 힘든 28개 공간이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았다. 그 주요 현장에 S매거진이 함께했다. 1부 1000원 / 월 5000원 | 정기구독 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16명의 희생자를 낸 경기도 판교테 크노밸리 공연 참사는 안전수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발생한 것으 로 드러났다. 행사 담당자 중 한 명인 경기과학 기술진흥원(경기과기원) 판교테크 노밸리 운영기획팀 행정원 오모(37) 씨는 18일 오전 판교 공공지원센터 건물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 찰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으로 보고 있다. 오씨는 소셜네트워 크서비스(SNS)에 ‘최선을 다해 열 심히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 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미안 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는 글을 남겼다. 부상자 11명 중 8명은 중태다.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인 경기도 분 당경찰서는 18일 관할인 성남시와 분 당소방서가 행사 전에 안전점검을 하 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성남시는 “행사가 열린 유스페이스 광장은 일 반 야외광장으로 분류된 곳이라 행 사 사전 승인 및 신고 대상이 아니다” 고 밝혔다. 성남시 조례에 따르면 일 반 광장으로 분류된 곳에서는 7일 전 까지 사용 허가를 받으면 행사를 열 수 있다.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 는 행사라도 안전점검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분당소방서는 사고 7일 전인 10일 공동 주최 측인 경기과기원으로부터 안전점검과 관련한 협조 공문을 받 고도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았다. 소방

서 관계자는 “소규모 야외광장은 사 전 점검 필수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 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 유스페 이스 빌딩의 환풍구에 대한 설치· 안전 기준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 다. 경기도와 성남시 관계자는 “건 축법, 건축법 시행령 중 어느 곳에 도 옥외 환풍구의 설계에 대한 기준 은 없다”고 설명했다. 사고 현장에 서 50여 명의 공연 관람객이 올라섰 던 환풍구는 제일 낮은 쪽의 높이 가 1m5㎝였다. 관객들은 어렵지 않 게 올라갔다.

전국 수천 개 옥외 환풍구 안전 규정 없는 ‘사각지대’ 판교 참사는 후진국형 인재 행사 주최 측도 행사 전에 위험요 소 파악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기과기원은 “지자체와 소방서에 안전점검을 요청했다”며 책임을 피 하려 했다. 이 기관은 지난 15일에 낸 보도자료에서 ‘무대 설치와 축제에 참가하는 관객 안전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경기과기원과 이데일 리·이데일리TV가 공동으로 주최했 다. 이데일리 측은 경기도와 성남시 도 공동으로 주최했다고 주장했고, 경기도와 성남시는 이데일리가 명의 를 도용했다고 반박했다. 관계기사 2, 4~5p

북한군 10여명 철원 MDL 접근 군, 대응지침 따라 경고사격 <군사분계선>

북측 대응 안해 교전은 없어  올 들어 26번째 도발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북한군이 18일 강원도 철원 군사분 계선(MDL) 주변에 접근해 우리 군 이 대응지침에 따라 경고방송과 경고 사격을 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 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북한군 10여 명이 강원도 철원군 북방 비무장지대 (DMZ)에서 MDL 주변에 여러 차례 접근해 아군이 경고방송 후 경고사 격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이 군사분 계선 푯말을 확인하고 통로 개척 등 의 활동을 했으며 아군 GP(감시초 소)에서 MDL에 접근할 때마다 경고 방송을 했다”며 “3차례에 걸친 경고 방송 후 대응지침대로 개인화기(K-3

기관총)로 경고사격을 했다”고 설명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군이 MDL을 넘 어오지는 않았으며 우리 측 경고사격 에 대응사격을 하지도 않았다”며 “특 별한 충돌이나 교전 없이 오후 4시쯤 북상해 복귀했다”고 덧붙였다. 북한군은 지난 10일 우리 민간단 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날린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14.5㎜ 고사총 10여 발을 쏘는 등 올 들어 26차례에 걸쳐 무력 시위나 도발을 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MDL 선상 에 접근해 군사분계선 푯말을 점검하 거나 통로 개척 등의 활동을 벌여 우 리 군이 경고방송과 사격을 하는 것 은 간혹 있는 일”이라며 “올해도 수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 지식과학 섹션(8p) 오늘 함께 배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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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사설

Inside

또 인재  부끄러운 참사 공화국 <人災>

Focus

IS 토벌 병력 보낼까 말까  고민 깊은 터키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와 터키 접경도시 코바니를 수중에 넣기 위해 한 달째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는 선뜻 지상군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터키의 고민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걸까. 14p Focus

잘되는 기업들의 3대 원칙 잘되는 기업들이 잘되는 이유를 ‘빅 데이터’로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 다. 딜로이트컨설팅의 마이클 레이 너 리서치부문 대표는 “이들 원칙 이외에 다른 원칙은 없다”며 세 가 지 기준을 제시했다. 11p Focus

Focus

애플은 서버 저장 여부 묻는데 .

남북관계 뜨거운 감자 삐라

카카오톡 서버에 저장된 내 메시지 를 내가 삭제할 수는 없을까. 이번 논란으로 ‘내 데이터는 내가 지킨다’ 는 사람이 늘었다. 애플은 메일 카 피본을 서버에 저장할지를 이용자 에게 묻고 있다. 10p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에서 북한군 의 총격을 받으면서 돌연 남북관계 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해 온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로부터 왜 전단을 뿌리 는지 들어봤다. 8p

Money

Economy

렉서스에 스토리 입히는 장인

비주얼 경제사

장인의 손길로 렉서스에 스토리를 입힌다. 일본 규슈(九州) 도요타 공 장에서 만난 자동차 생산 장인(다쿠 미·匠)들. 세계 최고의 숙련공인 그 들의 섬세한 손길로 렉서스는 최고 의 차로 거듭났다. 18~19p

모피의 인기가 커지자 러시아는 모 피 확보를 위해 영토를 넓히기 시작 했다. 마침내 알래스카도 손에 넣었 지만 곧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던 이유는. 20p

Sports

Column

잃을 게 없어 당찬 루키 이미림 박인비와 스테이시 루이스를 모두 꺾은 수퍼 루키 이미림은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박세리 언니’처럼 오래오래 골프를 치고 싶다는 이미림에게 LPGA 진 출 이후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 어봤다. 23p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또다시 어 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졌다. 17일 저녁 경기 도 성남의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열 린 공연 도중 인근 지하 주차장 환풍구 덮개 가 붕괴하면서, 그 위에 서 있던 관람객들이 4 층 높이의 18.7m 아래로 추락, 16명이 숨졌다. 환풍구를 덮고 있던 격자 형태의 철망 8개 가 운데 3개가 사람들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참변이 벌어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외 친 지 불과 6개월여 만에 날아든 또 한 번의 대 형 참사 소식에 시민들은 불안감과 황망함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선 “지난 2월 경주의 리조트에선 지붕이 무너 지더니 이번엔 환풍구냐” “도대체 한국에서 안전한 곳이 어디냐”는 탄식이 나돈다. 외신들도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한국에서 또다시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 했다”며 “관련 법 규정 부재와 느슨한 처벌, 안전을 무시하는 경제적 이익 우선주의 등으 로 이런 사고가 거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멀쩡하던 환풍구 덮개가 어이없이 붕괴한 이번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다중 이 몰리는 야외 공연에 대한 안전 규정이 미 비한 데다 환풍구 역시 법적인 설치 기준이나 관리 규정이 없었다. 게다가 안전요원들을 제 대로 배치하지 않은 주최 측의 안일한 안전관 리에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랴’라는 관람 객들의 안전불감증까지 겹쳤다. 일반광장과 같은 야외 공간은 시설물이 아 니라는 이유에서 공연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 외돼 왔다. 또 환풍구 구역은 안전 규정이 없 다는 이유로 관계 당국의 점검을 제대로 받지 않는 법적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인기 가수 초청에는 큰돈을 펑펑 쓰면서도 정작 안전에는 소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행 태도 여전했다. 대규모 청중이 몰리는 공연 현 장에 소방차·구급차는 물론 안전 펜스 하나 제대로 갖춰놓지 않는 허술한 관리가 이번에 도 거듭됐다. 이 모두 정부가 공언해 온 ‘안전한 국가’와 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사고 이후 야밤에 허

겁지겁 전시성 안전 장관 대책회의를 여는가 하면, 뒤늦게 지하철의 환풍구 일제 점검에 나 서는 것 역시 세월호 참사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풍경이다. 물론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하 기 어렵다. 하지만 후진국형 참사를 막기 위한 사회 안전 인프라는 높아진 우리 사회 수준과 기준을 감안한다면 이미 갖춰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 안 된다면 부문별로 안전관리 규정 이 없는 곳을 찾아내라는 새로운 규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사람 많은 곳에 갈 때 편안함과 즐거움 대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 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쟁에만 매달려 온 정치 권도 반성해야 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규정 을 정비하고 제도를 만드는 데 여야가 다를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확고한 안전의식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 국민 이 무심하면 정부도 정치권도 안전에 신경 쓰 지 않는다.

나누는 기쁨  오늘 광화문서 위아자 나눔장터 국내 최대 1일 자선 벼룩시장  명사들 기증품 경매, 히든싱어 축하공연도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러시아가 알래스카 판 까닭

‘반상(盤上)의 향기’

혼인보家 vs 이노우에家 일본 바둑계를 뒤흔든 한 판 승부 ‘토혈 국’. 피 토하는 대국 끝에 세상을 떠난 풍 운아 인테쓰는 누구인가. 명인 자리 놓 고 벌이는 일본 바둑 가문끼리의 흥미진 진한 암투. 최고의 묘수 책만 남긴 채 역 사 속으로 흘러갔다는데…. 26p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1 관객 4명 놓고 시작한 ‘미친 짓’ 세계 속 K아트가 되다 2 중국, ‘영웅’을 죽이고 ‘개혁’을 선택하다 3 남색·홍색·회색 용광로 ‘황푸군관’은 중국 리더 제조창 4 카톡 사찰보다 두려운 ‘실시간 감청’…가능 vs 불가 팽팽

2014년 ‘위아자 나눔장터’가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나눔 축제다. 안 쓰는 물건을 팔고 사며 자원의 낭비를 막고, 자원봉사와 기부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 벼 룩시장이다. 참여하는 개인이나 가족과 기업·단체는 쓰던 물품이나 기념품 등을 가지고 와 장터에서 팔 고, 그 수익금의 절반 이상을 기부한다. 또 각계 명사나 인기 스타들이 사전에 내놓은 애장품을 경매로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쓴다. 경매에 관심 있는 시민은 위아자 홈페이 지(weaja.joins.com)에서 물품 목록을 미리 확 인해두면 편리하다. 명사기증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소장하던 분청사기, 정의화 국회의장이 내놓은 사진작품, 염수정 추기경이 기부한 교황 방한기념 우표와 메달, 걸그룹 씨스타의 사인 CD와 트랙슈트, 소 녀시대 멤버 서현의 목베개와 모자,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의 트레이닝복 등이 포함돼 있다. 위아자 나눔장터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 장 광장에서 열리다가 지난해에 광화문광장으

지난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위아자 나눔장터의 모습. 많은 시민의 참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로 옮겨왔다. 올해는 주변의 9개 차로까지 행사 장으로 쓰인다. 역대 최대 규모다. 도로가 일부 차단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보다 편 하게 즐길 수 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장터는 오후 4시까지 계속된다. 함께 진행되는 서울시의 ‘희망서울 물물교환 장터’도 같은 시간에 열려 모든 물건이

[중앙포토]

소진될 때까지 이어진다. 위아자 나눔장터에는 문화예술공연도 곁들 여진다. JTBC 예능프로그램 ‘히든싱어’ 출연자 가 만든 4인조 그룹 ‘더 히든’이 축하공연을 하 고, ‘600인 시민윈드오케스트라’가 특별공연을 펼친다. JTBC의 외국인 토크쇼 ‘비정상회담’의 출연진도 게스트로 등장한다.

5 노벨상에 냉정해야 할 이유 sunday.joins.com

주한 중국대사 한국에 사드 배치 매우 우려

ch15 하이라이트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한반도 훨씬 너머까지 커버, 북핵 대응 아니라고 본다” 공개 석상서 처음 거론

국민 애창 트로트 ‘자기야’를 부른 가수 박주희가 ‘알로하 집밥’을 선보인다. 하 와이안 레시피 ‘피피 스튜’에 홍합을 가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득 넣은 독창적인 박주희 표 ‘홍합 피피 스 튜’. 하지만 예상치 못한 손님들의 혹평에 진땀을 흘리는데….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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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미국이 한국 배치를 추진 중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 다. 추 대사는 지난 14일 동아시아연구원과 국내 기업인들이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최한 ‘지구넷 21’ 포럼에서 “(사드의 한국 내 배치 움직임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반대하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추 대사는 또 “(사드는) 북한 핵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고 본다. 사드가 커버하는 범위가 굉장히 넓다. 즉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까지 커버한다”며 반대 이 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중국의 고위 관리가 국내

에서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추 대사의 발언은 포럼에 참석한 국내 인사가 “한국이 사드 문제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 려운 입장이다. 중국의 입장을 말해달라”고 질 문한 데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포럼에 참석한 한 인사는 “대사가 질문을 받자 아주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고 어조도 강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미동맹이나 미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 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중국 정부로부터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 장을 들은 바 없다”며 “사드 배치 여부는 한·미 간에 결정된 바 없기에 중국이 어떤 입장을 밝힐

상황 자체가 아니다”고 19일 말했다. 추 대사는 일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고 다른 참석자가 전했다. 추 대사는 “현재 중·일 관 계와 한·일 관계가 모두 껄끄럽고, 한·중·일 협력 이나 (중·일, 한·일) 정상회담도 못 하고 있는 건 일본에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 “일본이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 뭔가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촉구를 덧붙였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한편 추 대사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연말까지 타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 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추 대사는 “한·중 간에 협상을 많이 해, 핵심적인 쟁점은 대부분 정리가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News 3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지구촌 뒤덮는 ‘피어볼라’

에볼라 진원 3개국, 부산 ITU 불참  한숨 돌린 방역당국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

자료:외교부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구멍 뚫린 에 볼라 방역을 위한 책임자를 즉시 임명하라” 는 공화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조 바이든 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 인 론 클레인을 에볼라 사태 총괄 조정관으 로 임명했다. 미 의회는 여행 제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 다. 서아프리카 3개국 사람들의 입국을 제한 하고 미국인의 현지 여행을 금지하자는 것이 다. 현재 상·하원 의원 60여 명이 이에 찬성 하고 있다. 당초 이를 반대했던 오바마 대통 령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여행 제한 조치에 원칙적으론 반대하지 않는다”고 물 러섰다. 중국은 시에라리온에 200명의 의료인력을 보냈으며, 노르웨이도 의료진 220명을 파견 할 계획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시에라리온과 기니에 의료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병력 750명과 의료용 선박, 헬리콥터 도 지원한다. 세계은행은 당초 2억3000만 달 러 규모였던 에볼라 원조금액을 4억 달러로 늘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아프리카개 발은행(ADB)은 각각 1억3000만 달러와 2억 25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에볼라에 대응하기 위해 부산 히 움직이고 있지만 질책도 나온다. 김용 세 계은행 총재는 “각국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 지지 않아 세계가 에볼라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며 “에볼라가 서아프리카 지역의 경제 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어떤 손해를 끼칠 수 있을지 여전히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 고 있다”고 말했다. 또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은행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에볼라가 서아프리카 3개 국에서 차단되지 못하고 주변으로 확산될 경 우 경제적 피해 규모가 연말까지 74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 말까지 예상 피 해 규모는 326억 달러나 된다. 신문은 “환자 치료를 위한 직접비용 외에 근로자의 노동력 상실,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 등 간접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398명의 의료진이 진료 도중 에볼라에 감염 됐고, 이 중 229명이 숨졌다. 사태가 이 지경 에 이르자 에볼라 공포에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폐쇄되는 병원이 나오기도 했다.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사망자는 지난 5 월 말 처음 발생했다. WHO에 따르면 시에라 리온과 라이베리아는 5월 초까지만 해도 에 볼라 확진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미국의 소 리(VOA) 방송은 5월 27일 시에라리온 동남 부 국경도시 코인두에서 5명이 에볼라로 숨 졌다고 보도했다. 코인두는 지난 1월 에볼라 가 처음 시작된 기니 남서부 국경도시 구에 케도와 인접한 곳이다. 따라서 구에케도에서 시작된 에볼라가 국경을 넘어 시에라리온 코 인두에 전파된 뒤 이곳에서 가까운 도시 카 일라훈으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에 볼라는 삽시간에 시에라리온 전역으로 확산 됐다. 6월 중순 이후부터는 라이베리아에서도 본격적으로 에볼라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 했다. 라이베리아에선 이들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에볼라가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 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들 세 나라가 아프리카에서도 최 빈국이라는 점이다. 특히 시에라리온과 라이 베리아는 2000년대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인

프라가 거의 파괴돼 에볼라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 이 ‘에볼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는 국제사회의 전폭 지원 외엔 방법이 없다. 돌이켜보면 이번 에볼라 사태는 국제사회 가 평소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와 더불어 사 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다. 에볼라의 창궐 원인은 가난한 서아프리 카 국가의 주민들이 과일박쥐를 잡아먹은 것 이 원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들의 식량위기 가 국제사회 전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 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볼라와의 전쟁은 이제부터가 고비다. 8 월 이후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WHO는 14일 “향후 두 달 동안 확산을 막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없 을 경우 한 주에 1만 명씩 감염될 정도로 상 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희망의 조짐도 보인다. 국제사회가 경각심 을 갖고 대응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감염자 와 사망자 수는 여전히 큰 폭으로 늘고 있지 만 월별 증가율이 9월 11일 이후 한풀 꺾였다. 국제사회가 에볼라를 ‘아프리카의 일’로 넘 기지 않고 힘을 합쳐 싸워나간다면 증가율뿐 아니라 감염자 및 사망자 수도 조만간 꺾일 것이란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20일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전기통신연합 (ITU) 전권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던 라이베 리아·시에라리온·기니 등 서아프리카 3개국 대표단 35명이 18일 참석을 취소했다. 미래창 조과학부는 18일 “3개국의 고위급 관계자가 이번 부산 ITU 전권회의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겠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이들 국가는 ‘에볼라 진원지’로 불린다. 이에 앞서 ITU는 에볼라 확산을 우려하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하마둔 투레 사무총장 은 “모든 참가자와 주최국 시민들이 건강과 안전을 중시한다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에볼 라 창궐 3개국에 전달했다”며 “다른 대표단 들도 에볼라 전파를 막기 위해 철저한 대비 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1월 서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시작된 에볼라가 불과 열 달 만에 전 세계를 위협하 는 대역병(大疫病)으로 커졌다. 17일(현지시 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의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9216명, 사 망자는 4555명에 달한다. 말 그대로 전 세계 가 ‘피어볼라(Fearbola:Fear+Ebola·에볼 라 공포)’에 떨고 있다. 최근에는 방역체계가 잘 갖춰진 미국과 유 럽 등에서도 사망자와 감염자가 잇따르고 있 어 에볼라가 전 지구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 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은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등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 정부는 서아프리카 에 의사·간호사·검사요원 등 10여 명으로 구 성된 긴급구호 의료진을 파견키로 했다. AP통신 등은 18일 미 보건당국이 현 재 실험단계에 있는 에볼라 치료제 ‘지맵 (ZMapp)’의 대량 생산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맵은 아직 효과가 입증되진 않았지 만 급속한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한 치료제로 기대를 받고 있다. 지맵은 그동안 에볼라에 감염된 미국인 의사 2명과 스페인 신부 1명에 게 투여됐으며, 이 중 미국 의사 2명만 회복됐

미국 전역이 에볼라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 8일 사망한 에볼라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 2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캘리포니 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병원에서 의료진이 에볼라 환자를 긴급 수송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ITU, 감염 우려해 참가 자제 권고 17일까지 전 세계서 4555명 사망 미국선 휴교령  여행제한도 검토 미, 치료제 지맵 대량 생산 추진

다. 현재까지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에볼라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미 정부는 지난 8일 사망한 토머스 덩컨을 열흘간 치료했던 의료진 100여 명에 대해 이 동금지령을 내렸다. 이들에게 최대 21일인 에 볼라 잠복기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과 영화관 등 공공장소를 찾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비행기와 기차 등 장거리 운

[AP=뉴시스]

송수단 이용도 금지했다. 이번 조치는 당시 덩컨의 치료를 맡았던 의료진 중 2명에게 에볼라 양성반응이 나 타나자 즉시 취해졌다. 이미 감염된 의료진 이 에볼라 증상을 보이기 전에 국내선 항공 기를 이용한 것도 확인됐다. 에볼라 감염자 와 함께 탑승한 학생 2명이 다니는 텍사스 주의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서아프리카 3개국에 대한 주요국 지원 국가

지원 규모

인력 파견

미국

7억6300만 달러

군병력 3000명, 의료진 65명 1700개 병상 건립 예정 등

기타

영국

3억 파운드

군병력 750명

700개 병상 건립 예정, 헬기 지원 등

유럽연합(EU)

1억8000만 유로

독일

7000만 유로

군병력 100명, 의료진 70명

600개 병상 건립 예정 등

프랑스

3500만 유로

의료진 25명

60개 병상 건립

중국

3750만 달러

의료진 200명

식량, 의료장비 등 지원

일본

4500만 달러

의료진 24명 파견 예정

러시아

700만 달러

의료진 9명

식량, 이동실험실 등 지원

최초 발병지 서아프리카

과일박쥐 잡아먹는 가난 방치하면 에볼라 못 잡아 현지 의료진 감염에 병원 폐쇄도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poleeye@posri.re.kr

최초 발병국인 기니를 비롯해 인근 시에라리 온과 라이베리아 3개국에서는 8월 이후 희생 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3개국에서 에볼라 를 근절시키지 못할 경우 전 세계가 에볼라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볼라 진원지’에서 본격적으로 바이러 스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5월이다. 프랑스 일 간지 리베라시옹은 최근 시에라리온 동남부 의 카일라훈 진료소에서 에볼라와 싸우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의료진 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소개했다. 카일라훈은 시에라리온에서도 에 볼라가 가장 많이 퍼져 있는 지역이다. 이곳 에서 활동 중인 의료진들은 격리된 치료센터 에서 일하기가 무엇보다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우선 의료진들은 환자를 대하기 전에 생 물학적으로 자신을 환자와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주복 같은 옷을 입어야 하고, 장갑·마스크·안경도 써야 한다.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피부가 조금이 라도 노출되어선 안 된다. 최소 2인 이상으로

국제공조 외엔 퇴치 방법 없어 WHO “이대로면 매주 1만명 감염”

아프리카 에볼라 감염·사망자 추이 (2014년 10월 기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기니

수단·남수단 나이지리아

(1976, 1979, 2004)

(2014)

2014

우간다

가봉

(2000, 2007 2011,2012)

(1994, 1996, 2001)

콩고 (2001, 2003, 2005)

전체 감염자 전체 사망자 1000 500 200 20(명)

콩고 민주 공화국 (1976, 1977, 1995, 2007, 2008, 2012)

남아프리카 (1996) 자료:블룸버그뉴스

구성된 의료진이 한 번에 최대 40분 정도 환 자를 돌본다. 한 팀이 매일 5~10명의 새 환자 를 진료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의료진은 환자뿐 아니라 함께 진료하는 동료 들의 상태도 살펴야 한다. 감염을 우려해서 다. 의료진도 격리 치료실로 들어가기 전 제3 자로부터 간단한 검진을 받는다. 의료진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에볼라와 싸 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백신도 없고 효 과적인 치료법도 사실상 없다. 이곳에서 치 료받는 에볼라 환자들의 생존율은 30~40% 정도다. 의료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나마 의료진의 노력 덕분에 에 볼라 환자 세 사람 중 한 사람꼴로 다시 가족 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게 작은 위안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에볼라와 싸우는 모든 지역에서 정상 수용 인원의 두 배에 달 하는 환자를 받고 있다. 카일라훈에서만 80 개 정도의 병상을 운용하고 있는데, 이는 에 볼라와 싸우는 비정부기구(NGO)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다. 하지만 확산되는 에볼라를 통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의료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현재 시에라리 온에 있는 일부 병원에서는 의료진도 에볼라 에 감염돼 희생됐다. WHO에 따르면 10월 7 일 현재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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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판교 야외공연장 참사 곳곳에 나타난 안전불감증

환풍구 높이 1m 남짓  전문가 자문 없이 건설사가 설치 유재연 기자·강승한 인턴기자 queen@joongang.co.kr

환풍구 덮개가 부서지면서 27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을 중앙SUNDAY 기자가 18일 찾아갔다. 이곳에서 만난 목격자들의 증언, 경찰 수사 내용, 전문가들의 진단 등을 토대 로 사고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봤다. 위에서 내려다본 환풍구 안은 컴컴했다. 사고 이튿날 찾아간 현장에는 환풍구를 중 심으로 경찰 40여 명이 배치돼 있었다. 관 계 부처 공무원과 건축 기술사들이 쉴 새 없 이 드나들며 문제점을 살폈다. 광장은 무대 가 놓여 있던 곳을 기준으로 가로 24m, 세로 32m, 면적은 200평(768㎡)이 조금 넘는 둥 근 모양의 부지다. 중간중간에 지름 40㎝짜 리 두꺼운 가로등 다섯 개가 놓여 있다. 얕게 나마 경사도 있다. 무대 쪽 지대가 가장 낮았 다. 무대가 70㎝ 안팎 높이였다고 해도, 뒤쪽 에선 가수들의 공연을 보기 힘들었을 것 같 았다. 사고가 난 환풍구는 무대에서 직선 거리 로 27m 떨어진 곳에 있다. 광장 지대를 기준 으로 하면 2~3m가량 높은 곳에 있지만, 인근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위 인도에선 기껏해야 1.05m 높이다. 일반 성인 여성도 손바닥으로 강하게 짚고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다. 환풍 구 옆엔 화단이 있었다. 여기엔 현수막이 걸 려 있던 데다 나무와 가로등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환풍구 앞 시야는 트여 있 었다. 건축구조기술사 한 명이 다가와 환풍구 벽을 가리켰다. 사고 당시 사람들이 밟고 있 던 철제 덮개는 전문용어로 ‘스틸그레이팅’ 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것이 놓여 있던 환 풍구 안쪽 벽 가장자리가 손바닥 크기만큼 깨져 있었다. 이 기술사는 “대개 스틸그레이 팅은 7~10㎝짜리 규격에 맞는 것을 설치하 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지만, 이것을 받치 는 구조물이 문제였을 수 있다”며 “대충 덮 어놨던 것일 수도 있어서 살펴보러 왔다”고 했다. 김영민 기술사는 “환풍구는 구조시설 물 전문 엔지니어가 건설해야 하지만 건설사 측에선 별도로 자문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 았다”고 했다.

안전불감증 ▶안전요원 10여 명 무대 주변에만 배치 ▶임시공연장 관람 안전상황 미점검 ▶사고 직후 관람객 안전조치 미비

주최 측 이데일리경기과학 기술진흥원

사고

사고현장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행정기관 경기도, 성남시

야외공연장

안전의식 결여

주먹구구식 행사관리

▶시민 안전의식 결여

▶조례 미비로 공연 전 안전점검 안 해

▶환풍구 위에 30명 이상 올라가 관람

▶공연 상황사전조치 관련 행정 혼선

▶대중 공연 장소 질서의식 미비

▶사고 후 책임 떠넘기기식 조치

여성도 손쉽게 올라갈 만한 높이 철제 덮개 떠받치던 안쪽 벽도 깨져 공연 주관사, 사전 안전점검 안 해 대행 업체선 경호원 4~5명만 배치

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경호원을 쓸 경우 하루에 15만원가량이 든다. 이번 축제 에 배치된 경호원 수가 4~5명임을 감안하면 60만~75만원 정도 든 셈이다. 업계에선 인기 있는 연예인을 섭외할 경우 팀당 1000만원 선 에서 가격을 지불한다고 한다. 행사 주관사 인 이데일리·이데일리TV 측은 이번 축제 예

사고 지점

산으로 2억원을 책정했다. 행사의 주최가 공동이냐, 아니냐를 놓고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행사 관련 포스 터엔 경기도·경기과학기술진흥원 주최, 이데 일리·이데일리TV 주관이라고 써 있다. 사고 현장 한쪽에 놓여 있던 작은 광고판에는 ‘제 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와 ‘이데일리, 이

1.05m 3m

1m

지하주차장 환풍구

5m

화단 계단

환풍구

2m

1.2m 계단

지하 주차장

m 27

B1 18.7m

주관사 간부, 행사 전날 안전교육만 축제 기획자들은 “주최 측에서 공연 전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 다. 안전점검은 사전에 경찰서와 소방서, 지 자체 담당 공무원이 참여해 공연이 열리기 전에 모든 사고 가능성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다. 월드DJ페스티벌 기획자인 류재현 감독은 “대통령 행사도 사전에 안전 점검을 하듯, 현장 안전점검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관객들은 통상 높은 곳에서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공연장 일대 높 은 곳은 늘 점검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고대 책본부 관계자는 “사고가 난 곳은 공연장 외 지역”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공연장으로 규정된 광장 바깥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공연 주관사인 이데일리 측에서 경찰과 소방 협조만 얘기해 왔고 따로 현장 안전점검은 없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주 최 측인 경기과학기술진흥원 관계자도 “행사 의 실질적인 주관 기관인 이데일리TV의 국 장이 행사 하루 전인 16일 경찰에서 안전교육 만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축제 기획은 플랜박스라는 업체에서 맡았 다. 이데일리 측에서 외주를 줬다고 했다. 하 지만 공연 기획자가 꼼꼼하게 안전점검을 하 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플랜박스 양지열 대 표는 “나는 당시 현장에 없었다. 사전 안전점 검 여부도 모른다.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한 공연 기획자는 “주최 측이 돈을 아끼기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축제를 기

추락 27명 사망 16명

B2 B3

부상 11명 (중상 8명)

B4

경기도성남시 “피해 가족에 전담 공무원 배치  장례비도 지급 보증”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경기도와 성남시가 17일 발생한 판교테크노 밸리 추락사고 피해자들에게 1인당 3000만 원 한도의 장례비를 지급보증하기로 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환풍구추락사고대책 본부(사고대책본부)는 1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청에서 브리핑을 하고 “책임 유무를 떠나 지자체가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미에서 사상자의 진료·장례비 를 공동으로 지급보증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을 맡은 김남준(사 진) 성남시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가 족들의 건의로 장례식장 지불보증을 결정했 고 담요와 식수를 마련해 달라는 피해자 가

도청시청 “우리와 무관한 행사” 주최 측이 명의 무단 사용 주장 공연 열렸던 장소는 일반 광장 사전 허가 없이도 행사 가능

족들의 요청이 있어 담요는 적십자사에서, 식 수는 성남시 맑은물관리사업소에서 준비했 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현재 경찰이 사 고현장 정밀감식을 벌이고 있다”며 “경찰과 유기적으로 협조해 조속히 원인을 파악하겠 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책본부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종합안전대책을 설립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와 성남시는 피해자 가족들을 돕는 데도 가능한 인력을 모두 배치하기로 했다. 대책본부 측은 사망자와 부상자 가족들의 장례 절차 및 의료비 처리를 위해 일대일 공 무원을 전담시키고 병원별로 전담 공무원 을 배치해 치료비 등 가족들의 애로사 항을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대변인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

족들에 대해 심리상담사와 법률상담사를 배 치하고 가족들과 실시간 소통채널을 가동하 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가 난 환풍구 철제 덮개는 모두 몇 개 였나. “모두 13개의 덮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 됐다. 어제는 6~8개로 조사됐는데 확인해 보 니 1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견딜 수 있는 하중은 얼마나 되나. “하중에 관한 부분은 경찰에서 감식을 진 행할 사안이다.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것 같다.” -행사 주최는 누구인가. “이번 행사는 이데일리가 2억원을 내서 사 업을 추진하고 주관한 행사다. 여기에 경기 과학기술진흥원이 196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아직 지급은 안 됐다. 포스터에 경기 도와 성남시가 주최한 것으로 나온 것은 이 데일리가 해당 지자체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올려놓은 것이다. 이데일리로부터 주최 요청 을 받은 적이 없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의 묵 인하에 경기도와 성남시 이름을 쓴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의 관계는 무엇인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경기도가 설립한 기관이고 독립법인 격이다. 과학기술 연구개 발(R&D)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성남시와는 직접 연관이 없다. 단지 성남시에 판교테크노 밸리가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행 사와 관련해 성남시와 논의한 사실은 없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의 1960만원 지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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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안전 먼저 챙기는 해외의 공연장

전문 훈련받은 안전요원이 공연장의‘수퍼 甲’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국회에도 추락 위험 18일 국회의사당 4층 중앙 의 난간 모습. 의사당 건물 중앙은 3층 로텐더홀(중 앙홀)부터 7층의 돔 지붕까지 뻥 뚫려 있는 구조다. 그런데 난간이 너무 낮아 늘 추락사고 위험이 있다. 중앙SUNDAY 측정 결과 난간 높이는 약 90㎝로 어른의 허리 정도다. 여기엔 ‘안전사고 주의’란 종 이만 붙어 있을 뿐이다. 바닥도 미끄러운 편이다. ◀철제 덮개가 무너져 내린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 이스 광장의 환풍구에 대해 18일 긴급 점검이 있었 다. 18.7m 깊이의 환풍구 내부를 살피기 전 인부들 이 미리 발판 등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최정동김춘식 기자

데일리TV’만이 적혀 있었다. 18일 오전 성 남시 사고대책본부 김남준 대변인은 브리핑 을 통해 “이번 행사는 이데일리가 2억원을 내서 사업을 추진하고 주관한 행사다. 경기 도와 성남시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경기과학 기술진흥원의 묵인하에 명의를 쓴 것으로 보 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데일리는 “이 일 대에서 기존에 치러지던 작은 공연들을 경기 도와 진흥원, 성남시, 이데일리가 축제로 확 대하기로 합의했다”며 “명칭을 도용하지 않 았다”고 반박했다. 삼남매 남겨 놓고 참변 당한 부부도 이번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6명으로 집계됐 다. 부상자는 11명이다. 대부분이 30~40대로 인근 직장인이거나 식당가를 찾은 사람들이 었다. 사망자 가운데 정연태(47)·권복녀(46) 씨 부부는 초등학생 늦둥이를 포함해 삼남 매를 남겨 두고 참변을 당했다. 정씨는 판교 IT업체에서 건물을 관리하며 다음달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장례식장 을 찾은 친구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 한 부부였는데, 쉬는 날 함께 공연을 보러 갔 다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아내와 아들 둘을 중국에 유학 보낸 한 남 성도 변을 당했다. ‘기러기 아빠’이던 그는 일주일에 몇 번씩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할 정도로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졌다. 한 지인은 “내년 2월께 가족들과 같이 살기 위 해 몇 달 전 전셋집까지 얻어두고 이런 참변 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인근 영어학원에서 일하던 강희선(24)씨 도 사망자 명단에 올랐다. 강씨는 퇴근길에 포미닛의 공연 사진 3장을 찍어 남자친구에 게 보낸 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 와 둘이 살던 강씨는, 퇴근하면 늘 엄마와 함 께 산책을 다니며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던 딸이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지난해 외할머 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를 지극히 보살피던 착 한 딸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 기획과 안전을 담당했다가 경찰 조 사를 받고 18일 투신자살한 경기과기원 직 원 오모(37)씨는 SNS에 “최선을 다해 열심 히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 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 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진정성은 알아주셨 으면 한다.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글을 남겼다.

는 어떻게 결정됐나. “무대설치비를 지원하는 형태로 결정된 사안으로 총사업비의 10%도 안 된다.” -사고가 난 부지 성격은 뭔가. “공연장 부지는 일반광장이다. 광장에는 경관광장과 일반광장이 있는데 경관광장은 조례에 따라 사전에 허가를 받고 공연하도록 돼 있다. 일반광장은 그런 조례가 없어 따로 신고사항이 아니다. 안전을 안 챙긴 게 아니 라 일반광장은 따로 허가사항이 없어 별도로 승인하는 과정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데일리와 행사 시작부터 논의한 게 없 다는 건가.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쪽으로 행사 관련 요청은 있었다. 행사 논의는 9월 초부터 있 었던 것 같다. 그러다 10월 들어 이데일리 측

에서 경기과학기술진흥원에 공동 주최 역할 을 해 줄 것을 요청했고, 스스로 경찰이나 소 방서 쪽에 안전지원을 받기 어렵다 보니 경기 과학기술진흥원의 주최자 명의를 이용해 협 조 요청을 해 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 도나 성남시에 협조 요청이 있었던 것은 아니 고 행사 진행하면서 경기과학기술진흥원과 이데일리 측이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데일리 사업에 대해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들이 다같이 홍보해 보자는 취지여서 경 기과학기술진흥원도 지원했던 것 같다.” -6일께 분당구청에서 안전 문제로 행사를 하면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는데. “확인해 봐야겠다. 처음 듣는 말이다. 분 당구청에서 따로 승인이나 허가를 내준 것은 없다.”

2011년 12월 6일 영국 런던의 한 콘서트장에 서 K팝 공연이 펼쳐졌다. 17일 환풍구 붕괴 로 참사가 일어난 성남시 광장 무대에서처럼 걸그룹 ‘포미닛’도 등장했다. 공연 전 수시간 전부터 콘서트장 입구로 K팝 팬들이 몰려 혼 잡이 빚어졌다. 동시에 유니폼을 입은 안전요 원들이 5∼10m 간격으로 배치됐다. 이들은 인도와 도로 사이에 긴 줄을 쳐 행렬이 일사 불란하게 서 있도록 했다. 춤을 추기 위해 줄 밖으로 삐져 나온 이들은 어김없이 제지당했 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입장시키지 않겠 다”는 말에 이탈자들은 곧바로 자리로 돌아 갔다. 뒤에서 앞사람을 밀거나 지나치게 소란 을 피우는 이들도 같은 경고를 받았다. 공연장 안에서는 안전요원들이 방송 카메 라를 받치는 삼각대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 다. 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취재 패스’를 압 수한 뒤 공연장 밖으로 내쫓겠다고 으름장 을 놓았다. 발이 걸려 관객들이 넘어지는 안 전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카메

영국의 한 콘서트장에서 과도하게 흥분해 정신을 잃을 위험이 있어 보이는 관객을 안전요원이 공연 장 밖으로 옮기고 있다.

[데일리 메일]

라 기자들이 주최 측인 한국의 기획사에 항 의했지만 “안전관리 일을 맡은 전문업체와 의 계약 때 안전과 관련된 부분에는 일절 개 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국·프랑스·캐나다 등의 공연장에서는 늘 안전요원들이 ‘수퍼 갑(甲)’이었다. 날카 로운 시선으로 항상 사방을 경계하는 덩치 큰 안전요원들은 관객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단호하게 구분 지었다. 때로는 강 하게 완력을 사용했다.

선진국에서는 전문 안전요원 배치계획을 사전에 준비하지 않으면 공연 허가를 받지 못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업체 S사의 직원 은 “처음 외국에서 K팝 공연을 할 때 안전관 리 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많다는 사 실에 놀랐다.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었다”고 말했다. 전문적으로 교육·훈련받은 안전요원들은 사전에 행사장을 둘러보고 위험 발생 가능 성이 있는 곳에는 펜스나 가이드라인을 설 치한다. 행사 당일에는 인력을 배치해 사람 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유명 스 타 쪽으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다칠 위 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 스타의 동선을 바 꿀 것을 주최 측에 요구한다. 공연 진행 중에 사람들을 밀며 무대 쪽으로 접근하거나 무 대 앞에서 지나치게 흥분해 ‘정신줄’ 놓는 기미를 드러내는 관객들은 번쩍 들어서 복 도로 옮겨 놓는다. 안전요원들의 행동이 거 칠어도 항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위험은 경험 많은 전문가가 막는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6 Focus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박근혜 정부의 아이러니 졸속입법 증명된 단통법 할인규제

정부는 간섭, 국회는 묻지마 입법  휴대폰 시장‘OFF’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가구당 (통신비가) 15만5000원인데 단말기 에서 약 30만~40만원, 요금선택제에서 (연 간) 24만원 정도, (연간) 50만~60만원가량 절약될 것으로 봅니다.” 지난 2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 선에 관한 법률안’(단통법)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통신요금 인하 효과가 얼마 나 있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 의 질문을 받고서다. 그로부터 8개월. 시장은 윤 차관의 예상대 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전화 보조금을 틀어 쥐면서 가격은 올라갔고, 단말기 판매는 급 감했다. 미래부 측은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름이 넘도록 시장 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조차 당혹하고 있다. 법을 공동발의한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13 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솔직히 이럴 줄 몰랐다. 미래부와 국회 모두 예측을 못한 것 같다. 반성한다”고 말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왼쪽 첫째)과 최양희 미래부 장관(둘째) 이 지난 17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통사휴대전화 제조사 사장단에게 단통법 관련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국민들 소비 수준은 고려 안 하고 값싼 요금, 값싼 기계에 초점 맞춰 대선 공약 앞세워 토론 없이 입법 발의한 의원도 “혼란 예측 못했다”

입자 유치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었 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새벽 시간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버스폰’(보조금이 많이 붙어 싸게 살 수 있는 휴대전화)이 풀리기도 했다. 같은 휴대전화라도 정보에 밝은 사람은 공짜 폰을 사고, 정보에 어두운 사람은 100만원을 주고 사는 상황이 반복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선공약 이행작업 이 시작됐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 등 10명 이 지난해 5월 단통법을 발의했지만 정쟁 속 에 1년여 동안 방치됐다. 급물살을 탄 건 올해 초 이른바 ‘2·11 대란’ 이후다. 영업정지를 앞둔 이통사들이 기습적 으로 불법 보조금을 살포하면서 공짜폰은 물 론 구입자가 돈을 받는 ‘마이너스폰’까지 등 장했다. 특정 대리점 앞에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통신비 부담, 버스폰 막겠다며 추진 단통법 시행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면서 국 회를 향한 국민들의 질타가 뜨겁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110%로 개통된 휴대전화 수가 인구보다 많을 정도 다. 국회가 시장 혼란을 예상치 못한 채 졸속 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단통법은 왜 만들어졌을까. 가구당 소비지 출 가운데 통신비 비중은 1990년대 중반 휴 대전화와 인터넷 보급으로 수직 성장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완만한 상승세를 유 단통법 제정에서 논란까지 지하던 통신비 비중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 2012. 10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통신비 가계 부담 낮추겠다” 께 다시 급증한다. 2009년 4분기 5%대였던 통신비 증가율은 14분기 연속 증가세를 보이 2013. 5. 27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 외 10명 며 지난해부터는 10%대로 치솟았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단통법) 발의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모 국회 논의 중이던 기타 가계통신비 경감법안과 통합 ‘대안 반영’ 두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 2014. 4. 30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법안심사 후 의결 었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 2014. 5. 2 국회 본회의 통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 분리공시, 보조금상한선 정부 시행령에 맡기기로 “통신요금 인하를 위해 미래부·방통위 vs 기재부·삼성전자 ‘분리공시’ 놓고 대립 이동통신 가입비를 폐지 2014. 9. 24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분리공시’ 제외 결정 하고 스마트폰 유통체계 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2014. 9. 25 방송통신위원회 최대보조금 30만원 단통법 시행령 의결 냈다. 이른바 ‘반값 통신비’ 2014. 10. 1 단통법 시행 이통사 보조금 축소 / 시장 냉각 공약이다. 2014. 10. 14 -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 외 10명: ‘분리공시제’ 포함 단통법 개정안 제출 2010년 이후 휴대전화 한 대 ~10. 17 -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외 10명: ‘보조금 상한제 폐지’ 단통법 개정안 제출 박근혜 당 보조금은 27만원으로 묶 2014. 10. 17 최양희 미래부 장관 “단통법 기업 이익에 이용하면 특단의 대책” 여 있었지만 이통사들은 가

뒤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스마트폰을 싸게 사 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m 줄까지 서는 일이 계 속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심사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중앙 SUNDAY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의사록을 확인한 결과 질의나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혼탁한 이통시장을 바로잡 고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인다는 설명에 여야 의원들은 지난 5월 본회의에서 다른 6개 법 안과 일괄상정된 단통법을 재석 215인 중 찬 성 213인(기권 2인)으로 통과시켰다. ‘무사통 과’였다.

[뉴시스]

가구당 소비지출 가운데 통신비 비중

7.0% 5.9% 자료: 통계청

2008년

2013년

“소비자 과소비”  정부의 구시대적 발상 이동통신업계에서는 단통법이 사실상 정부 가 추진한 ‘청부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 으로 추진했단 것이다. 애초 설계된 정책목표도 알려진 것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통 신비 부담 완화는 지금과 비슷한 이동통신 서비스를 더 싼값에 제공받고, 저렴한 가격 에 같은 성능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하 는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미래부의 시 각은 달랐다. 미래부 관계자는 “고가 단말기와 고가 요 금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자가 불합 리한 유통구조 때문에 통신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게 법 제정의 이유”라며 “소비패턴에 맞는 요금제와 단말기를 구입하도록 유도해 이동통신시장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 루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100만원짜리 최신 휴대전화의 가 격을 낮추거나 같은 이동통신 서비스의 요금 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중저가 휴대전화 보

급을 늘리고 저렴한 요금제 사용을 확대시키 는 것이 목표였단 의미다. 혼란이 커지자 정치권은 부랴부랴 법 개정 논의에 나섰다. 이미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 등 10명이 입법과정에서 빠진 ‘분리공시’를 포함한 단통법 개정안을 내놨다.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 등도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시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법 을 만들어놓고 비난이 쏟아지자 땜질식 처방 을 내놓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단 통법이 본래 취지와 달리 서민에게 더 큰 부담 을 주는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 민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심 대 표는 중앙SUNDAY와의 전화통화에서 “법 시행 보름 만에 이런 혼란이 빚어진 것은 충 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입법을 추진한 국회의 잘못”이라며 “입법 후 부작용에 대해 면밀히 살필 수 있도록 정책역량을 키우고 졸속입법 을 감시하는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소비 인지 사치인지 일일이 판단하고 참견하겠다 는 사고는 국회의원과 관료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며 “조속히 단통법을 폐기하고 가격경 쟁 규제를 풀어 시장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안 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단통법 12 조 1항은 ‘이통사가 제출하는 자료는 제조사 가 지급한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게 작성돼 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단통법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국회 는 앞다퉈 분리공시 재도입을 주장하고 있 다.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과 새누리당 배 덕광 의원이 제출한 단통법 개정안에는 모두 분리공시제 재도입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두 고 “졸속입법의 주역이었던 국회가 분리공시 제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 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분리공 시제는 단통법 부실의 본질이 아닌데 정치권

이 이를 희생양으로 삼아 졸속입법을 합리화 하려 한다”며 “세일 상품을 구매할 때 소비 자는 얼마나 싸게 사느냐가 핵심이지, 할인 금액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병태 KAIST 경제학부 교수도 “분 리공시제로 보조금 규모를 공개하는 것은 결 국 이통사와 제조사 모두 가격을 깎아주지 않을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 적했다. 여전히 분리공시제가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가 격거품 논란을 잠재울 수 있고, 장려금을 많 이 주는 업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 리공시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분리공시규제 논란 재점화

“국회, 졸속 입법 합리화하려 희생양 찾는 것” 이동현 기자

단통법 혼란이 계속되면서 ‘분리공시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분리공시제란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휴대 전화 보조금 가운데 제조사가 이통사에 주 는 장려금과 이통사 지원금을 구분해 공시하 는 제도다. 예를 들어 출고가 100만원짜리 스마트폰 에 보조금 30만원이 붙어 소비자의 실구매가 격이 70만원이라고 하자. 분리공시제를 도입 하면 보조금 30만원 가운데 이통사의 지원 금은 얼마인지, 제조사 장려금은 얼마인지 구분해서 소비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분리공시제, 입법과정서도 논란 9월 규개위 심사에서도 제외 “할인금액 출처는 중요치 않아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논의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분리공시제가 포함돼야 한 다고 주장하는 측에선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뿐 아니라, 거품 낀 휴대전화 출고가 격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 지만 국내 최대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해외시장보다 높은 수준인 국내 장려금이 공개될 경우, 전체 시장의 97%에 달하는 해 외 이통사들이 같은 수준의 장려금을 요구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당초 단통법 시행령에 포함돼 있던 분리공 시제는 지난 9월 규제개혁위원회가 제외키 로 결정하면서 무산됐다. ‘모법(母法)에서 금 지한 분리공시제를 하위법인 시행령에 둬선


Focus 7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박근혜 정부의 아이러니 해외 이동통신 시장은

휴대전화 싸게 못 팔게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일본 제1의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는 지 난 6월 새 정액요금제를 내놓았다. 우리 돈으 로 한 달 2만~3만원만 내면 무제한 음성통화 를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일본 이동통신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 고 있는 NTT도코모가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은 배경에는 위기감이 있다. 경쟁이 불 러온 위기감이다. 2008년 7월부터 3위인 소 프트뱅크가 애플의 아이폰을 일본 시장에 가장 먼저 출시하고, 잇따라 저렴한 요금제 를 내놓는 등 시장 경쟁을 주도해 왔다. 2000 년 말 18%였던 소프트뱅크의 시장 점유율 은 25.1%(지난해 8월 기준)로 높아졌다. 소 프트뱅크는 2013회계연도에 전년 동기보다 41.5%나 늘어난 5270억 엔(약 5조2720억원) 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NTT도코모의 순이익(4647억 엔)을 훨씬 웃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 이동통 신 시장을 흔드는 건 3위 사업자인 스프린트 다. 스프린트를 중심으로 무제한 데이터 요 금제, 데이터 공유 요금제 같은 다양한 요금 제가 출시됐다. 스프린트는 최근 월 6만원에 통화·문자·데이터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 통신시장 4위인 T모바일도 무제한 데이터 프

3G폰 등장 후 외국선 보조금 자율 日, 요금 사후인가제로 경쟁 촉진 NTT, 3만원 정도면 무제한 통화 미국선 6만원에 데이터 무제한

로모션을 시작했다. 12위인 버라이즌 와이 어리스와 AT&T 역시 요금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와 달리 글로벌 이동통신 시장에 선 탈(脫)규제 바람이 한창이다. 단말기 보조 금, 즉 휴대전화 할인 자체를 법으로 규제하 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과거 핀란드에 서 일시적으로 2G 기반 휴대전화에 대한 보 조금을 금지한 적은 있지만, 3G폰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이런 규제를 모두 풀었다. 정광 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1990 년대 후반 통신요금 규제를 사후인가제로 전 환한 뒤부터 경쟁이 활성화됐고, 덕분에 소 비자 효용이 증가했다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탈규제로 시장에서 경쟁이 강화됐고, 이게 업체들의 서비스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 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요금인가제와 단 통법 같은 규제에 묶인 국내 이통 시장에선 그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익명을 원한 이통사 관계자는 “멤버십 혜택 을 비롯한 서비스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추 가 가입자당 한계생산 비용이 0에 가까운 이 통업체들이 소비자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는 요금 인하와 단말기 구입 지원”이 라며 “현재로선 두 가지 모두 규제받고 있으 니 피나는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요금인가제 폐지 놓고 갑론을박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통 신비 인하를 위해선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91년 도입된 요금인 가제는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요금제를 출시할 경우 정부 의 사전인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당시엔 무 차별적인 요금 인하로 선두 사업자가 후발 사 업자를 공격하는 일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미 규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 어 현재의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면 이 있다. 따라서 차라리 이를 없애 경쟁을 활

성화하는 게 낫다는 게 폐지론의 요지다. 또 이미 인가받은 약관에 포함된 서비스별 요금 은 신고만으로 요금을 인하할 수 있어 굳이 인가제를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있 다. 문지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통신요 금 인가제가 폐지 내지 완화되면 다양한 이 동통신 요금제가 활발하게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요금 인가제 폐지 움직임이 있다. 전병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8월 요금 인가제 폐지 등을 포함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래부는 다음달 중장기 통신정책과 요금 인가제 관련 정책을 발표한다. 요금인가제를 유지하면서 단통법에 시장 경쟁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다. “번호이동과 단순 기변 고객 간 보조금의 차이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LG 유플러스를 비롯한 이동통신 후발 사업자들 이 특히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편이다. 단통 법 구조에선 소비자가 구태여 번호이동, 즉 이통사 교체를 할 욕구가 떨어질 수 밖에 없 다. 번호이동을 하면 지금까지 받아온 각종 할인혜택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가입비와 USIM 구입비 등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 문이다. 이런 비용들에 대해 보조금의 형태 로 어느 정도 보전을 해줘야 그나마 휴대전 화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프 랑스의 브이그텔레콤(2년 최대 50유로)과 스 페인의 오렌지(매월 1유로씩 24개월간), 일본 NTT도코모(최대 1만9248엔) 등은 번호이 동 가입자에게 추가 할인 혜택을 준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단통법에 부정적 인터넷에서는 단통법 폐지 서명운동까지 벌 어진다. 소비자 단체인 컨슈머워치는 단통법 을 폐지해 달라는 의견서를 국회 미래창조과 학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규제 전문가들은 단통법의 가장 큰 문제점 으로 정부가 규제를 수단으로 시장에 인위적 으로 개입한다는 점을 꼽는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효용성을 저해하 는 ‘정부 실패’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 같은 역풍에 밀려 방향이야 어찌됐던 현행 단통법 이 원안대로 유지될 것이라 보는 이는 드물 다.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 가 당장 물러서긴 어렵겠지만 조금씩이나마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규제들을 완화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일찍부터 이동전화 보조 금 상한선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여 왔다. 입법 조사처는 지난 8월 ‘2014 국정감사 정책자료’ 에서 “보조금 상한선은 보조금이 차별적으로 지급돼 일부 사용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를 막 는다는 목적과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 다. 입법조사처는 또 “6개월마다 보조금 상한 선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하는 것도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의 불확실성과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통사들은 단통법의 긍정적인 효과 를 부각하려는 모습이다. 이통사들의 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16일 “단통 법 시행 이후 2주간 저가 요금제 가입자 비율은 48.2%로 증가했고 고가 요금제 가입자 비율은 9%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저가 요금 제와 고가 요금제 가입비율은 각각 31%, 27.1% 였다. 중고폰 가입자 수도 증가했다. 이에 대해 통신 소비자 모임인 전국통신소 비자협동조합은 “그만큼 국내 스마트폰 가 격이 비싸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데, 이 를 두고 단통법 효과 운운하는 것은 소비자 우롱”이라고 비난했다. 조합 측은 또 “단통 법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 줄여놓아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절약하게 된 걸 두고 단통법 효과라고 한다면, 밥 굶겨놓고 다이어트 시 켜줬다는 것과 같은 궤변”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컨슈머워치의 단통법 폐지를 위한 소비자 1만인 서명운동 부스에서 시민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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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남북관계 뜨거운 감자 대북전단 살포

北 바꿀 바이러스 vs 대화 걸림돌  삐라평가 극과 극 -전단을 북한에 보내 봤자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이 전단 살포에 극단적 으로 반발하겠나. 지난해 들어온 탈북자가 20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수십 명이 ‘전단 덕 분에 북의 모순을 깨닫고 내려왔다’며 내게 인사하더라. ‘북한에선 박상학을 잘 안다’고 도 전했다. 김일성이 다녔다는 창덕중학교에 선 내 사진을 걸어 놓고 타도집회를 열었다고 도 한다. 전단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증거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북한이 망해 가는 이유,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 김정은 왕조의 정체 등이 쓰인 A4용지 크기의 방수 처리 필름 용지. 1달러 지폐와 함께 6만 장씩 수소풍선에 담겨 북녘으로 날 아가는 이 대북전단이 2차 고위급 회담을 앞 둔 남북 관계에 뜨거운 변수로 등장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파주와 연천에서 탈북자 단체들이 전단 150여만 장이 든 풍선을 날리 자 북한은 오후 3시55분 연천 일대에서 풍선 을 향해 14.5㎜ 고사총을 발사했다. 우리 군 이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대응사격에 나 섰다. 그 이후 북한은 “전단 살포를 막지 않으 면 2차 고위급 회담은 없다”고 압박하고 있 고, 야당도 “현지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 단 살포를 법으로 막으라”고 동조하고 있다. 연천·파주 주민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 하는 전단 살포를 몸으로 막겠다”며 실력 행 사에 들어갔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북 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면 우리에게도 손해” 라며 살포에 반대했다. 정부는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도 탈북자들의 자제를 요청 하고 있다. 이념적 위치에 따라 전단 살포에 대한 입 장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보수층에선 “전 단은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바이러스”라고 보는 반면 반대편에선 “북한 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전단 살포는 중단해 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탈북자들에 대해 “남북 관계의 진전을 구조적으로 가로 막는 상수(常數)가 될 것”이라며 법을 만들 어서라도 이들의 반북 캠페인을 규제해야 한 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대북전단에 대한 일관 성 있는 입장이 있느냐다. 우리 사회에선 10 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전단 살포에 대해 별다 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북한이 발포하면 서까지 반발하자 갑자기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고 향후 대화에서 주도권을 빼앗 길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끓어오르는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전단을 살포한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46사 진) 대표는 “공개 또는 비공개로 살포를 계속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한 복판에 선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10일 파주에서 살포한 대북전단.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1달러짜리 지폐가 들어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

10번 뿌리면 1번만 공개적 살포 노무현 때가 더 쉬워  MB, 간접방해 北, 장교들이 달러 노려 부인과 수거 최근 만난 탈북자 전단 보고 왔다

북, 5~6월에 삐라 3만장 대남 살포 -전단 공개 살포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지금까지 주로 해 온 비공개 살포는 계속 진행하되 필요할 때는 공개 살포도 병행할 방침이다. 북한이 우리에게 도발하거나 공갈 협박할 경우엔 당당히 공개적으로 전단을 살 포할 거다.”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정부가 잘못이다. 4년 전 천안함이 폭침 되고 연평도가 포격당했을 때 반격하는 대신 물러났다. 그러면 계속 물러나게 돼 있다. 지 난 4일 북한 실세 3인방이 방남해 미소를 보 낸 뒤 사흘 만에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 고 총격까지 한 건 정부가 북한의 버릇을 잘 못 들인 탓이다. 인질 잡고 행패를 부리는 악 한에게 ‘인질을 풀어 주라’고 요구하는 사람 이 잘못인가. 조그만 희생이 두려워 옳은 일 을 그만두란 말인가.” -전단 살포가 남북 대화를 가로막지 않겠나. “북한은 지난 5~6월 두 달 동안에만 3만 장 넘는 전단을 대형 열기구로 내려보냈다. 그걸 우리 군이 수거해 국감에서 공개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불륜녀’니 하며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을 한 내용도 있다. 그렇 다면 북한이야말로 대화를 가로막는 세력 아 닌가. 전단을 북한에서 보내는 건 괜찮고, 우 리는 안 된다는 말인가.” -정부도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대화를 추진 중이니 그런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지 지 않을까. “파주에서 전단을 살포할 때 통일부 담 당 과장이 달려와 ‘남북 대화 분위기이니 살 포하면 안 된다’고 말해 나와 입싸움이 벌어 졌다. 하지만 행동으로 막지는 않았다. 경찰 300여 명이 출동했지만 지켜만 보더라. 따라 서 박 대통령의 대북기조는 변치 않았다고 본다. 5·24 조치 해제를 언급했다지만 ‘무조 건 풀겠다’가 아니라 북한이 적절한 조치를 한다면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뉴스1]

얘기 아닌가.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한다’는 언급도 맞는 말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대화로 상황을 진전시키자는 데 적극 찬성한다.” -전단을 굳이 공개적으로 살포해 남남 갈 등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 “10번 중 9번은 비공개로 살포한다. 우리 나라는 풍향이 워낙 빨리 바뀌어 미리 살포 일을 정하기가 극히 어렵다. 지난 10일은 1년 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풍향이 좋은 날 이었기에 공개 살포한 거다. 여기엔 뜻있는 분들의 후원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다. 정 부나 기업이 우리에게 한 푼도 안 주니 국민 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매년 7만6000명의 후원자가 1억원가량을 모아 주고, 미국 인권 기구도 5000만원가량을 지원한다. 전단은 보 통 50만 장을 살포하는데, 그때마다 500만원 이 든다. 연간 예산이 1억5000만원 선이니 매 년 30차례 전단을 살포한다. 그중 공개 살포 는 3차례 정도다. 열 번에 한 번꼴이라도 공 개하지 않으면 후원이 끊긴다. 이걸 두고 어 떻게 남남 갈등을 부추긴다고 할 수 있나.” -과거 정부는 전단 살포에 어떻게 반응했나. “노무현 정부 때는 오히려 쉬웠다. 보수세 력이 두려웠는지 살포를 막지 않았다. 그때가 더 자유스러웠던 셈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 는 겁이 많아 간접적으로 살포를 방해했다. 전단에 1달러씩 넣어 보내던 걸 북한 주민들 의 편의를 위해 북한돈 5000원씩으로 바꿔 보낸 적이 있는데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라며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이 무죄 를 선고해 그들만 망신당했다.”

“휴전선 부근에 80% 떨어져 효과 커” -탈북자의 80%가 함경북도 출신이니 비행 거리 200㎞ 미만인 전단의 효과는 미미한 것 아닌가. “전단의 80%가 휴전선 일대에 떨어진다. 10~20대 북한군 60만 명이 깔린 곳이다. 이 들이 총부리를 남쪽 아닌 김정은에게 돌리게 하는 게 전단의 목표다. 효과는 크다. 지난해 만 해도 북한군 2명이 탈북한 뒤 나를 찾아와 ‘전단을 보고 김정은이 나쁜 사람인 걸 알았 다’며 고마워하더라. 이렇게 전단을 보고 동 요하는 병사들이 느니까 요즘은 장교들이 전 단을 수거한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부인을 대동하고 작업을 한다. 전단에 든 달러를 탐 내 부부 합동으로 걷는다는 거다. 이 사실이 병사들에게 퍼지면서 상관에 대한 혐오가 늘 고 있다고 한다. 또 지금은 북한에도 휴대전 화가 400만 대나 된다. 전단이 날아온다는 소 식은 입소문으로 다 알게 된다.” -전단이 탈북 유도 대신 북한체제 개선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단에 ‘탈북하라’는 말은 한 번도 안 썼 다. ‘선군정치 대신 선민정치를 하고, 핵·미사 일 협박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전단 살포는 남한 국민의 이목을 끌려는 대내용 쇼라고 비하하는 이도 있다. “김정은 편에 서서 하는 궤변일 뿐이다. 나 는 열 살배기 아들을 둔 가장인데 살해 협박 을 받으면서도 70대 모친과 동생 등 온 가족 과 함께 10년째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쇼라 면 이럴 수 있을까. 북한의 세습독재는 3대가 마지막이다. 김정일 시대까지는 주민들에게 충성심이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엔 증오로 바 뀌었다. 전단을 보고 진실을 깨달은 주민들 의 손으로 김정은은 물러나게 될 거다.” -탈북자들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배가 고파 내려온 사람이니 반북(反北) 캠페인과 는 다른 차원이란 주장도 있는데. “평양 정치를 모르는 변방 민초들이 배고 픔을 못 참아 내려온 건 맞다. 그런데 그게 결 과적으로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다. 주민을 굶겨 죽이는 김씨 왕조의 폭정이 생생히 폭 로되면서 국제사회가 칼을 빼 들게 됐기 때 문이다. 좌파들이 그런 궤변을 하는 건 김정 은 체제가 무너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탈북자 2만4000명 시대, 달라져야 할 지원대책

탈북자 실업률 일반 국민의 3.5배  여성에겐 맞춤형 지원책 절실 강찬호 기자

2만4000명이 넘은 탈북자의 성공적인 국내 정착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방식이 재활형으 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탈북자 의 80%가 함경북도 출신이고, 70%가 여성이 며, 고졸 이하 학력자가 70%에 달한다. 북한 에서도 마이너리그였던 이들이 자본주의 사 회인 남한에서 적응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 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물고 기 잡는 법 대신 물고기만 주고 손 터는’ 식이 라 탈북자들의 자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통일 역군 강조하다 특권의식 조장” 정부서도 그간의 문제점 인정 일반 복지로 바꿔 자립하게 해야

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조차 나온다. 중앙SUNDAY가 입수한 통일부의 ‘제3 국 체류 탈북자 실태 확인 및 대책연구’ 보고 서는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통일 역군’식의 과장된 정치적 수사를 부여한 결과 ‘자신들 이 특별한 존재’란 비현실적 기대를 하게 됐

다”고 지적했다. 또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도 과도한 수혜의식을 갖게 만들어 자립을 해치 는 결과를 빚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남 한 취약계층과 같은 수준의 일반적 복지 지 원으로 전환해 탈북자의 자립의지를 촉진하 고 형평성 시비를 없애야 한다”고 제언했다. 탈북자들의 부족한 자활 수준은 북한이탈 주민지원재단의 최근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 다. 실업률이 9.7%로 국민 전체(2.7%)의 3.5 배가 넘는다. 취업자들도 단순노무 등 비숙 련직이 61.4%, 일용·임시직이 37.1%로 국민 전체(46.7%와 25.7%)에 비해 크게 많은 것으

로 나타났다. 평균 재직기간도 19개월로 국민 전체(67개월)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200만원 이상 소득자는 9.2%에 불과한 것으 로 집계됐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정옥임 이사장은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이 70%에 달 하는 탈북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학업 과 육아, 건강 부담을 안은 가운데 기초생활수 급에 의존하다 보니 취업 거부율이 92.2%에 달해 맞춤형 재활 지원을 할 필요가 크다는 것 이다. 정 이사장은 “재단에서 연간 2억~3억원 씩 책정해 온 탈북단체 지원금이 특정인에게

3년간 1억9000만원(연간 6300만원 선)씩 과잉 지급되는 등 재단이 불투명하게 운영돼 탈북 자들의 재활을 막아 왔다는 야당의 지적에 따 라 개혁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교수·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독창성 등의 기준을 통과한 탈북단체 11곳에 지원금을 1200만~1900만원씩 배정하며 투명 성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조치 로 과거 부당하게 누려 온 이권을 상실한 인사 가 지나친 욕설을 하며 업무를 방해해 모욕 혐 의로 고소했다”며 “재단 개혁을 위해 통일부 와 조율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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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카톡 사찰에 커지는 데이터 주권론

애플처럼 개인에게 자료 저장 여부 선택권 줘야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기지 않도록 하겠느냐’는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서버 에 데이터를 남길지 여부를 소비자에게 선택하도록 하 는 것이다. 애플은 지난 2월 보안 체계를 낱낱이 공개한 ‘화이트 페이퍼’도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아이메시지 (iMessage)는 단말기끼리 암호화된 형태로 문자를 주 고받는데, 이 과정에서 서버는 해당 문자의 암호를 풀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내고 받는 사람 들만 서로 볼 수 있도록 각 단말기에 개인 암호(Private keys)가 설정되는 체계라는 것이다. 사용자들의 신뢰도 더욱 높아졌다.

‘카카오톡 논란’ 왜 갈수록 커지나

특정 메시지만 골라 지울 수는 없어 카카오톡이나 라인(Line)처럼 비공 개 공간에서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고 받는 매체는 ‘폐쇄형 SNS’로 분류된 다. 이 경우 서버에 저장된 나의 메시 지를 삭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네이버나 구글, 페이 스북처럼 개방형 웹 공간과는 사정이 다르다. 주요 포털에 선 개인이 올린 게시물은 업체에 연락해 삭제할 수 있다. 내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온전히 삭제하려면 다음 카카오 서버를 직접 해킹해 침투하지 않는 이상 ‘탈퇴’하 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만일 특정 메 시지만 골라서 지울 수 있다면 그건 곧 업체가 서버 내 메 시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개인 대화가 오 가는 폐쇄형 SNS 특성상 이것이 가능하다는 게 알려지 면 업체로선 치명적이다. 카카오톡이 “서버 저장 기간을 2~3일로 줄이겠다”고 밝힌 만큼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해당 서비 스의 용량이 가득 차 새로운 메시지가 덮어 씌워지는 것 (Over-write)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모두 소비자 입장에선 적극적인 행동이 아닌 수동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결국 이용자 입장에서는 탈퇴가 답인 셈이다. 모든 서 비스는 탈퇴 시 정보가 모두 삭제되는 걸 원칙으로 삼는 다. 다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업체가 그 약속을 지킨다 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탈퇴를 했어도 업체가 정 보를 다 지웠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불신이 커졌다는 뜻이다. 서버에 저장되는 것이 싫어서 탈퇴를 할 경우 자신만 편리한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다는 딜레마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장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저장 용량이 늘어날 때마 다 기술진들은 늘 박수를 쳐 왔고 그에 비례해 이용자의

카카오톡 이석우 대표이사의 미숙한 대응

수사기관의 감청에 대한 국민의 불신

카카오톡 이용자들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

정부 규제와 국민 불신에 치인 개발자들의 좌절

SNS 대화, 탈퇴 땐 삭제된다지만 업체서 약속 안 지키면 무용지물 서버 저장 땐 기간 확실히 알려야 안보용 사찰 필요하지만 합의 필요

편의도 더욱 커져 왔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사이버 명예 훼손에 대해 정부가 선제적 대응을 하고 나선 상황인 만 큼 IT 업체들이 다 같이 서버 저장 기간을 명시하자는 등 의 협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약관에 명시하지 않고도 메시지를 서버에 보관해왔지만, 이 같은 관례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업체마다 서버가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 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선택권 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애 플(Apple)은 소비자에게 ‘e메일 이 전송된 뒤엔 서버에 카피본을 남

일러스트 강일구

카카오톡이 논란에 휩싸인 지 한 달이 됐다. 그 사이 텔레 그램은 한국 앱스토어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카 카오톡에 실망해 대안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몰리고, 그 에 따라 서비스는 더 나아지고, 수요가 수요를 낳는다는 밴드 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도 나타나고 있다. 일정 기간 양대 체제(카카오톡-텔레그램)가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더 나은 서비스 하나가 독점하게 될 거라는 전 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이용자들의 데이터 주권 찾기 등 그동안 미뤄온 여러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 다. 이미 해외에서는 온라인 검열과 실시간 감찰에 대비 한 프라이버시 논의가 한창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테 러를 방지하고자 구글과 페이스북 등 서버에 몰래 침투 해 검열 프로젝트(Prism Project)를 시행한 사실이 드러 나자 유럽에서 크게 반발한 것이다. 카카오톡 논란을 둘 러싸고 전문가들은 먼저 서버에 대한 사용자들의 데이터 주권 의식을 거론했다.

다자 통신시대에 맞는 법체계 갖춰야 지난해 초 영국 옥스퍼드대 윌리엄 듀턴(William Dutton) 교수가 쓴 ‘사물인터넷 시대 학제(學際) 간 연 구보고서’에는 ‘이용자 스스로가 지닌 자신의 정보에 대 한 권리’가 명시됐다. 우리의 일상이 낱낱이 정보로 읽히 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시대가 오고 있 는 만큼 소비자도 주고 싶은 정보만 줄 수 있도록 해야 한 다는 것이다. 이 기반에는 프라이버시를 곧 인 권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제어할지 여부도 프라이버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건 곧 자신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한상기 소셜 컴퓨팅연구소 소장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학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이용자의 데이터 주권에 대한 논의가 있어 야 한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규범(Norm)은 해당 그룹 안에서 합의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정부에 선 은근한 방법으로 악순환에 대처하는 전략을 구상해 야 한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카카오톡상 사이버 명예훼 손이 심각하다면,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 ‘우 리끼리 하는 카톡 내에서도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 기를 형성하는 것이 낫다.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는 명예 훼손에 대해 거액의 벌금을 물리지만 우리나라는 100만 원 안팎으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법·제도는 물론 사회적 인식도 기술의 발전을 쫓아가 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광형 KAIST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기술’의 범위는 아직도 ‘일대일 통신’에 갇혀 있다. 감청이든 압수수색이든 일대일 통신 에 한해선 법 체계가 꽤 잘 잡혀있지만 지금은 다자 통신 의 시대가 아닌가. 다자간에 이뤄진 대화를 두고 압수수 색 방법, 영장의 범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는 상 태”라고 했다. 분단국가 현실에서 안보를 제쳐두고 데이터 주권만 주 장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간첩 수사와 테러 방지 등을 위해선 일정 부분 감청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개발자 는 “미국 정부가 테러 대비를 이유로 검열하는 것에 대해 선 미국 여론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정 부도 합당한 안보 수사에만 활용한다는 믿음을 심어주면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페북 감찰 논란 땐 개발자 저커버그 직접 나서 진화 유재연 기자·강승한 인턴기자

김범수(48사진)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끝내 모습 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16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이석우(48) 카카오 톡 대표이사만이 참석해 전날과 같은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실시간 감청 장비도 없고 설치할 계획 도 없다”며 “안일한 인식과 미숙한 대처로 사회 에 불안감을 만들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다음카카오 측의 어설픈 대응에 대 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 대표는 언론인과 법 률가를 거쳐 현재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 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는 게 업 계의 목소리다. 이달 1일 다음 카카오 합병을 선언하는 자리 에서 이 대표는 “서버 암호화

카카오톡측은 기술 잘모르는 대표가 국민 정서에 기대 포퓰리즘 발언 평소 불만 쌓였던 사용자 더 자극해

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다음카 카오’ 주식 상장 전날인 13일에는 직접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기관의 감청 영장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실제 구글과 야후, 페이스북은 미국의 프리즘 프로젝트 당시 “서버 감찰을 전 혀 몰랐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페 이스북 개발자 겸 CEO인 마크 저 커버그는 “절대로 NSA(미국 국

가안보국)와 연관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구 글의 에릭 슈밋 회장도 “NSA의 해킹은 너무나 충격적” 이라며 오바마 대통령과 미 의회에 유감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 모두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이해도가 높고 개인 사생활 침해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워온 바 있다. 중앙대 경영학과 박찬희 교수는 “감청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벌 어졌다면 이석우 대표는 최소한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 는 것을 판단했어야 했다”며 “‘법을 어기겠다’는 식의 발 언까지 한 것은 국민 정서에 기대려고만 한 포퓰리즘적 인 생각이다. 경영자가 위기 대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케 이스”라고 설명했다. 기업 자체의 대응도 미숙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한 달 동안 카카오톡의 대응은 ‘제 살 파먹기’에 불과했다 는 비판이다.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모독이 도를 넘 었다”는 발언 이후 검찰의 사이버 감찰 계획이 발표됐 고, 이후 카카오톡에 대한 여론의 의혹이 불거질 때까지 카카오톡 측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평소 친밀감 있

는 말투로 공지사항을 올리던 것과는 달랐다. 업계에서 는 “차라리 그때 쿨하게 기술적인 설명을 붙여 해명 하 는 게 나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문철우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경 영자는 정부와 언론, 고객, 법 등 모든 측면의 멀티 스테 이크 홀더(multi stakeholder)를 만족시키는 전략을 짰 어야 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이 가장 먼저 소통을 시도한 것도 일주일 뒤 인 9월 23일, 평소에 잘 운영하지 않던 트위터 카카오톡 계정을 통해서였다. ‘카카오톡은 감시나 검열의 대상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는 내용의 세 문장짜리 해명이었 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감찰 의혹을 트위터에 나도는 루머쯤으로나 생각한 처사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한 개발자는 “평소 게임앱 초대나 느려짐 현상에 대해 항의 를 해도 카카오톡 측은 늘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며 “평소 소통이 없던 카카오톡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Focus 11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지구가 멸망해도 지켜야 할 3대 성공 원칙  딜로이트 리서치부문 마이클 레이너 대표

원가보다 매출, 가격보다 가치 이외에 다른 법칙은 없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잘되는 기업들이 잘되는 이유는 뭘까. 가격 이상의 경쟁력을 추구하고 원가보다 매출에 집중했다. 이 두 가지 이외의 다른 원칙엔 크 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매출 증가가 원 가를 더 발생시킨다 해도 매출 증가를 선택 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의 마이클 레이너 리서치부문 대표와 뭄타즈 아메드 최고전략책임자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 지 난해 미국에서 출간한 책 세 가지 법칙:탁 월한 기업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작은 사 진)에서 미국의 2만5000여 개 기업의 45년 간(1966~2010년) 재무자료를 모두 분석했 다. 이들 가운데 탁월한 실적을 유지한 상위 1.4%의 기업 344곳을 솎아내고 ‘경이적 기업 (miracle worker)’ 174곳, ‘장수 기업(long runner)’ 170곳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9개 산업군으로 나눈 뒤 산업군마다 경이적 기 업, 장수 기업, 평균 기업 한 곳씩을 골라 총 27개 기업을 집중 분석했다. 빅데이터를 활용 한 ‘성공(success)’의 계량화 작업인 셈이다. 짐 콜린스나 톰 피터스 같은 ‘경영 구루 (guru)’들이 쓴 책을 보면 ‘창의력을 키우고 효율을 극대화하라. 고객관리를 철저히 하 라’ 등의 얘기가 주종을 이룬다. 뭔가 추상적 이고 이론적인 느낌이다. 이와 달리 계량적으로 도출해낸 3대 원칙 이외에 정말 다른 원칙은 없는 걸까. 최근 탁 월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제목의 한 국어판을 펴낸 것을 계기로 미국 보스턴 사무 소에 있는 레이너 대표에게 물어봤다.

올해 초 미국 네바다대학에서 열린 TED 강연회에서 연설을 하는 마이클 레이너. 그는 2만5000여 개 기업의 45년간 자료를 분석해 성공 법칙을 도출했다. 레이너 는 “내 인생에 이렇게 치열한 연구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미국 2만5000여 기업 자료 분석 -탁월한 실적을 내기 위한 원칙이 딱 두 개 밖에 없다는 게 믿기 힘들다. “우리의 두 가지 원칙은 저가 공세보다 높 은 가치, 그리고 원가 절감보다 매출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고객 중심 경영이 라든지 인수합병(M&A) 여부, 기업혁신·도 전 같은 요소들도 다 들여다봤다. 하지만 그 런 것들이 딱히 탁월한 실적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2만5000여 개 기업이면 미국의 주요 기업은 다 분석했다 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들이 탁월한 실적을 냈 을 때는 가격 경쟁이 아 닌 그 이상의 가치를 추 구했을 때, 그리고 원가 절감보다 매출 향상에 신경 썼을 때 딱 두 가지 세 가지 법칙 표지. 경우뿐이었다. 물론 탁

빅데이터 활용해 ‘성공’을 계량화 저가 공세로는 성과 낼 수 없어 ‘높은 원가=비효율’로 재단 곤란

산업군별 ‘경이적 기업(miracle worker)’ 반도체

리니어 테크놀로지

의료기기

메드트로닉

전기 배선

토머스 앤 베츠

의류

아베크롬비 앤 피치

제과

리글리

식료품

웨이스 마켓

제약

머크

화물 운송

하틀랜드 익스프레스

가전제품

메이텍

월한 실적이란 게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우리의 산술적이고 객관적 인 분석에 따르면 이 두 가지 경우, 그리고 이 원칙들 이외에 다른 원칙은 없다는, 세 가지 원칙만 존재한다.” -2만5000여 개 기업의 45년간 자료면 말 만 들어도 방대하다. “연구는 2007년 시작했다. 미국과 인도의 딜로이트 직원 40명이 달라붙어 분석 작업 을 했다. 자료는 신용평가회사 S&P의 자회 사가 제공하는 컴퓨스태트(Compustat) 서 비스를 활용했다. 사례 연구(case studies)의 경우 30여 개 기업을 놓고 기업마다 수백 쪽 에 달하는 자료를 분석했다. 또 통계 분석을 할 때면 수십 대의 컴퓨터를 일주일씩 동시 에 돌리기도 했다. 내 일생에 이렇게 치열한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하버드대 경영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진 flickr.com]

-1번 원칙(가격 이상의 경쟁력)은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중소기업은 적용하기 힘들 겠다. “중소기업은 물론, 경기가 나빠지면 큰 기업도 적용하기 힘들 것이다. 이 원칙을 적 용하는 데는 다소 실패가 있더라도 언젠가 가격 경쟁력을 뛰어넘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 많은 기업이 저가 공세로 성 과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탁월한’ 성과는 구조적으로 비가격적 차별성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신뢰도·편리성 같은 가치들은 소 비자들이 비싼 금액을 감수하면서도 해당 제품을 구입하게끔 만든다. 우리의 바람은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원칙들을 경영자들 이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는 것이 다. 경영자들은 대부분 이게 옳은 방향이란 걸 이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것 이다.”

-2번 원칙(원가 절감보다 매출 향상)에서 원가 절감도 하면 좋은 것 아닌가. “원가가 높다는 것은 비효율로 인한 결과 일 수도 있지만 좋은 품질의 원료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력을 사용한 것일 수 도 있다. 결국 탁월한 수익성의 열쇠는 원가 나 매출 어느 한쪽을 잘 관리하는 것이 아니 라 그들 사이의 상호 의존도를 어떻게 관리하 느냐는 문제다. 탁월한 기업은 원가 절감이나 매출 증가에 따른 수익성의 트레이드오프에 직면했을 때 매출 증가가 원가를 더 발생시킨 다 해도 매출 증가를 선택했다. 원가가 높아지 더라도 많은 매출로 이어져 발생하는 수익은, 낮은 원가로 만들어지는 수익보다 더 가치 있 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증명됐다.” -이 책과 톰 피터스, 짐 콜린스 같은 사람의 책들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많은 기존 경영 서적에 대한 근본 적인 의문을 품고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 본 받아야 할 모델 기업이 많이 생기지만 왜 그 런 기업들이 자주 바뀌는지, 도대체 어떤 기 준으로 그 기업들이 낸 성과를 경이롭다고 하는 건지 의문투성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성공 연구’가 범하는 근거 없는 선입견 이나 추론의 오류를 피해가려고 노력했다. 산업별·연도별 차이 등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해당 기업의 퍼포먼스를 평가했다. 이처럼 다른 경영 서적과 달리 ‘성공한 기업’을 객관 적인 기준으로 산출해낸 게 가장 큰 차이 및 성과라고 하겠다.” -당신은 미국 기업들만 분석했다. 이 세 가 지 원칙이 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기업에는 맞 지 않을 수 있다. “올해 우리는 126개국의 6만6000개 기업 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한국에 선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올 초 이 같은 분 석을 책(Found in Translation)으로 펴냈 다. 이 책에서 우리는 탁월한 성과가 국가별 차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밝혀냈다. 그 러나 적어도 한국과 중국·일본에서는 우리의 오리지널 3대 원칙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마이클 레이너(Michael E. Raynor) 딜로이트 리서치부문 대표이자 딜로이트 내 ‘명성 (Eminence)’ 부문의 혁신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세 계 유수 기업 CEO들의 자문 역할도 하고 있다. 2007 년 펴낸 책 위대한 전략의 함정은 경제주간지 비즈 니스위크가 ‘올해의 최우수 경제경영 서적’으로 선 정했다.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웨스 턴온타리오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 경영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계로 뽑아낸 성공 기업

운송비 10% 더 받은 하틀랜드, 서비스 개선해 경쟁사 압도 박성우 기자

“시장이 확대되고 있나? 가격 이상의 경쟁력 을 중시하고, 원가보다 매출에 집중하라. 경 제가 침체되고 있나? 역시 마찬가지다. 엄청 난 기술 변혁이 도래했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구의 멸망이 다가왔나?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너와 아메드는 지독할 정도로 이 두 가지 원칙, 그리고 더 이상 다른 원칙은 없 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리고 그 예로 하틀랜드 익스프레스(Heartland Express)라는 운송업체의 사례를 가장 대표 적인 경우로 본다. 이들이 ‘경이적 기업’으로 분류한 하틀랜드는 특별한 혁신을 꾀하거나 선구적인 기업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방식으

고가 정책 편 의류업체 아베크롬비 불황기에도 높은 가격정책 유지 경기 회복되자 원칙 지킨 덕에 승리

로 운송로와 고객을 확보했다. 반면 은메달 기업 또는 ‘장수 기업’으로 분 류된 위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장착하거나 운행 기록을 전산화하는 등의 혁 신을 업계 최초로 단행했다. 서비스 지역도 하틀랜드보다 넓었다. ‘평균 기업’으로 분류

레이너·아메드의 3대 원칙에 따라 의류업 3개사 분류해 보니 기업

분류

연 매출 변화(달러)

성공(실패) 요인

아베크롬비

경이적 기업

2억3600만(1995년)

특정 연령대를 타깃 삼아 체험형 매장 제공. 경

앤 피치(A&F) 피니시라인

→35억(2010년) 장수 기업

9800만(1991년) → 12억(2010년)

심스

평균 기업

1억7400만(1982년)

쟁 업체보다 30~40% 높은 가격에 판매 특정 고객층을 겨냥하긴 했으나 품질보다 광고 전략에 집중해 매출 신장 미미. 저가 제품 위주 임대료가 싼 지역의 매장에서 유행이 지난 저

→4억4500만(2010년) 가 의류 판매. 차별화 실패

한 P.A.M.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감한 투자 로 최고 수준의 운송 차량을 제일 많이 보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P.A.M.은 운전기 사들의 임금을 점점 더 줘야 했고, 차량이 노 후화되면서 유지·보수비용도 늘어났다. 하틀랜드는 그동안 고객 서비스 개선에 집 중했다. 계약직이 아닌 직영 운전기사들을 최 고의 대우를 해 주며 스카우트했다. 그러곤 경쟁 업체들에 비해 10% 더 비싼 가격을 매겼 다. 그 결과 자산수익률 측면에서 경쟁 업체 들을 능가하게 됐다. 하틀랜드의 성공은 다분 히 고객에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격 경 쟁에 신경 쓰지 않고 차별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레이너·아메드는 본다. 또 숙달된 노동력이라는 원가 증대요소를 감수하면서

도 매출 향상에 집중한 결과라는 것이다. 의류업체 아베크롬비의 성공도 이들은 차 별화 전략과 높은 가격 책정 때문이라고 설명 한다. 10대와 20대가 선호하는 브랜드로 각인 시키고 체험 매장을 설치하는 등의 경쟁력을 초창기부터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아베크롬 비는 심지어 2008년 경제 침체기에도 높은 가 격을 고집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침체 기가 끝난 뒤 경쟁 업체들은 다시 가격을 올리 기가 힘들다는 걸 깨달았고, 원칙을 고수한 아 베크롬비만 승자로 남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레이너와 아메드는 경영자의 리더십, 인적 자 원의 우수성, 인수합병 여부 등 그 어떤 요소 들도 자신들의 두 원칙처럼 탁월한 기업을 만 드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12 People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살림지식총서 500호 출간한 살림출판사 심만수 대표

“병사들에게 책 읽히고 싶어 만들다 보니 벌써 500호”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문고판 도서는 ‘우리집 도서관’이다. 프랑스 ‘크세주’, 일본 ‘이와나미’문고는 4000~5000 권 이상 출간됐지만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200~300호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살림출판사가 살림지식총서 500호 결혼을 냈다. 500권 모두 국내 저자 라는 기록도 세웠다. 심만수(사진) 대표를 만 났다. -회사 웹사이트에 가 보니 살림의 정신 중 하나로 ‘치우치지 않는 시선’을 들고 있다. “어떤 분들은 나이가 들면 신선이 된다고 그러는데, 저는 오히려 좀 치우치고 있다. 뭔 가 좀 애가 타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예컨대 어떤 ‘치우침’이 있는지. “저의 치우친 지론은 우리 병사들에게 전 쟁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역사의 뼈대 인 전쟁사를 통해 국가와 개인의 승패 원인 을 알게 된다. 전쟁사를 통해 자동적으로 도 대체 ‘인간이 뭘까’ ‘인류가 뭐냐’를 공부하 게 된다. 그다음엔 ‘지금 현재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지금 나는 뭔 일을 하고 있 나’라는 질문으로 자기반성을 하게 될 것이 다.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다. 어떤 책에 보니까 ‘머릿속에 뭔가 드니까 전투도 잘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라에서 병 사들이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줘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우리 소중한 자식들에게 괜히 쓸데없이 사역이니 뭐니 시 키지 말아야 한다. 독서로 조국애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심어 줘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까 ‘부모님 건강하신가’ ‘고 향 땅 집에서 농사는 어떻게 하나’··· 우스갯 소리처럼 ‘소는 누가 키우나’를 걱정하는 것 이다. 지금 내가 뭘 한다는 것에 대한 철저한 신념이 없으니까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가 스위스를 침공하지 않은 것은 스위스가 중립국이어서 가 아니라 군대가 강해서였기 때문이다. 강 한 저 나라는 건드려 봤자 골치만 아프기에 건너뛴 것이다. 책이 강군의 길이다.” -뭐가 애가 타는지. “시민으로서 얘기하자면 사회가 애가 탄 다. 뭐든지 싸우기보다는, 내일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그리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이 부 활한 느낌이다. 소피스트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수사학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이 있다. 하지만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인 문

Weather

심만수 대표는 “부패 구조, 분단 구조를 깨려면 도약해야 한다. 지금처럼 곁가지 가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싸울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제를, 정론이 아니라 궤변으로 다루는 것은 -그런 고민을 책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문제다. 그 결과 이념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왜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부패가 구 것들이 이념 행세를 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 조화됐을까. 우리는 왜 위에 있는 동포의 아 나 ‘이데올로그’ 기질이 있지만 이념에 종속 픔에 대해 망각하고 정치논리로만 바라볼까. 되지는 말아야 한다. 사회가 이원화되는 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책도 자연히 그런 반 운데 국가가 매우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다.” 성에 따라 만들게 된다. 제가 무슨 좌(左)다 -예를 든다면. 우(右)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다. 일단 사 “세월호 침몰 참사만 해도 본질이 분명히 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리는 책 출간에 몰 있는데 곁가지를 가지고 결론을 내리려 하고 두하는 편이다.” 있지 않나. 부패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출간 목록을 보니 유명 작가들이 많다. 구조화됐다. 구조화라는 것은 무섭다. 자신 비결이 있는지. 자금력인가 친화력인가. 이 부패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옛날에 낸 책들이 그랬다. 제가 ‘문예중 상당수 사람이 마치 자기가 대단한 정치가 앙’에서 10년 편집자로 있을 때 자연히 우정 가 된 것처럼 정치가의 잣대로 세상을 보고 이 생겼다. 돈하고 상관없이 얼마든지 책을 있다. 잘못된 거다. 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내고자 하면 낼 수 있었던 그런 관계였다. 지 삶의 본질, 사람의 근본에 대해 일단 깨닫고 금 우리 회사는 문학작품을 그리 활발하게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저는 잘난 거는 하나도 출판하지 않는다. 지금은 종합출판사라고 할 없지만 ‘본질이 뭘까’ 이런 생각은 한다. 삶 수 있겠다.” 의 본질 중에서도 보편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스테디셀러는 몇 종이나 되는지. 개인의 자유나 행복 같은 고귀한 인류 보편의 “하루에 단행본이 300종 이상, 살림지식 가치가 있다. 한데 북한의 우리 동족이 말도 총서도 100종쯤 움직인다. 하루에 400~500 안 되는 ‘왕조’에 포로로 잡혀 있다. 동족이 종이 1~3부라도 주문이 들어온다.” 비 / 천둥 눈 비 / 소나기 등 흐려져 비 눈 또는 비 흐림있다. 슬픔에 흐려짐 떠난 세계에서 흐린 후 갬 보편성을 살고 -출판인으로서 고민은. 잠겨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살림출판 책이 한 2000종 정도 된다. 매 역시 큰 병에 걸린 것이다.” 번 책 낼 때마다 희망과 좌절의 딜레마에 빠

머리 채워야 나라 잘 지킬 수 있고 군대서 썩는다는 말도 사라질 것 요즘 한국, 소피스트 부활한 느낌 이념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 행세 대단한 정치가인 양 세상 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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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일요일, 음력 2014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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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유성컨트리클럽 창업주)씨 별세, 토요일(13일) 형모·은모씨 부친상=18일 오전 7시, 서울아 산병원 장례식장 20호, 발인 20일 오전 9시 (23/17) (23/17) (27/19) 30분,(27/19) 02-3010-2000, 042-822-7103 ^차근숙씨 별세, 이해석(전 저축은행중앙 (25/17) (25/17) 회 전무)씨 부인상, 영주(사업)·수정(협성 (26/21) (26/21) 대 강사)씨 모친상, 명진훈(KDB대우증권 (27/20) (27/20) 파생상품영업부 이사)씨 장모상=17일 오 전 3시, 이대목동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26/20) (26/20) 02-2650-2753 ^이구현씨 별세, 김정각(금융위원회 행정 용두중 교 인사과장)·외순·인숙·용주(광주 9일(화) 10일(수) 11일(목) 사)·현주씨 모친상, 박경미(차바이오텍 상 무)씨 시모상, 심경섭(청주 경덕중 교사)·김 덕모(호남대 교수)씨 장모상=18일, 충북 청 주 하나노인병원 장례식장 3층 특A호실, 발 인 20일 오전, 043-23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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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기자

진다. 매체에서 문제작으로 취급을 받았으면 하는 희망, 좀 팔렸으면 하는 희망이다. 조금 팔리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책, 아 니면 경영에 좀 도움되는 책… 이 둘 중 하나 라도 됐으면 좋겠는데 둘 다 비켜 가는 경우 가 많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래서 요즘은 ‘문제작이 아니어도 좋다’ ‘많이 안 팔려도 좋다’ ‘책에 사랑을 담자’는 항심(恒心)으로 일하고 있다.” -살림지식총서를 구상한 계기는. “아까 말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안으 로 찾아낸 게 문고였다. 사실 저는 ‘문학전집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 다닐 때 배 운 일이다. 당시 문학전집 4종을 냈다. 문고를 제작하려고 보니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출판에 대해 비교적 잘 아니까 전략 을 꾸몄다. 최근에 가격을 4800원으로 올렸 지만 1만원짜리 한 장으로 세 권을 살 수 있 게 10년 동안 3300원으로 가격을 고정했다. 처음에는 살림지식총서를 병사들이 읽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병대에서 부사관 으로 근무하고 제대한 오랜 친구가 있어 알 게 모르게 군대문화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어서 도움이 됐다. ‘군대 가면 2년 동안 썩 는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우리 자식들이 제대하고 복학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엄청 도움이 될 내용을 우리 문고에 넣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500호가 됐다. 우리 선 배들은 산업화 혁명을 성공시켰고 우리 또한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 어려운 일들 을 성공시켰는데, 한번 마음 먹으면 ‘군대 가 면 썩는다’는 말은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다.” -지식산업의 핵인 출판업은 창조경제의 엔진이 될 수 있다. 좋은 제언이 있는지. “저는 굉장한 낙관주의자인데 출판업의 미래에 대해선 전혀 낙관을 못 하겠다. 우선 문명 자체가 종이문명에서 정보기술(IT) 문 명으로 넘어가 버리지 않았나. 출판업에 길 이 있다면 기업가들이 국가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목숨 걸고 할 거다.” -5년 후, 10년 후 나의 모습은. “좀 더 치우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 각한다. 해외로도 진출할 거다. 지금 한국이 나 동북아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세계 중심이 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제 욕망은 대 한민국 침체 극복과 동북아를 세계에 알리는 후 갬 후, 10년 후 비후갬 데 안개 책으로 일조하는 것이다.눈 5년 에도 저는 진정한 자유인, 진정한 세계인이 되기 위해 책을 만들고 있을 거다.” 기본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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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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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Focus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중앙SUNDAY-터키 지한통신 공동 취재 국제사회 IS 딜레마

IS 공격은 양날의 칼  터키, 지상군 투입 놓고 속앓이 <이슬람국가>

알파고 시나시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적의 적은 친구라지만 이번엔 다른 양상이 다. 터키시리아쿠르드이슬람국가(IS)가 서로 물고물리며 복잡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특히 터키는 시리아 내 IS의 세력 확장 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시리아와 이라크에 서 영토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IS가 터키와 불과 1㎞ 떨어진 시리아의 국경도시 코바니 함락을 위해 공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가 IS 수중에 넘어갈 경우 터키의 안 전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주도로 국제동맹군이 코바니를 공습 하면서 IS의 공세를 저지하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 은 터키 정부에 코바니에 지상군을 투입하라 고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코바니가 터키 내의 독립을 추구하 는 쿠르드족 거주지라는 점이다. 터키가 IS를 직접 공격할 경우 자신의 적대세력을 도와주 는 꼴이 된다. 터키가 지상군 투입에 주저하 고 있는 이유다. 터키와 대립하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현재 IS와 치열한 내전을 벌이 고 있다. 또 알아사드 정권과 밀접한 관계인 시리아 내 쿠르드 세력은 터키 내 쿠르드족 독립을 지원하고 있다. 터키가 IS를 공격하면 알아사드 정권과 쿠르드 독립세력을 간접 지 원하는 셈이다. 터키는 물고 물리는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IS, 시리아 북부 코바니 한 달째 공격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시리아 북부도시 코바니에서는 한 달째 IS 와 쿠르드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를 피해 코바니를 탈출한 주민은 18만 명 이 넘는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의 공습으로 IS 대원 수백 명이 사망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IS에 의해 코바니가 점령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며 “공습만으로는 코 바니를 지켜낼 수 없다”고 말했다. 터키의 지 상군 투입을 압박하는 발언이다. 터키 의회는 이미 지난 2일 터키군의 해외 파병과 외국군의 터키 주둔을 허용하는 사 전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군 통수권자가 지 상군 투입 결정을 하면 바로 코바니로 진격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아 직 지상군 투입에 따른 이해득실을 계산하 고 있다. 아흐메트 다부토을루 터키 총리는 CNN 과의 인터뷰에서 “터키 지상군의 시리아 파 병은 알아사드 정권 퇴진을 전제조건으로 결 정할 것”이라며 “알아사드가 물러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지상군 투입은 없다” 고 못 박았다. 또 파병을 미루는 이유를 “알

18일 시리아 북부 국경도시인 코바니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날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은 IS(이슬람국가) 거점을 공습했다. 이곳에선 한 달째 IS(이슬람국가)와 쿠르드군이 밀고당기는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국제동 맹군은 공습을 통해 쿠르드군을 지원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국제동맹군의 요청에도 불구 지상군 투입을 미루고 있다.

국경 근처까지 IS 진격했지만 독립 요구 쿠르드족에 득될까 봐 미국의 파병 압박에도 머뭇머뭇 적대국 시리아 돕는 효과도 우려

시리아 내 IS를 둘러싼 국제관계 적대관계 협력관계

미국 주도 국제동맹군 쿠르드의 독립 추진으로 마찰

쿠르드족

터키 시리아 내전 이후 관계 악화

시리아 쿠르드족

알아사드 정권

IS (이슬람국가)

터키 코바니 아프린

홈스

하사케

라카(IS 근거지)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 다마스쿠스 요르단

아사드가 계속 집권해 잔혹한 행위를 지속할 경우 시리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 한다. 알아사드에 반대하는 또 다른 극단주 의 세력의 등장으로 혼란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키의 적인 알아사 드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국제사회가 동의해 야만 파병을 하겠다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 이후 터키와 시리아의 관계는 악화돼 왔다. 터키가 알아사드의 퇴진을 요 구하는 반군을 지원하면서 양측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급기야 터키는 알아사드를 ‘자국민을 학살하는 독재자’라고 비난했고, 2012년 6월에는 터키 전투기가 시리아군에 의해 격추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으로 치달았다. 터키의 또 다른 고민은 자국에서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노동 자당(PKK)의 세력 확장이다. 터키 정부는 지상군을 투입해 IS 세력을 약화시킬 경우 시리아 내 쿠르드족 정치세력인 민주동맹당 (PYD)이 득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 PYD는 이미 지난 1월 코바니·아프린·하사케 등 시리 아 북부 쿠르드족 거주 3개 도시를 묶어 자치 정부를 수립했다고 선포했다. 알아사드 정권 을 지지한 대가로 시리아 내에서 자치권을 확 보한 것이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의 PYD와 자국 내 PKK의 연대 강화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시 리아의 PYD가 터키 PKK의 세력 확장에 활 용되거나, 터키 내 쿠르드족 독립 추진의 지 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뷸렌트 아 른츠 터키 부총리는 “PYD의 자치정부 수립

은 알아사드 정권의 지원으로 가능했다”며 “PYD가 자치정부를 세운 것은 큰 실수”라고 말했다. 터키 의회가 승인한 군사작전의 대상은 IS 뿐만이 아니다. 알아사드 정권과 시리아 내 쿠르드군까지 포함시켰다. 해외 파병을 한다 면 자국에 위협이 되는 두 세력도 패키지로 격퇴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터키의 미온적 태도에 쿠르드 반발 터키 정부의 태도에 쿠르드족은 크게 반발하 고 있다. 지난 7일부터 터키 내 쿠르드족 주민 들은 “정부가 코바니 사태를 방관해 무고한 쿠르드인들이 대거 희생당하고 있다”며 격렬 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를 진압하던 경 찰과의 충돌로 발생한 사망자는 수십 명에 달한다. PKK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은 성 명을 통해 “IS가 코바니를 점령하면 터키 정 부와 진행 중인 평화협상을 무산시킬 것”이 라고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 쿠르드족 내 강온 세력 간 견 해 차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현지 언론들 에 따르면 최근 동부 가지아테프에서는 쿠르 드족 간 총격전으로 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했다. 동부 빙골에서는 PKK와 쿠르드 족 급진 이슬람 조직인 헤즈볼라 간 충돌사 건을 조사하던 경찰관 3명이 총격을 받아 사 망했다. 이 과정에서 빙골 경찰서 아탈라이 위르케르 서장도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터키의 쿠르드계 제도권 정당인 인민민주 당(HDP)은 코바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쿠 르드족의 연대와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있

[로이터=뉴스1]

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은 “이번 쿠르드족들의 반정부 시위는 PKK 와의 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시도”라고 비 난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국제사회는 터키 정부의 지상군 파병을 압 박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효과가 없 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최근 다부토을루 터키 총리와 메브류트 차부쇼울루 외무장관 등과 잇따라 통화했지만 파병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북부에 비행금지 구 역을 설정하고 안전지대를 만들어 난민들 을 보호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며 지상군 투 입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안전지대를 위해 서는 비행금지 구역 설정이 우선돼야 하는 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 사회의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안전지 대 설정을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 이다. 이런 와중에 미 국무부는 코바니의 쿠르 드족 정치세력인 PYD와 접촉했다고 밝혔 다. 지상군 투입을 미루는 터키 정부를 더 이 상 기다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파병을 주저하는 터키 정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 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터키 정부가 계속 미적거릴 경우 직접 코바니의 쿠르드족을 지원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라며 “미국이 시리아 내 쿠르드족과 협력할 경우 코바니 사태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꼬일 것”이라 고 전망했다.

비운의 민족 쿠르드족

독립국가 못 세운 채 중동 각국에 3000만 명 흩어져 살아 알파고 시나시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최익재 기자

쿠르드족은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이 란·이라크·터키·시리아·아르메니아·아제르 바이잔 등에 걸쳐 산재해 있는 비운의 민족 이다. 인구는 약 3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고 유 언어인 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다. 약 4000년 전부터 산악지대인 쿠르디스탄 (쿠르드의 땅)에 거주해 왔지만 중세 이후에 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쿠르디스탄은 이란·이라크·터키 등으

1차대전 직후 거주지 분할당해 각국서 분리독립 요구하며 투쟁 중 터키·이라크선 4만 명 희생되기도

로 분할됐다. 이때부터 쿠르드족은 각 거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란 내 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치정부를 수립했지만 소련군의 철수로 다 시 이란에 복속됐다. 1970년대엔 터키의 쿠

르드노동자당(PKK)과 이라크의 쿠르드애 국동맹(PUK) 등이 무장 독립투쟁을 벌이다 4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터키의 PKK는 남 동부지역에서 자치권을 주장하면서 지금도 분리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88년 사담 후세인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수천 명이 목숨 을 잃었다. 2003년 미군이 이라크에 진주한 이후 북부 산간지역을 기반으로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후세인 정권과의 전쟁을 지원한 대가로 미국이 쿠르드 자치정부를 허용한 덕분이다. 이들은 현재 이라크 내 최대 유전

지역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이라크 연방정부의 일원이 아닌 독립된 국가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쿠르드족 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들은 이들의 분리독 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쿠르드족도 정치 성향에 따라 크게 두 세 력으로 나뉜다. 우선 이라크 북부에서 자치 정부를 수립한 쿠르디스탄민주당(KDP)과 같은 친서방적 세력이 있다. 이들은 사회주의 색채가 없어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과 지지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반면 터키의 PKK는 사회 주의 노선을 기본으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

는 강경파다. 이들은 무장투쟁을 불사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와도 크고 작은 충돌을 빚어 왔다. 시리아 코바니에서 이슬람국가(IS)와 전 투를 벌이고 있는 쿠르드족 세력인 PYD도 KDP와는 달리 사회주의 성향이다. 이 때 문에 KDP는 같은 쿠르드족임에도 불구하 고 PYD에 별다른 지원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분리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는 쿠르드족이지만 이념에 따라, 투쟁 방 식에 따라 적지 않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 이다.


Focus 15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한일 관계 50년』펴낸 전 외교관 조세영 교수

65년 체제 변화 필요  대등 관계서 통일협력 끌어내야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대일 외교를 담당했던 전문가 입장에서 한· 일 수교 50년사를 서술했다. 그 핵심은 뭔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65년 체제’는 일 제 식민 35년보다 15년이나 길다. 이 체제를 지탱해 온 2개의 기둥이 경제와 안보다. 1965 년 당시 최빈국이었던 우리는 대통령이 해외 에서 1000만 달러를 끌어온 게 뉴스가 될 정 도였다. 그만큼 외자가 절실했다. 이런 한국 에 돈을 빌려 줄 나라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일본뿐이었다. 결국 65년 수교를 통해 일본에서 확보한 5억 달러(유상 2억, 무상 3 억)로 한국은 경제 성장의 종잣돈을 만들었 다. 이게 65년 체제의 핵심인 경제 기둥이다. 둘째는 안보 기둥인데, 65년은 베트남전이 본격화된 냉전의 절정기다. 반공진영의 결속 이 중요했다. 그런데 일본은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경제에 올인했다. 국방비가 국민총 생산(GNP)의 1%도 안 됐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이 안보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며 한국을 지원하라고 주장했다. 지금과는 정 반대 상황인 셈이다.” -일본은 어떻게 나왔나. “한국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는 척하면 서도 북한과도 대화하는 등거리 외교를 했 다. 대표적인 게 74년 재일교포 문세광의 육 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문세광은 조총련 과 연루된 인물로, 일본 파출소에서 훔친 권 총을 범행에 이용했다. 일본은 처음엔 책임 을 부인하다가 한국이 강하게 반발하니 ‘도 의적 책임을 느낀다’고 돌아섰고 이후 한국 을 지원하기에 이른다. 일본 우파들이 한국

다카이치 사나에(가운데 여성) 일본 총무상이 18일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신사의 가을 제사 첫날인 17일 신사에 공물을 보내고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 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 110여 명이 신사를 집단 참배한 데 이어서다.

한·일, 명암 장기 공존하는 특수관계 우리 국력 커져 관계 개편 불가피 통일 대비 일본 협력채널 만들어야 대화·과거사 ‘분리 대응’이 해결책 50년간 축적된 관계가 극단 막을 것

최정동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내각의 각료 3명 이 18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 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8일 아베 총리 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과) 정상회 담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러브콜을 보낸 지 열흘 만이다. 추파와 망동을 반복하는 일 본의 갈지자 외교로 인해 8·15 이후 모처럼 전향적인 대일 제스처를 취해 온 정부는 또 다시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도무지 가까이 하기 힘들지만 헤어질 수도 없는 대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외교 부에서 동북아국장을 지낸 일본 전문가 조세 영(사진) 동서대 특임교수가 그런 의문에 답 하는 책을 냈다.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 의 발자취란 제목에서 보듯 저자는 두 나라 가 장기간 빛(明)과 어둠(暗)을 함께 지고 갈 수밖에 없는 아주 특이한 사이라고 규정한다. 과거사 같은 어둠을 단기간에 해결할 길은 없 기에 안보·경제 같은 빛을 추구하되 어둠(과 거사)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끈질기게 이어가는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박근혜 정부가 올 하반기 들어 대일 유화노 선으로 돌아선 건 남북 대화 진전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집권 3년차이자 분단 70주년인 내년에 남북 정상회담 같은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정부로선 남북 밀착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대일 관 계를 개선해 둘 필요가 크다는 분석이다. 여 권 고위 관계자도 “남북 대화 일정을 감안하 면 연말 안에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돼야 한 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미국과 손잡 고 우경화를 가속화하는 일본에 대해 정권 차 원의 공학적 계산으로 대응하는 건 명백한 한 계가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대신 내년 50주년을 맞는 ‘65년 체제’를 양국의 변화된 국력과 주변 정세에 맞게 개편하고, 통일에 대 비한 한·일 협력을 구조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그는 강조한다. 변화된 현실을 외면하고 냉전 시절 구축된 한·일 관계 틀을 고집한다면 양 국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렇 게 반공으로 한·일이 연결되면서 65년 체제 는 반공 연대에 기반한 안보 기둥으로 유지 돼 왔다.” -지금 두 기둥의 상태는 어떤가. “우선 한·일 간에 국력 차이가 좁아지며 경 제 기둥이 크게 약해졌다. 한국은 80년대까 지는 일본에 경협자금으로 40억 달러를 요구 했을 만큼 외자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86~88 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거치면서 90년대 부터는 일본에 손 벌릴 이유가 없어졌다. 안 보 기둥도 변질됐다. 중국이 한국과 밀접해 지면서 미국·일본과의 군사협력에 알레르기 를 보이게 된 거다. 65년 체제가 기로에 선 거 다. 65년 체제가 한·일 관계 버전 1.0이라면 버전 2.0이 필요한 시점이다.” -버전 2.0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안보는 냉전 시절의 한·미·일 협력 틀을 고집했다간 한·일, 한·미 관계를 해치게 된다. 일본과 보다 대등한 협력구도를 만들어야 한 다. 경제도 양국 기업들이 대등하게 협력하 는 관계로 바꿔야 하고, 한·일 자유무역협정 (FTA)을 추진해야 한다. 여기에 통일을 또 하나의 기둥으로 추가해야 한다. 통일과 관 련해 일본의 협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 건이다. 이렇게 2.0이 확보되면 한·일 관계는 다시 끈끈하게 묶어질 것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다 철회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당시 실무를 맡 았던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나. “안보 기둥이 바뀌어도 한국의 안보 기축은 여전히 한·미 동맹이다. 이 동맹의 토대는 일 본에 있는 유엔 산하 후방기지 7개다. 한·미·일 안보의 틀 속에 우리 안보의 토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합리적 범위에서 일본과 협력 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협정을 체결해도 정보 는 선별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은 적성국가였던 러시아와도 정보협정을 맺고 있다. 일본은 위성, 우리는 휴민트(인간정보) 가 비교 우위니 정보 교류를 하면 시너지 효과 가 난다. 83년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007기 를 요격했을 때 소련기의 교신 내용을 가장 먼저 감청한 게 일본 자위대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여전 히 필요하다는 얘긴데 중국의 반발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 어(MD) 시스템을 예로 들어 보자. MD는 한·미·일이 함께 움직여야 완벽하게 작동하는 구조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반발한다. 따라서 한국이 MD 조세영 교수 에 편입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

[로이터=뉴스1]

다. MD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한·미, 한·미· 일을 기축으로 한 안보구조를 유지하는 지혜 를 발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한·미·일 합동훈 련은 계속하는 거다.” -한·일 관계에 통일 기둥을 추가하라는 건 무슨 얘긴가. “90년 독일이 통일할 때 독일과 프랑스 정상 은 거의 매일 전화 통화를 했다. 우리도 통일 을 위해서는 일본 등 주변 열강과 긴밀하게 소 통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게 통일 기둥이 다. 어느 나라도 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과거사 문제에 진전이 없는데 일본과 통 일을 놓고 대화할 수 있을까. “일본엔 지적할 건 지적하고 협력할 건 협 력하는 ‘분리 대응’이 불가피하다. 우리 대통 령에게 대일 관계는 늘 포퓰리즘과 영합하고 싶은 유혹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냉정하고 실 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65년 6월 22 일 한·일 수교협정이 타결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낸다. ‘어제의 원수라 도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손을 잡 는 게 현명한 대처’라며 국민의 이해와 협조 를 호소했다. 이런 자세가 정말 필요하다. 특 히 SNS가 발달한 요즘은 지도자가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하면 어떤 외교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현재 한·일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 아닌가. “아니다. 40년 전이 최악이었다. 74년 문세 광의 육 여사 저격에 격앙된 서울의 시위대가 일본대사관에 난입해 일장기에 불을 질렀다. 도쿄에서도 전례 없는 혐한 분위기 속에 우 리 대사관원들이 단교에 대비해 철수 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미국이 한·일에 ‘관계를 수습 하라’는 희망을 전달하면서 위기를 가까스 로 넘겼다.” -미국은 한·일 관계의 균형자 역할을 해 온 게 사실이다. 그 미국이 ‘이젠 일본과 화 해하라’고 압박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위안부나 독도 문 제를 덮고 갈 수 있나. 결국 분리 대응이 답이 다. 미국의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면 서 우리 국익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분 리 대응은 단순히 ‘정경 분리’ 차원이 아니 다. 대화를 하면서도 껄끄러운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게 분리 대응이다. 이는 미국도 마 찬가지다. 위안부나 야스쿠니 참배 문제엔 그 들도 단호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미국은 올 초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성사시 켰다. 이런 게 분리 대응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양국 간 입장 차가 커 정상들이 만나 얼굴 을 붉힐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낫다. 2011년 교 토 한·일 정상회담이 그랬다. 내가 담당 국장

이었는데 실무 조율이 미처 안 된 데다 회담 직전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려 온 수 요집회가 1000회를 맞아 여론의 압박이 가중 됐다. 결국 한·일 정상이 얼굴만 붉히다 헤어 졌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재 앙을 피하려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서로 입장 차가 좁혀진 뒤 만나는 게 맞다. 하 지만 외교장관 회담은 빨리 열어 분리 대응 트랙을 가동해야 한다. 장관끼리는 얼굴을 붉혀도 된다.”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나갈까. “일본의 관심은 온통 동북아 힘의 균형 변 화에 쏠려 있다. 따라서 보통국가화를 끊임 없이 추진할 것이다. 그 결과 지역에 불안정 을 고조시킬 우려가 크다. 이를 막으려면 한· 중·일 3자협의 시스템이 활발히 가동돼야 한 다.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외교의 창의력이 필요하다.” -40년 전엔 한국 시위대가 일본대사관에 난입했다. 지금은 한·일 관계가 악화돼도 그런 일은 없다. 양국 간 펀더멘털이 강해진 건가. “그렇다고 본다.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규 탄하는 집회를 한 뒤 일식을 먹고, 일제차로 귀가한다. 커진 국력에 따른 여유의 표현일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98년까지는 한 국보다 중국에 친근감을 느꼈지만 그 뒤론 반대로 돌아선다. 한·일 국민 간의 상호 인식 이 급진전한 거다. 독도나 위안부 문제는 쉽 게 해결될 수 없겠지만 시민 수준에서 축적 된 양국 관계의 저변은 큰 힘이 될 것이다.” -외교부에서 일본통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아키히토(明仁) 일 왕이 만났을 때 내가 통역을 맡았다. 일왕이 ‘도라지’ 같은 말을 한국어로 표현하며 친근 감을 표시하다 돌연 ‘칸무(桓武) 천황의 어 머니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고 속일본기 에 나온데 대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율을 느꼈다. 순혈을 강조하는 일 본 왕가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란 극히 어렵 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당시 공개할 수 없었 고 보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일왕 이 기자회견에서 이 얘기를 직접 해 세상에 알려졌다. 98년 당시 일왕의 그 발언은 엄청 나게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 밖에 기억나는 비화는. “김대중(DJ)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 惠三) 총리의 정상회담에서도 통역을 했다. 회 담이 끝난 뒤 차를 타고 가면서 DJ가 나를 앞 자리에 태워 줬다. 차 안에서 ‘통역을 잘했는 데, 어휘는 조금 더 늘려야겠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으면 좋다’고 조언해 주더라. 일본어 세 대라 나보다 훨씬 일본어를 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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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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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남북이 60년간 날려 보낸 ‘종이폭탄’ 지난 10일 민간단체가 북으로 날려 보낸 ‘삐라(전단)’를 향해 북한군이 고사총을 발사하고 남측이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하는 사건 이 발생했다. 삐라는 심리전 수단으로 남북 모두 오랜 기간 상대를 향해 살포해 왔다. 현재는 북한의 삐라가 남한 사회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데 반해 대북 삐라는 ‘최고 존엄’을 건드리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못 본 체하기 힘들다는 차이가 있다. 강원도 고성 DMZ박물관에는 지난 60여 년간 남북이 서로를 향해 날려 보낸 삐라가 수집·전시돼 있다. 한국전쟁 기간에 유엔군 은 660종 25억 장, 공산군은 367종 3억 장을 뿌렸다. 한반도 전체를 20번 이상 덮는 분량이다. 그 많은 ‘종이폭탄’이 전선이 오랫 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현재의 군사분계선 주변에 집중적으로 살포됐다. 가장 많은 종류는 귀순(투항) 권유 삐라였고, 전선에서 춥고 배고픈 겨울을 나는 병사들의 심리를 겨냥한 내용도 다양하게 제작됐다. 전쟁 후에도 삐라 살포는 계속됐다. 1960~90년대의 대남 삐라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미군에 대한 증오,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 비난을 담고 있다. 대북 유화정책을 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비난의 표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북 삐라는 대한민국의 정 치·경제체제의 우월성과 북한 최고위층에 대한 비난 등을 담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한국전쟁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양측이 만든 삐라를 시간순으로 보여 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 느 쪽이 언제 날려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오른쪽 맨 아래가 최근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 삐라인데 물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제작됐다. 사진·글=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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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렉서스 공장에서 장인(다쿠미匠)을 만나다

맨손의 감촉만으로 차체 이음새 0.1㎜의 차이를 잡아낸다 규슈=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co.kr

지난달 18일, 일본 규슈(九州)에 자리한 도 요타 미야타(宮田) 공장의 최종 검사라인. 한 작업자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완성된 차의 표면을 정성껏 쓰다듬고 있다. “차체 패널 간 간격을 확인하고 있는 거예요. 0.1㎜와 0.2㎜ 까진 각각 S와 B등급을 매겨 통과시키지요. C등급은 수정을 위해 생산라인으로 돌려보 냅니다. 100대 중 한 대 정도 되지요.” 공장 홍 보 담당자의 설명이다. 시각·촉각만으로 0.1㎜의 간격을 구분해 내는 사람들. 이 공장의 자랑 ‘다쿠미(匠)’ 가 길러낸 숙련공이다. 다쿠미는 손으로 물 건 만드는 장인을 뜻하는 일본어. 체계적 훈 련을 통해 소수만 육성한다. 가령 미야타 공 장 전 직원 7700여 명 중 다쿠미는 22명에 불 과하다. 또 1991년 2월 미야타 공장 설립 이 후 지금까지 다쿠미로 불렸던 이들도 40여 명뿐이다. 분당-내곡간 고속도로 미야타 공장은 본사(도요타시) 지구, 도호 울외곽순환고속도로 도시고속도로 쿠(東北) 지구와 더불어 일본 내 도요타 3대 생산 거점의 한 곳이다. 후쿠오카(福岡)의 하 판교테크노밸리 판교한 시간 거리에 카타(博多) 역에서 자동차로 야외공연장 신도시 대왕판교로 있다. 단지는 차를 조립하는 미야타, 엔진을 사고 장소 만드는 간다( 田), 하이브리드 관련 부품을 판교IC 생산하는 고쿠라(小倉) 등 3개 공장으로 구 성된다. 도요타자동차 계열사인 도요타자동 차 규슈가 운영하고 있다. 도요타는 렉서스 생산 공정에 다쿠미를 적극 활용 중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품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미야타 공장은 전 체 렉서스 생산의 90%를 소화한다. 연간 생 산능력은 43만 대. 하루 1750대꼴이다. 핵심 차종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NX. 생산물량의 52%를 차지한다. 그 밖에 CT와 RX, ES 등을 만든다. 한국에서 파는 렉서스 도 여기에서 온다. 렉서스의 완성차 검사 기준은 다른 도요 타 차종보다 한층 까다롭다. 이 공장에서 생 산되는 렉서스는 한 대당 5000가지 항목에 걸쳐 검사를 받는다. 아울러 모든 렉서스는 험로 주행시험을 마친 뒤 출고된다. 전수 검 사다. 이날에도 공장 바로 옆 주행시험장엔 쉴 새 없이 차가 드나들었다.

선배가 후배 가르치는 도제식 운영 소수만 뽑아 집중 훈련으로 육성 외부 공개 극력 꺼리는 ‘비밀병기’ 도요타 리콜 사태 벗어난 원동력

부품공장 차량공장

고쿠라 공장

42㎞

미야타 공장 45㎞

간다 공장 엔진공장

후쿠오카현

도요타 규슈 트레이닝센터의 모습(사진 위), 도요 타 공장 종업원이 완성차의 마무리를 정밀하게 하 는 장면(아래).

[사진 한국토요타자동차]

시험장엔 ‘이음로’라는 길이 있다. 이상한 음이 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한 도로다. 이음 로의 길이는 300m로 별로 길지 않으면서도 다 양한 지형으로 구성돼 있다. 울퉁불퉁한 포장 도로 65m, 맨홀이 움푹 파인 도로 13m, 쩍쩍 갈라진 아스팔트 65m, 벨지안 도로(유럽의 돌 길) 150m, 속도방지턱이 이어진 도로 27m로 구성된다. 다쿠미에게 3개월간 집중 교육받은 4명의 직원이 하루 800여 대의 렉서스를 몰고 이 코스를 시속 40㎞로 달린다. 다쿠미가 직급을 뜻하는 건 아니다. 공식 명칭도 아니다. 특별한 기술과 경험을 지닌 직 원을 뜻하는 개념적 호칭이다. 지금 규슈 공 장에서 활동 중인 다쿠미 22명은 각자 직급이 따로 있다. 사내에서는 이들을 ‘렉서스 기능 전문가(LX)’라고 부른다. 자동차 생산의 주 요 공정을 모두 경험한 20년차 이상의 직원들 로 구성된다. 나이는 50대가 주를 이룬다. 장인 돼도 직급봉급 변화 없어 다쿠미는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력 착취 등 부정적 측면을 제 거한 도제 시스템이다. 충분한 경력을 쌓은 대상자들은 일주일간 특별교육을 받은 뒤 다 쿠미로 인증받는다. 자격은 2년 동안 유지된 다. 다쿠미가 돼도 직급과 급여엔 변화가 없 다. 명예직이다. 업무는 바뀐다. 일부는 최종 검사처럼 품질을 책임질 작업에 일반 직원과 섞여 일한다. 다쿠미는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직원들에 게 전수한다. 조립과 도장, 바느질 등 각자 전 문영역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현 장을 감독한다. 규슈 공장에서는 ‘다쿠미 활 동’이라고 부른다. 한국토요타자동차 홍보부 의 김성환 차장은 “표준작업의 철저한 교육 을 통해 작업자 전원이 명확한 기준과 목표 를 갖고 고품질 생산기능을 연마하는 과정” 이라고 설명했다. 미야타 공장의 다쿠미 가운데 12명은 바 느질(스티칭) 전문이다. 이들은 NX 대시보 드의 우레탄 부위에 바느질하는 작업과 교 육, 검사를 맡고 있다. 가죽과 달리 우레탄은 가지런히 펴서 작업할 수 없다. 3차원의 입체 형상을 따라 오르내리며 재봉해야 한다. 손 발을 정교하게 놀려 바느질의 속도와 모양을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

올해 8월 4일 일본 규슈(九州)의 도요타 미야타(宮田) 공장에서 한 종업원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렉서스 NX에

구된다. 12명의 다쿠미는 3개월 동안 집중 교육과 훈련을 거쳐 실제 바느질 작업에 투입됐다. 선발 조건은 깐깐하다. 테스트의 시작은 종 이접기다. 90초 안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손 으로 종이를 접어 고양이를 만들어야 한다. 바느질 다쿠미들은 10단계의 체계적 바느질 교육 프로그램도 고안했다. 자신들을 대체할 솜씨 갖춘 직원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미야타 공장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트 레이닝센터가 있다. 미야타 공장에서는 다쿠 미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3~4년 단위로 직 책이 오를 때마다 재교육을 받는다. 센터는 2005년 3월 미야타 제2공장과 함께 문을 열 었다. 갑자기 늘어난 직원을 효율적으로 가 르치기 위해서다. 지난해는 9000여 명을 교 육시켰다. 하루 37명꼴이다. 입구 양쪽엔 단계별 기능자격을 거머쥔 직

원 이름을 빼곡히 걸어 놨다. 도요타는 근속 연수에 따라 ‘MPS(맨파워 스텝업)’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기 위한 사내 검정제도다. 이날 만난 스기야마 신지(杉山新治) 생산부문 총괄 전무는 “제조 는 결국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라는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의 고집이 투영 된 결과”라고 소개했다. 도요타는 낭비와 기다림 없는 생산방식을 전 세계 자동차 업계로 전파시킨 주인공. 이 른바 ‘도요타 생산방식(TPS)’이다. 수없이 회자된 도요타의 슬로건, ‘마른 수건도 짜 라’는 궁극의 효율을 뜻했다. 그러나 고급차 업계의 후발주자인 렉서스는 효율만으로 경 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가치 이상의 가격을 소비자에게 납득시킬 ‘스토리’가 필요했다. 특히 창업주의 손자이자 자동차 매니어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 취임 이후 이

납품업체로 이어지는 장인정신

명품처럼 완성되는 렉서스용 운전대  무늬목 총 67단계 거쳐 가공 규슈=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렉서스의 품질 욕심은 납품업체로 이어진다. 렉서스 LS의 운전대를 장식한 목재의 가공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마모쿠(사진)’라 고 부른다. ‘줄무늬 나무’란 뜻의 일본어다. 이 나무는 1924년 창업한 일본의 무늬목 전 문업체 호쿠산이 납품한다. 늠름한 원목이 운 전대의 매끈한 곡선을 따라 씌운 무늬목으로 거듭나기까지 38일 동안 총 67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이 여정은 원목을 종잇장처럼 얇게 써는 데

공정마다 최고 명문기업이 담당 장인의 손으로 ‘제로 결점’ 도전 “유럽 비해 후발이라 더 정성껏”

도요타 렉서스 LS의 운전대를 가공하는 모습.

서 시작된다. 직사각형 종잇장처럼 잘린 원목 은 염색을 거친다. 7단계 공정에 걸쳐 짙은 색 을 입히고 롤러로 꽉 눌러 붙이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그 결과 표면은 매끈해지고 무 결은 뚜렷해진다. 그 다음은 ‘파나소닉 에코 솔루션 인테리 어 빌딩 프로덕츠’라는 긴 이름의 회사 차례. 이 회사로 넘겨진 뒤 다시 17일간 9개 공정을 거쳐 다듬는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또 다른 원목을 깎아 ‘시마모쿠’에 씌울 몸통을 만든다. 그 다 음 ‘시마모쿠’를 접착제로 발라 덧씌운 뒤 열

처리한다. 완성된 부품은 금속 뼈대와 합친 다. 이를 통해 스티어링 휠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 다음엔 장인이 에어브러시로 목재 부위를 코팅한다. 섬세한 붓질로 티끌만 한 흠집도 지운다. 이후 손에 사포를 쥐고 일일 이 비벼 투명한 광택을 완성한다. 이제 부품은 덴도목공(天童木工)이라는 회사로 옮겨진다. 2010년 독창적 디자인의 나 무의자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거머쥔 가구회사다. 덴도목공에서 LS의 운전대는 14 일 동안 51개의 공정을 참고 견뎌 최종 완성된 다. 최근 렉서스는 ‘시마모쿠’ 적용 차종을 점

차 늘려가고 있다. 이야깃거리가 담긴 부품이 기 때문이다. 최근 내놓은 스포츠카 RC도 ‘시 마모쿠’ 조각으로 실내를 꾸몄다. 렉서스가 장인을 양성하고 마케팅에 활용 하는 건 후발주자의 열등감에서 비롯됐다. 지 난달 17일, 도요타 본사에서 만난 렉서스 인 터내셔널의 야마모토 다카시(山本卓) 상무는 “유럽의 차 메이커 가운데엔 100년 이상 된 곳 도 있다. 반면 렉서스는 25년 됐다. 50년이 지 나도 75년 격차는 좁히기 힘들 것이다. 우린 좋은 차를 제공하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열심 히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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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신년 토정비결을 다시 열어 봄

후서우퉁(滬首通), 선서우퉁(深首通) 10년 금리 3%

다음 주 preview

올해 1월의 첫 거래일에 미국·유럽·아시아 증시 동반 하

상하이의 별칭 후(滬)와 홍콩을 가리키는 강(港) 사이

10년물 국채 수익률 3% 넘는 국가 실종. 10년물 기준,

어닝 시즌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3분기 GDP 주목

락 기록. 월가는 새해 첫 거래일 등락을 한 해 운으로 믿

의 증권 거래 벽을 허무는 ‘후강퉁(滬港通)’. 상하이~

미국 국채는 지난주 장중 2% 선이 붕괴됐고, 독일 국

(21일, 전망치 7.2%). 급락한 시장 금리와 함께 미국

는 징크스. 신흥국 환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사태,

서울을 잇는 후서우퉁(滬首通)과 선전(深 )~서울을

채는 1%를 밑돌고 있으며 한국의 국고채 또한 2.7%대

9월 소비자물가지수(22일, 예측치 1.6%)도 살펴야.

IS, 스코틀랜드 분리투표와 에볼라까지. 이미 다사다난

잇는 선서우퉁(深首通)도 상상해 봄. 국내총생산(GDP)

로 영점 조정. 재정위기 재발 조짐의 그리스 국채만이

23일 미국·중국·유로존 제조업지수 이후로는 미국

(多事多難)한 2014년.

1위 국가에 등극한 중국에 대한 기대기 전법.

7~9% 구간을 급등락.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28~29일) 영향권.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세계 경제, 블랙스완은 없다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세계 경제의 앞길에 먹구름이 다시 드리 우고 있다. 경제가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 이 뚝 떨어지고 있다. 각국의 금융 및 원자 재 시장은 공포감에 떨고 있다. 한국의 코 스피지수도 1900 선까지 속절없이 밀렸다. 안전지대를 찾는 돈의 행렬 덕분에 각국의 채권값은 뛰고 있다. 뭐가 달라진 것일까? 6년 전 리먼브러더 스 파산사태와 같은 ‘블랙스완(예기치 못 한 대형 악재)’이 꾸물거리고 있는 것은 아 닌가? 그렇지 않다. 달라진 것은 없고, 예상 치 못한 위기랄 것도 없어 보인다. 다만 세 계 경제의 실상에 비해 과도하게 부풀었던 회복 기대감이 제자리를 찾아 숨을 죽이는 과정일 따름이다.

대한 최종 검사를 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 차를 일본 국내에서 대당 428만 엔에 팔고 있다.

런 움직임에 가속이 붙었다. 사상 최대의 리 콜, 대지진 등 갖은 악재도 위기의식을 부채 질했다. 렉서스는 장인에 주목했다. 다쿠미 활동은 렉서스 주력 생산기지인 규슈 공장에 서 2009년 처음 도입했다. 도요타 내에서 추 상적 개념으로 통용되던 장인을 제도화한 첫 시도였다. 세 명 뿐인 렉서스마이스터도 장인 도요타는 다쿠미의 존재를 좀처럼 외부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번 취재 때 인 원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렉서스 LS 와 GS를 만드는 도요타시 인근의 다하라(田 原) 공장에도 다쿠미 1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타 공장에서도 실제 다쿠미 는 먼발치에서 한 명 봤을 뿐이었다. 한국토 요타자동차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 부됐다.

자산시장, 조정이 필요한 시점 주요국의 증시가 그렇다.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우며 1 만7000 선을 돌파한 것은 아무래도 과속이 었다. 독일 DAX지수가 지난 7월 1만 선을 넘었던 것도 그렇다. 미 다우지수는 최근 5 년여 동안 160% 올랐다. 집값도 많은 지역 에서 금융위기 전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 이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창의적 기업들이 다 시 움트고 있긴 하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 니 너무 앞질러 갔다는 우려가 커졌다. 냉정하게 봤을 때 세계 경제는 여전히 각 국 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유동성에 떠올라 항해하는 배와 같다. 미국·유럽·일본 등 모 두 정책 금리가 제로 상태다. 각국 경제는 초저금리의 유동성 공급이 끊기면 꼼짝달 싹 못할 처지다. 육지로 올라가 바퀴 달린 차로 환승하기엔 아직 너무 멀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끝낸 뒤 내년 초 금리를 조기 인상하는 상륙작전을 단행할 것이라던 생 각은 부질없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9월 14 일자 본칼럼 참조>

[블룸버그]

렉서스엔 또 다른 종류의 다쿠미가 있다. 신차 주행시험을 책임진 ‘렉서스 마이스터’ 다. 렉서스를 통틀어 단 세 명뿐이다. 다들 경 험 많은 테스트 드라이버 출신이다. 이들은 실제 운전할 때의 ‘손맛’을 다듬는다. 또 언 론 대상의 시승회에 참여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그들의 평가를 수집한다. 이들은 도 요다 사장에게 주요 사안을 직접 보고할 만 큼 회사의 신임이 두텁다. 렉서스 마이스터는 업무 특성상 훈련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스승이 직접 뽑 은 제자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가는 방식으 로 운영된다. 2010년 6월 23일 독일에서 렉서 스 LFA를 시험 주행하다 BMW 3 시리즈와 정면충돌 사고로 사망한 나루세 히로무(成 瀬弘)가 제1대 렉서스 마이스터였다. 그는 도 요다 아키오 사장에게 운전을 가르친 스승으 로도 유명하다.

세계경제 힘겹게 굴러가지만 2008년처럼 무너지진 않을 듯 몇달 전의 낙관론이 제자리 찾는 중

미국은 양적완화 종료 및 조기 금리 인 상설이 맞물리면서 국채와 모기지(주택대 출) 금리가 한동안 크게 올랐다. 모기지 금 리(30년 만기 고정물)의 경우 2012년 3%까 지 떨어졌던 게 올 초엔 4.5%로 뛰었다. 그 러자 주택가격 오름세가 멈추고 민간 소비 도 위축되는 조짐을 보였다. 미국의 주가 상승은 실적 개선이 바탕에 깔렸지만 기업 들이 자사주를 적극 사들인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상당수 기업은 초저금리 를 활용해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 사주 매입자금을 마련했다. 이런 일도 채 권 금리 상승으로 어려워졌다. 유럽 쪽 사정은 매우 딱하다. 경제성장 률이 다시 0%대로 떨어졌고 디플레이션 (물가 하락) 걱정까지 커졌다. 금리 인하 카 드가 소진됨에 따라 조만간 양적완화에 들 어갈 움직임이다. 일본도 좋지 않다. 아베노 믹스의 유동성 펌프질에도 불구하고 경제 살리기가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구조 개 혁의 세 번째 화살은 불발탄이 된 지 오래 다. 중국은 7% 선만 유지된다면 경제성장 률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내수·서비 스산업 육성 등 경제체질 개선에 매진하고

한국도 양적완화 준비? 경제가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을 최후의 병 기는 준비돼 있다.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의 포탄을 다시 또는 더 쏘아대는 것이다. 정부는 국채를 대거 발행해 경기 부양 재원 으로 투입하고,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 그 국채를 떠안으면 된다. 장부상으로만 돌려 칠 뿐 사실상 국가 채무의 화폐화다. 과거 대공황 때를 보면 전쟁을 통한 총수요 확대 와 양적완화로 경제를 살렸고, 살인적 인플 레이션으로 국가 채무를 소멸시켰다. 지금 은 전쟁이 불가능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 니 속절없이 시간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역대 최저인 2.0%로 내렸다.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초 1.75%까지 또 인하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 게 끝일까? “한은이 금리를 더 내리고 양적 완화까지도 준비해야 한다.” 손성원 미 캘 리포니아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뚝심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월드몰 임시개장 일단 성공

미국서도 장인 손재주 담은 ‘크래프티드(Crafted) 라인’ 출시

중앙포토

지난 8월 16일, 렉서스는 미국에서 ‘크래프티드 (Crafted사진) 라인’을 출시했다. 장인의 섬세한 손 재주를 부각시킨 특별판이다. 렉서스 브랜드의 탄생 25주년을 기념해 선보였다. LS460 F 스포트, GS 350 F 스포트 등 5개 차종, 8개 모델에 걸쳐 나왔다. 이들 은 여느 렉서스와 뚜렷이 구분된다. 색깔과 관련된 선택이 불가능한 까닭이다. 차체 컬 러는 오직 흰색뿐이다. 도어 손잡이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검정으로만 칠했다. 무채색 외모와 달리 실내는 화려하다. 검정과 빨강이 강렬한 대조를 이뤘다. 특히 문 안쪽 패 널이 인상적이다. 빨간색이 가죽과 우레탄, 플라스틱, 금속 등 서로 다른 소재를 가로지 른다. 자세히 보면 빨간 가죽 쪽은 검은색 실, 검정 가죽 쪽은 빨간색 실로 꿰맸다. 렉서스는 35년 전통의 미국 가방업체 투미와 협업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렉서스는 ‘크래프티드 라인’ 구 매 고객에게 특별 제작된 투미 가방을 제공한다. 또 미국 팝 아티스트 윌 아이엠과 손 잡고 각종 홍보 영상을 찍고 그의 취향을 반영한 NX 개조 모델도 선보였다.

일러스트 강일구

kikwk@joongang.co.kr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의 수요 감퇴에 미 달러화 강세가 가세하면서 국제 원자재가 격은 추락하고 있다. 그 바람에 원자재 수 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브라질·인도네시 아 등 신흥국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래저래 세계 경제는 뒤숭숭하기만 하 다. 그러나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 는 장기 침체의 연속선상에서 벌어지고 있 는 일들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자산시장 투 자자들이 너무 앞서 김칫국을 마시며 세계 경제의 본격 회복 쪽에 베팅한 점이었다. 현실을 직시해 거품을 예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동치는 시장을 보며 공포에 떨 필요는 없다. 역발상의 대응이 유효할 수도 있다. 좋은 자산을 싼값에 사들일 기회가 다시 오고 있다는 관점이다. 세계 경제가 힘겹게 굴러가고 있지만 2008년처럼 속절없이 무 너져 내릴 가능성도 희박하다. 뭐가 문제 인지는 다 드러나 있다. 처방이 뭔지도 알 지만 경제의 근본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하기에 끝이 안 보일 따름이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신동빈(59·사진) 롯데그룹 회장의 뚝심이 일단 열매를 맺었다. 롯데그룹이 총 3조 5000억원을 들여 서울 잠실에 지은 롯데 월드몰 얘기다. 롯데월드몰은 지난 14일 상업시설을 개장했다. 신 회장은 16일 롯 데월드몰을 둘러보고 개장 상황을 점검 했다. 신 회장은 이날 “개장 초기인 만큼 고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불편함이 없 는지도 철저히 살펴야 한다”며 “롯데월드 몰이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 될 수 있도록 힘쓰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롯데월드몰은 신 회장의 아버지 신격호 (92)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숙원이다. 서 울공항(성남비행장) 항공기 항로 안전과 교통체증 등의 문제로 20여 년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지난 정부에서야 어렵사리 인허가를 받았다. 서울 송파구에 잇따라 나타난 싱크홀과 삼성동 헬기 추락 사건

등 롯데월드몰과 직접 연관이 없는 사고 에도 눈총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신 회장 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건물을 짓자” 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롯데월드몰 저층부 개장을 앞두고는 쉽 지 않은 결심도 했다. 막판까지 발목을 잡 던 올림픽대로 하부도로 미연결구간(1.12 ㎞)을 1100억원을 들여 지하도로로 연결, 이를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한 것이 다. 당초 480억원 정도를 예상했던 공사 비가 배 이상으로 뛰었다. 개장한 이후부터는 호기심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월드몰 인근 석촌호수 에 등장한 러버덕(Rubber Duck)을 보 기 위해 나흘 새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아직 끝난 건 아니다. 2016년 완공 예정 인 롯데월드타워(지상 123층·555m)는 공 사가 한창이다. 서울시가 임시 개장 조건 으로 내건 교통혼란 대책에 대해서도 우 려의 시선이 남아 있다.


20 Economy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비주얼경제사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⑮ 러시아의 영토 확장과 모피 교역

세계 최대의 국가를 탄생시킨 건 바로 이것  모피 화려한 모피 의상을 한 중년 남자가 서 있다. 값비싼 담비 털을 댄 타바드라는 망토를 차려입고 역시 고급 털로 만든 모 자를 쓰고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이 인 물은 당당하면서도 주의력 깊은 표정과 시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보통 초상화 를 많이 그리는 귀족이나 학자라고 보기 에는 덜 세련된 인상에다 얼굴엔 주름이

그림 3 엠마누엘 노이체, 알래스카 매입 서명,

깊고 손이 두텁다. 이 인물은 무엇을 하

1867년. 커다란 지구본을 사이에 두고 왼편의 미

는 사람일까?

국 대표(4명)와 오른편 러시아 대표(3명)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됐다. 러시아 세수의 10%에 육박하는 가치였 다. 술과 담배처럼 중독성이 강한 물품을 시 베리아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대신 모피를 얻 는 방법도 널리 쓰였다. 이 역시 러시아 정복 자들이 모피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려고 고안 해낸 방법이었다. 이런 공납과 교역을 통해 시베리아는 세계적 네트워크의 일부가 됐다. 강압적이고 잔인한 세계화 과정이었다. 알래스카의 사정도 시베리아와 별반 다르 지 않았다. 1740년대부터 알래스카로 진출 한 러시아 상인들은 원주민인 알류트족을 예 속화하거나 교역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이 들이 모피를 계속 공급하도록 만들었다. 학 살과 예속화, 질병의 창궐도 익숙한 광경이 었다. 러시아 상인들은 서로 간에 경쟁이 치 열해지자 무역회사를 합병해 규모를 키웠고, 그럴수록 알류트족은 더 험한 지역에까지 들 어가 모피 사냥을 해야만 했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그림 1 의 주인공은 러시아에서 모피 사업을 하던 상인 니콜라스 루츠였다. 루츠는 러시 아 북부지역으로부터 모피를 들여와 판매를 했는데 그다지 부유한 상인은 아니었다고 한 다. 렘브란트는 1631년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는데, 이주 후 받은 첫 의뢰였다. 새로 정착한 대도시에서 화가로서 명성을 쌓아가야 하는 입장이었던 렘브란트는 의뢰 인이 내심 원했을 이미지대로 초상화를 그리 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의뢰인의 옷이 아니 라 고객을 위한 최고급 모피 의상을 의뢰인에 게 입혔고, 주로 고관들을 그릴 때 쓰던 4분의 3 전신상 구도를 써서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과연 렘브란트는 부르주아 초상화의 세계를 열었다는 평가에 어울릴 만한 화가였다. 모피는 왕족이 선호한 최고급 명품 주목할 부분은 중상주의 시대에 네덜란드에 서 많은 수의 모피 수입상이 활동했다는 사 실이다. 사실 당시에는 네덜란드뿐 아니라 유 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수많은 모피 상인이 이익을 보고 있었다. 부르주아 계층이 부를 축적하면서 사회적 위상을 높여가던 시기였 다. 중세 내내 모피 옷은 왕족과 귀족이 사랑 하던 최고급 명품이었다. 특정한 모피, 예를 들어 어민(북방 족제비 의 흰색 겨울털로 판사의 법복 장식에 사용) 이나 배어(회색·흰색 무늬가 있는 다람쥐 털 로 귀족의 외투 깃 장식에 사용)는 최상 신분 층만 사용할 수 있다는 명령이 공포되기도 했고, 신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모피 종류를 지정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16세기 이후 부유한 신흥 부르주아들이 신분을 사들이고 고위직에 임명되기도 했는데, 이때부터 모피 는 중산층에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모피에 대한 인기는 모피의 최대 공급지 인 러시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 각지 가 새 교역로를 통해 단일한 네트워크로 통 합 돼가던 16세기에, 유라시아 면적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시베리아에서는 여러 부 족들이 세계화의 흐름과 단절된 채 서로 다 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수렵과 채집, 순록 사 육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1547년 자신을 차르라 칭하 고 즉위한 이반 뇌제가 중앙집권적 체제를 구축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제국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1580년대 초 대부호인 스트로가노프가(家)는 이반 뇌제에게 시베 리아에서 민·관 합동으로 모피 무역을 하자 고 제안했다. 차르가 이를 받아들이자 스트 로가노프가는 러시아 남방지역으로부터 싸 움에 능한 카자크(코사크)를 대규모로 고용 해 시베리아 정복 작전을 시작했다. 그림 2는 카자크 부대가 시베리아 시비르 칸국의 부대와 전투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 다.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가 이끄는 카자 크 부대가 총포로 무장하고서 재래식 무기를

그림 1 렘브란트, 니콜라스 루츠의 초상, 1631년. 러시아에서 모피사업을 하는 상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러시아, 모피 의상 인기 치솟자 털가죽 찾아 시베리아 정복나서 북미 알래스카까지 영토 확장 오판으로 알래스카 헐값 처분

사용하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장면이다. 화가 바실리 수리코프는 러시아 정교의 이콘을 휘 날리면서 용맹스러운 부대원들이 이단 세력 을 제압하는 모습을 장엄하게 묘사했다. 이후 카자크 부대는 시베리아 전역을 차 례로 정복했다. 그들에게는 러시아 정부로부 터 지원받은 병력과 무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 라, 시베리아인과 달리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있었다. 약 1세기 전 아메리카 인디오들이 스 페인 정복자들을 통해 들어온 천연두와 홍역 때문에 엄청난 사망률을 기록했던 것과 마찬 가지로 수많은 시베리아인들도 이 질병에 노 출돼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학살과 질병으 로 인구가 격감하거나 아예 절멸한 부족이

그림 2 바실리 수리코프,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정복, 1895년.

줄을 이었다. 또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동진(東進)은 계속됐다. 1640년대에 아무 르 강에 도달했고, 1650년대에는 만주 헤이 룽 강 지역에까지 진출해 요새를 건설함으로 써 청나라와 마찰을 빚었다. 조선에서 청의 요청에 따라 총수(銃手)들을 뽑아 나선(羅 禪·Russia) 원정대를 파견한 것이 바로 이때 였다. 유럽~아시아~아메리카 잇는 제국 이미 1639년 태평양 연안에까지 도달했던 러 시아의 정복부대는 동진을 계속해서 1740년 대 알래스카에 정착지를 마련했고, 이어서 1810년에는 캘리포니아 북부에까지 도달했 다. 그리하여 역사상 최초로 유럽~아시아~ 아메리카를 잇는 초대형 제국이 탄생했다. 광대한 시베리아를 손에 넣은 러시아는 무엇보다도 모피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방안 을 찾았다. 우선 모든 건강한 성인 남성에게 모피의 공납을 의무화했다. 과거에도 시베리 아인들은 야사크(Yasak)라고 불리는 이 공 납제도에 익숙해 있었다. 유력한 집단에 공 물을 바치고 하사품을 받는 형태였다. 러시 아의 통치하에 이제 시베리아인들은 모피를 러시아 왕실에 바치고 담배·도끼·칼 등을 받 았다. 17세기에 매년 20만 장 이상의 모피가 공납

알래스카, 유럽까지 모피 운송비 많이 들어 그러나 모피 공급처로서 알래스카는 한 가 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유럽까지 운송비 가 많이 든다는 점이었다. 유럽인들이 북아 메리카의 모피 자원을 공략하는 데에는 대 서양을 건너 대륙의 동북쪽으로 가는 것이 더 유리했다. 영국의 허드슨만회사(Hudson’ s Bay Company)와 같은 경쟁자와 비교해 러시아의 회사들은 밀리기 시작했다. 알래스 카를 둘러싼 러시아의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 됐다. 러시아는 1854~1856년 크림전쟁에서 영 국·프랑스·터키와 싸웠으나 패배했다. 재정 이 악화하고 군사력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차 르와 관리들은 드넓은 제국의 영토 중에서 경제적 가치가 작은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알래스카에 유용한 자원이 얼마나 많은지 조사를 해보니 석탄 매장량은 적고, 고래잡이는 어렵고, 금 채굴 도 신통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륙 탐사를 통해 앞으로 기대 할 수 있는 모피의 양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 다. 그리하여 자원개발 전망이 나은 시베리 아의 아무르 강 유역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 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867년 러시아와 미국 간에 역사적 조약 이 체결됐다. 러시아가 광대한 알래스카 땅 을 720만 달러에 미국에 매각하는 내용이었 다. 이 땅이 훗날 금·석유·천연가스가 가득한 자원의 보고로 드러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차르는 1에이커(약 4000㎡)당 불과 2 센트라는 헐값에 이 땅을 넘겼다. 모피에서 시작된 러시아의 영토 확장은 여기서 마무리 됐다. 결정적 오판으로 인해 러시아는 지금보 다 더 큰 영토대국, 세 대륙을 잇는 유일한 영 토대국이 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 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회학회 이사를 맡고 있 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 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 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conomy 21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매출 하락으로 판매전략 바꾸는 위스키 업체

고급 위스키 열풍에

양주 시장 위축 속에 ‘싱글몰트’로 활로 모색 270만

245만 212만

2010년

2011

2012

1만6575(7.1) 1457

185만

스코틀랜드=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지난달 말 스코틀랜드 위스키 업체 더 글렌 리벳이 한국과 중국의 기자들을 초청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초대는 특별했다. 우선은 아시아에서 적극적 마케팅을 해 오지 않은 글렌리벳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글 렌리벳은 위스키·보드카·와인·샴페인 등 다 양한 주종의 상품을 보유한 프랑스계 대형 주류업체 ‘페르노리카’의 한 브랜드다. 위스 키 중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많 이 팔리는 발렌타인과 시바스 리갈 등의 브 랜드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 두 주력 브 랜드 뒤에 글렌리벳이 가리워져 있었다. 둘 째는 초청이 아시아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글렌리벳이 새 시장으로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다. 발렌타인·시바스 리갈과 달리 글렌리벳 은 ‘싱글몰트’ 위스키다. 하나의 증류소에 서 생산된 몰트(보리가 원료) 위스키를 말한 다. ‘블렌디드’ 위스키인 발렌타인·시바스 리갈에 비해 생산·판매량이 적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위스키의 90% 이상이 여러 증류 소에서 생산한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밀·호 밀 등이 원료) 위스키를 섞어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다. 페르노리카가 한국에서 글렌리벳 마케팅 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데는 위스키 시장의 ‘급변사태’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루던 한국의 위스 키 시장은 최근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2010 년에는 270만 상자(500mL짜리 9병 기준)가 팔렸으나 지난해에는 185만 상자가 판매됐 다. 3년 새에만 32%가 줄었다. 주류업계에서 는 경기 위축, 음주문화의 변화, 와인·막걸리 등 다른 주종의 판매 성장 등을 주요 원인으 로 꼽는다. 그런 가운데 유독 싱글몰트 위스 키는 판매가 늘어났다. 대표적 브랜드인 글 렌피딕의 경우 올해 9월까지의 판매량이 지 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5% 늘었다. 최고급 싱글몰트인 발베니는 같은 기간에 25.3%의

1만5482

글렌피딕

발베니

1826(25.3)

더 글렌리벳

2934

2013년 2014년

스코틀랜드=이상언 기자

4102(39.8)

2013

블렌디드 vs 싱글몰트 판매 추이 (단위: 상자, 1~9월 기준)

2013년 135만 3625

2014년

127만 2311 6% 감소

3만9927

4만3319 8.5% 증가

블렌디드 위스키

싱글몰트 위스키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있는 ‘더 글렌리벳’ 양조장에서 제조 장인이 오크 통에서 빼낸 위스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싱글몰트 국내 3위 ‘더 글렌리벳’ 글렌피딕·맥캘란과의 승부에 나서 블렌디드 위스키는 판매 부진하지만 싱글몰트 위스키는 거침없이 성장

해마다 줄어드는 위스키 시장 단위: 상자, 1상자=500㎖ 9병 기준 270만

245만 212만

2010년

2011

2012

185만

2013

3000만원짜리도 한국에 출시 예정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글렌리벳도 40% 에 가까운 매출 신장이 있었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위축과 싱글몰트 위스 키의 급성장으로 페르노리카처럼 양쪽 브랜 드를 다 가진 업체는 마케팅 전략 수정이 불 가피한 상황이다. 위축된 판매실적을 만회 하는데 싱글몰트가 효자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노리카의 권오석 홍보대사 는 “아직도 주력은 블렌디드 위스키이지만 글렌리벳과 같은 싱글몰트 시장의 잠재력이 커 전체적인 판매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글렌리벳은 전 세계 시장에서는 글 렌피딕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미 국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다. 그런데 한국에 서는 1, 2위를 다투는 글렌피딕과 맥캘란에 많이 뒤진 3위다. 국내에서의 싱글몰트 위스키 판매 성장에 는 달라진 음주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 고 있다. 위스키 바이블이라는 책을 쓴 유 성운 한국위스키협회 사무국장은 “접대·회 식자리에서 폭음하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자

[사진 페르노리카]

연스럽게 술을 즐기는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위스키 중에서는 더 맛과 향이 풍부한 싱글몰트를 즐기는 이들이 늘 었다”고 분석했다. 싱글몰트가 인기를 끌면서 싱글몰트 내에 서도 고급화·특성화가 진행 중이다. 국내 면 세점에서 ‘12년’ 품목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글렌피딕의 자매 브랜드인 발베니는 ‘싱글 캐스크’ 위스키까지 판매 중이다. 싱 글 캐스크는 하나의 오크통에서만 빼낸 위 스키를 그대로 병에 담은 것을 말한다. 하나 의 증류소에서 생산한 싱글몰트를 넘어서서 하나의 오크통에 담긴 원액만 사용하는 고 급 술이다. 싱글몰트 붐 속에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갖추고 있는 ‘몰트 바’가 속속 생겨나는 가 운데 호리병처럼 생긴 위스키 전용잔을 쓰는 이도 늘었다. 유 사무국장은 “‘원샷’ 문화가 줄어들고 좋은 술을 적당량 마시는 문화가 퍼져 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소 3000만원짜리 위스키가 곧 국내에 들 어온다. ‘더 글렌리벳 윈체스터 컬렉션 50’ 이다. 1964년에 원액을 오크통에 담은 50년 된 술이다. 윈체스터는 글렌리벳의 제조 총 책임자인 위스키 장인(匠人) 앨런 윈체스터 (56)의 성(姓)이다. 글렌리벳의 모회사인 대형 주류업체 페르 노리카는 이 술을 딱 100병만 만들어 전 세계 에 판매키로 했다. 중국에는 5병이 할당됐다. 한국에서는 몇 병을 팔지, 어느 정도로 값을 매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페르노리카 관계자는 “현재는 한 병 정도를 판매할 계획 인데 변동 가능성도 있다. 가격은 1만8000파 운드(약 3080만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 했다. 이 술을 누군가가 산다면 정식으로 국 내에 수입된 위스키 중에서 최고가의 거래가 된다. 글렌피딕은 지난해 50년 된 싱글몰트 위스키를 병당 2200만원에 판매했다. 더 글렌리벳 윈체스터 컬렉션 50의 알코 올 도수는 42.3도다. 70도 안팎인 위스키 원 액이 50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과정 에서 알코올이 조금씩 증발한 상태 그대로 다. 인위적으로 도수를 조절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선 40도 이하는 위스키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 래서 좀처럼 50년 이상 숙성시키지 않는다. 와인과 달리 ‘고령’ 위스키가 드문 이유다.

‘더 글렌리벳’의 50년 숙성시킨 위스키.


22 Health Plus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다시 등장한 김정은  몸 상태 추정해 보니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고도 비만 해당, 살 못 빼면 건강 장담 못해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청춘의 양극화

일러스트 강일구

얼마 전 한 교수에게 들은 얘기다. 오전 수업에 빠진 학생이 찾아왔다. 과제 준비를 하느라 밤 을 새우고 수업에 달려오다가 쓰러져 병원에 가 느라 결석을 했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무리를 하다 실신 비슷한 것을 했다는데, 가방에서 주 섬주섬 꺼내 든 것이 처방전이었다. 어떻게든 해 명해서 불이익을 줄이려는 안간힘이었다. 교수 가 “네(건강)가 먼저지…”라고 하자 학생은 갑 자기 울음을 터뜨렸단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더 나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나머지 시 간엔 취업을 위해 세칭 ‘스펙’을 쌓아나가야 한 다. 거기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삶. ‘대학생활의 낭만’은 1970년대 영화에나 나 오는 얘기로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대학생들이 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우월한 성취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겨우 남들 하는 만큼 해내 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허덕이다 결국 쓰러 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한쪽의 20대도 있다. 대학과 학과가 마 음에 들지 않는다고 휴학을 했다. 편입이나 반 수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적성에 맞 지 않으니 일찍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위도식하면서 걱정하는 부모에 겐 짜증부터 낸다. “가만히 내버려둬. 내가 알아 서 할게요”라고 할 뿐이다. 이런 시기가 길어진 한 청춘이 나를 찾아왔 다. 얘기를 해보면 기대치는 높은데 현실의 수 준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엄청난 노력 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미 또래 동기들은 저 멀리 달려가고 있어서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자녀가 다칠까봐 실패하지 않도록 잘 보 호해 온 부모들의 양육 부작용도 있었다.

이 정도는 해야 보통이고, 최소한의 기준이라 고 여기는 선(線)이 감당하기 어려운 선으로 올 라갔다. 처음엔 학벌·학점·토익 점수를 ‘취업 3 종 세트’라 하더니 여기에 어학연수와 자격증이 추가돼 5종, 공모전 입상에 인턴 경력까지 7종 으로 진화했다. 요새는 봉사와 성형수술까지 언 급된다. 이 정도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게 아 니라 겨우 입사원서를 낼 준비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웠다. 그래서 열심히 했을 뿐이다. 열 심히 하곤 있지만 선배나 친구들의 모습을 보 면 실패의 연속이다. 그러니 더 많은 것을 완벽 히 준비하는 길밖에 없다. 준비는 불안을 잠재 우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밤을 새우고 무리 하다 쓰러진다. 다른 한쪽에선 저렇게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 아예 따라잡을 엄두 를 내지 못한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 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개인에겐 합리 적인 선택이 된다. 그러면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판단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춘은 이같이 양극화하고 있다. 겨우 보통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쓰 러지는 자와 현실적으로 쫓아가는 것이 불가능 해 그냥 머물러 있는 자. 양쪽 모두 바람직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소모적이기만 한 비합리적인 경쟁은 청춘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어느 쪽이건 고통 받는 이들만 늘리고 있다. 사회 문턱에 들 어오기도 전에 소진돼 버리거나, 아무것도 시작 해보지 못한 채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늘 어나는 사회가 지금 여기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90㎏(2010년 10월 국내 언론에 사진이 처 음 공개됐을 때)→120~130㎏(최근 40여 일 간의 잠적 전)→110㎏ 내외(잠적 후). 공식 자료는 아니지만 김정은 북한 국방 위원회 제1위원장의 대략적인 체중 변화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14일(현지 시간) “김정은 위원장이 비만 치료를 위해 중국에서 위(胃) 밴드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선 중국의 한 소식통을 인용,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서 수술을 받 았고 김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69주년 기념 식 등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도 이 때 문이었다”고 했다. 기사의 진위를 떠나 40 여 일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김 위원장 이 10㎏가량 빠진 모습을 보였다. 30대 초반인 김정은은 고도 비만이다. 키 1m75㎝, 체중 120~130㎏으로 추정되 는 그의 신체 수치를 근거로 체질량 지수 (BMI)를 산출하면 40 정도다. 비만도의 기 준으로 사용되는 BMI는 자신의 체중(㎏) 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BMI가 30∼40 미만이면 고도 비만, 40 이상이면 초고도 비만으로 분류된다. 서울365mc위밴드병원 조민영 병원장 은 “BMI 40 정도의 고도 비만이라면 지방 세포에서 염증 물질이 과다 분비되면서 대 사증후군을 포함한 각종 합병증이 발생 가 능한 상태”이며 “젊더라도 체중 감량에 곧 바로 들어가지 않으면 건강을 장담할 수 없 다”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식이요법이나 운동처 방으론 문제를 해결하긴 힘들고 수술 등 의 학적인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고도 비만 환자들은 스스로 식욕 조절이 어려운 데다 김 위원장처럼 관절(또는 발 목) 부상이 있는 사람이 섣불리 운동을 했 다간 관절 건강만 악화될 수 있다. 수술은 가장 마지막에 선택하는 비만 치 료법이다. 수술 도중 숨질 확률이 평균 0.3 ∼0.5%이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확실한 체중 감량 효과를 안겨 준다. 비만과 관련 된 사망률이 18.2%에 달하므로 고도 비만 환자에겐 수술이 ‘남는 장사’일 수 있다.

지난 14일 40여 일 만에 공개 석상에 모습 드러낸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

외모로 보면 체질량 지수 40 추정 살빼려 운동하다간 관절에 문제 위 밴드축소술 등이 최후의 선택 수술 후 식사, 3분의 1로 줄여야 김 위원장 같은 고도 비만 환자 치료를 위한 수술을 배리아트릭(Bariatric) 수술 이라 한다. 그리스어로 체중을 뜻하는 ‘바 로스(baros)’와 치료를 의미하는 ‘이아트 릭(iatrike)’을 합성한 단어다. 위 밴드술· 위 우회술·위 축소술이 대표적이다. 배리아트릭 수술 중 가장 간단하고 부담 이 적은 것은 위(胃) 밴드 수술이다. 수술 자체의 사망률은 0.05∼0.1%다. 위 밴드술

[뉴스1]

은 식도와 위가 이어지는 부위를 ‘위 밴드’ 로 묶어 위장으로 음식이 덜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개복해서 위를 직접 자르지 않아도 되므로 외과 수술로 인한 합병증을 줄일 수 있으며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 최대 장점 이다. 수술이 잘못될 경우 밴드를 제거하 면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단 밴드 안의 풍선 부위에 주기적으로 식염수를 채우는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위 밴드술을 받았다고 가정 하면 수술 후 4~6주 사이에 1차 필링(밴드 를 조여 주는 시술)을 위해 다시 병원을 찾 아야 한다. 4~6주 지나면 몸속의 위 밴드 가 자리 잡고 수술 상처도 거의 아문다. 위 밴드술을 받은 것만으로 만사 OK는 아니다. 매주 1㎏ 정도 감량하는 것을 목

표로 삼고 식사량을 평소의 3분의 1 이하 로 줄여야 한다. 수술을 받기 전처럼 과식 을 일삼는다면 식도 확장증이 생길 수도 있 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들이고 고지방·고열량 음식의 섭취도 자제해야 한 다. 김정은이 즐겨 먹었다는 에멘탈 치즈는 100g당 열량이 255㎉다. 밥 반 공기(105g) 의 열량이 150㎉인 것에 비하면 고열량 식 품이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 위 밴드술의 적용 대상은 BMI가 35 이 상이거나, BMI는 30~35 사이지만 비만으 로 인해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관절염 등이 동반된 사람이다. 국내에선 가톨릭대 학 계열 병원·인천 길병원 등과 일부 개원 가에서 시술되고 있으며 비용은 600만∼ 800만 선. 위 밴드 수술이 적용되는 환자들보다 체 중·BMI가 더 높은 사람에겐 위(胃) 우회 술이 추천된다. 위를 15~20mL 정도로 조 그맣게 만들어 나머지 위와 분리시켜 놓은 뒤 이 작아진 위와 소장을 연결시키는 수술 법이다. 따라서 섭취한 음식 대부분이 위와 십이지장을 거치지 않고 소장으로 바로 내 려간다. 수술 받으면 살 빠지는 ‘소리’가 금 방 들린다. 하지만 위를 최대 99%까지 잘 라내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가톨릭대 의대 대전성모병원 비만클리 닉 이상권 교수는 위 우회술을 받으면 수 일 만에 분명한 당뇨병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비만수술뿐만 아니라 당뇨병 치료 의 새로운 방법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 다며 복강경 수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 다. 비용은 1000만원 안팎. 위(胃) 축소술(소매절제술)은 위의 불룩 하게 나온 부분을 아래위로 길게 잘라 위 를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수술법이 다. 이 수술을 받으면 위의 크기가 거의 10 분의 1로 줄어든다. 역시 복강경 수술이 가 능하며 비용은 900만원 정도. 고도 비만 환자들이 배리아트릭 수술을 받으면 한 끼 먹는 양이 밥과 반찬 모두 합 쳐도 종이컵 하나를 넘지 못한다. 국내에선 배리아트릭 수술이 대부분 구멍 몇 군데를 뚫어 수술하는 복강경으로 이뤄지기 때문 에 회복이 빠르고 상처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수술 시간은 보통 2시간 이내다.

물치료 명소, 프랑스 남부 아벤느

온천수 마시고 몸 담그고  아토피 환자, 3주 만에 치료 효과 아벤느=임소영 기자 syim@joongang.co.kr

어릴 때부터 꽤 심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 생했던 최다슬(21)씨. 그는 지난 7월 프랑 스의 한 작은 마을을 방문해 온천수를 이 용한 수(水)치료를 3주간 받았다. 최씨는 피부 케어 프로그램과 함께 치료 도중 온천수를 마셨다. 온천수 치료 효과 를 유지하기 위해 아토피 전용 제품을 환부 에 수시로 발랐다. 최씨는 “온천센터에 온 뒤 아토피 약 복 용을 중단했으며 3주 만에 증상이 확실히 호전됐다”며 “청정한 환경에서 순수한 물 을 활용한 저(低)자극성 치료가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최씨가 방문한 곳은 프랑스 남부의 중심 도시 툴루즈에서 동쪽으로 버스를 달려 2 시간쯤 가는 거리에 위치한 아벤느 온천센 터. 해마다 이곳엔 세계 각지의 민감성 피 부 환자 약 3000명이 피부과 의사의 처방전 을 들고 방문한다. 이곳 온천수가 피부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입소문이 나서다. 프

한 여성이 아벤느 온천센터에서 아토피 피부염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랑스인들이 여기서 치료받으면 건강보험 도 적용된다. 이곳 온천수의 효능이 처음 알려진 건 300년 전이다. 피부병이 심했던 말들이 온 천수를 마시고 낫는 걸 보고 1743년에 온 천장이 들어섰다. 외지고 길이 험해 초기엔 귀족들이나 즐길 수 있는 호사였다. 1874년 프랑스 보건부는 피부병을 치유하는 아벤 느 온천수의 효능을 공식 인정했다. 그 후 피에르 파브르 그룹이 인수해 이곳에 민감 성 피부·건선·가려움증 등 피부 개선을 위

한 현대식 온천센터를 세웠다. 1871년 미국 시카고 대화재 당시엔 화상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이곳 온천수를 수출 하기도 했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 아벤느 도 이 온천수를 토대로 설립됐다. 아벤느인터내셔널 브랜드 누리아 페레 즈 최고경영자(CEO)는 “온천수의 활성성 분이 아벤느 제품에 들어간다”며 “온천수 의 피부 진정 효과와 항(抗)염증 효과에 대 한 연구 결과 50여 편이 의학전문지에 실리 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난치병인 아토피 피부염 치료 도 이뤄진다. 아토피 환자는 매일 2시간씩 입욕해 샤워·안개분사·마사지·보디랩핑 등 다양한 치료를 받는다. 아벤느 온천센터 마리 앙주 마르탕시 원장은 “원래 온천수 온도는 25.6도인데 따뜻한 기운을 느낄 정 도로 가열해 사용한다”며 “스파를 하는 것 처럼 욕조 안에서도 거품과 함께 온천수가 피부를 부드럽게 두드린다”고 설명했다. 안개 분사는 안개가 낀 듯 미세한 온천수 가 사방에서 온몸을 적시는 것이다.

마리 앙주 원장은 “아토피 피부염 환자 는 40도가 넘는 뜨거운 물보다 32~34도 물 에서 손으로 비누 성분 없는 세안제를 사 용해 샤워나 목욕(15분 이내)을 하는 게 좋 다”고 조언했다. 각질이 많이 일어나는 사람에겐 각질이 잘 떨어질 수 있도록 전문의가 직접 국소 부위에 온천수를 고압 분사해 주는 치료를 실시한다. 이곳엔 피부과 의사와 의료 전문 가가 상주해 일대일 케어가 이뤄진다. 그렇다면 아벤느 온천수가 피부염을 완 화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벤느 수자원연구소 베르트랑 셀라스 책임연구원은 “적절한 미네랄 함량과 미 생물”이라며 “염증 치료와 가려움증 완화 효과가 있는 ‘아쿠아 돌로미아에(Aqua Dolomiae)’란 미생물이 아벤느 온천수에 서만 발견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아토피나 건선 환자들에겐 비싼 항공권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치료(케어와 의사 치료, 600~700유로)와 숙식비용은 비 교적 합리적이다.


Sports 23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LPGA 데뷔 첫해 2승 ‘수퍼 루키’ 이미림

“잃을 것 없다”당찬 샷  큰 바위 같은 LPGA가 흔들 8월엔 박인비를 꺾더니 지난 4일엔 세계 1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까지 제쳤다. ‘강자 킬 러’ ‘수퍼 루키’ 이미림(24·우리투자증권) 얘기다. 이미림은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 가운데 유일 하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퀄리파잉 스쿨에 응시했다. “국내 시장도 좋아졌는데 한국에서나 잘 하지 뭣 하러 미국까지 가느냐는 분들이 많 았어요. 아빠도 미국은 왔다 갔다 하는 데도 오래 걸리니 일본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하 셨죠. 하지만 어렸을 때 박세리 언니를 보면 서 나도 꼭 제일 큰 무대, 미국에 가겠다고 다 짐했어요.”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태광컨트리클럽에 서 만난 이미림은 당찬 목소리였지만 어린 나이답지 않게 신중했다. 왼쪽 손목에 피로 골절을 앓는 상태였지만 이날 우리투자증권 VIP고객 40명을 대상으로 한 일일 코치 행사 가 끝난 뒤 “힘 닿는 데까지 뭐든지 열심히 해 야죠”라고 말했다. -이달 초 중국 베이징 레인우드 클래식에 서 세계 1위 스테이시 루이스를 꺾고 2승을 올렸다. 바위 위에서 날린 샷이 화제였다. “그땐 어떻게 해서든 공을 그린에 올려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 뒤에도 또 해 저드가 있었거든요. 해저드 뒤에 또 해저드 니까 어떻게 해서든 그린에 올리고 최대한 연 장전을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린에 올리기 전엔 솔직히 제가 파 세이브를 할 수 있는 확 률이 굉장히 낮았거든요. 핀을 보고 칠 수 있 는 상황도 아니고, 10야드 이상 오른쪽을 보 고 치는 상황이었어요.” -18번 홀에선 벙커샷에 이은 버디로 우승 했다. “그 코스를 제가 많이 돌았던 게 아니라 어

지난 5일 레인우드 클래식 17번 홀 해저드 옆 바위 위에서 샷을 준비하는 이미림. 1998년 박세리의 맨 발샷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J골프]

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몰랐어요. 한 타 차 선두 였고 오른쪽에 해저드가 있다는 건 알았어 요. 그런데 깊게 들어와 있는 줄 알았는데 아 니더라고요. 그래서 중앙을 보고 세컨 샷을 했는데 이게 조금 잘못 맞아서 벙커 쪽으로 가게 됐어요. 벙커에 들어가도 살릴 자신이 있어서 크게 걱정은 안 했고요. 마지막 버디 퍼팅을 하는데 감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올해 8월 마이어 클래식에서 박인비와 명 승부를 펼쳤다. 당시 첫 승 소감은. “인비 언니랑 그때 처음 친 거였거든요. 저는 솔직히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 는 루키이고 언니는 세계 랭킹 2위잖아요. LPGA 첫해여서 빨리 적응하는 게 목표였지 언니를 꺾어보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내 플 레이만 잘하자고 생각했죠. 만약에 내가 우 승권에 들어가면 최대한 쫓아간다 정도?”

미국 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서 언니랑 가게 됐죠. 아빠도 저 혼자 보내기는 좀 그렇고, 언 니가 저보다 9살 위니까 믿으셨겠죠. 엄마는 제게 용기 주는 역할을 하세요. 제가 힘들 때 엄마 생각하면서 많이 참으면서 했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들었다. “3주 전에 메트라이프 시합 때문에 한국 에 왔었는데 두 번째 날인가 엄마한테 ‘아빠 가 왜 음식을 제대로 안 드시냐’고 했더니 아 빠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앞이 캄캄했어요. ‘왜 우리 아빠가 암이지?’

아빠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걱정되죠.” (이미림은 14일에도 슬픈 소식을 접하 고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이미림은 아버지에게 15일 열린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 출전을 취소하 고 광주의 장례식장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 나 아버지는 “골프만 열심히 쳐라”라고 하며 못 오게 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둔 딸의 경기 력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 음이었다.) -아버지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냥 저를 생각해서 열심히 할 거예요. 내 직업이고 내가 즐기고 있는 거니까. 가족 들 때문에 하기도 하지만 저 자신 때문인 게 더 커요.” -남자친구는 있나. “어휴, 만들고 싶은데 없어요. 골프만 치 다 보니까 없는 것 같아요. 주변에 다들 여자 뿐이고.”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군가. “첼라 초이(최운정)랑 제일 친해요. 중학 교 2학년 때부터 10년지기죠. 제가 항상 먼저 미국 가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가 먼저 갔어 요. 진짜 ‘베프(베스트 프렌드)’예요. 어려운 것 서로 얘기하고 많이 도와주고.” -우연히도 농협의 우리투자증권 인수가 결정된 뒤 농협 로고를 달고 2승을 거뒀다. “농협 측에서도 좋아하시더라고요. 행운 의 부적 같기도 하고, 로고가 저한테 잘 맞 아요.” -올해 신인왕 되는 게 목표겠다. “리디아 고(현재 신인왕 포인트 1위)랑 점 수 차가 많이 나요. 다들 리디아가 할 거다 생 각하는데 최대한 쫓아가 봐야죠. 그런데 신 인왕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목표는 신인왕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 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계획은. “지금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2학년 휴 학한 상태예요. 골프선수라고 봐주지 않고 수업을 다 듣지 않으면 학점을 안 줘요. 공부 는 나이 들어서 해도 되고 제겐 골프가 우선 이니까 휴학했어요. 한국에 있을 땐 골프를 어느 정도 치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국 가고 나서 오래오래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소한 (박)세리 언니 나이 까지는 쳐야 하지 않을까요. 골프는 마음대 로 되는 게 아니어서 재미있어요. 항상 하던 대로 생각하고 흘러가는 대로 플레이하면서 그렇게 오래오래 골프를 치고 싶어요.”

고 평균자책점이 5.84에 이른다. 마무리가 무 너지자 삼성 불펜 전체가 흔들렸다. 삼성은 2012년 5월 24일 롯데전부터 7회 이후 앞선 경기에서 144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지만 올해 5월 27일 LG전에서 이 기록이 깨졌다. 과거엔 6회 이전에 삼성을 앞서지 못하면 이길 수 없었다. 올해는 다른 팀들이 삼성 불 펜 공포증으로부터 벗어났다. 특히 이달 삼 성이 5연패(10월 6~11일)에 빠지는 동안 불펜 이 난타를 당했다. 삼성에 넥센은 가장 강력한 상대다. 홈런 왕 박병호를 비롯해 강정호·서건창 등 MVP 후보가 세 명이나 있다. 20승 투수 밴헤켄도 있다. 올 시즌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 7승1무 8패로 선전하면서 시즌 막판 선두 자리를 위 협했다. 넥센이 플레이오프를 4차전 이내에 끝내 사흘 이상 쉴 수 있다면 삼성과 힘 대 힘 으로 맞붙을 수 있다.

정규시즌 3위 NC는 포스트시즌을 처음 치르는 게 약점이다. 그러나 단기전에 돌풍을 일으킬 요소는 분명 갖고 있다. 승부사 김경 문 감독 지휘 아래 확실한 선발투수들이 있 다. 준플레이오프를 대비해 에릭-웨버-이재 학이 이어 던진 지난 14일 경기에서 삼성 타 선은 7이닝 동안 무득점(경기는 1-2 삼성 패) 에 그쳤다. 상대전적은 삼성이 10승1무5패로 앞선다. LG도 만만치 않다. 4월 최하위에서 4위 까지 치고 올라온 저력이 있다. 양상문 신임 감독이 유원상-신재웅-이동현-봉중근으 로 이어지는 불펜 정비에 성공했다. 지난해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참가, 플레이오프에 서 두산에 완패했지만 올해는 안정적인 느 낌이다. 특히 시즌 막판 여러 차례 역전승으 로 팀 분위기가 좋다. 삼성과의 상대전적은 7승9패.

부친, 일본행 권유에도 LPGA 고집 세리 언니처럼 되고 싶어 미국 택해 농협 로고 달고 우승 ‘행운의 부적’ “골프는 마음대로 안 돼 재밌어요”

-골프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아빠가 광주광역시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취미 삼아 쳐보라고 하셨죠. 그러다 중학교 2 학년 때 전국 대회에 나갔는데 제가 너무 못 치는 거예요. 아빠나 저나 충격을 받고 그때 부터 열심히 했어요.” -LPGA 가자마자 컷 탈락하며 고전했다. “고생 엄청 많이 했죠. 일단 처음에 간 곳 이 바하마였는데 거기가 너무 예쁜 거예요. 내가 이런 데서 골프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좋아서 약간 들 떠 있었어요. 또 시합을 계속 하다 보니까 이 동거리도 만만치 않고 한국의 친구들이 그 립기도 하고. 제가 ‘멘털 선생님(정신적 코 치)’이 있거든요.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도 네가 성공하려고 미국까지 갔는데 이렇게 안 좋게 들어오는 것보다는 성공해 서 들어오는 게 좋지 않겠니’ 하시는 거예요.

우리투자증권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순간 머리에 뭘 맞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사 실 한국에 들어올 생각을 하고 전화를 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아, 이건 아닌 것 같 다.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 시합에 서 우승했어요. 멘털 선생님이 엄청 큰 역할 을 하신 거죠.” -특이하게 언니가 매니저로 일한다. “일단 아빠는 ‘네가 미국에 간다면 아빠 는 안 간다’고 선언하셨어요. 미국이 너무 멀 어서 비행기 타기도 힘드시대요. 그래서 일 본으로 가길 원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2014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19일 개막

삼성 4연속 천하통일, 어떤 팀 만나도 험난할 듯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2014 프로야구는 뻔한 것 같았다. 삼성이 지 난 15일 대구 LG전에서 승리, 4년 연속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야구 33년 역사 상 최초의 기록이다. 삼성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정규시즌 챔피언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플레 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팀을 이겨 통합우승 에 성공했다. 올해 정규시즌도 과거 3년과 비 슷한 흐름이다. 그렇다면 2014 포스트시즌도 뻔한 결과, 즉 삼성의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 릴까? NC는 창단 3년, 1군 진입 2년에 포스트시 즌에 진출했다. 정규시즌 막판 4위에 턱걸이 한 LG와 19일부터 준플레이오프(5전3선승 제)를 치른다. 여기서 이기는 팀이 정규시즌 2위 넥센과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를 벌이

넥센, MVP 후보 셋 포진한 난적 NC는 특급 선발진  단기전 강해 LG, 뒷심 강해 끝까지 안심 못 해

이승엽

박병호

고, 플레이오프 승자가 삼성과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다. 하위 팀들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치르며 지치고 다치는 동안 삼성은 힘을 아끼 고 전략노출을 막을 수 있다. 지난 12년 동안 정규시즌 우승팀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건 정규시즌 1위 프리미엄을 입증한다. 같은 이유로 이번에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 승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2014년 삼성은 과거의 삼성과 다르다. 최강의 마무리투수 오승환(32·한 신)이 일본으로 떠난 공백 을 메우지 못했다. 일본 과 미국에서 활약했던 임창용(38)이 31세 이브(구원 2위) 를 거뒀지만 블 이동현 론세이브가 9개나 되


24 Column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9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죽을 땐 현명한 사람 돼 죽고, 살 때는 미친 듯 살라”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존 F 케네디(1917~63) 전 미국 대통령은 자 신을 일컬어 “환상은 없는 이상주의자(an idealist without illusions)”라고 했다. 하지 만 환상 없이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까. 혹자 는 “통일은 현실로 접근해야지 환상이 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환상 없이도 통일 을 성취할 수 있을까. 결혼도 마찬가지다. ‘건 강한’ 환상 없이 결혼할 수 없다. ‘결혼은 미 친 짓’이라고 ‘알아 버린(?)’ 사람들은 결혼 할 수 없다. 통일에도 결혼에도 ‘대박’이라는 꼬심의 울림이 있어야 구미가 당기는 법이다. 여자 돈키호테로 불린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는 세상의 모든 환상을 대표한다. ‘그는 돈키호테 기질이 있다.’ 이렇게 말하 면 한국어를 비롯해 세계 모든 주요 언어에 서 뜻이 통한다. 그만큼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1547~1616) 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불행히도 세르반 테스는 평생 가난했다. 돈키호테가 베스 트셀러가 돼 인쇄를 거듭하게 된 다음에도 가난했다. ‘부귀영화 누릴래 아니면 불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래’라고 누가 물어보는데 ‘이름 을 남기겠다’는 사람들에겐 세르반테스가 아이콘이다.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보다는 훌륭한 이름으 로 기억되는 게 낫다.” 돈키호테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소설 이다. 세계 최고의 소설이라고도 평가된다. 2002년, 문학청년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시 대의 대문호 100명이 투표한 결과 세르반테 스가 일등이었다. 세르반테스가 호메로스나 셰익스피어나 괴테나 단테보다도 위대하다 는 것이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세르 반테스와 데카르트는 근대의 공동 부모다” 고 했다. 아무리 양보해도 돈키호테는 최소 한 스페인 문학의 백미다. 세계 문학사에 미 친 영향도 지대하다. 마담 보바리는 ‘여자 돈키호테’라고 불린다. 할리우드의 로드무비 에도 끝없이 영감을 주는 책이다. 2005년은 돈키호테 400주년이었다. 400

주년을 맞아 10권으로 된 세르반테스 백과사 전도 나왔다. 한데 2015년도 400주년이라고 할 수 있다. 1부가 나온 게 1605년, 2부가 나온 게 1615년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1부로 끝날 수도 있었으나 허락도 없이 속편이 나돌았기 때문에 2부를 썼다. 사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웃음이 필요하다. 사회가 됐든지 뭐가 됐든지 뭔가 를 비꼼이 필요하다. 모험을 찾아 떠남도 필 요하다. 돈키호테는 웃음과 비꼼과 모험을 준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힐링 이 되지 않을까. 책을 미치도록 읽으면 실제로 미칠까. 기 사도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 이 나가 버린 50세 가까운 돈키호테는, 모험 을 찾아 세상을 주유하는 방랑기사(knight errant)가 되기로 작정한다. 집에 보이는 금 속을 뜯어 갑옷을 만든다. 기사에게 이상적 인 여인이 없으면 안 되는 법. 둘시네아를 마

내년은 돈키호테 완간 400주년 영웅의 모습 그린 최초의 근대소설 프로이트도 심리 연구 위해 애독 원전으로 읽으려 스페인어 배워 음에 품는다. 이도령에게 방자가 있듯, 기사 에게는 종자(從者)가 있어야 하는 법. 농부 출신 산초 판사를 종자로 임명한다. 나름 영 악한 산초다. 이상하게도 ‘섬 하나를 주겠다’ 는 말에 속아 돈키호테를 따라나선다. 비록 소설 속 가상인물이지만 세계 문학사에 이름 을 남길 운명이었나 보다. 말 이름은 로시난 테다.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 산초는 현실주 의자를 상징한다. 오래 같이 살면서 닮아 가 는 부부처럼, 이 둘은 새로 배우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유하는 게 많아진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온갖 고초 끝에 돈키 호테는 제정신이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와 죽는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묘 비명은 이것이다. “죽을 땐 현명한 사람 돼 죽 고, 살 때는 미친 듯이 살라(Morir cuerdo, y vivir loco).” 자신의 꿈을 세상에 맞추는 게 살기 편하 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자신의 꿈에 맞춘다.

▲ 시계 방향으로 돈 키호테의 한글판(시공 사·2004), 영문판(하퍼 콜린스·2003), 스페인 어 초판(1605). ◀‘라 만차의 돈키호테 와 산초 판사’(1863년 귀 스타브 도레 작품)

산초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40개의 풍차가 그에겐 40명의 사악한 거인으로 보인다. 돈 키호테에게 여관은 성(城), 양떼는 곧 전투를 벌이려는 두 진영으로 보인다. 과감할 때는 과감하게, 신중할 때는 신중하 게 살아야 한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하기보다 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떠넘기고 기다릴 때 도 필요하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한 다. “뭔가 연기시키면 항상 위기가 싹튼다.” “죽음 빼놓곤 모든 문제에 해결책 있다” 돈키호테에 미친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책 중에서도 가장 마법 같은 책이라고 한다. “죽음 빼놓고는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 는 세르반테스의 낙천주의에도 흠뻑 빠진 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혹자는 돈키호테의 인물이나 배경 묘사가 세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산만하다, 문 체가 일관성이 없다, 반복이 심하다…. 따분 하다는 사람도 있다. 17세기에는 낄낄거리며 읽는 책이었지만 유머 패턴이 달라진 21세기 에는 안 통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국왕 펠리 페 3세가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 람을 보고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오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약제상 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대 유명한 휴머니스트인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1511~1583)에게 교육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르반테스는 노예로 팔려 가고, 사기를 당하고, 감옥에 가고, 결혼 은 실패로 끝나고, 교회로부터는 파문당하기 도 하는 등 험난한 인생 파고 속에 살았다. 레 판토 해전(1571년)에 참전했을 때 총탄을 맞 아 왼손을 평생 못 쓰게 됐다. 관직에 나서려 고 했으나 종종 좌절했다. 그의 조상이 유대 계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있다. 공무원 이 된 다음에도 일이 틀어졌다. “재물과 영광의 길은 문학 아니면 전쟁에 있다”고 말한 세르반테스는 30대에 글을 쓰 기 시작했다. 시인·극작가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돈키호테는 역사와 기사도 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 로 집필됐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60 이 다 된 나이에 쓴 인생의 마지막 ‘패자부활 전’ 승부수였다. 결국 돈키호테 이 한 권으 로 그는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한 많은 인생 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 어 사망 열흘 후에 세상을 떴다. 돈키호테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다(그렇게 주장되는 책이 돈키호테말 고도 10권은 더 있지만···). 돈키호테 속에 는 ‘이상과 현실’ ‘겉모습과 속모습’ ‘진리 는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 같은 심오한 철

학적 문제가 숨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세르 반테스의 의도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사실 돈키호테는 아주 다양한 독자들 의 ‘바이블’이다.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 너(1897~1962)는 돈키호테를 1년에 한 번씩 읽었다. 스페인 전 총리 펠리페 곤살레스는 “매일 읽는다”고 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 (1856~1939)는 돈키호테 원전을 읽기 위 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처음에는 단지 소설 이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나중에는 돈키호 테에서 학술적 영감을 얻었다. 라틴아메리 카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역사에서 3대 바보는 예수, 돈키호테 그리고 나다”고 주장했다. 체 게바라(1928~1967)가 남긴 서신을 보면 게바라는 질세라 자신이 이 시대의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다. 한때 멕시 코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 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돈키호테를 “최 고의 정치이론서”라고 평했다.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인용해 유명해 진 “배고픈 존재로 남아라. 바보스러운 존재 로 남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 는 말을 늘리고 늘리면 돈키호테와 세르 반테스의 전기가 되지 않을까. 669명의 인물, 46만 단어로 된 방대한 소설이다. 마음 잡고 읽으면 48시간 정도 걸리는 분량이다.

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웹툰 등장 10년

웹툰은 만화의 디지털 버전 아닌 신종 융합매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요즘엔 새로 개봉하는 심령 공포영화마다 웹 툰 버전 예고편을 포털에 올리고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5월 개봉한 ‘오큘러 스’ 웹툰은 ‘옥수동 귀신’(2011년)으로 유명 한 호랑 작가가 제작했는데, 그의 장기인 플 래시 애니메이션 효과로 거울에서 느닷없이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 최근 개봉한 ‘애나벨’의 예고 웹툰 두 편은 각각 손규호 작가와 포고 작가가 제작했는데, 악 령 들린 인형의 이야기를 소름 끼치는 음향 효과와 함께 보여준다. 웹툰으로 만들어진 예고편은 빠르게 지나 가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동영상 트레일러 보다 박진감은 떨어지는 대신, 서사적 재미가 더 있고, 영화의 설정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 도록 해준다. 컴퓨터 스크롤을 내리며 정지 된 이미지들을 따라가다 별안간 맞닥뜨리는

영화 ‘터널 3D’ 예고편 웹툰(호랑 작)의 한 장면.

공포영화 예고편에 웹툰 활용 호흡 짧고 속도 조절 가능해 스마트폰 시대 엄청난 잠재력 애니메이션과 음향 효과는 이들의 백미다. 처음부터 움직이는 영상과 소리로 가득한 영 화를 볼 때보다 더 큰 충격과 공포를 맛보기 도 한다.

이들을 보면 웹툰의 제2단계 성장이 시작 됐다는 생각이 든다. 제1단계 성장은 인터넷 포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소비자층 과 영향력의 급속한 확대였다. 포털 웹툰 서 비스가 시작된 후 이제 10년이 지났을 뿐인 데, 웹툰은 이미 주류 대중문화 매체로 자리 잡았다. 지난 금요일 방영을 시작한 케이블 채널 드라마 ‘미생’이나 다음달 개봉할 영화 ‘패션왕’을 봐도, 원작 웹툰들의 독창적 내용 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원작의 큰 대중적 인 기에서 오는 파생적 인기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매체적 특성에 있어서는, 그림 프레 임을 컴퓨터 스크롤을 내리며 보도록 세로로 배열하고 디지털화했다는 것 외에는 웹툰이 출판만화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3~4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여러 새로운 시도 가 나타났다. 음향 효과를 넣거나, 그림 프레 임 사이에 짧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삽입 하거나, 그림 프레임 자체가 플래시 효과로 순 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등 말이다. 특히 요 즘 나오는 스마트폰 특화 웹툰은 스크롤을 내

리는 대신 터치 할 때마다 다음 그림으로 넘 어가는 포맷이다. 영화의 스토리보드 연출과 매우 비슷하며, 페이드인/페이드아웃 등 영 화적 장면 전환 기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런 웹툰들은 영화적 테크닉을 활용해 출 판만화보다 훨씬 극적인 효과를 지닌다. 하지 만 영화·애니메이션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동적으로 동영상이 진행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독자가 자기 속도에 맞추어 스크롤을 내리거나 터치를 하면서 이미지를 보기 때문 이다. 출판만화와 영화·애니메이션의 중간지 점에 서 있는 양자의 융합매체라고나 할까. 융합적 웹툰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 공포 영화 예고편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흥미 로운 역전 현상까지 일어난다. 지난 8월 개봉 한 공포영화 ‘터널 3D’의 경우, 호랑이 제작 한 예고편 웹툰(사진)은 스크롤을 내릴 때와 다시 올릴 때 이미지가 달라지는 공포 효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비평 과 흥행 모두에서 참패했다. 물론 결정적 원인 은 문제의 영화 감독과 웹툰 작가가 각자의 영

역에서 보여준 능력의 차이일 것이다. 또 매체 자체도 관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포물은 긴장감을 점차 고조시키다 갑자기 터뜨리는 것이 관건인데, 사람에 따라 공포 의 긴장감이 누적되는 속도가 상당히 다르 다. 게다가 1시간30분~2시간에 이르는 평균 영화 상영시간 동안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공포영화는 몇몇 수작을 제외하고는 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우 가 많다. 반면 웹툰은 호흡이 짧은 데다 독자 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볼 수 있어서 공 포물에 유리하다. 플래시 효과와 사운드 등 의 여러 기술을 이용해 영화적 공포 효과도 낼 수 있다. 즉 매체융합적 웹툰은 적절한 장르에 잘 이용되면 영화 같은 강력한 기존 매체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더구나 스마트폰을 통 해 호흡이 짧은 오락물을 보는 것이 점점 더 선호되는 시대에 융합적 웹툰은 엄청난 잠재 력을 지닌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 된다.


Science 25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30 수퍼 쌀

가뭄에도 풍년 들게 할 유전자 지도와 유전자 가위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소년 잭은 소를 팔러 시장에 나갔다가 소 값 대신 콩을 얻어왔습니다. 마당에 떨어진 콩은 순식간에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잭은 하늘에서 황금알을 낳는 닭과 하프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성난 거인이 쫓 아 내려오자 잭은 도끼로 콩나무를 자르고 행 복하게 살았습니다.” 영국 동화 ‘잭과 콩나무’의 줄거리다. 잭 의 ‘마술 콩’이 쑥쑥 자라는 것으로 봐 아 마도 세계 최초의 ‘유전자 변형 식물(GM식 물·Genetically Modified)’일 것이란 필자의 실없는 농담에 강의실이 일순 썰렁해진다. 세 상 콩의 81%가 GM 콩인데 GM 콩은 지구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황금알을 낳는 닭’일까? 아니면 괴물 식물을 만들어내는 ‘무서운 거 인’일까? 2012년 9월 ‘미국 식품독성학회’지에 주 목할 만한 논문이 한 편 실렸다. 논문은 제초 제에 견디는 유전자를 삽입한 GM 옥수수 (NK603)가 쥐의 간·신장을 손상시키고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연구가 진행된 프랑스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순식간 에 논란에 휩싸였다. 논문 발표 후 프랑스 정 부기관과 유럽식품안전청(EFSA)에선 두 차 례의 검토 결과 실험 쥐의 숫자가 너무 적은 데다 유독 암에 잘 걸리는 종(種)의 쥐를 실험 에 사용한 사실 등 실험 방법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며 논문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 문은 결국 이듬해 11월 철회됐다. 국내 수입 콩의 70%가 GM 콩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사료나 가공용으로만 사용된다고 하지만 가끔씩 터져나오는 안전성 관련 뉴스 가 소비자들을 찜찜하게 한다. 콩엔 없던 세 균의 ‘농약 저항성’ 유전자를 콩에 집어넣으 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며 걱정하는 사 람도 많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식물을 육종 (育種)하는 방법이 없을까? GM 식품 안전성 논란 핵심은 외부 유전자 필자의 유학시절인 1990년에 방문한 미국 몬 산토 연구소는 온통 온실 천지였다. 농약을 주로 합성했던 화학실험실에서 식물연구실 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몬산토 연구소는 제 초제인 ‘라운드업’에 잘 견디는 유전자를 박 테리아(세균)에서 분리한 뒤 이를 옥수수 유 전자에 끼워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온실은 이렇게 만든 GM 옥수수 가 실제로 어떻게 자라는지를 관찰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GM 옥수수·GM 콩은 1996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 사 이 세계의 재배면적은 100배나 늘어 현재 전 체 콩의 81%, 옥수수의 35%가 GM 씨앗으 로 재배되고 있다. 제초제 저항성인 GM 옥수 수·GM 콩은 콩·옥수수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 제초제를 뿌려도 GM 식물은 죽 지 않고 잡초만 죽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1세 대 GM 식물들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GM식품에 대한 찬반은 개발 초기 부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구 식량난 해결 책이란 찬성 측 주장과 종자 독점, 생태계 혼 란 우려 등 반대 측 의견이 아직도 팽팽하다. 상품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일반인들에게 ‘안전한 식량기술’로 인정되기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GM 식물, 특히 식품의 경우 우려의 핵심은 원래 식물엔 없던, 즉 다른 종(種)의 유전자 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다른 종의 유전자와 단백질이 콩에 삽입된다 하더라도 사람의 위 (胃)에서 대부분 분해돼 별 영향이 없을 것 같 다. 하지만 수백, 수천 년을 먹어온 전통식품 처럼 안전하다는 확신을 소비자에게 100% 심 어줄 만한 연구결과와 데이터가 나와야 일반

비타민 A(노란색)가 풍부한 황금쌀은 저개발국 건강 증진 목적으로 개발됐다.

미래 식물 육종 기술의 핵심은 유전자 정보에 근거 보통 땅콩 잎(왼쪽)은 해충 애벌레의 먹잇감이다. 세균의 살충(殺蟲) 유전자가 첨가된 잎(오른쪽)을 먹은 벌레는 결국 죽고 만다(미국 농무부 자료).

식물세포를 손금 보듯 관찰 가능 원하는 유전자 심으면 ‘신종’ 탄생 유전자 변형 기술 사용하지 않고 훨씬 안전한 농산물 만들 수 있어

차세대 식물 개량 기술을 확보해 식량 주권을 확보 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인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러운’ 식물 개량 방안은 없을까? 비타민 A가 풍부한 ‘황금쌀’엔 수선화와 옥수수의 유전자가 들어갔다. 황금쌀을 필두 로 과학자들은 식물 고유의 독특한 성질을 이 용해 작물을 개량하는 방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내뿜는 ‘화학무기’ 요즘 동네 목욕탕에선 ‘희노끼’라 불리는 편 백나무 욕조가 인기다. 편백나무의 상쾌한 향이 숨을 탁 트이게 해서다. 이 향기는 침엽 수가 즐비한 산 속에서도 맡을 수 있다. 건강 에 이롭다는 이 향기, 즉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에 삼림욕을 하는 사람이 많다. 비 록 피톤치드란 전문 용어는 몰랐겠지만 우리 조상들도 바람을 쐬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생 각해 호젓한 산 속에서 옷을 벗고 누워 풍욕 (風浴)을 즐겼다. 요즘도 산 속에서 담요 하나 만 둘러쓰고 명상을 하는 건강요법이 인기다. 피톤치드는 좋은 향수가 아니라 사실은 식물 (phyton)이 내뿜는 항균물질(cide)이다. 알 려진 5000종의 피톤치드는 모두 식물이 보유 한 ‘화학무기’다. 피톤치드는 잎을 갉아먹는 곤충이나 곰팡이를 공격한다. 이 화학무기 중 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퍼지능형 무 기’가 있다. 진딧물처럼 떼로 움직이는 곤충 사이의 소 통은 ‘곤충 페르몬’이란 냄새 물질을 통해 이 뤄진다. 이 중 ‘경보 페르몬’은 주위에 적이 나 타났을 때 전파되는 ‘튀어!’란 경보 사이렌이 다. 식물은 이렇게 소통하는 진딧물에게 세 가 지 화학무기를 내뿜는다. 하나는 진딧물의 경 보 페르몬과 똑같은 물질이다. 이 냄새를 맡은 진딧물들은 진짜 적이 나타난 줄 알고 동시에 떼로 도망친다. 두 번째 무기는 진딧물의 천적 인 말벌을 부르는 천적 호출 물질이다. 말벌은 진딧물의 애벌레에 침을 꽂고 그곳에 자신의 알을 낳아 진딧물을 몰살시킨다. 세 번째 무기 는 마취 물질이다. 식물은 진딧물의 애벌레를 마취시켜 말벌이 쉽게 침을 꽂도록 돕는다. 이런 식물의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이런 식물무기를 이용하면 진딧물을 죽이기 위해 살충제를 사 용하거나 굳이 살충유전자를 삽입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식물 A에 있던 이런 방어물질 생 산 유전자를 식물 B에 삽입해 진딧물 제거 효 과를 확인한 연구결과가 있다. 이 살충 유전 자는 원래 식물이 갖고 있던 것이어서 박테리 아(세균)에서 얻은 유전자를 식물에 끼워넣 었을 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험성 걱정을 경 감시킬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이 원래 갖고 있 던 고유의 능력을 개량·증폭시켜 새로운 품

종을 만드는 것이 다음 세대 식물 개량의 연 구 방향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법 을 이용해 식물 속에서 우수한 종자를 골라 왔다. 매년 거둬들인 많은 종류의 옥수수 중 에서 씨알이 굵고 벌레가 먹지 않은 것을 골 라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뒤 이듬해 다시 심 기를 수백 년 이상 계속해 왔다. 시간 여유를 충분히 갖고 식물 육종(育種)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 다는 것이 약점이다. 전통적인 육종 방법은 일종의 확률 게임이다. 선인장의 장점을 벼에 접목하면 어느 여배우가 영국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 에게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면 내 미모와 당신의 두뇌 를 가진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가 되받았다. “못생긴 내 얼굴과 덜떨어진 당신 머리를 닮은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처럼 원하는 성질을 가진 후손을 한 번에 얻을 확률은 사람이나 식물 모두 극히 낮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가뭄에도 잘 자라는 볍씨는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가 원산인 벼는 수확량이 높으나 가뭄·병충해 에 약한 편이고, 아프리카가 원산인 벼는 수 확량은 적지만 강인해 논이 말라도 오래 견 딘다. 두 종류 쌀의 장점, 즉 가뭄에 견디면서 수확량까지 뛰어난 벼를 전통적 방법으로 육 종하려면 15년이 필요하다. 두 종류를 교배 해 얻은 씨앗을 모두 논에 뿌려 본 뒤 마른 논 에서도 볍씨가 굵고 또 많이 달린 녀석이 있 는가를 매번 확인하려니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 수확량이 높은 아시아 쌀에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유전자’를 넣어주면 안 될까? 가뭄에도 잘 견디는 벼의 아이디어는 사막 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선인장에서 얻었다. 잎을 가시로 진화시켜 물의 증발을 최대한 억 제하는 선인장은 몸 안에 ‘수퍼 보습제’를 갖 고 있다. ‘트리할로스(trehalose)’란 당(糖) 이다. 이 당은 알로에의 끈끈한 성분에도 포 함돼 있다. 보습력이 뛰어난 트리할로스 유 전자를 벼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가뭄에 잘 견디는 벼가 탄생했다. 하지만 벼가 선인장의 도움을 받는 데는 한 계가 있다. 이보다는 수확량이 많은 아시아 벼와 가뭄에 견디는 아프리카 벼를 혼합 육종 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전통적인 육종 대 신 원하는 종만을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섞을 수 있는 ‘족집게 육종’ 방법이 없을까? 과학 자들이 최근 그 답을 찾았다. 답은 식물의 ‘유 전자 지도’와 ‘유전자 가위’에 있다. 즉 식물 의 완벽한 유전자 순서를 알게 되고 또 원하

한 ‘족집게’ 개량이다.

는 유전자 부위를 아주 정확하게 잘라낼 ‘수 퍼 유전자 가위’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식 물세포를 손바닥의 눈금처럼 들여다보는 ‘현 미경 수술’이 가능해졌다. 욕심을 더 내보자. 가뭄에 견딜 수 있는 것 과 동시에 이왕이면 제초제 없이도 잘 자라 는 벼를 만들 수는 없을까? 2013년 미국 미시 간대학 우스리카 교수는 벼가 가진 모든 ‘방 어무기’ 리스트를 완성했다. 외부 곰팡이·해 충·추위·가뭄·장마 등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조절 유전자 196개를 찾아낸 것이다. 이 중엔 ‘잡초와의 경쟁’에서 벼가 이기도록 하는데 유용한 ‘방어무기’도 포함돼 있다. 이 ‘방어 무기’를 잘 연구해 논에서 잡초가 자라도 벼 가 낱알을 제대로 맺을 수 있게 한다면 뜨거 운 땡볕에서 풀을 뽑거나 몬산토의 ‘라운드 업’ 같은 제초제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GM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불안 여전 그만큼 안전한 벼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 다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만든 ‘수퍼 벼’가 100% 안전하단 말은 아니다. 이 ‘수퍼 벼’도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인체·환경에 대 한 안전성이 100% 검증돼야 한다. 왜냐하면 식물생명체 내에서 유전자(DNA)가 과학자 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물은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니 다. 살아서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 식물의 존 재 이유다. 2050년엔 지구 인구가 90억 명이 된다. 지금 도 12억 명이 하루 1.25달러로 먹고사는 식량 부족 상황이다. GM기술은 이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세계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바이오 안전성정보센터(장호민 센터장)가 실시한 국 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7%는 백 신 치료제를 만드는 GM 바나나처럼 의약·산 업용으로 쓰이는 GM 식물의 개발을 찬성한 다. 이에 비해 먹거리인 GM 식품에 대한 찬성 률은 47%에 머물러 있다. GM 먹거리에 대한 불안·불신이 여전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 다. 이런 불신을 넘어 차세대 식물 개량 기술 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발전이 가능하다. ‘잭과 콩나무’처럼 차세대 식물 기술이 황 금알을 낳는 닭이 되고, 한국이 식량 주권국 가가 돼 지구촌 다른 곳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 에게 알리고 있다.


26 Column

반상(盤上)의 향기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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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보家 vs 이노우에家

가문 명예 건 9일 전쟁  돌 던진 뒤 피 토한 인테쓰 <이노우에 가문의 애제자>

은 것 같으니 잘 됐다. 조와와 붙이자. 훨씬 희 망적인데! “인테쓰야. 네가 나가라. 나가서 조와를 혼 내라.” 이기면 조와는 흠집이 난다. 인테쓰는 깜짝 놀랐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 스승님은 큰 대국을 앞두고 계셨 다. 최선을 다하지 말았어야 했구나!” 착한 인테쓰. 인테쓰는 갇혔다. 인세키는 두려웠을까. 37세 패기만만했지 만 역시 두려웠을까. 20대가 이미 명인급인 요즘과 달리 바둑 정보가 많지 않았던 당시 실력의 진보는 40대 중반까지 시간을 요했다. 조와는 48세지만 전성기였다. 토혈국은 비장(悲壯)했다. 그래서 의문이 다. 왜 그리 비장하냐? 낙인(烙印)의 속성 때문이다. 타이틀 획득 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모두의 이목이 쏠 리는 그 어떤 도덕감, 비장감이 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나가는 길은, 심리적으로는 무의 식에 의해 이끌린다. 무의식은 도덕의 배경. 낙인은 그 결말. 명인 제도가 유지되는 한 바둑계의 암투는 끊임이 없었다. 쟁기(爭棋)는 권위 싸움이다. 돈은 그 후에 따라온다. 오늘의 명인은 시장 경제하에서 얻어진다. 타이틀전은 1년에 1회. 1년 지나면 효력이 사라진다. 하지만 쟁기는 평생 1회 가문 싸움이다. 나라의 행운과 불운 을 한몸에 안고 있는 왕의 운명과 같다. 그러 니 토혈국은 바둑의 비장감에서 온 게 아니 었다. 16~19세기 봉건적인 일본 바둑계의 속 성에서 온 것이었다. 바둑은 비장하지 않다. 비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용직 객원기자전 프로기사 moonro@joongang.co.kr

1835년 7월 19일 일본 도쿠가와 바쿠후(德川 幕府)의 지방 영주 마쓰다이라 스오노카미 (松平 周防守)의 저택에서 성대한 기회(棋會) 가 열렸다. 당대의 명수(名手)들이 자리를 잡 았다. 명인 혼인보(本因坊) 조와(丈和), 선(先) 7 단 아카보시 인테쓰(赤星因徹). 8단 이노우에 인세키(井上因碩), 선(先) 6 단 야스이 슌테쓰(安井俊哲). 8단 야스이 센치(安井仙知), 선(先) 6단 하 야시 하쿠에이(林伯榮). 인테쓰(1810~35)는 인세키(1798~1859)의 제자로 바로 옆에서 대국했다. 그 외에 기적 (棋籍)에 이름을 올린 많은 기사가 운집했고, 연회를 겸한 기회는 중간 중간에 쉬어가면서 아흐레가 지난 27일에야 끝났다. 만개한 문화 속 야심에 찬 모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 괴(慙愧)와 처참(悽慘)을 동반했다. 세 번이나 대국 멈출 만큼 치열한 승부 대중의 초점은 단연 조와(1787~1847)와 인테 쓰의 대국이었다. 뒷날 ‘토혈국(吐血局)’으 로 불린 바둑으로 숨이 찼다. 시간을 끌었다. 19일·21일·24일, 도합 세 번을 봉수(封手·잠 시 대국을 멈추는 것)하면서 27일 마침내 승 부를 끝냈다.

혼인보 조와 탓에 명인 놓친 인세키 제자 인테쓰 내세워 ‘복수혈전’ 끝내 패하고 두달 뒤 세상 뜬 인테쓰 죽기 전 최고 묘수풀이집 현람 남겨 첫날은 59수까지 둔 다음 봉수했다. 조와 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틀어박혔다. 바 둑판을 붙들고 앉았다. 한밤중이다. ‘거, 누 구 없느냐’ 하는 소리에 들어가 보니 조와의 아랫도리가 젖어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오줌 싸는 줄도 모르고 골몰했던 것이다. 인테쓰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여름을 타 는 체질이었는데 그해는 유난히도 더웠다. 시 내 한복판에 배를 띄우고 들어앉아서 날이 새는지도 모르고 바둑만 들여다보았다. 첫날인 19일(1~59수 진행)엔 인테쓰가 우 세했다. 21일(60~99)엔 조와의 묘수가 터졌 다. <기보1>에서 백2·백4가 좌상귀 백을 선수 로 안전하게 탈출시킨 묘착. 상대의 집 안에 서 수를 만들어냈기에 허(虛)를 찔렀다고 하 겠다. <기보2>에서 백1이 빈삼각의 묘수. 역 시 인테쓰의 심리적 허를 찔렀다. 이후 국면이 복잡해졌지만 흑이 불리하지 않았다. 할 만했다. 하지만 무거운 부담에 판 단이 흔들렸다. 24일(100~172)엔 국세가 무 너졌다. 27일 마지막 날 백246이 반상에 놓이 자 인테쓰는 돌을 던졌다. 승부가 끝난 자리엔 뭔가 형언키 어려운 처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운 때문인지 주 변의 어느 누구도 감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인테쓰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입을 막으면서 상체를 움츠렸다.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전국시대엔 명인이 병법도 강의 인테쓰는 두 달 후 세상을 떴다. 원래 몸이 약 했다고도 하고 폐병이 아니었나, 간이 나쁘 지 않았나 뒷말이 무성했다. 하나는 분명했 다. 대국은 목숨을 내놓은 승부였다. 대체 왜 그런 바둑을 두었을까? 명인(名人) 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명인은 전국시대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82)가 처음 사용했다. 교토(京都) 자코지(寂光寺)의 부

1829년 발행된 목판(木版) 기사(棋士) 명부(名簿)인 ‘諸國名碁鑑(제국명기감)’. 일본 바둑 4대 가문에 속한 약 150 명 가까운 기사들의 이 름이 새겨진 명부다. 가운데 제일 아래에 혼인보 조와(丈和) 이름이 굵게 새겨져 있다.

속 암자인 혼인보(本因坊)의 주지 닛카이(日 海·1559~1623)를 고금 제일로 인정해 닛카이 앞에 ‘명인’을 붙여 불렀다. 전국시대의 풍운아들은 바둑을 특별히 환 대했다. 부하 무장들을 모아놓고 닛카이로 하여금 병법 강의도 하게 했다. 1585년 도요 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98)는 닛카이 를 고도코로(碁所·제도화된 바둑계 최고 지 위·이하 ‘기소’)에 임명하면서 해마다 쌀 20 석과 10명분 급여(給與)를 지급했다. 그 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1543~1616)는 닛카이를 에도(江 戶)로 데려오면서 ‘혼인보’를 성(姓)으로 내 렸다. 1612년 바둑과 장기 전문가들에게 녹 봉을 지급하고 세습(世襲)을 허용했다. 혼인 보의 경우 백미 55석에 공로를 봐서 별도로 300석을 하사했다. 닛카이는 이름을 산샤(算 砂)로 바꾸었다. 혼인보·이노우에(井上)·야스이(安井)·하 야시(林) 네 개의 가문이 일본 바둑계를 이루 었고 명인기소(名人碁所)는 이들을 관장했

기보 1 조와의 묘수: 첫째(백2) 둘째(백4)

다. 명인은 9단을 의미했고, 기사들은 8단이 먼저 돼야만 명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 졌다. 각 가문은 명인의 승인 없이는 승단도, 면장(免狀·단위 정하는 것) 발행도 불가능했 다. 받는 단에 따라 수수료도 납부해야 했다. 물론 기소와 명인은 별개다. 산샤는 제 자들 중에서 기력이 가장 뛰어난 도세키 (中村道碩·1582~1630)를 2대 기소로 임명 하고 혼인보 가문은 따로 제자 산세키(算 碩·1611~58)로 하여금 계승케 했다. 기소 제 도와 혼인보 가문을 구별하기 위한 조치였 다. 도세키는 이노우에 가문의 1세(世)가 됐 다. 기소는 명인이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라, 명인이 없을 때엔 기소는 공석(空席)이었다. 명인을 인정하는 방식에 세 가지가 있었다. 1. 관명(官命) - 혼인보 산샤가 좋은 예다. 2. 공동 추천 - 바둑계는 경쟁과 타협을 이 뤄 살아갔다. 3. 쟁기(爭碁) - 타협도 아니 될 때엔 쟁기 (승부바둑)에 기댔다. 봉건적인 일본 바둑이 낳은 토혈국 인세키 시절엔 기소가 비어 있었다. 조와와 인세키는 야망이 컸다. 인세키는 명인에 오 르고 싶었지만 단위는 7단이었다. 먼저 8단 이 돼야만 명인을 청원(請願)할 수 있었다. 꾀를 냈다. 스승 10대(代) 인사 인세키(因砂 因碩·1785~1829)를 조와에게 보냈다. 10대 인 세키 왈(曰), “이제 이 몸은 늙어서 제자가 잘 되는 걸 보고 죽고 싶습니다. 선생이 힘을 써 서 제자를 8단에 올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조와가 바보인가. 단을 주고받고 수작이 오갔다. 그러다가 1831년 갑자기 관명(官命) 이 떨어졌다. “조와를 명인으로 임명한다.”

[사진 일본기원]

기보2 조와의 묘수: 셋째(백1)

조와가 관계를 구워삶은 것이었다. 인세키는 ‘아차’ 했지만 그렇다고 관(官)에 불만을 터 뜨릴 입장은 아니었다. 시간이 흘렀다. 후원자 영주 마쓰다이라 스오노카미에게 청원해 기회(棋會)를 열었 다. 조와를 한 판 이기기만 하면 “조와는 명 인의 실력이 없다”고 바둑계를 어수선하게 만들 참이었다. 조와도 피할 수 없었다. 세상 은 어느 한 놈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세키는 날짜만 세고 있었다. 자기는 8단. 조와는 9단. 자기가 먼저 둔다. 이길 자신이 만만했다. 예나 지금이나 바둑은 먼저 두면 많이 유리하다. 그러던 하루. 멀리 지방을 유람했던 제자 인테쓰가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당시 지방 의 초청은 적지 않았고 답례 또한 자연스러 웠다. “오, 인테쓰. 그래 어디 한 판 하자.” 시 합에 대비한 몸 풀기였다. 하지만 웬걸. 네 판 을 뒀는데 모두 졌다. 흠~ 그래. 인테쓰는 7단이지만 나보다 나

명인 조와, 토혈국 치른 뒤엔 은거 뒷날 이런 이야기들이 남았다. 첫째, 그까짓 명인이 무어라고. 아니다. 그 래도 가문의 일 아닌가. 둘째, 잔인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슬 쩍 상대를 떠본 다음 병풍 뒤에서 두고 보는 것만 같다. 셋째, 대국 후 집으로 데려와 요양시키다 니, 어리석고 어리석다. 인테쓰를 두 번 갇히 게 했다. 불운(不運)을 가진 사람은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출문(黜門)은 죄 지은 자를 살리는 길도 된다. 인테쓰 이후 인재가 없어 이노우에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넷째, 착한 인테쓰. 운이 나빴다. 그 놈의 인연이 뭐라고. 위안은 있는가. 아마, 짐작했 을 거다. 운명을. 예민하고도 도덕심 깊은 사 람은 올가미가 쳐질 때엔 다 안다. 숙명으로 안다. 예수가 다 보여주었다. 숙명의 그림자가 있었다면, 숙명의 낌새는 위안이 되었을까. 숙명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위안을 구성하는 속성이다. 인테쓰 사후 방 한쪽 궤(机) 속에서 저술 중이던 현람(玄覽)이 나왔다. 바둑 사상 최 고의 진롱(珍瓏·묘수풀이)으로 꼽히는 ‘수 극굴산실국지형(垂棘屈山失國之形)’이 실린 책. 돌을 84개나 잡고도 한 집밖에 집을 못 내 잡히는 문제. 제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 傳)’의 고사(故事)에서 따왔다. 인테쓰는 갔지만 일본 바둑계는 만개한 모 란의 형국이었다. 하지만 1860년대 바쿠후 정권의 몰락을 겨우 20~30년 남겨둔 때였다. 아무도 몰랐다. 1838년 조와는 기소에서 물 러났다. 다음 해 은거에 들어갔다. 사람이 죽 는 마당에 책임 없는 지배자는 없는 법이다. 지배와 향유는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 신(神) 은 향유자가 될 수 없다. 장로(長老)도 그렇고 각자(覺者)도 그렇다.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 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 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Column 27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삶과 믿음

운문사의 추억 원영 스님 metta4u@hotmail.com

이탈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니콜라 파가니니(1782~1840).

[David d’Angers]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

그의 파가니니는 스케일 크고 당당 송영 작가 sy4003@chol.com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은 탁발한 그 기량 이나 범상치 않은 이력에 견줘 볼 때 국내 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평가도 미흡했던 이 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도 그를 화면에서 몇 번 단편적으로 대면했을 뿐, 연주회장에 서 직접 그 연주와 만난 적은 없다. 근래 연 주장을 자주 찾지 못한 게으름 탓도 있을 것 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뜨겁고 구체적이다. 몇 번 안 되는 간접 대면이지만 그는 내게 무척 강렬하고 특이 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누구보다 잘 다루고 자신감이 넘치는 연주가인데 겉으 로는 뻐기거나 으스대는 기색이라곤 전혀 볼 수 없고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는 연주가로 기억된다. 연주가가 무대에서 음 악만 잘 들려주면 되지, 구태여 배우처럼 요 란한 제스처를 구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첫눈에도 알아볼 만큼 빼어난 연주 기량을 가진 인물이 너무 표정이 없으니까 그게 도 리어 강한 인상으로 남은 듯하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LE STREGHE(여 자 마법사)’. 바이올린에 관한 한 천재 괴짜 란 명성을 톡톡히 누렸던 작곡가의 걸작품 으로 그의 작품 성향과 연주 기술의 주요 단 서들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본래 악단과 협연하는 변주곡 양식이었으나 근 래에는 피아노나 기타 반주의 듀엣으로 더 자주 연주된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이 작 품이 파가니니 작품 중에서도 매력 덩어리 란 걸 알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모양 이다. 기교상 난삽한 점이 있고, 특히 체코 의 전설이 된 바사 프리호다(1900~1960)의 완벽한 연주에 비교당하는 걸 꺼리기 때문 이라고 한다. 진위야 당사자 외에 알 수 없지만 그런 경 향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얼핏 살펴봐 도 기교파라는 루지에로 리치나 살바토레

아카르도의 연주, 그리고 도전적인 몇몇 신 예의 연주만 눈에 띈다. 바사 프리호다에 관해 웹사전에는 완벽 기교와 아름다운 소리결로 알려진 연주가 란 짧은 해설이 있는데 실제 연주를 들어보 면 유진 이자이 혹은 파가니니의 재래란 말 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솜씨가 놀랍다. 파가니니란 이름에는 기교적으로 난삽하 고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는 인식이 있고 한 편 기교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음악이 차갑 고 냉정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다소 부 정적인 의미도 있다. 협주곡 1번 같은 인기 곡도 있지만 내가 정작 좋아하는 곡은 쇼팽 의 편곡으로 피아노곡이 된 ‘베니스 카니 발’이 있다. 바딤 레핀이 연주하는 핑거링을 곁들인 장난스러운 연주도 흥미를 돋워 주

는데 이 음악에는 여행자의 향수를 불러일 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행 자체가 축제 와도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성식은 1999년께 ‘LE STREGHE’를 비롯, 몇 개의 소나타가 포함된 파가니니 곡 음반(작은 사진)을 냈는데 그의 선택이 내 겐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비 록 단편적으로 귀동냥을 했지만 그에게서 루지에로 리치나 살바토레 아카르도 같은 기교파의 성향을 이미 엿봤기 때문이다. 그 음반은 내 예상을 적중시켰고 어느 의미에 서는 더 높게 충족시켰다. 나는 그 연주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며칠 전 앰프의 먼지 를 닦아내고 불을 지펴 오랜만에 그 연주를 다시 들어봤는데 지금 들어봐도 탁월한 기

량은 여전했다. 그는 바사 프리호다에게 도 전한 것이 아니고 그 연주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게 좀 더 큰 스케일로 좀 더 당당하게 파가니니를 연주했다. 그 점이 신선했다. 이 음반은 피아노 대신 기타 반주 버전인 것도 특색인데 뛰어난 기타 주자인 장승호를 발 견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파가니니가 한 시절 바이올린 활을 던져 버리고 기타 연주와 기타 작품 작곡에 몰입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음반에 도 바이올린과 기타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대화하는 ‘루카 소나타’ 12곡이 수록돼 있 다. 이 음반은 파가니니의 상표처럼 돼 있는 바이올린 기법들이 일정 부분 그의 기타 취 향에서 빌린 것이란 사실을 알려 준다. 이것 은 오르간 연주 대가이던 바흐가 그의 여러 작품, 특히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같 은 작품에 오르간곡의 기법을 훌륭하게 차 용한 것과 유사하다. ‘LE STREGHE’에는 파가니니가 고안 했거나 발전시킨 바이올린 기법들이 압축 돼 있고 협주곡이나 소나타 등에 나타나는 낭만적 리리시즘의 노랫가락도 윤활유처럼 배치돼 있다. 피치카토나 핑거링, 중음주법, 도약의 보잉 등이 지금은 누구나 귀에 익은 수법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것들은 모범답 안처럼 정제되고 난이도가 높은 것들이다. 양성식은 이 곡에서 그의 기교파적 특장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는데 단순히 곡을 잘 소화하고 있다는 선을 넘어 난이도가 높아 갈수록 소리가 더 날카로워지고 흐름이 자 연스럽다. 바사 프리호다가 아름다운 소리 결로 아기자기한 줄타기를 한다면 양성식은 시원하고 탄력 있는 소리로 보다 윤곽이 뚜 렷한 음악을 들려준다. 물론 양성식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브 람스·시벨리우스 등 다양하며 그 모든 연주 에서 정통 연주자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파가니니에서만 빛을 낸 건 결코 아니 다. 다만 파가니니 음반에서 그가 드문 기교 적 우월성을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점은 부 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임상(任さん)~, 내가 한국에 가는데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일본 유학 시절 은사 인 교수님이 한국에 오신단다. 해인사 운문 사 도량에서 강연 일정이 있다고 하신다. 멀 리는 못 가고 김포에 있는 중앙승가대학에 오신 날 찾아뵈었다. 2년 전 뵈었을 때보다 눈에 띄게 머리카락이 하얗다. 동행한 사모 님은 그대로인데 선생님만 늙은 느낌이랄까. 안타까워하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 지 “아내랑 같이 다니면 딸이냐고 그래. 히히” 하며 웃으셨다. “자네가 공부했다던 운문사 에도 다녀왔네. 정말 아름답더군. 일도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자네 생각이 더 많이 났지.” 따져보니 운문사에선 4년을 살았고 일본 교토(京都)에선 6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운 문사 기억이 더 생생하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어 살아서 그런가 보다. 그중에서도 1, 2학 년 때 기억이 많다. 운문사 생활은 매우 엄격 해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고 자야 한다. 당시 에는 도량을 깨우는 목탁 소리가 단 몇 초만 늦어도 곧장 불려가 혼쭐이 났다. 전자시계 는 필수였고, 누군가 출타해서 좋은 전자시 계라도 차고 오면 모두들 부러워했다. 지금 은 웃으며 하는 얘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날은 오후 내내 김장배추밭에 벌레를 잡으러 나가 있었다. 지금 같으면 약을 칠 텐 데 절집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 대자비의 도 구인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배추밭에 모였다. “에구, 징그러워. 요 녀석 들아, 이제 그만 좀 나와라.” 배추벌레를 집 어 종이컵에 담으며 벌레에게 한 소리 한다. 밭도 넓었지만 우리 반 55명의 젓가락 솜씨 가 탁월했던지 많은 양의 벌레가 모였다. 마 무리로 그 벌레들을 계곡 옆 습기 찬 풀밭에 놔주면 오후 울력(일)은 끝이다. 실은 그날 배추밭에서 몇몇이 모의를 했 다. “오늘 달도 밝은데 밤에 나가서 라면 끓 여 먹을까?” “그래. 근데 들키면 어떡하지?” “….” 저녁에 입선(入禪)을 하고 경전을 독 송하다 보니 방선(放禪) 시간이 되었다. 경

상을 들어내고 방 청소를 마친 뒤 일사천리 로 이부자리를 깐다. 볼일 보러 다녀와 이부 자리 옆에 고요히 앉으면 잘 준비는 끝. 시 간에 맞춰 “소등합니다” 알림과 함께 불을 끄면 곧장 꿈나라다. 라면 먹으러 갈 동지들 의 신호를 기다리는데 보름달이 어찌나 밝 은지 창호지를 뚫고 들어올 기세다. 쿵쾅쿵 쾅 심장은 요동치는데, 옆자리에서 들리는 운치 깨는 저 소리. 드르렁드르렁~. 한참 지나자 도반 스님 한 명이 슬그머니 일어난다. 저쪽에서도 일어나고 이쪽에서도 일어난다. 낮에 준비해둔 솥단지와 라면 몇 개를 들고 슬그머니 도량을 빠져나와 계곡 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 았던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더니 멀리서 번 개가 치는 게 아닌가. “괜찮겠지?” “걱정되 면 기도라도 하든가, 큭큭큭.” 라면에 바친 반야심경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운

출가 초년병 시절 수행 동지들과 달밤에 몰래 라면 먹던 일 못잊어 ‘지금’은 훗날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다. 솥단지에 계곡물을 담아 끓기를 기다리 다 숨이 넘어갈 판이다. 기어이 라면과 수프 를 넣고 콩나물까지 넣어 팔팔 끓여 먹기 시 작하는데, 누군가 외친다. “나 비 맞은 것 같 아.” “나도.” “나도.” 아- 이런 하늘도 무심하시지, 순식간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 맞은 생쥐처럼 오들 오들 떨던 아~ 그날의 추억. 지금 이 시간도 훗날엔 어떤 추억이라 말 하겠지.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추억이 라면 더 좋겠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추억 은 생동감 넘치는 삶의 태도에서 만들어지 는 게 아닐까. 나아가 삶을 개척하는 자세야 말로 추억을 만들고 역사를 이룰 것이다. 그 나저나 오늘은 달이 떴나 모르겠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 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 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疾·病·疫

<질·병·역>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잊을 만하면 나타나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 하는 게 전염병이다. 이번에는 아프리카발 (發) 에볼라가 세계인을 긴장시키고 있다. 병은 중국 고대에서도 인간을 괴롭히는 요 소였고, 한자에 그대로 나타난다. ‘병(病)’자는 ‘疒(녁)’과 ‘丙(병)’이 합쳐 진 글자다. 갑골문에서 ‘疒’자는 아픈 사람 이 젓가락에 의지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병 에 걸린 노파가 힘겹게 뭔가 먹으려는 형상 이다. 그러기에 ‘疒’자가 들어간 단어는 질 병과 관계있다. ‘통증(痛症)’이 그러하고 피 곤하다는 뜻의 ‘피(疲)’도 마찬가지다. 잘 낫지 않는 질병은 ‘痼(고)’, 몸에 찬바람이 들어 생긴 병은 ‘풍(瘋)’이다. 가장 무서운 병인 ‘암(癌)’에도 여지없이 ‘疒’자가 들어 갔다. ‘질병(疾病)’은 지금 한 단어로 쓰이지 만, 원래는 각기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疾 (질)’은 골절 등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병 을 뜻하고, ‘病(병)’은 폐병과 같이 신체 내 부에서 발생한 병을 일컫는다. ‘疫(역)’은

돌림병이다. 홍역(紅疫)·구제역(口蹄疫) 등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에볼라 (ebola)’를 ‘埃博拉(아이보라)疫’이라고 표 현한다. 그 역시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국가도 자정능력을 잃으면 병들고, 사회 도 건전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나라를 병 들게 하고 국민을 재앙으로 몰아간다는 뜻의 ‘병국앙민(病國殃民)’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화국병민(禍國病民·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병들게 한다)’도 같은 말이다. 개인이 나 사회 모두 ‘병이 깊어 치유할 수 없는 상 태’를 뜻하는 ‘병입고황(病入膏肓)’은 피해 야 한다.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는 한비자 고분(孤憤)편에 서 “죽은 사람과 같은 병을 가진 자는 살아남 기 힘들고(與死人同病者, 不可生也), 망한 국 가와 같은 형국의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與 亡國同事者, 不可存也)”고 했다. 병들지 않으 려면 건강해야 하듯, 국가도 망하지 않으려 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에볼라 기세가 무섭다. 정부가 역병(疫 病) 발생 지역에 보건팀을 파견하는 등 국제 방역(防疫)전선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소식 도 들린다. 환자들의 쾌유(快癒)를 바랄 뿐 이다.


28 Column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4 ‘나홀로족’의 생존법

일러스트 강일구

길 위의 인문학

노동보다 더 피곤해진 연애  차라으~리 의리로 살자 고미숙 고전평론가

최신 통계에 따르면 ‘나홀로족’이 점차 증가 추세라고 한다. 심지어 조만간 ‘나홀로족’이 4인 가구를 넘어 가장 일반적인 가족 형태가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0세기 초 서 구 문명의 도래와 더불어 이 땅에 수많은 가 치가 탄생했다. 민족·국가·국민·계몽·혁명 등등. 대부분의 가치는 자본의 전 지구적 확 장 및 디지털 문명과 더불어 점차 종언을 고 하고 있다. 하지만 민족·국가의 최소 단위로 부상했던 ‘가족주의’만은 여전히 막강한 위 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고와 드라마, 영화 등 각종 미디어에선 ‘가족 사랑’만이 삶의 유일 한 버팀목이라는 ‘선전·선동’을 쉬지 않고 쏘 아댄다. 그런데 현실은 보다시피 ‘나홀로족’의 부 상이다. 기댈 곳은 가족밖에 없다는데, 가 족을 포기(혹은 거부)하는 이들이 점점 늘 어난다? 이 아이러니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 야 할까?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는 진단이 대부분이 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 부일까? 그게 전부라면 중산층 이상은 가족 적 연대가 공고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렇지 못하다. 해서 좀 더 심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대 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가족주의’는 대가 족이나 가문이 아니라 핵가족이다. 핵이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최소 단위를 의미한 다. 엄마·아빠·아이로 구성된 트라이앵글이 핵가족의 형식이다. 역삼각형 꼴이라 그런지 출발부터가 몹시 위태롭다. 더 이상 쪼개지 면 가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자유연애 근저에 작동하는 화폐 법칙 그럼, 이렇게 위태로운 단위가 가족의 이상 적 타이프가 된 연유는 무엇일까. 남녀 평 등, 자유연애, 휴머니즘 등의 명분을 표방 하긴 하지만 근저에 작동하는 건 어디까지 나 화폐법칙, 곧 교환과 거래다. 그것은 이 광수의 무정(1917년)에서 비롯된다. 주인 공 형식은 구여성 영채와 신여성 선형을 두

고 끊임없이 재고 또 잰다. 일찍이 없었던 새 로운 스타일의 연애가 시작됐다. 이팔청춘이 면 누구나 거쳤던 자연스러운 결연 과정이 온갖 꼼수와 계산을 수반해야 하는, 이른바 ‘작업’이 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연애를 지배하 는 건 ‘스위트 홈’의 환상이다. 007가방을 들 고 출퇴근하는 사무직의 아빠, 에이프런을 두르고 양식을 요리하는 엄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 언덕 위의 하얀 집, 그리고 멋진 자가용. 지금도 모든 이가 행복 의 요건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항목들이다. 이걸 다 충족하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든다. 그 러니 함부로 짝짓기를 할 수가 없다. 당연히 재고 또 재야 한다.

‘스위트 홈’은 환상, 가족 부양은 현실 화폐적 연애는 작업·투자로 변질 ‘1대 다수’인 우정이 사회윤리 부합 지긋지긋한 연애타령 벗어날 때

지난 100년간 현대인들은 이 공식을 향해 맹렬히 돌진해 왔다. 이 공식에 맞춰 연애를 하고 ‘스위트 홈’을 이루면 행복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으면서. 결과는 참담하 다. 그 공식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 하나 있다. 카프카의 변신이 그것 이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 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 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변신의 첫 문장이다. 그레고르는 이 집 의 가장이다. 외판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간다. 자부심과 책무를 동시에 지닌 정규직이다. 그런데 어느 날 몸 이 벌레가 된 것이다. 갑옷처럼 딱딱한 등에 수많은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벌레라니. 이 건 변신이 아니라 ‘변태’라 해야 맞지 않나.

더 어이없는 건 그 다음이다. 그레고르는 몸이 그 지경인데도 출근시간에 늦을까 봐 안달이다. 가족들의 삶과 미래가 온통 자신 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나, 웬걸! 파 산한 줄 알았던 아버지는 그동안 꼬불쳐 놓 은 비상금을 밑천 삼아 은행의 수위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런데도 그레고르 는 가족들 걱정뿐이다. 특히 누이동생한테 바이올린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다. 웬 바이올린? 그래야 ‘스위트 홈’이니까. 아하, 이젠 알 듯도 싶다. 그레고르가 왜 벌레 가 됐는지. ‘스위트 홈’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 가다 보니 몸이 그렇게 굳어 버린 것이다. 참 을 수 없는 존재의 징그러움 혹은 끔찍함이 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제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죽도 록 뛰고 그 결과 갑충이 되었건만, 가족들은 이제 그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레고르 는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죽 음에 이른다. 등골 빠지게 일하다 정말로 ‘등 골이 빠져’ 죽은 것이다. 가족들은 그 기념으 로 교외로 소풍을 떠난다. “전차가 내려야 할 장소에 도착하자 잠자 양(누이동생)이 제일 먼저 일어나 싱싱한 팔 다리를 쭉 뻗었다. 잠자 부부의 눈에 그 모습 은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 증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스위트 홈’을 위한 새로운 희생양 이 등장한 것이다. 언젠가 그녀 또한 한 마리 의 벌레로 변할 것이다. 이처럼 ‘스위트 홈’은 결코 스위트 하지 않 다. 몹시 쌉싸름하고 살벌하다. 교환법칙의 지배를 받는 한,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를 ‘등 쳐 먹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가족드라마 가 언제나 막장으로 치닫는 이유가 거기에 있 다. 음모와 배신,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 이 것이 드라마가 보여 주는 우리 시대 ‘가족의 초상’이다. 그런 점에서 ‘나홀로족’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일단 경제적 이유 때문인 건 맞 다. 교환법칙이 고도화될수록 핵가족은 단 자들로 쪼개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다 른 한편 ‘스위트 홈’의 환상이 완전히 깨진 탓 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갑충이 되고 싶지

않다. ‘스위트 홈’을 향해 달려가는 한 결국 은 벌레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눈 치챘다고나 할까. 연애와 윤리는 일치하기 어려워 그렇다면 이 핵가족의 원천이자 출발인 연애 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위태롭다. 핵가족이 그랬듯이 연애 역시 사랑의 ‘화폐적’ 변형이 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연애가 노동보다 더 피곤한 일이 됐다. 오죽하면 개콘에도 ‘연애 능력평가’라는 코너가 생겼을까. 원래 짝짓 기엔 에너지가 많이 드는 법이다. 성적 쾌락 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탐닉하 다 졸지에 증오의 화염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래서 연애와 윤리의 일치란 결코 쉽지 않 다. 그렇기는커녕 연애에 몰두하는 순간, 성 욕은 항진되고 소유욕은 증식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대세인 ‘성형 열 풍’이 그 증거다. 성형의 목적은 거의 대부 분 짝짓기다. 당연히 섹시미가 유일한 척도 다. 섹시해져야 많은 이성을 유혹할 수 있 고, 또 그래야 더 많은 화폐를 소유할 수 있 으니까. 과연 이 광풍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 리고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성 형천국’은 ‘연애지옥’이라는 사실이다. 성 욕과 화폐가 만나는 순간 연애는 더 이상 에 로스의 향연이 아니라 ‘작업이자 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핵가족이라는 프레임과 더 불어 이 지긋지긋한 연애타령도 같이 종식해 야 하지 않을까. 아, 사랑을 포기하거나 에로 스를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건 그냥 ‘자 연의 흐름’에 맡겨 두고 다른 가치를 연마해 야 한다는 뜻이다. 우정과 의리가 그것이다. 사실 ‘나홀로족’ 에게 절실한 건 연애가 아니라 우정이다. 연애 는 선택이지만 우정은 필수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의 방향은 하나 다. 단자적으로 분열된 ‘나홀로족’들의 자유 로운 연대와 공존! 그래서 모두들 길 위의 존 재가 된다. 스위트 홈은 정착민이 되지만 나 홀로족이 되면 굳이 하나의 장소나 집을 고집 할 이유가 없다. 나홀로족이 정착을 하면 고 립과 단절로 치달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무조건 길 위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핵가족을 뛰어넘는 다양한 실 험을 동반할 것이다. ‘셰어하우스’나 다가구 실험, 우리 공동체(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하고 있는 ‘더부살이 프로젝트’ 등이 거기에 속한다. 프랑스에선 독거노인과 청년들이 함 께 사는 콜로카시옹(colocation) 운동을 실 험 중이라고 한다. 여기엔 정해진 방향이나 룰이 없다. 각자 의 조건에서 자유롭게 ‘헤쳐모여’ 하면 된다. 뭘 하든 상관없지만, 단 하나, 사람은 다른 사 람과 연결돼야 비로소 ‘살맛’을 누린다는 소 박한 진리, 아니 자연의 섭리만 잊지 않으면 된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윤리적 훈련이다. 그것이 바 로 우정이고 의리다. 연애의 윤리를 훈련하 는 건 쉽지 않지만 의리는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다. 아니, 의리야말로 배우고 익혀야 한 다. 또 배운 만큼 내공이 커진다. 애 쓰고 기 쓴다고 사랑이 이뤄지나 연애는 ‘일대일’이지만 우정은 ‘일대다’다. 친구는 또 다른 친구로 이어지는 다리다. 생 각해 보라. 평생 동안 소위 ‘운명적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서너 번일 것이다. 그 이상이라면 ‘연애 중 독’을 의심해 봐야 한다. 실제로 한 번도 없 는 경우도 적지 많다. 왜 그럴까? 사랑이란 내 안의 ‘자연(무의식)’이 요동치는 것이기 때 문이다. 애를 쓰고 기를 쓴다고 될 리가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핵가족이 이렇게 어이없이 무너지겠는가.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연애(사랑의 ‘변태 적’ 형식)만이 삶의 가치라고 쉬지 않고 떠들 어댄다. 그다음엔? 스위트 홈이 기다리고 있 단다. 헐~ 간신히 빠져나온 그 막장의 늪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다시 갑충이 되란 말인가? 이 망상의 코스만 벗어나도 ‘나홀로족’의 앞 날은 밝다. 그러니 이젠 정말 새로운 슬로건 이 필요하다. ‘연애 말고 의리’! 고미숙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 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3 종세트 달인 3종세트  동의보감 3종세트 등.


Column 29

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6>

“공산당 타도” 외친 국민당, 레닌 스타일 따라 당 건설 1988년 1월, 장징궈(蔣經國·장경국)가 타이 베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제스(蔣介石·장 개석)와 장징궈, 양대에 걸친 철권통치 시대 가 막을 내렸다. 국민당은 신임 총통 리덩후 이(李登輝·이등휘)를 당 주석에 선출했다. 한 정치평론가의 글이 눈길을 끌었다. “그간 중 국국민당은 레닌의 당 건설 사상을 모델로 삼았다. 장징궈의 사망과 리덩후이의 출현은 레닌식 운영의 철저한 파기를 의미한다.” 수십 년간 “공산당 타도”를 외치던 국민당 이 레닌식 정당이었다는 말에 사람들은 경악 했다. 60여 년간 쌓인, 역사의 미세한 먼지를 걷어내자 윤곽이 드러났다. 1921년 5월, 광저우(廣州)에서 비상대총통 (非常大總統)에 취임한 쑨원(孫文·손문)의 꿈은 오로지 북벌(北伐)이었다. 코민테른 대 표 마린이 국·공이 연합해 북벌을 하자고 제 안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미적거리기 는 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마린이 중국을 떠 나자 국·공 연합은 무산되는 듯했다. 쑨원도 사람이었다. 된통 얻어맞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22년 6월, 쑨원의 지지자 였던 광둥 군벌 천중밍(陳炯明·진형명)의 군 대가 쑨원의 거처를 공격했다. 구사일생, 광 저우를 탈출한 쑨원은 망망대해를 떠돌았다. 급전을 받고 달려온 장제스의 도움으로 상하 이에 겨우 안착했다. 절망에 빠진 쑨원은 공산당에 손을 내밀 었다. 비슷한 처지의 중공도 노(老)혁명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합작과 혁명군 양성 에 머리를 맞댔다. 소련에도 “사람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레닌의 특사 요페(Joffe) 가 마린을 대동하고 광저우에 나타났다. 볼셰비크 후보 중앙위원과 베를린 주재 대 표를 역임한 요페는 한때 레닌의 전권대표 자격으로 베이징의 북양정부와 담판을 벌인 적이 있었다. 외교관계 수립이 목적이었지만 북양정부는 외몽고에 주둔 중인 소련군 철 수부터 요구했다.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우페이푸(吳佩孚·오패부)에게 접근했을 때 도 반응은 비슷했다. 요페의 보고를 받은 레 닌은 우페이푸를 포기하지 않았다. 광저우에서 쑨원을 만난 요페는 중국 공 산당에는 관심이 없었다. 소련의 입장을 설 명하며 우페이푸를 거론했다. “소련은 중국 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 외교관계가 회복되 기를 바랄 뿐”이라며 군사력을 갖춘 우페이 푸와의 연합을 권했다. “중앙정부의 대권을 장악하면 우페이푸를 고위직에 임명하기 바 란다.” 군사원조를 조건으로 중국에 공산주 의를 선전해 줄 것도 요구했다. 쑨원은 “공산 주의와 소비에트 제도는 중국에 적합하지 않 다”며 지지한다는 발언조차 하지 않았다. 레

소련에서 귀국한 장제스(왼쪽 둘째)는 쑨원(왼쪽 셋째)과 한 차례 기싸움을 치른 후 황푸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24년 6월 16일 황푸군관학교 입학식.

쑨원, 북벌 미루다 군벌에 역습 공산당소련과 연대하기로 결심 소련군 체제 배우려 장제스 파견 장, 호찌민 등 외국 혁명가와 교분

황푸군관학교는 국공합작의 산실이었다. 프랑스 파 리에서 소년공산당을 창당한 저우언라이도 정치부 주임으로 장제스를 보좌했다. 황푸 시절 국민당 군 복을 착용한 저우언라이.

[사진 김명호]

닌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요페는 국민당 과 중공의 연합을 추진하는 것 외에는 대안 이 없었다. 쑨원과 랴오중카이(廖仲愷·요중개)는 요 페에게 혁명군 양성을 위한 소련의 지원을 끈 질기게 요구했다. 랴오중카이의 아들인 전 중공 부주석 랴오청즈(廖承志·요승지)의 회 고를 소개한다. “상하이에서 광저우의 대원수부(大元帥 府)로 돌아갈 날을 고대하던 쑨원의 사상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에 충성스 러운 군대가 없는 한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며 소련 홍군의 건군 경험을 모방한 군관학 교 설립을 결심했다.” 요페는 쑨원과 공동전선을 발표했다. 골 자는 군관학교 설립이었다. 그해 겨울, 쑨원 은 중공당원들의 국민당 입당을 수락했다. 국민당과 소련이 정식으로 연맹을 결성하자 중공도 “공산당원이 개인 신분으로 국민당 에 입당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결의안을 채 택했다. 소련은 군사 전문가와 정치공작 전문가를

대거 광저우로 파견했다. 소련 군사학교의 경 험을 익히기 위해 시찰단을 파견하고 싶다는 쑨원의 요청도 받아들였다. 쑨원은 “가장 능 력 있는 사람을 모스크바로 보내겠다. 소련 의 정치와 당 업무, 군사시설을 둘러보고, 소 련 홍군의 경험을 토대로 건군에 착수하겠 다”는 답신을 보냈다. 쑨원은 젊은 사람 중에서 시찰단 후보자 를 물색했다. 시종일관 자신의 친(親)소련 정 책에 반대하던 30대 초반의 장제스가 떠올랐 다. 쑨원의 속을 알 리가 없던 장제스는 기회 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쑨원에게 “10월 혁명 에 성공한 소련을 둘러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정중한 협박도 잊지 않았다. “저의 소 련행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스스로 갈 길을 찾겠습니다.” 쑨원은 장제스에게 시찰단 단 장의 중임을 맡겼다. 장제스의 3개월에 걸친 모스크바 체류기 간은 국·공 연합의 옥동자 황푸군관학교의 잉태기였다. 비서와 두 명의 공산당원을 대 동하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장제스는 환대를 받았다. 암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레닌은

만나지 못했지만,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주 석 지노비예프와 함께 회의를 주재하고, 소 련 홍군의 아버지 트로츠키로부터 무기와 경 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냈 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 원인을 분석한 일기 도 남겼다. “세 가지가 러시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었다. 첫째, 노동자가 혁명가들의 선동을 받 아들였다. 둘째, 농민들이 동요하지 않았다. 셋째, 각 민족의 자치와 연방제를 수용했다.” 특이한 점도 일기에 남겼다. “아동교육이 엄 격하고, 노동자들이 군대교육을 받아들인 다. 국가가 작은 공장을 개인에게 임대해 주 는 것도 특이했다.” 장제스는 모스크바에 와 있던 외국 혁명 가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월남의 호찌민(胡 志明)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지노비예 프의 소개로 중공 창당을 도왔던 보이딘스키 와도 다섯 번 만났다. 보이딘스키는 공산당 입당을 권했다. 장제스는 “내가 온 목적은 군 관학교 설립을 위한 것 외에는 없다”며 거절 했다. <계속>

위해 욕심을 부리기보다 높은 확률의 이익을 안전하게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적극 회피한 다. 따라서 이익 실현을 위협할 수 있는 유혹 을 쉽게 물리치며 다른 선택 대안에 대해 고 려조차 하지 않는다. 반대로 거의 확실하게 손실이 발생되는 상 황(B)이라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해서든 손 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찾는데, 이를 위해 언제든지 모험을 감행할 준비가 돼 있 다. 예를 들어 수중에 있는 1억원을 내놓아야 하는 확률이 95%인 상황에서는 이 손실만 피할 수 있다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하려 는 유혹에 빠지기 싶다. 도박으로 큰돈을 탕 진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빚을 내서 이전의 손 실까지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것이 그 대표적 인 예다. 그러나 이익 상황이라도 그 발생 확률이 사소할 정도로 낮은 상황(C)이라면 우리의 뇌는 확실한 이익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한다. 아무리 이익 상황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면 모험을 감행한 다고 해서 더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얻을 확률이 5%에 불과한 상황 에서는 뭔가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1억 원이라는 이익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 당첨 확률이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 로 로또를 구입하는 소박한 위험 추구자들도 이 영역에 존재한다. 이들은 객관적인 발생 확률보다 더 높은 기대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객관적 기대값보다 더 높은 비용을 주고도 기꺼이 로또를 구입한다. 반대로 손실 발생이 현저히 낮은 상황(D) 에서 우리의 뇌는 굳이 더 높은 이익을 실현 하기 위해 모험을 추구하기보다는 손실 자체 를 확실히 제거하려 한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잃을 확률이 5%에 불과할지라도 주관적으 로 느끼는 불안은 5%보다 크기 때문에 위험 회피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낮음 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구매를 꺼리거

나, 희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현저히 낮음 에도 불구하고 납부 금액이 휠씬 높은 다보 장 보험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에게 가장 주의 깊은 판단이 필요한 상황은 높은 확률의 손실에 직면하는 때다. 일반적으로 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곧바로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그러다 손실이 더욱 커지기도 하며, 이를 해결하고자 거짓 으로 둘러대다 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 기하기도 한다. 우리의 뇌는 손실 상황이 야기하는 긴장과 공포에서 재빠르게 벗어날 수만 있다면 기꺼 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 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공포감, 그 자체가 아니 라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에 빠진 뇌는 위험하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상황이 만드는 생각의 패턴

우리의 뇌는 이익 상황과 손실 상황에서 다 른 선택을 한다. 또한 동일한 확률적 변화에 도 상황에 따라 주관적인 가중치를 부여한 다. 이렇게 우리의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 치는 손익 상황(이익 및 손실)과 확률 상황 (고확률 및 저확률)을 교차하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상황이 나온다. 괄호 안은 상황별로 작동하는 생각의 패턴이다. A. 고확률의 이익 상황(위험 회피) B. 고확률의 손실 상황(위험 감수) C. 저확률의 이익 상황(위험 추구) D. 저확률의 손실 상황(위험 제거) 우리의 뇌는 이익은 지키고 손실은 회피 하고 싶어 한다. 특히 거의 확실한 이익 실현 이 기대되는 상황(A)에서 우리의 뇌는 안전 을 추구하며, 추가적 이익 확보를 위해 모험 을 감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억원을 얻을 확률 95%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이익을 얻기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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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북한을 대화 마당으로 이끈 돈줄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최근 북한의 움직임 중에 놀라운 것은 북한 수뇌부가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인천 아시 안게임에 갑자기 나타났던 것 뿐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북한 당국이 고집하고 방어해 왔던 입장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북한은 11 년 만에 유럽연합(EU)과 인권 대화를 재개 하기로 했다. 또 유엔의 북한 관리는 자기 나 라에 강제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 다. 노동교화소의 성격에 대해 명확히 밝히 진 않았지만 북한이 공개 석상에서 형사처벌 체계에 대해 언급한 것만으로도 큰 변화다. 마지막으로 북한 관리들은 최근 서방 전문가 들과 세 번의 만남에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먼저 공 격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핵을 사용하 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 은 아주 크고 바람직한 정책의 변화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이 약속 속에 가둬놓

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북한을 핵 보유 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을 먼저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동안 김정은이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게 가장 놀라운 뉴스였지 만 이제 그가 다시 나타난 이상 장기적인 의 미를 갖기는 어렵게 됐다. 최근 북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해 2월 중국이 대북 원조에서 현금을 제외하는 식으로 원조의 구성을 바꾼 것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당시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 했고 중국을 화나게 만들었다. 김정은이 취 임 이후 한 번도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도 냉각된 북·중 관계를 보여준다. 중국이 친구로 생각하던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관계 를 더 악화시켰다. 이렇게 관계가 냉각되면서 중국 기업들이 전보다 더 북한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북한도 불만을 숨기지 않았 다. 중국 국경절인 지난 1일 북한은 공식 메시 지에서 ‘우호’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 러 수교 66주년 기념일에 즈음한 따뜻한 대 러 메시지와 비교된다. 또 중국과의 수교 기

장벽은 두드려야 무너진다 한경환 칼럼 외교안보 에디터 helmut@joongang.co.kr

해마다 이맘때면 독일은 분주해진다. 현대 사의 숨가빴던 굵직굵직한 기념일들이 징 검다리처럼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 3 일은 독일 통일 24주년이었으며 9일은 베를 린 장벽 붕괴를 이끌어낸 라이프치히 월요 집회 시작일, 그리고 다음 달 9일은 장벽 붕 괴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동서 냉전 종식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 붕괴 사반세기가 되 는 해여서 더욱 뜻깊다. 2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0월 9일 라이 프치히엔 7만 명이 넘는 ‘용기 있는 동독인’ 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SED(사회주의통 일당) 정권을 향해 “우리가 국민이다”를 외 쳤다. 아직까지 서슬 퍼런 동독 군과 40만 명에 달하는 주동독 소련군이 건재하던 때 였다.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 도중 체포돼 투옥되거나 진압군의 발포로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쓴 항거였다. 혹자는 이를 프랑 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습격 사건 에 비유하고 있다. 이어진 동베를린에서의 민주화 시위에는 100만 명이 넘게 참가했으면 급기야 11월 9 일은 장벽이 붕괴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 어졌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정권 몰락의 단 초가 된 장벽 붕괴는 이듬해 10월 3일 독일 통일로 결실을 맺었다. 통일 24주년을 맞는 지금의 독일은 글로 벌 경제위기 속에도 독야청청하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 대한 ‘퍼주기’ 지원을 우려할 정도가 됐다. 통일 이후의 통합과정에서 나 타난 온갖 정치·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극복 해내고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모범적 인 국가로 우뚝 선 것이다. 물론 여전히 동서 간의 격차는 남아 있다. 옛 동독 지역의 국민소득은 서쪽의 70% 수 준에 그친다. 실업률은 두 배나 된다. 생산성 도 여전히 서독 지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등 북부의 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미래의 경제성장 동력에 대한 희망을 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통일의 성과는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과 사반세기 만에 기적을 이뤘다 할 수 있 다. 라이프치히·드레스덴·예나·츠비카우 같

중국 원조 줄자 다른 파트너 찾아 일러EU의 도움은 기대 어려워 한국, 북 적극 돕되 휘둘려선 안 돼

념일인 지난 6일 북한의 미디어는 조용했다. 북한은 줄어든 돈을 메울 필요성이 생겼 고, 대중 경제 의존도도 낮추려 하고 있다. 그 래서 다른 경제적 파트너를 찾아나섰다. 일 본과 납북자 문제에 대한 대화에 나선 것도 전쟁 보상금을 받거나 경제제재를 완화해 보 려는 포석이다. 지난달 북한을 방문했던 지 인은 북한 사람들이 ‘일본 대박’에 대해 신이 나서 얘기하더라고 전해줬다. EU와의 인권 대화, 유엔에서의 전향적인 태도도 다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 이 매우 크다. 일본과의 대화는 시간이 오래

해외 만평

걸릴 것이며,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납북자 문제 해결은 필요하지만 북·일 수교나 보상 금 지급에 충분한 요소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 기업인들도 확실한 투자 기회가 있고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져야만 북한 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유럽에 갔던 북한 사절단은 원조와 무역은 커녕 고 위급 회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결국 북한이 갑자기 남북 대화를 재개하 기로 한 것은 중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받아낼 가능성이 없는 경제적 지원을 한국 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황병서와 같은 최고위직을 최고 지도자의 전용기에 태 워 보낸 것도 북한이 얼마나 남북관계 개선 에 공을 들이는지 보여준다. 대북 삐라를 둘러싼 총격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조금 있 으면 대화의 장에 나올 것이다. 지난 15일 열 린 군사회담이 5시간 만에 결렬됐지만 남북 간에 쌓인 현안의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김정은이 다시 나타나 위성과학자주택지 구를 방문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과

학자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준비했던 인 력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국제사회와 건설적 인 관계를 갖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면서도 북 한이 다른 옵션도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6일 서해상, 10일 휴전선 너머로 총격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이처럼 한국에 먼저 손을 내민 것 은 이례적이다. 한국 정부가 이 엄청난 전략 적 기회를 잘 활용하길 바란다. 하지만 정신 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북한은 최대한의 혜 택을 받아내고 최소한의 상징적 양보만 내주 는 데 전문가다.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은 과거 자신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중국을 갈라놓으려고 한 적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좋은 관계가 그런 일을 막아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는 앞 으로 몇 달 새 한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느 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존 에버라드 전 영국 외교관. 벨라루스ㆍ우루과이 대 사 거쳐 2006~2008년 주 북한 영국 대사 역임. 전 스탠퍼드대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센터 팬택 펠로.

“얘들아, 내 기사 좀 크게 쓰면 어디 덧나니?  에볼라 공포 확산되자 한국도 해외에 방역 인력 파견키로.

은 동독 중남부 작센·튀링겐주의 도시들은 서독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이 눈부시 다. 통일 수도가 된 베를린의 동부지역도 활 기가 넘친다. 예술·엔지니어·컨설턴트 분야 의 발전이 두드러져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몰 려드는 곳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남북한 통일의 꿈을 가진 우리로서는 부 러울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한반도엔 여전 히 냉전의 기운이 차다. 미사일이 날아들고 서해엔 포성이 들린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찾아오기 벅차겠지만,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선 철 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하다. 25년 전 독일과 지금의 한반도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우리 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전쟁을 치렀고 한 쪽에선 핵무기를 개발 중이다. 남북한의 경 제력도 동서독에 뒤진다. 막연하고 어설픈 통일을 기다렸다가는 지금 통일독일이 누리 는 번영은 고사하고 ‘쪽박’을 찰 수도 있다.

©CLEMENT/Cartoon Arts International www.cartoonweb.com

독자 옴부즈맨 코너

베를린 장벽 허문 건 인적교류의 힘

김정은 잠행 노동신문 분석 기사 전문성 돋보여

공단관광  휴전선 자꾸 넘어야 독일처럼 분단의 벽 없앨 수 있어

무엇보다 인적 교류가 시급하다. 따지고 보면 베를린장벽 붕괴는 장벽을 사이에 두 고도 동·서독인들이 반대 진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왕래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87년 서독인은 동독에 600만, 동독인 은 서독에 500만 명이 다녀갔다. 개성공단을 확대하든, 다른 공단을 신설 하든, 금강산·개성 관광을 재개하든,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본 것과 같이 남북 스 포츠 교류를 활성화하든, 사람들이 휴전선 을 남북으로 드나들어야 한다. 때마침 지난 4일 갑작스럽게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 용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인천을 다녀갔다. 제2차 고위급 회담도 곧 열릴 예정이다. 이 러한 모멘텀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베를린 장벽은 결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한다.

12일자 중앙SUNDAY는 북한의 도발에 단 호 대처하면서도 대화 동력은 이어가겠다 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노선을 1면 머리기 사로 올리면서 오른편엔 ‘북한군 총격의 흔 적’ 사진을 배치시켰다. 최근 북한 실세 3인 방이 깜짝 방문하며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긴장의 끈을 놓아서 는 안 된다는 점을 활자와 비주얼로 효과적 으로 전달해주었다. ‘김정은 잠행 38일째’ 관련 기사가 4, 5면 에 배치된 점도 시의적절했다. 북한 전문가 대담 기사는 깊이와 함께 균형 잡힌 시각을 전해주었다. 노동신문 지면 분석 기사는 타 지에선 보기 힘든 전문성이 돋보였고, 지난 해 노동신문과 비교한 그래픽은 눈길을 끌 었다. 정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북한 관 련 기사는 유혹이 많을 듯 보인다. 쉽게 예 단하거나 흥분하기보다 최대한 절제하는, 현재 중앙SUNDAY의 기조를 계속 지켜나 가길 기대한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판치는 21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에볼라’ 공포. 보도

역시 트렌드 및 현황, 그리고 사망소식에만 초점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 려운데 중앙SUNDAY도 관련 기사를 2면 에 소개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전 세 계 지구촌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이 무 시무시한 질병에 대한 다각적 분석을 토대 로 보다 심층 보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카카오톡 사태를 시작으로 이른바 ‘사이 버 망명’이라 불리는 최근 실태를 6면에 ‘검 찰이 불붙인 사이버 망명’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를 조목조목 알려준 가운데 대외적 인 분석까지 함께 가미돼 전반적인 흐름을 곱씹게 해주었다. 8면 주식시세표를 56년째 정독하고 있다는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장 인터뷰는 생생한 에피소드가 읽을 맛을 주 었다. 필자 역시 어렸을 적 경필대회에서 입상 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병원진료를 위해 접수를 할 때라도 직접 쓴 글씨가 엉망 진창이라 부끄러울 정도다. 14~15면 스페셜 리포트에 실린 ‘다시 부는 손글씨 바람’은

이미 다른 언론에서 관련 뉴스를 접해 약간 의 기시감이 들긴 했지만, 읽을거리가 풍부 해 정독할 수 있었다. 19면 ‘안장원의 부동 산노트’는 최근 부동산 경향을 구체적 수치 와 함께 소개해 줘 명쾌했다. 21면 비즈 리포트에 소개된 ‘SK 창조경 제 현장을 가다’는 최근 핫 아이템인 셀카 봉을 손수 들고 기념촬영 중인 박근혜 대통 령의 사진과 함께 현장 르포를 충실하게 소 화했다. 국정 어젠다인 ‘창조경제’ 구현에 앞장서고 있는 많은 기업을 알려줬으면 좋 겠다. 이와 함께 S매거진에서도 별책으로 제작돼 마케팅 효과가 높은 만큼, 관심 있는 기업이나 기관에 지면을 오픈해 그들이 제 안한 주제로 전 페이지를 꾸밀 수 있는 기회 가 있었으면 좋겠다. 최민수 13년간 건설회사·자동차회 사 등을 거치며 홍보맨으로 활약했 다. 현재 CJ그룹 홍보실 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신문 읽기가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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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국민 위한 개헌, 그 네 가지 원칙

황정근의

시대공감

헌법 개정은 ‘대한국민’이 하는 것 여론이 하자면 대통령도 거들어야 통치권력 구조 큰 변화는 피하되 기본권 확충하는 방향이 바람직

변호사

최근 국가개조 차원에서 조속히 개헌을 추 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강하게 일고 있다.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자 문기관인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올 5월 23 일 이미 상당한 수준의 헌법개정안을 의장 에게 보고한 바 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 155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 임’도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국회에서 개헌 특위(헌특) 구성 방안이 본격 논의될 가능 성이 높다. 다른 한편에는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해 야 할 시점에서 개헌은 모든 사안의 블랙홀 이 될 것이라는 시기상조론이 버티고 있다. 2000년부터 개헌을 주장했고 대선 공약으 로 4년 중임제를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은 올 들어 개헌 반대론을 펴고 있다. 개헌 논 의가 앞으로 어떻게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 된다. 개헌을 논의하고 추진할 때 다음과 같 은 몇 가지 원칙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정치권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 을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한다. 개헌은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추진돼야 한다. 개헌이 국 민여론의 공감 없이 정치적 유불리나 정략 적·당파적 차원에서 논의돼서는 결코 성공 할 수 없다.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중임제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 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 권력구조 부분은 유 력 대선주자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 개헌 이 어렵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 한국민은… 헌법을… 개정한다.” 27년 전인 1987년 10월 29일 공포된 현행 대한민국 헌 법 전문(前文)의 일부다. 학창시절 헌법을 처음 배울 때 주어가 왜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인지 의아스러웠다. 헌법 개정은 바로 ‘우리 대한국민’이 하는 것이다. ‘대한국민’이 헌법 전문의 주어가 된 이유를 잊어버리고 추진하는 개헌은 성 공할 수 없다. 언제 개헌을 할 것인가도 국민 의 뜻에 따라야 한다. 헌법개정의 권력은 국 민에게 있기에 향후 국민여론의 향배에 따 라 정할 문제다. 둘째, 개헌은 정부의 협조하에 국회가 여 야 합의로 해야 한다. 헌법상 국민의 대표 인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와 대통령에게 개 헌 발의권이 있다. 대통령이 반대한다고 해 도 국회의 개헌 발의를 막을 수 없다. 국민 여론이 개헌에 적극적인 이상 어느 시점에 가서는 대통령도 ‘나는 국회의 개헌 논의를

반대한다’거나 ‘나는 안 하겠으니 국회에 서 알아서 하라’는 것보다는 ‘나도 돕겠다’ 는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정부도 ‘헌법연구 반’을 가동해 국회를 적극 도와야 한다. 헌 특에서 여야 갈등이 첨예화하는 것을 막고 합의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 87년 개헌 과 정에서처럼 여야 동수의 ‘8인 정치회담’을 가동하면 효율적일 것이다. 셋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대폭 확충 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헌법은 크게 기본 권 부분과 통치구조 부분으로 나뉜다. 개 헌은 기본권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 다. 헌법의 인권 부분은 손 볼 것이 많다. 국제적 인권 보장 수준과 선진 외국의 헌법 에 맞게 최신의 것으로 다듬어야 한다. 국 내외 헌법재판기관이 정립한 인권에 관한 판례도 반영해야 한다. 기본권 확대야말로 개헌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기본 권 분야는 헌법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 용하면 된다. 넷째, 권력구조 부분은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제도의 보완·개선에 그쳐야 한 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바람직한 정부 형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의원내 각제로 바꾸려면 극심한 의견대립이 야기 될 공산이 크다. 국민이 직선제 대통령을 선호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단임의 폐 해를 극복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 산하자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 다. 4년 중임 대통령제나 직선 대통령은 외 교·안보·국방·통일을, 국회 선출 총리는 내 치를 맡는 혼합제로 가는 정도의 보완만 해 야 한다. 헌법도 시대정신의 변화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물론 시장경제와 법치주 의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의 뼈 대는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 가 형성되고 몇 가지 쟁점에 대한 여야 합의 가 원만히 이루어지면 개헌은 절차적으로 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개헌론이 추진 동력을 얻을지, 아니면 찻 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인지는 이제 전적으 로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의 뜻에 달려 있 다. 먼저 개헌의 주요 쟁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여론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헌법은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국민과 국회와 정부 모두가 동의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하는 이 유다.

서울역 고가 명물 되려면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서울시가 서울역 인근 고가도로를 ‘보행자 전용 녹지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시가 계획을 수립하 고 추진하면 시민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그 대로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식이 성 숙된 지금은 사업 타당성을 놓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 12일 교통을 통 제하고 시민들에게 고가도로를 개방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1970년 준공 당시 박 정희 대통령 부부가 테이프 커팅을 위해 고 가도로를 걸어 올라간 이후 44년 만에 처음 이다. 5층 건물 높이의 고가도로에서 바라 보는 서울의 모습에 시민들은 환호했다. 사 방이 트여 있어 제법 그럴싸한 경관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이 고가도로는 당 초 노후화로 인해 철거 대상이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6년까지 뉴욕의 ‘하 이라인 파크’ 같은 하늘 공원을 조성하겠다 고 약속하면서 고가도로는 새로운 운명을 맞고 있다. 하지만 공원화에 반대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당장 주변 남대문시장 상인 등 지역 주 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고가도 로가 공원이 될 경우 교통체증으로 인해 접 근성이 떨어져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큰 불 편을 겪을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교통대란 유발하는 공원화 사업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적지 않 은 택시 기사들도 서울시의 계획에 반대하 고 있다. 역시 교통혼잡으로 생업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서울 역 고가도로의 공원화 사업은 신중하게 추 진돼야 한다. 사려 깊은 여론 수렴과정이 필 요한 이유다. 공원화가 최종 결정된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이냐도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서울 시의 계획은 뉴욕의 하이라인과 유사한 ‘서 울판 하이라인’이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길 이 2.33㎞의 하이라인은 사용하지 않는 고 가철로에 공원과 함께 산책길을 조성한 것 이다. 2009년 1단계 공사가 완료된 후 단계 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지난 9월 전 구간이 완공됐다.

개인적으로는 뉴욕의 하이라인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에 반대한다. 서울역은 서울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그 앞에 조성되는 공 원이라면 나름대로 서울의 특징을 제대로 상징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창의적 인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뉴욕의 하이라인은 93년 프랑스 파리에서 만든 ‘프 롬나드 플랑테(가로수 산책길)’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뉴욕식을 그대로 따 른다면 공산품을 생산하듯 도시의 각기 다 른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공원을 찍 어내는 것과 다름없다. 이럴 경우 공원은 복 제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서울의 역사와 시민 들의 생활방식을 잘 살펴야 된다. 원래 서울 역 고가도로는 산업화의 부산물이었다. 개 통 당시 서울은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다. 도 시의 팽창과 함께 원활한 교통을 위해 고가 도로와 지하도로가 많이 건설됐다. 서울 시

뉴욕 하이라인 단순 모방은 곤란 부작용 없도록 찬반 여론 잘 듣고 서울만의 특징 제대로 담아내야

민들은 한때 이런 새로운 건축물을 자랑스럽 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의 생 각은 달라졌다. 경제성 이익 외에도 삶의 질 을 높이는 방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공원으로 탈바꿈할 지라도 결국 보행자들의 교통로가 될 것이 다. 차량 대신 시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흡 인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외국 사례를 모 방하는 녹지공원이 아닌, 서울의 명물이 되 기 위해서는 서울의 거리다운 매력이 있어 야 한다.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정 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특징을 갖춰야 한다 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서울시의 연구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와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받았다. 일본 교토대와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 미국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On Sunday

말말말

홍콩 TV 보고 놀란 중국인들

“이교도를 노예로 삼는 것은 이슬람 율법도 인정”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15일(현지시간) 영어 등으로 발간하는 자체 온라인 매 체 다비크(Dabiq)를 통해 노예제도 부활을 선언하며.

박성우 경제부문 기자 blast@joongang.co.kr

최근 홍콩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 항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봤다. 맞은편 게이 트에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 하는 승객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중국 본토 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TV 앞에 딱 달 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인기 가수라도 나 왔나 하고 화면을 보니 새로울 게 없는 그날 의 홍콩 시위 소식이었다. 마침 담뱃불을 빌려 달라는 중국인에게 물어보니 “중국 본토에선 저렇게 사실 그대 로 보도하지 않는데 처음 봐서들 저런다”고 설명했다. 소식 자체보다 있는 그대로의 생 생한 화면이 나오는 게 생소했다는 얘기다.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중국의 안정을 해치는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가 유창하길래 “외국에서 산 적이 있느냐”고 다시 묻자 “미국에 5년 동안 있었는데 솔직히 선진국인지도 모르

겠고, 중국보다 나은 게 없더라”고 말했다. 홍콩의 시위대가 공정한 선거를 주장하 는 건 전적으로 옳고 지지받아 마땅한 일이 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1인 1표 직선제 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는 저마다 단기 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구조적인 어려움 을 겪고 있다. 부실한 건강보험제도로 국민 상당수가 아파도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미국,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이 일상화된 유럽, 창의력과 사회 역동성이 결여된 일본 등. 반면 권위주의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 전하며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군사적으 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투자 철회라는 철퇴를 맞곤 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간 독일·영국·이탈리아 총 리들이 이런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물론 중국의 경제 성장은 주춤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정치적 혼란을 겪을지 알 수 없 다. 인권은 물론 환경·사회보장제도 문제도 심각하다. 결국 자신감 넘치는 중국에 자유 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선 정부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밖에 없

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으니 우리는 선진국입네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의 시스템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더 좋은 방식 이란 걸 입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관료주의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 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개혁할 줄 모르는 정부를 보면 그래서 한숨이 나온다. 사이버 망명을 초래한 검찰, 폭행과 추행이 끊이지 않는 군, 동양증권·KB금융지주 사태에서 총 체적 무능을 보여 준 금융감독원 등 최근 불 거진 사건들은 전부 공공 부문에서 나왔다. 영어로 공직을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라고 한다. 벼슬을 얻었다고 으스대 는 자리가 아니라 허리를 굽혀 국민이 필요 한 것을 조달하는 직업이란 뜻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출간 한 책 정치적 질서, 정치의 쇠퇴에서 “최 고 수준의 정치적 질서를 확립한 선진 민주 국가가 이념 갈등과 이익단체에 휘둘리다 보면 그 질서가 제공했던 정치적 안정과 번 영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를 대입해도 통하는 말 아닌가.

“옆차기·돌려차기 다 할 수 있어요” 윤종승(자니윤)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 17일 국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설훈 국회 교육문 화체육관광위원장의 “나이가 많아 업무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에 답하며.

“자기 계발하던 배우는 지금 남아 있고  ” 항상 노력하는 것으로 유명한 원로배우 이순재씨, 17일 제3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박람회에 참석해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Numbers

전국 25개 주요 대학이 법학전문대 학원(로스쿨) 설치를 위해 투입한 비 용. 박광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 원 원장은 17일 ‘로스쿨의 재정 현황 과 정부 예산 지원 필요성’을 발표하 며 2008년 대학 25곳이 당시 교육과 학기술부의 설치 인가 기준에 따라 총 2902억5800만원을 투자했다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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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호 2014년 10월 19일~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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