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서울서 열린 한중 의회 바둑교류전
“경제 살리려면 큰 틀 먼저 그려라” Focus 6~7p
말 없이 통한 한중 ‘외교의 장성’ 쌓다
http://sunday.joongang.co.kr
Focus 11p
사할린 징용 희생자 유해 봉환
‘이정현 이변’ 만든 순천-곡성 유권자 100명 만나봤더니
“즈그들 뽑는 걸 당연히 생각하더니 아주 꼬소롬허구만, 맛 좀 봐야제”
28일 18구 돌아와 정부가 추진한 첫 집단 귀환
<새정치연합>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일제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 제로 끌려갔던 한국인 유해 18구가 곧 조국으로 돌아온다. 정부 고위 관 계자는 2일 “러시아 당국과의 협상 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달 28일 을 봉환일로 잡고 필요한 조치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8일은 일제에 강제로 합병(1910년 8월 29 일)된 날을 뜻하는 ‘국치일’의 하루 전이다. 이 작업은 국무총리실 소속의 ‘대 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지원 위원회’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이번 일은 사할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첫 집단 유해 봉환 사례가 된다. 1930년대 말 약 15만 명의 한국 인이 일제의 강점지였던 사할린으 로 강제동원됐다. 주로 탄광에서 의 채굴과 군사시설 건설에 투입됐 다. 그중 약 10만 명이 제 2차 세계 대전 중 다른 지역으로 다시 동원 됐고 45년 8월 일제의 패전 때는 4 만7000명가량이 남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 고 사할린 또는 다른 러시아 지역 에서 생을 마감했다.
최민우 기자 순천곡성=박종화·황은하 인턴기자 minwoo@joongang.co.kr
“(새정치민주연합은) 똥만 싸고 날아 가 버리는 비둘기라, 우릴 물로 봤어. 당해도 싸.”(용당동 주민 조원성) “아주 꼬소롬허구만, 즈그들 뽑아 주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맛 좀 봐야제.”(자영업자 이호) 7·30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의 투표 결과는 뜻밖이었다. 새 정치연합 서갑원 후보에 대한 바닥 민 심이 흉흉해도, 새누리당 이정현 후 보가 “예산 폭탄” 운운해도 어디까지 나 호남, 그것도 전남 아니었나. 내 편 (새정치연합) 밉다고 상대방(새누리 당) 밀어주는 ‘배반 투표’를 호남 유 권자만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야당 은 의심하지 않았다. 또 이 후보가 비 록 선전했지만 결국 지역주의의 두꺼 운 벽을 실감하리라고 대다수 전문가 는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 후보 의 9%포인트 차 완승.
선거 때만 전라도 이용해 불만
입사 초년생 4명 중 1명 사표 내는 까닭
호남당 이미지 많이 약해져
대졸 신입사원 넷 중 하나가 1년 내 에 사표를 쓴다. 기업은 신입사원 의 적응 능력을 탓하고 초년병들은
고령화 심해 40대면 젊은이 먹고 사는 현실문제에 민감 이로써 망국적 지역주의는 사라진 것일까. ‘호남=피해자’라는 의식은 없 어진 것일까. 중앙SUNDAY는 선거 이튿날 순천곡성으로 가 2일까지 사 흘간 머물며 주민 100명을 인터뷰했 다. 질문의 핵심은 “호남에 기반을 둔 새정치연합을 왜 외면했는지” 그리고 “이정현을 찍는 게 결국 새누리당을 도와주는 꼴인데 괜찮은지”였다. “누가 새정치연합을 호남당이라고 합디까.” 첫 답변부터 질문을 비켜갔 다. 택시기사 김모(52)씨는 “안철수 가 광주 사람인가, 부산이재. 김한길 도 그라고. 그짝(새정치연합)에 전라 도 사람 별로 보이지도 않더만”이라 고 했다. 중앙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윤모(62)씨는 “선거 때만 전라도 이용 해 묵지, 김대중 슨상님 돌아가시고는 많이 거시기해져 부렀지”라고 했다. 당에 대한 실망만큼 서갑원 후보에 대한 불만도 컸다. 조례동 주민 서모 (38)씨는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가고 비리 저질러 감옥 갔다 온 사람이잖 아요. 그런 사람 또 내리꽂는 거 보면 (새정치연합) 콩가루인 거죠”라고 했 다. 연향동 주민 정순희(42)씨는 “서 갑원, 의리가 없어요. 우리 아파트가 사기로 경매 넘어가, 몇 번 찾아갔는 데 별 시덥잖게 생각해불더만”이라
90년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 뒤 일 부 유족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묘를 찾아내 개별적으로 유해를 한국으 로 옮겨오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작업은 지난해 8월 희생자 한 명의 유해를 시범적으로 봉환한 경우뿐 이었다. 18구의 유해는 사할린 현지에서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된 뒤 유골함에 담겨 인천공항에 도착하 고 이어 충남 천안시의 ‘망향의 동 산’에 안장될 예정이다. 망향의 동산 은 조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는 해외 동포들을 위해 정부가 76년에 국내 외의 성금으로 조성한 묘역이다. 대일항쟁기위원회는 최근 3년간 사할린 지역 20여 개 묘지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여 6000기 이상의 한 국인 묘를 찾아냈다. 해당 묘의 유 족이 확인되고 유족이 국내 안장을 원할 경우 추가로 봉환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정부는 당초 광복절인 15일 하루 또는 이틀 전에 유해를 봉환하려 했 으나 러시아 당국과의 일정 조정에 서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정부 관 계자는 “외교 채널을 통한 일본 측 의 간섭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 다”고 말했다.
흥미와 비전을 주지 못하는 회사가 싫다고 한다. 이 간격을 어떻게 줄 여야 할까. 8p
중국 장쑤성 금속공장 폭발사고 적어도 68명 사망 부상자는 180명 넘어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바닥 민심을 다진 게 승리의 요소였다.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선거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고향인 곡성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경준(29)씨는 “몇 년 전 순천대 공대를 이전하기로 했는데 당시 서갑원 국회의원이 반대 해 좌절했다. 순천대생 대부분이 서 갑원을 싫어한다”고 전했다. “서갑원 될까봐 이정현 찍자는 분위기가 있었 다”(연향동 주민 구대서)고도 했다. 아예 “이번이 유별난 게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새정치연합 안 좋아했다” 는 지역민도 다수였다. 해룡면의 한 주민은 “새정치연합 깃발 꽂으면 무 조건 되는 게 아닌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순천시장은 무소속 후보가 연이어 당선됐고 지역 국회의원 역시 진보정당 후보가 연거푸 차지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8월 3일자 S매거진 휴간합니다
곡성=프리랜서 오종찬
“순천-곡성에서의 새정치연합 지배 력은 이미 상당히 상실됐으며 제3 세 력 출현에 대한 지역민의 갈망이 컸 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많이 줄 어든 것일까. 이 대목에선 꽤 복잡한 심경이 드러났다. 연향동 주부 박정 은(42)씨는 “새누리당을 찍는 게 괜 스레 배신하는 거 같아 죄책감이 들 긴 했다”고 털어놨다. 김창욱(52)씨는 “박근혜 보고는 못 찍지. 솔직히 이중 적이긴 했다”고 전했다. 조례동 주민 강광철(41)씨 역시 “여전히 새정치연 합을 지지한다. 이번엔 심판하는 마 음이었다. 살 길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
감은 높았다. 생목동의 한 주민은 “번 듯한 병원 하나 없다. 순천의 소외감 을 딴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다. 곡성 읍에 사는 송하정(58)씨는 “여기선 40대가 젊은이다. 일자리가 더 생겨 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투표 결과를 지역주의 해소로 읽어도 되는 걸까. 곡성군 겸면의 심 모(75) 할머니가 답을 줬다. “지역감 정은 무신…. 누가 지역주의 부추겼 는디, 그냥 전라도 왕따였지. 그거 분 해서 새누리당 안 찍은 거였어. 근디 언작까지 그러고 살아야 하나 싶더라 고. 아무리 억울해도 당한 우리가 마 음을 풀어야 하지 않 겄어. 그거 저 윗 사람들이 알른가 모르겄어.” 관계기사 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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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중국 장쑤(江蘇)성 쿤산(昆山) 시의 한 금속공장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해 68명 이상이 숨졌다. 이날 중국 언론들은 “쿤산시 개발구 에 있는 도금업체인 중룽(中榮)금속 제품유한공사 공장에서 폭발사고 가 일어났다”며 “자동차 휠의 도금 작업 중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 상자가 최소 187명을 넘어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전했다. 사고 직후 소방 당국과 경찰이 현 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정확한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쿤산 지역 병원 은 폭발사고로 인한 화상환자로 가 득 찼으며 중국 정부는 화상 전문 의 료진을 현지에 급파했다. 중국에선 지난해에도 지린(吉林)성 닭 가공 공장 화재로 121명이 사망했고 산둥 (山東)성 칭다오(靑島) 경제기술개 발구에선 송유관 폭발로 50여 명이 숨진 바 있다.
장쑤성 난징
상하이
중국 쿤산 2일 오전 금속공장에서 폭발사고 발생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대만 가오 슝(高雄)시 도심에선 연쇄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해 3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대만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따 르면 2일 현재 26명이 숨졌으며 2명 이 실종되고 285명이 부상했다. 대 만의 역대 가스폭발 사고 중 피해가 가장 크다. 프로필렌으로 알려진 석 유화학 물질의 누출로 사람이 많은 도심에서 여덟 차례나 연쇄 폭발이 발생해 피해가 컸다. 대만 언론들은 가스 누출 신고 접수 후 1시간 40분 이 지나 대책반이 현장에 도착했다 는 점을 들며 “전형적인 인재”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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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사설
Inside
새누리, 재보선 압승에 취할 때 아니다
Focus 연중기획 한국문화대탐사 북 하나만 있어도 흥겨운 국악의 세계
진도 소포리 146 시골집엔 소포어머니노래방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하지만 노래방 기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북 장단 하나에 맞춰 육자배기와 흥타령이 울려퍼진다. 생활 속에 살아있는 국악의 현장이다. 15p Focus
우리 쿠드만 주한 이스라엘 대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 마스 간의 분쟁으로 가자지구의 민간 인 희생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 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 스타인인은 이미 1600명을 넘어섰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10p Focus
Money
에너지 봉이 김선달 만나보니
일본 잃어버린 20년’실체는
주변의 간단한 물건들로 ‘에너지 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연일 언급해 화 립’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제가 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과연 진공관 온수기에서 화분 냉장고까지. 무슨 일이 있었고 한국에 주는 시사 저렴해진 태양광 발전 설비에 투자하 점은 뭘까. ‘잃어버린 20년’ 전문가인 면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의 부담에 후카오 교지 히토쓰바시대 교수에게 서 벗어날 수도 있다. 14p 물어봤다. 18p Health Plus
Column
에볼라 급속 확산은 문명의 역습
다시 쓰는 고대사
에볼라는 처음 발생한 지 38년이 지난 골품제 높은 벽 뛰어넘은 문노 감염병이다. 과거엔 유행이 소규모이 문노는 가야의 외손으로 태어났지만 고 국지적이어서 이목을 끌지 못했다. 화랑으로 전공을 세웠다. 미실과 힘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에 을 합쳐 진지왕 폐위에 성공한 문노 볼라 백신’ 개발에 나서야 할 시기란 는 진골이 되면서 골품제의 한계를 극복했다. 28p 주장도 나왔다. 22p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1 전쟁터 속 소녀들의 참상 2 소신의 아이콘 vs 쇼잉의 아이콘 엇갈리는 유진룡 평가 3 사방 트인 곳서 추위에 떨다 숨졌다고 보기엔 의문점 많아 4 마지막 황제 푸이는 거친 남자 툭하면 내시들 매질 5 [비주얼 경제사] 쓰러진 독일의 피 빨아먹는 프랑스 지켜보는 두 박쥐 sunday.joins.com
ch15 하이라이트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은 예상 밖 의 결과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연이은 인사 파동에다 유병언 부실 수사까지 정부·여당은 헛발질을 연발했고 국민의 가슴은 타들어갔 다. 분노에 이어 이렇게 무능한 정부와 여당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커졌다. 야 당엔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런데도 여당이 이긴 건 자책골을 연발한 야당 덕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은 승리의 도취감 에 빠질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평균 투표율이 30%대 초반에 그친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투 표소에 가지 않은 70% 가까운 유권자들 가운 데 야당 지지자가 더 많을 가능성을 새누리당 은 유념해야 한다. 11대 4란 스코어도 내용을 뜯어보면 아슬아슬한 구석이 있다.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정의당 노회찬 후보에게 929 표 차로 승리한 서울 동작을이 그렇다. 노 후 보가 단일화 시점을 앞당겨 사표(死票)를 줄 였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뒤집혔을 것이다. 다
른 수도권 지역에서도 장·노년 세대의 몰표가 아니었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장담할 수 없다. 젊은 층이 많은 수원 영통에서 여당이 적잖은 표 차로 패한 건 청년층의 반(反)새누리당 정 서를 확인시켜 준다. 물론 선거 직후 김무성 대표는 “정부·여당 이 잘했다고 표를 주신 게 아니라 잘못을 거 울삼아 지금부터 잘하라고 표를 주신 것”이 라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 서 이런 겸손을 무색하게 하는 발언들이 나 오고 있다. 선거 다음날 이완구 원내대표는 “야당이 정치적 고려에서 벗어나 법과 원칙 에 따라 세월호특별법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 와 달라”고 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을 주자는 야당 안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비 춘 것이다. 여야 간에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 나 힘이 세졌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승자 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을 밀 어준 유권자들의 뜻과도 다르다. 마지막 순간 까지 야당과 대화와 타협의 끈을 놓지 않는
소통의 정치를 해야 세월호특별법을 비롯한 난제를 풀 수 있다. 여당의 갈 길은 분명하다. 관피아 척결과 인사개혁, 안전 대한민국 건설 등 선거 전 약 속한 공약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고질적인 지역감정 해소를 위 해 과감한 탕평인사를 하고, 지역불균형 해 소책을 내놓는 데 여당이 주도적으로 기여해 야 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또다시 민심 과 동떨어진 인사를 하면 ‘안 된다’고 제동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경제에 진력해 서민들 의 살림에 화색이 돌게 하는 것도 중차대한 과제다. 다음 총선까지 20개월 동안엔 이렇다 할 선거가 없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간 중 대통령과 여 당은 국가혁신과 경제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 여야 한다. 그게 민심의 요구에 답하는 길이 다. 여당은 지금 압승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 니다.
태풍 나크리 서해로 북상 오늘밤 인천 앞바다 상륙 진행 속도 느려 비 오래 뿌릴 듯 제주·남해안 오가는 선박·항공 모두 결항
태풍 나크리 이동경로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제12호 태풍 ‘나크리(NAKRI)’가 서해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최대 풍속은 초속 25m로 2003 년 ‘매미’(60m/s), 2012년 ‘볼라벤’(50m/s)보다 는 약한 중형급 태풍이다. 하지만 진행 속도가 시간당 10㎞ 안팎으로 느려 다른 태풍에 비해 오 랜 기간 비를 뿌릴 것으로 전망된다.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든 서울 등 수도권에는 2일 밤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크리는 3 일 밤 인천 앞바다에 북상해 5일까지 80㎜ 안팎 의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인천 등 서쪽 지역에는 강한 바람도 예상된다. 기상청 은 주말이 지나면 태풍이 자연 소멸되겠지만 비 구름이 주 초반까지 남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2일 나크리의 영향권에 든 제주와 남해 도서 지역에는 태풍경보가, 광주와 전남, 경남 남해에 는 호우경보가 발효됐다. 이날 제주 윗새오름에 는 1000㎜ 안팎의 많은 비가 내렸고 남해안에도 시간당 40㎜의 강한 비가 쏟아졌다. 피해도 잇따랐다. 광주에선 이날 오후 1시쯤
5일
서울
4일
목포
3일 서귀포
규슈
2일 1일
동중국해
오키나와
집채만 한 파도가 2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포구의 한 민가를 덮치고 있다. 태풍 ‘나크리’는 3일 밤늦게 인천 앞바다까지 북상할 전망이다.
‘KIA 챔피언스필드’ 야구장의 지붕 패널 15장 이 강풍에 떨어졌다. 해당 야구장은 올 초 문을 열었다. 광주시는 이 일대 교통을 통제하고 시공 사에 시설 점검을 지시했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 북암호안도로는 강한 바람과 파도로 40m가량 유실됐고 가거도에선 2층짜리 조립식 건물 33㎡ 가 통째로 날아갔다. 곳곳에서 가로수가 넘어지 고 전기가 끊겼다. 제주와 남해안을 오가는 뱃길과 하늘길도 모 두 막혔다. 이날 제주공항과 여수, 광주공항을
[뉴스1]
출발하는 항공기는 무더기로 결항됐고 최고 8m 넘는 높은 물결 때문에 배편도 취소됐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피서를 떠났던 여행객들도 발이 묶였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과 제주 올레길, 지리산 탐방로 등 주요 피서지들도 입욕·입산이 금지됐다. 전남 진도 앞바다의 세월호 실종자 수 색작업도 나흘째 중단됐다. 지난달 30일 바지선 2척이 목포항으로 피한 데 이어 함정들도 대피 했다. 지난달 18일 이후 남은 실종자 수는 여전 히 10명이다.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결혼 8년차 임채원·최승경 부부의 러브하 우스가 공개된다. 여전히 신혼처럼 알콩달 콩 지내는 ‘미녀와 야수’ 커플을 두고 손
또 하나의 베를리너 신문 일간스포츠도 판 바꿨다
님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날 임 채원은 ‘힐링 집밥’으로 밀푀유 전골 등 이색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저녁 7시25분 닥터의 승부
교양
가수 장미화가 산양산삼으로 대상포진을 극복한 사연을 공개한다. 장미화는 가슴 아래 났던 대상포진을 산양산삼 19뿌리를 먹고 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 의들이 직접적인 치료책은 아니라며 재발 시 대안을 제시한다.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회장 발행인·인쇄인 송필호
홍석현
편집인 김교준
편집국장 남윤호
2007년 3월 18일 창간 / 2007년 2월 22일 등록 번호 서울다07635호<주간> 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권오용 기자 bandy@joongang.co.kr
스포츠 신문의 혁신을 주도해 온 일간스포츠가 또 한번 새 판을 짠다. 일간스포츠는 8월 1일부터 국내 스포츠 신문 중 처음으로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꿨다. 기 존 대판(일반 신문 크기)과 타블로이드판(무가 지 크기)의 중간 크기다. 베를리너판은 사람 팔 길이와 눈 구조 등 인체공학적 측면에서 가장 편안한 신문 사이즈로 꼽힌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펼 쳐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면을 다 펼쳐도 시야의 분산이 적다. 그만큼 정보를 더 빨리 머 릿속에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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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남길이 시험판으 로 제작한 베를리너판 일간스포 츠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01년 이후 세계에서 베를리너판을 도입한 신문은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등 100여 개 에 달한다. 국내에선 중앙일보가 2009년 처음 이 판형을 도입했다. 지난 5년 동안 중앙일보는 새로운 형식의 편집 디자인과 기사 스타일을 선 보이며 보기 편한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 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일간스포츠도 동참하고 나섰다. 일간스포츠 정경문 대표는 유럽 의 유명 신문은 물론 중앙일보가 베를리 너판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베를리너판 이 독자친화적이기 때문이다. 베를리너 판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 라고 밝혔다. 일간스포츠는 판형 변경 과 함께 콘텐트와 디자인 의 차별화를 꾀한다. 전문 가의 참여가 확대된다. 예컨 대 일간스포츠의 모바일 신문 베
이스볼긱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인식·이순철·마 해영·정수근 등 CP(콘텐트 프로바이더)가 직접 진행하는 야구 인터뷰와 분석 기사를 싣는다. 또 유럽축구 이슈 분석, 스포츠 스타 와이드 인 터뷰, 연예계 스타의 취중 토크 등이 매일 독자 를 찾아간다. 그래픽 뉴스와 요일별 기획 지면을 통해 다채로운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1면 디자인도 획기적으로 바꿨다. 마치 스마 트폰이나 태블릿PC의 메인 화면을 보는 듯한 지면을 제공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류원근 편집 국장은 베를리너판 일간스포츠는 차별화된 디 자인과 콘텐트로 스포츠 신문의 새로운 경쟁력 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리너판 1888년 독일 북부에서 발행된 뤼베크 뉴 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2년 독일 표준 규격연구소에 신문 크기로 베를리너판이라는 용어가 등재됐다. 현재 프랑스 르몽드, 영국 가디언, 이탈리아 라레푸블리카, 스페인 스탐파 등 세계 주요 신문이 베 를리너판을 채택하고 있다.
News 3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730 재보선 리뷰 순천곡성의 이정현 이변 이후
“지역주의는 만들어진 허상 vs 대선 땐 다시 나타날 것” 대구·경북, 광주·전남 양당 득표율
최민우 기자, 순천곡성=박종화·황은하 인턴기자 minwoo@joongang.co.kr
^2012년 총선 새누리당
탈(脫)지역주의는 가속화될까. 새누리당 이 정현 후보의 전남 순천곡성 당선은 대한민 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임은 분명하 다. ‘지역감정은 난공불락이며 호남에선 특 히 그렇다’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의 당선이 ‘지역주의 해소에 첫 물꼬를 텄 다’는 점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지역주의가 계속 약화될 것인가”라는 부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산 업화·도시화·현대화에 따라 전(前)근대성의 산물인 지역주의는 크게 완화될 것”이라는 게 해체론의 근거다. 반면 “이정현의 개인기 에 의한 일회성 이벤트다. 양당 구조에서 지 역주의는 쉽게 허물어지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정현 찍었지만 새누리당 싹수 없다 지역적 투표를 할 것인지에 대해 순천·곡성 주민들의 입장은 유보적이었다. 인터뷰에 응 한 100명에게 “2년 뒤 총선에선 어떤 후보를 찍겠는가”라고 묻자 대다수가 “이 의원이 이 번에 하는 거 보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 거엔 당만 보고 찍었지만 이제는 당 50, 인물 50으로 결정하겠다”는 답도 있었다. 이 의원 과 새누리당의 향후 행보를 지켜본 뒤 지역주 의 투표 여부를 정하겠다는 반응이다. 순천시청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주 민은 “이번엔 나도 이정현을 찍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보고 한 건 아니다. 당은 영남이 지만 인물은 우리 호남 사람 아닌가. 게다가 정권 실세고. 예산 많이 따줄 것 같아 찍었 다”고 했다. 서면 주민 정승훈(43)씨는 “2017 년 대선 때 누굴 찍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 다. 그때 가봐야 알 것”이라고 했다. 곡성읍 주민 박모(44)씨는 “이정현이 잘하면 또 기 회가 있갔지. 근디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되 는 거 하나도 없으면 담엔 국물도 없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여전했다. “이정현 찍었다고 박근혜당 지지 하는 것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조례동 주민 신경호(52)씨는 “이정현을 지지했지만 다음엔 새누리당 안 찍는다. 싹수가 없다. 박 대통령도 어디 호남 사람 중용했나. 2년 전 대선 앞두고는 탕평 운운하더니 막상 집권하 곤 모른 체했다. 인사 그렇게 해놓고 우리한 테 표 받아가길 바라선 안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관련해선 “밉다” “싫다”는 원색적 인 답변도 많았다.
(단위: %)
민주통합당
대구·경북
59.5
39.1
광주·전남
4.1
52.8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2012년 대선
대구·경북
80.2
19.0
광주·전남
9.0
90.0
^2014년 지방선거(광역단체장)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대구·경북
66.2
25.7
광주·전남
6.9
67.4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난달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왕지동에 마련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선거 캠프 풍경이다. 개표 초반 이 후보가 크게 앞서나가자 지지자들이 함성을 터뜨리며 크게 기뻐하고 있다.
이정현이 잘하면 또 기회 있겠지 이번엔 찍었지만 다음엔 안 찍어 지역주의 타파 아직 갈 길 멀어 이념지평 넓혀야 지역색도 엷어져
반면 어떤 당인지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답 변도 있었다. 김현수(46)씨는 “예산 끌어오 고, 순천 시민 자존심 세울 사람이면 누구든 괜찮다”고 했다. “이정현이 잘하면 당 색깔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정말 따지지 않게 될 것” 이라는 주민도 있었다. 곡성읍에 사는 자영 업자 조모(58)씨는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 만 이젠 무슨 당 좋아한다 얘기하면 서로들 거시기하게 생각한다. 당 빼고 인물 위주로만 얘기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렸다. 박상훈 후마 니타스 대표는 “대한민국엔 지역주의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역주의란 기본적으로
[순천=뉴스1]
자기 지역에 대한 문화적 공동체로 회귀하는 현상이다. 중앙으로부터 멀어지며 자치와 분 리독립을 주장한다. 스페인의 바스크와 카탈 루냐, 영국의 스코틀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하 지만 대한민국은 언어·민족·인종 등 전 세계 에서 보기 드물게 동질성이 강한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지역주의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지역주의 책임 유권자에만 돌려선 안 돼 한마디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 진 허상’이라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과거 엔 박정희 대통령도 호남에서 득표율이 높았 다. 지역주의가 형성된 결정적 계기는 1990년 3당 합당에 의해 호남이 고립되면서부터다. 정치 구조가 조금만 바뀌면 지역주의도 쉽게 허물어진다”고 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역주의의 책임 을 유권자의 ‘묻지마 투표’에만 돌려선 안 된 다”고 말했다. “영·호남 사람이라고 별종은 아니다. 지역주의가 고착화되면서 양당이 상 대 지역에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지 않았 다. 반대로 자기 지역엔 누굴 꽂아도 된다는 안이함이 팽배했다. 그게 악순환이 되면서
유권자의 선택권이 사라졌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정치연합이 대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 신들로선 뼈아픈 실패지만 순청·곡성 주민의 선택이 궁극적으론 국가 발전을 위해 큰일이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신선할 것”이라 고 했다. 반면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지적으로 고립된 케이스로 지역주의 약화를 주장하는 건 다소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익명을 요 구한 한 야당 인사도 “지자체나 의원 선거에 선 예외가 생길 수 있으나 대선에서 지역주의 는 결코 약화되지 않는다. 철저한 제로섬 게 임인 양당 체제에선 지역주의는 오히려 더 강 화될 것”이라고 했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도 “울산 북구는 공단 지대임에도 새누리당 후보가 연속 당선됐다. 진보정당보다는 경상도 정당을 지지한다는 거다. 소선구제에서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작동하는 한, 우리 지역 정당 후보를 뽑겠다 는 지역주의는 공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단과 전망은 어긋났지만 해법은 엇비슷 했다.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대부분 전문가들은 ‘양당 구조의 해체’를 꼽 았다. 박상훈 대표는 “대한민국 유권자가 향토 의식에 절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 사 회는 이미 이념·취향·욕구·계층 등 모든 분야 에서 다원화돼 있다. 근데 정치 구조만 획일 적이다. 현재 한국 정당은 여든 야든 중도우 파의 성향을 띤다. 이념적으로 변별력이 없 으니 지역적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일 뿐”이 라는 진단이다.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 정치적 지 평을 넓혀주면 된다. 최소한 현재 양당의 이 념적 차별점을 분명히 하거나, 아니면 녹색· 진보·중도 정당 등 사회적 다원성이 마련되 면 지역주의 문제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 라는 얘기다. 지역주의 피해자가 매듭 끊어 의미 각별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새누리당 이 호남에서 당선되고 새정치연합이 영남에 서 당선되는 게 지역주의 해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3의 정치세력이 출현해야 완성될 수 있다. 기호 순번제부터 없애야 한 다”고 주장했다. 그간 지역주의는 영·호남에서 동시에 만연 했지만 영남을 패권적 지역주의로, 호남을 저항적 지역주의로 구별하곤 했다. 한상진 교 수는 “이번 순천-곡성 선거는 지역주의의 피 해자가 스스로 지역주의의 매듭을 끊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고 평가했다. 최태욱 교수는 “최근 울산·부산·경남 국 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은 이미 40%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 중이나 실제 의석 수는 2~3석에 불과하다.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 해야 지역주의가 희석된다”고 말했다.
‘예산 폭탄’ 먹혔다는 순천·곡성 경제는
재정자립도 최하위권, 고용률 저조 주민들 지역개발 욕구 높아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예산 폭탄’ 공약은 7·30 순천-곡성 보궐선 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의 당선 요인 중 하나다. 새누리당은 이를 감안해 1일 이 의원 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배치했다. 예산을 끌어오겠다는 공약은 어느 지역에 서나 환영받는다. 그중에서도 순천·곡성은 예산에 목말라한다는 게 지역민들의 말이다. “지역에 생산 기반이 없으니 돈이 들어올 곳이 없다. 국립대인 순천대가 있지만 공단 이 있는 것도 아니니 졸업생이 취업할 곳도 없다. 이런 판에 큰돈을 들여 순천만 정원박 람회를 개최했으니 지자체는 더욱 힘들어졌 다. 곡성은 농사로 먹고사는데 올해는 매실 값이 폭락해 따는 사람조차 없다. 살림이 어
한의원 보약 지어먹는 사람도 없어 인구 비해 의대 없다는 박탈감 심해 실세 공약에 이번엔 될 것 기대감
려워 한의원에서 보약 지어먹는 사람도 없다 고들 한다.”(순천의 한 사회활동가) 안전행정부의 ‘2014 지방자치단체 통합재 정 개요’에 따르면 순천시·곡성군의 재정자 립도는 각각 18.3%, 6.9%에 불과하다. 2013 년(21.8%, 8.6%)에 비해서도 악화됐다. 전 국 지자체 평균 44.8%(시 31.7%, 군 11.4%) 에 훨씬 못 미친다. 전남의 시 평균, 군 평균 (22.1%, 8%)을 까먹는 상황이다. 또 통계청이 올 2월 발표한 ‘2013년 하반기 시·군별 주요 고용지표’에 따르면 순천시의 고용률은 57.7%로 전국 시 평균 58.1%보다 낮았다. 실업률은 2.0%로 전남에서도 세 번 째로 높았다. 곡성군의 고용률은 70.2%로 군 평균 고용률 65.9%에 비해서는 높았다. 농업 종사자가 많은 때문이다. 통계청은 “군 지역
은 농업 종사자가 많고 여성과 고령층의 취업 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한다. 예산 폭탄 외에 이 의원이 내놓은 순천대 의대 유치, 순천만 정원의 국가정원화 공약도 지역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는 평이다. 한 주 민은 “순천시 인구는 주변 광양만 권역을 포 함해 100만 명에 가까운데 의과대학이 없어 박탈감이 심했다. 의대 유치나 순천만 국가정 원화 공약은 다른 후보도 이야기했지만 말 그 대로 빌 공(空)자 공약(空約)이었고 이번엔 실세가 왔으니 정말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 일반화된 ‘포크 배럴’ (pork barrel·지역구 사업을 위해 정치인이 정부 예산을 확보하려는 행태)과 ‘포켓 밸류 보팅’(Pocket Value Voting·호주머니를 두 둑하게 해주는 정책을 낸 이에게 투표)이 선
명하게 적용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미국에서도 포 켓 밸류 보팅은 경제가 어려운 지역일수록 잘 나타나고, 집권 초에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 한다”며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집권 후반기엔 응징 투표가 나타난다”고 했다. 선심공약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이광재 한국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세수 결손이 8조~12조원에 이르는 상황인 데다 임기 가 1년8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무슨 예산 폭탄 이 있을 수 있겠나”라며 “예산 폭탄이 1000억원 인지, 10억원인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직선거법 66조는 대통령 선거와 지자 체 선거 후보자만 공약에 드는 재원 조달 방안 을 게재하도록 돼 있는데, 법을 개정해 국회의 원 후보도 조달 방안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4 News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730 재보선 리뷰 지역주의 벽 깨지나 호남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국회의원.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강현욱(군산 을) 전 의원 이후 18년 만이다. 전남만 따지 자면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7·30 전남 순 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 원이 선출되면서 “지역주의 벽을 깬 선거 혁 명”이란 찬사가 쏟아진다. 그러나 야권 일각 엔 “(남은 국회의원 임기) 1년8개월짜리일 뿐” “예산폭탄론 덕을 본 일시적 승리”란 시 각도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지역주의 타파의 서막 일까, 아니면 일회성 현상일까. 1일 오후 중 앙SUNDAY는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과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를 초청 해 그 의미와 전망을 들어봤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총선과 올해 6·4 지방선거에서 대 구에서 출마해 득표율 40.4%(대구 수성갑) 와 40.3%(대구시장)를 각각 얻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왼쪽)과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1일 오후 중앙SUNDAY 편집국에서 만나 지역주의 극복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의미있는 첫 걸음 지역주의 완전 해소, 여야 하기 달렸다 진행=강찬호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정리=백일현 기자·차길호 인턴 기자 keysme@joongang.co.kr
-호남 지역 새누리당 의원의 탄생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부겸=지역주의 타파의 첫발을 디딘 엄청난 사건이다. 나는 지역주의를 ‘악마의 주술’이라고 부른다. ‘다른 당을 찍으면 배 신자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정당일체감’ 을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강요하는 바람 에 망국적인 지역주의가 수십 년간 지속돼 왔다. 일종의 ‘거울효과’(마주 본 두 개의 거 울처럼 양측이 적대감을 재생산하는 것)처 럼 ‘찍을 수 없다’는 구실을 상대방에게서 찾 아왔다. 그 벽을 이번에 유권자들이 넘었다. 선거 다음날 이정현 의원과 통화했는데 첫마 디부터 울먹거리더라. “형, 나 마침내 해냈어 요. 봤죠?”라고. 험지에서 선거운동해 본 사 람으로 그 의미를 안다. 19년 동안 그가 고생 해온 걸 생각하니 정말 눈물겹더라. 강원택=호남 유권자들에게 변화가 생 긴 건 분명하다. 과거처럼 민주당(새정치연 합)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김대중 (DJ)·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으로 한이 해소 된 측면이 있는 데다 민주당이 호남이란 벽 에 기대 안주하는 걸 싫어하기 시작했다. 이 정현 의원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이젠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간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다. 다만 이 의원의 당선은 지역 주의 타파의 첫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 만일 이 의원이 임기 20개월 동안 박근혜 대통령 얘기나 하고 할 일을 못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호남 민심은) 다시 지역주의로 회 귀할 수 있다. -지역주의가 우리 정치를 지배해 왔다고 하는데 얼마나 공고한 실체인가. 김=2년 전 19대 총선 때 대구에 출마한 직후 길 가는 할머니에게 명함을 건네드렸더 니 누가 볼까봐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더 라. ‘2번(민주당) 명함’을 받으면 민주당 지 지자로 비칠까 두려워한 거다. 기가 막힌 일 이다. 지역주의는 암 덩어리다. 정치의 본질 을 왜곡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책은 준비할 것도 없다.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만 하면 당선된다고 여긴다. 지역주의의 핵심은 호남 차별 아닌가. 미국에서 흑인이나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 하나 없다. 지역주의
의 근원을 물으면 신라·백제를 거론하는 사 람도 있는데 실제는 아니다. 1963년 대선 때 박정희 후보가 15만 표 차로 당선됐는데 34 만 표를 호남에서 이겼다. 그때만 해도 지역 주의가 없었던 거다. 그러다가 71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중앙정보부(현 국 정원)가 의도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면서 지역주의가 생겼다. 즉 지역주의는 국민 아닌 정치인들의 조작물일 뿐이다. 강=호남이라고 다 진보거나 빈곤 계층 이 아닌데 지역주의가 그런 실상을 다 덮어버 리는 게 문제였다. 3김과 양김이 대결했던 87 년과 92년 대선까지는 지역주의가 존재했다. 하지만 3김이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은 영호 남 대립이 아니라 서울과 지방 간의 격차가 문제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여전히 지역주 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
19대 총선 때 내 명함 받으면 눈치 봐 지역주의는 소수자 차별과 같아 정치인이 허구적 정당일체감 강화 이정현, 명분·실리 함께 제시해 성공
유권자의 요구는 실용으로 바뀐 지 오래 인데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절묘하게 지역으 로 편을 갈라 기득권을 유지하니 다수 국민 이 정당을 불신하고 지지 정당이 없다고 하 는 거다. 여기에다 지역 지식인들도 지역주의 담론을 재생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주의 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당정치의 핵심인 책임 성·대표성이 상실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 요 구를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선거 때 지역주의를 얘기하면 당선된다고 확신하게 된다. 앞으로 지역주의가 약화되면 정당들이 좀 더 진지하게 보수진보의 계층 간격과 정 책 차별화에 신경 쓰게 될 거다. -이정현 의원의 당선은 그의 개인적인 역 량 덕이 큰가, 아니면 지역구도 타파를 바라 는 유권자의 표심 덕인가. 김=이 의원이 유세 도중 새누리당 마크 를 철저히 숨기고 ‘예산폭탄’ 같은 당근만 강 조한 게 먹혔다는 시각이 있는데 잘못된 거
다. 그 같은 캠페인은 주민들의 적대감을 완 화시키려는 노력의 하나일 뿐이다. 이를 당선 의 원인이라 여기는 건 유권자들을 너무 가 볍게 본 거다. 유권자들은 정당들이 무슨 문 제든지 경상도·전라도로 환원시켜 온 데 대 해 넌더리를 치고 있다. 모든 게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고 지방대 졸업장 갖고선 직장 얻 기도 힘든데 여당이든 야당이든 전혀 해결책 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이정현이 파고든 거다. ‘지역 주의를 깬다’는 명분과 ‘지역을 발전시킨다’ 는 실리를 같이 제시했다. 또 지난 19년간 세 차례나 낙선했으면서도 또다시 도전하는 그 를 보며 지역민들 마음에 수용성이 생긴 거 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유세한 걸 이벤트로 여기는 이도 있지만 뙤약볕 아래 힘들게 돌아 다니는 모습을 보면 사람 마음이 찡하기 마련 이다. 출마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지지율 1% 를 올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반면 서갑 원 후보는 왜 그를 찍어야 하는지, 그를 찍으 면 어떻게 당이 바뀌는지 제시하지 못했다. 강=이번 선거가 재·보궐 선거였음을 주 목해야 한다. 총선이나 대선처럼 전체 권력 을 다투는 선거가 아닌 거다. 총선은 당과 후 보를 일치시켜 찍을 가능성이 크지만 보궐 선거는 후보 개인 차원에서 투표 기준을 정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이정현 후보 는 구호를 잘 만들었다. ‘한번 써 봐라’는 게 그거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많이 남은 시점 에서 ‘대통령의 남자’가 내려와 열심히 하겠 다고 한 게 먹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주 술에서 깨어나 삶과 직결된 문제를 중시하기 시작한 거다. 또 호남에서도 60, 70대 유권자 들에겐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2016년에 치러질 20대 총선에 서도 지역구도가 깨질까. 김=이미 부산에선 조경태 의원이 민주 당 당적으로 3선에 올랐고 경남에도 최철국 전 의원 등이 당선됐다. 완강한 건 대구·경북 인데 이정현 의원의 당선으로 이곳에도 희망 이 커졌다. 이 의원의 당선 직후 대구 시민들 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아깝다’는 반 응이 적지 않더라. ‘우리가 먼저 지역주의를 허물려 했는데 순천-곡성에 선수를 뺏겼다’ 는 거다. 이런 생각들이 향후 선거에서 변화 의 계기가 될 거라 본다. 다만 총선은 중앙 권력을 놓고 진검승부
를 펼치는 판이니 표심이 어떻게 흔들릴지 모 른다. 유권자들이 나를 찍지 않을 구실을 줄 여야 한다고 본다. 2012년 19대 총선 때만 해 도 유권자들이 내게 ‘당을 바꿔라’ ‘사람은 좋지만 전라도당이라 못 찍겠다’고들 했다. 하지만 2년 뒤인 6·4 지방선거에선 내게 손 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크게 늘고, 보는 시선 도 많이 바뀌었더라. 결국 정책과 사람만 제 대로 내놓는다면 해볼 만하다고 본다. 2년 뒤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구 12개 선거구 가운데 적어도 6~7곳에 괜찮은 후보를 낸다면 상승 효과를 일으켜 적지 않은 숫자가 당선될 수도 있다. 강=영남에서도 지역주의를 벗어나려 는 움직임은 적지 않았다. 김두관 전 경남지 사가 무소속으로 당선된 바 있고 6·4 지방선 거에서도 무소속으로 부산시장에 도전한 오
강원택 서울대 교수
유권자 요구 실용으로 변한 지 오래 정당이 편 갈라 기득권 유지에 활용 정치적 의미의 지역주의 이미 소멸 석패율제 활용 땐 벽 빨리 무너질 것
거돈 후보가 서병수 당선인(새누리당)에게 1.4%포인트 차까지 따라붙었다. 2007년 대 선 당시 이회창·정동영 후보 지지층을 분석 해봤더니 수도권에 사는 호남·충청 출신 유 권자와 호남·충청에 살고 있는 유권자의 표 심이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DJ가 뜨면 전국 의 호남 출신들이 몰표를 던지고 JP(김종필 전 총리)가 뜨면 전국의 충청 출신들이 결집 하던 80~90년대와는 크게 달라진 거다. 유 권자들의 고향이 아니라 현재 거주지, 삶의 현장이 더 중요해졌다. 지역주의가 점점 허 구화하고 있는 거다. 정치적 의미의 지역주 의는 사실상 소멸했다고 본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그밖에 필요한 일 은 뭔가. 강=지금까지는 정당이 아니라 후보 개 인 수준에서 지역주의에 도전했다. 노무현· 김부겸·이정현이 그랬다. 이들은 “당은 지역 에 오지 않는 게 좋다”고 했고 당도 이를 받
아들여 손을 놨다. 그러니 앞으론 당이 앞장 서서 지역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 들어야 한다. 87년 민주화 이래 지역주의 정 당 구도를 온존시켜 온 가장 강력한 장치가 당시 채택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단순다 수·소선거구제다. 따라서 석패율제(지역구에 출마했다 떨어 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를 도 입하는 등 선거제도 개혁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석패율제를 도입하려면 비례대표 숫자 가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지역구를 줄이긴 어렵다. 결국 300명에 묶여 있는 전체 의원 수를 늘릴 필요가 생기는데 우리 사회 에선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국회 의원을 국민의 대표가 아닌 기득권 세력으로 여기는 데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하지만 지 역주의 정당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선 국회의 원 증원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김=맞다.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대구·경 북 같은 곳에서도 5~6명씩 좋은 후보를 지역 별·맞춤별로 낼 수 있다. 이정현 의원의 당선 으로 여의도에 한 마리 제비가 날아온 셈이 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는 건 아니지 만 제비가 와야 봄이 오지 않나. 이번에 중요 한 한 걸음을 뗐다. 앞으로는 여야가 하기에 달렸다. 강=동의한다. 새누리당은 이정현 의원 의 공약이 잘 실현되도록 뒷받침하고 당 차 원에서 호남에 더욱 다가서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모처럼 분 지역주의 타 파 바람이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다음 총선엔 호남 지역에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다 수 공천해야 한다. 떨어질 게 뻔하다고 인재 공천에 인색하면 지역주의를 절대 깰 수 없 다. 새정치연합도 마찬가지다. 영남 지역에 인재를 다수 공천해 주민들에게 다가가야 한 다. ‘경상도 사람을 후보로 쓰면 승리한다’는 식의 안이한 정치공학으로 접근해선 안 된 다. 민주당이 부산 사람인 노무현과 문재인 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음에도 호남당 색깔 을 벗지 못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영남 유권 자들에게 진정성이 느껴질 접근 방식을 찾아 야 한다. 김=맞는 말이다. 새누리당은 호남을 더 욱 껴안고 새정치연합도 영남에 더욱 다가서 는 노력을 해야 한다. DJ 정부 시절 한 차례 ‘동진정책’(영남 포용)을 쓴 것 빼고는 사실 상 영남을 포기해 왔다. 이래선 안 된다. 변 해야 한다.
News 5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730 재보선 리뷰 참패 충격에 휩싸인 새정치연합
스킨십·전략·메시지 ‘3無’ 안철수 “아마추어 리더십 한계” 의 인사 실패도 덮어버렸다는 지적이 적잖 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민은 오른쪽이 가려운데 왼쪽만 긁어준 선거”라며 “박 대통 령의 인사를 그렇게 비판하더니 본인들도 똑 같이 인사에 실패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메시지 부재라는 비판으로 이어진 다. 전직 최고위원은 “정치는 메시지가 핵심 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전 대표의 발언이 거의 이슈가 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며 “이는 정치의 포인트를 어떻게 잡고 대처해야 할지 그에게 조언해주는 책사도 우군도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새정치민주연합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7·30 재·보선에서 11대 4로 참패하면서다. 텃밭인 호남에서도 졌다. 야권후보 단일화도, 정권 심판론도 백약이 무효였다. 오히려 무원칙 공 천 논란에 자중지란을 거듭하며 선거 프레임 조차 세우지 못했다. “민심이 야당을 버렸다” 는 냉혹한 평가마저 나온다. 당의 존립을 걱 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적잖다. 선거 이튿날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동반 사 퇴했다. 3월 26일 당 대표 취임 후 넉 달 만이 다. ‘새 정치’의 상징이었던 그가 이렇게 빨리 정치 일선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 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만큼 그의 퇴진은 정치권에서 숱한 뒷얘기를 낳고 있다. 도대체 ‘당 대표 안철수’는 어떤 정치인이었으며, 무 엇이 부족해 몇 차례 고비도 넘기지 못한 채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까.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 “아마추어의 한계를 끝내 넘지 못하더라.” 새 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안철수의 퇴진에 대해 “야권의 소중한 자산인데…”라며 아쉬 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냉정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 더라.” 정치력 부재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이미 당내에 폭넓게 퍼져 있었다. 의원들의 지적 은 크게 스킨십·전략·메시지 등 ‘3무(無)’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정치는 사 람이고 조직이다. 나홀로 정치는 성공하기 힘들다. 당내에서든, 여야가 맞붙는 선거에 서든 자기를 지지해줄 우군을 확보해야 한 다. 그러려면 함께 뒹굴며 땀을 나누는 스킨 십이 필수다. 그런데 안철수는 지난 넉 달간 당내에서 자 기 사람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수도권의 한 재 선 의원은 당시 당내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 다. “합당 이후 안 전 대표는 얼마든지 의원들 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사실상 ‘노마 크 찬스’였다. 의원들도 대부분 지지도 1위를 달리는 그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기다려도 연락이 없더라. 다 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낯설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소통하려는 모 습은 보이지 않았다.” 호남의 한 초선 의원도 비슷한 말을 한다. “안 전 대표가 몸을 낮춰 의원들과 대화하고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당찬 리더십을 보여줬 으면 조금 어눌하더라도 의원들이 흔쾌히 따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재선 의원들과 모임을 갖고 향후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합당 후 의원들이 마음 주려 해도
랐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정치권을 구태의연 하다고 치부하며 거리를 두려는 모습에 하나 CEO 이미지 못 벗고 나홀로 행보 가 되긴 쉽지 않겠다 싶었다.” 실제로 합당 후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5위로 추락 ‘안철수 사람’이 된 옛 민주당 출신 의원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당내에선 ‘CEO형 리더십’에 익숙한 그가 정치권의 수평적 의사결정 시스템에 제대 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너 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기업의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와 달리 각 계파의 이해관계를 조 율해야 하는 정당에서는 설득과 스킨십이 필 수적인데 이를 매우 어색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학습능력이 뛰어나 최근엔 현실정치에 꽤 적응했다 싶었는데, 좀 더 내공을 쌓을 틈도 없이 두 차례의 큰 선거를 치러야 했던 게 불운이었을 뿐” 이라고 해명했다. 전략 없는 리더십이란 비판은 ‘새 정 치’를 표방하고 나선 그에겐 더욱 뼈아프 다. 비전이 모호하다는 지적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전략 부재 논란에 시달렸다. 당시 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을 내걸자 진보진영 에서조차 “선거구제 개편이 핵심인데 정치의 표피만 보 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 6·4 지방선거 때도 기초선거
[뉴시스]
무공천 공약을 내걸었다가 “현실을 너무 모 른다”는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철회했다. 원내대표실의 한 당직자는 “이번 재·보선 때도 김 전 대표와 옛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할 뿐 무엇 하나 자신만의 공 세적 어젠다를 기획해내지도, 포인트를 제 대로 짚어내지도 못하더라”며 “공천 논란에 대해서도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말만 반 복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 했다. 재·보선 전략 수립에 관여했던 한 의원도 “새누리당은 환갑이 지난 당 대표가 빨간색 카우보이 모자에 흰색 반바지까지 입고 ‘혁 신작렬’을 외치는데 우리 지도부가 한 거라곤 수원에 천막을 친 것뿐”이라며 “아무런 프레 임도 없이 선거를 치르다가 새누리당이 막판 에 경기부양 카드를 내걸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며 당혹해하는 모습만 보였다”고 말 했다. 초선인 황주홍 의원도 “선거를 앞두고 당직자들을 만났는데 유병언 시신 바꿔치기 의혹만 제기하더라”며 “전략 싸움에서 이길 래야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고 꼬집었다. 무원칙 공천 논란은 안철수 리더십에 치명 타를 가했다. 그와 가까운 조경태 전 최고위 원도 “결국 헌 정치보다 더한 헌 정치를 보여 준 셈”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특히 TV 카 메라 앞에서 공천을 놓고 멱살잡이를 하는 야당의 모습이 세월호 참사도, 박근혜 정부
조기 전대 대신 내년 초까지 비대위 가닥 리더십 논란에 뒤이은 재·보선 참패는 안철 수의 지지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 터가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차기 대선주 자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안 전 대표는 9.0% 로 김무성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 원, 정몽준 전 의원에 이어 5위로 밀려났다. 지난 1월 말의 25.1%에 비해 거의 3분의 1 수 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문제는 스킨십·전략·메시지 등 안철수의 ‘3무’가 새정치연합의 ‘3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합당 후 넉 달이 지났는데도 당의 중 추기관인 중앙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새정치연합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서 재·보선 참패를 딛고 계파 갈등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확립이 시급하 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정치 경력 2년에 당 대표만 7명”이라는 김광진 의원의 탄식이 상 징적이다. 당 주변에선 ‘재건축론’이 힘을 얻고 있 다. 잿더미 속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밑바닥부터 바꿔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인구 구성, 사회구조, 미디어 환경, 프레임 대결, 선거 수행 능력 등 에서 여당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음이 확 인됐다”며 “이런 환경에서 야당의 살 길은 뭔지에 대한 성찰적 진단이 따라야 할 때”라 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박영선 원내대표는 1일 상임 고문단과 3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간담회를 한 데 이어 2일에도 초·재선 의원들과 잇따라 모임을 열고 당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박범 계 원내대변인은 “조기 전당대회 대신 내년 1~3월 중 정기 전당대회를 치르는 쪽으로 의 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새정치연합은 4일 의원총회를 열고 전대까지 당을 이끌 비상대 책위원장을 누구로 할지, 역할은 어디까지로 할지 등을 확정할 예정이다.
야권연대로 불거진 진보정당 자립 논란
“차라리 새정치연합에 들어가자” vs “의석보다 어젠다 개발 신경 쓸 때”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진보정당은 7·30 재·보선에서 한 명의 당선 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정의당은 “정치공학 에 매달린다”는 비판에도 인지도가 높은 노 회찬 후보로 서울 동작을에서 새정치민주 연합과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의석 획득 에 실패했다. 노동당·녹색당, 종북 논란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통합진보당도 마 찬가지다. 야권연대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6·4 지방 선거에서도 그랬다. 광역단체장 당선자는 전 무했고, 시·도의원, 광역·기초 비례의원 선거 에서도 통진당이 6명(광역 3명, 기초 3명), 정 의당이 1명(기초), 노동당이 1명(도의원)을
선거 직전 야권연대는 야합 이미지 정당의 존립 정당성마저 흔들어 제1 야당이 못하는 일에 전념해야
배출하는 데 그쳤다. 이에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존재해야 이유가 뭔가”라는 자조가 진보진영에서 나 온다. 정의당·노동당·녹색당 당원 4명은 지 방선거 뒤인 지난달 책 위기의 진보정당, 무 엇을 할 것인가를 내고 “새정치연합이 반 (反)새누리당 표를 거의 흡수해 가고, 진보 진영은 외면당한다”(남종석·노동당)고 했다. 정의당 당원인 이광수(역사학) 부산외국어
대 교수는 “과거 민노당이 국회의원 선거에 서 10석을 얻을 때와 같은 ‘미친 시대’가 다 시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봤다. “새정치연합 을 숙주로 삼아 그 속에 왕창 들어가서 힘을 키우고 독자적인 세력화를 모색하자는 의견 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창우· 정의당)는 의견도 나온다. 진보진영 학자로 분류돼 온 안병진(미국 학) 경희사이버대 교수도 “정의당의 노회찬· 심상정은 차라리 새정치연합에 들어가야 한 다”는 입장이다. 그는 중앙SUNDAY와의 통 화에서 “한국에선 진보정당이 완전히 독립 적인 정당도 아니고 유럽식 연정을 하는 것 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여서 계속 야권연대 라는 형식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상 노회찬 등은 새정치연합 내의 진보 블록 과 큰 차이가 없다. 노회찬은 과거 꼬마민주 당에도 함께했다. 새정치연합에 들어가 진보 블록 역할을 강화하고 진보정당은 보다 급진 적인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게 옳다”고 주장 했다. 야권연대라는 정치공학 대신 선거가 끝난 뒤 연정을 꾀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김 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은 자기 후보를 내고 선거가 끝난 뒤 연정을 하는 게 국민 앞에 책임 있는 모습” 이라고 말했다. 연립정권에 4개 정당이 참여 하는 스웨덴 사례 등을 참조할 만하다는 것 이다. 그는 “후보를 내고 선거운동을 하다가 막판에 후보를 취소시키는 건 가치연대라고
할 수 없고, 특히 다른 정당을 떨어뜨리기 위 해 연대를 하는 건 정당의 존립 정당성 자체 를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정당은 당장의 의석 확보보다 진보적 이슈 개발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지적도 만만찮다. 이현우 (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이번 재·보선 에서 나타났듯 진보정당은 새정치연합이 못 하던 이슈 제기에도 실패했고 야권연대에 대 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공감대도 못 만들 어 단순한 야합을 하는 집단으로 비춰졌다” 며 “이젠 의석 확보보다 새정치연합이 못하 는 어젠다와 이슈를 제기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의석도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6 Focus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단기 부양책 만으론 한계 한국 경제의 큰 틀 먼저 그려라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 주식 시장부터 불끈 반응 하고 있다. 하지만 ‘가본 적이 없는 길’이라는 최경환 부총리의 표현만큼 정책 방향에 대한 조언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경제수석, 재무부 장관,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사공일(74) 세계 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먼저 큰 그림을 주문했다. “경제 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큰 화살표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 다음에 세부적인 정 책들을 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당장의 대증요법보다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중장기 정 책 방향을 우선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불안 없이 한 나라가 모든 생산 자원을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한다. 사공 이사장은 잠재성장 률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 그리고 우리 경제의 체제적 효율성 제고를 통해 향상되며 이 모든 것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적극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난 사람=남윤호 중앙SUNDAY 편집국장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7%로 전망했다. 기존(4.1%)보다 0.4%포 인트나 내려 잡았다. 그래서 최경환 부총리 중심의 지금 경제팀은 내수 진작을 통해 경 기부양에 주력한다고 했는데. “지금과 같은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속에 서 내수를 진작시켜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내 수를 진작하는 데도 과연 어떤 수단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일단 민간 소비 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내수 촉진은 결국 투자와 소비로 이뤄진 다.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소비다. 가계 의 소득을 늘려 소비가 늘어나면 투자도 따 라온다는 믿음에서다. 기업에는 임금을 올리 게 하고 배당을 늘려 가계 소비로 연결시키 려 한다. 이러한 기업에 대한 시책이 주로 한 계 소비성향이 낮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 계에 그 혜택이 간다면 경제 전반에 걸친 정 책 효과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향상에는 역행할 수도 있다는 점 이 우려된다. 최 부총리는 경기부양책을 두고 ‘가지 않 은 길’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느 정도 사전 이 정표를 갖고 시책을 펴는 것은 물론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끝났고 경제 회생에 정치권도 적극 협 력하라는 국민적 여망도 드러났다. 새 경제 팀은 우선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큰 방향 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 큰 틀 안에서 구체적 내수 진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큰 틀
없이 단기 부양책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을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보나. “지난 수년간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에 활발히 투자했으며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중국은 물론이며 싱가포 르 등 경쟁국에 비해 아주 저조했다는 사실 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국 내외 기업들이 왜 우리나라에 투자를 꺼리는 가’를 분석해야 한다. 그 이유를 파악하고 투 자를 막는 장애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 선 행돼야 한다. 기업은 수지타산이 맞으면 정부 가 투자를 막아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할 것 아닌가. 기업의 사내유보금 활용도 채찍보다는 연 구개발(R&D) 투자와 중소·중견기업과의 협 업을 위한 투자 등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성장잠재력 제고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가계부채가 소비를 늘리는 데 큰 짐이 되 고 있다. “맞다. 그래서 한계 소비성향이 상대적으 로 높은 저소득층이나 서민들의 부채 부담 을 줄여주기 위한 좀 더 과감한 대책이 필요 하다. 예를 들어 지금도 정부가 추진하곤 있 지만 부채 구조 자체를 개선해주기 위한 보다 과감한 서민 가계부채 경감 방안도 필요하다 고 본다.” -일각에선 우리도 일본의 아베노믹스 같 은 과감한 처방을 왜 하지 못하느냐는 목소 리도 있다. “아베노믹스가 불가피했던 일본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일본은 부동산 등 자산 버블 이 붕괴하면서 디플레이션이 찾아왔지만 우
부유층에 혜택 집중되는 정책 문제 사내유보 과세도 효과 크지 않을 것 기업 투자 가로막는 규제 없애야 대통령이 규제 혁파에 의지 보이길
리는 지금 일본처럼 장기 침체나 디플레이션 에 빠진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의 양 적완화를 따라 하자는 일부 주장도 있다. 그 런데 양적완화란 금리 같은 전통적인 정책수 단을 활용할 수 있는 소지가 없거나 통하지 않을 때 쓰는 비전통적 정책수단이다. 우리 는 금리 조정 등 전통적 정책 수단을 쓸 수 있 는 여지가 남아 있어 양적완화 운운할 단계 는 아니다.” 3년 반 뒤 어떤 경제를 만들지 비전 세워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제전망 보고 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31년에 는 0.55%까지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머지 않은 미래에 사실상 성장이 멈출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안은. “우선 우리 인구의 고령화와 근로시간 단 축 등을 고려할 때 노동력 투입을 늘리는 데 는 한계가 있다. 단지 여성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소지가 남아 있어 다행이다. 이를 위한 다방면의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 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좀 더 긴 안목에서 이 민 정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아울 러 강조돼야 할 것은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 연화와 생산적 노사관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 근원을 경직된 정규직 시장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그 다음엔 투자 촉진을 위해 기업 투자 여건을 개선해 줘야 한다. 투자를 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털어내 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 기업들은 해 외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왜 기업들이 나가 는지를 기업인들에게 물어보고 이를 시정해 야 한다. 정책입안자들이 기업투자 담당자들 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 를 듣지 않고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 렵다. 끝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효율성 제고를 위한 노력, 즉 모든 제도를 글로벌 스 탠더드에 맞게 추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
청와대 경제수석을 위한 어드바이스
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경제수석 기본 역할은 상충 정책의 조정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보이지 않게, 그리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faceless and voiceless).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주문한 청와대 경제수석의 일하는 방식이다. 경제수 석은 대통령을 보좌하며 부총리와 관련 부처 를 뒤에선 적극적으로 돕되, 전면에 드러나지 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수석의 역할과 중 요성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1983년부터 87년까지 4년여간 최장수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3년 미얀마(옛 버마) 아웅산 묘역 폭탄 테러로 사망한 고 김 재익 경제수석의 후임으로 당시 산업연구원 장이던 사공 이사장을 발탁했다. 사공 이사장은 재계와 여론의 저항에도 불
각 부처, 이해집단 시각서 못 벗어나 수석이 부총리 도와 조정해 줘야 뒤에서 돕고 功은 장관 몫으로 일류 정책 만들려면 막후 조정 필수 선심 정책엔 NO라고 말할 용기 필요 다른 수석들과도 소통 매끄러워야
구하고 80년대 초 시작된 안정화 정책을 흔들 림 없이 지켜 오늘날 한국 경제의 기틀을 닦 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제 수석으로 임명될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임자가 없으니 내가 직접 경제 현안을 인 수인계해 주겠다”며 그에게 경제수석의 역 할과 주요 현안들에 대해 브리핑해 줬다고 한 다. 전 전 대통령은 또 수석으로서 제대로 일 하려면 두뇌집단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한 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사공 수석과 생 각을 같이하는 사람으로 뽑아 함께 일하라” 고 인사를 맡기기도 했다. 사공 이사장은 경제수석의 역할로 각 부처 간 상충되는 정책 조정 기능을 우선 꼽았다. 그는 “농림부가 농민들의 입장을 우선적으 로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부처는 기본적으로 관련 부문의 이해관계자 집단의 입장에서 경
제 사안들을 볼 수밖에 없다”며 “배후에서 부총리를 도와 각 부처 간 상충된 정책을 조 정하는 게 경제수석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은 각 부처 장관 중 심으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장관들 책임 하에 일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고 공은 장관 에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수석이 적극적인 역할은 하되 막후의 조정자로서 결 코 앞에 나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실제 사공 이사장은 경제수석 시절 한 차 례도 정책에 관한 한 직접 기자회견을 한 적 이 없다. 85년 사공 이사장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부채 서밋에 참석했을 때 당시 미 국의 베이커 재무장관이 원화절상을 압박하 기 위해 만나자고 했을 때 “주무 장관이 아닌 대통령 비서가 미국 재무장관과 공식 면담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의 이런 고집에 양측
1987년 주요 경제인들과 만찬 중인 사공일(오른쪽 둘째) 재무 장관.
[중앙포토]
모두 배석자 없이 비공식 미팅을 했다. 그는 또 “경제수석은 대통령에게 경제 정 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정책 자문을 하는 브 레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 도록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국내외 경제를 보 는 시각 정리와 프레임 마련을 위해 지근거리
Focus 7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사공일 이사장이 진단하는 세계 경제
중국 경착륙은 없을 것 아베노믹스는 절반의 성공 이수기 기자차길호 인턴기자
경제성장률
(단위:%, 전분기 대비)
중국
최정동 기자
2.0
잠재성장률 1%P 높일 여지 충분 서민 가계부채 부담 경감 대책 시급 아베노믹스는 우리 경제엔 안 맞아 여성·이민 활용 진지하게 고려할 때
다.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처리 과정만 봐도 행정부와 국회를 위시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시급한 개혁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이러 한 일들을 강한 의지로 국민을 설득해 추진 해 나간다면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다할 때 까지 잠재성장률을 적어도 1%포인트 정도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
에서 수시로 대통령 자문역을 해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로런스 서머스 교수 의 경우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 시절 매일 적어도 30분씩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 브 리핑을 하면서 대통령의 경제 이해도를 높였 다”며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경제 수석은 KDI 등 전문가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류 정부란 결국 일류 정책을 생산 하는 정부”라며 “일류 정책 생산을 위해 미 국 정부처럼 싱크 탱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고 복잡한 경 제정책을 뒤에서 기획·조정하는 경제수석의 경우 이것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사공 수석은 경제수석을 두고 ‘미움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자리’라고도 했다. 정치권
일관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의 문제다.” -모든 정부가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 진해야 하며 어떤 규제를 먼저 없애야 하나.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주재했던 ‘규제개 혁 끝장토론’을 보자. 마라톤 회의를 하고 나 름의 성과도 냈지만 후속 회의로 연결되지 않 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 회의가 정규화돼야 하고 대통령 일정에 매월 몇째 주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로 고 정시킴으로써 규제개혁에 대한 국정 우선순 위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국내외에 부각시 킬 수 있다. 규제는 그 성격상 여러 부처에 걸 쳐 있는 경우가 많아 개별 부처에만 맡겨서는 해결하기 힘들다. 부문별로는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가장 시급하게 해소돼야 할 부 분이다. 그래야 투자도 늘고, 내수도 촉진되 고, 양질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대통령이 규제만 챙길 순 없지 않나. “대통령의 힘이 실린 부총리가 진행 상황 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 총리가 중장기 경제정책 조정의 실제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기 획 기능과 예산권을 가진 부총리가 강력한 리 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더라도 중요한 규 제개혁은 정치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 일본 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것도 필요한 정책 과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정치 리더십 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강한 의지로 규 제개혁을 직접 꾸준히 챙길 수밖에 없다.” -소비 진작 중심의 경기부양이라는 게 결 국 그간 성장을 이끌어 온 수출주도형 기업 들이 내수나 고용엔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판 단에서 나왔다. 이 상황에서 다시 수출을 위 해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은 어려 워 보이는데. “물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하는 국내외 기업 전체의 투자와 수출 에 유리한 정책을 펴야 한다. 일자리 창출 면 에선 수출의 효과가 낮아진 게 사실이다. 그 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 리나라의 경우 내수 진작은 결과적으로 수 입 증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것이 직간접적으로 원유 등 수입을 유발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우리 는 수입을 위해 수출을 계속 늘려나가야 한 다. 그리고 수출을 통한 적정 수준의 경상수 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유지는 거시경제와 금 융의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리=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이나 이해집단의 압력으로 나오는 선심성 정 책에 대해서는 경제수석이 직접 나서서 막아 낼 배포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여당이나 부처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압 력에 약해 인기영합적 시책을 고집하는 경향 이 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그런 욕구가 더 강해진다”며 “이럴 때 청와대 안에서 안 된다 고 해야 할 사람이 경제수석”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경제수석은 특히 다른 청와대 수석 들과의 소통과 의견교환을 위해 각별한 노력 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공 이사장은 “대부 분 형식적인 국무회의에서는 타 부처 소관 정 책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어렵다”며 “사 전에 청와대 내에서 수석들끼리 수시로 난상 토론을 벌여 정책을 다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은 해당 부처를 통해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당분간 맑음. 중국은 연착륙.’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내다본 세계경제 전망이다. 실제 미국 경제는 뚜렷 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상무부는 “올해 2분기 국내총생 산(GDP) 성장률 잠정치가 연율 4.0%를 기 록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 치(3.0%)나 월가의 전망치(3.2%)를 뛰어넘 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당초 올해 초 미국 전 역을 강타한 한파와 폭설의 여파로 미국 경 기가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사공 이사장은 “전반적으로 미국 경제가 꾸 준히 개선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판단”이 라며 “양적완화 축소 등에 있어서도 연준이 속도 조절을 잘하면서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은 연착륙할 것이 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최근 국제통화기금 (IMF)은 중국 경제가 올해 7.4% 정도 성장 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아직 7.5%
1.6
1.5 1.0
미국
1.4
0.5
-0.2
0 -0.5 2011년 Q4 2012 Q1
2012 Q2
2012 Q3
2012 Q4
2013 Q1
2013 Q2
2013 Q3
2013 Q4
2014 Q1 자료: OECD
일본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일부 비관론자와 달 리 사공 이사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갑자기 6%대 이하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경착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위안화의 국제통화 혹은 세계 기축통화화에 대해선 아직도 요원한 일이라고 봤다. 앞으로 상당 기간 위안화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 협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공 이사 장은 “1920년대 중반까지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했던 영국의 파운드화를 달러가 대 체하는 데도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 제 일의 경제대국이 된 이후 50년 이상 걸렸
다”고 말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했다. 그는 “지난 15 년 이상 지속되었던 디플레이션에서 일단 빠 져나오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 반 소비자는 물론 기업들도 오래 지속된 비 관적인 심리상태에 빠져 있다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됐다는 점은 인정해 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또 다른 목표인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농 업, 노동시장, 기업 지배구조 등 여러 분야의 구조조정이 아직 미흡해 실망을 사고 있다” 고 덧붙였다.
8 Focus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입사 초년생 퇴사율 25% 시대의 엇갈린 이유
끈기적응력 없다 vs 일의 재미미래 없었다 이상언 기자, 차길호황은하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대기업 L사의 인사 부서에서 일하던 대졸 신 입사원 C씨(26)는 지난 2월 회사의 직급·직무 변화를 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과거의 직급 기 준 때문에 애로가 생기자 부서 내 8년 선배에 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일일 이 알려줘야 되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잘 모르는 눈치였다. 며칠 뒤 자신의 대학 졸업식 때문에 어머니가 상경하는 날 마침 부서 회식 이 잡혔다. 한 상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퇴근 후에 마중을 가려 했더니 묘한 뉘앙스를 담아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 회사 계속 다녀 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지난 6월에 퇴사한 그는 지금 언론사 취업을 준비 중이다. C씨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직 장을 버리고 백수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것은 쉽 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들에게서 보여지는 미 래의 내 모습이 끔찍스러웠다”고 말했다. 대형 연예기획사에 다니던 K씨(28)는 올 해 초 사표를 냈다. 즐겁고 활동적인 직장 생 활을 기대하며 지원했고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합격한 회사였다. 새롭고 창의적인 일 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1년 동안 주로 한 일은 컴퓨터로 서류를 정리하는 작업이었 다. 사무실의 온갖 잡일도 그의 차지였다. 창 의성보다 체력과 지구력에 의존해 일을 하는 것은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K씨는 지금 통 번역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입사 초년생들이 회사를 떠난다. 한국경영 자총협회(경총)가 지난 6월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405개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1년 내에 퇴사한 비율은 25.2%로 나타났다. 경총 의 2010년 조사에서 이 수치는 15.7%였다. 4년 새 9.5%포인트가 상승했다. ‘취업대란’ ‘이태 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등의 표현이 난무하 는 시대에 애써 들어간 회사를 1년도 안 돼 제 발로 나오는 젊은이가 네 명 중 한 명이다. 선배들 보니 앞날 끔찍 서둘러 사표 도대체 이유가 뭘까. 경총은 조직·직무 적응 실패(47.6%), 급여와 복리후생에 대한 불만 (25.2%), 근무 지역·환경에 대한 불만(17.3%) 등으로 원인을 설명했다. 회사들을 통해 퇴직 사유를 집계하고 분류한 결과다. 기업은 젊은 이들을 탓한다. “다들 귀하게 자라서인지 끈 기가 없다.”(제과업체 C사의 채용 담당 직원), “스펙만 화려했지 조직 생활에 대한 준비는 안 돼 있다.”(대기업 D사 인사담당 임원) 삼성 경제연구소는 한 보고서에서 조기 퇴직 신입
샘표식품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 포함돼 있는 요 리 면접 장면(왼쪽). 4~5명이 팀을 이뤄 요리를 만 드는 과제를 수행한다. 음식의 맛보다는 지원자들 의 동료에 대한 배려 등 인성을 주로 평가한다. 아 웃도어 의류 제조사인 블랙야크의 ‘등산 면접’ 장 면(위쪽). 회사 측은 입사 지원자들의 인내심과 협 동심 등 품성을 주로 살펴본다.
경총 48%가 조직직무 적응 실패 스펙만 화려, 준비 안된 취업 진단 퇴사자 37%는 맡은 업무에 불만 단체 활동 대신 능력개발 교육 원해
입사 초년생의 퇴사 이유
(단위:%)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 47.6
25.2
17.3
9.9
근무 지역환경 불만 조직직무 적응 실패 급여복리후생 불만 기타
중앙SUNDAY 30명 인터뷰 36.6
30
16.7
16.7
상사와의 인간관계 문제 맡겨진 업무에 불만 미래에 대한 기대감 부족 기타
사원들의 문제를 파랑새 증후군(막연한 기대 감으로 직장을 계속 탐색), 셀프홀릭 증후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 평가), 피터팬 증후 군(책임감 회피)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조기 퇴사 당사자들의 얘기는 다르 다. 중앙SUNDAY가 입사 1년 내 퇴사자 30 명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 ‘업무에 대한 불만’ 이 가장 큰 빈도(11명)를 차지하는 ‘퇴사의 결정적 이유’였다. “맡은 일에서 흥미나 의미 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그 다음으로 자 주 언급된 사유는 ‘회사 또는 나의 미래에 대 한 비전이 없었다’였다(9명). 자신들이 적응 을 못한 것이 아니라 맡겨진 일이 마음에 들 지 않았거나 회사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주 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과연 어느 쪽 얘기가 더 사실에 가까울까. 진로 컨설팅 전문가인 김세준(45·슈퍼 신입 사원의 저자) 국민대 경력개발센터 겸임교 수는 “양쪽 모두 정확한 설명이라 보기 어렵 다. 기업은 이미지 손상을 꺼려 정확한 실상 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퇴사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행위를 합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진실은 그 중간쯤에 있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조기 이직 현상은 시대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4분의 1의 삶의 위기(Quarterlife Crisis)’라
는 논문을 쓴 올리버 로빈슨 영국 그리니치 대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평균 수명이 길 어지고 초혼 연령이 30세 전후로 늦춰지면서 인생과 진로에 대한 젊은이들의 탐색 기간이 길어졌다. 이때 겪는 실직이나 이별은 긍정적 인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본지 인터뷰에 응한 30명의 퇴사자는 대부분 회사 근무 경험이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 기가 됐다고 말했다. 1년 내 퇴사 땐 기업 손해 6000만원 대기업들은 입사 1년 만에 퇴직하는 직원은 6000만원가량의 손해를 안긴다고 추산한다. 1인분의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운데 받 은 급여, 교육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신입 사원들이 우수수 떠나면 직원들의 사기도 떨 어진다. 이 같은 손실을 막기 위해 기업도 안 간힘을 쓴다. 채용 때 사회성과 인내력을 테 스트하는 합숙 면접, 등산 면접 등이 동원된 다. 한 대기업은 ‘불평·불만 유발자’를 사전 에 걸러 내기 위해 면접 합숙 때 인사팀 직원 을 지원자로 위장시켜 ‘스파이’로 투입한다 는 소문도 있다. 신입사원들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다양 한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단체 공연·스포츠
[중앙포토]
관람, 운동회·야유회, 최고경영자(CEO)와의 식사, 신입사원 부모에게 보내는 CEO의 편 지 등이다. 신입사원의 합리적 동의 받아내야”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대기업 C사에서 퇴사한 P씨(26)는 “운동회 나 MT(멤버십 트레이닝)는 집단 문화를 강 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그 시 간에 직무와 연관된 교육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다 사표를 낸 K씨(25· 여)는 “해병대 캠프에도 다녀왔다. 말로는 창 의력을 존중한다면서 실제로는 조직 순응을 요구하는 이중성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전 문가들은 소속감·충성심 고취 프로그램보다 는 회사와 직원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 제시나 전문성 개발 교육이 조기 퇴사를 줄 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구인·구직 컨설턴트 장현아씨는 “퇴사 문제를 걱정하면 서도 막상 신입 직원들에 대한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세준 교수는 “신입사원들에게 영업이나 고 객 응대 등의 험한 일을 시킬 때 그 일이 회사 의 경영을 이해하고 경력을 쌓는 데 어떤 역 할을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면서 합리적 동 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 이탈 막기 위해 머리 싸맨 기업들
부서 이동 쉽게 사내 잡 마켓 운영 휴일 교육 참가자엔 보너스 박종화 인턴기자 hjmh7942@naver.com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에서 일하는 최현호(31)씨는 지난해 말 심각하게 퇴사 를 고민했다. 업무와 적성이 잘 맞지 않았 던 탓이다. “동료·선후배, 회사 분위기와 연봉도 다 불 만이 없었지만 하는 일이 저와 잘 맞지 않더 군요. 그러던 차에 사내 게시판에 ‘잡 마켓’ 공고가 올라온 걸 봤습니다.” ‘잡 마켓(Job Market)’이란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다른 업무를 해 보고 싶을 때 사 내에서 직군을 옮길 수 있는 제도다. 최씨는 사내 잡 마켓을 통해 제품개발 부서에서 마 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내 적성과 업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 같았다”며 만족해했다.
현대카드의 ‘오픈 커리어 존’ 인기 넥슨, 전문성 육성 프로그램 가동 日 NEC소프트는 성장 청사진 제시
‘위기의 1년차’ 직장인들에게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아주거나 교육을 통해 업무 만족도 를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었다. 어렵게 뽑아놓은 인재들이 1~2년 만에 퇴사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캐피탈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 이다. ‘오픈 커리어 존’은 직무 이동을 원하 는 직원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이다. 반대로 ‘잡 포스팅 존’은 각 부서에서 ‘이런 인재가 필요
하다’고 공고하는 방식이다. 차경무 현대카 드·캐피탈 홍보팀 대리는 “인사 이동의 70% 가 이 제도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고 모든 과 정은 ‘선 전출 후 충원’ 조건으로 비밀을 보 장한다”고 말했다. 어렵게 뽑은 인재를 놓치지 않는 ‘리텐션 (retention)’ 프로그램은 창의력을 중시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 사이에서 활발히 가동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 엠로는 ‘역량 교 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 유출을 막는다. 처 음에는 직원 재교육 프로그램으로 도입됐지 만 지금은 업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 로 자리 잡았다. 기술팀과 구매팀으로 나눠 개인마다 학습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상위 프로그램으로 이행하는 방식이다. 휴일 에 교육을 받으면 5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해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프로그램 도입 이
후 이 회사의 퇴사율은 크게 줄었다. 공채 직 원의 퇴사율은 10% 미만. 최근의 공채 두 개 기수 31명 가운데 퇴사자는 2명뿐이다. 게임업체 넥슨은 개발 직군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인 체 피규어(인형)를 제작해 디오라마(실물 모 형)를 제작하거나 액션스쿨 배우들을 강사로 초빙해 실제 액션 장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다.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익힐 수 있는 누드 크로키도 진행한다. 인재 리텐션 프로그램은 해외에서도 활발 하게 개발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여건 이 비슷한 일본에서 성공사례가 많다. 일본의 해충방제 회사 아산테(Asante) 는 신입사원 채용설명회에 2~3년차 직원들 이 나와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본 심(本心) 세미나’를 실시한다. 선배사원들은
“영업하러 나갔다가 개에 물렸다”거나 “마 루 밑에 들어가서 뱀과 마주쳤다”는 등 실제 로 업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해 준다. 이런 경험담을 듣고 난 뒤 지원을 포기하는 이도 있지만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일단 입사한 뒤에는 퇴사율이 크게 낮 아진다고 한다. 실제로 30~40%에 이르던 이 회사의 신입사원 이직률은 ‘본심 세미나’ 도 입 후 10%대로 떨어졌다. 일본 소프트웨어 업체 NEC소프트는 직원 들에게 입사 초기 ‘커리어 맵’(career map) 을 제시한다. 14개 세부 직무별로 전문 인재 가 갖춰야 할 역량을 정의하고 전문 인재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할 성장·개발 지도를 보여 준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으로 업무와 회사 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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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 우리 쿠드만
이스라엘 인구 75%, 하마스에 생명 위협 받으며 생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자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지난 1일 오전(현지시간) 72시간 휴전에 합의했으나 두 시간 만에 깨졌다. 가자지구에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휴전이었지만 양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교전 과정에서 이스라엘 장교 하다르 골딘이 하마 스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과거 이스라엘은 납치된 자국 병사 1명을 구출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재소자 1027명을 석방한 적이 있다. 포로가 된 장교가 휴전협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의 휴전 중재 노력도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2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600명을 넘어섰다. 이 스라엘 측에서도 60여 명이 숨졌다. 이번 사태와 관련, 왈리드 시암 도쿄 주재 한·일 겸임 팔레스타인 대사를 인터뷰(중앙SUNDAY 7월 27일자)한데 이어 우리 쿠드만 주한 이 스라엘 대사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지난달 31일 텔아비브 인근에서 열린 이스라엘 병사 마탄 고틀리브의 장례식에서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있다. 고틀리브는 지난주 하마스 땅굴 수색작전을 벌이다 매설된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하마스의 땅굴을 모두 파괴할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9년 간 로켓 등 1만8000발 공격 받아 북이 한국 공격하면 어떻게 하겠나 공격용 땅굴 없애려 지상군 보낸 것 평화 위해 ‘2국가 해법’ 협정 맺어야 민간인 피해 유감 희생 최소화할 것
우리 쿠드만
김춘식 기자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많이 숨져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다. 이번 군사작 전의 목표는. “우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배경 설명이 필 요한 것 같다. 2005년 당시 아리엘 샤론 이스 라엘 총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가지지구에 있는 병력과 민간인들을 철수시켰다. 가자지 구가 양측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 여주는 선례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20여 일 동안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2600발 이상의 로켓과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이스라엘은 군사작 전의 목표를 크게 세 가지로 설정하고 있다. 단기적 목표는 하마스의 로켓 및 미사일 공 격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중기적 목표는 하마 스를 비무장시키는 것이다. 또 후방 공격 루 트가 되고 있는 접경지역의 땅굴들을 파괴하 는 것이다. 이 땅굴들은 이스라엘 군사기지 가 아닌 민간인 거주지역에 출구가 있다. 이 를 통해 하마스는 국경을 몰래 넘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는 상대 방을 서로 인정하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위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함으로써 사태 가 확산됐다. 투입한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하마스가 땅굴을 통해 우리 후방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우리 영토 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 향후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로 더 깊숙이 진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고 있 다. 가자지구와 불과 11㎞ 떨어져 있는 아슈 켈론 등 적지 않은 이스라엘 도시들이 팔레 스타인 국경에 인접해 있다. 이 도시들은 장 거리미사일도 아닌 로켓의 사정거리 내에 있 다. 이런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서는 2국가 해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이 대량학살 당했던 홀로 코스트 같은 비극이 이 땅에서 재발하길 원 치 않는다.” -그동안 일시적인 휴전은 있었지만 사태 해 결을 위한 근본적인 협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더 이상의 군사적 충돌을 원치 않 는다. 협상을 통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 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측 이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공존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하마 스는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에 대한 로켓과 미 사일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 입장에 서는 이에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 인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것에 대해서는 유감 이다.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가 정 당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북한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계속 도발을 해온다면 이 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지 않을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강경파 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강공책을 펼치고 있다 는 의견도 있는데. “이 문제는 이번 사태와 별개로 봐야 한 다. 이스라엘 내 강경파가 이번 분쟁에서 쟁 점이 돼서는 안 된다. 핵심 이슈는 우리 국 민의 안전이다. 하마스는 접경 지역뿐 아니
라 예루살렘·텔아비브, 심지어 북부 도시인 하이파까지 공격하고 있다. 전체 인구 800만 명 중 600만 명이 하마스의 의해 생명을 위 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정치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분쟁이 벌어졌을 경우 우 리는 즉시 위협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노력한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정파들도 네 타냐후 정부의 이번 작전에 대해 지지를 보 내고 있다.” -하마스를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가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것은 9년 전 이다. 하마스는 그동안 1만8000여 발의 로켓 과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마스 지도부는 민간인들을 인간방패 삼아 은신하 고 있다. 이번 분쟁에서도 하마스는 우리가 공격하기 어려운 학교와 병원 등에 무기를 숨 겨놓고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주민 들을 위해 전력을 비롯해 음식과 의약품 등 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는 심지어 우리가 건네준 시멘트를 땅굴 건설에 쓰고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 엘이 하마스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다. 북한이 군사적 공격을 할 경우 한국의 대 북 지원이 가능할까. 어려울 것이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국경 봉쇄 로 7년 넘게 감옥에 갇힌 것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마스가 이번 분쟁을 통해 얻고자 하 는 것은. “하마스의 1차 목표는 국경 봉쇄 해제일 것이다. 이외에도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지 원을 받기 위해 이번 분쟁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랍 국가들도 하마스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이집트도 하마스를 비난하고 있으며 심지어 하마스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압델 파타 알시시 이 집트 대통령은 군부 실세 출신으로 2013년 7 월 쿠데타로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
를 축출했다. 무르시를 지지하는 정파는 ‘무 슬림 형제단’이며 하마스는 이 세력의 분파 다. 이에 따라 알시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집트와 하마스의 관계는 악화됐다.) -팔레스타인 내 두 정파인 강경 하마스와 온건 파타가 연립정부 구성을 추진하는데.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연립정부에서 자 리를 잡게 되면 아마 자신이 통치하는 가자지 구 외 서안 지역에서도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이다. 이번 분쟁의 발단이 됐던 이스라엘 10대 소년 3명에 대한 납치·살해 사건도 하마 스의 소행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사태를 확 산시키기 위해 서안 지역에서도 반이스라엘 정서를 부추겼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하 마스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무력 충 돌로 치닫게 됐다. 하마스가 참여하는 연립 정부는 서안 지역에 기반을 둔 파타당 중심 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 더욱 강경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아이언 돔(Iron Dome)’이 90%에 달하는 요격 성공 률을 보여줬는데. “아이언 돔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팔레스 타인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만약 아이언 돔이 팔레스타인 으로부터 날아온 미사일을 제대로 요격하지 못했다면 아마 이스라엘 희생자 수가 현재보 다 10배 이상 증가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 격으로 더 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희생됐 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확대가 ‘2국가 해법’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 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사회, 심지어 미국도 정착촌 확대에 반대하는데. “유대인 정착촌은 평화로 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앞서 우리는 중동전쟁을 통해 점령한 이집트 영토를 반환했다. 요르단에도 협상을 통해 점령지를 되돌려줬다. 지금은 요르단에 수자원을 공급하는 등 좋은 이웃
[로이터=뉴스1]
으로 지내고 있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을 지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이스라엘이 이웃 국가인 이집트와 요르단과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 지만 2005년 가자지구에서 우리가 철수했음 에도 하마스와는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 다. 누구의 탓인가. 우리는 이번 분쟁을 끝내 기 위한 협상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있 다. 앞서 분쟁 초기 이집트가 제안한 중재안 을 우리는 수용했지만 하마스는 거부했다.” -이번 분쟁이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확전할 가능성은. “중동에선 많은 전쟁이 발발했으며 지금 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는 내전 중이다. 레바논과 리비아에서도 종교 와 정치 문제로 무력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아랍권이 이스라엘과 하 마스 간 분쟁에 개입할 여유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스라엘은 이번 분쟁이 확대되길 원 치 않는다. 우리는 단지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뿐이다.” -북한과 하마스가 무기 밀거래를 하고 있 다는데. “2009년과 2011년에도 북한이 미사일 기 술 등을 중동의 테러조직에 제공했다는 보 도가 있었다. 북한은 시리아의 핵 원자로 건 설을 돕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이스라 엘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의 무기와 군 사기술이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조직에 제 공되고 다시 하마스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한국과 이스라엘 관계 증진을 위해서는. “그동안 양국은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또 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유사 성을 갖고 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양국 은 지난주에도 ‘창조경제’를 주제로 행사를 열었고 또 200여개 기업이 참가한 박람회도 개최했다. 앞으로도 양국 간 협력은 더욱 강 화될 것으로 믿는다.”
Focus 11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서울서 열린 제2회 한·중 의회 바둑교류전
반상엔 한·중 문화 차 없어 手談 나누며 무언의 외교 문용직 객원기자 moonro@joongang.co.kr
당(唐) 현종(玄宗)은 바둑을 즐겼다. 남겨 진 기보로 보면 5~6급 정도 실력. 기보는 물 론 위작(僞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 을 즐긴 건 사실인 듯하다. 하루는 바둑을 두 는데 현종이 불리했다. 안색도 변했다. 그러 자 옆에 있던 양귀비가 고양이를 날렸다. 품 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짐짓 놓친 척했던 것 이다. 고양이는 바둑판을 쓸어버리고 승패는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귀비는 바둑판만 쳐다보는 현종을 시샘했 을지 모르겠다. 현종이 귀비로부터 도피할 유일한 장소가 바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둑과 정치, 같은가 다른가 바둑과 정치. 자주 등장하는 단어 조합이다. 지난달엔 시진핑(習近平·61) 중국 국가주석 이 청와대 만찬장에서 이창호(39) 국수의 손 을 잡고 반갑게 흔들었다. 며칠 후엔 박근혜 (62)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귀한 바둑알과 통 을 선물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해엔 시 주석 이 중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에게 창하오(常 昊·38) 9단을 소개하면서 중국 바둑을 은근 히 자랑했다. 1~2일엔 한국 국회와 중국 인민정치협상 회의(정협)의 제2회 바둑교류전이 열렸다. 정협은 중국 공산당을 비롯, 각 정파의 대표, 군대표와 지구대표, 소수민족 대표 등으로 구성된 범국가적인 최고 국정자문회의다. 한국 의원 10명과 중국 의원 10명이 국회 ‘사랑재’에서 가린 승부에서 한국이 연이틀 7대 3으로 이겼다. 지난해 베이징(北京)에 서 제1회 대회를 치른 후 두 번째다. 바둑 두 면서 정치를 한다니, 일견 괜찮을 듯도 하고 “무슨 관계지” 하고 의문을 품을 만도 하다. 바둑과 정치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자주 만나는 이유가 뭘까. 속설이 많다. 바둑 두는 자 궤계(詭計)에 밝아 정치에 능하다는 이야 기는 익히 들었다. 그러나 세상사 상식은 대부분 부정확하 다. 바둑 속에 정치의 이치가 들어있다면 현 재 한국의 프로기사 290명 중 국회의원 하나 없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학 교수들 중 전문기사 한 명 없다는 것도 그렇다. 바둑과 정치를 구별하는 변수 하나는 정보 다. 바둑판 위에서는 어떠한 정보도 숨겨지 지 않는다. ‘완벽한 정보’ 게임이다. 하지만 정치에는 정보가 불완전하게 주어 진다. 잠시 병법을 생각해보자. 병법의 요점 하나는 궤계인데 궤계는 상대에게 거짓 정 보를 흘려주는 행위다. 바둑판 위와 전혀 다 르다. 바둑판 위에 돌 하나 놓은 후 상대에게 “너는 이 돌 보지 마라” 할 수는 없다. 정치는 병법을 포함하며 또 정보의 비대칭 성이 훨씬 복잡한 세계다. 정보를 국민과 공 유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되겠고 독점한다 면 독재가 되겠다. 정보가 곧 권력이다. 의원 면담 아닌 구체적 문화교류 한·중 의회 교류전으로 주제를 넘겨보자. 바 둑 두는 건 즐겁다. 하지만 한·중 의원들이 굳 이 바둑 두는 재미로 만날 리는 없겠다. 실력 이 늘고 싶다면 고수를 청하면 될 것이요, 즐 기고 싶다면 두면 되지 굳이 비행기 타고 오 갈 일은 없다. 그럼 뭘까. 바둑도 즐기고 한· 중 의원 외교도 하자, 그것이 답이다. 그래도 의문이다. 외교야 하면 되지, 바둑이 매개가 돼야만 하나. 국회기우회 회장인 원유철(52) 의원은 “국 가 지도자들의 면담 형태가 아닌 구체적인 문화교류”라면서 상징성을 강조했다. “70년 대 핑퐁외교가 미·중 데탕트를 가져왔죠. 네 트 위를 오가는 탁구공이 곧 이념을 넘어선
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제2회 한·중 의원 바둑교류전에서 원유철 의원(오른쪽국회기우회 회장)과 레이샹 의원이 대국하고 있다. 한국 의원들이 연이틀 7대3으로 승리했다.
바둑 한 판 두면 십년지기처럼 친근 양국 국민 대표들 마음의 벽 걷어 한국, 이틀간 대결서 7대 3 승리 유인태 의원 대범한 기풍에 눈길 이인제 의원은 장고에 장고 거듭 중국 쑨화이산 의원 속기 인상적
다는 메시지 아닙니까. 바둑은 수담(手談)이 니 말 없는 대화, 진실한 대화죠.”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 의원은 “바둑 한 판 둔 다음엔 십 년지기(十年知己)처럼 서로 마음을 털어놓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런가. 바둑을 두면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 는가. 답이 있다. 잠재의식 속 부정적인 그림자 를 반상에 쏟아부어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유명한 명상(瞑想) 논리가 있다. 화가 날 때 종이를 앞에 두라. 그 위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그려보라. 그러면 종이 위로 마음이 이전(移轉)된다. 종이를 찢어서 던져버려라. 마음은 구체적인 것. 숨겨진 마음은 숲 속 오 랜 세월 켜켜이 쌓인 나뭇잎, 즉 카를 융(Carl G. Jung)이 말한 ‘그림자’와 다름이 없다. 습 기에 젖어 있다. 햇빛을 비추라. 습기 찬 나뭇 잎이 사라지리라. 억눌린 감정의 뭉치가 사라 지는 이치, 그와 같다. 정쟁하며 타협 끌어낼 수 있는 게 바둑 바둑은 상징성이 큰 문화 텍스트다. 시 주석 은 지난해와 올해 바둑을 몇 번 언급했고 언 론은 보도했다. 변화가 일어났다. 그에게 지 자(智者)라는 이미지가 새겨졌다. 왜 그런가. 바둑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속성 때문에 정 치는 바둑에 비유되곤 했다. 수담은 무위(無 爲)로 세상 다루는 노장(老莊)의 지혜와 비슷 하다. 그런 문화적 이미지가 시 주석에 투사 되었다. 김종필(88)은 바둑을 좋아했다. 5급이었 다. 정치적 외유(外遊) 등 격동 속에서도 언 제나 가까이 했다. 68년 그는 낙마했다. 당 (黨) 권력을 잃었다. 6월 2일 공화당 탈당계 를 제출한 후 그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해 운대 극동호텔에서 구태회(91) 의원과 한가 롭게 바둑을 두었다. 그 장면이 기자의 눈에 잡혔다.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의 정치적 좌절이 국민의 눈에 빨리듯이 들어왔다. 바 둑의 풍운조화, 좌절과 역경… 모든 것이 오 버랩됐다. 국민은 알았다. “아, 정치란 저런 거구나.” 바둑의 상징을 통해 정치가 이해됐다. 정 치란 복잡하구나. 인생사도 정치도 바둑도 다 비슷비슷하구나. 실제로 정치란 그런 것
이 아니던가. 정치란 보듬어야 할 인생처럼 고운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정 쟁(政爭)은 해도 좋다. 다만 여야는 바둑이라 도 두면서 정쟁을 해야 한다. 놀이를 모르는 정치인, 엄격한 군자 타입 정치인은 곤란하다. 도덕군자는 대개 음험한 그림자를 의식 속에 갈무리한 사람들이다. 그래선 안 된다. 술도 먹고 잡담도 해서 탁한 내면을 풀어 던져야 한다. 바둑판에서 대판 싸워 쓸모 없는 증오는 던져버려야 한다. 서울 관철동 한국기원에서 바둑을 즐겼던 신상우(1937~2012) 의원은 타협을 이끌어내 는 데 능했다. 15~16대 국회 때 한·일 의원 바 둑대회도 열곤 했다. 하지만 17대엔 바둑이 사라졌다. 바둑 두던 의원들이 낙선했기 때 문이다. 짐작건대 조사해보면 17대엔 싸구려 정쟁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집은 오 가는 길목이 좋았다. 많은 정치인이 오가다 가 들렀고 술과 차가 뒤따랐다. 바둑 두는 시 간엔 대화가 있어 정보도 부드럽게 모여 들었 다. 윤보선이 정치적 힘을 기르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국회 원내총무 제도도 그런 과정 속 에서 만들어졌다. 사랑방 연락책에서 총무로 제도화되었다. 정치인은 바둑 좀 둘 줄 알아야 한다. 바둑 이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하나도 갖지 못한다면 웃음 없는 정치인과 다름이 없다. 정치인은 상징으로 국민에게 어필하는 사람들. 상징적 이미지도 갖고 놀 수 없다면 대체 어떤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최근 정치의 상징적 화두 하나는 상생(相 生)이다. 자연과의 상생, 남북 간의 상생…. 이번 대회에서 만난 유인태(66) 의원은 “바 둑이란 게 정치와 비슷하다. 변화가 끊임없 다는 것이 그렇다. 승리를 원하지만 상생을 전제한 승리라는 점도 그렇다”고 했다. 유 의원은 잘 둔다. 프로에게 넉 점 접히는 실 력이다. 바둑 두는 의원 대부분 친화력 좋아 중국인 린하이펑(林海峯·72) 9단이 1960 년대에 일본인 사 카 다 에이오(坂田榮 男·1920~2010)에게 도전할 때다. 그는 묵묵하 고 태산 같은 태도로 사카다의 귀수·묘수 세
김춘식 기자
계를 유장하게 대처했다. 일본 바둑계는 ‘대 륙성 짙은 바둑’이라면서 민족성으로 그의 반상 세계를 풀어냈다. 중국은 스케일 큰 문화로 유명하다. 의원 들의 태도와 바둑을 지켜보았다. 과연 그런 문화적 차이가 반상에서도 드러날 것인가. 이인제(66) 의원은 신중했다. 장고를 거 듭해 첫날 가장 늦게 대국을 끝냈다. 김기선 (62) 의원은 아주 잘 닦인 수준급. 프로에게 두 점 치수였다. 유인태 의원은 대범한 기풍 이었다. 좌우 큰 규모로 진(陣)을 펼친 다음 상대를 크게 공격했다. 중국의 쑨화이산(孫懷山·62) 의원은 실 력은 약했지만 속기가 인상적이었다. 창 전밍(常振明·58) 의원은 79년 전국대회에 서 녜웨이핑(聶衛平·62) 9단, 천주더(陳祖 德·1944~2012) 9단에 이어 3위에 입상한 실 력이니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속기도 있었고 장고도 있었다. 실리와 세 력은 서로서로 오갔다. 세력과 스케일은 다 른 것이었다. 두 나라 의원들 간에 문화적 차이는 없었 다. 멀리 내다보는 것을 ‘스케일 큰 안목’이라 고 한다면,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에 일희일 비 않는 것. 사소한 문화적 갈등에 얽매이지 않는 것. 그것이 큰 스케일이다. 그러니 한·중 의원들 간에 문화적 차이가 반상엔 없다는 것은 당연했다. 단지 반상을 얼마나 넓고 멀리 보느냐. 그것이 초점이다. 정치에서도 그것이 요점이다. 함께 내한한 중 국기원 류쓰밍(劉思明·60) 원장이 “정치인 들은 넓은 시야를 갖는 편”이라며 “바둑 두 는 의원은 대부분이 친화력이 큰 사람들”이 라고 했다. 그렇겠다. 정치는 친화력이다. 너 와 내가 다르니 드넓은 중국에는 서로 공존 하는 기술이 더욱 요긴할 터다. 한·중 의원 바둑대회 참가자 ^한국 김기선·김민기·김성찬·노영민·문병호·박상은·설훈· 오제세·원유철·이인제·유인태·정우택·최규성 ^중국 궁진화(龔錦華)·두잉(杜鹰)·레이샹(雷翔)·리잉제(李 英杰)·쑨화이산(孫懷山)·옌중추(閆仲秋)·창전밍(常 振明)·탕융(湯涌)·펑쉐펑(彭雪峰)·황젠추(黃建初)
12 People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유럽 현대음악계의 대모’ 재독 작곡가 박영희
작곡가는 마음과 귀를 항상 사회쪽으로 열어 놔야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세계의 벽을 넘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박 영희(69·사진) 작곡가도 그런 경우다. 그는 ‘유럽 현대음악계의 대모’다. 어느 음악학자 는 “뒤에 오는 여러 여성 작곡가들의 터전을 마련했다”고 그를 평가했다. 1994년 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작곡 과 주임교수가 됐다. 부총장으로도 선출됐 다. 여성 작곡가로서는 독일·오스트리아·스 위스 등 독일어권 전체에서 최초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럽 전체에서 여성 작곡과 교 수는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여러 콩쿠르에서 첫 번째 여성 우승자가 된 그는 여세를 몰아 1980년 세계 최고(最 古)·최고(最高)의 현대음악 잔치인 도나우에 싱엔 페스티벌에서 위촉 관현악곡 ‘소리’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됐다. 그는 여러 굵직한 음악제에서 ‘단골’ 심사위원이자 위 촉곡 작곡가로 활동해 왔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파울 자허 재단’은 박영희 작곡가의 모 든 악보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 여성 작곡가 로서는 세 번째다. 이 재단은 바흐·모차르트· 베토벤 등 역사적 작곡가들의 친필 악보와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보존해 음악학 연구를 돕는 재단이다. 최근 그가 고향 청주를 방문했다. 통합청 주시 출범을 맞아 청주 시립교향악단이 지난 달 10일 그의 ‘소리’(1980)를 한국에서 초연 한 것이다. 박영희 작곡가를 만나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현대음악에 한국의 정서와 전통, 음악을 접목했다. “가급적 작품에 우리말 제목을 붙인다. ‘소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1980년 5월 광주가 배경이다. 사건의 의미를 음으로 표현할 때 음계나 리듬, 전체 구도 등 음악적 문제는 2차적이다. ‘소리’에서는 전라도 농악 리듬이 나온다. 상여꾼들이 부르는 구슬픈 노래인 향두가(香頭歌)도 나온다. 향두가 가 사와 실음(實音)을 70년대 말부터 모았다.” -어떤 작곡 프로세스를 거치는지. “작곡가마다 다른데, 나는 특히 리서치 기 간이 길다. 4~5년이 걸린다. ‘달 그림자’를 쓸 때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공부했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 으면 작곡에 착수할 수 없다. 전체상이 잡히 고 나면 쓰는 기간은 ‘짧다’. 짧은 곡은 6개월,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은 1년 걸린다.”
Weather
박영희 작곡가에게 “어떤 작곡가이십니까”라고 묻자, “저는 땀을 흘리며 일하는 작곡가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음악으로 세계의 벽 넘은 한국인
-작품 ‘달 그림자’는 동양과 서양의 ‘퓨전 에 대한 책자 4권을 가톨릭 청주교구로부터 (fusion)’을 지향한 것이라고 보면 되나. 받았다. 그 후 그분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퓨전이 아니라 ‘같이 보는 것’이다. 노자 작곡을 많이 했다. 마침 그때 ‘무엇이 겸손 의 말과 서기 500년 전 그리스의 비극을 같이 인가’를 찾고 있었다. 최 신부님의 삶 속에서 놓고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를 살피는 ‘나 자신을 바치는 겸손한 삶’을 발견했다. 것이다. 퓨전은 이 생각과 저 생각을 섞어서 그분은 시대를 앞서간 놀라운 천재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만든다고 생각한 -작곡에 대해 알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다. 제 경우는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 수 있나. 다’라는 관점에서 딱 나눈다. 음향도 다르게 “아니다. 작곡이나 음악에 대해서 알 필요 한다. 노자 사상, 한병철씨의 시가 나올 때와 가 없다. 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도 된다. 제 오이디푸스가 자식들에게 악을 쓸 때 음악이 가 아는 많은 청중은 ‘도레미파’도 모른다. 음 완전히 다르다.” 악회에 갈 때에는 아는 것을 모두 집에 놓고, -음악과 사회, 공동체는 어떻게 엮이는지. 열린 가슴만 지니고 가면 된다. 연주자·작곡 “작곡가는 마음과 귀를 항상 사회 쪽으로 가들은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항상 들을 것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곡가는 이 있다. 항상 뭔가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산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뭐가 좋은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음악이 사회 속 “음악을 자꾸 듣는 경험의 반복을 통해 감 으로 들어가 호흡하는 이벤트가 작은 도시 성이 발달된다. 독일을 포함해 유럽의 중·고 나 서울의 구 단위에서는 가능하다. 서울 전 등학교에서 음악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그 여 체는 너무 크다고 본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 파로 청소년들이 감성 대신 폭력성을 발달시 다. 공원도 좋고 광장도 좋다.” 키고 있다. 인성이 형성될 때 음악을 하면, 머 -종교가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었는지. 리가 좋아진다. 음악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비 / 천둥 눈 / 소나기 등 흐려져 비 눈 또는 비 흐림 흐려짐 흐린 후 갬 “종교는 천당이나 기도보다는 어떤비삶을 행해지는 수학이다. 음악을 하면 ‘근본적인 살 수 있는지와 깊은 관계다. 2005년 우리나 머리’가 좋아진다. 왜냐면 음악을 하면 정신 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1821~1861) 신부님 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한번에 두 가지 음악
굵직한 유럽 음악제 단골 심사위원 “음악은 자녀들 머리 좋게 합니다 음악으로 無爲를 실천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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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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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3일 일요일, 음력 2014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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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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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덕씨 별세, 권태휘(BS투자증권 이 토요일(1일) 오전, 부산의료원 특 사)·설봉씨 모친상=2일 1호실, 발인 4일 오전 7시, 010-3771-0809 (5/1) (4/-1) (9/1) (8/2) 파리 특파 별세, 박상용(KBS ^서숙희씨 원)씨 모친상=2일 오전 7시40분, 서울아산 (9/2) (8/3) 병원 장례식장 34호, 발인 5일 오전 5시40분, (11/7) (8/6) 02-3010-2000
금요일(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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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수원 철원 청주 대전 춘천 강릉 대구 창원 포항 울산 부산 전주 광주
을 들을 수는 없다. 음악 시간은 학생들에게 무위의 시간이기도 하다. 쉴 수 있는 시간이 다. 음악은 또 치유한다. ‘마디’라는 곡을 썼 는데, 마디는 ‘맺힘’이다. 송강 정철의 속미 인곡을 보면 ‘맺힌 일이 있습니다’라는 표현 이 나온다. 사람 마음에는 누구나 맺힌 일이 있는데, 시뿐만 아니라 음악은 맺힌 일을 강 물처럼 흘러버리게 할 수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이다. 엄마들이 장남·장녀와 막내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 하다.” -아무리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가도 에 디터가 손을 많이 본다. 음악가는?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문법을 다 아는 게 아니다. 에디터들이 작가의 결정적인 사고나 사상·철학을 고쳐주는 것은 아니다. 저는 학 생들을 가르칠 때 대화로 학생 자신이 스스 로 고치도록 이끌어 간다. 에디터처럼 직접 고쳐주면 그 악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나중 에 ‘이거는 내 색채가 아니다. 선생님이 해준 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게 아니기 때 문에 나중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 다시 태어 나도 하고 싶은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는데. “다시 태어난다면, 주부로서 애들을 다 키 운 다음에 소설가가 되고 싶다. 박경리 선생 님의 토지는 제가 작곡가가 되는 데 큰 영 향을 줬다. 또 어렸을 때 박완서 선생님의 글 을 읽으며 저렇게 ‘큰 여자’가 돼야겠다는 꿈 을 품었다. 물론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정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국 가·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 “일본의 경우 어떤 일본인 작곡가가 해외 에서 상도 받고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국제교 류기금(Japan Foundation)이 나선다. 예컨 대 일본인 작곡가의 교향곡에 일본인 솔로이 스트에 독일 오케스트라를 붙여 연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중앙SUNDAY 독자에게 강조할 말씀은. “너무 일만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 위를 ‘생각’만 하시지 말고 ‘실행’하셨으면 좋 겠다. 안 그러면 큰일 난다. 유럽 철학계에서 는 무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좋은 방법은 음악회에 가는 거다. 한데 아는 분 때문에 음악회에 가는 경 안개 후갬 비표를 후 갬 사서 가는눈게 우 꽃보다는 좋다. 돈을 내 고 음악회에 가야 연주자들이나 작곡가들이 더 큰사이즈 정성을 들이게 된다. 굉장한 차이다.” 기본
주말 부고 게재를 원하시는 분은 담당자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전화 02-751-5753, 5723 / 팩스 02-751-5763
연휴 등 부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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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Focus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인턴 기자, 에너지 자립족들 만나보니
진공관 온수기, 화분 냉장고 에너지 비용‘0’꿈 아니다 박종화 인턴기자 hjmh7942@naver.com
#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시 탑동 기후변화센 터 회의실. 20여명의 여성들이 나무 상자에 못을 박고 철판을 자르고 있다. 망치와 드릴 을 든 이들은 기후변화센터에서 학생들에게 기후변화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 환경시민단 체 ‘핸즈’로부터 태양열 식품건조기를 만드 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건조기 원리는 간 단하다. 은박지 반사판을 통해 태양열을 스 티로폼 상자 안 철판으로 모으고, 최고 60℃ 까지 뜨거워진 공기가 상자를 돌아다니며 망 사 위 식품을 건조시키는 방식이다. 이들이 식품건조기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세시간 가량. 핸즈에서 교육을 맡았던 이재열씨는 “식품건조기는 가격도 비싸지만 이를 작동시 킬 때 드는 전기료도 만만치 않다”며 “저렴 한 비용으로 한번 만들면 해가 날 때마다 식 품을 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2 화분 냉장고 만드는 방법 1 화분 구멍을 점토로 막는다. 2 작은 화분을 큰 화 분 안에 넣고 빈 공간에 모래를 넣은 뒤 물을 붓는 다. 3 과일이나 음료수를 넣고 물에 적신 셔츠로 덮어둔다. 4 2시간 뒤 ‘화분 냉장고’ 내부 온도는 21℃로 한여름인 바깥 기온(31℃)보다 10도나 낮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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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금구리의 한 평범한 5층 건 물. 옥상에 올라가니 거대한 실험실 같은 풍 경이 펼쳐졌다. 굵기는 어른 팔뚝만 하고 길 이는 2m 가량인 진공 유리관 200여개가 서 른 개씩 짝을 이뤄 죽 늘어서있었다. 유리관 안은 물로 꽉 차 있었다. “이게 바로 온수기” 라고 빌딩 주인 류인(58)씨가 설명했다. 태양 열을 받으면 관 안의 물이 데워지고, 데워진 물은 탱크로 모인다. 이 온수가 파이프를 통 해 1층 주택을 난방하고, 온수도 저장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온수 온도는 겨울에 60℃, 여 름에는 100℃ 가까이 올라간다. 류씨는 “한 겨울에도 가스나 전기를 전혀 쓰지 않아도 바닥이 뜨끈뜨끈하다”고 말했다.
단독주택 태양광 발전은 옛날 일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전기 생산 환경의식 높아져 자립족 증가세 폐품 이용한 발명품도 속속 등장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 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태양과 바람 등 신 재생 에너지원으로 에너지를 직접 만들어 쓴 다. 신재생 에너지 설치 비용이 내려가면서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주택은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본격적인 장비를 갖추지 않더 라도 각종 아이디어 상품으로 쏠쏠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이들도 많다. 에너지 자립 족들을 찾아 에너지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알아봤다. 누진요금 걱정 없애는 ‘아파트 태양광’ 태양광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신재생 에너 지원이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발전된 전 기로 전력을 충당해 전기료를 낮출 수 있다. 최근 들어 보급도 크게 늘었다. 2007년만 해 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집은 전국 9226가 구에 불과했었는데 올 6월 기준 약 17만 가 구나 된다. 이런 급증세는 패널 단가가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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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와 영국 등에서 실용화된 ‘돛단 자전거’. 시속 45㎞의 속력까지 가능하다.
간 덕분이다. 2008년에는 4인 가족 평균 용 량인 3㎾ 패널을 설치하는 데 2200만원이 들 었다. 당시 정부에서 설치비의 3분의 2를 보 조해줬지만 각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은 8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패널가격 하락으로 설치비는 900만원까지 내려갔다. 정부 보조금이 300만원으로 줄었지만 본인 부담금은 600만원으로 오히려 더 적어진 셈 이다. 충남 공주의 단독주택에 사는 김혜경(40) 씨도 올 1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장비 를 모두 중고로 구입해 설치비를 450만원으 로 아꼈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전력에 낸 전기료는 33만1580원. 지난해 같은 기간(74 만2460원)보다 41만880원을 아꼈다. 김씨는 “전기를 펑펑 썼는데도 5년이면 투자 비용 을 모두 회수할 것 같다”며 “누진요금 걱정 이 없어 여름에 에어컨 켜기가 두렵지 않다” 고 말했다. 발전 설비를 설치할 공간이 없어 “재생 에 너지 활용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아파트에 까지 태양광 에너지 사용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소규 모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설치비의 50%를 지원해주는 ‘미니 태양광 보급사업’을 시작 했다. 200W 남짓한 용량의 패널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 60만원대 중반. 30만원 가량만 부담하면 미니 패널을 설치할 수 있 다. 이로 인해 아낄 수 있는 전기료는 한 달 에 많게는 1만7000원 가량. 특히 전기 사 용량이 많은 한여름과 한겨울에 누진요금 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김동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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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시 녹색에너지과 주무관은 “6월 한달 동 안 3000가구로부터 신청이 들어왔고, 8월 까지 8000가구의 신청을 받는 것이 목표”라 며 “월 301~400㎾ 정도의 전력을 쓰는 가정 은 누진요금을 절감할 수 있어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폐타이어 활용한 조리기도 나와 옥천군 금구리의 빌딩주 류씨처럼 태양열 발 전 설비를 직접 제조하는 경우도 있다. 배관 공 출신인 류씨는 10년 전 우연히 중국에서 개발된 온수기 제작 방식을 알게 됐다. 이때 자체 제작한 온수기로 난방비를 크게 아꼈 고, 올해부터 빌딩을 신축하면서 본격적으로 온수기 보급 사업을 시작했다. 요청이 들어오면 온수기를 제작해 팔기도 하고, 원하는 이들에게는 세미나를 열어 무 료로 기술을 가르쳐준다. 류씨는 “경북 울 진군의 의뢰로 지역 해수욕장의 샤워시설 에 온수기를 설치하기로 했다”며 “태양광 패널은 전기를 생성하지만, 진공유리관은 온수를 만들어 난방비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싼 장비 없이 아이디어로 에너지 사용 을 줄일 수 있는 발명품도 주목을 받고 있다. 기자가 직접 실험해 본 타이어 조리기가 대 표적이다. 자동차 폐타이어 안쪽에 신문지 를 구겨 넣고, 가운데 둥근 구멍에 데울 음 식을 넣은 뒤, 투명 아크릴판으로 구멍을 덮 는다. 15분 정도만 햇볕을 쪼여도 피자 치즈 가 녹을 정도로 내부 온도가 올라간다. 안 쓰는 화분으로 만드는 간이 냉장고도 효과 만점이다. 크기가 다른 화분 두 개를 겹치고
사이 공간을 모래로 채운다. 모래에 물을 붓 고 젖은 헝겊으로 화분을 덮어주면 기화열 에 의해 내부 온도가 서늘하게 내려간다. 실 제로 최고 온도가 31도까지 치솟은 한여름 낮에 화분 냉장고 내부 온도는 21도까지 내 려갔다. 해외에서도 에너지 자립족들이 다양한 실 험을 진행하고 있다. 전기가 없는 남미 페루 의 한 마을에선 환경 운동을 하는 대학생들 이 보급한 비전력 세탁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페달을 밟으면 내부 통이 회전하면서 빨래를 헹구고 짜준다. 바람이 많은 네덜란 드와 영국엔 바람자전거가 있다. 자전거에 돛이 달려있어 최고 45㎞/h의 속력을 낸다. 석유 한 방울 쓰지 않고 자동차에 뒤지지 않 는 속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 다. 일단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내려가 화 석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유리 한 경우가 많다. 또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 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노력을 번거롭다기 보다 뿌듯하게 여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경종민 카이스트대 전자전산학과 교수는 “기존엔 에너지를 직접 만들기가 어렵고 비 용이 많이 들어 환경에 엄청난 관심이 있는 이들만 이런 노력을 실천했다면, 최근엔 인터 넷을 통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이 소개돼 장벽이 없어졌다”며 “조만간 환경 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돈을 아끼기 위해 너 도나도 에너지 자립족이 되는 시대가 올 걸 로 본다”고 말했다.
적은 비용으로 이로움 주는 ‘적정기술’은
간디의 자립 정신에 뿌리 몽골아프리카 오지서 실험 활발 박종화 인턴기자
콜롬비아의 오지 아이피르 마을은 전기 가 들어오지 않는다. 평균 기온은 45℃. 이 곳 사람들은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게 소원 이다. 어느 날 ‘바이오 쿨러(Bio Cooler)’ 라 불리는 화분 모양의 냉장고가 마을에 들 어왔다. 냉장고 위 식물에 물을 주면 냉장 고 안 음료가 시원해진다. 물이 증발하면 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가는 원리를 활용했 다. 코카콜라는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기뻐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아 광고를 만들었 다. 광고의 제목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첨단 기술이 아니어도, 돈을
지역발전 원동력 자립에서 찾아 경제학자 슈마허가 개념 현대화 “자급자족 가능한 제조업 육성” 주장
크게 들이지 않아도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가리킨다. 적정기술은 환경 운동가들 사이에서 최 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단어다. 저탄소 에 너지는 엄청난 기술과 많은 돈이 필요하다 는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 다. 햇빛이나 바람 등 재생 에너지 자원을
활용해서 적은 비용으로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술 을 통칭한다. 운동가들은 적정기술의 뿌리를 인도의 스 와데시(Swadeshi) 운동에서 찾는다. 마하 트마 간디가 주도한 이 반영 운동은 “외부 의존도를 높이는 대신 스스로 자립할 수 있 어야 진정한 지역 발전이 된다”는 철학에 기 반한다. 이 개념을 현대화시킨 건 독일 태생 의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다. 자신 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 3세 계의 빈곤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중간 기술 (Intermediate Technology)’이란 개념을 제 시했다. 자본집약적 첨단 기술이 환경 오염
이나 사회 양극화같은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주장한 그는 “간단한 생산 기술로 현지의 원 자재를 사용해 지역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도 ‘적정기술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가 있다. 캄보디아 과학기술대학교 김만갑 교수다. 그가 몽골 유목민들을 위해 개발한 난방기 ‘지세이버(G-Saver)’가 대표적이다. 몽골의 텐트식 전통가옥 게르는 내부에 열이 보존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난로는 연료를 아 무리 써도 내부 온도를 지속적으로 높여주지 못한다. 지세이버는 열을 난방기 안에 저장 한 뒤 이를 수시로 역류시킨다. 연료 소비량 을 40%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 그가 개발한
정수장치 ‘더블유세이버(W-Saver)’도 적정 기술을 이용했다. 3중 필터로 물 속 오염 물질 이 상당 부분 제거된다. 정수탱크가 필요 없 어 탱크 속에서 일어나는 2차 오염도 막을 수 있다. 해외에서도 적정기술 실험이 지속되고 있 다. 무거운 물동이를 지고 다니는 아프리카 주민들을 위해 개발된 굴리는 물통 ‘큐 드럼 (Q-Drum)’이나 A형 간염이나 노로바이러 스 등 물 속 바이러스의 98.2%를 제거해주는 빨대형 정수기 ‘생명의 빨대(Life Straw)’, 빛이 들지 않는 집에서 물이 담긴 페트병을 지붕에 꽂아 태양광을 산란시켜 조명처럼 쓰 게 만든 ‘페트병 전구’ 등이 대표적이다.
Focus 15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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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상>
즉흥과 불협화음의 조화 한국인은 숨결 자체가 음악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m
지난달 17일 오후 4시 반, 서울 국립고궁박물 관 정현관 앞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2001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종묘제례악’ 공 연이 열렸다. 폭염 속에서도 300여 명의 관람 객이 550년 된 왕실의 엄숙한 제사음악에 빠 져들었다. 군데군데 외국 관광객들도 보였다. “종묘가 아닌 경복궁 옆에서 조선 왕실의 독창적인 제례음악을 접하다니 행운입니다. 이 제례악을 창조해낸 분이 세종대왕이라네 요. 조상에게 중국음악이 아닌 우리 음악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서요. 문화적인 자부 심이 생겨요.”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녀와 함께 왔다는 주부 임영숙씨의 말이다. 전광판에는 종묘제 례악의 어려운 한자어 가사 풀이가 나왔다.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하고 연주와 노래, 춤을 올리니 역대 제왕께서는 감흥하시라는 내용이었다. 세종은 동양 최초로 음높이와 리듬을 동 시에 표기한 과학적인 악보 ‘정간보’를 펴냈 다. 박연이 어렵게 완성한 악기인 편경(編磬) 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미세한 음 차이를 알 아채고 바로잡도록 한 일화가 세종실록 15 년 1월1일 기사에 전한다. “지금 소리를 들으니 또한 매우 맑고 아름 답다. 다만 이칙1매(夷則一枚·윗단 왼쪽 첫째 돌)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박연이 즉시 살펴보고 “경석(편경의 재료 가 되는 특수한 돌)에 가늠한 먹줄이 아직 남 아 있으니 다 갈지 아니한 것 때문입니다”라 고 아뢰고 물러가서 이를 갈아 먹이 다 없어 지자 소리가 곧 바르게 되었다. 절대음감을 지닌 이 현명한 군주는 예악 (禮樂)으로 백성을 감화시키고 민심의 순화 를 꾀한 예술정치가였다. 문화융성 국정기조 의 원조였던 것이다.
1975년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한남례씨 집에 만들어진 ‘소포 어머니 노래방’에서 지난달 22일 한씨(왼쪽)의 북 장단에 맞춰 동네 사람들이 흥타령과 육자배기 등을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절대 음감 세종, 예악으로 민심 순화 민간에선 恨마저 흥으로 승화시켜 근대화 후 국악을 하류층 음악 인식 어릴 때부터 우리 ‘귀맛’ 알게 해야
국악 연주 때 마이크 사용은 잘못 지난달 17일 저녁 서울 국립국악원 풍류사랑 방에는 20여 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안 숙선 국창의 판소리를 듣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 공연장과 달리 마이크를 사용 하지 않아서 몰입도가 높았다. 한국의 프리 마돈나 안숙선과 기념촬영까지 한 참가자들 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국악기는 음량이 작아요. 악기 간의 음 량 편차도 크죠. 그렇다고 해서 마이크를 사 용하면 소리가 크게 들릴지 모르나, 국악기 고유의 음색이 사라져요. 특히 산조나 시나 위 같은 경우는 소리가 왜곡되고 맛이 떨어 집니다. 연주자들끼리 서로 소리를 들어가면 서 크기를 조절하고 불협화음의 묘한 조화를 만들어가는 게 능력이고 매력이죠.” 음악평론가 윤중강씨는 마이크 시스템에 의존하는 국악공연 무대의 음량콤플렉스를 지적했다. 마당이나 판의 음악으로 알려진 한국 전 통음악에 무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08년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 자리에 세웠던 한 국 최초의 서양식 사설극장 원각사 이전에 도 가설무대가 있었다. 산대희(山臺戱)는 큰 길가나 빈터에 만든 무대에서 벌였던 탈놀 음이다. 하지만 국악은 역시 삶의 현장 속에 묻혀서 들어야 일품이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 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 거든 꿈은 꾸어서 무엇을 헐거나 (합 창 후렴구)아이고 데고 허어 으음 성 화가 났네
김춘식 기자
안숙선 국창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146번지 시골 집의 전통 ‘노래방’에서 구성진 남도 흥타령 이 흘러나온다. 1975년 자택에 ‘소포리 어머 니 노래방’ 간판을 단 한남례(81) 할머니와 이 동네에 사는 곽순경·한봉덕·김영님씨가 번갈아가며 노래를 받아 이어나간다. 노래방 음향시설 같은 건 없다. 오직 북 장단 하나에 맞춰 토속 민요가락을 끝없이 풀어낸다. 육 자배기와 진도아리랑에 이르면 덩실덩실 춤 이 절로 나온다. “일하니라고 아무리 뻗쳐도(고돼도) 소 리를 하고 나면 뻗치도 안하고 춥도 안하고 그렇게 재밌어요. 소리를 하면 마음이 개운 하니 성가신 일이 없어요. 저녁내 놀아도 안 한 놈(안 부른 노래) 하제 한 놈은 또 안 하 지라.” 한남례 할머니는 몸 소리를 하는 농사꾼 가객(歌客)이다. 젊어서는 고달픈 살림살이 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40여 년 전부터 김 막금·정태심 노인에게 민요를 전수받았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집 저집 사랑방을 떠돌 다 ‘어머니 노래방’ 문을 연 이후엔 정착했 다. 150여 가구가 사는 소포리에 전통민속전 수관이 생긴 뒤로는 거기서 40명가량이 모여 방 가운데 술 한통과 삶은 고구마를 놓고 북 장구에 맞춰 밤새도록 노래한다. 이 마을을 비롯한 진도 사람들은 한(恨)을 흥(興)으로, 죽음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비 결이 있다. 장례식이 축제가 되기도 하는 ‘다 시래기’의 원형이 살아있는 고을이다. 엄숙 한 유교식 장례법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전 통이다. 장례 치르면서도 춤추고 음악 연주 수서隋書 동이전 고려(고구려)편에는 ‘처 음과 끝에는 슬퍼하며 울지만, 장례를 하면 곧 북을 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며 죽은 이를 보낸다’고 나와 있다. 오늘날 상가에서 밤새 화투판을 벌이며 떠들어주는 유습에 그 흔적이 남았다. 한국인은 노래하는 겨레붙이다. 그래서 누구나 가수다. 신명난 문화의 중심에는 늘 노래와 풍물굿이 있다. 가곡(歌曲)은 신과 대자연, 사람이 공명하는 율려(律呂)의 철학 을 담고 있다. 한국인에게 율려는 음악용어 를 넘어 천지창조 신화의 주체다. 이 땅 사람 들에게는 음악이 곧 별이고 우주의 어머니였 다.(신라 박제상의 부도지) 6000년 전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인 울진 반구대 암각화에는 사나이가 악기를 다루
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도 이미 가야금 형태의 고유 악기(국립광주 박물관)가 있었으며 백제금동향로와 고구 려 고분벽화에도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의 장대 행렬이 등장한다. 신라 토우(土偶) 장식 항아리의 앙증맞은 흙 인형도 연주하고 노래 한다. 한국인은 숨결 자체가 음악이라고 한다. 제 사와 축제, 노동을 할 때도 음악이 있었다. 향 유 층에 따라 정악(正樂)과 민속악(民俗樂) 으로 나누며 민속악은 다시 판소리·시나위와 산조·잡가·민요·농악(풍물굿)으로 분류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서울 경기와 서도·동도·남 도·제주로 나눌 수 있다. 악기편성에 따라서는 향피리 중심의 관현합주, 거문고 중심의 줄풍 류, 당피리 중심의 관악합주로 분류하기도 한 다. 현재까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국악문화유 산도 종묘제례악·강릉단오제·강강술래·남사 당놀이·처용무·영산재·제주칠머리당영등굿· 가곡·아리랑 등 10개나 된다. 무형문화재 제도 덕에 그런대로 보전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국악의 원형이 많이 사라져 갔어요. 1964년부터 무 형문화재 제도를 시행해 그런대로 잘 보전해 온 게 사실이지만 정부기관이나 특정 예술인 에 의해서 전승되는 것이 국악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진도에 오면 삶 속에 녹아든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특히 대본도 없 는 악극(樂劇)을 만들어 즉흥적으로 삶의 애 환을 노래로 풀어내는 드라마는 배꼽을 잡 게 하고 눈물도 나게 합니다. 이게 국악의 본 질이죠.” 김경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은 진도를 노래의 고향으로 꼽는다. 소포전통민속전수 관 김병철 관장은 악극 <김개판의 죽음> <대 현네 어머니의 사랑> <장가가는 날> <김개똥 이(세월호 17세 소년)의 죽음>을 연출했다. 그는 “진솔한 민요가락이 원음으로 흘러나 오는 소포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마을” 이라며 서울 성균관대와 서울대에서 공연한 이력을 자랑했다. 시골마당을 서울 무대로 옮겨온 것이다. 국악은 비교적 원형이 잘 전수돼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음악에 안방을 내 준 건 다른 전통문화와 마찬가지다. 국립국 악원의 최근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반인 국 악 동아리는 전국적으로 63개이며 총 2만 1490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 사물놀이 한 뫼(9000명, 서울·부산·경주), 여민락(7300
명, 충북 중심 전국-대금), 국악이 꽃피는 나무(2000명, 서울-국악 전반)가 대표적이 며 나머지는 화음동인(8명, 부산-해금)처 럼 10여 명 안팎의 소규모 동아리가 대부분 이었다. 반면 서양음악 동아리는 색소폰(전국 약 25만 명)·기타·드럼(난타)·아코디언·오카리 나·합창 등에 걸쳐 100만 명이 넘을 거라는 추산이다(정확한 통계는 없음). 이런 현격한 차이는 국악의 최초경험 시기와 환경이 서 양음악에 많이 뒤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13년 (주)인포마스터 연구용역 보고서엔 국악의 최초 경험시기가 20대에서 가장 높았 다. 한식이 ‘입맛’이라면 국악은 ‘귀맛’인 셈 인데 10대 미만이나 10대에 국악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근대화 이후 서양음악은 상류층 음악, 국 악은 하류층 음악(기생음악)이라는 그릇 된 인식도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태교음악 으로 시작해서 장례식 장송곡에 이르기까 지 국악과 쉽게 접할 수 있게 한다면 ‘국민 의 귀맛’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다. 지하 철 안내방송처럼 공공장소에서의 적절한 국 악 송출,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컬러링 맞 춤제공 제휴, 인터넷이나 TV 드라마 노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콘텐트 확산도 한 방법이다. 요즘 창작국악, 퓨전국악이 신세대의 각광 을 받고 있다. 자칫 국악의 서양화를 초래한 다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뿌리가 튼튼하다 면 국악도 얼마든지 사회적 추세에 맞춰 진 화할 수가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 민요의 고 장 진도는 온 국민이 진통을 겪고 있는 세월 호 사건 현장이죠. 죽음을 개별화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게 중요합니 다. 큰 슬픔을 문화적으로 수용해온 진도민 요와 다시래기 장례풍습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진도사람들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주최자가 돼 국민적 씻김굿 을 해보면 어떨까요. 창작판소리나 창작민요 가 곁들여지면 더 좋겠지요.” 목포대 이경엽 교수의 제안이다. 구전심수 (口傳心授), 말로 전하지만 마음으로 받아 깨 치는 전통 교수법(敎授法)은 국악에서 빛을 발한다. 판소리의 더늠(독특한 창법)처럼, 산 조나 시나위처럼 고정된 형식을 넘어서는 자 유와 창조의 국악마당에 창작국악의 길은 활 짝 열려있다. 동행취재=김경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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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거울로 변한 광화문 광장
연중 가장 무더운 날씨가 며칠 계속됐다. 1일엔 서울에 올해 첫 폭염 경보가 내려졌고, 2일에도 낮 최고기온 이 34℃를 넘겼다. 2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 분수대엔 물을 맞으려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시원하게 솟던 분수가 중간중간 잠시 쉬면 광장은 거울처럼 변한다. 3일 서울은 제12호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비가 내 리고 더위도 한풀 꺾일 전망이다.
사진·글=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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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들어 본 일본의‘잃어버린 20년’
버블 터지자 수출중심 성장과 과다 흑자가 최대 약점으로 도쿄=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지난달 31일 도쿄 긴자의 미쓰코시 백화점. 평일인데도 쇼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의류 매장의 한 직원은 ‘소비세 인상 안내’ 팻말을 가리키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소비 세 인상 이후에) 오히려 매출이 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때마침 중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몰려들었다. 고가의 셔츠와 바지를 열 벌도 넘게 사갔다. 매장 직원의 표정은 밝았다. 신 주쿠의 호텔에선 밀려드는 투숙객 덕에 체크 인이 길어졌다. 롯폰기 힐즈의 레스토랑도 “빈 자리가 없다”며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사 과하기 바빴다. 넥타이 부대 행렬을 따라 도쿄 중심부 오 테마치에 있는 니혼게이자이신문 본사로 갔 다. 후카오 교지(深尾京司·58) 국립 히토쓰 바시(一橋)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를 보자마자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것 같다”고 물었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일본의 시골 에 가서 하릴없이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라” 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아베노믹스가 성 과를 보이고는 있지만 제3의 화살인 경제 구 조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위기는 계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후카오 교수는 2012년 잃어버린 20년과 일본경제란 책을 펴냈다. 1990~2010년에 이 르는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는 부적절한 재 정·금융정책이 한 몫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만성적인 내수 부진과 생산성 저하 등 구조적 인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그동 안 90년대 초반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에 초 점을 맞춘 연구는 많았지만 후카오 교수처럼 ‘잃어버린 20년’ 전체를 대상으로 구조적 원 인을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버블 생겨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인사청문회 때부터 줄 곧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한국 경제에 저성장, 저물가, 과도 한 경상수지 흑자라는 불균형이 존재하는데 이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당시 나타난 모 습”이라고 말했다. 과연 지난 20년간 일본경
제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후카오 교수의 말대로 일본의 장기 침체 는 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가 시 발점이었다.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이 일 본·독일·영국·프랑스의 재무장관을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아놓고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 상승을 유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85 년 달러당 238.6엔이던 환율이 89년 128.1엔 이 됐다. 3년 만에 46.3%나 엔화 가치가 절 상됐다. 일본의 경제 성장률도 85년 6.3%에 서 이듬해 2.8%로 급락했다. 엔고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공격적인 저금리 정책을 폈다. 은행들이 대출경쟁에 돌입하 면서 자산 거품이 형성됐다. 때마침 일본 정 부가 수도(首都) 기능분산 등 국토 균형발전 을 추진하면서 부동산 거품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일본 정부와 일본 은행은 92년 정반대의 정책에 돌입했다. 대 출규제와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이번에는 주가가 폭락하고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장기침체가 시작 됐다. 경제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자 재정지 출을 확대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경제 구조 를 개혁하는데 나랏돈을 쓰지 않았다. 대신 사회보장과 공공일자리 창출 같은 혜택을 나 눠 먹은 분야에 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50% 를 넘을 정도로 악화됐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ed)는 2002년 ‘1990년대 일본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란 보 고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통화정책의 문제점 을 지적했다. ‘일본은행이 90년대 초반 유연 한 통화정책을 편 게 당시로선 당연하다고 생각됐지만 투자가 줄고 저물가가 지속한 걸 보면 그때 진단과 처방이 적절하지 않았다’ 는 분석이다. 여기까지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에 관한 종래의 전통적 연구다. 부적절한 재정·통화 정책이나 디플레이션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 다. 하지만 후카오 교수는 2000년대 들어 부 실채권이나 대차대조표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이 나아지지 않
1990년대 일본과 2010년대 한국, 닮은꼴 경제
5.6
5.4
1990
1989년
3.3 일본과 한국의 경제 성장률
1991
2.8 2008년
(단위: %, 전년 대비) 일본
한국
0.8 1992
0.2
0.0
1993
노인 인구는 늘고 (단위: %) 15~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
소비자물가는 떨어지고 (단위: %, 전년 대비) 4.0 20.2 17.3
19.4
3.3
16.7
18.0
2.8
15.6
16.7
1989년
1994
2.2
14.1 1991
1993 1994
0.6
2009년
2011
2013 2014
1989년
1991
1994
2009년
2011
(전망)
잘못된 진단·해법이 침체 촉발 내수부진생산성 하락이 근본 원인 한국, ‘잃어버린 20년’ 우려 덜하나 소비·투자하게 경제체질 개선해야
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재정·통화정책만으 로 장기침체를 100%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잃어버린 20년’의 진짜 원인은 90년대부터 진행돼 온 생산 가능인구의 감 소와 생산성의 하락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서3.5 3.0 찾아야 한다고 분석한다. 2.5 규제완화로 기업 투자 유도해야 2.0 일본의 생산 가능인구는 95년부터 줄기 시 1.5 작했다. 노인 1명을 생산 가능인구 3명이 부 1.0 양해야 하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나 0.5 라가 늙어가자 생산성이 떨어지고 소비도 침 체됐다. 일본의 총요소생산성은 85~90년에
3.3%에 달했으나, 90년 이후 급속히 감소해 0.7%에 그치고 있다. 소비침체는 수입감소 로 이어져 경상수지 흑자 폭만 커지는 불황 형·불균형 경제구조가 고착화했다. 하야시 후미오(林 文夫) 히토쓰바시대4.0교 수와 에드워드 프레스콧 카네기멜런대3.5교 수도 후카오 교수와 비슷한 의견이다.3.0이 들은 일본의 낮은 총생산성(aggregate 2.5 productivity) 증가율에서 ‘잃어버린 20년’ 2.0 의 원인을 찾았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1.5 교수는 일본의 은행과 기업들의 모럴 해저 1.0 드가 버블 경제를 가속화했다고 분석했다. 은행과 기업은 어떻게 되더라도 세금으로 구
후카오 교지 교수가 본 한국 경제
“사내유보금에 세금? 일본선 상상할 수 없는 일” 도쿄=박성우 기자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긴다죠? 정책의 실 효성 여부를 떠나 대기업의 입김이 센 일본에 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후카오 교지(사진) 교수는 한국에서 일본 의 ‘잃어버린 20년’이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 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가 역대 최대라는 최근 중앙일보 일본어판 기 사를 흔들어 보이며 “1990년대 일본과 경제 지표가 비슷하긴 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 나 “한국은 ICT 분야 투자도 많이 했고 일본 보다 글로벌·개방형 경제구조여서 ‘잃어버린 20년’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 망했다. 후카오 교수는 경제·경영학 분야의
명문인 히토쓰바시대의 경제연구소장이다. 다음은 주요 문답. -지금 한국에선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 에 빠져 들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 들이 많다.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가 계소비 부족, 경상수지 흑자, 높은 원 화가치 등이 그렇다. 기업들이 외 국으로 빠져나가서 국내 생산성 이 낮아지는 것도 닮았다. 일본 과 달리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 지 않았다고 했는데 내가 한국은 행 자료를 살펴보니 한국 의 GDP 대비 총토 지가치는 굉장히
일본과 닮았지만 개방 경제 장점 서비스업 활성화로 내수진작 필요 한국은행은 왜 금리인하 안 하나
높은 수준이더라.” -그럼, 한국도 장기 침체에 들어가는 건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1985년 플라 자 합의 같은 대외적인 압박이 없다. 또 일본 은 ICT 분야에 투자하지 않아 생산성이 저하 됐는데 한국은 IT 강국이다. 한국은 이미 미 국·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일본은 이제서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에 가입하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 이다. 기업들도 일본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다. 외국어에 능통한 숙련된 노동인력도 많다.” -그래도 내수부진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 우려는 남아 있다.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으로 내수진작을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일본도 최근 경제산업성
에서 고부가가치 창출 관련 보고서를 만들었 다. 그리고 고령화는 반드시 생산성 저하를 초래하는 건 아니다. 장년층의 경험을 살려 얼마든지 잘 활용할 수 있다. 오히려 난 한국 은행이 왜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하 다. 정치적인 문제가 있나? 통화·환율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현 상황에선 충 분히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양극화 문 제가 심각하다고 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 업 간의 간극도 일본에 비해 커 보인다. 정부 가 이런 쪽에 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썩 내키진 않는다. 소비세를 8%로 올려 재 정 건전성을 확충한다지만 모처럼 높아진 소 비수요를 꺾어버렸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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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러시아의 홍콩행 러시
버블 or 버블버블
다음 주 preview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 불리던 2008년 글로벌
러시아 은행들, 서방의 금융제제에 유동성 비상. 남아
슈퍼카의 대명사 이태리 마세라티. 금년 상반기 미국내
장외변수 경계 가운데, 미국 6월 공장수주(5
금융공황. 무한대 유동성 살포에 검은 백조는 쫓겨가
있는 유일한 생명선인 중국계에 자금 구걸차 홍콩은 문
판매는 5441대로 328% 증가. 전체 승용차 판매 증가
일·0.6%) 발표 예정.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분쟁에
고 시장은 정상화 궤도. 한편 Fed의 테이퍼링과 돌발
전성시. 중국계 은행은 3개월 기준 미 달러화 금리를 종
폭 0.4%와 대비. 최대 판매지역은 서부 실리콘 밸리로
신흥국 리더인 인도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결정(5
변수에 이번엔 회색 백조 출현 우려. 백색의 낙관론 속
래 2%대에서 7%대로 상향고시. CP든 상호대출이든
IT 버블의 시금석. 불량부품 출고 발각에 궁지에 몰린
일)도 관심. 8일 중국 7월 무역수지 발표에는 한국
에 삐죽 내민 검은 비관론.
형태 불문이나 집행은 쉽지 않다고.
GM 자동차와 묘한 대조.
의 대(對)중국 교역량 변동폭도 살펴야.
그레이 스완(Grey Swan)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한국 주식시장 2.0의 필요조건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필자는 어린 시절 부산에 사는 부자 집 자 제들이 다 모인다는 초등학교를 3년간 다 녔다. 평범한 중산층의 아들이었던 필자는 그들로부터 심한 이질감과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잣집과 우리 집을 비교 해보니 결국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차이였음을 발견했다. 즉 그들에 겐 공장·선박·창고·트레일러·상가 등이 있 었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곳에서 월급을 받 는 근로자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생산수단을 갖는 것이 일생의 꿈이 되었다. 학창 시절 이병철, 정 주영 등 기업가들의 전기를 읽으며 사업의 꿈을 키웠고 결국 대학에 갈 때도 경영학 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 려고 보니 부족한 게 너무 많았다. 자금도, 조직도, 기술도 없는데다 사업아이템 구상 도 마땅치 않았다. 소년, 배당에 눈을 뜨다 좌절감에 방황하던 중 우연히 학교 앞 서점 에서 증권분석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 엄의 현명한 투자자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까진 주식 투자가 서로 돈을 빼앗아 먹 는 투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주식이 단순히 거래를 위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기업 소유권의 일부라는 사고의 전 환을 하게 됐다. 20살의 나이에 드디어 생 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 었다. 창업이 아니라 투자라는 방법을 통 해서 말이다. 이후로 나는 내가 갖고 싶은 회사의 주 식을 찾는 가치 투자자가 되었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하던 초창기에 주식이 기업의 소유권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았지 정 작 실감할 수는 없었다. 컴퓨터를 통해 거 래가 되며 주가가 결정될 뿐 그 이면의 기 업활동이 주가에 정확히 반영되는지가 눈
6.5 1400
2010
1400
700
700
3.7
3.7
2011
2014
3.0
(전망)
2013
2.3 2012 0
0
0.7 2009
자료: 블룸버그한국은행
경상수지 흑자는 많아져 (단위: 달러) 1322억 1306억 1124억 799억 682억
630억
508억
447억 335억
289억
1989년 1990 1991 1992 1993 1994
2009년 2010 2011
상반기
제받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크루그먼은 “일본의 은행들은 대출받는 사 람의 능력을 보지 않고 대출을 늘렸고, 버블 경제를 가중시켰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경험은 옆 나라 한 국에도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내수부진과 수출 주도 성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한국 은 일본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한국경제연구원은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일 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내수활성화를 시도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대체할 정책 마련도 지적됐다. 노동의 유연
2012 2013 2014 (전망)
중앙포토
186억
1.4 2014
840억
성과 안정성을 추구하고 여성·외국인 노동력 을 확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후카오 교수도 비슷한 대안을 제시했다. “‘잃어버린 20년’에 빠지기 전 일본은 수출 주도형 성장, 많은 흑자, 고용 안정성 등으로 전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버블이 붕 괴하자 바로 그 강점들이 최대 약점이 됐다. 한국경제는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금으로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언제 그런 강점이 약점이 될지 모를 일이다. 실질적인 중소기업 육성 등으로 대비해야 한다.”
최근 타 부처와 공조하는 모습을 약간 보이고 있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정부로부터 독 립된 연구 및 정책입안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 장해 왔다. 민·관 합동 ‘산업경쟁력회의’를 매 일 해봤자 관료들은 예산확보 생각이나 할 것 이다. 관료개혁이 중요한데 일본에선 이미 물 건너갔다.” 후카오 교지 1956년생.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 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6년부터 히 토쓰바시대에서 교편을 잡아왔다. 현 히토쓰바시대 경제연구소장이다. 일본은행·통상산업성문부과학
상했다.
중앙포토
성 자문 역임. 2012년 저서 잃어버린 20년과 일본 경제로 제55회 닛케이(日經) 경제도서문화상을 수
기업, 투자 안하고 현금 쌓아둬 배당 수익률은 세계 최하위권 배당통해 주식시장 인식변화해야
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 일대의 전기를 맞게 된 사건이 생 겼다. 갖고 있던 주식에서 나의 주식 계좌 로 배당금을 입금해준 것이다. 필자는 기 업이 1년간 열심히 일해 번 돈 중 일부를 현 금으로 되돌려준 그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기업활동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며 주식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맞 다’는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다. 배당확대 정책이 지지받는 이유 요즘 주식시장에선 배당이 화두다. 새로 꾸려진 최경환 경제팀이 배당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기업의 과도한 유보 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주고 배당에 대해 서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내용이 골자 다. 물론 의도는 기업이 소유한 자본을 가 계로 돌려 소비 부양을 꾀하겠다는 것이 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한국 배당 수익률 1.3% 둘째, 우리나라의 배당 수익률이 선진국 대비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신 증권 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 지 코스피의 배당수익률은 1.3%에 불과 해 주요 10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 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은 2%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대만은 3.7%나 된다. 배당 성향 또한 15.8%로 꼴찌다. 주주들의 배당 요구를 기업의 성장을 해치는 과도한 요구라고 치부하기엔 배당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배당확대 정책이 입법을 거쳐 실제 배당확대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일단 이런 논 의가 시작되어 기업의 의식이 바뀔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성장 시대에 맞는 기업들의 자본배치 정책의 변화로 코스피 지수가 한 단계 업그 레이드되는 ‘한국 주식시장 2.0’으로의 진 화가 기대된다. 또한 다가올 주식시장 2.0 에선 필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배당을 통해 주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권으로 건전한 인식의 변화가 생겨나 길 희망한다.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안충영 제3대 동반성장위원장
“제로섬 사고론 갈등 해결못해”
일본 정부는 현재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장 려하고 있다. 난 이 부분도 회의적이다. 물론 도요타 같은 거대 기업의 하청업체들이 따라 나간다면 도요타에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성장률을 높이려면 규제완 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와 공적 영 역이 오버랩되는 의료·교육·교통 분야의 규제 완화는 신중해야 한다. 한국은 세월호 사건 을 겪지 않았나. 효율적인 공공 서비스가 필 요한 부분인데 이 점에선 일본도 문제가 심각 하다. 관료 조직이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있 다. 아베 총리가 힘을 실어준 경제산업성은
한국경제 저성장 접어들었는데
왔던 것처럼 주주 중심의 사고전환으로 자본시장을 혁신하겠다는 정도까지는 아 닌 셈이다. 추진 가능성과 실효성에 대한 여러 논란 에도 이 정책이 시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국경제가 저성장으로 접어들었 다는 공감대가 이미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 다. 고성장 시기에는 유보와 재투자가 기업 가치를 늘릴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하지만 사업기회가 대폭 줄어든 저성장 시기에는 재투자에 따른 수익률이 예전 같지 않다. 기업도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으니 투자에 소극적이고, 그동안 현금만 쌓아 둔 것이 다. 투자할 곳이 없으면 돈을 돌려달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먹히는 배경이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제3대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안충영(73· 사진) 중앙대 석좌교수가 1일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사회적 합의로 공정 한 시장질서를 구현하고 대·중소기업 간 의 공정거래 관행을 정착시켜 선순환적 성장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의지 표명의 바탕에는 지난 정부 에서 동반성장위가 출범했음에도 대·중 소기업 간 관계가 협업보다는 적대적인 관계에 머물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놓여 있다는 평이다. 실제 안 위원장은 이날 “한쪽이 득을 보면 반대편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식 사고방식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 반대에 대한 소신도 분명히 했다. 안 위원장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의 법제화는 울타리로 기술 발전 을 막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
신 “대기업은 세계시장 진출을 통해 한 국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우리 경제 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소기업들은 역량 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안 위원장은 대외경제정책연구 원 (KIEP) 원장과 규제개혁위원장까지 지 낸 정통 경제학자다. 안 위원장이 적합 업종 법제화를 반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시장의 조정기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 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중 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2일 “규제 개혁 을 주도했던 분이 규제기관인 동반성장 위원회를 맡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두고봐 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역시 경제학 자 출신인 전임 위원장(정운찬, 유장희) 들은 동반성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 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원했 던 만큼의 결과는 내지 못했다. 안 위원 장이 진정한 동반성장을 이뤄낼지 주목 된다.
20 Economy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음악 서비스업에서 술 회사로 갈아탄 맥키스 조웅래 회장
소리나 술이나 그게 그거 마음 채워주면 잘 팔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평범한 회사원에서 벤처 사업가를 거쳐 주 류 회사 회장님으로…. 맥키스 조웅래 회장 (55)의 전공은 술과는 무관하다. 사회에서의 첫 발도 술과 거리가 멀었다. 마산고에 이어 1985년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대기업인 삼성반도체통신.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존재감도 없고 왠지 부속품 같다는 생각”에 입사한 지 3년만인 88년 사 직서를 냈다. 그의 아내를 비롯해 주변의 반 대가 심했지만 고집을 접지 않았다. 퇴직 후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다시 중소 기업에 들어가 개발 업무와 기술 영업을 했 다. 창업 기회를 엿보던 그는 90년대 초 전화 가 많이 보급되자 유선망을 활용한 전화정보 사업이 유망하다고 봤다. 곧바로 회사를 세 웠고 처음엔 전화로 운세를 봐주는 서비스를 했다. 그의 오늘이 있게 한 건 5425다. 특이한 숫 자로 유명해진 이 회사를 차린 것은 96년. 외 환위기가 터지기 딱 1년 전이었다. 700-5425 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이 활성화되기 전에 음악을 통해 마음을 전달해 주는 서비스였 다. ‘응답하라 1997’ 세대들에겐 추억의 광 고 문구이기도 하다. 당시 광고 카피는 “보여 줄 수는 없지만 들려 줄 수는 있다”였다. 통 신기기의 변화 틈새에서 소리(음악)를 ‘듣는 것에서 들려줘 보자’는 발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마음을 전달한다’는 그의 전 략은 적중했다. 직원은 20명도 안 됐지만 월 매출이 20억원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3분짜리 가요를 연인이나 친구에게 들려주 려면 300원을 내야 했다. 기업 도산이 이어진 외환위기 시절, 대기업 들도 광고비를 아꼈지만 그는 연간 100억원 을 광고에 쏟아부었다. TV나 라디오에선 쉴 새 없이 700-5425가 흘러 나왔다. “외환위기로 대부분의 기업이 움츠리고 있 을 때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이유는 단 하나.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후 무선 인 터넷 사업 진출을 염두에 뒀으므로 5425란 숫자를 대대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5425로 어느 정도 벌었는지 묻자 조 회장 은 “아이디어 하나로 벌긴 좀 벌었다”며 웃음 으로 대신했다. 그럼 숫자 5425는 무슨 뜻이었을까? “특별히 의미는 없었다. 광고할 때 앗싸 노래방 기계를 연상시키는 ‘앗싸이오’에서 5245를 쓰게 되었다. 5425란 숫자를 브랜드 화한 거다.”
자신이 조성한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맨발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 조웅래 회장. 황톳길 주변에선 숲속 음악회와 맨발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사진 맥키스]
삼성 직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 1990년대 5425 서비스로 대박 외환위기 때 광고비 연 100억원 소주회사 인수 후 믹싱주 출시 “업종은 달라도 본질은 같아”
그의 예상과 선택이 늘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다. 5425는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에 밀 려 2003년부터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진다. “휴대폰이 많이 보급되면서 무선 인터넷 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무선 인터넷망의 개방이 지연돼 사업영역을 확대하지 못했다. 사업하면서 그때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5425 이후 다른 사업을 찾아보고 있을 때 인 2004년 충청 지역의 소주회사인 선양이 매물로 나왔다. 조 회장은 바로 인수를 결정 했다. 경험도 없는 제조업에, 그것도 경남 함 안 출신인 그가 연고도 없는 충청도의 소주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결심에 주변에선 다들 의아해했다. “소리나 술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5425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소리 를 팔았다. 술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 는 것으로 어차피 대중의 마음을 잘 읽고 채 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 종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제품 잘 만들어서 홍보·마케팅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핵심 이다.” 그는 충청 지역 소주회사란 굴레를 벗어나
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 9월엔 40년 간 사용됐던 ‘선양’이란 회사명을 ‘더맥키스컴 퍼니’로 바꿨다. 국내 최초로 믹싱주(酒) ‘맥 키스’도 개발했다. “섞어 마시기 편한 칵테일용 술인 맥키스 는 가볍게 즐기는 젊은층의 음주문화 트렌드 에 맞춘 제품이다. 강권하고 폭음하는 한국 의 잘못된 음주문화 개선을 선도하고 싶다.” 정치엔 관심 없어 치킨집 사장님이 7·30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 의원으로 당선된 때문인지 “정치에 꿈이 있 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서 정치 얘기를 하는데, 나는 정치 엔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신 뢰를 보내주니까 흥이 나서 자꾸 즐거운 일 을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다.” 다양한 도전의 삶을 살아 온 그의 좌우명 은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 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미치려면 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중요하고, 흥미가 있어야 한다. 사업하는 23 년 간 아침이 기다려질 때가 가장 좋았고 지 금도 그렇다. 뭔가 설레고 할 게 많아야 아침
이 기다려진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종착점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긍정의 힘’을 믿고 한 걸음씩 내딛다보니 또 다른 한 걸음 이 보였다.” 그는 최근 자서전 첫 술에 행복하랴를 냈다. ‘좌절 없이 되는 놈이 세상천지 어디 있 간?’이란 부제가 눈에 띈다. 출간한 지 두 달 이 채 안 됐지만 벌써 4쇄를 찍었다. 그는 새 로운 도전을 즐긴다. 주류업을 기반으로 차 별화된 콘텐츠 사업을 준비 중이다. 취미는 맨발로 걷기와 마라톤 조회장은 평생 골프채를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다. 운전면허가 없어 운전대도 잡아보지 못했단다. 대신 마라톤에 빠져 있다. 그는 지 난 7월13일 경북 영덕 로하스해변 마라톤에 서 3시간51분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로 써 2001년 이후 그의 마라톤 완주 기록은 48 회로 늘어났다. “보통 일요일에 대회가 열리는데 완주 후 월요일 아침에 출근할 때는 왠지 어깨에 힘 이 들어간다. 몹시 건방진 아침을 맞이한다 (웃음).” 마라톤 말고 취미가 하나 더 있다. 대전 계 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다. “거의 매일 새벽에 계족산에 가서 맨발 걷 기를 한다. 자연을 벗 삼아 말랑말랑한 황톳 길을 걷다보면 머리도 비워지고 새로운 에너 지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인지 그의 요즘 건배 사는 ‘하체 튼튼, 만사형통’이다. 그가 말하는 계족산 황톳길은 충청 주민 들의 산책로이자 휴식 공간이다. 원래부터 황톳길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4월, 친구들을 대전으로 초대해 계족산 나들이를 갔다. 일행 중 여성 두 명이 하이힐을 신고 왔다. 그래서 나와 친구 한 명 이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 봤다. 걷는 동안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날 저 녁 모처럼 숙면을 취했고 다음날 너무 개운 했다.” 맨발 걷기의 효과를 체험한 조 회장은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 로 계족산에 황토를 깔기 시작했다. 그 후 자 신도 매일 새벽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황 톳길 상태를 점검한 뒤 보수 지시를 하고 회 사로 향한다. 황톳길에선 4~10월 매 주말 (토·일요일 오후3시)마다 숲속 음악회가 열 린다. 그가 지원하는 맥키스오페라단(단원 9명)의 ‘뻔뻔(fun fun)한 클래식’ 공연이다. 황톳길을 깔고 유지·보수하며 음악회 등 행 사를 하는 데 연 6억원 이상이 소요되지만 그는 이웃과 자신의 심신을 치유하는 ‘남는 장사’라고 했다.
독자들의 지적과 궁금증에 답해드립니다
한국 실업률 3%로 괜찮다는 외국인 시각은 오류 통계·현실 괴리 보완을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중앙SUNDAY 독자들께서 기사와 관련해 여러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개 를 추려 지면으로 답변 드립니다. 금리인하가 꼭 소비증가로 이어지나 Q 7월27일~28일자 6면의 ‘전문가 진단-최 경환 경제팀의 7·24 경기부양책’ 중 “정책 효 과를 높이려면 금리 인하 같은 통화정책을 함 께 사용해야 한다”는 진단이 있습니다. 금리 를 낮춰야 소비가 늘어난다는 취지로 보입니 다. 하지만 금리가 내려가면 이자 소득으로 생활하는 이들은 오히려 소비를 줄여야 합니 다. ‘금리를 내리면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은
잘못된 명제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경제주체들 은 이자 부담을 감안해 차입을 줄이게 됩니 다. 대신 저축을 늘리려 하지요. 이는 결국 가 계의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기업의 경우에도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금 리 상승은 금융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투자 를 위축시킵니다. 반면 금리가 낮아지면 그 와 반대의 파급효과가 나타납니다. 일반적으 로 기업은 투자 여력이, 가계는 소비 여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 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조정할 때 그 같은 파 급경로를 면밀히 분석합니다. 물론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가계의 경우 금리 인하는 곧 소득 감소를 의미합니다. 그
경우 당연히 소비도 감소하겠지요. 일본의 경우 금리가 떨어지자 이자 수입 총액을 유 지하기 위해 소비를 더 줄이고 저축을 늘리 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경 제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게 소비가 감소하는 부분보다는 소비 여력이 증가하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게 정설입니다. 한국 실업률 통계 믿을 만한가 Q 7월27일~28일자 7면의 ‘그리스 위기 해결 사’ 찰스 댈러러의 발언 중 “실업률은 3%대” “하지만 ‘당신들은 그래도 직업이 있지 않 소’라고 말해주고 싶다” 등의 대목이 있습니 다. 하지만 실업률 통계엔 문제가 많습니다. 여러 기준을 감안해 한국의 실업률은 대략
5%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독일 학자 는 10%라고도 합니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 합니다. ‘괜찮다’는 댈러러의 말은 그런 현실 을 무시한 것입니다. A 정부의 실업률 통계는 일반인들이 느 끼는 체감 실업률과 큰 괴리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수치상으로 한 국의 실업률 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실업률은 3.3%(2013년 2분기)로 OECD 평균인 9.1% 를 크게 밑돕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못 구해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실 제 고용률은 64.2%로 OECD 평균인 65%보 다 낮습니다. 실업률은 낮은데, 고용률도 낮 은 건 모순입니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2011
년 연구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9.3%(2010 년 기준)인데 반해 신규 대졸자의 실업률은 40.1%나 됩니다. 대졸자 10명 중 4명이 실업 을 경험하는 상황입니다. 통계 자체의 허점도 있습니다. 실업률 통 계에 구직단념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통 계청도 이를 감안해 오는 11월부터 고용지 표의 체감도를 높일 수 있도록 취업자 중 ‘사실상 실업자’의 분포를 보여줄 보조지표 로 ‘노동저활용지표’를 발표하기로 했습니 다. 그런 면에서 3%대 실업률을 예시한 댈러 러의 분석은 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발 언 의도는 ‘한국경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 로 보지는 말자’는 데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 니다.
Economy 21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2014년은 전기차 양산판매의 원년
한 번 충전에 최대 220km 달려 충전소 부족은 숙제 ‘자동차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모터스의 엘론 머스크 최고경 영자(CEO)가 최근 “2017년에 3만5000달러(약 3592만원) 짜리 전기차인 ‘모델3’을 출 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격은 테슬라가 2012년 선보인 세단 ‘모델S’(7만1000달러) 의 절반 수준이다. 값을 확 낮춰 전기차의 저변을 넓히겠다는 포석이다. 폴크스바겐 그 룹은 2020년 전 세계 시장 신차 판매의 10%를 전기차가 차지할 것으로 본다. 자동차 업 계가 전기차 양산에 여념이 없다.
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co.kr
최초의 양산 전기차는 2009년 선보인 미쓰 비시 아이미브. 이듬해 쉐보레 볼트와 닛산 리프가 나왔다. 현재 국내에서도 BMW i3과 기아 레이 EV, 쉐보레 스파크 EV, 르노삼성 SM3 Z.E. 같은 100% 전기차가 판매 중이다. 아직은 비싸다.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만 해도 아직 은 낯선 존재.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양 산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노리 기 위해서다. 친환경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배기량과 기통수를 줄인 소위 ‘다운사이징 (Down Sizing)’ 엔진을 얹은 차가 한 예다. 여 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게 하이브리드카다. 최 근까지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로 손꼽혔다. 하지만 궁극의 친환경차는 역시 전기차 다. 휘발유나 경유, LPG 등 화석연료와 인연 이 없다. 태우는 게 없으니 이산화탄소·미세 먼지·소음도 배출되지 않는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개념 및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물론 전기차도 이산화탄소 배출과 무관하 진 않다. 먹잇감으로 쓰이는 전기를 만들 때 도 그렇다. 그러나 최소한 주행할 땐 전혀 뿜 지 않는다. 때문에 짬짬이 엔진을 돌리며 달 리는 하이브리드카보다 한층 친환경적이다. 자동차 업계는 2014년이 전기차 양산 및 일반 판매의 실질적인 원년이라 보고 있다. 하이브리드카 시장보다 빠르게 성장 전기차 양산은 하이브리드카보다 10년 이상 뒤쳐졌다. 세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카는 1997년 12월 데뷔했다. 토요타 프리우스였다. 1999년 혼다도 발 빠르게 인사이트를 내놓았 다. 한동안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둘의 독무 대나 다름없었다. 특히 토요타가 겹겹이 쳐놓 은 특허장벽 때문에 후발주자가 비집고 들어 설 틈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배터리 관련 기술이 빠르게 진화했 다. 각국의 배기가스 관련 규제도 한층 까다 로워졌다. 경량화 기술도 무르익었다. 하이브 리드카 시장을 놓친 자동차 업계는 시선을 전 기차로 돌렸다. 선두주자의 견제가 역설적으 로 전기차 개발을 부추긴 셈이다. 세계 최초의 양산 전기차 역시 일본에서 나왔다. 미쓰비시 아이미브(i-MIEV)였다. 2009년 출시 됐다. 아이(i)란 이름의 경차를 밑바탕 삼았다. 63마력짜리 전기모터를 뒷좌 석 밑에 깔고 뒷바퀴를 굴렸다. 최고속도는 시 속 130㎞, 한 번 충전으로 160㎞를 달렸다. 이 듬해 GM의 쉐보레 볼트, 닛산 리프도 양산 전기차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차는 볼트다. 길이 1.8m, 무게 170㎏의 T자형 고성능 배터리를 얹 는데, LG화학이 납품한 리튬이온 셀이 들어 간다. 볼트는 배터리 전원만으로 최대 64㎞를 달린다. 그런데 볼트엔 엔진이 있다. 물론 배터 리를 배 불리는 데만 쓴다. 덕분에 주행거리가 640㎞까지 늘었다. 엔진은 85%의 에탄올과 15%의 휘발유를 섞은 ‘E85’를 마신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전기차는 닛 산 리프다. 2010년 말 데뷔해 지난해까지 9만 6847대가 팔렸다. 성능과 주행거리의 균형이 핵심 리프는 110마력 내는 전기 모터를 보닛 속에 품고 앞바퀴를 굴린다. 에너지는 24㎾ 용량 의 리튬이온 배터리 팩에서 얻는다. 배터리는 총 192개의 셀을 품었다. 셀 4개씩 구성된 모 듈을 48개 엮은 구조다. 배터리는 냉각수로 식힌다. 제어장치를 더한 배터리 팩의 무게는 300㎏ 정도. 닛산이 산정한 배터리 팩의 가격 은 약 1만8000달러(2010년 기준)다. 미국에서 리프 배터리의 보증기간은 8년 혹은 10만 마일이다. 닛산 측은 “일반적인 사 용 조건이라면 10년이 지나도 70~80%의 성 능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닛산이 밝힌 리 프의 주행거리는 160㎞. 에어컨을 켜지 않고 시속 60㎞ 정도로 정속 주행하는 등 이상적인 상황에선 220㎞ 이상도 가능하다. 전기차의 핵심은 성능과 주행거리의 균형 이다. 주행거리는 이제 출퇴근이 가능한 수준 이다. 성능도 개선됐다. 닛산 리프의 경우 0→ 시속 97㎞ 가속을 9.9초에 끊고, 시속 150㎞ 이상 달린다. 유로 NCAP(신차 평가 프로그 램)에서 별 다섯 개 만점을 받는 등 안전성도 최고 수준이다. BMW가 4월 국내에 출시한 i3은 운전 재 미까지 추구했다. 가령 앞뒤 5대5의 무게배 분, 뒷바퀴 굴림 등 BMW 고유의 특성을 빠 짐없이 챙겼다. 차체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 틱(CFRP)으로 만들어 무게를 줄였다. 170 마력짜리 전기 모터로 완전 충전한 상태에서 132㎞까지 달릴 수 있다. 배터리 충전시간은 급속 30분, 완속 3시간이다. 전기차는 순발 력이 뛰어나다. 엔진은 회전수가 올라가야 힘 이 무르익는다. 반면 전기모터는 전원이 들어 오는 순간 100%의 힘을 낸다. 덕분에 정차와 가속이 잦은 시내에서 몰기 좋다. 대신 전기 차는 히터와 열선 같은 난방장치를 쓰는 겨 울과 고속으로 달릴 때 효율이 급격히 떨어 진다. 유지비 일반 차보다 최대 50% 저렴 리프의 유지비는 1마일당 35센트다. 토요타 프리우스보다는 20%, 일반 엔진을 얹은 코 롤라보다는 50% 더 저렴한 비용이다. 르노삼 성 역시 SM3 Z.E.로 1년에 2만㎞를 달리고 심야전기로 충전할 경우 월 전기료가 2만 원 안팎이라고 자랑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쉐보레 스파크 EV가 3990만 원, SM3 Z.E.가 4500만~4620만 원, 기아 쏘울 EV가 4250만 원, BMW i3은 5800 만~6900만 원이다. 물론 환경부 보조금 1500 만 원과 등록세·취득세 감면(약 420만 원) 등 의 혜택이 주어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정작 충전소가 여전 히 부족하다. 기아차에 따르면 현재 전국엔 1900여 개의 급·완속 충전기가 있다. 주유소 의 10%를 갓 넘는 수준이다.
주요 전기차 제원 차종 길이×너비×높이 전기모터 출력 배터리 용량(방식) 0→100㎞/h 가속시간 최고속도 1회 충전 주행거리 가격
자료: 각 회사
폭스바겐 e-골프 4140×1800×1600㎜ 115마력 24.2㎾h(리튬이온) 10.4초 시속 140㎞ 190㎞ 약 5185만원
기아 쏘울 EV 4140×1800×1600㎜ 111마력 27㎾h(리튬이온) 11.2초 시속 145㎞ 148㎞ 4250만원
BMW i3 3999×1775×1578㎜ 170마력 18.8㎾h(리튬이온) 7.2초 시속 150㎞ 132㎞ 5800만~69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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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3월 공개된 기아자동차의 쏘울 전기차 모델. 81.4kW의 모터와 27kWh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으로 148㎞까지 달릴 수 있다. 2 BMW가 국 내에 출시한 전기차 I3. 3 르노삼성의 전기차 SM3 Z.E.
[사진 각 사]
22 Health Plus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문명의 역습 당한 서부 아프리카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에볼라, 감염력 약하지만 공포의 치사율
강동우백혜경 성의학전문가
<60~90%>
정관수술은 신중하게 “정관을 묶은 후 뭔가 달라졌습니다.” 정관수술 후 불편이나 성반응의 저하를 호소 하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실제로 정관수술 후 부작용에 대한 논문들 이 다수 발표됐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정관수술의 효과만 강조될 뿐 부작용은 제대 로 언급되지 않는다. 일반인은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른다. 정관수술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수술 후 통 증이다. 수술하면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부위가 아물면 괜찮을 것이라고 의료진이 설명하겠지 만 틀린 얘기다. PVPS(Post Vasectomy Pain Syndrome)라고 불리는 ‘정관수술 후 통증 증 후군’은 음낭이나 하복부로 퍼지는 통증 양상 을 띤다. 수술 직후에 생기기도 하지만 수년 후 불현 듯 나타나서 만성화되기도 한다. 발생빈도 도 상당히 높다. 지금까지의 연구논문에 따르 면 정관수술 후 통증의 발생 빈도는 15~33%에 달한다. 성기 주변부의 통증이 있으면 성행위할 때 불편함불쾌감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정관수술을 결심할 때 조금 더 신중해야 함을 경고하는 연구논문이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에 서 나왔다. 정관수술이 악성 전립선암의 발생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정 관수술을 한 남성의 전립선암 발생률이 정관수 술을 하지 않은 남성 대비 10%가량 높게 나타났 다. 특히 진행형이나 악성 전립선암의 환자에서 정관수술의 비율이 각각 20%, 19%나 더 높았다. 정관수술을 받은 나이가 젊을수록 악성 전립선 암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 졌다. 이번 하버드대학의 연구가 더 주목을 받 는 것은 5만 명에 가까운 남성을 최대 24년 가까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혈액체액 접촉해야 감염되지만
tkpark@joongang.co.kr
교통발달도시화로 확산 빨라져
서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빠 르게 확산돼 기니 등 3개국이 바이러스 진 원지를 격리구역으로 설정했다. 지난 3월 기니에서 시작된 에볼라로 5개 월간 모두 729명이 숨졌다. 사망자들 중엔 의료진 60명이 포함돼 있다. 감염자도 1323 명에 달한다. 에볼라는 아프리카 중부의 열대 밀림 지 역을 흐르는 강 이름이다. 1976년 당시 자이 레(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느예리 지방에 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죽었다. 감염 된 사람들은 처음엔 독감에 걸린 것 같았다. 고열·두통·설사·구토·현기증 같은 증상도 동반됐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피가 나기 시작하면서 550명의 환자 중 430명이 사망했다. 학자들은 이 병을 일으키는 병원 체를 에볼라(ebola) 바이러스라 명명했다. 지난해까지 에볼라의 유행은 소규모이 고 국지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 르다. 매우 넓은 지역에서 퍼지고 있다. 심 지어 대도시에서도 유행하고 항공 여행객 의 감염·사망 사례도 확인됐다.
잠복기 길어 귀국 후 발병할 수도
역학 전문가들은 에볼라의 발원지인 아 프리카의 교통 발달과 도시화를 불길하게 바라보고 있다. 올해 에볼라가 급속도로 퍼진 것은 버스 탓이란 분석도 나왔다. 에 볼라에 감염된 사람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 기 시작하면서 이웃 마을이나 도시, 나아 가 국경 밖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현지의 독특한 장례 풍경도 에볼라의 확 산에 기름을 붓고 있다. 에볼라로 숨진 사 람의 시신을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씻기는 과정에서 감염이 이뤄지는 것이다. 에볼라의 확산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 지면서 “혹시 국내에서도…”라며 2009년 지구촌을 휩쓴 신종플루의 악몽을 떠올리 는 사람이 많다. 에볼라와 신종플루는 둘 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동물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닮았 다. 그러나 감염력(전염력)과 치사율에 있 어선 정반대다. 에볼라는 낮은 감염력과
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최고의 치사율을 보인다. 역학 전문가들이 에볼라의 한국 상륙 가 능성을 극히 희박하다고 보는 것은 낮은 감 염력 때문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신종플루는 공기(호흡기) 를 통해 감염되므로 감염속도가 빠를 수밖 에 없다”며 “에볼라는 감염된 동물·사람의 혈액·체액과 직접 접촉해야 감염된다”고 설 명했다. 또 신종플루는 증상이 나타나기 1 ∼2일 전에도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 지만 에볼라는 고열 등 증상이 나타난 뒤에 야 타인에게 옮겨진다. 환자를 미리 찾아내 격리시키면 신종플루보다 방역하긴 쉽다.
사경 헤매던 루푸스 환자 200여 명에게 새 삶 중앙SUNDAY와 건강포털 코메디닷컴
환자 치료할 땐 마음까지 돌봐
이 선정하는 ‘베스트 닥터’의 류마티스 질
장인상 당하고선 전화 원격진료
배상철 원장(55)이 선정됐다. 이는 중앙
자신의 성 딴 코호트 연구만 2개
SUNDAY와 코메디닷컴이 전국 12개 대학
류마티스루푸스 세계적 권위자
병원의 류마티스내과 교수 47명에게 “가족 일러스트 강일구
스 발생 지역인 포야에서 환자 격리 활동을 펼치
베스트 닥터 25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
환 치료 분야에선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이 아프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기본으로 했다. 이번 조 사에선 서울성모병원 박성환, 서울대병원 송영욱, 세브란스병원 이수곤 교수 등도 많
이 추적·관찰한 대규모 조사 결과이기 때문이 다. 게다가 전립선암을 일으키는 다른 요인들을 배제한 채 정관수술과 악성 전립선암의 상관관 계만을 따졌기에 신뢰도가 매우 높은 연구결과 로 평가받고 있다. 정관수술의 부작용으론 통증전립선암 외에 감염·성욕 저하·성적 불만족 등의 거론된다. 다 소 생소한 얘기겠지만 정관수술이 진행형 실어 증(失語症) 등 치매 유발을 촉진시킨다는 연구 들도 나왔다. 정관수술은 단순히 정자의 통로를 막는 것인 데 정자가 안 나올 뿐 뭐가 문제이겠냐고 생각하 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학술적인 통계와 생명체 본래의 생리를 무시해선 절대 안 된다. 무 엇이든 자연적인 섭리를 바꾸는 인공적인 방식 에선 위험요소가 존재한다. 여러모로 신중하게 고민한 뒤 정관수술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정관수술이 위험하니 무조건 하 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연적인 피임법이 더 낫다는 말이다. 굳이 정 관수술을 선택하더라도 연구논문에서도 밝혀 졌듯 너무 젊은 나이엔 하지 말고 가능한 한 뒤 로 미룰 것을 권한다. 너무 이른 정관수술은 자 연의 섭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피임법 중에서 직접 몸 안의 호르몬 체계를 교란하는 경구 피 임약이 성욕·여성의 분비·성교통·불감증 등 성 (性) 기능에 악영향을 준다는 논문이 상당 수 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이제 우리나라도 시술이나 약 사용에 있어 그 효과만 강조할 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과 올바른 피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방역 전문가들이 라이베리아의 에볼라 바이러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의 첫 보유 동물론 박쥐가 거론된다. 박쥐는 에볼라에 감염돼 도 별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감염된 박 쥐를 잡아먹은 원숭이·침팬지·고릴라 등이 에볼라에 걸리고, 이런 동물과 접촉한 사 람들이 감염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다.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에볼라의 치사율(60∼90%)은 열대열 말 라리아패혈증뇌수막염(10% 내외)과 비 교해도 가공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직 국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 된 적은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이나 아프리카·필리핀에서 들여온 동 물은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에볼라 유행 국가엔 교민 160여 명이 거주하고 있 는 데다 여행객과 자원봉사자들이 방문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방역 전문가들이 두바 이·파리 등 아프리카 여행객들이 경유하는 항공편 승객에 대해 검역을 철저히 할 필요 가 있다고 강조한다. 잠복기가 2일∼21일이므로 현지에서 감 염된 뒤 국내에서 발병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기니·시에라리온·라이 베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 3국에 특별 여행 경보를 내리고 방문 자제를 권고했다.
은 추천을 받았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55)은 지난달 13일 오전 장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중환자실을 찾았다. 중환 자실에선 루푸스에 걸린 25세 여성이 사투 를 벌이고 있었다. 배 원장은 보호자를 만나 환자의 상태를 설명한 뒤 “비록 지금 병원을 떠나지만 늘 의료진과 연락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대구의 영안실과 장지에서 도 수시로 의료진과 통화하며 환자를 돌봤 다. 장인의 입관(入棺)이 끝나자마자 서울 의 병원으로 되돌아와 환자에게 달려갔지 만 살려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회진 길에 배 원장은 환자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다른 병원에서 딸의 장례식을 치르려고 앰뷸런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 너머 배 원장과 눈이 마주치자 차를 세우게 했다. 배 원장에게 다가와 고
푸스 환자 1500여명을 돌보면서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책을 선물하는 등 심신을 함께 어루만지며 진료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연구 분야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29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 다. 특히 연구 설계를 짜서 환자들을 추적 조사하는 ‘코호트 연구’에서 독보적이다. 배 교수가 이끌고 있는 ‘배 루푸스 코호트’
개를 숙이고 말했다. “선생님, 그동안 너무 나 감사했어요. 너무나….”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고, 배 원장은 눈물이 핑 돌았다. “회한이 밀려오고 기운이 빠지는 것을 떨치기 힘들었어요.” 배 원장은 생사가 오가는 루푸스 치료의 세계적 대가다. 지금까지 사 경을 헤매며 찾아오는 환자 200여 명 을 살려냈다. 하지만 때론 속절없이 환자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이럴 때엔 온몸이 처지지만 ‘소명’을 생각하며 마 음을 다잡는다. 소명은 그의 스승인 미국 하버드대학 브리검앤우먼스 병원의 메튜 리앙 교수가 최근 강조한 덕목이기도 하다. 배 원장은 중학생 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의 사의 길을 선택했다. 심장내과에 관심이 있 었지만 ‘류마티스 전도사’였던 김성윤 전 (前) 한양대 교수에 이끌려 류마티스를 전 공으로 삼았다. 1996년 리앙 교수의 문하로 들어가선 루푸스를 전공했으며 현재 세계 루푸스 전문가 모임(SLICC)의 위원 30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3000여명, 루
(1200명)와 ‘배 류마티스 관절염 코호트’ (2200명)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배 교수는 2008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정 류마티스관절염 임상연구센터의 수장으 로 일한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 성모병원 등 전국 32개 병원의 연구진 100 여명과 함께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분 포·특징·치료과정·약 부작용 등을 살피는 코호트 연구를 이끌고 있다. 배 교수는 “류마티스 관절염과 루푸스 등은 아직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좋은 약들이 속속 개발돼 치료 성과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병 들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연구를 여럿 수행 중이다. 여기엔 빅 데이터 정보를 활용한 류마티스 관절염 예 후와 약물반응 예측연구, 중간엽 줄 기세포를 이용한 루푸스 치료 등이 포함돼 있다. 배 원장은 리앙 교수의 제안을 받 아들여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약물경제학을 공부했다. 경제적 고 려까지 포함하는 치료를 하고 있는 것 이다. 그는 1분·1초를 아끼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가족에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 해 늘 미안하다. 그러나 의료계의 발전과 전국에서 찾아오는 위중한 환자의 치유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2000년 초 금강선원 혜거 스님으로부터 ‘보관(普觀)’이란 법명을 받았다. 자신의 법명대 로 넓게 보면서 넓은 영역의 사 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소명 이라고 믿는다.
배상철 원장이 전하는 대표적인 류마티스 질환 ^류마티스 관절염=40~50대 여성에서 잘 발생 하며 손가락·무릎 등 여러 곳에 증세가 나타난 다. 아침에 1시간 이상 뻣뻣하다. -원인: 흡연, 만성 치주염, 유전 -치료: 항(抗)류마티스 약, 생물학적 제제 -예방: 금연, 치주 관리, 규칙적인 운동
^퇴행성 관절염=많이 사용하는 관절의 연골이 닳아 생기는 관절염 -치료: 약물과 물리치료, 필요시 수술 -예방: 체중 감량, 수영·태극권·걷기 등 운동 ^루푸스=젊은 여성에게 잘 생기며 피부·관절· 신장·폐·심장·뇌 등 전신에 이상 증상이 나타
난다. -치료: 항(抗)말라리아 약, 면역조절제 -예방: 자외선 피하기, 바이러스 감염 예방 ^강직성척추염=젊은 남자에게 잘 생긴다. 아침 에 악화되고 움직이면 호전된다. -치료: 소염제, TNF 억제제, 스트레칭 등
^통풍=주로 중년의 뚱뚱한 남성에게 잘 생기며 관 절에 요산 결정이 쌓이는 질환이다. -치료와 예방: 약물치료와 함께 금주·과식 피 하기·체중 감량, 육류는 적게, 곡류·유제품·계 란·채소·과일·해조류는 충분히 섭취 캐리커처=미디어카툰 김은영
Sports 23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제철 만난 해양 스포츠의 꽃
파도바람과 싸우는 요트 한 없이 거칠어 더 매력적 안진영 법무법인 장백 변호사 traum38@gmail.com
지난 주말 경북 울진 앞바다는 온통 하얀 돛 으로 뒤덮였다. ‘제6회 대한요트협회장배 전 국요트대회’가 열렸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 린 이 대회에는 모두 430여명의 요트 매니어 들이 몰렸다.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기도 한 요트는 우리에겐 ‘효자 종목’으로도 꼽힌다. 2010년 광저우 대회때 대표팀은 금메달 1개 와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땄다. 요트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우아 한 이미지의 레저라기보단 인간의 한계에 도 전하는 스포츠에 더 가깝다. 시련을 이겨내 는 인내와 명석한 두뇌 회전, 결단력이 중요 한 운동이다. 대표적인 ‘익스트림 스포츠 (Extreme Sports)’ 종목이다. 5년 전 처음 요트를 배우면서 든 느낌은 ‘새우잡이 어선 에 잘못 끌려왔다’는 것이었다. 바람의 힘만 으로 배를 움직여 나가야 하는 스포츠이다 보니 때로는 거친 파도, 강한 비바람 등의 대 자연과 맞서야 하기 때문에 몹시 힘들고 어 렵다. ‘해양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요트의 매력을 짚어봤다. 어떤 스포츠보다 호흡단결 중요 친목 및 인맥관리에 흔히들 골프를 이용하곤 한다. 함께 라운딩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골프에는 기능분담의 공동적인 행위 지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 해 함께 나아간다’라는 유대감을 갖기엔 부 족한 면이 있다. 요트 팀에는 조타와 항해 계획을 담당하 는 스키퍼(Skipper·통상 말하는 선장에 해 당), 앞과 뒤 두 개의 세일 중 뒤에 위치한 커 다란 세일(Main Sail)을 조작하는 메인맨, 앞의 세일(Jip Sail)을 조작하는 집맨이 있 다. 또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맞춰 수시로 앞 세일을 교체하는 역할을 하는 바우맨(Bow man)도 있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이 분담되 어 있고, 그들의 역할은 상호유기적이다. 그 어떤 단체 스포츠보다도 멤버들의 호흡과 단 결이 중요하다. 함께 협동해 배를 공동의 목표지점으로 몰 고 갈 때 멤버들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유대 감은 함께 걸어가는 것 이상이다. 흔히 공동 운명체를 이야기할 때 ‘한 배를 탔다’라고 표 현하지 않는가. 오프쇼어레이스(Off-shore race·먼 바다를 항해하는 장거리 경기)를 하 는 경우에는 순번을 정해 교대로 밤을 새며 밤 바다를 헤쳐나가야 하는데, 멤버들과 요 트와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국내에서는 부산과 통영 앞바다가 요트타기에 좋다. 독도를 돌아 나오는 경기로는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가 있다.
바다 위 낭만 생각하는건 오산 한 배 탄 팀과 공동 목표 향해 항해 두뇌인내결단력 필요한 스포츠 공포 이겨낸 뒤엔 아름다운 감동
안진영(필자)씨가 집세일(요트 앞쪽 세일)을 바짝 당기는 모습.
보면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요트에서 맞이하게 되는 자연은 형언하기 쉽지 않다. 때로는 몸서리쳐지는 공포이기도 하지만, 이를 이겨낸 뒤에 펼쳐지는 자연은 눈 물나도록 아름다운 감동이기도 하다. 거친 자 연은 대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 쳐준다. 그 뒤로 용기와 자신감, 뿌듯함이 따 라온다. 호수처럼 잔잔한 망망대해 위에 두둥 실 떠오른 보름달, 그 바다를 우리의 요트가 가를 때 퍼져나가는 형광색의 야광충, 운이 아주 좋으면 볼 수 있는, 우리의 요트와 함께 달려주는 돌고래. 그 어떤 스포츠를 통해서도 접할 수 없는 요트만의 매력이다. 연회비 100만~500만원이면 즐길 수 있어 요트를 시작하기 앞서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다. 위험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요트는 수많은 형태의 배 중에서 가장 안전한 배다. 배 아래쪽으로 ‘킬(Keel)’ 이라고 부르는 무게추가 위치하기 때문에, 요 트는 마치 떠있는 오뚜기와 같다. 뒤집어져도 다시 스스로 일어선다. 따라서 배가 파손되지 않는 한 침몰될 위험성은 낮다. 다만 바람을 맞고 달리는 역동적인 스포츠다보니 배가 좌 우로 많이 기울어지고 물에 빠질 가능성이 높 다. 때문에 요트에 승선해서는 반드시 안전장 비들을 항상 착용해야 한다. 가격에 대한 부담도 상당히 큰 편이다. 아 쉽게도 국내에서는 요트를 생산하지 않기 때 문에 모든 요트는 ‘외제’다. 새로 출고된 요 트를 직접 구입해 요트를 즐긴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요트가 대중화된 호주의 남 자들에게 “살면서 두 번째로 기뻤던 날이 언
제냐”고 물으면 “요트를 산 날”이라고 답을 한단다. 그렇다면 가장 기뻤던 날은? 요트를 판 날이란다. 수 억 원이 넘는, ‘폼나는’ 요트의 구입 비 용은 차치하고 봐도 비용은 상당하다. 배는 물 위에 띄워놓기만 해도 물에 쓸리고 비바 람에 젖기 때문에 감가상각이 급속도로 진 행된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리 비가 엄청나게 나온다는 얘기다. 아직 요트 의 대중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놀잇배를 소유하고 타기엔 구입 비용 과 관리비 측면에서 무리가 따른다. 최근 민 간기업이 요트 대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 하고, 정부도 해양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으니 좀 더 기다 려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쉽게 요트에 다 가가는 루트는 요트를 보유한 요트클럽에 회 비를 내고 회원으로 활동하는 방식이다. 연 회비는 클럽마다 천차만별이다. 회원들이 주 인의식을 갖고 서로서로 부담을 나누는 방식 으로 운영되는 클럽은 연회비가 100만~200 만원 선. 크루 등 모든 것을 갖춰 놓고 뱃놀이 를 위한 회원님을 ‘모시는’ 형태의 클럽은 연 회비가 500만원 선이다. 각각의 클럽운영 형 태에 따라 요트를 즐기려면 100만~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보면 된다. 한강 일대 요트클럽서 기초 교육 가능 생활영역이 서울인 필자는 대회 기간이 아닌 주말엔 한강에 위치한 요트 클럽에서 연습을 한다. 한강 반포대교부터 강화대교 사이에 많 은 요트클럽들이 운영되고 있다. 다만 한강 다리의 높이가 높지 않기 때문에 한강에서는
[중앙포토]
24피트 이하의 작은 요트만 탈 수 있어 아쉬 움이 있다. 바다에서 요트를 타기 좋은 곳으 로는 부산 수영만과 통영 마리나 리조트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대부 분이 이 두 곳에서 개최된다. 인천 송도에도 이에 버금가는 마리나가 들어온다고 한다. 요트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보니 무 엇보다 배를 대는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 공 간이 적으니 관리비도 당연히 많이 나온다. 세일 등에 광고를 넣어 비용을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오지만, 옥외광고법 등 법적인 제약 때문에 광고 부착이 금지돼있다 고 한다. 여의도 불꽃놀이 같은 행사를 요트 위에서 보고 싶은 바람도, 안전에 대한 우려 로 출항을 통제돼 힘든 상황이다.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때도 인천 왕산 요트경기장에서 요트 경기를 볼 수 있다. 요 트 면허는 승선원 가운데 한 명만 보유하면 되기 때문에 서울 한강 일대 요트 클럽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뒤 바로 배에 오를 수 도 있다. 속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작은 요 트 조작 정도는 한 달 만에도 가능하다. 필자 도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코리아컵 국제대 회에 출전했었다. 다만 ‘밥값’ 하는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그 뒤로도 꾸준한 노력이 필 요하다. ‘유람용’이 아닌 ‘경기용’ 요트에 오 르고자 한다면 말이다.
안진영 4년 전부터 해양소년단연맹 소속의 ‘해마루 선대’ 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요트 선명은 ‘팀해마루’. 2012년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 오픈클래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 한·일 아리랑레이스에서 3 위, 코리안컵(독도레이스)에서도 3위를 차지하는 등 여러 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본업은 변호사다.
남자농구, AG 우승 공식은 멋부리지 않고 터프하게 <아시안게임>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02년 부산에서 누린 영광을 올해 다시 맛 볼 수 있을까.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이 12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해 달리고 있 다. 이란·필리핀·중국과 함께 전문가들이 꼽 은 금메달 예상 국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앞서 지난달 31일 뉴질랜드와 겨룬 마지막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70대 71로 아쉽게 졌다.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세계랭킹이 12계단 높 고, 체력이나 신체조건 면에서 ‘가상의 이란’ 으로도 불린다. 모두 5차례 치러진 평가전에 서 한국은 뉴질랜드를 상대로 2승 3패(원정 3경기·국내 2경기)를 기록했다. 내달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까지 50일이 채 남지 않았지 만 대표팀 전력은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유재학호, 막판 손발 맞추기 한창 이달 스페인 개최 월드컵 농구서 중국이란필리핀 꺾을 전술 시험
16년 만에 출전하는 스페인 국제 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8 월30일 개막)은 조직력을 극대 화할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 다. 객관적 전력을 겨뤄볼 때 한국(세계랭킹 31위)은 리투 아니아(4위)·호주(9위)와 같 은 조에 속해 월드컵 조별리그
1승도 장담하기 쉽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월 드컵보다 아시안게임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대회의 간격이 짧아 체력·부상 부담 은 있지만, 조직력을 높이기 위해 일원화된 선수단이 나선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진천선수촌 합 숙훈련 당시 대표팀 전력은 50% 수준 이었다. SK 애런 헤인즈(33·미국)의 특 별 귀화를 취진했지만 무산됐고, 김민구 (23·KCC)는 음주운전 교통사 고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에 ‘만수(萬手)’ 유재학(51) 대표팀 감독의 ‘한국형 농구’ 프 로젝트가 시작됐다. 2010년 광저 우 대회때 지휘봉을 잡은 유 감독 유재학 은 신체조건과 개인 기량의 한계
를 절감했다. 유 감독은 “우리 팀에 1대1 공격 을 잘 하는 선수가 있나, 아니면 키 큰 선수가 있나. 결국 수비가 무기”라며 ‘한국형 농구’를 만들어 갔다. 4쿼터에 승부를 거는 전략은 유 감독의 ‘한 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뉴질랜드 와의 평가전에서도 유 감독은 강력한 압박 수비와 빠른 속공으로 상대 체력을 떨어뜨린 뒤 4쿼터에 승부를 거는 전략을 취했다. 주전 과 비주전 없이 12명을 수시로 교체하며 40 분 내내 ‘올코트 프레스(All-court press)’ 를 펼쳤다. 앞서 뉴질랜드와의 1차전에서 33 점 차로 대패했을 때 유 감독은 “한국 선수 들은 왕자처럼 너무 멋지게만 플레이하려한 다”며 독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강력한 몸싸 움을 강조한 것이다.
선수 선발에서도 유 감독은 친분·명성·병 역 특례는 배제하고, ‘이길 수 있는 팀’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엔트으리(엔트리+의리)’ 논 란에 휩싸인 브라질월드컵 축구대표팀과 달 랐다. 양동근(33·모비스)·김종규(23·LG)·김 주성(35·동부) 등 12명 선수들은 ‘원 팀(one team)’으로 뭉치고 있다. 네나드 부시니치 뉴 질랜드 감독은 “한국은 우리가 상대한 국가 중 가장 열심히 하는 팀”이라고 평가했다. 인천에서 만나게 될 라이벌들의 면면도 만 만치 않다. 이란에는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센터 하메드 하다디(218cm)가 버티고 있고, 필리핀은 지난해 8월 아시아선수권 4 강에서 한국에 패배를 안긴 전력이 있다. 아 시아선수권에서 38년 만에 4강 진출에 실패 했던 중국은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24 Column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37 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
실패도 수습도 빨리빨리 사양산업 옷 개념 바꿔 황금알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주변으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는 질문이 있 다. “큰 성공을 거머쥔 창업자들의 공통점은 뭐냐”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단언컨대 창 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다. 내가 생 각하는 창업가 정신이란 이렇다. ‘기회를 포착해, 난관과 역경을 뚫고, 혁 신적 사고와 행동으로, 새 가치를 창출하 는 것.’ 세계적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Uniqlo)를 만든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5) 패스트리테 일링 회장은 이 정의에 교과서적이라 할 만큼 딱 맞는 인물이다. 1980년대 이미 사양사업 으로 여겨지던 봉제업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생산과 서비스 방식, 마케팅 방식을 창안했다. 이를 통해 놀 랄 만큼 싼 값에 좋은 품질의 옷을 입을 수 있 는 길을 열었다.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 장과 일본 최고 부자 자리를 다투는 거부(巨 富)가 된 이후에도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 는다. 실패를 성공의 열쇠로 본다. ‘옷을 바꾸 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패스트 리테일링의 경영 모토다. 유니클로는 제 조·유 통 일괄형 의류 (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다. 자라(ZARA), H&M, 갭(GAP)에 이어 세계 4위다. 3위와의 간격 을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 4대 업체 중 지난 해 20% 이상(매출액 기준) 고성장한 브랜드 는 유니클로뿐이다. 지난해 11월 마감한 회계 1분기 순이익은 418억엔(약 4200억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출했다.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한 3890억 엔(약 4조 원)이었다. 세계 14개국에 1500여 개 매장이 있다. 2020년까지 매출 5조엔(약 54조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야나이는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나왔다. 대학 시절 그는 공부보다 마작과 록음악, 히 피 문화에 빠져 살았다. 고향인 야마구치현 에서 양복판매점과 조그마한 건설업체를 운 영하던 아버지가 보다 못해 나섰다. 당시로 서는 큰 돈인 200만 엔을 건네며 세계 여행
을 권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로 학교가 3 개월간 임시휴교하자 배낭을 메고 나섰다. 덕분에 선진국의 위용, 신흥시장의 잠재력 에 일찌감치 눈 떴다. 세계를 ‘하나의 시장’ 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졸업 뒤 슈퍼마켓 체인 회사에 10개월쯤 다니다 낙향했다. 빈 둥거리는 아들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 다. “이제부터 네가 양복점을 맡아라. 뭘 하 든 1등이 돼라.” 이후 12년 간 야나이는 장사에 집중했다. 기성품 양복으로부터 시작해 남성 캐주얼로 범위를 넓혔다. 1984년 마침내 대도시 히로 시마에 첫 캐주얼 전문점을 열었다. 개업 첫 날부터 수 천 명이 몰렸다. 가게 컨셉트가 완 전히 새로운 덕이었다. 야나이가 가진 문제의 식은 “옷도 라면이나 간장처럼 부담 없이 살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대학 때 배낭여행하며 안목 넓혀 새로운 생산서비스마케팅 창안 타 업종 혁신 노하우도 적극 이식 1분기 순익 4200억원 깜짝 실적 그는 답을 동종업계가 아닌 편의점이나 미국에서 본 대학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찾았다. 점포는 창고 같은 개방형 공간으로 꾸몄다. 값 싸고 질 좋은 기본 아이템을 팔 았다. 옷은 걸지 않고 유형과 색깔 별로 접 어 손님이 직접 집어갈 수 있게 했다. 앞치 마를 두른 점원은 손님 뒤를 졸졸 쫓아다니 는 대신 조용히 자기 일을 했다. 매장 문은 오전 6시에 열었다. 주요 고객인 학생들의 등교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름 하여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 아예 점포명 에 ‘창고(Warehouse)’라는 단어를 넣어버 린 것이다. 야나이는 가게 수를 착실히 늘려갔다. 이 름도 ‘유니클로’로 바꿨다. 90년 무렵 SPA 방 식을 채택한다. 홍콩 브랜드 ‘지오다노’의 경 영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덕이었다. 야나이는 그 외에도 월마트의 경영 시스템, 마이크로 소프트의 상품 개발, 맥도널드의 표준화, 홈 디포의 직원교육 등 전혀 다른 업종의 성공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창업자는 지난 4월 “3만여 명의 파트타이머와 아르바이트 직원 중 학생을 제외한 1만6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해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다. 청년 노동인구 감 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브랜드 DNA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례를 정력적으로 벤치마킹했다. 2009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런 요지의 말을 했다. “소비자에게 옷을 선택 하게 하려면 당연히 타 산업보다 매력 있는 상품을 내놔야 한다. 새 음식, 새 휴대전화, 새 자동차와 경쟁해야 한다. 한데 많은 경영 자는 생각이 자기 산업 안에 머물러 있다. 그 렇게 해선 매출을 늘릴 수 없다. 의류업을 사 양산업이라 하는데 이는 곧 쇠퇴기에 진입
[중앙포토]
했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명쾌한 답을 준다. ‘지금 방식으로는 안 돼!’.” 야나이가 SPA 방식을 택한 것은 싼 값 에 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시 장조사부터 제품기획, 생산, 유통까지를 직 접 관장함으로써 단계별 거품을 빼고 효 율적 재고관리를 꾀했다. 유니클로의 특징 은 ‘소품종 대량생산’이다. 철저한 시장 조 사를 통해 수요를 예측한 뒤 청바지, 티셔
츠 같은 기본 아이템을 대량 생산한다. 최 대 50여 종의 색상과 폭넓은 사이즈로 다양 성을 꾀한다. 좋은 소재를 쓰고 봉재에 공 을 들인다. 엄선한 패션 분야 장인들을 중 국 현지 하청공장에 보내 품질을 철저히 관 리한다. 대신 생산한 전 제품을 인수함으로 써 협력사와의 신뢰관계를 공고히 한다. 그 럼에도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 명하다. 자라나 H&M이 품질보다 디자인 에 집중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을 취 하는 것과 정반대다. 유니클로 옷에는 로고가 없다. 화려하고 복잡한 디자인도 찾기 힘들다. 다른 어떤 브 랜드 옷과 입어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야나 기가 주장하는 ‘부품으로서의 옷’ 개념에 충 실하다. 그렇다고 컨셉트가 없는 것은 아니 다. 외려 통일성과 일관성을 철저히 유지함으 로써 은연중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 다. 일본 제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꼽히 는 사토 가시와가 로고, 패키지는 물론 매장 디자인까지 총괄한다. 유니클로는 탁월한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 으로도 유명하다. ‘유니클락’ ‘럭키라인’처 럼 독특하고 중독성 강한 온라인 프로모션, 6종에 이르는 전용 앱, 오프라인과 철저히 연 계된 온라인 몰 운영, 세계적 예술가나 유명 브랜드들과의 과감한 협업은 늘 화젯거리다. 유니클로는 일본 최악의 불황기였던 98년, 주로 등산복 안감으로 쓰이던 ‘플리스’를 과 감히 채용한 겨울 의류로 엄청난 성공을 거 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얇고 패셔너블 하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난 신제품 ‘히트텍’ 을 내놔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실패를 두려 워 않는 도전은 유니클로의 트레이드 마크다. 덕분에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야나이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직원 교육용으로 펴낸 자서전 1승9 패 등에서 이런 주장을 펴왔다. “경영자가 연전연승 했다면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 았거나 성공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뜻이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다.”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혁신. 단신(短身)에 골프가 취미인 초로의 신사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김대수의 수학 어드벤처
사고력 키우는 수학이 ‘생각하는 갈대’의 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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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3 11 [문제 1] 아파트 5층에 사는 영희가 12층에 사 는 친구네에 가서 놀다가 친구와 함께 자기 집에 와서 놀았습니다. 한참 후에 12층으로 올라가 친 구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영희가 이동한 총 층수는 얼마일까요? 가능하 면 암산으로 시도해 봅시다.
[문제 2] 다음과 같이 주어진 표에서 화살표 지점 으로부터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이동할 때 물 음표에 들어갈 적절한 수를 추리하여 적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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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3 11 [문제 3] 어느 외교관들의 1 모임에서 A, B, C 세 명이 모여 같은 사람과는 단 한번씩만 악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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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이 경우 몇 번의 악수가 이뤄질까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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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4명이 모인 경우에는 몇 번의 악수가 이뤄 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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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수 교수 한신대 컴퓨터공학부
우리가 수학을 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으 뜸가는 장점은 깊은 사고력일 것이며, 이 점은 인간이 동물과 차별화되는 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세계 굴지의 컴퓨터 기업 인 IBM의 모토가 바로 ‘생각하라’는 뜻의 ‘Think’인데, IBM을 방문하면 회사 곳곳 에 Think라는 단어가 로고로 적혀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인 사고력을 가지 고 있다. 17세기에 프랑스가 낳은 저명한 수 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그의 유명한 수상록 팡세 (Pensées)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 다”고 갈파한 바 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서 그가 한 말은 인간이 육체적으로는 강인 하지 못할지라도 두뇌에서의 ‘생각하는’ 능 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학창 시절 팡세를 읽었던 기억을 상기해 보
면 팡세는 짧은 문단들로 이루어져 있지 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 다. 팡세는 생각 또는 묵상을 의미하는 기 독교 변증서로서 총 924편의 짧은 단문들을 모은 것인데, 그가 39세에 세상을 떠난 후 그 의 친구들이 유고를 편집한 유명한 고전 중 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시절 조합과 거듭 제곱의 계수를 알아내는데 쓰였던 파스칼의 삼각형을 아스라이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수 학에서 이항계수를 삼각형 모양의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방법을 반복적으로 적용하여 만들 수 있다. 먼저 첫 째 줄에는 숫자 1을 쓴다. 그 다음 줄은 바로 위의 왼쪽 숫자와 오른쪽 숫자를 더하여 만 들면 된다. 파스칼은 자신이 남긴 명언처럼, ‘생각의 힘’을 느끼게 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수학· 물리학·확률론·수론·기하학·신학 등에 걸쳐 공헌한 바가 매우 크다. 또한 파스칼은 1642년 인류 최초로 손으로 조작하여 덧셈과 뺄셈이 가능한 계산기를 개발했는데, 세무서에 근무
하는 그의 아버 지를 돕기 위해 1 1 만들었다고 전 1 2 1 해진다. 1 3 3 1 그 후 20세기 중반에 컴퓨터 1 4 3+3 1 가 발명되고 난 후 스위스의 니클라우스 비르트(Wirth) 박 사에 의해 1971년에 개발된 혁신적인 프로그 래밍 언어인 PASCAL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으며 약 2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문제 1]에서는 이동한 층수를 머리 속에 떠올리며 수를 합하면 된다. 물론 암산도 가 능할 것이다. [문제 2]에서는 수의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 면 일정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앞뒤 수의 차이가 2, 3, 5로 반복되는 수 열임을 알 수 있다. [문제 3]에서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생각 해본다. 3명이 악수하는 경우는 A-B, A-C, B-C인 경우로서 모두 3번이다. 그런데 4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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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경우는 3명이 악수한 후 다른 사람 D가 와서 기존의 A, B, C와 각각 한번씩 악수 하는 셈이므로 (3 + 3) =6번이 된다. 다른 풀이 방법으로는 4명인 경우 각 사람 이 3명과 악수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중복되 는 경우가 절반이므로 2로 나누면 4 × 3 / 2= 6번이다. 누구나 깊은 사고력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세상에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끈기 있게 생각하고 많은 땀을 흘리는 노력을 통해 깊은 사고력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답 1. 7 + 7 + 7 + 7 = 28(층) 2. 21 + 2 = 23 3. 3, 6
서울대 사대 수학과·동 대학원 수료,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 컴퓨터 공학 석·박사, 인공지능과 신 경망 등을 연구해 온 컴퓨터공학자이자 두뇌 과학 자다. 창의 수학 콘서트와 컴퓨터공학 관련 1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Science 25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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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의 탄생
새는 공룡의 후예가 아니라 대멸종을 이겨낸 공룡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진화론을 주창한 영국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1861 년 이른 봄.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졸펜호 른 마을 부근의 채석장엔 폐 질환을 심각하 게 앓고 있는 석공이 있었다. 그의 기침 소 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결핵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정규 의학 공부를 마친 내과의 사 카를 해벌라인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돈 이 없었다. 석공은 돈 대신 까마귀 크기의 새 화석이 담긴 돌판 하나를 빼돌렸다. 이 돌 판이 바로 훗날 ‘돌에 새겨진 오래된 날개’ 란 뜻의 아르카이옵테릭스 리토그라피카 (Archaeopteryx lithographica)라고 불리 게 되는, 파충류의 뼈와 조류의 깃털을 가진 시조새의 완전한 표본이었다. 카를 해벌라인은 치료비 대신 쓸모없는 화석을 받아주는 착한 동네 의사가 아니었 다. 그는 화석의 경제적 가치를 알고 있었으 며 이미 화석으로 상당한 수입을 올리던 화 석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그는 74세의 늙은 홀아비였고 시집 못 간 딸이 하나 있었다. 딸 에게 적당한 혼처를 마련해 주려면 많은 지 참금이 필요했다. 노년을 품위 있게 보내기 위해서도 목돈이 있어야 했다. 이런 해벌라 인에게 시조새 화석은 굴러들어온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시조새 화석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수천 점에 이르는 그의 소장품 전체 를 사들여야 했다. 깃털 제거한 시조새는 공룡과 똑같아 멀리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리처드 오언에 게 이 소식이 들렸다. 리처드 오언은 ‘공룡 (dinosaur)’이란 단어를 만든 당사자다. 오 언은 모든 생물 종(種)은 신(神)이 직접 창조 했으며 진화 따위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 시 조새가 진화론자의 손에 넘어가서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로 선전되는 위험한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다. 시조새 화석을 손에 넣은 뒤 가장 먼저 연구해 이 화석이 파충류와 조 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아님을 증명해 야 했다. 시조새가 박물관에 도착한 지 단 석 달 만에 오언은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가 아니라 그냥 최초의 새일 뿐이 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렇게 얘기가 끝나면 그것은 과학이 아 니다. ‘다윈의 불독’을 자처했던 영국의 생 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시조새가 파충류 와 조류 모두와 연관돼 있음을 보여주는 골 격 구조를 예로 들면서 오언의 주장을 꼼꼼 하게 반박했다. 그는 같은 졸펜호른 화석층 (層)에서 나온 작은 공룡 콤프소그나투스 롱기페스(Compsognathus longipes)도 찾 아냈다. 시조새에서 깃털만 제거하면 이 공 룡과 모든 면에서 똑같았다. 완벽한 파충류 인 콤프소그나투스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 간 단계인 아르카이옵테릭스와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조새는 정 말로 새의 시조일까? 그 후 시조새를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오언의 창조설은 일찌감치 배제됐다. 헉슬리가 주장한 논지의 골자가 유지됐지만 새롭게 나타난 증거는 새로운 이 론을 만들었다.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이론에 따르면 콤프소그나투스가 속한 육식 수각류(獸脚類, 두 발로 걷는 공 룡) 공룡에서 시조새와 새가 진화했다. 즉 시조새는 공룡으로부터 진화했으나 새의 시 조는 아니며 새는 공룡에서 따로 진화했다 는 것이다. 새를 새라고 부르게 하는 특징은 무엇일 까? 하늘을 나는 것, 알을 낳는 것, 둥지를 짓 는 것, 소리를 내며 우는 것 등이 모두 새의
너에게 날개를 주노라. 칼깃형 깃털은 처음엔 보온과 방수, 짝짓기를 위해 진화했다. 하늘을 날게 된 이후에야 깃털이 비행에 사용됐다.
새와 다른 생물을 구분하는 깃털 공룡이 출현할 때부터 몸에 지녀 초기엔 보온방수구애 용도 추정 종별로 날기 시작한 시기 다른 듯
태초에 깃털이 있었다. 쥐라기의 초식 공룡 쿨 린다드로메우스의 온몸엔 깃털이 나 있었다. 어쩌 면 모든 공룡의 공통 조상도 깃털을 갖고 있었는 지 모른다.
특징들이다. 하지만 각각의 특징을 가진 동 물들은 수없이 많다. 새를 새답게 하면서 오 로지 새에게만 있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 로 깃털이다. 조류 조상의 깃털 용도, 종따라 달라 새들은 다양한 형태의 깃털을 소지하고 있 다. 솜깃털은 작고 솜털이 많아서 몸을 따뜻 하게 유지시켜 준다. 칼깃형 깃털은 뻣뻣하 고 줄기가 두꺼우며 양쪽에 날이 서있고 비 행에 사용된다. 그동안 고(古)생물학자들은 까마득한 옛날, 새들의 조상이 원시적인 비 행이나 활강을 시작한 이래 줄곧 하늘을 날 기 위해 칼깃형 깃털을 진화시켜 왔다고 주 장했다. 이미 150년 전에 끝났을 것 같던 시조새 논쟁이 최근 새롭게 시작됐다. 2011년 독일 바이에른 주(州)에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시조새 화석이 새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전에 발견된 시조새 화석과 마찬가지로 날개 엔 비(非)대칭적인 칼깃형 깃털이 있었다. 누 가 봐도 비행(飛行)을 위해 적응(진화)한 것 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칼깃형 깃털들이 날개가 아닌 뒷다리에도 난 것이다. 독일 뮌 헨 대학의 크리스티안 포스와 올리버 라우 호트 박사는 깃털이 뒷다리까지 퍼진 이유 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뒷다리 깃털이 비 행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뮌헨의 연구팀은 중국에서 발굴된 원시조 류와 그 후손들의 화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칼깃형 깃털을 가진 동물의 상당수가 비행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어 떤 동물은 날개 길이가 너무 짧았고, 깃털이 달린 곳이 날개가 아니라 모두 제각각이었 다. 과연 날개가 날기 위한 장치이기나 한 것 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날개가 정 녕 날기 위한 것이라면 이렇게 광범위한 변 동성은 상상할 수 없다. 비행체 설계에 한 치 의 오차라도 있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 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올해 7월 2일자 네이처에 발표 한 논문을 통해 “조류 조상의 깃털은 종(種) 에 따라 서로 다른 목적, 예를 들어 암컷에게 구애를 하거나 방수(防水) 또는 보온(保溫) 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하늘을
날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신체 부위 가운데 깃털을 선택해 전문화된 비행 도구로 진화시 켰다. 흥미롭게도 모든 조류가 일제히 날게 된 것은 아니며, 조상이 다른 새들이 각각 독 립적으로 날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연구자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갈려 있다. 초기 칼깃형 깃털 의 형태와 패턴으로 봐 깃털이 ‘맞선을 위한 멋 내기’ 용도였다는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 들이 다수를 이룬다. 하지만 뒷다리에 난 칼깃 형 깃털이 길고 겹쳐져 나는 방식 등이 전형적 인 비행형 깃털과 같은 것으로 봤을 때 비행기 를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익형(airfoil)의 역 할을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새가 공룡의 후예란 것은 더 이상 논란거 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공룡은 언제부터 새 가 됐을까? 이 질문은 공룡이 언제 깃털을 갖 게 됐는지와 연결된다. 최근 20년 동안 초기 조류와 깃털 공룡의 화석이 수천 점이나 발 견됐다. 이에 따라 학자들은 조금 더 구체적 인 증거를 찾게 됐다. 과학계에서 네이처 와 쌍벽을 이루는 학술지인 사이언스 7월 24일자엔 “까마득한 옛날, 거의 공룡이 탄 생하던 무렵부터 공룡은 깃털을 갖고 있었 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즉 공룡은 지 금부터 2억 4000만 년 전 지구상에 처음 등 장할 때부터 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식 공룡도 육식 공룡처럼 깃털 소지 공룡 깃털의 가장 훌륭한 증거는 1억 5000만 년 전의 육식 공룡에서 발견됐다. 이 무렵 육 식 동물인 수각류 공룡에서 새가 진화한 것 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초식 공룡에서도 ‘깃털과 비슷한 구조체’가 종종 발견되고 있 다. 1억 2000만 년 전의 프시타코사우루스와 1억 6000만 년 전의 티안유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가진 뻣뻣한 털 모양의 구조체가 초 기 깃털이 분명하다면, 공룡에서 깃털이 진 화한 것은 용반류(도마뱀의 골반을 닮은 공 룡)와 조반류(새의 골반을 닮은 공룡)가 갈 라진 2억 년 전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라는 말 이 된다. 새는 조반류가 아니라 용반류에 해 당한다. 육식 공룡의 원시 깃털의 복잡성과는 달 리 초식 공룡에게서 발견되는 한 가닥 섬유 모양의 구조체가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깃털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움이 있었 다. 하지만 2010년 러시아의 고(古)생물학자 인 소피아 시니트사 박사 연구팀이 시베리아 동쪽의 쿨린다 계곡 인근에서 발견한 공룡 화석은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화석들 은 원시 깃털의 전형적인 특징인 복잡한 다 (多)섬유성 구조를 지녔다. 러시아 연구팀은 1억 7500만 년 전 공 룡인 쿨린다드로메우스 자바이칼리쿠스 (Kulindadromeus zabaikalicus)의 골격을 공개했다. 이름 가운데 드로메우스는 ‘달리 는 자’란 뜻이며 나머지 부분은 화석이 발견 된 지역의 지명이다. 이 공룡의 머리와 몸통 엔 섬유 모양의 구조체가 있었다. 팔과 다리 에선 더욱 복잡한 깃털 모양의 구조체가 보 였다. 이는 육식 공룡에서 나타나는 깃털의 배열과 비슷하다. 육식 공룡처럼 간단한 모 양의 깃털과 복잡한 모양의 깃털을 함께 가 진 초식 공룡을 발견한 것이다. 러시아 연구팀은 쿨린다드로메우스가 하 늘을 날았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초 기 공룡 가운데 깃털이 난 공룡이 더 있을 수 있으며 나아가 광범위한 종류의 공룡들이 깃털을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가 능하게 한다. 적어도 ‘깃털이 육식 공룡들 사 이에서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초식 공룡들 도 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입증된 셈 이다. 어쩌면 모든 공룡의 공통 조상도 깃털 을 소지했을지 모른다. 이젠 새가 공룡의 후예란 표현은 부적절 하다. 6500만 년 전 대부분의 공룡들이 멸종 했을 때 살아남은 조류형 공룡이란 표현이 옳다. 새는 공룡의 후예가 아니라 살아남은 공룡인 셈이다. 1861년에 발견된 시조새의 화석 이후 새의 진화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에선 하마터면 시조새가 생물교과서에 서 퇴출될 뻔했다. 이미 19세기에 결론이 난 오언의 주장을 아직도 한국의 일부 과학 교 사들이 따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얘기 가 멈추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 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 이언스 등을 썼다.
26 Column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차(茶)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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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 이숭인
도은과 삼봉, 정치는 나눌 수 없었지만 茶 나누던 ‘절친’ <정도전>
한 고조는 전횡을 낙양으로 불렀다. 죽음을 예감했던 전횡은 낙양으로 가던 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소식이 그의 신하들에게 전해지자 모두 자결하여 전횡의 뒤를 따랐 다. 후일 전횡과 그의 신하들의 충절은 수많 은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이숭인은 “아침엔 친한 벗이었다가 저녁 에는 원수가 되는”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빗 대 “천년이 지나고 또 만년이 흘러간들 한 맺 힌 심정을 누가 알 수 있을까”라고 한탄했다. 그는 한스러운 자신의 마음이 천둥이 되어도 풀 수 없다면 “긴 무지개가 되어 하늘을 붉게 비추리라”고 했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도은(陶隱) 이숭인(1349~1392)은 여말선초 (麗末鮮初)의 유학자이며 문장가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 숙옹부승(肅雍府丞)에 임명 됐다. 24세 때에는 명나라 과거에 응시, 장원 으로 뽑혔지만 25세가 되지 않아 명나라에 가 지 못했다. 그는 이색(1328~1396)의 문하에서 삼봉 정도전(1342~1398)과 동문수학했다. 하 지만 둘은 정치적인 노선이 달라 결별했다. 이 숭인은 결국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 게 장살(杖殺·때려 죽임)되는 비극을 맞았다. 도은은 난세를 살면서도 의리와 명분을 지 켰던 인물로 차를 사랑했다. 그가 남긴 여러 편의 다시(茶詩)에는 차를 즐기며 누렸던 은 근한 멋이 잘 배어 있다. 또 함께 차를 마셨 던 지인(知人)들과의 우정도 살갑게 드러나 있다. 고아(高雅)한 문체로 그려낸 그의 다시 (茶詩)에는 차향이 가득한 다정(茶情)과 차 를 마시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듯하다. ‘시는 그림과 같다(詩如畵)’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숭인과 정도전은 서로 차를 나누던 벗이 었다. 도은이 정도전에게 차를 보낸 사실은 ‘차일봉병안화사천일병정삼봉(茶一封幷安 和寺泉一甁呈三峯)’에서 확인된다.
벼슬 버리고 산사로 돌아가려 하네 그가 겪었던 참담한 상황은 이미 정치적 역 량을 발휘할 시기였던 46세에 죽임을 당한 사실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더구나 함께 수학했던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 의 해 죽임을 당했던 사실에서 그가 처한 현실 상황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처지의 그가 차를 통해 얻은 것은 무 엇일까. 그가 남긴 다시에 그 답이 들어있다. ‘제남악총선사방 차임선생운(題南嶽聰禪師 房 次林先生韻)’은 남악에서 수행하는 총선 사를 찾아갔다가 지은 것이다.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로 보이는 그를 속마음도 훤하게 통하는 벗이라고 불렀다.
숭산 바위틈을 굽이 흐르는 작은 샘은(崧 山巖罅細泉縈) 솔뿌리 얽힌 곳에서 솟아난 것이라오(知自 松根結處生) 오사모 쓰고 독서하는 대낮, 지루해질 때 (紗帽籠頭晝永) 돌솥에 찻물 끓는 소리, 듣기 좋겠지(好從 石銚聽風聲) 도은선생시집 권3 17세기에 그려진 이경윤의 월하탄금도. 달밤에 거문고를 연주하며 즐기는 문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탈속을 누리는 문인들의 곁에는 언제
숭산은 개성의 송악산이다.이곳 바위틈에 서 나오는 샘물은 솔뿌리 밑에서 솟는 물이 다.차를 달이기에는 일품인 물임이 분명하 다. 그래서 자신의 절친 정도전에게 차 한 봉 지와 안화사 맑은 샘물을 보낸 것이다.이는 지인에게나 가능한 마음씀씀이다.더구나 “독서하는 대낮, 지루해질 때” “돌솥에 찻물 끓는 소리”만 들어도 한낮의 나른함이 사라 질 것임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아끼는 정도전 에게 보내고자 한 것이다.
나 차가 함께 있었다.
이색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 정치 견해 달라 서로 다른 길 걸어 난세에도 의리명분 중시한 도은 삼봉 사주 받은 황거정 손에 죽음
교분 이어졌다면 역사 달라졌을 수도 이처럼 이색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이들의 인연은 서로 돈독한 우정으로 발전되었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인가. 후일 이들의 우정이 악연이 될 줄을 누구인들 짐 작했을까. 이숭인의 “아침엔 친한 벗이었다 가 저녁에는 원수가 되었다(시 ‘오호도·嗚呼 島’)”는 말은 아마 정도전을 염두에 둔 것이 라 짐작된다. 만약 이들의 우정이 차를 주고 받는 오롯한 사이로 이어졌다면 조선 초기의 역사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 다. 후인들의 아쉬움은 지난 과거의 일이기에 더욱 큰 회한으로 다가 온다. 이런 정치적 혼돈 속에 이숭인이 차를 즐 긴 연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 지만 무엇보다 그에겐 차가 한을 씻어내기 주 는 치료제였다. 이런 사실은 그의 시 ‘백염사 혜차(白廉使惠茶)’에 잘 나타나 있다.
선생이 내게 나누어 준 화전춘 차는(先生 分我火前春) (차의)색과 향미가 하나하나 새롭구려(色 味和香一一新) 하늘 끝에 떠도는 나의 한을 씻어 주니(滌 盡天涯流落恨) 좋은 차는 가인과 같음을 알아야 하리(須 知佳茗似佳人)
도은 이숭인의 초상화.
[고려대 박물관 소장본]
결국 그에게 좋은 차는 마음에 맺힌 한을 씻어주는 청량제였던 셈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시를 표현했던 이숭인의 문재(文才)는 이미 고려뿐 아니라 명나라까 지도 자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대의 문 장가 이색이 “이숭인의 문장은 중국의 전 시 대를 뒤져 보아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고, 우 리나라에서 글을 하는 선비가 있은 이후로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 것에서 도 확인된다. 유불선 섭렵한 도은, 명나라까지 명성 하지만 비판자도 더러 있었다. 서거정 (1420~1488)은 섬세하고 정교한 의경(意境) 을 담았던 도은의 시문을 “청신하고 고고하 지만 웅혼한 기상이 부족하다(李淸新高古而 乏雄渾)”라고 평했다. 성현(1439~1504) 또한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도은은 온자하 지만 뻗어나가지를 못했다(陶隱能醞藉而不 長)”라고 썼다. 후대의 비평가들이 그의 문 인적(文人的) 취향을 어느 정도 알아차린 것 이라 하겠다. 옛 사람이 “시는 그 사람과 같다 (詩如其人)”라고 한 말은 바로 이 점을 꿰뚫 어 본 것이리라. 이숭인은 유·불·선(儒佛仙)을 두루 섭렵 했다. 이는 권근(1352~1409)이 쓴 ‘도은이선 생숭인문집서(陶隱李先生崇仁文集序)’에 잘 드러나 있다. “(이숭인의)타고난 자질은 비범하고 뛰어 나 학문이 정확하고 박식하다. 남송 성리학 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아 경사(經史)와 자집 (子集), 백가(百家)의 글을 모두 철저하게 연 구했다.” 아울러 권근은 이런 말도 남겼다. “나라의 운세가 쇠락하는 시점에 태어나 그 문장이 더욱 떨치고 드러났으니, 이는 수
백 년 동안 잘 기르고 가르쳐 온 뿌리가 마침 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세상에 이름이 남는 문장가는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를 따라 융성 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간혹 특별나게 뛰어난 재주를 타고나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넘어지지 않고 옛사람의 문장을 뛰어넘은 훌 륭한 사람도 있다.” 이숭인은 난세의 문장가 굴원처럼 시대의 역경을 뛰어 넘어 세상을 밝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말선초의 격변기를 살아야했 던 그는 권력의 부침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경험했다. 그의 시 ‘오호도’에는 조석으로 변하는 세상의 인심이 그려져 있다. 황망한 시절을 한탄한 오호도의 끝부분은 이렇다.
오호라, 천년이 지나고 또 만년이 흘러간 들 (嗚呼千秋與萬古) 한 맺힌 이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此心 菀結誰能識) 천둥이 되어서도 이 한을 풀지 못한다면 (不爲轟霆有所洩) 긴 무지개 되어 하늘을 붉게 비추리라(定 作長虹射天赤)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君不見) 고금의 수많은 경박한 아이들이(古今多少 輕薄兒) 아침엔 친한 벗이었다가 저녁에는 원수가 되는 것을(朝爲同袍暮仇敵) 도은선생집 권2 원래 오호도는 제나라의 왕 전횡(田橫)과 그를 따르던 500명의 신하들의 의로운 충절 과 기상을 추모한 시이다. 오호도의 시대적 배경은 한(漢) 고조 때이다. 그가 천하를 통 일하자 제나라 왕 전횡은 그를 따르던 무리 를 거느리고 동해바닷가의 섬으로 도망쳤다.
오랜 친구, 서로 만나고 보니(相逢久面目) 서로 잘 알아 속마음도 훤하게 통하네(妙 契透機關) 삼업은 모두 물처럼 깨끗하고(三業水俱淨) 한 평생 구름과 더불어 한가하네(一生雲 與閑) 맑고 단 샘물은 차 달이기에 알맞고(泉甘 宜煮茗) 해는 길어 산 구경하기 좋아라(日永好 看山) 환속하여 유자가 되란 말이 부끄럽게도 (慙愧靈師語) (나는) 벼슬을 버리고 다시 산사로 돌아가 려 하네(休官便此還) 도은선생시집 권2 삼업은 신업(身業·몸으로 지은 업), 구업 (口業·입으로 지은 업), 의업(意業·마음으로 지은 업)을 뜻한다. 그의 오랜 벗, 총 스님은 삼업에도 걸림이 없는 깨끗한 수행자였다. 그의 수행력은 이미 구름처럼 자유로운 승려 였다. 그런데도 이숭인은 총 스님에게 불교를 떠 나 유자가 되기를 권했으니 세상살이에 분주 한 그의 처지에선 이 말을 한 것이 부끄럽다 는 것이다. 더구나 산사는 고요하여 담연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낙토(樂土)이다. 속내를 이해할 벗이 있고, 좋은 샘물과 차가 있으며, 해가 길어 산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니 이는 문인이 꿈꿨던 이상적 삶의 형태이다. 바로 그가 말한 세계는 “산정일장(山靜日長·고요 한 산, 긴 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순일 (純一)을 지향했던 유자(儒者)의 여유이요, 자연합일(自然合一)을 지향한 선비들의 이 상 세계였다. 차는 바로 이런 이들의 이상적 정신 음료 이며, 피차(彼此)를 소통하는 창구였다. “영 스님에게 해 준 말이 부끄럽다(慙愧靈師語)” 는 말은 원래 당(唐)대의 이름 높은 유학자 한 유(768~824)가 쓴 ‘영스님에게 보내다(送靈 師)’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승려를 환속 시켜 선비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박동춘 철학박사,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문화 융성위원회 전문위원. 저서론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맑은차 적멸을 깨우네 우리시대 동다송 이 있다.
Column 27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삶과 믿음
포스트 모던 시대의 종교 김영준 목사 pastortedkim@gmail.com
베토벤은 피아노 트리오 7번을 자신의 후원자이자 제자인 루돌프 대공(그림)에게 헌정했다.
[Johann Baptist von Lampi]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음악가만 아는 것들 ② 베토벤
같은 재료도 그의 손 타면 영적이고 숭고 손열음 피아니스트
나지막히 독백하는 듯한 피아노의 다섯 마 디 독주로 시작되는 이 곡. 스스로의 청력 상실을 완전히 인정해 버리고 만 후에 쓴 첫 번째 협주곡이자 이전의 협주곡 1, 2, 3번 에서 보여주는 베토벤 특유의 치열한 에너 지나 전투적 성향, 쟁취의 미학이 간데없는 곡. 목가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에 끊 없는 사색이 깃든, 차별되는 아우라를 지녀 음악 문헌 시간에 ‘가장 베토벤답지 않은 베토벤의 곡’이라고 배우는 이 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은 우리 어 린 피아니스트들에겐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환상 속의 그대’ 였다. 이 곡을 콩쿠르 결 선곡으로 들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 도의 예술성으로 어필하는 피아니스트로 비춰질 정도였으니…. 대학교 4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나와 몇 몇 친구들이 처음 이 협주곡 4번의 악보를 펼쳐본 것이. 아직도 생생한 그 충격을 나만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 지금 껏 상상해 온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악보 의 생김새에 아연실색했다. 누군가가 모두 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이렇게 내뱉었다. “이건 완전히 ‘하논’인데?” 어렸을 적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배웠 던 분이라면 누구나 ‘하논’을 기억할 것이 다. 1800년대 프랑스의 피아노 교육자 샤 를-루이 하논이 피아노 위에서 양손이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움직임부터 가장 복 잡한 움직임까지 단계별로 가지런히 정리 해 놓은 이 60개의 연습곡은 사실 매우 합 리적인 피아노 기술 입문서다. 단, 그 어떤 음악적 내용도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음의 나열이 피아노를 갓 시작한 우리 모두에게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야기했을 뿐. 그런 데 부푼 기대 속에 펼쳐본 베토벤의 협주 곡 4번 악보 생김새가 이 하논과 꼭 같을 줄이야. 1악장에서 긴 오케스트라의 도입부가 끝 나고 피아노가 연주하는 내용은 순 스케일, 반음계 스케일, 아르페지오, 트릴 뿐이다.
이런 것들을 통칭하는 ‘패시지 워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우습게도 ‘작품의 주제와 관계없이 화려하고 장식적인 부차적 부분’이라고 나오는데, 이 협주곡 4번에서 만큼은 완전히 틀린 설명이 되어버리는 셈 이다. 적어도 이 곡 1악장은 패시지 워크가 전부니까. 하지만 몇 년 후, 처음으로 협주 곡 제5번 ‘황제’ 협주곡의 악보를 펼쳐 거 의 흡사한 광경을 목격했을 때는 더 이상 놀 라지 않았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으니까. 역 시 베토벤은, 모두가 쓰던 재료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걸.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지배하던 시대, 기 악곡에서 악기가 하던 일은 제법 정해져 있 었다. 피아노로 예를 들자면, 제일 대표적인 활용법이 오른손이 멜로디를 노래하고 왼 손이 그것을 반주하는 형태다. 이것은 베토 벤을 넘어 후대의 슈베르트나 쇼팽에게까 지 이어지고 심지어는 현재의 이지리스닝 계열의 피아노 연주법에도 근간이 되는 아 주 확고한 ‘주재료’였다 (이루마나 유키 구 라모토의 음악들을 떠올려 보면 쉽겠다). 패시지 워크 역시 사전에 나오는대로 대부 분 발전부에서 음악을 화려하게 만드는 도 구로 사용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베토벤은 여기에 안주하지 못했다. 피아 노 협주곡 3번을 보자. 피아노가 시작하자 마자 하논에나 나오는 스케일로 소리를 지 른다. 도레미파솔라시도! 5번 ‘황제’도 다 를 게 없다. 오케스트라가 첫 소리를 내자마 자 똑같은 화음을 아르페지오로 내달린다. 하논 연습곡 41번의 E플랫 아르페지오 스 케일과 다를 바가 없다. 스케일과 아르페지 오가 아예 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흡사 빨 간색 물감으로 그리던 그림을 피로 그린 것 과 같지 않은가. 이런 베토벤의 ‘재료 혁명’은 실상 스스 로의 기교 과시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 비엔나로 건너온 청년 음악가의 이름 을 제일 먼저 날려준 건 그의 피아노 실력이 었다. 훗날 제자 체르니가 ‘그의 온몸을 내 던지는 연주에 눈물을 흘리며 깊은 감명에 빠지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회상한 피아니 스트 베토벤. 혹자의 표현대로 악마의 출현 과도 같았다. 그런 그가 고작해야 음악회에
서 즉흥 연주 실력을 뽐내는 정도에 사람들 은 만족하지 못했다. 귀족들은 대놓고 슈타 이벨트, 뵐플 등 동료 피아니스트들과 공개 적인 자리에서 대결 자리를 주선해 내기를 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베토벤에게는 자신의 음악성과 기교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신개념의 곡들이 필요 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피아노 소나타 2, 3, 4번은 스케일, 아르페지오, 트릴, 더블 옥타브, 3/4도 동시 진행, 연타 등 어려운 기 교들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마치 골격이 겉 으로 드러나는 투명한 건축물들처럼 재료 들이 서슬 퍼렇게 비치던 베토벤 작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습이 변한다. 피아노 협주곡 제4번과 제5번 뿐만 아니라 교향곡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 바이올린 협주 곡, 현악 사중주 제10번, 제11번, 피아노 트 리오 제7번 ‘대공’ 등은 혈기왕성하던 시절 의 그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 아 닐까 싶을 정도로, 음… 정신적이다. 숭고하 다. 영적이다. 그래서 또 한 번 살펴본다. 신과 인간의 대화와도 같은 ‘대공’ 트리오의 3악장, 피아 노가 먼저 시작한 주제를 바이올린과 첼로 가 함께 부르고 나면 피아노가 이내 셋잇단 음표 아르페지오를 시작한다. 그 다음은 첼 로와 바이올린의 아르페지오, 그 다음은 셋 이서 함께 아르페지오, 그 다음은 셋잇단음 표 연타 패시지워크, 그리고는 다시 피아노 의 아르페지오… 이럴 수가. 날것의 재료들 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길거리에 굴러다니 는 자갈들로 만든 석상이 순금상보다도 더 빛나는 게 가능할까. 베토벤의 음악이 바로 그렇다. 스케일: ‘도레미파솔라시도’처럼 한 조성 안의 음 계를 순서대로 치는 것 반음계 스케일: ‘도도샵레레샵미파솔솔샵라라샵 시도’처럼 모든 음계를 순서대로 치는 것 아르페지오: 한 화음 안에 있는 음들, 즉, 다장조 으뜸화음이라면 도미솔을 펼쳐서 도미솔도미솔도 미솔 하는 식으로 반복적으로 치는 것 트릴: 나란히 붙은 두 음, 이를 테면 도와 레를 빨리 도레도레도레 하는 식으로 반복적으로 치는 것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가 하도 빨라 변 화의 방향에 대해 아무도 가늠하지 못한다. 얼마 전만 해도 백화점에서 아내의 옷을 산 남편이 집에 뛰어갔다고 했다. 유행이 바뀌 기 전에 아내가 옷을 입게 하기 위해서다. 하 지만 인터넷으로 직접 옷을 주문하는 지금 은 뛰어가는 것만으론 유행을 따라가기 힘 들다.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이유다. 과거에는 수 백, 수 천 년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가 이제는 훨씬 짧은 기간에 일어나곤 한 다. 우리가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도 불분 명해지고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학과 지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종 교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란 사실이다. 다 만 과거와는 달리 종교를 건사하는 방법에 있 어서는 분명한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정치와 종교간의 분리가 가속화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분리는 종교의 자유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하게 될 것 이다. 더 이상 개인의 종교를 국가가 요구할 수 없고 각자의 양심과 신앙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국가의 도 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가의 후원을 등 에 업을 때 종교는 늘 타락했었다. 반대로 국 가도 종교의 득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종교를 이용하 는 것이며 위선을 낳기 마련이다. 둘째로 과학과 종교의 병행이 이뤄질 것이 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하는 분야가 아 니다. 다만 보는 관점과 접근하는 방법이 다 를 뿐이다. 과학이 ‘어떻게’를 설명하는 것 이라면 종교는 ‘왜’를 말한다. 둘 다 필요하 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종교가 담당 하고, 종교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과학이 담당할 수 있다. 과학자와 종교인은 좀 더 많 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적대시하면 안 된다. 셋째로 양심의 자유에 보다 큰 비중을 두 게 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
는 존재다.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권할 수 는 있지만 요구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 다.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회심의 순간이 있었는데, 그 사실이 보여주는 건 믿 음은 억지로 갖게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 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님도 인간에 대해 인내하며 기다리신다. 넷째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성역은 사라 질 것이다. 하나님 이외에는 성스럽지 않다. 인간이든, 제도든, 전통이든,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질문할 수 있고 검증을 요구할 수 있 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아무도 진실을 말 할 수 없는 인위적인 사회는 없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요구하는 것은 성숙한 인간 됨이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게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 이 돼서는 어린 아이 때의 일을 버렸다는 말
과학지식이 제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종교의 도움 필요 혼돈 속에도 양심소신은 지켜야 씀처럼 참된 신앙은 성숙한 인간을 필요로 한다. 종교의 내용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종교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성숙함은 변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진리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과정 속에 있다. 하지만 진짜가 아닌 것은 넘 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진리는 흔들리더 라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것이다.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는 찬송가 가사 와도 같다. 우리의 조상들이 전란이나 가난 등 외부적 환란 중에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 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가치관의 극심한 혼돈 속에서 자신의 양심과 소신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 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聚同化異
<취동화이>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구동존이(求同存異). ‘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두다’란 말이다. 저우언라이 (周恩來) 중국 총리가 만들었다. 1965년 3 월 23일자 인민일보 1면에 처음 실렸다. 중 국공산당이 소련공산당 흐루쇼프 서기장 의 수정주의에 맞서 노선의 다름을 강조한 말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의 “군 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 불화(同而不和)한다”는 구절에 기반했다. 저우 총리가 여기에 유물변증법과 통일전 선술을 녹여냈다. 이후 중국의 전통적인 외 교전략이 됐다. 취동화이(聚同化異). ‘공통점은 취하고 차이점을 바꾸다’란 뜻이다. 왕이(王毅) 중 국 외교부장이 대만판공실 주임 시절에 만 들었다. 2009년 6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 코에서 화교(華僑) 리셉션을 열고 “양안(兩 岸) 교포는 ‘구동존이’뿐만 아니라 ‘취동 화이’를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동화이 를 자주 사용한다. 지난달 4일 서울대 강연 에서 수교 이래 한·중 양국이 견지한 큰 원 칙으로 ‘상호존중·신뢰, 취동화이’를 들었
다. 9일 미·중 경제전략대화 개막식에서는 “중·미 쌍방은 상호존중·취동화이를 견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동화이(求同化異). ‘취동화이’와 뜻이 같다. 한국서 만들었다. 2010년 12월 16일 외교안보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출범식에서 다.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은 “한·중 양국 관계는 구동존이 수준을 넘어 서로 이 견이 있는 부분까지 공감대를 확대하는 구 동화이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왕이가 ‘취동화이’를 처음 제안하자 당시 대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만 연합보는 “양안 사이에 존재하는 맹점(盲點)부터 제 거한 뒤, 인내·지혜·실질을 갖춘 준비가 먼 저”라며 ‘화이(化異·차이점을 바꾸다)’를 유보했다. 한국은 반대다. 숙고보다 동조하 는 모양새다. ‘화이’는 상호작용이다. 체제· 이념의 차이를 우리가 ‘화이’ 할 수 없다. ‘존이(尊異)’면 충분하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칼럼 ‘덴세이진고(天 聲人語)’는 우경화(右傾化)가 본격화된 2012년 세모(歲暮)에 이렇게 적었다. “이 겨 울의 일탈은 훗날의 역사가가 검증할 것이 다. 최후에 나라를 구하는 것은 액셀러레이 터가 아니라 브레이크라고 가르치고 있다.” 국제관계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 가 필요하다.
28 Column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다시 쓰는 고대사
17
골품제 벽 넘은 선구자
가야 피 섞인 문노, 진지왕 폐위 공 세워 진골 득골품 <得骨品>
이종욱 교수 leejw@sogang.ac.kr
색공(色供·신분 높은 사람에게 여자를 바 치는 일)의 화신인 미실(美室)은 신라 여 성 중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미실에 못지 않은 극적인 스토리 를 가진 대표적인 신라 남성으로는 문노(文 弩·538~606)를 들 수 있다. 8세 풍월주(화 랑도의 수장)를 지낸 문노는 ‘사기(士氣·용 사의 기풍)의 종주(宗主·맹주)’로 추앙받았 다. 김유신은 삼한을 통합한 뒤 문노를 용맹 한 전사의 모범으로 삼고 최고 관등인 각간 (角干)에 추증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 여 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신라에서는 또 그를 기려 신궁(神宮·죽은 김씨 왕들의 궁)의 선단(仙壇·화랑들을 모신 제단)에서 큰 제사 를 지내기도 했다. 화랑세기 8세 문노 조에 따르면 문노는 579년 미실의 총애를 받아 풍월주가 됐다. 그 는 용맹했고 문장에도 능했다. 아랫사람 사 랑하기를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했고, 청 탁에 구애되지 않았다. 자기에게 귀의하는 자는 모두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서 명성을 크게 떨쳤고, 낭도들은 죽음으로써 충성을 바치기를 원했다. 삼한통일 대업이 그로부터 싹트지 않음이 없었다. 하지만 문노는 골품사회 신라에서 그에 합 당한 대우를 받기에는 부족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가야의 외손으로 태어났기 때 문이다. 문노의 어머니인 문화(文華)공주의 출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 나는 야국왕(野國王)의 사위가 되었던 가야 의 찬실과 신라의 양화공주 사이에 낳은 딸 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야국왕의 공녀 (貢女·조공으로 바친 여자)라는 설이다. 야 국은 왜(倭)국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문 화공주는 왜국에서 가야에 조공 바쳤던 공 주이고, 그 공주가 신라인 호조공의 첩이 되 었던 것을 뜻한다.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와 가야의 관 계를 살펴보 자. 신라 법흥 왕(재위기간 514~540)은 가야를 남북으로 나누고 이뇌를 북국왕(北國王·고령의 대가야왕)으로 삼았 다. 그리고 청명을 남국왕(南國王)으로 봉했 다. 북국왕의 숙부인 찬실이 이뇌왕을 내쫓 고 왕이 되자 신라에서는 호조공을 사신으 로 보내 책망토록 했다. 그 때 호조공은 북국 의 문화공주를 첩으로 들였다. 호조공의 아 들 비조부는 아버지의 첩인 문화공주와 잠통 (潛通)하여 문노를 낳았다. 문화공주는 신라 의 골품이 없었기에 문노는 골품 없이 태어 난 셈이다. 전공 세웠지만 신분 달라 출세길 막혀 문노가 이런 출생 배경에도 불구, 신라에서 추앙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화랑도 활동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문노 는 가야파의 한 무리를 모아 화랑이 되었다. 4세 풍월주 이화랑(二花郞)은 문노를 자신의 후계자인 사다함(斯多含·5세 풍월주)의 스 승으로 삼고 낭도로 하여금 공경하여 받들게 했다. 사다함은 법흥왕의 후궁이었던 옥진궁 주의 조카다. 법흥왕의 딸인 지소태후가 이 를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이화랑은 “천자에 게도 오히려 신하로 삼지 않는 신하가 있는 데, 하물며 선도(仙徒)의 지조가 굳고 인격이 결백하고 기품이 있는 사람을 한가지로 규제 할 수 없습니다. 문노는 신의 별파유군(別派 遊軍·일정한 소속이 없는 부대)입니다” 라고 답했다. 세종(世宗)은 6세 풍월주가 되었을 때 친 히 문노의 집을 찾아가 “나는 감히 그대를 신 하로 삼을 수 없소. 청하건대 나의 형이 되어 나를 도와주시오”라고 부탁했다. 문노는 세
신라의 대표적인 용장(勇將)인 문노는 가야국 외손 출신으로 골품 없이 태어났다. 그러나 문노는 화랑으로서 삼한 통합을 이룬 신라 용사들의 사기를 일으키고,진지왕을 폐위시키는 데 공을 세워 진골이 됐다. 사 진은 문노의 외가 조상들이 묻힌 경북 고령 지산동의 가야 고분군.
활발한 화랑도 활동으로 입지 다져 용맹함인품 뛰어나 존경의 대상 김유신 할아버지와 전장서 큰 공 통일 뒤 최고 관등인 각간에 추증
포석(砲石)명 기와. 화랑세기에 나오는 포석사 가 삼국시대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 포석사에 는 ‘사기(士氣)의 표상’인 문노의 화상이 모셔져 있었다.
종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를 섬겼다고 한다. 문노는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554 년 김유신의 할아버지 무력을 따라 백제를 쳤고, 555년에는 북한(北漢)으로 나아가 고 구려를 패퇴시켰으며 557년에는 북가야를 물리쳤다.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문노는 어 머니인 문화공주의 출생의 한계 때문에 출세 하지 못했다. 그는 아랫사람 중 불평하는 자 가 있으면 “대저 상벌이란 것은 소인의 일이 다. 그대들은 이미 나를 우두머리로 삼았는 데 어찌 나의 마음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삼 지 않는가”라며 달랬다. 6세 풍월주 세종이 진흥왕에게 청하여 급 찬(級湌)의 자리를 내리도록 했으나 문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때 진흥왕의 왕 후 사도가 문노의 이름을 듣고 몰래 도우며 자기편으로 삼았다. 세종의 부인인 미실 궁주 도 그를 불러서 봉사로 삼으려 했으나 문노 는 승낙하지 않았다. 미실이 탐낸 인재 처음엔 발탁 제안 거절 576년 진지왕이 즉위하자 이번엔 왕후 지도 가 일을 꾸미고 발탁하여 일길찬(一吉湌)의 위를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문노에게 급찬이 나 일길찬은 부족했던 것이다. 급찬이나 일길 찬의 관등으로는 골품을 얻어 진골이 될 수 없었다. 문노의 일파는 7세 풍월주 설원랑에 불복 하고 자립하여 일문을 세워 낭도들이 나뉘게 되었다. 설원랑의 파는 정통(正統)이 자기들 에게 있다고 했고, 문노의 파는 청의(淸議)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여 서로 상하를 다투었 다. 진지왕이 즉위했을 때 지도왕후의 아버 지 기오공은 문노와 종형제 간이었기에 지도 왕후는 문노를 따랐다. 576년 10월 지도왕후 는 진지왕에게 권하여 문노를 국선(國仙·풍 월주와 다른 계통)으로 삼았다. 문노의 낭도 들은 무사(武事)를 좋아했고 협기가 많았기 에 호국선(護國仙)이라 했고, 설원랑의 도는 향가를 잘하고 청유를 즐겨 운상인(雲上人) 이라 했다. 골품이 있는 사람들은 설도를 많 이 따랐고, 초택(草澤·민간 또는 재야)의 사 람들은 문도(文徒)를 많이 따랐다. 문노는 부인을 잘 맞아 들였다. 그는 국선 이 되었을 때 윤궁(允宮)을 받들어 선모(仙
[사진 권태균]
母·국선의 부인)로 삼았다. 윤궁은 황종공 (거칠부)의 딸로 진골이었다. 그리고 문노의 아버지 비조부의 권세는 법흥왕이 거느렸던 소위 칠총신과 막상막하였다. 그러나 문노는 그 어머니 문화공주로 인하여 진골이 될 수 없었다. 윤궁이 문노에게 몸을 허락할 때 “내 가 군(君·문노)을 그리워한 지 오래되어 창자 가 이미 끊어졌습니다. 비록 골(骨)을 더럽힌 다고 해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선모의 귀함 입니까”라고 말했다. 문노는 “사람들이 나에 게 국선이 영예롭다고 하나, 나는 스스로 선 모의 영예를 가집니다”라고 했다.
다고 하겠다. 이 때 문노는 아찬(阿湌·6등급) 의 관등을 갖게 되어 비로소 골품을 얻을 수 있었다. 윤궁은 기뻐하며 “그대가 지아비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했다. 문노의 득골품 (得骨品)은 그가 윤궁과 동골(同骨), 즉 같은 골인 진골(眞骨)이 된 것을 뜻한다. 문노가 진 골이 되기 전에는 윤궁의 신분이 높아 문노가 윤궁의 신하가 되었다. 그런데 문노가 득골품 을 한 결과 미실이 진평왕에게 청했고, 진평 왕이 명령을 내려 윤궁을 문노의 정처로 삼게 했다. 진평왕과 세종전군이 친히 포석사(鮑石 祠)에 나아가 길례(吉禮)를 행했다.
휘하의 미천한 낭도들도 속속 출세 문노는 윤궁의 도움으로 골품 사회에서 살아 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평소 설화랑, 그 리고 설화랑과 사통하던 미실과는 잘 맞지 않았다. 이에 윤궁이 권문(權門·미실)에 거스 른다면 뱃속의 아이는 어떤 처지에 있게 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문노는 정이 사사로이 행 해지면 의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선모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이에 윤궁이 “…무릇 의(義)는 정(情)에서 나오고, 정은 지(志, 사 심)에서 나오니 세 가지가 서로 상반되는 것 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정(大情)은 의(義) 가 되고 대사(大私)는 공(公)이 된다고 했습 니다”라며 설득을 했고, 문노가 깨달아 굽혀 미실을 섬기고 설화랑을 받아들여 주었다. 문노가 골품의 장벽을 넘어 진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579년 진지왕의 폐위에 가담했 기 때문이다. 그는 미실을 왕비로 삼겠다고 한 약속을 어긴 진지왕을 폐하고 동륜태자 의 아들 백정공(진평왕)을 즉위시키는데 공 을 세웠다. 거사세력은 진지왕을 폐위시키는 데 문노의 낭도가 불복할까 염려하여 세종과 문노의 낭도를 하나로 합치고 미실을 원화 (源花·화랑 전체의 여자 우두머리로 풍월주 를 대신함)로 삼고, 미실의 남편 세종을 상선 (上仙), 문노를 아선(亞仙)으로 삼아 목표를 달성했다. 이로써 문노의 낭도는 미천한 사람 으로서 높은 관직에 발탁되는 사람들이 많 았다. 문노의 낭도는 출세하는 문으로 여겼 기에 문노를 신(神)과 같이 받들었다. 문노는 진지왕을 폐위하는데 가담한 공으 로 8세 풍월주가 되었으니 윤궁의 내조가 컸
모범 부부의 상징이 된 문노와 윤궁 이때 윤궁은 “오늘 이후 첩은 낭군의 처로서 마땅히 낭군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라고 했 다. 윤궁은 검소하고 무리를 사랑하여 손으 로 직접 옷을 만들어 낭도들에게 주었고 문 노가 종양을 앓았는데 입으로 빨아서 낳게 했다. 문노는 풍월주로서 유화(遊花·화랑도 에 머물던 여자들)로 인하여 더럽혀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문노는 젊어서 지극히 방정하고 빈틈이 없 었는데, 윤궁을 처로 맞이한 후로 시비를 가 리기보다 화목함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모두 윤궁이 문노를 이렇 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부부를 말할 때에는 반드시 공의 부처를 들 며 말하기를 “지아비로서는 문노와 같은 이 를, 처로서는 윤궁낭주와 같은 이를 택해야 한다”고 했다. 삼국사기 5, 태종무열왕 2년 정월 조에 는 이찬 금강(金剛)을 상대등으로 삼았다고 나온다. 화랑세기를 보면 금강은 문노의 아들인데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것으 로 나온다. 문노의 종족(宗族)이 당당하게 진 골이 된 것이다. 높디높은 신분적인 장벽을 뛰어 넘은 문노를 통해 신라 골품제가 그렇게 막혀만 있던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본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졸, 문학박사, 서강대 사학 과 부교수교수서강대 총장 역임, 현재 서강대 지 식융합학부 석좌교수. 신라국가형성사연구 등 22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음.
Column 29
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5>
유모인 ‘왕엄마’ 쫓겨난 뒤 포악해진 마지막 황제 <왕렌쇼>
푸이(溥儀·부의)는 유모 왕렌쇼(王蓮壽·왕 연수)를 평생 잊지 못했다. “내게는 제도가 만들어낸 많은 엄마들이 있었다. 생모도 마 찬가지였다. 함께한 기억이 없다 보니 얼굴을 마주해도 어색했다. 자살로 삶을 마감했을 때도 담담했다.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엄마 의 정을 베풀어준 사람은 유모 왕렌쇼가 유 일하다. 그의 품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 황실은 아들이 태어나면 딸을 출산한 여인들 중에서 유모를 선발했다. 딸이 태어 났을 때는 그 반대였다. 1906년 가을, 청 제국 최고의 명문인 순친왕(醇親王)의 왕부(王府) 에서 장남이 태어났다. 관례대로 유모를 물 색했다. 내시들을 풀어서 베이징 성내의 골 목을 샅샅이 뒤졌다. 딸을 출산한 여인들이 20여 명 있었다. 빈농 출신 왕렌쇼도 그 중 하 나였다. 남편이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3개월 만 에 딸을 출산한 왕렌쇼는 살 길이 막막했다. 순친왕 측에서 유모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
푸이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대개 건성건성 대 했다. 인도 시인 타고르(왼쪽)를 만났을 때도 마찬 가지였다. 1924년 가을, 자금성 어화원(御華園).
푸이, 빈농의 딸 손에서 9년 간 성장 낳아준 엄마보다 깊은 정 느껴 황제 낙점돼 궁궐로 들어가던 날엔 발버둥치다 유모 젖 물고서야 잠잠 자 응모했다. 왕렌쇼는 빈농집안 출신 티가 안났다. 용모가 단정하고 유즙(乳汁)도 걸죽 했다. 왕부의 요구는 가혹했다. “외부 출입을 금 한다. 친딸을 만나서는 안된다. 머리에서 지 워버려라. 매일 소금기 없는 돼지 넙적다리를 한 사발씩 먹어야 한다.” 왕렌쇼는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다. 시부모와 딸을 굶어 죽 게 하지 않으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다. 2년 후, 왕렌쇼의 딸은 영양실조로 세상 을 떠났다. 순친왕부는 상심한 나머지 젖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딸의 사망소식 을 왕렌쇼에게 알리지 않았다. 1908년 10월 말, 광서제(光緖帝)가 세상을 떠났다. 서태 후는 순친왕의 장남 푸이를 차기 황제로 낙 점했다. 서태후의 명을 받은 왕공대신(王公 大臣)과 태감(太監)들이 순친왕부로 몰려 갔다. 한바탕 쇼가 벌어졌다. 푸이의 조모는 손 자를 내놓기 싫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태후를 원망하다 혼절했다. 어린 푸이도 울 음보를 터뜨렸다. 무슨 눈치를 챘는지, 태감 이 끌어안자 안 가겠다며 발버둥을 쳤다. 새 로운 황제를 영입하러 온 왕공대신들은 속수
푸이에게 왕렌쇼는 생모 이상이었다. 흔히들 왕자오(王焦)라고 불렀다. 자금성 시절 애견을 안고있는 왕렌쇼 . 연도 미상.
무책이었다. 구석에서 목을 웅크리고 있던 왕렌쇼는 눈물범벅이 된 어린 푸이가 안쓰러웠다. 갑자 기 달려가 태감이 안고 있던 푸이를 나꿔챘 다. 남들이 보건 말건 가슴을 풀어헤쳤다. 유
모의 젖꼭지를 문 푸이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쳤다. 유모의 품 안에서 떠날 기색이 아니 었다. 왕공대신들이 머리를 맞댔다. “어쩔 도 리가 없다. 유모도 궁궐에 데리고 가자.” 푸이는 왕렌쇼의 품에 안겨 궁궐에 들어
[사진 김명호]
왔다. 황제 즉위식 날도 주위를 두리번거리 며 뭔가 찾는 눈치였다. 푸이의 회고록엔 이 런 구절이 있다. “나는 유모의 품 안에서 성 장했다. 아홉살 될 때까지 함께 생활하며 9년 간 그의 젖을 먹었다. 다른 애들이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유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태비들은 푸이가 아홉살이 되자 왕렌쇼를 궁궐에서 내보냈다. 태감들과 충돌이 잦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일을 계기로 푸이는 두고 두고 태비들을 원망했다. “평소 유모는 말수 가 적고 뭐든지 잘 참았다. 그런 유모가 남과 다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유모가 떠난 후 나 는 정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다. 인간성을 상실하자 성격이 변하고 포악해졌다. 태감들 과 충돌한 원인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자 태감들 꼴도 보기 싫었다. 틈만 나면 몽둥 이로 두들겨 팼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 다. 유모는 딸이 오래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궁궐에서 쫓겨난 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태 비들이 내 결혼을 서두를 때 나는 유모의 딸 과 결혼하고 싶었다.” 결혼을 한 푸이는 태비들 말을 들을 필요 가 없었다. 고향에 가 있는 유모를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파견했다. 십여년 만에 푸이를 만난 왕렌쇼는 한번 웃고는 별 말이 없었다 고 한다. “유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자 마음이 편했다. 유모에게 딸 소식을 물 었다. 진작 죽었더라는 말을 듣자 골육을 잃 은 것 같았다. 유모는 자신의 특수한 지위 를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나나 다른 사람에 게 뭐 하나 요구한 적이 없다. 성격이 온화하 고 남과 다투는 법도 없었다. 말도 많이 하 지 않았다. 침묵할 때가 많았다. 언제 봐도 단정한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 웃음의 의미가 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의 눈은 항상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늘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벽화 를 좋아하는 줄 안 적도 있었다. 세월이 한 참 지나서야 나의 신세나 내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게 내색 한번 안했지만 대청 제국의 황제에서 일본의 괴뢰로 전락한 나 를 바라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짐작 이 간다.” <계속>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이후락 잔’에 담긴 수 많은 비화들
서화와 도자기는 제각기 주인이 따로 있다 는 명물유주(名物有主)란 말이 있다. 고미술 품은 소장자 따라 떠돈다 해 명품유전(名品 流轉)이라고도 한다. 문화재가 겪는 희로애 락의 이야기를 엮는다. 지난 6월, 고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봐 야 한다는 입소문이 난 전시회가 열렸다. 서 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가 주최한 ‘고려 청자와 그 상속자들’이다. 고려청자와 작품 세계가 일맥상통하는 현대작가 하종현·김 중만·이수경씨의 근작을, 개인 수장가가 여 러 해 수집해온 명품 고려청자와 나란히 선 보였다. 천하제일 도자기로 칭송받으며 독창 적인 미감을 평가받은 청자 유산의 맥을 잇 자는 뜻이 강한 자리였다. 고려청자의 부활 을 외치는 국내외 상황도 읽을 수 있어 흥미 로웠다. 청자를 사랑하는 이들이 몇 번씩 와 보고
일명 ‘이후락 잔’이라 불리는 ‘청자 상감 국화문 통 형 잔’.
[사진 갤러리 아트링크]
갔다는 이 특별전에서 우뚝한 작품은 높이 62㎝가 넘는 ‘청자 상감 포류수금문 매병’이 었다. 당당한 풍채에 한시(漢詩)를 곁들인 회 화적 구성이 펼쳐져 조각품처럼 보이는 대작 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소곤소곤 뒷얘기가 만발했던 출품 작은 따로 있었다. 크기는 작지만 열 점 묶음 으로 나온 ‘청자 상감 국화문 통형 잔’이다. 차문화가 발달했던 고려시대에 생산된 다기
(茶器)의 하나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몸체 중심부에 흑백 상감 원(圓)을 두른 국화문양 이 중심을 이루며 틀이 잘 잡힌 기형이다. 높 이 9㎝ 안팎에 입지름 6.5㎝ 전후인 이 찻잔 은 원래 한 쌍이었던 꼭지 달린 뚜껑이 유실 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 소품의 존재감을 올려준 것은 이 물건 을 지녔던 옛 주인의 이름이다. 한때 ‘이후락 잔’이란 별명을 붙여준 이후락(1924~2009) 이 소장자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을 지내다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돼 유신정 권에서 ‘제갈조조’란 별명을 얻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다. 1972년 5월, 밀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비밀 회담을 벌여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 한 몫을 했다. 이후락은 정치자금을 떡에 비유하며 “떡 을 만지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게 마련”이 라는 ‘떡고물’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그가 죽은 뒤 소장품에서 이 찻잔이 나오자 한때 그와 어울렸던 이들 사이에서 비화가 전해졌
다. 이 잔을 아꼈던 이후락은 기분이 좋거나 귀한 손님이 오면 잔을 내오라고 해 거기에 술을 따라 대접했다고 한다. 800여 년 전, 차를 나누며 정담하던 자리 를 빛냈던 고려청자는 대신 술을 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기구한 제 처지를 통탄하지 않 았을까. 일본인들은 고려 시대 차 사발을 특 별히 ‘고려 다완(茶碗)’이라 이름 붙이고 평 생 한 점 소장하기를 염원하며 신주 모시듯 했다. 제 가치를 몰라주는 고향 떠나 남의 집 에서 빛을 본 셈이다. 문화재 환수를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이들을 보면 고려 다완이 웃지 않을까 싶다. 경기가 바닥을 친 고미술시장에 낱개로만 간혹 나오던 이 찻잔은 10개 묶음 덕을 봐 그 나마 3억 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인생유전, 명품유전이라.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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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이스라엘 국민 바렌보임의 용기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hwesook7@naver.com
지난 2004년,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 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울프 상의 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벨상 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하는 이 상의 시상식 에는 이스라엘 대통령과 울프재단 이사장인 교육문화체육부 장관이 참석했다. 시상이 끝 나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바렌보임 은 양복 안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수상소 감을 꺼내 작심한 듯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1952년 열 살의 나이로 아르헨티 나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왔을 때 자신이 읽 었던 독립선언문의 내용에 대해 얘기했다. 당 시 선언문에는 “모든 접경국 그리고 그 국민 들과 평화와 우호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 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그는 도발 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질문을 던지고 싶 습니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그 국민을 지배
하는 것이 독립선언문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 입니까?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다른 나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 까요? 우리 유대 민족이 고난과 박해의 역사 를 보냈다고 이웃 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까요?” 그가 수상 소감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장 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 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렌보임의 도 발적인 수상 소감에 화가 난 교육문화부 장관 이 연단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바렌보임 씨가 유감스럽게도 울프상 시상식 을 국가를 공격하는 자리로 만들었다고 비난 했다. 바렌보임은 이에 질새라 자기는 국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독립선언문의 정신을 환 기시켰을 뿐이라고 대응했다. 한 술 더 떠서 이 상의 상금을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위해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자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바렌보임은 그 일을 해
1000억대 재산 벤처 신화의 몰락 박재현 칼럼 사회 에디터 abnex@joongang.co.kr
A를 3년 여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특정 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검 찰에 구속된 뒤 연락이 끊겼던 그였다. 뜬 금없이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이 A라고 믿 기에는 말투가 너무나 어눌했다. 간병인의 도움없이는 ‘해석’이 어려웠다. 구치소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2년 반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병실에 있던 그는 오른쪽이 마비 됐고, 언어능력도 절반 이상이 상실됐다고 한다. 1990년대 말 자본금 8억여원으로 만든 회 사를 불과 3~4년만에 시가총액 3800억원 대로 성장시킨 한국 벤처업계의 ‘신화’였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2002년 1100여억 원의 개인 재산으로 ‘한국의 40대 미만 젊 은 부호 10걸’에 포함되고, 엔씨소프트 김 택진 대표와 ‘코스닥 황제주’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그였다. -잘 나갈 때가 그립지 않나. “솔직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건 강했을 때가 그립다.” -빨리 건강을 회복해 다시 일어서야지. “절대 사업은 안할거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나에겐 너무나 큰 짐이었던 것 같다.” -뭘 하고 싶나. “행복해지고 싶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의 부침(浮沈)을 바라보는 제3자의 안 타까움과는 달리 A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듯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수학 경시 대회를 석권하며 과학고와 KAIST를 나온 젊은 수재 기업인에게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돌이켜보면 그의 추락은 지나친 자신감 과 돈에 대한 승부사적 기질의 집념에서 비 롯됐던 것 같다. 한때 그는 도박판에서 큰 돈을 벌었고, 이 때문에 조폭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각 언론매체들이 잇달아 자신의 성공담과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 서 그의 태도는 변해갔다. 땀에 젖은 양말 이 발바닥에 붙은 상태로 밤을 세워가며 일 하던 열정과 초심은 사라지고 있었다. 재산 이 점점 불면서 크고 작은 M&A를 시도하
팔레스타인에 대한 박해에 반대 조국이 준 상금 난민 교육에 기부 음악 통해 평화화합의 메시지 전파
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회적·정치적 책무를 인식하고 이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용기있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바렌보임은 조국인 이스라엘로부터 배척을 받아왔다. 지 난 2001년, 그가 독일의 베를린 슈타츠카펠 레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연주회 의 앵콜곡으로 이스라엘에서 오랫 동안 금기 기 되어 온 바그너의 음악을 기습적으로 연 주했기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던 한 노인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바그너의 음악이 듣고 싶어요? 그럼 이스
해외 만평
라엘 밖에 가서 들으세요. 하지만 이스라엘 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조국 을 건설했습니까? 고작 이 꼴을 보려구요?” 일부 관객들의 저항이 대단했지만 바렌보 임은 끝내 바그너 음악의 연주를 강행했다. 특정한 음악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반인륜 적·반민주적 폭거라고 하면서. 그런데 사실 바렌보임의 반민족적(?) 행보 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선 1999 년,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 비평가 에 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 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주목을 받았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 집트, 레바논,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 언어,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창단 이후 해마다 세계 여러 지역을 돌며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바렌보임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들 었을 때, 이스라엘의 극렬 민족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세요? 우리에게 폭탄을 퍼붓 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동족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음 악을 통해 문화적·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바렌보임 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정의롭지 못 한 것,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부당한 편 견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이스라엘 사람 임에 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유대인 정착촌에서는 절대로 연주하지 않겠 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심 각하다. 도대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보면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단 원인 한 팔레스타인 소녀의 말이 떠오른다. “제가 바라는 것은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 나서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끝나는 거예요.”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 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누가 얘 좀 말려 줘요 팔레스타인 난민촌 놀이터를 공습해 어린이들을 살상한 이스라엘에 국제 비난 집중.
는 등 자신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금융전문 가로의 변신을 꾀했다. ‘회사 인수→장부상 외형확대→매각→수백억 이득’이란 투기자 본의 공식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다 서울 시내의 한 특급호텔을 인수 하기 위해 주식 담보 대출을 받은 것이 발목 을 잡았다. 금융권의 반대매매를 막기 위해 대주주와 함께 회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떠 받친 것이 문제가 돼 수사를 받게 됐다. 주가 폭락과 함께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부실기업으로 분류됐던 전자업체를 인수하겠다며 명동의 사채까지 동원했다. 회사 직원들과 동료들 의 반대가 거셌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숨은 실세로 알려졌던 한 대기업 로비스트와는 합작투자를 명분으 로 다른 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한 여성 무 기 로비스트의 꾐에 빠져 무기중개업을 하 ©CLEMENT/Cartoon Arts International www.cartoonweb.com
독자 옴부즈맨 코너
인간을 굴복시키는 게 돈이고 돈 버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
길 위의 인문학처럼 기존 틀 흔드는 기획 많아져야
무리한 욕심 부리다 파멸 자초
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리는 낭패를 보기도 했다. 결국 그는 ‘기 업사냥꾼’으로 낙인찍혀 수사 대상에 오르 게 된다. 2011년 수사 와중에 만났던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여겼 고, 나 자신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 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 리는 것을 보고 인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 은 역시 돈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면 행복 했고, 이 때문에 무리인줄 알면서도 욕심을 부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미 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돼 정 상적인 사고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구속 되면서 자신이 한 말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지, 다시는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했 다. 벤처업계 풍운아의 추락을 보며 인간 의 탐욕과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7월 27일자 중앙SUNDAY 1면 톱기사는 세월호 침몰사고 수습안을 놓고 불거진 사 회 갈등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과 해법을 함께 제시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두고 벌어지는 여론 분열과 그 원인을 대중심리의 관점에서 분 석한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공 공의 책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전문 가들의 해법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를 다시 한 번 심층적으로 짚어줬다면 작금의 논란을 이 해하기가 더욱 쉬웠을 듯하다. 참사로 인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풀 어야 할 숙제 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이 뤄진다면 “왜 세월호 희생자들만 혜택을 받 느냐”는 일각의 주장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 는 아쉬움이 든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 을 보듬고 또 다른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4면의 ‘9·11 위원회, 수사권 없었으면 아 무 일도 못했을 것’이란 기사는 미국에 대
한 테러 공격 진상조사위원회를 직접 취재 했던 전 뉴욕타임스 기자를 인터뷰해 새로 운 사실을 알려줬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 회에 수사권 부여를 반대한 쪽에서는 “9·11 조사위에도 수사권이 없었다”고 주장했지 만 직접 취재해 보니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 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팩트 파인딩’의 중 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줬다. 11면 일본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인터뷰 도 이스라엘 공격 기사 대부분을 외신으로 전해듣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입장을 생생하게 들려줬다. 14면의 일본 정 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 탄생 100주년 기 사에서는 “마루야마가 1960년대 학생운동 주도자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는데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16면 ‘와이드샷’은 회색빛 도시에서 더욱 선명하게 돋보이는 노란색 리본을 클로즈업 해 눈길을 끌었다. ‘세월호 100일, 부끄럽기만 했던 100일’이라는 제목과 사진설명에서도 기자의 진정성이 묻어나 잔잔한 감동을 줬다.
18면 ‘관피아 쌈짓돈 전락한 515조원 정 부 기금’ 기사는 정부 기금을 둘러싼 그릇 된 현실을 풍부한 그래픽 자료와 함께 보여 줘 가독성이 높았다. 특히 요즘 척결 대상으 로 지목된 관피아가 정부 기금과 먹이사슬 처럼 얽혀 있다는 점이 다양한 사례를 통해 묘사돼 흡인력있게 읽혔다. 지난 주부터 새로 연재를 시작한 고미 숙 고전평론가의 ‘길 위의 인문학’은 약간 은 점잖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중앙 SUNDAY 칼럼 지면에 통통 튀는 색깔을 더 한 것 같아 반가왔다. 필자는 첫회부터 ‘백수 는 미래다!’라는 다소 도전적인 주장을 고전 속 인물에게서 끄집어냈다. 앞으로도 중앙 SUNDAY에서 기존의 사고 체계를 비트는 참신한 칼럼을 자주 접할 수 있길 바란다. 유희연 2000년부터 2007년까 지 문화일보 정치부·사회부·국제 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 전업주부로 일곱 살, 네 살 두 아 들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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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
성장의 눈높이, 중진국에 맞춰라
신장섭의
시대공감
너무 일찍 선진국형 저성장 진입 꾸준한 中성장 이뤄야 경제 살아 재정 투입, 어중간하면 되레 역효과 이왕 쓰겠다면 효과 볼 때까지 해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최경환 경제팀이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 해 의욕적으로 내놓은 발언 중에서 가장 관 심을 끄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말이다. 오랫만에 접하는 도전정 신이 반갑다. 실제로 한국이 ‘경제기적’을 일궜던 것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갔기 때문이었다. 1960 년대 후반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할 때 세 계은행에서 ‘주제넘는 일’이라며 돈 빌려주 기를 거절했지만 한국 정부는 포스코라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내고 70년대 중화학 산업화의 주춧돌을 놓았다. 80년대 반도체 투자도 국내외에 만연한 비관론를 뚫고 성 공한 것이었다. 반면 2000년대 한국경제가 잘못된 데에 는 스스로 앞길을 찾기보다 남들이 만들어 준 교본(敎本)을 좇으려 했던 데에 큰 원인 이 있었던 것 같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 라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해서 가계부채를 잔뜩 쌓고 저축률은 미국보다 더 낮은 ‘선진 국형 저성장 경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새 경제팀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선구자의 길은 항상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필자는 경제팀 이 목표를 단순히 ‘불황 탈출’이 아니라 ‘지 속적 중(中)성장’으로 잡기를 권하고 싶다. 첫째, 한국은 지금 중진국에 불과하다. 그 런데 경제성장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 졌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하더라 도 중진국 수준에 걸맞는 중성장은 이뤄내 야 선진국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위 해서는 비교대상을 바꿔야 한다. 현재 정부 에서 가장 흔하게 비교하는 대상은 경제협 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다. 한국이 OECD 회원국이기 쉽게 비교자료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선진국과 비교해야만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 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OECD는 선진국 클럽이다. 한 국이 94년에 겨우 중진국 초입에 진입했는 데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것은 주제넘는 일 이었다. 이 기준에 맞춘다고 자본자유화를 너무 급하게 한 탓에 97년 외환위기를 맞았 던 측면도 크다. 한국경제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수준에 맞게 비 교대상을 잡아야 한다. 중성장은 OECD 평균으로 봤을 때에는
고성장이다.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며 자화자찬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중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 는 G20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가계부채, 고령 화 문제들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에 ‘반짝 성장’으로는 해결 전망이 서지 않는다. 중성 장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 증대와 임금상승이 함께 가야 한다. 정상적 인 성장공식은 투자증대에 따른 일자리 창 출, 그에 따르는 임금상승이다. 임금상승은 기업의 국내 투자가 함께 일어나야만 지속 될 수 있다. 투자증대와 임금상승의 고리를 만드는 데 정책역량이 집중돼야 할 것이다. 투자는 기업인들의 ‘동물적 본능’에 많 이 좌우된다. 불확실한 일들이 많더라도 기 업인들이 낙관적 전망을 갖고 위험부담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임금 상승이 투자증대로 이어지는 ‘분수(噴水) 효과’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작을 가능성 이 크다. 한국경제의 규모가 일본보다 훨씬 작고 따라서 내수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 는 비중도 작기 때문이다. 임금이 상승하더 라도 노사가 매출과 이익 증대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그 결과를 함께 나누는 선순환 구 조를 만들어낸다는 노사정 합의가 있어야 한다. 재정투입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되 어야 한다. 현재 새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 은 자칫하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 다는 데에 많이 쏠리는 것 같다. 그렇지 만 일본의 경험을 보면 이왕 시작한 것 제 대로 해야지 어정쩡하게 했다가는 결과 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일본경제를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으로 파악한 리차드 쿠 (Richard Koo) 노무라증권 수석연구원은 ‘정책 지그재그(policy zigzag)’의 위험성 을 경고한다. 일본 정부가 아직 불황에서 제 대로 탈출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97년 과 200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재정건전화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불황탈출이 최소한 5년 이상 늦어졌고 이에 따라 추가로 투입 하게 된 재정자금이 적어도 1조 달러는 된 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성급한 재정건전화 논리에 밀려 재정투입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를 거둬 들여서 아예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결과를 만 들어낼 때까지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진화 멈춘 한국 정치제도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지난달 30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를 보면서 한국의 정치제도를 다시 생각하 게 됐다. 1987년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정 치제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런 논의들은 거 의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치상황을 보면 현 정치제도가 과연 적합한 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치제도는 여러 번 바뀌었다. 크게 보면 한국은 간선 단임 대통 령제, 직선 연임 대통령-부통령제, 의원 내 각제, 직선 연임 대통령제, 간선 연임 대통 령제, 그리고 직선 단임 대통령제 등으로 변 해 왔다. 국회의 경우 단원제, 양원제, 단원 제 등을 다 거쳤다. 이미 한국은 선진 민주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제도를 거의 다 경험한 셈이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배경에는 집권자의 권력 강화라는 목적이 있었다. 반면 60년 및 87년에는 독재자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상황에서 정치제도 개선을 통해 권력에 대 한 경계를 강화했다. 현 정치제도는 직선 단임 대통령 및 단원제 국회가 핵심이다. 대 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기 에 동시 선거는 드물다. 때문에 신임 대통령 은 항상 전직 대통령 때 선출된 국회의원들 과 함께 일해야 한다. 이럴 경우 국회가 대 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 지만, 현재의 민의보다 과거의 민의를 대변 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현 단임 대통 령제는 레임덕이라는 부작용도 안고 있다. 임기 초기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진다. 때문에 임기 말 2년 정도는 상징적인 역할 밖에 못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 민주국가들 중에는 의원내 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압도적으로 많다.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은 의원내각제 국가다. 반면 한국 과 미국은 전형적인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원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우수하 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민의를 더 잘 반 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73 년 미국 워터게이트 수준의 스캔들이 터질
경우 내각제 국가는 총리의 사임으로 또는 총선을 통해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국가의 경우 많은 정치적 논란을 겪은 후 탄핵을 통해서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이를 볼 때 내각제의 매력 중 하나는 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단원제 국회도 문제점을 드러내 고 있다. 유권자 수에 따른 의석 배분으로 인해 인구가 많은 도시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외의 지역은 소외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 기 위해 선진국 대부분은 양원제를 채택하 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의 인구, 영토 크기, 경제적 및 사회적 수준을 감안해 볼 때 양원으로 구성된 내각제를 도입할 만하 다. 세계 경제상황의 변화에 민감한 한국의 경우 신속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87년 체제 현 정치상황엔 안 맞아 대통령제, 임기 말 레임덕에 무기력 민의 반영 신속한 내각제 검토할 때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경우 쉽지 않다. 또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 차가 심한 현 상황에선 국회 내에서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필요하다. 과거 내각제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 국 민정서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독재 자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대통령과 같은 지 도자가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강한 리더십보다 소통 및 과정에 중 점을 두기 때문에 내각제를 오히려 안정적 인 제도로 느낄 수 있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 다. 하지만 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 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민의를 더욱 정확히 반영하는 정치제도를 도입하 는 것을 검토할 만 한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 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On Sunday
말말말
미워도 들어는 보자
“윤 일병 사고는 21세기 문명사회서 있을 수 없는 일” 한민구 국방장관, 2일 각 군에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사망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파 악할 것을 지시하며.
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retalia@joongang.co.kr
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가 신이 난 모습으로 말을 붙여 왔다. 2학기 때 함께 앉고 싶은 ‘짝꿍’의 이름을 적어내는 투표 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단다. 기특한 마음 에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의외다. “다른 친 구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 준다”고 했다. 그 러면서 “말 많고 대장만 하려는 친구는 인 기가 없다”고 했다. 리더십이 있어 보이려고 웅변학원까지 다녔던 아빠 세대와는 확실 히 달라진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청(傾聽)은 여러 모로 유용하다. 정책 발굴에도 도움을 준다. 서울시가 최근 개인 택시를 기존 3부제에서 4부제로 전환한 것 도 ‘주말에 규칙적으로 쉬고 싶다’는 개인 택시 기사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은 결 과다. 기존 3부제는 휴일이 들쑥날쑥해 주 말에 종교·동호회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정 책 수요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덕에 호
응도 뜨겁다. 서울시는 이 정책이 개인택시 기사들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기 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요새 목소리를 죽이고 있는 정책 수요자들도 있다. 재계가 그렇다. 이들은 규 제대상으로만 여겨질 뿐 다른 국민처럼 행 정 서비스를 제공받는 정책 수요자란 인식 은 드물다. 요즘 재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사내유 보금 과세를 둘러싼 것이다. 롯데그룹이 서 울 잠실에 짓고 있는 ‘롯데월드타워(제2롯데 월드)’ 개장 여부도 빠지지 않는다. 대기업 투자를 유도해 경기를 살리자는 데 반대할 이는 드물다. 아쉬운 점은 정책 을 내놓기 전에 기업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 어봤나하는 것이다. 투자를 촉진하고자 한 다면 여건을 만들어줄 일이다. 2003년 미국 앨라배마주(州) 정부는 현대차 공장 유치 를 위해 총 3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직·간접 적으로 지원하고, 전담 공무원을 붙여 최대 한 빨리 공장이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린 어떤가. 총 공사비 3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상업시설 공사를 마쳤지만 언제 문을 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여기엔 1000여 개의 입점업체가 들 어서 있고, 이 중 70%는 중소기업들이다. ‘무작정 기업 편의만 봐주자’는 건 옛날 얘기다. 요즘 반(反) 기업정서에는 과거 기 업들이 부당하게 누린 특권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꼭 풀어달라”고 읍소하 는 정책 수요까지 외면해선 안 된다. 공장 등 의 수도권 입지규제가 대표적이다. 익명을 원한 재계 인사는 “기존 규제를 없애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없던 규제가 불 쑥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 다. 그는 “경영이란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론을 이유로 이랬다저랬다 하면 어떻게 돈을 풀 수 있겠냐”고도 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알버트 허쉬만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Exit, Voice and Loyalty)에서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공 동체 구성원은 결국 그 공동체를 떠나게 된 다”고 했다. 대기업들이 얄미울 때도 많다. 하지만 떠나게 내버려 둘 때는 아니지 않나.
“새정치연합 선출제, 5공 시절 체육관 선거와 비슷” 천정배 전 법무장관, 재·보선 패배는 비민주적 계파 패거리 정치에서 기인한다며 추후 전 당대회서 전당원 투표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며.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자금 50% 이상 준비 가능” 국민연금공단, 노후 적정 생활비는 월 184만원(부부기준)인데 20년 납입자의 평균 수령액 은 남자 월 70만원, 여자 월 60만원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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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정원이 집계한 7월 수도권의 전월 대비 월세가격 변동폭. 월세 하락세는 16 개월째다. 지역별로는 서울(-0.2%), 경기 (-0.2%), 인천(-0.1%) 모두 내렸다. 한국감 정원은 “아파트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월세 로 돌리는 임차인들이 많지만, 소형 신축주 택과 월세 전환 물량 증가 등 공급이 더 많이 늘면서 가격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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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호 2014년 8월 3일~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