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 당선작 발표 일정 : 2010년 5월 15일(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2010년 5-6월호 지면) ⓢ 시상식 : 6월 중 개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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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심사 대상 ⓢ 아버지의 이름으로 — 다시 쓰는 김중업 건축론 ☞ 강윤식作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축가의 정체성 ☞ 김소연作 The World after the Eden ☞ 박성용作 소통의 도시 : 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74 ☞ 서정일作
ⓢ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한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기업 가가 그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후원회입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사업으로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학자 및 예비 저술가 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 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 주최|심원문화사업회 ⓢ 주관|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 운영위원회|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 ⓢ 기획 및 출판|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간향미디어랩 ⓢ 후원|(주)엠에스 오토텍 ⓢ 문의|02-2235-1960
by WIDE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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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가지의 색깔 있는 건축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신뢰와 성실을 주축으로 21세기를 도약하는 삼협종합건설(주)는 뛰어난 기술력과 신용도, 투명한 도덕성, 특유의 잠재력으로 더욱 성숙된 건설업의 발전을 주도합니다.
삼협종합건설(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70-7 홍성빌딩 4층 Tel : (02)575-9767 | Fax : (02)562-0712 www.samhyub.co.kr
by Samhyub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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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MAX Korea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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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yang System Group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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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수행 영역 (SERVICE SCOPE) 1. 건축 기계 설비 설계 및 감리
공조 냉^난방 설비, 위생 급^배수 | 항온항습 설비 | CLEAN ROOM 설비 | 신재생에너지관련설계 2. 소방 설비 설계 및 감리
소화^자동소화^제연^피난 설비 | 중앙방재센터^위험물 관련 설비 3. 연구 용역 및 시뮬레이션
건물 생애 비용(LCC) 분석 및 CFD 분석 | 화재^피난, 일조, 연돌효과 분석 | 수배관 시스템 모델링 및 해석 4. 에너지 절약 진단 업무 및 기획 5. T.A.B.(Testing, Adjusting, Balancing)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68-9 해석빌딩 4F
TEL. 02-548-6622 FAX. 02-548-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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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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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설계 | 안전진단 | 구조물 보수^보강
(주)건우구조엔지니어링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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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SINCE 2006 | 네 번째 주제|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2’ | 내 건축의 주제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문의 : 02-2231-3370, 02-2235-1960)|<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2’> 는 우리나라의 40-50대 “POWER ARCHITECT”을 초대하여 그 분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축 의 주제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젊은 건축가 시리즈’에 이어지는 금번 강의를 통하여 2010년 내 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주관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주최 : 그림건축, 간향 미디어랩 GML|도서 협찬 : 시공문화사 spacetime, 수류산방 樹流山房|와인 협찬 : 시간건축, 이 웨스건축, 삼협종합건설|*<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 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 (카페명 : AQkorea, 카페 주소 : HYPERLINK “http://cafe.naver.com/aqlab” \t “_self” http:// 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 ⓦ 3월의 초청 건축가
|오섬훈 (어반엑스 건축 대표)|주제 : 노매딕스, 두 코드 사이
|일시 : 2010년 3월 17일(수) 저녁 7시
42. ⓦ 4월의 초청 건축가
|최욱 (one o one 스튜디오 대표)|주제 : Aging — Architecture
|일시: 2010년 4월 14일(수) 저녁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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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2010 The 1st GANYANG WORKSHOP of Architectural Journalism, 2010
[워크숍 목표 및 추진 방안]
[워크숍 프로그램 개요]
1) 학생에게 건축 잡지사를 포함한 주요 언론사 입사를 위한 준
ⓦ 03월 27일 : 1강 — 입교식 및 강의(저널리즘 세미나 1)
비 과정을 제공해 주고, 각 언론사에는 기자로서의 소양과 저
ⓦ 04월 24일 : 1강 — 강의(인문 교양 세미나)
널리즘에 입각한 윤리 의식 및 실무 능력에도 충실한 인력을
ⓦ 05월 22일 : 1강 — 강의(기초 취재 실습 1)
공급하고자 한다.
ⓦ 06월 26일 : 1강 — 강의(기초 취재 실습 2)
2) 지방대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학기 중 주말을 이용 한 강의로 진행하며, 방학 중엔 현장 실습을 감안, 주중에 워 크숍을 진행코자 한다.
ⓦ 07월 08일 / 15일 / 22일 / 29일 : 4강 — 강의 및 실습(현대건 축 세미나 및 현장 실습 1) ⓦ 08월 05일 / 12일 / 19일 / 26일 : 4강 — 강의 및 실습(현대건 축 세미나 및 현장 실습 2)
[수료자 장학 특전 등]
ⓦ 09월 18일 : 1강 — 강의(사회 교양 세미나)
1) 수료생 중 성적 우수자 1인에게 워크숍 개인 참가비 전액을 장
ⓦ 10월 16일 : 1강 — 강의(저널리즘 세미나 2)
학금으로 환불 지급함
ⓦ 11월 20일 : 1강 — 과정 종합 보고회 및 수료식
2) 최종 과정 수료시 ‘수료증’ 및 성적 우수자에 한하여 언론사 취업시 ‘추천서’ 발급 (단, 전체 워크숍 과정 중 70% 이상의
[워크숍 세부 정보 안내]
출석자에 한하여 ‘수료증’이 발급됨)
ⓦ 네이버 카페 : AQkorea 게시판 및 본지 2010년 1/2월호 안 내 지면
[강사진] ⓦ 총괄 디렉터 : 전진삼(본지 발행인)
[전화 문의]
ⓦ강 사진 : 본지 발행편집인단 구성원을 포함한 국내 건축·미
ⓦ 02-2235-1960
술·디자인 잡지 데스크 및 주요 매체에서 활약해 오고 있는 기자, 칼럼니스트, 건축 책 저자 및 대학 교수로 구성 [워크숍 기간 및 강의 장소] ⓦ 2010년 03월~11월 (9개월, 총 15회 워크숍) ⓦ 워크숍 요일 : 토요일(학기 중), 목요일(방학 중) ⓦ 강의 장소 : 서울, 본지 편집실 및 각 취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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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ok of Suryusanbang
한국의 자연 유산 | 이선 지음 천연기념물의 역사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
저 나무는 언제부터 저 곳에 서 있었을까? 지리산에 방사한 곰들은 왜 죽어 나가는 것일까? <우리와 함께 살아온 나무와 꽃>의 이선 선생님이 들려 주는 한국의 자연 유산 이야기, 그리고 천연기념물. 말없는 자연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자연 유산은 이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역사와 종교, 철학의 반영이자 그것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되는 자연 유산인 ‘천연기념물’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지정 기준에 대해 알아본다. 또한 다른 나라의 자연보호법의 특징과 자연에 대한 사상을 살핌으로써 우리의 자연 유산의 가치와 그 법적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음에도 세계 유산 위원회가 이 지역을 유산 목록에서
우리 나라의 천연기념물은 앞에서 열거한 여러 특성 가운데 한 가지만 지니기보다는 동시에 함
삭제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영양 보호 구역 내에서 밀렵이 성행하고 영양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축한 사례가 많다. 수백 년을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노거수는 우리에게 단지 생물학적으로 크고
개체 수가 거의 절멸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오만 정부는 임
오래 산 나무인 것만은 아니다. 그 ‘자연의 기념물’에는 조상들의 애환과 염원이 깃들어 있으며,
II. 우리 문화의 배경이 된 자연 유산, 천연기념물
의로 보호 구역을 축소하면서 먼저 삭제를 요청해 왔다. 오만 정부에서 광산 등 자원 개발을 하
마을의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즉 ‘향토적 상징물’로
고자 보호 구역을 해제한 것은 더이상 세계 유산 지역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상실한 것으로
서 긴 세월 동안 보이지 않는 책무를 맡아 오면서 ‘역사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판단하고 유네스코에서도 삭제를 결정했다.
이를테면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자연물로서의 가치인 소나무의 외형적 형태나 수령보다도 정
하나의 지역이 세계 유산에 등재되면 세계 기구에서 힘과 지혜를 모아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
이품송이 사람들과 맺은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정이품송보다 더 수령이 오래됐거나 키가 큰
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국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 유산 등재를 위해서
나무라 할지라도, 세대를 거듭하며 쌓인 각별한 정감을 쉽게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
는 탁월하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천혜의 자연 환경도 필요하지만, 등재 후에 지속적으로
의 천연기념물은 이처럼 지역 주민들과 정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또는 한국인이라
조상들이 우리들에게 물려준 것에는 고려 청자나 팔만대장경,
관리하고 보존하는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아라비아오릭스 보호 구역 사례를 통해 알
면 대부분 아는 전설이나 문화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의 가치를 순전히 자연물로서
경주 불국사나 석굴암과 같은 문화 유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 있다.
만, 또는 환경적 측면에서만 한정지어 평가한다면, 천연기념물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정서적으
속리산의 정이품송이나 제주의 용암 동굴 등과 같은 자연 유산도 있다.
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의 지정, 보호, 관리 등의 실질
현재 우리 나라의 자연물이나 자연 환경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에는
VI-1-(2) 세계 유산의 정의와 분류
정책을 환경부나 자연 보호 협회가 주관하지 않고 문화재청이 총괄 감독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
「문화재보호법」, 「자연 환경 보전법」, 「야생 동식물 보호법」,
에 있다. 천연기념물은 문화가 깃든 자연 유산이기 때문이다.
「산림 기본법」 등이 있다. 그 중 「문화재보호법」은 자연 유산의
유네스코에서는 세계 유산을 문화 유산과 자연 유산의 두 가지로 나누어 각각 정의를 내리고
보호를 위해 마련된 가장 오래된 법 제도의 하나로
있으며, 문화 유산과 자연 유산의 요건이 동시에 한 곳에서 같이 존재할 경우, 복합 유산으로
자연물이나 자연 환경 중에서 특히 보존할 만한 가치가
정의한다.
있는 것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문화 유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 유적 : 역사와 예술, 과학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비명(碑銘), 동굴 생활의 흔적, 고고
다소 딱딱하겠으나 「문화재보호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학적 특징을 지닌 건축물, 조각, 그림이나 이들의 복합물.
천연기념물의 대상과 범위, 제도의 변천 등을 알아보려고 한다.
- 건축물 : 건축술이나 그 동질성, 주변 경관이 역사, 과학, 예술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독립적 건물이나 연속된 건물. - 장소 : 인간 작업의 소산물이나 인간과 자연의 공동 노력의 소산물, 역사적, 심미적, 민족학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세계적 가치를 지닌 고고학적 장소를 포함한 지역.
← 괴산 삼송리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290호. 왕소나무라고도 하며, 붉은 줄기의 꼬임이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송(龍松)이라는 별명을 가진 노거수다. 마을의 신목으로 여겨지거니와 마을 이름 또한 소나무 가 세 그루 있다고 하여 삼송리가 되었다.
↑ 槐山郡三松里アカマツ、天然記念物第290号。赤い幹のねじれ方がまるで龍がうごめいているように見えることか ら、龍松という別名を持つ、立派な老巨樹である。村の神木として親しまれているだけでなく、村の名前も松の木が三
사당리 푸조나무 © 정세영
© 박우진
本あるということで三松里と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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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 © 이선
III. 천연기념물 현황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
↑ Pine tree in Samsong-ri, Goesan-gun, Natural Monument No. 290. This imposing old tree is also called the “dragon tree” for the way its branches resemble a writhing dragon. It is considered the sacred tree of the village, and as there are three of the them the village was named Samsong-ri (three pine village).
↑ Arabian Oryx. While the Arabian Oryx Sanctuary was designated as UNESCO World Heritage in 1994, it was removed from the list when the Oman government scaled it down by over 90 percent. Arabian Oryx are believed to extinct in the wild.
↖ 아라비아오릭스. 아라비아오릭스 보호 구역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나, 오만 정부가 임 의로 보호지역을 90퍼센트 이상 축소함에 따라 세계 유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현재 아라비아오릭스는 자연 상 태에서는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アラビアオリックス。 アラビアオリックス保護地域は1994年にユネスコ世界遺産として登載されたが、オマーン政 府が任意に保護地域を90%以上縮小したことから世界遺産リストから抹消された。 アラビアオリックスは自然状態で はほぼ絶滅したといわ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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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지앤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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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 새로운 관계, 드러난 풍경 | 조성룡, 김주원, 최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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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4호, 2010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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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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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표3
Iroje
표2 Wond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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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건축의 오늘 —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살리는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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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세상살림집 — 흙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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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건축의 오늘 | 김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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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비야리 주택, 해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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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흙건축 디자인 공모전 | 심사평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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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Max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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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주 교수 인터뷰 | 나는 지금 흙으로 프러포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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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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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yang System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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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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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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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전 리뷰 | 강권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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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팀 최우수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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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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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yang PC,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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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Design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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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woo Structural Engi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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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th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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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4> | 도시의 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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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E Architects & Consul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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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종횡무진 14> 전라병영성 하멜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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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OMOM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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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4> 담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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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a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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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書欌 14-1> 『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지음 | 안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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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41, 42
101
<와이드 書欌 14-2> 당신의 별점은? 『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 『덕수궁』 | 서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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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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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8>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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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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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의 <COMPASS 11> 백지영과 포르노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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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yusan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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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계획안 100선 13> 횡성 주말 주택 | 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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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ARchitect 파일 01 | 이충기> 보이지 않는 건축, 시뮬라크르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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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ARchitect 파일 02 | 김헌> 인식의 모험, 그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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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4> 정동도시건축세미나 | 이오주은+우동선+조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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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focus 1> 조경으로 만드는 명품 도시, 광교신도시 | 안명준
126
<WIDE focus 2> 플로팅 온 한강 Floating on the Han River | 강권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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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정귀원
128 와이드 칼럼 | 건축가의 삶 | 최동규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지앤아트스페이스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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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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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po rt no
격월 2, n 간 건축 o v e 리포 m b 트 er-d <와 이드 e c e m > 통 be 권 r, 12 20 09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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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건축 지식인의 책상에는 <WIDE>가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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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축 vem 리 ber 포 트 -de <와 ce 이 mb 드 > 통 er, 권 200 12 9 호 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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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와이드 레터 |
착한 건축 시리즈 두 번째, 흙건축 재작년 이맘때 소개가 되었던 에너지 위기 시대에 빛나는 착한 건축 의 뒤를 이어 생명과 관계를 살리는 착한 건축 으로 흙건축을 소개한다. 특 히 이번 기획은 원론적인 내용보다 흙건축의 현재 상황, 그 중에서도 건 축 디자인으로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흙으로 만든 집은 건축가 정기용의 연산다리 주택이나 구인헌 등 을 통해 건축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고, 환경 문제와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한때 붐을 형성하기도 했으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 니다. 그러나 시멘트에 비해 흙의 가격이 비싸고, 기술 또한 부족한 상 황에서 전문 건축인들보다 일반인들에게 호응을 얻어온 흙건축은, 그래 서 한국 현대 건축의 흐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개인의 취향으로 치 부되곤 하였다. 다행히 2005년 설계, 시공,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흙건축을 고민 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의미있는 모임을 결성했다. 현재 (사)한국흙건축 연구회의 전신이다. 일반인의 교육은 물론이고, 흙이 보편적 재료로 자 리매김하고 한국 현대 건축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건축 디자이 너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경제적인 측면, 혹은 에너지 절감과 환경 보전의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흙건축이 장려되고 있는 외국의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2005년 발족된 한 국흙건축연구회의 활동 여건은 매우 열악해 보인다. 흙건축에 대한 잘못 된 편견까지 짊어진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 속에서 이 단 체는 해마다 아카데미와 워크숍 등을 진행해 왔고, 올해는 흙건축 디자 인 공모전까지 치러냈다. 지금은(3월 9일부터4월 29일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농어촌 체험마 을(흙건축 전문가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전남 무안의 감풀마을에 어린 이를 위한 도서관을 짓는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은 두 달 동안 무안군 의 각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공 동체의 진정한 의미와 노동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 을까 기대해 본다.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 발행편집인단 발행인 |전진삼·편집장|정귀원 발행위원 | 김기중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신창훈 발행위원 | 오섬훈 윤창기 황순우 고문 | 곽재환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자문위원 | 구영민 김병윤 박철수 송인호 윤인석 자문위원 | 이일훈 이종건 운영기획위원 | 박민철 이영욱 조택연 편집위원 | 김기수 김종헌 김태일 박혜선 송복섭 편집위원 | 이충기 장윤규 편집기획위원 | 김진모 김찬중 안명준 유석연 편집기획위원 | 전유창 정수진 조정구 함성호 고정집필위원 | 강병국 김정후 손장원 안철흥 ⓦ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박상일 객원기자|강권정예 전속사진가 | 남궁선 진효숙 영문초록 | K.Y.Cho 제작 코디|김기현 로고 글씨|김기충 ⓦ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이숙기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서점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제작협력사 인쇄|예림인쇄 종이|대립지업사 출력|반도커뮤니케이션스 제본|문종문화사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14호 2010년 3-4월호 2010년 3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2008년 1월 15일 창간 낱권 가격 8,000원, 1년 구독료 45,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발행처| 극동상가 502호(120-796) 편집실|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편집실| 환경포럼빌딩 1층(100-834) 대표전화|02-2235-1960, 02-2235-1968 팩스|02-2231-3373 공식이메일|widear@naver.com 공식URL|http://cafe.naver.com/aqlab 네이버 카페명 | AQ korea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 유포를 금합니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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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Wide Work Zien Art Space, Joh Sung Yong Architect Joh Sung Yong's Zien Art Space is a complex culture facility that is composed of gallery, art shop, workroom, event hall, restaurant and cafe. This building across the street from Nam June Paik Art Center has the distinct features hiding bountiful scenes under a simple outward mass, because the architect adopted a method of burying the most of space underground, instead of raising the mass, due to the regulation of 20% building coverage ratio. The segment masses making a set and the flow of space between them leads to Nam June Paik Art Center and shows various alley scenery according to the season and the weather. Although the pitched roofs being finished with exposed concrete and titanium-zinc sheet makes up the building, it is characteristic that red cedar and glass curtain wall as finishing materials were applied to the wall of restaurant & cafe and the event hall respectively. page025
Issue 1 Earth Architecture Earth is not the building material of the past any longer, not only because earth's value and possibility as an eco-friendly and sustainable material has been re-illuminated, but also because the modern application and evolution of earth architecture has been constantly made in many countries including Korea. Hereupon, <WIDE> has focused on the activities of Earth Architecture Institute of Korea(EIK) and investigated the current situation, key subject and possibility of Korean earth architecture. EIK has developed and educated earth architecture through an academy and a workshop and held the Earth Architecture Design Competition this year for the first time. At the competition, the utilization of earth was considered and studied in two different uses such as a simple finishing or structural material and a design tool having various possibilities. page061
Issue 2 Ideas Competition for the Design of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 Seoul Construction of MOCA is getting close. In the future, the function and role sharing among MOCA,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 Kwacheon and Deoksugung Museum of Art will be done, and MOCA will be specialized for the project exhibition of contemporary arts. Five ideas on primary stage have been selected through an idea competition, and the materialized final idea out of the five winners is to be chosen on the basis of the second architectural design contest. The site that used to be the headquarters of Defense Security Command has a very special meaning to contemporary Korean history. It has been isolated from surrounding areas for a long time, thus it has contributed to freak urban structure. MOCA has attracted attention, for it will recover the urban structure and be restructured as a culture & arts space connecting Kyungbok Palace and Bukchon. page074
POwer ARchitect's FILE Theme of My Architecture Lee Chung Kee(POAR 01). page112 Kim Hun(POAR 02). pag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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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dge
Wide Work
지앤아트스페이스 ZIEN Art Space 조성룡 Joh Sung-Yong
참나무 언덕을 배경으로 백남준아트센터를 담담히 마주 보고 있는 이 건물은 갤러리와 아트 숍, 스튜디 오, 이벤트홀,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구성된 복합 문 상을 전환하여 지면 아래에 길을 만들고 주요 기능 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집합을 이룬 매 스들과 그 사이를 흐르는 공간의 흐름, 사람/사물과 Wide Work : ZIEN Art Space
공간의 관계가 만드는 다양한 풍경과 소소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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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DREAM FOREST ART CENTER
화 시설이다. 법규 제한과 지형적 조건으로부터 발
기, 그리고 경계 없는 집합체들이 이루는 공공성 등 이 쉽게 조성룡 건축임을 감지케 한다. 해인사 신행 문화 도량과 남양주 주말 주택을 거쳐 더욱 구체화 되고 있는 집합과 풍경의 의미를 지앤아트스페이스 에서 느껴 보자. ⓦ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진효숙(건축 사진가, 별도 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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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재경.
<지앤아트스페이스 건축 개요> 대지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150-2번지 외 | 대지 면적 4,324.00m2 | 건축 면적 829.37m2 | 연면적 1,978.79m2 | 규 모 지하 1층 지상2층 |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 건축 설계^감리 조성룡도시건축 | 조경 설계 서안조경 | 시공 KR건설 |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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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지앤아트스페이스 지종진 | 설계 기간 2004. 1 ~ 2006. 12 | 공사 기간 2007. 2 ~ 2008. 6
↑ 레스토랑과 이벤트 홀/아트숍. 사진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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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31 ↑↑ 레스토랑 앞, 작은 도시의 광장과도 같은 중심 마당. 사진 김재경. ↑ 색유리가 눈에 띄는 갤러리와 아트숍. 지앤아트스페이스는 이 밖에도 공방, 이벤트 홀,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구성된 복합 문화 시 설이다. 사진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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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카페 입구에서 멀리 백남준아트센터가 보인다. 사진 김재경. ↑ 전체 배치도 | 01 갈천 02 신갈고등학교 03 지앤아트스페이스 04 백남준아트센터 05 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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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길. ‘백남준아트센터로 통하는 길과 마당’의 개념이 제안되었다. 사진 김재경. ↑ 단면도 | 01 갤러리 02 어린이창작스튜디오 03 창작 스튜디오 04 아트숍 05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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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 | first floor plan 11 갤러리 12 레스토랑 13 이벤트홀 14 기계실 15 마당 16 못
2층 평면도 | second floor plan 21 갤러리 22 아트숍 23 카페 24 아카데미 25 창작스튜디오 26 기마실 27 야외행사마당 28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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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평면도 | third floor plan 31 사무실 32 리빙숍 33 어린이창작스튜디오 34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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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면도
집담회 -
새로운 관계, 드러난 풍경
(좌로부터) 조성룡(사진 지종진), 김주원, 최춘웅 조성룡 \ 1944년 일본 동경 출생으로 인하공대 건축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5년 우원건축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83년 서울아시아경 기대회 선수촌 및 기념공원 국제 설계 경기에 당선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작업을 시작했다. 광주 의재미술관, 서울 올림픽 공원 소마미술관, 한강 선유도공원, 해인사 신행 문화 도량 설계 경기에서 1등 당선하였고 1987년 서울시 건축상, 1993년과 2003 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했다. 기타 주요 작업으로 인하대 학생회관, 합정동-청담동 주택, 양재287.3, 해운대 빌리지, 지앤아트스페이스 등이 있으며, 최근 고암 이응노 생가복원 및 기념관 설계 경기에 당선되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김수근문화재단 부설 sa/서울건축학교의 교장,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2004-2009)을 역임하였고, 현재 도시건축집단ubac/group urbanistic architecture/조성룡도시건축 대표이며,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석좌교수, 공공 건축 계획을 위하여 성균관대학에서 설립한 성균건축도시설계원 원장으로 대학원에서 설계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공동 저작으로 『디자인 사전』, 『정보화 사회의 건 축가』, 『건축이란 무엇인가』가 있으며 <마당의 사상-신세대의 한국 건축 3인전>(일본 동경 Gallery MA 1989), <베니스 비엔날레 Wide Work : ZIEN Art Space
건축전> 한국관(이탈리아 2002)전시회에 초대되었고 2006년에는 같은 전시회의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다. 지난 1년 동안 <s(e) oulscape-towards a new urbanity in korea>란 주제로 공동 건축전이 유럽 순회를 마쳤다. 김주원 \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AA School Diploma를 졸업하고 런던의 Munkenbeck+Marshall, John Robertson Architects, 서울의 m.a.r.u에서 근무하였다. 최근작으로 공주시 의당면 수촌1리 마을회관(준공), 공주시 감영지구 도심재생계획안, 서울역 북부역세 권 현상설계안, 현대미술관 서울관 현상설계안이 있다. 최춘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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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GSD와 UC 버클리에서 건축 학/석사를 받고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컬럼비아 대학원, 파슨스 디자인 대학에서 가르쳤 다. 현재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5개의 최우수작 안에 들었다.
Presentation Time 사진 제공 | 조성룡도시건축
조성룡 ▷ 지앤아트스페이스 전에 선행된 두 개의 작 업이 있습니다. 해인사 신행 문화 도량과 주말 주택이 그것인데요, 세 개의 프로젝트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시에 진행된 것과 마찬가지에요. 우선 선행된 두 프 로젝트를 포함하여 이전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지앤 아트스페이스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 의재미술관(1999-2001, 김종규와 공동 설계) 의재미술관의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은 멀리 새인봉을
이 이용하는 등산로이기도 하지요. 결국 목적지가 새 인봉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이 봉우리의 풍경이 미술
1. 의재미술관.
관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했습니다. 전시동 사이의 경사로를 따라 올라오면 평지가 되는 부분에
지요. 그런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우리가 공사 과정
서 멀리 새인봉을 보게 됩니다. 움직이다가 정지되는
에서 배제된 데다가 7개월의 공사 기간이라는 악조건
부분에서, 극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지요. (그림 1)
속에서 일을 해야 했어요. 작품 발표를 안 했을 정도 로 완성도가 좀 떨어집니다. 마감재도 별로 내키지 않
▷ 소마미술관(2003-2005, 협동 설계 최수익)
는 화강석을 썼는데, 그나마 얇은 판석보다 조금 두꺼 운 걸 써서 다행이긴 해요. 의재미술관보다 긴장을 푼
소마미술관의 주안점은 주차장으로 분리된 두 개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2)
야외 조각 공원을 연결하는 데 있어요. 관람하는 사람
이 무렵 제게 영향을 준 작업이 몇 개 있습니다. 먼
과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동선에 신경을 많이 썼
저 바르셀로나 프로젝트(Eduard Bru)는 외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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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로가 있는데, 이 미술관 앞의 길은 시민들이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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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무등산에는 여러 개의 등
2. 소마미술관배치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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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로셀로나 프로젝트. 5
4. 랜드스케이프 파크. 5. west8의 작업.
6. 해인사 신행 문화 도량. 7. 정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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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과 건축의 본질이 잘 맞는 프로젝트이지요. 환경의
▷ 해인사 신행 문화 도량(2004-2005, Francisco Sanin
문제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또 West
과 공동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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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철의 성보미술관을 포함한 대지 위에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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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남양주 주말 주택.
에 대해 깨달음을 준 작품입니다.(그림 3) 지역의 문
로젝트는 빈 공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작업입
화 풍토로부터 감흥을 살린 것이 너무나 근사했어요.
니다. 검정과 흰색의 조개껍질을 깔아서 만든 건데요,
또 하나는 선유도 공원의 단서가 된 독일 뒤스부르크
밝은 색의 새들은 흰색에, 검은 색의 새들은 검은 쪽
(Duisburg)의 풍경 공원입니다.(그림 4) 기존의 철강
에 앉는다는 이야기도 재밌습니다.(그림 5)
공장 시설을 재활용하여 조성한 공원인데, 장소적인
8의 작품도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특히 네덜란드의 둑과 집 터 사이의 빈 땅에 제안한 프
로운 사찰 건축의 방향을 제시한 프로젝트입니다. 새
을 계획해 보고 있지요.(그림 7)
로운 개념의 법당, 문화센터, 부대시설 등이 요구 조건 이었고요. 우선 해인사의 공간 구성 분석이 선행되었 습니다. 해인사는 화엄 사상을 바탕으로 경사지의 위 계에 따라 세 개의 중심 마당과 그것을 둘러싸는 건물 로 구성되어 있지요. 이 영역을 경내(境內, precinct) 라는 하는데 이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어요. 영역보 다는 조금 더 좁은 의미로 공유의 개념을 담고 있지 요. 해인사의 공간 구성 원리를 새로운 프로젝트에 적 용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프란시스코 사닌의 스케치 는, 사찰 건축에서 중요한 개념인 경사지에 집을 어떻 게 앉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죠. 석축을 쌓아 그 앞 에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을 두고 집을 앉힙니다. 즉 경 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땅에 터를 어떻게 잡을 것 인가, 또 외부 마당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주안점 이었던 프로젝트에요.
▷ 남양주 주말 주택 (Weekend house, 2004-2006) 해인사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거의 동시에 진행한 프 로젝트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지만 사정에 의 해 공개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 집은 거실 과 서재, 침실, 식당, 화장실 등의 기능을 4개의 매스 로 분리시켜 구성한 것이 특징이에요. 방과 마당으로 만 이루어진 집이지요. 3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이 런 실험적인 걸 하자니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1:1의 모형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이 현장에서 설계를 진행 했습니다. 제 작업 중에서 스케치를 가장 많이 했던 작품이지요. 흙, 나무, 철판 등 자연 소재를 실험적으로 사용하였 는데, 시행착오가 많은 만큼 부수고 새로 짓고를 반복 하기도 했습니다.(그림 8)
또 이곳은 해인사를 가기 위한 길목이라는 점에서 지 앤아트스페이스와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벨이 다른 마당을 거쳐 올라가거나 내려와야 하지 요. 외부 공간과 대상과의 관계, 이 상관관계를 어떻 Wide Work : ZIEN Art Space
게 엮고 사람들의 동선이 어떻게 흐를 것인가(fluid
법규와 땅이 만든 지하
space), 또 어떻게 풍경이 드러날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실현이 되었다면 건물의 집합적 개념과 풍경의 의미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불발이
김주원 ▷ 오늘 이전에도 두어 번 이곳을 다녀간 적인
되어서 무척 아쉬워요.(그림 6)
있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를 마주 보고 담담하게 서
대신 요즘 하고 있는 한성대 언덕배기의 오래된 사찰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어떻게 이 프
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정각사)에서 레벨 차가 나는 세
로젝트를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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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마당을 두고 건물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흐름이 있는 공간을 구성하는, 즉 해인사 프로젝트의 축소판
조성룡 ▷ 연도별 스케치가 보여주듯이 장거리 레이스
였어요. 2004년에 시작되었는데, 건축주에게 제안 받
mass study
았을 무렵, 막 백남준 아트센터 계획이 발표되어서 막 막했던 기억이 나네요. 도예를 전공한 건축주는 이곳 에 도예 미술과 관련된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자연녹지지역 용지가 가지는 20% 건
200501
폐율 제한에서 발생했지요. 제가 맡기 이전에는 다른 건축가들이 용적률 60%의 3 층짜리 건물을 제안한 모양이에요. 나머지 80%의 빈 땅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 없이 말입니다. 어느 날 저 를 찾아 오셨지요. 약간 경사진 지형인데 조금만 손 을 보면 지하가 만들어지겠더라고요. 땅을 보고 발상
200507
의 전환이 이루어진 셈이죠. 20% 건폐율 제한을 극복 하기 위해 대부분의 공간을 지면 아래에 배치하여 ‘ 백남준아트센터로 통하는 길과 마당’의 개념을 제안 했습니다. 200602
백남준아트센터와 무척 다릅니다. 김주원 ▷ 만약 백남준 아트센터가 원래 안인 키르스
200605
텐 쉐멜(Kirsten Schemel)의 매트릭스(Matrix)로 지 어졌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조성룡 ▷ 처음부터 원안을 의식하고 만든 거예요. 백 남준아트센터와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집을 고민했지
200702
요. 법규 제한과 땅의 해석에 따라 지하를 파고 장소 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정해졌지만 더 발전을 못 시키고 고민하고 있다가 백남준아트센터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재료가 구체화되고 지붕의 형태가
roof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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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용한 형태가 거대한 매스로 땅을 가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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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웅 ▷ 배치도만 놓고 봐도, 땅을 해석하여 적극적
백남준아트센터 앞 도로에서 바라보다. 대부분의 건물이 노출 콘크리트와 티타늄 아연판 마감의 경사 지붕 건물인 반면, 레스 토랑과 카페 벽면은 적삼목, 이벤트 홀은 유리 커튼월로 마감했다.
조금 달라진 거죠. 최춘웅 ▷ 지붕은 이전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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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와 관련이 있는 건지요?
백남준아트센터에 이르는 패시지, 플루이드 스페이스
조성룡 ▷ 이 일을 맡고 2년쯤 지난 2006년에 문득 백 남준 아트센터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떨까를 생각해 봤어요. 유리 건물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려다볼 거
최춘웅 ▷ 지하의 레스토랑과 갤러리, 지상의 카페와
라고 생각했지요.
작업장(workshop), 그리고 도자 가마로 통하는 길들
실제로 백남준아트센터의 관장실에서 무척 잘 보입니다.
이 골목길을 연상시킵니다. 다양한 레벨의 마당과, 지
예전에는 이런 지붕을 한 적이 없는데 순전히 서비스 개념
상의 데크와 브릿지가 공간의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
이지요.(웃음) 상업적인 건물인 만큼 일반 사람들이 보기
게 유도하고 있고요. 이 프로젝트에 적용된 구체적인
에도 익숙한 모양이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도 있었고요.
개념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성룡 ▷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들이 얽혀 있어서
미가 있죠.
딱히 하나로 설명할 순 없겠지요. 물론 백남준아트센 터로 가는 패시지(passage)로서 다소 드라마틱한 길
김주원 ▷ 집합의 개념이 언제부터 작품에 고려되기 시
을 제안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건축가의
작했는지요?
의도일 뿐이지 실제로는 크게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닐 수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새로운 이야깃
조성룡 ▷ 공동 주택을 하면 집합의 문제를 생각할 수
거리를 설정하여 오히려 부정적인(negative) 요인들
밖에 없지요. 1990년대 들어 해운대 빌리지(1990)를
을 긍정적인 요소로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는 점입니
하면서 경사지와 관련된 집합에 대한 문제를 조금씩
다. 도시의 작은 스트리트(street)를 만들어 내자, 그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지앤아트스페이스를
래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흐름과 관련된 길과 마당을
하기 전에 진행한 주말 주택은 작은 집에서도 집합체
구성하고 몇 개의 기능, 즉 갤러리, 식당, 공방 등과
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앤아트스페이스
관계를 이루게 하자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처럼 기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면서 경계가 없는
수 있습니다.
집이지요. 하나의 출입구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자발적이고 풍요로운 활동을 보장한다 고 생각해요.
다는 것은 건축주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 을 것 같은데요? 더욱 더 편리한 것만을 찾는 현대 사 회에서는 말이지요. 최춘웅 ▷ 몇 의 건물이 집합적으로 구성되어 마치 지 표 아래는 작은 마을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조성룡 ▷ 주택은 다행히 주말 주택이어서 가능했습니 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오래된 우리의 생활
조성룡 ▷ 작은 건축이라도 도시적인 관점에서 볼 필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지앤아트스페이스나 주
요가 있고, 또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재미술관
말 주택은 이런 옛 방식을 지속시킬 방법에 대한 탐구
을 할 무렵부터 ‘풍경의 집합체’란 말을 썼는데, 집합
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
된 것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촌의
는 것은 전통적인 형태나 스타일이 아니라 생활과 관
한옥도 한옥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합된 상태
련된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근대 사회의 학교나
가 중요한 것이지요. 개별적으로 보면 대부분이 집장
병원을 보면, 적은 비용으로 효율을 높이기 위해 스스
사가 만든 집들이지만, 그것들이 집합된 것은 큰 의
로를 감시하는 팬옵티콘 형태로 변화해 왔죠. 가장 관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김주원 ▷ 기능이 분리되고 경계가 없는 집을 설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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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집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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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갤러리에서 바라본 입구 부분. 20% 건폐율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대부분의 공간을 지면 아래에 배치했다. 사진 김재경.
리하기 쉽고 통제가 가능한 형태로 말입니다.
를 적절하게 절토하여 4동의 건물들을 앉히고 연결 장
인하대학교 학생회관(1984-1986)에는 하나로 정해진
치들을 만들어서 영역을 구분하고 있기도 해요. 아무
출입구 대신 8개의 문을 두었었죠. 학생회관을 신문
튼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이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사, 방송국, 식당, 우체국, 매점 등이 다 들어 있는 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시라고 봤어요.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든 출입이 가능
점인 것 같습니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물론 관리 측면에서 학교에 서는 난색을 표했지만, 저는 학교 시설은 학생의 것이
조성룡 ▷ 도시에서는 작은 주택이나 특별한 건물을
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계를 두지 않겠다는 생각은 해
제외하면 건축 자체가 공공적인 성격을 띠어야 한다
인사 프로젝트에서 조금 더 강해졌고 이제는 제게 중
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움직임이 생길 수 있
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지요. 사적인 건물에서도 내부의 프라이빗(private)한 공간은 어쩔 수 없겠지만 도시와 만나는 접점에서는
최춘웅 ▷ 실제로 지앤아트스페이스도 굉장히 개방적
공공적인 성격을 가져야 훨씬 더 건강한 집이 된다고
이에요. 누구든 접근이 가능하죠. 하지만 동시에 대지
믿어요.
인공 연못의 이유
이드(cascade) 구조로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까 지는 못했습니다. 최춘웅 ▷ 실제로 빗물을 모아 두기도 하나요?
김주원 ▷ 이 집과 관련하여 조금 구체적인 질문으로
조성룡 ▷ 물이 모자라면 보충하고 물이 넘치면 펌프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갤러리와 레스토랑 사이의 인
퍼냅니다. 석 대의 펌프가 준비되어 있지요. 건물들이
공 연못이 매우 인상적인데요, 지앤아트스페이스에서
20cm 정도의 단 위에 앉혀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
어떤 의미를 갖는 건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해하시면 됩니다.
조성룡 ▷ 비가 많이 왔을 때 계곡이나 다름없는 이곳
김주원 ▷ 그렇다 하더라도 갤러리와의 관계를 적절히
으로 물이 모일 것을 대비해 커다란 물 저장소를 하나
고려하신 것 같은데요? 물 위에 비친 건물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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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둔 거지요. 사실 건축주는 낙차가 나는 캐스케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북쪽 언덕의 빽빽한 참나무 숲과 더불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동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 김재경.
Wide Work : ZIEN Art Space 45
갤러리와 레스토랑 사이의 인공 연못은 북쪽의 참나무 언덕을 비추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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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 나무를 중심으로 보는 입면의 변화. ←
요. 1970년대 초에 3년 정도 그 분의 어시스턴트로 프 로젝트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은 평소 미스 반 데 로에의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고, 자연스럽게 미스 의 건축을 알게 되었지요.
움직임과 시퀀스, 그리고 영화
최춘웅 ▷ 또 다른 측면으로 미스의 건축을 연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스가 설계한 미술관을 보면, 그 리드에 입각한 완전한 건물을 지표면 위에 세우기 위
김주원 ▷ 미스의 공간은 단순한 박스 형태가 주는 느
해 땅 속에는 많은 걸 묻어 놓죠. 실질적인 기능 공간
낌보다는 면의 배열에 의해 공간들이 상호 관입되는
들은 지하에 넣는 겁니다. 지앤아트스페이스 역시 노
것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내부 공간뿐만 아
출 콘크리트와 유리 혹은 나무로 된 집들은 지상에 위
니라 외부와의 연속성이 강조되지요. 그런 점에서, 섣
치해 있고 나머지 기능들은 땅 속에 들어가 있지요.
불리 단정 짓긴 어렵지만, 이 미술관의 사이 공간과 비 교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조성룡 ▷ 그리드를 일부러 의식한 건 아니고, 집합된
이 있습니다. 사실 미스도 굉장히 투시도적인 공간을
건물일 때 과연 어떤 모듈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중시했다고 보는 것이, 2차원적인 배치지만 실제로는
있었어요. 이 집은 5.4m 모듈로, 의재미술관의 모듈이
변화하는 공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거죠.
단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한 번 경험했기 때
물론 직각 체계 안에서 말이에요. 그렇다면 이 집에서
문에 미술관의 폭으로는 괜찮다고 본 거죠.
보이는 사선들은 움직임에 따라 점점 시각을 벌리면
요즘 하고 있는 청운동 주택에도 그 모듈이 여전히
서 건너편의 백남준아트센터의 파사드를 보여주겠다
적용되고 있고요. 의재미술관과 관련해서 전봉희 교
는 의도로 봐도 되는 건지요.
Wide Work : ZIEN Art Space
수가 우리나라 집에서 볼 수 있는 18자(약 5.4m, 약 18ft)의 의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지요. 아무튼 스
조성룡 ▷ 물론 다분히 그런 의도가 있습니다. 백남준
텝들은 굳이 5.4m를 고집할 필요가 있냐고 하지만 그
아트센터의 형태가 정해지면서 그것을 의식하면서 조
건 처음부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출발하느냐의 문제
정을 하는 거지요. 또 사람들의 움직임과 레벨 차이에
일 거예요.
의한 시퀀스의 변화에 따라 아래 레벨에서 위 레벨로 공간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혹은 그 반대로의 상 황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요. 저는 우리의 건축이 상당히 퍼스펙티브(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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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림상으로 완벽한 퍼스 펙티브가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느끼는 퍼스펙
공간에서 내부 공간으로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그것
간 안에 붙들어 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을 교정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공간
보는 순간, 장면들은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훨씬 이
을 움직이면서 감흥할 만한 포인트를 찾아내는 거예
전에, 전혀 다른 상황에서 찍힌 거지만 보는 사람들
요. 건축에서 이처럼 액티비티(activity)를 위주로 할
은 거의 실시간에 일어난 것처럼, 또는 자신의 문제인
것인가, 아니면 비주얼에 치중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게 영화의 마술적인 힘이라
물이 다를 텐데, 개인적으로는 액티비티에 더 비중을
고 이해해요. 현재로부터 시간과 공간을 분리시켜 사
두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있
람들을 붙잡아 두는 힘, 그게 존경스러운 거죠. 하지
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
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시간과 공간은 사라져 버려
도 하지요. 영화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화면 속을 드
요. 반면, 건축가는 그렇게 할 수 없죠. 건축은 보기 싫
나들고, 뭔가 거기서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어떤 때는
어도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내가 실패했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라도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고, 어떤 사람이 어떤 시
쉴 새 없이 변화하기도 합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간에 어떤 경험을 할지 예측할 수 없고, 그것을 순전
영화는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의 초기 영
히 건축가의 경험과 추측과 상상에 의해 만들어 내야
화와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인데, 동서양
만 하고, 또 그것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사용하는 사람
의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영화계의 두 영화 작가가
들에게 공감을 얻어야만 하죠. 그래서 건축 작업이 어
공간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사물간의 관계를 어
려운 거예요.
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런 것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건축가들도 그것을 논리화시키거나 디자인으 로 바꿔 주지 못할 뿐이지, 유사한 작업을 하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최춘웅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퍼스펙티브란 건축
사람/사물과 공간의 관계 맺기
에서 흔히 말하는 투시도는 아닐 겁니다. 결국 사람이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풍경들과 어우러질 때 느끼는 것들이라 생각되는데요, 풍경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최춘웅 ▷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건축
말씀해 오신 부분이기도 하지요. 풍경과 동양적인 외
에서는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부 공간, 움직임, 사람과 자연의 관계 등, 선생님의 건 축에서 늘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영화적인 경험
조성룡 ▷ 일상생활에서는 모든 공간이 사람/사물과
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합니다.
관계를 맺고 있지요. 그리고 건축가가 만드는 것은 그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조성룡 ▷ 영화는 거의 두세 시간 동안 사람들을 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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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 건축은 외부
러한 관계 맺기가 아닐까 싶고, 또 나름대로 관계 맺
플러 나무를 중심으로 보는 입면의 변화.)
기를 위한 방법론이 있을 거예요. 제겐 무엇보다 사람 들이 그 공간 안에서 느끼는 감흥이 중요한데 그것은 때에 따라 다를 겁니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의 심리와 취향, 계절과 날씨, 지형 등과 관련이 있을 텐데, 저는
재료1. 노출 콘크리트
그런 것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결국은 풍토의 문제지요. 정기용 선생과 함께 해결해 보고자 하는 과 제도 풍경, 풍토적 의미를 어떻게 건축의 중요한 요소 로 만드는가, 이고요.
김주원 ▷ 날씨와 관련하여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에
실제로 저는 건축에서 날씨를 많이 고려하는 편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노출 콘크리트는 좋아서 쓰
요. 건물의 위치, 땅이 가지는 바람과 빛의 양 등등….
기도 하고, 또 쓸 만한 재료가 없어서 쓰기도 한다는
이 집의 경우는 굉장히 따뜻하죠. 뒤로 산이 버티고
데, 어쨌든 이 마감재는 표면의 광택이 매우 중요하
있어서 같은 남향이라고 하더라도 백남준아트센터보
잖아요. 하지만 역시 세월과 날씨 때문에 이끼도 생기
다 훨씬 따뜻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조건을 어떻게 잘
고 변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하
살려서 땅에 건물을 세팅할 것인가, 이것이 방금 하신
실 때 이러한 시간에 따른 변화마저도 포용을 하신 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 궁금합니다.
최춘웅 ▷ 막연한 질문이지만, 추측컨대 외부 공간의 풍
조성룡 ▷ 우선 할 수 없어서 쓴다는 이야기도 맞습니
경에서도 그러한 영화적 기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
다. 작은 예산 때문에 쓸 만한 자재가 없는 경우가 그
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렇지요. 튼튼하다는 장점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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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자체의 변화가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노출되어 있으 조성룡 ▷ 뒤쪽의 학교 경계면에 큰 포플러 나무가 두
니까 날씨에 따라 변화가 늘 생기죠. 물론 오염이 너
그루 있습니다. 어릴 적 물가에서 흔히 보던 것인데 이
무 심하면 문제겠지만….
제 굉장히 귀한 나무가 되었지요. 이 집에서는 이 포플 러 나무를 풍경의 모티브로 삼아 볼 수 있을 거예요.
김주원 ▷ 작업에 노출 콘크리트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입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어느 위치에서든 늘
언제부터인지요?
그 자리에 서 있지요. 하지만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진 않아요. 입구에서 점점 안으로 진입하여 맨 뒤쪽의 작
조성룡 ▷ 1986년에 합정동 주택에서 노출 콘크리트를
업장을 지나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이 나무는 계속 잔
처음 썼습니다. 당시 별로 쓸 만한 재료가 없기도 했
상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게 영화잖아요. (그림 포
지만, 일본이나 외국 건축가들이 하고 있는 것을 우리
라고 못할 것은 없지 않겠느냐는 오기 때문이기도 했
조성룡 ▷ 네. 코팅 합판과 유로폼을 썼습니다. 유로폼
어요. 레미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건축주도 쉽게
을 쓴 부분에는 문제가 좀 생기긴 했어요.
받아들여 줬고요. 하지만 국내 사례나 기술자가 없었 기 때문에 정말 악전고투했었죠. 문제는 코팅 합판이 었어요. 당시는 국내에 코팅 합판이 없을 때였는데, 노 출 콘크리트를 치려면 물이 새지 않는 합판이 필요했
재료2. 적삼목
거든요. 1960년대 김수근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들은 미국에서 들여온 미송을 썼어요. 하지만 그건 굉장히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었죠. 할 수 없이 보통 합판에 우레탄과 에폭시 등 각종 수지를 입혀 테스트를 해 가
최춘웅 ▷ 대부분의 건물이 노출 콘크리트와 티타늄 아
면서 건물을 지었지요. 결과는 실패였어요. 그래도 좋
연판 마감의 경사 지붕 건물이지만, 레스토랑과 카페
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벽면은 적삼목을 썼고, 또 이벤트 홀은 유리 커튼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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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위한 남창, 풍경을 위한 북창. 사진 김재경.
최춘웅 ▷ 여기서 쓰신 방법은 두 가지인가요?
그냥 쓰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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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했더라고요. 그런데, 적삼목은 아무런 처리 없이
내부 계획은 햇빛과 내부 공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요한 이슈였다. 사진 김재경.
조성룡 ▷ 위험 부담은 있지만 그렇게 합니다. 적삼목
최춘웅 ▷ 작년에 의재미술관을 봤습니다. 하얗게 바
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데 어떤 경우는 뒤집어 사
란 적삼목이 뒤쪽의 나무들과 잘 어우러지던데요, 낡
용하기도 해요. 원래 제재목이 공장에서 켜서 나올 때
았다는 느낌보다는 원래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
는 한쪽만 대패질을 하거든요. 보통은 대패질이 된 쪽
였어요. 혹시 적삼목 이외에 선호하는 나무 재료가 있
을 쓰는데 저는 대패질이 안 된 뒷부분을 쓰지요. 물
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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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론 건설 회사를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대 표적으로 선유도공원에서 그렇게 썼고요. 의재미술관
조성룡 ▷ 선호하는 건 아니고 주목을 실험적으로 써
은 판재가 아닌 3cm×5cm의 각목을 썼어요. 재료의
본 적이 있어요. 주말 주택에서였는데, 그 프로젝트에
두께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다르지요. 또 두껍기 때문
서는 우리 나라에서 공산품으로 나오지 않는 기능적
에 문제가 생기면 대패질을 해서 새 것으로 만들면 되
인 자재를 제외하고 수입 재료는 쓰지 않았습니다. 그
고요.(웃음) 아무튼 이거냐 저거냐를 놓고 선택할 때
배경에는 건축주가 요구한 4가지 조건이 있었지요.
저는 조금 더 거친 쪽을 선택하게 돼요. 요즘은 건축
자연적이고(natural), 미니멀(minimal)하고, 소박하
주가 원하기도 합니다.
고(humble), 편안한(comfortable) 건축이 되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저의 원칙이 우리 재료만
쓴다는 거였고요. 그래서 찾은 것이 주목이었습니다.
습니다. 다만 이 집은 남향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중요
강원도에서 나무를 찾았는데 건축 자재에 적합한 규
했지요. 햇빛과 내부 공간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것
모가 될 것 같았어요. 현장에서 6개월 간 비를 맞게 하
이 중요한 이슈였어요. 남쪽의 창을 통해 빛을 받지만
고 테스트를 해서 썼지요. 처음에는 주색의 붉은색을
그 창을 통해 보이는 것은 북쪽이에요. 이러한 사실은
띠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재미술관처럼 거의 흰색에
매우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 민가를 10년 정도 관찰
가까운 회색을 띠게 되었습니다.
하면서 편안함과 특별함의 이유를 찾아봤는데, 대부 분의 집이 남향으로 양지바르고 여름에는 뒤쪽의 문
김주원 ▷ 써 보고 싶은 다른 재료가 있나요?
을 열어 동산을 바라보기 때문이었어요. 얼마나 근사
조성룡 ▷ 써 보고 싶은 재료보다 쓰고 싶지 않은 재료
해요. 일본의 민가는 정원이 대부분 앞쪽에 놓여 있지
는 있어요.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편리한
요. 남향을 안고 있으면서 바라보는 것은 나무나 돌의
재료라고 하지만, 녹슬지 않고 변화하지 않죠. 또 화
뒷그림자입니다. 구성이 아름다울지 몰라도 실제 자
강석은 좋아하는데 화강석 판석은 싫어해요. SOM의
연을 음미할 수는 없지요. 우리는 그것을 다른 방법으
레버 하우스와 미스 반 데 로에의 시그램 빌딩은, 사
로 해결하고 있어요. 앞마당은 아무 것도 없지만 빛
진으로 보면 둘 다 외장재가 알루미늄인 것 같지만 사
이 들어오고 북쪽을 열었을 때는 감동적인 풍경이 들
실 시그램 빌딩은 브론즈 덩어리에요. 실제로 가서 보
어오는, 즉 빛과 풍경을 모두 취하고 있는 거예요. 저
면 확연히 틀리지요.
는 그것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서 직접 건 축에 적용해 보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도 남쪽으로는 빛을 받아들이고 북쪽으로는 밝은 자연을 볼 수 있게 창을 구성하였죠.
빛을 위한 남창, 풍경을 위한 북창 갤러리 벽면 색유리의 사연 최춘웅 ▷ 실내 마감 역시 노출 콘크리트입니다. 바깥 재료가 안으로 따라 들어온 것이지요? 더불어 실내 계 획의 주안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김주원 ▷ 갤러리 부분에 색깔 있는 창을 쓰셨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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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인지. 일본과 우리의 민가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
조성룡 ▷ 내부 콘크리트 마감은 크게 의미를 갖지 않
습니다. 여기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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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선생님의 작품은 무채색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
조성룡 ▷ 인공의 색을 쓴 것은 거의 처음이에요. 건축
고요. 당시는 회색 도시에 진저리 치던 시절이에요.
주가 도예는 물론 회화 전시도 가능한 전시장을 원했
그때 개인적으로 접하게 된 것이 환경색채입니다. 프
는데, 무엇이든 전시가 가능한 공간이 되도록 벽을 다
랑스에서 발전된 개념이지요. 일본 서적을 통해서였
막아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나중을 위해서라면
는데, 건물의 집합이나 도시에 색채를 어떻게 적용해
일단 뚫어 놓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이었죠. 갤러리의
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었어요. 지역의 자연적인 요
성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장치를 만들어 놓자
소, 즉 흙과 나뭇잎과 돌과 그 밖의 자연적인 것으로
는 생각이었어요. 콘크리트 벽이다 보니 준공 후 깔끔
부터 색을 채집한 다음 표본을 만들고 분포도를 따져
하게 구멍을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결국 절
서 배경이 되는 색과 강조가 되는 색을 정하는 것이
충안으로 찾은 것이, 일단 창을 뚫고 준공할 때는 색
환경색채였지요. 상당히 효과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했
깔이 있는 유리로 막자는 거였습니다. 회색이 주를 이
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아시아 선
루니까 색깔을 좀 쓰자고 합의를 본 거예요. 그런데
수촌에 처음으로 적용해 보았고요. 초기안에는 훨씬
공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원래는 색 부분이
많은 색을 썼는데, 해 놓고 보니까 아닌 거예요. 개념
안쪽으로 들어가고 반투명 유리가 바깥쪽으로 끼워져
은 알았지만 실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당시 김종
색깔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도록 계획한 건데 거꾸로
성 선생이 자문위원이었는데 색을 좀 없애라고 하시
시공이 된 거예요. 선택된 색이긴 하나 굉장히 튀는 색
더군요.(웃음) 그 다음부터는 건물에 색깔을 안 썼어
이 되고 말았죠. 건축주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뜯어내
요. 의재미술관이나 선유도공원이나 전부 소재 자체
고 다시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비용, 또 여러 가지 사
의 색입니다.
정 때문에 그냥 놔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그런 사연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색채를 잘 쓰 지 않는 편인데, 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의아
조성룡 건축의 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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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ZIEN Art Space
하게 묻곤 하지요. 왜 안 하던 짓을 하냐고.(웃음) 김주원 ▷ 그동안 색을 전혀 쓰지 않으셨던 건가요? 색 을 쓰고 싶을 때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최춘웅 ▷ 아까 선생님의 작업과 미스와의 관련성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저는 오히려 비주류 스타들의 작
조성룡 ▷ 인하대학교 학생회관에서는 밝은 색채를 썼
업과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시기적으로 대가
었죠. 당시는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특히 슈
들의 활동에 반동이 일어날 때 작업을 하셨고, 또 당
투트가르트 갤러리에 푹 빠져 있을 때에요. 포스트모
시 부각되던 이슈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
더니즘의 영향이 있었지요. 아시아 선수촌에도 그랬
아요. 실제 좋아하는 작가들도 조용히 자기 작업에 몰
몇 사람만 인정받는 분위기였죠.
김주원 ▷ 저는 아예 연결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늘 우
조성룡 ▷ 롤 모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가들의 영
리 건축인들의 불만은 과연 한국적인 건축가가 있는가,
향을 받았던 것도 아니에요. 단지 김종성 선생과 3년
였지요. 저는 선생님께서 그런 불만들을 좀 해소시켜 주
정도 간헐적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분과 대화하기
시지 않았는가, 생각하는데요, 만약 어떤 건축가를 언
위해 미스 책을 열심히 본 정도지요. 선생은 워낙 설
급하셨다면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거지 롤 모델을
명을 하지 않는 분이셨고, 미스 역시 글로 이야기한 바
찾고자 그러신 것 같진 않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아직
가 거의 없었어요. 순전히 지어진 집과 스케치로 판단
도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시고요.
하고 김종성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과 맞춰 보고, 그런 식으로 혼자서 배운 거예요. 물론 딱히 미스를 공부했
최춘웅 ▷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작가들에 대
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한 언급은 아마도 생각이 좁아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
1980년 들어서 아시아 선수촌 할 때, 당시 우리나라
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좀 덜하지만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는 기껏해야 마포, 반포, 잠실 단지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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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하는 북유럽 쪽 건축가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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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이벤트 홀과 2층의 아트숍. 브릿지는 공간의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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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홀에 딸린 데크. 어린이 야외 전시장으로 쓰고 있다.
갤러리와 아카데미 사이의 마당.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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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한 거였어요.
우리 나라의 건축을 보면 몇 개의 엘리먼트(ellement)
상당 부분 외국인이 개입했다고도 하고요. 아시아 선
만 가지고 그것을 증폭시키는 작업이 전부인양 합니
수촌의 모델로 삼을 만한 게 없는 거예요. 1300세대
다. 그건 아니지요.
의 고층아파트 단지를 살아 본 적도, 설계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단지라는 개념 자체를 모를 때였어요. 그 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꾸준히 일본 책들을 읽어왔는데 그게 힘이 되었어요. 김수근 선생 이나 김중업 선생 아래서 일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요.
1983년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최춘웅 ▷ 그런 상황에서 단단한 입지를 굳혀 오신 것 이 더 의미 있어 보입니다. 김주원 ▷ 말씀을 듣다 보니 선생님 세대만 하더라도 건 조성룡 ▷ 개인적으로는 랄프 어스킨(Ralph Erskine)
축을 차근차근 제대로 배우는 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이나 시구르트 레베렌츠(Sigurd Lewerentz)를 많이 읽었어요. 특히 어스킨은 작품보다 건축하는 태도와
조성룡 ▷ 감당이 안 될 정도였죠. 그 중에서 1980년대
일상의 삶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요란스럽지 않게
를 주도했던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은 참으로 드라마틱
조용히 좋은 건축을 남겼지요.
했어요. 창피하지만 그 당시 제가 한 건물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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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포스트모더니즘이 완전히 한국 건축계를 휩 김주원 : 생각과 말이 뛰어난 건축가도 있고, 말은 별
쓸 때 우리는 그것의 오리진(origin)을 몰랐지요. 포스
로 없지만 남긴 작품이 좋은 건축가도 있고, 꼭 뭐가
트모더니즘이 뭔지도 정확히 몰랐고요. 미국을 베낀
좋다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일본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실정이었어요. 예를 들 어 <블레이드 러너>나 <베를린 천사의 시> 같은 포스
조성룡 ▷ 요사이 읽은 책 중의 하나가 『건축을 말한다
트모던 영화가 나오면,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같은
(Words and Buildings)』(에이드리언 포티 저)입니다.
데이비드 하비의 글을 인용하면서 영화의 무대가 되
건축과 언어의 관계를 분석한, 매우 재미있는 책이에
는 도시에 열광했지요. 또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요. 그 책을 보면, 우리는 너무 한쪽으로만 가고 있는
<블랙 레인>에 다카마츠 신의 기린 프라자 빌딩이 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 하는 건축도
쿠자의 본거지로 설정된 것을 보고 난리를 치고….(웃
있고, 그림으로 보여주는 건축도 있고, 또 실제 지어
음) 마치 포스트모더니즘이 동시적으로 당대를 반영
진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축도 있는 거지요. 요즘
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작업하던 때가 1980년대예요.
조성룡 ▷ 개인적으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포스트모더
궁금합니다.(웃음)
니즘에 대한 일본 건축가들의 생각을 책으로 꾸준히 접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
조성룡 ▷ 논현동에 있는 바로크(1988)는 필립 존슨에
련된 책들을 번역해서 자국의 건축가들에게 끊임없
이소자키를 합쳐 놓은 거지요.(웃음) 인하대학교 학생
이 나눠 준 아라타 이소자키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
회관 역시 좋게 평가되는 부분은 있지만 형태만 놓고
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번역한 책의 원전은 유럽의
본다면 그 범주에 속하고요. 아시아 선수촌에도 조금
것이죠. 미국이 번역한 걸 일본이 들여왔고, 그걸 다
이상한 키치가 남아 있긴 해요. 근데 중요한 것은 그
시 우리가 받아들인 거예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게 다 가짜 경험이란 거지요. 그게 가짜고 잘못되었다
4.3그룹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
는 것을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을 때에요.
했고, 토론과 현장 답사 등이 시작된 겁니다. 도쿄 다 음의 4.3그룹 여행지가 베니스 지역의 팔라디오 건축
김주원 ▷ 그 이후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이
이었지요. 팔라디안 윈도우의 근원을 모르면서 그걸
일어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건축이
수없이 그리는 게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
그 이후 서울건축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그 안에서 우
는지요?
리가 그렇게 열광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결국 미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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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웅 ▷ 선생님이 하셨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들이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갤러리의 창은 인공 연못을 고려하여 위치가 조정됐다.
Wide Work : ZIEN Art Space 59
레스토랑에서 카페로 올라가는 계단에 위치한 풍경을 위한 창.
레스토랑에서 진행된 집담회. 사진 지종진.
처음 쓴 이래 1989년 <신세대의 한국 건축 3인전-마 당의 사상>에서는 도시와 풍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 했고, 1990년대 들어오면서 도시 복합체를 이야기했 지요. 집합과 관련된 문제인데,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 을 때 복합적으로 어떻게 도시와 반응해야 하는가에 관한 거였어요. 서울건축학교 교장을 맡아 한창 활동 할 무렵입니다. 그리고 풍경과 집합은 2000년 이후 의 재미술관에서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것들이지요. 1990 년대 중반쯤이었던가? 김봉렬 교수가 제 작업이 풍경 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더라고요. 그때 마침 공부하게 된 것이 프랑스 지리학자 오귀스 탱 베르크(Augustin Berque)의 이론이었습니다. 일본 의 풍경을 분석한 책을 봤지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서의 풍경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요. 베 르크의 책 『일본의 풍경, 서구의 경관』에 따르면 동아 시아의 풍경 개념은 비주얼한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가 지향해야 하는 풍경의 개념은 이런 거구나, 생각했 지요. 아마도 이 풍경과 집합에 대한 이야기는 지속될 것 같습니다. ⓦ 의 것이고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와 한참 맞지 않는 거였죠. 몇 년 후 한국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야기는 자취 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김주원 ▷ 그러한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진 그 이 후의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조성룡 ▷ 1983년 아시아 선수촌에서 도시주거란 말을
정리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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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내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나라도 풍경에 대해 연구
와이드 이슈 1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살리는 살림집 흙건축의 오늘 Earth Architecture 프롤로그 | 세상살림집 — 흙건축 흙건축의 오늘 | 김순웅 이일우의 비야리 주택, 해안당 2010 흙건축 디자인 공모전 | 심사평 이충기 황혜주 교수 인터뷰 | 나는 지금 흙으로 프러포즈 중!
우리 나라에서 흙건축은 2006년 (사)한국흙건축연구회가 정의한 “자연 상태의 흙을 소재로 하는 건축이며, 좁은 의미로는 건축의 주된 재료로서 흙의 역할이 강조된 건축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흔히 흙건축이라고 하면 다소 낭만적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몇몇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우리가 흙건축을 외면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보편적 재료로서, 현대 건축의 대안으로서 흙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되어 왔다. 이에 본지는 (사)한국흙건축연구회가 주관한 <흙건축 아카데미>의 참여를 계기로 우리 흙건축의 오늘을 들여다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사)한국흙건축연구회 제공(별도 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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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세상살림집—흙건축
이 슈 1 ⓦ
지난 해 9월, 우연한 기회에 (사)한국흙건축연구회가 주관하는 제6회 흙건축 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되었다. 총 4차례에 걸친 강의와 답사, 실습 끝에 마지막 날에는 조촐한 수여식도 가졌다. 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흙건축의 개론과 철학, 흙건축의 설계와 시공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이 있었고, 대전과 옥천의 사례를 답사하면서 흙다짐과 흙미장 재 공법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김제 지평선중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흙 물성 실험, 흙미장/다짐 등을 직접 실습해 보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직접 흙을 만져 본 시간들이다. 짚과 물을 섞어 반죽을 해 가면서 물의 양에 따라, 혹은 채우고 누르고 다지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흙의 성질을 관찰한 흙 물성 실험에서부터, 합판 가벽 위를 흙손으로 바르는 흙미장과 계란판을 이용한 새로운 공법인 EP 공법까지, 흙과 먼저 친해지는 과정을 겪 으면서 흙의 따뜻한 성질과 건축 재료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또 강의 내용도 무척 유익했는데, 지 면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그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는 없으나, 첫 강의에서 ‘세상살림집으로서의 흙건축’을 이야기한 황
EP 공법
흙물성실험
흙건축의 오늘 | 김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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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완성이 있다 하지만 재료는 절대 그렇지 않다
아 문명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이렇듯 흙건축의 역사도
(les formes s’achèvent. Les matières, jamais).”—Gas-
대단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건축 역사서가 오
ton Bachelard, L’eau et les rêves, Librairie José Corti,
랫동안 흙건축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Jean Dethier<각
Paris, 1942)
주 1 : Jean Dethier은 벨기에의 건축가이자 : 도시계획가이다. 퐁피두
건축사는 일반적으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중심으로 전
센터에서 1975부터 2004년까지 건축 전시 기획을 담당했다. 그 중 1982
개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 등이 그러
년에 개최한 흙건축 전시회를 통하여 흙건축의 대중화에 기여한 일은 리
한 예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물들이 흙을 기원으로
용 근처에 있는 일다보(Iles d'Abeau)에 현대적인 흙건축 주거 단지를 건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설하는 계기가 되었다.>와의
“흙건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가 도시를 건설하
그러면 이러한 흐름의 저변에 있는 일반 주거들은 어떠한
기 시작할 때이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에 메소포타미
가? 현재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흙으로 된 거주지에서
wIde Issue 1 : 흙건축의 오늘 Earth Architecture
인터뷰.
혜주 교수(국립목포대학교 건축학과)의 의견을 요약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흙건축은 요즘 집과 달리 콘크리트나 페인트 등과 같은 인공적인 재료는 거의 쓰지 않는다. 흙과 나무, 돌 등 자연 재료 가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자재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 재료들은 자연으로부터 채취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집은 결코 집터의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을 뿐더러 집이 수명을 다하여 해체되더라도 해체된 집의 재료가 모두 자 연 상태로 고스란히 환원되면서 자연 생태계를 오염 또는 훼손시키지 않고 집과 자연의 생태학적 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집 문화는 끊임없이 지속 가능하다. 흙건축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능대능소(能大能小) 라 하겠다. 즉 어느 곳에서나 어떤 방법으로나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 흙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 로 테크 (Low tech)에서 하이 테크(High tech)까지 기술적 다양성을 지녔고, 저가에서 고가까지 경제적 다양성을 지녔으며, 과 거에서 미래까지 시대적 다양성을 지녔다. 죽어 가는 지구를 살려 내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살려 내며 사람들 간의 관 계를 살려 내는 흙집은, 죽임집이 아니라 살림집이다.”—『흙건축』 중에서
흙미장
김순웅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파리 라빌레트 건축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예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 다. 현 국립목포대학교 친환경건축연구센터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단법인 한국흙건축연구회 사무국장을 지내고 있다. 프 랑스 정부 공인 건축사이기도 하다.
살고 있다. 근대 문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지 않
물을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순환되며, 동식물의 생육에 좋
은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를 보면 흙을 재료로 한 구축
은 영향을 미치고, 자재를 생산하기 위한 원에너지가 극
문화를 잘 보전하고 있다.
히 낮은 재료이다. 유럽 제국들은 2050년까지 철근 소비
한편, 일찍 서구화에 눈이 트인 우리는 거대한 회색 도시
를 현재 사용량에서 90%, 알루미늄 85%, 시멘트 80%만
와 더불어 국적 불명의 건물들이 치열한 고도 경쟁을 하고
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흙이 아니면 어떻게 해결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삭막한 환경에서 숨가쁘게 살아왔던
수 있겠는가?”—황혜주, 『흙건축』 중에서
도시인들이 서서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
흙을 소재로 한 공법은 흙의 특성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흙은 오래 전부터 사용하여 온 전통적인 소재인 데다가
중에서 크게 흙을 일정한 크기의 단위 개체로 만들어 쌓
주위에서 흔하여 구하기 쉬운 재료이며 값도 싸서 새롭게
는 방식인 개체식, 일체로 만드는 일체식, 다른 벽체나 틀
주목 받고 있는 재료이다. 또한 사용하고 난 다음에 폐기
에 바르거나 붙이는 보완식으로 나눌 수 있다. 개체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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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덩어리들을 차곡차곡 쌓는 방법으로서, 흙벽돌을 만
이 슈 1
들어 쌓는 흙벽돌 방식(adobe)과 흙덩어리를 만들어 손 으로 쌓는 알매흙 방식(cob), 푸대나 자루 속에 흙을 넣
ⓦ
거나 김밥처럼 말아서 쌓는 흙자루 방식(earth bag), 등 이 있다. 이 방식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누구나 만 들어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체식은 하나의 커다란 벽 체를 만드는 방법으로서, 거푸집을 만든 후 그 속에 흙을 넣어 다지는 흙다짐 공법(rammed earth)과 흙을 콘크리 트화하여 타설하는 흙타설 공법(earth concrete)이 있다. 보완식은 나무나 다른 재료의 틀 위에 덧붙이거나 바르는 방법으로서, 직접 흙을 바르는 미장 공법(plaster, wattle and daub)과 흙을 보드나 패널로 만들어 붙이는 붙임 공 법(board & panel), 볏단벽을 쌓고 그 양쪽에 흙을 바르 는 볏단벽 공법(straw bale), 짚을 흙물 속에 넣어 반죽하 여 목조틀 속을 채워 넣는 흙짚반죽 공법(earth straw), 벽 체 위에 뿌리는 뿜칠 공법(earth spray) 등이 있다. 이러한 공법들은 흙건축 공법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이를 응용 한 여러 가지 공법이 나올 수 있다. 또 단독으로 쓰이거나
유럽은 오스트리아의 Martin Rauch나 스위스의 Roger
혹은 두 가지 이상 병용 사용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공법
Boltshauser Architekten이 지은 건물들을 예로 들 수 있
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는데 기존의 도시 문맥에 어울리는 단순한 형태이다. 그
이러한 다양한 공법들은 지역의 재료와 기후에 적합한 방
중 Martin Rauch가 베를린에 시공한 교회는 전쟁 당시 파
식에 맞추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따라
괴된 돌과 현장에 있는 흙을 이용하여 다짐 공법으로 만들
서 현대 흙건축 동향을 지역별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한
어졌고 공법적인 면의 새로운 시도는 기존의 직선형에서
편 재료의 특성과 근대적인 건축 표현 방식을 잘 접목시킨
원형으로 거푸집을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제
유형과 기존의 민중 건축에서 보여지는 토속적인 언어로
단 또한 흙다짐으로 만들어 로마네스크 시대 수도원의 단
지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겠다.
순함을 연상시킨다.(그림 3)
우선 북미 대륙에서는 미국 건축가 Rick Joy에 의해 설계 된 주택들(그림 1)과 캐나다에 지어진 The NK’Mip Desert Interpretive Centre(그림 2)와 같은 건물은 광활한 아 메리카 대륙의 사막 기후에 적합한 흙 벽체를 중심으로 건 축되었으며 주변 환경과 자연스런 조화를 이룬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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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미는 Marcelo Cortés가 칠레에 설계한 주택들을
방글라데시에 지어진 METI 학교 건물은 독일 건축가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건물은 그 지역에서 흔히 짓던 심
Anna Heringer에 의해 설계된 건물로 1층은 두꺼운 흙
벽 공법을 응용하였으며 나무를 대신하여 철 재료를 사용
벽으로 되어 더위를 막는 한편 어린이의 유희 공간을 제
하여 만들었다. 즉 골조를 세우고 철망을 감고 그 위에 흙
공하고, 2층은 지역의 흔한 재료인 대나무를 기초로 하여
을 채우는 방식으로 건축되었다.(그림 4) 아프리카의 경
고온다습한 기후에 적합하게 공기 유입이 가능한 대나무
우는 핀란드 건축가 Heikkinen & Komonen이 설계한 기
살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또 천장은 이 지역 특산물인 천
니의 EILA 빌라가 특징적이다.(그림 5) 그 지역에 지어졌
연색 천을 설치하여 늘 바람과 함께 ‘춤추는’ 공간을 연출
던 건축물들과 같이 흙벽돌을 만들어 쌓아 올린 방식으로
한다.(그림 6) 6
서, 기후에 적응하고 지역 재료와 지역 기술 그리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집이다. 형태적으로나 규모로 봤을 때는 평범한 건물이다. 일상적인 건축, 이름없는 건 축, 자연과 일체되는 건축.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돌 아와 앉은 문턱에서 느끼는 갈대 사이의 바람과 빛…. 그 느낌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프리카와 이곳이 다르지 않 을 것이다. 4
국내에 지어지는 흙건축들은 세계 동향과 같이 여러 유형 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토벽집<각주 2 : 토벽집은 토담집이라고 도 부르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흙, 나무, 짚, 돌과 같은 재료를 이용하 여 벽체를 만든다. 토벽을 세울 때는 우선, 나무로 만든 거푸집 공간에 볏 짚을 잘게 잘라 섞고, 이긴 흙과 돌을 넣으면서 절구공이나 서까래 같은 나무로 다져 놓는다. 그런 다음 거푸집 나무를 떼어 내고 벽체가 마른 뒤 에 그 위쪽을 다시 만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과
같은 방
식의 건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흙집은 1970년대까 지 명맥이 이어져 왔으나, 이후 폭력적인 운동, 이른바 새 5
마을 운동 이후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황혜주, 『흙건축』, 씨아이알 刊).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명맥을 현대적으 로 다시 계승하여 지어지는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아름건축사사무소와 서울대 김광현 교수가 설계한 익산 의 ‘천호부활성당’은 노출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부정형 상 체 부분과 그로 인해 연출되된 내부의 다양한 삼각형의 공 간들이 건축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부정형의 상체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하단 부분이 어 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관 심을 갖지 않는다. 건축이 요소로서만 존재하지 않듯이 이 건축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형태의 하단 흙벽 이 강한 대비를 연출하는 것과 더불어 든든한 기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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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에 있는 ‘지평선중학교’는 기용건축설계사무소에서 흙을 재료로 하여 다양한 공법 시도를 한 곳이다. 최근에 완공된 본관 건물은 기본 골조가 철근 콘크리트로 되어 있 고 내벽은 흙블록과 흙다짐 그리고 흙미장을 했다.(그림 8, 그림 9) 한편 같은 설계 사무소에서 설계하고 흙건축연 구소 ‘살림’에서 시공한 무주의 된장 공장은 관 공사에 흙 이 적용된 첫 번째 예로서 골조는 마찬가지로 철근 콘크리 트에 벽체를 흙다짐 공법으로 만들어 된장의 발효 효과를 증진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유형의 건축물들은 기존 의 콘크리트 건물에 익숙한 현 건축 흐름에 새로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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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법에 따라 아니면 기능에
“사단법인 한국흙건축연구회에서 2006년에 ‘흙건축은 자
따라 유효 적절한 곳에 쓰이면 그것이 바로 흙건축이다.(
연 상태의 흙을 소재로 하는 건축 행위와 그 결과물이며,
그림 10, 그림 11)
좁은 의미로는 건축의 주된 재료로서 흙의 역할이 강조된 건축물’로 정의하였다.”(황혜주, 『흙건축』, 씨아이알 刊) 경기도 양평에 지어진 ‘오리온연수원’은 흙다짐 공법의 시 공 방식을 잘 적용시켜 켜마다 다른 색채의 안료를 첨가함 으로 해서 중첩되는 선의 아름다움을 적절히 표현하였다. 한편 일반적으로 흙다짐 벽이 갖는 중량감을 현대적인 감 각으로 잘 승화시킨 건물이다.(그림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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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로 건축공방無에서 강원도 철원에 흙다짐 공법
린 새로운 방식이다. 특히 기존 흙건축의 취약점이었던 비
으로 지은 ‘별비내리는마을’을 보자. 흙건축의 취약 부분
에 강하고 강도가 높다는 장점을 가진다. 구조체를 이 공
인 지붕을 이중으로 처리하여 흙으로 된 내 지붕을 보호
법으로 짓게 되면, 그동안 흙이 갖고 있던 제약에서 벗어
함과 동시에 계절 변화에 적합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러
나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갖는 흙건축이 가능하리라고 본
한 이중 구조는 한옥에서 보여지는 벽체와 지붕의 이질적
다.(그림 15) 15
인 두 요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거 푸집 세파볼트 구멍을 이용하여 벽 사이로 은은하게 스며 드는 빛과 철제 지붕 틈 사이로 쏟아지는 별빛으로 우주와 교감하는 시적인 공간을 연출하였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흙의 질감과 현대적 재료를 적절히 대비시킨 점이 특징적 인 건물이다. 이외에도 건축공방無에서 짓는 일련의 주택 들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건축의 전체 과정을 직접 참여함 으로 해서 완성도가 높은 건축을 추구하고 있다. 흙은 콘 크리트와 달리 지역마다 구성 비율이 다르고 기후에 따른 적응도가 다르기 때문에 설계만큼이나 시공의 비중이 크 다.(그림 13, 그림 14) 13
흙은 기본적으로 약한 재료이다. 하지만 생성하고 소멸하 는 생명이 있는 재료이다. 따라서 변화하기 쉬우며, 그런 재료로 만들어진 건축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건축이다. 한편 우리는 콘크리트 밀림 속에서 그 견고함에 길들여져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딱딱한 콘크리트에 익숙해지 고 그 거칠음을 탄미하고 살았는지 의문이다. 콘크리트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지만, 돌아온 것 은 지구 환경을 굳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더 이상 단절되고 고결한 건축이 아니었으면 한다. 우리 주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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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물질을 사용하여 건축을 하였으면 한다. 지면의 흙을 그대로 굳히고 쌓아 올려서 지은 그런 건축물…. 그러나 이것이 결코 노스탤지어로 불리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물질을 낭비하는 건축이라는 방정식 을 뒤집는 첨단의 테크놀로지이다(Kengo Kuma, 『약한 건축』, 디자인 하우스 刊). 앞으로 이러한 공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어쩌면 건축은 더 이상 물질을 낭비하지 않고, 오히려 물 질을 재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건축은 더 이상 단 절된 오브제가 아니라 생명을 담는 ‘움’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흙건축은 우리에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고민하 끝으로 영암군에 지어진 관광 안내소는 국립목포대학교
는 구체적 움직임이다.
흙건축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콘크리트 타설 기법을 응용
“우리는 조상의 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후대의
하여 시도하였다. 이는 시멘트 대신 흙을 넣어 흙다짐 공
땅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
법에서 오는 시공상의 난점을 보완하면서 흙의 질감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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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1
이일우의 비야리 주택, 해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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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비야리 해안당을 알게 된 것은 흙건축 아카데미의 답
렀다.
사를 통해서였다. 작년 10월 말이었는데, 뼈대를 드러낸
“다 건축공방無 직원들인가요?”
채 목재 사이딩 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그런데 좀 놀라왔
“뭐, 직원이라기보다는…, 그냥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던 것은, ‘흙집에 무슨 디자인?’이라는 촌스런 편견을 부
죠.”
지불식간에 날려 버릴 만큼 공간 디자인이 세련되고 짜임
“…건축주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게 좋아 보여요.”
새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답사의 다음 순서로 찾은,
“같이 집을 지으니깐…”
같은 건축가의 집 ‘이리루’에서 흙집이라고 다 같은 흙집
건축공방無 이일우 소장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설계자
이 아님을, 흙집에도 충분히 건축 디자인이 가능함을 알
로서 시공자로서 ‘다르지만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과 어
게 됐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우리는 옥천의 그 흙집
울려 집을 짓는다. 특히 건축주에게는 도면과 내역, 공정
을 다시 찾았다.
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가 살 집에 대해 서로 많은 대화
때늦은 눈으로 비야리의 풍광이 절경을 이루는 가운데 해
를 나눈다.
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소하게 손을 봐야 하는 부분
“특히 흙으로 짓는 집은 사용자들이 재료에 대해 잘 알고
들이 남은 것 같았지만 집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 그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안에서의 생활이 다르
날은 마침 다른 현장의 ‘식구’(여기서는 서로를 그렇게 부
니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죠. 뭐든지 알면 관리하
른다)들과 건축주까지 합세하여 해안당은 생기가 넘쳐 흘
기 쉬운데 모르면 편견만 쌓이게 되는 거예요. 한 번 흙으
wIde Issue 1 : 흙건축의 오늘 Earth Architecture
이일우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종로街에 내재되어 있는 장소성의 본질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건축공방無에서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이상덕화백의집(Artforum Rhee), 지은이네, 응령리주택(동락헌), 이리루, 동검리주택Ⅰ^Ⅱ^Ⅲ, 푸른꿈고등학교, 백운작은도서관 등이 있다.
로 짓고 나서 다시는 흙을 안 쓸 수도 있지요. 흙도 그렇고
에 대한 보람도 있을 거고요.”
자연 재료를 쓸 때에는 현장 참여를 통해 스스로 알게 하
그렇다고 그가 흙이라는 재료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
거나 알려 주어야 해요.”
다. 물론 몇 채의 흙집을 지었으므로 흙 건축가란 오해는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말하는 해안당의 건
받을 만하지만, 재료에 대해서는 필요한 자리에 알맞게 쓰
축가에게 집이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
여지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면 설계자와 시공자, 건축주가 ‘건축 공동체’를 이루고 있
“초기에 작업할 때는 적재적소에 알맞은 재료를 다 가져
는 셈인데, 여기서 흙은 생산부터 가공까지 현장 작업이
다 쓰기도 했어요. 콘크리트가 필요한 데는 콘크리트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작업에 매우 유효적절한 재
나무가 필요한 데는 나무로…. 근데 그렇게 쓰다가는 공사
료로 보인다
비 감당이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전문 기술자들과 함께
“흙은 가공된 재료를 사다가 붙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호흡도 맞춰야 하고, 아무튼 뭘 해보려고 해도 더 큰 적은
서 원 재료를 구해 가공하여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현실 시스템에 있는 것 같아요.”
이 있어요. 더구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그에게 재료는 재료일 뿐이다. 오히려 어딜 가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혀 다른 일을 한 사람도 마
건축 자체에 더 집중하는 편이라고 한다. 특히 건축의 보
음이 맞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이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람
알게 모르게 작업 자체를 몸으로 느끼게 되는 거죠. 노동
과 건축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
← 비야리 해인당 진입부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 진효숙. ↑ 비야리 해인당 내부 흙미장. 사진 진효숙. ↗ 비야리 해인당 주방. 사진 진효숙. → 이일우 소장. 사진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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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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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야리 해인당 동측 전경. 사진 진효숙. 이 슈 1 ⓦ
겠고, 한편으로는 건축 설계의 방법론과 관련된 이야기
상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일 수도 있다.
해안당의 경우는 선은 물론이고 패턴까지 찾아 냈는데, 경
“대지 위의 선들을 찾아서 그것을 위로 연장시키면 그 자
사진 땅 위에 남겨진 평지의 흔적을 하나의 패턴으로 보고
체가 건축이죠. 그렇게 한다면 입면 계획은 필요가 없을
그것을 겹쳐 놓은 것이 바로 이 집이다. 이 패턴의 중첩으
거예요.(웃음) 음…그리고 그걸 말로 찾아 표현한 것이
로 대지에 새로운 선들이 그려지면 그것을 그대로 끌어올
無지요. 없는 게 아니라 못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보
린 상태에서 재료를 찾아줘야 한다.
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예요.”
“환경이나 건강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 외에 흙을 써야
이 집의 설계도 보이지 않는 선을 찾는 것에서 시작됐다.
하는 이유를 건축주에게 말해 줘야 하지요. 여기서는 먼
대지에는 컨텍스트와 관련된 자연의 축이나 도로의 축도
저 경사지에 사각형 패턴의 중첩을 설명하고, 그것을 끌
있지만 그 밖에도 바람이 지나는 길, 지형에 의한 선들이
어올렸을 때 경사면에는 육중한 걸 세우고 나머지는 가볍
존재한다. 또 관념적인 선—사상이나 인문학에 의한—들
게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 다음 육중함은 흙다
이 찾아질 수도 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선들을 찾아 내
짐으로, 부드러움은 흙미장으로, 나머지는 깔끔하게 목재
어 집이 앉아야 할 방향을 정하는데, 해안당은 땅이 시키
를 쓰겠다고 했지요.”
는 대로 정남향이 아닌 서남향을 택했다.
해안당은 흙다짐 벽과 흙미장 벽이 목재 사이딩과 잘 어울
“남향으로 앉을 수 있는 것을 서쪽으로 비스듬히 돌아 앉
리는 흙건축인 동시에 건축적 상상력이 발현된 집이기도
게 했죠. 여기서 일단 찾아 낸 선들은, 그 자체로는 막막한
하다. 혹여 이 집이 궁금하다면, 그러나 직접 찾아가서 보
요소들이지만 또 여러 가지 조건과 만났을 때는 달라지지
기가 무척 망설여진다면, 한 포털 사이트에 자리 잡은 그
요. 만약 종이 위에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거라면 지금과
들의 카페에 들러봐도 좋을 것 같다. 주소는 <http://cafe.
는 다른 게 나왔을 거예요. 처음에는 여러 외부 조건들, 제
naver.com/coarchi>! ⓦ
약이 될 수도 있는 그러한 조건들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으로서 풀어야 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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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흙건축의 오늘 Earth Architecture
2 0 1 0 흙건축 디자인 공모전 | 전시 및 시상 : 20 1 0년 2월 2 0일-2 4 일 경향하우징페어 전시장 이제 흙은 더 이상 과거의 재료가 아니다.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흙의 가치와 가능성이 재조명되고 있고, 우리 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흙건축의 현대적 적용과 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한국흙건축연구회에서는 이 땅의 가 장 근원적 재료인 흙에 현대적 감성과 미래적 가치들을 부여하는 노력의 시발점으로 <흙건축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단순 한 마감 재료나 구조재로서의 고찰과 연구만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디자인 도구로서의 이용과 시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서다.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을 대상지로 (사)한국흙건축연구회와 경향하우징페어가 공동 주최한 <흙건축 디자인 공모전>의 결과 를 리뷰해 본다. ← 대상 <Throw architecture in to the nature> 이대경(동아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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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1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흙건축 설계 공모전은 흙건축에 대한 건
오히려 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는지, 건
축계의 관심을 대변하듯 많은 관심과 참여 속에 진행되었다. 전
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나 실무자들의 흙에 대한 시대적 사
ⓦ
국에서 대학생, 대학원생, 설계 실무자 등 156명이 공모 신청을
고나 태도를 엿보고 싶었던 측면이 있었다.
하였고, 그 중 76개 작품이 최종 제출된 것은 짧은 공모 기간과
심사에서 중점적으로 보았던 것은 첫째, 재료적 측면에서 흙을
홍보 부족 그리고 첫 공모전이라는 조건 하에서 이루어낸 고무
단순히 마감재로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그 속성이나 또
적인 결과라 자평할 수 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공간적/형태적 계
심사는 76개 작품을 심사하여 그 중에서 1차로 20여 개의 작품
획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둘째는 대지의 측면에서 같은 성질
을 선정하였고, 2차로 다시 6개의 작품을 골라 수상작을 선정하
의 땅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하였는지, 그리고 마
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지막으로 흙이라는 주제를 떠나서 제출한 작업이 기능적, 공간
공모전 요강에서 공모전의 주제나 흙건축에 대한 특정 기준을
적 형태적으로 건축의 기본에 충실하였는지 등이었다.
두지 않았던 것은, 흙이 늘 우리 곁에 있는 재료이긴 하지만 기
따라서 제출한 작품 중 입선에 들지 못하고 탈락한 작품들은 대
술적이나 사용적 측면에서 건축과 관계 맺기는 아직 보편적이지
부분 흙이라는 재료의 구조적, 기술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못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크게 열어 두고자 하였던 것이고,
일반 건축물로 디자인하여 흙을 마감으로만 표시하거나, 흙으
황혜주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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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흙으로 프러포즈 중!
흙건축 디자인 공모전 시상식이 끝난 후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전문인에 의
(사)한국흙건축연구회의 실질적으로 이
해 설계, 시공된 흙건축을 좀 더 많은 사
끌고 있는 황혜주 교수(국립목포대학교)
람들이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를 만나 한국 흙건축의 향방을 가늠해 보
을 포함한다. 특히 이번에 치러진 공모전
는 자리를 가졌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도 그 일환의 하나이다. 건축가들이 설계할 때 흙을 알고
소개한다.
흙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 (사)한국흙건축연구회를 소개해 달라. ⓦ 황혜주 : 2005
있다. 궁극적으로는 흙을 하나의 일반적인 재료로 인식할
년 12월에 30명의 발기인으로 발족하였고 2009년 6월 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흙은 일상적인 재료로 쓰기에 뭔
단법인 한국흙건축연구회로 새롭게 정비되었다. 국립목포
가 특별하고 막연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두 번째는 ‘
대학교 건축학과 흙건축연구실에 근거지를 두고 흙건축 관
내 손으로 내 집 짓기’라는 측면에서의 대중 교육이다. 건
련 정보 교환과 교육, 신기술 개발 등의 사업을 하고 있
축은 잘 모르더라도 누구나 배우기만 하면 쉽게 흙집을 지
다. 현재 흙건축연구소의 조직은 설계, 시공, 연구, 재료
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흙건축 아카데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분야
흙건축 워크숍 등을 진행해 왔고, 올 여름에는 캠프를 통해
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
많은 공법들을 소개하기 보다 대표적인 공법 한두 가지를
소 자체도 처음에는 설계, 시공, 재료/공법을 개발하는 사
가지고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람들이 답답한 마음에 서로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해서 만
ⓦ 흙건축이 보편화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역할이 클
든 거다.
것 같다. ⓦ 황혜주 : 그렇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흙건축
ⓦ 이 조직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인가? ⓦ 황혜주 : 흙건축
이라고 하면 디아이와이(DIY)나 무브먼트(Movement)의
의 보급과 확산이다. 대상은 크게 전문가들과 일반인들로
개념으로만 생각한다. 심지어 건축과 교수가 왜 그런 걸 하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현대 건축의 대안으로서 하이테크
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웃음)
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개발하여 전문가들의 참여를 적극
ⓦ 현대 건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대안으로서 흙건축을
wIde Issue 1 : 흙건축의 오늘 Earth Architecture
로 건축하기 어려운 디자인 또는 단순히 흙 박물관이라고 하여
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을 하였으나 건축적
건물의 용도만을 강조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완성도가 다소 떨어져 아쉽게 우수작으로 결정하였다.
여러 우수한 작품들 중에서 대상을 비롯한 수상작을 선정하는
또 다른 우수작인 <흙꽃> 김성환(인하대 5년)은 대지의 지형과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고심 끝에 <Throw architecture in
흙의 감성적 측면을 자극하여 흙꽃, 여울, 일렁임 등의 시적 언
to the nature>를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대상작은 흙건축에 대
어를 동원하여 자신의 흙건축을 표현한 부분이 점수를 얻었으나
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재료의 질감과 이용, 구축, 시공 방
건축적 완성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법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 흙이라는 재료를 사용한 건
이 밖에도 특선으로 <STRAUM HOUSE> 유주헌, <풍경으로
축물이 경사 지형의 또 다른 흙과 만나며 가지는 공간적 관계
의 유적론> 하지형(동서대 4년), <자연도감> 전은주(성균관대
를 적절하게 잘 해결한 점, 세련된 표현과 디자인 능력 등이 높
3년) 등이 선정되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디자인을 보는 심
게 평가 받았다.
사 시간의 즐거움은 큰 것이었다. 이 공모전이 흙건축에 대한
우수작을 수상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김용성(DA 그룹)은
관심과 시작 혹은 계기로 본다면 결코 작지 않은 성과라고 생
흙이라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재료의 속성을 시간성에 집중하여
각한다.
제안함으로써, 완성된 흙건축이 풍화되어 변화하는 대지와 새
심사평 | 이충기(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인터뷰이 황혜주는 서울대학교에서 반응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로 흙 관련 최초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황토의 활성화 방법 등 국 제, 국내 특허가 20여 건이 넘으며 흙의 현대화 연구와 국제 교류를 통한 범용화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립목 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흙건축』(도서출판 씨아이알)의 저자이기도 하다.
바라본다면? ⓦ 황혜주 :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
계를 하면 그것이 가능하도록 재료나 공법을 개발해 주겠
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흙이 가지는 장점은 누구나 알고
다고 말하는데 이처럼 흙건축과 관련된 기술을 보완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흙건축은 현대 건축의 언저리에 위치하거
축적해 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이는 또한 일반인들이
나 ‘찬양’의 대상으로만 치부되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흙집을 더욱 쉽게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기반이 되기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현대 건축의 재료로서
도 한다. 연구가 정통하고 깊어졌을 때 그만큼 ‘쉬운’ 방법
흙을 고민하다 보면, 미래 건축의 대안까지 만들어 낼 수
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그들에게 프
ⓦ 흙건축 안에서 20년 후의 모습은? ⓦ 황혜주 : 아마도 흙
러포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건축을 위해 함께 고민
건축을 지으러 다니지 않을까? 노유자 시설을 찾아 다니면
하고, 함께 대화하자는 프러포즈.
서 흙으로 하는 해비타트를 실천하고 싶다. 흙은 현대 건축
ⓦ 한편에서는 마치 흙건축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
의 고급스러운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몸뚱이만 있으면 쉽
들도 있다. ⓦ 황혜주 : 흙은 대체가 아니라 대안이다. 흙이
게 집 짓는 것이 가능한 재료이다. 이러한 흙의 양면성을
모든 것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고 우리도 실
보여 주고 싶다. 실제로 올해부터 그런 운동을 조금씩 준비
제로 경계하는 부분이다. 효율을 생각했을 때 다른 재료가
하려고 한다. 교육 받은 사람들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더 적합하면 그걸 써야 한다. 재료도 다 자기 자리가 있고,
받아서 노유자 시설의 개보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양한 재료들이 함께 잘 어울려야 좋은 건축이 만들어질
ⓦ 흙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속성들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흙건축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은데? ⓦ 황혜주 : 흙은 인류가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친
더러 흙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숙하게 대해 온 재료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과 우주의 시작
흙건축연구회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과 끝으로 파악하였다. 그러한 흙으로 집을 설계하고 시공
ⓦ 주로 흙을 재료로서 연구하고 공법 개발을 하시는 것으
하고, 또 사는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
로 알고 있다. ⓦ 황혜주 : 엔지니어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
의 의미와 노동의 가치를 몸으로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거꾸
드는 사람들이다. 종종 건축가들에게 흙으로 무엇이든 설
로 제공받고 있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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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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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전 리뷰 Ideas competition for the design of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 Seoul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서울관 건축의 방향성을 가늠할 1차 아이디어 공모에서 선정된 수상 작이 발표되었고, 공모작 전체가 공개되었다. 서울관 건립 예정지인 옛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열렸던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 건축설계 아이디어 공모 출품작’전을 통해 공모작 패널을 비롯해 설계 설명서를 20여 일간 전시한 바 있다. 최우수 작 5개는 아이디어의 기본 방향을 유지하면서 심사위원들과 미술관 측의 지적과 권고 사항을 반영하여 2차 건축 설계 경 기에서 구체적인 설계안을 제시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향후 2차 건축 설계 경기를 거쳐 5월말 최종 안이 확정되 면, 곧 이어 9월말에 공사를 시작해 2012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진행,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 기자)
공모전 결과
디자인비엔날레 큐레이터, 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김일현(경희대 건축학과 교수),
1차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팀은 <MP ART 건축
최만린(조각가,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유이영(서양화가,
사사무소 민현준 외 4인>, <김종규+(주)건축사사무소 엠
서울시립미술관장)이다.
에이알유 정일교 외 3인>,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미술관과 덕수궁 미술관, 서울관
소 이필훈 외 4인>, <씨지에스 건축사사무소 신춘규+플
의 3관 체제로, 서울관은 현대 미술 중심의 기획 전시관으
랜씨건축 최윤정+고려대학교 최춘웅>, <홍익대학교 김
로 특화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미술관으로서 비
주원+(주)진우종합건축사사무소 김동훈>이다. 우수작은
전과 함께 ‘터’의 선정에서 논란과 이슈 거리를 만들어 왔
<최문규+(주)가아건축사무소 강인철>, <(주)건축사사무
다. 또한 이번 공모전의 건축 아이디어들은 공공 건축으로
소 UNITS UA 이승윤+최정우+박혜선+강한샘>, <한국예
서 미술관의 미래상에 대한 건축가들의 발언이기도 하며,
술종합학교 이종호+(주)건축사사무소 메타inc 우의정>,
공모 자체가 현 건축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주)건축사사무소 핸드 박영일+피터 윈스턴 페레토+박 희령+김준성>, <종합건축사사무소 라움에이엔씨 이정훈
‘터’의 장소성과 근대 건축물의 활용
>으로 5개 팀이다. 앞으로 2차 건축 설계 경기를 거쳐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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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최종 안이 확정되면, 곧 이어 9월말 공사를 시작하여
사실상 문화계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거론하기 시
2012년 12월 완료할 것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전하고
작한 것은 15년 전이다. 과천 미술관의 입지적 한계와 기
있다. 심사위원은 외국인 3인, 내국인 6인으로 구성되었
능 및 규모 면에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미술관에
다. 배리 벅돌(콜럼비아대 건축사학과 교수, 뉴욕현대미
적합한 터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2004년 국군기무사령부
술관 건축 부문 수석 큐레이터), 마르코 포가츠닉(베니스
를 이전한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서울관 건립 논의는 급물
대학교 건축사학과 교수), 가즈요 세지마(SANAA 대표),
살을 타기 시작했다. 국가 통치 기구의 자리에 문화 시설
김진균(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조병수(2009년 광주
이 들어간다는 의미는 이른바 탈식민지와 탈권위주의 시
wIde Issue 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전 리뷰
대의 상징으로 공론화되었으며, 특히 북촌과 삼청동, 사간
었다. 이후 본관 건물 활용에 대한 타당성 및 방향성 연구
동, 인사동을 연계하는 문화 벨트 조성 계획으로 설득력과
가 이루어지고 신축보다는 리노베이션으로 방향을 전환
정당성을 갖추게 되었다.
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옛 기무사 본관은 철근 콘크리
서울관이 들어서는 터는 경복궁에서 볼 때, 왼편 삼청동
트 구조에 외벽은 벽돌조로, 내부 칸막이 벽은 목조심벽
쪽이 국군서울지구병원, 오른편 동십자각 쪽이 국군기무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활한 벽면, 수평창, 비대칭적 입
사령부 본관 구역으로, 그 뒤로 기무사 아파트와 테니스장
면 등 초기 모더니즘 형식을 보여주고 있고, 현존 건물이
등이 있다. 이 곳을 국군기무사령부가 사용하기 시작한 것
거의 없는 일제 시대 병원 건축물로서 근대 의료사적 측면
은 1971년(당시 국군보안사령부)부터로, 12·12 반란 때
과 1970년대 이후 당시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는 신군부 세력 등장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최근까지는
본관으로 사용되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무대인 점
청와대와 가까이 있어 대통령과 고위직들의 응급 병원으
에서도 그 가치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관으
로 쓰이고, 대통령 시설, 군 특수 시설의 위계로 일반인은
로 활용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보존하여 내부는 교육 연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구 시설과 행정 시설로 활용하는 방법, 근대 건축의 주요
한편, 일제 강점기에는 전 구역이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구성 요소인 전면과 측면을 포함하여 중앙 홀, 두 개의 계
당시 세워진 건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 경성의
단 등을 보존하는 방법, 그리고 외피만 보존하여 전체적으
학전문학교(경성의전)의 부속 병원으로 얼마 전까지 국군
로 근대 건축의 인상을 유지하면서 나머지는 건축가의 해
기무사령부(기무사)의 본관으로 쓰였다. 박길룡이 설계했
석에 따라 활용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는 서
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박길룡이 설계한 건물은 기
울관 계획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방
무사 본관 옆 자리의 건물이었다. 그 건물은 해방 이후 국
향을 잡았고, 옛 기무사 본관의 복원 범위와 방법에 대해
군수도병원을 새로 지으면서 헐렸다. 그리고 1969년 삼청
서는 설계자에게 맡기고 있다. 즉 공모전의 최종안에 따라
동 길을 복개하여 확장하면서 병원 전면에 흐르던 개울과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돌다리 등이 모두 헐렸다. 훨씬 더 이전에는 이씨 왕조의
결과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는 터는 경
족보와 영정을 관리하던 종친부와 규장각, 소격서, 사간원
복궁이 옆에 있고 북촌이 시작하는 지점이다. 어느 정도는
이 있던 자리로, 종친부는 1981년 신군부에 의해 정독도
환경과 도시 맥락에서 친화적이면서도 자기 개성을 가지
서관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연유로 서울관이 들어서는 소
고 있는 건물을 기대하게 된다. 특히 기획 중심으로 꾸려
격동 165번지 일대는 오랜 기간 군사 시설이 점유해 있으
질 전시관일 경우는 공간 프로그램에 유연하면서도 전시
면서 보안과 통제에 따른 불가침 영역이었고, 경복궁과 북
물을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뭐든지 집어넣을 수 있는
촌 사이에 있으면서 단절과 고립된 채 도시 구조가 기형적
통과 같은 개념’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건축물
으로 변형돼 왔다. 이 점은 또한 도시 구조의 회복이란 점
의 보존과 활용에서 건축적 가치가 있으니 보존해야 한다
에서 공모전의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거나, 수탈과 지배, 침략 전쟁의 산물이니 없애야 한다는
또 한 가지 이슈는 등록문화재 제375호인 기무사 본관 건
등의 관점과 흑백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의 활용 방안이다. 서울관 건축 논의 초기에는, 건축 당
한편으로는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당시에 비해 일보
시와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훼손되거나 변경된 부분이
하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보존과 활용을 논의하고 있는 이
있어 건축적 가치가 크지 않고 미술관으로 활용하기에 문
순간에도 무작위 철거가 일어나고 있으니 현재의 역사 인
제와 제약이 많다고 보아 미술관을 신축하자는 의견이 있
식과 문화적 자의식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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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전 리뷰 Ideas competition for the design of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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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설계자’가 제안하는 우수한 ‘설계안’을 뽑겠다
축학과)는 아이디어 공모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다. “아이디어 공모 자체가 사람과 아이디어를 뽑는 것입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같이 국가적인 프로젝트의 공
니다. 아이디어를 선정해서 본 설계를 하면 당연히 변화
모가 있게 되면 이상한 걱정이 일게 된다. 당선된 안이 제
가 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죠. 그러면 설계안은 당연히
대로 지어질지, 설계자가 바뀌지는 않을지, 혹은 문화재
바뀔 것이고요. 앞으로는, 사실 일본에서 하는 프로포잘
와 같은 예기치 못한 복병이 등장해 공모 자체가 백지화
(proposal) 방식과 같이 보고서 몇 장 내로 하는 것이 최
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의구심들이다. 공연한 노파심일지
종 목표인데, 좋은 아이디어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철학
모르나, 일련의 국제적인 건축 설계 경기에서 비슷한 사
이 있는 제안서를 받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특
건이 몇 차례 있었고, 그 근간에는 공모들의 진행 방식과
히 지역 커뮤니티 센터, 초등학교와 같은 중소규모 공공
과정에 몇 가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어서이다. 때문에
건축물에서 더욱 필요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간소화 자
걱정에 앞서 서울관 공모의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
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료가 축적이 될 수 있고 작은 규모
가 있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모는 이러한 우려
사무실이지만 커다랗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과 기회를 제
를 불식할 몇 가지 원칙을 두고 있다. 1차 아이디어 공모
공한다면 계속 간소화되는 게 좋다고 봐요.”
와 2차 건축 설계 경기 분리, 심사 과정의 공정함과 투명
일본의 프로포잘 방식은 설계자의 능력과 경험 같은 자질
함, 선정된 안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틀
을 기준으로 설계자를 선정한다. 설명할 수 있는 제안서
을 두고 있다. 특히 한국 건축가를 공모의 중심에 세우는
를 제출하고 내용에 대해 설계자 인터뷰를 하며, 시민들이
원칙을 두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일지 모르겠으나 서울관
참여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제안을 설명하고 질의응답
완공 즈음이 2012년으로 대선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
이 이루어지는 공개 심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 있기도 하다.
A3 규격 2매 정도에 내용을 기술하고 사진과 이미지 사용
이번 공모처럼 굳이 1차 아이디어 공모와 2차 건축 설계
을 최소한으로 허용한다. 설계 내용의 구체적 표현, 투시
경기를 구분하여 두 번에 걸쳐 진행하는 방식에는 여러 이
도 등은 사용 불가로 규정하고 있다. 제안서를 평가하고 1
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건축 설계 경기가 시작되면 준비에
차로 복수의 후보자를 선정하고, 2차로 공개 심사를 진행
막대한 인원과 비용을 들며, 조직력과 자본력이 뒷받침되
하는데, 발주자는 공개 심사를 위한 일정 금액의 작업 비
지 않는 경우는 참여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공모’라는 취
용을 지급하고 제안자는 A1 크기 1매 정도의 도판과 설명
지에도 불구하고 ‘공모’할 수 없는 제약이 있는 것이다. 아
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전부다. 이를 통해 설계자
이디어 공모는 곧 지어질 것 같은 건물을 보여 주는 것이
와 발주자의 부담을 경감시키면서 CG 등의 표현에 좌우
아니기 때문에, 화려한 CG나 모델 대신에 건축가의 생각
되지 않고 내용에 충실한 심사를 유도하고 있다.
을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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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어 공모는 건축가들을 위한 하나의 절차라고 할 수 있
한편 서울관 공모의 심사 과정과 내용 전체를 공개하기로
다.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에서는 A1 규격의 도면 3장, 20
하고 있는데, 다만 공모가 진행 중이고 아이디어가 구체
매 내외의 설계 설명서로 제출 서류를 간소화하고 과다한
화되는 현재로서는 어떤 영향력도 주지 않겠다며, 시기는
CG도 자제하도록 하였다. 1차에서 선정된 안들 역시 이
최종 설계안이 선정된 이후로 예정하고 있다. 공개될 내용
런 룰을 따르고 있다.
에는 한 가지 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심사 기준
1차 공모의 초안 작성에 참여한 김일현 교수(경희대 건
이 포함된다. 예상하기로는 기존의 다른 공모에서 발표되
wIde Issue 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 공모전 리뷰
는 심사 결과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듯하다. 심사 방식이
한 것은 건축물의 결과일 것이다. 특히 공공 건축물의 질
일반적인 점수제 채점 방식과는 다른, 심사위원 전원 토론
적 향상을 위해 적합한 방식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고민
방식에 따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안에 대해 심사
돼야 할 것이다. 쉽게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모와 약
위원들의 견해가 서로 다를 때, 그 안을 지지하는 심사위
간의 시간 차를 두고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대한민국역
원은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고,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심사
사박물관’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역사박물관은 1차 아
위원들이 각자의 생각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이디어 공모 후에, 당선자에 한해 2차는 설계 시공 일괄 입
서로를 납득시킴으로써 선정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
찰 방식인 턴키로 진행될 예정이다. 더욱이 주관 부서가
아이디어 공모가 아니더라도 국내 건축 설계 경기에서 컬
동일하다는 점에서 두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흥미롭
러 사용 자제나 제출 서류가 간소화되는 것이 비교적 최근
지 않겠는가. 적어도 공모 당선자가 노들섬 예술 센터처럼
추세이지만 당선작에 대한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심사 결
매번 전혀 다른 공모를 세 번씩 치른다거나, 백남준 미술
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사전 서약을 작성하고, 수
관처럼 당선작의 안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 된다거나, 해인
상작 전시가 있기도 하지만 공정성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사 신행 문화 도량 공모와 같이 아예 백지화되는 일은 없
부족한 부분이 많다. 심사 과정과 내용에 대한 정보가 없
지 않겠는가. 모두가 바라는 일일 것이다. ⓦ
으니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별 안에 대한 심사 위원들의 분석적인 내용이 이 같은 시비와 잡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서울관의 경우 아이디어 공모 이후 2차 공모에서 기 본 콘셉트가 변형되거나 선발된 이유가 사라질 경우 심사 에서 불이익을 주어, 선정된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과정을 만들고 있다. 1차 아이디어 공모는 ‘좋은 아 이디어’와 ‘좋은 설계자’를 선정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진 행될 2차는 좋은 아이디어가 구현된 ‘좋은 안’을 뽑는다는 원칙이다. 그리고 국내외 건축사 자격을 가진 모두가 응모 가능하지만, 외국 건축사 면허 소지자는 반드시 국내 건 축사와 함께 응모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국제 공 모전이지만, 국내 건축가와 함께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지 침을 두고 있다. 그리고 미술관 측은 제대로 짓기 위해 설 계자에게 모든 권한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실시 설계까지 제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건축가에게 크레딧이 주어지고 공사 컨소시움을 구성할 수 있도록 전권을 당선 건축가에 게 일임한다. 일반적으로 공공 건축에서 진행되는 방식과 는 다른 지점이다. 이러한 방식이 업계 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겠으나,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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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전복, 외부화된 화이트 큐브 — <홍익대학교 김주원+(주)진우종합건축사사무소 김동훈> —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핵심 개념으로 하고 있다. 기존의 미술관에서 ‘화이트 큐브’가 중성적이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술관의 실내 공간을 의미한다면, 여기서는 소통하는 ‘중정’과 ‘광장’을 가리킨다. 도심의 문화와 도시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 는 배경으로서 화이트 큐브인 것이다. 이 ‘화이트 큐브’는 가로, 세로 약 78m의 정방형 중정으로, 백색 열주와 백색 노출 콘크리트, 강화 유리로 마감된다. 이 백색의 공간은 주변 길들을 대지 내로 유입, 소통시킬 수 있도록 대지 중앙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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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야외 전시 공간이자, 지하 전시실에서 산란광을 받아들이는 천창 역할을 한다. 광장을 중심으로 전시실을 구성하 며, 개별적이거나 통합적인 공간 분할이 가능하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 건물은 기존의 파사드 그대로 복원되고, 삼 청동 길의 기존 담장을 허문다. 건물에 경복궁의 돌담과 가로수 풍경이 LED가 이식된 유리 벽면을 투과하여 과거의 건 물과 새로 들어서는 건물의 파사드에 중첩된다. 미술관의 외관이 단순히 즉물적 차원보다 향상되어 보는 이에 따라 새 로운 인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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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노드에 발생하는 공간의 유혹과 교류 — <MP ART 건축사사무소 민현준, 이우진, 박종민, 최성열, 박찬수> — 직 각 형태 공간의 조합 시스템을 제안한다. 공간의 형태를 직각 형태로 단순화하는 것은 건축물로서 형상을 자제하며 미술 품을 위한 배경이 되기 위한 제안이자, 서로 대비되는 주변 스케일과 경복궁, 북촌, 등록문화재와 같은 주요한 구조물과 풍경에 녹아 드는 조용한 풍경을 만들어 내기 위한 형태이다. 직각 체계는 전시 공간이 되는 솔리드 공간의 조합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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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공간(전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보이드 공간은 연속성을 가지며, 다음 전시실을 내려다보거나 창을 통해 별개의 상설 전시실로 유도한다. 이곳에서 합리적인 동선 배치에 따른 전통적인 전시 공간과는 다른, 공간의 유혹과 교류가 일 어난다. 또한 전시의 내용과 특성, 전시량에 따라 공간의 조합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구축 방식은 매스보다 오픈 스페이스 중심의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이 공존하는 다중 미술관을 지향하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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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문화 컨텐츠의 건축화, 그리고 컨텍스트로의 재환원 — <김종규+(주)건축사사무소 엠에이알유 정일교, 민준기, 최 준우, 장별> — 주변의 ‘길’과 ‘문화’적 맥락에 따른 퍼블릭 룸을 구성한다. 퍼블릭 룸의 공간 구성 방식은 기둥과 벽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지며, 이들은 공간의 크기, 실의 높이, 채광과 미디어 설비 조건 등에 따라 재분류된 다. 경복궁이 있는 삼청동 길은 중복 도형의 작은 실들로 구성된 기무사 본관을 살리고 퍼블릭 룸은 큰 공간의 독립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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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이 가능한 복도형 평면에 조적 건물의 입면 구성 방식을 따른다. 북촌 길에는 자유로운 입면의 오픈 플랜과 각 실이 독립적인 입면과 채광을 갖는 복도형 평면의 퍼블릭 룸이 면한다. 그리고 종친부 길은 오픈 플랜과 기둥 없는 평면으로, 현대미술관 길은 복도 없는 평면 구성을 취한다. 미술관 터 주변의 여러 길들과 길이 연결하고 있는 현대적 문화 컨텐츠 의 성격에 따라 퍼블릭 룸을 구성하고, 문화적 성격에 맞고 쓰임새를 위한 개별적인 건축 평면 구조, 입면 구성 또한 건 축적인 평면 구성 방법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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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층된 시간의 켜와 땅의 기억 — <(주)정림 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이필훈, 임성필, 김성 우, 정우석> — 미술관 터 전체를 덮는 대지 가 등장한다. 이 레이어는 다양한 프로그램 과 예술적 활동을 담아 내는 플랫폼(Museum Platform)으로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 건물 의 2층 높이에서 시작되어 주변의 여러 골목 길과 이어진다. 그리고 플랫폼 위에는 사라졌 던 규장각, 소격서, 종친부, 사간원, 100년 소 나무와 우물 터, 경복궁 옆을 지나던 중학천 물길이 되살아나고, 또한 행위가 일어날 ‘마 당’으로 만들어진다. ‘마당’은 전시 공간의 지 붕이자, 하부 전시관에 빛과 자연 요소를 도입 하는 그린 필드, 하부 전시관의 기능을 지원하 는 장치이다. 그리고 인공 대지 아래 지하화된 미술관의 전시 공간은 중정과 선큰, 천창을 통 해 다시 열린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 건 물은 지하화된 전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하 나의 ‘상징 로비(Time Street)’가 되고 도시 의 골목길들은 골목길과 같은 레벨에서 건물 내부로 이어지고 확장된다. 그리고 인공 대지 의 윤곽은 삼청동의 수평적인 윤곽을 따르게 된다. 이 안은 곧 대지를 ‘비움’으로써 주변을 끌어들이고 ‘열린 미술관’의 토대를 개념으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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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규칙의 규칙이 만드는 리듬 — <씨지에스 건축사사무소 신춘규+플랜씨건축 최윤정+고려대학교 최춘웅> — 옛 국군 기무사령부 본관 건물을 본 뜬 일곱 개의 막대형 건물을 랜덤하게 배치하여, 건물 사이사이에 외부 공간의 다양한 모습을 만들고 틀을 구성한다. 건물들은 서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적인 특징이 있고, 서로 다양한 레벨에서 회랑과 브릿지를 통해 연결되고 지하의 대형 전시 공간에서 연결된다. 반면 외부 공간은 모두 도로 레벨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대형 설치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기념비적 건축물보다 건축물의 스케일을 잘게 쪼개어 바 형태의 매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고 사이 공간이 캐주얼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특히 주변의 학교 건물과도 형태적인 유사성을 띠어 미술관으로서 엄격함은 배제하면서 미술관이 도시의 구성 요소로 자연스럽게 삽입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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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예술 도록 시리즈 Art Work Series of Suryusanbang
수류산방 예술 도록 시리즈 수류산방(樹流山房)은 옛 것에 단단히 뿌리박고 또 새로움을 길어내는 일에 ‘수류(樹流)’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 및 작가 도록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과 표현, 새로운 행동과 크리에이티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수류(樹流)’라는 이름 아래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만나,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01. 기품 있고 결 고운 삶의 방식, 빈 콜렉션 Korean Inspired Lifestyle, Vin Collection (국문, 영문, 일문, 불문) | 7,000원 디자이너 강금성의 수공예 생활 예술품 02. 백(白), 다시 흰색을 보다 White in Korean Crafts (국문, 영문) | 5,000원 백자, 백옥, 한지 등 흰색을 주제로 살펴보는 전통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 03. 트랜스 리얼, 나의 고향 Transreal, My Hometown (영문) | 3,000원 런던 아시아 하우스에서 열린 작가 이진경+이세현의 전시 도록 04. 천년보옥, 한국의 누비 Korean Nubi, the treasure of millennium (국문, 영문, 일문) | 15,000원 무형문화재 누비장 김해자에게 듣는 누비 이야기 05. 티베트에서 온 천 년 The Wisdom from Ancient Tibet (국문, 영문) | 품절 춘원당한방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 도록 06. 공간 사리 Space Sari (국문, 영문, 일문) | 7,000원 철에 온기를 불어 넣는 입사장 이경자의 작품 세계
☼ 교보문고, 알라딘 등 국내 서점의 온라인·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문의 : 수류산방(02-735-1085)
by Suryusanbang 88
widE Edge
와이드 14호 뎁스 리포트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2010년 3-4월호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4> 도시의 기록자 이용재의 <종횡무진 14> 전라병영성 하멜 기념관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4> 담배 이야기 <와이드 書欌 14-1> 『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지음 | 안철흥 <와이드 書欌 14-2> 당신의 별점은? 『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 / 『덕수궁』 | 서장지기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8>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종건의 <COMPASS 11> 백지영과 포르노그래피 <주택 계획안 100선 13> 횡성 주말 주택 | 정수진 <POwer ARchitect 파일 01 | 이충기> 보이지 않는 건축, 시뮬라크르의 도시 <POwer ARchitect 파일 02 | 김헌> 인식의 모험, 그 영토 <WIDE eye 4> 정동도시건축세미나 | 이오주은+우동선+조정구 <WIDE focus 1> 조경으로 만드는 명품 도시, 광교신도시 | 안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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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WIDE focus 2> 플로팅 온 한강 Floating on the Han River | 강권정예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4> 도시의 기록자 C2*
며칠 전 <아바타(Avatar)>를 3D로 보고 왔다. 3시간 가까이 거의 한 순간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고,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연속은, 지금도 4D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잠재우기 어렵게 하 니 과연 앞으로 헐리우드의 비주얼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할 뿐이다. (그림 1) 판도라 행 성의 나비족들이 사는 마을의 지하에는 값비싼 광물이 있고, 또 그 광물을 탈취하려는 탐 욕스런 지구인이 등장한다. 전개의 개연성도 부족하고 내용도 초등학교 수준이지만 아무 도 그런 것을 탓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이 영화를 선택한 순간 사필귀정( 事必歸正)이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계몽적인 억압도, 혹은 감독주의의 고리타분한 메 시지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필립 그로닝이라는 감독의 <위대 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이 그것인데, 카르투지오(The Carthusian Order) 봉쇄수 도원을 기록한 영화로 광고도 없이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지금까지 연장 상영을 거듭하
(그림 1)
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만만히 볼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그림 2) 감독의 촬영 요청이 16년 만에 허락된 이 영화는, 감독 역시 다른 수도사들과 동일한 일상을 수행할 것, 단독 으로 촬영할 것, 인공 음향이나 조명을 금지할 것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이행하며 2년 만에 만든 영화다. 영사기가 멈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도사의 긴 기도 모습이나 미사
록 영화인데, 일반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종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오감을 자극하는 비주얼한 이미지를 기대하며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소설, 수필, 시, 역사 서, 철학서, 만화책, 주간지, 월간지까지….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존재하듯 영화 역시 수
(그림 2)
많은 종류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다만 선택은 바로 우리의 몫이니 오감을 꼬집는 영화 외에도 종류별로 몇 편씩 가슴 에 담아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편식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니까….
도시에 관련된 영화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방대하다. 그 중 <지상의 밤(Night on Eart)>(1991, 짐 자무쉬 감독)과 < 내가 본 파리(Paris vu par)>(1965, 끌로드 샤브롤 외 5명)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된 영화 중에선 단연 내 기억을 압도하며, 기록 영화로는 <베를린 대도시 교향곡(Berlin, Symphony of a Big City)>(1927, 발터 루프만 감독)이 최 고다. 이번에는 감독, 특히 도시를 가장 잘 표현해 내는 감독을 꼽으라면 난 서슴없이 빔 벤더스를 선택한다. 우리에 게 <파리 텍사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베를린 천사의 시>로 익숙한 감독, 그에겐 로드무비(road movie)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A _ Architect : 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 _ Building : 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 _ Producer : 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 _ Documentary : 건축적 다큐멘터리 / C _ City : 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 _ Miscellaneous : 그밖 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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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기대하고 본다면 두고두고 본전 생각에 치를 떨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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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수도원이나 주변 자연의 풍광, 빛과 어둠, 푸른 하늘 등이 전부여서 혹시 다른 무엇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며, 일본의 거장 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존경하여 그의 <동경 이야기(Tokyo Story)>(1953)에 대한 오마주로 <도쿄가(Tokyo-ga)>(1985)를 제작하고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한 감독이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연상할 수 있는 건물과 구조물과 스트리트 퍼니처 등으로 채워진 게 도시일까? 물론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구성물도 도시마다 갖는 아이덴티티(identity)가 다르다. 로마면 로마, 파리 면 파리, 맨하튼이면 맨하튼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잊어서는 안 되는 요소들, 예를 들면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추억이라든가, 사람들의 언어, 인습, 전통, 문화 혹은 그 도시의 계절, 온도, 냄새, 소리 등은 어떨까? 건축가들이 자주 추억하는 북촌의 골목길은, 길이라는 본래의 고유한 목적 외에도 주부들의 수다와 아이들의 놀이와 사랑에 빠진 총각의 창호지 문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는 소리가 내겐 들리지만, 이 모든 것이 빠져 있는 사진이라면 외국인의 눈엔 그저 슬럼가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1976)의 원제는 ‘Kings of The Road’이니, ‘길의 왕’쯤으로 번역하면 맞으려나? 아무튼 두 제 목 다 좋다. (그림 3~그림 7) 여러 마을을 돌며 영사기를 수리하기도 하고 또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는 빈터, 이혼 후 집과 직장을 버리고 나와 빈터를 만나 그 여정에 합류하는 란더. 이 둘의 조건이 이러하니 시간이라는 굴레는 일찌감 치 벗어 버린 듯하다(그래서 영화도 3시간 가까이 되는 듯). 이들을 쫓는 느린 카메라는 마을 모두를 한량하기 그지없 게 만들고, 그 여유는 이들이 묵는 동서독 경계 초소(영화 제작 당시는 통독 이전)까지 연장될 정도다. 그래서인지 영 화의 중심선상에 있어야 할 이들의 대화와 이들의 일상은 오히려 배경으로 물러나고, 카메라는 마을이나 환경의 모 든 디테일을 속속들이 표현해 낸다. 마지막 장면의 역에서 만난 꼬마와 란더의 대화가 내겐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뭘 그리니?” “역과 제가 본 것 들이요.” “뭘 봤는데?” “기찻길, 자갈, 시간표, 하늘, 구름….” “가방을 든 남자, 텅 빈 가방, 그리고 싱긋 웃음” “검은 눈동자….” 대부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못 보는 것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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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그림 4)
(그림 6)
(그림 5)
(그림 7)
또 다른 영화 <리스본 스토리(Lisbon Story)>(1994)(그림 8~그림 10)을 보자. 윈터라는 이름의 사운드 엔지니어는 영화 감독인 친구 프리츠의 호출을 받는다. 장소는 리스본. 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집은 찍다 만 흑백 필름만 있을 뿐 프리츠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할 수 없이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 가지 소리를 녹음하는 윈터. 골목길 소리, 비둘기 모이 주는 소리, 빨래하는 소리, 부엌칼 가는 소리….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이 영화의 메 시지는 바로 사운드다. 프리츠 영화의 음악을 맡고 있다는 마드리드쉬(Madredeus)라는 음악 그룹까지, 우리를 대 신해 윈터를 포르투갈의 뉴에이지 파도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가 매일 들으면서도 듣지 못했던 소리를, 머릿속 인지 가슴속인지, 벤더스 영화인지 나의 추억인지, 빛 바랜 색인지 아름다운 채색인지 뒤죽박죽 아름답게 그려낸 앨 범 속 사진 같다. (그림 8)
(그림 10)
(그림 9)
평생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평생 만든 영화는 모두 한 가지 주제인 ‘가족’이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1903년 12월 12 일에 태어나 1963년 같은 날 12월 12일에 죽었다. 그의 대표작 <동경 이야기>를 오마주한 빔 벤더스의 <도쿄가>는
른다. 파란 눈의 독일 감독은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동양의 향수 어린 가치를 찾아 헤매는 걸까? 그 유명한 ‘다다 미 숏’, 젊어서 노인 역만을 맡아야 했던 ‘류 치슈’의 기억, 그리고 촬영 감독 ‘아츠다 유우하루’의 회상은 기어이 나 까지 눈물을 쏟게 하고야 말았다. ⓦ
(그림 11)
(그림 12)
강병국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춘명 선생의 <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 고 <신예건축>을 거쳐 현재 ㈜동우건축 소장으로 있다. 쌘뽈요양원/유치원, 상연재, 세브란스 종합관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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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한탄하던 노감독처럼, 도시화와 문명화가 내쫓는 기억을 아쉬워하는 빔 벤더스의 마음은 영화 내내 여운으로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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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이야기한다. 장소를 기억하고 사람을 기억하고 노감독의 영화를 기억한다. (그림 11~그림 12) 가족의 붕괴
이용재의 <종횡무진 14> 전라병영성 하멜 기념관
네덜란드. 오늘은 세계사 공부 시간. 1515년 스페인에 먹힘. 약육강식의 시대. 1566년 독립전쟁. 죽이고 살리고 그제 나 이제나. 1579년 독립. 1602년 동인도회사 설립.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점령. 포르투갈, 영국 몰아내고 1650년 인도 네시아 먹었다. 1618년 스페인이 다시 쳐들어왔다. 30년 전쟁. 네덜란드 승. 1621년 서인도회사 설립. 목표. 주인 없 는 아메리카 신대륙 먹기. 지금의 뉴욕 점령. 뉴암스테르담 건설. 바야흐로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시대. 영국이 쳐들 어왔다. 프랑스가 쳐들어왔다. 아이고, 죽것다. 1830년 벨기에 분리 독립. 1950년 인도네시아 3백 년 만에 독립. 이제 쭉정이만 남았다. 국토 중 1/4은 바다보다 낮고. 1980년 제6대 왕 베아트릭스 여왕 즉위. “아빠, 네덜란드 인구는 몇 명이야?” “1,700만.” “GDP는.” “4만 2천 불로 세계 13위.” “우리나라는.” “1만 7천 불로 세계 49위.” “근데 GDP가 머야?” “gross domestic product. 국내 총생산.” “우리 집 GDP는 얼마야?” “아빠 인세가 4천, 엄마 연봉이 5천. 합치면 9천. 3으로 나누면 3천.” “근데 왜 이렇게 우리 집은 가난한 거야?” “아빠 답사비가 너 무 많이 들어가서.” “이제 그만하지.” “머라.” 1600년 네덜란드 선단이 태풍을 만났다. 이름 모를 섬 상륙. 어라 여기가 어디지. 왜놈들이 나왔다. 여기 일본이걸랑. 우리 싸우지 말고 무역하자. 좋다. 사세요 사. 그래 일본이 지금 우리보다 잘 사는 거다. 대한민국보다 3백 년 먼저 서 구 문명을 받아들였으니. 1627년 물건 가득 싣고 일본으로 가던 네덜란드 무역선 우베르케르 호의 물이 떨어졌다. 벨 테브레는 동료 두 명과 함께 보트 타고 이름 모를 섬 상륙. 어라 여긴 또 머지. 조선 땅 제주도걸랑. 포졸에게 잡혔다. 우베르케르 호는 도망가고. 서울로 호송. 조선 제16대 왕 인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디서 왔는고.” “네덜란드에서 왔걸랑요.” “그런 나라도 있냐.” “우리나라가 지금 전 세계 말아 먹고 있걸랑요.” “야 인마 장사는 상것이나 하는 거 걸랑. 귀화해라. 잘 해 줄게. 자주 서양 얘기도 해 주고.” “그러죠 머.” “근디 네덜란드가 먼 뜻이냐.” “낮은 땅.” 조선 역사상 최초의 서양인 귀화. 대포 만드는 일에 전념. 이름도 박연으로 개명. 결혼도 하고. 오늘의 주인공 헨드릭 하멜. 1630년 네덜란드 호르큼 생. 21살인 1650년 타조 호 승선 인도로 향했다. 하멜은 서기. 1651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항 상륙. 1653년 스페르베르 호 승선. 타이완 거쳐 일본 나가사키 가는 도중 태풍을 만 났다. 선원 64명 중 36명만 살아남아 제주도 모슬포 표착. “아빠, 표착(漂着)이 머야?” “물결에 떠돌아다니다 어떤 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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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닿음.” 제주목사 이원진에게 끌려갔다. “어디서들 왔는고.” “네덜란드에서 왔걸랑요.” “어라 27년 전에 온 벨테브 레도 네덜란드 사람인데.” 벨테브레가 뛰어왔다. 통역. 서울로 가자. 이송 도중 영암에서 1명 병사. 약도 없고. 서울 가는 길에 하멜 설득. 야, 네덜란드 가 봐야 배 타고 다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여기서 같이 살자. 그러죠 머. 훈련도감 편입. 한국말도 가르치고. 1654년 5월 하멜 일행 중 6명이 어선을 훔쳐 탈출 시도. 실패. 형벌로 곤장 25대씩 맞고, 그중 한 명은 후유증으로 사 망. 남은 33명 1656년 강진으로 유배. 이제 하멜 일행은 한국어 자유로이 구사. 백성들에게 세계 이야기 들려 주고 빌 어먹는다. 절에 가 스님도 가르치고. 1662년 전국에 혹독한 가뭄이 왔다. 굶어 죽는 백성 태반. 하멜 일행도 예외일
어부한테 두 배의 돈을 주고 배 구입. 순천에서 에이복켄과 디룩스죤이 놀러 왔다. 가자. 잡혀 죽더라도. 남원을 찾아 가 항해사 피테르세를 데려 왔다. 남아 있던 선원들은 계속 배에다 쌀, 물, 냄비를 싣고. 1666년 9월 14일, 13년 28일 만에 동료 7명과 함께 목선 타고 야밤에 조선 탈출. 조선인들이 쫓아올까봐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 앞으로. 맞아 죽 나 빠져 죽나 매한가지. 일본 상륙. 1668년 귀국. 하멜은 억류 기간 동안의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하멜 보고서』 작성.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하멜 보고서』 발행. 대박. 서양에 조선을 소개하는 최초의 서적이니. 1692년 하멜 사망. 63 살. 1917년 재미 교포 잡지 『태평양』에 연재. 최남선이 『청춘』이란 잡지에 연재. 1936년 이병기가 『진단학보』에 『하 멜 표류기』란 제목으로 연재. 1939년 단행본 국내 출간. 역시 대박. “아빠, 그럼 우리나라에 남아 있던 네덜란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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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은 여수로. 5명은 순천. 5명은 남원. 눈물의 이별. 잘 가라. 하멜 일행은 그동안 춤추며 알바해서 모은 돈 다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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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없고. 11명 굶어 죽음. 이제 남은 네덜란드인은 22명. 분산 거주시켜라. 먹을 게 없으니. 1663년 하멜을 포함한
어떻게 됐어.” “6명은 병사. 나머지 8명은 일본으로 송환.” 하멜의 제주 표착 350주년 기념일인 2002년 8월 16일, 당시 하멜 일행이 타고 왔던 스페르베르 호 남제주군 안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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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리 용머리 해안가에 재현. 길이 36m, 폭 8m, 돛대 높이 32m. 하멜을 기린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멜 선상님. 여러 분 덕택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습니다. 1998년 강진군은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 호르콤시와 자매 결연. 전라병영성 인근 하멜의 유배지 일대 주택가 30억 투입 통째로 구입. 2007년 일명 ‘전라병영성 하멜 기념관’ 개관. 설계자는 김홍 식. 전시관은 하멜이 타고 온 배. 유리 건물은 부러진 돛대. 조경은 억새풀을 심으려 하나 말을 안 듣고. 김홍식은 파 도 위의 스페르베르 호를 꿈꾸지만. 아마도 국화와 튤립 심을 모양. 콘크리트 풍차 조성 중. 김홍식은 목재 풍차 제안 하지만 연락도 없고.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 호르콤 시에서 얍 하트만이 디자인한 대형 하멜 동상 도착. 적자 마을 강 진군의 눈물 어린 투혼. 하멜이 먹여 살려야 할 상황. ⓦ
이용재는 명지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 평론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경』의 기자를 지냈 으며,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살기 가 이렇게 힘든 거예요?』,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 『딸과 떠나는 성당기행』 등의 책을 썼다.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4> 담배 이야기
화물 창고군을 리모델링하여 예술 공간으로 만든 인천 아트 플랫폼을 필두로 근대 산업 시설을 예술 창작촌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전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 ‘대구 문화 창조 발전소’가 있 다. 금년 2월 현상 설계 당선자가 결정된 이 사업은 대구 연초제조창 별관을 문화 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으로서, 실 시 설계를 거쳐 금년 10월 착공하여 2011년 7월 개관할 예정이라 한다. 대구 연초제조창은 본관(67,767㎡)과 별관(12,150 ㎡)으로 구성된 초대형 공장으로 한때 근로자 수만 1,000여 명에 달할 정도였으며, 이번에 리모델링하는 공장은 별관이다. 지금은 금연 운동으로 점차 쇠퇴하는 추세이나 이처럼 대규모의 공장이 필요할 정도로 우리나라 담배 산업은 확장일로를 걸어왔으며, 전국에는 이 공장 말고도 담배 관련 근대 건축물이 영욕을 간직한 채 곳곳에 남아 있다. 애증의 대상인 담배가 이 땅에 들어와 우리 문화에 미친 영향과 담배 관련 건축물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보자. 일본에서 전래된 문물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 가장 확실하게 녹아 있는 것을 찾으라면 고추와 담배를 들고 싶다. 지금은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 담배는 지금부터 400여 년 전 광해군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입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담배의 이름은 무려 30여 가지에 달하 는데 남쪽나라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뜻에서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왜초(倭草)라는 이름도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담배는 급속히 파급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즐겼는데, 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위로는 공경 (公卿)부터 아래로는 하인, 종, 나무꾼에 이르기까지 아니 피우는 자가 없다. 세상에서 이를 피우지 않는 자는 천, 백에 하 나 정도이다.”(장유(張維, 1587~1638)의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우리나라에서 담배가 이처럼 널리 퍼진 이유는 나라에 흡연을 막았던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제재가 없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비슷하며, 우리나라는 담배 인심도 아주 후하다. 주요 담배 소비국이던
나돌 정도였다고 하며, 남쪽 지방 담배로는 무주와 진안에서 생산되는 담배가 유명했다. 금연이 대세인 요즘에도 흡연권을
1. 제물포연초회사 안내 간판 : 제물포연초회사는 사동에 있었다
2. 충북 제천엽연초생산조합 구 사옥 : 제천에 남아 있는 엽연
는 기록과 선린동에 이 안내판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초생산조합은 1977년 신축 건물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59년 동
중반까지만 해도 ‘제물포연초회사(Chemulpo Tobacco Co.)’라
안 엽연초 생산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다 이후 부속 건물로 사용
는 글자가 있는 벽돌 건물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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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는 평안도(관서), 강원도, 전라도 지역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관서 지방에서 생산되는 담배는 찾는 사람이 많아 가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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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의 대표적인 담배 생산국으로 중국 동북 지방에 담배를 전파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담배의 주 생
3. 구 충북 제천엽연초 수납취급소 외관 : 1943년 창고 2동과 수
4. 구 충북 제천엽연초 수납취급소 트러스
납장을 철거하고 세운 ㄱ자형 건물로 엽연초 처리 흐름에 따라 서남쪽에 위치한 입구에서 하치장, 배열장, 경작자 대기실, 계산 실, 감정실, 현품 대조실, 갱장장 순으로 공간을 배치하여 효율 성을 높였다.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선 시대에도 애연가와 담배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개혁 군주 로 유명한 정조는 상당한 애연가로 궁궐에 담배를 심어 친척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으며, 실학자 정약용도 애연가였다. 그 중에서 『연경(煙經)』이라는 책을 쓴 이욱의 담배 사랑은 극진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담배를 싫어했던 사람으로는 광해군 과 『성호사설』로 유명한 이익, 『열하일기』의 작가 박지원, 이광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광해군은 담배 냄새를 싫어해 신 하들이 임금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아랫사람이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 다는 우리나라 흡연 예절이 생겨났다는 말도 있다. 조선 시대에는 잘게 썬 담배 잎을 담뱃대를 이용하여 피웠으며, 담뱃대의 길이는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항으로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흡연 방식에도 일대 혁신적인 변화가 초래되어 얇은 종이에 가늘고 길게 말아 넣은 지궐련초(紙卷 煙草)로 대표되는 제조 연초가 유행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수입품을 판매하였으나, 1900년 이후 유럽인과 일본인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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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연초 제조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회사가 그리스인 밴들러스가 1901년 인천 중구 사동에 세운 동
5. 전북 무주엽연초조합 구 사옥과 관사 : 일제는 조선 시대부터
6. 충북 진천엽연초생산조합 구 사옥 : 1962년 9월 22일에 지어
담배의 주 생산지였던 무주, 진안에 눈독을 들이고 연초 경작지
진 전형적인 모더니즘 건물로 현재는 매각되어 음식점으로 사
를 넓혀 나갔다. 1925년에 세워진 건물로 크게 보이는 것은 조합
용되고 있다.
사무실이고 멀리 관사가 보인다. 바로 옆에는 연초 수납 취급소 가 위치하고 있다. 일본식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있어 일본의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7. 충북 청원군 미원엽연초생산조합 : 미원에는 1912년에 엽연
8. 충주 황색 연초 도입 25주년 기념비 : 일제는 1912년부터 충
초 생산조합이 설립되었으며, 이 건물은 1937년에 신축된 것이
주에서 황색 엽연초가 경작된 것을 기념하여 1936년 폭 4.6m,
다. 미원에는 1913년 산동사(山東社)라는 엽연초 매매회사가 설
높이 11m 규모의 기념비를 충주시 지현동 사직산에 세웠다. 이
립될 정도로 연초의 생산과 유통이 성행했던 곳이다.
후 1973년 충주엽연초생산협동조합 구내(충주시 용산동 소재) 로 이전하였다가 부지 매각으로 2006년 5월 23일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연초회사이다. 이 회사는 수입 담배에 밀려 곧바로 문을 닫았으나, 지배인으로 있던 미국인이 인수하여 제물포연초회사 (Chemulpo Tobacco Co.)를 설립하여 홍도패, 산호 등의 담배를 생산했다. 수입 담배와 외국인이 설립한 연초 회사 제품 이 시장을 국내 담배 시장을 잠식함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향연합자회사(1899년)와 같은 담배 회사를 설립하여 외국 담배와 경쟁했지만, 1908년 당시 우리나라 지권련초 시장의 90%는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잠식하고 있었다. 일제의 담배 산업 침탈은 1905년부터 본격화되어 1910년 이후에는 연초 주산지를 중심으로 연초 경작 조합을 세워 재배 농민과 담배 유통업자를 통제했다. 이때는 연초 제조업 통제에 중점을 두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연초 제조업은 우리나라 사람, 일본인, 영미인이 세운 제조 회사가 3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립 관계는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1914
화했다. 1921년 연초전매제를 실시하여 연초 경작지를 통제하고, 엽연초 수납을 의무화했다. 이로써 약 300년간 지속된 자
9. 황색 연초 생산지와 전매국 위치도 : 전매 제도는 기원전 100
10. 동아연초회사 공장의 작업 광경 : 1921년 4월 연초전매령이
년경 중국 한나라에서 소금과 철을 국가에서 전매한 기록이 있
공포된 뒤 7월부터 전매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동아연초회사, 조
으며, 조선 시대에는 ‘구관(具梡)’이란 사람이 담배의 국가 전매
선연초회사 등 6개 민간 공장을 정부에서 징발했다. 연초 제조
를 주장하기도 했다. 1898년부터 자국 내에서 담배를 전매하여
공장은 작업 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이었다.
재미를 본 일제는 1921년 7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담배 전매 제 도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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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회사는 중국으로 회사를 옮겨야 했다. 일본인이 국내 담배 제조 시장을 석권하자 조선총독부는 연초 재배업 통제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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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연초 제조 지역과 공장을 허가제로 전환함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던 소규모 회사는 대부분 몰락했고, 영미 연
12. 황색 연초 건조장 :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담배는 크게 황색종과 버어리종이 있다. 황색종의 주산지는 경상북도와 충주 를 비롯한 충청북도 지방이며, 버어리종은 전라도와 충청남도가 주산지이다. 버어리종은 비닐하우스에서 건조하지만, 황색종은 불을 이용하여 말리기 때문에 높은 건조장이 필요하다. 우측의 신형 건조장(청원군 미원면)이 등장하면서 좌측의 구형 건조장( 영동군)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11. 대구전매국과 연초제조창 : 대구연초제조창은 1924년 연산 10억 본 규모의 연초 제조 공장이 세워진 이래 1980년대까지 증 개축이 이루어지면서 규모를 확장하다가 1990년대에 폐쇄되었 다.
유 경작 시대는 끝이 났고 농민이 생산한 연초는 등급을 정해 수납했다. 조선총독부는 수납가를 시가의 10% 정도로 형편 없이 낮게 책정하여 재배 농민들의 고혈을 짜내며 담배 관련 전 분야의 이윤을 독점했다. 농민의 연초 재배업 통제는 연초 조합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전국 각지에 연초 조합 사무실, 관사, 저장 및 수매 창고, 건 조장, 연초 제조 공장 등이 세워졌다. 당시에 지어진 건물의 상당수는 충북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충주를 비롯 한 충북 지역이 황색 엽연초의 주산지였기 때문이다. 황색 엽연초는 1906넌 서울에서 처음 재배된 뒤 시험 재배를 거쳐 원 산지와 생육 환경이 비슷한 충주 지방이 중점 재배지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1913년에는 충주연초경작조합이 설립되었 으며, 경작 농가와 재배 면적도 급격히 늘어났다. 이곳에서 생산된 담배는 그 질이 좋아 황색 엽연초만으로 담배를 만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수출되어 호평을 받았고, 6.25 사변으로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외화가 절대 부족하던 시절에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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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효자 수출품이었다. ⓦ
손장원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로 있으 며, 본지 고정집필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다시 쓰는 인천근대건축』, 『건축계획(공저)』 등이 있다.
<와이드 書欌 14-1 | 안철흥> 『작업실 탐닉』
와인을 나눠 마셨고, 천장에 걸린 서바이벌 게임용 라이플을 꺼내
들도 자신의 작품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갓파 씨의 친구
들고 밖에 나가서 사격 연습을 했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유일한
이면서 그에게 작업실 엿보기를 허락했던 지휘자 이와키 히로유키
디지털 건축가 혹은 미래 건축가로 불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에 따르면, “(그의 글을 읽은 뒤) 전화를 걸어 마구 칭찬만 하면 그
의 연구실은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는 화를 낸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감상을 말하기 위해서는 꼼꼼히
독후감의 서두가 괴상하게 풀렸는데, 앞에서 언급했듯 갓파 씨의
읽어야 한단다. 하지만 나에게 『작업실 탐닉』은 읽으면서 건성건
담백한 문장들과 꼼꼼한 펜화 일러스트가 나를 자극했기 때문이
성 상상에 빠져 들도록 유혹하는 책이었다. 내가 갓파가 되어 전에
다. 나 또한 엿보기의 유혹을 느꼈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
방문했던 ‘작업실’을 되새김해 보는 것이다.
작업실 탐닉’이고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
이를테면 이런 상상. 소설가 김훈 씨의 책상에는 두툼한 국어 사
만, 일본어 원제는 『갓파가 엿본 작업실(河童が 覗いた仕事場)』이
전과 영어 사전이 나란히 펼쳐져 있었고, 그 옆 천장에 매달린 천
다. 『주간 아사히』에서 1985년에 연재한 것을 다음 해에 책으로 묶
칭(天秤)이 아슬아슬 균형을 잡고 있었다. 벽에 걸린 칠판에는 꾹
었다. 한국어 번역에는 1997년 문예춘추사가 재발행한 판본을 사
꾹 눌러 쓴 정자체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적어 놓았다. 나
용했다. 책에는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서재, 작가 가와바타 야
는 그의 작업실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팩트’를 섬기고 사념을 경
스나리의 『설국』의 무대가 되었던 료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멸하며 형용사와 부사가 덕지덕지 붙은 문장을 혐오하는 한 회의
서재, 배우 반도 다마사부로의 분장실, 도예가 가토 도쿠로의 물레
주의자 지식인이 방문객을 위해 나름의 퍼포먼스를 준비했구나 하
공방 등 모두 49곳의 작업실이 등장한다. 예술가의 작업실뿐 아니
고 매번 생각했는데, 이번에 갓파 씨의 책을 보면서 그런 심증을
라 외과의사의 수술실, 정치인의 의원회관 사무실, 기상청의 지진
더욱 굳혔다.
예지정보과 현업실, 건축가의 시공 현장처럼 예술과는 상관없지만
내가 방문했던 작업실 중에서 가장 유쾌했던 곳으로 건축가 조택
일반인이 엿보기 힘든 작업 현장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어 번역본
연 교수의 연구실을 빼놓을 수 없다. 금속 파이프로 둘러싸여 마치
에서는 ‘작업실’로 옮겼지만, 원제의 ‘仕事場(しごとば)’은 작업실
건축 공사장 비계 속 같았던 그곳에서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 <원
이라는 우리말이 주는 닫힌 느낌보다는 오히려 일터, 작업 현장을
더풀 데이즈>를 위해 그가 설계했던 미래 건축의 설명을 들었고,
뜻하는 쪽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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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세노 갓파 씨는 자신의 편집증적인 작업 스타일만큼 독자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세노 갓파 지음, 송수진 옮김, 씨네21북스 펴냄, 296쪽, 14,000원
세노 갓파의 엿보기 시리즈는 일본에서 꽤 유명하다. 『갓파가 엿본
이에 얼마나 흔쾌히 동참하고 즐겼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유럽』, 『갓파가 엿본 일본』, 『갓파가 엿본 인도』 등 여러 권이 출판
있기 마련. 나카소네 일본 수상의 집무실은 갓파에게 취재는 물론
됐다. 이중 몇 권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모두 세밀한 펜화 일
자료 제공조차 거부했다. 대신 그는 미국 백악관에 우편으로 신청
러스트와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만하면 ‘갓파 스타일’을
해서 받은 자료만으로 레이건 대통령의 집무실을 꼼꼼하게 재현
만들어 냈다고 보아도 충분할 성싶다. 갓파의 작업은 매우 치밀하
한 뒤, “총리의 집무실은 공적인 장소이고 본래 공개되어야 하는
고 꼼꼼하다. 그는 모눈종이와 삼각자, HB연필, 카메라를 들고 작
장소이다.”라고 적었다. 폐쇄적인 일본 정계를 겨냥한 갓파의 유
업실을 방문해서 구석구석 샅샅이 찍고 스케치한다. 책상 위에 펼
쾌·통쾌한 복수다.
쳐져 있는 책과 벽에 붙어 있는 쪽지의 내용은 물론 방문 창호지에
사족 하나. 그의 오랜 친구이자 고양이 빌딩(빌딩 벽의 고양이 그
서 고양이가 할퀸 흔적까지 찾아내어 그려 넣는다. 벽장에도 들어
림이 갓파의 솜씨라고 한다)의 주인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가 보고, 휴지통까지 뒤져 본다.
‘갓파 엿보기’에 그의 개명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세노 하지메였
『작업실 탐닉』은 엿보는 자와 ‘들킨 자’가 서로 즐기지 않으면 못
던 그는 매일 이상한 짓을 하고 다녀서 친구들에게 갓파(일본의 상
할 짓이라는 점에서 다른 엿보기 시리즈와 다르다. 주인 없는 남의
상 속의 동물)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어느 날 이왕 이렇게 된 거
작업실에서 홀로 몇 시간을 머물거나, 작업실 키를 넘겨준 뒤 갓파
이름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면서 재판소에 가서 세노 갓파
의 손끝에서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조마조마 기다리는 심정을 상
로 개명해 버렸다는 것이다.
상해 보라. 그래서 나는 갓파의 작업을 일종의 놀이로 본다. 그리
사족 둘. 『작업실 탐닉』의 주인공들은 몇몇을 빼면 국내에 잘 알려
고 갓파의 장점은 자신만의 놀이를 들킨 자들에게까지 전염시키
지지 않은 이들이다. 건축가는 두 명이나 등장하지만 안도 다다오
고, 함께 즐길 줄 안다는 것이리라. 책에는 매 꼭지마다 들킨 자들
는 없다는 뜻이다. 엿보는 재미는 아는 사람일수록 커지는 법인데,
이 쓴 ‘갓파 엿보기’가 달려 있는데, 읽어 보면 그들이 갓파의 놀
이점이 읽는 내내 아쉬웠다. ⓦ
안철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월간 『말』지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시사IN』에서 2여 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동안 정치부와 문화부에서 거의 절반씩 밥을 먹었는데, 건축계 쪽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은 그때 어설픈 곁눈질로 사귀어둔 ‘인맥’ 덕분이라 고 한다. 이미 ‘절판’ 상태라 이름을 밝히기 좀 그렇다는 책 한 권을 쓰고 한 권을 번역했다.
<와이드 書欌 14-2 | 서장지기> 당신의 별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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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 / 『덕수궁』
지난 호부터, 소개되는 책에 별점을 찍기 시작하고, 반응을 접했
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송승훈 엮고 씀, 양철북 출판
는데 크게 엇갈렸습니다. 하나는 <와이드>가 전체적으로 무겁거
사, 384쪽
나 진중한 자세로 책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
처음엔 이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 이일훈 형의 소개로 출간된 것
론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잡지에 대한 칭찬과 힐난의 애매한
을 알았습니다. 저자이자 책의 기획자이기도 한 송승훈 선생은 <
경계에서 별점 꼭지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
와이드>가 매월 진행해온 땅집사향 세미나와 뒤풀이 자리에서 만
나는 별점이 장난스럽다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명확한 기준이 드
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와이드> 창간호부터 쭉 독자이며, 이
러나지 않는 별점으로 인해 졸지에 책의 가치가 폄훼될 수 있다는
일훈 형을 건축가로 초대하여 자신의 집 설계를 맡기고, 다 지어지
지적이 있었습니다. 기실 독자님들이 직접 해당 도서의 읽기가 전
고 나서는 건축주라는 고귀한 자리에서 건축가를 위하여 그 집에
제되지 않는 한 서장지기의 별점에 이의를 달기가 쉽지 않을 거라
대한 책을 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하고는 어느 하루, 서장지기
는 얄팍한 전략이 있었음을, 아시는 분은 이미 다 아시고 계시겠지
에게 이메일을 주어 한 1년 그 집의 변화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해
요. 이 달에는 두 권의 성격 다른 도서를 가지고 별점을 찍어 볼랍
줄 건축 사진가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온 바 있습니다. 나중에
니다. 그럼, 이만 총총.(서장지기 백)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교육판에서 이 분의 명성은 자자하여 1년에
덕수궁|안창모 씀, 도서출판 동녘, 268쪽 “책의 제목을 정하는 일만 남았어요.” 연초에 인사동 누리레스토 랑에서 심원건축학술상의 추천작 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저간 의 개인사들을 서로 묻게 되었는데 안창모 교수는 덕수궁 관련 출 간을 위하여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고, 제목 때문에 고민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얼핏 들었던 또 하나의 제목이 ‘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라는 다소 장황하며 설명적인 현재의 부
도 여러 차례 지방 강연을 다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2009 교사 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국어 교사’이고, 한때는 교육방송 라 디오 ‘책과의 만남’을 진행하였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독서 교육 지침서를 만들 때 함께했고, 특히 ‘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 들’ 모임을 처음 만들었는가 하면,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내 는 『함께하는 국어교육』 편집위원을 역임하는 등 나라에서 받는 급여 말고도 버는 돈이 조금 있어 그 귀한 돈을 모아 사진비를 줄 요량이었다는 게지요. 암튼 건축가는 앉아서 그 집에 대한 책 선물 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고 보니 이 분들의 관계란 독자님들의 상 상에 맡기겠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광동고 학생들의 국어 수업을 지도하고 있는 저 자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기획을 합니다. 책 제목에 제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연구자로서, 한동안 도
제 역할을 합니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지요. “우리가 감
코모모 코리아 수석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 분야의 떠오른 강
히 어떻게, 그가 우리를 만나나 줄까?” 등등 의기소침함이 교실 안
자(강한 연구자며 교육자)라 일컬음을 당하는 저자는 누가 보아도
의 소란으로 번집니다. 그 사이, 송승훈 선생은 학생들의 순정에
한국 근대 건축의 손꼽는 열성 학자입니다. 늘 무거운 가방을 등짐
대고는 속삭이듯 불을 지피지요. 불안해 하지 말고 나가거라. 단,
만치 들어 메고, 선배들이 이미 걸었던 근대 건축의 현장을 다시금
불안해 하는 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학생들은 스스로들이 정한
발로 밟으며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가는 소질이 남다릅니다.
책을 읽고는 우선 서평을 씁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4~5인 한 조로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근대 건축 학자로서 조선의 왕궁을
역할을 분담합니다. 저자 인터뷰에 당하여 생각하고, 연락하고, 묻
연구하여 책으로 묶는다는 행위의 타당성에 대하여 스스로 의문
고, 기록하고, 글로 맺는 과정을 나누어 수행하는 게지요. 송 선생
하며, 덕수궁이 갖는 역사적 의의에 다가가기 위한 저자의 역할을
은 학생들의 저자 인터뷰 수준이 전문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되새깁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경계 지점에 서 있는 덕수궁은
적고 있지만 책은 그것이 저자의 겸손임을 쉬이 알게 합니다. 우리
조선의 건축적 조망이라는 프레임 이상으로 13년이라는 단기간에
나라 고딩들의 현재가 이 책의 공동 필자로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우리 근대 역사의 심장부였다, 라는 시선에 힘을 두는 것이지요.
의 수준이라면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합지요. 말 많은 공교육의
그 안에서 고종이라는 비운의 존재를 만납니다. 그리고 찾아 들어
구조적 결함을 한방에 날리는 송 선생의 ‘경계 넓히기’ 작업은 여
갑니다. 외세의 침탈에 신음했던 이 나라 산하에서 국제사회의 역
러 가지 면에서 귀한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학 구도를 이용하여 대한제국의 독립적 자아를 드러내려 했던 그
학생들의 몫입니다”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교단에서 선생의 자리
의 건축 의지를 말이지요. 이 책은 그러한 독특한 시선으로 덕수궁
에 대하여 말이지요.
의 전각과 서양식 건물을 분해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주장도 합지
ⓦ 서장지기 별점 : ★★★★☆ | ⓦ 당신의 별점은?
요. ‘시청 앞 광장’의 이름을 ‘대한문 앞 광장’으로 돌려 놓자고 말 이지요. 감동입니다. ⓦ 서장지기 별점 : ★★★★★ | ⓦ 당신의 별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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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 영역으로 칭해지는 유명 저자들의 경계를 허물어 내는 기폭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도 나오듯이 ‘고딩들의 저자 인터뷰 도전기’의 출발은 통상의 접근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8>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허가서를 받아들고 다시 땅에 나갔다. 실시 설계가 웬만큼은 되어
유인지, 나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있는 상태라서 한 번 더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가 보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니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들이 걸렸다. 누군가 그 땅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에 경작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내 땅이라 하더라도 무작정 밀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어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작지 외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 미야 치우면 되지만 배추며, 고추며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마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당에 초를 칠 수는 없었다. 땅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 주인의 경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작 불허 표지판이 있었지만 나는 거기다 다시 착공 일자를 써 넣고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돌아왔다. 그 후에도 실시 설계를 마무리하면서 수시로 점검했지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만 도무지 채소밭을 정리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 이 일일이 경작자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경작자가 바로 옆집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인 경우도 있었지만 멀리 사는 친척들 하고 같이 땅을 일구는 사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람도 있었다. 그렇게 일일이 만나고 전화를 해 착공 사실을 알렸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다. 그런데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조금만 더 채소가 자랄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칠순이 넘어 보이는 얼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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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는 구부정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일한 혈육인 아들이 교통 사고를 당해 평생 누워 있어야 하는 불운까지 당했다. 아직
「가을날」에서 ‘이틀 만 더 남국의 햇빛을 달라’던 릴케는 그 때를
도 농경인의 생활을 버리지 못한 산업 사회의 시민. 가끔 용산을
알고 있었을까? 그 이틀의 시간이 과실에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지나다가 미군 부대 담 밑에서 쑥을 캐는 노인들을 보아 왔던 기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집을 짓는다. 나는 오래 고독하지 않는 대
억이 났다. 저이들에게는 봄이면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들판에 나
신 오래 고생할 것이다.
가 나물을 캐는 채집의 습성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시공자에게 전화를 했다. “땅 팝시다.” 2007년 8월 4일로 착공 날
그런 세대들인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죽어라 하고 집과 직
짜가 정해졌다. 허가가 나오자마자 부랴부랴 잡은 날이었다. 속초
장만 오가는 우리와는 다른 세대였다.
에 계신 큰 매형이 역술을 하고 계시지만 길일을 잡고, 하늘과 땅
“며칠이면 되겠습니까?” “한 달이면 좋은데, 그럴 순 없잖어.” 노
에 예를 갖추면서 일을 시작하기에는 그것도 호사였다. 지금 생각
인은 말을 끊으며 내 기색을 살피더니 툭 던지듯 다시 말을 이었
하는 거지만 역시 큰일을 할 때는 그런 예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
다. “일주일만 주시구료.” 일주일. 그 시간은 채소들에게 어떤 여
다. 왜냐하면 그런 예를 갖춘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계획이 차질 없
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탄탄한 계획 아래
다 시멘트 제품마다 다른 콘크리트 색의 불확실함을 검은색으로
에서야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예를 갖출 수 있다. 허둥지둥 하는
지워버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영업 사원이 제시하는 가격
일에는 그런 예를 갖출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그래서 나중에
에 나는 놀랬다. 일반 콘크리트보다 1.6배가 비쌌다. 일반 콘크리
는 여기저기서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그리고 그 문제는 이미 처
트가 1㎥당 5만 원(2010년 현재 5만 7천 원) 하는데 검은색 칼라
리되었다고 생각하는 지나간 과정 속에 모두 숨어 있다. 그것들이
콘크리트는 6만 원이 넘었다. 참고로 백색일 경우는 그 4배에 달
그렇게 도사리고 있으니까 예를 갖출 여유가 없는 것이다. 허둥지
했다. 백색일 경우는 당연히 백시멘트가 들어가니까 이해가 되지
둥 소소재 신축의 첫 삽이 꽂아지고, 나는 절 한 번 못했다. 단지
만 검은색일 경우 그렇게 가격이 뛴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땅에 대해 송구했을 뿐이다. 피 냄새 나는 전쟁터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검은색을 포기하는 것이 내내 아쉬웠다. 그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한 것 같은 미안함.
렇다고 골조 비용을 증액할 여유도 없었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삼백만 원이 들었다. 시작부터
‘검은 바위’ 대신에 ‘거친 바위’를 택했다. 쪽널 제물치장 콘크리
150만 원이 초과되었다. 한 차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쓰레기가
트로 가기로 한 것이다. 목수와 상의해 보니 목수도 그건 재료비
세 차가 나갔다. 내가 저질러 놓은 일도 아닌 뒤치다꺼리에 예산
만 대면 따로 인건비 계산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이 초과되니 억울했다. 그래도 그걸 가지고 분을 토로하기에는 시
그대로 믿은 것이 불찰이었다. 인건비 계산에서 거푸집 성형비와
간이 없었다. 레미콘 계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레미콘 회사 영
쪽널 대기를 따로 계산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목수는 하루에 투
업 사원과 현장에서 만났다. 언제나 영업 사원은 친절하다. 뭐든
입된 목수 숫자로 인건비를 계산했다. 당연히 거기에는 받지 않기
지 해 줄 것 같다. 나는 검은 칼라 콘크리트 샘플을 요구했다. 검은
로 한 쪽널 대기 인건비가 들어가 있었다. 정확히 계산해 볼 수도
바위를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검은색 레미콘을 선택
없었지만 대략 예상했던 인건비의 1.5배 정도가 추가된 것이 틀
한 것은, 물론 개념을 강화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레미콘 회사마
림없다. 폭 100mm 정도의 쪽널을 얼기설기 붙이는 것은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들었다. 더군다나 목수들은 얼기설기 대라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세로로 줄을 정확히 맞춰야지, 왜 그렇게 대 냐는 의문이 1층 콘크리트를 타설하기까지 그들에게는 계속되었 다. 비로소 1층의 거푸집을 떼고서야 그들은 아, 이런 걸 원했구 나 하고 이해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의 작업 수정이 있었던 것 은 두말할 것도 없다. 목수 반장인 박목수의 일머리는 의외로 정확했지만 빠르지는 못 했다. 그는 내 의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요구하는 대로 충 먹줄을 놓을 때까지 나는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같이 먹줄을 잡 고, 그가 계산하면 나는 확인했다. 그리고 기초 배근을 했다. 철근 은 당시 가격이 톤당 63만 원이었다. 철근을 싸게 구입한 것은 아 니지만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골조를 끝낸 직 후 철근 가격이 톤당 80만 원을 하더니 10월, 11월에는 철근 가격 이 치솟아 톤당 백만 원이 넘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현재는 다시 가격이 안정되어 톤당 70만 원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1층 콘크 리트 타설이 끝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거푸집을 떼어 보니 쪽널의 목재 결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나무의 결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밋밋한 면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전체적인 작업 과정을 봐주 던 형님은 나무를 바꿔 보자고 제안했다. 나도 이렇게 해서는 벽 면의 맛이 안날 것 같았다. 그래서 형님이 들고 온 재료가 낙엽송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실히 따르고자 노력했다. 규준틀을 메고, 버림 콘크리트를 치고,
나무도 단단했다. 우리는 다시 낙엽송 쪽널을 붙이며 작업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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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다. ‘일본잎갈나무’라고도 불리는 낙엽송은 면이 더 거칠고,
나갔다. 2층은 세 세대로 나뉘어져 있어 복잡했다. 그만큼 작업도
다. 그래도 공사는 계속되어야 했다. 2층 거푸집이 만들어졌고, 나
더뎠다. 작업 공간도 비좁았다. 그렇다고 내가 현장에 계속 붙어
는 박반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부랴부랴 현장으로 향했다.
있을 수는 없었다. 파주의 어린이 집도 설계해야 했고, 부산의 인
박반장은 문제의 지점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맞았
디고 서원의 하자도 잡아야 했다. 더군다나 이자 낼 날은 원수처
다. 계단이었다. 계단참 부분에서 보가 걸렸던 것이다. 정확히 계
럼 다가왔다. 사실 이자까지 내면서 작업을 이끌어 나갈 수는 없
단참의 대각선으로 보가 지나간 것이 문제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
었다. 공사비에서 이자가 나가야 할 판이었다. 임시로 얻은 오피
게, 그러면 계단참에서 사선으로 계단을 하나 더 만들라고 지시했
스텔 월세 50만 원에 은행 이자 240만 원, 그리고 공사비까지 진
다. 그런데 박반장은 뭔가 미진하게 자꾸 질문을 했고, 내 설명에
퇴양난이었다. 거기다가 시설 자금 대출을 약속했던 은행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정으로 수긍하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
땅값을 넘는 대출은 불가하다고 약속을 어겼다. 그러니까 땅값 3
는 그런 박반장이 이상했다. 하지만 별일이 아니었고, 계단참에서
억 5천에서 2억 4천을 대출 받았는데, 거기서 시설 자금 대출은 1
대각선으로 단이 생기면 해결될 문제라서 나는 그렇게 작업 지시
억 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공사비의 70프로를 생각했던 나로
를 내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2층 콘크리트가 타설되었다. 며칠 후
서는 망연자실했다. 그것도 1억을 한꺼번에 주는 것이 아니라, 공
거푸집이 벗겨지고 2층으로 올라가던 나는 문제의 그 지점에서
사 진행 상황을 체크하여 한 달에 한 번 씩 시공자의 통장으로 입
발이 딱 멈춰졌다. 계단참이 정방형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자연
금되었다. 따라서 나처럼 도급을 주지 않고, 직영으로 공사를 해
히 보가 깎여 있었다. 나는 박반장을 불러 연유를 물었다. 계단참
나가는 상황에서는 사실 엉뚱한 사람에게 돈이 지급되는 것이다.
이 사선으로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그만큼 위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계좌 주인은 시공
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런 법은 없습니
면허를 갖고 있을 뿐이지, 이 현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다.” 주요한 보의 깊이가 삼분의 일이 잘려 나갔다. ⓦ
일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었다. 부산의 인디고 서원의 하자를 보수하는데 시공자는 자꾸 실수를 했고, 파주의 어린이 집은 착공이 불확실했다. 공사 자금도 벌써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방송국에서 한 코너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 왔다. 일이 번잡한 가운데서도 또 다른 일을 시작해야 했 지만 자금 사정에 쪼이고 있던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형님이 현장 일을 봐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 늘 건축주에게 설계를 하기 전에, 죽을 수에 집을 짓는다, 라는 경고를 해왔는데, 정말 내가 그 짝이 난 것이다. 이 말은 틀림없다. “죽을 수에 집을 짓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시공을 하시는 형님과 나는 이 집을 지으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봤다. 낙엽송 쪽널은 성공적이었다. 어디서 이런 실험을 감히 하 겠는가? 내 집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남의 집을 지을 때야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낙엽송 쪽널은 그 결이 확연하게 찍혀 나왔다. 나와 형님은 인건비가 증가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우리의 실험에 득의했다. 그러던 중에 덜컥 사고가 났다. 목수 하나가 작업을 시 작하자마자 손목이 부러진 것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치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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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지만 산재보험을 타서 지급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합의해야 할지 막막했다. 산재보험은 시공을 하시는 형님 명의로 들어 놓았 지만, 시공을 하시는 형님 입장에서는 산재 신청을 하면 보험료가 올라가기 때문에 큰 사고가 아니면 합의하는 것으로 처리하길 원 했다. 결국 합의금으로 3백만 원이 나갔다. 아아,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아예 집을 짓지 마십시오. 뜻하지 않은 돈이 또 나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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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돈도 돈이지만 합의하는 과정이 또 지난했다. 물론 형님이 전 면에서 해결했지만 그걸 지켜보는 나도 피폐해지기는 마찬가지였
시인이며 건축가인 함성호는 강원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시집 『성 타즈마할』, 『56억 7천만년의 고독』, 『너무 아름다운 병』과 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평론집 『만화당 인생』 등의 책을 냈다. 시 쓰는 선후배들과 <21세기전망> 동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요즘은 개인 건축 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2009년에는 대산문화재단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버클리)가 공동 시행하는 한국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4번째 참가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종건의 <COMPASS 11>
사랑과 폭력의 결구는 포르노그래피의 욕망에 맞닿는다.
실시간 인기 뉴스 베스트’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
사랑이 폭력적일 수 없고 폭력이 사랑일 수 없는데도, 포르
연을 훑어보니 이유는 딱 한 가지, 또 다시 포르노그래피다.
노그래피의 외설적 수갑은 그 둘을 강제로 채운다. 오로지
포르노그래피가 대중에게 가장 잘 먹히는 전략이라는 사실
그 자신의 허기가 만들어 내는 환상의 대상을 먹으며 살아
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포르노에 돈을 소
가는 포르노그래피의 자폐적 욕망은, 실재이면서 그와 동
모하기로 세계 1위인 우리나라라면 더 그럴 것이다(『매일
시에 허상이다. 나의 몸에 욕망의 한 형태로 분명히 실존하
경제』 인터넷 2월 1일자 뉴스 속보부에 따르면, 한국이 색
는 만큼 실재이지만, 나의 몸 안에 갇혀 희망이나 신뢰, 관
욕 부문에서 10점 만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계, 초월, 열망을 열어 줄, 관능의 친밀성으로 삶을 고양시
여자가 겪을 수 있을 수치심의 최저점까지 하강해서도(성
킬 수 있는 맥락을 연결시켜 줄, 어떤 출구도 갖지 않는 까
폭력과 성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얼마나 심한가?),
닭에 허구다. 약속할 수 없는 오르가슴을 약속하는 포르노
불행 중 다행히(안타깝게도 수많은 여자들이 불행 속에 갇
그래피의 오르가슴. 약속할 수 없는 관계를 약속하는 포르
혀 다행의 길을 못 찾는다) 가수 활동 재기뿐 아니라 휴머니
노그래피의 관계. 불편과 긴장을, 곧 고통을 야기하고, 그
즘 회복에도 완벽히 성공한 그녀가, 얼마 전 인기몰이에 성
로써 고통의 해결(곧 쾌감)을 약속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
공한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 주제곡을 애달프게 부
체 혹은 대상의 파괴를 은밀히 재생산하는 자위의 에로티
르며, 나의 가슴을 쥐어짜며 파고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즘. 포르노그래피가 이렇게 관계망과 절단된 폐쇄 회로
호소력 있던 노래와 겹쳐,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거미줄에
를 돌고 도는 한, (대부분의 섹스 또한 환상이 아닌 실제적
붙잡힌 채, 사력을 다해 연인의 곁으로 다가가려는 안쓰러
인 상대의 몸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여전히 자
운 몸짓 사이사이를 밀치고 나오는, 사무친 그리움의 눈물
위의 행위라는 점에서) 결코 현실화될 수 없는 대상(곧 환
이 그렁그렁한 이병헌의 깊이 모를 눈망울도 선하다. 백지
상)을 강제로라도 현실화하려는 포르노그래피의 에로티시
영의 절절한 목소리가 이병헌의 영상을 얼마나 더 젖어 들
즘은, 기어이 한계를 넘어섬으로써(사실 어떤 형태의 성적
게 만들던지…. <아이리스>가 종방에 이를 즈음, 이병헌의
행위도 사적 영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포르
스캔들이 뜬금없는 한밤중의 사고처럼 불쑥 등장했다. 지
노그래피로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욕망이 경계를 넘쳐 공
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당사자를 제외하고, 아니 어
적 영역으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공격
쩌면 당사자를 포함해서도, 사건의 본질 혹은 진실을 알 방
할 때다) 공적 영역을 훼손하고 그로써 그 음란성을 드러낸
도가 없겠지만 성인 두 사람 간의 연애와 그에 따른 이별이
다. 환상이 찢어내는 상징계의 구멍, 그로써 드러나는 실재
도대체 어떻게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을지 나로서는 도무지
계의 역겨움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빨아들이는 도착적 욕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가까
망이 포르노그래피의 얼굴이 아니던가?
워졌고, 그 둘 혹은 그 중 한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좋아하 던 마음이 사그라져 멀어지고 헤어지는, 그야말로 지극히
그런데 포르노그래피의 문제는 그 발생지가 우리 바깥에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연애사가 왜 송사 거리로 오르는지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하다. 그런 탓에, 문제를 오직
모르겠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만 내가 그 상대를 여전히
개인에게 묻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실존의 발판을 공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별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나
동체로부터 개인으로 이행시킨 모더니티, 그리고 그로 인
의 허락과 상관없이 그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한 자유와 책임의 동시적 증대와 그에 따른 불안의 증대. 우
태도도 이해는 충분히 할 수 있다만, 그것이 공격적 행동과
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내막을 초월
연관될 수 있을 정당성은 나로서는 찾을 수 없다.
적 존재가 아니라 통계학(불확실성 통제를 위한 개연성의 기술)에서 구하는 모더니티, 그리고 그로 인한 리스크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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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0일 오전 6시 35분. 가수 백지영이 네이버의 ‘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백지영과 포르노그래피
리 사회의 도래. 과학과 기술의 가속으로 로컬리즘에서 글
을 예술로 만드는 21세기 예술가와, 그들을 먹고 그로써 그
로벌리즘으로 이동시킨 모더니티, 그리고 네트워크로 인한
들을 먹이며 살아가는 대중 미디어 간의 공공연한 상호 간
위험의 전지구화. 정보망으로 조직된 순간성의 사회는 아
통이 오늘의 문화를 지배하는 한, 아니 좀더 급진적으로 말
이러니하게도 개인을 더 개별화시키고, 새로움과 스펙터클
해, 포르노그래피가 일상성의 공기인 한, 그것은 피할 수 없
의 일상화 곧 이미지 포장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포르노그
는 삶의 조건이다.
져진 채 총체적 삶의 리스크를 홀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프레데릭 제머슨이, 그리고 쟝 보드리야르가 우리의 시각
처한 불안한 개인이, 도대체 포르노그래피에 어떻게 저항
문화가 포르노그래피라고 언명한 지 십 년이 더 넘었다. 포
할 수 있겠는가? 정치가 거짓약속의 약속으로 살아가는데,
르노그래피가 어차피 우리의 삶의 환경이라면, 그것에 등
모든 문화가 이미 포르노그래피의 기계로 변했는데, 개인
을 돌린다고 사태가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문
이 어떻게 포르노그래피를 피할 수 있겠는가?
제는 현금의 포르노그래피적 상황의 인식이 먼저이고, 그
마이클 우즈의 색욕에 연루된, 어떤 재능도 업적도 없는 여
리고선 행동인데, 한쪽에선 니체의 방식으로 그것이 한계
인들이 대중을 간질거려 명성을 얻고, 사업가는 그녀들의
에 이르러 그 자체의 운명/논리가 소진되도록 가속하는 편
얼굴과 이름을 골프 공에 새겨 돈을 번다. 대다수 미국 국
을, 다른 한쪽에선 포르노그래피의 욕망은 그 자체가 이미
민들로 하여금 수다를 떨 수 있게 하는 공통 주제(이로써
광기의 상태인 까닭에 진정이 도무지 불가능하므로 그저
한 문화의 정체성이 실현된다)는, 마이클 잭슨과 브리트니
내버려두는 편을, 또 다른 한쪽은 포르노그래피를 타고 들
스피어즈와 패리스 힐튼과 브래드-안젤리나 커플의 사건
어가 그 구조, 곧 끊임없는 지연 속에 갇힌 채 반복하는 헛
들이다. 물론, 이 모두를 뒷받침하는 것은 미디어 기술이
돌기를 인식의 사태로 현전시키려는 편을, 각기의 전망과
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재현이 아니라 생생한 실제인 탓
해석에 따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에 어떤 영화보다, 어떤 책보다, 어떤 연극보다, 어떤 텔레
백지영의 사건은 세 번째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 보인
비전 쇼보다 강력한 새로운 예술이다. 닐 개블러는 ‘인기’
다. 그녀가 교묘하게 살색 바탕에 검은 색 줄이 드리워진 드
야말로 21세기의 위대한 새로운 예술 형태라 주장하지 않
레스로 커튼 드레스를 위장함으로써, 마치 가슴을 환히 들
았던가? 오늘날의 스타들은 이전의 스타들과 달리 기벽과
여다보고 있다고 착각한 대중이 백지영 자신을 사건의 주
선정적 사건들(섹스와 폭력을 중심으로)로 대중의 관음증
인공으로 만들도록 할 뿐 아니라, 그로써 그녀의 꾀에 속아
적 욕망과 결부된 호기심과 수다를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넘어간 대중이 자신의 관음증적 욕망을 다시금 응시하고
생산한다. 도리어 거꾸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그들은 진
인식함으로써 포르노그래피의 허무와 수치를 공적으로 폭
정 스타로서의 삶을 이어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은 모
로하고 대면하게 하듯 말이다. 이로써 백지영은 자신에게
두 그들의 직능보다 그 바깥에서 벌이는 해프닝들로 더 유
속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내주지 않은 채 스타의 삶을 이어
명해서 그들의 일이 심지어 그들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가면서, 대중으로 하여금 자기 헛돌기 안에 갇혀 볼 수 없
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의 공연 컴백 결정이라니!
었던 혹은 보고 싶지 않았던 포르노그래피의 나르시시즘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 모두
속성을 속임수 수법으로 매개시켜 볼 수 있게 하듯 말이다.
를 합친 것보다 그들이 함께 산다는 사실로 인해 유명세를
질 들뢰즈가 말하지 않았던가?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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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탄다.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체육인도, 모델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백지영의 퍼포먼스야말로 우리가
도, 미스코리아도, 연기자도, 가수도, 뮤지션이라 자칭하는
찬찬히 씹어봐야 할 글로벌리즘 예술이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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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로 포획하고 구조화한다. 포르노그래피 사회 안에 던
아니라 대중 매체로 생존하려 애쓴다. 한 마디로 자신의 삶
이도, 심지어 아나운서까지 모두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들 이다. 낸시 랭은 이미 한물간 자신의 팝 아트 작품이 아니 라 선정적 퍼포먼스로 대중 앞에 나왔고, 그 후로도 작품이
이종건은 오클라호마 대학교 건축대학을 거쳐 조지아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역사/이론/비평 전공으로 철학박사를 받았다. 귀국 후 이종건 건축연구소를 개소하여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대학교 제2도서관> 등의 설계 경기에 참여하였다. 1996년부터 동명정보대학 교 건축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로 있다.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빈 충만』 등의 책을 썼고, 역서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Gevork Hartoonian 저, 시공문화사)을 냈다.
<주택 계획안 100선 13> 횡성 주말 주택 | 정수진
드디어 고대해 마지 않던 기회가 그에게 찾아 왔다. 한 사람이 운신하기에도 버겁기만 한 좁은 공간 설계에서 벗어나, 그것도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짓게 된 것이다. “땅을 보러 간 날, 마침 흰 눈이 내렸어요. 그런데 논으로 썼던 1,500평의 눈 덮인 땅을 보는 순간, 아이러니 하게도 축사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한우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 가는 길에 유난히 축사가 많이 보였던 겁니다.” 건축주는 1,500 평의 땅 위에 건축가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 보라고 했다. 단, 공사비 3억 원의 주말 주택으로 실내악을 연주할 수 있는 큰 홀이 있을 것. 그 외에 집을 어디에 앉힐 것인지, 단층 혹은 2층으로 할 것인지, 담으로 구획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전무했다. 심지어 어떤 프로그 램을 둘 것인지에 대한 것조차. “더 난감하더라고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땅이어서 비빌 언덕이 없는 데다가,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땅을 막 파헤쳐 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대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어디에 집을 앉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었죠.”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리 하나 건너 위치한 땅은 2.8m 높이의 단(경사 너비 5m)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단 아래쪽은 폭이 좁고 도로에서 너 무 가까우며 결정적으로 마을로 향한 뷰(view)가 좋지 않다. “접근성과 뷰를 고려하여 현재의 위치로 정했지요. 그리고 축사의 이미지를
↑Figure
↑Mass
횡성 주말 주택 건축 개요 대지 위치 : 강원동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 | 대지 면적 : 918.52㎡ | 1층 바닥 면적 : 150.53㎡ | 지하층 바닥 면적 : 44.52㎡ | 연면적 : 195.05㎡ | 건폐율 : 17.29% | 용적률 : 21.23% | 설계 : 정수진, 김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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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떠올렸죠. 그 땅에 요란을 떨면 절대 안될 것 같았어요.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집을 생각했습니다.”
정수진은 프랑스 건축사로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Ecole d'Architecture de Paris-Belleville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현재 건축 에스아이(SIE) 대표로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막연히 2층집보다는 단층집을, 울타리가 없는 집을 그려 보았다. 그저 축사가 딱 한 동 놓이면 되겠다, 싶었다. 마치 논밭에 무심히 서 있 는 짚단처럼. 그래서 만든 것이 선형의 피규어(figure)다. “예전부터 원 라인(one line)으로 된 집을 한 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끝에서 끝까지 복도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향도 해결이 안 되고….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매스를 쪼개서 엇박자 형태로 나란히 놓은 타협안이 나왔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피규어다. 처음 생각은 유지하면서 기능 해결이 용이해진 셈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변형된 안의 방향을 다시 뒤집어 보기도 하고 기능을 해결하는 데 좀 더 쉬운 ㄱ자, ㅁ자 형태의 안도 만들어 본다. 애초에 염두에 뒀던 박공 지붕이 평지붕이 되기도 했다. 별 모양과 원형을 제외한 온갖 형태가 쏟아져 나왔다. “기능 때문이었죠. 나중에는 리니어(linear)한 형태가 아니 라 덩어리가 나오기도 했어요. 어느 날 매스감 있는 모던한 형태의 안과 현재의 안, 그러니까 리니어한 매스 두 개가 엇갈린 형태의 안을 들고 건축주를 만났지요. 그런데 건축주는 건축과 예술에 매우 해박한 사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모던한 형태를 좋아하긴 하지만, 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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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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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다양한 마당을 갖고 있어서 더 끌린다고 하더군요.”
힘들어지게 되었다. “덧문을 열어 두면 조망이 가능해요. 담의 재료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 외벽재는 벽돌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재료
두 번째 대지를 방문했을 때다. 눈이 덮여 있을 때의 모습과 달리 주변이 몹시 지저분한 게 마음에 걸렸다. 원경은 좋은데 근경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기어이 담을 치고 덧문을 달았다. 주말 주택이어서 보안 문제가 걱정되던 차였다. 그러면서 일자형 개념은 점점 더 의 사용으로 리니어한 개념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래는 경사를 이용하여 집을 지면으로부터 띄우고 그 아 래 부출입구를 두려던 계획이 건축주가 경사 부분을 지하 창고로 쓰자고 하면서 틀어지게 되었다. ‘언덕 위 선형의 집’이란 개념이 다시 위험에 처해진 것이다. “고민 끝에 제안한 것이 지금의 형태에요. 부분적으로 개구부를 뚫어 창고 진입이 가능하게 했지요. 마음에 꼭 들 진 않지만…. 아, 주출입구는 진입로를 따라서 들어간 북쪽에 위치해 있고요. 아무튼 이 창고는 차고로도 쓰일 수 있어서 전면에 길을 내 고 나무를 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위기는 괜찮은 것 같아요.”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 보자. 담과 건물 벽과 브릿지가 만들어 내는 마당들이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는 다. 주출입구를 들어서면 마당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동선을 유도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거실 너머 창을 통해 정면 뷰가 펼 쳐진다. 또 두 매스를 잇는 브릿지를 통과할 때도 한쪽에는 트인 풍경이, 한쪽에는 한정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데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집』이란 책이 있지요.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지으면서 액자와도 같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게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아무리 좋은 풍경이라도 식상할 수 있으니 적당히 가려야 한다는 거예요. 보여 주 고 싶은 부분만 보여 줘야 한다는 거지요. 이 집에서 그런 걸 해 보고 싶었어요. 처음 건축주하고 만나서도 그런 이야길 했었고요.” 있는 듯 없는 듯한 집이지만 안에서는 ‘악’ 소리 나는 뭐 그런 거…. 공사비 3억에 화려한 집은 못 짓더라도 뷰를 계속 변화시켜 가며 좋은 느 낌의 집을 짓고 싶은 것이다. “평면도를 보면 단순해서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죠? 그래도 겨울철 동파 때문에(특히 겨울 바람이 매서운 강 원도여서) 물 쓰는 공간을 최대한 모으려고 골치 꽤나 아팠어요.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을 모으고 또 안방 드레스 룸, 화장실 모으고…. 건축주가 겨울 내내 요 부분만 보일러를 가동하겠다고 했거든요.” 어디 그의 골치를 썩인 게 평면뿐이랴. 설계를 한다는 이들이라면 알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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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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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처음 가졌던 생각을 놓치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거실에서 앞마당 ↑↑거실에서 전경 ↑↑↑앞마당 ↑↑↑↑지하 썬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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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층 평면도
↑남측 입면도
↑동측 입면도
↑↑단면도 1
↑↑단면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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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
마지막으로 ‘언덕 위 선형의 집’ 작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집이란 무엇입니까? “집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돌아올 수 있는 장 소지요. 따라서 집은 단정하고 정갈해야 하지만 빈틈이 있어 흐트러질 수도 있어야 합니다. 집은 장소와 분위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 처할 수 있어야 해요. 집은 사람에게 유연하게 다가가고, 시간의 흐름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집은 최대한 열려 있으면서도 최대한 닫혀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POwer ARchitect 파일 01 | 이충기> 보이지 않는 건축, 시뮬라크르의 도시
비물질적인 빛, 소리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 등에서 연출되는 분 위기는 그 어떤 인위적인 장식도 넘어선다. 그런 면에서 비물질적 인 것에서 연출되는 공간의 분위기만큼 영향력 있고 훌륭한 장식 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한 물질적 디자인에 압도 당하는 공간 에서의 삶은 건강하지 못함이 분명하다.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여 유 있는 비물질적 공간 디자인이 우선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을 채 우는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비물질적인 것이 더 가치가 있고 지속 성이 있다고 본다면 건축이나 디자인은 시각적 장식의 물질적 향 유보다 비물질적인 생활이나 사건, 즉 삶의 향기나 분위기가 우러 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시대가 변하고 삶 도 따라서 변하는 것이 분명할진대 공간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임의 성이나 우발성에 대한 고려는, 무엇이든 받아 주는 삶의 무대로서 의, 배경으로서의 가치와 흐를 수밖에 없는 시간적 속성으로서의 가치를 아우르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비물질적인 것의 우선적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비가시적인 일반인들이 접하고 경험하는 건축은 모두 복잡하지만
이다.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과정들은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와 의 대화와 설득, 이해, 스탭들과의 논의, 스터디 과정, 크리틱, 검 토, 수정, 시공 과정의 감리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대지의 특성, 건축주의 수준, 요구 사항, 재정 상태 등을 파악하고 건축주 가 희망하는 적절하고 적합한 결과물을 예측하는 일도 보이지 않 는 건축의 중요한 사항이다. 건축주가 원하는 적절하고 적합한 기 준, 즉 데코룸(decorum)한 것과 건축가가 파악하고 제안하는 데 코룸한 것이 상호 교환의 과정을 거쳐 다시 데코룸한 것을 찾아내 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보이지 않는 건축이 모두 건축주를 대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지와 장소가 가진 고유성 과 도시 조 직과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 인가에 대한 건축가 본연의 데코룸한 자세와 제안은 엄연히 별개 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주, 대지, 설계, 시공, 감리 등 에 관련된 비가시적 과정은 완성되는 건축물을 위한 핵심적, 필수 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변화하는 이제 곧 신록의 계절이다. 그래서 소풍·위락의 행렬이 푸른 잎의 절정을 찾아 길게 꼬리를 이룰 것이다. 조물주가 만든 변화 중에서도 잎의 변화는 나무 그리고 산의 풍경까지 바꾸는 중 요한 요소가 되어 사람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현대 사상의 거장
↑ 인왕산자락 한옥. → 경복궁서측지구단위계획 종합계획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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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건축의 결과물은 결국 보이지 않는 건축의 과정적 산물인 셈
Wide Architecture Report no.13 : january-february 2010
보이지 않는 과정을 거쳐 가시화된 결과물들이다. 다시 말하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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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나뭇잎처럼 물체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푸른 잎
없이 도시를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도시는 결코 건물로만
이 노랗고 붉은 잎이 되는 표면 효과가 변화와 생성을 이룬다고 생
채워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는 가로수와 자동차의 흐름, 공원
각하고 그 의미를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의 사람들, 떠다니는 구름 등 수시로 변화하는 순간순간의 사건들
우리에게는 나뭇잎의 잎이라는 본질적 정의보다는 잎이 푸르러지
로 분위기와 표정이 생기며 생동감을 가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이
고 다시 노랗게 변화하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한 관심과 즐거움의 대
웃과 다정하게 나누는 대화의 시간도 도시의 분위기와 풍경을 만
상이요, 실제로 느끼는 현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푸른 하늘
드는 요소가 되듯 순간적으로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사건
과 떠도는 구름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게 되고 사람들은
들의 연속으로 도시가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도시
그것을 즐기러 건물로 가득 찬 도시를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러
는 시뮬라크르의 도시라 할 수 있다. 건물은 오히려 그러한 사건들
고 보면 사람들이 감탄하고 멋있게 생각하는 풍경들은 봄, 여름,
의 배경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모두 변하는 성질의 것들로 연출된 것이다.
이제 그 배경적 요소일 뿐인 건물에 쏟는 노력이나 시간, 경비 못지
풀과 나뭇잎들이 소생하고 푸르러지는 봄과 여름, 단풍으로 물드
않게 주변 환경, 즉 사람이 있고 생활이 있는 공간에도 관심을 기울
는 가을, 흰 눈으로 덮이는 겨울 등 계절이 지니는 대표적 이미지
여야 하지 않을까? 도시를 이루는 요소 중 건물이 으뜸이 아니라 건
들은 변하지 않는 것들 보다는 물체가 변화하고 생성하는 과정에
물도 보이지 않는 다른 요소와 같은 가치를 지닌 하나의 등가 요소
서 발생하는 풍경들인 것이다.
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설계한 도시 속의 건물 하나가 누군
봄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빠져나간 주말이라도 도시는 여전히
가가 심은 지리산 숲 속의 나무 한 그루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서
부산할 것이다. 자동차, 도로, 골목, 사람, 공원, 하늘, 구름 그리고
우리는 숲으로 볼 때의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인식과 도시로 볼 때의
잎이 무성한 가로수까지 부단히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들이 예외
건물 하나에 대한 인식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관심과 최근 작업도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작업, 건물
는 사람과 사람이 사는 공간, 생활, 역사와 문화를 더 소중하게 생
과 건축에서 다소 먼, 거리와 긴 시간의 장소에 가 있었는지 모른
각하는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가치의 작업이었으며 시간적 변
다. 3년간에 걸친 안동의 <군자리 문화역사마을가꾸기>, <영등포
화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작업들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소
와 대구 동성로의 공공디자인시범사업>, <한강 및 지천 르네상스
중하고 새로운 경험들이 나의 건축 여정을 동반하며 견인할 것으
사업>, 서울시의 특별경관관리 설계자로 일한 2년에 걸친 <경복
로 확신한다. ⓦ
궁서측정비계획 및 지구단위계획> 등이 그 것이다. 모두 건물보다
→ 안동군자마을문화역사마을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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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의 만남.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 안동군자마을계획배치도.
이충기는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한메건축을 운영하면서 가나안교회(2001, 한국건축 문화대상 본상), 인삼랜드휴게소(2001,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옥계휴게소(2005,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동다주택 등의 대표작을 내었다. 아울러 마을 가꾸기, 공공 디자인 등의 활동과 건축기본법, 건축사법, 건축교육인증원, 건축사등록원 등의 법·제도 관련 활동, 새건축사협의회 활동 등 사회·공공적 분야에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POwer ARchitect 파일 02 | 김헌> 인식의 모험, 그 영토
모험이란 것이 우리의 의식의 내면에만 제한된다면 그 성분은 어쩌면 의외의 배열들로 재구성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의식이 구체 적인 결행을 염두에 둔 현실의 모험과 연관되는 순간, 이의 밀도나 정연함은 긴장 속에서 뚜렷해질지 모르나 유연함은 같은 이유로 어느 새 일정한 억제 상태에 들기 쉽다. 엄중한 현실 속 장벽의 높이와 위력에 따라 이렇듯 의식의 긴장과, 유연성 또는 자유로움은 서로 반대 편에서 연동할 것이다. 들여다보면 이미 우리가 잘 알듯 모험이란 그 영역이나 대상이 실체든 환상이든 어떤 위험, 경계, 한계, 또는 타 성에 젖은 관념, 미지의 배후에 대한 두려움 등, 이들을 극복하거나 타개하기 위한 다각의 모색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선지 일 상에서 그 속성이나 긴장의 정도에 따라 ‘모험’이란 어휘를 우리는 편의상 때로는 risk로, 때로는 adventure로, 때로 fantasy 등으로 번 갈아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들어설 다층의 사고나 의식의 내면에 개입하는 모험 역시 상황에 따라 다른 생리나 구조를 취하게 되는 것 같 다. 그렇다 해도 조금 큰 시야로 보면 결국 이는 의식의 표토에 오랜 세월에 걸쳐 새겨졌을 국경을 넘어 미지의 영토를 별다른 ‘비책’이 나 ‘보험’ 없이 navigate하려는 충동에 대개 그 뿌리를 둔 것이 아닐까 한다. 딱히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이른바 ‘인식의 모험’이라 개인적 으로 칭하고 있는, 모종의 정처를 잃은 의식의 여정이기가 쉽다. 막상 안전선을 넘은 이상 유실의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들은 역시 작업 의 과정이나 결말과 관련한 여러 보편적이면서도 한편 소중한 가치들, 또 그들 간 견고한 기정의 위계가 될지 모른다. 낯선 영토에서 채 집하게 될 공간 언어, 물질 언어, 또는 이들 사이에 엮어지는 형식들은 그 가치나 건강함이란 것이 전혀 입증된 바 없기에 말이다. 그저 희미하고 빈약하나마 그런 행위를 통해 개인적으로 부여잡게 되는 가치란 단순히 그 속에 잠재한다고 여겨지는 ‘이질성’이란 미지의 유 전자일 뿐이다. 그 이질성마저도 구체적인 논의에 이르면 뭐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다른지에 따른 위상은 쉽게 들어설 자리를 얻지 못하 기 일쑤다. 아마 이런 점이 내 작업의 속성을 이른바 그럴듯한 실험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없는 이유가 될지 모른다. 한편으로 내 의식 을 빠져나와 그 모습을 드러낸 공간과 물질들의 형식이 어김없이 상정하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adventure의 영토가 더 있다. 즉 이를 인 식하고 경험하는 자들에게 맡겨진 타자의 세계를 말한다. 여기에도 이미 앞서 밝힌 바대로 똑같이 인식의 모험이란 개념이 설정된다. 다 만 이를 위해 내가 일상을 통해 끝없이 눈을 두는 영역은 특수성이나 이질성이라기보다 타자의 보편적 공간 인식이나 그 경험들이 된다. 사실 이 경우에도 그 관찰과 규정의 근거라는 것들이 쉽게 구조화 내지 객관화될 수 없기에 매우 취약한 사고 과정일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이런 문제들을 덮어둔 채 기왕에 채집된 그 보편성이란 기호들은 바로 낯선 영토의 이편과 저편을 이루는 경계에 차곡하게 새겨진 다. 자연히 내 작업을 경험하게 되는 이들에겐 주어진 특정 공간에 맞물려 이의 학습이랄까, 어떤 친화, 개인화란 면에서 위의 경계 밖, 비교적 험한 들판으로 내몰리는 꼴이 종종 불가피하기 일쑤다.
chasm(그림 1)의 저층부 내부 공간은 박탈과 ‘제거’의 언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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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기획된 영역이다. 공간은 빛과 방향과 의미를 잃고, 주어진 프로 그램의 단서를 지우며, 물질은 온도감을 포기하고 그 촉감은 거부 된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서사를 잃은 채 장소는 일견 황폐함으로 물든 정서를 발하며 우리 시선의 흐름만 재촉할 뿐이랄까. 마침내 공간에는 이를 점유하는 타자에게 주어진 순간의 인식계에만 반 응하려는 한결 좁은 소통의 의지만 남겨 진다. 이 작업은 공간이 본연의 의미와 서사를 잃으며 비로소 끝없이 새로운 순간의 의미 에 열릴 수 있는 아이러니의 가능성을 노려본 하나의 사고 과정으 로 내게 기억된다.
(그림 1)
Spain의 Salobrena란 해안 도시의 초청으로 제안하게 되었던 지 명 현상안(그림 2, 그림 3)이다. 약 70여 미터 높이의 해안에 면한
(그림 2)
암벽을 극복해 내야 하는 task를 포함, 일종의 도시 보행 공간 네트 워크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정밀한 외과 시술처럼 다양한 바위틈 을 도려내어 에스컬레이터들을 삽입하고, 이를 지형의 상단부에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수직 터널에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를 포함한 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뜨거운 태양과 미풍을 만면에 받으며 서서 히 elevate되는 존재의 시선들, 이어서 media tunnel이라 이름 붙 인 하나의 깊은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르게 되는 경험이 핵심을 이 루는 작업이다. 인식의 모험이란 주제와 관련지어 볼 때 본 장소 는 앞서 분류한 어휘들 중 거의 판타지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매 우 비현실적인 체험을 모색한다고 볼 수 있다.
pou sto(그림 4)는 한남동 어느 노변에 한때 철저히 버려진 듯했 던 남루한 3층 건물 하나를 리노베이션한 작업이다. 섬세함과 결 정질적인 단단함, 두 가지 표면 질감을 겸한 하나의 스킨이 애초
(그림 4)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그림 3)
될 것을 꿈꾼 기획이다. 시간과 시즌에 따라, 시각과 기후에 따라, 또 자연광과 인공광 사이의 변화에 따라 대상은 순간적으로, 끝도 모를 탈태의 메시지들로, 타자의 인식 내부를 두드리도록 면면히 설정(adjust)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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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주연을 맡아 장소의 안팎으로 빛과 물성의 풍부한 서사가 기록
우리의 인식계 내부에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그 이질감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는 기획이 다음의 예가 된다. 춘천의 한 신도심에 들 어설 예정인 이 작업(그림 5)은 앞서의 경우들보다는 훨씬 미묘 한 세팅과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당장 비슷한 사례 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스트럭처와 스킨은 그 관계가 전도되 어 있다. 수직 응력을 담당하는 구조체 ‘전부’가 일종의 lattice 형 태로 외부 껍질 쪽으로 노출되는 반면, 섬약 투명한 커튼월은 이 와 사이를 두고 안으로 수줍은 듯 물러나게 한 구성이다. 여기서 도 역시 작법상의 모험과 타인의 도시적, 공간적 낯설음이란 모험 은 늘 예상치 못한 궤도를 그리며 시간을 두고 교차할 것으로 내 다보인다. 마지막으로 내가 건축의 작업 과정에서 특정의 단계나 위계, 시 퀀스 등을 거치는 사고가 아닌, 철저히 전체론적(holistic)이고 수 평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 내면의 의식과 관 련한 다이어그램(그림 6)의 한 예다. 주로 관찰과 분석과 분류들
(그림 5)
이 부유하는 예비(readily) 사고와, 잡다한 생각과 정보를 엮어 시 각화하는 체화(trajectory)의 영역과,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물화 (bullistics)의 영역으로 나뉜다. 이 세 가지 사고의 블럭들이 그 어 느 것도 우선이랄 것 없이 수평적으로, 때로는 동시에 수시로 신 호들을 교환한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한번 기록해 본 관 계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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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그림 6)
김헌은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미시건대학교 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했다. 건축사사무소 에이브라함 카두시 어소시에이츠 등을 거쳐 1993년부터 건축사사무소 예다를 운영했으며 2002년부터는 스튜디오 어싸일럼(asylum)으로 이름을 바꿔 이어오고 있다. 2006년 제 10회 베니스 국제건축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 작가로 참여했고, 또 같은 해 일본 건축가협회 오사카 지회 초청으로 전시 및 강연을 한 바 있다.
<WIDE eye 04> 이오주은 정동도시건축세미나 조 소장과 우 교수의 근대 도시 톺아보기
프롤로그 ▷ 나토족(NATO, No Action
라졌지만 이 네모난 구멍은 여전히 안에서
출연이었다. 곤히 잠든 아가를 각자의 품에
Talking Only)이라는 말이 있다. 말만 많
밖을 보는 창이 아니라 밖에서도 안을 보
안고 진행한 이 날의 인터뷰는 그리하여 내
고 행동은 하지 않는 무리를 뜻한다. 이 나
는 쇼윈도다. 우리 모습을 구경해도 좋다
생에 가장 특별한 인터뷰로 남게 되었다.
토족을 역설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이들이
고 허락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일을 즐겁게
있으니 바로 정동 길 쇼윈도 저편에 살고
여기는 이의 마음이다. 이미 수요 답사를
▷ 이오주은 ▷ 작은 설계사무소에서 매달 공
있는 일명 ‘구가(guga)족’이다. 그들은 매
통해 오랫동안 얘기해 온 ‘구가’의 세계관
개 세미나를 개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
일 조금씩 작은 실천을 쌓으며 자신이 옳
이자 건축 철학이기도 하다. 이런 ‘구가족’
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 이 모임을 이
다고 믿는 가치와 꿈꾸는 세상을 성실하게
으로부터 새로운 꿍꿍이를 전해 들은 것은
끌어 온 소회와 2010년의 계획을 듣고자
증명해 간다.
2009년 어느 봄, 한 통의 메일을 통해서였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정동세미나의 계
다. 이 초대는 모종의 기대감과 응원을 불
기와 기획 의도부터 말씀해 주셔요.
러일으키며 2009년을 채워 나갔다.
▷ 조정구 ▷ 처음부터 세미나를 생각했던 건
드레스가 전시되었던 정동아파트 1층 쇼윈 도를 한옥 모형이 대신한 지도 꽤 되었다.
내 생에 가장 특별한 인터뷰 ▷ 2009년 12
민 중에 우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어요. 어
정동 길을 오가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월 26일, 두 사람의 발걸음을 잠시 붙들었
차피 회사로 강사를 모실 거면 좀 범위를
이 창문에 호기심을 가져 보았다고 말한다.
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 교
키워서 장소도 빌리고 세미나 형식을 갖추
모형 너머로 설계 사무소의 이색적인 풍경
수와 조정구 guga도시건축 소장을 초대해
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는데 괜찮을 거 같
이 매일같이 디스플레이 되니 당연히 흥미
<정동도시건축세미나>(이하 정동세미나)
더라고요. 사실 실무하는 사람들이 공부에
로울 것이다. 일상에 치이고 고민에 쫓기기
의 숨은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목말라 있잖아요. 그래서 격식을 갖춘 세
는 그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렇듯 달라 보
그런데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우선 쇳
미나보다는 그냥 여러 가지, 담론이 아니
인다 하면 남의 사정 너무 모르는 말이라고
대박물관 커피숍이 그날따라 몹시 시끄러
라 실질적인 공부가 되는 논문이라든가 작
할까? 그러면 구경꾼 같은 이 시선은 쇼윈
워 인터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진정
업을 찾아서 편하게 듣는 자리를 만들어보
도의 전시 효과 탓일까? 그렇진 않다. 정동
한 돌발 상황은 두 명의 리틀 조, 조정구 소
기로 했죠.
쇼윈도는 ‘함께’를 의미한다. 웨딩 숍은 사
장님의 막내 공주와 셋째 왕자의 예고 없는
▷ 이오주은 ▷ 지인을 초대하며 시작한 세미 나가 후반엔 많이들 알고 오셨잖아요. 입소 문이 났는지 자발적인 홍보가 있었던 것 같 아요. 저에겐 이런 부분이 의미 있게 보였 고요. 아마도 그분들께 더 감사하고 계시리 란 생각이 드는데요. ▷ 우동선 ▷ 감사하죠, 세미나는 많잖아요. 커다란 설계사무소에서 하는 것부터 외국 인사를 초청하는 세미나까지. 그에 비해 정 동도시건축세미나는 뭐랄까요, 처음부터 듣고 싶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형식적이지만 회비도 내
인터뷰이 우동선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UC 버클 리 방문 학자를 역임한 바 있고, 2002년 대한건축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미국 건축역사학회 연례회의 펠로십을 공동 수상 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아니에요. 공부를 좀 해야겠다 싶었는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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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쇼윈도의 프로포즈 ▷ 한때 예쁜 웨딩
고. 많진 않지만 ‘장소 빌리는 정도는 되지
▷ 이오주은 ▷ 청중의 반응에서 자극을 받는
를 읽잖아요. 총독부 건물은 어디 양식이고
않을까?’ 뭐 이런 생각도 했던 거죠.
부분도 있으시겠어요.
누가 설계했고. 그런데 정동도시건축세미
▷ 조정구 ▷ 사실 회비에 대한 고민도 있었
▷ 조정구 ▷ 사실 제일 자극이 되는 건 강
나에선 그러지 않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
어요. 요즘 시대에 어떻게 3천 원을! 그래
의를 통해서예요. 세미나를 하는 동안 여
김백영(3회) 교수님은 식민지 경성에 얼마
도 5천 원은 돼야지 않겠냐 했더니 우 교수
러 가지를 알았고, 특히 건축이 아닌 타 분
나 다양한 주체가 있었는지 알려 주셨고요,
님께서 학생이나 등등을 생각하면 어느 정
야 연구를 들으면서 켜가 두터워진 거 같아
권혁희(4회) 선생님은 지배국 일본의 시각
도 문턱을 넘어오는 적극성으로 받아들여
요, 스스로가.
이 개입된 역사의 풍경을 사진 엽서를 통
야지 많은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
해 보여 주셨어요. 권기봉(5회) 씨의 경우
요. 그냥, 주제에 따라서 누구나 듣고 갈 수
근대-서울-도시, 2009년도 주제어는?
엔 여러 분야에 얽힌 오해를 발 넓게 밝혀
있는 세미나가 돼야 한다고요. 그래서 3천
내면서 켜켜이 읽어 낸 진실들이 흥미로웠
원으로 했는데 사실 재정에 도움은 안 돼
▷ 이오주은 ▷ 지난 주제를 보면 1회는 ‘서
고, 우동선(7회) 교수님은 일본이 우리 궁
요. 그보다는 오히려…(우동선 : 상징적인
촌’, 2회는 ‘문화주택’, 다음부터 ‘경성’, ‘
궐에 가한 변형의 시스템이 자국에 행한 근
의미지) 네, 상징적인 의미죠.
식민지 이후 근대’, 한 마디로 ‘근대’라고
대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적용한 것이라는
▷ 우동선 ▷ 느슨한 것 같으면서 뭔가 한계
압축할 수 있는데요, 우 교수님이나 조 소
사실을 알려 주셨죠. 지금까지 ‘권력의 건
는 있어야 하잖아요. 소속감은 있지만 또
장님 관심 분야를 생각하면 두 분의 공통
물’ 중심으로 근대를 읽었다면 이번에 그
자유롭게 나갈 수도 있는. 그게 어렵긴 하
분모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별
공동을 메워가는 것 같아요. ‘문화주택’(2
지만 이제 좀 자리를 잡아서 고정적으로 오
적인 소감이 궁금한데요, 간략하게 말씀해
회)은 단순히 주택이 아니라 근대에 대한
시는 분들도 있고.
주시지요.
일본인의 열등감이 식민 도시에서 또 다시
▷ 조정구 ▷ 블로그 같은 데서 “이번에도 쉬
▷ 우동선 ▷ 근대는 저희 두 사람뿐만 아니
표출된 것임을, 정기황(1회) 씨는 ‘서촌’이
지 않고 한다더라” 같은 글을 우연찮게 발
라 요즘 굉장히 중요한 화두인 거 같아요.
란 지역에 차곡차곡 쌓인 다양한 요소들이
견하면 되게 반갑더라고요. 그분들한테도
▷ 조정구 ▷ 전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근
한옥부터 근대 건물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지속적인 세미나로 비치는 거 같아서요.
대에 어떤 공동화된 부분이 있다’는 겁니
투영되고 변화해 왔는가를 발로 뛴 실증적
▷ 이오주은 ▷ 기다려지거나 기억에 남는 분
다. 특히 건축 분야가 건물 중심으로 ‘근대’
조사로 보여 주었지요. 우 교수님이나 저나
도 있으신가요? ▷ 조정구 ▷ 네, 한번은 상당히 비판적인 질 문을 하는 분이 계셨어요. 다음에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꾸준히 나오셔서 놀랐 wiDe Depth report
은 생각은 없었는데 그분들께 그렇게 비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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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사실 저희한테 ‘식민지 근대화론’ 같
는 것이 더 흥미로운 거 같아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꾸준히 나오시는 걸 보고 그런 걱정을 하지 는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했죠. ▷ 우동선 ▷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
인터뷰이 조정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guga)도시건축을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에 관심을 두고 지속적인 도시 답사(수요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궁중 음식연구원>, 인사동 <누리레스토랑> 등이 있으며, 2007년 경주 <라궁>으로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처음부터 어떤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
과 비교할 수 있는’이라든가, ‘도시 건축과
에는 그렇게 기획을 하면 되는 거죠. 여덟
만, 그런 것들―근대의 가려진 부분들을 끄
근대’라는 식으로 이 핵심어 속에서 유지를
명 이상을 모시고 할 수 있는 얘기는 별로
집어 내어 보여 드리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면 저희는 오히려 아직도 할 게 굉장히
없을 것 같고, 반 씩 둘로 나누는 건 괜찮을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많고, 또 그러면 좋을 거 같아요. 사실 너무
것 같은데요?
▷ 우동선 ▷ 처음 정동세미나를 구상할 때
많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그냥 계속, 듣고
▷ 조정구 ▷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지금의
핵심어가 ‘근대-서울-도시’였어요. 그렇게
싶은 사람들이 와서 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방식으로 오래가는 것도 힘이라고 생각해
강연자를 섭외하면서 1년을 온 건데요, 앞
좀 이상하지만 있거든요.
요. (이오주은 : 특별함을 더하지 않고요)
으로도 계속 이렇게 갈 것인지는 좀더 토론
네, 자꾸 이런저런 기획하지 않고 뭐, ‘백
을 할 필요가 있어요. 물론 공부를 하자면
정동세미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백
반’이 제일 좋잖아요?
끝이 없겠지만 매번 강연자 섭외하기도 쉽
반!
▷ 우동선 ▷ 하하하
▷ 이오주은 ▷ 정동세미나에 오면 사랑방에
이잖아요. 늘 이렇게, 오면 딱 그 순서대로
‘근대-서울-도시’를 핵심어로 유럽의 근대
온 기분입니다. 세미나 이상의 편안함과 다
돈 내고 얘기 듣고 편하게 질문하고, 뒤풀
도시를 공부하는 분을 모실 수도 있는 거잖
정함이랄까요, 이것이 정동세미나의 또 다
이도 할 수 있고.
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른 매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 우동선 ▷ 어~ (웃음) 백반이 좀 적절한 표
진행할 수 있는가가 과제이죠.
▷ 조정구 ▷ 그러니까요, 지금까지 할 때마
현 같네. 3천 원이고.
▷ 조정구 ▷ 그렇죠. 예를 들면 수원에도 굉
다 굉장히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어요. 질
장히 오래된 옛길이 남아 있잖아요. 사실
문이 아주 풍부했지요. 많이 아는 사람만
2010년도 주제어는? 기록과 재생!
그런 것들이 서울의 옛길을 연구하는 데 큰
질문하지도 않았고, 잘 몰라도 궁금증을 쉽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우 교수
게 털어놨거든요. 그런데 지난 번 우 교수
▷ 우동선 ▷ 2010년에는 몇 번 할 거예요?
님 말씀대로 여러 가지로 바라볼 필요도 있
님 강연 때 제가 그 자세를 잃었던 것 같아
▷ 조정구 ▷ 기본적으로 열 번 하는데요, 1월
을 것 같아요.
요. 뒤풀이 때 보니 질문하고 싶었는데 창
은 정월이니까 쉬고 그 다음은 방학 한 철
▷ 우동선 ▷ 그런데 주제를 넓히면 논의는
피해서 못했다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서 ‘
인 8월이나 7월에 쉬어도 괜찮고요. 방학
다양해지지만 본 취지가 흐트러질 수도 있
아, 이건 잘못됐다’ 싶었죠. 저는 발표도 중
중엔 교수님이나 학생들이나 일이 있을 수
으니까 그러지 않으려면, 뭐 토론자를 붙
요하지만 질문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
도 있으니까. 열한 번보다 열 번이 좋다고
인다든가 그런 식으로, 결국엔 구가가 작
하거든요. 자기 안에 질문을 갖게 된다는
생각했어요, 그냥 편하게.
업하는 데 성찰할 수 있는 토대가 되면 좋
것, 그런 질문을 얼마나 활성화시키느냐,
▷ 우동선 ▷ 그럼, 뭘 하죠?
은 거잖아요.
이 문제가 앞으로 우리의 가능성 아닐까 라
▷ 조정구 ▷ 일단은 아현동. 그리고 있잖아
▷ 조정구 ▷ 저희는 뭘 해도 토대는 되죠.(웃
는 생각을 했죠.
요, 내년 주제를 어떻게 생각했냐 하면요,
음) 정말 그런 건 있는 거 같아요, 뭘 해도
▷ 이오주은 ▷ 사실 저는 1년의 마지막이 되
어떤 지역을 조사하거나 재생한 프로젝트
재미있으니까. (우동선 : 맞아) 그러나 말
면 그간의 발표자들을 모아서 다 같이 토론
가 있으면, 또는 재생과 관련된 연구가 있
씀하신 ‘서울’, ‘도시 건축’, ‘근대’라는 부
을 나누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는데,
다면, 결국 기록은 재생을 염두에 두거나,
분은 상당히 중요한 핵심어라고 생각해요.
혹시 그런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물론 기록 그 자체에 목적도 있지만, 그 두
그러니까 이와 연관해서, 예를 들면 ‘서울
▷ 우동선 ▷ 너무 바쁘신 분들이라서. 내년
개가 약간 붙어 있잖아요. 역사박물관 같은
120
게 지속하는가가 관건이거든요. 예를 들어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 조정구 ▷ 메뉴 중에 제일 강력한 게 백반
지 않고요, 무엇보다도 어떻게 하면 느슨하
데서 인문적인 조사도 많이 하고, 수원 길
잘하고.
도 재생과 관련된 연구일 것 같고, 인천에 도 아트 스페이스라든가 옛 건물들 활용하
가끔 댓글 구경을 하는데요, 느낌이 어떠 보존이냐 철거냐, 이분법식 태도는 견제
wiDe Depth report
세요? ▷ 조정구 ▷ (웃음) 댓글이 막 왔다 갔다 하
는 일들이 있어서 뭔가 접점을 찾을 수 있
121
아요. 잡지보다 파급 효과가 크시죠, 저도
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기
▷ 이오주은 ▷ 마지막 질문입니다. 몇 년 사
죠. <서울진풍경>에서 얘기하고 있는 게
록과 재생? Record & Play?’
이 근대에 대한 관심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의 주제일 수 있어
▷ 이오주은 ▷ 2010년 세미나를 아우르는
고 있는데 두 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변화
요. 늘 ‘여긴 너무 좋아, 너무 그리워’ 하는
주제가 되는 건가요?
를 민감하게 느끼실 것 같아요. 진단이나
식이 아니고 좋든 싫든 좀더 규명하고 가까
▷ 조정구 ▷ 우 교수님이 말씀하셨거든요. 1
전망이 있으시다면? (우동선 : 질문을 좀 더
이 가서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왜 그땐
년 주제를 보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그죠?
구체적으로.) 이를테면 광장을 비롯한 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라든가, 시간의 누적
▷ 우동선 ▷ 네. 그런데 열 번은 못할 거 같아
규모 재개발 사업까지 모티브를 근대에서
은 어떻게 됐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
요. 한 다섯 번, 그렇지 않을까?
찾지만 근대 유산을 보존하려는 의지나 역
다고 보죠. 현재로서는 그게 숙제예요. (잠
▷ 조정구 ▷ 다섯 번 하고 사이사이를 좀 비
사 인식은 수반하지 못한다는 인상, 또는
시 동안 등록문화재 현장 심사 대상이 되자
워서 다른 걸로 채우고.
한때 한옥이 블루오션처럼 부상하더니 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져 버린 ‘왕십리 공장 철
▷ 우동선 ▷ 그러니까 네 번 기획하고 한 번
제 시대를 주름잡고 사라지는 유행이 되진
거 사건’에 대한 충격이 오고 갔다.)
은 간주 식으로.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생깁니다. 주로 도시
▷ 이오주은 ▷ 우 교수님께는 이렇게 질문
▷ 조정구 ▷ 그래도 좋아요. ‘기록과 재생’으
를 기록하고 한옥을 설계하는 조 소장님께
을 드릴게요. 심포지엄 등에서 뵌 교수님은
로 열 번 하는 건 좀 어려울 거 같아.
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항상 명료한 설명으로 깊은 인상을 주셨는
▷ 이오주은 ▷ 정동세미나 말고 구가 직원끼
▷ 조정구 ▷ 제 생각에는 근대 규명이 더 중
데요, 그 중에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씀 하
리 하는 내부 세미나도 있나요?
요한 주제 같아요. 근대를 자꾸 이용하는
나가 ‘나에게 근대란 호기심을 가지는 연구
▷ 조정구 ▷ 그렇진 않아요. 수요답사를 계
것, ‘근대적’으로 하고 ‘근대스럽게’ 하면
분야이다’였습니다. 정치적인 해석이나 입
속하는 거구요. 474회까지 했죠.(2009년
개발의 무게 중심을 역사에 놓는 것처럼 보
장을 요할 때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12월 26일 현재)
이고 문화적으로 보여서 좋겠지만 그보다
같아요. 근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집약적
▷ 이오주은 ▷ 정말 기록적인 숫자네요, 몇
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봐요. 근대에 우리
으로 높아진 요즘, 교수님께 근대는 여전히
년째 하신 거죠?
가 일궜던 것들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정말
호기심의 대상인 것인지요?
▷ 조정구 ▷ 10년째 되죠.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정하지
▷ 우동선 ▷ 답을 먼저 요구하는 구조에 문
▷ 이오주은 ▷ 지구력만 해도 예삿일이 아니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정하려면 규명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해, 안 중요
네요, 그래서 정동세미나에 거는 기대가 더
이 필요하잖아요. 골목길이나 한옥이 시중
해?’ 이런 식으로 묻는 거죠, (조정구 : 어,
큰 거 같아요. 적어도 100회는 넘기지 않을
에서 감상적으로 다뤄지고 복고적으로 다
맞아요) 보존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
까, 하는 생각.
뤄지는 것 보다는 하나하나 좀 더 명확히
건 사실 학자가 판단할 영역이 아닌데 답
▷ 조정구 ▷ (웃음) 네 뭐, 우 교수님이 계속
따져 보고 알아보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부터 물어보는 거예요. 학자가 할 일은 그
봐주시면 100회는 넘죠.
런 세미나가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
게 어떻게 되어 왔는지를 살펴서 어떻게 되
▷ 우동선 ▷ 10년이라. 이제 1년 했으니까
하죠.
어 왔다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지, 그래서
앞으로 9년? 음~ 모르겠어요, 일단 내년에
▷ 이오주은 ▷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하시잖
뭘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륭한 나라냐, 경치가 아름다운 나라냐 이런
보존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건 일
거예요. 시민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성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보다 잘 살면 존
제의 잔재라서 다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
숙해서 생겨난 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같
경하고 못 살면 무시하는 식이죠.
도 모두 위험한 것이고, 그런 것은 사안에
은 문제인 거죠.
▷ 이오주은 ▷ 앞서 질문 드렸듯이 저도 그
따라 항상 달라지는 거죠. 어떤 정답이 있
▷ 이오주은 ▷ 그 말씀은 근대에 관심을 가
점이 우려되는 거예요. 말기 자본주의 상황
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환상이고 착각인
지는 현상이 시민 사회가 성숙하면서 비롯
에 한옥이나 근대가 이용된다면 분명 고민
거예요. 그렇다면 항상 중립적일 수 있는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말씀이신가요?
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서촌 같은 경우
가? 그렇지는 않겠죠. 그 사람에게도 결국
▷ 우동선 ▷ 아뇨, 그보다도 식민지가 된 게
도 정기황 씨가 정동세미나에서 발표한 시
은 선택이 강요될 것 같은데, 그건 항상 어
가장 직접적인 거죠. 그러니까 근대가 기본
점을 전후로 개발 소식을 많이 접했는데요,
려운 거죠.
적으로 자랑스럽지가 않아요, 한국은. 자생
순수한 관심으로 진행한 연구가 실용 논리
▷ 이오주은 ▷ 결정해서 답을 달라는 요구
적으로 뭘 만든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에 수용되면 타협하거나 감수하는 부분이
가 도리어 견제해야 할 부분이라는 말씀인
근대가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상황이라면
생기게 마련인데, 누군가 이를 견제하지 못
가요?
이런 상황은 아닐 거예요. 자랑스러운 나라
한다면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이 들어요.
▷ 우동선 ▷ 네. 무조건 옳은 사람이 어디 있
들은 상황이 다르잖아요. 그게 흥미로우면
▷ 조정구 ▷ 글쎄요, 저는 한옥을 시작할 때
겠어요, 누구나 틀릴 수 있는 건데, 그런 부
서 어려운 것 같아요.
도시 한옥에서 출발했고, 최근에서야 조금
분이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왕십리 공장
▷ 조정구 ▷ 구태의연한 주제를 다시 꺼낼
잘 사는 분들이 건축주가 되었지, 지금도
을 말씀하셨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아주 절
수밖에 없는 게, 문화가 없다는 거예요. 여
지원금을 받아야 할 수 있는 분들이 대부
박할 거 같아요.
유가 없으니 문화도 없는 거죠. 문화가 있
분이기 때문에 제 경험 기반 자체가 굉장
▷ 조정구 ▷ 그러니까 우리 제도에 문제가
으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철학의 기반
히 달라요. 어느 교수님은 한옥이 죽었음에
있다고 봐요. 민간이 자기 자본으로 모든
이 결국 ‘자기’에서부터 출발하니까. 그런
도 불구하고 특수 계층의 취미를 위해 끌어
인프라를 구축해야 되는데 이런이런 걸 남
데 자기를 규정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
다가 살리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제 경우
겨서 쓰자는 게 그들한테는 고스란히 부담
먹고사니즘’이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도 (
에는 작업의 경위부터가 다른 것이고, 이를
이잖아요. 공공의 역량이 삽질(모두 웃음)
우동선 : 먹고사니즘? 그거 누가 만든 거예
테면 서촌 조사도 그렇고요. 제겐 사람들이
을 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공공
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뭐든 먹고 사는
한옥을 잘 쓰는 걸 보면서 느낀 어떤 신념
이 역량을 발휘해 줘야 할 필요가 있고 그
것, 그저 편의성에 근거하게 되잖아요. 거
같은 게 있어요. 북촌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러려면 제도적으로….
기에는 사실 어떤 철학도 없거든요. 철학이
커다란 흐름 속에서는 결국 좋은 동네, 그
▷ 우동선 ▷ 근데, 공공이 없어요. 구조적으
라는 것은 불편을 일부 감수하면서도 무엇
러니까 인간다운 주거 환경의 전형이 한옥
로 책임질 수 있는 공공이 없거나 미약하거
을 견지해 나가려는 자세잖아요. 어찌 보
이 되겠죠.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공
나 할 거예요.
면.
감하는 가운데 서촌도 유지될 것이고. 물론
▷ 조정구 ▷ 그 부분에 통감을 한 거예요, 저
▷ 우동선 ▷ 근데 그 ‘먹고사니즘’이 굉장히
더 비싸지고 자산 가치가 올라간다고 하는
는. 예를 들면 공공 시설이든지 일부는 예
중요하잖아요. 그게 얼마만큼 중요하느냐,
데 이는 자본주의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일
산을 확보해서 연구 및 활용 방안까지 지원
우리가 다른 나라를 말하는 척도를 보면 우
이고, 그게 절대 좋은 예들은 아니지만요.
해야 하는데 심지어는 문화재 발굴 비용까
리보다 잘 사느냐, 못 사느냐 딱 두 가지 코
북촌에서도 서촌에서도, 오히려 집에 애정
지 민간이 대는 거죠, 재개발을 하려면.
드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건축이 훌
을 가지고 화분 하나 제대로 잘 키우고 때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 우동선 ▷ 그게 근대에서 생겨난 문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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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요. 도리어 ‘근대는 다 중요하고 다
때마다 집을 잘 수선해 주는 이런 사람이
▷ 우동선 ▷ 거기 좀 너무 시끄럽잖아, 술 마
기고 이것이 곧 앎의 첫 걸음 아니겠냐고.
훨씬 좋은 주체거든요. 그렇게 느끼기 때
시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알고 궁금하고 생각하기를, 태어나
문에 오히려 걱정을 덜 한다고 할까요. 그
▷ 조정구 ▷ 장소를 좀 바꾸려고요.
서 죽는 날까지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백반
러나 지자체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그대로
▷ 우동선 ▷ 시간이 되면 맥주를 좀 사 가
처럼, 처음도 끝도 없이 계속해 보면 어떻
반갑지는 않죠. 조금 더 철학이 있어야겠다
지고 와서, 뭐 그럼 경비 아저씨가 뭐라 그
겠냐고 묻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싶은데, 예를 들어 지붕 곡이 나오고 목조
렇겠지?
우리만의 삶은 어떤 그릇에 담겨야 제 격인
라고 해서 모두 한옥은 아니니까요, 사람이
▷ 조정구 ▷ 프란치스코 회관 1층에 까페가
지를 본능처럼 알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살기 편하고 시대에 맞는 집이어야죠.
하나 생겼어요. 리모델링 했거든요.
매우 구체적으로. ⓦ
▷ 이오주은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없
▷ 우동선 ▷ 아니 저기, 빈방이 있으면 시간
으신가요?
을 어떻게 해 갖고 각자 캔 하나 사 가지고
▷ 우동선 ▷ 아, 네. 정동도시건축세미나에
와서….(조정구 : 각자…) 너무 선진국 형인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새로
가? 우리한텐 안 어울리나? (웃음)
운 모습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
정구 : (웃음) 이거 MC 수준인데요) 연예
에필로그 ▷ 매월 첫 주 금요일 저녁이면 정
가중계 풍으로 끝나는 거 아니었나?
동 프란치스코 회관으로 간다. 이곳에서 천
▷ 조정구 ▷ 작은 행사를 이렇게 봐주셔서
원짜리 몇 장을 내면 A4 유인물과 믹스커
감사하죠, 뭐.
피 한 잔으로 교환해 준다. 그러면 그 동안
▷ 이오주은 ▷ 그럼, 앞으로도 100회, 1,000
기계가 되어버린 머리를 두어 시간 가량 다
회까지 길이길이 빛나는 정동도시건축세
른 생각으로 갈아 끼울 수가 있다. 사람에
미나가 되어 주시길 바라며, 인터뷰에 응해
따라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개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 자유, 이들의 초대 글은 소박하다. ‘제가
▷ 조정구 ▷ 아니, 전 이렇게 오시는 분들이
이런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요, 관심이 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얘기를 더 듣고 싶은
으시다면 같이 해요.’ 수줍은 듯 다정한 초
데, 그냥 좋다고만 하시니 오히려 제가 『
대는 목적 없이도 편안하게 갈 수 있어 좋
와이드』를 인터뷰 해보고 싶어요. 지금처
다. 그 중엔 묵직한 우리 시대의 고민도 보
럼 이런저런 논의도 하고 질문도 하면 재미
인다. 사관과 사관의 충돌이랄까, 민족사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과 식민사관이 형성하는 팽팽한 기류는 이
대화를 많이 하자! 되게 좋은 거 같다! 이거
들이 걷는 길 아래에 살포시 언 살얼음 같
wiDe Depth report
죠. 뭐. (웃음)
아 보인다. 보존이냐 철거냐, 이제 도시 곳
▷ 우동선 ▷ 대화를 좀 많이 할 수 있도록 해
곳에서 매 순간 묻고 물리는 딜레마가 되었
야겠다, 그렇다면 강제로 질문을 시킬 수
다. 그러나 이들은 말한다. 그게 그렇게 쉽
도 없고….
게 답해지는 거냐고. 더욱이 우리처럼 힘겨
▷ 조정구 ▷ 뒤풀이가 좀 조용해야 될 거 같
운 근대사를 거쳐 온 이들에게. 대신 함께
123
아요.
알아 가자고 한다. 그러면 궁금한 것이 생
인터뷰어 이오주은은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건축인 poar』에서 기자를 지냈다. 이후 『건축과 환경』, 『건축문화』 등을 거쳐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WIDE focus 1> 안명준 | (주)장원조경 연구소장 조경으로 만드는 명품 도시, 광교신도시
수도권 시민들에게 오래도록 추억을 선사
광교신도시 개발에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은
정이자 추억이 가득한 풍경으로 여전히 아
한 이 일대가 광교신도시라는 이름의 새 도
도시 개발에 조경의 역할이 더없이 강조되
름답게 기억된다. 서둔동 ‘전봇대 수퍼’를
시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추억 서린 풍경
었고, 그 초기 단계에서부터 조경이 도시를
지나고 농촌진흥청을 지나면 커다란 호수
의 맛을 살린 채 거점 도시이자 명품 도시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서호가 나타나는데, 넓은 수면을 옆에 두
로 재탄생하려는 것이다. 우려가 되면서도
조경 계획과 설계의 진행에서 처음으로 시
고 둑에 앉아 지는 해를 보며 마시던 막걸
기대가 되는데, 그것은 시민들의 추억의 장
도된 디자인 커미셔너 운영과 참여 의향 타
리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좌로 보이는
소가 현대적 도시 경관으로 재탄생하고 있
진을 통한 지명 설계의 진행도 주목할 만
도심지와 1호선 전철, 우로 보이는 호수와
다는 점과 장소를 새롭게 만드는 데 조경이
하다. 우리 시대 유행처럼 각광받는 조경
서편 낙조, 그 사이로 펼쳐진 넓은 논과 밭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도시 만들기에 관여하였다는 점만으로
이 변두리 농촌 경관의 맛까지 덩달아 느끼
도 광교신도시의 경관이 기대가 되며, 도
게 해 주던 것도 잊을 수 없다.
하나의 도시, 두 가지 설계 공모
시 경관을 형성하는 데 두 가지의 조경 설
수원의 명물인 원천유원지도 비슷한 풍경
광교지구 택지개발사업은 광역 행정 및 자
계 공모가 진행되어 모범이 되었다는 점도
으로 남아 있는데 MT 장소이자 놀이 장소
족형 새 도시 건설, 수도권 택지난 해소, 수
기대를 끌 만하다.
로서 설렘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 연으로
원시와 용인시 서북부 지역 발전 등을 목표
인접 신대저수지 주변은 처음 팀 작업을 했
로 만들어지고 있다. 인구 77만여 명을 기
공원 특화 컨셉트 디자인 설계 공모의 경
던 조경 계획 대상지가 되었고 주변 저수지
준으로 넓은 면적과 자연 환경, 수도권이라
우
와 취락지를 설문을 해 가며 분석했던 첫
는 위치, 편리한 교통 등으로 많은 관심을
광교신도시는 다양한 형태의 근린 공원 13
현장 공부 대상이기도 했다.
받고 있기도 하다.
곳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다. 신도시 주변
124
학부 시절의 수원은 나무 울창한 숲 속 교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당선작.
안명준은 고교 시절 교정을 걸으며 느낀 아름다운 가을 아침 풍경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조경을 공부했다(서울대학교 조경학과 / 동대학 원 생태조경학과 석사 / 동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 수료). 조경 미학 연구실과 통합 설계 / 미학 연구실을 거쳐 현재는 (주)장원조 경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현대 경관을 매체로 보고 연구하며, 경관의 매체화가 ‘경관 도시 통합 설계(Landscape Urbanism)’와 같은 조경, 건축, 도시, 토목 등의 통합 설계(Integrated Design)를 본격화하고 있음을 연구 중이다. 저서로 『현대 경관을 보는 열두 가지 시선 (공저)』, 『봄, 디자인 경쟁 시대의 조경(공저)』,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조경으로 일구는 아름다운 풍경 목장』 등이 있다.
의 자연 경관과 더불어 그것을 연결해 주
으로 검토되었다. 개발의 컨셉트와 주요 테
이 될 만하다.
는 근린 공원의 역할이 도시 내 생태 공간
마가 마스터플랜 형식으로 검토되었고, 이
도시는 점차 복합 기능의 분야간 혼성의 장
이자 문화 공간으로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를 바탕으로 호수공원은 국제 설계 공모 형
(field)이 되어 가고 있으며, 개별 전문 분
것이다. 넓은 면적에 흩어져 있다 보니 몇
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야의 통합은 이제 필수가 되고 있다. 경관
가지 우려되는 점과 함께 그것을 해결하고
공모는 1단계, 국제, 지명 초청 설계 공모
(landscape)과 도시, 인프라와 도시가 하나
통일되게 추진해 갈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국제 공모 형식의 지
로 이해되고 만들어지는 것도 이제 필연이
다. 이에 공원 특화 컨셉트 디자인을 통해
명 초청자를 선정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개별 분야의 전
그간 진행된 공원 설계안을 보다 통일성 있
이 진행되었고 공모 공고 후 참여 의향서
통적인 활동이 재정의되고 뒤섞이는 경향
게 구현할 디자인 커미셔너(design com-
(RFQ)를 국제적으로 접수받았다. 국내외
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missioner)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커
여러 분야로 구성된 팀들이 응모하였고, 참
광교신도시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목격할
미셔너는 자신의 설계 철학과 구상이 실제
여 의향서에서 보여 준 호수공원에 대한 아
수 있는데, 다행인 것은 도시의 건축, 즉 만
공원 설계에 반영되는 데 다방면의 조정자
이디어와 열정을 바탕으로 선정위원회는 8
들어진 모든 것이 경관을 이룬다는 점이 통
임무를 부여받았다.
개 팀을 최종 초청자로 확정하였다. 국내뿐
용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로써 ‘경관을
공모는 국내, 지명 초청, 아이디어 공모 방
만 아니라 영국, 미국 등에서 참여한 지명
만든다’는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식으로 진행되었다. 공모 공고 후 국내 여
초청자들은 호수를 둘러보고 신도시와 인
역할이 부각되어 도시 경관을 하나의 디자
타의 조경 설계 공모와는 달리 참가 의향
접 도시간의 관계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조
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를 접수받아 지명 초청 후보자를 선정하
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다양한 랜드스케
통합의 논리가 경관의 배후에 있어 저마다
고 최종 초청자를 결정하였다. 그렇게 선정
이프 어바니즘적 설계안을 제출하였다. 설
만들어진 건축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
된 7팀의 지명 초청 설계자는 공모의 전문
계안을 통해 일종의 문화적 충돌을 경험한
로 어울려 더 큰 건축을 꿈꾸게 해준다. 지
위원에게 참가 확인서를 제출하고 본격적
국내외 심사위원들은 열띤 토론을 거쳐 신
명 초청자들의 설계안에서는 그러한 과정
인 설계를 진행하였고, 김정윤 소장(오피
화컨설팅(대표사)의 “어반 리저버”를 수상
을 저마다의 혼성과 통합을 통해 충분히 보
스 박김)의 “8% 하이힐을 신고 정상에 오
작으로 결정하였다.
여 주고 있다.
김정윤 소장은 광교신도시 근린 공원의 커
경관 도시 통합 설계를 위한 첫걸음
추억과 장소성이 의미를 가지고 계속된다
미셔너로 활약하며 근린 공원의 실현 과정
이와 같이 전문위원(PA)을 두고 체계적으
면 경관과 도시는 그것만으로 독립적이지
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로 진행된 국내 조경 설계 공모는 처음인
않은 통시적인 장소성을 가지게 될 것이
듯하다. 신도시 차원에서 공원 체계와 공원
다. 모두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새롭게
호수공원 국제 설계 공모의 경우
형성의 과정을 진행한 것, 초청 설계 참여
발생하는 일상에 녹아 들어 새로운 미적 장
wiDe Depth report
거기에 원천유원지가 남겨 준 지난 시절의
광교신도시는 커다란 호수 두 곳이 도시 전
의사를 타진하여 지명 설계자를 선정한 점,
(aesthetic field)을 형성한다면 도시는 그
체에 강한 인상을 준다. 원천저수지, 신대
시행 과정에 디자인 커미셔너를 둔 것, 호
자체로 지속가능하게 되는 셈이다. 역사를
저수지는 수계가 다른 저수지로 각각 도시
수공원의 기능을 어바니즘 차원에서 접근
염두에 두고 기억을 남기는 경관은 장소가
의 녹지 체계를 저마다의 높이로 구성한다.
한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지명 초청의 진
가진 의미의 차원을 포함한 5차원적 조경
물은 알다시피 모두에게 커다란 기회 요소
행을 참여 의향서를 평가하여 진행한 점은
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광교
125
르다”가 수장작으로 결정되었다. 시상 후
이자 제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공모 실시
설계안 선정 시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
신도시의 두 가지 조경 설계 공모는 그것을
이전에 두 호수에 대한 개발 방향이 다방면
안이 된다는 점에서 향후 공모 진행에 모범
지적해 준다. ⓦ
<WIDE focus 2> 강권정예 | 본지 객원 기자 플로팅 온 한강 Floating on the Han River
또 다시 한강이 우리 삶의 중대한 이슈가
그런데 피어(Pier) 건축이 아닌 플로팅 건
를 셋으로 나누어 스케일을 조정한다. 한강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강에서 일어나
축인 것은 한강의 수위 차이 때문이다. 조
의 건축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어
는 건축 행위가 삶에 어떻게, 얼마만큼 영
수 간만으로 한강 수위는 매일 +50/-50cm
번 스케일에 따른 것이라면, 전체적인 볼륨
향을 줄 것인가가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
가량 차이 나고, 3~4년에 한 번씩 큰 홍수
은 휴먼 스케일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둘
되는 것들은 뱃길과 연관성, 그리고 한강
로 최고치 11.2m, 보통 7~9m까지는 수위
의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은 플로팅 아일랜
활성화로 기대되는 경제적 가치, 생태계와
가 올라간다. 평상시 최고 수위를 기준으
드가 설계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당선작이라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 정도로, 오히려 다
로 건축하더라도 썰물 때는 1m만큼 기둥
면, 플로팅 스테이지는 제안된 기획으로 여
른 의미나 가치는 묻혀 버리곤 한다. 한강
이 드러난 채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두
의도 공원 마스터 플랜의 설계 변경에 의한
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정비되면서 강
잠긴다. 플로팅 건축은 조수간만으로 수위
것이기 때문이다.
북 강변과 강남 강변을 얻었고, 한강 둔치
차가 크고 홍수기가 빈번히 생기는 한강에
매스의 볼륨에 대해 건축가 윤창기(경암건
에서 인근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5백 미터
더 적합한 건축 방식으로, 고려해야 할 외
축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통
이상의 거리를 두고 토끼굴을 통해서만 접
부 조건이 많아 특별한 건축 디자인을 요하
도시 계획적으로 어떤 한 블록에 대해 디자
근 할지언정,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들을 그
고 구조와 건축 시공 면에서 일반 건축물과
인할 때 제가 생각하는 룰이 있습니다. 강
강변에서 보내 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는 다른 점이 많다.
폭에 대해서 전체 볼륨이 5퍼센트가 넘지
시민들에게 한강을 되돌려주기 위해. 그 하
휴먼 스케일 vs. 어반 스케일
변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막아 부담
이라이트에는 인공섬이 있고 대대적인 재
플로팅 건축물과 유사한 것으로 한강 바지
을 주거든요. 강 폭에 대해 열려 있는 한남
정비와 함께 한강의 풍경을 재구성한다. 바
선들이 있다. 민간 19개 유람선 선착장 약
대교나 반포대교 쪽에서는 볼륨이 커져도
야흐로 하늘엔 조각 구름이 떠 있고 강물
10여 개, 지자체 바지 10여 개 등, 모두 40
되겠지만, 앞에 밤섬이 있는 여의도는 약
에는 유람선이 떠 있고, 인공섬도 떠 있게
개 이상에 달하지만 그 수만큼 잘 인지되지
700m 지점에서 한 번 걸러지는 것이죠. 특
되었다.
는 못한다. 대부분의 바지선은 수평 레벨
히 플로팅 스테이지의 배면 구조체 각도를
한강 르네상스의 인공섬은 반포 지구에 건
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플로
조정하여 공연 시 구조체가 닫히면 음이 밤
설되는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
팅 스테이지와 플로팅 아일랜드는 매스 감
섬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로 3개의 인공섬이 부교로 연결된다. 얼마
이 강조되어 한강에서 건축물로서 존재감
또한 플로팅 스테이지가 무대 자체를 개폐
전 제2섬이 한강에 진수(進水)되었고 첫 번
을 드러낸다. 넓은 한강 폭에 대해 도시적
식으로 한 것이 둔치에서 한강의 경관을 가
째와 세 번째 섬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오
스케일의 매스로, 반구 형태의 떠오르는 물
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플로팅 아일랜드는
는 10월 말 최종 완공될 예정이다. 그리고
방울과 ‘꽃씨, 꽃봉오리, 만개한 꽃’ 모양으
오히려 즉자적인 형태미와 조형성을 강하
플로팅 아일랜드에 앞서 작년 가을, 마포대
로 즉물적인 형태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각
게 드러내어 한강으로부터 건축물로 ‘시선
교 남단 여의 지구 한강 공원에 플로팅 스
각 한강의 아이콘과 랜드마크를 지향한다.
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리고 시
테이지(Floating Stage)가 이미 완공된 바
보통은 평균 폭이 1km, 둔치를 포함해 2km
선을 차단하는 것으로 발생할 답답함을 최
있다. 플로팅 스테이지는 공연이 없을 때는
정도까지를 한강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한
소화하기 위해 유리 커튼 월로 디자인하였
카페 및 다목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강에 건축물이 들어설 때는 2km 기준으로
다. 유리에 반사되는 물빛은 그대로 흡수되
외부 구조체가 열리는 개폐식 수상 무대이
건축물의 휴먼 스케일을 정하게 된다. 플
어 강과 일체화를 꾀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다. 플로팅 아일랜드도 서울시장이 G20 정
로팅 스테이지는 한강 폭 전체보다는 배경
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폐쇄감을 완화시킬
상 회담을 공언할 만큼의 다기능 종합 문화
으로 있는 밤섬까지의 거리 약 670m의 랜
수는 있겠지만, 공간 사옥을 그대로 투과하
시설에서 수상 레저 시설까지 겸하게 된다.
드 스케이프를 기준으로 결정된 볼륨[면적
겠다는 공간 신사옥의 투명함이 공간의 프
이 둘은 서로 비슷한 시기에 한강에 건설되
560㎡(170평), 폭 22m]이다. 그리고 총면
로그램과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거주자의
고, 모두 지지 기둥과 기초 없이 물 위에 떠
적이 9,209㎡(2,786평)로 정해져 있던 플
습관으로 무색해지는 경우도 있다.
있는 ‘플로팅 건축’이다.
로팅 아일랜드(건축설계 해안건축)는 매스
플로팅 원리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않으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건물 주
126
재정비는 한강의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플로팅 스테이지.
델을 찾기가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위에 잘 떠 있어야 하고 떠내려가지 않고
로 선체 하부에다 돌을 넣는데, 플로팅 아
기존의 한강 바지선들도 카페나 레스토랑,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 플로팅 스테이지의
일랜드에서는 바지 하부에 콘크리트 블럭
간혹 연회를 열 수 있는 정도이다. 그리고
경우 상부 건축물의 자중이 약 4백 톤이면,
을 넣어 중심을 잡는다.)로 조정한다. 그리
제도적으로 사용 승인과 재산권 보호 시스
하부 구체(바지)가 4백 톤 이상의 부력을
고 하부 구체는 파도로 인해 언제든지 출렁
템(등기)이 확립돼 있지 않은 것은 현실적
만들면 뜨는 것이다. 하부 구체가 4백 톤의
일 수 있고 수상 택시나 유람선이 지날 때
인 제약이 되고 있다. 게다가 수상에서 피
자중을 배처럼 띄울 수 있도록 하고, 수면
마다 발생하는 진동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
난이나 안전을 고려할 때 플로팅 건축물의
에서 떠오르는 높이가 항상 일정하도록 한
는다. 움직이는 인공 대지 위에 건축물이
상부 구조물에는 건축법보다는 강화된 기
다(안전율 60~120cm). 그리고 제 위치에
서 있는 이상 어떠한 방식으로 고정되는가
준이 요구되나, 안전에 관한 기준과 조건
계류하기 위해 앵커링을 이용하는데 고급
가 관건이고 이 점은 안전과 직결되는 부
은 마련 중에 있어 한강사업본부에서 준공
바지들은 자동 밸런스와 자동 릴 체인시스
분이다. 플로팅 스테이지가 상하부를 강접
검사와 사용 승인을 대행하고 있다. 그리고
템을 사용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상부
합하여 상하부 일체화시켜 진동에 대한 균
피난 시뮬레이션 분석 작업을 통해 사전 검
무게를 잡아주기 위해 약 70~100톤 가량의
열을 최소화 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큰 볼
증을 거치고 있다. 하부체는 우리나라 선박
쇳덩이나 콘크리트 더미로 된 닻을 4~5개
륨으로 바람과 같은 횡력에 영향을 더 받
인증 기관인 한국선급(KR)에서 안전도 검
씩 내려 제 위치에 떠 있도록 한다. 또 지상
는 플로팅 아일랜드는 상하부를 핀접합으
사와 승인을 따로 받고 있다.
로 시공하여 상부에서 횡력에 의한 모멘트
어쨌거나 플로팅 건축물은 특수 건축물인
의 높낮이에 따라 항상 움직인다.
를 흡수하고 하부체는 오로지 수직 하중에
데 비해 설계비나 사업성 면에서 문제점을
중요한 것은 건축물의 하중이 어느 한 쪽으
만 대응하게 된다.
안고 있고, 기후 변화와 환경 면에서 태생
wiDe Depth report
서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뱃짐으
과 이동 힌지(hinge)로 연결되는 부교가 물
한다는 점인데, 균형이 깨지면 전체가 기울
플로팅 인 딜레마
것이 많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반면에 미개
127
플로팅 건축의 원리는 간단하다. 배처럼 물
어져 건축물이 구조적으로 위험할 수 있기
플로팅 스테이지는 건축 공사비만 약 65억
척 분야인 수변 공간의 매력과 좀더 풍요로
때문이다. 플로팅 스테이지는 무게 중심이
원, 플로팅 아일랜드는 비공식 추정치로 약
운 한강을 시민에게 돌려 주겠다는 정책 의
가운데 있는 좌우 대칭의 반구 형태로 디
960억 원이라고 한다. 수면 위에 인공 대지
지가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는 지켜볼 필요
자인 단계에서 이 점을 해결하는 반면, 플
를 조성하는 비용이 건물 조성 비용만큼이
가 있겠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한강이 서
로팅 아일랜드는 자유 곡선으로 인한 편심
나 많이 들어가는데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
울시에서 가장 비싼 땅이 될지. ⓦ
을 밸러스트(Ballast : 일반적으로 선박에
기엔 부담이 크다. 반면 제대로 된 수익 모
로 쏠리지 않고 고루 퍼져 균형을 이뤄야
적 제약이 있다. 건축가들에겐 해결해야 할
와이드 14호 | 와이드 칼럼
건축가의 삶 | 최동규 하나.
적인 건축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현재의 난국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 아들이 건축을 전공하여 국내 유수의 대
을 버텨가는 몇 건축가들의 집요하고도 일 중독에 가까운 자세로
학 건축과를 나오고 일본계 한국 건축가 사무실에서 몇 년을 혹독
사무실을 꾸려가는 면면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둘.
치고 LA에 있는 작은 아틀리에 타입의 사무실에 취직하였다. 그런
언젠가부터 건축 현장에 등장한 신종 직업이 있다. 이름 하여 ‘감
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 발 대형 금융 위기가 터져
독관’이다. 대개의 경우 건설 회사를 퇴직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
버렸다. 졸지에 미국 건축계의 상황이 최악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
다가 선택한 직업인의 명칭이다. 건축설계 의뢰인들이 설계에서부
다. 대개 미국 유학 마치고 2~3년 혹은 5년 정도는 경험을 쌓고 귀
터 시공 단계까지 진행하는 데 전문 지식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그
국을 하게 마련인데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친구는 건축을 전공하
집단에 건축 전문가가 부재할 경우에 외부에서 추천 받아 채용하
지 않은 탓에 늘 자식의 앞날에 대해 내게 자문을 구해 왔는데 아들
는 신종 직업이다. 실제 대학에서 건축과를 다닐 경우 설계를 주로
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또 다시 물어 왔다. “미국 사무실에 일이
하는 학생과 달리 설계에 별 취미가 없는 학생들은 대부분 건설사
없어서 회사를 그만 둬야 하나 봐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그
를 택하기 마련이라 졸업 후 설계 사무실을 가느냐, 시공사를 가느
이 아들더러 내게 직접 연락하여 상담을 하도록 하였다. 그의 고민
냐 해서 직장 선택이 갈리면 대개는 그 동료들의 자녀 결혼식이나
은 최소한 1년 정도는 더 미국 건축 회사 사무실 경험을 쌓고 싶은
부모 상사 시에나 드물게 만나는 정도의 인연이 된다. 서로의 길이
데 더 이상 사무실에 있기도, 또 다른 사무실 취직도 어려워 보인다
달라서 만날 일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건
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국내 건축 환경도 불경
설사 출신 퇴직자들이 감독관이라는 애매한 위상으로 버젓이 명함
기이긴 하지만 미국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귀국하여 잘나가는 대형
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건축주들의 불충분한 지식 때문에 채용한
조직 또는 각고의 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소수의 아틀리에
직업인인 것은 인정을 한다. 그런데 개중에는 감독관 본연의 직분
사무실에 취직할 것을 권유하고, 몇 개를 추천하였다. 결국 몇 달
인 설계자·건축주·시공자 삼자 사이에서 자동차 윤활유 같은 진
더 미국에서 버텨보기로 한 날이 지난 후 귀국한 그에게 대형 설계
행만 책임지면 되는데 엉뚱하게도 설계자·시공자 위에 군림하여
조직 2개, 소형 아틀리에 사무실 3개를 권한 바, 그 중 대학에서의
결정을 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무리들이 있다. 나도
연고가 있는 소형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면접을 거쳐 취직을 하였
같은 경우로 곤혹을 치룬 바 있는데 준공을 몇 달 앞둔 교회 건물
다. 그 사무실도 직원들을 많이 줄이고 감축 운영을 하는데도 그의
에 대학 한 해 아래인 건설사 출신의 감독관이 부임하여, 마감 재
스펙이 나쁘지 않았던지 취직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 만난 친
료 결정할 시기가 되니 이것저것 들쑤셔대는 것이었다. 이들의 공
구의 말이 이랬다. “건축 사무실이 그렇게 힘드나요? 애 얼굴을 도
통적인 행태는 자신이 못 보았던 재료나 써보지 않았던 재료는 죄
저히 볼 수가 없어요. 새벽 세, 네 시에야 들어오고, 그러니 며느리
다 한 번씩 거론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게 해서 마치 하나하
는 너무 싫어하고. 듣자니 소장 자신이 밤에 집에 갈 생각을 안 하
나의 결정이 다시 재검토되어야만이 자신이 일 잘하는 것으로 착
고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거예요.” 미국에서 일이 없어 한국에 왔더
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 작심을 하고 한마디 퍼부어 주었다.
니 이제는 혹독한 근무 환경이 그 부모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는 것
이 건물 짓는 데 무려 100억 원도 넘게 들어가는 거 아시지 않습니
이다. 이렇게 고단한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 건축인의 삶인가
까? 그런데 다 짓고 난 후 건축 잡지에라도 발표하고, 각종 건축상
보다. 친구 아들이 사무실을 택하기 전에 그에게 들려준 말이 떠오
에 응모하여 상이라도 받으려고 하면 이렇게 여기저기 땜질하듯
른다. 언젠가 자신의 사무실을 차리겠지만 그때까지 시간을 잘 보
재료를 바꾼 상태로는 사진 한 장 제대로 못 찍는 건물이 되고, 결
내야 되는데, 지금 당장은 혹독하기는 해도 이런 불경기를 그나마
국 가옥대장에나 오르는 사생아처럼 되어버리는 건물로 전락할 터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경험 쌓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라고
이니 그 점 알아서 하라고 따끔하게 일러주었다. 마치 음악 연주
귀띔해 주었다. 물론 거의 한 주일에 이삼 일을 새벽에 귀가하는 정
시 지휘자가 지휘하는데 각종 악기가 지휘자 말을 무시하고 제멋
도의 삶을 예상하고 했던 말은 아니다. 아마도 그 사무실 소장에게
대로 소리를 낸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음악 연습이지 연주회가
는 건축이 거의 신앙에 가까운 수준이었거나 아니면 그렇게 철저
아니지 않은가? 본분을 잃어버린 감독관 때문에 심히 불쾌한 상황
하게 일을 해야만 다른 건축가들과의 차별화된 명품 건축을 생산
이 연출되었다. ⓦ
해 내고 그런 연고로 이름이 나서 다시 다른 일을 맡게 되는, 방어
글 | 최동규(본지 고문, 서인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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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고 떠난 유학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유수의 “C” 대학원을 마
Wide Architecture Report no.14 : march-april 2010
하게 일하다가 뜻한 바 있어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직전에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