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IA Topic
끝나지 않는 전쟁!
끊지 못하는 갈등 세계!
해가 다르게 위협적인 기후 재난!
1백년 뒤 인류의 후세들은
평화롭고 안정된 지구를 넘겨받을 수
있을까?
오늘 우리 모두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안정한 지구의 미래에 대하여
그 피해가 우리 다음 세대의 몫이 된다는 것을 나는, 우리는 진실로
알고는 있는 걸까?
하루하루 생존이 걸린 싸움터에서
사치가 되어버린
파국이란
32 해에게서
이름의 미래 이야기! p.74 1) 이 꼭지의 명칭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최남선 선생(1890~1957)이 1908년 11월에 한국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발표했던 권두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로부터 100년 뒤 2008년 1월에 창간한 본지는 선생의 계몽주의적 정신과 시선으로 현 인류와 미래의 인류가 함께 살아갈 지구를 향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전국 골목길 비밀정원 탐사
글, 사진. 김인수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대표
조그만 천국의 정원(Das Paradiesgärtlein)
낮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풀과 나무가 가득한 공간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꽃향기를 즐기고, 하늘을 바 라보며 편안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곳이 정원의 개념이다.[15c, 독일 라인강변 무명화 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테델미술관 (Städel Museum)]
프롤로그
건축·조경 전문가 김인수 소장은 오랫동안 이미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소중한 도심 속 녹색 공간, ‘조경가 없는 진짜 조경 공간’을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찾아다니며 기록했고, 식물 사랑이
남다른 정원 주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미용실, 수선집, 공인중개사무소, 동네 슈퍼, 시장 먹자골목, 고물상, 재개발 직전의 방치된 공터, 옥상, 지붕, 천변. 도시동네
골목길 곳곳에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화려하고 세련된
정원이 아니라 각자의 뜻깊고 애절한 사연과 오로지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만들어진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생명력이 넘치는 비밀정원이 존재하고 있다. 스티로폼 박스, 고무 ‘다라이’, 깨진 화분이나 항아리, 마대 자루 등을 화분 삼아 흔하디흔한 식물 몇 종류 키우는 것이 무슨 정원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크고 화려한 정원이라도 매일
그 생명을 들여다보고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은 생명이 계속 이어지도록 매일 애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살아 있는’ 정원일 것이다.
그가 주목한 소시민들의 비밀정원은 누구나 생각과 의지만
있으면 어디서나 만들 수 있으며, 장소나 시설, 비용이나 면적에
상관없이 효율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무엇보다 정원 주인이
직접 조성하고 사계절 세심하게 관리하는 정원이다. 정원 하면
떠오르는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풍경일지라도
흐뭇한 이야기가 있고 그 식물로 인해 이웃과 소통과 나눔이
이루어지는 정원, 주인의 개성과 애정이 오롯이 담겨 있는 그런
정원이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김인수 소장의 발품으로 기록한
우리들 사는 동네의 골목길 비밀정원 이야기를 연재한다.
전국적으로 골목길 비밀정원을 가꾸는 동산바치들이 연대하는
그 날을 기대하며.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토담 도화꽃 아래 원색의 튤립꽃이 피어있다. 식물은 유행따라 변하지만 마당의 꽃밭은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 다.[사진 2018. 4.]
33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동네
동산바치들의 비밀정원을 찾아서
인류 최초의 주거지는
‘에덴동산’이 아니었을까?
에덴동산은 흔히
‘낙원(paradise)’ 혹은 ‘기쁨의
정원(pleasure garden)’으로
표현되며, 아름다운 색의 꽃과
향기가 넘치는 잘 가꾸어지고
편안한 모습의 정원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경 창세기에
‘동산’은 영어로는 ‘Garden’
독일어로는 ‘Garten’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인류 최초의
주거 형태는 건조물이 아니고
정원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조물주는 건물을 짓기 보다는
‘만들어진 자연’ 정원을 인류
최초 거주공간으로 만들었다.
최초의 인류는 정원의 나무에서
열매로 먹거리를 취하고, 커다란 잎사귀로 간단하게 몸을
가리거나 나무 밑에서 햇빛과
비를 피하며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했을 것이다.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던 시기에 정원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했기 때문에
궁궐의 원예사를 부르던
‘동산바치’라는 순우리말에서
유래한 동산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어 지금까지도 습관적으로
동산이라고 쓰이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우리에게는
정원이라는 단어보다 동산, 뜰, 마당, 꽃밭이라는 표현이
오래도록 훨씬 친근하게
사용되었다. ‘정원’이라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앞마당과 뒤뜰의
꽃밭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조금 우아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정원으로
불리면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정원의 사전적, 내용적 정의는
낮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동물들의
위험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공간이다. 풀과 나무가 가득한
공간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꽃향기를 즐기고, 하늘을
바라보며 편안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곳이 정원의 본질적인
개념이다.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아직 정원이라
말할 수는 없다. 정원은 사람이
먼저 자연 속에서 형상을 만들고
꿈을 현실화시켜 나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땅을 다듬어
인공 지형을 만들고, 특별한
장소에 식물을 심고, 공간들을
서로 연결하고 구성하며, 오솔길
같은 산책로도 만들고, 물이
흐르게 하고, 조형적인 울타리와
벤치 등 시설물들을 설치해야만
정원의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단어들이 연결되어
아름다운 시가 만들어지듯이
정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들을 아주
특별하게 꿰어 맞추어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은 원고지에 시를
쓰듯이 설계자의 제도판 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정원의 독특한
분위기, 색깔, 향기 등은 주변
자연 환경의 시간과 계절에 따른
변화 등 예측 불가능하고 계획될
수 없는 요소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창조주와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풍경의
수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녹색공간 정원이 어디나
있다. 식물을 가꾸며 작은
생명을 보듬는 손길들이 도시를
아름답게 하고 ‘살아 있게’
만든다. 많은 예산이 투입된
크고 화려하고 세련된 정원은
아닐지라도 오직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가꾸어지는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공간이다. 도시의 비밀정원이라고
특별하게 찾아야하는 숨겨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호박넝쿨 지붕정원 낙산 끝자락 급경사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장수마을은 주거 공간 확보가 우선이었기에 마당을 찾아보기 힘들 다. 지붕도 훌륭한 녹지공간이다. 몇 개의 화분과 호박넝쿨, 토란 등이 우아한 녹색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다.[사 진 2012. 8.]
서울 종로구 창신 미용실 전체가 정원으로 식물만이 아니라 새와 물고기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며 작은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의자에 앉아 앞의 거울을 쳐다보면 자신이 식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미용사의 손은 머리를 다 듬는지 식물을 손보는 건지 잠시 혼란이 일어난다. 15㎡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머리를 다듬는 시간은 진짜 힐 링이 가능한 치유의 공간이다.[사진 2018. 5.]
34 전국 골목길 비밀정원 탐사
경기도 수원화성 화양루(華陽樓) 가는 길 수원 화성 서남암문(西南暗門)에서 화양루라 부르는 서남각루(西南角樓)에 이르는 200미터 길이의 환상적인 아 름다운 길이다. 화려한 꽃 한 송이 찾아볼 수 없고 특별한 정원수도 없지만 자연에서 편안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
으니 분명 정원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죽어야만 하는 참혹한 전쟁에 대비해 만들어진 성에 어떤 이유와 생각으로 이처럼 여유롭고 낭만적인 길이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게 만든다.[사진 2014. 9.]
공간이 아니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시선을 달리하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동네 구석구석에서
마을 동산바치들이 만들어가는
누구나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매우 평범한 생활형 정원이지만
보고자하는 마음만이 발견해 낼
수 있다. 보고자하는 마음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다.
나는 이런 곳을 골목길
‘비밀정원’이라 부른다. 내가 찾은
평범한 도시 민초들의 정원은
한마디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檢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로 표현할 수
있다.
온 나라가 정원 열풍이다.
국가정원, 지방정원, 민간정원, 정원도시, 정원박람회, 정원축제, 작가정원, 한평정원, 손바닥정원
등등.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어떻게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컨셉으로 정원을
자기네 고유 상품으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마치 전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잘 다듬어진 주목 토피아리가 영국의 장원(莊園)을 연상시킨다. 50여 년 전 부모님이 묘목을 심으셔서 가꾼 정 원으로 주목뿐 아니라 감나무, 밤나무, 자두나무, 앵도나무, 뜰보리수, 산딸나무 등이 어우러져 작은 수목원이 다. 수벽으로 키운 사철나무도 깔끔하게 다듬어져 자라고 있어 가꾸는 분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사진 2023. 4.]
생기면 꼭 마당에서 식물을
키우고 싶었던 소녀가 결국 만든
정원, 부인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초와 버섯을 직접 재배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기 시작한
옥상의 약초원, 시골에서 살던
시절 마당의 정원이 너무 그리워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본인의
삶터이자 일터인 고물상 한편에
만든 정원, 정원을 너무 가꾸고
싶으나 마당은커녕 풀 한 포기
심을 공간이 없어 지붕 위에 만든
정원, 다 큰 자식을 사고로 잃고
도저히 자식 생각을 가슴에서
떨쳐 버릴 수 없는 아버지가
옥상까지 흙을 짊어 나르는
고통스러운 노동을 기꺼이 하면서
만든 정원, 조경전문가였던
사람이 은퇴 후를 생각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론적 지식을
현장에 구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직접 노동하며 만들어 낸 정원, 식물배양전문가가 마당이 좁아
지붕까지 이용해 조성한 식물원 같은 정원, 시골에서 올라와 배달 찻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누구보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길가도 아니고 집 뒤편 작은 개울과 면한 별로 눈에 뜨이지도 않고 버려질만한 좁고 길쭉한 땅에 절묘하게 만들 어진 정원이다. 정원 주인은 늘 너무 밝고 활동적이라 생각도 못 했는데 색도 흑백으로만 보이고 거의 눈이 보 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만약 정원이 없었다면 그냥 장애인으로 머물렀을 텐데 정원일이 너무 즐겁고 할 일
도 많아 다른 생각할 시간도 없고, 꽃 때문에 삶의 의욕과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볼 수 없으니까 풀과 꽃의
차이를 손끝의 감각으로만 느낄 수 있어 정원일은 맨손으로만 해야 된다. 정원에 항아리를 많이 사용 하는 거
도 맨 땅이 그만큼 없어져 풀 뽑기 일도 적어지지만, 무엇보다도 항아리의 모양이나 크기, 위치, 배치방법을 손 의 감각으로 인식해 꽃을 구별하고 정원을 관리할 수 있어 시각장애 문제를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진 2021. 5.]
정원이 없던 도시에 새롭게
정원이 만들어지고 도시환경이
개선되어 도시이미지가 바뀌는
거로 생각되지만,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원인 꽃밭과 마당은
유행에 따라 모양새나 꽃의
종류는 변했지만 오랜 시간
한결같이 골목길 비밀정원으로
여기저기서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며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거창한 계획과 많은 비용을 들여
전시형으로 만들어졌다 슬며시
사라지는 정원과 달리 모두
절절한 사연과 감동이 있는 소위
스토리텔링이 있는 정원이다.
골목길에 쌓이는 쓰레기 문제로
동네 사람들 말다툼이 끊이지
않아 처리를 고민하다 만들어진
정원, 어린 시절 친구 집 마당의
푸른 잔디와 감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부러워서 자기 집이
비밀정원을 찾아서
열심히 일을 해 번 돈으로 독립해 차린 찻집의 정원, 사랑하는 부인에게 제일 먼저 갓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려고 출근하기 전 새벽부터 가꾸는
정원 등.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화려하고 세련된 정원이
아니고 각자의 뜻깊고 애절한 사연과 오로지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만들어진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공간이 바로 골목길 비밀정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근 지자체마다
정원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많은 예산을 투입해 정원박람회나
작가정원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유행처럼 진행하고
있다. 정원을 공동의 관심으로
이끌어내 자연생태계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알리고, 주민들이
어디서나 꽃과 나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 진다는데
35 [프롤로그] 동네 동산바치들의
의미가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마을 동산바치들이
오로지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는 숨겨진 정원을
우리 이웃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미 완성된 모습을
갖춘 이런 골목길 비밀정원을
찾아내고 체계화해 일정 기간
개방한다면 새로운 정원을
만드는 큰 예산 없이 대규모
정원박람회는 아닐지라도
마을단위 정원 축제가 가능하다.
관에서 주도하여 공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원도시나 정원마을
만들기는 정원이라는 주제로
도시 그린인프라의 한 축을
만들어 생태적으로 도시환경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져 주민들이
오랜 시간 가꾸고 즐겨온 골목길
비밀정원도 이미 훌륭하게
준비된 그린인프라다. 거창하게
전문적으로 표현되는 도시숲이나
작가정원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도시의 생태
녹지공간이다. 대자연의 기본과
원칙을 따르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골목길 비밀정원은
우리 꽃밭 정원문화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행에서
느끼는 산뜻한 감동은 아니지만
은근하고 소박하며 오래되고
기품 있는 골동품과도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니 바로 나와
같은 조경가나 도시기록자가
기록으로 남겨야할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이다. ‘도시
소멸’이라는 말이 흔히 들리는
요즘 꼭 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기록이기도 하다.
식물이 있는 곳에는 쉬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벌과 나비, 새 등 온갖 생명이 찾아온다.
모든 생명은 자연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 곁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는 우리 삶의 평생 동반자다.
탄소동화작용으로 사람은
식물로부터 산소를, 식물은
사람으로부터 이산화탄소를
취해야만 생명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당연한 거로 여겨
중요함과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직접 가꾸거나
그저 보면서 즐기든지, 아니면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비밀정원이
있을 것이다. 거창한 수식어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정원은
‘생명’이다. 정원을 가꾸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고 뭇 생명을
품고 사는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다.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는 이 생명의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동네
동산바치들이 있다. 생명의 공간
정원은 시간을 내 찾아가야하는
먼 곳에 있지도 않고, 부담스럽게
구경해야 할 만큼 큰 땅이
필요하지도 않다.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고 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언제나 바로 곁에서
만날 수 있는 게 도시의 골목길
비밀정원이다.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게 하려면 꽃이 있으면
되고,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싶으면 그들이 깃들 나무가
있으면 된다. 도시의 비밀정원은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주는
최고로 맛있기도 하지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마음으로 느끼며 먹는
소박한 치유의 밥상이다.
새 생명과 만나는 봄 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골목길 산책을 하면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나만의
비밀정원을 스스로 찾아다니며
즐기기를 권한다. ‘쌀 한 톨에는
농부의 일곱 근 땀이 배어
있다’는 ‘一米七斤일미칠근’이라는
말이 있다. ‘一花七斤일화칠근’. 한
송이 꽃에는 동산바치의 일곱 근
땀이 배어 있다는 말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서울에서 귀촌한 정원 주인은 “정원은 행복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철원의 혹독한 추운 날씨 때문에 비싼 수업료 를 치르고 5년이 지난 지금에야 볼만한 정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가꾸는 주인뿐만 아니라 꽃을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유난히도 행복, 기쁨, 사랑, 치유 등의 단어를 많이 들을 수 있어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많이 경험한다. 아마도 식물이 지닌 힘일 것이다.[사진 2022. 6.]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초여름 담장 전체를 덮으며 늘어지는 빨간 장미는 혼자만 보기 너무 아까운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꽃을 심는 건 내 마음이지만 피는 건 식물 마음대로에요. 생각과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정원이 흘러가기도 하고. 정성이 너 무 지나쳐도 안 되고, 살아있는 생명체라 마당의 조건에 따라 환경 차이가 있으므로 물주는 기초적인 거부터 식 물마다 돌보는 방법이 다 달라요.” 정원의 아름다운 꽃을 보는 사람은 아무 대가 없이 즐기지만 가꾸는 사람에게 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사진 2021. 5.]
서울 중구 산림동 공작소 골목 매일 몇 번씩 손을 씻어야 하는 수돗가의 작은 화분이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환하게 웃던 일하는 분의 모습이 생각난다.[사진 2017. 7.]
전국 골목길 비밀정원 탐사
36
한국현대건축 100장면
글, 자료. 강난형 건축사사무소 아키텍토닉스 대표 연구자
1977년 어느 여름날 사우디아라비아 주택성 장관의
아파트건설 현장 탐방
프롤로그 [산업 편]
하루를 시작하며 마치기까지 SNS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촬영한
장소의 장면들로부터 타인들의 시선을 경험한다.
‘한국현대건축 100장면’도 연구자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한국현대건축을 장면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다분히 현대적 지식습득습관을 염두에 두었다.
이번 첫 호는 한반도 산업지형에서 시작되었지만, 앞으로는 정치 사회·문화적 사건, 인물·조직, 출판·전시 세미나 등 이벤트를 망라한 주제들이 각 호마다 연재될 예정이다.
첫 호인 [산업 편]의 장면 선택에 있어 나름의 엄정한 기준이 있다. 첫째, 한반도 지형에 맞추어진 현대건축의 이야기 거리가 있는가. 전후 현대건축이라는 문제는 해방과 남과 북의 분단과정에 따라 매우 연약한 산업조건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건물 건설, 각종 에너지 소비, 도시의 확장과 리셋 과정을
야심차게 진행할 만한 막강한 건설제조환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반도 도심의 산악지형은 제약조건이기도 하고 이동시간을
단축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각종 해법들을 촉발하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 오래된 기술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은 한국성에 내포하는 저항과 갈등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세계 각 대도시의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으며 분명
지속해온 토속과 전통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둘째, 아파트 유형이 우리의 집 모습으로 우위를 점하게 된
과정의 기형성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건축을 집이라는
창을 통해 다룬다. 우리의 집만 들여다 보아도 도시적 스케일에서
사물 단위의 스케일까지 인프라, 건축물, 건축자재, 가구, 물건의 풍경이 새로이 구축되는 역사를 볼 수 있다. 그 풍경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다. 아파트 재건축,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에
따라 건축물의 교체수명이 평균 약 26.9년(2006년 기준)으로
어느 국가보다 단기 생애주기를 갖는다.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풍경보다 대단지 아파트의 풍경이 변화하는 속도는 급진적이다.)
이는 도시의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공유되었던 오랜 기억들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이때, 사라지는 실물 건축과 달리 건축기록은
남겨진다. 연구자로서 장소를 벗어난 또는 벗어날 기록에 대한 아카이빙은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적 역할의 가능성이 된다.
셋째, 냉전체제 국가주도 산업화과정(첫째 질문)과 주택산업
생태계 형성과정(둘째 질문)이 건축지식과 공간 생산의 문제로서
집적되어 다룰만한가. 각 연재마다 개개의 장면은 인프라, 건축물, 건축자재, 가구, 물건, 책의 풍경이며, 또다른 반향을 기대하며 각
풍경을 그룹핑 한다. 이 과정으로 우리의 집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할 서사 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거주환경뿐
아니라 이를 구성했던 제조 산업 환경까지 확장하여 서사를
연결한다. 이때, 발명적 관점의 신기술을 계보화 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었던 집과 관련된 기술이
어떻게 점진적 개량, 유지, 변형되었는지 주목한다. 이렇게 짓고 사용하고 버리는 방식에서 재사용하고 수리하고 재 제조하는 순환경제물로서 인식되려면 먼저 1차적으로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도시 자원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호의 장면은 버나큘러 복도아파트 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공공사업 주택성 장관, 여의도 아파트단지시찰(1977) ©국가기록원, CET0073315
1977년 여름날 사우디아라비아 공공사업 주택성 장관은 국내 건설부 장관 초청으로 내한했다. 그는 약 6일의 체류 동안 한국의 아파트 건축기술을 알아보고자 했다. 한강, 반포, 여의도, 잠실 등의 아파트 단지와 건축자재전시관을 시찰했다. 특히 여의도 아파트 단지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같은 황무지였던 장소가 지금은 한국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평가했다. 그가 방문한 1970년대 중반은 동남아 시장에서 중동지역으로 해외건설장소가 이동하면서 시멘트, 건설 및 운송업에서 건축자재까지 중동 건설 붐에 따른 디자인 생태계가 크게 요동치는 시기였다. 건축가와 연구자, 건설회사, 제조회사들은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수출중심 산업 체제로 변환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시 도로공사와 각종 도시계획에 참여한 삼환 기업은 한국건설자재 상설전시관을 젯다에 개관했으며, 여의도 아파트 주요 건설회사였던, 삼익 주택과 라이프 주택의 중동지역 아파트 공사가 논의된다. 국내 표준 건설자재 제정(KS) 이후 지구 표준 건설자재 제정(ISO)이 진행되며 지역 표준과 호환성을 고민한 건축자재가 생산되었다.
한반도 아파트는 주택건설산업의 표준화라는 정부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지구경제와 호흡하는 중요한 사물디자인으로써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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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집단 프로젝트화 (1971-1979)
공영주택 설계자 서울 건축사 합동
기술개발 공단과 여의도 아파트 단지 사업계획서(1973-1978)
여의도 아파트 단지 ©국가기록원, 1978, CET003733여의도 아파트 단지사업계획서(1973-1978)의 여의도 아파트 단지 조감도 ©서울도서관
인공대지 여의도가 복도 아파트 도시로 변모된 것은 단지 1970년대라는 짧고도 압축적인 기간으로, 여의도의 개발로 섬의 동측은 일순간 도심 주거지가 되었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시범’이라는 뜻처럼 민간 건설사의 경합을 통해 여의도 지구에 판상형 아파트 집단화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서울시는 시비로 60억 2,700만원을 투입하며 약 1년만에
여의도 시범아파트 15개동을 건립한다. 당대 6층 이하 워크업 아파트와
다르게 12층의 고층 아파트를 병렬식으로 배치하여 단지를 구성했다.
서울시는 “여의도 개발과 시민 주거생활향상을 위한 공공사업”으로 두
번째 아파트 단지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여의도개발공단이 해체되면서
합작했던 삼부토건주식회사가 인수하였고, 그 이후 삼부토건의 866가구, 삼익주택 2,344가구, 라이프주택 1,781가구, 한양주택 1,646가구가 여의도에 입주하였다.
서울 건축사 합동 기술개발공단은 서울시 산하 설계조직이다. 그들은 여의도 복도 아파트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대지 위에 그려진 야심에 찬 건축설계를 실험하며 대량생산된 건축 부재를 적용했다. 1세대 건축가들이 공공기관이나 국제연합조직에 소속되어 공영 주택설계 및 연구를 진행한 것은 기존에도 있었다. 그들은 대한주택공사, HURPI, 한미재단 KAF, 한국산업은행 ICA 주택 기술실에서 연구와 설계 논의를 통해 산업화 과정에 표준화 담론을 형성해 왔던 주역이었다. 여의도아파트 단지 사업계획서(1973-1978)의 건축 시방서에 따르면 목재 샷시와 알루미늄 샷시는 구체적인 규정 사항이 있었다. 목재 문과 창틀은 라왕이라는 재료를 사용해야 했고, 알루미늄 샷시는 KS 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아파트 복도를 구성하는 건축 부재들은 주문제작
생산방식이라기보다는 에너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경제적인 행동양식으로 규격화 하여 생산되었다는 뜻이다.
10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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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건축
한국
냉전체제 자원개발과 라왕과 알루미늄 샷시산업표준에서 버나큘러로
목재 · 알루미늄 창호의 KS규격화 과정 ©강난형
라왕 목재 샷시의 주 재료인 라왕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목재이다. 전후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이었던 합판산업 덕을 본 건축부재이다. 한국은 당시 특별 전력 배송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생산한 합판을 미국에 수출하였으며, 1970년 기준 세계 42개국 합판 생산국 중 7위에 해당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인도네시아 산림개발정책이 전환하여 원목 수출을 규제하기 전까지 인도네시아
수입에 의존하거나 필리핀, 말레이지아에서 수입하여 합판, 각재 등의 목재 제품이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제조회사로는 부산, 군산, 인천을 기반으로 둔 동명목재, 성창기업, 청구목재, 광명목재 등이 있었다. 알루미늄 샷시는 대량생산국인 기니아, 가나, 자메이카, 호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알류미늄 원광(보크사이트)을 거의 수입하여 다시 가공 제작하여 동남아, 일본, 중동으로 판매하는 중요한 수출 자재였다. 1969년부터 한국 알루미늄 제련공장을 차관으로 설립하고, 알루미늄 원광을 수입하여 알루미늄 괴(ingot) 등을 생산하게 된다. 알루미늄 샷시는 1960년대 말부터 알루미늄 빌렛트(billet)를 압출하여 샷시 뿐 아니라 파이프 생산이 이루어져 알루미늄 압출형재를 건축자재로 사용하였다. 이 시절 남선 알루미늄과 동양강철 알루미늄은 대표적인 알루미늄 샷시 제조회사이다.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 아파트 지구 지정에 따른 아파트와 빌딩 건설자재 수요량이 많아지면서 신진 알루미늄, 한독 알루미늄, 율산 알루미늄, 삼선공업, 동신산업진흥, 유신 알루미늄, 동진금속, 동양강철, 일진 알미늄, 상진금속 등 제조회사들이 양적으로 증가했다. 초기의 은색 샷시와 건자재가 1970년대 중반부터 창호, 도어, 커튼월, 스팬드럴 등의 건축자재로 생산 품목이 확대되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복도발코니 샷시 풍경들©정다은
현재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50년간 길들여온 공간이다. 또한 아파트의 사물은 거주민이 관계하는 형태 요소로서
특정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도록 구조화 하였다. 시범아파트의 기다란
복도 샷시는 표준적인 모습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어느 하나 똑같은 집 없이 제각각이다.
시범아파트 건축가는 집으로 가는 가로 풍경으로 아파트의 복도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50미터 전후 길이의 아파트 복도에는 복도보다 2단 (300mm) 높은 발코니 공간이 현관을 중심으로 주방과 문간방 양쪽에 위치한다. 또한 세대별 내부 공간은 기둥 구조로 구획했고, 복도는 기둥이 없는 외부공간으로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외관으로 철재 프레임이 교차하는 파사드를 구성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도와 집 사이 발코니 공간이 추가된 넉넉했던 공간은 그 이후 아파트 복도풍경에서 차츰 사라졌다.) 난간 안쪽까지 발코니의 깊이는 840mm이지만, 조금이라도 넓게 쓰기 위해 100mm 폭의 난간 공간까지 여러 창의적인 생각이 반영된다. 벽을 만드는 방법은 벽돌을 쌓아서 만들거나 프레임을 세워
판재를 채우는 방법이 눈에 띈다.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세대별
목재, 알루미늄, 스틸, 플라스틱의 샷시 사용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하이브리드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목재와 알루미늄 샷시는 1970년대
중반부터 내구성, 단열성능, 실용성을 이유로 새로운 재료들과 대결하며
교체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단위 재료 중 선형 부재인 샷시가 선호된
것은 가볍고, 제작이 쉬운 부재이기 때문이다. 현관을 중심으로 양측의
복도 발코니 공간이 평형에 따라 길이가 다른 문제를 단위부재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밀하지 않은 연약한 부재를 겹으로
사용하며, 겹의 중첩에 따라 그 기능은 다채롭다.
[산업편] 버나큘러 복도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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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인도네시아 원목 개발(1969) ©국가기록 원, CET0030887 한국알루미늄 원광 생산(1970) ©국가기록원, CET0042466
전진삼의 비평시대 01 K교수는 인천건축의 은둔자인가, 메시아인가 〈K교수의 건축수업〉 전시 리뷰
글. 전진삼 본지 발행인, 건축비평가
전시장 2층에 마련된 구영민 교수(이하, K교수)의 드로잉북을 모아놓은 책장에서
우연히 그가 작성한 큐티(QT) 노트 한
권을 발견하고, 매일매일 그가 행한 성경
읽기와 기도와 묵상의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모친이 영면에 드신 시기를 전후해서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었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1994년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꼬박
30년, 교직에 몸담은 채 제자들을 길러낸 그가
정년을 맞아 은퇴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만든
전시 〈K교수의 건축수업〉을 일견하면서 문득
그의 위상이 성경 속 캐릭터와 오버랩 되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월간
《건축사》지가 기획한 ‘인천’지역 특집 좌담회
자리에서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부임 이후 인하대 건축학과 교수연구실에
간이침대를 갖다놓고 침식을 학교에서
해결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던 열정적인
젊은 교수였다. 집에는 1주일에 한 번꼴로
다녀온다고 했던가. 학내에서는 여전히 선배
교수들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지만 K교수의
남다른 교습 방법을 통한 존재감은 틈틈이
학교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호감형 용모에서부터 글과 말로 푸는
신박한 건축의 생각과 응시하는 대상을 향한
예리한 시선으로 적어도 인천 지역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수건축가였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를 맞아 인천시의 주도하에 인천건축사회와 함께 제1회 시민을 위한 인천건축전(현, 인천건축문화제의 전신)을 개최하게 되는데 나는 K교수와 함께 운영자로 참여하였다. 이후 그와의 동지적 연대감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개인사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5년의 시간동안 지근거리에서
그의 건축동선을 지켜보아 올 수 있었던
인연은 내게도 크나큰 행운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의 제자사랑은 특별한 것이었는데
그가 참여하는 지역 내 기성 건축인들의 술자리 모임에 그는 늘 제자들을 동석시켰다.
학교 바깥에서 학내에서처럼 제자들을
챙긴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데 그는 많이 달랐다. 전시장 1층 초입의 패널에 그 이유가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건축교육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비전을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농부와 교수〉 중) 그런 연유로 나또한 그가 배출한 연구실 팩토리의 초기 제자들로부터 근년의 후기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면식이 있는 친구들이 꽤 많다.
각설하고, K교수는 인하대에서 125명(연구실 기준)의 제자들을 배출했고 그들 중 소수는 현재 대학교수로, 다수는 건축설계사무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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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영민 교수 Ⓒ김재경 2. 쇼윈도가 있는 갤러리 반포대로5 외관 Ⓒ김재경 2 1
41 3~4. 1층 전시장 Ⓒ김재경 4 3
운영하는 건축가로, 건축디자이너로 맹활약하고 있다. 건축설계업계에서는 그의 연구실 멤버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아 사무소마다 앞다퉈 데려가려고 경쟁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학생들 저마다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K교수의 지도력이 배가된 것이라는 점에서 교육자로서 그의 면모를 새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정작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그의 제자는 많지 않다. 요즈음 수도권에 위치한 상위권 건축학 5년제 대학의 졸업생을 서울 외
지역에서 채용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세태를 감안하여 외려 당연한 게 아니냐
싶기도 하고, 인천건축의 생태계가 취약한
점에 미루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같은 현상을 통해 K교수의 인천 내 위상에 대하여 돌아볼 여지가 많음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30년간 인하대에서 교직을 수행한 K교수는 학기 중에는 국내에서, 방학 중에는 프랑스, 러시아 등 국외에서 강의를 계속해오며
42 5~6. 2층 전시장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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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국제적 건축 활동의 경험을
제공해왔다. 낯선 세계에서의 협력적
공부가 자극이 되고, 시야를 확장시키며
그의 연구실은 늘 긴장 속에서도 성취도가
높은 면학의 열기로 뜨거웠다. K교수는
항상 제자들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국내의
대표적인, 아니 유일한 페이퍼 아키텍트라
불릴 만하다. 그가 필드에서의 활동을 탐하지
않고 - 탐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간은
무척 짧았다 – 그렇게 자신의 캐릭터를
굳혀온 까닭에 그의 연구실 제자들은 건축의
상상력과 철학적 시선의 세계 사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건축가의 기질을 키울 수 있었다.
K교수에게 인천이란 지역은 건축가로
활동하기에 매우 헐거웠다. 좁았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나는 때때로 그를 향해
학교를 나와 필드에서 인천건축을 리드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인천건축은
생태계가 불완전하고, 설익은 건축 민도와
경쟁력 있는 건축전문가 그룹이 눈에 띄지
않는 척박한 건축 환경이란 개인적 판단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설령 K교수가 내 꼬임에 솔깃하여 인천건축의 필드에서
호흡을 해야 했다면 그는 필시 도중에 아사(餓死)했거나, 고독사(孤獨死)했을 것이 틀림없다. 인천은 그가 숨 쉴 수 있는 행성이 아니었기에. 결과적으로 그는 인천건축의 은둔자였다. 천만다행으로 그가 학교 밖 필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까닭에 그는 온전히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다.
나는 K교수가 인천에서 보낸 30년의 시간이 향후 인천건축의 전기를 마련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의
건축가로서의 비전이 지역사회에 공유되지
못하고,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타지를
전전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천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축의 혼돈기를
겪어야겠지만, 그리고 서서히 은둔자 K교수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인천이 맞이하게 될 축복된 건축의 현실에
이르러 그는 비로소 오래 전에 인천에
출현하여 인천건축의 미래를 설계한 메시아적
건축가였음을 세인들이 알게 될 것이다.
K교수의 건축수업을 통해 등장한 제자들과
그의 존재를 알고 뒤늦게 따라나선 건축하는
후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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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층 전시장 Ⓒ김재경 8. 구영민 작, 드로잉집, 샘플링 Ⓒ김재경 9. 구영민 작, 여행스케치 Ⓒ김재경 9 7 8
인천건축의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그 시간이 되면.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21 원주 캠프롱과 아카데미극장 한국전쟁이 만들어낸 군사도시
글, 자료. 이연경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건축사가
〈시즌5〉를 시작하며:
휴전 70년, 우리 도시에 남은 전쟁의 흔적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한국전쟁은 한반도에
수많은 상흔을 남기고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서명되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2023년,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국가이고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이다.
‘휴전’ 상태가 70년간 계속되며 전쟁의 감각은
다소 사라졌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장소 곳곳에 남아 있는 군사 기지의 흔적들은
여전히 ‘전쟁 중’인 한반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상당수가 반환되었거나 반환을
준비 중이지만 여전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속하는 미군기지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점하며 우리 도시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한반도의 미군기지는 이전의 일본군이
점유했던 땅을 사용하거나 혹은 한국전쟁기에
임시로 자리 잡았던 장소에 자리 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의 용산 미군기지, 부산의
하야리아 기지,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등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하던
기지를 한국전쟁기에 미군이 점유하게 된
곳이었다. 한편 동두천이나 의정부, 원주 등
접경지역의 미군기지들은 대부분 한국전쟁기에
만들어진 임시 텐트 막사촌을 그 기원으로
한다. 미군기지 주변에는 기지촌이 생겨나며
미군들의 유흥장소이자 한국에 미국식
문화가 전파되기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소위 양공주라 불리던 미군 접대부 문제나
각종 폭력과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미군기지의 반환은 오염토의 정화와 향후의
활용 등을 둘러싼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부산 하야리아 기지의 반환
이후 공원화 과정에서의 갈등부터, 춘천
캠프 페이지의 불완전한 정화로 인한 문제, 인천 부평 조병창 병원의 철거를 둘러싼
문제 등 다양한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수의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2023년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는 반환된, 혹은 반환이 예정되어 있는 미군기지와 그 주변의
도시 상황을 살펴보면서 휴전으로부터 7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미군기지’란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또 그 장소들은 현재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군사도시’ 원주의 재건 조선시대 강원감영이 있던 원주는 한국전쟁 당시 공습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1938년 읍으로 승격된 이후 중앙선 철도가 놓이며 1940년 설치되었던 원주역사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5일 후인 1950년 6월 30일 소실되었고,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원주를 되찾기 위해 미군의 공습이 이어지며 원주 시내 대부분은 폐허가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원주 탈환과 1·4 후퇴 이후의 철수, 1951년 3월의 재탈환 이후 1951년 7월부터는 원주 재건을 위한 도시계획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공습으로 폐허가 된 원주에
대한 복구계획은 전쟁 이후인 1954년
유엔 주재 지원단(UNKACK) 강원도 팀에 의해 본격화되었고, 이후 미군 32공병단
주도하에 도로 건설과 확장이 진행되며 차츰 시가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당시 만들어진 원주의 재건은 사실 완전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공습 이전에 있었던 도로 체계를 복구하는 양상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1954년 양구에 있던 휴전선 전체를 관장하는 사령부인 제1야전군사령부가 원주로 이전하였는데, 이는 원주가 중앙선 철도가 있으며 사방으로 교통망이 발달되어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야전군사령부의 이전과 함께 원주 도시계획 역시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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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등록문화재인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국가기록원, 관리번호:CET002066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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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되었는데, 1950년대 원주의 도시계획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으로 군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다. 1955년에는 R-401 비행장
관리업무 인력을 지원하기 위한 미군기지인
캠프롱이 태장동에 만들어졌다. 캠프롱의
이름은 한국전쟁 중 전사한 육군 병장 찰스
R. 롱(Sergeant Charles R. Long)에서
유래하였는데, 찰스 R. 롱은 1951년 한국전쟁
중 원주 부근에서 세운 공로로 명예 훈장을
받은 제2보병사단 38보병연대 M중대
소속 박격포 소대의 전방 관측병으로, 타
미군기지와 달리 사병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제1야전군사령부와 캠프롱은 모두 원주의
북쪽 경계인 태장동 일대에 위치하였는데, 군부대 주변으로는 군인관사뿐 아니라 각종 음식점, 유흥시설들이 들어서며 1990년대
이전까지 중앙동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동네였다. 제1야전군사령부는 2018년 12월 31일 해체되며 용인에 있는 지상군사령부로 통합되었고, 캠프롱은 2010년 6월 4일자로 폐쇄되었다.
원주에는 태장동의 제1야전군사령부와
캠프롱 외에도 우산동의 제1군수 지원사령부, 단구동의 38사단, 원주 군 헬기장, 예비군 사격장을 비롯한 다양한 군사시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군사시설의 주변으로는 시장과 유흥시설, 군인가족들의 주거지 등이 들어서며 군사도시로서의 원주의 성격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일산동에는 군인들과
면회객들의 왕래가 잦았던 원주역과 그 주변의 군인아파트, 그리고 군인극장, 군인백화점
등이 위치하였다. 한편 원주의 가장 중심지인
중앙동에는 한국전쟁 이후 복구한 중앙시장에
군인들의 야전잠바와 워커 등을 판매하는 양키시장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원주에는
1960년대까지 모두 5개의 단관극장이
들어섰다. 1956년 군인극장과 원주극장, 1962년 시공관, 1963년 아카데미극장, 1967년
문화극장이 차례로 개관하며 C로드(평원로)라
불리던 중앙동 일대에서 호황을 누렸는데, 도시 규모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수의 극장이 등장하였던 것은 각종 기반시설과 문화시설이 부족한 원주에서 군인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문화 향유에 대한 수요에 따른 것이었다. 1회 뿐이긴 하였지만 상무정신을 바탕으로 민관군의 결속을 돈독히 하자는 취지에서 1971년 군도제가 열리기도 하는 등 1950년대 이후 원주는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이 매우 강한 도시였다.
2. 전쟁으로 폐허가 된 원주 중앙시장(출처: 태장2동 캠프롱 기록화사업)
3. 군인극장, 군인백화점이 나란히 서 있는 1975년 원일로(A도로) 모습 (출처: 태장2동 기록화 사업)
4. 1967년의 원주 캠프롱 모습 (출처: 공유마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152868&menuNo=2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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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롱’과 ‘아카데미극장’의 미래
군사도시 원주에 만들어진 미군기지인
캠프롱은 1998년 당시 약 500명의 현역
군인과 550여명의 민간인 군무원이 주둔하는
기지였다. 캠프롱은 여타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자체적인 시스템을 가진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군인막사와 가족관사
등을 비롯하여 군인 및 군인가족들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분포하였다.
우체국, 은행, 쇼핑몰, 이발소, 세탁소 등의 상업시설과 체육관, 볼링장, 테니스장, 소프트볼구장, 풋볼구장, 수영장 등을 포함한
각종 체육시설들, 장교클럽, 하사관클럽, 사병클럽, 도서관 등의 커뮤니티시설, 치과, 약국, 양호실 등의 의료시설 등 기지 내 약 126동의 건물은(2006년 기준) 2019년 반환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1950년대 건립된 퀀셋 막사 구조의 교회와 극장, 체육관 등은 기지 건설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설들이었다.
그러나 캠프롱도 여타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환경오염정화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었다. 원주에서는 미군부대 인근 지하수의 오염과 군용기 소음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문제가 1996년 12월부터 제기되었고, 2001년에는 유류공급관 파괴로 인한 기름유출사고가 있기도 하였다. 기름유출사고에 대해서는 주한미군에게 사과와 일부 피해보상을
46 5. 1969년과 2008년 항공사진에서 본 원주 중심시가지와 군기지의 모습 6. 원주시 태장동 캠프롱 현황(출처: 원주시청)
6 5
받아내기도 하였으나, 여타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반환 후 기지 내 토양오염 등 환경오염 정화는 고스란히 우리 정부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2010년 폐쇄된 캠프롱은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버려져 있다가 2019년 12월에서야 원주시로 반환이 결정되었다. 이후 원주시는 국립원주과학관 유치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기지 내 시설물들에 대한 조사와
가치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였다. 뒤늦게 기록화사업과 가치평가 등을 시도하였고, 이에 따라 마스터플랜의 수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퀀셋 구조의 교회와 체육관 등은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캠프롱은 2020년 6월
19일에서 25일까지 약 일주일간 ‘캠프 2020’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기지를
개방하고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후 2021년
본격적으로 환경정화 작업을 시작하였고, 1차 환경정화 작업이 마무리된 구간에는
국립원주과학관을 비롯하여 시립미술관
등을 건립하고 2024년 문화체육공원으로
조기 개방할 예정이다. 국립원주과학관의
유치는 군사도시에서 첨단 의료 바이오산업의
유치로 도시의 정체성이 변화해 가고 있는
원주시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기존 시설에 대한 기초조사와 캠프롱 기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선행되지 않은 채 먼저 마스터플랜이 결정된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보니 게스트하우스, 교회 등을 비롯한 몇몇 중요 건물들은 일부 보존되긴 하였으며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립이 결정되지 않은 지역의 경우
남아 있는 건물들을 존치하기로 하였으나, 전체적인 미군기지의 공간적 구조나 그
성격이 고려되지 않은 채 임기응변적으로
남아 그 활용방안 역시 고려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군기지가 대부분 그러하듯
오랜 시간 폐쇄적인 구조로 외부에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다가 폐쇄와 반환 이후
빠른 시간 내에 정화와 새로운 시설의 건립이
추진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옛 국군병원부지에는 체육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며, 1군수지원사령부 이전 후
철거사업도 진행 중이다. 제1야전군사령부의
해체 이후 그 부지에 화력여단이 이전하자 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하기도 하였다.
제1야전군사령부 내의 제1야전군사령부청사
건물은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으나, 여전히 부지 환원 및 활용 방향
캠프롱 문화체육공원 종합계획도 (초창기계획, 출처: 원주시청)
수정된 캠프롱 문화체육공원 종합계획도 (출처: 원주시청)
47
7.
8.
8 7
남아 있던
군사도시의 중요 흔적이라 할 수 있는 단관극장들 역시 멀티플렉스의 개관과 함께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2005년 원주에 처음으로 멀티플렉스가 문을 연 이후, 원주극장과 시공관이 철거되었고, 2015년에는 문화극장마저 철거되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아카데미극장의 경우 2006년 문을
닫았으나 2016년부터 이곳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보존하고자 한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이곳을 철거하고자 한 소유주의 의지와
달리 보존 및 활용 방향을 모색해나가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아카데미극장 보존 추진위원회가 설립되어 ‘100인
100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카데미의
보존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연구용역 및 국비 지원 사업 등에 공모하며 다양한 차원에서 다각도로 보존운동을 전개하였다.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에 난색을
보이던 원주시는 결국 2022년 1월 결국 아카데미극장 및 부지를 매입하였고,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국비를 확보하였으나 2023년 4월
11일 돌연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부지에 야외공연장과 22면의 주차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아카데미극장은 원주 최초의 단관극장도 아니고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도 아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도 아니고 건축양식이나 디자인 역시
1960년대의 유행했던 형식이지 크게 특별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내부
공간을 뜯어보자면 흥미로운 구석이 참 많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매표소, 예전에
쓰던 의자를 놓아둔 1층 로비 공간,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 외 다양한
48 9. 원주 캠프롱 퀀셋 막사군 ⓒ이연경 10. 원주 캠프롱 관제탑 ⓒ이연경 11. 원주 캠프롱 막사 건설을 담당했던 미극동공병단(FED) 상징 블록 ⓒ이연경 12. 원주 캠프롱 극장 내부 ⓒ이연경 13. 원주 캠프롱 체육관 내부 ⓒ이연경 14. 원주 아카데미극장 내부 ⓒ이연경 15. 매표소 ⓒ이연경 16. 로비 ⓒ이연경 17. 1층 대기소 ⓒ이연경 18. 1층 내부공간 결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군기지의 배후지에
부조와
남아
생겼다는,
공연 관람을 온 12 11 13 10 9 18 15 16 17 14
인간군상이 새겨진
그 앞의 수공간,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있는 극장주의 살림공간, 일제강점기부터
극장에 영화나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경찰이 머무르던
검안석 등 그야말로 지금은 볼 수 없는, 1960~70년대 만들어진 단관극장의 모습이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곳과 주변 극장에서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은 다양한 극장의 흔적들이 극장
곳곳에 남아 이곳을 찾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무엇보다 아카데미극장이 중요한
것은 문화극장의 철거 이후 원주의 극장문화가
다 사라져버릴 것을 우려한 시민들이 스스로
이곳을 보존하고 활용할 방법을 찾아 이곳에
대한 기억을 모으고, 모은 기억들을 바탕으로
다시 새롭게 이곳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시민 주도의 ‘유산화과정 (Heritagization)’을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시민과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지자체 주도로 새로운 시설의 건립이
진행 중인 캠프롱이나 여타 군기지와의
상황과는 대조적인 경우인데, 안타깝게도
아카데미극장의 보존 결정이 지차제장의
변경 이후 번복되어버렸다. 캠프롱 내 극장도 환경오염정화의 과정에서 사라진 현재, 원주에 남은 유일한 1950~60년대 지어진 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은 정말 철거되고 말 것인가. 원주시민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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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원주시, 태장2동 캠프롱 기록화사업(사진아카이브), 2021
2. 차지은, 원주와 함께, 신호등, 2021년 7월호
3. 한겨레, 2020년 6월 12일 기사, 《69년 만에 원주 옛 미군기지 캠프롱 시민에 공개》
4. 국민일보, 2021년 5월 7일 기사, 《원주 도심 군부지 속속 시민 품으로》
5. https://www.원주롭다.kr/content/partner.php?q_id=wonjumc1
49 19. 원주 아카데미극장 전경 20. 1층 대기소 부조와 수공간 ⓒ이연경 21. 극장 내부 검안석 ⓒ이연경 22. 내부 계단 ⓒ이연경 23. 생활공간ⓒ이연경 24. 극장 소품들 ⓒ이연경
19 2021 22
심원문화사업회
2022~2023년도 지원 사업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당선작]
원림으로 다스리다(부제: 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
[수상자]
임한솔(35,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
[경과보고]
지난
1월 2편의 추천작 발표 후 4월 13일(목) 저녁 7시, 당선작 선정을 위한 2차 본선 심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심사가
이뤄진 장소는 서울 새문안로에 위치한 스페인 레스토랑
엘꾸비또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3개월여의 기간에 걸쳐 앞서 추천된 2편(최남섭 作, 〈쿠르드인의 검은 천막과 돌 건축〉과 임한솔 作, 〈원림으로 다스리다〉)에 대하여 깊이 있는 독회를 수행하였습니다.
심사는 김영철 교수(배재대학교), 서정일 박사(한샘드뷰연구재단), 한동수 교수(한양대학교), 김현섭 교수(고려대학교) 4인의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심사 자리에는
사업회에서 이태규 이사장과 신정환 사무장이, 주관사에서
전진삼 발행인이 동석했습니다.
심사과정은 각 심사위원들이 사전에 작성하여 보내온 심사평을 돌려 읽는 것을 필두로 심원건축학술상 본령의 의미를 재확인하며, 기 추천작이 그에 해당하는 가를 검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금회에는 특히 1편의 당선작 선정을 함에 있어서 최남섭의 응모작이 배제되게 됨을 심사위원 모두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그만큼 2차 본선 심사는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임한솔의 응모작을 금회의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심사위원 전원 일치된 의견을 모았습니다.
심사장의 분위기는 네 분 심사위원의 심사평의 행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5월
심원문화사업회/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수상소감 소식을 들은 날 저녁, 가까운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을 사주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공부한다고 같이 못 놀았던 날들 있지. 꾹 참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재윤이 덕분에 아빠 열심히 공부해서 상 받았어. 같이 기억하고 싶어서 선물하는 거야. 아빠 공부하면 떨어져 있어서 슬플 때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일도 많아.”
밤이 으슥해지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박사학위논문을 끝낸 뒤에는 해방감과 자괴감에 번갈아 휩싸이곤 했는데 수상 소식을 듣고는 왠지 모르게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수선한 바둑판 위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고, 새로운 판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것도 같았습니다.
돌들이 놓인 순서를 되짚듯 일어난 일들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봤습니다. 우연히 집어든 잡지에서 한옥에 대한 글을 읽고, 건축을 공부하신 조경가의 사진집을 보았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조경에서
건축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 뒤로 연구자의 길을 의심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과분할 만큼 좋은 선생님들께 연달아 배웠던 행운 때문일 것입니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건축역사연구실에서 긴
시간과 먼 지평이 있음을 알게 됐고 재단법인 역사건축기술연구소에서 땅과 집으로 삶을 고민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에서는 자율과 규율, 이론과 실천, 상상과 논증 사이를 오가며 생각을 내딛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함께하는 고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신 은사님과 선후배, 동료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축역사, 그중에서도 원림을 주제로 공부를 시작하며 막연히 가졌던 환상이 있습니다. 비움으로써 아득함을 그려내는 산수화처럼 서구와 다른 고유의 미적 원리에 닿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나가며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 원림의 모습은 너무나도 단순하거나, 때로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했습니다. 유적은
1
1. 수상자 임한솔
말이 없었고 문헌은 알듯말듯한 이야기만
들려줬습니다. 그러다 현재의 광화문광장, 당시의 육조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중앙관아에
똑같은 모양의 후원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로는 궁궐, 아래로는 지방관아로
넓혀 보며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관영 원림들이 조선이라는 국가 특유의
조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호사가의 막연한 환상과 연구자의 막연한
근심이 뒤얽힌 가운데, 안개는 날로
짙어지지만 멈춰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큰 장난감을 골라보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처음 눈여겨봤던
작은 장난감을 골랐습니다. 무척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기뻐하다 이내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빠로서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아이처럼 더 큰 욕심 내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상소감에 어울리지도 않는 포부를 담다가 몽땅 지우며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마땅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해보자고 말입니다.
부족한 제게 수상의 영광을 주신 심원문화사업회와 와이드AR,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업회와 학술상의
뜻깊은 취지를 마음에 간직하고 그에 값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저의 자연이자
기초인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기다린다는 것,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형, 우리 재윤이,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에게 늘 고맙습니다.
심사평
심사위원 한동수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임한솔(1988년생)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석사,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역사건축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한양대, 성균관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 국내연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건축과 조경이 나뉘지 않았던 시절, 한국 공간 문화의 역사와 미학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얻어낸 앎을 바탕으로 지금의 공간 문화를 이롭게 하고자 한다.
평가와 심사의 한계 매회 심사를 시작할 때마다 응모작 수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이번에는 모두 5편이 제출되었다. 양적인 증가와 더불어 심사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흥미롭고 가치 있는 주제들이었다. 하지만 5편 모두가 박사학위논문이라는 점은 예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아쉬움이 있다. 그 아쉬움은 심원건축학술상이 자칫 심원건축논문상으로 인식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과거에 학위논문이 아닌 응모작이 간혹 있기는 하였지만 한 번도 선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물론 학술상이라는 범주에 학위논문이 포함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신진연구자를 발굴하여 그 저술활동을 지원한다는 심원건축학술상의 취지에 비추어 본다면 일정한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위논문 자체를 곧바로 응모하는 성급함보다는 스스로 다시 한 번 성찰의 기회를 가져 본 다음 응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것은 학위논문이라는 절제된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펼치며 자신의 주장에 어느 정도 역사적 상상력까지도 가미된 학문성과를 홀연히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5편의 응모작 가운데 추천작은 임한솔의 〈원림으로 다스리다 : 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과 최남섭의 〈쿠르드인의 검은 천막과 돌 건축〉이었다. 이 두 편의 추천작은 박사학위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아주 높아 연구자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다만 주제의 선정과 접근 방식, 조사방법론은 물론 글쓰기 형식, 논지의 전개 등 모두 각자의 장점이 돋보이며 주장이 뚜렷해서 서로 비교를 해서 한 편만 학술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것은 심사자의 월권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합리적인 판단의 기준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했으나 쉽지 않았다. 평가는 가치를 확인하고
공감을 하면 되는 것이지만 심사는 확인과 공감을 넘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사자는 임한솔의 응모작을 이번 학술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장점에 주목을 했기 때문이다. 일단 근자에 심사자가 접한 학위논문 가운데 학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고 우리 학계에 만연된 고정관념을 이론적 근거와 실례 등을 통하여 실증적으로 분석해 냈으며, 주제 역시 대중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싯구를 읽고 그림을 펼쳐가며 감상하듯이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문장은 역사적인 사실의 고증과 그 속에 내재된 미학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논지를 펼치고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다보면
자칫 경직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인데 이 응모작에서는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그만큼
논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글을 다듬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여겨진다.
이와 상대하는 최남섭의 응모작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새로운 주제라서 논지 전달의 어려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 방법론의 특성을 글쓰기에 충분히 반영함으로서 그것이 기우였음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난해한 사료의 친절한 번역, 수없이 반복되는 익숙지 않은 기술적인 용어와 지명 등 독해를 위한 장애물들은 생동감 있는 실측 도면과 현장 사진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제거되고 있으며 단순한 글의 보조 기능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다만 주제를 풀어가고 논지를 펼치는 과정에서 다소 차이를 둘 수 있겠다 싶었다. 임한솔의
51
응모작이 다루고 있는 감영 원림이라는 주제는 일찍이 원림에 대해
주목했던 많은 연구자들이 간과했던 영역이고 해석에 있어서도
선입견에 의한 오류가 적지 않았다. 임한솔의 응모작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논리 전개의 기반이 되는 개념을 명확하게 재정립했으며
관건이 되는 주요한 용어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표방하고
시작을 하고 있다. 나아가 감영 원림을 해석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도성에 주목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감영 원림에 이르는 상호 관계성을
밝혔으며 이후 정착과 변화의 추이를 검토하며 끝으로 특징과 의의를
제시함으로서 마무리를 한다. 이 과정에서 확인되는 장절의 긴밀한
연결 관계, 제시하고 있는 방대한 사료의 수집, 꼼꼼한 분석, 명확한
해석은 임한솔의 응모작이 가진 또 하나의 큰 장점이다. 특히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신유학의 원림관이나 전개 양상에 대한 시기적, 지역적
접근 방식은 향후 보완과 확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견강부회의 논리적
비약이 크지 않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이에 반해서 최남섭의 응모작 저변에는 쿠르드인에 대한 일종의
연민의식이 깔려 있다. 부족한 기록을 채워주고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하는 사명감이 최남섭에게서 읽혀진다. 그것은 현지 쿠르드인과
함께 생활에서 더욱 피부로 느꼈을 것이고 학술연구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로 작동을 한다. 이러한 부분은 결국 논지의 전개에서 제5장의
문제제기로 귀착되고 있어 보인다. 이 응모작을 읽으며 내내 제4장의
일부와 제5장에서 강조되는 근대국가라는 개념이 학위논문으로서
자신의 논점을 펼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고 그것이 최남섭의 연구가 기존의 다른 연구를 뛰어넘는
차별화된 학술적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추가로 제출된 출판기획에서는
오히려 응모작의 제목인 『쿠르드인의 검은 천막과 돌 건축』에서 표방한
“검은 천막과 돌 건축”의 변화 과정 기록에 충실하고 속편의 저술로서
“국가 개념과 쿠르드인 건축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구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최남섭의 연구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학술서가 될 수 있으며 꼼꼼하게 작성된 조사 자료 역시 또 다른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심사란 결국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갈등과 고민 속에 최남섭의
응모작에 한 표를 던지지 못했다. 심사자의 응모작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아마 반대로 선택을 하였더라도 심사자의
불편한 마음은 동일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응모자 모두가
보여준 학문을 대하는 진지함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연구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심사평 심사위원 서정일 (재)한샘드뷰연구재단 자문위원
원림으로 다스리다 : 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
응모자는 조선의 원림 건축, 즉 조경 건축이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다른지가 아직 잘 설명되지 않았음을 반성하고, 감영 원림이라는 미개척된 분야의 연구를 보완함으로써 더 나은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개별 원림 사례들의 조성 의도를 파악하는 작업이 저작의 주된
내용을 이루며, 이를 위해 기문을 비롯한 문헌자료와 사진, 도면 등의 시각자료를 충실히 분석하고, 솜씨 있게 엮어내면서 전반적으로 조경학 분야의 기존 연구성과를 보완하고, 건축학적인 접근을 잘 결합해 냈습니다.
응모자는 조선의 도성 원림이 감영 원림의 원형이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 조성 의도가 조선의 신유학적 원림 미학으로 정리될 수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즉, 신유학적 자연관에 기반한 문이재도, 격물치지, 수기치인의 이른바 신유학적 원림론을 사상과 실천의 핵심으로 제시합니다. 응모자가 의도했듯이 이 사상과 사례 간의 간격을 잘 메우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일 것이며, 이 점에서 설득력 있는 설명과 논거가 앞으로도 더 많이 확보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건축의 역사에서 〈의도(프로그램)〉, 〈실행(재료, 수단, 경제 등)〉, 〈만들어진 것의 경험과 해석〉이 항상 조화되지는 않고 때로는 상당한 불일치를 가진다는 것이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림 건축의 이념의 전통에 미적 실체를 대응시키는 것, 특히 그 실체가 상당 부분 소멸해 버린 것을 추정해서 연구할 때는 참으로 정교한 작업과 상상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저작의 훌륭한 성과는 개별 감영 원림 사례들의 조성 의도를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통합된 서사를 낳는 데서 수준 높은 완성도와 세련됨을 보여준 데 있습니다. 다만 실제 설계, 건설, 운영 측면을 다루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진척되어 향후의 과제로 남아 있고, 이 측면이 보강될 때 우리가 전체적인 원림의 실체를 이해하고 창작을 위한 교훈을 더욱 의미 있게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기대합니다. 출판되는 책에서 1장과 5장의 이론적 전개가 수미상응하여 서술된다면 한층 나아질 것 같습니다. 또한, 응모자가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유형의 원림의 특성을 재검토하는 연구가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쿠르드인의 검은 천막과 돌 건축
문화권 단위의 건축 연구를 새로운 수준으로 개척해낸 대단히 드물고
주목할 만한 학문적 공헌입니다. 잊히고 사라져가는 인류 공동의
유산을 이해하고 그 내일을 모색하는 각종의 시도들에 큰 영감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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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고 향후 관련된 연구들에도 뜻깊은 선구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접근하기만도 어려운 연구 대상을 현지 조사만 6년에 걸친 긴 호흡의 연구를 수행해 내는 데는 학문적 호기심 이상으로 높은 수준의 애정, 도전정신, 신념, 인내심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생생히 살아
있는 실물을 중시하고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문화적 수용력도 빛납니다.
연구에 필요한 기반 역량을 쌓는 등의 저자의 비상한 노력이 감동을 줍니다. 연구의 성과, 특히 현장 조사를 통해 새로 생성한 자료들은 건축학 분야를 넘어 다른 학문에서도 많이 알려져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한국에서 연구가 부진한 이슬람 문명권의 도시건축 분야 연구에도 성채와 모스크 건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바지한 바가 적지 않습니다.
아울러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펼쳐진 한 문화권 전체의 건축역사를 서술하려면 일반적인 접근과 다른 차원의 연구 틀과 서사 방식이 요청되는 법인데, 예를 들어 역사이론가 젬퍼가 건축의 기술적(또한 관념적) 기본요소들을 설정하고 그것들의 상호결합으로써 양식이 형성되며 우열이 가려진다는 비교문명연구의 관점을 어렵게 세워야 했음을 떠올려 볼 만합니다. 저자의 접근방식은 이와 무관하지는 않되 독자적으로 보입니다. 이는 한 세기 전 딕슨 등의 기존 연구가 오리엔탈리스트적인 관점에서 한 문화의 다양성과 상호관계를 무시한
것을 극복하는 데 응모자가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응모자는 쿠르드인의 삶과 문화에 대응되는 건축의 목적, 형태, 재료, 건설을 포괄적으로 설명했고, 세계문화유산 제도 등 현실에 대한 반성도 진지하게 담아내었습니다.
유목-반유목-정착이라는 인류의 중요한 삶의 패턴에 대응하는 건축유형은 몽골과 투르크 등 다른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진지한 학문과 실천을 위한 도전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응모자는 쿠르드 건축의 찾아보기 힘든 전문가로서 연구성과를 심화해 나아가겠지만, 그 토대 위에 관련된 타 문화권 건축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잠재적 역량도 충분해 보여 향후의
연구 활동이 무척 기대됩니다. 학술 연구의 지평을 과감히 넓히고 깊이 있게 천착한 성과를 도출해 지금까지의 여느 수상작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을 제출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심사위원 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번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으로 임한솔의 〈원림으로 다스리다 : 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이 선정됐다. 이 응모작은
조선시대 관영 원림 중 하나인 감영 원림을 주제로 그 역사적, 사상적 배경으로부터 사례와 의미 해석에 이르기까지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건축사와 조경사를 가로지르는 연구로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저자는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 조선시대 감영 원림 연구의 공백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그리고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연구를 시도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사료-자료를
유형별로 나눠 체계적으로 고찰한 점이 두드러진다. 책의 구성에 있어서는 신유학의 사상적 배경, 전거로서의 중국 원림 및 조선 초 도성 원림, 조선시대 지방 감영의 형성과 발전 양상, 감영 원림의 특성과 의의를 차례로 다룸으로써 내용의 흐름에 논리성과 자연스러움을 기하고 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강조했듯 이 책은 감영 원림의 “현상 파악을 1차 목표”로 하되 “현상의 해석”을 적극 시도한 점이 긍정적으로
보이는데, 1장 “신유학과 조선의 원림”은 해석의 틀로, 5장 “감영 원림의 특성과 의의”는 그 해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해석의 틀 및 결과가 그 사이 본문(2장~4장)과 더 긴밀히 관계 맺었다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예컨대, 5장은 본문의 사례를 더 적극 언급하거나 추가적 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몇몇 발견되며, 1장과의 수미상관성을 더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누정, 성루, 장대 등은 각각이 원림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지만 원림 자체는 아니라 하겠는데, 이들을 원림과 등치시켜 서술한 표현이 종종 나타나는 점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할 듯하다.
최남섭의 응모작 〈쿠르드인의 검은 천막과 돌 건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주제로 “건축사 연구의 빈틈”을 채우는 흥미롭고
가치 있는 연구라 하겠다. 비록 아쉽게 낙선했지만 이 연구는 건축학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민속학적 측면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판단된다. 저자는 그동안 타자의 시선으로 단순화시켜 봤던 쿠르드 건축을 가급적 내부자적 시선으로 보고자 했는데, 특히 현지에서 장기간 생활하며 몸소 현장연구를 진행한 것은 이 연구만의 미덕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검은 천막과 돌 건축을 쿠르드 건축의 기본 유형으로 설정하고 그 역사적 변천을 세 단계로 나눠 원점-확장-축소라는 통시적 패턴으로 규정한다. 이 같은 패턴은 다소 단순화된 면도 없지 않은 듯한데 (일례로 팔라간의 네 가지 주택 유형은 “원점”의 “축소”이기도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대적 조류에 맞춘 “확장”으로 볼 수는 없는지?) 우리에게 낯선 쿠르드 건축사를 조망하는 데에는 유용한 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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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건축과 기념비건축을
작동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발하는
문제점을 들춰낸 점도 이 연구의 추가적 의미로 보인다.
반면, 이 연구는 쿠르드인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관점에서 ‘왜 쿠르드인인가’에 대한 입장이 부각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서론에 내비친 “세계 최대의 비국가적 집단”이라는
것이 주요 이유로 추측되지만, 유사한 비국가 집단이 많다고 하니
그들과 다른 쿠르드인만의 독특성(혹은 공유된 보편성)을 간략히
언급함으로써 이 연구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다면 훨씬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언어” 문제 등에 견준 “민족” 또는 “민족 공동체”라는
용어 및 개념의 타당성도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편, 쿠르드 건축의
원점으로서의 천막(지붕)과 그 재료(직물) 및 돌집의 벽체에 대한 강조는 건축의 원초적 모티브에 대한 19세기 젬퍼의 인식을 떠올리는데, 쿠르드의 사례에서 불자리(hearth)에 크게 주목하지 않은 점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추후 더 연구할 만한 흥미로운 영역으로 보인다.
모두 다섯 편이 응모한 금번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은 전회 차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고 하겠으며, 따라서 매우 고무적이다. 본선에 오른 두 응모작은 모두 나름의 가치가 뚜렷해 어떤
것이든 수상작으로 선정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된다. 심사자의 눈에 두
응모작은 우열이 있다기보다 우리 건축사 연구의 서로 다른 양상을 펼쳐
보여주는 것 같다. 〈원림으로 다스리다〉가 그동안 건축사와 조경사에서
다방면으로 진행돼 온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 관영 원림의 관점을
확장시켰다면, 〈쿠르드인의 검은 천막과 돌 건축〉은 그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해외 주제에 대한 생생한 현장연구를 드러내며 한국건축사학계의
지평을 넓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내용과 형식 전반에 걸쳐 좀 더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고 판단된 연구를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됐다. 두
연구자 모두에게 기꺼운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드린다.
심사평 심사위원 김영철
배재대학교 주시경대학 교수
원림으로 다스리다 : 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
주제 설정과 그 가치 응모작은 조선 시대 원림의 의미와 경영(감영), 그리고 그 구조와 이를 위한 신유학의 사상적 배경도 역사적 변천과 함께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기존의 연구에서 사용되던 정원이나 경원 개념의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원림 개념을 설정한 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들은 응모작이 속한 학문 분야 성격을 명료하게 하며, 다른 분야, 특히 건축과 도시의 영역과 소통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연구에서는 개념의 혼재와 혼동으로 인한 불합리가 보이지 않는다. 응모작이 다룬 주제의 범위와 성격 설정도 돋보였다. 국가(조선) 차원의 영역, 시대상 전체의 접근은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할 사항일 텐데, 연구자는 이를 위해 요구되는 역량들을 잘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응모작은 물리적이고 중성적인 물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사용의 기능과 사상적 배경의 의미 층위도 탁월하게 보여주어 역사 연구의 모범적 성격을 갖는다.
해석의 틀 저자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시대 전반에 걸쳐 원림과 그 경영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감영과 원림을 외적으로는 도시 구조와 내적으로는 정치 구조, 그리고 주체와 수용자를 서로 연관시켜 그 형성과 그 기능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통치의 문제와 도시 건설, 지역의 정체성도 충실한 사료와 함께 탁월하게 해명하였다. 관영 원림의 의미와 그 전개 과정을 추적해서 인간 세상과 격리된 자연 구현(은일, 격리형 자연)으로 이해되던 원림을 오히려 현실 세계 정치의 무대(출사, 기능의 장소)와 대비시키고, 이들의 모순을 조절하여 평형 관계를 유지하는 공간적, 시간적 해법이라고 제시한 해석의 틀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환경과 자연의 본질적 이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료의 성격과 해석 연구자는 감영 관련 문화재, 그리고 실록과 지리지, 문집, 회화와 지도, 일기, 사진과 도면, 발굴 조사 보고서 등의 자료를 동원하였고, 무엇보다 사료를 잘 선별하고 있었다. 한자 문헌의
독해도 뛰어나며, 이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롭게 파악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개념어들은 적절하고 특히 위계에 부합하고 있다. 과거 담론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현시대의 상을 의식하고 개념어들을 경우에 따라 타당하게 번역해서 논지에 맞게 구성하는 장점도 있었다.
연구의 대상에서 실제 자연의 식생과 관련된 자료는 적게 선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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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관목, 화초류 등의 예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성격과 가치, 효과에 대한 서술이 자세하지는 않다. 연구의 출발과 주제 접근 방식이
구조적이고 다소 건축적 성격이 두드러진 이유 때문이라고 판단하지만, 자연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그 특징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전체가
균형을 이룬다면 원림 주제의 해명은 더욱 설득력이 있게 될 것이다.
논제의 구조 응모작은 주제어 설정, 다룬 연구 범위, 그리고 논제의 해명에 필요한 사료를 충실하고 엄밀하게 사용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사료의 구성은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잘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논술 형식에서 각 주제와 내용도 일치하고 있고, 관찰의 시점도 명료하며, 시점을 운영할 때 자유로운 시선도 구사하고 있었다. 독특한 시점의 설정에서 온 장점도 보인다. 일례로 창덕궁 광연루, 돈의문 모하루, 경복궁 경회루 등 이들을 누각 원림이라고 했고 태종의 공간 실천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같은 개념은 구조와 기능을 동시에
보도록 한다.
그리고 이 응모작은 다른 응모작에 비해 특징이 있었다.
전체의 주제와 이를 이루는 여러 영역의 관계가 하나의 전통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시작은 1) 요소의 선별과 그 특징들의 묘사, 그리고
이어서 2) 구성, 곧 구조적 특성의 영역을 다룬다. 그리고 다음으로 3) 기능, 곧 목적의 양상들을 기술하고 마지막으로 4) 전체를 주도하는
주체의 이름과 성격을 다룬다. 이들 영역은 오랫동안 학문의 원리
역할을 해 왔고, 각각은 전체를 책임지는 원인으로 여겨져 왔는데, 응모작의 논리 전개가 이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구도의 논리 전개 방식은 오랜 전통의 것이며, 여러 학문의 성과가 서로 소통하기 위한 중요한 방식이다.
건축 개념을 위한 기여 감영 원림 연구는 역사적 사실과 자연스럽고, 진지한 대화, 무엇보다 비유해 표현하자면, ‘경청의 자세’가 돋보였다. 그리고 그 성과는 조선 시대의 원림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를 현재의 환경과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이해도도 더 높이고, 건축을 위한 도시 환경의 의미 규정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응모자가 연구 과정에서 처음부터 신유학의 역할을 묻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주도하는 주체, 창작의 주체에 대해서 대개 무관심하고 오늘날 현실에서는 특히 이를 부정하거나 존재 가능성 자체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림으로 다스리다 : 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요약문
글, 자료. 임한솔
조선 원림의 특수성
조선의 원림은 문화적 전통을 공유했던 동아시아 타국의 원림과 상당히 다르다. 중국의 명 청대 원림은 화려한 구성과 과감하고 직접적인
자연 모방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 시대에 이르는 일본의 원림도 중국 못지않게 다채로운 지형과 경물 배치, 가레산스이라는 추상화된 양식으로 유명하다. 그에 반해 조선의 원림은
단순하고 자연을 조작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식민지 시기의 미학자 고유섭은 조선 원림의 이러한 면모에 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조선인은) 동양인의 공통성에 벗지 아니하여 자연을 사랑할 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중화인과 같이 자연을 요리하지 않는다. 일본인
모양으로 자연을 다듬지 않는다.”
조선의 원림은 한반도에 있었던 이전 왕조의 원림과도 다르다. 신라
동궁의 월지는 조선보다 중국, 일본 원림과 견주어 볼 만하며 백제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는 구불구불한 수로가 대규모로 발굴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조선 원림의 특징을 국토의 자연환경이나 고대 이래의 민족성에서 끌어오려는 논리적 시도를 어렵게 한다. 방지(方池)와 화계(花階)로 대변되는 단순한 지형 조작과 누정 중심의 외향적이고 해석적인 조경 문화는 역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특히 조선에서 지배적으로 발달한 형식이다. 결국 이러한 특징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고유한 정신문화적 특성에 주목해야 설득력 있게 해석할 수 있다. 조선의 원림에서 인위 자연을 조성할 때 복잡한 곡선으로 원시 자연을 모방하기보다 직선 위주의 단순명료한 형태를 쓴 까닭은 무엇인가.
바라보이는 대상으로서 자연을 조작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 집중한 까닭은 무엇인가. 자연에 대한 관조와 추상의
공존은 어떻게 설명되며, 조선에서 그러한 양상이 자리 잡은 원인과
과정은 무엇인가. 조선시대 조경 전반을 다룬 기존의 한국조경사
서술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적 면모나 특징 해석보다 유형별 현상에 주목하거나 동아시아 문화권이 공유하는 여러 사상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동아시아 문화권 내에서 조선의 원림을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의 관점에서 읽도록 안내한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조경의 전모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관 주도의 원림, 그중에서도 감영 원림에 주목한다. 감영 원림이 형성된
사상적 배경은 신유학(新儒学)으로, 조선 전기의 도성 원림은 신유학의
이념과 습성을 구체화한 실천적 전사(前史)로 볼 수 있다. 조선의
지방제도 개편으로 인해 그러한 관점과 실천이 지방도시로 전파되었으며
감영 원림은 그 실천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례이다. 본 연구를
통해 관 주도 원림의 형성 과정을 살피고 조선 원림 특유의 미적 성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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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왜 감영 원림인가?
조선의 공간 문화에서 관(官)이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 고려 전기에는 국가
자원이 지방 주요 가문의 세습적 통제 아래
있었고 지방행정 체계가 복잡했던 반면, 조선 전기에는 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커졌으며 보다 중앙집권적인 지방행정
체계를 갖추었다. 이러한 체제 변화는 공간적
변화를 동반했다. 한양 천도 이후 궁궐, 종묘, 사직이 건립됐고, 군현제 통폐합과 함께 모든
지방도시에 수령이 파견되며 객사, 동헌, 향교 등의 관아가 지어졌다. 마을이나 주택, 서원, 사찰 건축이 사회상의 변화에 사후적으로
대응한 결과물이라면 관영 건축은 사회상의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의도적이고 과시적으로
행해진 정책성 건축 기획이었다.
이러한 관 주도의 공간 변화를 이끌어간
주체는 신유학 소양을 갖춘 문인 관료였다.
권력의 세습보다는 과거 제도를 바탕으로
권력장에 진입한 지식인 관료들은 제한된 기간
동안 지방관을 역임하며 지방 행정을 경영하고
인문 환경을 개선해나갔다. 이들은 중앙집권
구현이라는 책무에 충실하였으며, 주어진
여건에 따라 기성의 관영 건축을 실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은 지방도시의 획일화
현상으로 이어졌다. 도시별 상황에 따라
다르게 건립되어 있던 관아들이 하나의 체계
아래 정립되면서 유사한 형식과 배치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관영 원림은 제도를 구현하기 위해 정형화되었던 건축과 달리 제도화되지도 정형화되지도 않았다. 원림은 필수
시설이라기에는 쓰임에 자유로움이 있었고, 입지와 주변 자연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지역마다 다른 모습을 띠었다. 중앙집권의
구현 그 자체이던 관영 건축의 존재와 달리
관영 원림은 지방도시에 따라 모습이 달랐고, 다르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관영 건축이
제도를 직접 반영하는 동안 원림은 실행
주체의 내면과 호응하며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관영 원림은 제도와 개인 사이에서, 정형화된
건축과 다채로운 자연 사이에서 조성되었던
것이다. 지방관들은 신유학 소양에 따른 미적 취향을 만족시키고 관료로서의 소임과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원림의 전범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조선 전기의 도성 원림은
관영 원림의 원형으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감영(監営)은 현재의 도청(道庁)에 해당하는
관청으로 최고위 관료인 종2품 관찰사가
지휘한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총괄 기관이다. 감영 제도는 여말선초에 확립된 이래로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운영되었다. 감영은 조선 전기에 지방도시를 돌아다니는 이동형
관청으로서[巡営], 조선 후기에 중심 도시에 정착하여 운영되는 고정형 관청으로서[留営] 지방의 정치 행정·문화를 주도하였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감영 원림의 조성을 주도한
관찰사는 약 500년간 총 4341명, 도별 평균 542명에 이른다. 왕과 직접 대면할 권한이
있는 최상급 관리가 왕조 내내 대략 1년씩
돌아가며 감영을 지휘했던 것이다.
감영 원림은 관찰사의 주도로 조성되고
관리되었으며 관찰사와 예하 관원, 그들의 손님이 주로 활용하였다. 감영은 고위 관원이
현직으로 근무하며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과 사로
방문하였다. 감영 원림은 관찰사가 일상을
보내는 업무·휴식 공간인 동시에 접객과 연회, 백일장과 시사(試射) 등을 통해 관찰사와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로써 폭넓게 쓰였다. 다시 말하면 감영 원림은 나라에서 손꼽는
권력자-지식인들이 경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인물들이 조선시대 전 지역에서 일상과 비일상을 보내는 네트워킹의 장소로 적극 활용되었던 것이다.
신유학과 조선의 원림 원림이라는 현상을 살펴보는 관점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자연관이다. 동아시아 내에서도 자연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으며, 유사한 자연관이라도 사회적, 환경적 현실에 따라 다른 형식의 원림을 낳았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원림을 바라보는 사상적 배경으로서 개국과 함께 국가 이념으로
자리했던 신유학의 자연관을 살펴보았다. 조선은 신유학의 본고장인 중국보다도 신유학이 이루려던 문명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고 실현한 문명으로 평가된 바 있다. 본 연구는 신유학에서 설정한 자연과 인간의 범주와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그 개념적 특징이 조선식 원림과 연결되는 접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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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 『북궐도형(北闕圖形)』에 표시한 경회루 원림(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2. 경회루 원림의 전경
밝히고자 했다.
신유학은 자연과 인간의 성질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한다. 주자는 신유학의 대표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리(理)’와 ‘기(気)’ 개념을 통해
사물의 보편적 구성 원리를 설명했다. 그러나
주자는 인간과 자연이 ‘리’ 측면에서는 같으나
‘기’ 측면에서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즉 인간과 자연이 똑같이
리를 가지고 있고 기라는 물질-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성의 차이에 따라 특성과
우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질성과
차이의 설명 방식으로 인해 신유학에서
자연은 서양과는 다른 의미로 도구적 지위를
갖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세상의 원리를 파헤칠 수 있고[格物致知], 자연은 어렵고 복잡한
인간사회에 비해 쉽고 명백하게 그 도덕적
원리를 드러낸다[比徳説]. 신유학자에게 자연
현상은 도덕 원리를 간직한 비유로서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림은 신유학적 실천으로서
도덕을 추구하고 본성을 탐구하며 나아가
개인의 깨달음을 세상의 이로움으로
확장하려는 의지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한
까닭에 신유학적 원림관은 바라보이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보다는 바라보는 방식에 주목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거나
도덕적 깨달음을 주는 유비적 자연 현상을
간단명료한 형식으로 구현하고, 나아가
활용과 감상, 교화와 같은 행위를 중시하였다.
『시경』에 등장하는 주 문왕의 원림이나 북송의
문인 범중엄의 누정기처럼 이러한 원림관을
강화하는 전거가 고대 경전과 문장 교본에 실리고 인용되며 널리 쓰였다.
조선 초기 도성의 원림
문헌을 통해 학습 가능한 신유학의 원리는
환경과 주체에 따라 천차만별의 원림으로
발현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도성의 원림이다. 조선의
신유학적 원림관은 개국 초인 태종연간에 도성 원림이 건립되며 구체적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개국 이후의 한양 천도는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규모 건설 공사를 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태종은 태조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흥미롭게도, 태종의 건설공사 중에는
세 곳의 대규모 누각 원림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원림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태종은 중국 사신의 접객을 목적으로 도성에
세 곳의 원림을 조성했다. 1406년 창덕궁 광연루, 1407년 돈의문 밖 모화루, 1412년
경복궁 경회루가 지어졌다. 태종이 당시
궁궐, 문묘, 청계천 등의 공사를 일으켰음을
떠올린다면 대규모 원림 공사에 물리적, 윤리적 리스크가 있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신으로 남경에 다녀온 기억과 즉위 직후 황명을 관청에서 받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은 태종으로 하여금 사신의 접객 공간에 힘쓰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 누각 원림의 특징은 누각과 못이 일대일
대응 관계를 갖추고, 그 형태가 단순하며, 조망의 시야를 갖추었다는 데 있다.[그림1 2]
감상과 이용에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명분은 사신 접객이었지만
이곳은 정전과 다른 왕의 정치 공간이자 휴식
공간이기도 했다. 또한 경회루의 기문으로
볼 때, 그 경관 감상이 감각보다 생각의
힘으로, 특히 비유를 통한 도덕의 추구로
이끌어졌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신유학적
원림관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육조거리 중앙관아의 후원은 세 곳의 누각
원림 못지않게 원림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복궁의 창건과 더불어 모습을
갖춘 관청가인 육조거리는 임란 이후 한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경복궁과 달리 조선시대
내내 형상과 위상을 유지했다. 육조거리에
도열한 국가 최고위 관아에는 당상관이
근무하는 중심건물인 당상대청이 있었고, 바로 뒤에 사각형의 연못이 있었다.[그림3·4]
연못 위주의 후원은 당상대청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도록 배치되었으며 의정부와
삼군부, 호조에는 별도의 누정이 마련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관원들은 업무를 보거나
연회를 열었으며 외부인이 구경을 오기도
했다.
세 곳의 누각 원림과 중앙관아 후원, 즉 조선
초기에 조성된 도성의 원림은 지방에 건립된
감영 원림의 원형과 다름없었다. 도성의
원림은 최장 기간 최대 다수에게 노출되었고
형식과 감상에 있어 전범으로 작용했다. 신유학이 반영된 도성 원림은 관영 원림을 조성할 때 지향이자 제약으로 작용함으로써 문헌 속 전거가 아니라 실재하는 원형으로
3.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에 표시한 육조거리 중앙관아의 ‘池’(국가기록원 소장, 池 부분에 필자가 빗금친 사각형 표시)
4. 『추관지(秋官志)』에 수록된 형조의 ‘본아전도(本衙全圖)’(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5. 밀양 영남루 전경(필자 촬영) 6. 〈환아정〉,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 9면(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57 3 4 6 5
자리매김했다. 신유학의 원림 미학은 도성
원림이라는 실천을 통해 구체화된 이후 제도적
필요성과 환경적 특수성을 마주함으로써 각
지방의 감영 원림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감영 제도와 원림 형성
개국 이후에 도시를 정비하며 원림을 조성한
곳은 한양만이 아니었다. 조선 전기의 전국
지리지에는 지방도시에 누정을 짓거나 고쳤던
기록이 많고 그 전체 수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와 다른 조선의
지방 행정 제도와 밀접하다. 조선은 고려 말
물꼬를 튼 중앙집권화를 위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여 군현의 숫자를 줄이는 대신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했다. 그리고 지방 통치
체계를 균질화하기 위해 도의 총책임자로서
관찰사를 임명했다.
그런데 조선 전기의 관찰사는 극한 직업이었다. 한 도시에 머물지 않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근무했기 때문이다. 관찰사는
최고위 품계에 해당하는 만큼 체력이 약한
노년의 문인이 임명되었는데, 그로 인해 엄청난 권한과 위세에도 불구하고 회피하는 직책이기도 했다. 특히, 더운 여름이면 그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조선 전기 지방도시의
누정 건립은 이러한 관찰사의 업무 방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전라도 관찰사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경상도 도사 황사우의
『재영남일기』에 따르면 관영 누정은 연중 가장 더운 5~7월에 관찰사의 집무·연회 공간으로 매일같이 활용되었다. 전자에는 광한루 등 15개 누정의 이름이, 후자에는 영남루, 환아정
등 26개 누정의 이름이 적혀 있다.[그림5·6]
이에 따라 지방도시에서는 객사를 중심으로
누정과 원림이 부설되었으며, 교통량이 많은 도시의 경우 그러한 양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관찰사는 관영 원림의 주요 이용자이자 최종
결정권자였으며, 관영 원림은 나아가 좋은 정치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여러 지방도시에 활발하게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 제도가 달라진다.
돌아다니던 방식에서 한 도시에 머무는 방식으로 관찰사의 집무 형태가 바뀌었던 것이다. 이는 솔권겸윤(率眷兼尹), 즉 관찰사가 부임지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감영 소재지의
수령을 겸직하도록 하는 것을 동반했다. 물론 그 실행 양상은 도마다 달랐다. 가령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평안도와 함경도의
관찰사는 조선 전기부터 머물러 집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감영 건축은 조선
전기 평안도와 함경도를 모본으로 삼았을
소장) 8. 1906~1907년 헤르만 산더가 촬영한 애련당(국립민속박물관 소장)
9. 식민지 시기의 해주 부용당(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0. 〈전주지도〉 객사 부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11. 〈북관별과도〉(1731년)에 그려진 함흥성 일대의 감영 원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58
9 8 11
7.
〈경기감영도〉의 경기감영 부분. 선화당 뒤편에 연못과 누정을 갖춘 후원이 있다.(리움미술관
7 10
가능성이 높고, 감영 원림 역시 마찬가지다.
감영의 정착에 따라 인구와 물자가 감영 소재지로 집중됨으로써 도시가 번성하고
기반 시설이 정비되었는데, 이와 연계하여
성곽과 접목된 원림과 감영 본청의 후원이 발달하였다.[그림7]
감영 원림의 전개 양상
공원 이전의 조경은 늘 건축과 결합돼 있었다.
감영 원림도 그렇다. 감영 원림은 객사, 성곽, 감영 본청을 바탕삼아 발달하였으며, 각각의
유형에 따라 차별화된 전개 양상을 보인다.
객사 원림은 조선 전기에 전국 각지에서
부흥하여 관영 원림 문화를 이끌었다. 이는
감영 소재지에 국한되지는 않았으나, 감영
소재지의 경우 더욱 뚜렷하였다. 특히 조선
전기에 무려 4개의 객사가 있었던 평양의
경우 화려하고 다양한 접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동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진입가로 옆에 위치한 애련당의 경우
사각형 못 가운데 섬과 누정, 그리고 다리를
갖춘 화려한 원림이었으며, 인근 객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명소가 되었다.[그림8]
평양이나 함흥처럼 유영(留営)화된 도시는
아니었지만 해주 역시 객사에 부용당이라는
걸출한 객사 원림이 있었다.[그림9] 임란
이후 객사의 중요성이 약화되며 객사 원림
역시 쇠퇴하였는데, 여러 채의 누정이 있던 전주객사 후원에는 소실된 누정이
재건되지 않고 야트막한 동산과 나무만이
남겨졌다.[그림10]
군사 시설인 성곽은 높이와 전망을 매개로
하여 원림과 접목되었다. 원림의 성격을 겸비한
장대(将台)가 성곽 위에 건립되었으며 성문의
상층부가 누정으로 인식되고 활용되었다.
산과 강을 겸비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함흥의 성곽에는 누정의 성격을 겸하는 다수의 장대가 지어졌으며,[그림11]
그중에서도 낙민루(楽民楼)는 지역을
대표하는 십경(十景)의 하나로 설정되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백성을 즐겁게
한다’라는 목민관의 뜻을 널리 펼쳤다.[그림12]
지금도 평양을 대표하는 명소인 부벽루와
연광정, 대동문은 당시 조선에서도 손꼽는
전국적 명소였으며 밖으로는 대동강, 안으로는 시가지를 바라보는 조망을 갖췄다.[그림13·14]
성곽과 접목된 감영 원림은 조선 전기부터
확인되며 두 차례의 전란 이후 읍성의 보완과
함께 조선 후기에 더욱 강화되었다.
감영 후원은 조선 후기에 감영이 정착하고
고유의 시설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감영 후원의 전개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역에 따라 발달 수준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평안, 함경, 강원감영의 후원은 넓고 화려한 구성을
갖추었으며 원(園)으로서 확실한 영역을
갖추었다.[그림15·16] 황해, 경기감영의
후원은 소규모로 조성되었다. 충청, 전라, 경상감영에는 원림으로 볼만한 영역이 따로 발달하지 않았다. 그 차이의 이유를 간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감영의 입지, 경관 자원, 관찰사의 영향력, 원림 문화의 내력 등이 도별로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감영 원림의 특성과 의의
중앙과 지방, 왕과 백성을 매개하는 기관의 원림답게 감영 원림은 중앙 권력을 표출하는 동시에 지역성을 반영하였다. 감영 원림은 대중에게 노출된 도시 기반시설의 일부로서
정형화된 경관 속에서 시선을 끌고 경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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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13.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의 연광정연회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4. 식민지 시기 금강에서 공산성을 바라본 모습. 사진 중앙에 공북루, 우측 상단에 쌍수정이 보인다.(수원광교박물관 소장) 12 13 14
12. 대한제국 시기의 낙민루(속초시립박물관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예컨대 평양의 경우
대동문, 연광정, 애련당 등은 객사, 성곽, 감영과 함께 눈에 띄는 랜드마크로서 도시
경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그림17] 최고 권위자의 공간이 드러나 있다는 것은 권력의
비대칭성과 시선의 정치를 내재한 감각의
구도를 발생시킨다. 관찰사는 감영 원림을
통해 중앙으로부터 부여받은 통치권과 선정(善政)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고, 백성들은 감영 원림을 통해 그 정치의 영향력과 실태를 가늠했던 것이다.
감영 원림이 지역성을 반영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감영 원림은 입지의 물리적
상황, 도시의 문화적 전통과 원림 자원, 지방세력의 특성과 연동하여 지역마다
다르게 발달하였다. 경관적 측면에서 감영
원림은 조망으로써 주변 경치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지역성을 반영하였는데, 때로는
가시권을 벗어난 지역 정체성이 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가령 강원도는 금강산을 보유한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름난 곳이다. 그런데 강원감영이 위치한 원주는 경관이 평이하고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조건이 특이점이 되어, 강원감영에는
예외적으로 바깥을 차폐하고 화려한 내부 구성을 갖춘 인위 자연 위주의 후원이 발달하였다.[그림18·19]
감영 원림이라는 유형이 갖는 원림사적 의의는 입지와 외향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감영 원림은 도시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은폐되지 않고 외부에 노출되었다. 대지 경계 바깥에서 바라보이고, 동시에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 감영 원림의 중요한 특징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전통적 원림관이 은일 관념, 즉 세속으로부터의 도피와 밀접하다는 점을 상기할 때 감영 원림은 성시와 산림의 이분법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러한 특징이 감상의 차원에서 발동하게
하는 감영 원림의 핵심적 조경술은 조망이다.
조망은 신유학 원림관과 연동하여 감영
원림 특유의 미적 성취를 발생시켰다.
감영 원림은 울타리 안에 인위 자연을
꾸미기보다 원경의 조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15. <기성전도>의 평안감영과 후원 부분. 시가지와 가까운 평지에 오순 정이 자리하고, 선화당 뒤쪽 경사지에는 다수의 누정을 갖춘 후원이 보 인다.(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a: 오순정, b: 다경루, b: 평원당, c: 만수문, d: 지희정] 16. <함영읍지도>의 함경감영과 후원 부분. 마치 창덕궁처럼 배치의 흐 름과 건축물의 향이 직교하며, 수평으로 늘어선 선화당, 징청헌, 내아 뒤쪽으로 별도의 담장을 갖춘 후원이 보인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a: 겸락정, b: 옥적정, c: 지락정]
17. 대동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평양성 전경(양상현 유영미 편, 『그리 피스 컬렉션의 한국사진』, 눈빛, 2019) [a:대동문, b:대동관(객사), c: 애련당, d:연광정]
18. 1910년대 강원감영과 원주 읍내 전경. 선화당 뒤 나무가 우거진 부분 이 후원이다.(원주역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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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6 17 18 a b c d
공주객사와 평안감영 본청의 원림 재조성이다.
공주객사에서는 못, 섬, 누정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원림을 고지대로 이전·확장하여
산수와 도시를 조망하는 취원루(聚遠楼)
원림을 새로 조성했다.[그림20] 평안감영
후원에서는 못과 석가산이 있던
좌소정(坐嘯亭) 자리에 언덕 지형을
활용한 조망형 누정을 짓고 다경(多景)과
평원(平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그림21]
감영 원림에서 조망하는 광경에는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 광경에서
많고 다양한 사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이 중요했다. 세계가 각기 다른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은 신유학자이자 통치자였던 당시의 문인 관료들의 생각을 자아내는 지점이었다.
이러한 다름의 조망, 집합적 총체의 조망은
역설적으로 보편성에 대한 신유학자들의
열망을 건드렸다. 가령 도시의 민가는 연기나
비늘이라는 묘사를 통해 형상화되고, 산수는
산의 우뚝함이나 강물의 유유함을 통해
도덕적 지향으로 읽혔다.[그림22·23] 말하자면 자연을 통해 인간을 읽고, 인간을 통해 자연을 읽으며 생각을 진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광경은 인상적이었다. 감영
원림을 멀리서 올려다보는 백성들이나 감영
원림에서 자연과 함께 도시를 내려다보는 문인
관료에게 숭고나 아름다움을 동반하는 경관적
체험은 그 존재가 겸비한 가치들을 잊을 수
없게 했을 것이다.
원림으로 다스리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지방의 최고 행정기관인
감영의 원림이 이루어진 배경과 전개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그 역사적 함의와 미적 성취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개국과 통치는
사상과 제도 측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도성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관 주도 원림
실천은 그러한 변화와 밀접하게 이루어졌다.
본 연구는 전국 여덟 개 도의 감영 원림에
주목하여 그 구체적 전개를 살펴보았으며, 이를 통해 관영(官営) 원림이 조선 원림의
특수성을 심화하고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해보았다.
감영 원림의 역사는 시기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한편, 지역의 상황과
연동함으로써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인위 자연보다
원경을 선호하고 도덕적 성취를 강조하는
미적 취향은 시기,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조선시대 내내 신유학의 위상이
굳건하였으며, 국가적 위기를 겪기도 하였으나
사회적 반전이나 문화적 충격 없이 체제
전반이 유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원림 양식의 실험과 유행이 도시·상업과
밀접하다는 점으로 가늠해본다면, 조선의 경우
상업 발달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유력자들이
도성 외에서는 도시보다 향촌 세거지에
거주함으로써 문화적 역량이 분산되어
있었다는 점도 양식의 분기가 뚜렷하지
않았던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된다.
변화가 크지 않았다는 것은 달리 보면
그만큼 충분한 호응을 얻고 있었음을 뜻한다.
기성의 작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충격을 가할
필요가 딱히 없었던 것이다. 신유학자에게
자연은 세상을 이해하고 정신을 일깨우는
대상이었으며, 원림은 자연을 가까이에서
보다 쾌적하게 바라보는 수단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감영 원림은 국가의 소유물이었다.
섣불리 개성을 표출하면 지탄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모두가 인정하고 전승할 만한 뜻을 담아낸다면 오래 새겨질 수 있었다.
시가지 한가운데서 바깥을 바라보고 바깥에서
바라보인다는 특유의 외향성은 다른 유형에서
드러나지 않는 특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영 원림이 조선시대 원림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관찰사는 감영 원림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세상을 다스려 이롭게
한다는 뜻을 가시화하고[治人], 동시에 그 광경과 시선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리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修己].
본 연구에서 제시한 신유학 원림관이나 원림 실천의 제도적, 그리고 시기·지역적 전개
양상은 추후 연구를 통해 보완하고 확장할
여지가 많다. 유사한 시각으로 접근 가능한
감영 외 관영 원림은 전국적으로 많은 사례가
있으며, 본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궁궐, 주택, 서원, 구곡 등 다른 유형의 원림을
다시 조명할 여지도 많다. 반대로 동아시아
속 조선 원림의 특수성을
정면 상단에 취원루로 추정되는 누정이 보인다.(개인소장, 공주학아카이브 제공)
21. 취원루에서 내려다 본 공주 시내 전경(『선남발전사』 수록,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22. 함흥객사 주변의 겨울 전경. 객사 지붕의 우측 상단 능선에 지락정이 보인다.(독립기념관, 『캐나다 선교사가 본 한국·한국인』, 2013. *동그라미 표시 부분) 23. 함경감영 후원의 지락정 인근에서 함흥 시내를 바라본 전경(독립기념관, 『캐나다 선교사가 본 한국·한국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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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 21 22 23
탐사한다는 미명 아래 직면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사안들이 적지 않음을 밝힌다. 본 연구를 계기 삼아 한국조경사의 사례와 유형, 사상과 미적 원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경로들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19. 발굴조사 후 2018년 복원된 강원감영 후원 전경(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20. 일제강점기 공주 욱정통 엽서.
추천도서 브리프 조경학 사전
김순기 김한배 이상우 이재호 임의제 최정민 지음 도서출판 집 발행, 3만 원
이 책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조경 관련 용어의 기본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조경개념 및 정책 관련 어휘까지 망라했다. 여느
사전처럼 가나다 순 차례와 6개로 구분한 영역별
차례를 함께 넣어 조경전문가와 연구자, 조경 관련
행정 담당자는 물론 미래의 조경 현장을 이끌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찾아보기 쉽게 구성했다. 6개의
영역은 조경총론·조경설계, 조경계획, 학국역사경관, 시각경관계획, 경관생태계획, 조경운영관리 영역이다.
조경 실무, 조경이론, 커뮤니티 디자인이나 주민참여를
통한 지역환경의 계획·조성·운영의 통합방법론 등
조경분야를 실무, 이론, 시각적·물리적 경관 관점, 전통, 커뮤니티 및 운영관리 등 조경학에서 다루는 전반을 이해하기 쉽게 구분한 것이다.
구영민 외 지음 시공문화사 발행, 3만 원
구영민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의 정년은퇴를
기념하여 제자들과 함께 만든 합동전시의 도록으로 만들어진 건축 작품집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서
선생과 학생 간의 수평적 다이얼로그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저자는 대지에 관한 끝없는 고찰과 탐색이 건축 디자인과 교육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국내의
대표적 페이퍼 아키텍트로 손꼽히는 저자가 지난 30년 교직 생활을 통해 배출한 연구실, 팩토리(Factory)
출신의 제자만 125명. 이 책에 소개된 제자들의 졸업설계작품들은 도시에서 ‘사이(간극)’를 조장하는
‘균열’의 메커니즘을 도입하여 대지와 건축의 관계를 추상화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틈’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묶은 전시가 흥미로웠는데 이 책에서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임창복 지음 효형출판 발행, 1만8000원
이 책은 모더니스트 예술가, 작가이자 영화인 심훈(沈熏, 1901-36)의 건축가적인 면모를 조명하고, 「상록수」를 비롯한 1930년대 건축 사료를 바탕으로
필경사의 자취를 낱낱이 추적한다. 평생 ‘한국의 주택’을 연구한 저자가 교직 정년은퇴 후 작심하고 5년을 바쳐 쓴 역작이다. 저자는 심훈이 필경사를 짓게 된
경위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다. 여러 차례 필경사를 답사하며 찍은 풍부한 사진들과 함께 도면을 대조하며 암울했던 일제강점기하 1930년대 중반 농촌의 빈곤한 삶터의 개조를 열망한 심훈이 직접 ‘농민의 삶을 담을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며 사회적 가치까지 지닌 집’을
구상하여 필경사를 완성했음을 강조한다. 그로써 심훈이 종합예술가를 넘어 ‘건축가’적 면모까지 지니고 있었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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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경개념사전 2. K교수의 건축수업 3. 필경사
3 2 1
『조경개념사전』 건축 연구서 『필경사』 건축 작품집 『K교수의 건축수업』
『보편적 건축을 향하여』
김선우 지음 픽셀하우스 발행, 1만6000원
‘평범한 것’, ‘무난한 것’, ‘합리적인 것’ … 어떤 면에선 ‘새로운 것’의 반대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시 질문해 본다. 건축이 꼭 새로워야 할까?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는 새로운 시도가 언제나 필요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하지만 건축은 그러기에는 너무 복잡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데는 창의적 생각에 앞서 법규 해석과 허가, 예산과 기능에
따른 다양한 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모든 건축 작업은 ‘새로움’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새로움’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해법이 필요하다.
보편적 건축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건축에 대한 탐구 과정이다. 무엇이 보편적인 건축인지 고민하지 않고 우리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도시 연구서
『서울은 기억이다』
연구모임 공간담화·도시사학회 지음 서해문집 발행, 2만7000원
도시는 그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도시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개개인의 각별한 경험은 무색의 공간을 다채로운 삶이 녹아든 애착의 ‘장소’로 바꾸어 주며, 도시를 매개로 하여 다음 세대로 계승된 기억은 시간의 무게와 함께 특정의 공간들에 ‘장소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장소성’을 획득한 공간은 이제 공간 자체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서울 사람들보다는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이 품어 온 오랜 기억을 모은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도시사학회가 기획해서 출간한 『도시는 기억이다』(2017), 그리고 도시사학회와 연구모임 공간담화가 함께 기획하고 펴낸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2022)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건축상 작품집
『2022 젊은 건축가상, 새로움의 층위』
김효영, 박정환·송상헌, 김우상·이대규 지음
모로북스 발행, 2만 원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상’의 2022년 수상자 김효영(김효영
건축사사무소), 박정환·송상헌(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김우상·이대규(카인드
건축사사무소)의 건축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수련의 과정을 거쳐 독립해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건축 일상, 건축적 고민과 바람, 그들이 그리는 오늘과 내일의
건축이야기와 치열했던 현장의 심사평을 수록했다.
아파트를 향한 욕망이 주거 문화를 점령한 시대에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이 들려주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축, 좋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건축을
아끼는 모든 이에게 건축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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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에세이집
4. 보편적 건축을 향하여 5. 서울은 기억이다 6. 2022 젊은 건축가상, 새로움의 층위 5 4 6
박지일의 新 떠오르는 건축가 01
Narrative Architects 김시홍, 황남인 ‘건전’하길 바라는 건축가
인터뷰 일시: 2023년 4월 중
인터뷰 장소: Narrative Architects Office (서울시 중구)
참석자: 김시홍, 황남인(Narrative Architects 공동대표), 박지일(본지 섹션 편집장)
1. 김시홍 2. 황남인
1 2
NEW RISING ARCHITECT
ⓦ 먼저 내러티브 아키텍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시홍(김): 내러티브 아키텍츠는 2020년
김시홍과 황남인이 공동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사무소입니다. 건축과 사회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건축 개념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건축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지향하며, 방법론적으로는 구축적
디테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작업하고자 합니다.
ⓦ 건축가의 영역이라하면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김: 종합 예술로서의 건축이 기본적인 영역일 테죠. 우리는 그것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나 다른 분야의 프로그램, 코딩 등을 비롯해 세포를 통해 무언가를 생성하는 생태적인 영역까지 아우르며 그것을 건축가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를 고민하려
합니다. 이러한 건축적 제안이 사회에서
확장되고 공명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 무척 근사한 정의를 두고 있네요. 독립하게 된 계기는 그러한 지향점 때문인가요?
황남인(황): 처음 개소할 때까지만 해도 그간의
실무를 경험하며 쌓아온 나름의 건축에
대한 방향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개소하고 프로젝트를 경험하다 보니
접근 방식부터 풀어가는 방법, 형태와 재료
등이 프로젝트마다 다르더군요. 그래서 어떤
건축을 지향한다고 일관된 어휘로 말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건축 외 분야를 다양하게
경험하며 두루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고요.
그러한 관점에서 선언보다는 건축이라는 업에
대한 탐구와 태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된 것 같습니다.
ⓦ 독립하기 전에는 각각 어떤 사무소에서
실무를 했나요? 두 사람이 함께 사무소를 개소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 다양한 아틀리에에서 실무를 익힌 후 이재하 건축사사무소의 경험을 마지막으로 개소했습니다.
황: 이로재와 하우 건축에서 실무를 익혔습니다. 각자 실무를 하다가 김 소장이 먼저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개소를 했어요.
어떤 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기보다 함께
작업하고 실험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 온 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집 근처
지하에 있는 창고를 하나 빌려서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최근에야 충무로에 본격적인
사무실을 마련했죠. 충무로 주변에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워크숍 관련 종사자들이 많은
점도 이 지역을 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 독립에 대한 것 이전에, 건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김: 고등학교 시절, 건축 관련 단신 기사를 접한
것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기사에는 하얀색의 채플 사진과 그에 대한 짤막한 글귀가 있었는데, 건축적으로 대단히 특별하기보다는 적당히 뾰족하고 적당히 둥근 일반적인 채플의 형상이었죠. 그 사진 자체가 뭔지 모를 감동을 주었고, 한동안 그 기사를 스크랩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때부터 건축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건축 설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황: 백화점도 없는 지역에서, 단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미국에 가볼 기회가 생겼는데, 처음 본 맨해튼의 풍경이 천지개벽으로 느껴졌죠. 예일대학교를 탐방하면서 당시 가이드가 고난을 딛고 건물을 완성한 건축가의 일화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건축가라는 직업의 존재를 인식하고 건축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 내러티브라는 사무소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나요?
김: 모든 프로젝트는 건축물이 속한 문화적
배경이나 관점,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경험들로 형성되는 의미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작업 또한 주변의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죠. 이러한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형성해 가는 방식이 내러티브적 사고의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프로젝트마다
지닌 고유한 이야기(narrative)를 형태나 공간, 재료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 건축에서의 내러티브와 공간에서의
내러티브는 분명 다를 텐데요. 건축에서의 내러티브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김: 건축에서의 내러티브는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하죠. 바로 그 지점에 우리의 작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그 자체를 특정
어휘나 문법, 방법론으로 해석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방식보다는, 그 프로젝트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러티브적 요소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이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공간의 분위기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형성하는 재료가 될 수도
있죠. 맥락 속에서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건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일 테죠. 그런 점에서
확정적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 방식보다는, 개별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제안을 할 것인지, 나아가 그것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 내러티브 아키텍츠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업무 분담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황: 기본적으로는 김 소장과 둘이 운영하는 체제입니다. 보통 프로젝트별로 PM을 맡아 진행하는데,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 두 사람이 낸 설계안 중 건축주가 선택한 안을 담당자가
디벨롭 하는 방식이고, 설계 공모의 경우 두 사람이 낸 안에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안을 논의하고 결정해 한 사람이 끌고 가는 편입니다. 담당자가 정해지면 그 사람이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드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집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까지 함께 협의합니다.
이를테면 선 하나를 바꿀 때나 메일 한 통을
보낼 때도 상의를 거치죠. 과정상의 편리함이나
결과물의 완성도를 위해 프로젝트마다 PM을
두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작업에는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두 녹아 있는 셈입니다.
ⓦ 부부 건축가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죠. 두
사람의 작업 성향은 다른 편인지, 같은 편인지. 어떤가요?
황: 작업을 전개할 때 가치관이나 관점에
있어서는 큰 이견이 없는 편이지만, 만들어
내는 조형이나 선호하는 것들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지금은 완공 프로젝트가 얼마 없어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몇 개 더 쌓이면 이
작업은 누가 했는지 쉽게 구분될 겁니다.(웃음)
ⓦ 지금까지 완공된 세 프로젝트 - 낙산
진면옥(2022), 부안 예술공방(2022),
65
낙산 진면옥
대지는 옥수수밭으로 쓰이는 교외 주거지의 풍경
속에 두 개의 층으로 된 박공의 콘크리트 매스로
자리 잡고 있다 집의 디자인 개념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통해 발생하는
보이드 공간과 시선의 전환을 통해 공간의
경험을 경직되지 않고 자유롭게 만드는 것에 있다
미완의 콘크리트 표면과 하나로 연결된 매스의
구성은 땅으로부터 단단하게 고정된 무게와
물질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주변의 풍경과 해의
방향을 고려한 공간의 비틀림과 매스의 덜어냄은
단단함과 동시에 공간의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다 아연도금의 골강판 지붕은 건물의 무게감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분위기를 밝게 표현하고 있다
박공의 상층부 매스는 주거의 전형적 유형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지면으로부터 들어 올려진
형태로서 상업 시설과 주택의 구분을 표현하고
있다 교외에 독립된 형태로 있는 상가주택으로서
거주와 일터 사이의 적절한 조율에 대한 의미 있는
유형적 제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콘크리트 벽과
금속의 지붕이 중첩된 파사드는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생동적 상태로서의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주거공간과 상업공간 사이에 있는 중정의 보이드
공간은 거주와 일터의 전이 공간이 된다 이러한
공간은 프로그램 사이의 적절한 경계를 형성하며
한 건축물 내부에서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의 공간이 된다
지상 1층은 식당으로 사용되며 내부 홀과
주방은 계단실과 화장실의 콘크리트 매스와
보이드 공간인 중정을 통해 동적인 경계를
형성한다 노출콘크리트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과
대비되도록 무늬가 있는 합판 벽을 사용하였다
집 내부는 콘크리트, 합판, 화이트, 블랙이
대비되며 높은 층고를 통해 밝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1층 주방의 상부는 주택의 독립적인
테라스 공간으로 활용된다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김시홍, 황남인
위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주청1길 30
건축 형태: 신축
주요 구조: 철근콘크리트
건축 용도: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1,015㎡ / 건축면적: 224㎡
연면적: 327㎡ / 규모: 지상2층
건폐율: 22 07% / 용적률: 32 27%
외부 마감재: 노출콘크리트, 골강판
내부 마감재: 종이벽
66 1. 낙산 진면옥 1층 평면도 2. 2층 평면도 3. 배치도 4. 중정
4
지, 목재합판 구조설계: SDM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서인MEC 전기/통신설계: 아이에코ENG 시공: 영지종합건설㈜ 준공연도: 2022 건축사진: 박다해 건축개요 1 2 3
안동 온혜리 단독주택(2023) - 를 보면 장식이 최소화된 모던한 느낌을 받습니다. 내러티브만의 어휘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황: 장식이 최소화돼 있다는 걸 지금 깨달았어요.(웃음)
김: 예산이나 프로젝트의 성격 등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작업을 할 때 우리만의 어휘를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 고정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그 어휘를 다듬어 가고 완성해 가는 방식보다는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훨씬 더 넓은
범주에서의 건축을 고민하고 싶다는 생각과도
닿아 있을 테죠. 예컨대 콘크리트를 주요하게
쓰는 건축가로 받아들여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황: 중요한 것은 특정 이미지나 재료,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는 건축가와 건축
작업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프로젝트마다
적합한 제안을 하고,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축가가 건전한 건축가라고 생각하여, 그런 식의 접근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 내러티브에서 추구하는 구축적 디테일이란 무엇인가요?
김: 우리는 미적이거나 아름다운 것, 장식적인 디테일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적 개념이나 의미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디테일을 고민하는 데 집중하죠. 건물이 실질적인 구축 과정에 해당하는 시공을 거쳐 지어지는 데 필요한 디테일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축적 디테일은 이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 공모전 참여가 활발한 사무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민간 프로젝트와 공모전의 비율을
특별히 조정하고 있나요?
황: 민간 프로젝트는 규모나 지역, 프로그램
등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건 다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는 증축이든 신축이든
리모델링이든 동일하죠. 공모전의 경우는
공모에 참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거나, 방문했을 때 동네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거나 프로그램이 재미 있다거나, 혹은 단순히 안 해본 설계이기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공모에도, 500제곱미터
67 5~7. 낙산 진면옥 전경 8. 계단실
78 6 5
부안예술공방
부안상설시장 인근, 원도심에 위치한
부안소금공장은 민족 고유의 제염법으로
재제염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수산업이 발달한
부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장 인근의 소금
공장은 지난 2009년 운영이 중단된 후 폐허로
남아있었다 부안 예술공방은 이 소금공장이 있던
자리에 계획되었다 건물이 위치한 비정형 필지는
입구가 좁고 안으로 깊은 형태이다 시장을 오가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도시재생 시설로서, 길게
펼쳐진 2층의 금속 파사드는 상설시장을 향해
강한 인지성을 가진다 1층의 뒤로 물러난 벽돌
매스와 2층의 돌출된 금속 박공 매스가 교차하며,
행인을 맞이하는 감싸는 듯한 외벽을 만든다
둔탁한 매지의 적벽돌을 적용한 1층은 저층의
오래된 주택가의 연장이며, 매스가 뒤로 물러나
만드는 공간은 대지 뒷편 주택에 대한 배려이자
골목길의 연장이다 2층의 박공 지붕과 반사도가
높은 금속 외장재는 소금공장을 모티브로
한다 매스를 떠받히는 Y자 기둥은 긴장감을
형성하며 매스 하부에 휴식 공간을 만들고, 시장
입구에서부터 뒤편 휴게공간에 이르기까지
4개의 레벨에 걸쳐 시선이 통하도록 한다 낮은
높이의 2층 테라스에서는 행인과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치며 건물 내의 활동을 바깥으로
전파한다 테라스에서 박공의 매스까지 경사를
따라 건물의 높이가 단계적으로 상승하여 건물의
크기가 주는 압박감이 줄어든다 두 개 층이 열린
내부 공간은 철골 구조가 그대로 노출된 공장
건물의 유형을 가진다 남동측을 향해 활짝 열린
박공 매스의 창을 통해 깊은 필지를 극복하는
풍부한 자연광이 쏟아진다 비대칭의 돌출 구조
내부를 제외하고는 각 실과 조명은 매우 단순하고
규칙적인 배치를 가지며, 은색의 데크플레이트가
그대로 노출된 천장은 조명을 반사하는 역전된
소금 가마솥과 같다 1층의 구획을 가볍게 나누는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는 사무실 내부로 자연광을
유입하고, 소금 포대를 이용한 테이블의 상판으로
쓰이며, 납작한 솥에 맺힌 소금 결정을 떠올리게
한다
안동 온혜리 단독주택
안동 온혜리 단독주택은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1454년경에 건립된 국가민속문화재인 '안동
진성 이씨 온혜파 종택'의 컨텍스트를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자유롭게 쌓인 돌담 위에 놓인
먹색의 기와는 근대 이전의 건물을 대표하는 전통적 요소로 사용되었으며 문화재 주변의 풍경을 유지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지붕과 돌담 사이의 여백은 자연을 위한 공간으로 이를 통해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황남인, 김시홍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형태: 신축 / 용도: 근린생활시설
주요구조: 철골구조 / 대지면적: 443 5㎡
건축면적: 317㎡ / 연면적: 476㎡
규모: 지상2층 / 건폐율: 71 5% / 용적률: 107 42%
외부 마감재: 아연도강판, 치장벽돌, 외단열일체마감
내부 마감재: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에폭시라이닝 폴리
카보네이트 구조설계: SDM 구조기술사사무소 / 기계설계: 서인엠이씨 전기/통신설계: 아이에코 ENG / 시공: 삼호토건주식회사 준공연도: 2022 / 건축사진: 신경섭
68
1~2. 부안예술공방 전경 3~4. 골목길의 연장이 된 매스와 필로티 하부공간 5~6. 내부공간
위치
건축개요 5 3 2 1 6 4 7
장소 고유의 풍경을 형성하고자 했다 마당에서
바라본 하늘은 가위로 오려낸 것 같은 지붕을
따라 즉흥적이며 자유분방하게 움직인다 우리의
제안은 문화재의 가치와 역사의 기억이 내재된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를 생동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
미만
공모에도 참여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공모에 더 큰 비중이
있지만 사무소 차원에서 조정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떤 민간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민간 프로젝트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또 공공 프로젝트는 공공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대중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테죠. 그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사무소 차원에서 이제는 공공
프로젝트를 할 때임을 직감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기에는 공모에 참여하고 하다 보니 지금은 반반의 비율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공공이든 민간이든 지금까지의 작업에 만족하는 편인가요?
김: 고민이 되는 질문이네요. 물론 만족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건축이라는 게 건물이
완공되고 나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사용되어 가면서 그 시간을 통해 나오는
어떤 이야기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만족한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작업에
대한 만족을 논하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황: 만족하기보다는 괴로워하는 편인 것 같아요.(웃음) 김 소장이 말한 것처럼 시간이 지나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으로, 고민하고 제시한 해법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항상 있습니다.
ⓦ 개소 후 처음 작업한 낙산 진면옥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요?
김: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낙산 해수욕장 인근 아무것도 없이 비워진
옥수수밭에 자리한 대지였어요. 첫 민간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건축주는 여기서 처음
냉면 기술을 배워서 건물을 짓고 영업을
하고자 했죠. 처음이라는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와 프로젝트 자체가 존재감 있고 묵직하고, 어떤 움직임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덩어리감과 육중한 벽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어떤 몸을 일으켜 가는 이미지를 연상했죠.
그렇게 설계를 진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김시홍, 황남인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형태: 신축 / 용도: 단독주택 / 주요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대지면적: 865㎡ / 건축면적: 171 94㎡ / 연면적: 171 94㎡
규모: 지상1층 / 건폐율: 19 87% / 용적률: 19 87%
외부 마감재: 한식토석담장, 목재루버, 송판노출콘크리트
내부 마감재: 석고보드 위 벽지, 목재 마루 구조설계: SDM 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서인엠이씨
전기/통신설계: 아이에코 ENG
시공: 바른종합건설
준공연도: 2023
콘크리트 덩어리감이 매스를 잘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여기에 디테일이나
장식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오히려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겠다고 판단해 지금의 형태가
69
에 있었다 7. 안동 온혜리 단독주택 외관 8~9. 모형 10. 공사 중 모습 11. 조형 지붕의 선 12~13. 개념 스케치
규모의
건축개요 1213 10 8 11 9
완주 술테마박물관 주류제조장
굴곡진 형태의 외피를 구성하고 있는 목재와
깊이가 다른 차양의 변화하는 지붕선을 통해
생동감 있는 형태를 구성한다 현재 대지에 있는
소나무를 가공하여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사용한
후 재가공하여 반대편의 외피로 재활용한다 자연
그대로를 적용한 목재 외피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풍화하며 유연한 자연과 견고한 건축 사이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가 된다 완만한 선의 벽과
천창을 통해 내부로 유입되는 자연광과 곡면으로
경사진 지붕이 만드는 내부 공간은 술을 공간의
굴곡진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건축개요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김시홍, 황남인
위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형태: 신축
용도: 공장 (주류 제조장)
주요 구조: 철근콘크리트/철골구조
대지면적: 7,000㎡
건축면적: 558 11㎡
연면적: 558 11㎡
규모: 지상1층
건폐율: 7 97%
용적률: 7 97%
외부 마감재: 송판노출콘크리트, 탄화목 판재
내부 마감재: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구조설계: SDM 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서인엠이씨
전기/통신설계: 아이에코 ENG
토목설계: 다온엔지니어링
카펜스트리트 오피스 인테리어
창작자를 위한 3D 모델링 소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카펜스트리트(Carpenstreet)’ 는 그 시작의 기반을
건축에 두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열정적인 인원이
모여 전 세계 창작자를 위한 거리를 만드는 모습은
마치 RPG 게임 속 중간 중간 나타나 모험을
떠나는 이들이 필수적인 용품을 얻는 베이스
캠프와 같다 추후의 인원 증가를 고려한 5개층, 총 250평의 공간은 층마다 각각의 용도를 가진
거리(Street)가 되고 이들 전체가 모여 Carpen City를 이룬다 전체 Street는 저층에서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웰컴 앤 컴포트 라운지, 인텐시브 미팅, 워킹 스트리트로 구성되어 편안하고 열린 휴게를
겸하는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황남인, 김시홍
위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형태: 인테리어 디자인
용도: 근린생활시설
연면적: 830㎡
규모: 지상5층
내부 마감재: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골강판, PVC 타일
준공연도: 2022
건축사진: 최수영
70 1~3. 완주 술테마박물관 주류제조장 모형 사진 4. 개념 스케치
4 3 2 1 7
건축개요
됐습니다. 1층에서는 냉면집을 운영하고, 2층은
건축주의 집인데 전반적으로는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종의 환기를 의도한 사이
공간인 중정이 있는데, 처음 계획한 대로
쓰이다가 영업하면서 물건을 적재해 놓는
공간이 됐더군요. 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또 중정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겁니다.
ⓦ 부안 예술공방은 공공 프로젝트인데 경험해 보니 어땠나요?
황: 부안 예술공방은 시장과 면한 대지에 위치해, 프로젝트는 일차적으로 그 시장을
살리기 위한 게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낙후된
동네였기에 건물을 계기로 동네가 활성화되길
바랐죠. 이를 위해 준공 후 부안의 로컬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하는 F&B 업체를 찾아
설계 의도를 설명하는 등 실질적으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용자가 건물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직
입주자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관을 비롯해
지역 주민, 예술 단체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일이다 보니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 젊은 건축가라면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겠죠. 사무소의 지속가능을 위해 준비하는 것들이 있다면요.
황: 건축가로서 특정 어휘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건축이든 건축이 아니든 새로운 작업을 도모하고 협업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결국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존재하는 직업인데,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
보니 그에 대응하는 건축적 해법을 제시하는
일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을 직접 습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협업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따라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갖는 게 결국에는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건축에서의 지속 가능성은 사무소 운영과도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겠죠. 원하는 인재상이
있다면?
김: 원하는 인재상까지는 아직 고민을 안 해봤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의미를
고정화하는 것이죠. 고정된 건축적 의미나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제안을
하기가 어려워질 겁니다. 우리에게 지속
71 5~6. 카펜스트리트 오피스 내부공간 7. 4층 입체도 8~9. 디테일
89 5 6
줄포면 도시재생 거점공간 스튜디오
해안선과 하천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에 평행한
주변 건물과 달리 줄포시장 관리동은 필지
경계를 따라 비스듬히 설계되었다 직사각형의
시장 건물, 그리고 이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는
관리동, 이 한 켜 뒤에 위치한 증축부는 관리동과
도로가 만드는 각 모두에 평면적으로 대응하면서
이들과 별개의 질서를 입체적인 지붕에서 만들어
간다 건물 외부는 모든 디테일을 삭제하고
하나의 조각된 덩어리와 같은 형태를 가진다
내외부의 재료는 경계 없이 모두 동일하다 관리동
내부의 신설된 천장과 바닥 역시 동일 색상으로
마무리하여 기존 건물의 존치 부분을 강조한다
증축 부분은 기존 건축물과는 뒤틀린 형태, 강렬한
색상과 광택감으로 확연히 구분되며 이는 도시
컨텍스트를 존중하며 변화의 에너지를 응축한
도시재생 거점시설의 표상이다
카르타고 국립박물관 국제설계공모
유네스코 광장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튀니스
만과 회벽으로 된 굴곡진 건물들, 고대 튀니지의
지하 주거지에서 영감을 받아 완만한 언덕의
형태가 된다 대성당과 박물관 그리고 유적지를
연결하는 동선과 리셉션 프로그램을 경사진
광장 아래에 수용하고, 그 상부는 완만한 경사가
있는 비워진 광장으로서 자유로운 공공 공간을
제공한다 경사진 형태의 유네스코 광장은
데쿠마누스 막시무스 계단의 축으로부터 이어진
시선의 방향을 아크로폴 유적지와 카르타고
박물관으로 확장한다 광장과 에스플러네이드-
박물관 구역과의 레벨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사이트 주변의 다양한 흐름과 프로그램 사이의
관계를 제어한다 튀니지의 자연 지형을 은유한
유네스코 광장은 다양한 문명과 역사의 중첩이
내포한 복합성에 대한 포용적 형태의 제안이다
이는 역사의 층위를 형성하며 존재하는 비르사
아크로폴의 시간을 공존과 상생의 개념을
통해 포용하는 태고적 랜드스케이프가 된다
카르타고를 대표하는 황토색 땅의 텍스처는
광장의 바닥과 파사드에 반영되어 장소의 지역성을 강조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 남겨진
유산들 그리고 역사의 흔적은 랜드스케이프를 통해 현재와 공존한다
건축개요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황남인, 김시홍
위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 형태: 대수선, 증축
용도: 근린생활시설 / 구조: 경량철골구조, 철골구조
대지면적: 5,410㎡ / 건축면적: 140 59㎡ (2,145 49㎡)
연면적: 134 43㎡ (2,139 33㎡) / 규모: 지상1층
건폐율: 39 66% / 용적률: 39 54%
외장 마감재: 치장벽돌, 수성페인트
내부 마감재: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구조설계: 두항구조기술사사무소 / 기계설계: 서인엠이씨 전기/통신설계: 아이에코 ENG / 시공: 광진그린텍
건축개요
책임 건축가 겸 디자인팀: 김시홍, 황남인
위치: Tunis, Tunisia, Africa / 형태: 신축, 리모델링
용도: 문화시설 / 구조: 철골구조 / 대지면적: 32,330㎡
연면적: 7,900㎡ / 규모: 지상3층
외장 마감재: Rammed Earth, Stainless Steel
72 1. 줄포면 도시재생 거점공간 스튜디오 모형사진 2. 카르타고 국립박물관 투시도_전경 3. 투시도 4. 스카이 뷰
2 1
4 3
나무집
가능이라는 것은 느슨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시도하고, 건축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자세에
가깝습니다. 나이나 경력과 관계 없이 언제든지
새로운 제안을 할 수 있는 건축가로 살아남는
게 우리만의 지속 가능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건축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황: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에 최근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의미로서 형태를 한정하지 않고, 형태 그대로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정리하고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죠. 이를 파빌리온으로 구현하기 위해 금속 공예를 기반으로 스컬핑 방식의 모델링을 통해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분과 최근 협업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조만간 실제로 만들어 낼 예정입니다.
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제안이 필요한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동시대적
이미지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난 자유로운
건축을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앞으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내러티브 아키텍츠
건축 사진 크레딧(별도 표기 외): 내러티브 아키텍츠
건축 사진 크레딧: 프로젝트별 '건축개요'에 표기
김시홍은 동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년간의 실무 경험 후 황남인과
내러티브 아키텍츠를 공동으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컨텍스트에 기반한
건축적 개념과 디테일을 통해 구축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황남인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내러티브
아키텍츠를 공동으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고를 건축으로 수렴하며 제안할 수 있는 해법의
맥락을 확장하고자 한다 강원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하며
원주시 공공건축가 및 서울대학교 기획설계 건축가, 서울시
교육청 꿈담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73 5. 13층 나무집 스케치 6~10. 홍보 영상 11. 영상QR코드
810 79 6 11 5 13층
Changgyun Kim Architect
김창균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에이텍 종합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쌓고, ㈜RICHUE건축사사무소 소장 역임 후 2009년 UTAA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현재 대표 건축가이다. 2011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이며, 참여한 주요 해외 전시로는 〈한국-인도 젊은 건축가 ‘emerging’ 전시〉(2013, 인도 뉴델리), 〈한국의 젊은 건축가 ‘To Be Young’ 전시〉(2015, 영국 런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용적률 게임’〉(2016, 이탈리아 베니스)가 있다. 2018년 사회적협동조합 ‘Urban Link’와 유타건축 부설 ‘주거공간연구소’ 를 설립했다. 2020년에는 EBS 직장탐구 팀 (유타건축사사무소)에 소개되기도 했다. 수많은 건축상을 수상했는데 최근의 성과로는 스틸하우스 대전 최우수상(2019, 서계동 락유당), 경남 건축대전 대상(2020, 양산 언덕위의 집),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최우수상(2021, 당진시의회 도서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21, 캐빈하우스) 등이 있다. 보여주기 식의 독특한 디자인보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에 확신하고, 주어진 각기 다른 조건 내에서 최대한 솔직하고 명쾌하게 공간을 구성하며 재료 하나하나의 접합과 만짐을 소중하게 여긴다. 지난 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건축주와 함께 건강한 집, 따뜻한 공간을 가진 도시 내 건축물을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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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옥의 나날로부터
글. 김창균 건축가
장편소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에서 작가는
우 리 주변의 아주 사적이고 잡다한 것들을
나열하 며 이들과 함 께 하는 일상을 ‘ 즐거운
지옥의 나날’이라고 표현했다. 언젠가 건축을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미국 미네소타주 최대의 도시인
미네아폴리스(Minneaoplis)에 살고 있는 그는
서울에 방문한 소감을 묻자, “Minneapolis is boring heaven, Seoul is exciting hell"이라고
답했다. 두 도시의 상황 을 매우 정확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비교한 것인데, 이후로 나는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도시와 건축 환경에
대해 즐거운 지옥의 나날들(exciting hell)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던 외국인 친구의 표현대로 우리
도시는 2 4 시간이 부 족 할 정도로 즐거움 과
풍 성함 그리고 다양한 이벤 트가 가 득 하다.
그런데 왜 그는 우리의 도시와 건축 풍경을 왜
지옥(hell)이라고 말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지금 우리 도시에 사람의 스케일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아 름다 움 들이 줄어들고, 커다랗고 번쩍이려고만 하는 차가운 건축과 부동산의 가치로만 여겨지는 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건물을 시공하는 능력을 가진 반면 우리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건물들은 재료의 풍성함과 기술적인 세밀함은 전무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음식점 등의 자영업 비율이 높고 경쟁이 심한만큼, 좀 더 빠르고 확실한 정보 전달과 홍보를 위해 한국의 도시는 건물 면적 대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간판의 비율을 갖게 되었다. 건물의 입면과 재료는 간판에 가려져 사라졌고, 심지어는 전체 건물을 타이어로만 만들어 입면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가게를 새로 내면서 동네사람들에게 떡을 돌리기보다 요란한 음악을 들려주고 춤을 보여준다. 길을 가다가 새로 지어진 건물 앞에서 풍선 장식을 하고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이벤트 도우미들을 자주 목격할 것이다. 새로 생긴 건물과 공간을 마주하고 사용하기도 전에 이벤트와 간판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다. 그 건물을 위해 고심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그의 노력과 목소리는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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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 큼 의 열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재건축, 재개발을
통한 고층 아파트와 거대 단지들이 곳곳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 재미있는 건 아직도 대부분의 아파트 T V 광고에 잘
만들어진 건물의 내외부 공간이 아닌 유명 연예인의 화려한
생활의 단편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공간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남는 것은
발코니를 확장해서 외부와 단절된 수평적 움직임과 아파트
이름, 그리고 몇 평 하는 면적과 매달 변하는 시세뿐이다.
최근 주택 설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필자의 사무실에
찾아오는 건축주들은 공통적으로 아이들에게 아파트 단지의
브랜드 이름이 아닌 가 족만의 이야기가 있는 집 자체의
공간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한다. 물론 아파트가 가지는
도시적인 생활의 편리함과 안전함이 주는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반복되는 같은 공간 안에서 획일화되고 인간적인
느낌을 잃어가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전처럼 집하면 떠오르는 마당이며 대청마루,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사람다 움과 추억을 다 음 세대에게
전해주려 한다.
소위 K-컬처가 본격적으로 수출되고 전 세계에서 우리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지만, 우리 도시와 건축 환경을 답사하러 오는 외국인은 거의 없고 우리
건축가들도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아직도
도시와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실무자들은 비싼 돈을 들여 해외 답사를 가는
것이 사 실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유학파를 비롯해서 수많은 건축가가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지 못하는지 성토를 한다. 2012년에 있었던 한국-일본 건축교류전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모두 유학파에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건축가들과 달리, 일본은 모두 국내에서
동경이 아닌 자신의
79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작업의 겉모습만을 보면 우리 건축가들의 실력이 월등하고 프로젝트의 개념이며 최종 결과물인 형태와 공간, 전시 기법 등 모두 화려했다. 하지만 전시와 강연을 보는 내내 무언가 우리가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형태는 투박하지만 일본 건축가들은 철저하게 그들의 일상에서 시작하고 있었고, 아주 소소한 만남과 주변 사물들까지도 건축과 함께 접점을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한국 건축가들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렵지만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서 나의 건축을 하려고 한다.
공부하여
나는 건축설계를 하는 건축가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건축가의 설계는 무엇이 다르며, 처음에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묻는다. 아마 그동안 건축가 스스로 자신을 너무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 실 건축설계 혹 은
건축가는 스스로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존재가 되면 안 된다.
그저 사람이 주인공인 우리의 따뜻한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고
조율하는 기획자 혹은 전문가의 한 사람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작품 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리한 땅 에 적합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매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힘들고 장소의 가치가 없는 건물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만 정의하거나
전공자들 사이에서만 소통되는 어 려운 담론 을
만들지는 않을 생각 이다. 건축만이 만들 수 있는
공간과 장소의 재미와 가치를 가지고 우 리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 의미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건축 요소와,
재료 그리고 실질적 공간을 통해 따 뜻 한 건축을
그 려 보 려 고 한다. 규모 의 미 학 이나 겉모양에만
미 혹 되고, 부동산 가치만을 추종하기보다는
인간적이고 건강한 건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기본적이고 대중적이며 상식적인 시작이다.
UTAA COMPANY [Urban Tablet of Actualized Architecture company]
10 년이 넘는 실무를 경험하다가 200 6년 사무 실을 시작했지만 경험
미숙으로 3 년 만에 정리를 했다. 이때의 경험은 아마 평생 사무 실을
운영하는데 큰 밑거름 이 될 것이다. 이후 재정비를 통해 2009 년 한
명의 파트너와 유타건축으로 다시 시작해서 어느덧 19명의 파트너와
함 께하고 있다. 더불 어 사무 실을 거쳐 독립한 뒤 UTAA COMPA NY
인큐베이팅 시스템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후배 건축가들까지 더하면 훨씬 많은 동료들을 두고 있는 셈이다. 그
동안 프로젝트의 종류도 인테리어, 화장실, 동사무소, 학교 공간 등 작은
공공건축으로 시작해 단독주택, 스테이, 상가주택, 근린생활시설, 베이커리 카페, 사옥 그리고 작은 사무실의 로망인 10층 이상 업무시설까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 까지와 마찬가지로 앞 으로도 평 소 나 자 신이
생각 하고 있는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혹 은 말 이나 그림이 아닌 실제
작동되는 장소나 공간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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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한 명의 생각으로 끝나지 않는 협동작업의 연속이다.
작지만 강한, 실험적이고 실천적인
특한 디자인보다 가장 평범하고 쉬운 것이
생각한다. 차별화되고 선도적인 디자인은 바로 우리 주변, 우리 도시에 존재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건축물에서 시작된다. 지난 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유타건축은 의뢰인, 시공사와 함께 건강하고
편한 건축, 따뜻한 공간을 가진 기억에 남는 공간을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지금의 척박한 건축계를
넘어 후배 건축가들이 자생하며 좋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건축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다.
봄이 지나 여름으로 지나가는 길목에서
사무 실 에는 여전 히 4 0 평 남짓
작은 주택 프로젝 트로 고민이 깊다.
스스로가 공모전 보다 작은 주택이
건축의 본질을 깨우고 고정된 사고에서
탈피하는데 훨씬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알기에 이 밤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
또한 얼마 전 모 대 학 특강에서 한
학 생의 질 문이 계속 머리에 맴돌며
숙제를 남긴다. “학교에서는 박공이나
경사 지붕으로 설계를 하면 교수님께서
수정하라고 하시는데, 유 타 건축
프로 젝 트에는 경사지 붕 이 굉 장 히
많네요?”
81
회사, 그리고 즐겁 게 실제로 작동되는 건축 공간과 장소를 만드는 사무실이고 싶다. 보여주기 식의 독
각기 다른 조건 내에서 최대한 솔 직하고 명쾌하게 공간을 구성하고, 재료 하나하나의 접합과 만짐을 소중하게
가장 비범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에 확신을 가진다. 주어진
82 김천 동그란집 ⓒ윤준환
83
84
85 은혜의 교회 ⓒ진효숙
86
87 덕교동 카페 미음 ⓒ진효숙
88 1. 1층 평면도 2. 2층 평면도 2 1 침실 침실 창고 거실 거실 게스트룸 주방 식당 식당 다용도실 현관 현관 다락 다락 아이방 베란다 세탁실 가족실 드레스룸 안방
제주 서광리 주택 & 스테이 소우주
서광리는 제주 남서쪽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대지로부터 반경 2km 내에 인접한
국제 학교를 중심으로 소위 영어마을이라고
불리는 주거 단지가 형성되어 타지인의 유입이
많은 지역이지만, 대지 주변은 비교적 고즈넉한
제주 특유의 마을 느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건축주 또한 육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와 가족들과 함께 터를 잡았다 건축주는
계획 초기부터 실제 거주할 안채와 프라이빗
렌탈하우스(농어촌 민박)로 활용할 별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필요로 하는 연면적에 비해 대지가 큰 편이었고, 우리는 마당과 건물의 관계에 대해 밀도있게
고민했다 그저 광활한 단일 마당보다는, 다채로운
역할을 지닌 마당 공간의 분할로 내외부 공간에
재미와 리듬감을 갖길 원했다 그래서 건물을 十자
모양으로 배치하여 마당을 크게 4개로 분할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또한, 제주의 지역색이 도드라지는
자연 요소와 안거리+밖거리를 적극 활용한
공간계획으로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4개의 테마
마당(그늘마당, 주차마당, 잔디마당, 이끼마당)이
조성되었다
안채와 별채가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되
자연스레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설계
주안점으로 두었다 이를 위해 안채가 진입도로에
인접하고 , 별채는 대지 안쪽 깊이 아늑하게
배치하였다 별채로 가기까지 안채를 무조건
지나야하는 문제는 안채와 별채의 진출입구를 분리함으로써 해결했다 안채의 북측을 지나는
투숙객으로부터 건축주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가족이 모이는 거실은 건물의 제일 남측에, 가장 사적인 공간(침실)은 2층에 배치하여 건축주
가족과 투숙객 모두가 서로의 생활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
투숙객들이 기존 주거에서 경험하지 못한 공간과
재료를 느낄 수 있길 원했던 건축주의 바람은
실내외 마감 및 가구, 공간 구성에서 드러난다 목재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얻어, 소우주 내외부에는 약
4가지 종류의 목재(멀바우, 옐로우시다, 아프젤리아, 하이그레이드 등)가 마감재로 사용되었다
소우주’의 목재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에이징(Aging) 되면서 나이테처럼 히스토리가
쌓이는 유산이 될 것이다
89 3. 전경 4. 안채 식당
4 3
90 5. 다락층 평면도 6~7. 단면도 7 5 6 다락 다락 다락 다락 다락 다락 다락 다락 아이방 주차장주차장 세탁실 가족실 드레스룸 안방 욕실 욕실 거실 창고 거실 주방 주방 식당다용도실 아이방베란다 현관
설계담당: UTAA Company 김창균, 배영식, 정선영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용도: 다가구주택
대지면적: 1,210㎡
건축면적: 228 66㎡
연면적: 214㎡
규모: 지상2층
주차: 5대
최고높이: 8 99m
건폐율: 18 90%
용적률: 17 69%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경량목구조
외부마감재: 두라스택 Solid Tile(허니브라운), 멀바우 각재
내부마감재: 목재 (하이그레이드, 옐로우시다, 아프젤리아), 도장
설계기간: 2020 05 ~2021 01
시공기간: 2021 04 ~2022 05
구조설계: 두항구조
조경설계: 듀송플레이스
시공: ㈜스튜가목조건축연구소
내부가구: bello creative
건축사진: aquifoto 이재우
소우주’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주택에 한두 개
정도 솟아있는 박공지붕이 6개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익숙한 집이지만 스테이의 역할까지
수용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상업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단순한 외관디자인 보다는 조금 더 유니크한
건축미가 돋보이도록 계획하였다 이 6개의
박공지붕의 나열은 입체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마치 제주의 오름들을
연상케 한다
91 8. 안방 9. 거실 10. 욕실
건축개요 10 9 8
92 1. 1층 평면도 2. 다락방 평면도 3. 단면도 1 3 2 거실 다락 야외 테라스 현관 공용욕실 야외데크 게스트룸 서영이방 욕실 마스터룸 중정 세탁실보조주방 주방
김천 동그란집
김천의 동쪽, 운남산과 고성산 사이 도공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산 깊숙이 자리해 고요하고 한적한
동네다 대지 앞은 켜켜이 겹친 산세가 펼쳐져 있어
원경이 아름다우며, 대지 옆으로 공원이 있어 근경 또한 푸릇하다
직장 발령으로 김천에 이사 온 건축주 부부는 두
번째 고향처럼 김천에 머물게 되었다 평생 살 것
같진 않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 커가는 10년, 15년은
머물게 될 집을 의뢰했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가더라도 자연 속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처
같은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휴식처 같은 집을 계획하는데 있어 자연 풍경은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집의 중심으로 끌고오고자
했다 필요한 실들을 대지에 맞게 배치하다보니
대지 길이가 부족하거나 전망이 아쉬워지고 복도가
늘어졌다
집 중심에 자연을 넣기 위해 중정을 먼저 계획하고
중정 중심으로 공간을 돌려가며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고 전망이 필요한 부분을 잘라냈다 중정을
기준으로 배치된 공간들을 유연하게 만들어가면서
집의 형태가 원형에 가까워졌다
주방 거실에 있을 때나 복도를 걸을 때나 아이들이
방 앞에서 놀 때나 시선은 언제나 중정을 향한다
가족들은 항상 함께 있지 않아도 시선이 닿으며 소통이 쉬워진다 중정은 자연을 담기도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만의 풍경을 담기도 한다
처마와 툇마루로 시선 및 공간이 확장되어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외부로 동선을 유도하며 주방은 자연스럽게 중정 마당까지 확장된다
큰 도로가 있는 부분의 창문은 가벽을 통해
도로에서의 시선을 차단시켰다 또, 반개구 쌓기라는
포인트 쌓기 방식을 통해 빛과 바람이 통과되면서
원형이라는 볼륨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이한
조형감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중정처럼 어느
정도 테두리가 있는 아늑한 마당을 가지면서 풍경을
깊숙하게 끌고 오기에는 충분한 형태였다 곡선
형태를 목구조로 구현하면서 만들어진 곡선 처마는
자연으로 몰입하게 만들기도 한다 동그란 집으로
둘러싼 동그란 마당은 산의 풍경을 담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들만의 풍경을 담기도 한다
93 4. 지붕 평면도 5. 중정으로 모이는 지붕 처마선
4 5
94 6. 중정 7. LDK(원경으로 켜켜이 겹친 산세가 보이며 건물이 마당을 감싸주어 온전히 가족들을 위한 중정이 만들어진다.) 7 6
8. 아이들 방 앞 복도(복도 폭이 넓어지면서 아이들의 작은 거실이 되는 공간이다. 툇마루로 공간이 확장되며 외부와도 쉽게 소통할 수 있다.)
9. 마스터룸(공용부인 거실주방 및 중정과 분리되어 개인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침실공간이다. 곡선 벽체는 아이들 방 앞까지 시선을 깊숙히 닿게한다.)
설계담당: 김창균, 배영식, 이조은, 최민희
위치: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건축형태: 신축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463 70㎡
건축면적: 148 64㎡
연면적: 141 71㎡
규모: 지상1층
건폐율: 32 06%
용적률: 30 56%
구조: (기초)철근콘크리트 매
트기초 (지상)경량목구조
외부마감재: 청고벽돌
내부마감재: (벽, 천장)도장 (바닥)원목마루
시공: ㈜시스홈종합건설
내부가구: bello creative
건축사진: 윤준환
95
9 8
건축개요
96 1. 1층 평면도 2. concept sketch 3. 단면도 4~5. 벽돌 쌓기 diagram 6. diagram 6 1 3 5 2 4
은혜의 교회
은혜의 교회 예배당은 학생들이 방학마다
수련회장으로 사용하는 자연공간 안에 세워진 작은
예배당(chapel)이다 시설의 특성상 방학 시즌은
500여명의 사람이 모일 정도로 붐비지만, 평소에는
이용자가 거의 없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첫째, 최대 30~50여명 정도가 예배드릴 수 있는
작고 따뜻한 공간
둘째, 한사람이 방문하건 30명이 방문하건 언제나
조용히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경건하고 아늑한
공간
셋째, 넓은 잔디밭 위에 세워진 오브제적인 예배당
디자인 개념은 간단하다 외부에서 예배당으로
진입하기 전에 전이공간을 두어 경험하는 이에게
기대감과 긴장감을 주고, 문을 열고 예배당 내부로
들어갔을 때 반전의 효과와 함께 성스럽고 경건한
감동을 주고자 했다
전이 공간으로 사용된 회랑 한쪽 벽면에 벽돌을
반개구 방식으로 쌓아 주변 자연과 소통하며
시간에 따라 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회랑 끝에는 천창을 설치하여 하늘의 빛을 이용해
진입하는 공간에 기대감을 주었다
예배당은 3가지의 곡면으로 계획되었다
첫 번째 잔디밭을 감싸며 세워진 곡면 벽은 학생들이
많이 모였을 때를 대비하여 야외예배 공간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두 번째 진입공간에 세워진 곡면벽은 입구성을
강조하며 자연스럽게 사람을 맞이하고자 했다
세 번째 하늘로 높게 솟아오른 천장면은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는 이에게 경건함과 숙연함을 주고 , 동시에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은 단상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벽면 하부에 길게 설치된 창문은, 앉을 때 밖이
보이도록 하였고, 기도하는 이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넓게 펼쳐진 초록의 잔디밭을 예배당
내부로 끌어드렸다
예배당 내부 재료는 콘크리트 마감을 그대로
노출하여 순수하고 경건한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콘크리트에 반사되는 묵직한 소리는 기도에 집중을
더한다 외부 마감은 따뜻한 느낌의 붉은 점토벽돌을
사용하면서 한장 한장 쌓여지는 느낌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러운 곡면벽이 되도록 하였다
97
7.
8.
8 7
야경
주경
98 9~11. 예배당 내부공간 10 9
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393
건축형태: 증축
용도: 수련시설
대지면적: 16,932 00㎡
건축면적: 159 80㎡
연면적: 159 80㎡
규모: 지상1층
건폐율: 15 89%
용적률: 21 39%
구조: 철근콘크리트 RC
시공: 우건하우징
외장마감재: 점토벽돌 Brick
준공연도: 2017
건축사진: 진효숙
99 12. 예배당 입구 앞 천창을 통해 내려오는 빛 12
11
100 1. 지하2층 평면도 2. 지하1층 평면도 3. 1층 평면도 4. 2층 평면도 5. 3층 평면도 6. 4층 평면도 7. 5층 평면도 8. 옥상층 평면도 9. 지붕층 평면도 7 4 12 5 8 3 6 9 1 근린생활시설 2 화장실 3 기계실 1 근린생활시설 2 화장실 1 근린생활시설 2 화장실 1 근린생활시설 2 화장실 3 기계실 4 주차장 1 근린생활시설 2 화장실 1 창고 1 근린생활시설 2 주차장 1 근린생활시설 2 화장실
UTAA Company의 작업 스타일
일시 2023년 4월 17일(월) 오후 3시 30분 ~ 5시 30분
장소 도시다반사 4층, 유타건축
참석 김창균(유타건축 대표 건축가), 이주연(본지 부발행인), 전진삼(본지 발행인)
Ⓦ
오늘 인터뷰는 유타건축이 수행한 프로젝트 중심
보다는 유타건축의 대표 건축가 김창균 소장님이
갖고 있는 건축 전반에 관한 생각을 중심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한국건축에서 리더의 역할이 기대되는 김
소장님이기에 그에 부응하는 역할 혹은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져야 할 분이라는 점에서 설정된
방향입니다.{웃음}
인터뷰 서두는 김 소장님의 에세이 끝부분에서
서술한 어느 대학생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강의실과 필드에서 시선의 차이를
통해 학생이 겪는 혼란스러움에 대한 메모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살펴보면 건축학 5년제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20년 넘는 시간동안
대학에서의 건축교육은 점차 개선된
커리큘럼으로 안착되었고, 그 결과 질 좋은
교육의 수혜를 입은 수준 높은 학생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필드와 대학
강의실에서 건축학 5년제 대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현
단계 대학에서의 5년제 건축학 교육의 방향성
혹은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저희 사무소는 단독주택 프로젝트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5년제 프로그램을 이수한 졸업생들이 처음 사무소에 들어와서 주택과 같은 소규모 프로젝트는 쉽게 소화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대학에서는
주택설계를 저학년 때 교육받고 그 후 점차
프로젝트의 성격이나 규모가 커지면서 졸업할
때쯤엔 거대한 도시 설계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나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막상 저희같이 중소형 사무소에서 원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건축 설계에 참조할
레퍼런스 과잉의 시대를 살아 온 세대의 특징이랄
수 있는데 정작 주택과 같은 작은 프로젝트
앞에서 그 집에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와 니즈에 집중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주제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봐왔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주택설계 수업을 받을 때 학생들이 설정하는 클라이언트가 소위 예술가, 과학자, 선생님 등등 특별한 성격의 사람들을 거주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삶의 행태를 일반화한 해석으로 설계를 진행해왔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 저희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과학자, 예술가, 선생님들 모두 전문직 종사자이기 전에 엄청 일반적인
이야기를 가진 소시민들이라는 점이에요.
그런데서부터 어긋나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
베이스의, 정작 사무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는 게 그만큼 어렵고 그들을 재교육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소마다, 프로젝트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건축학
5년제 프로그램이 좀 더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실에 기반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에세이에서 짧게
언급한 박공지붕에 대한 어느 학생의 질문에서
보듯 근본적으로는 박공지붕이라는 것을 좋은 의미로 배우지 않은 데에 연유하고 있는데, 사실 저희 사무소뿐만 아니라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건축가들도 박공지붕을 가치 있게
설계에 반영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학교 교육은
경직된 방향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할 밖에요.
대한민국의 설계사무소 50%가 대표자 1인의
건축사사무소로 운영되고 있고, 70%가 5인
이하의 사무소입니다. 그런 까닭에 소규모
사무소가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대학에서
3~5학년 때 배웠던 것과 일치되는 게 전무하다고
보는 게 맞아요. 설계경기와 같은 공모전은
모를까 일반 민간의 프로젝트로는 3층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요. 제
생각으로는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곧장 실무에 뛰어들 수 있게끔 학교 교육의 마지막 학기에는 도시적 스케일의 학습보다는 주택 설계와 같은 소규모 건축의 실질적 설계 수업을 이수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후, 5년제 건축학 교육 인증 프로그램 관련한 일반적 경향과 제도 개선의 가능성 및 이론과 실제의 간극 등에 대하여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다 } Ⓚ 에세이 모두(冒頭)에서도 적었는데요, 미국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2학년, 3학년 수업의 결과에 대한
크리틱을 하면 그 스튜디오 학생과 선생님은 기본이고, 여타 스튜디오의 선후배 동료 학생,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해당 크리틱에 참여할 수 있고, 심지어는 지나가던 이도 끼어들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들여다보는 수준이 아니라 질문도 할 수 있는 개방된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한 학교, 한 학급 스튜디오 내에서도 서로 간 질문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거든요. 남의 작업 간섭하는
것도 싫고, 내 작업 간섭받는 것도 싫은 거죠. 또 하나는 미국의 친구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일이 있었는데 첫 미팅 때 각자가 작업한 프로젝트의 성과품으로 모형을 요구한 적이 있었어요. 저 또한 참여했는데 모형작업에 관한한
DIALOGUE
리 대부분은 선수들이잖아요. 그럴듯하게 건축
모형을 만들어 가져갔는데 웬걸 저들 중에는 사과
반쪽을 자른 것을 제출한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우유갑을 구겨서 만든 오브제를 내놓기도 했고, 저처럼 소위 건축다운 모형을 제출한 이가 거의
없었던 거예요. 쇼킹했죠. 그러고는 자기들이
가지고 온 모형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내는 거예요. 근데 PM(프로젝트 매니저)도
엄청 리액션 좋게 반응하더라고요.{함께
웃음} 우리는 솔루션을 빨리 만들어내는 것에
급급해하는 반면 저들은 초반에 유연한 방식으로
굉장히 많은 스터디를 통하여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충분히 많은 대안을
검토하더라고요. 비근한 예로 우리 대학의 경우, 어느 스튜디오에서든 대안을 가지고 씨름하는
학생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최초의 안이
지도교수에게 깨지지 않는 한 의심의 여지없이
최종의 결론을 향해 달려 나가죠.{웃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유타건축에서 함께하는 구성원들은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
일단은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판단하고요, 내용적으로는 자기 스토리가
있는지를 봅니다. 멋있는 책으로 만든
친구들보다는 대학에서 5년의 건축 수업 기간
동안 어떤 이야기의 흐름을 좇아왔는지를 담고
있는 포트폴리오인가, 아닌가를 눈여겨봅니다.
아시겠지만 학생들의 제출한 포트폴리오에는 함정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타인의 포트폴리오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제출하는 이도 있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면접을 통한 질문을 비중 있게 합니다. 그렇게 선발한 이들은 3개월의 수습기간을 통해 유타의 구성원으로서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합니다. 수습기간을
통해 그 시점에 제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부를 수행하게 하는데, 내부적으로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과정으로서 저를 포함하여
구성원 모두가 안을 제출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갖게 됩니다. 현재 유타건축 안에는 그렇게
모인 19명의 파트너{편집자 주; 유타건축에서의
구성원 호칭}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들은 적어도 저보다는 훨씬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인재들이라고
확신합니다. 파트너 개개인의 능력을 모든
프로젝트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사무소 내에서의 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
유타건축에 입사한 구성원들의 내부화를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이 있나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일임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르기 위한 과정이 있을 것 같은데요.
Ⓚ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별도로 매뉴얼화 한 것은 없는 대신 30여 평
남짓의 작은 프로젝트를 소장-실장-혹은 연차가
많은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케 하면서 작은
대학 교육의 상황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교감한
하는 등 개인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을
부분이라도 실제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109 우
Ⓦ
1
유타건축 파트너들 Ⓒ김재경
주는 시스템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시 구성원들이
동참하나요?
Ⓚ
저희는 클라이언트와의 회의 자리에 해당
프로젝트의 담당 직원들이 동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인턴도 해당됩니다. 그 자리가
실제 교육의 현장이라는 점을 강조하지요.
다른 사무소에선 연차가 꽤 높은 경력자들조차
건축주를 직대면한 적이 없다고 하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네들이 사무소를 나가서 바로 자기 일을 하게
되면 당장 건축주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경험하지 못하고
독립하게 되면 밀려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키울 수가 있거든요.
Ⓦ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유타건축의 또 다른 캐릭터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
사무소 개소 후 10년이 훌쩍 넘다보니 저희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다가 독립한 친구들이
생깁니다. 많지는 않지만 그럴 때 일부
프로젝트를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함께
협업할 것을 제안합니다. 제 경우 에이텍 건축의
김상길 소장님 밑에서 실무를 쌓고 독립을
했던 즈음에 하루는 그 분이 부르셔서는 일을
하나 해보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사무소는
오픈했는데 일이 없었던 터라 그저 감사했죠.
그게 화장실 설계였어요.{웃음} 설계비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엄청 도움이 됐죠
그게 좋게 평가받게 되었고 그 작업이 계기가
되어 이후 한동안 제게 따라붙은 이름이 ‘화장실
건축가’라는 타이틀이었습니다.{함께 웃음}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현욱 소장님이 ‘나는
건축가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당시 문훈 소장님, 서승모 소장님 등 여러 명의 건축가와
함께 작업한 경우가 있었는데요,
그분들이
함께 후배들이 사무소를 시작할 즈음에
2~3년간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 환경을
마련해주는 시스템을 공동운영한 바 있었는데
방식 자체는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이런 것들을
모델로 저희 사무소에서는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건축사 면허를 취득 후 독립하는 파트너들에게 유타의 이름으로 계약한 소규모 프로젝트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입장에서는 급하게 경력사원을 뽑지 않아도 돼서 좋습니다. 실질적인 해당 프로젝트의 작업을 독립한 파트너들과 직원이었을 때처럼 함께 하는 거죠. 그들과는 일주일에 서너 번 모여서 회의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작업한다는 점에서는 확장된 의미의 유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래서 저희 사무실 영문 이름이 utaa company입니다.) 설계 크레딧의 경우, 유타건축 플러스 파트너 사무소 이름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통해 보호해주고, 그것을 통해 파트너들은 자기 사무소의 이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합니다. 이후 본인들이 더 이상의 협업이
필요치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서겠다고 했을 때
비로소 독립된 사무소로서 나아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후배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희에게도 건축주에게도 서로 윈-윈 하는
시스템이 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
그럴 경우 설계비 배분은 어떻게 합니까?
Ⓚ
6대4로 배분합니다. 파트너 사무소 육, 유타건축
사. 건축주와의 모든 미팅은 유타건축에서
진행하고, 현장은 서로가 한 번씩 번갈아
챙기는 식으로 하고, 설계 아이디어는 함께
내어 발전시키는 방식이지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니만큼 소수의 프로젝트로 독립하는
후배들에게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파이를
키우자는 모토로 그렇게 적용해오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죠. 단독주택의 경우 설계비가 많지
않으므로 일 년에 두 건 이상은 작업해야 그들이
소위 사무소 근무할 때의 연봉에 근접하게
되므로 최소한 그 기준에는 맞춰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명칭은 달라도 일부
다른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유타건축 내부적으로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가치 있는 프로그램임에 분명한데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이해시킵니까?
Ⓚ
이 경우 프로젝트의 시공 단계에 이르러 오픈합니다. 이렇게 작업했던 클라이언트들은 자신들의 건물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점에 닿아서는 이미 저희들의 작업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태라 특별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저희 사무소의 모토는 클라이언트인 고객의 만족도를 제1순위로 삼고 있는 터라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유타의 작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업의 과정에 함께한 유타 출신 신진 건축가들과의 공동작업이었다는 사실 확인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아 하십니다.
클라이언트들에게 건축가로서의 주장을 강하게
110 2. 상상어린이공원 화장실 리모델링
2
Ⓦ
어필하는 편인가요? Ⓚ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조금 다른데요.
단독주택을 진행할 때 저희는 그것이 저희들의 집이 아니고 클라이언트 그들의 집이다, 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하여 천착하고 그로부터 그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작업에 임합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보여주기 식의 특정한 형태나 디자인에 집착하지 않는 편입니다.
상가 혹은 카페와 같은 상업공간의 경우에서는 단독주택과 달리 건축 공간 이외에도 프로젝트의
사업성, 운영계획 등등에 좀 더 깊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디자인적 해법을 내놓습니다. 그렇지만
모(某) 건축가처럼 자신의 색깔이 아주 강하여
그것이 주택이든, 상가든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로 만드는 것 하고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대안을 가지고 클라이언트와 함께
장소에 맞는 최적의 대안을 찾는 작업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결국은 건축가들의
역할론으로 귀결되는데 그 건물이 일차적으로
클라이언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지어졌을
때 그 건물이 그 장소에서 공공재로 쓰일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생각합니다.
Ⓦ
유타를 찾는 클라이언트들은 어떤 경로로
연결되고, 또한 어떤 면을 보고 유타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나요? 클라이언트를 유인하는
유타만의 전략이 있나요?
Ⓚ
놀라실 수 있겠지만, 일단은 지금까지의
클라이언트들은 저 개인과 연결된 지인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무소가 10년 넘어가니까
이미 지어진 건물을 보고 집주인에게 소개받아 연락했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 번 연을 맺은 클라이언트가 제2, 제3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요.
저희는 설계비를 가지고 클라이언트를 현혹시키지 않습니다. 저희를 찾아온 클라이언트 중에는 여러 사무소로부터 설계비를 저울질한 자료를 들이미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저희의
가치관 하고는 맞지 않으니 일로 연결될 턱이 없었지요.
유타를 찾아온 클라이언트와의 첫 만남에서는
언제나 저희를 찾아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표합니다. 그분들 다수는 인터넷에 올라 있는 유타의 게시물들을 충분히 섭렵하고 오신 분들이다 보니 대화가 순조롭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유타건축에 관한 한 유튜브
검색, 블로그 검색 등 인터넷공간에서 악의적인
글이나 단점을 게시한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익명의 유튜버나
블로거들의 영상과 글에서 유타건축에 대한 좋은
인상을 접하고 오셨다는 것만큼 큰 홍보 전략이 없는 것이지요.
현재 30~40대 건축가들의 실력이 대단하여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저도 어느새 5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보니 그들의 추격을 받는 모양새라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
그동안 만나왔던 클라이언트 가운데에 가장
인상적인 분을 꼽으라면 누구를 말씀하실 수 있나요? 동시에 그분을 대하는 유타의 태도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
한 번은 제주 수산리에 주택 일을 의뢰하기 위해 사무실에 연락을 주셔서 연동에서 만났는데, 집에 대한 희망 사항과 저에 대한 자료를 묶은 묵직한 파일을 가지고 오신 거예요. 그 분량이 어마어마했어요.{웃음} 마치 아이돌을 대하듯 팬심으로 저를 대하시는 거예요.{함께 웃음} 아, 이게 뭐지? 놀람 그 자체였고, 너무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2011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얼마 후의 일이었는데 그 때만해도 변변히
내세울 만한 작업이 없었을 때였거든요.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그 분이 지금은 강릉에 두 번째 집을 의뢰하시어 작업하고 있습니다.
111
3 4
3. 보성주택 4. 제주 수산리 주택
저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라고요. 클라이언트를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면과 모형은 감사를 표현하는
매개이니 실수 없이 빠트림 없이 정성들여서
꼼꼼하게 작업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작업
동료인 우리끼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말이지요. 실력은 상대적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저를 보고 이제 자리 잡은 게
아니냐고도 하는데 저는 아직도 우리 건축계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같은
자세를 놓는 순간 대화도 끊기고, 작업의 진도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맙니다.
Ⓦ
건축가라는 직업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
건축가는 공짜로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직업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지천에 깔려 있는 풍경, 주변
환경으로부터 배움과 상상을 통한 자신만의 설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보고자하면 수없이
많은 건축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해볼 수
있는 설계와 디테일이 널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내 것으로
취하는 종족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소위 빅네임(Big Name)으로 불리는 국내외
건축가(집단)들도 설계공모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고, 존재감을 키우고, 건축의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은데 유타는 어떠한가요? 설계공모를
많이 하나요? 설계공모에 임하는 유타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오래 전에 서울시립대학교 정문을 디자인하는
설계공모가 나와서 대학 캠퍼스의 정문은 이래야 해, 하면서 정작 문이 없는 정문의 안을 제출하여 당선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이거다 하고
꽂히면 올인 하는 스타일이긴 합니다.{웃음}
고덕강일지구 대단위 아파트 단지 설계공모에도 응모하여 낙선한 바 있는데 그 때는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주거 유형에 대해 건축가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면에서 참여했습니다. {대형 화면상의
용인 벗이미술관 프로젝트를 가리키며} 이 경우는
장애인 예술가들을 위한 미술관 프로젝트로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미술관이니 한 덩어리로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는데 저는
반대로 덩어리를 나눠서 펼친 평면으로 제출했고 결과적으로 당선했습니다. 장애인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저희의
사무소 초기에는 공공으로 나오는 설계공모에 많이 참여했지만 지금은 민간 프로젝트 중심이다 보니 일 년에 한두 개 정도 설계공모에 참여합니다. 공모전의 경우 사무소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된 과정이기보다는 모든 공모전은 당선을 목표로 두고 임합니다. 물론 건축가로서 주장을 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공모전에 참여할 때도 있는데 일례로
생각이 잘 먹혀들어간 경우이지요.
근래에 들어서는 민간으로부터 의뢰받는
프로젝트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설계공모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반면에
설계공모에 임하는 에너지를 민간 프로젝트에 쏟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112 4. 서울시립대학교 정문 현상설계 당선작
Ⓚ
Ⓦ
4
국내 건축사무소 중 유타와 경쟁관계 혹은
영향관계에 있는 사무소를 꼽으라면 어디가 있을까요?
Ⓚ
잘 하는 사무소들이 참 많은데요, 경쟁관계는
아니고 영향을 받는 선배 사무소라면 이로재, 매스스터디스, 솔토지빈 등 존경스러울 정도의
사무소들을 들 수 있고요, 동년배 혹은 후배
사무소로는 조호, 포머티브, 제이와이에이, 에스오에이 등등에 특히 시선이 갑니다.{웃음}
Ⓦ
근래에 건축설계 시장의 변화된 양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예전엔 가로변의 3~5층 소규모 건축물, 근생과 같은 중간건축에 대하여는 건축가들의
작업량도 적고, 설사 작업했더라도 건축 잡지
등 매체에 소개될 기회도 많지 않았는데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신진 건축가들이 그것들을
통해 데뷔할뿐더러 국내외 유력 온오프라인
건축매체에도 종종 등장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확실히 과거와 달라진 모습입니다.
Ⓦ
현재 국내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의 경향성에
대하여 동료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기인한다고 여기나요
Ⓚ
누군가는 현재 국내의 젊은 세대가 작업한
양상을 보면서 잘 만들기는 한데 개성이 보이지
않고, 그게 그것 같다는 뼈 있는 지적을 합니다.
?
Ⓚ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파트너들 저마다가 정체돼
있지 않으며 매일매일 배우며 성장하는
건축사무소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잘 만든 프로젝트를 누군가가 보고
그것을 본 분들이 저희 사무소의 이 테이블에
와 앉아계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입니다. 선순환이죠
실제로 가로변 상업건물의 경우 일조권, 사선제한
등 건축법규를 받다보니 다르게 할 수 있는
여지없이 비슷비슷한 결과물이 생산됩니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프로젝트가 커지면 아무래도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유리한데 젊은 건축가들에게 작업할 기회가 주어지지를 않지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건축에 쓸 수 있는
외장재가 열 가지도 안 된다는 것도 한계라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지어지는 건물이 유사동형, 한 사무소의 작업이야? 하는 지적을 받는 거죠 {웃음} Ⓦ 유타건축, 건축가 김창균은 어떻게 각인되기를 바라고 있나요?
Ⓦ
김 소장님은 어떤 건축에 관심이 많습니까?
Ⓚ
공간 자체의 깊이가 있고, 울림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단순도형의 기하학에 기반한
건축공간에 사람을 걷게, 움직이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
유타건축의 직원들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마련한
복리후생적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요?
113 5. 용인 벗이미술관
Ⓚ
5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제가
건축사무소의 직원이었을 때 받아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저희 사무소에 입사하여
3년이 지나는 시점에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안식년으로 1년을 보내듯 안식월 개념의
1개월 유급 휴가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는
일정 금액의 해외 여행비를 보조하여 2주간
휴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식월
또는 해외건축여행을 다녀온 결과를 직원들
모두에게 보고하는 형식의 자체 세미나를 해오고
있습니다.
근무형태로는 주5일 근무제로 금요일 4시 퇴근,
그리고 12월 23일에 무조건 종무식을 하여 새해
시무식 시점까지 각자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갖는 것을 정례화 해오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직원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봐 왔던 국내외 건축
현장 및 다양한 장소들을 직접 밟으며 경험을
쌓아가는 기회를 갖게 되고 결국 그런 개개인의
경험들이 모여 사무소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회사가 여행비를 보조하여 저 포함
열아홉 명의 파트너들이 서너 명씩 짝을 이뤄서
각 조마다 관심 있는 가까운 일본 도시와
건축물을 보러 가는 계획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
『평면의 정석』이란 제하의 주택 작품집을
발간하셨는데 기획의 배경이 궁금하고, 단행본
발간이 사무소에 미친 효과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
주택 프로젝트를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서점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서점
매대에 진열돼 있는 주택설계 관련 단행본이
10종 남짓이었고 안타깝게도 거의가 일본
책의 번역본이었습니다. 일본 주택이 그만큼 잘
만들어진 까닭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국내에서는
매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발표시점에 즈음해서
한국은 어째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가?
자조 섞인 비판을 많이 하지만 이 같은 주택설계
관련 책 하나 직접 생산해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언감생심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으로, 우리의 주택설계 자료로, 단행본을
내보자는 데에 생각이 미쳤던 것입니다. 첫 삽은
유타건축이 작업한 54개의 주택 프로젝트를
묶어서 내고 향후 10명의 건축가(사무소)의 주택
단행본을 차례대로 발간해보자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되었던 겁니다. 그렇게 하여 발간된 한 권 한 권이 단순히 주택작품집으로 존재하기보다 모여서 한국 주택건축의 아카이브가 되고, 2020년대 한국 건축의 지형도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집이 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오늘날까지 일본의 다다미가 깔려 있는 주택설계
정보로 채워진 책을 통해 우리의 주택설계에
참고한다는 것은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란 생각이
컸습니다. 다음 책의 바통을 이어받는 건축가가
추천사를 쓰는 형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었는데
두 번째 책은 포머티브건축사사무소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저희가 출판한 『평면의 정석』은
2쇄를 준비하고 있는데 책을 내고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한때 EBS에 저희 사무소가
소개되었을 때처럼 찾아오시는 클라이언트들이
저희의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발간 정보를 먼저 알고 책의 내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지요. 건축계 내부적으로는 소중한 자료를 공개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해당주택의 건축주들도 대부분 흔쾌히 출판에 동의해주셨습니다.
Ⓦ
앞에서 잠시 얘기 나눴지만 유타건축 김창균
소장님은 ‘화장실 건축가’로 유명세를 탔고, 현재는 ‘주택설계 전문 건축가’라는 타이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렇듯 특정 장르의 건축가로
불리는 것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법한데
실제로 어떠십니까?
어느 특정 시간대에 유사 성격의 프로젝트가
많아지면서 사무소 혹은 저 개인의 캐릭터로
굳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처음에는 다른
프로젝트를 못할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젝트의 성격에 변화가
생기면서 발전적으로 진화한다고 봅니다. 그런
연유로 사무소 이미지의 특화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에게 첫 번째
주택 프로젝트를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화장실
건축을 보고 아, 이 사람이면 30평짜리 작은
주택설계도 꼼꼼하게 정성을 다해 잘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하셨다고 하고, 이후 주택
프로젝트를 관심 있게 보신 분들이 카페나 사옥
같은 프로젝트를 의뢰 하시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덕분에 최근에는 카페와 중소규모 근생
프로젝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
김 소장님은 소위 전국구로 활동하고 있으신데
비결이 있나요? Ⓚ
아마 첫 번째 민간 프로젝트가 전남 보성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희가 설계하는 주택이 모두 서울 중심의 수도권에 몰려 있다면 행복한
일이겠지만 그런 식으로 일을 가려서 하면
아무래도 사무소의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마련입니다. 건축사무소 중에는 종종 지방에 짓는 주택설계는 맡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려오는데
저희는 지역과 규모 불문하고 서울 중심의
주택설계에 준하는 자세로 임합니다. 당연히
저희 입장에서도 지방에 주택 한 채를 짓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이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론 각각의 주택이 지어지는
그 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예전에 고 박철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요, 설계비로
덤핑은 하지 말고, 받을 것은 받되 지어지는
장소 따져가며 작업하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당시에는 “주변에 건축가의 작업과 허가방의
작업만이 있고 70프로 정도의 중간 건축 영역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그 시장을 개척하면 어떤가?”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멀고 작더라도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감사히 받으라던 말씀이 제겐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최근 교수님의 말씀이 예언처럼 적중하고 있구요. Ⓦ
유타건축의 영문 명칭에 ‘태블릿’이란 단어가 눈에 띄는데요, 각각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도시의 여백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유타를 영문 이니셜 ‘UTAA’로 조합하는 과정에서 ‘T’의 의미를 태블릿(Tablet)에서 찾은 셈인데 일종의 땅, 사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Actualized입니다. 즉 그림이 아닌 실제로 사람들에게 작동하는 건축을 지향합니다. Ⓦ
기타, 하시고 싶은 말씀은?
114 Ⓚ
Ⓚ
Ⓚ
서울시의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이
강남, 강북에 걸쳐 노후화된 건물의 수가 정점에 이르러 설계시장도 뜨거울 거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작년과 올해 경기가
하강 국면에 있긴 한데 손봐야 할 물량이 피크에
이름으로써 장차 우리 건축가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에 대비할
경쟁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는 저희 사무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고, 건축계 공통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건축계의 허리를 이루고 있는
40~50대 건축가들의 저변이 더욱 단단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몇몇 스타 건축가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공의 가치를
높이는 의미로운 건축을 해나가는 데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가장
현실적이고 평범하며 일상 속에서 접하게 되는
대상으로 우리들의 몸과 소통해야 되고,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K-컬처에 준하는 K-건축의
가능성을 찾아서 해외 시장의 공략에도 기회를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입국 목적에 한국의 건축물 투어를
위해 입국했다는 수치를 높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한국의 도시 건축
상황이 품은 특수해를 중심으로 세계 보편의
가치를 찾아내고 알리는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2023년도 시행안
본지는 2010년 이래 ‘꾸밈 건축평론상’과 ‘공간 건축평론 신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한국 건축평단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동안 3회(박정현), 5회(이경창), 6회(송종열), 10회(최우용)에 걸쳐 현 단계 한국
건축평단의 새얼굴을 배출한 통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러나 2020년 제11회에 수상자를 내지 못한 채 지나온 것에 이어서 2021년에 공모한
제12회에는 응모자가 한 사람도 없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종전까지의 건축비평상 공모제 시스템이 날로 무한 확장되는 개인 미디어 세계에서는 1년 주기의 시간적 형식성이 경쟁력을 잃었고, ‘비평상’이란
구시대적 발상의 제도 자체도 이미 낡아버린 양 합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지난해부터 본지는 건축비평상 제도에서 탈피하여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로 선회하였습니다.
건축평단에 관심 있는 건축인들에게 활짝 문을 열고, 일련의 단계를 거쳐 등단이
가능한 공모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종전의 건축비평상 응모자격에서 만 40세 이하로
제한했던 나이 제한도 없앴습니다. 건축평론 공모 추천 3회(작가론, 작품비평, 시론 각 1회)를 통과한 응모자(제출 순서는 자유)에게는 본지가 발행하는 등단 증서와 함께 《와이드AR》 필자로 대우하여, 지속적으로 집필 기회를 제공합니다. 매번 추천된 응모작은 본지에 게재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WIDE [영화로 건축 읽기] Academy 2023
2차 학기 프로그램 발표
; 5월 정규과정 6차
; 6월 정규과정 7차
주관 와이드AR
주최 간향클럽
조직 전진삼(organizer, 와이드AR 발행인), 강병국(instructor, WIDE건축 대표), 허은광(film theorist,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무국장), 이윤정(sponsor, 현일건축 대표, 대한여성건축사회 회장), 주성진(sponsor, 성학건축 대표)
문의 02-2235-1960, widear@naver.com
*W/A는 회원제로 운영됩니다. 프로그램 관련 정보는 네이버카페 <와이드A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페 주소: https:// cafe.naver.com/aqlab) 일회성 참여를 원하는 분들은 네이버카페 해당 게시글에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2023년 5월 W/A 정규과정 6차 프로그램
[추천위원]
김영철, 송종열, 최우용, 함성호
[접수] widear@naver.com
- 응모작 제목 앞에 ‘[건축평론 응모]’라고 기입 바람
- 응모작은 ‘한글 또는 워드’ 파일과 ‘pdf ’ 파일을 동시에 제출 바람
[접수 마감]
- 매월 25일
[응모 부문 및 분량]
1) 작가론 또는 작품비평(200자 원고지 50~60매 분량으로, 본문 10폰트 사용
A4용지 출력 시 6~7매 분량)
2) 시론(200자 원고지 25매 내외 분량으로, 본문 10폰트 사용 A4용지 출력 시 3매 분량)
- 참고 도판 및 사진은 분량에서 제외하며 별도로 제공 바람
- 각 부문 원고의 분량 초과 제출은 가능하며, 이 경우 원고료 산정에서는
제외함
[기타]
- 원고 말미에는 ‘휴대전화번호’와 ‘성명’을 기입하기 바람 - 추천 통과 여부는 접수 시점 기준으로 1개월 내에 개인 e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로 통보함
프로그램 : 비아케 잉겔스의 위대한 도전(BIG TIME, 2017)
일시 : 2023년 5월 31일(수) 7:00pm
장소 : 노아빌딩 3층 아카데미홀(인천광역시 연수구 인권로 27)
> 2023년 6월 W/A 정규과정 7차 프로그램
프로그램 : 인피니트 해피니스(The Infinite Happiness, 2015)
일시 : 2023년 6월 26일(월) 7:00pm
장소 : 노아빌딩 3층 아카데미홀(인천광역시 연수구 인권로 27)
123
간향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우리는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통합의 지렛대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건축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 Party》
지역 건축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응원하는 《ICON
Party》
인천건축의 디자인 리딩 그룹을 선정하는 《Incheon
Architect 5(I.A.5)》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내일의 건축에디터&저널리스트를 위한 《와이드AR
건축저널리즘워크숍》
건축 비평 무크 《critica(크리티카)》
건축가(집단)의 모노그래프 출판 《wide document》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WIDE 아키버스》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WIDE[영화로 건축 읽기]Academy(W/A)》
실시간 ZOOM으로 진행하는 건축 대화의 창
《와이드AR [LIVE 티백]》
건축 잡지&저널리즘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하는 《한국건축저널리즘연구회》
인천도시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준비하는
《인천건축발전연구소》
등 일련의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간향클럽 사람들
mc 1 프로듀서 전진삼 사진총괄 김재경
섹션편집장 박지일 편집위원 김태형, 백승한, 이태현, 최우용 디자이너 심현일, 디자인·현
mc 2 사진위원 남궁선, 노경, 진효숙 건축평론 추천위원 김영철, 송종열, 최우용, 함성호
mc 3 제작 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 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인쇄 제작 서울문화인쇄 인쇄인 강영숙 제작국장 김은태 관리부장 손운일
mc 4 독자 관리 박미담 과월호 관리 심상하, 선인장 총판 대표 심상호, 정광도서
직판 대표 박상영, 삼우문화사
mc 5 자문단 강병국, 강승희, 고영직, 고충환, 김종헌, 김정후, 박병상, 박성용, 박영채, 박정현, 박진호, 손장원, 신용덕, 신창훈, 안철흥, 우종훈, 이경창, 이승용, 이정범, 이종우, 이중용, 이충기, 전진성, 정귀원, 허은광, 현명석, 황순우 명예고문 곽재환, 구영민, 김연흥, 김인수, 김정동, 박길룡, 박승홍, 우경국, 이백화, 이상해, 이종건, 임창복, 최동규
대표고문 임근배
mc 6 운영위원 김종수, 김창균, 손도문, 이윤정, 최원영 부발행위원 박유진, 이수열, 이치훈, 임성필 발행위원 김기중, 김태만, 박민철, 우의정, 임재용, 조남호, 하광수 패트롱 김용남, 오섬훈, 이태규, 장윤규, 정승이, 조택연, 최욱, 한승윤
mc 7 부편집인 김재경 부발행인 이주연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mc 8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도연정, 서효원, 이상명, 임한솔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영철, 김현섭, 서정일, 한동수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심원문화사업회 이사장 이태규
mc 9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팀원 최지희, 고현경, 김찬양, 윤은지, 류혜주, 김아진, 권혜주(인턴)
124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건축가 초청강의’
〈시즌6〉 Architects in Korea
3라운드; The Middle Generation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수류산방, Knollkorea 후원 간향건축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s://cafe.naver.com/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3년 5월(제187차) Architects in Korea 22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Ⅶ
EDITORIAL
한국 건축의 Emerging Power
ARCHITECTS
전진홍, 최윤희-바래
김효영-김효영건축사사무소
김영배-드로잉웍스
조세연, 이복기, 최민욱-노말
이야기손님 : 강제용(이데아키텍츠 대표)
주제 : Resolution
일시 : 5월 17일(수) 7:30pm
장소 : Lighthouse(서울시 중구 을지로 146-1, 5층)
> 2023년 6월(제188차) Architects in Korea 23
김근혜, 박민성, 이원길-플라노건축사사무소
서자민, 허근일-아지트스튜디오
김세진-지요건축사사무소
한지영, 황수용-라이프건축사사무소
고석홍, 김미희-소수건축사사무소
박정환, 송상헌-심플렉스건축사사무소
강승현, 김나운-스튜디오 인로코
ESSAYS & WORKS
리서치-인스톨레이션-프로젝트
표현과 낯선 어휘와 지나침의 수사
자연스런 건축 짓기
NOMAL+BALANCE=NOMALANCE
플라노 홈즈의 추리
덩어리와 텍토닉 서자민, 개인적 집요함의 건축
사용자의 시선에 다가가는 건축의 의도 드러내기
어반 티슈의 개별성과 보편성 모색 Simple+Complex=SIMPLEX 목표 장면(들)을 향한 진심 지킴이
NOTICE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이야기손님 : 김종서(제로리미츠 건축 대표)
주제 : 0이 되지 않기 위한 1의 고민, 도전, 실패, 성과
일시 : 6월 14일(수) 7:30pm
장소 : Lighthouse(서울시 중구 을지로 146-1, 5층)
제32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2023 W/A 2차 학기 오리엔테이션(3차)
2023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제185차-제186차 땅집사향
125 《와이드AR》 2023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7
《와이드AR》 2022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6
《와이드AR》 2021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5
SE05 SE06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Ⅵ
EDITORIAL
강호의 고수들
ARCHITECTS
구승민, 스튜디오 꾸시노
김종수, 원스퀘어미터 건축연구소
김태성, ㈜간삼건축
이수열, ㈜토문건축
이재혁, ㈜에이디모베건축사사무소
임성필, ㈜집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홍만식, ㈜리슈건축
ESSAYS & WORKS
솔기의 상상 구승민; 갤러리, 주택, 펜션 무심한 아름다움 김종수;
대사관, 골프 클럽하우스, 목조주택
인간 시간 공간 김태성;
오피스, 연수원, 연구소, 학교, 상업시설
유형의 건축 이수열; 관공서, 캠퍼스시설, 가톨릭교회
놀이터 같은 최소한의 집짓기 이재혁;
협소주택, 상가주택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종교건축 임성필;
교회건축, 공공도서관, 교육시설
좌향 여백 표층 홍만식; 주거, 근린 복합시설, 일상건축
NOTICE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1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73차-제174차 땅집사향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Ⅴ
EDITORIAL
한국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리더들에게
PROLOGUE
ESSAYS
건축이란 무엇인가?
& INTERVIEW
김남건축(김진휴, 남호진)
OA-LAB(남정민)
아이디알건축(이승환, 전보림)
준 아키텍츠(김현석)
이용주건축스튜디오(이용주)
착착 스튜디오(김대균)
포머티브건축(고영성, 이성범)
비유에스건축(박지현, 조성학)
박지일
SE04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Ⅳ
EDITORIAL
나의 건축 인생작
ESSAYS
강병국_광양장도박물관
최문규_KIST 숲속 어린이집
정재헌_양평 펼친집
이관직_영남대60주년기념 천마아트센터 이한종_가르멜의 모후 수도원
손진_아이뜰유치원
임형남, 노은주_제따와나 선원
김광수_부천아트벙커 B39
김재관_유진이네집
이은석_새문안교회
강승희_여목헌
김동원_분당메모리얼파크 사옥
심원건축학술상
《와이드AR》 2020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4
공모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SE 04 강병국 Kang Byungkuk 최문규 Choi Moongyu 정재헌 Jeong Jaeheon 이관직 Lee Kwanjic 이한종 Lee Hanjong 손진 Son Jean 임형남, 노은주 Lim Hyoungnam, Roh Eunjoo 김광수 Kim Kwangsoo 김재관 Kim Jaegwan 이은석 Lee Eunseok 강승희 Kang Seunghee 김동원 Kim Dongwon
NOTICE 제12회
추천작 발표 제29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제11회
묻다
이제는 건축가의 호칭에서 ‘젊은’ 수식어를 빼자!
vs.
NOTICE 제13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0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와이드AR》 2019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3
《와이드AR》 2018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2
와이드AR》 2017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1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Ⅲ
EDITORIAL
X세대 건축가들의 자서전
ESSAYS
김주경 OUJAE Architects :
나의 건축 인생 연대기 혹은 기억조작
김범준 TOPOS Architectural Firm : 오리지낼러티
탐문의 건축여정
김태만 HAEAHN ARCHITECTURE :
실패의 역사 (to be) unbuilt
이상대 spaceyeon architects :
어느 건축 마라토너의 방백傍白
임영환 D·LIM architects :
‘지속가능한’ 아마추어 건축
김선현 D·LIM architects :
꿈꾸는 자의 행복한 건축
조성익 TRU Architects : 냅킨 드로잉
박창현 a round architects : 몇 가지 단서들
김세경 MMKM : 건축이라는 올가미
민서홍 MMKM : 건축 짓는 농사꾼의 길
조진만 JO JINMAN ARCHITECTS :
어느 젊은 건축가의 회상
홍재승, 최수연, 이강희 PLAT/FORM : 풍경風景, 반 풍경 그러나 알레고리
NOTICE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제28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장학제 공모
PUBLISHER’S COLUMN
ARCHITECTS IN KOREA Ⅱ
EDITORIAL
한국 건축의 새 판을 여는 젊은 리더들의 12가지 화법
ESSAYS
건축의 엄밀성과 농담, 혹은 사랑과 체념 : aoa architects
건축이 남긴 이야기들 : CHAE–PEREIRA architects
새로운 프로세스와 시스템 : EMER–SYS
경계에서의 점진성 : EUS+ architects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리드하는 건축, 건축가 : johsungwook architects
엘리스의 비눗방울 놀이, 그리고 일상 속 이야기 생성 : L’EAU Design
스타일의 전략–작업의 방법에 대한 근본적 이해 : Min Workshop
근대 건축, 수용과 변용의 미 : OFFICE ARCHITEKTON
들띄우기와 흰색 그리고 부산 : RAUM architects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한 발견의 방식, 질문 : Samhyun Urban & Architecture
길, 에움길, 샛길 : SUPA schweitzer song
따뜻한
그리고 10+ : UTAA
PUBLISHER’S COLUMN
ARCHITECTS IN KOREA . Ⅰ
EDITORIAL
젊은, 내일의 건축 리더들이 말하는 우리 건축 장場의
단면
PROJECTS : OFFICE INFORMATION
a.co.lab : 휴먼 네트워크의 수행자
BOUNDLESS : 관계의 진화를 엮는 전술가들
designband YOAP :
3인 3색의 피보나치 수열로 건축하는 집단
FHHH Friends : 좌충우돌 화려한 팀플레이 집단
HG–Architecture :
디지로그의 세계를 실천하는 스튜디오
JYA–rchitects :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로 무장한 팀워크
mmk+ : 한 방의 장외홈런 다음을 준비하는 히어로
OBBA :
건축, 내러티브의 소중함으로 승부하는 사무소
stpmj : 아트와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이어니어
Z–Lab : A to Z, 콜라보&커뮤니케이션스 컴퍼니
NOTICE
제9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결과 발표
당선작 :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
수상자 : 강난형
《
건축
NOTICE 제10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결과 발표 당선작 : 해당작 없음
SE 03 한국의 건축가들 SE01 SE02 SE03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통권 86호, 2023년 5-6월호, 격월간
2023년 5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잡지창간 등록일|2008년 1월 2일
창간호 발행일|2008년 1월 15일
잡지사업 변경 등록일|2021년 1월 7일
등록 번호|서대문, 마00029
발행인 겸 편집인|전진삼
발행소|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주소|03733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문공원길 13, 5층 (현저동, 극동프라자) Spacetime 전화|02-2235-1960
홈페이지|간향클럽
ganyang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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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와이드AR cafe.naver.com/aqlab ; 《와이드AR》의 오프라인 활동 소식 등 건축 관련 다양한 콘텐츠 이용 가능 커뮤니티
네이버 밴드|와이드AR 프렌즈 band.us/@widearfriends ; 《와이드AR》 구독자, 후원자, 건축 팬덤 대상 건축계 정보 직배송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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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네트워크와의 연계를 지원합니다.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질적 수익 효과의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고민해 드립니다.
제작사양
표지 지질: 아트지 300g 횡목
내지 지질: 미스틱 105g 횡목
주 활용서체 및 라인선스
표지 및 본문: SM/직지폰트
라이선스 명: 프리 라이선스
사용기간: 2023.04.28.~2024.04.28.
인증코드: RW2304282T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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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판 정광도서
매대명: 선인장
담당자: 심상하 방장(문의: 02-725-9470)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56 (통인동) 1층
* 2008년~2010년 발행본: 현재 1호~18호까지 품절되어 구입 불가합니다.
* 그 외 과월호 구입: 2011년~2022년에 발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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