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no.84,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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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11-12, no.84

김재경의 PHOTOSSAY 24 [20]

건축 미학자의 편지 04 [38]

건축적 속성과 미학적 한계 김원식

김정동의 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09 [40]

RESEARCH [48]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19 이연경

강화도의 20세기

GAIA TOPIC [36][66]

깊은 고요함(deep silence) 편집실

READING LISTS [54]

건축 생산 역사

구조

땅은 잘못 없다

반포성당 짓기 1

한나 아렌트 평전

RISING ARCHITECT 14 [56]

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 최유일 이태현

SPECIAL FEATURE [67]

건축가 박승홍

Seunghong Park Architect

SKETCHES & STORIES [68-121]

IFEZ아트센터

노들섬 공연장

수자원공사 파빌리온

인천공항 제2 터미널 설계경기

ESSAY [68-121]

4프로젝트의 스토리 박승홍

DIALOGUE [70]

박승홍

dmp 대표 건축가와의 대화 박승홍, 백승한, 전진삼

CREDITS [121]

NOTICE

WIDE [영화로 건축 읽기] Academy 1년차 정규과정 3차 프로그램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 접수마감

2022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시행 제181차-제182차 땅집사향

Contents & Flow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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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미지 설명: IFEZ아트센터 스케치 Ⓒ박승홍
구분 콘텐트 생산자 지면 인물 박승홍 강병국 122 최유일 김기중 8 김기현 122 김명규 16 김승환 표4 장소 IFEZ아트센터 김영철 표2 노들섬 공연장 김용남 9 수자원공사 파빌리온 김원식 38, 55 인천공항 제2터미널 김인수 14 하월곡동 산2번지, 밤골 김장섭 14 영국 런던 템스강 김재경 20, 55 강화도 김정동 40 김종헌 55 김태만 1 예술 Organism 2022-1 김현섭 표2 문신 김효영 123 박민철 123 사무소 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 박상일 19, 55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박인석 54 박지일 123 백승한 67, 68 사건 WIDE[영화로 건축 읽기]Academy 3차 백종운 17 제15회심원건축학술상응모작접수마감 사만다 로즈 힐 55 땅집사향(181차-182차) 서정일 표2 ICON Party vol.017 신민재 55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신창훈 18 오섬훈 6 추천도서 건축 생산 역사 윤세한 1 구조 이백화 5 땅은 잘못 없다 이승용 13 반포성당 짓기 1 이연경 48 한나 아렌트 평전 이윤정 14, 122 이종숙 14 파트너십 가로건축 이지응 55 건축공감 이태규 표2, 표3 마실와이드 이태현 56 삼현도시건축 임근배 123 수류산방 임재용 11 시공문화사 장윤규 18 심원문화사업회 전진삼 14, 67, 68, 123 어반엑스건축 전진홍 123 엠에스오토텍 정승이 10 오씨에이건축 J.E.Gorden 54 운생동건축 조진영 18 원오원아키텍스 조택연 12 유스페이스건축-메가판넬주성진 122 유오스 최욱 3 자연앤인문집 최원영 15 제효 최윤희 123 퓨즈랩 편집실 14, 122, 123 한국잡지협회 한동수 표2 해안건축 한제임스정민 7 헌터더글라스 코리아 현일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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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20-35

김재경은 인문학적 감각과 절제된

심미성을 바탕으로 공간과 건축, 인간의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가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사진집 『자연과 건축』, 『MUTE』, 『MUTE 2: 봉인된

시간』, 『수원화성』(공저) 및 『셧

클락 건축을 품다』,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의원』(공저), 『반포성당

짓기(1권)』(공저)등의 책을 냈다.

현재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이다.

pp.38-39

김원식은 필명인 김미상을

사용해왔으나 최근 출판사의 권유로

원명 김원식을 사용하곤 한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 및

석사 졸업했다. 이후 벨기에 루벵

가톨릭 대학교에서 예술사학과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한양대학교 교수 및 단우

도시 건축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예술사학자, 건축역사가로서 건축, 미술, 무용 등의 역사이론,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pp.40-47

김정동은 1970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근대건축사 연구로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목원대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명예교수).

이후 세운상가 내에

「우리근대건축연구소」를

열고, 운영해오고 있다.

건축문화재분야(건축시공기술사)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다. 토탈디자인

전문지 격월간 《꾸밈》의 주간을

역임했고, 도코모모코리아 창립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문화재청 근대건축분야

문화재위원장을 역임했다.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본지

명예고문이다.

pp.48-53

이연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 박사를

취득했다. 심원건축학술상 제6회

수상자이다. 현재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이다. 저서로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및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공저),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공저),

『쉽게 읽는 서울史(현대편 2)』(공저),

『서을 역사 답사기 5』(공저),

『동아시아 도시이야기』(공저) 등이

있다.

pp.56-65

최유일은 경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황두진 건축사사무소에서

가구, 건축, 공공프로젝트 등

다양한 실무를 쌓은 후 2015년

모노라이즈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건축사이며, 현재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pp.56-65

이태현은 THE A LAB(에이랩 건축연구소)의 대표 건축가이다.

국민대학교 건축대학을 졸업하고, 바틀렛 건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Distinction으로 졸업했다.

‘2017국제건축문화교류’에서 Best Fellowship을 수상했고, ‘2019

사회혁신 리빙랩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2021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미래학교’의 참여 작가이다.

국민대, 한양대, 서울시립대에서

건축설계와 도시건축디자인을

강의했다.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

운영위원이며 동양대학교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rofile of the Writers and Protagonists

pp.66-121

박승홍은 독일 베를린 대학을

거쳐 미국 미네소타 건축대학, 하버드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I. M. Pei and Partners와 Anshen and Allen, San Francisco 등에서 Design Principal로 활동한 후, 정림건축 디자인 대표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디엠피건축 대표이다. 2005년 현대해상 화재보험 광화문사옥으로 건축문화대상 본상(국무총리상),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서울시민사랑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06년 청계천문화관으로 건축문화대상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한강예술섬 서울 공연예술센터, 인천아트센터,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김대중컨벤션센터(증축), 신안 환기미술관, 송도 온누리캠퍼스 등이 있다. 미국건축가협회 정회원과

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이다. 저서로 『DESIGN SKETCHBOOK』(전

3권)을 냈다.

pp.68-121

백승한은 부산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설계 및 건축역사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주요 연구

관심분야는 학제 간 도시연구, 하부구조론, 일상생활의

철학적 담론, 공동체와 공공성, 분위기와 정동이론, 신유물론, 동아시아의 시각문화와 매체경관

등을 포함한다. 최근 연구는

《Positions: Asia Critique》와

《Korea Journal》을 포함한 다수의

국내외 논문집에 게재되었다. 또한

정림건축의 《SPACE(공간)》 특별호

『일상감각: 정림건축 50년』(2017)을

총괄 기획하였으며, 서인건축

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

『다른, 상징적 제스처들: 서인건축

40년의 비평적 탐문』(2018)의 주요

저자로 참여하였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68-121

전진삼은 제4회 꾸밈

건축평론상(1988)을 수상하며

건축평단에 들어섰다. 월간

《공간》 편집장 역임하고 월간

《건축인(poar)》을 창간하여 초대

편집인 겸 주간을 맡았다. 13년간

계간 《황해문화》 문화비평/건축

고정필자로 활약했으며, 1980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건축의 발견』, 『건축의

불꽃』, 『조리개 속의 도시, 인천』, 『건축의 마사지(1권, 2권)』

등 비평집과 『건축은 없다?』

『IMAGEABLE PLATE-AU』 등

다수의 공저를 냈다. 현재 본지 발행인이다.

p.122

강병국은 현재 WIDE 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 1세대 건축가 박춘명에게 사사했고, 동우건축에서 설계소장을 역임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 서울시건축상 ‘우수상’(2009, 세브란스 종합관), 경기도건축문화상 ‘동상’(2008, 상연재), 아산시건축상 ‘대상’(2008, 호서대 벤처산학협력관),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2004, 논산 쌘뽈요양원/유치원) 등이 있다. 성균관대/명지대 겸임교수(2002~2017)로

재직했으며,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부위원장(2009~2011)직을

수행했다. 2012년 이래 현재까지 ‘WIDE건축영화공부방WIDE[영화로 건축 읽기]Academy’를 이끌고 있다.

p.123

김효영, 전진홍, 최윤희는 본문에 약식 표기함

4
www.jehyo.com 김효만: Sailing House|사진: 문정식
karoarchitects.co.kr
www.megapanel.co.kr
www.oca.kr

Fu’s Lab

HYPER HOUSING

Cho,Taigyoun

Song,In jo

Lyu,Xin

Hwang,Yeongji

Kim,Sojung

Liu,Xu

Wei,Ranran

Li,Qi

You,Yang

Woo,Jihee

Sheng,Weiwen

Liang,Zhiqi

Yang,Mingyue

Hwang,Jeongseok

Ji,Zexin

Xiao,Xiaoyu

Lee,Youngeun

Li, Xinyi

Ma, Guanyi

Li,Haoyang

ICON Party 017 Conference 마을 동산바치들이 만드는

비밀정원 이야기

보통 사람들의 정원에서

녹색도시의 비전 찾기

강사 김인수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소장

주관 와이드AR 주최 간향클럽, 2022 인천건축문화제조

2022 인천건축문화제 초청 건축세미나

*이 프로그램은 현일건축(대표 이윤정)이 협찬합니다.
직위원회 후원 인천광역시,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건축사회 ● 일시: 2022년 11월 11일(금) 오후 5시
장소: 인천건축사회관 2층 강당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03-1, 문의: 032-437-3381, 02-2235-1960

Life with magazine 잡지가 있는 삶

근현대잡지 특별전

10.28. – 12.31.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

제15회 잡지 미디어 콘텐츠 공모전

10.28. – 12.31.

한국잡지정보관 내 M미술관

제57회 잡지의 날 기념식

11.1.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매거진 콘서트

11.5.

송파책박물관 어울림홀

코리아 매거진 콘퍼런스 11.10.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

11.1–11.10

주최 • 주관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가 그리고 무한히 늘어나는 이것이

함께 둥글게 뭉쳐 영원히 발전하여 무한히 뻗어 오르는 것.”

[프랑스 바르카레스항에 설치된 〈태양의 인간〉(1970)을 구상하며 문신이 작성한 친필 메모의 일부.]

[전시] 문신(文信) : 우주를 향하여 2022.9.1.~2023.1.29.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Moon Shin Retrospective : Towards the Universe September 1, 202 2-January 29, 2023 MMCA Deoksugung

[도록] 『문신 文信 : 우주를 향하여 Moon Shin Retrospective : Towards the Universe 』

일시 一始 Monograph 2022년 8월 30일 출간.

무종 無終 Commentary 2022년 11월 출간 예정.

국립현대미술관[MMCA]+수류산방[SuRyuSanBang] | ● 4×6배판 변형(190×245mm) ● 일시 一始 : 384쪽, 32,000원 ● 무종 無終 : 48,000원 [기획·편집·사진·디자인·제작]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

SuRyuSanBang

20
21 하월곡동(1999) Ⓒ김재경
22
23 하월곡동(1999) Ⓒ김재경

PHOTOSSAY

김재경의 포토세이 24 하월곡동 산2번지, 밤골

글, 사진. 김재경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 건축사진가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웃자란 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예전의 산동네는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있었다!

월곡역 3번 출구로 나와 20여 년 만에 동덕여대를

끼고 오르막길로 접어들자 기대감은 낙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남은 기억에 의하면 그땐 의연하고 완강한 동네가 산자락을 따라 장관을 연출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몇몇 빈집은 이미 떠난 이를 또 장차 바뀔 풍경을 예고했지만 사람의 동네는 출렁이는 인생의 무대처럼 삶의 기쁨과 슬픔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 같았다. 밤골밤가시이 하월곡동 배후의 주거지로 자리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도심개발로 동대문, 청계천 등지에서 흘러들어온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전체 3000여 건물 가운데 900여 동이 무허가 건물인, 그마저 지은 지 20년 이상 된 건물들 태반이 낡고 또 도로 등 기반시설이 빈약해 주거환경이 열악했다. 이에 성북구는

3단계 개발계획(2000)을 세우고 1단계로 ‘월곡구역’에 대한 재개발사업을 시작했다. 2004년에 입주한 세대가 2655가구, 이어서 2단계 사업으로 ‘월곡 제3구역’에 아파트 27개 동 1660가구가 입주했다.(2006) 그리고 3단계 월곡 제3구역과 제1구역의 경우 녹지공간(40%)이 확보됐다. 그 결과 지하철월곡역이 가까운 인근의 초등학교와 사회복지관, 중고교 및 대학 등은 교통과 주거환경이 매우 좋아졌다.

1999년, 우리 사회는 21세기 새천년맞이에 겨를이 없어 기왕의 낡은 주거지가 눈에 띌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닥칠 시간은 사태를 예고하기 충분했다. 이윽고 의욕이 넘쳐나던 새 시장의 대대적인 뉴타운정책 아래 서울시는 대부분의 주거지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최대 500여

곳의 재개발 대상지가 서울 전역에 펼쳐져 있었고, 당시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보던 지도에는 재개발

예정지가 곳곳에 걸쳐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큰길에

면한 상가건물 뒤편 배후의 낙후한 주거지는 모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가위로 오려낸

듯이 정교하게 표시했는데, 미루어보면 일정부분에

걸쳐 재개발 대상에 포함될 건가 하는 결정은 개별

건축주의 동의 아래 추진했을 것이다. 예컨대 아현동의

경우 건축가 김헌의 〈스푸마토〉는 사라지고, 건축가

권문성의 〈현암사〉는 살아남는 식이다. 이렇게 비교적 새 건물이라 할 건축가의 작품(?)도 재개발 의지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서울은 젊다. 좀 더 자세히는 도시가 젊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테다. 기왕의 낡은 주거지 대부분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으니 이 도시의 나이에 비해 걸맞지 않아 보인다.

도시의 구성체를 한둘 꼽아서 될 수는 없지만 사물과 시민으로 대별해 보면 이 둘의 관계가 맺은 시간, 곧 역사적 구성물이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일상 서민의 삶이 자리한 집과 동네, 주거지의 생활방식 등은 곧 그 도시의 특성이 된다. 지루한 삶으로부터 여행이 일상의 탈출이고 거기서 받는 인상을 도시의 특성으로 좁혀 말하면 도시의 구조와 건물과 사람이 남는다. 유무형의 도시적 자산은 그 도시의 잠재력이다. 그래서 유럽의 도시적 전통과 유산 앞에서 고개를 떨구지만 아시안 국가들의 도시적 활기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미국은 어떤가. 250여 년의 근세기

역사가 전부임에도 도시와 산업적 유산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도시 서울이 추구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많은 일을 동시적으로 추진해야만 했던 저간의 사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도시의 흔적을 지우는 개발을 멈춰야 한다. 이런 일이 계속될 경우 아시안 국가로서 한국이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도시의

활기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담장을 둘러치고

블럭화 된 아파트 단지들이 많을수록 그 지역의 활동이 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집과 건물들이 모인, 제각기 허물고 짓기를 무한 반복하는 도시는 살아있는 도시다.

문화는 다양함 속에서 꽃을 피운다. 우리의 가치관이

아파트에 매몰된 삶으로 계속될 경우 그 영향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경제력과 문화는 사람이 중심이다.

아파트 단지로 잠식되는 도시의 미래보다 다채로운 삶이

가능한 미래를 바래본다.

참조 : [세계일보]

25
(옆 면)하월곡동(1999)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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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월곡동(1999) Ⓒ김재경
28
29 하월곡동(1999)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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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하월곡동(1999) Ⓒ김재경
32
33 하월곡동(1999)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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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하월곡동 밤골(2022) Ⓒ김재경

GAIA

36 해에게서 소년에게1)
틈새에서 자란 잡초를 뽑아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자라게 놔둬야 할까? 1) 이 꼭지의 명칭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최남선 선생(1890~1957)이 1908년 11월에 한국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발표했던 권두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로부터 100년 뒤 2008년 1월에 창간한 본지는 선생의 계몽주의적 정신과 시선으로 현 인류와 미래의 인류가 함께 살아갈 지구를 향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Topic 포장도로 사이의

작가 대니얼 메이슨(Daniel Mason)은 자신의 에세이

『씨앗의 도시(City of Seeds)』에서 250년 된 도시

식물학 전통이 아주 놀라운 통찰을 낳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도시의 식물상은 ‘필연적으로 도시 파괴의

식물상’이라는 것이다. 오직 외따로 보호된 구역에서만

식물들이 자라는 공원과 정원의 녹지와는 달리 도시의

야생식물들은 ‘균열과 갈라진 포장도로, 버려진 궁전’을 필요로 한다. 메이슨은 ‘숨어 있는, 잠재적인 식물상, 참을성 있게 언젠가 눈에 뜨일 날을 기다리며, 도시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함께 공존하는 숲이라는 개념’이 관리된 정원과 도로를 침범하는 야생식물이라는

생각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반 카니발리즘(Urban Cannibalism)이란 집단은

건물도 대단히 느리긴 하지만 숨을 쉬고 발효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아무리 가장 단단한 벽이라 해도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곰팡이의 먹이사슬을 거느리고

있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유기적인 생명과 비유기적인

생명 사이의 경계는 흐려진다고 말한다.2)

37 p.66 2) 존 타카라, 『새로운 미래, 어떻게 번성할 것인가』, pp.101-102에서 발췌 인용(2017, 안그라픽스)

건축 미학자의 편지 04

건축적 속성과 미학적 한계

문신(文信)의 조각예술

글. 김원식 예술사학자, 건축사가, 비평가

I. 맹렬한 활동을 벌였던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탄생 100주기를 맞고 있으며, 각 분야별, 인물별로 다양한 기념사업, 그리고 정리 작업이

병행되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삶은 시공간의 공통점뿐만

아니라 문화적 공헌 및 역량과 성취도에 있어서도 유사한 궤적과 내용, 고뇌, 한계를 보여준다. 회화, 조각은 적잖은 간격을 보이는 본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건축과 가장 밀접한 예술로 여겨진다. 최근 문신(1923-95)의 조각예술에 대해 분석을 하게 되었고, 예술사문화사적인 맥락이나 미학-예술이론적 차원에서 필자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분석을 전개하면서, 완성되지 못한 모더니즘 건축을 비교 대상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II.

문신은 1923년 일본의 규슈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6세엔 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거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1939년 일본 동경 미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케부쿠로

시나마치이케부쿠로 몽파르나스의 예술촌에 살며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흔히 조각가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문신의 초기 작품은 회화가 주를 이룬다. 문신이 젊었던 시절, 그가 미술학도로서 수학하던 때의

일본의 미술문화계에는 야수파의 마티스, 모딜리아니와 친분이 있던

예술가를 비롯, 쉬르레알리즘 등 전위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프랑스 아카데미로부터의 영향 등이 산존(散存)해 있었다. 문신이 초기 활동

당시 목관한 일본의 여러 다양한 전위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그의 예술에서는 전위적 경향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과 아울러, 문신의 초기 예술적 경향으로 아카데미즘적인

특성이 지적되곤 한다. 그의 작품을 분석해 보건대 당시 문신의 회화

경향은 – 다소 표현이 과도해 보일지라도 - 뚜렷한 ‘혁신적 단계’ 또는

발전적 단계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문신의 후기 작품에서 발견되는 추상성 역시

소극적이고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그는 주변의 주된 경향에 몸을 담고

있어도 그 핵심 내용들이 작품의 에센스를 이루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진전을 이루거나 발달해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III.

문신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과 앵포르멜 등이 맹위를 떨치던

전위적 움직임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예술이 폭발한

것은 회화가 아니라 우연히 시작된 건물 수리작업에서 실행된 목구조 작업,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된 목구조 조각 작품에서였다. 문신은 화가 김흥수의 주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던 헝가리 출신 조각가 라즐로 자보(Lázló Szabó)가 소유하고 있던 라브넬 대저택(Château de Ravenel)1)의 수리 작업에 임하게 되어 생계를 해결하게 되었다.2) 문신은 이를 기점으로 건축 작업을 통해 구축적 성격을 지닌 조형작업에 임하게 되었다. 자보는 문신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을 인지하고 자신의 활동 영역으로 초대하여 프랑스에서의 예술 활동의 길을 열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60년대 당시 문신의 조각물은 규모가 크게 제작된 것들이 다수였고, 신세계 화랑에서의 전시회(1965)에서도 규모가 큰 대작들이 출품되었다. 규모가 큰 문신의 작품을 접한 프랑스의 관객들이 문신의 작품은 ‘거주가능한 조각(sculpture habitable)’이라는 말을 건넸다곤 하는데, 불어 문화권에서는 일상 가운데 흔히 나올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IV. 자보는 1968년 베를린의 갈레리 하메어(Galerie Hammer)에서 열린 전시회 카탈로그에 이미 그 전의 1950년대에 프랑스 등지에서 발표된 작품을 동시에 수록하고 있는 바, 조각가 문신의 작품에 대한 좀 더 수월한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건축인이라면 모던 조각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카탈로그에 수록된 글은 자보의 “Chateau de rêve(꿈의 샤토)”라는 작품을 가우디 이후 등장한 최초의 ‘조각-건축’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각-건축’ 개념을 바탕으로 이어지고 있는 문장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자보에 의해 새로운 건축의 상징처럼 해석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1950년에 세워진 아카데미 드 푀(Académie de feu)의 건설에서, 실제로 전 세계의 젊은 조각가들이 [그 안에] 거주할 수 있는,

1) 우리나라의 문신관련 글에서 라브넬 대저택(Château de Ravenel)은 16세기의 고성으로 정의, 서술되고 있다. 이 건물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입수 가능한 현 건물, 정원의 사진에 대한 그림 등으로 판단할 때 라브넬 대저택은 18세기에 유행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아마도 최초의 건물은 16세기에 세워졌고, 현존하는 건물은 후대, 즉 18세기경에 새로이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2) 흔히 프랑스 건축에서 château를 고성(古城)이라고 기계적으로 옮기고 있으나 역사, 문화적인 문맥에 따라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군사적 목적의 château(château fort)일 때는 성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흔히 대저택 역시 château(château ferme etc.)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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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예술은

거주가능한 조각(une sculpture habitable)에 착수하였다. 이 개념은

넓은 반향을 일으켜 1953년 르코르뷔지에는 롱샹성당(la Chapelle de Ronchamp)을 건설하게 되었다...3)

대부분의 자보의 조각작품들을 롱샹과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조각]작품-숙소를 꾸미고 있는 사진 한 점은 롱샹과의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어 ‘Bewohnbare Skulptur(거주가능한 조각)’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전에 발표된 1951년의 작품사진에는 ‘Sculpture-Architecture(Wohnung-Szabo)’, 즉 ‘조각-건축(자보의 숙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사진에 등장하고 있는, 요소 간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벽체, 기둥, 천장은 아마도 스터코, 석회

등으로 마감된 것으로 사료되며, 매우 조각적인 형태로써 롱샹성당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조각적 구조물 오른쪽엔 침대가 배치되어, 이 사진의 피사물은 조각작품-숙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문신으로 돌아가면, 1965년 신세계 화랑 등지에 전시된 작품은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작품에 색광(色光)이 사용되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어 적어도 르코르뷔지에 후기의 작품인 라뚜레트

수도원이나 롱샹성당에서의 스테인드글라스, 혹은 채색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색광의 수법과 연출은 아마도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문신이 자보는 물론, 실제의 건축물이나 여타 예술품들을 통해서 충분히 숙지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V. 문신이 진정한 조각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1960년대 초의 라브넬 대저택의 수리로 익혀진 작업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는 건물 수리작업을 통하여 재료를 깎아 내어 조성하는 조소(彫塑)뿐만 아니라, 재료를 첨가, 붙여 넣어 형상을 만드는 매우 건축적인 동시에 소조(塑造)적인 성격을 지니는 작업에도 익숙해진 것으로 사료된다. 자연히 그의 조각은 건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종종 공공 공간에서의 전시를 전제로 하기에 도시적이고 공공적인 예술로서 인정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효과는 1967년의 두 번째 도불 이후에 두르러지게 어필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1970년 프랑스의 바카레스(Barcarès) 해변의 모래사장 미술관에 초대되어, 현장에서 작업되고 세워진 조소물 ‘태양의 인간(l’Homme du Soleil)’이 있다. 거대한 수직축을 형성하고 있어 일명 ‘Totem’이라고도 알려진 이 작품은 그 높이가 13m에 달하며, 축선상엔 반구체(半球體)가 교차로 배치된 목구조물이다. 이 패턴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하여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스테인리스제의 ‘올림픽 1988(Unité olympique)’에도 적용되었다. ‘태양의 인간’이 설치되었을 당시 많은 예술인들은 모더니즘 시대의 작품 중 하나인 브랑쿠시(C. Brancusi, 1876–1957)의 ‘Endless Column 무한 기둥(1935)’을 떠올렸다. 그리고 외적인 형태, 형식 등이 그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신의

사상 역시 브랑쿠시 등의 예술가들처럼 모더니즘의 이상, 또는 정통의 고전주의적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오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신의 작품은 고전적 미학체계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는 브랑쿠시의 작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이 명명백백히 드러난다.

문신이 동원하고 있는 용어와 개념도구 자체는 다분히 합리주의이거나

고전적인 건축예술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과는 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으며, 문신의 개념 자체에는 내적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문신은 작품에 대한 언급에 시메트리(symétrie), 포름(forme) 등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건축에서도

중요한 미학적, 시각적 문법을 구성하는 것으로, 다분히 철학적, 미학적, 문화적이며, 예술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태와 질서에 관계된 미학 규칙은 상당히

자의적이고 근거가 희박한 자기만의 정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 용어가 지시하는 본래의 미학적 의미나 기준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중요한 화두인 ‘추상’ 등 기본적인 개념조차에서도 표피적 기하학

형상을 지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어 부정확한 어긋남, 편차를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후대로 갈수록 곤충이나 동식물 등의 모양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태의 작품이 등장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것은 기하학을

빌미로 설명되고 있다. 그 형태의 기반이 되는 기하학은, 거의 구상화를

위한 프리핸드 스케치라고 할 수 있는, 다분히 낭만적이고 자의적인

개념도구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한층 더 굳히게 만든다.

VI.

다분히 건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문신의 조각작품은 모더니즘

시대의 건축운동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조각작품들은

다분히 대가의 작품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분석은 다분히 몰이해적이거나 오해 등으로 채워진 미완성의 결과물임을 밝히곤 한다. 그리하여 문신을 인정하고 후원한 프랑스의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도파뉴, 레스타니 같은 사람들조차도 작품의 핵심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주변적인 이야기들로 글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문신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짧은 연구에 의하면, 문신의 작품에 대한 초기의 연구 중 형태(게슈탈트)의

입장에서 문신의 작품을 언급한 박용숙4)이나 기존의 기하학적

추상(abstraction géométrique) 운동에 더해 2차 세계대전 후에 등장한 새로운 시적추상(abstraction lyrique) 운동으로써 논하고 있는 베르나르 포실(Bernard Fauchill)의 평가나 비평을 제외한다면, 종종 피상적이고 정확하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포실은 문신의 문화적

오해와 이해의 부족함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암시하고 있다.

“... 유럽인인 나...는 문신의 작품에서 한국 예술과의 관련성 부재와 다수의 국제 전시회에 참가한 이 조각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 사이에서 다소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예술은 형식적 분류와 해석의 측면에서 한국 문화의 독특한 세계와는 거리가 있고, 동시에 ... ‘국제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양식과도 동떨어져 있다.”5)

나가며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문신의 조각에 대한 고찰은 단순히 미술분야 중 제한적인 조각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 건축을 포함한 시각예술의 사상과

정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문제점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모던 건축에도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념과 사상 등에 정확한 정위 평가와 아울러 정의가 필요함 역시 암시하고 있다.

4) 박용숙, ‘화해와 쾌감의 형태소,’ 문신의삶과예술세계,평론집I,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pp. 47-51

5) 베르나르 포실, ‘문신, 기하학과 관능성 사이에서,’ 앞의 책, pp.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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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aszloSzabo,Skuulpturen, Galerie Hammer, Berlin, Juli, 68. 쪽 번호 없음.

김정동 교수의 라이브러리

영국, 찰스 3세 시대를 맞이하다

런던, 템스강 따라 걷기

글, 자료. 김정동 우리근대건축연구소 대표, 건축사가

이번에는 런던이다. 여왕이 서거하고 새 왕이

들어섰다. 이 글의 시제는 언제나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주제를 정하고 잡지가 나올

때까지 3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영국 왕실 같은 이야기는 다

잊어버린 것 같다. 글을 쓰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먼 나라 새 왕 찰스가 건축에

관심이 많다니까.(재킷1)

이웃의 일본은 영국과 친하다. 같은

섬나라여서인지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왕국이다. 두 나라 뉴스 중 굵은 것이 대부분 왕실 애경사, 스캔들이다. 지금도 왕실이

필요한가. 한가할 때면 자문해 본다. 나름대로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호사가 생각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의 근대는 대부분 영국에서 배운

것이다. 일본은 영국의 도움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두 나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영국

군함과 무기가 뒷받침된 것이었다. 근대건축의

출발도 영국이다. 일본의 첫 건축 유학생이

향한 곳이 런던이었다. 런던 건축물은 일본

근대건축물의 모델이 된 것이다. 도쿄대학

건축과 스즈키 히로유키(鈴木博之, 19452014) 교수도 영국 유학생이다. 영국 고딕양식

건축이 박사논문이다. 지금 내 책상에 그의 책, 『런던』(치쿠마 신쇼, 1996)이 놓여 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열어 본다.(재킷2)

영국의 건축 문화재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문화재 보호에 대한 법적 조치는 민간단체가

먼저 시작했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1894년

설립된 것이다. 국가에 의한 것은 6년 후의

일이다. 정부에 의해 〈고(古)기념물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은 1900년이다. 이어 1913년 〈고기념물보호강화법〉으로, 1939년에는 〈고기념물법〉으로 정착되었다. 그들은 역사적 건물을 1,2,3급으로 등급을 두어 지정했다.

런던 투어는 이런 보존과 보수 작업의 결과로 시작된다. 유산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투어는 세 가지를 체험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역사이다.

이것은 기본이고 명분이기도 하다. 둘째는 건물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건물은 건축물, 구조물, 공작물이 포함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생리적인 것들이다. 먹고 마시고 보고 듣는 것이다. 런던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여기서는 템스강을 따라가는 코스로 해 본다.

윈저 성(Windsor Castle)은 세계에서 제일 큰 성이다. 영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이다. 11세기 런던 서쪽 접근로(히스로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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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재킷1. 영국의 약지도(Sampler)‘ 영국은 지금 나라가 복잡하다. 수상도 자꾸 바뀌고 있다. LP 커버는 영국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각 지역의 음악을 담은 것이다. 첫 곡은 빅벤의 종소리부터 시작된다. 영국관광청(British Tourist Authority, BTA)과 BBC가 1969년 함께 만든 것이다. 50년이 지난 것이다. 영국의 국력이 대단할 때 것이다. 재킷2. ‘잉글랜드’ 도심의 풍경 그림. 마차와 자전거…. 동사무소, 우체국, 동네 호텔, 거리의 우체통, 그리고 깃발, 코린 카(Colin Carr)의 그림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영국 팝 그룹, 〈어메이징 불론들(Amazing Blondel)〉의 대표작이다. 중세 분위기가 나는 표지다. 1972년.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지역은 영국 잉글랜드의 신판이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요크도 미국의 뉴욕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명에서 제일 많은 것이 ‘뉴(New)’이거 나 ‘새(新)’ 이름이 붙는 것이다.

20분 거리이다)에 정복자 윌리엄이 세운 요새가 출발이다. 현재는 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과 함께 왕실의 주요 거처였다. 이제 찰스 3세 왕의 거처가 되었다.

런던 한복판의 버킹엄 궁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주궁이었다. 이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2세 여왕 치세였으니 주로 여왕의 궁전이었다. 4층의 반듯한 건물이다. 역시 이제 찰스 왕의 주궁이 되었다.(재킷3)

런던은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처음 갔을 때는

1984년이었다. 아마 2박 3일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모든 여행이 1박, 2박 정도였으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임무는 마담 투소(Madame

Tussauds) 박물관에 가는 길이었다. 밀랍으로

등신대 인체를 만드는 곳이다. 처음 보는

그곳은 놀라웠다. 서양인은 그렇고 우리

동양인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하나의

숙제였다. 런던 역시 버스가 최고로 좋은 도시 읽기 수단이었다. 시간을 내서 템스강 주변도 걸어 본다.

1980년대 중반인가 한강 기본조사 용역(홍익대 환경개발연구원)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강 변의 역사적 장소성을 열거한 정도였는데 이때 우리 한강이 매우 넓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폭이 거의 1.2km 내외였다. 센강, 템스강, 라인강의 200~300미터 폭에 비해 다섯 배는

될 것 같았다. 뭔가 될 것 같은 한강이었다. 그것이 한강의 기적이었을까? 당시는 한강 변이 아직 옛 상태대로 인 때였고 강변도로는 아직 이었다. ‘정인숙 사건’(1970년)이 아마 그 이전이었으니 당인리 쪽에는 강북 강변도로(현, 강변북로)가 그런대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아쉬운 것은 그때 도로를

내면서 강변 즉 물가 풍경이 거의 다 사라진 것이다. 옥수동(玉水洞) 변은 이름대로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살곶이 다리(箭串橋), 뚝섬(纛島) 쪽도…. 당시 밤섬, 뚝섬은 그야말로 서울 동서 끝 무료 수영장인 셈이었다. 돈 없는 청춘의 놀이터였다. 뱃놀이 객도 많았다. 장마 때는 물난리를 겪지만 장마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거벗은 인간의 자유 지대였다. 넓은 한강에는 중지도(中之島)가 제법 여러 곳 있었다. 귀한 섬이었는데….

당시 한강과 가장 닮은 강이 왠지 템스강 같았다. 서울의 강남이 커져 강북과 대응하고

있었다. 도시화가 빨랐던 것이다. 관광 지도를 보면, 템스강은 런던 시내를 기역자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재킷4)

독일인 헨델(Handel, 1685-1759)은

1717년 7월 〈수상음악〉을 작곡했다. 헨델은

작센(Saxon) 출신, 궁정 작곡가였다. 그는

1710년 독일 하노버를 출발, 뒤셀도르프를 거쳐 네덜란드로 갔다. 그곳에서 북해를 건너 연말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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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3. 윈저 성 경내, 1992년 성내 중앙구역에서 테러 화재가 났었 다. 97년 복구되었다. 성 아래 구역, 세인트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 앞의 지킴병 행사가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도 궁궐 관 련 행사가 볼거리라는 의미에서 진행되고 있다. LP판은 성 내의 아래구

역, 중앙구역, 윗구역에서의 행사 모습을 전부 다 보여준다. 왕이 이곳에

있을 때 중앙 라운드 탑 위의 기가 영국기가 아닌 왕실기로 바뀐다. 사진

은 불나기 전인 1965년, EMI것이다.

재킷4. 런던의 템스강(River Thames)과 헨델의 〈수상음악(Water Music)〉. 조지 왕이 탄 바지선 옆에 악사(樂士) 50여 명이 탄 배가 따 러 가며 트럼펫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첼시가 기점이고 종점이 었다. 대략 1시간짜리 물 위의 공연이었다. 이 광경은 여러 가지 그림으 로 남았다. 이 판의 표지는 이탈리아 화가 카날레토(Canaletto, 16971768)의 1748년 그림이다. 그는 주로 베네치아를 그린 화가인데 런던에 도 여행을 와서 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의 문화 교류를 알 수 있다. 이 판 은 프랑스인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뉴욕 필하모닉 1975 년 것이다.

런던에 도착했다. 시내 한복판 템스강을 배로

거슬러 올라갈 때 런던탑, 그리고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았다.

‘웨스트민스터 아베이’는 런던의 중심지, 웨스트민스터 구(區)에 있다. 런던의 구는 36개인데 그중 으뜸 구이다. 아베이는 1065년

에드워드 왕이 세웠다. 13세기에 헨리 3세가 개축했다. 31미터에 이르는 높은 실내 천정, 장미창 등이 돋보인다. 원래 영국 국교회 즉, 성공회(聖公會) 성당이다. 성스런 공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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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재킷5. ‘웨스트민스터 아베이(Westminster Abbey)’. 영국에서 아베이란 명칭은 드물다. 아베이를 사원(寺院)으로 번역하는데 이는 맞지 않는다. 대성당이라 해두는 것이 낫다. 1966년이 아베이 900주년이었다. ‘A House of Kings’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이 여기서 행해진다. 이번 찰스 왕도 여기서 대관식을 갖는다. 헨델 그리고 바이런, 쵸서의 무덤도 여기 있다. 헨델의

뜻이다.

헨델의 찬가가 조지 3세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아베이의 건물 모습을 그렇게

잘 반영해 준 음악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아치형의 천정 아래 거대한 주랑(柱廊)을 구르듯 통과하고, 거대한 합창이

서까래 안으로 진입한다.(재킷5)

웨스트민스터 아베이에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붙어 있다. 역시 11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이

궁전이 16세기경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재킷6)

또 한 사람의 외국인 음악가가 런던에 온다. 헨델 이후 50년쯤 지나서였다. 하이든(17321809)이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로라우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이든은 1791년

60세 때 영국의 초청을 받아 도버해협을 건너온 것이다.

런던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분주한

도시였다. 파리는 1789년 바스티유

혁명으로 어수선했다. 하이든은 1791년 5월

웨스트민스터 아베이에서 열린 헨델음악축제에

참가했다. 왕실 좌석 부근 박스 좌석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듣게 된 것이다.

하이든은 1794년 런던탑과 런던은행을

구경하고 런던탑의 동물원에도 들렀다.

1795년 다시 빈으로 돌아갔다. 1809년

프랑스 군대의 포탄이 빈 그의 집 마당에 떨어졌다. 77세를 일기로 죽었다. 하이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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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1759년 4월 20일 이곳에서 거행되었을 때 3,000 명 이상이 모였다. 레코드판은 그림을 사용한 것이다. 영국
아베이 레코드 1978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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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6.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 런던의 심볼, 빅벤은 원래 궁전의 시계탑이었다. 인접해서 11세기에 세워진 마거릿 교회(성당)가 있

다. 일반인 대상의 성당이다. 현재의 것은 16세기에 수복된 것이다. 처칠

도 여기서 결혼식을 올렸다. 왕족은 아니지만 고위직들이 애용한다. 판은

모네가 그린 템스강과 웨스트민스터 다리와 국회의사당이다. 런던의 내셔

널 갤러리 것이다. 본 윌리엄스(1872-1958)의 런던 심포니(1914)를 담

고 있다. 심포니 표제가 런던 심포니이다. 연주는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

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이다. 1972년 RCA판.

재킷7. 성 바울 대성당(St. Paul’s cathedral). 대성당은 런던의 중심이

다. 헨델에게는 새로운 일터였다. 1713년 7월 7일 헨델은 신작 찬송가 공

연을 이 성당에서 갖는다. 이 성당은 이후 미국에서 모방되고 표준이 되

었다.

런던에 있던 중 런던을 위해 12편의 교향곡을 썼다. 잠깐 머무른 시간(1791-95)치고는 큰 성과였다. 런던의 하노버 스퀘어 룸, 잘로몬, 킹스 시어터의 세 곳에서 각각 발표된 것이다. 〈천지창조〉도 남겼다. 영국인들은 하이든을

작곡의 셰익스피어라 불렀다.(재킷7)

영국에서는 17세기에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1632-1723)이 건축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영국 바로크 건축의

지도적 역할을 했다. 뉴턴은 렌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구 과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렌은 1657년에는 런던, 1661년에는 옥스퍼드의 천문학교수이기도

했다.

1666년 9월 2일 런던에 화재가 일어났다.

인구 46만 명의 런던은 1664년부터 페스트가

몰아쳐 7만5천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을

때였다. 전염병 천연두도 휩쓸고 지나갔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비롯한 교회 87개와

수많은 공공건물, 주택 1만3천여 채가 불에

탔다. 런던 시내 대부분이 파괴된 것이다.

그 수습을 34세의 크리스토퍼 렌이 맡게 된

것이다. 파괴된 87개의 교회 중에서 52개는

렌에 의해 다시 설계되었다. 공사는 35년(16751710)이 걸렸다.(재킷8)

우리에게 영도대교(影島大橋)는 도개교, 영도다리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몇 년 전(2004.04.18.) 부산에서 열린 영도다리 회의에 갔었다. 토목 쪽의 회의였다. 철거 쪽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회의였다. 나는 ‘철거

반대’라는 입장을 갖고 참석했다. 영도대교는

부산의 한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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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재킷8.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템스강의 랜드마크이다. 여기서 타워 브리지는 지금도 도개교(跳開橋)이다. 배가 지나가면 들려 열리는 다리이다.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명물이 된 것이다. 일본 도쿄에도 있었다. 부산의 것은 도쿄의 것을 흉내 낸 것이다. 어쨌든 이런 도개교의 원천은 런던 것이다. 여기서 이 판은 애릭 코츠(Eric Coates, 1886-1957)의 런던 모음곡(London-Suite, 1932)이다. `10인치 판이다. 코번트 가든에서 연주된 것이다. 여기 음 악은 얼마 전 영화 〈오징어 게임〉에 배경 음악이 되어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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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8

재킷9. 템스강은 흐른다. 안토니오 졸리(Antonio Joli, 1700-77)의 그림‘(Capriccio with St. Paul's and Old London Bridge)’은 런던의 그때 모습을 잘 전하고 있다. 시민들이 런던 다리 위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난간 높이가 인체에 맞췄다. 동자기둥이 짝수로 이뤄졌다. 그림은 템스강 건너 북쪽 강변까지 그리고 있다. 성 바오로 대성당, 런던 타워, 올드 런던 브리지로 이루어져 있다. 가까이 연인, 가족으로 보이는 4쌍, 홀로인 남자 등 11명, 각자 데리고 온 것으로 보이는 개가 방향성 있게 그려졌다. 이 그림만으로도 도시 복원이 가능할 것 같다. 1978년 EMI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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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재킷10.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St. Martin in the Fields)는 트래펄가 광장 북동쪽에 있다.(James Gibbs의 설계, 1721-26) 런던의 도심 풍경을 지배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아드리안 볼트 경이 지휘하는 엘가의 심포니 1번 이다. 연주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화 진용이다. 그림은 1888년 윌리엄 로그데일(William Logsdail, 1859-1944)이 그린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거리 풍경을 극사실적 수법으로 그려냈다. 카메라가 있던 시기였는 데…. 말과 마차, 가난한 거리의 사람들, 특히 꽃 파는 여자 어린이의 모습이 지금도 마음 아프게 한다. 1977년 EMI 것이다.

일제는 1926년 이 다리를 놓을 계획을 세운다. 영도의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업명칭은 〈부산마키노시마(牧島)간

가교(架橋)계획〉이었다. 이것이 이듬해인

1927년 부산남빈목지도간대도의진교(釜山南

浜牧之島間大渡の津橋, 줄여서 釜山渡津橋

혹은 牧之島渡津橋)로 이름을 바꾼다. 영도의 원이름이 목도(牧島)였다. 다리는 1932년 4월 기공, 34년 11월 준공했다. 다리는 해방 후 〈영도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 6·25전쟁을 겪으면서 피난지

부산수도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것이 이 영도다리였다. 논의 이후 다행히 영도다리는

부산시 기념물이 되었다(제 56호, 2006.11.25.)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도다리는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들리는 다리로는 국내

유일한 것이다. 들리는 다리는 아니지만 이제

굳어진 그 형체만큼 그 다리 값이 무겁게만 느껴진다.(재킷9)

이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의 눈에 보이는 런던이다. 그는 1744년부터 1748년까지 런던 헤이마켓(Haymarket)의 왕의 극장(King's Theatre)에서 일했으며 또한 지형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곳은 시내 한 복판으로 시장과 극장 거리가 있는 번화가였다. 이탈리아인 화가 파니니(Paolo Panini), 카날레토 그리고 졸리는 도시적, 건축적 그림에 뛰어난 일가를 이뤘다.(재킷10)

찰스는 황태자 시절 트래펄가 광장 부근의 건축에 많은 관심을 표했다. 이제 왕이 되어서 영국 건축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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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0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19

강화도의 20세기 새 바람이 불어오던 섬

채만식이 1934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탐정소설

‘염마’에는 강화에 사는 이재석과 그의 딸

학희가 등장한다. 강화의 젊은 부자이자 “우리

조선가정도 개량을 하자면 학식 있는 주부가

들어와야 한다”는 이재석은 XX여학교 출신인

염마(艶魔) 광옥과 재혼을 한다. 그 일이 이후

소설의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동기가 되었지만, 아무튼 ‘경성’이 주요 배경인 이 소설에서

‘강화’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때마침

그 즈음 강화의 부잣집, 특히나 ‘새로움’을

받아들인, ‘여학교’를 다니던 가족구성원이

있던 부잣집을 방문하게 되어 소설 속 염마의

강화도 이재석의 집이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강화도는 더 이상 ‘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두 개의 큰 다리로

연결되는 이 섬은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자 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에 속하면서 서울에서도 한

시간 남짓이면 다다르는 곳이기에 서울의

생활권에도 속한다. 서울과 이토록 가까운

위치에 놓였기에 강화도는 오랜 시간 전란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시에는 고려의 임시 수도였으며, 1866년의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1875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결국

1876년 강화도조약이 맺어졌다. 일본과 맺은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조선은

제국열강에 개항하게 되었고 이후 세계 각국의

문물이 물밀듯이 조선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성공회성당과 교산교회

19세기 말 서양인 선교사들은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했다. 천주교는 17세기부터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소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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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종이 있는 내삼문과 ‘천주성당’이라는 현판을 단 본당 ⓒ이연경 2.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본당과 사제관 ⓒ이연경
글, 자료. 이연경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건축사가 2 1

18세기에는 조선천주교회가 설립되었고, 교세가 확장되자 19세기에는 신유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와 같은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온 건 개항 이후로 1885년 4월 5일 북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북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제물포항에 입항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반도 내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북감리교와 북장로교에 이어 영국성공회가

1890년 코르프 주교를 한국으로 파송하며

성공회의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다.

강화도는 유독 영국성공회와 인연이 깊다.

1900년 건립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과 사제관, 그리고 1906년 건립된 온수리성당과 사제관은

모두 전통한옥을 성당으로 구현해 낸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다. 토착화를 지향한 성공회는

비슷한 시기 지어지던 성당이나 교회들과는

달리 고딕양식이나 로마네스크양식과 같은

낯설고 이질적인 양식이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모습의 성당을 만들고, 사제들은

한옥에서 생활을 했다. 고려시대 궁이 있던

터이자 조선시대 외규장각이 있었던 고려궁지

아래 언덕 위에 세워진 성공회 강화성당은 전통

한옥을 적절히 성당이라는 기능에 적용시킨 예이다. 전통건축의 진입방식이라 할 수 있는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마주하는 성당 본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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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3.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배면과 그 뒤의 미로(Labyrinth) 4.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본당 정면 5.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내부

정면에는 ‘천주성당’이라 한자로 쓰인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아래의 입구로 들어서면 고주와

퇴칸을 이용하여 신랑(神廊)과 측랑(側廊)을

구성한 바실리카식 평면이 보인다. 다소

어둡지만 신랑과 측랑 사이 높이차를 이용한

고측창에서 내리는 햇빛 역시 빛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강화 교산리에는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인 교산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1885년 아펜젤러가 시작한

인천 내리교회에서 1892년 아펜젤러의

후임으로 부임한 존스(G. H. Jones, 조원시)

목사가 강화지역 선교를 시작하였고, 양사면

시무리마을 이승환의 집에서 1893년 예배를 시작한 것이 바로 교산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강화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승환은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 존스 목사에게

세례를 베풀기를 요청하였는데, 당시 마을에

존스 목사의 진입이 허가되지 않자 선상에서

세례를 베풀게 되었는데, 이는 한국 최초의

‘선상세례’, ‘달빛세례’로 불린다. 지금도 강화 교산교회 앞에는 이 선상세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놓여 있다. 현 교회 건물은 1959년 지은 건물로, 외부는 석재 마감을 하였지만 지붕은 한옥의 팔작지붕 형식이 일부 남아 있는 모습이다. 서양식 예배당을 만들되 제단이 있는 부분을 팔작지붕과 같은 형식으로 처리한 점은 다소 어색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강화도는 한반도의 서측에 위치한 섬이자 인천, 서울과 거리가 가까웠기에 개항 이후 기독교 선교의 중요 기지가 되었다. 특히 한옥과 결합된 형태의 성당과 교회 건물들은 (타지역에서도 종종 볼 수 있긴 하지만)

강화도의 오랜 역사와 함께 강화도의 근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다.

강화 신문리 황씨주택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에서 남쪽으로 10분

정도 내려오면 나오는 신문리 326번지

주택은 1928년 7월 14일 상량한 것으로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는 한옥이다. 이 주택은 강화의 부호였던 황국현이 지은 주택으로

황부잣집으로 불리기도 하였고, 황국현의 딸

황영순씨의 남편 김근호를 지칭하여 김찬판댁 혹은 참의원댁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김근호는 동양기선 전무와 배재학당 이사장을 지냈으며 1934년 강화도에 처음 전기를 공급하고 전화를 설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50 6. 강화 교산교회 7. 강화도 신문리 황씨주택 입구 8. 강화도 신문리 황씨주택 전경 8
7 6

이 주택이 위치한 신문리 일대는 일제강점기

직조산업이 급격하게 발달했던 곳으로

인근에는 조양방직과 같은 대규모 공장도

있었지만 황씨 주택처럼 공장과 주택이 함께

있는 소규모 직조 공장도 다수 분포하였다.

황씨주택이 위치한 326번지에서는 1928년

인조견 생산 공장을 개업하여 1960년대까지

인조견을 생산하다 폐업하였다고 한다.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문간채 안으로는 넓은

안마당이 있고, 그 안으로는 ㄱ자형의 본채가 나온다. 본채는 강화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다락이 있으며 전통 한식 목구조를 사용하되

붙박이장을 사용한다든지 내부 마루널을

헤링본 무늬의 마루널을 사용하고 에칭기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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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색유리가 독특한 강화도 신문리 황씨주택 내부 10. 외부에서 본 색유리창 11. 색유리 상세 12. 백범 김구 선생 방문 당시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외부 13. 다락방 내부 14. 다락방에서 보이는 외부 모습 15. 1960년대까지 공장으로 사용하였던 문간채 12 15 11 6 9 10 1314

사용한 색유리창을 도입한 ‘색다른’ 특징을

보인다. 외부 난간 역시 다양한 구성 방식을

보이고 있어 일본 혹은 서양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문간채에는 왕대공 트러스를

사용하여 전통 목구조에 서양식 목구조를

가미한 특징을 보인다. 이처럼 이 주택은

여러 면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개항 이후

한옥에도 유리창을 사용하거나 입식 생활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근대적 변화가

시작된 시점이었지만, 당시로서도 쉽게 구할

수 없던 재료였던 영국산 목재나 색유리 등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곳이 영국

성공회 성당의 기반이 단단하게 갖추어지며

영국인들과의 연대가 깊었던 강화도였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직조산업의 발전 등으로

부를 쌓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황씨주택은 백범 김구 선생이 1946년

11월 강화도에 방문했다가 지역인사들을

만나 기념촬영을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주택은 2012년 말 최선숙 도예가가 매입하여

원형을 회복하며 보존 및 관리하는 중이다. 소설 ‘염마’를 읽으며 이 주택이 떠올랐던 건 강화도의 부잣집이자 그 딸은 서울의 여학교에 다녔고 사위는 배재학당의 이사장이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며 나름대로 ‘신식’을 지향한 이재석의 강화도 한옥이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강화 직조산업의 현장, 조양방직 2019년 당시 주말 매출만 1억에 달하는 강화도의 카페, 조양방직. 황씨주택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이 카페는 한때 강화도 직조산업의 핵심이었던 조양방직 공장을 2016년 인사동에서 상신상회를 운영하던 이용철 부부가 매입하여, 리노베이션 한 후 2018년 카페로 개장한 곳이다.

조양방직이 위치한 신문리 일대는 일제강점기

직조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했던 곳으로, 강화 지역의 대표적인 지주 중 하나였던 홍재용, 홍재묵 형제가 1937년 설립한 회사이다.

설립과 동시에 공장건축을 시작하여 1937년

9월에 건물 준공과 함께 생산을 시작하였다.

600여ha(180만평 규모)이 넘는 논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일하는 소작인 숫자도 3000명이 넘었던 강화의 대표적인 지주였던 홍씨 집안이 직조업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바로 1920~30년대의 농업공황이 그 이유가 되었다. 농업공황으로 인한 쌀값하락으로 인한 농가

52 16. 지금은 카페와 서점으로 사용되는 문간채의 가로변 모습 17. 폐허와 키치 사이. 조양방직 전경 18. 강화 조양방직 공장동 19. 강화 조양방직 사무동
16 17 1819

경제의 파탄과 일제의 조선쌀 대일수출 저지로

인해 강화의 지주들 역시 자본의 전환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양방직이라는

공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조양방직은 설립 초기에는 직조기 15대로

인조견을 생산하였으나, 이후 공장을

증축하고 기계를 증설하여 전성기에는

연면적 2,314.1m2의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노가미식 직조기 30여 대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인조견은 외국산에

비해 품질이 좋아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에까지 수출되었고 연간 매출 목표액은

50만원에 달하였다고 하나 1939년 화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며, 1942년에는

일본 미쓰이(三井) 산하에서 일하던 이세현(李世賢)에게 조양방직을 20만원에

인도하게 되었다. 이후 이세현은 아들 이현일과

함께 조양방직을 운영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인 1958년에 폐업하였다. 폐업 이후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공가로 방치되었으나 2018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카페로 개장하며 현재의 조양방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화읍 신문리 587번지의 넓은 부지에 사무소

건물과 공장, 창고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콘크리트블록 담장이 전체 부지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조양방직의 공간 구조는

리노베이션 후에도 크게 변형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장으로 사용될 당시의 외관과 느낌을

충실히 구현해 놓고자 하며 폐허와 키치

사이를 오가는 디자인으로, 산업은 사라졌지만

산업이 남긴 폐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장소를 만들어 냈다.

영국성공회성당에서 황씨주택으로, 그리고

황씨주택에서 조양방직으로 이어지는 강화의

‘새 바람’은 다소 다르게 느껴지는 세 장소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준다. 서쪽에서 불어온

‘새 바람’이 가져다 준 새로운 종교, 새로운

재료, 그리고 새로운 산업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강화도는 더 이상 ‘섬’으로 느껴지진 않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다른 섬들에서 만나본 ‘근대’가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래서 생경한 매력이 있는 근대였다면 강화도의 ‘근대’는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새 바람’이 깃든 근대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1. 인천광역시, 인천의 건축(상). 인천광역시, 2016

2. 한국건축역사학회, 비지정

2016년 6월 2일 기사, [인천고택기행·22] 강화도 1928 가옥

1월

53 20~21. 카페로 개조한 공장 내부
건조물문화재 보고서 1권, 문화재청, 2008 3. 기독교대한감리회, 사진으로 보는 강화교산교회100년사, 기독교대한감리교회, 1994 4. 경인일보
20 21
5. 강화뉴스 2019년 14일 기사, 조양방직과 강화의 근현대사

추천도서 브리프

건축 역사서

박인석 지음

도서출판 마티 발행, 7만8000원

건축사는 미술사의 막내로 출발했다. 초기

건축사학자들은 미술사 서술의 전통 속에서 2천 년

건축의 역사를 가르고 양식을 분류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여전히 건축과 회화, 조각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 양식과 거장 예술가의 연대기로 쓰였다.

그러나 건축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해서 온전히 예술로

볼 수 없는 측면이 무척 크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동원해야 하는 당대 최고의 공학기술, 다른 예술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필요한 자본과 시간, 공사

단계마다 다른 다양한 인력 등 건축은 창작되기보다 ‘생산’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명지대학교에서 20년 넘게 ‘건축생산기술사’라는 과목을 강의해온 저자는 건축의

역사를 생산과 기술, 구조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긴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내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로마 여행에서 누구나 경탄하는 판테온을 두고 저자는 로마 건축가들의 탁월성, 형태의 완벽한 아름다움보다 어떻게 43.2미터에 달하는 원형 내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지, 무너지지 않게 6미터의 두꺼운 벽에 무엇을 넣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갖은 수를 써가며 왜 저런 건물을 지으려 했는지를 묻는다. 로마인들이 지키려고 했던 건축적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 책은 다음에 주목한다. “서양 건축 역사에서 읽어야 할 것은 건축물의 형태 양식이나 구축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규범화된, 그 규범이 생산된 사건의 전말이다. 그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유럽 전체의, 서양 전체의, 그리고 세계 전체의 건축 규범으로 확산되었는가.”

건축 공학서

『구조』

J.E.Gorden 지음, 반상철 옮김 시공문화사 발행, 1만9500원

‘구조물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라는 부제가 함의하듯 책은 이 세계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과제들이 함께 묶여진 기본적인 힘들에 대한 정보들을 설명해준다. 건축물과 인체에서부터 항공기와 계란껍질까지를 망라해서.... 지력과 그가 가진 과제에 대한 능숙한 처리방식, 그리고 백과사전 급의 해설 등이 결합되어 하나의 양식이 되었다. 저자는 폭넓고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데이터화와 바탕이 되는 이론과의 교류를 통해 엔지니어링을 해석해냈다. “벌레를 디자인한 방법” 그리고 “빔이란 존재의 잇점” 등의

부분에서 인간과 자연의 창조물에 대한 유머러스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건축가와 엔지니어는 응력, 전단력, 비틀림, 파괴, 골절, 그리고 압축력 등등의 개념에 대한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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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건축 생산 역사 1, 2, 3권 4. 구조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123 4 1 2 3

집 탐사서

『땅은 잘못 없다』

신민재 지음

도서출판 집 발행, 2만2000원

저자는 2020년 5월 페이스북에 ‘뜨아’라는 제목을

달고 얇은 집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뜨아’는 조각난

필지나 이형 필지에 지어진 독특한 건물을 마주했을

때 나오는 감탄사이자 ‘뜨거운 아키텍처’의 줄임말이다.

1976년생 저자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집 이야기를 통해 얇은 집 관련 제보가 줄을 잇게 되면서 저자는 그 집과

주변에 관한 자료를 찾아 조사하고 그런 모양의 집이 될

수밖에 없는 연유를 추리해 나간다. 그렇게 페이스북에

쌓인 80여 개의 얇은 집 가운데 60여 개를 담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집의 만듦새와 모양새, 구조는 물론 도시의

변화에 휩쓸려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땅의 내력

등을 저자 특유의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분석한다.

『반포성당 짓기 1 : 시간과 공간의 역사』

김재경, 이지응, 김종헌, 김원식 외 지음 수류산방 발행, 반포성당 직판

1976년 설립된 천주교 서울대교구 반포성당은

서울의 강남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성당이며 한국 천주교가 강남에 퍼져나가는 데 거점 구실을 했다. 이 책은 반포성당의 건축과 공간에 관한 기록물이자 화보집이다. 사진으로 전개되지만 폭넓은 연구를 바탕으로 해 반포성당 신자는 물론 반포 지역에 친숙한 주민들, 건축 전문가, 가톨릭 문화 예술 관계자 등 학술 자료를 필요로 하는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하다. 한 성당 또는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종교 공간의 설립부터 소멸까지를 책으로 기록한 것은 한국 가톨릭계에서 보기 드문 시도다. 책은 크게 [화보], [역사], [코멘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 화보를 중심으로 지역 역사와 성당의 변천, 두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지고, 이를 보완하는 두 편의 코멘터리(논고)도 수록했다.

인문학 도서

『한나 아렌트 평전』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혜다 발행, 1만8000원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저작에 대한 관심은 사후 5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국내에도

관련 서적이 100여 권 나와 있으며, 2022년 한 해에만 열 권 가까운 신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는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출간된 책으로, 이 비범한 인물의 일대기를 자세하면서도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아렌트를 만나 볼 수 있다. 저자 사만다 로즈 힐은 한나 아렌트가 남긴 저술과 시는 물론 가족 및 지인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최근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 기록 보관 문서 등을 샅샅이 연구한 뒤 놀랍도록 효율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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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기록서
5. 땅은 잘못 없다 6. 반포성당짓기1 7. 한나 아렌트 평전 6 5 7

이태현의 떠오르는 건축가 14

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 최유일

건축을 통해 만난 인연들과 오랜 친구로 남는 건축가

하나의 기념비적인 건물 을 세우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모노라이즈[M ONOLITH(하나의, 기념비적인) + RISE (서다, 오 르다) = M ONORISE]의 최유일 소장은 이미 다수의 준 공작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축가이다. 단독 주택인 〈통(通 )하는 집Ⅰ〉과 근린생활시설 및 사무소로 사용되는 〈9KNOT(EDGE B OX )〉를 통 해 우수한 건축 을 보여주었고 , 준 공 을 앞둔 〈V I V O 엔터테인먼트 사옥〉 또한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특히 모노라이즈는 건축을 만들어내는 모든 이들(건축주, 시공사, 건축가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좋은 건축을 위한 하나의 조직체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유기체(건축)를 만들어 간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무소라고 생각된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젊은 시절 건축학도였지만 단편영화 를 찍기도 했었다는 최 소장은 여전히 꿈과

열정이 많은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직원들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근무가 가능한 클라우드 기반의 작업을 적극 진행한 이야기나 시공사와 함께 건축컨설팅 회사를

만든 이야기 등 다 양 한 방식으 로 좋 은 건축 을 위해 변화하 며 나아가 려는 젊은

건축가의 시도와 노력은 이를 방증한다. 건축을 통해 만난 인연들과 오랜 친구로

남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인간미 넘치고 따뜻한 마지막 말이 그의

건축에도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일시: 2022년 10월 중

인터뷰 장소: 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서울시 서초구)

참석자: 최유일(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 대표), 이태현(본지 편집위원, 동양대 교수, THE A LAB 대표)

RISING ARCHITECT

1. 최유일

통(通)하는집 I

빛, 바람, 사람. 그리고 시간이 통하는 집이다.

남향을 품은 정원과 북측에 배치된 어두운

공간까지 빛을 이끌어주는 경사 지붕, 어디서든

빛과 바람이 흐를 수 있는 창과 문의 배치, 그리고

높은 담장 대신 선택한 간소한 조경으로 사람과

사람이 통하도록 계획했다.

가볍게 건물을 감싸는 벽돌벽은 2층과

옥상으로 올라가는 동선을 지지함과 동시에

차가운 북서풍으로부터 건물과 사람을 감싸고

보호해주는 어머니의 손길이 되고자 했다.

툇마루와 정원은 모든 공간에서 통하는

교집합이자 공동의 장소이다. 디딤석에 지지되는

툇마루, 쌓아 올리는 벽돌, 붙이고 고정하는 판넬,

캔틸레버의 형태는 구축에 대한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옛것과 새것의 통(通)함에 대한 새로운 시도다.

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

용도: 단독주택 / 건축면적: 129.48㎡

연면적: 381.88㎡ / 규모: 지하1층+지상2층

높이: 12m / 주차: 3대

건폐율: 49.93% / 용적률: 97.34%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점토벽돌(삼한C1)+FC판넬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준공연도: 2018

9KNOT(EDGE BOX)

건축주와의 첫 미팅은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의미 없고 불필요한 장식들은 배제한다. 심플함

속에서 하나의 엣지로 건물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건축주는 본인의

작업물처럼 건물에서도 간결하고 엣지 있는

디자인이 표현되길 원했다. 자연스럽게 박스형태가

건물의 기본 틀로 자리 잡고 이를 깎고 깎으며 필요한 공간과 빛 그리고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갔다.

일조사선의 영향을 받는 땅이었기에 건물을 박스

형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간의 응축이

필요했고, 그만큼 불필요한 동선과 버려지는 공간이 없도록 계획했다. 또한, 땅의 경사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도로에서 바로 진입 가능한

지하1층을 만들었고, 이는 마치 지상1층처럼

인지되도록 계획되어 건물의 효용성을 높였다.

외벽은 두 종류의 벽돌을 사용하여 지하층과 지상층을 구분하였다. 톤앤매너를 공유하는 두

개의 벽돌은 시간에 따라 하나의 벽돌처럼 때로는 두 개의 다른 벽돌처럼 표현되어 건물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위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용도: 근린생활시설+업무시설

건축면적: 280.3㎡ / 연면적: 1,492.48㎡

규모: 지하2층+지상5층 / 높이: 19.5m / 주차: 10대

건폐율: 59.02% / 용적률: 199.58%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벽돌(스페인)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인테리어: LESS Architects / 준공연도: 2020

58 1. 통(通)하는집 I 전경 2. 배면 3. 외부마당 4. 옥상정원 5. 외관 개구부 상세
35 2 1
4
건축개요

예술에 대한 동경이 있던 저에게 건축은

이과와 문과의 성격을 두루 갖춘 분야로

생각됐고, 매체를 통해 바라보는 건축가는

왠지 모르게 도인 혹은 마스터 같은 포스가

느껴지며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막연한 설렘으로 건축과에

입학했는데, 막상 학교에서는 과생활 보다

영화를 보고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영화창작 동아리에서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그 결과물이 공중파에서

상영되기까지 했어요.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건축학도인 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영화창작동아리였지만, 오히려 건축보다 영화 만드는 일이 더 즐겁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졸업이 가까울수록 건축과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결과물의 표현력과 고민의 흔적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죠. 저의

부족함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은사님인

이은석 경희대학교 교수님께서 ‘너는 건축 잘할

수 있어’라고 한 마디 해주시더군요. 그때 그 말

한 마디가 어쩌면 지금까지 건축을 하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들어오라는 회사도 있었지만, 배움의 시간을 좀 더 가져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2년간 건축에 몰두했고, 연구실 선후배들과 치열하면서도 즐거운 대학원 생활을 지내니 더욱 건축에 대한 확실한 목표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영화를 만들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이 지금의 건축을 함에 있어서 큰 자산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사무소 시작 이후 모노라이즈만이 추구하는

가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MONOLITH (하나의, 기념비적인) + RISE (서다, 오르다) = MONORISE

모노라이즈는 ‘하나된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MONOLITH가 개념적이며 동시에 형태적으로

읽힙니다. 건축주, 시공사, 건축가를 개별적

대상으로 여기기 보다는 좋은 건물을

짓겠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 단일한 조직체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중요한 건축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에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 자체도 MONOLITH 하다고 생각해요.

매끈하고 단단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과정도

59 6. 9KNOT(EDGE BOX) 전경 7. 배면 8. 측면 9. 내부계단 10. 외부마당 11.
관입
내외부공간의
1011 6 8 9 7

위치: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용도: 근린생활시설

건축면적: 205.88㎡

연면적: 1,221.18㎡

규모: 지하1층+지상6층

높이: 21.23m

주차: 8대

건폐율: 49.97%

용적률: 243.41%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라임스톤

설계연도: 2021

60 VIVO 사옥 1. 2층 카페 2. 4층 스튜디오 3. 6층 발코니 4. 6층 CEO 룸 5. 투시도_전경 6. 투시도_배면 7. 투시도_측면
7 4 3 2 1 6 5
건축개요

건물도 함께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이상을 가지고 건축의 과정과 결과물이 하나가

되어 기념비적인 멋진 건축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 그동안 진행해 온 주택, 근린생활시설, 사옥 등의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하려는 부분과 그것들을 잘 현실화 하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설계와 시공에서 분명

간극이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을 줄이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그동안의 결과물을 보면 항상

아쉬운 부분이 눈에 밟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자인의 다양성 면에서는 일부러 의도를

한 것은 아니고, 땅과 건축주의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묻어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동료직원들 모두 초기 계획안에서부터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해가며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다 보니

다양성이 부각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설계와 시공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나 스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가 아는 이야기겠지만, 도면을 디테일 하고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겠고, 이후의 과정에서는 현장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시합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동일한 목적으로 함께 가는 유연한 건축의 과정들이 건물의 퀄리티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현장소장님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건축주에게는 시공사를 결정할

때 반드시 나의 건물을 지어줄 현장소장님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계약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그리고 선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어 다닙니다. 제가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으면 사다리차에 올라 직접 그라인더를 돌려보기도

하고, 나무와 벽돌을 잘라 목업을 해보며

시공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더 좋은 대안을

찾기 위해서 함께 고민합니다. 〈32KNOT〉의

경우, 그라데이션 벽돌 시공을 위해서 모든

면의 벽돌 나누기 도면을 그려주고 모든 벽돌을

도식화 해서 시공자는 순서대로 벽돌만 쌓으면

되게끔 도면작업 후 현장에서 직접 관리감독

했습니다. 건물의 각 층에는 모두 다른 다양한

벽돌 패턴들이 시공되어 있는데, 익숙하지

61 8. 1층 평면도 9. 2층 평면도 10. 6층 평면도
10 8 9

통(通)하는집 II

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파주시 서패동

용도: 단독주택 및 근린생활시설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점토벽돌+라임스톤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준공연도: 2022

등대가

어려서부터 뛰어 놀던 성북동에는 추억의 냄새와 소리, 그리고 사연이 깃들어 있다. 장소가 소중한

만큼 건축에 대한 접근도 신중해진다.

1959년에 지어진 기존의 건물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되어 지역 주민들에게는

우범지역으로 여겨지던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기존의 건물이 가진 폐쇄성을 상쇄시키고 동네의

밝은 얼굴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건물이

곧 마을의 등대가 되기를 희망했다. 건물은

독특함으로 드러나기 보다는 주변의 건물들과

어울리는 재료와 형태를 갖추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무채색의 전벽돌과 회색의 와이드벽돌을

주재료로 선정했다. 수직적 방향성이 강한

좁고 높은 건물의 최상부에는 수평성이 강한

와이드벽돌을 사용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함과 동시에 빛을 형상화 하였다.

크지 않은 대지 안에서 주거와 임대공간, 갤러리, 필요로 하는 주차대수에 대한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모듈 스터디를 했고, 이를 통해 버려지는 공간(dead space)을 최소화 했다. 정북방향일조권의 제한선을 디자인에 적극 활용하여 지붕의 형태를 결정하는 동시에 건물주의 신체 사이즈와 활동 범위를 검토하여, 각 층의 층고와 내부 공간을 구성했다. 건물의 최고 높이가 정해져있는 제한적 상황에서

최대의 천장고를 얻기 위하여 플랫슬라브구조를 적용했고, 주진입 도로가 대지보다 10미터

가량 높은 환경 속에서 건물과 도로 사이의

간극을 흙으로 메꾸어 건물과 땅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회복하고자 했다

62 1. 통(通)하는집 II_전경 2. 측면 외관 3. 외부마당 4. 1층 평면도 5. 내부공간 6. 내부계단 7. 우물마당 8. 우물천창
3 78 4 1 2 5 6

건축개요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 용도: 단독주택 및 갤러리

건축면적: 54.66㎡ / 연면적: 259.25㎡

규모: 지하1층+지상3층 / 높이: 8.20m

주차: 2대

건폐율: 29.87%

용적률: 89.61%

구조: 철근콘크리트조(플랫슬라브구조)

외부마감: 와이드벽돌, 전벽돌

내부마감: 콘크리트 면처리 위 수성페인트, 석고천장 위 수

성페인트

준공연도: 2017

않은 시공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과 현장 상황에 맞춘 정확한

도면이 있었기에 실현됐다고 생각됩니다.

ⓦ 최근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개인사무소를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소규모 사무소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모노라이즈만의 장점과

차별화된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모노라이즈 내부적으로는 근무 환경에 있어서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근무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직원이 많지 않은

작은 회사이지만 어디서든 자유롭게 근무가

가능하도록 클라우드 기반으로 작업을

적극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이동 동선을 최소화 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현장과 설계실 업무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데 예를 들어, 동료직원의 거주지 가까운 곳에 공사현장이

있고, 오후에 현장 미팅이 예정이라면, 아까운 한두 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각자가 편한 곳에서 업무를 보도록 합니다. 최근에는 파주에 사무실을 마련해서 방배동 사무실과 파주 사무실을 선택적으로 다니고 있는데, 이는 편리한 클라우드 기반에 의해서 가능한 부분이고, 환경면에서 모노라이즈 일원 모두에게 새로운 공간이 주는 공간의 쾌적함과 함께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파주 사무실에서는 점심식사 후 미메시스와 같은 좋은 공간에서 커피 한잔하며 보다 생산적인 휴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시공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부분도 일반적인 사무소와 차별화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2019년부터 정흥건설과

모노라이즈가 제이마크(JMARC)라는

건축컨설팅 회사를 함께 만들어 운영 중에 있습니다. 설계 뿐만이 아니라 대지

선정에서부터 준공까지 건축의 전반적인

프로세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양한 니즈를 필요로 하는

건축주들을 만나면서 건축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역시 시공에 대한 갈급함을 채울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 그렇다면 모노라이즈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축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63 9. 등대가_전경 10. 외벽 11. 야경 12~13. 내부공간 14. 단면도
있는지 궁금하고, 앞으로의 목표도 궁금합니다.
13 9 11 10 12 14

32KNOT

32KNOT는 모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과

집단이 모인 디자인 커뮤니티 사옥이다.

디자인 중점 사항은 아래와 같았다.

작은 땅에서 최대의 효율을 얻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이 되길’

해당 대지는 작은 면적과 일조사선 등에 의해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건축 가능 면적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조건 속에서

미리 각층에 입주할 업체들을 사전 검토하여 이에

알맞은 층고를 확보하는 동시에 최대 층수를 확보했다. 또한, 최소 면적의 계단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화장실을 한 곳에 집중함으로서 실사용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

마을을 향해 열린 입면의 큰 창들은 어두웠던

골목길에 생기를 더하며, 벽돌의 그라데이션에

의한 수직적 조화와 세 개의 모듈로 이루어진

창들의 일정한 반복에 의한 수평적 조화를 통해서

건물 전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는 건축, 시공, 인테리어, 음식 등의 다양한 창작자들이 만나 서로 공유하고 협업하며 나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건축개요

위치: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용도: 근린생활시설

건축면적: 82.82㎡

연면적: 481.55㎡

규모: 지하1층+지상5층

높이: 15.7m

주차: 3대

건폐율: 49.98%

용적률: 218.65%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벽돌

내부마감: 콘크리트 면처리 위 아크릴 투명페인트

준공연도: 2018

42KNOT

모든 공간에 자연의 빛과 공기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인접한 건물과 사람의 시선을 고려해서

계획한 기본에 충실한 건물이다.

조화되면서도 당당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건물이

되고자, 주변과 위화감 없는 벽돌을 선택하고 ,

건물의 기하학적 볼륨을 다듬어 갔다. 두 종류의

벽돌을 사용하여 미세한 변화를 표현한 입면은

빛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하나의 벽돌처럼 읽히고, 표정을 달리한다. 직사각형 매스들의 중첩을 통해

서로 업고 의지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본다.

64 1. 32KNOT 전경 2. 측면 외관 3. 회의실 4~5. 사무실 6. 야경 7. 42KNOT 전경 8. 골목에서 본 측면 7 1 4 2 5 3 6
8

우선, 계획안으로 끝나버린 비운의 프로젝트 ‘달팽이 카페’를 제주도 어느 해안에 꼭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가끔 잠을 자다가 좋은 계획안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달팽이 카페’였습니다. 자연에 대한 순응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디자인이 됐다고

생각했던 계획안이었는데, 아쉽게도 실현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알맞은 땅을 가진

건축주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면 모노라이즈가 더 번창해서 제가 직접

지을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겠네요.

그 외에는 모든 종류의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하기에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건축물만 아니라면 그 어떤

프로젝트라도 좋을 듯합니다. 최근 진행중인

캠핑장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텐트와

편리한 화장실과 샤워실 계획을 통해서

캠핑장 이용객과 시설관리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HIT(house in tent)라는 이름으로

계획한 농막텐트 계획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진

휴농지를 어떤 방식으로 활성화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건축을 하는 제게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건축가로서의 최종 목표를 뚜렷하게

정해 놓은 것은 없습니다.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멋지고 구체적인 목표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은 일단

건축의 영역에서 함께 하고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에게서 모노라이즈 건축 잘한다고

인정받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 건축 이외의 특별한 취미나 좋아하는 일들이 있는지요?

자전거 라이딩과 음악을 좋아합니다. 상주감리

2년 하는 동안에는 상암동에서 논현동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로 출퇴근 했었고, 가끔 가방 하나 등에 메고 상암동에서

자라섬까지 오가는 여행을 다니고는 했습니다.

요즘은 돌봐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멀리 떠날 만한 여유가 쉽게 생기지는 않네요. 음악을 잘하고 싶은 소망에 보컬트레이닝도 받아봤는데, 역시나 취미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 마지막으로 건축가로서 앞으로 되고자 하는 건축가의 상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건축을 통해 만난 인연들과 오랜 친구로 남는 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

달팽이집

제주도 북쪽 해안가에 계획된 〈달팽이집〉은

온전히 자연에 기대어 건물의 형태가 자리 잡혀

바람과 바다처럼 유연한 모습이다. 건물의 동측은

일출을 향해 열리고, 서측은 석양의 눈부심을

적절히 차단하고, 남측은 따뜻한 햇살을 품으며,

북측은 넓은 바다를 향해 더 넓게 지붕을 연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순응으로 지붕의 선과 모양이

자리 잡게 되었다.

〈달팽이집〉이 언젠가 현실화 되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쉼터가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건축개요

위치: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 용도: 근린생활시설

건축면적: 129.90㎡ / 연면적: 166.50㎡ / 규모: 지상2층

높이: 7.30 m / 건폐율: 19.98 % / 용적률: 25.61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FRP / 내부마감: FRP

설계연도: 2015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

건축 사진 크레딧(별도 표기 외): 모노라이즈

건축사사무소

최유일은 경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황두진 건축사사무소에서 가구, 건축, 공공프로젝트 등 다양한 실무를 쌓은 후 2015년 모노라이즈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건축사이며, 현재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개요

위치: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용도: 근린생활시설

건축면적: 85.71㎡

연면적: 499.98㎡

규모: 지하1층 + 지상5층

높이: 18.73m

주차: 3대

건폐율: 49.78%

용적률: 226.17%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벽돌

내부마감: 콘크리트 면처리 위 아크릴 투명페인트

준공연도: 2022

65 9. 건물 상부 상세10~13. 달팽이집_3D 이미지
10 12 9 11 13

GAIA Topic

깊은 고요함(deep silence)

제임스 드레셔(James W. Drescher)는 현재 캐나다 노바스코사에

있는 윈드호스팜(Windhorse Farm)에서 네 세대에 걸쳐 진행 중인

‘삼림 비옥화 실험’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건강한 숲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저장된 탄소가 가득하기 때문에 숲의 장기적인 건강에서

핵심은 만들어진 이후에 재산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 말한다. 이

재산을 보존하는 일은 막대한 양의 죽은 나무들이 아주 천천히

분해되는 과정에 좌우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죽은 나무는 숲의

생명줄이라고 설명한다. 오래된 숲에 있는 동물의 절반 가까이가

죽은 나무 안이나 그 위 혹은 그 덕분에 살아간다. 따라서 삼림

관리원은 공장 관리인 보다는 토지 관리인처럼 행동하면서 어느

나무를 수확하여 제거할지 까다롭게 결정한다. 대부분의 죽은 나무나

자연적으로 쓰러진 나무는 원래 있던 자리에 놔둔다.

단기적인 이윤을 좇는 오늘날의 문화에서, 한 세기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숲에서 나오는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기술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윈드호스팜의 실험은

역시 그곳에서 생을 위해 애쓰고 있는 다른 생명 형태들에게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방식으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증거를

말해주고 있다.

드레셔는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가까운 일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깊은 고요함(deep silence)”라고 묘사한다.3)

p.36

66 해에게서 소년에게
3) 앞의 책, pp.45-47에서 발췌 인용
84 Special Feature 9771976-741204-11
대화 對話
박 승 홍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대표 건축가 디자인스케치북 이야기 DIALOGUE
The Story of Design Sketch Books by Seunghong Park Architect

오래전부터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스케치 몇 장을

챙겨놓았다. 그냥 버리기

아깝기도 하고 보관하다 나중에

꺼내 보면 좋을 것 같아서다.

처음에는 한두 장 정도씩이었는데,

크기가 제각각인 낱장의 종이를

두세 곳에 나눠 보관하는 게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아예

제본된 스케치북을 사용했다.

매 프로젝트마다 새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첫 페이지부터 생각하고, 메모하고, 디자인을 그려갔다.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스케치로 물체화 되고

있었다. 불편한 점도 많았다.

스케치북 사이즈에 맞춰 그려야

하는 데다 생각보다 손이 앞서나간

경우엔 이미 그린 그림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도 없고, 시간을

돌아가 다시 그릴 수도 없어

낭패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디자인과 표현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페이지도 많았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것 같아 찢어버리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스케치북을

하나씩 펼쳐 봤다. 페이지가

찢겨나간 책, 반으로 갈라진 책, 수채로 그린 탓에 색이 바래버린

페이지, 도통 무슨 말을 써놓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메모, 한구석에 적힌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전화번호까지….

그래도 여전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자신에게 던졌던 질문과

끊임없이 이어지던 스케치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니었구나!’

했던 순간의 실망뿐 아니라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을 때 느낀 희열도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대부분의 건축가에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많은 스케치 중에

실현된 건 많지 않다. 그래도

지어지지 않은 집들이 스케치북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글. 박승홍, 『디자인스케치북』서문)

70
71 디자인스케치북(전 3권) Ⓒ마웃당전발

스케치북의 작업이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말하는

건가요? 반복? 시행착오? 인내? 시간

할애? 기타?

제가 말하는

스케치북이라고 하는 것은

제본되어 있는 빈 책에다 디자인을

하는 것이에요 낱장으로 작업된

스케치를 모아서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빈 책이지만 앞과 뒤 그

다음처럼 순서가 있는 지면에 생각을

그리는 것이죠 디자인 생각이라는

것이 단계별로 완결되어 다른 이슈로

넘어가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완전 좌충우돌이죠. 사실

디자인 작업 중에는 계속 질문만

던지고 있을 때가 종종 있고 질문에

이어서 답이 나와야 하는데, 하나의

답을 만들려면 다른 조건들을 모두

봐야 하니까, 결과적으론 뒤죽박죽

되는 경우와 맞닥뜨리게 되지요.

그런데 제가 스케치북의 작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이슈가 묶여 있어야 하는데 그 같은

경우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해서

페이지를 넘나들며 스터디 하고

그 과정이 대충 페이지 순서대로

그려져 있는 거지요 쉽지 않아요

너무 구차스러운 작업입니다. 처음

스케치북 작업을 시작할 때 저 또한

포기할까 생각해본 적도 많았고

실제로 포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제가 여전히

스케치북을 붙잡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미리 생각도 하게 되고, 예측도 많이 하게 됐어요 질문에도

있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인내도 많이 배웠어요. 그런 면에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주위를

보면 그런 일련의 과정의 작업이

힘들어서 많이들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스케치 작업에 사용되는 도구

혹은 기법(수채, 목탄, 펜, 색연필, 잉킹)마다 활용의 시점이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박; 대답에 앞서서

IFEZ아트센터 스케치북을 펴서

확인시켜준다} 처음 시작은 연필로

[전; 밑그림을 그린다는 건가요?]

아, ‘밑그림’은 아니고 연필로 생각을

해요, 지울 수 있으니까. 스케치

자체가 무언가를 위한 밑그림이 된

적은 없고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린

스케치가 바로 원본이에요 {박; 다른 페이지를 펼쳐서 보여 준다.}

계단의 위치가 옮겨진다든가 조금씩

생각이 분명해지면 그때에

‘존’이나 안팎을 표현을 하기

위해서 물감을 칠해요. 그린

또는 오렌지색으로 영역 구분을

하면서 스케치와 저와의 대화의

내용을 명확하게 하다가 그것이

자꾸 쌓여서 어느 정도 고칠

필요가 없다 싶을 때 펜을 써요

그러니까 특별한 방식이 아니고

그냥 다 모두 아는 도구로 제가

디자인할 때 하는 방법이에요.

그 대신 스케치 한 장에 생각과 시간이 겹겹이 적층돼 있는

겁니다. [전; 생각이 진화하는 과정이 스케치 도구를 활용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거군요 ]

스케치 작업이 시간이 요구되는 지난한 작업인데 가장 짧았던

기간의 스케치북과 가장

72 디자인스케치북 1권, Becoming A Memory

길었던 기간의 스케치북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스케치작업 기간은

전부 다 프로젝트의 조건에 달려

있어요 현상을 하면 주어지는

기간이 한 달이 될 때도 있고, 두 달이 될 때도 있어요. 국내

현상이든 국제 현상이든 주어진

기간 안에 디자인이 끝나야 합니다.

이번에 책으로 출간한 마곡병원의

경우는 두 달 만에 끝내야 했죠.

제일 길게 스케치를 이어간

프로젝트는 역시 출간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트센터 인천(이하, IFEZ아트센터)이었어요. 그 또한

프로젝트의 조건 때문이었죠 도중에 사라졌다가 다시 시작되고, 또 사라지고를 반복했던 까닭에 이 프로젝트는 제 기억으로는 총

4년이 걸렸습니다. IFEZ아트센터

스케치북이 제법 큰 책으로

두 권이 만들어질 정도였어요.

심한 것은 시작했다가 다섯

페이지 정도를 그렸는데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되어

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했고요. 제가

말하는 ‘디자인스케치북’이라고

하는 것은 한 권의 책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스케치북이

50여 권 됩니다. 그중 여러 권

정도는 시작하자마자 멈춘

책들이 있어요. 그 중엔 또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의

스케치북이 더 많아요 (웃음)

결과적으로 프로젝트의 조건에

따라 스케치북의 작업시간이

결정됩니다.

73

스케치북이 건축 대상(프로젝트)에

관한 건축가 자신의 스터디의

기록이라고 이해되는데 그 안에는

팀원들의 스터디 내용도 스케치로

옮겨지는 것을 허용하나요?

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왜냐하면 직원들과

디자인미팅을 계속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팀원들과 대화한 것을

토대로 제 자리에 돌아와서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스케치를

해봅니다. 팀원들의 생각은 언제든지

환영이고 저 자신에게도 그 순간이

무척 행복한 때예요 왜 기쁘냐 하면

우리 팀원들이 프로젝트의 이슈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저와 같이

호흡한다는 것이고, 이해해주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반응이 없을

때는 썰렁하고, 반응이 있다고

느낄 때는 행복해요. [전; 그러면

그렇게 작업된 스케치를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해주시나요?] 그렇죠 [전;

그럴 경우, 박 대표님의 스케치로

피드백을 받았을 때, 팀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좋아했을 거라

생각해요, 나도 그랬으니까...(함께 웃음)

스케치북이 프로젝트 종결되기

전까지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말씀이 인상적인데, 프로젝트

종결 후 자연스럽게 건축가

자신의 기록이 쌓이는 아카이빙

작업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젝트는 종결되더라도

스케치북은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유기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한번 닫은 스케치북은 이후

더 이상의 스케치를 용납하지 않게

되나요?

한번 닫은 스케치북은

거의 백 퍼센트 다시 수정을 하거나

더해서 스케치를 하지 않아요.

아니 못해요 왜냐면 종결된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시간이 부족한데

지난 걸 다시 되돌려 손볼 수가 전혀

없고 이제는 저도 소위 도가 텄다면

터서 보기 싫은 데도 그냥 두고

넘어가는 편이에요. [전; 질문의 배경

하나를 말씀드리면,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의 스케치를 대하는 태도와

박 대표님의 태도가 많이 다른 데요,

많은 건축가들이 디자인 과정에서의

스케치에 머물러 있는 것에 족하지

않고 프로젝트가 완성된 후에

건물의 사진 등을 토대로 재현하는

방식의 스케치를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웃으며) 아, 네.

제가 그런 걸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말씀 잘 해주셨는데, 제 스케치랑 다른 분들의 스케치가

틀린 것이 일반적으로 하는

스케치라면 보여주기 위해서

그려 놓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 경우는 작업 스케치라고

할까, 작업 과정 그대로를 담는

것이에요. 먼저 보내온 질문지

문항 중에서 다른 분들의 스케치를

참조하거나 따라 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제 스케치는 스케치 자체로만

보면 별것 아니어요. 모두가

아는 물감을 사용하고 스케치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의 스케치와 틀린 점은

생각하는 순간이 담겨 있는 시간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또한 스케치 하나가 스케치북에서

떨어져 나와 있으면 별 의미가 없고

스케치북 안에 다른 페이지와 함께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스케치 내에 사람 형상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은 집단이

아닌, 넓은 공간에 홀로 있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혹시 이러한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간단합니다. 스케일을 보려고 한 겁니다.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함이에요. 건물의

크기가 적정한지 보기 위해서 그려 넣는 겁니다. 사람을 집어넣으면

대번에 느낌이 오거든요

디엠피 파트너들과 함께 찍은 유튜브 영상에서 프로젝트 진행시 박 대표님의 스케치를 받아서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다시

해석’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스케치가 텍스트를 포함하여 무척 구체적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보이는 데 반해 ‘해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의아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해석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또는 포괄적으로 들으실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제가 스케치에 아무리 구체적인 텍스트, 또는 설명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모든 게 다 파악돼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각자가 스케치를 보고 해석할 여지가 굉장히 많은 거라고 봐요. 저는

오히려 팀원들이 스케치북을 보고

더 좋은 생각 또는 다른 생각하기를 부탁해요

74 디자인스케치북
Pilgrimage
2권,
75

발간된 스케치북을 보면서

영화감독의 스토리보드북이

연상되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스토리보드북 같은. 한 권의

스케치북 작업에 있어서 출발할

프로젝트의 시작과 중간과정 그리고

끝나는 지점까지 개략적인 구성의

프레임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나요?

저한테는 그 같은

작업은 불가능해요.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른데 부산

오페라하우스 경우는 상당히

큰 스케치북이었는데 열 장을

사이트에서 본 것, 부산에 대한

것, 대지가 위치한 항구에 대한 것

등등을 메모하고 그렸더라고요

디자인을 어떻게 하겠다는 노트는

하나도 없이 말이죠. 프로젝트의 안이 쉽게 결정이 되고 마음에 들면

몇 페이지로 초기 디자인이 끝날

수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자꾸 손을 대게 되기 때문에 페이지

수가 늘어나기 마련이죠. 그렇게

프로젝트의 진행에 따라 틀려서

영화감독들과 같은 스토리보드북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해요

유튜브를 통해서 스케치북 발간이

건축가 자신의 스케치 작업이

사적영역을 넘어 공공적 가치에

대한 공유를 전제로 한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교육적

가치와 자료적 가치 중 어느 부분이

강조된 생각인가요?

직접적인 답변 이전에

스케치북을 만들게 된 의도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간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도가 있어요.

하나는 건축 세상에서 일반세상으로

넘어가는 얘기이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창작 작업을

해본 사람들, 즉 건축가, 미술가, 조각가, 글 쓰는 작가 모두가

포함되는데 한번이라도 창작

작업을 하면서 진통과 희열을

느껴 본 사람한테 내가 경험한

고통과 희열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거였어요. 전자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와 연관이 깊은데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 물질에

집착하고 있어요. 제 가슴속에 박힌

돌덩어리 하나인데 한국 사람들이

정신문화에 대한 가치에 대한 인식은 고사하고 물질에만 빠져 살고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아파트가 그래요. 건설사가 세상의

나은 환경을 걱정하고, 만드는 주체라는 오해입니다. 삼성이니까 좋을 거야, 현대가 만드니까 등등. 아시다시피 건설사의 목적은 첫 번째도 돈이고, 두 번째도 돈이고, 세 번째도 돈이에요. 아무리 평범한 아파트도 그 뒤에 소위 창작 작업을 하는 건축가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 존재를 모른다 말이죠, 그들이 부족하나마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 책을 통해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건축과는 멀어지게 해서 일반인이

궁금증을 갖고 책을 뒤적여볼 수

있게 할 때 내가 얻고자 하는 목적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어떤

가치를 강조하느냐는 질문에는

공유의 가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76 디자인스케치북 3권, A Room Full Of Light

스케치라는 행위가 결국은 자기 발견의 찬스, 기회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른 건축가들과 다르게

사진과 도면 중심의 건축 작품집이 아닌 스케치북을 발간한 데에는 앞에서의 공공적 가치의 공유

이외에 또 다른 목표 혹은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박승홍 대표는

스케치북을 펼치고 책의 서문을

읽는다} 제 책의 머리글 마지막

부분에 나누고 싶다는 표현을

썼고, ‘건축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도, 건축과 관련한 어떤

주장을 펼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건축에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책에 담긴 스케치를 있는 그대로 볼 것 같아서다. 건축 세상 바깥의

어디에서든 무언가를 만들

때의 몸살과 환희를 느껴본

사람들에게 감히 이 책의

내용이 창작의 찐한 순간이라고

인정받기를 바라고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다.’ 여기 써

놓은 이것이 다예요

77

‘건축은 정신문화’라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빌딩과

아키텍처를 구분하는 의미로

여겨지는데 ‘정신문화로서의

건축’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의

연장인데요, 한국인들의 물질에

대한 집착, 정신문화의 부재, 창의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심각해요 일본의 반 밖에

안 되는 땅에, 그나마 남북으로

갈라져 있으며 천연자원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우리가 가진 거라곤

개개인의 존재이고 그 창의력인데

지금 우리는 개인의 가치가

물질보다 못한 상황이에요. 이것이

제 가슴속에 큰 돌덩어리이에

‘건축은 (장소 or 개념 공간)

만들기’라는 등식을 제안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엇인가를 만든다,

라는 행위는 건축가 자신의 궁극의

목표로 여겨집니다. 스케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끼어 있는 매체라고

할 때에 박 대표님의 만들기가

구현되지 않고 스케치로만 남는 것에

대해서 건축가로서 아쉬운 점도 클

것이라고 사료됩니다만 그런 점에서

‘ ~만들기(making~)’의 범주에 대한

건축가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건축은 항상 만드는

거라고 봐요. 집 만들기, 공간

만들기, 장소 만들기, 이런 것들이

최고의 개념이고, 목적이에요.

제아무리 멋진 말을 갖다 붙인다

한들 결국은 그렇다는 거죠. 제

스케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있지

않고 현실의 영역에만 있어요

제 스케치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그리는 것이 아니고 실제 프로젝트를

다뤄서 그것이 도면화 되고 지어지는

것이잖아요. 저 자신 가상의

프로젝트를 설정하고 스케치를 해본

적도 없어요. [전; 그러면 구체적으로

실현된 프로젝트로서의 만들기는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고, 실현되지

않고 스케치로 남은 것도 만들기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그렇죠. 만들기를 목적으로

행한 스케치인데 현상공모에서

당선이 안 되었거나, 진행하다가

건축주의 사정이 안 좋아서 멈춰선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제 스케치의

목적은 만들기인 것이고 현실의

영역에 있는거죠

금번 본지 84호 특집에서

보여주는 4개의 프로젝트 스케치

중 본지 편집실에서 선택한 1개

프로젝트(IFEZ아트센터) 외에

스케치북 기준으로 미발표작인

3개 프로젝트를 선정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스토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전; 아, 그렇군요.] 주제나 이슈를 갖고 작업한 스케치들인데 예를

들면 노들섬 공연장은 콜렉티브 이미지라는 것을 타이틀로 붙이고 작업했던 것을 모아서 보고자 한 것이에요 스케치북에 다른 많은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한두 페이지 뽑은 게 아니고 동일 이슈에 해당되는 것들만 뽑아서 소개하는 겁니다.

수자원공사 파빌리온은 몰입의 여정이라는 주제하에 짧은 시간 속에 공간을 느끼면서 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된

스케치만 묶어서 소개한 겁니다.

78
요 그런 배경에서 정신문화를 얘기한 것이에요 여러 프로젝트의 스케치를 통해

Becoming A Memory

Story 1 IFEZ아트센터

IFEZ 아트센터는 콘서트홀,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실험극장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곳은

콘서트홀과 미술관 사이에 있는

외부 마당이다. 이곳에 서면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이

덮어버리고 남은 바다와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돌아서면 조금 전

우리가 떠나온, 아직도 도배 냄새

폴폴 나는 엄청난 높이의 도시가

보인다.

이곳은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기대감에 서성이고, 공연이 끝난

후 그 벅찬 감흥을 솔솔 부는

저녁바람을 맞으며 다독이는

곳이다. 유명한 미술품을 보기

위해 친구를 기다리는 곳이자

관람과 아무 관련 없이 혼자 휘

둘러보고 가는 곳이다.

콘서트홀은 어디에도 있지만

이 장소는 여기밖에 없다. 원래

여기는 바다에 돌을 쏟고 흙을

부어 만든,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던 매립지다.

이 생경한 도시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다.

그렇기에 기억과 추억이 없다.

오랜 시간 모두에게 익숙한

장소도 없다. 기억 없는 도시에

모두가 알고 찾아오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연주회 표를

구입해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를 보러 오는 청중이나

모네의 그림을 관람하러 오는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그냥 바람

쐬러 들렀다 가는 누군가를 위한

장소를….

지휘하는 손을 모티브로

한 건물의 조형은 도시 속

어디서나 알아보고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언젠가

사람들이 아트센터를 찾았을

때는 콘서트홀과 미술관의

그렇게 조금씩 새 도시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단순히 ‘멋진’ 조형물을

만들고자 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양 때문에 기억되는 ‘장소’를

만들려 한 것이다. 그렇기에

아트센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장소는 바로 이 사잇마당이다.

지금은 콘서트홀만 지어져

있다.(글. 박승홍)

80
조형이 감싸며 가리키는 장소가 사잇마당임을 알게 되고 그 어색한 건물 모습을 만든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81

{전; 편집실에서 기 발간된

3권의 스케치북 콘텐트 중에서

IFEZ아트센터를 소개할 프로젝트로

선정한 배경을 설명한다. 이곳이

미완성 교향시라 칭할 만한

현재진행형의 장소란 생각에

완전체로서의 IFEZ아트센터를

스케치를 통해 시민에게

보여줌으로써 완성의 기대감 유발의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신도시의 장소 만들기(Making

of A Place)가 이 프로젝트의

작업 목표라고 적고 있는데 인천

송도의 캐릭터를 갯벌 매립지, 바닷길을 여는 문이라는 데서

찾고 있기보다는 ‘새로운

용어도

사용하고 있으신데 그것이 매립지

송도의 시간성과 도시비전과 같은

장소성을 염두에 둔 배경에서의

사용은 아닌 듯 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인가요?

책의 프로젝트 소개

글에 방금 질문하신 내용이 사실

제일 많이 들어가 있어요 {박; 책의

소개 글을 읽는다} ‘콘서트홀은

어디에도 있지만 이 장소는 여기밖에

없다. 원래 여기는 바다에 돌을

쏟고 흙을 부어 만든,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던 매립지다. 이

생경한 도시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다. 그렇기에 송도는

기억과 추억이 없다. 오랜 시간

모두에게 익숙한 장소도 없다.

기억 없는 도시에 모두가 알고

찾아오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니까 프로젝트가 긴 시간

진행되는 동안 점진적으로 제가

포커스하게 된 것은 바다가 옆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 생겨난

도시였습니다. 새로 생긴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중요한가가

이슈가 되었던 거지요. 디자인

초기에는 바다에서 솟아난 덩어리

또는 바닷가의 큰 바위와 같은

형상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진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것이 점차 도시의 아이콘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었죠. 새 도시의

사람들을 위한 장소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프로젝트

출발의 계기가 되었더라도

그(지휘자)의 손이 전체 조형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일단 스케치상의 손이 정명훈 씨의 손은 아니고요(웃음), 송도신도시가 센트럴파크 빼고는 전부가 수직으로 된 고층의

아파트와 오피스빌딩이거든요, 길거리에서 멀리 빌딩 사이로 뭔가 수상한 게 보이면 그것으로 인해 인상에 남을 것이고 그 장소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한

거죠. 물에서 솟은 돌덩어리와

지휘하는 두 손이 합쳐져 형상을

이루는데, 지휘자의 손을 그대로

옮겨 놓게 되면 그것은 조각이지

건물이 아니지요, 거기서 지휘자의

손은 건물 매스와 매스 중간에 있는

사잇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한 손이면 할 수 없지만 받아주는

다른 한 손이 있으면 사이에 있는

공간이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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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만들어 장소를 기억하게 한다’는 건축가의 의지가 단호해 보였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스트라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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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홀과 미술관이 만드는

사잇마당이 IFEZ아트센터에서

기억될 장소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사잇마당을 통해 보고자/보여주고자

하는 장면들에 대해 부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책에 쓴

내용을 읽는 게 좋을 듯해요 {박:

책에 담긴 프로젝트 소개 글을

읽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외부마당이다.

이곳에 서면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들이 덮어버리고 남은

바다와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돌아서면 조금 전에 우리가 떠나온

아직도 도배 냄새 풀풀 나는

맞으며 다독이는 곳이고, 미술관이

들어서면 미술작품을 보기 위해

친구를 기다리는 곳이자 공연, 관람과는 관계 없이 혼자 휘

둘러보고 가는 곳이고’ 등이 이

장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어쨌든 사잇마당을

통해서 바다를 보여준다는 말씀은

전혀 안 하시네요 ] 사실 애초엔 물이

콘서트홀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마치 베니스처럼 수상택시를 이용해

건물로 진입하게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일방적으로 물길이 이어지는 부지를

매립해버렸어요. 게다가 바다를 끼고

있는 건너편 지구도 매립을 해버려서

더 이상 바다가 아닌 것이 되고

말았죠. 바다 대신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만 보이게 된 것이죠. 이제는

더 이상 바다를 얘기해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예요. 이제 그곳은

바다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바다 이야기를 안 하게

됐어요

수로를 통해 콘서트홀로의 진입을

유도했던 초기 스케치 안이 무척

흥미롭고 유쾌한 제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같은 좋은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상실됐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인데요, 아이디어가

상실된 배경에 대해 독자들에게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정황이랄 게 없었어요.

어느 날 팀원들에게서 보고를

받았어요. 수로로 예정했던 부분을

매립해 버렸다는 거예요. 그 순간은

너무 화나고, 서운해서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죠.(웃음) 그런데

행정이 우선인 나라에선 어쩔 수가

없어요. 그리고 송도가 급조된 도시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너무 서둘러요, 역작이 나오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지금 역작을 만들

환경이 안 되는 거예요. 그 또한

물질문화에 예속된 징후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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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이곳은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기대감에 서성이고 공연이 끝난 후에 그 벅찬 감흥을 저녁바람을
엄청난 높이의 도시가 보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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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공연장 이용자의 주요

접근로가 자동차를 이용한 지하

주차장으로의 진입이 중요한 팩트가

되는데요, 스케치에서 보여지는 진입

공간 판의 계획은 보행자 중심의

도상학적 의미가 강조된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도시 공원으로서의

판의 개념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보행자의 접근 욕구가 생기게끔

하는 부가 장치가 필요한 듯싶은데,

그에 따른 오픈 스페이스의

장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셨나요?

얘기했듯 센트럴파크에서

원래는 부지 앞을

지나는 큰 도로가 없었어요

기껏해야 2차선 정도였고 주는

보행도로로 계획되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다른 중요한 것은 앞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수로로 연결된

부지 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구상했었어요. 그렇게 되면

부지 전체적으로 보행자 중심의

외부공간이 완성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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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어진 콘서트홀을 위시하여

미완의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등의

건물 모양은 비정형 형태언어를 띠고

있습니다. 비정형의 건축 언어를

채택하게 될 때 건축가 자신의 기준

혹은 원칙(기율) 같은 것이 있나요?,

아니면 돌발적인 상황에서?

후자가 맞아요. 정형의

건축을 주로 하지만 저한테 무슨

특별한 고집이 있어서 나는 정형의

건축형태만 추구한다 라던가 하는

건 없어요. 상황에 따라서 접근하기

마련인데 인천의 경우는 도시적

시선에서 좀 이질적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바닷가의 큰 돌이

지휘자의 두 손과 만나니 비정형이

되는 거지요 실은 비정형이

아니면서도 가능한 것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녹록치 않았었죠.

그 후에 노들섬 공연장이 상당 부분

비정형의 건축 형태를 갖게 되었는데

두 경우 모두 프로젝트가 가진

조건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파내는 방식의 조각술에 기댄

콘서트홀의 조형언어를 말씀하고

있으신데요, 덧붙이는 조각술을

배제하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희열이 있죠

그래 놓고 스터디를 더 해보니까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함께 웃음) 그

순간은 무척 슬펐죠 (웃음)

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

책에서 파내는 방식을 보여준 것

때문인 듯싶은데요, 사실 원래

스케치북에는 다르게 접근한 여러

페이지가 있는데 책 볼륨의 한계상

한 페이지만 넣은 거거든요, 여러

가지 스터디 중 하나였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스케치를 해보면

해볼수록 나아지는 것 같진 않고

계속 한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나름대로는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은 욕망에

방법을 찾다가 덩어리를 앞에 놓고

치즐로 파낸 것 같이 해보게 됐어요

한순간에 아, 이거다 싶었어요 [전;

그 순간에 희열이 대단하셨겠네요 ]

네, 해오던 것과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했을 때는 항상 신나고 무언가

미술관에서의 매스의 그루핑과

오프닝 전략이 흥미롭습니다. harmony & balance / body & skin / cut or hole 등. 이 같은 접근방식은

IFEZ아트센터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요, 그 같은 내용이

스케치북에 있던가요?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전:

질문은 그 같은 언어들이

IFEZ아트센터에서만의

고유한 어휘인가 아니면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자주 사용하시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위 어휘들은

디자인 과정에서 곳곳에서 이슈가

됐을 것 같고, 어떤 프로젝트이든

들어가 있을 것이고 이것들이

전혀 제게 있어서만 독자적인

형태 어휘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전체가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하모니와

밸런스의 경우만 기억이

나는데 아트센터의 콘서트홀과

미술관이 비정형의 매스이므로

오페라하우스도 자연히

비정형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 세 개의 건물이 아무리 해도 조화롭지가 않았어요. 어느 날 팀원들과 대화중에 퍼뜩 생각이 난 게 이 세 개의 비정형 매스를 잡아주는 바탕, 베이스, 책에서는 스트라타로 표현된 베이스를 단단한 좌대처럼 만들고 그 위에 세 개의 오브제를 얹어놓으면 전체가 하나로 보이고

안정되겠다 싶었던 거죠. 그때

하모니와 밸런스라고 말하긴

쉬워도 이루기가 쉽지 않구나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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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가운데 사잇마당의

주계단 캐노피의 ‘물’ 형상 전략이

돋보였습니다. 현재 완성된 캐노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추후에라도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시게 된다면 원안대로

복구할 의지가 있으신가요?

아마도 제가 제 돈으로

짓지 않으면 불가능할 거예요 (웃음)

[전: 캐노피가 향후 세 개의 메인

건물이 들어설 경우 화룡점정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듯해 보여서요 ]

그렇죠, 그 캐노피가 가장 중앙에

있고 지상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연결돼 있어서 중심적인 모티브임엔

분명해요 애초 구조재 이기도 한

강화유리를 전부 사용해서 제작하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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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구조설계자의 마인드가 감당을 못했어요. 저는 외려 비용의 이유로 지금 설치된 캐노피마저 없애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쉬운 대로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웃음) 그나마도 고맙단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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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EZ아트센터에서 ‘지층(strata)’을

해치 등이 아닌 수채화적(면적

느낌이 나는) 기법으로 그리는

특별한 이유 혹은 의도에 대해서

독자들을 위해 설명을 요청

드립니다.

스트라타의 의미는

시간이죠. 생경한 도시에 기억, 추억, 가고 싶은 장소 등등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면서 시간의 의미를

담은 지층 패턴을 생각해낸 것이고, 스케치북 전체가 대부분 물감을

쓰고 있었으니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런데 스케치북에서 물감을

써서 표현한 지층의 패턴은 사실

이렇게 보이면 안 되는 거였어요

왜 그러냐면 우리가 콘크리트를

만들 때 그 안에 들어가는 골재들,

예를 들면 아주 작은 자갈을 쓰거나

큰 콩자갈을 쓰는 경우도 있고

아티스트들은 일부러 유리병을 깨서

넣기도 하는데 콘크리트를 부을 때

층층이 틀린 내용을 붓고 그렇게 한

다음에 강력한 에어분쇄기로 표피를

갈아내면 내부의 물질이 드러나게

돼요, 자연스럽게 여러 겹의 지층이

만들어지는 거죠 멀리서 보면 거의

구분이 안 돼야 맞는 표현이지요 스케치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어서

채색의 차이를 써서 작업하게

된 것이고요. 근데 현장에서는

그 같은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선

공사비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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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 스킨의 마스크(하회탈

형상) 스케치는 한국성?을 염두에 둔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배경이 있는

건가요?

특별한 이유 없이

즐기면서 그렸어요 (함께 웃음)

한국성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지만 여기서 하회탈

모티브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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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였어요 앞 페이지에는 ‘팬텀 오브 오페라(오페라의 유령)’를 그린 것도 있고요. 그래도 아직 오페라하우스가 살아있기 때문에 이 담에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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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ve Image

Story 2
공연장
노들섬

서울시는 〈Sydney Opera

House〉(이하, SOH)를 뛰어넘는

기막힌 이미지를 노들섬 공연장에

기대하고 있었다. 강 한가운데

위치함으로 사방에서 거리를

두고 보게 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희망이었다.

그동안, 한강의 물을 ‘다스린다’는

이유로 강폭을 똑같이 하고

수변을 모두 댐과 다름없는

콘크리트 환경으로 만들고

강에 바로 접한 도로로 시민과

강을 이산시키면서 템스강이나

센느강에서 볼 수 있는 멋이나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빼앗아

가버린 과거의 정책 덕으로

한강은 시민들의 일상에서 잊혀진

장소가 되어왔다. 그러나 강

한가운데 정말 보기 좋은 건물이

들어선다면 지금보다 더 한강은

시민의 마음속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존(Utzon)의 SOH는 그

자체가 기막힌 모습이기도 하지만

시드니항의 모든 아름다움이, 즉

도시, 자연 그리고 하버브리지가

같이해서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만일 그 건물만 그대로 노들섬

위에 옮겨 놓는다면 그만치 멋이

있을까?

한강변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이다.

간혹 올림픽스타디움 등이 쉼표를

찍어주지만 모두 아파트들이다.

빽빽이 들어서있는 아파트가 만든

긴 벽이 강변 모습이다. 강폭 또한

변함없이 평균 1km이여서 강

건너편의 사람 모습이나 장소를

전혀 인식할 수 없다. SOH가

담겨있는 시드니항의 모습을

한강변이 배경이 되는 노들섬에

내가 만들어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Collective Image’이다.

한강변 동네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시민의 공간이 될

핑계를 찾아내서 두고두고 하나씩

시민들을 위한 시설들을 강변에 지어서 그것들과 노들섬 공연장이

함께 한 도시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언젠가는 만들어내는 상상을

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아파트

벽을 배경으로 단 하나의 건물이

기막힌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스케치들은 강변과 인접한 지역을

둘러보면서, 공공 성격으로

전환 가능성을 예상해보고, 몇

가지 그 ‘Collective Image’를

스케치하면서 노들섬 공연장

디자인의 출발점을 모색한

것이다.(글. 박승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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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의 ‘Heavy Concrete

Structure’와 개발 또는 예정되어

있는 기간시설의 현시를

통해 “콜렉티브 이미지”를

프로젝트의 주제로 끌어내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업 시기가

IFEZ아트센터가 멈춘 시점과

맞물려 있어서인지 초기 스케치

분위기에서는 IFEZ아트센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다(Sea)와

강(River)이라는 환경적 요소의

차이로 인해 워터프론트를 만드는

건축가의 구상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상이한 점도 있고, 유사한 점도 있고 무관하기도 해요

결론적으로 바다와 강이라는 환경적

요소만 가지고 접근한 기억은

없어요. 바다에 면한 IFEZ아트센터의

경우는 초기부터 염분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은

프로젝트의 조건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개의 프로젝트가 한 가지 동일한

것은 멀리서 보는 대상으로서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이슈가 된다고

봤어요. IFEZ아트센터는 도심 속에서

봤을 때 아이코닉한 존재이기를

생각했고, 노들섬 공연장은 한강

한복판에 있어서 올림픽대로나

강변대로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보거나 한강변의 아파트주민들이

먼발치서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아이코닉한 존재라는 해석에서

동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노들섬

공연장에서의 비정형이라는 형태는

솔직히 IFEZ아트센터에서보다는

훨씬 다루기 쉬웠어요 노들섬은 이미 기반이 돼 있는 도시가 배경으로 이었죠. 남산이 보이고, 여의도를 향한 축도 있고, 인근에 한강다리도 있어서 공연장의

생김새가 각각의 방향들을 인지할 수 있는 축을 따라서 앉혀졌기

때문에 형상 자체의 이유는

찾아내기 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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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3 수자원공사 파빌리온
몰입의 여정

수자원공사가 지은 파빌리온

중에 가장 알려진 것은 ‘하니

라시드’가 설계한 ‘디아크’, (The Architecture of River Culture)일 것이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위치해서 사방팔방에서 너무도

잘 보이는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여 지은

랜드마크적인 건물을 뜻한다”라는

‘Pavilion’의 의미에 더 없이

적합하다.

안동호댐 옆에 위치한 긴 삼각형의

이 사이트는 도로보다 낮고

안동호는 옆 언덕에 막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안동호를 위한

파빌리온인데 안동호에서도 여기

들어서는 파빌리온을 볼 수가

없다. 이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안동댐 구조물의 뒷모습이다.(실은

옆 언덕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그 정자에서는 안동호가 훤하게

잘 보인다. 그러고 보면 안동호의

파빌리온은 이미 여기 있었다.)

수자원공사 사람들은 여전히

‘빛나는’ 조형물을 원하고

있었고, 여기 들어설 파빌리온은

‘랜드마크’ 되기에 낙동강의

경우와 너무 달라서 수공

사람들이 정말 와보고 위치를

정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파빌리온은 모양을 내기 위해

만들어져 우편엽서의 이미지같이

한 순간만 존재의 가치를 갖는

건물은 아예 될 수가 없다고

일찌감치 결론을 내렸다. 대신에

건물 자체를 보게 하는 낙동강

파빌리온의 성격이 아니라, 우리의

정자처럼 정자 주변을 보게 하는

곳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보는 곳이 바깥세상이 아니라

마음 속, ‘물’의 존재를 생각하면서

우리 내면을 보게 하는 ‘몰입’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한 방울의 물이 암석을 두 개로

갈라버리는 물의 절대적인

힘을 은유한 장소, 물 한가운데

나무가 서있는 작은 못으로

생명의 근원으로서 경이로움을

얘기하고자 한 곳, 등이 몰입속의

에피소드들이었다.

이 스케치들은 긴 삼각형의

사이트의 마스터플랜이면서, 주차를 하고 난 직후 열 지어

빽빽이 들어선 나무아래를 정해진

길 없이 지나고, 물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를 지나고서 끝으로

하늘이 반영되는 타원의 못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적으로는 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몰입의

여정을 계획한 것이다.(글. 박승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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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여정”이라는 주제하에

파빌리온 자체보다는 주변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전략이 주어진

대지의 한계상황을 넘어서서 외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며 흥미를

배가시키는 프로젝트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로써 중심공간이

내부화된 “은유적 장소”로 탄생하게

되는데 이 같은 공간 전략을

구상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수자원공사 파빌리온

소개 글에도 적었지만 ‘하니

라시드’가 만든 디아크(The

ARC)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장소에 있어서 사방에서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아이콘이에요

아이러니칼한 것이 파빌리온을

한국말로 옮기면 ‘정자’에 해당되고

정자란 ‘나를 보라’고 지은 것이

아니고 밖의 경치를 보라는

것인데 디아크는 ‘내가 오브제이니

모두들 나를 쳐다봐’ 하는 위용을

드러내고 있어요. 애초 수자원공사

사람들은 그런 걸 원했는데 정작

땅은 푹 꺼져 있고 안동호는

바로 옆 언덕으로 인해 보이지도

않았어요. 거기서는 내가 아무리 잘

생겨봐야 보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의

정자에서처럼 밖을 보되 보이는

풍경이 없으니 바깥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속에서

물의 존재를 생각하면서 우리

내면을 보게 하는 몰입의 여정을

만들어야겠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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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간에 이르기까지 방문객이

경험하게 되는 외부공간

시퀀스 또한 이 프로젝트에선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외부공간계획에 적용된 디자인

전략은 무엇인가요?

앞에서 얘기했던

몰입의 여정이에요 질문에서

‘시퀀스 또한’이 아니고 ‘시퀀스’가

제일 중요한 거였어요. 시퀀스 안에

순서라는 의미가 내재해 있기는

하지만 순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전; 시퀀스를 염두에 둔 많은

스케치가 있는데 어떤 배경하에

그려진 건가요?] 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 은유적인 요소를

배치한 겁니다. 차를 주차하고

난 처음 시작은 열주, 숲이라는

‘여과의 켜’를 만들었는데 그

속에 쉽게 보이는 길을 만들지

않았어요 방문객은 나무 사이로,

낙엽을 밟으면서 알아서 지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나무 밑을

지나가는 동안 사람들은 상당히

예민해져요. 그런 직후 예민해진

감성이 만나는 것은 한 방울의 물이

암석을 두 개로 갈라버리는 물의

절대적 힘을 은유한 장소나, 물 한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를 세워놓아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요소, 등이에요. 그런

다음 최종 도착지인 타원의 못에 이르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방문객이 물에 대한 내면의 여행을

하게 되기를 바라는 거지요.. [전; 그런 생각을 통해 최종적으로

도달한 외부 공간의 모습은 어떤

건가요?] 타원형의 못에 도달하면 못에 반사된 하늘의 모습과 못 위에 살짝 얹혀진 구조물(‘수전’, Temple of Water)을 경험하게

되는데 사실 거기서는 안동호는 못 보지만 안동댐은 볼 수 있어요. [전: 최종적으로는 안동댐을 보게 하는 여정인가요?] 아니죠. 제가 원하는 것은 방문객 자신의 내면을 통해 물의 의미를 보게 하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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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공사 스케치에서 물 분자

구조(H2O)를 손수 그리신 바는

하나의 모티브라고 생각됩니다.

물 분자 구조의 형태는 공간 계획

등에 있어서도 또한 고려의 대상이

되었나요?

페이지 전체가 물에

대하여 이것저것 생각해보면서

디자인의 시작이 물에서 출발할 수

있을까 탐색하는 과정이 담겨있어요

물분자 구조모양이 나중에 이

그림이 마스터플랜에 써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긴 했어요

그런데 별로 가치가 없는 생각이라고

판단했어요, 물분자각 104도를

마스터플랜이나 실제 건물에

표현했다 한들 그건 그냥 그래픽

이미지 이상이 아니지요. 건축은

그렇게 깊이 없는 게 아니지요

이 프로젝트에서 등장하는 안동

하회탈 이미지 스케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건가요?

[전; 안동이니까 하회탈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지만요.]

맞아요, 실은 수공 사람들이 그걸

요구했어요 직접적으로 하회탈을

요구한 게 아니고 지방색을 넣어

달라고 말이죠. 안동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것이든 안동의 이미지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얘기는 초기부터 나왔어요. 가능한

피해 다니다가 결국은 하회탈을 못

밑에다가 넣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큰 실수였어요.(헛웃음) 그런 연유로

솔직히 이 프로젝트를 보러 가기가

싫어요. 왜냐면 하회탈을 거푸집을

짜서 콘크리트로 만들어 못에

넣었거든요. 어렴풋이 보이게끔

원래 못의 바닥이 짙고 어두워야

깊이가 느껴지고 하늘도 잘 반영이

되는데 하회탈을 넣어 놓으니까 검정 칠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못의 바닥이 다 보이고

물은 그냥 허연 물인 거예요 몰입의

여정 마지막 단계, 클라이맥스라고

할 순간에 결정적으로 물에 대한

느낌의 깊이가 상실된 거예요

끝까지 그렇게는 안 하겠다고

버티든지, 다른 장소에다 하회탈을

놨어야 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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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적 패턴의 탐색
인천공항 제2 터미널 설계경기
Story 4

공항터미널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기능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패턴의 탐색”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패턴이라 함은 기존 공항들이 갖고

있는 배치 패턴의 스터디 결과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합니다.

공항설계는 크게

봐서 게이트 숫자, 여행객 동선,

수화물 처리 동선 이 세 개가 제일

중요해요 게이트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표피가 많아지잖아요.

그러면 결국 건물이 커지게 되는데

여행객 동선은 중앙 포인트에서

출국하는 게이트까지 최소 거리가

되어야 해요. 수화물도 마찬가지죠

따라서 교통량이 많은 공항플랜은

콘센트릭(concentric)한 패턴이

가장 바람직하지요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부연하면 김포공항은

장방형의 긴 박스예요. 그것은

게이트 숫자가 적을 때 가능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김포공항이 외국국적

항공기 등으로 게이트가 많이 필요한 국제공항으로서는 부족한

거예요.. 그 후 만들어진 인천공항

꼬리를 갖게 하죠. 거기에 게이트를 만든 겁니다. 1 1~3. 2차 스터디 1안/2안/3안 일부

118
1터미널은 오그라들면서 두 개의 인천공항 2터미널은 1터미널보다 게이트 숫자가 훨씬 많아요. 보내드린 스케치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스터디한 패턴들이고 대부분이 콘센트릭입니다. 게이트 숫자는 늘리되 여행객들의 동선은 짧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119 2 3

나가며

아마도 요즘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건축 스케치는 다소 생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스케치 대신,

가깝게는 렘 콜하스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된 ‘다이어그램’

위주의 작업은 건축에 대한 접근

방향이 이전과 비교해서 꽤 달라진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라이노(Rhino)를

사용하는 파라메트릭한 디자인에서

자주 등장하는 곡선은 손으로 그린

스케치의 그것과는 당연하게도

이질적입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모형 제작에 있어서 역시 3D

프린팅에 큰 거부감이 없습니다.

이는 반드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매체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과

선택의 문제는 모든 건축가가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툴에 훨씬 익숙해진 요즘

학생들에게 스케치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오래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스케치

작업의 효용성에 대하여 작금의

후학들에게 어떻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만일 학교 강단에

서 있다면 적어도 한 학기에 스케치

한 장은 작업하자고 얘기할 것

같아요. 여기서 두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떤

매체를 갖고 생각하느냐와 어떤

매체를 갖고 표현하느냐, 이 두

가지가 틀려요. 디지털 매체로

설계한 것을 어떤 목적에서든지

수채화로 표현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연필로 그린 것을 디지털화

해서 어떤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디자인할

때에 있어서는 매체가 생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봐요.

라이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매체가 제공하는 가능성을 다 알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도 라이노가

주는 가능성 끝까지 끌고 갈수

있는 것이고, 연필이나 물감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 한계에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이나 후배들한테 굳이

권유한다면 수채화도 라이노도 다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수채화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라이노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두 스펙트럼을 알면 생각의

범위가 넓혀질 거라는 의미에서

그래요. 어떤 매체를 사용하던 결국

원하는 건 건축이라는 결과물의

깊이이겠지요

준비하고 있는 다음 스케치북은

어떤 콘텐트 중심이며, 언제쯤 발간하실 계획인가요?

현재로선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아니라 세상이

판단해 주지 않을까 해요 [전;

질문의 배경을 좀 더 말씀드리면, 책의 판매지수와 무관하게 박 대표님에게 스케치북은 건축가 개인의 아카이브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단회성 발간에 족하기보다는 연작에 무게를 두는 게 좋지 않은가 하는 기대와 바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 말씀하신 걸 미리 들었을 때 가치 있게

봐주신다는 점에서 상당히 마음이 뜨거웠었어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현시점에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스케치북의 발간 외에 대중을 위한 규모 큰 스케치 전시 계획은 구상하고 있지 않나요?

답변에 앞서서 궁금한

120
4
4-5. 2차 스터디 4안/5안 일부

게 있는데 ‘규모가 큰 전시’라 함은

무엇인가요? [전; 미술관, 전시장의

크기를 전제로 하는 거고요,

내용적으로는 전시물이 원본

위주의 전시이기보다는 일부는

스펙터클한 사이즈로 줌업 하는

전시 기법을 통해서 일반대중의

관심을 유인할 수 있는 그런 겁니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고, 전시가

되려면 볼거리가 다양해야 하는데

스케치북으로 전시를 하면 기껏

해봐야 요만한 {박: 두 손을 펼쳐

보인다.} 크기인데 그걸 가지고

무슨 전시가 될까 싶었어요 [전;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배경 중에

하나가 목판화를 근접해서 보게

되면 판목의 세세한 나무 결이

만들어내는 디테일이 특별한데 그걸 통해서 목판화의 새로운

징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되거든요. 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겠습니다...(함께 웃음)

평소 눈여겨보시는 (국내외 망라)

타 건축가의 스케치가 있으신가요?

어떤 의미에서인가요?

일단 저는 모든 종류의

스케치를 좋아해요. 예전의

스케치도 좋아하지만 요즘 보게

되는 디지털스케치, 더욱이 가끔

보는 아날로그와 뭉쳐진 느낌의

디지털스케치 작업은 감동이에요

그 같은 감동적인 스케치를

볼 때는 프로젝트나 디자인

연관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가치가

있다고 느껴져요. 생각해보면 칸, 코르뷔지에 등의 스케치는 제

머릿속에 항상 있었던 거 같아요.

특별히 말씀드리면 칸의

스케치를 볼 때는 눈물이 납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제게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승홍 dmp 대표

건축가의 공식 인터뷰를 끝내고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중첩된다. 이제는 서서히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그러나 잔소리 않고, 온전히 그들의 생각으로, 그들의 믿음으로, 삶에 대한 맞닥트림으로 하도록 자신의 방법, 자신의 경험도 섣불리 내어 놓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잠시 한담을 나눌 때에 그가 말했다.

리더는 결정하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자”라고. 그 긴장의 세계를

벗어나서 그는 상당 시간, 건축이

아닌 미술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간혹 건축의 신조, 신념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든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한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음유시인 레나드

코헨(Leonard Cohen)의 말, “네

삶이 온전히 활활 타면 ‘ 시’는 그저

잿더미일 뿐이다”라고 지나가는

얘기처럼 말하는 배경에 어느 것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스케치 및 사진 제공: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전체 스케치 크레딧: 박승홍

사진 크레딧: 별도 표기

121
런 의미에서 박 대표님의 스케치도 다르게 보여질
하게
5

『도시의 최전선』

열린 도시 지하공간

WIDE [영화로 건축 읽기]

Academy 11월 정규과정 3차 프로그램

이강주 지음, 1만 8000원

처음에는 사진과 그림이 하나도 없는 건축 책을 만들고 싶었다. 건축학교에 들어가면 사진과

그림도 건축의 중요한 언어라고 배우는데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이미지들이 습관적 과잉이 되어 책들을 과체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세상도 많이 바뀌어 조금만 수고하면 얼마든지 해당

건물의 좋은 이미지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글로 묘사할 수 없는 대상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글을 읽는 분들이 상상력의 즐거움 속으로 들어갔으면 했다.

건축과 도시는 묘한 존재다. 원천적으로 어느 누구도 주장할 수 없는 지구의 사유화가

건축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건축은 누구에게는 안식과 평안을, 다른 누구에게는 절망과

고통을 주었다. 근대 이후 대도시의 출현으로 이러한 양극화는 더 넓고 깊은 차원으로

강화되어왔다. 누구는 이것을 ‘도시의 승리’라고 망발한다. 건축과 도시는 발생 이후 계속, 의식적으로 또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경계선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타푸리와 르페브르는 이렇게 소수에게 독점된 건축과 도시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나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사람에게 닫히며 절망을 세우는 건축과 도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으로 지하공간의 ‘열림성openness’에 주목했다. 21세기 도시 어버니즘의

고갱이는 바로 이 ‘열림성’이라고 확신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발현되고 구현되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를 바란다.

세월이 차 가면서 일종의 사명감이 나를 재촉했다. 이제 그 숙제를 어설프게 마무리하니

그러기를 잘했다/잘한 건가?’의 마음이 교차한다. 허나, 이 말을 적을 수 있어 위안으로

삼는다. (머리글 중에서)

시공문화사

http://www.spacetime.co.kr

spacetime@korea.com

T : 02) 3147-1212, 2323 / F : 02) 3147-2626

안녕하세요.

W/A 정규과정 3차 프로그램을 발표합니다.

[일시]

2022년 11월 28일(월) 7:00pm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권로 27 (노아빌딩, 성학건축사사무소) 3층 홀

[프로그램]

성가신 이웃(The Man Next Door)│110min│2009│

감독_마리아노 콘, 가스통 듀 프랫│아르헨티나│드라마

당신에겐 남아도는 그 햇빛이 난 필요하단 말이요 ”

“ 그럼 널어놓은 옷 같은 게 보일 텐데, 제 아내가 좋아하겠어요?”

“설사 그쪽 집 팬티가 보인다 해도 난 괜찮아요 ”

해머소리로 잠을 깬 레오나르도가, 1미터도 되지 않는 맞은편 벽에 창문을 내려는 이웃 빅토르와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꽤나 유명한 디자이너 레오나르도는 이렇게 영화 제목처럼 정말 성가신 이웃’을 만나며 영화는 시작한다.

부인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는 빅토르의 덩치 때문인지 아니면 터프한 목소리 때문인지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만 한다. 게다가 누가 다자이너가 아니랄까봐 그 상황에 창문 디자인을 가지고 못마땅해 하기도 하니

이 유쾌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창에 관한 이야기다. 빅토르에겐 햇빛을 위한 창이, 레오나르도에게 프라이버시의 문제며 디자인의 문제다. 어쩌면 이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는, 창으로 인한 불편한 관계로 처음 만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량배들이 침입한 빈 집에서 레오나르도의 외동딸 롤라가 살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그 창에 의한 바로 이웃 간의 관계의 덕이다.

건축적으론 바뀌어가는 창의 폭과 높이와 위치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 덕에 누릴 수 있는 재미와 반전과 여운이 영화의 맛을 더한다.

영화의 배경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이 집은, 1948년에 지어진 아르헨티나의 쿠루체트 하우스다. 영화를 통해 코르비의 프로미네이드(건축적 산책로)와 공간적 특징을 잘 구경할 수 있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영화는 2010 선댄스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글. 강병국 건축가)

와이드AR 건축 평론 공모 추천제

2022년 1월부터 시행

본지는 2010년 이래 ‘꾸밈 건축 평론상’과 ‘공간 건축 평론 신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한국 건축평단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동안 3회(박정현), 5회(이경창), 6회(송종열), 10회(최우용)에 걸쳐 현 단계 한국

건축평단의 새얼굴을 배출한 통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러나 재작년 제11회(2020년)에 수상자를 내지 못한 채 지나온 것에 이어서 작년에 공모한 제12회(2021년)에는 응모자가 한 사람도 없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종전까지의 건축비평상 공모제 시스템이 날로 무한 확장되는 개인 미디어 세계에서는 1년 주기의 시간성이 경쟁력을 잃었고, ‘비평상’이란 구시대적 발상의 제도 자체도 이미 낡아버린 양 합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올해부터 본지는 건축비평상 제도에서 탈피하여 ‘건축 평론 공모 추천제’로 선회하려 합니다.

건축평단에 관심 있는 건축인들에게 활짝 문을 열고, 일련의 단계를 거쳐 등단이 가능한 공모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응모자격에도 나이 제한을 없앱니다. 건축 평론 공모 추천 3회(작가론, 작품비평, 시론 각 1회)를 통과한 응모자(제출 순서는 자유)에게는 본지가 발행하는 등단 증서와 함께 《와이드AR》 필자로 대우하여, 지속적으로 집필 기회를 제공합니다. 매번 추천된 응모작은 본지에 게재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건축가 초청강의’

〈시즌6〉 Architects in Korea· Ⅵ

2라운드; Emerging Power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수류산방, Knollkorea

후원 간향건축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s://cafe.naver.com/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2년 11월(제181차) Architects in Korea 17

[접수]

widear@naver.com

-응모작 제목 앞에 ‘[건축 평론 응모]’라고 기입 바람

-응모작은 ‘한글/워드’ 파일과 ‘pdf’ 파일을 동시에 제출 바람

[접수 마감]

홀수 달 25일

[응모 부문 및 분량]

1) 작가론 또는 작품비평(200자 원고지 50~60매 분량으로, 본문 10폰트 사용

A4용지 출력 시 6~7매 분량)

2) 시론(200자 원고지 25매 내외 분량으로, 본문 10폰트 사용 A4용지 출력 시

3매 분량)

-참고 도판 및 사진은 분량에서 제외하며 별도로 제공 바람

-각 부문 원고의 분량 초과 제출은 가능하며, 이 경우 원고료 산정에서는 제외함

[기타]

-원고 말미에는 ‘휴대전화번호’와 ‘성명’을 기입하기 바람 -추천 통과 여부는 접수 시점 기준으로 1개월 내에 개인 e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로 통보함

이야기손님 : 김효영(김효영 건축사사무소 대표)

주제 : 건축의 용기

일시 : 11월 16일(수) 7:30pm | 장소 : Lighthouse(서울시 중구 을지로 146-1, 5층)

> 2022년 12월(제182차) Architects in Korea 18

이야기손님 : 전진홍, 최윤희(BARE 공동대표)

주제 : Assembly of Air

일시 : 12월 14일(수) 7:30pm | 장소 : Lighthouse(서울시 중구 을지로 146-1, 5층)

간향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우리는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통합의 지렛대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건축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 Party》

지역 건축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응원하는 《ICON

Party》

인천건축의 디자인 리딩 그룹을 선정하는 《Incheon

Architect 5(I.A.5)》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내일의 건축에디터&저널리스트를 위한 《와이드AR

건축저널리즘워크숍》

건축 비평 무크 《critica(크리티카)》

건축가(집단)의 모노그래프 출판 《wide document》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WIDE 아키버스》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WIDE[영화로 건축 읽기]Academy(W/A)》

실시간 ZOOM으로 진행하는 건축 대화의 창

《와이드AR [LIVE 티백]》

건축 잡지&저널리즘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하는 《한국건축저널리즘연구회》

인천도시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준비하는

《인천건축발전연구소》

등 일련의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간향클럽 사람들

mc 1 프로듀서 전진삼 사진총괄 김재경

섹션 편집장 박지일 편집위원 김태형, 백승한, 이태현, 최우용 디자이너 심현일, 디자인·현

mc 2 사진위원 남궁선, 노경, 진효숙 비평위원 김현섭, 박성용,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이종우, 현명석

mc 3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인쇄처 서울문화인쇄 인쇄인 강영숙 제작국장 김은태 관리부장 손운일

mc 4 독자지원 및 마케팅 박미담 과월호 공급 심상하, 선인장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직판관리 박상영, 삼우문화사

mc 5 기획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김정후, 박병상, 박진호, 손장원, 신용덕, 신창훈, 안철흥, 우종훈, 이중용, 이정범, 전진성, 허은광

고문 김종헌, 박민철, 박영채, 박유진, 이충기, 정귀원, 함성호, 황순우 명예고문 곽재환, 구영민, 김연흥, 김정동, 박길룡, 박승홍, 우경국, 이백화, 이상해, 이종건, 임창복, 최동규

대표고문 임근배

mc 6 운영자문 김종수, 김창균, 이윤정, 최원영 운영위원 강승희, 손도문, 이수열, 이치훈, 임성필, 주성진 발행위원 김기중, 김태만, 우의정, 이승용, 임재용, 조남호, 조택연, 하광수 패트롱 김용남, 오섬훈, 이태규, 장윤규, 정승이, 최욱, 한승윤

mc 7 부편집인 김재경 부발행인 이주연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mc 8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도연정, 서효원, 이상명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영철, 김현섭, 서정일, 한동수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mc 9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팀원 최지희, 고현경, 김현경, 김정아, 김찬양, 윤은지

124

《와이드AR》 2022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6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 Ⅵ

EDITORIAL

강호의 고수들

ARCHITECTS

구승민, 스튜디오 꾸시노

김종수, 원스퀘어미터 건축연구소

김태성, ㈜간삼건축

이수열, ㈜토문건축

이재혁, ㈜에이디모베건축사사무소

임성필, ㈜집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홍만식, ㈜리슈건축

ESSAYS & WORKS

내 건축의 주 종목

솔기의 상상 구승민; 갤러리, 주택, 펜션 무심한 아름다움 김종수; 대사관, 골프 클럽하우스, 목조주택 인간 시간 공간 김태성; 오피스, 연수원, 연구소, 학교, 상업시설 유형의 건축 이수열; 관공서, 캠퍼스시설, 가톨릭교회 놀이터 같은 최소한의 집짓기 이재혁; 협소주택, 상가주택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종교건축 임성필; 교회건축, 공공도서관, 교육시설 좌향 여백 표층 홍만식; 주거, 근린 복합시설, 일상건축

NOTICE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1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73차-제174차 땅집사향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 Ⅴ

EDITORIAL

한국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리더들에게 묻다

PROLOGUE

이제는 건축가의 호칭에서 ‘젊은’ 수식어를 빼자!

ESSAYS

건축이란 무엇인가?

& INTERVIEW

김남건축(김진휴, 남호진)

OA-LAB(남정민)

아이디알건축(이승환, 전보림)

준 아키텍츠(김현석)

이용주건축스튜디오(이용주)

착착 스튜디오(김대균)

포머티브건축(고영성, 이성범)

비유에스건축(박지현, 조성학) vs. 박지일 NOTICE

125 《
3-4
Special Edition Vol.05
와이드AR》 2021년
월호,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0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제13회

《와이드AR》 2020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4

《와이드AR》 2019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3

강병국

Kang Byungkuk

최문규

Choi Moongyu

정재헌

Jeong Jaeheon

이관직

Lee Kwanjic

이한종

Lee Hanjong

손진

Son Jean 임형남, 노은주 Lim Hyoungnam, Roh Eunjoo

김광수

Kim Kwangsoo

김재관

Kim Jaegwan

이은석

Lee Eunseok

강승희

Kang Seunghee

김동원 Kim Dongwon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Ⅳ

EDITORIAL

나의 건축 인생작Masterwork

ESSAYS

강병국 Kang Byungkuk_광양장도박물관

최문규 Choi Moongyu_KIST 숲속 어린이집

정재헌 Jeong Jaeheon_양평 펼친집

이관직 Lee Kwanjic_영남대60주년기념 천마아트센터

이한종 Lee Hanjong_가르멜의 모후 수도원

손진 Son Jean_아이뜰유치원

임형남, 노은주 Lim Hyoungnam, Roh Eunjoo_제따와나 선원

김광수 Kim Kwangsoo_부천아트벙커 B39

김재관 Kim Jaegwan_유진이네집

이은석 Lee Eunseok_새문안교회

강승희 Kang Seunghee_여목헌

김동원 Kim Dongwon_분당메모리얼파크 사옥

NOTICE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추천작 발표

제29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Ⅲ

EDITORIAL

X세대 건축가들의 자서전Architect’s Autobiography

ESSAYS

김주경 OUJAE Architects : 나의 건축 인생 연대기 혹은 기억조작

김범준 TOPOS Architectural Firm : 오리지낼러티 탐문의 건축여정

김태만 HAEAHN ARCHITECTURE : 실패의 역사 (to be) unbuilt

이상대 spaceyeon architects : 어느 건축 마라토너의 방백傍白

임영환 D·LIM architects : ‘지속가능한’ 아마추어 건축

김선현 D·LIM architects : 꿈꾸는 자의 행복한 건축

조성익 TRU Architects : 냅킨 드로잉

박창현 a round architects : 몇 가지 단서들

김세경 MMKM : 건축이라는 올가미

민서홍 MMKM : 건축 짓는 농사꾼의 길

조진만 JO JINMAN ARCHITECTS : 어느 젊은 건축가의 회상

홍재승, 최수연, 이강희 PLAT/FORM : 풍경風景, 반 풍경 그러나 알레고리

NOTICE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제28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장학제 공모
SE 03 한국의 건축가들 SE 04
제11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와이드AR》 2018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2

《와이드AR》 2017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1

PUBLISHER’S COLUMN – ABCD파티–올해의 발견

ARCHITECTS IN KOREA Ⅱ

EDITORIAL

한국 건축의 새 판을 여는 젊은 리더들의 12가지 화법

ESSAYS

건축의 엄밀성과 농담, 혹은 사랑과 체념 : aoa architects

건축이 남긴 이야기들 : CHAE–PEREIRA architects

새로운 프로세스와 시스템 : EMER–SYS

경계에서의 점진성 : EUS+ architects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리드하는 건축, 건축가 : johsungwook architects

엘리스의 비눗방울 놀이, 그리고 일상 속 이야기 생성 : L’EAU Design

스타일의 전략–작업의 방법에 대한 근본적 이해 : Min Workshop

근대 건축, 수용과 변용의 미 : OFFICE ARCHITEKTON

들띄우기와 흰색 그리고 부산 : RAUM architects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한 발견의 방식, 질문 : Samhyun Urban & Architecture

길, 에움길, 샛길 : SUPA schweitzer song

따뜻한 건축 그리고 10+ : UTAA

NOTICE

제10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결과 발표

당선작 : 해당작 없음

심사위원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PUBLISHER’S COLUMN – 친구

ARCHITECTS IN KOREA . Ⅰ

EDITORIAL

젊은, 내일의 건축 리더들이 말하는 우리 건축 장場의 단면

#1. 건축의 뿌리 혹은 공부의 배경에 대하여

#2. 한국 건축 비평(계)에 대한 바람

#3. 귀 사무소(팀)의 작업 화두는?

#4. 현대건축을 수행함에 있어서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5. 귀하(또는 사무소, 팀)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6. 현 단계 한국 건축계, 무엇이 문제인가?

PROJECTS : OFFICE INFORMATION

a.co.lab : 휴먼 네트워크의 수행자

BOUNDLESS : 관계의 진화를 엮는 전술가들

designband YOAP : 3인 3색의 피보나치 수열로 건축하는 집단

FHHH Friends : 좌충우돌 화려한 팀플레이 집단

HG–Architecture : 디지로그의 세계를 실천하는 스튜디오

JYA–rchitects :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로 무장한 팀워크

mmk+ : 한 방의 장외홈런 다음을 준비하는 히어로

OBBA : 건축, 내러티브의 소중함으로 승부하는 사무소

stpmj : 아트와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이어니어

Z–Lab : A to Z, 콜라보&커뮤니케이션스 컴퍼니

NOTICE

제9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 — 발전국가시기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1962~1973)

수상자 : 강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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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통권 84호, 2022년 11-12월호, 격월간

2022년 11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잡지창간 등록일|2008년 1월 2일

창간호 발행일|2008년 1월 15일

잡지사업 변경 등록일|2021년 1월 7일

등록 번호|서대문, 마00029

발행인 겸 편집인|전진삼

발행소|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주소|03733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문공원길 13, 5층 (현저동, 극동프라자) Spacetime 전화|02-2235-1960

홈페이지|간향클럽

ganyang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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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밴드|와이드AR 프렌즈 band.us/@widearfriends ; 《와이드AR》 구독자, 후원자, 건축 팬덤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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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의 광고는 본 잡지를 함께 만드는

건축(가)네트워크와의 연계를 지원합니다.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질적 수익 효과의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고민해 드립니다.

제작사양

표지 지질: 아트지 300g 횡목

내지 지질: 미스틱 105g 횡목

주 활용서체 및 라인선스

표지 및 본문: SM/직지폰트

라이선스 명: 프리 라이선스

사용기간: 2022.04.27.~2023.04.27.

인증코드: RW20220427BXXXXX

《와이드AR》 주요 배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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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과월호 구입처 총판 정광도서

매대명: 선인장

담당자: 심상하 방장(문의: 02-725-9470)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56 (통인동) 1층

* 2008년~2010년 발행본: 현재 1호~18호까지

품절되어 구입 불가합니다.

* 그 외 과월호 구입: 2011년~2021년에 발행된 《와이드AR》을 할인가로 구입 가능합니다.

* 본지의 오프라인 매대인 〈선인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본지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 특정 발행호의 다량 구입이 필요한 경우 위 매대 담당자에게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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