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3,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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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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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Wes Architec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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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콤시티

34번째의 아름다운 건물

저 아름다운 건물을 누가 세 웠을까? 사는 사람까지도 아 름다워 보이는 건물을 설계 하는 것이 건축가의 능력이라 면 그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 하는 것은 건설 회사의 능력 입니다. 건물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기능들과 그 안에 머 무는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 게 만드는 각종 첨단 설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면서, 건물이 추 구하는 아름다움과 예술성까 지 조화롭게 완성할 때 건물 은 건물로서의 가치를 드러 낼 수 있습니다. 고도의 시공 시술과 탁월한 예술 감각으 로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건 물들을 완벽하게 완성시켜 온 삼협건설 — 사람들의 마음을 잡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아 름다운 건물 뒤에는 늘 삼협 건설이 함께 합니다.

삼협종합건설(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70-7 홍성빌딩 4층 Tel : (02)575-9767 | Fax : (02)562-0712 www.samhyub.co.kr

Welcomm City by Samhyub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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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gan Architect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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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unwoo Structural Engineers I D E D G E

건우구조기술사사무소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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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3 Publishing C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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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Group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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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 8

WIDE EDGE


by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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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궐 의 현 판 과 주 련

조 선 5 대 궁 궐 에 숨 은 뜻 을 읽 는 다

1권 경복궁 편, 2권 창덕궁^창경궁 편, 3권 덕수궁^경희궁^종묘^칠궁 편 조선 왕조 500년의 숨결을 간직한 우리 궁궐에는 각각의 건물은 물론 드나드는 작은 문 하나에도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또 궁궐 안 수많은 전각 기둥에는 옛 경전에서 뽑은 구절이며 당대 문장가들이 지은 한시를 새긴 주련이 붙어 있다. 현판에 새긴 세 글자에는 해당 건물의 특성과 역할뿐 아니라 당대 통치 이념과 철학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으며, 주련에는 멋과 운치를 즐기던 옛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렇기에 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궁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며, 그 속뜻을 이해하고 나면 궁궐은 더 이상 적막한 옛 건물이 아니라 전통과 역사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변 한다. 이 책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 국내 최초로 조선 5대 궁궐과 종묘에 남아 있는 모든 현판과 주련의 글씨를 일일이 해석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쉽 게 풀어 냈다. 또 인덱스 기능을 강화하고 각 항목마다 현판과 주련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넣어 궁궐 답사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1년여에 걸쳐 촬영한 풍 부한 사진을 통해 궁궐 구석 구석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by Suryusanbang 10

WIDE EDGE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 bimonthly 제1권 03호, 2008년 5-6월호

WID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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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구의 <선음재>와 <누리 레스토랑>

WIDE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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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가까운 집 찾기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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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정귀원

집담회 | 한옥으로부터 긋는 저마다의 연장선 | 조정구, 박민철, 이선희, 전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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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 신청 방법

52

리뷰 | 건축가 조정구와 한옥 | 전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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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함께 만드는 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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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 탐구와 실제 작업을 통한 삶의 형상 찾기

128 와이드 칼럼 | MB 정권의 건축적 시대 정

48

실험 한옥 2제 | 서초 어린이 도서관과 인제 미명재 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WIDE ISSUE 1

표2

uos

59

당인리 발전소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서 |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새로운 도전

표3 MS Autotech Co., Ltd.

60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이 바라보는 산업 시설의 새로운 가치 | 김종헌

1 Dongyang PC,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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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생산 공원, 근대의 산업 유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자 | 배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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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Wes Architects

69

사례를 통해 본 산업 시설의 성공적인 부활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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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hy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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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gan Architects

WIDE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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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woo Structural Engi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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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된 건축가

6 C3 Publishing Co.

74

질문과 답변 | 김개천, 김동진, 김병윤, 김인철, 민선주, 유석연, 이충기, 이해욱, 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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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정년에 도전하는 석좌 교수 건축가 | 조성룡, 성균건축도시설계원 원장과의 대화 | 전진삼

8-9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 12

WIDE ISSUE 3

87

<와이드 부산 맨>들이 말하는 한국 건축의 위기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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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배경이 빠진 맹목적 디자인 지향은 위험하다 | 김기수, 안용대, 안웅희

신은? | 임창복

Vita Group Spacetime

10 조선 5대 궁궐에 숨은 뜻을 읽는다 <궁궐의 현판과 주련> | Suryusanbang 14

Future is... | Cho, Taig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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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IDE DAILY REPORT

18 ‘태양광’과 건축 | Lee, Young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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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3> | 큐 가든에서 에덴 프로젝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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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종횡무진 03> |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57 Tabular rasa & Memory | Oh, Seo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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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인 30대의 꿈 03 | 아직은, 희망이다 | 정수진

56 Park, Mincheol

101

이병일의 <블랙 앤 화이트 03> | 남산 회현 제2시민아파트

90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 | Suryusan-

102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3|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인 전문지 <Metropolis> | 박준호

104

임형남, 노은주의 <건축 만담 02> | 느린 목소리—알바로 시자 홀

105

진효숙의 <시티 사파리언 03> | another D.

106

남소영의 <도시 동네 늬우스 03> | 전남 강진의 ‘물결 푸른 풍경 만들기’

108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3> | 강화도에서 근대 건축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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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계획안 100선 03| 상도동 주택 신축 설계 | 최종훈

117

이중용의 <플래너 03> | 나 자신을 알자

118

와이드 書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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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건축 여행 02 | 있는 그대로의 인도 | 최영철

122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3> | 나의 건축가 : 아버지의 궤적을 찾아서

125

김재관의 <인물 열전 02> | Q.M.MIN 건축가 민규암

구름 위에서 보는 세상 | Jeagal,Youp

bang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조정구의 인제 미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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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time 12

WIDE EDGE


editor’s letter

와이드 레터 | 기록자의 기록 건축에서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책으로서의 ‘건축’과 구텐베르 크 이후 그보다 한결 더 견고하고 영속적인 표현 방법으로서의 ‘문헌’이 우리가 지 키고 보호해야 할 기록의 방식들이다. 다행히도 개발 논리로부터 건축 유산을 보 호해야 한다는 의식은 꽤 높아졌고, 도면과 관련된 기록을 남기는 태도도 예전에 비해 무척 세련되어진 듯하다. 그런데, 역사가 꼭 승자의 기록이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감추 고 싶은 기억들을 덮어버리거나 유용성이 없다고 판단한 기록들을 쉽게 폐기해 온 것 또한 사실이며, 개발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라면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건축과 도시를 기록하고 남기는 데 있어서 편견이 여지없이 작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 번째 <와이드>는 건축과 도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탐구하는 기록의 중요 성을 강조한다. 건축가 조정구의 작업은 승자의 기록이 아닌 기록자의 기록을 바 탕에 두고 있으며, 당인리 발전소의 변신은 근대 산업 시설에 대한 해석과 기록 보 존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건축가들의 대학 진출과 관련하여 성균건축도시설계 원의 ‘도시와 건축, 주거의 방대한 자료를 조사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실무에 접합시 키는 교육 환경’은 기록의 부재를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편, 건축가 조정구의 작업을 조명하고 교수가 된 건축가의 발언을 모아 보는 것 은 또 하나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와이드>를 비롯한 건축 잡지가 다해야 할 소임 중 하나가 동시대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즉각 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도 기록들로 구성되는 역사 속에서 분명 그 가치를 발휘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전히 ‘건축은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신념으 로 건축 잡지의 시선을 껄끄러워 하거나 하잘것없는 일이라 치부하는 사람들 앞 에서 의연하게 기록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기록자의 소임을 상기하며 본문에서 놓친 건축가 조정구의 말을 기 록으로 남겨 본다. “건축도 기록들의 가치를 잘 유지하고 여러 생각들을 모아 가 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생산해 내고, 깊이 있는 담론도 생성해 낼 것입니다. 그것 은 지금처럼 공허한 것들이 아니겠지요. 물론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현재 사회와 건축에 대한 편견 없는 관심이겠고요.” ⓦ

| 글 | 정귀원(편집장)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단 발행편집인 고문 |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발행편집인 겸 대표 | 전진삼 운영위원 | 박민철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오섬훈 이영욱 제갈엽 조택연 편집장 겸 대표 | 정귀원 편집자문위원 | 곽재환 구영민 송인호 윤인석 편집자문위원 | 이일훈 편집위원 | (수도권) 박혜선 손장원 이충기 장윤규 김진모 | (중부권) 김종헌 송복섭 한필 원 황태주 | (남부권) 김기수 안용대 안 웅희 송석기 | (유럽권) 김정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박상일 전속 사진가 | 이병일 진효숙 정세영 로고 글씨 | 김기충 ⓦ 광고 마케팅 및 판매 대행사 광고 영업 대행 | 아크비즈 Agency 이사 | 박종호, 담당 팀장 | 이나영 대표 전화 | 02-2235-1968, 팩스 | 02-2231-3373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대표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제작 지원사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박상일 + 朴宰成 대표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필름 출력 | 두산출력 인쇄 | 예림인쇄 | 박재성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제1권 03호 5-6월호 2008년 5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정가 8,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극동상 가 502호 (120-796) 편집실 주소 | 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 럼빌딩 1층 (100-834) 대표 전화 | 02-2235-1960(관리) 02-2235-1968(편집) 팩스 | 02-2231-3373 공식 E-mail | widear@naver.com, widear@gmail.com 공식 URL | http://cafe.naver.com/aqlab, http://widear.blogspot.com ⓦ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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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s...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정보와 결합한 공간은 사용 인 인간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어떤 구조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사용자가 건물의 공간 정보를 실시간으로 지각하고 이의 사용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간과 사 용자의 관계는 비선형 구조로 나타나며, 이러한 비선형성 은 사용효율과 밀도를 극적으로 증가시켜, 건축 공간을 저 차원 유클리드 공간계를 지나 초공간으로 나타나게 할 것 이다. 초공간의 모습이란 3개의 공간 차원만을 영역으로 사용하는 기존의 건축 공간 인식과 달리 시간 차원을 포함 하는 동력학적 구조의 공간으로, 정보와 사용자 그리고 공 간의 상태가 시간축을 따라 변화하고 이를 계(System)로 서 해석할 다양한 여분의 차원을 내포하는 공간이다. 다시점 공간 인지 디지털과 물리 공간사이의 섭동(반사 객체) 디지털 객체로서 건축 현실 공간의 물리적 객체와 정보 공간의 디지털 객체의 결합 증강 객체(Augment Object) 반사객체를 수용하는 건축 공간 유비쿼터스 환경과 초공간 건축 디지털 네트워크를 적용한 비정주 오피스 공간 지능 공간 아파트 공간의 교질화 유비쿼터스 환경에 내재한 비선형 건축 공간에 관한 연구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실현 가능한 지능 공간 공동주거 유비쿼터스 환경의 하이퍼 매스(Hyper-Mass)로서 공간 0차원의 섬, 유비쿼터스 해양 도시 (팜 아일랜드Palm Island 다음의 인공 섬)

by Cho, Taigyoun 14

WIDE EDGE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정기 구독 신청서 이름 자택전화 직장전화 휴대폰 이메일 책 받는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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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건축 리포트] WIDE architecture report 공식 이메일 : widear@gmail.com | widear@naver.com 팩스 : 02-2231-3373

정기 구독 신청 방법 ⓦ 신청 방법 1) 당사 공식 이메일에 상기 <구독 신청서> 내용을 적어 보내 주시거나 2) 전화 또는 팩스로 신청하셔도 됩니다. ⓦ 정기 구독료 입금 계좌 1) 무통장 입금을 이용해 주세요. 국민은행 : 491001-01-156370 | 예금주 : 전진삼(간향미디어랩) 2)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반드시 전화와 이메일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정기 구독을 하시면 이런 점이 좋습니다. 1)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2) 독자 대상 사은품 증정 등 이벤트 초대 및 다양한 혜택을 드립니다. ⓦ 정기 구독 관련 문의 : 02-2235-1960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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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s...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약칭 땅집사향) 19 주최 : 그림건축^간향미디어랩 | 주관 : AQkorea^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신당동 377-58 환경포럼빌딩 1층 문의 : 02-2231-3370, 02-2235-1960 매월 한 차례 초청 강사와 함께 하는 소박한 세미나입니다. ‘건축 책 저자와의 대화’ 12강, ‘건축^디자인^미술 전문매체 데스크 초청 강의’ 6 강,에 이어 다음과 같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와이드> 독자님 누구나 참여가 가능합니다. 많이 오셔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 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건축가 초청 12강의—나의 건축, 나의 세계 ① 5월의 초청 건축가 : 조정구(JUNGGOO CHO, architect) | 구가 도시건축연구소 대표, 일시 | 08년 5월 21일(수) 저녁 7시, 장소 | 그림건 축 내 안방마루 ② 6월의 초청 건축가 : 박준호(JOON H. PARK, architect) | (주)정림건축 소장, 일시 | 08년 6월 18일(수) 저녁 7시,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AQkorea,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프로그램은 건축^인테리어^조경 전문 서적을 공급하는 <우리북>과 함께 합니다. http://www.ooribook.com 주소 :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89번지 선계빌딩, T. 02-3463-2130

by WIDE 16

WIDE EDGE


독자 여러분이 참여하는, 함께 만드는 <와이드> 좋은 글과 좋은 사진을 연중 모집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디자인 집단 L2S가 협찬합니다

보내 주실 원고의 지정 꼭지 및 내용 안내 ➊ 꼭지명 : 건축인 30대의 꿈 : 30대의 건축인들이 겪는 건축 임상기 혹은 건축을 주제로 하는 여러 이야기 : 원고 분량_10매 내외(200자 원고지 기준임, A4 용지 10폰트 글자 크기로 1매 분량임) ➋ 꼭지명 : 20대의 건축 여행 : 20대에 다녀온 국내외 건축과 도시에 대한 감상문 혹은 도시 건축 비평 : 원고 분량_15~20매 사이(200자 원고지 기준임, A4 용지 10폰트 글자 크기로 2매 분 량임) : 사진 자료_3~5컷(각 300dpi급의 해상도로 장당 A4 용지 크기의 용량이기를 권유함)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 ➊ 원고가 게재된 당해월호의 <와이드> 1부 | ➋ 고급스런 우리 전통 문양의 명함 지갑 1점(사진 참조)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 투고 방법 | ➊ 이메일 송신 시 활용 주소 : weonx@hotmail.com / hinsan@paran.com | ➋ 원고 마감일 : 짝수 달 15일 | ➌ 원고 상단에 <지정 꼭지>명을 적어주세요. | ➍ 원고 말미에 <간단한 필자 소개 및 책 받을 집 주소>를 덧붙여 주세요. 감사합니다. L2S는, 한국 고유 문화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디자인 브랜드로 작가 임성민이 운영하는 디자인 집단입니다. 작가 임 성민(본명 임상순)은 홍익대 산미대학원(무대디자인전공)을 졸업하고, 서일대에서 겸임교수, 상명대, 한성대, 계원조형대, 협성대, 숭의여대 등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한국디자인학회 및 한국무대예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문양 :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문양 A/B ⓦ 소재 : 고급 소가죽, 새턴(satain) ⓦ 사이즈 : 가로 10.5cm, 세로 8cm ⓦ 수납 공간 : 카드 수납 3개, 명함 약 30~40장 수납 가능 ⓦ tel. 031-977-8338 이메일 l2sgb@naver.com ⓦ 홈페이지 : http://club.cyworld.com/designpd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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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arhouse ← solarhouse ↙ 롱샹 ↓ 빛의 교회

‘태양광’과 건축 최근 ‘태양광’이란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태양광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말로 햇빛이라고도 하며, 넓은 뜻으로 태양이 제공 하는 전자기 복사의 스펙트럼을 말하며, 지구에서는 햇빛이 대기를 통해 걸러져 태양이 수평에 있을 때 태양 복사가 낮 동안 행해진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에너지 사용의 확대를 위해 에너지관리공단의 주도 아래 오는 2012년까지 10만호 보급을 목표 로 태양광 주택 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08년 현재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된 공동 주택과 일반 주택은 전국적으로 14,000여 가구 에 달한다. 그런데 현재 태양광 발전 기술은 햇빛의 5% 정도만 전기로 변환되고 나머지 95%는 모두 열로 변환되어 태양 전지만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에 투자한 비용에 비해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가정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3kw의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할 경우 약 3,000 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며 이중 최대 70% 정도를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지원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또한 단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 각국에서는 태양 전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우리 나라 역시 2003년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보급 국가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태양광을 이용한 건축 또한 그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르 코르뷔지에는 “공간은 빛을 받아 자신을 드러내는 벽에 의해서 연출되는 볼륨으로 형상화된다” 또는 “건축은 중력을 넘어선 빛과의 싸움” 등과 같이 건축에서 빛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롱샹>에서 보여 준 빛의 조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와 같은 그의 말에 대해 고개를 끄떡이게 만든다. 안도 다다오 역시 <빛의 교회> 등에서와 같이 자신의 건축에서 빛을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빛’은 ‘햇빛’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만약 르 코르뷔지에가 다시 살아나 현대에서 태양광 아니 햇빛이 건축을 연출하기 위한 요소로뿐만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제2의 <롱샹>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 글 | 이영욱(운영위원, 공학박사, (주)지디엔지니어링 상무)

by Lee, Youngwook 18

WIDE EDGE


우리 삶과 가까운 집 찾기의 여정 | 조정구의 <선음재>와 <누리 레스토랑> | guga도시건축연구소

W 와이드 워크

WIDE work Cho Junggoo Suneumjai Nuri Restaurant

건축가 조정구는 흔히 한옥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열린 전시에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도시 한옥이었 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좀 더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도시 한옥에의 집중은 단지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여정의 일부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발전시키고 비판하여 또 다시 새로운 방향을 찾아간다면 결국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집 찾기에 이를 것이라고 믿는 건축가에게 한옥은 그 출발선상의 주 제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가 보여 주는 도시 한옥은 저마다의 사연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옛 것을 최대한 살 린 <선음재>나 그보다 실험적 성격이 강한 <누리 레스토랑>이 그렇듯이 말이다. | 진행 | 정귀원(편집장) | 사진 | 정세영(사진가, 수류산방+알바이신)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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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cho, junggoo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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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cho, junggoo

사무실이 해온 모든 건축 작업의 바탕이 되어 왔다. 지난 4월 1일을 기점으로 381회, 햇수로 만 7년이라는 시간의 흔적들은 지

서울 도심 기록 작업이다. guga‘도시건축’이 도시+건축이 아닌 도시 건축을 의미하듯, 보편적인 도시 건축에 대한 이해는 이

사무실 개설 후 종묘를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해 온 ‘수요답사’는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을 탐구하는

편으론 피상적 관찰에 의한 오해를 풀고 다음에 설명되는 그의 작업들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서 얻은 것은 그가 단지 ‘한옥 건축가’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 집약적이고 함축된 건축의 목표는 매우 의외이기도 했지만, 한

게 펼쳐보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는 건축가 조정구에 대해 사전 지식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급하게 찾아본 자료들에

는 작가주의 건축이 아닌 보편적인 건축, 즉 삶과 가장 가까운 건축을 일생의 주제로 삼고 꾸준히 작업하겠다는 의지를 강하

그림의 동네가 어디냐구요? 이것은 실재하는 동네가 아니라 우리가 했던 작업의 입면도를 모두 모아 본 겁니다”라며, 건축가

설명회는 양옥과 한옥이 혼재된 어느 동네의 파사드 그림 앞에서 시작됐다. ‘이 동네가 대체 어디야?’ 하는 궁금증도 잠깐, “이

하여금 짐작케 한 것은 이 전시의 더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사 기록 파일’, ‘홍대 앞 서교 365번지 모형’ 같은 별도 전시물을 통해 조정구 건축이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바를 관람객들로

개는, 사실 이 전시의 디폴트값이다. 그보다 설명회의 시작을 열고 끝을 마무리한 ‘입면 모음 패널’과 ‘작업 계통도’, ‘수요 답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옥 호텔 라궁, 그리고 최근의 실험 한옥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진화하는 현대 한옥에 대한 소

다. guga도시건축을 설립한 후 처음으로 맡게 된 다세대 주택을 비롯, 이제는 서울 북촌 일대만 30여 개가 되는 도시 한옥들,

특히 전문가들을 위한 마지막 설명회 시간에는 부쩍 오른 한옥의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꽤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메웠

들을 위한 설명회가 별도로 마련되어 전시회의 깊이를 한층 더했다.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의 탐구’라는 주제로 진행해 온 프로젝트들로 나뉘어졌고, 부모와 아이들을 위한 설명회와 전문가

건축이 추구하는 바를 집약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전시는 크게 한옥을 중심으로 한 그간의 작업들과 ‘우리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정동 경향갤러리에서 열린 guga도시건축의 <삶의 형상을 찾아서 2008 정동>전은 조정구의

전시 리뷰 | <삶의 형상을 찾아서 2008 정동>展, 정동 경향갤러리, 2008년 3월 27일~4월 2일

탐구와 실제 작업을 통한 삶의 형상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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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면도 모음 ↑ 서교365 → 수요답사 패널 ↘ 서교365 ↘ ↘ 서교365

글 | 정귀원(편집장)

합니다. 그런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

고쳐 주고 소형 엔진을 달아 주는 것일 테지요. 그러므로 각각의 사정을 이해해 주면서 도시를 만들어 가는 기술을 깨우쳐야

겠지요? 쉽게 말하면, 낡은 자전거를 뺏고 새 자동차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격입니다. 그보다 우리의 일이란 낡은 자전거를 좀

사람에게 자동차가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일 거예요. 하지만 재개발의 재입주율이 5%, 최대 20%도 채 안 된다는 것은 알고 계시

리고 이 곳 사람들도 은근히 개발되기를 원해’ 그러면서 재개발에 동조하는 의견을 스스로 갖게 되지요. 낡은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이 동네는 아름다워. 건축적으로도 가치가 있지. 근데, 내가 살기는 힘들 거 같아. 그

빛나 보이는 이유이다.

는 도시 건축을 이해하는 작업에 더 가까울 것이다. 건축가 조정구의 건축이 이 천박한 개발의 시대, 혼종 잡배의 시대에 더

고 구축되어 왔다. 그것은 건축가의 개성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기보다 다음의 말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

지금까지 건축가 조정구의 ‘삶과 가장 가까운 건축’, ‘보편적인 건축’은 바로 이러한 탐구와 기록의 결과 위에서 직접 설계되

록해 나가야 하는 대상인 셈이다.

건축가에게 사람들의 삶이 자생적으로 구축해낸 거주 환경은 그 어떤 것이든 가치 있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기

견 없는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서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역사와 자생의 도시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겠다는

만을 담아내는 국내 건축 잡지를 향한 건축가의 쓴소리로 이해될 만했다. 이를 통해 건축가는 결국 우리 도시 건축에 대한 편

표지 이미지들은, 물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이긴 하지만, 우리 도시 건축과 한옥은 외면한 채 작가주의 건축, 해외 건축

건축 잡지들의 표지 이미지들이 꼴라주되어 걸렸다. 특히 왕십리나 이화동 골목 같은 우리 도시의 자생적 형상들을 내세운

이밖에도 답사를 통한 도시의 일상적이거나 특이한 모습들이 전시장 한쪽 벽면을 메웠고, 또 다른 벽면에는 우리 나라 주요

주었다.

뷰를 하고 공간 구성을 가늠해 보고 내외부 공간을 실측하여 완성된 결과물은 그 과정이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

려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 실측된 것이 없다는 데서 연구가 시작됐다. 학생들과 공동 작업으로 자료 조사와 인터

전시실 한편의 ‘서교 365번지 모형’은 또 다른 도시 연구 활동의 결과물이다. 학생 공모전의 대상지로 선정된 바 있는, 잘 알

도 위 파란 색의 경로를 따라 주민과의 인터뷰, 개인적인 느낌들, 그리고 실측의 결과물로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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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으로부터 긋는 저마다의 연장선 집담회 | 조정구의 한옥을, 크하, 한번 가보자!

← 선음재 대문. 왼편으로 축대가 보인다. ↙ 선음재 사랑채 뒷마당 ↑ 선음재 공사 전 실측 도면 ↓ 선음재 1층 평면도 ↗ 선음재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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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음재>를 둘러보다 ⓦ 박민철 | 사랑채와 문간채는 같은 기와 지붕을 이고 있지만 안채, 사랑채, 문간채의 3채로 이루어진 집이군요. 이런 한옥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은 상당한 행운이라고 봅니다. ⓦ 조정구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집은 1934년 지어진 도시 한옥으로 대지는 남북으로 긴 형태이고 북쪽으로 진입한다는 특이점이 있 습니다. 남쪽과 서쪽으로 전망이 좋고, 반면 동쪽에는 축대가 있지요. 그래서 북쪽의 좁은 대문간을 들어서면, 안채를 분리하는 담장과 축대 사이 의 공간을 지나야 문간과 만나게 되어 있어요. ⓦ 이선희 | 채가 나누어진 듯하지만 실제로 동선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또 이 집은 거주의 쾌적성과 편리성을 위한 배려가 돋 보이는데요, 이를 테면 화장실과 부엌 등이 상당히 시원하게 계획되어 있어요. ⓦ 조정구 | 현대의 편의 공간과 한옥 공간을 결합시키면 쾌적한 공간이 나온다는 것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했지요. 말씀하신 대로 문간채에 있던 한 칸 방을 그대로 욕실로 하고, 서까래가 드러나도록 천장을 노출했습니다. 화장실의 변기는 별도로 그 옆 칸에 마련해 놓고요. 부엌 역시 천 장을 노출하고 입식으로 구성했어요. 특히 안채 아래에는 지하 공간을 두었는데, 우선 기존 안채를 해체하여 다른 곳으로 옮긴 후 땅을 판 거지요. 오디오 룸과 수납 공간을 만들고 바닥을 깐 다음 다시 예전 건물로 조립을 했어요. ⓦ 이선희 | 그러한 현대적인 편의 공간의 해결과 더불어 조명과 창호를 예전 그대로 사용하는 등, 집 안 곳곳에서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 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 조정구 | <선음재>를 하기 전에 그동안 작업했던 도시 한옥을 리뷰해 봤어요. 가장 잘 된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우리집이더라고요. 돈이 없어서 였기도 했지만(웃음), 별로 고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죠. 그 때 도시 한옥의 정취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힘을 많이 주다 보면 정취는 사라지고 기능적인 한옥이 되고 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선음재>는 건축주와의 대화를 통해 기존의 공간과 형상을 최대한 살 리는 방향으로 진행을 했지요. 1934년부터 있었던 창호들은 웬만하면 유지하고, 성능이 떨어져서 교체해야 하는 것은 실측해서 그대로 만들었습 니다. 물론 이중창을 덧대어 성능을 보완시켰고요. 원래 한옥의 다락과 입면도 최대한 살려 내었죠. 또 사랑채 뒷마당의 굴뚝과 담장은 새로 만든 거지만, 이 집의 구들 아래 깔린 기존의 벽돌로 재생하여 옛 정취를 더욱 보완한 것이에요. 말하자면 <선음재>는 ‘도시 한옥의 정취를 지켜 가면서 현대 주거로 한옥이 성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고급스러운 한옥의 느낌보다는 살고 싶은 한옥을 만들고자 했던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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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 레스토랑 내실에서 본 바깥 풍경 ↘ 누리 레스토랑 입구에서 바라본 마당 ↓ 누리 레스토랑 공사 전 실측 도면 ↗ 누리 레스토랑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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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레스토랑>에 앉다 ⓦ 전봉희 | <누리 레스토랑>의 원형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 조정구 | 원래의 평면을 살펴보면, 사랑방만 있는 사랑채와 안채가 붙어 있고 길과의 사이에 조그만 마당이 있었어요. 현재 입구는 코너에 있 지만, 사랑방에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지금의 카운터 자리에 있었고요. 처음에는 건축주가 사랑마당 자리에 주방을 만들어 줄 것 을 요구했죠. 그러나 우리가 제안한 안 중에서 사랑마당을 원형대로 살리는 안을 보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어요. 공사 전에는 주변 인사동 한옥들 이 그러하듯 원래 한옥의 여기저기에 덧붙은 부분이 많았죠. ⓦ 이선희 | 한옥을 개조해서 상업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같은 한옥이더라도 매우 다른 색깔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을 텐데요. 지금 여기만 해도 <선음재>와 매우 달라요. 신을 벗지 않고 들어가는 방식이어서 특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조정구 | 입식은 설계 초기부터 건축주가 희망했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한옥의 마당, 기단, 방의 레벨차를 그대로 살리면서 바닥에 마 루 패턴의 타일을 깔고, 2칸 대청을 3칸으로 늘려 테이블과 의자에 어울리는 개방된 공간감과 스케일을 준 거지요. 사랑방은 창호를 써서 독립된 공간으로 구획하고 우물 천장 등을 두어 방의 아늑한 느낌을 살렸지요. ⓦ 전봉희 | 아트리움으로 실내화한 마당의 느낌이 매우 좋습니다. 공간이 굉장히 자유롭게 쓰일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활동이 일어날 것으로 기 대됩니다. ⓦ 조정구 | 마당의 실내화는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라 볼 수 있어요. 지구 단위 계획에서도 투명한 재료로 한옥의 마당을 덮는 것은 인정하고 있 지요. 계획 초기부터 목조로 짠 페어글라스의 아트리움을 구상하였고, 현장에서 목수들과 협의를 거쳐 한옥 본채 기둥에 아트리움을 지지하는 보 등이 결합되는 일체화된 구조를 만들었어요. 반면, 사랑방 앞의 독립된 사랑마당은 윤곽을 살려줬지요. 한옥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덩어리들을 떼 어내고 윤곽을 되살리는 작업을 통해 원래의 경관을 회복할 수 있었는데, 이 작업 이후 이 지역 가게들이 덩달아 제 모습을 찾아가더라고요. 늘 증 축한 그대로 개보수를 해서 가게로 쓰는 것이 인사동의 특징이었는데 말이죠. 나름대로 지역에 기여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 에서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한쪽 면에 세운 색다른 기둥과 아치가 그것이에요. 덕수궁의 정관헌 등을 참조하여 소위 근대적인 조형을 갖다 놓은 거죠. 이를 통해 도시 건축은 본래 축적된 시간의 산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 지역에 무조건 조선 시대의 양 식만 툭툭 튀어나오는 것은 싫었어요. ⓦ 이선희 | 가구라든가 조명이라든가 디스플레이의 한 부분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실내의 느낌을 좌우하기도 하죠. 더 전통적인 한옥의 느낌을 위해 다른 것을 생각해 볼 여지는 없었나요? ⓦ 조정구 | 제 생각엔 좀 더 모던한 가구들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나쁜 태도일지는 몰라도 건축주가 할 수 있고 나중에 바뀔 여지가 있는 것들은 대개 건축주에게 맡겨 드립니다. 꼭 이 집에는 이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안 하죠. 오히려 건축주가 가지는 나름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건축주의 여러 여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인정하는 편이에요. 이 집에서도 그 정도면 괜찮겠습니다, 하고 생각했 죠. 물론 나름대로는 모던하고 정갈한 것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한 번 정도는 제시해 드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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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음재 사랑채 마루에 앉아서 ↓ 선음재 안채 아래에 마련된 오디오 룸 ↓ ↓ 선음재 입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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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에게 부여되는 선택권 ⓦ 박민철 | 그런 부분은 건축가 조정구의 특별함이죠. 보통 조명이나 주방 시스템 등의 선택은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생각하지만, <선음재>에서 는 집주인에게 그것의 선택권이 주어진 것을 보았어요. ⓦ 조정구 | 굳이 전통 가구를 새로 사지는 않았고, 집주인이 원래 쓰던 가구가 대부분입니다. 기존의 정취를 지키면서 생활하는 것에 의미를 두 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전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강하게 어필을 합니다. 건축주는 현대적인 것을 제안했지만, 결국 예전 것을 고수하고 있는 <선음재> 사랑방의 조명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크게 무리가 없는 한에서는 건축주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나중에 얼마든지 더 좋은 쪽으 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 박민철 | 그것이 사진에 찍혀 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었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조정구 | 이미지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굳이 지금까지 고수해 온 태도를 버릴 생각은 없어요. ⓦ 이선희 | 한옥의 인테리어는 현대 건축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까요? 현대 건축에서는 벽지나 조명이나 천장 등에 디자이너의 생각이 많이 들어 갈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전통 건축은 골격 자체가 기존의 것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방의 크기와 수납의 문제 ⓦ 이선희 | 그런데, <선음재>를 보면 억지로 붙여 놓은 것을 제대로 다시 돌려놓는 것에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방들이 참 작다고 느 꼈어요. 현대인들이 사용하기에는 말이죠.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둔 세 칸의 집을 두 칸으로 나누어 좀 크게 쓰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방 의 규모에 대한 고려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 조정구 | 부엌 부분을 뺀 나머지 공간들은 웬만하면 그냥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각방을 쓸 수도 있을 거고, 또 어떤 부분이든 쉽게 통합할 수 있는 집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기본 설계를 할 때는 방을 통합하거나 칸을 변형시키는 방법들을 쓰기도 했었지만, <선음재>는 최대한 유지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한때는 도시 한옥을 집장사집이라 괄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 한옥은 100 여 년 역사를 지닌 우리 도시의 산물이고, 따라서 그 문화적 가치를 잘 간직하고 있는 집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선희 | 한옥에서는 수납도 문제인 것 같아요. <선음재>는 여러 모로 고민을 많이 해서 수납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한옥들 을 보면 수납에 문제가 참 많다고 느껴요. ⓦ 조정구 | 조금 더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안 된다고 못 박을 것이 아니라 2층 한옥이나 반지하층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밑에는 아파트 공간처럼 쓰고 위에는 한옥처럼 살아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한옥의 정서를 담을 수 있을 겁니다. 함부로 이야기 하기 어렵고 부딪치는 부분도 많지만, 북촌에는 안 되더라도 새로운 구역에서는 성능이 보완되고 결합된 형식의 한옥이 가능할 것도 같아요. ⓦ 박민철 | 코르뷔지에의 다비따시옹에서 한 주일을 지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열 평 남짓의 그 자그마한 공간에 수납이 안 되는 것이 없어서 놀 랐지요. 나도 한옥을 해봤지만, 우리는 너무 안 찾아서 못 만드는 것 아닌가, 싶어요. 수납 공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옥의 수납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면 해결책이 분명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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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성을 갖기에 어려운 여건인 선음재 마당

선음재 사랑채 뒷마당. 구들 아래 깔린 기존의 벽 돌로 재생된 굴뚝과 담장이 있다. ↓

↓ 밝은 색의 돌을 사용하여 한층 환한 분위기의 선음재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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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중심, 마당 ⓦ 이선희 | 한옥을 현대 건축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와서 어떤 식으로 접목시킬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아요. 접목의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전통의 냄새를 더욱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들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한옥의 어떤 요소들이 활용될 수 있을까요? ⓦ 조정구 | 좀 성급한 규정일지도 모르겠으나, 저에게 한옥은 마당을 중심으로 돌, 나무, 흙 등의 자연 소재를 써서 지은 집입니다. 땅을 기반으로 해서 마당을 중심으로 자연 소재로 지은 집이 많아진다면 그 모양이 어떠하든 간에 매우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 이선희 | 모델하우스의 평면 개발에서 보면, 거실과 방 사이에 정원을 하나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옥의 마당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 어요. 그런 요소들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 조정구 | 공감합니다. 우리의 마당은 일본의 ‘나까니와—중정’과는 많이 다르죠. 마당에서는 매우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고 오랫동안 우리는 그 경험을 축적하여 왔습니다. 우리의 마당 문화에는 마당의 레벨이나 건물과의 관계, 다양한 행위에 대한 기억이 포함되어 있어요. 마당과 건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살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전봉희 | 어릴 때 살던 한옥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집의 마당은 실제로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었죠. 그런데, <선음재>의 마당은 그 때의 기억과 좀 다른 부분이 있어요. ⓦ 조정구 | 바닥에 돌을 깔아서 그런 건가요? ⓦ 전봉희 |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음재> 마당은 좀 아쉽고, <누리 레스토랑>의 마당은 느낌이 좋습니다. ⓦ 박민철 | 마당이라고 하면 내부 공간보다 좀 넓고, 열려 있고, 다방면에서 그것을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선음재>는 채 나눔 공간 사이의 공간 혹은 사이의 빈틈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중심성이 좀 빗나갔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어색해 보이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전체 공 간의 중심에 서 있지 않아서 어디가 마당이고 어디가 툇마루 앞의 공간인지, 좀 산만한 것 같습니다. ⓦ 이선희 | <선음재> 진입 시 만나는 마루, 욕실 옆에 붙어 있는 마루가 튀어나와 있어서 마당이 중심성을 갖기에는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 전봉희 | 러고 보니 그 부분이 나도 좀 어색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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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음재 사랑채 마루에 앉은 참석자들.(좌로부터 전봉희, 이선희, 박민철, 조정구) ↓ 선음재 안채 마루의 구조가 노출된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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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음재>의 딜레마 ⓦ 조정구 | 애초에 축대와 담과의 관계가 문제였어요. 즉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왼편의 축대(동쪽)가 마당과 붙어서 굉장히 이상한 느낌을 낼 수밖에 없었죠. 그것을 극복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 전봉희 | 그런 상황이라면 지금의 부엌 자리에 안방과 대청이 놓여야 되겠지요. 집과 마당과의 관계로 본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향 도 나빠지고 축대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까 곤란해질 거예요. 할 수가 없는 것이겠죠. ⓦ 조정구 | 북쪽 진입도 어려운 조건이었어요. 차라리 동선이 거꾸로 올라오는 거라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텐데. ⓦ 전봉희 | 대문간을 지금처럼 놓지 않고 골목을 만들어 동쪽에 놓는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아요. ⓦ 조정구 | 하지만 진입과 건물이 너무 좁고 작아지는 것이 문제였어요. 대문간이 쪽문간이 되는 거고, 축대와 담 사이의 무척 어두운 공간을 거 쳐야만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은 기본적으로 건강해 보이지 않았죠. ⓦ 전봉희 | 처음 그 집을 했던 목수도 같은 고민을 했겠지요? ⓦ 조정구 | 그의 고민은 아마도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건축적 고민이 아니고요. 문간의 위치와 안채의 관계 또는 북대문이 아 닌 동대문을 써야 한다는 등등의…. ⓦ 전봉희 | 북경의 사합원이 그렇죠. 문을 꼭 남동쪽에 놓아야 한다면, 90cm 작은 폭의 골목길을 만들어서라도 제 위치에 두지요. ⓦ 조정구 | 그랬던 구조를 제가 깬 것이지요. 무작정 깬 것은 아니고 결국은 그 집의 건강을 위해서 털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대 청에서 바라보는 마당은 축대에 의한 부담이 있고, 진입 때의 협소함이나 어두움 또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그 대신 집을 밝게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가능한 한 마당을 밝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대문의 우리집은 검은 오석을 깔았지요. <선음재>도 처음에는 오 석을 생각했다가 이전 집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지금처럼 밝은 색의 돌을 썼어요. 한옥의 마당은 길들인 늑대와 같다 ⓦ 박민철 |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마당에 수돗가를 만들어 놓은 것을 조 소장님의 다른 한옥에서도 보았어요. 일반적으로 모양새가 반 질반질한 요즘의 한옥 마당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죠. ⓦ 조정구 |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한 외국 건축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한국 건축가들은 공간을 잘게 쪼개어 마당을 만들어 내는 특징 이 있다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마당이 다 전통 마당의 개념과 같지는 않습니다. 현대 건축에는 일반적으로 해석이 많이 된 마당이 놓이게 마 련이지요. 저는 건축적으로 잘 다듬어진 마당이 아니라 자연과도 같은 마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한옥의 마당은 길 들인 늑대와 같다, 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마당을 갖는다는 것은 늑대를 가져다가 개로 키우는 거와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실상은 굉장히 거칠죠. 장마 때 마당을 겪어 보신 적 있나요? 집이 무너질 것처럼 정말 무섭지요. 마당에서 튀어 오르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더 해져서 더욱 그럴 겁니다. 늑대였기 때문에 개가 사나운 것처럼 마당의 본성이 자연 그 자체이고 우리가 그 자연의 일부를 따다가 우리 곁에 두었 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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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음재 동측면도 ← 선음재 안채에서 바라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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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진화, 삶의 형상 찾기 ⓦ 박민철 | 전통 건축의 구법이나 공간적인 구획으로부터 자유롭게 구사된 요소 또한 눈에 많이 띄어요. 나름의 실험적인 방법들을 한옥에 아주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느꼈지요. 한옥은 전통적, 시대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주택에서처럼 건축주의 요구 혹은 건축가의 의도 대로 설계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 소장님의 작업을 보면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는 흔적이 역력합니다. 현대적인 해석을 통한 다양 한 실험적 시도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은 생활의 편리를 위한 것이겠지요. ⓦ 조정구 | 예. 집주인들이 매우 편안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상업 용도의 한옥들은 장사가 다 잘되는 편이죠. 아마 ‘삶의 형상을 찾아서’란 전시회 제목처럼 삶의 내용을 닮으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자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그게 기본이라고 믿습니다. 그 기본 위에 집이 섰을 때 사용자나 방문자들은 편안함을 느끼게 되지요. 요즘 들어서는 <라궁> 이후의 프로젝트들에서 어느 정도 스펙트럼을 분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요. 이 정도면 앞으로 많이 나간 거고, 이 정도에서라면 더 많이 나가도 될 것 같고…. 그러한 분류를 통해 강원도 인제의 <미명재>처럼 120도 결구 의 방사형 한옥 같은 것도 해 보았고요. <미명재>는 앞으로 아주 많이 나간 프로젝트죠. 반면 개보수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좀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요. 아무튼 한옥의 진화를 궁리하면서 생활의 내용을 담으려는 기본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제 작업의 골자이기도 합니다. ⓦ 박민철 | 진화의 정도가 너무 커서 한옥이냐 아니냐 자체를 따지는 경우도 꽤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전통에서 벗어나 아주 새로운 것이 되는 경 우죠. ⓦ 조정구 |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일본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미 100년 전부터 각자의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업 을 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시작이 늦었고 늦은 만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거리도 만만치 않죠. 그래서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드 는 거예요. 혹시 <재즈 잇 업(Jazz it up!)>이라는 만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재즈 비평가가 재즈 뮤지션의 활동과 그 역사에 대해 그린 만화 에요. 그걸 보면 재즈도 클래식과 현대 음악, 타 민족 음악과 결합하며 발전해 가는데요, 지금의 우리 한옥도 현대 건축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이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형상을 그대로 쫓아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건축의 기술이든 시스템이든 철학이든 그러한 것들을 흡수하여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거죠. ⓦ 이선희 | 한옥의 진화에 대한 노력이 메아리 없는 소리를 혼자 지른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조정구 | 룰이 없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저 좋다, 나쁘다 정도의 평가 속에서 전통은 스펙트럼 또한 굉장히 좁지요. 그런 여건 에서 지금의 한옥 건축을 평가하기 때문에 부딪히는 문제들이 많다고 생각돼요. 우리 사회에 이 만큼의 작업들이 나왔으면 건축가들의 생각을 담 아 줄, 비평해 줄 분들도 있을 듯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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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을 노출하고 입식으로 구성한 선음재 부엌 ↗ 옛 정취를 보완한 선음재의 뒷마당 ← 한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수납 공간을 적절히 해결한 선 음재 안채 지하 오디오룸 → 한옥 공간에 현대적인 편의 공간을 결합시킨 문간채 한 칸 방의 욕실 ↓ 기존 공간의 형상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선음재 ↙ 선음재 욕실 창문을 통해 보 이는 마당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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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실험, 결구의 변형과 다층 한옥 ⓦ 박민철 | <와이드> 창간 준비호의 황두진 소장 편을 보면 한옥도 현대 건축의 하나로 본다,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대 건축물에 한옥을 집 어넣든 한옥에 현대 건축을 접목시키든 뉘앙스는 조금씩 틀리지만, 어쨌든 ‘오늘날’ 이루어지는 것들이므로 결국 현대 건축이라는 얘기죠. 조 소 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조정구 | ‘내 건축의 기점은 우리집’이라고 어느 글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도시 한옥에 살아보면서 충분히 제 건축을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작업들은 한옥으로부터 그 연장선들을 긋고 있어요. 물론 그 선들은 어떤 것은 속도가 빠르고, 어떤 것은 느리고, 어떤 것은 농도가 짙고, 어떤 것은 흐리고…, 작업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게 하고 있지만요. 솔직히 아주 가까운 건축가들조차도 한옥 설계 작업을 전통 건축에 기대어 쉽게 하는 것, 속된 말로 거저먹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있어요. 전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레고 하듯 끼워 맞추면 되 는 것 아니냐는 거죠. 꼭 그런 것만은 아닐 뿐더러 갈수록 더 어려운 일인데도 말입니다. ⓦ 이선희 | 내가 보기에는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 같아요. 오히려 많은 것을 해석하고 앞서 가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이 런저런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 박민철 |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 조정구 | 두 가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전봉희 교수님과 같이 하고 있는 ‘한옥건축 활성화’ 프로젝트와 아까 말씀 드린 <미명재>가 그것이지요. 사실 한옥 시장만 넓어지면 지도가 달라지고 유전자를 바꿀 수 있는 일들입니다. <미명재>는 항상 ㄱ자, ㄴ자 형태의 한옥에 120도 결구를 시도해 본 것이지요. 또 ‘한옥 건축 활성화’는 문화체육관광부 프로젝트로 현대 공간 속에서 한옥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연구, 보고하는 과제입니다. 일본의 젠(禪) 스타일은 있지만 우리의 한(韓) 스타일은 없죠. 그런 것을 찾아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작업이에요. 보다 보편적인 공간 속에 어떻게 한옥의 이미지, 한옥의 구성을 전개해 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죠. 완성의 의미보다는 일종의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 전봉희 | 개인적으로 아직 120도 결구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한옥 건축 활성화’ 프로젝트는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요. 저는 주로 앞부분에서 이야기를 풀고 설계는 조정구 소장님이 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3층 규모의 건물에서 3층 부분만 한옥으로 바꾸는 것을 했어요. 문화체 육관광부 측의 요구에 따라 이후 2층도 했는데, 3층하고 2층하고는 완전히 다른 문제지요. 하나는 최상층인 거고, 하나는 중간에 끼인 층인 거고.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이 누리 레스토랑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뭐랄까, 중국풍의 집이라고 생각할 만한 상황의 경계에 있다는 거죠. 그 프 로젝트도 만약 비판이 들어온다면 제일 먼저 중국집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려올 수 있을 거예요. 중국집, 일본집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중국풍으로 보인다면 가장 큰 이유는 입식에 있다고 봅니다. ‘한옥 건축 활성화’ 프로젝트도 입식으로 벽식 구조 위에 가구조를 올리는 문제 거든요. 즉 서로 다른 구축의 트래디션(tradition)이 만나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인데 한옥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경험이 별로 없어 요. 제가 전에 ‘청풍(淸風)건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우리 역사상에도 그것에 대한 경험이 분명 있긴 했어요. 김정희의 세한도에 등 장하는 집이 출발점이었는데, 한옥을 공부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측벽에 원형창을 가진 그 집은 아무리 봐도 한옥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도 좋은 그 림이라니까 황당한 거지요. 그저 중국 그림을 베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꼭 상상화만은 아니더라고요. 같은 19 세기에 지어졌던 석파정 별채와 경복궁의 집옥재, 또 실제 남아 있지는 않지만 동궐도 상의 수방재 등에서 조적조 벽을 박공까지 들어 올린 것을 볼 수 있어요. 원형 창이나 문을 볼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조선 시대를 너무 정태적인 사회로만 인식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하지 만 분명 19세기에는 기름기 넘치는 문화의 시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이 엔드(high-end)의 추사 글씨가 등장할 수 있었겠죠. 마찬가지의 상황 속에서 건축에는 중국풍 건축 요소가 등장하지 않았나, 추측해 봐요. 아무튼 제 말의 요지는, 지금 이 건축가가 새로운 시도들을 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전통성에 대한 질문들, 의문들에 대해 태클을 걸기보다는 오히려 격려를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 이선희 | 실험적인 방식들은 늘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중국풍과의 경계에서도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요. 아까 개인적으로 <라궁>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상처가 많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국내 최초의 한옥 호텔이라는 아주 좋은 시도는, 물론 건축주의 배 려가 가장 큰 것이겠지만 한옥을 ‘그대로’ 짓겠다는 건축가의 마음이 소중한 것이겠죠. 그것은 한옥을 재해석해서 만드는 것이 아닌, 결구 기법에 서 한옥의 가장 중요한 공간 구성을 재현한다는 자세이지요. 하지만 실내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라궁>은 아쉬운 점 또한 많이 있습니다. 내부 마 감재와 가구, 소품들까지, 한옥과 맞지 않는 크기의 제품과 소재, 그리고 컨셉트들이 좀 많이 아쉽더라고요. 한옥이 주는 단아함과 은근함이 아닌, 국적을 알 수 없는 각종 장식물들이 과연 우리의 한옥인가, 하는 의문을 주면서 정말 더 많은 연구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안 하는 것보다 해 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그게 중요한 것이겠죠. 간혹 아파트 인테리어에서도 보면 내부를 한옥처럼 완전히 고치기도 하는데, 그걸 보면서 이것이 과연 좋냐, 한옥 같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디자인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실용적인가, 산만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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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 레스토랑의 입구와 카운터 ↑ 누리 레스토랑 홀에서 본 바깥 풍경 ← 정면의 근대적인 조형의 기둥과 아치 ↗ 누리 레스토랑 → 입구에서 본 사랑채 →→ 누리 레스토랑 사랑마당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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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유지되는 구법, 목구조와 마당 ⓦ 전봉희 | 보고서에도 썼지만, 건축가 조정구만의 장점이 몇 가지 있어요. 그 중 하나를 꼽자면 어디서든 구조를 유지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전통 에 없는 디테일이 보이기도 하지만, 디테일이 일본 것이냐, 중국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전통이라는 것 자체가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것이고, 또 생각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형성된 것들도 많이 있어요. 그보다는 나무로 짠 것을 골격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그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처럼 중심을 잃지 않기 때문에 120도 결구를 제안하거나 최상층과 끼인 층에 한옥을 만들면서, 또 대량은 아니지만 <라궁>에서처럼 매뉴팩처(manufacture)를 이용하면서도 어떤 일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꼭 지키고 있다고 생각되는 또 하나 는 마당이에요. 내외부 공간의 관계죠.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후 변화가 많아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거기에 삶의 희로애 락이 다 녹아 들어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파트, 차, 오피스의 세 공간만을 이동하며 생활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잊고 지내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마당을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당에 대한 부분을 놓지 않는 것만은 확실합 니다.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하죠. <라궁>에서도 미덕이라면, 물론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마당을 끌고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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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주방으로 쓰일 뻔한 누리 레스토랑의 사랑마당. 인사동 원래의 경관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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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하나, 한옥의 대공간 ⓦ 박민철 | 한옥은 목구조의 섬세한 짜임이라든가, 나무의 질감뿐만 아니라 그 처리의 정교함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요. 그런데 조 소 장님의 작품에는 그런 것을 생략하거나, 거칠고 틈이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분이 있어요. 정교함을 현실적으로 재현하기 어려워서인 지, 아니면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인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옛날 살에 새로운 살 하나를 덧댈 경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색 의 차이가 나는 것에 많이 민감한 편이거든요. 새로 덧댄 부분에 색을 칠해서 어느 정도 맞추곤 하지요. 그런데 <선음재>에서는 특별한 처리 없이 차이나는 그대로 두었더라고요. 건축주를 설득하여 교감이 되지 않으면 어려운 부분이에요. ⓦ 이선희 | 전체적으로 볼 때 섬세함이나 정교함보다는 거칠고 자연스러운, 하지만 나름대로 틀이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조정구 |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직접 고치는 일이고 배운 것만큼 하는 일이라서 그렇겠죠. 또 끝까지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그렇지만,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건강함이나 내재된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강건한 틀 안에서 프로젝 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요. 만약 설계비를 많이 주면서 굉장히 정교한 집을 요구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족 구성원 들이 살 집이란 생각으로 건강한 틀을 부여하는 것에 비중을 더 많이 둡니다. 물론 새로움과 정교함 역시 계속 추구해 나가야 하는 바겠지만요. 한 편으로 생각하면,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소위 말하는 스튜디오라는 데서 건축의 격식을 배우는 기간이 짧았기 때 문에 그것을 거꾸로 배워 가는 과정에서 정교함의 문제와 부딪치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걸 한꺼번에 쥐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없습니다. ⓦ 전봉희 | 목구조를 가져가는 방식에서도 그것을 발휘하는 방법이나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일 거예요. 조 소장님은 디테일보다는 칸, 즉 네 개의 기둥이 이루어 내는 틀과 지탱해야 하는 경사진 지붕이라는, 보다 큰 원리들을 생각하지요. 꽤 큰 공간들을 만들 때도 큰 부재를 사용하 거나 구조적인 보강을 해서 대공간을 만들어 내고, 한옥에서 느껴 보지 못한 공간감들을 조정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큰 공 간이 필요하더라도 절대로 칸이 세 칸을 넘어 연속되지 않게 끊어버리고 구획을 해요. 물론 연결해 줄 필요가 있으면 분합문을 단다든지 해서 연 결시키고요. 한 번에 큰 공간을 구현하지는 않지요. 목구조 공간의 규모와 형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공간의 규모에 대한 것은 앞으로 넘어야 할 큰 문턱이 아닌가 생각돼요. ⓦ 조정구 | 다음 작업에서 보여 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실은 작은 공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는 공간의 조직이 작업에서 중요했기 때 문이에요. ⓦ 전봉희 | 앞으로 해야 할 작업들은 조금 더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큰일들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 조정구 | 한옥을 2층에 넣어 보면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어땠든 한옥은 목구조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옥이라고 느낄 때는 일정한 목 구조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식의 구조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사실 큰 공간이라는 것은 소위 유니버설(universal)하기 때문에 축성이 많아요. 게다가 다양한 기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한옥은 이런 부분들을 언어화하지 못했죠. 일식집은 아무리 넓어도 다 일식집처럼 보인단 말입니다. 400평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일식집은 일식집으로 인식할 수 있어요. 한옥은 그 부분에 대해 애매한 부분이 있죠. 기껏해야 툇마 루 걸고 기와를 이는 정도 외에는 정립시키지 못한 어려움이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현대적인 공간의 특성, 다면으로 팽창하는 특성 같은 것을 한 옥의 공간이 어떻게 가져갈 수 있느냐가 과제일 수 있을 거예요. ⓦ 전봉희 | 일본 건축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구조와 공간이 따로 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또 모든 행위의 중심이 실내 공간화되어 실내를 둘러 싸고 있는 네 면에 대한 고려가 많이 이루어져 있지요. 반면 우리 건축은 아주 오랫동안 중심이 외부 공간에 놓여 있었어요. 외부 공간에서 바라보 는 오브제로서의 성격이 매우 강하고, 그 자체가 단일 오브제가 아니라 외부 공간, 즉 마당을 둘러싼 면으로서 강조되어 왔지요. 자연히 일식집과 다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규모에 대한 부분과 관련하여 지금도 열심히 진행하고 있는 수요 답사의 대상지를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 어요. 우리 건축에도 찾아보면 큰 것들이 있거든요. 언젠가 경회루의 지붕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데, 그 추녀의 스케일에 매우 놀랐어요. 두꺼운 부 분은 춤이 2m가 넘고, 전체 길이는 18m가 넘는 거대한 부재를 사용하였지요. 경회루 내부 공간을 보고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한국 건축의 공간과 는 무척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인정전의 천장을 수리할 때였는데 내부에 설치된 비계틀을 통해 천장까지 올라갔더니 아주 아찔하더라고요. 아무튼 보다 큰 규모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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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음재 지하 오디오 룸에서 담소를 나누는 참석자들. 수납공간이 이채롭다. ↗ 아트리움으로 실내화한 누리 레스토랑의 마당에서 진행된 집담회 ← 전진삼 와이드 발행편집인

→↘ 누리 레스토랑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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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둘, 한옥의 보급화(한옥의 대중화, 보급화를 위한 표준화 한옥, 저가 한옥 등의 질문에 대해) ⓦ 조정구 | 공장 생산으로 현장 조립해도 성능 높은 한옥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단지 표준화 한옥이니 저가 한옥이니 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각기 다른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데 표준화해서 할 수도 없을뿐더러, 특히 도시 한옥의 장점은 그러한 조건들을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거예 요. 많이 보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가 전략을 구사하면 진짜 싸구려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이선희 | 한옥과 한옥에서의 삶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면 그와 더불어 인식도 높아지겠지요. 사람들이 한옥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무라는 재 료와 마당이라는 공간 요소 때문일 거예요. 저가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은 갖추어야 하겠죠. ⓦ 전봉희 | 제 생각에도 한옥의 보급에 장애가 되는 것은 건설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땅값에 대한 부분이 더 크죠. 지면과 접하지 않게 하 는 연구, 즉 2층과 3층에 한옥을 넣는 연구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겠죠. 이번 2층에 한옥을 끼워 넣은 프로젝트를 보면서도 스스로 유지하고자 하는 몇 가지 원칙들을 어김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하지만 역시 공간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늘이 뚫려 있는 경우 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아파트 내부의 한옥화도 같은 맥락이겠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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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음재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1-75 | 지역 지구 : 도시 지역, 일반 주거 지역, 제1종 일반 주거 지역, 역사 문화 미관 지구 | 용도 : 개인 주택 | 대지 면적 : 205㎡ | 건축 면적 : 99.17㎡ | 연면적 : 102.48㎡ | 건폐율 : 48.38% | 용적률 : 49.99% |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 구조 : 지하/철근 콘크리트조, 지상/한 식 목구조 | 외벽 재료 : 한식 회벽 마감, 화강석 사고석 붙이기, 한식 기와(지붕) | 설계 기간 : 2006.5-2007.2 | 공사 기간 : 2007.3-2007.7 | 설계 담당 : 차종호, 조 지영, 구본환 | 구조 설계 : 윤구조 | 건축주: 김일형

내가 하고 싶은 건축 ⓦ 박민철 | 한옥 건축가라는 이름을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스스로 붙인 건가요? ⓦ 조정구 |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 박민철 | 건축가라면 누구든 한옥이나 전통 양식에 관심이 많고, 또 각자의 해석이 있는 건데 한옥 건축가, 한옥 전문가라고 한정지어질 때는 거꾸로 많은 제약을 받을 거라 생각돼요. ⓦ 조정구 | 정말 여러 가지 호칭이 있더라고요. 한옥 전문가, 한옥 전도사(웃음), 최근에는 한옥의 뉴웨이브 개척자 등등. 심지어 한옥 시공자란 호칭도 있지요. 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데도 매체에 노출되니까 별별 이름을 마음대로 붙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냥 건축가일 뿐이고 한옥이란 것도 현대 건축의 하나로 생각한다, 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한옥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다른 것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많은 시간을 답사 에 할애하면서, 하고 싶어진 건축은 좀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땅에 가까운 건축이에요. 꼭 한옥은 아니어도 자기가 앉을 자리를 아는 듯, 땅에 자 연스럽게 들어가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 전봉희 | 미니 2층을 하세요.(웃음) 미니2층,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슬래브 집인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이러다간 사진 하나 제대로 못 남기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다른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미니 2층은 한옥이 가지고 있는 미덕을 조금쯤 가지고 갔 다고 봐요. 그러나 아파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아마도 집하고 집 주인하고의 관계 때문인 것 같아요. 예전 한옥에 살면서 때 되면 함석 에 페인트칠을 한 기억도 나고, 매년 창호지를 바르던 기억도 납니다. 집안 행사 같은 것이었죠.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 의 없어요. 그러고 보면, 집에 관심을 가지고 집을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 박민철 | 극단적인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아파트 문화라는 것이 발전할 대로 발전하여 빨리 한계가 왔으면 좋겠어요. 콘크리트 박스의 한계 말 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전봉희 | 그렇게 될 때, 그것은 한옥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은 거겠죠. 다만, 한옥이 공공적인 지원을 받기 조금 유리한 입장에 있기는 합니 다. 외부에서 자양분을 주고 있으니 싹을 지금이라도 막 틔울 상황인 것 같은데, 한옥에 너무 집중하기 보다는 더 바깥 범위로, 주거 일반으로 확 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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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레스토랑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84-12 | 용도 : 상업 시설(일반 음식점) | 대지 면적 : 147.68㎡ | 건축 면적 : 66.12㎡ | 연면적 : 66.12㎡ | 건폐율 : 44.77% | 용적률 : 44.77% | 규모 : 지상 1층 | 구조 : 한식 목구조 | 외벽 재료 : 한식 회벽 마감, 한식 기와(지붕) | 설계 기간 : 2005.12~2006.2 | 공사 기간 : 2006.2~2006.4 | 설계 담당 : 조지영, 차종호, 최경자

건강한 건축을 향하여 ⓦ 조정구 | 답사를 하다가 발코니에 십장생 주철을 가득 붙인 집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제가 십장생 다세대란 이름을 붙였는데(웃음), 이처럼 우 리 주거 문화에는 아파트로 옮겨갈 때 두고 간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꼭 한옥의 개념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우리 주거가 떨어뜨린 것들을 찾아서 가져올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선희 | 그러고 보면 그 좋았던 인사동, 낙원동 집들에 대한 자료 하나 정리해 놓지 못한 현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무턱대고 밀어버리고 만 건데, 지금이라도 원형에 대한 기록, 물론 북촌을 비롯한 한옥 지역에 대해 바뀐 집들의 업데이트와 함께 가장 처음 것의 기본적인 도면이나 사진 의 보존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박민철 | 기록이 필요하다는 건 꼭 한옥에서만 적용되는 사안은 아닌 것 같아요. 주거학을 대학원에서 처음 접할 때 우리 나라의 1970년대는 주 거문화가 없다, 라는 말을 듣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도 박공 지붕의 콘크리트 집들은 분명 존재했지요. 있는 건 우리가 인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존재하는 것은 모두 기록되고 하나의 양식으로 남겨지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이선희 | 솔직히 필요한 데도 너무 연구들을 안 합니다. 배움이나 기억에만 의존하지, 무엇이 주거고 무엇이 주거에 필요한지 리뷰를 안 하지요. 재료와 제품에 대한 정보만 찾아서 그저 삽입하는 수준인 것 같아요. 그때그때의 사례가 없다 보니 사라진 다음에야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 박민철 | 도시 한옥도 굉장히 많은 경우가 숨어 있어요. 한옥의 원형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이미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도시 구조로 계속 성 장하고 발전하는 데 있어서 우리 것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대한 문제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조 소장님의 작업이 어떤 흐름을 갖기보다는 한옥의 재발견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찾아 내고 여러 환경들을 자꾸 찾아 내서 우리가 좋아하는 건강한 건축을 완성해 나갔으 면 합니다. ⓦ 정리 | 정귀원(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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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cho, junggoo

↘ 2층 내부 결구 모형 ↘↘ 3층 결구 모형 ↓ 도시와 한옥의 관계 설정 대안들 ↓↓ 도시와 한옥의 경계 영역

마당 56.3㎡ / 2층 157.5㎡ | 규모 : 지상 3층, 지하 1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한옥 목구조 | 설계 담당 : 조정구, 민도식, 요네다 사치코 | 설계 연도 : 2008년

서초 어린이 도서관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 지역 지구 : 일반 주거 지역 아파트 지구 | 용도 : 어린이 도서관 | 개보수 부분 : 3층 건축 110.3㎡

조정구의 실험 한옥 2제 | 서초 어린이 도서관


WIDE ARCHITECTURE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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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영역 구분도 ↑ 2층 공간관계도 → 외부이미지 →→ 외부이미지

점이고, 이 질서를 찾는 것이 향후의 과제라 하겠다. ⓦ

기에는 이들 공간들이 한옥의 규범 속에 배열되겠지만, 향후 ‘한옥적 공간 혹은 한 스타일 공간’ 속에서 새롭게 자율적 질서를 획득하게 될 것이란

해 속박되지 않는 마루와 방 등의 공간 단위들은 ‘마치 팔레트에 놓인 플랑크톤처럼 실내 공간을 부유하려는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초

되고, 이것을 다양하게 전개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 내부에 구축된 한옥적 공간에서 발견한 것은 지붕 구조에 의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것은, 한옥이 현대의 건축 공간 속에 들어가면서, 한옥 공간과 건축물의 외벽 사이에 이제와는 다른 새로운 영역이 생성

통합, 분할되어야 하는 실내에서 하나의 공간은 여러 방향의 축을 지니며 다양한 결합을 이루는 다면적 가변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면적 가변성’을 부여하였다. 일정한 면이나 방향이 주요 축을 형성하는 것이 한옥의 특성이라면, 지붕 구조가 사라지고 ‘다양한 활동으로 공간이

공간’을 두어 다양한 부가적 기능을 담당하고, 건축물과 다른 계획 공간 사이를 채우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한편 내부 공간은 ‘대청을 중심으로 다

적 이미지에 주력하기보다는, 한옥적인 공간 구축의 방법을 고민’하였다. 이를 위해 개념적으로 ‘마당 공간’, ‘한옥 공간’을 두고 여기에 ‘semi-한옥

2층의 경우, 일반적인 빌딩 내부에서 한옥 공간을 어떻게 계획하고 표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하였다. ‘기와 달린 처마나 쪽마루와 같은 기존의 한옥

적 한옥을 제안’하고자 했다.

는 안을 채택하였다. 중저층의 건축물 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대안을 찾는 것으로, ‘외부와 조화로운 경관을 이루면서 안으로 풍부한 내향

지의 형태가 있으며, 이 중에서 ‘바깥 부분은 기존 건축물 입면이 그대로 한옥을 에워싼 껍질이 되도록, 지붕 구조를 바꾸고 그 접합부를 고려’하

전통적 공간 요소를 계획하였다. 간단한 그림(도시와 한옥의 관계 설정 대안들)에서 보듯이, 상층부의 한옥이 도시 경관 속에서 갖는 모습은 3가

옥으로 계획’하였다. 먼저 3층의 경우, 주변의 일반적인 건축물 옥상에 전통 목구조의 한옥을 올리는 것을 주제로, 마당, 대청, 방, 다락, 쪽마루 등

문화관광부에서 지원하는 한옥 건축 활성화를 위한 기초 연구 시범 계획안으로 기존 어린이 도서관 2층은 ‘한옥적인 공간’으로, 3층은 ‘새롭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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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cho, junggoo

지상 2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한옥 목구조 | 설계 담당 : 조준배, 조정구, 민도식 | 설계 연도 : 2007년

인제 미명재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 지역 지구 : 관리 지역 | 용도 : 부속 시설(관리 사택) | 건축 면적 : 217.1㎡ | 연면적 : 384.2㎡ | 규모 :

조정구의 실험 한옥 2제 | 인제 미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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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재에 도입된 2개의 T-joint set

→ 미명재 마감 →→ 미명재 마감

현대적 요구들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집합의 형상을 이루게 될 현대 한옥의 기본적인 해법의 하나로 미명재 작업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

은 이들 구조 부재의 새로움이 아니라 자유로운 결구가 가능하여 얻어지는 ‘자유로운 한옥 배치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대지 조건과

방향에서 오는 중도리를 종도리와 같이 받아주는 ‘이형 대공’과 종도리 부분의 결합을 위해 구조를 보강하는 ‘뜬창방’ 등이 도입되었다. 주목할 것

구체적으로 연구하였다. 기둥에서 건너편 도리 부분에 꽂히는 ‘충량’으로 이루어진 ‘T-joint 구조’를 두 개 결합시킨 것이 그 핵심으로, 여기에 다른

‘원하는 전망을 향해 방사형으로 자유롭게 날개를 뻗는 한옥’을 만들기 위하여 120도, 정확히는 90도 이상의 자유로운 결구가 가능한 지붕 구조를

다. 지붕도 기와 지붕에서 동판 지붕으로 하여 유지 관리의 문제나 조형적 대안을 시도하여 보았다.

였다. 전체 구조와 조형은 충실하게 한옥의 형식으로 하면서도, 외부 창호는 창살이 없는 목재 유리창으로 하여 주변의 경관을 받아들이게 하였

도 결구를 이루며 풍경을 향해 ‘열려 있는 한옥’으로 계획하였다. 1층에는 콘크리트 구조에 자연석 마감을 하여 위에 올라설 한옥의 기반을 형성하

room) 그리고 밖에 있는 창고를 합쳐, ‘방사형의 한옥’으로 설계하였다. 나지막한 언덕 위 2층으로 자리한 한옥은 주변을 내려다보면서 120도, 90

강원도 인제 평화생명동산 안에 계획되는, 주거를 겸한 관리 사택이다. 초기에 계획되었던 방사형 평면의 독립된 3세대 주거와 게스트 룸(guest


review | 건축가 조정구와 한옥 글 | 전봉희 Jeon Bong Hee(서울대학교 건축학 과 교수) 아마도 이번 집담회 참석자들 가운데 조정구 소장 과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하여 나에게 이 글이 맡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나와 조정구

다. 어찌 보면 병이 든 한옥을 건강하게 되살리는

소장은 대학원 생활의 1~2년을 함께 보내기도 하

의사의 태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함께

였고, 그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사무실을 차린 이

둘러본, <선음재>와 <누리 레스토랑>에서도 이러

후에도 종종 연락하며 지낸 사이이다. 그러나 내

한 그의 작업 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옥의 주

천성이 수줍어서인지 게을러서인지 주변 사람들

요 구조부를 이루는 기둥과 그것에 의하여 결정되

과 사석에서 건축을 이야기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는 내외부 공간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

않다. 조 소장과도 일로 만나게 된 것이 경주의 <

려 최초의 건축 이후에 변형된 부분을 찾아 그 원

라궁> 호텔을 지을 때가 처음인데, 나에게 주어진

래의 구조를 되살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가 더욱

일은 건축 시행자의 의뢰로 일의 진행 과정을 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틀어진 기둥을 바로 세

록하고 그 의미를 진단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우고, 거죽에 덥힌 세월의 때를 벗겨내어 건강한 맨

이었다. 대개의 건축일이 그렇고, 게다가 실험적인

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애써 겸손하게 말하고 있

작업은 더더욱 그러하지만, 건축주와 건축가 혹은

지만, 한옥의 맨살을 만지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

건축 시행자와 건축가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

이 아니다. 새로움의 정도는 형태의 크기에 좌우

고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보통 한 달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옥이라고 하는 몸

에 한 번 정도 현장을 방문하여 그간의 경과를 보

과 눈에 익은 공간을 다룰 때는 조그만 변화도 아

고 쌍방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

주 크게 인식되기 마련이며, 건축가 역시 디테일에

하면서, 조 소장에게 충분한 격려를 베풀어주지 못

충실하라는 건축의 격언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기

한 것은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 점은 시행

회를 갖는다. 오히려 공업 제품의 반듯함에서 벗어

자 측에도 마찬가지이다. 나 스스로 내 일을 충실

난 자연 재료를 다루면서 현장에 충실하지 않을 수

히 기록하는 것에 한정지었고, 이미 설계안과 시공

없고, 마당의 풀 한 포기나 굽은 서까래 하나에 이

계획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어줍지 않은 참견을 피

르기까지 눈길 닿는 모든 곳을 노심초사하지 않으

하려고 노력하였다.

면 안 되는 것이다.

<라궁>의 의미를 진단하기 위한 자문회를 꾸려서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건축가라는 직역에 새로운

공사의 중간과 완공 후에 좌담회와 토론회를 마련

도전이 되고 있다. 나는 한옥의 건강함은 그것이

하였다. 한옥의 실천에 경험이 않은 분으로서 장순

몸 가까운 건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무

용 소장님, 도시 한옥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송인호

엇을 짓는 일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속

교수님, 그리고 좀 거리를 두고 이번 작업을 볼 수

하는 일이며, 몸으로 만지고 다듬고 가꾸는 건축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던 배형민 교수님 등 세분을

이야말로 우리의 맘도 함께 담아갈 수 있는 그릇이

모셨는데, 기대하였던 대로 자신들의 배경에 어울

라고 생각한다. 물리적 환경을 가리키는 말이면서

리는 적절한 평을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동시에 가족적 관계를 뜻하는 우리말 집이 가지는

모로 보나 <라궁>은 경계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다의적인 의미는 이와 같은 건축과 인간의 친연적

전통 건축에 익숙한 눈으로 보기엔 미숙한 부분이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중간적 전문가로

자주 발견되었고, 절대적 비례를 갖는 순수함의 결

서 조정구 소장이 하는 작업은 만드는 사람과 사는

정으로 보기 힘든 타협과 절충도 눈에 띠었다. 더욱

사람의 간격을 줄여, 건축의 근원을 되찾아가는 작

공격적인 비판은 선험적 형식이 있고, 목수의 현장

업이기도 하다.

작업에 물성이 달려 있다면 건축가에게 남는 것은

조정구 소장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이에서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번 좌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한옥에도 새로운

담회에서도 조 소장이 언급하였는데, 한옥을 다루 는 많은 건축가들에게 공통적으로 갖는 세상의 시 선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근대 이 래 건축가들에게 주어졌던 조형자(form-giver)로 서의 지위를 고집하거나, 철근 콘크리트의 조소성 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조정구 소장은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거의 정반대의 접근 태도라고 해도 좋을 정 도로 그는 형태를 새로 부여하는 일에 아직 초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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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cho, junggoo


형태를 주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 라, 전문적 지식의 많은 부분을 사용자에게 되돌리 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칸 단위로 이루어진 한옥 의 구성 단위를 모듈화하여 누구나가 손쉽게 자신 의 집을 설계하고 건축 계획을 세워볼 수 있는 툴 을 고안하는 일이나 목구조 결구의 새로운 접합 가 능성을 실험하고 현대 건축물 속에 한옥을 삽입하 는 일 등이 그것이다. 처음 서울 시내의 골목을 구 석구석 답사하는 일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이 십 년 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현상 을 넘어서는 데 이른 것이다. 그의 다음 작업이 기 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십년이 관찰하고 온축하여 드러내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그간 한옥 에 빚진 것을 되갚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한옥이 오랜 기간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으로 발전해온 것 처럼 한옥의 미래 역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가 꾸어질 것이다. 조정구 소장의 작업은 그 한 가지 대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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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는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주)토탈디자 인 설계실과 금호건설 주문주택사업부를 거쳐 현재 (주)삼우에스디 소장으로 있으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한 연구로 제2회 꾸밈 건축평 론상(1986년)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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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장한 사람들은 대충 이렇습니다.

조정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guga) 도시건축을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 에 주제를 두고, 지속적인 도시 답사 (수요답사)와 설계 작업을 같이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대치동 k주택 (2001),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 (2002), 논현동 근생 주택(2003), 옥인동 한옥(2004), 진원당 (2004), 인사동 누리 (2006), 경주 한옥 호텔 라궁(2007), 인제 미명재(2008) 등이 있다. 2004 년 새건축사협회 신인건축상을 수상하였고, 2007 년 경주 라궁으로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서울 정동에서 <삶의 형상을 찾아서> 란 이름으로 그 동안의 작업들을 전시하였다.

박민철은 중앙 대학교 건축학 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건축미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제5회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막달라 마 리아 기념관으로 특선을 수상한 바 있으며, 졸업 후 이공건축과 삼우설계에서 건축 실무를 쌓았다. 1990년대 건축 비평 그룹 ‘간향’의 동인으로 활동 하였고, 현재 간향건축사사무소의 대표 로 건축, 인테리어 설계 및 시공을 넘나 들며 폭넓게 작업하고 있다.

전봉희는 1992년 서울대학교에서 조선 시대의 씨족 마을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목포대학교를 거쳐 1997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사를 가르치 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건축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3칸×3칸』 『중국 , 북경 가가 풍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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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gal, You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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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Seo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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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섬훈(운영위원,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대표)

하고 머릿속에 남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들 것이다. 삶의 터전으로서, 송도 신도시다움이 베어 나려면 많은 흔적과 기억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지 나문재처럼 편안

을 좌우한다. 송도 신도시에서 주변 갯벌이 보이지 않는다면 외형상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신도시 중의 하나와 구분하기 힘

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에 틀림없으나 그 지형을 사용하는 사람들, 이벤트, 프로그램의 설정은 또 다른 측면에서 그 도시의 색깔

사이트(site)로 갈 수 있을 정도였던 송도 신도시는 10년도 안되어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지형적 조건이 도시 정체성을 결정하

섬과 갯벌이 나타나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갯벌타워> 공사 당시 현장에 가면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어서 통행증을 받고서야

참 들어가자 몇몇은 ‘잘못 가는 거 아냐?’, ‘산속으로 가는데 바다가 나올 리 없다’ 는 등등… 제법 산속을 가로질러가니 그럴듯한

며칠 전에 안면도에 있는 나문재 펜션으로 워크숍을 갔다. 무인도 하나를 잘 이용하여 색다른 펜션을 만든 것이다. 차를 타고 한

Tabular rasa & Memory


by Park, Mincheol 58

WIDE EDGE


와이드 이슈 1

당인리 발전소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서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새로운 도전

2008 5-6 no.3 wide issue 1 : Old Factory and New Culture in Dangin-Li ‘産文不二 : 근대 산업 시설과 생활 문화 공간의 공존은 가능한가?—당인리 화력 발전소의 새로운 가능성’은 올해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주제다. 1930 년 경성전기주식회사가 당인리에 우리 나라 최초의 화력 발전소를 준공한 이후 이 곳은 석탄에서 액화천연가스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원의 변천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근대 산업 시설로서 서울의 상징이 되어 왔고, 한강변에 위치한 입지 조건 또한 한강의 중요성과 함께 계속 증대되어 왔다. 이를 배경으로 당인리 발전 소를 문화 공장으로 제안한 전시를 비롯, 창작 활동을 위한 문화 발전소로 변화 시키려는 논의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도코모모 코리아는 당 인리 발전소를 올해의 과제로 채택하고 작품 접수 마감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당인리 발전소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쫓아가 보기로 했다. 생활 문화 공간 혹은 생산 공원으로의 진화와 성공적인 부활의 필요 조건 등을 들어 보 는 이 자리가 당인리 발전소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 는 바람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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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이 바라보는 산업 시설의 새로운 가치 글 | 김종헌(편집위원, 배재대 건축학과 교수, 제5회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 총괄 코디네이터)

다른 공모전과는 달리 특정 대지의 기존 환경에 대한 보전을 주제로 내걸어 왔던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은 제4회를 거치면서 작년 참가 신청 접 수자가 683팀에 이르고 접수자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제1회 공모전에서는 철거 위기에 있던 신촌역사에 대한 공모전을 진행하여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였다. 이를 계기로 2007년 10월 현재 신촌역사를 비롯하여 23개의 철도 역사가 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었 다. 제2회는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의원, 제3회는 국군기무사령부를 주제로 진행하였고 제4회에서는 ‘구 서울역사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주제로 공모전을 진행하였다.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이 근대 건축에 대한 관심과 근대 문화 유산의 보존 및 활용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점에 있어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 주제에 대한 논의 제4회 공모전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면서 제5회 공모전 주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때는 철원 인민당사, 서울시청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 시되었다. 본격적인 주제에 대한 논의는 2008년 1월부터 시작됐다. 이후 어청도 등대와 부여박물관, 당인리 발전소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등대 는 그동안 건축가들이 잘 다루지 않았다는 점,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건축의 본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측면, 그리고 기능과 형태와의 관계 를 보다 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려되었다. 부여박물관은 1960년대 한국 현대 건축에서 전통 논의를 본격적으로 불러일으켰고, 전 통에 대한 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볼 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고려되었다. 당인리 발전소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지만 현실적 으로 사회가 당면한 커다란 이슈이며, 그동안 건축계에서 산업 시설물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고려되었다. 논의 과정은 매우 치열했 고, 그 과정에서 부여박물관과 당인리 발전소로 압축되었다. 한편 공모전 주제의 타당성과 함께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근대 문화재에 대한 고민을 풀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과 참가자를 고려해서 아직까지는 서울에 있는 건축물에 참여자의 관심이 많을 것이라는 주장도 논쟁을 더하 게 만든 원인이었다. 공모전을 기획하면서 참여자의 관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지금까지 근대 문화 유산에 대한 논의가 관공서, 은행, 사무소, 문화 시설에 국한되었다면 근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 시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넓힐 필요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또 도코모모 코리아 스스로도 산업 시설에 대한 연구와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당인리 발전소를 잠정적으로 정하였다. 여기에서 잠정적으로 결정한 이유는 당인리 발전소가 국가 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관련된 도면을 입수할 수 있을 것인지, 또 현장 견학이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공모전 위원회에서 참가자에게 충분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가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공모전 위원회에서는 현장 견학의 필요성을 느꼈고 당인리 발전소와 협의를 하기로 하였다. 공모전 위원회는 당인리 발전소를 견학한 후 발전소 측에서 넘겨준 도면을 CAD 파일로 만들어도 배포할 수 있다는 승낙을 당인리 발전소로부터 받았다. 또 공모전 위원회는 당인리 발전소를 둘러보면서 터빈실, 엔진, 파이프, 냉각기가 이루어 놓은 조형성에 깊은 감흥을 받고 당인리 발전소로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근대 산업 시설의 문화적 가치 산업 시설 하면 사람들은 연기를 내뿜는 두텁고 높은 굴뚝, 검정색으로 그을린 벽과 조립식 구조의 창고 등을 연상한다. 또 굴뚝에서 나오는 시커 먼 연기, 가죽 공장, 양조장 등의 화학적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고약한 냄새, 강과 운하로 방출되는 화학 물질들로 인해 산업 시설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나쁘게 각인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업 시설 또는 산업 건축이 근대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 대 건축에 대한 논의는 주로 주택, 박물관, 미술관, 사무소, 종교 시설 등에 집중되었고, 산업 건축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섬유 공장, 방앗간, 발전소, 급수탑, 냉각탑, 가스 공장, 창고 등 산업 건축물들은 당시 건축이 당면하고 있는 현상들을 지속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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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Old Factory and New Culture in Dangin-Li


↑ 당인리 발전소 지반 공사 사진들 ↓ 당인리 발전소 철도 부설 및 공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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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생산 과정에 따른 효율적인 작업을 위한 배치 문제, 증기 기관의 사용에 따른 불에 대한 안전 문제, 재료의 변화와 기 술적 혁신에 대응하기 위한 융통성 문제, 효율적인 생산과 경제적 이익, 또 노동의 가치라고 하는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산업 건축은 근대 사회로의 발전 과정에 따른 당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였다. 이에 따라 산업 건축은 근대 사회의 기술적, 사회적 변화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산업혁명 전성기에 있어서 공장은 산업의 힘과 활력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노동자 노예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상징한다. 당시 세계 산업혁 명의 중심이 되었던 맨체스터(Manchester)를 통해 본 엥겔스의 보고서는 칼 마르크스가 쓴『자본론』 의 자료가 되었다. 이처럼 공장으로 대표되 는 산업 건축은 18세기 이후 디자인 진행 과정에서의 혁신, 기술적, 사회적 변혁,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한 이정표가 되었다.(Gillian Darley, Factory, London; Reaktion Books, 2003, p.9) 따라서 산업 건축은 ‘근대성(modernity)’이라는 개념을 집약적으로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근대 건축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도 당시 산업 건축의 중심이었던 맨체스터의 광대한 스케일의 산업적 풍경과 그 질에 의하여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건축가 없이 현장 감독에 의해서만 세워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와 이런 건물이 단지 벽돌과 최소한의 형태적 요소를 통해 표현된 것에 대해 놀라워 했다. 1826년 싱켈과 여행에 동행했던 피터 부스(Peter Beuth)는 1823 년 이미 영국에서 싱켈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여보게, 친구! 기계와 빌딩이 근대의 기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네. 이를 공장이라고 부르네. 창고는 8층 내지 9층의 높이이고, 40개의 창문을 갖는 길이이고, 4개의 창문을 갖는 깊이이네. 이 건물들은 매우 높아서 주변 지역을 압도하고 있네. 뿐만 아니라 증기 기관의 굴뚝 숲은 바 늘과 같아서 얼마나 높은지를 상상할 수가 없네. 멀리서도 그 광경을 바라다 볼 수 있고, 특히 밤에는 수천 개의 창문이 가스 불과 함께 밝게 빛나 고 있네.(Karl Friedrich Schinkel. The English Journey: Journal of a Visit to France and Britain in 1826, (D. Bindman and G. Riemann ed.), New Haven and London; Paul Mellon Center for Studies in Britis, 1993, p.4) 싱켈은 이 편지를 통하여 공장이 건축적 형태뿐만 아니라, 많은 기술적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싱켈은 쉐필드와 버밍험 의 영국 여행에서 타워처럼 높이 솟아 있는 굴뚝, 즉 산업 시대의 커다란 오벨리스크 숲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산업 건축의 지붕 볼트 구조, 철제 기둥, 증기(蒸氣)로 운전되는 기계류 등의 건설 등에 대한 디테일을 간결한 스케치로 기록해 나갔다. 또 고풍스러운 콘(cone) 모양의 도기 제 재소 가마 속에서 로마네스크 풍의 독특한 형태와, 리드(Leed)를 여행하면서 펜턴 머레이(Fenton Murray)의 원형 형태의 효율적인 기계적 작업, 그리고 이집트 사원 형식의 존 마샬(John Marshall) 섬유 공장에 대하여 감동을 느꼈다.(Gillian Darley, op. cit., p.29) 싱켈은 영국 여행에서 얻은 산업 건축의 형태와 재료, 크기에 대한 충격을 스케치로 정리하여 프러시아로 가지고 갔다. 산업 건축에 의해 그보다 더 깊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스스로는 공장을 설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 영국에서 본 산업 건축의 재료와 형태들은 그의 건축에 고스란히 스며들어갔다.(Gillian Darley, op. cit., pp.30-31)

근대 산업 시설의 변화 과정 동력의 주된 공급원이었던 물방아가 증기 기관으로 대체되면서 공장은 많은 수의 기계를 동시에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기계 자체가 용량이 커지고 대형화되어감에 따라 건물은 넓어지고 길어졌다. 한편 증기 기관을 위한 동력원으로 불을 사용함으로써 건물의 내화성에 대한 요구가 증 가되었다. 산업 건축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면서 이전의 건축과는 구조적으로 매우 큰 차이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까지 산업 건 축은 고딕, 비잔틴, 또는 존 마샬(John Marshall)과 같이 거대한 오벨리스크 형태(Hubert Pragnell, Industrial Britain-An Architectural Histoy, London; Ellipsis, 2000, p.9)의 이집트 장식 등 고전적 어휘로 장식되었다. 이러한 고전적 요소의 건물들은 새로운 산업가들의 힘을 반영했다. 굴 뚝은 단순히 연기를 지붕 위로 잘 배출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경제적 번영을 상징하는 탑이 되었다. 즉 산업 시대의 오 벨리스크가 되었다. 산업 건축물들은 잘 다듬어진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했고, 각각의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건물군이 될 수 있도록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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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공장의 가마 ←← 마샬 섬유 공장

들여 건설되었다. 사업가들은 공장에 대한 대중 인식의 확산을 위해 위험한 요소를 감추고 과거와의 연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전적 요소를 받아 들였다.(Gillian Darley, op. cit., p. 21. 당시 대중 인식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이러한 필요성은 ‘만국박람회(world fair)’라고 하는 교육 적 이벤트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Pieter van Wesemael, Architecture of Instruction and Delight, Rotterdam; The author and 101 Publisher, 2001) 그러나 19세기 중엽 이후 사업가들은 이전 세대의 공장에 사용했던 고전적 장식을 포기하고, 보다 기능적이고 강한 느낌을 주는 건물 형태 로 돌아갔다. 그러한 형태는 공장 건물이 그 안에 담고 있는 기계와 생산 과정을 반영하였고, 내화(耐火) 성능을 담보하였다. 이는 공장의 실질적 인 기능과 그것을 솔직히 표현하는 이미지가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초에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기계에 대한 동조 분위기가 일어났다. 추상적인 기계 이미지는 20세기 초 강력한 흐름이 되었다. 기계 시대 (Machine Age)에 대한 흥분은 때때로 정치적, 사회적 언설에 대한 은유로서 채택되었다. 폴 스트랜드(Paul Strand), 찰스 실러(Charles Sheeler),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를 포함한 사진작가, 필름 제작자, 예술가들은 제조 과정에 대한 모습과 기술에서 그들의 중심 주제를 뽑아 내어 새 롭고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부여하였다.(Gillian Darley, op. cit., p.34) 산업 건축의 형태적 변화 과정 고전적 장식 추구

기능^형태 통합 시도

유형적 형태 구축

19세기 중엽

19세기 중엽 이후

20세기 초

이에 따라 20세기 초 산업 건축은 신재료의 사용과 기계적,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새로운 건축에 대한 선도자가 되었다. 예를 들어 발터 그로피우 스가 설계한 파구스(Fagus) 신발 공장의 벽체에 채용된, 분할 없이 둥근 코너로 확장되어 이루어진 커튼 월 창문은 하나의 유형학적 형태로 발전하 여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새로운 산업을 생산하기 위한 건축물에 적용되었다. 산업 건축의 이러한 형태적 특성은 생산 과정과 생산품 그리고 생 산품의 판매에 가장 우선 순위를 두고 디자인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반복과 통일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다.(Louis Bergeron 외 1인, Indstry, architecture, and Engineering, New York; Harry N. Abrams, Inc., Publishers, 2000, p.185)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심하게 고려되어 정 착된 산업 건축의 스타일은 건축적 원형(prototype)으로 재생산되어 하나의 유형학(typology)적인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당인리 발전소에 대한 사견 지난 3월 20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930년대 지은 우리 나라 최초의 화력 발전소인 당인리 화력 발전소의 문화 창작 발전 소 조성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선 당인리 발전소를 지하에 짓고 지상에는 에너지 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 공하느냐, 혹은 발전소 자체를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드느냐가 주된 논쟁거리였다. 문화 창작 발전소에 대한 주장은 시민들의 생활 문화보다는 세계 최고의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서 국가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문 화적 역량이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안에 어떤 문화적 활동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하다. 이따금씩 세계 최고 의 예술가를 초청하여 연주나 전시를 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지방 자치 단체장이 선출직으로 되면서 각 지방 자치 단체에는 엄 청난 규모의 문화 공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막상 그 문화 공간을 운영할 만한 인적, 재정적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결국 정치적 집회 장소 나 의류 할인 판매장으로 활용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우리에게 세계 최고의 문화 공간이 더 필요한가? 한국중부발전(주)은 발전소 비용 5,000억 원이 외에 이전에 따른 추가 비용으로 8,000억 원이 더 소요되는 등, 총 1조 3,000억 원이 드는 데다 9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발전소를 지하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하화에도 3,000억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즉 이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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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지하화하든 3,000억~8,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추가 비용 3,000억 원을 이용, 한강변과 연계된 생활 문 화 공간을 겸한 최첨단 에너지 생산 시설과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에너지 연구 센터를 만들어 미래의 우리 삶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에너지 센터는 에너지 생산과 새로운 대체 에너지나 재생 에너지 연구 등을 총괄하는 곳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화력 발전소라는 당인리 발전소의 장소적 맥락을 잇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설계 과정을 통해 1,2,3호기의 흔적을 드러낼 수도 있고, 현재 사용하고 있 는 4호기, 5호기를 이용하거나, 데크를 끌어 올려 한강에 대한 조망을 확보하고 또 당인리 철도의 복원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오히려 마 포구에 있는 당인리의 장소적 역량을 높일 수 있고,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인리 발전소를 폐기하고 세계 최고의 거창한 문화 센터를 만들기보다는 이전 비용으로 추산하고 있는 8,000억 원 중 에너지 연구 센터 건립비 용 3,000억 원을 제외한 5,000억 원을 마포구의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적립 비용으로 사용했으면 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선배가 후배를 가 르치고, 또 학부모가 동네 아이들의 음악과 미술, 체육 활동을 도와 주며 가르치는 지역 커뮤니티의 문화 연계 프로그램을 구축하여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이 문화를 아끼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더 절실해 보인다.

공모전에 대한 기대 3월 29일, 옛 서울역사에서 약 800여 명 이상이 참여하여 공모전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구 서울역사의 대합실이 부족해서 많은 참여자들이 전실 에서 모니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워크숍을 지켜봐야 했다. 한편 8회의 현장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850여 명이 당인리 발전소를 다녀갔다. 4월 18일 참가 신청이 마감되었다. 총 1,008팀이 접수 신청을 했고, 그중 946팀이 참가비를 냈다. 일반인 44팀을 비롯하여 참여 대학도 전국 112개 대학으로 건축학과, 조경학과, 산업디자인학과, 실내건축학과 등 참 여자의 분포도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참여자의 분포, 수 그리고 그동안의 관심으로 보면 공모전 위원회의 기대를 넘어선 것이다. 이는 그동안 근대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의 성패는 결국 출품한 작품에 달려 있다. 특히 사회적 합일점과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대안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으면 좋겠다. 굴뚝을 활용한 랜드마크 디자인이 될 수도 있고 4호기, 5호기를 활용한 안이나 벙커씨유 저장소를 활용한 안이 될 수도 있다. 또 용도도 수영장이 될 수도 혹은 수상 스포츠 센터가 될 수도 있다. 에너지 연구 센터나 순수한 발전소가 될 수도 있고 순수 문 화 창작 공간이 될 수 있다. 어찌됐든 건축가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성공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인리 발전소는 당인리 발전소 가 지닌 독특한 지리적, 산업적,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주변에 한강을 끼고 밤섬, 선유도, 여의도, 그리고 강북의 홍익대와 절두산 성지, 양화 진 외국인 묘지 사이에서 당인리 발전소는 지금까지 이들 사이에 맥을 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이유로 오히려 당인리 발전 소가 있는 한강변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적 요구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한편 에너지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해결책이 산업에 대한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포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에 따라 이번 주제를 ‘산문불이(産文不二) : 근대 산업 시설과 문화 생활 공간의 공존은 가능한가?’로 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공장이나 발전소 등 산업 시설을 혐 오 시설이 아닌 그 자체를 생활 시설로 받아들이고, 산업 시설이 지닌 미학적 가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 사 아직까지 우리의 역량이 성숙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혐오 시설 혹은 기피 시설을 디자인을 통해 새롭게 각인시키고 그 지역의 자랑스 러운 생활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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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인리 발전소 1,2,3호기 ↓↓ 당인리 발전소 4,5호기

↓ 도코모모 코리아 워크숍 ↓↓

글쓴이 김종헌은 고려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 위원과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제1회 꾸밈건축평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한국 건축사로 양식사, 기술사, 생활사 등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전통과 근대, 현대를 연속성의 개념으로 풀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6 년까지는 미국 M.I.T 대학에서 동서양 건축을 비교 연구하였다. 현재 배재대학교 교수로 있으며, 최근 도코모모 코리아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저서로는『역사(驛 舍)의 역사(歷史)』 『대한민국 , 등대 100년사』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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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생산 공원, 근대의 산업 유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자 글 | 배정한(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서울의 근대사 못지않게 급변하는 운명을 겪어왔다. 서울의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듯, 한강 연안의 변화는 개 발 시대 서울의 산업화 과정과 긴밀한 함수 관계를 맺어 왔다. 양화나루와 잠두봉(현재의 절두산)을 잇는 한강의 서측, 이른바 서호(西湖)의 절경 속에 자리 잡은 당인리에 1930년, 한국 최초의 화력 발전소가 건설된다. 당인리 화력 발전소는 선유정수장과 함께 서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한 강의 아이콘으로 가동된다. 전력 공급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다하고 퇴물이 된 당인리 화력 발전소에 대한 공원화 논의가 한강 르네상스 플랜과 맞물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은 2012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4,5호기 주변의 땅을 파 지하 30m 아래로 옮기고 지상의 발전기와 시설을 모두 철거한 뒤 대형 강변 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발전소 지하화로 지상 부지 복합 문화 공간 조성’이라는 목표 하에 60m 높이의 대형 굴뚝을 예술 작품처럼 장식하고 분수와 숲, 공연장과 스포츠 시설 등을 배치한 공원 조감도도 마련했다. 마포구와 주민들은 발전소의 지하화 가 아닌 이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원화와 문화 발전소라는 개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공장과 발전소를 비롯한 창고, 도살장, 철도, 항만 등 근대 산업 시설의 이전 또는 폐쇄 부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동시대 문화와의 공존을 모색 하는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다. 당인리의 경우도 유사한 맥락 속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사례다. 그러나 현재의 공원화 논의 와 계획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낳는다. 우선, 당인리 공원화론이 공원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녹색 섬으로 비유되는 전형적인 공원은 근대 산업 시설과 공존하기 어렵다. 당인리에 요청되는 공원은 폐쇄적인 초록의 별천지가 아니다. 도시와 대화하지 않 는 공원을 공장 자리에 덧씌우는 것이라면, 그 공원은 장소의 정신과 기억을 소거하거나 희석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장소성과 무관하게 OB맥주공장 터에 들어선 영등포 공원의, 파일로트 공장을 지우고 조성된 천호동 공원의 악몽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원화 논란에서 걱정되는 또 다른 하나는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유행하고 있는 랜드마크화 또는 관광 명소화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발상은 지역 주민과 서울 시민의 경제적^문화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미명 하에 한강 르네상스 플랜의 전시주의적^성과주의적 수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 다. 발전소 시설의 일부를 특이한 볼거리 정도의 차원에서 단순한 오브제로 남기고 도리어 과도한 건축물과 시설물을 백지 위에 새로 그리는 식 의 설계안을 낳게 할 우려가 다분하다. 게다가 이러한 개념에는 시민의 일상적 삶으로부터 유리된 ‘최고의’ 문화 공간과 프로그램이라는 또 다른 강박증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할 때의 공원은 장소성이나 도시적 맥락과 무관하게 들어설 어설픈 랜드마크의 온순한 배경, 그 이상도 이하 도 아니게 된다. 포스트-인더스트리얼 파크(post-industrial park)의 효시격인 <가스 워크 파크(Gas Works Park)>(1975)를 다시 기억해 보자. 이 공원은 1906년부 터 50년 동안 미국 시애틀의 해변에서 가동되던 가스 공장의 건물과 기계들을 철거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공원은 폐허 가 된 공장의 자취를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이라는 자연 조건과 결합시켰다. 또한 부지의 역사를 가감 없이 노출시킴으로써 순결한 녹색 자연에 대 한 환상과 잘 길들여진 전형적 공원에 대한 신화 모두를 극복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도시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뒤스부르크-노드 파크(DuisburgNord Landscape Park)>는 쇠락한 독일 루르 강변의 중공업 지대를 활성화하고자 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이바 엠셔 파크(IBA Emscher Park)> 의 일환으로 조성된 실험작이다. 생산의 활력을 잃고 지난 세기의 상처난 상징처럼 늘어선 거대한 굴뚝, 공장 건물, 구조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생 명력 있는 공원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도시 재생과 활성화의 기반을 쌓았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강 공장의 녹슨 철 구조물과 콘크리트 더미가 야생화의 생명력과 서로 대화하며 행복하게 동거한다. 혐오의 땅으로 방치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공간에 자연의 역동과 사회적 생 명이 부여되어 재활용과 순환의 미학을 갖춘 장소가 생성된 것이다. 그러나 시애틀이나 뒤스부르크의 교훈은 단지 과거의 공장에 공원의 옷을 입혔다는 점이 아니다. 산업 시대의 상처를 녹색의 자연으로 치유했다 는 점도 아니다.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장이나 발전소와 같은 근대 산업 시설을 왜 공원화해야 하는지, 즉 공원화 전략의 강점이 무엇 인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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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두산과 당인리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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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공원은 임시적인 유연한 토지 이용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는 점이다. 폐산업 부지는 장기간의 토양 오염과 각종 위험 물질에 노출되어 있기 마련이다. 단계적인 공원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오염된 땅(brown field)을 교정하고 교화할 수 있다. 또 공원은 다른 토지 이용에 비해 유연하다. 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의 이용을 위해 현재는 공원의 형식을 잠시 빌려 지혜롭게 쓰는 디자인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 산업 시설을 고쳐야 할 상처나 지워야 할 흉물로 보지 않고 근대화^산업화^도시화의 유산(heritage)로 보는 전환적 시대 정신을 담기에 공 원은 매우 적절하고 넉넉한 그릇이라는 점이다. 왕후장상의 화려한 궁전이나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마천루만 문화적 유산이 아니다. 산업 시설 역시 20세기의 발전과 문화적 만개를 견인한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산업 시설의 외피인 철과 콘크리트는 근대의 강력한 상징이다. 공원은 이러한 상징과 동거하며 그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미래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스트럭처라는 점에서 의미를 보장받는다. 셋째, 폐산업 시설과 부지 주변의 쇠락한 환경 및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는 매개체로 공원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몰락의 길로 접 어든 지역의 환경적 재생과 경제적 활성화에 있어서 공원은 전략적인 중개자가 될 수 있다. 옛 도살장 부지를 공원화한 <라빌레뜨 공원>, 자동차 공장에서 공원으로 탈바꿈한 <시트로엥 공원> 등 미테랑 정부 때 펼쳐진 파리의 그랜드 프로젝트들은 단지 공장에 공원을 대입한 것이 아니라 공 원을 통해 도시 조직을 재생시키고 활성화시킨 선례들이다. 앞서 살펴본 뒤스부르크-노드 파크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공원은 포스트-인더스트리얼 사이트의 기억과 유산을 담으면서 동시에 지속가능한 미래의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 투입하기에 유용한 장치다. 포스트-인더스트리얼 파크는 공장의 흔적을 오브제처럼 살린 특이하고 신기한 공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과 역사를 존중하고 그 장소의 기억을 보듬으며 더 나아가 미래의 유연한 발전을 고려하는 지혜로운 공원이다. 당인리 화력 발전소, 이 땅에 들어설 공원을 진정한 문화 발전소로 성장시키고자 한다면, 테이트모던 미술관 같은 명소를 어설프게 모방하거나 녹 색 섬으로서의 공원에 대한 환상을 꿈꾸는 일의 맹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이 공원이 어떠한 문화를 생산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생산을 위해서 공원은 도시의 어떠한 인프라스트럭처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전소의 시설과 건축물을 최대한 남겨 이 땅에서 진행된 근대의 기억과 장소성을 보존해야 한다. 1,2,3호기의 흔적을 드러내는 방법, 현재의 4,5호기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 당인리 철도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원은 이러한 재 발견의 기반으로 작동할 때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곳은 도시로부터 고립된 피난처 같은 공원이 아니라 도 시와 대화하고 접속하는 공원이 되어야 한다. 지난 80년 간 당인리는 눈에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다. 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당인리 가 또 다시 섬과 같은 미지의 땅으로 남는 일을 피해야 한다. 한강과 다시 연결되는 매개체로, 홍대권역이라는 강력한 문화적 도시 조직과 접속되 는 매개체로 진화할 수 있는 공원을 단계적으로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당인리는 근대 산업시설의 유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생산 공원(productive park)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 배정한은 서울대 조경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펜실바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를 했다. 단국대 환경조경학과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서울대 조 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조경 이론과 설계, 조경 미학과 비평 사이의 다각적 함수를 구축해 왔으며, 통합적 환경 설계의 이론적^실천적 전략으 로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현대 조경 설계의 이론과 쟁점』 (2004),『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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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를 통해 본 산업 시설의 성공적인 부활 글 | 김은주(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 박사 과정)

역사적 건축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시간성이 오래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근대 건축물이지만 건축적 의미나 시대의 성격을 가장 잘 보존하 고 있으면 그 또한 건축 문화재가 될 수 있다. 불과 50~60년이 되지 않은 르 코르뷔지에나 미스 반 데 로에의 작품들이 엄연히 건축 유산으로 보호 되고 있으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건축과 거리가 먼 공장 건축이나 탄광 지대도 유네스코의 건축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보호를 받고 있 다. 유럽의 경우 아주 오래된 건축물들이 여러 기능으로 전용되는 예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성이나 궁전, 저택이 뮤지엄이나 박물관의 기능으로 바 뀌는 것은 매우 흔한 경우이다. 옛 수도원이나 거대한 급수탑이 호텔로 이용되고 교회나 성당이 도서관, 체육관의 역할을 하거나 주택이 소방서로 이용되는 등의 다양함은 우리의 고정 관념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모양만 흉내내지 않기 위하여 당인리처럼 과거에 화력 발전소였다가 지금은 박물관이나 뮤지엄으로 이용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유명한 영국의 테이트모던이나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과 엘베강 프로젝트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장소성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의 여건과 처해 있는 상황들이 각각 다르다는 것 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대로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며, 그것은 역사적 건축물의 복원이나 재생의 기본적 가치 이 론과 완전히 다른, 모양만 흉내내는 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서는 외적인 기능의 유사함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수행 하기 위한 준비 시간, 철저한 분석과 연구 자세, 그리고 이를 인내하고 지켜보는 대중과 관련 단체들의 성숙한 안목이다. 특히 역사적 건축물이거나 건축 문화재인 경우 그 건축이 가진 특수성이 여느 건축과 다름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유럽의 사례 가운데 건축 문화 재로서 과거에는 산업 시설이었다가 현재는 그 기능이 전용된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연장(Theaterhaus Stuttgart), 에스링엔의 다스 딕(Das Dick) 그리고 스위스 취리히의 실 시티(Sihl City)를 살펴보자. 콘서트 홀로 사용되거나 쇼핑과 문화의 복합 시설로 계획된 이 프로젝트들은 많은 시민의 요구와 필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각기 다른 프로그램들을 적용한 성공한 사례들이다.

슈투트가르트 공연장(Theaterhaus Stuttgart) 독일 남부 지역 슈투트가르트 근교인 포이어바흐에 위치한 슈투트가르트 공연장(Theaterhaus Stuttgart)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라인 철강 공장을 2003년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개조한 것이다. 각종 연극이나 전통적인 음악회는 물론 재즈와 젊은이들의 힙합 문화가 어우러지는 문화 공 간이자 스포츠 공간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산업체 공장 건물을 문화 공간으로 재생 활용한 성공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공장 홀과 사무실, 주거동 으로 구성된 옛 라인 철강 공장은 산업시설물 설계로 유명한 뒤셀도르프의 에밀 파렌캄프스(Emil Fahrenkamps) 교수가 1923년 완성한 것이다. 1986년에는 건축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슈투트가르트 건축 문화재로 선정되었으며, 오늘날까지 훌륭한 근대식 공장의 생생한 기록물로 남 아 있다. 이 건물의 새로운 대안은 슈투트가르트 대학 교수였던 페터 휘브너(Peter Hübner, 건축 사무실 플러스 운영)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예술가들을 위한 최적의 창작 공간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에너지 절감 문제와 함께 고려하였으며, 적은 예산과 문화재라는 특수성, 그리고 기존 공장 건물이 가진 열악한 환경을 전제 조건으로 출발하였다. 북쪽과 동쪽의 경질 벽돌로 된 공장 입면—심하게 손상된—은 광범위한 복원과 손질 작업을 하였 고, 80% 이상 파괴된 유리창 부분 또한 복원되었다. 또 단열을 위하여 내부에는 단열 유리가 보강되었다. 건축물 내부의 거대한 철제 기둥과 구조 물은 건축 문화 유산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요구를 따랐고, 그 과정에서 구조적 보존과 보강을 위해 많은 예산이 소모되었다. 또 공 연장의 지속적 유지 관리에 드는 에너지 사용 절감과 공연장의 기계 소음 해결을 위해 ‘자연 환기 시스템 공연장’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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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유입된 신선한 공기가 건물 아래의 관을 통해 각각의 개별 공간으로 공급되는데, 약한 속도로 개별 공간에 유출된 공기는 다시 바닥에서 모여 곧바로 상부로 올라가 천천히 데워지고 기존 굴뚝을 통해 외부로 배기되는 시스템이다. 이로써 여름에는 시원한 공기를, 겨울에는 따뜻한 공 기를 공급받고 있다. 자연 환기 시스템에서는 외부의 기상 변화에 간섭받지 않도록 일정한 공기량 조절을 위한 자연 추진 모터가 필요한데, 이 모 터에 사용되는 작은 에너지만이 소모된다고 한다. 이 자연 환기 시스템은 기존의 기계적 냉각 장치와 비교해 볼 때, 환기를 위한 에너지 수요에 대 해 90%, 난방을 위한 에너지 수요에 대해 20%, 냉방을 위한 에너지 수요에 대해 100%의 절약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스 딕(Das Dick) 독일 남부의 네카강 하류에 위치한 에스링엔(Esslingen)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역사적 건축물 보존을 위한 도시 정비 계획으로 도시 재생에 상 당한 성과를 이룬 곳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공장 건물을 전용 활용한 다스 딕(Das Dick)이다. 1889년 요리 기구와 특수 공구 생산 공장이었던 딕 (Dick) 공장이 1997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자 건축 공간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후 현상 공모를 통해 낡은 생산 공장에 서 시민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다스 딕은 에스링엔의 중심 공간이 되었고, 다스 딕의 상징물인 높은 굴뚝은 과거 에스링엔의 도시 경제 발전 에 도움을 준 공장 건축물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시민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의 상징으로 서 있다. 마치 지금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듯한 인상 을 주는 과거 그대로의 건축물 외관과 내부 곳곳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들은 에스링엔의 도시 역사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낡고 오래된 조적조의 공장을 허물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건축하는 것은 소요 비용 면에서나 일 진행의 난이도 면에서나 훨씬 쉬운 일이다. 그 러나 이들은 기존 건축물을 중심에 두고 답안을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기능의 요구에 따라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공간에 적합한 기 능을 찾아가는 형식이다. 22,000평방미터의 공장 건물은 스킨 스쿠버, 암벽 타기, 피트니스 센터와 같은 스포츠 시설과 여러 가지 쇼핑몰, 강의나 교육 공간, 영화관, 레스토랑 같은 다양한 기능의 공간들을 담고 있다. 각 부속동들의 중심 마당은 유리로 덮였고, 지하의 공용 홀에도 자연 채광 을 유입하여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정을 현대에 이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유 리 천장으로 마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정은 하나의 열린 공간이자 이동, 모임의 장소가 되며, 일사량의 차가 어느 정도 있어도 사용에 무리가 없는 중간 영역이 된다.지하 공용 홀에 마련된 3층 높이의 유리 수조 공간은 스킨 스쿠버들의 움직임을 외부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며, 주물 공장은 맥주홀로, 지하의 보일러실은 디스코텍으로 계획하였다. 낡은 외관과는 달리 내부 공간의 현대식 기능들이 주는 반전의 충격은 가히 새롭고 흥미롭다. 다스 딕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공장 상징인 굴뚝을 그대로 남김으로써 옛 공장이었던 건축물에 대한 기억과 다스 딕이라는 복합 문화 시설의 인지를 함께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 시티(Sihl City)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실 시티(Sihl City)는 종이 생산 공장이었던 실 공장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취리히 출신의 건축가 테오 호츠(Theo Hotz) 의 설계로 2007년 완공된 실 시티는 100,000평방미터에 이르는 공간에 하루 2만여 명의 이용자가 드나든다. 실 종이 공장의 재생 활용 계획은 ‘쇼 핑과 엔터테인먼트’, ‘도시 속의 도시(city in city)’ 라는 컨셉트로 이루어졌으며, 스위스에서 유례가 드물게 성공한 사례이다. 60m에 이르는 공장 굴뚝은 실 시티에서 간과 할 수 없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공장 굴뚝 주위로 쇼핑몰과 스포츠 센터, 호텔과 같은 공간들이 배열되어 있는데 대형 슈퍼마켓, 레스토랑과 바, 호텔, 피트니스와 건강 센터, 9개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 영화관, 디스코텍, 거주 공간, 그리고 작은 교회와 도 서관 등이 방문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일본 동경의 롯본기 힐 역시 거대한 쇼핑 상가와 문화 시설, 호텔을 담아 도시 속의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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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투트가르트 공연장 Theaterhaus Stuttgart ←←

→ 다스 딕 Das Dick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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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 곳에는 도시가 지니는 시간의 레이어 즉, 역사의 층을 느낄 수 없다. 반면, 실 시티의 경우는 시간의 켜를 그대로 남 겨 둠으로써 도시의 역사를 읽을 수 있으며 차별화된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개발과 복원(재생)의 크나큰 차이이다.

기록과 자료를 남겨 놓자 건축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전용할 때는 건축물마다 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건축 복원의 측면에서 과거 그대로 복원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허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다른 뭔가를 추가해야 할 때도 있다. 또 기능도 기존의 기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거나, 전혀 다른 기능으로 바뀌거나, 또 다른 기능들이 덧붙여지거나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시간이 바뀌면서 장소성도 달라지고 그에 따른 건축이 가진 문맥이 달라져서 그런 것이다. 그 달라진 문맥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적 건축물의 복원과 전용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역사적 건축물이나 건축 문 화재 기능의 전용은 역사적 건축물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지만 그만큼 건축물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다. 최첨단의 건축 지식 과 하이테크한 기술, 넓고 깊은 인문지식, 지속적 생태 환경에 대한 생각, 그리고 철저한 기존 건축 문화재에 대한 기록과 분석 등이 바탕이 되어 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으로 또 한 가지 꼭 이행해야 할 의무를 언급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금 우리의 필요에 의해 건축 문화재를 변경하거나 개조할 시에는 반드 시 기존의 건축 모습을 기록하고 실측 자료로 남겨 놓아야 한다. 일반 건축에서의 실측 자료가 아니라, 부서진 벽돌 하나의 형태, 크기, 재료와 생 산지를 기록하고 창호의 틀과 손잡이 모양까지 꼼꼼히 실측하여 남겨 놓아야 한다. 건축 문화재의 보호와 보존은 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 실 시티 Sihl City ↑ ↗↗ ↗

글쓴이 김은주(Kim Unjoo)는 실내 건축을 공부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에서 건축 문화재 복원에 관한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으며, 현재 박사 과정에서 그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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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이슈 2

교수가 된 건축가

2008 5-6 no.3 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5년제 건축 교육이 실시되고 설계 수업이 강화되면서 실무 건축가들의 교육 참여 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제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들의 명함에서 교수 혹은 강사 타이틀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고, 학교가 주최하는 각종 심포지엄, 세미나, 공개 크리틱 등의 포스터에서 그들의 이름 석 자를 마주치는 것 또한 심심 찮다. 그들은 왜 학교에 나가는 것일까? 창작과 교육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 는 격일 텐데, 위험성은 없을까? 교육공무원법의 겸직 금지가 주는 불합리함은 무 얼까? 그들은 교수 건축가일까, 건축가 교수일까? 다소 우문일지도 모를 몇 가지 궁금증으로 이 란은 시작되었다. 아마 대학의 설계 스튜디오에서 강의를 하고 있 는 건축가들을 포함한다면 매우 많은 양의 기록이 수집되었겠지만, 우선 대상자 를 ‘전임’으로 제한했다. 수업 이외에 학교 행정과 겸직 금지가 주는 장애의 강도 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편집진의 촉수가 미치는 범위에서 총 21명의 교수 건축가에게 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그 중 9명으로부터 답을 받 았다. 회신 메일의 수가 기대에 못 미친 것은 매우 바쁜 일정 때문인 탓도 있고, 개 별적으로 연락이 안 닿은 탓도 있다. 또 서면 인터뷰와는 별도로 성균건축도시설 계원(SKAi, 이하 성균건축원)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건축가 조성룡(64) 교수를 만 나 성균건축원의 교수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건축 교육의 방향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 실린 기록은 순전히 개인적 경험의 소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 들은 또한 오늘의 건축 교육을 묻고, 교수 건축가들에게 건축가로서, 선생으로서 새로운 전략을 요청하고 있다는 데 적지 않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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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서 1. 이름 2. 소속 3. 학력 4. 취득 자격증 5. 사무소명 및 운영 기간 6. 대학에서 수행한 주요 저작물 및 프로젝트

1>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사무실을 운영하며 창작 활동을 하다가 왜 학교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학생들을 가르 칠 때 수입이 더 좋고 안정적일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들었습니다. 2> 건축가가 대학의 교수로 갈 때, 교수 능력에 대한 평가나 자질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타 예술분야처럼 그 세계에서의 지위에 따 른 것인지요? 이를테면 실제 프로젝트를 얼마나 수행했는지, 혹은 출판의 경험이 있는지, 동료들의 인정은 어떠한지, 수상 경력이 있는지 등등. 선 택된 당사자 입장에서 특별히 관리된 경력이 있는지요. 3> 건축가로서 작업하는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실제 작업의 경험을 전달해 줌으로써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즉 지식과 지 혜의 전달자로서 교육과 현실의 괴리를 메워 줄 수 있을 거라 보는데요, 이러한 관점 하에 대학 교수 건축가로서 학생들에게 전수하고자 하는 것 은 무엇입니까? 4> 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사회에 정착시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작 현장을 떠나서 대학 사회로 편입된 부분이 학생들을 설계 현장으로 내보내는 것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나요? 5> 거꾸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르치는 일은 예술가가 되는 과정의 일부분이라고도 이야기합니 다.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어 가는지 말씀해 주세요. 6> 그러나, 아무래도 교육에 치중하다 보면 시간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실제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싶습니다. 잃는 것 중의 하나 가 될 수도 있겠지요. 좀 혹독한 표현이지만, 한때 현장에서 건축가로 활동한 경험을 추억하는 선생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욱이 현재 우 리 나라는 전임 교수의 설계 겸직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건 하에 간혹 접하는 설계 수행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요. 또 이밖에도 한 국의 현실 혹은 한국 교수 사회의 구조 속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부당한 대우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역할과 건축가로서의 활동 모두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8> 건축가가 대학의 교수로 가는 것에 대해 건축 사회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고, 반대로 후학들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향후 대학에 진출하고자 하는 현역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언질을 주신다면? 9> 끝으로, 현재 대학 건축과의 실무형 교수 건축가의 유인을 위해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서면 인터뷰 요청 교수 건축가 | 김개천(국민대 테크노 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김동진(홍익대 교수), 김병윤(대전대 교수), 김승회(서울대 교수), 김영섭(성균관 대 교수), 김우일(국민대 교수), 김인철(중앙대 교수), 민선주(연세대 교수), 서현(한양대 교수), 성우철(단국대 교수), 유석연(서울시립대 교수), 이종호(한국예술종 합학교 교수), 이충기(서울시립대 교수), 이해욱(우송대 교수), 이호정(공주대 교수), 임지택(한양대 교수), 장윤규(국민대 교수), 정연근(경성대 교수), 최두남(서울 대 교수), 최문규(연세대 교수), 최재희(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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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김개천 1. 김개천 2. 국민대학교 테크노 디자인 전문대학원 스페이스 건축 디자인학과 3.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5. (주)이도건축, 10년 6. 명묵의 건축, 동부건설 주택문화관, 동화홀딩스 해피라운지

1> 왜 이 질문이 궁금한지 궁금하다. 창작과 교육의

이해와 함께 경험을 통한 깨달음도 중요하다고 생

없는 사회라는 것이 가능할까. 어느 곳에 있든 스스

겸비는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공통된 영역을

각한다. 난 오히려 설계와 학문을 겸비한 디자이너

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가져왔고, 양쪽을 겸비하여 사회적인 역할과 개인

가 되기를 제자들에게 권하는 편이며 철학적이지

7>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내게는 교육자,

적인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는 건축가도 필요하다고

않으면서 철학적인 것을 요구하는 21세기에는 그것

건축가, 디자이너를 겸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생각한다.

이 훌륭한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8> 학교로 가면 작가로서의 활동에 부정적이지 않

2> 평가와 판단은 학교마다 다른 기준과 요구를 갖

라고 생각한다.

을까 염려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개

고 있다. 국민대의 경우는 논문이나 작품, 저술 등의

5> 오랜 역사의 이해와 젊고 역동적인 힘의 결합은

인의 역량과 기호, 그리고 여건에 따라 다른 것으로

모든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창조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3> 실무 작업 경험의 전달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대학의 세계에 있음으로 해서 사(史)를 진작시키고

9> 학문과 실무를 함께 겸비한 건축가는 앞으로 더

고 생각한다. 오히려 학문과 실무의 총체적 경험과

야(野)를 북돋는 또 다른 계기가 된다.

욱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학문적인 업적만을 중시

자질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하며 그 기반으로 학생

6> 사무실을 경영할 때보다 오히려 자유로운 이득

하는 학교도 필요하겠지만, 실무의 업적만도 높이

들에게 알고 있는 것을 전수하기보다 바르게 판단

도 있다. 설계는 개인이 아닌 학교의 산학협력단을

평가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 아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통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교수 사회에서

래서 향후 대학에 진출코자 한다면 학문과 실무 모

4> 설계를 가르치는 교수는 디자인에 대한 학문적

얻는 어려움이나 부당한 대우를 물었는데, 그것이

두에서 업적을 쌓기를 권한다.

↑ 우드 페이퍼 ↖ 동부건설 주택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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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1. 김동진 2. 홍익대학교 건축공학부 건축학 전공 3. 파리 벨빌 국립건축학교 4. 프랑스 건축사 5. (주)로디자인 도시환경건축연구소, 9년 6. Scarlet Terre, Renault-Samsung Design Center, Silhouette package 등

1> 현실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많은 설계

오에서의 교수 방식은 일방적인 지식의 단순한 전

육의 장으로 바꾸고자 한다. 미국 건축학 인증원에

사무소들이 창작성보다 사업적 안정성을 우선 시

달로는 원하는 교육 목표에 도달하기 어려운 걸 느

서 요구하는 5년제의 건축학 전공자들이 예비 건축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결국 건축가라면 누

낀다. 그래서 내 경우엔 학부의 설계 스튜디오에서

가로서의 실무자 양성 과정을 밟는다는 취지는 중

구나 고민하는 창작성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는 학생들 각자가 스스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찾도

요할 수 있지만, 학교는 단순히 사회에 나가서 바로

선 별도의 에너지와 더불어 시간적 투자를 할 수 있

록 유도하고,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실제 프로젝트

일할 수 있는 ‘실무자 양성 전문 학원’이 되어서는

는 장치가 필요하다. 내겐 외래 강사로서의 대학 강

여건상 할 수 없는 리서치와 실험을 경험하도록 한

안 된다. 또한 5년제로 학부의 건축 교육 프로그램

의가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강사 시절엔 대학이란,

다. 또한 논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관심 연구 영역을

을 보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부와 실무에서 접

교육을 통해 한국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장소라

심화하도록 하고 있다.

할 수 없는 한국 실정에 맞는 교수 연구 중심의 대학

고만 생각했다. 사실 학교에 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4> 진로 상담을 하면서 주로 자기 자신의 적성과 성

원 연구실의 활성화를 통해 건축계를 이끌 리더 양

그 의미 이상의 연구 활동 무대로서 대학을 보았기

취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 설정에 무게를 둔다.

성과 더불어 대학이 연구 개발과 실험의 장이 되도

때문이다. 실무에서 여간해선 접근할 수 없는, 창작

무엇이 되겠다보다는 어떤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지

록 노력하고 있다.

활동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는 지속적인 학문적 자

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이 정리된다면 사회

8> 대학은 가능성 있는 젊은 건축가들이 한국 건축

기 개발이 스튜디오와 대학 연구실을 바탕으로 이

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하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그

계에서 실무와 더불어 계속적인 창작을 위한 연구

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고, 직업으로서의

들의 몫이다.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장소가 될 수

교수보다도 연구원으로서 계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5> 실제로 너무나 많은 부분을 학생들과의 크리틱

있다. 현재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외국 건축가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및 토론에서 배운다. 우선 실무와 이론에서 엉켜진

의 대다수가 학교를 기반으로 교육과 실무를 병행

2> 많은 학교들이 박사 학위 대신 건축사 자격증과

실타래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논리로 정리되는 걸

하는 것으로 볼 때 우리 나라도 세계적인 추세에 발

석사 이상의 학력, 그리고 정해진 실무 경력 기간을

느낀다. 학생 프로젝트에 대한 크리틱은 때론 건축

맞출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이제는 이십 년 전의

기본 요건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즉 실무에서의 경

과 사회를 향한 다짐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각성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라 불리는, 꿈

력 즉, 작품성을 잣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일 수 있다.

과 현실이 다른 교수 건축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

의 질적 평가보다는 참여한 건축물의 규모나 수량

6> 교수 건축가는 두 마리의 토끼가 아니고 튼실

는 시대가 되었다.

또는 설계 경기의 당선 유무와 같은 양적 측면에서

한 한 마리 산토끼이다. 내용적으로 무게 있는 건축

9> 건축 설계라는 전공 분야가 가지는 특수성을 인

의 점수로 계산되는 경우가 있어 진정한 작품성과

적 작품성을 발휘하는 것이 학교와 현장에서 원하

정해야 한다. 먼저 실무형 교수의 연구 업적에 대한

자질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는 공통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 설계를 전

기준을 설계 실무 업적을 중심으로 인정하여야 한

3> 우선 설계 교육 과정에서 필드와 책상의 거리를

담하는 교수들의 실무적 참여가 중요함에도 불구하

다. 또한 교수의 상근 일수를 줄여 교수 건축가가

좁혀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디자인 프로세스가

고, 건축학 인증 등 학교 내의 행정적 업무들이 너무

실무 현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졸업 후의 실무에서도 유효함을 학생들에게 전달하

나 많다. 게다가 전공 사무실의 행정을 전담하는 요

대학은 교수가 교육과 연구 등의 주 업무에 전념할

기 위해, 실무형 교수가 학교에서의 아카데믹한 실

원 없이 한두 해마다 바뀌는 사무 조교 시스템은 교

수 있도록 행정적 부담을 덜어 주는 대신 전공 분야

험을 프로젝트에서 몸소 실천한다면 그 과정을 지

수들이 조직하는 교육 목표와 커리큘럼을 지원하지

의 실무 업적을 중심으로 계속적인 연구를 하도록

켜보는 자체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한 타

못하는 실정이다.

독려해야 한다.

전공 분야의 이론 강의와 다르게 건축 설계 스튜디

7> 대학 연구실을 실험 현장으로, 설계 사무소는 교

↑ Scarlet Terre House ↖ FISS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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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김병윤 1. 김병윤 2. 대전대학교 건축학과 3. 박사 수료 5. 스튜디오 메타, 약 10년 6.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출판단지 호텔 지지향, 몽죽헌, 의연 재, 그림 있는 정원, 노원문화의 거리, 평택 P주택

1> 몇 가지의 물리적인 조건으로 기준을 갖는 것은

고 본다. 설계 교수가 실무 건축가라야 하는 경로를

만큼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직 많은 대학의 기본 구

개별적인 성향이니 이 답변은 가능한 피하고 있으

표방하기에, 많은 학교들이 이것을 수용해서 이동

조는 현실적으로 바꾸어 가는 현상에 상대적이거나

나 꼭 해야 한다면 관습적인 태도에서 기인하고 있

이 잦은 것도 문제이다. 기존 교육의 탈신을 전제

일부 편승해 있는 절충형이기 때문에 설계 교육을

지 않나 본다.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극히 개인적인

해서라면 누구라도 현 교육에 대해서는 제시가 가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 입장에선 불리한 여건 속에

일상의 벽을 단 두 가지의 조건으로 묶어 놓고 보는

능할 것이기에 각별함은 개인적인 면에 존재한다고

서 질문과 같은 양상을 접속하거나 편리하게 이용

한계 같은 것이리라 본다. 일과 학교의 강의, 이 두

보며, 실무 건축가로의 치환이 이를 다 감당한다고

하고 있기도 하다. 설계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가지의 틀을 놓고 보면 일과 학교 일이 가능해지는

는 보지 않는다.

모임이 있어 이러한 과정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내

좀더 안정적인 변화를 찾아 가는 거라고 본다.

4> 갈등이 많아진다. 얼마 전에 근무하고 있던 학교

용과 실제를 살핀다면 구태여 이념을 같이하는 집

2> 너무나 자명한 일이지만 설계 교수를 채용하는

의 홈페이지 경력란에 내가 오래전 수학했던 학교

단과 같은 모드가 아닌 점에서 설계 교수라는 한 축

학교의 입장은 보다 현실적으로 어떤 작품들이 발

이름을 보고 지금 그 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이 정리될 수 있을는지….

표가 되었고, 또한 발표 이후 어느 정도의 좋은 평

내 모습을 닮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교수이면서 건

7> 시간의 길이와 건축 설계 면적의 크기에 구애받

가와 반응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검증하려는 일반성

축가로 활동하고 싶은데,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고

지 않고 건축가라 불리는 자유 지대에서 활동하는

과, 관련된 상황에서의 친분이 주로 작용한다고 봐

문의를 한 거였다. 석사는 필수적이고 외국 건축사

작은 소신을 키우고 있다.

야 할 것이다. 대체로 많은 경우들이 후자의 경우

도 필수적이니 박사보다는 그 두 가지를 하고 오라

8> 건축을 생산해 내는 구조적 차이를 인식하고 어

에 속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진정한 평가를 거친다

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지나온 시간

디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정한다면 종래의 사

면 안도 타다오의 경우처럼 학력조차도 문제가 되

속에서 작은 아틀리에(지금은 이런 용어도 어색하

회적 관념에 의해 지배되는 사고에서 다소 자유로

지 않는 상황이 바람직하겠다. 현실은 그렇지 못 한

지만)의 건축가는 건축을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에

울 수도 있을 법하다. 대학이 사람을 그렇게 가두

것 같다. 이 점에서 자유로운 대학은 거의 없다고 보

게 작은 희망이자 대상이기도 하였을 텐데, 이제는

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 실적과 임용 심

며, 건축 실무 경력을 지닌 작가의 등용은 보다 다양

졸업하는 학생들 모두 대형 설계 사무소—건축가의

사 등의 짐은 어쩌지 못하겠지만, 보다 자유로운 영

한 경력, 즉 수상 경력이나 작품 발표 능력 등에 집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에 모두 자원하는 상황

역의 개발을 스스로 요구하며 지낼 수 있기에 권유

중된다고 생각한다.

이고, 오히려 좀 이름이 있는 건축가의 작은 사무소

도 할 것이다.

3> 이 질문의 형식과 틀은 매우 분명한 상황을 인지

를 애써 외면하려 하니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연이

9> 당연히 인재를 구축하는 학교마다의 툴이 있겠

하게 한다. 분명 ‘실무에서 터득한 지식들’이라고 전

어 이런 실패를 거듭하다보니 이제는 그 주역들이

지만 우수한 교육 과정과 훈련 과정을 겪은 과정적

제했을 때, 아주 유용한 가치를 지닌 부분으로 인

다시 학교로, 설계 교수로 귀환하고 있어 설계 교육

측면을 뛰어넘는 건축가를 찾는 일이 중요할 것이

정하게 되지만, 현실의 실무 과정이 교육의 과정과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라 여기며, 대학은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인재

반드시 동의어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5> 루이스 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언제

를 등용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건축교육인증시스템

생각한다. 실무가 없는 건축가가 어떻게 설계를 지

든 사고의 탈진이 오면 학교로 간다. 그들과의 대화

은 좀더 유연하게 대학 나름의 자율적인 태도를 지

도하느냐란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이 두 형

는 사실 자신의 여러 면을 다시 관찰하고 재조정하

원하는 변화의 틀을 키워 나갔으면 한다. 지금은 마

식의 틀로만 설계 교육을 바라보는 것은 많은 오류

는 시간이 되고 있다. 실험적인 비정형의 교육 방식

치 또 다른 종류의 건축사 제도를 키워 나가는 정량

를 낳을 수도 있다. 최근 학교들이 설계 교수 채용

까지도 동시에 실현 가능한 일이 되는 현장이니 관

적 구조를 배양하는 듯해서 다소 염려가 된다. 인증

요건으로 기본적인 학력 외에도 검증을 위한 부분

찰자로서는 좋은 위치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을 배양하는 학교는 다시 디자인의 자유 지대를 서

에만 적용하는 자격증을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요구

자신의 사고 영역을 제삼자의 개입을 통해서 이루

서히 소멸해 가며 인증을 증거로 자족해 하고 있어

하고 있음을 보면서 진정으로 검증할 방법을 찾지

어 보는 대리 충족의 과정과 실현의 성취 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해서 지금 대학도 대학이지만 인

못하고 있다는 점과 교육면에서도 자격으로만 교

얻음이 있다고 본다.

증이 좀 걱정이다.

육을 감당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6> 소수의 일부 대학에서는 겸직과 현업을 설계 교

교육 인증 문제도 이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육의 기본틀로 정착해 가고 있는 곳도 있지만, 기대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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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1. 김인철 2.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3. 국민대 석사 4. 한국 건축사 5. (주)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22년 6. 마당 안 숲, 웅진 씽크빅

1>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지 모

축가의 역할은 그들에게 자신의 미래상을 보여 주

것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실제의 설계 경기를

르나 그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기업체를 두드렸을

는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진행시키고 있다. 당선이 된다면 아

거다. 나의 경우는 아르키움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

4> 질문의 의도가 잡히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르키움에서 실무적인 수행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스

므로 교수로서의 보수는 겸임 교수일 때의 경우와

5> 일단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실

튜디오에 참여했던 학생 중에서 아르키움의 직원이

다르지 않다. 창작 활동을 접은 것이 아니므로 질

무를 직원들에게 맡겼으므로 그동안 작업 중에 미

되는 경우도 있게 될 것이다.

문의 각도가 잘못되었다. 개인의 프로젝트를 다루

루어 놓았던 개념적인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기회가

8> ‘교수’를 직업 또는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는 아틀리에의 경우 클라이언트의 연령이 건축가보

되었다. 강의록을 정리하면 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건축가로서 교수의 역할을 한다는 관점이 옳을 것

다 낮아지면 묘하게 거북한 관계가 되는 것을 경험

6> 실무를 해결할 조직을 갖추고 있다면 큰 어려

이다. 정년을 보장받는 것보다 건축가의 명분을 유

하게 된다. 건축가에게는 정년이 없다고 하지만 실

움은 없을 것이다. 겸직 금지의 조항으로 인해 설

지하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현실의 여건을 고려하

무에서 한발 물러서야 하는 때가 있는 셈이다. 오랜

계의 공식적인 저작자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문제

면 서둘러 교수가 되는 것보다 실무의 틀을 확고하

시간 밑에서 일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할 경

다. 지난해에 건축문화대상을 받은 웅진 씽크빅의

게 구축한 뒤에 교수의 위치를 갖는 것이 방법이라

우도 생각해야 한다. 서울건축학교와 그간의 강사

공식 설계자는 아르키움의 직원이다. 대학에서는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경우에 따라 학교를 포기할

노릇에서 느낀 아웃사이더의 아쉬움을 인사이더가

설계 교수의 업적을 설계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지

수도 있어야 한다.

되면 제대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

만 공식적인 인정이 될 수 없는 현실의 모순이 해

9> 설계 교수의 역할이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임

다. 교육의 문제를 실천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을 하

결되어야 한다. 건축사법으로는 면허 대여, 교육공

용과 근무의 조건이 개방적인 형태가 되어야 할 것

고 있던 중 제안을 받았고 수락을 했다.

무원법으로는 겸직 금지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5

이다. 실무와 교육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보다 2, 3

2> 나의 경우는 지명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년제 과정의 설계 교수의 자격과 현실적인 제도와

년 주기로 번갈아 맡을 수 있다면 이상적인 교류가

3> 학생들 대부분은 막연한 기대를 갖고 건축에 입

의 상충을 해결하지 않으면 교수 건축가는 범법자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방안은 대학의

문한다. 그런 기대가 희망과 목적으로 구체화되려

가 된다.

연구실이 건축사의 자격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

면 동기가 필요한데 그간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7> 작업을 하지 않는 건축가는 더 이상 건축가일 수

화하는 것이다. 실현이 되려면 온갖 관행과 충돌해

고학년과 실무에 들어선 선배들이 전하는 부정적이

없다. 실무와 교육의 양면을 모두 충족시키려면 이

야겠지만….

고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곧 포기하게 된다. 교수 건

분법적인 구분보다 둘 다 아우르는 관점이 필요할

↑ 웅진 씽크빅 사옥 ↖ 마당 안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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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민선주 1. 민선주 2.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3. 하버드 대학교 석사 5. 민선주건축연구소 / 위가건축, 17년 6. ‘광복로의 광복’ 광복로 가로 개선 사업, 래미안 부대 복리 시설 기준 지침, 현대산업개발 대전 가오지구 I’Park, 현대산업개발 통합 디자인 지침,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

1> 현장에서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학교에서 강의를

는다. 건축인들은 너무 제한된 시각과 시간의 삶을

이 왜곡되었기 때문일 뿐, 설계 영역이 없으면 나머

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재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세상을 바라보

지 전공 전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상황

직 시에는 학교에서 실무를 중요하게 여겨 줬기 때

는 관점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나는 건

은 전혀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문에 실무를 하다가 학교로 간 것으로 생각하지 않

축 밖에서 보는 세상의 현실적인 관점을 학생들에

7> 현재는 지쳐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았다. 그러나 연세대에 온 이후로는 서서히 실무를

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처음 설계 교수로서 실무를 병행하는 조건으로 학

떠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

4> 되도록 학생들을 설계 현장으로 내보내지 않으

교에 들어가게 되었었지만, 곧이어 사무실을 줄이

치는 자체가 너무 행복한 일이어서 실무와 강의를

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이기 때문에 설계

고(닫으라는 의미) 외부 업무를 자제하라는 인사위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아직도

현장에 내보내는 자체는 더 수월하다.

원회의 지시 사항과 각서를 작성한 이후 지속적으

그렇지만, 경기대학교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

5> 가르치면서 얻는 것은 참을성과 가끔 만나게 되

로 외부 활동을 줄여 와서 이제는 실무를 중단하고

하고 학교에 있으면서 진행되는 실무 프로젝트들에

는 소중한 학생들과의 사랑이다. 건축적인 면에서

자 한다.

는 학교 밖에 있을 때만큼 시간이 투입될 수가 없다.

학생들에게서 얻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학생들은

8> 없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고 상황이

한편, 경제적인 여건은 당연히 더 좋다. 능력이 부족

아직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 이전 단계여서 오히려

어떠하든 지속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몇

한 탓으로 설계 사무소를 하면서 직원들 급여만을

그 친구들의 생각을 열어 주기에 바쁘다. 막상 받을

분들은 훨씬 더 나은 상황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

우선으로 생각하여 막상 내 자신은 수입이 제대로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떠나보내야 한다.

기도 하다. 단지 자신을 생각함과 동시에 학생도 생

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사무소에 항상

6> 교수 사회에서 설계 교수는 아직 제도에 편입되

각하는 전제로 ‘진실로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지 판

재정을 채워 주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당연

지 못한 사람들이다. 논문, 특히 SCI 논문 편수 업적

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히 학교에서의 경제적인 여건이 더 안정되어 있다.

을 챙겨야 하는 사회에서 설계는 논문에 비해서 쉽

9> 우선 실무형 교수 건축가라는 명칭과 실무형 건

2> 자격과 실적 등의 객관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지 않겠느냐는 사회이다. 건축과에 속한 교수들도

축가 교수라는 명칭은 다른 것 같다. 위의 두 경우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업적이 단순히 제목으로만

설계라는 실적이 얼마나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모두 일반적인 교수들과 전혀 상황이 다를 수밖에

평가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력을 특

지 이해가 안 되는 조직 사회 속에서 무엇을 설명하

없다는 것을 학교에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

별히 관리해 오지는 못했다. 그저 맡아지는 일들에

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연세대학교에 들어갈 때 교

보다도 채용된 이후의 실적 평가(승진과 승봉)가 인

모두 성심껏 임한 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

무처에서 그 동안의 경력을 평가하는데 “설계를 한

사위원회의 주관성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

3> 실무에서의 경험을 알려 주는 것은 좋은 내용이

것은 자신이 돈 번 것인데 어떻게 실적으로 평가받

라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풍토가 형성되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선생과 좋은 건

으려 하느냐?”란 질문을 받았다. 순발력이 부족한

야 할 것이다. 한편 현재 진행되고 있는 5년제 교육

축가는 별개의 역할이다. 교수와 좋은 선생도 별개

나로서는 이 집단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계 교수

시스템보다는 건축 대학원 시스템이 실무형 건축

이다. 유명한 건축가와 훌륭한 건축가의 역할이 다

라는 영역을 설명할 것인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그

가 교수를 수용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마지

르듯이 말이다. 건축가와 교수는 자신의 업적에 더

리고 대학교 전체에서 학과 평가에 쓰이는 BK21 또

막으로 현재까지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에 비해 좋은 선생은 자

는 국책 연구 등과 같은 업적과 실무형 건축가 교수

다 진실로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신보다 학생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고 전하여야

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학과 입장에서 실무형

를 판단해서 대안을 찾아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한다. 실무 건축가가 좋은 선생으로서 경험을 전달

건축가 교수는 학과의 실적에 전혀 혜택을 줄 수 없

해 주는 것이 당연히 최고의 수업이 될 것이라고 믿

는 경우로 인식되기도 한다. 단지 우리 나라의 상황 ← ‘광복로의 광복’ : 부산 광복로 가로 환경 개선 사업 ←←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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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연 1. 유석연 2.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3. 펜실베니아 대학 건축학 석사 4. 한국 건축사 5. hna온고당건축사사무소, 6년 6.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하늘공간 증축 설계, 해남 YMCA 증축 및 리모델링 설계, 울산 성원 쌍떼빌 Fitness Center 인테리어 설계, 2009 인천도시엑스포 회 장 마스터 플랜 및 건축 설계 프로젝트(PF 사업), 거창 갈계 숲 옛마을 만들기(마스터 플랜 및 주민 문화 센터 설계), 장흥 슬로우 월드 마스터 플랜 및 시설 설계(살기좋은지역만들기 사업)

1> 설계 사무실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연구소를 별도

려 실제 사무실을 운영했던 경험이 학생들의 재능

등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을 수도 있으나 교육에 대

로 운영하며 ‘스쿨 파크를 주제로 한 미래형 주거 및

과 태도를 기반으로 적절한 현장으로 내보내는 것

한 것이나 실무에 대한 것이나 원칙을 분명히 세운

지역 사회 / 학교 네트워크 연구’, ‘유비쿼터스 환경

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명지대 건축학

다면 바람직한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업에

을 위한 지역 사회 네트워크 연구’, ‘Brand Identi-

과의 5학년 졸업반 학생들을 모두 원하는 사무실 또

서 활발히 작업하던 건축가가 학교로 가면서 작업

fication focused on Residence’ 등에 대한 연구를

는 적절한 사무실로 진로 지도를 하였다.

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해왔다. 어렵지만 꾸려나가는 데 큰 문제는 없었으

5> 현장에서는 늘 잊기 쉬운 개념에 대한 집착, 사

건축가에게는 분명한 리스크이며 나도 최선을 다해

나, 연구의 지속성이나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 학교

용자로서 학생들의 태도에서 건축주 또는 사용자의

애를 쓸 뿐 미래에 대한 낙관을 스스로 하고 있지

에서 수행하는 것이 더욱 낫다고 여겼다. 설계 일은

요구나 어려움 등을 많이 배우고 있다.

는 못한 상황이다. 특히 공공에 대한 관심이나 디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알고 있었으나 건축사 선배들

6> 설계 현장에서 디자인 작업을 계속 수행하는 것

자인과 연관된 연구에 대한 관심은 현업에서 해소

의 사례를 볼 때 편법이겠지만 사무소를 계속 운영

이 설계 교수의 숙명이며, 해외에서는 전임 교수가

하기가 참 어려운 현실이므로 학교라는 틀이 건축

하며 진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기 사무실을 갖고 작업하는 데 하자가 없다는 현

가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는

2> 명지대 건축학과로 갈 때나 시립대 도시공학과

실을 듣고 있다. 학교에 있다는 점으로 설계 수행이

생각이다.

로 갈 때나 모두 설계를 담당하는 교수로 임용된 것

나 설계 수주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고 느끼지는 않

9> 올해 시립대 도시공학과로 오면서 건축과 교수

이기 때문에 질문에서 언급한 ‘실제 프로젝트를 얼

는다. 늘 아슬아슬하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지

는 더 이상 아닌 상태가 되었지만, 건축이나 도시

마나 수행했는지’, ‘출판의 경험이 있는지’, ‘동료들

만 학교로 간 이유로 일이 더 많아진 것도 아니다.

나 설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상황이며 내게는

의 인정은 어떠한지’, ‘수상 경력이 있는지’ 등등이

다만 학교에서는 교육 외 다른 일들 또한 많이 처리

오히려 도시라는 분야가 챌린지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 자질 판단에 해당되는 항목이었다고 생각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상 제약은 피할 수 없다. 개인

제도적으로 건축이나 도시 모두 건축사로서의 활동

다. 또한 학교에서 설계 교육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

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며, 또한 사무실의 적절한

에 제약을 주는 것은 법적으로 해소되어야 할 문제

에 학교 교육 경험과 설계 작업의 내용과 개념 등을

시스템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실무라는 업무에 있어서 우

중시했다고 생각한다.

7> 잠을 줄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시

선 순위에 대한 자정 기능이 개개인에게 충분이 있

3> 실제 프로젝트 경험에 비추어볼 때 현실과 교육

간을 효율적으로 쓰며 학교에서 연구하는 것과 설

다는 전제라면, 법적으로 겸직이 불가하다는 제약

과의 괴리는 상당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현

계 작업의 내용을 가능하면 연관되게 하여 시너지

은 분명 설계라는 분야의 특성과 상충되는 것이다.

실에만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의 내용보다는 새로운

를 보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 학교나 변화된 사무실

또한 설계자가 교수라는 이유로 인허가 상의 건축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디자

의 체제가 완전히 세팅된 것이 아니어서 시행 착오

사만이 인정받는 현실도 문제다. 이는 현실과 동떨

이너로서의 태도, 역사와 이론에 기반을 둔 디자인

가 많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어진 것으로 건축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

방법론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8> 건축가가 학교로 가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문제

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4> 아직은 전혀 걸림돌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

가 없다고 본다. 경제적인 안정이나 부가적인 이점

↑ 장흥 슬로우월드 마을 중심 외부 공간 단면도 ← 인천도시엑스포 회장 마스터플랜 및 건축 설계

80

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이충기 1. 이충기 2. 서울시립대학교 3. 연세대 건축공학과 대학원 4. 한국 건축사 5. (주)한메건축사사무소, 13년

1> 거꾸로 왜 실무를 하다가 학교로 가면 안 되는지

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즉 설계를 잘 한다는 것과

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질문의 내용처럼 내가 설

묻고 싶다. 그 이면에는 아마도 학교로 가는 것이 설

학생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별개의 자질인 것이다.

계를 추억할 정도의 현실이 되면 나는 과감하게 학

계를 포기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

그런 면에서 나는 히딩크와 같은 역할을 해왔고 나

교를 그만 둘 생각이다. 학교에서 나 같은 사람이

문일 것이다. 설계로 먹고 살기 힘들어 학교로 간

름대로 효과를 보았다고 자부한다. 실제 작업 경험

필요했던 이유는 나의 교육적 실무 경험이었을진대

몇 사람의 경우처럼.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의 경우, 건축학 교육의 과정에서 이전에는 부족했

학교에 왔다고 실무에 제약을 받으면 그것은 목적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나의 경우 1995년 개업과

던 건축 관련 분야, 이를테면 구조와 시스템 설계(

했던 바와 다른 것일 터, 내가 학교에 머무를 이유

동시에 동국대, 한양대, 서울대, 성균관대 등의 대

안전, 방재, 기계, 전기 등), 토목, 조경, 장애자 고려

또한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공무원 신분으로

학 교육 프로그램과 sa, sakia 등 민간 프로그램 등

등의 내용에 대한 중요성과 그것들의 도면 표현에

서 겸직 금지 규정은 지킬 것이다.

에서 13년간 건축 설계 강의를 해 왔고 5년제 건축학

관한 내용을 전달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7> 나는 개업한 이후 줄곧 한 가지 일만 하고 지낸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주당 12

4>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적이 없다. 개업과 동시에 대학원 생활과 학교 강의

시간, 즉 6시간씩 이틀 정도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경험을 들려 주는 장점이 있다. 건축 설계 분야의 생

를 병행했고, 지금까지 실무와 학교 그리고 건축 사

하면서 현업을 지속해 왔다. 5년제 건축학 프로그램

리 파악이나 경력을 쌓아가는 방법, 끈기와 자생력

회를 위한 공공적 실천을 위해 새건협 활동을 병행

이 시작되면서 실무 건축가의 교육 참여가 적극적

을 키우는 일, 자기 자신의 개발 등에 대한 조언은

해 왔다. 물론 가장 부족하지만 딸 셋의 아빠와 아

으로 요구되었고, 따라서 그 동안의 실무 경험과 교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힘들어서 학교로 피난

내 눈치 보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자

육 경험이 다른 사람보다 많고 건축학 교육인증원

온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는 시간을 줄이며 슈퍼맨처럼 살고 있다는 말을 듣

의 추진 과정, 그리고 인증 실사 과정에 참여하게

5> 그렇다. 많이 배운다. 우선 젊고 참신한 그들의

기도 한다. 나는 늘 잠이 부족하다. 그것은 내가 그

되었던 내가 학교 입장에서는 필요한 사람으로 파

생각을 들으며 시대 변화를 읽을 수 있고, 남의 얘

중 어느 하나도 잘 할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여 부

악된 것 같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몇 대학교에서의

기를 인내하며 경청하는 좋은 습관이 길러지고, 그

끄럽지만 오랜 습관이 되어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

지속적인 초청에도 불구하고 실무계를 떠나지 않겠

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기 위해 늘 공부하고 준비

친다. 결국 나의 경우 교육자와 건축가 생활을 동

다던 나의 결심이 꺾이게 된 것인데, 그 이유는 학교

하면서 나도 계속 성장하고, 젊은 그들의 미래도 읽

시에 잘 수행하는 방법은 잠을 이기는 노력에 달려

로 옮겨도 실무에 큰 지장이 없겠다는 나름대로의

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나는 늘 젊고 그들보다

있다고나 할까?

판단과 이제는 외국처럼 교수도 실무를 겸해서 할

더 욕심이 많다.

8> 내가 대학에 진출하고자 노력한 사람이 아니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또 그것이 당연하게 받

6> 질문에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왜 학교로 가

서 적당한 조언을 찾기 어렵다. 다만, 나의 경우는

아들여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판단에서였다.

면 설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케이스가

실무를 열심히 하며 건축 후배들을 위한 자리라면

안정적 수입 때문이라는 것은 편견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지 궁금하다. 원래 왕성하게 작업하던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참여했던 것이 학교의 눈에

학교에서의 수입이 실무하면서 얻는 수입과 어떻게

분들은 지금도 학교에서 활발하게 작업을 하고 있

띈 것이 아닌가 싶다.

비교가 되겠는가?

고, 원래 일이 없어서 힘들어 하던 분들은 학교에 간

9> 아무래도 실무를 할 수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2> 20여 년의 실무 경험과 13년간의 개업 건축가 생

지금도 여전히 일이 없다. 문제는 자기 작업실을 별

다. 소설가 교수, 미술가 교수, 음악가 교수들은 모

활, 저널을 통한 작품 발표, 13년간의 설계 교육 경

도로 두고 일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고, 수주

두 교수를 하면서 자기 이름으로 실무, 창작을 겸하

력, 다수의 수상 작품, 그리고 많은 전시회, 법제도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그럼에도

고 있고 발표회, 전시회, 출판 등의 활동을 하고 있

관련 연구 참여, 대정부 자문, 심의, 심사, 건축계의

불구하고 겸직의 문제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이름으로 창작, 전시, 출판

미래를 위한 공공 봉사 활동 등이 나의 경력 사항인

극복해야 할 과제다. 더러는 실무하면서 재미 다 보

은 할 수 있지만 사업체를 통한 인허가 업무 때문

데 그 중에서도 수상 경력과 저널 발표로 드러난 작

고 돈도 벌고서는 나이 들어서 학교에 들어와 편하

에 자기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차이

품 활동, 그리고 타 대학에서의 강의 경력이나 능력,

게 지내려 한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고, 한쪽에서는

는 결국 건축 관련법과 세법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원으로서의 인성, 즉 건축에 대한 열

그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학교로 가느냐고

건축은 타 예술분야처럼 개인적 창작 활동으로 그

정과 학생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나 싶다.

도 한다. 그러나 학교라는 곳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치는 것이 아니라 법제도의 영향 아래 놓여 있고 그

3> 실무 경험과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

곳이라는 것은 과거의 생각이고, 또 우리처럼 설계

결과물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의

라 생각한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가르치는 내

사무소 생활 패턴에 익숙해 있는 사람은 교수 생활

사, 변호사와 같이 겸직이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

용이 학생 수준에 맞지 않는다면 실무는 공허한 경

이 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 가지 일을 해야 하

지는 것 같다. ← 가나안교회 ←← 옥계휴게소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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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1. 이해욱 2. 우송대학교 건축학부 3. 건축 공학 박사(건축 계획 전공) 4. 한국 건축사 5. (주)GA건축사사무소 6. 게스트하우스5, 대구감리교 회, 우송학생클럽,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문

1> 사무실을 오픈했던 1997년은 IMF 경제 위기가 막

자들의 사회 정착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경 디자인 및 건축 디자인을 수행하고 있다.

시작된 시기였다. 사무실 경영이 어려운 처지에 마

5> 바쁜 프로젝트 수행 속에서 깊이 있게 생각지 못

8> 교직은 기대하는 만큼 편하지도 한가하지도 않

침 교수 초빙이 있어서 지원하여 교직을 시작했다.

했던 부분이나 경제성의 논리로 사장되었던 좋은

다. 새로운 영역에서의 건축가 활동이라고 보면 된

2> 우송대학교의 경우는 실무 능력을 중요하게 평

디자인 개념들을 다시 되살릴 수 있으며, 건축주에

다. 교직이 무엇인가 아주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가하였는데, 특히 국내외의 경쟁력 있는 설계 사무

게도 교수라는 위치가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말기 바란다.

소 디자이너 경력을 중시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6> 건축사 면허를 등록하고 실시 설계와 허가 등을

9> 무엇보다 교수가 소지한 건축사 자격증을 합법

3> 건축가가 가지는 사회 문화적 역할을 일깨워 주

시행할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을 하고도 다른 건축

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고, 종별 건축물의 특성보다는 건축 디자인의 창작

사 소장에게 일을 넘겨야만 하는 점은 가슴 아픈 부

사례를 보더라도 이는 넌센스다. 또한 그렇게 되어

기법을 학생과 같이 모색한다. 강의라고 하지만 다

분이다. 이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며, 대학교에서 교

야만 보다 실력 있고 젊은 건축가들이 대학으로 올

른 한편으로는 매 수업이 교수와 학생이 같이 공부

수 평가 시 교수의 창작 디자인을 논문보다 훨씬 적

것이고, 이는 대학과 건축계 모두가 발전하는 계기

하는 워크숍의 개념이다.

은 비중으로 평가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가 될 것이다.

4> 사회 생활 때 조성되었던 주변 환경보다는 교수

7> 대학원생 중심으로 대학 교내에 부설 건축 연구

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조성된 국내외 인맥들이 제

소를 설립해서 연구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도시 환

↑ 우송학학생클럽 ← 대구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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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이호정 1. 이호정 2.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3. 인하대 건축공학과 박사 4. 한국 건축사 5. (주)협연종합건축사사무소, 10년 6. 고성군 소가야 유물 전 시관 현상 설계 당선, 홍성 조류 탐사 박물관 현상 설계 당선(이호정+(주)종합건축사사무소 도시인), 경남 과학교육원 및 문화재 보호 전시관 현상 설계 당선, 백남준 미술관 국제 현상 설계 입선

1> 실무 활동 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많

현재의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학생

면, 책 속의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서는 안 될

은 부분을 할애한 것처럼 학교에서도 교육 이외에

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것이다.

실무 설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차

4> 건축 설계 사무소는 대형 설계 사무소, 중형 설계

7> 교육의 영역과 창작 활동의 영역을 동일한 영역

이는 별로 없다고 본다. 수입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

사무소 그리고 스튜디오 타입의 소형 설계 사무소

으로 생각하고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민

만 학교에서의 수입은 아마도 사회에서의 활동보다

가 있는데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진로를 유도하려

하면서,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의

못하다고 본다.

하며,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특히 지속 가능한 자질

소양도 시간이 갈수록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

2> 기본적으로 풍부하고 깊은 학문적인 소양과 더

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는 것을 느끼고 있다.

불어 폭넓은 실무 수행 능력은 교수 능력을 평가하

5> 아마도 창작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의 이론적인

8> 풍부하고 폭넓은 실무 경험을 갖추고 있는 현역

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개인

토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건축가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

적으로는 짧지 않은 실무 수행 경험과 출판 경험, 잡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

마도 학문적, 학술적 소양과 기질을 갖추는 것이 무

지 게재, 공모전 수상 경력, 전시회 참가 등이 중요

정은 내게 건축적, 사상적 체계를 완성하는 단계로

엇보다도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겨진다.

9> 요즈음엔 국내 각 대학에서 실무형 건축가를 영

3> 건축 설계는 살아 있는 학문이며 계속 진화하는

6> 이제 우리 나라도 설계 겸직 허용에 대해 적극

입하기 위해 많은 제도 개선을 해 놓고 있는 것으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책에 나와 있는

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

로 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럼 건축 설계가 계속 진행되고 진화하는 학문이라

↑ 홍성 조류 탐사 과학관 현상 설계 당선작 ← 백남준미술관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 입선작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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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정년에 도전하는 석좌 교수 건축가 글 | 전진삼(건축비평가, 발행편집인)

성균건축도시설계원(SKAi, 이하 성균건축원)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건축가 조성룡(64) 교수를 동숭동 ‘ubac 도시건축집단’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석좌 교수로 박혀 있다. 정확 히는 석좌 초빙 교수다. 현재 성균건축원은 서울 명륜동 소재 디자인 대학원의 소속으로 되어 있으나 그의 대학 내 신분은 당분간 건축학과 교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성균건축원에는 그와 함께 정기용(63) 석좌 교수 와 김영섭(58) 교수가 포진하고 있다. 성균건축원은 유학 이념의 구현을 바탕으로 설립된 민족사학 성균관대학교가 21세기 한국 사회와 동아시아 의 가치와 지혜를 성찰적으로 전망하며 세계와 교류하는 터전으로 설립된 대학원 과정의 교육 시스템이다. 이들은 공공성과 공동성을 추구하면서 사회가 요청하는 올바른 건축가상을 구현하고 건축과 도시 공간 설 계의 수준을 향상하며 국제적 수준의 설계 및 기술 개발을 도모하면서 지속 가능한 건축과 도시 공간의 창출 에 기여하겠다는 교육 목표를 내세운다. 그러기 위해서 관련 학문 분야와 통합 연구의 태도를 견지하며 관련 산업과는 상호 협력하고, 국제적 네트워킹을 통해 한국 건축의 위상을 정립하여 지구촌에서 한국 건축을 올 바르게 자리매김할 뿐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고자 한다는 설립 취지를 밝히고 있다. 조성룡 교수는 서울건축학교(sa)의 초대 교장으로 10년간의 활동을 통하여 대학 건축 교육의 대안과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해오는 데 앞장 서온 대표적인 교수 건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임 교원 이상 의 ‘특별한 권한’을 지니고 교육 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교수의 정년이 65세인 것을 감안 해 보면 통상의 대학 기준으로 그는 떠날 채비를 해야 맞을 연배임에 분명하다. 그런 것이 작용했을 터다. 명 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전임 교수 제의를 거절하고 대신 정년 보장이 불명확하나 성과에 따라서 무한 정년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석좌 교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 나이에 전임 교수 자리에 욕심을 내다 보면 후배들이 들어앉을 자리가 없잖아요.” 일찍이 일본 도쿄의 갤러리 마에서 기획한 <마당의 사상, 신세대 한국 건축 3인전>에 초대된 건축가 중 한 사 람이며, 2006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등으로 활약했고,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선수촌 국제설계경기 당선(1983),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2001), 김수근문화상(2003) 등을 수상하면서 국내외 적으로 건축가로서 탄탄한 명성을 쌓아온 그가 끊임없이 건축 교육에 관심을 두어 온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해 온 대학의 역할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사회가 실기해온 ‘중간 기록 부재’의 환경을 극복하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의 교육, 연구, 체험의 결과가 곧장 사회로 환원되는 시스템을 구 축해야 되는 거지요. 그러나 실무를 해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은 현실적응 면에서 간극이 너무 크다 고 보았지요.” 조 원장은 일본의 저명한 건축 잡지『도시 주택』 의 사례를 꺼내 들었다. 1960~80년대에 걸쳐 대학의 우수한 연구 인력과 건설사의 지원 시스템을 결합하여 일본인의 시각으로 전 세계 도시와 건축, 주거의 방대한 자료 를 조사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실무에 접합시키는 가교 역할을 했던 것, 학교 연구실 서재 한켠에는 그의 건축 여정에 빛을 밝혀준 기백 권의『도시 주택』 이 꼽혀 있다. 바로 그런 교육 환경을 조성하자는 발상이다. 요즘 부쩍 떠 있는 화제어 ‘실용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신실증주의적 사고관이 읽히는 대목이다. “다산 선생이 사진기를 가지고 작업했단 사실을 아나요? 어디선가 카메라 옵스큐라의 방식을 응용하여 벽에 비춘 바깥 세계의 영상을 그림으로 옮겼단 기록을 본 적이 있어요. 조선 사대부가에서 실용 과학에 탐닉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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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조성룡, 성균건축도시설계원 원장과의 대화

고증이 아닐 수 없지요. 바로 그런 겁니다. 우리가 성균 건축원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교육의 형태가 말이죠.” 고려 시대와 조선 왕조를 연결하는 1천 년의 시간대가 공 존하는 수도 서울은 그 긴 시간만큼 유학의 본거지로서 도시와 건축이 조영되어온 유서 깊은 역사도시다. 바로 그 중심에 성균관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조 원장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정기용 선생과는 서울건축학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그 분이 관여했던 함양의 녹색대학에서 그 뜻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이후 건축과는 무주로 이전했 어요. ‘풍경, 풍토, 풍수’를 교육의 근간으로 하는 학과를 만들어 우리 건축의 특질을 재정립해 보는 계기를 만들 어 보려고 했는데 학부 과정이라는 점이 걸렸지요. 결과 적으론 교육 참여와 동시에 실무를 해야 하는 우리로선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있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어서 중도 하차를 한 격이 되고 말았어요. 그럴 즈음 성대에서 제의를 받았던 겁니다. 그 전까지는 솔직히 별 생각 없었 어요. 김 교수야 성대 1회 졸업생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우리야 뭐 별다른 연고가 있을 턱이 없었지요. 총장님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성균관의 정체성과 우 리가 찾고 있던 과제가 일치한다는 생각으로 모아졌어요. 바로 유학의 근본으로 조영된 이 나라가 일제 강점 기의 식민지 근대화 과정 이후 역사적 단절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연속적인 맥락에서 회복하자는 것이었고, 총장님도 그러한 우리의 밑 생각에 흔쾌히 동조한 겁니다.” 그럼, 한국예술종합교(이하 한예종)의 연구소 지위로 제도권에 편입된 서울건축학교와는 어떤 차이를 두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 곳은 현재 이종호 소장이 전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건축학교의 존재가 부인 되지 않는 한 그 체제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던 조 원장을 포함해서 성균건축원의 구성원 면면들이 겹치고 있 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서울건축학교 원년 멤버들의 분열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모르고 하는 소리지요. 이종호 교수와는 어떤 형식으로든 공조하기로 약속했어요. 굳이 두 학교의 차이를 말하자면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한예종은 문화예술 장르의 아티스트들과의 교육적 연대가 인적 네트워킹의 중심이라면 성균건축원은 다양한 학제간 인력의 네트워킹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한예종이 예술 지향적이라면 성균건축원은 실용주의적이라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둘은 서울건축학교를 모태로 하는 이란성 쌍둥이라는 답변이다. 개원 첫 학기를 맞은 올해는 건축 도시디자인과에 10명을 모집했는데 공고 후 1주일도 안 되어서 정원을 초과하는 기대 이상의 지원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건축도시디자인과는 건축과 도시의 이론 과목과 설계과목 등 3개의 과정이 개설되어 있 다. 강사는 3인의 내부 교수진과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되는 외래 교수들이 각 과정별로 2~~3주씩을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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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하여 가르친다. 이 학과는 풀타임으로 운영되며 2년 간 이론과 실무 교육의 병행을 통해서 졸업 후 당장 필드에서 소임을 다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 된다. 다른 하나는 공공건축 거버넌스 과정으로 행정 및 기술직 공무원과 건설사 기획 담당 부서원 및 민간 건축 전 문인들을 모집 대상으로 한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느니만큼 야간 수업으로 이뤄지며 실기보다는 이론 위주의 교육 방식이 준비되고 있다. 이번 학기는 모집하지 않았다. 2009년도에 개설될 예정이다. 조 원장은 성균건축원이 이전의 서울건축학교가 전용할 공간과 전담 교수 인력의 부재로 인하여 하지 못 했던 여러 과제들을 적절하게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공공 건축리서치 과정을 통해서 최적 의 방법론을 개발하고 기존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및 건설 및 건축사 사무소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 연구소 등과의 연계를 통해서 실질적인 과업을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 같은 작업을 통해서 우리 땅을 깊 이 있게 들여다보며 공간과 삶의 흔적을 기록하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며 지속 가능한 건축과 도 시 만들기와 지역적인 풍토와 풍경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한국 건축의 잠재성을 특별한 가치로 바 로 세운다는 것이다. 조성룡, 정기용, 김영섭. 한 대학 한 공간에 둥지를 틀은 3인의 건축가는 3인 3색의 건축 철학을 구현해 온 우 리 건축의 대표주자들이다. 건축도시설계원을 설립한 성균관대학교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현재의 기류 는 우려보다 희망이 앞선다. 일단은 공공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이들의 실천적 삶의 궤적을 알고 있는 사람 들로부터 응원이 크다. 유교에 바탕을 둔 철학적 사고와 실용적 해법의 제시에 무게를 두고 있는 성균건축원 의 교육 이념이 구체성을 띠고 드러나기까지에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외적으로 성균건축원의 개원을 알리는 초청 강연이 지난 3월 28일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조병 두홀에서 개최되었다. 그 날 강연자로 나선 사람은 와로 키시(Waro Kishi, 58) 교수였다. 김 교수는 그를 안 도 타다오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일본 건축가로 소개했다. 그는 1993년 교토에서 성균건축원과 같은 형식의 이론과 실무를 연결하는 교육 시스템(Kyoto Institute of Technology)을 도입하여 운영해 오고 있는 교수 건축가이기도 하다. 현대 건축의 유행적 판도에 휩쓸리지 않고 일본 건축의 풍토와 모더니즘 건축의 원리들 을 통합적으로 자기 건축의 현대적 언어로 승화시켜 오고 있는 건축가이다. “나는 교토의 건축가입니다.” 강연에서 그가 뱉은 일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가 성균건축원의 첫 번째 초청 강연자로 나선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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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architect, become a professor


와이드 이슈 3

<와이드 부산 맨>들이 말하는 한국 건축의 위기 진단

2008 5-6 no.3 wide issue 3 : talk with editorial board <와이드> 3-4월호가 발간되자마자 편집진은 부산 지역의 편집위원들을 만나러 짐을 꾸렸다. KTX 덕에 부산을 향해 떠난 2시간 50여 분의 짧지 않은 시간 내내 우리는 <와이드>의 편집 체제와 콘텐츠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만나게 될 편집위원들과의 대화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지역적으로 멀 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직접 만나서 얼굴 보며 얘기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친해지는 법이 있을까. 안웅희 교수의 추천 으로 부산역 인근 ‘상하이거리’(낯선 이름, 낯선 풍경이었지만) 중국집에 점심 예 약을 해놓았던 터다. 서울과 부산,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한없이 먼 땅에서 <와 이드 부산 맨>들과 함께 한 ‘정오의 만남’은 형식이 무척 사무적이었던 반면 나름 뼈 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은 그 날 나눠진 녹취 내용을 중심으 로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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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배경이 빠진 맹목적 디자인 지향은 위험하다 안웅희(편집위원,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공간건축학부 교수) 김기수(편집위원, 동아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안용대(편집위원, 가가건축사사무소 대표)

↑ 안웅희

전진삼(발행인) | 반갑다. 오늘 이 자리는 부산

미학과 비평론 등을 가르치고 있는데, 당장 현

의 편집위원들을 모시고 부산 건축계의 현황

실적인 문제, 특히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건축 리포트 <와이드>』 의 역할에 대해 이

는 이유로 터부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건축의

야기를 나눠 보는 자리로 마련하였다. 창간호

토양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지금 당장 눈

발간 직후 가졌던 서울에서의 전체 편집위원

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상상력

회 모임에 부산 지역 편집위원 모두가 참석하

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데, 더러는 이 부분

지 못하여 편집진으로선 나름 책임을 통감했

에 대해서 학생들이 서울에서 행하는 워크숍

다. 당시 안웅희 교수는 편집위원회의에 참석

이나 여러 단체가 주최한 여름 디자인 캠프를

차 서울 진입까지는 성공했지만 너무 늦은 시

찾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다고 생

각이어서 회의 참석은 불가능했다. 성의를 표

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참여하는 것만

해 준 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으로 스스로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었다

우선, 월간『이상건축』 (현재는 폐간된 건축 잡

고 착각들을 한다는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

지, 부산 지역을 모태로 창간) 이후 부산 지역

다. 일상 속에서 차근히 내공을 쌓지 못하는데

에서 건축 잡지에 대한 요구는 따로 없는지 궁

일주일쯤 고민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금하다. 또한 학교를 중심으로 체감하는 부산

건축학에서 인문학의 고리 부재는 언젠가 우

건축의 현안은 무엇인가?

리들의 뒤통수를 크게 칠 것이 뻔하다. 김기수 | 학생들의 주 관심사는 취업 문제와

↑ 김기수

↑ 안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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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웅희 |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것 같

동기 유발을 위한 공모전 수상에 달려 있는 것

다. 언로도 막히고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만나

처럼 보인다. 그런데, 공모전 운영자나 심사자

는 창구도 없고. 그래서 몇몇 사람이라도 공유

들의 가치 판단 기준에서 인문학이 누락되는

할 수 있는 책을 내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만약 심사의 판단 기준

특히 건축과가 5년제가 되면서 설계에만 치중

에 인문학의 가치가 포함된다면 어쨌든 학생

하는 교육 환경이 형성되는 것 같다. 역사, 이

들이 관심을 가지고 정보들을 찾으려고 노력

론, 비평, 철학적인 문제들이 거의 사라질 위

을 하지 않을까? 이미 각 공모전마다 정해진

기다. 책을 통해 건축에 설계만 있는 것은 아니

패턴이 있다고 믿고, 그 패턴에 맞추려고 하

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는 것이 문제다.

김기수 | 건축에도 인문학의 위기가 왔다. 학

안웅희 | 같은 생각이다. 그런 경향은 앞으로

생들의 수강 신청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본다. 학생들이 공모전에

론 과목의 폐강도 예삿일이 되었다. 반면 학교

사활을 걸고, 심지어는 수업 정규 과정에서조

에 실무형 교수들이 많이 영입되었다. 그러다

차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을 봤다. 공모전은 공

보니 디자인 실무적인 부분만 강조되는 경향

모전대로 작품수를 채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

이 없지 않다. 이론 과목은 설계하는 데 도움이

는데, 그나마 공모전이 진행되는 것이 어디냐

안 된다는 생각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다.

싶어 선생들이 학생들을 부추기는 현상이 나

안웅희 | 내 생각에도 건축에서의 인문학의

타나기도 한다. 지역에 제대로 된 저널이 부재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것 같다. 나도

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WIDE ISSUE 3 : talk with editorial board


부산은 월간『이상건축』 이 지역의 한계를 극복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널에서 건축 페스티벌

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생활할

한다는 기치 아래 서울로 자리를 옮기고 종국

에 대해 관심을 갖고 거시적으로 짚어볼 필요

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던 문제들이 이제

에 폐간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부산건축사

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부산국제건축문화

는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고, 거꾸로 서울의 일

협회가 발행해온 기관지『건축사신문』 의 역할

제를 모방한 문화제들이 다른 지역의 지자체

들이 다소 무심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누구든

이 커졌다. 또한 지역 안에서 지평을 넓혀 온 건

를 통해 발생하고 있다. 전국적인 실태들을 냉

자기가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모

축 출판사 <비온후>의 움직임도 채집된다. 최

정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든 일을 바라볼 거라 생각한다. 물론 서울이나

근엔 부산국제건축문화제와 같은 대외적인 건

다.

부산에는 완전히 다른 것도 있고 공유할 수 있

축 페스티벌의 상설화로 주변도시는 물론 수

전진삼 | 비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부에 들

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산의 문

도권 주요 도시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어와 있어서 문화제의 평가가 내부에서 이루

화적 인프라다. 중앙과 지방이 거의 동등한 입

외형적으로는 활력이 넘쳐 보인다. 실제로 내

어지는 것으로 상황 종료되는 것은 다른 건축

장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구도가 옳다고

부에서 느끼는 부산 건축계의 현실은 어떨까?

문화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히 행사의 완

본다. 부산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고 스스로 언

성도를 위한 반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로를 만들어서 중심이 잡혀지면 서로 대화의

전진삼 | 학교 밖의 상황은 어떤가?

김기수 | 그렇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비판

레벨이 맞춰질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김기수 | 부산국제건축문화제가 만들어짐에

자임과 동시에 실행자의 역할을 겸한다. 때문

상황에서 서울의 관점으로 부산을 바라보겠다

따라 기존의 건축 활동 영역들이 그 안으로 흡

에 감시 구조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는 것은 바깥에서 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공감

수가 되었다. 그런데, 유독 흡수가 안 되는 분

보면 저널이 할 일이란 생각도 들고.

이 될 수 없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

야가 역사, 비평, 철학을 포함한 이론 분야다.

라 생각한다. 부산의 학생들도 졸업하면 서울

굳이 자리를 만들어도 잘 운용되지 않는 것 같

부산의 건축 사건이 지역의 사건으로 국한되

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만약 지금 중앙의 건

다. 또 내부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 못하니

는 것을 <와이드 부산 맨>들은 거부했다. 부산

축 잡지가 부산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면

까 외곽에서 움직여 보기도 하지만 경쟁이 안

의 문제가 곧 한국의 문제라는 인식의 변화가

이슈 자체가 건축계 전체에서 공유될 수 있는

되는 구조다. 총체적인 위기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사고(思考)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안웅희 | 한편으로 서울보다 유리한 점도 있

다’는 것과 건축 행동의 실체가 지역으로 묶이

안용대 | 부산만 하더라도 생산되는 작품의

다. 서울의 대규모 조직 안에서 잠간 떴다가 묻

는 것은 다르다는 얘기다. 부산의 중심 주제가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난다. 작가의 역량, 자본

혀 버릴 수 있는 이슈도 이곳에서는 잘하면 탄

지엽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전국 차원에서 공

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서울과 비교

력을 받을 수 있다. 또 관과 의견이 맞으면 예

유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자체가 안 된다는 생각이 있고, 또 부산 안에

산 지원도 어렵지 않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

런 생각의 배경이 궁금해졌다.

서 자생적으로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

라도 인문학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리기에는

에 연대나 공유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한계와 난관이 많은데, 차라리 약간 거리를 두

전진삼 | 테이블 위에서만 논의되고 사장될

같다. 부산의 몇몇 건축인들이 상황을 좀 호전

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그 구성원들이 얽히

수 있는 논의들이 대부분일 텐데, 부산 지역의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

고설키다 보니 쉽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못

현안이나 쟁점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

니다.

할 수밖에 없다.

끼나?

김기수 | 지방의 문제를 통해 건축의 전체적

김기수 | 사람들이 워낙 바쁘다. 이 자리의 멤

안웅희 | 부산의 모든 문제들이 부산에 국한

인 트렌드 자체를 점검해 보는 것도 저널의 중

버들이 저 자리의 멤버들이고 또 다른 자리의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

요한 역할임에는 틀림없다. 작품 소개에 그치

멤버들이다. 결국 그렇게 연결되다 보니 문화

다. 이 곳에서 일어난 일이더라도 어떤 부분은

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서의 또 다른 가치 판

제를 비롯한 모임에 대해 검증할 장치가 없다.

건축 전체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

단 기준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는 것이 필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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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항 전경, 사진 제공 안웅희 ↓ 용두산 야경, 사진 제공 안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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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talk with editorial board


요하다. 사실, 작품만 하더라도 서울과 부산의

김기수 | 대형 사무소에서는 아무래도 프로젝

안웅희 | 그런데, <와이드>의 방향은 무언가?

갭은 그래픽의 차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보

트의 덩치가 크다 보니까 건축 설계의 A부터

전진삼 | 기본적으로는 건축계 안에서 주변부

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건축물이 담고 있는 이

Z까지 전체를 배울 수 없다. 프로젝트의 일부

에 머무르고 있는 문화를 어느 정도 진작시키

야기다.

분만 담당하게 되어서 그럴 거다. 어떤 친구는

는 것이 하나다. 소수자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

대형 설계 사무소에서 아파트 모형만 수십 개

만, 능력은 있는데 주목받지 못한 사람의 대변

전반적으로 건축 비평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옮

지 역할을 할 것이다. 또 권력화되어 있는 건

분위기다. 주지하다시피 건축 저널을 통한 비

겨갈 중소형 건축사 사무소를 찾고 있다는 말

축계의 일정 부분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역

평공간이 무척 취약해졌다. 그나마 부산은 타

을 들었다.

할도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

지역에 비해서(심지어 서울까지도 하지 못하

안웅희 | 기성 세대들이 후배들의 작업 환경

를 통해 새삼 확인했지만, 각각의 지방에서 던

는) 건축 대상에 대한 집단 비평 작업을 꾸준하

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져지는 이슈들이 이 땅의 문제로 공유될 수 있

게 해오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부산의 <와이

래서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건축사 직능 3단체

도록—지방 섹션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아니

드 맨>들은 이 같은 외부자적 시선을 한 마디

통합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 기

라—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펼치는 <와이드>

로 일축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

성 세대들은 설계비를 정상화시키는 노력들을

한 생각들은 가급적 우리 건축의 냄새를 찾고,

이다. 비평 문화의 취약성과 학생들의 취업 선

해야 할 것이다. 예전처럼 그저 배우는 것만으

근원을 찾고 그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을

호도가 반비례한다는 것으로 사례를 들었다.

로도 감사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밥그릇

찾아가는 것에 목표를 둔 것이라 보시면 된다.

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선은 우리 스스로의

오늘 이 자리의 편집위원들께서도 그런 관점

안웅희 | 예전에는 발표된 건축물 하나를 가

권리를 확보해 놓고 봐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에서라면 언제라도 의견들을 건네주시기 바란

지고 좋네, 나쁘네 말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여건에서는 설계 사무실을 탓할 수도, 학생들

다. 시작은 작지만, 이 시대를 동시에 살았다,

것조차 없다. 그게 문제다.

을 탓할 수도 없다.

라는 좋은 뜻을 키워 볼 수 있는 자리로 만들

김기수 | 그런 것 같다. 건축 설계가 그림 그리

김기수 | 그런 과정에서 저널의 역할은 분명

어 보겠다. ⓦ

기에 치우쳐진 것이 많아졌다. 또 당선되고 나

있을 거다. <와이드>는 원론적인 문제들을 놓

진행 및 정리 | 정귀원(편집장)

면 외주 줘 버리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치지 말고 그 중요성을 사이사이 부각시켜서

다. 저널에서 그 과정을, 준공될 때까지의 과정

원론적인 가치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나갔으

을 추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승

다. 또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인력이 몰리는 대형

리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설계 사무실의 허실을 살펴볼 수도 있지 않을 까 싶다. 실상은 무척 심각하다. 요즘 대부분의

돌이켜보면 <와이드>의 창간을 전후해서 정

건축과 졸업생들은 큰 사무소를 선호한다.

작 각 지역의 제1기 편집위원들과 둘러앉아서

전진삼 | 마치 진공 청소기에 흡인되는 것 같

<와이드>의 편집 체제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

다는 표현이 있다. 대형 건축 사무소끼리도 인

를 거치지 못했다. 앞으로 각 지역 편집위원들

력 빼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2시간 가까이 점

안용대 | 작은 사무실은 직원 구하기가 하늘

심시간을 이용한 미팅이 끝나갈 무렵, 편집위

의 별 따기다. 급여나 작업 환경의 차이 때문이

원들은 <와이드>의 편집진을 청문하듯 몰아세

겠지만, 소규모 사무소만의 장점이 있고 또 대

웠다. 어떤 각오로 쉽지 않은 일을 다시 시작하

형 사무소에도 단점은 분명 있다.

게 된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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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 글 김경애, 감수 현진오 | 1990년대 자연 생태 환경 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던『한겨레』연재 기획 <이 곳만은 지키자>의 2차 답사기. 12년 전의 기획 시 리즈 <이 곳만은 지키자>는 그 때까지도 ‘사람 중심’의 환경에 머물러 있던 많은 이들에게 식물이나 생태 지식에서 한 발 나아가 우리가 자연을 보며 진 정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줬다. 그리고 12년 후,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이란 제목으로 12년 전 답사했던 곳 가운데 서른세 곳을 다시 찾았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답사 기록과 함께 두 번의 답사를 취재한 필자의 단상을 묶은 것이다. 이 땅 곳곳의 키 작은 풀과 그들의 친구인 나무, 물고기 때론 새를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은, 따뜻하고 세세한 시선으로 이 땅의 여리지만 아름다운 생명 하나 하나를 살핀다. 12년 사이, 개발 광풍 으로 산간 오지의 숲은 차로 몇 시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 되었고, 많은 숲 속 생명들이 사라졌다. 어느 곳은 숲 전체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수 백 장의 사진과 함께, 때론 12년 만의 재회에 가슴 벅차하고 또 때론 사라진 작은 생명에 안타까워하며 써내려 간 이 생태 기행의 흔적은 ‘태안 유조선 참사’나 ‘한반도 대운하’ 등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요즘, 마음으로만 자연을 품고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을 그 자연 속으로 이끌 며 이 땅의 주인은 사람 만이 아님을 낮은 목소리로 설득한다.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의 책 at 06 Toshima : 스스로 제자된 자들이 만든 책 (가제, 근간) 글, 사진 정세영 | 에스파냐 그라나라에 머물며 20여 년을 오로지 자신의 그림과 싸우다 간 화가 도시마 야스마사. 생전에 그를 만난 이들은 모두 자신이 이 깡마른 사내에게 깊이 매료됐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도대체 그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리 도 깊이 흔들어 놓은 것일까. 생전에 또 그가 죽고 나서 스스로 제자된 이들이 들려 주는 ‘나의 스승, 도시마 상.’ 행동주의 : The Rem Koolhaas File (근간) 글, 사진 노리코 타키구치 | 일본 저널리스트가 밀착 취재한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 렘 콜하스. 렘 콜하스 및 그의 동 료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기사와 인터뷰를 통해 렘 콜하스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전하는 건축 이야기.

by Suryusanbang 92


D

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와이드 | 데일리 리포트 |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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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가든에서 에덴 프로젝트까지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3>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은 현재 건축과

키아 사센이다. 그녀는 환경 오염으로 인한 해

도시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화두다.

수면 상승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가까

언제부터인가 개발이라는 용어는 앞뒤 가리지

운 미래에 많은 도시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않고 부수고 파헤치는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것임을 경고한다. 그 중 하나가 그녀의 고향인

반면에 지속 가능성은 환경을 보호하고 공존

네덜란드다! 물론 이러한 주장 자체가 새로운

을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개발과는

얘기는 아니다. 자전거 타기에 결코 편한 도시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미래를

가 아닌 네덜란드가 어떻게 자전거 천국이 되

위한 비전을 제시할 때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었을까?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대기 오염을

으로 고려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

부추기고,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멸망으로 가

보이기까지 한다.

는 길임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잘 알기 때문이

몇 해 전부터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다.

상 기후는 지속 가능성의 추구가 유행이 아닌

마지막으로 지난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인류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임을 암시한다. 지

총감독을 역임한 리처드 버데트다. 그는 전 세

속 가능성과 연관된 논의의 핵심은 최첨단의

계가 에너지 절감에 동참해야 함을 역설하면

과학 기술을 활용하여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

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비유를 든다. “78%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화석 연료 사

의 동경 사람들이 걸어서 출근하는 반면에 81%

용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의 로스엔젤리스 사람들은 차로 출근한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당연히 아니다. 대안을 찾 고 나아가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점은 사용자의 의식을 바꾸는 것 이다. 뒤집어 말하면,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이 개발될지라도 사용자를 일깨우 지 않고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이 와 연관해서 필자가 최근에 만난 세 명으로부 터 들은 인상 깊은 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런던 시장 켄 리빙스톤이다. 그는 지역과 가정에서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고 조달하는 방식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대형 마켓은 물 론이고 식료품 가게에서 취급하는 주요 품목

Kew Royal Botanic Gardens, Temperature House↑ Kew Royal Botanic Gardens, Temperature House Inside↑↑ Kew Royal Botanic Gardens, Princess of Wales Conservatory↑↑↑ Kew Royal Botanic Gardens, The Parm House↗

은 과일과 야채다. 신선도가 생명인 과일과 야 채는 세계 각지로부터 매일 운송된다. 이것은 도시를 오염시키는 주 요인이다. 따라서 과일 과 야채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곧 엄청 난 환경 보호 효과가 있다. 둘째는 20세기 세계화 논의의 선구자인 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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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큐 가든, 뿌리깊은 자연과의 동행 런던 템스 강의 남서부에는 ‘큐 가든(Kew Royal Botanic Gardens)’이 있다. 천연의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일찍이 로마인들의 정착지였고, 이후 영 국 황실이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한 광활한 공원 겸 농장이다. 15세기를 전후로 황실에서 꾸준히 확장을 했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현재와 같 은 대중들을 위한 정원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초기 작은 농장에서 시작된 큐 가든은 현재는 120헥터에 이르렀다. (참고로 뒤에 설명할 세계 최대 규모로 여겨지는 에덴 프로젝트의 규모는 15헥터다.) 나무와 꽃으로 뒤덮여 끝없이 펼쳐진 큐 가든은 그야말로 원시의 모습 자체라 할 수 있다. 현재 큐 가든 내에는 18세기에 지어진 건물에서 최근의 건물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특히 큐 가든의 온실을 대표하는 열대 식 물관(1844년 완공)과 기후 식물관(1898년 완공)은 현재 영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빅토리안 구조물이다. 마치 거대한 궁전을 연상시키는 두 건물은 주철과 유리로 대변되는 산업 혁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열대 식물관은 곡선을 사용하여 우아하 고 섬세한 여성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반면, 안쪽에 위치한 기후 식물관은 화려한 장식, 정교한 디테일, 수직성의 강조 등을 통하여 남성적 힘을 느끼게 한다. 두 건물은 이후 전 유럽에 걸쳐서 기차역과 마켓 등 대공간 구조물 건립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87년에는 찰스 왕세자에 의하여 전 세계 10개의 각기 다른 기후대를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온실도 설립되었다. 여러 개의 삼각형 지붕을 엮어 놓은 듯한 모습의 건물은 주변을 압도하지 않으며 잘 어우러진다. 큐 가든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학자들을 위한 자연 생태 연구 장소다. 큐 가든에서는 전 세계의 식물과 관련 시설들을 보고,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도서관은 자연 생태계와 연관된 책과 자료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명실공히 자연 생태 연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둘째는, 현장 학습 기능이다. 큐 가든은 런던은 물론 영국 전체 학교들과 연계하여—특히 유소년을 대상으로—생태계의 원리와 환경의 가치를 집중적으 로 교육한다. 교육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자연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류와 자연의 근본적인 생존 관계를 이해하도록 한 다. 수백 년의 역사가 말해 주듯 큐 가든에는 여러 켜의 역사가 존재한다. 큐 가든를 거닐며 느낄 수 있는 분명한 것은 역사의 주인공이 인류가 아 닌 자연이라는 사실이다.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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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en Project, Aerial View ↑ Eden Project, Outside ↑↑ Eden Project, Inside ↓ Eden Project, Panorama → Eden Project, Dome Detail →→ Eden Project, Site Plan ↘ Eden Project, Section Plan

에덴 프로젝트, 21세기 생태 학습장 지난 2001년, 언론의 큰 관심 속에 또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 등장했다. ‘에덴 프로젝트(Eden Project)’다. 런던아이, 밀레니엄 돔과 더불어서 영국 에서 진행된 200여 개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폐광이던 콘월(Conwall) 지역을 재생시킨 가시적 성과는 물론이고, 21세기 도 시 아젠다인 지속 가능성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에덴 프로젝트의 성공은 런던아이와 밀레니엄 돔을 넘어선다. 런던에서 차로 약 5시간 가량 떨어 진 남서부에 위치한 에덴 프로젝트는 세계의 다양한 식물들을 재배하고, 실험하고, 교육하기 위한 식물원이라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큐 가든과 동 일한 목표를 갖는다. 니콜라스 그림쇼(Nicholas Grimshaw)가 디자인한 에덴 프로젝트는 최첨단의 재료와 공법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태양열로만 온실을 유지 할 수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신소재인 ETFE를 사용했고, 지오데식 돔 구조와 에어쿠션 마감 등이 채택되었다. 이상적 형태인 벌집 모양의 육각형 모듈로 이루어진 8개의 돔은 마치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중 4개가 바나나, 커피, 고무, 대나무 및 전통 가옥 등을 중심으로 한 아열대 온실이고, 나머지 4개는 올리브, 포도 등을 중심으로 한 열대 온실이다. 이외에도 에덴 프로젝트 주변 일대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식물, 나무, 조각 등으로 채워져 있다. 에덴 프로젝트는 개장 이래 현재까지 거의 천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대성공을 일구어냈다. 에덴 프로젝트 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큐 가든과 마찬가지로 생태 학습장으로서의 교육 기능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5년에는 학습 및 전시를 전담하 는 코어(The Core) 건물이 완공되어 더욱 효과적인 교육 및 전시 기능을 수행한다. 둘째, 다른 곳과 차별화된 쉼터로서의 역할이다. 통계에 따르 면 에덴 프로젝트 방문객의 대다수가 1박 2일의 가족 단위 주말 여행객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교육적인 시 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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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 큐 가든이 19세기 산업 혁명의 결과물이라면, 에덴 프로젝트는 21세기 최첨단 기술력의 상징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건물이 보여 주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기술은 바뀌었지만 원칙은 변하지 않았음이다. 환경 파괴로 지구가 시름할수록 인류는 자연을 보호의 대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큐 가든과 에덴 프로젝트에서는 자연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임을 알려 준 다. 지속 가능성은 구호가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 실천의 맨 앞에는 새로운 기술이나 대체 연료의 개발이 아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자세 가 있어야 한다. 바로 큐 가든에서 에덴 프로젝트까지 이어져 온 전통이다. 환경 파괴로 시름하는 21세기, 큐 가든과 에덴 프로젝트에서 자연과 어 우러진 사람들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이유다.ⓦ

글쓴이 김정후는 경희대학교 건축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건축가와 비평가로 활동해 왔다. 영국 바쓰 대학 건축학 박사 과정과 런던 정경 대학 도시 계획 박 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런던에서 도시 계획 튜터와 컨설팅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공간 사옥』 (공저, 2003),『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 (2005),『상상/ 하다, 채움의 문화』 (공저, 2006),『유럽 건축 뒤집어보기』 (2007) 등의 저서가 있다.『조선일보』 와 ‘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를 공동 기획했고, 현재 KBS와 SBS의 디 자인 관련 프로그램 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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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 이용재의 <종횡무진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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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본관 창녕 성 씨. 1438년 21살에 식년문과 급

관. 명나라 사신 환송연이 열린다. 성승과 유응부가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누마루. 지아비를 그리워

제. 1442년 박팽년, 하위지, 신숙주와 삼각산 진관사

왕의 뒤에 서서 칼을 차고 호위하는 운검을 하게 됐

하는 피눈물이 내리는구나.”

에서 사가독서. 1447년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

다. 치자. 좋다. 동지인 집현전 학사 김질 배신. 매죽

1457년 수양대군의 친동생 금성대군 다시 쿠데타 모

“아빠, 중시(重試)가 뭐야?”

헌이 형장에 끌려 왔다.

의하다 사형. 단종 서인으로 강등. 이 소식을 들은 단

“당하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과거.”

“야, 너 영의정 시켜 줄게. 좀 봐주라.”

종은 세상이 싫다. 나 땜에 자꾸 가잖아.

“당하관은 뭔데?”

“나으리 지금 저희 전하는 영월 가 계시걸랑요.”

“얘들아 줄다리기 하자. 난 방안에서 당길게.”

“정3품 이하의 관리. 당하관은 정사를 볼 때 대청에

“뭐라! 사형.”

하인들이 밧줄을 힘껏 당겼다. 어라 밀리네. 하인들

올라가 의자에 앉지 못하걸랑. 의자에 앉고 싶으면

왕을 왕자의 호칭인 나으리라 불렀으니. 거열형. 사

은 더 힘껏 당겼다. 그래도 안 당겨 오네. 우리가 졌

중시에 합격해야 돼. 중시는 1백 명 남직한 장관급 후

지를 찢어 죽인다. 부친, 세 동생, 네 아들 사형. 멸

나. 방문을 여니 단종은 목에 밧줄을 걸고 줄다리기

보자인 당상관이 되는 지름길.”

족. 마누라와 딸은 노비로 팔려가고. 새남터 사형장

를 한 거다. 우째 이런 일이. 집현전 직제학 원호는

호 매죽헌(梅竹軒, 매화나무와 대나무가 자라는 집).

에 널브러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할 후손도 없고.

칼잡이 수양대군에게 사표 내고 고향 원주에서 은거

1450년 핫라인 가동. 세종이 갈 때가 된 거다. 성삼문

매월당 김시습 몰래 야밤에 새남터 잠입. 사육신 시

하다 단종의 자살소식 듣고 영월로 가서 3년 시묘.

집에도 전화벨이 울렸다. 딩동딩동. 이 핫라인은 그

신 대충 수습. 누구 팔인지 누구 다리인지 알 수도 없

1698년 숙종은 211년 만에 단종 복위.

때나 지금이나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멸족의 지

고. 피눈물을 흘리며 한강을 건너니 노량진 나루터.

“아빠, 단종(端宗)이 뭔 뜻이야?”

름길이 되기도 하는 무서운 독약.

더 갈 힘도 없고. 양지바른 언덕위에 대충 묻고 김시

“바른 임금.”

“매죽헌.”

습은 전국 유랑에 오른다. 나 이제 중. 현실에 안 나

정순왕후의 부친 사형. 정순왕후는 머리를 깎

“예, 전하.”

감. 사육신 덕에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길에 오

는다. 이제 비구니. 속세를 떠난다. 법명 허경

“문종을 잘 도와 줘라.”

른다. 마누라는 따라 갈 수 없고.

(虛鏡, 빈 거울). 정순왕후를 따르던 후궁도 다 머리

“알것습니다.”

“아빠, 왜 이 절 이름이 청룡이야?”

깎고. 아제 아제 바라아제.

1452년 즉위 2년 만에 문종도 갈 때가 됐다. 우째 이

“이 동네에 있는 낙산이 원래 한양을 지키는 푸른색

어라 생활이 안 되네. 먹을 것도 없고. 정순왕후는 자

런 일이. 다시 핫라인 가동. 이제 왕세자 단종의 나이

의 상상의 용인 청룡이걸랑.”

주물감을 들인 자색 옷을 내다 판다. 대박. 왕비가 손

12살. 초등학교 4학년이 왕이 되니. 칼부림 나겠군.

수강궁을 출발한 단종은 마지막으로 청룡사의 우화

수 물들인 자색 옷. 피눈물 들인 옷. 정순왕후는 아

“어린 단종을 부탁한다, 매죽헌.”

루에 마누라와 마주 앉았다. 여보 갔다 올게. 몸 잘

침저녁으로 동망봉에 올라 먼저 떠나간 영월 지아비

“알것습니다.”

돌보게나. 전하 저도 갈래요. 안된다는구나. 눈물없

의 극락왕생을 빈다. 삼촌들 없는 세상에 태어나세

1454년 여산 송 씨 송현수의 딸과 결혼. 작은 아버지

이 볼 수 없는 생이별. 이제 단종 17살. 단종비 18살.

요. 전하. 수양대군이 먹을거리를 보냈다. 미안하구

수양대군 쿠데타. 1455년 상왕으로 물러남. 수강궁(

단종이 청계천을 건넌다. 어라 낭군이 안보이네. 정

나 단종비. 어쩔 수 없었단다. 용서하거라. 당연히 거

지금의 창경궁)에서 눈칫밥. 단종비 정순왕후는 숭

순왕후는 단숨에 청룡사 뒷산의 동망봉(東望峰)에

부. 동네 아낙네들이 푸성귀 팔아 정업원에 시주.

인동 청룡사를 찾아 빈다. 목숨만은. 그게 되나.

올랐다. 여보.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1521년 82살로 정순왕후도 떠나고. 참 오래도 산다.

당시 매죽헌의 부친 성승은 군 최고사령관인 도총

“우화루(雨花樓)는 뭔 뜻인데?”

지아비의 업을 씻어야 되니. 자식도 없고. 1698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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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현판이 보인다. 청룡사 정문 들어가니 좌측은 우

前峯後巖於千萬年 전봉후암어천만년

필을 내리고 정순왕후를 기린다.

화루. 우측은 심검당. 정면에 대웅전. 작은 마당을 중

앞산 뒷 바위 천만년을 가오리

“아빠, 정업원(淨業院)이 뭔 뜻이야?”

심으로 고졸한 앉음새.

歲辛卯 9月 6日 飮涕書 세신묘구월육일 음체서

“업이 정해진 사람이 사는 집.”

“아빠, 심검당(尋劍堂)은 뭔 뜻이야?”

신묘년 9월 6일 눈물을 머금고 쓰다

“그럼 구기(舊基)는 왜 붙은 거야?”

“지혜의 샘을 찾는 집.”

“정업원이 있던 옛 터.”

비구니의 세상. 조선 여인네들의 한을 풀어 주는 절.

창신역에서 내려 동망봉 터널 방향으로 가다 터널

이제 정업원구기 비문 보자.

종 복위. 1771년 영조는 청룡사에 정업원구기라는 어

어라 다갔네. ⓦ

진입 전 우측 고개로 100미터 올라가니 삼각산 청룡

↙ ↙ ↙ ↓

청룡사 정문 ↙ 정면의 대웅전 ↙ ↙ 좌측의 우화루 정업원구기 비문

글쓴이 이용재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경>의 기자 를 지냈으며,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거에 요』 『딸과 ,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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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희망이다 <건축인 30대의 꿈 03>

<Avril 2008> La Reve. Yume. Akira Kurosawa. 몇 년 만의 삼청동 길 — 세상에 이런. 빨간여우 2층, 아름드리나무들과 초파일 동그란 연등의 동석. 산, 어둠, 바람, 노란 연등, 연두색 초록, 사람들. 세상은 가끔씩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Avril 2008> sie : 이렇게 대낮에 차 마시고 산책한다는 것이 아직 믿어지지 않아요. 일 해 야 할 시간 땡땡이치는 것 같고 도태되는 것 같고 곧 굶어죽을 것 같이 불안하고. Hee : 네. 이런 것들, 우린 여유라는 것을 너무 어색해 하는 거 같아요. <Decembre 2007> 머리보다 느낌이 먼저인 거,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동하는 거, 머리보다 눈이 먼저 가는 거, 머리보다 발이 먼저 움직이는 거, 그런 거 한번은 하고 죽어야 할 텐데. <Juillet 2007> Hee님의 말 : 건축할 만해요? 우린 뭔가 틀린 선택을 한 것 같아요. 건축은 하나님이 만든 자연물처럼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아름다움을 담 은 사랑의 메시지. 산과 들과 나무를 볼 때 우리 눈에 거스른 것은 하나도 없어요. 건축은 나를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라 그런 숨겨진 메시지를 드러내게 하는 거라 생 각해요. 하지만 세상을 보면 목이 말라져요. sie님의 말 : 같은 옷이라도 당신이 입을 때, 제가 입을 때 그 옷은 달라 보일 겁니다. 그 옷과 그 사람이 새로운 조화를 이 루기 때문에 그 옷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Hee님의 말 : 하지만 그 옷은 같은 옷입니다. sie님의 말 : 물론 저도 공감해요. 건축은 어느 장소에, 어떤 이유에 의해 세워지든 누군가의 손 이전에 그렇게 되고 싶은 스스로의 욕구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물리적인 형태보다 보이지 않는 무엇들이 결국 건축이 아닌가 생각해요. 살아있고, 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 참 암담해질 때가 많아요. 어떻게 살아있게 할지에 대한 답과 현실, 노력, 능력. 비겁하거나 도망가기 싫어 버티지만 어 리석다는 생각이 들어요. Hee님의 말 :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가야지요. 선배는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의 신념이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sie님의 말 :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 친구가 있어요. 연락이 뚝 끊어져도 오해가 있어도 얼굴 보면 다시 제자리더라고요. 믿음 아닐까요. 오 랜 시간과 신뢰가 가져다주는. 제가 아는 당신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돈이나 이름보다는 기쁨과 희망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라면을 먹더라도. 건축은 충 분히 저를 즐겁고 살아있게 하는데 정작 저는 그걸 죽어가게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Hee님의 말 : 돈과 명예에 대한 선배의 마음을 의심하진 않아요. 마지막 졸업 모형을 쓰레기통에 주워 담으며 울던 선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나요? sie님의 말 : 네. 그 때 부수어 버린 모형들처럼 어쩌면 저의 신념은 다 부서져 버린 지도 몰라요. 스스로 망가뜨린 거죠. Hee님의 말 : 상처는 치료해야지 침전시키는 게 아니에요. 언젠가는 다시 올라오니까. sie님의 말 : 살면서 건축이 정말 절망스 러운 적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벌써 절망해 버린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직 절망할 만한 사건은 없었더군요. Hee님의 말 : Beaudouin씨 가 저보고 강해졌데요. 터프해졌다고나 할까. 싸우기 싫은데 싸움꾼이 다 되었어요. 이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열쇠를 가진 기분이었는데, 당당하고 싶은데 당 당하지 못해요. 저는 정직하기에 당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에게 그렇지 못해요. sie님의 말 : 아직 당당 운운하니 다행이네. 저는 당당이란 글자를 어떻게 쓰는 지 잊어버렸어요. 이번 projet가 마지막 projet입니다. 조만간 뭔가를 하지 못하면 그 노력으로 차라리 남자를 찾으려고요. 벌어다 주는 돈으로 마나님 노릇 한번 해 보게. Hee님의 말 : 왜 그렇게 궁상맞은 생각을 하세요. sie님의 말 : 그게 왜 궁상이야. 멋진 생각이지. 당신은 늘 너무 진지해서 흠이야. <Janvier 2007> 한번 미쳐보 고 싶은데 참 미쳐지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새 편해지는 대로, 그러다 어느새 도대체 너 정말 돌았구나. 똥 싸면서 신문 못 보고, 밥 먹으면서 뉴스 못 보는데, 참 정 말 짜증스럽다. 적당히가 주는 stress, 적당히 되려는 stress, 적당할 수밖에 없는 stress. 알량한 지식을 혓바닥으로 나불거리며 진실입네, 사랑입네. 미칠 수도 미치 지 않을 수도 없는 쥐똥 같은…. <Juin 2006> 건축가에게 있어 치명적인 오점은 상념이 많은 것이다. 명철한 두뇌와 정확한 판단력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절단-연 결해야 하는 외과의처럼, 절대로 벽에 머리 박는 일하면 안 되고, 건축주 말 잘 듣고, xx와 밀접히. 그래야 좋은 건축가가 되는 것이지. 잘 하고 있어, 크득크득크득. <Fevrier 2002> 나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튼튼하고 견고한 기초 위에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유로운. 나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집을 지을 때는 꽉 차서 숨이 가빠지 면 안 되지. 나무를 심을 마당을 두고 그 사이를 내가 여유롭게. ⓦ

글쓴이 sie 정수진은 프랑스 건축사로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Ecole d’Architecture de Paris-Belleville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현재 Architects & Partners edo 대표로 있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겸임 교수 및 아산시 건축 자문 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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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회현 제2시민아파트 이병일의 <블랙 앤 화이트 03> 남산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옛 도성 남쪽에 있는 산(남산) 북사면에 위치하며 이중 옹벽의 경계 안에 4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살고 있다. 과거 어진 선비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하여 회현(會賢)동으로 불리는 이 곳에 1960년 후반 서울시의 도시 미관 개선과 무주택 서민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시 민아파트가 시행되었다. 국^공유지가 많은 산비탈에 총 32개 지구 434개 동 17,365가구가 집중 건립되었고, 그 중 이 아파트는 시험적 모델로 중산 층에 맞추어 확장된 평수와 다양한 입면 구조, 중앙 집중식 난방과 개별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춘 고층 아파트(10층)로 탄생되었다. 1990년대 모 든 시민 아파트가 안전과 미관상의 이유 때문에 순차적으로 철거됨에 따라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시대적 삶이 그대로 묻어 있는 존 재로 가히 우리 시대의 초상이라 할 만하다.

사진가 이병일은 <건축세계>, <인테리어월드>, <건축인 poar>, <주부생활> 등의 사진기자를 거쳐 현재 <와이드>의 전속 건축 사진 작가로 있다. 가장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건축 사진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업 중이다. 건축 사진 전문 LEE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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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인 전문지 <Metropolis>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3>

↓ The First Issue 1981, July Design by Design HDQTRS (green, sustainable) ↓1984 June (high-end furniture)

↑ 1984 December

↑ 1985 October

↓ 1992 November (Carl Lehman-Haupt + Nancy Cohen) The best of design in New York City

↑ 1991 October

↑ 1993 November

↑ 1995 January

↑ 1999 November

← 2004 October

↑ 2001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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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December

↑ 2003 October (Criswell Lappin + DJ St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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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April (Criswell Lappin + Nancy Nowacek)

오래 전, 뉴욕에서 머물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나의 과거, 미래, 현재를 재검토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뉴욕 생활 초기의 흥분도 가라 앉고 뉴욕이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언제나처럼 무언가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갈증을 몹시 느끼고 있을 즈음 <Metropolis> 매거진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그 갈증을 해소시켜준 고마운 자료집이었다. 물론, <Metropolis> 외에도 <Detail>, <Wallpaper> 등의 잡지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나에게 <Metropolis>만큼의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Metropolis>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그들만의 스토리 라인이 있었고,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며 오랜 세월을 이어간 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지속가능한(sustainable)’, ‘그린 라이프(green life)’—요즈음 난무하고 있는 친환경에 관한—등의 주제와 관계된 건 축과 도시, 산업 디자인, 패션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가구 디자인, 조명 디자인 등 모든 디자인 분야를 차례대로 다루며 각기 다른 성격으로 그 주 제를 표현하고 사용하여 지속되었다. 나는 <Metropolis>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여러 분야를 다양한 시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그 관계 속에서 나 의 건축관 또한 변화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뉴욕 공대를 졸업하고 실무를 경험하면서 건축의 막연함과 나의 부족함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였다. 뉴욕의 갤러리와 뮤지엄을 모두 방문하고 세미나, 공개 강의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나의 상상 속에서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에 게 건축은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나의 건축 활동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했고, 건축과 또 다른 건축 — Paper Architecture, Visionary Architecture 등 — 사이를 이어줄 매개체가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해체주의(Deconstruction)와 같은 성행하고 있는 유행을 쫓자 면 그리 어려울 것은 없었지만, 내가 상상하고 있던 건축은 그들의 현란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세월을 보내며, 나에게 분명해진 것은 나의 범위 는 건축을 중심축으로 변화되는 주변 상황이라는 것이다. 건축을 제외하고는 다른 현상도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건축을 벗어 나고 싶은 한 차례의 열병을 앓고 난 후였다. 내가 처음 <Metropolis>를 찾은 것은 1980년대 말쯤으로 기억한다. 해체주의가 화두가 되어 있고, 팝 아트(Pop Art)가 오랜 세월을 버티며 뉴요커 들을 희롱하고 있던 시기였다. <Metropolis>는 1981년 7월 창간하여 2006년 25주년을 맞았으니 올해로 27살이 되었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인 전문 잡지로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표지 또한 정해진 작가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매번 표지 디자인이 기다려지곤 했다. 창간 호인 1981년 7월호는 Design HDQTRS에 의해 디자인되었고, 그 외에도 Carl Lehman-Haupt, Nancy Cohen, William Van Roden, Criswell Lappin, Nancy Nowacek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연이여 표지를 만들어 냈다. <Metropolis>를 지니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내심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의미가 요즈음은 ‘그림책’ 정도로 인식되어 본인도 후학들에게 잡지를 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었다. 분명 잡지도 정성 들여 만든 한 권의 책일진대…. 사진으로 가득한 잡지도 좋다. 사진 하나 없이 딱딱한 문장으로 모든 내용을 채워도 물 론 좋다. 주요한 것은 화려한 장식이나 현란한 말장난이 아니고 무엇을 전달하려는가 하는 의도의 확실성일 것이다. 분명한 주제를 정하고 그 주 제를 연결할 수 있는 모든 범위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독자들을 교육, 감동시킬 수 있는 잡지를 나는 원한다. ⓦ

글쓴이 박준호는 뉴욕 공대 건축공학과(B.S) 및 프랫 대학교 건축과(B.A, M.A)에서 수학했다. Robaina Architects에서 실무를 하기 시작하여 G.K Architects, Perkins Eastman Architects, S.N.S Architects & Engineers 등을 거쳤다. 귀국 후 도상건축, JPworkshop, BDB Institute(반디불 환경계획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 architecture studio medium, LLC, New York과 정림건축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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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목소리—알바로 시자 홀 임형남, 노은주의 <건축 만담 02>

no 자기 동일성 |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환

no 근대의 선봉 |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자연의 질서를 건축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심

경과의 교섭을 통하여 새로운 경험을 거듭하게 되므

근대가 왔다. 1990년대 초였을 것이다. 아돌프 로스

지어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 벽은 휘고 능선의 흐름

로 생각이나 행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는

의 이름이 깃발처럼 높이 내걸리고 금칙들이 세워지

대로 지붕도 휘고 집이 그냥 능청거리며 넘어간다.

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기는 언제나 과거의 자기

고 사람들이 갑자기 완장을 두르고 분주히 왔다 갔

그렇게 알바로 시자의 건축은 근본적으로 땅을 중

와 같은 자기이며, 또 내일이나 미래의 자기와 이어

다 했다. 뜬금없는 근대의 선봉에 선 것은 아돌프 로

시하고 재료의 물성을 중요시하는 건축이고, 획일

진다고 생각하여 점차 그 통합성을 굳히게 된다. 이

스뿐이 아니었다. 루이스 바라간이 나타나더니, 별

화되기 쉬운 보편성에 의한 건축을 추구하는 모더

런 경험이나 사실을 자기 동일성(自己同一性, iden-

의별 듣도 보도 못한 세상의 어중이떠중이 건축가들

니즘과는 확연하게 금이 그어진다. — 하지만 이름

tity)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정체성의 확립 과정에서

이 우리의 정신 세계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근대의

값에 비해 ‘거장’다운 능숙한 손길이 아쉽게 느껴지

보고 배울 역할 모델이 없거나 그 역할 모델이 영 시

정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때쯤이었을 것이

는 건, 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가 직접 와보지

원찮을 경우 큰 혼란이 오면서 정체성은 확립되지

다. 알바로 시자라는 이름을 처음들은 것은. — 어떤

못하고 멀리서 리모콘 스위치만 한 번 눌렀기 때문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

이가 마치 너 이거 아니? 하듯이, 마치 감추었던 주먹

일 것이다.—

끔 주변에서 어떤 때는 이런 사람으로 어떤 때는 저

을 펴보이듯이 그 생소한 이름을 들이댄 것이. —

im 느린 목소리 | 그의 공간은 재료의 순수성과 공

런 사람으로 마치 용기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바뀌

im 미안함 |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간의 순수성을 위해 공간과 매스를 순수 그 자체로

는 젤 타입의 물체처럼 변화무쌍한 사람을 보게 되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

만들어버린다. — 어찌 보면 미련하고 우멍해 보인

면, 본인은 몰라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당황스

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

다. — 마치 어떤 저항이나 자의식을 관장하는 뇌의

럽다. — 최소한의 자기동일성은 확립되어 있어야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중 서문에서. — 그렇다

한 부분을 제거당한 것 같이 밋밋하고 무감각한 느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예측을

면 루이스 칸의 님은 폐허의 원시성이고, 남명 조식

낌이다. 그런 표정과 색깔로 그의 건축은 느리게 코

하고 서로 간의 믿음이 생기는 법인데, 그런 것이 없

의 님은 지리산이고, 김중업의 님은 코르뷔제이고,

너를 돌아서 우리에게 온다.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다는 것은… 참으로 그렇다. —

근대 건축의 님은 아돌프 로스일까? — 미안하지만,

지역성, 혹은 포르투갈의 지역성일까? 정확히 어떤

im 공허한 근대 | 우리에게 근대라는 시간적인 테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알바로 시자에게는 미안했지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보다 보니, 그의 건축에 어떤 감

리가 그렇다. 우리 민족은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이

만, 나는 그를 보기도 전에 미리 그런 선입관을 가지

정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느려터지고 천

유와 불운과 못된 이웃들로 말미암아 근대라는 시

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

천히 걸어가는 그 뒷모습은 마치 늘 같은 옷을 입고

간을 건너뛰었다고 한다. 마치 청소년기를 거치지

을 들먹이는 사람들로 인해 이미 염증을 느끼고 있

늘 같은 이야기를 몇 십 년째 하는 고등학교 은사 같

않고 어린이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처럼 걸음걸이

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거의 10년이

다. 다만 머리에 서리만 내렸을 뿐 삼십년이 지나도

가 불안하고 성격이 불안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 지난 후였다. 미 자! (미안해 시자!)

늘 한결 같은…. 말을 무척 느리게 하는 사람을 하나

한 단계를 뛰어넘은 불안한 성장을 했다는 이야기

no 이벤트 | 2005년 안양 유원지 자리에 안목 있는

안다. 아주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를 주섬주섬 꺼내

인데, 그 말의 진위나 그 말 속에 숨겨놓은 악의를

시장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옷을 입혀 새 시대에 걸

서 펴 보여 주는데 아주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그

뛰어넘어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덩달아 우리의 건

맞는 안양아트파크라는 시민의 공간을 급하게 창조

러나 그의 말은 중요한 말이건 그냥 지나가는 말이

축도 근대란 없었노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해 낸다. 그 안에는 MVRDV의 전망대도 있고 핀란드

건 모두 경청을 한다. 모두 마법에 걸리듯 그가 이야

가 근대 건축이라고 이야기하는 건물들은 일본이 심

건축가 사미 란 탈라의 하늘 다락방도 있고 한 평 타

기만 꺼내면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심지어 전염병

어 놓은 국적을 알 수 없고, 양식을 알 수 없는 우악

워도 있고 기와 지붕으로 만든 공룡도 있고, 물고기

이 돌듯 그가 앉았다 일어나면 주변 사람들의 말투

스런 이종 교배가 이루어진 엉뚱하고 둔중한 괴체

의 눈물도 있다. 그 중 알바로 시자 홀은 그의 동료

가 점점 그와 닮아간다. 요란한 묘사도 없고 화려한

들이다. 그것은 단지 근대의 시간을 추억하게 만드

카를로스 카스텐헤이라와 그를 최초로 한국에 소개

치장도 없지만 사람들은 눈을 뗄 수 없고 깊은 무언

는 공간들일 뿐이다. — 그래서 우리의 건축적 성장

한 김준성이 매뉴얼 북을 착실히 읽어 가며 지어 낸

가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다만 말투

은 불안하고 위태롭고 슬프다. 마치 커다랗게 부풀

것이다. 이 건물은 알바로 시자가 지은 건물로는 아

일 뿐일지라도. ⓦ

어 접시위에 올려져 있는 공갈빵처럼 속이 비어 있

시아에서는 최초라고 한다. 이 건물은 미술품은 전

고 헛헛하다. —

시하는 갤러리이며 어느 방향에서도 모양이 다르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스튜디오 가온>에서 함께 일하는 부부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이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이자 1998년부터 10년째 설계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동업자다. 임형남은『나무처럼 자라는 집』 을 썼고, 둘이 함께『행복한 만남』 이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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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another D. 진효숙의 <시티 사파리언 03> 2007년 5월 봄바람 불던 어느날, 신사동 가로수길 한편에 자리한 another D. 정세영과 함께 하는 이들의 공간

사진가 진효숙은 <건축세계> 및 <이상건축>, 월간 <건축인 poar>에서 사진 작업을 했고, <건축문화>에서 두 권의 건축물 단행본 작업을 했다. 현재 <와이드>의 전속 건축 사진 작가로 활동 중이며, 건축 설계 사무소 및 인테리어 사무실들과 다양한 사진 일을 하고 있다.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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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의 ‘물결 푸른 풍경 만들기’ <도시동네 늬우스 03>

강진 읍내는 그저 평범한 지역 소도시의 모습

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읍내로 돌아오면 그냥

전문가들은 우선 장소의 회복을 우선 과제로

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을 적산 가옥부터

여느 ‘읍내’가 되어서, 모텔 간판들의 네온이

삼았다. 강진 고유의 것을 회복함으로써 도심

최근에 올린 분홍빛 아파트 몇 채까지, 모두 몇

반짝이는 것에나 도로 가에 주차된 차들이 빼

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시나리오로, 이를 통

분여 걸음 안에서 찾아진다. 분식점이며 옷가

곡한 것에 놀라다 곧 익숙해져 버리곤 한다.

해 물색된 첫 대상지는 군청과 중심 가로를 잇

게, 문구점이 늘어선 중심가로는 색색의 간판

그래서인지 여타 지방 도시들이 겪고 있는 문

는 길(동헌로) 위의 도서관 공원이었다. 강진

들로 익숙하고, 그 옆으로 뚫린 신작로는 갑작

제들을 강진 도심도 마찬가지로 안고 있다. 자

군립도서관과 함께 있는 도서관 공원은 강진

스레 커져 버린 비례로 휑하니 먼지바람만 일

동차 급증과 신시가지 형성에 따른 도시 구조

읍내의 유일한 근린공원으로 작은 규모지만

으키고 있다. ‘인구 감소 해결, 그 꿈의 기록에

변화, 구시가지의 공동화 등등. 주변으로 다 산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동네 어른들의 쉼터가

도전합니다’ 라는 슬로건의 군청 건물도 이 풍

이며 들이지만 도심은 점차 허름하고 삭막해

되는 곳이고, 예전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는

경의 다름없음에 곁점을 찍어, 끝내 경상도에

지며 자동차 위주로 부풀려지는 도시 구조에

기록이 있다. 이 곳의 옛 흔적을 복원하면서도

서도 충청도에서도 봄직한 풍경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오히려 갈 곳 없어 한다.

도서관과 연계된 문화 공간 조성을 위해 공원

소박하고 익숙하며, 참 특색 없다.

이러한 문제들의 문화적, 공간적 해결의 실마

내 물놀이가 가능한 장치 디자인과 동헌로를

강진을 이야기하자면 서울의 남쪽 360여 킬로

리를 위해 강진군은 최근 전문가들과 함께 ‘물

따라 흐르는 물길이 계획되었다. 하지만 문제

미터 떨어진 남해안의 소도시로 영랑 김윤식

결 푸른 풍경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

는 동헌로와 도서관의 쓰임에 따른 현실적 요

생가와 다산 정약용 18년의 유배지, 청자의 고

다. 강진 도심의 장소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민

구였다. 우체국, 문화회관 등이 늘어선 동헌로

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육지 깊숙이 밀고 들어

들과 함께 문화 공간을 조성하려는 취지로 <희

는 좁은 길이지만 자동차 왕래가 많은 편으로

온 강진만이 아름답고, 주변 백련사나 다산초

망제작소 도시공간연구소>가 연구 책임을 맡

물길 설치에 따른 교통의 불편을 누구도 원하

당에서 강진만을 내려 보는 경치가 빼어나며,

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일상 장소 문화 생활

지 않았다. 도서관은 강진 읍내 사설 도서관의

제주까지 배가 다녔다는 마량항은 미항(美港)

공간화 기획^컨설팅 사업’ 지원을 받았다.

전무로 24시간 열람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 강진 읍내 풍경 ↓ 충혼탑 광장 ↗ 충혼탑 광장 랜드아트 ↗↗ 김월식, 소통 놀이 기구 → 한계륜, 여러 곳에서 출발하여 한곳에 모이는 미 끄럼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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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이 때문에 공원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강력히

확장을 통해 도심 전체로 문화적 맥락이 이어

서기도 한다. 지원 사업도 문화관광체육부, 행

거부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조율 과정과 설득

지도록 계획되었다. 설치될 시설은 고창선 작

정자치부, 농업진흥청 등 다양하다. 하지만 전

이 있었지만 결국 새로운 대상지를 찾아보는

가의 ‘시선을 제시하는 의자’, 김월식 작가의

문가와 지역의 견해 차이, 지향점이 다른 문제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통 놀이 기구’, ‘거북이 의자’, ‘별’, 건축가

등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또 참여 전

그렇게 2차로 물색된 장소는 강진군청 뒤쪽,

서승모의 스프링클러 작업, 장지아 작가의 ‘운

문가가 건축가이면 건축 쪽으로, 미술가면 공

강진읍의 북산인 보은산 초입 작은 광장이었

동 기구와 어린이 놀이 시설’, 한계륜 작가의 ‘

공미술 쪽으로 너무 편중되어 계획되는 것도

다. 충혼탑이 서 있는 잔디광장은 강진읍 전체

여러 곳에서 출발하여 한 곳에 모이는 미끄럼

드러나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지역 만들기 프

를 조망할 수 있고 멀리 강진만이 내다보인다.

틀’ 등이다.

로젝트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건축의 역할에

동헌로, 군청 선상에서 작은 이야기들을 만들

이제 ‘강진 물결 푸른 풍경 만들기 사업’은 컨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

어 오다가 클라이맥스가 될 수 있는 장소로, 놀

설팅 단계를 마치고 실행을 준비하고 있다. 예

가 아닌 듯싶다.

만한 장소가 없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터

산 편성 등 어려운 과제들이 남아 있고, 전문가

* 강진 물결 푸른 풍경 만들기(강진군 / 희망제

가 될 수도 어른들에게는 가까운 산책로가 될

들의 제안과 지역민들의 견해 차이로 쉬운 과

작소 / 문화관광체육부)

수도 있는 위치였다.

정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

책임 연구 : 류제홍(문화학 박사), 유석연(건

작업은 젊은 건축가,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축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충혼탑 광장에는 야외

주민들 또한 도시의 공간적 문제에 대해 몸소

참여 작가 : 임종은(큐레이터), 고창선, 김월

극장이며 놀이 공간도 될 수 있는 랜드 아트

느끼고 해결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식, 서승모, 장지아, 한계륜 ⓦ

(land art) 형식의 작업이 공동으로 이루어졌

지금, 강진뿐 아니라 수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다. 또 작가들 각자의 작업이 광장 주변과 군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에 있다. 강진처럼 군이

청, 동헌로 한 부분까지 배치되어 이후 사업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주민이 직접 나

글쓴이 남소영은 경원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월간 <건축인 포아>에 입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 현재 프 리랜서로 활동 중이며,『시티스케이프(가제)』 란 제목의 책을 쓰고 있다.

WIDE DAILY REPORT 107


강화도에서 근대 건축을 찾다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3>

자료를 모으고 문헌을 뒤지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허전함을 채워 주는 것은 역시 답사다. 봄날의 따사로운 온기를 느끼며 강화 지역 의 근대 건축물을 돌아보았다. 강화도를 흔히 일컫는 말로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유적이 살아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른다. 강화도에는 그만큼 여 러 시대를 아우르는 유적이 허다하게 많고 근대 건축물만 해도 성공회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은 유명하다. 강화도에는 성당 말고도 시간과 공간이 중첩하는 과정에서 쌓이고 형성된 근대 문화 유산이 세상의 눈길을 피해 조용히 남아 과거를 반추하고 있다. 강화도의 다른 곳에 전통 건축의 미 학이 있다면 강화 읍내에는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근대 건축의 미학이 자리를 틀고 있다. 비록 오래된 세월 속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철 창은 녹슨 채 방치되어 있지만 그조차 시간이 남기고 간 삶의 편린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강화도의 직물 산업과 관련된 근대 건축물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강화도에서 직물 산업이 발전한 것은, 강화도의 대표적 인 공예품이던 화문석을 만들어 내던 강화인들의 야무진 솜씨로 볼 때 그 시원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 경기도에서는 강화군에 산업기수를 두어 직물업을 장려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경기도는 강화직물협회에 1910년부터 1929년까지 8,414원 의 보조금을 지급하였는데, 이는 당시 경성직물조합에 이어 경기도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보조금이었다. 강화도 직물 산업의 경쟁력은 우리 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인조견 회사인(동아일보, 1935년 8월 16일자) 조양방직주식회사가 설립하는 바탕이 되었다. 강화 지역의 대표적 지주 가운데 하나였던 홍재묵이 세운 조양방직은 1936년 3월 31일 강화읍 신문리 588번지에서 설립과 동시에 공장 건 축을 시작했다. 그 해 9월 2일에 공장 건물을 준공하기에 이르렀으며, 조업은 9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매일신보, 1936년 9월 2일자) 초기에는 직 조기 15대를 설치하고 인조견을 생산했지만, 이후 공장의 증축과 기계를 증설하여 연면적 2,314.1㎡의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노가미식 직조기 30여 대를 갖추었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인조견은 외국산에 비해 품질이 좋아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에까지 수출되었고 연간 매출 목표액은 50만 원 에 달했다.(동아일보, 1937년 7월 1일자) 강화 지역의 직물 산업은 해방이후에도 이어져 강화 지역의 대표적인 직물 회사였던 심도직물의 경우에는 전성기 때 연간 매출액이 61억에 달하기도 했으며, 이화직물 등 크고 작은 20여 개의 직물업체가 성업을 이루었던 곳이다.

←조 양방직 사무소 정문, 지금도 이 건 물에는 강화직물협회 사무실이 입주 해 있다. ↗ 조양방직 사무소, 이 곳에서 보는 느 낌은 사무소보단 일본식 주택의 모습 에 더 가깝다. → 조양방직 공장, 톱날 지붕의 형식이 그 대로 남아 있는 전형적인 방직 공장 건 물이다. → → 조양방직 공장 내부, 일제 강점기 이 곳에는 노가미식 직조기 30여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 → → 조양방직 경비실, 정면의 처마 를 길게 내밀어 사원들이 이곳을 경유 하는 동안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도 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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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강화도에는 성공회 강화성당을 비롯해 지금도 많은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강화읍에만도 9개가 있다. 조양방직 공장 및 부속 건물, 김참판 댁, 강화예식장 등은 규모나 형식에서 충분히 가치를 인정할 만한 건축물이다. 이외에도 혹독한 세파를 견디지 못하고 멸실된 건물도 많다. 주말 이면 강화도를 찾는 사람들로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넘쳐나는 반면, 강화읍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더구나 강화도가 가 진 강한 이미지 탓에 이 곳에서 근대 건축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읍내에서 강화도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간직한 흔적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래 표는 <강화 지역 현존 주요 근대 건축물> 리스트다. ⓦ

명칭

위치

건립 연도

특징

현재 상태

성공회 온수리성당

길상면 온수리 505-3

1898년

한양절충식 단층, 164.92㎡

성공회성당

성공회 온수리성당 사제관

길상면 온수리 505-7

1898년

전통살림집형식 단층, 126.46㎡

사제관

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읍 관청리 422

1900년

한양절충식단층, 116.13㎡

성공회성당

교동교회

교동면 상용리 518

1900년

전통살림집형식 단층

교회

성공회성당

서도면 주문도리 718

1906년

한양절충식 단층, 목조, 136.52㎡

강화 서도 중앙교회

강화양조장

강화읍 신문리 205-1

1934년(?)

일본식 목조 2층, 1931년5월31일 설립(관청리146번지)

강화양조장

조양방직 공장

강화읍 신문리 588

1937년4월15일

톱날지붕 단층, 홍재묵 설립(1936년3월31일)

공가

조양방직 사무실

강화읍 신문리 588

1937년4월15일

목골회벽조, 일본주택형식 2층

강화직물협회 및 친목단체 사무실

김참판고택

강화읍 신문리 370

1930~~40년대

한일절충식 중2층

주택

간촌고씨댁

송해면 솔정리 337

1941년

목조 단층, 322.62㎡

주택

강화예식장

강화읍 관청리 555

일제 강점기

목골회벽조 단층

상점(불교용품점)

이화직물 공장

강화읍 관청리 569

해방 이후(?)

남궁 형 설립

공가

이화직물 사무실

강화읍 관청리 569

해방 이후(?)

벽돌조(?)

상점(강화슈퍼)

글쓴이 손장원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로 있으며, 인천광역시 문화 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다시쓰는 인천근대건축』 『건축계획(공저)』 , 등이 있다.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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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 주택 신축 설계 | 최종훈 < 주택 계획안 100선 03>

모형 ↑ ↑↑ ↓

↑ site plan ↑↑ outdoor wall ele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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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 기존 건물 ↙↓↘ 계획 과정

와이드 | 건축의 배경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

주 강정동 주택 프로젝트는 계획으로 끝났고,

지 않도록 최소의 비용을 제안하였습니다. 하

시기 바랍니다.

현재 상도동 주택은 공사 중에 있습니다. 파주

지만 건축주는 조금 부담이 되는 듯하는 느낌

최종훈 | 의뢰인은 저의 대학 미술 동아리 친

열화당 증축 설계에 주거 부분이 있는데 설계

이었습니다. 이런 곤혹스러움은 동시대 많은

구입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 너무 노후하

를 마치고 지금 막 공사를 시작하였고요. 이전

건축가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마음이라고 생각

여 집을 수리하면서 생활하는 데 지쳐 있는 상

에 근무하던 사무실(M.A.R.U/김종규)에서 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규모 주택에 대한 건

황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건

이리와 파주출판단지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

축사협회의 용역 대가 산정 방법은 문제가 있

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 부부의 어쩔

한 경험이 현재 주택 설계를 진행하는 데 도움

어 보입니다.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 되고 있습니다.

와이드 | 대지의 현황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

와이드 | 의뢰인이 주택 설계를 맡기게 된 동

와이드 | 이번 주택에서 설계 계약 시 요구된

기 바랍니다.

기는 무엇인가요?

사항은 무엇인가요?

최종훈 | 대지는 완만한 경사의 산동네라고

최종훈 | 배경이 좀 엉뚱합니다. 처음에 의뢰

최종훈 | 의뢰인이 지인이다 보니 일반적인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작고 완만한 산에 주택

인은 주택 박람회를 구경하면서 스틸하우스

설계 계약이라는 행위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들이 밀집하여 들어서 있는 지역입니다. 의뢰

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틸하우스에 대하

특별한 요구 사항은 없었고 유일한 요구 사항

인의 주택처럼 지붕이 있는 오래된 단층 주택

여 자문을 구하려고 저에게 전화 연락을 해왔

은 건물을 잘 지어달라고(설계를 해 달라는 것

들과 새롭게 들어선 4층 정도의 다세대, 다가

고, 제가 설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친구와 그

이 아니라) 했고, 저희는 바로 설계를 시작하

구 주택들이 혼재하여 들어서 있습니다. 도로

가족이 기성재 건물보다는 편안한 맞춤복 같

였습니다.

는 좁고 굴곡이 있어서 차랑 진입이 어려운 환

은 집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와이드 | 설계비는 어떻게 산정하셨나요?

경입니다.

와이드 | 주택 설계 의뢰는 자주 받는 편인가

최종훈 | 아주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와 의뢰

와이드 | 건물이 도로에 가까이 배치되어 있

요? 몇 번의 설계 경험이 있나요? 모두가 다 지

인이 가까운 지인인 경우는 일반적으로 설계

는 의도는 무엇인가요?

어졌나요?

비를 산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도동

최종훈 | 건물을 배치하기에 대지는 여유가

최종훈 | 사무실을 시작한 지 만 3년이 조금

주택의 경우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

있었습니다. 따라서 건물 배치에 대한 여러 가

지났고 세 번의 설계 제안이 있었습니다. 제

가 됩니다. 사무실 입장에서 의뢰인이 부담되

능성을 검토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존 건물이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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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 floor plan ↓ second floor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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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있었던 그 자리에 다시 들어서는 것이 좋겠다

와이드 | 주택 설계, 일반적으로 어떻게 접근

에 신뢰가 생기면 편안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가꾼 정원을 건드

하시나요?

계획적인 설계를 진행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시

리지 않고 익숙한 풍경과 생활 환경을 유지하

최종훈 | 아주 상식적인 접근을 합니다. 주변

도와 치밀한 계획이 가능합니다.

도록 하는 것이 배치의 의도입니다.

대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의뢰인의 요구 사항

와이드 | 설계 변경 과정이 많이 있었는지요?

와이드 |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 거주 문

을 가능한 많이 들어 봅니다. 요구 사항이 없으

최종훈 | 크고 작은 변경이 있었습니다. 설계

화 지향적인 세태임에도, 이 주택의 건축주가

면 선호하는 재료라든지, 취향 등을 물어 보기

변경은 건축주 요청에 의해서 변경된 것이라

단독 주택을 선호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었

도 합니다. 의뢰인과 가능한 많은 미팅 기회를

기보다는 feasibility study 과정에서 근본적

나요?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건축

인 큰 틀의 변화가 몇 번 있었습니다.

최종훈 | 몇 년 전에 건축가와 건축과 교수들

가가 살 집이 아니라 의뢰인과 그 가족이 살 집

와이드 | 이번 주택의 경우, 재료의 재활용이

이 아파트에 사는 비율을 조사한 설문을 본 적

이라는 것입니다.

란 측면이 눈에 띕니다. 구체적으로 소개를 해

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와이드 | 주택 설계에 있어서 건축가의 전형

주세요.

기억합니다. 그만큼 아파트에는 편리한 장점

이 실험되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

최종훈 | 기존 주택은 벽돌과 기와로 만들어

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파

나요?

진 집입니다. 새로운 집을 만들지만 의뢰인이

트를 선호한다는 것은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최종훈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이라는

오랫동안 살아온 집에 대한 추억(흔적)을 남

아파트를 선호한다기보다는 주택을 지을 수

말보다는 건축가의 새로운 시도라는 말이 좀

겨 놓고 싶었습니다. 벽돌은 외부 바닥 패치

있는 땅이 없기 때문이겠죠. 집을 짓는 비용의

더 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건축주의 이

(patch)로, 기와는 담장으로, 해제 과정에서

몇 배나 하는 대지 구입비가 주거 선택의 기회

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나온 들보(목재)는 가구나 대문 등에 활용을

를 적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와이드 | 주택 설계 시 가장 중요시하는 단계

하려고 합니다. 건축 폐기물을 줄이고 공사비

많은 사람들이 아담한 정원이 있는 단독 주택

혹은 과정은 무엇인가요?

를 절감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을 선호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을

최종훈 | 주택 설계뿐 아니라 모든 프로젝트

와이드 | 설계에 반영된 범위, 즉 가구 디자인

지을 땅이 있었던 건축주가 단독 주택을 선택

가 그러하지만 의뢰인과의 초반 대화가 중요

및 선정, 조명 기기 디자인 및 선정, 기타 가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뢰인과 건축가의 관계

제품 및 욕실 부품, 하드웨어 등에 이르기까지

↑ 내부 모형 ↗ ↗↗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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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 south facade ↓ west facade

↑ section 1 ↓ section 2


선정 품목에 대한 건축가의 가치 판단 기준을

최종훈 | 대부분 일반적인 재료를 사용하였습

살고 싶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말씀해주세요.

니다. 3대 질환(아토피, 비염, 알레르기)이 있

아이들의 꿈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해서 2층으

최종훈 | 저희 사무소는 설계 도서 중 재료 및

는 아이들을 위하여 친환경 인증 제품을 부분

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초기 계획안인 단

제품 지정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물에 사용

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외부 목재널은 이번

층의 루프 하우스(roof house) 개념과 순수한

되는 모든 재료, 제품, 시스템 등을 통합하여

주택에 제한된 공사비 때문에 처음 사용한 재

조적조(벽돌이 내부 마감과 외부 마감, 구조의

정리한 문서입니다. 재료 및 제품 지정의 주된

료입니다. 목재 회사에서 목재를 제재하고 남

통합적 역할을 하는)를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

목적은 계획 및 디자인 의도를 시공자에게 정

은 목재를 아주 작은 폭으로 제재한 재활용 개

한 약간의 섭섭함이 있습니다.

확히 전달하고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며, 가치

념의 목재입니다. 수종이 섞여 있어서 ‘멀바우

와이드 | 이번 주택 설계를 통해 경험된 내용

판단 기준은 계획 의도에 적합한지, 가격은 합

외 다수종’이라는 독특한 명칭의 시방을 사용

중 특기할 만한 사건 혹은 그에 준하는 이야기

리적인지, 품질은 안정적인지를 검토합니다.

하였습니다. 적삼목의 1/6 가격으로 저렴합니

거리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와이드 | 실내외 재료의 선정에 대한 건축가

다.

최종훈 | 설계와 시공 계약 과정에서 철근 및

의 기준은 무언가요?

와이드 | 국내외 다른 건축가의 주택 작품 중

건축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여 건축주, 시공자

최종훈 | 특히 주택에서는 자연 재료와 친환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이며 왜 그런지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건축을 포기

경 재료를 가능한 많이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

말씀해 주세요.

하거나 계획을 전면 재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런 의도에 대하여 대부분의 건축주는 원칙적

최종훈 | 특별히 선호하는 주택 작품은 없습

었습니다. 현재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공사를

으로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적

니다. 동시대 건축가들이 새롭게 시도하는 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용하기에 앞서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택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료의 단순

와이드 | 계획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

한 사용과 새로운 재료 사용에 관심을 가지고

지요?

있습니다.

최종훈 | 초기 계획안은 단층으로 계획되어

와이드 | 이번 주택에서 특별히 사용된 재료

있었습니다. 원래 있었던 건물(단층)처럼 있었

가 있는지요?

으면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2층에

상도동 주택 건축 개요 대지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204-116 | 지역 지구 : 도시 지역, 제2종 일반 주거 지역(7층 이하), 대공 방어 협조 구역 | 용도 : 단독 주택 | 도로 현황 : 전면 4m 도로에 21.95m 접함 | 대지 면적 : 원대지 면적_536㎡, 도로 후퇴선 제외 면적_530.71㎡ | 건축 면적 : 121.27㎡ | 건폐율 : 22.85% (법정 : 60%) | 연면적 : 190.09㎡ | 용적률 : 35.82% (법정 : 200%) | 건물 높이 : 7.15m | 규모 : 지상2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주요 외부 마감 : 목재널(잡목), 노출 치장 콘크리트(유로폼 노출) | 주요 내부 마감 : 친환경 페인트, 벽지, 원목 온돌 마루 | 주차 대수 : 1대(법정 1.4대)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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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tail

건축가 최종훈은 1968년 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정림건축, SIA, M.A.R.U에서 경력을 쌓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N.I.A를 운영하면서 한 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과 파주 <좋은 생각>을 공동으로 수행한 바 있으며, 현재 내곡동에 <Wine House>를 작업 중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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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나 자신을 알자 건축계 바깥을 넘보는 젊은 건축인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 <플래너 03>

연습장을 꺼내라. 위에서 아래로 다섯 칸을 만들어

할 수 있을 것인가만 판단하고 떠나고를 반복했다.

다. 자신을 건축가로 소개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도

서 1부터 5까지 숫자를 적어라. 자, 이제부터가 진짜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 몇 천, 몇 억

록 교육받은 그들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

다. 그것을 항상 들고 다녀라. 그리고 사람들을 만

을 받으며 했거나 하고 있는 평이한 프로젝트와 결

방불명>에 등장하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가오

날 때마다 물어라. “나라는 인간에게 몇 점을 주시겠

과물을 보면서, 솔직히, 살짝, 세상살이에 회의가 들

나시’라는 캐릭터처럼 그저 어느 건축가나 설계 사

소?” 모두 합한 평점이 4점이 넘으면 나는 당신이 자

때도 있었다.—물론 그것이 나의 짧은 생각이라는

무실의 직원으로 존재감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

신의 길을 가겠다고 우겨도 말리지 않을 것이다. 그

것을 아는 분은 다 아실 것이다.—왜 기회는 언제나

런 한편,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기 위해 공모전 같은

리고 평점이 3점이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

내가 준비되지 않은 부분만 체크하고 가버릴까? 그

것에 남은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지 생각하고 훈련을 더 하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평

러다가도 우연히 기회와 능력이 맞아서 성과를 낼

것처럼 능력은 세상에 나서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

점이 2점 이하라면, 내가 굳이 친절하게 조목조목 따

때도 있었다. 세계디자인수도 제안서 작업이 그랬

어야 할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정말 건축계 바깥을

져가며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더라도 본인이 알아서

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기회라는 녀석이 그

넘본다면, 젊은 건축인들이여, 거울 앞에 서라. 그리

사업 같은 거 안 하는 게 좋다. 자신만의 일을 찾아가

때만큼은 내가 준비된 부분을 물어왔고, 아시다시피

고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그 모습을 만

는 것은 말 그대로 모험이고, 흔한 액션 어드벤처 영

이제 서울은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다. 물론 이 일

들어 준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라. 단지 일상과의 싸

화에서 보듯 모험은 주인공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은 기회와 나의 능력이 우연히 만나서 꽃을 피운 것

움에 지쳐 다크써클이 눈 밑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생각해보라. 주인공인 프로

처럼 보이지만, 그 전에 이 일에 나를 떠올려 준 누군

자신의 모습만 거울에 남았다면, 당신은 그냥 그 곳

도 이외에도 그와 모험을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떠

가가 가능성의 씨앗을 먼저 심은 것이라고 할 수 있

에 계속 있어야 할, 아주 체질인 사람이라고 나는 확

오를 것이다. 당신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인생—는

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인연의 끈을 이어 준

신할 수 있다. ‘너’ 없이 ‘나’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지

어떤가? 혹 캐스팅이 빈 곳은 없는가?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일이란 결

못하고 끝없이 자신의 내면과 싸움으로 시간을 보낸

제발 너 자신을 좀 알고 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

국 능력 이전에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

다면 결과는 뻔하다. 당신은 가급적 바깥을 넘보면

는 그것이 나 자신의 능력에 관한 얘기인 줄 알았다.

니, 일이란 능력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안 되는 진정한 예술가 타입이다. 사람들을 섬기는

언제나 기회는 급작스럽게 찾아왔고, 그것은 늘 ‘지

건축계에서 젊은이들이 능력을 꽃 피우는 경우를 보

게 완전히 몸에 배기 전까지는 무슨 일을 해도 깨지

금 당장’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만 묻고 떠나곤 했

기 힘든 것은 제도 등 환경이 척박한 탓이 크다. 하지

게 마련이라고, 어머님께서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누구나 그런 것처럼 나는

만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익부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나의 능력이 얼마까지인지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규명하는데 처

빈익빈 현상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

아는 것보다, 나의 곁에 누가 있고 그들에게 얼마나

음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결과는? 시간만 보내고 있

의 모든 젊은이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피할 수 없는

감사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이제는 말해도

었다. 세상은 내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따위에는 관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말 문제는 건축하는 젊은이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밝고 활기차게,

심이 없었다. 여전히 세상은 그것을 지금 당장 활용

의 내^외부적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세상과 소통하자. 젊고 젊은 건축인들이여! ⓦ

글쓴이 이중용(JINO)은 내러티브(narrative) 컨설턴트로 젊은이로서의 가능성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내러티브네트웍스’의 멤버이다. 현재 디자인티비(주) 이사를 지내고 있기도 하다. http://www.imagenarrative.com ; imagenarrativ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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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회고록^전기^작품 세계^노트 <와이드 書欌 0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을유문화사당 발행 «렘 콜하스의 건축», 시공문화사 발행 «희림, 仁堂 이영희 회고록», (주)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발행 «차운기를 잊지 말자», 간향미디어랩 발행

건축가의 생애를 다룬 책이 이 달의 와이드 서장을 장식한다. 우선은 전기(傳記)물과 회고록(回顧錄)으로 국내외 건축가를 다룬 두 권의 책『프랭 크 로이드 라이트』 『희림, , 仁堂 이영희 회고록』 을 선정했다. 그리고 건축가의 작품 세계를 다룬 두 권의 책『렘 콜하스의 건축』 『차운기를 , 잊지 말 자』 를 선보인다. 고백하거니와 네 번째 책은 서장지기 임의로 발행 시점이 꽤나 지난 것을 끼워 넣었다. 형식의 차이와 담긴 내용의 질적 차이를 판 단하려는 의사는 애초에 지웠다. 그보다는 이 같은 유형의 건축 책이 출간되는 과정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기획과 집필, 출판과 반응 등등. 더 많 은 종의 탄생을 기대하는 뜻과 책을 짓는 이들에 대한 환기가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종인 님이 번역한『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를 저술한 작가 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Ada Louis Huxtable) 은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 비평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1921년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 시립대 헌터 칼리지를 졸업했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현대미술관(MoMA)의 건축 디자인 부문 큐레이터를 지냈으 며, 1963년에는 <뉴욕타임즈> 최초의 건축 비평가로 임명되어 1982년까지 활동했다. 1970년 퓰리처상 비 평 부문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그들이 과연 브루크너 대로를 완공할 수 있을까?_Will They Ever Finish Bruckner Boulevard?』 (1970),『최근에 건물을 발로 찬 적이 있습니까?_Kicked a Building Lately?』 (1976), 『누구나 건축을?_Architecture, Anyone?』 (1986),『비현실적인 미국 : 건축과 환상_The Unreal America: Architecture and Illusion』 (1997) 등 10여 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현재 <월스트리트 저널>에 건축 평론을 기고하고 있다. (보도 자료, 을유문화사) 전기적 구성의 책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연대기를 좇으며 건 축가의 생애를 밀착 취재한 결과를 보여 준다. 건축가의 키가 172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비교적 단신이었다 는 사실 확인으로부터 건축가의 비정상적인 여성 편력에 이르는 한 인간의 스펙터클은 가공되지 않은 리 얼 스토리로도 장편 소설의 극적 연출력을 능가하는 흥미를 돋운다. 더불어 건축가 라이트의 작업 세계가 어떤 계기로 변화하는지 구체적 정보를 동원하여 읽는 맛을 더하고 있다. 항상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휴대 한 라이트의 의도된 패션 스타일과 성공한 건축가의 뒷담화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쓰디쓴 절망의 합인지를 이 책은 소상하게 전달해 준다. 영화 <Fountainhead>의 주인공 하워드 록으로 분한 훤칠하니 잘생긴 배우 게리 쿠퍼(원작자 아인 랜드는 이 소설의 주인공[역할 모델]으로 라이트를 설정하고 여러 차례 그와의 만남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퇴짜 맞은 기억을 갖고 있다. 그녀의 소설과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친 후에야 라이트는 하 워드 록과 자신이 동일 인물일 수 있다는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때문에 라이트 또한 그만큼 크고 멋쟁이였을 것이라는 환상에 쉽게 젖는 것이다. 생각보다 작은 체구만 제외하고 그는 시대를 리드하는 멋쟁이였음엔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의 강점은 라이트의 전기를 다루는 것이지만 그 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건축 혁명의 시대를 조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현대 건축의 아침을 깨우는 숱한 사건과 때론 대립각을, 때론 친화하는 그의 기벽과 날카로운 재치와 몰염치함을 겸비한 라이트의 생존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면 당신은 필시 원작자가 적시했듯 ‘괴짜’와 ‘천재’의 극점을 오가는 건축가로서 라이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김원갑 교수의 집필로 빛을 본『렘 콜하스의 건축』 은 저자 자신의 건축 연구의 깊이를 재는 바로미터로서 위험 부담을 딛고 출간한 책이다. 그만 큼 연구자의 자신감이 넘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김원갑은 1959년 서울 생으로 홍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공학 박사이며 현재 경 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메트로폴리스 : 아방가르드 예술과 건축에 관한 13가지 주제』 (열린책들)를 냈다. 사 실 김원갑의 존재는『정신 착란증의 뉴욕』 을 번역하면서부터 건축판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그가 편저한『광기와 밀집 문화의 건축』 『건축과 , 해체』등을 섭렵하며 렘 콜하스 건축의 세계를 밀착하여 들여다보는 과정을 지나온 것이다. 그의 또 다른 번역서『건축과 유토피아』 『러시아 , : 세계 혁명을 위한 건축』 『이야코프 , 체르니코프의 건축적 환상』등의 자료 집적을 통하여 현대 건축의 새로운 모델로서 렘 콜 하스를 정위시키는 준비를 해온 턱이다. 렘 콜하스는 2000년 4월에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대중적 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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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누리는 최고의 국제적 스타 건축가 렘은 건축 상인의 전통을 구축해 가는 네덜란드 출신이다. OMA와 AMO 의 리더로서 렘의 작업은 특별한 궤적을 그려 왔다. 저자는 렘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 1981년 봄을 떠올리 며 그를 연구 소재로 삼게 된 각별한 인연을 서문에 담았다. 렘의 초기 실험부터 현재의 작업에 이르기까 지 시대적으로 각각의 분석을 하여 12개의 장으로 정리를 했다. 렘 콜하스의 성장 배경과 데 스틸, 구성주 의의 영향, 맨해튼에 대한 비판적 저널리즘의 강수를 내민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 도시와 문화에 대 한 탐색, 그의 건축에 수용한 현대 물리학과 철학적 배경 등에 대하여 짧지만 끈질긴 탐구가 180여 컷의 자 료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이영희 선생의 회고록『희림』 은 건축가로서 칠십 평생을 살아온 한 개인의 대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책이다. 이 같은 류의 회고록은 곧 잘 대필자에 의해서 작업이 진행되는데 이 책은 이순학이라고 하 는 무명의 필자에 의해서 기획부터 집필까지 그리고 책의 디자인 및 제작에 이르는 쉽지 않은 전체 공정이 맡겨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필자는 30대의 북 디자이너로서 밤에는 록카페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짧지 않 은 기간, 건축가의 삶과 공간에 밀착하여 타인의 인생을 정리하는 귀가 되고, 입이 되고, 손이 되는 이 같 은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낯선 독자들도 있겠지만 건축판에도 이러한 방법론이 도입되어 유용되는 것이 관 찰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이영희 선생은 국내 최고 규모의 설계 집단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수장으로 서 국가 발전의 한 축을 견인한 건축 전문가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김희춘건축연구소와 김중업 건축연구소에서 건축 실무에 입문하고 적응하던 건축 임상기를 지나 1970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선산의 일부를 매각한 돈으로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된다. 희림(熙林)은 울창한 숲을 뚫고 떨어지는 밝은 빛을 의미 한다. 건축 행위로 온누리에 빛을 밝힌다는 뜻이 배어 있음이다. 군사 정권의 엄혹한 환경과 중앙 집중적 권력의 비호 아래 진행된 건설 입국의 국가 비전에 동승한 그는 살벌한 건축 경쟁의 현장에서 단단한 건축가로 담금질되며 성장하게 된다. 격변 의 시대에 존재감을 잃지 않고 경영성과로 빛나는 설계 사무소의 기업 문화를 키워 온 그의 배경을 전달하면서 회고록은 이영희 선생의 건축관과 건축업적 및 현재의 희림으로 발돋음하기까지의 많은 시공간을 뒤돌아보는 편집 체계를 갖추고 있다. 회고록은 일면 화자의 일방적인 정보를 담 아 내는 기록집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건축하는 후배들에게 ‘성공한’ 건축 선배의 지난한 성장 과정을 간접 경험하는 매 체로서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중용 님의『차운기를 잊지 말자』 는 솔직히 서장지기가 발행해 오고 있는 ‘AQ 북스’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으로 2005년에 출간되어 아직까지 1쇄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불운한 책이다. 저자 이중용은 현재 <와이드>의 고정 필자로 ‘건축계 바깥을 넘보는 젊은 건축인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 <플래너> 연작’을 써오 고 있는 기대되는 젊은 기획자며 작가다. 최근 내러티브 컨설턴트라는 직함으로 ‘이미지네트웍스’ 창립과 멤버십을 통하여 건축과 세상의 통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1974년 경북 생으로 부천대학 건축과를 졸업하 고 세종대학교 건축과에 편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책에 소개된 자술서를 보면 막노동, 공장, 웹마스터(빌딩넷), 잡지사 기자(C3korea), 설계 사무소 스태프 등을 거치며 건축에 대한 독특한 애정 표현을 구체화시켜 오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잡지사 기자 시절에 청탁되었던 것인데 그가 집필에 동의한 여 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확실해 보이는 것은 건축가 차운기에 대한 정보 부재가 그이 특유의 관찰 대상 으로 취재 및 집필의 욕구를 자극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저자는 다니던 잡지사 기자직을 던지고 이 책의 준비와 완성을 위하여 용감한 일탈을 감행했다. (이 점은 지금껏 의뢰인인 서장지기의 마음을 불편하 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6개월 남짓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라도로 건축 잠행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가 찾아 나선 여행의 길에서 주운 엽편 같은 ‘차운기와 그의 건축’의 이야기 소재들이 책의 중심을 이루고 있 다. 사실이지 취재 관련하여 저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사진과 글 작업을 병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 의 한계와 저자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책 편집의 마지막 단계에서 부제로 떠올린 ‘무규칙 토종건축가’라는 명호에 대하여 그가 전적 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가 차운기 건축의 궤적을 통하여 지도화한 전후 문맥에서 발견한 것이었기에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기 억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잊혀진 건축가 차운기는 잠시간이나마 우리 건축판에 다시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생전에 이룩한 건축의 흔적들은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더욱 자극적이며 진취적 기상으로 각인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는 특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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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인도 <20대의 건축 여행 02>

↙ 뭄바이 나리만 포인트 해변 ↘ 찬디가르 넥찬드락 가든, 폐기물을 사용한 친환경적 정원 ↓↓ 찬디가르 넥찬드락 가든 → 암리차르 황금사원 → ↘ 자이살메르 낙타 사파리 첫인상 | 총 여행 기간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 졌다. 인도 여행을 이미 다녀온 지인들의 충고와 인 터넷에서 떠도는 인도와 관련된 갖가지 피해 사례를 염두에 둔 채, 2008년 1월 5일 그렇게 인도를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 한밤에 도착한 뱅갈로르 국제 공항 은 인도를 단순히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 없음을 인지시켜 준다. 공항은 거의 우리 나라 시골 버스 터미널과 유사한 광경이다. 공항 밖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여행객을 등치려는 릭샤(삼륜 택시) 운전수들과 빽빽이 끼어든 차량과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 후각 세포를 매섭게 공격해 오는 매연과 악취 들. 아직까지도 기억되는 인도의 첫인상이다. 인도 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철저 히 깨졌고, 일찌감치 기대를 접고 인도의 있는 그대 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도시화의 잉여물 | 뱅갈로르에서 하룻밤을 묵고 기 차로 장장 14시간여를 거쳐 들른 곳은 인도의 최대 상업 도시 뭄바이다. 뭄바이는 영국인들에게 인도 점령의 기착지가 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뭄바이에서 유명한 꼴라바 거리 주변에는 영국식 건축물들이 즐 비해 있다. 유럽의 도시와도 비슷한 분위기다. 이튿 날 뭄바이의 중심 상업 지역이라 불리는 나리만 포 인트로 향한다. 이 곳은 여느 나라의 중심가와 다르 지 않게 고층 빌딩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 리만 포인트는 바다와 바로 접해 있어 그 경치를 만 끽하기 위해 외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그 곳 에서 의외의 광경을 접하게 된다. 고층 건물 바로 옆 으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설프게 벽돌로 쌓아 올린 빈민가들이 해안과 맞닿은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강물의 퇴적물들이 하구의 바닷물과 만나 삼 각주를 만들어 내듯, 도시화의 잉여물들이 퇴적되어 있는 형상이다. 인도 최고의 도시, 뭄바이의 고층 빌 딩들을 마주한 빈민가의 주거들은 뭄바이의 아이러 니한 상황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을 도시 경관에 저해되는 쓰레기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너무도 섣부른 생각일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아이 들에게 몇 자루의 볼펜을 건네고 훗날 그들에게 펼 쳐질 긍정적인 미래를 떠올려 본다. 오픈 핸드 | 뭄바이에서 아메다바드, 델리를 거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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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3 : may-june 2008


른 곳은 건축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

물들은 당시 건축인으로서 황혼기였던 코르뷔지에

을 제공해 만든 황금 사원이 위치해 있다. 인공으로

을 만한 도시인 인도의 찬디가르이다. 이 곳은 파키

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조성된 정방형의 연못위에 본당이 자리하고 있고 그

스탄의 분리 독립으로 인해서 인도 쪽에서 펀잡 주

만 느껴질 법한 건축물들을 부드러운 조형 작품으

안에는 그들의 숭배 대상인 시크교의 최고 경전이

의 새로운 주도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건설되었으며,

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였기에 가능하

모셔져 있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

당시의 수상 네루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그 도시 설

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찬디가르에서 가장 인상

고 입구에 고여 있는 물에 발을 씻어 청결함을 유지

계를 맡겼다고 한다. 오픈 핸드의 개념을 도시 설계

깊었던 곳은 넥 찬드 락 가든(Nek Chand Rock Gar-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원의 흰 대리석은 더욱 광채

에 접목, 창출되는 부를 받아들이고 다시 분배하라

den)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약 12헥타르 규모

를 발하고 있다. 이 곳은 지금까지 보아 오던 인도의

는 개념을 가지고, 모든 주요 도로를 직선으로 펴서

의 공원을 당시 공공 사업 감독관이었던 넥 찬드 혼

여느 모습과는 다른 대체적으로 차분하고 경견한 분

바둑판 형식으로 계획한 도시이다. 이 곳은 인도의

자서 지금까지 50여 년간 만들어 오고 있다고 한다.

위기이다. 은은하게 퍼지는 경전을 읊는 소리는 더

정신을 담아 내지 못했으며 그 실정에 맞지 않는 도

이 곳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건설 현장에서 나온

욱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건축물이 만들어낸 풍

시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실제로 거리를 걸

폐기물들을 주자재로 하여 고대 설화 속에서나 나올

경과 사람들의 정성어린 심정이 모여 하나의 고귀한

어 보며 느낀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도시 안으로 깊

법한 친환경적인 정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곳

장소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랜만에 책 한 권을 꺼

숙이 스며든 녹지 공간과 건물과 도로 사이의 쾌적

을 그저 그런 공원 정도로 생각하고 방문했지만, 그

내들고 여유를 만끽한다. 이 곳에서는 외국인을 위

한 여유 공간의 확보,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세세한

어떤 공원과도 견줄 수 없는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한 무료 도미토리와 방문객을 위한 24시간 공짜 식

디자인의 흔적들. 비록 인도 현실에 맞지 않는 계획

깨진 사기 그릇, 콘센트, 병뚜껑, 타일 조각 등은 콘

사를 제공한다. 비록 차파티(밀가루 전병) 두어 장과

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코르뷔

크리트와 버무려지며 독특한 색감이 발현되고 있다.

두 종류의 달(인도식 스프)이 전부였지만 경건한 분

지에의 대단한 노력들로 비춰진다. 지금은 그의 노

공간적으로도 단순히 열린 공원이 아닌 일련의 스토

위기 속에서의 식사는 그 어느 음식보다도 훌륭한

력들을 단 몇 줄의 비평으로 치부해 버릴지 모르지

리를 가진 판타지를 연출하고 있다. 절벽 사이로 난

맛을 선사해 준다.

만 향후 인도의 경제적인 성장이 인도인들에게 여유

좁은 길은 따라가다 맞이하는 오픈이나 수공간, 원

귀향 | 이후 몇몇 도시를 더 거친 후 나의 인도 여행

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다 준다면, 그의 땀들

래 자연 속에서 그러하였을 것이라 착각을 불러일으

은 끝이 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인도를 섭렵한

은 언젠가는 재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찬디가르

킬 법한 녹음을 품은 공간들을 음미하며, 평면상의

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인도는 각 지역

에서는 상당한 양의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물들

그림으로서가 아닌 만져지는 디테일로서의 조경이

별로 종교와 언어, 문화가 다르고, 사고 방식 또한

을 접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정부 청사 건물

바로 이런 게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천양지차였다. 이 때문에 각 도시가 가지는 아우라

군이다. 이는 주의회, 법원, 주 정부 청사들인데, 내

암리차르 황금 사원 | 찬디가르에서 버스를 타고 대

(aura)를 전부 이해하기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

부로 들어가 보기 위해 찬디가르 관광정보 안내소에

여섯 시간 이동하면 나오는 곳은 암리차르이다. 암

다. 인도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서 퍼미션을 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의사당 건물

리차르는 시크 교도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허름한

그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속에

내부가 리모델링 중인 관계로 들어가 볼 순 없었으

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암리차르는 인도에서 제일가

서 그네들의 일상과 진정성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

나, 법원과 주정부 청사 건물은 안내하는 군인과 함

는 부촌이라고 한다. 암리차르의 중심에는 시크교

런 모습들이 인도만의 매력이며, 계속 그들을 찾게

께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이 건

왕국의 마하라자였던 란지트 싱이 약 400kg의 황금

만드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

글쓴이 최영철은 인하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현재 동 대학원 건축공학과 구영민 교수 연구실인 FACTORY에 재학 중이다. 무회건축 김재관 소장 아래에서 두 달여 간 실습하면서 인생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다. 주요 수상작으로는 23회 공간국제학생대상 대상, 24회 대한민국건축대전 우수상, 2006 디지털 건축 공모전 특 선, 10회 강구조 건축물 설계 공모전 입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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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가 : 아버지의 궤적을 찾아서 D1*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3> MY ARCHITECT : a son’s journey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 Architect_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uilding_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roducer_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ocumentary_건축적 다큐멘터리 | City_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 의 영화 | Miscellaneous_그밖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루이스 칸이 맨하튼의 한 공중 화장실에서 의문의

시작한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과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영화에 대한 평을 써 보

시신으로 발견되어 연고자도 못 찾은 채 하마터먼

단편적 시간들, 또한 아버지의 흔적인 그림들(사진

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행려병자의 시신으로 처리될 뻔했던 사건은 당대 언

1)….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아버지의 명성은, 그에겐

— 프랑소아 트뤼포(Fransois Truffaut)

론을 떠들썩하게 한 건축계의 미스터리이다. 당시

무언가 해결해야만 할 숙제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칸이라는 유명세로 이 다큐에는 여러 명의 세계적

TV나 신문을 포함한 매스컴의 단골 스타였던 그를

문서 보관소에서 아버지의 부고 기사를 찾는 모습으

인 건축가들이 인터뷰에 응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도 자살이냐 타살이냐

로 영화는 시작한다.(사진 2) “…많은 건축가들에게

필립 존슨의 말 “코르뷔지에는 야비하지…”라는 말

를 포함해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으며, 더구나

영향을 끼쳤으며, 건축계로부터 미국 최고의 건축가

이 강하게 뇌리에 각인된다. 아이 앰 페이, 프랭크 게

당시 소지하고 있던 여권에 자신의 이름이 모두 지

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요일 저녁 펜실베니아 역에

리, 로버트 A. M. 스턴, 모세 샤프디, 등등 귀한 자료

워져 있었던 것을 두고도 지금까지 무성한 추측만

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향년 73세. 그는

로서도 한몫을 할 영화다. 당시 유럽의 건축적 독주

증폭되어 궁금증만 더해 가고 있을 뿐이다.

부인과 ‘수 앤’이라는 딸을 남겼다….” 자신의 이름

를 막기 위해, 루이스 칸을 미국의 전략적 홍보로 내

이 다큐를 제작한 나타니엘 칸은 루이스 칸의 세 번

은 없었다. 아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세웠다는, 음모인지 질투인지 모를, 칸을 비하하는

째 부인의 아들이다. 영화 제작을 하고 있던 나타니

“난 아버지를 잘 알지 못했다.”

꼬리표도 있지만 아무튼 그는 전 세계적인 건축가

엘은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어머니와 결혼하지도, 함께 살지도 않았다.”

임에 틀림없다.

호기심을 동시에 지닌 채, 그의 궤적을 찾는 여행을

“하지만 우리가 함께 보냈던 어느 날, 그 날의 사소

← 사진 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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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5

↑ 사진 4 ↖ ← ↓

← 사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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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 사진 3

한 부분까지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존재였는지 모를 일이다. — 사망한 지 30년 이상 지

많다. 4대 거장뿐 만 아니라, I. M. Pei, 안토니오 가

“이 날 오후 우린 소풍을 갔다.”

나서야 아버지를 보내는 아들의 심정은 영화의 마지

우디, 오스카 니마이어, 필립 존슨 혹은 최근의 유명

“그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고, 어머닌 그 모습을 사

막 문구로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오랫동안 잔잔한

건축가 Frank Gehry, Herzog & de Meuron, Jean

진으로 담았다.”

감동으로 남아 있다. 이 영화는 EIDF(EBS 국제 다큐

Nouvel까지(사진 4)…. 그러나 이 대부분의 DVD들

“내 나이 11살에 그가 죽었다.”

멘타리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EBS에서도 방영되었

은 자막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 영어가 짧은

다큐를 제작하는 나타니엘은 세 번째 부인으로서 어

으며, 또한 열화와 같은 재방 요청에 결국 다시 방영

나로서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The Sketch-

머니를 인터뷰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되어 여러 건축인에게 호평을 받았다.

es of Frank Gehry>(사진 5)는 C.C.(Closed Caption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연민의 대상이기

마즈하룰 이슬람(Muzharul Islam)이라는 건축가는

: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자막)가 포함되어 있어 좀 낫

도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체가 별로 없는 부

방글라데시가 존경하는 노건축가다. 국가의 아이덴

다. 더구나 이와 같은 대부분의 영화들은 감동이나

정적인 느낌을 더하게 된다.

티티, 나아가 방글라데시 건축의 아이덴티티, 그리

메시지를 수반한 극영화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일종

각각 다른 세 부인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처음으로

고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갈등은 새로운 창조로

의 선전이나 기록 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잡지나 단

만나는 곳은 아버지의 작품, 너무 아름다운 자연 속

이어지며, 방글라데시에 현대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

행본을 통한 작품의 스틸 컷보다는 동영상으로 담아

에 지어진 피셔하우스(Fisher House)다. 그들의 낯

임을 열게 한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음에도 불

낸 공간이나 형태가 훨씬 더 시각적이며, 혹은 건축

설음과 왠지 모를 어색함속에서 대가의 작품은 단지

구하고 190년 이상을 지속해온 영국식 행정 시스템

가의 의도나 설명이 포함되어 그 건물을 이해하기

만남의 장소로만 제공될 뿐이다.(사진 3)

과 법체계, 예를 들면 흰 가발을 쓴 법관의 모습은 마

가 훨씬 수월하다.

건축가의 사랑은 인류의 사랑과 여인의 사랑이었다.

즈하룰에겐 정체성 이상의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합작으로 제작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의 의사당은 이미

역시 제3회 EIDF에서 소개된 에나물 카림 너르자르

ARTE의 ARCHITECTURES 시리즈(사진 6)는 한 마디

그 이전의 프로젝트와 더불어 파산의 원인이 되었

(Enamul Karlim Nirjhr) 감독의 다큐 영화 <불멸의

로 강추다. 현재는 5편까지 출시되어 있으며, 고대

다. 아버지와 항상 함께 했던 인도 건축가 도시(B. V.

건축가, 마즈하룰 이슬람>(2005)은 “강렬한 창조적

근대 현대의 유명 건축물을 총 망라하고 있다. 건축

Doshi)와의 만남, 그리고 와레스(Shamsul Wares)

천재성과 통찰력을 지닌 선구자적 건축가… 방글라

물의 설명과 병행되는 모형과 C.G. 그리고 건축가의

의 눈물 섞인 말… 세상을 너무 사랑한, 가난한 자신

데시의 현대 건축은 그에게서 시작됐다.”라는 말로

인터뷰나 해설 등은 시간 대비 인쇄물이 주는 감동

들을 너무 사랑한 칸이었기에, 가까이 있는 가족을

시작하고 있다.

의 몇 배를 보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잘 못 보았을 수 있었을 거라는 말…. 그래서 아버지

국가가 그에게 제안한 일생일대의 프로젝트 ‘국회

<My Architect>는 영화의 음악이 너무 좋다. 꼭 두

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나타니엘은 과연 어떻게

의사당’…. 그러나 그는 이 일을 할 거장이 따로 있다

번 이상 보길 추천하며, 자신만의 영화평을 한번 써

받아들였을까? — 어렸을 때 화상을 입어 그을린 얼

고 했다. 그렇게 해서 루이스 칸은 방글라데시에 아

보면 어떨지 싶다. ⓦ

굴과 쇳소리 같은 음성, 돋보기 안경, 작은 키에 파

름다운 작품을 남기게 된다.

산까지 한 건축가가 어떻게 세 여인에게 그렇게 큰

건축가나 그 작품에 대한 영화는 찾아보면 의외로

글쓴이 강병국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춘명 선생의 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고 한울건축과 신예거 축을 거쳐 현재 ㈜동우건축 소장으로 있다. <포이동 성당>, <쌘뽈요양원/유치원>, <장도박물관>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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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MIN 건축가 민규암 김재관의 <인물 열전 02>

인사동과 탑골공원 사이에 내가 다니는 단골 순댓국집이 하나 있다. 부슬부슬 비가 오거나 속이 허한 날이면 이 집의 누릿한 냄새가 떠오 른다. 얼마 전 이 집을 다시 찾았다. 누런 돼지기름으로 찌든 천정과 미 끈거리는 바닥, 삶은 돼지의 머리, 혓바닥, 귀때기와 발가락들. 여전히 흥 건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육천 원짜리 술국을 시켜 한공기의 밥을 덥석 말 았다. 쫀득한 돼지 비계가 어금니에서 꾸덕꾸덕 씹히고 붉게 풀어진 다대기 향이 입안에 가득 고인다. 역시 최고였다. “저기 손님.” 나를 부르는 이는 이집의 주인장인 살짝곰보 아줌마였다. “죄송한데 예… 오늘 여서 찰~령이 있어서 예.” “찰령 요?.” “예에. 찰~령요. 우리 집이 고마 테레비에 나온다 아임니꺼. 그래서 오늘은 좀 일찍….” “와~ 근데 방송

국에서 얼마나 준답니까?” (베시시 웃으며) “30만 언이라네 예.” 한 방송국에서 이 순댓국집을 배경으로 드라마

를 촬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흐뭇한 표정을 보면서 그녀에게 지급된 30만 원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그 돈 의 내역을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자신들 때문에 장사를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일 것이다. 거기다가 공간을 빌려 준 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움도 있을 것이며 촬영 중에 사용될 전기세와 화장실의 수도세와 오물세도 조금씩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 런 쓸데없는 생각 끝에 그들이 치러야 할 값어치가 그런 물리적인 것 이외에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 집의 분위기를 빌린 값 말이다. 사실 그 분위기라는 것이 한없이 꼬질거리지만 그런 너절함을 일부러 만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 가? 더구나 이것이 드라마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라면 그 가치는 더 커진다. 그러므로 이 가치에 대한 값도 함께 매겨져야 한다는 것 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만약 30만 원 속에 그 무형의 가치가 포함 된 것이라면 그 돈의 소유자는 아주머니일까? 혹은 아주머 니에게 세를 내준 주인집 할아버지일까? 아니면 그 집을 인테리어 한 동네 목수일까? (외국의 사례는 빼고 말하자.) 저작권 건축가들은 자신이 설계한 집을 두고 ‘내 작품’이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말로서 자신의 설 계도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므로 저작권자 또한 자신임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듯하다. 우선 건축물의 소유자인 대 부분의 건축주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건축가 또한 이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관공서가 건축일 경우 는 더하다. 말하자면 계약을 하면서 “설계도의 저작권은 건축주에게 귀속된다”라고 적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 내 작품’이라고 말을 하거나 자신을 그 작품의 ‘작가’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서슴없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있 다. 바로 건축가 민규암이다. 그는 이것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에 의 하면 어떤 사람이 피카소의 작품을 구입했더라도 그 그림을 이용해서 엽서나 출판물로 만들어 판매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 면, 그림의 소유권과 저작권과 사용권과 출판권은 모두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옭은 이야기다. 그렇다면 순댓국집의 경우처럼 그 의 작품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사용된다면 그는 방송사로부터 일정 비용을 받을까? 민규암은 받는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진을 촬영한 후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아무 말 하지 않고 사라진다면 그 땐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때 는 바야흐로 1999년도였다. 민규암은 한호재로 건축상을 수상한 후 서울시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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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도 남부럽지 않을 만한 화장실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말한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서울시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업의 일부 에 참여해서 한몫을 당당히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니. 사실 그 설계비는 그 때 느 끼고 있던 막중한 사명감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것이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건물만 지어 줄 수 있다면 본인의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주고 싶었 다…. 마지막 날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서울 시청에 도면을 납품하면서 느꼈던 새 벽 공기는 얼마나 시원하던지. 납품 후에는 모든 것이 잘되리라 믿었다.”(저작권문 화 2003년 05월)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발주처가 건물을 임의로 변경하여 시공을 한 것이다. 공무원과 해결을 모색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저작권심의 조정위원 회의 중재에 맡겨졌으며 ‘철거 후 재시공’이라는 최종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서대문 구청이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한 것이다. 민규암은 결국 서울 지방법원에 소송을 걸 었다. 그리고 승소했다. 그렇다면 그가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인 이득일까? 오기(傲氣)일까? 투기(鬪氣)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작권법상 건 축 저작물이 명백히 법조문에 들어가 있지만 건축 저작물을 갖고서 하는 첫 사례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그 러했듯이 계속 그저 그렇게 체념하면서 건축가의 지위와 사회적인 역할 정립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건축 문화는 지금 이대로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M.I.T. 대학원 시절이었다. 토마스 채스틴 교수(Thomas chastain)가 말했다. “자넨 왜 MIT를 지원했지?” “이 곳이 높은 명성을 갖고 있 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문제가 많겠군. MIT의 스튜디오가 어떤 건축가를 목표로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 에서 수업을 받고 있으니 말이야.” 한 마디로 말하면 학교를 잘못 알고 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수는 MIT 출신인 아이엠 페이를 비롯하여 세계에서 유명한 대부분의 현대 건축가들이 모두 쓰레기 같은 건물을 만들어 내는 사기꾼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 는 혼란스러웠다. 아이엠 페이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면 쓰레기가 아닌 건축가는 과연 누구였을까? 다름 아닌 카를로 스카르파, 루돌프 엠 쉰들러, 알바 알토, 귄터 베니쉬, 알도 반 아이크, 헤르만 헤르쯔버거 등이었다. 물론 훌륭한 선정이다. 누가 감히 이순 신 장군과 바하를 욕하겠는가? 학교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이웃에 있는 하버드 대학은 화려한 스타 건축가들이 있었지만 MIT는 전 통적인 프로페서(professor)가 각 스튜디오를 맡았다. 그들 중에는 가방 속에 대패와 망치를 넣고 다니는 목수 출신도 있었다. 복도 에선 이집트의 민중 건축가인 하산 파티가 전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MIT가 주목하고 교류하는 건축가들은 누구일까? 피터아이 젠만? NO!. 쿱 힘멜브라우? NO! MIT는 그 시대를 풍미하던 해체주의 대신 구조주의자(모더니즘이 단절시켰던 건축의 본질적이고 항구한 의미를 탐험하기 위해 중동의, 지중해의, 멕시코의, 지구 곳곳 전통 마을 군락들에서 일상적 삶의 터전이 지닌 보편적인 질 서를 찾으려던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인 네델란드의 헤르만 헤르쯔버거나 제3세대의 건축 리더인 찰스 꼬레아와 교류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알고 있던 MIT는 미국에서도 가장 먼저 건축과를 만들었던 진보적인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MIT가 추구하는 진보의 의미는 다른 듯했다. 그들의 진보는 최신의 트렌드를 만들거나 문명에 기초한 물질적 테크놀로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질서와 창조의 원리를 찾는 데 가치를 두 는 지성적 의미의 진보였던 것이다. 시멘트 블록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자신의 이름으로 첫 명함을 내밀었던 건물이 한호재였다. 그 건물에서 인상 깊 었던 것은 집의 배치였다. 여러 개의 집채들이 마치 골목을 빠져나가는 열차처럼 기세 좋게 이어졌고 옆 을 흐르는 개울조차도 넘어설 수 없는 선(線)에 불과하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건물의 배경과 조 건조차 스스로 개척하는 듯했다. 또 하나는 시멘트 블록의 출현이다. 엄밀히 말하면 재료 자체가 아니라 그 것을 다루는 솜씨라고 하는 게 더 옳겠다. 그 때까지의 시멘트 블록이란 무엇이었던가? 그저 축사나 담벼락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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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하던 ‘쎄멘 보로꾸’였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손이 닿자 성질이 바뀌어버렸다. 여전히 거칠었지만 엄격함이 생겼고 싸구려 였지만 규범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시멘트 블록을 부활시킨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탁월하게 놀라운 것은 시멘트 블록을 십 년 이 넘도록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축조 방식은 늘 달랐다. 세워쌓고 눕혀쌓고 덮어쌓고 젖혀쌓고 모아쌓고 그것을 다시 섞어 서 쌓았다. 용처도 점점 변했다. 벽체에서 계단으로 다시 바닥으로 이동했고 의장에서 구조로, 실용에서 상징으로 무한히 진화했 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실험으로 10년의 시간을 설명하기엔 무언가 모자란다. 그렇다면 한호재의 경우처럼 오직 경제적인 이 유뿐이었을까? 물론 시멘트 블록이 값비싼 재료였다면 그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수많이 존재하는 다른 종 류의 값싼 건축 재료들이 그의 선택으로부터 제외된 점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시멘트 블록에 대한 경제적인 개념은 단순 히 ‘코스트를 낮추는 값싼 재료’는 아닐 것이다. 혹시 ‘마음껏 쓸 수 있는 값싼 재료’는 아니었을까? Q.M.MIN is… 민규암은 한 아파트에서 30년째를 살고 있다. 민규암은 한 장소에서 10년째 사무실을 한다. 민규암은 한 직장에서 7년 동안 단 한 번만 직장 생활을 했다. 민규암은 한 재료를 10년째 썼으며, 맘을 먹고 바꾸려다 다시 쓰고 만다. 민규암은 한 벌이 아닌 다섯 벌의 같은 옷을 번갈아 입는다. 매일 다르고 매일 같다. 민규암은 한 번도 현상 공모에 응하지 않았다. 민규암은 한 번도 가(假)설계를 한 적이 없다. 계약 후 가(家)설계한다. 민규암은 한 번도 건축사협회를 떠난 적이 없다. 민규암은 한 가지 프로젝트만 설계한다. 민규암은 한 번 재판하면 끝까지 간다. 위의 예들을 대신할 수 있는 어휘가 있다면 무엇일까? 보수(保守)란 단어가 아닐까? 그렇다면 보수란 무엇인가? 내 생각에 보수란 참나무로 만든 아주 두툼하고 높다란 쌍여닫이 문이다. 그것을 열려면 반 드시 빗장을 풀어야 하며 늙은 집사를 불러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설득해야 한다. 집사는 그것을 다시 주인에게 고하면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삐-이-거-어-덕’ 하며 천천히 문이 열린다. 이 때 빗장 위에 얹혀 있던 두터운 먼지들이 소스라치듯 빚을 타고 산란하다. 이런 묘사처럼 보수란 한 번 내 린 정의를 쉬이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수구와는 달리 이미 내려진 정의일지라도 그것을 바꿀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보수의 정의며 미덕이다. 그렇다면 재판이란 또 무엇일까? 재판은 그렇게 어렵사리 내려진 정의를 자신이 아닌 타인으 로부터 확인하는 행위이며, 재판은 자신이 내린 정의를 타인에게 입증하는 시도이며, 재판은 자신이 내린 정의를 바꾸 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내가 만나 본 민규암의 재판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 러기 때문에 그는 보수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바꾸어서 말한다면, 민규암은 토마스 채스틴을 만남으로써 ‘평생을 걸쳐서 생각해 야 할 대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안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내면에서 오래도록 웅성거리던 소리들이 그를 만나면서 언어가 된 것이 며, 민규암은 헤르만 헤르쯔버거를 만났기 때문에 시멘트 블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헤르만 헤르쯔버거와는 이미 정서적 혈연 이기 때문에 그의 언어가 된 것이며, 민규암은 MIT이기 때문에 보수를 닮은 것이 아니라 이미 보수이기 때문에 아직도 MIT가 그를 Q.M.MIN이라 부르며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도 MIT도 시멘트 블록도 모두 보수의 결과이며 그걸 가슴에 품고 있는 민규암은 천부적인 보수라는 것이다. 난 그 렇게 생각한다. ⓦ 글쓴이 김재관은 충청북도 옥천의 무회마을에서 태어났다. 무회건축연구소란 사무실은 고향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1997년도에 만들어졌다. 그 이후 뜻하지 않 게 강정교회, 충신교회, 성만교회 등 교회를 연달아 설계하여 건축문화대상이나 지방에서 주는 이러저러한 몇 개의 상을 탔고 더러는 아파트나 오피스와 민박집도 지었다. 마흔다섯의 나이에는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영국의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덕에 지금은 몇몇의 대학에서 설계를 가르친 다. www.moohoi.com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영국 유학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글을 절찬리에 연재하고 있다.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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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WIDE Column I D E D G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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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의 건축적 시대 정신은? 와이드 엣지 |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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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여세를 몰

가 확실히 느슨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김영삼 시대에는

아 보수당인 한나라당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

역사 바로잡기라는 슬로건에서 보듯이 잘못된 과거를 모두 뜯어 고치

났다. 지나간 10년간의 소위 좌파적 정권에서 우파적 정권으로의 변화

겠다는 노력으로 얼룩진 시대였다. 남산의 외인 아파트를 폭파해 버리

가 일어난 것이다. 지나간 과거 정권의 정책들을 음미해 볼 때 우리의 건

더니,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따라서 붕괴되고, 이윽고 중앙청의 철

축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견해 볼 수 있다.

거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몇몇 사

미국의 얼마 전 지나간 사례이긴 하지만, 사회적 변화와 건축적 시대

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지

정신이 함께했던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레이건이 대통

않는다.

령에 당선되면서 당시 미국의 건축계는 소위 건축적 ‘포스트모더니즘’

한편 김대중 시대는 남북 협력의 시대였고, 이를 이어간 노무현 시대의

에 좀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건축 역사 이론가인 맥레오드(M.

건축 도시 정책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 도처에서 벌어진 시기였다.

McLeod)는 지나간 왕년의 배우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현실을 두

행정 수도를 옮긴다거나 기업 도시, 혁신 도시 등 전국적으로 도시 만

고, ‘과거’의 ‘재현’이란 시각에서 당시의 예술적 사조와 정치와의 관련

들기 운동이 작은 건물 세우는 것보다 더 가볍게 결정되는 시대였다. ‘

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매우 재미있는 관계 분석이라고 생각된다. 그렇

분배’ 중심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간파한 외국의 작가들이 옛 소련이 공

다면 우리 나라에선 지나간 시대가 건축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산주의 이념을 구현하려 한 개념을 그대로 제안하고 또 선정되는 과정

압축 성장을 경험한 사회이다 보니 적지 않은 변화가 짧은 기간에 일어

을 보면서 역시 지나간 시대가 사회주의적 이상에 얼마나 열광적이었

났었음을 알게 된다. 자유당 정권하에 마련된 우남회관은 당시 세계적

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류이었던 국제주의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제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바야흐로 실용주의를 내세운 MB 정권이 탄생되었다. 과연 실용

전쟁 후 미국의 직접적 영향 속에 있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

이란 건축적으로 어떤 가치를 구현하는 작업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해 보면 어쩌면 자연스런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우리의 건축계도 지나간 시대에 시도된 건축적 노력에 대한 평가를 바

들어선 박정희 시대의 세종문화회관은 달랐다. 1970년대 초 현상 설계

탕으로 우리의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치 구현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다.

시 대부분이 기능주의적 작품 제안에 머무르고 있을 때, 엄덕문이 제안

지금 건축 분야의 세계적인 시대 정신은 경계를 허물고 융합의 시대로

한 전통 수용의 방향은 당시 ‘국가’를 먼저 내세운 지도자의 통치 이념

나아가는 것이 정향이다. MB 시대의 실용주의가 자칫 지난 시대의 보

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수 이미지를 재현한다든지, 값싼 기능주의에 머무르려 한다면, 이는 결

추구했던 시대적 화두도 ‘민족’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그리고 독립기

코 발전적 시각에서의 건축적 시대 정신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MB

념관에서 우리는 당대에 풍미했던 시대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시대 한국의 건축적 화두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며, 열어가야 할지 이것

그 후 등장한 노태우 정권 시절은 올림픽 관련 시설이나 5개 신도시 사

이 우리의 건축계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닐까? ⓦ

업에서 보듯이 같은 군사 정권이라도 그 이전보다는 국가 중심적 사고

| 글 | 임창복(발행편집고문,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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