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한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기업 가가 그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후원회입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사업으로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학자 및 예비 저술가 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 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공모 요강 ⓢ 당선작 | 1편
이디어 도용 등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
부상 | 상패 및 상금 500만원과 단행본 출간 및 인세 지급
11년 5-6월호 지면)
ⓢ 제출처 | 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럼
ⓢ 시상식 | 별도 공지 예정
빌딩 1층 간향미디어랩 (100-834)
ⓢ 출판 일정 |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
ⓢ 응모 자격 |
ⓢ 당선작 발표 | 2011년 5월 15일(건축리포트<와이드>
약함. 제출된 자료는 반환하지 않음)
내외국인 제한 없음
(겉봉에 제3회심원건축학술상응모작
ⓢ 응모 분야 |
이라고 명기 바람)
건축역사, 건축이론, 건축미학, 건축비 평 등 건축 인문학 분야에 한함
이내
ⓢ 운영위원회 |
ⓢ 응모작 접수 일정 |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안창모
1차 모집: 2010년 8월 1일-9월 10일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전봉희
대상으로 한 연구 에 한함)
2차 모집: 2010년 10월 1일-11월 10일
(서울대학교 교수), 전진삼(건축리포트
ⓢ 사용 언어 |
ⓢ 추천작 발표 일정 |
~
(단, 외국 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와이드> 발행인)
— 1차 추천작 발표 : 2010년 11월 15
ⓢ 주최 | 심원문화사업회
일(건축리포트<와이드> 10년 11-12월
ⓢ 주관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①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
호 지면)
ⓢ 기획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는 원고 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
— 2차 추천작 발표 : 2011년 1월 15일
의 사본(A4 크기 프린트 물로 흑백/칼
(건축리포트<와이드> 11년 1-2월호 지
ⓢ 후원 | (주)엠에스 오토텍
라 모두 가능)을 제본된 상태로 4부 제
면)
ⓢ 문의 | 02-2235-1960
한국어
ⓢ 응모작 제출 서류 |
출. 단, 제출본은 겉표지를 새롭게 구성,
간향미디어랩
ⓢ 추천제 운용 방식 | 1/2차 추천작을 중
제본할 것.
심으로 운영위원회는 소정의 내부 심사
②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절차를 통하여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 응모작의 요약 내용이 포함된 출판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지원함, 그 가
기획서(양식 및 분량 자유) 1부
운데 매년 1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 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
시상함. 최종 당선작 심사에서 탈락한
호, 이메일 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3년간 추천작
(운영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의 자격이 유지됨
보호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 최종 당선작 결정 |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
1/2차 추천작 중 1편을 선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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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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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gan Architec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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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가지의 색깔 있는 건축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신뢰와 성실을 주축으로 21세기를 도약하는 삼협종합건설(주)는 뛰어난 기술력과 신용도, 투명한 도덕성, 특유의 잠재력으로 더욱 성숙된 건설업의 발전을 주도합니다.
삼협종합건설(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70-7 홍성빌딩 4층 Tel : (02)575-9767 | Fax : (02)562-0712 www.samhyub.co.kr
by Samhyub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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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E Architects & Consulting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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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MAX Korea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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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Ex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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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yang System Group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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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angDong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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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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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Grou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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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OMOMO Korea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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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 design grou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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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설계 | 안전진단 | 구조물 보수^보강
(주)건우구조엔지니어링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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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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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since 2006 | 네 번째 주제|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2’ | 내 건축의 주제|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문의 : 02-2231-3370, 02-2235-1960)|<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2’> 는 우리나라의 40-50대 “POWER ARCHITECT”을 초대하여 그 분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축 의 주제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젊은 건축가 시리즈’에 이어지는 금번 강의를 통하여 2010년 내 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주관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주최 : 그림건축, 간향미 디어랩 GML|도서 협찬 : 시공문화사 spacetime, 수류산방 樹流山房|*<땅집사향>의 지난 기록 과 행사 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AQkorea, 카페 주소 : http://cafe.naver. 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3. ⓦ 5월의 초청 건축가
|최삼영 (가와건축 대표)|주제 : 집 숲 꿈
|일시 : 2010년 5월 12일(수) 저녁 7시
44. ⓦ 6월의 초청 건축가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주제 : Recent Works
|일시 : 2010년 6월 16일(수) 저녁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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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Seoul St.Mary's Hospital / Jeju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
Pusan National University Medical Center, Yangsan / Boramae Hospital New Clinic / Korea Univ. Guro Hospital /
Asan Medical center, Seoul /
Busan St.Mary's Medical Center /
DongKuk University Ilsan Hospital / Severance Hospital /
Good Gangan Hospital /
KonKuk University Hospital /
Uijeongbu St.Mary Hospital Emergency Center /
Healthcare Architecture of Korea
Gangwon University Hospital /
Chungang University Hospital / Kangbuk Samsung Hospital / Myongji Hospital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Hwasun Hospital / Eulji University Dunsan Hospital /
Seoul National University Bundang Hospital /
Gwangju Veterans Hospital/ Gunsan Medical Center / Suncheonhyang Univ. Bucheon Hospital / KMIC Ilsan Hospital /
Ilsan Paik Hospital, Inje University /
Wallace Memorial Baptist Hospital /
Healthcare Architecture of Korea 한국의료복지시설학회
편
Nam Won Medical Center /
Korea Univ. Ansan Hospital /
한국의료복지시설학회
Bundang Cha Medical Center / Samsung Medical Center / Ajou University Hospital /
DanKook University Hospital /
Pusan National University Children's Hospital / Seoul Children's Hospital /
편
Seoul Bukbu Geriatric Hospital /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Dental Hospital / Jeonbuk Regional Cancer Center /
Korea Institute of Radiological & Medical Sciences / Samsung Cancer Center /
Gyeongnam Reginal Cancer Center / The National Cancer Center /
Busan Parkside Rehabilitation Hospital / Bobath Memorial Hospit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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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Hospital /
Raphael Well-being Center / Chosun University Hospital /
본서의 구성은 크게 서문,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섹션으로 분류한 후, 병원건축을 건립년도의 역순으로 배열하고, 병원건축에 대한 논고를 각각 배치하여 시각 자료와 논고를 동시에 공유하게 함으로서 이해도 를 높이도록 하였다. 서문에는 한국 병원건축의 시대별 연표와 병원건축의 발전과정에 대한 2편의 논고, 그리고 한국 병원건축 디자인의 특성에 대한 논고가 실려있다. 종합병원 섹션에는 11개의 설계사무소에 서 제출한 31개의 병원건축 작품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료기관으로서 서울대학교, 연세의료원, 가톨 릭의료원, 한양대학교, 삼성의료원의 변천 등 5편의 논고가 수록되어 있다. 전문병원 섹션에는 9개 설계 사무소에서 제출한 14개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노인병원, 치과병원에 대한 논고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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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2010 The 1st GANYANG WORKSHOP of Architectural Journalism, 2010
[워크숍 목표 및 추진 방안]
[워크숍 프로그램 개요]
1) 학생에게 건축 잡지사를 포함한 주요 언론사 입사를 위한 준
ⓦ 03월 27일 : 1강 — 입교식 및 강의(저널리즘 세미나 1)
비 과정을 제공해 주고, 각 언론사에는 기자로서의 소양과 저
ⓦ 04월 24일 : 1강 — 강의(인문 교양 세미나)
널리즘에 입각한 윤리 의식 및 실무 능력에도 충실한 인력을
ⓦ 05월 22일 : 1강 — 강의(기초 취재 실습 1)
공급하고자 한다.
ⓦ 06월 26일 : 1강 — 강의(기초 취재 실습 2)
2) 지방대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학기 중 주말을 이용 한 강의로 진행하며, 방학 중엔 현장 실습을 감안, 주중에 워 크숍을 진행코자 한다.
ⓦ 07월 08일 / 15일 / 22일 / 29일 : 4강 — 강의 및 실습(현대건 축 세미나 및 현장 실습 1) ⓦ 08월 05일 / 12일 / 19일 / 26일 : 4강 — 강의 및 실습(현대건 축 세미나 및 현장 실습 2)
[수료자 장학 특전 등]
ⓦ 09월 18일 : 1강 — 강의(사회 교양 세미나)
1) 수료생 중 성적 우수자 1인에게 워크숍 개인 참가비 전액을 장
ⓦ 10월 16일 : 1강 — 강의(저널리즘 세미나 2)
학금으로 환불 지급함
ⓦ 11월 20일 : 1강 — 과정 종합 보고회 및 수료식
2) 최종 과정 수료시 ‘수료증’ 및 성적 우수자에 한하여 언론사 취업시 ‘추천서’ 발급 (단, 전체 워크숍 과정 중 70% 이상의
[워크숍 세부 정보 안내]
출석자에 한하여 ‘수료증’이 발급됨)
ⓦ 네이버 카페 : AQkorea 게시판 및 본지 2010년 1/2월호 안 내 지면
[강사진] ⓦ 총괄 디렉터 : 전진삼(본지 발행인)
[전화 문의]
ⓦ강 사진 : 본지 발행편집인단 구성원을 포함한 국내 건축·미
ⓦ 02-2235-1960
술·디자인 잡지 데스크 및 주요 매체에서 활약해 오고 있는 기자, 칼럼니스트, 건축 책 저자 및 대학 교수로 구성 [워크숍 기간 및 강의 장소] ⓦ 2010년 03월~11월 (9개월, 총 15회 워크숍) ⓦ 워크숍 요일 : 토요일(학기 중), 목요일(방학 중) ⓦ 강의 장소 : 서울, 본지 편집실 및 각 취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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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이 새로 부른 근대 가요 13곡
풍각쟁이 은진
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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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춘 류 .화
전 님 다 . 04 떠난 경 풍 선은 이 락 살 접 8. 연 .신 0 03 학생 벼운 가 : 이 대 제 쟁 (원 각 터리 라 풍 나 운 는 7. 엉 리 빠 0 그 랑 원 .오 꿈 리 2 정 아 0 른 11. 이태리 향 의푸 춘광 13. .고 방 십 1 짜 구 0 .다 10. 진 강 06 낭낭 활동사 랑 . 아리 ) 12 . 9 0 견을 인조
어린아이 소리부터 아가씨, 중년의 살롱 가수 같은 고혹적인 중·저음까지 가지각색 빛깔의 목소리를 가진 연극 배우 최은진. <다시 찾은 아리랑>이라는 음반으로, 또 <천변풍경 1930> 콘서트로 노래에 다가섰던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13곡의 만요를 눌러 담아 앨범 <풍각쟁이 은진>을 발매했다. 만요는 ‘오빠는 풍각쟁이’, ‘빈대떡 신사’ 등으로 대표되는 일제 강점기 시절 유행한 풍자와 해학 이 담긴 노래다. 소소한 내용을 가사에 담아 자유롭게 부르던 노래였기에 하나의 장르로 대접받거나 지속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지 만 소소한 민중의 일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 그녀가 부른 13곡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박향림의 ‘오 빠는 풍각쟁이’를 필두로 작사가 조명암과 작곡가 김해송(본명 김송규)등 1930년대 대표적 음악가의 만요 작품들이다. “핸드빽하 고 파라솔하고 사주마 했지요” 하며 신혼 초 남편에게 앙탈을 부리는 아내를 그린 ‘신접살이 풍경’, “연애냐 졸업장이냐”를 고민하 는 ‘엉터리 대학생’, 활동사진의 외국 배우에게 반한 남편에게 극장에 가지 말라고 바가지를 긁는 ‘활동사진 강짜’ 등 그 시대의 흥미 로운 생활상을 보여 주는 노래들이 있는가 하면, 일제 강압을 반영한 ‘연락선은 떠난다’와 ‘아리랑 낭낭’, 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 희의 노래로 알려진 우아한 재즈송 ‘이태리의 정원’도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초연히 옛 기억을 떠올리는 김해송 작곡의 ‘다방의 푸른 꿈’은 전 트랙 중 백미로 블루스 화법의 농밀한 최은진의 보컬을 만나볼 수 있다. † 최은진은 만요가 가져다 주는 그 시대의 소박함 과 낭만, 해학을 붙잡아 우리를 타임 머신 속으로 안내한다. 이 타임머신에는 우리에게 ‘하찌와 TJ’로 알려진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 찌도 합류했다.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아코디언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하찌의 감각적인 프로듀싱은 최은진의 다채로운 보컬과 만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면서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미묘한 하모니를 이루어냈다. 만요를 처음으로 접하거나 코믹송 정도로 이해 하고 있는 청자들에게는 더욱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by Suryusan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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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5호, 2010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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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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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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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수교자의 모후 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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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껴안고, 사는 방식을 제안하고
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47
불편함으로 점성 정신을 익히는 자비의 침묵 수도원 | 박영대
표3
widE Edge Iroje
표2 Wondoshi
wIde Issue 1
1
제3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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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 | 서정일 作
2
Seegan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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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2^3 | 배형민^안창모^전봉희
3
Samhy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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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요약문 | 서정일
4
VINE Architects & Consulting
71
당선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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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Max Korea
6
UrbanEx
7
Samyang System Group
wIde Issue 2 72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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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a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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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바운드 행 게릴라들을 만나다 | 강권정예
9
Dongyang PC, inc.
인터뷰 1 | 오션 스코프 발주처 인천광역시 관광진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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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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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경계에서의 구축, 구축해 나갈 경계 | 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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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OMOMO Korea
80
인터뷰 2 | 오션 스코프 디렉터 장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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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Design Group
13
Kunwoo Structural Engi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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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2010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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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43,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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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time
wIde Issue 3 84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wiDe Depth Report
17
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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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yusanbang Suryusanbang
100
이종건의 <COMPASS 1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위한 건축적 접근, 이 구태의연!
94
104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5> | 코야니스카시 M2* 갓프레이 레지오(Godfrey Reggio) 감독
107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5> 정읍 화호마을
110
이용재의 <종횡무진 15> 공산성 쌍수정
112
<POwer ARchitect 파일 03 | 오섬훈> 노매딕스, 두 코드 사이
115
<POwer ARchitect 파일 04 | 최욱> aging-architecture
117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9>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120
<주택 계획안 100선 14> 김기환의 K-HOUSE(II) | 강권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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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focus 3> 바보야! 문제는 단지(團地)라니까… | 박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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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focus 4> 디자인 서울 정책 , 무엇이 문제인가 | 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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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 신청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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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정귀원
127 와이드 칼럼 | 국가 중심거리 개조에 부쳐 | 곽재환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자비의 침묵 수도원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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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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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 2, n 간 건축 o v e 리포 m b 트 er-d <와 이드 e c e m > 통 be 권 r, 12 20 09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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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건축 지식인의 책상에는 <WIDE>가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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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축 vem 리 ber 포 트 -de <와 ce 이 mb 드 > 통 er, 권 200 12 9 호 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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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구독을 하시면, ▷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독자 대상 사은품 증정 등 행사에 우 선 초대해 드리며, 당사 발행의 도서 구입 요청 시 할인 및 다양한 혜택을 드리고자 합니다. ⓦ 정기 구독 관련 문 의 : 02-2235-1960 ▶ 연간 구독료 및 입금 방법 ▷ 1년 구독료 : 45,000원 > 2년 구독료 : 90,000원 ▷ 입금계좌 : 국민은행 491001-01156370 [예금주 : 전진삼(간향미디어랩)] ▷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상기 전화나 이메일로 확인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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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와이드 레터 |
중간 점검 한 건축대학의 온라인 매거진에서 소통과 건축 을 주제로 인터뷰를 요 청해 왔다. 건축 잡지 데스크들의 인터뷰 기사를 준비 중에 있다는 거다. 이래저래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또 업무도 바빴기 때문에 서면으로 했 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며칠 후 질문서를 보내 왔다. 하필이면 그 시점이 마감 막바지라 미안하게도 또 차일피일 미루고 있긴 하지만, 질문들 중 하나가 바쁜 가운데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와이드의 방향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별로 특별한 것 없는 물음이고 답변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다양한 건축 이야기를 열린 자세로 수용하되(한 가지 색깔을 고집할 만큼 우리 나라 건축 잡지는 다양하지 않다) 정향한 바는 끊임없이 드러내어 놓치 지 않는다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일들, 그러한 일에 손을 내미 는 사람들을 잊고 있지는 않는가. 이번 호에는 유행이나 이슈에 편승하지 않고 인문학적 건축 작업을 해 온 건축가 이일훈의 오래된 작품을 게재한다. 수도자들의 검박한 집이지만 건축가가 어떻게 건축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지를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또 한편에서는 심원문화사업회가 주최하는 제2회 심원건축학 술상의 당선작을 발표한다.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등 매우 중요하지만 아직 그 토양이 척박한 분야의 상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으로 이 상을 받게 된 서정일 씨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 발행편집인단 발행인 |전진삼·편집장|정귀원 발행위원 | 김기중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신창훈 오섬훈 윤창기 황순우 고문 | 곽재환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자문위원 | 구영민 김병윤 박철수 송인호 윤인석 이일훈 이종건 운영기획위원 | 박민철 이영욱 조택연 편집위원 | 김기수 김종헌 김태일 박혜선 송복섭 이충기 장윤규 편집기획위원 | 김진모 김찬중 안명준 유석연 전유창 정수진 조정구 함성호 고정집필위원 | 강병국 김정후 손장원 안철흥 ⓦ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박상일 객원기자|강권정예 전속사진가 | 남궁선 진효숙 영문초록 | K.Y.Cho 제작 코디|김기현 로고 글씨|김기충 ⓦ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이숙기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서점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제작협력사 인쇄|예림인쇄 종이|대립지업사 출력|반도커뮤니케이션스 제본|문종문화사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15호 2010년 5-6월호 2010년 5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2008년 1월 15일 창간 낱권 가격 8,000원, 1년 구독료 45,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극동상가 502호(120-796) 편집실|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럼빌딩 1층(100-834) 대표전화|02-2235-1960, 02-2235-1968 팩스|02-2231-3373 공식이메일|widear@naver.com 공식URL|http://cafe.naver.com/aqlab 네이버 카페명 | AQ korea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 유포를 금합니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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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Wide Work The Monastery of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 and Architect E, Il-Hoon The monastery of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 is an architect E, Il-Hoon's work designed in 1993. This community is a living space for incoming student monks who practice asceticism to cultivate their body and mind. Because the architect thought that the monks resolved to live in uncomfort, he planned to build inconvenient monastery to the full. He also thought that uncomfortable living to the utmost would help their monasticism. We can find this characteristic through the catholic church located far from their living space, narrow corridors, another catholic church without roof, stairs without handrail and cheaply coarse building materials. The suggestion how to live, not how to build, in other words, living in uncomfort is the peculiarity of E, Il-Hoon's style of architecture that is revealed by the methodology of chae-nanum . page023 Issue 1 Penetrating the Heart of Oil Money with Our Strength of Architecture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MAE/Chairman, Kil-Won An) won the contract of architectural design of New Town Development for Riyadh North and Southwest Projects, Saudi Arabia. Its scale is equal to two new towns of Pankyo class of Korea. Since the subprime mortgage shock originated from the States, MAE obtained a successful outcome in the middle of highly-elated crisis of construction and architectural design market both at home and abroad, and they broke the world record in the history of architectural design in terms of the total value of order. We have paid attention to what points of our architecture with consideration of the project contents could enhance the competitiveness in the world market. page059 Issue 2 Announcement of the Prize Winner of the 2nd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The 2nd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being held under the sponsorship of Simwon Foundation of Culture selected <Communicative City_Louis I. Kahn's Urban Projects in 1960-74> written by Seo, Jeong-il as a prize winner.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was established in 2008 and supports up-and-coming scholars and prospective writers in the areas of architectural theory, history and critic along with esthetics. One rookie is to be chosen among the candidates in the subject areas above annually. Awards ceremony in company with the publication party of the 1st prize winner is to be held on June 18. page072 Issue 3 Ocean Scope : The Viewing Platform Giving Views over Incheon Bridge Ocean Scope located at Songdo International Business District of Incheon is a sculpture inspired by container being a symbol of logistics. Unlike existing container structures that are horizontally piled up, it makes an image of soaring towards the sky by means of setting three container-shaped structures at 10, 30 and 50-degree angle to the ground. AnLstudio that is composed of Ahn, Kee-Hyun and Lee, Min-Soo living in Brussels and New York respectively suggested this scintillating idea, and they have been aiming at guerrilla architecture group having free design thoughts and respecting differences each other. page084 POwer ARchitect's FILE Theme of My Architecture Oh, Seom-Hoon(POAR 03). page112 Choi, Wook(POAR 04). page115
정정합니다 ⓦ 지난 14호의 워크 기사 중 편집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어 정정합니다.(44p. 47p.) 독자 제현 께 거듭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김주원 ▷ 그렇다 하더라도 갤러리와의 관계를 적절히 고려하신 것
(grid)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지앤아트스페이스의 초기 배치
같은데요? 물 위에 비친 건물의 모습이 무척 근사합니다.
안(2005) 역시 직각 그리드를 보여주는 게 눈에 띄었어요.
조성룡 ▷ 갤러리의 전면 창을 아래로 끌어내린 것도 연못과의 관계
조성룡 ▷ 작업할 때 처음에는 그리드로 출발하지만 진행하면서 조금
를 고려했기 때문이에요. 현장에서 직접 밖을 내다보면서 창의 위치
씩 변형이 되지요. 나중에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고
를 알맞게 잡았지요. 또 이 연못은 중심적인 위치에서 북쪽의 참나
요. 내 별명이 한때는 그리드였는데,(웃음) 아마도 김종성 선생의 영
무 언덕을 비추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향일 거예요. 1970년대 초에 3년 정도 그 분의 어시스턴트로 프로젝 트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은 평소 미스 반 데 로에의 이야기
<그리드와 5.4m 모듈>
를 자주 해 주셨고, 자연스럽게 미스의 건축을 알게 되었지요.
김주원 ▷ 개인적으로 백남준아트센터의 원안에서 정방형 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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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dge
와이드 워크 Wide Work 자비의 침묵 수도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이일훈 E, Il Hoon 이일훈은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으며 김중업건축연구소 등 에서 실무를 익혔다. 1984년 격월간 『꾸밈』지의 건축 평론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90년대 초부터 ‘채나눔’의 미학으로 주거용 건 축과 종교 시설 등에서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 등 을 주장하는 설계 방법론을 선보였다. ‘채나눔’ 주장은 1990년대 이후 한국 건축계의 화두 중 하나로 여러 분야에서 논의를 촉발 시켜 왔다. 탄현재, 궁리채, 작은큰집, 가가불이 등의 주택 프로 젝트와 나루터 공동체, 우수영 공소, 도피안사 향적당, 하늘 담은 성당, 성안드레아 성당 등의 종교 시설과 기차길옆공부방, 민들 레희망지원센터, 부평 노동자인성센터 등 사회성 짙은 작업들이 있으며 근작으로 잔서완석루, 홍성 밝맑도서관 등이 있다. 최근 에는 강연회 등을 통해 건축과 대중을 잇는 일에 힘을 쏟으며 건 축 작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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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남서측에서 바라 본 전경. 본관 축에서 약 30도쯤 틀어진 필로티된 매스는 본관는 복 도로 연결된다. (아래) 신학원 본관 전경.
24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삶을 껴안고, 사는 방식을 제안하고 글 | 정귀원 | 본지 편집장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수도원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82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평택 방면으 로 2.5km쯤 가다 보면 도로 아래 쪽의 푹 꺼진 땅 위에 스플릿 블 록(split block)과 노출 콘크리트로 구성된 일군의 집들을 볼 수 있다. 인근 수원가톨릭대학교를 다니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학생 수사들의 공동체인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이다(건축인들에 겐 ‘자비의 침묵 수도원’으로 익히 알려진). 건축가가 집을 구상 할 즈음에는 없었던 국도가 집터보다 높은 곳에 생기고, 주변으 로 공구상들이 들어서는 동안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실시 설계 납품 도면에 적힌 날짜가 1993년 7월이니 대략 17년의 세월이다. 그 사이 신학원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애초에는 주방, 식당, 도서 실, 공동방, 침실 등으로 구성된 본관과, 미사 참례를 위한 경당이 전부였었는데 퇴회율이 줄어 식구가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하 게 되었고, 2007년 밭으로 사용하던 땅에 두 채의 신관을 증축하 면서 모두 4동의 건물군을 이루게 되었다. 수도회로서도 즐거운 일이고 건축가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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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1층 식당, 2층 숙소로 구성된 신관. (아래) 도서관과 손님방 등으로 사용되는 또 다 른 신관.
26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건물들을 소개합니다 소란스러운 길과 신학원 영역을 상징적으로 구분하는 다섯 기둥 의 콘크리트 구조물 너머로 각각 2층과 1층 규모의 새로 지어진 건물이 제법 큰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3층으로 올 리지 않고 두 개의 건물로 나눠 배치함으로써 확보된 외부 영역 은 다양한 행사의 장이다. 2층 건물의 아래층은 식당이고, 남쪽으 로 시야를 확보하는 위층은 1학년 학생 수사들의 방으로 사용된 다. 도서실과 손님방 등은 1층 신관에 자리 잡았다. 이 두 신축 건 물을 지나 이제 막 푸른 기운을 머금은 담쟁이와 무척 잘 어울리 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17여 년 전부터 말로만 듣던 ‘자비의 침 묵 수도원’ 본관이다. 식당과 도서실 등이 별동으로 떨어져 나가 고 이제는 사적인 생활 공간들만 남았다. 원래 도서실이 있었던 자리는 본관 축에서 약 30도쯤 틀어진 필로티된 매스의 2층인데 본관과는 복도로 연결이 된다. 그곳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간 시 선을 돌리면 아련한 거리에 드라이비트 마감 벽면과 노출 콘크리 트 구조체가 묘하게 어울리는 경당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 나의 대지 안에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채들이 사이 공간을 형성 해 가며 나뉘어진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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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담쟁이 넝쿨이 푸르러 가는 벽면 너머에는 하늘성당이 있다. (아래) 묵상실이 은밀 하게 자리 잡은 동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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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동의를 넘어 응원을 보내 주시던 고마운 분들 당시 건축가 이일훈은 1992년 주택 프로젝트인 탄현재를 통해 이 미 ‘채나눔’이란 설계 방법론을 실현한 바 있었고, 규모나 용도에 관계 없이 어떤 건축에나 가능한, 즉 범용적 적용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였으니 이 집도 그의 관심사를 피해갈 순 없었을 것이다. 물론 결정적인 것은 건축주, 즉 수도회 측이 얼마만큼 그의 생각 을 받아들이느냐는 것이었는데, 건축가가 자신의 저서 『모형 속 을 걷다』에서도 밝혔듯이 “사용 목적과 기능만을 제시하고 건축 가의 의견을 묻는 건축주”, “건축가의 말에 예의를 갖추는 건축 주”를 보면서 감동하고 말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건축가의 생각 이 얼마나 받아들여졌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건축주의 이해 와 함께, 자신의 건축 철학과 수도원의 기능이 맞아 들어가는 부 분이 많다는 점에 힘을 얻은 건축가는 “집짓는 방식이 아니라 사 는 방식에 대한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불편하게 살기’ 이다.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가톨릭 영성에 관한 책들을 탐독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건축가의 구체적인 제안들은 담당 수 사들을 당황시킬 정도로 근원적이고 원론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혹독(?)했던 부분들이 완화되기도 했지만 “이 양반이 우리를 공부시키려고 한다”며 이해와 동의를 넘어 나 중에는 응원을 보냈던 건축주 덕분에 건축가는 이 수도회의 정신 이 담겨 있는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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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경당 측벽.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드는 그림자가 단조로움을 해결한다. (아래) 경 당 내부.
30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혹독했던 경당 내부 불편함이 가장 극대화된 부분은 경당을 본관으로부터 대지 경계 선이 허용하는 한 가장 멀리 떼어 놓았다는 점이다. 수도자들의 나태함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에서 경당 내 부까지 이르는 과정에서는 성스러운 공간으로의 전이를 극적으 로 나타내고자 한 건축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십자가의 길을 지나서 성모상이 놓인 가벽 뒤로 꺾여 들어간 계단을 오르고, 브 릿지를 건너 마침내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물론 전통 적인 수도원에 비해 땅이 너무 작아 상징적인 열주나 여타의 장치 들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압축되어 표현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경당 내부는 처음의 거칠고 불편함이 주는 엄격함에서 지 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내면의 소리를 응시할 수 있을 만큼의 침묵은 여전히 흐른다. 원래 이 경당은 난방도 되지 않았고 내부 벽 마감은 온통 거친 노출 콘크리트였으며 바닥은 검은 콩자갈 박 기로 울퉁불퉁했었다. 의자도 등받이 없는 30cm×30cm×42cm 짜리 나무 박스였다. 조명 또한 낮에는 유리 블록으로 빛이 희미 하게 들어오도록 했고 밤에는 노출된 보로부터 천장을 향한 간접 조명에서 빛이 떨어지도록 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중하게 여 긴다는 제대도 콘크리트 위에 까만 돌을 얹는 형식으로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했다. 흔히 귀한 물질로서 중한 걸 표현하려고 하는 데 가장 흔한 재료로 가장 귀한 걸 만들어 보이고 싶어서였다. 이 또한 모든 것이 건축가의 권유에 그렇게 한번 살아보겠다던 수도 자들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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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십자가의 길과 14처. (아래) 경당 전경. 경당과 십자가의 길이 같은 축선상에 있으며, 내부로의 진입은 측면에서 시작된다.
32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미술 작가들을 끌어들이다 작가들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성 미술품 두 점을 경당에서 찾아 보는 것도 솔솔한 재미다. 하나는 제대 뒷벽 바깥쪽으로 삐딱하 게 튀어나온 감실인데, 건축가가 만든 큐브 형태의 틀을 조각가 한계원이 동판으로 마무리했다. 성체를 모시는 감실이 세상과 교 회의 벽 사이에 걸쳐 있는 까닭은 예수처럼 세상을 위해 살아가 는 수도자의 본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경 당 전면에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콘크리트 기둥의 테라코타 작품 들이다. 십자가의 길 14처(십자가의 길은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 다 언덕에 이르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하며 이 길에는 각각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다)를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살피던 건축가는 대부분의 14처가 설명적으로 표 현된 것이 아쉬웠다. 더구나 수도자들에게 그런 설명이 필요 있 을까, 싶었다. 처음부터 성 미술품으로 접근하지 않고 14개의 기 둥에 1에서 14까지 번호만을 새기려고 한 이유이다. 하지만 너무 거칠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도예가 김한사의 테라코타로 각 지점 의 의미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경당의 성 미술품 이외에 작가에게 의뢰한 작품으로 본관 공동방의 천장화 (화가 정태경)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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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본관 화장실과 복도가 나란히 배치되었다.
34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공간이 때론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단위 건물 안에서는 “경당 멀리 떼어 놓기”와 같은 ‘채나눔’이 적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건축가 마음 같아서야 숙소, 공동방 등 을 칸칸이 분리하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별도 로 묶인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 등의 공간이 외부와 살짝 접하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켜를 이루며 본관과 분리되어 있는 정도다. 그러고 보면 본관은 가벽들과 긴 통로에 의해 공간의 켜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작은 수도원이다 보니 내외부 공간의 교호가 많 지 않은데, 가벽으로 풍부한 느낌을 주기 위한 건축가의 노림수 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벽과 벽 사이의 슬릿한 공간 사이로 깊 이감 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 또한 나쁘지 않다. 그런데,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이 외부 화장실 이 공동 화장실이라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보통 수도원은 방마다 화장실을 두는 편인데 이 신학원에는 노수사의 방을 제외하면 개 별 화장실을 찾아 볼 수 없다. 누군가는 화장실, 욕실 등을 공동 으로 쓰는 것이 형제를 사랑할 수 없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공동 체 생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도 말한다. 함께 사는 법을 배워 나 가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벽체의 중심과 중심 사이의 거리가 약 1,200mm, 실제로는 1,000mm가 될까 말까 한 복도 또한 이와 비슷한 의미와 효용을 지니고 있다. 건축가가 지 칭한 대로 이 좁고 어두운 “겸손의 복도”에서는 늘 조심하고 양 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겸손이 배어난다는 것이다. 이처 럼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에는 “그 건축물이 상징하는 정신까지를 포괄”하는 공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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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성당으로 오르는 난간 없는 계단. 안쪽 벽면의 난간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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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살고 (늘려 살고) 본관의 하늘성당과 신관 식당채 2층의 옥외 테라스는 건축가 이 일훈의 또 다른 주장인 밖에 살기와 늘려 살기를 말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 내부에 비어 있는 외부 공간을 만들어 자연과 어 울리게 하고 걸으면서 사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수사와 수 사 사제 방 위쪽 옥상에는 2m가 넘는 벽으로 사방을 막은 하늘 성당이 있다. 바깥은 볼 수 없고 하늘만 보이는 공간이다. 콩자갈 을 바닥에 깔고 몇 개의 구조물로 변화를 준 이 텅 빈 공간이 묵상 과 기도에 도움이 되길 원했던 건축가는 (지금은 없지만) 가운데 제대를 중심으로 미사 참례와 수도자들의 집회, 기도가 열리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또 밖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신관 식당채 2층의 외부 공간은, 숙박 시설처럼 방으로만 구획된 봉쇄 구역에 서 숨통과도 같은 역할이 기대되었던 곳이다. 번번히 마당이나 숲 을 찾을 수 없는 수도자들에게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통하는 이 곳은 내부에서 소요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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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1층과 동선이 연결되는 묵상실. 묵상실의 내부 공간은 외부 형태와 같다.
38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밖에 살고) 늘려 살고 반면, 본관 서측의 필로티된 부분은 건물 외부의 커뮤니티 공간 이다. 그늘 지고 바람 머무는 곳에 평상을 둔, 우리나라의 누마루 와도 같은 개념이다. 새로 지어진 도서관 동측 끝 부분의 외부 도 서관과 함께 “밖에 살기를 놓치지” 말자는 건축가의 소박한 권유 가 공간으로 표현되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혼 자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하늘성당 뒤편의 인공 연못이었을 법한 곳에 자리 잡은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을 빼 놓을 수 없다. 연못에 물이 차 있다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형 상이었을 것이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 방은 도면상에 묵상실 로 표기되어 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가톨릭의 전통이라고 한 다. 건축가는 하늘성당과 마찬가지로 수도회의 요구 사항에 없던 것을 제안하였고,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에 환기창 만을 낸 이 삼각형의 방이 때론 수도자들이 울 수 있는 통곡의 방 이 되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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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성당에서 바라 본 본관. 전면에 가벽으로 켜를 만들어 공간의 풍요로움을 더했다.
40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푸석해짐이 매력적인 건축 재료 콘크리트 구조로 바닥과 기둥을 만들고 스플릿 블록으로 벽을 쌓 는 방식은 이일훈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수법이다. 그에게 건 축 재료란 모름지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푸석해짐”의 매력을 가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때가 잘 묻는 재료이면서 대리석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인 스플릿 블록을 주요 외장재로 선택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스플릿 블록은, 건축가의 바람대로 안감을 대지 않은 옷처럼 건물 안팎을 일치시키는 정도 는 아니지만, 안과 밖의 마감을 맞춰 가기에 적당한 재료이다. 물 론 예산이 뒷받침되어 준다면 용도에 따라서 보다 부드럽고 다채 로운 걸 할 수도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구하기 쉽고 값싼 재료로 이처럼 “거침과 질박함”을 표현하는 것은 이일훈 건축의 특징이 기도 하다. 햇빛에 의해 반사된 노출 콘크리트 벽면의 그림자가 인상적인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 고 있다. 침묵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했던가. 건축가의 표현대로 “한 마디로 무뚝뚝한”, 또 다른 표현으로 “자비와 겸손 의 침묵이 깃들어 있는 듯한” 건축을 통해 비로소 수도자들은 자 신을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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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측에서 하늘성당 쪽을 바라보다.
42 Wide Work 이일훈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불편함 “불편하게 살자, 밖에 살자, 늘려 살자”를 묶은 ‘채나눔’은, 1990 년대의 ‘나눔’이란 화두와 맞물려 수없이 회자되었고, 건축가 스 스로도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던 설계 방법론이다. 그 내용을 요 약해 보자면 대략 이렇다. 근대화를 통해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 한 형태, 즉 덩어리 형태로 변화해 온 건축은 자본의 가속화로 인 해 자꾸만 더하려고 하고 편리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데, 이 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편리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채나눔’은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건강한 집 을 제공하고 다양한 액티비티가 일어나는 외부(자연) 공간을 발 생시키며 느리게 사는 삶을 보장할 수 있지만, 대신 밖에서 살아 야 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고 동선이 길다는 불편함, 그러나 생태와 환경의 문제 앞에서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큰 자발적이고 창 조적인 불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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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성당 매스와 본관을 잇는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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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세상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 물론 그에게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불편하게 살자고 제안을 하지만 타협을 아주 안 하는 건 아 니다. 아직 만족할 만한 불편함을 건축 디자인에서 구현해 내지도 못 했다. 단지 환경에 부하를 덜 거는 방식, 이를테면 자동차 없이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될 수 있으면 자전거를 선택 하고, 만약 자동차를 타야 한다면 작고 연비 좋은 차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식이듯, 건축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하다. 반면, 현실적으로 많은 건축가들은 그러한 방식에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 보다 만드는 방법, 특히 이슈가 되는 방법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그러나 건축 방법론은 언제고 변화할 수 있지만, 세상에는 변화하 지 않는 더 중요한 건축의 가치들이 있고, 건축가의 손길을 필요 로 하는 일들 또한 많다. “디자인은 세상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 이라는 건축가 이일훈의 작업에 자꾸만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아 마도 대부분의 작업들이 건축의 형태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추 구하거나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껴안거나 혹은 건축주/사용자에게 적합한 사는 방식을 제안하거나, 하는 형태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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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으로 점성 정신을 익히는 자비의 침묵 수도원 글 | 박영대 | (사)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토종 수도회 내가 ‘자비의 침묵 수도원(순교자의 모후 신학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50년사 집필을 부탁받고 자료 조사를 하던 2003년이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이름에 서도 드러나듯이, 외국에서 들어온 수도회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서 만들어진 토종 수도회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사의 선교 활동이 아니라 실학자들이 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신 앙을 받아들였다는 유일무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래 직후부 터 100년 가까이 박해가 이뤄졌지만, 천주교 신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방유룡 신부는 이 같은 순교 정신을 이어받는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점성(點性), 침묵(沈默), 대월(大越), 면 형무아(麵形無我)라는 독특한 고유 영성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3년 10월 30일에 창설하였다. 남자 수도회로서는 우 리나라에서 맨 처음 세워진 토종 수도회이며, 그 영성을 서양에 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 을 배운 방 신부가 한국 고유의 영성으로 창립했다는 점에서 그 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창설자 방유룡 신부는 한국순교복자수 녀회(1946년),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1962년)도 창설해 수도 대가족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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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와 점성 정신 방 신부의 영성 가운데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점성(點性)’이 었다. “가장 무(無)를 닮은 존재로서 점이 갖는 비움과 겸손의 길 을 걷게 할 뿐 아니라 점처럼 작은 것에 소홀함이 없고, 점처럼 지나치기 쉬운 찰나에도 깨어 있게 만든다는” 점성 정신은 내 마 음 깊이 와 닿았다. 수도자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르려는 사 람이라면, 아니 참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 야 할 삶의 태도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수도회 역사를 쓰는 동안 자료 열람과 정리를 위해 서울 성북동 본원을 자주 드나들 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한 평생을 수도자로 사는 것도 멋진 일이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젊은 시절에 이처럼 수도 생활을 가깝 게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면, 수도자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까지 했다. 나에게 그 같은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젊은 수사 들이 아니라 머리가 세고 등이 굽은 노수사들이었다. 그들은 양 철 트렁크 가방 공장, 건축 현장, 농장에서 직공, 목수, 농부로서 막노동과 희생을 통해 수도회를 일구고 지켜온 분들이었다. 그런 노수사들과 젊은 수사들이 한데 어울려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 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살아 있는 역사이구나, 이 젊은 수사 들은 역사를 직접 만나고 느끼며 사는 행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 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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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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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의 영성이 깃든 건축 당시 자비의 침묵 수도원 부분을 쓰다 보니 수도회 안의 자료만으 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이일훈을 만났 고, 그때 수도회 전체 살림을 받아 건축을 추진했던 서영남 수사 를 만났다. 2000년에 수도회를 떠난 서영남 수사는 그 무렵 노숙 자 무료 식당 ‘민들레국수집’을 막 시작한 뒤라 무척 고생하고 있 었다. 두 사람에게 들은 자비의 침묵 수도원 이야기는 단번에 나 를 사로잡았다. 생활 공간과 최대한 떨어뜨려 지었다는 경당, ‘겸 손의 복도’, ‘하늘성당’과 난간 없는 계단, 건축 자재를 재활용해 만든 가구들. 워낙 감동이 커서 그 무렵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 에게 자비의 침묵 수도원을 이야기했고, 격월간 『공동선』에 글도 썼다. 사람이 집에 영향을 미치고, 집이 사람에 영향을 미칠 수 있 다는 이야기를 그때처럼 실감나게 듣고 느낀 적이 없었다. 자비 의 침묵 수도원의 정식 이름은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이다. 이름 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그때 신학원을 맡은 수사 사 제가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란 이름을 제안했지만 정식 이름으로 정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일훈의 책 『모형 속을 걷다』를 통해 밖으로는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 더 널리 알려졌다. 가톨릭 신자 도 아니었고 가톨릭 교회 건축도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 처음이었 던 건축가 이일훈은 수도원을 설계하기에 앞서 방유룡 신부의 어 록 『영혼의 빛』을 여러 번 탐독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설계한 자 비의 침묵 수도원에 방유룡 신부의 수도 영성이 스몄을 것이다. 그러니 수도원 이름에는 창립자 영성 가운데 하나인 ‘침묵’이 들 어가야 제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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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바깥은 볼 수 없고 하늘만 보이는 하늘성당. (아래) 외부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 되는 필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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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살기로 작정한 수도자의 집 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곧 자비의 침묵 수도원은 학생 수사들이 사는 수도원이다. 교구 소속 신학생은 신학교 안 기숙사에 머물 지만, 학생 수사들은 수도 생활의 특성상 공동 생활을 해야 하고 수도회마다 다른 창립 정신과 영성에 맞게 양성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생활한다. 건축가 이일훈은 학생 수사들의 생활과 양성 공 간인 신학원을 최대한 불편하게 지었다. 정결, 청빈, 순명의 삶을 사는 수도자는 불편하게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학원은 이제 막 수도회에 들어와서 수도 생 활을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학생 수사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가. 몸과 마음에 단단히 익혔던 것도 세월이 흘러가면 무뎌지고 물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신학원을 최대한 불편하게 사는 것이 그 뒤 수도 생활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자비의 침묵 수도원을 방 문했던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운 영하는 한국 최초의 개방형 정신병원으로 2006년 국가인권위원 회가 주는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았다)의 한 의사는 제약 회사에 서 마련한 호화스런 행사에 참석했을 때 병원장 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원장님, 이 친구들이 복자수도회의 헝그리 정신 을 몰라도 한참 모르네요.” 이처럼 자비의 침묵 수도원은 수도회 회원뿐만 아니라 바깥사람들에게도 수도회 정신과 영성을 드러 내는 상징이자 중심 역할을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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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주출입구 너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증축된 두 동의 신관. (아래) 길과 신학원 영역을 상징적으로 구분하는 콘크리트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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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회자는 줄고 입회자는 늘고 그렇다면 이 불편한 공간이 그곳에 실제로 살았던 젊은 학생 수 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따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 으니 이를 알 만한 사람에게 물을 수밖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동 갑내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수사를 만나 술 한 잔 사가며 자 비의 침묵 수도원이 학생 수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는 관심을 갖고 자비의 침묵 수도원에 서 살다 온 후배 수사들에게 “지내기 어땠어?” 하고 묻곤 한단다. 대답이 한결같았다고 했다. “아주 불편해요.” 학생 수사들이 하 나같이 똑같은 평가를 하고 있으니 건축가의 의도가 정확히 실현 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불편은 어떤 효과를 내고 있을까? 자 비의 침묵 수도원을 처음 지을 때, 새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중간 에 나가는 회원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 규모이면 충분할 것이라 고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 수사가 많아져서 두 채를 더 지 었다. 예상보다 수도회를 나가는 사람은 줄었고 들어오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비의 침묵 수도원 때문에 이 같은 일 이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 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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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재료들의 짜임새 있는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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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록새록 두터워지는 형제애 자비의 침묵 수도원의 불편은 다른 신학생 시설과 비교할 때 더욱 뚜렷해진다. 여러 해 전에 신학교 기숙사에서 잘 기회가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수도권의 한 신학교에서 열린 프로그램에 참석했 을 때였다. 방은 넓었고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갖추고 있 었다. 고급 자재를 썼고 깔끔했다. 내 느낌도 그랬고, 함께 참석 한 다른 사람들도 신학생 기숙사가 이렇게 좋을 필요가 있느냐고 한마디씩 했다. 신학생 때부터 너무 편하게 지내면 사제가 되었 을 때 검소하게 살 수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비의 침묵 수도원은 다르다. 방 2개를 빼고는 방마다 화장실과 세면실 을 두지 않고 공동 시설로 마련했다. 화장실과 세면실이 딸린 방 2개는 학생 수사들과 함께 지내는 노수사를 위한 것이다. 노수사 로부터 수도회 역사를 듣고 느끼는 것은 불편한 시설만큼이나 학 생 수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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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복도. 늘 조심하고 양보하는 사이 겸손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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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복도’와 하늘만 바라보이는 공간 방마다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학생 수사들은 씻거나 오줌똥을 싸 려면 ‘겸손의 복도’를 지나 공동 세면실이나 화장실로 가야 한다. 밤중에 옷을 벗고 자다가도 화장실을 갈 때면 옷을 갖춰 입어야 한다. 점성 정신으로 늘 마음가짐과 행동거지가 단정해야 하는 수 도자로서는 약이 되는 생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또 세면실을 공 동으로 쓰니 서로 알몸을 보이며 함께 목욕할 기회가 자주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알몸을 수도회 형제에게 서로 보이는 일이 자연스러운 만큼 마음을 여는 일도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 친밀 감과 공동체 의식도 자연스럽게 깊어질 것이다. 자비의 침묵 수도 원의 공간 가운데 원래 뜻대로 활용되지 않는 공간은 ‘하늘성당’ 이다. 시설이 부족해지자 하늘성당에 지붕을 덮어 쓸모 있는 공 간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행히 건물을 두 채 더 지었 고 하늘성당은 그대로 남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미사가 봉헌되지 는 않는다. 처음에 설치되었던 나무 제대도 치워졌다. 그래도 사 방이 가로막혀 하늘만 바라보이는 공간이니, 혼자 묵상하고 싶은 학생 수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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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은 본관으로부터 대지 경계선이 허용하는 한 가장 멀리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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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 점성의 삶을 위한 밑거름 세상은 점점 좋고 편한 것만을 찾는다. 종교도 그 같은 시류에서 자유롭지 않다. 종교에도 서비스 개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교회의 일부가 버젓이 성공 지 상주의를 전파하고 당연시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종교가 어 디 편하자고, 하는 일마다 잘 되려고 믿는 것인가. 참사람, 참 나 가 되기 위함이 아닌가. 그리 되기 위해서 수행하자는 신앙 공동 체가 아닌가. 종교가 또 하나의 상품이 되어 시류에 따라 흘러가 고 흔들리는 것은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점성 정신의 밑거름이다. 불편함을 통해 학생 수사들에게 점성 정신을 익히게 하는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안에서 그 영성의 중심 구실을 하듯이,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점성의 삶으로 한국 천주교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중심 구실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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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모후 신학원, 일명 자비의 침묵 수도원은 1994년 완공 되고 1997년 신관이 증축된 작품이니 신작은 아니다. 그러나 불 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 등의 설계 방법론에 대한 범용 적 사용을 고민하던 시기의 작품으로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제안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 슈에 편승하지 않고 인문학적 건축을 진지하게 탐구해 온 건축가 가 어떻게 건축으로 다른 삶과 소통하는지에 주목해 보자. 도면 이나 관련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아 실무적 정보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진효숙(건축 사진가) 경당 제대 뒤 벽면에 걸쳐 있는 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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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발표
이 슈 1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
당선작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서정일 作
제 2 회
제2회 시상식 및 제1회 당선작 출판기념회 일정 1) 일시 ⓦ 2010년 6월 18일(금) 오후 3시~6시 2) 장소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 소강당 ⓢ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경과 보고 ⓢ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건축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속 깊 은 후원회가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이하 사업회)이다. ⓢ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사업인 <심원건축 학술상>은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 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학자 및 연구자의 저작 지원 프 로그램으로 마련되었다.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응모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하는 프로그램 이다. ⓢ 지난해 제1회 당선작으로 박성형의 <벽전>을 선정한 바 있고, 금회의 시상식과 동시에 대망의 출판기념회 가 개최될 예정이다. 사업 시행 2차 년도(2009~2010)를 맞아 두 차례의 공모(2009년 8월, 11월)를 통하여 3편의 추천 작이 선정되었고, 지난해 최종심에서 낙선한 1편이 더해진 총 4편에 대한 최종 심사가 지난 4월 21일(수) 저녁, 서울 인사동 누리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의 당선작이 가려졌다. 당선 작가에게는 상금 500만 원과 향후 1년 내에 단행본 출간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 금회에 최종심에서 낙선한 작품에 대하여는 향 후 2년간 계속해서 추천작의 자격을 유지하여 어렵사리 수상권에 든 원고들을 재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도 심원 건축학술상만의 특징이다. 그로써 매년 수준 높은 연구 성과물들을 집적하는 효과와 함께 본 건축학술상이 일회성의 이벤트보다는 목적 지향성의 사업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견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언컨대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저술 후원 프로그램으로서 이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것에 목표를 두겠다는 주최자의 굳은 의지는 심원건축학술상 이 지닌 매력이 아닐 수 없다. ⓢ 금번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최종 심사도 전년과 마찬가지로 ‘3인 위원회’(배형민, 안창모, 전봉희)로 구성하여 추진하였다. 수 개월에 걸친 응모작과 추천작의 거듭되는 독회가 손쉬운 일은 아니었음 에도 시종일관 최선을 다하여 꼼꼼하게 원고를 살펴준 심사 위원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우 리 건축계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로 자리매김한 심원문화사업회 이태규 이사장과 신정환 사무장께도 깊이 감사드린 다. ⓢ 이제 사업 시행 3차 년도(2010~2011)를 맞아 후원 사업도 서서히 본 궤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본다. 작년 이 지 면에 소개되었던 제1회 당선자의 단행본 출간이 임박해 있음이다. 개인적으로도 1, 2회 당선자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쁨에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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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진삼(본지 발행인,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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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1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발표
ⓦ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제 2 회
심사평 1 ⓢ 심사 위원 | 배형민(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심사 번호 01 <다시 쓰는 김중업 건축론, 아버지의 이름으로―건축가의 사승 관계와 독창성의 문제> ⓢ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건축가의 사승 관계와 독창성 문제> 중에서 대조 비평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와 김중업에 대한 논의를 추출하여 정리한 글이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관계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과감하고 적확한 판단이었다. 이 글 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전략은 옳은 것 같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위상이 현대 건축의 셰익스피어에 해당하는 만큼 블룸의 이론이 보다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김중업에 집중하게 된 결과 정인하의 기 존 연구에 의존하는 인상이 더욱 강해졌다. <건축가의 사승 관계와 독창성 문제>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작가와 작품 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상 이들의 작업에 대한 보다 치밀한 분석이 더욱 절실해졌으며, 다른 한편, 국내외의 여러 시대적인 정황들이 무시된 채 르 코르뷔지에와의 관계에만 집착하는 인상을 준다. 구체적인 작품의 해석에서 저자 자신의 입장이 분명치 않으며 구체적인 오류가 생긴다. 단편적인 예 로 1958년 서강대 본관을 1961년에 설계를 시작한 Carpenter Center를 “오독”한 것으로 서술하였다.(125쪽) 또한 이론과 사례 연구가 이분화된 문제, 그리고 저자가 갖고 온 이론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는 것 등 문제들이 여전 히 남아 있다. 이러한 “이론의 감옥”에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저자 자신이 구축한 치밀한 현장, 곧 작품과 아 카이브의 현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사 번호 02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 ⓢ 국내에서 저술된 서양 건축과 현대 건축 논문으 로서는 보기 드문, 철저하게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글이다. 1960년대 미국의 도시 설계 담론에 나타나는 소통 이념의 맥락에서 루이스 칸의 도시 프로젝트를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미국적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이어지는 케빈 린치(Kevin Lynch)의 지각주의와 차별화된, 저자가 주장하는 ‘해석학’적인 루이스 칸의 입장을 부각시키겠다 는 의도가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나 이론적인 맥락에서 ‘소통’이 키워드가 된다는 것에 역시 동의하게 된다. 시의성이 있으면서도 국내외 학계에서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은 뜻 있는 연구서라 판단되었다. 동 시에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론에서 소통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논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철학적 담론으로서 빈약할 뿐만 아니라 전체 글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홈스 퍼킨스의 관점, 베이 컨의 추상적 공간 ‘도식’, 크레인의 상징 도시와 캐피털 디자인, 주걸러와 칸의 도시론 등을 설명하지만, 논문의 주 제인 소통 이념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 글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칸의 프로젝트에 대한 해석이다. 해석학을 내세운 이상 아직은 어색한 해석의 글쓰기를 책의 중심에 놓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석 의 대상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측면에서 어려울 것이다. 서두에서 루이스 칸과 다른 건축가, 도시 계 획가, 이론가의 작품과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비교 분석으로 해석학적인 입장과 지각주의적인 입장, 또는 기능주의 적인 입장의 차이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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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이 슈 1 ⓦ 제 2 회
심사 번호 03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축가의 정체성>(출판 희망 제목 : 경성의 조선인 건축가) ⓢ 탈식민지 담론과 건축가의 정체성. 저자가 제기한 이 두 가지 주제는 각각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탈식민 지와 정체성의 문제가 한국 근현대 건축의 맥락에서 논의된 것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글의 주제는 충분히 주목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글의 핵심이 4장이라는 측면에서 장차 이 부분을 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생각에도 십분 동 의한다. 특히 저자의 논지를 구성하기 위한 인용구들의 배열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2장과 3장의 ‘탈식민지 담론’은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국내외 기존 학계의 입장들을 받아들였는데 저자의 연구를 토대로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는 자신의 분석 방법론을 “미시사”로 제시하였지만 실제 논문의 전개 방식은 식민지와 탈식민지적 입장 이 교차하는 담론 구성(discursive formation)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족 혼종성, 민족과 계급의 양가성, 계 급과 이념의 불확정성, 이념과 젠더의 모순성 등은 모두 중요한 주제들이지만 이것들이 미시적으로 분석해 낸 ‘정체 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사용하는 2차 문헌의 성격으로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와 재생 산’을 순환 논리의 방식으로 보여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미시사적인 입장에서 일반론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원고는 다소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으나 저자의 훌륭한 필력으로 장차 가다듬어 질 것으로 믿는다. 저자의 이론적인 입장을 재정립하고 원고의 주제와 범주를 4장 중심으로 정리할 경우 좋은 저술 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평가 종합 ⓢ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 원고를 과감하게 재편집하여 명확하게 책 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해 놓았다. 한편 <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과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 축가의 정체성>은 상대적으로 보다 명확한 저자의 입장, 그리고 풍부한 자료와 주제를 갖추고 있다. 원고의 전달력 은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이 우수하지만 <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은 국내외 학계에서 인정할 수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다. 특히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도시 건축에 대한 관심의 맥락에서도 시의적 절한 연구서이다. 루이스 칸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태도와 건축의 도시적인 의미에 대한 실증주의적인 태도를 동시에 넘어선다는 것이 이 글의 큰 장점으로 부각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 현대 건축의 이해에 바로 기여하지는 않겠으 나 그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에서 취약한 서두를 정리하고 전체 내용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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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하면서 글을 다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를 최종적으로 추천하는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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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 ⓢ 심사 위원 |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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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번호 01 <다시 쓰는 김중업 건축론, 아버지의 이름으로―건축가의 사승 관계와 독창성의 문제> ⓢ 건축가를 다 양한 관심에서 조명하는 작업은 한국 건축의 담론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한국 현대 건축의 중 심에 있는 건축가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작업은 한국 현대 건축을 다양하게 해부하는 작업에 다름 아 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김중업과 김수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한국 현대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두 건축가가 한국 현대건 축에서 차지하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건축 작업의 가치나 작가에 대한 평가는 한두 줄의 짧은 글로 평가되거 나 사회적 통념에 기초해서 평가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심도 있는 연구의 부족에 인한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건 축가가 무엇으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건축가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국내 학계에서 <다시 쓰는 김중업 건축론>은 건축가 연구에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저작이라고 판단된다. 아 쉬운 점은 건축가 김중업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점 과 글의 많은 부분이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챙긴 자료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글쓴이의 시선이 일 정한 정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저술이 갖는 가장 취약한 부분일 수 있다. 이러한 한계는 앞으로 저자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이 시대 건축계의 신진들에게 있어서 선배 건축가들에 대 해 ‘내용은 소멸된 채 이름만 신화처럼 전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현실에서, 왜? 그들의 이름이 신화가 될 수 있 었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연구와 출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심사 번호 02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 ⓢ 국내 서양 현대 건축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 여 준 연구 성과다. 루이스 칸은 거장들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 세계 건축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지만, 국내 에서 우리의 눈으로 본 연구 성과는 극히 미미했다. 루이스 칸의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었고 작품집이 출판되었 지만, 건축계의 명언으로 자리 잡은 칸의 몇몇 문구와 이에 조응하는 몇몇 작품으로 칸이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었 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저자의 루이스 칸의 도시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는 건축을 통해서 이해함으로써 제한되 었던 루이스 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중요한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본 연구가 건축가의 아카이브에 기초하 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장점이다. 국내에는 건축가와 건축에 대한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외국에 비 해 상대적으로 아카이브에 기초한 연구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1차 자료에 기초한 연구가 당사자의 학 문적 성숙은 물론 학계에 기여하는 바가 지대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본 연구는 1차 자료에 충실한 연구의 모범 사 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와 건축의 공공성이 우리 도시의 당면 과제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시대의 중심이었던 건 축가의 ‘도시와 건축 프로젝트’의 공공성을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음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건축가들이 읽어 보 아야 할 연구 성과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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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번호 03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축가의 정체성>(출판 희망 제목 : 경성의 조선인 건축가) ⓢ 제출한 학위 논문의 연구 성과를 통해 저자가 출판 기획서의 내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 특히 건축계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한인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저술 작업은 주제 자체가 주는 의의만으로도 출판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저자의 논문에서 논문의 전개 과정 중 논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에 대한 검증 없는 주장 또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 인용문임에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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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 인용문 없이 서술되는 단정적인 내용, 2차 자료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오류 등은 응모자의 기획서가 출판물 로 이어질 경우 세심한 검증 또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저자가 자신의 논문이 서양 중심의 역 사 서술과 거시사의 한계를 성찰하는 입장에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저자의 입장은 건축 외적 분야에서 이미 일반적 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각을 건축에 대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벗어나고자 하는 틀을 온전하게 벗어나고 있 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미시사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내용 구성에 있어 미시사라고 하기에는 기초 자료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점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연구 주제가 한국 건축 연구에서는 다 루어지지 않았던 ‘탈식민주의 담론’이어서 한국 건축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각을 더해 준 것은, 앞에서 언급한 지 적에도 불구하고 심화된 연구가 부족한 한국 근대 건축 특히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본 저자의 연구 관점 이 갖는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한 출판 기획서는 대중을 상대로 기획된 것인 만큼 연구 논문과 달 리 엄격한 논증을 요하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의 경우 내용 구성이 논증적일 필요 는 없어도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친 후 독자의 수준에 맞추어 해석되고 서술되어야 함을 유의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문가보다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의 경우 근대 건축 연구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원전에 대한 충실도 문제(부정확한 2차 자료 의존에 의한 오류)와 사회적으로 통념화된 선험적 판단에 기 초한 예단의 문제 등에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출판 기획서를 충실하게 엮어 낼 수 있는 능력 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기획서는 완성된 저작 또는 그에 준하는 저작물을 대상으로 한다 는 심원건축학술상의 기준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출판 기획서의 내용이 책으로 엮어지기 위해 서는 남다른 노력이 따라야 하겠지만, 한국 근대 건축 연구의 길을 함께 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기획안의 성과에 기 대가 크다. 특히 저자의 기획안을 통해 김수근, 김중업에 함몰되어 있는 한국 건축가에 대한 연구의 폭이 다양화되 고 깊이 있게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 번호 04 <The World after the Eden> ⓢ 건축가로서 자신의 사고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저작으로서 의미 있는 글이다. 그러나 독자 또는 본 건축학술상 심사 위원이 동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 인 태도는 자신의 건축적 사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동시에 저자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제3장에 부가한 설계 프로젝트가 앞의 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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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전개한 저자의 생각을 구체화한 안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사족의 성격이 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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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3 ⓢ 심사 위원 | 전봉희(서울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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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번호 01 <다시 쓰는 김중업 건축론, 아버지의 이름으로―건축가의 사승 관계와 독창성의 문제> ⓢ 작년 제1회 에 응모하였던, <건축가의 사승 관계와 독창성 문제―김중업과 김수근을 중심으로>를 수정 보완하여 다시 제출한 것이다. 작년의 제출본과 달라진 점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였던 김수근 관련 부분을 빼고,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활 동과의 연관성이 돋보이는 김중업만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글의 구성과 논리의 진행은 여전히 해롤드 블룸 의 대조 비평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상대적으로 그 건축의 이론화의 정도가 약했던’ 김중업 건축 작업의 전(全)시기 를 다루고 있다. 처음 제출본에 비하여 훨씬 더 정제된 문체를 보이고, 논리의 설득력 역시 김중업에 집중함으로써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김중업은 ‘작가적 정체성에 대한 추구가 유달 리 강했’고, 선배이자 평생을 자랑스러워했던 스승 ‘르 코르뷔지에와의 갈등적 영향 관계’가 그의 평생에 걸친 건축 작업에 원하던 원하지 않던 영향을 끼쳤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승 관계를 기준으로 한 김중업의 건축 작품 비평은 김중업의 건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첫 번째 제출본과 비교하면, 블룸의 문예 비평 이론이 건축 비평에서 갖는 보편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김중업에 집중함으로써 김중업의 건축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출본에서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 하 나는 여전히 블룸의 이론을 김중업의 작품 비평에 직접적으로 대입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은 물론 여타의 조형 예술 분야와 건축이 갖는 차이점을 고려할 때 이 두 부 분은 심각하게 보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심사 번호 02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 ⓢ 이 논문은 루이스 칸의 작품론에 해당하지만,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던 루이스 칸의 대형 시설, 도시 시설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새롭 고, 분석의 주된 틀을 당시 즉,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 미국 건축계에서의 담론과 실무 사이의 소통의 문제라 는 측면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지하다시피 1960년대는 유럽이 주도해 왔던 20세기 모더니즘의 전개 과정에서 큰 전환기를 맞이하는 시기로,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대형의 도시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 행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전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건축적 활동과 담론의 중심지로 자리잡아가는 한 편,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197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는 토양을 만들어 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전반의 루이스 칸을 다룬다고 하는 사실은 모더니즘의 세대 교체와 건축 적 중심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이며, 나아가 루이스 칸의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를 다룬다고 하 는 점은 모더니즘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대중과 전문가,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 예술가와 도시 행정가 사 이의 소통의 결손을 다룬다고 하는 측면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와 같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제로 지 어진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행한 일련의 계획 작업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하나의 건축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수없는 조정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개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작품은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최종의 성과물일 뿐이다. 따라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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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건축가가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해 나갔는지의 전체의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최종 적인 성과물이 갖는 의미를 완전하게 해독하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의식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 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가의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있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연구가 활발히 진 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몇몇의 유사 사업과 작업이 시도되고 있는 정도이다. 따라서 이 작업은 연 구 방법론의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의 건축학계에 새로운 경향을 선보이는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약점도 지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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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눈에 거슬리는 것은 급하게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제1장의 내용으로서, 20쪽에 걸친 적지 않 은 분량을 들여 현대 도시 건축과 소통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 배경을 다루고 있으나, 문장이 생경하고 비문으로 가 득하며 본문의 내용과의 상관도도 떨어진다. 이 부분을 포함하여 본문의 (계획) 작품 분석의 부분에 대해서도 출판 전에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 심사 번호 03 <탈식민지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 건축가의 정체성>(출판 희망 제목 : 경성의 조선인 건축가) ⓢ 최근 학계에 유행하고 있는 탈식민주의의 담론을 해방 전후의 한국 건축가에게 적용하고 있는 논문이다. 구체적으 로는 근대(모더니즘)와 오리엔탈리즘, 제국과 식민지, 민족과 계급, 이념, 젠더 등의 카테고리로 개별 건축가들이 느 끼는 혼란과 이중적인 성격을 미시적인 분석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탈식민주의의 다양한 분석 개념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인상이며, 동시에 대개의 탈식민주의 논설들이 그러하듯이 ‘사실의 폭로’에 그치고 있는 점이 아쉽 다. 탈식민주의의 담론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담론의 해체를 통한 현실의 재인식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분석에 동원된 자료들이 대부분 2차 사료, 혹은 3차 사료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연구서로서 심각한 결점 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재인용의 문제가 심각한데, 재인용에 의존한 글쓰기는 인용 자료의 내용의 차원을 넘어서, 자 료의 선정 자체에서 저자가 참조한 원 인용자의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역사적 가설의 성 립이라는 건축 역사학의 본령에 이르지 못하고 제한된 상상력 속에서 정해진 길을 가는, 기존 저작의 해설서로 머무 를 가능성이 크다. 더 심한 경우는 2차 사료에 대한 관념적인 분석에 머무름으로써 받아들이기 힘든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원 자료에 근거한 보다 ‘미시적 관찰’이 요구된다. 이 글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잘 읽힌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잘 읽힌다는 점은 저자의 문재(文才)에 더하여 20세기 중반의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범주화 한 것에서 비롯한다. 저자는 우선 제국과 식민의 관계를 ‘서구 제국―일본 의사 제국―조선 식민지’로 3구분하고, 식 민지 조선에 존재하였던 건축 기술자의 양상을 ‘일본인―허용된 타자로서의 조선인 기술자―금지된 타자로서의 전 통 건축 장인’의 3자로 범주화한다.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의 개념화는 잘 읽히 는 글을 만드는 데 유효한 만큼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에 빠질 함정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프레임을 단순화함으로써 결론 역시 단순화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독후평은 저자가 제출한 박사 학 위 논문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 저자는 출간을 위하여 따로 개설서의 목차를 제시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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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목차만 보았을 뿐이지만 여기선 보다 구체적인 그리고 ‘미시적인’ 분석이 행해질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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띤다. 목차에서는 범주화가 돋보이기보다는 개별 건축 기술자에 대한 분석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의도하는 범주화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개별적 인간에 대한 미시적 관찰은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 역사상 가장 미묘하였던 이 시기를 다루는 적절한 방법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심사 번호 04 <The World after the Eden> ⓢ 이 글은 크게 사물과 현상, 예술 작품과 철학적 담론, 도시 공간에 대 한 저자의 종횡무진한 ‘사색(제1장)’을 위계 없이 다루고 있다. ‘위계 없이’라는 표현은 다층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지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지식의 단순한 나열로 이끌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더블스페 이스로 1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현상을 실재와 이미지의 문제로 다루고,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로서 (좀 길지만) 그 관계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후기구조주의(저자의 표현으로는 ‘신유물론’)의 사 유를 바탕으로 실재의 가치를 옹호한다. 제1장 사색의 두 번째 부분은 건축의 물질성을 서울과 뉴욕 등의 실례를 들 어 이미지에 대한 물질성의 우위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제1장의 세 번째 부분은, 다소 논의가 벗어나, 자본주의 의 본질에 대한 사색과 모더니즘(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렘 콜하스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견해를 밝히는 데 할애하 고 있다. 2장에서는 저자가 예의 ‘유물론적 사고’를 현대 미국의 교외 도시를 대상으로 건축적으로 재해석하는 일련 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현상학적 관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장에서는 저자의 석사 졸업 작 품의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이 긴 글이 결국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 반적으로 이 글은 도시와 건축, 철학과 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탐구를 거쳐 하나의 건축 설계 작업으로 이어지 는 과정을 담고 있어서 흥미롭다. 때론 발랄한 해석이 돋보이기도 하고, 나름의 견해와 주장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석사과정의 제출 논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자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그것이 학문적 성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평가 종합 ⓢ 이상과 같은 독서를 바탕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한 심사 위원 전체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심원건축 학술상은 건축 이론, 역사 분야의 신진을 발굴하여 출판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네 편의 후보작 가운데 세 편의 작품이 출판을 지원할 만한 것으로 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그 가운데 특히 루이스 칸을 다룬 작품과 해 방 전후기의 한국 작가를 다룬 작품이 최종적으로 경합하였다. 두 편 모두 한국의 현대 건축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변환이 있었던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두 작품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의 무게를 겨루는 일이었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였 다는 점이 돋보이고, 후자에 대해선 출간 계획서에 따른 후속 작업을 지켜보자는 데 심사 위원의 합의가 있었다. 지 난해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자면 우열을 가르기 힘든 매우 독창적이고 묵직한 성과물들이 여럿 있어서 어렵지만 행 복한 심사 과정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우리 학계의 밝은 내일을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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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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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서정일 作
제 2 회
ⓢ 오늘날의 건축은 현대 도시 문명과 어떻게 공존하고
도시 등을 대신할 새로운 도시 설계의 이상이 요청되고
있는가? 도시 문명의 긍정적인 측면을 형상화하고 있는
있었다. 이에 ‘예술로서의 도시 설계’가 규정되기 시작했
지, 이를 위해 현대 건축의 전통과 규율을 충실히 발전시
고, 도시 환경의 역동성과 무질서에 대응해서 도시 환경
키고 있는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대체로 부정적인데,
의 질서를 새로이 모색해야 하고 도시 환경이 도시민에
현대 건축은 현대 도시 문명의 부정적 측면을 더 심각하
게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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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 되었지만 흔히 무용했고 더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 필라델피아는 뉴욕, 보스턴 등과 함께 가장 활발하게
이제, 적합한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우리가 숙고해야 할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된 도시였다. 이곳에서는 1950년
점 하나는, 현대 건축이 안고 있는 도시적 차원의 그 문
대 말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련의 이론가와 건축가들이
제들이 엄연히 역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도시 설계 분야에서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그들은 비록
문제의 역사성을 탐구한 드문 연구들은 더 적극적인 노
통일된 해답을 창출하지는 못했고 따라서 뚜렷한 이론적
력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있다. 넓게는 이런 문제 의식에
계보 없이 학문적으로도 덜 조명받게 됐지만, 그 집단적
서, 이 연구는 지난 20세기에 걸쳐 현대 도시의 발전과 관
담론만큼은 복합적이고 생산적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질
계된 현대 건축의 주요 문제들의 진원지인 미국 도시에
서와 소통성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도시와 건축
주목하여, 그 문제들의 형성 과정과 이에 대한 대안적 사
의 새로운 질서와 표현 방식을 모색했다 ― G. 홈스 퍼킨
상과 실천을 탐구했다. 특히 1960년대 이후의 필라델피
스, 루이스 멈포드, 에드먼드 베이컨, 루이스 칸, 데이비
아에서의 사상적 맥락과 루이스 칸의 도시 프로젝트들을
드 크레인, 로말도 주걸러, 로버트 벤추리, 로버트 기데스
해석하는 것을 최종 과제로 삼았다.
등이 도시적 질서와 소통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제시했 다. 그들은 기술, 교통, 기념비적 표현 등의 요소를 포함 한 도시적 질서의 요소와 범위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전례 없는 규모로 기존 도시들을 재편했는데, 1950년대
있었고, 도시적 소통 방식의 미적, 상징적 차원에 대해서
부터는 그 과정상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노출되고 문제
도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었다. 일례로, 베이컨과 크레인
삼아졌다. 전문 분야로서 건축은 2차 대전 이후 이념적
등은 도시의 질서를 물리적 형태와 직결된 것으로 파악
성격이 축소되었고 건축과 도시 계획은 구분된 영역이
했는데, 이에 비해 멈포드와 칸 등은 물리적 형태 이면의
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두 영역의 중재를 새롭게
내적 본질을 도시의 질서로 간주했다. 전자는 도시의 물
모색한 것은 도시 설계 분야였다. 여기서 건축가와 도시
리적 환경이 감각적 경험, 특히 시각적 경험을 통해서 소
계획가들 같은 전문가들은 새로운 어바니즘에 필요한 계
통되는 측면을 강조하고 물리적 외관의 연속성과 구조를
획적 수단이 필요성뿐 아니라, 이 수단을 도시의 예술로
소통 수단으로써 강조한 경향이 있었고, 이에 비해 후자
만들 형태적 가치에 대해 적절한 새로운 이상이 필요함
는 다른 차원의 소통 방식 즉, 인간 간의 대면 접촉을 중
을 거론했고, 중세 도시 형태, 전원 도시, 코르뷔지에의
시하는 등, 도시의 성격과 본질적 내용이 이해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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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는 2차 대전 이후 이른바 ‘현대적’ 방식으로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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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1 ⓦ 제 2 회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소통 방식을 지적했다. 이들은 서로 다양한 입장을 견지
환경을 이렇게 객관적 대상으로 보거나 지각 능력을 공
하며 서로 경쟁하고 있었는데, 필라델피아 2백 주년 기
식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칸은 부정적이었다. 즉, 일관된
념 사업 같은 공동 사업의 경우에서는 기념비적이고 강
시각적 질서라는 것은 항상 값이 변하며 그것은 너무 강
력한 질서와 상징성을 근간으로 삼아 세부적으로는 기술
한 질서라 수용하기 어렵다고 봤고, 도시 내 지역끼리도
적, 대중적 소통 요소로 보완하기도 했다.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은 무리이고 그것들은 서로 무관해 도 충분하다고 봤다. 도시 전체의 연속성은 형태적 특질
ⓢ 건축가 루이스 칸(1901~1974) 역시 이러한 필라델피
보다 통행의 연속성 등에 바탕을 둔다고 봤고, 도시의 성
아파 속에서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으며 담론 형성에 참
격은 이미지나 조형 효과가 아닌 목적적 내용에 의한 것
여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칸과 그의 건축을 재조명
이라고 봤다. 그는 도시 환경과 인간 간의 소통에는 인간
하면 지금까지와 다른 새롭고 풍부한 이해의 가능성이
의 공통된 열망, 규정할 수 없는 공동성 또는 동의의 차원
열리게 된다. 우선, 칸이 상정한 도시적 질서를 1950년
이 있음을 주장했다. 칸과 필라델피아파와의 관계는 상
대 중반 이후 케피쉬와 린치가 도시 경관과 소통을 이해
호 비교적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다. 우선,
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인데, 이 연구자들은
칸은 베이컨이 주장하는 ‘도식 형태의 상징 언어’와는 분
도시의 삶이 소통에 의존하며 그 소통은 일종의 지각 형
명하게 대조됐다. ‘상징 도시’를 주장하는 크레인과도 거
태인 경관에 의해 수행된다고 보고, 그것의 보편적 특징
리가 있었지만 기술적 성과와 교통의 요소를 중시한 ‘캐
을 이해함으로써 일관되고 통일된 도시 환경을 달성하려
피털 디자인 기법’과는 연관성이 없지 않다. 멈포드의 경
고 시도했다.
우, 도시의 본질을 문화적 다양성으로 보고 그것을 증진 하기 위해 문화 자원의 양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대면 소 통 방식을 주장하고 비정상적이고 억압된 소통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도시 설계에서 달성해야 할 중요한 목표 로 설정했는데, 칸의 사고는 멈포드와도 상당한 연관성 을 가진다. 도시에서 ‘문명적 제도’의 요소를 강조한 멈 퍼드는 분명 ‘제도(시설)들의 도시’ 또는 ‘활용성의 도시’ 를 주장한 칸과 밀접하다. 하지만 멈포드가 건축의 내구 적인 상징적 표현을 추구한 내용은 칸이나 주걸러의 기 념비적 표현의 결과물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01] 케피쉬와 린치, 「도시의 지각 형태(The Perceptual
ⓢ 칸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건축 작품을 통해 이러한
Form of the City) 연구 계획서」(1955년 6월). 칸의 메모가
도시적 질서와 소통의 해법을 제시한 점에 있다. 그의 후
여백에 쓰여 있다.
기작들, 특히 도시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그동안 학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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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03] 루이스 칸, 「고
[04] 브로드웨이 타
가교 건축(Viaduct
워 도면. 작업대와
Architecture)」
이동 거푸집 표시 포
(1959~1962년)
함(1967년 11월)
이 슈 1 ⓦ 제 2 회
으로 주목받지 못했고 이해되지 못한 것은, 지어지지 않
된 원칙들을 견지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한 고유한 해법
아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작품들의 도시적
들을 제시했다. 이런 단편적 도시 전략에서 그는 건축물
차원의 의미와 가치가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
이 여러 가지 표현적 차원에서 나머지 도시 환경과 연결
다. 실로 칸의 건축에는 개별 건물로부터 도시 전반의 계
되는 방식을 모색했고 도시 전체 질서에 대한 해석을 개
획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유한 도시적 접근 방식이 충
별 건축물에 끌어들여 심화시켜 표현하는 방식을 모색
실히 모색되고 반영되어 있다. 일찍이 2차 대전 이전부터
했다.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르 코르뷔지에 식의 도시 개념에서 출발했던 칸은 1950 년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 필라델피아 도심 전체를 대상 으로 삼아 일련의 도시 전략을 발전시켰다. 칸은 당시의 도시 규모와 경관의 급격한 성장 및 도시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도시의 성장 한계와 경계를 한정하는 생각 을 받아들였고, 개별 건축물 또한 자기 제약 또는 동의에 의한 표현의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설정했다.
[05] 캔자스시티 타워 도면(1971년)
[02] 루이스 칸, 「현대 도시 계획 원칙에 따라 실행한 필라델피 아 가상 연구(Imaginative Study of Philadelphia Done Over on Modernistic Planning Principles)」. Evening BulletinPhiladelphia(1941년 5월 17일)
특히 1960년대 후반은 칸이 주로 단편적 도시 전략을 추 진했던 시기로서 이 시기 칸의 주요 프로젝트인 뉴욕 브 로드웨이 타워, 캔자스시티 타워, 볼티모어 내항 개발 사 [06] 캔자스시티 타워 프레젠테이션 드로잉(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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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필라델피아 2백 주년 기념 사업 등에서, 칸은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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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1 ⓦ
[07] 볼티모어 내
[08] 볼티모어 내
항 계획 도면(1972
항 계획 모형 사진
년)
(1972년)
제 2 회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 칸이 작품을 통해 구현하려고 한 소통 방식은 피상적 인 기계적, 미학적 소통 방식에 머무르지 않았다. 칸은 현 실 도시 공간의 기술적 생산 조건을 수용했고, 역사적 선 례를 전용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에 있어서 그는 기술적 성과에 기대어 디자인의 합리성을 도모했지만 동시에 이 기술적 측면을 ‘인간적’으로 번역해 내려 했다. 역사적 선례 또한 현대적 유형으로 적극 변형하려 했다. 또한 각 건축물로 하여금 독자적이고 고립된 표현이 아니라 도시 의 문화적 맥락과 배경을 가리키고 꾸미는 ‘장식적’ 역할 을 하게끔 모색했다. 칸이 공공 건물 이외에 상업용·업
[09] 필라델피아 이스트윅 박람회 계획 드로잉(1972년)
무용 도시 건축물들에까지 부여한 기념비적 표현은 도시 대중 사회에서 공공적 측면을 발굴하고 강화해서 장식한 다는 의도로부터 이해돼야 한다. 칸에게 도시는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 차원의 요소들이 서로 장식적으로 연결되 어 묶이는 것이었고, 이와 더불어 도시의 전체 질서는 도 시의 활용성과 목적을 통해 강화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러한 질서가 자유 방임이나 중립적인 제어 방식으로 달 성되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문화적 ‘동의’를 통해 이루 어질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렇게 칸이 윤리성에 입각한 공통 감각과 사회적 동의를 소통의 공통적 기반으로 삼 은 측면은 미적 추상, 기술주의, 기능주의, 역사주의 등 의 차원의 소통 방식들과 구별되는 측면이다. 이를 통해 그가 창출하려던 공동체는 전혀 새롭게 발명된 공동체도 아니고 과거 지향적인 고정적 정체성의 공동체도 아니었 다. 다원적인 현대 도시 문화를 의식하고 그것을 제도적 단위의 집합체인 도시로 재구성하고 재현하려고 했다. ⓦ (사진 자료 출처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건축 아카이 브 루이스 칸 컬렉션)
[10] 테헤란 아바사바드 계획 스케치(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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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 소감
이 슈 1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
ⓦ
<소통의 도시―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서정일 作
제 2 회
한 세대 전 루이스 칸은 한국의 건축계에서 진지한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잊혀진 건축가지만 우리는 그를 인상적인 기념비적 건축 형태와 고유한 예술론을 통해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해하기 힘들던 그의 건축 작업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고 싶은 호기가 박사 학위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모 교의 학술 지원 덕에 8년 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방문하여 루이스 칸 컬렉션에서 1년 내내 칸의 문서와 도면에 파 묻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의 건축물과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고 관련 인물을 두루 만나는 과정이 이 연
심 원 건 축 학 술 상 발 표
구의 근간이 됐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칸이 설계한 서부 필라델피아의 밀크릭(Mill Creek) 주거 단지가 무참 히 철거되는 현장을 보게 되어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만, 미국인들 스스로도 잊어가고 있는 외국 건축가를 왜 탐구 하는지, 그 의의를 연구자 스스로가 자주 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잊힘으로 인한 거리감은 더 새로운 또는 더 진실 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국내에서 접하기 어렵던 칸의 기술적 측면, 주변 환경에 대한 충실하고 풍부한 감성이 놀라웠습니다.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만난 칸은 제게 충격적으로 새로웠습니다. 훗날 의 연구자들을 기다리는 듯 칸의 사무실은 자료를 철저히 잘 정리해 남겨 뒀고, 초보 연구자는 자료가 말해 주는 사 실을 받아들이고 건축가의 생각을 쫓으면서 많은 선입관들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연구의 목표로 설정한 미국 현대 도시 발전의 이해 작업은 아카이브 조사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더 확장 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서구 전후 현대 도시사와 건축사에 대한 연구가 두터워지길 소망합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고유한 문제의 역사를 면밀히 추적하는 한편 그 문제의 진원지였던 서양 현대 도시에 대한 이해를 같이 심화시켜 가 길 기대합니다. ⓢ 박사 논문에서 미처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미진한 부분들을 다시 정리할 저술 기회를 주신 심 원문화사업회와 건축리포트 <와이드>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더 명확한 글이 되도록 가다 듬고 싶습니다. 전진삼 대표님을 비롯한 심사 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학위 논문 지도뿐 아니라 평소 학문적 가르침을 베풀어 주셨던 김광현, 배형민, 이상헌 교수님께 수상을 맞아 각별히 감사 드립니다. 김광현 교수님의 지도 덕에 칸에 다가갈 수 있었고 이 연구 주제를 택할 엄두도 낼 수 있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루이스 칸 연구자인 데이빗 브라운리 교수의 감사한 도움도 되새깁니다. 특히 뭉클한 심정이 향하는 곳은 펜실베이 니아 대학교 건축 아카이브입니다. 휘터커 소장을 비롯해 소중한 건축의 자산을 지키는 숨은 조력자들의 도움은 무 척 값졌습니다. 자료의 미로를 헤매는 연구자들에게 일상적 대화의 즐거움 속에 값진 정보와 직관을 주던 그곳의 기 쁨을 되새기며, 우리에게도 속히 이러한 아카이브들이 만들어져서 자생적인 학문적 성과를 즐겁게 키워 나가길 바 라는 마음 끝없습니다. 아울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소중한 동료 인문학자 선생님들의 격려에 감사를 표합니 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과 형난옥 운영본부장님의 격려와 배려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선물로 받은 상은 가족들, 누구보다도 믿어 주는 아내 배현주와 새로 태어난 ‘제현’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 서정일 당선자 서정일은 1972년생으로 대구 계성고를 나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 다. 200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1년간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문화 도시 서울 어떻게 만들 것인가』, 『뉴욕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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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도시 재생 이야기』 등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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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이 슈 2 ⓦ 오 션
컨테이너를 소재로 한 구축물인 오션 스코프는 기존의 컨테이너 구축물과는 달리, 각각 10도, 30도, 50도 각도로 컨 테이너를 세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이미지를 준다. 이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는 각각 브리쉘과 뉴욕에 거주하는
스 코 프
안기현, 이민수로 구성된 AnLstudio가 제안한 것으로, 그들은 자유로운 디자인 사고와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는 게릴라 건축 집단을 지향하고 있다. 자신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다시 한국과 연결되려고 하는 아웃바운드 행 건축가
& AnLst u dio
들이 종종 눈에 띄는 요즘, 에이앤엘의 작업 방식에 본지가 시선을 집중하는 이유이다. ⓦ 진행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사진 | 전진삼(별도 표기 외)
← 안기현(왼쪽)과 이민수
AnLstudio ⓦ 안기현은 프리랜싱 건축가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고, 뉴욕 Asymptote Architecture에서 미국, 중동, 유럽, 그리고 한국 등에서 프로젝트 매니저(프로젝트 아키텍트)로 일하였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 졸업 후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건축 석사 학위를 받았다. 건원, 삼우에서도 실무 경험이 있다. 이민수는 인터랙티브 공간 디자이너 로 Tangible.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뉴욕 Asymptote Architecture, Leeser Architecture, Howeler+Yoon Architecture 등 다 양한 건축 사무소에서 디자인 실무를 배웠다. 국민대학교 실내디자인학부 졸업, NYU Interactive Telecommunication 석사 과 정을 마쳤다. (www.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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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이 슈 2 ⓦ 오 션 스 코 프
& AnLst u dio
오션 스코프 ⓦ 위치 : 인천광역시 송도 신도시 내ㅣ용도 : 공공 전망대 및 건축 조형물ㅣ대지 면적 : 350㎡ㅣ건축 면적 : 91㎡ㅣ디 자인 : AnLstudio(안기현+이민수)ㅣ기획ㆍ제작 : 장길황ㅣ주관ㆍ건축주 : 인천광역시ㅣ시공 : 주권중, 최휘현, 김정봉,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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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의, 강정태, 함연기ㅣ준공일 : 2010년 1월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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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바운드 행 게릴라들을 만나다
명해 준다 여겨진다. 시작하는 이들이기에 인상적인 단어 몇 마 디로 기자가 규정하기는 조심스러울 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슈 2
서해의 일몰과 인간이 만든 다리를 위한 전망대가 있다. 인천
그들에게 동의를 받기는 더욱 어렵다. 그들은 오션 스코프 하
송도 신도시 해안에, 콘크리트 거치대에서 발사되기 직전의 모
나로 갑작스레 주목을 받는다는 게 사실 놀랍기도 하지만, 조심
ⓦ
습을 하고 있는 컨테이너가 바로 인천대교 전망대, 오션 스코프
스럽기도 하다. 혹여 컨테이너 건축가로 규정되진 않을까 하는
오 션
(Ocean Scope)다. 바다 쪽으로는 컨테이너 3개 동이 전망대로
우려에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다.
각각 10도, 30도, 50도 각도로 어긋나게 솟아 있으며, 도시 내
오션 스코프가 완성될 즈음 안기현은 뉴욕에서 브뤼셀로 활동
륙을 향해 도시의 관광과 정보를 담는 전시 공간이 구성돼 있
거점을 옮겼고, 기사가 마무리 될 때쯤 그는 파리에 있었다. 그
다. 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는 브뤼셀과 뉴욕에 각각 거주하는
리고 이민수는 또 다른 공모를 마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안기현과 이민수로 구성된 에이앤엘 스튜디오(AnLstudio)의
들 스스로 정의 내리는 에이엔엘 스튜디오의 포지션은 파트 타
제안으로, 그들은 자유로운 디자인 사고와 서로의 차이를 존중
임과 풀 타임 스튜디오의 중간 단계에 있는 스튜디오라고 한다.
하는 게릴라성 건축 집단을 지향하고 있다.
각자 회사나 개인 활동을 하면서 경력을 쌓고 혹은 생계를 유지
에이앤엘 스튜디오는 안기현, 이민수 두 사람의 영문 이름에서
하면서, 틈틈이 남는 시간에 운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튜디오
각각 첫 글자를 따온 것으로, 건축(Architecture)과 그에 대한
의 작업 시간도 대부분 퇴근 이후 심야이거나 주말이다. 실제로
갈망(Lust)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설명한다. 안기현과 이민수는
안기현은 애심토트에서 만난 친구(영국 건축가)와 함께 프로젝
뉴욕 애심토트 건축에서 만나 서로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
트 건축가로 이집트 카이로, 그리스 아테네의 싱글 하우스를 진
으며, 비공식적이지만 여러 차례 공동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행하고 있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의 공모전을 계속 하
현재 에이앤엘 스튜디오는 안기현과 이민수 각자가 원거리에
고 있다. 이민수는 인터랙티브 공간 디자인의 시스템 개발과 디
떨어져 있으면서도 원래 스튜디오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자인 적용을 위한 ‘탠저블 닷츠(Tangible Dots)’를 운영하고 있
있고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이들의 원거리 작업이 가능한 것은
는데, 특허 출원 과정에 있다.
스 코 프
& AnLst u dio
그들의 작업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 을 존중하는 태도이자 각자의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한 방법이
게릴라들의 이상과 현실
다. 그들의 모습은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의 모습이고, 오션 스
“저희가 같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궁극적
코프가 에이앤엘 스튜디오의 사실상 첫 작업이다.
인 목표는 영리가 아니라 저희들의 표현 욕구에 대한 ‘충족’과
“저희가 공식적으로 ‘에이앤엘’이지만, 대개 영어권에서는 ‘에
갈증에 대한 ‘해소’에 있을 거에요. 우리가 무엇을 표현할 수 있
이늘[éinl]’이라고 해요. 항문애를 뜻하는 말과 묘하게도 발음
을까?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지을까에 대
이 같은데, 재밌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저희 이름처럼 위트 넘
한 궁금증을 가지고 하나 둘씩 실험하고 구현해 내는 과정을 더
치는 건축을 하고 싶거든요.” 에이앤엘 스튜디오의 이름을 설
중시하는 것 같아요. 때문에 저희는 체계적 시스템을 가진 ‘조
명하면서 덧붙이는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이 정체성의 절반을 설
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것들
인터뷰 1 ⓦ 오션 스코프 발주처 인천광역시 관광진흥과 ⓦ 서해, 인천대교, 그리고 컨테이너 ⓦ 지난 해 인천세계도시 축전이 송도 신도시에서 6개월 간 열렸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모으기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작년 말에 서 해 해맞이 행사를 할 전망대를 기획하게 되었죠. 대부분 서해 에서의 일출을 의아해 하는데, 동해 일출과는 다른 묘미가 있 어요. 그 해맞이 행사를 할 수 있는 관광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사진 : 장길황)
배경이었죠. 또 이전에 개통된 인천대교를 관광 자원화하려는 계획도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을 연계한 전망대는 좋은 아이템이 었어요. 얼마 전에는 인천대교를 관광 거점으로 인천대교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인천대교 뷰 포인트’ 8경을 인천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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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이 요구된다면 차차 구성해 나갈 생각이에요.” 분명 에이앤엘
축가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다시 한국과 연결되려 한
스튜디오는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추구하고 싶은 욕심, 혹은 어
다. 국내 건축 생태계에 순기능을 할지, 역기능을 할지 판단은
떠한 ‘목마름’이기도 하고, 어쩌면 생존하기 위한 발악 같은 것
아직 섣부르지만 어떠한 생각과 방법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일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식의 협업은 에이앤엘뿐만 아니라 동
는 궁금해진다.
시대의 젊은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이 많이 하고 있지만, 적어도
“애심토트에서 일할 때에도 출장으로 유럽 세 달, 두바이 세 달
ⓦ
국내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등, 짧게는 일주일씩 한국이나 다른 곳들을 계속 옮겨 다녔어
에이앤엘 스튜디오와 같이 ‘게릴라성 디자인 스튜디오’를 지
요. 그러면서 제 집이 어디일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죠. 지금도
오 션
향하는 비조직적 조직의 강점은 무엇보다 디자인 과정에서 조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브뤼셀에서는 친구와 함께 스스
직의 방법론이나 색깔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부담이 적을 수 있
로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다. 그렇기에 개성과 관심사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주어진 경계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하다가 제가 선택하고 결정해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관계가 긴밀해지기도, 느
야 하는 위치에 서면서, 느끼는 것도 더 많아지고 건축에 대한
슨해지기도 하지만 서로의 작업 영역을 따로 한정하지 않고 상
흥미도 더 커지고 있어요. 한국에 있는 제 또래나 학교 동기들
식적으로 납득되는 디자인만 다루지 않는다. 때로는 비상식적
도 건축사 면허를 얻고 비슷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고요. 기회
이고 직관적 사고에 따른 작업도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강점
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찾아서 ‘한번 질러보자’라고 하죠. 엎어
이 될 만 한 것들이다.
질 줄 알면서도 말이죠.” (안기현)
하지만 게릴라들이 뚫어야 할 전지의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았
“저는 인터랙티브 공간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사실 건축이 문
다. 오션 스코프의 경우만 해도 한 달 안에 완성해야 하는 시간
화적, 사회적 코드로 해석되듯 건축가, 디자이너의 시대적 메시
상 제약이나, 당시 둘 다 뉴욕에 거주하면서 기획자와 초반 커
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공간과 공간 구성 요소와 관
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기획자와 소통
계, 공간과 사람들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다면 인터랙티브 건축
을 방해했던 다단계 대행사들의 존재도 현실의 모습인 것이다.
이란 말은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요. 넓은 관점에서는 오
그 때문에 업역이 다소 축소되었으나, 기성 자재인 컨테이너가
션 스코프도 컨테이너가 도심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모듈화돼 있어 세밀한 디테일이나 작업자에 의해 완성도가 좌
관계와 관람자의 참여가 있다는 점에서 인터랙티브 건축이라
우되는 현장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 그 부담을 덜어 준 것도
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작업은 쉽게 말해 애
그렇고, 프로젝트를 손에 쥐게 된 행운이 있었던 것도 그렇다.
플사 아이폰의 터치스크린을 건축 파사드에 적용해서 건축을
이 슈 2
스 코 프
& AnLst u dio
만지고 그에 따라 반응하게 만들려고 해요. 이러한 인터랙티브 기대하게 하는 것들
테크놀러지와 개념들을 건축 공간에 접목하는 것이 저의 관심
한편 해외 유수한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이 다시 한
사이고 앞으로도 건축, 인테리어와의 접점을 찾으며 다양하게
국으로 돌아와 스승의 폭넓은 활동을 위해 다리 역할을 많이
작업해 나갈 생각입니다.” (이민수) ⓦ
했다면,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지만 최근의 아웃바운드 행 건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인천관광공사에서 선정하기도 했어요. 인천은 항만, 공항 등이
현재 위치인 아트센터 터 옆으로 정해진 겁니다. 현재 위치가
위치해서 명실상부한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인천대교의 조망권도 좋을 뿐더러 공원 시설물로 편입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컨테이너는 현재 인천을 상징하는 아이템으
있고, 송도 신도시의 상업 지구 시설인 ‘커널 워크’를 활성화하
로 인천의 역동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대상이라 판단했습니
기 위해서도 좋은 위치에요. 작년 2009년 11월 중순쯤에 시안
다. ⓦ 진행과 예산 ⓦ 전망대 후보지로 몇 군데가 거론이 되었
을 받아 11월 말에 바로 계약을 했어요. 그리고 12월 말에 완공
는데, 영종도는 공항이 있어 진행하기에 절차가 까다로운 곳이
이 되었는데 짧은 기간 안에 진행이 됐어요. 몇 가지 문제가 있
라 송도 신도시에서 찾게 되었죠. 처음에는 인천세계도시축전
었는데 대지에서 해안선 쪽으로 군사 도로가 지나가면서 군부
장 내 ‘팔미언덕’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팔미언덕은 ‘인천대교
대와 협의가 있었고, 송도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경
뷰 포인트의 8경’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인천대교를 전망하기에
제자유구역청과 시설 설치에 따른 전반적인 협의가 있었어요. 전체 전망대는 컨테이너 5동의 오션 스코프와 망원경이 설치된
일사와 포스코 건설 합작사)가 1~2년 후에 공원으로 조성할 계
유선형 데크(106평), 그리고 주변 시설 보강 사업까지 총 48억
획이 있었어요. 그럴 경우 전망대를 다시 철거해야 했기 때문에
원, 오션 스코프 20억 원 예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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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위치였습니다. 그곳이 사유지인 데다 NSIC(미국 게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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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경계에서의 구축, 구축해 나갈 경계<주 1>
조형물을 디자인하여 직접 구축물로 나타나게 한 그들이 궁금
이 슈 2
대담 진행 및 글 | 지정우
한 것은 당연하다.
<주 1> 이 인터뷰와 크리틱의 발단은 디자인 웹진 dezeen에 오
표방하고 계십니다. 오션 스코프가 두 분의 게릴라성 협력 작
ⓦ
션 스코프가 소개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석양이 지는 인천
업으로는 몇 번째인가요? 구축 작업이자 본격적인 작업이었던
오 션
앞바다를 향해 다이내믹하게 서 있는 컨테이너 튜브들이 이전
것 같은데, 백그라운드가 다르고 경험이 다른 두 분이 어떤 방
의 무수히 많은 컨테이너 건축, 아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아
식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맞춰 가셨는지, 이 프로젝트 외에는 어
우라를 뿜고 있었기에 그 작업 배경과 디자인을 한 건축가들
떤 방식으로 일해 오셨고 지금 하고 계신지요.
에게 자연히 관심이 갔다.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블로
이민수 ⓦ 스케치하다가 혹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그만 둔
그 ‘도심 산책(http://kr.blog.yahoo.com/jungwooji)’에 포스
작업을 제외하면 오선 스코프가 두 번째입니다. 말씀처럼 오션
팅한 것을, 이후 좀더 밀도 있는 대화를 거쳐 <와이드> 이슈의
스코프 프로젝트로 인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계기가 맞습
비평으로 발전시켰음을 밝힌다. 젊은 건축가 그룹 에이앤엘 스
니다. 의견 조율의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 수
튜디오의 작업과 경험, 오션 스코프의 디자인과 그들을 둘러싼
가 충분하지 않아, 아직 정착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컨텍스트에서 이 시대 대한민국 건축의 또 다른 차원에서의 가
래서 많은 부분에서 디자인 성향이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상태
능성과 짚어볼 이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고, 아직은 조율 과정이 다소 어색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
지정우 ⓦ 에이앤엘 스튜디오는 ‘게릴라성 디자인 스튜디오’를
스 코 프
& AnLst u dio
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히려 더욱 안기현 씨와의 다음 협업이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유연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다
기대되기도 합니다. 아직은 예측 불가능한 상태라 할 수도 있
양한 작업들에 대처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
겠습니다. 서로의 백그라운드가 다르기에 스케일이 큰 프로젝
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문화적 인프라, 금융 위기로 인한 취업
트는 개인적으로 안기현 씨한테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
의 불안정, 국제적인 공모전의 홍수, 혼자서도 많은 부분을 구
습니다. 지금은 공모전 형식의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미디어 아
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소프트웨어의 발전, 이전과 다른 네트
티스트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인간 관계 등의 배경으로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 조직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큰 사무실에
컨테이너에서 오션 스코프까지
속해 있으면서 따로 작업을 한다든지, 아예 자신의 집을 짓는
사실 컨테이너를 이용한 구조물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것부터 시작한다든지, 서로 다른 도시에 흩어져 있으며 원격으
오션 스코프가 유난히 사람들의 눈을 끌었던 까닭은 기존의 컨
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늘 젊은
테이너를 이용한 구조물이 모듈성과 지오메트리에 포커스를
건축가들은 실제 ‘지을 수 있는 기회’에 목마르다. 그래서 공공
맞춰서 디자인된 경우들이 많아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
디자인 공모나 한시적인 파빌리온을 짓는 공모 등에 이런 건축
기 때문일 것이다. 컨테이너를 ‘box’가 아닌 ‘tube’로 해석한 것
가들이 특히 많이 몰리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놀라운
이 우선 돋보였고, 그것의 방향성을 사이트가 가진 다양한 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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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수평 각도를 적용해서 설정한 것이 이 전망대가 특별해 보이는
는 여러 요구들에 대해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한 점이 어쩌
이유이다. 몬트리올의 고고학 박물관에 가보면 상층 테라스에
면 같이 일하기 쉬운 젊고 야망 있는 디자이너로 보이지 않았
서 도시를 바라보며 작은 원통 튜브들을 서로 각도를 달리해서
을까 생각됩니다.
놓고, 튜브를 통해서 시선이 꽂히는 장소의 역사에 대해 기록해
지정우 ⓦ 현장을 디자이너가 커버할 수 없었던 것이 큰 아쉬
놓은 아주 간단한 장치를 그 아래에 두었다. 같은 대상을 바라
움일 것 같습니다. 때문에 디자인 의도가 바뀐 부분은 없는지
ⓦ
보더라도 ‘프레임’을 명확히 하면 또 다른 인식의 깊이가 생긴
요? 일견 드로잉과 완성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
다. 학생들의 디자인 작품에서 흔히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높이
입니다.
오 션
올라갈 수록 바라보이는 장소의 각도가 달라짐을 같은 매스의
이민수 ⓦ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소통이란 측면에서 아
방향을 돌려가며 쌓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들인데, 아직도 전
쉬운 부분이 너무 많지만, 동시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였기에
망대 디자인에서는 단골로 등장하는 제스처이다. 그러나 오션
감사할 일도 많았습니다. 기획자, 시공자, 디자이너 사이에 여
스코프는 대지 위에 한 장소에서 하늘부터 저 멀리 대교, 바다,
러 업체들이 개입돼 다소 복잡한 구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도시를 바라보는 3차원적인 각도를 서로 다른 컨테이너 박스로
그리고 저희가 있는 뉴욕과, 현장이 있는 한국까지 떨어져 일
표현했다. 늘 대하는 하늘도 사방이 막힌 컨테이너 튜브 안에서
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발 빠른 소통이 쉽지만은 않
‘내 하늘’로 다가왔을 때 그 감동은 다를 것이다.
았습니다. 더군다나 일정이 촉박했고,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지정우 ⓦ 기존에 실적이 없었던 작업 조직인데 어떻게 연결이
처리해야 할 디테일은 저희가 손쓸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기획하는 쪽 입장에서는 실제로 구
운 부분이었습니다. 반면에 기획자와 시공자가 저희 안을 많
축을 해야 하기에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를
이 존중해 주시고 애정을 갖고 최대한 의도를 살려 주셔서 초
선택하기에는 디자인 제안만으로는 어려웠을 텐데, 대부분의
안 드로잉과 완성된 모습이 비슷하다는 평을 듣는데, 가장 감
비슷한 입장의 건축가들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거든요.
사할 부분입니다.
안기현+이민수 ⓦ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디자이너가 어떻
지정우 ⓦ 이 디자인의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은 컨테이너를 튜
게 선택될 수 있었느냐에 답은 ‘컨테이너’였기 때문일 것 입니
브로 해석하여 서로 다른 뷰 앵글로 배치를 했다는 점입니다.
다. 컨테이너가 디자인에 많은 제약이나 한계를 준 것이 사실
시게루 반도 컨테이너를 벽돌처럼 쌓기만 했고 이 분야의 마에
이지만, 반대로 구축성, 시공성에서 의심을 없애 주었다고 생
스트로라고 할 수 있는 LOT-EK도 잘라 내고 펼치고 했을지
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접했던 컨테이너이기에, 아주 난해
언정 그 자체를 다른 각도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수많은 학
한 디자인이 아닌 이상 투시도나 조감도만으로 견적과 시공성
생들 작품에서도 쌓기의 방법을 달리 하는 정도이고요. ‘수직
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획자와 인천시에서도 디
적 뷰 앵글’이라는 아이디어는 처음 스케치에서부터 방향을 정
자인으로만 순수하게 평가를 하여 저희가 그 좋은 기회를 얻
하고 발전시켰는지, 두 분의 의사 소통 혹은 몇 개의 대안을 검
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누구나 다 그렇겠
토하는 과정이나 혹은 기획 측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나온
지만, 디자인을 제안할 때나 마감 시간, 그리고 그 후에 수반되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슈 2
스 코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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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Lst u 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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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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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현+이민수 ⓦ 디자인 의뢰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컨테이
다. 순전히 건축물처럼 보여서도 안 되고, 조형물로만 비춰지
이 슈 2
너를 이용한 사례를 찾았습니다. 영감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는 것도 싫었습니다. 튜브만을 강조하니 건축적인 성향이 강한
저희가 컨테이너를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것 같아 입면 디자인에서 조형적 성향을 넣은 것입니다. 튜브
야 했습니다.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
의 시퀀스 방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면서 둔탁
ⓦ
에 실험적인 시도는 무리수가 따랐습니다. 때문에 사례 조사가
한 컨테이너에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느낌을 강조하고, 가늘고
오 션
더 필요했고요. 말씀 하신 대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컨테이너
긴 여러 슬릿(컨테이너의 각도와 평행한)을 둔 것이죠. 슬릿에
의 강한 속성들(기능성, 상징성, 구축성, 모듈성) 때문인지 쌓
서는 내부 움직임이 바깥 쪽에서 감지되고, 과감하게 잘라 덜어
기를 달리하거나 잘라 내어 펼치는 형식들이었습니다. 저희는
낸 반대면은 조형성을 부각시키고 프레임의 폭을 확장시키려
스 코 프
& AnLst u dio
이런 방식과는 ‘다름’을 추구하고 싶었고 좀더 재미있고 자유
한 것입니다. 외장 컬러와 내부 마감은 예산 문제로 최대한 간
롭고 싶었습니다. 클라이언트/기획자에게는 두 가지 안을 제안
단하게, 그리고 컨테이너의 기존 컨텍스트를 최대한 이용하기
했습니다. 하나는 기존의 쌓기 방식에서 변화를 추구하였고, 다
위해 붉은 석양, 검붉고 진한 파랑의 하늘 빛을 반사시키는 유
른 하나는 지금 지어진 오션 스코프입니다. 계획 초기 단계부터
광의 검정을 생각하였고, 헌 컨테이너에 덧칠하는 색으로 진회
풍경을 프레임 하는 컨테이너 튜브는 경사를 두어 하늘을 향해
색/검정이 적합하다 생각했습니다. 흰색 내부 마감은 전망대를
치솟게 하고, 뒤쪽으로는 전시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세 개의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좁고 긴 여정을 매끄럽게 연결시켜 주며
튜브 경사와 전시 공간의 축을 바꾸면서 안을 발전시켰습니다.
전시 공간을 염두에 두고 채택한 것입니다.
클라이언트는 두 안을 모두 좋아했지만 지금의 오션 스코프 안 을 저희가 적극 제안하였고 시공성이나 예산을 고려하며 디자
젊은 건축가와 미디어
인을 발전시켰습니다.
지정우 ⓦ 아울러 dezeen에 이어 일련의 국내외 전문 미디어에
지정우 ⓦ 아마 비슷한 코멘트들을 들으셨겠지만 튜브로서 컨
소개가 되었고, 이번 레드 닷 수상과 함께 대중 매체에까지 오
테이너의 제스처는 파워풀한 반면 측면의 창문 패턴과 크기들
르내리고 있습니다. 미디어 환경을 폭발적으로 경험하고 계실
은 어떤 개념에서 그러한지 좀 궁금해집니다. 시퀀스를 극대
텐데, 두 분에게 미디어는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마인드로 대
화하려면 측면 오프닝이 줄어들거나 형태적인 조절이 필요하
하십니까? 젊은 건축가, 디자이너들에게 미디어는 독이 될 수
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리고 컨테이너의 컬러를 짙은 색으로
도, 득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몇
한정하고, 내부 컬러와 조명에 의해서 다섯 개가 구분되는 점
개월간 두 분의 마인드와 앞으로의 계획 등에 어떤 영향이 있었
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듭니다. 태양의 고도와 반사, 석양 등
는지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에 의하여 외부 컬러가 자연스럽게 풍경의 일부가 되며 변화하
안기현 ⓦ 노출 과정에서 과분한 칭찬, 의미 있는 코멘트와 크
는 것 같습니다.
리틱은 많았지만, 저희를 미디어에 노출시키며 저희 자신을 준
안기현 ⓦ 저희가 풀어야 할 문제의 궁극적인 답은 조형물이었
비시키는 것에 비중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저희가 가
고 문제를 풀기 위해 건축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할 수 있습니
진 여러 생각이 머릿속 이곳저곳에 떠다니는 수준이었는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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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험을 하면서 제공해야 할 스테이트먼트와 되돌아오는 질문에
내고 마는 경우도 많다.
대한 답을 준비하면서 갖고 있던 생각의 순서를 정리할 수 있
이 오션 스코프의 경우도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었지만, 기획자
었습니다. 생각의 고리들을 연결하고 쉽고 소통 가능한 언어로
와 젊은 건축가들이 합심하여 디자인으로 이야기하는 구조물
풀어내면서 저희 스스로 해 오던 일련의 작업들을 정리할 수 있
을 우리 앞에 선보였다는 것이 큰 의미이다. 이 두 건축가, 디자
는 기회는 스스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생각됩니
이너는 정해진 틀 속에 자신들을 가두지 않고 서로 자극을 주
ⓦ
다.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저희들은 딱딱하고 확고한 저희 스
고받으며, 또한 국제적 어워드와 미디어들을 리드하며 유연하
타일을 가지고 싶기보다는 고무 공 같이, 혹은 스폰지 같이 탄
게 자신들의 실무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이 오션 스코프와
오 션
력적이고 흡수력이 빠른 사람,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지향하는
에이앤엘 스튜디오를 보면서, 다이내믹 코리아가 젊은 건축가
데, 제가 꺼내 놓은 말들이 나중에 저희에게 무거운 사슬로 다
들에게 기회를 제대로 주는 좀더 체계적인 시스템과 정치성이
가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확보되고, 그 어떤 경우라도 ‘디자인’ 자체로 승부할 수 있는,
이 슈 2
스 코 프
& AnLst u dio
준비된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구축의 작업으로 발전하게 되길 희망해 본다. ⓦ
경계에서의 적극성 단지 인천의 분위기가 반영된 컨테이너를 이용한 ‘조형물’을 제안했던 건축주 측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공간’으
지정우는 뉴욕에서 아내와 studio eu concept을 운영하며 서울
로, 새로운 ‘정자’로 구축한 그들의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분
BAU Architects의 디자인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 설계
명 예산과 허락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정도 성과물을 선보인 것은 그들의 열정 때문이다. 최근 세계 적으로 여름 축제 기간만 사용되는 파빌리온을 디자인 공모하 고 실제로 짓는 기회를 주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실제 구
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실무 프로젝트부터 강의와 글쓰기 까지를 작업 영역으로 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젊은 건축가들과 속 깊은 소통을 통한 의미 있는 작업들을 기획해 나 가고 있다.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ungwooji
축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창의력과 열정 을 발휘하고 경험을 쌓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아 무리 임시 구조물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관계 기관과의 협 의와, 시공법에 대한 테스트와 검증 등의 과정 또한 그 디자이 너들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경험으로 제공되기 마련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모든 건축물, 특히 ‘공공 디자인’에 관련된 구조물 들은 거의가 정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다. 공공 시설물이지만 과정은 공공적이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 다. 정확한 정의와 시간 프레임, 과정의 확보가 생략된 채 급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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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결과만 요구함으로써 결과물이 그런 정치적 상황만을 드러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83
로 각도를 두어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을 보고는 바로 ‘이거다’
인터뷰 2 ⓦ 오션 스코프 디렉터 장길황
싶었죠. 그리고 저희가 제시한 것은 전망대였는데 오히려 전시
이 슈 2
디자인 조건들
ⓦ
를 사용하되 화물용을 사용할 것, 또 하나는 ‘비상하는 인천’을
36회 왕복 항공권과 여러 재한들
오 션
상징하는 것이었죠. 주택용 컨테이너는 내부에 거주를 목적으
그런데 에이앤엘 스튜디오와 초반에는 직접 연락이 되질 않았
로 한 것이다 보니, 폭이 넓고 둔탁하고 볼품이 없었어요. 무엇
어요. 사이에 여러 단계의 이벤트 회사가 걸쳐 있었거든요. 현
보다 물류 도시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는 날씬한 화물용 컨테
장에서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커지면서 여러 분들이 고생을 많
이너를 사용하는 것이 맞는 것이죠. 그리고 솟구치는 이미지를
이 하셨죠. 지난 겨울 이례적인 한파에 또 애를 많이 먹었죠.
표현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세우는 것을 권유했는데, 완성된 오
진행하는 한 달여 동안 저는 인천과 부산을 오가는 비행기를
션 스코프는 거기서 더 발전해서 다양한 각도로 서 있도록 제안
36번 탔는데 승용차로 오간 것을 합하면 더 될 거예요. 그래
한 것이죠. 그리고 오션 스코프가 들어서 있는 공원은 갯벌 매
도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디자인 의도대
립 지역인 연약 지반이라 조형물의 크기와 무게도 고려 대상이
로 살리고 싶었어요. 처음에 제시한 조건은 20×20m 정사각형
되었어요. 처음에는 조형물 디자인 안을 다른 팀들에서도 받았
땅이었는데 군사 도로가 있었고 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땅이
는데 뭔가 ‘이거다’ 하는 게 없어 계속 탐탁치 않아 하고 있었어
15×15m로 줄어들었어요. 그러면서 안이 다소 변경된 부분이
요. 그런데 어느 날 뉴욕에서 날아온 안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제
있습니다. 대부분 현장에서 조율이 되었고, 특히 중간에 계단
공간까지 제안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먼저 디자인에 몇 가지 조건들을 내세웠어요. 하나는 컨테이너
스 코 프
& AnLst u dio
시한 두 가지 안이 모두 마음에 들었는데 조형물에 가까운 이미
앞에 있던 공간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40피트짜리 컨
지인 지금의 오션 스코프를 골랐던 거죠. 다른 안은 40피트짜
테이너 둘을 하나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20피트로 변경되었고
리 컨테이너를 4개 층으로 쌓아 올려 층마다 10도씩 회전하며
요, 매립지라서 자체 하중에 대한 우려가 좀 있었어요. 컨테이
뷰 프레임의 변화를 주는 방식이었어요. 조형물보다 건축적인
너 내부 계단 폭이 좁은 것도 그런 이유에요. 한꺼번에 많은 사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고요. 다른 팀들은 컨테이너를 세우는 방
람이 몰리지 않도록 한 사람씩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는 정도의
법이 대개 수직으로 땅에 꽂는 방식이었어요. 10도, 30도, 50도
폭으로 제한했어요. 결국은 심리적인 것 때문에 디자인과는 달
오션 스코프 건설 프로세스 ↓ ↓ ↓ ↓ 03. 컨테이너 받침 콘크리트.
06. 컨테이너 40피트.
01. 바닥 철근 공사.
04. 바닥큰크리트 20피트 수평각.
07. 컨테이너 창호 마감.
02. 컨테이너 받침대 거푸집.
05. 받침콘크리트 양생.
08. 컨테이너 창호 절개 40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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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리 50도짜리 컨테이너는 기둥을 세우기도 했지만서도요. 창을
거리인 거죠. 이미지가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세
달지 않은 것은 바닷가에서 스며드는 습기에 대해 별도의 설비
계적으로, 특히 동북아 지역의 부산이나 인천, 후쿠오카, 상하
장치를 할 수 없었어요. 예산 때문이었죠. 대신 바다 바람을 느
이, 홍콩 같은 도시에서는 대형 선사를 유치하기 위한 항만들
낄 수 있게 되었고요.
의 싸움이 치열해요. 항만 도시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 슈 2
페스티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죠. 예술가들의 컨테이너 작
ⓦ
이전 컨테이너 작업들
품들에 선사들의 로고를 찍어 다시 되팔 수도 있겠고요. 그러
이전에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컨테이너를 사용하여 가
면 세계에 아트 컨테이너가 돌아다니는 것이고, 도시 내에서는
오 션
설 건축물을 세운 적이 있어요. 물론 전년도에도 컨테이너를
험악했던 이미지의 컨테이너가 예술 작품으로 들어서는 거죠.
이용한 시도들이 있긴 했었죠. 해운대 백사장에 컨테이너 36개
물류 도시의 핵심이라 생각해요.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를 이용해서 공간을 만들면서 영화제의 구심으로서 이미지 메
역할까지도 할 수 있고, 화물 운송이나 항만에서 일하는 사람
이킹을 한 거죠. 영화제 사무국이 들어가고 아이디 카드를 발
들의 자부심도 생각할 수 있을 거에요. 삶과 밀접한 페스티벌
급하는 등록 업무를 하는 사무 공간과 한 쪽은 전시 공간, 프레
을 하고 싶습니다. ⓦ
스 코 프
& AnLst u dio
스센터, 게스트 라운지로 구성되었죠. 아직도 매년 헐었다 영 화제 때가 되면 다시 지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년 반복하면서
장길황은 오션 스코프의 기획자이자
컨테이너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인 것 같아요.
디렉터로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엘지애드 를 비롯한 PSB(현 KNN), 프라임 엔
컨테이너 아트 페스티벌
터테인먼트 이벤트 피디 출신으로 일
개인적으로는 컨테이너 아트 페스티벌을 열고 싶어요. 세계의
명 zzangPD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여러 예술가들이 컨테이너를 소재로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할 수 있고, 동시에 전시를 하거나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컨테이너 축 제를 생각합니다. 축제는 체험이나 즐길 거리가 많아야 하지 만, 제가 생각하는 축제는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즉 사진 찍을
12. 컨테이너 설치 40피트 30도.
15. 컨테이너 설치 완료.
10. 컨테이너 바닥면 계단 제작.
13. 컨테이너 설치 20피트 전시실.
16. LED 조명 설치.
11. 컨테이너 설치 20피트 50도.
14. 앵커 접합.
17.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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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컨테이너 바닥면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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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 오 션 스 코 프
& AnLst u 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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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오션 스코프(Ocean Scope)와 게릴라성 건축 집단 AnLstudio
이 슈 2 ⓦ 오 션 스 코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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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Lst u 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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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3
우리 건축의 강점으로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 초 유 의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전체 조감도.
일시 ⓦ 2010년 4월 9일(금) 오전 10시~12시 장소 ⓦ 무영건축 회장실 대화 ⓦ 안길원(무영건축 회장), 임창복(본지 고문,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배석 ⓦ 전은배(무영건축 사장), 조영수(무영건축 상무) 부동산과 금융이 만들어 낸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의 폐해로 인하여 전 세계가 경기 침체 의 깊은 수렁으로 추락한 작금의 세태를 굳이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성이 있을까? 6·2 지방 선거 이후 중대형 건 설사들의 워크아웃설이 횡행하고 있는 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IMF 금융 위기 때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 다는 점에서 필드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건설·건축업계는 보다 직접적인 타격의 대상으로 몰려 대 형 설계 사무소로부터 인원 감축과 연봉 삭감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중소형 설계 사무소가 피부로 느끼는 압박감 은 더하면 더했지 그에 못지않다. ⓦ 국내외적으로 대재앙과도 같은 건설과 건축 설계 시장이 위기감에 시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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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이 슈 3
오일 머니의 심장을 뚫다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 초 유 의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왼쪽로부터 조영수 상무, 전은배 사장, 임창복 교수, 안길원 회장.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전체 조감도.
터에 (주)무영 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무영건축)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판교급 신도시 2곳을 조성하 는 프로젝트에 5억 6,420만 달러의 설계 계약을 체결하는 낭보가 전해지며 그 성사 배경에 대한 궁금증과 실현 가 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었다. 현재까지 국내외를 통틀어 단일 건축사 사무소가 이룬 프로젝트로 최고의 수주 금액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으니 찬사와 궁금증이 동시에 끼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본지는 무영건축 이 이룩한 초대형 건축 설계권 수주에 주목하여 사업의 규모와 성격 그리고 실현 방안 및 타 문화권에서의 건축 행 위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 설계 계약이 이뤄지기까지 직접 현장을 오가며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 려져 있는 무영건축 안길원 회장과의 대화를 이끌어 줄 상대로는 올해 초 제2대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 원장에 취 임한 임창복 교수를 초대하였다. 도시 주거 관련의 의미 있는 논저와 도시 재생에 따른 아시아 각국의 현황에 대한 연구 및 동아시아 도시 건축 공동 스튜디오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대화를 의미 있게 구성해 주리란 기대 에 따른 것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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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전진삼(본지 발행인),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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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3
임창복 ⓦ 우선, 안 회장께서 성사시킨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
ⓦ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계약 내용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초 유 의
안길원 ⓦ 두 개의 프로젝트를 계약했습니다. 처음엔 리야드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우디) 리야드(Riyadh)의 대형 신도시 프로젝트 설계권 수주를
사우스웨스트 프로젝트 하나만을 수주하는 목표로 접근했는 데 결과적으로 노스 프로젝트까지 두 개를 수주하게 되었습니 다. 노스 프로젝트는 영국 설계 회사 앗킨스 사가 수행하던 프 로젝트였습니다. 사우디 리야드(Riyadh) 신도시 프로젝트 개요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두 프로젝트의 인문·공간 환경에 대한 개요를 담당 소장인 조영수 상무의 브리핑을 통해 들을 수 있었 다. 조 상무는 초창기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조영수 ⓦ 대략 내용을 파악하고 계시겠지만 간략히 리야드 프 로젝트에 대해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야드는 사우디의
안길원은 1944년생으로 인천고를 나와 1967년 인하대학교 공
정치 수도입니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10배 규모에 달하며,
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인하대학교에서 명예공학
전체 인구는 2,810만 명(2008년 현재)정도 됩니다. 수도는 리
박사에 추대되었으며, 2009년 경기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
야드 말고도 두 군데가 더 있습니다만 사우디의 공식 수도는
위를 취득했다. 미국 미시건 대학교 건축 및 도시계획대 최고
리야드가 맞습니다. 사우디의 영어식 표기를 보면 ‘킹덤 오브
급과정(1998) 수료, 중국 청화대학교 연수(1997), 중앙대학
(kingdom of)’가 붙습니다. 왕국으로 정확히는 형제로부터 왕
교 건설대학원 수료(1997) 등 국내외 대학에서 끊임없이 수
위 계승이 되는 나라입니다. 사우디는 이슬람 종교의 종주국이
학하고 있는 CEO 건축가다. 건축사이며, 동시에 건축시공기
자 석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 나라입니다. 최근 이 나라는 메카 로 성지 순례를 온 사람들 대다수가 장기 체류하는 경우가 많 고, 시리아나 이집트 등 주변 국가의 사람들이 유입되는 과정에
술사이기도 하다.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을 거쳐 현재 한국건설산업비전포럼 이사로 활동 중이 다. 인천문화재단 이사로 고향의 문화 예술 발전에도 기여하 고 있다. 1985년 현재의 (주)무영건축을 설립해 한국건축문
서 인구가 급팽창 중에 있는 상황입니다. 리야드 또한 같은 이
화대상 대통령상(시몬느 사옥, 2003), 대한민국글로벌경영대
유로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2007년 이전까
상(2008), 대한민국생태환경건축상 대상(은평뉴타운 1지구,
지는 2.7%의 인구 증가율을 보였고, 그 이후 현재까지는 매년
2009) 등 수많은 건축상을 수상했고, 1988년 이래 2009년 까
7~10%로 가파르게 증가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구 증가율 추
지 88건의 국내외 현상설계에서 당선하였다.
정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2007년 통계로 수도 리야드의 인구는 470만 명이 상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현재는 600 만 명에 이른다는 자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과 비교하여
신도시 부지까지는 30km 정도가 됩니다. 현재 남서부와 북부
면적은 2.5배 정도 되는 상당히 큰 도시입니다. 참고로 리야드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두 지
는 리야드 주가 있고, 그 안에 리야드 시가 있습니다. 국제적으
역 공히 도시 내 접근성이 매우 우수합니다. 주변에 와디(wadi,
로 리야드 하면 도시 리야드를 의미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아라비아, 북아프리카 지방의 물이 마른 강으로 오아시스라고
시는 바와 같이 금번 무영건축이 수주한 프로젝트는 두 개입니
도 칭한다) 지대가 존재하는데 북부 지역이 특히 와디가 많이
다. 하나는 사우스웨스트(South-West, 이하 ‘남서부’로 표기)
보이지요. 사막 지대이지만 와디가 많은 북부 지역이 상대적으
지역 신도시이고, 또 하나는 노스(North, 이하 ‘북부’로 표기)
로 살기가 좋은 곳입니다. 북부 지역은 부유층, 남부 지역은 서
지역 신도시입니다. 전통적으로 리야드는 북부 지역이 물이 풍
민층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합니다. 지하수와 오아시스가 남서부 지역에 비해 풍부한 곳
임창복 ⓦ 사우디에서의 비즈니스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입니다. 그런 자연 조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북부 지역이 잘 사
요. 프로젝트의 기점은 언제부터입니까?
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길원 ⓦ 2009년 4월에 처음 현지 답사를 했습니다. 당시만
안길원 ⓦ 리야드 중심에서 남서부 지역 신도시 계획 부지까지
해도 10%의 성사 가능성만을 보고 현지로 떠났습니다. 저 개
20km, 자동차로 20~30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이고, 북부 지역
인으로도 첫 사우디 방문이었죠. 아시겠지만 사우디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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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관광객을 받지 않는 나라입니다. 급격한 인구 증가율, 종교적
도시의 마스터플랜, 패널 작업, 배너 작업, 5분 분량의 동영상
인 문제로 주변국들이 인종, 종교 전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
작업 등을 만들어 간 회사는 무영이 유일했습니다. 전부 자기
이 슈 3
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린 종파 간 싸움으로 중동 전역
회사의 브로슈어 내지는 그들 회사가 행한 여타 국가 및 지역
ⓦ
이 홍역을 치루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우디는 그로 인해 외부
에서의 프로젝트만 설명했을 뿐입니다. 반면 우리는 상당히 많
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에 대해서도 굉장히 까
은 준비를 해간 격이 되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 후 발주처 관
다롭고 엄격한 입국 절차를 시행 중에 있습니다. 초청 비자를
계자로부터 너무나 잘 준비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
초 유 의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요. 복수 비자가 3개월밖
습니다. 그 다음날 발주처 회장이 직접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에 안 됩니다.
LOI(Letter of Intent, 의향서)를 보내주겠다고 제의해 왔습니
임창복 ⓦ 사우디에 대규모의 뉴타운 프로젝트가 성립된 배경
다. 그렇게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돌아와서 2주 만에 LOI를
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받았습니다. 그 후 프로젝트의 발전을 위해서 왕래하는 와중
안길원 ⓦ 저 또한 처음 느낌은 리야드에 뉴타운이 들어설 수
에 북부 지역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배경
있을까 고민되었습니다. 수요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는데
은 이렇습니다. 10월에 다르지마홀딩스 회장이 한국에 들어와
통계 자료를 살펴보니 그것은 기우였습니다. 사우디에도 도시
서 계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지
집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지요. 증동의 다른 나라들은 종교 분
요. 그런데 10월 초에 메카 쪽에 대홍수가 났습니다. 사우디에
쟁 또는 종파 간 전쟁, 자원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반면 사우
서 홍수가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지
디는 정치나 종교적으로 안정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드는
요. 게다가 당시 라마단 기간이 임박했을 때인데 얼마나 황당했
나라가 되어 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도시 내 주택 보급률이
겠어요. 결국 발주처 회장은 한국에 들어오는 계획을 철회하고
턱없이 낮아졌고, 그에 따라 정부 시책은 주택 보급률을 높이는
대신 우리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서 북부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 것입니다.
지역 프로젝트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영국인들한테 시켰는데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일이 제대로 안되어서 그러니 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어요. 처음엔 4주 만에 보여 달라고 했지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임창복 ⓦ 프로젝트 발주처는 어디입니까? 계약까지 프로젝트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대신 적어도 8주 정도의 기간을 확보해
전반을 무영건축이 직접 조율한 겁니까?
주면 해보겠다고 했지요. 그쪽에서 그렇게 해보라고 답이 나왔
안길원 ⓦ 발주처는 다르지마홀딩스(Dar Zeema Holding)라
습니다. 그래서 북부 지역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그들의 초
임창복 ⓦ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성실함과 집중력, 순발력을 그
청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곳 회장(Ahmed Al Yousef)으로부
들이 알아준 격이군요. 북부 지역 안을 보고서 그들이 만족해
터 설계 요구 사항을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세 차례 연
하던가요? 금번 성사시킨 프로젝트의 규모가 상당하다고 들었
속하여 현지 방문을 하게 됩니다. 갈 때마다 사업의 가능성도
습니다.
10, 20, 30, 40%로 차차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안길원 ⓦ 사실 그때만 해도 북부 지역 프로젝트는 남서부 지
도시 설계 전문 그룹인 알트플러스이엔씨와 함께 공동 수주한
역에서처럼 수준을 끌어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시간도 짧았고,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굉장히 만족해 했어요. 그러면서 두 프로젝트
임창복 ⓦ 그랬군요. 그런데 남서부 지역 신도시 프로젝트가 북
를 동시에 계약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금년
부 지역으로까지 확대된 것에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1월 20일 리야드에서 두 프로젝트를 동시에 계약하기에 이른
안길원 ⓦ 4월 현지 답사 후, 2개월 간의 컨셉트 마스터플랜 작
것입니다. 북부 지역은 대지가 800만㎡, 남서부 지역은 대지
업을 통해 발주처와의 생각의 폭을 좁히고, 6월 22일 프레젠테
가 1,140만㎡에 달합니다. 주택 규모로는 북부 지역에 빌라 5
이션을 하게 됩니다. 리야드 포시즌 호텔 컨벤션에서였습니다.
천, 아파트 5천 총 1만 세대, 남서부 지역은 총 1만 6,250세대
그 자리엔 200여 명의 다르지마홀딩스 개발 회사의 임원 및 그
를 공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리야드는 정주 인구가 세대당 6.2
들이 모집한 투자자들이 초대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북부 지
인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가 2.4인 정도 되는데, 서울은 2.23
역 프로젝트를 영국 앗킨스 사가 진행한다는 얘기만 들었지 상
인이라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우리의 농본 시대와 같은 조건으
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막상 프레젠테이션 장에 들
로 설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북부 지역에 6만
어갔더니 앗킨스 사와 딜로이트 사, 영국 CM(Construction
2,000명 정도, 남서부 지역 신도시에 약 10만 명을 수용하는 도
Management) 전문 회사 및 미국의 유명 조경 회사 등이 참석
시로 조성됩니다. 자족 기능을 위해서 각종 인프라 시설도 동
해 있었습니다. 무영의 발표는 마지막 순번이었죠. 결과적으로
시에 추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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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거대 프로젝트를 계약하기까지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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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3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마스터플랜의 개념
안길원 ⓦ 참고로 이곳은 대중 교통 수단이 전부 자가용입니다.
임창복 ⓦ 신도시 마스터플랜에 적용한 개념은 무엇입니까?
다른 교통 수단이 없어요. 물론 버스는 있지만 대부분 렌탈 용
ⓦ
안길원 ⓦ 막상 현지에 가 보니 와디 지역에 근접해 있었습니
도이고 통상의 대중 교통 수단은 아닙니다. 가구당 자가용 보
초 유 의
다. 그곳엔 약간의 물이 비치고 식생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죠.
유 대수가 평균 2.8대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지하수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도시 컨셉트를 ‘그린 앤드
임창복 ⓦ 남서부 지역 신도시 계획 부지의 장변 길이는 어떤가
워터(Green and Water)’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화두
요? 개략 좌우 7km, 위아래 4km 정도의 크기로 보이는군요. 중
가 녹색 성장, 녹색 도시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 개
앙의 달걀 모양 지역만 보면 서울의 4대문 안과 같은 면적으로
념으로 도시 설계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추정됩니다. 광화문에서 세종로까지 2km 거리이거든요. 뭔가
(다시 조영수 상무로부터 남서부 지역 프로젝트의 지형적 특
형태론적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성과 마스터플랜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하여 보완 브리핑이 이
안길원 ⓦ 분당이나 일산을 가보면 가로망들이 대부분 격자형
어졌다.)
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뉴타운과 외부로 연결하는 각
조영수 ⓦ 도시의 중심축은 메카를 향하도록 잡았습니다. 단
가로망들이 도시 계획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만 통과 도
지 내 도로는 달걀 모양의 형태를 취했는데 이는 탄생을 의미
로로 인한 속도 부하, 차량 소음, 사고 등이 문제가 되는데 리야
합니다. 그리고 일부 단독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아파
드 신도시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습
트는 4층짜리 서민용부터 15층짜리 고급 아파트로 구성하였습
니다. 그 결과 각 주호의 단지 구성을 클러스터 형으로 하였고,
니다. 빌라 또한 단지 바깥 방향으로 고급 빌라를 위치시켰습
단지 내 주도로 또한 달걀 모양의 형태를 만들어 뉴타운 안에
니다. 이곳 와디는 융기 지형이 특색으로 침식된 계곡이 아닙
서의 중심성을 강조하고, 제반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니다. 해저에서 고스란히 융기된 계곡이며 깊은 곳은 약 100m
이라 내다보았습니다.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이상 됩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깎아지른 절 벽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주 깊은 계곡이지요. 물과 식 생이 존재합니다. 안길원 ⓦ 부연하면 이슬람 종교의 상징인 메카를 향하는 녹지 축과 이슬람의 6신 5행의 개념이 적용된, 종교와 삶이 일치되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전체 조감도.
는 도시로 계획하고자 했습니다. 중심 상업 지구에는 할인 매장 존, 중동 최대 규모의 아이스링크를 갖춘 스포츠 돔, 병원, IT 클러스터, 전문 학교 과정 정도의 교육 시설, 호텔, 비즈니스센 터 등과 와디의 지하수를 이용한 수공간을 제안하였습니다. 이 들에게는 해보다는 달을 숭배하는 민간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 문화적 배경에 착안하여 메인 모스크 주변에 반달 모양의 로고 화 된 조형물을 배치하고 수공간도 반달 모양의 형태를 중심축 으로 잡아 메카를 향하게 하는 등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감안한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마스터플랜을 꼼꼼히 들여다보던 임 교수는 두 개의 리야드 프 로젝트 공히 도로 설계 관련하여 의문점을 캐물었다.)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공원.
임창복 ⓦ 도로는 세 가지의 타입 또는 모드로 압축됩니다. 간 선도로냐, 집분산 도로냐, 진출입 도로냐 하는 것이지요. 어떤 타입의 도로이든 중요한 것은 그 성격에 잘 맞아야 한다는 것입 니다. 지금 보고 있는 마스터플랜 상으로는 일단 타운에 들어 오면 집분산 도로가 매우 의미 있게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간 선 도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군요. 전은배 ⓦ 교통 문제는 향후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풀어야 할 과 제입니다. 현재는 개념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보시는 것이 맞 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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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IT 밸리.
이 슈 3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빌라 조감도.
ⓦ 초 유 의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메가몰.
무 영 건 축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서민형 빌라.
이 야 기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고급 아파트.
(이어서 안 회장은 북부 지역 신도시 마스터플랜의 계획안을 조 상무의 도움 없이 직접 브리핑했다. 리야드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프레젠테이션의 기억이 되살아난 듯한 분위기가 역력 했다.)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마스터플랜의 개념 안길원 ⓦ 북부 지역은 상당히 수준 있는 계층을 위한 뉴타운입 리야드 신도시 남서부 지역 고급형 빌라.
니다. 요구 조건도 조용하고 고급스런 뉴타운의 조성이었습니 다. 중심 상업 지구에는 5성급 호텔 5곳을 비롯하여 파이낸셜 센터, 비즈니스 센터, IT 센터 등이 들어갑니다. 주변으로 체육 시설, 특히 사우디 사람들은 유일하게 축구를 좋아하는데 한국 프로 선수들도 그곳에서 활약하고 있지요. 이곳은 뜨거운 날이 면 섭씨 50도까지 상승합니다. 그걸 감안하여 축구 경기장의 지붕을 개폐돔으로 만들기로 제안했습니다. 발주처에서도 아 이스링크와 수영장 그리고 식물원까지도 세계 최대의 돔 형태 로 해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 같은 시설물은 비즈니스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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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였습니다. 기타 문화 시설로 역사 박물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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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3
관을 두었고, 종교 시설로는 메인 모스크 및 일반 모스크 32곳
ⓦ
의 개념으로 단지 양쪽에 고급 빌라를 배치하였고, 외곽에 수로
초 유 의
를 두었지요. 지하 40m에서 끌어올린 물을 이용하여 인공 수로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을 배치하였습니다. 이 지역도 남서부와 같이 ‘그린 앤드 워터’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전체 조감도.
로 조성하게 됩니다. 또 이곳은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태양 광 집적 시설과 18홀의 골프장을 배치하였습니다. 하나 재밌는 것은 서민들이 사용하는 주택의 유닛이 100평 정도에 달한다는 겁니다. 하이앤드, 즉 부유층은 대략 300~500평 정도에 살고 있습니다. 대저택들은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크기들을 보여 주 고 있지요. 그래서 뉴타운 안에도 1,200㎡ 정도 크기의 주택을 설계에 반영했지만 현지에 있는 대형 주택들이 2,000~3,000㎡ 이상 가는 것이 많아 뉴타운 내에도 그것을 반영해야 될 것이라 고 예비하고 있습니다. 쿠란에 남자는 부인을 4명까지 들 수 있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빌라 조감도.
다고 하는 풍습도 한몫을 거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쿠란과 관련해서 안 회장은 사우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문 화적 차이를 언급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삭제하 지 않고 게재한다.) 안길원 ⓦ 또 하나 재밌는 것으로 남자는 첫 번째 부인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부인을 가질 경우 부인들 집의 규모를 동일하게 해 주어야 하는 사회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어느 부인도 질투는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질투는 이혼 사 유고 곧바로 집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지요. 그런가 하면 첫째 부인 이후, 다음 부인을 얻을 경우 첫 번째 부인에게 사전 허락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아파트.
을 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자 멋대로 자기 좋다고 아무 여자 나 들여앉히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여자들은 운전 면허증 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우디에서의 여권(女權)을 무 척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인데 여자들의 하는 일이란 오로지 2세 생산만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 금기 사항도 있습니다. 부인이 몇이냐, 자식이 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본인이 얘기하기 전에는 아주 결례입니다. 집에 초 대되어 방문하더라도 전혀 그 집의 안사람을 볼 수가 없는 구조 입니다. 여자 접견실이 따로 있고, 남자 접견실이 따로 있죠. 이 는 애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부터 남녀가 구 분된 별도의 교육 시설 하에서 생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문화죠. 또한 이곳 사람들은 기후적인 문제로 인해 수명이 무척 짧습니다. 현재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까 닭에 조혼을 하게 되고, 애들을 많이 갖게 되었지요. 그런 사유 로 인해 정주 인구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재 밌는 관습이 있는데 사촌 여동생은 오빠가 “너하고 결혼 못해”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못 간다는 것입니 다. 근친 간 결혼 풍습이 우선이라는 것이지요.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아이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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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wIde Issue 3 :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어디입니까?
이 슈 3
안길원 ⓦ 무영건축이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
ⓦ
부터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 중국 칭다오
초 유 의
출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또한 지금 현재 진출해 있는 나라는 리야드 신도시 북부 지역 워터돔.
에 TMI를 합작 법인의 형태로 설립하였지요. 중국에 천태그룹 이라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만든 회사이며 올해로 만
수 주 액 을
10년째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 이후 베트남에 진출한 바 있 고, 하노이와 다낭에 두 개의 지사를 개설한 상태입니다. 그리 고 2년 전, 세계 각국에서 13개 업체를 초청하는 지명 현상 설
기 록 한
계의 방식으로 진행된 주청사 프로젝트에서 당선되어 오만의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밖에 우즈베키스탄의 나보이 공항 배후 150만 평의 산업 단지 마스터플랜을 KAL과 손잡고 진행
무 영 건 축
중에 있습니다. 작년 이 대통령께서 아부다비 원전 수주로 개가 를 올리셨는데 무영건축도 아부다비에 현지 법인을 만들기 위 해서 근일 사장단이 현지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이참에 한 가 해외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하나의 모델
지 상기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영이 해외 진출 10년 만
임창복 ⓦ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설계 업체 선정이 공
에 사우디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
개적으로 된 게 아니고 개발 회사가 여러 루트를 통해 무영건
거 중동 건설 붐이 일었을 때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현지에서 보
축을 초청해서 계약에 이른 것으로 요약되는데 보다 구체적으
여준 근면성과 대단한 업적들로 인해 이제껏 한국에 대한 이미
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지가 굉장히 좋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무영도 그 덕을 톡톡
안길원 ⓦ 작년 3월에 당시 건교부에 재직하던 이동성 국장(그
히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발주처 회장은 설계
는 사우디 주재원을 4년에 걸쳐 수행했으며, 우리나라 5개 신
뿐 아니라 건설도 한국 회사가 해 주기를 요구해 왔습니다. 해
도시를 만들 당시 주도했던 인물이다. 특히 분당 신도시에 깊이
서 지금 이 일을 하기 위해서 7개 회사의 컨소시엄이 결성되어
간여했고, 이후 영국에서 주거 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있습니다. 대우를 중심으로 두산, 극동, 한화, 롯데, 대우자판, 대우해양조선에 이르기까지 7개 회사가 현지 답사를 마친 상 태며,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감리나 CM도 국내 회사가
할 수 있는 설계 사무소를 찾던 중에 저희 무영을 만나게 된 것
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설계, CM, 감리, 건설 전
입니다. 그래서 4월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이 회장이
분야에 걸쳐 패키지로 한국 회사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로 만들
본 프로젝트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아 외교적인 부분을 해결해
어 갈 요량입니다.
주고, 무영건축은 설계에 전념하는 구도입니다. 전체 설계비는
임창복 ⓦ 우리나라의 건축 설계 및 CM, 시공, 감리 등 기술력
5억 6,420만 달러인데 그중 무영건축이 4억 8,800만 달러로 전
을 패키지로 가지고 나간다고요? 흥미로운 발상입니다. 보다
체 설계비의 약 87%를, 알트플러스이엔씨가 약 13% 지분으로
본질적인 이유가 있겠군요.
계약하여, 현지에 합동 사무실을 차려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현
안길원 ⓦ 아시겠지만 개발 사업은 시간 단축이 중요한 열쇠
재 두 개 프로젝트 중, 우선 북부 지역 프로젝트를 먼저 추진하
입니다. 투자비를 단기간 내에 회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고 있는데 총괄사장으로 이 자리에 배석한 전은배 사장을 영입
시스템 또는 사이클로 가야 부동산 개발 회사인 다르지마홀딩
하였습니다. 남서부 지역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사장급으로 별
스가 나름대로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도의 팀을 구성할 예정에 있습니다.
7~10년을 보고서 시간 계획을 짜고 있는데 전 공정을 한국인
임창복 ⓦ 대단한 일을 하신 게 분명하군요. 말씀 중에 이동성
이 한다면 적어도 2년 정도는 단축시킬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
회장이 초기 물꼬를 튼 장본인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를 블록화하여 컨소시엄 업체가
런 것이 해외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하나의 모델로 볼 수 있겠
한꺼번에 들어가서 자재 구매나 노동력 조달 등 모든 것을 공동
습니다. 건축가가 일일이 밖으로 돌아다니며 일을 수주해 오
으로 관장하게 됨으로써 시간 단축이 가능하다고 내다보는 것
는 경우도 있겠지만 누군가 오지랖 넓은 사람이 다리를 놓아
이죠. 이곳의 노동자는 전원 외국인들입니다. 사우디 자국민은
초기화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 말이지요. 무영건축의 해외 진
하나도 없습니다.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등 주변국 및 중국
!
~~
~
현재는 알트플러스이엔씨 회장이다.)이 3월에 다르지마홀딩스 회장과 만나 MOU를 체결하고 귀국하여, 이 프로젝트를 수행
이 야 기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95
이 슈 3
의 노동자들까지 중동으로 몰리고 있는데 공동 대처를 통한 노
이 개발을 앞두고 있는 후진국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기다
동자의 수급이 절대 필요합니다. 게다가 중동은 시멘트를 제외
리는 데에 한계가 있을 밖에요. 방법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해
ⓦ
하곤 건축자재의 전부를 수입해서 써야 하기 때문에 공동 구매
오듯 개발 회사가 나서서 일일이 문제를 풀어내 주면 되는데 절
초 유 의
형식을 통해 비용도 절감시킬 수 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
차를 중시하는 서양식으로 하다 보면 그 모델이 현지 상황과 잘
기 단축 등 이로운 점이 많다는 점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결국
안 맞는 게 당연하죠. 그런 면에서 한국식 접근 방식이 그들에
은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게 맞는 것인지 모릅니다.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안길원 ⓦ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7년, 10년씩 걸리는 개발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
프로젝트는 한 2~3년 단위로 시장 상황에 맞게 대처해 주어야
임창복 ⓦ 결국 우리에게 경쟁력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특히 북
합니다. 처음에 만든 컨셉트가 끝까지 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
부 지역 프로젝트는 영국 업체가 쭉 일을 해오던 것임에도 무영
지요. 인프라 스트럭처라든지 도시 구조의 컨셉트는 유지된다
건축이 최종 계약자로 도장을 찍었다는 것은 분명 우리 쪽의 강
고 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갈 주거라든가 모든 시설물은 그때그
점이 무언가 달랐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때 시장성에 맞춰 추진해야 합니다. 왜냐면 모든 건축물이 세
안길원 ⓦ 예, 분명히 다른 게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유럽
일(sale)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고, 주거의 경우도 수요자 창
이나 미국인들은 아시아인들과 달리 사전 서비스(Before Ser-
출이 전제되어야 하는 건데 그러러면 짧게는 2~3년 주기, 길게
vice)에 대하여 상당히 인색한 편이지요. 반면 한국이나 아시아
는 5년 주기로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그 사이 수요자들의 기호
회사들은 돈을 받지 않고서도 상당 부분 사전 서비스를 합니다.
도 바뀔 공산이 크죠. 그렇기 때문에 10년씩 걸리는 프로젝트
그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을 가
를 처음부터 완벽하게 프로그램해서 진행한다는 것은 난센스
지고 경쟁을 했을 때 미국이나 유럽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이 굉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 역행적인 것이죠. 그건 국내에서도
장히 우수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들의 디자
마찬가지입니다. 서구적 시스템을 가지고 처음부터 완벽한 모
인 능력도 상당 수준에 이를 만큼 높아졌습니다. 그 배경에는
델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
우리나라 교육제도도 많이 바뀌었고, 건축학 전공 5년제 커리
의 성격이라든가, 컨셉트만 제시해 놓은 상태에서 이후 몇 차례
큘럼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에 걸친 계획안의 변경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주거 형태, 규모,
는 주거 중심의 뉴타운에 관한 한 우리나라 설계 사무소처럼 경
인프라 기타 등등 앞으로 최소 세 번 이상의 변경에 대처할 수
험이 집적된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것이지요. 그 같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그런 관점에서 설계 계약도 공사
객관적 경험치들이 상당히 우수하다고 할 밖에요. 그리고 순발
비의 몇 퍼센트 식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공사의 상황에 따
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할 수 있지요.
라 설계비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서로 간 피해를 최소화
그런 것들과 함께 문화권은 틀리지만 나름대로 상대국을 이해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공유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
임창복 ⓦ 마스터플랜이라는 것과 마스터 프로세스라는 개념
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프레젠테이션의 우수성을 말할 수 있습
이 있습니다. 마스터플랜이라고 하면 확정적 의미가 큰데 반해
니다. 그 배경에는 국내의 IT 기술이 많이 발달해 있고, 영상 미
마스터 프로세스는 향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차이
디어 시스템 기술력도 굉장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강점
가 있지요. 우리는 바꾼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
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의사 결
은데 사실 그런 게 아니잖아요.
정권이 우리나라만큼 빠른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만 하
안길원 ⓦ 그렇습니다.
더라도 보드 멤버제가 있어서 그걸 통과해야 일을 하지 사장 맘 대로 못합니다. 한국은 그에 비해 무척 가벼운 의사 결정 시스
앞으로 풀어 가야 할 과제
템을 갖추고 있는데 그게 결정적 단계에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임창복 ⓦ 사우디에도 로칼(local) 사무소가 있나요?
요즘처럼 모든 게 빠르게 전개되는 시대에 딱 맞는 거예요. 반
안길원 ⓦ 종합 설계 성격의 사무소가 있습니다. 저희 영역의
도체를 위시하여 LED, 3D TV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을 제칠 수
20~30%를 로칼 사무소와 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시 설계
있게 한 원동력이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는 전적으로 로칼 사무소에서 진행해야 할 것이고, 각각의 건물
임창복 ⓦ 개발 사업을 서구식으로 한다면 기획, 입안, 설계 등
에 대한 인허가도 그쪽 라이센스를 가진 설계 사무소의 힘을 빌
등 까다로운 절차를 푸는 데에 5년, 10년으로 이어지는 등 하
려야 합니다. 그 점에선 현지화 전략이 유용하다고 봅니다. 현
세월이 걸리는 것이 그들의 보편적 접근 방법인데 분명 승부의
지화를 배제하고 한국에서 모든 일을 다 소화한다고 하는 것은
세계에서는 한계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그와 같은 접근 방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요. 우선 비용 충당이 안됩니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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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건축 설계 사상 세계 초유의 수주액을 기록한 무영건축 이야기
하면서도 설계가 본격 궤도에 진입하게 되는 피크타임에는 현
어 갈 생각입니다. 또한 패스트 트랙(fast track) 공법으로 작업
재보다 300명 정도를 더 증원시켜야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
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앞서도 말씀 나눈 바 있지만 개발 프로
이 슈 3
습니다. 그 점에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현지화할 생각입니다.
젝트의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하지요.
ⓦ
임창복 ⓦ 국내에서 무영건축의 업무 영역은 CD(Concept
설계 기간,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음은 물론 투자비를 빨리
Design), SD(Schematic Design), DD(Design Document)까
회수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봅니다.
지 진행하고 실시 설계 도면 작업은 현지에서 진행한다는 말씀
임창복 ⓦ 그래도 어려운 부분은 없나요? UIA 등 국제 회의에
초 유 의
이군요. 요즘 활용할 수 있는 외국의 중급 및 고급 인력도 부쩍
참석하다 보면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책임 소지가 종종 문제가
많아진 것 같긴 하네요.
되는 것 같은데요?
안길원 ⓦ 요새 미국에서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 내 대형
안길원 ⓦ 이 프로젝트만큼은 우리 스태프들이 현지에 오피스
설계 사무소들이 거의 대부분 규모를 반 이하로 줄인 상태입니
를 차리고 현지 회사들과 협력하되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
다. 지금까지 그들이 먹고 산 것은 해외 일들이었는데 두바이,
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로칼 사무소가 인허
중국 등의 개발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게 되면서 한국 출신 40대
가 과정에서 사인한 것이 문제가 될 경우가 있는데 클라이언트,
초중반의 유능한 디자이너들도 다수 이직을 해야 할 처지에 놓
분양을 받은 유저(user)들 사이에서 분쟁의 소지가 없지 않습
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적응하기가
니다. 사우디의 경우도 영국 지배의 영향을 받은 나라라서 도
결코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아이들 교육 여건도 그렇지만 그
면에 사인한 사람들이 전부 책임을 지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
들이 거주할 집값이 비싼 편이라 귀국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
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칼 업체의 선정이 무척 중요합니다. 또
기이지요. 근년에 우리 회사에도 시카고, LA, 영국, 기타 나라
하나, 만약 CM을 영국에서 맡는다고 한다면 무영 입장에서도
에서 10여 명이 들어왔습니다. 조사해 보니 그나마 외국 회사
곤욕을 치룰 수가 있다고 봅니다. 패스트 트랙 방법으로 추진
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20~30%씩 감봉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하고자 하는 데에 상당한 마찰이 예상되지요. 쓰레기 분리 수
따져 보니까 미국에서의 연봉 기준과 우리 기준이 크게 차이가
거, 소각장, 기타 등등 입장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이 많습
나지 않았어요. 지금도 입사 문의를 해 온 외국 설계 사무소의
니다. 그래서 CM도 우리 측에서 해야만 공기 단축이 가능하다
중견급 디자이너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인데 아직 이 프로젝트
고 발주처를 설득 중에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지 로칼 사
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서 기회를 보고 있는 상태입
무소룰 찾고 있는데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그들이 상당한 비용
니다. 그 증에는 우리 교포가 아닌 미국인들도 여럿 됩니다. 회
을 요구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사 차원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디자인 능력
임창복 ⓦ 책임 문제가 있어서 그렇겠지요.
수 주 액 을 기 록 한 무 영 건 축 이 야 기
과 함께 해외 프로젝트에서의 가장 큰 문제가 여전히 커뮤니케 (안 회장은 대화의 끝 무렵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초대형
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프로젝트의 설계 수주가 가져다 준 희열 뒤에 감춰진 최고 경영
임창복 ⓦ 뉴타운 내에 일반 건축물들이 굉장히 많이 보이는데
자로서의 속내를 드러냈다.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은 무영건
그것들에 대한 접근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다양한 성격의
축을 포함한 4개 계열회사 총 800명이 넘는 대형 설계 조직을
건축물을 어떤 방안으로 풀어내실 건지 궁금합니다.
무탈하게 꾸려 가려는 CEO 건축가로서의 비장한 각오이자 성
안길원 ⓦ 호텔의 경우를 예로 들지요. 리야드에도 인터콘티넨
공에 대한 기원을 담은 바람이었다.)
탈, 포시즌 등의 세계 정상급의 호텔이 들어와 있습니다. 잘 아
안길원 ⓦ 워낙 대형 프로젝트이다 보니 사실은 계약하고도
시겠지만 호텔이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성공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걸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부분 프랜차이즈화 하고 있습니다. 그럴
가?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경우 각 호텔이 지니는 공간 컨셉트가 있는데 그들과의 협업이
완성하기까지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하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지금은 규모만 정해 놓은 상태이므로 그
다가 아니한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
곳이 어디냐에 따라 대응할 생각입니다. 병원의 경우도 사우디
문입니다.
의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둔 병원 설계 전문 회사들과 접촉을
임창복 ⓦ 정말이지 큰일을 맡으셨으니 걱정이 없다면 그게 오
하고 있지요. 개폐 돔의 축구장의 경우도 전 세계적으로 사례
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마치셔야 무영건축뿐 아니
가 드문 경우인데 초기 단계부터 엔지니어링 회사와 연계하여
라 한국의 건축 설계 회사에 대한 좋은 평가가 따라붙지 않을
컨셉트를 구체화시켜 나갈 참입니다. 뮤지엄의 경우도 마찬가
까 싶군요. 여하튼 잘 꾸려서 크게 업적을 남기셨으면 하는 바
지로 해외 유수의 전문 업체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여 풀
람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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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션 상의 언어적 문제라는 점이며 그것의 해소 차원이라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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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樹流山房의 예술 도록 시리즈 Art Work Series of Suryusanbang ☼ 교보문고, 알라딘 등 국내 서점의 온라인·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문의 : 수류산방(02-735-1085)
수류산방 예술 도록 시리즈 수류산방(樹流山房)은 옛것에 단단히 뿌리박고 또 새로움을 길어내는 일에 ‘수류(樹流)’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 및 작가 도록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과 표현, 새로운 행동과 크리에이티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수류(樹流)’라는 이름 아래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만나,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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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yusanbang 98
widE Edge
와이드 15호 뎁스 리포트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2010년 5-6월호
100 ⓦ 이종건의 <COMPASS 1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위한 건축적 접근, 이 구태의연! 104 ⓦ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5 코야니스카시 M2* 갓프레이 레지오(Godfrey Reggio) 감독 107 ⓦ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5> 정읍 화호마을 110 ⓦ 이용재의 <종횡무진 15> 공산성 쌍수정 112 ⓦ <POwer ARchitect 프로파일 03 | 오섬훈> 노매딕스, 두 코드 사이 115 ⓦ <POwer ARchitect 프로파일 04 | 최욱> aging-architecture 117 ⓦ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9>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120 ⓦ <주택 계획안 100선 14> 김기환의 K-HOUSE(II) | 강권정예 124 ⓦ <WIDE focus 1> | “바보야! 문제는 단지(團地)라니까…” | 박철수 126 ⓦ <WIDE focus 2> | ‘디자인 서울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 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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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 와이드 15호 | 와이드 칼럼 | 국가 중심거리 개조에 부쳐 | 곽재환
이종건의 <COMPASS 1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위한 건축적 접근, 이 구태의연! ⓦ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대한민국의 현대 예술을 위한 공간을 목하 준비 중이다. 지난 호 <와이드>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듯, 과 거의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진 현장이자 오늘날 경복궁과 북촌길을 낀 정 치적, 지리적, 문화적 강밀도가 아주 높은 곳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을 짓기 위한 1차 아이디어 공모가 끝나 최종적으로 선정된 다섯 개 안 이 개략적이나마 모습을 드러내었다. 2차 설계 경기에는 제외된, 우수작 으로 뽑힌 다른 다섯 개 안도 함께 게재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정이 여 의치 않았던 모양이니, 그리고 결국 최종 디자인은 이제, 우리에게 모습 을 드러낸 그 다섯 개 안의 건축가들의 손의 운명에 맡겨졌으니, 여기서 논자의 관심과 언설은 그 현실적 잠재성에 한정키로 하는데, 그런데 어 찌 마음이 좀 갑갑한가! 그리고 낙망이 슬그머니 잠식하는가! ⓦ 내 생각 은 이렇다. 포스트 퐁피두 센터(영국 건축가 프라이스의 ‘Fun Palace’의 패러다임이 제시한 공간의 유동성과 다공성 개념으로 괴물 같은 아방가 디즘을 해결해 낸 최초의 시도이자, 이로부터 미술관의 핵심 프로그램이 확연히 줄어들고, 기프트샵과 레스토랑과 심지어 쇼핑몰 등 부가적인 프 로그램이 필수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끈 ‘공장’ 으로서의 미술관) 시대에, 빌바오 구겐하임(한 도시에 스타 건축가의 단 하나의 건축 작품으로 전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적 믿음 곧 ‘빌바오 효과’를 낳은 총체적 페티시로서의 건축, 그리고 내용물이 위기에 처한 미술관, 그로써 접근성이 보편화된 직접적 결과로 가능하게 된, 스펙터 클하고 사진 촬영 최적 상태 모델이 된, 그래서 오직 스스로를 표상하는 이미지로서의 미술관)과 테이트 모던(중립성과 유동성을 지향하는 백색 상자의 ‘약한 건축’이 아니라,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강한 건축’ 개 념으로 사기업의 펀드를 끌어들여 공간의 상업화를 본격적으로 개시한, 그래서 ‘테이트 효과’를 낳아 세계에서 가장 방문객을 많이 끌어들인, 도 시 문화 관광의 열쇠로서의 미술관)이 10년이 지난 시점에, 현대의 미술 관 건축은 도대체 어떤 형국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그러니까, 그러한 굵 직한 역사적 변곡점들을 거친 작금에, 조만간 우리나라 심장부에 지을
미술관을 생각하는 건축가들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 디지털 테크놀로 지,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등에 대해 이리도 무관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가히 경천지동할 일이라는 것이다. 뭐, 식자들이 흔히 쓰는 용 어들이 단지 비현실적인 탁상노름이라 일갈하며 배격하는, 따라서 논리 적으로는 분명히 ‘식자가 아닌’ 자들에겐 아무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식 자가 아닌 자 혹은 무식자로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더 읽을 이유 도, 거리도 없다. 이 글은 고로, 미술관의 태생에서부터 미술관의 대중화 를 통한 놀라운 성장, 그리고 그 깊숙한 내부로부터 동시에 증식되어 온, 현대 예술의 아방가디즘과 상업화(혹은 자본의 예속화)로 말미암은 미 술관의 존재론적 위기가, 21세기 대한민국 현대미술관 건축에 어떤 의 미 혹은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는 식자들만 염두에 두고 쓴 다. 그러니, 이 글에 대한 왈가왈부 혹은 비판은 오직, 식자의 언어로 해 야 할 것이다. ⓦ 선정된 건축가들의 생각은, 한결같이 구태의연하고 고 답적이다. 모두 학교에서 배운 설계 과제의 모범 답안 같다. 건축의 기 본인, 주변 맥락의 존중과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의당 비움과 다양성(혹은 융통성) 일색이다. 또한 백색 박 스라는 케케묵은 형식이 지배적이다. 예술의 소비와 (무)매개 방식에 대 한 문제 의식의 결핍은 차치하고, 현대미술관의 요체가 되어야 할, 작가 와 미술관 공간의 관계, 그리고 현대 예술과 건축의 관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물론, 포스트 퐁피두 시대가 던진 프로그램에 대 한 입장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뉴 미디어 아트의 무소부재의 속성에 대 한 고민도, 영상 예술의 전시와 수용 방식(개별성과 시간성의 문제)에 대 한 고려도, 테이트 모던을 짓기 위해 전 세계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연구 한 전시 공간의 성격과 형태에 대한 참조도 없다. 미술관이란 도대체 어 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변형해 왔고, 그래서 오늘날 그것은 도대체 우 리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없다. 보 이는 건, 오직 건축뿐이다. 그것도 이미 한물간 예술 작품의 배경과 주변 (혹은 주변적 삶)의 배경으로서의 건축이라는 구태의연 안에 모두 갇힌 채 말이다. 말이 현대미술관이지, 그래서 내용을 지칭하는 말만 달랐지,
실상 그것이 기념관이거나 공공 도서관이라 해서 건축적 접근 방식이 달 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겠다. ⓦ 물론, 딱히 이 경우에만 해당할 것은 결 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미술이라는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휘발성 높은 예술을 내용으로 삼는, 그것도 국가가 주체이며 서울의 역 사적 현장에 세우려는 미술관인 까닭에, 솟구쳐 나오는 질문을 마냥 억 누르기는 힘들다. 우리는 왜 세계적인 현대미술관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가? 넘어서기는커녕, 그것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생각이 왜 없는가? 인식적으로나 지각적으로 돌변한 글로벌리즘 속에서 미술관 건 축이 어떤 기로에 서 있는지 왜 주목하지 않는가? 여전히 우리의 삶만 중 요한가? 왜 우리는 미술관을, 그것도 국립 미술관을, 정치적이고 사회적 인 제도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빌딩으로 보는가? ⓦ 지금의 세상은 우리 가 살던 이전의 세상과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들이, 행 위들이, 가속화되고 범람함으로써(반복과 복제와 포화) 마치 “텅 빈 모 래사장처럼” 누워 있고, 역사는 이미 너무 멀어져 포착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무소부재한 까닭에 우리의 의식의 전 지평을 채워 그 자체에게로 하강하여 현실성 속에서 내파되어 소진되고, 광적인 기억화, 기념화, 복 구화, 문화의 박물관화의 문화 유산 시대에 편입된 문화는 그 스스로를 비워 내어 탈진시키고, 그로써 기억 그 자체가 무한한 복제의 무게 아래 소멸되는 시대, “한때 직접적으로 살아 낸 모든 것들이 단순한 표상으로 바뀐”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이미지에 의해 매개된 인간 관계)의 사회를 지나 너무나 효과적이게 된 이미지가 리얼리티를 대체하여(미술관에서 보는 것들이란, 이미 인터넷에서 본 이미지들의 확인에 불과함으로써) 새로운 리얼리티가 된 소위 하이퍼리얼리티의 시대, 그로써 뉴스가 뉴스 쇼가 되어 가상과 현실 간의 구분이 흐릿해져 표면이 깊이를 대체한 시 대, “소비의 성당” 쇼핑몰이 하이퍼마켓으로 새로운 성전이 되어 상품 이 성화되고 성이 상품화된, 그로써 유혹의 후광을 띤 상품 물신화의 꿈 의 세계, 모든 기술들이 기계 신으로 수렴되어 예술 작품들을 다시 아우 라로 휘감는, 그로써 탈신화화를 진척시킨 기술이 도리어 재신화화시키 는 세상, 모든 것이 미학화되고 예술로 전유되어 미학적 판단 대신 잉여
의 음란한 매혹이 들어서고 절제와 구속의 자리를 질펀한 생산이 차지한 시대, 그로써 키치의 표면 효과와 한 방으로 끝내는 의사 종교의 네오 바 로크가 우리의 문화적 지평을 장악하고, 그러한 얕고 대체적 종교가 즉 각성 곧 덧없음의 만족으로 초현실적 경험을 만연시키는 시대, 성형술 과 포토샵으로 모든 인간이 바비를 꿈꾸고 바비가 되어 가는(이십대여 영원하라), 그로써 죽음을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살아가는 시대, 모든 것 이 문화가 되어 아무것도 문화가 아닌 시대, 그리고 그로써 문화가 소멸 된 시대, 한마디로 세상이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시옹에 의해 지배되는 시 대가 아닌가? ⓦ 미술관(그리스어 museio)이란 말은 본디, 문학과 예술 과 철학의 여신인 뮤즈를 위해 희생 제의가 행해졌던 장소 곧 성소를 뜻 했는데, 학문적인 작업과 귀한 대상들을 보존하는 장소를 시사하며 점진 적으로 빌라 곧 건물을 함의하다가, 중세에 사원/성당을 지칭하며 마침 내 교회의 권위를 상징했는데, 여기서 새삼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미술 관이 성스러움 곧 초월성이라는 성분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니힐 리즘과 탈신비화(세속화)의 현대성 세계에서, 모든 것이 대중화되고 모 든 사물이 상품화된 세상에서, 모든 것이 기술화되고 국가 권력과 자본 권력에 포획된 세상에서, 그래서 유일하게 세속화되지 않은 고도로 남아 있던 미술관마저 거대 기업의 수중으로 넘어간 세상에서(삼성그룹 총수 의 아내 홍라희는 매년 미술계 영향력 일인자로 선정된, 명실 공히 대한 민국 최고의 미술 권력자다), 현대 예술(혹은 문화)의 담지자로 존재하는 듯한 현대미술관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태생적으로, 국가 권력 에 의한 식민 국가의 약탈, 사회 지배층의 피지배 민중의 길들이기, 그리 고 자본주의 사회의 미술 시장의 형성 등 사회 특권층의 권력 유지와 확 대, 그리고 현시 욕망의 벡터들을 장기처럼 내장시켜 온 현대미술관을, 국제미술관협회(ICOM)는 이렇게 규정한다 : “미술관이란 연구하고 교 육하고 즐기기 위해, 인간과 그 환경의 물질적 증거를 획득하고, 보존하 고, 연구하고, 소통하고, 전시하는, 사회와 그 자체의 발전에 복무하는, 대중에게 열린, 비영리적이고 영구적인 시설이다.” 비자금이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 글 | 이종건(본지 자문위원, 경기대 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5> 코야니스카시 M2* 갓프레이 레지오(Godfrey Reggio) 감독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1983)(그림 01~16).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 말은 호피족이라는 인디언들의 언어다. 여 기서 카시(qatsi)는 인생(life)을 뜻하고, 코야니스카시는 ‘균형 잃은 삶(Life Out of Balance)’을 의미한다. 제목만 봐도 왠 지 뻔하게 다가오는 느낌…. 현대 문명을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영화겠지?…. 뭐,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통 영화가 가지고 있는 줄거리나 대사, 혹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자연의 풍광이나 도시의 이미지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어떨 땐 느려터진 슬로우(slow) 모션으로, 또 좀 졸릴 만하면 긴박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패스트(fast) 모션으로 관객을 리드한다. 영화관의 큰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으나(2003년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요즘 집집마다 홈시어터가 갖추어진 곳이 많으 니 혹시 가능하다면 친구 집이라도 신세를 지길 적극 추천한다. 작은 컴퓨터 모니터나 사십 몇 인치 TV로 본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일 테니 말이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배경으로 분명 등장했을 이러한 장면들이 스토리나 출연 배우 없이 과연 어 떤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오랫동안 여러분 기억을 차지하는 색다른 기회가 되리라. 현재도 가톨릭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감독의 의도와 상반된 느낌을 가진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백인백색의 느낌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는 것조차 이런 영화의 목적과는 상반되는 것이니까. 더불어 미니멀리즘의 거장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음악으로 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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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으나 내겐 그다지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이 영화는 다른 두 편의 영화와 더불어 카시 3부작으로 불린다. 두 번째 영화가 <포와카시(Powaqqatsi : Life in Transformation, 변형된 삶)>(1988)(그림 17~32)이고, 세 번째 영화가 <나코이카시(Naqoyqatsi : Life as War, 전쟁의 삶)>(2002) (그림 33~45)이다. 거의 5년 간격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사람마다 평이 다르나 내겐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의미를 전해 주었 다. 흔히 전편보다 나은 후편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코야니스카시>에 비해 좀더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가진 <포와카시 >는 인간들의 도시와 환경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마지막 <나코이카시>의 경우는 전편의 두 영화와 달리 컴퓨터 그래픽적 요소와 이미지의 변형을 포함해 부정적인 평을 많이 받지만, 내겐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었고 가장 신선했다고 생각된 다. 1편인 <코야니스카시>의 제작 년도가 1983년으로 28년 전이니 지금의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로선 시대적 격차 를 마음속으로는 인정해도 눈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세 영화는 말보다 느낌이다. 나 역시 여러분들 의 감상의 범위와 해석의 자유를 빼앗을지 모르니 더 이상의 글은 자제해야겠다. 사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스틸 컷을 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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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슬라이드 쇼로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딱이다.
론 프릭(Ron Fricke) 감독의 <바라카(BARAKA)>(1992)(그림 46~57)라는 영화가 있다.이 론 프릭 감독은 <코야니스카시 > 당시 각본과 촬영감독이었다. 이 영화는 원래 아이맥스로 제작된 영화로 현재 블루레이로 출시되어 있다. 그러니 높아 진 우리의 눈뿐 아니라 5.1 서라운드로 오감을 만족시켜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역시 여러분 인생에 놓쳐선 안 될 영 화로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산업화된 풍경(Manufactured Landscape)>(2007)(그림 58~69)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며 글을 맺으려 한다.제 니퍼 바이월(Jennifer Baichwal) 감독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에드워드 버틴스키(Edward Burtynsky)의 촬영지 중국과 방 글라데시를 담은 영화다. 사람을 포함해 항상 엄청난 물량으로 숨을 막히게 하는 중국의 산업 현장도 내겐 영화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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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할 수 없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 글 | 강병국(본지 고정집필위원, 동우건축 소장)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A _ Architect : 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 _ Building : 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 _ Producer : 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 _ Documentary : 건축적 다큐멘터리 / C _ City : 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 _ Miscellaneous : 그밖 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5> 정읍 화호마을
ⓦ 일본인의 농업 이민 ⓦ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허용된 것은 1883년 영국과 체결한 ‘조영조약’ 이후의 일이 지만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1905년에도 개항장에서 10리 밖에 있는 땅을 외국인에게 매도한 자와 이를 허락한 관리를 교 수형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를 비웃기나 하는 듯 전국 곳곳에 농지를 매입하여 농장을 만들어 나갔다. 농지를 확보한 그들은 곧바로 일본인의 농업 이민을 추진했다. 우리나라로의 농업 이민은 앞서 실시된 하 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인부를 파견하던 것과는 다른 양태를 띠고 있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당시 일본의 인구 과잉과 이에 따른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대륙 침략의 일환이었다.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일본 인의 농업 이민은 그 방식과 주체에 따라 ① 대규모 토지를 매입한 일본인 농장주의 농장에서 일하는 경우, ② 일본의 각 지방 정부가 설립한 농업 회사가 추진한 농업 이민, ③ 개인 자금으로 토지를 구입한 소지주와 자경 농민, ④ 동양척식회 사(이하 동척)가 모집 알선한 농업 이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①, ②는 소작농, ③, ④는 자작농 또는 소지주를 겸하는 농업 이민이었다. 일제는 1890년대 이후 각종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일본인 소작농과 자작농을 이주시키려 했으 나 성과는 높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방 정부가 설립한 농업 회사는 이민을 중단하고, 구입한 토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작을 주어 경작시켜야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에는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일본 농민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 에는 1908년에 세워진 동척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22년 당시 이 회사가 모집 알선한 농업 이민자 수는 전체 농 업 이민의 50% 정도를 차지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남부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식민 정책으로 추진된 일제의 농업 이민 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으며, 이는 전국에 걸쳐 이루어졌다. 특히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 지대인 호남 에서의 폐해는 더욱 심각했다. ⓦ 화호마을 ⓦ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에 위치한 마을로 ‘화호(禾湖)’라는 지명의 유래는 인근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 벽골제(벼 고을의 의미)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 동네를 일컫는 다른 말로 ‘숙구지(宿驅地/ 宿狗地)’란 명칭이 있는데 이는 풍수지리 상 개가 자고 있는 형상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수로를 통해 서해 바다와 연결된 이 마을은 풍부한 농지를 갖춘 교통 요지였다. 1914년 신태인역이 문을 열기 전까지 면 행정의 중심지로 1910년에는 고부 헌병분대 관할 하에 화호리분견소가 세워졌으며, 1922년 3월 11일에는 화호우편소가 신설되었다(동아일보 1922년 3월 4 일자). 분견소는 1919년 8월 20일 태인경찰서 관할 하에 신태인과 화호에 경찰관 주재소가 설치되기 전까지 이 지역의 치 안을 담당했다. 화호마을 초입에 있던 화호지서는 1955년 2월 17일 폐지되어 신태인지서에 통합되었다. 화호마을의 공간 구성은 지형 상 구마모토 농장 화호지장(熊本農場禾湖支場)이 설치된 구릉부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평지로 구분된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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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모토는 풍수지리 상 개의 주둥이에 해당하는 부분에 위치한 농장 사무실을 세운 뒤 그 주위에 대형 미곡 창고, 자혜 병 원, 사택들을 배치했다. 농장 창고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면 마을 전경과 하늘과 맞닿을 만큼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농장에서 가까운 평지에는 일본인 지주와 자작농이 거주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외곽 지역에 살면서 일본 인 소유의 농지를 경작했다. 소작농들은 생산량의 40%를 소작료로 바쳐야 했으며 이외에도 비료대, 수리 조합세를 부담하 는 등의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농업 이민으로 마을에 들어온 다우에(田植) 등은 고리대금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의 농지를 지속적으로 빼앗아 자작농의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일본인들의 수탈이 극심했던 만큼 이들의 착취에 맞서 농사 동맹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조직적인 활동 또한 매우 활발했던 곳이다. 이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신문 기사가 눈길을 끈 다. “전북 화호리는 일본 사람이 많이 나와 지금은 30여 호가 1,000여 두락을 경작하는데 지난 7일 오후 8시경에 농민 100 여 명은 농민동맹회관에 모여 임금 문제로 장시간 상의하다가 결국 조선인 측의 품삯은 종래에 세끼 먹고 30전 하던 것을 40전으로 할 것과 일본인 측의 품삯은 밥을 주지 않으므로 종래에 60전하던 것을 80전으로 할 것을 결의하고, 즉석에서 교 섭 위원을 뽑아 서촌보(西村保)에게 교섭한 결과 거절당하고 조선인 측에서는 승낙하야 그 이튿날부터 일본인에 한해서만 총파업을 단행하였다. 일본인 측에서는 8일 아침에 종래에 60전하던 것을 10전 더하여 70전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수
1. 구마모토 농장 화호지장 경리과장 주택(1급 사택) : 건축물
2. 화호중앙병원 : 1930년경 구마모토 농장의 미곡 창고로 세워
전면을 증축하여 원래의 모습은 많이 잃었지만 건물 우측의 목
진 건물이다. 1948년 화호중앙병원으로 개조된 뒤 화호여자중
조 비늘 판벽과 이중 지붕 형식에서 일본식 건물임을 쉽게 알
학교 교사를 거쳐 병원이 폐쇄됨에 따라 원래의 용도인 창고로
수 있다.
바뀌었다. 병원으로 개조하면서 2층이 되었다가 창고로 바뀌면 서 2층 바닥이 철거되어 현재는 단층 구조물이다.
용하지 않으면 타처에서 일꾼을 사오겠다는 강경한 회담이 있음으로 농민들은 다시 8일 반에 농민동맹회관에 모여 장시간 긴장한 속에 의논을 하다가 최후까지 대항하는 것으로 결의가 되었다.”(동아일보 1927년 6월 12일자) ⓦ 구마모토 농장 화호지장 ⓦ 이키시마(壹岐島)(각주 1 : 이키시마는 보통 ‘이키’라는 불리며 쓰시마와 후쿠오카 사이에 위 치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왜구의 근거지였고 조선 시대에는 통신사가 지나는 길이기도 했다.) 출신의 구마모토 리헤이 (熊本利平)는 호소카와 모리시게(細川護成)에 이어 전라북도에서 네 번째로 정착한 일본인 농장주였다. 그는 현금 3,000 원을 갖고 군산으로 들어와 토지를 매입하여 구마모토 농장을 세웠다. 1908년에는 1,500정보(1정보=3,000평=9,916㎡) 의 논을 소유하였고, 1932년에는 3,500정보(여의도 면적의 11.8배 수준)까지 늘어나 ‘전라북도의 지주왕’으로 불리기도 했 다. 그는 군산시 개정면에 본장을 두고 옥구, 미면, 정읍, 화호에 지장을 두어 운영했으며, 농장에 소속된 소작인만 3천 세대 2만여 명에 달했다.(각주 2 : “웅본농장에서는 30일에 소작인 위안회를 개최했는데 소작인은 3,000여 명이 집합하여 농장
직원이 이곳에서 일했다. 구마모토 농장 화호지장 사택은, 기와를 올린 1급 사택에는 일본인 간부와 화호병원 의사들이 살 았고, 조선인 구책임 직원은 기와는 올렸으나 규모가 작은 2급 사택에서 살았다. 슬레이트를 올린 3급 사택에는 조선인 직 원들이 거주했는데 방 2개, 마루, 부엌이 전부였다. 화호중앙병원은 소작인의 질병 치료를 위해 1935년에 세워진 자혜 진 료소에서 출발했다. 이 진료소는 개정본장 병원에 근무하던 이영춘 박사가 순회 진료하던 간이 진료소였다가 1941년 김성 환과 김경식이 각각 화호진료소와 지경진료소(군산시 대양면 소재)에 근무하게 된 이후부터 진료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구마모토가 의원을 개설한 이유는 소작인의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것으로, 당시 전북 지방에서 대형 농장을 운영하 던 일본인들은 같은 이유로 구마모토에 앞서 촉탁 의사를 고용하고 있었다. 해방 후 이영춘 박사와 의료진은 개정에 있던 웅본농장 곡물 창고 2동과 화호에 세워진 창고를 개조해 병원을 열어 우리나라 농촌 진료의 전기를 가져왔다. 화호중앙병 원을 모태로 1955년에는 화호여자중학교, 1961년에는 화호여자고등학교(현 인상중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개원 이후 자 금난에 시달리다가 1959년 지경, 동진 등 6개 진료소가 폐쇄되고, 1972년에는 화호중앙병원마저 문을 닫았다. ⓦ 다우에 농장 ⓦ 1898년에 태어난 다우에(田植太郞)는 1915년 고지현립제일중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아버지를 따라 화호로 왔다. 다른 농장주들이 군산이나 일본에 거주하면서 직원을 두어 농장을 관리한 것과 달리 다우에는 화호에 거주했 다. 그는 식산은행에서 저리로 융자를 받아 조선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후 고리대금업(각주 3 : 고리대금업자는 이자의 징 수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갚지 못한 조선인들로부터 담보로 잡은 토지를 빼앗는 데 있었다. 일제 강점기 교사로 재직했던 나카노 마코토(中野實)는 “조선에서 성공한 일본인의 표면상의 직업은 농업, 상업, 공업이었지만, 뒤로는 고리대를 바탕으 로 몰락한 농민의 토지를 겸병하여 된 자가 많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으로 농토를 늘려 논밭을 합해 300정보(2,974,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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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와라(小田原)에 거주하면서 농장은 직원을 두어 관리했다. 화호지장에는 경리부, 사업부, 진료부가 있었으며, 49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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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풍년을 축하했다.”―동아일보 1930년 10월 2일, 3일)) 구마모토는 동경의 휴양지인
3. 화호중앙병원 2층 포치 바닥 장식 : 인조석 물갈기를 이용하여
4. 다우에 농장 사무실 겸 주택 :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336-1
꽃잎과 병원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에 위치한 일본식 건물로 1층은 사무실, 2층은 주택으로 사용했 다. 해방 후 한때 화호우체국으로도 이용되다가 민간에 매각되 어 주택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다.
㎡)의 토지를 소유했다. 이 농장에서는 500여 명의 소작농이 연간 벼 7천 석을 생산했다. ⓦ 화호리의 일본인 자작농 ⓦ 농업 이민으로 화호리에 온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전통 종이를 제작하던 장인이었다. 이들이 농업 이민을 떠나온 것은 근대화에 따른 산업 구조의 변화로 파생된 실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결국 일 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근대는 일본의 근대화에서 발생한 문제까지 짊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 동진수리조합 ⓦ 김제, 정읍, 부안 지역을 아우르는 수리 조합이 세워진 것은 농업 용수 부족이 원인이다. 넓은 습지를 간 척해 농지로 개발했으나 논 면적에 비해 공급되는 물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섬진강 수계의 물과 동 진강 수계를 연결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1927년 섬진강 상류인 임실군에 운암저수지(지금의 옥정호)를 세워 그 물을 지하에 매설한 관을 통해 산 너머 동진강 유역으로 보내 김제평야에 농업 용수를 공급했다. 1925년 8월에 설립된 동진수리조합은 고부/영원수리조합 합병(1942년), 김제/동재방조수리조합 합병(1961년), 김제농지개량조합 합병(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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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을 거쳐 현재는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이다. ⓦ 글 | 손장원(본지 고정집필위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
5. 운암저수지 : 우측 사진의 글씨는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 코토(齋藤實)의 것이다.
6. 동진수리조합 관내도(1973년).
이용재의 <종횡무진 15>
인가?” “20살.” “그럼 내 딸과 동갑이군. 지금 니가 생각하는 길이 있지?” “예.” “그리 가. 그게 맞는 길이야. 엄마가 말리면 나한테 전화하고.” “고맙습니다.” 옆의 어머니가 다시 질문. “제가 아니고 남편이 말리는디유?” “그럼 이혼해유.” 왜 자기 인생도 제대로 운전 못한 부모들이 첨단 병기인 신세대 자녀들의 운전을 막는 건지. 그래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거죠. 기원전 18년 주몽과 둘째 부인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난 온조는 고구려의 왕권이 주몽의 첫째 부인인 예 씨가 낳은 유리에 게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고구려를 탈출해 지금의 하남시로 내려와 위례성 짓고 백제 건국. “아빠, 위례(慰禮)가 머야?” “울타리.” 연이어 남쪽으로 둘레 3.5킬로의 타원형 평지성인 풍납토성, 몽촌토성 지어 국력 신장. “풍납(風納)은 먼 뜻이 야?” “바람이 납시다.” “몽촌(夢村)은?” “꿈 마을.” 427년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이 만주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 이전. 남진 정책이 시작된 거다. 큰일 났군. 장수왕은 호랑이도 손으로 때려잡는 맹장. 백제의 개로왕은 중국에 첩자를 보내 봉투를 전했다. “같이 고구려를 치자. 대가로 10억 주겠음.” “됐걸랑.” 고구려에서 이미 20억을 먹은 상태. 장수왕에게 전화. “개로왕이 같이 치자네유.” “머라. 알겠음.” 475 년 장수왕은 3만을 이끌고 위례성 공격. 위례성 점령하고 개로왕 죽인다. 개로왕의 아들이 신라 원병 1만을 끌고 왔지만 이 미 위례성에는 고구려기가 휘날리고. 부하가 부친의 유언을 전한다. “되도록 멀리 도망가라. 장수왕 살아 있을 땐 싸우지 말고.” 뒤도 안 돌아 보고 웅진으로 도망. 하룻밤 사이에 180킬로를 도망간 거다. 장수왕이 꿈에도 나타나고. 538년 제26대 성왕은 살림이 좀 피자 부여 사비성으로 천도. 이제 공산성은 폐성. 1458년 조선의 제7대왕 세조가 공산성 을 찾아 500년 동성왕이 건립한 임류각에서 한명회와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야, 이 전각 이름이 머냐?” “임류(臨流)인디 유.” “먼 뜻인데?” “금강에 몸을 맡긴다.” “그렇지. 왜 그걸 몰랐을꼬. 너무 많이 죽였어. 동생에 조카에.” “여기에 절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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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도서관에서 특강. 한 어머니가 질문. “딸을 잘 키우려면 우찌해야 되남유?” “그냥 냅둬유.” 옆의 딸에게 물었다. “몇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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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쌍수정
나 지어 용서를 구하시죠.” “그러자. 절의 이름은 멀로 할까?” “영은사(靈隱寺)로.” “먼 뜻인데.” “신선의 영이 깃들어 있 는 절.” “너도 조심해라. 까불지 말고.” “아, 그럼요.” 그게 되나. 아시죠, 한명회 부관참시 당하는 거. 그래 우리 집 가훈은 까불지 말자다. 임진왜란. 우리 시대의 스타 영규대사가 영은사를 찾았다. 이제 영은사는 승군사령부. 영규대사는 조선 역 사상 최초의 승병장. 금산성 전투에서 전사. 1624년 이괄의 난. 제16대 왕 인조 보따리 쌌다. 쿠데타로 정권 잡은 업인가. 과천행궁에서 1박. “전하, 조금 내려가셔야.” 화성행궁 2박. “전하, 조금 더.” “머라.” 온양행궁 3박. “조금 더.” 대전 인근 길가에 사계 김장생이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전하, 죽여 주십시오.” “아니야, 내 탓이야. 자네 집에서 하루 묵어가자.” “광영이옵니다.” 은농재에서 막걸리를 기울였 다. “야, 은농재(隱農齋)가 먼 뜻이냐?” “이제 시골에 숨어 농사나 짓겠다 이옵니다.” “넌 좋겠다. 숨어 살 수도 있고. 난 머냐 이게. 그만 둘 수도 없고.” “전하, 피난지에서 이 책이나 보시죠. 근사록이라고.” “누가 쓴 건데.” “주자가 주돈이, 정 호, 정이, 장재의 글을 채집한 거걸랑요.” “야, 근디 근사(近思)가 머냐?” 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 널리 배우고 뜻을 참 되게 가지며),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 깐깐이 묻고 가까운 일부터 하라). 공주 도착. 어라, 행궁이 없네. 공산성 내 영은 사가 임시 행궁. 정자에 올라 사계와 다시 막걸리를 들이켰다. “전하, 예가 다스려지면 국가가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해지 면 국가가 혼란해지걸랑요.” “너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지.” “아니 그렇다고요. 제가 시를 한 수 올리겠습니다.” 여림심연( 如臨深淵 ―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 같이하며), 여리박빙(如履薄氷 ―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 라). 어느 날 한 농부가 찰떡을 해가지고 인조에게 바쳤다. 어라 쫄깃쫄깃한 게 맛있네. “얘들아 이 떡 이름이 머냐?” “없 는디유.” “누가 가져왔는데.” “임서방이.” “임씨라…… 그것 참 절미(絶美)로다.” 그래 이 떡은 임절미가 되고. 시간이 흐 르면서 발음하기 좋게 인절미가. 인조는 두 그루의 나무 밑에서 반란 진압 소식을 기다렸다. “전하, 이괄 정리했답니다.” “가자.” 인조는 감격에 겨워 이 쌍 수에 정삼품 통훈대부의 벼슬을 내리고. 1734년 이를 기리기 위해 관찰사 이수정이 쌍수정 건립.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 49호. 1946년 김구와 이시영이 공산성을 찾아 임류각에서 역시 막걸리 대작. “야, 저 산 위의 누각 이름이 머냐?” “웅심각 인디유.” “야, 여긴 왜 만날 곰 타령이냐. 이름 바꿔라.” “뭘로.” “광복루.” “먼 뜻인지.” “너 취했냐. 작년에 나라를 찾았 잖아.” “아, 예.” 날씨도 풀렸는데 자녀들과 사적 제12호 공산성으로 나들이 가세유. 자녀들 사고치기 전에. ⓦ 글 |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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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평론가)
<POwer ARchitect 프로파일 03 | 오섬훈> 노매딕스, 두 코드 사이
ⓦ prologue ⓦ 건축적 환경이 사람들의 사고 형성에 있어서 전
외벽에서부터 천정으로 내벽으로 바닥으로 지나가고, 그 바깥이
적일 수는 없지만 환경 결정론적 관점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
외부라는 개념 설정으로 디자인하게 된 겁니다.…”
실이라면, 그 건축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야 하고 그 시대의 문화적 흔적으로서 기록된다면 그 시대적 정신을 어떻게 읽을 것 인가 하는 것은 기본 전제인 동시에 중요한 방향 설정이 된다. 다 원성의 시대인 현재는 각각의 개별성과 독립성들이 서로 공존하 면서 사회적 혹은 물리적 통합을 이뤄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 한 인식 하에 어떠한 건축적 어휘로서 건축할 것인가가 초점이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작업해 온 것들을 보면 연속적 흐름 (Single Surface), 사이 공간, 외피 체계 등의 실천 전략을 가지는 노매딕스(nomadics)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매 딕스의 주요 특성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상황들이 때로는 연속적 인 변주(continuous variation)로서, 때로는 동일한 틀로서 병치 되고 통합(coherence)되어 하나의 주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을
풍수 밴드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 ⓦ contents 구조 ⓦ 주어진 프로그램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contents의 조건을 비틀고, 부가시키는 것은 건축적 장치를 좀더 정교 기는 것은 또 다른 조건에 반응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닐 것이다. 나의 의도와 의지가 잠재되어 있을 뿐인지 도 모른다. 여러 과정을 거쳐 하나의 대상으로서(들뢰즈의 말처럼 : 작동하는 기계로서) 독립적이 될 것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심지 어 만든 사람으로부터도, 그것이 어떤 것이든 지속적인 추이와 흐 름을 가질 때, 개별의 독립된 대안을 만든 잠재된 긴 속성을 주목
자동차 전시장 다이어그램
하고 의식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전체험관의 주어진 프로그램 이 지진, 풍수해, 화재, 홍수 등의 자연 재해와 교통 사고 등의 인 위적 재해에 대한 체험 전시였는데 이러한 자연재해는 화(火), 수 (水), 토(土)의 만물을 이루는 4가지 요소의 균형이 깨진 데서 발 생할 수 있다는 당시 스태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4가지의 밴 드로 관련된 자연 재해 프로그램을 묶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火) 의 밴드에는 지진과 화재가 같이 묶이는 방식이었습니다. … 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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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옆에 위치하는 폭스바겐 자동차 전시장입니다. 자동차 전시장 과 임대 사무실로 이루어지는 건물인데 주요 프로그램은 전시장이 었죠. 자동차를 전시하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해 보는 데서 아이디어가 출발합니다. 비록 내부에 전시하기는 하지만 외부에서 주로 사용하는 자동차 편의성을 염두에 두고 개념적으로 전시 공 간을 외부처럼 보이게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스트라이프 패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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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조건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 변화가 생
자동차 전시장 투시도
ⓦ 건축적 장치로서, 공간 조직 수단으로서의 프로그램(디자인
ⓦ The One=The Multiple ⓦ 경계면과 내적 속성으로 만들어
전략) ⓦ Form Follow Function이 건축 행위의 중요한 이디엄
진 공간 조직은 여러 형태로 드러날 것이다. 두 특성을 드러내는
(idiom)이었던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Form Follow Idea
건축적 요소의 설정과 그들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Single
등 또 다른 종류의 매니페스토(manifesto)가 난무한다. 건축 행위
Surface, In-Between, Deep Skin 등의 디자인 전략은 여러 종류
의 원칙과 전략이 변한다는 의미이다. 기능이 중요하던 시대, 또
의 다른 건축적 어휘나 프로그램들을 샐러드처럼 조직하여, 부분
다른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 등등. 그러나 건축이 이루어지는 데
적으로는 이질적이나 전체적으로는 동질적 공간 조직을 만듦으로
객관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그 건물이 놓이는
써 노매딕스의 건축적 원칙을 만들려 한 것이다. 그래서 The One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그 건물이 담아야 할 콘텐츠로서 프로그램
이 곧 The Multiple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한성대 도
이다. 즉 이 두 가지의 기본적인 소재를 이용해서 건축적인 언어
서관 전면의 이미지입니다. 도서관의 메인 프로그램이 열람실과
로 전환시키고, 건축가 신념과 철학을 투영시켜 건축적 장치를 만
서고라면, 서브 프로그램은 이들을 연결하는 각종 동선과 휴게 시
들고 건축 조직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로서의 소프
설 등입니다. 도서관은 대학에 또 다른 중심이므로 활기찬 이미지
트웨어적 프로그램의 해석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를 담아
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인 프로그램
내는 하드웨어로서, 즉 건축적 장치로서의 프로그램, 디자인 전략
의 일부와 서브 프로그램을 한 동 안에 넣어서 적절히 배치하여 깊
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가 있는 입면을 만들었습니다. … RFID를 주로 만드는 벤처 기 업인 (주)세연 사옥입니다. 외부로 홍보 가능한 전시장 겸 회의실
ⓦ 경계면과 내적 속성 ⓦ 건축물 한 대상의 개별 구조는 경계면과
과 사무실, 직원 휴게를 위한 운동 시설(농구 코트 등의 다목적 코
내적 속성을 가질 것이다. 놓이는 장소의 집합 중 일부로서, 공공
트)을 갖춘 사옥입니다. 현대사옥의 옆길과는 좀 다르지만 하나의
성으로서, 도시 경계면으로서의 역할과 각 장소의 프로그램을 담
표피(Single Surface)로서 옥외 홍보 겸용 전시장과 사무실, 운동
는 그릇으로서의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 현대사옥 옆길에서
시설을 엮는 매개로 사용하여 RFID로서 많은 정보를 읽는 벤처 기
시간대 별로 일어나는 형태의 모습입니다. 아침에 현대사옥과 중
업으로서의 세연사옥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앙고등학교로 출근하고 등교하는 모습의 길입니다. 점심 때는 주 변의 직장인들이 식사 후 이 길에 만들어진 벼룩시장을 즐기는 거 구요. 날씨 좋은 저녁은 포장마차가 차려져서 또 다른 모습의 장소 를 보여 줍니다. 하나의 길에서 이렇듯 여러 종류의 이벤트가 생기 고 적층되어 복합적 장소성이 형성됩니다. Single Surface(하나의 길)에서 여러 종류의 이벤트가 생기는 현상을 포착한 것입니다. 이 를 주변에 적절한 프로그램의 배치(현대사옥, 중앙고, 주점, 주거 등)가 눈에 안 보이는 기본 요소입니다. 건축적인 장치로도 가능성 이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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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한성대 도서관
현대사옥 옆길
(주)세연사옥 투시도
어 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상 1층에서 지하 1층까지의 자연스 러운 동선의 변화가 기본 틀을 형성하는 공간적 구조와 부딪히면 서 의외의 공간적 변화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 글 | 오섬훈(어반엑스 건축 대표)
(주)세연사옥 다이어그램 ⓦ 두 코드 사이(Between Two Codes) ⓦ Criss-Cross전이 계기
criss-cross
가 됐지만 Skin의 작동 방법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 스킨에 프로 그램이 실리면 한성대 도서관 같이 공간적 깊이(Deep Skin)만으
보듯이 공간적 구조와 프로그램적 구조의 다름으로 인한 공간감의 변화나 이벤트적 의외성은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다. 무언가 다 른 두 개의 코드가 소재로서 사용되나 그것들이 조직되는 방법이
반포오피스 다이어그램
나 만나는 장치에 따라 하나로 되기도 하고 변주되어 또 다른 하나 로 보여진다면, 그래서 그 속의 공간 깊이나 이미지가 다양해져 의 외성의 이벤트가 생긴다면 이 또한 노매딕스의 실천적 디자인 전 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Criss-Cross 전시의 모습입니다. 건축 가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조각가 안필연 씨와 공동 작업을 했는데 공동 작업으로서 성과는 좀 미지 수지만 건축적 아이디어는 제게 한계가 있었습니다. 스킨과 프로 그램 사이의 긴밀함은 한성대 도서관의 Deep Skin과는 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의 아이디어가 효성 반포오피스에 접목
됐습니다.(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스킨과 스킨 사이에 아트리움을 줌으로서 정원, 휴게, 디지털 가든 등의 여러 프로그램 이 가능했을 거라 생각됐는데 좀 아쉽습니다. … 다음은 경춘선 폐 선 부지의 컬처 플랫폼입니다. 전체 부지의 마스터플랜과 연계된 형태와 패턴을 가져오고, 공연장, 갤러리, 푸드 코트, 기념품 등의 분절된 건축적 프로그램의 삽입은 공간적인 변화를 자연스레 만들
경춘선 폐선 부지 컬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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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아니라, 컬처 플랫폼(경춘선 폐선 공원화 프로젝트)의 구조에서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로 설명하기는 부족한 느낌이 든다. 효성 반포오피스 초기의 안뿐
<POwer ARchitect 프로파일 04 | 최욱> aging-architecture
집 앞에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 있었다. 아니 밭으로 사용되다가 개발을 위해 빈 땅으로 수년 간 방치되어 있었던 그곳에 주택 두 채가 들 어서기 시작했다. 어떤 모습의 풍경이 만들어질지 걱정되었는데 골조가 올라가면서 걱정은 기대로 변했다. 아름다운 마을들은 그러한 기대와 관심으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으로 미래를 만든다. 햇볕이 온화한 창가에서 책을 보거나, 주변의 소음들이 정겹게 스며드는 공간에 머물기를 좋아했던 나는 냄새가 스며들고 빛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은 담백해 야 한다. 다음은 담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나의 생각들이다.
구조는 단순해야 한다. ⓦ 구조는 만화의 그림처럼 박스 안의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배경이어야 한다. ⓦ 일소점 투시 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한국의 마을 풍경을 가진 건물을 만들 기 위해 구조를 천장 위로 숨겨서 보이지 않게 하거나 반대로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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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을 위한 일정한 간격의 구조를 나열한다.
재료는 반사하는 재료와 빛을 흡수하는 재료의 적절함으로 균형을 이룬다. ⓦ 흙나 나무, 돌, 종이 등의 재료는 빛을 머물게 해서 공 간에 질감을 준다. ⓦ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을 가지는 재료는 기 창은 풍경을 보기 위한 프레임이 아닌 풍경을 보기 위한 디테일이 다. ⓦ 창틀이 만드는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디테일을 숨겨야 할 때 가 있는 반면, 창호의 그림자가 공간의 생명을 만들 수도 있다. ⓦ 바깥의 풍경과 내부 공간의 경계를 위한 경계는 무거움 혹은 가벼 움으로 표현되는데 중량감은 디테일을 결정하는 근본이다.
억을 간직한다.
공간은 사람의 풍경으로 그림이 되어야 한다. ⓦ 섬세한 공간은 사 람의 표정을 만든다. ⓦ 공간의 에너지가 몸을 감쌀 때 사람은 공 간의 여행자가 된다. ⓦ 비례나 구성은 공간을 만드는 어휘지만,
디테일은 형태의 완성도가 아닌 감성의 질감이다. ⓦ 문의 여는 방
건축을 논하지 않아도 건축물은 존재할 수 있다. ⓦ 자본주의 사회
식, 무게, 손잡이의 감촉에 따라 공간은 성격을 달리한다. ⓦ 디테
에서의 건축 담론은 광고를 보여 주기 위해 재미있는 드라마를 생
일은 눈으로 봐서 이해될 수 있도록 단순화한다. ⓦ 디테일은 만든
산해야 하는 TV 프로그램 제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혹은 건축
사람의 성품이 보여야 한다.
은 진정한 담론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담백한 공간이 역사성을 가질 수 있을까? 역사성 앞에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동시대성은 오늘과 같이 개방된 사회 현실에서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화두다. 보편적 가치관과 장소의 상황을 인 식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밭에 물을 뿌리는 농부처럼 대지가 만드 는 문화의 표정을 발견하고 싶다. ⓦ 글 | 최욱(one o one 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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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 대표)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긴장과 이완은 공간을 형성하는 시(詩)다.
공간은 간격의 적절함으로 이루어진다. ⓦ 간격은 자연의 개입과 장소의 성격에 따르는 사람의 행동이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의 형 태이다. ⓦ 간격은 투명, 반투명, 불투명의 빛의 농도에 따라 구분 되거나 긴장감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9>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쏘아보고는 꾸역꾸역 짐을 쌌다. 내가 뭐라고 말릴 틈도 없이, 내 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살필 겨를도 없이 현장을 떠났다. 마 치 미리 짜 놓은 일처럼 누구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오늘 타일을 붙여야 내일 천장틀을 걸 수 있다. 타일공을 새로 구할 때 까지 다음 공정을 기약 없이 미룰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골조 공사 때까지는 그래도 이런저런 문제를 잘 협의하며 서로 의견을 조율해 나갈 수 있었다. 골조 공 사 때는 집은 튼튼해야 한다는 합의 아래 일의 세세한 방식을 따 지는 것은 쉽게 가지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감 공사에 들어 가자 전쟁이 벌어졌다. 마감 공사에 들어 온 인부들은 일을 어떻 게 빨리 끝내느냐, 에만 관심이 있었다. ‘보기 좋고 꼼꼼하게’보 다는 ‘빠르고 쉽게’ 해치웠고, ‘정석’보다는 ‘변칙’으로 일을 ‘죽였 급히 구조 사무실에 연락해서 해결책을 물었다. 다행히 주요 구
다’. ‘일을 죽인다’는 말처럼 일꾼들의 작업 방식을 가장 잘 설명
조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고 있는 보에서 하중을 견디고, 휘는
해 주는 말은 없었다. 그들은 정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죽였
힘을 받는 철근은 그나마 확고히 연결되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
다. 타일은 미친 듯이 붙여서 두드리면 모르터가 채 채워지지 않
을 것이라는 대답이 왔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박
아 텅텅 울렸고, 벽돌 역시 윗면에만 모르터를 얹어 구멍이 숭숭
반장에게 한 번 더 주의를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는
뚫렸다. 천장의 석고보드는 칼질을 되는 대로 해 가장자리가 뱀이
자기의 방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신념이 아주 틀
기어가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을 나는 견디고 있어야 한다. 이
린 얘기는 아니라는 데 있지 않은가? 계단참은 넓고 편한 것이 좋
모든 것에 내 감각을 무디게 해야 한다.
다. 또한 집은 안전해야 한다. 거기에 다른 꼬투리가 있을 리 없 다. 단지 그는 이 집을 ‘위해서’ 그것을 주장했고, 나는 이 집을 ‘
하루는 벽돌공이 일을 하기 전에 현장을 방문했다. 나는 그에게
위해서’ 안전한 구조를 주장했던 것이다. 둘 다 ‘집을 위한’ 것이
벽돌 줄눈은 5미리 이하로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 벽돌 줄눈이 너
었으므로 그를 궁지에 모는 일은 없어야 했다. 혼자 생각으로 저
무 두꺼우면 쌓는 게 아니라 붙이는 것처럼 보여 벽돌이 타일 같
질러진 일이었지만 드러난 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찌하겠는
아 보이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금방 싫은 눈치를 보였다.
가, 그도 나도 집을 위한 일이었고,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싸울
“그러면 벽돌이 힘을 받지 못하는데요?” “어차피 힘을 받는 벽돌
이유가 없다.
이 아니라 치장쌓기 아닙니까? 벽돌이 콘크리트 벽에 기대 있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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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하면 되니까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 그러나 집을 지으면서 일꾼들과 가장 많이 부딪히는 일이 바로 그
게 말했다. 그리고, 내력벽이라고 해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란 말
런, 같은 목적을 두고 나누어지는 다른 방향에 있었다. “세상에 그
은 꾹 삼켰다. 처음부터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
런 법은 없습니다”란 말은 매번 그런 때에 듣는 그들만의 주문처
든 내 의견대로만 해 주면 되니까.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럼 되풀이 되었다. 타일을 붙일 때 바탕 모르터를 빈 데 없이 꽉
다시 이어 말했다. “치장쌓기입니다. 벽돌 줄눈은 오미리 이하로
채우라고 얘기하면, 그들은 말했다.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해 주시고, 그게 그대로 마감이 되니까 벽돌 옆면에도 모르터를
요즘 누가 그렇게 타일을 붙입니까?” 그러면서 아예 도구를 주섬
빠짐없이 채워 주십시오. 그 상태에서 페인트를 칠하고 끝낼 거
주섬 챙기기 시작하는 거였다. “아니,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
거든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일 들어오면 됩니까?”
우린, 그렇게 일 안 합니다.” “아니, 그래서 지금 일 안 하시고, 가
그가 내 주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 걸렸지만 그 정도 했으면
시겠다는 겁니까?” 그는 쓰다 달다, 아무 말 없이 짐을 싸 동료들
알아들었겠지 하며 나는 내일부터 들어오라고 했다. 그는 그러마
을 불렀다. “어이, 김씨, 이씨. 이형, 연장 챙겨.” 그러면 그의 일
하고 갔다. 그가 트럭을 타고 연결 도로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
꾼들도 쓰다 달다, 아무 말 없이, 오히려 나를 경멸에 찬 시선으로
켜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기분이 그리 석연치 않았다.
불안감에 일찍 현장에 들른다고 했지만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고,
장은 일꾼들에게 내 말을 전달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반장도
벽돌은 다섯 켜가 쌓여 있었다. 나는 얼른 줄눈부터 확인했다. 오
일꾼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내리는 걸 두려워한다. 자칫 일꾼들의
미리가 훨씬 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벽돌 앞에서 큰 한숨이 뿜
비위를 건드리게 되면 그 역시 일을 해 먹기가 곤란하기 때문이
어져 나왔다. 더군다나 벽돌의 옆 부분은 모르터가 채워지지도 않
다. 사실 반장이나 나나 같은 처지다. 오히려 반장은 내가 더 설
았다. 어제 벽돌이 힘을 받네 못 받네 하던 사람이 벽돌을 이런 식
쳐 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곧이곧대로를 고집하는 건축가 때
으로 성의 없이 쌓는단 말인가? 화가 났다. 나는 어제 얘기를 나누
문에 일의 양이 늘었고, 그건 당신들도 보았다시피 내 잘못은 아
었던 벽돌 반장을 불러 따졌다. 내 말을 어이없다는 듯이 듣고 있
니다라는 걸로, 내 주문도 들어 주고, 일꾼들에게도 인심을 잃지
던 그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을 잘랐다. “세상에 그렇게
않으려는 빤한 수였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춤춰 줘야 한다. “반
벽돌을 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 또 시작이구나. “관공사
장님.(사이) 건축주가 돈이 많다면 저도 이런 방법 안 씁니다.(이
에서도 그런 식으로 벽돌을 쌓으라고는 안합니다. 그리고 아니 어
건 거짓말이다. 나는 모르터 미장을 극도로 혐오한다. 건축주가
떻게 시멘트 벽돌에 미장도 안하고 페인트를 칠해서 마감을 합니
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돈이 있어도 나는 미장은 안 한다. 내 설
까? 나 원 세상에 별꼴을 다 보네.” 어제 그가 내 얘기를 듣고 있었
계에 모르터 미장은 없다.) 건축주가 돈이 없으니까 최대한 비용
던 건 사실이구나. “벽돌을 쌓고 미장을 해야지. 그래야 벽이 튼
을 아끼기 위해 미장도 빼고, 도배도 빼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정
튼하지. 아니면 줄눈을 따로 넣든가. 우리더러 그렇게 하라고 하
이 그러면, 제가 일꾼들 인건비를 깎자는 것도 아닌데 따라 줘야
면 공사 못 해 먹지.”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엔 어미를 끌어 올렸다. 이 말은 일꾼들 에게 먹혀들었다. 나의 주장을 한 것도 아니고, 소위 ‘오야지’라고
대부분 반장들은 현장에서 감독관들에게 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
불리는 반장의 역할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집의
신이 통솔해야 할 일꾼들을 의식해서다. 감독관에게 밀리면 그 만
건축주도 돈이 많아서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닌, 즉, 당신들(일꾼들)
큼 일꾼들에게도 일의 양이 더 가고, 일꾼을 보호하지 못하는 반
과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인데 필요해서, 그래서, 무리해서 집을 짓
장은 말발이 없어지게 된다. 기선을 제압한 벽돌 반장은 고래고래
는 사람이란 걸 누구라도 알기 쉽게 강조한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소리를 지르며 나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말을 끝낼 때
역시, 일꾼들의 눈빛이 좀 누그러드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거
까지 기다렸다. 어제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일꾼들에게 들리도
기에 화답하듯 한 일꾼의 목소리가 들렸다.
록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어제 분명히 얘기하지 않았습니 까.” 일꾼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줄눈은 오미리 이하로 맞
“거, 별 문제도 아닌데 그렇게 합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춰 주시고, 벽돌이 그대로 마감이 되니 모르터를 꼼꼼하게 채워
그저 내 나이 또래? 많다면 서너 살 위일까? 반장과 비슷한 또래의
달라고 했잖습니까.” 나는 어미에 힘을 주어 내 말이 의문문으로
일꾼이 거들고 나섰다. 이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일꾼이
들리지 않게 단정적으로, 그건 이미 당신이 나에게 약속한 내용이
거들고 나선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의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라는 걸 강조하며 말했다. 일꾼들이 잠시 동요했다. 예상대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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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날 막연한 불안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전날의
한마디로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반장은 그러지 뭐, 라는 태도로
빛이었다. 당연히 나는 이 이상한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돌변했고, 일꾼들은 반장과 나의 대화를 등 돌리고 다시 일에 열
런 내 상태를 잠깐 관망하고서 그는 자기 할 일을 했다. 벽돌을 삐
중했다. 나도 더 이상 내 주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이것저것
뚤빼뚤 쌓는. 나는 다시 반장을 찾았다. 일꾼들과 얘기해 봐야 소
살펴보는 척하며 벽돌공들의 작업을 살폈다. 확실히 줄눈은 얇아
용없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그와 나와의 대면을 눈치 챈 반장이
져 있었다. 하지만 벽돌의 측면에 모르터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다 안다
다. 어쩔 수 없었다. 이들에게 내 이야기는 거기까지가 그들이 받
는 듯이 주섬주섬 자기 말을 챙겼다. “저 형이 일은 잘하는데, 술
아들일 수 있는 전부였다. 이들은 마감에 관심 없었다. 내가 어떤
을 끊지 못해서요. 사람이 술만 먹으면 제 정신을 못 차리니.” 내
건물을 상상하고 있느냐는 일꾼들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
가 생각하기에 그는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아니라 제 일을 못하
은 건축의 구축의 방법은 이들의 세상 밖에 있었다. ‘세상에 그런
고 있는 거였다. 오전에 그토록 정확히 쌓던 사람이 이렇게 무너
법은 없습니다’는 그들의 세상 밖의 일이었다. 당연히 벽돌은 그
진단 말인가? 그는 바로 오전에 내 말을 거들던 바로 그 사람이었
렇게 쌓아야 한다는 내 법은 그들에게는 법 밖에 있었다. 나는 내
다. 그는 반장이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고, 알고 보니 알코올
세상 밖에 있는 그들의 법을 처참하게 바라보며 현장을 떠났다.
중독자였다. 나중에도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지만 정말 아까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벽돌은 반듯하게 쌓이고 있었다. 그래. 그것
일꾼이었다. 그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벽돌을 잘 쌓는 뛰어난 기
만 해도 어디야, 나는 차선을 택하며 현장을 떠났다.
능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전 동안의 일이었다. 점심에 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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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로 술을 마시고 난 다음에는 누구보다 형편없는 일꾼으로 전락했 그러나 나는 과연 현장을 떠났을까?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내내
다. 그가 오전에 쌓은 벽돌은 일류였지만 그가 오후에 쌓은 벽돌
벽돌이 어떻게 쌓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
은 삼류도 못 되었다.
다. 나는 더 이상 일에 열중할 수가 없었다. 오후 세 시쯤 되었을 까,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전에는 얌전하
“저 사람, 우리 현장에 나오지 말게 하세요.” 반장은 금방이라도
게 수평을 이루었던 벽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정확히 내가 그들
울 것처럼 나에게 항변했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그럽니까.”
과 얘기를 나누던 즈음에 쌓였던 벽돌들은 완벽하게 수평을 유지
그도 의문형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반장에게 벽돌 쌓기를 가
하고 있었던 것이 그 위쪽으로는 뱀이 아니라 숫제 물결치고 있
르친 사람이었다. 반장은 그에게 일을 배웠고, 그가 알코올 중독
었던 것이다. 나는 화를 억누르며 반장을 찾았다. 그리고 굳이 반
자라는 걸 알고 어쩔 수 없이 ‘오야지’라는 직책을 자기가 스스로
장을 만나기도 전에 나는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반장을 찾느라
떠맡을 수밖에 없게 된 사람이었다. 나는,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
고 이리저리 현장에 얽힌 가설재를 지나치는 동안 나는 한 인물과
니다’에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그
마주했다. 그와 마주하는 내 코에서는 찌르는 듯한 술 냄새가 확
럽니까’에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 글 | 함성호(본지
하고 풍겼다. 그의 눈은 아, 건축가가 오셨군, 하는 아주 정상적인
편집기획위원, 시인, 건축가)
눈이었고, 너, 내 상태를 이미 눈치 챘구나, 하는 짐작도 가능한 눈
<주택 계획안 100선 14> 김기환의 K-HOUSE(II)
건축가는 경계에 맞닥뜨렸다. PC 패널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주변과의 경계에서부터, 안과 밖의 경계, 그리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심 리적인 경계까지. 그리고 그 경계에는 건축주가 있었다. 경계에 있도록 만든 것도 건축주이고, 경계에서 건져 준 것도 건축주였다. 그가 맞닥뜨린 경계는 디자인의 프로세스이자 방법론이었으며, 태도였다. 설계는 3년 전에 이미 끝났지만, 정작 집을 짓기까지는 꽤나 시간 이 걸렸다. 대부분 자기 집을 한번 지어보는 것은 소박한 꿈이기도 하면서 일생일대의 꿈이기도 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부는 물 론이거니와, 혹시라도 일가친척이나 지인 중에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는 이가 있다면 진행에 자문을 받기도 하며, 설계 견적을 비교한다 거나 설계안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십상이지만,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라, 그 러면서 자연히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만큼 상황도 많이 변했고, 건축가는 건축주를 대신해 공사까지 관여하게 되었다. 현 장과 사무실이 지척이다 보니 며칠 상간으로 현장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8개월여 만에 완공을 앞두고 있다. “건축주는 파주 지역에 오래 동안 사신 분이셨어요. 아파트 생활을 한동안 하시다 주택에서 노후를 준비하고 싶어 하셨는데, 일부러 동 생이 살고 있는 집 쪽으로 오시게 된 거죠. 터는 이미 소유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동생네와 앞뒤로 나란히 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것은 물 론, 함께 할 수 있는 생활이 많길 바라셨어요. 저는 두 남매의 가족끼리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렴한 디자인 에 적당한 만족감으로 사는 것에서, 약간만 더 욕심을 내어 건축이 주는 작은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겉보기엔 그다지 튀 는 곳은 찾을 수 없이 수수하답니다(웃음).” 집은 주변의 여느 농가 주택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취하면서, 대지 뒤편으로 동생이 살고 있는 한옥과 사이 좋은 오누이 마냥 서로 ‘마당’ 을 감싸 안고 있는 꼴이다. 동생이 사는 한옥과 나란히라고는 하지만, 대지 레벨이 4m 정도 차이 나기 때문에 주출입은 한옥과 공유하 면서 자연스레 2층 레벨에서 진입하게 되어 있다. 매스가 날개를 펼치듯 펼쳐져 있어 실제 면적에 비해서 집이 훨씬 커 보이기도 한다. 반면 내부로 들어오면 오히려 오밀조밀한 공간들이 숨어 있다. 문 폭도 보통 집에서는 90~100cm 정도 되는 것에 비해 훨씬 작다. 건축 가는 내부 마감이 바뀌면서 계획했던 것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아기자기한 구석이 더 많아졌다 한다. 집을 설계하면서 건축가가 무엇보 다 중점을 두었던 것은 집 밖에서나 안에서나 뒤편 한옥 쪽으로 시선을 열어 두는 것이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집 안 이 얼마만큼 깊어질지를 생각하며 창의 폭과 길이를 조절했다.
↑elevation concept 1 ↑↑elevation concep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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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HOUSE(II) 전경.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에서 뒤편 동생네 집 쪽으로 눈길을 나눌 수 있도록 모든 창과 개구부의 위치는 건축주의 눈높이에 맞추었으며, 대지 레벨 차이에 시선
K-HOUSE(II)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 대지 면적 : 843㎡ | 규모 : 지상 2층(6.8m) | 구조 : 철근 콘크 리트조 | 건축 면적 : 156.24㎡ | 연면적 : 161.38㎡ | 건폐율 : 18.53% | 용적률 : 19.14% 김기환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이로재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와세다 대학원 후루야 노부야키 석사 졸업, 박사 수료 후, 현재 파주 헤이리 아트 밸리 내에서 그늘건축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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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사실 전시 공간을 설계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시선의 깊이를 조절하는 것은 그때 경험이 많이 바탕 됐어요. 건축가가 자신의 아이 덴티티를 전시 공간 안에서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적정선 이상을 넘게 되면 작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아 무 것도 손을 대지 않으면 작품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공간을 압도해 버려 작품만 존재하는 거겠죠. 그야말로 경계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문제는 그러는 사이에 관람자는 간과되기 쉬워지는 것이죠. 공간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이고 작품은 작가가 있겠지만, 사실 작품과 제 일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은 관객이거든요. 공간과 작품이 싸우다 보면 관객이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죠. 그렇다면 관객을 그 안에 넣 는 방법이 중요해질 겁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체득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거에요. 이 집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려고 했어요.” 전시 공간에서 관람자는 주택에서 거주자와 같다. 그리고 정작 가구나 공간이 화려하게 살아나면 전시 공간에서 관람자가 사라지는 것 처럼 거주자는 그 일부가 돼 버린다. 그래서 가구는 구조체의 일부로 최대한 심플하게 디자인되었다. 건축 공간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탁자, 선반, 수납장들은 일반 가구보다 깊이가 깊고, 탁자는 폭이 얕고 옆으로 길다. 주방 수납장은 평면과 어긋나게 배치되고 ㅅ자형 평 면 구조를 오히려 더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비용 면에서도 상당 부분이 절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설계를 한 건축가는 이 집을 공사하는 데 절감된 비용만큼 건축주가 공간을 채우면서 그 비용을 소진할 것이라 말한다. 그것이 이 집에 흐르는 기본 정서이다. “집에 들어가 살다가 창가에 꽃 하나를 놓고 싶을 때 노란 꽃 화분을 둘 수 있겠죠. 그리고 반년이 지나 그게 지루해진다면 고무나무를 갖다 놓을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시간이 지나 나무 말고 그림을 걸고 싶을 때도 있을 거고요. 그게 무엇일지는 건축주만 아는 것이겠죠. 집이 완성되는 것은 그 즈음일 겁니다. 집은 건축주가 완성하게 되는 것이죠.” 건축물의 외부는 건축주의 의도로 심플하고 간결한 이미 지의 초기 안과 달라진 부분이다. 그 또한 경계를 넘나든 것이리라. “특히 주택은 보통 건축가의 욕망이라고 하는 건축적 실험을 해 볼 좋은 대상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건축주에게 집은 평생 짐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건축주의 욕망은 대개는 매 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죠. 공부를 많이 하는 만큼 욕망이 생긴다고 할까요.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죠. 현실 안에서 건 축주와 건축가는 서로 당기고 밀리는 줄다리기처럼 건축주의 욕망을 채울 것인가, 건축가의 욕망을 채울 것인가 하는, 늘 그 경계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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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게 되는 것이죠. 집은 제게 그런 의미입니다.” ⓦ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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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내부 이미지
↑외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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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focus 1> 박철수 “바보야! 문제는 단지(團地)라니까…”
우리나라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한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 레리 줄레조의 지적은 아파트를 글감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들먹여지는 일종의 규범적 선언이지만 이 의견은 옳 은 지적이 아니다. 물론 프랑스의 지리학자가 언급한 크고 작은 오해를 하나하나 들먹여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 가운 데 아파트가 많다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의 지적이라면 전 국민의 90% 정도가 정부 기구인 싱가포르 주택청(HDB)이 공급한 아파트에 사는 싱가포르를 아시아 최고의 국제 도시 로 상정하거나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라 할 수 있는 마포아파트 단지
완전히 그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경우도 마 찬가지일 터이다. 굳이 그가 지은 책이름을 빗대어 언급하
다시 여름을 맞는다. 당연 길이 북적일 터이다. 심술궂던 봄
자면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공화
날에 움츠리던 마음이 이제는 거칠 것 가릴 것 없는 괜한 믿
국이라는 것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
음에 홀연 사라져 우리를 길로 나서게 한다. 구보 씨가 걷던
나 공간 환경의 문제라는 안경을 쓰고 우리의 경우를 들여
길 그대로를 다시 나서도 좋을 절기다. 걷다가 지치면 한 뼘
다보면 분명한 차이와 함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아파
녹음을 찾아 발걸음을 쉬고 가녀린 바람에 목덜미를 내맡기
트 관련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유용한 지적이 된다.
며 자그마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바야흐로 걷기에 제철
아파트의 문제는 곧 단지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단지(團地)란 곧 필지(筆地)의 집합이라는 말과 다름 아니
파트 단지 내부를 걷자니 주차장 차량 사이를 오가는 모습
다. 즉, 과거 개별적으로 나뉘었던 필지들을 한데 모아 그 흔
이 절기에 맞지 않아 썩 만족스럽지 못한 행로일 듯하고 단
적을 지운 채 하나의 번지수를 가지는 거대 필지로 재탄생
지 밖으로 내딛자니 그리 유쾌한 상상이 펼쳐지지 않는다.
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지(地)들이 모여 집합
할 수 없이 개나리가 지천으로 흐드러졌던 둑방길을 찾거나
을 이룬 것(團)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저 현상
요란한 시설물이 발에 채는 개천으로 나서야 한다. 아니면
에 불과하다. 물론 그 안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 자체도 그
울타리를 휘휘 두른 도시공원으로 차를 몰아 일삼아 걷기에
리 큰 문제라 할 수 없다. 아파트라는 주거 유형에 거주하기
나서야 한다. 낭만주의자라면 구릉 언저리에 몸을 낮추고
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민간이건 공공이건 주택을 건설, 공
있는 산비탈 달동네를 찾아 개 짖는 풍경과 자잘한 일상을
급하는 주체가 물건을 내놓는 시장에서 자신의 취향과 구미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 맞는 것을 골라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면 그만이기 때
그저 별다른 생각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문이다. 단독 주택 용지를 구입하여 자신의 건축적 기호를
한 바퀴 돌거나 깡총대는 아이들의 손을 나누어 잡고 입에
맞출 건축가를 물색하여 설계를 의뢰한 뒤 견적을 거쳐 시
솜사탕이라도 물려 걸을 만한 길이 내 주변에는 그리 흔하
공 업체를 선정하여 집을 지은 뒤 입주하여 사는 문제와 하
지 않다. 아파트 단지는 거의 천국이요, 오아시스에 가깝지
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 단지를 나서면 언제부터 쌓였는지도 모를 먼지 더께가
문제는 여러 개의 필지들이 모여 이룬 단지의 모든 인프라
덕지덕지 앉은 방음벽을 따라 걸어야 한다. 창 밖 녹음 때문
를 입주자들의 사적(私的) 비용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
에 충동질된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절기 놀이는 다시 상심으
다. 마치 깎아지른 절벽 위에 기개를 펼치고 있을 법한 오래
로 되돌아오기 십상이다.
묵은 낙랑장송이 아파트 단지에 하늘을 찌를 듯하는 모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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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자고 마음먹으면 우리는 어딘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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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절기고 마음 또한 활짝 열리는 그런 시간이다.
로 들어서는가 하면, 아파트 입주자들의 어린 자녀들을 위 한 카약장이 만들어지거나 골프의 대중화에 힘입어서인지 9홀짜리 실제 골프장이 아파트의 외부 공간으로 꾸며지는 등의 일이 이제는 특별하달 것도 없는 일상적 모습이 되었 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담한 비용으로 자신들만의 낙토(樂 土)를 꾸미는 것이다. 결국 조각조각이던 필지와 그 사이를 실핏줄처럼 흐르던 골목길이 한 데 모이면서 하나의 번지수
결국 문제의 핵심은 공공이 주도하는 인프라 확대로 귀결된
를 단 대단위의 아파트 단지로 모습을 바꾸고, 단지 안으로
다. 한국의 주택 정책에서 공공이 힘과 돈을 들여 물리적 환
는 인식표를 단 차량이나 아파트 입주자가 아니면 누구도
경을 개선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민간 자본을 동력으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없는 통제된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다.
로 한 주택 공급량 늘리기의 과실을 통계적 수치로 내세워
당연히 주민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만든 낙원에 비용을 들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선전해 왔을 뿐이다. 아파트의 문제를
이지 않는 사람들의 출입을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로 해결해 왔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진 촬영을 하는 것조차 사적 공간이라는 이유를 들어 막
공공이 책임져야 할 주택 부족의 문제를 개인이 모든 비용
고 나선다. 단지 밖 도시 공간이라 불리는 도로를 내달리는
을 부담하는 폐쇄적 아파트 단지의 반복적인 자력건설에 맡
차량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은 정온함을 깨뜨린다는 이유에
기고 커튼 뒤에서 손익 계산서만을 작성했다고 하겠다.
서 서둘러 방음벽을 둘러 안온함을 강화하고 모두 자폐적
공공 공간과 사유 공간의 질적 양극화가 결국 문제 해결을
환경에서 쾌적함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
위한 핵심인 것이다. 공공 공간의 양적 충분함과 질적 풍요
렇다고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로움이 우선될 때 단지는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것이며, 단
자성도 없이 이런 메커니즘의 반복적 재생산이 사회 환경에
지를 도시에 대응하고 수식해야 한다는 구호도 그때 비로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건축가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설계 공모안에는
무턱대고 단지를 열라고 하는 것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단
그럴듯한 모양이던 공공 공간과 아파트 단지로 불리는 사유
지를 외부 공공 공간에 개방하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
공간의 접점 공간이 막상 입주자들이 들어차 생활 공간으로
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의 폐쇄성을 극복하
작동할 때쯤이면 높은 담장이 만들어지거나 볼품없는 방음
고 도시 공간과의 내용적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일상 공간
벽으로 가려진 모습으로 드러나는 현실을 대할 때면 아파트
을 만들자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칙이자 구호이다. 그 방법
주민을 탓하거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굴복하였다고 건축
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다 할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가들을 꾸짖기에 앞서 관행과 습속으로 고착된 단지 만들기
무작정 단지성을 해체한다고 해서 나은 공간 환경이 되라는
현상에 대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공화
보장도 없다. 그럴 경우 아파트 단지의 외연부에 들어선 개
국이라는 오명을 씻어야 할 것이다. ⓦ 글 | 박철수(본지 자
개인의 사적 공간이 입을 피해가 공익과 공공성을 위한 희
문위원,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생물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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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성찰의 시간도 갖지 않 은 채 정부는 단독 주택 밀집 지역의 환경이 상대적으로 아 파트 등의 공동 주택에 비해 열악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한 다는 취지에서 도시형 생활 주택이라는 밑그림을 그린 바 있다. 그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이번에는 단독 주택 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정 숫자 이상의 단독 주택을 묶어 공 동의 지하 주차장 등을 만들고 거기에 필요한 인프라를 입 주자들이 부담하는 것이 골자인 것이다. 타운하우스라 불리 는 것은 또 어떤가. 이 역시 단독 주택이나 연립 주택을 단지 로 만드는 단지 만들기 규범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 고 있다. 그런데 주택 설계의 최전선에서는 오늘도 단지의 해체와 생활가로 만들기를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다.
일본 동경의 오오지마(大島) 아파트 단지와 단독 주택지의 접점 공간
<WIDE focus 2> 최범
‘디자인 서울’이라는 쟁점
“디자인 덕분에 살맛 나요.”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 행사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디자인이 정치적 쟁점
를 알리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문구
이 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
이다. 빨간 바탕색에다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의 젊은 남
울’ 정책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
녀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문구가 걸린다. “디자인 덕
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장을 내민 원
분에 살맛 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포스터
희룡, 나경원 의원이 ‘디자인 서울’ 정책을 집중적으로 비판
상의 표현으로만 보면 그것은 세 남녀가 하는 말로 보인다.
하고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간판 정책이 ‘디자인 서울’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차적인 독해의 결과일 뿐. 문
이었던 만큼 정치적 경쟁자들이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당
제는 포스터 상의 남녀들을 통해, 그 뒤에서 말하는 사람이
연하다. 다만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과연 디자인이란 무
진짜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포스터를 제작한 서
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해서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울시, 더 정확하게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결국 포스터를
인 문제로까지 떠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통해 “디자인 덕분에 살맛 나요”라고 말하는 이는 다름 아닌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오세훈 서울시장은 왜 디자인을 가장
오세훈 서울시장 자신인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심각한 전
중요한 시정 목표로 내세우게 되었을까. 물론 그에 대해서
도 현상을 발견한다. 그것은 발화(發話) 주체의 전도이다. “
는 창조 도시 등 이른바 탈산업 사회 도시 이론을 동원하여
디자인 덕분에 살맛 나요”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은 서울 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딱히 디자인이
민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의 주인은 서울 시민이며 서
었는지는 썩 명쾌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 특별한 철학적 배
울과 관련된 경험이라면 당연히 그들이 발화 주체가 되어야
경이 있었다기보다는 몇 가지의 탈산업 사회적 메뉴 중에서
한다. 그러나 예의 포스터에서 발화 주체는 뒤바뀌어 있다.
디자인이라는 아이템을 적당히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민의 말을 들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시민보다 먼저,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의 이
시민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민의
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
권리를 가로채고 독점하는 권력의 오만한 태도가 아닌가.
“디자인은 이제 기본입니다. 그것도 아주 절박한 기본이죠.
이 포스터가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처럼 ‘디자인 서울’이란
너무나 절박한 현실에 처해 있음에도 아무도 정책으로 채택
어떤 전도된 현실에 붙여진 이름에 다름 아니다.
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갈증이 폭발했어 요.”(동아일보 2008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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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디자인을 말하는가?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디자인 서울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자인이 매우 절박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나는 그 가 절박해 하는 이유가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 절박함의 진 정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이다. 왜냐하면 디자인 의 절박함에 대한 진정성이야말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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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인 서울’ 정책에 대한 (정당성이 아니라) 인식을 엿볼 수 있 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도시의 역사와 생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여기에 해석의 실마리를 하나 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최
도 없고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도 찾아볼 수 없
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적 비판자들에 대해 날린 멘트
다. 다만 역사를 지우고 자꾸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내며 한 가
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의 비판자들이 디자인을 “초등
지 일을 하면 그 열 배를 홍보할 뿐이다. 이런 것이 환경 미
학교 미술 시간의 그림 그리기 정도로 이해한다”고 정면 반
화와 계몽 포스터 수준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 자신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에 빠져 있는 것은 디
과연 디자인을 초등학교 미술 시간의 환경 미화나 계몽 포
자인에 대한 철학이며, 시민 중심의 사고이다. 이는 근본적
스터 그리기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왜냐
으로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아마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
하면 지난 몇 년 간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보면 그것은 분
자인이 그 근본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사실을 전
명 환경 미화나 계몽 포스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
혀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디자인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이다. 분명 현재 서울시장의 경쟁자들이 지적하듯이 디자인
민주주의를 넘어서 문화적 민주주의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다른 민생적인 과제보다 우선적인 것일 수 있느냐 하는
생활 민주주의의 차원인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철학이 뒷
것도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받침되지 않을 때 디자인 정책이란 한갓 위로부터의 보여
것은 디자인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주기식인 이벤트 정치로 귀결될 뿐이다.
디자인 정치를 넘어서
디자인 바로보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디자인의 의미는 산업 발전 또는 소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디자인 정치를 넘어선 디자
비 생활이라는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말하자면 디자인의
인의 생활화와 문화화이다. 나는 디자인이 도시 정책의 대
일상적인 차원이나 문화적인 의미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
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거나 심지어 중요한 대상이 아니라고
다는 얘기이다. 그런 가운데 이제 디자인은 정치적 관심의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의 정치적 논쟁이 단순히 선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짚어보자면 멀리(?) 1990
거 계절에 지나가는 일회적인 행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
년대 중반 지방자치제 실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
리 사회에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한층 현실화되는 계기가
자치제의 실시로 지역들은 갑자기 지역 정체성 찾기에 분주
되기를 바란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해졌고, 그런 가운데 손쉬운 수단으로 디자인이 활용되었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벤트적인 ‘디자인 서울’ 정책은 지속
다. 지역 CI나 캐릭터 따위가 그런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
되지 말아야 한다. 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디자인이 도시
제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르러서는 아예 도시 정책의 최고
정책적 관심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만약
과제로까지 상승하게 된 것이다. ‘디자인 서울’ 정책에서 보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이 디자인에 대한 오
듯이, 어쩌면 한국 사회는 ‘디자인 폭발(Design Bang)’이라
남용의 사례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은 그
고 불러야 할 상태에 도달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와 이벤트의 차원에서 그렇
과 철학이다. 그것은 시민의 일상적 삶과 환경에 대한 관심
다는 것이지, 실제 도시 환경과 일상적 차원에서 그렇다는
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디자인 바로보기는 그
얘기는 아니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행
럴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 글 | 최범(디자인 평론가,
사와 프로젝트들은 한결같이 ‘위로부터’의 정치 선전이거나
간판문화연구소 소장)
보여 주기식의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디자인 올림픽이 그렇고 세계디자인수도 행사가 그렇다. 동대문디자인플라 자나 디자인 서울 거리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와이드 15호 | 와이드 칼럼
국가 중심거리 개조에 부쳐 | 곽재환 국가 중심거리를 조성한다고 광화문에서 서울역, 그리고 한강으
으로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조선총독부를 철거하여 시계가 열
로 이어지는 거리 일대가 분주하다. 이미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
린 시원한 조망을 그러한 무지막지한 구조물로 가로막다니! 국
여 개장했고, 기무사 터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이 진
격을 생각했다면 적어도 장소성이 고려된 행사인지, 여백의 미
행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를 재활용하는
와 조화를 이루는 행사인지 검토했어야 했다. 국가 중심거리 조성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되면 국가 중심거리의 면모는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가히 백 년
건립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진행 과정을 보면 시작부
전 서양식 건축물들을 건설하며 한성의 육조거리와 국가의 중심
터 심히 유감스럽다. 그간 설계 발주의 턴키 방식 배제를 표명
거리를 확연히 개조한 일에 버금갈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해 왔던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 변화와 성급한 진행은 전형적인
실적 위주 및 준공 시한 맞추기에서 비롯됐다는 인상만 줄 뿐,
어느 나라든 유서 깊은 수도에는 중심거리나 광장이 자리잡고
더 이상의 이해가 어렵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턴키의 폐해
있다. 파리의 샹젤리제, 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 에비뉴, 뉴욕의
를 지적했던 건축계의 무비판적 수용은 어떠한가? 참으로 자조
브로드웨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들이
감을 금치 못할 일이며 모든 것이 공염불이다. 대한민국의 역사
그런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로가 이에 해당한다. 고종황
를 기록, 전승하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하기 위한 건립 취지에
제가 1897년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국가의 중심축
부끄러운 처사는 아닌지. 이제 머지않아 600백 년이 넘도록 이
을 경복궁 앞 육조거리에서 덕수궁 앞으로 옮겨 지금의 서울시
세종로에 기능했던 국가 행정 관서가 모두 사라지고 일대가 문
청 광장은 대한제국이 멸망하기까지 13년 간 국가의 중심 광장
화 시설로 탈바꿈될 날이 올 것이다. 문화관광부 청사에 이어 미
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곳은 시민들의 대규모 행사가 벌어지는
국 대사관도 자리를 비우고 정부종합청사도 이전하면, 그 자리
중심 광장의 역할을 계속했다. 반면, 국가 중심거리는 광화문 앞
에 광장이나 공원이 조성되어 광화문 광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세종로로 이동하였으나 그 중심 공간은 사람들을 배제한 채 정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차도로 분리된 고립된 곳
권의 상징적 장소 혹은 차량으로 점유된 교통 공간으로 존재할
이 아니라 한층 기능이 강화된 국가 상징 광장으로 손색없는 광
따름이었다. 그래서 국가 중심거리를 조성하고 상징축을 바로잡
화문 광장이 되리라.
는 것은 일제가 훼손한 역사와 국가 중심축을 바로잡을 뿐 아니 라 역사 속 백성의 중심거리이자 광장이었던 육조거리를 국민의
국가 중심거리 조성은 의미 있는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
품으로 되돌려 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 한편으론 왠지 허망하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건축 문화 선
이러한 세종로에 국가 중심거리 조성의 핵심 사업인 광화문 광
진화를 위한 건축기본법이 제정된 후, 정부는 국가 품격을 논하
장이 조성되어 지난해 개장되었다. 궁금하였던 것인지 그동안
며 국가 중심거리를 정비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대한민국역사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광장 조성의 당초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며,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디자인 올림
기본 개념은 육조거리의 분위기를 되살린다는 취지였는데, 시
픽을 개최한다고 야단이지만 세계 디자인 수도라는 서울에, 600
민들은 과거의 전통을 현재에 살리는 의미 있는 광장을 기대
년 정도 역사 문화 도시 서울에, 건축 박물관은 고사하고 아직 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미흡했다. 그나마 해치마당을 나와 경
대 건축의 아카이브나 정도전의 건축 사상을 소개하는 건축 문
복궁과 북악산을 향해 바라보면 탁 트인 풍경은 일품이어서 기
화센터 하나 변변한 곳이 없으니 정부는 건축 문화 정책의 발표
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광화문이 복원되면 한결 눈맛이 좋아지
만 요란했지 정작 치적을 위한 건축물 건립에만 관심 있는 것은
리라! 흡족하진 못하지만 광장 기능을 보완하고 시민들의 자발
아닌지, 차세대를 이끌 건축 문화의 인프라 조성과 일상 속의 저
적 참여를 통해 광장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앞으로 광화문 광장
변 확대를 위한 진흥 정책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은 아닌지, 의구
은 대한민국 대표 문화 브랜드를 창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
심이 들기 때문이다.
으로 기대된다.
예전부터 건축인은 권력에 예속된 하수인이고 자본에 얽매인 허
그런데,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해
수아비라더니, 오호통재라! 오늘의 대한민국 건축계와 건축 문
외 수출 TV 드라마나 전 세계에 중계되는 국제 대회를 통해 서
화 정책의 현 실정이 아쉽다 못해 서글퍼지는 순간이다.ⓦ
울을 홍보하겠다는 당국의 의지가 이해는 되지만, 광화문을 압 도하는 거대 스케일의 스노우 보드 점프대에 대해서는 이구동성
글 | 곽재환(본지 고문, 건축그룹칸(間)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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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준공 이후 뒤를 이어 서울시청, 숭례문, 서울역사가 개보수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설계 공모가 행해졌다. 올 가을 광화문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