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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심원건축학술상(2011~2012년도)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심원문화사업회는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후원회로서 지난 2008년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 미학과 비평 분야의 전도유망한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심원건축학술상>을 제정하여 시 행해 오고 있습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 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 받아 그중 매년 1편의 당 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지난 1, 2 회에 걸쳐 당선작을 선정하였으며 현재 제1회 당선작 <벽전>(박성형 지음), 제2회 당선작 <소통의 도시,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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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칸과 미국 현대 도시 건축>(서정일 지음)이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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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 당선작 : 1편 | 부상 : 상패 및 상금 500만 원과 단행본 출간 및 인세 지급 Ⓢ 응모 자격 : 내외국인 제한 없음 Ⓢ 응 모 분야 : 건축 역사, 건축이론, 건축미학, 건축 비평 등 건축 인문학 분야에 한함(단, 외국 국적 보유자인 경 우 ‘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한함) Ⓢ 사용 언어 : 한국어 Ⓢ 응모작 제출 서류 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고 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크기 프린트 물로 흑백/ 칼라 모두 가능)을 제본된 상태로 4부 제출. 단, 제출본은 겉표지를 새롭게 구성, 제본할 것.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 1-응모작의 요약 내용이 포함된 출판 기획서(양식 및 분량 자유) 1부 2-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는 반환하지 않음.] Ⓢ제 출처 :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간향미디어랩 (121-816) (겉봉에 ‘제4회 심원 건축학술상 응모작’이라고 명기 바람) Ⓢ 응모작 접수 기간 : 2011년 11월 1일~11월 15일(접수 마감 최종일 우편소인까지 유효함) Ⓢ 추천작 발표 : 2012년 1월 15일(『와이드 AR』 2012년 1-2월호 지면) Ⓢ 추천인단 운용 및 심사 절차 : 위원회는 일반 공모를 통해 응모된 원고와 추천인단이 추천한 응모작(추천인단 의 추천을 받은 응모작은 자동적으로 1차 예심통과 자격을 부여함)에 대하여 소정의 내부 심사(1, 2차 예심 및 본심)절차를 진행하며, 본심 결과 선정된 추천작 가운데 매년 1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작 심사에서 탈락한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3년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됨. Ⓢ 추천인단 : 구영민(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김원식(단우도시건축연구소 소장), 김진수(문학평론가, 사문난적 대표), 김희영(국민대 예대 교수), 박성형(제1회 수상자, 정림건축 소장), 서정일( 제2회 수상자, 서울대 HK연구교수), 신용덕(Yfo Gallery 관장), 이영수(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최 종 당선작 결정을 위한 공개 포럼 : 위원회는 추천된 작가를 공개된 장소에 초대하여 응모자가 연구물의 주 요 내용을 발표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결과를 최종 당선작 선정에 반영할 예정임. Ⓢ 당선작 발표 : 2012년 5월 15일(『와이드 AR』 2012년 5-6월호 지면) Ⓢ 시상식 : 2012년 6월 중 개최 예정 Ⓢ 출판 일정 :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 운영위원회 :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전봉희(서울대 교수), 전진삼(『와이 드 AR』 발행인) 주최 : 심원문화사업회 주관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기획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간향미디어랩 후원 : (주)엠에스 오토텍 문의 : 02-223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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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을 위한 건축공간을 창조합니다.” Design group vine은 1995년 설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꿈과 쉼이있는 노인,장애인주거시설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종교건축,노인복지시설,장애인 및 의료시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기위해 UD(Universal Design)연구소를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회복을 위해 생명력있는 공간 창조를 꿈꾸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Care 전문회사입니다.
인천 아트플랫폼
효성중앙교회
2010년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특별상) 2010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국무총리상)
DESIGN GROUP 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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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 송도동 15-12번지 코오롱 송도 더 프라우 102동 213호 www.vinenet.co.kr Tel: 032) 432-8111~5 fax: 032)432-8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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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와이드 AR 건축비평상 공모 간향미디어랩은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소수(minority), 진정성(authenticity)에 시선을 둔 격월간 건축리포 트 <와이드>(이하 ‘와이드AR’)를 2008년 1-2월호로 창간하였습니다. 본지는 2010년 꾸밈건축평론상과 공간건축평 론신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 평론 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 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한국 건축 평단의 재 구축과 새 활력을 모색코자 합니다. 우리 건축계를 이끌어 갈 역량 있는 새 얼굴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주최 : 간향미디어랩 | 주관 : 와이드 AR | 후원 : 건축평론동우회
제2회 와이드 AR 건축비평상 공모 요강 [시상 내역] - 당선 작가 1인 선정 (심사 결과에 따라 1인 이상 동시 선정도 가능하며, 당선작이 없을 수도 있음) [당선 작가 예우] - 상장과 상금(100만원) 수여 - <와이드 AR> 필자로 우대하여, 집필 기회 제공 - ‘건축평론동우회’의 회원 자격 부여 [응모 편수] - 다음의 ‘주평론’과 ‘단평론’을 동시 제출하여야 함. 1) 주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매 이상~70매 사이 분량으로, A4 용지 출력 시 참고 도판 등 이미지 포함하여 7매 ~10매 사이 분량) 2) 단평론 1편(상기 기준 적용한 15매 내외 분량으로, A4용지 출력 시 2매 분량, 이미지 불필요) [응모 자격] - 내외국인, 학력, 성별, 연령 등 제한 없음 [사용 언어] 1) 한글 사용 원칙 2) 내용 중 개념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괄호( ) 안에 한자 혹은 원어를 표기하기 바람 [응모 마감일] - 2011년 11월 30일(수)(마감일 소인 유효) [당선작 발표] - 2012년 1월 초 개별 통보 및 <와이드 AR> 2012년 1-2월호 지면 - 네이버카페 <와이드 AR> 게시판에 발표 [시상식] - 2012년 2월 초순(예정) [접수처] - 121-816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간향미디어랩 [기타 문의] - 대표전화 : 02-2235-1960, 공식 이메일 : widear@naver.com [응모 요령] 1. 모 든 응모작은 응모자 개인의 순수 창작물이어야 함. 기존 인쇄 매체에 미발표된 원고여야 함.(단, 개인 블로그 게시글로서 본 건축비평상의 취지에 맞게 조정하여 응모된 원고는 가능) 수상작 발표 이후 동 내용으로 문제 발 생 시 수상 취소 사유가 됨 2. 주 평론 및 단평론의 내용은 작품, 인물 등 소재 중심뿐 아니라 건축의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시의성 있는 문화 현 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모두 가능함 3. 단평론은 주평론과 다른 대상을 다루어야 함 4. 응모 시 겉봉에 “제2회 와이드 AR 건축비평상 응모작”임을 표기할 것 5. 원고 첫 장에는 글 제목만 적고, 본문과 별도의 마지막 장에 성명,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적을 것 6. 응모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음 7. 원고는 A4 용지에 출력하여 주평론 및 단평론 각각 총 5부를 제출할 것.(본문의 폰트 크기는 10폰트 사용 권장) 8. 우편 접수만 받음 9. 응모작의 접수 여부는 네이버카페 <와이드 AR>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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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SINCE 2006 |다섯 번째 주제|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3’ : New POwer ARchitect|<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3’>는 우리나라의 차세대 건축을 리드할 젊은 건축가들을 초대하여 그 분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 축의 주제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올해로 5차년도를 맞이하는 땅집사향은 당 분간 국내외에서 맹활약하는 ‘젊은 건축가’에 시선을 맞추고자 합니다. <와이드 AR> 독자님들의 뜨거 운 성원과 관심을 기대합니다.|주관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주최 :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도서 협찬 : 시공문화사 spacetime, 수류산방 |와인 협찬 : 삼협종 합건설(주) |문의 :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 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와이드AR,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
57 ⓦ 7월의 초청 건축가|조한 (한 디자인 대표, 홍익대 교수) |주제 : 관념과 감각의 사이 그리고 생태성|2011년 7월 13일(수) 저녁 7시 58 ⓦ 8월의 초청 건축가| 최춘웅 (고려대 교수)|주제 : 인티머시(INTIMACY)|2011년 8월 18일(수) 저녁 7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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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YANG WORKSHOP of Architectural Journalism 2011 ★ 제2기 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개강 ★ 7월 현재, 기본 코스(4월~6월) 완료 대학생들에게 건축 잡지사를 포함한 주요 언론사 입사를 위한 준비 과정을 제공해 주고, 각 언론사에는 기자로서의 소양과 저널리즘에 입각한 윤리 의식 및 실무 능력을 겸비한 좋은 인재를 공급하고자 본지가 꾸리고 있는 간향건축 저널리즘워크숍의 제2기 집중 코스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 8월 집중 코스 프로그램 ★ 예비 과정 8월 11일(목) 건축 주제 공개세미나 현장 취재 ★ 본 과정 8월 17일(수) 건축 사진과 디지털 미디어 강의 및 제58차 땅집사향 참가 8월 18일(목) 건축 잡지사 탐방 및 중앙 일간지 데스크와의 대화 8월 19일(금) 출판 제작 공정별 현장 방문 및 1기와의 대화 8월 20일(토) 편집 디자인 디렉터와의 대화 및 건축 현안 세미나, 집중 과정 리뷰 * 네이버카페 <와이드 AR>에서 2기생들의 학습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문의 : 070-7715-1960 간향미디어랩 부설 간향건축저널리즘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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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박용구 朴容九 1914년~ |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 002 전혁림 全爀林 1915~2010년 | 다도해의 물빛 화가 003 장민호 張民虎 1924년~ |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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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ed & designed by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 02 735 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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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 (약칭,
와이드 AR
)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통권 22호 2011년 7-8월호 ⓦ 2011년 7월 1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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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를 통한 평양의 도시 건축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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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서 서울을 보다 | 강권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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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임동우 |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건축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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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김정동 교수의 코스트 신부와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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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캠프 하야리아의 미래는’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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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회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결과 심사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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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 | 부산시 부산진구 하야리아동 | 고건수, 김석현, 안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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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수상 | Hialeah STATION | 정상환, 곽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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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상 | 오래된 풍경을 담은 기억의 정원 | 강준성,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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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4 어린이대공원 교양관(구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꿈마루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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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溫故知新+溫新知古(온고지신 +온신지고) : 조성룡+최춘웅의 꿈마루 | 김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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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나상진 | 이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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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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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ASS 19 | 이종건> 정기용 건축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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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횡무진 22 | 이용재> 보성 이용욱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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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건축 탐사 22 | 손장원> 한국 화교의 근대기 종교 건축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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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더하기 건축 02 | 나은중 + 유소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Visible and Invi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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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書欌 20 | 안철흥>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박용구, 전혁림, 장민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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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지래 짐작 02 | 조택연> 미래의 공간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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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focus 15 | 이희환>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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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01 | 최효진> 전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적 상상의 끝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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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02 | 김정은> 성북동의 마술과 예술 그리고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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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주대관+(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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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주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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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 인제 합강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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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 인제 서화 주택
New POwer ARchitect 115
ⓦ 뉴 파워 아키텍트 파일 05 | 나은중+유소래 |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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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파워 아키텍트 파일 06 | 고기웅 | 건축사사무소 53427+고기웅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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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레터 | 정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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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구독 신청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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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칼럼 | 노블리스 오블리주 | 임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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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삼의 FOOTPRINT 01 ⓦ 표2 | Wondoshi Exhibition ⓦ 표3 | MS Autotech ⓦ 표4 | UOS ⓦ 1 | Wondoshi Academy Seminar ⓦ 2-3 | SIMWON ⓦ 4 | ONE O ONE ⓦ 5 | Samhyub ⓦ 6 | Seegan ⓦ 7 | Dongyang PC ⓦ 8 | SOOMOK ⓦ 9 | Woojung ⓦ 10 | VINE ⓦ 11 | VITA Group ⓦ 12 | UnSangDong ⓦ 13 | 2105 Group ⓦ 14 | Spacetime ⓦ 15 | UrbanEx ⓦ 16 | 제2회 와이드 AR 비평상 ⓦ 17 |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55·56 ⓦ 18 | 제2기 간향건축저널리즘 워크숍 ⓦ 19 | AMI Winter Workshop ⓦ 20 | Suryusanbang ⓦ 21 | 목차 ⓦ 22 | 구독신청서 ⓦ 23 | 판권 및 와이드레터 ⓦ 24 | Suryusanbang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엣지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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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약칭, <와이드 AR>은 단순 히 종이로 만드는 건축 잡지가 아닙니다. 건축하는 선후배들과 건축을 좋아하는 익명의 팬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함 께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는 저널입니다. ⓦ 월례 세미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TURE BRIDGE>, ⓦ 예비 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 예비 비평가의 출현 을 응원하는 <와이드 AR 건축비평상> ⓦ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워크숍 <ARCHI-BUS>, ⓦ 건축 신인 발 굴 프로젝트 <W-A-R>,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기와 같은 <와 이드 AR>이 지향하는 건축저널리즘은 구독자님 개인과 기업 및 단체의 광고 후원자님들에 의해 완성됩니다.
정기 구독(국내 전용) 신청 방법 안내 ⓦ <구독자명(기증하 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배송지 주소>, <구독 희망 시작 월호 및 구독 기간>, <핸드폰 번호>, <이메일 주소>, <입금 예정일>을 적으시어 ⓦ <와이드 AR> 공식 이메일 : widear@naver.com ⓦ 팩스 : 02-2235-1968 로 보내 주시면 됩니 다. 책은 입금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정기 구독을 하시면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당사가 독자 대상으로 벌이는 상기 각종 행사에 우선 초대됩니다. ⓦ 정기 구독 관련 문의 : 070-7715-1960 ⓦ 연간 구독료 ☞ 1년 구독료 55,000원 ☞ 2년 구 독료 105,000원 ☞ 3년 구독료 150,000원 ☞ 4년 구독료 190,000원 ☞ 5년 구독료 225,000원 ⓦ 무통장 입금 방법 ☞ 입 금계좌 : 국민은행, 491001-01-156370 [예금주 : 전진삼(간향미디어랩)] ☞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상 기 전화, 팩스, 이메일로 확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드 결제 방법 ☞ 네이버카페 : <와이드 AR> 좌측 메뉴판 에서 <정기구독 신용카드 결제>란 이용하시면 편리합니다. ⓦ 광고 문의 : 02-2235-1960 ⓦ <와이드 AR>의 광고는 본 잡지를 함께 만드는 건축(가)네트워크를 지원합니다.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질적 수익 효과의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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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약칭,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단 ⓦ 발행인 겸 대표 | 전진삼 ⓦ 편집장 겸 대표 | 정귀원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박상일 ⓦ 발행위원 | 김기중, 박유진, 손 도문, 신창훈, 오섬훈, 황순우 ⓦ 대외협력위원 | 김종수, 박민철, 박순천, 박종기, 윤창기, 이영욱, 이충기, 장윤규, 조용 귀 ⓦ 상임 고문 | 임근배 ⓦ 고문 | 곽재환, 김정동, 이일훈,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 자문위원 | 구영민, 박승홍, 박철 수, 이종건 ⓦ 편집위원 | 김기수, 김영철, 김종헌, 김정후, 김태일, 박준호, 박혜선, 안명준, 유석연, 임지택, 전유창, 정수 진, 조정구, 조택연, 함성호 ⓦ 고정칼럼위원 | 나은중, 손장원, 안철흥 ⓦ 영문번역위원 | 조경연 ⓦ 객원기자 | 강권 정예 ⓦ 객원기획 PD | 최효진 ⓦ 전속사진작가 | 남궁선, 진효숙 ⓦ 인쇄 제작 코디네이터 | 김기현 ⓦ 로고 칼리그래퍼 | 김기충 ⓦ 디자인 |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 김윤하, 전화 02-735-1085, 팩스 02-7351083) ⓦ 서점유통관리대행 | (주)호평BSA(대표 심상호, 담당 차장 정민우, 전화 02-725-9470~2, 팩스 02-725-9473) ⓦ 제작협력사(인쇄 및 출력 | 예림인쇄, 종이 | 대림지업사, 제본 | 문종문화사)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 통
호 2011년 7-8월호 ⓦ 2011년 7월 15일 발행 ⓦ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창간 ⓦ 2011 22 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 낱권 가격 10,000원, 1년 구독료 55,000원 ⓦ ISSN 1976-7412 ⓦ 간향미디 권
어랩 GML ⓦ 발행처 | (121-816)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대표 전화 02-2235-1960, 팩 스 02-2235-1968 ⓦ 독자지원서비스 | 070-7715-1960 ⓦ 공식 이메일 | widear@naver.com ⓦ 공식 URL | http://cafe. naver.com/aqlab ⓦ 네이버 카페명 | 와이드AR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포를 금합니다.
이번 호 <와이드AR>은 ⓦ
명동대성당 재개발의 기록 ⓦ 명동대성
당이 소란스럽다. 작년 초 지상 13층의 종합계획안을 서울대교구가 내 놓을 때부터 개발의 부당 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12월에는 안이 일부 수정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자 도 코모모코리아 등이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대안을 만들어 교구에 전달도 하였다. 그러다가 올 6월초 지하 4층, 지상 10층으로 수정된 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였다. 즉각적으로 도코모모코 리아는 특별 토론회를 열었다. 반대측은 물론 개발 찬성 쪽의 의견을 들어보고 명동성당의 미래 방향을 공개적으로 논의해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시간은 또 흘러 7월 중순인 현재 개발안 이 그대로 결정 고시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 이실직고하자면, 이번 호 명동대성당 재개발 관 련 이슈는 기자의 취재기가 빠졌다. 처음에는 건축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기획 방향이 있었다. 보다 많은 건축인들을 만나겠다는 다부진 포부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 은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애초의 기획은 이야기가 쌓일수록 방향을 잃어갔고, 명동 성당을 둘러싼 건축 이야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 물론 농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 금의 안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 대목만을 모아 기록으로 남기는 것 또한 의의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밖의 이야기들, 주로 오프더레코드 형식으로 들려 준 그들의 증언들, 그리고 그 너머의 속내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 학연, 지연에 따라 입 다물 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시각, 이젠 버릴 때가 됐다. 편 가르고 네 편 내 편 따지는 옹졸함도 벗어 던지자. 공공을 위한 건축/윤리를 필요로 하는 과제에 단지 일(프로젝트)의 잣대만 들이대 는 파렴치와도 깨끗하게 결별을! ⓦ 착공과 함께 진행 상황이 계속 모니터링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것의 기록 또한 멈춤이 없어야 한다.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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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2 | 엣지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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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를 통한 평양의 도시 건축 읽기
Issue 1
평양에서 서울을 보다
작년 겨울 어느 갤러리에서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사진 몇 장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 아 있다. ‘한국’을 소재로 한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Korea 2007-2010) 중 ‘평양 북서동’은 흡사 잠실 지역이나 새 도시의 주거 단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가로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고층 건물들은 사진 속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고자 했을까. 핵 무기와 기아의 나라 북한, 그곳의 수도 평양의 모습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 까. 19세기 파리를 근대 도시로 만들어 낸 오스만의 도시 계획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였지만, 일부 귀족과 지배 계층 의 주거에 제한을 둠으로써 공간적 차별을 낳았다. 당시 엥겔스가 지적한 도시 재개발의 문제점이 15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도 같이 발견된다면, 그와 같은 문제 인식과 반성에서 출발한 사회주의 도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전 지구적 이슈 중 하나인 탄소 발자국이나 마을 단위의 공동체, 도시 농업과 같은 개념들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 권의 책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임동우 저, 효형 출판)의 시의적절한 출간을 반기게 된다. 사진 속의 북서동 주거들도 1970년대 이후 평양의 인구가 늘면서부터 건설 된 살림집들로, 도로변을 따라 고층 주거들이 배치되어 주요 도로의 가로 경관을 바꿔 놓았고, 또 노후화되어 가고 있 다. 책에서는 이러한 평양의 변화를 인티그럴 어바니즘의 입장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주의 도시의 뼈 대 위에 자본주의의 옷이 입혀질 때 가장 큰 변화가 예측되는 곳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 도시 계획의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공간이다. 그 공간의 물리적 변화는 가능성과 동시에 한국의 도시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다시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이다. 결국 우리가 평양의 도시 건축에서 보아야 할 것은 민족적 동질성보다는, 삶과 도시 건축에 대 한 보편적인 입장이 아닐까 한다.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관련 자료 제공 | 프라우드 PR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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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도시 형성사
평양 도성의 구조는 고구려 때부터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까지
평양은 역사 도시다. 서울이 산의 도시라면, 평양은 이름 그대로
내려온다. 이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 일제 시대인데, 바둑판
평평(平)하고 너른 대지(壤)다. 서울이 백악, 인왕, 목멱(남산), 낙
모양의 도시 구조와 어긋나게 철도가 지나고 평양역이 들어선다.
산, 네 개 산의 능선을 따라 한양도성을 쌓았다면, 평양은 모란봉
그리고 역 앞으로 도로가 나고, 군부대나 시설을 배치하면서, 원래
(95m), 대성산(270m) 정도의 나즈막한 산과 강을 경계로 해서 평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오던 도시 체계가 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양성을 쌓았다. 그리고 한강 폭의 절반 정도인 대동강과 지류인 보
한국전쟁의 폭격으로 평양은 폐허가 된다. 기록에 따르면 미군이
통강이 (청계천이나 중랑천보다) 도시의 훨씬 많은 부분을 지나가
평양에 투하한 폭탄은 태평양 전쟁 당시 5년간 쏟아 부은 폭탄 전
는, 강이 발달해 있는 도시가 평양이다. 평양은 고구려 장수왕(427
체의 양과 맞먹었고, 폭격으로 평양 시가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년) 때 평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그 때 자리를 잡은 것이 대성산성
폭격을 피한 건축물은 미군이 지표로 삼고자 남겨 놓은 옛 평양성
과 안압궁이며, 방어용 토성도 쌓고 안압궁 아래로 백성들이 사는
의 남문 대동문이 유일한 것이었다.
도시를 바둑판처럼 만든다. 위로는 왕궁, 아래는 백성들이 사는, 이원적인 도시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평온왕(586년) 때 지
도시 다핵화를 위한 광장과 녹지
금의 평양인 평양성을 만드는데, 강과 모란봉 산 사이에 호리병 모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역사 도시의 면면은 한 건축가의 마스터플
양으로 쌓은 성은 당나라 장안성에 빗대어 불리기도 했다. 평양성
랜에 의해 새롭게 구축된다. 평양은 전쟁 이전인 1948년 북한 정
은 북성 내성 중성 외성, 내성에 왕궁이 있고, 중성에 관공서가 있
권이 들어서고 나서 이미 도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보통강
고, 외성은 백성들의 거주지, 북성은 방어 기지로 네 겹의 구조이
개수 공사를 마치고 그를 기념하는 개수 공사 기념탑을 세우기도
고, 외성 쪽은 바둑판 모양으로 직각 방향으로 도시를 만들었다.
한다. 그리고 평양은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 건설을 위한 도화지 같
평양의 위성 사진.
평양의 제일 핵심 축 김일성광장 주체탑.
평양의 제일 핵심 축 인민대학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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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곳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도시 계획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역이 여럿 나타나는데, 시가지와 농업 지역이 특별한 공간적 구
선형 도시로, 중심 없이 기다란 형태를 띤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분이 없다. 여기서 녹지 인프라는 도시와 농촌의 공간적 구분이 아
볼 수 있는 동심원 형태나, 철도나 지하철이 중심에서 외곽으로 뻗
니라, 그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역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나가는 핑거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평양의 경우도 이 같은 중심
또한 대동강과 보통강의 양안, 그리고 주요 도로 주변이 대표적으
과 주변의 구분을 짓지 않도록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다. 평양을 몇
로 1980년대부터 조성되었으며, 시민 1인당 녹지 면적은 약 40㎡
개의 작은 단위로 나누고(소단위 구역 계획), 지역 마다 상징 광장
에 이른다. (서울은 16㎡, OECD 국가 평균 20㎡) 평양의 별칭이
이 하나씩 조성되어 그 지역의 핵과 노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공원 속의 도시’라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녹지와 광장을 이용
도로를 비롯한 도시 기반 시설이 지역과 지역을 연결한다. 그 사이
해 평양을 다핵화하는 방법은 건축가 김정희에 의한 1953년 평양
사이 완충 지역 역할을 하는 것이 녹지 인프라(인공적으로 조성된
마스터플랜에 따른 것이다. 이 마스터플랜의 중요한 의미는 도시
공원, 강, 산, 그리고 농업 용지 등을 포함)이다. 평양에서 유원지
와 농촌의 격차 해소, 이로써 궁극적으로 계층의 차이를 소멸하는
와 공원 시설은 녹지 인프라의 대표적인 요소로 대부분 평양의 자
것은 사회주의 이념과도 상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지역
연 지형을 따라 계획되었고, 일부는 이 자연 지형을 그대로 반영했
적 균등을 위해 고안된 상징적 광장은 그 지역 내에서도 공간적 위
다. 그리고 위성 사진을 보면 농업 용지가 평양의 외곽에서 안쪽으
계 질서를 갖지만, 이 모든 광장의 중심에는 김일성광장이 있다.
로 침투하는 모양새로 방사형을 띤다. 서울이 그린벨트라는 이름
그곳이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를 선전하고, 상징하는 가장 핵심 공
으로 명확한 선을 그어 도시 팽창을 억제하고 도시민들에게 공원
간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김일성광장만으로
을 만들어 녹지를 제공하는 것과는 차이가 큰 지점이다. 김일성광
써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장을 중심으로 반경 10km 안의 시가지를 볼 때, 그 안에 주요 농업
1950년대 평양의 마스터플랜 스케치.
평양의 녹지 공간.
평양의 주요 녹지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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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상징 공간과 축을 형성하는 광장, 기념비적 건축물
하나의 도시를 구성함으로써 김일성광장 주변 지역과 함께 마스터
김일성광장과 상응하는 상징적 공간이 바로 대동강 맞은 편에 배
다. 기념비적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가 1970년대에 건
치된다. 대동강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배치된 상징 공간은 평양
축된 것이다. 인민문화궁전, 조선혁명박물관, 조국해방전쟁승리
의 평양의 도시 핵심 축을 형성하며 도시공간을 만들어 왔다. ‘주
기념관, 평양체육관, 만수대예술극장, 4ㆍ25문화회관 등은 1970
플랜에서 이루고자 한 평양의 중심 영역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
체탑—김일성광장—인민대학습당’으로 이어지는 축이 평양의 제
년대 준공이 되는데, 모두 연면적 5만㎡가 넘는 대형 건축물들이
1 핵심 축으로, 평양의 동쪽과 평양 중심부를 연결한다. 그리고 또
다. 특히 만수대광장의 만수대 대기념비(1972년 김일성 회갑 기념
하나가 ‘조선혁명박물관—김일성동상—공산당창건기념탑(망치,
준공)는 김일성광장과 함께 주요 광장 역할을 한다. 조선혁명박물
붓, 갈고리 모양의 조형물)’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2축이다. 여기
관과 함께 만수대 지역을 평양의 또 다른 주요 상징 공간으로 만들
서 김일성광장은, 광장을 형성하는 조선역사박물관과 조선미술박
게 된다. 특히 비교적 경제나 체제가 안정돼 있던 1970년대에 지
물관이 당시 동유럽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완공이 된
어진 건축들은 한옥의 모티브를 살린 건물이 많다. 인민대학습당,
다. 그리고 인민대학습당(국립도서관)이 제1 중심축에 놓이게 된
평양대극장, 인민문화궁전이 대표적으로, 콘크리트 구조이기는 하
다. 그럼으로써 김일성광장이 있는 지역은 사회주의 도시 평양을
지만 한옥 지붕을 취한다. 그 시기 사회주의 도시 계획과는 또 다
상징하는 곳으로서, 이념 선전과 민중 선동의 특별한 위상을 갖는
른 조선 사회주의식, 즉 주체사상에 입각한 평양의 도시 건축이 다
다. 아울러 대동강을 기준으로, 김일성광장이 있는 서쪽 영역과 주
시 조성되기 때문이다.
체탑이 있는 동쪽 영역을 묶고 있다. 새로운 개발 영역인 강동 지 역과 기존 도시가 존재하는 강서 지역이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
평양의 주요 상징물 분포.
평양의 주거 분포.
평양의 상징적 건축물과 기념비.
보통문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고려호텔
평양역
5.1 경기장
만수대기념비
노동당 창건기념탑
평양대극장
류경호텔
김일성동상
주체탑
천리마동상
해방기념비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우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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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 자족 공동체를 위한 소단위 구역 계획
업 시설, 공공 시설을 포함하고 있다면, 환경적 이유로 생기는 지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도시에서 녹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은 도
역 간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연히 보행 위주의 환경
시와 농촌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평양에서도 녹지
과 주민들은 종일 넓지 않은 반경 안에서 생활하므로 구역 내 차량
공간의 일부는 농업 용지로 설정되었는데, 평양에서 도시 조직을
운행을 활성화할 이유가 없고, 통근 거리와 시간이 줄어드는 점에
구성하는 또 하나의 기본 방식이기도 하다. 즉 주거와 생산 시설을
서 최근에는 친환경적 계획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결합하는 것이다. 250×250m 규모의 격자형 소구역을 기본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와 물품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탄소 발자국
지역을 구성하고, 지역이 모여 평양을 구성한다. 여기서 지역마다
이나 탄소 라벨링, 도시 농업과 같은 개념들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상징 광장이 하나씩 조성되고, 도로를 비롯한 도시 기반 시설이 지
러한 소구역 계획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은 바로 김일성광장 맞은 편
역 간 연결을 이루고 녹지 인프라가 사이사이에 결합이 된다. 주구
의 대동강 동쪽 지역이다. 이 소구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역의
단위는 주거, 생산, 소비, 교육, 부대 시설을 함께 둔다. 규모 역시
가장자리에는 주거 시설, 내부에는 기타 공용 시설과 작업장이 배
걷기가 가능한 거리를 기준으로 규모가 설정되었다. 이러한 대중
치되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주거 복합 건물과는 사뭇 다
의 생활 체계를 구성하는 소단위 구역 계획은 복합 주거 단지를 지
른 배치다. 소구역 내의 작업장과 공용 시설은 구역 내 주민을 대
향하면서, 소구역이 하나의 자생적 주구 단위가 된다. 이러한 도시
상으로 하기에 외부에서의 접근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
공간 체계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은 주거 전용 지역과 공업 밀
며, 구역의 외곽으로 고층의 선형 주거 시설을 배치하여 가로 경관
집 지역에 딸린 주거지는 환경적 차이 때문에 지역간 격차가 생길
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선전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수밖에 없으며, 두 지역 주민 간의 계층적 분리를 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주거 지역이 일정한 비율의 생산 시설과 상
주체탑에서 촬영한 대동강 동쪽 소단위구역계획 지역.
평양 주요거리의 형성연대. 개선문거리
비파거리
금성거리
상신거리 하신거리
붉은거리
낙원거리 만수대거리
문수거리
창광거리 승리거리
광복거리 해방산거리 새살림거리 청년거리
통일거리
1950’s 1960’s 1971-1984 1987-1993
주택 소구역 구성 단위.
초급 봉사 단위
소구역 봉사 단위
구역 봉사 단위
반경 100-150m
반경 400~500m
면적 15-30ha
주민 2천~3천 명
주민 6천~9천 명
2천~2천4백 가구,
밥 공장, 어린이 놀이
도서관, 두부 공장, 체육
작은 경공업 시설이나 작업장,
터, 공동 녹지, 경영뜰
관, 연료 공급소, 동사무소
보건소, 학교와 탁아 시설 등
4천~7천5백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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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의 경관을 만드는 주거 타이폴로지
통일거리가 함께 만들어진다. 반면 김일성광장이 있는 구역에서
평양은 거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소구역의 외곽으로
강 건너 대동강구역 역시 초고층 살림집으로 개발이 된다. 이러한
선형 주거를 배치하는 특성 때문에 평양의 도시화는 주요 거리를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지역의 도시 계획과 다양한 형태로 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강남, 잠실, 목동 등 특정 지구를 중심으로
어선 고층 건물들은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건축 예술론의 핵심인
개발을 진행한 서울과 달리, 평양은 주요 거리를 확장하고 개선하
비획일성과 비반복성이 표현된 것들이다.
면서 그 주변 지역을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개발하는 노력과 도시 화를 병행했다. 평양의 대표적인 거리로 천리마거리는 초기에 만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모더니즘 도시 계획의 교훈
들어진 거리이다. 이와는 달리 사뭇 다른 모습으로, 현재 평양의
현재 평양의 가로 경관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도시들의
모습을 형성하는 가장 특징적인 곳이 1980년대부터 조성된다. 만
획일적인 경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길을 중심으로 도시 계획이
경대구역 내 광복거리와 락랑구역 내 통일거리로, 1953년 마스터
진행된 평양에서는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로 부분에 특히 사람들
플랜에서는 계획돼 있지 않은 지역이다. 1980년대 서울에서는 아
의 눈길을 끄는 건물들이 들어서는데, 이 점은 길을 지나갈 때 보이
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리고, 평양에서는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
는 경관과 눈에 보이는 도시의 미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린다. 평양은 세계청년학생축전을 하면서 거리 조성과 경기장 시
사회주의 도시 계획이 체제 우월성을 눈에 보이는 경관이나 형태
설들을 대거 건축하는데, 청춘거리, 광복거리가 대표적이다(만경
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최근에 많은 비판 점이 되기도 한
대는 김일성 생가가 있고, 광복거리는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다. 결국 파리나 런던, 프라하와 같은 도시가 될 것인가, 상하이나
탄생지가 있는 칠골에 조성된다). 이 곳에 소위 비반복적 형태의
푸동과 같은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입장의 차이를 보여 주
주거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신시가지로 개발된다. 비슷한 시기에
는 것이다. 한편 평양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도시 노후화가 진행
중층형 주거 타이폴로지-2
통일거리.
광복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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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도시 관리의 측면에서 그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켜 왔다. 특히 재개발 지역의 길을 걸어 보면, 건물은 나로부터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에서는 몇 가지 제안을 두는데, 그 전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는 주차장이 있기도 하고 화단
로 자본 시장의 개방을 필연적인 것으로 두고 있다. 그럼으로써 평
이 있기도 하다. 건물과 나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길에서 빨리 갈
양의 도시 공간이 갖는 잠재성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가치가 대
생각밖에 갖지 못한다. 종로나 인사동, 남대문 지역이 거리에 북
치되는 곳에서 더욱 드러난다. 예를 들면 상징 공간인 인민대학습
적이는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는 것은 모두 길에 면해서 건물이 있
당에서의 프로그램 치환, 김일성광장의 공간 재구성, 류경호텔과
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1층에서 가게와 상점들이 즐비해서 사람
주변 지역의 도시 재개발, 소단위 구역으로 계획된 지역에서 생산
들의 시선을 끌고 재미있게 한다. 결국 사람들에 의한 도시의 활력
시설에서의 용도 변화이다. 그 방법에서 인티그럴 어바니즘(현재
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인티
의 도시 조직을 기반으로 한 물리적 환경의 점진적인 변화)의 자세
그럴 어바니즘에서 주장하는 도시 설계는 1950년대 등장한 새로
를 주장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도시의 지속성을 갖는 것은 도시
운 프로페션이다. 우리는 건축, 조경, 환경, 토목 분야와 달리, 도
민들의 활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정석(경원
시 설계(어반 디자인)라는 새로운 프로페션의 등장에 의문을 가질
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더 한다. “도시에서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프로페션들이 시대의 사회적인 요구
제일 중요한 것, 도시가 생명력이 넘치고 살아 있으려면 길이 살아
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라는 것과 새로운 프로페션에 대한 사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걷는 보도가 중요하다. 어느 도시
회적 기대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프로페션으로서 건축
나 길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은 살아 있는 도시고, 길이 썰렁한 도
가의 역할은 ‘공적인 것’으로 중요해지는 이유다. ⓦ
시는 죽은 도시다. 지금껏 모더니즘 도시는 길을 죽이고, 그 대신 에 오픈 스페이스를 살린다는 명분 하에 건물 안에 많은 것을 복합
새살림거리.
고층형 주거 타이폴로지-2
청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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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임동우 임동우 ┃ 1977년생이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의 저자로, 현재 미국 보스톤에서 프라우드(PRAUD; Progressive Research on Architecture, Urbanism and Design)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 프로젝트와 여러 리서치들을 진행 중에 있다. 연구는 도시 컨텍스트와 연계한 건축적 타이폴 로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를 통한 도시의 점진적인 변화(Integral Transformation)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로 입학 하고, 이후 건축공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도시설계 건축학을 전공하였다. 한국의 정림건축과 미국 마차도 &실베티 어소시 에이트(Machado-Silvetti Associate)을 비롯하여 일본(Maki & Assoc.)과 네덜란드(West)에서 실무 경험이 있다.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건축의 방법 평양/북한의 도시 건축 연구 현황 참고 문헌에 해외 자료들이 많이 보인다.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연구나 관심이 덜하다는 걸 알게 되는데, 실제로 현재까지 평양이나 북한의 도시에 대한 국내외 연구는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방향은 어떠한가. 임동우 : 연구의 출발이 사회주의 도시였던 동유럽의 도시들에서 시작되었다. 그 도시들의 지난 20여 년간 변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평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동유럽 혹은 러시아, 중국에 대한 해외 자료가 많았다. 이미 개방화가 진행되고 도시의 물리적인 환경까지 바뀌고 있는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선행 연구가 있었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자료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 많이 부 족한 것은 북한이 제한적인 정보만 공개하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고, 국내는 그 동안 관심이 적어서일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그 동안 몇몇 학자들이 꾸준히 진행해 온 연구 성과가 있다. 이왕기 교수님은 북한 건축 전반에 걸쳐 역사와 양식 등을, 김원 교수님은 북한의 도 시 발달과 계획적인 측면을 많이 연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김현수 교수님은 평양과 서울의 도시 공간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 셨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시/건축 관련 인프라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특히 사회, 정치 분야와 비교했을 때 그 관심과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국내 출판 시장의 분위기에서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해외에서는 건축가 자신의 견해나 시각을 피력한 출판물이 많은 반면, 국내에서는 읽기 어려운 전문서와 비전문적인 수필집(또는 기행문)으로 양분돼 있는 듯하다. 논문을 제외하 면 국내 도시에 관해서도 자료로 인용할 만한 출판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준비하면서, 또 출판 이후에 비슷한 주제 로 접근하려는 건축 관련 종사자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저와 비슷한 또래였는데,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관심과 시각은 이 전 세대와는 다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북한 관련 주제로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는 출판물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한국 도시 건축에 대한 비판적 견해 현재 한국의 도시 건축 상황을 볼 때, 평양에서 찾을 수 있는 대안이나 교훈 같은 것 들이 있을까. 임동우 : 사회주의 도시 계획 방법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점들이 많다. 책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회주의는 애초에 자 본의 성장으로 인한 도시화의 문제점들을 직시하면서 그 이념의 바탕이 성립하였고, 사회주의 도시 계획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결 과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후 자본주의 도시들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서울같이 급속히 성장한 도시들에서는 도시화의 문제 해결보다는 도 시화에 더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성장의 속도가 한결 늦춰진 현재 서울을 비롯한 국내 도시들에서 사회주의 도시 계획에 나타나는 방법 론들을 한 번쯤 되짚어 볼 만하다. 실제로 어떤 이는 사회주의 도시 계획론이 요즘 유행하는 지속 가능한 계획(Sustainable Planning)의 근간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도시와 도시, 도시 내 구역과 구역 사이의 균형 있는 발전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도시 계획은 작위적인 재 개발을 반대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역간의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점은 현재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재개 발 논리에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하지만 도시라는 것이 사회의 요구와 가치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균형과 분 배라면 도시는 이를 반영할 수 밖에 없고 도시 조직들도 변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의 논리는 아직 균형보다는 불균형적 인 사회구조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따라서 사회주의 도시에서 주는 교훈은 많지만,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국의 도시들도 따라서 변화하지 않을까 한다.
인티그럴 어바니즘과 건축의 방법
인티그럴 어바니즘의 견지에서도 북한 사회나 문화, 여러 가지 현실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접근 자체가 제한이 많지만) 필요한 노력이나 견지해야 할 태도, 자세가 있을까. 임동우 : 건축가의 입 장에서 프로젝트가 있는 국가나 도시의 문화, 사회, 역사 등에 대한 이해는 매우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제너럴리스트라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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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발 단계도.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발 단계도.
각한다.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위하여 알아야 하는 것들의 깊이는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건축가에게 북한에 대한 정보는 이미 충분한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실을 깊게 알고 있는가 보다 어떠한 시각과 입장을 갖고 있는가, 이다. 인티 그럴 어바니즘은 기존의 도시 조직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사회의 변화에 대응해 나아가는 시각을 대변한다. 북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지식 이 많은 건축가라 해도 기존 도시 조직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를 무시하게 되는 것은 한 순간일 것이다. 그것은 평양이 다른 도시와 달리 특별한 보존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 모든 도시의 조직은 그 존재만으로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 한 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인티그럴 어바니즘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의 보존이라는 측면과는 분명히 구 분이 된다. 평양이 개방(혹은 통일) 이후 하나의 도시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은 그 변화를 도시 조직 내에 수용하는 것이지, 도시 자체 를 박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몇 개의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고, 또 계획되고 있는 지 다 알기도 힘들다.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기존의 중소 도시들이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건설’하면 된다고 보는 등의 시각은 결국 결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 온다. 평양의 특성에 적용할 수 있는 건축가로서 건축(설계) 방법론이 있는가. 임동우 : 인티그럴 어바니즘의 시각에서도 실천 방법론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키 빌딩(key building)’과 ‛타이폴로지 (typology)’에 의거한 점진적 변화에 주목한다. ‛키 빌딩’은 주변의 도시 조직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와 도시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서 일반적인 ‘아이코닉 프로젝트(iconic project)’와는 구분된다. 모든 ‘키 빌딩’은 ‘아이코닉 프로젝트’일 수 있지만 모든 ‘아이코닉 프로 젝트’가 ‘키 빌딩’이 될 수는 없다. 쉬운 예로 구겐하임 빌바오가 ‘키 빌딩’이 될 수 있는 것은 형태나 방문하는 외부 관광객 때문이 아니 다. 주변의 인프라 스트럭처와 공간을 하나로 아우름으로써 도시 설계에서 계획한 수변 공간과 기존의 도시 조직을 엮어 주는 역할과 동 시에, 이로 인해 시민들의 새로운 도시 활동이 발생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현재 평양에는 수많은 ‘아이코닉 프로젝트’들이 있다. 규 모나 양식 면에서 의미가 있고 보존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평양이 개방이 되고 개발이 이루어질 때 훌륭한 도시 인프라로서 작 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키 빌딩’으로 변화하여야 도시의 점진적인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일성광장과 인민대학습당 은 유일무이한 도시 공간과 ‘아이코닉 프로젝트’이다. 이들이 ‘키 프로젝트’로서 도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주변 도시 조직과 소통하 는 방법을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상징성 면에서는 좋았지만) 이들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일 것이다. 평양에 산재하는 ‘아이코 닉 프로젝트’들을 경우에 따라 ‘키 빌딩’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이 일차적인 단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타이폴로지 이다. 타이폴로지는 건축 미학적인 관점에서 주목 받기 힘들지만 실제로 도시 공간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한다. 특히 반 복적인 구성을 하는 주거 타이폴로지가 그렇다. 한국의 가로 경관이 네덜란드와 다른, 주된 이유는 도로의 폭이나 가로수 때문이 아니라 가로형 주거 타이폴로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평양에서는 초고층 주거 단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블록의 외곽부에 중층의 선형 주거 타이폴로지를 배치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간간히 배치되는 고층 주거가 평양의 가로 경관 및 공간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평양이 개방된다는 얘기는, 간단히 말해 북한에서는 그동안 없었던 계급이 생겨나고 토지의 가치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따 라서 이를 반영하는 새로운 주거 타이폴로지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평양의 사회 구성과 도시 조직을 반영하는 새로운 타이폴로지의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남북한 도시/건축 교류 이전까지의 대북 사업들이 경제 협력이나 인도주의적 차원,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교류로 많이 진행 되고 있는 듯 하다. 도시/건축의 전문성을 띠고 할 수 있는 교류들이 있겠는가. 임동우 :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한 명의 건축가로서 건축계에 던지고 싶었던 화두가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 동안 북한의 건축과 도시에 깊이 연구해 오신 선 배님들이 계셨지만, 그러한 노력의 맥이 지금은 좀 단절된 느낌이다. 그래서 좀 더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그 동안 북한의 도시와 건축 자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있었다면, 이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화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입장 에서 ‘앞으로 평양이 개방된다고 하면 평양의 도시 조직은 어떻게 바뀔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다른 수많은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평양의 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에는 모자이크와 북한산 대리석이 많이 쓰이는데, 어떤 이는 ‘국내 프로젝트의 마감 재료에 북한산 대리석을 쓰면 어떨까’, ‘컴퓨테이션을 이용한 패턴을 북한의 모자이크 제작 기법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작은 관심과 언론이나 출판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이 그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이후에 북한 건축계와의 교류나 국제 건축 계에서 북한 관련 화두를 이끌어 나아가는 것은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이후에 결실로 나타날 때쯤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는 건축계에 국한 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그 동안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모든 논의는 통일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하지만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전제로 한 것은 ‘개방/변화' 였다.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북한의 개방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후 그 시장을 한국이 선점할지, 중국이 할지는 모를 일이다. 지금 유리한 위치에 있는 중국에 시장과 경제가 선점된 이후에도, 과연 북한이 남한과 통일을 하고 싶어 할까,는 굳이 묻지 않아도 쉽게 답이 예상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평양은 도시/건축적으로 충분한 잠재성이 있으니, 우리가 먼저 교류하고 선점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시작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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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동 교수의
코스트 신부와 명동성당 Issue 2
(사진 17) 1958년경 명동성당과 그 일대. (출처 명동성당)
지난 6월초 명동대성당 재개발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고 착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최종 통과된 안은 1단계 사업 (2029년까지 4단계로 진행)을 골자로 하는데, 지하 4층, 지상 10층, 1만여 평 규모의 고층 건물을 성당 주위에 짓고, 현재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성당 진입부를 광장으로 조성하는 계획이다. 공간 확보 차원에서라도 꼭 필요한 사업 이라 강조해 온 서울교구와, 환경 개선 효과 및 명동 일대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쌍수 들 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사)도코모모코리아를 비롯하여 본지가 만난 많은 건축 전 문가들은 비록 수위가 다르고 견해차는 있을지라도 문제 의식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눈 치다. 특히 명동성당이 가지는 역사성과 상징성의 측면에서 기존 질서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이에 본 지는 근대 건축 역사학자 김정동 교수와 함께 명동성당을 건축한 코스트 신부의 족적을 쫓아가 보고, 그 역사적 가치 를 다시 한 번 상기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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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을 4개나 만든 사람
한 곳이고 그 곳에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 논문은 명동성당을 세운 코스트 신부의 자료를 찾는 것에 목적
두 번째는 그가 신부가 된 파리외방전교회의 자료를 찾는 일이었
을 두었다. 대상지는 프랑스의 파리와 지방 도시 몽펠리에, 몽타르
다. 두 가지 일은 전부 무에서 유를 찾는 것 같은 어려운 것이었다.
노였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 신부는 1885
그러나 이 일은 우리 건축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기도 했다.
년 말 우리 나라에 들어와 용산신학교, 약현성당(1892년), 인천 답 동성당(1897년), 그리고 명동성당(1898년) 등 우리의 대표적인
명동성당
붉은 벽돌 가톨릭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우리 근대 건축의 새로운
명동성당의 신축 대지는 종현(鐘峴)으로 정했다. 종현은 종이 걸
상황을 만들어 냈다. 우리 나라 사적 36건 중 8건이 성당이고, 그중
려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 곳은 도심 한복판의 전망 좋은 고
4건이 코스트 신부가 세운 것이다. 코스트 신부는 조선교구 부주
지대였던 것이다. 1887년 높은 지대에 건물을 앉힐 수 있을 정도
교이면서 건축 신부, 즉 당가(唐家)신부였다. 그는 조선교구 당가
의 언덕을 깎아 놨다. 뮈텔(Mutel 閔, Gustave Charles Marie) 주
부(唐家部)를 담당하였다. 당가부는 경리부라고도 하는데 건축 일
교는 1892년 봄 성당에 최초의 돌을 놓았다. 주교는 이미 약현성당
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당가부는 돌유물골(石井洞, 소공동 부근)
의 모서리 돌을 놓은 바 있다. 코스트 부주교는 뮈텔 주교의 명령에
에 있었다. 그는 선종(善終) 할 때까지 11년 간 이 땅에 체재하면서
의해 성당 건축을 할 수 있었다. ‛베드로’라는 청나라 사람이 주축
우리에게 ‘가톨릭은 고딕’이라는 인식을 심어 놓았다. 코스트 신부
이 되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은 산적해 있었다. 전쟁
는 그 자신의 마지막 성당 건축인 명동성당의 준공을 못 보고 1896
이 나자 중국인 쿨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공사는 자주 중
년 2월 28일 금요일 저녁 5시 45분 세상을 떴다. 장(腸)티푸스(장
단되고 있었다. 청불전쟁(1884~85)과 청일전쟁(1894~95)이 10
질부사)에 전염되어 영면(永眠)한 것이다. 사도직을 맡은 지 28년
년 사이로 일어났다. 1893년 10월 성당 축성 중 아랫부분이 무너
이 되었고 54세가 되던 해였다.(사진 1) 필자가 프랑스에서 첫째
지는 사고가 났다. 코스트 신부는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찐의 도움
할 일은 코스트가 태어난 고향을 찾는 일이었다. 고향 마을은 어떠
을 받았다. 공사 자문이었다. 사바찐은 코스트 신부보다 2년 앞선
(사진 1) 명동성당 준공 후(1898.5.29). 주교 관 주방 앞에서 축하 파티가 열리고 있다. 코스 트 신부는 이미 선종해서 이 자리에 없다. (출 처 명동성당)
(사진 2) “높이 위치한 오래된 성(城) 한 채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사자약전』) 언덕 위의 샤토, 몽타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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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서울에 들어왔다. 정동에서 정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그
명이 어머니와 함께 고향 마을에 살고 있어 연로한 80세의 노모
들은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공사비도 문제였다. 공사 중 자금난을
곁에서 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분 계신 삼촌, 마르쓸랭 코스트
타개하기 위하여 파리외방전교회측은 구체적인 자금 지원 5만 프
(Marcellin Coste) 씨는 몽펠리에(Montpellier) 시에서 공증(公
랑(약 8천 달러)을 대여해 주었다. 종현교당 준공 직후의 『독립신
證)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지방에서는 영향력 있는 신자이고, 자선
문』 기사에는 총 공사비가 6만 달러로 되어 있다. 명동성당은 코스
사업가이며 그 교구의 주교님과 아주 친한데 이 선교사의 편지 안
트 신부가 선종한 2년 후인 1898년 5월 29일(성신강림대축일) 빅
에서는 그의 말년까지 신용할 수 있는 실업가로 나타나 있어, 모
토르 루이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 朴道行, 1855~1925) 신
든 가정의 가장이고 오른팔과 같았다. 몽타르노읍은 몽펠리에 시
부에 의해 준공되었다. 프와넬 신부는 1881년 입국, 10여 년간 코
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코스트 씨의 본가는
스트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 마을의 중앙,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심어진 원주의 언덕이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 위치한
그의 고향 집을 찾아
오래된 성(城) 한 채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님과 그의 경
위젠느 쟝 죠르쥬 코스트(Eugène-Jean-Georges Coste, 고의선,
건한 양친의 주시 하에 미래의 선교사가 성장하였던 것은 그의 예
高宜善, 1842~96) 신부는 프랑스 에로(Hérault)현(縣) 아니안
술적 취향이 아마 눈뜨게 되었던 바로 이런 경치 좋은 환경에서이
느(Aniane)면 몽타르노(Montarnaud) 읍에서 믿음이 있는 지주
다; 그는 끝까지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해 왔다.”
의 1남 1녀 중 아들로 태어났다. 『사자열전』은 다음과 같이 쓰고
나는 파리에서 남행 열차를 탔다. 프랑스에서 아니안느 면은 오래
있다. “코스트는 1842년 4월 17일 에로현 아니안느면 몽타르노읍
된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12~16세기 고행 수도자
에서 재산을 지니고, 특히 타고난 믿음이 풍성한 지주 중의 존경
의 교회가 특히 유명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몽펠리에에서 내
할 만한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꽤 오래 전에 돌아
렸다. 몽펠리에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몽타르노 행 버스를 탔다.
가셨고 경건한 어머니는 아직 생존해 계시다. 과부가 된 누이 한
버스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을 달렸다. 몽타르노에서는 읍내
(사진 3) 몽타르노 마을 중심가. 성당 탑이 있는 분수 광장이다. 코스트 신부가 어렸을 오가던 곳이다.
(사진 4) 코스트 집안.
(사진 5) 분수 광장에는 지금도 탑 상징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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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부까지 택시를 탔다. 읍으로 들어가자 몽타르노 성이 보였다.
敎會, La Société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본부였다. 올
코스트가 고향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한 그 성이었다.(사진 2) 읍내
세이(Orsay) 역 부근에 본부와 신학교가 있다. 코스트 신부가 이
로 가는 도중 나는 코스트 마을을 발견했다.(사진 3,4,5) 코스트
곳에서 동아시아로 나가기 위해 신부 수업을 받을 때는 아직 올세
신부는 성(聖) 라자르회(會)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몽펠리에 소재
이역이 세워지지도 않았을 때였다.(사진 10) 파리외방전교회는
의 대신학교(大神學校, 가톨릭 신학대에 해당)에 들어갔다. 몽펠
1664년 팔뤼(Fançois Pallu) 주교와 모트(Lambert de la Motte)
리에 시내에는 코스트가 신부가 되기 위해 다니던 대신학교가 있
주교가 동아시아 포교를 위해 파리에 설립한 프랑스 가톨릭의 해
고 구내 성당이 있었다. 그 곳은 치외법권 같아서 일반인은 허가
외 선교 요람이었다. 이 전교회는 베트남, 한국과 일본(각주 1), 만주
없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이방인이었다. 부근 책방에서
의 가톨릭 포교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 군이 가는 곳에 프
자료를 찾는 일로 마치고 말았다.(Brigitte Alzieu, 『Memoire en
랑스 선교사는 갔다’는 제국주의적 시각도 있었다.(사진 11) 신부
Images Montpellier』, France, Alan Sutton, 1999) 그러나 그 자
들은 평생을 동아시아를 위해 종사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입회했
료 사진에서 명동성당의 부분적 유사성은 발견할 수 있었다.(사
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받은 후 동아시아의 임지로 떠나기 위
진 6,7,8,9) 1866년 한국에서는 병인사옥(丙寅邪獄 혹은 병인박
해, 프랑스의 마르세유 항에서 배를 타고 베트남의 사이공(현, 호
해)이 일어날 즈음, 그는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Séminaire des
치민)까지 왔다. 코스트 신부도 이 코스였다. 1868년 7월 15일 아
Missions Etrangères)에 입학하였고(1868년) 6월 6일, 사제로 서
시아로 향해하는 배를 탄 것이다.
품되었다. 바크 가에는 2년이 채 못 되게 체재한 것이다.
베트남에 코스트 신부가 도착한 후 두 개의 프랑스 성당이 세워졌 다. <사이공 대성당(Notre Dame Cathedral, Saigon, 1877~83)>
파리외방전교회 아카이브에서
은 벽돌조 성당이다. 화강석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렸다.
필자가 관심을 둔 곳은 파리 7구(區), ‘바크 거리(뤼 드 바크, Rue
성당 최초의 설계는 에콜 데 보자르 출신 프랑스 건축가 조르주 레
du Bac 128 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파리외방전교회(巴里外邦傳
루르미트(Georges Lhermite)가 했으나 1875년 국제 콤페에서 파
(각주 1) 프랑스는 자국인 선교사를 조선에 파견해 조선을 일본 가톨릭 교회 재건의 교두보로 만들려 했다.(천주교 수원교구 윤민구 신부, 한 겨레 1998.5.9)
(사진 7) 안느 성당(Sainte-Anne). 1872년에 세워진 것이다. 1900년 사진이다.
(사진 9) 안느 성당. 성당 내부 기둥과 볼트 등 이 명동성당과 유사하다.
(사진 6) 몽펠리에 성 피에르(Sainte-Pierre) 성당(1910년).
(사진 8) 몽펠리에 대신학교와 안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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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건축가 쥘르 부라르(Jules Bourard)의 안이 입선, 이 안으로
다. 1874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도착해서 6년간 지낸 후 1880년
준공시킨 것이다. 쌍탑은 1894년 추가한 것이다. 40미터 높이이
일본에 입국했다. 요코하마에서 인쇄소를 차린 것이다.
다. 쓰리 베이(three bay) 형태를 띠고 있다. <성모마리아교회>라
한편 프랑스는 1884년 6월 23일, 하노이 북부 바크레에서 중국과
고도 불린다. 명동성당보다 거의 15년 앞선 것이다.(사진 12)
전쟁을 치러 승리했다. 이 청불전쟁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
<하노이 대성당(The Cathedral of Hanoi, 일명 Joseph's Church,
지(1887~1957)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공에 전교회 거점
1882~86)>은 하노이 시내에 세워진 석조 고딕 성당으로 사이공
을 만들었다. 그중 일부가 조선포교단(布敎團) 신부가 되어 조선
것보다 5년 뒤에 착공되고 3년 후 준공된 것이다. 이 성당은 프랑
으로 다시 건너온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신부가 파리에서 직접 조
스가 하노이를 점령하고 세운 것으로 하노이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으로 온 적은 없다. 코스트 신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스트 신
가장 큰 교회이다. 흰색과 검은색 돌을 교차시켜 수직으로 올렸다.
부는 1885년이 끝날 무렵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 43세 때였다.
전체적으로는 어둡게 느껴지고 우중충하다. 명동성당이 붉은 벽돌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되고 비준(1887년 5월 30일)되자 프랑스 신
조이고 밝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프랑스인 퓨지니에
부들의 내한은 본격화되었다. 조약 중 독특하게 ‘선교 자유의 조
주교(Mgr. Puginier)가 지은 것이다.(사진 13,14) 베트남 남북의
항’이 들어간 때문이었다. 조선 정부는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건물
이 두 성당은 네오 로마네스크풍과 고딕풍이 섞인 것으로 프랑스
을 짓고, 수도 서울에 거주할 권리를 주었다. 이는 스페인, 포르투
(각주 2)
우리 명동
갈 등 선교사들이 앞서고 함대가 뒤따르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침
성당보다 먼저 세워진 것이다. 코스트 신부는 베트남에서 이 프랑
략 방식을 취한 것이다. 조약 체결 후 천주교는 은둔지를 벗어날
스 성당들이 세워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경험이 우리 나라에
수 있었다. 속칭 양대인(洋大人)이라 불리는 선교사들의 교당(성
전해진 것이다. 베트남의 성당은 쌍탑식이고 명동성당은 단탑식이
당, 공소) 등은 치외법권 지역이 되었다. 조선의 가톨릭에 새 시대
다. 코스트 신부는 이어 홍콩을 거쳤다. 홍콩에서는 <베타니아 요
가 열린 것이다.
양원>을 건축했다. 그 후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극동으로 향했
코스트 신부는 1890년 주교가 머무를 주교관을 종현 언덕에 세웠
식민지 시대(1860~1945) 초기에 세워진 것이다.
(각주 2) 졸저, 『하늘 아래 도시 땅 위의 건축(2)』, 293쪽, 가람기획, 1998년.
(사진 10)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사진 11) 파리외방전교회 성당 내에 걸려 있는 그림. 신부들의 해외 선교 출발 기념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작곡가 구노(1818~93)와 올림픽 부활 창시자 쿠베르탕(1863~1937)이 등장한다. 엎드 려 신부의 발에 입맞춤하는 사람이 <아베마리아>의 작곡자 구노이다. 구노는 원래 신부 지망생이 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순교한 다블뤼 안(1818~66) 주교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앞줄 이 쪽을 향하고 있는 어린이가 쿠베르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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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조선 7대 교구장 블랑 백(白, Rev, Blanc. Jean Marie Gustave)
(Supérieur de maison)직에 올라 그의 방에서 나를 만나 준 것이
주교는 1890년부터 명동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다. 덕분에 나는 코스트 신부에 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첫
7년 전인 2004년 8월 12일, ‘뤼 드 바크’를 다시 찾았다. 파리외방
째는 명동성당 관련 자료를 찾는 일이고 두 번째는 코스트 신부의
전교회는 우리 천주교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우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필자는 절차에 따라 아카이비스트에게 자
리 나라에 전교하러 신부가 들어온 것은 1836년 1월의 일이었다.
료 청구를 했다. 그는 명동성당 관련 자료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인 피에르 모방(Maubant, 1803~39) 신부부터였으니 이
코스트 신부의 사진이 몇 장 있다고 하며 앨범 같은 책을 나에게 보
미 170년 전의 일이다. 모방 신부는 김대건(1822~46) 신부를 마
여 주었다. 그 곳에 세 장의 코스트 신부 사진이 있었다. 필자는 복
카오로 유학 보냈다. 15세 때였다. 초기 선교사들은 1839년 기해
사를 요청했다. 그 사진들을 여기 게재한다.(사진 15,16)
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였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주
코스트 신부 선종 후 명동성당을 준공시킨 프와넬 신부는 코스트
교 3명, 신부 7명이 한국에서 순교했다. 1886년 한불수교가 이뤄
신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의 모든 선교사들을 대표
진 이후부터는 선교사들이 순교하는 일은 없어졌다. 뤼 드 바크에
하여, 우리 공동의 존경심의 표시로서, 아직도 새로운 그의 무덤
는 학교와 성당 그리고 순교자 기념실이 있어 양국 천주교를 연구
에 우리가 내놓은 몇 장의 글이 오랫동안 우리들 사이에서 그의 미
하는 학자들의 ‘연구 보고’가 되어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으로부
덕에 대한 추억으로 존속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것이 우연히 그
터 젊은 신부들이 공부하러 와 있다. 우리 나라 신부님도 몇 분 공
의 훌륭하신 어머님 눈에 띄게 된다면, 그 분의 눈물을 전부 지워
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비탄의 고통이나마 덜어 주게 되기를
그 곳에서 퀴니 신부(Jean Michel Cuny, 1930~)의 덕을 봤다. 그
바랍니다. 그것이 시간과 더불어 천성의 외침을 신의 축복으로 변
는 프랑스인으로 1956년부터 1963년까지 7년간 공주읍에서 시무
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존경할 만한 이 부인에게 하느님은 그와 같
했다. 보좌신부와 주임신부를 각각 겪었다. 그는 공주를 떠난 후에
은 아들을 주셨고, 이번에는 그녀가 하느님께 그 아들을 드렸으니,
도 한국과 연을 끊지 않았는데, 파리외방전교회 최고위직인 총장
신앙의 견지에서 사실 그녀는 행복한 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사진 12) 베트남 사이공 대성당(1883년).
(사진 13) 하노이 대성당. 파리의 노트르담과 닮았다. 시내 호수 주변에 세워져 습기와 곰팡이가 돌벽을 오염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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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는 더 이상 다시 볼 수 없게 된 아들 일생의 이야기에서,
당 건물이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1950년대만 해
‘야곱의 향취가 나는 의복을 만지는 늙은 이삭과 같이 기뻐하고,
도 서울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던 서울의 랜드마크 타워였다.(사진
그 족장처럼 진실로 내 아들 일생에서 나오는 향취는 여호와께서
17) 1970년대 경제 성장에 따른 그 주변 난개발로 인해 성당과 그
복 주신 꽃과 과일이 가득한 밭의 향취와 같도다’라고 말할 권리
주변은 급속히 망가졌다. 성당 측이 그동안 마스터플랜 하나 없이
(각주 3)
가 없겠습니까!”
즉흥적으로 개발해 온 탓에 성당 영역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성
코스트 신부와 프와넬 신부는 용산신학교(원효로성당) <용산 성직
당 주변도 비산 땅값에 상응하려 고층화되어 ‘잡건물들’로 포위된
자 묘지>에 이웃해서 함께 잠들고 있다.
것이다. 문화재 당국은 이 곳을 문화재 구역으로 설정하지도 않았 다. 성당 건물만 덩그러니 문화재로 해 놨을 뿐이다.(문화재위원회
명동성당을 개발한다?
1977.2.26) 또한 명동성당과 그 주위 역사적 건축물들은 너덧 차
원래 초기 성당은 높은 곳이나 순교자 터에 세워졌다. 그만큼 입지
례의 보수 공사로 그 원형을 많이 잃어 버렸다. 성당의 함석으로 되
가 중요한 것이었다. 명동성당은 종현 높은 곳에 세워졌다. 자신도
어 있던 지붕은 동판으로 교체됐고 목재 마루였던 바닥도 인조석
높았지만 언덕 위에 세워져 더 높아 보였다.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
으로, 그리고 타일로 교체됐다. 특히 지난 1970년대 초 벽체 겉에
고 있었다. 그 명동성당이 이제 103년의 세월을 철하고 있다. 우리
칠한 페인트는 벽돌의 호흡을 방해, 풍화를 촉진시키는 등 문제점
나라 벽돌 건축물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명동성당은 우리 나라
을 드러냈다. 근대 사적 문화재인 ‘명동성당 개발 문제’는 아무리
성당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서울의 것이면서도 지방의 모범이기
생각해 보아도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뒤로 미룰 일이 아니
도 하다. 또한 베트남, 필리핀의 것과 함께 아시아의 한 사례가 되
다. 이제라도 관계 당국자들은 개발에 앞서 성당 내외부 보존정비
는 것인 만큼 그 건물을 다룰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명동성당 살리기 작업
6・25 동란 이후 명동성당 입구 주변은 ‘어두운 성당 앞 고갯길’
에 나서야 한다. 좋은 결과가 얻어지길 기대한다. ⓦ
로 표현되었다. 사람들은 ‘부연 하늘을 이고 검게 높이 치솟은 성
글 | 김정동(본지 고문,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각주 3) 번역 이윤자, 불문학 박사, 목원대학교 강사.
(사진 14) 명동성당. 원 베이(one bay) 전면 종탑부가 돌출되어 수직 상승 50미터까지 올 라가고 있다. 성당 내부는 원 네이브 투 아일 (nave, 本廊, 身廊)와 아일(aisle, 側廊) 형식이 다. 상부 뾰족탑은 사이공 대성당과 닮았다.
(사진 16) 사진 뒷장에 1890년, 코레라고 쓰여 있 다. 배경은 정동에 있던 신부 자택인 것 같다. (사진 15) 코레에서의 코스트 신부. 사진 촬 영 연도가 없는데 명동성당 부근에서 찍은 사 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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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결과
Issue 3
‘캠프 하야리아의 미래는’ (adaptive re-use of camp hialeah)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 제8회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결과가 발표됐다. 김종성(서울건축 명예사장), 김기호(서울시립대 교수), 윤인석(성균관대 교수), 장윤규(국민대 교수), 배정한(서울대 교수) 등의 심사위원들은 제출된 5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대상 1점(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최우수상 1점(문화재청장상), 우수상 2점(부산광역시장상), 특별상 1 점(도코모모인터내셔널 회장상), 특선 13점, 입선 59점 등 총 77작품을 선별해 냈다. 수상 작품은 지난 6월 2일 부터 11일까지 부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된 바 있으며, 작품집으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본지는 대상, 최 우수상, 특별상 수상작을 통해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캠프 하야리아의 보존과 활용을 함께 고민해 본다.
왼쪽부터 김기호, 장윤규, 배정한, 김종성, 윤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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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총평> 중에서 ‘캠프 하야리아의 미래는(adaptive re-use of camp hialeah)’이라는, 예년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요 구하는 도시적 스케일의 어려운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750여 팀이 넘는 참가 희망자와 500여 점의 최종 결과물이 제출됐다. 우리는 그 중에서 공모전 지침이 제시하고 있는 각각의 조건을 존중하고 표현에 충실한 작품을 수상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다수의 작품들이 하야리아 부지의 경계부에 대한 고민을 보여 주고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다양한 접근 방법이 적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많은 작품들이 전체 도시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 요소의 조합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경향 이 많았으며, 한편으론 기존에 익숙한 전형적인 방법에 의존하여 신선한 아이디어가 부족했다는 점 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 참여자들의 성의와 열기는 어느 공모전보다 탁월한 성과물로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대상 수상 작품인 <부산시 부산진구 하야리아동(洞)>은 하야리아 부지를 주거지로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자칫 진부한 방법론일 수 있으나, 하야리아 부지가 갖고 있는 현실적 문제 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고민한 흔적이 발견됐다. 또 제시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매우 구체적이란 점 도 높이 평가되었다. 무엇보다 부지를 도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 대상 작품으로 결정하기에 손색없다고 심사위원 간에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표현의 빈약함은 다소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론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이 지나친 표현보다 고민과 사색의 결과에 주 안점을 두고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이기도 하겠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Hialeah STATION>의 경우 탁월한 표현력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었 다. 단절된 하야리아의 물리적 공간을 소통을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 수단인 기차를 통해 연결하려 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부지의 절반 이상을 농경지로 처리하고 있고 구체적인 계획이 부 족하여 대상으로 선정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아이디어라는 평가도 있었다. 대상과 최우수상작을 선 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약 2시간 가량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제8회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이 단일 건축물의 보존 차원에 머물지 않고 도시적 관점까지 고민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점은 근대 건축을 다룸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참여자들이 이러한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도시 공 공 시설은 많은 시민들이 사용하는 곳으로서 하야리아의 경우 부전역 등이 인접하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대중 교통 수단과 부지를 적극적으로 연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는 아쉬움이 있 다. 또한 도코모모코리아 디자인 공모전만이 가지는 특색이기도 한 근대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보존 하려는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건축적 제안이 비교적 드물었다는 점 또한 아쉽다. 그러한 가운데 <MEMORIAL LANDSCAPE—오래된 풍경을 담은 기억의 정원>은 이를 가장 적 극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래서 올해 최초로 수여하는 ‘도코모모인터내셔널 회장 상’(특별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심사 후에 특별상 수상자들이 작년 제7회 도코모모코리아 공모 전 대상 수상자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크게 놀랐고, 그들의 용기와 도전적인 자세에서 한국 건축 의 가능성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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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고건수・김석현・안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부산시 부산진구 하야리아동(洞) 프롤로그 하야리아는 도시였다. 하야리아 부대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탄탄한 인프라 덕분에 미군과 그들의 식구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어른들은 일터에 나가 업무를 보며 주말에는 각종 체육 시설과 사교장에서 사람들과 만났다. 이랬던 하야리아가 이제 부산의 일부가 되었다. 미군 은 한국을 떠났고, 그들이 이용했던 시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이미 도시 우리는 하야리아가 이미 도시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군은 기억만을 남긴 채 이 곳을 떠났지만, 예 전에 이 땅에 살았던 그들의 행적은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또 다른 도시 속의 섬을 만드는 것이 아닌, 마치 오랫동안 부산에 살았던 외국인이 귀화하여 한국인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과정을 상상했다. 부산시 부산진구 하야리아동 하야리아에는 1,250명이 살고 있었다. 주변과 비교해 보면 약 4배의 인구차가 있 음을 알 수 있다. (부산진구 인구 밀도 : 1km2당 13,409명, 범전동: 1km2당 12,237명, 연지동 1km2당 23,046 명) 이런 인구 밀도를 감안할 때, 하야리아가 부산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예전과 비교해 약 4배의 인구가 살 아야 기존의 도시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경계의 재설정 ‘하야리아부대’가 ‘하야리아동’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경계에 대한 문 제였다. 기본적으로 이 지역은 담으로 둘러싸인 섬과 다름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담과 인접했던 건물 혹은 도시 조직이 서로 어떻게 어울리며 이어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담으로 막혀 있던 기존 건물 조직의 끝자락 을 부대 내부의 길까지 확장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주거 환경의 숨통을 틔워 주고, 부대 중심부 길인 Bastogne Boulevard를 복원하여 중요한 교통의 요지로 변할 부전역과 초읍의 연결을 도모했다. 행위의 보존과 주변과의 관계 주변 지역의 기반 시설과 부대 내부 시설을 분석, 비교하여 시설들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살폈다. 건물의 프로그램이 바뀌더라도 행위는 과거와 만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물리적으로 는 기존 건물을 일부 덜어 내거나 덧붙이는 방식을 제시하여 흔적이 보존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전체적인 형상 과 프로그램은 예전의 논리를 간직하면서 주변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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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마을 — Housing Translation type B 영관급 숙소.
향나무마을— Housing Translation type A 하사관 숙소. 도시로 작동하려면 4배의 인구가 필요하다. 기존 건물들 사이의 빈 공 간에 새로운 볼륨을 넣어 필요한 공간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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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리아동사무소(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건물은 마권발매소에서 출발해 장교클럽으로 용도가 변했다. 특수한 프로 그램에 의해 사람들이 모였던 이 곳을 동네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공 건물(동사무소)로 용도를 바꾸어 건물과 장소가 지녔던 특징 을 보전하려 한다. 주변에 위치한 부속 건물(수영장, 테니스장, 한국어학당)은 동사무소의 복지 시설로 사용한다.
사무 시설. 군인들이 사무 업무를 보던 사령부는 일반 사무 시설로 전환해 원래의 의미를 유지시킨다.
하야리아시장. 부대의 보급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시장으로 바꾼다. 군인들을 위한 물자 보급 공간이 시민들을 위한 물자 제공 장 소로 변한다. 보급이라는 행위의 논리가 그대로 보존된다. 독신자 숙소는 오피스텔로 변경되는데, 개인을 위한 소규모 생활 공간 은 큰 변화없이 이용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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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정상환・곽병준 (일반)
Hialeah STATION 철길을 이용한 생산적 네트워크형성 프롤로그 100여 년 동안 타인에 의해 비움의 공간으로 남아 있던 하야리 아 부대는 역사와 문화, 즐거움, 자연과 시민의 참여가 가능한 도시공원 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에 반해 자주 국방과 경제 발전, 개발과 보존의 긴 이데올로기를 막 벗어난 하야리아 주변은 상업 자본의 의지에 따라 초 고층 장막이 둘러쳐질 계획이다. 하야리아 부대의 철옹성 같았던 담벼락 은 무너지지만 또 다른 성격의 벽이 둘러쳐진다. 이 장벽을 허물 방안은 없을까? 하야리아 부대 반환 후 땅이 가져올 가능성을 또 다시 가두어버 리는 것은 아닌가? 대지(하야리아 부대) 주변의 정비, 주변과의 관계 맺 기를 통해 유보되었던 시간을 지우고 주변 도시 맥락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제안이 필요하다. 또 다른 유보된 공간을 낳기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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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트 | Seeding
and Planting — Green Network를 위한 단계 밟기
Seeding(치환하여 치유하기) 도시 성장으로 인해 고밀화된 부전시장을 비워 자연 확장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 고, 시장의 일부분은 공원으로 위치 이동시켜 전통 재래 시장의 생산적인 공간으로 변모케 한다. Planting(철도를 이용한 그린 네트워크 형성) 타인에 의해 전쟁 물자, 포로 수송로 역할을 했던 철도는 그린 네트워크 연결로 각각의 역사에 생산품을 제공하고 공원화를 추진하는 전국 미군 부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Program for Train Everyday (Farm products) 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부산의 각 역사로 배송되며, 기존의 철도는 생산과 소비 를 이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Weekday (Mobile market) 생산된 농작물은 이동식 상점에 실려 각 지역으로 이동하여 직접 판매된다. 또한 각 역사는 하나의 장터 역할을 하게 된다. Weekend (Passenger) 전쟁 물자, 포로 수송로 역할을 했던 철도는 이제 하야리아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 한 새로운 접근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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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wal of Building 1. 마 권 발매소 → 하야리아역 :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은 마권 발매소는 이용객들이 기차를 타고 내릴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며, 상부를 오픈함으로써 과거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2. 사 령부 → 휴게 시설 : 건물의 주요 구조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철거시켜 장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열린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3. 하 사관 관사 → 프리마켓 : 부분적 해체를 통해 각각의 용도에 맞게 대응하고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여 장터 의 다양한 시설을 담도록 한다. 4. 컨 셋 막사 → 농업연구소 : 지속적인 생산적 농장을 만들기 위해 기존 막사를 재활용하여 농작물 연구에 필 요한 연구 시설을 마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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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도코모모인터내셔널 회장상) 강준성・김용수 (전남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Memorial Landscape 오래된 풍경을 담은 기억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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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현대 도시와 장소의 기억 도시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도시에는 다양한 시간의 건축 물이 적층되며, 이러한 적층이 도시는 역사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지금의 도시는 누적이라는 자연스 러운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기존의 조직을 무시한 채 새로운 것을 대체시키는 방식으로 건축, 건설되고 있 다. 물론 누적이라는 개념이 모든 것 위에 설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대체라는 방식이 주 류를 이루는 오늘날은 단절과 차폐의 반복으로 도시라는 거대한 조직을 폐색시켜 가고 있다. 때문에, 모든 건축 은 언젠가는 소멸할 수밖에 없으며 새로 운 환경에 따라 재개발도 되어야 하고 변화하는 것이 마땅하나, 한편으 로는 시간에 따라 건축이 변하더라도 수많은 세월 동안 그 장소에 새겨졌던 삶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을 유지시 켜 다음 세대에 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Reading Site | 도시 내에 또 다른 도시가 존재한다 캠프 하야리아는 오랜 시간 부산의 발전과 함께 공존해 왔지만 부산시민의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해 온 도시 내의 또 다른 도시이다. Between Architecture and Nature | 기억의 정원 ‘정원은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주는 장치이며 자연 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 는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건축적 사유 장치다.’ 대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 는 개별 건물들은 기존 배치를 존중하면서 새롭게 자리잡고, 자연(정원) 을 통해 대지와 프로그램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장소성의 구현을 통 한 내·외부 공간의 통합으로 자연과 건축의 일체화를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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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Strategy | Kevin Lynch’s Five Element of the City 케빈 린치의 도시 구성 5요소(경계, 통로, 결절점, 랜드마크, 지역)에 의해 하야리아를 분석하고 이에 따라 각 요소별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우리의 제안은 앞으 로 나타날 관습적 부분(자연, 공원, 일상)과 비관습적 구성(근대화의 유산, 역사, 흔적들)의 공존을 통해 전체 내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려 한다. 이러한 익숙한 사물(도시 정원) 내에서 엿보이는 익숙하지 않은 맥락( 하야리아)들은 새로움으로 인지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건축은 자연과 도심을 잇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지만, 낯선 풍경들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자연적 요소를 활용한 도시 정원을 제안함으로써 주변 도시 조직 과의 관계맺기와 시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보다 친숙한 시민공원이 되기를 기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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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교양관(구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꿈마루로 거듭나다
Issue 4
나상진의 교양관 조성룡의 꿈마루 어린이대공원 내 관리사무소로 활용됐던 교양관 건물이 ‘꿈마루’란 이름으로 거듭났다. 이 건물은 원래 건 축가 고 나상진에 의해 설계된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로, 수평과 수직을 강조한 명료한 구조와 자유로운 형태가 근현대 과도기의 우리 건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당초 서울시는 노후화된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 고자 했으나 근대 건축 문화적 자산으로 남기게 해달라는 권고에 따라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와이드 AR>은 꿈마루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의 ‘건축적 편집’을 거쳐 신구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전문가의 시선을 통해 확인해 보고자 한다. [꿈마루 사진 | 진효숙(건축 사진가), 공사 전 사진 | 최춘 웅(고려대 교수), 철거 사진 | 김재경(건축 사진가)]
3층 바닥을 뜯어내 전체 층을 연결시키고 구조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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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故知新+溫新知古 온고지신+온신지고
조성룡+최춘웅의 꿈마루 글 | 김미상
꿈마루의 원 건물인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은 일제하에서 단지 공업고등학교만을 마친 후 실무로 건축적인 감각 을 익힌 나상진에 의하여 1968년에 설계되었고 이듬해 1969년에 준공되었다. 이 곳은 원래 순종비 순명황후의 능이 있던 터였는데, 일본의 강점기인 1926년의 이능(移陵) 후 골프장으로 조성되었던 곳으로 해방 이후에는 특권층의 골프장으로 이용되었다. 1970년 대통령의 명으로 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변함에 따라 이 건물은 어린이 교양관으로 전용(轉用)되었으며 세월과 함께 심하게 훼손, 변경되기도 하였다. 건축가의 의도, 이 건물 이 지니고 있던 모습과 이후의 변경 과정에 관한 사항을 알기에 필수적인 원도면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 져 있으며, 단지 월간 『공간』에 수록된 도면과 사진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는 세월과 함께 쉽사리 망실되곤 하는데 그의 이름과 작품이 잊혀짐은 세상적 기준으로 빈한했던 이력과, 정부와 관련된 작품의 비밀스런 성격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상기의 옛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은 건립 후 40 여 년이 지나 건축가 조성룡에 의해 재조명과 재평가를 받고 꿈마루로 새로이 태어났다.
남서측 전경.
건축 개요 | 시행처 : 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 | 기본 계획 및 현장 기술 지도 자문 : 조성룡(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 최춘웅(고 려대 건축학과 교수) + ubac/도시건축집단 | 실시 설계 : (주)알파오메가건축사사무소, (주)채움조경기술사사무소 | 시공사 : 우이종 합건설(주), (주)하이퍼링크, (주)케이에프텔 | 대지 위치 :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 18번지 외 24필지 | 지역, 지구 : 제1종 일반 주거 지역, 자연 경관 지구, 역사 문화 미관 지구, 중심지 미관 지구, 최고 고도 지구(4층, 13m) | 용도 : 교육 연구 시설, 근린 생활 시설, 문 화 및 집회 시설 | 대지 면적 : 536,088.50㎡ | 건축 면적 : 20,195.83㎡ → 1,77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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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변의 현관.
3층 꿈마루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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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 ‘BEFORE +AFTER’는 꿈마루 전시회의 제목이며, 그 정신을 살리고자 본고에 차용하였다.
나상진의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와 꿈마루를 비교하기 위해 시대를 거슬러 조성룡 등이 이루어 놓은 현재의 모 습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원형이나 곡선 등 유기적인 형태의 평면을 하고 있는 1층은 새로이 설계, 변경되어 카 페 등의 용도로 쓰이게 되었으며, 이전에 있던 우스꽝스런 각종 장식과 채색은 걷어 내어 콘크리트 등 재료가 지 닌 고유의 색만을 채용하고 있다. 이 곳에서 조성룡 등이 가한 새로운 손길로서 외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코르텐 강판으로 마무리되고 설치된 지붕과 엘리베이터 등이다. 건축적인 조각물로써 의도되었던 경사 로는 안전상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그대로 존치시키기로 하였고, 자연을 담는 일종의 자연적 화단처럼 야 생초 등이 자라게 만들어 사람의 접근을 자연스레 금하고 있다. 주된 공간인 2층으로 인도하는 입구에의 진입은 서쪽 단부의 길게 뻗은 캔틸레버 밑으로 이루어진다. 상부 좌 우의 거대 기둥과 사각형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마치 목구조를 연상시키는 외부로 내뻗은 캔틸레버의 다각형 단부가 조소적으로 아주 강한 인상을 주는데, 거대 기둥과 캔틸레버는 시각적인 프레임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수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음영의 대조를 연출하여 내부와 외부를 자연스레 구 분 짓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내부로의 진입을 순조로이 유도하고 있다. 이런 수법은 좌우의 거대 기둥 및 상부 두 개의 두터운 슬래브가 만들어 내고 있는, 거의 매스에 가까운 구조체의 가소적 성격을 해치지 않고 강조하 는 데 유용하기도 하다. 이전에 유리벽으로써 조성된 현관홀은 어두운 내부와 어울리도록 코르텐 강판을 가공하여 만든 유리벽의 프레 임으로 전면을 구성하고 있다. 현관홀은 천장을 들어내어 상부 3층으로 공간을 연결함과 동시에 천장의 좌우, 즉 3층 외곽의 복도는 직사광을 가리고 오로지 확산된 빛만을 전달하게 만들고 있다. 그에 더해 천장에 남겨진 보(椺)를 통과함으로써 형상되는 일종의 여과된 2차 가공의 빛은 눈부심을 경감하고 적나라하게 거친 피부를 드러내게 된 보의 가소성을 한층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관홀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것은 상 부로부터 빛을 내리받아 마치 빛우물과 같은 성격의 연출을 동반하고 있는 구조물들이다. 새로 첨가된 투명 유 리 엘리베이터와 오른쪽, 즉 남측의 경사로에 떨어지는 빛은 마치 천창이 뚫린 듯 두 오브제를 강하게 어필시킴 과 아울러 시선을 끌어당겨 방문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구조물과 오브제들에 눈이 끌리면 방문객은 경사 바닥판으로써 저층에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나, 홀과 같 은 레벨에 위치하는 오른쪽의 경사로를 통하여 3층으로 오르게 된다. 3층에 오르면 바닥을 뜯어내 하부의 1층 과 연결되는, 그리고 보들이 시각적인 리듬감과 구조적인 규칙성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 주는 거대한 구멍을 내 려다보며 그 주위로 일주를 하게 된다. 서쪽 다목적 홀은 커다한 평면을 그대로 두어 여러 가지로 가용한 데크 (deck)이자 터를 만들고 있다. 복도를 통하여 동쪽으로 이동하면 유리 박스로 구성된 어린이들을 위한 북 카페 가 있으며, 이 주위로 단차가 있는 마루가 계속 연결되어 건물의 외부로 이어지고, 외부 1층의 넓고 낮은 마루와 deck까지 이어져 건물은 하나의 순환 체계를 갖는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 후면으로는 과거에 샤워실 등이 배치되었던 라커룸을 개조한 피크닉 정원이 위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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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엘리베이터와 경사로에 떨어지는 빛이 두 오브제를 강하게 어필시켜 방문객의 동선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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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못을 두고 남북으로 피크닉 정원을 두었다. 연못이 위치하는 축 선상에 외부로 출입할 수 있도록 담장 은 열려 있으며, 그 좌우의 피크닉 정원은 구획되어 각기 자율적인 성격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양 피 크닉 정원에는 5개의 공간 단위가 조성되는데 조성룡이 원래의 구조가 표현하던 힘을 보존하고자 했으나 미쳐 손을 쓰지 못해 아쉬워하는, 식목을 하느라 제거된 유니트 내 중앙의 보들을 고려에 넣는다면 요즘의 눈으로 보 자면 구조 역학상 필요 이상으로 매우 촘촘히 배치되었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라커룸의 지붕 등을 걷어 내 고 조성한 피크닉 정원은 유니트 공간마다 보 사이에 가로대를 두어 각 단위가 완결적인 하나의 정자와 같은 느 낌을 갖게 한다. 조성룡의 손이 닿은 곳으로 위에 열거한 시공간적, 빛과 조형물의 연출뿐만 아니라 상황실, 사무실, 화장실 등 각종 용도의 실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은 면밀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새로운 건축물로서 식별하기가 매우 어려 울 정도로 일반인의 눈에 변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건축물의 구조와 구성을 존중함과 아울러 어린이대공원 측이 필요로 하여 요구된 실들을 배치함에 있어 일단의 규칙은 발견할 수 있다. 대공원 측이 사용 하는 사무 공간 등은 평면에서 북쪽 면과 중앙의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각 실들은 적절한 높이와 스케일에 따라 계획되어 평면상, 그리고 3차원적으로 어느 정도 복합적이나 명확한 공간 분리와 연결을 이루어 흥미롭고 재미 있는 공간군을 형성하고, 서로 연결되지만 열린 공간 내에 독립적인 조형물처럼 매스 또는 실로써 외따로이 배 치되어 공간성을 풍부하게 조성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조성룡의 말에 의하면 집 속의 집을 계획한 것으로 웅어스(Ungers)의 ‘집 속의 집’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이점을 보여 주고 있다. 웅어스는 대체로 오브제 중심, 즉 오브제 속의 오브제, 또는 공간 속의 공간을 구 현하여 요즘 표현으로는 자기 유사적인 구조를 띄고 있으나, 조성룡의 것은 서로 다름이 존재하되 실(室) 등 요 소의 각 군(群)은 컴팩트하고 자주적인 단위를 형성하며 선형적인 연결성 역시 강하게 추구하고 있어서 각 요소, 각 실들은 일관된 언어를 지니되 성격과 배치 등은 자유로이 부유함과 아울러 타 요소를 거슬리지 않고 있다. 또 한 가지 꿈마루에서 주목할 건축적인 연출 기법 가운데 하나는, 전체 구성에 있어서—일단의 사무 공간 등을 포함하여—동선을 이용한 순환적 공간 체험의 방식이다. 일견 선형적인 연결로 이루어진 르 코르뷔지에식의 건 축적 산책을 떠올릴 수도 있으나, 최종의 (시각적) 목표와 중간 도상(途上)에서의 연출이 확정적이고 명확하여 숨 쉴 틈이 거의 없는 결정주의적인 그의 것과는 달리, 꿈마루에서는 연결의 대상과 기준이 면적인 성격의 단위 공간을 잇는 것이 위주여서 각 공간에서는 휴지(休止)와 만보(漫步), 회유(回遊) 등의 행위가 발생하게 되거나 공간인 결절점이 된다. 그러므로 이런 공간에서는 상호 연결된 독립적 지점들은 시간성의 개입과 함께, 즉 이동 과 함께 또 다른 고유의 중심성과 공간적 성격, 우주관이 필수적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위계가 있되 별로 큰 의 미를 발휘하지 못하여 각각의 주체성과 독립성이 생성되고 있다. 이처럼 개별화되어 파편처럼 각기 흩어질 가능성을 억제하고 긴결시키는 강력한 요소는 마루이다. 내부 및 외 부는 조성룡이 마루라고 명칭을 붙인 목재의 통과 공간, 진실로 마루와 유사한 성격의 목재의 공간 등으로 한데 이어지며 상호 침투하고 있는데, 로비에서 시작되는 마루는 계단 등을 통하여 사방으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건 물 전방의 너른 터를 점하여 야외의 무대나 카페와 연결된 공간, 길로 기능하는 동시에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 기 위하여 마련된, 그대로 존치된 경사로의 역할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으며 순환적인 흐름을 구성하여 건물 전체를 하나로 엮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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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무실과 피크닉 정원.
회의실과 라운지. 새로이 요구된 공간들은 완전히 기존의 체계에 동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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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북카페 복도. 세로 줄눈을 넣어 장식성이 강한 기둥이 눈에 띈다. 기존 유리벽의 프레임을 설치하여 옛 건물의 기억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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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라커룸 등을 개조한 피크닉 정원. 피크닉 정원 중앙의 연못. 보 사이의 가로대로 마치 정자와 같은 느낌의 정원. 구조주의 미학을 뽐내고 있는 전면. 브릿지와 데크 등으로 건물은 하나의 순환 체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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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도
측면도
14
15 11
8
5 4
횡단면도
11 6
5 3
종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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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3
2
1
지하층 평면도 1 꿈마루마당 2 잔디마당 3 카페테리아 4 어린이학습장
6
7
5
N
1층 평면도 5 진입마당 6 상황실 7 통신실
W
0
9
11
12
8
10
13
8
2층평면도 8 피크닉정원 9 관리사무실 10 원장실 11 회의실 12 라운지 13 연못
15
10
14
3층평면도 14 꿈마루북카페 15 야외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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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
20M
Before
☞ ‘BEFORE +AFTER’는 꿈마루 전시회의 제목이며, 그 정신을 살리고자 본고에 차용하였다.
나상진의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우수한 모더니즘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나 완전히 잊혀져 왔다. 꿈마루 프로 젝트의 실현과 함께 가려졌던 역사가 드러남에 따라 이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잖이 들려오는데, 이 건물 이 지닌 가장 큰 특징으로 수평성을 들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과의 연관성을 희미하게나마 추적하는 경향이 대부분인 것 같다. 본인의 생각에 당시 우리 나라 건축가들에 미친 4대 거장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낙수장보다는 폴 루돌프(Paul Rudolph)의 영향과 그 자취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구(烏口)로 그린 투시도 를 수록한 폴 루돌프의 작품집이 1960~70년대 우리 나라 건축계를 석권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문 건축가 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작품집을 통하여 건축 조형과 공간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해 탐구 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평면과 형태, 구조, 장식적 수법 등이 폴 루돌프의 것을 많이 닮아 있고, 당시 우리 나라의 건축계가 서양의 선진적인 움직임에 숨 가쁘게 모방하며 따라붙었던 분위기 등은 이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건물은 지형과 대문으로부터의 접근을 고려하여 배치되었다. 건물이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낮은 둔덕은 자연스레 주의를 끄는 데 효율적인 요인이다. 측면, 즉 남쪽과 북쪽의 입면은 쌍으로 구성된 거대 기둥 모음이 좌우로 배치되며 간단없는 천장 슬래브와 바닥판 등이 수평성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주입 면(主立面)을 형성하고 있는 긴 장변은 주 파사드로서 기능하고 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이 부분은 얼굴이 아 니다. 대문으로부터 비스듬하게 S자 형태로 진입하면, 서양식 신전의 정면 배치가 그러하듯 장스팬의 캔틸레 버가 내뻗은 서쪽 단변의 현관으로 인도된다. 정면은 위에 언급했듯 구조주의 미학을 뽐내고 있는 거대한 구조 체가 내뿜는 모더니즘적인 구조적 합리성의 미학을 표현하고 있는데, 동일한 수법을 콜게이트 대학교(Colgate University)의 Creative Arts Center(1963~66)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거대 기둥은 폴 루돌프의 건축에서처럼 줄눈을 세로로 새겨 넣어 장식성이 강하다. 세로 줄눈은 기둥뿐만 아니라 벽체에까지 연장되는데 건축물 세부 에서는 디자인의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여 시공 중 어설프게 겹쳐지거나 얼버무린 듯한 부분들도 눈에 띈다. 어찌되었든 나상진의 본보기가 되었을 폴 루돌프의 장식적인 기법은 구조적인 성격을 경감시킴으로써 경쾌성 을 주고 있으며, 그의 예일대학교 예술 및 건축학부 건물에서의 공간 연출, 그에 따른 빛의 연출 등의 수법은 매 너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합리주의의 교의로부터 탈선하고 있기도 하다. Arthur W. Milan Residence(1960~62)의 평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기적인 형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나상진의 1층의 유기 적 설계에 핑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나상진의 설계는 루돌프의 것에 매우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달리 그의 공간적인 구성은 매우 평면 적이다. 2층과 3층 바닥과 벽면은 공간을 창조할 수 있도록 면이 분할되거나 절개되지 않고 연장되어 판상(板 床)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다시 구조로 돌아가 이야기하면 건물 밖으로 길게 빼낸 캔틸레버는 구조 역학 법칙에 의거하여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데, 이것을 감추고 외부에서의 강한 직선의 구조적 형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부에 판을 대 완벽한 수평 구조물인 듯이 처리한 부분은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사진 A 참조) 이러한 어정쩡 함은 건물로부터 시작하여 외부로 뻗은 계단의 지지체에서도 나타난다. 북측의 계단은 두 개의 기둥으로 지지됨 으로써 구조적인 대담성과 경쾌성을 감소시키고 있으며, 더더구나 삼각형의 헌치(haunch, 사진 B 참조)를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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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배면. (출처 『공간』)
사진 A
사진 B
철거 전 사진들.(사진 최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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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하고 있는 점은 당시의 기술 수준이나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지만, 종합적인 시 각에서 고려한다면 이러한 모자람은 세심함과 미학적인 고려가 더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거듭 쓴 양피지(羊皮紙). 씌어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 조성룡과 최춘웅의 작업 이전, 그리고 나상진의 손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다양한 건축 공간 구성과 언어의 구사 는 꿈마루 프로젝트로써 비로소 풍요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의 교양관이 가지고 있던 공간적인 폐 쇄성 대신 건물 주위의 벽체를 대부분 헐어 내고 규칙적으로 배치된 코르텐강 기둥으로 무형의 벽체를 형성하 여 공간적 투명성을 부여하였고, 로비를 비롯한 각 지점에서의 빛에 의한 점진적 진행성, 시각적인 연출, 공간의 활용과 연계성, 조형성, 디테일 등의 측면에서 모든 것이 원활하고 바람직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 므로 최춘웅과 함께 시작한 작업은 그동안 건축물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것들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기본적 구 조물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보강하면서 요구되는 사무, 관리동은 기존의 틀에 집어넣어 건축물들이 집 속의 집이 되게 하여 신구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구조물들을 제거하게 될 경우에는 타 공간과의 소통, 건축 공간다운 공간을 위한 연출의 기법에 한정시킴으로써 창조적인 비움과 제거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시적으로 잘 보이는 사무관리동, 화장실 등에서의 새로운 재료의 채용, 새로운 공간 구성은 언뜻 세심한 건축 가의 손길이 닿았음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익명적(匿名的)이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이것들은 완전하게 기존의 체계에 동화되어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거추장스런 논리적 전개를 생략하고 직설적 으로 이야기한다면, 미학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이어져 내려온 복원에 관한 논의 사항과 이론들을 거의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꿈마루는 결과적으로 원래의 상태에 심각한 변화를 가하지 않으면서 현재 의 시대성을 반영하여 역사와 하나가 되도록 하고 있다. 채용된 당대의 테크닉, 디자인 트렌드는 역사성을 지니 는 요소와 조화, 양립, 병존되고 있고, 효율적인 미학적 고양을 위해 채용하려고 하는 새로운 요소들은 과거의 것과 경합을 벌이기보다는 보족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과 아울러 이들에게 필수적으로 선행되었던 사고는 과거의 상태를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한정적일지라도 원래의 부재나 구조, 디자인, 건물의 상 태 등을 가능한 한 충분히 반영하고자 하는 점에서—주된 개념은 아니지만—복원(restoration)의 성격이 강하 다고 할 것이나, 전체적으로 보아 건축물이 새로운 용도에 할당되고 기능 회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재건 또는 개축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rehabilitation’의 성격이 가장 강하게 어필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기존의 텍스트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현재의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palimpsest일진대, 꿈마루는 이와는 반 대로 현재보다는 기존의 구조와 조직이 훨씬 더 강렬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완성 또한 겨냥하고 있다. 꿈마루에서 조성룡 등이 거둔 성공의 요소는 가시적인 오브제의 배치를 통한 드라마틱한 연출이 아니라 공간의 조성을 통하여 기존의 요소에 한층 더 힘을 불어넣고 건물에는 강력한 공간성을 불어넣어 생명감으로 충만한 건축물을 만든 것에 있다. 이와 유사한 방식은 이미 선유도 공원에서도 시도되었는데 꿈마루에서는 한층 더 기 존의 틀이나 컨텍스트, 환경 등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창의적인 작업을 얹고 있다. 이들이 꿈마루에서 걷어 내 는 작업 행위는 창조적이며 가장 근본적이고 진실한 의미에서 해체주의적이다. 이들이 행한 해체는 의미의 더 함을 위한 걷어 내기이기 때문이다. ⓦ 김미상 | 한양대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벨기에 루벵가톨릭대학교(l'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예술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Dr. en philosophie et lettres)를 받았다. 현재 단우도시건축연구소 상임연구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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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사진. 이전의 우스꽝스런 각종 장식과 채색은 걷어내고, 기본적 구조물은 그대로 사용하거나 보강했다. 또 기존의 구조물을 제거하게 될 경우, 타 공간과의 소통과 건축 공간다운 공간을 위한 연출 기법에 한정시킴으로써 창조적인 비움과 제거를 의도하고 있다. (사진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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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진의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이후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쓰였다. (출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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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나상진 글 | 이행철
2000년대 이전까지 건축가 나상진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전무하였다. 다만 그의 몇 작품이 시대적 배경으로 언 급되는 정도였다.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건축가 나상진과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 2001) 이후의 연구는 목원 대 김정동 교수의 「나상진과 그의 건축 활동에 대한 소고」(한국건축역사학회, 2010)가 유일할 것이다. 그동안 과도기 건축가, 1세대 건축가, 근대기 건축가 등으로 불리는 한국전쟁 이후 활동한 건축들 중 몇몇의 스타 건축 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꿈마루로 탈바꿈한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가 건축 가 나상진을 재조명하게 된 근래의 현상은 이런 이유에서 한국 근현대 건축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흥분 되는 일이다.
건축가 나상진. (출처 『공간』)
나상진은 1924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에 전주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일본인 청부업자에 게 실무를 배우던 중 1942년에 토건회사인 카지마쿠미(鹿島組)에 입사를 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대양토 건(大洋土建)의 기술진에 속해 있다가 1950년대부터 을지로와 명동 등지에서 나상진설계사무소를 운영하였다. 1960년대 5・16 이후 나상진은 정부와 관련된 많은 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안가를 상당 수 설계하였고, 정부 관련 시설을 많이 설계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발표하지 못한 작품이 많아 상대적으로 다 른 건축가들보다 빨리 잊혀진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1970년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1973년 지병 으로 작고하기까지 건축과 도시에 관한 탁월한 이론이나 작품적 이상을 글로 남긴 적은 없지만, 새로이 받아들 인 건축 문화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실험해 본 건축가 로 그의 후인(유족 및 나상진설계사무소 소원)들은 기억하고 있다.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폴 루돌프(Paul Rudolph), 그리고 고(故) 함성권 교수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당시 청와대에서 워커힐로 이동하는 중간에 위치한 대지에 전시적인 건축물이 필요하 다는 정치계의 판단 하에 국가적으로 추진된 골프장 건설 사업이었다. 우연찮게도 나상진은 청와대의 여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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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도
배면도
좌측면도
횡단면도
1층 평면도
지하층 평면도
2층 평면도
3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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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워커힐에 이미 관련되어 있었다. 이 주목할 만한 건축물은 두 인물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미국의 건축가 폴 루돌프(Paul Rudolph)와 한양대의 함성권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건축가 김춘웅(상지건축 회장)과 이현호 교수(중앙대)에 의하면 1960년대 중후반 나상진설계사무소에서 폴 루돌프의 작품집은 가장 인 기 있는 책자였으며, 나상진 역시 그의 작품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폴 루돌프에게 영향을 받은 건축 형태적 감각을 한국에 실현함에 있어 함성권 교수로부터 구조 및 기술적 조언(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의 Twin Column과 캔틸레버 등)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건축물이 바로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 다. 특히 일명 ‘루돌프 콘크리트’라 불리는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축물이 서울컨트리 클럽하우스와 제일은행 인천지점(현 SC제일은행 인천 지점)이다. 이렇게 탄생한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그 형태 및 구조의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건축물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양식의 수직과 수 평을 강조한 상부 구조와는 대조적으로 대지와 접합하는 하부 구조는 자유로운 형태의 평면을 보여 주고 있는 데, 나상진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형태의 건축물이 한국에서 어떻게 대지 위에 앉혀져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으 로, 저층부의 외벽에 자연석을 자유롭게 쌓아 올려 전통적인 기단을 형성케 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러한 수법 은 그의 몇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작품의 매력이 우리 시대에 건축가 나상진을 다시금 기억하 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 제일은행 인천지점 중정. (사진 이행철)
폴 루돌프의 콘크리트. Government Service Center, Boston(1970). (출처 Flickr).
건축가 나상진을 추억하며 끝으로 필자가 건축가 나상진에 대한 석사 논문을 진행하면서(2000년) 인터뷰했던 그의 지인들의 추억을 곱씹 으며 2011년 우리에게 돌아온 건축가 나상진을 추억해 보고자 한다. “나상진은 감각이 좋아. 그리고 부친이 동양화가였지.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그 아버지에게서 선천적인 감각을 타고났다고 봐야지.”(엄이건 축 엄덕문 고문) “나 선생은 굉장한 멋쟁이셨다.”(중앙대 이현호 교수) “나 선생은 나서는 것을 상당히 싫어 하셨다. 그 분이 얘기하는 촌놈 정신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그래서 발표된 작품이 별로 없었다. 또한 디테일에 상당히 박식했었다. 특히 접합 부분 디테일에 관해서는 당시 건축계에서 가장 뛰어났을 것 이다.”(상지건축 김춘웅 회장) “나상진 선생은 설계 사무소의 위상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 동과 발전적인 작품을 창출하신 건축가였다고 기억한다.”(서전건축 정성환 대표) “나 선생은 건축 선배들 과 대인 관계가 아주 좋았다. 건축하는 사람 특유의 아집이 없었다. 상당히 개방적인 성격이었다. 그리고 설계업을 돈벌이로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두이건축 박종구 고문) “디테일에 밝았으나 디자인 감각도 탁 월하였으며, 시골스럽고, 민족적인 정서 쪽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수근, 김중업 씨 등 당시 인 기 있었던 건축가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인물이었다.”(무량건축 주길중 대표) ⓦ 이행철 |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현재 제주한라대학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Wide AR no.22 : 07-08 2011 Issue 4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 07-08
와이드 22호 뎁스 리포트
074
ⓦ <COMPASS 19 | 이종건> 정기용 건축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소고
078
ⓦ <종횡무진 22 | 이용재> 보성 이용욱 가옥
080
ⓦ <근대 건축 탐사 22 | 손장원> 한국 화교의 근대기 종교 건축 기행
082
ⓦ <사진 더하기 건축 02 | 나은중+유소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Visible and Invisible)
086
ⓦ <와이드 書欌 20 | 안철흥>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박용구, 전혁림, 장민호 편
087
ⓦ <미래(未來)의 지래(知來) 짐작 02 | 조택연> 미래의 공간 환경
090 092
ⓦ <Wide Focus 15 | 이희환>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
094
ⓦ <Wide Eye 02 | 김정은> 성북동의 마술과 예술 그리고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법>
ⓦ <Wide Eye 01 | 최효진>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적 상상의 끝은 무엇입니까?
COMPASS 19 | 이종건
정기용 건축의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적 소고 아름다운 사람 건축가 정기용. 그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그
날의 경계에서 바라보는데,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맞설 문화적 위
를 만날 수 있는 건, 오직 그가 남긴 흔적들뿐이다. 육체의 소멸
치로서는 긍정으로, 그리고 바바의 용어로 수행성이 아니라 교설
이 남긴 크기를 헤아리기 힘든 부재덩이가 막막하다. 건축이라는
로서 출현한다는 점에서, 풀어 말하자면 국민이 나라를 나타내
이름으로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한 세상과 거침없이 싸우고 떠난
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서사)가 국민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부
정기용. 우리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우리 시대 건축의 지혜는,
정으로 간주한다. 정기용 건축의 국가주의를 여기서 비판적으로
혹은 새겨 봐야 할 조망의 지점은 무엇일까? 그의 통찰과 고민과
보려는 것은 이 입점에서다.
실천이 겨냥한 현금의 모든 이슈들은, 그의 입이 더는 없으니 우 리가 더듬어 읽어 내고 찾을 수밖에 없는 한스럽고 안타깝고 거
정기용은, 결코 자신의 입으로 말한 바 없지만, 국가(혹은 민
의 불가능한 형국에서, 나는 이 시간 그에게서, 건축과 국가주의
족)주의 건축가라 할 수 있다. 글로벌리즘과 완강히 맞서 우리
의 관계에 대한 뜨거운 묵언을 애써 파내며 글을 쓴다.
문화를 만들려고 애썼다고 생각한다. 그가 건축을, 매우 적실하 게 문화의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고 그로써 국가
먼저, 혹시라도 건축을 국가주의의 견지에서 보는 것이 어색하
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형성하고 지키는 보루로 보게 된 것은, 아
거나 이상하다면, 그러하기는커녕 건축은 본디 국가주의와 불
마도 프랑스에서의 교육과 삶 때문이리라(자본주의가 지구의 온
가분의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기 위해, 비트루비우스
문화를 깡그리 점령한 후에도 여전히 존속할 유일한 국가 혹은
를 잠시 언급하자. 비트루비우스가 쓴 소위 최초의 건축서는, 잘
문화는 프랑스밖에 없다고 말한 프램프턴이 떠오른다). 정기용
알다시피 시저 황제에게 헌정한 것인데, 그 목적은 세계를 지배
을 국가주의 건축가로 보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다.
하고자 한 로마의 제국주의 기획을 옹호할 뿐 아니라 거기에 건축 이 일익을 담당하는 방식을 밝히는 데 있었다는 것, 그리고 비누
첫째, 그는 자신의 건축적 사고와 실천의 전략을 지나치게 보
스타스(아름다움), 유틸리타스(유용성), 퍼미타스(단단함)라는
수적이라 할 만큼(땅과 건축의 관계를 이접의 관계가 아니라
비트루비우스의 유명한 세 건축 구성 요소 중에서 비누스타스는
연속성과 조화 혹은 감통의 시각으로 본다) 우리 땅과 우리 민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로
족에서 찾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 오프
되어있었다는 지적은, 건축이 오래 전부터 국가주의에 깊숙이 개
닝 강의에서, 힘겹지만 분명히 “문제도 이 땅에 있고 해법도 이
입했을 뿐 아니라 건축과 국가가 상호 의존적이라는 사실, 그리
땅에 있다”고 말했고 자신의 책에도 그렇게 썼다. 둘째, 귀국 이
고 그로써 이미 제국(식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후 그가 서구의 현대 건축(역사, 이론, 비평)을 학습한 흔적을
사실을 보여 준다. 호미 바바를 건축 담론에 끌어들인 헤르난데
찾기 어렵다. 그의 건축에는 해체나 후기구조주의의 기미 혹은
즈의 말을 인용하자면, “건축은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강
언급이 전혀 없다. 서구 현대 건축의 시각에서 볼 때, 그의 건축
제하기 위해, 그리고 식민화된 주체들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
은 현대적 언어 혹은 감수성이 결핍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과격하
해 식민지 지배자들이 사용한 주요 수단들 중의 하나”다. 우리가
게 말하자면, 촌스럽다. 게리의 첨단 표피, 콜하스의 새로운 방식
별 문제 의식 없이 쓰고 있는 ‘아키텍처’라는 서구 용어의 역어에
의 프로그램 배열과 거기서 비롯되는 특이한 공간 구성, 하디드
해당하는 ‘건축’이라는 낱말도 그러하다. 세우고 쌓는다는 뜻의
의 유동성의 미학, 누벨의 마법적인 지각성의 현상, 칼라트라바
‘건축’의 목적어가 바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키텍
의 구조의 시학에 도무지 범접할 수 없다. 실험한 재료도 디지털
처’의 일본 번역어 ‘건축’에서 일본의 국가(제국)주의만 읽어 내
리즘이나 하이테크와 상관없고, 공간 구성도 아카데미에 흡수된
는 것은 잘못이다. 건축이라는 분과(分科) 그 자체가 그것이 비
모더니즘 건축의 다이어그램을 충실히 따르고, 구조도 가장 보편
롯된 서구 문화에서 본디 그러했고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인 라멘이고, 그가 추구한 미학도 특정한 조선 시대의 자연주
비판의 논거의 확실성을 위해 국가주의에 대한 필자의 시각을 한
의에 사로잡혀 있다. 셋째, 영웅 혹은 스타 건축가에 의해 형성
문장으로 밝히면 이러하다. 나는 국가주의를 긍정과 부정의 양
되는 서구 건축사의 서사를 맹렬히 비판한다. 그것은 곧 (서구)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건축의 부정인데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가 내부에 분명히 자리
에는 일차원적인 즉물적 존재들로 차고 넘친다(티비 뉴스를 유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심히 한번 보라.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소위 고위급 인사 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클론들처럼 모조리 그와 똑같은 꼴로 옷을
나더러 정기용의 건축을 딱 한 마디로 쉽게 표현하라고 한다면,
입고 있는 촌극을!).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들마저 마치
별 머뭇거림 없이 ‘그의 건축은 신토불이 건축(agro-cultural-
눈깔사탕 하나에 속아 넘어간 어린애들처럼, 세계적인 스타 건
architecture)’이라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몸과 그것이 태어난
축가의 작품 하나가 도시에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 어이
땅은 하나라는 뜻인데, 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 제 체질에 잘 맞는
없는(소위 ‘빌바오 효과’ 페티시즘) 세상이 바로 우리 건축 사회
다는 생각이나 주장을 담고, 그리하여 제 땅 농산물이 최고라는
니, 민선 4기 오세훈 시장이 세계적인 건축가 하디드의 WDPC로
믿음을 낳는다. 논거를 대자면 이러하다. 그는, 우리 사회의 거의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소위 스페이스 마케팅 성공 사례”로 삼으
모든 건축가들과 다르지 않게, 건축은 그것이 들어서는 땅에 따
려는 기획만을 굳이 꼬집어서 어리석다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
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땅에 거역하는 건축은 그에게 혐오의 대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공간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이 지
상이다. 여기서 땅이란 땅의 온갖 성질, 곧 땅의 직접적이고 내재
대하니, 간과할 수도 없다.
적인 논리/형국/기운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그것의 내력, 곧 역사, 그리고 그것에 들러붙어 있는 사람들의 삶, 곧 사회적 특성까지
우선,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지나치기로 하고,
포섭한다. 신토불이 사상(혹은 주장)이야 성경(흙으로 빚어져 창
정기용과 연관된 하디드의 작품만 잠시 언급을 하자. 정기용
조된 인간)과 중국 원나라 시절 『노산 연종보감』, 우리 나라 『동
이 그녀의 건축을 극히 혐오하는 이유는 역시 신토불이 때문이
의보감』 등에서 나타나듯 아주 오래 묵은 것이겠지만, 그 말이 실
다. 그녀의 대표작인 두바이 오페라하우스의 올챙이 몸처럼 매
제로 우리 사회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우루과이 라운
끄러운 유선형과 비선형 곡면 건물이, 그것이 들어서는 주변 환
드 타결 직전 농협회장이 우리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쓴
경과 관계성을 맺지 못할 뿐 아니라, 동대문운동장에 잠복된 역
이후다. 그러니, 신토불이라는 낱말이 지금에 와서는 각종 식당
사성을 파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디드
과 음식물과 농산품 등의 장사치의 캐치프레이즈로 쓰여 납작하
는 ‘환유의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작품이 “역사적, 문화
고 비루해졌지만, 그 실상은 국가주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적, 도시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 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역사와 문화와 도시와 사회와 경제라는
우리 농인들이 신토불이로써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을 저지하
수많은 차원들을 통합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고 하니,
여 우리 농사를 지키려 했다면, 건축가 정기용은 자신의 ‘촌스
문학적 수사를 동원해서 환유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
러운’ 건축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서구 건축에 당당히 맞서려
지 않고서야 무슨 칵테일도 아니고, 그 다차원적인 영역을 어떻
하지 않았나 싶다(이로써 그의 건축의 촌스러움은 전혀 새로운
게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겠는가. 수사는 수사다. 한 마디로, 감
지평에서 모종의 어떤 가치를 획득한다). 몇 년 전 독일 건축박
언이설의 포장이라는 것이다. 포장이야 필요하지 않겠는가? 대
물관에서, 서구 건축이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무주운동장
단한 물건일수록 포장 또한 대단해지는 법이다. 문제의 핵심은,
관중석 차양 구조물을 발표하던, 떳떳하고 확신에 찬 모습이 기
건축의 전통적인 본질이 그러하듯(유독 건축만 그러하겠는가마
억에 생생하다. 그의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한 흙벽이, 공간을 가
는 특히 건축이 더 그러하다), 비례 혹은 디자인 경제, 곧 내용에
르며 존재감을 당차게 드러내듯 말이다. 한번은 자신의 작업실
비해 포장이 어느 정도가 온당한가에, 곧 애에 비해 배꼽이 어느
에서 자신의 건축물이 시각적인 세련미를 갖지 못한 이유를 내가
정도 커야 하는지에 있는데, 이 점에서 서구의 현대 건축의 정점
묻자,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은 건축의 물적 상태, 특히 시각적
에 있는 하디드의 건축과 그녀가 디자인한 WDPC는 적이 의심
특질의 완성도를 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바람이 지나듯 답했다.
스럽다. 내가 WDPC의 건축적 의도에 대해 품는 가장 강력한 회
그리곤 외국의 스타 건축가들이 우리 땅에 설계하고 지은 것들
의의 근거는, 소위 유동성(fluidity)이라는 현대적 감수성을 표
에 대해 적잖은 불쾌함을 표시했다. 예컨대, 동대문운동장에 들
출하는 그녀의 디자인은 장소 불문, 스케일 불문, 용도 불문, 별
어선, 곧 개관할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 대표적인데, 정기용의 불
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각종 상품들 곧 스와
쾌감은 거의 혐오 수준이었다.
로프스키 장신구, 루이비통 가방, 커피 셋트, 테이블 등은 매끄
서울시가 나서서 건설하는 소위 이름도 거창한 동대문의 ‘월드
사적, 문화적, 사회적, 심지어 유틸리타스적인) 맥락은 별 의미
디자인 파크 앤드 콤플렉스’(이하 WDPC로 표기). 늘 세계적인
가 없다. 그녀의 디자인 어휘(곧 브랜드)가 인식되도록 하는 것
러운 유선형 형태 일색이다. 그것들의 입지를 결정해 주는 (역
것에 목이 마른 고질적인 열등감의 소산인지, 장사치든 공무원
이 중요할 뿐이다. 결국, 서울시가 애초에 잡은 예산을 1,500억
이든 혹은 개인이든, 모두 영어로 포장하려는 행태가 무슨 얼빠
이나 초과 지출하면서 서울 시민들이 얻게 되는 것은, 우리도 하
진 광대마냥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측은하다. 권력에 기생하는 건
디드라는 상표의 상품 하나를 가지는 것에 불과한 꼴이다. 그럼
축 지식인들, 권력의 개처럼 행세하는 고위 공무원들, 우리 사회
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이미지는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을 입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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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하는 까닭에 그것이 생산하는 브랜드 스케이프(brand-scape)
상도, 담론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들의 결과물들이 그들의 역
는 장관을 이루고, 그리하여 그것을 눈으로 보는 자들은 거기에
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온당한 감동과 찬사를 기꺼이 헌사한다. 유물론의 승리, 기호와
들로부터 얻게 되는 것은, 앞서의 하디드에서처럼, 브랜드들이
이미지의 지배에 저항 없이 복속한다. 정기용의 적의는 극히 소
다. 우리도 ‘그들이 디자인한’ 건물들을 가졌다는 자부심이다. 이
수에게만 수용될 뿐이다.
로써 마치 우리 공간도 그들의 명성처럼 질적으로 더불어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있겠지만, 그로써 우리의 삶의 공간이 실
문제를 대중에게 돌릴 수는 없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으니, 오히
제로 좋아진 결과는 거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결
려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소수들이 정작 문제일지 모른다. 현대
과물만을 놓고 볼 때, 우리의 건축가들도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
인문학과 미학의 담론과 예술 작업들이 대부분 그러한데 건축계
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가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건물
에서도 특히 게리와 하디드의 건축은 이미지에 본질이 있다 할 정
들을 우리 사회에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건축주의 문
도로 유독 표피에 집중한다. 극적으로 말하면, 작금의 세계상은
제가 일차적이다. 스타 건축가들이 하기(그들의 이름)를 바랄 뿐,
본질은 파괴/소멸/불가능하고 오직 유동적 이미지만, 그러니까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결과물을 정작 원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
수시로 변하는 껍질, 그것도 비현실적인 껍질밖에 없는 그런 모
고, 설령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원하는 경우에도, ‘그들’이 하기
습이다. 앞에 쓴 비트루비우스의 비누스타스의 문제와 연결시켜
만 하면 별 문제없이 그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순진하게 낙관할
서구 건축의 기획의 본질을 주장하는 것은 일견 좀 지나치게 단순
뿐,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수준작을 식
한 면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별해 내고, 요구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작업을 진행시켜 나
보이게 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비트루비우스가 비누스타스를 새
가는 문화적 행동과 윤리적 책임)을 결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
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는 도구로 생각했듯, 서구(동양도 별
리의 건축 환경에도 탓이 있다. 그들의 디자인은 소위 ‘로컬 건축
반 다르진 않지만)의 역사에서 건축은 권력(종교, 정치, 자본)을
가’라 부르는 우리 건축가가 실무자로 끼어야 실현될 수 있는 여
현시하고 그리하여 공고히 하는 일차적인 도구였다(따라서 건축
건인데, 그들의 디자인을 풀어 낼 우리의 기술력, 곧 건축의 하부
은 오직 권력에 의해서만 현실화된다). 그리고 그 도구의 작동 방
구조가 부실하고, 게다가 경직된 건축 공무의 문제까지 겹쳐 상당
식은 스펙터클의 생산을 통한 감각(특히 눈)의 포획, 그리고 그
한 변형이 초래된다. 한 마디로 우리의 문화적, 기술적, 행정적 그
것을 통한 영혼의 지배였다.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함으로써 관
릇이 작아서 큰 그들을 충분히 담아 낼 수 없다는 말이다.
자를 압도하고 무력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기획한 자의 그리드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혹은 현
리베스킨트의 현대아이파크 사옥처럼, 모든 조건들을 감안하
대의 공식 예술이라 부르는 광고가 일상을 정복한, 그야말로 온전
고서라도 거의 모든 책임을 스타 건축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한 개화기에 접어든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라는 오늘에 이르기까
정당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이름만 얻었을 뿐, 천박한 결과물
지는, 시대에 따라 크기의 차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포장 안에 모
을 낳은 최악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
종의 내용물(유틸리타스)이 있었다. 그러다 내용물은 사라지고
타 건축가의 수입 건축이 마냥 헛짓이라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혹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껍질 그 자체가 이미 내용물(중심)이
세상사 혹은 인간사가 다 그러하듯, 어떤 것도 무조건 나쁘기만
된 현재의 사회를,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라 명명했는데,
하거나 좋기만 한 것은 없지 않은가? 문제는 늘 어떻게 좋은 것은
맥루한이 미디어(매체)가 곧 메시지라 공표한 것과 비슷한 형국
살리고 나쁜 것은 걷어 내느냐, 곧 하기 나름에 달려 있지 않겠는
이다. 마르크스의 견지에서 보면, 교환 가치(브랜드, 기호)가 사
가? 수입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 이번에는 앞의 경우와 반대로 좋
용 가치(실물)를 온전히 대체한 셈이다. 이로써 서구 세계는 비누
은 점에서, 또 다른 특성을 하나 공유하는데, 그것은 딱히 한 마
스타스로써 마침내 세계를 거의 깡그리 접수했다. 휴머니티를 현
디로 규정할 수 없는 모종의 세련성이다. 조형이든, 공간감이든,
란한 감각의 세계의 망으로 포획한 소산이다. 신토불이를 외치던
재료든, 스케일이든, 프로그램의 배열 방식이든, 적어도 하나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 농산물을 잘 지켜내고 있을까? 세상의 대세
뭔가 분명히 좋다. 근본적으로는 디자인 수준의 차이 때문이겠지
를 이길 수 있을까? 정기용이 저항했던, 그가 일컫던 소위 ‘형태
만, 그 이외의 요인들도 영향을 미치는 게 확실하다. 우선, 디자
만능주의’ 서구 건축에 우리도 저항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은
인 비용의 차이다. 디자인 비용을 현격히 많이 주는 덕에, 디자인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어린왕자가 우리 중에 얼마나 있을까?
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스템이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시공비 차이 도 상당하다. 그들이 짓는 건물들은 더 비싸다. 그리고 디자인을
정기용의 신토불이 건축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부터 이 땅에 이
결정하는 권한에서도 우리 건축가들에 비해 월등히 크고 넓다.
식되어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소위 아주 잘나가는 외국 건축
한 마디로, 우리의 건축주들은 수입 건축가들에게 경제적으로든
가들의 건물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길 요청한다. 스타 건축가들
배려의 측면에서든, 거의 무조건 후덕하다는 말이다. 물론 비용
의 수입 건물들은 한 가지 묘한 특성을 띤다. 거의 모두 희한하게
대비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가치가 의문스럽지만, 여기서 효과는
도 그들의 대표작 리스트에 오르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비평 대
명품 브랜드처럼 딱히 사용 가치에 한정되지 않는 까닭에 일반적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인 평가가 불가하다. 어찌 되었든, 결과물들에서 우리가 모종의
게 존재함으로써, 그 크기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적어도 그 흐
세련성을 느끼는 만큼 우리는 건축가로서 혹은 건축주로서 혹은
름이 거기에 부딪쳐 갈라지고 깨어져 거기에 불가해한 텅 빈 공
사용자로서 혹은 풍경의 감상자로서 다양한 자극들을 받는다. 그
간을 발생시키는 시적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가? 세파의 흐름 속
중 더 나은 것을 지향하고, 요구하고, 게다가 ‘우리가’ 만들어 내
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미학이 현상하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 그
고 싶고, 그것도 우리가 더 잘 만들어 내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
의 신토불이 건축의 국가주의의 가치가 아닌가?
키는 것은, 우리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만큼 긍정적이다.
정기용 건축의 국가주의가 문제스럽게 보이는 것도 바로 그 지 점이다. 그가 미국을 원천적으로 혐오하고, 서구의 현대 건축(그
수입 건축으로 인해 세상에 대해 우리가 눈을 좀 더 열 수 있다
리고 디지털리즘과 후기구조주의 담론)을 더 이상 흡수하지 않
면, 그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 나라만 잘 살겠다는, 우
고, 아니 귀국 이후 어느 시점부터 유독 건축 학습만을 중지하고
리 나라가 최고라는 그러한 독불장군식의 편협한 시야를 벗어나
오직 이 땅과 이 땅의 민중들에게 온 맘을 주기 시작하면서, 자신
다종다양한 세상을 우리가 품을 수 있다면, 그래서 국경을 넘어
도 모르게 자기 봉쇄의 과정에서 자신이 아는 바의 건축 지식을
선 휴머니티와 지식과 감성의 교류가 발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거의 신앙에 가까운 수준의 건축관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근본주
좋은 일이겠는가? 우리가 우리를 인식하고 우리를 성장시킬 수
의의 색조가 드리우는 지점에서부터 말이다. 예컨대 땅과 건축,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자의 존재에 달렸다.
그리고 도시와 건축의 관계가 그러하다. 땅과 건축의 관계를 정
더 나은 타자를 통해 배우고, 더 나쁜 타자를 통해 깨우치고, 다
합적으로, 그러니까 자연주의로만 보는 것은, 그리고 도시와 건
른 존재들을, 다른 세상들을 봄으로써 나의 윤리를 좀 더 보편적
축의 관계를 연접적으로, 그러니까 꼴라주나 이접의 관계를 부정
으로, 합리적으로 향상시키고, 다른 문화를 향유하고, 다른 문화
혹은 도외시하는 것은 현대성의 조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건축
를 통해 우리 문화를 생각하고, 문화의 교섭과 교차를 통해 새로
의 의미와 가치가 부동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
운 문화를 창건하고, 이 모든 것의 계기를 수입 건축이 제공할 수
로 인간의 조건도, 인간의 삶의 방식도, 세계의 상도 그러하기 때
있다. 세상은 이미 열렸으니, 쇄국은 더 이상 불가하니, 차라리 좀
문이다. 물론, 우리가 아는 지식도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더 적극적으로 응전하는 편이 훨씬 지혜롭고 이득이다. 세계의 역사는, 그리고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국가주의가 근본 그리고 바로 여기에 신토불이 건축의 가치가 놓여 있다. 응전
주의와 결탁할 때 얼마나 위험한지 여실히 보여 준다. 국가주의
은 맨몸이 아니라 무엇으로써 하는 것인데, 신토불이가 바로
는 분명 서구 세계, 그리고 서구 건축이 온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세상에 내어놓음으로써,
이 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지만, 그것은 자기 비판과 경계의 날
그것의 한계도 인식하고 가능성과 잠재성도 분명하게 볼 수 있
을 잃는 순간(자기 자신을 포함한 안팎의 권력을 방치하는 순간),
을 것이다. 정기용 건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측면이 바로 그
바로 그 절실한 만큼 위험하다. 오늘날 세계주의의 흐름을 비껴서
러한 데 있다. 곧, 스펙터클로 감각을 사로잡는 데 거의 모든 자
살아갈 방도는 없다. 결국 세계주의가 가능한 형태의 국가주의가
원을 소모하는, 그로써 후기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혹은 논리
아니고서는, 건강하지도 않거니와 현실적이지도 않다. 내 것을
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서구 현대 건축의 도도한 흐름
주장하되 남의 것에 대해 열려 있는, 그리하여 이성의 토대에서
에 편승하지 않은 채, 아니 그것에 역류해서 도리어 건축의 물질
상호 교섭을 통해 피차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찾아 나가며 보편적
적인 감각의 유혹을 거부한 채, 기호와 브랜드와 이미지와 표피
인 휴머니티를 진작시킬 수 있을 국가주의를 지향해야 하는데, 자
와 교환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에 등을 돌린 채, 사용 가치를 여전
본이 정치 권력의 향방을 쥐어틀고 있는 소위 후기자본주의 상황
히 건축의 중심에 놓고, 주변에 녹아들고, 땅의 아름다움을 살려
에서 그 현실적 가능성이 도대체 얼마나 있을지, 혹은 있기나 한
내고, 인간의 삶의 소소한 문제들을 끌어안고, 그리하여 이 땅과
것인지, 나로서는 감히 한 마디 말조차 거들 수 없다. ⓦ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을 건축의 주체로 만들려고 애쓰는 신토불이 의 국가주의 말이다. 정기용의 건축에는, 서구의 현대 인문학과 미학으로는, 서구 현
이종건 |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이며 본지 자문위원이다. 해박한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우리 건축계 안팎의 다양한 이슈들을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책으로 역서 『건축과 철학—건축과 탈 식민주의 비판 이론』(시공문화사)이 있다.
대 건축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고집스러움이 남아 있다. 서구의 견지에서 규정하는 건 축의 의미와 가치가 작동하지 않는, 그리하여 그들의 그리드에 배 치할 수 없는, 따라서 비건축이라 할 수밖에 없을 그러한 이질적 인 미지의 덩어리가 있다. 그의 건축으로써 도도한 현대 건축의 흐름을 바꿀 수는 결코 없겠지만, 거기에 요동치 않고 고집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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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22 | 이용재
보성 이용욱 가옥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본관은?” “여의도.” 다른 아가씨에게 물
피가 날 만들고 있는 거죠.
었다. “본관은?” “본관이 뭐죠.” 다시 다른 학생에게 물었다. “본
보성 이용욱 가옥에서 민박. 어라 용자. 이 집도 우리 집안. 용자
관은?” “경기도…….”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제일 한심한 사
돌림은 하나 위. 재자 돌림은 나. 종자 돌림은 하나 아래다. 내 딸
람은?” “근본을 모르는 놈.” 창조학교가 미당 시문학관, 태백산
은 여자라 이화영. 돌림자 안 쓰고.
맥 문학관 투어에 나섰다. 멘토는 김원, 이종상, 조정래. 그럼 나
이용재, 김원, 이종상의 공통점은? B형이다. 반골. 고집도 세고.
도 가야죠. 꿈에 그리던 이종상 만나러.
조정래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혈액형은?” “A형.” 옆에 있던
이종상 화백은 5만 원권 그림 그린 분. 광주 이씨 광원군파 22세
이종상 화백 왈. “예술가는 B형이!” 조정래 선생 왈. “더 센 놈은
손. 난 21세 손. 만났다. “저는 이용재라고.” “한자로 써 보길.”
A형이 많걸랑.” 기 싸움. 불꽃은 튀지만 예는 갖추고 싸운다.
“李勇載.” “그럼 파는?” “이자 극자 돈자.” 절을 하신다. “그럼 아
이틀 내내 보성군수가 에스코트. 휴일임에도 별들이 떴으니. 소
저씨 되시네요.” 나도 절을. 항렬은 내가 높지만 연상인 관계로.
설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을 쓰고. 건축가 김원이 집을 짓고. 이
이종상 화백은 30대에 5천 원권 그리고 60대에 5만 원권 그린 분.
종상 화백이 벽화를 그렸다. 자고로 센 놈들은 같이 안 하죠. 서
물었다. “5만 원권 그리고 받은 개런티는?” “얼마일 거 같은가?”
로 잘나. 그런데 엮였다. 하늘의 명이 있어야 가능한 일. 이종상
“5억…….” “내가 그 정도 받고 그리겠니!” “그럼 50억?” “알아
화백의 고향은 충남 예산. 옆집은 추사고택. 놀이터가 추사고택.
서 판단해라.” 전 대법원장은 이용훈. 내 부친도 용자 돌림. 이런
잘 태어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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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이용욱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159호. 김원과 이종상은 사
고 수단이다 애들아.” 아셨죠.
랑채. 여자들은 안채. 난 행랑채에서 자고. 대한민국에서 남자들
조정래의 부친은 법화종 스님.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 놀렸다. 너
은 기타 등등이죠. 이 강골마을은 광주 이씨 집성촌. 보성에서
부친이 까까중이지. 한은 쌓여 가고. 그래 『태백산맥』이 나오는
는 우리 집안의 도움 없인 군수를 할 수 없죠. 이종상 선생은 이
거죠. 김원과 이종상의 부친은 초딩 때 돌아가시고. 역시 한이. 난
중재 의원이 자던 방에서 잤다고 자랑. 이중재는 나랑 항렬이 같
황태자였고. 그래 한이 없어 별이 못된 거고.
죠.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6선 의원 하신 분. 지금은 아들 이종구
항상 뿌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바뀌었걸
가 한나라당 의원.
랑.” 2,500년 전 공자 시대에도 이런 말이 유행이었죠. 시대는
조정래 왈. “내가 수학이 약해 소설가로 돌았다. 아니었으면 김원
뿌리를 아는 사람이 바꾼다. 뿌리를 모르는 사람은 구경하면 되
선생과 붙었을 텐데.” 김원 왈. “아이고 천만다행이네요.” 건축은
고. 내 딸은 지금 불편한 한옥 체험을 끝내고 유럽 여행 중. 혼
인문학의 정수죠. 이종상은 서울대 미대 1학년 때 4학년 연구실
자. 돈이 많아서 보내는 게 아니죠. 미래를 위해. 과연 누가 이길
로 월반. 국산 토종. “왜 외국에 안 나가셨는지?” “동양화가 전공
까요! ⓦ
인데 왜 나가니.” “아, 예.” 이종상, 조정래 특강의 요점은 이렇다. “얘들 냅둬라. 부모나 똑 바로 걸어가라.” 나랑 같은 말씀을 하시죠. 이종상 화백에게 말 했다. “외동딸이 8월에 영국으로 간다는 통보를.” “왜?” “디자인 공부하러.” “그래! 냅둬. 돈만 대 주고.” “아, 예.” “광주이씨 여
이용재 | 건축 비평하는 택시 드라이버로 유명하다. 이전에도 몇몇 책 을 썼으나 특히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는 전업 작가로 나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 기행—이색박물관 편』과 『이용재의 궁극의 문 화 기행 2—건축가 김원 편』(도미노북스)을 연이어 출간했다.
자들은 기가 세니 그냥 냅둬라.” “마누라가 자기가 번 돈은 다 자 기 거고 내 것도 자기 거라는데요.” “맞네.” 이종상 특강 중. “선악을 다 사랑해라. 악에게도 배울 게 있다.” 숙명이죠. 강골마을 한옥 체험 수입은 다 마을 돈. 정부의 지원도 거부. “불편한 한옥 체험”하는 곳. 이종상은 서울대 미대 교수. 이 종상 왈. “요새 서울대생들 눈이 맛이 갔다. 왜냐면 목표를 이루 었으니 공부를 안 하는 거다. 서울대는, 카이스트는 목표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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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 탐사 22 | 손장원
한국 화교의 근대기 종교 건축 기행 수 있는 곳으로 불교와 도교에서 신봉하
다만 ‘자항선도(慈航善渡)’라는 편액에
면서 그 안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자국
는 신을 모신 공간이다. 서울 명동에는 한
1916년에 해당하는 문구가 있고, ‘영명천
에서 섬기던 신을 모시는 종교 시설을 세
국화교달마불교회(각주 1)의 사당(廟宇, 묘
고(英名千古)’ ‘자심제세(慈心濟世)’ ‘불
웠다. 그중에서도 중국인이 세운 공소(公
우)인 ‘거선당(居善堂)’이 있으며, 인천에
광보조(佛光普照)’라는 편액은 1928년에
所)와 일본인이 세운 신사는 자국의 민간
는 ‘의선당(義善堂)’이 있다.
설치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최근에는
신앙과 결부되어 있어 민족적 특성이 가
이처럼 공소가 화교들의 자발적인 노력
인천광역시 화교협회가 의선당을 협회지
조계지를 중심으로 외국인 마을이 생겨나
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공간이었다. 신사
으로 세워진 것과 달리 기독교회나 성당
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면서 안내판
를 비롯한 일본 종교 건축물은 대부분 철
은 신부나 선교사가 한국 화교의 선교를
을 세운 안내문에는 설립 연도를 1893년
거되었고, 남아 있더라도 다른 용도로 바
위해 설립했다. 화교 기독교회는 20세기
으로 밝히고 있다.
뀌었지만 화교의 종교 건축물은 지금도
초 개항장을 중심으로 세워진 이래 지금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는 중국의 전통 방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
식인 사합원으로 되어 있으며, 건축 자재
한국 화교가 신앙하는 종교는 불교, 도교
국 선교를 위한 전진 기지로서의 의미가
는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가져왔다는 기
가 주류를 이루고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
강조되고 있다. 출발이 가장 늦은 화교 성
록이 있다. 의선당에는 화교들이 숭배하
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화
당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천, 부산,
는 불교, 도교, 민간 신앙과 관련된 신들
교의 집단 거주지를 중심으로 세워진 공
대구에 설립되었다.
이 모셔져 있다. 건물 중앙에는 관음보살 이 좌정하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관공(관
소, 교회, 성당은 화교의 문화적 특징이 담긴 종교 건축물이다. 이 중에서도 공소
1. 공소 : 의선당
우)과 용왕을 모셨다. 좌우 가장자리에는
는 화교들의 종교관을 가장 명확하게 알
의선당의 건축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각각 마조(媽祖)와 호삼태야(胡三太爺) 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여러 신들
한국화교달마불교회는 1917년 3월 왕유방이 만주에서 서울로 와 포교를 시작한 데 기원을 두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제29대 손인 달마조사를 모신다. 1957년 10월 7일에 창립되어 1963년 7월 30일 한국화교달마불교회가 불교 단체로 등록되었다. 각주 1)
이 더 봉안되어 있다. 화교들은 집안의 태평과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관음보살을 모셨고, 관공은 재물신
의선당 전경(2005년). ㄷ자형 배치로 완벽한 사합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본전 앞에 건물 형상의 시설물을 배치하여 그 형식을 유지하려 한 것을 알 수 있다. 수리 전이라 현재의 모습과 상이하며, 본전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천막으로 지붕을 덮어 놓았다. 의선당 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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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중화기독교회.
으로, 용왕은 물(水)에 해당하는 신으로
걸린 공간이 있다. 이 곳은 화교 사회에
년 5월 본당이 되었다. 1964년 6월 대구
여긴다. 마조는 배의 난파를 막아 주는 신
서 집단 간 혹은 개인 사이에 벌어지는 여
화교의 집단 거주지 안에 위치한 종로 성
으로, 자신이 부리는 배의 모형을 만들어
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곳으로 원만한
가병원 터에 부지가 마련되어 같은 해 9
마조에게 바치면 난파를 막아 준다고 믿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며칠 동안 문
월 28일 봉헌되었다. 이후 위 신부가 떠
는다. 청나라 관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호
을 걸어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고 하며,
난 뒤 천주교 대구대교구 근로자 회관으
삼태야는 여우의 정령으로 재앙을 물리치
이 곳에 들어온 사람은 유구필응의 원칙
로 사용되면서 문을 닫았다가 1985년 근
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모신 신이다.
에 따라 생각하면서 상대방과 문제를 풀
로자 회관 소비자 센터를 개축하여 성당
한편, 의선당 안에는 ‘나만 생각하지 말
어 나갔다고 한다. 인천에는 의선당 외에
으로 쓰고 있다.
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라는
중화회관에도 관우의 영정, 천후성모(마
뜻인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현판이
조) 향로가 봉안되어 있다.
2. 한국 화교 성당 한국 화교만을 위한 성당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고 그 세력도 작은 편이다. 1960년 인천을 필두로 대구, 부산에 세웠지만 현 재 인천에 세워진 화교 성당은 한국인 신 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화교가 직접 관리하는 성당은 부산화교성당뿐이 다. 부산시 초량동에 위치한 부산화교성 당은 1962년 8월 23일에 초대 중국인 신 부인 유철쟁(劉鐵錚)신부가 세웠다. 2003년 당시의 의선당 지붕 장식. 아래 사진 들과 비교해 보면 현재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구화교성당은 대구시 중구 종로2가 35 번지에 있는 대구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 로 중국인 위희신 신부가 부임하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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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천주교회.
인천중화기독교회(2002년). 특징 없는 교회 건축물, 옥상의 컨테이 너 박스, 십자가, 화표, 홍등이 어우러져 묘한 경관을 연출한다.
인천중화기독교회(1922년).
옛 이름이 ‘선린화교본당’인 해안천주교
는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화교
회는 북성동 3가 10번지에 위치한 건물의
에 대한 선교를 계속하면서 역사를 이어
2층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화교들은 당
나가고 있다.
시만 해도 중국에서의 생활 방식을 그대 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신앙 생활에도 중
3. 여한중화기독교
국어가 쓰였다. 1960년 4월에 이르러 만
전 세계 화교를 위한 기독교회는 9,600여
주 후센 지방의 교구장 서리였던 맥코막
개, 관련 기관은 3,500여 개로 알려져 있
(Josesh McCor) 신부가 유아 세례를 주
다. 화교 기독교회는 대만, 홍콩, 말레이
었다. 1962년 맥코막 신부는 수형 생활 기
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간 저축한 돈과 교황청에서 보내온 선교
집중되어 있으며, 미국에도 많은 수가 있
비를 모아 낡은 2층 건물 두 채가 있는 인
다. 한국 화교의 기독교인 여한중화기독
여섯 곳의 교회는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천시 중구 선린동 26번지에 대지 239평을
교(旅韓中華基督敎)의 시원은 1912년에
않다. 중화기독교회에는 한국 화교나 한
인천중화기독교회 정초석.
있다. 이 가운데 한성교회를 제외한 다른
마련했다. 1966년 6월 9일 현재의 성당이
입국한 데밍 선교사의 부인인 중국 저장
국인 목사가 사목하고 하고 있으며, 신도
완성되었으며, 작은 2층 건물은 교육관으
(浙江)성 진화(金華) 출생인 데이밍 여선
는 한국 화교, 중국인, 한국인이 출석하
로 사용됐다. 1970년대에 이르러 많은 화
교사와 산둥(山東)성 출신 중국인 처다우
고 있다. 참고로 1961년 당시 중화 기독
교들이 대만으로 옮겨 감에 따라 신도 수
신(車道心) 장로가 서울 YMCA에서 첫
교회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어 이
가 급감하면서 화교 성당으로서의 기능은
집회를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를 기술한다.
축소되었고, 반면 한국인 신도 수가 늘어
설립 초기인 1910년대에는 서울, 인천, 원
인천중화기독교회는 데이밍 여선교사가
새로운 성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
산에만 화교 교회가 있었으며, 현재는 한
1917년 6월 작은 건물을 임대하여 세운
라 1972년 10월 2일 해안본당이 설치되어
성(서울)중화기독교회를 중심으로 인천
교회로 1922년 현재의 인천시 중구 선린
성당 이름이 해안천주교회로 바뀌어 현재
(1917년), 부산(1929년), 수원(1955년),
동 3가 7번지에 벽돌조 단층 건물을 신축
에 이르고 있다. 신도는 이 일대에 거주하
대구, 영등포(1959년), 군산 등 총 7곳이
하여 옮겼다. 작고 아담한 이 건물은 2002 년 80년의 역사를 마감했고, 그 자리에 신 축된 건물에는 어린이집과 인천중화기독
☞ 1961년 중화 기독교회 현황 교회별
교인수
교회가 들어서 있다. ⓦ 직원수
한성중화기독교회
260 19 (목사 2, 전도사 2, 장로 1, 집사 14)
인천중화기독교회
185 15 (목사 1, 집사 9, 주일학교 교사 5)
수원중화기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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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 교회 1961년 교회 현황 보고. 교인 수는 성인과 주일학교 아동을 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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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원 | 본지 고정칼럼위원으로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이다. 근대 건축 답사를 통 해 우리 나라의 근대 건축, 특히 개항장 중 심의 근대 도시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 힘 을 쏟고 있다.
<사진 더하기 건축 02 | 나은중+유소래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히로시 스기모토
(Visible and Invisible)
(Hiroshi Sugimoto)
Hiroshi Sugimoto, U.A. Playhouse, New York, 1978, <Theaters>
오래전 보았던 감동적인 영화를 떠올려 본다. 영화 전체의 줄거리보다는 특정한 장면에서의 배우의 표정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흘러나 오던 선율이 혹은 영화를 지배하던 진한 계절의 향기가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지만, 사람들 개개인의 기억에는 다르 게 기록된다. 이렇게 시간은 기억 속에 저장된다. 여기에 한두 시간 남짓한 한 편의 영화를 고스란히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영화의 제목도 내용도 알 수 없는……. “만일 상영되는 한 편의 영화를 한 장의 사진 프레임에 담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을 가진 히로 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는 실험을 위해 촬영 장비를 들고,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한적한 극장에 갔다. 영사기에 근접해 자신의 대형 카메라를 설치한 후 영화의 시작과 함께 셔터를 열고 한 장의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여의 영화가 끝나자 그는 비로소 셔터를 닫았다. 그 날 밤 스기모토는 필름을 현상하면서 화면이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첫 번째 실험에서 자신이 원 한 이미지를 얻은 그는 1975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전역을 다니며 여러 극장을 촬영하였다. 그 중에서도 1920~30년경에 지어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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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식 극장을 모방한 화려한 영화관이나 1950~60년경에 성행하던 야외 자동차 극장을 다니며 장노출(long exposure) 기법을 사용하여 <극장(Theaters), 1975~2001>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스기모토의 극장 사진은 흔히 우리가 영화관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험과 상반된 다.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눈이 부시게 빛나는 비워진 스크린이며, 그 빛과 노출된 시간에 의해 선명하게 드러난 극장 내부의 모습이다. 스기모토는 <극장> 연작에서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현대성(contemporariness)을 탐구한 다. 19세기 초 다게르와 니에브스에 의해 발견된 사진은 물체의 움직임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여 영화(motion picture)를 탄생시켰다. 그 역사를 길게 나열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영화가 1초에 24프레임으로 구성된 연속된 이미지의 나열이라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스기모토는 극장 사진에서 이 연속된 이미지를 다시 한 장의 이미지로 압축한다. 하얗게 발광하는 스크린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프레임이 지나간 한 편의 영화이며, 모든 형태과 색, 그리고 응축된 시간을 내포한 채 스크린을 가득 메운 하나의 빛 혹은 비워진 상태(emptiness), 무의 상태(nothingness)로 기록된다. 사진 중앙에 놓인 하얀 스크린이 시간과 그 안에 담긴 내러티브의 압축이라면 우리가 두 번째 목격하게 되는 것은 시간을 통해 압축된 장소의 냄새이다. 상영 시간 동안 스크린에 반사된 빛의 잔향들은 그 곳을 둘 러싸고 있는 공간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비록 처음 사진을 마주했을 때, 그 장소는 밝음을 드러내기 위한 상대적인 어둠으로 인식되지 만, 그동안 적층된 빛과 그로 인한 깊이 있는 심도는 어두움이 오히려 더 진한 빛을 발하는 공간의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또한 자동차 극장 사진의 경우 실내 공간이 아닌 외부에 위치해 있음으로 인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궤적들이 기록된 다. 고정된 스크린과 미세하게 움직이는 밤하늘이 만드는 이야기는 인공과 자연의 상호적 관계로 확장된다. 히로시 스기모토는 1948년 도쿄 태생으로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뒤 1970년에 미국으로 이주, LA에서 사진을 공부하 였다. 졸업 후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타 문화와 다른 사회 안에서 동시대성을 몸에 익힌 그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 며 현재 뉴욕에서 사진을 매체로 현대성을 표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스기모토의 주요 작품들에는 수많은 나라의 바다 수평선을 기 록한 <바다 풍경(Seascapes), 1980~2002>, 시간과 장소의 관계를 드러내는 <디오라마(Dioramas), 1975~1999>와 <극장(Theaters), 1975~2001>, 빛과 그림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 주는 <그림자의 색(Colors of Shadow), 2004~2005> 등이 있다. 또한 눈에 보 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사진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건축(Architecture), 1997~2002>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디선가 한번쯤 마주했을 초점이 흐려진 건축 사진, 스기모토의 <건축> 시리즈는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건축 사진과 상당히 다르다. 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을 한번 비벼 보기도 하고 몸을 비틀어 보기도 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직 수평의 각을 맞추 고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심도 깊은 일반 건축 사진과 다르게 그의 사진에서 건축물은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흐려져 있다. 대상의 모든 디테일이 지워지고, 형상과 그림자가 녹아내린 것 같은 표백된 이미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초 점 거리를 두 배에서부터 무한대로 늘려 피사체의 초점이 맞지 않아(out of focus) 생긴 광학적 오류의 결과이다. 스기모토는 이렇게 대상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하여 20세기의 랜드마크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건축물은 르 코르뷔지 에의 빌라 사보아(Le Corbusier, Villa Savoye),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시그램 빌딩(Mies van der Rohe, Seagram Building), 프랭크 로 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 미술관(Frank Lloyd Wright, Guggenheim Museum) 등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모더니즘의 대표작들이다. 흐 릿하고 모호한 이 건축 사진에 대한 의구심은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일관된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의 극장 연작에서와 마찬가지
iroshi Sugimoto, Union City Drive-in, Union City, 1993, <Theaters>
Hiroshi Sugimoto, World Trade Center, 1997,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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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shi Sugimoto, Villa Savoye, Le Corbusier, 1998, <Architecture>
로 그는 이 곳에 시간이라는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이미 구축된 건축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건축가가 최초의 아이 디어를 구상하는 바로 그 단계의 시각과 통찰력을 재현한다. 이러한 건축의 디테일을 제거한 개념적 사진들은 그것이 흐려진 이미지 라 하더라도, 오히려 내재된 불완결성으로 인해 최초의 강력한 상상력과 함께 본래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사진은 이 미 땅에 구축된 결과물을 찍었지만 곧 풍부한 아이디어를 불어넣을 비워진 종이와 같이 느껴진다. 이것은 건축 사진이라는 재현의 방 식이 단순히 건축물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보이지 않음을 통해(invisible), 오히려 우리가 볼 수 없는 세상을 보이게 만드는(visible) 새로움을 선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스기모토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개념적인 사고를 통해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다. 그의 사진 에서 시간은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을 통해 기록되기보다는 적층된 시간을 통해 오히려 그 안에 쌓인 이야기를 흰 여백으로 지우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의도된 광학적 오류를 사용하여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장소 혹은 건축 안에 내재된 본래 의미를 탐구한다. 이는 우리가 믿어 왔던 구체화된 세상을 기록하는 장치로서의 사진의 역할을 재고하게 만든다. 그가 만드는 세상은 비록 종 이 위에 인화된 비물질화된 장소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관계 설정을 통해 드러나는 확장된 세상은 이 시대 우리 건축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유동적인 장소의 의미를 드러낸다. 우리가 사진가를 또 다른 건축가라고 믿는 이유이다. ⓦ 나은중, 유소래 | NAMELESS의 공동 대표이다.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그리고 문화적 사회 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의 패러다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Fragile Architecture’로 그들의 작업을 정의하며 2011년 뉴욕건축연맹이 수여하는 뉴욕 ‘젊은 건축가상 (The 2011 Architectural League Prize for Young Architects)’과 미국건축가협회의 ‘뉴욕건축가협회상(2011 AIA New York Design Award)’ 등 을 수상했다. www.namelessarchitec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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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書欌 20 | 안철흥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박용구, 전혁림, 장민호 편 채록 작업은 문헌 연구를 보완할 뿐 아니 라 그 자체가 독자성을 띤 방법론으로 크 게 각광받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예술정보관(현
국립예술자료원)
이 추진한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 사업’은 구술사 방법론을 예술사 영역으 로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구술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생존한 원로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001 박용구朴容九 1914년~ |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 002 전혁림全爀林 1915~2010년 | 다도해의 물빛 화가 003 장민호張民虎 1924년~ |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예술 체험과 작 품 세계를 듣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뤄 졌다. 현재까지 213명의 구술이 채록되었 다. 국립예술자료원 신일수 원장은 “이 사 업은 우리 나라 근·현대기 예술계 기초 자료의 절대적 부족으로 동시대 예술 창 작 및 근·현대 예술사 연구의 심각한 단 절과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시작되 었다”고 설명했다. 구술 기록은 국립예술 자료원 홈페이지(www.knaa.or.kr)나 대
편지나 e메일을 쓸 때보다 전화 통화를 할
지는 ‘민중 자서전’이라는 꼭지에서 서산
학로 한국예술위원회 옛 본관 건물에 있
때 사람들은 거짓말을 덜 한다는 조사 결
어리굴젓 장수, 마포 뱃사공, 조선목수,
는 예술의 집 분원 자료실에서 찾아볼 수
과가 있다. 인류학자들은 문자 문화권에
계동 마님 등의 구술을 그대로 받아 적어
있다. 일반인의 열람도 가능하다. 정리된
서 폭력과 전쟁이 난무한 반면 구술 문화
책에 실었다. 이렇게 채록된 민중 자서전
문서만이 아니라 영상 녹화까지 찾아볼
권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고 말한다.
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잡지가 폐간된
수 있다.
구술 문화의 전통을 이어온 아메리카 인
이후 스무 권짜리 전질로 묶여 ‘밑으로부
원로 예술인들의 구술 채록 사업에는 각
디언들은 문자 문화권인 유럽의 백인들에
터의 역사’이자 토박이말의 보고로 널리
계의 내로라하는 중견 연구자들이 참여해
게 밀려났다. 현대는 구술 문화와 문자 문
읽혔다. 『뿌리깊은나무』의 기획은 1984
관심을 끌었다. 아예 한국예술종합학교
화가 서로를 견인하는 시대다. 『구술 문
년 창간한 『샘이깊은물』이 물려받았고,
한국예술연구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
화와 문자 문화』를 쓴 언어학자 월터 옹
여성 노인들이 구술한 ‘평생토록 못 잊을
다. 재직 연구원뿐 아니라 각 대학에서 해
은 “현대는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일’ 꼭지를 1991년 이 잡지가 폐간할 때까
당 분야를 전공한 연구자를 섭외해 폭을
전자 구술 매체에 의해 형성되었으면서도
지 연재했다.
넓혔다. 개인적으로 10여 년 전 이 사업을
그 존립을 쓰기와 인쇄에 힘입고 있는 2차
구술 연구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구술 채록에 참여했
구술성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을 밝히는 사회과학 연구 방법으로도 각
던 연구자들이 문자 이면의 살아 있는 역
국내에서 구술사(oral history) 작업을 처
광받았다. 일제 강점기 연행 실태, 4·3
사를 날것 형태로 접할 수 있다는 기대로
음이자 체계적으로 진행한 곳은 지금은
사건과 노근리 사건 등 새로운 사실을 발
설레던 모습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없어진 잡지 『뿌리깊은나무』였다. 그 잡
굴하는 데 구술 채록이 위력을 발휘했다.
구술에 응한 이들은 대부분 85세가 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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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예술인들이었다. 당시 취재록에 따 르면 사업 초기 구술 대상자를 대표 원로
미래(未來)의 지래(知來) 짐작 02 | 조택연
로 할 것이냐 주류의 흐름을 보완하는 인 물로 선정할 것이냐를 놓고 논의가 분분 했다. 하지만 쏜살같은 세월 앞에서 이런 고민은 사치였다. 사업을 준비하는 도중
미래의 공간 환경
에 몇몇 분이 별세했기 때문이다. 결국 앞 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고령자부터 구술을 받자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 라 이미 검증된 각계 대표 원로와 자료가 개와 고양이의 생존 공간
그것이 비록 아파트의 거실과 주인이 주
이번에 출간된 세 권은 당시의 구술 채록
개와 고양이가 반려 동물로 선택되는 이
는 참치 통조림이라도, 고양이는 자신이
작업이 단행본으로 햇빛을 본 첫 결실이
유는 물론 가장 친근한 동물이기 때문이
익숙한 사냥터와 사냥감 주변에 계속 머
다. 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 선생은 1926
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연 환경에서의 선
물라고 하는 조상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년 평양고보 시절 독서회 사건으로 고문
택이 아닌 육종학적 교배를 통해 주거 공
는 것을 불안해 한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
받고 퇴학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
간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도록 진화된
토라 믿는 익숙해진 공간에 계속 머물면
충분치 않은 원로들이 자연스레 섞였다.
때 독립투사가 될 용기가 없어서, 부끄러
동물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진화를 이끈
서 사냥감을 찾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
움을 견디기 위해 예술에 매진했다고 고
선택압은 생존 환경으로서 자연이 아닌
하다는 유전자의 충고와 주인이 지속적으
백했다. 고 전혁림 화백은 정식으로 미술
인간의 욕망이다. 더 친근하며 더 충직하
로 먹이를 공급해 줄 거라는 경험 사이에
공부를 못해 중앙 화단으로부터 소외받았
고, 더 온순하며 더 귀엽고 더 도도하고
서 갈등하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는 조상이
으며 미국과 일본의 미술 잡지를 평생 구
더 동정심을 유발하는 동물을 더 좋아하
물려준 유전자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독하면서 세계 미술계의 트렌드를 따라잡
는 인간의 미의식을 만족시키는 종은 선
고양이에게 주인이란 자신의 생존 공간에
았다고 털어놓았다. 장민호 선생은 해방
택되었고 그렇지 못한 종은 폐기되었다.
잠시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한, 길 잃은 가
후 연극계는 온통 좌파 연극인들 천지였
하지만 오랜 육종학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운 생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양이는
는데 그들이 대거 월북하면서 텅 빈 연극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이 유
도도하다. 자신이 사냥에 실패했을 때 참
계에 자신의 자리가 생겼다고 회고했다.
전자에서 모두 지워진 것은 아니다. 조금
치 통조림을 사냥해 오는 주인에게 가끔
문자로 걸러진 ‘드라이’한 서술로는 행간
씩 희미해졌지만, 이들은 조상들이 자연
애정을 느끼고 가벼운 스킨십을 해 주지
을 집어내기 어려운, 구술로만 건질 수 있
의 생존 환경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물려
만 여전히 인간은 고양이가 자신의 아파
는 귀한 증언들이다. 다만 전혁림 화백이
받아, 서로 다른 공간 활용 방식을 통해
트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길 잃은 털 없는
나 장민호 선생의 경우 동료들과의 교류
도시 공간에서 살아간다. 고양이는 아직
고양이일 뿐이다.
가 별로 없는 비주류로 젊은 시절을 보냈
도 도시에서의 생존 공간을 스스로 먹이
이에 비해 개에게 주인은 전부이다. 개의
던 까닭에 당시 화단이나 연극계의 내밀
를 사냥할 수 있는 장소만으로 여기는 것
조상들은 고양이에 비해 매우 취약한 사
한 이야기를 충분히 펼쳐 놓을 수 없었던
에 비해, 개의 생존 공간은 그것에 먹이를
냥꾼이었다. 혼자서는 사냥꾼이라기보다
점은 읽는 내내 아쉬웠다. 이런 서운함은
주는 주인의 마음을 더한다. 즉 고양이에
사냥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무리
출판사 수류산방이 <예술인·生> 시리즈
게 삶의 터전이란, 그것이 주택의 정원이
짓고 사냥하는 방법을 발견한 후 가장 무
를 통해 앞으로 계속 출간할 다른 원로 예
든 아파트의 거실이든 오랜 서식을 통해
서운 사냥꾼이 되었다. 무리를 짓는 사냥
술가들의 증언을 통해 충족될 수 있으리
익숙해져 먹이를 지속적으로 사냥함으로
꾼은 사냥감의 공간 지각 범위를 넘어서
라 기대한다. ⓦ 안철흥 |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월간 『말』지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시사IN』 에서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동안 정치부와 문화부에서 거의 절반씩 밥을 먹었 는데, 건축계 쪽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은 그때 어설픈 곁눈질로 사귀어둔 ‛인맥’ 덕분 이라고 한다. 본지 고정칼럼위원으로 서장을 기꺼이 지켜주고 있다.
써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공간인
는 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무섭다.
반면, 개는 집단으로 일체감을 유지함으
이렇게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개는 어떤
로써 먹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주
생태적 경쟁자보다 강력한 공격력을 갖는
인과의 관계가 삶의 터전이라 믿는다.
다. 개는 구성원으로 집단 안에 머물면 두
고양이는 자신이 익숙한 장소에 머물려고
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력은
하지만 개는 주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집단을 구성하는 개체들을 하나의 시스템
지 따라갈 수 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으로 묶어 주는 알고리즘을 필요로 한다.
하거나 이사를 가는 것은 쉬운 반면 고양
즉 집단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것을 따르
이를 데리고 이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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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
했다. 이는 전적으로 무리가 깨어지지 않
느 때보다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한 생존 정보는 사냥터로서 영역에 관한
고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전략
잡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샤테크라는 말
것이 아니라 자신 속한 집단을 유지하는
이다. 호모 하빌리스 이후 200만 년 동안,
까지 생겨났다. 명품 가방에 대한 열망의
방법이다. 누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대
특히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한 50만 년 동
확산 위에 경제 능력이 증가한 아시아 소
장이고, 그를 어떻게 따르며, 무리 지어
안 두뇌의 신피질은 폭발적으로 팽창했
비자 수요와 이에 대한 공급을 조절하는
사냥에 나섰을 때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다. 이 신피질의 용도는 대부분 어떻게 집
생산자 사이의 관계를 이용한 재테크를
방법을 알면 그 무리 안에서 안정된 삶을
단을 구성하고 그 안에 잘 안주할 수 있는
표현하는 신조어이다. 사람들은 왜 그렇
보장 받을 수 있다.
가에 관한 것이다.
게 명품, 특히 가방에 열망할까? 상황 A
상황 A를 상상해 보자. 이 글을 읽는 독
의 상상을 조금 더 진행해 보자. 당신의
개체군 생명체 인간의 생존 공간
자분이 서울의 주인이 되었다. 자원으로
서울에는 수만 개의 명품 가방이 있다. 모
개와 공동의 조상을 둔 영장류에서 진화
서 혹은 자산으로서 서울의 모든 것에 대
두 다 당신의 소유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
한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들과 유사한 생
한 소유와 사용 권리가 여러분에게 주어
가방을 가지고 거리를 걸을 때 혹은 지하
존 전략을 가진 종이다. 무리를 지어 개체
졌다. 이제 서울은 당신의 것이어서 무엇
철을 탈 때 그것을 보아 주고, 감탄하고,
가 아닌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몸집을 불
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거리의 모든 자
질투할 사람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그
려 자신을 방어하고, 그렇게 증가한 전투
동차, 명품으로 가득한 백화점, 첨단의 초
가방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당신을 치장하
력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사냥을 함으로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 그리고 그것을 넘
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을까? 명품 가방
써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무리 짓
어서 공항과 박물관까지 모두 당신 소유
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려는 욕망의 궁극
기를 통한 사냥 본성은 그 집단을 구성하
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적 목표는 그것의 소유나 운반이 아니라
는 개체들에게서 자유롭게 진화가 일어나
갑자기 즐거워진다. 그런데 소유의 무엇
이를 통해 자신이 주변 사람들보다 우월
도록 하는 선택압으로 작용한다.
이 당신을 즐겁게 하는가? 그리고 서울
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600만 년 전 유인원에서 분화되어 나온
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
인간은 불을 제외하면 아직 물질을 소유
인간의 조상은 200만 년 전 마침내 홍적
한 상상이 계속되면서 그 방향은 아마 서
하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진화 단계
세의 시작과 함께 호모 하빌리스로서 인
울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편안하게 하는,
에 도달하지 못했다. 집단으로의 진화를
간 속으로 진화했다. 호모 하빌리스가 최
더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어 가는 쪽을 향
거처 사회에 적응한 두뇌가 원하는 것은
초의 인간 속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이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려
물질적 재산의 소유가 아니라 사람 사이
이 가진 커다란 두뇌의 크기 때문이다. 신
고 하는가? 서울을 긍정적으로 가꾸어 나
의 관계의 획득이다. 인간이 얻으려고 노
피질이 극단적으로 확장된 인류의 두뇌에
가는 것이든 부정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든
력하는 것은 주변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는 집단을 형성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활
이 상상의 종결점은 이곳에 살고 있는 이
집단에서의 우월감이다. 우월감이 나를
용하는 본성이 사회성으로 진화돼 저장되
웃에 관한 것이다.
집단의 리더로 이끌고, 리더는 여러 가지
기 시작했다. 인류로 진화하기 전까지 사
하지만 사람은 당신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생존에 유리한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오
용해 온 두뇌 영역인 변연계가 주로 자연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에 사람이 살
랜 진화의 경험으로 유전자에 기록됐고,
의 생존 환경이 가진 지질학적, 생물학적,
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서
그것이 여전히 현대 인류의 두뇌에 발현
생태적 속성을 파악하고 이를 생존에 유
울에는 여전히 수도와 가스 그리고 전기
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하게 사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
가 공급되고 텔레비전 방송이 송출되며
만일 현생인류가 고양이과 조상으로부터
었다면, 신피질은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
마트에는 상품이 공급되고 식당에는 음식
진화한 생명이라면 자신의 서식지인 사냥
단의 구조를 어떻게 생존에 활용할 것인
이 차려진다. 하지만 서울에는 아무도 없
터에 대한 집착이 지금보다 심했을 것이
가를 이해하는 데 맞춰져 있다.
다. 이를 “서울이 텅 비어 있다”라고 표현
다. 고양이로부터 진화한 현생인류는 집
또한 언어의 발견은 다른 무리 사냥동물
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서울에서 영원히
담벼락에 끊임없이 오줌을 누면서 그곳이
과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구조를 발
당신 혼자 살아야 한다. 여전히 서울을 소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하고, 이곳을 넘어
생시켰다. 비구강언어에서 구강언어로 전
유하고 싶을까?
서는 침입자에게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이되면서 언어를 통해 무리가 공유할 수
이 상상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지금
하지만 개과에 더 가까운 조상의 후손인
있는 정보 영역이 감성에서 이성으로 바
까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즐거움을
인간은 자신과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뀌었다. 이를 통해 더욱더 강력한 무리 짓
준다고 믿어왔는데, 그리고 이웃은 어쩔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기 구조가 발달했고, 구성원으로서의 개
수 없이 함께하는 경쟁자에 불과했는데,
마이바흐를 타고 싶은 것은 그 차가 가진
체의 특성은 신체적 강도를 높이는 것보
이들이 사라져 버리자 물질의 소유가 무
기계적 특성의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 호
다 지적 능력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진화
의미해져 버린다. 명품의 소유 열망이 어
텔의 도어맨이 놀라며 90도로 허리 숙이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는 거짓 존경 앞에 내리고 싶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진 인간의 조상들이 선택할 수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학습을 통해 새
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리고 싶어서 차
있는 생존 전략은, 자원이 바닥난 서식지
롭게 그려 나갈 수 있는 흰 도화지로 보
의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 현생 인류와 현
를 떠나 조금 더 풍족한 생존 자원이 기다
았지만, 최근의 신경과학과 진화심리학은
대 문명이 맞닥트리고 있는 모순이다.
리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미 프린트된 많은 이야기와 그림이 그
이러한 환경은 인간에게 방랑자(nomade)
려진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임을 보
의 생존 전략을 택하게 했고, 장소 이동의
여 준다. 칸트의 이해처럼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 열광하고 있다. 올레길은
가장 안전한 경로를 선택하는 생존 알고
선험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가장 성공한 공간 기획의 하나이다. 그동
리즘으로 길에 대한 호감을 두뇌에 심었
그러면 이렇게 진화한 현생인류는 미래에 어떤 공간에서 살게 될까?
길
안 잃어 가던 여행자의 발길을 제주도로
다. 2족 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길은 가장
되돌리게 한 올레길 개발은, 제주도가 가
안전하고 빠른 통로이다. 이러한 이동 수
진 환경 자산의 매력을 강하게 인식시켜
단을 잘 읽어 낼수록 더 안전하게 다음 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올레길의 성공은 다
식지로 옮겨가고 새로운 생존 자원을 사
른 지방 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이를 흉
용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사바
내 내게 했다. 북한산과 지리산 둘레길,
나의 척박한 생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
변산 마실길, 강원도 바위길, 전남 갯길,
해 디자인한 생존 전략은 마침내 호모 사
무등산 옛길 등이 개발되어 신체와 정신
피엔스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
의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웰빙 유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희로서의 걷기 공간으로 성공적인 조명을
자연환경에서 인간이 획득한 기본 생존
받고 있다.
전략은, 생존에 유리한 정보에 대해 호감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길들에 관심을 보이
을 느끼고 불리한 정보에 대해서는 혐오
고 이를 따라 가는 도보 여행에 즐거움을
감을 느끼는 것이다. 호감을 느낀 대상과
느끼는 것일까? 진화 인류학자 로빈 던바
장소에 다가가 머물고 혐오감을 느끼면
는 영장류 연구를 통해 신피질의 크기와
도피해 회피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위
그 종이 형성하는 집단 크기 사이의 관계
험에 노출될 기회를 줄이고 안전한 환경
를 연구하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신피
에 더 많이 머물 수 있었다. 이러한 생존
질이 클수록 영장류는 더 큰 집단을 형성
알고리즘은 감성을 표현하는 작업에서 다
한다. 보편적으로 영장류는 더 큰 집단을
양하게 나타나는데, 그림으로 묘사할 수
형성할수록 자연의 생존 경쟁에서 더욱
있게 된 이후 가장 많이 그려진 대상은 길
유리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었다. 많은 고전적 풍경화가 길을 표현
확장된 신피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
하고 있고 근대의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장류 수준의 사회관계, 즉 협업을 통해 먹
우리는 이러한 길을 그린 그림과 사진을
이를 획득하고, 섬세한 사회적 질서를 유
보면 아름다움으로서의 형상적 호감을 느
지하며, 외부의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
끼고 그곳에 다가가며 머물고 싶은 감성
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한다.
을 느낀다.
던바의 법칙을 적용하면 호모 하빌리스는
하지만 인간의 두뇌에서 발현된 생존 전
구성원의 수가 100명이 넘는 거대 집단
략은 그것이 불필요해진 현대에도 여전
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뇌는 신체
히 발현된다. 더 이상 포식자로부터 자신
의 다른 부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에너
을 방어하거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집단
지를 소비하는 기관이다. 아프리카 사바
을 형성할 필요가 없다. 포식자는 이미 사
나 환경에게 750cc의 두뇌와 100명이 넘
라졌고 먹을거리는 근처 마트에 지천으로
는 구성원의 집단은 가혹한 파괴자들이었
쌓여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집단의 구성
다. 이들은 코끼리보다 더 빠르게 사바나
원으로 남아 있기 위해 애를 쓴다. 자동차
의 생존 자원을 소비했다. 호모 하빌리스
는 어디든 쉽게 데려다 주지만 사람들은
이후의 인간 집단이 마음 편히 오래 머물
여전히 홍적세의 습성을 쫓아 도보 여행
면서 서식할 수 있는 장소는 사바나 초원
을 원하고 그러기 위해 길을 찾는다.
어디에도 없었다. 점점 더 두뇌와 집단의
와트슨과 스키너로부터 확산된 행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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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택연 | 본지 편집위원으로 홍익대 산업디 자인학과 교수이다. 3억 개의 폴리곤을 연산 하는 디지털 공간, 64비트로 확장된 두뇌, 9 시간 동안 산악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근육, 5.10c 5피치 인수봉을 오르는 호기심, 2개의 세상을 함께 보는 통찰, 10년 후를 바라보는 3개의 꿈……. 그 꿈을 이루려는 욕심을 내려 놓으니 꿈을 따라 가는 것이 더 즐겁다는 그.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조금 뻔뻔해지는 나이, 행복한 50대에 지래(知來)로서 내일을 짐작 하기 시작했다. 마침 2011 영화 <권법>의 세 상, 2050년 서울로의 여행도 예정되어 있어 더욱 기대된다.
Wide Focus 15 | 이희환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프로젝트 에 거는 기대 성과들, 다양한 활용 모델, 나아가 비전과
대전 근대 아카이브 워크숍 포스터.
『근대서지학』의 발행인인 박성모 소명출
목표 등에 관한 내용이면 좋겠다는 것이
판사 사장이 한국의 일천한 근대 사료 아
었다. 인천의 근대사 자료 아카이빙이라
카이빙 수준과 엄밀한 해석의 필요성 등
면 필자가 혼자 감당할 만한 주제가 아니
을 발표하였다.
었지만, 『인천학 관련 서지 및 주요 문헌
발표가 워낙 포괄적이다 보니 토론의 논
해제』를 정리하여 출간한 경험을 바탕으
점은 그리 모아진 편은 아니었다. 물론 함
로 인천의 각 기관별로 나누어 인천의 근
한희 교수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 아카이
대 사료에 대한 아카이빙의 현황과 과제
브즈 구축에 대한 실제적, 기술적 문제들
를 정리하여 자료집 원고를 보냈다.
을 중심으로 주최측에서 자문을 구하는
이후 워크숍 발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질문이 이어졌지만, 인천의 각 기관별 아
준비하면서 필자는 근대 도시 인천 전반
카이빙의 현황에 대한 필자의 발제는 그
에 대한 문헌 자료 중심의 아카이빙 현황
리 주목을 끌지 못했고 대전 소제동과의
과 함께 인천 동구 배다리 일대에 대한 아
비교 대상이 될 법한 인천 배다리 지역의
카이빙의 사례를 중점으로 정리하였다.
옛 양조장 프로젝트(‛오늘을 기록하는 사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포럼’은 발족 이
람들’)를 비롯한 여러 사례들에 대해서도
후 대전의 각종 근대사 자료들을 수집하
토론이 이어지지 못했다. 워크숍에서 특
는 한편, 핵심 파일럿(pilot)으로 대전의
히 아쉬웠던 점은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지난 5월 24일 필자는 대전 목원대에서
원도심 지역 중 하나인 소제동(蘇堤洞)의
포럼’이 구상하고 기획한 아카이빙의 목
개최된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구축과 활
건축 등 다양한 인문 환경에 대한 아키이
표와 대상, 범위 등에 대한 소개가 있었
용 컨설팅 워크숍’에 다녀오게 되었다. 문
빙을 추진 중에 있다는 설명을 실무자의
으면 발제자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관련
화체육관광부의 공모 사업에 대전시와 목
메일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전
된 발언을 제기할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
원대학교, 그리고 시민 단체가 컨소시엄
동구의 소제동과 비슷한 역사 문화적 맥
다. 그리고 그것은 워크숍 이전에 분명하
을 구성하여 <대전 근대 아카이브 구축과
락을 갖고 있는 인천 배다리 지역에 대해
게 발제자들에게 전달되어 주최측과 발표
활용>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하여 선정
서는 인천 지역 사회에서 최근 다양한 아
자, 토론자가 긴밀하게 토론하는 워크숍
된 이후 프로젝트 실행 조직인 ‘대전 근대
카이빙 시도가 있었거니와, 사례 발표로
이 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
아카이브즈 포럼’을 지난 1월에 결성하고
서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쉬움이 든다. 아카이빙의 텍스트가 대전
첫 번째 공개 워크숍을 이날 마련한 것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라는 낯선 근대도시이고 시범적 연구
다. 워크숍의 전체 주제는 ‛근대 도시 대
그러나 실제 워크숍은 ‛미국의 역사 건축
대상으로 소제동에 접근하고 그 구체적
전, 아카이빙을 위한 이론과 실제’. 대전
물 조사 사업(HABS)의 성과와 활용’에
활용까지도 정책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라
이라는 도시 텍스트를 아카이빙하기 위한
대한 강경환 문화재청 직원의 발제와 ‛근
면, 인천 배다리를 ‘역사문화마을’로 조성
이론적, 실제적 사례를 검토하기 위해 마
대 문화유산의 아카이브 방법론’이라는
하는 데 관심을 둔 필자에게는 타산지석
련한 자리였다.
제목 아래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소에서
으로 삼을 만한 소중한 아이디어와 이론
필자에게 주어진 발제 주제는 ‛인천의 아
다년간 생활사 자료 아카이빙 작업을 총
적 준거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
카이빙 사례’였다. 인천문화재단 등 인천
괄했던 함한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지 않았다.
의 여러 기관과 단체 등에서 추진해 온 근
교수의 이론 및 실제에 대한 발표, 그리
기실 인천에 갇혀 있는 필자에게 대전은
대사 분야 자료의 수집 활동과 관리 방법,
고 ‛근대의 눈, 근대의 실체’라는 주제로
전혀 낮선 텍스트이다. 개항 이후 일본인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배다리 양조장 아카이빙(오늘을 기록하는 사람들).
구 같은 도시 개발 사업의 대상지로 급격
한 도시 생태학적 접근까지 함께 이루어
지 시대 식민 도시로 재편되었던 과정과,
하게 공간이 재편될 위기에 처했다는 측
지는 다층적 접근이 이루어질 때 물리적
충청 내륙은 식민 도시로 대전이 새롭게
면에서, 아카이브 구축을 바탕으로 어떻
도시 공간은 삶의 맥락이 깃드는 장소로
형성되었던 역사적 맥락은 새삼 흥미로운
게 근대 도시의 역사 문화적 자산으로 보
탈바꿈할 터이다. 그러나 대전시와 목원
들에 의해 개척된 근대 도시 인천이 식민
비교의 대상으로 느껴진다. 공간의 범위
존,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상
대, 시민 단체가 함께 하는 ‘대전 근대 아
를 좁혀 같은 동구 지역에 위치한 대전의
호간 지식과 경험을 교류할 필요가 있다.
카아브즈 포럼’에 문학 연구자도 참여하
소제동과 인천의 배다리 지역 또한 두 대
또 한 가지 제언을 드리고 싶은 것은, 대
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러한 점들을 십
도시 간 비교의 심층 비교 텍스트로서 자
전에 대한 아카이빙의 실제를 꼭 건축 분
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향후 대
별한 듯 보이는데, 이는 <대전 근대 아카
야로만 축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전 근대 아카이브즈 구축 프로젝트에 주
이브 구축과 활용>이라는 ‘대전 근대 아카
다. 이러한 요구는 물론 프로젝트의 기간
목하는 필자의 기대이다. ⓦ
이브즈 포럼’의 공동 연구 아젠다에서 특
과 예산이 관련된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
히 활용의 측면에서 비교 검토할 만한 부
나 건축 분야로 한정한 접근은 자칫 도시
분이라고 생각한다. 활용의 측면에서 특
공간에 대한 물리적 측면의 접근에 머물
히 소제동과 배다리는 근대 문화 유산을
고 말 우려가 없지 않을 터이다. 문학과 공
간직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두 곳 모두 주
공 미술을 비롯한 제반의 도시 예술에 대
거환경 정비사업이나 도시재정비 촉진지
한 아카이빙에 더하여 주민들의 삶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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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환 | 인하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 사 학위를 받고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 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 인천아, 너는 엇더한 도시』, 『문학으로 인천 을 읽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제물포』 등 이 있다.
WIDE eye 01 | 최효진
제2차 <W-아키버스> 1박 2일 보고서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적 상상의 끝은 무엇입니까?
양덕복 소장.
KSA 건축연구소.
세상에는 많은 건축가들과 다양한 건축
시 마지막 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
이, 계룡산)에 위치한 프로젝트였다. 국
전시가 있지만, 한 건축가의 지난 20년간
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제도의 유
제적인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는 이순신
작품을 한자리에서 둘러보고 직접 이야기
명 관광 명소인 바람의 언덕 근처에 있
스페셜 스타디움, 거제문화예술회관과 함
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는 전시장은 초입부터 전시 포스터와 함
께 연안 여객 터미널을 확장하여 대형 크
더구나 중심지가 아닌 변방에서 그 지역
께 건축가의 작품 사진을 걸어 놓아 지나
루즈 선박이 정박할 수 있고 기타 레저산
의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본인만의 건
가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유발하도록 하였
업이 발전할 수 있는 휴양 시설 계획안 프
축적 색깔을 간직한 채 작가의 건축적 꿈
다. 전시장은 양덕복 소장이 직접 설계한
로젝트, 바다 위에 펼쳐진 올림픽 스타디
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건축가
3개 동의 펜션에 ‘상상전’, ‘이상전’, ‘도
움 계획안 등 그의 거대한 건축적 꿈의 향
를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는 더더구나 만나
장포 개발 프로젝트’, ‘K.S.A 20주년 기
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기 어렵다. 운 좋게도 이번 제2차 <W-아
념전‘의 테마로 전시 공간을 나누어 자유
이어진 ‘이상전’에는 친환경 공영 주차장,
키버스>는 멀리 거제도에서 지역 주민들
로운 동선에 따라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
수산 종합시장, 바람의 언덕 전망대, 유람
과 소통하며 작품 활동을 해 온 건축가 양
록 꾸며졌다.
선 현대화 사업 등처럼, ‘상상전’에서 보
덕복(K.S.A 건축연구소)의 전시를 관람
양덕복 소장은 지난 20년간 거제도에서
았던 거대 상상 프로젝트보다 규모는 작
하며 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으며, 거제
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작품들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들여
도에 건축적 꿈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것을 남은 건축 인생의 목표로 삼은 건축
마지막으로 이어진 K.S.A 20주년 기념전
지난 6월 4일부터 7월 3일까지 한 달여 동
가이다.
에서는 그동안 그가 거제도에서 실현했던
안 거제도 K.S.A 건축연구소 특별전시장
첫 번째로 ‘상상전’에서 펼쳐진 그의 꿈
프로젝트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전시를 보
에서 진행된 양덕복 소장의 <자연과 함께
은 거제 8경(내·외도, 해금강, 학동, 여
던 중 지나게 된 프로젝트 모형 전시실은
하는 想像(상상)·理想(이상)展>에는 전
차,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지심도, 공곶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다. 그 곳의 모형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전시실 입구.
전시 설명.
모형실.
세병관.
중 70% 이상이 완공되어 거제도의 곳곳
설치된 해저 침매터널 ‘거가대교’를 지나
에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새삼 그가 거제
각종 야생화와 희귀식물들이 어우러진 거
도 건축가로서 어떠한 위치에서 주민들과
제도의 ‘산방산비원’, 그리고 특별 게스트
함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로 참석한 건축평론가 이용재 씨의 안내
이번 전시는 변방에 있지만 지역 주민들
로 국보 305호인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과 소통하며 나름의 건축 언어로 건축적
본영(三道水軍 統制營 本營)의 중심 건물
꿈을 꾸고 있는 한 건축가의 지난 시간과
인 ‘통영세병관’을 돌아보며 1박 2일간의
앞으로의 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일정을 마쳤다.
전시로 기억될 것이다. 다소 거친 언어로
<W-아키버스>는 건축 전문가뿐만 아니
이야기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의 프
라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는 건축 여행
로젝트 대부분이 완공되어 곳곳에 위치한
프로그램으로 앞으로 매회 새로운 테마
것을 보면서 지역 주민, 그리고 일반 대중
로 자유롭게 여행하며 건축과 도시를 즐
들에게 ‘건축’이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로
길 예정이다. 많은 이들의 참여와 함께 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가늠해 볼
3차 <W-아키버스> 가을 여행편을 기대해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본다. ⓦ
매번 출발할 때마다 하나의 테마를 정하 전시 공간에서 본 거제도 풍경.
여 떠나는 <W-아키버스>이지만, 기본 신 조는 자유로운 여행과 함께하는 건축과 도시 답사이다. 이에 걸맞게 이번 여행에 서는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국내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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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 월간 『건축세계』에서 기자로 일했 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 고 있으며, 본지 객원 기획 PD로 <W-아키버 스>를 담당하고 있다.
WIDE eye 02 | 김정은
성북동의 마술과 예술 그리고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법> 카페 레지던시 : 2011. 4. 20 - 6. 19 / 레지던시 장소 : 테이크아웃드로잉 성북동 6월 중순,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법> 레지 던시 전시가 막을 내리기 전에 서둘러 전 시장이 자리잡은 성북동으로 향했다. 특 히 그날은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내 스스로가 ‘공부’에 적합한 사 람인지 의구심이 들던 찰나였다. 의도적 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 절묘한 시점에 ‘공부법’이란 이름이 붙은 전시회를 찾은 책 갈피마다 남겨진 생각의 흔적.
손 닿는대로 빼곡하게 남겨진 메모.
북동은 낯선 동네인데, 참으로 편안하게
대료를 견디기 힘든 자유로운 예술가들은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히 전시를 마주하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날 것이다. 성북동
게 된 것이 아니라면, ‘공부법’이란 제목
산등성이까지 이어진 낮은 집들이나 무성
도 유사한 과정 중에 있는 듯이 보였다. 그
의 전시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하게 자란 가로수, 길거리에 즐비하게 내
리고 미용실을 개조한 테이크아웃드로잉
마치 민현식이라는 건축가를 완성한 일종
놓은 화분이 기억 저편 어딘가를 자극했
은 예술가와 소위 문화적 취향을 지닌 사
의 비기(祕 技)를 엿보는 느낌을 준다. 이
셈이다. 그런데 성북동의 공기는 이런 복잡한 심 사를 밀어 낼만큼 흥미로웠다. 나에게 성
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이하게 개조된 카
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카페와 미술관 언
번 전시는 전시 기간 동안 작가가 상주하
페나 전시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리의 한 좌표를 점하고 있었다.
는 레지던스 개념의 전시였다. 전시장 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렇게 만들 어진 재개발 풍경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 이다. 대신 조금씩 개별적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변화가 동네에 자연스러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울의 몇몇 동네에는 이런저런 분위기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 나고 있다. 오래된 동네에서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낡은 건물을 예술가들이 싼 가 격에 임대해서 창작 공간이나 독특한 카 페, 소매점 등으로 개조하여 결과적으로 지역을 재생하는 현상은 세계 여러 도시 에서 볼 수 있다. 소위 제도권에 편입되 는 것을 거부하는, 혹은 아직 진입하지 못 한 젊고 의욕적인 예술가나 문화 기획자 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쇠락한 지역과 동 네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들 덕택에 지 역의 부동산적 가치가 올라가면, 비싼 임
전시장에서 보이는 성북동의 풍경.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전시장 모습.
켠에 건축가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고,
다. 그렇지만 이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면
진 마음을 잡으세요? 혹 그럴 때 읽는 글
이 자리는 책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마침
서 건축가 민현식의 의외의 면모를 찾기
이나 책 있으세요?”
건축가는 자리에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
는 쉽지 않았다. 우리 시대를 풍미한 건축
“흔들리지 말고 살아야 하는데, 요즘 좀
각이 들었다. 기획자의 의도가 어찌되었
가로서 그의 생각은 이미 수없이 소개되
그렇지 않습니다. 햇빛과 바람에 끊임없
건, 마치 예술가의 내밀한 구석을 엿보는
었고, 민현식 본인도 훌륭한 글 솜씨의 소
이 흔들리는,…… 아까 한 시의 마지막인
듯한 이 전시에서 작가와 얼굴을 마주하
유자로 책도 여러 권 쓴 바 있다. 또한 그
데 저 흔들리는 나무의 빛나는 사랑을 빼
는 것은 서로 민망스러운 일처럼 느껴졌
의 서재를 통째로 들어다 놓은 것이 아닌
면 이 세상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네.
기 때문이다.
이상 이 책들은 그의 세계관과 작품 세계
흔들려야 되지.”
책장에는 건축가가 가져다 놓은 책들이
에 대한 단서로 그가 선택적으로 구성했
“좋아하시는 꽃이나 나무는 무엇이며, 좋
꽂혀 있었다. 책장 맨 위에는 데이비드 하
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비의 책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의 예민한 정서를 확
“빛과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뭇잎
음 한두 칸에 시집이 꽂혀 있었다. 특히 황
인하는 일이었다.
의 물살. 이게 되려면 침엽수보다는 낙엽
지우의 시집이 많았다. 다음으로는 체 게
전시장에 작가는 없었지만 대신 ‘60개의
수가 좋습니다.…… 은행나무는 흔들리지
바라나 마르크스, 도스토예프스키 평전들
질문과 답변’ 문답지와 직접 쓴 일기가 비
않아요. 잘. 그런데 느티나무는 잘 흔들
이, 그리고 벤야민의 책들이 있고, 존 버
치되어 말없이 놓인 그의 책에 대한 이해
리죠.…… 느티나무보다 회화나무가 조금
거와 이탈로 칼비노의 책들이 한 칸을 차
를 돕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몇 가지 문
더 좋은 건 회화나무는 꽃이 핍니다.”
지하고 있었다. 책 갈피마다 적혀 있는 메
답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인터뷰와 책장 두어 칸을 당당히 메
모와 포스트잇으로 연결된 생각과 논리의
“중심을 잘 잡고 흔들림 없이 지내실 거
우고 있는 시집, 그리고 전시장 밖의 끝없
고리들은 사상적으로 또 현상으로서 세
같은데 선생님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
이 움직이는 풍경을 보면서 건축가 민현
계를 이해하려는 끝없는 노력을 보여 준
상황들이 있나요? 그럴 땐 어떻게 흐트러
식은 예민한 관찰자이자 풍부한 감수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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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거리로 열린 전시장 모습.
소유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깔, 따뜻한 공기,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
그 날의 성북동이 각별히 신선했던 이유
“선생님이 꿈꾸는 공부방에서 가장 중요
람들의 대화 소리. 이 모든 분위기 속에서
는 아마도 내 공부의 대상이 ‘장소’임에
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천천히 걷고, 행
도 불구하고 나의 활동 무대가 캠퍼스로
“좋은 풍경이 보이는 방입니다.”
복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감각적 기
좁혀지고 있음을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일
조금 과장하면 이 전시에서 내가 느낀 감
억을 통해 사물 혹은 주변과 끊임없이 상
것이다. 혹자는 민현식이 쌓아온 과거의
흥의 팔할은 성북동이라는 오래된 동네의
호반응하며 (건축적) 분위기를 느끼고 주
흔적에서 그가 세상을 배워온 ‘공부법’을
아우라에서 온다. 이 전시 공간은 작품을
관적인 의미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곳의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개인적으로
제외한 일상의 모든 면면이 제거된 일반
분위기 없이, 즉 그 장소를 떠나면, 동일
는 전시장을 방문했던 바로 그날의 바로
적인 화이트큐브(미술관)와는 다르다. 복
한 느낌은 다시 받을 수 없다. 피터 줌터
그 분위기 속에서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
층으로 구성된 이 카페는 전면이 유리로
는 이를 ‘실제의 마술(Magic of the Real)’
법>은 마치 세상과 교감하라는 선배의 조
되어 있어 카페 어디서든 자리에 앉으면
이라고 부른다.
언처럼 느껴졌다. ⓦ
창밖으로 성북동의 거리가, 각자의 스토
이 실제의 마술이 만드는 분위기 역시 이
리가 펼쳐진다.
번 전시의 일부분이다. 건축가 민현식의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터는 좋은 건축
작업장은 이 건물 위층에 있다. 짐작컨대
과 체험을 논하기 위해 ‘분위기(atmo-
그가 이번 전시를 수락한 이유는 테이크
sphere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에게
아웃드로잉이라는 전시장이 바로 그의 작
좋은 건축물이란 감동을 주는 것이고, 건
업장과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축에 감동을 담기 위해 분위기를 만들어
그러니까 우리가 전시장 밖으로 보는 풍
내고자 한다. 예를 들어 휴일 오전 11시의
경이 그가 작업하면서 보는, 그가 택한 풍
햇빛, 그 빛을 받은 건물의 그림자의 색
경일 테다.
Wide AR no.22 : 07-08 2011 Depth Report
김정은 | 건축인 『포아』와 『공간』지를 거쳤 다. 현재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에 있으며 도 시·건축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워크 Work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 Inje Hapgang House+Inje Seohwa House 주대관+(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Joo Dae-Khan+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주대관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인제군청에서 조금 떨어진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합강 주택은 두 동의 건물에 여섯 집이 모여 사는 공공 임대 주택이다. 일 흔 아홉의 할아버지 한 분과 그 아래로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 네 분이 각각 단층집을 쓰고, 그보다 젊어 아직까지 일하러 다 니신다는 육십 대 할머니가 하나뿐인 이층집을 쓰신다. 주변으로 산과 텃밭이 전부여서 다소 무료해 하시던 어르신들은 외 지인의 방문에 반색하시며 마치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들려 주는 양 이야기보따리를 푸신다. 한국전쟁 당시 청년 결사대를 조직해 인민군과 전투를 벌이셨다는 할아버지의 무용담, 전쟁통에 삼팔선을 넘어 고생 끝에 타지에 정착했으나 일찍 남편과 아들을 여의고 어린 손자 둘을 길러 내셨다는 할머니의 고생담을 듣는 동안 어느새 정자 마루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고 단했지만, 돌이켜보면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삶이다. 그래서 더욱 빛나는 집이다.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진효숙 (건축 사진가)
주대관 서울시립대학교 및 동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현재 (사)문화도시연구소 상임 대표, 엑토건축 대표이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 다. 철암 지역 건축 도시 작업팀 기획 총괄 건축가로 활동했으며, 그 때부터 집짓기 프로젝트 를 맡아서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 성북도원프로젝트 기획 총괄 건축가, 우이동 경관협정마 을 MP/평생 자문 건축가로 활약 중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국 현대 건축가전 : Megacity Network>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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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워크 Work |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 Inje Hapgang House+Inje Seohwa House 주대관+(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Joo Dae-Khan+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농촌형 공공 임대 주택 — 2009 서화 주택, 2010 합강 주택 합강, 서화 주택은 (사)문화도시연구소가 벌이고 있 는 집짓기 사업의 2010년, 2009년도 결과물이다. 2002년 강원도 철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10년째 이 사업을 지속해 오고 있는 문화도시연구소는 그동안 마을 단위 독거 노인 주거 대안, 도시민의 귀촌 협력 방안, 농촌의 문화적 교육적 소외 개선 방안(예술 가 주거 혹은 마을 도서관 건립) 등을 제시해 왔고, 2009년 인제 서화 집짓기부터는 독거 노인을 위한 농촌형 공공 임대 주택을 자원 봉사 프로그램 형식으로 진행해 왔다. 그러나 주대관 상임대표(엑토건축)가 밝히듯 이 사업은 단순한 자원 봉사 프로그램 이 아니라 “사회학적 문제들에 대한 프로그램적 대안을 모색하고 실험, 제안한다”는 목적을 저변에 깔고 있다. ‘농촌형 임대 주 택 프로그램, 능동형 노인 복지 프로그램, 저에너지 주택 등은 집짓기 프로젝트의 키워드들이다. “합강 주택은 서화 주택의 연 장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업을 통해 농촌형 임대 주택 모델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저에너지 주택 고유가 시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농촌(특히 농촌의 노인)의 에너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주 대표는 농촌 주택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열이 거의 되지 않는, 건강하지 못한 집에 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인 그들이 과도한 연료비와 건강의 악화에 따른 과도 한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후 여건 및 농촌 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경제적 저에너지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집짓기 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내용이다. “집짓기 과정 자체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실 험입니다. 예를 들면, 서화 주택은 2×10 경량 목구조로 글라스울, 연질우레탄, SIP(Structural Insulated Panel) 단열을 한꺼 번에 썼어요. 거의 알앤디 산업의 테스트 베드(test bed) 수준이지요. 합동 주택은 2×8 경량 목구조에 단열재는 연질우레탄 과 글라스울/연질우레탄이에요. 창문이 약한 것 같아 올해는 3중 유리로 패시브의 최소 기준을 충족해 보려고 하는데, 덕분 에 공사비가 많이 올랐어요.” 실험에 앞서 농촌의 소소한 일상과 지역의 기후/풍토를 이해하는 것은 전제 조건이다. 그것으로 부터 처마를 적절히 내고, 일조와 통풍 등 원기능을 생각하여 창문을 그리고, 농촌 혹은 노인들의 특별한 삶에 맞추어 차별화된 설계를 하는 것, 그래서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소위 작품이나 정책에 의해 표준화된 주택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집짓기가 지향하는 건축 설계의 방향이다. “집이란 것은 문화적인 속성이 강하죠. 서화 주택의 2×10이 합강 주택에서 2×8으로 변경된 이유는 어르신들이 완벽한 단열보다 약간 쌀쌀하지만 방바닥이 따뜻한 환경을 원하기 때문 이에요. 서화 주택은 겨울에도 반발티를 입고 다닐 정도로 따뜻한 대신 방바닥은 미지근합니다. 단열이 과할 정도로 충분하 니 방바닥을 덥힐 필요가 없는 거죠. 합강 주택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절충한 거고요. 문화적인 부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데, 바람직하지 않죠. 보셔서 알겠지만, 서화 주택의 내부가 거실과 방으로 구획되어 있는 반면 합강 주택의 경우는 원룸 형 식이에요. 어떤 면에서 그것은 미숙함으로 표현될 수 있겠는데, 노인들이 앉았다가 눕기 편한 침대를 선호하다 보니 방이 좁 으면 침대를 들여 놓기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어떤 집은 거실에 침대가 나와 있기도 하고요. 벽을 튼 이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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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워크 Work |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 Inje Hapgang House+Inje Seohwa House 주대관+(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Joo Dae-Khan+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태양열과 지열 물론 에너지 비용 절감을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태양열과 기름 보일러를 사용한 서화 주택, 지열 난방 의 합강 주택. 두 집의 에너지원 또한 다르다. “태양열은 기술이 좋아질수록 저렴한 장점이 있지만, 이 지역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겨울에 눈이 많기 내리기 때문인데, 안정상의 문제로 더 가파른 지붕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요. 지중열이 낫지 않나 싶어요. 지열의 효율은 사시사철 좋은 데다가 거꾸로 작동하면 냉방도 되지요. 반면 지열을 사용하 기 위해 히트펌프를 가동하려면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어요. 전기비 절감 방안은 더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아직 무엇이 더 나은지 확실하게 결론 내리진 못했어요. 중요한 것은, 패시브 하우스 같은 것도 그렇고, 우리 나라의 기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술만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큰 비용을 들이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방법을 찾아 보다 많은 사 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조 건축의 가능성 저에너지 주거란 측면에서 주대관 대표는 목조 건축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한식 목구조와 관련하여 ‘신한옥’이란 이름으로 한옥 개량에도 관심을 쏟고 있는데, 그 사례로 공주시 국민여가캠핑장에 시공된 <저잣거리>를 들 수 있 다. 주로 전통 한옥의 단점들—방충, 방습, 구조적인 취약점, 시공의 취약점, 단열 등—을 보완하는 방법들이 제시된 프로젝트이 다. 집짓기 프로젝트 또한 경량 목구조 공법을 사용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첫 번째는 신념과 관련된 건데, 중단열을 통해 저에너지를 실현하기에 가장 유리한 재료라는 것, 두 번째는 자원 봉사 시스템에 적합하다는 거예요. 학 생들이 작업하기엔 목조가 가장 좋죠. 물론 블록으로도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공이 힘들고 과정이 무척 지루하지요. 목재 는 재고 자르고 못 박고 맞추고 하는, 재료가 가진 즐거움이 있어요. 제약이 있다면, 대부분의 참가자가 대학생들이라서 특별 한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피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디테일이 복잡하면 하자가 생길 염려도 크고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도 낭비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설계부터 프로그래밍, 시공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다는 것은 건축가로서도 대단한 즐 거움이에요.” 딱 필요한 것만 갖춘 컴팩트한 내부 공간은 평천장 대신 시원하게 열렸다. 여기에 노출된 나무 재료가 무미건조할 수 있는 공간에 풍요로움을 더하고 있다. “우리 전통 주거에서 서까래를 노출시키는 천장 처리 방식이 운치 있지 않나요? 목 조로 집을 지을 때 지붕 구조를 노출시키고 경사 천장을 만드는 것은 공간에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합니다. 나무로 지은 집이 란 걸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 다른 재료로 싸 발라서 그게 나무로 지어졌는지 뭘로 지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목조 주택도 많지요. 또 여기서 서양식 목조 건축에 필요한 조이스터를 보내고 노출시킨 것은 너와집의 전통을 염두에 두었기 때 문이에요. 알다시피 이쪽 강원도 산간 지역에는 너와집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잖아요. 덕분에 천장 한쪽에 생긴 다락은 좁 은 평면을 기능적으로 보완해 주지요. 수평적인 한계를 수직적으로 해결한 셈인데, 계절 용품을 올려 두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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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워크 Work |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 Inje Hapgang House+Inje Seohwa House 주대관+(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Joo Dae-Khan+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능동적 노인 복지 프로그램 집짓기의 또 다른 키워드는 ‘텃밭 가꾸기를 통한 능동적 복지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집 주 변으로 텃밭이 잘 가꿔져 있었는데, 특히 서화 주택의 텃밭에는 어르신들 함자가 쓰인 팻말이 박혀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활 동 가능하고 비교적 건강한 분들 우선으로 입주자를 선정했습니다. 이 곳은 엄연한 주택이지 복지 시설이 아니에요. 저는 농 촌 지역에 베리어 프리(barrier free) 디자인이나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을 주장하는 주거 전문가들의 의견에 반대합니 다. 휠체어를 타야 하실 정도면 사회적으로 다른 방식의 캐어(care)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활동 가능한 노인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도 중요한 문제겠고요.” 실제로 이들은 집짓기를 마치고 입주자 선정에도 관여하는데, 산간 농 촌 지역 노인들의 주거 실태를 조사하여 지표를 만들고, 입주자를 선정하고, 농촌형 임대 주택의 수요 파악까지 하는 것으로 알 고 있다. 그런데, 합강 주택의 경우는 입주 대상이 아닌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주 대표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서화 주택과 합강 주택에는 조금 큰 집이 하나씩 있습니다. 특히 합강은 2층으로 계획됐는데, 조손 가 정을 위해 마련된 거죠. 하지만 실제로 조손 가정이 입주되지는 못했어요. 그 이유는 위치 때문인데, 여기 사시는 분들은 교 통약자, 에너지 약자, 경제적 약자들입니다. 특히 교통 약자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원칙은 집이 무조건 면소재지나 읍내에 위 치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군에서 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겁니다.(집짓기 사이트가 처음에는 인제군 상남면이었 다가 인제읍 합강리로 변경되기도 했다.—편집자 주) 공사가 끝 나고 나서 인제군 전체를 대상으로 입주자 선정 심사를 했는 데도 마땅한 입주자가 나오지 않았어요. 한 2km쯤 떨어진 게 위치상 멀다는 이유였지요. 재작년의 서화면 주택에는 서로들 오려고 그랬었는데……. 아무튼 입주자가 없으니까 우리의 사전 노력이 무력해졌죠. 긍정적으로 보자면 공공 프로젝트를 위 한 하나의 선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올해 집짓기 대상지도 면소재지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떨어져 있 긴 합니다.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코하우징의 실험, 정자 합강 주택. 1960년대 산림 녹화 사업으로 무성해진 아까시나무 숲을 배경으로 흰 벽, 초록 지붕의 긴 단층집 두 동이 앞뒤로 사이좋게 놓였다. 단열이 필요 없는 창고는 각 세대에 별도로 주어졌다. 건물 입구 전면에서 오가는 이 들을 맞는 건 노인들이 함께 나물도 다듬고 담소도 나눌 수도 있는 정자이다. 개별 테라스, 마당 대신이다. 실제로 합강 주택을 방문했을 때 모든 분들이 정자에 앉아 계셨다. “긴 형태를 취한 건 일조와 관련이 있어요. 남향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이지요. 또 이 곳은 노인 홈이 아니라 주택이라는 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 시골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보통 그 곳 에서 식사는 해도 잠은 집에 가서 주무세요. 문화적인 측면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고, 집짓기 프로그램에서 최대한 존중 된 개념이에요. 그리고, 올해는 코하우징의 실험이란 측면에서 정자를 조금 발전시켜 보려고 합니다. 합강 주택의 정자는 구 조적으로 뒤편 창고에 의지해 있는데, 올해는 창고 대신 공동 주방을 프로그램에 넣었어요. 겨울에는 어렵겠지만 봄부터 가 을까지 식사를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주방이지요. 여섯 집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하니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 을 거예요. 또 공동체의 친목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이것 또한 실험이죠.” 외벽은 채널 사이딩/방부목(서화 주택) 혹은 스터 코 마감(합강 주택)이다. 프로그램과 기술적인 실험만 있지는 않을 터, 재료 선정의 기준이 궁금해진다. “사실 후원되는 대로 한 거예요.(웃음) 올해는 경기가 나빠서 그런지 협찬받는 게 쉽지 않네요. 지붕은 아스팔트 슁글로 마감해야 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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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워크 Work | 인제 합강 주택+서화 주택 | Inje Hapgang House+Inje Seohwa House 주대관+(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Joo Dae-Khan+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너와집의 개념이 더해진 올해의 집, 2011 신남 주택 이번 집짓기는 인제군 남면 신남리에서 진행되고 있다. 엑 토건축이 맡아서 설계한 주택의 규모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축 2동, 6가구이며 호당 1개소의 창고,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공동 주방과 정자 등을 포함한다. 2×8공법으로 그라스울 단열이며 지열 난방 방식이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늘 염두에 둔다는 너와집 의 단열이나 구조 방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더해진다. “올해는 너와집의 개념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왔어요. 너와집이나 그와 비슷한 구조는 이쪽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지요. 평천장으로 하여 벽은 물론 천장까지 단열을 하고 지붕은 단열 없이 그냥 얹는 개념이에요. 평천장이다 보니 적정한 에어 볼륨(air volume)을 위해 층고를 20cm 올리게 되었고요. 이전의 집은 최적화 설계가 되어 있었죠. 낮은 천장까지가 2.1m로 규격품 문 높이에 딱 맞춰졌는데, 최대한 낮출 수 있는 데까지 낮 추고 대신 높일 수 있는 데는 높여서 볼륨을 적절히 사용하자는 의도였어요. 올해는 20cm 정도 올리니까 2,350cm 정도 나옵 니다. 아, 천장이 높으면 춥지 않냐고요? 그런 통설이 있긴 합니다만, 단열이 충분히 되는 집에서는 바닥과 윗부분의 온도차 가 2도밖에 나지 않아요. 외풍이라고 할 수 없으니 큰 문제는 안 되지요. 또 단열이나 방수 등은 독일 기준, 캐나다 기준으로 실험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진화해 가는 거죠. 이전 집에는 목재 덧창을 달았는데 단열 효과가 거의 없어서 올해 는 보완하는 가스켓을 달아 줄까도 고민 중이에요. 3중 유리로 단열창을 강화하는 실험을 하려고 합니다.”
봉사가 아닌 참여 7월 1일, 2011년 집짓기 현장에 대학생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 자원 봉사자를 비롯, 일반 자원봉사자들이 합세한다(간혹 고등학생이 참여하기도 한단다.) 물론 옆에서 응원을 보내고 지 원 사격해 주는 건축인들도 꽤 된다. 건축 자재나 창호, 설비 등은 협찬을 받고 있다. 전체 일정은 다음 달 8월 5일까지 36일간 으로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개별 일정은 개인 사정에 따라 그야말로 ‘형편껏’이다. 주대관 대표는 집짓기 사업에 대해 온정주의 혹은 자원 봉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했다. 봉사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봉사자’들은 대개 3~4일 일정으로 오는 경우 가 많고, 집짓기 사업의 의의를 제대로 알고 오는 이들은 진정으로 ‘참여’하기 위해 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문화도시연구소의 집짓기는 뜻이 맞는 친구들과 서로 부대끼며 열정을 나누고 놀이를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현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대화 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국제 봉사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아요. 집짓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직접 그 런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그리고 지금은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은근히 사회 에 봉사할 수 있는 친구들이 이중에서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누가 반겨 주는 것도 아닌데, 오래전 철암 프로젝 트를 경험해 본 학생들은 마치 성지라도 되는 양 지금도 여전히 그 곳을 방문한다고 덧붙인다. 집짓기 경험이 그들에게 건축적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이 일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것이 우리 의 살길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건축가들을 위해, 건축하는 후배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개 실천하는 이들은 말을 아끼는 편이다. 주대관 대표 역시 조심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푸대접 받는 건축가’, ‘준공 혹은 개관 식 때 설 자리가 없는 건축가‘에 대한 보도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사회가 건 축가들에게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책임은 물론 건축가에게 있다. 건축이 사회에 관심이 없으면, 사회 도 건축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사회에 필요한 존재임을 보여 주지 못하는데 사회의 인식이 쉽게 바뀔 리 만무하다. 주 대표가 “ 우리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일축한 것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이지 않을까. 그렇게 이해하고 마무리할 때쯤 그가 한 마디 덧붙 인다. “집짓기 프로젝트 같은 걸 많이 제안하면 건축의 일거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쉽진 않은데, 이것이 만약 정부 프로젝트가 된다면 적지 않은 일거리가 생기는 거겠죠. 우리가 사회에 필요한 것을 찾 아내고, 그것을 보여 주고 제안을 하면 일거리도 생기는 겁니다. 그 방식은, 정말 공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건축가들 이 입증해 내는 것이어야 하겠고요. 해 낼 수 있어요.” ⓦ 정리 | 정귀원(본지 편집장) 101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2010 인제 합강 주택
2010 인제 합강 주택 건축 개요 | 건축주 : 인제군청 | 대지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98-1 | 대지 면적 : 1,733.15m2 | 건축 면 적 : 238.36m2 | 연면적 : 248.76m2 | 규모 : 2층 2동(6가구) / (1동 3가구) + 외부 창고 및 마을 정자 | 주차 대수 : 2대 | 공법 : 경량 목 구조 2×8 | 단열 시공 : 연질우레탄 + 그라스울 / 연질우레탄 | 에너지원 : 지열 난방(SRT, 중앙 집중식 공급)
102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아까시나무 숲을 배경으로 목가적 풍경을 이루는 합강 주택. 오른쪽 운동 기구는 건축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군에서 마련해 준 것이다.
103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합강 주택. 위치가 교통 약자인 노인들에게 불리하다.
자원 봉사 프로그램 형식으로 진행된 독거노인을 위한 공공 임대 주택.
104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남향을 원칙으로, 단열이 필요 없는 창고는 각 세대에 별도 계획됐다.
한국전쟁 때 기린 청년 결사대로 활약하셨던 할아버지의 집 내부.
105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조손 가정을 위한 2층 집.
뒤편의 창고를 구조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정자. 올해는 창고 대신 공동 주방을 배치할 계획이다.
106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스터코 마감의 외벽. 외벽의 재료는 대개 후원에 의해 결정된다.
합강 주택 단면도
107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합강 주택 배치도
108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합강 주택 평면도
109 2011.03-04 | Wide Architecture Report 20
2009 인제 서화 주택
2009 인제 서화 주택 건축 개요 건축 개요 | 건축주 : 인제군청 | 대지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699-1 | 대지 면적 : 2,083m2 | 건축 면적 : 260.22m2 | 연면적 : 260.22m2 | 규모 : 1층 3동(6가구) / (1동 2가구) + 외부 창고 및 공동 보일러실 | 주차 대수 : 3대 | 공 법 : 경량 목구조 2×10 | 단열 시공 : 그 라스울 / 연질우레탄 / SIP단열구법 | 에너지원 : 태양열 난방 + 기름 보일러
110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세 가지 방식의 단열로 경제적 저에너지 주택을 실험한 서화 주택.
111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합강 주택이 지열 난방이라면 서화 주택은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다.
2×10의 경량 목구조로 외벽은 채널 사이딩/방부목 마감했다.
112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1동에 2가구씩 총 3동으로 구성됐다. 멀리 보이는 정자는 지역 유지가 기증한 것이다.
주변으로 옥수수 등을 심은 텃밭이 가꿔져 있다. 텃밭 가꾸기를 통한 능동적 복지 프로그램은 집짓기 사업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113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서화 주택 평면도와 단면도
114 와이드 AR 22 | 워크 Work | 주대관 Joo Dae-Khan + (사)문화도시연구소 집짓기 팀 Research Institute CULTURECITY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나은중 Na Unchung + 유소래 Yoo Sorae
나은중+유소래 NAMELESS |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건축, 예술 그리고 문화적 사회 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불예측성의 시대에 단순함의 구축은 NAMELESS가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에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2011년 현재, 급변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 는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로 그들의 작업을 규정하며 이를 통해 뉴욕건축연맹이 수여하는 뉴욕 ‘젊은건축가상’(The 2011 Architectural League Prize for Young Architects)과, 미국건축가협회의 ‘뉴욕건축가협회상’(AIA New York Design Award 2011), ‘보스턴건 축가협회상’(BSA Award 2010) 등을 수상했다. www.namelessarchitecture.com 나은중 + 유소래 | 나은중과 유소래는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UC Berkeley에서 같은 해 수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 International House 국제 공모에서 공동 작업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이 시대의 건축과 사진, 비디오 등 타 매체에 대한 공동 관심사 로 버클리, 뉴욕, 시카고 등의 도시에서 다수의 작업을 전시, 기획하였고 이를 통해 건축에 대한 폭넓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 다. 2010년 뉴욕에서 NAMELESS 사무소를, 2011년 서울사무소 개설하여 현재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Installation view at Arnold and Sheila Aronson Galleries, New York, 2011.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 이 시대, 우리는 깨지기 쉬운 세상를 경험하고 있다. 지구 환경의 불안정성과 더불어 예측하기 힘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새로 운 방식의 네트워킹을 통한 가치 체계의 급속한 변화는 우리들 삶의 불안정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더 이상 특정 장소와 거주자들에 국한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전 지구적인 경험이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건축가의 역할 확장을 통해 정의하며, 강함보다는 연 약함, 고정됨보다는 유연함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에게 있어 건축은 깨지기 쉽다. 이는 외부적 힘의 변화에 저항해 부러져 소멸됨 을 의미하기보다는 취약한 지구 환경과 급변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한 반응체로서의 건축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건축 이 점유하는 대기, 물, 토양, 식물, 대지를, 주어진 그리고 고정된 환경으로 인지하기보다는 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자 구축 가능한 물질 로 바라봄으로서 가능해진다. 이 물질들은 띄우고, 얼리고, 쌓고, 찟고, 채우는 등의 건축적 개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는 장소를 디자인하고 건물을 구축하는 전통적인 건축가의 역할로부터 일상의 물질과 건축 사이에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관계를 만드는 중 개자로서의 새로운 건축가의 역할을 의미한다. 깨지기 쉬운 건축은 이러한 역할을 위한 매개체이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이다. 공기, 물, 흙 등 일상의 물질들은 항상 그 곳에 있어 왔고, 그들은 여전히 그 곳에 존재할 것이다. 이들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세상의 질서에 안정적인 평형 상태를 제공하며 급변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반응하는 강한 건축을 가능케 할 것이다.
115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나은중 Na Unchung + 유소래 Yoo Sorae |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
A Typology of Fragility.
세개의 가설로 구축된 Fragility 자연
개입하기
제1의 항아리에 공기를 담는다
제1의 (공기가 담겨진 항아리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제1의 바람이 빠진다.
환원
제2의 항아리에 흙을 담는다
제2의 (흙이 담겨진 항아리에) 둔덕을 쌓는다.
제2의 둔덕이 낮아진다
제3의 항아리에 물을 담는다
제3의 (물이 담겨진 항아리를) 얼린다.
제3의 얼음이 녹는다.
제4의 항아리에 나뭇잎을 담는다 제4의 (나뭇잎이 담긴 항아리에) 빛이 든다.
제4의 나뭇잎이 떨어진다.
제5의 항아리에 모래를 담는다
제5의 (모래가 담긴 항아리에) 틈새를 만든다.
제5의 틈새가 무뎌진다.
제6의 항아리는 비워 둔다
제6의 (비워진 항아리를) 그대로 둔다.
제6의 비워진 항아리는 그대로 둠으로 그대로이다.
<A Typology of Fragility>는 일상의 ‘물질’과 재현된 ‘장소’ 사이의 건축적 개입을 보여 주는 전시이다. 3.9m×0.6m의 테이블에 놓인 일련 의 유리 항아리는 6개의 개념화된 건축 모형과 각각의 일상적인 재료들을 담고 있다. 투명한 항아리는 ‘깨지기 쉬운 건축’을 담는 그릇이자 그 자체의 연약함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표상한다. 그곳에 담긴 공기, 물, 흙, 대지, 식물 등 자연의 변화 가능한 재료들 은 공기를 불어넣고, 물을 얼리고, 흙을 쌓는 등의 최소한의 건축적 개입을 통해 장소와 물질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116 와이드 AR 22 |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 나은중 Unchung Na + 유소래 Sorae Yoo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나은중 Na Unchung + 유소래 Yoo Sorae |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
Bakery Barn Project.
NAMELESS 특정 언어를 부정하게 되면 부정하기 전 본래 의미의 반대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 본래 의미의 새로운 해 석과 동시에 기존의 한정된 의미가 때로는 모호하게, 때로는 무한히 확장되는 경우가 있다. 이름이라는 단어 역시 그 한정적인 본래 의미가 ‘이름없는’이 되었을 때 그 의미의 틀을 확장한다. ‘Nameless Architecture’ — 읽는 이로 하여금 무명의 건축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또 다 른 이로 하여금 모호한 정체성 혹은 장난처럼 이해될 수도 있다.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동시에 아름답고 단순한 이 름이다. 물리적
장소성 도시는 얽히고설킨 거미줄이다. 우리는 뉴욕과 서울, 두 대도시의 거미줄 안에 연약한 가지를 치고 있다. 뉴욕
은 젊은이들의 욕망으로 가득찬 문화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이는 동시대성(contemporariness)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틀을 확장하는 기 회를 제공한다. 반면에 서울은 나와 내 주변의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힌 장소이다. 이는 종이 위의 생각을 실체로 변환시킬 수 있는 현실적 기회이자 사회적 인프라이다. 상대적인 가치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 전, 다름에 대 한 가치 판단을 선행해야 한다. 건축을 하는 동안 항상 이러한 다름에 대한 혹은 그 관계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핵심은 그들의 관계 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식의 손길을 가하는가이다. 그대로 두거나, 살짝 비켜 놓거나 혹은 뒤집어 버리거나 등의 개입이 가능하다. 불예
측성 위의 단순함(Simplicity on the unpredictability) 우리는 불예측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화 와 불예측성은 늘 존재하였지만 급속히 고도화되어 가는 문명과 그에 따른 유동적인 가치의 변화는 과거와 현재의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 다. 이러한 세상 위에 많기보다는 적음을 통해 단순함을 드러내는 행위는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단순 함이란 무언가가 과하지 않아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이다. 이는 외부 세상과의 최소화된 관계로 인해 분석되고 해석되기보다는 자 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그것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름답고 편안한 존재에 대한 미학적 용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단순함을 갈망한다. 특히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 앞에서 단순함이란 그 적음을 드러내며 세상에 신 선함을 던져 줄 수 있다. Whiteout.
117 2011.03-04 | Wide Architecture Report 20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나은중 Na Unchung + 유소래 Yoo Sorae |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 사이(Between Natural and Artificial)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 사이에는 몇 가지 예측하기 힘든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구축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성립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정의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에 의존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따른다.
Mimesis House.
실재와 가짜 사이(Between the real and the fake) 실재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짜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관념적인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지만, 우연인지 필연연지 우리들 세상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숨김과 드러냄 사이(Between Concealing and Revealing)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과 숨기고자 하는 욕망,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욕망은 때때로 관음증 혹은 노출증으로 변형되거나 혹은 발전되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관음적인 욕망은 타인의 사고와 삶에 대한 관심을 표상하며 더욱 이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러한 포장되지 않은 욕망은 새로운 장소의 의미를 이끌어 내는 잠재성을 지니며 동시 에 일상 공간을 구성함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동시대성과
일시성 사이(Between Contemporary and
Temporary) 모든 예술은 contemporary이며 동시에 temporary이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는 모던(modern)과는 달리 특정 사 조와 시대를 지칭하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동시대성을 함축한다. 이러한 상대적인 시간에 대한 개념은 현재라 불리는 단 어가 의미하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지금 여기의 특정 사실, 존재, 현상 등을 컨템포러리로 지칭한 다면 그것은 언젠가 소멸될 과거의 이야기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현대 예술을 담는 장소를 그려 본다면 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된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담지 못한 현대 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은 곧 미래에 가치를 상 실할 일시적 미술관(Temporary Art Museum)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난 이 시대의 문화, 사회, 역사를 담는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118 와이드 AR 22 |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 나은중 Unchung Na + 유소래 Sorae Yoo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5 나은중 Na Unchung + 유소래 Yoo Sorae | The Architecture of Fragility
Inside Outside House.
Toward a New Structure of Thought 도래할 시대의 기술과 정보의 발전은 인간에게 극단적인 효율성과 안락함을 선사할 것이 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활동은 장소간의 물리적 이동 없이 가능해질 것이며 집, 직장, 공공 장소의 구분은 모호해질 것이다. 이러 한 시대에 건축이 사람을 고립시키는 섬이 아닌 모든 활동의 장(place for everything)으로 진보됨을 상상한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물리적 인 경계를 만들어 삶을 보호한다는 건축적 장소의 개념은 원시적 주거로부터 현대의 집까지 모든 시대에 걸쳐 유효했다. 하지만 도래할 시 대, 전통적 구축의 요소들과 함께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삶의 방식을 수용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비물성화된 영역이 요구될 것이다. 만일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장소가 1이고, 물리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를 0이라 가정하면 이 영역은 0과 1사이의 스펙트럼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 모호한 공간은 일시적인 그리고 변화할수 있는 가치들로 채워진 장소이다. 새로운 시대의 정신은 어떻게 장소를 구축하는 가의 문제라기보다는 미래의 예측 불가능한 수렴과 발산을 수용하기 위해 어떻게 현재의 건축을 해체시키는가이다. 집은 곧 삶이며 외부 이며 동시에 내부이다. ⓦ
119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6 고기웅 Ko Kiwoong
고기웅 고기웅 |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건축학교 마른 라 발레 4학년 수료 후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를 졸업했 다. 이후 유럽과 아시아 각지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았다. 귀국 후 매스스터디스를 거쳐 2006년 고기웅사무소 를 설립하고 활동하고 있다.
(그림 1)
(그림 2)
건축사사무소 53427+고기웅사무소 고기웅사무소는 5년 전 2006년 설립되었으며, 건축사사무소 53427은 2년 전 이주은 소장과 함께 설립하였다. 53427은 건축 설계의 업 무를, 고기웅사무소는 그 외의 일들을 위한 것이지만 현재 모호한 구분 속에 4명의 직원을 포함하여 6명이 두 사무소의 일을 함께 진행 하고 있다. 이 글은 ‘땅집사향’에도 소개한 2011년 4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의 작업들의 나열로서, 현재 우리 사무소의 수동적 선택에 의한 관심사들에 관한 것이다.
건물 이외의 건축 현재 우리는 건물 설계 이외에도 다른 분야의 것들을 설계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작년에 시작하여 요즘 마무리하고 있는 가방 디자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심 농장’ 프로젝트이다. 도심 농장 프로젝트는 인공토를 사용한 채소 재배틀인데 옥 내 공공 장소에 놓이는 큰 화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그림 1). 가방 디자인은 타 분야의 아티스트, 혹은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에이전 시에서 그 협업의 기회를 건축가와도 가지려는 시도이고, 도심 농장은 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시스템을 담는 그릇을 설계할 사람을 찾다 가 우리 사무소로 의뢰가 들어온 경우이다. 두 프로젝트 모두 우리가 평소에 다루는 재료, 스케일, 그리고 만드는 과정의 다름에서 오는 생소함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사무소가 자칫 고착될 수 있는 디자인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올해 우 리는 두 개의 전시를 통해 순수 예술 분야와 협업할 수 있었다(그림 2). 이러한 작업은 평소 가지고 있는 건축적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표 현하는 기회가 됐는데, 타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같은 주제를 다른 관점과 매체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120 와이드 AR 22 | New POwer ARchitect 파일 06 | 고기웅 Ko Kiwoong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6 고기웅 Ko Kiwoong | 건축사사무소 53427 + 고기웅사무소
공공 디자인 올해 우리 사무소는 몇 가지 공공 디자인 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201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어반 폴리’ 보조 큐 레이터의 역할과, 여기서 파생된 두 명의 해외 건축가의 디자인 실시설계 업무와, 문화부에서 주관하는 ‘2011년 공공 디자인 조성 사업’ 평 가 위원,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사업의 디렉터 일을 하고 있다. 학교 만들기(그림 3) 사업 이외에는 설계 업무보다 사업 진행의 보조 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건축가로서 이러한 공공 영역의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건축가의 역할이 넓어지는 경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공공 영역에서 전문가들의 역량 이 좀 더 발휘되려면 몇 가지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학교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었던 면온초등학교 학생들과의 작업은 지금까지 우리 사무소가 주변(특히 건축주)과 대화하던 태도와는 다른 방식의 대화를 경험하게 했는데, 이처럼 일상의 언어로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은 요 즘 건축계에서 제기되는 소통의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모전 지난 두 달간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두 개의 공모전에 참가했다. 결과는 2등 한 번(그림 4)과 낙선(그림 5)이었다. 물론 정황을 살 펴보면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수긍하고 싶지 않은 결과이며, 현재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공모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모전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참여한 공모전의 규모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익명성’이라고 생각한다. 공모 전 요강 발표와 함께 심사위원은 공개되어야 한다. 공모전 참가자들이 어떠한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받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모전 참여자도 공개되어야 한다. 물론 공모전은 설계안을 선택하기 위한 경기지만, 결국은 일을 할 사람을 뽑는 장이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 혹은 사무소가 이 일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선정해야 한다. 현재의 제한된 제출물로 이 것을 가리기는 심사위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 심사위원과 참여자의 공개는 불공정한 심사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지만, 이러한 부작용이 지금의 시스템이라고 없지는 않다. 또한 자각 있는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공모전 심사 참여가 필요하다. (그림 3)
(그림 4 : 둘리 문화센터 공모전)
121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New POwer ARchitect 파일 06 고기웅 Ko Kiwoong | 건축사사무소 53427 + 고기웅사무소
새로운 프로젝트 우리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는 새로운 관심사를 몰고 온다. 현재 새롭게 진행하고 있는 일들은 <신사동 근생>, <신봉동 프로젝트>, 그리고 <수유동 단독주택> 등이다. <신사동 근생>은 가로수길 배면에 위치한 44평의 작은 필지의 건물이다. 현재 우리 사무소가 일하고 있는 지역의 프로젝트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에게 적극적으로 투자를 설득하여 대지 매입, 용도 선정, 설계, 임대까지 우리 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일이란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처음으로 사업을 시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수도 사업의 성과에 달려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비용의 사용과 임대 마케팅까지 고려해야 하는 일이다. <신 봉동 프로젝트>는 용인시 수지구의 개발제한구역과 난개발된 지역의 경계에 있는 7,000여 평의 대지 위에 진행되는 일로서, 난개발이 낳은 그 지역의 문화적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작년 사전 조사 용역을 거쳐 땅의 사용 방법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일이다. 건축주가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는 보통의 일과는 달리, 보다 넓은 이해를 통해 우리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의 답 을 구하는 프로젝트라는 데 의미가 있다. 한편으론 The Living의 양수인 소장과 공동 작업하고 있어서 다른 건축가와의 협업 과정에서 나 오는 결과도 기대된다. <수유동 단독주택>은 요즘 관심사인 공사비가 저렴한 주택으로 북한산 자락이 대지이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평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간과 예산으로 건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가깝게 지내는 건축가들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들을 하 고 있어서 올 하반기 주변 건축가들의 주된 관심사는 ‘싼 집’이 될 것 같다. 이 일들의 결과를 연말에 ‘싼집사향‘(사람의 향기가 있는 싼 집) 이란 제목으로 발표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
(그림 5 : 환경성 질환 치유 센터)
122 와이드 AR 22 | New POwer ARchitect 파일 06 | 고기웅 Ko Kiwoong
와이드 AR 22
와이드 칼럼 | 노블리스 오블리주 | 임근배 근 잡지의 칼럼은 모두 그 비슷한 이야기
정적인 면을 동시에 안고 있으나 지금같
로 나의 이런 이야기가 신선하지도 감동
이 힘들 때에는 당분간 긍정적인 면만을
적이지도 않겠더군요.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 왜 이렇게 쓰기가 힘이 드는지 모르겠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하자며 글을 써 내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며 힘들 때나 방향을
습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가
가는 중에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전에
모를 때 길을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합니
닥이 잡히지가 않는군요. 계속되는 고질
다니던 회사에 함께 근무하였던 직장 후
다. 마음에 담고 있는 스승이 있다면 훨씬
적인 경기 침체로 모두가 위축되어 그런
배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
쉽겠네요. 지금 우리에게 희망을 불러일
가요? 신선한 이슈도 신나는 일도 없습니
니, 나이도 젊고 건강한 친구였는데 교통
으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구를 생각
다. 요즘은 서로 안부를 묻는 것도 실례라
사고인가? 하며 내용을 알 만한 사람에게
하면 다시 힘이 솟아날까요?
합니다. 대답하는 것도 고역이며 어떤 대
물어보니 자살이라 하더군요. 그는 후배
답도 썩 반갑지가 않은 것입니다. 어렵다
들 몇 명과 팀을 이루어 설계 일을 하며
가장 먼저 황희 정승이 생각납니다. 조선
는 말을 들으면 함께 기분이 침체되고 잘
지내왔답니다. 자기 직원들 월급을 밀리
시대의 명재상이며 정치, 외교에 능한 고
된다는 말을 들으면 우선은 내 일처럼 기
지 않으려고 자금난이 생기자 빚을 내서
위 공직자. 그러나 그가 생각났던 이유는
쁘다가도 곧이어 ‘나는 잘 안되는데’ 하며
사무실 운영을 했답니다. 생각처럼 잘 풀
그런 그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그가 사
또 위축되곤 합니다. 꽤 된 일이지요.
리지 않아 빚은 점점 늘고 자금 상황은 최
는 모습입니다. 청백리의 모델로서 사람
악의 상태로 치달아 더 이상 버티지 못하
들 입에도 가장 많이 오르지요. 그의 에
생각 끝에 우리 건축계가 안고 있는 현실
고 절망하여 그런 극단의 방법을 썼다는
피소드 중 유난히 기억나는 이야기는 부
적인 문제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
얘기였습니다.
인의 삯바느질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이번 호의 칼럼은 쉽게 써지지가 않습니
정승을 지내는 분이 집에 생활비를 잘 갖
가짐, 준비 등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풀어 가기로 했습니다. 현실적인 가장 큰 문제
그 충격으로 며칠을 멍하게 지내다가 원
다 주질 않았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자
는 일거리가 없다는 것인데, 있는 일거리
고 생각이 나 다시 끌어안고 끌탕을 하는
신의 월급을 나누어 주변의 어려운 사람
도 대개 큰 회사의 차지이고 나머지 부스
데 이 친구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
들을 도와 주느라 그랬답니다. 견디다 못
러기로 작은 회사들이 연명하게 되지만
요. 미래, 희망 등 긍정적인 이야기로 지
한 부인이 식솔들 식량이라도 해결할 요
그나마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데 견디다
금의 난국을 잘 이겨나가도록 용기를 주
량으로 동네에서 삯바느질감을 얻어 일해
못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렇게
자는 내용이 망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고 받은 품삯으로 입에 풀칠을 하곤 했
되는 이유는 큰 일은 대부분 정부나 공공
이 친구처럼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
다는 것이지요. 이를 알게 된 정승이 부인
기관의 발주분인데 거의 전부가 현상 설
하는 긴박한 사람에게 위로가 될까? 현실
에게 화를 내며 하신다는 말씀이, 그런 일
계나 턴키로 이루어지고, 그 설계자 선정
적인 해결 방법도 없이 말로만 하는 희망
을 가지고 오면 그 일로 연명하는 백성의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 또 건축 설계
이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힘들어
일을 빼앗은 것이 아니냐며 당장 그만두
사무소 고유의 일들을 하나둘씩 다른 분
하는 건축계의 동료들에게 쉬운 말로 섣
게 하였답니다. 자신과 식구들이 입에 풀
야 전문가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데다, 건
불리 ‘참고 잘하면 되지 않겠나’라는 식의
칠 못하더라도 백성의 안위를 먼저 생각
설사가 설계까지 할 수 있게 된 것 등 오랫
위로와 희망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다는 거룩한 정승의 마음을 얘기하는 일화입니다.
동안 계속되는 경제적 침체와 이에 따른 당사자들의 입장차가 밥그릇 싸움으로 이
마감일이 지났는데도 생각이 거기에서 계
어지고 결국 날선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속 맴돌기만 하며 정리되지 않아 하는 수
우리 나라의 대표적 노블리스 오블리주
현실하며, 그 경쟁 구도에서 대기업, 대형
없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경주 최부자는 어떻습니까? 가진 것 많
설계사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 등 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
은 부자였지만 가난한 이를 생각했던 품
리 또는 악습을 들춰 내고, 그러나 그래
무래도 나는 희망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위 있는 부자, 그 가문은 12대 300년 동안
도 이를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생각하
희망이 없으면 곧 죽음이고 희망 말고는
만석꾼을 유지했던 집안입니다. 이 가문
며 긍정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줄거리를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이
이 이렇게 오랫동안 부를 누리면서도 주
구성하였지요. 그런데 때가 때인지라 최
란 모두 양면성이 있어 긍정적인 면과 부
위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123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와이드 AR 22 와이드 칼럼 | 노블리스 오블리주 | 임근배
나름의 가훈이 있었고 그 가훈을 대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도덕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뜻이 ‘귀족이기에
묵묵히 지켜왔기 때문이라는데, 하나하나
체면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선 크
의무를 행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현대
보면 부자가 될 동기와는 전혀 관계없어
고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수주에 총력을 기
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사회적인 책임
보이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울입니다. 그에 필요한 직원을 뽑고, 직원
(oblige)을 먼저 짊어지는 이들을 노블리
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더 많은 일을 따야
스라 부름’ 쯤으로 정리하면 괜찮지 않을
그 내용은,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
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또 사람을 더 채
까 생각됩니다.
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 석 이상
용하고, 그런 순환의 고리에서 수주가 여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
의치 않으면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따
뜻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힘이 있는 사
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
내고는 성취감에 스스로 환호합니다. 속
람은 뜻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뜻이 있
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
으로는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기들도
고 그 뜻을 펼칠 만한 힘도 있어야 될 일
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
어쩔 수 없을 악순환이 이렇게 계속되고
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뜻이 있는 사람
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입니다. 마음
있습니다.
이 힘을 기르는 것보다는 힘이 있는 사람
까지 훈훈해지는 것은, 능력이 있어도 어
이 뜻을 키우는 것이 좀 더 손쉬울 것 같
느 지위 이상 오르려 하지 말고 돈을 더 벌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속빈
아 보이는데 그건 어떨지요? 어그러져 있
수 있어도 얼마 이상 벌지 말라는 것, 그리
껍데기만 가지고 발전이다 뭐다를 논하
는 현실이 풀려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고 주변 사람들이 어려우면 그들의 능력
지 말고 적당한 크기의 회사에 적당한 일
면 힘있는 이가 먼저 풀어야 풀립니다. 가
이나 태도에 상관없이 무조건 생존을 책
을 처리하며 적당한 이익을 창출하여 모
진 이가 내어 놓는 것이 못 가진 이들이
임지라는 것입니다. 즉 나와 내 가족만이
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성숙된 마음가짐
내어 놓는 것보다 쉽지 않겠습니까? 가
아니라 주변에 함께 사는 이웃의 안위까
의 개혁이 우선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
진 이들은 내어 놓을 것을 지금 손에 쥐고
지도 기본적으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게 나누며 더불어 살아갈 때, 자신감과 능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가진 이가 선뜻 내
얘기이지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
력이 자리를 잡고 성취감과 품위가 뒤따
어 놓지 못하는 것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
해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언제
르지 않을까요? 저마다 영원히 채울 수
것은, 내어 놓을 동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
들추어 보아도, 자꾸자꾸 반복해도, 신선
없는 목표를 세워 놓고 그 목표를 채울 수
까요? 건축계에서 누구든 노블리스가 되
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인기 가요
없음을 알면서도 억지로 주변을 닦달하여
어 동기를 만들어 오블리주를 행해야 하
를 반복해서 수백 번 들어도 지루하지 않
앞으로만 돌진하는 게걸스럽고 천박한 기
지 않을까요? 그 움직임이, 꼬이고 꼬인
고 좋은 감정을 갖는데, 이런 이야기도 그
업 철학도 이제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을
지금 이 상황을 희망이 보이게 풀어 나가
런가 봅니다.
까요? 그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짧지 않
는 시작이라 보고 싶습니다.
은 세월을 달려와서 무엇을 이루셨나요? 요즘 우리 나라 재벌들은 많은 회사를 그
이룬 것에 만족하십니까? 그러면 이젠 품
첨단의 전략을 세우고 체계를 갖추어 경
룹으로 엮어 소유, 경영하고 있습니다. 또
위 있게 노블리스들이 건축계를 순수하게
쟁력 있는 기업으로 도약하는 설계 회사
그들 중 많은 재벌들이 모기업에서 파생
지키는 오블리주를 행할 때가 되지 않았
의 웅대한 꿈도 좋지만, 묵묵히 그리고 열
되는 관련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여
을까요?
심히 살아가는 건축 이웃들의 소박한 꿈
가족과 친척 등 일가에 나누어 주어 아주
도 나름대로 소중합니다. 작은 꿈을 꾸는
쉽게 고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판짜기에
지금 이 시대의 노블리스는 누구일까요?
이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을 생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도
그들의 오블리주는 무엇일까요? 원래 노
각하여 일도 좀 남겨 놓고 굶지 않나 살펴
모하는 일이라면 체면도 없이 저인망 쌍
블리스 오블리주란 귀족들이 귀족으로서
봐 주기도 할 이 시대의 경주 최부자는 지
끌이식으로 무조건 싹쓸이해 놓고 보는
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특권을 누리는 대
금 어디에 계십니까? ⓦ 글 | 임근배(본
아주 무섭고 야비하고 천박한 장사꾼 모
신 그 사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지 상임 고문, 그림건축 대표)
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도덕적 의무를 말하지요. 지금 우리 사회 는 계급 사회가 아니므로 태생적으로 귀
우리 건축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
족이 될 수는 없습니다. 현대에 맞는 노
은 큰 회사들이 일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블리스의 재정의가 필요하군요. 원래의
124 와이드 AR 22 | Wide Column | 임근배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전진삼의 FOOTPRINT 01 5월
담으로 빛을 보게 된 이 주택은 현재 국
5월 21일(토) 오후 2시, 본지 편집
제공인기관인 PHI-US로부터 설계 도서
실에서 2011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제2
에 의한 사전 인증을 득한 상태며, 준공
기를 위한 5월 프로그램이 안철흥(전 시
5월 6일(금) 보슬비가 내리던 날 오
후 최후 인증을 받기 직전에 있다. 7월 개
사저널・시사인 기자) 씨의 강의로 진행
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빌딩 주차장에
막되는 원도시아카데미세미나 젊은건축
되었다. 인문 교양 세미나와 주간지 기자
서 <이상의 집 드로잉>전이 열리고 있다.
가포럼 제1전시 초대를 위해 현장 방문
되기가 주제였다.
한 평 크기의 ‘모바일갤러리’(이동식 전시
한 터였다.
장)다. 건축집단 와이즈(WISE) 장영철,
5월 18일(수) 낮, 김포공항 국내선
전숙희 팀이 주위의 많은 건축인 및 문화
청사 커피숍. 짧은 시간 거제도에서 올라
인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이상의 집’ 상상
온 KSA건축의 양덕복 소장을 만났다. 그
드로잉을 A4 크기의 용지에 모은 걸 전시
와의 인연을 말하자면 조금 긴데, 단순화
하고 있다. 관념화된 일상을 벗기고, 말랑
시키자면 잡지 『건축인 POAR』를 만들고
말랑한 생각의 끈으로 세상 들여다보기를
있을 때 부산 지역 편집위원으로 인연을
꾀하는 듀오 건축가의 건강함을 읽을 수
맺은 바 있다. 그가 6월 4일부터 7월 3일
있는 현장이었다.
까지 1개월에 걸쳐 지방의 건축가로서 살
5월 12일(목) 저녁, 2011원도시아
아온 20년의 족적을 개인 건축전의 성격
5월 27일(금) 저녁, 서울 인사동
카데미세미나 미래학 강좌 첫 번째 강의
으로 준비하고 있다.
골목 누리 레스토랑에서 삼협종합건설
가 서울 신사동 원도시건축 지하 강당에
5월 18일(수) 저녁 7시, 제55차 땅
(대표 김연흥)과 본지가 함께 주최・주
서 열렸다. 유전학 전공 박병상 박사의 심
집사향이 서울 장충동 그림건축에서 열렸
관하는 건축가 네트워크 행사인 <ABCD
화 강의로 진행되는 이 세미나의 첫 주제
다. 네임리스(NAMELESS)라는 독특한
파티—2>가 열렸다. 아키텍처 브리지 크
는 ‘환경과 생태계, 생태철학’. 시각 자료
그룹명을 쓰고 있는 나은중, 유소래 듀오
리에이티브 디너(Architecture Bridge
에 의존하지 않고, 사전 배부된 강의초록
건축가의 건축 생각을 듣는 자리다. 예상
Creative Dinner) 약칭의 이 파티는 연
의 유인물조차 내려놓은 채 두 시간 가량
을 깨고 60여 명이 운집한 그 날의 성황은
중 한두 차례에 걸쳐 본지와 연관을 맺은
자유로운 토크와 즉흥 퍼포먼스로 진행하
의외였다. 귀국한 지 오래지 않아 그다지
건축가, 필자, 협력사 대표들을 초청, 교
는 강의 방식이 유별났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젊은 건축가에게
류하는 자리다. 이 날 공부는 서용식(수목
큰 호응이 일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미
건축 대표) 씨가 초청 게스트로 나서 ‘도
국 건축계가 이들에게 수여한 일련의 ‘젊
시형 생활 주택과 미래 건축 시장의 향방’
은 건축가 상’이 여러 매체에 집중 소개된
에 대하여 ‘실전 강의’를 맡아 주었다. 누
바 있는데 필시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을
리 레스토랑 전체 공간을 임대한 이 날 행
것이다. 지난 호부터 본지에 ‘사진 더하기
사에는 50여 명의 건축가, 교수, 저널리스
건축’ 연재 꼭지를 맡아 쓰고 있는 이들의
트가 참석했다.
향후 활약상을 기대해 봄직하다.
5월 13일(금) 오후, 엔진포스(ENGINE FORCE)라는 이름으로 독립된 공 간에서 개인 작업을 시작한 윤태권 소장 의 안내로 그가 설계하고, 최근 준공된 양 평주택을 방문했다. 애초에 건축주로부터 패시브하우스로 기획되고, 윤 소장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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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전진삼의 FOOTPRINT 01 6월
전유창, 정수진, 조택연, 함성호 씨 및 편
상에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늘 주
집실 3인이 참석했다.
변에 있지만 뒤로 물러나 앉은 약수터 얘
6월 7일(화) 저녁 7시, 인천건축재
기 등 뒷산에서 찾아낸 이일훈의 독특한
6월 1일(수) 오전, 서울시 주택본부
단(대표 구영민, 인하대 교수) 정기 모임
사물 읽기가 흥미롭다. 책은 ‘도서출판 하
회의실에서 2011서울건축문화제 집행위
이 인하대 후문 재단 사무실에서 열렸다.
늘아래’서 6월말 출간되었다.
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곽재환(위원
구 대표의 진행으로 하반기 사업의 방향
6월 9일(수) 저녁 7시, 박병상 박사
장)을 위시하여 김기환, 신창훈, 임형남,
과 회원 간 교류 증대에 관한 논의가 있
가 진행하는 2011원도시아카데미세미나
전진삼 4인이 집행위원으로 위촉, 구성되
었다. 인천건축재단은 인천 지역에 연고
미래학 강좌 두 번째 강의가 서울 신사동
었다. 사업 실행 주무팀은 한국건축가협
를 둔 건축사, 건축학과 교수, 미술인, 미
원도시건축 지하 강당에서 열렸다. 이 날
회(이하 가협회) 공공사업위원회가 맡았
술학과 교수, 도시 및 지역 연구자들로 구
의 주제는 ‘인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고, 이날 착수 보고회가 열렸다. 가협회
성된 비영리 민간 단체이다. 대표 외 권형
는 인구 문제를 지역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이상림 회장, 노윤경, 이공희, 신동재, 김
표, 김근호, 김숭환, 김정숙, 손도문, 박혜
전 지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능현, 정기정, 노은주 씨 등과 서울시 주
선, 이태상, 전진삼 등이 참석했다.
펼쳤다. 다산을 장려하는 우리 정부의 인
택본부 이건기 국장 등이 동석했다.
6월 8일(수) 오전 10시 30분, 서울
구 전략을 통렬히 비판했다.
시청 을지로 분관 내 2017 UIA 총회 유치
6월 10일(목) 저녁 7시, 본지 임근
서울사무소에서 2011서울건축문화제 워
배(그림건축대표) 상임고문의 초대로 편
크숍이 열렸다. 오후 3시 무렵까지 진행
집실 식구들이 연희동 퓨전 중국 음식점
6월 3일(금) 오전 10시, 서울 신
된 이날 모임의 주요 안건은 올해의 실행
‘치노’에 모였다. 편집실 3인 외 본지 전
안에 대한 세부 내용을 중심으로 집행위
속 사진작가 남궁선, 진효숙과 <W-아키
원의 이해를 구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한
버스> 담당 객원 기획 PD로 가세한 최효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였다. 집행위원 4인
진이 동석했다.
과 실행팀인 건축가협회(김능현, 정기정)
6월 14일(화) 오후 5시, 서울 원서
그리고 서울시 담당자 2인이 참석하였다.
동 공간사옥 안마당. 건축가 김수근 타계
사동 원도시건축 회의실에서 2011원도시
25주기를 맞아 김수근문화재단(이사장
아카데미세미나 부대 사업으로 벌이는 젊
승효상, 이로재건축 대표)이 주최한 파티
은건축가포럼 전시 지원 사업의 제1전시
에 참석했다. 김도자 여사, 큰딸 김리리
초대 작가 사전 모임이 열렸다. 이스트포
씨 등 선생의 유가족, 친지 및 건축과 미
(EAST4)의 박준호, 이승연 공동 대표, 광
술계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그동안 국
장건축의 이현욱 소장, 엔진포스의 윤태
내 건축가에게 수여되던 김수근문화상 건
권 소장이 참석했고, 가와건축 최삼영 대
축상은 내년부터 범국제적 건축상으로 변
표는 국외 체류 중이라 참석지 못하였다.
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6월 3일(금) 저녁 6시 30분, 서울
올해는 수상자를 내지 않고, 전년도 수상
동교동 본지 편집실 인근 전문 모임 공간
자 조병수의 전시회 중심으로 선생을 기
토즈 5층에서 본지 편집위원 상반기 전체
리는 자리가 되었다. 한편 이 날 재단의
회의를 개최했다. 표지 및 내지의 지질과
6월 8일(수) 저녁 9시 무렵 퇴근 길,
후원 아래 김영준(yo2 대표), 배형민(서
레이아웃에 변화를 꾀한 2011년도 발행
편집실이 위치한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
울시립대 교수) 씨가 주도한 베를린 에데
분을 중심으로 격의 없는 비판과 충고와
텔을 나서기 무섭게 투박한 걸음으로 다
스갤러리에서의 김수근건축전, <김수근,
응원을 주고받았다. 잡지의 성격을 좀 더
가오던 이일훈(후리건축 대표) 선배를 만
모더니티의 숲을 걷다>(5월 20일~7월 7
선명하게 하는 아티클의 선별과 내용면에
났다. 예기치 않은 길거리 마주침에 한잔
일)의 중간보고회를 겸했다.
서의 깊이의 문제 등 차별화에 보다 더 많
아니 할 수 없다는 선배의 제의에 인근 주
6월 15일(수) 저녁 7시, 제56차 땅
은 관심을 가져 달라는 따가운 주문이 쏟
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자리에서 『뒷산
집사향이 서울 장충동 그림건축에서 열렸
아졌다. 김영철, 박준호, 안명준, 임지택,
이 하하하』라는 제목의 신간이 조만간 세
다. 고기웅사무소를 운영하는 고기웅 대
126 와이드 AR 22 | 전진삼의 FOOTPRINT 01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전진삼의 FOOTPRINT 01 표가 이 날의 주인공. 세미나를 앞두고 60
축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
인단 일부 구성원(구영민, 김희영, 박성
일 간의 사무소 운영 일지를 시각화한 발
다. 같은 성격으로 두 번째 자리인 이 날
형)이 참석하였고, 김능현 교수, 백진 교
표는 건축가의 직임이 일을 기다리는 것
의 모임에서는 아우리가 벌이는 본 사업
수, 우동선 교수, 건축가 박민철, 이영범
에서보다 일을 창출해 내는 것에서 찾아
의 목표와 성격을 분명히 해 줄 것을 주문
씨가 자리를 같이 했다. 또한 후원사 (주)
야 함을 일깨웠다.
하는 등 건축 아카이브 시범 사업으로서
엠에스 오토텍의 김호경 부회장 등이 눈
6월 17일(금) 오후 1시, 건국대 건
의 의의에 초점이 모아졌다. 김능현. 김영
에 띄었다. 건축계 바깥 인사로는 홍성태
축전문대학원 김준성, 박준호 공동 스튜
철(베를린공대), 김현섭(고려대), 김흥수
상지대 교수, 김수기 현실문화 대표 등 50
디오의 1학기 최종 평가회가 열렸다. 이
(대한건축사협회), 이주연(공간사), 전진
여 인이 동참했다.
스튜디오 구성원의 특징은 대학에서 건
삼, 정인하(한양대), 조준배(aandd), 최
6월 25일(토) 오후 2시, 본지 편집
축학을 공부하지 않은 타 전공 학생들이
원준(숭실대), 하지은(목천김정식문화재
실에서 2011간향건축저널리즘워크숍 제
라는 점. 단 15주의 학습 기간이 지났음
단) 씨가 참석했다.
2기를 위한 6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 주
6월 22일(수) 오전 10시 30분, 서
건축 저널리스트가 갖춰야할 소양과 대인
었다. 크리틱으로 구영민, 전진삼, 최윤정
울시 2017 UIA 총회 유치 서울사무소에
관계 및 취재 방법론 등을 강의했다.
(C-Plan 대표)이 참여했다.
서 2011서울건축문화제 제1회 집행위원
6월 25일(토) 오후 5시, 서울 원서
회의가 열렸다. 곽재환 위원장의 주재로
동 공간사 지하 소강당 전시장에서 개막
열린 이날의 회의에서는 한국건축가협회
한 일본 관서 지방 대표 건축가 6인의 서
가 제시한 실행안에 대하여 구체적인 질
울 전시 <KANSAI 6> 전시에 간향건축저
의와 대안을 모색했다. 집행위원회 4인과
널리즘워크숍 2기생들과 함께 참석했다.
실행위원회(김능현, 정기정), 건축가협회
비가 내린 까닭에 개막식은 전시장 내에
사무국(류은옥, 한창호, 차주헌), 서울시
서 이루어졌다. 참여 건축가는 이영일, 엔
관계자(권창주 외 2인)가 참여했다.
도 슈헤이, 미야모토 가츠히로, 나가사카 다이, 다케야마 기요시 세이, 요네다 아키
6월 17일(금) 오후 6시, 서울 능동
라 로 이들은 공히 50~52세에 걸쳐 있는
어린이대공원 내 꿈마루 시크릿가든에서
중견들이다. 이 전시는 7월 31일까지 계
목천 김정식문화재단 주최로 목천건축아
속된다. 이 날 행사에 국내 건축가로는 주
카이브 개관식 및 기증식이 열렸다. 건축
관처 공간그룹의 이상림 대표, 건축가 조
가의 1차 자료 수집과 보관, 원자료의 연
병수, 조인숙, 김태우 씨 등이 보였고 서
구 및 디지털 자료화, 구술 채록, 학술상
울대 백진 교수가 참석했다. 한편 전시장
제정 및 학술 교류 등을 시업의 목표로 하
은 발 디딜 틈 없이 만원 사례를 이루었는
는 이 아카이브 운영위원회는 배형민(위
데 6인의 일본 건축가들과 함께 단체로 한
원장), 우동선, 이병연, 전봉희, 조준배,
국을 찾은 다수의 일본인 스태프와 관계
최원준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이 날 행
자들 때문이었다.
사장엔 목천 김정식 이사장을 비롯, 안영
6월 24일(금) 저녁 7시, 서울 인사
6월 28일(화) 오후 5시, 서울 혜
배, 윤승중, 원정수, 지순, 황일인 씨 등
동 골목 누리 레스토랑에서 제3차 년도 심
화동 중국 음식점 만리성에서 한국건축가
선배 건축가와 옛 4.3 그룹의 멤버들인 조
원건축학술상 공식 행사로 마련된 제2회
협회 학생예비건축가위원회(위원장 채철
성룡, 이성관, 백문기, 이종상 씨의 얼굴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의 출판기념회가
균, 광운대 교수) 1차 모임이 열렸다. 미
이 보였고, 건축가 최문규, 장윤규, 김능
열렸다. 이 책 『소통의 도시, 루이스 I. 칸
래 세대 건축가의 양성과 지원을 위하여
현 교수, 영화 감독 정재은 씨 등이 참석
과 미국 현대 도시 건축』은 서정일(서울
기성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했다.
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 씨가 집
자리였다. 성격이 모호한 위원회 명칭을
6월 21일(화) 오전 10시. 서울 논현
필했다. 주최 측 심원문화사업회 이태규
‘학생위원회’로 바로잡자는 의견과 함께
동 베스트웨스턴 강남호텔 회의실에서 건
이사장을 비롯하여, 심원건축학술상 운영
그 이름에 걸맞게 건축가협회 내 학생들
축도시공간연구소(이하 아우리) 주최 건
위원회(배형민, 안창모, 전진삼)와 추천
의 자치 기구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
127 2011.07-08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와이드 AR 22 | Wide Architecture Report 22 | 2011.07-08
전진삼의 FOOTPRINT 01 7월
김기중, 김순주, 박순천, 조경 비평가 안
박민진(해안건축), 박열(토문건축), 송현
7월 1일(금) 오후 6시, 인천 금창
다. 본지 <와이드 아이(Wide Eye)> 최효
석(건원건축), 임진우(정림건축), 전진삼
동 옛 양조장 건물 내 스페이스 빔(대표
진의 글 참조.
이 참석했다.
민운기)에서 배다리역사문화마을 조성
6월 29일(수) 낮, 장대비가 억수
을 위한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하는 회의
로 내리던 날, 사울 팔판동 김현주갤러
가 열렸다. 수년을 끌어 오며 지역 주민
리 3개 층 전관에서 아미21오알지(Ami-
들을 괴롭혀 왔던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21org, 대표 제갈엽)위원회가 주최하는
건설이 정치적, 경제적 이유 등으로 난맥
건축 실험전 <2011 예측불가의 변신, 서
상을 보이다가 최근 사실상 무효화되면서
울> 현장을 찾았다. 이성관, 백문기, 하태
이 동네를 지켜온 배다리 주민과 예술인
석 씨 등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2008년 겨
들을 중심으로 역사문화마을로서의 재건
울 이래 서울과 시애틀, 파리를 오가며 진
의 불씨가 다시 불붙고 있는 터다. 민 씨
행되고 있는 이 국제워크숍프로그램은 국
는 건축과 도시 계획 분야 전공의 파트너
내외 건축 및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하고 있
를 구하고 있다. 이 자리엔 민 씨를 비롯,
는 대학생들에게 문호가 열려 있다.
지역 문화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
하다는 의견을 냈고 참석자들 모두 동의 했다. 이후 위원회 명칭은 가협회 이사회 의결을 통해 수정, 변경되었다. 위원장 외
명준, 김정은, 건축 사진가 진효숙 및 편 집실 3인 등과 20여 건축인들이 동행했
6월 30일(목) 오후 4시, 서울 서
고 있는 오민근 박사와 문학평론가 이희
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3층 국립
환 박사, 인천시 디자인팀의 J박사, 아벨
예술자료원에서 예술사 구술 채록 사업
서점 곽현숙 대표, 전진삼 등이 동참하여
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예술인·생>
의견을 나눴다.
2011년도 건축 부문 발행분의 우선 목록 을 작성하기 위한 자문회의가 열렸다. 자 료원 정연순 팀장의 주재로 안창모, 우동 선, 전진삼, 함성호 씨가 자문했고, 도서 를 발행하는 수류산방 박상일 방장, 심세 중 대표가 배석했다. 기 채록 작업이 진행 7월 4일(월) 오후, 서울 신사동 원
된 박춘명, 송민구, 엄덕문, 이광노, 장기 인 5인을 대상으로 출판 우선 순위 결정
도시건축 지하 갤러리에선 2011원도시아
을 하였다.
카데미세미나 부대 사업으로 벌이는 젊은 건축가포럼 제1전시의 설치가 한창이다. 이스트포 박준호, 이승연 팀, 엔진포스의 윤태권 팀, 광장건축 이현욱 팀, 가와건 7월 2일(토) 오전 10시, 서울 사
축 최삼영 팀의 현장 작업이 이뤄지고 있
당동 공영 주차장에 제2차 <W-아키버스
다. 이 전시는 7월 5일(화) 오전 개막하여
>에 참가하는 일군의 건축인들이 모여들
7월 7일(목) 오후 5시 오프닝 행사, 7월 8
었다. 거제도 건축가 양덕복의 건축 인
일 폐막한다. 그리고 한 달 뒤, 8월 11일
생 20년을 정리하는 건축전, <자연과 함
오후 5시 같은 장소에서 초대 작가 공개
께 하는 상상·이상 전>(푸른섬 펜션 일
좌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
대 전시장)을 관람하고, 거제도 및 통영
글 | 전진삼(본지 발행인)
의 건축과 자연을 돌아보는 건축 투어였 다. 건축 저술가 이용재, 건축가 권형표,
128 와이드 AR 22 | 전진삼의 FOOTPRINT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