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2013~2014년도)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당선작 고료 1천만 원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들의 많은 도전을 기대합니다. ◇ 공모 요강
Ⓢ 추천인단 운용 및 추천작의 자격기한
Ⓢ 당선작: 1편
위원회는 추천인단이 추천한 응모작과 일반 공모를 통해 응모된
부상: 상패 및 고료 1천만 원과 단행본 출간
연구물에 대하여 소정의 내부 심사 절차를 진행하며, 그 가운데
Ⓢ 응모 자격
매년 1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작 심사에서
내외국인 제한 없음
탈락한 추천작은 당해년도 포함 2년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되
Ⓢ 응모 분야
어 총 2회에 걸쳐 최종심사의 대상이 되며, 이 경우 심사평을 반
건축 역사, 건축 이론, 건축 미학, 건축 비평 등 건축 인문학 분
영한 수정된 원고(수정의 범위와 규모는 응모자 임의 판단에 맡
야에 한함 (단, 외국 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대상으로 한
김)를 위원회가 요구하는 기한 내에 상기 응모작 제출서류(완성
연구’에 한함)
된 연구물 사본 4부)와 동일한 형식으로 재 제출해야 함.
Ⓢ 사용 언어
Ⓢ 제6차년(2013~2014)도 제2기 추천인단 12인
한국어
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김원식(한양대 연구교수), 김태
Ⓢ 응모작 제출 서류
일(제주대 교수), 김희영(국민대 예술대 교수), 박성형(정림건
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고 분량으로 응모
축 소장), 박진호(인하대 교수), 박철수(서울시립대 교수), 배정
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크기 프린트 물로 흑백/칼라 모두
한(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서정일(서울대 HK연구교수), 우신
가능)을 제본된 상태로 4부 제출. 단, 제출본은 겉표지를 새롭
구(동아대 교수), 전진성(부산교대 교수), 정진국(한양대 교수)
게 구성, 제본할 것.
Ⓢ 당선작 발표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
2014년 5월 15일(<와이드AR> 2014년 5/6월호 지면 및
1-응모작의 요약 내용이 포함된 출판 기획서(양식 및 분량 자
대한건축학회 등 인터넷 게시판)
유) 1부
Ⓢ 시상식
2-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반드시
별도 공지 예정
명기할 것) 1부
Ⓢ 출판 일정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를 준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
주최: 심원문화사업회
는 반환하지 않음)
주관: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 제출처
기획: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간향미디어랩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후원: (주)엠에스오토텍
간향미디어랩 (121-816)
문의: 02-2235-1960
(겉봉에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이라고 명기 바람) Ⓢ 응모작 접수 접수 마감: 2013년 11월 15일 (우편 소인 분까지, 기간 내 수시 모집) Ⓢ 추천작 발표 추천작 발표: 2014년 1월 15일 (<와이드AR> 2014년 1/2월호 지면)
(주)제효에서 지은 집 건축가 상상 속의 건물을 구현하다 | www.jehyo.com
갤러리 AM | 시간건축_박유진 | 사진_문정식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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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6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7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건축비평 총서> 제1탄
건축 없는 국가 이종건 비평집 198쪽 | 신국판 10,000원 판매대행_ 시공문화사 영업팀 02-3147-1212, 2323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이종건의 말·말·말 1장. 건축과 국가, 그리고 존재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여기서 내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 타자를 적극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은 그 때 비로소 희미하나마 새벽빛을 볼 수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2장.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를
우리 건축 사회는 오랫동안 아키텍처의 세계를 접했고, 그래서 비스듬하게 그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언어를 체득하고 구사해왔다. 그런데 우리 건축 사회가 알고 구사하고 있다고 믿는 그 언어는, 토마스 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이/훼손”된 언어다.
오늘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인식과 지식이 분명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3장. 건축 없는 국가 김효만의 건축은 극히 비현실적인 공간을 상상하도록 하는 공간, 혹은 그러한 공간적 감성마저 현실적인 토대에서 구축된다. 이것이야말로 서구 자본주의에 점령된 우리 사회에서 작업하는 우리가 따르고 지켜야 할 귀중한 덕목이 아닌 가 싶다. 4장. 국가 없는 건축 조민석은 문화 전쟁에서 벗어나 있다기보다 다른 형식의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배제된 모종의 무엇에 목
저자 이종건
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으로 분할된 감각 혹은 감성을 재분배시키기
경기대학교 교수. 저서로 『건축의 존재와 의미』, 『
를 요구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다.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 빈 충만』 등이 있고, 역서로 『기능과 형태』, 『추상과 감통』, 『차이들: 현대 건축의 지형들』,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 『건축과 철학: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바바』 등이 있고, 작품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초대작가 전에 출품한 <삼가>가 있다.
와이드BRIDGE 공고 NESⓌ 건축영화스터디클럽 NESⓌ 건축영화스터디클럽 <시즌2 >,
12월 송년 프로그램에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정을 꼭 확인 바랍니다. ◇ 장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9-13 NES사옥 3층
NES舍廊
◇ 강사: 강병국(본지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 참석대상: 고정 게스트 20인 및 본지 독자와 후원회원 중 사전 예약자 포함 총 30인 이내로 제한함 ◆ 사전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예약접수 *참가비 없음 ◆ 참석자는 반드시 10분 전까지 입실 완료해야 함 주최: 와이드AR 주관: 와이드BRIDGE 후원: NES코리아(주), 간향미디어랩 ◇ 주요 프로그램 (*본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 1st - 2월 4일(월) 7:00pm 상영작: 삼사라 Samsara, 2012 감독_론 프릭(Ron Fricke) ◆ 2nd - 4월 1일(월) 7:00pm 상영작: 어버나이즈드 Urbanized, 2011 감독_게리 허스트윗(Gary Hustwit), 85분 ◆ 3rd - 6월 3일(월) 7:00pm 상영작: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 단편 모음 -일주일 one week, 1920, 25분 -일렉트릭 하우스 The Electric House, 1922, 19분 -허수아비 The Scarecrow, 1920, 19분 ◆ 4 th - 8월 12일(월) 7:00pm - 로베르토: 개미 건축가 Rober to_Insect Architect _11'36" - 작은 벽돌로 만든 집 La Maison en Petits Cubes 2008 _12'05" -픽셀 Pixels 2010 _2'34" -Portal - No Escape 2011 _6'57"
-Plan Of The City _13'35" -5 Cities, 5 Places, One Day _13'53" -The Third & The Seventh _12'28“ 외, 2편 - The Third & The Seventh _12'28“
외, 2편
◆ 5th - 10월 7일(월) 7:00pm 상영작: 빌딩 173 Building 173, 2009 감독_페터 엘딘, 샬롯 미켈보그, 52분
◆ 6th – 12월 2일(월) 7:00pm 상영작: 밤의 이야기 Talea of the Night, 2011 감독_미셀 오슬로(Michel Ocelot), 84분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약칭, 땅집사향) 2013. 9∼2014. 2 NEW 프로그램 발표 11월(제83차)과 12월(제84차)의 이야기손님과 주제의 방향은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땅집사향은 국내에서 맹활약 중인 건축 사진가를 초청하는 <건축사진가 열전>(시즌1)으로 개최합니 다. 대주제는‘이미지 건축의 거처’(The abode of architecture on image)이며, 매회 건축사진가별 소주제가 따로 준비됩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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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제83 차
2013년 12월 제84 차
이야기손님 김용관(건축사진가)
이야기손님 이인미(건축사진가)
일시
11월 13일(수) 7:30pm
일시
12월 18일(수) 7:30pm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주제
I see..... in a city
주제 관계의 기록
|주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주최: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 (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CONTENTS
Issue
Work
Work1
21 와이드 COLUMN | 김영철
40 지오 키즈 어린이집
환경 담론과 선언문
Geo Kids
25 이종건의 COMPASS 33
박인수
Park Insoo
꽃보다 할배 건축가
29 전진삼의 PARA-DOXA 05
41 CRITIQUE
책상머리 교육으로 머물 것인가
: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
건축주 없는 건축의 틈 | 김종헌
55 DIALOGUE
결론은 기획이다
Work2
33 와이드 FOCUS | 이상해
건축 횡설, 건축 수설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
59 한국근대문학관
The Museum of Korean Modern Literature
황순우
Hwang Soonwoo
64 DIALOGUE
보존과 해석 사이
Editor's Letter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 제공하는 생각의 단초들
Report
지난 10월 말,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이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놨다. 전작이 고 정기용 선생의 삶과 건 축를 담담하게 조명했다면, 이번 다큐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말 많고 탈 많은 서울시 신청사를 소재로,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
76 와이드 REPORT
되기까지 있을 수 있는 공감 스토리 혹은 있어서는 안 될 웃지 못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할 아이러니를 106분짜리 필름 안에 촘촘히 엮었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 city:hall
사실 서울시 신청사 건립을 둘러싼 7년 간의 속사정을 파헤치거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건축 자체를 진단해 보는 일은 시작부
REVIEW
건축가의 승리/박정현
PRODUCTION NOTE
<말하는 건축 시티:홀> 제작 이야기/정재은
84 와이드 EYE 1
터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복잡하고 예민하다. 자칫했다 간 장님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식이 될지도 모를 터. 이에 정재은 감독은 2011년 11월부터 개청식이 거행된 2012년 10월13일까 지 근 1년 동안 현장을 드나들고 전문가를 찾아다니면서 69회차 400시간 촬영, 8개월 편집이라는 인고의 과정을 감수해 낸다. 그리하여 약 100여 분으로 압축된 완성본은 감독의 본심을 고스 란히 전하고 있다. 그것은 폭로와 고발을 통해 서로의 시시비비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트려 보는 것도 아닌, “지금은 시청 현장을 떠나 또 다른 일터로
REVIEW
가 버린” 건축 실무자들의 치열했던 한때를 가까이 들여다 보는
오래된 선유도 이야기/최우용
것으로써 전해진다. 그래서 GV에 참여했던 한 패널은 다큐를 보
‘선유도 이야기’관의 새로운 전시 실험/수류산방
는 내내 일을 하는 느낌이어서 아주 피곤했다고도 하고, 또 어떤
를 가려보는 것도, 곪을 대로 곪아 있는 건축계 내외부 문제를 터
패널은 감독이 너무 감정이입한 것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던 92 와이드 EYE 2
것이다. 이밖에도 정재은 감독은 유걸의 안이 당선되기까지의
<최소의 집>전 | 임형남+노은주, 김희준, 정영한
지나간 경로와,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다소 희석된 건축의
INTERVIEW
컨셉트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한 그 속에
가장 시급한 것?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 일! | 정영한
서 드러나는 몇몇 건축의 문제들, 이를 테면 턴키 제도라든가 건 축 행정의 중요성이라든가 건축가의 역할이나 위상 등등을 놓치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지 않고 확대하여 보여 준다. 그리하여 관객들에게 건축과의 거 리, 시청사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물론 이것 이상의 내용을 기대했던 건축인들에겐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 조금만 뒤집으면 확장될 수 있는 한국 사회 혹 은 한국 건축 사회의 이슈들이 ‘서울시 신청사 스토리’ 안에 속속 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아쉬워 마시라. 어쩌면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는지도 모른다. 서울시 신청사의 건축 개념이 놓치고 있는 것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무엇인지, 한국 대형 설계사무소의 한계는, 또 아틀리에 건축사
이미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그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
무소의 한계는 무엇인지, 공공 건축에서 기획 단계는 왜 필요한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나은중+유소래
지, 서울은 과연 어떤 도시인지, 건축가의 인식과 태도에 따라 건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축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건축을 선정하는 사람의 깊은 사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유와 현실적 역랑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건축가의 고뇌는 얼마나 깊어야 하는 것인지…. 정귀원(본지 편집장)
Architectu
Report
36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약칭, <와이드AR>)
Architectu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실 발행인|전진삼 발행위원|박유진, 오섬훈, 황순우 편집장|정귀원 편집위원|김영철, 박인수, 장정제, 최상기, 최춘웅 ⓦ 와이드AR 협력단 단장|김연흥 고문|곽재환, 구영민, 김원식, 김정동, 박승홍, 박철수, 이일훈, 이종건,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전문위원|김기현, 조경연 ⓦ 와이드BRIDGE 자문위원|강병국, 공철, 김기중, 김종수, 김종헌, 김태만, 김태성, 김태일, 나은중, 박민철, 박준호, 손도문, 손장원, 신창훈, 안용대, 이충기, 임지택, 임형남, 전유창, 정수진, 조남호, 조용귀, 조택연, 차영민, 최원영, 최창섭 ⓦ 와이드ACADEMY 전문위원|김재경, 김정후, 손승희, 안철흥, 함성호 ⓦ 와이드BEAM 전속 포토그래퍼|남궁선, 진효숙 ⓦ 디자인 banhana project 실장|노희영 ⓦ 서점유통관리대행|(주)호평BSA 대표|심상호 차장|정민우 전화|02-725-9470~2, 팩스|02-725-9473 ⓦ 제작협력사 인쇄, 출력 및 제본|서울문화인쇄(주) 종이|대림지업사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통권 36호 2013년 11-12월호 2013년 11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창간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낱권 가격 10,000원, 1년 구독료 55,000원 ISSN 1976-7412 ⓦ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GANYANG Media Lab. & Community 발행처|(121-816)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5, 909호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대표전화|02-2235-1960 팩스|02-2235-1968 독자지원서비스|070-7715-1960 공식이메일|widear@naver.com 공식URL|http://cafe.naver.com/aqlab 네이버 카페명|와이드AR ⓦ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포를 금합니다.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I
S
S
U
E
와이드 COLUMN
환경 담론과 선언문 김영철 본지 편집위원
Issue
그렇게 나는 슬프게도 체념을 배우노니: 말이 부서진 곳에서는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21 와이드 COLUMN | 김영철
환경 담론과 선언문
슈테판 게오르게, 1919
와이드 COLUMN
25 이종건의 COMPASS 33
꽃보다 할배 건축가
29 전진삼의 PARA-DOXA 05
말과 건축
책상머리 교육으로 머물 것인가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
서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근래에는 이 일 이외에도
33
와이드 FOCUS | 이상해
‘말하는 건축’이라는 표어가 ‘말하는 건축가’로 번역되어 영화 예술 장르 내에서 또다
건축 횡설, 건축 수설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
건축 이론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건축계에서 담론이라는 주제어를 놓고 이곳저곳에
시 새롭게 우리 주위에서 울려 퍼졌었고, 이를 통해서 건축의 문제를 문제로 보자는 의지가 드러나는 듯싶었다. 필자로서도 이 개념에 매달리고자 했던 이유는 건축이론 의 관점에서 우리 건축계에서 적어도 건축은 건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 었고, 이를 해명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말의, 즉 담론의 추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상황도 인정해야 했다. 소위 이론의 무용이 한몫했다. 이론의 과제는 글자 그대로 이치가 무엇인지 따지는 일을 목적으 로 삼고 있고, 또 이때 이치의 영역은 손에 쥐어지거나 두 눈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공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 건축가들에게 언어의 유 희는 대부분 어디를 막론하고 도외시되기 일쑤이다. ‘쓸 데’가 별로 없는 소리들이 이 론가들이 생산해 내는 언사들이 아닌가? 거꾸로 되물어, 누구나 사람이면 말을 하지 만 그것이 쓰이면 어디에 쓰이는 것을 말하는지 대답해 달라고 주문하려고 해도 거 쳐야 될 정거장이 너무 많아서 그 질문의 목소리는 수그러들 수 밖에 없다. 하나의 대
21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안이 있고 그것을 목소리 크게 하기로 용기를 내면, ‘그러면 당신은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동물의 영역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가’, ‘그리도 쉽게 입에 담는 공간, 혹은 시 간, 아니면 자유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당신이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이나 도구인가’ 등 의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이런 간단한 일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듯 하다. 어쩌면 사람들은 말의 잔치 영역, 담론의 영역 이외에도 건축을 가능하게 하는 실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 로 그런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여하튼 필자는 최근 다시 미셸 푸코(Paul Michel Foucault)가 꼴레쥬 드 프랑스 (Collège de France)에서 행했던 취임 강연 출판인 『담론의 질서』를 붙잡고 매주 토 요일 건축 원전을 다루고 있는 토요건축강독 멤버들과 함께 이리저리 씨름을 벌였 다. 거기에서는 ‘담론’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스스로의 질서를 구현하는가에 대한 답 들이 주어졌고, 이들을 다방면에 걸쳐 손에 쥐는 성과를 얻었다. 그런데 담론이 ‘어 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우리의 건축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 고자 했을 때, 우리는 어디에 머물러야 하며, 또 무엇을 시야에 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속하게 될 담론의 영역에서 우리의 언사가 소통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질문이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하는 일, 즉 어떤 말 이 의미 있거나 혹은 옳고 그름을 지배하는지를 따지는 영역의 일이 글자 그대로 담 론이라고 하면, 분명한 사실은 말이 가장 앞서는 일이다. 앞선다는 것은 경험의 경계
와이드 COLUMN
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상연되는 무대에서는 비록 쓰이지 않았지만, 어느 대본을 근거로 여러 주인공들이 던지는 언사들의 시나리오는 중요하 다. 이 상황에 견주어서 그 대본이 우리의 건축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있는지 답하라고 한다면 선뜻 나서서 나의 주장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대신 누군가 가 미리 써 놓은 것을 따를 뿐이니, 누구라도 그 전체 면모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 좋 겠다는 기대를 한다. 이 대본을 누가 썼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언어 생활에서 처음 발화를 하게 될 때, 이미 나에게는 수많은 어휘와 문장들이 의미 영역에 선재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명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대 화를 시작할 때 우리가 붙잡고 놓지 않는 끈으로서의 건축이라는 개념이 있고, 우리 는 그 타래의 장소에 머물러 있다. 이 가까운 곳을 일본인 역사가였던 이토 츄타(伊 東 忠太)가 정초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중국의 송대에서 건설했던 정거장은 희미한 기억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일본인 역사가가 상상했던 시나리오는 생명력이 길지 못했다. 건축이라는 말이 예술의 가치를 대변하기 때문에 이 말이 말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오히려 도구들만 생산해 낸 채로 전락한 현실이 답 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아키텍처 개념을 건축으로 번역할 때 그 둘은 등가의 개념이 아니며 충분한 개념도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지만, 그 이후 어느 누 구도 그 숙명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토양에서 삶을 경영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이 조건이 위기로 여겨져서 극복되기까 지 우리가 해야 하는 과제는 간단하다. 우리는 과연 그 말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충 분히 듣고 있는지, 아니면 시선들이 서로 어긋난 채 단지 낯선 기호들만 오가도록 하 는 것은 아닌지 숙고하는 일이다. 그런데 건축이라는 말이 말하려는 것처럼, 당장 모 든 것이 바르게 세워지고 하나하나 착실하게 쌓여져 있는지 누군가 질문하면, 어디 에서나 반박만 주어지는 듯하다. 그것이 원칙이든 하나의 집이든 상관없이 매한가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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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환경과 자연 만약 우리가 생각하고 짓는 것이 동일하게 하나의 구축과 체계의 논리를 만족시킨 다면, 그때는 질문해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짓는 행위의 근거를 묻는 일이다. 이 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서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들, 이것을 업으로 삼고 깨어 있 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철학자라고 한다면 이들의 대답은, 만약 짓는 것의 근 거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생각이고 그 생각이 근거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 이라는 것이다. 말은 말하자면 짓는 행위의 주인 역할을 한다. 그 주인이 터를 만들어 놓은 대로 우리는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을 다시 우리 자신의 외부에 던져 낸다. 그리 고 그 외부 세계를 우리는 다시 우리의 모습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 인간이 살아 왔던 곳에서는 언제나 그래 왔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던져낸 것, 즉 우리가 생각 을 근거로 지어낸 것은 인간의 일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창조의 원칙을 스스로 구현 하는 ‘자연’이라는 경쟁자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자연과의 대결 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한편으로는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의 질서를 자 신의 내부에서 발견해 내거나, 아니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이라는 경쟁자 자체를 무시하지 못하고 그를 뒤따르는 방식으로 대결을 벌여 왔다. 사람이 인식이라는 도 구를 만들어 놓고 미리 감춰 둔 대상물들을 되찾으며 사물을 파악하였노라고 주장하 며 이 논리를 끊임없이 정교하게 다듬어가거나, 아니면 다른 경우에는 스스로 나약 한 모방자이니 그를 가르칠 위대한 스승을 자연이라고 하였다. 하여튼 우리 사람의 일은 세상이라는 무대를 만들어 스스로 연극을 펼쳐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환경 위기라는 표제어가 우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무대를 대체하는 일이 그 하나일 테고, 다 른 가능성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어 이 무대가 유일한 생존 공간이니 개선이 절실하 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대체하자면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영역이 나 차원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누구도 원할 것 같지는 않다. 분명한 사실
와이드 COLUMN
그런데 긴 역사를 거쳐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 무대는 어느덧 비좁아져 숨쉬기조차
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전멸한다고 해도 지구나 우주, 혹은 자연은 전혀 문 제될 것이 없다. 다른 가능성을 집중해서 다룬다면 인간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무대 위의 호사를 뒤로하고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윤리관 을 윤리의 차원에서 스스로 가치를 갖도록 활자화하고, 이 말이 사람들 머리 위를 부 지런히 떠다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듯하다. 환경 담론 현실의 눈을 국내 상황으로 돌려서 지난 시간에 필자가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하였 던 환경 관련 연구의 성과를 소개하는 일은 중요하고 또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단 우건축이 주관하고 한양대학교와 경기대학교가 함께한 ‘환경 담론 구축 연구’이다. 환경의 문제는 작은 우리 사회의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국가나 민족의 일이기도 하 다. 따라서 이를 누군가 의식 있는 사람들이 활자화하여 이를 생각의 근거로 여기고 짓는 일에 지표로 삼아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다가올 세기를 준 비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거대한 것이기를 기대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연구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다듬어지도록 한 환경 주제의 도시와 건축 영역에는 구체적으로 설정한 주제들이 있었다. 그들을 필자의 활자로 옮기자면, 환경 구축의 주체는 누구 이며 그 형식은 무엇인지, 그 가치는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 연구의 취지를 다시 강조하자면, 미래 사회의 건축과 도시가 가질 역할을 환경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였고 이를 근거로 환경 개념 정립과 실천의 주체를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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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인식하고 다원의 층위를 해명하며 그들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생명과 환경의 지속, 그리고 기술의 문제와 가치도 다루었고, 실천 차원의 윤리관을 반영하 였다. 다음의 문장들은 선언문의 형식이고 아직 다른 연구자들의 합의를 거치지 않 은 필자의 의견이지만 조급한 마음에 오늘날의 건축가들에게 던지고 싶은 화두, 공 안이다.
1.
환경의 주체 환경은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정신, 자연과 물질이 함께 속하는 영역이다.
2.
공속의 방식 인간의 정신, 물질의 합법칙성, 자연의 질서는 우위와 차별 없이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3.
순환의 가치 환경은 순환의 질서로 작동하며, 인간 의지의 실천은 이 순환의 지속 가능한 질서에 근거한다.
4.
형식의 단일 건축과 도시의 유형은 언제나 존재하였고 앞으로도 존 재하게 될 형식에 근거하며, 서로 다른 재료와 새로운 기능이 그를 분별한다.
5.
역사의 가치
6.
공간의 가치 공간은 인간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가능성을 보
건축물은 자연의 시간과 인문의 시간 형식을 지향한다.
와이드 COLUMN
장해야 하며, 그 가치는 상징성으로 드러난다. 7.
기술의 윤리 기술은 인간 욕구의 지배에 봉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를 스스로 가져야 하고, 예술로 승화해야 한다.
8.
학문의 봉사 건축과 도시를 통한 환경 구축의 경험은 학문의 이념과 방법을 통해서 체계화되며,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 실천 영역과 원칙이 설정된다.
9.
총체적 계획 모든 인간 의지의 실천은 계획으로부터 실행에 이르기 까지 전체 환경의 주체에 대한 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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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이종건의 COMPASS 33
꽃보다 할배 건축가 이종건 본지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Issue
노장 배우들의 배낭여행기 ‘꽃보다 할배’ 일흔 살을 넘긴 노장 배우 네 명(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사십 대 총각 배
21 와이드 COLUMN | 김영철 환경 담론과 선언문
우 이서진 짐꾼의 배낭여행기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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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유럽과 대만을 무대로 펼친 14회 분량의 두 시즌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벌써
꽃보다 할배 건축가
29 전진삼의 PARA-DOXA 05
부터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그리 많지 않은 제작비로 일구어 낸 의외의 인기몰이는, 특히 시청률 면에서 지상파에 비해 크게 불리한 케이블 채널
책상머리 교육으로 머물 것인가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
여나 관심이나 매력이 자칫 흐려지고 약해질까 싶어 그런지, 네 명의 여배우(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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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 이상해
건축 횡설, 건축 수설
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와 이승기로 꾸미는 ‘특별’ 판 녹화 작업이 곧 시작된다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
이종건의 COMPASS 33
로서는 무조건 지켜 내야 할 것이다. 해서, 잠시 휴지기에 접어든 ‘꽃보다 할배’가 행
는 소식이다. 네 명의 할배들은 워낙 오랫동안 수많은 인기 드라마들에서 핵심 역할 을 맡아온 데다, 지성, 로맨티시즘, 관심거리, 체형과 몸의 속도, 술버릇이나 하루를 여는 방식과 같은 일상적 삶의 행태 등이 확연히 서로 다른 색을 지녔으면서도 어느 한 명 빠짐없이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편안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맛을 지녀 우리들 의 감성 코드를 별 잡음없이 잘 건드린다. 네 할배들 중에서도 특히, 최고 연장자이 면서도 움직임이 가장 날렵하고 새로운 문화와 문명, 그리고 주변의 동물들에 대한 탐구력과 친화력이 제일 왕성한 이순재는, 거의 육십 년쯤이나 오래 전에 받은, 서 울대 철학과 원어 강독에서 익힌 독어를 구사하여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TV프로그램에서 ‘꽃보다’의 핵심은 대중 인기 ‘꽃보다 할배’라는 표현에서 ‘꽃보다’라는 수사의 뜻은 ‘이 세상의 어느 존재보다 아 름답다’ 혹은 어느 노랫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잘나간다’라는 것일 게다. 그러니 ‘꽃 보다 할배’라는 말은 ‘가장 아름답게 사는 할배 인간’을 뜻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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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꽃보다 할배’는 특정한 맥락 곧 배우(연예인)라는 전문가의 활동성에 위치해 있다. 예능이든 교양이든 연예인에게는 시청자의 인기가 밥이고 생명이다. 인기없는 연예 인에게는 무대가 주어지지 않는다. 인기와 유명세와 수입은 한 벌을 이루는 삼요소 다(시청률이 높아야 유명세를 얻고 광고 수입도 늘고, 대중에게 끼치는 현실 영향력 도 크다). 해서, 대중 매체는 온통 거기에 몰두하고, 그리하여 그로써는 도무지 가늠 하거나 건드릴 수 없는, 인간 성숙의 문제, 정신 분석의 견지에서 말하자면,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여타 요인들이 깡그리 배제된다(정신 분석학은 인간됨을, 매우 오랜 기간에 걸친 반성과 학습과 자의식적 행동 과정을 거치는 하나의 지난한 프로젝트 로서,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실패한다고 본다). 공영 방송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 기에 있다. 상업주의 논리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지 않고서는 돈(시청률과 연동된 광 고 수입)이 되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나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고 방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 니까 ‘꽃보다’의 핵심은 대중 인기이고, 따라서 결론적으로 순전히 돈 문제에 한정 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어느 보일러 광고에 출연하는 네 할배들은, 그야말로 여느 연예인 부럽지 않은 전성기를 누린다. 해서, 그들을 ‘꽃보다 할배’라 부르는 데 누구 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삶의 방식으로 보자면 ‘꽃보다 효리’
이종건의 COMPASS 33
돈 잘 버는 사람들, 하물며 돈 잘 버는 일흔 넘은 할배들을 비아냥거릴 이유는 전혀 없다. 사회적 문제는, 늘 그렇듯, 윤리 의식에서 걸린다. ‘H1 이순재’는, “저 이순재, 허투루 말하는 사람 아닙니다”라는 말로 특정 보험 상품을 광고할 때, 오롯이 돈 버 는 기계로 전락한다. 광고의 조작 기법에 대한 구구한 설명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것 은, 이효리의 상업 광고(스타의 최고의 돈벌이 수단이자 기준이자 상징) 거부다. 한 때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광고 시장을 지배했던 그녀는, 가난한 한 친구가 자신의 광고를 보고 거금을 투자해서 화장품을 산 것을 알게 되면서 광고의 조작성/비윤리 성을 예리하게 인식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광고 출연 행위를 근본적 수준에서 반성 했다. 연애도 결혼 프로포절도 주체적으로 한 그녀는, 작금에 동물과 지구환경 보호 를 위한 실천적 삶을 살고 있는데, 최근에는 잘 알려지다시피 우리나라 스타들이 흔 히 벌이는 호화판과 극명하게 대조적인 조촐한 결혼식을 올려 또 한 번 세간의 주목 을 받았다. 내 안목으로는 가창력이 별 없어서 제대로 된 가수라 하기 힘들고, 외모도 수수해서 특별히 섹시하다거나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연예인이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보건대, 그녀야말로 진정 ‘꽃보다’의 수식어가 적실하다. ‘꽃 보다 효리’에 비해 ‘꽃보다 할배’가 나아 보이는 것은 딱 하나, 곧 오랜 기간 현역으로 활동한 지속력뿐인데, 이것은 이효리와 비교할 수 있을 기준은 아니다. 여느 현역 건축가 못지않은 일흔의 건축가들 채널을 여기저기 틀다 우연히 접한 ‘꽃보다 할배’ 재방을 보면서 나는, 이제는 제법 묵었다 할 만한 이력 탓인지, 부지불식간에 우리 건축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처럼 우 리 건축 사회에도 ‘꽃보다 할배 건축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싶었다. ‘꽃보다’의 세간의 뜻을 적용할 수 있는 할배 건축가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여느 현역 건축가 들보다 잘나가는 일흔 넘은 이들로, 당장 유걸 할배, 김원 할배, 조성룡 할배가 있다 (다른 선배들, 예컨대 원정수 할배나 변용 할배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의 문화 파급/영향력은 일흔 이후 미미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우리 건축의 역 사상 최초로 ‘꽃보다 할배 건축가’의 시대를 개시했다는 것이다. 나이 일흔을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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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서도 여느 현역 못지않게 활발하게 뛰었고 잘나간 건축가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 이다. 유걸 할배는, <말하는 건축가>의 감독 정재은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영 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 주인공으로 은막에 등장했고, 김원 할배는 케이비씨 공 영 광고(종묘)에도 출연했으며 인권이라는 화두로 사회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 고 있고, <이응노의 집>으로 ‘2013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조성룡 할배는 최근 <선유도 공원 전시관 리노베이션>으로 또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우리 건축 사회의 최초의 ‘꽃보다 할배 건축가’ 도래 현상을, 이전 선 배들이 살았던 시대와 현격히 달라진 소위 ‘100세 시대’의 견지에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만(한국 현대건축의 두 거봉은, 사회적 수명이 아니라 생물학적 수명이 일흔 이전에 끝났기 때문이다), ‘꽃보다 할배’ 또한 현재의 시점이니, 그리 타당하진 않다. 내가 욕심하는 건축판 ‘꽃보다 할배’의 두 가지 요건 유걸, 김원, 조성룡, 세 할배 뒤로 민현식, 김인철, 이성관 등이 일흔을 목전에 두고 있고, 그 뒤로 환갑을 넘긴 승효상, 김광현, 이일훈 등이 일흔 할배 반열에 대기 중 인데(물론 이들 외에 더 많은 건축가들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회적/문화 적 영향력이 특출한 이들만 대표로 거론한 것이니, 다른 할배나 예비 할배들은 서운 해들 마시길!), 진실로 진실로 말하건대, 이 할배들과 예비 할배들이 ‘꽃보다’의 수 식어가 항차도 ‘쭈욱~’ 들어맞도록 몸도, 정신도, 사회적 관계도 건강하길 바라마지 의 요건을 슬쩍 내어놓고 싶다. 우선, 전문가들은 모두 그들이 손수 이루어 낸 전문 적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전문가 세상의 이치인 만큼, 후학들이 그리고 차후의 세 인들이 오래오래 아끼고 싶을 정도로 탁월한 작품(명품이든 명저든)을 작업해 내는 것이 첫째다. 물론 업적에 대한 평가는, 소크라테스가 권고했듯, 가급적 많은 사람 들이 아니라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정직하게 이루어져야 마땅하
이종건의 COMPASS 33
않는다. 이왕지사 ‘꽃보다’를 화제로 잡았으니, 내가 욕심하는 ‘꽃보다 할배 건축가’
고, 따라서 가급적 자신이 속한 영역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구하거나 주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조건은, 고독하고 힘든 개인적 작업에 대칭적인 공적 활동과 관계 된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자신의 명저 『자유론』에서 역설했듯, 천 재는 개인들이 다양하게 주장하고 논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에서만 자랄 수 있 으니(어떤 식견은, 설령 그것이 참일지라도 충분히 논의되지 않을 경우 살아있는 진리라기보다 죽은 독단에 가까운 까닭에, 논박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회 는 걸출한 업적을 생산하기 어렵다), 우리 건축 사회가 탁월한 건축가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되도록 애써 가꾸는 것이 그 다음이다. 긴요한 과업은, ‘진실로 권위있 는’ 건축(업적)상 제정과 정론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건축저널(건축 사랑방) 확보 다. 우리 건축 사회에는 이러저러한 상들이 많지만, 수가 많은 탓에 상의 가치가 희 석되어 버리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운영 방식이 마치 문화 권력 나눠먹기 식이어 서, 내가 보기에 권위라고는 하루살이 눈알보다 작다. 자격 미달자거나 무자격자라 칭해야 할 사람들이 심사하는 행태가 가장 큰 문제지만, 각종 연(緣)에 기운 심사도 적지 않은 문제다. 단체와 재단의 상들은 모두, 건축학자와 건축가, 심지어 건축 잡 지마저 선정 결과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없다. 약간의 허영 의식을 만족시켜 주거나 영업에 한줌 보탬될 수 있을지 모를 허울에 불과하다. ‘행동하는 건축’을 몸소 실천하는 할배 건축가를 기대하며 둘중 특히 후자는, 우리 건축 사회에 필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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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있는 할배들과 예비 할배들에게 주로 해당된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러하지 않다 는 핑계로 누구든 무관심하게 팽개칠 일은 아니다). 때가 이르면 비켜나야 하겠지 만, ‘지금’ 좋은 사회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 단체나 재단의 결정권이나 문 화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능력있는 사람들,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건축이란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띤 기술이며 예술이라 고 말들만 하지 말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좀더 낫게 하기 위해 각자의 처소에서 ‘행 동하는 건축’을 몸소 실천하면 좋겠다(서울신청사 개청식에서 묵묵히 홀대받는 은 막의 유걸 할배 모습, 그리고 언젠가 새건축사협의회 회장 이필훈이 대사회 발언을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성경은, 세 명의 종이 각자에 따라 달리 받은 달란트를 일정 기간 후에 가져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잘 써서 불린 두 명의 종은 칭찬을 받지만, 쓰지 않고 간직만 한 채 그대로 가져온 한 명의 종은 “악 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심한 책망을 받고, 얼마 되지 않는 그의 달란트마저 다른 종 에게 주라는 명을 받는다. 웬만큼 살아본 사람들(딱히 그렇게 오래 살아보지 않아도 세밑을 맞는 성년에 이른 모든 이들)은 누구나 알고 한 번쯤은 체감했을 것이다. 세 월이 속절없이 그리고 빨리 흐른다는 것을. 어느 때 홀연히, 별로 추수한 것 없이 겨 울 맞는 느낌이 몸속에 파고드는 느낌을.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뭐 하나 내 어놓을 만한 것 없이 유성처럼 사라져 버린 통절한 회환의 인식을. 할배들은 오래지
이종건의 COMPASS 33
않아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고, 예비 할배들 또한 오래지 않아 할배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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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전진삼의 PARA-DOXA 05
책상머리 교육으로 머물 것인가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 권혜정 본지 건축저널리즘스쿨 4기, 충남대 건축학과 5학년
이 글은 본지가 수행한 2013 건축저널리즘스쿨 4기 프로그램의 성과물 중 하나이
Issue
다. 건축학교육인증 제도의 수혜 당사자인 학생의 시선으로 이 제도가 지닌 의의를 21 와이드 COLUMN | 김영철
고취하고, 장단점을 일별하는 가운데에 교육과 설계 업무 현장을 연결하는 비판적
환경 담론과 선언문
성찰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학생의 글은 하나의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선 ‘교
25 이종건의 COMPASS 33
육자-피교육자’의 구도뿐 아니라 ‘사용자’라는 관점이 동시에 투영될 필요성을 제기
꽃보다 할배 건축가
하고 있다. 막상 사용자로서의 건축사사무소 책임자들의 이 제도에 대한 무관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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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머리 교육으로 머물 것인가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
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대학에 5년제 건축학 교육이 도입된 지 만 12년, 첫 번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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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 이상해
건축 횡설, 건축 수설
증 프로그램을 통과했던 3개 대학이 2차 인증 프로그램을 통과한 올해, 그 어느 때
졸업생들의 처우에 대한 압박감을 외면하려는 비굴한 모습으로도 비추인다. 물론 사
보다도 지난 과정의 경험을 통한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지나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
전진삼의 PARA-DOXA 05
가고 있다.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과 건축학 5년제를 도 입한 (또는 하려는) 해당 대학 관계자들 공히 제도의 공급과 수요의 산술적·상징적 지표에 연연하기보다 내용적 진화를 위한 철저한 검증에 나서야 한다. 학생들 다수 가 제도의 수혜자로서 행복한 건축 인생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전진삼 注)
건축학교육인증 제도의 평가,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 지난 10년간 건축학교육인증제도와 5년제 건축 학위 과정이 자리를 잡았다. 건축학 주1.
교육인증을 통과한 5년제 프로그램의 효과를 요약한 임영환(홍익대)교수의 글(주 1)에
임영환, ‘건축학교육인증
서 지방과 수도권의 건축 교육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와 함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대한건축학회지>,
께 건축학 교육이 실무에 근접하여 한층 전문화 과정으로 변화되었고, 각 인증 영역
통권 410호, 2013년, 11쪽
의 교과목들이 더욱 구체적이며 정교하게 정비되고, 정규 수업 외의 기타 교육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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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그램들의 개발로 교육 내용이 전반적으로 풍부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것을 보았다. 같은 글에서 임 교수는 구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의 정비와 함께 학생들의 학업 및 생활 지도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정기적 면담 등의 밀착 지도가 강화되고, 소규 모 설계스튜디오의 진행으로 인하여 교수와 학생 간의 친밀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전하였다. 이렇게 건축학교육인증 자체만 놓고 봤을 때에는 성공적이고 긍정적인 효 과를 거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건축학 교육의 목표가 이론 교육을 확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 설계 분야로 특화된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론 교육과 설계 교육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되어 있는지, 설계 교 육은 목표로 하는 실무와의 연계가 잘 되고 있는지, 막상 건축 설계 현장의 실무자들 이 바라보는 건축학 교육 이수자들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지 등등. 안타깝게도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교육 현장과 실무 세계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을 확인시켜주 었다. 이 글은 이제까지의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의 수혜자와 실무 세계를 연결한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이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보는 의도로 작성 되었다. 5년이나 다녔는데 대우는 같다
전진삼의 PARA-DOXA 05
건축학교육인증 제도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물리적으로 배정된 시간을 따져 본다면 실무에 관련된 시간이 늘어났고, 학생과 교수의 소통 시간도 대폭 늘어난 것이 사실 이다. 건축 실무에 종사하고 있는 건축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갖게 되고, 직접 시공 현장이나 사무소에서 인턴 활동을 경험하기도 한다. 문제는 5년제 건축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4년제 학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 고, 실무에 좀 더 빠르게 적응하여 일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건축 사사무소에서 고용을 할 때에는 4년제와 5년제 출신이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같은 일을 하게 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은 5년제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포지셔닝이 불분명하여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이들과 4년제 출신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인 채 연봉 조정과 경력 인정을 요구하게 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한다. 건축학인증, 실무자들은 무관심하다 5년제 건축학 교육을 받은 필자는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5년제 학위 가 건축사사무소에서 환영받는 필요충분조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취재를 통 해 예상보다 더 많은 건축사들이나 건축사사무소는 건축학교육인증 시스템에 대해 무관심했다. 건축학 교육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화할 때, 교육과 실무는 완전히 분리 된 다른 분야인 것처럼 여겨졌다. 5년제 건축학 교육이 건축사가 될 자격과 소양을 키워 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건축사들로부터는 그냥 학교에 존 재하는 학문의 일 분야, 변화를 맞는 여러 학과 중 하나 정도로 여기는 인상을 강하 게 받았다. 건축 선배들에게서 우울한 미래를 읽다 대형 건축사사무소에 종사했거나,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교강사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용을 해야 하는데 4년제, 5년제 출신 학생이 동시에 지원해 왔다면, 어느 쪽을 취업시키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용을 하는 데 있 어서 학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4년제와 5년제 출신 공 히 취업하여 실무에 당하게 되면 별로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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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건축학교육인증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 전반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는지 다시 질문하 자, 시대가 변하기도 했지만 입사 후 개별적으로 배우거나 별도의 교육 시간을 할애 해야 했던 건축 컴퓨팅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기술을 학교 내에서 교육하니 신입 사 원 교육 시간이 절약되었다고 답했다. 설계 중심의 커리큘럼 때문인지 과거의 신입 사원들보다 설계의 과정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디자인만을 주 력해서 배우다 보면 놓치게 되는 구조나 설비에 대한 이해도 또한 향상되었다고 했 지만, 여전히 4년제 공학과 출신보다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소용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배운 것이 실무에서 요구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사용자의 입장에서 4년제 졸업생과 5년제 졸업생을 굳이 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각각의 회사 스타일에 맞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는 논리였다. 신입 사원이 되는 순간 기성 건축가의 고루한 방식을 닮아가는 것이 정 도(正道)란 얘기였다. 졸업생 개개인의 장점을 살피는 이상적인 직장은 기대할 수 없 고, 기존의 시스템에 편입되어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 이 이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과 실무의 소통체계가 필요하다 렇다면 현행 교육의 방식이 실제 건축 작업 과정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비효율 적이며 퇴보하고 있는 기술을 배우고 있지는 않은지 실무에 있는 건축사들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 건축 교육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것 따로 실 무 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와 교육이 계속해서 소통하여 더 나은 개념과 기 술이 교육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현실은 대학에서의 건축 교육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무관심한 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실무에서는 소용없으니 새로 배 워야 한다고 말하는 무책임한 건축사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교육 현장과 실무 세
전진삼의 PARA-DOXA 05
실무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사들도 양질의 건축 인재를 고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
계의 원활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무책임한 건축 사회는 가라 졸업 후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해 종사하고 싶은 학생들은, 건축학인증 시스템의 5년 제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4년제 졸업생에 비해 더 좋은 대우와 더 많은 연봉 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학교육인증을 시행하는 목적이 대학 간 경쟁을 부추기고 서열을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사가 되기 위해 교육받아 야 할 소양과 지식 그리고 기술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 을 학생들도 알고 있다. 건축학 5년제를 선택할 때에는 다른 학생들보다는 좀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만 그 대신에 그에 걸맞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 대감을 갖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실무와 유리된 프로그램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건축 교육을 향한 대학에서의 변화 양상이 실무 세계에 고스란히 전달될 수는 없는 걸까. 후배를 아껴 주는 건축사를 만나고 싶다 건축학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건축사에 대하여 존경심과 동종 업무에 종사하 는 사람들이라는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건축사들은 학생들을 자신들 분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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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로서 더욱 아껴 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건 축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하는 학교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 고 반응하는 바람직한 선배 건축사들을 만나고 싶다. 교육과 실무가 연계되지 못하 고, 배웠던 것을 모두 무시하고 실무를 새로 익혀야 하는 지리멸렬한 방식이 아닌 그 동안 대학에서 배워온 것들이 실제로 시행되는 것을 몸소 경험할 수 있는 건축 설계 의 현장이 많아졌으면 한다. 책상머리 교육에서 벗어나기 반복하지만 건축학교육인증 제도는 단순히 건축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것에 목표 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해하고 기초 지식뿐만 아니라 탄 탄한 실력으로 우리나라의 건축에 이바지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다. 단순히 달달 외운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 기반한 건축 인재를 배출하는 것에 있다 고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책상에서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실무에 있는 건축사들 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로 올바른 교육이 실제 현장에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기성세대 건축사들 또한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선진화된 교육 프로그 램의 실재에 관심을 갖고, 실무와 연동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따뜻한 시선이
전진삼의 PARA-DOXA 05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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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건축 횡설, 건축 수설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 이상해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Issue
* 이 글은 지난 5월 31일 성균관대학교에서 개최된 이상해 교수님의 정년 퇴임 기념 특강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21 와이드 COLUMN | 김영철
환경 담론과 선언문
25 이종건의 COMPASS 33
와이드 FOCUS
꽃보다 할배 건축가
29 전진삼의 PARA-DOXA 05
건축 횡설, 건축 수설 과거와 현재, 혹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과연 극복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이를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
책상머리 교육으로 머물 것인가
건축학교육인증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
(竪說)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물론 이때의 횡설수설은 “조리가 없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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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 이상해
대로 지껄임”을 뜻하는 사전적 어휘가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건축 횡설, 건축 수설
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라는 주제로 건축 횡설(橫說)과 건축 수설
세계화와 건축 역사의 전개,
그리고 동아시아 건축의
현재적 과제
몇 가지 단상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이야기의 전제가 되는 생각들을 우리 모두 공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건축(특히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사유의 바탕이 되는 인문 적 소양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국적이거나 강렬한 것에 대한 호기심 이 많고 그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클수록 진지한 사유는 필수적이 다. 또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텍스트(text)는 서로 존중되는 가운데,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을 지녀야 한다. 반면, 다수의 일반 대중들은 사실상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 익숙한 것에 대해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한다. 변화에 두려워하면서 항상성을 갖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건축인들은 건축의 측면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문화 혹은 문명은 앞서 말한 몇 가지 전제와 관련하여 여러 현상들, 이를 테면 대립과 충돌, 갈등, 혼용 등의 양상을 보이면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어 왔고, 그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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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정체성의 문제, 과거와 현재 및 동양과 서양의 문제, 경계 허물기 등의 문제를 도 출해 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일 정도로 ‘나’를 찾고 또 나를 지키려고 하 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정작 ‘나’를 벗어난 또 다른 ‘나’, 즉 다른 사람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를 포함한 건축 디자인에는 이질성과 유사성이 항상 공존하고 있 다. 혹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란 맥락에서 (물론 심오한 의미는 차치하고) “동 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므로 각자 제 갈길을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동양과 서양 문화의 본질은 정말 다른 것인가. 아니, 우리는 그 본질에 얼마나 천착하고 있는가. 풍요로운 문명의 시대지만, 문화적으로는 빈곤한 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런 측면에서 대표적이다. 기실, 우리는 시간을 요하는 작 업에 매우 취약하다. “바늘로 우물을 판다” 혹은 “철봉을 갈아 바늘을 만든다”(봉마 성침, 棒磨成針)와 같은 말들이 단지 과거에만 유효하고 현대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인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인내와 끈기로 문화의 본질에 천착하는 과정 속에서 변화, 변 신, 새로움을 꾀하고, 그 주체가 누구인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인지, 혹은 다른 사람 을 닮아가는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인간 앞서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사회의 변화에 저항적이다. 하지만 개개인으로 보자면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것 또한 인간의 속성이다. 새 것 안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
와이드 FOCUS
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절대 다수의 편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언제나 최선인 듯 행 동하며,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일까? 절대 다 수는 아니지만 몇몇 초인적 존재들이 이끌었던 가르침은,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이 중심인 또 다른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는 인간과 그들의 ‘세계’, 인간과 그들의 문화, 인간과 모든 인간의 문명 등등 과 관련된 좋은 책들이 넘쳐 난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는 못 되 더라도 최소한 그 분야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만물과 모든 현상의 속성 이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들이 감각하고 지각하는 모든 것이 끊임 없이 변한다. 특히 사회 현상과 만물을 유기적인 관계로 바라볼 때, 변화는 당연한 것 이다. 그리고 매 순간순간은 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만물유전 (萬物流轉),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도가에서는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 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늘 그러한-혹은 진정한-도가 아니다. 이름을 어떤 이름으로 붙일 수 있으면 그것은 늘 그러한-혹은 진정한-이름이 아니다)이란 말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주역의 주제 역시 변화에 바탕을 둔다. 이런 측면에서 건축을 이야기하고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 할 때 고정된 관점으로 풀어낼 수는 없다. 인간과 문화, 그리고 문명 우리는 흔히 지구 위의 모든 나라, 또는 인류 사회 전체를 ‘세계’라고 한다. 그런데 내 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세계이다. 어린이 세계의 크기와 어른 세계의 크기가 다른 것처럼, 이 ‘세계’에서는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세 계의 범위나 크기도 다르다. 한정하는 범위, 교류하는 범위가 다른 것이다. 외부와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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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하는 세계가 좁았던 과거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들이 접촉하고 인식 하는 대상인 세계를 점점 더 넓은 세계로 확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각 ‘세계’ 의 인간들은 시대마다 외래 문물을 수용하여 바로 그 당시의 세계보다 더 확대된 ‘새로운 세계’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인간과 건축, 도시 마찬가지로 건축과 도시의 역사 전개는 어떤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 인식의 확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용과 모습으로 확대되었는가? 그것을 제대로 읽어 내는 일은, 특히 건축 역사를 하는 사람들에 게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세계를 확대해 가는 과정의 내용과 모습을 읽어 서 글로 쓰는 것이 건축 역사에 대한 서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건축 역사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순 히 목구조 건축의 전개 과정으로만 해석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한국 건축 역사 속에서도 엄연히 ‘세계의 확대’ 과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문화와 문명을 특수성과 보편성으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그것의 단 절과 연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자율적인 받아들임인가 혹은 타율적인 받아 들임인가. 또 만날 때는 어떻게 만나는가. 배타적으로 다른 행보를 할 것인가, 융 합된 모습으로 갈 것인가. 나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은 융합이 일어난다고 본다. 그래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갈 때 새로운 건축, 새로운 도시가 만 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자신의 건축과 도
역사와 건축, 도시 20세기 초 많은 건축가들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건축을 이야기했지만,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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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만들 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를 보낸 현재의 21세기는 또 다시 새로운 사회, 새로운 도시를 요구하고 있다. 건 축인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 반면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것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에 속한 것이 만약 낯설면, 되려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를 낯설지 않게 하는 작업 또 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육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의 해서도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건축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 래서 그들이 과거에 속한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 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인간이 과거를 해석할 때, 그 과거의 실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이 해했는가의 문제가 있다. 이야기가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과거의 실재를 다시 찾 아내서 이야기해야 한다. 역사가들조차도 과거를 자신들의 역사관에 따라 과거 사료를 선별적으로 선택해서 이야기한다. 그런 이유로 역사는 시대마다 다르게 읽혀지고 쓰여지는 것이다. 과연 건축하는 사람들은 과거에서 무엇을 찾고, 또 그것을 오늘날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그런 관점에서 역사 속의 건축과 도 시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고 요긴한 것이다. 건축 횡설, 수설, 발설 나는 건축역사를 해석하는 방편으로 건축에 횡설, 수설, 발설(發說)을 설정해 보 았다. 수평의 x축이 횡설, 수직의 y축이 수설, 전후의 z축이 발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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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축 횡설 - 횡설은 좌우 관계를 나타낸다. 주지하듯이 동양화는 소실점 없이 사람들 의 움직임에 따라 읽히는 횡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횡설은 사물이나 사유의 내 용이 좌우 관계로 파악되어 논의되는 것이다. 또 횡설은 과거 자체보다 당대적인 것 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공시적이다. 현 시점에 여러 개가 함께 놓여져 있는 관계 속에 서 인간들은 서로 간의 관계를 존귀 개념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나온 사회 형식 중 하 나가 가치론적 상응 관계이다. 동아시아의 사고는 이러한 x축 횡설과 관련된 사유 체 계로 이루어진 예가 많다. y축 수설 – 수설은 상하 관계와 관련이 크다. 이 또한 공시적이긴 하지만 나는 상하 관계로 파악되는 것은 수설에 속한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원칙 이나 원리의 개념이다. 철학적 사유 체계 중 존재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존재론적 상응 관계는 동아시아의 주자 성리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실학적 색채를 띠 는 후기 유학자들의 학문 내용에는 수설에 속한 것들이 꽤 많다. z축 발설 - 발설은 전후 관계를 나타낸다. 이것은 통시적인 것과 관련되고, 사람으로 치면 나이의 장유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시간 개념으로서 존재론적이다. 사건의 전 후 관계가 함께 이야기되는 존재론, 즉 사건 존재론적 상응 관계이다. 나는 건축에는 이 횡설 수설 발설, 즉 인간의 가치, 인간의 존재, 공간, 그리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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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전후 모두가 고려되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이해는 동 서양을 뛰어 넘어 21세기 건축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근본 화두, 혹은 원칙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한자 집 ‘우(宇)’, 집 ‘주(宙)’ 자를 보면, 모두 집을 의미하지만 宇는 세상을 뒤덮는 공간을, 宙는 무한히 펼쳐지는 시간을 이른다. 일찌기 동아시아에서는 x축, y축, z축 전체와 관련된 사유를 하고 있었음을 이 두 글자는 보여준다. 동서남북상하를 뜻하 는 육방(六方)이나, 좌우상하전후를 모두 관통하는 ‘기(氣)’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기’는 실재를 규명하는 것보다 우주 내 존재로서 인간들이 지향하는 가치들이 서로를 어떻게 얽어매고 있는지, 그 매개체는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건축을 하면서 자주 동(動)에 속하는 것과 정(靜)에 속하는 것을 접하게 된 다. 예를 들어 좌우 대칭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정적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렇지 않은 디자인의 경우에는 그 속성이 동적이라 한다. 디자인에 있어서 이 동과 정은 장단점 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 둘의 상호 관계를 의식한다면, 동은 공간 속의 움직임을 시간적 차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고, 정은 시간적 흐름을 정지시켜 공간 속에서 대상물을 파악하게 만드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횡설 수설 발설의 관점에서 역사 속의 건축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이 자신의 세계를 확대해 나갈 때 전후상하좌우를 제대로 이해하며 건축을 했는지, 아니면 어느 한 부분에 집착하여 그것만을 지향했는지, 이것을 읽어내는 작업이 건 축사 연구에서 중요하다. 또 이러한 관점에서 동아시아적 사고, 서양적 사고를 구분할 수 있다. 흔히 서구적 사 고는 추상화시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하는데, 수설에 속하는 존재론적 사유 체계는 바로 이 추상화의 도구이기도 하다. 반면 동아시아적 사고는 체계화시키는 사고가 강하다. 이는 횡설에 속하는 것으로 가치 지향적이기 때문에 질적 사유 체계로 발전 하게 된다. 이는 추상화시킴으로써 양적 사유를 하는 서구적 사고와 대조적이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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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고자 하는 충동은 서구적 사고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 난다. 따라서 서구적 사고는 혁신적인 것을 지향하는 속성이 훨씬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동아시아적 사고는 수평적 관계 속에서 하나의 가치 체계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파악하기 때문에 항상 총체적인 것, 전체적인 것을 의식하게 되고, 이 총체적 이고 전체적인 기본 원칙들이 지속성을 띠도록 독려한다. 물론 동아시아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의 차이는 사상이나 철학뿐 아니라 과거의 건축 과 도시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우리는 디자인의 접근 방법에 따라 전체성, 즉 계획에 기반을 둔 것이냐, 혹은 부분의 집합에 의한 것이냐로 역사 속의 건축과 도 시를 구분해 낼 수 있고, 지금 이 시점, 이 시대의 현상들을 읽어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공간을 어떤 식으로 통제하고 조직화했는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어 떻게 움직이고 살았는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건축 미학은 무엇인지, 또 그 건축 미 학을 가능하게 했던 재료, 기술, 색채 등등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와 서양의 건축과 도시 과거의 서양 건축은 상당한 경우에 개인을 위한 것, 개체와 관련되는 것이 우선시됐 고, 동아시아 건축은 공공에 속하는 것, 전체와 관계되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또 서 양 건축이 개체의 발전이었다면, 동아시아 건축은 전체가 중시됐다. 이것을 바탕으 로 전자는 조적조 건축 형식이 수직 방향으로 전개되는 벽의 건축이 발전한 것과 관 련지어 해석할 수 있고, 후자는 목조 건축이 수평적으로 전개되어 바닥(마루) 건축의 설을, 서양 건축은 수설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좀더 나아가 보면, 도시 자체도 서양은 내향적이고, 동아시아는 외향적이다. 여기서 내향적이라는 것은 단위 건물이나 도시 자체의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것을 뜻하고, 외향적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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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식들을 생산해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동아시아 건축은 횡
주변의 자연과 건축이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서양의 도시가 광장이나 도시 내 공간이 중요했던 반면, 동아시아의 도시는 길의 문화을 지향했다. 길 속에서 사람 들이 걷는다는 것, 그것을 통해 시간의 도시라는 특성이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드러 났던 것은 아닌가 한다. 물론 나는 이것으로써 동아시아의 건축/도시, 서양의 건축/도시 중 어떤 것이 더 우 월한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아시아와 서양이 지향했던 바를 이러한 관 점에서도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결국 이러한 이해와 해석이 지금의 건축, 그 리고 앞으로의 건축이 어떠한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교 문화의 속성 동아시아, 특히 유교 성리학에 바탕을 둔 문화의 속성은 ‘세계’를 읽는 방식이 횡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비개체 중심이고 또 ‘관계’를 중시한다. 이를 테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관계처럼 상관적 사유로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 유로 동아시아의, 특히 유가적 사유에 바탕을 둔 건축은 유기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댓구와 운율에 의해 조합되는 한자의 언어 구조와 마찬가지로 도시나 건축에서도 관 계의 구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대대 (對待)적 관계, 유행(流行)의 이치, 그리고 그 속에서 접합에 의한 사람들의 흐름 등 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유교 문화에서 부분이란 것은 그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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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이루는 개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한국 건축을 예로 들어 보자. 집 을 이루는 부재 하나하나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전체의 관점으로 봤을 때 부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건물 배치에서는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이 다양함을 갖는데, 그 다양함은 개별적인 차원에서는 특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체를 이루는 데는 저마다 중요한 역할이 있다. 이것은 유가적 사유 체계와도 관계가 있다. 율곡은 정주(程朱)의 리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이어받아 만물이 하나인 것은 리가 통했기 때문이고, 리가 만 가지인 것은 기가 서로 다른 국(局)을 이루었기 때문이라 는 ‘리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제시했다. 만물은 동일한 근원에서 났지만 현실적으 로 차별성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한 이론이다. 이와 같은 유교 문화는 동아시아 건축 미학을 형성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과 도시의 속성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과 도시는 항구적으로 ‘존재’하는가. 건축과 도시도 변화의 속 성을 가지고 있다. 변화가 없는 도시와 건축은 그 자체로서 시대적 기능을 다 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경우 방법은 두 가지이다. 기존 도시 구조를 재편하거나 신도시를 건설하거나. 건축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과 관계없는 건축은 이미 골동품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세계’가 확대되어 하나의 세계가 다음 세계로 나아갈 때 도시는 어떤 식으 로 변화해 가는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당나라 장안과 명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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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 북경의 도시 구조를 살펴보면, 도시 자체엔 변화가 있지만 중국 도성의 기본적 인 특징, 즉 격자형으로 도로가 난 바둑판 모양의 구획 등은 어떤 형식으로든 유지됨 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후대의 도시는 전대의 도시와 분명 다른 모습을 띠고 있 다. 예를 들어 신라 경주의 도시 구조는 어느 시점에서 중국의 도성 제도를 수용하여 격자형 가로망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용이 자율적이든 타 율적이든 결국 자기화 과정을 거쳐서 안착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다 른 세계를 자기 세계의 한 부분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왕건은 고려 개성을 세우면서 신라 경주와 같은 도성은 만들지 않았다. 이미 경주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들은 파악하여 그 다음 단계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한양 도성 역시 또 다른 모습으로 건설이 됐다. 어떻게 보면 한양 도성은 훨씬 더 자기화된, 그 이전의 도시 설계를 한국인 나름 소화한 모습으로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불교 사찰은 또 어떠한가. 초창기의 불교 사찰은 중국의 사찰이 보여주는 기하학 적 좌우대칭 배치를 수용하여 상당 기간 그 형식을 따랐지만, 결과적으론 자기화, 즉 한국화된 사찰을 드러냈다. 불국사는 전대의 중국 형식을 받아들여 그 다음 단 계에 한국화된 사찰이 나타나는 시기 사이의 전환점에서 이루어진 사찰이다. 그래 서 불국사 이후에는 한국화된 사찰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에 대 한 인식과 그 ‘세계’를 자기화하는 방법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중국 주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북경 사합원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기 하학적 구성과 좌우대칭이 바탕이 됐다. 중국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되는 유교적 사유 체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 성리학을 받아들인 우리는 이러한 유가적 배경 위에 한국 나름의 방식들,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집짓기 방식 들을 더하여 경주 독락당과 같은 살림집으로 이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발설과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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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근대성과 건축, 도시 시대를 구분하여 해석하는 것은 역사를 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 구분을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서구 근대 건축가들은 르네상스를 무 척 중요하게 평가했지만, 최근의 서구 학자들은 르네상스가 당대에 사회적인 역할을 얼마나 했느냐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르네상스는 중세에 대한 다음 ‘세 계’ 사람들의 극복이란 관점에서 부각됐지만, 사실상 근대와 연관지어서 봤을 때는 르네상스보다 오히려 바로크가 더 중요했다. 바로크의 화려함이 아닌, 새로운 형식 에 대한 실험 정신을 다시 평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세를 마무리 지은 것은 르네상 스가 아닌 바로크였다. 근대의 시작은 근대적 가치가 생성됨을 의미하고, 근대적 가치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신 중심의 사회로부터) 인간의 재탄생, 그리고 삶의 방식의 변화이다. 그리고 이전의 농업 사회에서 자본을 바탕으로 한 상업 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것 이 근대다. 근대성의 탄생은 긍정적인 가치가 있지만 동시에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됐 다는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세속화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의 문제점에 대 해서 당대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21세기인 지금 사람들은 세 속화 사회가 가고 있는 길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 반면 서구가 18세기에 근대성 의 개념을 구축하는 동안, 동아시아는 중세 기독교의 문제만큼 불교나 기타 다른 종 교에 문제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양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럼으로써 이 둘은 서로 다른 문화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건축과 도시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개된 수직 도시의 등장은 근대 도시의 상징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당 부분 극복해야 할 문제점들을 대두시켰다.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와이드 FOCUS
20세기의 세계와 도시
것으로 이해되던 근대는 인간에게 혹은 인간 환경에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으로 알려 졌다. 이를 테면 오염, 공해, 과밀, 에너지 및 자원의 과소비, 건전하지 못한 환경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즉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건축과 도시의 보편성을 찾아야 하며, 그것은 과거의 좁은 ‘세계’가 다른 ‘세 계’와 만나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되었듯이, 흔히 말하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 참다운 의미의 두 ‘세계’가 합쳐져서 형성되는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서구적인 것 만이 보편적인 것인가를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하며, 21세기의 세계는 어떤 세계가 되어야 할 것인지, 21세기의 건축과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 야 한다. 이전 시대의 도시와 건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서로 달랐던 동서양 의 세계가 합쳐진 건축과 도시를 그려 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상적인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공통된 염원이다. 살고 싶 은 도시, 건전한 삶이 가능한 도시, 쏠림 현상이 없는 도시를 전제로 한 21세기 건축 과 도시를 위해 건축의 횡설론, 수설론, 발설론은 좋은 프레임이 될 것이며, 이를 통 한 세계화의 이해,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찾는 것은 현재 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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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W O R K 지오 키즈 어린이집 Geo Kids 박인수 Park Insoo
1 진행_정귀원 본지 편집장 사진_진효숙 본지 전속 사진가
위치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동 30번지 외 3필지 지역 지구 자연 녹지 지역, 대덕연구 개발 특구 용도 교육연구시설(어린이집) 대지 면적 147,134.40㎡ 건축 면적 27,785.242㎡ 연면적 63,124.474㎡ 건폐율 18.89% 용적률 38.11%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WORK 1
박인수
Wo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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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키즈 어린이집
Geo Kids
박인수(파크이즈건축사사무소)
Park Insoo(PARKiz Architects)
41 CRITIQUE
건축주 없는 건축의 틈
박인수는 숭실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
김종헌
대학원을 졸업하고 AA School DRL
55 DIALOGUE
을 수료했다. (주)아이아크건축사사
결론은 기획이다
Wo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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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관
The Museum of Korean Modern Literature
황순우(건축사사무소 바인)
Hwang Soonwoo(Design Group VINE)
무소 파트너를 거쳐 (주)파크이즈건 축사사무소 대표 이사로 작업 중이다. 새건축사협의회 이사, 한국건축가연 합 이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 고 있기도 하다.
64 DIA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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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해석 사이
Wide Work | 와이드 워크
CRITIQUE 건축주 없는 건축의 틈
어떤 어린이집/유치원이 좋을까? 내게는 대전에서 유치원을 졸업한 딸과 아들이 있다. 대전의 연구 단지에 살았던 나는 딸을 아파트
WORK 1 critique
김종헌 본지 자문위원,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
단지 내에 있는 유치원에 보냈다. 교육 활동도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던 것 같고, 단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았다. 딸은 나름대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여 지금까지 큰 어려 움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한편, 딸보다 3살 어린 아들은 아주 운이 좋게 대전에서 가장 인기 좋은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유치원 입학을 위해서는 몇 년 전부터 미리 입학 신청을 해야만 했다. 아내는 입학식 바로 전날, 그 곳을 무심코 들렸는데 그날 어떤 아이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빈자리가 나서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유치원은 각 반이 별동으로 분리되어 자신의 집처럼 자신들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고, 또 천연 잔디 축구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넓은 전원형 유치원은 드넓은 전원 속 환경뿐만 아니라 아 이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수업 시간에 교실로 들어갈 수도 있고 바깥에서 축구를 할 수도 있게 운 영되었다. 심지어 겨울에도 수업 시간에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수돗물을 틀어 놓고 물장난을 하며 놀 수 있었는데, 이 유치원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며 생활할 수 있는 자율형 교육을 추 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아직도 유치원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학교 생활, 즉 성적은 딸보다 못하다. 향후에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파 트 단지 내 평범한 유치원을 다녔던 딸에 비해 많은 점이 부족하다. 창의적인 교육 환경을 만끽했던 아들보다 주입식 교육을 행했던 시설에서 교육 받은 딸의 적응력이 훨씬 좋은 것을 보면서 무엇 때문 에 그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딸과 아들의 개인적 능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창의 적 교육이 한 개인이나 사회에 실체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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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는 남측면. 아이들의 놀이 마당으로 열어 두어 자연 환경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게 했다. 남측 전경. 연구원 앞으로 비교적 큰 하천이 흘러 큰 길가에서 어린이집으로 직접 진입이 안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북측 전경. 지질자원연구소 박물관 외부 공간과의 연계를 고려하여 기존의 퍼골라를 건물 인근에 그대로 두고, 외부 활동을 하다가 쉴 수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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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게 하였다.
Wide Work | 와이드 워크
운영자 없이 진행된 설계 주입식 교육 대비 훈련을 하는 시설과 창의적 교육을 진행하는 시설의 성과를 비교한다는 것은 생각 처럼 쉽지 않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당연히 창의적 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하고 실험적 교육이 이 루어지는 것이 옳겠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의 아이 문제로 이어진다면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나 를 포함한 많은 건축가들이 사회적으로는 개성을 드러내는 멋진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막상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대전 지오 키즈 어린이집에서도 비슷한 상황 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어린이집 생활에서 일상의 생활과 다른 모험심과 탐험심 을 길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반면, 어린이집 운영자는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겉으로는 창의적 교육과 개성 그리고 탐험과 모험심을 내세우지만 그것이 나의 상황과 직결될 때는 성적과 경제적 상황 그리고 안전을 우선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적절한 조절은 건축가의 새로운 의지를 담아낼 건축주의 포용력이라고 하겠 다. 그런데 이 어린이집에서는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조정해 나갈 건축주가 없었다. 건축주는 단지 예산과 필요한 공간을 제시했을 뿐이고, 어린이집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즉 설계 및 시공의 주체와 이를 운영하는 주체가 다른 상황에서 건축가는 자신의 창의적 실험을 진행
어린이집의 정면은 어디인가? 지오 키즈 어린이집을 방문했을 때, 우선 입구에서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등원하는 아이들을 환하게 맞이하는 정면이 아닌, 측면의 쪽문으로 주출입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입구로 들어서 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는 있지만, 입구의 캐노피와 양쪽 볼륨과의 관계가 하나의 건물로서 완전히 조정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이 건축가가
WORK 1 critique
하여야 했다. 실질적 운영자를 갖지 못한 채 시작된 어린이집은 결국 문제점을 노출하게 됐다.
의도한 건물의 정면이 아님은 건물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나 알 수 있다. 원래 정면은 큰 길에서 보이 는 쪽으로, 상부층에서 잘게 나뉜 건물 매스(mass)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각 공간 사이사이로 빛이 들어가게 한 것과,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려고 한 점 등은 건축가의 의도로 충분히 읽힌다. 그러나 이 정면은 큰길가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마치 성벽의 해자처럼 연구원 앞으로 비교적 큰 하천이 흘러 어린이집으로의 직접 진입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큰길 자체가 연구 단지의 특성상 사 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 아니고, 어린이집 자체가 지질자원연구원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인 정면의 모습은 그 앞의 마당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당이 그리 크지 않고, 아이들의 눈높이 자체가 건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이 아직은 없기 때 문이다. 건물의 정면은 단지 도면이나 모형에서만 드러날 뿐이다. 이에 따라 건물 정면은 측면에 만 들어진 출입구가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측면으로 들어가면 각 공간으로의 이동이 원활하게 연 결되어 공간 이용상으로는 이곳을 정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입구에는 원장실이 있고 복도를 중심으 로 양쪽으로 각 교실과 식당이 배치되어 있는데, 식당은 식사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모든 원생들 이 모일 수 있는 회합실이기도 하다. 복도 중앙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이처럼 측면은 동선 전개상 정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건물은 형태상의 정면과 공간 이용상의 정면이 이원적으 로 분리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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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주출입이 이루어지는 동쪽 면. 전면의 드롭오프(drop-off)구역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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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공간을 연결하는 끈-복도와 계단 건물 내부의 계단실과 복도는 어린 아이들의 스케일에 맞추어 잘게 나누어진 각 공간을 수직과 수평 으로 연결하고 있다. 1층에서 넓어졌다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는 공간은 이처럼 수축과 팽창을 이 루면서 좁은 공간 안에서 공간의 흐름을 매우 동적으로 유도한다. 2층은 보다 더 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각각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갖고 있는 잘게 나뉘어진 10여 개의 공간은, 마치 실이 이곳 저곳을 오가며 꿰맨 듯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이러한 공간적 조직은 여러 성격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한 방향이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길러지기를 원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좁은 공간들을 서로 유기 적인 시스템으로 묶어 내는 박인수의 공간 조율에 대한 능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2층의 복층 으로 이루어진 다락방 처리에서는 배관 설비 공간을 정확하게 해결하지 못하여 천장고가 낮아지는 바람에 다락방이 활발하게 이용되지 못하고 어정쩡한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2층 각 공간의 전 개는 독립된 각각의 공간으로 분리되기보다 서로 연결되면서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평 면과 단면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구현되는 과정에서 설비 부분이 차지하는 높이에 대한 계산 착 오(혹은 공사 과정의 실수인지는 몰라도)로 그 효과가 약해진 것은 아쉬움이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부분 또한 운영자가 처음부터 있었더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오 키즈 어린이집에서 파크이즈의 박인수는 자작나무를 이용하여 전체 공간의 통일감을 얻어내고 구가 저절로 구성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자작나무를 여러 겹 붙인 집성목의 디테일을 그대로 살 려서 각 공간의 출입구 프레임을 재료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건축가의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은 이를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운영자와 처음부터 논의되지 않아 실제 교육 활 동에서 충분히 읽히고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즉 건축가의 세심한 의도나 새로운 시도들이 사용자에 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듯하다. 이와 더불어 어린이집의 정면이 90도 회전되어 현재 접근하는 방향
WORK 1 critique
있다. 벽면은 수직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로 세워져 있다. 이를 통해 캐노피를 설치하지 않아도 입
으로 돌려졌더라면 어린이집에 대한 인상이나 공간을 활용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지 않았을 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면,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건축주 없는 건축에 건축가의 생각을 구현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험심과 탐험심, 그리고 창의력 있는 교육을 위한다는 것은 생각이나 시도만으로 이룰 수 없을 것이 다.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실질적인 주체가 필요함을 새삼 느 낀다. 즉 교육에 대한 성과는 단순하게 방법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끝까지, 또 세심하게 풀어 나갈 수 있는 관계 구축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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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현관 쪽 대기 공간
동측 현관을 통해 어린이집으로 들어서면, 부모의 대기 공간과 중앙 계단, 그리고 각 실들이 통로를 가운데 두고 동적으로 배치되었다.
복도 끝에서 현관을 바라본 모습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일자형 계단. 계단도 아이들에겐 재미있고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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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2층은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갖고 있는 공간이 실로 여기저기 꿰맨 듯 더욱 동적으로 연결된다.
만5세반 실은 천장고가 낮아지는 바람에 복층의 의도가 계획되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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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벽과 천장고의 변화를 이용하여 평면적인 공간 형태를 벗어난 2층. 시각적으로 동적으로 단조롭고 정형화된 공간 대신 움직임을 유도하는 교실과 공용 공간 등을 배치했다.
교실 내 창쪽으로 빌트인(built-in)가구를 집중 배치하여 창가에서 이용하는 시설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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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2층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외부 활동을 보조하는 외부 공간. 중앙 복도 부분의 채광과 환기를 돕기도 한다.
편광 필름을 붙인 유리창을 통해 다양한 색채의 빛이 유입되고, 이것은 실내의 밝은 자작나무 마감재와 잘 어우러져 한층 경쾌한 공간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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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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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평면도
Wide Work | 와이드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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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측면도
동측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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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면도
남측면도
Wide Work | 와이드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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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면도 2
횡단면도 1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Wide Work | 와이드 워크
DIALOGUE
지오 키즈 어린이집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내에 위치한 직장 어린이집이다. 연구원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설립된 이 공공시설은 공모전을 통해 어른들의 ‘통제’로 아이들이 ‘관리’되는 보통의 어린이집을 지양하는 형태로 세워졌다.
WORK 1 critique
결론은 기획이다
건축가 : 어린이 교육 시설은 관리자/운영자 위주로 계획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운영자들은 무엇보 다도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애초에 없애려고 하거나 전형에서 약간이라도 벗어 나면 불안해 하죠.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어요. 헤르만 헤르츠버거(Herman Hertzberger, 네덜 란드의 건축가이자 교육자)는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위험한 것을 접하게 하여 어릴 때부터 위험 한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제 생각도 같아요. 상상력과 호기심 을 자극하는 공간이 창의력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요. 물론 이러 한 컨셉트는 건축가와 운영자의 철학이 서로 통했을 경우에나 가능하겠지만요. 사전 협의가 필요한 일인데, 지오 키즈 어린이집은 집을 짓고 나서 운영자를 만난 경우였어요. 이 프로젝트는 한국지질자원연구소가 어린이집 설계 실적이 있는 건축사사무소를 대상으로 공모전 을 실시하고, 국내 유수의 전문 집단에 운영을 위탁한 경우이다. 건축가는 어쩌면 공모전 당선작이란 입장이 교육 시설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구현해 내는 데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건축가 : 공사 과정의 실수나 준공 후 운영자에 의한 변경 등으로 어중간한 제스처들이 있긴 하나, 아 무튼 답답한 집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요. 이 집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 한 ‘가능성’과 관련된 집이기도 하고요. 아파트처럼 획일화된 공간과 형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창조 적이고 능동적인 공간 체험의 장을 제공해 주고 싶었어요. 의외의 오브제, 의외의 공간이 흥미로움이 나 호기심을 불려일으켰으면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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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동측 현관을 통해 어린이집으로 들어서면, 부모의 대기 공간과 중앙 계단, 그리고 각 실들이 통로를 가운데 두고 그 자체로 기울어진 사선 벽으로 구획되어 동선을 자유분방하게 만들면서 한눈에 파악 되지 않는 공간감을 형성한다. 부분적으로 1,2층을 오픈한 곳에는 필름지를 붙인 유리창을 통해 다 양한 색채의 빛이 유입되고, 이것은 실내의 밝은 자작나무 마감재와 잘 어우러져 한층 경쾌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건축가 : 시각적으로나 동적으로나, 단조롭고 정형화된 공간 대신 움직임을 유도하는 교실과 공용 공 간 등을 배치했습니다. 또 2층은 기울어진 벽과 천장고의 변화를 이용하여 평면적인 공간 형태를 벗 어나려고 했고요. 물론 어린이집 관리자들도 고려의 대상이었습니다만, 어린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생각했어요. 교실에서 같은 반 아이들과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 나이대 별 아이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의 중요성을 높게 생각했죠.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들도 어른들 과 같은 미적 감각과 취향, 편리함에 대한 반응을 가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오 키즈 어린이집의 복도 는 교실과 외부 공간 그리고 자연 채광과 조망이 연속적으로 연결된 공간입니다. 교실 내 창쪽으로 빌트인(built-in)가구를 집중 배치했습니다. 어린이집의 일반적 가구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가구를 수납뿐 아니라 창가에서 이용하는 시설로 제안한 것이었어요. 결국 아이들이 어 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겠죠 1층에는 2층보다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지내게 되는데, 외부와 내부를 잘 연계할 수 있어야겠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내부 생활 위주로 지낼 것 같아, 교실에서 마당과 복도로 자연스
WORK 1 dialogue
럽게 연계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2층은 아무래도 마당과 연계성이 1층에 비해 떨어지니까 외부 테 라스를 두어 외부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였죠. 아이들은 어른보다 작으니까 조그만 외부 공간에서도 잘 놀 수 있거든요. 또 2층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계단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었어요. 오르내리며 재 미있게 지내길 바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어릴 때 계단을 무척 좋아했고, 제 아이들도 일부러 계단 을 걸어 오르내리며 놀았거든요. 또 계단 밑 공간은 상대적으로 낮아 아이들에게 새로운 공간이 되고, 계단 위와 아래는 시각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군데군데 외부와 접하게 하는 다양한 장치들도 눈길을 끈다. 1층엔 놀이터로 활용되는 남측 전면 마 당을 두었다면, 2층에는 실과 실 사이에 규모가 다른 데크를 끼워 넣어 아이들의 실외 활동을 유도하 고 있다. 건축가 : 이 집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내에서도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연구원 정문으 로 들어와 다시 방향을 꺾어 북측으로부터 진입하게 되어 있어서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지요. 대신, 숲 (갈대밭)과 하천을 가지고 있는 대지 남쪽은 자연적 환경 조건이 괜찮은 편이었어요. 대지 동측에 주 출입구를 두고, 정면성을 가진 남쪽은 아이들의 놀이 마당으로 열어 두어 주변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 게 하였습니다.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여느 학교와 유사한 진입 동선들이 있어요. 특히 직장 어린이 집은 대부분 오전 출근시간에 차량으로 부모와 함께 등원하게 되니까 전면의 드롭오프(drop-off)구 역이 매우 강조되었죠. 비슷한 시간에 많은 인원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우천 등 악천후에도 편리 하게 이용하도록 해야 했어요. 기존 지질자원연구소의 박물관 외부 공간은 처음 보았을 때 환상적이었어요. 넓은 잔디밭과 어디에 서 가져온지 모르는 희한한 돌덩어리들, 화석들이 널려 있었죠. 그래서 이곳과 연계되면 좋겠다고 생 각했어요. 그래서 기존에 있었던, 좀 어설프게 생긴 조그만 퍼골라(pergola)를 건물 인근에 그대로 두 고, 외부 활동을 하다가 쉴 수도 있게 하였습니다. 전면 마당은 향도 좋고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에요. 하지만 교육 시설로서 바닥 마감을 모 두 안전한 인공재로 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조그만 외부공간을 마당에 붙여 흙을 밟고 다닐 수 있는 간단한 놀이터를 연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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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2층의 외부 공간들은 2층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외부 활동을 보조하는 한편, 중앙 복도 부분의 채광 과 환기를 도와줍니다. 밝고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거죠. 그리고 2층 창에는 편광 필름을 부착해서 보 는 사람의 방향에 따라 다른 칼라로 태양광을 편집하도록 하였어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길 기대합 니다. 갈대밭 너머 바라보이는 어린이집은 징크, 샌드, 목재, 세라믹 패널, 타일, 노출 콘크리트 등의 다채로 운 재료에 의한 면 분할과, 내부 형태가 그대로 외부에 드러나는 듯한 매스의 분절로, 한때 유행했던 알록달록한 동화 속 어린이집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모습이다. 건축가 : 아이들도 불량품보다는 잘 만들어진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분명히 애들도 보는 눈이 있을 거예요.(웃음) 저는 이상하게 빨갛고 노란 놀이기구나, 알록달록한 건물 형태를 보면 불량 식품 이 떠오릅니다. 물론 모든 것을 어른의 시각에서 볼 순 없고, 또 강렬한 색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성의 형태에 알록달록 유치한 색깔을 고집하는 것도 어른들의 착각인 것 같아요. 최근에 등산을 하다가 어린이 놀이터를 보았는데요, 두 가지 색상만 사용하였더라구요. 그것도 올리 브색을 주조로 해서 지붕만 베이지 색을 사용하였는데, 기존 숲의 나무도 그대로 두고 어린이 놀이 시설을 배치하였어요. 어느 분인지 몰라도 숲의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건물의 색이 어떠해야 한다기에 앞서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에 더 초점 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오 키즈 어린이집 주변은 창고, 연구 시설 등으로 매우 거대하거나 조로운 재료였습니다. 그래서 스케일을 줄여서 분절하고 각각의 매스에 재료를 달리하며 구성하게 되었지요. 외부는 간단하지만 그 사이에는 타일 등에 칼라가 사용되어 있죠. 그냥 보시면 쉽게 넘어 갈 수 있는데, 뜯어보면 매우 복잡한 색상과 재료가 사용되었습니다. 많은 건축가가 그러하겠지만, 지오 키즈 어린이집의 건축가에게도 집을 짓고 난 뒤의 아쉬움은 크다.
WORK 1 dialogue
아니면 매우 작은 건물이 인접해 있고, 외장 재료도 화강석, 페인트, 베이스 패널 등 성능 위주의 단
특히 공사 과정의 실수들은 방문 감리 형태로 늘 현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었던 탓에 더더욱 안타 까운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분리 발주하였던 전기 파트의 배관 오류는 기대했던 공간감을 크게 훼손 하고 말았다. 건축가 : 천장고가 낮아지는 바람에 무엇보다도 2층 ‘만5세반 실’의 공간이 답답해졌어요. 바닥에서 경사 천장까지의 최소 높이가 약 3.3m인 부분에 메자닌층을 매달았는데, 높이가 낮아져서 기대했던 것만큼 적극적으로 사용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분리 발주를 통해 전기는 스스로 공사 를 했는데, 도면의 상관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건축도 분리 발주를 하니 자신의 일 이 아니라고 신경 쓰질 않고, 일주일만에 현장에 가 보면 시공이 잘못되어 문제가 발생해 있고, 그럼 우린 또 그 상황을 풀어내느라 계속 업무를 하고…. 악순환의 고리였어요. 무엇보다 천장고와 천장 형태가 변경된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또한 각종 자재의 결정이 현장과 긴밀히 관계되지 못해 원치 않은 재료가 반입되어 시공된 몇몇 부분도 매우 아쉽고요. 공사상의 아쉬움과는 별도로 준공 후 운영자에 의한 자체 변경 때문에 건축가의 마음이 편치 않기도 했다. 예를 들어 2층으로 오르는 사다리식 주 계단은 아이들에게 위험할 뿐더러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운영자 측이 계단 라이즈(rise) 부분에 판을 덧대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은 사다리식 계단 이 아이에게 탐험심을 길러주고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축가의 의도와, 위협적이고 위험천 만하다는 운영자의 판단 사이에 시각차가 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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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건축가 : 사전에 운영자/사용자와 충분히 협의를 하고 철학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공공 프로 젝트인 경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이 어린이집 또한 공공 프로젝트인데, 대부분의 공공건축 이 그렇듯 여기서도 민주적 합의 과정에 의해 선발된 사람은 건축가밖에 없어요. 다시 말해 발주자는 공무원이고, 운영자나 심사자는 모두 위탁받은 사람들이죠. 안이 뽑히는 순간 당선작의 설계자는 곧 장 집의 클라이언트가 되는 거예요. 건축가가 클라이언트 겸 설계자로서 집을 제대로 지어서 다시 공 공에게 돌려주는 거죠. 그래서 현상 설계를 할 땐 어느 정도 사후의 일을 예측, 감안하여 설계에 반영 해야 합니다. 이 어린이집의 경우에는 실 면적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관련 법규에 맞춰 각 실이 면적 에 대해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계획했지요. 앞서 말씀하신 계단의 경우에는 명확합니다. 관리자가 가진 계단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것이라고 저 는 생각합니다. 2층짜리 어린이집은 계단이 필수입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순 없고, 램프는 경사 구배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계단을 두어야 하는 것인데, 관리자들은 일반적인 계단은 한 번 꺾이 기 때문에 아이들이 곧장 2층에서 1층으로 굴러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듭니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제안한 일자형 계단은 중간에 참이 넓습니다. 2층에서 굴러떨어질 때 참에서 멈 추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 부분에서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계단은 이래 야 한다는 생각이 어린이집 교육계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의 설명 없이 건축의 기준 을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결정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과 그 가능성을 가로 막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 겠지만, 국내에서 시설 운영, 관리하시는 분들이 대다수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신축 공공건물인 경우, 특히 운영자의 결정권이 큰 경우에는 사후 변경이 적지 않게 이루어진다. 결 국은 처음부터 운영자와 철학을 공유하고 설계 방향 등을 논의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지오 키즈 어린이집 건축가는 그게 바로 기획이라고 말한다. 건축가 : 공공건축에는 기획 단계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획 단계에서 운영자의 체계화된 노하우와 기타 자료가 제시되고 그것들이 반영된 전제 조건들이 설계자에게 넘어오면, 설계 단계에서 는 건축가에게 전적으로 의지를 해야 합니다. 시공 단계처럼 효율적으로 설계가 운영되어야 합니다. 좀더 덧붙이자면, 건축가들이 기획에 참여하여 진행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무형의 것들이 구 체화될 준비를 하게 되거든요. 현재는 설계 과정이 매우 복잡하게 진행됩니다. 초기에 결정되어야 할 것들이 결정되지 않은 채 발주되어 설계를 수차례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획 업무가 활성화되면, 건축가들에겐 또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지오 키즈처럼 운영자 와 교감하는 문제부터 공공건축이 담아야 할 일반적 가치 등에 대해 기획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죠. 즉,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평가할 기준이 기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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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O R K 한국근대문학관 The Museum of Korean Modern Literature 황순우 Hwang Soonwoo
2 진행_정귀원 본지 편집장 사진_진효숙 본지 전속 사진가
위치 인천광역시 중구 해안동2가 6-2, 7번지 대지 면적 1,064.4 m2 건축 면적 771.9m2 연면적 1,601.94m2 건폐율 74.41% 용적률 138.64 % 규모 지하 1층, 지상 3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설계 기간 2009.12.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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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기간 2012.03. ~ 2013.08. 설계 담당 김찬영, 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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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키즈 어린이집
Geo Kids
박인수(파크이즈건축사사무소)
Park Insoo(PARKiz Architects)
41 CRITIQUE
건축주 없는 건축의 틈
김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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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기획이다
황순우 황순우는 1960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건 축학과를 1986년에 졸업했다. 1996년부터 (주)건축사사무소 바인을 개소하여 대표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설계 스튜디오 를 지도하고 있다. 2010년에는 인천아트플랫폼으로
Wo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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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관
The Museum of Korean Modern Literature
황순우(건축사사무소 바인)
Hwang Soonwoo(Design Group VINE)
한국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사진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이사사이(2010), 어떤 동네(2012), 골목과 한 칸(2013), BLACK(2013), 보물창고 (2013) 등의 전시를 기획,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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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 해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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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오래된 창고 건물 4채를 리모델링한 한국근대문학관. 120년 동안의 삶의 흔적과 도시의 변화를 읽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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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공사 과정.
2009.12.8
2012.05.10
2012.11.10
2012.12.20
2013.01.17
2013.03.02
2013.09.20
전경. 왼쪽으로 인천 아트플랫폼이 나란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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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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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기존 창고들은 시간의 켜를 지닌다. 오래된 도시의 풍경과 어울려 덧대이고 뚫리고 막히면서 지내온 그 자체가 삶의 모습이다. 어느날 침묵을 깨니 견고한 트러스와, 모르터 속에 숨어 있던 따스한 벽돌과, 걷어낸 지붕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백여 년만에 드러난 빨간 흙이 인사를 건넨다. (사진 황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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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Dialogue 보존과 해석 사이
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 1894년 갑오개혁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의 한국 문학을 기리는 집 ‘한국근대문학관’이 개항 도시 인천(중구 해안동)에 들어섰다. 개항(1883년) 초기인 1892년생 창고 건물을 보존과 해석으로 리모 델링한 이 집은 120년 동안의 삶의 흔적과 도시의 변화를 읽게 해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편, 이곳 을 찾는 관람객들은 공간의 재미나 내부 동선, 전시 내용 등에 대체로 긍적적인 반응이다. 특히 맞은 편의 인천아트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현대적인 제스처나 공간의 친숙도 면에서 문학관 쪽이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아트플랫폼 역시 개항장 창고를 리모델링한 집으로 같은 건축
WORK 2 Dialogue
가가 작업을 했다. 건축가 : 아트플랫폼을 진행하면서 설정했던 과제들이 있는데, 그 배경은 개항 도시가 갖는 몇 가지 쟁점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통한 근대화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생성된 산물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들이에요.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러한 쟁점으로 시민 단체와 학계가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인천시가 1983년 11억원을 들여서 만든 인천항 개항 100주년 기념탑의 경우, 시민과 시민 단체들에 의해 결국 철거되고 마는데요, 철거 비용 까지 해서 총 22억 원 가량 들었다고 해요. 또 존슨 별장의 경우도 복원을 하네 마네 논란이 많았고 요. 그러한 상황에서 아트플랫폼을 시작할 때 합의를 했던 것이 ‘재해석으로 긍적적인 것은 물론 부 정적인 것까지 재창조 작업을 하여 화합을 이루자’는 것이었죠. 가장 먼저 시각 미술 위주의 아트플 랫폼이 구상됐지만, 사실 이런 맥락에서 4개의 플랫폼이 이미 설정되어 있었어요. 비교적 빠른 속도 로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각 미술 플랫폼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기대하는 음악 플랫폼, 근대문학관으로 실현된 인문학 플랫폼, 그리고 지원 기능의 문화재단 등이 그것입니다. 인천문화재 단도 이미 2010년에 이쪽으로 옮겨 왔고, 인천광역시와 함께 이 근대문학관을 설립했지요. 처음에는 핵심적인 코아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분산시켜 놓으면 문화의 파급력은 훨씬 커질 것이란 기대가 있 습니다. 아무튼 일련의 구상에서 이번에 완성된 한국근대문학관은 학교 교육에서의 활용도 기대되 고, 많은 일반 관객들이 찾아오는 장소가 될 것이라는 바람도 있습니다. 강약의 차이는 있으나 오래된 창고를 현대적 건축의 개념으로 재해석했다는 측면에서, 특히 중심이 되는 공간에 유리라는 현대 재료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두 문화 플랫폼의 건축 컨셉트는 일견 비슷해 보인다. 건축가 : 기본적인 컨셉트는 아트플랫폼의 그것과 같습니다. 플랫폼, 즉 소통과 공유의 개념을 갖게 하는 것이었죠. 공간적으로는 길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장소가 되도록 하는 것이고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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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느낌으로 리모델링됐다.
건물이 위치한 장소는 개항장의 독특한
서측 벽면.
상태가 좋은 가운데 두 동은
다국적 도시 경관과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시간을 모자이크 처리한 패턴
기와 지붕 벽돌 집의 느낌을 살렸다.
WORK 2 Dialogue
전면. 중앙의 두 동에 비해 양측 끝의 창고는 코르텐강과 유리 등의 재료로 보다 현대적인
곳이며, 조계지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는 독특한 도시 공간 구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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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WORK 2 Dialogue
지상 1층 평면도
지상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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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지상 3층 평면도
WORK 2 Dialogue
횡단면도
간적 개념으로는 연속성과 일상성이란 측면이 있습니다. 120년 된 건물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 니라 또 다음의 120년을 목표로 재생시키는 것, 그리고 도시의 일상적 삶의 내용들을 그대로 담는 것.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반짝거리는 집이 아니라 지금껏 그 자리에 있어 왔던 집 그대로 시간 을 보태자는 생각이었어요. 창고 건물의 과거 대략 2년의 공사를 거쳐 한국 근대 문학을 체험하는 전시/교육 공간으로 거듭난 이 건물은 각각 건립 연대가 다른 4개의 창고를 전신으로 한다. 그중 전면에서 볼 때 가장 왼쪽에 있는 건물(이하 1번 동) 이 1892년 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다. 건축가 : 1번 동은 처음에는 1930년대 건물로 추정했었는데 리모델링하면서 찾은 상량판을 보니 임 진년 7월 19일(1892년)에 건립된 것이더라고요. 바로 옆의 건물(2번 동)은 첫 번째 것과 공법이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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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아서 연대가 비슷하거나 적어도 1934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죠. 또 2번 동 오른편 건물(3번 동)은 상량판에 1941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른편의 것(4번 동)은 연대 미상 으로 무허가 건물이구요. 이후 많은 변형과 용도 변경을 거쳤는데, 1번 동은 최근까지 김치 공간으로 사용됐고, 2번 동과 3번 동은 뒤쪽 석축이 있는 데까지 집을 덧대어 늘려 놓은 상태였어요. 특히 3번 동에서 1941년 건립된 건물과 증축된 부분 사이의 벽이 눈에 띄었는데, 기존 벽 위에 시멘트 모르터 를 바른 상태였지요. 아마도 면적을 늘리기 전인 외벽 상태일 때 모르터 벽이 되었을 겁니다. 기존의 창고 건물들은 우선 해체 과정을 거쳤다. 건축의 공정을 거꾸로 진행하는 셈이었다. 지붕의 기와를 털고, 흙을 내리고, 창문을 해체하고, 땅을 파서 흙을 걷어 내는 일련의 작업들이 진행됐다. 기 와는 한쪽에 쌓아 뒀다가 쓸만한 것들은 폐기하지 않고 뒤쪽 석축 옆에 층층이 전시해 놓았다. 언뜻 전면에서 보기에는 상설 전시실로 쓰이는 2번 동과 3번 동은 최대한 남기고, 각각 양측 끝에 있는 창 고는 코르텐강과 유리 등의 재료로 보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리모델링한 듯하다. 건축가 : 뜯어 보니까 가운데 두 동의 상태가 그나마 좋더라고요. 김치 공장으로 사용되던 1번 동은 영업 중이어서 뜯어 보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가운데 두 개는 옛날 기와 지붕의 느낌을 살리고 양 사 이드 건물의 지붕은 징크로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지요. 오래된 가치만을 따졌다면 1번 동과 2번 동을 묶었겠지만 현대적 관점에서의 디자인 개념을 적용하여 가운데 두 개 건물에 기와 지붕을 한 겁니다. 지키거나 덜어내거나 그렇게 해서 가운데 두 동은 2개 층의 성설 전시실이, 첫 번째 동은 기획전시실이, 그리고 가장 오른
WORK 2 Dialogue
쪽은 다목적실을 가진 사무동이 됐다. 건축가 :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뜯어내면서 기와, 목재, 벽돌 등 괜찮은 재료는 쌓아 놓았다가 재사용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주위에 빈터가 없는 게 문제였어요. 무허가에다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어서 4번 동을 철거하게 됐어요. 철거한 후 그 터에 문화재 심의에서 힘들게 얻어낸 3개 층 규모의 건물을 계획하였고, 그 안에 기계실과 정화조 등 필요한 공간을 넣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는 철거하고 다시 올렸지만 나머지 세 동은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었어요. 창고가 가지고 있는 벽, 지붕, 트러스, 개구부 등 웬만한 것은 그대로 놔 두었죠. 덜어내고 비우는 과정에서 건축가는 우선 어떤 것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였는데, 공간의 환경 적인 측면도 고려 대상이었다. 빛이 안 들어오고 습기가 너무 많으면 곤란할 터. 이와 함께 불법으로 덧댄 부분도 과감하게 철거하였다. 마침 건물들이 대지 경계선을 넘는 바람에 도로 점용료를 내야 하 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뜯어내 보니 의외로 건질 것이 꽤 많았다. 3번 동의 모르터 벽은 그중 하 나다. 건축가 : 외벽에 비가 새고 하니까 모르터를 바른 거지요. 이후에 공간이 더 필요하니까 이 벽에 철골 을 달아 매서 석축 쪽으로 건물을 늘렸던 거고요. 모르터 벽은 나름대로 무덤덤한 맛이 마음에 들었 습니다. 보존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모르터 벽의 안쪽 면, 내부 쪽 면의 벽도 보존하고 싶은 거예요. 단열을 하려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또 단열을 한다고 해도 비에 대한 우 려는 여전한 것이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예 가운데 건물 두 동을 싸 버리는 것이었죠. 직육면체 유리 매스가 끼어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모르터 벽의 생존은 감성적인 느낌을 검토하고 안전성과 활용도를 고민하면서 보존의 가치를 나름 평가한 결과다. 또 현재 문학관의 출입구로 쓰이는 부분은 원래 있던 통로 두 개를 그대로 활용한 것 인데, 이것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형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공간의 스케일을 살려서 이용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건축가 : 트럭이 와서 긁어 놓은 자국, 그것을 땜빵한 모습도 당시의 대처를 보여주는 기억이라고 생각 했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남긴 부분들이 있지요. 건물 전체에 거친 느낌을 만드는 요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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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4채의 창고를 유리 박스가 가로지른 이유 건물 전체를 가로지르며 로비 공간의 역할을 하는 유리 박스는 가운데 두 개 동의 방수와 단열을 해 결하는 것 외에 바람과 햇빛과 도시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건축가 : 네 채의 창고는 서로 연결이 안 되는 구조였어요. 공간 재생을 통해 용도를 재편하여 기능에 맞게 가려면 연결이 필요했습니다. 유리 직육면체의 구조물이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 각했고요. 그리고 전시실은 어둡더라도 내부 공간은 빛이 필요한데, 유리로 둘러싸인 통로가 밝은 빛 을 유입하는 역할을 합니다. 관객들은 유리 통로에서 건물 뒤편의 석축과 조경 공간을 바라보며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또 한 가지는 근대 문학의 배경이 되는 근대 도시, 그러니까 어 떤 환경적인 것과 인문학의 어우러짐을 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대문학관이 자리잡은 곳은 근 대 도시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근대 개항기 인천 개항장 일대(중구 지역)에는 각국의 조계지가 있었다. 서양인, 미국인, 중국인, 일 본인이 당시 자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건축물을 세웠고, 조선인 마을, 중국인 마을, 일본인 마을, 서 양인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마을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나 새로 건축되는 건물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건축 양식도 일본식이나 일본 의양풍 건축물이 주를 이뤘다. 또한 일본인이 떠 난 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으며 중국인 마을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문학관이 위치한 장소는 개항장의 독특한 다국적 도시 경관과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이란 점 외 에도 조계지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도시 공간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을 해야 한 다. 그것은 전면 폭에 비해 대지의 길이가 매우 긴 세장형 필지와, 공유 수면 매립지로 확연히 드러나 있다. 로와 필지는 도시의 스케일을 만들지요. 자신들의 영역 확장을 위해 일본인들이 공유 수면 매립을 추 진하기도 했고, 도로를 경계로 지역을 나누기도 했어요. 또 자신들의 조계지는 세장한 필지로 구성하 였고요. 문학관의 경우는 4필지로 되어 있는데, 필지가 큰 덩어리인 경우에도 지구단위계획으로 보존 획지선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세장한 형태로 나뉘어지죠. 그런데, 처음에 유리 박스만을 설치한 계획의 모형을 보니까 뒤쪽 면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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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 이 도시는 개항기의 건축물과 더불어 당대의 도로와 필지에 대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도
큰 유리면이 육중해 보이기도 하고…. 분절시켜 근대 도시가 가진 스케일에 맞추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유리 박스 면 밖으로 창고의 모양이 그대로 투영되어 마치 부조처럼 붙은 까닭이다. 이 4개의 건물 입 면을 통해 세장한 필지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중 두 번째 동의 것은 북카페로 사용되는 실제 내부 공간을 가지고 있고, 세 번째 동의 것은 뼈대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짜 집이다. 부족한 조경 면적을 확보함과 동시에 벽으로 막지 않음으로써 바깥 도시 풍경을 더 적극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려는 건축가의 전략이 숨어 있다. 풍경과 만나는 4개의 프레임 건축가 : 문학관에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네 개의 프레임이 있습니다. 우선 출입구를 통해 전시실 로 비 쪽으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작은 프레임입니다. 지금은 커다란 게시판을 세워 놓아서 아쉽습니다 만, 불투명 유리 사이의 투명 유리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했어요. 원래 계획은 이 프레임의 바깥에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나무, 예를 들어 현덕의 소설 <남생이>에 나오는 뽕나무 같은 나무를 한 그루 골라 서 심기로 했지요. 두 번째 프레임은 입구 카운터 우측에 있는, 로비와 홀 사이의 복도 쪽 프레임이예 요. 이 프레임은 자작나무와 적층된 기와(기존 창고 건물에서 걷어 내 쌓아 놓은 기와), 석축이 어우 러진 장면을 감상할 수 있게 합니다. 세 번째는 2층 로비에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프레임이고 마 지막이 기획 전시실의 북측 창입니다. 이 기획 전시실의 프레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는데, 보시 면 아시겠지만 저는 이 창을 통해 지금까지 이 집과 함께 했던 벽을 바라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서 이 도시를 느끼게 하고, 기획전을 관람하면서도 이곳이 오래된 도시임을 깨닫게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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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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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건물과 뒤편 석축 사이의 조경 공간. 왼쪽의 풍우에 스러진 듯한 형태로 연출된 벽은 기획 전시실에서 바라볼 때 길 건너 연백마트의 간판은 가려주고 지붕만 볼 수 있게 하며, 벽과 석축 사이에 저절로 자라난 오동나무와 하늘은 적당히 받아들인다.
자작나무, 기존 건물에서 걷어 내 쌓아 놓은 기와, 석축이 어우러진 장면을 프레임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남겨진 벽과 기와 지붕
기획 전시실. 오래된 벽을 볼 수 있는 기획 전시실의 북측 창은 운영자에 의해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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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2층의 북 카페
성설 전시장은 회랑을 가진 2개 층으로 계획되어 건물과 전시의 효율성을 높인다.
필요에 의해 존재했던 모르터 벽. 무덤덤한 맛이 마음에 들어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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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상설 전시실 2층을 나오면 덧대어진 유리 박스 공간의 밝음과 만난다.
상설 전시실 계단부.
모르터 벽 내부 쪽도 동시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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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정면도
좌측면도
우측면도
배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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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건축가가 말하는 벽은 기존 창고의 뒷벽으로 건물 일부를 덜면서 남겨 놓은 벽이다. 건축가는 이 벽 이 기획 전시실에서 볼 때 시각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풍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시간성을 나타내기 위해 풍우에 스러진 듯한 형태로 연출된 이 벽은 실제로 기획 전시실에서 바라볼 때 길 건너 연백마트의 간판은 가려주고 지붕만 볼 수 있게 하며, 벽과 석축 사이 에 저절로 자라난 오동나무와 하늘은 적당히 받아들인다. 건축가 : 안타깝게도 이번에 첫 기획전을 치르면서 햇빛을 차단한다고 창을 다 가렸더라고요.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기획 전시실의 압권이랄 수 있는 데도 말이지요. 요즘은 전시장에서 밝은 요소 를 이용하여 기획자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다양한 작업들을 하던데, 여기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 같아요. 그냥 막아 버린 거죠. 근대 건축의 보존과 해석에 대한 건축가의 생각 건물 용도를 재편할 때는 평면과 배치가 중요하지만 높이도 만만치 않게 작용한다. 여기서는 각 동이 별도로 사용되던 터라 창고마다 높이에 차이가 있었고, 그것을 맞추다 보니 전체적으로 건물의 키가 1.5m 높아지게 됐다. 덕분에 성설 전시장은 회랑을 가진 2개 층으로 계획되어 건물과 전시의 효율성 을 높이고 있다. 건축가 : 기획 전시실 건물의 서쪽 벽면을 보면 들어올린 부분이 재료로 그대로 표현되었죠. 윗 부분 의 50cm가량은 내후성 강판을 붙였어요. 전체적으로 패턴이 좀 특이한데, 한마디로 시간을 모자이 크 처리한 겁니다. 옛날에 낸 창과 최근에 낸 창, 모르터로 덮어 씌운 부분 둥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지 요. 사실 김치 창고였던 탓에 원래 벽에는 배추 그림도 그려져 있어서 그것까지 남겨야 하나 고민했 이 지점에서 근대 건축의 보존과 해석, 재생에 대한 건축가의 생각이 묻어난다. 물론 이것은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생각이다. 일례로 건축가가 아트플랫폼을 설계하면서 1942년 건립된 삼우인쇄소 건 물로 고민했던 때를 돌이켜 보자. 그는 인쇄소 내부의 멋진 석조 아치에 대해 아치만 남기고 증축된 부분은 철거할 것을 주장하는 편에 서지 않고, 증축된 부분도 필요에 의한 것이니 그대로 남기자는 쪽을 선택했다.
WORK 2 Dialogue
었죠.(웃음)
건축가 : 어떤 관점으로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30년 전, 10년 전, 심지어 2년 전의 것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켜 모두를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건축은 시간 속에 서 계속 변화합니다. 문학관 자리의 기존 창고도 살아온 동안의 모습을 보여 주지요. 사용하면서 덧 대기도 하고 뚫어내고 막기도 한 것 자체가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것을 다 제거하고 다시 세련된 벽돌 건물로 만들어 놓는 게 과연 보존의 방법으로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재해석이 필 요하지요. 중요한 문화재일 경우는 또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건물은 당시의 지형, 즉 환경적인 요 소라든가, 인문학적 배경이라든가, 집을 그렇게 생기게 한 요인들을 읽어내서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 향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현대 건축으로 구사해야 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문화재에 대한 강박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보여 주는 웃지 못할 사례 하나를 건축가로부 터 들어 보자. 건축가 : 문화재 심의에서 한국근대문학관의 서측 외벽 밑단 부분을 ‘구 일본18은행 인천지점’의 돌 로 마감된 기단부처럼 하라는 거예요. 은행 건물의 기단은 출입과 관련된 거고, 여기서는 그렇게 하 지도 못하고 지형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 틀리니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설득을 했지만 잘 안 됐어요. 시간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부분입니다. 문화재인 18은행의 중요성은 잘 알겠지만, 그것과의 관계보다도 도시 전체 속에서 건물의 위치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도로와 지형 사이에서 어떤 관계로 이 집들이 세팅되었는가를 읽는 게 우선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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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와이드 REPORT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홀
지난 10월 말,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이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전작이 고 정기용 선 생의 삶과 건축를 담담하게 조명했다면, 이번 다큐 <말하
감독_정재은 <고양이를 부탁해><말하는 건축가> 출연_건축가 유걸 외 다수 러닝타임_106분 개봉_2013년 10월 24일 제작_영화사 못 배급_미디어데이
는 건축 시티:홀>은 말 많고 탈 많은 서울시 신청사를 소 재로,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있을 수 있는 공감 스 토리 혹은 있어서는 안 될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106분짜 리 필름 안에 촘촘히 엮었다. 이에 본지는 기고문 ‘서울시청사 : 유리벽에 마주서다’로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수상한 박정현 마티 편집장으로 부터 이 다큐가 가지는 정서와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한다. 또 이와 더불어 ‘69회차 400시간 촬영, 8개월 편집’이라는 인고의 과정 속에서 정재은 감독이 찾아낸 것 은 무엇이었는지를 그의 제작 노트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 다. 이는 곧 우리가 다큐 관람 후 가지게 됨직한 질문에 대
와이드 REPORT
한 감독의 답변이기도 할 것이다. (편집자 주)
사진 김용관
CITY: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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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REVIEW
건축가의 승리 박정현 건축비평가,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박정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AURI 인문학포럼 논문 공모 대상, 제3회 <와이드AR > 건축비평상을 수상했다. “정체성과 시대의 우울” 등의 글을 발표했으며, 서울시립대, 홍익대, 단국대 등에 출강했다.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1980-9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담론 구성”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와이드 REPORT
Report
76 와이드 REPORT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 city:hall
84 와이드 EYE 1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92 와이드 EYE 2
<최소의 집>전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예견된 실패 현대 건축은 시간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역 사라는 시간의 침전물은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한때는 개혁과 혁명의 대의로, 또는 달콤한 개발의 이익으로 역사의 무게 를 헤쳐 나갔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역 사는 발전한다는 생각이 고리타분한 이념으 로 추락하고 시간이 정체된 지금, 역사를 가 장 육중한 형태로 구현한 과거의 건축물들 은 새로운 건축물에 오히려 더 큰 위력을 발 휘한다. 역사 도시를 꿈꾸는 서울 사대문 안 에서 일어나는 건축 행위의 최종 심급은 역 사다(물론 자본과 정치의 결합은 이를 종종 위반하지만). 이것이 서울시청이 처한 첫 번 째 조건이다. 오해는 말자. 덕수궁을 위한 건 축 법규와 심의 제도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 니다. 개발 시대에 지어진 주변의 다른 건물 에 비해 엄격해진 규제를 따라야 하는 서울 시청의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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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다른 한편 서울시청 앞 광장은 냉전으로 치
투표로 확정되었다. 일반인이 아니라 건축
르는 내전 중이라고 해도 무방한 대한민국
가를 상대로 한 설문에서 시청사는 해방 이
수도 서울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거의
후 최악의 건축물 1위로 꼽혔다. “일제도 공
유일한 광장이다. 가스통을 어깨에 맨 우익
들인 서울의 심장부인데 우리가 큰 실수를
단체에서 촛불과 구호 적힌 카드를 손에 쥔
했음”이라는 감정적인 평가와 함께. 그러니
진보/좌파 시민들까지, 북한의 인권 유린을
실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작가의
개탄하는 구국 기도회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의도와 무관하게(또는 의도대로) 시청을 변
를 염려하는 시국 미사까지 서울시청 광장
호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그토록 오랜 시간
은 이데올로기 적대의 최전선이다. 청계천
동안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나서도 순전
과 세종로 언저리에 광장이라 이름 붙은 기
히 비난의 대상으로 그리는 것은 무척 힘든
이한 공간이 있지만, 공간의 형상이나 장소
일이기도 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의 상징성 모두 시청 앞에 비하기는 힘들다.
재현은 흉칙한 사물도 아름답게 만들어 준
한 사회의 모든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곳
다고 말했듯이, 재현은 미학적 거리를 만들
에 세워져야 하는 공공건축물. 서울 시청이
어 주고 서사는 감정 이입의 공간을 열어 준
처한 두번째 조건이다.
다. 논쟁적인 인물을 다룬 영화는 거의 예외
그러므로 서울시청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
없이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삼 발견
다. 사회의 적대와 역사 도시의 문화재를 모
하게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정재은 감독은
두 껴안고 다양한 목소리가 내는 파열음을
개봉 후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
봉합할 수 있는 건축물이 가능하기는 할까?
큐를 찍는 것은 결국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
서울시청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
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일례로 이완용에 대
회적 동의와 의식이 전무한 상황에서 말이
한 다큐를 찍는다고 해도 과정은 마찬가지
다. 어느 중요한 건축물이 지녀야 할 가치와
일 것이다”라고 말했다.(주1) 서울시청사가 일
이 가치를 나타내는 형태에 대한 공통된 생
제가 지은 시청사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각을 흔히 ‘양식’이라 부른다. 21세기 서울
이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정치적 선입견에
시청을 위한 양식이 있을 리 없다. 과거에는
얽매인 이들이 아니라면 감독이 건네는 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고, 서구는 있었는데 한
해의 노력에 어렵지 않게 동참할 수 있을 만
국에는 없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
큼 영화는 친절하다. 정재은 감독은 기본적
다. 19세기 중엽 오스트리아의 부르주아지
으로 건축가의 입장에 서 있지만 노골적이
가 황제로부터 권력을 건네받고 빈에 공공
지는 않다. 특정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시
건축물을 세우던 때를 생각해 보라. 시청사
청이 지어지는 우여곡절을 담담한 시선으
는 중세 고딕 양식으로, 대학은 르네상스 양
로 추적한다. 말하자면 완성된 결과에 대한
식으로, 의회는 그리스 양식으로 짓는 촌극
평가는 잠시 유보해 두고, 이런 결과를 빚은
을 벌였다. 공유하는 가치가 없을 때 기댈
난산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속시원
수 있는 것은 화석화된 형태일 뿐이다.
한 고발과 비판을 바랐던 이들의 기대는 저 버리는 대신, 행정과 정치, 건축과 문화가 뒤
고발과 비판 대신 마주하는 뒤엉킨 실타래
엉킨 실타래를 헤아려볼 기회를 제공한다.
시청사 공사 현장의 아침 체조 장면으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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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하는 < 말하는 건축 시티:홀> 은 이 거대
시간 따라, 에피소드 따라
한 실패의 과정을 파헤친다. 실패라는 평가
영화의 내러티브는 크게 두 줄기를 따라 진
는 냉철한 비판과 분석이 아닌 인상 평가와
행된다. 건설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이니 큰
주1. “[정재은]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서”, <씨네 21>, 926호.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와이드 REPORT 79
와이드 REPORT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줄기는 건축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위원’이라면 어떤 안을 뽑았을까 생각해 보
이다. 또 다른 작은 줄기는 이 과정에서 일
는 와중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장면이 이어
어난 건설사, 서울시, 설계사무소 사이의 충
진다. 사협회, 가협회, 건축학회, 새건협 등
돌을 그린 에피소드이다. 여기에 내러티브
한국 건축계 주요 단체의 장으로 이루어진
의 배경을 제공하는 여러 인터뷰와 취재가
심사위원회는 박승홍의 안이 건축적으로 가
더해진다. 파행을 겪은 시청사 설계안 선정
장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안으로는 지금
과정이 주 내용이다. 이런 구도는 정기용 선
까지의 논란을 잠재울 수 없다고 판단해 유
생을 다룬 전작 <말하는 건축가>와 유사하
걸의 안으로 최종 설계안을 확정한다고 발
다. 여기서 큰 줄기는 임종을 향해 가는 물
표한다. 건축 외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리적 시간이고, 작은 줄기는 전시회를 두고
수 없었다는 토로인 것이다. 무난해서 눈에
미술관 측과 설계사무소 측이 빚는 갈등이
띄지 않아도 안 되고, 너무 노골적인 랜드마
다. 두 경우 모두 후자는 전자의 흐름을 거
크여서도 곤란했다. 다만 이 모든 안을 통틀
스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두 영화에서 나
어 변치 않는 것이 있었으니 유리의 ‘투명
름의 긴장을 빚는 갈등은 지극히 자연스러
함’이다.(주 2) 시정의 투명성만이 한국 사회
운 것이다.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지만 이
가 건물로 표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이다.
해관계가 원천적으로 다른 감리사와 시공
객과적이라고 치부되는 테크놀로지의 과시
사, 발주처는 싸울 수밖에 없다. 반목을 해소
이외에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들러붙지 못하
하고 타협하는 일이 이들의 몫이다. 2천 억
도록 하는 투명성.
이 넘게 든 공사에서 다목적홀의 완성도를 위해 음향판의 각도 조정을 두고 벌이는 대
말들의 잔치 제2막의 개시
립은 지극히 사소한 일일 뿐이다. 탁월한 조
심사위원들의 기대와 달리 유걸의 서울시청
연이라고 해도 좋을 삼성물산 설계 팀장, 서
사는 논란을 한 번에 종식시키지 못했다. 또
울시 주무관, 아이아크 팀장, 인테리어 담당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 소모적인 논란을
자는 모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전
진지한 논의로 방향을 바꿀지 역시 두고 봐
문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런 사람들과 일
야 할 문제다. 영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
을 어떻게 하냐며 답답해 하는 사람들은, 제
명한 사실은, 건축은 거의 온전히 결과만으
대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로 평가되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완공된 건
이기적이고 성마른 사람들이 아니다.
축물을 평가할 때, 건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도면과 시방서 이면에서 벌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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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방식과 과정, 결과를 담다
는 갈등은 해체된 비계와 가림막과 함께 사
영화가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전달하려는 내
라진다. 매끈한 유리와 돌의 표면을 뽐내는
용은 ‘턴키’라는 공공건축물 발주 방식이다.
완성된 모습만이 남을 뿐이다. 과정의 지리
최초의 삼우설계안이 공전을 거듭하다 급기
멸렬함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과, 결과를
야 재설계 공모전을 통해 설계안을 선정하
냉정히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다시
는 과정, 그리고 이후 건축가가 배제되는 과
성공과 실패로 돌아가 보자. 턴키라는 괴물
정 등을 꼼꼼히 그리며, 감독은 한국 사회에
은 모두를 실패자로 만들었을까? 그렇지는
서 건축가의 역할과 위상은 무엇인지를 묻
않은 것 같다. 건축가 유걸은 이 전장에서
는다. 흥미로운 장면은 재설계 공모전에 초
승리했다. 영화는 이 승리의 증인이다. 유걸
청된 네 건축가의 설계를 보여 주는 부분이
은 현상 설계에서 당선된 뒤 현장에서 배제
다. 유걸, 류춘수, 박승홍, 조민석의 시청사
되는 일을 겪었지만,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안을 살펴보고, 현 시청사와 비교해 볼 수
복귀했다. 조민석의 표현대로 “트로이의 목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심사
마”가 되어 제도의 견고한 관성을 이겨낸 것
주2. 서울시청사의 유리와 투명성에 대해서는 졸고, “서울시청사: 유리벽에 마주서다”, <와이드 AR> 2013년 1-2월, 88-93쪽.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이다. 물론 자리를 비운 사이 건축가의 의도
다. 그러나 위의 구절은 서구의 개인주의 사
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서쪽 입
회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면 집단의 일원으
면이 애초의 계획과 많이 달라졌는데, 이 엉
로 개인을 이해하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공
터리 시공마저도 설계 원안을 그림 그대로
간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방’이라고 진단한
공사하라는 시장의 특별 지시 때문이라지
다. 25년이 지났으니 이제 한국도 개인주의
않은가. 서쪽 입면의 사선들이 구조를 그대
사회라고 평가한 유걸의 생각과 현실은 어
로 드러내었으면 시청의 완성도는 더 높아
긋난 것일까? 아니면 유걸이 빚은 공용 공간
졌으리라. 이런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과장된 유리 곡면에 가려 빛을 잃은 것일
의 시청사는 유걸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
까? 섣불리 답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말
지 않은 채 완성되었다. 그러니 현재 시청사
하는 건축 시티:홀>이 시청사를 둘러싼 말
에 대한 불만은 상당 부분 유걸의 건축 개념
들의 잔치에 2막을 열었다는 점이다. 이 말
과 대중의 이해 사이의 불화가 낳은 것이다.
들이 충돌하고 엮어져서 어디로 흘러가서 고
유걸은 25년 전인 1988년 “개인주의를 근거
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로 하여 공통 인수를 추출하기 시작할 때에 바람직한 인간관계는-공용 공간을 통하여표현될 것이며, 이 인간관계의 지향을 표방 하는 공용 공간, 즉 개방 공간의 발전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주 3) 개인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을
<플러스>, 1988년 6월, 99쪽.
추구한 시청을 만든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
와이드 REPORT
주3. 유걸, “포스트 모더니즘 소고”,
사진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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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PRODUCTION NOTE
영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촬영
나는 준공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감
횟수가 많아지고 유걸 건축가만이 아닌 여러 주
독으로서 그들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로 접근하고
<말하는 건축 시티:홀> 제작 이야기
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따라다니자 그들도 점
싶지가 않았다. 다큐멘터리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점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신뢰의 장기적인 구축
당연히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아닐까 한다. 나는 나를 신뢰해 털어놓은 그들
삼성물산 측은 어차피 서울시에서 촬영을 허가
의 속이야기를 몰래 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
하면 자신들로서는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렀다. 인터뷰이나 출연자들이 자신이 보여 주고
초상권에 대한 의무 사항만 지켜 달라고 했다.
싶은 자신의 모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
정재은
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나의 원칙이 <시티:홀>
영화감독 어렵게 허락받은 현장 촬영
을 다소 연성적으로 보이게 할지도 모르겠다. 거
신청사 건립 추진은 서울시의 ‘도시기반시설 사
기다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티:홀>은 오세훈
업본부’라는 부서에게 전담해 진행하고 있었다.
의 비리를 폭로하고 시청사를 질타하는 고발 다
방송 촬영은 보통 몇 회만 촬영하면 되지만 영화
큐. 그렇지만 내 길은 아니다. 고발 다큐와 안녕
다큐멘터리의 경우 수십 차례 혹은 몇 년의 촬영
을 고했다. 나는 오해와 불신 가득한 한국 사회
기간을 내다보며 현실에서 이야기를 찾는다. 나
의 한복판에서 서울 신청사와 관련된 모든 관련
는 신청사의 개청식이 임박했으므로 개청식까지
자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그들의 본질을 들여다
<말하는 건축가>를 만들고 있을 무렵 정기용의
만 촬영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2012년 3월에
보는 다큐멘터리가 되기를 원했다. 모든 이들을
<감응>전이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되었
완공한다고 했었다. 몇 달만 집중력 있게 촬영하
균형있게 다루고 편견으로 상황을 보지 않게 되
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월로, 7월로,
기를 바랐다.
<말하는 건축가>와 <말하는 건축 시티:홀>
다. 나는 촬영을 위해 일민미술관을 드나들며 광 화문 사거리 주변을 자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10월로 준공은 계속해서 연기되었고 공사도 지
어느 날 가림막이 쳐진 채로 공사 중인 시청 건
체되었다. 현장은 여전히 비계로 가득차 있었다.
공공건축의 각종 위원회
물을 보았다. 정기용에게 우리가 왜 공공건축에
시청 우측의 오피스 동은 층별로 거의 완성되어
작은 결정들이야 실무자들이 하지만 대부분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누차 배운 바 있었기에
마감을 하고 있는 중인데 시청의 왼쪽은 하늘 높
큰 결정은 각종 위원회의 소관이었다. 다른 프로
시청 공사 현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 비계만이 쌓여 있을 뿐 뭔가 진척되는 기미가
젝트도 마찬가지였지만 디자인 심의부터 예산
저 시청 건물의 디자인은 누가 왜 저렇게 한 것
없어 보였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까지 모두 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대부분의 공
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시청 설계자가 <말
와 유걸 건축가가 설명해 주는 설계도만이 시청
무원들은 각종 위원회가 열리는 날은 초비상이
하는 건축가> 촬영 때 동대문디자인 플라자에
의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었다.
었다. 서울시 신청사 프로젝트는 결국 모든 위원
관한 인터뷰를 이미 했던 바 있는 유걸 건축가라
처음에는 촬영을 거부하던 서울시와 삼성물산
회가 만들어 낸 최종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꾸
는 것을 깨달았다. <말하는 건축가>를 촬영하
측도 어느덧 촬영팀을 귀찮지만 현장의 일부로
준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시청 프로젝트
기 전까지 신청사의 디자인 논쟁과 턴키의 문제
받아들여 주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했
를 바라보는 위원들은 적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점들에 대해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던 건 시청의 이야기는 누군가 촬영해 놓아야 한
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신청사의 모든 결정은
그리고 시청의 거대한 공사 현장은 내가 범접할
다는 것이었다. 만들기 어렵고 중요한 프로젝트
시민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결정 내린 합의
수 없는 멀고 먼 세계처럼 느껴졌다. <말하는 건
고 사연도 많은 만큼 누군가가 꼭 기록해 주었으
의 결과였다. 우리는 서울시의 누군가가 또는 오
축가>의 개봉을 준비하면서 나는 신청사 공사
면 하고 바랐다. 그들은 비공식적으로는 우리 촬
세훈 전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했으리라고 생각
현장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이미 어느
영팀을 좋아했고 원했다. 하지만 공식 인터뷰는
한다. 내가 확인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신청
정도 빌딩의 외적인 형태는 잡혀 있는 상태였다.
언제나 거절하였고 늘 조심스럽게 촬영팀을 대
사 공사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위원회로 잘게 나
유걸 건축가를 통하면 시청 공사 현장에서 촬영
했다. 혹시 자신의 직장 생활에 누가 되지 않을
누어져 진행되었다. 어떤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는 했다.
도 위원회였다. 그리고 개인의 의견은 위원회의
조직 생활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태도
결정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나는 신청사 프로젝
비계만이 보이던 시청 현장
가 무척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촬영을
트를 진행하면서 ‘개인’이 실종된 사회를 만나는
2011년 11월 처음으로 들어가 본 대형 공사 현
하면 할수록 여러 실무자들의 노고와 더불어 그
느낌이었다.
장은, 나름 거친 촬영 현장에서 단련되었던 나에
들의 보신적 태도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선정 과정
게도 힘들고 벅찬 곳이었다. 현장의 규모는 손에
82
잡히지 않을 정도로 컸고 공사 소음은 끔찍하게
몰래카메라의 시도
처음부터 여러 주인공들이 나오는 다큐로 생각
싫었으며 공사 중 쏟아져 나오는 먼지들 때문에
촬영을 하지 않을 때 실무자들의 이야기는 그야
했었다. 한 주인공으로 끌고 가면 더 흡입력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사방은 온통 비계로 가득
말로 흥미진진하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옳고 그
있겠지만 입체적으로 사회를 보여주는 데 실패
차 발 디딜 곳을 찾기도 힘들었다. 거기다가 촬
른 것은 다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이 처한 위치와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청으로 찾아가는 횟수
영팀은 공사 현장에서 당연히 구비해야 할 안전
상황 때문에 절대 공식적인 인터뷰를 할 수 없
가 많아지면서 진짜 실무자들이 눈에 보이기 시
장비마저 없는 상태였다. 안전 의식 제로 상태에
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탐이
작했다. 시청 공사 현장을 움직이고 결정하는 핵
서 일단 현장에 들어가 부딪혀 보기로 한 것이
나서 일정 부분 몰래카메라를 시도했었다. 쏟아
심 코어 인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기반시설
다. 무식했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져 나오는 그들의 감정과 이야기는 정말 놀라운
본부의 ‘소영수 주무관’, 삼성물산의 ‘이상희 설
어디서부터 어떻게 촬영해 나가야 하는 건지 앞
것들이 많았다. 관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이런
계팀장’ 그리고 ‘최영길 감리단장’ 같은 사람들
이 깜깜하기만 했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들은 어
이야기라고 생각됐다. 그러나 점차 실무자들과
이었다. 그들은 시청 현장에서만 5~7년 동안 일
찌나 많은지 삼성물산의 현장 사무실에는 수백
관계가 깊어지면서 작가로서 몰래카메라로 촬영
한 사람들로서 시청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분
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공사 현장 곳곳마
된 이야기들을 영화에 쓰는 것에 대해 자문해 보
들이었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 처한 위
다 노동자들이 각자의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았다. 많은 다큐멘터리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몰
치와 입장에 따라 공사 현장이 얼마나 달라 보
일의 공정부터 각종 건축 용어들까지 낯선 것들
래카메라 촬영이 과연 작가로서 올바른 접근법
이는지도 알게 되었고 갈등 구조도 보이기 시작
투성이었다.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로는 포착하
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실무자들이
했다. 뒤늦게 현장에 합류한 유걸 건축가는 그들
기가 어려운 거대한 현장이었다.
나 인터뷰이들과의 장기적인 신뢰가 더 중요하
에게 내심 불편한 존재였다. 유걸 건축가는 자신
서울시와 삼성물산은 그저 유걸 건축가를 한두
다고 판단했다. 만약 이것이 일회적이고 단발마
이 하려고 들면 할 수 있는 일이 수두룩하고 안
번 촬영하고 돌아가겠지, 라고 생각해서 별반 촬
적인 보도 다큐멘터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려고 들면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있는 위치라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고 했다. 현장 사람들은 유걸이 아무것도 안 해
다. 그러나 아쉽게도 준공식은 공사 현장에서 일
들이 영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경험하니 편
주기를 바랐지만 유걸은 점점 하고 싶은 게 많아
한 사람들과 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집본을 약간 수정하고 싶어졌다. 나는 익히 알
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만을 듣
진행되었다. 공사에 관계된 사람들은 거의 찾아
고 있는 사실이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야
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유걸 건축가에게 놀라
보기 어려웠다. 모두들 시청 현장을 떠나 또 다
기들이 관객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고, 내가 촬
운 점은 이런 상황들을 대하는 그의 노련하고 여
른 일터를 향해 가버리고 준공식은 그야말로 썰
영한 시점 이전의 공사 현장의 그림이 없는 것
유있는 태도였다. 심히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한
렁한 잔치가 되었다. 1926년 일제하에서 있었
도 아쉽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나는 관객과의 교
상황일 텐데 언제나 실무자들을 만날 때는 웃음
던 시청 준공식을 제외하고는 우리 힘으로 최초
감을 통해 재편집에 돌입하여 최종 극장 개봉용
과 여유로 그들을 대했다. 갈등을 극단화해서는
로 만든 시청이었다. 그리고 많은 어려움을 이겨
편집본을 완성하였다. 편집에 들어간 지 꼬박 일
아무것도 얻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시는 것이다.
내고 완성된 시청이었다.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
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유걸 건축가는 타협과 양보를 통해 자신이 원하
하고 여론에 의해 질타받는 공무원들도 기가 죽
는 가장 큰 것 하나를 찾아 집중해 나가는 모습
어 있었다. 고생해 만든 시청 관련자들을 아무도
신청사 논쟁이 주는 교훈과 변화들
을 보여 주었다. 노장에게서 배울 수 있는 인생
격려해 주지 않았다. 드문드문 신청사와 관련된
영화를 만드는 동안 시장이 교체되고 건축 관련
의 지혜였다. 유걸 건축가는 다목적홀(concert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몰래 신청사를 둘러보는
서울시의 제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청사
hall)에 집중했다. 그래서 <시티:홀>에서는 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유걸 건축가 역시 자신이
와 마찬가지로 턴키로 진행되던 소격동 국립현
목적홀 이야기에 포커스가 많이 맞추어져 있다.
초대받지 못했지만 왔다면서, 건축가의 자리없
대미술관도 건축가가 배제되었다가 감리 과정에
음을 개탄하며 멍석에 썰렁하게 앉아 준공식을
참여하게 되었다. 공공건축의 턴키 폐해와 건축
인터뷰 촬영의 시작
남의 잔치 보듯 바라보았다. 그래도 박원순 시장
설계자의 권리 존중이라는 사회의 여론에 밀려
시청 내부 촬영이 안정에 접어들자 나는 한편으
이 유걸 건축가의 노고를 치하하는 짧은 멘트라
서울시도 턴키 발주 방식에 변화를 도모하고 있
로 시청 관련자 리스트를 만들어 인터뷰를 시작
도 해 주어서 정말 기뻤다.
다. 도시와 공공재로서의 건축을 바라보는 시민
했다. 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했지만 가장 핵심
나는 일 년여 간의 공사 현장을 지켜보며 지금의
들의 의식 수준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개인적
적인 인물은 역시 오세훈 전 시장이었다. 그의
신청사가 좋은가 나쁜가의 이분법적 논리가 아
으로 신청사 프로젝트를 촬영하며, 현재가 도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시장 선거에
니라 우리가 왜 더 좋은 건축물을 가지지 못했는
와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
서 떨어진 후 서울을 떠나 영국에 가 있었다. 영
가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게 됐다. 지금의 신
는 시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전환기에 시스템
국까지 가서 인터뷰를 할 수는 없었다. 몇몇 중
청사가 좋건 싫건 당분간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
보완으로 이루어진 지명 공모 제도라는지 마스
요한 서울시 관련자들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지
는 건축물일수 밖에 없다. 싫어한다고 하루아침
터 플래너라는 방식으로 건축가가 감리에 참여
만 거절의 대답만을 들었다. 그들에게는 서울시
에 사라질 수도 없고 눈을 감고 지나칠 수도 없
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
청은 잊고 싶은 프로젝트였나 보다. 여러 루트를
는 일이다. 우리가 신청사를 보며 생각해야 하는
여진다. 이런 건축, 건설의 전환기에 신청사 프
통해 인터뷰이들을 선정하고 인터뷰 촬영을 병
것은 좋은 건축물은 하루아침에 탄생할 수 없다
로젝트를 통해 그 심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행하면서 신청사 프로젝트가 담고 있는 어마어
는 소중한 교훈이다.
점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미있게 느껴진다.
마한 내용에 지쳐 버렸다. 두 시간 남짓인 영화
유걸 건축가는 늘 관심을 못 받는 평범한 건물보
로는 다 담기 어려운 방대한 내용이었다. 딱딱한
편집, 재편집 그리고 최종 편집
다는 악평에 시달려도 관심받는 건물이 좋은 건
데이터로서의 건축백서가 아니라 일했던 경험
촬영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편집에 들어갔다. 이
축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논
자들의 숙고를 담은 인터뷰 내용들은 한국의 공
야기가 너무 많아서 편집을 하며 골머리를 앓았
쟁의 핵심에 서울시 신청사가 있었다. 서울시 신
공건축의 미래를 위한 좋은 내용들을 많이 담고
다. 워낙 사연이 넘치고 각각의 입장에 따라 신청
청사는 어느날 뚝딱 우리 앞에 세워진 건축물이
있다. 이 인터뷰들은 따로 책으로 엮어 출간하면
사는 다르게도 보였다. 편집 육 개월이 지나도록
아니다. 그 전 과정은 시민들에게 공개되어 호불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야기가 결정되지 못하고 계속 편집본은 추가되
호가 갈렸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야말로 건축 영
현장에서의 촬영과 인터뷰 촬영을 병행하면서
었다. 여러 차원의 다양한 이야기로 뻗어 나갈 수
역의 확장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건축에 대한
나는 시청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의 견해로 수렴
있었지만 그다지 일반 관객의 시선을 끌 만큼 압
논의가 그저 네모 박스 빌딩 하나를 만드는 문제
되기에는 내용이 많고 방대하다는 사실을 깨달
도적인 재미를 가진 스토리는 없었다. 세 시간 정
가 아니라 도시의 맥락, 주변과의 관계, 근대 건
았다. 인터뷰들로는 신청사 디자인의 선정 과정
도의 편집본에서 이야기가 좁혀지지 않았다. 하
축과의 조화의 문제, 시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을 설명하고 현장에서 진행되는 다목적홀 이야
나의 단선적인 스토리를 포기하고 다섯 개 정도
으로 발전된 케이스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모든
기를 두 축으로 삼아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갔다.
의 챕터로 구성을 하여 전개되는 복수의 이야기
일련의 일들이 시민들에게 건축적 사고와 의식
를 선택하였다. 한국의 다큐 관객들은 모두 단선
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서울 신청사
반복되는 준공 연기와 준공식
적이고 감정적인 다큐를 좋아하는데 정말 큰일이
준공 과정을 둘러싼 이 모든 논의를 영화에 담기
신청사 공사 현장은 시간이 지나도 큰 변화를 보
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선택하면 분명 집중력이
에는 턱없이 부족한 런닝타임이었지만, 이 영화
여 주지 않았다. 지루한 공사 현장의 일상이 반
있었고 이야기는 훨씬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
가 우리가 거쳐온 과정과 경과를 되씹어 봄으로
복되었고 촬영팀도 지쳐갔다. 준공식은 계속 연
런데 내가 신청사 공사 현장에서 바라본 한국 사
써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문화적 자산
기되면서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회의 총제적인 입체도는 그려지지 않았다. 편집
이 되었으면 한다.
구청사를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철거되고 신청
시작한 지 9개월로 접어들자 어느 정도 이야기
사 디자인에 대한 온갖 비난과 비평이 신문 지면
가 정리되었다. 작년 전주영화제 피칭 작품이었
을 장식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언론에 최고로
으므로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시티:홀>의 프리
민감한 분들이었다. 부정적인 언론의 방향을 돌
미어 상영을 하게 되었다. 서울시 관계자들과 삼
려 보려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실무자들
성물산 담당자들이 와서 영화를 보았다. 관객들
이 사회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자 나도 어느덧 마
과 함께 영화를 감상한 그들은 감사를 표하며 돌
치 내가 공격이나 비난을 당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갔다. 다행히 서울시 관계자들은 편집본에 별
아팠다. 무엇보다 유걸 건축가의 모습이 안타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웠다.
다큐멘터리에는 워낙 이야기의 가능성이 많아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한 준공식이
서 만드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객관화하기 상
겨우 잡혔다. 2012년 10월 13일은 지난 일 년 동
당히 어렵다. 최종 극장 완성본을 내기에는 아직
안 촬영한 공사 현장을 마무리할 수 있는 중요
확신이 서지 않아 전주영화제와 환경영화제에서
한 이벤트였다. 촬영팀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
상영하며 일반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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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EYE 1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와이드 EYE 1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0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선유도 공원(정영선(조경설계서안),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설 계)이 그 동안 퇴색되었던 공원 내 전시관을 원 뜻에 맞게 리모델 링하여 ‘선유도 이야기’란 이름으로 재개관하였다. 원래 좁고 긴
형태의 3층 건물은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을 각 수용지로 공급하
는 송수 펌프실로 사용되던 것으로, 2002년 선유도 공원 개장 당 시 한강과 선유도 소개를 위한 전시관으로 모습을 바꾸었으나 이
조사와 설계
후 디자인 르네상스 사업을 선전해 오는 등 원 취지에 어긋난 행보
성균건축도시설계원+도시건축
를 지속해 왔다. 이에 개장 10년째 되던 해인 2012년 겨울, 건축가
조성룡, 김경완, 권웅규, 이현식,
조성룡(성균건축도시설계원, 도시건축)과 출판기획사 수류산방 은 오랜 시간 조금씩 변형되어 온 공간과 전시 기획 등을 원 뜻에 맞게 되살리기 위한 리모델링에 착수했고, 마침내 지난 10월 한강 의 생태, 물의 의미, 선유도의 역사와 건축 등 이 장소와 관계된 다 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전시 공간을 재탄생시키기에 이른다. 특히 ‘선유도 이야기’관은 비우는 것에서 출발한 설계로 관심을 끈
이우종, 이철호, 김지현 수류산방 박상일, 심세중, 김영진, 김지혜, 심지수 공사 및 감리 조성룡, 권웅규, 이현식, 원용찬 (재활용 가구 제작) 피티엘종합건설(주), (주)유지전기공사
다. 가벽을 치우고 어지러운 전시물들을 비움으로써 공장 시설 내 부를 그대로 살린 텅 빈 건물은 원래 품은 공간의 힘과 멋을 당당 히 드러내고 창밖의 선유도 풍경을 한껏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관 람객들은 길처럼 이어지는 건물 안팎을 거닐면서 이 새로운 공간 감과 근사한 풍경을, ‘비어있음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 이다. (편집자 주) 자료 및 사진 제공 수류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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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디자인 제작 상설전 설치 수류산방+도시건축 영상 이지송, 박우진 사진 박우진 인쇄물 편집과 디자인 수류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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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Report
76 와이드 REPORT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 city:hall
84 와이드 EYE 1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92 와이드 EYE 2
<최소의 집>전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토마스 루프(Thomas Ruff)
1층 남쪽 라운지. 십여 년 동안 조금씩 변형되고 어지럽게 덧붙여진 것들을 비워내니 선유도 공원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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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최우용
『다시 관 , 계의 집으로』저자 주( 엄)앤드이종합건축사사무소 팀장
오래된 선유도 이야기
최우용 인천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등 학교를 모두 이곳에서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주)엄앤드이종합건축사 사무소에 입사하여 현재 팀장으 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 럽방랑 건축 畵』와 『다시, 관계의
와이드 EYE 1
집으로』가 있다.
1층 북쪽 라운지
“기억이 없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인구 천만의 도시는 매년 엄청난 돈을 들여 자신을 꾸미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간다. 지하층 복도가 내려다 보이는 1층
결국 도시 저 깊은 곳에서 우리가 파묻은 무의식이 물어올 것이다. 서울,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기억이 없는 인공 낙원에 사는 너는 누구인가?”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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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관촌수필, 남겨진 것에 대하여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 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세 개 층을 트고 열면서 시선은 확장되는데, 이 확장된 시선 속에 내외부 시간의 흔적들이 좀더 다채롭게 포획된다.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 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촌수필』은 글쓴이 이문구의 자전적 소설이다. 관촌마을(관촌 부락, 冠村部落)에서 태어나서 유소년기를 보낸 한산 이씨 명문거 족의 후예 이문구는 ‘나’를 빌려 그의 지난 일들을 수필처럼 소설 로 써 내려간다. 그는 본인이 통과해 나간 시간들 뒤로 달려가며, 그를 키워 왔던 관촌마을과 그 마을에 엉겨붙어 있는 시간과 사건 들을 돌아보며 그의 자리를 확인한다. 그는 변해 버린 관촌마을의 골격을 들여다보며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변하지 않은 무 엇들을 찾아보고 둘러보며, 그 변하지 않은 무엇들을 통해 ‘내’가 있었던 자리를 확인하고 또 ‘내’가 가야 할 자리를 더듬는다. 세월의 부침을 겪으며 떠밀리듯 떠나야 했던 관촌마을. 그는 머리 굵고 나서야 다시 그의 살과 뼈가 여문 관촌마을로 향하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찾은 한내읍 갈머리(관촌마을)에 이르니 마 을의 왕소나무는 잘려져 나간 지 오래고 그 자리에는 슬레이트 지 붕의 구멍가게가 들어섰다. 신작로를 따라 가로세로 들쑹날쑹 꼴 던 옛집, 간살이 넉넉한 열다섯 칸짜리 꽃패집의 풍채로 당당했던, 온 마을의 종가나 되는 양 한눈에 알 수 있었던 그가 자란 옛집은 폭삭 삭아 추레한 꼴로 변해 버렸다. 그래도 그는 겨우겨우 남겨진
와이드 EYE 1
값하는 난봉난 집들이 들어차 마을을 어지럽혀 놓았고 그가 살았
것들과 추레하니 퇴락했으나 간신히 원꼴의 어렴풋한 기억을 갖 고 있는 옛집과 길과 풍경들을 통해 그의 유년, 그의 살과 뼈가 여 물고 머리꼭지가 굳어지고 또 그의 성정이 만들어졌던 그 시간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아마 그가 몸으로 통과해 나간 그 시간의 기억이 지금의 ‘나’일 것이며 앞으로의 ‘나’의 바탕일 것이다. 타불라 라사 그리고 기억 상실의 도시 서울 타불라 라사(tabula rasa)는 아무것도 쓰여진 것 없는, 기록된 것 없는 백지상태를 말한다. 로크는 『인간오성론』에서 일체의 경험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라이프니치가 이 ‘백지상 태’를 한 단어로 축약해 설명하기 위해서 ‘타불라 라사’라는 단어 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 근대 철학사의 한 장면에서 타불라 라사가 등장했는데 근대 이후 이 백지상태는 많은 면에서 요긴했다. 타불라 라사를 통해 기 지하부터 1층까지 이어지는 서쪽 창. ‘녹색기둥의 정원’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존의 것들, 낡은 것들 또는 전통이라고 말해지는 것들과의 결별은 손쉬워졌고 또 정당해졌다. 근대건축에서 타불라 라사는 보다 뚜렷하고 선명했다. 산업적 근 대주의 위에서 새로운 (근대)건축은 과거와의 극단적 거리를 두고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 새로 우뚝해지는 집들을 위해 기존에 있었 던 것들은 영점의 백지상태를 목표로 하얗게 지워졌다. 이 지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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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좁고 긴 세장한 비례의 공간이 온전히 드러난 지하 1층. 기존 송수 펌프의 일부도 전시물로 남겼다.
은 정신적인 것들 뿐 아니라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들까지 포함 했다. (근대)건축이 세워지고 꼴 지워지는 생각의 바탕은 ‘혁신적’ 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었고, 그 건축이 들어서야 했던 땅 위의 오 래된 것들은 말끔하게 부수어져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타불라 라 사가 근대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백지상태에서 새로 쓰여진 것들 또는 새로 세워진 것들은 새로 이 룬 것들만을 보여줄 뿐, 일체의 기억을 잃은 채 무엇이 변했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또 무엇이 안 변했는지도 보여주지 못한다. 아무
와이드 EYE 1
리 들여다봐도 있었던 무엇을 알 길은 없다. 한강의 작은 도시 위례성이 도시로서 꼴 지워진 시기는 기원전 18 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그렇게 기록했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흔적들에서 일정 정도의 고고학적 진위가 뒷받침되고 있다. 이천 년 전, 작은 왕국의 작은 왕도로 시작된 도 시는 그 후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수도 한성이었고, 계속해서 입 헌군주정과 공화정을 거쳐 오늘의 수도 서울에 이르고 있다. 힘없는 작은 나라의 수도는 그 영광의 기억만큼이나 오욕과 굴종 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찬란한 왕조의 유산은 계속되는 외침 에 부숴지고 망가졌으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거덜이 났다. 식민 지 시대를 증언하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한국 전쟁 속에서 산화되 었다. 오욕과 굴종의 역사를 통과해 나가며 이뤄진 타불라 라사의 서울에는, 그래도 간신히 남겨진 것들이 한 움큼은 있었다. 그러나
지하 1층 남측 바닥에는 빔 프로젝터로
1961년부터 1979년 사이 군사 정권은 그 한 움큼 있는 것들조차,
영상이 투사된다.
아마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전통 또는 고유성, 개별성 등은 고려 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무기력했던 왕조의 가련한 기억은 지우는 편이 편했을지 모를 일이다. 서울의 오래된 길들과 집들 그리고 그 런 것들이 엉켜 만들어졌던 골격들은 근대적 기획에 맞춰 ‘혁신적’ 이고 ‘합리적’으로 일신되기 위해 말끔히 비워졌다. 이 창백한 계 획적 타불라 라사 위에서 서울은 날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 후 정권은 군인들로부터 민간에게 이양되었지만 깡그리 부수고 새로 짓는 집짓기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발전과 개발은 최고의 선이었 다. 부수는 것도 부가가치였고 새로 짓는 것도 부가가치였다. 서울 은 매일매일 비워지며 기억들을 하나씩 잃어 갔고 지금도 잃고 있 다. ‘자기 몸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려 애쓰는 늙은 폭주족처럼,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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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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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은 필사적으로 근대의 기억을 지우고 있다.’(서울-단기 기억 상 실증, 김영하) 기억 상실의 도시 서울, 서울에서 시간을 돌아보며 내 자리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서울 시간의 한 모퉁이 한강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었다. 신선이 노닐 만한 봉우리라하 여 이름은 선유봉. 이 봉우리를 보기 위해 한강에 배 띄우고 놀았 었다. 이백오십 년 전, 겸재 정선은 선유봉에서 노니는 풍경을 그
기존 전시물을 철거하려고 뜯어내자 녹물 타고 물때 묻은 콘크리트 벽면이 정수장 시절의 시간을 즉물적으로 즉각 소급시킨다.
림으로 남겼다. 1925년, 서울에 엄청난 비가 내렸고 물난리가 났 다. 이 대홍수 이후 선유봉은 한강 정비를 위한 채석장으로 바뀌었 다. 무수히 많은 돌들이 캐내어진 선유봉은 어느 순간 뭍과 떨어진 납작한 섬이 되었다. 1968년, 선유봉은 선유도가 되었다. 1978년, 납작한 섬에는 늘어나는 서울 서남쪽 시민들에게 물을 공 급해 줄 정수장이 들어섰다. 이후 선유도 정수장은 영등포 일대의 시민들에게 20년 동안 하루 40만 톤의 물을 제공했다. 이 일대 공 단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서울 산업 시대의 최전선에서 오늘 풍요로운 서울의 밑바탕을 몸으로 일궈낸 주역들이었다. 가난했 고 또 근면했던 그들은 선유도 정수장에서 걸러진 물로 밥 짓고 세 수하고 양치하고 출근했다. 2000년 12월, 한강물이 거르고 걸러도 더이상 쓸 수 없게 더러 2002년, 선유도는 공원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선유봉 또는 선유도 의 지난 기록이다. 선유봉에서 노니는 몇 백 년 전의 기억은 아름답게 아득하고, 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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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지자 정수장은 문을 닫고 이태가 지난 뒤 공원으로 거듭났다.
도에서 걸러진 물로 가난한 일상을 꾸리던 이삼십 년 전의 기억은 저릿하게 선연하다. 150년 전쯤,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가 뉴욕 센트럴파크 현상 설계에서 도심 한가운데를 비우고 어마어 마한 규모의 녹색 잔디를 깔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후, 도시의 공원들은 센트럴파크의 도그마 위에서 고착되었다. 회색 도시와
아날로그한 멋을 자아내는 슬라이드 상설전
지하 1층의 긴 회랑에는 선유도 공원의 역사, 건축, 공간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10대의 슬라이드 필름 환등기를 통해 영사된다.
지하 1층의 슬라이드 필름 환등기와 재활용 가구. 책상은 공사 과정에서 뜯어낸 바닥과 합판을 재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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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공원의 대비는 도심 공원의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이 회색과 녹색의 극단적 대비는 산업화 시대에 제기된 도시의 여러 문제점들을 녹색으로 화장하는 것이었다. 이 화장술은 도시 문제 의 근본적 치유가 아니었고 가리고 덮는 방식이었다. 옴스테드식 조경은 도시의 망각 위에서 세워졌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생각은 바뀌었다. 녹색 장막의 고립된 외통 수 같은 도심 공원은 도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 다. 근래의 실험적 도심 공원은 통념화된 사유에 반기를 들기 시작 했다. 그 공원들은 도시가 갖고 있는 여러 기억들, 영광의 기억들 뿐 아니라 상처의 기억들도 노출시킴으로써 도시의 공원이 적극 적인 기억의 소급 장치로 작동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지점에서 선유도 공원은 출발했다. 그렇게 들어선 선유도 공원은 조경가 정영선, 건축가 조성룡의 현 상 설계 당선 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해서 준공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크게 관심받고 또 회자되었다. 선유도 공원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는 시간의 기억이다. 선유 도 정수장의 여러 시설들을 부수지 않고 남겨둔 채 일부는 비워내 고 일부는 덧붙이고 일부는 고쳐 지어서 산업화 시대를 통과해 나 간 시간의 흔적을 노출시켰다. 이 흔적들을 통해 산업화 시대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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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 보이지 않는 심연의 깊은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성룡은 최근 어느 매체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는 거예요. 현재를 알기 위해선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 죠. 아버지를 본다든지 어머니를 본다든지. 내 현재가 부모님의 과 거고, 나를 냉철하게 보면 미래가 보여요.” 2012년 리모델링에 들어간 선유도 한강 전시관은 최근 ‘선유도 이 야기’관(이하 이야기관)으로 재개관되었다. 이야기관 역시 시간의 기억이란 선유도 공원의 전체 맥락과 그 결을 같이한다.
2층 빔 프로젝터 영상 상설전. 지하1층(남측 바닥과 서측 벽면)과 지상 2층에 설치된 3대의 빔 프로젝터에서 한강과 서울, 선유도 공원의 식생과 건축, 시민 등 을 주제로 한 짧은 영상 작품이 상영된다.
이야기관이 시간의 기억을 소급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보 이는데, 그 하나는 흔적의 복원이고 다른 하나는 (복원의 결과이 기도 한) 노후된 물성의 노출이다. 흔적의 복원은 2002년 선유도 전시관 개관 이후 재개관 이전까지 십여 년 동안 조금씩 변형되고 어지럽게 덧붙여진 것들을 비워내 는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걸러진 물을 송수 펌프를 통해 수용지로 공급하던 좁고 긴 세장한 비례의 공간이 온전히 드러났다. 그리고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세 개 층을 트고 열면서 시선은 확장되었 는데, 이 확장된 시선 속에 내외부 시간의 흔적들은 좀더 다채롭게 포획된다. 내부에서는 풍화된 흔적들이 무시로 시선에 들어오고 창밖의 외부 전경은 시간의 전시물로 다가온다. 이 비워내는 작업의 결과로 기존 정수장 시절의 흔적들이 노출되 2층 전망 공간. 재활용 의자에 앉아
수 펌프는 정수장 시절의 시간을 즉물적으로 즉각 소급시킨다. 노
계절마다 빛을 달리하는 선유도의
출된 거친 콘크리트 보와 폐자재를 재활용해 만든 가구 역시 마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지나 그 기억 소급의 메커니즘은 전자와 조금 차이 있어 보인다. 녹물과 물때 그리고 송수 펌프가 발생시키는 정수(淨水) 이미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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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공원에서 가장 높은
었다. 녹물 타고 물때 묻은 콘크리트 벽면과 오브제로 남겨진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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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성보다는 풍화되고 경과된 시간이 좀더 감각적으로 전달되 ‘선유도 이야기’관의 새로운 전시 실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시간의 기억이란 맥락에서 모두 동일하다.
재개관한 ‘선유도 이야기’관은 전시에 대한 하나의 도 전이다. 진열장을 두거나 벽면에 패널을 거는 대신 기
성긴 밀도의 지하1층 상설 전시관과 허허로운 지상2층의 전망
존 전시장(한강 전시관)의 모든 가린 것을 뜯어내고 비
공간은 이동과 흐름이 빈번한 지상1층을 매개로 연결되는데 밀
우기로 한 것이다. 선유도의 옛 흔적과 이를 활용한 건
도에 따른 프로그램의 공간적 배분은 매우 합리적으로 또 성공
축적 의도 자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선유도 이야 기’관의 처음이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으로 보인다. 나는 방문자 안내소 방향의 출입구로 들어와서
건물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했다.
전 층을 걷고 보고 쉬고 놀고 생각하다가 녹색 기둥의 정원으로
1.공간 바라보기 : ‘선유도 이야기’의 내부 공간은 옛 정 수장의 송수 펌프실을 부분부분 트고 막아 분절되면서
난 출입구로 빠져나갔다. 11월 초입의 신록은 여지없이 푸르렀
도 전체가 이어지도록 세심하게 개조했다. 그래서 내부
고 담쟁이가 올라탄 기둥의 시간은 단단했다.
는 공원과 이어지고, 다시 내부는 저마다 특색을 지닌 공간들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내외부 산책 에 지친 다리를 쉬게 하려면 여기저기 놓여 있는 의자
다시, 남겨진 것에 대하여
에 앉아도 좋다. (의자와 책상은 공사 과정에서 뜯어낸
“기억이 없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인구 천만의 도시는 매년 엄청
재료를 재활용했다.) 2.풍경의 발견 : 특히 가장 많이 막혀 있었던 2층의 경
난 돈을 들여 자신을 꾸미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우, 가벽을 뜯어내자 2002년 개관 당시 설계한 창문이
간다. 결국 도시 저 깊은 곳에서 우리가 파묻은 무의식이 물어올
모습을 드러냈다. 공원 안에서 가장 높은 곳, 가장 공원
것이다. 서울,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기억이 없는 인공
이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 지점이다. 이 건물에는 동서 남북으로 여러 크기와 높이를 가진 창들이 있고, 각각
낙원에 사는 너는 누구인가?”
서로 다른 경관으로 트여 있다. 비우고 뜯어내자 비로
염치없이 또 한 번 다른 이의 글을 빌려 쓴다. 서울에서 나고 자
소 보이게 된 풍경이 전시의 일부가 된 셈이다. 3.영상으로 말 걸기 : 2002년 개관 당시 전시 시설로 기
란 소설가 김영하의 물음은 무섭게 다가온다. 이제 파묻을 기억 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가? 인공 낙원에 남겨진 우리들은, 기어
다. 소장품도, 학예실도 없는 대개의 공공 전시 시설들
코 그 남겨진 것들 마저 파묻어 하얗게 지우려 들 것인가? 등줄
은 어떻게 운영될 수 있을까? ‘선유도 이야기’관의 새로 운 상설 전시는 영상으로 기획됐다. 앞으로의 특별전이
기에 서늘한 식은땀이 흐른다.
나 그밖의 다양한 쓰임에 대응하도록 가변성을 극도로
선유도 공원을 걷고, ‘선유도 이야기’관의 오래된 콘크리트 벽을
높이고, 미래의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자 했다. 영상 전 시 중 스틸 이미지는 슬라이드 환등기를 이용해 필름으
들여다본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히고 싶다. 땀을 식히며 우
로 투사했다. 지하의 긴 회랑을 따라 철컥이며 돌아가
리가 있던 자리를,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자리를 천천히 더듬고
는 10대의 환등기는 전시 내용만 알리는 것이 아니다.
싶다. 선유도 공원에서는, ‘선유도 이야기’관에서는 아마 가능할
소리와 빛, 아날로그 기계의 매력. 모두 중고를 (어렵사 리) 구매해 개조했다. 더불어 기존에 방치되어 있던 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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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된 이곳은 보유한 소장품도 없고 학예실도 따로 없
것이다.
프로젝터를 고쳐 동영상 전시를 투사했다. 영상은 선유 도에서 작가들이 채집한 것이다. 사진가 박우진과 영상 감독 이지송이 촬영한 작품들이 상설 전시된다. 앞으로 계속해 영상과 스틸로 채집되어 갈 이미지는 선유도 공 원의 아카이브를 이루며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다. 4.동영상-스틸 이미지-책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전시 : 영상 전시로 전환하면서 제한되는 정보는 책에 담았다. 책은 슬라이드 전시, 동영상 전시와 연동되며 선유도, 한강, 재활용 등의 주제로 총서 형태로 계속 쌓여 간다. 총서의 첫 책은 ‘선유도 이야기’의 재개관과 선유도 공 원의 공간을 소개했다. 리플릿도 10년만에 새로이 만들 었다. 지도를 들고 다니며 공원 곳곳의 나무에 깃든 다 양한 사연과 설계 의도를 시민들이 알아갈 수 있도록 빼곡하게 담았다. 5.좋은 곳, 고쳐 쓰기 : 10년만에 다시 고쳐서 그 쓰임
선유도 이야기 총서 001권. 책은 슬라이드 전시, 동영상 전시와 연동되며 선유도, 한강, 재활용 등의 주제로 총서 형태로 쌓여 갈 예정이다.
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의 뜻과 맞게 첫 번째 기획전 은 공공 장소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 련했다. 조성룡이 디렉팅한 < 좋은 곳, 고쳐 쓰기 : 시민 이 행복해지는 서울의 공공 장소 18곳> 은 요즘 주목받 는 신진 건축가, 조경가들이 작업한 작은 공공 프로젝 트들이다. 글 자료 제공 수류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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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집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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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영한(스튜디오 아키홀릭)이 기획하고 창의물류 ‘낳이’가 주최한 전시 <최소의 집>이 지난 10월 10일부터 11월 4일까지 서 울 종로구 관훈동의 창의물류갤러리 ‘낳이’에서 열렸다. (주)돌실 나이, (사)커뮤니티 디자인 연구소 후원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는 장기 기획전의 첫 번째 전시로 임형남, 노은주(가온건축), 김희준 (ANM), 정영한(스튜디오아키홀릭) 등 세 팀이 참가하여 각자의
와이드 EYE 2
사례와 그간의 작업 방식, 최소의 집에 대한 정의와 생산 가능한 주거 모델 등을 제안함으로써 전시 주제가 던지는 질문에 충실히 답하는 자리였다.(편집자 주)
대중, 건축의 다양함을 접하다
냈다. 특히 대중들에게 집에 대한 다양한 가 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건축가
“대중들이 원하는 집을 이 시대의 건축가들은
들의 실질적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도움으로써
어떻게 이해하고 고민하고 또 상상하는가?
대중과 건축가의 관계를 좁힐 수 있는 자리를
저렴하게 짓거나 작게 짓는 것만이
마련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진정 대중이 원하는 집인가?
또한 주제 ‘최소’라는 개념에 대해 건축가 스
앞으로 우리가 미래에 거주할 장소로서 집은
스로가 진지하게 고민해 봄으로써 얻게 된 성
어떠한 곳일까?”
과도 있다. 기획자 정영한은 주제의 ‘최소’가 가지는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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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집>전은 주어진 대지 조건, 건축주
“이번 전시에서 ‘최소’의 개념은 작은 공간,
요구에 따른 규모와 프로그램, 적정 예산, 법
이른바 마이크로 하우스만을 의미하지 않는
적인 제한 조건에서 최소의 물리적 공간 조직
다. 그것은 1920년대 독일에서 현실의 문제
을 고민했던 건축가들의 작업을 통해 현재 집
를 반영한 ‘새로운 프랑크푸르트를 위한 집합
짓기 열풍 속에서 대중들에게 집에 대한 올바
주택’에서의 최소 주거 개념이나, 1950년대
른 인식과 공간의 다양한 가치를 접할 수 있
초반 마스자와 마코토의 9평 하우스의 원형
는 전시가 되고자 했다.
인 ‘최소한의 주거’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분
최소와 최대라는 양극단의 상대적 가치 기준
명 다른 개념이다.”
만을 강요하고 있는 한국 주거 시장의 현 주
그는 최소의 집에 대한 개념은 우리 시대의
소에서 이번 전시는 실제로 적지 않은 성과를
정서와 현실적 요구가 반영되고 미래 주거의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건축에는 너무나 다양한 건축,
예견까지 포함하는 우리만의 개념이 필요하
너무나 다양한 방법론이 있다. 자신이 어
며,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과 건축가들이 이
떤 건축가인지를 계속 알리는 게 중요할
에 대한 정의를 함께 내려줄 것을 기대하고
것 같다. 일례로 우리는 책을 써서 우리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
있다고 전했다.
사실 그런 통로는 무척 제한적이다. 건축 잡지에 발표하는 정도랄까. 나는
이 전시는 장기 기획전의 성격으로 대중들이
여러 가지 통로를 좀 넓혀서 사람들이
다양한 건축가의 사유와 새로운 유형의 집을
다양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가 하나의
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가들의 현
사례가 될 듯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들이
실적인 대안과 건축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전
너무 없다. 디테일도 물론 없고.
제되어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
피상적인 최소의 개념 외에
건축가를 고를 수 있는 기준이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계
-임형남 이번 전시에서 특정 유형을 제시하지 말자는 게 전제가 됐다. 또 하나의 소형
구체적인 것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다음의 기록은 전시 중간에 진행된 ‘최소의
-임형남
집’ 포럼의 내용 중 참여 작가들의 전시에 대
걱정이었다. 나는 건축의 ‘다양성’이
한 변을 간추린 것이다.
중요하고 집에 대한 가치 공유가 우선이
주택 문화를 끌어내는 것처럼 보일까봐
라고 생각했다. 사실 대중과 건축 사이의
글 자료 제공 정영한
괴리는 여전히 크다. 지금 당장 좁힐 수는 없지만 집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다
전시장을 찾는 대중들이 가장 많이
건축가를 위한 전시였다. 우리 전시는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을 거다.
물어보는 말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다.
좀더 대중을 위한 방향으로 가는 게 어떨까.
-정영한
그것은 집이 보고 싶다는 거겠지.
그리고 ‘최소의 집’이란 타이틀이 붙었지만
그 다음은 “얼마예요”다. 그것은 판단
거기에 너무 구애될 필요는 없을 것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으면
기준을 가지고 있단 얘기다. 부지런히
같다. 각자 생각하는 최소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게
대중과 대화하고, 우리가 한 것을 보여
상대적 개념이지 않나.
설계의 가치, 디자인의 가치를 알리는
준다면 좀더 나은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
-임형남
것, 좀더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일을
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시가 편하게
우리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보여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임형남
-김희준
Report
적은 공사비로 어렵게 설계하는 것보다 건축주들이 아직 설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
76 와이드 REPORT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 city:hall
와이드 EYE 2
그동안 우리 건축계의 전시는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그런 것 같다. 설계는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들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인식을 계속 바꿔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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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시도들이 필요할 것 같다. -정영한
92 와이드 EYE 2
<최소의 집>전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건축가들이 다양화되지 않았다. 요즘 달라진 생활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다양한 것을 제시하고 다양한 얘기를
봐야 한다.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공간을 만드는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최소의 집>
김재경
사람이라면 고민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첫 전시를 열었지만, 이후 27명의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우리 시대의 공간의 변화에 대한, 심지어는
건축가들을 통해 다양한 건축들을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것도 좀 나눠볼 필요가 있다.
노출시키는 게 이 전시의 역할이 아닐까.
-노은주
-김희준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
어떤 공개 세미나에서 들은 발제자의 말. “상업으로서의 건축은 있지만 문화로서의 건축은 없다.” 문화적인 것을 사고 싶어서 오는 건축주도 있지만,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우리는 오랫동안 집짓는 것을 산업의 행위로 취급해 왔다. 그 사이에 건축가의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자리는 없었고,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너무 고급화된 설계를 해 왔다. 그리고 양 극단의 중간에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애매한 입장으로 문화도 아닌, 산업도 아닌 행위를 해 왔다. 이젠 젊은 건축가들이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자주 대중과 소통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임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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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임형남,
가온건축
우리는 집의 주인에게 진악산을 바라보는 동서로 긴 집을 권했다. 집의 여러 가지 조건이 육백년 전 의 위대한 철학자 이황의 집 ‘도산서당’을 떠올리 게 했기 때문이다. 도산서당은 일자형의 단순하 고 작은 집이지만, 아주 큰 생각을 담고 있다. 그
금산주택
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경(敬)’의 사
와이드 EYE 2
상을 바닥에 깔고 단순함과 실용성과 합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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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면적 75.6m2(22.9평)
추구했다. 즉 그 집은 이황 자신이라는 현실과, 자
연면적 75.6m2(22.9평)
신을 만들어 주고 지탱하게 해 주는 책이라는 과
층수 1F
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
준공년도 2011.05
를 담는 집이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집이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는…. 그 말만 들어도
이 집은 한국의 충청남도 금산 외곽, 진악산이라
마음이 두근거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
는 이름의 산이 마주보이는 언덕에 있다. 남쪽으
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
로 얕은 구릉에 집들이 가까이에 박혀 있고, 솟아
다. 생각이 담긴 집이다. 게다가 그 생각이 높고도
있는 산 사이로 멀리 큰 저수지가 있다. 바람이 그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도산서당은 우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이 땅을 거쳐 동네 언덕 사
리가 건축가로서 늘 꿈꾸던 그런 집이었다.
이로 빠져나간다.
우리는 대부분 집에 집착하고, 집의 크기에 집착한
거주 면적 43m2, 마루 26m2의 소박한 집은 마루
다. 현대의 집들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안에 사
에 앉으면 산이 걸어 들어오고, 발아래 경쾌하게
는 사람들 또한 비대해져서 집은 점점 좁아지고,
흘러가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을 가졌
사람들은 끊임없이 집 늘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다. 마당은 널찍하게 비워 놓았고, 옥외 샤워장과
‘보통의 인간’은 아주 작게 태어나서 아주 작은 집
데크는 야외 활동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다. 이 집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그 삶의 중간에서
은 교육자인 집 주인과, 책들과, 학생들과 동료 선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고, 결국 그 무게에 눌
생님들을 위한 집이다. 그리고 서양식 목구조를
려서 버둥거린다.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
적용하되 한국 건축의 공간을 담은 집이다.
는 집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는 왕도 아니고 신도
우리는 건축을 시작한 이래 이십여 년 이상 과연
아니고 우주인도 아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한국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해 왔
집도 사람을 기형으로 만든다. 우리에게 맞는 적
다. 일본이나 중국의 건축과 다른 한국 건축의 가
합한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장 큰 특징은 공간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집도 커져야 하
의 건축은, 이를테면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동영
고, 그래야만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들 믿
상처럼 공간과 공간 사이로 끊임없는 흐름이 있
는다. 그러나 화려한 집에 담기는 건 빈곤한 삶이
다. 그리고 내외부의 방들은 그 흐름들을 자연스
다. 어느 날 물밀듯이 밀려오는 존재에 대한 회
럽게 따라가며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의처럼, 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될
지나가는 흔적을 담는다.
것이다. 침실과 손님방과 최소한의 부엌과 화장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실, 그리고 서재가 되는 다락방을 담은 금산주택 은 도산서당의 구성을 그대로 닮았다. 금산주택 의 건축주는 노후를 아내와 함께 지낼 작고 소박 한 집을 원했다. 공교롭게도 이황과 같이 교육자 이자 학자이고, 그가 도산서당을 짓기 시작한 나 이와 같았다. 이 집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 기는,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마주보며 학생들 과 공존하는 그런 집이 될 것이다.
퍼펙트 박스 PERFECT BOX 우리가 생각하는 최소의 집은 삶에 있어 가장 필 요한 요소를 갖춘 ‘적정한 집’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일정한 나이에, 일정한 크 기의, 일정한 형식의 집에 살아야 한다는 식의 강 박이 존재해 왔다. 그래서 자신만의 공간을 되찾 기 위해 짓는 ‘최소의 집’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의 식의 전환’이다. 여기서 ‘최소의 집’은 단순히 규 모가 작은 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퍼펙트 박스 모든 생활과 모든 활동을 다 담을 수 있는 간결(compact)하고 똑똑(smart)하고 무겁지 않은
집을 통해 자기는 완성된다.
(light) 3m × 3m × 3m의 재미있는(interest) 상자
와이드 EYE 2
인 의미,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이며, 자기의 완
스튜디오
김희준
ANM
정·방 靜·房 건축 면적 27m2(8.1평) 연면적 18m2(5.4평) 높이 6m 준공년도 2009. 08
정·방은 수도자를 위한 자그마한 암자이다. 2.7m × 2.7m의 방 을 중심에 두고 네 면이 자연과 맞닿아 있다. 문을 열면 풍경의 일 부가 되고,문을 닫으면 고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풍경의 잔영(殘 影)을 드리운다. 정·방은 ‘방’의 개념을 바탕으로 자연과 수도자의 삶이 하나가 되 도록 재해석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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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방(房, placed in the place) ‘방’은 최소의 집의 시작이다. ‘방’은 집을 조직하는 기본 인자이다. ‘방’은 크기와 기능에 따라 구획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주변과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유기적인 관계를 생성하도록 비워진 곳이다. ‘방’은 재현이 아니라 새롭게
것처럼 언제나 또 다른 가능성을 낳을 수 있
발견되어져야 한다.
는 기하학의 유효함을 개인적으로 믿고 있다. 동시에 거주의 본질에 다가갈 7가지 통로인 자연, 장소, 경계, 거리, 행위, 가구, 최소라는 건축의 발견을 통해 주거 안에서 삶과 어떻게 밀착되어 주택으로서 작동할지에 대한 첫 실 험 작업의 의미 역시 담고 있다. 이 주택의 건축 프로그램은 70대 화가인 여성 노인을 위한 최소의 거주와 작업 공간 그리 고 갤러리이다. 주택의 위계는 2층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마치 만달라(mandala)의 형상과
와이드 EYE 2
흡사한 9×9는 절대적 기하학의 영역으로부 터 새로운 공간 구조의 가능성을 위한 설정이 다. 9×9의 평면은 퍼니처 코리더(furniture
스튜디오 아키홀릭
정영한
corridor)에 의해 감싸져 있다. 이 퍼니처 코 리더는 가구 배치를 통해 설정된 영역에서 수 반되는 규정된 행위를 역전하려는 이 주택 의 핵심적 개념이다. 주택에서의 모든 기능 적 산물과 행위 등을 동시에 수납하는 이 개 념은 각각의 크기가 다른 가구 스케일에 따라 가변적으로 750~1000mm의 범위에서 적용 가능하며, 현재 진행 중인 또 다른 주택(6× 6 HOUSE) 계획에서는 수직적인 동선 연결 을 위한 계단이나 외부 공간, 또 다른 행위까 지도 수납하게 된다. 슬라이딩 도어 혹은 무
9×9 실험주택 건축 면적 78.32m2(23.73평) 연면적 93.24m2(28.25평) 층수 2F 준공년도 2013.06 오래 전 루이스 칸이 팔라디오의 9분할 기하학 체계를 트렌튼 탈의장(Trenton bath house, 1955)을 통해 단위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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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월의 개폐 여부에 따라 그 가구에 면한 두 번째 코리더 영역은 1000~1200mm의 폭으 로 이동을 위한 동선만이 아닌 가구 사용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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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따라 가변화될 수 있는 영역이다. 모든
Furniture corridor : 최소 기능의 수납 장치
퍼니처 코리터의 가변적인 문을 닫게 되면 기
퍼니처 코리더 개념은 거주에서 ‘최소 기능
존 영역은 또 다른 행위가 유발할 임의적 영
의 수납 장치’를 의미한다. 이 장치의 기능 설
역(arbitrary area)으로 치환되거나 하나의 통
정은 건축가가 아닌 거주자가 선택할 수 있
합된 영역으로 전환된다.
는 가변적 장치이다. 행위의 수납, 가구의 수
퍼니처 코리더를 따라 구성된 내부 영역에는
납, 조경 수납 등 다양한 기능과 행위를 수납
실을 구획하는 칸막이 벽이나 문이 없으며 단
할 수 있다. 9 × 9 실험주택에서 처음 적용된
지 150mm의 바닥 레벨차로 영역을 구분한
퍼니처 코리더는 주거의 필수 요소인 가구와
다. 이 내부 영역을 이루는 유리의 투명성은
유틸리티 시설이 수납되어 있고 그 사용 빈도
거주 공간의 또 다른 물리적 거리감을 갖게
에 따라 영역(실, room)이 가변적으로 정의
한다. 동시에 그 내부 사이에 스며든 외부의
된다. 6×6 주택에서 좀더 진화된 단계로 가구
정원들은 천정의 다공(Porosity)으로 인해 자
와 유틸리티뿐만 아니라 애완견을 위한 공간,
기만의 하늘을 갖게 된다.
수직적인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내,외부 공간의 시퀀스 변화를 이동하며
6×6 주택
경험하는 계단도 수납되어 있다. 9×9 실험주
나에게 있어 ‘최소의 집’은 작은 집만을 의미
은 6×6 주택에서는 다른 레벨의 입체적 수직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기능에서 출발하여 그
정원을 갖게 되어 투명한 유리에 의해 오픈된
기능과 더불어 건축 이후 거주자가 의외의 공
각 실의 프라이버시를 차폐하거나 동시에 테
간을 발견하여 스스로 영역(실, room)을 정
라스의 기능으로 다양한 조망의 시선을 갖는
의하거나 능동적 선택으로 공간을 가변적으
다. 외부 입면은 가변적인 개폐 방식의 벽체
로 활용할 수 있는, 사용자에게 맞는 ‘최소한
로 각기 다른 표정을 가지게 된다. 6×6 주택
의 건축’이 반영된 집을 의미한다.
은 마치 빛이 담긴 작은 온실과도 같다.
택에서 보인 내부 실과 실 사이의 외부 정원
와이드 EYE 2
프로그램 : 부부와 애완견 2마리 2014년 착공 예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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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INTERVIEW 가장 시급한 것?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 일!
전시가 열린 건물을 직접 설계한 것으로 안다. 전시 기획의 계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 2011년에 완공한 <체화의 풍경>(인사동, 돌실나이 건축물)의 작업을 통해 (주)돌 실나이의 건축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프로젝트 완성 이후에도 사무실이 서로 가 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서로 문화적 관심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자연스 럽게 나누게 되었다. 참고로 이 건축물은 완공 이후 국내에서는 2011년 <건축문화 >에 게재되었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다가 2012년에 <아키데일리>, <디자인붐>,
와이드 EYE 2
<JA+U> 등과 같은 해외 웹진을 통해 알려지면서 2013년에는 이탈리아 건축 매체 인 <AREA129>에 게재되었고 2013년 서울시 건축상을 받게 되면서 ‘돌실나이’라 는 브랜드와 건축물의 가치가 보다 더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다.
왜 의식주 관련 전시인가. 2011년 완공 이후 3층은 상설 매장으로, 4층은 다양한 행사를 담아내는 가변적 기 능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6월경 건축주로부터 본 건축물 3,4층의 새로 운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을 요청 받았다. 당시 제안했던 내용은, 인사동은 보편적으 로 회화, 공예, 조각과 같은 작품 전시를 위한 갤러리는 많은 데 비해 정작 우리 삶 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화적 장소가 부재 하므로 3,4층을 그것에 활용하자는 것이 요지였다. 또 의식주를 담는 전시 주체 역 시 특정 집단이나 예술가에게만 한정하지 말고 다양한 이들에게 참여 기회를 열어 놓자는 것, 그리고 대중과 다양한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 다. 이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주’를 맡게 되었는데, 집에 대한 생각을 전시라는 기능을 통해, 또 접근 용이한 인사동이란 장소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시도하는 좋 은 기회라 생각했다.
전시의 방향이 건축계 내부가 아니라 건축 바깥을 정조준하고 있다. 전시의 배경은 무엇인가. 당시 개인적으로도 ‘9×9 실험주택(2011년~2013년 6월 준공)’이란 프로젝트를 진 행하면서 “거주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고,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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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고 관습화되어 있는 거주 공간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번진 다양한 집짓기 열풍을 보면 어떤 특정 유형을 통해 집이 라는 것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고, 저렴하게 지어야만 마치 필요한 집을 소유 할 수 있다는 편향적 가치가 팽배해진 것 같다. 그러한 때에 조금은 뒤로 물러나 객 관적으로 현상들을 들여다 보니 결국 대중과 건축가 사이의 ‘집’에 대한 인식의 간 극을 우선적으로 좁혀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대한 다양한 공간의 유형과 집짓기 방식들을 담아내야 보다 더 본질적인 집이라는 가치를 공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삶을 담아낼 거주의 기능과 물리적 공간의 규모, 재료의 사용, 건 축가의 개입 등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정의를 ‘최소’라는 가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기서 ‘최소’라는 개념은 사전적 개념 외에도 다양한 가치를 논할 수 있는 다의적 의미를 가진다. 특정 일부 건축가들이 아닌, 이 시대의 정말 다양한 건축가
와이드 EYE 2
들이 참여하여 ‘최소의 집’을 정의해 보자는 것이 전시의 배경이 된 것 같다.
전시 작가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이미 최소라는 물리적 공간을 다루었던 건축가들을 찾게 됐다. 책을 통해 대중과 소 통을 해 온 임형남, 노은주의 <금산주택>과 젊은 나이에 홀로서기로 현재까지 묵 묵히 본인의 작업을 해 오고 있는 김희준의 <일월암 객실>(법정 스님을 위한 최소 의 거주), 70세 여류 화가의 최소의 거주 공간과 퍼니처 코리더로 사용자의 임의적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본인의 최근작 <9×9 실험주택>을 전시하게 되었다. 그 리고 본 전시의 주제인 ‘최소의 집’에 대한 각자의 정의와 정의에 따른 대안도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다. 참고로 나를 제외한 두 팀은 ‘퍼펙트 박스’와 ‘방’을 통해 물리 적 공간의 규모로 최소를 정의했고, 나는 사용자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공간을 정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건축’이 반영된 집으로 그것을 정의하였다. 릴레이 전시인 것으로 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앞으로 27명의 건축가가 참여하게 되며 동일한 주제인 ‘최소의 집’으로 장기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앞으로 동일한 장소에서 다양한 건축 포럼과 대중을 위한 건 축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인터뷰이 : 정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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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조선총독부(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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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도 같은 건축 사진전 시가 친숙해졌다. 이전에는 겨를이 없었거나 시인들의 삶 과 저들이 아파했던 시대를 적당히 비켜서 있었던 탓이었 다. 10.26과 5.18은 군에서, 6.29 전날은 영등포역 앞의 시 민 대열에 끼어 있었지만, 순간의 혼란 끝에 집으로 돌아 오고 말았다. 함께한 아내와 최루탄, 소시민적 염려가 그 리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1980년대 사진 현상소에서 건 축 사진을 접했다.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건물(구 중앙 청, 조선총독부 건물)을 몰래 찍었다. 그 시절의 서울 성공 회 성당 사진은 건축 사진가의 길에서 초석이 되었다. 잡지 사를 거친 후의 건축 사진전은 하나의 의식을 치루는 것과 같았다. 조선총독부(1987) 자연과 건축 내게 고향은 절반뿐이다. 가족이 모두 고향을 떠나온 후 더 이상 연고가 없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뿌리에 대한 집착이 컸다. 전통건축이 눈에 들어왔다. 인문적 소양,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녔다. 자료와 사물들에 이끌리어 박물관, 미술관을 기웃거렸다. 이 땅의 선배들은 어떤 심성으로 사물을 대했으며, 또는 빚어냈는지 알고 싶 소쇄원
었고 그 심성의 바닥을 들여다보면 사물의 연원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자연과 건축>은
Report
그렇게 작업됐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 풍토적 완결성을 가 진 한국건축은 땅에서 솟아나 자연의 모습을 닮았다. 오랜
76 와이드 REPORT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 city:hall
84 와이드 EYE 1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92 와이드 EYE 2
<최소의 집>전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세월 동안 사람들의 필요에 맞게 지었고 손에 닿는 재료를 사용했으니 우리의 몸과 같았으며, 눈으로 보기에도 좋았 을 것이다. 이 땅의 건축은 자연과 함께하며 공존하는 착한 건축이었다. 소쇄원 mute 백 년, 천 년의 주기가 동시에 바뀌는 행운을 우리도 맞이 했다. 지난 세기말은 차분하기보다 들뜬 분위기였다. 일각 에서 ‘천년의 문’을 세워야 한다고, 거대 규모의 기념물을 세우려 했지만 결국 사그라지고 말았다. 내게 낯설지 않았 던 산(달)동네, 그때까지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시골 읍내의 고만고만한 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은 아이들 의 놀이터였다. 어린 시절 자연을 벗 삼아 들로 냇가로 쏘 다니며 아무렇지도 않게 놀았지만, 그래도 고향은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원형이었을까? 서울의 산동네 는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내 마음의 동네였다. 어느 날 금호터널 위의 동네가 헐리는 것을 보았다. 자신들이 살 아왔던 집을 갈아엎고 새 집을 갖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었 을 것이다. 그 현장이 보고 싶었다. 작업 뮤트는 그렇게 시 작되었다. <mute>는 재개발을 둘러싼 무성한 이야기와
101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mute, 삼선동
신림6동
장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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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아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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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소극적이기보다
서울의 주거
는 역설적으로 묵음하기에 가깝다. 향후 서울에서부터 무
‘서울 주거 변화 100년’ 작업은 <mute 2: 봉인된 시간>
차별적으로 지정될 예정이었던 뉴타운, 재개발 열풍 전야
의 밑그림이었다. 한국에서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재개발
의 공기감에 대한 개인적 발언이었다. 삶의 장소성을 잃는
의 역사가 보여 주는 도시 환경은 삶의 기억을 지웠다. 사
것도 뼈아픈 상처일 수 있지만 뒤에서 추동하는 사회적 공
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도시 주변부화는 바람직하지 않
기감이 더 무섭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mute, 삼선동
다. 분리보다 함께하는 삶이어야 한다. 온전한 사회는 자 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사회이다.
the site
우리에게 주거권이 있다면 누구도 그것을 강제로 박탈할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조성이 불러오는 지가의 상승은 장
수는 없다. 최근 보도는 서울 창신·숭인 뉴타운지구 해
기적으로 사회적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의
제를 전해 왔다.
문이 건축의 바탕을 구성하는 그라운드, 곧 땅(대지)의 관
지금처럼 대규모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 주거를
심으로 이어졌다. <the site> 작업에 적합한 곳을 찾았다.
상품화하는 일이 계속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그곳은 남양만 일부를 막아 간척지로 조성하려는 공사 현
집을 짓지도 못하며 또 거주할 줄도 모르게 되지 않을는지.
장이었다. 해안가 입구를 군인이 지키던 곳이라 한적한 곳
“우리는 거주할 줄 알아야 집을 건축할 수 있으며, 집을 지
의 철조망으로 숨죽여 드나들었다. 개펄을 막아 산업 용지
어야 그 속에 거주할 수 있다.”(마틴 하이데거) 목적으로서
를 얻으려는 대규모 간척 사업지의 풍경은 도시와 크게 다
가 아닌 수단으로서의 건축이 주거를 잠식하여 그것에 익
르지 않았다. 쿤니사격장(매향리)이 가까운 곳에 있었고,
숙하고, 또 표면적 쾌적성에 빠져드는 현상은 그 위험성이
주중 5일 동안 매일같이 군용 비행기의 사격훈련이 반복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거의 상품화의 폐해, 주변의 도시
되었다. ‘화옹지구’는 그렇게 사격 소음에 휩싸이는 곳이
환경 또한 경도된 시각적 편향성을 띠고 보면 상대적인 인
었다. 군사적 파괴와 건설이 공존하는 그 상징성은 한국의
식과 감각의 회복이 절실하다. “이미지적 대량 생산품으로
도시 사회를 닮았다. 낙후된 도시 주거지를 일시에 갈아엎
전락한 시각적 편향성은 우리의 현실이다. 이미지 폭주의
는 일이 마치 개펄의 생명을 사소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
결과로, 우리 시대의 건축은 이제 단순히 망막에만 의존하
다. 그 자리에는 농토와 공장이 들어서겠지만 원래 그 곳에
는 예술처럼 보인다.” 현실과 가상의 착란 현상, 사적 건물
있던 사람(생명)들은 어디로 가야만 할까? 도시의 재개발
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공공 건물의 비틀린 모습은 시민을
에서 재정착이 불가능한 옛 주민과 새 주민이 마주칠 일은
위해 봉사하기보다 군림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므로
없다. 몇 년의 시간 차이와 소득의 차이가 피할 수 없는 현
절대 튀어서는 곤란하다. 시민들이 기쁘게 드나들 수 있도
실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상황은 더욱 대대적으로 변해 갔
록, 특히 관공서의 건물은 친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도
다. 2002년부터 실제의 삶을 담보해 거주자보다 소유자만
시 환경이 외양의 멋으로만 가득하면 은연중 시민들의 삶
을 위한 일방적인 정책의 ‘뉴타운사업’은 서울 대부분의 지
도 겉돌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소유하지 못해 불
역을 전쟁터로 고지했다. 오랜 세월 우리의 몸과 정신을 키
안해 하며 장식적, 과시적으로 기우는 한 요인이 되고도 남
우고 보듬었던 삶터를 한순간에 갈아엎는 일이 다반사가
을 것이다. 건축 도시적 측면에서 시민이 주체인 사회는 결
되었다. 누구는 그것이 뭐가 그리 소중하냐며 과거의 누추
코 과시적이고 억압적 풍경을 연출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한 삶이 그렇게 좋은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수많은 눈들의 바라봄과 그에 따른 실천이 뒤따를 것이기
삶들의 존재가 장소에 거주하고, 모든 장소는 우리들의 기
때문이다. 신림6동
억 속에 존재한다.’ 그 장소를 없애고 난 후의 허망함은 그 대로 집단적(사회적)인 외상(정신적)으로 남을 것이다. 새
아름다움보다 우선되는 것
로 들어서는 고층의 주거 단지도 낡게 되면 그때 법을 바
건축을 표상하는 이미지의 기여도는 사진이 즉각적이며
꿔 가며 또 재건축을 해야 하겠지만, 계속해서 사업성을 얻
절대적이다. 구조에서 자유로워진 건축의 표면은 유리로
으려면 점점 높이 세워야 할 것이다. 보편적 건축의 수명은
대체되며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다양한 표정을 띠었지
길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보이는
만 한편으로 소통의 부재를 가져왔다. 차갑고 엄격한 모습
것일 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그 구축적 욕망의 한계는
의 건물은 도시를 잠식하여 인공의 풍경(자연)을 연출한
어디까지일까. 주거의 상품화가 초래하게 될 딜레마이다.
다. 일견 쾌적해 보이는 그 단순성과 모던함은 너무도 포
아현2동 | 장덕리
토제닉하다. 이런 상황과 도시 곳곳의 낙후된 주거지 모습 은 대비가 심하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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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느 야심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며, “텅 빈 상징적 형 식에 대한 허황된 고집”(슬라보예 지젝)의 무모한 정책 은 시민들의 삶을 뿌리까지 흔드는 일의 요인이 될 것이 다. 태생적으로 조형적일 수밖에 없는 건축을 사진이 더 아름답게 보여 준다. 실제의 공감각적 체험은 생략되고 시각적 자극이 소비된다. 건축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은 적절하지 않다. 언제나 아름다움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필요성이다. 허망한 건축 이벤트에 천문학적 재화 를 들이고 그것을 사진으로 포장하는 일은 손쉬운 일이 다. “건축적 실재성은 근본적으로 주체를 공간으로 감싸 는 주변적인 시야에 의존한다”는 팔라스마의 말은 특히 건축 사진가의 경구가 되어야 한다. 한남동 | 삼일고가 한남동
도시의 흔적 도시 사회의 복잡함은 그대로 도시에 흔적을 남긴다. 처 음 옛 길을 따라서 집을 짓고, 또 그 ‘집은 길의 부분, 길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은 집의 연장’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역사를 세웠고 사랑을 배웠다. 과정으로서의 이 삶의 흔 적은 천대의 것이기보다 ‘애정’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 다. 우리의 시간은 많지 않다. 그 짧은 시간으로 당대에 삶의 공간을 변형시키는 일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앞 으로의 예언은 역사적 투시가 아닌 지리적 투시를 의미 하며 우리로부터 어떠한 결과를 은폐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존 버거) 일상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 의 특징, 거기에는 “양식이 사라지고 소유(자신의 존재) 가 사라진 그 자리는 강제가 만연한다”는 르페브르의 말 은 지금 우리 사회를 그대로 보여 준다. 일탈의 유익이 축제에 있다지만 지금까지처럼 일그러진 우리의 주거, 도시 환경처럼 그것이 형식에만 그치는 것도, 판타지와 스펙타클의 사회를 가속화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사회의 공기감은 누추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여 현실에 서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바로 시민들이 표출한 일상적 환경’에 있지 않은 가. 일상 사물에 대한 조르주 페렉의 집요한 묘사 “우리 가 살면서 너무 익숙해 보지 못하는 것,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진술”은 우리가 외면하 는 현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건축을 표 상, 소비하는 이미지(건축 사진)는 생물학적(도시적) 건 축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 을 것이다. 창신동
참고 문헌 『서울 이야기』, 정기용, 현실문화 『현대세계의 일상성』, 앙리 르페브르, 주류일념 『건축과 감각』, 유하니 팔라스마, 시공문화사 『스펙타클의 사회』, 기 드보르, 현실문화연구 『사람, 건축, 도시』, 정기용, 현실문화 『인생 사용법』, 조르쥬 페렉, 문학동네 『리듬분석』, 앙리 르페브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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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삼일고가
창신동 105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임형남+노은주(가온건축) 설계, 루치아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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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집이 사진작가의 마음에 들기를 바랐던 건축주 “안녕하세요, 사진작가 박영채입니다. 수요일 10시에 찾아 뵙겠습니다.” 건축가는 집주인으로부터 사진 촬영에 대한 약속을 받아 놓지만, 촬영 전 집주인에게 미리 연락하는 것은 집주인이 사진 촬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헤아려 보기 위해서 다.(어떨 땐 미리 전화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런 전화 를 할 때마다 마치 전화로 첫 데이트 약속을 정하는 것처 럼 늘 긴장이 되곤 한다. 혹시 약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 임형남+노은주(가온건축) 설계, 루치아의 뜰.
을까? 건축가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은 아닐 까?(건축가가 거절 당하는 경우도 있다) 등등, 꽤 많은 부 정적인 생각들이 그간의 경험에 의해 차곡차곡 쌓였다. 집 주인이 촬영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요인은 이렇다. 새 집에 이사해서 만족하며 며칠 살았는데 조금씩 집에 하 자가 발견될 때, 공사 기간 내내 미덥지 않았던 시공 회사 가 결국 커다란 하자를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혹은 설계 도면을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상 상했던 결과가 도면과 다를 때는 더욱 그렇다.(보통 사람 들이 설계 도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 튼 이런저런 이유로 사진 촬영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 각을 갖고 있는 집주인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할 때는 굉장 히 곤혹스럽다. “촬영은 새벽부터 저녁, 혹은 밤까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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됩니다. 그리고 채광에 따라서 거실은 물론 주방, 안방, 화 장실 등을 수시로 들락거려야 하고, 사진에 적합하지 않는
76 와이드 REPORT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 city:hall
84 와이드 EYE 1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92 와이드 EYE 2
<최소의 집>전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토마스 루프(Thomas Ruff)
가구와 그림들은 이리저리 옮기거나 치워야 합니다. 야경 촬영을 위해 집의 불이란 불은 모두 켜 주셔야 하고요. 그 것도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요. 참, 그리고 하루에 촬영을 다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 또다시 촬영을 해야 하니 협조 부탁 드립니다.”(특히 주택인 경우에 처음부터 촬영 기간 이 이삼일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기란 정말 어렵고 조 심스럽다.) “저희 집이 작가님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처음이다. 집주인의 이런 반응. 오히려 당황스럽다. 집이 사진작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니…. 지금까지 머릿속을 맴돌던 괜한 고민들이 이 한마디에 모 두 녹고 말았다. 공주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약속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의 낮은 담장 너머 집을 빼 곡히 둘러싸고 있는 대추나뭇잎 사이로 검은색 기와지붕 이 언뜻언뜻 하얗게 빛이 났다. 집에 마음을 빼앗긴 사진작가 이 집의 주인은 지인들과 종종 차를 나누어 마시며 마당 한 켠에 화초를 키우면서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택한 집이 이 집이라고 한다. 두 해 동안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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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없이 방치되어 잡초와 쓰레기로 가득차 있는 사십여 평의 대지에 열 평 남짓한 작고 허름한 한옥. 하지만 마음을 정 하는 데 방해될 것은 없었다. 집에서 홀로 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세월을 담아내고 있는 펌 프, 녹슬고 기울어진 파란 대문, 마당 한 켠의 텃밭, 이러한 것들이 집주인의 소망과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할머니가 시집올 때 들여놓은 자개장까지 모두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남편을 비롯한 주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흔적들은 임형남, 노은주 부부 건축가 의 손을 거쳐 오롯이 남게 되었다. 집은 새롭게 단장되고, 텃밭에 씨앗이 뿌려지고, 뜯어낸 마 루는 가구가 되었다. 그리고 자개장 문의 일부는 찻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50살 먹은 한옥은 그렇게 세월을 더해 갈 수 있었다. 집주인은 할머니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으나 같은 성당에 다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부 터는 그 인연과 흔적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진 작업을 해 오면서 아주 잘 지어진 한옥들과 여러 차례 만난 적은 있었지만, 한옥에 이만큼 마음을 뺏긴 적은 없었다. 그것도 전통 한옥의 양식을 갖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낯설고 어설픈 개량 한옥에 내 마음은 이미 깊이 빨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그 모습 그 대로 있었던 것 같은 집. 건축가의 손이 어디를 만지고 어 디를 내버려 뒀는지 가려낼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집. 집은 주인의 성품을 닮고, 사진은 집을 닮는다 때마침 적당한 햇살이었다.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차 한 잔 마시라고 권한다. 햇살을 보니 차 한 잔쯤 마셔도 괜찮겠다 싶어 마루를 거쳐 방으로 들어섰다. 동쪽에 위치한 마루를 지나면서 잠시 후가 촬영하기 딱 좋은 시간이라고 판단했 고, 서둘러 한 잔 마시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방에는 집주인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지인 네 분이 찻상을 차 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사진작가가 내려 온다고 대전에서 공주까지 일부러 오셨단다. 홍차와 녹차 를 대접해 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대접해 주는 마음은 감사 했지만, 지나는 해의 걸음을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노 릇. 일단 앉았다. 차 문화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봉지 커피처럼 후딱 마시고 일어설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 다. 더구나 이 분들은 차 모임의 차 전문가들. 머릿속이 점 점 복잡해져 갔다. 이 집은 집주인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차 모임을 하거나 잠시 쉬러 오는 집이 아닌가. 오늘 다 찍 지 못하면 집주인은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다음날 또 먼 길 을 와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짧아져만 가고 있을 툇마루의 빛과 대추나뭇잎 그림자가 마음을 조이고 팔을 잡아당기 고 있었다. 차 대접을 받으면서 마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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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남+노은주(가온건축) 설계, 루치아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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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임형남+노은주(가온건축) 설계, 루치아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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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임형남+노은주(가온건축) 설계, 루치아의 뜰. 110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럼 늦게 시작해서 편하게 끝내 보겠다는 나의 속셈을 이미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실내 사진이 주가 되는 집은 좀 늦게 시작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도면을 보며 치밀하게 계 산한 촬영 시작 시간은 열시였다.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기 마련이란 생각을 새삼스레 일깨워준 집주인이 한편으로는 고맙기까지 했다. 집은 주인의 성품을 닮고, 사진은 집을 꼭 닮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마음 편하게 내일을 기다 릴 수 있었다. 참 좋은 사진, 감성을 끌어안는 삶의 흔적처럼 좋은 사진이란 과연 어떤 사진을 두고 하는 말일까? 완벽 한 빛의 순간을 담아낸 사진? 그렇다. 그것 또한 좋은 사진 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좋은 사진일까? 항상 결 정적인 순간을 위해 해 뜨기 전부터 시간을 기다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좁고 추운 자동차 속에서 밤을 지샐 때도 있었고, 혹시라도 빛을 놓칠세라 밥을 제시간에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잠시라도 해와 건축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진은
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그만 일어나도 되겠다 싶어
부족한 잠을 보상해 주었고, 배고픔을 대신하고 남을 만큼
어려운 결정을 하려는데,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다는 아주
넉넉한 포만감을 주었다. 그런데 문득 <루치아의 뜰>을 촬
머니 세 분이 멀리 천안에서 오느라고 늦었다며 반갑게 인
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하며 들어왔다. 결심은 그렇게 간단하게 무심으로 변했
‘건축 사진 속에 내 삶의 궤적과 철학을 담을 수 있을까?
다. 사진 촬영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이런 경우는 어느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훈훈한 시
누구라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이 시간을 고마운(?) 분들
간과 아름다운 기억의 단편들이 사진 속에 녹아들 수 있을
과 즐기기로 결정하니 차 맛이 훨씬 좋아졌다.
까? 있다면 누군가 그것들을 콕 집어 읽어낼 수 있을까?’
장마가 채 가시지도 않은 팔월. 하늘 푸른 맑은 날이 그리
할머니의 삶의 흔적이 집주인과 건축가의 감성을 끌어안
많지 않은 시기에 귀중한 하루를 놓쳤다는 생각보다, 마음
았듯 내 사진이 누군가의 감성에 닿아 또 다른 무엇으로
에 드는 사진을 만들 때까지 촬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전달될 수 있다면, 그런 사진이야말로 ‘참 좋은 사진’이 아
는 집주인의 말에 내 입가엔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모처
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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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사진 더하기 건축 15
건축의 이미지 The Images of Architecture 나은중+유소래 본지 자문 위원 NAMELESS 공동 대표
사진 더하기 건축 15
토마스 루프 Thomas Ruff
Report
76 와이드 REPORT
Interieur 1B, 1980
Interieur 7C, 1981
Thomas Ruff, Interieur 1B, 1980
Thomas Ruff, Interieur 7C, 1981 [Siegen]
[Zell am Harmersbach]
Chromogenic color print, 27.5 x 20.5 cm
Chromogenic color print, 27.5 × 20.5 cm
Courtesy of Thomas Ruff
Courtesy of Thomas Ruff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 홀 city:hall
84 와이드 EYE 1
다시 고쳐 쓰임을 살린
‘선유도 이야기’관
Story of Seonyudo
92 와이드 EYE 2
<최소의 집>전
100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1
김재경
사진 더하기 건축은 베른트 앤 힐라 베셔(Bernard and Hilla Becher)를 시작으로 현대 사진가들과
사진과 건축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사진과 건축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연재의 마무리는 끊임
106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2
없는 실험을 바탕으로 사진의 현대성을 탐구하는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이다. 루프는 탁월한 개 념과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이 시대의 이미지를 탐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
박영채
루치아의 뜰과 만난 사진작가,
좋은 사진에 대해 생각하다
를 위해 그의 작업을 2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현대 사진가 중 가장 넓은 스팩트럼으
112 사진 더하기 건축 15
건축의 이미지(The Images of Architecture)
로 건축을 탐험하는 사진가로서의 루프의 작업을 살펴볼 것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 사진과 건축이 만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것이다. 두 번째는 루프가 그의 사진 행위 전반에 걸쳐 던지는 질문, ‘이 시대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통해 사진 더하기 건축 연재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토마스 루프는 1958년 독일 출생으로 1977년부터 뒤셀도르프 예술학교(Düsseldorf Art Academy) 에서 사진과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안드레아 거스키(Andreas Gursky), 칸디다 회퍼(Cand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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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Hofer),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등과 함께 이곳에서 베셔 부부(Bernard and Hilla Becher)에게 수학한 사진가 중 한명이다. 토마스 루프는 일정한 스타일이나 언어를 드러내기 보다는 사진의 한계를 넘나드는 개념적이며 미학적인 실험을 통해 이 시대 이미지의 본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루프는 아키이브 작업 틀 안에서 사진을 조작하는 행위는 물론 신문에서 스크랩한 사진,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익명의 사진들을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카메라 렌즈를 통 해 주관적으로 대상을 포착하는 것과 같은 선택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사진은 필연적으로 대상의 표면을 드러내는 허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 1939년 프랑스의 루이 자크 망
사진에 기록되었던 최초의 피사체가 건축물이었듯(주 1) 사진의 역사에서 건축은 주요한 대상이었다.
데 다게르에 의해 발명된 은판
이는 현대 사진에서 더욱 강화되어 건축 너머 공간과 도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다. 토마
위의 광학적 재현 방식, 다게레
스 루프 역시 건축을 자신의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였으며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이러한 관심이 잘
오 타입은 최초의 사진술로 기
드러난다. 1979년 재학 중 그는 브로셔에 들어갈 건축물 사진을 찍는 일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사진
억되고 있다. 하지만 최초의 사 진을 만든 이는 다게르가 아닌
에 대한 관심사를 건축과 공간에 접목했다. 첫 번째 연작 <인테리어, Interieurs, 1979-1983>에서
그의 파트너였던 조세프 니세
그는 학교 주변인 뒤셀도르프의 다양한 실내 공간과 가족이 있는 독일 남서부 블랙포레스트(black
포르 니에프스였다. 태양광으 로 찍은 그림이라는 의미의 헬
forest)의 친지의 집 내부 등을 세밀하게 사진으로 포착했다. 그는 실제 거주하는 장소의 가구 배치도
리오그래피의 발견을 통해 그는
손대지 않고 장소가 드러내는 진실성과 함께 현실에 대한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사실을
1926년 자신의 작업실 창가에 서 건축물들을 피사체로 “창가 로부터의 풍경 (View from the
포착하였다. 그 자신이 점유하거나 관계맺고 있는 실내 공간에 대한 기록을 통해, 한 시대의 전형적 인 삶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Window at Le Gras)”이라는 사진을 만들었고, 이것이 최초
인테리어 연작 이후 1981년부터 마치 증명사진과 같은 건조한 <인물사진, Portrats, 1981-1985>을 촬영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사진 행위의 아카이브 관점을 좀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가 기 시작한다. 이 아카이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뒤셀도르프 근처에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지 어진 동시대의 익명의 건물들, 즉 미적인 측면보다는 합리성에 근거한 평범한 건물들을 엄격하게 촬 영했다. 이렇게 시작된 <Hauser, 집, 1987-91> 연작에서 루프는 대상을 프레임 중앙에 배치시키고 수평, 수직을 강조하며,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철저하게 중립적인 건물 사진을 만들었다. 일부 사진
멘터리
사진 더하기 건축 15
의 사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들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사진의 구조를 방해하는 디테일들을 제거하여 시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 2. 그는 두 개의 사진에서 리터 치를 하였는데 그중 <House
였는데(주2) 이는 <Hauser, 집> 연작에서 루프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건물 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 려 건물에 결부된 시각적인 진부함(Cliché)이었기 때문이었다.
No.1>에서 다락방의 창문을 닫고, 나무와 교통 표지판을 지웠다고 한다.
거처 01
1990년 취리히 미술관(Kunsthalle Zurich)에서 토마스 루프의 사진을 접한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뮤 론(Herzog & de Meuron)은 1991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루프에게 자신들의 건물을 촬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토마스 루프가 건축이라는 대상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였다면 헤르조그
라보다
와 드뮤론은 건축물의 재현 방식과 현대 사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헤르조그는 건축물을 디자
거처 02
인하는 것과 건축물을 다시 이차원으로 재현하는 것이 유사한 사고의 과정을 거친다고 이야기한다. 헤르조그 드뮤론이 루프에게 건축물 촬영을 요청했을 때 건축가는 상업 사진 너머 그들의 건축을 해 석해 줄, 그리하여 다른 관점으로 건물을 재구축해 줄 사진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스위스 북부 라 우펜(Laufen)에 위치한 리콜라 창고 건물(Ricola Storage Building)의 사진을 의뢰했고, 이를 수락
chitecture)
한 루프는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건물을 자신이 직접 촬영하지 않았다. 루프는 이 사진 <Haus nr. 4II, Ricola Laufen> 작업을 위해 바젤의 지역 사진가를 고용해 정확한 지침을 전달해 사진을 찍게 3. Interview with Thomas Ruff by Theodora Vischer, Architecture of Herzog & de Meuron; Portraits by Thomas Ruff, Peter Blum Editions, New York, 1994, p 33.
한 후 그 결과물을 받아 컴퓨터로 몇 장의 이미지로 조합했다. 루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다. “나의 관심은 대상인 건물로부터 꺼낼 수 있는 이미지이지 건물을 올바르게 재현하는 것에는 관 심이 없다. 나는 그것을 고려하지도 않고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주3) 이러한 이 유로 직접 촬영하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으며 그가 선택한 방식은 건물을 하나의 이미 지로 완전한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완전하게’ 라는 단어는 다소 역설적인데 실체로서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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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더하기 건축 15
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Haus Nr. 4II (Ricola Laufen), 1991 Thomas Ruff, Haus Nr. 4II (Ricola Laufen), 1991 Chromogenic color print, 153 × 295 cm Courtesy of Thomas R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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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Haus Nr. 6I, 1989 Thomas Ruff, Haus Nr. 6I, 1989 Chromogenic color print, 183 × 274 cm Courtesy of Thomas Ruff
사진 더하기 건축 15 Bibliothek, Eberswalde, 1999 Thomas Ruff, Bibliothek, Eberswalde (Library, Eberswalde) 1999 Chromogenic color print, 188 × 239 cm / 130 × 162 cm Courtesy of Thomas R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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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전함이라기보다는 사진을 통한 작가의 선별적인 해석 혹은 실체가 아닌 표면을 드러내는 이미지로서 의 완벽함을 뜻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작업 이후에도 토마스 루프와 헤르조그 드뮤론은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간다. 1994 년 그들은 뉴욕의 피터 블럼 갤러리(Peter Blum Gallery)에서 협업 전시를 열게 되는데 이를 위해 루 프는 헤르조그 드뮤론이 이전에 설계한 건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했다. 일반적인 스테레오타 입의 건물 사진 <SUVA, Basel, 1993>과 함께 우거진 수풀로 인해 사진 작업이 어려운 건물은 대신 건축 모형을 촬영하기도 했으며 <Modell Hebelstrasse, Basel, 1994>, 또한 <Sammlung Goetz, Munchen, 1994>에서는 디지털 작업을 통해 전면의 방해되는 요소를 수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바 젤의 철로변에 위치한 Signal Box 건물의 경우 낮과 밤의 두가지 다른 장면을 포착했는데 밤에 찍은 장면에서 루프는 어둠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야간 감시 장비(electronic night vision device)를 사 용해 초록빛의 기이한 현실이자 마치 전쟁터에 서 있는 건물을 연상시키는 야간 사진 <Nacht 15II, Stellwerk Basel, 1994>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으로 루프는 건물의 본질이 아닌 이미 지를 통한 재현 방식과 그 과정을 실험하였다. 1994년 같은 해에 이 사진가와 건축가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다. 건물을 재현하는 도구로서의 사진 을 넘어 건물이라는 실체를 사진을 통해 만드는 일이었다. 1999년에 완공된 에베르스발데 기술학교 도서관(Eberswalde Technical School Library)이 그 주인공이다. 도서관 건물은 토마스 루프의 사
사진 더하기 건축 15
진 연작 <신문사진, Newspaper Photographs, 1990-1991>이 건축의 주요 개념으로 건물의 입면을 형성하고 있다. 건축가는 정제된 박스 형태의 언어로 도서관을 계획했다. 그리고 외벽을 구성하고 있 는 유리와 콘크리트 패널에 토마스 루프의 사진을 실크스크린과 콘크리트 지연제를 사용한 음각 방 식으로 새겨 넣었다. 건물에 새겨진 <신문사진>의 이미지들은 토마스 루프가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닌 1981년부터 그가 신문에서 아카이브한 2500여 장의 사진 중 일부이다. 루프는 베를린 근교에 위치 한 도서관의 장소성과 함께 지식의 저장소인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에 적합한 사진들을 그의 <신문 사진> 아카이브에서 선택했다. 선별된 사진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역사, 기술 그리고 자연 등 컨텍스트를 드러내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이미지들이었다. 루프는 건물에 새겨진 신문사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공의 장소인 도서관은… 지식이 수집되고, 저장되고 공유되는 장소 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사람들의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인식의 정도를 확장시키게 될 것이다.” (주 이 사진들은 건물의 입면에서 수평 방향의 띠처럼 연속되며, 수직적으로는 12개의 다른 이미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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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어 건물 자체가 시대와 장소를 드러내는 몽타주가 되었다. 외부에서 인지되는 아카이브로서의 도서관 입면과 함께 실내에서 인지되는 투과된 이미지의 잔상은 내외부를 관통하는 공간의 영상적 개념으로 건물 전체를 아우른다. 더 나아가 이차원의 사진이 삼차원의 건축을 형성하는 주요 재료로 사용되는데 그치지 않고, 토마스 루프는 완공된 건물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하고 또 다른 인물 사진을 합성함으로써 하나의 이미지<Bibliothek, Eberswalde, 1999>를 완성한다. 신문사진이라는 대량복 제된 이미지가 삼차원의 실체로 구축되고 그 결과물인 건축물이 다시 한장의 이미지로 변환됨을 통 해 토마스 루프는 사진이 가진 실제와 허구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을 눈여겨 보던 독일 크레펠트 미술관(Kunstmuseum Krefeld)의 큐레이터 줄리안 헤 이넌(Julian Heynen)은 1998년 토마스 루프에게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1927-1930년대에 완공된 주택들을 촬영해 줄 것을 요청한다. 미스가 1929년 설계한 건물 인 주택 ‘하우스 랑에, 하우스 에스터(Haus Lange and Haus Esters)’를 기획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던 크레펠트 미술관이 보수 공사 후 재개관 기념 전시로 미술관 건물 자체를 주제로 삼았던 것이 었다. 토마스 루프는 이러한 건물들을 사진의 피사체로 고려해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이 건물들이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워 또 다른 개념이나 흥미로운 사진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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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mas Ruff, in ‘Projektbeschreibung fur die Fassadengestal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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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건축의 아이콘을 다루는 이 어려운 작업을 수락하고 미스가 설계한 건 물과 옛 기록 사진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료실에서 제공받은 원형의 사진들을 활용하여 건 축물이 지어졌을 당시의 이미지를 복원하고 동시에 현재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였다. 최종 결과물은 자신의 사진과 자료 사진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완성되어 전시되었다. 또한 이 전시 기간 중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회고전을 준비하던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건축,디자인 큐레이터 테렌스 라일리 (Terence Riley)는 그 당시 남아있는 미스의 건물을 사진 작업을 해줄것을 루프에게 의뢰한다. 이렇 게 완성된 미스의 건축물 사진 연작이 <l.m.v.d.r, 1999-2001>이다. 여기에서 루프가 사진 연작의 제목을 만드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 Ludwig Mies van der Rohe의 이니셜을 사용해 문자들 사이의 점을 찍어 만든 제목<l.m.v.d.r>은 자신이 촬영한 사진과 자료 사진을 조합하는 과정
사진 더하기 건축 15
d.p.b. 02, 1999 Thomas Ruff, d.p.b. 02, 1999
Chromogenic color print, 185 × 285 cm / 130 × 195 cm Courtesy of Thomas Ruff
d.p.b. 08, 2000 Thomas Ruff, d.p.b. 08, 2000
Chromogenic color print, 130 × 180 cm / 95 × 130 cm Courtesy of Thomas R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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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6 | Wide AR no.36
사진 더하기 건축 15
m.d.p.n 30, 2002 Thomas Ruff, m.d.p.n 30, 2002 Chromogenic color print, 130 x 171 cm / 94 x 123 cm Courtesy of Thomas Ruff
m.d.p.n 08, 2002 Thomas Ruff, m.d.p.n 08, 2002 Chromogenic color print, 186 x 276 cm / 130 x 190 cm Courtesy of Thomas R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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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으로 사진을 완성했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자료를 이용하여 디지털 방식으로 재처리를 하 는 과정은 정적인 건축 사진에 있어 교묘한 속임수라기보다는 원래의 시공간을 임의로 잘라내어 새 롭게 재맥락화할 수 있는 이미지의 속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l.m.v.d.r> 연작 중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의 사진 <d.p.b.02>와 <d.p.b.08> 에서 작가는 색상, 채도, 명도 조정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건물과 풍경을 만든다. 또한 이미지의 픽셀 을 수평적으로 조정하여 정확한 윤곽조차 알기 힘든 모호한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디테일이 사라지 고 흐려진 건물의 파사드를 통해 오히려 수평적인 선이 강조되어 시간과 공간을 부유하며 가로지르 는 미스의 강한 흔적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건축의 아이콘을 뒤트는 행위를 통해 오히려 건물이 가 지는 개념과 건축가의 독창성을 부각시키며 더 이상 어떠한 해석도 힘들 것 같은 거장의 건축물을 그 만의 독자적인 이미지로 재창조해 냈다. 루프는 이 도전을 통해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개념을 역설적으로 포착하는 동시에 사진가로서 자신의 현대적인 흔적을 공고히 하게 된다. 2002년에서 2003년까지 작업한 <m.d.p.n>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잘 드러난다. <m.d.p.n>은 1929 년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기 꼬센자(Luigi Cosenza)에 의해 지어진 나폴리 수산시장(Fish Market in Naples)을 이미지화한 작업이다. 거대한 볼트 지붕에 유리 블록이 끼워져 있는 나폴리 수산시장은 지어질 당시 진보적이며 합리적인 건축 선언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손상되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버려진 건물로 남아 지역 사회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토마스 루프는 자신이 찍은 오늘날의 황폐화된 나폴리 수산시장의 사진과 지어졌을 당시 번성했던 원형의 사진 자 인 맥락부터 시장 안의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사용되는 장비들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이 연작은 과거 와 현재를 하나의 이미지에서 교차시키며 폐기된 장소에 새로운 기운을 덧입혔다. 그의 사진은 도시 에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축과 공간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토마스 루프는 건축과 공간이라는 대상을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 해체하고 통합시킨다. 그는 건축이
사진 더하기 건축 15
료를 디지털 작업을 통해 합성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진을 제작하였다. 나폴리 수산시장의 도시적
라는 실체 그리고 이와 결부된 구조적 견고함을, 사진이 갖는 탈시간성과 허구성 바탕으로 흐트러트 린다. 그리고 이미지라는 도구를 통해 실제와는 다른, 아니 때로는 실제 장소를 만들어 낸다. 자크 헤 르조그(Jacques Herzog)가 언급했듯이 건축물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일은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일 과 닮아 있다. 닮아 있지만 역방향으로의 구축을 하는 사진과 건축이라는 두 분야가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또 다른 장소를 만들어 낼른지 그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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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미디어랩은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꿈을, 건축하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주자는 목표 아래,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진정성(authenticity)”에 시선을 맞추고 건축 기반 미디어 기업 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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