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39,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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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e-haenglim.com 주 /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HAENGLIM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Report

2014.05-06 이슈 Issue

포커스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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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건축 DDP

COLUMN

조형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일상의 건축 | 박준호 25 이종건의 COMPASS 36

50 DDP와 서울의 희망? | 이종관 비정형건축의 실존적 비정당성

윤리적 건축 29 전진삼의 PARA-DOXA 08

54 DDP의 건설 IT 기술의 가치 | 김선우

심원건축학술상 새 운영방안 공표

57

: 대한민국 건축학 최고 권위의 학술상을 향한 행보

신경 미학의 DDP 산책 | 조윤설+조택연+황영지

33

63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발표

DDP 예찬? | 박영우

The 6th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이연경 作

리포트 REPORT

34 심사평 1 | 안창모

김중업 박물관

36 심사평 2 | 배형민

70

38

건축, 역사와 문화의 지층 위에 다시 서다 | 이보경

심사평 3 | 전봉희 78 41

김중업관에서 다시 보는 김중업 건축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요약문 79 48 수상 소감 | 이연경

인터뷰 | 리노베이션 담당한 제이유 건축 박제유 소장


작업 WORK 이 시대 건축가의 초상 2 행동하는 건축가 이종호 Yi Jongho 82 BIOGRAPPHY 84 마지막 건축 작업 그리고 남겨진 과제 | 우의정 91 감자꽃스튜디오와 기획가로서의 이종호 | 이선철

몸 밖으로 나가자 한창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던 건설 호황기인 1980년대에 중동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꽉 짜 인 정규 근무 시간이었다. 일주일 내내 땡볕 아래에서의 공사 현장은 심신을 쉬이 지 치게 했다. 지혜가 필요했다. 둘러보니 피로를 푸는 방식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밑진 잠을 보충하느라 휴일 내내 식음

98

을 전폐하고 숙소에서 나오지 않는 부류와 주말이면 영락없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 사이에서 | 이종우

이 피곤하고 지친 몸을 둘둘 말아 바닷가로 내달려 캠핑을 하고는 휴일 점심때쯤 숙소로 돌아오는 부류가 있었다.

102

처음엔, 노동의 피로를 풀려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 이들은

인터뷰: GSUA에서의 작업 | 김태형+김성우

그러려니 했지만 피곤하다면서도 야밤에 한 시간 여 거리를

도시를 읽고, 논하고, 실천한 삶

차를 몰고 바닷가로 달려가 다음 날 돌아오는 사람들이 이

108 이종호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들 | 장용순

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날 아침, 종일 잠으로 피로를 푼 이들보다 밤새 바닷가에서 지낸 사 람들이 보다 더 생기발랄하였다. 의아했다. 궁금증을 풀 겸 하루는 그들을 따라나섰다. 밤새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Strong Architect +Young Architect 01

낚싯대를 걸어놓고, 마련해 간 음식을 먹으며 고국에서 보 내온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유행하는 노래를 듣고, 기타 치 며 노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신선한 바닷바람과 쏟아지 는 별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머나 먼 타국에서 심신이 지치고 향수병까지 돋아 힘든 시절이었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Strong Architect 01

음에 우리 근로자들이 몸으로 익힌 힐링의 지혜가 묻어나는

최동규

현장이 그곳에 있었다. 그 뒤로 나 또한 가능하면 밤바다에

110 공간의 유희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Young Architect 01 SoA 강예린, 이치훈 114 건축 외연의 탐색

서 주말을 보냈다. 푸근한 잠자리보다 자연의 풍광과 동료 와의 나눔이 피로 회복에 훨씬 효과적이었다. 계속되는 불황에다 우울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현실을 의연하게 살아내야 한다면 우리 스스로 건강한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 어떨까. 사람을 만나 생각을 나누는 것은 어떨 까. 온통 음울한 마음으로 위축되지 말고 또 다시 힘을 얻으 러 자연과 사람을 만나러 나가자. 몸 밖으로 나가자. 글 | 임근배(간향클럽 대표 고문, 그림건축 대표)

3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발표 The 6th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수상작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수상자 이연경(36, 연세대 학사지도교수) 시상식 및 수상자 초청 강연회 일정 일시 2014년 6월 27일(금) 오후 5시 장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 소강당 《심원문화사업회》는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후원회로서 지난 2008년 건축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 야의 전도유망한 신진학자 및 예비 저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심원건축학술상》을 제정하여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심원건축학술상》 응모 범주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 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 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수상작을 선정하며, 수상작에 대하여 1천만 원의 고료를 부상으로 지급합니다. 7차년도(2014~2015년)를 맞이하여 응모작의 범주를 미 발표작 포함 발표작으로까지 확대합니다.(*본문 기사, 제7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요강 참조)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단행본 출판 지원 지난 6년 간의 시행을 통해 1회, 2회, 4회, 6회 등 네 번에 걸쳐 수상작을 선정한 바 있으며, 현재 제1회 수 상작 「벽전」(박성형 지음, 2010), 제2회 수상작 「소통의 도시」(서정일 지음, 2011), 제4회 수상작 「도리 구 조와 서까래 구조」(이강민 지음, 2013)를 단행본으로 발간하였고, 금회 수상작은 2015년 6월 출간을 예정 하고 있습니다.

주최 심원문화사업회 주관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 기획 《와이드AR》·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후원 (주)엠에스오토텍 문의 070-7715-1960


《간향 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우리는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진정성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authenticity)”에 시선을 맞추고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꿈을,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파티》 《ICON디너》,

건축하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전하자는 목표 아래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향해

신예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나아가고자 합니다.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와이드AR 아키버스투어》 색깔 있는 건축도서 출판 《BOOKS 간향》 건축인을 위한 《와이드AR 건축유리조형워크숍》 건축의 인문 사회적 토양을 일구는 《와이드AR 아카데미하우스》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공부하는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인천 어린이·청소년 건축학교 《School of the Archi-Bus(AB스쿨)》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간향 커뮤니티 Ganyang Community》

[와이드AR 발행단 publisher partners]

[고문단 advisory group]

발행위원 박민철, 박유진, 오섬훈, 최원영, 황순우

명예고문 곽재환, 김정동, 박길룡, 우경국, 이상해, 임창복, 최동규

대표 전진삼

대표고문 임근배

[와이드AR 편집실 editorial board]

고문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박철수, 이일훈, 이종건, 이충기

편집장 정귀원

[후원사 patrons]

편집위원 남수현, 박정현

대표 김연흥, 박달영, 승효상, 이백화, 이태규, 장윤규, 차영민, 최욱

사진편집위원 김재경, 박영채

[협력 자문단 project partners]

전속사진가 남궁선, 진효숙

《ABCD파티》 박인수, 장정제

디자인 노희영, banhana project

《ACC클럽》 공철, 나은중, 김기중, 김동원, 김석곤, 김종수, 김태만,

[와이드AR 유통관리대행 distribution agency]

박성형, 박준호, 신창훈, 안용대, 오동희, 이중용, 임형남, 정수진,

서점 심상호, (주)호평BSA

조경연, 조남호, 최창섭

직판 박상영, 삼우문화사

《ICON디너》 권형표, 김정숙, 손도문, 손장원

[단행본 디자인 및 유통협력 book design & distribution partners]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강병국

디자인 심현일, 디자인 현

《School of the Archi-Bus(AB스쿨)》 곽동화, 오장연, 이승지, 황순우

판매대행 박종호, 시공문화사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조용귀

[제작협력 production partners]

《심원건축학술상》 신정환

코디네이터 김기현, spacetime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김영철, 함성호

인쇄, 출력 및 제본 강영숙, 서울문화인쇄(주)

《와이드AR 건축유리조형워크숍》 손승희

종이 홍성욱, 대림지업사

《와이드AR 아카데미하우스》 김정후, 김종헌, 김태일, 임지택, 전유창, 조택연, 최상기, 최춘웅 《와이드AR 아키버스투어》 김인현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구본준, 안철흥, 이정범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기장클럽》 이지선, 이상민, 정지혜, 박지일 [홍보 파트너 public relations partner] 《마실》 김명규, 공을채


(주)제효에서 지은 집 건축가 상상 속의 건물을 구현하다 | www.jehyo.com

신광기획 | 주.예공아트스페이스건축 _우경국 | 사진 문정식


(주)건축사사무소 바인 www.vinenet.kr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15-12 송도 코오롱 더 프라우 102동 213호



Manrihyun Ho


Prebysterian College and Theological Seminary

Mosegol Renew Valley Manrihyun Holiness Church

Hansomang Church

Seoinn Design Group (주)서인종합건축사사무소 http://www.seoinndesign.com TEL . 02) 532-1861 FAX . 02) 536-8425 The Sarang Community Church

Hansomang Church Shinchon Church

Jesus-Hope Church

Seamoonan Church




제5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본지는 2010년 이래 꾸밈건축평론상과 공간건축평론신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건축평단의 재구축은 물론 건축과 사회와 여타 장르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건축비평의 가치를 공유하는 젊은 시각의 출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새 얼굴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주최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당선작 발표]

주관

와이드AR

2015년 1월 중 개별통보 및

후원

건축평론동우회

《와이드AR》 2015년 1/2월호 지면 및 2015년 1월 초 네이버카페

공모요강

《와이드AR》 게시판에 발표

[시상내역] 당선작 1인

[심사위원]

기타(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당선작 외에도 가작을

수상작 발표와 함께 공지 예정

선정할 수 있음) [시상식] [수상작 예우]

2015년 3월(예정)

당선작 상장과 고료(100만원) 및 부상 가작

상장과 부상

공통사항

[응모작 접수처] widear@naver.com

1) 《와이드AR》 필자로 우대하여, 집필 기회 제공 2) ‘건축평론동우회’의 회원 자격 부여

[기타 문의] 대표전화: 070-7715-1960

[응모편수] 다음의 ‘주평론’과 ‘단평론’을 동시에 제출하여야 함.

[응모요령]

주평론과 단평론의 내용은 아래 ‘응모요령’을 반드시

1. 모든 응모작은 응모자 개인의 순수 창작물이어야

확인하고 제출바람

함. 기존 인쇄매체(잡지, 단행본 기타)에 발표된 원

1) 주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매 이상~70매 사이 분

고도 응모 가능함.(단, 본 건축비평상의 취지에 맞

량으로, A4용지 출력 시 참고도판 등 이미지 포함하여 7매~10매 사이 분량) 2) 단평론 2편(상기 기준 적용한 20매 내외 분량으로,

게 조정하여 응모 바람) 2. ‘주평론’의 내용은 작품론, 작가론을 위주로 다루어 야함

A4용지 출력 시 3매 분량)

3. ‘단평론’의 내용은 건축과 도시의 전 영역에서 일어

[응모자격]

4. 응모 시 이메일 제목 란에 “제5회 와이드AR 건축

나는 시의성 있는 문화현상을 다루어야 함 내외국인, 학력, 성별, 연령 등 제한 없음

비평상 응모작”임을 표기할 것 5. 원고는 파일로 첨부하길 바라며 원고 말미에 성명,

[사용언어]

주소, 전화번호를 적을 것

1) 한글 사용 원칙

6. 원고 본문의 폰트 크기는 10폰트 사용 권장

2) 내용 중 개념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괄호( )

7. 이메일 접수만 받음

안에 한자 혹은 원어를 표기하기 바람

8. 응모작의 접수여부는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 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음

[응모마감일] 2014년 11월 30일(일) 자정(기한 내 수시 접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약칭, 땅집사향) 올해로 9년차를 맞이한 땅집사향은 향후 2년여에 걸쳐 우리 건축의 선후배 건축가들을 가로지르는 기획을 가지고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로 그분들이 관심하는 건축의 주제를 듣고 묻는 시간으로 꾸립니다

5월(제 89차)과 6월(제 90차)의 이야기손님과 주제의 방향 홀수 달은 선배 건축가들이 ‘Strong Architect’의 이름으로 초대되며 짝수 달은 후배 건축가들이 ‘Young Architect’의 이름으로 초대됩니다. [땅집사향_소개의 글] 땅집사향은 2006년 10월 이래 매월 한차례, 세 번째 주 수요일 저녁에 개최되어 왔습니다. > 1차년도(2006~2007)

12회에 걸쳐 국내의 건축책의 저자들을,

> 2차년도(2007~2008) 6회에 걸쳐 국내의 건축, 디자인, 미술 전문지 편집장 및 일간지 문 화부 데스크들을,

2014년 5월 제 89 차 Strong Architect 02 이야기손님 방철린(칸건축그룹 대표)

> 3차년도(2008~2009)

일시

5월 14일(수) 7:30pm

20회에 걸쳐 30대 중반~40대 초반에 걸친, 국내의 젊은 건축가들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주제

건축-虛 찾기

을 초청하여, 그들의 건축세계를 이해하는 시간 <나의 건축, 나의 세 계>로 갖은 바 있습니다. > 4차년도(2010)

12회에 걸쳐, 3차년도의 연장선상에서

40대~50대의 중견건축가들을 초대하여

‘시즌 2: POwer ARchitect_내 건축의 주제’를 기획한 바 있습니다.

> 5차년도(2011~2012)

24회에 걸쳐 <건축가 초청강의 ‘시즌 3’>로 기획하여

차세대 건축을 리드할 젊은 건축가들을 초대,

그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축의 주제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듣고 물었습니다. > 6차년도(2013~2014) 전반기 6회에 걸쳐 ‘건축기획’에 초점을 맞춘 6회의 강좌를

내로라하는 건축사진가를 초청하여

2014년 6월 제 90 차 Young Architect 02

‘이미지 건축의 거처’ 주제로 건축 사진의 세계를 접했습니다.

이야기손님 김성우, 정우석

진행하여 이 분야의 연구자, 활동가, 행정가의 현장 이야기를 들었 습니다. 후반기 6회에 걸쳐 <건축사진가열전>(시즌1)로 국내의

[행사 당일 시간표]

(건축사무소 공장空場 공동대표)

7:30pm-9:30pm 발표 및 질의응답

일시

6월 18일(수) 7:30pm

9:30pm-10:30pm 뒷풀이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주제

공간과 장소

[참가 신청방법]

사전 예약제(네이버 카페 <와이드AR> 게시글에 신청)

|주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약칭, 와이드AR) [참가비]

5천원(현장 접수, 사전 예약자에 한함.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등록할 경우: 1만원)

|주최: 그림건축,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 (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건축비평 총서> 제1탄 건축 없는 국가 이종건 비평집

이종건의 말·말·말 1장. 건축과 국가, 그리고 존재 여기서 내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 타자를 적극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 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은 그 때 비로소 희미하나마 새벽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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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건축 사회는 오랫동안 아키텍처의 세계를 접했고, 그래서 비스듬하게 그 언어를 체득하고 구사해왔다. 그런데 우리 건축 사회가 알고 구사하고 있다고 믿는 그 언어는, 토마스 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이/훼손”된 언어다. 3장. 건축 없는 국가 김효만의 건축은 극히 비현실적인 공간을 상상하도록 하는 공간, 혹은 그러한 공간적 감성마저 현실적인 토대에서 구축된다. 이것이야말로 서구 자본주의에 점령된 우리 사회에서 작업하는 우리가 따르고 지켜야 할 귀중한 덕목이 아닌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가 싶다.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4장. 국가 없는 건축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조민석은 문화 전쟁에서 벗어나 있다기보다 다른 형식의 문화 전쟁을 치르고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배제된 모종의 무엇에 목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으로 분할된 감각 혹은 감성을 재분배시키기 를 요구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를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이종건 비평집

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경기대학교 교수. 저서로 『건축의 존재와 의미』, 『

를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오늘

저자 이종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인식과 지식이 분명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오늘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인식과 지식이 분명

건축 없는 국가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텅 빈 충만』 등이 있고, 역서로 『기능과 형태』, 『추상과 감통』, 『차이들: 현대 건축의 지형들』,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 『건축과 철학: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바바』 등이 있고, 작품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초대작가 전에 출품한 <삼가>가 있다.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임기택의 <현대철학과 건축이론 시리즈> 임기택 지음, 스페이스타임 최근 <현대건축과 건축이론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임기

억지로 끼워 넣는 폭력성’은 “헤겔의 ‘변증법적 과정’과는

택은 “철학의 가치는 인간의 삶을 바라보면서 보존과 향

아무런 관련도 없다.”(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

상을 위한 제반 일체의 대응들 자체에 대한 총체적이고

상』, p.249) 무엇보다 들뢰즈나 지젝이 하나의 사상에 대

이성적인 비판과 반성에 그 의의가 있는 것”(1권, 『이성의

해 비판과 반비판을 가하는 일은 자신의 철학을 선명하게

명암과 건축이론』, p.16)이라고 말한다. ‘비판과 반성’이

하기 위함일 뿐, 결코 그 자체로 굳어진 진리가 될 순 없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세태임을 목도하는 지금이기에, 이

는 것이다. 이를 잘못 오해하게 되면 철학을 공부하는 것

말은 곧 여전히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임기택의 <현

이 이른바 진영논리에 귀속되는 일이 되어버린다. 결코

대건축과 건축이론 시리즈>는 2007년 여름 철학아카데

누구의 편에 설 필요도 없으며 그것이 철학의 길이 아님

미에서 열린 대중 강좌를 기반으로 나왔다. 철학과 건축

은 명확하다. 문제는 철학에 대한 쉬운 설명을 빌미로 이

이론의 상관관계에 대한 대중적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에

책이 취하는 대립구도야말로 폭력적인 변증법적 도식이

서 나왔다는 점이 참신하다. 아울러 “근대 이후의 철학적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철학과 건축이론을 수평적

논의와 건축이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

으로 다루며 건축의 사유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 더 낫지

이 어떻게 사고되고 건축에서 공간과 표현으로 구축되는

않을까?

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1권, p.21)이 중요하다고 한다. 전체 8권의 기획으로, 1권 이성의 명암과 건축이론, 2권

그럼에도 아직 전체 8권의 책이 완결되지 않았다는 점에

현상학, 3권 구조주의, 4권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나왔다.

서 이 책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간직한 잠재성의 차원

특히 짧은 책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여러 철학자에 대한

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건축은 깊은 사색과 오랜 독

개관과 건축 이론에 대한 개관이 돋보인다. 또한 이에 어

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고상한 철학과 사유의 힘으

울리는 건축적 사례를 제시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좋은 읽

로 지어지는 것도 아니다. 새벽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

을거리를 제공한다. 난해한 철학도 건축이라는 구체적인

서 부대껴가며 밤샘과 야근에 찌든 이들이 행하는 건축이

사례와 함께 설명할 때에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당사자가 바로 자본주의라면 이 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그 위기를 더욱 급진적으로 가속

다만 대중에게 쉽게 철학을 설명하려는 의욕 때문에 철학

화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건

사를 지나치게 도식화하여 대립적으로 서술해 버리는 모

축의 철학이 새벽의 비좁은 버스 칸을 가르고, 짧은 점심

습이 아쉽다. 특히나 변증법에 대한 비판은 책 전반에 걸

시간을 갈라 스마트폰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때 가능

쳐 있다. 들뢰즈가 말하듯, 변증법의 대립구도는 결국 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의 기획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체의 자기 동일성으로 귀결되고, 차이를 말살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있음을 우린 알고 있다. 지젝에 따르면, 임기택이 얘기하는 ‘정, 반, 합의 요소로

글 | 이경창(명지대학교 박사, 자유기고가)


NES Ⓦ 건축영화스터디클럽

주최: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주관: 와이드AR 후원: NES코리아(주)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시즌3>, 6월 14차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정을 꼭 확인 바랍니다.

◇ 장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9-13 NES사옥 3층, NES 영화사랑방

◆ 1 4th: 6월 3일(화) 7:00pm 상영작: 오브젝티파이드(Objectified)

◇ 강사: 강병국(본지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게리 허스트윗 감독, 2009

◇ 참석대상: 고정 게스트 20인 및 본지 독자와 후원회원 중

개관: 일상의 디자인에 관한 영화

사전 예약자 포함 총 30인 이내로 제한함

◆ 15th: 8월 12일(화) 7:00pm ● 사전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예약접수 *참가비 없음

상영작: 비주얼 어쿠스틱스(Visual Acoustics) 에릭 브릭커, 2008 개관: 세계적인 건축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먼에 관한 다큐 멘터리

◇ 주요 프로그램

(*본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 16th: 10월 7일(화) 7:00pm 상영작: 푸르이트 아이고(Pruit-Igoe)

◆ 12th: 2월 10일(월) 7:00pm 상영작: 마천루(Fountainhead) 킹 비더 감독, 1949

차드 프리드리히 감독, 2011 개관: 근대건축의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건축 다큐멘터리

개관: 건축영화의 영원한 고전!!

◆ 17th: 12월 2일(화) 7:00pm ◆ 13th: 4월 7일(월) 7:00pm

상영작: 홀리루드 파일(The Holyrood File)

상영작: 레이크 하우스(Lake House)

스튜어트 그릭 감독, 2005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 감독, 2006

개관: 스페인 건축가 Enric Miralles의 작품 스코틀랜드 의

개관: 전형적인 헐리웃 건축가 영화

사당 건축에 얽힌 정치적 마찰과 스캔들을 다룬 영화


에디토리얼

오늘, 공감 능력자가 그립다 첫 번째 이야기

송종열)” 등의 주장에서 볼 수 있는 비판적 입장과는 다소

지난 3월 21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가 문을

결이 다르다. 조형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

열었다. 추진한지 7년, 착공한지 5년만이다. 말도 많고 탈

되기도 하거니와 현재의 흉물이 미래의 랜드마크가 되는

도 많았던 만큼 전문가들은 이 새로운 건축의 등장에 반색

전례가 건축에서 없지 않기 때문이다. DDP가 장래 한국 건

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

축사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될지는 실로 아무도 장담할

다. 우선 처음부터 건축이 국가주의적 개발의 도구로 쓰인

수 없다.

다는 게 개운치 않았고, 외국 스타건축가들을 불러들여 잔 치를 벌이는, 이른바 문화 사대주의가 국내 건축계의 심기

두 번째 이야기

를 건드렸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투명하지 못한 선정

스튜디오 메타의 설립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

과정도 문제가 됐다. 천문학적인 건축비는 또 어떠한가. 애

직하며 깊이 있는 건축 작업과 지역 공공 프로젝트는 물론

초 2,274억 원의 예산은 두 차례의 설계 변경을 거치면서

이론적 실천적 도시 탐구를 지속해 오던 건축가 이종호가

운영준비비 628억 원을 포함해 4,840억 원으로 두 배 가량

지난 2월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부재는 개인적인 비통함을

뛰었다. 공사 중에 발견된 한양도성과 이간수문 등의 유적

넘어 한국 건축계에 참으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은 설계 변경의 빌미를 제공했으나 결국 하도감은 옮겨지

이에 동시대 매체로서 본지가 해야 할 일은 그를 지속적으

고 남은 유구들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해결로 초라한 꼴이

로 기억하는 행위에 동참하는 것일 터, 그의 건축 작업 중

되고 말았다. 도시적 맥락의 상실과 함께 역사성 무시란 지

유작에 해당하는 마로니에 공원과, 지역 공공 프로젝트 감

탄을 받을 만한 대처였다. 기왕 지었으니 좋게 좋게 잘 써

자꽃스튜디오의 최근 증축 작업, 그리고 서울 읽기와 을지

보자고 활용론을 갖다 대는 것도 여의치는 않다. 운영 계획

로/세운상가 프로젝트까지의 도시 건축 연구를 조심스레

은 물론 프로그램 또한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추진된 거라

펼쳐 놓았다. 더불어 그가 생전에 도시와 건축 개념을 서로

새 건물의 긍정적인 미래를 쉽게 장담하기가 어렵기 때문

공명한 바 있는 두 젊은 이론가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는

이다. 서울시가 자립 운영 계획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

건축과 도시로 이종호가 닿으려고 했던 지점, 꿈꿨던 이상

하며 적극성을 띠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벌써 전면 개축,

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매각 등의 이야기를 들고 나오고 있다. 깊고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 속에서 그의 관심사를 단 몇 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DDP에 비난의

지로 추려보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조심스러우나, 그럼에

화살만 쏘아 대는 것은 아니다.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주

도 불구하고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기억’, ‘공공’, ‘도시’일

변 환경에 새로운 ‘풍경’을 가꿔나가는 자장의 중심으로서

것이다. 물론 그의 도시 탐구는 “언제나 새로운 건축을 위

의 역할을 기대하는 전문가도 있고, 3D 첨단 설계 기법인

한 토양”이었다. “자신의 도시에 대한 규명없이 건축의 당

BIM 도입 등 건축 기술적 가치는 결코 평가 절하될 수 없

대성이 드러났던 적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실천을 위해서

다고 잘라 말하는 건축가들도 있다. 또 파라매트릭 디자인

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고 새롭게 보

이 기존 통념과 관습을 깨고 국내 건축들의 경직된 자세에

려고 노력했으며, 실천 이전의 읽어야 할 과제들도 결코 소

경고를 던짐으로써 보다 다양한 건축 문법 수용에 일조하

홀히 하지 않았다.

리란 기대감도 있다. 아니, 무엇보다도 일반 대중들은 이 낯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관심사의 실현에는 그의 탁월한

설고 웅장한 건축에 열광한다.

공감 능력이 바탕이 됐다. 그의 공감 능력은 타고난 것이기

정치/경제적 배경과, 역사/도시의 문맥과, 현상 설계의 미

도 하지만 노력에 의해 얻은 바가 더 크다. 동료 건축가의

심쩍은 과정과, 외국 스타건축가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걷

말대로 “지독한 독서”와 치열한 고민과 삶의 현장 가장 깊

어낸다면, 즉 순수하게 건축 조형의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숙한 곳에서 얻어낸 그만의 능력이다.

이해 못할 것 없는 입장이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자유로운 대한민국 국민은 아무도 없 이에 본지는 DDP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겨누는 과녁을 ‘과

다”라는 TV시사프로그램 클로징 멘트가 뼛속 깊이 사무쳤

감히’ 제거하고 오로지 그것이 가지는 센세이셔널한 조형

던 2014년 봄이다. 한동안은 깊은 슬픔에, 벽력같은 분노로

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들은 “DDP는 자

일상생활이 어려웠다면, 지금은 사그라들고 잊혀지는 두려

하 하디드의 사적 욕망의 분출”, “DDP가 곧 자하 하디드”,

움에 긴장을 풀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이다. 몇몇 위정자의

“건축가가 제시한 개념인 환유의 풍경은 (책임 회피를 위

공감 능력 부재가 망각의 강 앞에서 불씨를 지피고 있으니.

한) 수사적 전략일 뿐(새겨진 풍경-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글 | 정귀원(편집장)


COLUMN

일상의 건축 박준호 EAST4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ISSUE

건축architecture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과거와 미래의

Issue

상상까지도 함께한다. 아침을 시작하는 나의 공간이 건축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터가 건축이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곳이 건축이다.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 건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지 건축은 어렵고 복 잡하고 희귀한 사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 과정에는 물론 건축물을 계획하고 만들어 가는 우리architect에게 많은 부분의 책임이 있다. 근래에 개관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22 COLUMN | 박준호

일상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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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의 COMPASS 36

윤리적 건축

29 전진삼의 PARA-DOXA 08

DDP가 그렇고 서울시청이 그러하다. 사용자를 위한, 사람을 위한 건축이 아닌 건축가

심원건축학술상

새 운영방안 공표

를 위한 과시용 건축이 난무하고 있다. 자극적인 형태와 과도한 구조로 주목을 받고

: 대한민국 건축학 최고 권위의

학술상을 향한 행보

싶어한다. 충격적인 방법으로 한탕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듯이 한탕

전진삼

주의에 만연해 있다. 요즈음 건축계의 방향은 ‘튀는 건축’이다. 현란한 모양의 결과물 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아보려는 무리들이 우리의 건축 발전을 퇴보시키고 있다. 건 축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 건축을 통해서 명예를 얻으려 하고 건축을 수단으로 금전적 안정을 취하려 한다. 좋은 공간, 좋은 건축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 고, 낯설고 특이한 풍경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라 고 강조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의 불편함은 새로운 건축을 위해 당 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덕목이라고 이야기한다. 건축의 역사가 태동하던 1세기경 비트루비우스Marcus Architectura에도

Vitruvius Pollio 의

건축서

De

명시되어 있듯이 건축 행위에서 가장 주요한 요소는 지속성Durability,

편의성Utility, 그리고 아름다움Beauty 또는 즐거움Joy이 동반되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 고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 패턴이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과학과 기 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화할 수 없는 그 몇 가지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 건 축essence of architecture이다. 본질에 충실한 건축물은 우리에게 오래도록 감동과 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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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제공한다. 판테온Pantheon이 그렇고, 파르테논Parthenon이 그렇다. 오래전 학부 시절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이전, 교양 과목으로 ‘미래의 사회’라는 과목 을 수강했던 기억이 있다. 수업 내용은 미래의 사회를 예상하고 현재의 우리가 무엇 을 준비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교수님의 미래에 대한 예상의 골자는 미 래에는 도시 공동화 현상이 생길 것이고 종이의 수요가 현격히 줄 것이라는 것이었 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화상 통화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고, 디지털 화면을 통해 디자인과 도면을 상호 수정하여 종이에 출력된 도면도 필요 없고, 사무 공간에 모여 함께 일을 진행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놀라울 정도의 통 찰력도 있었지만. 25년이 지난 현재 우리의 업무 방식은 그리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도구일 뿐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behavior은 변화하지 않았다. 종이 위에 연 필로 도면을 그리고 청사진을 구워 내고 있지는 않지만,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동 료들과 함께 일을 하고 건축주를 만나고 협력 업체들을 만나서 출력된 도면을 보며 회의를 한다. 지금부터 25년 후에도 그 방법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 은 건축의 공정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고, 건축 공간의 기본적인 기능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중력을 벗어나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기 전까지는, 현재의 아니 2,000년 전에 설정된 건축의 기본 기능과 요소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지 켜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하고 매진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요즈음 사회의 전반적인 방향은 슬로우라이프slow life이다. 모든 분야에서 친환경적eco friendly

삶을 추구하며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모든 것을 선호하고 있다. 도시의 생성과

향을 수정하고 있다. 1~2년 사이에 도시의 환경을 바꾸려 하지 않고 10~20년을 기 다리며 그 과정을 함께 즐기며 만들어 간다. 중간 이용 또는 임시 이용zwischen nutzung 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주변의 환경을 재조명하고 버려진 공간을 새로운 방법으

COLUMN

소멸의 사이에서 도시 개발이 아닌 도시 재생recycle, 도시 회복recover의 방법으로 방

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투리땅을 사용하려 하고, 골목길을 길이 아닌 공간 으로 만들어 가며 주민들 사이에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도시 농장을 만들 고 옥상 정원을 조성하여 자급자족의 기대도 해 본다. 너무나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 온 도시의 현대인들이 조금은 여유를 갖고 각자의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이 그렇고 런던의 사 우스뱅크South Bank개발이 그렇다. 도심의 버려진 건축물, 시설물, 장소에 새로운 생명 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의 경제와 안전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건 축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최전선에서 이끌어가고 있다. 건축은 자연을 제외한 제2 의 환경을 계획하고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씨티뷰티플 무브먼트City Beautiful Movement 가 그랬고, 가든씨티 무브먼트Garden City Movement가 그랬다. 뉴욕이 1930년대 경제 공 황을 극복한 것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의 구축으로 많은 부분을 회복하였다. 건축은 도시의 부흥과 몰락의 시간에 언제나 함께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건축은 그 반대 방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조금 더 빨리, 조 금 더 저렴하게 건축을 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립식 주택prefab homes을 만들고 컨테 이너 하우스container house를 만들고 있다. 간이 주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튀는 건축’도 모자라 이제는 건축을 상품화하려는 것이다. A, B, C, D 타입의 집을 계획하고 건축주에게 선택을 하라고 한다. 혹은 A와 B타입의 혼용을 할 수도 있다 고 한다. 건축은 이제 마트에 진열된 상품처럼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다. 설계 를 할 필요도 없고 건설사를 선정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프로토타입prototype의 틀에 서 조금만 조정하면 집이 만들어 진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우리의 건축 발전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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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고전적 방법으로 설계하고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것을 고집하며 새로운 방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 고 적응하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건축의 태동부터 만들어지고 정리된 본질적 이유 reason와 질서order를 대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건축을 단지 자연재해의 피신처shelter로

취급하며 이러한 돌연변이적 진화를 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의 근본적 정의를 주거지dwelling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러한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분명히 올바른 건축의 방향은 아닐 것 이며,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바란다. 건축이 문화이며 예술이고 철학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건축이 인문학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무의 미하다. 건축은 우리의 일상에서 언제나 함께하는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면 된다. 과 거의 기억과 미래의 상상 속에서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 이 순간에 건축을 느 끼고 즐길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건축물은 무기물無機物의 집합체로 유기물有機物을 완성하는 일이다. 건축물은 살아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건축물은 그 과정에서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 다. 마치 고치cocoon를 벗어나 나비가 되는 변태metamorphosis처럼, 알을 깨고 나와 새가 되는 부화incubation의 순간처럼, 오늘도 자신과 투쟁하며 좋은 건축, 건강한 건축을 향 하여 일보 전진 중인 사람도 많을 것이라 믿고 싶다. 건축은 어차피 오랜 세월을 지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시간의 경과 속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가져다 주는

COLUMN

시간을 초월한 건축Timeless Architecture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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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이종건의 COMPASS 36

윤리적 건축 이종건 본지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극악한 이기주의, 곧 윤리의 소멸이 사건의 근본 원인 세월호 참사가 몰고 온 충격과 슬픔과 분노와 절망과 탄식의 정도는, 형언할 수 없 다. 이 어이없는 사고는 어디서 비롯했는가.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사방에 꽃들이 만개한 봄날, 봉오리도 채 맺지 못하고 꺾여 버린 십대들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안 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 전적으 로 옳은 말씀이다. 원전 비리가, 모든 형태의 큰 사건들이, 우리 사회 전 영역에 깊이

Issue

뿌리내린,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의 검고 더러운 돈거래,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극 악한 이기주의, 곧 윤리의 소멸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그러니, 이러하고도 우

22 COLUMN | 박준호

일상의 건축

25 이종건의 COMPASS 36

윤리적 건축

29 전진삼의 PARA-DOXA 08

심원건축학술상

새 운영방안 공표

: 대한민국 건축학 최고 권위의

학술상을 향한 행보

전진삼

리 사회의 윤리 의식을 제대로 복구시키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참사가 항차 거

이종건의 COMPASS 36

타까워하며 애도를 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고, 언론이 전한다. “한국

푸거푸 일어나지 않으리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목하 지독히 이기 적인 인간들로 차고 넘친다. 애오라지 내 몸뚱이(와 내 새끼) 생존을 도모하고 호강 하려 물불 가리지 않는다. 건축직 공무원은 일정한 현금을 다달이 달라고 설계 사무 소 직원에게 요구한다. 건설사 직원은 대학 선배 심의 위원 교수에게 일억을 내민 다. 사업주들은, 프로젝트 수주 건으로 관계 제위에게 노상 술과 성 접대다. 대학교 수직도 돈으로 산다. 나(와 내 새끼)부터 살겠다고, 잘 살겠다고, 더 잘 살겠다고, 부 정한 돈이든, 부정한 수단이든, 아귀餓鬼처럼 달려들고 모조리 동원한다. 탐욕에 물 든 아귀에게 계율 따위, 타자의 얼굴 따위는 그림자도 없다. “아키텍트는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봉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 세월호 참사 이미지에 붙박인 채 멍하니 보내다, 원고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 참담 한 슬픔과 공분公憤에 잠긴 이성은, 건축의 윤리 차원을 상고하고 개진토록 닦달한 다. 우리 사회의 모든 직능에 속한 이들이 그리해야 할 것이다. 명징한 진술로써 글 문을 연다. 아키텍트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사회에 속한 직능인인 까닭에, 일차적으 로 그 사회의 윤리적 요청에 응해야 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아키텍트는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봉사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이 우리 건축 사회에 시급하다. 4만 4천 명의 회원과 180년의 역사를 지닌 RIBA가 2005년에 발행한 규정에 따르면, 회원 들은 세 가지 원칙 곧 ‘정직’, ‘전문적 능력’, 그리고 ‘관계들’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들’의 출발점이 의뢰자나 동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회원들은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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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의 신념들과 의견들을 존중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인식하며, 모든 사람들을 정당하 게 대해야 하는데, 그 무엇보다 우선, 사용자들과 지역 공동체를 배려하고 거기에 온당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RIBA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8만 명의 회원과 15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큰 단체인 AIA가 2007년 발표한 규정 은 ‘규범들’, ‘윤리 기준들’, 그리고 ‘행동 규칙들’로 구성되어 있다. ‘윤리 기준들’에 따르면, 아키텍트는 자신, 공공(일반 대중), 의뢰자, 직능,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책 임을 떠맡아야 하는데, 여기서도 공공에 대한 책무가 의뢰자에 대한 책무보다 우선 이다(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나의 견해는 새건축사협회에서 청탁한 원고 주제이니, 그쪽 지면에서 개진할 것이다). 우리 협회들은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가, 우리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우리 건축가가 말하는 윤리적 건축 윤리적 건축에 대한 요청/주창과 그에 따른 건축적 실천의 몸짓들은 우리 건축 사 회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2000의 주제인 ‘Less Aesthetics, More Ethics’에 크게 고무 받은 승효상과 민현식이 대표적인데, 문제는 미학과 윤리의 관계와 건축의 윤리적 차원/측면에 대해 둘 다 지나치게 순진하게 접근한다는 것 이다. 승효상은 며칠 전 경향신문에 이렇게 썼다. “21세기가 시작된…제7회 비엔날레의

이종건의 COMPASS 36

주제는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이라는 문구였다. 놀라웠다. 내가 아는 한, 서양 건축사에 윤리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그 단어는 ‘오직 그가 아 는 한’ 없다. 스토아 철학에 깊이 영향 받은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서양건축사 원 류 『건축』에서, 선한 건축가의 자질을 도덕적견지에서 상술했을 뿐 아니라 특히 르 네상스 건축이론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도 그러한데, 이상적인 건축 형태의 구 축을 위한 법칙들을, 무엇보다도 기하학을 통해 상징적으로 구현되는 윤리적/도덕 적 특질로 제시했다. 현대사도 그렇다. 19세기 후반 러스킨John Ruskin은 건축에는 옳 거나 그릇된 기하학 형상들이 있다고, 심지어 기하학적으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선들이 있다고 했으며, 모조석 사용이나 구조 원리에 어긋난 구축을 “거짓 표상”이라 일갈했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는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양식이 아니라 도덕성이라는 점을 명확히 진술하며 “모조 재료와 모조 기법은 비도덕적”이라고 주 장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로스Adolf Loos는 장식을 도덕적 퇴보로 간주했고, 르 코르뷔제Le Corbusier는 임상적이고 합리적인 산물의 생산자인 엔지니어를 존경해 야 한다고 말했다. 성기 모더니즘 건축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회적 프 로그램과 아젠다로 뜨거웠다. 지나치게 윤리적이고 지나치게 오만/낙관하면서 좌 표를 잃고, 그래서 결국 윤리를 기계 미학의 알리바이에 복무시켜 소위 불통의 건축 으로 전락함으로써 ‘장식된 헛간decorated shed’ 원리에 기초한 포스트모던 건축의 강 력한 비판으로 역사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런데, 형태의 복권을 주창하며 무대를 장 악한 포스트모던 건축은, 다시금 윤리적 건축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게끔 했다(M. Harris의 저작 『The Ethical Function of Architecture, 1998』이 대표적 이다). 민현식은 다음처럼 쓰며, 건축의 관심을 미학에서 윤리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건축을 하나의 오브제로 보기보다는 환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인자로 보는 것이 며, 따라서…윤리의식이 더 중요한 자리를 점한다.…새천년을 여는 베니스 비엔날 레 2000의 ‘덜 미학적인, 그래서 더 윤리적인’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가 크다. 검박한 집은 선하다라고 의역해 볼 수 있는 이 주제는 과학과 이성이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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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놓은 20세기의 성취들을 심히 우려하는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 대한 깊은 반성이며, 이제 우리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미학에서 윤리로 이행해야 한다.” 우선 ‘Less Aesthetics, More Ethics’에 대한 그의 해석 곧 “덜 미학적인, ‘그래서’ 더 윤리적인”이라는 뜻풀이가 틀렸다. 그 주제를 들고 나온 7회 비엔날레 감독 푹사 스(M. Fuksas)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대도시에 “단순히 미학으로써가 아니라 새로 운 윤리적 반응에 대한 연구를 옹호하며,” 건축을 그 현상에 관계시키는 새로운 방 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가 강조한 키워드는 환경, 사회, 기술인데, 그로써 더 나은 환경을 위해 건축의 사회적/기술적 차원을 고민하고 연구해 보자는 취지였다. 미학 을 줄이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거나, 미학이 아니라 윤리의 입점에 서서 건축하자는 의미는 추호도 없었다. “미학을 좀 줄이고, 윤리를 좀 늘리자”라는 해석이 정확할 텐 데, 이러한 윤리와 미학의 분리 시도는 그 후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는 것(N. Ray 가 편집한 『Architecture and Its Ethical Dilemma, 2005』가 대표적이다), 그리하 여 윤리적 건축이라는 이슈는 그 이후 거의 건축 교육 현장에 한정되었다는 것에 주 목할 필요가 있다. 윤리와 미학은 서구에서 늘 불가분의 관계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와 플로티누스의 진/선/미가 그러했듯, 비트루비우스의 유명한 건축 3요소Firmatas/ Utilitas/Venustas도

그러했다. 윤리와 미학을 떼어 내어 따로 보기 시작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인데, 그것도 거의 논구의 방편에 머물렀다. 따라서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미학과 윤리를 대치시키는 문제는 가짜 문제라고, 둘의 구분 그 자체가 덫이라고 했 데, 역사적 검토에 기초한 그의 논점은 이러하다. “윤리에 관한 모든 논박들이 모순 적 양상을 띠는 것은, 그것들이 선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미, 진리, 그리고 역사적 시 간과 훨씬 크게 관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미학에서 윤리로 이행해야 한다”는 민현식의 주장은 ‘우리의 건축적 관심을 윤리적 차원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라고 고쳐 말해야 타당하다.

이종건의 COMPASS 36

다. 레구M. Lagueux는 그와 유사한 논조로 『건축에서 윤리 대 미학, 2004』을 발표했는

특별한 것 없는 실천 방안 두 건축가의 실천 방안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윤리적 건축을 세우기 위해 ‘터무 니’라는 말을 들고 나온 승효상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땅에 새겨진 역사를 기 억하는 것, 그것만이 삶의 윤리를 지키는 일이다.…땅도 고유한 무늬를 가지고 있 다.…터무니없는 삶은 땅과 무관한 삶…” 그런데, 역사를 어느 시점까지 거슬러 올 라가야 하는지, 딱 일 년 전에 비판한 바 있듯, 오래전 유행한 아이젠만의 ‘흔적 위 덧쓰기palimpsest’와 무엇이 다른지, 더 중요하게는, 땅이 오늘날 어떤 존재인지 등 과 대질시키면, 그의 논지는 그저 낭만적인 수사로 나타날 뿐이다. “터무니없는 삶” 은 “땅과 무관한 삶”이 아니라 거꾸로 ‘당대성/현실성과 무관한’ ‘터무니의 삶’이다. “검박한 집이 선하다”는 민현식은, 건축을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 는 한 인자”로 다룰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건물이 들어설 주변과 환경에 대한 세심 한 고려에 대한 요구는 거의 모든 국가의 건축가/건축사협회에 적시되어 있는 바로 서, 건축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그래서 전혀 특별할 바 없다. 예컨대, UIA는 10개 조항 중 4조항에서 “지역의 문화, 감성, 요구, 그리고 환경들을 인식하고 존중해야 할 중요성”을, 심지어 조항1과 조항2에서는 “한 사회의 해결안들을 다른 사회들에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검박성도 문제다. 미학은 아닐 테니 경제적 측면에서 읽어야 하는데, 소비의 최소화라는 점에서 윤리적일 수 있지만, 그 렇다고 해서 싼 것이 꼭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윤리는 근본적으로 경제 영 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환기해야 할 논점은 두 가지인데, 첫째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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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생각해 낼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적 건축 태도/방식(정직성, 공정성, 존엄성, 공동체 고려/배려 등)과, 건축이 윤리적이라는 것 곧 ‘윤리적 건축’은 별개의 이슈라는 것, 그리고 대체로 최소한의 도덕이라 일컫는 법의 규정들로는 윤리적 건축을 제대로 상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인습적인 윤리는 우리 자신의 신념들과 선입견들을 단지 자만하게 할 뿐이어서 악의 희생자들을 축약하 거나 심지어 경멸감으로 대하게 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로 하여금 상황과 그 ‘사태 event’에

충실함으로써 인습적인 지식들에 “구멍 내기”를 요청한다. ‘윤리적 건축’은

승효상과 민현식처럼 손쉽게 규정할 수 있는 호락호락한 개념이 아니다. 해서, 여기 서는 다만 그것에 대해 가장 넓고 깊이 논구한 해리스M. Harris의 논지를 간단히 짚어 보는 것으로 글 문을 닫는다. 휴머니티에 대한 합리적 반성을 통해 가능한, “진리의 윤리”의 수행 ‘윤리적ethical’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에토스ethos’에서 비롯한다(건축의 윤리적 기능 에 관한 해리스의 사유는 이 토대에서 구축된다). 보편적으로 ‘어떤 시대와 문화의 특성’으로 이해되는 ‘에토스’는, 습관(반복된 몸의 활동들)이 구성하는 인간의 특성 혹은 특정성을, 그래서 우리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모종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그러니까 개인과 공동체 간의 특징적 존재 방식을 뜻한다. 건축은 그러한 것이 이루 어지는 틀/구조/장(場)일 뿐 아니라 몸(의 감각과 지각)을 습관화하는 감성과 인식

이종건의 COMPASS 36

덩어리인 까닭에, 근본적으로 미학적이면서 그와 동시에 윤리적이다(그래서 이 둘 은, 특히 건축에서 따로 떼어 내기 어렵다). 건축은 또한, 그러한 까닭에 국가가 정 체성을 틀 지움 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사회정치적 대상이기도 하다(뉴욕 WTC 사 태를 둘러싼 일련의 건축 행위들이 그러했다. 따라서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환 경과 사회적 관계와 인간의 주체성을 포괄하는 ‘생태철학ecoscophy’의 관점에서 “윤 리 미학 패러다임ethico-aesthetic paradigm”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건축의 과업”은, 해 리스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타당한 삶의 방식의 해석”이다. 이것은 “건축은 우리가 당대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야 한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이론적 주창 자인 기디온의 관점을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삶이, 거주 행위가 ‘이미 그리고 항상’ 타자들과 함께 하는 것인 한 “건축의 문제는…필연적으로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 다(그래서 우리는 먼저 “미학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기서 미학적 접근은 벤추리의 포스트모던 건축 개념인 ‘장식된 헛간’을 지칭한다). 그러한 윤리적 기능 을 작동시키기 위해 해리스는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에 기대어 자기 자신을 넘어선 것들 곧 하늘과 땅과 죽음과 초월성 등을 가리키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 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존재론적 작업을 제안하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 에 대한 이해와 진리에 토대를 두는 것으로서 자연, 공동체,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 리 자신이 경험한 휴머니티에 대한 합리적 반성을 통해 가능한, 바디우의 용어로 말 하자면 “진리의 윤리”의 수행이다(바디우는, 우리는 진리에 대한 윤리적 책무밖에 질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승효상과 민현식은 각자 자신의 방식 으로 윤리적 건축을 실천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에 대한 논설은 이 글의 한계 를 넘친다). 자신들의 언사 바깥에서겠지만 말이다. 재차 말하건대 ‘윤리적 건축’은 결코 만만한 이슈도, 과업도 아니다. 두고두고 숙고하고 논의해야 할 사유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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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의 PARA-DOXA 08

심원건축학술상 새 운영방안 공표 : 대한민국 건축학 최고 권위의 학술상을 향한 행보 전진삼 본지 발행인

올해로 7회를 맞이하는 심원건축학술상의 운영 방안(별첨 참조)이 대폭 손질된다. 지난 6년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기획 의도(건축 역사·이론·미학·비평 등 건축 인 문학 분야의 신진 연구자와 예비 저자 발굴 프로그램)와 다르게 우수 석·박사 논 율과 씨름을 해야 했다. 홍보와 운영의 면에서 미진한 점이 지적될 수 있지만, 근본 적으로 응모 가능한 실질적인 연구자의 수적 제한이 가장 두드러진 문제로 파악되

Issue

22 COLUMN | 박준호

일상의 건축

25 이종건의 COMPASS 36

고 있다. 결과적으로도 여섯 번의 공모 중 두 번은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했다. 그때 마다 심사위원회의 심적 갈등과 고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상의 권위를 만들어 가 는 초기 단계에서 위원회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이 이유가 되었지만 건축학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역사 이론계의 현실이 반영된 판단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 이 특히 가중되었다.

전진삼의 PARA-DOXA 08

문상으로 위상을 점하게 된 심원건축학술상은 매번 기대에 못 미치는 저조한 응모

윤리적 건축

29 전진삼의 PARA-DOXA 08

심원건축학술상

새 운영방안 공표

: 대한민국 건축학 최고 권위의

학술상을 향한 행보

전진삼

심원건축학술상(이하, 심원학술상)이 ‘학술’이라는 이름표의 무게에 눌린 채 응모 작 대부분이 학위 논문의 제출이라는 정식으로 굳어졌다. 일부러라도 심원학술상을 목표로 한 연구물을 기대했던 6년의 기다림이 무의미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한건 축학회가 시상하는 우수논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위상을 점해 온 것이다. 물론 금 회 포함 네 번에 걸친 수상작의 면면은 학회의 논문상이 범접하지 못할 주제 의식과 깊이 있는 내용의 연구물들을 발굴하였다는 면에서 심원학술상이 건축학계에 미친 긍정적 효과가 컸음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1회 수상작 박성형의 『벽전』은 대표적이며 상징적이다. 이것이 석사 학위 논문이 고,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책장에 꽂힌 채 빛을 보지 못하였던 것으로 세상에 등장 하게 되는 배경이 드라마틱했다(심원학술상의 제정이 계기가 되어 연구자가 용기 를 내었고, 당해 동시 추천되어 최종 심사를 겨뤘던 박사 학위 논문을 제치고 첫 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는 점에서 감격의 크기와 감동의 깊이는 비단 수상자의 몫만 은 아니었다. 이후 서정일의 박사 학위 논문 증보판 『소통의 도시』(2회), 이강민의 박사 학위 논문 증보판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4회)로 이어지는 수상작의 출현 은 탁월한 연구 내용과 함께 연구자 개인에 맞춰진 차세대 인물 본위로도 충분히 흥 분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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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강점을 바탕에 깔고도 미심쩍은 부분은 상존했다. 그것은 연구자의 수적 열 세에 대한 반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는 아카데미즘 내부에서의 연구 풍토 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은 심원학술상이 그 같은 풍토를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촉매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였고, 시기상조였다는 점이다. 정작 대학의 중 추인 교수 사회에서 건축학의 획을 긋는 성과물들이 줄줄이 생산되고 있지 못한 현 실을 직시하건대 석·박사 학위 과정을 통하여 좋은 연구물들이 생산될 거라는 기 대는 성급한 것이었다. 건축 인문학의 위기를 공유하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호기롭게 나선 심원학술상 의 다부진 행보가 답답한 현실과 직면하여 존재감에 대한 재정비의 필요성을 부추 겼다. 건축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사업회의 운영 주체가 전폭적인 지지와 인 내심으로 건축학의 연구 환경을 응원해 온 의지가 박약했다면, 지난 시간 내내 상의 격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한 운영위원회의 결연한 의지가 없었다면 진즉에 사라졌 을 제도였다. 반전을 위한 역발상이 필요했다. 하루아침에 역사·이론계의 심지 굳 은 연구자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강화되는 풍토로 뒤바뀐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설상가상 대학에서의 건축학 교육이 설계 위주로 재 편되면서 이론 부문은 상대적으로 홀대되었고, 심각하게는 유능한 인재들을 이론가

전진삼의 PARA-DOXA 08

의 연구실로 불러모으는 것이 힘겨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은 신진 연구자 및 예비 저술가에 국한시켜 젊은 층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건 축학의 한복판을 조준하지 않았다. 일부러 표적의 중심을 비껴간 것이 건축학의 연 구 풍토를 깨우지 못했다는 판단에 이르게 했다. 심원학술상의 발전적 변화를 도모 하기 위하여서는 미발표작뿐 아니라 단행본으로 출간된 발표작에까지 응모작의 범 주를 확장시켜 당해에 출판된 학술적 가치가 높은 도서를 경쟁에 가담시킴으로써 신진 연구자는 물론 건축학의 질 높은 연구서 저자들의 경쟁 의지를 북돋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동시에 연구 및 출판문화의 진작을 도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이는 아카데미즘을 기반으로 활약하는 교수 사회의 학문적 성과를 진작하고, 경계하며, 심도 있는 연구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리라 여겨진다. 이상과 같은 입장을 전제로 제7회 심원학술상의 공모 요강은 기존과 같은 큰 틀을 유지하되, 응모작의 범주를 기존의 ‘미발표작’과 함께 ‘발표작’으로까지 확장시키 고, ‘발표작’이 수상작으로 선정될 경우에는 상금과 해당 도서의 구입(각 대학 건축 학과 등에 사업회 명의로 기증) 및 해당 도서에 부착할 수 있는 수상작 인증 라벨을 수여하는 것으로 시상의 형식을 조정하는 방안을 도입하게 된다. 또한 추천작이 선정된 후 심사위원회 구성원과 추천 작가가 공동 참여하는 공개 포 럼을 개최하여 최종 심사의 밑 자료를 삼고 심원학술상의 위상을 공고히 함은 물론 나아가 내실 있는 학술 행사로 건축 사회에 기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넘어서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우선은 신진 연구자의 연구물(석·박사 학위 논문) 이 선배 학자들의 연구물과 경합할 만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냐는 것이다. 더하여 최종 심사를 앞두고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경쟁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의연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기관 및 출판사를 통해 발간(예정)된 단행 본들이 일정 부분 콘텐츠에 대한 검증 장치와 편집 단계를 거치며 수정·보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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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연구물임을 감안할 때 수상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게 될 터, 궁극엔 지 난 6년에 걸쳐 쌓아온 무명의 신진 연구자 발굴이라는 심원학술상의 초기 정체성을 심하게 위협하는 사태로 번지지 않겠냐는 우려까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고비가 어느 것 하나 수월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새로 위촉되는 2기 심사위원회 위원들의 고민이 많을 것이다. 형식적으 로는 1기 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응모작에 대한 충실한 독회는 물론 공개 포럼을 통 해 심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끔 개편된 심사 절차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기에 그러하다. 내용적으로는 들여다봐야 할 건축학의 지평이 넓어진 까닭이며 운영 면 에서는 심사위원 스스로가 최고·최상의 연구물을 발굴해 내는 것부터 역할이 시작 되기 때문이다. 서점가에서는 그나마 유행에 민감한 글감과 대중적 글쓰기로 소수의 대학 교수 저 자들이 주목받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지만 심원학술상은 그들의 저작 행위가 닿아 있는 상업적 목적의 정점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비록 읽히는 데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논쟁적이며 학술적 성과가 큰 덕목에 주목한다는 초심은 여전히 유효하 다. 그로써 선후배 연구자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건축학의 지향점을 모색하는 장 치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유명무실한 시상 제도가 아니라 이 방면 연구자 및 작 가들의 활동이 정기적이며 지속적으로 점검되며 그로써 긴장과 희열과 환호가 나눠 그리하여 변화된 운영 방안을 통해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심원학술상이 명 실상부 국내 건축학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정위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건축학회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 또는 이들이 주체가 되어 있는 단체 를 대상으로 시상 제도주1를 운영해 오고 있다. 그중 개편되는 심원학술상에 필적할 만한 제도는 학회 ‘학술상’에 제한된다. 이 학술상은 이미 오랜 역사와 전통이 이어 져왔고 매년 동시에 여러 명이 수상의 영예를 나누어 가지지만 건축계와 건축학 분

전진삼의 PARA-DOXA 08

지기를 기대한다.

야 내에서조차 회자되고 기억되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과의례적인 학술상의 위상으로 겉돌고 있는 인상이 짙다. 당연히 건축 바깥 세계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심원학술상이 이들의 보완적 장치이자 건축학의 부흥을 위한 건 강한 경쟁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주1

대한건축학회 시상의 유형 및 성격(출처: 『대한 건축학회시상규정』, ‘제2장 학회상의 종류와 수 상자격’ 중에서 발췌)

4. 교육상 수상 자격 : 건축 교육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자 5. 논문상 수상 자격 : 논문상은 추천 접수 마감

1. 공로상 수상 자격 : 다년간 대한건축학회 발전

이전 1년 동안의 대한건축학회논문집에 수록

또는 건축계에 기여한 공적이 특히 탁월한 자

된 논문 중 논문집편집위원회에서 우수 논문

2. 학술상 수상 자격 : 건축학 분야에서 창의적 인 연구 저작 또는 발표를 하여 탁월한 공적을 이룩한 자 3. 기술상 수상 자격 : 건축 시공 분야에서 창의

저자로 선정된 자

저작 활동에 공적이 탁월한 자 라. 북암(김형걸)상 : 건축 구조 분야의 학술 발전에 공적이 탁월한 자 마. 무애(이광노) 건축상 : 건축 디자인

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작풍을 진작하고 탁월

및 건축 공학 분야 발전에 공적이 탁월한

한 작품으로 그 공적이 현저한 자 7. 특 별상 수상 자격 : 특별상은 대한건축학회에

새로운 고안으로 시공 개선을 이룩하여 그 공

단체 또는 개인이 기탁한 기금에 의한 상으로

적이 탁월한 자, 또는 건축 자재 분야에서 새

하고 다음의 상을 둔다.

적이 현저한 자

는 기술 행정에 공적이 있는 자 다. 소우(윤장섭) 저작상 : 건축 분야의

6. 작품상 수상 자격 : 건축 설계 분야에서 창의

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였거나

로운 자재의 개발이나 품질 개선을 실현한 공

나. 우당(신무성)상 : 건축 설계・시공 또

가. 남파(박학재)상 : 남파상은 건축사 분 야의 학술 발전에 공적이 탁월한 자

30,40대 바. 과천(김진일)상 : 건축 계획 분야의 학술 발전에 공적이 탁월한 자 기타, 기금상으로 이원상이 있으며 이는 친환경 건축 문화 발전에 기여하였거나, 학술 발전에 공 적이 탁월한 자에게 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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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문화사업회 7차년도(2014~2015) 공모 요강

제7 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 공모 요강

Ⓢ 수상작 : 1편

1) 부상

1-1

[심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을 하

미발표작이 수상할 경우

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는 반환하지 않음]

상패 및 상금(고료) 1천만 원과 단행본 출간 지원

1-2

발표작이 수상할 경우

전진삼의 PARA-DOXA 08

상패(저자), 인증서(출판사 대표) 및 상금 1천만 원(저자)과 3백만

Ⓢ 제출처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175, 909호(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원에 상당하는 도서 매입(출판사) 그리고 수상 도서에 부착할 수상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121-816)

작 인증 라벨 지원

(겉봉에 ‘제7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이라고 명기 바람)

Ⓢ 응모 자격

내외국인 제한 없음, 단 1인 단독의 연구자 및 저자(출판사 대표 포

Ⓢ 응모작 접수

접수 마감: 2014년 11월 15일(우편 소인 분까지, 기간 내 수시 모집)

함)에 한함

Ⓢ 응모 분야

Ⓢ 추천작 발표

추천작 발표: 2015년 2월 중(《와이드AR》 카페 및 개별 통지)

건축역사, 건축이론, 건축미학, 건축비평 등 건축인문학 분야에 한함 (단, 외국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물’에 한함)

Ⓢ 수상작 선정

예비 심사를 통과한 추천작에 대하여 공개 포럼을 포함한 소정의 본

Ⓢ 사용 언어

선 심사를 진행하며, 그 중 매년 1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한국어

Ⓢ 응모작 제출 서류

[미발표작의 경우]

Ⓢ 수상작 발표

2015년 5월 중

(《와이드AR》 2015년 5/6월호 지면 및 인터넷 카페에 공지)

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고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크기 프린트 물로 흑백/칼라 모두 가능)을 제본된

상태로 5부 제출.

별도 공지 예정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1- 응모작의 요약 내용이 포함된 출판기획서(자유 양식으로 2매 이내 분량) 1부

Ⓢ 시상식

Ⓢ 미발표작의 출판 일정

수상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2- 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발표작의 경우]

1) 초판 1쇄 발행일 기준 최근 2년(2013∼2014년) 사이에 국내에서 출 간된 도서여야 함. 제출 수량 5부(공모기간 중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주관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단행본 출간 작업 중에 있는 연구물의 경우, ‘미발표작’의 제출서류

기획 《와이드AR》 ·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와 동일하게 제출하면 됨)

후원 (주)엠에스오토텍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1-응모작의 소개서(자유 양식으로 2매 이내 분량) 1부

2- 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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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심원문화사업회

문의 070-7715-1960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발표 The 6th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이연경 作 시상식 및 수상자 초청 강연회 일정 일시 2014년 6월 27일(금) 오후 5시 장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 소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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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1. 심사위원: 안창모 (경기대학교 대학원 교수, 건축설계학)

추천작 1.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의 이미지

The 6th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영화 속의 아파트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최근 신문과 잡지 등 대중 매체를 통해 근 대의 사회상에 대한 이해를 시도했던 많은 연구들의 건축적 버전으로 이해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해방 전 시기를 주로 다루었던 언론이나 문학 작품을 대상 으로 한 연구와는 달리 이 연구는 아주 가까운 시대의 건축 유형을 당대의 대중문화 매 체를 통해 연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좀더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영화를 통 해서 아파트에 관한 연구를 시도할 경우 많은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건축 유 형인 아파트가 영화라는 매체 속의 아파트를 다루기 때문에 다른 매체나 기존의 연구에 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아파트의 모습을 밝혀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적으 로나 학술적으로 충분히 이해되고 있고 많은 아파트들이 현존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연 구자로서는 무척 부담이 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어려움이 예상되 는 주제를 과감하게 연구 대상으로 삼은 연구자의 용기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 연구는 앞서 우려한 부분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가 등장하는 한국 영화를 다루고 있다는 의미 이상을 찾 기 어려운 연구가 되어 버린 듯하다. 이야기 소재로서는 충분히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발표

34 심사평1.

심사위원: 안창모

36 심사평2.

있는 흥미 있는 연구지만, 영화 속에서 아파트가 다루어진다는 것이 어떤 사회적 의미

를 담고 있는 지에 대한 문제 의식이나 본 연구를 통해 연구자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충

38 심사평3.

분히 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취약하다.

추천작 2.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본정 : 19세기말~20세기 초, 한성부 일 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개항 이후 도성 안에 형성된 일인들의 거류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지만, 담론의 실체 에 대한 연구가 매우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구체적인 장소에 관한 담론임에도 불 구하고 건축이나 도시 쪽의 연구는 황무지에 가까운 것이 우리 건축학계의 현실임을 감 안할 때, 이 논문은 개항 이후 도성 변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인 거류 지’의 실체를 공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인들이 이 땅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이 관과 민의 협력과 대결 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도시 계획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우리들이 일제 강점기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 인해 일제 강점하 일인들의 이 땅에서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일인들이 자신들의 서울 또는 한반도에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측면이 있다. 비록 일인들의 이 땅에서의 활동 은 우리의 역사에서 드러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일제 잔재의 청산 과 극복을 위해서는 맹목적 애국심에 의존하지 않는 냉정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34

33

심사위원: 배형민

심사위원: 전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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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요약문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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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이연경


일인들의 이 땅에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추천작 3. 근대 서울의 도시사-상업 공간(종로)의 변용 이 연구는 ‘일인 거류지’에 대한 연구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일인에 의 해 기획된 <이방인의 순간 포착 경성 1930> 전시가 왜곡된 내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 람들의 관심을 받은 바 있고, 서울에서의 전시 성과를 배경으로 왜곡된 내용 그대로 동 경에서 이루어졌던 사실에 비춰볼 때, 도성의 가장 핵심적인 상업 공간인 종로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은 일인들의 삶의 중심 공간이었던 본정/남촌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 이 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600년 역사 도시를 자랑스러워하고, 비록 성곽만이지만 도성의 일부를 세계문화유산 등 재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학계의 도성에 관한 연구는 폭과 깊이가 좁고 얕다. 학계의 관심이 지금까지 ‘궁궐’과 ‘도시한옥’에 집중되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근대기 서 울의 상업 공간의 중심인 종로를 다루고 있는 본 논문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종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지만, 조선 시대 이래 종로의 도시적 실체와 건축적 실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가 진실로 알고 있는 많은 내 용들도 많지 않은 시간의 투자로 사실의 오류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점 에 주목한다면, 도성의 핵심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를 방치해 온 우리 학계의 게으름은 비난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근 근대사를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종로를 비롯한 주요 공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도성 내 주요 공간에 대 한 실체적 연구는 여전히 매우 미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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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문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이와 같은 현실에서 볼 때 종로에 대한 연구가 ‘상업 공간’에 초점이 맞춰져, 총체적인 종 로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종로 연구가 갖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연구자가 서울 도성이 갖는 역사적 가치와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이 해가 충분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들은, 연구자 자신의 연구 성과가 거둔 부분 적인 성과를 종합적으로 심화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종합 금번 심원건축학술상의 최종 심사에 올라온 3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바탕으로, 1년이 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단행본을 출판해야 하는 시간 제약의 틀을 감안할 때,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본정: 19세기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가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취지에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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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심사평2. 심사위원: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건축학)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본정”(추천작 2), “근대 서울의 도시사–상업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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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종로)의 변용”(추천작 3) 그리고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의 이미지”(추천작 1) 가 다루는 주제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대 서울, 영화 속의 건축 공간, 아파 트의 이미지 등이 여전히 주목을 받는 것은 이것들이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구체적 이면서도 새로운 해석이 제시될 수 있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료 또는 대상 자료의 측면에서 세 논문이 모두 일정한 기여가 있다. “근대 서울의 도시사–상업 공간(종로)의 변용”과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 은 본정”은 각기 종로와 본정 일대의 상점들이 다루었던 품목을 확인하고 시장 또는 상점의 범위와 운영 방식 등 도시 생활의 구체적인 분위기를 점치고자 하였다. 전자 는 신문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았고 후자는 일본 공문서와 개인 기록들을 모아 자료 에 기반을 둔 도시사의 탄탄한 전통을 따르고자 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원고들이었 다.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의 이미지”는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지 않았지만 아파 트 이미지와 관련된 영화들이 목록화되었다는 측면에서 작지만 일정한 기여가 있다 고 볼 수 있다. 세 논문이 차별화되는 것은 대상과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방법론에서이다. 여기서 가장 아쉬운 논문이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의 이미지”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현 상을 복합적인 사회, 경제, 문화 현상으로 보기 시작한 지 적어도 10년 이상이 되었고 다양한 학계에서 상당한 성과들이 있었다. 그러나 풍부한 선행 연구와 영화 이론의 힘 을 얻을 수 있었던 논문이 몇 개의 이미지 유형에 기대어 기계적으로 영화들을 분석한 점이 안타깝다. 많은 경우 이미지 유형과 영화 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 이미 오래전부 터 고착된 통념들을 반복한다. 예를 들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개발에 따른 부작용 유발의 이미지”로, <별들의 고향>을 “고독, 익명 공간 이미지”로 보는 등 기존의 문학적 분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이미지들을 분류하는 체계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고 이론적 배경이 약해 논문으로서의 설득력과 책으로서의 가독성이 약하다. 결과적 으로 많은 노력의 결론은 단지 “긍정”과 “부정” 정도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매체로서의 특성, 건축 논문으로서의 건축 공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아쉬웠던 논문 이다.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본정”과 “근대 서울의 도시사–상업 공간(종로)의 변용”은 비슷한 역사적 시기와 익숙한 서울의 지역을 도시사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서술 방식에서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갖고 있다. 전자는 이미 일 반 학술 단행본으로서의 포괄적인 구성과 글쓰기 방식을 갖춘 원고라면, 후자는 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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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논문으로서 문제가 될 정도로 편제가 산만하다. 인용 사료가 본문의 내러티브에 포섭되 어 있지 않고 연번으로 나열된 후에 이에 코멘트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이 논 더욱 아쉽다. 도시 미관의 개념, 소비문화 동질화 정책과 상업 공간의 출현, 도시의 장 식으로서 공원, 광장의 탄생 등 구체적인 도시의 일상과 공간을 적확하게 지시하는 개 념들이 제시되어 있는 반면 발터 벤야민의 파편적 글쓰기를 시도한 듯 복합적인 이러한 주제들이 품고 있는 역사적, 이론적인 문제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한편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본정”은 이미 책의 구성 틀을 갖춘 논문으로 손색이 없다. 다만 대한민국 역사에서 시작하는 포괄적인 서술과 세부 연구 주제가 엮 여진 상태는 아니다. 원고의 서두와 결론에서 상업 공간의 일상, 일본인 거류지의 발달 사라는 원고의 핵심이 부각되도록 하고 산만할 수 있는 도시 형태와 기능의 분석이 명 확하게 전달되도록 한다면 치밀한 연구에 기반을 둔 보기 드문 도시 지역 연구서로서의 면모를 갖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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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한국 도시사에서 흔치 않은 통찰과 이슈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만한 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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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3. 심사위원: 전봉희 (서울대학교 교수, 건축학)

추천작 1.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의 이미지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영화사적으로 일정한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391편 가운데서 고른 105편과 기타 작품 리스트에서 고른 6편 등, 아파트가 주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총 111편의 영화에서 아파트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주요 분석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4장에서는 시기별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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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50년대, 1950년대 후반~70년대 중반, 1970년대 중반~90년대, 그리고 1990년 대 중반 이후이다. 이러한 시기 구분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주거 유형으 로 성장해 나가는 단계와 일치한다. 따라서 정리되는 이미지의 내용도 일반의 예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즉, 제1기에는 도시적, 근대적, 서구적 이미지로 아파트가 영화 속에 등장한다. 제2기에는 고급의 근대 공간과 서민층, 빈곤층의 주거 환경이라는 상 반된 이미지가 함께 등장하며, 이는 당대의 아파트에 대한 분열적 인식이 투영된 결과 이다. 제3기에는 중산층의 일상적 이미지로서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 주된 이미지였다 면, 제4기에는 이에 더하여 사회 비주류층, 소외와 고독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 시기 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5장은 이상의 시기별 분석을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영화 속에 투영되어 있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분석하겠다는 참 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그 분석이 일차적이고 기계적인 분류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이미 아파트와 관련된 기존의 담 론이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된다는 사실을 보강해 주는 정도의 역할에 그치고 있 다. 제목을 보고 이 글에 끌린 독자라면 영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이미지의 왜곡과 현 실 세계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미묘하고 날카로운 인식의 차이를 이번 글에서 확인하 고 싶었을 것이다. 추천작 2.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본정: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이 글은 개항 이후 1910년 국권이 피탈될 때까지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서울의 일 본인 거류지가 확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즉, 1880년 최초로 일 본의 공사관이 서대문 밖 청천정에 설립된 시기부터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과정에서 수차례 공사관이 도성 내외를 옮겨 다니는 시기까지를 초기 단계로 보고, 1885년 주 동에 공사관이 자리를 잡은 이후 1894년 청일 전쟁의 발발까지를 제1시기, 청일전쟁 이후 러일전쟁의 발발까지를 제2시기, 그리고 이후 한일합방까지를 제3시기로 나누 어 살펴보고 있다. 제1시기가 이후 자리를 옮기지 않고 남산 북록에 영구적인 일본인 거류지의 중심이 정착하는 과정이었다면, 제2시기는 남대문로로 거류지를 확장하고 교육, 통신, 경찰, 의료, 경제 등과 관련된 주요 근대적 제도와 도로와 상하수도 등의 주요 도시 기간 시설을 설치하는 시기, 그리고 제3시기는 거류지를 더욱 확장하여 동 쪽으로는 묵정동에 신정을 개발하고, 남쪽으로는 용산 일대에 거대한 신거류지를 조 성하는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글은 이처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서울 내 일본인 거류지의 확산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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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장과정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을 충실하게 조사하고 매끄럽게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동시에 역사적 분석에 필요한 이론적 틀이 약하고 서술적인 내용으로 일관한 점이 약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처음부터 논문이라기보단 책에 더 적합한 원고라고 할 수 있고, 이 심사가 논문의 심사가 아닌 출판용 원고를 고르는 일이라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논쟁적이며 또 미련이 남는 부분이 7장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가령 7장 1절에서는 초기 이주자의 출신과 배경을 두고 이들이 행하였던 일상생활과 서울 내 일본인 거류지에서 선보였던 근대적 도시 시설과를 구분하여, 메이지 문화와 메이 지 문명을 나누어서 해석하고 있다. 흥미로운 내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더 이상으로 진전되지 않고, 목욕탕의 사례에서와 같이 어떤 곳에서는 구래의 일본 문화 로, 어떤 곳에서는 근대적 편의 시설로 섞어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같은 장의 두 번 째 절에서는 결국 서울 내 일본인 거류지의 근대적 성격은 서구의 근대 도시와도 다 르고 일본의 근대 도시와도 다른, 한국, 서양, 일본의 혼종적인 것이라는 다소 평이한 도시가 가지는 재래의 틀과 일본의 근대가 가지는 서구 근대의 번안물로서의 이중성 이 결합된 당연한 일이 아닌가. 같이 후보로 올라온 “종로”에 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일차 자료의 해석에 는 자료의 생산 배경을 고려한 비판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외 국인의 기행기, 거류민단의 주장, 민족지의 논설은 모두 자신의 경향성을 가지고 있으 며, 심지어 통치 기구의 자료 이용에 있어서도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역시 7장에서 간략히 다루고 그쳤지만, 동 시기 한성부 전체의 상황과의 비교가 보완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천작 3. 근대 서울의 도시사–상업 공간(종로)의 변용 이 글은 서론과 결론 외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역사 도시 서울의 개발사를 종로를 중심으로 개항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간 략히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하여 시전의 단계별 성립 과정을 다 루고 있다. 2장은 종로를 포함하여 도시 전역에서 일어나는 도로와 도시 시설의 설치 에 관련한 내용을 신문 기사를 통하여 조사하였다. 제2부는 1920년대 초부터 1940년까지 종로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구체 적으로 3장은 제도로서의 도로의 변화, 4장은 가로변 저층 건물 제한과 가로등의 설 치, 5장은 야시의 설치, 6장은 종로변 지주의 변동과 상점의 분포 변화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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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한국의 식민 도시가 가졌던 세 가지 바탕, 즉 역사

이 가운데 3, 4, 5장은 주로 신문의 기사를 인용하고 있고, 6장은 『경성관내지적목록』 과 『경성상공명록』을 주된 자료로 삼고 있다. 특히, 6장의 자세한 조사 내용은 종로변 에 위치하였던 각 상점들의 변화 내용을 소상히 다루고 있다. 제3부에서는 역시 신문 기사의 조사를 통하여, 공원과 종로 등 중심 가로에서 일어나 는 대규모 행위를 다루고 있는데, 7장에서는 공원 일반에 대하여, 8장에서는 파고다 공원에 대하여 정리하였고, 9장에서는 1915년 경복궁에서 열렸던 물산공진회, 어린 이날 행사, 관제묘 위패 봉안행사, 석가탄신일의 관불회 행사 내용을 정리하였다. 전체 9장 가운데, 1장과 6장을 제외한 나머지 7장은 신문 기사를 중심 자료로 삼고 있 고, 종로를 중심으로 하지만 2장, 3장, 4장, 7장 등은 다른 지역의 내용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자세한 자료의 검토가 돋보이지만, 이 글이 가지고 있는 약점 또한 적지 않다. 우선 이 글은 많은 경우 신문 기사의 일차적인 분류와 해설에 그치고 있고, 때에 따라 행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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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역사적 평가와 해석은 신문이 갖는 한계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이지 않아서 위험하다. 그것은 식민지에서 발간된 신문이 갖는 의도적인 경향성은 물론, 전언을 위주로 하는 신문 기사가 갖는 비의도적인 오류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따라서 신문 기사를 학술 논 문에 이용할 때는, 그것이 당대인, 혹은 편집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닐 때 에는 다른 자료와 충분히 교차 분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의 6장이 돋보이는 것은 충분히 객관적인 자료를 이용하여 그것을 지도에 대입하여 공간화하는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향후 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지려면 “신문 기사를 통하여 본 식민지 시기 종로의 변화”로 제목을 축소하고 불 필요하게 들어가 있는 부분을 생략하여 집중하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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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독후감을 바탕으로, 심사위원회 석상에서 다른 심사위원들과 종합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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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를 진행하였다. 특히 ‘진고개’(추천작 2)와 ‘종로’(추천작 3)를 다룬 두 편의 글을 놓고 장시간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는 이야기가 오고갔으며, 최종적으로 서술적 완성 도에서 우세한 ‘진고개’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최근 도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접근이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근 대기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 이전 시기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자료, 그것도 훨씬 더 풍부한 시각 자료가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자들의 광범위한 접근을 이 끌어 내고 있다. 더욱이 근대기는 ‘기억할 수 있는 과거’, 즉 오늘날에 가장 가까우면서 오늘과 다른 ‘이웃한 역사’이기 때문에 많은 수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부문이기도 하 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단순히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전언집의 수준을 넘어 서는 일이 연구자에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사실의 정리가 아닌, 새롭게 쓰여지고 해석된,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심적으로 검토된 두 편의 원고를 두고 오래 고민한 것은 과연 그 경계를 넘었는가에 대한 확신 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료의 분석과 분석의 담론에 남아 있는 문제는 향후의 작업을 통해 보완되기를 기대한다.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요약문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이연경 연세대 학사지도 교수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발표

개항 이후 외부 세계로부터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던 한성부에 1880년대 초 반 일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중 대다수는 공사관 관리와 군인들로서

34 심사평1.

심사위원: 안창모

36 심사평2.

심사위원: 배형민

38 심사평3.

일본 제국의 대리자들로 온 것이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저 한몫 잡기 위해 위험 을 무릅쓰고 이국땅에 혈혈단신 온 자들이었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한성부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한성부의 남쪽 끝, 남산 언덕 위의 진고개泥峴 일대에 자신들만의 거처를 마련하고 살기 시작하였다. 한성부 속 ‘작은 일본’은 이렇게 생겨 났다.

심사위원: 전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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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요약문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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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이연경

1880년대 이후 제국 열강이 한국 내에서 충돌하는 가운데 일본의 세력은 점차 커져 갔고, 따라서 일본인 거류지의 영역은 서울의 청계천 이남 지역인 남촌南村 일대를 아 우를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일본인 거류민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거류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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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33

의 지명 역시 일본식으로 변경되어 진고개는 더 이상 진고개로 불리지 않았으며, 대신 ‘本町혼마치’라는 일본인 마을의 중심지를 뜻하는 명칭으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하였다. 일본인 거류민들은 이 지역에서 일본식 집을 짓고 일본식 상점을 열고, 자치적 경찰 제도와 소방 제도도 운영해 나갔다. 그리하여 일본에 의한 한일병합이 이루어진 1910 년경 진고개 일대는 완연한 일본식 마을의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소규모로 일본인 거류지가 시작한 1880년대부터 일본에 의한 식민화가 본격 화되는 1910년까지의 일본인 거류지의 변화는 1894~95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을 계기로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제1기는 남산 위에 공사관을 건축하 면서 본격적으로 거류를 시작한 1885년부터 청일전쟁 이전까지의 1894년까지로서, 이 시기 거류지는 남산 북록北麓의 진고개 일대에 소규모의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마 련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2기는 1895년 청일전쟁 이후부터 1904년 러일전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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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거류지의 시기별 영역(추정)과 본정(本町)도로. (김종근, 「서울 中心部의 日本人 市街地 擴散)의 그림 27.과 경성부사의 위치 정보와 대경성정도(1936)를 바탕으로 1907 경성전도 위 재작도)

1885

거류지 주요 도로 개수 사업 (1907 최신경성전도 위 작도)

42

1894 1


본정 도로 추정 단면 (<28년 중에 있었던 경성니현지방 도로의 수리>, 통상휘찬 제 35호 (1896.2.15.) 및 경성 발달사 기록에 근거하여 작도)

전까지에 이르는 시기로, 거류지는 남대문로 방면으로 확장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일 본식 마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 시기인 제3기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부 역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거류지는 식민화의 전초 기지로서 정주지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인 거류지에서 나타난 도시 변화는 물리적인 도시의 변화뿐 아니라 일본 인들이 한성부에 들어와서 거주하게 됨으로써 생긴 생활의 변화를 동반한다. 특히 일

1894

1895

본의 정치적 침략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진출한 일본인 상인들이 이룩한 상업적 발 전은 거류지의 성장과 한성부에 미친 영향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일본인 거류 민들이 한성부 내에서 일본식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활 환경 역시도 거류 지 도시 변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일본의 거류지 내의 도시

변화는 물리적 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도시 생활의 변화 차원에서 고찰 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일본인 거류지의 도시 변화를 위에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아 래로부터의 변화, 즉 정치권력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시민 생활의 변화로 읽어 낼 필

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본인 거류지의 도시 변화를 물리적 환경이라 할 수 있는 도로 환경과 도시 생활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상업 환경, 생활 환경의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도로 환경의 경우, 청일전쟁 이전까지는 불안정한 거류지의 상황 속에서 이렇다 할 변 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였지만 1895년 처음으로 혼마치本町 도로의 도로 개수 사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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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1910년까지로, 거류지의 영역은 남촌 일대 전역 뿐 아니라 용산을 비롯한 성외 지

시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거류지 내의 도로 환경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거류지의 도 로 개수 사업은 거류민단의 주도로 1895년 처음 시행된 이후 1910년까지 지속적으 로 이루어졌다. 도로 개수 사업은 노폭을 확보하고 노면을 정리하는 것과 함께 배수 로의 정비 및 하수도의 매설, 하천의 매립 등을 그 내용으로 하였으며, 도로 개수 사 업 이외에도 거류지에서는 1903년 소규모이긴 하였으나 상수도를 설치하기도 하였 다. 이와 같이 도로를 개수하고, 상하수도를 구축하면서 거류지는 이전보다 교통이 편 리하고 청결한 도로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처럼 거류지 도로 환경 개선 사업은 1895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만들어 냈으나 이는 거류민단이 공공 사업으로 시행하거나(도로 개수 사업의 경우), 사설로 설치하였던(상수도 사업의 경우) 것이었기에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도시 계획의 측면 에서 시행된 것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 이었다. 이와 같은 성격은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긴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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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으나 거류민단이 시행하는 거류지 내 도로 개수 사업은 여전히 민간 차원에 머무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업 환경의 경우, 상인이 중심이 되어 발전한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특성상 거류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류 초기 일본인 거류민들에게 생 필품을 공급하기 위한 수준에서 설치되었던 일본인 상점들은 점차 거류민 인구가 증 가하고, 한일 무역이 성장함에 따라 거류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및 한성부 내에 거주하던 기타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거류지 상업은 각종 무 역 잡화를 비롯하여 의복, 식료, 주생활 등에 필요한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거류지 상업의 발전에 따라 점차 대형화, 복합화되어 갔다. 거류 초기 진고개 일대, 즉 혼마치本町 4~5정목 일대와 고토부키마치(壽町, 현 주자동) 일대에만 설치되었던 일본 인 상점들은 청일전쟁 직전인 1893년 남대문로로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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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이후에는 남대문로 주요 지점들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일본 상인들 의 한성부 주요 상업 가로로의 진출은 청국 상인과 한국 상인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키 기도 하였으나, 상설 점포를 설치하고 쇼윈도우에 상품을 진열하고 적극적인 광고를 하는 등 새로운 상업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청국 상인과 한국 상인들과의 경쟁에서 앞 서 나가기 시작하였다. 혼마치本町도로를 비롯한 이 일본식 상업 가로 환경은 약 7m 정 도의 폭을 가진 좁은 도로의 양 옆으로 2층 규모의 마치야町屋들이 건축되어 만들어졌 는데, 상점으로 사용되는 것은 주로 1층 부분이었으며 그 중에는 쇼윈도우가 설치되

1895

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마치야의 전면부는 간판 및 휘장, 점등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 되어 있었으며 마치야 이외에도 2~3층 규모의 목조 비늘판 서양 건축물들이 등장하 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중층 이상의 건축물에 화려한 장식을 한 상점 건축이 등장함 에 따라 이 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의 경험 역시 변화하게 되었으며, 이는 도시의 번화 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이 시기부터 만들어진 혼마치本町 상업 가로는 1910년 이후 원래 한성부의 중심 상업 가로인 종로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여 남촌의 중심 상업 가 로가 되었다.

거류지의 생활 환경은 새로운 도시 제도의 도입과 도시 시설들의 설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거류 초기부터 거류지에는 거류민 보호 및 거류민 생활 편의를 목적으로 외 교 기관들과 공공시설, 그리고 자치 행정 시설들이 설치되었으며, 위생, 의료 시설들 과 가족 단위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교육 시설들이 등장하였다. 또한 거류지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의 종교 시설들과 전쟁을 전후하여 군인들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유곽과 같은 유흥 시설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거류지에는 거류민들이 일본 본국에서 와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들이 설치되었으며,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의 일본과 마 찬가지로 일본인 거류지의 생활 환경은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 및 교육, 위생 제도와 그 시설들에서는 상당히 근대화가 진전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 나, 거류민들의 일상적 의례들과 생활, 특히 종교 문화나 유흥 문화 등에서는 에도江戶 시대의 문화가 그대로 나타남으로써 상당히 ‘일본적’인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는 한성 부 일본인 거류지의 경우,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만들었다기 보다는 주로 서일본지역 출신의 상인 계층이 중심이 된 민간에서 자신들의 생활을 위 하여 만들었던 것이기에 당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활문화가 그대로 유입되 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식민지화가 시작됨에 따라, 거류지의 생활 환경은 전체 한성부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1910년 이후에는 그것이 더 본격화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이 지역의 생활 환경의 구축은 1910년 이후 한국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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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주요 상점의 위치 (출처: 경성부사, 1937 대경성전도 위에 표시)

거류지 도로변 상점 점두의 각종 장식들(사진 출 처: 호주 사진가의 눈으로 본 서울, 1904. 사진 위 에 필자 표기)

(출처:京城と内地人, 1907 최신 경성전도 위 작업)

1904

1898년 한성부 내

일본인 거류민들의 출신지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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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거류지 상업 시설의 지역적 분포

1910년 한성부 내 일본인 거류민들의 출신지 분포 거류지 내 건축물의 유형별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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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과정에 있어 일본식 문화가 깊이 개입되는 것의 전단계로서 의미가 있다. 약 25년간의 시간 동안 일본인 거류지는 외부적 상황과 상호 영향 관계 하에서 내부적 인 변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한성부의 남산 북록 남촌 일대의 면모를 크게 변화시켰다. 단층의 초가집이나 소규모 기와집으로만 이루어졌었던 이 일대의 경관은 2층 이상의 일본식 혹은 서양식 건축물들의 등장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이 혼합되어 만들 어진 일본인 거류지의 혼종적인 경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주거지로서의 단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남산 북록 일대는 일본인들의 거류가 시작된 이후 혼마치本町 도 로 주변으로는 상업적 성격, 청일전쟁 이후에는 혼마치本町 도로 입구 주변에는 행정적 성격, 남산일대에는 종교적 성격이 강화되었으며 러일전쟁 이후에는 신정 일대에 유 흥 지역이 설치되고 1907년 이후에는 왜성대 일대에 관사들이 들어서면서 관사 및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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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가 형성됨으로써 점차 다양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인 거류지의 도시 환경 변화는 같은 시기 메이지 일본과 한성부의 변화 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성부에 온 일본인 거류민들은 기본적으로 1880 년 이후에 일본에서 온 이들이기에,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온 이들이었다. 출신성분상 변화의 중심에 있거나 도쿄와 같은 대도심에서의 근대적 인 도시 변화를 직접 목도한 이들은 아니었으나 한국보다 먼저 서양 근대 문물을 접하 게 되었고 메이지 정부가 시도하던 근대적 개혁들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기에, 거류

1904

지에서도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시행되던 교육 및 위생 제도 등을 도입하고자 한 것 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메이지 일본과 마찬가지로 거류지 내에도 그 생활 문화는 여전 히 에도 시대의 것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한성부와 일본인 거류지는 상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처음 거류지가 설치되었을 때에는 거류지 자체가 소규모였고 그 위치 역시 한성부의 주변부에 위치하였기에 거류지 내의 변화가 한성 부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적었으나 점차 거류지의 영역이 팽창하고 중심부로 진출하 게 됨에 따라 거류지 내의 변화는 한성부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거 류민들의 거류지 내 토지 및 가옥 소유를 둘러싼 문제라든지, 거류지의 도로 개수 사 업 시행에 있어 한성부의 가가철거 및 도시 개조 사업과 영향을 주고 받는 등은 한성 부와 거류지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일본인 거류지의 도시 환경 변화는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민간 주도 의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곳의 변화는 정치적인 식민지화 가 시작되기 이전 일본인 상인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위한 도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것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었다. 일본인 거류민들은 거류지에서 만들어 낸 변화들에 상 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들을 이겨내면서 그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변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통감부 설치 이후에는 일본인 거류민들이 만들어 낸 거류지의 변화를 식민지화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일본인 거류지의 도시 변화라는 것인 메이지 초 일본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양상과 전근대적 인 일본의 에도시대의 양상들이 혼합되어 있었던 것으로, 일본인들이 주장하듯, 근대 적이고 문명화된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적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1885년에서 1910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거류지에서 만들어진 도시적 변화는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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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년 이후 한성부의 전체적인 도시 변화로 이어지면서, 한성부 전체가 기존의 북촌 중심 의 도시 구조에서 남촌 중심의 도시 구조로 재편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 동안 전통 도시 한성부에서 근대 도시 경성부로 전이하는 과정은 일본에 의한 식민 화라는 단절을 계기로 완전히 분리된 개념, 즉 식민화 이전의 한성부와 식민화 이후의 경성부로 다루어졌는데, 이 연구를 통해 일본인 거류지가 한성부에서 경성부로 전이 되는 연결 고리로서 남촌 일대의 도시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1910년 이전 서울에 살던 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도시 환경의 변화 및 생활의 변화는 당시에는 거류지 내부에만 국한되는 문제였지만, 식민지화가 본격화됨에 따라 전체적인 한성부의 도시 환경과 도시민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1904~1910 거류지 영역별 성격

1910

06 1905년 경 남산에서 본 일본인 거류지 일대 (출처: 한국의 백년)

The 6th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1907 최신 경성전도 위 작업)

1910년경 본정 거리 (출처: 京城と内地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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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6th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수상 소감 | 이연경 감사합니다.

고개’일대에서 새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어떤 말로 감사함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저 감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찾아보다 보니 일

사하다는 말을 드릴 수 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본인들이 대거 그곳에서 살면서 상점을 열고 한국 사

박사 논문을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 먼저 연구의 본을

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또 한국인들의 땅을 빼

보여 주신 많은 선배님들, 논문 쓰는 내내 큰 힘이 되

앗기도 하고 한국인들과 싸움을 하기도 하는 등, 그동

어 준 친구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안 잘 몰랐던 그 땅에 새겨진 시간들이 점점 드러나 보

소중한 인연 한 명 한 명, 그리고 늘 제 길을 인도해 주

였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우리가 그토록 지우고 싶

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었던 ‘일본인’들이 살았던 지역이기에 상대적으로 연

이 상을 받게 되며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구의 주제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남아있는 흔적

했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연구 하는

들도 적은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일본인

내내 연구 자체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고, 연구를 잘

들 주도로 만들어진 도시 변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식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했는데, 이에 더하여 제 연구에

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이렇게 좋은 기회까

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대해 공

지 얻게 되니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

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니다.

들었습니다. 우리 도시에는 이미 그들이 남겨 놓은 흔

건축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참 즐겁고도 매력적인 일

적들이 많이 남아 지금 우리 도시를 형성하는 데 크게

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흔적을 하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본인 거류지

나하나 살펴보는 것은, 이 땅이 간직하고 있는 시간의

를 연구한 것은 오늘날의 서울을, 오늘날의 한국 도시

켜를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가 잊고 지낸, 아니 어쩌면 너무

이 상을 받음으로써 제가 이 연구를 했던 목적에 대해

나도 모르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습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보

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하나의 논리로, 이야기로 엮어

완하여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 내야겠다는 다짐을 해

내어, 이 도시가 개발 논리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

봅니다. 학위 끝나고 조금은 나태해져 있었던, 자신의

니라, 아주 소소하고도 일상적인 것들이 쌓여 만들어

정체성이 무엇인지 몰라 헤매이던 저에게 심원건축학

진 것임을 알리는 것이 건축 역사를 하는 저와 같은 사

술상은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와 격려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정직하고 좋은 연

일본인 거류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

구자로 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보통 사람

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켜를

들이 살아간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 도시

하나하나 벗겨 내어 보다가 권력자들이 아닌 그냥 보

의 시간이 가진 가치를 앞으로도 하나씩 하나씩 찾아

통의 사람들의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게

내어, 그 시간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습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 보통의 삶이 언제 가장

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건 사고와 어려움에도 불구

변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근

하고 매일의 일상을 살아갔던, 그리고 현재도 살아가

대 문물이 처음 들어온 시기, 즉 20세기를 전후한 시기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시기 신문들을 읽다가 ‘진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발표

34 심사평1.

심사위원: 안창모

36 심사평2.

심사위원: 배형민

38 심사평3.

심사위원: 전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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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요약문

한성부의 ‘작은 일본’,

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기억되는 우리 도시였

진고개 혹은 本町:

으면 좋겠습니다.

이연경

이연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2002),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013) 석사 학 위 취득 후 진아도시건축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하였으 며(2004-2007), The Institute of Fine Art at New York University에서 1년간 공부하였다.(2007-2008) 강원대 학교와 동양미래대학교,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등 에 출강하였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 대학 학사지도교 수로 재직 중이다. 19세기 말 이후 한국의 도시가 겪은 근 대화와 식민화의 과정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도시 환경과 건축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지 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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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48

수상 소감

이연경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FOCUS

비정형건축 DDP 조형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사진 | 김재경 사진 편집위원

FOCUS

지난 3월 21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가 문을 열었다. 말

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큼 건축 전문가들은 이 새로운 건축의 등장에 비난의 날을 세웠다. 이에 본지는 이것의 근거가 되는 정치/경제적 배 경과, 역사/도시의 문맥과, 현상 설계의 미심쩍은 과정과, 외국 스타 건축가에 대한 맹목적 동경 등을 제거하고 오로지 DDP가 가지는 센

세이셔널한 조형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들은 “DDP

약문

는 자하 하디드의 사적 욕망의 분출”, “DDP가 곧 자하 하디드”, “건

축가가 제시한 개념인 환유의 풍경은 (책임 회피를 위한) 수사적 전 략일 뿐(새겨진 풍경-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송종열)” 등의 주장에서 볼 수 있는 비판적 입장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조형은 보는 이의 관 점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되기도 하거니와 현재의 흉물이 미래의 랜드 마크가 되는 전례가 건축에서 없지 않기 때문이다. DDP가 미래에 한 국 건축사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될지는 실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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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DDP와 서울의 희망?

1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졸업하고 독일 뷔츠부르크대학에서 수학, 트리어대학 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춘천교대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비정형건축의 실존적 비정당성

와이드 Focus 시선 1

이종관은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저서로는 『사이버 문화와 예술의 의혹』, 『과학에서 에로스까지』, 『자연에 대한 철학적 성찰』, 『소설로 읽는 현대 철학』, 『소피아를 사랑한 스파이』 등이 있 고, 주요 논문으로는 『그림에 떠오르는 현대문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성애의 현상학』, 『과학, 현상성 그리고 세계』, 『후설의 정초주의를 옹호하며』, 『공간의 현상학 풍경 그리고 건축』, 『디지털 철학』 등이 있다.

동대문 DDP출현 배경

며 노골적으로 자리잡을 정당성이 있는가?

DDP가 개장했다. 일그러진 스타일을 거침없이 외설적으

물론 비정형 건축의 양태도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대체

로 노출하는 형태의 역동성으로부터 DDP를 둘러싼 스캔

적 경향은 건축의 핵심을 이루는 공간의 문제가 과거와는

들이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도시 경관을 망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거 건

쳐 버린 기괴한 우주선이라는 혹평에서부터 역시 세계적

축물은, 특히 근대 이후 20세기 전반부까지의 건축을 보

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명품 건축물로 관광 명소가 될 것이

면, 주로 완벽한 직선, 완전한 원 등 정형화된 도형을 구현

라는 찬사에 이르기까지. 또 사업의 추진 과정 그리고 향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현대건축에서는 이러한 공간 형태가

후 예상되는 엄청난 운영 비용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파격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오히려 구부러진 공간의 자유

다. 그러나 또 다시 이러한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로운 변주가 소위 이 시대의 스타 건축가로 칭송되는 건축

서 DDP란 사업이 출현한 배경과 그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가들에게서 목격된다. 요컨대 구부러진 공간의 자유로운

반성이 필요하다.

변주에서 건축물은 접힘과 펼침의 굴곡이라는 드라마로

DDP는 전임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디자인 시티 서울의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 사업이었다. 소위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로 치장함으

건축물에 접힘과 펼침, 굴곡의 드라마라는 파격적인 공간

로써 세계의 이목을 끌어보자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를

적 형태를 부여하는 건축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이라크 출

위해서 시대의 건축을 선도하는 첨단 유행에 재빨리 편승

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이다.

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선택되었다. 그때 당시의

하디드의 작품은 일견 마치 공상 과학 영화의 세트와 같

정책 당국자 및 그를 보좌하는 전문가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 우리의 상식적 공간 경험을 전복시키는 형태를 보여

것은 비정형건축이라는 최신 유행 건축이었으며, 이 유행

준다. 그러나 하디드의 건축미학이 공상에 불과한 것이

의 첨단에 서 있는 자하 하디드라는 스타건축가였다. 결국

아니라면, 그리하여 단순한 세트가 아니라 실재 공간에서

하디드에 의해 우리의 동대문 지역이 DDP라는 건물로 점

사는 우리의 삶을 담는 건축물이라면, 그 공간적 구조는

유될 것이라고 선언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울을 매력적

실재 공간의 법칙에 의해 타당성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

인 도시로 만들어 도시 자본을 증식시킬 것이라는 희망이

다. 여기서 최근 건축계의 새로운 이론가로 주목받고 있

대대적으로 광고되었다.

는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베르나르 카쉬Bernard Cache

하디드는 줄곧 주장하였다. 전세계인 탄복하는 서울의 역

를 경청해 보자. 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하디드의 건축적

동성을 담아내기 위해 동대문은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철

공간이 어떤 근본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지 시사한다. “세

거한 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태의 비정형적 경관이 되어

계가 빈 공간의 선형적 형태가 아니라 휘어져 있다면, 실체

야 한다고.

의 표면과 질감은 서로 휘감아 돌며 펼쳐지는 전개 양상을 보일 것이다.”주1

비정형건축은 정당한가? 비정형건축의 지식고고학적 뿌 리, 상대성이론 하디드의 비정형건축으로 서울에는 희망의 빛이 비치고

주1.

있는가? 그런데, 대체 비정형건축은 무엇이며 그것은 정

Paul A. Harries, “To see with the mind and think through the eye,

녕 우리가 삶을 사는 거주의 풍경에 그렇게 희망을 광고하

50

Deleuze, Folding Architecture and Simons Rodia's Watt Towers,” in: Deleuze and Space, Toronto 2005, p.41 참조.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세계가 근본적으로 휘어진 공간이라는 것은 허황된 상상

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나 철학적 사변에 불과한가? 아니면 과학적으로 정당화 DDP와 물체적 인간? DDP 비정형성의 비정당성

현대 과학에 대해 일말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주 공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자. DDP의 건축적 상상력의

간이 실제로 휘어져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

심층에는 사실 상대성 이론의 물질 공간론이 깊이 숨겨져

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때 과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로 만들어진 물체인가. 인간이 어

이론으로 새롭게 출현하는 바로 그 과학이다. 이른바 일반

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고 또 어디로 돌아오는 것이 물리적

상대성 이론에서 질량 분포의 법칙이라는 새로운 공간론

공간에서 굴러다니는 돌과 같은 방식인가. 그리하여 인간

은 이렇게 실재 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혁명적으로 변

도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그 공간에서 질량 분포 법칙 지

화시켰다.

배를 받기에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물체인 건축

특히 공간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건축은

물도 굴곡의 공간으로 지어져야 하는가. 자하 하디드가 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밝혀진 새로운 공간 개념

은 그 DDP에서 우리 인간은 물체와 같은 방식으로 운동하

을 실재의 공간으로 수용하고, 건축도 그러한 공간 안에서

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그 공간은

일어나는 작업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아인슈타인의

그 현란한 물질적 역동성으로 오히려 삶의 모든 것을 다

상대성 이론은 건축 공간을 이질적 공간으로 분할하고, 또

지워 버린 빈곤한 경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굴곡으로 변이하는 공간을 건축의

그 삶의 기억도 지워지고 결국 그 기억과 함께 가야할 미

장에 도입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래도 지워진 것이 아닌가.

출현 이후 나타난 새로운 건축의 경향은 그 이후 많은 건

대체 인간은 어디에 사는가. 인간은 물체처럼 아인슈타인

축가들의 작품 속에서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시사

공간에 사는가. 우선 가장 분명한 것은 인간은 물체와 달

된다.

리, 또 동물과 달리, 살면서 항상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문제

자하 하디드는 건축 공간을 조형하는 데 명시적으로 아인

삼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생존본능에 매몰되어 있는 동

슈타인의 공간론에 기댄다. 그녀가 아일랜드 수상의 관저

물과는 달리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안다. 그

피크Peak의 설계안에서 구상한 작품은 그 대표적 증거이다.

러기에 사람은 이러한 유한한 삶 속에서 잘 살기 위해 어

이 작품은 공간 형태, 힘, 운동의 관계를 오직 아인슈타인

디에 살아야 하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

의 질량 분포의 법칙에서 도출되는 힘과 형태의 양상으로

가면서 존재하는 존재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이

만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러한 독특한 존재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표현했다.

공간은 더 이상 정적이고 고정된 형태로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속에서 그 자신의 존재가 문제가 되

하디드에게 공간은 그 자체로는 빈 상태가 아니다. 또 힘도

는 존재자이다”라고.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독특한 존재

그 공간의 형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안에 작용하는

방식을 단순한 있음, 또 생존과 구별하기 위해 실존existenz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이 설계 안에는 공간, 에너지, 그

이라고 불렀다.

리고 물질의 직접적인 관계가 상정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거주는 생존 과정이 아니라 실존 과정이며, 이러한

이 작품에서 중력은 빈 관성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

실존 과정으로서의 거주는 존재의 문제와 관련함으로써만

라, 방향을 갖고 있는 역학의 영역으로 형태를 뒤틀면서 동

거주한다. 죽을 운명의 존재인 인간의 거주는 그의 삶과 죽

적으로 배열한다.

음과 관련된 절실한 존재의 의미가 뚜렷해지는 곳에 정착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디드의 공간 상상력은 직/

기를 원하며, 이러한 정착은 존재의 의미가 직접적으로 구

간접적 혹은 명시적이거나 들뢰즈와 같은 철학의 지원을

현되는 사물에 머물거나 사물을 지으면서 시작된다.주2 그런

와이드 Focus 시선 1

될 수 있는 사실인가?

받으며, 상대성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건축의 상상력의 심층에 있는 상대성 이론의 타당성 근거를 되물

주2.

어 가는 작업 없이,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삶과 어떤 관계

건축가 Wolfgang Meisenheimer는 건축의 의미를 농부들, 기사들의 다

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 없이, 이러한 건축들은 아인

음과 같은 소박한 언술에서 발견한다. “나는 여기서 머무르고 싶다! 여

슈타인이라는 절대적 명성을 추종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마치 상대성 이론이라는 SF를 건축이라는 스크 린에 상영하는

쇼케이스showcase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생생하게 진행되는 우리의 삶이 거주하는 건축이

기 살겠다! 여기에서 죽을 것이다! 농부들의 말, 기사들의 말, 왕의 말, 건 축을 향한 최초의 분기점”, 그는 “이보다 더 간결하게 공간의 성질을 정 의한 말을 알지 못한다“고 설파하며 ”우리들은 이 공간의 성질로부터 출 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Wolfgang Meisenheimer, Choreografie des Architektonischen Raumes, Verschwinden des Raumes in der Zeit, Seoul, 2007, 70쪽.

51


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데 사물을 그 원래 의미에 따라 하늘, 땅, 신성함, 죽을 운

라는 인간 삶의 공간은 불행하게도 세계 최악의 도시 3위로

명의 존재자의 모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방으로서 사

찬양된다. 하지만 서울은 한편으로는 놀기 좋은 곳으로 또 손

물성이 가장 뚜렷하게 현시되는 사물은 산, 물, 숲이다. 인

꼽히는 곳이 아닌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노출되었듯이

간에게 산, 수목, 물과 같은 사물들에서 사물성이 가장 탁

서울은 사람들이 잘 놀고 밤새도록 즐기는 행복한 도시가 아

월하게 현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풍경은 이러한 사물들

닌가.

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풍경의 중심

그래서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서울은 다이나믹하고 지치지

을 형성하는 사물들은 존재론적 의미의 초점으로서 신성

않는 도시, 특히 금요일이 폭탄주로 불타는 도시가 아닌가.

성을 발하며 죽을 운명의 인간을 거주로 초대한다. 즉, 인

이를 방증하듯 우리나라는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음주량

간의 거주는 이렇게 사방으로서의 사물성이 뚜렷한 곳에

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런 행복으로 불타는 도시 서울에 대해

서 정착으로 초대받으면서 공동의 삶이 시작되는 터를 형

서울을 최악 도시 3위에 등극시킨 론리플래닛은 또 다음과

성한다. 인간의 삶이 일어나는 그러한 장소는 항상 어떤 존

같은 이방인들의 평을 전한다.

재하는 것들이 이루는 의미가 발현되어 있다. 노르베르그

“여기저기로 무질서하게 뻗은 도로들, 소비에트 스타일의 콘

슐츠Norberg-Schultz는 이렇게 발현된 의미를 고대 로마인들

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심각한 오염, 영혼도 (뜨거운) 마음도

의 말을 빌어 장소의 영혼Genius Loci이라고 부른다. 동대문

없다. 숨막히는 단조로움이 사람들을 알코올 의존증으로 몰

의 DDP, 그것은 결국 장소의 영혼을 지워 버린 비정형건

고 있다.”주3

축이다. 그리고 이 비정형성은 실존에 대해서는 비정당성

영혼이 없는 서울,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방인들의 충격적인

으로 비화한다.

고백에서 등장하는 그 말은 장소의 영혼이 사라진 도시를 일

와이드 Focus 시선 1

컫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장소의 영혼은 인간의 실존을 통해 실존하는 인간들의 서울, 어떤 공간인가?

존재 의미가 밝혀지면서 그 인간의 거주 장소가 확보되는 터

그런데 대체 지금까지의 논의가 이르는 실존적 인간과 장

가 아닌가. 그렇다면 장소의 영혼이 사라진 도시는 인간의 실

소의 영혼이란 결과가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인간들에게

존적 거주가 위험에 처한 도시이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동대문 DDP, 천문학적 숫자의 건축비와 운영비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여행 전문지 론리플래닛

그 최첨단 구조물은 과연 장소의 영혼을 상실한 서울을 치유

Lonely Planet에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따르면 이곳을 방문한 이방인들에게 서울이

주3. 이상의 서울 관련 인용문은 2010년 1월 4일 자 주요 일간지 보도에서 간접 인용한 것이다.

52


특유의 곡선으로 감싸진 어울림광장의 동굴계단


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DDP의 건설 IT 기술의 가치

와이드 Focus 시선 2

2

김선우 Syntegrate 파트너 김선우는 뉴욕, 런던, 서울의 건축 설계 및 프로젝트 관리 회사와 게리 테크놀로지스를 거쳐 현재 신테그래 이트(Syntegrate)의 파트너로 있으면서 아시아 퍼시픽, 미국 및 중동 등지에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카타르 국립 박물관 등 10여개의 BIM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새로운 형상에 대한 열망과 시도

인 견해 또한 많다. 여기서는 비판적인 견해보다는 전산화

더 시크릿 라이프 오브 빌딩The Secret Life of Buildings이라는 방

computation

송 프로그램에서 건축 비평가인 톰 딕호프Tom Dyckhoff는 최

링 기술의 측면에서 DDP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말하고자

근 건축물들이 형상의 복잡성과 화려함을 지나치게 강조

한다.

하게 되면서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잘 알려져 있듯이, DDP는 BIM이라 불리는 건축 및 건설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향이 빌바오 구겐하임the Guggenheim

IT기술을 대부분의 분야에 적용하였다. 가장 복잡한 외장

in Bilbao 의

상업적인 성공 이후로 두드러졌으며 컴퓨터로

분야의 BIM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면, 외장 분야는 각기

화려하게 설계된 건축물들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보

다른 형상을 가진 46,000여 장의 패널 면 모델 설계 안으

다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기술의

로부터 관련 상세에 대한 설계, 분석 및 기계 제작을 위한

발전에 힘입어 이전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복잡한 형상을

데이터 생성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을 전산화와 IT 기술을

가진 건축물이 많이 생겨나게 되면서 이와 같은 비관적인

활용하여 시공이 가능하도록 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견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에 있어서 새로운

프로젝트 초기, 설계된 외장 패널의 면surface들은 각각 하

형상에 대한 열망과 시도는 항상 있어 왔고 기술의 발전은

나의 파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설계된 46,000여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해 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세기

개의 외장 패널이 46,000여 개의 파일로 구성되어 있었는

및 ITInformation technology와 같은 새로운 엔지니어

설계를 시작한 성가족 성

데, 이후 일련의 과정을 위해서는 활용 가능한 BIM 모델

봐도 그렇다. 화려함과 세밀함으로 유

로 재생성 및 통합되어야 했고, 또 설계 변경을 할 때도 업

명한 가우디의 설계 안을 구현하기 위해 1883년부터 지금

데이트가 가능해야 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먼저 이를 위한

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노력해 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은 특정한 위치에

코르뷔제Le Corbusier

저장된 신규 혹은 수정된 패널 파일을 자동으로 찾아내서

후반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당La Sagrada Familia만

고, 현재도 여전히 건설 중에 있다. 르 가 1950년대에 설계한

콘크리트의 자

BIM을 위해 사용되는 통합 플랫폼에서 활용 가능한 파일

오토Frei Otto

형식으로 변환하는 기능을 가졌다. 이렇게 생성된 각각의

스타디움Olympic Stadium Munich

파일들은 이전에 개발된 파일 및 모델 구조에 맞추어 정해

에서 최초로 강철 케이블과 거대한 아크릴 유리 덮개를 이

진 위치에서 통합 및 저장이 된다. 관련 전문가들은 수일에

용하여 곡면을 구현하였다. 1973년에 개관한 시드니 오페

걸쳐 외장 관련자와 관리 팀들과 논의를 하며 프로그램을

롱샹교회Ronchamp는

유로운 조형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며, 프라이 는 1970년대에 뮌헨 올림픽

하우스Sydney Opera House

또한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건설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들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 준다.

설계하고 개발하였다. 상대적으로 간단하며 가장 기본이 되는 외장 패널 모델은 이렇게 생성되었고, 46,000여 장의 외장 패널 모델을 생성하는 데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46,000여 장의 외장 패널 모델

54

지난 3월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 플

타공의 비밀

라자(Dongdaemun Design Plaze, 이하 DDP)가 개관됐

DDP를 밤에 방문하면 타공된 패널 사이로 비춰지는 아름

다. DDP는 비정형 형상과 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다운 조명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패널의 세밀한 타

의 활용으로 유명한데, 개관 이후 기획 및 설계, 프로젝트

공을 위한 전산화 과정은 가장 난이도 있는 과제 중 하나

수행 과정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뿐만 아니라 비판적

였다. 시공 초기 단계에 타공을 위한 구멍의 지름과 타공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률은 크게 4가지로 결정되었다. 이 초기 설계 안을 각기 다

사이의 공간에 위치하는 스페이스 프레임은 컴퓨터로 설

른 4만 6천여 장의 모든 패널 형상에 적합하도록 적용시켜

계, 분석된 후 실물로 만들어졌다. 초대형 메가 트러스mega

야 했는데, 이때 생성되는 데이터는 제작, 시공 및 유지 관

truss는

리에 사용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다음

성 및 시공 가능성에 대한 시험을 거쳐 제작, 시공된 후 관

과 같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먼저, 각기 다른 형상을

리되고 있다. 외장 못지 않게 복잡한 형상과 곡률을 가진

가진 수많은 패널에 생성된 구멍은 그 배열이나 간격이 심

실내 설계 안 또한 사전 분석과 시험을 거쳤으며, 필요에

미적인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했다. 또한 구멍의 수와

따라 일부 구간은 경제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도록 최적화

간격은 해당 패널의 조도 및 환기를 위한 기능적인 조건들

rationalization되었다. MEP Mechanical, Electrical & Plumbing

을 만족시켜야 했다. 주어진 패널 이름의 특정 위치에 기

도 시공 이전에 복잡한 외장 구조나 실내 마감재와 충돌이

입된 숫자를 읽어서 타공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이러한 조

일어나지 않도록 분석과 수정 과정이 선행되었다.

최첨단 구조 기술과 전산화 기술의 도움으로 안전

설계 안

건들을 만족할 수 있는 모델이 자동으로 생성되어야 했고, 제작을 위한 구멍의 위치, 중심 축, 해당 패널의 정확한 타

새로운 기술 도입 과정이 보여 준 가능성

공률 등의 데이터들이 포함되어야 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시공 초기 계획에 따르면 DDP에서 매년 시공되어야 하

46,000여 장의 패널에 모두 적용되고, 패널 설계를 변경할

는 연면적은 37,920 m2 였다. 이것은 최근 준공된 같은 건

때도 원활한 대처가 가능해야 함은 물론이었다.

축가의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Guangzhou Opera House,

타공 설계와 제작에도 전산화 및 IT 기술이 활용되었다.

17,545 m2)는 물론 그 외의 비정형 건축물과 비교해도 매

프로젝트 팀은 먼저 컴퓨터가 자동으로 패널의 형상과 타

우 큰 면적이다.주1 또한 DDP의 이중 곡면 패널two-way curved

공 관련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였다.

panel은

이어서 구멍이 적절한 배열을 이루게 하는 수학 공식을 개

당시 이러한 규모와 복잡성을 가진 프로젝트 사례는 전 세

발했고, 그것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었다.

계적으로도 많지 않았다. 이것들은 DDP의 시공 과정에서

여기에 구멍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완성된 결과 모델을 분

프로젝트 팀이 수많은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시행착오를

석하여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의 개발이 추가되었

겪을 수 밖에 없었음을 말해 준다.

다. 패널당 수백 개 혹은 천 개가 넘는 구멍을 생성하는 이

프로젝트 팀은 무엇보다도 익숙하지 않은 BIM이라는 건

러한 알고리즘이 주어진 기간 내에 모든 패널에 적용되게

설 IT 기술을 직면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하기 위해서 해당 알고리즘은 여러 번의 시험, 수정을 거쳐

노력을 들여야 했다. 이것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적용

21,700여 장으로 전체의 약 49%에 이르는데, 시공

와이드 Focus 시선 2

최적화되어야 했다. 도전 과제에 도움이 된 기술들 이밖에도 전산화, IT 그리고 최신 구조 및 시공 기술 등은 DDP 시공 과정에서 많은 도전 과제들의 해결에 도움이

주1. Lee, G., and Kim, S. (2012). "Case study of mass customization of

되었다. 모든 패널들이 만나는 접합 부위의 각도와 위치 정

double-curved metal façade panels using a new hybrid sheet metal

보는 분석되고 시각화, 데이터화되어 패널 하부 지지 철물

processing technique" ASCE J. Constr. Eng. Manage., 138(11), 1322– 1330.

의 설계 및 제작을 위해 사용되었고, 철골 구조물과 패널

© 김선우

© 게리 테크놀러지스

전시관 BIM 모델.

전시관 BIM 시공 중 모습.

55


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또 다른 지식과 기술의 습득 여전히 DDP를 향한 많은 비판적인 의견들이 있다. 하지 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는 중요한 의미 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선, DDP는 최신 건설 전산 화 및 IT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 한 국내 프로젝트로서 의미가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BIM이 건축, 구조, MEP, 조경 등 대부분의 분야에 적용되 었고,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효과적 으로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다음 타공된 패널 사이로 비춰지는 아름다운 조명을 위해

으로 DDP는 대규모의 비정형 건축물 완공 사례로서 의미

패널의 세밀한 타공을 위한 전산화 과정은 가장 난이도 있는

를 가진다. 비정형 건축물은 형상의 복잡성 때문에 상대적

과제 중 하나였다.

으로 설계 및 시공에 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프로젝트 팀

와이드 Focus 시선 2

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활용 외에도, 형상을 이해하고 실 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BIM 전문가들은 재빨리 프로젝

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상하고 해결

트를 파악하여 관련 담당자들이 짧은 시간 내에 개념과 기

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학습하였고, 프로젝트를 성공적

술들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왔고, 담당자들은 열

으로 완수한 경험 및 자신감은 분명 국내 건축과 건설 분

의를 가지고 생소하고 낯선 기술에 익숙해지기 위해 전문

야의 기초 체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가들의 의견에 귀를 열었다. 프로젝트 팀이 BIM을 이해하

국내 건축 및 건설 분야는 그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

고 적용,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조직이 세워지고 운영

지만,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앞으로도 새로운 지식과

되었으며 새로운 프로세스들이 수립되었다. 새로운 기술

기술 개발 및 적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

의 도입에 있어서 회의적인 시각과 같은 어려움도 있었지

다. DDP가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건축 및 건설 IT 같은 새

만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가능성들이 이러

로운 분야에서 앞선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 인식을 점차 바꾸어 나갔다. 프로젝트 후반부에는 대부

든든한 발판이 되었기를 희망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

분의 담당자들이 신용어와 기술들에 익숙해지고 적극적으

극적인 개발, 적용 및 활용 사례가 늘어나서 국내 관련 산

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입구 브릿지 하부 56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글 | 조윤설

신경 미학의 DDP 산책

3

홍익대학교 대학원 공간디자인 전공 조택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그림 | 황영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부

의 추론을 담당하고 있어서 시각적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미의식은 거의 미맹(美盲, 시각적 아름다움을 읽을 수 없 는)에 가까우며 그나마 오랜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학습 해야 얻어지는 지능이다. 신피질 미의식은 시각 대상이 보 여 주는 아름다움을 아주 좁은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느낌의 강도 역시 빈약하다. 전자의 원시 두뇌가 느끼는 미의식은 크게 3개의 층으로

생명체들은 한정된 생존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나뉘는데, 우선 대상의 ‘형상성形狀性, 형태를 발생시킨 내재 질서’을

상대가 먹잇감인 동시에 상대의 먹이가 되는 치열한 생존

읽는 지각 지능이 가장 낮은 수준의 미의식이 있다. 형상

환경이다.

미의식美意識이란

공간에서 눈으

성이란 시각 대상의 외현外現으로서 형태形態에서 읽혀지는,

삶에 이익 혹은 위협이

그 형태를 발생시키는 물리, 화학 그리고 생물학적 응력의

되는지, 호감과 혐오감으로 반응하는 비자각적 감성 지능

규칙으로서 질서이다. 즉 형태에 내재內在한 구성 원소들

感性知能이다.

사이의 역학적 질서 체계이다.

로 들어오는 시각

이러한

정보視覺情報들이

서식棲息

감성 지능으로서 미의식은

구피질舊皮質

이하

변연계에서 일어나는 원시 두뇌의 미의식과,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전두엽이 추론하는 신피질의

형상성은 다시 대칭성 질서, 다양체 질서, 중력장 질서, 움

미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선천적인 것으로 가지고

직임 질서, 색채 구조, 카오스Chaos 질서 등으로 구분된다.

태어나며 후자는 학습으로 획득된다. 이렇게 두뇌가 시각

대칭성은 유전자의 자기 반복적 형상 발생 구조 또는 비선

정보에 대해 느끼는 감성을 진화적 구조와 두뇌의 신경 과

형 동력계의 구조로, 두뇌는 이런 과정을 거처 형태로 발현

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학문이, 최근에 나타난 신경 미학

된 내재 질서의 의미를 지각하고 호감을 느끼는 지능 모듈

과 진화 미학이다.

을 가지고 있다.

와이드 Focus 시선 3

생명의 미의식

인간의 미의식은 대부분 포유류로부터 오랜 진화를 거쳐 획득한 원시 두뇌의 감성 지능으로, 다양한 범주의 시각 정

이에 비해 고차곡면 지각 지능(다양체 인지)은 비교적 최

보에 내포된 생존 가치를 자동적으로 판단하며, 이를 보다

근(400만 년 전부터 두뇌에 발생)에 진화를 시작한 형상

풍부한 감정으로 느끼고 표출한다. 이에 반해 홍적세 이후

인지지능으로, 고도로 복잡한 사회를 형성하게 되면서 두

에 급팽창한 신피질, 특히 전전두엽은 논리적 사고와 고도

뇌에 나타났다.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정보

4 중력 대칭

4.5 영양공급 카오스

5 환경의 카오스

6 표상성(열매)

6 표상성(바람) 57


와이드 Focus 시선 3

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를 기반으로 사회생활에서 의미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

에 너무 단순하고 또 복잡하다. 그래서 시인의 풍부한 감성

이다. 이외에도 움직임과 색채 정보의 의미를 지각하는 각

은 회색빛 도시의 삭막함을 슬퍼한다. 모더니즘의 형태 언

각의 감성 지능들도 있다. 이들 미의식은 대부분 유전 정보

어는 두뇌의 인지적 성장과 시각적 감성을 피폐하게 만드

로부터 두뇌에 발현되는 자동적自動的 지능으로, 사전 지식

는 형상들의 집합이다. 이는 모더니즘 건축이 가장 실패한

이 없어도 대상의 미적 가치를 읽어낼 수 있다.

건축 흐름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이에 비해 신피질 미의식은 경험을 통해 획득한 기억과 지

컴퓨터가 만델브로트Mandelbrot 집합을 처음 화면에 그려냈

식들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즉 시각 중추에 저장된 시각 경

을 때, 이를 본 사람들은 놀랐다. 만델브로트 집합은 발산

험DataBase을 바탕으로 신피질에서 그 의미를 추론하고 구

하지 않는 복소수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무한히 재귀되는

조를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게 되는

형상인을 화면에 그리면 자연을 닮은 매우 아름다운 곡선

인식적 지능으로서의 미의식이다. 홍적세에 접어들면서

으로 나타난다. 만델브로트 곡선은 그때까지 미의식을 지

유인원에게는 피질의 기억 용량에 맞춰 사회 규모가 결정

배해온 유클리드 질서가 얼마나 초라하고 사소한 아름다

되는 던바 넘버(Dunbar’s Number, 인간의 경우 150-200

움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카오스의 아름다움

명) 안에서 개체군을 형성하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는 생

에 매료되어 다양한 복잡계 연구가 시작되었고, 컴퓨터 환

존 방식이 나타났다. 자연 자원의 의미를 인지하는 것보다

경의 발달과 함께 자연의 형상 발생 알고리즘을 디자인 환

집단 구성원들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삶에 더 영향을 끼

경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치는 생존 환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신피질의 미

그것이 형상 질서에 대한 건축가의 인식적 이해에서 출발

의식은 형태에 대해서는 매우 단순한 지능인데, 이는 충분

하였든, 아니면 디지털디자인 환경에 노출되면서 심상적

히 경험하여 익숙한 형태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즉

으로 공감하게 된 것이든, 다양한 비기하학적 형상 언어들

신피질의 미의식은 자연환경이 가진 생존 가치를 판단하

이 건축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형상 실험을 현실에서

는 지능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이 공유하는 무형의 관습

실현하는 대표적 건축가인 헤르조그Herzog & de Meuron와 자

적 생존 가치를 판단하는 지능이다. 원시 미의식과 신피질

하 하디드Zaha Hadid는 사용하는 디자인 형상 재료에 따라

미의식의 차이를 형용사로 구분하면, 전자는 자연스러움

대칭성 공간과 다양체 공간으로 대비된다. 헤르조그는 북

이고 후자는 세련됨이다. 자연스러움이란 자연의 복잡한

경 올림픽 주경기장 디자인에서, 그리고 이와 유사한 피티

형태가 가진 내면으로서 질서에 대한 호감이고, 세련됨이

더블유PTW Architects와 애럽ARUP의 워터큐브에서도 마찬가

란 기하학적 형태의 단순함과 익숙함으로서 호감이다. 자

지로, 대칭성이 가진 조형미를 잘 보여 준다. 여기서 형상

연의 외현에서 내면의 질서로 자연스러움을 읽어내기 위

언어로서 대칭성이란, 예측 가능한 동일 형태의 반복, 즉

해서는 고도로 진화한 지능을 필요로 한다. 외현에서 그 뒤

재귀적 자기 닮음이다. 주경기장은 새 둥지 모양의 껍질을

에 숨어있는 질서를 읽어내고 이를 구조화하는 데는, 위상

무작위로 잘라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작위가 계속 반

수학位相數學,

같은, 고도의 추상성을 다

복되면 이같은 반복에서 패턴이 만들어지고, 마침내 비선

루는 수학적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원시 두뇌의 미의식은

형적 질서가 나타난다. 두뇌의 미의식은 이를 질서로 읽는

이러한 지능을 바탕으로 외현 아래에 숨어있는 질서를 읽

다. 두뇌의 미의식은 이러한 질서 퍼즐 맞추기에 강한 호

어내어 이들이 가진 생물 그리고 지질과 기후의 의미에 호

감을 갖는다. 워터큐브 역시 비누 거품같이 화학적 확산과

감을 느낀다. 이에 비해 세련됨은 많은 경험을 통해 획득한

평형에서 만들어지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의

형태 지식을 사회 집단의 공감과 결합시켜 대상의 가치를

비선형 질서를 사용한다. 이 또한 두뇌의 퍼즐 맞추기 지능

판단하는 미의식이다.

이 좋아하는 조형이다.

사영공간,

군론群論

기하학적 형태에서 비선형적 형상성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모더니즘 건축은 아름다움에 대해 거의 미맹에 가까운 신피질의 거칠고 조악한 미의식을 만족시 키는, 매우 단순한 형태 언어의 집합이다. 유클리드 기하학 의 형태 인식과 근대 산업의 모듈화된 부품에 의존하는 모 더니즘 건축은, 당연히 단순한 형상 언어로 구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형상의 단순함을 숨기기 위해 복잡한 질감 으로 장식하지만, 건물과 도시는 두뇌가 아름답게 느끼기

58

1 기하학 공간

2 대칭성 공간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자하 하디드의 조형 언어

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형상 재료는 다양체 공간이다. 그

1980년대 자하 하디드는 형태를 부숴 그 파쇄된 파편을

의 다양체 공간은 3차원 공간에서, 단일 폐곡면인 입체를

재구성하는, 강렬한 해체적 흐름의 디자인을 보여 준다. 이

둘러싼 휘어진 2차원 표면이다. 홍적세 이후 고도로 발달

러한 해체적 디자인에 사용한 자하의 형상 재료는 심상 질

한 사회에서 살게 된 인간은 새롭게 나타난 사회라는 생

서이다. 즉 형태로서 집합을 구성하는 원소와 이들 원소 사

존 환경의 구조를 이해해야 했다. 새로운 생존 환경은 구성

이의 응력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집합을 구성하

원들과 이들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이해해야 잘 적응할 수

는 원소는 원래의 형태 혹은 관념을 해체한 파편들이고, 응

있다. 구성원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첫 번째 정보는 얼

력 관계는 파편들을 재구성하는 기호적 리듬이다. 즉 해체

굴이다. 얼굴에서 표정을 그리고 표정에서 감정을 더 섬세

된 파편들이 모여 각각의 기호학적 단위를 구성하며, 이들

하게 읽어낼수록 상대방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황

이 집합을 만드는 과정에 심상적 응력을 작용시킨다. 하디

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먼 과거의 포유류 선조들이 자

드가 사용한 심상 응력은 마음 속의 질서 구조로, 주로 감

연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사용한 형태 지각 지능에, 깊이 지

성 혹은 경험에 의해 형성된 리듬이다. 이러한 표현에서 관

각 지능 그리고 기억으로부터 형태를 추론하는 지능을 더

객의 두뇌는 형태보다 형상으로서 응력 질서에 더 예민하

함으로써 다양체로서 얼굴 곡면을 섬세하게 인지할 수 있

게 반응한다. 파편들을 엮어 나가는 심상적 질서를 보면,

게 되었다. 그 결과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 변화를 읽어내고,

또 다시 퍼즐 맞추기 지능이 반짝거리면서 활성화되기 시

상대방의 상태에 적절히 대응해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작하는 것이다. 자연의 나뭇잎, 꽃, 열매 그리고 나무와 생

두뇌의 가장 커다란 지능 모듈 중 하나가 얼굴을 인지하기

명의 신호를 읽어내던 원시의 두뇌는 파편의 기호를 생성

위해 사용하는 다양체 공간 지각 지능이다. 자하 하디드는

하고 이들 기호 조각들이 집합을 구성하는 과정을 생명의

라이노의 넙스 곡면Non-uniform rational B-spline을 규정하는 알

질서와 착각한다.

고리즘이 얼굴의 고차 곡면 생성 알고리즘과 유사함을 심

파라매트릭 솔리드 프로그램은 1990년대 자하 하디드 디

상적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여기서 심상적인 이해란, 라이

자인의 공간이다. 1차원 다양체인 곡선 형상이 심상 질서

노의 곡면이 만들어 내는 곡면 조형에 강한 호감 느끼는

를 대체하면서 원소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파편들

것이다. 즉 두뇌의 가장 강력한 지능인 얼굴 인지 지능이,

사이의 응력이 1차원 다양체 공간으로서 곡선 원소로 치환

넙스 곡면에서 얼굴을 발생시키는 고차 곡면의 알고리즘

된다. 80년대 원소가 0차원 다양체로서 파편, 즉 점이었다

을 읽어내고 이에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면, 90년대 원소는 이러한 점들 사이의 응력 관계로서 곡

앞에서 두 건축가를 예로 들었듯이, 디지털 디자인 소프트

선인 1차원 다양체이다. 즉 응력 구조를 포함하는 1차원

웨어가 사용하는 자연의 형상 발생 질서와 닮은 알고리즘

다양체 원소들을 배열함으로써 기호의 시인성視認性을 증대

은, 풍성한 미의식을 가진 형상들을 쉽게 만들어 낸다. 워

시켜 더 강한 형상적 자극을 제공한다. 이는 점들 사이의

터큐브에 사용한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특히 3D 보로노이

연속성이나 농담濃淡, Gradation에 의해 읽혀지는 볼륨감보다,

다이어그램은 두뇌의 형상 추론 지능으로 이를 그려내는

엣지모서리, 실루엣, Edge의 형태감을 더 잘 읽는 두뇌의 시지각

것이 불가능하지만, 컴퓨터는 낮은 수준의 알고리즘만으

視知覺

로도 이를 빠르고 쉽게 그려낸다. 이는 주경기장 역시 마찬

사이의 응력이 단순한 기하학적 질서를 따름으로써 자하

가지다. 따라서 디지털 디자인 환경은 빈약한 미의식의 평

의 디자인은 변화가 없는 지루한 형태가 된다. 이것에서 벗

행平行과

공간에서 발생한 모더니즘 건축의 형태와

어나기 위해 포스트모던 건축이 사용했던 복잡한 질감을

달리, 섬세한 미의식을 담은 형태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낸

도입하지만, 이는 질감에 의식을 과도하게 주목시킴으로

다. 삼각자를 사용하는 디자인 환경은 형상의 사막과 같다.

써 오히려 쉽게 지루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형상의 원

사막에서 한 포기 식물을 찾아내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

소가 0차원에서 1차원 다양체로 옮겨가면서 80년대의 심

하다. 디지털 환경은 그런 점에서 정글과 같다. 사방이 아

상적 질서를 대체해야 할 새로운 응력 구조를 발견하지 못

름다운 식물들로 넘쳐난다. 파라매틱 폼이나 제네틱 알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서의 혼돈은 오랫동안 계속된다.

리즘 폼, 그리고 카오스 폼과 넙스 곡면은, 꽃을 피우는 알

2000년대는 2차원 다양체 공간으로 디자인 영역을 옮겨가

고리즘과 동일한 형상 생성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는 시기다. 80년대 0차원 다양체 사이의 심상적 응력 질서

그래서 꽃을 구분하던 미의식은 이들 디자인을 꽃으로 착

에서 90년대 1차원 다양체의 기하학적 응력 질서를 거쳐,

각한다.

마침내 2차원 다양체 공간을 디자인 재료로 사용한다. 2차

직각直角

와이드 Focus 시선 3

자하 하디드가 사용하는 형상은 이들과 조금 다른 재료이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원소로 변환된 1차원 다양체

원 다양체 공간을 디자인 재료로 사용하면서 자하의 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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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인을 바라보는 관객은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의 디자인에 서 관객은, 가족과 친구의 얼굴 형상 생성 알고리즘과 같은 넙스 곡면을 보는 것이다. 두뇌의 가장 큰 지능 중 하나인 얼굴 인지 미의식을 자극하는 형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캐드 프로그램에서 4개의 선을 그리고 이를 2차원 평면으 로 변환시키면 사람들은 그저 그런 도형이 하나 만들어졌 다고 무심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라이노와 같은 넙스 제어 프로그램에서 4개의 곡선을 그리고 이를 2차원 다양체 공 간으로 변환시키면, 그 곡면을 보는 사람들은 열광한다. 라 이노 넙스 곡면을 따라 흐르는 부드러운 농담 변화의 알 수 없는 매력이 시선을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곡면이 끝나 는 지점에서 만나는 날카로운 곡선은 시선의 다음 위치를

와이드 Focus 시선 3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풍성한 공간감을 제공한다. 다양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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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발견한 두뇌 지능은 밝게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그

DDP에 투영된 미의식

곡면을 탐색하면서 생성된 전기 신호는 보상 회로를 자극

자하 하디드는 DDP에서 디자인 형상 재료로서 고차 곡면

한다. 보상 회로가 자극되면 두뇌는 즐거움이라는 쾌락의

을 미니멀하게 사용한다. 미니멀에 대한 호감은 가장 최근

감성 지능으로서 미의식을 발화시킨다.

에 두뇌의 전전두엽에서 발현된 미의식이다. 전전두엽의

이 시기에 발견한 라이노의 고차 곡면에서 심상적 질서를

미의식은 가지고 태어나는 원시 두뇌의 미의식과 달리, 경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읽어낸 것으로 보인다. 고

험과 학습을 통해 프로그래밍되면서 획득된다. 즉 어떤 조

차 곡면에 80년대 0차원 다양체의 심상적 질서를 부여함

형 환경에 노출되어 형상을 학습했는지에 의해 미의식으

으로써 짖고 옅음의 다양한 농담이 생성되고, 이는 풍성한

로서 호감의 구조가 결정되는 것인데, 경험한 데이터를 기

공간감으로 지각된다. 하디드가 사용하는 다양체 공간은

초로 형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형상 인지 지능으

하나의 커다란 부곡률富曲律 폐곡면閉曲面이 아니라, 그릇의

로 구조화한다. 화려한 색상을 가진 문화에서 성장하면 이

바깥 면 같이 볼록한 부곡률 곡면과 그릇의 안쪽 면 같이

를 더 선호하고, 흑백의 단순 색채 문화를 오래 경험하면

오목한 빈곡률貧曲律 곡면을 섞어 리듬을 만든다. 볼록한 보

이를 더 선호한다. 이러한 전전두엽의 미의식은 세련됨이

륨은 풍성함을 오목한 공간은 안정감을 준다. 이렇게 미의

라는 단어로 정리되는데 이를 풀어서 정리하면, 도회적인,

식으로서 감정의 리듬감이 섞인 다양체 공간은 더욱 풍성

기하학적 단순 형태, 흰색 혹은 검은색의 채도가 낮은, 마

한 공간 감성을 생산한다. 이는 얼굴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감이 깔끔한, 정돈된, 휘도가 높아 구분이 쉬운 등이다.

다양체 공간의 리듬이 주는 미의식과 유사하다. 초기의 다

따라서 미니멀은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의 미의식이다. 경

양체 공간을 재료로 사용하는 디자인에서, 해체주의 시기

험한 형상 환경에 의해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인지되고, 이

의 습성인 심상 질서는 여전히 하디드가 형태를 다루는 주

렇게 발화되는 감정 역시 미의식으로서는 매우 빈약하다.

된 미의식이다.

미니멀을 가장 잘 활용한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Dieter Rams

넙스 곡면은 무조건 아름답다. 그것은 넙스 곡면이 물리적

이다. 절제된 조형과 색채는 세련된 근대 디자인의 예를 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보여 준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는 자

두뇌가 넙스 곡면의 생성 알고리즘을 읽어내고 이의 의미

신의 디자인이 디터 람스에서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하

를 해석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원

지만 조나단 아이브의 이러한 선언은 IPhone 디자인이 디

다양체 공간은 인간의 미의식에게 매우 섬세한 공간이다.

터 람스의 절제된 미의식을 따라가는 오마주hommage를 추

즉 두뇌는 이를 섬세하게 해석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고, 그

구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후면에 그려 놓은 화려함에

지능이 기대하는 형상에 대해 풍부한 감성을 느끼는 것이

서, IPhone 디자인이 조나단 아이브의 페르소나persona에

다. 이는 하디드가 읽어내는, 그래서 이를 디자인으로 적용

더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아이브의 화려함의 미의

한 심상적 질서보다 훨씬 더 섬세한 고차 곡면 인지 지능

식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조나단 아이브는 예민한 디

을 모든 관객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

자이너다. 만일 일주일에 한두 번 바라보는 제품에 사용하

차 곡면은 기하학적 형상에 비해 매우 아름답지만, 그래서

는 디터 람스의 미의식을 매일 사용하는 애플에 사용한다

혐오스러움을 주는 형상이기도 하다.

면 곧 지루해질 것임을 간파하고 있다. 기하학적 단순함 뒤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질서 찾기가 여전히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

이라는 아이브의 다층적 미의식을 완성한 것이다.

준다. DDP에서는 아예 형상 질서 찾기를 포기해 버린 듯

이런 관점에서 DDP에 사용한 미니멀의 하디드 페르소나

보인다. 고차 곡면의 조형성을 미니멀로 포장하여 풀어야

는 조금 무책임하다. 아이브가 사용한 섬세한 화려함 대신,

할 중요한 숙제를 감춰 버린다. 하지만 2차원 다양체 공간

거칠고 투박해 싫증나기 쉬운 LED 타공打共을 미니멀 위에

은 매우 복잡한 형상 질서들이 개입하는 공간이다. 심상적

덧댄다. 여기서 거칠다는 의미는 타공을 커다한 모니터의

질서나 규모의 위압감만으로, 그리고 미니멀의 세련됨만

픽셀 배열로 해석함으로써 다양체 공간을 하이퍼 스킨의

으로 관객을 감동시키기에 DDP는 너무 거대하고 비싼 조

평면 공간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자하가 DDP

형물이다.

에 사용한, 다양체 공간을 뒤덮고 있는 하이퍼 스킨의 면

하지만 모더니즘의 빈약한 형상 언어에 비하면 DDP는 두

광원面光源은 가장 싫증나기 쉬운 빛 조형이다. 모니터 픽셀

뇌의 미의식이 기댈 수 있는 강력한 형상 재료로 이루어져

의 직교 배열은 광범위한 영상 정보를 평면에 투영하려는

있다. 고차 곡면의 거대한 다양체 공간에 접어들면 관객은,

기술적 해법이지, 이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먼 여정 끝에 마침내 도착하여 풍성하고 안정된 서식지를

조형적 해법은 아니다. 고차 곡면의 다양체 공간과 어울리

바라보며 안도하는 호모 사피엔스 조상의 기억 속으로 접

는 아름다움 대신 거친 반짝임이 표피를 뒤덮고 있다.

어든다. 다양체 곡면의 리듬은 자신을 방어할 공간과 외부

현대자동차는 플루이직 스컵쳐fluidic sculpture에서 시작해 스

정보를 획득할 관찰 시점視點을 제공하여 그 곳에 머물면

톰 엣지storm edge로 정리된 디자인 형상 재료를 자동차 조형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 안정된 시간을 영위할 것 같은 홍적

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강렬한 형상미를 얻는 데 성공한

세 사바나의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고차 곡면의 리듬은 현대

다. 스톰 엣지는 고차 곡면의 응력이 시각적 형태로 표현되

인의 감성적 서식지로서 공원인 동시에 저 멀리의 위험 정

는 방식이다. 즉 확산 응력을 갖는 2개 이상의 다양체 공간

보를 확보할 수 있는 전망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그래

이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접힘이다. 이는 비누 거품처럼

서 DDP에 입장한 관객은 끊임없이 공간을 탐색하면서, 가

화학적 확산의 평형으로 나타나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과

장 안정된 휴식 장소를 찾기 위한 긴 산책을 시작한다.

유사한 응력 질서이다. 다만 보로노이 다이어그램과 다른

DDP는 모더니즘이 사용했던 형상성과 구분되는 미의식

점은 강한 점성을 가진 다양체 사이의 응력이어서 그 모양

을 가지고 있다. 밖으로 형태를 들어내 관객에게 보여 주려

이 곡선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이러한 다양체 사이의 응력

는 것보다 관객을 끌어들임으로써 산책을 시작하게 하는

에 의해 발생하는 엣지는 두뇌가 그 공간의 형태를 파악하

미의식이다. 이는 지각적 형상 언어가 아니라 인지적 표상

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비록 인간이 양안 시각 체계를

언어이다. 즉 형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에 중첩

가지고 있어도 부드러운 단일 폐곡면으로 감싸인 커다란

된 구조를 알아채는 것이다. 언덕 위에 한 그루 나무가 서

곡면체의 모양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

있으면 두뇌는 그 곳에 다가가려고 강렬한 감정을 발생시

이다. 그래서 두뇌는

입체시立體視나

그림자의 농담으로 곡

키고, 이에 따라 몸은 그곳으로 다가간다. 그 나무의 조형

면의 형태를 인지하는 대신, 엣지를 통해 그 곡면의 구조를

성을 매개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시야의 확보,

읽어내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활용한 다양

한 그루 나무가 제공하는 생존 가능성 등의 의미를 인지한

체 공간에서 엣지 찾기 지능은 이를 인지하는 관객에게 풍

미의식으로서 지능이 몸을 이끌어 좀 더 안전한 환경에 머

성한 볼륨감을 제공한다. 그 결과 이러한 패밀리룩으로 생

물게 하려는 신경적 작용이다. DDP는 다양체 공간을 조형

산되는 현대자동차들은 일본 자동차를 능가하는 풍부하고

언어로 사용한 것만으로, 그리고 그것에 심상적 질서로서

강렬한 조형감을 갖는다.

리듬을 적용한 것만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공

이는 자하 하디드가 해체적 조형 언어 이후 지속적으로 사

간이다.

와이드 Focus 시선 3

에 아이브의 화려함을 숨겨 놓음으로써, 보편성과 세련됨

용해 온 심상적 질서가 주는 형상적 호감보다 더 섬세하고 강력한 형상 재료이다. 홍콩의 샤넬 모바일 파빌리온에서 엣지가 나타나지만 매우 정형적 질서를 갖는데, 이는 재료 의 특성에 의해 우연히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디자인 에서는 엣지가 형상 재료로 사용되지 않는다. 고차 곡면의 형상 질서는 Jesolo Magica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험적 이지만)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디자인 집합을 구성하는 원 소를 1차원 다양체로 바꾼 이후 자하가 꾸준히 겪고 있는

61


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DDP는 시각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역사적 맥락에서나 옛 동대문운동장 일대의 주변 지역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공간 정리자(space organizer) 역할을 하고 있다.

콘크리트와 알루미늄 패널의 새 건물들과 유구 전시장이 빚어내는 ‘해체주의 설치미술’이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62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박영우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초빙교수

DDP 예찬?

4

(UIUC) 건축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Fleming Corp./ St.Louis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귀국 후 ㈜서울건축을 거쳐 ㈜박영우건축 대표이사/CAO를 지냈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 코르뷔제Le Corbusier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배신이 꿈틀

새로운 건축의 시작? 1 9 6 0 년대 말 로버트 벤츄리Ro b e r t Modernism에

박영우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미국 일리노이대

Ve n t u r i 가

모더니즘

거리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것처럼….

이의를 제기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모더니즘에 하디드와 그의 친구들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미국 동부 건축가들과 유럽 젊은

이 음모에 가담한 변절자들의 수장은 피터 아이젠만(Peter

건축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형태의 작품으로 시선을

Eisenman, 1932년생)이었다. 코넬대학과 컬럼비아대학

아카데미American

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영국 런던 캠브리지대학에서 박

기반을 두고 고전건축의 연구에 흠뻑 빠

사가 된 뉴저지주 태생의 이 건축(이론)가는 해박한 건축

져서 2~3년씩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미국의 건축가

과 예술 이론으로 무장한 당대의 풍운아였다. 그는 쿠퍼

들은 1980년대 신고전주의 경향을 띤 작품들을 쏟아내기

유니온Cooper Union 출신의 수재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시작했다. 스탠리 타이거만Stanley Tigerman, 찰스 무어Charles

Libeskind, 1946년생), AA스쿨에서 강의도 하고 후에 컬

Moore,

등이 대표적이었다.

럼비아 건축대학원장이 된 프랑스/스위스계의 버나드 츄

오스트리아의 롭 크리어

미(Bernard Tschumi, 1944년생), AA에서 건축 공부를

형제 등은 대서양 건너편에

하고 지금은 하바드GSD의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렘 쿨하

서 낭만주의 경향의 고전건축을 리바이벌하면서 건축학도

스(Rem Koolhaas, 1944년생) 등과 많은 시간을 건축에 관

와 젊은 건축가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모더니즘의 아성에

해서 소통을 하게 된다. 소위 해체주의 창립 멤버들이었다.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작품 활동 초기인 1970년대 카드보드아키텍처cardboard

한편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에서 급격히

architecture로

전파된 절제 정신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역사는

코르뷔제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

없다”는 월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새로운 건축 철학

마이클 그레이브스 등 뉴욕화이브New York Five의 멤버들과

으로 무장한 바우하우스Bauhaus의 정신은 희미해지고 있었

자신의 건축 철학을 공유하기 어렵다고 판단, 소원해지면

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아돌프 로스Adolf Loos의 외침도

서 철학자이자 친구인 자크 데리다를 자신의 건축 철학 맹

한낱 메아리로 그치기 시작했다. “Form follows function”

주로 모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건축의 형태form를 카테

이라는 모토도 비아냥거림을 받기 시작했다. “Less is

시안 건축(Cartesian Architecture 이하 카건)에서 ‘해방’

more”라는 미스Mies van der Rohe의 미니멀리스틱 구호도 효

시키겠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80년대

력을 다한 것 같이 보였다. 르네상스 말기 매너리즘에 식상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던 유럽 출신의 츄미, 리베스킨드, 쿨

한 건축가들이 현란한 장식의 바로크양식을 시도했던 것

하스와 자신이 만든 해체주의 건축(이하 해건)의 요람인

과 유사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이런 데카당트한 분

IAUS Institute for Architecture and Urban Studies에서 함께 보내는

위기 속에서 모더니즘의 건축적 뿌리를 뽑아 버리려는 음

시간이 많아졌다.

모(?)가 건축계의 한구석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프랑스의

츄미는 아이젠만과 데리다의 지원을 받아 1982년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를 간판 얼

파리 라 빌레la Villette 공원 설계 경기에서 당선되면서 이름

굴로 내세우며, 자신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모더니

을 알리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릴 적 가족과 함

즘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대스승 그로피우스, 미스, 그리

께 미국으로 이민 온 신동 리베스킨드는 리차드 마이어의

잇따라 끌기 시작했다. 로마의 아메리칸 Academy in Rome에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영국의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Rob Krier와 리온 크리어Leon Krier

와이드 Focus 시선 4

대한 회의는 일부 건축가들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아카데미아의 관심을 끌던 아이젠만은 처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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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사무실에서 잠깐 일했고 아이젠만의 IAUS에도 잠시 머

다. 이제 그의 건축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모더니즘과의

물렀었다. 런던의 AA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한 네덜란드

전쟁도 더 심화될 것이다.

의 쿨하스는 코넬 등을 거쳐 IAUS에서 객원교수로 잠시 머무르며 『정신나간 뉴욕 Delirious New York』을 집필

데카르트여, 안녕

하였다. 이 책을 통해 메트로폴리스 맨해튼의 건축과 도시

아무튼 데리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 이론에 편승하여 모

를 논하면서 모더니즘의 기능성과 프로그램, 카테시안 건

더니즘을 붕괴시키려던 이 해건 추종자들은 모더니즘의

축Cartesian Architecture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후에 자

근간인 카테시안 좌표계Cartesian Coordinate를 의도적으로 무

신이 만든 로테르담의 OMA에서 AA제자인 자하 하디드

시해야 했다. 이유는 새로운 형태와 공간(form and space,

(1950년생)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모두 다 모더니즘의

이하 F&S)이라는 금맥을 황량한(?) 모더니즘의 광산에

해체를 수행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든 우연하게든 준비들

서 캐내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카건이 숨겨 놓은 F&S의

을 하고 있었다. 자하 하디드는 AA에서 강의한 츄미를 만

비밀은 카건을 해체해야지만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

나기도 했다. 영국 에섹스Essex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디드는 1983년 홍콩 피크Peak Club 설계 경기 당선을 계기

2000년대 유럽에서 건축 활동은 물론 왕성한 건축 모임의

로 해체주의 신봉자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다. 하디드

주객논자 역할을 하던 리베스킨드도 하디드를 자주 만났

가 결국 이 창립 멤버들을 제치고 모더니즘 파괴의 선봉에

음이 틀림없다. 이렇듯 AA에서 건축 공부를 한 하디드의

설지는 아무도 몰랐다.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즘 속에서 풍

주변에는 해건 추종자들이 항상 배회하고 있었다.

요롭게 어린 시절을 보낸 하디드에게는 너무나 아이러니

와이드 Focus 시선 4

컬한 일이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랄까? 쿨하스의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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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모더니즘에 익숙했던 수학 전공의 중동 아가씨

CCTV사옥, 리베스킨드의 최근작인 영국 맨체스터 제국

자하 모하마드 하디드Zaha Mohammad Hadid는 1950년 10월

전쟁박물관 북부분관 등도 아직은 카건을 완전히 해체시

31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레바논

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베이루트의 AUB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수학을 전공

홍콩피크의 건축 어휘에 아직 머물던 시기의 비트라Vitra소

했다. 하디드가 자란 바그다드 지역은 바우하우스 스타일

방서(1994년)는 예리한 파편들의 평면들이 서로 부딪치

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고급 주택가였다. 당시 바그다드 사

면서 “카건은 이렇게 해체시킬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람들은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모더니즘이 풍요와 첨단을

하지만 들어주는 청중은 별로 없었다(현재는 폐기된 상태

상징하는 특권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지금도

로 텅 비어 있다). 그는 수많은 대학에서 강의로 시간을 보

그렇지만 베이루트는 중동에서도 아메리칸 컬처에 가장

내며 페이퍼건축가Paper Architect로 전락하는 듯했다. DDP

개방적인, 자유분방한 패션의 도시다. 바우하우스, 모더니

에 오기까지 많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모

즘, 아메리칸이라는 단어들에서 보듯이 자하 하디드는 유

더니즘에 반기를 든 죄 때문에….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럽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이미 서구의 문화에 매우 익숙해

와서야 작품활동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신시

져 있었다. 특히 건축 철학의 형성뿐 아니라 컴퓨터 원리의

내티의 로젠탈Rosenthal 현대미술센터, 독일 라이프찌히의

이해에 있어서도 어릴 적 중동에서 익힌 수학 공부가 큰

BMW빌딩, 중국광조우의 오페라하우스와 갤럭시 소호, 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리고 공사 중인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알리예프Aliyev문화센

하디드의 패션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성장 배경

터 등이 DDP가 실현되기 전의 실험작들이라고 볼 수 있

과 깊은 연결 고리를 갖고 있음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아마

다. 그만큼 DDP는 하디드의 걸작 중의 걸작이다.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패션몰로 둘러싸인 콘텍스

어찌 보면 수많은 작품들은 DDP에서의 카건 파괴를 성공

트를 가진 것도 하디드에게는 기회와 운명이라고 생각됐

적으로 해내기 위한 준비 작업들이었던 것 같다. DDP를

을지 모른다. 그녀의 옷차림과 장신구들을 보면 스스로를

통해 카건의 모더니즘이 경험하지 못하던 F&S를 발견해

패션모델로 생각하는구나 싶을 정도이다. 1977년 27세의

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하디드의 다른 건축물에서

나이로 그는 OMA의 파트너가 되었다. AA의 스승이었던

도 일부 구현은 됐으나 DDP에서만큼 철저하게 카건을 붕

쿨하스와 동업을 하게 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대

괴시키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F&S를 제시한 작품은 없었

학에서 강의를 했고, 이제는 64세의 영국시민으로 오스트

다. 사선diagonal이라는 기존의 무기에 곡선curved이라는 새

리아 비엔나응용미술대학 University of Applied Arts, Vienna의 교

로운 병기를 추가하여 무참하게 카건의 모더니즘을 파괴

수로 재직 중이다. 2004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고

시킨 대성공작이 되었다.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마음

2010, 2011년에는 영국의 스털링상을 연속으로 수상하였

에 들건 안들건, 세계 건축사의 이정표가 될 건물이 대한민


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국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산 중 하나인 동대문 옆에

DDP는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뚝 섰다. 진정한 역사는 미래도 포함한다. 과거만이 역사

규모와 공간 구성 콘텐츠의 차이가 있지만, 빌구에서는 관

는 아니다.

객이 항상 밖에 있어야 하는 반면에 DDP는 작품의 밖과

자하 하디드는 이 두 가지 무기, 즉 사선과 곡선을 가지고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콘크리트와 알

DDP에서 카건을 파괴시키는 설계 과정을 완벽하고 치밀

루미늄 패널의 새 건물들과 유구 전시장들이 빚어내는 ‘해

하게 실행시켰다. 건물 외부 형태의 처리, 내부 공간의 구

체주의 설치미술’이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

성, 건축 디테일의 처리, 가구와 소품 디자인 등에서 철두

기 때문이다.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작품 안에 있고, 건물

철미하게 카건을 붕괴시켰다. 모더니즘에서는 결코 체험

안으로 들어갔지만 작품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착각을 유

할 수 없었던 F&S를 제시하였다. 해건이 건축계의 정상에

도한다. 특히 DM브릿지에서….

올라 모더니즘 추종자들에게 포효하는 순간이다. “이 사

셋째, 시각적 관통visual penetration이라는 새 기법을 도입해

람들아, 데카르트는 죽은 지 오래야!”

주변의 콘텍스트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마술 사처럼 하고 있다. 주변의 고층 패션몰 빌딩들을 지붕 위 는 물론 지붕 밑으로 끌어들이면서 DDP의 일부인 양 착각

빌바오 구겐하임(Guggenheim Bilbao, 이하 빌구)의 건축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빌구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해건 창립 멤버도 아니고, 해체

다. DDP의 시각적 포용성이라고 해도 되겠다. 주변 패션

주의 건축가라고 자신을 생각하지도 않는, 해체주의에 무

몰 빌딩들과 그것들의 현란한 전자 광고판들이 모두 DDP

임승차한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해건 어휘를 구

를 위한 장식 배경 화면들이 되어 버렸다. 밤에는 이 효과

사하는 모더니스트일 뿐이었다. 해건의 철학에 크게 관심

가 더 극적이다.(“DDP가 콘텍스트를 모른다구?”) 이렇게

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원칙을 저버리는 면에

해서 DDP는 시각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역사적 맥락에

서 해체주의자라고 관객들은 이야기한다. 실제로 빌바오

서나 옛 동대문운동장 일대의 주변 지역을 하나로 결집시

이펙트Bilbao Effect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빌구의 속세

키는 공간 정리자space organizer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각적 랜

적(?) 성공이 서울 DDP의 탄생을 가능케 한 면도 부정할

드마크일 뿐만 아니라 공간 구성적 오벨리스크의 역할을

수 없다. “감사합니다, 빌구”

하고 있다. 동대문 주변에서는 모든 길이 DDP로 통한다고

이 두 작가의 각기 다른 디자인 철학은 자연히 빌구와

해도 과언은 아니다.

DDP의 본질적 차이로 나타난다. 첫째, 빌구는 해체주의 의 원칙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즉 카건을 파괴시키는 행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외부 형태form들

에 있어서 DDP만큼 철두철미하지 못했다. 물론 거의 20

해건이 갈구했던 노다지 금맥인 ‘새로운 F&S의 발견’이

년 전에 지어졌지만, 빌구에는 바닥과 벽과 지붕(천장)의

DDP에서 거의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 건물들의 표면이

경계가 많이 남아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치맛자락 같은 자

만들어 내는 외부 형태의 변화(유희)는 DDP의 압권이다.

유분방한 외벽을 자랑하지만, 진정한 3차원적

처리

특히 D동과 M동 사이를 관통하는 사선 교각의 콘크리트

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하디드의 관점에서 볼

DM브릿지에서 보행 중 빚어지는, 끊임없이 변형되는 외

때 빌구는 해건 유사품(psudo-decon.)일 수도 있다.

벽 선과 선의 만남, 즉 외부 형태의 유희는 카건에서는 볼

반면에 DDP는 바닥, 벽, 지붕의 경계를 거의 잃어버렸다.

수 없었던 흥분되는 경험이다. 모더니즘이 이처럼 드라마

바닥과 벽에서 아직 미흡함이 보이지만(실제 M동의 내부

틱한 외부 형태의 유희를 보여준 사례가 있을까? 미스의

벽체 일부에서 실현을 했다) 벽과 지붕의 경계는 자취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라이트Frank

아예 감춰 버렸다. 매우 단순해 보이는 외관이지만, 지붕이

Lloyd Wright 의

있는 빌구의 외관보다 더 난해하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DDP가 아마도 더 실감나는 F&S의 유희를 선사하고 있는

외벽 패널 형태의 3차원적 복잡성은 빌바오의 그것과는 상

것 같다.

대가 안 될 정도로 정교함을 요구한다. 대학에서 수학을 공

DDP의 외형이 우주선 같다느니, 코끼리 잔등 같다느니 하

부했던 하디드가 젊은 시절 미술관에 자주 가던 프랭크 게

는 것은 이 모두 계획된, 의도된 작전(?)들의 부산물이다.

리보다 3D 컴퓨팅에 더 익숙하지 않았을까? 모더니즘의

왜냐하면 면과 면의 만남(선)을 없애기 위해서는 유일한

근간인 카건의 철학과 원칙을 무참히 짓밟은 면에서 DDP

수단이 안쪽으로 오그라드는 형태(계란)가 되어야 하기

가 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이다. 빌구에서는 솔직히 카건을 파괴시키겠다는 철

둘째, 하나의 단편적인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빌구에 비해

학은 없었다. 다만 모더니즘이 아닌 다른 F&S를 보여 주

면plane

와이드 Focus 시선 4

빌바오 구겐하임 vs. DDP

낙수장Falling Water과 견주어도 승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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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고 싶었을 뿐이다. 빌구와 DDP의 본질적인 차이점이다.

니라구. 이런게 건축이야.”

이 외부 형태의 끊임없는, 흥미진진한 유희는 내부 공간의 새로운 발견과 함께 DDP가 성공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블러링blurring

두 가지 이유이다. 빌구에서는 밖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비트라소방서 등 하디드의 초기 작품에서는 곡선을 볼 수

이런 현상이 무척 제한적이다. DDP에서는 밖에서는 물론

없었다. 단지 직각 좌표를 거부하는 도구인 경사진 바닥,

작품 안(예를 들어 D동과 M동이 만나는 어울림광장)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벽, 하늘로 치켜 올라간 지붕 등으로 카

도 일어난다. 놀라움 그 자체다. 여기에 주변 패션몰 빌딩

건을 파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도구(사선, diagonal)만

들까지 배경으로 합쳐지면 경악 그 자체다. DDP가 진부한

가지고는 카건을 분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더 효

카건에게 주는 충격이자 선물이다. 카건의 모더니즘은 이

과적으로 모더니즘을 파괴시키기 위해서는 곡선curved 이

런 흥미진진한, 예상치 못한, 숨막히는 형태의 변화(유희)

라는 연장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DDP에

를 만들어 낸 적이 있는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서는 구무기 사선과 신무기 곡선으로 골리앗(모더니즘)을

와이드 Focus 시선 4

쓰러뜨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곡선의 추가 사용은 하디드 새로 발견되는 내부 공간space들

의 해건에 블러링blurring이라는 새로운 건축 어휘를 제공했

해건의 원칙들(곡선, 사선, 비수평, 비수직)은 외부 형태에

다. 어디까지가 바닥이고, 어디서부터 벽이 시작되고, 어디

서보다(실제로 많은 곳에서 느낄 수 있지만) 실내 공간에

에서 천장과 지붕이 시작되고 끝나는지 모호해지기 시작

서 더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D동과 M동의 로비에서 그 절

했다. 완전한 카건의 파괴였다. Bingo!!!

정을 볼 수 있다. 숨막히는 새로운 공간들이 펼쳐진다. 기

이 블러링 효과는 실내 외에 비치된 가구에서도 엿볼 수

울어진 벽과 바닥의 휘어지는 만남, 그리고 천장과의 3차

있다. 굴곡된 면으로 처리된 안내카운터, 다리가 없는 의

원적 곡선의 만남, 휘어지는 경사진 바닥, 모두 하얗게 칠

자, 시팅seating과 등받이가 구분이 안 되는 소파, 스틸 스

해진 바닥, 벽, 천장, 그래서 경계없이 블러링blurring된 공간

트랩으로 엮은 야외벤치 등에까지 두리뭉실한 형태로 파

들…. 모두 예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스러운 공간들

급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A동에서 전시되고 있는 <Zaha

이다. 철저히 카건의 모더니즘을 파괴시키는 새로운 공간

Hadid_360°> 전시회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두리

의 발굴과 창조는 DDP의 핵심 건축 철학이다. 동대문에서

뭉실한 매스스터디 모형들, 곡선만으로 구성된 소파, 테이

노다지를 캔 것이다. Bravo, Decon.!!!

블, 의자 등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전시회장 바닥까

그러기 위해서 걸레받이도 없앴다. 그래서 조명도 천장의

지 백색과 흑색의 곡선띠를 전시대의 구부러진 형태에 따

새까만 트렌지 속에 심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오직

라 페인팅해서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전시대고, 어디가

하얀 설치미술의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관객들은 어

전시물인지 모호해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 약간 어지러워

색함 없이 공간을 즐기고 있다. DDP가 불편하고 쓸모없는

지는 느낌을 준다. 모든 면이 흑백만으로 처리되어 더욱 몽

완전치 못한 일시적 장난일 뿐이라던 카건 추종자들에게

롱해진다. “이제 모더니즘은 잊어버려! 이게 새로운 공간

한마디 하는 것 같다. “카건 모더니스트들, 보고 있나요?

이야.”

우리 정말 건축합니다.” M동의 아트리움 로비에서 돌음계

DDP의 단지 배치 계획에서도 이런 블러링 개념은 계속된

단이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공간들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

다. 옥외 잔디밭이 건물 지붕을 타고 올라가면서 어디가 건

을 하게 한다. 비스듬히 기운 계단의 하얀 난간 벽들과 하

물이고 어디가 진짜 마당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들

얀 조명스트립이 빚어내는 공간과 형태의 유희는 신비로

어 혼란(?)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휘어지는 경사로

움 그 자체다. 발레리나의 숨막히는 아름다운 몸동작이라

는 갑자기 둘로 쪼개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중첩이 되면

고 해도 될 정도다. 면과 면이 둥글게 각이 없이 만나기 때

서 방문객들로 하여금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출

블러blur현상

입구도 여러 군데 흩어져 있다. 정문이라는 개념도 없다.

이 일어나고 있어 더욱 효과적이다. 환희의 신음 소리가 계

카건의 모더니즘이 주장하는 공간의 명확한 인식을 일부

속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언제부터 건축이 이렇게 아름

러 분쇄시키기 위해서다. 굉장히 집요하게 모더니즘을 공

다웠어?” D동의 로비에서도 경험치 못한 공간의 연출은

격하고 있다. 일단 성공적이다. 모더니스트들의 우려와는

계속된다. 콘크리트 DM브릿지의 잔재가 마치 맘모스의

상관없이 오히려 관객들은 개의치 않고 즐기는 것 같기 때

뼈다귀 같이 용트림하면서 주위의 비스듬한 벽, 기둥, 천장

문이다. 약간의 혼란과 모호함은 더욱 흥미를 북돋아 주는

과 빚어내는 공간의 유희는 바로 경악 그 자체다. 철두철미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들이 컴퓨터 문화의 빠른 속도를 따

하게 모더니즘은 붕괴되고 있었다. “모더니즘은 건축도 아

라잡지 못해 사물과 이벤트를 초점이 흐려진 상태에서 보

문에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천장인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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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Focus | 와이드 포커스

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전자 광고판이 만들어 내는 현란한 빛의 향연으로 실신할 정도이다.

마지막 비수 캔틸레버 모더니즘의 종말?

도 마지막으로 골리앗 모더니즘의 숨통을 끊으려고 사용

곡선과 사선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F&S의 발견은 DDP

하는 비수가 하디드의 캔틸레버cantilever이다. 비트라소방

최대의 수확이자 기존 건축계(카건)에게 주는 경고의 선

서에서 쓰인 캔틸레버 지붕과 같은 개념이다. (AA의 스승

물이다. 잘못하면 해건에게 세상을 다 내줄 수 있기 때문이

쿨하스가 서울대미술관에 사용한 유리 덩어리 캔틸레버와

다. 지금까지 어느 카건도 어느 모더니스트들도 만들어 내

같은 어휘다.) 단지 하늘을 찌르는 예리한 각의 면이 아니

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

라 매시브한 둥근 덩어리의 캔틸레버이다. 그래서 더 극적

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일관되게 조그만 건축 디테일에서

이다. 카건 철학을 비웃듯이, 낙수장의 캔틸레버 발코니를

부터, 건축 소품에서부터, 건축의 내부 공간, 외부 형태에

조롱하듯이, 중력을 완전 무시하려는 의도된 장난(?)이다.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안티카건(타도 모더니즘)의 원칙을

한마디로 모더니즘을 파멸시키는 최후의 비수로 사용되었

고수하면서 우리에게 감동(질투심?)을 주고 있다. 하디드

다. 이 매스덩어리 캔틸레버는 계몽주의 철학자 뉴턴을 바

건축의 정수를 DDP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로 만드는 의도된 해건의 무력 시위(?)라고도 할 수 있

서울 동대문대첩에서 하디드가 해건의 우월하고 예리한

다. “이보게! 중력이란 것은 없어”라고 카건을 비아냥거리

칼날로 카건의 낡은(?) 모더니즘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형

고 있다. 어쨌든 이 둥글고 웅장한 캔틸레버 덩어리 때문에

국이다. 바우하우스에서 시작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극적이고 새로운 F&S를 즐기고 있

모더니즘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DDP가 우리에겐 너

으니 엄청난 구조 부재와 공사비가 투입된 것은 일시 잊어

무 친근한 모더니즘의 웅대한 무덤이 되는 것인가? 전쟁은

버려도 될 정도이다. 서쪽 장충단길 대로 맞은 편의 롯데피

이제부터다.

트인패션몰, 굿모닝시티몰, aPm몰이 배경이 되면 경악 그 자체다. 야간에는 환상적인 캔틸레버의 조명 쇼와 주변의

와이드 Focus 시선 4

이러한 곡선과 사선이라는 무기로 모더니즘을 유린하면서

매시브한 둥근 덩어리의 캔틸레버는 중력을 완전 무시하려는 의도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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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동의 로비는 콘크리트 DM브릿지의 잔재가 마치 맘모스의 뼈다귀 같이 용트림하면서 주위의 비스듬한 벽, 기둥, 천장과 공간의 유희를 빚어낸다.

M 동 디자인 전시관

M동 디자인 둘레길. 바닥, 벽, 지붕의 경계를 거의 잃어버린 듯한 공간.


M동의 아트리움 로비에서 돌음계단이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공간들은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비스듬히 기운 계단의 하얀 난간 벽들과 하얀 조명스트립이 빚어내는 공간과 형태의 유희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윤준환

와이드 REPORT

지난 3월 28일 안양에 개관한

김중업 박물관 진행 | 이보경 건축 전문기자 사진 | 진효숙(별도 표기 외) 본지 전속 사진가 전체 전경

REPORT

건축, 역사와 문화의 지층 위에 다시 서다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 건축가의 위치는 참담하다. 경기 침체로 인한 시장의 악화는 건축가의 입지를 위축시켰고, 문화적 차원의 위상 역시 긍정적이지 못하다. 눈에 띄는 건 축물이 완공되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비난 받을 때만 거론되는 건축가의 이름. 외국의 유명하다는 건축가에게 는 관대하다가도 이 나라 건축가들에게는 온갖 제도적 장 치를 옭아매는 현실과 관행적 태도들도 힘들기만 하다. 물 론 이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건축가에게서 기인한다는 것 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듯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 건축가 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개관했다는 것은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김중업 박물관이 안양으로 간 까닭은? 김중업 박물관이 안양에 들어선 것에 낯설어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김중업은 1922년 평양에서 출생하고 1988년 서울에서 작고했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 관훈동, 성북동, 장충동 등지에 있었다. 안양에는 특별한 연고가 없다. 하지

이보경

만 연고지를 따지는 다른 개인 기념관과 달리, 박물관 건물

한양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근

자체가 작품으로서 이야기될 수 있는 게 건축가일 것이다.

현대서양건축과 한국건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도시로 관심이 옮

이런 점에서 장소에 구애를 덜 받고 기념관이 세워질 수

겨갔다. 월간 <건축문화> 기자, 서울연구

있다는 것은 건축가의 특권이기도 하다. 김중업의 대표작

원 연구직으로 일한 바 있다. 현재는 개

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안양에 위치한 ㈜유유산업 공

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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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왼편에 김중업관, 오른편에 크게 문화누리관이 보인다.

장은 김중업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김중업 박물관은 이

던 르 코르뷔제의 후기 작품적 성향이 녹아 있다고 이야기

건물을 근현대사의 유물로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

된다. 유유산업 공장 건물은 후자적, 즉 르 코르뷔제의 후

서 탄생하게 되었다.

기작과 같은 콘크리트 매스감이 주는 거칠고 지역주의적

1941년 설립된 ㈜유유제약은 일찍이 식민치하와 전쟁을

경향을 띤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보통 김중업의 대

겪은 국민의 영양 부족을 인식하고 제약 분야에 뛰어 들어

표작으로 떠올리는 프랑스대사관이나 제주대학본관은 조

성장한 기업이다. 시작은 의약품 수출을 주로 하는 ‘유한무

형적인 이미지가 인상적인, 르 코르뷔제의 후기 작품 영향

역주식회사’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창립자인

이 더 많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명료

고 유특한 회장은 유한양행 설립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막

한 구조 체계, 상이한 재료의 사용, 엄격한 비례에 따른 벽

내 동생이며 유한양행에서 경영을 돕기도 했었다. ㈜유유

면의 분할, 투명한 벽체 등 서구 근대건축의 특징들도 김중

제약은 6.25 전쟁 이후 유비타, 유파스짓 등 종합 비타민과

업이 초기에 지향한 건축의 모습이라면, 그중 많은 것들이

결핵약을 제조, 보급하면서 급성장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유유산업 건물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대표작으로

유특한 회장은 안양에 부지를 매입하여 공장을 짓기로 하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근대건축의 지향점이 반영된, ‘시대

고 1957년 김중업에게 설계를 맡긴다.(이때 ‘유유산업주식

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회사’로 사명을 개칭하였고, 때문에 이 건물은 유유산업 공

1959년 이곳에 김중업이 설계한 유유산업 공장(현 김중업

장으로 불린다.) 김중업이 프랑스의 르 코르뷔제 사무실에

관), 사무동, 그리고 창고(현재의 문화누리관의 일부)가 들

서 3년간 일하고 귀국한 것이 1956년이니, 유유산업 공장

어선 이후에 공장은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한 건물에 연

의 설계는 귀국 이후 초기 작업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구소와 창고, 공장, 사무실 등이 함께 있어 용도로서 동명

이 시기는 김중업 자신이 르 코르뷔제의 영향에서 벗어나

을 정확하게 따로 명명하기는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 시기지만, 동시에 그만큼 작품에

건물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기존 건물에 구조물이 덧대어

서 그 영향을 읽을 수도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지면서 부지 내 건물들은 꾸준히 증식되었다. 덧붙여진 건

작품에는 그가 근대건축으로서 받아들이고 지향했던 20세

물들은 때로는 김중업이 지은 원래 건물의 문법과 유사하

기 초 서구 근대건축의 특징과, 실제 자신이 일하며 경험했

게, 또 때로는 가장 경제적인 방식 등으로 지어졌고, 2000

와이드 REPORT

삼성천 너머에서 본 김중업 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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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에 이르러서 대지는 건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2003년 유유산업은 더 이상의 확장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마침 제 천산업단지에서 이전 요청이 들어오자 공장 이전을 발표 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안양시민단체, 건축가, 역사학자 등은 시가 이 부지를 매입, 역사적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김중업 박물관이 개관하기까지 유유산업 부지를 확보한 안양시는 이 부지를 활용하기 위 해 연구 용역을 행하고, 이어 ‘안양복합문화관 리모델링’ 이라는 명칭으로 설계 공모를 했다. 부지 주변의 삼성천 일 대는 ‘안양예술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를 활성화시킬 문화 예술 활동의 전초 기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유산업 공장 19개 건물들 중, 덧대어진 일부만 철거하고 대부분 활용하는 계획을 전제로 공모전이 시행됐다. 즉 김 중업 설계의 건물은 원형을 유지, 복원하고 나머지 공장 건 물들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재건축을 제안하는 방향이었 다. 2008년에 실시된 이 공모전에서 제이유 건축이 당선되

와이드 REPORT

어 리모델링 사업자가 되었다. 제이유 건축의 안은 부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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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당시 유유산업 공장 전경. 안양시청 제공. 입구 쪽에 수위실과 현재 김중업관으로 사용되는 건물, 문화누리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의 일부가 건립되어 있는 모습이다.

쪽 김중업 건물과 연결된 건물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중성 적이고 비물질적 느낌을 주어 김중업 건물을 부각시키고, 대신 부지 외곽에 있는 건물들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부가 하는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제시대 때 덮어 버린 유적지가 나왔는데, 공사 규모가 컸던

그런데, 진행하는 동안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유유산업 부

만큼 발굴된 유적 또한 어마어마했다. 시는 ‘역사문화공원’

지에서 ‘안양사’터를 입증하는 유물이 나온 것이다. 유유산

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간수문 등을 복원하면서 역사 도시

업이 들어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 부지에 고려시대 절터

의 이미지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거대한 부지

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공사 전에 시

와 압도적으로 이질적인 건물이 들어섰다. 복원된 유적은

굴을 하였고, 단순히 큰 절이 아니라 안양사라는 점이 명확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과연 그곳을 방문하는 사

해지자 안양시는 입장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안양’이라는

람들은 얼마나 ‘역사’의 이미지를 느끼고 찾을 수 있을까?

이름의 유래가 안양사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 고려시대 초

유유산업 공장이 들어서던 50년 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에 지어진 안양사의 실체는 안양의 역사를 천 년 전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춧돌의 일부는 버려지기도 했지만 가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안양시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이

치가 있어 보이는 유물들은 한 쪽에 모아 놓고 일부는 유

보다 더 상징적인 장소가 있을까?

유산업 부지 내에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그때는 전쟁 직후

제대로 발굴을 하자면 사업은 중지될 수밖에 없었고, 안양

였고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시 되던 때였다. 유적에 대한

시가 애초에 활용하려던 많은 공간들도 어떻게 될 지 모르

보존 의식이나 발굴 절차도 없고 제대로 된 조사도 이루어

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발굴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결국 2

지지 않던 때, 그저 상식선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동대문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발굴을 하고, 유적을 복원하도록 했

디자인플라자에 대한 서울시의 대처 방식이 이곳에서 50

다.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방향에서 최소한의

년 전에 행해진, 유적에 대한 세간의 관심조차 없었을 때

건물만 남기기로 했다. 김중업 건물로서 복원하기로 했던

행해진 행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4개의 건물, 안양사 유물을 전시할 수 있는 건물, 지원용

물론 안양시의 조치도 만족할 만한 것인가는 의문이지만,

건물 등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다

사업의 일부를 포기하고서라도 복원을 하려고 한 점은 인

시 계획안을 의뢰했다.

정해 주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지자체의 예산이나 총책임자

서울시에서도 최근 개장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유사한

인 자치단체장의 임기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이슈가 있었다. 이 역시 공사 과정에서 유물이 출토되고 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양시 문화예술과의 김지석 위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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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관련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는 전시장

중심축에서 살짝 벗어나 서 있는 유유산업을 상징하는 Y자를 응용한 디자 인의 기둥. 이 모티브는 공장 여러 곳에 사용되고 있다.

김중업관 전시장 내부. 김중업 개인의 기록물들이 있다.

전시장 2층의 중복도. 상부에 리드미컬한 창틀을 볼 수 있다.

건축가 김중업의 생애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김중업관. 외부로 노출된 구조체가 건물의 외관을 특징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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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관 후면의 외부 기둥. 계단참을 받치는 기둥에서도 Y자가 응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중업관에서 바라본 문화누리관 전경

안양사지관에서 바라본 문화누리관

문화누리관의 계단과 황동 핸드레일, 계단참 입면의 구성이 재 미있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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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준다. 이 세 건물은 모두 조적조는 아니지만 벽돌벽으로

부일 뿐이다. 안양사터를 제대로 발굴하려면, 안양사의 규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모를 고려했을 때 주변 반경 1km 내의 사유지를 모두 사

맨 안쪽에 자리잡은 것은 이번 리노베이션으로 새로 단장

들여 조사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로서 불가능한 일이다”라

한 안양사지관(안양사 박물관)이다. 다른 건물들과 비교했

는 것이다.

을 때 조금은 이질적인 재료와 이질적인 형태로 자리잡았

유적 발굴과 복원에 쏟은 노력은 역사 도시를 자랑하는 이

지만, 대지 안쪽에 자리잡은 탓인지 든든한 배경 같은 역

탈리아나 일본 같은 다른 나라의 조사 기간이나 논의 과정

할을 해주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창고였지만, 구조가 튼

에 미치지 못한다. 발굴된 유적의 복원과 전시의 방법에도

튼하고 공간이 넓어서 안양사 박물관으로 활용이 됐다. 리

아쉬운 점이 있다. 여전히 보존보다는 개발이 월등히 앞서

노베이션을 하기로 한 다른 건물들 중 일부는 골조만 남겨

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거에 붙잡혀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

놓고 다른 활용 가능성을 모색했으나, 결국 기둥만 남기는

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논의가 충분히 될 필요가 있지 않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현재는 이 기둥들을 응용한 작품이

을까?

설치되어 있다.

김중업의 건축, 산업 시설에서 문화 시설로

시대가 만든 기능

결국 김중업 박물관은 6개 남은 건물들에 필요한 프로그램

이렇듯 작은 규모, 다른 성격의 건물들이 모여 부지를 형성

을 대폭 축소한 채 문을 열었다. 이름은 ‘김중업 박물관’이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사실 대지와 공간을 최대

지만 전체적인 부지의 성격은 김중업관과 안양사 박물관

한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쩔 수 없

을 포함한 ‘복합문화시설’이다.

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게다가 ‘융복합’ 시대이다보니 ‘복

부지 입구의 동그란 수위실은 간결한 원형의 평면으로 되

합’은 어디서나 필요한 단어가 되었고, 다양한 기능을 한

어 있는데, 넓게 튀어나온 지붕과 함께 삼성천 입구 쪽에서

곳에 넣는 것이 복합의 일반화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안양

바라보면 눈에 띄는 건물로서 김중업 박물관의 입구 역할

사의 등장으로 이곳을 ‘안양천년문화관’으로 부르려 하기

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 했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대지 왼편에 유유산업 공장 최초의 건물

하지만 사업 명칭이 오락가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격이

이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노출된 구조체가 강렬한 인

명확하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초창기 사업을 권했던 시

상을 주는, 개방적 느낌의 건물이다. 이 건물이 현재 ‘김중

민연대 쪽의 말을 빌면, 김중업 박물관 구상의 시작은 근대

업관’으로, 김중업의 작품과 생애를 전시하고 있는 건물이

건축물을 활용한 ‘건축 박물관’이었다고 한다. ‘건축문화의

다. 문화누리관으로 쓰이는 좀더 큰 건물은 1층에서 캔틸

해’였던 1999년 확인된 건축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근대

레버 구조를 살짝 드러낸, 김중업관과는 강조된 건축 언어

문화유산을 문화 시설로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공유

가 사뭇 다르게 보이는 건물이다. 특히 1960년대 사진을

되었다. 이후 안양에서는 삼덕제지공장이 나가면서 부지

보면 규모가 비슷한 두 건물의 대비가 확연하다. 문화누리

를 시에 기부, 삼덕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관은 모서리에 세워진 박종배 씨의 모자상과 파이오니아

안양에 있던 공장들이 서서히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추

상, 유리창에 덧대진 철창, 연통 구멍을 막은 조형물 등, 디

세에서 유유산업도 공장 이전을 추진했다. 즉 이 사업은 문

테일들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공장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없

화 시설에 대한 요구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아 가는

는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한 뉴스 기사에 따르면,

과정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라고 할 수 있다.

이 건물이 공장시설이었을 때도 유원지의 취객들이 종종

이곳이 안양시의 의도대로 건축을 통한 역사와 예술이 융

이곳을 호텔로 오인하고 방문했을 정도라고 한다.

합하고 새로움이 탄생되는 장소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김중업관 뒤편에 위치한 어울마당은 기존에 보일러실로

같다. 개별 장르의 독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

사용되었던 건물로서, 층고가 높고 목조 트러스의 골조가

합’은 이도저도 아닐 뿐더러, 각 장르 간의 소통이라는 것

아름다워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대신 공간

도 단순히 한 곳의 장소에 모아 두는 것으로 이루어지지는

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어서 바로 옆에 위치한 창고 같은

않을 것이다.

와이드 REPORT

말을 빌면 “유유공장 부지 내에서 발굴된 것은 가람의 일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부속 건물로 삼았다. 그런데 공연 장이다보니 조명 장치 등의 설치로 목조 트러스가 보강되

부지의 힘이 만든 건축의 지층

어 본래의 아름다움은 볼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또 이 건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역사를 딛고 서 있는 곳으로, 이

가까이 위치한 굴뚝은 이곳이 유유산업 공장이었음을 말

미 문화적 자양분을 가지고 있다. 안양사터로 인해 비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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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공간을 잠재력과 가능성을 열어 두는 상징적 모습으로

중초사 이후에는 고려시대 큰 절인 ‘안양사’가 있었다. 극

보자고 한다면 억지일까?

락정토를 의미하는 이 절의 이름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김중업 박물관의 부지, 즉 유유산업 공장 부지를 다시 한

시 이름의 유래가 되었는데 이는 고려 태조가 세웠다는 기

번 살펴보자. 북쪽으로 삼성산을 기댄 편평한 대지에 안양

록이 있어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확인된다. 이 안양사

천과 만나기 직전의 삼성천이 바로 옆에 있다. 삼성산과 관

에는 김부식의 글이 적힌 비가 있었다고 하며, 최영이 태조

악산 사이에서 발로한 삼성천은 석수동 일대를 지나 안양

때 건립된 전탑을 개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조선 건국

천과 만나는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돌이 많아 석공들이 살

에 영향을 미친 대사(大師) 나옹, 지공, 무학도 이 안양사

고 있어 석수동(石手洞)이라 불렸다가 냇가로 인해 석수

와 관계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승려 천명이 불사

동(石水洞)이 되었다고 한다. 돌이 많으니 지반은 단단할

를 올리고…(중략) 사부四部 대중에게 널리 시주한 것이 무

터이고, 안양천도 가깝게 있으니 좋은 물을 써야 하는 제약

려 3천 명이었습니다”는 기록이 있어 이 절의 규모가 대단

회사가 들어서기에 아주 적절한 조건이었다. 유특한 회장

했음을 짐작케 해 준다. 그러니까 이곳은 이미 천 이백 년

이 이 땅을 보았을 때 기꺼이 안양에 공장을 세우게 된 것

전부터 당대 최고 권세가들이 이용한, 예사롭지 않은 부지

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도심에는 제약회사를 설립하지 못

인 것이다.

하게 하여 다른 제약회사나 공장들이 서울 외곽으로 나간

안양사가 폐사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세종실

것은 이로부터 한참 후인 70년대의 일이니 매우 앞선 선택

록에 이미 “안양사터”라고 표현하고 있어, 승유억불정책으

이라 하겠다.

로 쇠퇴한 것 같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탑과 함께 삼

그런데 사실 이는 제약회사에게만 좋은 조건이 아니다. 삼

성산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어쨌든 유유산업이 들어서

성산은 관악산과 연결돼 있고 멀지 않은 남쪽으로는 비봉

기 직전 이 부지는 그냥 포도밭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산 봉우리가 비껴 보인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고, 바라보

대한 것은 안양시에서 조금 더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라 하

기에 좋은 시각적 대상이 있으며, 이용하기 좋은 물이 흐르

겠다.

는 양지바른 이 부지는 이미 통일신라 때부터 이용되었다.

부지의 힘이란 구복적 풍수지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지 뒤쪽에 있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새긴 것으로 보이

렇게 천 이백 년이 넘는 문화적 지층 위에 이제 김중업 박

는 마애석종과, 유유산업 입구에 서기 827년에 완성되었다

물관이 들어선 것이다. 풍부한 역사,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는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자연의 조건들이 앞으로의 이 지역 문화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문화누리관과 기둥만 남은 부속 건물. 이곳에는 배영환의 <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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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사지관

보일러실을 리노베이션한 공연장 어울마당

수위실이었던 문화지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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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REPORT

김중업관에서 다시 보는 김중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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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16,243m2, 연면적 4,596m2의 6개 동 규모로

서 추진된 탓인지 스케치와 일치된 결과물을 만들

만들어진 김중업 박물관 중에서 ‘김중업관’으로 명

어 내지는 못했지만, 붉은 색으로 단면을 처리하고

명된 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의 설계작품과 생애를

둥근 창을 가진 입면이 돋보이는 성공회회관이나

볼 수 있는 개인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이 건물

외환은행 계획안의 경우에는 건축도면 자체의 아름

은 유유산업 공장 부지에 세워진 최초의 건물로 공

다움을 보여 주기도 한다.

장 프로그램상 화려한 치장이나 극적인 공간 변화

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주한프랑스대사

등은 없으나 개구부의 스케일, 입면에서 보이는 창

관(1961), 유엔묘지 채플(1964), 제주대학 본관

틀의 모습 등이 예사롭지 않다. 입구에는 유유제약

(1964), 서산부인과(1965), 부산충혼탑(1980), 쇼

을 상징하는 ‘Y’자 기둥이 중심에서 살짝 비껴 서서

핑센터 태양의 집(1979), 민족대성전계획안(1980)

캐노피를 받치고 서 있다. 입구 반대편의 외부 계단

등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서산부인과의 경

은 이 공장 건물에 조형적인 완성을 더해 준다. 군

우, 실제 건물에서는 구현되지 못한 그로테스크한

더더기 하나 없는 난간과 계단참의 부드러운 결합

램프의 천창이 눈에 띄는 모형이다. 제주대학도 그

은 리드미컬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렇지만 그 당시 이런 유려한 곡선을 사용한 건물을

전시장 1층에는 건축가 김중업에 대한 소개와, 그가

설계하여 구현토록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여행 다니면서 기록한 스케치, 건축과 관련된 메모

이밖에도 김중업이 설계했던 개인 주택들의 모형,

등을 볼 수 있고, 편지나 일기, 이력서 등 개인 기록

실현되지 못한 계획안들을 볼 수 있다. 주택 작품 중

물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1965년 프랑스정부

에는 유유산업의 창립자인 유특한 씨의 주택도 있

로부터 받은 국가공로훈장, 대한민국 훈장증, 관련

어, 건축주와의 각별했던 관계를 짐작하게 해 준다.

저작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한 편에서는 프

김중업은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

랑스에서 제작한 영화와 김중업 관련 영상 자료 등

축가였고, 해외 활동도 많았으며 생전에는 전시도

이 상영되고 있다. 오래된 영화를 보는 느낌이지만

여러 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설계

접하기 힘든 자료이기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 많은 건물들 중 다수는 점차 낡은 건물이 되어

2층은 김중업의 설계 작품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

잊혀지고 있다. 흔히 함께 거론되는 김수근에 비해

다. 전시실은 중복도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복

사후 조명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

도 쪽 창문과 문은 지나갈 때마다 의식하게 되는,

번 김중업 박물관의 설립을 계기로 그의 건축이 재

작지만 꼭 맞는 스케일로 만들어져 있다. 프랑스

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건축사무소 앙가주망

에 있을 때 계획한 외환은행 계획안(1973), 홍명조

의 최승원 대표는 “전문 학예사들이 더 있어서 지속

씨 주택(1974), 성공회 화관(1975)의 도면들도 있

적인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자료도 더 모

는데, 거기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그의 생각이 적혀

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김중업 선생처럼 해

있다.

외에서까지 인정받은 한국의 건축가가 있었나요?

“집이란 알뜰히 꾸며져서 사는 이에게 삶의 즐거움

물론 저는 현재에도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있다

을 듬뿍 안겨 주어야 하고 집이란 아름답게 가꾸어

고 봅니다. 하지만 기회를 못 갖는 것이죠. 그들이

져서 사는 이에게 새로운 나날을 보장해 주어야 하

지평을 넓혀가는 데 있어 김중업 선생의 활동을 살

며 집이란 사는 이의 또 하나의 생생한 얼굴이며 자

펴보는 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라나는 이들의 잊어질 수 없는 고향이다.”(홍명조

“라며 이 건물이 갖는 의의를 이야기했다.

주택 도면 옆에 쓰인 글 중에서 )

김중업관은 비록 조그만 건물의 하나일 뿐이지만,

이 시기는 김중업이 프랑스로 반강제 추방을 당해

이곳에서 우리는 김중업이라는 건축가가 살았던 시

작품 활동에 있어서 공백기로 불리는 시기이다. 건

대를 되돌아보고, 그 치열한 고민들을 일부나마 공

축가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하는 50세 즈음에

유할 수 있다. 그의 건축을 통해 짐작만 할 수 있었

그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이 계획안들은 원거리에

던 개인적인 노력들을 살펴보면서 말이다.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INTERVIEW

리노베이션 담당한 제이유 건축 박제유 소장 공사를 맡게 된 것은 공모전을 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중업 작품에 손대는 것이 부 담스럽지는 않았는지. 공사 이전에 안양예술센터 구상안 작업을 했던 허서구 소장과 함께 작업하게 되어 내용 은 잘 알고 있었다. 김중업 건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원형을 복원하고, 리노베이션 건물 은 최대한 중성화 시켜 배경처럼 만들려고 했다.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의미 가 있는 작업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 동안 리노베이션 작업은 많이 해왔는지. 리노베이션 작업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 는 점이 궁금하다.

바꾸면서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노베이션 은 사실 공사비가 많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조 공사를 안하기 때문에 비용이 적 게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신축보다 많이 들 때가 수두룩하다. 특히 공사를 하 기 위해 뜯어 놓고 보면 도면대로 시공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리노베이션

와이드 REPORT

그 동안 소규모 공연장 등을 설계할 기회는 꽤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도 전체적으로

의 경우 사실상 감리도 설계한 곳에 맡겨야 제대로 시공될 수 있다. 공사하면서 그때그 때 다르게 설계해야 할 때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의 경우는 한국 현대건축을 이끈 대표적인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건물이 지 않나.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공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발주처에서

김중업 박물관 현상 설계 조감도, 제이유건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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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는 그런 부분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골조 공사만큼의 비용이 덜 든다고 생각해서인지 일반적인 관에서 발주하는 신축 공사보다 예산이 적었다. 안양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 센터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예산이 부족하면 아무래도 공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설계비 더 받으려는 것 아니냐 오해를 받으니 쉽게 하지도 못해 안타깝고.(하하) 특별히 중점으로 두었다거나 새로 느낌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 있다면. 사실 김중업 설계인 건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원래의 느낌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 다. 원래의 목표도 보존, 복원이었으니까. 사용하면서 덧대지고 색이 칠해졌던 부분들 은 최대한 제거하고 김중업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워낙 증축 이 많이 이뤄져서 제거해야 할 게 많았다. 김중업관의 경우 투명한 유리 느낌과 골조의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외관에 있어서는 원형의 느낌을 살려가는 데 주력했고, 내 부는 아무래도 프로그램이 바뀌다 보니 공간도 바뀌어야 하고 현재적인 디자인 요소들 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화누리관의 경우 원래 제약회사 공장 건물이었기 때문에 기존 평면은 마치 미로를 연상시키듯 무척 복잡했다. 이를 전시 공간에 맞추기 위해 많 은 벽들을 없앴고, 중간에 빛우물을 두어 수직적인 연결과 공간감을 확보하고자 했다. 기존의 복도는 살리면서 말이다.

와이드 REPORT

안양사지 발굴 전에 약 십여 개 동에 대한 계획이 있을 때는 일부 리모델링하는 것이 있 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두 개 동만 손댈 수 있었다. 그 중 큰 것이 현재 안양사지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원래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건물은 아니고 90년대 창고로 지어진 건물인데, 애초에는 어메니티 시설로서 휴게와 체험을 중심으로 꾸미려고 했었다. 외장 은 싸구려 패널이지만 골조가 튼튼하고 층고가 높아 전시장으로 적격인 건물이었다. 하 지만 안양사 유적이 발굴되면서 그에 대한 전시관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그렇 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의 무게감을 부여하고 싶었는데, 원래 있던 골조가 종묘와 유사 한 열주의 느낌을 갖는다고 보았고, 이 종묘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아 시간의 축적이 담긴 장중한 느낌을 살려보고자 했다. 중간에 외장 재료가 바뀌면서 의도했던 이미지와 는 좀 다른 결과가 나와서 아쉽긴 하다. 그것도 다 내 능력 부족 탓이려니 한다. 김중업 선생이 애초에 지역적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불국사나 종묘를 자주 언급했 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을 것이고 후 배 건축가로서 바라본 김중업 작품은 어떠했나. 특히 유유산업 건물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궁금하다. 개인적인 관계는 전혀 없다. 후배 건축가의 입장으로는 한국적 전통미를 표현함에 있어 서 가장 뛰어났던 분이 아닐까 싶다. 유유산업 건물은 작품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건물 인데, 처음 보았을 때 명쾌한 구조며 입면의 비례, 그리고 계단 등이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의 감각으로 보아도 뛰어나다. 낮은 개구부의 스케일도 당시 사람들의 스케일을 고 려한 것이라 하더라. 현재의 법규에 맞지 않는다고 시에서는 고치라고 했던 난간이나 핸드레일도 정말 독특했고, 디테일이 훌륭했다. 그런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애 를 썼다. 발굴 작업 등으로 계획안 수정도 하고, 애초 계획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업을 진 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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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설계 외에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주관은 시에서 하는 사업이지만 시민단체가 관 련되어 있고, 자문위원도 많고, 연구 용역도 두 번이 나갔다. 또 문화재 때문에 당연히 문화재청의 지시도 받아야 했고. 하지만 아무래도 건축가가 이런 일에는 전문가 아니겠 나? 게다가 건축가가 지은 건물로 건축 박물관을 짓는 일이다. 전문가에게 맡겨 주었으 면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어느새 공무원의 지시로 바뀌기도 하고, 자문위원단 이야기에 의도치 않은 계획을 하기도 했다. 전적으로 믿고 맡길 때 전문가도 그에 따른 책임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다른 용역에서 디자인 감리를 함께 맡았는데, 많은 부분을 건축가가 결정하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작업하니 나도 열심히 하게 되고, 발주처도 만족스러워 하는 결과가 나왔다. 자료를 보니, 자문회의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공간이 개성 없어진 듯하다. 많은 사람에 게서 좋은 의견을 듣는 것은 좋지만, 그런 이야기를 다 수용하다 보면 결국엔 여기저 기 똑같은 프로그램의 건물, 외형적으로도 유사한 건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 가 생각하게 된다. 또 전문성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건축 산업 전반이 침체 일로에 있 지 않나? 그런데 그동안 전문가로서 신뢰를 잃은 것에 대해 건축가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반성하는 부분이다. 전문가로서 제대로 일하지 않고 쉽게 진행하려고 했 던 부분들이 있었다. 비리도 많고 부실도 많았다. 물론 모든 선배 건축가가 제대로 일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변호사나 의사들 사이에는 대부분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단체들 이 있지 않나? 하지만 건축이라는 직업군에는 사회 참여나 봉사하는 단체가 없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율이 정말 낮다. 이러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와이드 REPORT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

아무래도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많은 것 같은데, 말씀처럼 전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책 임감으로 일하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세들로 인정받아 서로 신 뢰가 쌓이게 되면 상황은 훨씬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김중업 박물 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초로 건축가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생겼다는 것에 일단 뿌듯한 마음이다. 박물관 관 계자에게서 벌써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호응도 좋다고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 시너지 를 일으킬 수 있는 다른 공간들이 더 있으면 좋겠다. 사실 안양 파빌리온을 제외하고는 안양예술공원 주변에 전시장이 하나도 없다. 김중업 박물관 자체도 공연장으로 하기에 는 규모도 작고 공간도 적절하지 않다. 안양의 대표적인 문화 예술 공간이 되기에는 이 곳만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본다. 그간 많은 문화 예술 관련 공간이 서울에만 치우쳐 있었는데, 노력하는 지자체들을 통 해 좀더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향유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면 전체적인 건축 문화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최초의 건축가 박 물관 설립을 계기로 건축 관련 전시 및 프로그램을 이곳 안양에서 활성화시킨다면 안양 이라는 지역만의 특화된 문화로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인터뷰어 | 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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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이시대 건축가의 초상②

행동하는 건축가

스튜디오 메타의 설립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 수로 재직하며 깊이 있는 건축 작업과 지역 공공 프 로젝트는 물론 이론적 실천적 도시 탐구를 지속해 오던 건축가 이종호가 지난 2월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부재는 개인적인 비통함을 넘어 한국 건축계 에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동시대 매체로서 본지가 해야 할 일은 그를 지 속적으로 기억하는 행위에 동참하는 것일 터, 여기 그의 건축 작업 중 유작에 해당하는 마로니에 공원 과, 지역 공공 프로젝트 감자꽃스튜디오의 최근 증 축 작업, 그리고 서울 읽기와 을지로/세운상가 프로 젝트까지의 도시 건축 연구를 펼쳐 놓는다. 더불어 그가 생전에 도시와 건축 개념을 서로 공명한 바 있 는 두 젊은 이론가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는 건축 과 도시로 이종호가 닿으려고 했던 지점, 꿈꿨던 이

Yi Jongho

WORK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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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함께 바라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편집자 주) 진행 | 정귀원 편집장 사진 | 김재경(마로니에 공원) 사진 편집위원 사진 | 진효숙(감자꽃스튜디오) 전속 사진가 자료 제공 | 메타 건축, 이선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마지막 건축 작업, 그리고 남겨진 과제 | 우의정 감자꽃스튜디오와 기획가로서의 이종호 | 이선철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 사이에서 | 이종우 인터뷰: GSUA에서의 작업 | 김태형+김성우 이종호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들 | 장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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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BIOGRAPHY

- 1957년 서울생으로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입사한 김 수근의 공간건축연구소에서 10년을 보냈다.

남성들로 구성된 이사진들에게는 불온한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 다. 프라이 홀이 있던 자리이기에, 그 벽돌들이 교정에 아직 깔려

- 1989년 문화집단 studio metaa를 설립하고 축제 기획, 무대 디

있었기에 그것들과 관계하는 소소한 기억의 장치들은 마련되어

자인, 문화 시설 컨설팅 등의 다양한 활동과 함께 건축 작업을

있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학교 설립자인 스크랜턴 여사의 건학

하였다.

정신이었다. 그 정신이 말하는 여성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 1994년 여러 건축가들과 함께 sa(서울건축학교)를 만들어 운영

진취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시설의 반이 학교보다는 정동 길을 향해 열려 설립자가 말하는 책임을 다하고 있다. ⑧분

하였다. -1999년에는 도서출판 METAA를 설립, 대표를 지냈다.

원 백자관과 ⑩이순신 기념관이 그 뒤를 따른다. 백자관은 정확하

- 2005년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게는 백자를 만들던 도요지 발굴 기념 박물관이다. 그러니 멋진 달 항아리 분원 백자보다는 깨진 파편들과 도공의 기억이 더 앞에

힘써 왔다.

나서 있어야 했다. 이순신 기념관은, 어쨌든 서 있다. 감리를 못하 “한예종 건축과에는 도시건축연구소(IUA라 부른다)가 설립되

는 사이에 내부에 이상한 4D 상영관을 만들어 놓아 아직 가볼 용

어 있다. 설립의 직접적인 계기는 2005~2006년에 진행되었던 광

기를 못 내고 있다. 하지만 하고자 했던 일은 분명했다. 우리에게

주 문화 도시 기본 구상이었지만, 내게 도시 작업은 그 이전에 진

너무도 익숙한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해방이었다. 그리하여 상식

행했던 고창, 양구, 춘천 작업의 연속이었다. 사실 더 추적해 본다

속의 장군이 아닌 각자 내면의 장군이 될 수는 없는가에 대한 시

면 sa의 도시 워크숍이 그 뿌리다. sa 워크숍은 내게는 훌륭한 학

도였다. 십년 안에 그 이상한 상영관은 사라지고 원래 설계된, 인

교였고 그곳에 모여 한 여름을 봉사했던 수십 명의 튜터들 모두는

간 이순신에게 가장 중요한 난중일기의 방이 만들어질 것이다. ⑨

내게 훌륭한 가정교사였다.

노근리 역사 평화박물관은 미군에 의해 벌어진 양민 학살을 다루

학교의 연구소를 통해 본격적이며 다양한 도시 연구들을 진행해

고 있다. 그러나 그 전체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아직 현재 진행

왔다. 대부분 법제 연구가 아닌 자유로운 비전 연구들이다. 광주

형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굴다리 안에서 죽은 이들이 체험했을

에 이어 순천 문화 도시 연구, 무주, 나주 도래마을 연구가 이어

그 공포와 유족들의 고통이다. 섣부른 애도는 금물이다. 어떤 정

졌다. 아산의 기원인 영인면과 봉평처럼 작은 면 소재지를 들여다

치적 윤색도 안 된다. 오직 상실의 아픔만이 있을 뿐이며 학살의

보았는가 하면 경기도 내 한강과 임진강 전체 유역에서 사대강과

현장을 바로 앞에 둔 기념관은 오직 그 장소로 이어주는 통로의

는 다른 시각의 가능성을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함께’라는 것은

역할일 뿐이다.”-이종호, ‘하이퍼폴리스의 기억술, 마로니에 공원

학교의 다른 선생들 뿐 아니라 그 과제에 모인 다양한 분야의 초

계획’ 중

빙 연구진들이었다.”-이종호, ‘하이퍼폴리스의 기억술, 마로니에 공원 계획’ 중

- 이밖에도 ①율전교회, ⑭용두리주택, ⑯홍천휴게소(팜파스), ③ 바른손센터, ⑦보리출판사, ⑪파주출판단지 음악세계, ④아산

“건축으로만 본다면 나의 작업은 대개 기억에 관계하는 공공의

산림박물관, ⑮헤이리 아티누스, ⑬제주 롯데 아트빌라스 등이

일들이다. 기억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관심은 아마도 ⑤명지대

있다.

방목기념관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학교 설립자의 기념관이 오

- 2003년 광주비엔날레 초대작가, 2003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히려 전망 좋은 식당이 되어 기념이 일상으로 되는 것, 동시에 자

초대작가, 2009년 메가시티 네트워크전/독일 프랑크푸르트 초

칫 지루한 캠퍼스를 교란시키는 호기심의 덩어리가 되는 것이 그

대작가 등 다수의 전시에 참가했다.

때문이었다. ⑥박수근 미술관에서는 결국 화가와 방문객이 만나

- 수상 경력으로 1992년 건축가협회상(율전교회), 1993년 건축

야 하는 문제였다. 그림을 담는 미술관에 앞서 청년 박수근을 만

문화대상(용두리주택), 1994년 건축문화대상(홍천휴게소),

들었던 풍경을 방문객이 함께 보는 장치로서의 미술관이 더 큰 관

1995년 건축가협회상 아천상(홍천휴게소), 1995년 김수근문화

심이었다. 그러니 미술관은 얕은 구릉의 풍경 속으로 점차 사라

상(바른손센터), 2000년 건축가협회상(명지대 방목기념관 및

지게 된 것이다. ②광주 비엔날레 남광주역 전시장은 이미 사라진

행정동), 2003년 건축가협회상 아천상(박수근 미술관), 2006년

철길과 철도역을 오히려 직설로 환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히려

강원도 경관우수건축물 특별상(양구 예술인마을), 2008년 안양

이곳에서는 운동가들 이외에는 아무도 폐선부지의 기억을 정면

시 건축상 은상(강변교회),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으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 롯데 아트빌라스)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노

⑫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은 사실 온건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근리 평화기념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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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마로니에 공원

마지막 건축 작업 그리고 남겨진 과제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학로 장소 만들기의 신화가 진행되 었다. 공원 동쪽에 면해 나뉘어 있던 여섯 필지 위에 붉은 벽돌의 새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공원이 만들어진 후 4년, 1979년의 일이었다. 그 중 한 필지는 김수근의 기증이었 고 동시에 그는 이 정책의 제안자이자 미술관과 공연장의 건축가였다. 공연장 역시 공원 북쪽 주택지들을 다시 합했 다. 지금의 이름으로 아르코 예술극장, 미술관 그리고 문화

대지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24-1번지 외 1 주요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 전시장, 공원 대지 면적 5,802.00㎡ 건축 면적 323.77㎡ 연면적 997.9㎡ 조경 면적 829.41㎡ 건폐율 5.58 % 용적률 5.58 % 규모 지하 2층, 지상 1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예술위원회 본관이 마로니에 공원을 온전히 에워싸게 되

최고 높이 4.7m

었다. 그리고 그 힘은 마치 옛날 문리대의 문화적 유전자를

외부 마감 화강석(C-BLACK) 혼드, T28 투명컬러복층

복제하는 듯 문화지구 대학로, 동숭동을 만들어 나갔다. 그

유리(스틸프레임) 내부 마감 자작나무, 수성페인트

러나 그 한가운데, 남루한 이 공원에서 그 힘과 변화는 아 직 잠재력일 뿐이었다.

총괄 건축가 이종호 건축 설계 우의정. 이상진, 김회성 (건축사무소 MIC)

이제 그 잠재력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잠재력에 힘입어

조경 설계 박승진(design loci), 정영미(이든플랜)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도시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만

토목 설계 대한컨설턴트

들어 갈 것인가.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상투적인 녹 지, 잡다한 시설들을 비우는 계획만으로도 잠재력의 일부 는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우선 계획의 과정을 모색해 보

구조 설계 제이텍구조 엔지니어링 기계/전기 설계 GK기술단 막구조 설계 대동 인테리어 설계 메타 시공 (주)삼일기업공사

고 그 과정 자체를 근사한 축제로 만들어 보자. 누가 이곳

감리 메타

을 누리게 될지, 여기에서 어떤 사건들이 기대되는지.”

공사비 약 36억 원

- 2008년 여름, 이종호

발주처 종로구청 설계기간 2009. 09-2011. 12 공사기간 2012. 02-2013. 10

우의정 (주)건축사사무소 메타 대표

우의정은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2월부터 이종호와 건축 작업을 함께해 왔으며, 2000년 중반 이종호가 한예종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는 메타건축을 도맡아 꾸려 왔다.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서울시 공공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2013년 율곡로 지하터널 디자인 공모전과 정동 이화빌딩 공모전에 당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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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마지막으로 공원 중앙의 구 서울문리대 기념 조

그중 70%는 자연공원이다. 자연공원을 제외한

형물은 적정 위치로 이동하고 그로 인해 분산되

경우의 공원율 8% 가운데에서도 공공 영역이라

어 있는 녹지를 재정비하여 경관과 휴식의 효율

말할 수 있는 광장, 보행, 가로 등의 영역은 너무

을 높였다.

나 적다. 그로 인해 도시 공동체를 매개하고 엮어

한편, 마로니에 공원은 대학로와 한국문화예술위

주어야 할 ‘공동성’이 매우 허약하다. 대한 제국

원회, 아르코 미술관, 아르코 극장으로 둘러싸인

최초의 근대적 공원인 탑골 공원이 만들어진 이

도시 공원이다. 그러므로 공원의 인식 범위는 공

후 식민지 도시화 과정과 오랜 독재 기간 동안 도

원의 지적선에 한정되기보다 주변 건물의 영역과

시 공공 영역의 조성은 의도적으로 지연된 경향

함께 활용되는 방안도 모색해야 했다. 기존의 모

마저 있다.

습은, 극장 앞 마당에서 벌어지는 야외 공연들이

마로니에 공원은 근린공원으로 시작되었으나 주

여러 요소들에 의해 공원까지 충분히 번지지 못

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학로 전체 영역의 광장

하고, 미술관도 공원과 영역이 단절되어 접근이

이자 도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 영역으로

용이하기보다는 폐쇄적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진화하였다. 마로니에 공원은 오랫동안 근린공원

미술관과 극장이 마로니에 공원을 통하여 다양한

과 공공 영역 사이에서 좌표를 잡지 못했다. 마로

문화 이벤트가 유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애초의

니에 공원에는 그동안 이 장소와 관계되는 온갖

생각이었다.

욕망의 잔해들이 누적되고 서로 충돌하는 기능

마로니에 공원 계획의 중요한 이론은 보로노이

들, 시설들, 조형물들이 쌓여 지기만 했다. (놀이

다이어그램에서 시작됐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터, 농구대, 서울대 기념물, 불법 확장된 매점, 문

은 러시아의 수학자 보로노이가 만든 이론으로

화예술위원회의 담장, 관리 사무소, 청소년 상담

자연계의 현상과 공간의 구조를 설명해 줄 수 있

실, 폐기물 컨테이너, 티켓박스, 불법 커피숍, 하

으며, 진화적이고 자기발생적인 특성에 의하여

회탈 분수, 어울리지 않는 소나무 조경과 조형물

디지털 공간의 생성 매커니즘으로 거듭난다. 규

들, 동상, 연극제 기념탑, 보도의 피곤한 곡선들과

칙을 가진 체계와 구성 요소의 지속적인 진화가

질 낮은 공공 조형물 등)

자연 발생적인 패턴의 창발을 이루게 되는 것인

이에 마로니에 공원의 계획은 다음과 같은 과제

데, 이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마로니에 공원의

로 시작되었다. 우선 이곳에 이미 잠재되어 있는

마스터플랜, 시설물의 외피 디자인, 공간 계획에

공공 영역의 가치를 발굴하는 것, 30년 간 누적

적용되었고, 마로니에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활

된 온갖 욕망의 찌꺼기들을 정리해 내는 것, 대학

엽 교목들의 위치로부터 전체 공원 계획의 디자

로 문화지구의 특성과 질을 드러내는 공공 영역

인 요소가 창출된다.

을 만드는 것, 종로구의 명소로 만드는 것 등이다.

마로니에공원은 이종호 교수의 유작이다. 이 계

그리고 동시에 ‘물길 만들기 사업’과 ‘서울 디자인

획은 그가 닮고 싶어 하였던 고 김수근 선생에 대

거리 사업’을 연계하는 신중한 조율이 필요했다.

한 오마주이고 지하의 다목적 홀은 가난한 대학

그리하여 마로니에 공원의 조성은 다음의 세 가

로의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 요소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시설의 최소

이제 남은 것은 이 공공 영역을 잘 쓰는 일이다.

화, 조경의 최적화, 영역의 최대화 등이다. 시설의

그의 희망대로 이곳의 계획 의도가 잘 작동하는

최소화란, 앞서 언급했듯이 도시 공원으로서의

지 대학로의 한복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관찰하

문화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들을 정리하는 한

려 한다.

WORK

서울의 공원율은 26%로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편, 지상에 야외극장, 화장실, 마로니에 안내소 등 필수적인 시설만을 남겨 공원에서 보이는 풍경을 최대한 명확하게 정돈하는 일이었다. 또 근린공 원 시절 설치되었던 녹지의 경계를 없애 공공 영 역과 어울리게 하며, 마로니에를 비롯한 기존 수 목들은 현 위치에 보존하고 상록 침엽수와 관목, 기타 잡목들을 정돈하여 조경을 최적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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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9 | Wide AR no.39

나무는 이 영역 내에서 ‘위치’하고 있다. ‘위치’로부터 솟아 가지를 뻗고 그늘을 만든다. 여럿이 모여 장관이다. ‘위치’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상수였으며 그 상수 아래에서 수많은 활동과 사건들이 변수처럼 일어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그 ‘위치’가 장소 잠재력의 근원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점과 점들 사이의 역학이 만들어 내는 보로노이(voronoi)도형의 의미가 최적화될 수 있는 ‘위치점’들이다.

미술관은 마로니에 영역 뿐 아니라 대학로 전체 도시 장소 형성의 시발점이다. 주택가로 팔린 동네를 대표적인 문화지구로 바꾼 장본인이다. 묘하게도 미술관과 공연장의 입구는 편심으로 있다. 옛 문리대 본관도 그렇다. 이 편심들이 회전하듯이 마로니에 공원에 움직임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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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지상의 시설들은 하나는 공중화장실(오른쪽), 다른 하나는 마로니에 안내소이자 지하 공간 연결체다. 그저 투명한 유리상자다.

나무의 위치로부터 자라난 보로노이 선들이 바닥의 패턴과 나무 밑 벤치를 만들고 야외극장이자 쉼터의 작은 높이 차이를 만들었으면 족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어 졌다. 그 유리 상자의 구조가 되었고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배수관으로까지 영향을 주고 말았다.

보로노이 프로그램에 의한 마스터플랜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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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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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 2단지는 새로운 단지 조성을 위하

스튜디오 공간의 창은 최소화하였고, 상부의 업

여 매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 중 이종호 교

무 영역 매스는 단정한 유리 매스로 계획하였다.

수가 담당한 블록은 총 7필지로, 필지 소유주의

블록 전체의 혼성을 위하여 벽돌을 주요 외장재

상황은 서로 상이하여 우선 건축을 결심한 세 개

로 적용하되 다른 두 건물에 사용된 벽돌과는 조

필지의 설계부터 시작하였다. 단지 안의 타 필지

금 다른 이미지의, 단순하고 드러나지 않는 특성

에 비해 비교적 소규모의 면적을 갖는 ‘그루비주

의 무채색 벽돌을 제안하였다.

얼’, ‘나무생각’, ‘위즈덤피플’ 사옥이 그 대상이다.

파주출판도시 1단지에서 수행하였던 이전 작업

건축주와 수개월 간의 협의를 통하여 기본 계획

에서는 각 건물의 개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

을 수립하였고, 현재는 건축 허가를 위한 도서 작

었고, 건물의 계획에 적용되는 여러 규칙에 의하

성에 있다. 세 필지가 우연히 열을 맞추어 위치한

여 공동성이 생성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탓에 세 건물을 하나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계획

번 작업에서는 각 건물들의 개성이 혼성되기 위

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주 진입도로에서 우선 인

하여 벽돌이라는 익숙한 재료를 통해 다채로우면

지되는 위즈덤피플 사옥은 곡선의 도로를 고려하

서도 연속성이 형성되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다

여 이형적 조형과 경쾌한 매스로 대응하도록 하

만 벽돌의 재질과 색상을 서로 달리 하여 각 건물

였다. 유입의 이미지 구현을 위한 넓은 유리면과

의 개성이 위축되지 않게 유의하였다.

업무 영역의 단단함을 대비시켜 전체적인 균형

새롭게 정지 작업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건축되

과 조화를 꾀하였다. 그 다음 필지에 위치하는 도

는 단지의 경우 장소성의 반영은 매우 어렵다. 이

서출판 나무생각의 사옥은 수차례 협의를 통하여

점을 감안하여 건물의 군집이 단지 전체의 새로

건축주의 흔들림 없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

운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블록의 개

게 되었다. 건물의 이미지 또한 이를 닮고자 하는

념을 설정했다. 안타깝게도 이종호 교수는 설계

마음으로 정돈되고 단아한 모습을 가진, 네 면이

의 마무리를 지켜보지 못했다. 그러나 기본 계획

모두 비슷한 위계의 정면이 되도록 계획하였다.

을 수립한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상대적으로 넓은 면은 분할하여 여러 개의 프레

두며, 그의 개념을 이해하는 연장선상에서 설계를

임을 만들었고, 이를 벽돌로 채우는 방식을 사용

완성하려고 한다.

하였다. 이로써 벽돌이라는 작은 단위가 단계적 으로 벽을 형성하여 입면의 조직 체계를 구성하 도록 했다. 그루비주얼 사옥은 블록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사진 작가를 위한 시설이다. 가장 중요한 공간에 서 실내 촬영을 위한 사진 스튜디오가 매우 큰 볼 륨으로 조성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인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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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물에 비해 가장 단순하고 무표정한 모습으

위에서부터

로 자리잡았다. 자연 채광의 조율이 필요한 사진

그루비주얼, 나무생각, 위즈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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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왼쪽부터 그루비주얼, 나무생각, 위즈덤피플

박수근 화백 탄생 주년 기념사업 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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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가 낳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이다. 10여년 전 계획한 박수근미술관과 관련하여 인근에 추가 매 입된 기념공원 부지 내에 박수근 기념 공간과 기 증작을 전시하는 공간(박수근 파빌리온)을 건립 하고, 기념공원 내 이용객 편의 시설을 증설하는 작업이다. 2002년 개관하여 조성된 박수근 마을 의 위상을 강화하고 방문객들에게 더 깊은 체험 과 감동을 주기 위한 사업으로 양구 군민들에게 더 큰 긍지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중요한 요소 였다. 궁극의 기념 홀, 박수근 파빌리온은 박수근 작업 의 산실임을 알 수 있는 추상의 작업 공간 조성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박수근의 예술혼을 다시 한 번 일깨우도록 하며, 파빌리온에서 집중되고 전 달되는 박수근의 추상적인 작업 공간은 다시 시 선을 외부로 향하게 만들면서 박수근을 만들어 낸 양구의 풍경과 겹쳐지도록 하였다. 박수근 파빌리온의 조형은 다음의 과정으로 만들 어졌다.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하나의 매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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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되고, 지적과 레벨에 의해 분할되며, 지형에 의 한 비틀림 과정을 겪으면서 마지막엔 지형의 축 에 의한 매스의 변형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조성 된 매스는 기념공원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동시 에 골짜기 내에 계단식으로 펼쳐진 논둑과 논바 닥의 풍경 사이사이를 누비듯 자리하게 된다. 단 단한 덩어리의 개념으로 시작된 파빌리온은 박

박수근 파빌리온

수근 미술관과의 연관성을 위하여 자연석이 주요 외장재로 적용되었고, 기념적 성격을 위해 공간 을 풍부하게 하는 익스팬디드 메탈expanded metal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참여 예술가를 위한 현대미술관 증축은 수 년간 운영을 통해 대두된 문제점을 해결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공간은 기능적인 필요에 따라 증축하 고, 새롭게 덧붙여지는 부분이 과장되지 않도록 박수근 기념사업 배치도

외장 재료는 기존 시설에 사용한 송판 무늬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적용하였다. 이 사업의 완성 이후를 상상해 본다면, 이용자들 의 동선은 우선 주차장에서 기념 미술관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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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거쳐 미술관 옥상으로 연결된 후에 구릉 정상부 정자로 연결되고, 정자에서 다시 박수근 묘역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산길로 내려와 박수근 파빌리온을 접하게 되며 박수근 기념공원을 지나 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전체 동선은 인근 영역을 통합하게 된다. 이종호 교수는 이 작업의 전 과정을 함께 하였고, 그가 만들어 낸 많은 작업들 중에서 유난히 큰 애 착을 가진 박수근 미술관과 연계하는 작업이었기

에 제한된 환경 안에서도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까페 쪽 배경

설계를 진행하였다. 그는 양구의 명예 군민이다. 박수근 미술관에서 보여준 그의 애정에 양구군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까지 매년 양구군에서 보내 주는 쌀을 받으며 지 내왔다. 이 시설은 곧 착공을 앞두고 있다. 멀리 떨어진 현

전체 투시도

장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또한 제한적이지만 이와 상관없이 짓는 과정에 최대한 참여할 생각 이다. 그리고 완성된 모습이 이종호 교수에게 부 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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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가로서의 이종호

감자꽃스튜디오 분 : 교의 진화 이선철 평창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첫 만남 건축가 이종호와는 이십여 년 전 대학로 메타빌딩 의 1층에 내가 운영하던 단체가 (연습실 겸 레코 딩스튜디오로) 입주하며 만나게 되었다. 예술 경 영인으로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사랑의 위상과 업 적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그런 업적의 한 영역을 이어가는 인사와 한 집에서 지내게 된 것을 큰 영 광이라 생각했으며, 비록 당시의 사업 성격상 직 접 작업을 같이 할 기회는 적었지만 서로 좋은 인 상과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된 동거의 기간이었다. 감자꽃스튜디오의 탄생 이후 나는 문화 단체의 운영과 사업 경험을 뒤로 하고 강원도 평창의 한 산골 마을로 이주를 결심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

이선철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했지만, 엉뚱하게도 이른 나이에 자연친화적인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대학원에서 예술

생활을 꿈꾸어 틈틈이 전국을 다니며 기회를 노

행정을 전공하였다. 김덕수패사물놀이 기획 실장과

리던 중 평창교육청 인터넷에서 폐교를 하나 발

문화벤처 폴리미디어 대표를 역임하며 공연과 음반 및 출판 기획, 스튜디오와 극장 경영 경력을 가지고

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는 문을 닫은 지 꽤 오

있다. 현재 강원도 평창의 폐교 활용 문화 공간 감자꽃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숙명여자대학교 정책산

감자꽃스튜디오 전경. 학교 건물의 원형은 존치하면서 앞부분에 폴리카보네이트와 유리로 장착된 아트리움을 증축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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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대학원 겸임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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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스튜디오 전경. 본관 전면의 단층 건물이 최근 지은 도농 교류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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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과 도농 교류센터의 연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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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된 데다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방치되어 있어

청하기 위해 처음 찾아간 사람은 당연히 이종호

서 흉물스런 상태였지만, 땅도 집도 없는 처지에

였고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결국 이 리모

첫해 임대료만 내면 넓은 실내외 공간을 마음껏

델링은 실질적인 첫 협업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쓸 수 있다는 말에 덜컥 임대 계약을 맺었다.

이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일단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만드는

적은 예산으로 학교의 역사성도 살리고 향후 문

것이 급선무였으나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

화 공간으로 전문적인 기능을 갖추어야 하는 여

는 기백만 원이 전부여서 우선 교실 한 칸만 원룸

러 마리의 토끼를 잡을 방법을 궁리했다. 또한 원

처럼 개조하여 난생 처음 시골 생활을 시작하였

형의 보존과 과감한 디자인의 조화를 이루어 보

다. 꿈꿨던 삶을 실천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

기로 했다. 아무리 낡고 버려진 폐교 건물이지만

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과연 오래 잘 적응할 수

그래도 마을의 중심에서 주민들의 모교 역할을

있겠나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창

했을 터이니 이 공간이 헐려 나갈 때 주민들에게

한 비전이나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

상실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기본적

으나 그래도 하던 일의 경험과 진정성을 가지고

인 골격과 형태는 유지하되 지역의 새로운 랜드

일을 만들다 보면 그럭저럭 개인적으로도 재미있

마크로 자리잡기 위해서 혁신적인 방법도 필요했

게 살고 지역에도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던 것이다.

마음과 도전의식이 전부였다.

결국 학교 건물의 원형은 존치하면서 앞부분에

그러던 중 우연히 당시 도지사와 군청 관계자들

폴리카보네이트와 유리로 장착된 아트리움을 증

이 방문을 하게 되었고, 이 공간을 지역의 공공 문

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리고 과거 건물 뒤에

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기 시

배치된 복도는 실내 공간으로 확장하여 활용도를

작했다. 우선 군청은 교육청으로부터 건물을 매

높이고 출입과 사용 동선을 전면에 조정함으로

입하여 필자에게 위탁 운영을 맡겼고 리모델링

써 건물의 활력을 더하기로 했다. 아트리움 공간

을 위해 예산을 모아 보았다. 부족한 자금은 문화

에는 무대와 데크, 화단을 조성하여 또 하나의 실

부의 지원 사업을 활용하기로 했다. 일단 당면 과

내 공간으로 변모케 했다. 그다지 미학적일 것도

제는 공간의 개보수였는데 건물이 그냥은 도저히

없는 건물이니 전면부는 반투명 재질을 씀으로써

쓸 수 없는 상태이다 보니 고민이 많았다. 도움을

안에서의 활동이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으나 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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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감자꽃스튜디오는 지난 십여 년의 성과를 바

비주의 전략이 구사되었던 셈이다. 단열, 방수, 방

탕으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일종의 2기

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으니 향후

의 시작인 셈이다. 유휴 시설의 재생이나 문화 예

관리상의 비용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다

술 교육의 확산이라는 초기 역할을 넘어 본격적

행히 아트리움은 원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

인 마을 개발이나 고부가 사업의 기획 그리고 지

여 주었다.

역의 자원을 보다 전략적으로 엮어 지역의 경제

이렇게 하여 작은 공간이지만 옛 교실과 강당은

적 가치 창출을 강화하는 데 견인 역할을 해야 하

사무실과 극장, 박물관, 도서관, 카페 및 작업실과

는 과제가 생겼다. 그래서 감자꽃스튜디오는 건물

게스트룸으로 바뀌어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각

앞 운동장 한 귀퉁이에 새로운 건물을 하나 더 짓

각의 이름은 옛 학교에서 쓰던 대로 교무실, 교장

게 된다. 이른바 마을 홍보나 농촌 관광 또는 도농

실, 숙직실, 소사실, 강당, 도서관, 운동장 등으로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을 새로이 조성할 기회

붙여졌다. 이 안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예술

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건물은 감자꽃의 다음 단

강사, 문화 예술 단체와의 협업이 이루어졌고, 문

계 진화의 중심이자 마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

화 기관의 지원이 활용된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마을을 소재로

들 그리고 취약 계층을 위한) 문화 예술 교육 프

한 예술 작품 전시나 마을 특산물의 판매와 홍보

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를 위한 공간을 겸하면서, 방문자 센터이자 교류

옛 초증학교에서 열리던 절기별 행사도 그 명칭

공간이자 통합 마을회관으로 구상되었다. 다시 이

과 취지를 살려 다시 개최하기 시작했다. 주민들

종호와 구상에 들어갔으며 건축가는 이 건물이 신

의 동아리를 활용한 잔치 <봄소풍>, 지역 아동들

축 건물이니 만큼 이전의 공간보다는 혁신적인 형

을 위한 방학 프로그램 <분교캠프>, 마을의 산림

상을 구현하고 싶어했다. 산에서 굴러떨어져 박힌

자원을 활용한 레포츠 축제 <가을 운동회>, 그리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발전적인 활동의 근거지로

고 지역 교회와 주민들의 공연으로 꾸며진 <성탄

삼으려는 의도를 반영하려 했다.

극장> 등이 열렸다. 마을 이미지를 활용한 디자

그러나 이 역시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 달력과 전통 예술 아카이빙 음반, 젊은 지역

정작 운동장의 지적도를 떼어 본 순간

예술가의 공연과 전시, 음반과 출판 작업도 기획

보이는 학교 운동장은 거의 대부분 하천 부지여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당장의 소득 창출이나 지

서 시설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은 아주 애매한 형태

역 경제와는 무관했지만 지역에서 문화에 대한

와 위치였다. 악조건에서 설계를 마치고 기초를

인식의 변화와 문화 공간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

닦고 공사를 하던 중 조금씩 모습이 드러나자 뜻

할을 하게 되었다.

밖에 일부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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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을 유발할 수준의 노출을 허락하는, 일종의 신

멀쩡해

든 크든 그래도 학교의 운동장은 나름 마을의 광 유작이 된 마을갤러리

장과 같은 의미가 있었는데, 이 너른 공간을 생뚱

이렇게 감자꽃스튜디오의 활동이 각종 온/오프

맞은 새 건물이 파 먹는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라인 매체나 입소문 또는 강의나 교류 등을 통해

게다가 아주 세련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골스럽

외부에 알려지면서 방문자 또한 증가되기 시작했

지도 않은 외관이다 보니 지역의 시선이 더욱 곱

다. 이전에는 전혀 올 일이 없었던 산골 마을에 문

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 그래도 비교적

화계는 물론 교육, 복지, 농촌 분야의 종사자와 단

호의와 성원 일색인 감자꽃스튜디오의 나름 좋은

체들의 방문이 많아지다 보니 이들을 위한 프로

평판이 새로 지은 건물 하나가 다 깎아 먹을 판이

그램이나, 체류하는 동안 식사와 숙박 등이 필요

었다. 게다가 입찰로 진행되는 관급 공사 시공의

하게 되었다. 이때 전문적 프로그램은 감자꽃스

무성의와 저급함은 또 어떠했겠는가. 그러지 않

튜디오가 제공하고, 숙식이나 체험 및 특산물 마

아도 위치 때문에 욕을 얻어 먹어 무력감이 클 때

케팅은 부녀회나 주민업소를 활용하였다. 이렇게

기계적이고 싸구려로 진행되는 시공은 깊은 후회

함으로써 문화 공간과 마을 간의 효율적인 역할

와 낙담을 불러일으켜 엉뚱하게도 지진이 나거나

분담이 생겨 주민의 펜션과 찻집, 부녀회나 가내

산사태가 나서 건물을 덮쳐 버렸으면 하는 터무

가공 등이 활성화되는 데 힘을 보태게 되었다.

니없는 공상도 해 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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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래도 대략 완공이 되어 마을 회의나 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민 교육 또는 지역 모임에 활발히 쓰이면서 친숙

이종호는 건축가로서만이 아니라 지역 계획의 영

도가 높아진 듯하다. 덕분에 생경함과 거부감은

역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가진 전문가였다. 그러

많이 누그러졌고, 또 방문하는 사람들의 호의적

나 계획 프로젝트들은 건물 설계에 비해 외부로

인 반응에 주민들도 점차 자부심을 갖는 눈치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건축가 이

다. 이제 감자꽃스튜디오는 운동장의 개념이 정

종호와 감자꽃스튜디오 조성 외에 다른 지역의

원의 성격으로 바뀌면서 별도의 마을 사업으로

기본 계획이나 공간 조성 또는 마을 계획과 관련

조성되는 뒤편의 체육 공원, 대형 강당, 체험장과

된 연구/자문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많았다. 특

어루러져 마을의 새로운 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

히 유휴 시설을 활용한 재생 공간, 농촌의 문화 공

을 보여 주고 있다.

간, 폐교 활용의 유형 등이 적지 않았다. 그때마 다 파트너로서 편의상 하드웨어적인 영역은 이종 호가 맡았고, 소프트웨어나 휴먼웨어 부분의 일 은 나의 몫이었다. 과정의 시작부터 폭넓은 논의 와 현장 답사 그리고 경험의 공유가 이루어졌으 며 언제나 그 협업의 범위는 대단히 포괄적인 것 이었다. 그는 늘 작업을 시작하면 지역 전반의 철저한 학 습과 이해를 바탕으로 도시나 마을이 가지고 있 는 유무형의 자원을 파악하고 상상력을 기반으 로 탄탄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곤 했다. 그리고 조금씩 스케일을 좁혀 가면서 구체적인 계획들 을 발전시켰다. 대체적으로 기본 계획이나 타당 성 검토의 성격이었으므로 다소 원론적인 수준의 연구로도 충분했을 수 있었겠으나, 비단 선형적 인 계획이나 디자인의 구현만이 아니라 그 공간 이 주는 복합적인 역할과 가치 그리고 대단히 거 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것까지 포함한 제안에 특 히 의뢰인들은 이종호를 신뢰한 것으로 안다.

도농 교류센터의 내부

이종호는 뛰어난 직관과 철저한 연구, 성실한 조 사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제시하여 까칠한 클라이언트들을 오히려 감동으로 몰고 가기 일쑤 였다. 창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사심없는 의견 에 시골의 군수에서 대도시 시장까지, 그리고 전 문적인 식견을 가지지 않은 주민들이나 권위적인 전문가들까지 감화되곤 했다. 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그 진정성과 탁월함에 감복하곤 하였다. 그러니 내겐 프로젝트를 같이 할 때마다 맞닥뜨리는 새로운 고민과 협업이 즐거우면서도

지역 공공 프로젝트 보고서. 이종호

큰 공부가 되었고, 그것에 감사했다. 그때마다 이

는 늘 작업을 시작하면 지역 전반의

종호가 강조했던 주안점들은 지금도 공간 기획과

철저한 학습과 이해를 바탕으로 도 시나 마을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원을 파악하고 상상력을 기반으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프로젝트가 있다. 춘천의

로 탄탄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곤

옛 미군 부대 캠프페이지의 활용 연구 용역을 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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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에 지침이 되고 있다.

때이다. 춘천의 다양한 자원 파악에서 실질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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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딴딴하게 결국 감자꽃스튜디오 프로젝트를 비롯해서 다른 많은 지역의 프로젝트를 돌이켜보면, 이종호가 강조해 온 것은 시설도 디자인도 아니었다. 그것 은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리고 공간에서 벌어질 행위 자체보다는 구체적인 도출 과정, 공간이 끊임없이 주고 받을 영향, 이해 당사자들의 관계성에 놀라운 이해와 통찰력을 보 여 주었다. 공간의 유지 보수와 관리 운영과 같은 아트리움 공간은 무대와 데크, 화단을 조성하여 또 하나의 실내 공간으로 변모케 했다.

현실적인 측면에도 깊은 이해가 있었다. 연구든 설계든 작업을 진행하며 이종호가 스스로 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거창한 비전이나 이 상적인 건축적 구현이 아니라 공간이 지역에 어 떤 영감을 주고 자부심을 줄 것이며 어떻게 그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에 관한 소박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운영자 의 어려움과 한계, 그리고 지역의 상황과 행정 등 을 충분히 고려하였다. 이는 요즘 시쳇말로 자생 력이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고민들이었 다. 그러나 그것은 진취적인 의욕을 꺾거나 애초

출입과 사용 동선을 전면에 조정함으로써 건물의 활력을 더했다.

부터 제한을 두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 려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여지를 많이 가지며 향 후 발전을 위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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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뒤에 배치된 복도는 실내 공간으로 확장하여 활용도를 높이고

스케치는 자극적이지 않고 밋밋하기조차 할 때도 있었지만 자연과 지역을 배려하면서도 혁신적인 재무 타당성까지 심도있고 방대한 조사를 진행하

시도에는 과감했다.

여 의뢰 기관의 대표로부터 삼천만 원짜리 용역

이종호가 대화하면서 자주 사용하던 단어 중 “즐

으로 삼억 원짜리 일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

거운”과 “딴딴한”이 특히 생각난다. 유연하고 창

다. 대구의 옛 연초제조창을 활용한, 지금의 대구

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되 치밀하고 현실적인 계

예술발전소 계획에서는 대구가 가지고 있는 도시

획을 강조하는 표현들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자원과 공간 생태계의 맥락을 분석한 후 조성될

그는 깊은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에 대한 안목을

공간에서 벌어질 다양한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바탕으로 냉철하고 정치한 공학자이자 지역과 주

스토리텔링으로 프로그램을 도출했다. 봉평의 옛

민의 문화성을 강조하는 훌륭한 기획자였다. 공

학교 부지 활용 계획에서는 시간의 분할과 시설

간이 가지는 공공성을 중시하면서 시설로서의 효

및 동선의 효과적인 배치를 기반으로 지역 산업

율성이나 자생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가 말

과의 연계성에 주안점을 두고 참신한 도시 브랜

한 재생은 단순한 복원이나 원형의 보존이 아닌

드의 제안으로 호응을 얻기도 했다. 가평의 리조

또 다른 창조를 뜻하는 것이었다. 지역과 공동체

트 연구에서는 프로그램의 도출 과정과 이용자의

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지역을 뛰어넘는 수준이

성정 분석을, 나주의 도래마을과 백호문학관에서

필요한 점 또한 강조하였다. 이종호는 진정 기획

는 지역의 역사 자원과 마을과의 연계성을 강조

자가 존경하는 기획자였던 것이다.

하였고, 가장 최근에 수행한 강릉 명주동 프로젝 트에서는 도심 폐교와 몇 개의 작은 재생 공간들 이 시의 전반적인 계획과 조화되는 것을 강조하 여 지자체의 깊은 공감을 형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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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도시 계획가 사이에서

아마도 건축가로서의 이종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의 건축 작품은 1992년에 완공된 율전교회일 것이다. 이 작품은 투박하고 소박한 재료들에 구축적이고 자기 완결 적인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짓는 예술’로서의 건 축의 힘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종호 자신은 생애 의 전 작업을 회고하는 2013년의 한 강연에서 건 축가로서의 ‘만들기’에 대한 관심은 율전교회에 서 마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주1 또한 공간지의 ‘한 국건축가, 2000년대에 바란다’ 특집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가 ?” 라는 앙케 이트식 질문에 대해 “건축의 욕망으로 이글거리 는 눈빛을 보이는 사람” 이라고 답하며 ‘건축가의 만들기’에 대한 그의 비판적 견해를 더욱 강하게 표한 바 있다.주2 2014년 2월, 생을 마감하기까지 자신이 건축가임을 의심치 않았던, 그리고 건축 문화상, 김수근 문화상, 아천상, 건축가협회상 등 을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건축가’주3로 평가되었던 그가, 격변하던 1990년대와 2000년

WORK

대의 한국 사회에서 건축가로서 가고자 했던 지 향점은 어디였을까 ? 이종우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율전교회

이종우는 프랑스 국립 Paris-Est 대학교에서 1968년

주1.

이후의 프랑스 건축문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이종호, “mnemonics in hyperpolis”, 강연, 장소 :

받았다. 집단적 담론의 생산 도구로서의 건축 전문지

스튜디오 메타, 2013년 1월 11일.

의 역할에 관한 논문으로 2012년 한국건축역사학회 송현논문상을 수상하였으며, 「건축가, “세속적이며

주2.

고매한”: 4.3그룹의 문화적 담론의 현실적 조건」 등의

이종호, 『공간』, 2000년 1월호, 81쪽.

글을 발표하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단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주3. 정기용, 「건축가 이종호를 소개합니다」, 『한겨레21』, 제629호, 2006년 9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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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건축에서 도시로 그의 관심 영역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그의 작업 전반을 이해하는 한 방향을 찾아보려 고 한다. 그가 자신의 지적, 직업적 여정을 설명 하는 데 있어서 강조했던 “건축을 보는 눈이 변한 것이 아니라 확장된 것이다”주4라는 입장에 주목 하며, 이종호가 남긴 말과 글, 그가 깊이 관여했던 서울건축학교의 출판물 및 사료, 그를 가까이서 보아 왔던 지인들의 말과 글을 가지고 이 확장의 성질과 방향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건축의 완결성에 대한 회의와 건축의 확장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10 년 가량을 김수근 밑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1989년 양남철, 김병윤과 함께 스튜디오 메타를 설립한다. 그리고 1992년과 1994년 각각 완공

바른손 센터

된 율전교회와 바른손 센터를 통해 세상에 이름 용자들에 의해 전유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건축

‘건축가’로서의 그의 존재감을 뚜렷이 남기는 계

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 어떤 지점에 있는 것인가,

기가 되었던 반면에, 같은 시기에 진행된 바른손

무엇인가를 구축해서 완성시켜 놓고 떠나는 지점

센터에서 이종호는 설계 과정에 있어서 율전교

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도달하기 어려우

회에서와 같이 건축물의 내적 논리를 만들어 내

면서도 끊임없이 그 다음 단계, 다음 단계에 그 안

기보다는 강남과 영등포가 만나는 불연속적 지점

에서 벌어질 것에 대한 관심에 있는가”를 고민하

에 위치한다는 도시맥락적 특수성 주목했고 이를

게 되었다고 술회한다.주5

건축의 문제로 변환시키려 하였다. 더욱 흥미로

그런데 ‘건축의 자의적 완결성’에 대한 문제 제기

운 사실은 그의 지적 여정에서 바른손 센터가 갖

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건축적 입장은 당시 한국

는 의미가 이러한 설계 작업에서의 새로운 관심

사회에서 건축 및 건축가가 처한 현실과 이에 대

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완공 이후의 사용 및 전

한 건축가들의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의 일환이

용에 대한 관찰과 깨달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다. 그는 바른손 센터의 완공 이후 건물이 사용되

이후 건축가의 작업을 ‘껍데기를 만드는 일’에 한

는 과정, 특히 자신의 설계 의도를 넘어 공간이 사

정시키는 사회와 제도,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안

WORK

을 알린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율전교회가

주하며 사회와의 소통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건축가의 상황에 대해 자성적 비판을 아끼지 않 는다. 그는 2005년의 글에서 “사회와의 소통이라 는 문제에 있어서 건축가가 장애의 구조 속에 있 다”고 진단한다. 건축가의 사회적 직업적 위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주4. 이종호, “mnemonics in hyperpolis”, 앞의 글.

이종호 뿐만 아니라1980년대의 경제 성장과 민 주화를 겪으며 성장한 다수의 건축가들에 의해

주5. 이종호, 위의 글

공유되는 것이었다. 청건협, 건미준 등으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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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80년대 후반 이후 건축가들의 개혁적 움직

서울건축학교의 프로그램은 한국 건축에서의 근

임들은 그 주체가 되었던 건축가들 간의 성장 배

대성이나 전통의 문제가 다루어졌던 초기 시기를

경의 차이, 대중과의 소통 방식에 대한 입장 차이,

거쳐, 1998년부터 도시 연구를 주요 주제로 삼게

직업적 실천 방식의 차이 등으로 인해 하나의 흐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연중 행사로서 기획되

름으로 보기엔 크게 무리가 있지만, 이종호의 표

어 지방 도시에서 개최되는 여름 워크숍이 있었

현을 빌리면 “이 시대를 살아 나가기 위해서 건축

는데, 1998년 제주 여름 워크숍을 시작으로 2007

과 건축이 속한 사회가 서로 공유하지 않으면 안

년까지 지속되었고, 지방자치제의 본격화와 맞물

될 부분들”주6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의 기

리면서 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개최

반을 가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된다.

이 직업적, 이념적, 세대적 스펙트럼을 넘어 ‘느슨 한 관계’ 속에서 공통된 목표 하에 엮이게 된 자

“학습의 과정으로서의 설계”

리가 서울건축학교였다.주7

이종호는 학교 설립 추진에서부터 깊이 관여하

WORK

며 이 실험적 교육 집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 SA 서울건축학교와 도시연구

는다.주9 서울건축학교는 김성홍의 표현에 따르면

‘소통의 건축’을 향한 이종호의 지적/실천적 행보

한국 건축의 제2세대와 제3세대가 만나며 충돌

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는데, 먼저 건

하는 장소였고, 최욱에 따르면 이종호는 그 중재

축적 스케일에서 집단의 기억을 다루는 일련의

자의 역할을 하며 서울건축학교를 이끌어 나갔

기념관 프로젝트들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다고 한다. 주10 그런데 서울건축학교는 그에게 단

90년대 후반부터 도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

순히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어서도

며, 이것은 서울건축학교를 모태로 하였다.

‘학교’가 되었다. 다시 말해 그가 절감했던 건축의

서울건축학교는1995년 첫 번째 워크숍을 열며

인위적 완결성을 넘어서 건축이 확장할 수 있는,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초기 교육 체계를 만드는

그리고 본인의 건축적 입장이 확장될 수 있는 기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종규는 “건축에서 형태

회를 열어준 곳이 서울건축학교였다. 사실 이미

를 만드는 작업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라고 진단

90년대의 건축 작업에서부터 그는 설계를 건축주

하며 “(현재의) 도시 상황이 만들어 내는 사건들

의 요구의 실현이나, 건축가 개인의 창작 의지의

의 실재성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목표를 둘

실현이 아니라 장기적인 ‘학습’의 과정의 일부로

것임을 선언하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교육 과

서 이해했고, “정해진 약속이 내 대신 결정을 내

정의 핵심에는 설계 스튜디오가 있었으며, 일방적

려주는 것 같다. 나는 이 문화가 시간을 꿰뚫는 어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소장 건축

떤 힘을 가졌다”고 믿어 왔다.주11 반면에 서울건

가들로 구성되는 튜터들과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축학교의 경험은 집단적 성찰과 지식 생산으로서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였다.

‘설계’의 의미를 확장시켰으며, “우리나라의 도시

주6.

주9.

이종호, 「쉘위댄스 ?」, 『건축이란 무엇인가』, 열화당, 2005년,

최욱, 필자와의 대담, 2014년 5월 7일.

주8

105쪽. 주10. 주7.

김성홍, 「이종호와 한국현대건축의 지형도」,『건축과환경』 242

청년협, 건미준, 및 서울건축학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건축과

호, 2004년 10월, 38-39쪽.

사회』, 제25호 “특집 한국현대건축 운동의 흐름”(2013년)을 참 조 ; ‘느슨한 관계’는 서울건축학교 교장을 역임한 조성룡이 학

주11.

교를 통해 엮여진 건축가들과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이종호, 「이종호, 스튜디오 메타 」, 특집 “40 under 40 ”,『공간』,

바 있다 : 조성룡, 「조성룡과의 짧은 인터뷰」,『건축 사이로 넘나

1998년 5월, 66쪽.

들다』, 서울포럼, 2004년, 21-24쪽. 주8. 김종규, 「스튜디오1」,『SA1. 1995서울건축학교』, 미건사,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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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한 자생적 이론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

으로서 제시한 ‘초월超越’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을 탐구하는 장소가 되었다.

의 ‘포월匍越’은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기에는 무리

이처럼 그에게 일련의 설계project, 또는 ‘미래를 향

가 있다.주14 또한, 율전교회 이후 ‘건축가의 만들

해 입장을 밝히는 행위’를 통한 지식 생산은 서울

기’의 집착을 버렸다는 그가 “형태의 아름다움과

건축학교의 워크숍, 이후 2005년부터는 한국예

공간의 긴장 또는 설레임이 그 중요도에서 떨어

술종합학교에서의 대학원과 그가 설립한 도시설

지는 것이 아니다”주15라고 고백했던 것에서 볼 수

계연구소에서 계속되며 그가 현재적, 실천적 지

있듯이, 그가 건축가로서 형태와 공간에 대해 갖

식을 만들어나가는 데 핵심 도구가 되었다. 서울

고 있는 감수성은,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건축학교에서 시작된 한국 지방 도시의 탐구는

Braudel이

2005년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광주 기본 구상」

는 용어의 사용이 갖는 시대착오적 문제를 설명하

을 시작으로 순천, 무주, 나주, 아산 등의 도시 기

기 위해 사용한 비유를 따르자면, “문밖으로 내보

본 계획으로 이어지면서 새 국면을 맞이한다.

냈더니 창문으로 다시 들어오는”, 즉 그가 벗어날

18세기 이전의 경제사에서 ‘자본주의’라

수 없는 그늘이자 건축가로서 도시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원천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가 찾아내고자 했던 ‘자생적 도시 이론’ 은 여전

한 가지 분명하게 남는 것은 이종호의 계속되는

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으며, 그 한계 또한 지적해

정체성의 모색이며, 건축의 현재적 위치를 집단

볼 수 있다. 도시에 대한 확고한 이론이나 경험에

적 성찰로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그리

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그의 반선험적

연구 작

고 그가 수년간의 도시 건축 연구를 중간 점검하

업은 여러 내적 모순들을 가질 수 밖에 없었으며,

던 과정에서 내린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또한 ‘프로젝트에 의한 성찰’은 그 결과물에 있어

러므로 희망을 향한 실천의 과제는 각각의 장소

서의 비전문성, 피상성이라는 비판을 빈번히 마

들이 남겨 놓은 희미한 의미들을 발굴하고 그것

주치게 되었을 것이다. 연구로서의 설계를 통해

들의 흐름을 일깨우고 다른 장소들과 서로 연결

생산되는 지식은 기본적으로 그 현실성과 실천적

해 나가는 데에 있다. 건축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덜 형식적으로 구조화되어

가, 아니면 누가 또는 누구와? 그리고 어떻게? 분

있으며, 덜 기술적이고 더욱 사회적이며, 더욱 우

석을 할 수 있으되 실천의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

발적이며, 더욱 실천적”이기 때문이다.

다. 다만 실천을 향해 나서야 하며 그것이 지금 이

다른 한편, 건축가의 도시 연구는 도시 현상에 대

시대에서 건축을 하는 새로운 목적이라는 당위만

한 ‘건축적’ 또는 건축가의 ‘관습화된’ 접근이라는

남는다.”주16

주12

주13

WORK

한계와 남은 과제

문제를 빈번히 야기했고, 서울건축학교에 참여한 건축가들 내부에서도 자기비판적 주제로 등장했 다. 이종호가 이 두 영역의 간극을 극복하는 방법

주11.

주14.

김성홍은 「이종호와 한국현대건축의 지형도」(앞의 글)에서 형

이종호, 「이제 실천으로」,『sa 2001 여름 워크숍 양구탐험』,

태의 자율성과 같은 ‘아프리오리’에 반하여 땅과 프로그램에

2001년, 쪽표기없음.

서 출발하는 이종호의 태도와 작업방식을 ‘아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 로 설명한 바 있다.

주15. 이종호, 「쉘 위 댄스」, 앞의 글, 114쪽.

주13. Paola Vigano, Les ter r itoires de l’urbanisme. Le

주16.

projet comme producteur de connaissance (I ter ritori

위의 글, 118쪽.

dell’urbanistica. Il progetto come produttore di conoscenza), Metispresses, 2014(2010),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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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GSUA에서의 작업 도시를 읽고, 논하고, 실천한 삶

김태형 김태형 도시건축연구소(OUEM) 대표 김성우 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태형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건축학과를

김성우는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 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건축을

네덜란드 Berlage Institute에서 건축학 석사를

공부하였다. 현재 김태형 도시건축연구소(OUEM)

취득하고 de Architekten Cie., 정림건축,

대표이자 도시 개발 전략 전문가로, 한국예술종합

dmp건축 소장을 거쳐 현 엔이이디 건축사사무

학교 건축과 튜터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2008년 ENYA(Emerging

도시현상과 대안적 도시개발 연구와 실천에 관심을

New York Architect) 공동 수상작 ‘FishWorks’,

가지고,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협업을 통해

2013년 김수근 프리뷰상 및 2014 AIA New York

도시 거주자와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삶에 실질적

Chapter Award 수상작 상계동 주거복합 프로젝트

도움이 되는 도시공간 실현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등의 건축 설계 작업 외에 2010년부터

최근 작업으로 순천 문화 생태 지도 및 공공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전문사 과정 설계

디자인 시범 사업(2012),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스튜디오에서 도시 관련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다.

WORK

2013: 철원 지역 연구(2013) 등이 있다.

다섯 갈래의 서울 읽기 『을지로-창발로 바라본 12개의 도시 건축적 시선』(이종호/김태형/김성우 외 공저, 우리북)과 『을 지로2-을지로를 말하는 17가지 도시 건축적 시도들』(이종호/김태형/김성우 외 공저, 우리북)은 GSUA(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전문사 과정, Graduate School of Urban-Architecture in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가 2012-2013년에 행한 도시 건축 연구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건축의 과제가 곧 도시이며 동시에 도시는 곧 사회적 과정의 결과임을 믿는다”라고 시작되는 GSUA 소개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도시의 가능성을 구조, 자원, 생활 현상에서 살펴보고, 그것 을 새로운 논의로 이끌며, 궁극적으로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는 2006년 시 작된 도시 탐구 ‘서울에 대한 다섯 갈래의 읽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김태형 : 2006년부터 이종호 선생님과 함께 GSUA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선생님은 이미 이때부터 수업 주제로 향후 5년 간의 서울 읽기에 대한 밑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용산이었는데, 기지가 이전하면서 서울 중심에 생기는 공백을 하나의 도시 영역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에서였 다. 이후 환상 지하철 2호선(2007), 한강(2008), 내부 순환도로(2009), 외곽 순환도로(2010) 등이 차례로 진행됐다. 2010년 후반부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일산과 한강 사이의 넓은 유보지에 신도시를 모색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론 없는 실천은 맹목적이다 다섯 번의 서울 읽기 후 이종호는 “서울의 많은 단면이 드러났다. 그 단면들이 서울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지만, 그것들만으로도 실천의 목록을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구체적인 목록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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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든다. 그리고 탐구되고 논의된 이슈들을 대상으로 실천적인 작업에 들어가면서 각각의 목록에 대한 이론 적 배경을 공고히 다진다. 김태형 : GSUA 에 개설된 독특한 과목이 ‘이론과 실천’이다. 선생님은 이론과 실천, 실천과 이론 사이의 교차를 중요하게 생각셨는데, 아닌 게 아니라 건축도 그렇고 특히 도시와 관련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 2011년부터 주제에 대한 일련의 세미나와 수업이 진행됐다. 강사를 초청하여 연속 강의를 진행하고 논의 들을 해 나갔다. 들뢰즈, 프랑소와 아쉐르, 제인 제이콥스, 앤디 메리필드 등은 당시 학습의 대상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이론가와 실천가들의 강좌가 열렸다. 2012년에는 ‘복잡계 및 창발성에 관한 도시-건축적 탐 구’ 세미나가 열렸고 2013년에도 ‘SEOUL GRID’의 탐구란 이름으로 연속 세미나를 가졌다. 학습은 선생 님이 세상을 떠나던 날까지 세운상가에서 계속되었는데, 마지막 세미나는 발터 벤야민에 관한 것이었다. 김성우 : 2010년도에는 스튜디오의 주제와 이론 수업 주제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지만, 2011년 이후로 주제들이 밀접하게 엮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론을 위한 수업이지만 실천에 도움 이 되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관련 전문가들을 모셔왔던 것 같다. 학생들이 스튜디오 주제와 관련된 소재거 리를 들고 오면 이종호 선생님 이하 스튜디오 멤버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것과 연관시켜 어 떤 분을 모셔올 것인지를 의논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SEOUL GRID’의 탐구는 국내 도시 전문가/학자들 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정체성과 도시 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선생님은 지적 호기 심이 대단하셨다. 나로서는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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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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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 2012년 ‘HYPERPOLIS에서의 실천’에서 구체적인 영역으로 선택된 곳은 ‘을지로’였다. 을지로와 그 주변은 도시의 오랜 진화 과정 속에서 매우 복잡한 “혼돈의 질서”로 채워졌고, 현재는 쇠락과 재개발 의 그림자 속에서 더더욱 불안정한 형국이다. 그러나 이종호는 이곳에서 어떤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 고 믿었다. 2012년의 을지로 작업은 “을지로를 뼈대로 삼아 이 간선도로 주위에 펼쳐져 있는 도시 구 조, 도시 자원, 도시 생활의 현상을 일종의 잠재력으로 읽어 보려는 작업이다.” 김태형 : 5년 동안의 서울 읽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스케일이 점점 커졌다. 2010년 스튜디오에 합류한 김성우 선생과 함께 논의했던 것이 스케일을 좀 줄이고 이론적으로 읽은 서울의 문제를 실천으로 옮겨 보자는 것이었다. 다이어그램만으로 표현됐던 도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형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김성우 : 이종호 선생님은 건축가로서 도시를 읽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것은 도시의 작은 요소 부터 큰 스케일까지를 하나로 엮어서 풀어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과 관련된 것 이다. 다섯 번의 서울 읽기가 서울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은 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 법들을 제시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자체 평가가 있었다. 그래서 2012년의 주제를 선택할 때 전 제가 되었던 것이, 좁혀진 범위와 압축된 내용으로 이론뿐만 아니라 실천 가능성까지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는 거였다. 그것에 서울의 중심부터 다시 한 번 살피자는 의미가 더해져 을지로가 선택 된 것이다. 김태형 : 세운상가군 철거 계획의 취소와 블록 단위 전면 철거 방식의 폐기는 우리로 하여금 을지로 를 한번 더 바라보게 했다. 2013년에는 을지로에서 두 번째 GSUA의 작업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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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의 복잡한 상황을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읽어내려고 한 점은 “기억의 가치와 소중함 이 말해져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기력할 뿐”이라는 반성에서 시작된다. 무질 서마저도 도시의 진화라고 생각했던 이종호는 그것을 제대로 읽고 그 방향을 탐색하면, 아주 위험스 러운 일이긴 하나 방향을 조절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때의 도시는 하나의 복잡계로서의 도시이다. 김성우 : 복잡한 도시를 다룰 때 보통은 곁가지들을 쳐 내고 큰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선생님은 오히 려 세밀하게 현장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도시의 틈새에서 작은 가능성들을 찾아냈던 것이다. 일례로, 처음 수업이 시작될 때 학생들에게 내주셨던 과제가 기억난다. 대상지를 둘 러보면서 낯설고 신기한 게 있으면 각자 30개씩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학생들은 길이 어떻게 나 있 고 법이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와 같은 일반적인 내용이 아닌, 직접 거리를 걸으면서 낯설고 신기한 경험들을 찾아왔고 그것을 주제 삼아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였다. 아마도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의도 에서였을 것이다. 도시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직접 체험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해 보고, 또 우리가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2013년 GSUA의 두 번째 을지로 작업에서는 세운촉진지구계획을 변경하는 발표와 맞물려 을지로에 밀접한 영역으로서 세운지구가 가져야 할 의미를 찾는 과제가 더해졌다. 이종호는 “세운지구와 을지 로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는 경제적 위기 때문이 아닌, 세운지구 지층 아래 버티고 있는 만만치 않은 잠재력 때문”으로 보고, 현재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 지역의 잠재력을 끌어당겨 을지로와 접속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세운상가군 내외부 공공 영역의 네트워크

김태형 : 공공 영역이 도시 안에서 소통되고 제대로 기능을 하면 도시가 훨씬 좋아질 수 있다. 공공 영

WORK

를 이루어내는 것으로 설정이 됐다.

역에 대한 것은 을지로 프로젝트 이전에도 많이 강조되긴 했지만, 내세우기엔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 기다. 어떤 프로젝트든지 공공 영역의 소통과 네트워크는 기본이니까. 다만 을지로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것들이 결핍된 세운지구의 현재 모습을 진단하고 활기를 북돋는 방법을 찾다보니 직접적으로 이야기되고 강조된 것이다. 김성우 : 을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운상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결코 동면 상태에 빠져 있는 곳은 아니었다. 자생적인 움직임들은 분명히 있는데 그동안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을지 로, 세운지구 등은 도심 한가운데 작은 산업들이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는 서울의 독특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선생님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축으로서 세운상가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축으로서 을지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울을 새롭게 재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신 것 같다. 세상과 이별하기 전 이종호는 세운상가의 보존과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작업실을 아예 현장으로 옮긴다. 김성우 : 세운상가에 작업실을 만드시는 것을 보고 그곳에서 ‘제 2의 건축가의 인생을 시작하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이론의 정리와 실천적 실험을 거쳐 드디어 행동으로 옮겨 보려는, 당신의 생각을 한번 펼쳐 보려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김태형 : 세운상가가 보존이 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계획이나 비전을 가지셨을 거란 생각 이 든다. 한예종 졸업생 중에 사당 재개발 지역 마을 만들기 공모에 당선된 친구들이 있다. 근데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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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큰 엔니지어링 단위로 움직이니까 특별히 조언해 줄 것은 없고, 대신 너희가 그곳의 주민이 되 라고 제안을 하셨다. 결국 그 친구들이 직접 마을에 살면서 주민 참여로 회사를 선정하고, 마을 입장 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일을 꾸려간 적이 있다. 나중에 들었는데 임대료를 선생님이 내 주셨다고 하더 라. 아마 세운상가도 그런 차원에서 직접 주민이 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가, 도시를 탐구하고 기록하다 2012년 12월 ‘HYPERPOLIS에서의 실천’인 을지로 작업은『을지로-창발로 바라본 12개의 도시 건 축적 시선』이란 제목으로 묶여져 나왔고, 또 한 번의 작업을 통해 2013년『을지로2-을지로를 말하는 17가지 도시 건축적 시도들』이 창간됐다. 김태형 : 2006년부터 시작된 ‘서울 읽기’ 과제를 매년 책을 엮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2012 년에는 아예 한 달 동안 책 만드는 작업을 수업 과정의 일부로 조정하여, 어렵지만 자체적으로 책을 내 보려고 했고, 결과적으로 도시를 향한 우리의 질문과 고민이 잘 담겨 있는 첫 책이 나오게 됐다. 판 매를 해서 외부에도 일반인에게도 도시를 향한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주자는 취지가 있었지만, 그렇 게 홍보가 많이 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본 사람들은 적지 않은 관심을 가져 주었고, 영문판에 대 한 요구도 있었다. 이에 힘입어 2013년 첫 책을 보완해서 두 번째 책을 내 놓았다. 당시 서울연구원의 지원금은 영문 번역 게재에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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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반응도 1권보다는 2권 때가 더 좋은 것 같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가 알고 고민했던 내용을 우리 안에만 가두어 두지 않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것이 어려운 여건 에서 책을 발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김태형 : 도시에 꼭 디자인 이슈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사람들은 이 작업이 건축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가 건축 프로젝트를 향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다만 그 사이사이의 읽을거리를 최대한 많이 읽어내려고 했다. ‘도시’ 안에서 ‘건축’을 관찰하고 기록한 셈이 다. 그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건축이 무엇인가보다는 건축이 할 수 있는 역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확장하는 일이었다고 평가한 다. 혹자가 여전히 건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한계와 형식을 스스로 설정하는 건축으로 불리 지 않아도 좋다. 우리의 도시와 그 속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논의를 지속할 수 있다면 상관 없지 않을까. HYPERPOLIS, 창발, 복잡계, 식역…. 이종호의 도시 읽기와 일련의 학습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낱 말이다. 특히 HYPERPOLIS와 창발은 도시 서울을 정의내리는 데 자주 언급이 된다. 이를 테면 『을 지로1』 서문에서 그는 모든 학습이 ‘창발의 도시, HYPERPOLIS 서울’이라는 가설의 입증을 위해 서라고 밝히고 있고, 『을지로2』에서도 “서울은 창발의 기회를 부르는 HYPERPOLIS가 될 것”이라 고 말한다. HYPERPOLIS란, 도시화 과정이 “불연속적이며 균열을 내재한 근대의 역사와 정확히 일치 하는” 한국과 아시아의 도시를 일컬으며, 창발이란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창발 현상을 발 생시키는 구성 요소들을 “갖추고 생성/변화해 나가는 조직이 도시라는 초유기체적 사회”이며, 그 속 성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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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굉장히 많은 자료와 학습과 경험을 토대로 개념들이 하나의 단어로 축약된 거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이고, 선생님 또한 개념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잘 안하셨다. 오히려 우리가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듣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늘 질문을 던지고 돌아오는 대답들에 수용적 태도를 취하셨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용어들이 점점 영글어간 거라고 생각한다. 김태형 : 하이퍼폴리스를 100% 이해한 건 아니지만, 5개의 서울 읽기와 을지로를 통해 서울에서 건축 을 얘기하려면 도시의 구조와 역사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를 테면 2010 년 외곽 순환도로를 주제로 수업에 참여했을 때 송도 신도시를 답사한 적이 있는데, 계획된 도시 위에 번듯한 건축물들이 아무런 맥락없이 땅에 박혀있는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김성우 : 서울은 매력적이고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견하거나 발현시키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래서 잠재력이 묻히고 지워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 역시 학습 을 통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알게 된 이상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 너무 범위가 넓 어서 엄두가 안 나는 도시더라도 그 안에서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몸으로 부딪혀 발견해 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태형 : 이종호 선생님의 도시 현실에 대한 관심은 비단 GSUA에서의 작업에 국한되지 않았다. 한 가 지 사례를 든다면, 2012년 과천 정부종합청사가 빠져 나간 후의 도시 과천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임에 선생님이 직접 관여를 하셨는데, 이것을 좀더 공개적으로 논의해 보자고 한 것이 2012 sa인터스튜디 의 참여가 많아서 현실성은 좀 떨어졌지만 좋은 얘기들이 오가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책으로 묶 여 나오기도 했다. 선생님은 GSUA의 작업 역시 다른 건축가는 물론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고 함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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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전시회 <전원 도시 과천-지속 가능한 비전을 그리다>이다. 선생님의 주도로 진행이 됐고, 학생들

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기를 원하셨던 것 같고, 또 실제로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 으로 안다. 결국 좋은 뜻, 좋은 정신을 기리고 실천으로 잇는 것은 언제나 남은 자들의 몫이자 의무일 것이다. 김태형 : GSUA 수업을 통해 전개됐던 내용은 물론 기타 공공 프로젝트 작업까지, 이종호 선생님의 작 업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여서 함께 상의 중이다. 사실 연구 보고서라는 게 대외비 가 많다. 공개가 안 되어서 그런 건지 선생님이 하신 공공 프로젝트 작업은 알려진 게 많지 않더라. 그 래서 그것을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복잡한 진행 과정이 생략된 채 얇은 보고서 하나씩 만 남아 있는 상태라서 어려움은 있다. 다행히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그동안 선생님의 작업 을 다시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수업을 통해 배웠던 것을 기억하면서 보고서를 읽고 해석 하겠다는 거다. 그 과정으로 공공 작업은 정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누가 하든 어떤 형 태로든 이종호 선생님의 사유와 작업들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터뷰어/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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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들

장용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유학에서 돌아온 2007

를 나눴던 것을 기억한다. 그의 관점은 노스탈지

년 겨울이었다. 사무실 일로 우연히 찾아갔던 스

적이지도 않았고, 한국적이거나 전통적인 것에

튜디오 메타에서, 그는 카리스마가 있고 동시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럽적인 사

정중한 태도로 나를 맞이해 주었고, 유학 시절 공

회나 도시, 혹은 어떤 외국의 모델을 기준으로 삼

부한 내용들과 박사 논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

고 있지 않았다. 그는 서울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

누었다. 그는 내가 박사 논문으로 연구한 들뢰즈

황이 갖는 도시의 특이성을 끊임없이 사유하면서

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다음 한 해

도,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찾고 있었다. 그가

동안 한예종 대학원에서 ‘이론과 실천’이라는 과

생각하는 도시나 사회는 정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목을 맡아주기를 청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않지만, 자본주의 이후에 다가올 어떤 도시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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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서울을 메타폴리 2 0 0 8 년 봄부터 들뢰즈의 구조 개념과 생성

스metapolis라고 불렀고, 그것은 몇 년 동안 한예종

becoming

대학원의 설계 주제였다.

개념에 대해서 강의를 했고, 그는 자주 수

업에 들어와서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항상 지 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표정은 깊은 고민 속

복잡계와 생기론에 대한 나의 네 번째 책을 마무

리좀rhizome

리하던 2012년 봄, 그도 복잡계에 많은 관심을

이나 다양체manifold, 생성의 개념에 대해 깊은 관

갖고 있었다. 복잡계의 개념인 이산 구조dissipative

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건축적, 도시적 적용에 대

structure ,

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개념들의 적극적인

strange attractor 등에

실천적 방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즈음에 한예종 대학원에서 그는 복잡계와 관련된

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창발emergence , 카오스chaos , 이상한 끌개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

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서 세미나를 진행하 그 당시 한예종 대학원에서는 서울에 대한 프로

고 있었고, 유명희 교수, 윤영수 선생, 황지은 교

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나를 프로젝트 리뷰

수 등 다른 복잡계 전문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

에 몇 년 동안 항상 크리틱으로 초대해 주었는데,

눌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는 복잡계, 다양체, 창발

그런 종류의 도시적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가지

의 개념을 도시와 연결시키고 싶어 했는데, 특히

고 있었던 나로서는 행복한 일이었다. 철학적인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당시 한예종 대학원 프로

담론이란 것이 작은 건축 프로젝트보다는 도시

젝트로 진행되고 있던 을지로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와 많은 공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는 상향식bottom-up 도시 계획의 대안을 복잡계에

철학적 관심과 그의 도시적 관심이 어떤 연결 지

서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관점은 내 생각과 많

점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은 부분 일치하였다. 그것은 결과물로서의 마스 터플랜을 제안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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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어느 날 대학로에서 솥밥을 먹은

점진적인 방식을 추구하고, 전체를 순식간에 제

후, 카페에서 서울에서의 도시적인 문제와 자본

안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으로부터 생각해 나가

주의의 도시, 그리고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 대화

는 것이며, 혼돈스럽게 보이는 작은 변화와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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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건축과 도시 의 통제 방법과 상호 교환성의 관점에서 본 렘 콜하스의 도시 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베르사이유 건축 대학교 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사(DPLG) 자격을 취득한 후, 파리 8대학 생드니 철학과에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의 지도로「현대 건축과 도시론의 철학적 토대」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크 리포 설계 사무실과 건축 설계 사무 소 기오헌에서 실무를 익혔고,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로 재직 중이다.

임으로부터 질서의 조각들을 발견해 나가는 것

이 땅과 시대를 고민하던 건축가 이종호의 모습

이었다.

은 사회와 도시의 미래를 꿈꾸는, 고뇌하는 한 인 간으로 나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가 지향했

어느 날 내가 한예종 연구소를 찾아갔을 때, 그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을

던 지점은 이 시대의 현실과 이 땅의 특수성을 받

이용해서 광

아들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곳이다. 그 지점은

장을 설계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복잡계와

어떤 곳이었을까? 그가 꿈꾸던 곳은 아래로부터

연결된 시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을지로에서 명

의 끓어오르는 창발이고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복잡계적인 창발을 이끌어

초월도시였을까? 그는 더이상 말이 없지만, 그가

낼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기에 그에게

남긴 사유의 궤적은 이상한 끌개처럼 혼돈 속의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희미한 질서가 되어 우리를 이끌고, 그가 남긴 공

2013년 겨울 그는 세운상가에 사무실을 임대해

끊임없는 움직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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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 채워질 수 없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처럼 서 강수미 교수와 몇몇 지인들을 초대하여 발터 벤야민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가 벤야 민을 세미나의 주제로 선택한 것은 시대의 전환 기에 아우라, 기억, 도시에 대해서 고민했던 벤야 민의 사유들을 이 시대 서울, 특히 을지로와 세 운지구에서 이어가고 확장해 보려는 의도에서였 을 것이다. 벤야민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그는 다 음 세운 세미나에 대해서 4회로 계획된 세미나로 서는 미흡하여, 좀 더 연장할 필요가 있음에 대해 의논을 했다. 세미나에서 이루어졌던 논의를 연 장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현실적 프로젝트에 적 용할 내용으로 자본주의와 도시에 대한 세미나를 지속하기로 생각을 좁혀가고 있었다. 그런 논의 에서 그는 항상 말하던 (사유의 초점 또는 주제였 던) 메타폴리스metapolis의 번역어를 ‘초월 도시’라 고 이름 붙였다. 그의 메타 건축은 건축을 넘어서 있는 어떤 곳으로 가려고 했고, 메타-폴리스는 현대의 도시와 사회를 넘어서는 어떤 곳으로 가 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지점은 과연 어디였을 까?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 지만 그 이후의 세운 세미나는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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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강예린, 이치훈

SoA는 2010년 이치훈, 강예린, 정영준에 의해 서울에서 설립된 건축가 그룹이다. 도시와 건축의 사회적인 조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스케일의 구축 환경에 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건축의 다기한 문화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한국 사회의 당대성 속에서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건축을 지향한다. 강예린은 서울대 지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다. 건축사사무소 Hand, OMA, 협동원에서 실무를 쌓고 2010년에 이치훈, 정영준과 SoA(Society of Architecture)를 설립하였다. 이치훈은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간삼파트너 스에서 근무 후 2010년에 강예린, 정영준과 SoA(Societyof Architecture)를 설립하였다.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파산의 기술>(2010), 2011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Featuring Sewoonsanga”> 참여하였고, 2012년 이태리 국립현대미술관(MAXXI) <Shape Your Life> 전시와 4회 안양 공공에술프로젝트(2014), APMAP 2014 Jeju 에 초대되었다. 오송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 국제 공모(2011),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부산 중앙광장 국제 공모(2010) 등에 입상하였으며 현재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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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도서관 산책자』(2012, 도서출판 반비)가 있고, 한국 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에 출강하고 있다. Project Chronology of SoA


건축 외연의 탐색

서 작가를 발굴하는 것보다 건축가와 같이 도서관을 만드 는 사람의 생각을 들어본다는 흥미로운 기획 정도로 생각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도서관 답사를 시작하고 책이 출

Society of Architecture

판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출판사의 제안을 수락한 것은 책 작업을 통해서 도서관에

우리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건축이 사회적 과정과 물리

관한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도서관을 건축의 유형

적 구축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으로서 읽어 보자는 것이었다. 책의 서문에서도 고백했지

다. 기술을 다루는 것과 함께 그 기술이 서게 되는 토대

만, 큰 고민 없이 결정했던 글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막막

와 이면의 작동 원리를 함께 독해하려는 것이다. 사이비

해지기만 했다. 건축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도서관을 소개

과학pseudo-science 적 언술이나 기계적인 디자인의 방법론

하자니 그럴 만한 도서관이 많지 않았고, 취재를 하면 할수

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콜하스는 1978년 그의 저

록 도서관 건축의 허물만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출판사의

서 『Delirious New York: Retroactive Manifesto for

애초 기획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 소개된 도서관을 한 번

Manhattan』의 서문에서 “선언Manifesto의 치명적인 약점은

씩 방문해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으므로 책의 방향은 수

본질적으로 그 증거가 없다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선언

정되어야 했다.

에 관한 콜하스의 선언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작업은 인멸

책의 관점은 오리무중인 채로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할 수 없는 실질적 증거들을 쌓아 가는 방식에 가깝다.

와중에 방향을 잡기 위해 도서관에 관한 여러 가지 조사와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충남도립도서관 계획안

공부를 진행하였다. 도서관의 역사에 관한 책, 다른 나라 건축의 사회학

도서관을 소개하는 책, 서점을 소개하는 책, 책마을을 소개

독립과 함께 벌어진 일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모 출판사로

하는 책, 독서에 관한 책, 출판에 관한 책, 책의 미래에 관

부터 도서관에 관한 책을 써 줄 것을 의뢰받았다. 별다른

한 책, 도서관학과 도서관 친구들에 관한 책 등 ‘건축 아닌

고민 없이 제안을 수락했다. 도서관은 건축이니까 쉽게 쓸

도서관’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읽어 나갔다. 건축만 믿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판사 역시 도서관계 내부에

고 도서관 책을 써 보겠다고 달려들었던 생각이 순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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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깨닫는 데 일 년이 걸린 것이다. 책은, 1. 기념하는 도서관, 2. 지역의 커뮤니티와 도서관, 3. 도서관의 나이 먹기, 4. 자연 속의 독서, 5. 도시와 도서관, 6. 여행과 도서관, 7. 서고 없는 도서관, 8. 장르 도서관, 9. 대학 도서관, 10. 어른들의 도서관 등, 열 가지의 카테고리 로 정리되었다. 책의 말미에는 도서관의 입지와 인테리어, 작은 도서관의 역사와 상호대차 서비스 등 본문에서 다루 지 못한 관련 정보들을 인포그라픽으로 정리하여 부록으로 도 수록하였다. 『도서관 산책자』라는 제목을 얻으며 2년간 의 글쓰기가 끝이 났고, 애초에 도서관 건축에 관한 이야기 로 출발했던 글쓰기는 도서관의 사회학으로 마무리되었다. 진화된 사회적 공간을 지탱하는 구조 혹은 체계 책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책이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만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3년 반의 사무실 운영 기간 동안 12가지의 도서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다양한 자세로 독서할 수 있는 가 구, 다종의 미디어를 수용하는 서가, 게스트 하우스가 결합 된 자연 도서관, 베트남의 학교 도서관, 한옥을 개조한 북 카페, 단층으로 된 구립도서관, 도립도서관, 국립 중앙도서 관, 대통령 기록관, 헬싱키 중앙도서관까지 다양한 크기와 형식의 도서관을 설계하는 경험을 하였다. 이 중 3개는 시 행되지 않았고, 2개가 공공 예술의 형태로 완성되었으며 6 개의 도서관은 구립도서관 이상 규모의 현상 설계 계획안 으로 남았고, 한 개의 프로젝트가 공사 중이다. 도서관에 관한 글쓰기와 더불어 많은 도서관 설계를 시도 했던 것은 글쓰기와 스터디의 과정이 질적인 차원에서 설 계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

충남도립도서관 계획안

였다. 반추해 보자면 ‘변화된 도서관이 담아낼 다종 다양 한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한 해석’과, ‘프로그램의 안정성 stability에

따른 병치와 분리’, ‘독서 환경의 다양성’과 같은

주제들이 도서관 설계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요한 고려 대 상이었다. 요컨대 도서관이 물리적으로 구축된 내부 공간 의 질서를 어떤 역동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할 수 있는가 가 주요한 관심이었다. 특히 헬싱키 중앙도서관은 사회적 공간의 보루로서 도서 관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 게 하는 계기였는데, 예를 들어 이 도서관에서는 출판 혹은 인쇄를 지원하는 시설, 물건을 제작하는 작업실, 멀티미디 어를 체험하는 소란스러운 공간, 공동의 키친과 같이 책을 매개로 한 학습의 형태를 최대한 다양하게 수용하고자 하 였다. 거의 놀이터에 가까운 소란스러움부터 전문 연구자 를 위한 서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간적인 성격을 하 나의 건축에 담아내야 하는 복합적인 과제였다. 크기와 장소, 이용자의 전문성 등에 따라 모든 도서관이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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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중앙도서관


각의 이야기를 가질 만큼 도서관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 다. 더욱이 가장 오래된 건축의 유형 중 하나로서 도서관은 그것이 존재해 왔던 역사 속에서 사회의 요구에 따라 그 공간적인 체계와 의미를 달리해 왔다. 그 과정에는 낭독에 서 묵독으로 변화하는 독서 양식의 변화, 책이라는 매체의 진화, 공공으로 확대되는 이용자의 변화와 같은 사회 문화 적 배경들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도서관은 가장 사회적으로 진화된 건축의 유형이며, 건축은 이 변화된 사 회적 요구를 지원하고 지탱하는 구조 혹은 체계로서 존재 할 수 있다. 도서관을 둘러싼 배경들을 공부하는 과정은, 소급해 보건 대 건축이 어떤 사회 문화적 프로그램의 집합체로서 간주 될 수 있다는 인식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 이 추상적인 체계의 부분들을 붙이고 떨어트리며 집합적 형식을 조정 함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유 우포 자연도서관

하자면, 이야기의 순서와 인과 관계의 구조를 달리함으로 컷 한 컷은 영화의 장면을 구성하는 형식 논리상의 외연이 지만 시간 속에서 연속적으로 재생되는 필름은 유의미한 서사로 기능한다. 말하자면 추상적으로 조직된 공간의 체 계가 시간과 결합해 단순히 “보여지기”를 넘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고정된 물리적 조건으로서의 공간 이상의 의 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써 차이가 발생하는 영화의 서사와 같이 말이다. 필름의 한

헬싱키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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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ing space 공간을 사회 문화적인 프로그램의 집합체로 고민했던 경 험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이 체계를 시간화하거나, 반대로 시간을 공간화하는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기 회도 있었다. 무용수들과의 협업이었는데, 각각은 엘지 아 트센터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루어졌다. 다소 충동적인 만남이기도 했지만 하나의 기획으로서 건축과 춤이 만나 고자 했던 시도는 건축가와 무용수에게 각자 다른 과제로 던져졌다. 엘지 아트센터에서의 프로젝트는 건축과 몸이 만난다는 공통된 전제가 있었지만 건축은 극장을 몸을 위한 거대한 공연 기계로 해석하려고 했고, 무용은 건축과 공간을 안무 의 소재로 삼으려 했다. 수차례의 워크숍과 극장 답사를 통 해 우리는 무대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시계열적으로 배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치하여 장소를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형태의 30분짜리 공 연을 기획하였다. 공연장은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시 야에서 사라지고 무대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기계 장치와 서비스 공간들이 관객의 시야를 무대로 집중시키게 작동 한다. 동시에 이 거대한 기계-건축이 공연자의 작은 몸을 드러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움직인다. 이렇듯 일상적인 극 장 관람의 형태는 관객이 객석에 앉아 고정된 상태에서 움 직이는 무대를 응시하는 것인데, 이를 역전시켜 관객과 공

오송 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

연의 장소가 변화하고, 공간이 고정됨으로써 관람자가 능

국제공모 계획안 2011

동적으로 극장의 공간을 시간화하는 시도를 하였다. 리허 설룸-로비-로딩도크-무대 상부-관람석 상부-무대로 이 어지는 관람의 동선은 극장을 비일상적인 체계의 시간성 으로 재편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 이면의 동적 체계를 경험하도록 하였다. Spacing time 시립미술관에서의 협업은 반대로 시간을 공간화하는 작업 이었다. 건축과 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시간과 공 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질로 드러내 보자는 단순한 출 발이었다. 건축의 모든 재료들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만 그 시간의 속도와 길이는 춤의 시간과 다르다. 일상적인 시 간의 개념과도 다를 것이다. 무용과 건축은 이 간극을 메우 는 매체로서 공연이 가능한 적정 시간 동안 서서히 물성이 변화하는 재료를 탐구하다가 젤라틴을 발견하게 되었다. 젤라틴은 파라핀과 같이 액체-반고체-고체의 물질 상태 를 짧은 시간 안에 오간다. 고형 젤라틴에 적정한 수분을 가해 반고체 상태의 말랑말 랑한 정도로 만들고, 이를 이어 붙여 커다란 외피를 만들었 다. 마치 판초 우의를 입은 것처럼 무용수의 신체 전체를 춤극장을펼치다 (2012, LG 아트센터, Doo Dance Theater와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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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형태로 덮은 상태에서 즉흥에 가까운 몸짓으로 외 피를 변형시켜 나간다. 매끈하고 주름없는 단순한 조형의 반고체의 외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한 주름과 움직임 을 기록한 단단하고 작은 파빌리온이 된다. 약 30여 분간 의 즉흥 공연을 통해 젤라틴이 거의 굳어지면 이를 절단해 서 전시장 내부의 쇼윈도에 걸어 놓는 것으로 공연-전시 는 마무리되었다. 건축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독해 증거들로 호출된 일련의 작업들이 자기 기술을 통해 건축 에 대한 일관된 태도, 사회성을 담지한 건축적 결과물로 진 화할 수 있을지 독백으로 남을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꾸준 히 건축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독해를 시도하고 이 단서들 을 수집하면서 보이지 않는 체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을 예정이다.

(2013 시립미술관, 무용수 공영선, 곽고은과 협업)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4 : Young Architect 01

일반 특이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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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Report, bimonthly

통권 39호, 2014년 5-6월호, 격월간 2014년 5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창간호(통권 1호) 발행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 발행소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주소|(121-816)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5, 909호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전화|02-2235-1960 팩스|02-2235-1968 독자지원서비스|070-7715-1960 홈페이지|http://cafe.naver.com/aqlab 네이버 카페명|와이드AR ⓦ 본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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