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그들이 없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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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그들이 없는 언론> 리뷰

그들이 없는 7년, 3,000일, 3,001일, 3,002일…

2016년 12월 21일, 상암동 롯데시네마.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은 노 종면, 현덕수, 조승호,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선배가 해직된 지 삼천일 되는 날이었다. 영화가 끝 나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추스를 새도 없이 노종면 선배의 딸 해민이 얼굴 위로 핀 조명이 떨 어졌다. “아빠, 편지를 썼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내가 너무 철없는 말만 써놓은 것 같아서 못 읽겠 어….” 올해 수능을 본 해민이는 노 선배 해직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나는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신입 기자였다.

제대로 뉴스 해보자고 한 게 이런 겁니까!

2008년 초여름, 사장이 바뀐다는 말을 들었다. 구본홍 씨라고,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하 던 사람이란다. 아직 수습 티를 못 벗은 우리도 두셋 모이면 수군댔다.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 면 안 되는 거 아냐?” 선배들은, YTN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채 기수들의 ‘낙하산 반대’ 성명이 쏟아졌고, 현덕수 선배가 단식농성에 나섰다. 사장 선임이 이뤄지던 7월, 주총장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고소하 겠다고 소리치는 이선아 선배, “제대로 뉴스 해보자고 한 게 이런 겁니까, 제 젊음을 다 바쳤습니 다, 이 회사에” 최기훈 선배의 오열,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홍주예 선배…. 2008년은 폭풍처럼 흘러갔다. 남대문 사옥 앞에 텐트를 친 채 여름을 났다. 6명이 해직되던 10월, 보도국에서 열린 사원총회는 너무 생생해서 요즘도 가끔 꿈에 나온다. 전두환 정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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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있는 언론인 대량 해고였다. 그래도 우리는 물러설 줄 몰랐다. 이틀 뒤, 앵커들이 ‘상복’을 뜻 하는 검은 옷을 입고 앵커석에 앉는 ‘블랙 투쟁’을 했다. 그리고 12월, 최시중 씨가 위원장으로 있 던 방송통신위원회가 YTN의 재승인 심사를 보류하며 회사 목을 졸랐다. 사내에서 침묵하던 사 람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난 건가요?

2009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촛불도 다 꺼진 그해 겨울은 유독 추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칼바람 불던 회사 뒷문, 사장실 앞 복도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던 날들. 그 아침 집회 중의 하루, 복도에 놓인 TV는 불길이 이글대는 용산의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그 고립 된 건물처럼, 우리의 매일은 춥고, 뜨거웠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이따 금 물었다. “YTN 사태는 이제 끝난 건가요?” “거긴 이제 조용하죠?”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우리는 지금껏 두 차례 파업을 했다. 첫 번째 파업은 2009년 3월. 파업 전날 선배 4명이 체포 됐다. 이 중 노종면 선배는 구속됐다. 파업은 11일 만에 끝났고, 인질로 잡혔던 노 선배는 파업이 끝나던 날 풀려났다. 두 번째 파업은 2012년 언론노조 총파업 때였다. 비 내리던 여의도 공원과 텐트에서 1박 2일을 농성을 벌이던 밤들. KBS, MBC와 함께 있다는 위안과 곧 지긋지긋한 이명 박 정부가 끝나간다는 기대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박진수 선배의 ‘복직 송’ 춤이다. ‘Yes 복직’ 팻말을 흔들며 몸부림치는 선배 모습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지만, 우리는 얼 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늘 한결같이 절실했던 선배의 마음이 전해져, 지금도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운다. 2008년부터 이제 다시 한해가 지나 2017년까지. 그 긴 시간 동안, 해직된 선배들의 시계도 느 리지만 바쁘게 흘러갔다. 뉴스타파, 천안함 언론검증위, 국민TV, 기자협회, 책 출간, 미디어 피폭 지 국토 순례…. 선배들의 기사를 보면 ‘기쁘지만 슬픈’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선배들의 기사가 좋아서 기쁘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 좋을 텐데, 아니 같이 일하자는 말로 우리가 발목을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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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는 것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무색하게 선배들은 끈질기게 복직의 끈을 놓 지 않았다. 지리한 시간을 거쳐, 대법원 판결이 난 지금까지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놓은 적 이 없다. 그 마음의 깊이를, 그 사적인 시계를 나는 모른다. 회사 출입증을 빼앗겼기 때문에 노조 사무실 에만 머물렀던 시간. 그마저도 어색해져 발길을 점점 줄여왔던 선배들의 시간. 아버지가 돌아가시 고 아내가 아프던 시간, 아이가 태어났던, 어린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난 시간. ‘공정방송’을 등에 써 붙인 채 컴컴한 길을 달리고 또 달렸던 시간들.

실패했지만, 옳았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수많 은 YTN, MBC 사람들을 대신해 짐을 짊어진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언론사 의 폐허, 그렇게 폐허가 된 언론을 가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앞에서 묘사한 장면은 우리가 지난 삼천일 동안 행사 때마다 마르고 닳도록 틀고 보아 와서 이 제는 머릿속에 박혀버린 장면들이다. 이 영상들이 번듯하게 극장에 걸렸다. 이제 그 영상 속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주먹을 쥐고 그러다가 웃기도 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가 YTN에 없다. ‘언 론 민영화’를 외치며 다양한 종편을 탄생시킨 이명박 정부 이후의 언론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직 사태가 없었다면 회사를 떠나지 않았을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 에도 세월의 흔적이 짙게 남았다. 이 영상들이 우리끼리의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극장에 걸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우리 이렇게 싸웠노라고, 그리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늘 이야 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지난 삼천일은 끊임없이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참히 실 패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더욱 깨닫는다. 우리의 싸움이 옳았다고. 우리가 싸운 상대는 교묘하 게 포장했지만 악이 맞았다고. 그리고 이 실패를 곱씹으며 앞으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2008 년 촛불의 학습으로 정부와 언론의 ‘폭력 프레임’ 빌미를 주지 않았던 2016년 촛불처럼. 옳으면서, 더 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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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아영 YTN 기자 slamja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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