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ccdm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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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회원 인터뷰 정동익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민언련 포커스

헤어짐과 만남이 교차하지만 할 일은 해내는 민언련 요즘 민언련은 ‘2018 전국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 활동을

원회(방통심의위)의 엄중 심의를 촉구하는 캠페인도 준비 중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선거보도 감시 시기에는 거의

입니다. ‘시민방송심의위원회’를 열어 행사도 하고, 온라인으로

선거보도에만 집중했는데요. 올해는 선거에 몰입하지 못할 정

시민이 직접 심의에 참여하는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로 다른 일에 치이고 있습니다. 일단 언론 보도도 선거 관련

이렇게 지금 민언련은 새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

이슈 보다 다른 사안이 더 많아 선거 보도와 비 선거보도 모니

심의위원회의 예전 적폐를 청산하고 제 역할을 해나갈 수 있

터 보고서가 거의 비슷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도록 감시하고 촉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지난 5월 초 연휴에는 여야 원내대표들이 어처구니없는 방

이 와중에, 정말 이 와중에 민언련 사무처가 크게 변하고 있

송법 합의를 시도한다는 소식이 들려 쉬지도 못하고 대응하느

습니다. 우선 조영수 협동사무처장이 14년간 성실했던 활동가

라 바빴습니다. 지금도 방송법 대응 연대체를 마련하고 이에

생활을 마무리합니다. 민언련에 영상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

대한 본격적 대응을 해나가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혜성처럼 나타나 매주 기적같이 ‘종편때찌’ 영상을 만들었던

게다가 애초 허가가 날 수 없는 주주 구성을 가진 종편 미디

안효광 홍보 활동가도 떠납니다. 부쩍 커진 민언련의 회계·총

어렙 사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2014년과 2017년까지

무·회원 관리까지 살림을 맡아서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일사천리로 허가, 그리고 재허가해준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박성원 활동가도 떠납니다. 말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열심이

그런데 이를 인지한 방통위가 종편 미디어렙에 대해 시정명령

었던 박제선 홍보부장도 지난 연말에 슬쩍 떠나갔습니다. 저

만 내리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모른 체하는 태도가 더욱 기가

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서운하고 답답하고, 그야

막힌 일이었지요. 민언련은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강하게 규탄

말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지경이랄까요. 그래도 저희는 또

했습니다. 지금은 넘어온 자료를 받아 추가 자료를 요구하고

새로운 활동가를 맞이하고, 전열을 정비하고 힘을 모을 것입

공개된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편 선거 시기에 선거방

니다. 헤어지는 사람이나,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나 우리 모두

송 특별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가 종편의 재승인 과정에서 감

어딘가에서 제 역할을 해낼 것이며, 끝내는 언론개혁의 한길

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문제도 계속 여론화하여 반드시 시정되

에서 하나가 되리라 믿으며 그저 마냥 축복하려고 합니다.

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방송심의 결과가 영 석연치 않아서 방송통신심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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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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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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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 김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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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 정동익 의장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 김경실

2018년 5월 발행인 정연우 기획위원 김경실 김언경 박제선 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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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토달기

물 건너간 6월 개헌, 언론도 책임 있다 | 김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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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베트남 항미 전쟁의 게릴라, 반레 시인 | 안건모 미디어위원회 위원장 김은규 미디어위원회 김경실 김서중 김성원 김수정 김언경 박석운 박제선 안건모 이기범 편집기자 김규명 김두환 김세옥 박성원 배나은 안효광 유민지 엄재희 이봉우 이정일 오초롱 임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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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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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주소 (04207)서울 마포대로14가길10 동아 빌딩 4층 전화 02-392-0181 팩스 02-392-3722 이메일 ccdm1984@hanmail.net 홈페이지 www.ccdm.or.kr 후원계좌 신한 100-019-186241 (민언련) <날자꾸나 민언련>은 민언련이 회원에게 보 내드리는 선물입니다. 또한 공익적 목적으 로 도서관이나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경우 에 한하여, 1년에 1만원의 비용을 받고 ‘자료 회원’으로 등록해 <날자꾸나 민언련>을 보 내드립니다. 현재 <날자꾸나 민언련>은 화강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전국의 대안고등학교 도서관과 마포, 은평, 서대문구 작은도서관, 지역아동 센터에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날자꾸나 민언련>을 권하고 싶은 분은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지정하신 곳 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문의 070-4849-3027

취재기자와의 뒷담화

“언론이 ‘1+1=2’라고만 해도 할 일 다 한 것” |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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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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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결산 보고 및 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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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이달의 좋은·나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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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로시오빠 인쇄 신화프린팅 발행일 2018년 5월 18일

영화이야기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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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가 언론탄압 피해자? | 최진봉 ·방송미래발전위, 방통위의 알리바이 안 된다 | 박진형 ·미디어렙, ‘셀프 조사’ 대신 ‘외부 진상조사위’가 필요하다 | 박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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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혐북·종미, 조선일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동민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썼냐”고 묻는 언론들 | 정민영 ·굿바이 페친, 굿바이 “좋아요” | 서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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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후원자 명단 신입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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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인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2020년부터 배울 새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 시안에 ‘자 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삭제되고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포함됐다고 해서 조선일보가 걱정이 많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하지 않는 걱정을 홀로 십자가 를 진 듯 열변을 토해낸다. 그러면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집필 기준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라고 의례 하듯 논란을 만들어낼 것을 예고한다. 그리고 바로 헌법학자라는 고려대 장영수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서술이 빠지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삭제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심각한 문제”라면서 “국민들을 오도(誤導)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이 페이스북에 쓴 글도 기사화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사라지면) 사회주 의혁명 세력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도 가능하다는 얘기냐”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국민들을 오도하기 위해 거짓 선동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 헌법학자 라는 자가 거들고 있는 꼴이다. 황교안 씨는 애교로 봐주기로 하고, 조선일보는 그 러려니 하지만 학자가 저렇게 무식해도 되나? 법학이라는 게 객관적 진리를 추구 하는 게 아니라 해석의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상식을 벗어나면 곤란 하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말은 진즉에 폐기되었어야 할 틀린 표현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이 말은 1947년 11월 14일 UN 총회 결의 제112호 II에 의 거해 UN 감시 하의 선거를 하기로 한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38선 이남에 서 선거가 치러진 후 수립된 정부를 지칭한다. 당시 미국은 모스크바 3상 회의의 합의를 무시하고 미국의 거수기에 불과했던 UN을 앞세워 이남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감시단을 파견했지만, 북측 과 소련은 이를 거부했다. 당연한 결정이다. 모스크바에서 미국과 소련은 조선에 자주적인 민주 정부가 수립되도록 돕기로 한 합의를 했던 터였다. UN 감시 하의 김동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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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총선은 미·소 합의의 일방적 파기였던 것이다(김구 등 임시정부세력이 총선


을 거부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는가는 또 별개의 문제다. 친일파가 득세하여 이승만 이라는 권력의 화신이 대통령이 되는 결과를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범했다. 그 후 UN은 1948년 12월 12 일 UN 총회 결의 제195호 III으로서 UN의 관할 영역인 38선 이남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 부’라고 한 것이다. 이 표현 자체도 형용모순이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의 파기는 결국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 후의 숱한 역사적 사실 은 생략하더라도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부터 9월 9일 사이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유 일의 합법 정부인 적이 없다. 지금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도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엄연한 현 실이다. 조선일보는 북한을 또 하나의 한반도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정상회담을 하는 미국에 항의하고, 장영 수 교수는 백악관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의 문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유기적 결합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를 사상적 신념으로 한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지만,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돈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었고, 부르주아는 시장의 자유를 누리며 부를 독점했다. 노동자, 농민 등 인민(people)의 ‘민주화’ 투쟁으로 정치 참여의 자유는 확대되고, 시 장에 대해 규제가 도입되었지만, 아직 멀었다.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이면에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 이래로 직업 선택과 거주 · 이전의 자유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지만, 현실도 그 러한가? 한강과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거주할 자유는 여전히 돈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자유일 뿐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것이 또한 개인주의의 참모습이기도 하 다. 자유와 더불어 평등이 보장되어야 자유민주주의다. 헌법학자 장영수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다.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이렇게 부르주아의 자유를 앞세우는 민주주의라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개념은 시대의 산물이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표기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러려면 선행적으로 개념을 명료하게 해야 한다. 부자들이 독점하는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삶을 누리는 천부인권으로서의 자유, 정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출발은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개념 정의가 합의되면 인민민주주의라는 표현도 무방할 것이다. 황교안의 유아적 의식 수준으로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주장한다고 해서 사용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도 초안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 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되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만찬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귀빈 여러분,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 이런 북측 속담이 참 정겹습니다. 김 위 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민언련이 하는 언론 운동은 원론적으로 바른말을 사용하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우리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핵심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신문이라는 점이다. 바른말은 바른 표현과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인민이나 동무와 같은 정겨운 우리말을 되찾고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확 인할 필요가 있다. 길동무가 좋으면 언론 바로 세우기 운동의 먼 길도 가까울 것이다.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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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 정동익 회원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민언련에는 이름 뒤에 ‘의장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분들이 있다. 정동익 의장님도 그중 한 분이다. 민언련이 언협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언협 의장을 지냈고, 지금은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으로 활동 중인 ‘현역 의장’이기도 하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이후 민언련을 넘어 민통련에서 진보연대까지 언론, 민족, 통일 운동 현장에서 늘 현역으로 살아온 ‘정동익 의장님’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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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분기점이 된 ‘자유언론 실천선언’

중요한 거예요. 혼자 떨어져 있을 때는 자기 자신도 돌아보고 미래도 걱정이 되고 했겠지만 투쟁하는

김경실

1974년에 동아일보에서 해직되신 이후로 언협

당시에는 전혀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요.

을 비롯해 여러 운동 단체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 아 오셨는데, 민언련과 관련해 이야기하자면, 아마도

김경실 당시에는 어떤 부서에 계셨나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아닐까 싶은 동아일보 해직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정동익

여러 부서를 돌았어요. 방송뉴스부에서도 있

었고 경찰서 출입 기자도 했는데, 쫓겨날 당시에는 그 사건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된 건 맞아요.

편집부에 있었어요. 편집부는 언론사의 심장이나 마

우리 집사람에게도 그렇고.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찬가지였어요. 모든 기사가 편집부로 넘어오고 편집

실업자 부인이 됐으니까요. 그 당시는 동아일보 기

부에서 기사를 판단하고 크기도 정하고 하니까. 구

자라고 하면 알아주던 시절이라 시집을 괜찮게 간

속 학생 부모들이나 인혁당 가족분들도 신문사에

다고 했는데, 오자마자 실업자 부인이 됐으니 기가

오면 으레 편집국장 책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호

막혔겠지요.

소도 하고 그랬는데, 중앙정보부 직원은 매일 웃으면

정동익

서 들어와서 데스크에 ‘이 기사 넣어라, 빼라’ 압력 김경실

정말 그러셨겠어요(웃음). 동아일보 기자는 특

을 넣는 걸 보면서 기자 생활을 하자니 나는 늘 울 분에 차 있었어요. 자유 언론 수호하겠다는 10·24

별한 생각이 있으셔서 선택하신 건가요?

선언은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거였어요. 난 원래 기자에 뜻이 있었어요. 아버님이 전북

자기 역할 못하는 이런 언론인 생활 더 해서 무

에서 편집국장, 주필 다 하셨던 전북 언론계의 최고

슨 의미가 있느냐. 부딪혀보자. 싸우자. 그랬던 거예

원로셨어요. 대쪽 같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강직하

요. ‘정보부 출입 금지’라고 그 편집국 문 앞에 써 붙

신 분이셨고 존경을 많이 받으신 분이셨는데, 아버

여 놓고 못 들어오게 하고 우리가 매일 기사를 점검

님 영향으로 기자에 뜻을 두게 되었어요.

하고 어떤 압력으로 무슨 기사 빠졌다고 저녁에 보

정동익

고대회를 하고 그랬어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나이 서른둘에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할 때에

거죠. 동아일보 보는 재미로 국민들이 산다고 할 정

앞으로 장래가 어두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안 하

도였어요. 인혁당 사람들이 정보부에서 고문받았던

셨나요? 정연주 전 KBS 사장은 한 책에서, 선언 전

사실도 김지하 시인이 폭로하고 그랬거든요. 우리 선

날 두려움이 앞서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선배들이

언이 없었으면 그런 기사가 나갈 수도 없었어요.

김경실

선언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해주기를 바랐다고 고백하 기도 했거든요.

김경실

원래 불의한 일을 못 참는다든가. 어떤 일에

앞장선다든가 하는 편이셨어요? 정동익

주변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이 있고 행동을

같이하는 동료들이 있으면 두려움 같은 게 안 들어

정동익

요. 그냥 든든한 거지. 함께 가는 동지들이 그래서

야기는 들었어요. 10·24 선언하고 나서 11월 12일에

2018. 05

앞장서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강직하다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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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서 하는 인권기도회가 전국에서 동시에 열

를 포기한 때라서, 유일하게 출판이 언론 역할을 대

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걸 머리기사로 다룰 것을

행했던 때예요. 또 배운 게 원고를 만지는 것이었기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편집국에서 기자 총회가 열

때문에 접근도 쉬웠어요. ‘아침’이라는 출판사를 했

렸어요.

는데 혼자서 하는 1인 출판사였어요.

그때 내가 긴급동의를 했어요. 이 기사는 반드시 지면에 반영돼야 하고, 반영 못 시킨다면 이런 신문

김경실

은 우리가 더 만들 필요가 없다. 제작을 거부해야 한

는 요즘 트렌드입니다(웃음).

시대를 앞서 갔다고 볼 수 있네요. 1인 출판사

다. 그런 선동 연설을 내가 했어요(웃음). 그날 최초 로 신문이 하루 발행되지 않았죠. 동아일보 한 호가

정동익

빠져요. 그 사건 때문에. 내가 해방 후 최초의 미발

송건호 선생과 해직 동료 10명이 모여서 언론탄압

행 주범 중 하나였지(웃음).

실상을 폭로하는 책이었어요.

제일 먼저 낸 책이 『민중과 자유언론』이라고

김경실 그 출판사에서 『김형욱 회고록』을 내셨네요.

수배되고, 재판받고, 농성하고, 시위하는 출판언론인 정동익 김경실 해직되시고는 출판 일을 하셨어요.

그 책 때문에 내가 고생을 좀 했어요. 『김형욱

회고록』은 미국에서 출판됐는데, 김형욱 씨가 이 책 때문에 파리에서 우리나라 정보국에 잡혀 죽이을

정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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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모든 언론이 군홧발 아래서 언론이기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문제가 된 책이에


요. 김형욱 씨가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있다가 미국

로 이슈가 되고 시끄러울 것 같기도 하고 또 책도 시

으로 건너가서 박정희 당시의 비밀을 폭로한 것이기

간이 지나 어느 정도 잠잠해져서 그랬는지 나를 경

때문에 민감한 내용이 많았어요.

범죄로 넘겼어요.

그 책을 내가 비밀리에 입수했는데 그걸 중앙정보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경범죄 위반한 사람들 모아

부에서 안 거예요. 어느 날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던

서 판사가 약식재판을 해요. 한 200여 명을 너 1주

고등학교 동기가 찾아왔어요. ‘우리 회사하고 부딪혀

일, 너 10일 이런 식으로 판결해서 내보내고 나만 맨

서 뒤끝이 좋은 사람 없다. 부딪히지 말라’고 하더군

나중까지 남겨놓더니, 내가 정식 재판을 청구하겠다

요. 경고한 거죠. 그 정도 하면 대개 그 선에서 그만

고 하니까 판사가 ‘관례니깐 이해를 좀 해주세요’하

두던 시절이었거든.

더니 구류 10일을 때리더라고요. 그래서 마포경찰서

나도 한 달을 고민했는데 결국 ‘에이, 만들자’고 결

지하에서 10일 살고 나왔어요.

심을 했지. 출판이란 게 비밀리에 진행한다는 게 굉 장히 어려워요. 인쇄소, 종이집, 제본소를 거쳐야 하

김경실

는데 그 과정에서 한 군데만 들통이 나도 안 되거든

식재판으로 구류 10일. 현상 수배자였는데 싱겁게

요. 친구한테 500만 원을 빌려서 거래처에 전부 현

끝났네요.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 지내고 다음 날 약

찰로 선금을 줬어요. 전화하지 말라고. 돈 안 주면 돈 때문에 전화 올 수가 있거든. 그리고 추석 사흘

정동익

전에 책을 찍어서 전국 서점에 뿌리고 잠적을 했어

『지리산』을 내고 나서였어요. 지리산에서 벌인 투쟁

요. 그러니 정보부가 발칵 뒤집혔지. 사전에 경고도

을 연작시로 쓴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잡아

했는데 말을 안 들었으니까 괘씸죄가 붙어서 체포

갈 정도의 내용도 아닌데 잡혀가서 이 선생님은 연

전담반이 6명이나 꾸려졌더라고요. 길거리에 현상

세가 많으니까 불구속 재판하고 나는 구속 재판해

수배 전단이 붙고.

서 1년 6개월에 3년 집행유예 받았어요.

그런데 정말로 고생한 건 이기형 선생의 시집

그 당시 사회과학 출판들이 탄압을 엄청 받았어 김경실

하루아침에 현상수배범이 되셨으니, 각오는 하

요. 걸핏하면 붙잡아가고 책을 압수해가고. 그래서 책 때문에 구속된 사람이 연인원 백여 명이 넘어요.

셨겠지만 피해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단일 업종 중에서는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거지. 8개월 간 도망을 다니다가 인천에서 5·3사태

그 당시에 해직 기자, 해직 교수, 학생들까지 운동권

가 나고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면서 사회 분위기가

들이 출판계로 대거 들어와 있었어요. 달리 먹고 살

달라지길래, 내가 마포 서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어

재주가 없으니까 출판사 와서 교정이라도 보고 연명

요. “내가 정동익인데 인제 그만 나갈란다”하고. 그

하던 때예요. 그러니깐 걸핏하면 잡아가고 책을 압

리고 내 발로 서장실이 있는 3층까지 가는데 아무도

수하고 수백 종이 판금되고 그랬어요.

정동익

그래서 출판계 동료들을 규합해서 한국출판문화

아는 체하는 놈이 없었어요(웃음). 그러고는 바로 유

운동협의회란 것을 만들어 동료들 잡아가면 농성하

치장으로 갔어요. 자기들끼리 나를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나을지

고 성명서 내고 시위하고, 그게 또 일이었어요. 내가

이야기를 했겠지. 괜히 재판에 가게 되면 사회적으

초대 회장이어서 87년 6월항쟁 때 언론출판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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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9일 열린 제2기 언론학교 입학식에서 인사를 하는 정동익 의장. 언론학교는 민언련이 시민언론운동단체로 전환하는데 큰 역 할을 했다.

로 내가 공동대표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김경실

출판인이 책상 위가 아니라 거리에서 투쟁하

느라 편할 날이 없었겠어요.

정동익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웃음).

거의 길바닥에서 살았어요. 시위가 끝나면 전

『말』지의 독립과 ‘언론학교’의 탄생

김경실

한겨레신문 창간할 때 해직언론인 중 많은 분

경들이 시위자들을 닭장차로 마구 끌고 가는데 한

이 합류하셨잖아요. 의장님은 왜 그쪽에 가지 않으

번은 한 여고생이 잡혀가면서 막 비명을 지르더라

셨나요?

고. 그래서 내가 어린 학생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 가 뭐 있냐고 항의를 하니까 ‘뭐야, 당신 같은 사람이

정동익

있으니깐 데모가 이렇게 커지는 거야’ 하면서 나를

하는데 나까지 갈 필요가 있나 생각했어요. 또 언협

잡아다가 닭장차 안에 넣고 무조건 발로 밟는 거야.

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말』지를 만

그래서 엄청 얻어맞았어요.

들던 주력 부대가 거의 한겨레신문으로 가는 바람

나는 출판사를 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합류

이게 기자 눈에 띄었는지 어느 신문에 조그만 1단

에 기자들 몇 명만 남아 있어요. 그때 송건호 선생

짜리 기사로 출판인 C모 씨가 학생 연행에 항의했다

님이 나한테 뒷일을 부탁했어요. 언협을 맡아 달라

가 들어가 맞았다는 게 조그맣게 한 줄로 났어. 이름

고. 그래서 88년에 내가 언협 의장직을 맡고 조직 진

도 안 나고 C모 씨로. 친구들은 이름이 없어도 네가

용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운영위원회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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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하고. 『말』지 기자를 공채로 뽑았어요. 그때 신

했어요.

준영, 최진섭, 안영배, 정희상 4명이 들어왔어요. 대 학신문 기자 출신들도 합류하고. 그러면서 언협을 다

김경실

시 정상 궤도로 올리기 시작했어요.

요? 언협 회원들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을 텐

『말』지를 언협에서 분리할 때 반대는 없었나

데요. 김경실

그 이후에 『말』지가 정식 잡지로 등록을 하고

언협으로부터 독립했는데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있

정동익

었나요.

으로 하는 언론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해직언론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나는 해직언론인 중심

인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각자 일에 바쁘기도 『말』지는 그 전에는 무허가 잡지였어요. 그걸

하니 이제 언론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야

89년에 정식 매체로 등록했어요. 6월항쟁 이후라 가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시민언론운동이라는 말

능했어요. 원래는 언협 의장이 『말』지 사장을 겸했

이 없었을 때예요.

정동익

고, 언협에서 『말』지가 차지하는 사업 비중이 아주

국민언론운동이란 말을 내가 만들었어요. 90년에

컸어요. 하지만 언협이 커지고 『말』지는 『말』지대로

언협 기관지인 <민주언론운동>을 출간할 때도 ‘국민

자리를 잡으면서 언협과 『말』지를 분리해서 각 영역

언론운동이 필요하다’고 쓴 기억이 나요. 이제 국민

을 보다 전문적으로 키워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

들이 직접 언론의 주인으로서 언론운동에 참여해야

어요. 그래서 동아투위 동료였던 심재택 씨를 삼고

한다. 해직 언론인들만 가지고는 역량에 한계가 있

초려해서 사장으로 영입을 하고 『말』지 운영을 부탁

고 발전성이 없다고요. 그러자면 언협은 언론 운동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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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본격적으로 하고 『말』지는 언론매체로서 독립적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고 시간마다 TV에서 하

으로 운영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

얗게 분칠한 정원식 총리 얼굴을 내보내면서, 학생

부에서는 국민들이 언론에 대해서 전문성이 있는지

들을 스승도 몰라본 패륜아로 몰아갔어요. 언론에

어떻게 아느냐, 시민들을 언협의 주체로 세우는 건

서 그렇게 며칠을 밀가루 뒤집어쓴 총리 얼굴을 반

맞지 않는다, 해직언론인들이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

복적으로 보여주고 공격을 해대니까 그 뜨겁던 시

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분들을 설득해서 『말』지를

위 열기가 확 식어버린 거였어요. 그 현상을 보면서

독립시키고 93년 언협 총회 때 실행위원 11명 중에

언론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민주화운동도 통일 운

서 6명을 해직언론인이 아닌 『말』지 출신들, 일반 학

동도 있을 수가 없겠다, 언론을 바로 세우려면 시민

자들 등 시민 쪽에 6명을 배려하고 해직언론인은 5

들이 언론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명을 실행위원으로 해서 진용을 바꿔나갔어요.

생각을 진짜 뼛속 깊이 했어요. 그래서 언론학교에 적극적으로 매달렸어요.

김경실

언협이 해직 기자 중심의 운동에서 언론인이

아닌 시민들도 언론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 문을 넓

김경실

힌 거네요.

동이었고 아주 훌륭한 회원영입 창구였었죠.

정동익

당시 언론학교는 정말 언협의 주축이 되는 활

일단 문을 열어놓긴 했는데, 시민들이 언협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1년에 시작한 언론학

언론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성장시킨 ‘선거보도감시연대회

교였어요.

의’

김경실

그럼 언론학교를 처음 기획하신 분도 의장님

이셨어요?

정동익

그랬어요. 내가 언론학교 초대 교장 맡아 전국

에 시국 강연회를 다니면서 국민언론운동의 중요성 을 역설하기 시작했어요. 국민들이 언론으로부터 깨

언론학교 아이디어는 간사(활동가)들이 내놓

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언론학교를 만들어

았어요.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했어요. 그 이

서 그걸 중심으로 언론 운동조직을 만들라고 가는

유가 있었어요. 1991년은 강경대 사건이 나고 청년

데마다 호소했어요.

정동익

학생들이 분신하면서 민주화 운동이 최고조에 오르

그러면서 지방에서 언론학교들이 생기기 시작했

던 때라서 서울 시내에 시위가 없을 때가 없었어요.

어요. 90년도 초에 광주, 부산, 전주 이런 순서로. 언

수만 명의 군중이 모여 지금의 촛불 항쟁 비슷한 분

론학교가 생기고 그걸 기반으로 지역 언협이 생겼어

위기까지 만들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분위기가

요. 그러면서 점차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싸늘하게 변하고 참여하던 시민들이 싹 사라지는

또 우리 간사들이 진짜 열심히 했어요. 주로 뒤풀이

거예요.

를 아주 열성적으로 참여했어요. 매번 강의 끝나면

가만히 분석을 해보니 그때 정원식 총리 서리 겸

뒤풀이 분반 활동에 간사들이 들어가서 한 사람이

교육부장관이 외대에 들어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

라도 더 회원 가입을 시키려고 애를 썼고 그 기세를

루 세례를 받는 사건이 났어요. 그러자 신문마다 그

타고 점점 시민 회원이 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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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은 1992년 3월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시민 주도 선거보도감시활동을 시작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동익 의장.

언협이 시민언론운동 단체로 커지게 된 큰 계기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고 그 인력들이

는 1992년에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를 하면서였어

언협을 주도하면서 시민언론운동으로 자리를 잡았

요. 선거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면 대통령 선거 하나

으니까요. 단체 이름에도 당당하게 시민이 들어가고

마나다, 그러니 선거 보도 감시는 이제 우리가 한다

사단법인이 되고. 물론 그건 내가 의장직을 그만둔

고 나선 거예요. 언협을 필두로 기독교 NCC 대표

이후이긴 하지만.

김상근 목사, 여성민우회 한명숙 회장, 한국사회언론 연구회 회장 이효성 교수 등이 발족하고 중앙언론연

김경실

구회 연구자들까지 합세해서 60여 명이 석 달간을

지면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민언련 활동이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이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가능한 것 같습니다. 민언련이 2년 전에 19대 대통

사명감으로 언론 모니터하고 토론하고 자료집 만들

령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회원들이 늘면서 선거기간

고 신문 만들고 해서 서울역, 버스 터미널, 거리에서

동안 활동영역도 많이 확장하고 전문성도 강화했어

배포했어요. 총 5회에 걸쳐서 120만 부를 전국에 뿌

야 했습니다. 언론 관련 일이 돈이 있다고 시장에서

렸어요. 그때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 김언경 처장이

물건 사서 나눠주듯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계

에요. 그 당시에 배가 부른 임신부였는데도 열심히

를 돌려서 한꺼번에 물건 뽑아내듯 할 수 있는 일도

활동해서 특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아닌데 단시간에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탄탄하게 시민언론 운동의 바탕을 다

그렇게 선감연 활동이 계기가 되어서 완전히 시민

오랜 세월 동안 다져놓은 토대가 튼튼했고 내공이

언론운동이 자리를 잡은 거예요. 선거보도감시연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 넓게 확장을 해도 무너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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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0일 열린 총선 심판대상 정치인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동익 의장. 정동익 의장은 언론운동에 그치지 않고 민족문 제와 통일운동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다.

지지 않고 이를 계기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선언이 진짜 필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 변함없어요. 제일 중요한 인사권 편집권을 완전 히 사주가 쥐고 있는 상태에서는 언론자유가 신장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보다 어려운

한다고 하면 그자들의 언론자유가 신장한 거지 일

싸움

반 언론 종사자들이나 시민들의 언론자유가 확대되 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언론 종사자들 그렇지요. 그런데 나는 언론인들과 언론 운동

이 사주, 광고주로 대변되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을 하는 시민들이 한발 더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어

위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해야 해요. 권력으로부터

요. 2006년에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기념식 날,

벗어났다고 해서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는 게 아니에

동아투위가 기념식을 주관하면서 제가 위원장으로

요.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어요.

정동익

서 ‘제2의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제1선언은 권력의 통제, 압제에 대한 자유언론실 천선언이라면 지금은 자본으로부터 자유언론실천

권력하고 싸우는 건 어느 정도 용기만 있으면 가 능한데 자본, 특히 사주, 광고주와 싸우는 건 더 어 려운 싸움이다. 인사권과 편집권을 쥐고 있기 때문 에.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필요하다, 이제 권력이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고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선 더 비상한 각오가

자본이 인사권과 편집권을 손에 쥐고 완전히 언론

필요하고 시민들의 더 많은 격려와 따가운 질책이

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기득권자, 수구세력의 대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줘야만 합니

변자로 만들고 있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언론실천

다. 기자가 소명의식, 사명감, 언론인으로서의 문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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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똑같은 선 택을. 떳떳하게 살자. 소신껏 살자. 그런 생각을 늘 갖고 있거든요.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양 심을 속이고 고개 숙여가면서 구질구질하게 오래 연명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해요.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또 그 길을 걷지 않을까 싶어요.

식이 없으면 배부른 봉급쟁이로 소시민적인 생활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만족하게 돼요. 그러면 언론에 희망이 없는 거예요. 지금이 다시 한번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할 때의

김경실

그런 정신이 언론계에 퍼져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한번 해 보고 싶다 이런 건 없으세요?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이 일은 꼭

생각이 들어요. 정동익

동아일보 사장이 돼서 동아일보를 국민들에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늘 이야기하지만 사실

게 사랑받는 신문으로 만들고 싶어요. 시위 때 동아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기자는 물론이고 언론사

일보사 앞에서 많은 시민이 모여 ‘기레기’라고 소리

의 존립이 걸린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시

치는 걸 보면 참 속이 시원하면서도 가슴이 씁쓸해

대별로 사명의식을 갖고 기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려

요. 옛날에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던 회사인데 ‘기레

고 하는 분들은 늘 계신 것 같아요. 그분들이 언론

기’ 소리를 듣는 게 기분 좋을 수 없는 거지요. 동아

계를 꿋꿋이 지켜오고 있기도 하고요.

투위 동지들과 함께 동아일보를 운영한다면 그때의

김경실

10·24 정신으로 돌아가서 금방 전국에서 최고 사랑 정동익

자본으로부터 독립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받는 국민의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편집권 편성권을 독립시키 는 건 제도적으로 만들어놔야 해요. 종편까지 신문

김경실

사가 경영하면서 완전 쓰레기 언론을 만들었잖아요.

선택을 하실 것 같으세요? 똑같은 선택을 하셨을까

2009년에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이렇게 됐

요. 그때의 선택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볼 수

는데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거예요. 언

도 있을 텐데요.

그럼 만약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론사에 대해서 소유 지분을 일정 정도 제약하는 법 이 꼭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이제는 언론 운동이

정동익

제도화, 법제화하는 그런 데도 나서야 합니다. 언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똑

민주화를 위해 어떤 법이 꼭 필요할 때는 언론 운동

같은 선택을. 떳떳하게 살자. 소신껏 살자. 그런 생각

을 하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국회 앞에서 시위도

을 늘 갖고 있거든요.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양심을

하고 국회의원실도 찾아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

속이고 고개 숙여가면서 구질구질하게 오래 연명하

원해서 관철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

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해요. 다시 그런

다. 우리 민언련 회원들이 그런 일에도 적극적으로

일이 생긴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또 그 길을 걷지 않

나서면서 점차 언론 운동가로서 단련이 되었으면 좋

을까 싶어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나라는

인터뷰 김경실 미디어위원 · 사진 김규명 활동가

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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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토달기 | 2018전국지방선거미디어감시연대 신문 모니터

물 건너간 6월 개헌, 언론도 책임 있다

6월 개헌이 무산됐다. 정치권이 개헌을 바라던 시민들의 요청을 무시한 결과다. 국민투표법 개정안 통과 기 한인 지난 24일까지도 여야는 개헌안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지 못했다. ‘드루킹’사건과 ‘남북 정상회담’과 같 은 굵직한 이슈 사이에서 개헌 이슈는 잊혔다.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은 작년 대선 당시 원내 5당 후보 모두가 약속한 공약이었다. 그 러나 끝내 개헌은 정쟁에 희생됐으며 기약 없이 미뤄지고 말았다. 6월 개헌이 무산되는 데 정치권의 무능함 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언론은 개헌 보도에서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난 3월 19일 부터 4월 21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의 모든 개헌 관련 보도(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의 지 면보도)를 살펴보았고, 그 결과 문제 보도 유형을 정리했다.

문제 유형 ① 사실관계를 왜곡한 보도 가장 문제가 됐던 보도는 사실관계조차 틀린 기사다. 대표적 사례는 동아일보 <왜 포퓰리즘이 독재로 변할 까>(3/26)이다. 이 칼럼은 외신 기사를 인용하면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 칼럼은 “미국 블룸버그나 포린폴리 시 같은 외신”이 “작년 대선 결과”에 대해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을 몰고 온 포퓰리 즘이 한국을 덮쳤다”고 분석했다고 게재했다. 미국 블룸버그와 포린폴리시가 2017년 대선을 포퓰리즘의 결 과로 봤다는 얘기다. 이어서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에 자랑스럽게 올리고 싶어 했던 ‘촛불혁명’과 그 여파 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밖에선 주류세력에 대한 불신과 기득권 집단 부패에 대한 ‘홧김에 투표’로 본다는 의미다”라고 해석을 덧붙였다. 김순덕 칼럼에 따르면 미국 블룸버그와 포린폴리시가 작년 대선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뽑은 이 16


유를 분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 실은 이와 다르다. 김 논설주간이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 블룸버그의 <Brexit, Trump Tide of Populism Swamps South Korea President Park>(2016/12/8 Sam Kim)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언 급은 찾아볼 수 없다. 블룸버그의 기사를 번역한 뉴스1 <블룸버그 “트럼프 부른 포 퓰리즘, 한국까지 덮쳤다”>(2016/12/9)에 서도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을 촉 발한 포퓰리즘의 흐름이 한국까지 미쳐 국 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소추하게

<동아일보> 2018년 3월 26일, <왜 포퓰리즘이 독재로 변할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게재된 시기를 고려해도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기사는 2017년 대선이 이뤄지기도 전인 2016년 12월 촛불 정국이었다. 결국, 김 논설주간은 “‘촛불혁명’과 그 여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 ‘홧김 에 투표’”의 결과로 만들어진 정부라고 주장하기 위해 대통령 투표가 치러지기도 전에 작성된 외신을 끌어와 논리를 전개했다. 전형적인 왜곡 보도다. 잘못된 사실을 그대로 전달한 보도도 있었다. 조선일보 <토지공개념,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 학계 “사유 재산제 근간 흔들어”>(3/22)에서는 익명의 재계 관계자의 입을 빌려 잘못된 사실을 그대로 전달했다. 기사 는 “이에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를 통해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들어간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한 군데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JTBC <‘토지공개념’이 사회주의 제도?>(3/22)에 따르면 토지공개념은 독일에서 “우리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에 토지는 사회화를 목적으로 법률에 따라서 공동재산 또는 기타 공공서비스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고 돼 있”으며 “이탈리아와 스페인 헌법도 밝히고 있”고 “헌법이 없는 영국에서는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내 용이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들어간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한 군데도 없다”는 틀린 주장이다. 그런 데도 이를 정정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대로 실은 이유가 토지공개념은 “사유재산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규정”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된다. 중앙일보도 사실관계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 중앙일보 <사설/대통령이 개헌 발의 강행하면 개헌은 물 건너간다>(3/20)는 “정부안은 개헌의 핵심인 권력 분산 장치조차 미흡해 보이는 데다, 권력 구조 등에 대 한 국민적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 과 다르다. 정부는 2017년 8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대국민토론회를 전국 각지에서 실시했으며 관련 동 영상도 국민헌법자문특위 홈페이지에 올라갔었다. 또한 ‘국민헌법’ 페이지를 통해 발의 예정인 개헌안에 대 해 국민 의견을 묻는 절차 진행한 바 있었다.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라는 주장 역시 사실 이 아니었다.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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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유형 ② 사회주의 헌법이라며 색깔론 공세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대통령 개헌안은 토지공개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및 기 본권 관련 조항을 포함한다. 이 때문에 자 유한국당은 개헌 논의 초기부터 대통령 개헌안을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반대했 다. 보수 신문에서도 정부 개헌안을 ‘사회 주의 헌법’ 프레임을 씌우려는 시도가 보 이는 보도를 찾아볼 수 있었다. 중앙일보 칼럼 <전영기의 시시각각/국 무총리는 국회에서 뽑자>(3/19)는 “무엇 보다 문 대통령이 정부 개헌안을 마련해 달라고 책임을 맡긴 정해구 성공회대 교 수가 영 미덥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해구 교수가 “1997년 『해방 전후사의 인식 4』 란 책”을 썼고, 그 책에서 “해방의 시점에 서 요구되는 혁명의 내용은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군 이 진주한 북한에서 반제 반봉건 민주주 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칼럼니스트는 이 런 정 교수가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 “영 미덥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조선일보에서도 중앙일보 전영기 칼럼과 근거까지 똑같이 거론하며 주장하는 칼럼이 실렸다. 조선일보 <동서 <중앙일보> 2018년 3월 19일,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뽑자>

남북/혁명의 이름으로?>(4/4)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초안을 주도했다는 사실

은 개헌안에 숨은 저의(底意)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품게 한다”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와 마찬가 지로 정해구 교수가 『해방 전후사의 인식 4』에서 “해방의 시점에서 요구되는 혁명의 내용은 반제반봉건민주 주의혁명”이며 “북한에서 혁명은 소련군의 후원에 힘입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남한에서는 이러한 혁명이 미군정의 반혁명 정책에 의해서 결국 좌절되었다”라고 썼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제1야당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너무 운운해서였을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말을 쓰는 대신 정부 개헌안 초안을 주도한 정해구 교수의 사상을 검증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18


다. 정 교수의 저서에서 나 온 표현을 두고 ‘사회주의’로 몰아갔으며, 그 배경에서 정 부 개헌안이 사회주의 헌법 이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비 난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합리적 근거를 통한 의 심이 아닌 색깔론의 일환에 불과하다. 한편, 조선일보 <토지공개 념,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 학계 “사유재산제 근간 흔들 어”>(3/22) 기사에서도 전문 가의 입을 빌려 정부 개헌안 이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인 상을 주고 있다. 기사는 “학 계에서도 사유재산제의 근 간을 흔들 수 있는 규정을 헌법에 구체적으로 담는 것 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 온다”며 학계를 핑계로 조

<조선일보> 2018년 4월 4일, <혁명의 이름으로?>. 18쪽 중앙일보 칼럼과 똑같은 근거를 들며 정 부 개헌안에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고 했다.

선일보의 의견을 펼쳤다. 이것이 조선일보의 의견이 아니라 학계의 의견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어서 제시되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논평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조 교수는 “중국식 사회주의로 가는 것도 아닌 데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발언한다. 조 교수가 개인적으로 정부 개헌안을 “중국 식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항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정부 개헌안을 “중국식 사회주의”라고만 인용한 것은 조선일보가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사회주의 헌법’이란 색깔론을 펼치려 한 것 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산된 개헌, 언론의 책임도 크다 6월 개헌은 무산됐다. 우리는 여전히 87년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개헌에 대한 생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 러나 국민 다수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헌법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6월 개헌은 무산됐지만, 시대 적 요청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개헌에 대한 요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개헌 보도에서는 사 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사상검증에 몰두한 보도가 아닌 공론장으로서의 제대로 된 임무를 수행하는 개헌 보 도를 바란다.

정리 김치연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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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베트남 항미 전쟁의 게릴라, 반레 시인

베트남 전쟁 소설 한 권을 소개한다. 2002년에 나온 책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베트남에 관한 상식(?)부터 되짚어본다. 아직도 우리는 베트남에 관한 역사를 수박 겉핥기로만 알고 있다. 미국이 만든 베트남 전쟁 영화에서 본 내용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 람보에서 보던 장면들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역사가 너무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라다. 중국 지배에 맞서 천 년 동안 싸웠고, 뒤이어 프랑스에 1858년부터 80년 동안 지배를 당했던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프랑스를 쫓아내 고 다시 일본에 지배당했다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8월 24일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일본 괴뢰 정부를 쫓아내고 연합 군이 진주하기 전에 완전한 자주독립 정권을 수립했다. 1945년 8월 혁명은 천 년의 봉건체제와 백 년의 식민체제를 타도한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독일군에게 짓밟힌 프랑스는 연합국의 도움으로 독일 치하에서 겨우 벗 어난다. 역사의 교훈을 잊고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원정 군을 파견해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내세워 베트남국을 세웠다. 결국, 베트남 민주 공화국은 프랑스에 맞서 싸운다. 제1차 인도차이 나 전쟁이다. 8년 동안 계속된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두 손 들었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 1만여 명이 포로로 잡힐 정도로 궤 멸당했다.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린 제네바 협정을 통해 평 화협정을 맺게 되었고, 베트남 공화국이 완전히 승리했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반레 쓰고, 하재홍 번역, 실천문학 사 펴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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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엔 미국이었다.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 수립을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인도차이나반도에 공산주의 나라가 퍼질지도 모른


다고 걱정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그동안 베트

을 건널 수 있고, 그 강만 건너면 ‘망각의 죽’을 먹고

남을 침략했던 프랑스를 뒤에서만 지원했지만 1964

환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노잣돈이 없어서 그마저

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을 직접 침공했다.

희망이 없다.

그리고 이어진 2차 베트남 전쟁(『그대 아직 살아 있

이 책은 전선에서 싸우는 장면이 많지 않다. 저자

다면』의 저자 반레는 절대로 ‘베트남 전쟁’이 아니

가 전쟁에서 살아남은 전설적인 게릴라 용사였지만

라 미국의 침략전쟁, ‘항미 전쟁’이라고 불러달라고

흔한 무용담도 없다. 베트남을 해방시키기 위한 숭

했다). 미국은 10년 동안 융단폭격을 퍼부어 베트남

고한 이념도 없다. 미 제국주의를 비난하거나, 공산

을 초토화한다. 단순한 폭탄만이 아닌 불바다로 만

주의 이념이 정당하다는 장황한 설교도 없다. 그저

드는 네이팜탄, 밀림을 말려 죽이고 사람을 기형으

인민이 고통받는 이야기, 전선에서 사랑하는 젊은이

로 만드는 고엽제까지 퍼붓는다. 미국은 제2차 세계

들의 애달픈 이야기다. 유일한 혈육을 전쟁터로 떠

대전 때 소비한 폭탄의 몇 배나 되는 폭탄을 퍼부었

나보내는 할아버지,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의 눈을

지만 결국 패배를 한다.

감겨주기 위해 집을 찾아갔다가 적에게 들켜 허무

부도덕한 미국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로운

하게 죽는 소대장 이야기, 자신의 아이를 가진 동료

베트남 인민들은 결코 미국에 굴복할 수 없었다. 베

를 배신하고 살해하는 군의관 등 인간 군상의 모습

트남 젊은이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스스로 전쟁에

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묘사는 직접

참여했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쓴 반레도 소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이렇게 세밀하

설의 주인공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자원

게 그 전장을 기억하는 작가의 고통이 어떨지 감히

입대했다. 사실 ‘반레’는 자기 본명이 아니다. 전선에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서 죽어간 시인 친구의 이름이다. 본명이 ‘레지투이’

반레 시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지난 3월 5일

인 반레는 시인이 되기를 꿈꾸다 죽은 친구의 이름

부터 12일까지 한베평화재단에서 주관한 베트남평

으로 삶을 대신하고 있다. 그는 열입곱 살이던 1966

화기행 때, 마지막 날인 3월 12일 반레 시인의 집을

년 자원입대한 후 10년 동안 미군과 싸웠다. 전쟁이

방문했다. 반레 시인이 베트남어로 말했고, 구수정

끝났을 때 함께 입대했던 300명 부대원 중 살아남

박사가 통역했다. 반레 시인은 베트남 전쟁 당시 이

은 이는 오직 다섯 명뿐이었다. 어쩌면 ‘반레’라는

야기를 잠깐 들려주면서 그런 참혹함은 글로 옮길

이름은 시인 한 사람 이름이 아니라 전선에서 죽어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승

간 전우들 이름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리할 수 있다는 낙관이 있었다고 했다.

이 책은 특이한 서사 구조로 돼 있다. 저자와 똑같

나는 반레 시인에게 물었다. 베트남 전쟁 때 한국

은 나이에 자원입대한 빈이라는 주인공은 전선에서

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사

싸우다 죽는다. 그리고 저승으로 와서 이승을 회상

과하지 않고 있고, 베트남 피해자 유족이 “당신네

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마치 얼마 전에 상영한 영화

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냐”고 항의하는데 어떻

<신과 함께>를 연상케 한다. <신과 함께>는 여자아

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반레 시인은 “그것은 베트

이를 구하고 죽은 소방관 자홍이 일곱 번 재판을 거

남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국가의 이익을 위

치며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내용이다. 『그대 아직 살

해서라는 미명 때문”인데 그것은 “여러분 같은 사람

아 있다면』의 주인공 빈은 노잣돈만 있다면 황천 강

들이 많아질 때, 양국 정부를 충분히 압박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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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항미 전쟁 당시의 반레(오른쪽) 사진 제공_한베평화재단

로 많아질 때라야 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정부

들을 회상한 것일까.”

가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느

요즘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종전협정을 맺

냐?”고 명쾌하게 되물었다. 구수정 박사가 통역하는

으려고 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종전협정이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웃었다. 꽉

루어지면 베트남식 개혁 개방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막혔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베트남식 개혁·개방은 정

반레 시인은 2003년에 소설가 방현석 등이 초청

치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

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2003년 10월 8

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자본주

일자 <한겨레21>에 고경태 기자가 쓴 기사엔 이런

의를 접목시킨 정책이다. 북한이 과연 성공할까.

내용이 나온다. 그는 쇼핑이나 관광은 한사코 사양

김정은 위원장이 개혁 개방 모델로 생각하고 있

했는데 가고 싶은 데가 있냐는 물음에 “할 수 있다

는 베트남이 궁금한 분들은 꼭 반레 시인이 쓴 책

면, 광주 망월동에 잠든 시인 김남주의 묘역을 참배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읽어보시라. 소설가 방현

하고 싶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 베트남의 라디오

석은 일찍이 “반레의 소설은 전쟁도 파괴시키지 못

에서 김남주의 시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감옥에서

한 숭고한 인간의 흔적을 주목한다. 읽고 나면 베트

시를 썼다는 ‘한국의 전사 시인’을 생각하며, 호치민

남의 역사를 지탱해온 신비를 감동적으로 이해할

을 떠올렸다고 한다. 고경태 기자는 이렇게 글을 맺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라 어

었다. “망월동을 찾은 그는 김남주의 무덤에 국화꽃

쩌면 베트남과 비슷하게 국가를 지켜 온 북한을 이

다섯 송이를 바쳤다. 그리고 세 번 절을 했다. 일어나

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서 그는 조용히 흐느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젊은이 의 무덤을 지나며 울음은 깊어졌다. 사라져간 친구 22

글 안건모 편집위원·<작은책> 발행인


영화이야기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첫사랑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

나에게(내가)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던 상대가 누구였 는지 여전히 기억한다. 첫사랑은 첫 번째 사랑이라기보다 시 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사랑이다. 언젠가 술 취한 밤 전화 걸어 묻고 싶었다. ‘우리는 해피엔딩’이었는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늘 궁금했던 ‘사랑은 어떻게 상대방에게 닿을지’ 해답을 알 려준다. ‘사랑은 길이 없어도 전속력으로 닿겠구나.’ 다음 쪽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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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올리버는 저보다 더 나은 사람 같아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에게

올리버(아미 해머)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다. 내 안에 나를 밀어내

고 완전히 자리를 차지했다. 1983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 별장에서 열일곱 살 엘리오는 부모님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다. 어느 날 고고학자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 연구를 돕기 위해 스물 네 살 올리버가 찾아온다. 그가 등장한 이후 엘리오는 쉼 없이 흔들렸다. 설레고 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개봉 2018년 3월

쁘고 두렵고 행복하고 불안한 감정. 오묘하게 뒤엉킨 감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까. 그건 사랑이었다. 영화는 2007년 안드레 애치먼이 발표한 <그해, 여름 손님 Call me by your name>을

각색했다. 원작에선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탈리아 소년과 미국

에서 온 철학 교수가 주인공이다. 원제 ‘Call me by your name’은 영화에서 올리버 가 엘리오에게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에서 흐른다. 실은 엘리오 혼자 가슴앓이한 게 아니었다. 엘리오를 보자마자 올리버 역시 사랑에 휩싸였고 몇 번 조심스럽게 신호 를 보냈다. 엘리오가 눈치채지 못하거나 오해했을 뿐.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로맨틱 밀어 같기도 주문 같기 도 한 고백은 반으로 나뉘어 헤매던 두 마음을 드디어 하나로 묶는 서약이었다. 감 독은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때 우리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 다.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엘리오는 상심했다. 당장 눈앞에 사랑하는 이가 없 으니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엘리오 가족은 다시 크 레마 별장에 왔다. 아버지 펄먼이 아들 엘리오를 위로한다. 부모님은 이미 두 사람 관계를 알았다. 아들에게 건넨 따뜻한 위로이며, 자신에겐 짙은 미련과 아쉬움이다.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이 단 한 번 주어지지. 마음은 갈수록 닳아 헤지고 몸도 마 찬가지야. 시간이 흐를수록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져. 지금 너의 슬픔 그 괴로움을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영화 마지막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엘리오는 벽 난로 모닥불을 바라보며 한참을 흐느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엘리오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슬픈 환희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처음 마주한 소용돌이에서 삶에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겪은 엘리오, 엔딩에 흐르는 OST가 쓸쓸하다. 수프얀 스티븐스가 부른 ‘Visions of Gideon’. “나는 당신을 마지막으로 사랑했어요. I have loved you for the last time.” “이건 그저 영화 속 장면인가요? Is it a video? ” 이 영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전작 <아이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 >(2015)를 잇는 ‘욕망 3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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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사랑에 같은 모양은 없다.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한 다. 목소리를 잃은 그녀는 고아로 자랐다. 아기 때 어느 강가에서 발견했다. 섬세한 눈빛과 따뜻한 숨소리로 내면을 표현한다. 어느 날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더그 존스)가 수조에 갇혀 실험실에 왔다. 엘라이자는 왠지 알 수 없는 생명체에 이끌렸다. 남미 아마존 원시 부족이 신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리차드 젠킨스, 더그 존스, 마이클 스 털버그, 옥타비아 스 펜서 개봉 2018년 2월

추앙했던 생명체는 지능, 공감 능력이 있다. 엘라이자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엘 피판을 틀어 생명체와 교감을 나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먼저 우주로 진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1960년대. 실험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생명체를 해부해 우주 개발 연구에 활용하려고 한다. 계획을 눈치챈 엘라이자는 생명체를 데리고 실험실을 탈출한다.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내가 불완전한 존 재란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기. 사실 이 영화는 첫사랑을 지배하는 복잡다 단한 감정보다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기예르모 델 토 로 감독이 말하는 ‘사랑’ 정의도 명쾌하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부드럽지만 우주에서 가장 강하고 가변 성 있는 힘이기도 하다. 사랑 또한 그렇지 않은가? 여성이나 남성, 기타 생명체 등 사랑을 어떤 모양에 집어넣건 사랑은 바로 그것의 모양이 된다.” 감독은 엘라이자 와 괴생명체 관계를 통해 이념, 인종, 종족, 성적 취향 등 흔하고 뿌리박힌 편견과 차별, 증오를 초월하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에서 ‘물’과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엘라이자가 퇴근길 버스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을 어루만지는 장면은 지금껏 빗방울 장면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킹스 스피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색계>의 음악을 연출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감독은 두 주인공에게 음악색을 선명하게 입혔다. 엘라이자는 흥겨운 리듬 왈츠에 휘파람, 괴생명체는 플루트를 사용해 맑고 투명하게 움직이는 물의 본질을 표현했다. 내내 흐르는 메인 테마곡 ‘The Shape of Water’에는 플루트 12대가 합주했다. 영화 엔딩에서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가 읊조리는 시 한 편이 이들 사 랑이 영원할 거라 예상한다. 그대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그대가 내 곁에 있음을 느끼네.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두 눈을 채우고 어디에나 있는 그대만이 내 마음을 겸허하게 하네. 2018. 05

글 김현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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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와의 뒷담화 | 2018년 3월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

“언론이 ‘1+1=2’라고만 해도 할 일 다 한 것”

민주언론시민연합은 4월 24일, ‘2018년 3월 이달의 좋은 보도’ 시상식을 열었다. 민언련은 매달 신문·방송·온라인 부문의 좋은 보도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민언련 ‘3월 이달의 좋은 보도’ 중 신문부문과 온라인 부문은 선정작이 없었고, 방송 부문만 2개가 선정됐다. ‘3월 이달의 좋 은 방송 보도’에는 SBS 탐사보도부·뉴미디어 제작부의 <‘끝까지판다’ 삼성 경영권 승계와 에버랜드 땅값>, JTBC 이호진· 박진규·박병현·윤재영 기자의 <장자연 리스트 재수사 촉구 보도>가 선정됐다. 시상식에는 SBS 이병희·정명원 기자, JTBC 이호진·박진규·박병현·윤재영 기자가 참석했다. 아래는 시상식 이후 열린 ‘3월 이달의 좋은 보도 수상자’들과의 간담회를 정 리한 것이다.

“권력이 저지른 ‘장자연 사건’의 실체, 꼭 밝혀질 것” (JTBC 이호진·박진규·윤재영·박병현 기자)

수상 소감은? JTBC 박병현 기자

큰 상 주셔서 감사드린다. 민언련에 두 번째 방문했다. 앞으로 좀 더 자주 올 수 있도록 좋은

기사 쓰겠다. 장자연 문건은 예전에도 논란이 됐던 사안이었으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 아 래서 저희 탐사팀이 취재를 진행했다. 다행히 검찰 과거사위에서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과거와 다른 진실 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앞으로 더 취재해서 실체를 밝히도록 하겠다. JTBC가 장자연 리스트를 꾸준히 보도하게 된 배경은? JTBC 박병현 기자

취재나 탐사를 기획할 때 목적을 먼저 설정하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저희가 장자연 사건 진범

을 밝혀내자는 목적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이후 과거사위가 화두로 떠올랐고 저희가 어떤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장자연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사 자료를 취재하고 과거 수사 결과를 비교하면서 미진한 점을 보도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 일어난 사건이다. 거의 10년이 지났다. 매우 오래된 사건인데 직접 취재한 젊은 기자로 26


왼쪽부터 시상식에 참석한 JTBC 박진규·박병현 기자,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JTBC 윤재영·이호진 기자

서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JTBC 박병현 기자

장자연 사건이 터졌을 때 제가 대학교 1학년이었다. 솔직히 그때 장자연 사건이 보도가 많이

됐지만 그다지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지금 기자로서 취재하면서 느낀 바는 권력이 숨어있지만, 그 실체를 감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기도 하다. 장자연 개인의 인생, 그 당시 검찰과 언론, 연예계까지 모두 연 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재하기도 어려웠다. 취재원들도 대부분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협조해주시며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 다고 돕는 분들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상당히 답답하다. 여러 의혹이 남아있다. 다른 언론사들도 같이 취재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장자연 사건을 보도하면서 혹시 조선미디어그룹에서 반응이 있었나. 2009년엔 실제로 조선일보가 다른 매체 들이 자사가 연루된 것처럼 보도하면 소송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JTBC 박병현 기자

만약 있었어도 저는 모른다(웃음). 사실 전혀 없었고 외부에서 그렇게 걱정하시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 그런 건 없다. 저희가 보도하면서 일부러 조선미디어그룹을 고려해 보도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리스트에 그분들 성함이 있는 것 뿐이다(웃음). 일부에서는 ‘JTBC와 조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보기도 했는데 저희는 오히려 그런 프레임이 더 부담스럽다. 저희 보도의 의미를 축소하는 면도 있다. 조선미디어그 룹이 저희 보도에 끼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 JTBC가 서지현 검사 보도 이후 미투 관련 보도를 타사에 비해 많이 하고 있다. 장자연 보도도 그런 일환이 아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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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가 보기도 한다. 실제로 보도국 내에 미투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있는가? JTBC 박병현 기자

제가 느끼기에는 단지 공교로운 상황인 듯하다. 서지현 검사, 안희정 전 지사 건을 먼저 보도

하다 보니 우연히 여성 인권 관련 보도가 집중된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희 보도국이 여성 인권, 성폭 력 근절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잡아 놓고 취재하는 건 아니다. 그런 보도들이 맞물리다 보니 저희가 미투에 집중한다는 대중적 인식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장자연 사건’처럼 사건 네이밍에서 피해자 이름을 부각하지 말고 가해자를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있다. ‘방가방가 리스트’라는 대안도 제시됐다. JTBC 선제적으로 이런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 JTBC 박병현 기자 그대로 데스크에 말씀드리겠다(웃음).

SBS가 열심히 한 삼성 에버랜드 땅값 보도를 아직은 JTBC가 보도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JTBC 박병현 기자

JTBC가 삼성 보도를 열심히 안 했다는 지적에는 억울한 면이 있다. 저희가 삼성 반도체 노동

자 백혈병 문제 등 다른 사안을 열심히 보도했다. 다만 중앙일보 계열이다 보니 삼성 보도를 안 한다는 오해 가 있는 것 같다. SBS 보도를 받지 않은 것은 저희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 언론사들이 타사 보도를 무조건 받지는 않고 나 름의 검증을 거친다. 특히 타사가 긴 시간 공을 들여 내놓은 탐사 보도는 덥석 받아 보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아직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JTBC가 삼성 문제를 외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유독 삼성 문제에서만 ‘1+1=3’이라고 하는 언론들, ‘1+1=2’라고 해야 한다” (SBS 정명원·이병희 기자) 수상 소감은? SBS 정명원 기자

좋은 상 주셔서 감사하다. 다른 데는 상을 받으려면 저희가 출품해야 하는데 민언련은 늘 알아

봐 주시는 상이라 항상 더 고맙다. 저희 보도 이후 파장이 컸으나 대부분 언론 매체에서 다루지 않았다. 처음 으로 국민연금이 감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조차도 경향신문 외에 아무 데도 쓰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놀랐다. 다행히 많은 분이 알아주시고 상도 많이 주셔서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희 탐사보도부에서는 이 보도가 팀 이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원래 지난해 5월 출범했을 때는 기획취 재부였다.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으나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끝까지 판다’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저희부터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다. 과연 지상파 방송, 기성 매체에서 쓸 수 있 을까, “끝까지판다팀의 누구”라고 나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을까, “끝까지 판다면서 왜 안 파나”는 비판을 듣지 28


SBS 이병희·정명원 기자와 정연우 민언련 상임공동대표

는 않을까 걱정했다(웃음). 그러던 중 저희 팟캐스트 이름으로 먼저 썼고 에버랜드 땅값을 보도하면서 사안 의 무게감을 고려해 탐사보도부로 부서 이름을 바꾸고 ‘끝까지판다’를 쓰게 됐다. 저희가 목적을 갖고 보도 하는 건 아니지만 놓쳤던 부분을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사법제도 아래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못한 점이 있었고 특검 수사에서도 놓쳤다면 언론이 화두를 제기해야 한다고 봤다. 거듭 알아주셔서 감사하다. 왜 SBS가 삼성 사안을 이렇게 열심히 보도했는지, SBS의 속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SBS 정명원 기자

프레임이 참 무섭다. 어떤 쪽에서는 삼성이라는 이유로 삼성 이야기를 안 하고 다른 쪽에서는

삼성을 다루면 ‘쟤네는 왜 삼성을 다루지?’라고 의심한다(웃음). 저희도 이번 보도를 하면서 사내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우리 광고 괜찮냐”는 것이었다. 친척은 “너 괜찮냐”고 묻기도 한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보도한 이유는 별 것 없다. 그냥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땅에 대해 탐사를 하다가 계속 확장된 것이다. 그러다 증권사와 국민연금이 연계되다 보니 너무 큰 그림이 나와버렸다. 이걸 과연 지상파 뉴스의 1~2분 보도로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 민을 많이 했다. 비판받는 삼성이 사실로 수긍할 만한 수준으로 보도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그 스토리 를 만드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왜’ 보다는 ‘어떻게’를 고민한 보도라 할 수 있다. SBS가 정권이 바뀐 후 삼성 보도를 많이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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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정명원 기자

정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국정농단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2016년 최순실 사건 터졌을

때 저희가 선제적으로 못해서 내부적 반성이 있었다. 그래서 특별취재팀을 만들었고 ‘삼성의 정유라 말 지원’ 을 저희가 먼저 보도했다. 블랙리스트도 저희가 발굴했다. 비록 후발로 뒤늦게 반성하며 나섰지만, 화두를 던지기는 했다. 그래서 광고 등 여러 문제가 있었으나 때리 기 전이 무섭지 맞고 나면 견딜 만 하다. 그때부터 저희가 노력하면 괜찮다는 느낌이 있었고 이후 보도 대상 에 따라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결국, 정권의 문제는 아니었고 이런 경험이 상당히 중요 했다. 이후 후배들도 거침없이 보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희 보도 이후에 삼성 노조 파괴, 삼성증권의 배당 오류 등 유독 삼성 이슈가 많았는데 이것에 조금 억울 한 면도 있다. 이건 모두 삼성이 스스로 잘못해서 발생한 일인데 일각에서는 삼성 보도가 너무 많다거나 SBS 가 삼성을 죽이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발굴한 이슈를 보도한 것이다. 삼성이 스 스로 잘못해서 벌어진 사안까지 보도가 많다고 하면 안 된다. SBS가 의도적으로 삼성을 때리는 것이 아니다. 삼성 승계와 에버랜드 땅값 아이템은 팀이 정했나, 보도본부 차원에서 논의했나? SBS 정명원 기자

저희 팀이 정했고 굉장히 비밀스럽게 논의했다. 사안 자체가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보안

이 필요했다. 땅에서 시작한 탐사라 작업 자체가 굉장히 수작업이 많이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기도 했다. 이 병희 기자가 지적도를 가져와 동료들도 모르는 밀실에 붙여놓고 일일이 필지의 가격을 붙이고 등기부 등본 을 대조했다. 그 문서들을 보관하는 것도 어려웠다. 주변에서는 보도 날짜 다가오면서 ‘저 팀이 뭔가 한다’고 느꼈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몰랐다. SBS가 이 사안을 하루에 매우 많은 비중을 할애해 보도했다. SBS 8시 뉴스는 보도량이 타사보다 조금 적기 도 해서 다른 보도를 놓칠 수밖에 없다. 그 결정에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SBS 정명원 기자

저희 보도국 리더십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8시 뉴스 시간이 스포츠 뉴스 빼고 47분 정

도다. 저희가 첫날, 둘째 날 25분 정도 보도했는데 이게 엄청난 분량이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보도는 안 들 어간다. 이 판단이 쉽지 않다. 고맙게도 보도국이 저희와 같은 인식을 하셨다. 바로 이 사안이 보도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또 저희가 지난해부터 꾸준히 메인 뉴스가 어떤 형식을 가져야 하는지, 뉴스를 어떻게 전달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해보지 않으면 불안하지만 한 번 하고 나면 쉽다. 그런 판단으로 보도 하게 됐다. 이를 가능하게 한 리더십의 결단도 주요했다. 에버랜드 땅값 보도는 워낙 중요한 이슈라 다른 언론이 함께 추적하면 좋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타 매체가 잘 받지 않았다. 보통 중요한 이슈가 있으면 타사도 붙어서 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보시나? SBS 정명원 기자

저희도 놀란 부분이다. 저희가 보도한 내용 외에도 관련 기관이 낸 보도자료가 있다. 예를 들

어 국토부가 감사에 들어간 것, 수사 의뢰한 것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기자들이 그냥 일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보도들이다. 그러나 이것도 매우 소극적으로 보도됐다. 반면 삼성물산의 해명은 엄청나게 보도가 됐다. 심지어 팩트체크까지 한 보도도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30


그동안 삼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많은 언론사, 내부고발자, 시민사회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 느꼈다. 특 히 저희는 스피커가 있기 때문에 온당치 않은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데 스피커 없는 분들은 굉장히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가 기자 생활하면서 혹시 그동안 나도 스피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아닌가 반성도 했다. 삼성 승계 관련 문제 제기가 2018년 들어서야 이뤄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SBS 정명원 기자

사안이 워낙 방대해서 그렇다고 본다. 지금 저희가 보도할 수 있었던 것도 박영수 특검 팀에서

어느 정도 몇 가지 고리를 풀어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과 달리 삼성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으 로 보인다. 단지 뇌물을 줘서 해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 제도를 바꿔서 바꾼 제도하에서 이득 을 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큰 문제이다. 저희도 땅을 들여다보다 승계까지 간 것인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를 돌이켜보면 삼성은 ‘1+1=3’이 라고 주장했다. 그때 주주인 엘리엇, 심판 역할 한 ISS, 지배구조 펀드들이 ‘1+1=2’라 반박했는데 저희를 포 함한 언론 대부분이 ‘1+1=2’라고 말한 당사자들을 ‘매국노’ ‘(삼성이라는)글로벌 기업을 잡아먹으려는 사람 들’로 몰아간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저희도 아쉬움이 크다. SBS 탐사보도부 내에 ‘사실은’ 팀이 있는데 현 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개선 보고서를 계속 취재하고 있다.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1+1=2’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기술을 타국에 팔아넘기려는 사람들로 몰린다. 유독 이런 일들이 삼성과 관 련해서 많이 발생한다. 언론으로서 ‘1+1=2’라고만 보도해도 할 일을 다 하는 것인데 이것부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삼성뿐 아니라 주요 기업의 부동산 관련 문제를 취재하면 엄청날 것이라 예상된다. 앞으로 더 계획은 없는가? SBS 정명원 기자

땅을 파보니 정말 화수분이다. 저희는 스스로 취재를 ‘간척 사업’이라 부르기도 한다(웃음). 계

속 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가 알고 있는 땅이 전체인가, 용인 내에서만 봐도 이건희 회장과 삼 성 땅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엔 SBS가 먼저 보도했는데 지금은 JTBC가 열심히 하고 있다. SBS 정명원 기자

장자연 사건은 저희가 아픈 부분이 있다. 2009년에 이 사건을 KBS가 먼저 보도했다. KBS가

유서를 입수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많은 언론사가 보도 경쟁에 나섰다. 저희도 열심히 했지만 가장 어려운 부 분은 당사자가 사망했다는 점이다. 당사자가 사망하다 보니 팩트 확인이 거기에서 막힌다. 제반 사항이 취재 가 되어도 그 벽을 넘기가 어려웠다. 또 당시 조선일보가 실제로 방송사들에 소송을 걸었다. 재판 진행 도중 ‘방 사장이 직접 재판장에 고소인 자격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더니 고소를 취하했다. 당시 제가 시경캡이었는데 끝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분 명히 있다. 여러 단독기사도 썼지만 중요한 팩트를 확인할 수 없다보니, 경찰 수사의 부실을 비판할 수는 있 었으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가 없었다. 이제 KBS도 돌아왔고 JTBC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정리 이봉우 선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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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

지방선거보도 감시에 본격 돌입했습니다

이렇게 달렸어요!

지난 3월 28일 ‘2018 전국 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 발족 기자회견 후 2018 전국 지방선거보도 모니터를 본격화했습니다. 한편, 4월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차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장 자연 리스트’를 선정했습니다. 소위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 3월 신 인 배우 고 장자연 씨가 소속 기획사 대표에 의해 술접대는 물론 성접 대까지 강요당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남기고 자살한 사건입니다. 문건 에는 장 씨가 언론사 대표, 방송사 PD, 경제계 인사 등에게 술시중과 성접대를 했다고 적혀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습 니다. 이에 4월 5일 11시 조선일보사 앞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함께 ‘장자연 리스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 체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2009년 민언련은 장자연 리스트에 포 함된 조선일보 사장이 누구인지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한 이후 박석운 당시 공동대표가 조선일보로부터 민·형사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장자연 씨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4월 10일에는 ‘세월호 참사 4주기, 보도 참사는 끝나야 한다’는 주 제로 민언련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민언련 포럼은 매달 언론 관련 주 제를 선정해 전문가와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민언련의 활동 방 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4월 민언련 포럼에는 지상파 3사와 YTN 기자가 참석해 세월호 보도참사를 반성하는 한편으로, 이를 극 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이와 함께 4월 24일에는 ‘3월의 좋은보도상 시상식’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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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활동소식

5월 12일에는 ‘5·18광주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오월정신을 되 새기고 민주언론을 향한 의지를 다지고 돌아왔습니다. 5월 14일부터 김두환· 오초롱 활동가가 사무처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김두환 활동가는 총무·회계· 회원 업무를 담당합니다. 오초롱 활동가는 홍보 업무를 담당합니다. 새로 온 두 활동가에게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회원활동 소식

신문모니터위원회 신문모니터위원회는 4월 한달 ‘개헌 논의’에 대한 신문 보도를 모니터했습니 다. 그 결과 사실관계 확인조차 안 된 보도, ‘사회주의’라고 색깔론 공격에 나 선 보도, 야당의 주장만을 확대 재생산한 보도들이 보였고, 정작 필요한 기 본권에 대해선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앞으로도 신 문 보도 안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짚어내는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방송모니터위원회 방송모니터위원회는 4월 셋째 주, 학생 회원들의 중간고사로 인해 잠시 휴식 을 가진 뒤 다시 지방선거 모니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현재 방송모니터위 원회는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시사 예능’ 및 ‘선거 토론’에 집중하여 편파 적 방송, 선거 관련 사실관계의 왜곡, 불공정한 토론 방식 등을 지적하고 있 습니다. 6월 13일 지방선거까지 활동을 이어가며 이후에는 다시 모든 방송 콘 텐츠를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갑니다. 민언련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주요 회의 결과

이사회 4월 27일 정기총회 이후 첫 번째 이사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운영위원회 확대·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회원윤리위원회 내규 개정 및 성폭 력 사건 관련 내규를 제정했습니다. 한편 미디어 환경을 비롯해 급변하는 사 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민언련 조직 현황 진단과 운동 전망을 논의하는 조 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는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운영위원회 3월 30일,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신임 임원들이 모인 첫 번째 운영위원회 (2018년 8차)가 열렸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운영위원회 운영 방안을 논의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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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회의 결과

하고, 성폭력 대응 내규 초안을 마련해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했습니다. 4 월 27일 열린 8차 운영위는 총무회계 활동가 채용을 결정했습니다. 이와 함께 같은 날 열린 이사회에 부의할 △운영위 확대 △회원윤리위원회 내 규 개정 및 성폭력 관련 내규 제정안을 논의했습니다. 한편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방송법 개악 시도에 맞서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정책위원회 2018년 네 번째 정책위원회·정책포럼을 4월 13일에 개최했습니다. 4월 정 책위원회·정책포럼에서는 방송통신 정부조직 개편의 원칙과 방향에 대 해 논의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제2차 정부조직개편에서 방송통신 정부 조직을 어떤 모습으로 개편해야 공공·공익적 측면에서 수용자이자 시청 자인 시민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제 안을 검토하고 추가 논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정책포럼 TF(분과) 구성을 보완했습니다.

2018년 4월

신문 모니터

활동 보고

•‘종북몰이’에 ‘아무말 대잔치’까지, 문제보도 선물세트였던 평창올림픽 등 5건 방송 모니터 •홍준표 ‘제주4·3, 좌익 폭동’ 발언을 다루는 4가지 방식 등 11건 종편 모니터 •MBC·SBS·JTBC·TV조선의 ‘탐사 보도’, 이렇게 다르다 등 8건 신문·방송 모니터 •중앙일보발 ‘블랙리스트’ 몰이… ‘조동문’ 합세 등 2건 논평·성명·기자회견문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방송법을 ‘어깃장’의 수단으로 악용 말라 등 7건 2018 지방선거보도 모니터 •알맹이 빠진 보도전문채널의 개헌 보도 등 33건 토론회·기자회견 •‘민언련 포럼’ 세월호 참사 4주기, 보도 참사는 끝나야 한다 (4월 10일) •‘장자연 리스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4월 5일) •‘2018 전국 지방선거 미디어감시연대’ 발족 기자회견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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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보고 ·2018년 3월 결산 ·2018년 1~3월 누계

*지역 민언련 활동비는 지역 민언련 회원들이 낸 회비입니다. 현재 민언 련은 7개 지역 민언련 회비 CMS 업 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기간: 2018년 3월 1~31일, 단위: 원 과목 Ⅰ. 매출액 정기후원회비 강좌수입 특별후원회비 Ⅱ. 직접사업비 지역민언련활동비 강좌진행비 모니터보조 임원활동비 홍보비 원고료 광고선전비 전산유지비 회의비 언론개혁활동비 회원참여행사비 연대활동비 Ⅳ. 운영비 활동가 급여 퇴직급여 복리후생비 건물관리비 지급임차료 세금과공과금 사회보험 여비교통비 통신비 수도광열비 수선비 운반비 도서인쇄비 업무추진비 소모품비 지급수수료 용역수수료 Ⅴ. 사업이익 Ⅵ. 사업외수익 기타수입 잡이익 Ⅶ. 사업외비용 Ⅷ. 법인세차감전이익 Ⅸ. 법인세등 Ⅹ. 당기순이익 2018. 05

2018년 3월 89,329,810 84,573,000 4,756,810 32,476,255 18,954,631

250,000 5,567,610 200,000 36,874

2018년 1~3월 누계 269,354,200 253,947,000 1,812,000 13,595,200 79,577,943 55,999,629 1,581,300 193,190 750,000 11,727,960 850,000 36,874

20,000 190,700 629,050 494,770 1,453,155 600,000 22,452,128 323,960 323,460 500

4,189,200 4,049,790 100,000 100,000 95,078,140 66,302,090 3,446,330 1,356,550 3,300,000 3,795,000 27,000 5,893,960 223,800 887,470 1,130,880 44,000 75,300 562,700 1,788,550 724,380 4,220,130 1,300,000 94,698,117 5,143,820 5,142,320 1,500

22,776,088

99,841,937

22,776,088

99,841,937

3,517,350 3,749,790 100,000 100,000 34,401,427 24,345,410 1,154,730 412,000 1,100,000 1,265,000 1,965,740 60,500 288,390 42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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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이달의 좋은·나쁜 보도

2018년 3월의 좋은 신문 보도 선정 보도 없음

2018년 3월의 나쁜 신문 보도 ‘적폐 청산’을 왜곡하는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양상훈 칼럼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과정을 검찰이 ‘수사권’을 지키고자 문 정 부에게 바치는 ‘상납’인양 묘사했다. ‘적폐 청산’이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거나 비위를 수사하는 것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없었다. 또 ‘적폐 사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번에 수사받는 이들이 부당한 ‘정치 탄압’을 받고 있다는 왜곡된 이미지를 퍼트렸다. 이에 민언련은 위 보도를 2018년 3월의 ‘이달의 나쁜 신문 보도’로 선정했다.

2018년 3월의 좋은 방송 보도 1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 집요하게 촉구한 JTBC 지난해 12월, 대검찰청 개혁위원회가 재조사 대상 사건에 장자연 리스트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 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앙일보 단독 보도로 알려진 이후부터 JTBC는 집요하게 ‘장자연 사건’을 저녁 종합뉴스를 통해 다뤄왔다. 1차 조사 대상 선정 시기 ‘장자연’ 이름 석 자를 방송 보도에서 언급한 매체는 JTBC가 유일했으며,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사전 조사’ 대상에 포 함한 이후에도 JTBC는 ‘공소시효와 남은 과제’를 짚는 보도를 내놓았다. 관련 보도는 모두 ‘권력 형 성폭력’이 사건의 본질임을 짚으며, ‘과거 수많은 의혹을 남긴 검찰의 성역 없는 조사’를 촉구 하고 있다. 이는 이 사안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거나 뒤늦게 언급을 시작한 타 방송사와 크게 차 별화된 행보라 할 수 있다. 이에 민언련은 JTBC ‘장자연 리스트 재수사 촉구’ 보도를 2018년 3월 ‘이달의 좋은 방송 보도’로 선정했다.

2018년 3월의 좋은 방송 보도 2 ‘에버랜드 땅값’ 보도로 ‘삼성’ 성역 극복 선언한 SBS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제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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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이후, SBS는 3월 내내 국가가 삼성 대주주에게 재산상, 또 경영권 승 계 절차상 이득을 꾸준히 제공해왔다는 의혹을 저녁 종합뉴스를 통해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 보 도는 국가가 공시지가를 이용해서까지 삼성 경영 승계를 ‘후원’했다는 충격적 의혹을, 충실한 취 재를 기반으로 제기해 결국 국민연금의 내부 감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보도의 가치는 장충기 문자 사태를 통해 언론에 실망했던 시청자들에게 저 녁 종합뉴스에서 삼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짚을 수 있는 지상파 방송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 었다는 점에 있다. 이에 민언련은 SBS ‘삼성 경영권 승계와 에버랜드 땅값’ 기획을 2018년 3월 ‘이 달의 좋은 방송 보도’로 선정했다.

2018년 3월의 나쁜 방송 보도 엉뚱한 사람 테러범 만들고는 외면한 TV조선·채널A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던 2016년 5월 ‘원세훈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이 발생한다. 언론은 이를 ‘테러’라고 명명하며 주요 뉴스로 부각했고, 며 칠 뒤 검경은 화염병을 던진 용의자로 임옥현 씨를 지목했다. 임 씨는 증거가 매우 부실해서 구 속영장마저 기각됐지만, TV조선과 채널A는 임 씨를 ‘테러 용의자’라고 다루며 확정적으로 보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임 씨의 직장과 맡은 업무를 구체적으로 보도하는 등 신상털이에 집중했다. 지난 3월 대법원은 1심과 2심에 이어 임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TV조선과 채널A는 자신 들의 ‘오보’를 반성하기는커녕, ‘무죄’ 소식 자체를 다루지 않았다.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임 씨는 여전히 ‘테러범’이라는 낙인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에 민언련은 해당 사안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TV조선과 채널A의 ‘무보도’를 2018년 3월의 ‘이달의 나쁜 방송 보도’로 선정했다.

2018년 3월의 좋은 온라인 보도 선정 보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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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공공도서관에 민언련이 펴낸 책을 ‘희망도서’ 신청해주세요 도서 명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도서 명 민주언론, 새로운 도전 (민주언론시민연합 30년사 1)

공공도서관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해당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희망도서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2018년 3월 30일부터 4월 10일까지 배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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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부역 앵커’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이유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가 언론탄압 피해자?

지난 3월 9일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가 자유한

국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국당에 입당했다. 배현진 전 아나운서는 자유한국 당 입당 후 송파을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아 오는 6

배현진 전 아나운서가 말하는 ‘부당함’, 스스로에게 되물어

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자유한국당 후

보라

보로 출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배현진

지난 2008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배

전 아나운서는 자신이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현진 전 아나운서는 2012년 정치권력의 방송장악

물러난 후 3달 동안 “모든 업무에서 배제된 채 조명

에 저항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KBS, MBC,

기구 창고에서 업무발령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상태

YTN 등 공영방송 노조원들이 170여 일 동안 파업

였다”고 강조하면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부당한 일

을 벌이는 과정에서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을 공개

들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주장

적으로 비판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 후, 배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MBC 측은 배현

현진 전 아나운서는 김재철과 김장겸 등 정권의 낙

진 전 아나운서가 근무한 곳은 창고가 아니라 사무

하산으로 MBC 사장에 임명된 사람들의 비호 속에

실이었다고 반박하고 있어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MBC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 최장수 앵커 자리를

있는 상황이다.

꿰찼다. 동료들이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공영방송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배현진 전 아나운서에게 3

의 정상화를 위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공영방

개월 동안 창고 옆 사무실에서 근무해 보니 어떤 느

송 정상화를 처절하게 외칠 때, 배현진 전 아나운서

낌이었냐고 묻고 싶다. 수년 간 정권의 낙하산 사장

는 화려한 조명 밑에서 정권 친화적 뉴스를 전달하

밑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앵커의 자리를 지키는

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온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혜택을 누린 사람이 겨우 3개월 창고 옆 사무실에

정부가 출범한 후,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

서 근무했다고 MBC 경영진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

흥회 이사회가 공영방송을 파괴하고 MBC를 정권

면서, 본인이 수년 동안 화려한 조명 아래서 최장수

의 나팔수 역할로 전락시킨 책임을 물어 김장겸 전

앵커로 근무하는 동안 취재현장에서 쫓겨나 스케

MBC 사장을 해임하면서 배현진 전 아나운서도 결

이트장에서, 요리를 배우는 교육장에서, 그리고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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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배현진 전 MBC 아나운 서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배현진 전 아나운서는 자유한국당 입당 후 송 파을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아 오는 6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자유 한국당 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3월 9일 자유한 국당 당사에서 영입인사 환영식에 참석 한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

고관리 현장에서 수년 동안 고통을 겪었던 동료들

전 아나운서가 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자

의 아픔은 어땠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

신의 동료들이 회사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부당한 대

는지 말이다. 자신이 겪은 3개월이 힘들다고 현재의

우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

MBC 경영진을 비판하고 있는 배현진 전 아나운서

를 지키기 위해 동료들의 아픔과 부당한 대우를 외

가 왜 자신이 앵커를 할 때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

면한 배현진 전 아나운서가 과연 송파지역 주민들

로 경영진의 탄압을 받아 자신보다 10배 아니 20배

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오로

이상 고통을 당한 자신의 동료들의 부당한 대우에

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자신이 낙하산 사장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들에게 충성하며 누렸던 혜택은 철저히 감추고, 3개

수 없다.

월 동안 당했던 마음의 고통만을 부각시켜 피해자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적 당히 과장도 섞어 비판하면서 자신보다 더 오랜 기

코스프레를 하는 지금의 모습은 송파지역 주민들을 우습게 보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간 더 많은 고통을 당했던 자신의 동료들의 고통에

자유한국당도 참 딱하다. 아무리 후보가 궁해도

대해서는 침묵했던 배현진 전 아나운서의 태도는 자

그렇지 촛불혁명으로 탄핵된 대통령이 내려보낸 낙

신의 안위와 이익에는 민감하지만, 동료와 다른 사

하산 사장들 밑에서 혜택을 누린 배현진 전 아나운

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지극히

서를 갑자기 탄압받은 언론인으로 둔갑시켜 국회의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태도

원 재보궐 선거 후보로 내세우는 것은 송파지역 주

를 가진 인물이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

민들과 국민들의 수준을 도대체 어떻게 보는 것인지

고 나서는 것은 지역주민을 무시하는 태도라고밖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자유한국당과 배현진 전 아나

볼 수 없다.

운서는 송파지역 주민들을 무시하고 정치를 희화하 는 행동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그래야 6월 지방선

‘탄압받은 언론인 코스프레’ 중단하고, ‘주민 무시’ 그만두라

거에서 돌아선 보수의 지지를 조금이나마 되돌릴 수

송파주민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배현진

있을 것이다.

2018. 05

글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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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여야 정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영방송 이사 추천 ‘규칙’을 제정하라

방송미래발전위, 방통위의 알리바이 안 된다

최근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

받은 뒤 합의해서 중립지대 이사진을 선정하는 방식

선방안이 공개됐다. 이 위원회는 “방송의 독립성을

으로 이뤄진다. 국회에 최종 추천권이 있을 때는 반

확보하고 방송이 본연의 사회적 기능과 민주적 여론

대로 방통위가 협의체로부터 후보를 추천받는다. 추

형성 기능을 수행하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

가적으로 국회 또는 방통위는 추천된 중립지대 이

기 위한 목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사에 대해 제한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도

지난해 10월에 구성한 기구다.

뒀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정당별

방송미래발전위의 구상은 그럴듯하나 실제 내용

정치적 후견주의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 가칭 ‘중립

은 그 구상을 실현시키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일

지대’ 이사로 이사 총 정원의 1/3 이상을 임명한다”

단 ‘중립지대 이사 1/3 이상’으로 ‘정당별 정치적 후

는 것이다. ‘중립지대 이사’의 의미에 대해 방송미래

견주의 행사’가 통제될 수 있을지는 미심쩍다. 무엇

발전위는 “정당별 추천이 아닌 정당 간 합의적 추천

보다 국회가 최종 추천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배제

또는 임명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

하지 않았고, 방통위가 최종추천권을 행사할 때 ‘중

고 전문적 식견을 갖춘 인사로 구성된 일단의 이사

립지대 이사’를 ‘정당 간 합의’로 선정하도록 한 것도

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후견주의 통제로 보기는 힘들다. 다만 정치

방송미래발전위는 공영방송 이사의 추천권을 방

권이 공영방송을 권력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상황에

통위가 가질지, 국회가 가질지에 대해서는 단일안을

서 이들의 영향을 일정 정도 배제하고자 하는 취지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중립지대 이사’의 구성도 이

자체는 충분히 존중할 만하다.

사 추천권이 방통위와 국회 중 어디에 있느냐에 따 라 방식이 다르긴 하다. 방통위에 최종 추천 또는 임

방송미래발전위의 ‘허무한 정책 제안’

명권이 있을 때는 국회가 학술·직능·시민단체 등으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방송미래발전위

로 구성된 협의체로부터 정원 이상의 후보를 추천

의 정책제안이 총 18인의 각계 전문가들이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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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미래발전위 원회는 지난 3월 29일 오후 서울 양천 구 방송회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과 제작 자율성 제고 방안 논 의 결과를 공개했다. 사진_미디어오늘

모아 숙의한 결과임에도 내용과 관계없이 별다른 기

전부터 숱하게 봐온 풍경이다. 다만 여야가 바뀌었

대를 하기 힘든 ‘허무한 정책제안’이라는 생각 또한

을 뿐이다.

떨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방송미래발전위

여야가 공수를 교대해가며 공방을 거듭하는 근

원회의 정책제안을 토대로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

본적인 이유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해 국회에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로 그

권한이 정치권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권한은 ‘여

렇기 때문에 허무하다. 지금의 국회가 과연 방통위

당’에 쏠려 있지만, 권한을 나누자는 야당도 내놓지

의 제안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방통위가

않으려는 여당도 모두 공영방송을 정치권의 전유물

2000년 방개위 수준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개

로 취급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국회에 방통위가 방

선방안을 마련했다 해도 20대 국회가 이를 받아들

송미래발전위원회의 방안을 아무리 정성껏 다듬어

일지는 미심쩍다. 하물며 이번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제안한다 해도 그 즉시 ‘정쟁거리’로 전락하게 될 가

는 방통위의 일방적인 계획에 따라 구성됐고, 사회

능성이 99%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 합의는커녕 논의 수준도 밀실에 머물렀다. 수년간 국회, 특히 방송 관련 상임위를 집중적으

법적 근거도 없는 ‘오래된 관행’

로 들여다본 결과 중요한 사안일수록 국회에 맡겨

아예 국회를 논의에서조차 배제시키고도 공영방송

서는 죽도 밥도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적어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봤다. 현행

도 방송법에 관한 한 지금의 국회는 아무런 해결능

방송법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즉 KBS 이사 선임

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남은 기간 동안도 마찬가지일

방식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부분은 “이사는 각 분야

것이다. 마침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

바른미래당이 방송법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보이

고 대통령이 임명한다”(방송법 제46조 제3항)는 단

콧’에 나섰다. 방송법을 둘러싼 국회의 갈등은 오래

한 줄 뿐이다.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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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방송법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보이콧’에 나섰다. 방송법을 둘러 싼 국회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숱하게 봐온 풍경이다. 다만 여야가 바뀌었을 뿐이다. 사진은 방송법 처리를 위한 릴 레이 농성 중인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 표와 최도자 의원 모습. 사진_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 홈페이지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자. 먼저

그래서 방통위에게 ‘방송법 개정을 통한 공영방송

이사 임기가 종료될 무렵 방통위는 차기 이사 공모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은 그냥 국회에 맡기고,

절차에 돌입한다. 동시에 여야는 각각 7명과 4명의

방통위는 자신들의 권한 내에서 근거를 만드는 작업

KBS 이사 후보를 선발해 방통위에 명단을 넘긴다.

에 나서길 권해본다. 방송법에서 “각 분야의 대표성

방통위는 그 후보들에게 법적인 결격사유가 있는지

을 고려하여”라고 한 부분의 근거를 <방송법 시행

만 살펴보고 전체회의에 올린다. 상임위원들은 비공

을 위한 방송통신위원회 규칙>(이하 ‘방송법시행규

식 티타임을 통해 그 명단을 공유한다. 그리고 전체

칙’)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회의에서 명단의 당사자에게 투표하는 방식으로 11

보통 ‘방송법시행규칙’은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

명의 이사 후보자를 정하면, 최종 절차로 대통령이

에서 위임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

임명하게 된다.

만 상위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시

방통위가 11명을 정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

행을 위해 규칙으로 만든 경우가 있다. 가령 방송법

는 것 외에는 모두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지는

제45조 제2항에서 ‘KBS가 정관을 변경할 때는 방

‘오래된 관행’이다. 관행에 따라 방통위는 법에서 보

통위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만 정할 뿐 아무런 하

장한 이사 추천권한을 아무 근거 없이 여야 정당에

위법 위임규정이 없음에도 ‘방송법시행규칙’ 제12조

이양했다. 일부 정당이 일부 권한을 KBS 내부 구성

에서 정관변경을 의결한 KBS이사회 회의록을 첨부

원을 포함한 시민사회와 공유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할 것 등의 구체적인 절차를 정한 것이라든지, 방송

법적인 근거는 전혀 없고 3년마다 방식이 달라진다.

법 제65조에서 KBS 수신료에 대해 “이사회가 심의· 의결한 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방송법 시행규칙’으로 정해

얻어 확정”한다고만 되어 있는 것을 ‘방송법시행규

칙’ 제13조에서 KBS가 방통위에 제출할 서류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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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에서 KBS 이사 추천에 대해 규정한 부분은 입법 미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각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에 대해서조차도 “각계의 시청자를 대표할 수 있는 자 중에서 방송통신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단체의 추천을 받아 시청자위원회의 위원을 위촉한다”고 해두었다. 방송평가위원회,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회 등 다양한 법정위원회의 구체적인 구성,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도 규칙으 로 정하게 했다. 유독 공영방송 이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누락해 여야 7:4 또는 6:3 나눠먹기 식의 ‘오래된 관행’을 방치했다. 사 진은 KBS 이사 추천과 시청자위원회 설치를 규정한 방송법 조항.

체적으로 정하고 방통위가 60일 이내에 국회에 의

먹기 식의 ‘오래된 관행’을 방치했다. 현재 상황에서 국회가 방송법을 제대로 개정하

견을 내도록 정하고 있다. 이처럼 방송법 자체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거나 하

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는 8월이면 공영방

위법에 위임하지 않았더라도 KBS 이사 추천 과정에

송 이사진 교체가 이뤄진다. 이번에도 ‘오래된 관행’

서 ‘각 분야의 대표성을 어떻게 고려할지’에 대해 규

에 따라 구성할 것인가. 방송미래발전위원회가 기왕

칙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에 ‘정당별 정치적 후견주의 행사를 통제’하기로 방

사실 방송법에서 KBS 이사 추천에 대해 규정한

향을 정한 만큼 여야의 개입을 배제하고 ‘각 분야의

부분은 입법 미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각 방송사의

대표성을 어떻게 고려할지’에 대해 ‘방송법시행규칙’

시청자위원회에 대해서조차도 “각계의 시청자를 대

으로 안을 만들어보자. 이를 위해 방송미래발전위

표할 수 있는 자 중에서 방송통신위원회규칙이 정

원회의 논의를 개방하고, 수시로 공청회, 간담회, 토

하는 단체의 추천을 받아 시청자위원회의 위원을

론회 장을 마련하는 등 다방면으로 의견수렴에 나

위촉한다”고 해두었다. 방송평가위원회, 시청자권익

서길 바란다. 멈춰선 국회에 기대 방송미래발전위로

보호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회 등 다양한 법정위

알리바이를 만들지 말고, 방통위가 스스로 길을 개

원회의 구체적인 구성,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도 규

척하라.

칙으로 정하게 했다. 유독 공영방송 이사에 대해서 는 구체적인 내용을 누락해 여야 7:4 또는 6:3 나눠 2018. 05

글 박진형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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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미디어렙 적폐’를 바로 잡기 위한 제언

미디어렙, ‘셀프 조사’ 대신 ‘외부 진상조사위’가 필요하다

위법하게 허가해 준 TV조선·채널A·MBN 미디어렙

당시 민언련이 성명을 통해 “외부인사들로 진상조사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종편미디어렙 설

위를 구성, 투명하고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나서라”

립 허가·재허가 과정에서 위법하게 법집행한 것에

라고 요구하는 한편, 정보공개 청구까지 하고 나서

대해 내부감사를 한다고 한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

자, 방통위는 압박에 밀려서 뭔가 조치를 취하는 시

기도 하지만,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일종의 꼼수”

늉은 하였지만,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가 아닌가 라는 의혹이 있다.

었다. 예를 들면, 방통위는 애초 시정명령을 내리면

처음에 방통위가 TV조선, MBN, 채널A 등 종편

서, 최초 허가 기간인 3년 이내에만 행정처분이 가

방송의 미디어렙의 설립허가 당시와 재허가 당시,

능하다는 법률자문을 받았고, 또 TV조선·MBN·채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미디어렙

널A 미디어렙이 설립허가신청 당시 “추후 고의나 과

법”) 소정의 주식 또는 지분 소유제한 규정에 위반

실을 불문하고 서약사항을 위반하였음이 밝혀질 경

되었던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미디어렙법 제11조 제

우 허가취소 등의 처분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1항 제5호에 따라 허가의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지

제출했지만, 이른바 “고의성” 요건이 충족되지 못한

않고, 대신 미디어렙법 제13조 제6항에 따른 시정명

상황에서는 서약서만을 근거로 허가 취소를 하기 어

령을 내린 것부터가 잘못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렵다는 법률자문을 받았다면서, 이들 종편미디어렙

방통위가 이렇게 위법하게 종편 미디어렙을 허가해

의 허가를 취소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준 경위나 그 책임자 문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그러나 정작 그 결정적 근거로 삼았던 법률자문회

언급이 없었다. 심지어는 시정명령 당시 배포한 자료

신서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는 거부해

에는 TV조선·MBN 미디어렙의 최초 허가 당시에도

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정보공개거부의 근거로 “1공

존재했던 지분소유 제한·금지 규정 위반 내용을 쏙

개할 경우 경영·영업상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빼고 작성하는 꼼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있”다는 조항을 내세웠는데, 실로 어불성설의 꼼수 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법률자문회신서

법률자문 회신서 내용조차 정보공개 거부하다니 46

속에 과연 그 누구의 어떤 경영·영업상 이익을 도모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9월 6일, 방 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조중동방송 특 혜 주는 방통위 규탄’ 기자회견을 연 전 국언론노동조합. 사진_전국언론노동조합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인지, 또 정보공개법에

다. 1사1렙 체제하에서 각 종편 방송사들은 자사 미

는 “위법·부당한 사업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디어렙을 통해, 한편으로는 조폭적 수법으로 광고와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협찬을 “수주”(사실상 “갈취”)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

공개거부의 예외 대상으로 명시되고 있다는 점까지

로는 광고비와 협찬금을 매개로 방송내용을 사실상

고려하면, 더욱 이치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매수”당하는 시스템을 유지·온존시켜 왔다. 광고주와 방송사 간의 광고 직거래를 금지시켜 그

셀프조사로 진상이 밝혀질까?

들 간의 유착과 방송 공정성 훼손을 막는다는 취지

이러는 사이 방통위가 이 사안에 대해 슬그머니 “셀

로 도입된 미디어렙 제도는, 종편 1사1렙 체제하에서

프조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보도되었다. 방통위

는 형용모순인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기

가 법률자문 회신서까지 공개 거부할 정도로 폐쇄적

존의 종편 1사1렙 체제를 혁파하고, 공영방송과 민영

인 태도를 보이고도, 이 사안에 대해 자체감사를 시

방송 그리고 종편방송까지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

작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내부감사

미디어렙을 1공영, 1민영 미디어렙 체제로 개편하는

해보니 “고의적인 종편 봐주기가 아니라 직원의 과

근본적 제도개선이 긴요하다고 본다.

실”이더라 정도로 수습해 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미봉되어서는

방통위와 방심위, 누적된 적페청산에 나서라

안 된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진상조사위를 통한

사실 종편미디어렙 문제는 수많은 언론계 적폐 중

투명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를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방통위와 방심위(방송통신

위한 제도개선이 추진되어야 한다.

심의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 치는 사이 갖가지 적폐가 누적되어 왔다. 다른 국가

종편의 1사1렙 제도 혁파되어야

기관들은 모두 적폐청산에 나서고 있는데, 유독 여

이명박 정권 시절 미디어 관련법이 날치기로 통과되

기만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지금이야말로 방송의

고 종편 4개 방송이 한꺼번에 등장한 이래, 종편에

주인인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적 규제기관으로 거듭

제공된 부당한 특혜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1사1렙

나기 위해 본격적인 적폐청산에 나서야 할 때이다.

(각 종편방송사가 자사 미디어렙 설립) 허용 특혜였 2018. 05

글 박석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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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촛불혁명 최후의 과제, 조선일보 퇴출이 필요한 이유

혐북·종미, 조선일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가 2018년 1월에 발표한 조사

고화되었다.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이 ‘공정하지 않다’는 응

미국은 일본을 점령한 후 일왕을 비롯한 전범들

답이 72%로 ‘공정하다’는 응답(26%)보다 훨씬 높

과 군국주의자들을 복귀시켜 소련을 견제하는 한편

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 언

으로 중국 내전에 개입했다. 해방 후 점령군으로 서

론에 대한 불신의 근원은 정파신문이라는 데 있다.

울에 입성한 미군이 군정을 실시하며 친일파들을

정치적 편향을 상수로 하고 취재·보도를 하는데 공

복귀시켜 통치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미

정할 수가 없다. 정파적 보도를 선도하는 조선일보

국이 대한민국과 일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그

에게 공정보도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럴

때나 지금이나 미국과 일본은 한배를 탄 가운데 대

까?

한민국은 부수적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한미동맹이 라는 것도 동상이몽이다.

조선일보의 ‘친일 유전자’, 근현대사 맥락에서 보는 조선일

해방 직후 한국 사회 분위기는 진보가 압도적이

보의 실체

었다. 통일된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라는 궁극의 과

조선일보는 친일의 역사를 유전자로 하여 태어났으

제와 더불어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이 화두였다.

며 해방 후에는 혐북·종미 유전자로 변이되어 수많

친일파는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은 자기복제를 해오고 있다. 같은 친일의 유전자를

그러나 미군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하고 친일파를

보유하며 탄생했지만, 한때는 괜찮은 신문이었던 동

중용하면서 친일신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복간

아일보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유전자도 보유하고

을 도왔고, 이 신문들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

있는 중앙일보까지도 조선일보에 동화되었다.

을 허위·날조 보도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촉발시

19세기 말 제국주의 침략의 시기에 일본은 미국

켰다.

과 영국의 도움을 받으며 청과 러시아를 제압하고

소위 반탁운동은 친일파를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조선을 강탈할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과 동

동시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제조해냈다. 그 구도가

맹을 맺고 거점으로 삼아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로 조선일보에

면서 중국과 조선에서 이권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

게는 북한에 대한 혐오와 적대와 분단이 생존의 조

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이 등장하고 중국이 사회

건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은인이요 든든한 배후세력

주의 국가로 통일된 이후에는 그 구도가 더욱더 공

이다. 남북교류와 평화보다는 대립과 긴장과 혐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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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하고 친일 파를 중용하면서 친일신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복간을 도왔고, 이 신문들 은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을 허위·날 조 보도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촉발 시켰다. 사진은 1950년 12월 27일 관련 내용을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좌)와 동 아일보(우) 1면.

조장하며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역사를 바로

민국 누비는 김영철>에서는 “전시(戰時) 같으면 우리

알아야 조선일보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視而不見).

군이 발견하는 대로 처단해야 할 대상”이라 했고, < 북측은 어떤 조건에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촛불혁명 완성은 조선일보와 TV조선의 퇴출로 완성될 것

는 건가>에서는 “트럼프가 말한 2단계엔 군사적 대

조선일보의 혐북·종미 성격의 기사와 사설은 사실을

응책도 담고 있을 것”이라고 ‘희망사항’을 밝힌 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혐북·종미의 목표를 달성

“북한이 대화에 임할 준비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

하기 위해서는 작문과 추리소설 쓰기도 마다하지 않

서의 섣부른 미북 대화 촉구는 부작용만 낳을 가능

는다. 미국의 펜스 부통령의 오만방자한 언행에 대

성도 있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다른 매체들과는 달

해서는 방패막이가 되어 두둔했던 조선일보는 북한

리 유독 ‘美北’이란 표현을 고집하는 것도 이채롭다.

의 김영철 통일전선부 부장에 대해서는 온갖 저주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염원은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퍼부었다.

없고 미국 매파의 입장에서 갈등과 대립을 넘어 전

2월 26일 자 톱기사 <평창의 남북, ‘비핵화·천안 함’ 한마디 없었다>를 비롯해서 <김영철 KTX 특별

쟁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태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 다.

수송작전, 작전명은 ‘진달래’>, <文대통령·김영철의

이런 조선일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임 중 조

이상한 1시간 접견...金, 청와대 방문 안한다>, <이방

중동과 무던히도 싸웠던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담이

카, 김영철에 눈길 한번 안줬다>, <“北 가짜평화에

다. “민주주의의 진행 과정에서 공정한 게임의 장을

치욕적 굴종”, 2030 세대도 분노했다>, <천안함 주

열고 그 장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

범에 군사도로 열어주고… KTX 안서는 역에 특별정

입니다.”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는 그런 원칙을 추호

차>, <김영철, 대미 외교실무자 대동, 美北 접촉 이뤄

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촛불혁명정부가 들어섰다고

지나> 등 북한을 혐오하고 미국을 추종하는 기사가

혁명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넘쳐났다.

퇴출이야말로 촛불혁명이 목표로 하는 적폐청산의

사설도 두 개나 실었다. <국빈급 경호 받으며 대한

최대 최후의 과제가 될 것이다.

2018. 05

글 김동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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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피해자 책임론’과 ‘펜스룰’을 부추기는 성폭력 보도 관행을 깨라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썼냐”고 묻는 언론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파장이 쉽게 사그러들 것 같

성이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

지 않다. 그의 수행비서이던 김지은 씨가 방송에 나

지다. 안 전 지사가 여성을 수행비서로 임명하는데

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자, 안 전 지사와 김

도 이를 제지하지 않은 보좌진들에게 사건의 책임

씨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말에 다른

중 일부가 전가된다.

말이 보태지면서 SNS에서, 포털 댓글 게시판에서, 술자리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넘쳐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 이 있다’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된다. 우리는 다른 성

유명 인사의 성폭력 사건은 그 자체로 자극적이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말들을

고 선정적이어서, 사건 내용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무수히 보아왔다. ‘짧은 치마를 입고 밤거리를 다닌

호기심은 상수에 가깝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는 다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 ‘평소 품행이 방정하지

르다. 언론이 사안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대

않은 피해자가 문제의 원인을 일부 제공한 측면이

중의 관심은 생산적 담론으로 연결될 수도, 피해자

있다’… 이 사건에서 비슷하다. “이성인 상급자와 24

의 상처를 후벼 파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시간 밀착해 있어야 하는 상황을 선택한” 김지은 씨 에게도 조금의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언론의 ‘여성 수행비서’ 문제 제기는 ‘피해자 책임론’을 확산 한다

확산된다. 여기에 ‘본능을 억제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남성

김 씨의 폭로가 있은 지 며칠 뒤 몇몇 언론은 “왜 여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불과 십여 년 전까지 성폭력

성을 수행비서로 했을까”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다.

형사판결문에서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라는 문

“여직원을 수행비서로 채용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

구가 단골로 등장했다)까지 더해지면 가해자의 범

다”, “안희정 지사가 남자이기 때문에 이성인 여성이

죄는 우발적인 실수로 둔갑하기까지 한다. 폭행이나

24시간 보좌하는 수행비서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

강도를 당한 사람에게 “그러게 왜 그때 그곳에 갔

지 않냐는 얘기가 있었다”, “여성이 수행비서를 맡은

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건 이번이 최초였다”… 대체로 애초 수행비서가 남

의 책임을 떠안을 이유는 없다. 강도와 폭력이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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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수행비서로 두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식의 접근이 이른바 ‘펜스룰(pence rule)’을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중 요하다. ‘펜스룰’이란 지난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자신의 행동방식을 말하는데, 당시 그는 “아내 외에는 절대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내외. 사진_마이크 펜스 트위터

자리에서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어야 한다’와 같

이듯 성폭력도 그 자체로 범죄일 뿐이다.

은 말들이 넘쳐난다.

여성과의 접촉 차단?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인이 자신의 위치를 수단으

다른 측면에서 언론의 이런 접근이 이른바 ‘펜스룰

로 부하 직원에 성폭력을 가하였다는 것이다. 사안

(pence rule)’을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에 대한 언론의 다각적인 분석보다 우선되어야 할

점 역시 중요하다. ‘펜스룰’이란 지난 2002년 마이크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일이다. 여성민우회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언급

가 마련한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일부를 옮겨본

한 자신의 행동방식을 말하는데, 당시 그는 “아내 외

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할 수 있는

에는 절대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을 일상과 분리된

고 말했다. 문제 될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여성과

범죄로만 부각하지 않는다”, “성폭력은 피해자 인권

의 접촉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저열한

의 문제이다. 성폭력 사건을 다른 정치적 공방의 소

대응은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소외시

재로 비화시켜서는 안 된다”. 안 전 지사 사건은 앞

키는 것이다. ‘여성 수행비서를 뽑지 않으면 문제가

으로도 상당 기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간편한 사고는, 여성 수행비서

이번 사건이 언론의 성폭력 사건 보도 관행을 극복

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가능성 자체를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봉쇄한다. 미투 흐름이 본격화한 뒤로 남성들 사이 에서는 ‘그냥 여성과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 ‘술 2018. 05

글 정민영 정책위원·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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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페이스북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라

굿바이 페친, 굿바이 “좋아요”

페이스북이 없는 삶은 어떨까. 최근 페이스북 데이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지우느냐 마느냐라기보다는,

터 유출 사건 이후 사람들은 조금씩 이 문제를 생각

외려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다. 페이스북이 없으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무엇보다 5,000만 명 가량의

면 소셜커뮤니케이션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건 아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가 대량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닐까.

페북에 대한 신뢰감이 줄어들고 있다. 돈도 많이 날 아갔다.

페이스북을 없앤다 한들, 이용자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이런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정보 유출 소식이 알려진 지 단 하루 만에 시가

페이스북을 안 하던 시절, 심지어 오프라인 시절이

총액은 39조 원이나 사라졌다고 한다. 올해 페이스

더 좋았었다는 식의 과거 찬양도 별로 도움이 되지

북 일일 활성 이용자 수는 전 분기 대비 100만 명이

않는다. 외려 이는 사이버 공간과 디지털 플랫폼에

나 감소했다. 분기별 이용자 수가 감소한 건 창사 이

대한 불신만 부추기는 공허한 찬양일지 모른다.

래 처음이다. 젊은 이용자의 페이스북 이탈은 더 가

여기 문제는 페이스북이 단지 개인의 삶에 한정된

속화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인 이마케터에 따르면

플랫폼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려 그 데이터들은 너

지난해 미국의 12~17세 연령층 중 페이스북 이용자

와 나, 우리의 삶을 만들고, 정보를 나누고, 협력하

는 9.9% 감소했다. 올해 페이스북 이용자는 더 줄어

며, 정치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디지털

들 것으로 보인다.

시대에 데이터는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이다. 데이터 를 가진 자가 권력구조를 결정한다. 데이터로 돈을

단순 ‘소비자’를 ‘전달자’로 만들었던 것이 페이스북 가치

벌고 사업을 할 뿐만 아니라 정치도 한다.

페이스북을 떠나느냐 마느냐, 사람들은 단지 이것을

그동안 페이스북이 우리에게 중요한 플랫폼이었

고민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페이스북 앱을

던 건 그것이 우리를 소비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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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페이스북은 최근 개인정보 유출 논란과 관련해 지난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과 연계됐던 데이터 회사가 페 이스북 이용자 8,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5,0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언론의 추정을 크 게 상회하는 수치다. 사진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치적 가치의 전달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요즘 스타트업이란 쿨한 말을 많이 듣는다. 페이

뉴스피드 서비스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스북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어떤 세계에 살고 싶

이용자 설문을 통해 뉴스 신뢰도를 직접 평가해서

은가” 였다면, 이제 기회는 스타트업에 있는 셈이다.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그는 사이버 공간의 진정 위

이제 페북의 시대도 저물고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건

협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것

지금의 방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

은 바로 이용자다.

떤 스타트업이 또다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이 제 디지털 시대를 또다시 뒤흔들 컨셉이 필요하다.

흔들리는 페이스북, 인터넷 시장의 독점구조를 깰 기회

세계는 새로운 소셜 테크놀러지를 향한 사유능력을

국내에서 네이버가 뉴스를 독점하고 있듯, 글로벌

요구하고 있다.

시장에선 구글과 페이스북이 뉴스를 독점하고 있는

페이스북 저편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헤겔의

현실이다. 이번 페이스북 이용자 이탈 흐름은 이 독

사유가 담긴 플랫폼 변증법의 사상이 디지털 시대

점구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외려

에도 요구되고 있다. 그의 통합논리는 오늘 소위 해

페북의 위기는 기회다. 인터넷 시장의 독점구조를

체의 시대에 잘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2보 전

깰 수 있는 기회다. 더구나 페이스북이 지난 몇 년간

진, 1보 후퇴라는 그의 변증논리는 페이스북 이후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를 만들지 못하면서 10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사상이다. 굿바

대부터 20대 젊은 층은 스냅챗 같은 새로운 소셜앱

이 페친, 굿바이 “좋아요!” SNS의 시계는 이제 0시

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스냅챗은 국내 이용자는

다.

적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페북 못지않은 위상을 보이

2018. 05

글 서명준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언론소비자주권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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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후원자 명단

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가붕현 강기태 강무치 강민정 강상욱 강솔 강영모 강익희 강주현 강태구 강현용 강호성 강희선 고구연 고문석 고세창 고영환 고재진 고형석 곽민섭 구강회 구병석 구연석 구진하 권강범 권미애 권순우 권용배 권정민 권혁근 금종섭 길찬호 김경래 김경숙 김경장 김고은 김광민 김광현 김규태 김금녀 김기영 김나래 김남중 김대균 김대응 김덕종 김동 김동영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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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 강길탁 강문구 강민지 강상현 강승민 강영선 강인규 강준구 강태순 강현우 강호영 강희윤 고규석 고병년 고수영 고유라 고정주 고형승 곽보천 구경애 구본권 구영선 구창범 권건욱 권미영 권순재 권용찬 권정환 권혁상 금종화 김갑수 김경량 김경실 김경주 김고은 김광민 김광호 김규표 김금주 김기용 김나영 김남진 김대기 김대일 김덕현 김동건 김동옥 김동학

강경구 강나영 강문석 강민찬 강석봉 강승연 강영순 강일두 강지영 강태욱 강현우 강호준 강희정 고근영 고병언 고수진 고은별 고정현 공경남 곽봉준 구계영 구본수 구완회 구태형 권경희 권민 권영원 권웅기 권정희 권혁하 금준경 김강균 김경미 김경심 김경태 김고훈 김광수 김광호 김규환 김금화 김기원 김나형 김남진 김대선 김대진 김덕환 김동광 김동우 김동혁

강경식 강대석 강미 강범구 강선정 강승일 강영재 강장진 강지환 강태호 강형석 강홍석 강희정 고기원 고병열 고승우 고은영 고제석 공덕호 곽성호 구교선 구본엽 구원 구태환 권광태 권민석 권오경 권위상 권주용 권현아 기대정 김강선 김경미 김경아 김경필 김관규 김광수 김교식 김규환 김금희 김기율 김낙규 김남혁 김대수 김대현 김도경 김동규 김동욱 김동현

회원님들이 후원해 주신 회비는 민주언론을 향한 활동의 근간입니다. 2018년 3월 1일부터 31일 사이에 후원해 주신 분은 모두 5,299분입니다.

강경운 강대진 강미경 강병국 강성구 강승현 강영주 강재영 강진 강필승 강형숙 강홍식 계명석 고대원 고보곤 고아람 고은주 고주봉 공영목 곽세영 구교선 구본엽 구윤서 구태회 권구상 권민철 권오복 권유림 권준수 권형준 기민수 김건엽 김경민 김경아 김경현 김관식 김광욱 김권식 김규훈 김기대 김기주 김낙천 김남희 김대순 김대현 김도영 김동균 김동욱 김동호

강경화 강대진 강미숙 강병조 강성남 강승희 강예성 강전도 강진구 강필준 강혜선 강화순 계미량 고대원 고삼석 고영매 고은주 고창석 공종철 곽수영 구교선 구본주 구자룡 구태회 권기경 권민호 권오설 권은영 권진만 권혜영 기보중 김건영 김경민 김경옥 김경호 김관철 김광원 김귀영 김균하 김기범 김기창 김난경 김남희 김대애 김대형 김도원 김동민 김동욱 김동호

강국일 강덕구 강미숙 강보배 강성옥 강신광 강유복 강정미 강진석 강한성 강혜숙 강효근 고강우 고동균 고상민 고영옥 고의정 고태호 공준기 곽우신 구대현 구본직 구자숙 구현주 권녕찬 권상현 권오숭 권은주 권철 권호정 기선희 김건오 김경배 김경원 김경호 김관호 김광일 김규리 김근영 김기석 김기철 김난슬 김남희 김대엽 김대호 김도윤 김동섭 김동욱 김동환

강귀동 강동오 강미옥 강복순 강성주 강신성 강유원 강정연 강진숙 강항준 강혜인 강효기 고겸 고동혁 고상익 고영윤 고인수 고하람 공후연 곽은정 구미경 구본학 구자옥 구현회 권대철 권선애 권오철 권일 권태성 권효진 기영란 김건우 김경석 김경은 김경호 김광곤 김광중 김규명 김근영 김기성 김기학 김난영 김내인 김대영 김대호 김도형 김동섭 김동윤 김동환

강규상 강명수 강미정 강부근 강성하 강양구 강윤영 강정훈 강진학 강행권 강혜정 강효정 고광백 고동형 고성광 고영재 고인혁 고한별 곽기수 곽지운 구민예 구상회 구자중 구형욱 권동혁 권성희 권오현 권재범 권태진 권희도 기원도 김건호 김경수 김경익 김경환 김광동 김광진 김규봉 김근한 김기수 김기현 김남균 김다애 김대영 김대환 김도형 김동성 김동의 김동훈

강기민 강기영 강명호 강명훈 강민수 강민정 강삼규 강상우 강성환 강성희 강연지 강영건 강윤희 강은미 강종민 강종석 강창수 강충원 강혁 강현 강호년 강호민 강희 강희경 고광수 고굉주 고명섭 고명인 고성일 고성휘 고영주 고영철 고일근 고일웅 고현강 고현경 곽노필 곽동훈 곽진욱 곽철주 구민오 구민준 구성모 구성연 구정회 구진경 국명환 국중식 권명수 권미숙 권세일 권수경 권오훈 권옥분 권재현 권재현 권해준 권혁권 권희명 금동기 길덕영 길섭 김경란 김경래 김경수 김경숙 김경인 김경자 김경훈 김경훈 김광명 김광모 김광철 김광태 김규봉 김규영 김근혜 김근호 김기연 김기열 김기호 김기홍 김남석 김남윤 김다혜 김대균 김대욱 김대위 김덕원 김덕재 김도형 김도형 김동수 김동영 김동찬·김고은 김동훈 김두언


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두한 김두환 김명걸 김명규 김명철 김명호 김문주 김문환 김미선 김미숙 김미옥 김미자 김민경 김민균 김민진 김민철 김범휴 김병규 김병훈 김보경 김보현 김보형 김사무엘 김삼 김상덕 김상민 김상호 김상훈 김석균 김석정 김선욱 김선정 김성기 김성길 김성연 김성연 김성진 김성철 김성희 김세은 김소원 김소희 김수정 김수정 김수환 김순배 김승곤 김승규 김시은 김시창 김아정 김애경 김연수 김연신 김영광 김영권 김영미 김영미 김영선 김영수 김영은 김영일 김영필 김영헌 김영훈 김영희 김요안 김용겸 김용래 김용민 김용익 김용일 김용희 김우선 김원주 김원태 김윤수 김윤영 김은규 김은동 김은아 김은아 김은주 김은주 김이준 김이지 김인성 김인성 김일용 김자영 김재성 김재성 김재필 김재필 김정곤 김정관 김정본 김정빈 김정우(소라) 김정현 김정현 김정희 김제문 김종민 김종배 김종원 김종윤 김주상 김주성 김준모 김준석 김지묵 김지민 김지연 김지연

김두환 김명규 김명화 김미경 김미숙 김미정 김민기 김민철 김병모 김보경 김복도 김삼숙 김상식 김상훈 김석준 김선호 김성동 김성욱 김성철 김세준 김소희 김수지 김순봉 김승민 김신영 김양임 김연용 김영균 김영민 김영수 김영재 김영형 김영희 김용구 김용민 김용재 김우일 김원택 김윤원 김은미 김은영 김은현 김익곤 김인수 김장곤 김재성 김재현 김정근 김정선 김정욱 김정호 김종구 김종배 김종일 김주연 김준성 김지석 김지연

김레베카 김명년 김명훈 김미경 김미숙 김미정 김민서 김민철 김병석 김보경 김복수 김삼일 김상엽 김샘이나 김선기 김선화 김성락 김성욱 김성태 김세진 김수경 김수진 김순성 김승빈 김신영 김양중 김연이 김영근 김영민 김영숙 김영제 김영호 김예리 김용규 김용백 김용정 김우준 김위근 김윤정 김은범 김은영 김은형 김익삼 김인수 김장수 김재식 김재호 김정기 김정수 김정은 김정화 김종규 김종석 김종태 김주열 김준식 김지선 김지영

김마리아 김명선 김명희 김미경 김미연 김미정 김민성 김민태 김병선 김보경 김복희 김삼진 김상원 김서영 김선미 김선화 김성만 김성웅 김성태 김세환 김수린 김수진 김순식 김승오 김신욱 김양현 김연일 김영기 김영배 김영숙 김영조 김영호 김옥남 김용균 김용범 김용준 김우찬 김유경 김윤정 김은석 김은영 김은혜 김인 김인수 김장홍 김재영 김재화 김정란 김정수 김정은 김정환 김종근 김종선 김종택 김주영 김준영 김지선 김지영

김만수 김만욱 김명숙 김명오 김문 김문경 김미경 김미니 김미영 김미영 김미정 김미현 김민승 김민식 김민혜 김민호 김병식 김병옥 김보규 김보름 김본일 김봉덕 김상경 김상균 김상원 김상유 김서영 김서윤 김선숙 김선애 김선희 김선희 김성미 김성미 김성원 김성일 김성현 김성호 김세훈 김세희 김수만 김수복 김수진 김수천 김순자 김순종 김승우 김승재 김신제 김신중 김언경·최대식 김연정 김연주 김영래 김영림 김영보 김영삼 김영순 김영심 김영주 김영주 김영호 김영화 김옥란 김옥매 김용기 김용남 김용석 김용수 김용진 김용진 김우현 김욱환 김유동 김유신 김윤중 김윤희 김은선 김은선 김은영 김은임 김은혜 김은혜 김인구 김인규 김인숙 김인종 김장환 김재경 김재영 김재우 김재환 김재환 김정만 김정묵 김정숙 김정실 김정준 김정중 김정환 김정환 김종덕 김종덕 김종성 김종수 김종호 김종호 김주영 김주영 김준일 김준태 김지선 김지선 김지용 김지웅 2018. 05

김만중 김명옥 김문규 김미덕 김미영 김미화 김민우 김바다 김병욱 김보명 김봉모 김상기 김상은 김서중 김선애 김성 김성민 김성자 김성화 김소연 김수선 김수향 김순화 김승주 김아름 김여환 김연지 김영명 김영삼 김영아 김영준 김영환 김옥선 김용덕 김용수 김용태 김웅식 김유진 김은 김은섭 김은정 김은희 김인규 김인중 김재관 김재우 김재환 김정미 김정아 김정진 김정훈 김종동 김종수 김종훈 김주원 김준혁 김지수 김지은

김만중 김명자 김문섭 김미라 김미영 김미희 김민정 김백일 김병찬 김보성 김봉민 김상남 김상중 김서현 김선영 김성권 김성민 김성재 김성훈 김소연 김수연 김수현 김순희 김승직 김아름 김연구 김연지 김영모 김영삼 김영애 김영준 김영훈 김옥연 김용덕 김용실 김용태 김원식 김윤규 김은경 김은성 김은주 김의수 김인기 김인호 김재두 김재우 김재훈 김정민 김정연 김정태 김정훈 김종률 김종애 김종희 김주현 김중석 김지수 김지현

김말숙 김명주 김문재 김미라 김미영 김민경 김민정 김범규 김병화 김보승 김봉선 김상대 김상철 김서현 김선옥 김성균 김성수 김성중 김성희 김소영 김수영 김수호 김숭곤 김시몬 김아리 김연국 김연호 김영미 김영석 김영웅 김영진 김영훈 김옥희 김용두 김용우 김용하 김원재 김윤덕 김은경 김은수 김은주 김의진 김인대 김인환 김재령 김재은 김재흥 김정민 김정열 김정태 김정희 김종명 김종연 김주경 김주현 김중훈 김지수 김지현

김맹환 김명진 김문정 김미란 김미영 김민경 김민지 김범용 김병훈 김보영 김봉태 김상덕 김상호 김석 김선우 김성근 김성아 김성진 김성희 김소영 김수정 김수호 김슬기 김시연 김아리 김연국 김연희 김영미 김영석 김영은 김영탁 김영훈 김완묵 김용락 김용이 김용현 김원주 김윤섭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이슬 김인봉 김일수 김재민 김재철 김정곤 김정배 김정우 김정택 김정희 김종모 김종욱 김주리안 김주희 김증임 김지숙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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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지형 김지혜 김진각 김진갑 김진섭 김진성 김진영 김진영 김진하 김진현 김찬용 김찬주 김철규 김철규 김태겸 김태경 김태석 김태성 김태원 김태원 김태훈 김태훈 김필모 김하나 김학용 김학인 김향기 김헌덕 김현무 김현민 김현식 김현영 김현주 김현주 김현화 김현희 김형욱 김형욱 김혜경 김혜리 김혜원 김혜원 김호진 김호환 김황하 김효민 김휘민 김흥수 김희수 김희승 나민우 나승렬 나채길 나현윤 남남영 남대근 남유경 남은경 남현일 남형석 노금재 노미정 노영민 노영숙 노종면 노진규 늘푸른나무 두은서 류갑선 류은화 류재원 류희준 마성일 명경관 명소현 문경민 문경태 문병원 문병일 문수경 문수만 문주남 문주희 문형천 민경호 민승현 민영록 민혜경 민희웅 박경택 박경희 박기성 박기현 박노원 박노원 박동찬 박동협 박명훈 박무 박민영 박민정 박병수 박병수 박병철 박보현 박상욱 박상원 박서경 박서리 박성규 박성민 박성진 박성철 박소현 박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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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김지호 김진경 김진경 김진솔 김진숙 김진영 김진용 김진호 김진호 김창수 김창용 김철규 김철성 김태경 김태관 김태수 김태연 김태윤 김태이 김태희 김태희 김하성 김하식 김학철 김학희 김헌범 김헌성 김현민 김현석 김현오 김현왕 김현준 김현준 김형국 김형균 김형주 김형준 김혜미 김혜성 김혜정 김혜정 김혹근 김홍국 김효상 김효석 김희경 김희경 김희열 김희원 나승연 나양한 나현채 나현철 남문경 남병철 남은영 남인주 남호삼 남호섭 노민석 노병선 노영숙 노영재 노진호 노현수 다시봄의원 류귀순 류균 류정미 류정민 마자영 마장석 명호민 명호종 문경호 문근숙 문복산 문삼수 문영배 문영하 문준상 문지영 민경훈 민규홍 민영미 민용석 박강호 박건식 박계윤 박광무 박기호 박기호 박노황 박다슬 박동훈 박동희 박문영 박문현 박민호 박민희 박병완 박병원 박보희 박복열 박상율 박상재 박서정 박석규 박성법 박성수 박성현 박성현 박수진 박수현

김지환 김진구 김진숙 김진우 김진호 김창우 김철진 김태규 김태영 김태장 김태희 김하자 김한나 김혁 김현수 김현응 김현준 김형기 김형준 김혜성 김혜정 김홍기 김효선 김희경 김희원 나영애 나혜진 남상모 남인호 남호찬 노삼식 노영환 노현정 도방주 류동훈 류주형 마준채 모광희 문다혜 문상두 문영호 문진수 민동기 민일홍 박경근 박광우 박길우 박대선 박래혁 박미애 박민희 박병은 박부열 박상철 박석운 박성영 박성혜 박수현

김지회 김진국 김진업 김진웅 김진홍 김창일 김춘광 김태균 김태영 김태준 김택수 김하진 김한도 김현 김현수 김현정 김현진 김형남 김형중 김혜성 김혜진 김홍빈 김효순 김희곤 김희정 나옥숙 남건우 남성우 남정용 남효숙 노선영 노원희 노현주 도성 류민지 류지순 마혜란 모명욱 문대권 문석용 문옥심 문진숙 민만기 민정 박경문 박광훈 박길주 박대성 박리브가 박미정 박범진 박병일 박삼규 박상태 박선민 박성우 박성호 박숙희

김지훈 김진규 김진열 김진일 김진홍 김창회 김춘균 김태균 김태오 김태진 김택준 김학곤 김한상 김현경 김현숙 김현정 김현진 김형남 김형진 김혜숙 김호경 김홍일 김효식 김희곤 김희정 나의영 남경숙 남소영 남주희 노경만 노수일 노윤정 노현호 도인태 류병열 류찬호 마희영 모영신 문덕범 문성길 문은상 문창영 민미선 민정옥 박경선 박귀용 박꽃님 박대일 박말태 박미진 박병관 박병주 박상규 박상현 박선영 박성원 박성호 박순고

김지훈 김지훈 김진만 김진무 김진영 김진영 김진정회·이철호 김진환 김진희 김채빈 김천수 김춘호 김충녀 김태균 김태균 김태완 김태완 김태형 김태형 김택희 김판수 김학동 김학모 김한수 김한종 김현경 김현구 김현숙 김현숙 김현정 김현정 김현철 김현철 김형배 김형섭 김형진 김형철 김혜연 김혜영 김호림 김호석 김홍일 김홍주 김효은 김효중 김희규 김희동 김희홍 김힘찬 나인호 나종찬 남광열 남궁정 남수현 남영권 남준우 남지현 노경진 노경채 노승민 노승현 노은기 노인호 노형우 노호균 도정은 도진명 류성률 류성진 류창하 류현우 맹준열 맹지영 모영용 목정민 문덕순 문미원 문성식 문성우 문인주 문재권 문천풍 문태숙 민병규 민병희 민준기 민진식 박경선 박경순 박규장 박균태 박남규 박남숙 박대현 박도수 박명렬 박명주 박미현 박미희 박병규 박병규 박병주 박병준 박상우 박상우 박상현 박상현 박선영 박선주 박성원 박성원 박성희 박성희 박순명 박순숙

김지희 김진범 김진영 김진철 김진희 김철 김치연 김태균 김태우 김태호 김평호 김학배 김해성 김현국 김현식 김현정 김현철 김형수 김혜경 김혜영 김호성 김홍준 김효진 김희선 나경렬 나준영 남극현 남예람 남태경 노광일 노승희 노정숙 노호현 도필환 류승준 류형욱 맹찬형 문건대 문미정 문성준 문재홍 문현숙 민보경 민찬홍 박경태 박근영 박남훈 박동구 박명철 박민섭 박병규 박병준 박상욱 박상호 박선희 박성원 박세진 박순용

김진 김진산 김진영 김진태 김찬 김철관 김칠성 김태민 김태우 김태호 김평환 김학범 김행정 김현대 김현식 김현주 김현택 김형수 김혜경 김혜영 김호중 김환균 김훈재 김희수 나기문 나창수 남기욱 남오연 남현수 노귀성 노시화 노정훈 노희경 동소연 류연숙 류호성 명가영 문경란 문병수 문소라 문종서 문현주 민선홍 민형원 박경태 박근영 박노곤 박동수 박명화 박민수 박병근 박병진 박상욱 박상희 박성귀 박성제 박소동 박순정


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박순찬 박연선 박영일 박옥희 박우섭 박윤정 박인 박재영 박정규 박정애 박정홍 박종길 박종아 박주창 박준형 박지영 박진아 박진호 박천생 박태기 박한엽 박현애 박형인 박호영 박흥규 방기철 배경선 배연정 배준영 백기욱 백수진 백승철 백재혁 변상욱 변정목 부영관 서경일 서동욱 서병수 서승욱 서원명 서일영 서정화 서혜남 선상원 설희준 성한경 손광일 손병훈 손영진 손정애 송기권 송명숙 송보미 송영석 송은정 송정훈 송지훈

박순천 박연수 박영일 박완규 박우정 박윤탁 박인숙 박재영 박정민 박정애 박정훈 박종남 박종언 박주하 박준형 박지영 박진영 박진호 박천재 박태선 박한용 박현용 박형철 박호원 박희득 방민수 배경애 배영준 배지영 백기현 백수현 백신덕 백정미 변상준 변지연 부형택 서광희 서동환 서병찬 서승학 서원철 서장식 서정화 서혜정 선승연 성기남 성한표 손기찬 손보라 손우정 손종운 송기인 송명언 송보연 송영숙 송은정 송종기 송진영

박순태 박순태 박순홍 박연우 박연재 박영규 박영재 박영조 박영진 박완식 박용규 박용수 박우진 박운 박운용 박은경 박은미 박은상 박인식 박인우 박인헌 박재욱 박재필 박재현 박정민 박정삼 박정선 박정운 박정자 박정진 박정희 박제선·이슬비 박종민 박종배 박종부 박종완 박종원 박종원 박주현 박주현(박효수) 박준희 박준희 박중혁 박지용 박지웅 박지윤 박진영 박진우 박진주 박진환 박찬모 박찬일 박철규 박철수 박철우 박태성 박태순 박태영 박한철 박해령 박해부 박현재 박현정 박현주 박혜경 박혜경 박혜련 박호일 박화석 박환신 박희성 박희승 박희영 방성근 방성문 방윤규 배나은 배대권 배상길 배영철 배용호 배유재 배지영 배진모 배진형 백동승 백동훈 백민정 백승기 백승무 백승아 백영란 백영직 백영화 백정화 백종선 백종필 변선수 변성학 변성혁 변지철 변진극 변창형 빈성용 사공차랑 사수현 서근범 서기환 서대원 서명교 서명준 서무근 서보영 서본근 서상욱 서연경 서영관 서영석 서월석 서유택 서유하 서재관 서재승 서정문 서정환 서정훈 서종화 서홍석 서효원 석상훈 선주리(신병근) 선혜주 성기옥 성기정 성기형 성현진 성희연 소강혁 손기현 손기호 손대규 손상혁 손상흠 손석진 손운웅 손원휘 손유니 손중양 손진철 손창배 송길석 송낙주 송대갑 송명진 송명희 송미나 송보현 송선아 송선희 송영운 송요훈 송용암 송은주 송인강 송인덕 송종호 송주휘 송준관 송창건 송천호 송철민

박슬기 박영규 박영태 박용승 박원식 박은주 박인혜 박재현 박정선 박정포 박제성 박종서 박종훈 박주호 박지선 박지인 박진철 박찬헌 박철웅 박태율 박해정 박현진 박혜성 박효경 박희원 방윤호 배상윤 배윤호 배천수 백봉삼 백승우 백윤아 백진웅 변승순 변태영 상덕규 서대천 서미라 서석범 서영수 서윤옥 서정문 서주연 석원혁 설나영 성미경 소동섭 손동주 손석희 손은영 손창형 송대섭 송미란 송승우 송용호 송인미령 송준규 송충훈

박신 박영미 박영호 박용식 박원일 박은주 박일귀 박재환 박정숙 박정하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기 박지수 박지혜 박진한 박창덕 박철홍 박태희 박헌문 박현철 박혜정 박효은 박희유 방은호 배상호 배은진 백경아 백삼철 백승욱 백은성 백현우 변승우 변현식 상영숙 서덕수 서미선 서성근 서영수 서윤희 서정민 서준혁 석철수 설순자 성부강 소동욱 손명기 손성원 손은정 손충구 송대순 송미선 송승자 송우철 송일식 송준용 송학선

2018. 05

박신서 박영선 박영훈 박용웅 박원표 박은진 박장호 박점희 박정숙 박정현 박제영 박종석 박종훈 박준석 박지수 박지호 박진혁 박창봉 박철환 박평옥 박혁종 박형규 박혜정 박효주 박희정 방정배 배서현 배재철 백광모 백선화 백승재 백은정 백형대 변영식 변화영 서강석 서도원 서민 서성일 서영윤 서은남 서정웅 서지영 선관석 설재욱 성상욱 소민욱 손모선 손성일 손재선 손통일 송대의 송민욱 송승택 송원영 송재열 송준호 송학현

박아람 박영수 박영희 박용주 박윤기 박은환 박재경 박정구 박정순 박정현 박제현 박종선 박종훈 박준오 박지숙 박진만 박진형 박창우 박철훈 박필훈 박현선 박형석 박혜진 박효진 반재윤 방종훈 배석기 배정욱 백광범 백성환 백승주 백인석 백홍종 변영은 복진선 서경국 서동건 서민경 서수경 서영호 서인찬 서정원 서춘원 선길숙 설재호 성용상 소병훈 손미란 손성진 손정대 송경우 송동협 송민홍 송승훈 송원철 송재우 송지아 송한주

박애정 박영숙 박영희 박용하 박윤미 박의호 박재연 박정국 박정식 박정혜 박종건 박종섭 박주연 박준용 박지애 박진성 박진형 박창현 박춘달 박하나 박현숙 박형석 박혜진 박훈상 반현정 방현배 배수미 배정철 백귀정 백수임 백승준 백인환 변규식 변윤정 복향숙 서경석 서동균 서민교 서수경 서영환 서일봉 서정은 서태동 선동욱 설정수 성윤경 손경선 손미영 손영삼 손정락 송규주 송두호 송민희 송연옥 송윤석 송정경 송지용 송해경

박양신 박영순 박옥실 박용현 박윤숙 박이화 박재영 박정국 박정아 박정혜 박종구 박종수 박주은 박준원 박지연 박진실 박진형 박창홍 박태구 박하나 박현숙 박형수 박호 박흥규 방규동 방현철 배승희 배종만 백금렬 백수진 백승직 백일용 변남희 변은화 부근림 서경신 서동예 서범석 서승아 서영훈 서일선 서정파 서한진 선백민 설지원 성은형 손경욱 손병일 손영주 손정민 송근이 송명선 송병기 송영대 송은미 송정우 송지훈 송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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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송혜란 송혜미 송효열 신기영 신기훈 신낙현 신동호 신동호 신명교 신봉철 신상철 신선철 신승연 신연숙 신연실 신윤석 신윤진 신은수 신정우 신정호 신정환 신찬섭 신창호 신천우 신현 신현갑 신현길 신화프린팅코아퍼레이션(주) 심성희 심세엽 심승관 심재익 심재현 심재훈 심효진 심훈 아영미 안길순 안대권 안대성 안병욱 안병일 안병주 안선진 안성남 안성미 안순섭 안순주 안순태 안용석 안용수 안은영 안종욱 안종철 안종환 안진걸 안진우 안진홍 안효광 안효민 안훈모 양동철 양동춘 양동파 양선미 양선화 양성규 양영삼 양영선 양영아 양재선 양재영 양재창 양해구 양현경 양현남 양희철 어성희 어수헌 엄인용 엄재현 엄재희 여영옥 여운준 여운혁 염민선 염상균 염수정 오경태 오경호 오경환 오명재 오명환 오미선 오상일 오상훈 오선모 오세철 오세희 오수형 오연호 오영은 오영일 오의환 오인석 오인선 오창목 오창석 오창훈 오형옥 오혜경 오홍영 우대일 우도양 우상민 우종욱 우종현 우호석 원용무 원용선 원용진 위태윤 위훈희 유경리 유기홍 유길연 유내선 유민수 유민아 유민지 유상하 유석묵 유선욱 유애리 유연수 유영경 유원경 유원영 유윤지 유정아 유정일 유정현 유준호 유중열 유지숙 유현 유현경 유현종 유환선 유희락 유희영 윤길자 윤나영 윤대문 윤병양 윤병재 윤복남 윤선희 윤성광 윤성규 윤숙희 윤순재 윤순정 윤영철 윤예랑 윤용남 윤은정 윤인규 윤인태 윤종성 윤종연 윤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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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훈 신남수 신명철 신성균 신영수 신은하 신종열 신춘근 신현민 신희령 심영구 심정보 안강기 안대훈 안병준 안성민 안승진 안재민 안주식 안채호 양경자 양명선 양성욱 양용호 양종석 양현명 엄경호 엄정순 여창환 염찬희 오광수 오미숙 오선숙 오순심 오영주 오정교 오철훈 오효순 우상준 우환식 원장희 유경아 유동선 유범준 유선호 유영모 유은주 유정희 유지향 유현진 윤경자 윤덕한 윤상숙 윤성도 윤승후 윤용석 윤재국 윤종욱

송훈 신동관 신문수 신성희 신영식 신응균 신주연 신태범 신현실 신희철 심영섭 심정원 안건영 안동운 안병진 안성은 안영건 안재우 안주원 안태원 양규식 양문석 양슬기 양우경 양종진 양현정 엄기웅 엄정우 여태문 염혜영 오기택 오민상 오선실 오승목 오원교 오정한 오춘영 오흥실 우선호 원경재 원제환 유경애 유동숙 유병선 유선희 유영민 유은하 유종석 유지현 유형기 윤광규 윤동현 윤상열 윤성수 윤신정 윤용신 윤정문 윤종혁

송희성 신동국 신미현 신소요 신용호 신의용 신주원 신태섭 신형직 신희철 심용정 심종문 안겨라 안동호 안병천 안성일 안영배 안재현 안준상 안판석 양규하 양미숙 양승동 양유경 양종혁 양혜영 엄기환 엄지선 여현호 염흥섭 오기현 오민석 오선영 오승민 오원석 오정훈 오충환 오희성 우수경 원동주 원종수 유경한 유동식 유병선 유성국 유영옥 유은하 유종오 유진만 유형우 윤광렬 윤렬 윤상일 윤성호 윤여덕 윤원구 윤정배 윤종현

송희준 신동규 신미희 신소정 신우용 신인재 신지연 신태진 신혜경 심대현 심우철 심주영 안경호 안동환 안상준 안성희 안영배 안정빈 안준연 안향미 양길승 양부순 양승복 양윤미 양주연 양홍석 엄대현 엄진섭 연성철 예성혁 오남영 오민석 오선영 오승민 오원주 오정훈 오태훈 옥동훈 우원형 원동현 원종효 유관열 유동현 유병철 유성용 유영주 유인경 유종혁 유진원 유혜영 윤광영 윤명자 윤서정 윤세민 윤여현 윤유상 윤정임 윤주석

승태숙 신동원 신민수 신수정 신원범 신재민 신지영 신하영 신혜영 심명숙 심원도 심준섭 안광일 안문규 안상찬 안세훈 안영선 안정희 안중모 안현기 양덕수 양삼주 양승혁 양은정 양주영 양홍열 엄동수 엄진영 연승익 오경수 오덕칠 오병남 오선희 오승석 오은미 오종문 오필웅 옥일권 우은아 원상규 원진희 유광종 유명선 유보현 유세경 유영준 유일선 유종혁 유창근 유혜정 윤구현 윤무종 윤석구 윤소연 윤연희 윤유현 윤정현 윤주승

신경호 신동진 신민영 신수정 신원수 신재석 신진철 신학재 신혜정 심민혁 심원보 심진석 안교찬 안민석 안서훈 안소랑 안영완 안종남 안중식 안형노 양덕춘 양상오 양안나 양은진 양진용 양효준 엄문용 엄효선 연제창 오경아 오동운 오봉열 오성일 오승열 오은영 오중열 오한웅 옥진욱 우인회 원숙희 원창수 유규진 유명자 유복순 유세은 유영호 유재승 유주연 유창현 유호건 윤국희 윤문경 윤석용 윤소원 윤영균 윤은숙 윤정호 윤준기

신기섭 신동찬 신민정 신순옥 신유진 신정근 신진태 신한준 신혜진 심상진 심유성 심창용 안규만 안병건 안선경 안소연 안영주 안종문 안중욱 안혜연 양도일 양상일 양여원 양의청 양철원 양희정 엄민형 여건구 연제희 오경주 오동헌 오상경 오성태 오언종 오은정 오지영 오행운 왕수용 우재현 원영재 원희재 유근완 유명제 유상균 유세진 유영화 유재헌 유주연 유태경 유홍구 윤근배 윤민숙 윤석주 윤수정 윤영삼 윤은숙 윤정환 윤준의

신기식 신동향 신병현 신승배 신유진 신정신 신진형 신행준 신홍범 심상택 심은영 심현보 안규창 안병기 안선정 안수철 안영진 안종수 안진 안혜영 양동복 양석용 양연진 양인국 양한승 양희정 엄순오 여선호 염기현 오경진 오명규 오상영 오세진 오연경 오은주 오지혜 오현탁 용상구 우제열 원오희 위영호 유금주 유미라 유상원 유신호 유운상 유정선 유준영 유한경 유환석 윤기선 윤범영 윤석호 윤수현 윤영지 윤은정 윤정희 윤중옥


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윤지선 윤필석 윤효석 이강원 이경례 이경일 이계남 이교성 이금정 이기호 이남훈 이대전 이동규 이동주 이래연 이명희 이미리 이미희 이배근 이병선 이봉우 이상기 이상술 이상익 이상화 이상희 이선우 이성광 이성지 이소유 이수남 이수현 이슬아 이승용 이승준 이승호 이연경 이영미 이영철 이오철 이용석 이용준 이우현 이원희 이윤숙 이은구 이은영 이은하 이인선 이재민 이재영 이재천 이전석 이정미 이정신 이정일 이정훈 이종미

윤지은 윤현숙 윤후상 이강일 이경미 이경임 이계숙 이교칠 이기린 이기호 이내규 이대중 이동근 이동주 이만성 이명희 이미선 이민구 이백운 이병설 이부덕 이상덕 이상승 이상일 이상화 이석 이선웅 이성남 이성헌 이소진 이수민 이수현 이승계 이승우 이승준 이승호 이연경 이영복 이영한 이오현 이용석 이용진 이운영 이유리 이윤애 이은규 이은영 이은해 이인성 이재복 이재영 이재철 이전희 이정복 이정아 이정임 이정훈 이종민

윤진경 윤형열 윤희탁 이강표 이경미 이경자 이관명 이군순 이기명 이기환 이내영 이덕수 이동근 이동찬 이만영 이명희 이미연 이민숙 이백준 이병용 이부지랑 이상돈 이상엽 이상준 이상훈 이석인 이선주 이성렬 이성현 이소혜 이수연 이숙희 이승규 이승우 이승진 이승호 이연호 이영삼 이영혜 이옥진 이용석 이용철 이원 이유미 이윤정 이은령 이은영 이은희 이인철 이재성 이재우 이재혁 이정 이정상 이정애 이정태 이제 이종보

윤진숙 윤형진 은창현 이강헌 이경민 이경재 이관용 이규석 이기범 이기훈 이노형범 이도섭 이동명 이동철 이명문 이무섭 이미영 이민재 이범석 이병하 이삼희 이상래 이상요 이상준 이상훈 이선경 이선주 이성렬 이성호 이송이 이수영 이순분 이승민 이승우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선 이영화 이옥희 이용성 이용택 이원근 이유미 이윤정 이은미 이은재 이은희 이인향 이재숙 이재우 이재혁 이정갑 이정석 이정애 이정택 이제용 이종수

윤진희 윤찬기 윤창일 윤혜경 윤혜진 윤호정 이가희 이강두 이강룡 이강호 이건 이건우 이경범 이경수 이경수 이경제 이경철 이경화 이광규 이광인 이광찬 이규재 이균락 이근수 이기복 이기수 이기수 이나미 이낙연 이남경 이다미 이다혜 이대건 이도연 이도영 이동관 이동수 이동수 이동애 이동해 이동헌 이동현 이명순 이명우 이명원 이문규 이문복 이문숙 이미영 이미옥 이미자 이민정 이민정 이민철 이범재 이범찬 이병국 이병학 이병학 이보나 이상걸 이상경 이상국 이상목 이상목 이상미 이상용 이상욱 이상욱 이상철 이상춘 이상필 이상훈 이상훈 이상훈 이선규 이선근 이선명 이선호 이선화 이선화 이성미 이성백 이성연 이성환 이성희·차준성 이송지혜·박상남 이수 이수용 이수원 이수일 이순영 이순옥 이순임 이승민 이승신 이승연 이승욱 이승원 이승은 이승철 이승철 이승한 이승훈 이시원 이시현 이연희 이영 이영관 이영순 이영심 이영암 이영환 이영환 이영환 이완기 이용구 이용규 이용수 이용신 이용우 이용필 이용화 이용희 이원근 이원도 이원복 이유미 이유원 이유진 이윤종 이윤주 이윤태 이은성 이은숙 이은숙 이은정 이은정 이은정 이의영 이의행 이익주 이일섭 이자영 이장묵 이재승 이재식 이재식 이재욱 이재욱 이재운 이재현 이재현 이재호 이정국 이정국 이정기 이정석 이정석 이정선 이정연 이정오 이정용 이정현 이정화 이정화 이제운 이제헌 이제혁 이종숙 이종식 이종실 2018. 05

윤창현 윤호진 이강문 이건욱 이경수 이경환 이광철 이근영 이기은 이남석 이대로 이동구 이동원 이동현 이명재 이문자 이미자 이민형 이병규 이보나 이상귀 이상미 이상웅 이상학 이상훈 이선미 이선희 이성우 이세용 이수강 이수정 이순전 이승열 이승일 이승헌 이신형 이영구 이영운 이영환 이용기 이용우 이우경 이원복 이유철 이윤호 이은순 이은주 이익주 이장희 이재식 이재웅 이재호 이정란 이정선 이정우 이정환 이제훈 이종열

윤철기 윤홍렬 이강욱 이건진 이경순 이경훈 이광표 이근행 이기철 이남숙 이대연 이동규 이동원 이동협 이명재 이문준 이미정 이민형 이병남 이보라 이상균 이상민 이상윤 이상해 이상훈 이선애 이선희 이성은 이세진 이수경 이수진 이순홍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안나 이영균 이영은 이영희 이용대 이용운 이우경 이원재 이윤 이윤희 이은실 이은주 이인규 이재경 이재식 이재원 이재홍 이정란 이정섭 이정윤 이정훈 이조은 이종욱

윤철용 윤화중 이강욱 이겨레 이경순 이경희 이광호 이근형 이기태 이남임 이대욱 이동규 이동원 이동환 이명헌 이미경 이미향 이민화 이병문 이보윤 이상근 이상붕 이상은 이상현 이상훈 이선영 이선희 이성인 이소영 이수경 이수진 이슬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애영 이영록 이영음 이영희 이용마 이용주 이우민 이원주 이윤기 이은경 이은아 이은지 이인라 이재구 이재연 이재윤 이재화 이정묵 이정승 이정은 이정훈 이존희 이종원

윤태용 윤환상 이강욱 이경 이경영 이경희 이광훈 이근호 이기택 이남표 이대원 이동규 이동은 이동희 이명화 이미란 이미현 이민희 이병민 이봉수 이상기 이상선 이상의 이상호 이상희 이선옥 이성관 이성재 이소영 이수경 이수헌 이슬비 이승용 이승주 이승현 이양애 이영미 이영찬 이예술 이용석 이용준 이우철 이원형 이윤석 이은경 이은열 이은진 이인배 이재명 이재영 이재은 이재훈 이정미 이정식 이정이 이정훈 이종기 이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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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종인 이종흔 이주현 이준형 이지영 이지형 이진아 이창경 이창희 이춘자 이태은 이필희 이행희 이혁승 이현송 이현주 이형걸 이혜영 이홍란 이후삼 이희정 임관수 임두현 임성래 임식경 임우선 임정수 임지영 임태수 임현일 장기혁 장문규 장성식 장연후 장용화 장윤 장재웅 장택수 장희상 전동열 전상구 전순미 전일근 전진 전희만 정국화 정길화 정동수 정문종 정민영 정봉근 정석구 정성문 정수근 정슬기 정연우 정영진 정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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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이종희 이주현 이준호 이지원 이진 이진영 이창길 이채민 이춘홍 이태환 이하영 이향복 이혁진 이현수 이현주 이형규 이혜영 이홍복 이훈 인상우 임광식 임매순 임성율 임안수 임우요 임정식 임지웅 임태윤 임형석 장나리 장문택 장성훈 장영덕 장우봉 장윤미 장점봉 장학중 전갑진 전명옥 전상우 전연희 전재수 전창성 정가람 정군주 정길훈 정동익 정문주 정민주 정부활 정석구 정성식 정수미 정승용 정영 정영춘 정용해

이종청 이주민 이주형 이준호 이지원 이진경 이진영 이창석 이철영 이충걸 이태훈 이학민 이향자 이현 이현수 이현주 이형상 이혜인 이홍석 이훈우 인선홍 임규섭 임명국 임성재 임영섭 임우택 임종규 임지원 임태진 임형수 장대열 장미애 장소희 장영묵 장우석 장윤석 장정우 장한무 전경일 전명욱 전상주 전영일 전재현 전태진 정경두 정귀연 정낙우 정동철 정미란 정민현 정산 정석근 정성우 정수양 정승우 정영교 정영하 정용희

이종한 이주식 이주홍 이준희 이지윤 이진구 이진욱 이창용 이철우 이충기 이태희 이학범 이향희 이현경 이현숙 이현주 이형욱 이혜정 이홍장 이훈희 인용현 임나연 임병수 임성준 임영수 임원양 임종문 임지원 임필순 임혜경 장덕용 장병옥 장수규 장영수 장우성 장은아 장종윤 장한식 전광배 전명원 전선형 전영재 전정숙 전평구 정경성 정규현 정남주 정득철 정미선 정민호 정상모 정석인 정성원 정수영 정승헌 정영교 정영학 정우성

이종헌 이주연 이주희 이중각 이지은 이진길 이진이 이창우 이철재 이충렬 이택기 이학춘 이헌석 이현구 이현숙 이현진 이혜경 이혜정 이화구 이희길 인유진 임남규 임상진 임성환 임영숙 임장원 임종섭 임진수 임학현 임혜림 장동민 장병춘 장수익 장영숙 장우철 장은영 장중현 장해랑 전광수 전미경 전성수 전예화 전제훈 전한수 정경순 정근희 정다훈 정래훈 정미숙 정민호 정상안 정석조 정성필 정수영 정승환 정영규 정영현 정우진

이종현 이주엽 이준기 이중섭 이지전 이진선 이진혁 이창우 이철호 이충영 이택순 이한규 이헌수 이현미 이현식 이현진 이혜담 이호성 이화신 이희선 인정임 임다심 임선규 임송섭 임영숙 임재경 임종안 임진순 임한신 임혜영 장동욱 장상길 장수진 장영욱 장욱상 장은영 장지현 장현주 전금희 전미선 전성애 전용우 전종수 전한진 정경호 정기동 정대선 정만수 정미숙 정백란 정상영 정선아 정성현 정수진 정승환 정영락 정영훈 정운봉

이종호 이주용 이준수 이중헌 이지해 이진섭 이진화 이창준 이철희 이충인 이택양 이한섭 이헌용 이현미 이현아 이현철 이혜란 이호웅 이화형 이희숙 인창규 임덕진 임선영 임수재 임영우 임재영 임종업 임진우 임향란 임홍갑 장동주 장상득 장애령 장영익 장원석 장인석 장진숙 장형종 전기정 전미자 전성일 전용주 전종우 전혜숙 정경희 정기영 정대현 정명구 정미옥 정병규 정상용 정선영 정성현 정수철 정시연 정영무 정영훈 정원교

이종호 이주철 이준엽 이지민 이지현 이진숙 이진희 이창현 이청수 이충환 이평세 이한주 이헌의 이현민 이현우 이현태 이혜성 이호진 이회국 이희완 인현식 임도영 임선영 임수정 임영환 임재하 임종우 임창빈 임헌영 임흥규 장동호 장석운 장연미 장영채 장원석 장인선 장진호 장혜경 전다슬 전미희 전성호 전우진 전준희 전호용 정경희 정기영 정덕순 정명옥 정미옥 정병규 정상조 정선화 정성훈 정수현 정안수 정영민 정옥희 정원석

이종호 이주학 이준영 이지상 이지현 이진숙 이진희 이창형 이청희 이태범 이표 이한진 이헌철 이현민 이현재 이현혁 이혜숙 이호진 이효석 이희용 인호진 임동이 임선정 임승빈 임옥균 임재형 임종헌 임채영 임현 장국남 장두영 장선경 장연선 장용광 장원철 장인철 장창호 장혜숙 전대석 전민선 전수경 전원실 전지영 전홍표 정광택 정기은 정덕진 정명진 정미정 정병석 정상준 정성균 정세원 정숙경 정양석 정영연 정완균 정원영

이종환 이주한 이준영 이지숙 이지현 이진순 이차동 이창호 이춘상 이태신 이필규 이한표 이혁 이현민 이현정 이현희 이혜승 이호진 이효정 이희용 임강섭 임동준 임선하 임승철 임완란 임정규 임주현 임충주 임현무 장기석 장명숙 장성룡 장연수 장용숙 장유식 장인호 장철영 장호걸 전대진 전민용 전수영 전인배 전지현 전흥표 정광현 정기주 정도영 정명현 정미진 정병용 정상진 정성길 정세훈 정순건 정여진 정영주 정용석 정원철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연 이지현 이진식 이찬은 이창희 이춘옥 이태욱 이필원 이행영 이혁수 이현봉 이현정 이현희 이혜연 이홍구 이효진 이희윤 임강훈 임동환 임성대 임승희 임용만 임정민 임지영 임치형 임현수 장기섭 장명훈 장성봉 장연우 장용철 장유정 장재기 장태욱 장홍석 전도훈 전병탁 전숙현 전인원 전지현 전희만 정국진 정길용 정동경 정문기 정민 정병욱 정새원 정성대 정세훈 정순호 정연구 정영주 정용우 정유경


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정유나 정유림 정유진 정은수 정응섭 정응희 정일찬 정장환 정재경 정재철 정재형 정점숙 정주영 정주영 정주영 정지하 정지혁 정지현 정진화 정찬무·강윤경 정철윤 정철훈 정청래 정해욱 정해인 정향미 정현주 정현진 정혜란 정호영 정호인 정홍섭 정희영 정희종 정희진 조경록 조경민 조경민 조규범 조규숙 조근성 조룡상 조명아 조명옥 조민성 조민숙 조민지 조상기 조상현 조상현 조성민 조성연 조성연 조수연 조수영 조수장 조영수 조영식 조영식 조유식 조유정 조윤정 조장훈 조재성 조정아 조진석 조진오 조짐모 조한웅 조해관 조해나 조현정 조현주 조현준 조환규 조회경 조효근 주상모 주상현 주선혜 주영희 주완돈 주유인 주한나 주현우 주현정 지민숙 지병현 지삼녀 지택현 지형락 지혜선 진남희 진덕수 진보라 차민숙 차상훈 차성환 차정자 차지훈 차형민 채희진 천기호 천대철 천승환 천용우 천정은 최경 최경순 최경식 최광진(1358k) 최광호 최낙훈 최달호 최대건 최동현 최동훈 최두영 최미라 최미선 최미아 최병호 최병호 최병흥 최상열 최상필 최상한 최선용 최선욱 최선희 최세경 최세성 최세연 최순규 최순천 최슬기 최시연 최아현 최안진경 최영아 최영애 최영우 최옥현 최용수 최용식 최유진 최유환 최윤대 최은미 최은순 최은심 최의순 최의찬 최인미 최재규 최재균 최재욱 최정규 최정록 최정미 최정훈 최정희 최정희 최주리 최주원 최주희 최지영 최지용 최지용

정유희 정윤섭 정의석 정이랑 정재관 정재권 정정기 정정일 정준형 정준호 정진 정진근 정찬미 정찬영 정태성 정태화 정헌수 정현락 정혜선 정혜아 정화동 정화숙 정희찬 제갈종길 조경신 조경희 조남득 조대현 조명훈 조무상 조민혁 조민형 조석우 조선미 조성오 조성은 조수호 조승현 조영희 조예진 조윤주 조윤호 조정화 조정훈 조창현 조철원 조해성 조해형 조현진 조현호 조훈제 조휘행 주성기 주성종 주은수 주은현 주현주 주형민 지선희 지수경 지혜영 진각유 진상훈 진수호 차영옥 차영천 채도진 채명길 천명주 천무영 천지현 천태현 최경아 최경영 최규남 최근석 최대섭 최대식 최명순 최명식 최미애 최미영 최보영 최보영 최상호 최석봉 최성관 최성권 최소미(정성연) 최승규 최승혁 최양희 최영균 최영주 최영준 최우람 최우복 최윤실 최윤영 최은아 최은자 최인섭 최인숙 최재웅 최재원 최정순 최정식 최종관 최종금 최준규 최준락 최지원 최지윤

정윤영 정윤우 정익수 정인 정재련 정재석 정정일 정종운 정지석 정지연 정진산 정진상 정창숙 정창운 정태휘 정택일 정현석 정현석 정혜영 정혜영 정효상 정효준 제명신 제백문 조광연 조광훈 조동연 조동원 조문성 조미경 조민호 조민환 조선미 조선영 조성일 조성지 조아라 조안나 조용감 조용준 조은미 조은실 조정희 조종현 조치훤 조탁현 조향연 조향옥 조혜경 조혜련 조희정 조희정 주성태 주수석 주인선 주재환 주혜진 주홍근 지영선 지용동 진경희·이산하 진재욱 진창훈 차옥숭 차은선 채수인 채어진 천민경 천복기 천혜빈 천홍권 최경원 최경주 최근철 최기영 최도훈 최동선 최명찬 최명호 최민선 최민섭 최보윤 최봉산 최석종 최석태 최성일 최성하 최소영 최수정 최승호 최승호 최영묵 최영민 최영준 최영철 최우석 최우진 최윤정 최윤정 최은주 최은지 최인정 최인창 최재혁 최재혁 최정실 최정운 최종목 최종문 최중억 최중일 최지환 최지훈

2018. 05

정윤종 정은 정은경 정인기 정인선 정인원 정재원 정재천 정재철 정종원 정종일 정종주 정지영 정지은 정지은 정진숙 정진욱 정진익 정창인 정창현 정창호 정택준 정필모 정한석 정현석 정현선 정현숙 정혜정 정혜진 정호식 정효진 정희경 정희경 제용순 제지현 조강일 조국연 조권도 조귀환 조동주 조동준 조동준 조미란 조미숙 조미연 조민희 조병창 조병현 조선이 조성국 조성래 조성진 조성환 조소원 조연경 조영구 조영규 조용진 조용필 조용화 조은영 조인한 조인혜 조준호 조중훈 조지연 조태호 조태훈 조하나 조현 조현경 조현구 조혜연 조혜영 조홍찬 조희화 주강호 주경선 주수진 주식회사동민툴링 주정규 주지혁 주진택 주희운 지경주 지광해 지은희 지정구 지준옥 진광호 진교영 진규엽 진형범 진희영 차기현 차은호 차의섭 차익준 채영미 채장기 채창병 천석봉 천성하 천세환 철오 큰스님 최갑식 최경희 최광식 최광옥 최기윤 최기은 최기철 최동수 최동신 최동진 최명희 최무현 최문규 최민섭 최민희 최병석 최봉호 최상득 최상민 최선 최선근 최선미 최성헌 최성혁 최성호 최수진 최수현 최숙경 최승환 최승훈 최승희 최영민 최영식 최영식 최영태 최영학 최영희 최웅식 최원석 최원일 최윤준 최윤희 최융 최은지 최은희 최은희 최인호 최인희 최장근 최재현 최재호 최재환 최정해 최정호 최정훈 최종배 최종성 최종식 최지수 최지양 최지연 최진각 최진규 최진동

정은경 정인희 정재철 정주란 정지은 정진홍 정채영 정해문 정현영 정호엽 정희금 조경래 조규민 조동현 조미형 조봉매 조성민 조수연 조영수 조우일 조일제 조진모 조학현 조현동 조환 주미영 주영삼 주하형 지근성 지창훈 진남순 차문조 차인섭 채희명 천승철 최강호 최광웅 최낙선 최동철 최미라 최병주 최상열 최선영 최성황 최숙희 최시안 최영아 최오수 최유경 최은동 최은희 최장옥 최재환 최정훈 최종윤 최지영 최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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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최진솔 최태명 최현재 추명성 편성훈 하성용 하지영 한경선 한보경 한성우 한승주 한영진 한제영 한현희 함판식 허영진 허준기 현상윤 홍기성 홍석구 홍수정 홍영기 홍주표 홍현준 황명식 황상순 황승동 황인찬 황충모 jun Jo

최차봉 최참 최태선 최태용 최현주 최현진 추민경 추연균 표석 표수호 하영은 하용근 하지혜 하춘욱 한경송 한귀순 한삼덕 한상덕 한성욱 한성일 한승철 한승희 한오형 한용주 한주엽 한준희 한혜란 한호석 허대영 허미진 허옥현 허용수 허진 허창구 현승준 현영권 홍난희 홍남균 홍석진 홍석훈 홍수호 홍순풍 홍인선 홍인용 홍주희 홍준기 홍형숙 홍혜진 황명필 황명혜 황상인 황선영 황승미 황승용 황인희 황재희 황태근 황태원 jungsil choi

최창규 최창석 최하늘 최한성 최형순 최형용 추연숙 추원호 표완수 표지영 하원식 하은경 하치동 하태욱 한기성 한동균 한상복 한상용 한성환 한세용 한신애 한애경 한용희 한우 한진석 한찬우 한효진 한희정 허상대 허성 허욱 허육 허창수 허창수 현영돈 현용주 홍다혜 홍미숙 홍선비 홍성모 홍순형 홍승수 홍일봉 홍장혁 홍지훈 홍진 황경희 황광수 황미선 황미연 황성수 황성식 황승훈 황애자 황정기 황정현 황태현 황현성 mikyung park

최창수 최창식 최해창 최헌 최혜영 최혜진 추일웅 추점자 하경옥 하광우 하재기 하재원 하태웅 하헌미 한로사 한만정 한상일 한상일 한소연 한수정 한애련 한연기 한우전 한운동 한찬희 한철모 함보현 함석일 허성식 허성식 허인순 허재우 허태준 허태환 현일훈 현정 홍미영 홍미정 홍성원 홍성재 홍승혁 홍승현 홍재범 홍재완 홍진숙 홍진일 황광순 황교남 황민우 황민지 황성애 황성운 황영민 황용석 황준범 황준혁 황현주 황현표 Moon Ho Hwang

최창우 최철원 최혁 최현근 최홍덕 최홍석 추준안 탁미란 하국봉 하대호 하재철 하정선 하현주 한갑수 한명선 한미희 한서윤 한서현 한승동 한승우 한영관 한영선 한윤희 한인섭 한철우 한충희 함선호 함종빈 허수련 허영강 허정운 허정현 허현주 허혜민 현주 호혜정 홍민 홍민희 홍성주 홍성진 홍승훈 홍승희 홍정배 홍정윤 홍태용 홍해정 황규석 황덕홍 황병원 황보영근 황성준 황성하 황운선 황의근 황중길 황지현 황혜성 황화인 sunghye mun

최춘식 최현영 최희동 탁승수 하상필 하정순 한강희 한병기 한석만 한승윤 한영식 한일희 한택규 함지영 허영수 허정화 현기남 홍경진 홍병진 홍수영 홍연 홍정환 홍현봉 황도형 황보인구 황수민 황인 황지훈 황희관

신입회원 여러분

2018년 3월 신규 가입 회원

반갑습니다

강장윤

강희윤

김나윤

김봉하

김수린

김수향

김진혁

김치연

김한나

문지영

변상욱

송동협

엄재희

우원형

유정현

윤미경

이내영

이주용

이진숙

임동준

전동건

정필모

최민섭

한유주

허선흡

최칠영 최현영 최희영 태은정 하상훈 하지아 한경민 한병철 한성아 한승윤 한영애 한정호 한해진 함진호 허영진 허종환 현기훈 홍기 홍서희 홍수원 홍연금 홍정희 홍현수 황명숙 황부자 황순구 황인성 황춘화 황희원

2018년 3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새로 가입한 25분입니다.

부탁드려요

해당 기간 ‘회원정보 동의’까지 완료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1. 사용하지 않는 계좌는 변경해주세요. 2. 잔액을 채워 주세요. 잔액 부족으로 회비 인출이 되지 않아도 CMS 수수 료는 내야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면 꽤 큰 돈이 됩니다. 3. 나무에게 미안해서 우편물을 받지 않고 싶은 분은 전화로 연락 주세요. 더불어 회비로 운영하는 민언련 살림살이를 더 알뜰하게 할 수 있습니다. 4. 이메일을 등록해 주시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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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회비 관련 문의 전화 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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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심의를 시민이 하면?

민주언론시민연합, ‘시민 방송심의위원회’ 발족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시민 방송심의위원회’를 발족합니다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적절한지, 이러한 심의 기준이 시민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구할 수 있는지,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송과 방통심의위 개혁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주십 시오. 시민 여러분이 주신 소중한 심의 결과는 방통심의위에 전달하여 엄중하고 공정한 심의를 촉구하는 데 사 용하겠습니다

‘시민 방송심의위원회’, 이렇게 진행합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민언련이 제기한 심의 민원 중 방통심의위가 아직 심의하지 않은 사안 1~2건을 매주 안건으로 상정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이주의 심의’에서 올라온 방송을 영상으로 직접 확인하고 설문지를 작성해 ‘시민 심의 의견’을 제출합니다. 민언련은 ‘시민 심의 의견’을 모아 매주 수요일 심 의 결과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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