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활동가 인사 | 김유나
‘보람’이 함께하는 퇴근길 출근 시간은 30분 빨라졌습니다. 버스는 한 번 더 갈아탑니다. 일간지를
자유’를 보장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자유였습니다. 표현할 권리와 알 권리를 뺏
뒤적이려 조금 일찍 일어나고, 놓친 저녁 뉴스를 챙겨보려 조금 늦게 잠듭니
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깨닫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민언련 회원으로,
다. 지난 반 년 사이 제게 일어난 작은 변화들입니다.
누군가는 제작 현장에서, 누군가는 방송사 마당에서 촛불로 나의 자유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민언련에 오기 전, 저는 한 방송사에서 작가로 일했습니다. 작은 목소리까
저는 민언련을 찾았습니다. ‘민주 사회를 만들겠다’, ‘건강한 언론을 세워보겠다’는 대단한
지 크게 전해 보겠다며 택한 일이었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일은 힘들
포부는 없었습니다. ‘내 가족이 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가 좀 더 잘 먹었으면 좋겠
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촬영장에서, 편집방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지새
다, 내 동료가 좀 더 제 목소리 내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소망이 택한 길입니다.
웠습니다.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일한 좋은 사람들 덕분입니
제가 맡은 일은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는 작업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문제 발
다. 제가 만난 ‘방송국 놈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심으로 일하는
언들을 확인합니다. 나쁜 말 중 가장 나쁜 말을 골라 보고서를 씁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
사람들이었습니다.
은 “국가가 허락한 공권력”이라 정당화하고, 촛불 민심은 “종북 세력의 선동”이라 매도하는 시
2014년 4월이었습니다. 모두가 간절히 기적을 바라던 때, 옆 팀이 뒤늦게
대착오적 발언들입니다. 소신으로 위장한 편견입니다. 저는 이들과 이들 뒤에 선 거대한 벽과
세월호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인터뷰 일정도 잡고 진도 취재팀도 꾸렸
맞섭니다. 서툴게 느리게 제 소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더 나쁜 말이 쏟아
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돌연 방송 제작이 취소되었습니다. 늘 그랬듯 또 없
집니다. 벽은 꿈쩍 않고 있습니다.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던 일이 됐습니다. 제가 만나보지 못한 ‘방송국 놈들’ 때문입니다. 가치관과
그때마다, 곱씹는 말이 있습니다. 민언련 회원이기도 한 제 친구가 해 준 이야기입니다. “존
무관한 전문 분야 인터뷰라도 내용보단 인터뷰이 성향이 문제였습니다. 밤새
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있
만든 영상은 다음날이면 가차 없이 수정되었습니다. 어제까지 저와 함께 일
다”
하던 PD는 느닷없이 관리부서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방송국 놈들’ 의 그림자는 그렇게 곳곳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언론의 자유’는 거창한 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들으며 배웠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언론사의 38
퇴근 시간은 길어졌고, 퇴근길도 멀어졌습니다. 그 시간과 그 거리는 보람이 채워줍니다. 오 늘도 ‘나의 하루가 내 가족, 내 친구들의 행복을 지키는데 쓰였길’ 기대하며 사무실을 나섭니 다. 내일도 열심히 달려, 더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하겠습니다. 글 김유나 종편모니터 활동가 stern0413@gmail.com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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