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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 특별좌담

송건호 의장을 말한다 김삼웅·김태진·서중석·정상모


민언련 포커스

2017년 하반기, 민언련은?

이제 무더운 계절이 되었습

그러니 맥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 숨을 고

니다. 2017년 상반기에 민언련

른 뒤 다시 판을 벌여야겠지요. 일단 저희는 지금까지 하

은 탄핵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

던 일을 계속 꾸준하게 할 생각입니다. 민언련 주력사업이

해 달려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었던 언론 모니터 활동은 앞으로도 주요하게 이어나갈 것

저는 최근 심하게 지쳤습니다.

입니다. 특히 MBC와 종편의 왜곡방송에 대한 방송통신

그동안은 앞뒤 돌아보지도 못하고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

심의위원회 민원도 더욱 열심히 넣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는 생각만으로 달려왔는데 뭔가 큰 목표를 이룬 후의

는 언론적폐 청산을 위한 시민행동, 그중에서도 공영언론

허탈감 같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무조건 쉬고 싶은 것

정상화를 위한 여론화에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특히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저뿐 아

MBC, KBS를 국민의 품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올여름과

니고 함께 달려온 활동가 모두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을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

하지만 이런 저희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은

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촛불시민의 힘을 믿습니다. 공영

더 쌓여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다음 날부터 허니문

방송의 양심적 언론인들이 먼저 힘을 모아서 불을 지피고

도 없이 발목잡기 보도가 쏟아져서 모니터 팀은 이전보다

시민사회가 이에 호응한다면, 촛불시민은 공영언론을 국민

더 바쁩니다. 이전에 열심히 모니터하던 매체에서 이제는

의 공론장으로 되찾아올 힘을 모아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한경오’를 모니터하지 않는다는 시민의 질타까지 겹쳐졌습

으로 그동안 미뤄뒀던 민언련 과제들을 챙겨 나가겠습니

니다. 시민의 언론에 대한 제보도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다. 민언련 정책역량 강화, 홍보 활성화, 회원모임 활성화,

언론에 대한 시민의 불신이 참으로 크고 깊어졌음을 피부

언론교육 활성화 등등 하겠다고 말해놓고 미뤄둔 주요한

로 느낍니다.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처럼 국민의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은 커지고 있는데

써놓고 나니 쉴 틈이 없네요. 하지만 저는 이전보다는

새 정부의 언론개혁에 대한 행보는 더디게만 느껴집니다.

조금만 덜 일 하고 더 쉬려고 합니다. 민언련 사무처가 지

세월호 재조사, 4대강 재감사, 검찰개혁을 위한 인사, 노동

속가능하고 행복한 일터가 되게 만드는 일도 다른 어떤 언

현안과 일자리 창출 등의 새 정부의 반가운 개혁 드라이

론개혁 작업만큼 중요한 것이니까요.

브가 나오는 데 비해 아쉽습니다. 그만큼 적폐 청산과 언 론개혁이라는 과제가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 아님을 분명

2017년 하반기, 민언련은 또 다시 힘을 내서 뛰겠습니 다. 모두들 건강한 여름 나십시오!

히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게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기 에 민언련이 해야 할 일이 더 눈에 많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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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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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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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포커스 여는글

종편 감시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 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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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좌담 송건호 의장을 말한다 | 김삼웅·김태진·서중석·정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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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와의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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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언론과 검찰을 개혁해,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

“남들이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 배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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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이완기

“‘이명박근혜’ 시대의 잔혹한 유산들!” | 안건모

기획위원 김경실 김언경 박제선 조영수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장 김은규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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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이야기

피부색이나 성별 말고 능력으로 판단하라고요 | 염찬희

김경실 김서중 김성원 김수정 김언경 박석운 박제선 안건모 이기범 이완기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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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활동가 인사

탈탈탈~ 열심히 털어드리겠습니다 | 이정일

편집기자 김규명 박성원 배나은 안효광 편집기자 유민지 이봉우 이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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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박제선 인쇄 신화프린팅

- 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민언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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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5월 및 2017년 1~5월 결산 보고

발행일 2017년 6월 30일 발행처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주소 (04207)서울 마포대로14가길10 동아빌딩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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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전화 02)392-0181 팩스 02)392-3722 이메일 ccdm1984@hanmail.net 홈페이지 www.ccdm.or.kr 후원계좌 신한 100-019-186241(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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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만나면 좋은 친구’가 그립다 ·페이크 뉴스 -진짜와 가치 사이에서의 저널리즘의 위기 ·조(중)동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 하나 ·적폐 인사의 퇴출이 공영방송 정상화의 첫걸음 ·‘정파적’이란 프레임으로 한국 언론을 바라보아도 되나?

<날자꾸나 민언련>은 민언련이 회원에게 보내드 리는 선물입니다. 또한 공익적 목적으로 도서관 이나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여, 1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동절 ·가짜뉴스, 대선 이후의 언론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대한 미국 진보·보수지의 상반된 논조

에 1만원의 비용을 받고 ‘자료회원’으로 등록해 < 날자꾸나 민언련>을 보내드립니다. 현재 <날자꾸나 민언련>은 화강문화재단의 후원 을 받아 전국의 대안고등학교 도서관과 마포, 은 평, 서대문구의 작은도서관, 지역아동센터에 보내 고 있습니다. 주변에 <날자꾸나 민언련>을 권하고 싶은 분은

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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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1일~30일 후원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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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지정하신 곳으로 보내드 리겠습니다.

문의 070-4849-3027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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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종편 감시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바퀴벌레처럼 숨어있다 눈치 보며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어느 정치 세력에 대 막말만이 아니다. 종편의 얘기이기도 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TV조선 등 3개의 종합편성채널 방 송사를 재승인했다. 심사 점수에 미달한 TV조선에는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 축 소, 1년 동안 법정 제재 3번 받을 경우 프로그램 폐지, 다른 종편에서 제재받 은 진행자·출연자 출연 배제 등 방송의 공정성·공익성·공적 책임을 위해 스 스로 제출한 계획들을 준수하라는 얼핏 까다로워 보이는 조건이 붙었다. 또한, 6개월 이내에 재승인 조건에 대한 이행실적 중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재승인 조건을 반복해서 위반하면, 업무 정지, 청 문, 재승인 취소 등의 절차를 밟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TV조선은 “올해 새롭 게 태어나는 원년으로 삼겠다”며 바짝 엎드리는 체했다. 진정성은 매우 의심스 럽다. 지난 2014년 심사에서도 TV조선은 공적 책임·공정성 확보방안 마련 등 을 조건으로 재승인을 받았지만, 오보·막말·편파보도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시민들은 새 정부의 정책과 국정에 큰 기대를 걸며 희망에 부풀어있다. 지긋 지긋한 국정 농단 세력들이 물러나고 반듯한 시대로 나아가는 현실을 지켜보 며 긴장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새 시대는 느리게 조금씩 오고 있 을 뿐 여전히 곳곳에는 적폐가 쌓여있다. 이미 요소요소를 점거하고 있는 적폐 세력의 저항은 끈질기다. 조그만 틈만 보이면 언제든 반격의 빌미만 노린다. 종 편이 시민들의 민심을 이간질하고 왜곡하여 개혁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번에 재승인 심사를 통해 단단히 경고를 하였으니 달라질 것이라고 기 대하는지 모른다. 조건부라는 코뚜레를 해서 고삐를 조여 놓았으니 여차하면 붙잡아맬 수 있지 않겠느냐고 여길 수도 있다. 게다가 정권교체로 규제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구성도 바뀔 테니 더 이상 함부로 준 동하지 못할 것이라며 마음을 놓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정연우 이사·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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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그러한 바람은 어그러졌다. 재승인이 되자마자 새롭게 거듭나겠


다는 다짐은 버려졌다. 3년 뒤에는 또 재승인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아직 먼 훗날의 일일 뿐이다. TV조 선 등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흠집 내고 불리한 의제를 부각하는데 앞장섰다. 10년 전 북한 인 권 결의안, 문 후보 아들 취업 관련 사안들을 부풀려서 안보가 불안하다거나 정직하지 않은 이미지를 덧 씌웠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도 국정 개혁 발목 잡기는 여전하다. 적폐 청산과 개혁은 과거를 지우기 위한 정치적 보복으로 몰고 간다. 우리 단체의 모니터에 따르면 TV조선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관련 국방부 허위 보고 사태 조사 지시’를 ‘이명박·박근혜 정권 지우기’로 규정했다. 국방부는 별 잘못이 없는데 정부 가 정략적인 의도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라는 의심을 퍼뜨리는 것이다. ‘4대강 사업 재점검’은 ‘MB 죽 이기’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구성한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정치보복을 하는 치졸한 정권’이라는 프레임을 만든다. 적폐 청산은 촛불 민심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 압이라는 틀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종편들은 국정개혁을 방해하고 수구세력과 국정 농단의 잔존 세력 들을 결집시키는 주장과 관점을 보급하는 무기고다. 종편이 만들어낸 정보와 해석들이 수구 세력 주장 의 모티브로 재가공되고 살과 뼈가 더해지면서 퍼져나간다. 혐오와 저주로 가득 찬 가짜 뉴스를 만드는 원형질이 되기도 한다. 언론보도에 가장 민감한 대선도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종편에 대한 시름 은 조금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정작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이제부터다. 어쩌면 정권을 창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이해가 얽히고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있는 현 실적 조건에서 높아진 시민의 기대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 실현의 동력인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 를 형성하고 이끌어내는 것은 공정하고 깊이 있는 언론 보도다. 그런데 언론계는 여전히 엄혹한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MBC와 KBS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낙 하산들이 이사회와 사장 및 주요 간부와 요직에 박혀있고 보도와 프로그램의 편향성은 한 치도 나아지 지 않았다. 수구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왜곡된 의제를 설정하고 보수적 논리와 주장을 퍼뜨리던 모습 그 대로다. 종편은 그 맨 앞에 서있는 전위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행정규제기관이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수세력은 언론장악과 탄압이라고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를 할 게 뻔하다. 벌써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언론장악시도저지 TF’를 만들겠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시민이 감시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시민 언론주권의 실현이기도 하다. 그동안 민언련의 모니 터 활동은 종편들의 실체와 폐해를 생생히 시민들에게 알렸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어떤 사안을 왜곡하 고 여론을 교란했는지 ‘깨알 감시’를 해왔다. 종편의 독성이 여론마당에 퍼지지 못하도록 방어막이자 해 독제 구실을 했다. 요즘 진보언론의 보도태도를 둘러싼 논란이 걱정스럽다. 진보언론에 대한 그동안의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개혁 진보진영을 다 합쳐도 힘이 모자랄 판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기 득권을 쥐고 있는 적폐 세력의 힘은 강고하다. 분열은 촛불 혁명으로 분출된 시민적 열망에 대한 배신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만 틈을 주면 종편이 앞장서 개혁진영을 찢어놓으려 할 것이다. 종편이 반동의 여론 을 획책하지 못하도록 감시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조일 때이다.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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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좌담 | 송건호 의장을 말한다

언론과 검찰을 개혁해,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보도지침 폭로 30주년을 맞은 작년부터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특별 인터뷰를 해 왔다.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과정을 통해 보도지침 폭로가 우리 언론과 민주주의에 끼 친 효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봤다.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사람’들이 보도지침 폭로 당시를 돌이키면서 공통으로 한 말이 있다. 바로 ‘송건호 의장이 있었기 때문에 보도지침을 폭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래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 송건호 선생을 회고하는 특별 좌담 ‘송건호 의장을 말한다’를 마련 했다. 좌담은 이완기 상임대표(사진 제일 왼쪽)가 사회를 맡고, 송건호 의장과 언론자유 운동을 함께 한 김 태진 언협 전 의장(동아투위 회원·사진 가운데)과 정상모 언협 3대 사무국장(80년 해직 언론인·사진 제일 오른쪽), 그리고 『송건호 평전』을 통해 송건호 의장의 삶을 정리한 바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과 92년 겨울 《역사비평》에서 송건호 의장과 좌담을 진행한 인연이 있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권위

자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을 모셨다. 좌담은 지난 6월 6일 오후 3시, 공덕동 민언련 사무실에서 열렸다. 언론인, 역사학자, 지성인이라는 송건 호 의장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하다 보니 3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진행했다. <편집자 주> 중간 제목은 김삼웅 선생이 쓴 『송건호 평전』에서 많은 부분 인용했습니다. 송건호 의장 의 활동사진은 청암언론문화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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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기 송건호 의장을 회고하는 좌담을 마련한 배

안 받기 운동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송 의장이 한

경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은 국

겨레신문을 창간할 때 기자들에게 제일 먼저 제안

정농단을 벌인 대통령을 쫓아내고 정권을 교체했

한 내용도 촌지 받지 않기 운동일 정도였습니다.

습니다. 이번 정권교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촌지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기자들

처럼 우리 국민은 역사의 고비마다 큰 역할을 했

에게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촌지

습니다. 우리 현대사에는 민주주의를 향한 여러

문화가 현재까지 언론계의 못된 관행이 되고 있

투쟁이 있었습니다. 1986년 보도지침 폭로 또한

습니다. 촌지 이야기를 더 하면 박정희 정권 시절,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민언련은 작년 보도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해 전 70년 8월엔

지침 폭로 30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

가 정부에서 중앙일간지 정치부장 15명을 모아 동

명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남아 여행을 보냅니다. 여행을 보내면서도 촌지가

그 과정에서 언협 초대 의장이었던 송건호 선생

상당히 많았나 봅니다. 정치부장들이 귀국길에 녹

이 여러 차례 거론되었습니다. 참 언론인으로서,

용을 사 왔는데, 들여온 녹용이 너무 많아 세관에

현대사를 연구한 역사가로서, 실천하는 지성인으

서 적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로서 송건호 의장의 삶을 되새겨보는 것은 지금

관세청장이 해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녹용을 많이

현재 우리 언론과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가는데 도

들고 온 정 모 정치부장은 이후에 국회의장 비서

움이 클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오늘 이렇게 자리

실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촌지를 스스럼없이 받았

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언론인으로서 송건

던 정치부장들이 제대로 된 언론활동을 했겠습니

호 의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먼저

까. 이런 사례와 비교해 보면 송 의장이 얼마나 결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서 함께 일했고, 언협 활동

백한 분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 같이 한 김태진 의장께서 이야기를 시작해 주 시지요.

송건호 의장의 청렴함은 경향신문 편집국장으로 일 하던 1965년, 경향신문 공매 처분 사건에서도 확인

김태진 송건호 의장은 여러 언론사를 다녔습니다.

할 수 있다. 경향신문 공매 처분 사건은 박정희 정권

송 의장께서 1965년에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맡았

이 반독재 노선을 유지했던 경향신문을 압박하기 위

습니다. 편집국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든 책임은 편

해 사장 이준구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한 후, 이듬

집국장인 내가 질 테니 정정당당히 기사를 작성하

해인 1966년 1월, 은행 부채 4천 6백만 원을 갚지

라’며 기자들을 독려했습니다. 그 무렵 마침 공보

않았다는 이유로 경향신문을 공매처분한 언론 탄압

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중앙 일간지 편집국장들을

사건이다.

오찬에 초청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데 장

“사장 이준구가 감옥에 있는 상황이라 이러

관 비서가 봉투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한 무거운 짐이 편집국장이었던 송건호의

송 의장이 ‘내가 받을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고

두 어깨에 지워져 있었다. (중략) 송건호는

합니다. 나중에 기자들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에게 붙들

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는 촌지가

려가서 대통령과 적당히 타협하면 되지 않

일상적일 때였습니다. 송 의장의 촌지 거절은 촌지

겠느냐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타협에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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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었다. 2천만 원이라면 편집국장 월급을 10년 가까이 고스란이 모아야 하는 어마어 마한 액수였던 것이다. 김경래는 다시 각 국 장과 부장을 편집국 숙직실로 불러 모았다. 당시 편집국 직원은 2, 30명. 위로의 돈 잔치 가 열린 셈이다. 직원 전원이 두 달치 월급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송건호에게 신세를 갚고 싶었던 이준구는 나중에 이 사실(편집 자 주: 기자들에게 준 2천만 원에 더해 송 의장에게 사례한 2천만원까지 4천만 원 모 두를 기자들에게 나눈 일)을 알고 무척 섭 섭해했다는 후문이다.” 정지아,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깊다 –참언론인 송 건호의 생각과 실천』, 한길사, 2008년, 120~124쪽

김태진 전 언협 의장, 동아투위 회원

응하지 않았다. (중략) 이렇게 싸우면서도

“내 손으로 기자들을 자를 수는 없다”

송건호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협을 하느니 지는 쪽을 선

이완기 송 의장께서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 기자

택한 그는 마지막으로 경향신문의 값을 올

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지지하고 격려했습니다.

려 받기 위해 노력했다. (중략) 결국 2억 원

이후에 벌어진 대량 해직 등 언론 탄압에도 저항

에 넘어갈 뻔했던 경향신문은 송건호 덕분

했고요.

에 3억 원에 매각되었다. (중략) 경향신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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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된 후 사장 이준구는 송건호에게 4천

김태진 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말하

만원을 주었다. 2천만 원은 기자들에게 나

기 전에 몇 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71년 4

눠주고 2천만 원은 송건호 개인에게 준 것이

월 27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해 3월 26

었다. (중략) 송건호는 당시 편집부국장이었

일 서울대 학생 20여 명 정도가 동아일보 앞에서

던 김경래를 불러 보스턴백 두 개를 내놓았

시위를 벌였습니다. 기자들 듣기에 모욕적인 말도

다. 보스턴백을 연 김경래의 눈이 휘둥그레

많았습니다. 기자들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자

졌다. 백마다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준

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4월 15일 ‘양심에 따른

구에게서 받은 2천만 원이었다. 김경래가 놀

진실 보도’, ‘부당한 압력 배격’, ‘정보요원 출입 거

랄 만도 했다. 1974년 무렵 동아일보 일반기

부’ 등의 결의를 담아 언론자유수호선언을 발표합

자 월급이 6, 7만원, 편집국장 월급이 20만

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은 다


른 언론사에도 확대됩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연탄 파동도 일체 보도하지 말라’는 보도지침을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을 위협할 정도로 표

내려보냈습니다. 그런데도 1단 크기지만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

를 얻었는데, 기자들의 자유언론수호선언의 영향

래서 송건호 편집국장과 지방부장, 사회부장이 연

이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당시 기자들의 언론수호선언에 간부 중에 딱 2

행되었습니다. 기자들은 연행에 항의해 퇴근하지

명만 참석해 기자들을 격려했습니다. 당시 논설위

않고 편집국에서 철야농성을 벌였습니다. 새벽 1

원이던 송건호 의장과 김중배 사회부장입니다. 해

시 정도에 송건호 편집국장이 회사로 복귀했습니

가 지나서 72년 모든 자유를 빼앗은 박정희 유신

다. 그때는 통행금지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가 없

시절이 시작됩니다. 74년 봄에 송 의장이 편집국

죠. 농성을 지속하면서 다음 날(24일) 동아자유언

장으로 취임합니다. 그해 9월 장관·국회의원·재벌

론실천선언을 발표합니다.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부인 등을 중심으로 한 귀금속 밀수 사건이 터집

것을 그날 밤샘 농성을 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니다. 정부는 사건을 일체 보도하지 말라고 했습

구체화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니다. 김삼웅 귀금속 밀수 사건은 저도 송건호 선생 평전

을 쓰면서 정리했습니다. 대학생들이 귀금속 밀수

이완기 그때도 보도지침이 있었나 봅니다.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을 비판하며 김태진 말 그대로 보도지침이죠. ‘보도하지 말라’는

‘언론인들이여 손가락을 자르라’는 유인물을 뿌리

엄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송 의장이 ‘이것조차 보

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유인물 내용에 ‘정치 기사

도하지 않는다면 언론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는 청와대 눈치 보고 못 쓰고, 사회 기사는 부장

사회면에 4단 크기로 보도(동아일보 1974년 9월 12일

눈치 보고 못 쓰고, 경제 기사는 광고주 눈치 보

자 3면)합니다. 동아일보만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고 못 쓴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

송 국장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됩니다. 처음에는 ‘선

니다.

생님’, ‘국장님’ 부르다가 나중에는 ‘이 새끼야’ 하면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의 계기가 된 1974년 10

서 뺨까지 맞았다고 합니다. 당시 동아일보가 서

월 23일 서울농대 김상진 군의 자결 사건도 보도

울 시내 신문구독자의 64%라는 조사 결과도 있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송 국장이 ‘1단 기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신문사 편집국장을 연행하

사로라도 실어라’라고 해서 보도가 됩니다. 기사는

고, 일개 중정 직원이 편집국장의 뺨을 때리는 시

긴급조치를 거부하는 1단 기사의 시초였습니다.

절이었습니다. 송 국장은 한 번 수모를 당하면 위 축될 법도 한데, 그 후에도 기가 죽지 않고 여러

송건호 의장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의 도화선이 된 10월

차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습니다.

23일 연행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10월 23일

“1974년 10월 23일 수원농대에서 학생데모가

서울 농대 학생들이 수원 시내까지 진출해서 시위

있었다. 정보기관원이 와서 그 기사를 내지

를 벌입니다. 시위 며칠 전 정부에서 ‘학생 데모 일

말라는 압력을 가했다. 나는 그의 압력을 거

체 보도하지 말라’, ‘베트남 동향 보도하지 말라’,

부하고 그 기사를 보도했다. 그리 크게 다룬

2017년 6월

9


기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어

‘광고 사태’의 배후를 질문합니다. 홍 국장은 ‘심증

나는 점심식사 후 기관원에 연행되었다. 이렇

과 우리 기자들이 취재한 결과로 볼 때 판단은 하

게 될 줄 알고 집으로 가서 속옷을 두툼하게

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 형제들을 외국 언론을

입고 나왔다. 반드시 연행되어 갈 것이라는

통해 고발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도 자랑거리가 되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오 3시쯤 낯선 3인의

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기자가 ‘권

기관원이 나를 차에 태우고 나갔다. 5·16 후

력과 타협 없이는 이 사태를 타개하기 어렵다고 보

벌써 몇 번째의 연행인가. 돈복은 없으면서도

는데 대책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관재구설수만은 그치지 않아 걸핏하면 연행

홍 주간은 ‘별로 이렇다 할 자세를 가지고 있지

되곤 했다. 언제 끌려가도 기분 나쁜 그 ‘연행’

는 않다. 다만 판매를 확장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을 또 당한 것이다. 한번 가면 일찍 돌아와야

사실 동아일보는 지금 상당히 부수가 늘어나고 있

15시간은 조사받는다.”

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가까운 기간 안에 1백만 부

송건호, <고행 12년, 이런 일 저런 일>, 『한국현대언론

돌파는 무난하리라고 본다. 1백만 부만 돌파하면

사』, 194~195쪽

광고 수입 없이도 현상유지는 가능하다. 만약 권 력의 방해로 1백만 부 돌파 목표가 이루어질 수

이완기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제한적

없다면 신문 발행인 협회를 탈퇴하고 신문 구독

이나마 동아일보 지면을 개선해 나갑니다. 그러던

료를 인상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독료

중 백지 광고 사태가 터지고 시민들은 격려광고로 기자들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결국 정부에 굴복했습니다. 다음 해(75년) 기자들이 대 거 쫓겨나고, 송 의장은 편집국장을 그만둡니다. 김태진 그랬죠.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기자들 쫓

겨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자유언론실 천선언 이후 74년 12월부터 광고주들이 ‘이유는 묻지 말라’며 광고 동판을 회수해 갑니다. 다음 해 5월까지 광고가 빈 백지로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이 대표가 말한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입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비어있는 지면에 격려광고를 내 면서 기자들을 응원했습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격 려 광고를 두고 ‘수많은 한국인이 신문을 펼쳐 들 고 첫 번째로 읽는 정치적 개인 칼럼’이라고 보도 했습니다. 그때 홍승면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1월 10일 일 본 NHK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NHK 기자가 10

동아일보 1975년 1월 1일 8면. 상단에 광고 ‘연기’를 안내하고 있다. 대신 백지 지면에는 시민들의 격려 광고가 실렸다.


를 인상한다고 해서 독자가 줄어든다고는 생각하

대신해 전 동아일보 주필로 있다가 필화 사건으로

지 않는다. 다만 발행인협회를 탈퇴함으로써 신문

해임되었던 이동욱을 임명했습니다. 그동안 이동

용지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경우 신문 면수를

욱 주필은 정부 산하 통일문제연구소 상임 간사였

줄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아일보 편집방

음을 생각할 때 이동욱 주필은 정부에서 파견한

침은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인데 이것은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주필이 취임한 후 사

동아일보 창간 이래의 사시(社是)이고 기본적인 편

원들에게 ‘회사 내 일체의 집회 금지, 유인물 살포

집방침이며 이 편집방침을 지키기 위해 경영이 있

금지, 이를 어길 경우 해임’이라는 폭탄 발언을 했

는 것이지 경영을 지키기 위해 편집방침이 흔들릴

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은 3월 8일 ‘경영상

수는 없다. 우리는 절대로 무릎을 꿇는 일은 없을

의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기자 18명을 해고합니

것’이라고 답합니다.

다. 그래서 기자들은 ‘우리 월급을 깎겠다, 최악의

그러면서 홍 주간은 ‘격려 광고라는 명목으로 들

경우 월급을 받지 않아도 되니 해고를 하지 말라’

어오는 돈 대부분을 살림살이가 별로 윤택하지 않

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요구사항을 유인

은 국민들이 보내주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

물로 만들어 배포했다는 이유로 기자협회 동아일

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 국민 앞에 삼가 고개를

보 분회장 장윤환 기자와 불순한 발언을 했다는

숙인다. 정말로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다. 이

이유로 박지동 기자를 해고했습니다.

국민을 위하여 신문을 만들고 이 국민을 위하여 신문의 정도를 걷고자 하는 우리는 어쩌면 남들이 보는 바와는 달리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답 합니다. 홍승면 논설주간의 인터뷰 내용은 NHK

곡필은 하늘이 죽이고, 직필은 사람이 죽인다

만 보도한 것이 아니라 세계 많은 언론들이 인용 보도를 했습니다.

김삼웅 송건호 선생은 64년, 65년 무렵부터 ‘곡필언

론’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이 책이 《사상계》 1964 김삼웅 백지 광고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주가 권

년 10월호입니다. 여기에 ‘곡필언론사’라는 시론

력에 굴복했습니다. 송 선생께서 동아일보 사주와

을 썼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감명 깊게 읽은 글

대화를 꽤 나누었다고 합니다. 송 선생은 ‘기자들

중 하나입니다. 제가 나중에 『한국곡필사』와 『유신

을 해고하면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했습니 다. 그래서 송건호 국장이 사직합니다. 김태진 그렇습니다. 3월 17일에 기자, 프로듀서, 아

나운서 등을 대량 해고하기 전인, 75년 2월 28일 동아일보 주주총회가 열립니다. 주주총회에서 권 력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홍승면 논 설 주간을 해고합니다. 동아일보 해직 사태의 최 초 해고자는 홍승면 논설주간입니다. 홍 주간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좌담에 가져온 《사상계》 1964년 10 월호. 송건호 의장의 ‘곡필언론사’가 실려있다.

2017년 6월

11


려운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식인들은 다투어 곡필을 비웃고 그러한 지식인은 이미 지성인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직필 하기가 얼마 나 어렵고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가에 대해 서는 그다지 깊은 검토가 없는 듯하다. 현실 을 지배하는 것은 대부분 조소의 대상인 바 로 그 ‘곡필’이며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는 ‘직 필’은 놀랄 만큼 읽어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송건호, 『송건호 전집 10 –곡필과 언론』 한길사, 2002년, 129쪽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송 의장’, 민주언론쟁취 투쟁의 선봉에 서다

시대의 곡필』을 쓸 수 있었던 건 송 선생의 ‘곡필 언론사’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인들이 ‘정론’과

이완기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자연스럽게 보도지

‘직필’, ‘자유언론’을 주로 고민할 때 송 선생은 잘

침 폭로로 화제가 넘어가게 되는데요, 보도지침

못된 글을 쓰는 언론인과 지식인을 질타했습니다.

폭로 당시 신홍범, 김태홍, 김주언 선생이 구속되

언론인 송건호를 이해하기 위해 ‘곡필언론사’를 한

고 박우정 선생도 뒤늦게 구속됩니다. 그리고 사

번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태 수습을 위해 정상모 선생이 언협 3대 사무국장 을 맡게 되었습니다. 보도지침을 폭로할 때 송건호

김태진 송건호 선생이 ‘곡필은 하늘이 죽이고, 직필

의장은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은 사람이 죽인다’는 말씀을 한 기억이 납니다. 정상모 개인적인 인연으로 송건호 의장은 제 주례 김삼웅 송 선생이 동아일보에 계실 때 편집국에 몇

선생님이기도 합니다(웃음).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번 가봤는데, 말씀하신 내용이 적힌 팻말을 본 기

해인 1968년 5월, 정부는 ‘5·3 인천 시위’를 용공

억이 있습니다.

으로 몰면서 민주화 운동 진영에 극심한 탄압을 가합니다. 민통련을 비롯한 재야단체의 활동이 거

김태진 맞아요.

의 중단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때에 언협이 보도 지침을 폭로했습니다. 신홍범, 김태홍, 김주언 세

‘곡필언론사’에서 송건호 의장은 직필을 만나기 어

12

분이 12월에 구속된 후에 언협 회원들이 구속 사


1986년 9월 9일 10시 송건호 의장은(앉은 사람 중 에서 왼쪽 두 번째) 명동성당 소강당에서 열린 ‘보 도지침 자료 공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기자회견 에서 송 의장은 성명서 ‘보도지침 자료 공개 기자 회견을 하면서’를 낭독하고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 제 실상을 폭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언협 김인 한·최장학 공동대표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승훈·김택암·정호경·함세웅 신부가 함께 했다.

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보

니다. 제 기억으로 송건호 의장이 그렇게 화를 낸

도지침 폭로 이후 『말』지는 발행을 중단한 상태였

건 처음이었습니다.

습니다. 자연스럽게 『말』지 발행을 논의했습니다. 엄혹한 탄압 속에서 조직의 존폐까지도 걱정해야

당시 언협 1호 간사면서 『말』 기자였던 최민희 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소나기를 우선 피하고 나중

대표는 『말』 복간을 논의하던 당시를 다음과 같

을 도모하자는 입장과 어려울수록 진실을 알려야

이 기억한다.

한다는 의견이 부딪혔습니다. 상당히 큰 논란 끝

“발행인이었던 김태홍이 구속된 후 다시 발

에 『말』을 다시 내기로 합니다. 『말』 복간에 결정적

행인을 맡고 있던 송건호는 뜻밖에 단호했

으로 힘을 실어주신 분이 송건호 의장입니다.

다. 이만한 일로 주저앉아서는 조직이 보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쪽이 끝내 의

이완기 당시 굉장히 위급한 상황에서 언협이라는

견을 굽히지 않자 송건호가 단호한 어조로

조직 보위를 위해 『말』 복간을 연기하자는 신중론

말했다. “그렇게 겁이 나면 당신은 나오지

이 있었고, 이럴 때일수록 『말』을 계속 발행하면서

말아요!” 최민희는 깜짝 놀랐다. 송건호를

『말』을 통해 재판에도 대응하자는 강경론이 있었

이해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중

던 것이죠?

략) 송건호는 겉으로 보기에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꾸미는 말이나 행동도 할 줄 몰

김태진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논쟁이 상

랐다. 그런 그가 젊고 혈기왕성한 최민희 눈

당히 격렬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에 멋있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평범 했던 송건호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차마 버

정상모 그랬습니다. 송건호 의장은 성품이 온화한

리지 못하고, 더 용감한 사람들조차 포기한

분입니다. 평상시에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길을 끝까지 묵묵히 걸은 언론계의 큰 별이

없을 겁니다. 그랬던 분이 『말』 복간을 논의할 때

었다.”

처음 화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광화문 어느 식당

정지아,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깊다 –참언론인 송

에서 회의했는데, 밖에서도 고함이 오갈 정도였습

건호의 생각과 실천』, 한길사, 2008년, 344쪽

2017년 6월

13


치고 동아투위 회원 10명이 연행되는 ‘10·24 민권 일지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때 구속되었던 안종필 동아투위 위원장이 면회 온 가족을 통해 ‘우리도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메모를 보내오기도 했습니 다. 이완기 해직 언론인들이 84년 언협을 결성하게 된

궁극적 목표는 새로운 언론매체를 만드는 것이었 던 것 같습니다. 그 뒤 『말』 창간, 보도지침 폭로 등 여러 형태의 싸움을 거쳐 마침내 새로운 언론 한겨레신문을 창간했습니다. 송건호 의장은 초대 사장을 맡으셨고요. 이 지점에서 송건호 의장의 당시 언론관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 니다.

정상모 언협 3대 사무국장, 80년 해직언론인

역사학자들의 직무유기가 ‘현대사 연구가’ 송건호를 낳다

이완기 『말』은 1985년 창간호부터 ‘민주·민족·민중

언론을 향한 디딤돌’을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해

김삼웅 송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자유언론투쟁에만

직 기자들이 만든 단체여서인지, ‘새 언론’ 창간을

시종하지 않고, 신채호와 채남선에 대한 인물론을

목표로 삼았다고 보입니다.

쓸 정도의 괄목할 만한 역사적 시야를 쌓았습니 다. 송 선생의 독특한 점입니다.

정상모 『말』 복간 논쟁 당시 신중론을 펴는 분들은

저는 20대, 30대 청년 시절 독자로서 송건호 선

앞으로 유화국면이 펼쳐지면 새로운 언론을 만들

생을 사숙했던 사람입니다. 이 책은 1977년 9월

수 있으니 이를 예비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호 《뿌리깊은나무》입니다. 여기에 ‘신채호와 최남

언협은 87년 무렵 새 언론 창간을 위한 논의기구

선’이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당시 송 선생이 역

를 구성해 실제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사 관련 사론(史論)을 1년 정도 연재했습니다. 우 리 근대사에서 역사학자들이 제구실을 못해 언론

김태진 새로운 언론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동아투

인들이 역사학자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일제 강점

위 초기부터 고민했습니다. 동아투위를 결성한 후

기 신채호 선생, 박은식 선생이 대표적인 분이죠.

6개월 정도는 거의 매일 유인물을 만들어 각 대학

해방 후에는 송건호 선생과 천관우 선생이 그러한

과 단체에 배포했어요. 동아투위 결성 4주년이었

역할을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오늘 나오신 서중석

던 1978년 10월 24일 10·24 4주년 기념식을 마

선생이 역할을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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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3일 송건호 의장(왼쪽 세 번째)이 보도지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신홍범 언협 실행위원(왼쪽 두 번째)과 김태홍 사무국장(왼쪽 다섯 번째)을 격려하고 있다. 리영희 교수(왼쪽 네 번째)의 모습도 보인다.

김태진 현대사 연구는 송건호 의장이 처음 아니었

은 분이 독립운동과 관련한 뜻깊은 연구를 한 때

을까요? 그전에는 현대사 관련 책이 나오지 않았

도 70년대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는 독립운동에

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현대사 연구는 말할 것도 없습니

서중석 현대사에 관한 논문이나 글은 적지 않지만

다. 현대사에 관심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

단독 저서는 주로 근대사 후기에 관해서 썼습니

이 학계의 분위기이자 시대 분위기였습니다. 오히

다. 송 선생은 일제 강점기 중에서도 일제 말기를

려 한국 근현대사 연구는 브루스 커밍스 등 미국

많이 다루었습니다. 이제 역사가로서 송 선생에 관

과 일본과 같은 외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가요?

가 1975년 해방 30주년을 맞으면서 재일교포 한 분이 연구비를 후원해서 4권짜리 현대사 관련 책 이 나왔어요. 그런데 송 선생은 이미 60년대부터

이완기 자연스럽게 말씀을 나누시지요.

현대사의 중요한 과제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서중석 제가 67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현대사 연구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근대사는 학문이 아니다’,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송 선생의 관심 분야는 언론에만 머물지 않고

분위기였습니다. 실제 근대사를 공부한 사람들도

사회과학, 지성의 문제, 지식인 문제까지 아주 폭

주로 조선 말기를 연구했습니다. 윤병석 선생 같

넓었습니다. 특히 한국 아카데미즘의 한계도 콕

2017년 6월

15


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 전개되었는지와 같은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사회과학을 비롯 한 학문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 다. 이렇듯 올바른 지성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현대 사의 주요 쟁점을 제시했습니다. 제가 또 하나 놀란 것은 송 선생이 궁핍한 생활 을 하면서도 책을 좋아했다는 겁니다. 70년대 초 반만 해도 헌책방에 괜찮은 책들이 있을 때입니 다. 언론사를 그만둔 후에 70년대 후반부터 80년 대 초반에 걸쳐서 체계적인 역사 연구를 하신 것 으로 보입니다. 주로 일제시기에 관심을 기울이셨 지만, 조선 말기와 일제시기의 여러 쟁점과 항일 운동까지도 많이 연구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 듯이 70년대 중반까지 76년에 나온 책 4권을 제외 하고 현대사에 관한 마땅한 책이 없다시피 했습니 다. 그런데도 송건호 선생은 상당히 풍부한 연구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를 해냈습니다.

짚어서 비판했습니다. 학문은 현실과 무관할 수

79년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옵니다. 그 책

없는데 아카데미즘을 내세우면서 현실을 외면했

은 송건호 선생이 쓴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으로

다고 지적하신 거지요. 진실한 학문이라면 ‘반항

시작합니다. 짧은 글이지만 해방 시기의 핵심적인

과 분노의 정신’을 가지고 현실에 접근해야 진실

주제를 모두 다루었습니다. 현대사에 대한 큰 고민

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진실을 제대

과 폭넓은 사유, 동서 지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로 말해야 민중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줄 수 있

결합하면서 그러한 탁월한 통찰력이 나온 것 아닌

다는 요지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민중이라는 말을

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제 말에 직접 겪은 경험

사용한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 더해져서 더욱 풍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땅의 사회과학이 주체성을 망각하고 사대주의에 사로잡혀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천시

일제 말부터 눈을 똑바로 뜨고 살려고 했던 것 아 닌가 생각합니다.

하고 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전반기까지 한국 사회과학계에서 뜻

김삼웅 서 교수께서 역사학자들이 현대사 연구를

있는 분들이 많이 고민했던 주제를 60년대에 이

외면하며 직무유기를 할 때, 송 선생이 이를 대신

미 고민했던 겁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학문은 현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사례가 우리나라에만

실에 뿌리를 둬야 하고, 역사를 등한시해서는 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치 독일 시절에 히틀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제 말기에 민중들이 어떻게

집권한 후에 현대사 연구를 했던 학자들이 고대사

살았고, 친일파가 무슨 짓을 저질렀고, 항일운동

나 중대사 연구로 연구 분야를 갈아탔습니다.

16


지식인의 반성을 촉구하다

사변적이 아니라 실천적이다. 이러한 지성은 당연히 주체적 지성으로서 나타난다. 남의

이완기 송건호 의장은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주체적

나라의 지성·방법론을 기계적으로 도입하

인 역사관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송 의장의 글

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입장에서 실천적 과

을 읽다가 문득 독특한 언론관을 가지고 있을 수

제로서 비판적으로 섭취하는 지성이다. 다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언론에서 객

시 말하면 한국 지식인은 ‘지금·이곳’의 역

관성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보신 것

사적 특수성을 의식하는 속에서 세계의 지

아닌가 하고 해석했습니다.

성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주체적 자세에서 만 세계적 시야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

서중석 아마 이 대표께서 60년대부터 불거진 ‘순

을 것이다.”

수·참여 논쟁’에 대한 글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송건호, 『송건호 전집 6 –전환시대의 민족지성』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순수문학이니 순수 아카데미

길사, 2002년, 86쪽

즘을 주장하던 세력이 문화계와 학계의 주류를 이 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수를 말하던 이들이 ‘순

정상모 저널리즘 이론을 보면 객관성, 공정성 같은

수’라는 말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

개념이 있습니다. 저는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의 하

합니다. 송 선생은 그런 주장에 대해 ‘진실을 봐

나로 객관성과 공정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객관

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디에서 주

성과 공정성만 지킨다고 해서 그 자체가 진실이라

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과 같은 순수라

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진실을 위해

면 그것이 오히려 잘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

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

을 겁니다. 그래서 송 선생은 ‘참여’를 강조합니다.

다. 송건호 의장이 말씀하셨던 근본적인 내용은

‘참여 없는 지성은 있을 수 없다’라고도 했습니다.

진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하면 문제 의 본질을 꿰뚫어 민중이 진실을 볼 수 있게 할 것

송건호 의장은 지성인의 역할에 고민이 많았다.

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겨레신문

197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민족지성의 탐

에 계실 때 최고의 가치로 말씀했던 것도 진실이었

구』에서 지식인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지식의 민

습니다. 진실을 어떻게 전할 것이냐는 결국 편집권

족성·객관성·논리성·경험성을 제시하는 한편으

을 누가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창간 당시 편집위원장(편집국

로 지식인의 ‘역사성’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역사의식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비판의식

장) 직선제를 마련합니다. 언론이 망가진 이유를

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의식이다. 과거

편집권이 독립되지 않아서라고 본 것이죠. 송 의장

를 미래로 전환시키는 현재 의식이다. 따라

은 구성원인 기자들에게 편집권을 줘야 한다는 입

서 역사적 지성이란 인간의 역사적 존재를

장이었고 사장으로서 ‘절대로 신문 제작에 간섭하

해명하며 그것의 발전과 변화와 그 속에 포

지 않는다,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를 두 가지 원

함된 법칙성 같은 것을 밝히는 지성이다. 역

칙으로 밝히고 끝까지 지켰습니다. 한겨레의 편집

사적 지성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위원장 직선제 이후에 다른 언론사들도 편집국장

2017년 6월

17


편집국장 직선제 투표 중인 송건호 의장. 촬영날짜는 미상.

구체적으로 소상하게 열거하여 이 방침에 따 라 전사원이 참여하며 결정하며, 이미 결정된 ‘편집강령’에 대해서는 경영진이나 노조도 함 부로 바꾸지 못한다. (중략) 이들에겐 우리와 같이 ‘불편부당’ ‘시시비비주의’ ‘문화주의’ 따 위 애매한 이른바 ‘사시’를 내세워 독자들을 1988년 5월 14일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들고 기뻐하는 송건호 의장

속이며, 편집권이 기업주에게 있다고 주장하 여 신문의 올바른 길을 이탈, 왜곡보도를 일 삼아 기업주 개인의 이권을 꾀하는 일이란 용

직선제나 동의제를 도입했습니다.

납되지 않는다.” 송건호, 『송건호 전집 10 –곡필과 언론』 한길사,

국민 성금을 모아 창간한 한겨레의 편집위원장 직

2002년, 175쪽

선제 도입은 송건호 의장의 평소 소신이었다. 송 의장은 ‘언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글에서 언론자

이완기 송건호 의장은 ‘우리 신문의 기사는 논설적

유를 이루기 위해 ‘다른 기업(자본)으로부터의 독

이고, 사설은 해설적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

립’, ‘언론활동을 규제하는 언론기본법·홍보정책실

다. 기사는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하면 되고, 사설

폐지’, ‘편집권 독립’을 들었다. 편집권 독립과 관련

은 신문사의 입장과 주장을 담아야 하는데 이게

해서는 미국형·유럽형·일본형의 형태가 있다며 한

뒤바뀌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사설은 해야 할

국에서 편집권 독립을 원한다면 미국형이나 일본

주장을 못하고 눈치를 보고 빙빙 돌며 해설만 하

의 ‘편집강령’ 형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있고, 기사는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양시양비론

“신문이 현행 법질서 안에서 제작되는 한 기

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가 주인이 되어야 하며 외부의 누구도 신

18

문제작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중략) ‘편집

정상모 그렇죠. 객관성이나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

강령’이라고 해서 신문제작에 관한 방침, 가

숨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묘하게 왜곡

령 정치·경제·문화·외교·국방 등 중요한 문제

을 하는 것이죠. 왜곡의 수단으로 객관성, 공정성,

에 어떠한 입장을 취한다는 편집방침을 아주

불편부당성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객관을


핑계 대며 숨지 말고, 진실을 정확하게 밝히라는

자론’에 ‘한국적 정치 지도자상의 현실과 이상’을

말씀일 것입니다.

기고합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난 후 김구 정신이 부활하기 시작합니다. 60년대에 김구

김삼웅 송 선생이 70년대에 『드골 프랑스의 영광』을

가 새롭게 부활했는데, 이를 송 선생이 예리하게

썼습니다. 책에서 미국의 종속에서 벗어나려던 드

포착해 이를 ‘백범이즘의 부활’이라고 표현했습니

골의 민족주의를 높이 평가합니다. 70년대는 그런

다. 그 후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요한 박정

내용을 글로 쓰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책

희, 전두환 시절에도 ‘김구 죽이기’는 감히 시도하

을 내거나 글을 쓸 때는 언제 쓰느냐가 중요합니

지 못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의 거성’이자

다. 해방 후에 독립 만세를 외치는 것은 아무런 의

‘통일운동의 화신’으로 60년대에 자리 잡고, 이후

미가 없으니까요. 엄혹했던 독재 시절에 ‘의열단’을

우리 역사에서 김구 선생이 살아있게 됩니다. 송

주제로 책을 썼던 기개를 봐야 합니다. 왕성한 탐

선생은 김구, 이승만, 서재필 등 현대사의 주요 인

구열과 시대정신에 투철해지려는 노력이 결합하어

물에 대해 글을 써서 60년대에 김구 정신이 부활

우수한 언론인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현대사 연구

했음을 확인시켰습니다. 또 송 선생은 우리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일그

가라는 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

러졌는지를 적확하게 지적했습니다. 해방 후 미군

각합니다.

정에 의해 친일파들이 재생해 활동했다는 것이지 요. 송 선생은 친일파 문제를 우리 현대사에서 가

백범 정신의 부활을 포착하다

장 중요한 주제로 붙잡고 씨름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현대사를 망쳐 놓은 세력이 누구냐는 질문입 니다. 일제 시기에는 친일파가, 해방 이후에도 친

서중석 덧붙여서 송 선생은 ‘인물론’을 많이 썼습니

일파와 그 후예들이 우리 역사를 얼룩지게 했다는

다. 60년대에 백범 김구와 우남 이승만을 분석합

점을 강조하는 겁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사실

니다. 김구 선생 장례식에 50만 인파가 참여했습

지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 논란도 친일파 문제와

니다. 50만 인파는 당시 민중들이 가지고 있었던

연결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구에 대한 존경심과 김구를 죽인 사람들에 대

그러면서 분단 문제도 함께 제기합니다. 역사 연

한 분노가 농축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구자들은 80년대 중반까지도 분단 문제를 건드린

‘안두희가 의인’이라는 벽보가 붙기도 했습니다. 냉

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반공 이데올로

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려는 ‘이승만 노선’

기가 압도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자

과 냉전을 거부하고 통일 독립국가를 수립하려고

세히 들어가면 해방 직후 반탁과 찬탁을 어떻게

했던 ‘김구 노선’의 대결로 볼 수 있습니다. 점점

평가할 것인가입니다. 반탁 운동은 이승만 정권의

반공과 냉전 논리가 세를 얻으면서 50년대에는 김

정통성이나 단정 수립을 합리화하는 주요 근거입

구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독립운동가들은 50년

니다. 그런데 송 선생은 반탁 운동에 상당히 비판

대 이승만 집권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적으로 접근합니다. 만일 해방된 우리 민족이 통

송 선생이 《사상계》 1968년 10월호 특집 ‘지도

일 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반탁운동은

2017년 6월

19


통일 정부 수립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틀게 만든

민을 했고, 김규식도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은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분단

읽고 또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먼저 임시정부를

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

수립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를 정당화시키는 논리가 바로 반탁입니다.

에 신탁통치를 반대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모 스크바 결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분단이 되 고, 분단이 되면 미소의 세력 각축장이 되면서 엄

분단의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하다

청난 민족적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하루빨 리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치자 는 것이 여운형과 김규식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완기 반탁, 찬탁 논쟁과 관련해서 송건호 의장은

모스크바 3상 회의를 언급하면서 그 상세한 내용

정상모 반탁을 주장하는 이들이 독립국가의 주권

을 당시에 이성적으로 검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을 생각한 사람들이고, 찬탁은 나라를 부정한 것

못해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중석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우리 교과서는 2

서중석 제가 청암 선생 회갑기념 논문집에 서동석

천 년 대에 들어서야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을

이라는 필명으로 관련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

그나마 객관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

다. ‘반탁 진영과 의견을 달리 한 김규식이나 여운

에는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을 반공 이데올로기

형의 주장은 찬탁이 아닌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

와 연결시켜 왜곡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에 대한 지지였고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이 아니었

게 했습니다.

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김규식이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은 제1항에 명시한 ‘한

나 여운형이 신탁통치에 찬성했다는 주장은 우익

반도에서의 통일 임시 정부 수립’이 주된 내용입니

진영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한

다. 그것과 함께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 3항에

것입니다. 사실 반탁 투쟁에 1945년 12월 29일부

서 제시한 신탁통치는 장구한 역사에서 독립국가

터 친일파들이 대거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나쁘게

를 발전시켜온 우리 민족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

말하면 친일파들이 반탁을 통해서 애국자로 세탁

지만, 모스크바에서 합의한 신탁통치는 유엔헌장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친일파

에 있는 신탁통치와는 달리 그 내용이 결정된 것

들은 46년에 들어서면서 반탁 운동에 더욱 열심

이 아니었습니다. 신탁통치 이전에 모스크바 3상

히 나섭니다. 반탁 운동이 단독정부 수립 운동, 곧

회의 결정 제1항에 따라 우리 임시정부를 먼저 수

단정 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립하고, 우리 임시정부와 미소공위가 협의해서 내

이때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가 신탁통치와

용을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이내 한

관련해 오보를 냅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

시적인 조건이었으므로 통일정부 수립의 과정으로

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주

이해해야 할 측면이 있었습니다.

장’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복잡한 정국

그래서 여운형도 3상 회의 결정에 매우 많은 고 20

이 만들어졌습니다.


김삼웅 제가 해당 동아일보의 해당 오보(1945년 12 월 27일 1면)와 해설기사, 국제면까지 확인해 봤습니

시대는 속절없는 독서인을 거리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다. 동아일보가 오보로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 중에서 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은

정상모 언협 의장 하실 때도 틈만 나면 헌책방에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김

가서 좋은 책 찾아보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구 선생처럼 30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독 립운동했던 분들 입장에서 내 나라를 세우려는데

김삼웅 한 가지 숨은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동아일

외세가 10년 또는 20년 신탁통치를 한다는 걸 받

보 그만두고 원고료 몇 푼으로 생활하면서도 헌책

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송건호 선생

방 순례가 취미였다고 합니다. 책을 사서 집에 들

은 김구 선생이 반탁이라는 입장을 보인 것에 대

고 들어가면 아내와 식구들 눈치가 보여서, 대문

해 ‘민족의 자존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밖에 슬쩍 놔두었다가 식구들이 잠들면 가지고 들

순수한 민족의식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면

어왔다고 사모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무렵 청

서도 당시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지는 못했다

와대에서 입각 제의를 해오는데, 이를 단호하게 거

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부했습니다.

이완기 그래서 ‘이성적으로 검토해야 했다’고 주장

김태진 송 의장께서 동아일보 그만두고 리영희 교

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송 의장의 언론인으

수가 주선해서 한양대에서 강사를 했는데, 압력으

로서의 자세, 그리고 역사관에 대해 말씀을 나눴

로 일 년도 못하고 그만뒀습니다. 김삼웅 선생이

습니다. 이제 지식인, 지성인으로서의 송건호 선생

말씀하셨던 입각 거부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에

의 삶에 대해 알고 계신 내용이 있다면 소개를 부

피소드를 말씀드릴게요. 박정희의 입각 제안을 듣

탁드립니다.

고 ‘나는 언론인이지 행정가가 아니’라고 거절했다

서중석 제가 92년도에 역사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송건호 선생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75년 3월 사표 를 쓰고 나오고 보니 ‘먹고사는 게 당장 걱정’이었 다고 쓸쓸하게 말씀했어요. 집에 돈을 가져다줘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 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 가르쳤다고 안타까워하더라고요. 대학 강사 노릇 하기도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김삼웅 선생께서 평 전에 쓰기도 했는데, 그런 중에도 헌책방을 참 많 이 다니셨어요. 모아놓은 장서가 1만 5천 권이라 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모두 한겨레신문사에 기증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인사동 고서점에서 촬영한 송건호 의장

2017년 6월

21


고 합니다. 91년 민언련 언론학교 1기 수강생들에

정상모 보도지침을 폭로한 후에 정세가 엄혹하지

게 강의하면서 ‘입각을 거절한 날 집 앞 전봇대를

않았겠습니까. 당시 『말』지나 《말소식》을 낼 때 수

붙들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사기관의 관심 중 하나가 인쇄소였습니다. 인쇄

6남매의 아버지로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생각합

소는 극비였는데, 송건호 의장께서 ‘비밀은 나에

니다. 송 선생이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계실 때

게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고문

칼럼을 통해 ‘언론인은 언론을 천직으로 알아야

을 받으면 견뎌 낼 장사 없어서 불기 때문에 차라

지, 언론을 징검다리 삼아 관계나 정계로 나가는

리 말을 말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런 말씀에 대

것은 진정한 언론인이 아니다’라고 꾸짖었습니다.

해 조금만 더 생각하면 참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인

당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것입니다. 만약 고문을 당할 때 요구하는 대로 진 술을 하면 고문이 끝날 텐데, 정말 모르기 때문에

김삼웅 송건호 선생이 보인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진술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더 심한 고문을

보면, 조선 후기 유림의 한 지파였던 양명학 계열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134인 지식인 시국 선언, 언협 의장, 『말』지와 한겨레 창간과 같

김삼웅 그런 점은 의열단 정신인 것 같습니다. 송

은 활동은 흔히 말하는 나약한 지식인이 행하기

선생께서 의열단에 대해서도 글을 쓰기도 했는데,

어려운 실천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면은 ‘지행

의열단원들이 그렇게 활동을 했습니다.

합일’을 갖춘 양명학적인 모습입니다. 단순히 언론 인, 사학자, 지식인이라는 단편적인 면을 뛰어 넘

서중석 송건호 선생이 글을 쓰던 시절을 보면, 6월

는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항쟁 이후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살얼음

후생들에 큰 교훈이 되는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판을 걷는 시절이었습니다. 한 자 한 자 고민하면 서 써야 했던 시절이었어요. 송 선생은 글을 쓸 때

김태진 80년 5월 17일 전두환이 계엄령을 선포한

울면서 쓸 때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진실을 진

후 송건호 의장이 연행되었습니다. 심한 고문을 받

실대로 쓸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같은 말도 뱅

으면서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악질’

뱅 돌려서 써야 하는 참담한 현실에 대한 울분이

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80년에 그러한

그분을 울게 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

고초를 겪으셨는데, 언협을 결성할 때 의장을 맡

다. 반탁, 친일파, 분단과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사

는 것도 웬만한 용기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다고

대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곧 이승만, 박정희라는

생각합니다. 『말』지를 낼 때마다 구류를 살아야 하

정치권력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이 수반되는 일

고, 보도지침을 폭로한 후 『말』지 복간을 강하게

이었습니다. 역사를 정리할 때는 더욱 큰 용기가

주장했던 것도, 송건호 의장 아니면 그럴 만한 분

필요합니다. 일제 시대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분

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 세력이 되어 단정 운동을 폈고, 그리고 독재협 력 세력이 됩니다.

김삼웅 그런 강단을 보여주며 평정심을 유지한 모

습이 지식인의 전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22

2004년과 2005년경부터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 이 일부 언론과 수구 정당을 배경으로 삼아 활개


를 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 주장의 핵심은 이승

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자칫하면 고통으로

만을 건국 대통령의 위치에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돌려받을 수도 있는데 지조를 지켰다는 것. 말씀

몇 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건

하신 선비정신이라고 생각됩니다.

국이냐를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오랫동안 벌인 것도 이 부분과 연결됩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을

이완기 고은 선생이 <만인보>에서 송건호 선생을

건국했다고 하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강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대는 착실한 세대주를 지

할 수 있고, 친일파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조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시대는 속절없는 독서인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이승만 추종자들 중

을 거리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시대는 조심스런 언

에는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만들면 단정 운

론인을 역사의 인물로 만들었다.’ 상식적인 시대에

동, 친일행위, 독재협력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속

나셨다면 어쩌면 평범한 분으로 살았을지도 모르

셈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겠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외식 한 번 제대로 못

이런 현상을 볼 때 송 선생의 이승만 비판이 이

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승만 추종자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뉴라이트 출현을 예상하고 통렬하게 비판한 것 아닌가 싶은

김삼웅 자식들이 짜장면이 뭔지 몰랐다는 말은 들

생각도 듭니다. 현재 지식인 상당수가 뉴라이트

었습니다.

주장에 제대로 된 비판을 못하는 것을 볼 때 송 선생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송건호 의장은 양심을 지키는 대신 정권의 핍박에 따른 궁핍을 감내해야 했다. 김삼웅 선생은 『송건

김삼웅 제가 평전에서 송 선생을 ‘언론 선비’라고 표

호 평전』에서 ‘리영희 교수가 나이 예순이 넘어서

현했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 박정희의 가장 강

야 비로소 온수가 나오는 집에 살게 되었을 만큼

력한 비판자였던 언론인, 필화사건으로 고초를 겪

가족의 희생을 감내했는데, 송건호 역시 그런 면에

었던 논객들이 박정희 정권과 이어 전두환 정권에

서는 난형난제였다’고 말했다. 정지아 작가는 송 의

투항합니다. 어쩌면 언론계 동료였던 분들의 변절

장이 감내한 숙명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었는데, 송 선생은 지조를 지켰습니다.

“나중에 이정순은 리영희 교수가 이사 간 산

빈한한 생활을 견디면서 정론을 쓰고, 지식인의

본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경치 좋은 방에

전범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바탕이 어디에서 기원

서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한다고 봐야 하는지….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 가

이정순은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송건호는

까이에서 모셨던 분들이 알고 계신 것이 없습니

평생 이런 서재 한 번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까?

이다. 동아일보를 퇴직한 후 송건호는 식구들 을 피해 이방 저 방 옮겨 다니며 밥상을 책상

정상모 송건호 의장의 궁핍한 생활은 최민희 전 대

삼아 글을 썼다. 그가 남긴 대부분의 글은 밥

표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 대표가 송건호 선

상 위에서 탄생했다.”

생 댁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칫솔을 집게로 눌러

정지아,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깊다 –참언론인 송건

놓은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런 생활에서 권력

호의 생각과 실천』, 한길사, 2008년, 155~156쪽

2017년 6월

23


이정순 여사와 송건호 의장의 신혼 시절 모습. 이 여사는 1975년 3 월 송 의장으로부터 동아일보를 그만두게 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나도 당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소신대로 하세요”라고 응원했다. 그렇게 양심을 지키는 송 의장을 응원하고, 그러한 삶에 따르는 숙 명을 함께 감내했다. 김태진 의장은 좌담에서 이정순 여사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해직 기자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 마다 송 의장에게 세배를 다녀왔다. 이 여사는 어려운 살림에도 싫 은 기색 하나 없이 후배 기자들을 살뜰히 챙겼다. 김태진 의장은 시 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어려운 형편을 전혀 생각 못 한 후배들의 ‘철없음’이 두고두고 죄송스러웠다.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던 송 의장에게 병문 안 갔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다. 김태진 의장이 이 여사에게 ‘사모님, 힘드시죠?’라고 위로했다. 이 여사는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고맙다’ 고 답했다. 오히려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후배 김태진’은 이정순 여사가 송건호 의장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언론과 검찰을 개혁해,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전한 과제입니다. 김삼웅 1999년 기자협회보에서 전국의 신문 편집

국장, 방송 보도국장,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20 이완기 많은 시간 많은 말씀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세기 가장 훌륭한 언론인을 뽑아달라고 물었습니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다. 그래서 위암 장지연 선생과 청암 송건호 선생 두 분이 선정되었습니다. 친일 행위를 한 장지연

김태진 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백지 광고 사

선생을 제외하면 20세기 가장 훌륭한 언론인은

태, 그리고 기자 대량 해직 당시 박정희 정권이 신

송건호 선생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사에 준 특혜가 신문 면수를 늘려준 것이었습니

우리나라의 적폐를 거두고 정상국가로 서기 위

다. 증면은 바로 광고 수입을 늘려줬다는 말입니

해서는 언론과 검찰이 제 기능을 하면 된다고 생

다. 광고 수입을 늘렸다는 것은 언론이 자본 권력

각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확인

에게도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여전히 광고에

했듯이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

의존하고 자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죠.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적폐 중 적폐인 언론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고민입니다. 그렇

개혁하기 위해 민언련 회원들이 노력해 주세요.

지 않으면 40여 년 전에 주장했던 자유언론의 실 현은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중석 이완기 대표를 비롯해 민언련 활동하는 분

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세요. 특히 공영방송이 정상모 맞습니다. 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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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노력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태진 김삼웅 선생께서 언론과 검찰이 제 기능을

고도 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사법부의 위기>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1971년 사법파동이 있었습

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사설로 다룹니다. 이 사

니다. 7월 28일 서울지검 이규명 검사가 뇌물 수

설은 송 의장이 쓰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

수혐의를 이유로 들어 이범열 부장판사와 최공웅

재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 내

배석판사, 이남영 서기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

용을 읽어 보겠습니다.

으로 시작한 사건입니다. 제주도 모 중학교 교장이 재일동포로부터 90만

“검찰 당국이 형벌청구권을 남용하여 인권

엔을 기부 받아 학교 건물을 지었는데 검찰은 ‘그

을 유린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

돈이 조총련계 자금’이라며 교장을 국가보안법 위

러한 일이 검찰로서는 못마땅히 생각되었는

반으로 기소해 재판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 사람을 놓치는 한이

관련 증인이 현지 수사기관의 방해로 서울 법원에

있더라도 한 사람의 인권을 유린해서는 안

출장을 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된다고 하는 것이 법관들의 신조라고 한다면

변호사의 요청으로 출장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다

무죄판결은 쉬워도 유죄판결은 어렵다고 보

녀옵니다. 검찰이 이를 ‘재판부가 왕복 비행기 삯

는 것이 법관들의 양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과 술 접대 등 10만 원 가량의 향응을 받았다’고

(중략) 우리는 이번 파동을 계기로 사법부가

트집을 잡았습니다. 당시 형사 사건의 경우 신청한

더욱 분발하여 오욕의 지난날을 깊이 반성하

당사자 측이 부담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고 또 청산하여 사법부의 양심과 독립을 되

입건된 두 판사는 강직한 판사로 정평이 나 있었

찾는 결정적 계기로 삼아주기를 바라마지않

고 구속영장 청구 전 6개월 동안 반공법 위반 등

는다. 사법부는 행정부의 시녀가 아니며 어떠

의 재판에서 19건의 무죄 및 선고 유예판결을 내

한 압력도 이를 배제하고 소신과 양식을 지

린 소신 판사였습니다. 그래서 검찰 수사를 무위

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 동아일보 1971년 8월 2일

로 돌린 판사를 혼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검찰이 요청한 구

현재 검찰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

속영장을 1, 2차 모두 기각했습니다. 그리고 판사

니다. 그 당시에 이런 사설을 썼다는 게 지금 생각

들의 집단 사표 제출이 일어나 사법부가 마비되는

하면 어느 면에서는 상당히 고맙다는 생각마저 듭

상태까지 갔습니다.

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검찰도 개혁할 수 있

제가 1차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던 다음 날 변호

겠다 싶습니다.

사이며 공화당 초대 총재였던 정구영 씨를 만났습

송건호 의장이 ‘언론의 민주화는 다른 모든 분

니다. 정 씨는 ‘오늘날 행정부만 무제한으로 비대

야의 민주화에 앞서 있어야 하는 핵심적인 문제라

해 졌고 가장 약체화한 사법부라는 점에 만감이

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다

교차 한다’며 ‘사견으로는 이 사건이 반드시 구속

르지 않습니다.

해야만 처단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고 말했습니다. 또 ‘범행 사실이 사실로 밝혀진 다고 해도 기소되어야만 할 것인가에는 의문’이라 2017년 6월

진행 이완기 상임대표 정리·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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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와의 뒷담화 | ‘2017년 4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 후기

“남들이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5월 30일 민언련 교육공간 <말>에서 민언련 선정 ‘2017년 4월 이달의 좋은 보도’ 시상식이 열렸다. 민언련은 선거 시기에는 주로 선거보도만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뽑고 있다. 이에 따라 민언련 4월 ‘이달의 좋은 보도’ 신문 부문은 한국일보 <대선 후보에게 묻는다-참여연대 공동기획 보도> 가 선정됐다. 온라인 부문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의 <대선캠프 분석 기획 보도>가 선정되었다. 시상식에는 한국일보 정준호(사진 가운데)·박준석 기자(사진 오른쪽),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오대양 기자(사진 왼 쪽)가 참석했다. 4월의 좋은 보도 수상자들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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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더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기자 한국일보 정준호·박준석

수상 소감을 듣고 싶다 정준호 기자 선정사유에서도 말씀해주셨지만 해당 기획의 애초 취지

는 후보가 일방적으로 내놓은 공약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으로 시민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개혁과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 그에 대한 입장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다른 매체들도 검증 보도를 많이 내놓았는데 그중에서도 저희 보도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대선 이 종료되었으니 공약 이행 여부에 관해서도 계속 지켜보겠다.

보도 내에서 입장 차이를 나열하는데 주력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정 책에 대한 자체적 해설이나 평가를 줄이려 했던 건가? 정준호 기자 좀 변명 같지만 캠프에서의 답변이 좀 부족했던 탓도 있

다. 총론은 있는데 각론은 답변이 부실한 부분들도 있었고. 각 후보 별 입장 차이를 세부적으로 갈라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 기도 했는데, 나열식으로 보였다면 기사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시민단체와 언론의 속성이 다른데, 협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박준석 기자 사실 처음엔 이분들이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

은 아닐까 우려했다. 그런데 막상 답변지에 이분들이 덧붙여주신 논 평 등을 보니 생각보다 균형이 잘 잡혀있었다. 오히려 협업 과정에서 의 어려움보다는 좋은 내용이 많았는데 그걸 지면상의 제약 때문에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정준호 기자 사전에 질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호 간에 협의가 충분

히 이뤄진 덕분에 갈등은 전혀 없었다.

선거 시기 유권자 의제를 보도해야 한다는 요구는 늘상 있기 마련이다. 이를 현장에서 성과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고민 등을 듣고 싶다. 박준석 기자 그런 고민은 늘 하고 있다. 사실 이번 기획 보도도 아래에

서부터, 밑에서부터 끌어올려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 려오는 방식으로 시작된 것이라 아쉬움이 있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지면을 만들다 보니 그런 기획이 잘 안됐던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봤 다. 정준호 기자 정책검증을 통해서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하지만, 전체 대

선 기간 동안 우리가 밀착해서 유권자들의 생각을 전달해 보려는 시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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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제대로 했는지 돌이켜보면,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선거처럼 예정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미리 고민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 다. 이건 데스크에 맡길 일은 아니고, 현장 기자들이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다.

정책검증 기사라는 것이 고생한 것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기사에 대한 독자 반응은 어떠했나? 정준호 기자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에서는 해당 기획에 대해서 그래

도 다른 매체랑 비교했을 때 한 발짝 더 나갔다고 봐주셨던 것 같다. 개인 독자 반응은 지지후보에 따라서 굉장히 갈렸던 부분이 있다. 박준석 기자 이번 대선에는 사실 팩트체크 보도에 이목이 집중됐었다.

다음 선거에서는 정책검증 보도와 팩트체크 보도에 함께 포커스를 맞춰보고 싶다.

“남들이 여건상 수상 소감을 듣고 싶다 할 수 없는 오대양 기자 굉장히 지난한 작업이었다. 명단부터 관련 정보 확보까지. 작업을 하고 싶었다” 작업을 하면서 우리끼리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아웃풋은 적을 양 기자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오대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계속 작업을 이 어나갔던 것은, 남들이 하지 않았고 또 여건상 할 수도 없는 일을 우 리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성과물을 이렇게 기억해 주시 고 또 의미 있는 상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무엇보다 뉴스타파가 이 런 보도를 할 여건을 만들어 주시는 4만 명의 후원자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문재인 캠프 문제 인사로 꼽힌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이 현재 우려했던 대로 하마평에 오른 상태다. 이와 관련한 후속 취재를 준비하고 있나. 오대양 기자 후속 취재는 당연히 인사검증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텐

데. 이제 하마평인 정도니까 결과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송 영무 전 해군참모총장 같은 경우에는 경찰 파트에서 강정마을 사태 에 연루된 사람과 함께 문재인 캠프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좀 더 주 목하게 된 부분도 있다. 기존 민주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해오던 주 28


장과 배치되는 생각들을 가진 인사들인데, 그것에 대한 설명은 있어 야 되지 않겠나. 덧붙여 해당 리포트를 진행하면서 문제 인사들에 대한 기준을 잡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하나의 잣대를 대니 캠 프 간의 불균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후보가 말한 정책과 뜻을 달리하는 인물들이 캠프에 포함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대양 기자 리포트에서 이야기했지만 캠프 측에서는 그냥 돕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쳐낼 순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우리는 캠프라 는 속성 자체가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 때문에 캠 프에서 좀 더 주체적인 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 다.

선거 시기 유권자 의제를 보도해야 한다는 요구는 늘 있기 마련이다. 이 를 현장에서 성과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고민 등을 듣 고 싶다. 오대양 기자 촛불정국에서 촉발된 대선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관련 회

의들은 많았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의제 자체를 좀 자의적으 로 잡아간 측면이 있지 않나 반성도 하게 된다. 나름의 노력이 없었 던 것은 아니다. 부족하고 세련되지 못한 작업이었던 것 같기는 한 데, 지난 4년간의 신문 사설 제목과 키워드를 다 뽑아서 앞으로 우리 가 다뤄야 하는 주요 현안을 도출해 보려는 작업을 시도해보기도 했 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세련되고 정확한 방법으로 유권자 의제를 다 룰 수 있을지. 고민은 많지만 답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 다.

이번 보도로 특정 후보 캠프나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지는 않았나? 오대양 기자 문재인 캠프의 숫자 자체가 나머지 캠프의 모든 명단을

합친 것보다 많다 보니 검증이 필요한 사람들도 그만큼 많이 포함되 어 있었다. 그래서 보도 속에서도 그만큼 문재인 캠프에 대한 문제제 기 비중이 좀 높게 나타나다서 지지자들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오해 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도 안에서 좀 더 설명이 잘 되었으면 좋지 않 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정리 배나은 활동가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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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 『뉴스타파, 포기하지 않는 눈』·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지음·책담 펴냄

“‘이명박근혜’ 시대의 잔혹한 유산들!”

이 책의 저자는 <뉴스

사회의 안전과 재난 대응 관련 문제의식 속에서 기

타파> 기자들이다. <뉴스

획했다. 뉴스타파 대표 김용진은 여는 글에서 원전은

타파>의 정식 이름은 ‘한

‘현존하는 가장 위협적인 안전 문제’라고 단언한다.

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

책은 2015년 2월, 이명박이 출간한 회고록《대통령

타파’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의 시간》을 뜯어보는 걸로 시작한다. 탐사팀은 “MB

2012년 KBS, MBC, YTN

시대 5년의 트라우마를 되살려내는 일처럼 괴로웠다”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

고 고백했다. 회고록 말미에 “무엇보다 자화자찬을 경

이 주축이 돼 만든 언론

계” 하면서 “사실에 근거할 것, 솔직할 것, 그럼으로

이다. 이들은 이 독립언론을 만들면서 “죽어가는 저

써 후대에 실질적 참고가 될 것”이라고 세 가지 원칙

널리즘의 복원을 선언하고, 제도 언론이 말하지 않는

을 가지고 집필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사실을 왜곡하

진실들을 사회 이슈로 이끌어내기 위해 ‘성역 없는

고 짜깁기하고 자기 합리화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

탐사보도’를 표방한다”라고 밝혔다.

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독립언론의 제일성에 무엇을 담아낼 것인

뉴스타파는 그 사례 중 하나로 이명박 선거법 위반

가? 그리고 그 이후 어떤 보도를 해나가야 할 것인

사건을 회상시켜 준다. 지난 1996년 이명박은 서울

가?’ 고심했다. 이들이 밝힌 기본 방향은 이렇다. “이

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 기간에 무려 7억

명박 정권 때 소위 주류 매체들이 눈 감았던 이슈, 박

원을 뿌리고, 부정선거를 도운 자기 비서관을 해외로

근혜 정권 때도 이들이 하지 못할 문제들을 집중적

도피시킨 적이 있다. 그 비서관이 국내로 소환되자

으로 파헤쳐 알리자.”

이명박은 비서관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했다. 1999년

이때 논의된 아이템이 국정원 여론 조작, 박근혜

대법원은 그에게 범인 도피 및 공직 선거법 위반으로

내각 검증, 4대 강, MB의 적폐, 재정 및 예산 문제 등

형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두고 이명박은 반성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3년 3월 1일 뉴스타파는

하기는커녕 마치 나라를 위한 대단한 결단을 내리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 관련 리포트 3 꼭지, 박근혜 정

의원직을 사퇴한 것처럼 호도했다. ‘MB의 거짓말’ 절

부 장관 후보자의 반포 아파트 투기 의혹 등 내각 검

정은 4대 강 사업이다. 탐사팀은 그 회고록을 보면서

증 리포트 2 꼭지, 그리고 예산감시 기획 ‘내 세금 어

4대 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거짓보다 사실을 찾아내

떻게 쓰이나’ 시리즈 첫 편을 보도했다. 이 책에 담긴

기 힘들 정도로 왜곡이 심했다고 한숨을 쉰다.

4가지 프로젝트 중 3건이 이때 시작해 길게는 1년

‘MB의 유산’에서 다룬 MB의 자원외교를 보면 분

이상 파헤친 결과물이다. 마지막 4부 ‘원전 묵시록’

노가 일다가 허탈해진다. 해외자원개발에 4대 강 사

프로젝트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업 때 들어간 돈 22조 원보다 더 많은 28조 원을 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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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었단다. 그중 공공기관인 광물자원공사는 캐나

무엇이었을까? 하고 줄기차게 파헤친다. 의혹의 중심

다의 탐사업체 ‘파웨스트’가 개발하고 있는 산토도밍

은 이명박의 모교인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동지상

고 구리광산을 확보하기 위해 ‘2010년 초 파웨스트

고)였다. 동지상고 출신들과 연결된 업체수는 낙동강

시가총액인 2억 3000만 달러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에서만 모두 28개. 그들의 낙동강 사업 수주액은 모

4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확보한 지분은 고작 30퍼센

두 4286억 원에 달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

트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할 수 있겠다. 황당한 사례도 있다. 낙동강 사업에서

석탄공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10

40억 원을 수주한 세창건설은 건설회사가 아니라 황

년에 몽골의 훗고르샤나가 탄광을 260억 원에 인수

량한 벌판에 있던 주유소 건물이었단다. 이 건설사

했지만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고 뉴스타파는

의 대표는 5대, 6대 구미시의회 의원을 지낸 황경환

설명 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 낙하산 인사로 알려졌

전 새누리당 시의원이었다. 4대 강 공사 당시에 시의

던 석탄공사 이강후 사장은 책임을 졌을까? 뉴스타

회 의장을 맡아 4대 강 사업 홍보를 위해 발로 뛰기

파 취재진은 이강후 사장이 2012년 임기를 채우지

도 했다는 사람이다. 왜 그렇게 열심히 4대강 사업

도 않고 중도 사퇴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꼬

을 홍보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된다. 이명박은

집었다. 뉴스타파는 ‘취재 그 후…’에서 석탄공사는

2009년 2월 7일, 동지상고는 이명박에게 제1회 ‘자

해마다 6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내면서 빚더미에 오

랑스러운 동지인 상’을 수상했다.

르자 2020년까지 전체 직원의 40%인 516명을 감원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이 1부 가운데 겨우 몇 개

하기로 했다는 것도 지적한다. 완전히 글로벌 호구가

사례다. 2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3부 내 세금 어

된 이야기다.

떻게 쓰이나, 4부 원전 묵시록 등 알고 있는 듯하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시작돼 박근혜 정권 때까지

만 모르는 사실들이 너무 많다. 각 꼭지마다 작은 꼭

이어져 온 아프가니스탄 지원 사업은 아직 MB시대

지가 5~7개가 있다. 이명박근혜의 유산. 이거 지나간

유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준다. 뉴스타파는

일로 치부하고 덮어두면 안 된다. 이 모든 일이 내 삶

이전 정권들이 이 사업을 추진한 배경과 이유가 제

과 연결돼 있다.

대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뉴스타파는

다행히 박근혜는 쫓겨났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 속에서 진실을

다. ‘문재인(정치인)’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 책에

찾아냈다. 이명박 정권 때 아프간 지원을 하라는 미

추천사를 썼다.

국의 압박을 받고 2011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

“이 책은 대한민국의 적폐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

까지 5억 달러가 집행된 사실을 밝혔다. 뉴스타파는

다. 진실을 ‘덮어쓰기’ 해온 권력과 한판 붙는 그들의

이제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적어

결기가 놀랍다. 대한민국은 다시 전진해야 한다. 지

도 2020년까지 매년 700억 원씩 혈세가 빠져나가는

난 권력이 숨긴 실체적 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

걸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한탄한다.

도….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이 전하는 ‘덮어쓰기’ 당

책에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지 못한 소식이 실려

한 진실을 다시 주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책에 나온 문제의 진실을 꼭

있다. 4대 강과 MB의 커넥션이다. 뉴스타파는 이명박 이 22조라는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부으면서까지

파헤치기를 바란다.

강을 망치는 4대 강 사업을 밀어붙인 ‘진짜’ 이유는 2017년 6월

글 안건모 웹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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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 <히든 피겨스>

피부색이나 성별 말고, 능력으로 판단하라고요

그들은 ‘흑인’ ‘여성’이다

40세의 캐서린(타라지 P. 헨슨)은 미 우주항공국(NASA) 랭글리연구센터 임시직 전산원이다. 캐서린은 초등학교 때 고등교육으로 월반할 만큼 수 학 천재였으며, 대학원을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한 이력도 갖고 있다. 물 리학과 수학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메리(자넬 모네) 역시 미 우주항공국 의 임시직 전산원이다. 캐서린과 메리를 포함해서 20여 명의 임시직 전 산원들을 관리하는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는 공석 중인 관리자의 일을 1 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관리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녀 역시 임 시직이다. 이들 전산원들은 나사의 로켓 궤적 계산을 포함한 만만치 않 은 수학 연산을 해내는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 하고, 임시직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유는 흑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 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테오도어 멜피 감독, 2016)는 캐서 린 메리 도로시라는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어떻게 나사에서 성공할 수 있 었는지를 이야기한다. 1961년 현재 버지니아주 햄프턴에 위치한 나사 랭 글리연구센터 내부에서 공고히 작동해왔던 인종차별 성차별 제도가 이 들로 인해서 어떻게 변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흑인 여성은 엔지니어가 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도전하라 며 폴란드계 유태인 책임연구원은 메리를 자극한다. 용기를 가지고 엔지 <히든 피겨스> 감독 테오도어 멜피 출연 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자넬 모네 제작 2016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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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에 응모하지만, 나사 측은 백인만 다닐 수 있는 특정 대학 기술 강 좌 이수라는 응모 조건을 들어 보이며 탈락시킨다. 수업 참석 탄원 재판 을 신청한 메리는 재판장에서 판사를 설득한다. 항공엔지니어인 자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만약 판사가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버지니


아 주법에 예외를 허용하여 백인학교 수업 참석을 허락해주면 훗날 최 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를 만들어낸 최초의 판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 는 게 골자이다. 판사는 야간 수업 참석을 허락하고 메리는 강좌를 이수 하여 마침내 나사의 엔지니어 자격 요건을 갖춘다. 관리 업무를 보고 있지만 수학에 천재적인 도로시는 나사가 전자 연 산 대형 컴퓨터 IBM을 들여오자 수작업을 하던 전산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감지한다. 그녀는 컴퓨터 작동 원리를 빠 르게 독학으로 익힌다. 개인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인 전산원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킨다. 백인 남성 직원들이 쩔쩔매던 IBM 을 제대로 작동시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로시는 임시직이긴 하지만 IBM 작동 업무를 제안받는다. 그러나 혼자만 IBM 컴퓨터실로 이동하 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전산원들이 모두 컴퓨터를 다루는 훈련 이 되어있으니 모두를 이동시켜 주지 않으면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승부수를 띄운다. IBM 작동 인력이 부족했던 상황은 그녀의 조건을 받 아들이게 한다. 그녀는 IBM 컴퓨터실 관리자로 임명된다. 흑인에게는 영구 관리직을 주지 않던 나사의 규칙은 깨졌다. 도로시는 마침내 나사 최초의 흑인 관리자가 된 것이다. 이 영화 서사의 중심에는 수학 천재 캐서린이 있다. 영화는 꼬마 수학 천재에 대한 선생님들과 부모의 잔잔하지만 확신에 찬 기대로 문을 연 다. 이어지는 장면은 3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1961년 출근길 도로에서 멈춰 선 고물 자동차 안의 캐서린의 표정이다. 창밖을 바라보는 희망 없 는 표정에서 수학 천재에 대한 선생님들과 부모의 기대는 현실의 벽 앞 에서 처참히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서린은 메리와 도로시의 자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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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차로 카풀하면서 나사의 임시직 전산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그러던 캐서린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우주 임무를 총괄하는 알 해리 슨 본부장(케빈 코스트너)이 유인 우주선의 탄도 진출입 궤도를 계산해 낼 해석기하학 전문가를 급히 구하면서 캐서린은 우주임무팀에 합류한 다. 30명 가까운 우주임무팀에는 본부장의 사무 비서를 맡은 루스를 제 외하면 여자는 캐서린이 유일하다. 흑인도 유일하다. 러시아가 유인 우 주선을 성공시키면서 우주 지배력이 러시아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은 나사의 유인 우주선 성공을 압박했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캐서 린이 매일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인지한 본 부장은 캐서린을 야단친다. 캐서린은 본부장의 질책에 절규한다. 흑인 전용 화장실이 8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복장 규정이 있어서 힐을 신고 치마를 입어야 하므로 자전거를 탈 수 없고 걸어서 오가야 한다는 점. 커피 포트도 흑인 전용으로 별도로 마련하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고는 자리를 뜬다. 본부장은 커피포트에 붙어있는 ‘유색인 용’이라는 종이조각을 뜯어버 리고, 이어서 800미터 떨어져 있는 유색인 여성화장실의 푯말도 망치 로 쳐서 떼어낸다. 나사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하 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이전의 규칙을 깬다. 국방성 보고회에 여성 은 참석할 수 없다는 규칙 역시 궤적 계산에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던 캐 서린의 동석 요청을 본부장이 들어주면서 깨어진다. 캐서린은 IBM도 정 교하게 산출해내지 못한 미국 최초 유인 우주선 머큐리의 지구 귀환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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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계산해내면서 나사의 우주임무팀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능력이 있어 가능했나, 라는 느낌을 주는 아쉬움

영화 <히든 피겨스>의 감독은 최소한 세 번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하나가 캐서린의 절규이다. 우주임무팀이 있는 건물에는 백인 여성 비서가 규정하는 것처럼 우리 (백인) 화장실만 있 고 ‘너희 화장실’은 없어서 800미터 떨어져 있는 ‘유색인 화장실’을 뛰어 서 오가고 밤낮없이 개처럼 열심히 일하지만 급여는 엄청나게 적어서 복 장 규정에서 말하는 ‘수수한 진주 목걸이’ 착용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 한다고 캐서린이 감정을 폭발시킬 때,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인해 그녀가 받았을 고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도로시가 교섭을 통해서 전산원 모두를 재배치 받게 한 후 새 로운 일자리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이들의 표정, 공간의 위치, 경로의 색 감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들의 감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지하 사무 실 공간으로부터 나와서 회색 벽과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온 이들 에게 햇살은 하얗게 부서진다. 이어 컴퓨터실이 있는 기술동으로 진입할 때 하얀 틀의 출입문이 선명하게 강조되고, 이어서 지상에 위치한 하얀 색 톤의 건물 안을 경유해서 컴퓨터실로 들어가는 성취의 장면이다. 그런데 좀 아쉽다. 무엇보다 캐서린, 메리, 도로시의 캐릭터가 너무 평 면적이다. 인종과 성 차별에 익숙해 있는 듯 영화 전편에서 그들이 차별 에 고민, 갈등, 분노, 좌절하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해서는 시대적 배경 사건으로 산만하게, 양적으로도 미흡하게 제시되고 있어서 차별의 해소를 능력 있는 개인의 경우로 환원·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캐서린이 발탁되고 메리가 자격을 갖 추고 도로시가 영구 관리직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특출 난 능력의 흑인 여성들이 마침 미국 전체가 우주 경쟁에서 러시아에 패배할 수 있다는 공포심으로 떨고 있는 특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 게 한다. 그리고 차별과 관련해서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캐릭터는 해리 슨 본부장이다. 캐서린의 절규를 듣고 유색인 여성화장실의 팻말을 때 려 부수는 본부장은 성 차별 인종차별을 선도적으로 없앤 멋있는 인물 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캐서린이 당연히 받았을 차별들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과적으로는 타인의 고통에 무지했던, 그러므로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인물이지 싶다. 글 염찬희 회원·영화평론가

2017년 6월

35


신입 활동가 인사 | 이정일 활동가

탈탈탈~ 열심히 털어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민언련이라는 시민단체 의 활동가는 우리나라 언론 정상화를 위해 최전선에 서 싸우고 있는 열정도 사명감도 대단한 사람들이었 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민언련의 애정 어린 감시로부터 살짝 비켜나 있는 흔한 방송노동자였습 니다. 그리고 함께 방송을 하면서도 민언련 안에 제 가 설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었 ‘이 피디, 언제 올 거예요?’라는 김언경 사무처장의

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민언련 활동은 대부분 모니

문자에 ‘그럼, 내일 가겠습니다.’로 답할 때까지만 해

터 보고서 작성과 발표를 통해 이루어져 왔기 때문

도 그저 안부 정도로 가볍게 오가는 인사인 줄 알았

에 방송 기획과 제작 전문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부담 없이 놀러왔던 민언련

좀처럼 찾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민언련 보고서를 방

에서 활동가가 되었고 지금은 신입 활동가 인사글을

송화시킨다면 모를까 민언련과 피디인 저의 콜라보를

쓰고 있습니다. 민언련 회원 여러분, 이렇게 인사드리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때 늘 사람들에게 민언련의

게 되어 영광입니다.

활동과 모니터 내용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알릴 수

저와 김언경 사무처장, 이봉우, 배나은 활동가는 대

있을까를 고민하던 김 사무처장이 민언련의 목소리

안언론 피디와 출연자로 처음 만났습니다. 함께 방송

를 낼 수 있는 자체 오디오 팟캐스트 제작을 도와달

을 하면서 민언련의 열정적인 활동에 대해서 더 많이

라고 했습니다.

알게 되고 활동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

기존 방송에서 시간을 마련해주면 가서 수동적으

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부끄럽지

로 응하던 방송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자체 방송

만 뒤늦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활동가들과 함

제작으로 제대로 ‘한풀이’해보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께 방송하기 전에도 민언련에 대해 알고는 있었습니

하지만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이

다. 지역에 있는 민언련에서 모니터 모임을 아주 잠깐

두렵기는 사무처장이나 저나 마찬가지였고, 그런 차

해봤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제가 피디

원에서 처음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방송을 만들고

로 있는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 고정 패널로 출연시키

편집해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 정도라면 제가 지

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금까지 늘 해왔던 일이고, 또 일주일에 한 번은 세 분

하지만 그때도,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활동가라는 36

과 1년 넘게 함께 했기에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


었습니다. 더불어 저의 보잘것없는 재주로 민언련에

사실만으로도 많이 자랑스럽고 동시에 굉장히 부담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하고 영광스러웠

스럽습니다. 계속해서 다양해지고 변화해가는 언론

습니다.

지형 속에서 일방적 전달자였던 언론은 그 수가 많

출근 첫날부터 미리 대여해놓은 외부 녹음실에서 녹음 현장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동시에 페이스북 라

아졌음에도 오히려 강직적 사고 행태가 두드러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이브 방송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민언련에서 얼마

언론 수용자들은 수동적 수용자의 한계를 벗어나

나 자체 방송을 원했는지 언론 수용자들과의 직접

자발적 검증과 비판의 칼날이 훨씬 날카로워지고 부

적인 소통에 목말랐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런해진 현실 속에서 ‘민언련’이라는 이름의 무게

활동가들의 넘치는 의욕이 녹음실을 지배함을 느끼

를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단지 사후 비판자로서

면서, 어쩌면 가볍게 합류한 제 부담감은 배가 되고

의 역할만이 아니라 언론 전달자와 수용자들이 아름

카메라를 잡은 손은 떨려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

다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더 큰 판을 깔아주고

말 잘 만들어봐야겠다는 의욕도 커졌습니다. ‘기존

더 정당하고 생산적인 기준과 원칙을 먼저 제공하는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뉴스의 어장에 빠지지 마세요.’

중재자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 늘 고민하겠습

라는 의미로 출발한 ‘민언련의 뉴스어장’은 많은 내

니다. 서른 세 살 청년 민언련과 함께 도전하고 열정

외부 애청자들의 애정 어린 조언과 관심으로 지금의

적인 청년 활동가가 되겠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언론을 제대로 모니터 하는 사

‘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탈곡기는 벼, 보리 따위의 이삭에서 낟알을

람들이 만드는 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를 통해 많은

떨어내는 농기계지만 최근 네티즌들은 다른 뜻으로

사람들이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더 쉽고 재미있게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논쟁하는 상대를 논리적으

인지하고, 언론과 민언련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계기

로 파고들어 그 사람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상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로 만드는 것을 ‘탈곡한다.’라고 표현하고 탈곡을

활동가가 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잘하는 사람은 ‘영혼 탈곡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동안 5·18 광주 순례, 이 달의 좋은 보도 시상식, 대

그러니까 ‘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는 언론이 그 어떤

선미디어감시연대 총평가 토론회 등 민언련에서 경

이유로든 왜곡, 오도하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

험할 수 있는 뜻있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말로 제

든 행태를 보일 때, 민언련이 그들을 탈탈 털어보겠

가 이곳의 활동가가 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이런 기

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방송의 끝

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민언련에 늘 감사하게 생

인사는 ‘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는 내일도 열심히 털

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의 부족함에 걱정이 앞

어드리겠습니다. 탈탈탈~’입니다.

섭니다. 하지만 민언련 회원님들과 함께 일하는 활동

좋은 것은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가들을 믿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한편에 접어두

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 아래 민언련 역사상 첫 자체

고 방송으로 매일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

데일리 오디오 팟캐스트가 탄생했고 그리고 저는 그

다. 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에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

가슴 떨리는 출발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1984년 언

다. 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는 내일도 열심히 털어드

론인 선배들의 간절했던 첫 마음에 감히 비견할 수

리겠습니다. 탈탈탈.

없겠지만 뜻을 이어받아 시대정신을 만들어간다는 2017년 6월

글 이정일 팟캐스트 담당 활동가

37


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

언론정상화를 위해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이렇게 달렸어요!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정도 된 6월 초, 끝난 난 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선 거방송심의위원회가 6월 5일 마지막 회의에서 이번 선거에서 최악의 여론조 사 보도로 기록될 MBC 보도에 솜방망이 제재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마저 도 직전 회의에서 면죄부를 줬다가 민언련이 문제를 제기하자 재심의를 한 것 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결과지만 대응 과정에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실무 를 맡은 방송심의위원회 사무처의 부당한 업무처리 과정을 밝혀내 일상적인 심의는 물론 이후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운영에 견제구를 날린 성과가 있었습 니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방심위가 왜곡편파보도를 엄정하게 처리할 수 있 도록 감시하겠습니다. ‘왜곡·편파보도 백서’와 ‘언론장악 백서’ 제작이 한창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 지만 지나고 나면 아련해지고 파편화된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 서 왜곡·편파보도 백서와 언론장악 백서를 준비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 권에서 벌어진 언론장악과 부역행위를 기록해 언론 적폐 청산의 소중한 자원 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보도지침 폭로 31주년(9월 6일)을 앞두 고 88년에 나온 책 『보도지침』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언론탄압사까지 담아 증보 발간하는 작업에 한창입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벌어졌던 언론장악 과 탄압이 또다시 벌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대선 이후에도 언론계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영 통신사인 ‘포커스뉴스’는 대선 기간 부당한 기사 삭제와 지시에 항의하고자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마자 회사를 아예 ‘폐업’해 버리는가 하면 OBS는 정리해고에 맞서 천 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KBS·MBC를 필두로 한 공영언론 구성원들 이 본격적인 적폐 청산 투쟁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민언련도 이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해 나갈 것입니다. 민언련 회원으로서, 언론 정상화 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관심도 가져주시고, 주위 분들과도 말씀 나눠주세요.

38


사무처 활동소식

대선이 끝나고 활동가와 인턴으로 북적거렸던 사무실이 좀 한산(?)해졌습니 다. 그동안 너무 높은 인구밀도에 익숙해서였을까요? 8명 정도가 빠져나가니 그럴만하겠지요. 사무처도 ‘정상 모드’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잠시 느끼는 기분 일 것입니다. 5월 13일 광주순례를 시작으로 회원들과의 만남에 시동을 걸었 습니다. 좀 더 자주, 친숙한 기회 마련하겠습니다.

회원활동 소식

신문모니터위원회 아쉽게도 그간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헌신적으로 활동해주었던 이 훈 회원이 한국을 떠나 당분간 기족이 있는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송별회는 엠티로 대신하기로 했으니, 출국 전날까지 못다 한 이야기를 모두 나눠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김예리 회원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이번 엠 티 주종은 담당 활동가가 제조하는 ‘모히또’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니터 보고서 는 이번 달에는 건너뛰고, 다음 달부터 다시 열심히 달려볼까 합니다.

방송모니터위원회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대선 이후 잠시 휴식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분과원들 이 모여 한국PD연합회가 주최한 <방송학@미디어현장> 콜로키움에 참석하여 ‘TV 리얼 예능’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대선미디어감시연대 활동의 회포도 풀었습니다. 방송모니터위원 회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회원들의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주요 회의 결과

운영위원회 5월 17일(10차) 운영위는 언론장악 및 왜곡·편파보도 백서 발간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효과적인 배포와 홍보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5월 31일 운영위에서 는 백서 배포 및 홍보 방안을 확정했습니다. 인쇄부수는 최소화하되, 좀 더 효 과적인 홍보와 공유를 위해 아카이브 구축 등의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발간 후 회원들께도 안내해 언론개혁 운동의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

2017년 6월

39


주요 회의 결과

록 하겠습니다. 한편 KBS·MBC 등 공영언론 정상화를 위한 민언련의 역할을 모색하고, 모니터 활동가 채용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정책위원회 5월 정책위에서는 언론장악백서 구성 및 원고작성 방향에 대한 의견을 공유 하는 한편 언론개혁 운동 방향에 대한 토론을 진행 했습니다. 향후 주제별 포 럼으로 이를 구체화 하자고 결정했으며 2개월 이내에 정책위원 보강을 완료 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사회 6월 23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1월부터 5월까지의 사무처 활동을 검토한 후 3 월 정기총회에서 설명한 ‘회원모임 운영과 지원에 관한 내규’와 ‘회원 윤리에 관한 내규’를 제정했습니다.

활동 보고

신문 모니터 2017. 5. 1 ~ 5. 31 •비정규직, 대통령 발언 계기로 더 ‘극성’ 부린다는 조선 외 17건

방송 모니터 2017. 5. 1 ~ 5. 31 •세월호는 ‘새 날 더럽히는 과거’? TV조선은 변한 게 없다 외 13건

종편 모니터 2017. 5. 1 ~ 5. 31 •‘허니문’ 기간에 패션 등 가십밖에 칭찬할 것이 없을까? 외 5건

논평·성명·기자회견문

2017. 5. 1 ~ 5. 31

•포털의 뉴스 제목 수정, 중립성 논란 부를 수 있다 외 7건

40


단위: 원

결산 보고

2017년 4월

2017년 5월

1~5월 누계

107,919,545

96,582,593

490,118,720

91,572,999

91,268,099

459,418,197

-

-

1,320,000

16,346,546

5,314,494

29,380,523

44,027,889

70,169,004

234,208,115

18,667,384

18,903,624

93,589,480

강좌진행비

-

-

1,350,000

모니터보조

15,478,015

20,106,229

55,253,726

과목 Ⅰ. 수입 정기후원회비 강좌수입 특별후원회비 Ⅱ. 직접사업비 지역민언련활동비 *

·2017년 4월, 5월 및 ·2017년 1~5월 누계

500,000

500,000

2,200,000

홍보비

2,567,880

5,624,240

25,557,380

원고료

500,000

710,000

2,190,500

광고선전비

325,420

238,171

1,094,189

전산유지비

1,169,400

-

3,684,390

임원활동비

회의비 언론개혁활동비

-

10,085,930

-

1,755,990 ②

1,755,990

회원활동지원비

-

-

빈칸

850,000

5,100,000 ③

6,250,000

연대단체후원비 Ⅲ. 수입 - 직접사업비 Ⅳ. 운영비 활동가급여 일용인부임(잡금) 퇴직급여

께 보고합니다. *지역 민언련 활동비는 지역 민언련 회원들이 낸 회비입니다. 현재 민언련은 7개 지역 민언련 회비 CMS 업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③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 민언련 분담금 500만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④ CMS 보증 보험료입니다. 연 1회 납부합니다. ⑤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 참여 단체 분담금 을 수입으로 잡았습니다.

-

빈칸

26,413,589

255,910,605

27,107,637

29,308,259

164,757,314

17,275,848

19,274,331

98,754,370

-

-

7,430,908

792,420

792,900

3,954,300

866,720

652,890

4,700,190

건물관리비

1,100,000

1,100,000

5,500,000

지급임차료

1,265,000

1,265,000

6,325,000

사회보험

1,463,090

2,328,850

8,262,900

여비교통비

189,700

20,000

473,260

통신비

254,550

228,870

1,292,550

수도광열비

1,735,840

277,301

277,285

보험료

-

397,000 ④

397,000

차량유지비

-

110,000

155,000

운반비 도서인쇄비

26,700

10,000

175,700

280,000

313,000

1,581,600

-

404,800

1,179,600

300,370

415,620

12,130,635

지급수수료

1,615,938

1,617,713

7,908,461

용역수수료

1,400,000

100,000

2,800,000

업무추진비

Ⅴ. 영업이익

② 2017 오월 광주순례 비용

63,891,656

복리후생비

소모품비

①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 활동에 사용한 비 용입니다.

3,773,920 27,422,610

560,930

연대활동비

어져서 2017년 4월과 5월 결산을 함

95,000 17,135,750 ①

회원참여행사비

회원감사활동

<날자꾸나, 민언련> 6월호 제작이 늦

270,500 3,138,360

Ⅵ. 영업외수익

36,784,019

-2,894,670

91,153,291

365,627

28,495,330 ⑤

33,751,353

이자수입

127

-

803

기타수입

65,000

28,139,930

32,835,150

행사수입

300,000

345,000

903,000

500

10,400

12,400

-

-

170

-

-

170

37,149,646

25,600,660

124,904,474

잡이익 Ⅶ. 영업외비용 잡손실 Ⅷ. 법인세차감전이익 Ⅸ. 법인세등 Ⅹ. 당기순이익

2017년 6월

-

-

-

37,149,646

25,600,660

124,904,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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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좋은 신문 보도

적극적 의제설정 및 검증으로 선거 보도 본령 지킨 한국일보

대선을 앞두고 한국일보는 시민사회 및 각 분야 전문가 집단과의 적극적 협업을 통해 개혁과제 등 주요 현안에 대 한 각 후보 주장의 적절성과 일관성, 구체성을 검증했다. 후보들이 일방적으로 쏟아낸 공약을 검증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후보들의 구체적 입장을 확인 및 검증했다는 측면에서 민언련은 한국일보의 <대 선 후보에게 묻는다-참여연대 공동기획 보도>를 2017년 4월, 이달의 좋은 신문 선거보도로 선정했다.

좋은 온라인 보도

대선후보 ‘비전 실행의지’, 캠프 분석으로 점검한 뉴스타파

당선자가 인수위를 꾸리지 못하고 곧바로 새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탐사저널리즘 센터는 검증의 대상을 ‘차기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큰 대선주자 캠프 내 인사들’로까지 확장했 다. 각 캠프가 제시한 비전을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와 새 정부 출범 이후 인사 파동을 재연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 이 캠프에 포함되었는지 등의 정보는 유권자의 후보 선택 뿐 아니라 차기정부 감시에도 매우 유용한 정보다. 이에 민언련은 <대선캠프분석 기획> 보도를 2017년 4월, 이달의 좋은 온라인 선거보도로 선정했다.

좋은 방송 보도

선정보도 없음

나쁜 신문 보도

송민순 ‘쪽지’로 회고록 논란 재점화 시도한 중앙

중앙일보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공개한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북한으로부터 연락받은 내용을 정 리한 문건’과, 송 전 장관 본인이 회고록에서 언급했던 ‘송 전 장관 본인이 쓴 쪽지’, 그의 인터뷰 발언 등을 단독 보 도하며, 이미 지난해 10월 불거진 바 있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관련 공방에 불씨를 지피려 했다. 대선을 앞두고 소모적인 ‘북한 이슈’ 부각에 힘을 쏟은 것이다. 이에 민언련은 중앙일보의 ‘송민순 쪽지 단독 보도’를 2017년 4월 ‘이달의 나쁜 신문보도’로 선정했다.

나쁜 방송 보도

최악의 선거 관련 오보 저지른 SBS

SBS는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있던 5월 2일, 최악의 오보를 냈다. 해양수산부가 문재인 후보로부터 차관 신설과 해 경 편입을 약속 받고 세월호 인양을 정권 교체 이후로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근거도 부실하고 후속 보도도 없었던 이 의문에 ‘단독 보도’는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고 SBS는 하루 만에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진상조사에도 착수해 18일에는 보도 책임자들을 징계 또는 인사 조치했다. 그러나 ‘게이트키핑’이 부실했다는 SBS 의 진상조사 결과는 여전히 의문점을 남겨 놓았고 SBS 보도로 인해 불필요한 정쟁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SBS가 단 1건의 오보로 만든 파문은 언론사에 기록될 만한 오점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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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2017년 5월 3일부터 6월 21일까지 배포한 내용입니다.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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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MBC를 다시 일으키는 험한 길

‘만나면 좋은 친구’가 그립다

MBC가 창사 이래 최악의 수모를 당하고 있다. 영

간 경영 자문위원으로 계약했다. 한 달에 자문료

향력과 신뢰도가 바닥이다. <시사IN>의 언론사

천만 원, 활동비 3백만 원을 비롯해 2억 원가량을

신뢰도 조사에서는 ‘신뢰한다’는 답변이 2009년

더 챙겼다. MBC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32.1%에서 2015년 6.5%로 떨어졌다. 2014년 한

MBC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책임자들은 주거니 받

국기자협회가 현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

거니 자기 뱃속을 채운 것이다.

과 MBC는 신뢰도 0.7%, 영향력 1.2%였다. 특히 2013년 조사에서는 방송기자들 중 MBC를 가장

사장을 바꾸는 데서 시작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현직 사장과 다른 언론장악 부역자들을 단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에게 정체성과 자부심

회사 망치고 잇속 챙긴 사장

을 빼앗기고도 아직 MBC에서 버티고 있는 모든

MBC 타락의 과정에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전

직종의 사람들을 위해 MBC는 다시 일어서야 한

사장이 있다. 그리고 김장겸 현 사장이 따르고 있

다.

다. 인터넷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대한민국

MBC를 다시 살리려면 사장 선임 제도부터 바

에서 MBC가 과거 공중파 시대에 가지고 있던 플

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방

랫폼이라는 독점적 지위는 사라졌는데, 지키고 있

송문화진흥회법 개정이 포함된 이른바 ‘언론장악

었어야 할 콘텐츠 제작 능력과 이미지마저 잃어버

방지법’이 마련됐지만, 지금까지 여당의 반대로 상

리게 만들었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뺏긴 기자와

임위에서 표류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통과의 가

PD들이 탄핵정국에서 ‘시청자들이 차라리 욕이라

능성이 조금 높아지겠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통과

도 해줬으면’하고 한탄하고 있었던 2월에 사장 임

되더라도 문제는 있다. 바뀐 방문진법에 따라 새

기를 마친 안광한은 3억 원이 넘는 퇴직금에 5천

사장이 선임되면 김장겸 사장은 물러나겠지만 여·

만 원의 ‘특별퇴직공로금’을 받은 것도 모자라, 1년

야 추천 이사의 구도가 6대 3에서 7대 6으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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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덕영, 곽동건, 전예지 기 자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는 2013년을 마지막으로 신입 사원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지적 했다.

뀌는 새 법도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되돌리기, 그러나 저들과 다르게

좋은 제도라고 해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

새 사장이 맨 먼저 할 일은 되돌리기다. 직종을

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복구하고, 법원의 판결대로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징계조치를 원상회복하고, 원래의 일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 쫓겨났던 기자와 PD들이 다시 취재

황폐해진 MBC 사내 인간관계

김장겸 사장이 물러난다고 가정하더라도 MBC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게 해야 한다. 신뢰도와 영

를 되살리는 길은 멀고 험하다. 김재철, 특히 안광

향력이 떨어진 것이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콘텐

한은 MBC의 사내 조직과 문화를 엉망으로 헤집

츠 때문이었으므로 그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어놓았다.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해고와 정직,

그리고 겸손하게 수용자의 반응을 기다려야 한다.

징계, 부당전보를 마구잡이로 했다. 신입사원의 노

콘텐츠의 회복보다 어려운 것이 사내문화의 복

동조합 가입을 막기 위해 2013년을 마지막으로 신

구다. 특히 경력사원과 간부급 부역자들의 처리가

입사원의 공개채용을 하지 않았다. 대신 경력사원

그렇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부당한 피해를 당

을 230여 명 뽑았다. 채용 당시의 직종과 다른 직

한 사람들이 참고 있던 억울함과 분노가 적지 않

종으로의 인사발령이 부당노동행위라고 중앙노동

다. 어떻게 풀어야 MBC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

위원회가 판정하자 아예 직종 자체를 없앴다. 노

지 정말로 신중하게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동조합을 탈퇴하라고 승진과 보직을 미끼로 던졌

안광한과 일당들이 했던 식으로 인사의 칼을 휘두

다. 공채 사원과 경력 사원 간의 갈등은 말할 것

르고 싶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 유혹을 어떻게

도 없고, 파업을 같이했던 사람들 사이에도 지난

극복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시간이 걸

5년간의 조그만 행보의 차이에 따라 미묘한 감정

리겠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하수인들이 했던

의 어긋남이 생겼다. ‘만나면 좋은 친구’를 내세웠

방식과는 다르게 청산과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할

던 MBC가 그 안의 사람들끼리도 만나기 싫게 만

것이다.

들었다. 그것이 김재철과 안광한, 그리고 그 배후 의 정권이 노리던 것이었다면 성공했다.

2017년 6월

글 안성일 전 문화방송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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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페이크 뉴스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페이크 뉴스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의 저널리즘의 위기

‘페이크 뉴스’ 그 광풍의 시작

란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2004년 6월 29일 BBC News는 온라인상에서 패

마케도니아의 작은 도시 벨레스(Veles)가 언론의

러디와 모방을 주 활동으로 하는 스펍 웹사이트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여름 이후 온라인 공간

(Spoof website)에 대해 보도했다. 토마스 스콧이

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호의적인 뉴스가 급격히 증

라는 학생이 만든 이 스펍 웹사이트는 영국 정부

가하는 반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공식 홈페이지를 흡사하게 베꼈고, 주소도 유사했

정보가 무차별하게 유포되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다. 정부 대변인은 이 사이트가 국민들을 혼란스

그 진원지를 추적한 결과 벨레스에서 개설된 100

럽게 하고, 정부의 신뢰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논

여 개 이상의 웹사이트가 미국 보수 유권자들의

평하면서 웹사이트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

입맛에 맞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하였다. 이

나 스콧은 이를 거절했고, 오히려 이와 유사한 다

웹사이트의 주인공들은 벨레스에 거주하는 10대

른 웹사이트를 시리즈로 더 개설했다. 그는 “유모

에서 20대 초반의 직업이 없는 청년들이었다. 이

어 없이는 단 몇 초도 이 사이트를 볼 수 없다. 스

들이 만든 가짜 뉴스에 대한 높은 조회 수는 그들

펍 사이트는 망상적 열광, 좀비 공격 및 외계인의

에게 엄청난 광고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침공에 대해 조언을 제공하는 사이트일 뿐이다” 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스콧이 만든 웹사이트들은

페이크 뉴스가 힘을 가지는 이유

레이아웃, 로고 등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서 마

우리의 경우, 지난 대선 중에 중요하게 떠오른 주

치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들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

제가 ‘가짜 뉴스’였다. 페이크 뉴스(Fake news) 혹

였다.

은 이 가짜뉴스는 선거운동과 정치공론의 장에서

이처럼 페이크 뉴스는 한 대학생의 호기심에 의

상대의 약점을 폭로하고, 전열을 흩으러 놓기 위한

해 가볍게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미디어 현

중요한 전략적 기제로 이용되었다. 서울대 언론정

상은 오늘날 전 세계 공론장과 언론의 영역을 혼

보연구소의 팩트 체크 센터와 16개 국내 주요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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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대한 제제와 처벌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따라 저널리 즘을 새롭게 정립하고, 언론 주체들이 윤리적 규범을 지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 요하다. 론사가 지난 19대 대선 기간 공동으로 실시한 후

게 만들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통적 저널리즘,

보 검증 보도 팩트 체크 결과 177건 가운데 ‘가짜

전문가 중심 저널리즘의 위기가 중요한 원인임을

뉴스’가 88건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

지적할 수 있다.

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선 기간 동안 4만222건의 위법게시물에 대해 삭제요청을 했으며, 그중 네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새로운 규범과 윤리의식

버 밴드가 1만1891건, 페이스북 8,384건, 트위터

이 지점에서 가짜 뉴스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7,936건, 다음카페 2,219건, 카카오스토리 2,028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먼저 전문가 중심, 직업

건 등으로 나타나 대다수 가짜 뉴스가 SNS를 통

언론인 중심의 저널리즘이 약화되고, 시민 중심

해 유통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가짜 뉴스가

혹은 생비자(prosumer) 중심의 저널리즘이 확장

판을 치고,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규범과 윤리의식이 필요하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시민 저널리즘, 1인 미디어 저널리즘에 대한 교

무엇보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조직적

육과 언론윤리 의식의 고양을 위한 정책적 차원에

인 선동을 위해 가짜 뉴스를 만드는 경우들이 나

서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타났다. 이는 가짜 뉴스가 정치 및 선거 전략의 주

뉴스 생산자들의 보다 엄격한 팩트 체크, 정보의

요한 기제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선 기

사실성 강화를 위한 노력, 그리고 정보를 기록하

간 동안 각 선거 캠프들이 서로 가짜 뉴스를 만들

고 전달하는 방식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운영하

어내고 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변화하는 언론환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 이용자들의 판단 능력을 향상시

현재 언론사로 등록된 총 매체 수만 6,000개가 넘

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14일

고 있으며, 헌법재판소가 5인 미만 언론사도 그 지

삼성전자 뉴스룸의 스페셜 리포트 ‘디지털, 세상을

위를 인정함에 따라서 누구나 인터넷 언론을 운영

뒤집다_교육 편’에 따르면,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인터넷 언론이 난립하

젊은 세대일수록 온라인 정보에 ‘덜’ 취약한 것으

는 상황에서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의 구별이 매

로 나타났다. 따라서 시민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

우 모호해지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복사, 짜깁기,

온라인 정보 구분 능력을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

조작의 과정이 일상화 되고 있는 군소 언론들의

력이 필요하다.

뉴스 생산 시스템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다.

결론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제제와 처벌도 중요 하지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따라 저널리즘을

셋째로 이러한 언론환경 변화는 뉴스 생산자들 의 저널리즘 윤리의식을 희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새롭게 정립하고, 언론 주체들이 윤리적 규범을 지 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수용자들로 하여금 가짜 뉴스의 심각성을 무뎌지 2017년 6월

글 박태순 정책위원·미디어로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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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언론개혁의 골든타임을 맞이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

조(중)동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 하나

조(중)동은 어떤 조직일까? 그 구성원들은 무슨

지는 못할 것이다. 넷째,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

생각을 할까? 여기서 (중) 이렇게 쓴 것은 중이 조

람은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설령 다

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절대 활자화시키지 말아 달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뜻에서 빼지는 않고 괄호 속

라’ 할 것이다. 여섯째, 어차피 비밀로 할 수는 없

에 넣고 나란히 쓴다.

는 일, 인터뷰 작업이 사내에 알려지면서 응답자

언론의 관점에서 조(중)동을 묻고 비판하는 작 업은 매우 많지만, 조(중)동 조직과 구성원들에 대

에 대한 단속과 색출이 시작될 것이다. 일곱째, 다 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애초부터 없을 것이다.

한 물음은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언론개혁이라는

그래서 결국 인터뷰 작업은 없었던 일로 끝이

적폐청산의 과제 앞에서 이는 중요한 질문이다. 조

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중)동의 진솔한 내부 속

(중)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비교적 넓

사정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순전히

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상상이다. 진실로 나는 이것과 다르기를 열 망한다. 조(중)동이 달라지기를 원하고 다른 한편

질문 하나

그렇게 조(중)동을 해부해보고 싶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조 (중)동 구성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니들이 언론이냐?

이 질문을 가지고 한 연구자가 그들에게 인터뷰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은 조(중)동이라는 조직과

요청을 했다 하자. 대략 이런 시나리오가 예상된

그 구성원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지

다. 첫째, 도무지 섭외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피지기는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듯이, 이해는 동의

노조나 기자협회 같은 사내 조직의 지원도 받기

와 전혀 다른 것이다. 조(중)동의 구성원들은 누구

어려울 것이다. 셋째, 설령 개인적인 경로든 사내

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참으로 궁금하다.

조직을 통해서든 섭외가 되어도 다른 이야기를 듣 48

짚어보면 조(중)동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언론


언론의 관점에서 조(중)동을 묻 고 비판하는 작업은 매우 많지 만, 조(중)동 조직과 구성원들에 대한 물음은 상대적으로 희소 하다. 언론개혁이라는 적폐청산 의 과제 앞에서 이는 중요한 질 문이다.

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규범적 차원의 것이다. 속

아닐까?

된 말로 풀면 ‘조(중)동이 신문이면 내 집 화장지 는 팔만대장경이다!’, 이렇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단단한 조(중)동?

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규범적 비판은 조(중)동

애국 활동가들, 철부지 반항아들한테 점잖은 말

을 언론기관, 그리고 구성원들을 언론인이라 전제

과 훈수가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무언가 다른 접

할 때에만 성립된다는 점이다.

근이 필요치 않겠는가? 그렇다고 언론의 관점에

첫째, 겉으로야 언론인/언론기관이지만, 조(중)

서 이들에 대한 비판작업을 멈추자는 이야기는 아

동 구성원들이 위아래 모두 내심으로는 ‘언론인/

니다.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온바

언론기관’이라 생각지 않는다면? ‘밤의 대통령’이라

우리의 경험은 더 큰 판을 바꾸는 것이 언론개혁

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말이다. 이들은 언론업종

에 더 빠른 길임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이겠지

에 종사하는 애국 정치인 또는 애국 활동가들 아

만, 내가 보기에 조(중)동은 지금 특히 무엇인가를

닐까? 그렇다면 그들을 언론으로 전제하고 ‘너희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들은 전혀 언론답지 않아’라고 지적하는 건 방향 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

무엇을 두려워할까? 그들이 원래 쳐다보지도 않 는 진보적 시민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기대

둘째, 겉으로야 이들이 언론인/언론기관이지

는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

만 사실은 반발심리로 가득 찬 철부지라면 어떻게

려움, 바로 그것 아닐까? 그래서 이들은 기득권

되는가? 심리학 전문용어에 ‘역화효과 backfire

집단이 좋아하리라고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실제

effect’라는 것이 있다. 역화효과는 올바른 말을

로 기득권 집단이 그런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것

들을 때 반발심리가 강해지면서 기존의 편견이 더

을 여전히 해대는 것 아닐까?

욱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자

이렇게 본다면 요즘 우리 사회의 변화는, 특히

신을 한국의 정신훈화 담당 교련 선생 정도로 생

기득권 집단의 균열이나 판세의 변화는 조(중)동

각하는 조(중)동 구성원들이 자신들을 화장지 취

에겐 공포의 전주곡 같은 것이겠다.

급하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뻔한 일 2017년 6월

글 김평호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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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그들이 스스로 떠나야 하는 충분한 이유

적폐 인사의 퇴출이 공영방송 정상화의 첫걸음

이명박근혜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 공영방송은 크

로 기능하도록 하는, 그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공

게 망가졌다. ‘망가졌다’는 평가가 관점에 따라 다

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른 주관적 평가라고 논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이는 법제도에 대한 문제이기에 절차적으로는

나 국민 다수의 생각이 그렇다면 문제는 달라진

국회가 풀어야 한다. 실재 지난해 국회에서는 ‘언

다. 지난 6월 2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발표

론장악방지법’이라 불리는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

한 내용을 보자. “KBS와 MBC가 박근혜 정부 4

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반대하여 제

년 동안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했다고 보

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아직 계류 중에 있는

느냐”는 질문에 74%가 “충실하지 못했다”고 응답

상태이다. 오는 6월, 이제는 여당이 된 민주당이

했다. “충실했다”는 답변은 21%로, 이번 19대 대

의지를 가지고 이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할 예정

선에서 친박당인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했던

이라 한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에서, 갈

24%보다 낮은 수치였다. 이처럼 우리 국민 다수는

라지기는 했지만 과거 새누리당의 면면들이 이름

공영방송이 망가져 제 역할을 못 했다고 평가하고

만 바뀐 채 여전한 상황에서 관련법 개정은 순탄

있다.

할 것 같지 않다. 시민사회가 힘을 모으고, 촛불 민심의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시대의 과제

한편,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서는 시급히 풀어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적폐들을 걷어내고, 공영방

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 바로 공영방송을 망

송이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시대의 과제이다. 그

가뜨린 부역 언론인들을 퇴진토록 하는 것이다. 이

렇다면 어떻게 공영방송을 바로 세울 것인가. 그

는 과거 적폐를 걷어내는 작업이다. 국민 다수도

에 대한 해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경영진이 정권

이를 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6월 2일의 여론조

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 코드맞추기 인사로

사 결과를 보자. “KBS, MBC 사장과 이사진 거

채워지고, 그렇게 한자리 차지한 인사들이 독립성

취”에 대한 질문에서 응답자 67%가 “공영방송 위

과 공정성을 내팽개치고 공영방송을 권력의 도구

상 회복을 위해 퇴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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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규정된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응답은

비판을 폭력적으로 짓밟았습니다. 전례 없는 보도

18%에 불과했다.

참사를 초래했고, 그 과정에서 첨예한 내부 갈등

이처럼 민심은 공영방송의 추락을 우려하고, 이

을 부추겼습니다.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이유, 이

의 정상화를 원하고 있다. 그 첫 단추로 무능 정

것으로 부족합니까?” (KBS 10년 차 미만 기자들

권, 헌정 유린 정권에 복무하면서 공영방송을 망

성명 中, 5월 30일)

가뜨린 책임자들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다 했다. 6년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 임기 보장을 명분으로

에 걸친 무능력은 샅샅이 입증됐고 그 폐기물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김장겸이 아닌 MBC가 짊어진 채다. 그만 떠나라” (MBC 35기 기자들 성명 中, 5월 29일) “당신들은 왜 그 자리에 남아 있는가? 당신들이

터져 나오는 공영방송 적폐 인사 퇴진론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임기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지금

장이라는 명분은 참으로 구차하다. 그들이 부정한

자리에 남아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

권력에 어떻게 복무했으며, 어떻게 공영방송을 망

신들이 멋대로 주무르던 후배 기자들이 잠자코 있

가뜨렸고, 내부 구성원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어떻

으니 눈 질끈 감고 버티면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

게 짓밟았는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자리보전

는가? 그런 끝없는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

을 하는 모습이 왜 그리 구차한지는 공영방송 내

는 건가!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당장 자리에서

부 구성원들의 잇단 성명서에서 확인되고 있다. 최

내려오라!” (KBS 10년 차 이상-20년 차 미만 기

근 터져 나온 KBS와 MBC 구성원들의 외침을 들

자들 성명 中, 5월 26일)

어보자! 이렇게 길게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나 “(김장겸 사장) 당신은 국민과 그들의 알권리를

열하는 것은 그 속에 그들이 떠나야 하는 이유와

짓밟았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못한’ 세월호 참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를

사 앞에서 대다수 국민이 유족과 함께 눈물 흘릴

차지했고,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때 당신이 주도하는 보도국은 희생자와 피해자를

훼손했으며, 왜 떠나야 하는지는 누구보다도 공영

비웃고 조롱했다. ‘비선이 대통령을 쥐고 흔든’ 국

방송의 구성원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직능별

정농단 사건으로 대다수 국민이 분노의 촛불을 켰

로, 기수별로 적폐 책임자들의 퇴진을 한 목소리

지만, 당신에게 충성하는 보도본부는 축소와 왜

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곡에 급급했다 … (중략) … 피가 튀고 살이 잘려

이쯤 되면 떠나야 한다. 그게 자신들이 앞장 서

나간 8년이었다. 노골적인 편파와 왜곡에 저항했

망쳐놓은 공영방송을 되살리고, 최소한의 양심

던 선후배 동료들에게 당신을 미친 듯이 칼을 휘

을 지키고, 민심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래도 버틴

둘렀다.” (MBC 보도본부 20-30년 차 기자들 성

다면, 결국 촛불 민심이, 국민들이 떠나게 할 것이

명 中, 6월 7일)

다. 그에 앞서, 떠나야 한다.

“고대영 사장과 정지환 국장 등은 일관되게 소 통을 거부했고, 이견을 묵살했으며, 평기자들의 2017년 6월

글 김은규 웹진 편집위원장·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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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집단 이기주의로 뭉친 파벌의식, ‘당파성’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

‘정파적’이란 프레임으로 한국 언론을 바라보아도 되나?

한국 언론은 정파적인가?

언론관련 학술지에 한국 언론의 정파성 문제를

‘한국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사람들

다룬 논문이 다수 실린 해는 2009년경이다. 자연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08년 전

이즈음에는 이런 주제를 다루는 학술행사나 업계

후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웹사이트에 올라

토론회도 자주 열렸다. 언론 매체의 정파성과 한

있는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의 2006년 판만 하더

국사회 이념갈등의 문제를 놓고 많은 걱정이 쏟아

라도 언론의 정파성에 대한 질문이 채택되질 않았

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사회의 심각한 이념갈

다.

등에 언론의 정파성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2008년에 가서야 언론의 정치적 편파성에 대한

논의도 잦았다.

조사결과가 보고되었다. ‘수용자들이 평소 신문기 사 및 방송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정파보다는 당파가 더 어울리는 한국 언론

기 위해 10가지의 부정적인 요인들을 제시한 다음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한국의 언론은

4점 척도에 답을 하도록 한 결과, ‘정치적으로 편

정파적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파성이란 당파

파적’이라는 항목에 신문은 2.77점, 방송은 2.69

성과는 차이가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용

점의 응답을 얻어 제시된 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점수를 받았다.

미리 그 둘의 차이를 정의하자면 전자는 정치적

이후에 이루어진 수용자 의식조사에는 정파성 을 묻는 질문은 없었다. 언론이 가장 우선적으로

이념으로 뭉친 파벌의식이고 후자는 집단 이기주 의로 뭉친 파벌의식이라 할 수 있다.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묻는 질문은 2008년 이전

이런 정의를 잣대로 한국 언론을 차분히 다시

과 이후의 조사에서도 지속돼 연도별 추이를 보고

들여다보면 정파적이라기보다는 당파적이라는 단

하기도 했지만 정파성은 단발마로 끝났다.

어가 적합해 보인다. 그저 누가 우리 편인가에 따 라 언론의 보도는 언제든 정치적 지향도 가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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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체를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진보매체와 보수매체 사이 제대로 된 정책 대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보수라고 불려온, 더 정확히 이 야기하면 자신들이 그렇게 부른 매체에게서 보수라는 딱지를 떼어내야 하겠다.

한순간에 다 내팽개쳐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혼맥으로도 동맹관

가장 단적인 예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보도

계가 형성되어 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당파적 관

다. 스스로 보수라고 칭하는 신문매체라면 시장의

계임에도 이들을 정파적이라고 부른 계기는 김대

공정한 작동을 저해할 수 있는 보도를 해서는 안

중 정권 시기부터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누구보다

되는데 사실은 이와 달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강하게 부르짖어서 아무리 봐도 신자유주의와 어

대상으로 하는 불공정거래 관행에 예사로 눈을

떤 정치인보다 잘 맞는 것으로 보이는 김대중 정권

감았다. 사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을 좌파 정권이라고 딱지를 붙였기 때문에 졸지에

서는 건실한 중소기업이 많아야 된다는 사실은 아

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당이 우파 정당, 보

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신문은 이 문제

수 정당이 된 탓이다. 그전 정권까지는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이 민주

에 강한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신 문시장의 공정거래규정을 어긴 일도 다반사였다.

대 반민주의 대립각이 중심이었으므로 여당지, 야

방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 정치

당지와 같은 개념은 있어도 진보와 보수란 개념

를 실현한 경험을 가진 나라에 비하면 이념적 스

은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 김대중 정권 이후의 시

펙트럼 상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중도

기에도 여전히 정권과 가까운 매체와 그렇지 않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경쟁하는 한국에서는 방

은 매체라는 측면에서 당파가 맞다. 그럼에도 진보

송 역시 당파성밖에 가지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와 보수가 사용된 데는 독재정권의 후신과 가까이

진보라고 이름 붙여진 정당이 집권할 때나 보수라

지내는 자신들의 모습이 더 이상 비루해지지 않

고 이름 붙여진 정당이 집권할 때나 자유민주주의

기 위해 상대방을 좌파, 진보라고 몰아세운 덕(?)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여 공정경쟁을 부정할 수

이다. 이로써 자신들에게 보수라는 거룩한 이름을

없는 가치로 내걸고 있기 때문에 방송 역시 이 테

붙일 수 있었다.

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정당이 집권

이제는 정체를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제

을 해도 공영방송은 당파적일 수는 있어도 정파적

대로 된 진보정당 진보매체와 보수정당 보수매체

일 수는 없다. 사영방송은 이념적 가치보다는 기업

의 경쟁이 가능하고 이들 사이 제대로 된 정책 대

의 이익을 더 우선에 두기 때문에 당파적일 수밖

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한국사회에서 보수라고 불려온,

에 없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신들이 그렇게 부른 매체 에게서 보수라는 딱지를 떼어내야 하겠다.

한국 언론, 왜 ‘정파적’이라 불리게 되었나?

이미 중소기업 이상의 반열에 들어간 신문기업의 경우, 대기업이 광고를 많이 줄 수 있어서 좋은 친 2017년 6월

글 정연구 이사·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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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강성 귀족노조,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동절

촛불항쟁이 가져온 장미대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보에게 “강성노조에 얹혀서 정치한다”고 비난했고

있다. 촛불대선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장미대선도

‘한결같은 홍준표… 노동절에도 강성 귀족노조 때

나쁘지 않은 이유는 대선 한복판에 세계노동절이

리기(아시아경제 5.1)’로 이어졌다.

있기 때문이다. ‘빵과 장미’ 19세기 초기 노동운동 의 요구를 압축한 구호이다. “오늘 우리가 교수대

나는 강성 귀족노조와 싸워 이겼다?

에 올라야 한다면 내일 우리가 의회단상에 오를

홍 후보는 경남지사 시절(2013년) 강행한 진주의

권리도 있다”고 절규했듯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향

료원 폐업과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반대한 보건의

상과 정치적 권리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이하 진주의료원노조)와

따지고 보면 촛불항쟁도 권력 농단으로부터 촉

전교조를 예로 들면서 강성귀족 노조와 싸워 이겼

발됐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다고 주장했다. 폐업 정당성 여부는 따로 논한다

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안보위기론이

하더라도 진주의료원노조가 강성 귀족노조인지,

색깔론으로 변질됐다면 경제위기론은 강성 귀족

홍 지사는 그 싸움에서 이겼나를 살펴본다.

노조 논란으로 이어졌다. 낡은 이념공세로 보수와

진주의료원노조는 1999년 딱 한 차례 파업을

진보 대결로 가겠다는 기득권 세력의 선거전략에

했으며, 직원 임금은 5년간 동결됐고 폐업 전 8개

일부 언론도 동조하고 있다.

월간은 임금이 체불된 상태였다. 홍 지사는 만성

선거 초반 동아일보는 “강성 귀족노조와 전교조

적자 병원에 연봉 8천만 원 노동자들이 있다고 허

응징하겠다”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인터뷰를

위사실을 유포했고, 노조는 임금명세서를 공개하

실었고(4.10) 중앙일보는 “욕먹더라도 강성 귀족

라고 맞섰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노조 적폐 해결”을 제목으로 뽑았다(4.17). 방송토

취재거부와 고소고발을 남발할 때 보수언론에서

론이 시작되자 홍 후보는 “경제위기의 본질은 강

는 ‘강성노조에 굴복하지 않는 도지사’라는 찬사가

성 귀족노조 때문”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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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해고를 쉽게 해야 정규직이 늘 어난다’고 주장한다.

14년간 무파업에 체불임금 사업장이 강성 귀족

하지 않지만 노동시장 격차 해소에 기여하지 못한

노조라는 주장도 언어도단이지만 지난해 대법원

노동운동의 한계를 반성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은 “도지사가 의료원을 폐업한 것은 권한 밖의 일

그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들었나? 의 관점에서 대안

로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도의회가 나중에 관

을 찾고자 한다.

련 조례를 제정했고, 법원이 취소 결정을 해도 원

현대차 노사관계를 연구한 박태주 박사는 “임

상회복이 불가함으로 폐업결정을 취소하지는 않는

금에 대한 욕망은 고용불안의 사생아”라고 규정

다“고 이해하기 힘든 판결을 했다. 이에 앞서 홍 지

했다. “있을 때 더 벌자”는 심리는 1998년 1만 명

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사태의 진실을 보도한 <한겨

이 넘는 정리해고의 트라우마이고, 2009년 쌍용

레> 최상원 기자를 상대로 허위사실보도와 명예

차 정리해고 이후 26명이 죽어간 ‘사회적 살인’을

훼손으로 1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패

지켜본 뒤 더욱 강화됐다. 대기업 정규직도 한순

소했다. 주민소환운동으로 번진 무상급식 지원 중

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채

단 소동이 전교조 굴복과 무관함은 물론이다. 결

해고를 쉽게 하자는 주장은 또 다른 이기주의자

국 홍 후보는 위법한 권한남용으로 갈등을 조장했

를 양산할 뿐이다. 국가와 사회가 최소한 아이들 교육과 노후를 함

고, 손을 봤다는 대상은 공공의료와 급식중단을

께 책임질 테니 정규직 노동조합도 비정규직과 함

당한 ‘서민’들이었다.

께 살자고 제안해야 되지 않을까. 일하는 사람 모 무엇이 그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들었나

두가 기뻐해야 할 노동절에 쉬지 못한 것도 서러운

그렇다면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 프레임은 모두

데 비명횡사한 무노조 삼성의 하청노동자들. “너

거짓인가. 홍 후보는 “3% 고액연봉자들이 파업을

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추모했고 다짐했지만 김

일삼아 기업이 해외로 나간다”며 “해고를 쉽게 해

군 1주기에 우리는 또다시 슬픈 노동절을 맞이했

야 정규직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나는 마치 ‘살

다.

인 많아야 자살이 줄어든다?’와 같은 궤변에 동의

2017년 6월

글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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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언론, 신뢰 회복이 길이다

가짜뉴스, 대선 이후의 언론

대통령 선거 때면 예외 없이 뉴스 소비량이 폭발

실제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

적으로 증가한다. 각 캠프는 물론이고 유권자들도

는 허위정보들이 기사의 형식을 띤 채 SNS 등에

선거 때 나오는 정보 하나하나에 어느 때보다 민

서 널리 유포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에

감하게 반응한다. 자연히 뉴스를 만들어 유통하

따르면, 이번 19대 대선을 앞두고 나온 ‘가짜뉴스’

는 언론에 대해서도 평소보다 날 선 비판이 나오

가 4년 전 18대 대선 때보다 5배 이상 늘어난 것

기 마련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후보는 언론이 다

으로 조사됐다. 어떤 후보가 치매에 걸렸다거나,

른 후보를 노골적으로 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앞

다른 후보가 조폭과 연계되어 있다는 얘기들이 삽

서가는 후보는 언론의 자신에 대한 공격이 도를

시간에 사람들에게 퍼졌고, 이를 바로잡기란 매우

넘었다고 비판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광경은

어려웠다. 학계와 언론에서는 앞다퉈 ‘가짜뉴스’

여지없이 되풀이됐다.

현상을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가짜뉴스가 횡행한 19대 대선

이에 더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새롭게 눈에 띈

가짜뉴스가 퍼지는 두 가지 이유

건 ‘가짜뉴스(fake news)’ 현상이었다. 2016년 미

가짜뉴스가 횡행하게 된 원인 가운데 중요하게 볼

국 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던 가짜뉴스가 한국

것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 갖는 기대 자체가 달

대선에서도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이다(지난 미국 대

라졌다는 점이다.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선에서 가짜뉴스가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bias)이라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

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최근 있었던 프랑스 대선에

데, 간단히 보면 이렇다. 요즈음은 언론의 기사 외

서도 사법당국이 가짜뉴스 잡기에 총력전을 펼쳤

에도 SNS 등 새로운 정보를 접할 통로가 많고, 사

다). 가짜뉴스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정립되

람들이 언론사의 기사에 의존하는 정도는 과거에

어 있지 않은 듯하나, 최근 열린 어느 학회에서는

비해 매우 낮아졌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

가짜뉴스를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견해를 재확인시켜주

언론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 규

는 내용의 정보를 언론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한

정한 적이 있다.

다. 오히려 이러한 확증편향을 깨뜨리는 언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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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와 대안들이 제시될 것이다. 허망한 얘 기일 수 있으나, 그 출발점은 언론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력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시와 비판이라는 본래 역할에 집중하고, 그럼으로 써 언론의 신뢰를 재건하는 것. 그것이 이 문제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이지 않을까 한다.

공정하지 못한 보도를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일

본능에 가까운 본성이고, 광범위한 규제 권한이

도 종종 벌어진다. 가짜뉴스는 이러한 집단적 심

주어지면 그것이 정권의 안위를 위해 남용될 위험

리에 효과적으로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이 크다. 가짜뉴스를 때려잡으려다 정부정책이나

물론 제도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것도 이 유가 됐을 것이다. 유언비어에 관한 연구에서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의혹 제기 자체를 차단당하는 일이 벌어질 위험이 큰 것이다.

R=i×a라는 공식이 나온다. R은 유언비어의 크기

최근 프랑스 대선에서 언론이 가짜뉴스에 어떻

(rumor), i는 이야기 주제의 중요성(importance),

게 대응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좋은 참조점이 될

a는 그 화제와 관련된 증거의 애매성(ambiguity)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를 이틀 앞둔

을 뜻한다. a가 클수록, 즉 문제와 관련된 설명이

시점에서 마크롱 캠프의 이메일 유출 파문이 불거

명확하지 않을수록 유언비어가 널리 퍼진다는 것

졌다. 유출되었다는 이메일에는 진짜 문서와 가짜

이다. 가짜뉴스를 일종의 유언비어에 해당한다고

문서가 뒤섞여 있었으나, 유출자료를 살펴 그 진

보면, 이는 기존 언론이 문제에 대한 신뢰 있는 정

위를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프랑스

보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언론들은 이를 보도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매우

수 있다.

신중한 태도를 취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언론이 정도를 걸음으로써 가짜 뉴스에 적절히 대응한 사 례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 검열 대신, 언론이 정도를 걸어야

어쨌든 앞으로도 가짜뉴스는 가라앉지 않을 것

대통령 선거가 끝났으니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

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가 나서 규제와 처벌로 가

한 갖가지 아이디어와 대안들이 제시될 것이다. 허

짜뉴스를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없

망한 얘기일 수 있으나, 그 출발점은 언론이 본연

음은 명백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규제가 가능하겠

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력과의

냐는 의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가짜뉴스’에 해당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시와 비판이라는 본래 역할

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정부에 맡기는 순간,

에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언론의 신뢰를 재건하는

그것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의 다른 모습이

것. 그것이 이 문제에 대응하는 가장 기본이지 않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권의 성향을 막론하고 규

을까 한다.

제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정부의

2017년 6월

글 정민영 정책위원·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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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새 정부의 한반도 핵위기,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대한 미국 진보·보수지의 상반된 논조

촛불시위로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낸 한국 국민들

중요한 기초”라고 발언한 문 대통령의 5월 워싱

이 19대 대선에서 보여준 선택에 대해 미국 신문

턴 포스트와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서 문 대

들의 논조는 성향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였다. 미

통령이 “워싱턴을 안심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

국의 진보 신문은 사설에서 한미 간 합의에 따른

고 있다”(Mr. Moon has tried hard to reassure

대북 대화에 무게를 싣는 듯한 면모를 보였다. 반

Washington)라고 평했다.

면 미국의 보수 신문은 사설을 통해 문 대통령의

뉴욕타임스는 “결국 채찍과 당근 모두 북한

국내외 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

이 오로지 핵 억지력 추구에만 골몰하는 것에

러냈다.

서 멀리 떼어놓지 못했고, 한국, 미국, 중국 간 의 불화는 북한이 폭주하도록 고무할 뿐”(In the

뉴욕타임스, 한미 간 합의 통한 대북 대화에 무게?

end, neither carrots nor sticks have diverted

미국 뉴욕타임스는 11일 사설 <한국과 불화할 시

North Korea so far from its single-minded

간은 없다>(No Time for Friction With South

pursuit of a nuclear deterrent, and a rift

Korea)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배경에 대

among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and

해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문재인 대통령지지 세

China would only encourage the North to

력을 진보주의자(liberal)라고 지칭하면서 ‘햇볕정

barrel ahead)이라고 지적했다. 사설 말미에서 뉴

책’에 가까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트럼프 대

욕타임스는 “만약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령의 대북 압박 정책과 마찰을 빚는 요인이 될

만나서 명확하고 공통적인 종합 전략을 짠다면 문

수 있다고 보았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반발과 트

대통령의 (대북) 대화에 대한 열린 자세는 워싱턴

럼프 대통령의 ‘10억 불 배치 비용 부담’ 등의 발

의 완강한 입장과 불화할 필요가 없다”(Mr. Moon’

언 때문에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의 반대가 거세

s openness to dialogue need not be at odds

진 사드(THADD) 배치 사안이 한미 간 불화의 요

with a tough stance in Washington, if Mr.

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스

Moon and Mr. Trump meet and forge a clear

는 “한미 동맹이 한국의 외교 안보 정책의 가장

and common overall strategy)고 언명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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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가능한

이 남한처럼 미국 본토도 위협하고 있음을 명확

한 빨리 만나서 회담을 열 것을 주문했다.

하게 해야 한다”(but he’ll have to be clear that the North now threatens the U.S. mainland

월스트리트저널, ‘햇볕정책 절대 불가’… 개성공단 투

as well as South Korea)라고 강조했다. 월스트

자 한국기업 제재도 주장

리트저널은 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은 한국 안보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의 주춧돌(cornerstone)이라고 말한 데 대해 “이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0일

는 듣기 좋지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유

자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은 제목부터 <좌파로 향

화로의 회귀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한국 : 새 대통령은 북한에 양보하는 정책으

해야만 할 것이다”(That’s good to hear, but Mr,

로 되돌아갈 것인가?>(South Korea Moves Left:

Trump will have to be clear that a return to

Will the new President return to a policy of

appeasement is unacceptable)라고 주장했다.

appeasing North Korea?)라고 붙여졌다. 이

월스트리트저널은 또한 “개성공단으로 회귀하려

사설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문 대통령을 ‘좌파’

는 한국 기업은 미국과의 사업이 금지될 수 있으리

(leftist)라고 지칭하면서 문 대통령이 정부의 경제

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That would put South

개입,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증세, 최저임금 인

Korean companies on notice that a return to

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을 원

Kaesong could bar them from U.S. business)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 대통령

라며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

의 정책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찬성할 만하

까지 주문했다.

다”(The French Socialists would approve)라며 문 대통령을 ‘프랑스 사회주의자 수준의 좌파’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핵위기 해소 노력 험로 예고

몰아붙였다.

이러한 미국의 진보 신문과 보수 신문의 문재인

월스트리트저널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2000

정부에 대한 사뭇 다른 논조 중 어느 것이 더 미

년대 중반 실패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으

국 조야에서 힘을 얻느냐가 한반도 핵위기 해소를

로 회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위한 새 정부의 노력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을

문 대통령의 모든 행보는 “북한이 시애틀을 타격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친박 단체들이 성조기를

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대해 평양에

들고 영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나오는 등 미국

압력을 높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를 복잡하

보수 세력의 힘을 빌리려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

게 만들 것이다”(All of this will complicate the

인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정책에 대한 미

Trump Administration’s attempt to increase

국 조야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것은

pressure on Pyongyang as the North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 펼쳐

develops nuclear missile capable of hitting

질 험로를 문재인 정부가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국

Seattle)라고 평했다.

민적인 합의를 통한 대북 포용 정책을 보다 힘 있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 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북한

게 펼쳐나가면서 내외적으로 소통을 넓혀야 할 것 이다.

2017년 6월

글 김성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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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가붕현 강건우 강길탁 강나영 강문구 강문석 강민찬 강범구 강석봉 강선정 강승연 강승일 강영모 강영선 강익희 강인규 강진 강지영 강충원 강태구 강현우 강형석 강홍석 강홍식 계미량 고강우 고대원 고동균 고상민 고상익 고영재 고영주 고인혁 고일근 고혁규 고현강 곽기수 곽노필 곽철주 곽한일 구본권 구본수 구완회 구원 구축련 구태형 굿모닝렌트카안광희(주) 권미애 권미영 리 권순우 권용배 권용찬 권재현 권재현 권해준 권혁권 권희도 권희명 기성자 기영란 김건우 김건호 김경석 김경수 김경익 김경인 김경훈 김경훈 김광동 김광명 김광철 김광태 김규영 김규표 김금주 김금화 김기원 김기율 김낙규 김난슬 김남희 김남희 김대엽 김대영 김대환 김덕원 김도윤 김도현 김동성 김동수 김고은 김동학 김두찬 김두한 김명걸 김명규 김명철 김명호 김문재 김문정 김미란 김미선 김미영 김미영 김미희 김미희 김민철 김민철 김병규 김병기 김병훈 김병훈 김보운 김보현 김봉태 김부용 김상덕 김상민 김상훈 김상훈 김석준 김선경 김선호 김선호 김성동 김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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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강남이 강미 강병국 강성남 강승일 강영순 강재기 강지환 강태순 강형숙 강화순 고겸 고동혁 고성광 고영철 고일웅 고현경 곽동훈 구강회 구본엽 구윤서 구태환 권강범 권민석 권순재 권용호 권정민 권혁근 금동기 기원도 김경남 김경수 김경자 김경훈 김광모 김광현 김규환 김금희 김기주 김난영 김내인 김대영 김덕재 김도현 김동영 김동혁 김두환 김명규 김명화 김문주 김미소 김미옥 김민경 김민철 김병모 김보경 김보형 김부환 김상식 김석 김선기 김선화 김성례

강경식 강대경 강미경 강병수 강성옥 강승천 강영재 강재영 강진구 강태욱 강혜숙 강효근 고광백 고동형 고성일 고영환 고정주 고형석 곽민섭 구경애 구본엽 구자룡 구태회 권건욱 권민호 권영원 권웅기 권정환 권혁상 금종섭 길덕영 김경란 김경숙 김경장 김계성 김광민 김광호 김규환 김기남 김기창 김남균 김다애 김대욱 김덕종 김도형 김동영 김동현 김두환 김명년 김명훈 김문환 김미숙 김미자 김민경 김민태 김병석 김보경 김복도 김삼 김상엽 김서영 김선미 김선화 김성만

회원님들이 후원해 주신 회비는 민주언론을 향한 활동의 근간입니다. 2017년 4월 1일부터 30일 사이에 후원해 주신 분은 모두 5,644분입니다. 강경운 강대석 강미숙 강병조 강성종 강승현 강영주 강전도 강진석 강태호 강혜인 강효기 고광수 고명섭 고성휘 고유라 고정현 고형승 곽보천 구교선 구본영 구자숙 구태회 권경엽 권상현 권오복 권위상 권정희 권혁하 금종화 길섭 김경래 김경숙 김경주 김고은 김광민 김광호 김규훈 김기대 김기철 김남석 김다혜 김대위 김덕현 김도형 김동옥 김동현 김락기 김명선 김명희 김미경 김미숙 김미자 김민경 김민혜 김병선 김보경 김복수 김사무엘 김상원 김서영 김선배 김선희 김성미

강경화 강대필 강미숙 강보배 강성주 강승희 강영철 강정미 강진선 강한성 강혜정 강효정 고광인 고명인 고세창 고은별 고제석 공경남 곽성호 구교선 구본주 구자옥 구현주 권경희 권선애 권오설 권유림 권주용 권현아 금준경 길찬호 김경래 김경실 김경태 김고은 김광수 김광훈 김균하 김기석 김기태 김남윤 김대균 김대일 김덕환 김도형 김동우 김동호 김레베카 김명숙 김명희 김미경 김미숙 김미정 김민광 김민호 김병식 김보경 김복희 김삼숙 김상원 김서윤 김선숙 김선희 김성미

강국일 강덕구 강미정 강복순 강성하 강신광 강예성 강정연 강진숙 강항준 강혜정 강희 고광현 고문병 고수경 고은영 고주봉 공덕호 곽세영 구교선 구본직 구자중 구현회 권광태 권성희 권오성 권은영 권준수 권형준 기대정 김강균 김경량 김경심 김경필 김고훈 김광수 김교민 김근영 김기성 김기학 김남중 김대균 김대진 김동 김동건 김동욱 김동환 김마리아 김명오 김문 김미경 김미연 김미정 김민균 김민호 김병옥 김보규 김본일 김삼일 김상유 김서중 김선애 김성 김성민

강귀동 강동오 강민구 강부근 강성환 강신성 강유복 강정훈 강진학 강행권 강호년 강희경 고굉주 고문석 고수영 고은주 고준호 공영목 곽수영 구미경 구본학 구정회 구형욱 권기경 권세일 권오숭 권은주 권지원 권혜영 기명 김강민 김경미 김경아 김경현 김관규 김광욱 김권식 김근영 김기수 김기현 김남진 김대기 김대현 김도경 김동광 김동욱 김동환 김만수 김명옥 김문경 김미경 김미영 김미정 김민기 김바다 김병욱 김보름 김봉기 김삼진 김상중 김서현 김선영 김성권 김성민

강규상 강명수 강민성 강삼규 강성희 강신욱 강유원 강제호 강진호 강혁 강호민 강희성 고구연 고병년 고승우 고은주 고창석 공은해 곽우신 구민예 구상회 구종영 구희영 권녕찬 권소현 권오철 권인숙 권진만 권혜인 기민 김강선 김경미 김경옥 김경호 김관석 김광원 김귀영 김근한 김기연 김기호 김남진 김대선 김대현 김도균 김동균 김동윤 김동훈 김만욱 김명자 김문규 김미니 김미영 김미정 김민식 김백일 김병원 김보명 김봉덕 김상균 김상천 김서현 김선옥 김성균 김성민

강기민 강명호 강민정 강상우 강솔 강양구 강윤영 강종석 강진희 강현 강호성 강희정 고규석 고병언 고아람 고은채 고태호 공종철 곽은정 구민오 구성연 구진경 국명환 권대철 권수경 권오현 권일 권철 권호정 기민수 김건엽 김경민 김경완 김경호 김관식 김광일 김규리 김근혜 김기열 김나령 김남혁 김대수 김대형 김도식 김동민 김동의 김동훈 김만중 김명정 김문기 김미덕 김미영 김미정 김민정 김범규 김병찬 김보성 김봉모 김상기 김상철 김석균 김선우 김성근 김성수

강기영 강명훈 강민정 강상욱 강수경 강연지 강윤희 강주현 강창수 강현용 강호영 강희정 고근영 고보곤 고영매 고의정 고하람 공준기 곽지운 구민준 구연석 구진하 국모신 권명수 권수미 권오훈 권재범 권태성 권효진 기보중 김건영 김경민 김경원 김경홍 김관철 김광중 김규봉 김근호 김기용 김나영 김남희 김대순 김대호 김도영 김동섭 김동주 김두산 김말숙 김명주 김문선 김미라 김미영 김미현 김민지 김범용 김병현 김보승 김봉민 김상남 김상호 김석우 김선욱 김성기 김성수

강기태 강무치 강민지 강상현 강승민 강영건 강은미 강준구 강철원 강현우 강호준 계명석 고기원 고삼석 고영윤 고인수 고한별 공후연 곽진욱 구병석 구영선 구창범 국중식 권미숙 권수보 권옥분 권재순 권태진 권효진 기선희 김건오 김경배 김경은 김경환 김광곤 김광진 김규봉 김금녀 김기욱 김나형 김남희 김대애 김대호 김도원 김동섭 김동찬 김두언 김맹환 김명진 김문섭 김미란 김미영 김미화 김민진 김범휴 김병화 김보영 김봉선 김상덕 김상환 김석정 김선정 김성길 김성수


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성아 김성진 김성희 김소희 김수지 김순성 김승빈 김신영 김애경 김연수 김영광 김영미 김영선 김영은 김영필 김영훈 김요한 김용민 김용재 김우일 김원택 김윤기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이슬 김인성 김일용 김재성 김재필 김정관 김정빈 (소라) 김정호 김종근 김종석 김종찬 김주연 김준석 김지묵 김지연 김지혜 김진구 김진영 김진일 김진홍 김창인 김철진 김태균 김태영 김태장 김태희 김하자 김한도 김현경 김현식 김현정 김현택 김형수 김혜경 김혜원 김홍기 김효민 김흥수 김희수 나승연 나현채 남문경 남은경 남호삼 노민석 노원희 노현호

김성연 김성연 김성진 김성진 김성희 김세준 김수경 김수근 김수진 김수진 김순식 김순자 김승오 김승우 김신영 김신욱 김양임 김양준 김연신 김연용 김영권 김영규 김영미 김영미 김영선 김영수 김영일 김영재 김영헌 김영형 김영희 김영희 김용겸 김용구 김용민 김용백 김용정 김용준 김우준 김우찬 김위근 김유경 김윤덕 김윤섭 김은경 김은규 김은아 김은아 김은현 김은형 김이준 김이지 김인수 김인수 김자영 김장곤 김재성 김재식 김재현 김재호 김정근 김정기 김정선 김정수 김정욱 김정은 김정화 김정환 김종덕 김종덕 김종선 김종성 김종태 김종택 김주열 김주영 김준성 김준식 김지민 김지석 김지연 김지영 김지환 김지후 김진국 김진규 김진영 김진영 김진정회 이철호 김진환 김진희 김창일 김창회 김추월 김춘광 김태균 김태균 김태영 김태오 김태준 김태진 김택수 김택준 김하진 김학곤 김한상 김한수 김현구 김현국 김현식 김현식 김현정 김현주 김현화 김현희 김형우 김형욱 김혜리 김혜미 김혜정 김혜정 김홍빈 김홍순 김효상 김효석 김희경 김희경 김희승 김희열 나양한 나영애 나현철 나혜진 남병철 남상모 남은영 남인주 남호섭 남호찬 노병선 노삼식 노은기 노인호 노호균 노호현

김성욱 김성철 김세진 김수만 김수진 김순종 김승재 김신제 김양중 김연이 김영균 김영민 김영숙 김영제 김영호 김예리 김용규 김용범 김용진 김우현 김유나 김윤수 김은동 김은영 김은혜 김익곤 김인수 김장수 김재영 김재홍 김정란 김정수 김정준 김정환 김종동 김종수 김종호 김주영 김준영 김지선 김지영 김지훈 김진만 김진영 김진철 김진희 김채빈 김춘균 김태균 김태완 김태진 김택희 김학동 김한종 김현남 김현실 김현주 김형국 김형욱 김혜성 김혜정 김홍일 김효선 김희경 김희원 나옥숙 남건우 남성우 남인호 남효숙 노선영 노정숙 노희경

김성욱 김성웅 김성원 김성철 김성태 김성태 김세환 김세희 김소연 김수복 김수선 김수안 김수진 김수천 김수현 김순화 김순희 김숭곤 김승주 김승직 김승철 김신중 김실희 김아름 김양현 김언경 최대식 김연일 김연정 김연주 김영균 김영근 김영기 김영민 김영배 김영보 김영숙 김영순 김영식 김영주 김영주 김영준 김영호 김영호 김영환 김옥남 김옥란 김옥매 김용균 김용기 김용남 김용석 김용수 김용수 김용태 김용태 김용하 김욱환 김웅식 김원식 김유동 김유미 김유신 김윤식 김윤영 김윤정 김은미 김은범 김은선 김은영 김은영 김은임 김은혜 김은혜 김은희 김익삼 김인 김인구 김인숙 김인숙 김인종 김장홍 김장환 김재경 김재영 김재우 김재우 김재화 김재환 김재환 김정란 김정만 김정묵 김정수 김정숙 김정실 김정중 김정진 김정태 김정환 김정훈 김정훈 김종률 김종명 김종모 김종애 김종연 김종오 김종호 김종훈 김종희 김주영 김주원 김주현 김준일 김준태 김준혁 김지선 김지선 김지수 김지용 김지웅 김지은 김지훈 김지훈 김지훈 김진무 김진산 김진섭 김진영 김진영 김진영 김진태 김진하 김진현 김찬 김찬영 김찬용 김천수 김천종 김철 김춘호 김충녀 김칠성 김태균 김태균 김태민 김태완 김태우 김태우 김태학 김태현 김태형 김판수 김평완 김평호 김학모 김학배 김학범 김행정 김향기 김헌덕 김현대 김현무 김현민 김현영 김현오 김현왕 김현주 김현준 김현준 김형규 김형균 김형기 김형주 김형준 김형중 김혜성 김혜성 김혜숙 김혜진 김호림 김호석 김홍일 김홍일 김홍주 김효순 김효식 김효은 김희곤 김희곤 김희규 김희원 김희정 김희정 나의영 나인주 나인호 남경숙 남광열 남광현 남소영 남수현 남영권 남정용 남주희 남준우 노경만 노경진 노경채 노수일 노승민 노승현 노정훈 노종면 노진규 늘푸른나무 도방주 도인태

2017년 6월

김성은 김성호 김소연 김수연 김수호 김슬기 김승훈 김아름 김여환 김연지 김영래 김영삼 김영심 김영준 김영훈 김옥선 김용덕 김용실 김용현 김원재 김유신 김윤정 김은선 김은정 김은희 김인규 김인중 김재관 김재우 김재환 김정미 김정아 김정태 김정희 김종목 김종욱 김주경 김주현 김준휘 김지수 김지현 김지희 김진성 김진용 김진형 김찬주 김철관 김태겸 김태석 김태원 김태호 김평환 김학용 김헌범 김현석 김현웅 김현준 김형남 김형진 김혜연 김호성 김홍준 김효중 김희균 김희홍 나종찬 남궁정 남예람 남지현 노광일 노영민 노진호 도정은

김성일 김성화 김소영 김수영 김수호 김승곤 김시몬 김아리 김연구 김연지 김영림 김영삼 김영아 김영진 김영훈 김옥연 김용덕 김용우 김용환 김원주 김유진 김윤중 김은섭 김은주 김응남 김인기 김인호 김재두 김재원 김재훈 김정민 김정연 김정택 김정희 김종민 김종욱 김주리 김주현 김중석 김지수 김지현 김진각 김진솔 김진우 김진호 김창근 김철규 김태경 김태성 김태원 김태훈 김필모 김학인 김헌성 김현수 김현웅 김현진 김형배 김형진 김혜영 김호중 김환균 김효진 김희동 김힘찬 나준영 남극현 남오연 남태경 노귀성 노영숙 노택상 도진명

김성자 김성훈 김소영 김수정 김수환 김승규 김시연 김아리 김연국 김연호 김영명 김영삼 김영애 김영탁 김영훈 김옥희 김용두 김용이 김용후 김원주 김유진 김은 김은성 김은주 김의성 김인대 김인환 김재령 김재은 김재흥 김정민 김정열 김정현 김제문 김종배 김종원 김주리안 김주호 김중훈 김지숙 김지현 김진갑 김진숙 김진우 김진호 김창수 김철규 김태경 김태수 김태원 김태훈 김하나 김학준 김혁 김현수 김현정 김현철 김형섭 김형철 김혜영 김호진 김황하 김훈 김희령 나경렬 나창수 남기욱 남유경 남현수 노금재 노영숙 노현수 도필환

김성재 김성훈 김소원 김수정 김순배 김승덕 김시은 김아영 김연국 김연희 김영모 김영석 김영옥 김영표 김영훈 김완묵 김용락 김용익 김용희 김원진 김유호 김은경 김은수 김은주 김의수 김인봉 김인희 김재민 김재철 김정곤 김정배 김정우 김정현 김종구 김종배 김종윤 김주상 김주희 김증임 김지연 김지형 김진경 김진숙 김진웅 김진호 김창용 김철규 김태관 김태수 김태윤 김태희 김하성 김학철 김현 김현숙 김현정 김현철 김형수 김형철 김혜영 김호환 김회연 김훈재 김희선 나기문 나채길 남남영 남윤재 남현일 노동기 노영재 노현정 동소연

김성중 김성희 김소희 김수정 김순봉 김승민 김시창 김아정 김연상 김영 김영미 김영석 김영은 김영필 김영훈 김요안 김용래 김용일 김우선 김원태 김윤규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의진 김인성 김일수 김재성 김재필 김정곤 김정본 김정우 김정현 김종규 김종복 김종일 김주성 김준모 김진 김지연 김지혜 김진경 김진열 김진이 김진홍 김창우 김철성 김태규 김태연 김태이 김태희 김하식 김학희 김현경 김현숙 김현정 김현철 김형수 김혜경 김혜원 김홍국 김효담 김휘민 김희수 나승렬 나현윤 남대근 남윤환 남형석 노미정 노영환 노현주 두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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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류갑선 류재원 마완 명호종 문근숙 문성근 문영호 문창영 민미선 민준기 박경선 박고운 박기욱 박노원 박동희 박미애 박민희 박병일 박상규 박상현 박선주 박성원 박세안 박순고 박신 박영기 박영훈 박용웅 박원표 박의호 박재근 박정국 박정아 박정혜 박종구 박종언 (박효수) 박지선 박지현 박진한 박창봉 박춘달 박하나 박현숙 박형인 박호영 박희득 방기철 배경선 배수호 배준호 백기욱 백수현 백영화 백현우 변영은 변희재 서경국 서동건 서민교 서수정 서용관 서일영 서정화 서홍석 선춘욱 성기욱 성은형 소순영 손미란 손성진 손정락 손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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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귀순 류정미 마장석 모광희 문다혜 문성길 문옥심 문천풍 민병희 민진식 박경선 박광무 박기현 박노원 박래혁 박미정 박범진 박병주 박상만 박상현 박성귀 박성원 박세영 박순교 박신서 박영미 박영훈 박용주 박윤경 박인 박재연 박정국 박정애 박정홍 박종길 박종완 박주호 박지수 박지혜 박진혁 박창수 박태구 박한솔 박현숙 박형철 박호일 박희성 방민수 배경애 배승희 배지영 백기현 백승기 백윤아 백형대 변우섭 복진선 서경석 서동균 서범석 서승아 서우성 서장식 서정환 서효원 선혜주 성기정 성주경 손경선 손미영 손영삼 손정민 송경우

류균 류정민 마준채 모명욱 문덕범 문성식 문은상 문태숙 민보경 민찬홍 박경순 박광우 박기형 박노황 박리브가 박미현 박병관 박병주 박상우 박상호 박성규 박성원 박세진 박순숙 박아람 박영수 박영희 박용하 박윤기 박이화 박재영 박정규 박정애 박정훈 박종남 박종원 박주희 박지수 박지호 박진형 박창우 박태선 박한엽 박현애 박혜경 박화석 박희승 방성근 배나은 배연정 배지영 백동승 백승무 백은성 백홍종 변윤정 복향숙 서경신 서동예 서병수 서승욱 서원명 서재관 서정훈 석상훈 설나영 성기형 성지혜 손광일 손병일 손영상 손정애 송규주

류동훈 류지순 마혜란 모영신 문덕순 문성은 문인주 문현숙 민선홍 민형원 박경식 박광훈 박기호 박다슬 박말태 박미희 박병규 박병준 박상욱 박상희 박성민 박성제 박소동 박순옥 박애정 박영숙 박영희 박용현 박윤미 박인범 박재영 박정민 박정연 박정희 박종배 박종원 박준근 박지숙 박진만 박진형 박창현 박태성 박한용 박현용 박혜경 박환신 박희영 방성문 배대권 배영준 배진모 백동훈 백승아 백은정 변규식 변은화 부근림 서경일 서동욱 서병찬 서연경 서원철 서재승 서종화 석원혁 설순자 성낙미 성한경 손규정 손병훈 손영주 손정한 송근이

류민지 류병열 류찬호 류창하 마희영 맹준열 모영용 목정민 문미원 문미정 문성준 문성준 문재권 문재홍 문현주 문형천 민승현 민영록 민혜경 민희웅 박경임 박경태 박귀용 박규장 박기호 박길우 박대선 박대성 박명주 박명철 박민상 박민섭 박병규 박병규 박병준 박병진 박상욱 박상욱 박서경 박서리 박성민 박성법 박성철 박성현 박소라 박소현 박순용 박순정 박양신 박연선 박영순 박영일 박옥실 박옥희 박운 박우건 박윤숙 박윤정 박인숙 박인식 박재영 박재욱 박정민 박정민 박정우 박정운 박제선 이슬비 박종부 박종서 박종훈 박종훈 박준기 박준식 박지애 박지연 박진성 박진실 박진형 박진호 박창홍 박철규 박태순 박태영 박한철 박해령 박현재 박현정 박혜련 박혜미 박효경 박효병 박희우 박희원 방윤규 방윤호 배명순 배민수 배영철 배용호 배진형 배진화 백민정 백봉삼 백승우 백승욱 백인석 백인환 변남희 변상준 변정목 변준호 부영관 빈성용 서광희 서근범 서동환 서명교 서보영 서본근 서영관 서영석 서월석 서유택 서정문 서정문 서주연 서준혁 석철수 선관석 설재욱 설재호 성미경 성부강 성한표 성현진 손기찬 손기현 손보라 손상혁 손영진 손운웅 손정호 손종운 송기권 송기인

류병옥 류현우 맹지영 문강한 문병수 문소라 문종서 문효선 민영미 박강호 박경태 박규철 박길주 박대일 박명화 박민수 박병근 박병철 박상원 박서정 박성복 박성현 박수언 박순찬 박연수 박영일 박완규 박우섭 박윤탁 박인우 박재필 박정삼 박정자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오 박지영 박진아 박진호 박철수 박태용 박해부 박현주 박혜성 박효은 박희유 방은호 배상길 배유재 배천수 백삼철 백승재 백일용 변선수 변지연 사공엽 서기선 서명석 서상욱 서영수 서유하 서정민 서지영 선길숙 설정수 성상옥 성희연 손기호 손상흠 손원휘 손중양 송길석

류성률 류형욱 맹찬형 문건대 문병원 문수경 문주남 민경호 민용석 박건식 박경택 박균태 박꽃님 박도수 박명훈 박민영 박병수 박보현 박상율 박석규 박성수 박성혜 박수진 박순천 박연우 박영조 박완식 박우정 박은미 박인철 박재현 박정선 박정진 박제성 박종석 박주령 박준용 박지영 박진영 박진환 박철우 박태율 박해정 박형규 박혜정 박효주 박희정 방정배 배상윤 배윤호 백경아 백선화 백승주 백재혁 변성학 변지철 사공차랑 서기환 서무근 서석범 서영수 서윤옥 서정웅 서춘원 선동욱 설지원 성상욱 소강혁 손대규 손석진 손유니 손진철 송낙주

류성진 류호성 명가영 문경란 문병일 문수만 문주희 민경훈 민은홍 박경근 박경훈 박근영 박남규 박동수 박무 박민정 박병수 박보희 박상재 박석운 박성영 박성호 박수현 박순태 박연재 박영직 박용규 박우진 박은상 박인헌 박재현 박정선 박정포 박제영 박종선 박주창 박준원 박지용 박진영 박찬모 박철원 박태희 박해출 박형근 박혜정 박효진 반재윤 방정희 배상호 배정욱 백광모 백성환 백승철 백정미 변성혁 변진극 사수현 서대원 서문규 서성근 서영윤 서은남 서정원 서태동 선백민 설희준 성연준 소동섭 손동주 손석희 손은영 손창형 송대갑

류승준 류희준 명경관 문경태 문복산 문수현 문준상 민기숙 민일홍 박경문 박경훈 박근영 박남숙 박동찬 박문영 박민정 박병완 박복열 박상철 박선민 박성우 박성호 박수현 박순홍 박영규 박영진 박용수 박운용 박은주 박인혜 박재환 박정숙 박정하 박제현 박종섭 박주하 박준형 박지웅 박진우 박찬일 박철홍 박평옥 박혁종 박형석 박혜진 박훈상 반현정 방종훈 배서현 배정철 백광범 백수임 백승호 백종선 변승순 변창형 상덕규 서대천 서민 서성일 서영호 서인찬 서정은 서한진 선승연 성강일 성용상 소동욱 손명국 손성배 손인학 손충구 송대섭

류연숙 류은화 마마준(주) 마성일 명소현 명호민 문경호 문광현 문삼수 문석용 문영배 문영하 문진수 문진숙 민동기 민만기 민정 민정옥 박경미 박경민 박경희 박계윤 박기성 박기용 박남훈 박노곤 박동협 박동훈 박문현 박문현 박민호 박민희 박병원 박병은 박부열 박삼규 박상태 박상현 박선영 박선영 박성우 박성원 박성희 박성희 박수환 박숙희 박슬기 박승태 박영규 박영글 박영태 박영호 박용승 박용식 박원식 박원일 박은진 박은환 박장호 박재경 박점희 박정 박정숙 박정순 박정현 박정혜 박종건 박종관 박종수 박종아 박주현 박주현 박준희 박준희 박지윤 박지인 박진주 박진철 박찬헌 박창덕 박철환 박철훈 박필훈 박하나 박현민 박현선 박형석 박형수 박혜진 박호 박흥규 박흥규 방광열 방규동 방현배 방현철 배석기 배수미 배종만 배준영 백귀정 백금렬 백수진 백수진 백신덕 백영직 백종필 백진웅 변승우 변영식 변현식 변화영 상영숙 서강석 서덕수 서도원 서미라 서민경 서수경 서수경 서영환 서영훈 서일봉 서일선 서정파 서정화 서혜남 서혜정 선주리(신병근) 성기남 성기옥 성윤경 성윤식 소민욱 소병훈 손명기 손모선 손성원 손성일 손재선 손정대 손태봉 손통일 송대순 송대의


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송두호 송명선 송명숙 송민희 송병기 송보미 송연옥 송영대 송영석 송은경 송은미 송은아 송정경 송정민 송정우 송지은 송지훈 송창건 송현관 송혜란 송혜미 신기식 신기영 신기인 신동규 신동우 신동욱 신명철 신문수 신미영 신석호 신선철 신성균 신승배 신승연 신연숙 신윤석 신윤진 신은하 신정우 신정현 신정호 신진형 신찬규 신찬섭 신한준 신행준 신현 신화프린팅코아퍼레이션(주) 심성희 심세엽 심승관 심재현 심재훈 심정보 심훈 아영미 안강기 안대훈 안동운 안동호 안병준 안병진 안병천 안성미 안성민 안성은 안승진 안여라 안영건 안재현 안정빈 안정희 안준상 안준연 안준희 안치훈 안태원 안판석 안훈모 양경자 양귀용 양동파 양문석 양부순 양슬기 양승동 양승복 양우경 양우연 양유경 양재창 양종진 양주연 양혜영 양홍석 양홍열 어혁수 엄경숙 엄경철 엄재현 엄정순 엄정우 여창환 여태문 여현호 염찬희 염혜영 염흥섭 오광수 오기택 오기현 오민석 오민석 오병남 오선희 오성일 오성태 오언종 오연경 오연호 오윤덕 오은미 오은영 오정훈 오종신 오중열 오태훈 오필웅 오한웅 오희성 오희영 옥동훈 우은아 우인회 우재현 원상규 원숙희 원영재 원창수 원희재 위영호 유근완 유금주 유기홍 유명자 유명제 유미라 유복순 유상균 유상원 유세은 유세진 유애리 유원영 유윤정 유윤지 유재혁 유정민 유정아 유준영 유준호 유중열 유현경 유현종 유현진 유희영 육관우 윤경남 윤근배 윤기선 윤나영 윤범영 윤병양 윤병재 윤석용 윤석주 윤석호 윤소원 윤소정 윤수정 윤영웅 윤영지 윤영철 윤은정 윤인규 윤인섭 윤정환 윤정희 윤종성 윤중옥 윤지선 윤지은 윤현숙 윤형열 윤형진 은창현 이가희 이강두 이건 이건우 이건욱 이경수 이경수 이경수 이경재 이경제 이경철 이관명 이관용 이광규 이교칠 이구엽 이군순 이근형 이근호 이금정

송명언 송보현 송영숙 송은정 송정훈 송천호 송효근 신기철 신동원 신미현 신성철 신연실 신응균 신정환 신창호 신현민 신희령 심연주 심정원 안건영 안동환 안상인 안성일 안영배 안종남 안중식 안향미 양규식 양삼주 양승진 양윤미 양주영 양회웅 엄경호 엄지선 연성철 염희정 오덕칠 오봉열 오세진 오영란 오은정 오지영 오행운 옥은경 우제열 원오희 위훈희 유길연 유민수 유상하 유연수 유은주 유정일 유지향 유형기 윤경수 윤대문 윤복남 윤선희 윤수현 윤예랑 윤인태 윤종연 윤진숙 윤혜경 이강룡 이건진 이경숙 이경태 이광연 이권모 이기린

송명진 송명호 송선아 송선희 송영운 송요훈 송은주 송인강 송종호 송주휘 송철민 송충훈 송효열 송훈 신기훈 신나영 신동윤 신동진 신미희 신민수 신성희 신소영 신영수 신영식 신의용 신의철 신정훈 신종열 신천우 신춘근 신현실 신현준 신희철 신희철 심영구 심영섭 심종문 심주영 안겨라 안경호 안문규 안미숙 안상준 안상찬 안성희 안세훈 안영선 안영완 안종문 안종수 안중욱 안진 안현수(안주원) 양규하 양길승 양상오 양석신 양승혁 양안나 양윤호 양은정 양진용 양창호 양효준 양희정 엄기웅 엄기환 엄진섭 엄효선 연승익 연제창 예성혁 오경수 오동운 오동헌 오상영 오상일 오세철 오세희 오영섭 오영은 오은주 오의환 오진선 오창목 오현숙 오현탁 옥일권 왕수용 우종욱 우종현 원용무 원용선 유경리 유경아 유내선 유동선 유민아 유민지 유석묵 유선욱 유영경 유영모 유은하 유은하 유정훈 유정희 유지현 유진만 유형우 유혜영 윤경자 윤고운하나 윤덕한 윤동영 윤복자 윤봉철 윤성광 윤성규 윤숙희 윤순재 윤용남 윤용석 윤일웅 윤재국 윤종욱 윤종욱 윤진원 윤진희 윤혜지 윤혜진 이강문 이강욱 이경 이겨레 이경순 이경순 이경화 이경환 이광인 이광찬 이규석 이규재 이기명 이기범

송명희 송승우 송용암 송인덕 송준관 송필영 송훈 신낙현 신동찬 신민영 신소요 신용호 신인재 신주연 신태범 신형직 심대현 심우철 심준섭 안광일 안민석 안서훈 안소랑 안영주 안종욱 안진걸 안형노 양덕수 양석용 양여원 양은진 양철원 양희정 엄대현 여건구 연제희 오경아 오명규 오상훈 오수형 오영일 오인석 오창석 오형옥 용상구 우지연 원용진 유경애 유동숙 유범준 유선호 유영민 유인경 유종석 유진원 유혜정 윤광규 윤동현 윤상숙 윤성도 윤순정 윤용신 윤정문 윤종혁 윤찬기 윤호정 이강욱 이경례 이경아 이경훈 이광철 이균락 이기복

2017년 6월

송미란 송승자 송용호 송인미령 송준규 송학선 송희성 신남수 신동향 신민정 신소정 신우용 신재관 신주원 신태섭 신혜경 심명숙 심원도 심진석 안교찬 안병기 안선경 안소연 안영진 안종원 안진열 안혜림 양덕춘 양선미 양연진 양의청 양한승 양희주 엄동수 여병창 염광민 오경이 오명재 오선모 오승목 오영주 오인선 오창훈 오혜경 우대일 우호석 원윤제 유경주 유동식 유병선 유선희 유영옥 유일선 유종오 유창근 유호건 윤광렬 윤렬 윤상열 윤성수 윤승후 윤원구 윤정배 윤종현 윤창현 윤홍렬 이강욱 이경미 이경영 이경휴 이광표 이근수 이기수

송미선 송승찬 송우철 송인섭 송준용 송학주 송희준 신대만 신동현 신병현 신수정 신원범 신재민 신지연 신태진 신혜영 심명오 심원보 심창용 안규만 안병욱 안선정 안수철 안용석 안종철 안진우 안혜연 양도일 양성규 양영삼 양인국 양해구 양희철 엄문용 여선호 염기현 오경주 오명환 오선숙 오승민 오영주 오재홍 오철훈 오홍영 우도양 우환식 원장희 유경한 유동현 유병욱 유선희 유영주 유일환 유종혁 유창현 유홍구 윤광영 윤명자 윤상일 윤성준 윤신정 윤유상 윤정빈 윤주석 윤철용 윤화중 이강원 이경미 이경원 이경희 이광호 이근영 이기수

송미숙 송승택 송원영 송일식 송준호 송학현 승태숙 신동관 신동호 신봉철 신수정 신원수 신재석 신지영 신하영 신혜정 심민혁 심유성 심현보 안길순 안병욱 안선진 안순섭 안용수 안종환 안진홍 안혜영 양동복 양성욱 양영선 양일명 양현경 어성민 엄민형 여영옥 염민선 오경호 오미선 오선실 오승민 오원교 오정교 오춘영 오효순 우상민 원경재 원제환 유관열 유두열 유병일 유성국 유영호 유장환 유종혁 유태경 유환석 윤광희 윤무종 윤상진 윤성준 윤여덕 윤유현 윤정진 윤주승 윤태용 윤환상 이강일 이경민 이경일 이경희 이광훈 이근영 이기영

송민욱 송승하 송원철 송재열 송지아 송한주 신경호 신동국 신동호 신상철 신숙영 신유진 신재은 신진철 신학림 신혜진 심상진 심은영 심현보 안대권 안병일 안설 안순주 안은영 안주식 안창호 안효광 양동철 양성중 양영아 양재선 양현남 어성희 엄순미 여운준 염상균 오경환 오미숙 오선영 오승석 오원석 오정한 오충환 오흥실 우상준 원동주 원종수 유광종 유련 유병철 유성용 유운상 유재승 유주연 유한경 유환선 윤구현 윤문경 윤서정 윤성호 윤여현 윤은숙 윤정현 윤준기 윤필석 윤효석 이강표 이경범 이경임 이계남 이광희 이근주 이기은

송민홍 송승훈 송윤석 송재우 송지용 송해경 신기섭 신동규 신명교 신서빈 신순옥 신유진 신정근 신진태 신학재 신홍범 심상택 심재익 심효진 안대성 안병주 안성남 안순태 안재우 안주원 안채호 안효민 양동춘 양수호 양용호 양재영 양현명 어수헌 엄인용 여운혁 염수정 오고니 오민상 오선영 오승열 오원주 오정훈 오태우 오희경 우수경 원동현 원종효 유규상 유명선 유보현 유세경 유원경 유재헌 유주연 유현 유희락 윤국희 윤민숙 윤석구 윤세민 윤연희 윤은정 윤정호 윤준의 윤해영 윤후상 이강헌 이경복 이경자 이계숙 이교성 이근행 이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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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기철 이남표 이대원 이동규 이동주 이동훈 이명원 이문정 이미정 이민화 이병선 이봉우 이상덕 이상요 이상준 이상화 이선경 이선주 이성남 이성헌 혜 박상남 이수영 이숙희 이승연 이승원 이승철 이시원 이영 이영순 이영화 이완기 이용성 이용택 이원근 이유리 이윤종 이은숙 이은주 이인규 이재덕 이재연 이재은 이재흥 이정미 이정식 이정태 이정훈 이종보 이종한 이주민 이주홍 이준희 이지원 이진구 이진주 이창현 이청항 이태신 이필원 이해종 이혁 이현민 이현정 이형걸 이혜정 이홍석 이훈희 인상우 임경희 임덕진 임산하 임성환 임영숙

64

이기태 이남훈 이덕성 이동규 이동주 이동희 이명재 이문준 이미향 이민희 이병설 이부덕 이상돈 이상용 이상진 이상훈 이선규 이선주 이성렬 이성현 이수 이수용 이순분 이승연 이승은 이승한 이시형 이영관 이영운 이영환 이완우 이용수 이용필 이원복 이유미 이윤태 이은숙 이은지 이인라 이재룡 이재영 이재진 이전석 이정미 이정신 이정택 이제 이종수 이종헌 이주식 이주환 이준희 이지윤 이진길 이진혁 이창형 이청희 이태욱 이필희 이행영 이혁수 이현봉 이현주 이형상 이혜정 이홍장 이희길 인선홍 임고운 임도영 임상진 임세영 임영우

이기택 이남희 이덕수 이동근 이동찬 이두수 이명헌 이미경 이미현 이배근 이병용 이부지랑 이상래 이상우 이상철 이상훈 이선근 이선호 이성렬 이성환 이수강 이수원 이순옥 이승열 이승일 이승헌 이신형 이영구 이영은 이영환 이완주 이용신 이용호 이원복 이유미 이윤호 이은실 이은진 이인배 이재명 이재영 이재천 이전희 이정복 이정아 이정현 이제용 이종식 이종현 이주연 이준기 이중각 이지은 이진섭 이진화 이창호 이춘상 이태은 이하영 이행희 이혁승 이현선 이현주 이형욱 이호성 이화구 이희선 인용현 임관수 임동식 임선규 임송섭 임영환

이기호 이내규 이도섭 이동근 이동철 이득흔 이명화 이미라 이미희 이백운 이병하 이삼희 이상목 이상욱 이상춘 이상훈 이선명 이선화 이성미 이세용 이수경 이수일 이순임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안나 이영균 이영음 이영환 이용구 이용연 이용화 이원석 이유진 이윤희 이은아 이은하 이인성 이재민 이재영 이재혁 이정 이정상 이정애 이정화 이제운 이종실 이종호 이주엽 이준석 이중섭 이지전 이진수 이진희 이창호 이춘옥 이태환 이학민 이향복 이혁진 이현수 이현주 이혜경 이호열 이화신 이희성 인유진 임광식 임동우 임선영 임수재 임옥균

이기환 이노형범 이도연 이동근 이동철 이래연 이명희 이미란 이민구 이백준 이병학 이상걸 이상미 이상욱 이상태 이상훈 이선미 이선화 이성백 이세진 이수경 이수임 이순전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애영 이영록 이영재 이영환 이용규 이용우 이용희 이원일 이유철 이은경 이은열 이은해 이인철 이재복 이재우 이재현 이정갑 이정석 이정애 이정화 이제헌 이종열 이종호 이주용 이준수 이중용 이지해 이진숙 이진희 이창희 이춘자 이태훈 이학범 이향자 이현 이현수 이현주 이혜담 이호진 이화형 이희숙 인정임 임규섭 임동이 임선영 임수정 임완란

이기훈 이다미 이도영 이동명 이동한 이만성 이명희 이미리 이민숙 이범석 이병학 이상경 이상미 이상웅 이상필 이상훈 이선애 이선희 이성연 이소영 이수경 이수정 이순홍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양애 이영미 이영주 이영희 이용기 이용운 이우경 이원재 이윤기 이은경 이은영 이은희 이인향 이재숙 이재우 이재현 이정국 이정석 이정오 이정화 이제혁 이종욱 이종호 이주철 이준엽 이중헌 이지현 이진순 이차동 이창희 이춘홍 이태희 이학춘 이향희 이현경 이현수 이현진 이혜란 이호진 이회국 이희숙 인창규 임규성 임동철 임선정 임승빈 임용만

이나미 이다혜 이도운 이동수 이동해 이만영 이명희 이미선 이민재 이범재 이병호 이상국 이상민 이상윤 이상학 이상훈 이선영 이선희 이성우 이소유 이수남 이수진 이슬 이승용 이승주 이승현 이억한 이영미 이영주 이영희 이용대 이용주 이우민 이원주 이윤상 이은구 이은영 이은희 이일섭 이재숙 이재우 이재호 이정국 이정석 이정용 이정환 이제훈 이종원 이종환 이주학 이준영 이진 이지현 이진식 이창경 이채민 이충걸 이택기 이한규 이헌서 이현구 이현숙 이현진 이혜성 이호진 이효석 이희숙 인현식 임기남 임동하 임선하 임승철 임우선

이낙연 이대건 이도원 이동애 이동헌 이명문 이무섭 이미연 이민정 이범찬 이보나 이상귀 이상붕 이상윤 이상해 이상훈 이선옥 이선희 이성우 이소진 이수만 이수진 이슬아 이승우 이승준 이승호 이연경 이영복 이영주 이예술 이용마 이용준 이우철 이원주 이윤석 이은규 이은재 이의영 이자영 이재승 이재욱 이재호 이정기 이정선 이정우 이정환 이조은 이종윤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민 이지현 이진아 이창길 이철영 이충기 이택순 이한섭 이헌석 이현달 이현숙 이현철 이혜숙 이호희 이효정 이희완 인호진 임기임 임동환 임성대 임승희 임우요

이남경 이대로 이동관 이동원 이동현 이명숙 이문규 이미영 이민정 이병권 이보나 이상균 이상선 이상의 이상혁 이상희 이선용 이선희 이성은 이소형 이수민 이수헌 이승계 이승우 이승준 이승호 이연경 이영삼 이영찬 이오철 이용석 이용준 이우현 이원형 이윤숙 이은령 이은정 이의행 이장묵 이재식 이재운 이재호 이정란 이정선 이정윤 이정훈 이존희 이종인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상 이지현 이진아 이창석 이철우 이충렬 이택양 이한주 이헌수 이현미 이현식 이현태 이혜연 이홍구 이효진 이희용 임강섭 임기종 임두현 임성래 임식경 임우택

이남석 이대연 이동구 이동원 이동현 이명순 이문복 이미영 이민철 이병규 이보라 이상근 이상술 이상익 이상현 이상희 이선우 이성관 이성인 이소혜 이수복 이수현 이승규 이승우 이승진 이승호 이연호 이영선 이영철 이오현 이용석 이용진 이운영 이원희 이윤애 이은미 이은정 이익상 이장희 이재식 이재웅 이재홍 이정란 이정선 이정은 이정훈 이종기 이종찬 이종훈 이주현 이준형 이지숙 이지현 이진영 이창우 이철재 이충인 이평세 이한진 이헌용 이현미 이현식 이현혁 이혜영 이홍란 이훈 이희용 임강수 임나연 임매순 임성원 임영섭 임원양

이남숙 이대영 이동규 이동원 이동협 이명순 이문숙 이미옥 이민형 이병남 이보윤 이상기 이상승 이상일 이상호 이석 이선웅 이성광 이성재 이송원 이수연 이수현 이승민 이승욱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숙 이영한 이옥진 이용석 이용진 이원 이윤 이윤정 이은석 이은정 이익주 이재경 이재식 이재원 이재화 이정림 이정섭 이정이 이정훈 이종미 이종철 이종흔 이주현 이준호 이지영 이지형 이진영 이창원 이철호 이충환 이표 이한표 이헌의 이현민 이현우 이현희 이혜영 이홍복 이후삼 이희윤 임강훈 임남규 임범상 임성율 임영수 임은성

이남임 이대욱 이동규 이동은 이동환 이명우 이문자 이미자 이민형 이병민 이봉수 이상기 이상엽 이상준 이상화 이석인 이선자 이성길 이성지 이송지 이수영 이수호 이승민 이승원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순 이영혜 이옥희 이용성 이용철 이원근 이유경 이윤정 이은성 이은주 이익주 이재구 이재식 이재윤 이재훈 이정묵 이정승 이정임 이정훈 이종민 이종청 이종희 이주형 이준호 이지원 이진경 이진이 이창준 이철희 이태범 이필규 이해영 이헌철 이현민 이현재 이현희 이혜인 이홍석 이훈우 이희찬 임경민 임다심 임병도 임성재 임영숙 임자운


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임장원 임종문 임진수 임한신 임혜영 장동민 장상길 장시영 장영익 장욱상 장은희 장지현 장한식 장희상 전동수 전상구 전숙현 전재수 전지현 전훈 정광석 정기은 정동경 정문기 정민영 정부활 정석구 정성우 정수영 정승환 정영무 정옥희 정원석 정은 정인 정재연 정종원 정지연 정진욱 정창현 정해문 정현진 정홍섭 정희찬 조경록 조규숙 조명아 조민지 조상현 조성은 조수정 조영혁 조유정 조재성 조진석 조한웅 조현정 조환규 주상현 주은수 주혜진 지용동 진광호 진형범 차은호 채어진 천석봉 큰스님 최관집 최낙훈 최동혁 최미라 최병호

임장춘 임종섭 임진순 임향란 임홍갑 장동주 장상득 장애령 장영채 장원석 장인석 장지훈 장해랑 전갑진 전동열 전상우 전연희 전재현 전지현 전흥표 정광택 정기주 정동수 정문선 정민주 정산 정석구 정성원 정수진 정시연 정영민 정완균 정원영 정은경 정인선 정재진 정종일 정지영 정진욱 정창호 정해욱 정형송 정화동 정희찬 조경민 조근성 조명옥 조민혁 조석우 조성일 조수호 조영희 조유진 조정심 조진오 조해관 조현주 조회경 주선혜 주은현 주홍근 지은희 진교영 진형수 차의섭 채영미 천성하 최갑식 최광옥 최달호 최동현 최미라 최병호

임재경 임종안 임진우 임헌영 임효영 장동호 장석운 장연미 장용광 장원석 장인선 장진숙 장현길 전경원 전명옥 전상주 전영명 전정수 전창성 전희락 정광현 정길용 정동익 정문주 정민현 정상모 정석근 정성필 정수철 정안수 정영연 정용석 정원철 정은경 정인원 정재천 정종주 정지은 정진익 정채영 정해인 정혜선 정화숙 정희천 조경민 조남득 조명훈 조민호 조선미 조성지 조아라 조예진 조윤정 조정옥 조짐모 조해나 조현준 조효근 주성기 주재환 주희운 지정구 진규엽 진희영 차익준 채장기 천세환 최강호 최광웅 최담담 최동훈 최미선 최보영

임재영 임종업 임창빈 임현 장국남 장두영 장선경 장연선 장용숙 장원철 장인철 장진욱 장현주 전경일 전명욱 전선영 전영일 전정숙 전태진 전희만 정국진 정길화 정동철 정민 정민호 정상안 정석생 정성현 정수현 정애경 정영주 정용우 정유경 정은경 정인준 정재철 정주란 정지은 정진홍 정철윤 정향미 정혜아 정효상 제갈종길 조경신 조남혜 조무상 조민환 조선미 조성진 조안나 조용감 조윤형 조정화 조창현 조해성 조현진 조훈제 주성종 주정규 지경주 지준영 진길임 차기현 차인섭 채창병 천승철 최경 최광호 최대건 최두열 최미아 최보영

임재하 임종우 임채영 임현구 장기석 장명숙 장성룡 장연수 장용철 장윤 장인호 장창덕 장현주 전광배 전명원 전선형 전영재 전제훈 전평구 전희만 정국화 정길훈 정득철 정미란 정민호 정상영 정석인 정성현 정수현 정양석 정영주 정용운 정유나 정은수 정인희 정재철 정주영 정지은 정진화 정철훈 정헌수 정혜영 정효준 제명신 조경희 조대현 조문성 조민희 조선영 조성환 조연경 조용상 조윤호 조정훈 조채훈 조해형 조현호 조휘행 주성태 주지혁 지광해 지준옥 진남순 차문조 차정자 채희명 천승환 최경순 최규남 최대섭 최두영 최미애 최보윤

임재형 임정규 임정민 임종헌 임주현 임지영 임충주 임치형 임태수 임현무 임현수 임현실 장기섭 장기혁 장길수 장문규 장문택 장미림 장성봉 장성식 장성훈 장연우 장연후 장영덕 장용화 장우봉 장우석 장유식 장유정 장윤미 장재기 장재웅 장점봉 장창호 장채리 장철영 장현진 장형종 장혜경 전광수 전금희 전기정 전미경 전미선 전미자 전성배 전성수 전성애 전예화 전용우 전용자 전종수 전종우 전종우 전한나 전한수 전한진 정경두 정경성 정경순 정군주 정귀연 정규현 정다솜 정다훈 정대선 정래훈 정만수 정명구 정미선 정미숙 정미숙 정백란 정병규 정병규 정상용 정상원 정상조 정석조 정선아 정선영 정성훈 정세원 정세훈 정숙경 정순건 정순호 정여진 정연구 정연우 정영진 정영춘 정영하 정용재 정용해 정용희 정유림 정유진 정유희 정은영 정응섭 정응희 정일찬 정장환 정재경 정재철 정재형 정점숙 정주영 정주영 정주희 정지하 정지혁 정지현 정찬무 강윤경 정찬미 정청래 정태성 정태화 정현락 정현석 정현석 정혜영 정혜정 정혜진 정효진 정희경 정희경 제용순 제임스옥(옥진욱) 조광연 조광훈 조국연 조동연 조동원 조동주 조미경 조미란 조미숙 조범연 조병창 조병현 조선이 조성국 조성래 조성훈 조소원 조수년 조영구 조영규 조영란 조용준 조용진 조용필 조은실 조은영 조은현 조정희 조종현 조준호 조철원 조충현 조탁현 조향연 조향옥 조현 조형철 조혜경 조혜련 조희정 조희정 조희화 주수석 주수진 주영복 주진택 주하형 주한나 지근성 지민숙 지병현 지창훈 지형락 지혜선 진남희 진덕수 진보라 차상훈 차성준 차성환 차준성(이성희) 차지훈 채희진 천기호 천대철 천용우 천정은 천지현 최경식 최경아 최경영 최근석 최근철 최금희 최대식 최도훈 최동선 최명식 최명찬 최명호 최미영 최미현 최민선 최복규 최봉산 최봉호

2017년 6월

임정민 임지웅 임태윤 임현일 장나리 장미애 장소희 장영묵 장우석 장윤석 장정우 장태욱 장혜경 전다슬 전미희 전성일 전용주 전준희 전현숙 정경호 정근희 정대환 정명옥 정미옥 정병석 정상준 정선화 정세훈 정슬기 정연택 정영학 정우성 정윤섭 정의석 정재관 정정기 정준형 정진근 정찬영 정태휘 정현석 정호식 정희금 제지현 조권도 조동준 조미연 조봉매 조성민 조수연 조영수 조용화 조인한 조중훈 조태호 조현경 조혜연 주강호 주영삼 주현우 지삼녀 지혜영 진상훈 차영옥 차현진 천명주 천태환 최경원 최기영 최동수 최명희 최민섭 최상민

임정수 임지원 임평희 임형석 장대성 장미정 장수규 장영수 장우성 장은아 장정윤 장택수 장혜숙 전대석 전민선 전성호 전우진 전진 전혜숙 정경희 정기동 정덕순 정명진 정미옥 정병용 정상진 정성길 정소라 정승용 정영 정영현 정우진 정윤영 정의진 정재권 정정일 정준호 정진산 정창숙 정택일 정현선 정호엽 정희영 조강숙 조귀환 조동준 조미형 조부민 조성연 조수연 조영수 조우일 조인혜 조지숙 조태훈 조현구 조혜영 주경선 주영희 주현정 지성스님 진각유 진수호 차영천 채도진 천무영 천현숙 최경주 최기윤 최동신 최무현 최민희 최상열

임정식 임종규 임지원 임진세 임필순 임한수 임혜경 임혜림 장대열 장덕용 장병옥 장병춘 장수익 장수진 장영숙 장영욱 장우식 장우철 장은영 장은영 장주영 장중현 장학중 장한무 장호걸 장홍석 전대진 전도훈 전민용 전병탁 전수경 전수영 전원실 전인원 전지영 전지영 전호용 전홍표 정경희 정광 정기영 정기영 정덕진 정도영 정명현 정무정 정미정 정민규 정병욱 정봉근 정상훈 정서영 정성문 정성식 정수미 정수양 정승우 정승헌 정영교 정영교 정영훈 정영훈 정운봉 정원교 정윤우 정윤종 정이랑 정익수 정재련 정재석 정정일 정종운 정진 정지석 정진상 정진숙 정창운 정창인 정택준 정한석 정현숙 정현주 정호인 정호진 정희종 정희진 조강일 조경래 조규민 조규범 조동현 조룡상 조민성 조민숙 조상기 조상현 조성연 조성오 조수영 조수장 조영식 조영식 조우현 조유식 조일제 조장훈 조지연 조진모 조하나 조학현 조현동 조현우 조홍찬 조환 주미영 주상모 주완돈 주유인 주현주 주형민 지수경 지영선 진경희 이산하 진승모 진재욱 차옥숭 차은선 채복희 채수인 천민경 천복기 천홍권 철 오 최경준 최경희 최기은 최낙선 최동진 최동철 최문규 최문찬 최병국 최병주 최상열 최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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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최상필 최상한 최상호 최선희 최성관 최성권 최소미(정성연) 최소영 최슬기 최승규 최승혁 경 최양희 최영균 최영준 최영준 최영철 최우석 최웅식 최원석 최은동 최은미 최은숙 최의순 최의찬 최인미 최장옥 최재규 최재균 최정록 최정순 최정식 최종관 최종문 최종배 최지수 최지양 최지연 최진동 최진봉 최진성 최춘식 최칠영 최태명 최현영 최현우 최현재 최효진 최희동 최희영 탁미란 탁범우 탁승수 표지영 하경옥 하국봉 하재원 하재철 하정순 한강희 한경민 한경선 한병기 한병철 한보경 한상호 한서윤 한서현 한승동 한승우 한승윤 한영선 한영식 한영실 한일희 한재인 한정호 한충희 한태욱 한택규 함진호 함판식 허경태 허성식 허수련 허영강 허재우 허정운 허정현 허태준 허태환 허현주 현용주 현일훈 현주 홍미숙 홍미영 홍미정 홍성재 홍성주 홍성철 홍승희 홍연 홍연금 홍정연 홍정윤 홍정환 홍진일 홍태용 홍해정 황대선 황덕홍 황도형 황보반 황보영근 황보인구 황성준 황성하 황수민 황의근 황의청 황인 황중길 황지현 황지훈 황혜성 황화인 황희관 Kim PowonCorp

최석봉 최석종 최석태 최선근 최성일 최성하 최성헌 최성혁 최숙 최수경 최수정 최수진 최승호 최승호 최승환 최승훈 최영묵 최영민 최영민 최영식 최영태 최영학 최영희 최옥현 최원일 최유진 최유환 최윤대 최은순 최은심 최은자 최은주 최인섭 최인숙 최인정 최인창 최재욱 최재웅 최재원 최재혁 최정실 최정아 최정운 최정호 최종식 최종윤 최종훈 최주리 최지영 최지영 최지용 최지원 최진솔 최진영 최참 최차봉 최태선 최태용 최태훈 최학봉 최현주 최현진 최현진 최형순 추명성 추민경 추연균 추연수 탁종열 태양훈 태영원 태은정 하대호 하상필 하상훈 하성용 하지아 하지영 하지혜 하춘욱 한경송 한귀순 한기성 한동균 한삼덕 한상덕 한상복 한상선 한석만 한성아 한성욱 한성일 한승윤 한승주 한승철 한승희 한영애 한오형 한용주 한용희 한제영 한주엽 한준수 한준희 한해진 한현희 한혜란 한호석 허남옥 허만훈 허미진 허삼영 허영수 허영재 허영진 허영진 허정화 허정화 허종환 허준기 허혜민 현금이 현기남 현기훈 호경인 홍경진 홍근표 홍기 홍민희 홍병진 홍서희 홍석구 홍수영 홍수원 홍수정 홍수호 홍영기 홍영미 홍용웅 홍인선 홍정희 홍종두 홍주표 홍준기 홍현봉 홍현수 홍현준 홍형숙 황명숙 황명식 황명필 황미선 황부자 황상순 황상인 황선영 황순구 황승동 황승미 황승용 황인성 황인용 황인찬 황인희 황철환 황춘화 황충모 황태근 황희원 David Cho Hunkook Joo RefundPark sunghye mun

신입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믿음 박순태 서보영 유영화 정가람 피준찬

최선미 최선영 최성호 최성황 최수현 최숙경 최승희 최시안 최영아 최영아 최용석 최용수 최윤실 최윤영 최은지 최은지 최인호 최인희 최재현 최재호 최정훈 최정훈 최준규 최준락 최지윤 최지환 최창규 최창석 최한성 최해창 최형용 최혜영 추연숙 추원호 편성훈 편일란 하영은 하용근 하치동 하태욱 한로사 한만정 한상용 한상일 한성환 한성희 한신애 한애경 한우 한우전 한진석 한찬우 한희정 함보현 허상대 허선미 허옥현 허용수 허준식 허준호 현상윤 현성우 홍기상 홍기성 홍석진 홍석훈 홍순풍 홍순형 홍인용 홍장혁 홍진 홍지현 홍혜진 황경희 황미연 황민우 황성수 황성식 황승훈 황애자 황재희 황정기 황태원 황태현 jungsil choi

김은선 박인철 송재영 이대중 정성대

최선용 최선욱 최세경 최세성 최숙희 최순규 최시연 최아현 최영애 최영우 최용식 최우람 최윤정 최윤정 최은희 최은희 최일광 최일남 최재환 최재환 최정훈 최정희 최중억 최중일 최지훈 최진각 최창수 최창우 최헌 최현근 최혜진 최홍덕 추일웅 추점자 표석 표수호 하원식 하은경 하태웅 하현주 한명선 한미희 한상일 한상진 한세용 한소연 한애련 한연기 한운동 한윤희 한찬희 한철모 함석일 함선호 허선회 허성 허욱 허육 허진 허창구 현승준 현영권 홍난희 홍남균 홍선비 홍성모 홍승수 홍승현 홍재범 홍재완 홍지훈 홍진숙 황광수 황교남 황민지 황병원 황성애 황성욱 황영민 황용석 황정현 황준범 황현성 황현주 Moon Ho Hwang

김호경 박정구 오지혜 이상훈 정진

최선중 최세연 최순천 최안진 최영주 최우복 최윤준 최은희 최장근 최정규 최정희 최지선 최진규 최철원 최현영 최홍석 추준안 표완수 하재기 한갑수 한병기 한상혁 한수정 한영관 한인섭 한철우 함종빈 허성식 허인순 허창수 현영돈 홍민 홍성원 홍승훈 홍정배 홍진숙 황규석 황병준 황성운 황운선 황준혁 황현표 Paul

김혹근 박준석 유병선 이유림 최병석

·2017년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새로 가입한 21분입니다. ‘회원정보 동의’까지 완료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름을 확인 못한 분이 계실 경우 사무처로 문의해 주십시오. (02-392-0181)

부탁 드려요

1. 사용하지 않는 계좌는 변경해주세요. 2. 잔액을 채워 주세요.

잔액 부족으로 회비 인출이 되지 않아도 CMS 수수료는 내야합

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면 꽤 큰 돈이 됩니다.

3. 나무에게 미안해서 우편물을 받지 않고 싶은 분은 전화로 연락 주세요. 4. 이메일을 등록해 주시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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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회비 관련 문의 전화

02・392・0181


민주언론시민연합

팟캐스트 좋아요 민주언론시민연합 자체 팟캐스트

미디어탈곡기 평일 오전 페이스북 생방송 후 업로드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청년회장 이봉우 활동가, 부녀회장 배나은 활동가. 그리고 동네 마실 청년 이정일 활동 가가 매일매일 미디어를 ‘탈탈탈’ 털어드립니다. 하트와 다운로 드, 댓글로 꼭꼭 함께해 주세요.

하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종편때찌프로젝트 매주 금요일 저녁 업로드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미디어포커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방송

* 팟빵(www.podbbang.com)에서 ‘미디어 탈곡기’를 검색해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애플 공식 팟캐스트에서도 구독할 수 있습니다.


2017

프 캠 원 회 련 언 민 2017년 9월 16일(토)~17일(일) 장소 경기 양평군 용문면 더큰나무펜션 일시

자세한 내용은 또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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