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박박홍’이 만든 그 뒷 <보도지침 특별호> 이 야 기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 박성득·홍수원·박우정·이석원
민언련 포커스
“민언련은 준비됐다” “대선 모니터 빨리하자!” 2016년이 끝나갑니다. 민언련에 2016년은 아주 특별한 해였습니다. 1월 첫날부터 4·13총선 모니터단을 시작해 정 말 ‘전쟁 같은 모니터’를 했습니다. 야당의 참패가 예상되던 시기였고, 북핵 종북몰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 론의 상황은 기가 막힌 수준이었습니다. 총선 당일, 저는 늦잠을 자고 투표를 하고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앞으로 또다시 어떻게 힘을 내서 민언련을 꾸려 나갈지 마음을 추슬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총선을 끝내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뒤풀이를 치르고 난 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출 연 제의가 왔습니다. 첫 출연 이후 김어준 씨가 ‘종편때찌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이어 거짓말처럼 많은 회원이 민언련에 가입하셨습니다. 6월 이후, 지금까지 저희는 갖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왕좌왕 달려왔습니다. 사무실 리모델링을 해서 더 많은 활동가가 일할 공간을 마련했고요. 저를 포함해서 5명이던 활동가를 11명으로 충원했습니다. 종편을 모두 실시간 으로 녹화하는 장비를 마련했고요. 동영상 제작이 가능한 컴퓨터를 4대나 들여놨습니다. 교육공간 <말>도 별도로 마련했고, ‘종편 재택모니터’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서 저희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감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변화가 너무 꿈같아서, 저는 자주 ‘꿈을 깨는 꿈’을 꿉니다. 누군가 경제적 사정이나 해외 이주 등의 이유 로 후원을 해지한다는 메모를 보면, 가슴이 쪼그라듭니다. 지금의 후원을 믿고 무턱대고 판을 벌이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두려움이 크고요. 반면 그동안 ‘돈 때문에’ 못했던 ‘해야 할 일들’을 모두 해서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빨 리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습니다. 이런저런 고민 탓에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도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품이 얼마나 커졌는지 감격하는 중입니다. ‘보도지침 30주년’ 기념식도 준비하고 그분들의 이야 기를 듣고 기록하고 감사를 표하겠다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독재정권에서 정권의 참혹한 언론장악 실상을 알렸던 선생님들을 모시고 감사를 전하고, <보도지침 2016> 증보판을 만들어 아직 까지도 진행 중인 ‘보도지침’ 실상을 알리는 일도 민언련이 해야 할 일이라 는 생각에서입니다. 자, 이제 엄살 그만 하고 선언합니다. 민언련은 ‘종편때찌 프로젝트’를 포함해 대선 선거보도 모니터를 ‘제대로’ 치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러니 이제 국민의 힘으로 보다 빨리 대선이 치러질 수 있도록 우리 다시 힘을 모아보아요. 다음 주 촛불집회에서 이런 구호 한번 외쳐봐야겠습니다. “민언련은 준비됐다” “대선 모니터 빨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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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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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이완기 기획위원 김경실 김언경 박제선 조영수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장 김은규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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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 박성득·홍수원·박우정·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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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와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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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박홍’이 만든 <보도지침 특별호> 그 뒷 이야기 | 김언경
“검찰과 경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물대포 때문이었다는 것을” | 배나은
편집기자 김유나 박제선 박성원 배나은 안효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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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토달기
국내 언론이 진화한 삼성 갤럭시 노트7 화재 | 이훈 책이야기
저널리스트들이 괴물 트럼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 안건모
김경실 김서중 김성원 김수정 김언경 박석운 박제선 안건모 이기범 이완기
여는글
보도지침 폭로 30년 JTBC의 역할과 언론 운동의 과제 | 고승우 -
2016년 12월
민언련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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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청소년에게 자유로운 사색을 허하라 | 염찬희
편집기자 우지연 유민지 이봉우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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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박제선 인쇄 신화프린팅 발행일 2016년 12월 5일
신입 활동가 인사
두 번째 심장 소리가 들리나요 | 안효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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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민언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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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0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발행처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주소 ( 04207)서울 마포대로14가길10 동아빌딩 4층 전화 02)392-0181 팩스 02)392-3722 이메일 ccdm1984@hanmail.net 홈페이지 www.ccdm.or.kr 후원계좌 신한 100-019-186241(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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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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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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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일~31일 후원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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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꾸나 민언련>은 민언련이 회원에게 보 내드리는 선물입니다. 또한 공익적 목적으
·보수 정권 연장,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박근혜 게이트’와 언론, 어떻게 볼 것인가?
로 도서관이나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경우 에 한하여, 1년에 1만원의 비용을 받고 ‘자 료회원’으로 등록해 <날자꾸나 민언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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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드립니다. 현재 <날자꾸나 민언련>은 화강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전국의 대안고등학교 도서관 과 마포, 은평, 서대문구의 작은도서관, 지 역아동센터에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날자꾸나 민언련>을 권하고 싶은 분은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지정하신 곳
-
·왝 더 독 ‘최순실’을 끝내 숨길 수 있을까? ·‘요즘 언론’의 ‘수법’을 밝혀주마 ·국정농난 특검도입, ‘양심언론’ 분발하라 ·‘박근혜 게이트’에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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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문의 070-4849-3027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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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보도지침 폭로 30년 JTBC의 역할과 언론 운동의 과제
보도지침은 군사정권이 언론을 직접 통제하던 방식의 하나다. 보도지침은 박 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도 행해졌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 9월 폭로되면 서 세상에 그 실체가 확인되었다. 언협(민언련의 전신)이 폭로한 보도지침은 전 두환 정권의 폭압성과 기만성을 만천하에 폭로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 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584건의 보도지침에는 정치권력이 무 고승우 이사장 konews80@gmail.com
슨 기사를 보도할 것인지 아닌지와 그 크기, 그 내용, 지면이나 방송 보도 순서 등을 세세히 통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도지침 대상은 정치·경제·사회·문
화·외교·국방·남북관계·국제문제 등 전방위에 걸친 기사와 사진 등이었다. 보도지침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비밀리에 전국 서점에서 판매되면서 전두환 정권의 언론탄압과 여론 조작은 물론 정권 차원의 범죄나 비리 축소 은폐, 공안정국으로 몰아가기 위한 공안 사건 조작 등의 실 체가 밝혀졌다. 전두환 정권은 정부 비판 성명서에 대해서도 체포 구금을 당연시하는 등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탄압하고 언론을 정권 하부 선전 홍보기구로 악용했다. 보도지침 폭로는 전두환 정권에 완전히 장악됐던 ‘제도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못해 알 권리를 심 각하게 침해받았던 현실을 폭로해 시민사회의 분노를 끌어내고 군부 통치 종식을 외치는 결정적 기폭제 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신군부에 저항하던 노동, 시민사회 단체의 민주화 운동이 치열했다. 언협의 보도 지침 폭로는 군부 통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지 구체적으로 다양한 사례 를 제시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보도지침 폭로 이후 수 개월 만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알 려지면서 군부 통치 종식을 외치는 범사회적 민주화 투쟁이 전국에서 발생했다. 보도지침은 정권이 언론을 정권의 나팔수로 여기고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이용하는 수단이었다. 보도 지침으로 상징되는 군사정권의 언론통제 형식과 내용은 ‘이명박근혜’ 정권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정권 을 거치면서 진화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정부 기관이 일상적인 업무의 하나로 보도지침을 내려보냈 지만 시민사회의 민주화 투쟁으로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그 방식은 매우 교묘해지고 간교해 졌다. 군사정권에서는 보도지침을 내려보내는 정부기관이 정보부나 언론담당 행정부처 등 전방위적으로 공 공연하게 이뤄졌다. 보도지침은 정보기관원이나 경찰, 보안사 소속 직원이 언론사에 상주하고 정권이 맘 4
에 들지 않는 기사 등을 보도한 언론인을 연행,
식이 악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희 정권은
구금하거나 사주를 시켜서 부당한 인사를 강요
동아, 조선일보 기자들의 언론 자유 투쟁에 대
하는 방식과 같은 다양한 통제 방식과 함께 악
해 투쟁에 앞장선 기자들만 전원을 해직시킨 데
용되었다.
비해 80년 신군부는 광주항쟁 당시 저항한 언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국민의 정부와 참
론인들과 함께 부패 기자를 포함했다. 이른바
여정부 10년 동안 조중동이 정권과 대치하는
언론자유 투쟁 구심점을 약화하려는 음모적 발
상황이 되고, 군부 독재 시절과 같은 언론 통제
상이다.
는 사라졌다. 그렇지만 낙하산 사장 내려 보내 기는 여전했다.
박근혜 정권과 언론의 관계는, 박근혜 게이트 가 폭로된 뒤 박 대통령이 두 차례의 담화를 통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정치권력의 언론
해 자기변명과 거짓말,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통제는 매우 사악하고 간교한 방식으로 행해지
제시했는데 기자들이 질문을 전혀 하지 않은
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대선 캠프에 참여
채 침묵으로 받아쓰기만 한 것에서 상징적으로
했던 선거 참모 출신 전직 언론인을 공영방송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질문지를 사
사장으로 내려보내 인사와 경영을 통해 방송사
전에 받는 식의 기자회견도 거의 하지 않고 자
내부를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했다. 허수
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하는 담화 발표 방식의
아비 언론사 사장이 청와대 등에 의해 원격 조
기자회견만을 해왔다. 언론이 대통령의 확성기
종된 것이다.
로 악용된 것이다. 후퇴하는 한국 언론 자유 현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사
황을 국내외에 드러내는 국가적인 치욕이다.
장이나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처럼,
1986년 보도지침이 나온 그 다음 해 체육관
정권에 의해 투하된 낙하산 사장이 청와대 지
대통령 선거가 저지되고 대통령 직선제가 관철
시를 보도국에 강요하는 형식이다. 과거 군사정
되는 시민혁명이 폭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되
권처럼 정부의 기관원 등이 앞장서 보도지침을
는 올해 JTBC가 폭로한 태블릿 PC가 박근혜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에 투입된 정권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을 ‘공
협조자를 수단으로 삼아 언론을 통제했다. 이
범, 피의자’로 전락시키는 결정타를 가했다. 30
런 방식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에게는 부당징계
년 전 보도지침을 폭로한 <말>은 반독재 저항
나 해직을 자행해 다수 언론인을 위협해 침묵하
언론이었고 JTBC는 언론 악법에 의한 태어나
게 만들었다.
지 말았어야 할 종편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언론
MBC, YTN 등은 공정보도와 진실 보도를
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실감케 한다.
외치는 언론인에게 갖가지 불이익을 주는 인사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그 속성상 언론의 감
조처를 남발하고 부당해고 당한 언론인이 승소
시 대상이라는 철칙에 비춰 21세기 한국형 언
해도 원상회복을 시키지 않고 대법원까지 밀어
론운동은 정교하고 탁월한 논리로 뒷받침되어
붙이는 식의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 불법해고도
야 한다는 과제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언론통제의 한 방식으로 악용하고 있다. 언론인 불법해직 방식도 정권에 따라 진화하는데 그 방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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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 보도지침을 만든 사람들 박성득·홍수원·박우정·이석원
‘박박홍’이 만든 <보도지침 특별호> 그 뒷 이야기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사실 ‘1986년 보도지침 폭로 사건’을 아는 사람조차 그다지 많지 않 다. 그나마 사건을 아는 사람들에게도 ‘보도지침’을 누가 폭로했냐고 물으면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와 <말> 지 라고 말한다. 그 정도 알면 사실 다 아는 것이다. 더는 <보도지침>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이가 당시 관련자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민언련 사무처장을 하고 있는 나도 ‘보도지침’ 을 폭로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른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보도지침’ 사건의 산증인인 신홍범 선생조차도 <보도지침 특별판>을 만들고 사건을 폭 로하는 과정을, 누가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고생했는지 제대로 파악하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생들의 증 언을 들으면 한결같이 당시에는 자신이 하는 일 이외에는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혹여 잡혀가더라도 ‘불지 않으려면’ 애당초 모르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고, 사진 한 장도 찍지 않으며 그렇게 각자의 역할에 따라 점을 찍어 냈다. 그리고 이 점들이 모여 ‘보도지침 폭 로’라는 큰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민언련은 <날자꾸나 민언련> 11월호에서 한국일보 캐비닛에 보관된 ‘보도지침’을 복사해 세상에 내놓은 김주 언 기자와 이를 폭로하여 ‘사건’으로 키운 신홍범 선생을 만났다. 12월에는 그들의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하던 숨어있는 일꾼들. 실제 가장 열심히 일한 리더들을 만났다. 이른바 ‘박박홍’ 체제의 주인공들. <보도지침 특 별판>을 만든 진짜 주역이다. 박성득, 홍수원, 박우정 선생(사진 왼쪽부터)과 이들을 모신 이석원 당시 언협 사무차장(제일 오른쪽)과의 만 남은 정말 길었다. 너무 길어서 네 분의 대화만 가지고도 책을 한권 쓰라고 해도 쓸 수 있었는데, 나는 그들 을 보내지 못하고 계속 조르고 졸라 더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민언련 사무처장 정말 끈질기네”, “독하네”와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더 듣고 싶었던 그들의 이야기.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슬프고 아름답기까지 해서 덜어내기 힘들었던 그들의 이야기. 정말 힘들게 절반만 덜어서 이 지면에 싣는다. 6
‘박박홍 체제’ 드디어 다 모이다
든 이야기를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어색한 웃음이 이어졌다).
김언경 ‘보도지침’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인터뷰,
오늘 이 자리는 두 번째 만남입니다. 지난 번 신홍
이석원 너무 오랜만이고 시간도 많이 지나서…. 어
범, 김주언 선생님께서 ‘보도지침’을 만든 사람들
떻게 풀지 막막하네요. 그냥 김 처장이 취조 형식
을 알려면 오늘 모신 네 분을 먼저 만나야 한다고
으로 질문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대답할게요.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렵게 모셨습니다. 박우정 이사장님은 최근까지 민언련 이사장을 맡 아 오랫동안 저희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주셨기에
취조 형식(?)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다
자주 뵈었지만요. 오늘 모신 세분 선생님을 저는 처음 뵙습니다. 박우정 이사장님도 이사장님으로
김언경 하하하. 그럼 처음엔 제가 취조 형식으로 여
만 알고 있을 뿐, <보도지침> 제작 당시 어떤 일을
쭤볼게요. 하지만 곧 선생님들 말씀이 꼬리를 이
하셨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잘 모릅니다.
어 나올 것이라 장담합니다. 먼저 <보도지침>이라
그래서 오늘 <보도지침>을 만들던 당시의 일들을
는 자료를 입수하게 된 경위를 듣는 것으로 이야
미주알고주알 다 듣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조
기를 시작해볼까요?
금 전 한분 한분이 오실 때마다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하고 반가워하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찡했
박우정 그 대목은 아마 이석원 씨가 당사자니까 가
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만나보신 지 오래되셨죠?
장 소상히 알 거예요.
이석원 민언련 사무처장께서 오늘 정말 큰일을 하
박성득 이실직고 해 봐. 이제 다 지나간 일이고 잡
셨어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에요. 정말 ‘박박홍’
혀가지도 않으니 숨기지 말고 다 이야기해.
(박우정, 박성득, 홍수원)이 다 한자리에 모이셨네 요.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가요. 이분들이 쉽게 모
이석원 날짜는 잘 기억이 안 나고요. 아무튼 김도
일 수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연 씨가 보자고 해서 김주언, 김도연, 저 셋이 낮 에 만났어요. 그 자리에서 ‘보도지침’을 받은 건 아
김언경 사실 제가 전화를 드릴 때 선생님들께서 모
니고요, 그런 게 있다는 걸 들었죠.
두 머쓱해 하셔서 힘들긴 했어요. 서로 누가 나오 는지 물으셨는데요. 그 과정에서 제가 전화 받으
박성득 김도연 씨가 민통련 소속이었지 아마.
시는 선생님 본인 빼고 다 오시기로 했다고 살짝 추임새를 넣은 것은 사실입니다(웃음). 그러자 처
김언경 김도연 선생님은 민언련 창립 당시 발기인이
음엔 “다 지나간 이야기, 뭐 할 이야기가 있나요.
세요.
기억나는 것도 없네요” 하던 선생님도 “그렇게 다
이석원 그래도 그 당시 민통련 편집실장이었어요.
모여요?” 하셨어요. 이렇게 모이기 힘드신 분들이
아무튼 셋이 절친한 친구니까. 처음 ‘보도지침’을
모처럼 한자리를 하셨으니 <보도지침>에 대한 모
보니까 너무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고
2016년 12월
7
이거 나 주라. 나 좀 살려주라”고 졸랐죠(웃음). 김
홍수원 나한테 뺏긴 거지.
도연 씨가 해직기자들이 만든 언론단체에서 폭로 하는 게 더 의미 있겠다며 흔쾌하게 양보했죠. 김
이석원 뺏겼죠. 아니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주언 씨가 그걸 두 번에 나눠서 줬어요. 처음에는
걸 가져온 당일 뺏겼을 거예요. 아무튼 걸리자마
복사한 것을 가져다줬지. 그런데 두 번째는 급해
자 야단 되게 맞았죠(웃음).
서 원본을 아예 들고 왔어요. 박성득 그 때 내 기억으로는 김태홍 선배하고 우리 김언경 그럼 캐비닛에 있는 서류철을 통째로 가지
가 같이 ‘이것을 어떻게 할까. 낼까 말까, 어떻게
고 오셨나 봐요?
내느냐’, 그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어요.
이석원 맞아요. 복사하는 것도 굉장히 부담스러웠
김언경 저는 정말 집요하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
던 모양이야. 아예 원본을 들고 왔더라고. 그때 최
데요. 최종 결정을 한 단위가 있었나요?
민희 씨가 복사를 해왔던 것 같은데, 아무튼 엄청 서둘러서 복사해서 도로 가져다 놨어요.
박우정 그게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게 워낙
엄청난 물건이기 때문에 비밀이 중요하잖아요. 정 말 극비리에 이걸 진행해야 하는데 공개적인 회의
언협이 ‘보도지침’ 폭로를 결정하게 된 과정은?
에서 논의할 순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몇 사람이 모여 구술회의를 해서 내기로 했고, 결정사항을 송건호 의장한테 보고했을 거예요. 송건호 의장은
김언경 그럼 언협은 그걸 폭로하기로 바로 결정하셨
그전에도 그랬지만 중요한 결정사항을 직접 내리
나요? 폭로여부는 누가 결정했나요?
기보다는 실행위원회가 결정하면 따르는 그런 스 타일이셨어요. 이것도 “이런 문건을 입수해서 내기
이석원 받아오자마자 바로 결정한 것은 아니에요.
로 했다” 그러니까 동의를 하셔서 극비리에 진행이
사실은 제가 하루쯤 쥐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문
됐죠.
화6단체’라고 해서 자주 만나던 곳이 민주언론운
이걸 가지고 공개적인 회의석상에서 갑론을박하고
동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중문화운동협의
그러진 않았어요. 이게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건
회, 민주교육실천협의회,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
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전두환 정권의 본질을 폭
회, 민족미술협의회가 있었죠. 당시 우리가 KBS
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야 한다, 언협이 결성된
시청료 거부운동과 관련된 소규모 책자를 만들고
목표가 언론 자유인데, 이것을 폭로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사실은 ‘보도지침’을 거기 부록으로 집
없다’ 이런 의견이 컸죠. ‘물론 나중에 이걸 냈을
어넣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홍수원 선
경우에 고충이 클 것이다. 언협이 사라질 수도 있
배님에게 걸렸어요. 그때 “이석원이 이거 아주 흉
는 사안이다’ 이런 걱정을 하며 신중론이나 유보론
악한 사람이네”라는 말을 들었네요(웃음).
을 펴는 주장이 있긴 있었어요. 하지만 ‘이건 내자. 언협이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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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보도지침>을 편집한 박성득, 홍수원, 박우정 선생과 김주언 기자에게 ‘보도지침’을 받아 온 이석원 선생.
서 극비리에 작업에 들어갔죠.
이석원 서대문구 기상청 근처 편집실이었어요.
박성득 내가 기억나는 것은 딱 하나. 홍수원 선배
박우정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애초에 <말>지
가 그냥 좋아 죽데.
편집실이 지금 내일신문 사옥 빌딩이었어요. 그 2 층인가 3층에 조그마한 방 하나 얻어 가지고 거기
홍수원 허허허.
서 <말>지 편집하고 그랬거든. 기자들이 거길 거점 으로 취재도 하고. 그러다 기상청 근처에다 비밀편
박성득 이 말 없는 사람이, 즐거워한다는 정도가
집실을 또 하나 얻었죠.
아니라 정말 이게 뭐라고 할까. 마치 거지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금덩이를 발견한 것처럼 보였어요.
이석원 그런데 그건 <보도지침>하고 관계가 없었어
요. 봄에 옮겼거든요. 이석원 흥분의 도가니였죠. 박성득 나도 시점은 헷갈리는데, 은평구 전철역 나
오면 왜 은평구청 근처 삼거리 그 허름한 편집실.
‘아래다방’의 실체는 기상청 앞 편집실
이석원 그건 3차 비밀편집실이었어요.
홍수원 나는 전혀 모르겠네요. 박우정 우리가 <보도지침>을 만들었던 그 편집실이
어디였지?
박성득 광교 근처에도 하나 있었죠. 아이고 도둑놈
들이 자기 지나간 길이 생각이 잘 안 난다더니. 왜 2016년 12월
9
이리 생각이 안 나는감. 기상청 근처에도 하나 있
싶어서 김태홍 선배님이 무교동에 제2 비밀편집실
었고. 우리가 <보도지침> 낼 때는, 그때 아마 세
을 하나 더 만든 겁니다.
군데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완전히 폐쇄한 곳이고 두 개는 분명히 남아있었어요. 그 때 우리 가 “야 이거 털리더라도 2차, 3차까지 털리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리지 않겠냐”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
보도지침, 머리를 쭈뼛하게 만는 ‘물건’
나요. 분명 복수로 있긴 있었어요(웃음). 홍수원 이석원 씨가 가져온 걸 보니까, 이게 보통 이석원 여기서 제가 가장 어리잖아요. 제가 가장 정
물건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부천
확합니다. 제가 처음 언협에 들어온 게 86년 2월
서 성고문 이건 뭐 가장 추악하고. 또 기존 언론의
말인가 그랬습니다. 왔는데 그때까지는 내일신문
가장 치욕스러운 내용인데 이렇게 대조를 해보니
그 자리가 편집실이었어요.
까 100% 다 반영이 된 거죠. 개인적으로 욕심이 생겨서, ‘<말> 편집은 당신들이 계속하고 난 그거
박우정 2월까지?
붙들고 한 달 정도 내가 그걸 하겠다’고 했죠.
이석원 그랬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바로 기상청
박우정 기억이 나네요. 원래 홍수원 선배님이 편집
으로 옮겼어요.
장을 하기로 했는데, <보도지침> 때문에 제가 조 금 더 <말>지를 만들기로 했었네요.
박우정 맞다, 옮겼다. 홍수원 그렇게 서로 일을 분담했지만, 사실 당시에 이석원 그건 <보도지침>하고 관계없이 그 때 우리
도 나는 이게 어디서 나왔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
가 편집진을 확대 개편했지 않습니까. 내일신문 건
어. 그땐 될 수 있으면 묻지도 듣지도 않는 분위기
물 편집실은 정말 좁아서 <말>지를 확대하면서 박
였으니까. 그냥 ‘이석원 씨가 어디서 저걸 입수했나
우정 선배님이 하던 편집장 자리는 홍 선배님 맡
보다’ 정도로만 알고 작업을 했죠.
기로 했죠. 대신 박우정 선배님과 박성득 선배님 등은 편집위원으로 일하시기로 했죠.
이석원 사실 그건 김태홍 선배님께도 말 안 했어
요. 그냥 “현역 기자인 친구한테 얻었는데 누군진 김언경 아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하하, 도대체 누
말 못한다” 그랬는데 김태홍 선배님이 대번에 “현
구 말이 정확한 것이라고 정리해야 하는지요. 그
역 기자 친구면 김주언 밖에 없잖아”라고 해서 으
러니까 편집실이 두 개인 건 맞아요?
악 하고 말았죠(웃음).
이석원 봄에 기상청 앞인 ‘아래 다방’이라 이름 붙
박우정 매일 지침이 내려온 걸 받아 적은 종이의 분
인 데로 옮겼어요. 거기서 9월 초 <보도지침> 말
량이 어마어마했거든요. 가능한 전체를 내야 하지
특집호를 냈죠. 그러다가 이거 아무래도 위험하다
만, 또 모두 실을 수 없으니 선별해야 했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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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총지휘하고 문건의 성격이나 의미를 드러
도지침’으로 인해 일체 보도가 되지 않았어요.
내는 작업을 총지휘한 것인 홍수원 선배죠.
또 하나 기억나는 게 이들이 외신에 대해서도 엄 청 신경을 쓰더란 것이죠. 필리핀에서 아키노 암살
박성득 자료 대조작업이 제일 복잡했죠. ‘보도지침’
이후 코라손 아키노 여사가 피플 파워 운동을 이
이 실제로 그 당시 신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끌었잖아요. 아키노 여사가 한껏 부각되고 마르코
실제 신문과 ‘보도지침’을 전부 대조해야 하니까요.
스는 흔들흔들하니까 그자들은 신경이 쓰여서 외 신까지도 제대로 싣지 못하게 한거지. ‘이 친구들
이석원 대조 작업을 했죠. 홍수원 선배님이 주로
이 어지간히 급하긴 급하구나. 어떻게 외신까지도,
하셨죠.
바깥소식까지 이렇게 억누르려 했을까’ 하는 생각 이 들지 않을 수 없었죠.
훙수원 ‘보도지침’이 실제 어떻게 반영이 됐는지를
전부 체크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단편
김언경 비교 거리도 안 되지만, 저희도 작년에
적으로 한 것 같아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참
MBN 불법 광고행위가 담긴 영업일지가 유출되
부족했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쉬워요. ‘보도
었을 때, 그게 실제로 방송에 반영되었는지 찾느
지침’이 대단한 물건이구나 하는 걸 생각할 수밖에
라 고생했어요. 그때 해보니 양이 너무 많아서 모
없는 이유는 사건이 크면 클수록 언론들이 모두
두 확인하기 어렵더라고요. 만약 제가 그 당시 ‘보
철저하게 ‘보도지침’을 그대로 지켰어요. 꼭 지침
도지침’을 받았다면 주어진 시간에 전체를 다 확인
대로 따르지 않으면 치도곤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홍 선
을 한 것처럼 조직도, 박스기사, 해설기사까지 그
생님은 당시 어떠셨어요? 주요한 사건 위주로 골라
대로. 여섯 개 신문이 그대로 똑같이 실었어요. 그
서 보셨어요?
전에도 ‘제도 언론, 무슨 언론’ 이러면서 욕을 했지 만, 아주 절망감을 느낄 정도였죠.
홍수원 사실 나는 웬만하면 거의 다 해보려고 했어
(「보도지침」 책 넘겨보며) 게다가 정부는 자신들의
요. 다만 처음부터 신문 여섯 개를 다 놓고 하는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 보도 내용은 불가하다고
건 아니고, 신문 한두 개만 해보고 많이 반영된
해놨어요. ‘너희들, 우리가 준 것만 보도하고 일체
사안이면 다른 신문도 확인하는 식으로 했죠.
따로 취재 보도할 생각 마라’ 이렇게 한 거죠. 특히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가이드라인은
김언경 아, 그런 식으로 하셨군요.
정말 충격적이었죠. ‘검찰이 발표한 조사 결과 내 용만 보도할 것’, 이런 굴욕적인 지침을 받아가지
이석원 하나하나 대조하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
고 그대로 따른 거죠. 오죽하면 민언련이 ‘성고문
었겠어요. 선배님이 얼마나 꼼꼼한지 거의 한 달,
사건 관련 촌지 받은 제도 언론을 규탄한다’는 성
밤을 새운 것 같아요. 마지막에 홍 선배가 “100%
명서를 내기도 했어요. 언론에 대한 아주 통렬한
는 아니고, 95% 넘게 반영이 됐다”고 했던 기억이
비판을 했더랬지. 그리고 김근태 씨가 자신이 당
나요.
한 참담한 고문을 처절하게 증언했는데, 그게 ‘보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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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정 전두환 정권은 정권 자체가 정통성이 없었
박우정 그렇지. 이게 저놈들이 보기엔 불법 유인물
잖아요. 그러니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하
아니에요. 평소 <말>지도 인쇄하기 힘든데 <보도
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아까 홍수원 선배는 그
지침 특별판>은 폭발력이 엄청날 것임을 알기 때
무렵 기자들은 어떻게 지침을 그대로 따랐을까 한
문에 인쇄하기 더 힘들었을텐데요. 사실 나도 궁
탄했는데요. 사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기자들이
금하네요.
‘보도지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진실 보도하기 는 대단히 어려웠을 거예요. 사실 80년 광주민주
박우정 그 인쇄소 사장 이름 지금 기억해요?
화운동 당시 이른바 언론계 정화작업이라면서 반 정부적이고 자기네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기자를
박성득 하하하. 그러니까 어떻게 된거냐면, 그 당시
대거 정리해버렸잖아요.
에는 인쇄소 돌아다닐 적에 꼭 김태홍 선배가 잡 혀갔잖아요.
홍수원 물론 그렇지만 ‘보도지침’ 자체를 거부하진
못해도 젊은 기자들이 그걸 그대로 따르고 있는
홍수원 우리 그때 이거 제작하면서, 인쇄소에서 제
편집 간부들에 저항하는 움직임 정도는 있어야 했
발 좀 글자만 봐줬으면 했죠. 인쇄하는 사람들이
는데 아쉽긴 하죠.
문맥을 보면 ‘이것 이상한거다’ 하는걸 알테니 ‘제 발 글자만 읽어라’ 하고 바란거죠.
이석원 아참, 그리고 우리가 <보도지침 특별판> 발
표할 때 이건 정말 국가기밀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박성득 그래서 내가 쪼가리 쪼가리로 인쇄를 많이
위험한 내용, 우리가 정권으로부터 정말 꼼짝없이
줬어요. 한곳에서 다 찍지 않았어요. 그나마 본문
책잡힐 수 있겠다 싶은 몇 가지는 뺐어요.
은 괜찮아. 표지 인쇄가 제일 골치 아팠어요. 책을 어떻게 냈냐면, 충무로에 가면 맥주집들이 많아
박우정 그래. 맞아요. 군사기밀 그런 건 뺐던 것 같
요. 거기 가서 맥주를 마시면서 보는거야. 그러다
아요. 걔네들도 국가기밀로 분류하고, 우리가 보기
누굴 하나 찍어서 술 몇 병 딱 보내. 주인이 갖다
에도 ‘이거는 국가기밀이겠다’, 특히 군사 관련해서
주면서 “저 양반이 술을 보냈어요” 하죠. 그럼 술
무기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이게 그대로 나가면
을 먹으며 “아이 뭐 고맙습니다” 그러거든.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빼기로 했죠. 우리 나름대
한두 잔 하다보면 “선생님, 이리 좀 오이소” 하지.
로의 ‘보도지침’이 있었던 거지(좌중 웃음).
그렇게 좀 친해져서 한두 번 더 만나서 친해져둡 니다. 그러다 사흘째 되면, 그 사람 인쇄소를 가 본다고. 왜냐면 기계가 없는 사람이 사기 칠 수도
어떻게 찍어냈을까?
있으니까. 가서 기계 다 보고 그런 다음 내가 “나 랑 좋은거 하나 찍자”고 수작을 걸죠. “4도 칼란
김언경 자 그럼 <보도지침 특별판>의 콘텐츠는 그
데, 현금으로 줄게”하면 업자가 이 사람이 뭔가 구
렇게 정리하셨고, 인쇄와 제작은 어떻게 했나요?
린 거를 찍는가보다 딱 알아채요. “정말 그리 좋아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요?” 그렇게 물으면 “죽이지” 그러죠. 하자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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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 사이즈 미리 이야기하고 “필름을 언제 가져 와라 몇 장, 몇 부 찍자” 정하면 대부분 주인이 한 밤중에 나와서 혼자 찍어요. 하지만 이것도 꼬리 가 길면 밟히게 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계속 바꿔 야했어요. 홍수원 허허허 그랬구만.
박성득 <보도지침> 표지 찍을 때는 내가 알게 된
인쇄소 주인 중에 한 사람이 자기 형님이 강동서 형사과장이라고 자랑을 하더라고. 이 양반이 좀 늙수그레했어요. 그 양반 찾아가서, “이번 거는 좀 양이 많아서 돈을 좀 많이 들어야 되는데”라고 했 더니 반색을 하더라고. 그래서 표지는 그 양반한테 찍었는데, 그 양반도 이거는 참 겁난다 하더라고. 박우정 표지만?
이석원 더 찍었어요. 8천 부인가 찍었던 것 같아.
재판도 찍었는데. 박성득 그럼요. 표지하고 본문은 따로 찍어야지. 박성득 아무튼 그 때 홍선배가 나한테 “무슨 일이 박우정 야간작업하고 이러지 않았나?
있어도 우선 1천 부만 건지자”라고 했어요.
박성득 항상 야간작업을 했어요. 본문은 쪼가리
홍수원 그 당시에 그 <말>지 인쇄 제본을 끝냈는
로 모두 찍어서 다른 데 갖다놓고, 표지는 표지대
데 경찰이 나타나 압수한 적이 있었거든요. 경찰
로 인쇄 끝나면 거기서 기다리다 얼른 딱 지게 실
이 “너희는 다 찍어 주고 돈도 받아라. 그리고 떠
어서 옮기고. 제일 골치 아픈 게 제본이에요. 제본
날 때 연락하면 우리가 압수할 테니” 이렇게 업자
제의도 마찬가지로 충무로에서 막 술 먹고 돌아다
를 회유한거죠.
니다가 좀 ‘그런 놈’ 있으면 바로 현금을 주고, 선금 도 없고 말도 없고 서로가 시간만 딱 정해서 했죠.
김언경 그렇게 해서 뺏긴 적이 있어요?
아무튼 <보도지침> 이건 정말 힘들게 조마조마하 게 했어요.
이석원 예. 그게 아마 봄에 한 건 그렇게 털렸죠,
아마? 물건 나가는데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다가. 박우정 그걸 몇 부 찍었지 첨에? 5천 부? 박성득 우리 <보도지침> 가지고 오는 날은 총동원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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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득 다음 거는 편집실로 싣고 왔더니 좋아가지
고 난리였죠(웃음). 김언경 <보도지침>은 8천부 다 찾았어요?
박성득 그럼 다 찍었어요. 찍긴 다 찍었는데, 양이
많아서 제본에 고생했지. 처음에 천 부 숨겨놓고, 다음부터 2천 부씩인가 갖다 주니까 금덩어리 오 는 것처럼 좋아서. 새벽 4시 반쯤인가 마지막 딱 싣고 오니 ‘아이고 만 부로 할걸’ 그런 생각이 들데. 김언경 <보도지침 특별호>를 보면 삼원인쇄소인가
그렇게 써있어요. 그건 뭐죠? 박성득 몰라. 사실 실제 어디서 찍었는지는 지금도
일체 몰라요. 그냥 ‘랜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 돼서 골목마다 전부 지키고 있었어요. 국일관 근처에서 표지 따로, 본문도 다 따로 찍은 뒤, 마
이석원 나중에도 계속 몇 번 찍었으니까, 전부 아
지막에 제본하는 날은 나 혼자 있었어요. 제본한
마 2만 부 찍었을 겁니다.
책을 가지고 나오는데 그날따라 유달리 많은 백차 (경찰차)가 돌아다니더라고요. 홍 선배가 천 부만
박성득 아, 그 뒤에 또 재탕 삼탕 했던 것 같아요.
먼저 건지자 그 말만 생각나서, 그걸 먼저 빼서 누 구라고 말할 수 없는 선배 집을 한밤중에 찾아갔 어요. 담을 넘어서 ‘좀 맡아주소’ 했더니 난색을 표
‘물건’은 어떻게 배포했을까?
하더라고. 그럴 때 서로 긴 말 하면 안돼요. 김언경 일단 책을 확보했어요. 그걸 어떻게 세상에 홍수원 아 그래서 그 집엔 못 맡겼어?
뿌렸을까요? 지금처럼 서점에 버젓이 내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박상득 그렇죠. 들고 나왔어요. 급하니 집 근처에
비닐하우스로 농사짓는 사람한테 맡기죠. 그 집에
박성득 그래 한 며칠 거기서 어슬렁어슬렁 했지. <
일단 천 부 맡겨놓으니 그제야 맘이 좀 놓이며 배
보도지침> 내 놓고도 상당기간 거기서 그대로 있
짱이 생기더라고. “일단 천 부 찍었으니 됐다 마.
었던 것 같아요.
에라 이놈들아. 잡아 갈라믄 잡아가라” 하고 말이 에요. 14
이석원 <말>지 배포망이 두 가지였어요. 단체 배포
가 있어요. 이를 테면, 전남민중민주협의회 뭐 이
박성득 몇 달 후엔 거의 다 도망갔지?
런 식의 단체들이 있어요. 그런 곳에 배포하고, 서 울의 각종 단체를 통해서 배포하고. 그 다음에 대
이석원 다 튀었죠. 그래서 <말>지 8호는 제가 맡아
학가 사회과학서점 등에 배포했죠.
야 했어요.
박성득 그 다음에 또 해직기자들에게 많이 떠맡겼
홍수원 편집실이 어디로 갔었죠?
죠. 거의 뭐 대리점 격이지. 한꺼번에 받아서 자기 가 알아서 나눠주던지 팔던지 했죠.
이석원 <말> 지 8호는 무교동 그러니까 광교에 편
집 사무실에서 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점 이석원 사실 단체 배포해서 우리가 손해를 많이 봤
심 먹으러 나가려는데 앞 사무실이 난리가 난 거
죠. 가난한 지방 민주화운동 단체들은 책값 많이
야. 양쪽에 형사들 딱 있고, “꼼짝 마!” 그러고 앞
떼먹었습니다.
에서 그냥 막 내부 수색을 하더라고요. 경찰에 들 통이 난거죠. 다행히 우린 사진 식자판을 옷 속에
김언경 책값을 제대로 준다기보다는 거의 뭐 받아
넣고 튀었어요. 그때 얼마나 오싹했는지.
주는 수준이었겠어요. 박성득 그 때 홍 선배는 어디로 도망갔어? 박성득 하지만 나중에 <말>지가 제법 알려지고 난
다음에는 괜찮았어요. 우리끼리 그런 말도 했어.
홍수원 아 난 서울에 있었어요. 서울에 내가 그 당
<말>지가 군소 운동단체들은 먹여 살린다고. 지방
시에 경찰들이 추정을 못하게 하려고 평소에 별
단체들에게 <말>지는 주된 수입원이기도 했어요.
연락을 하지 않는 현직 기자의 집에 들어갔는데.
<말>지가 단체 후원금을 받는 데 상당히 좋은 역
이게 가족이 있으면 곤란하니까 혼자 사는 현직
할을 했어요.
기자의 집으로 들어갔어요.
홍수원 이 <보도지침> 배포는 김태홍 씨가 굉장히
박성득 보기보다 용의주도하다니까.
수고를 많이 했어요. 싸들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 홍수원 편했어요. 친구 출근하고 나면 그 반포아파 박상득 거의 뭐 보부상이지 뭐. 보부상(웃음). 도망
트 24평짜리 혼자 다 쓰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다니며 파는 보부상이었지.
또 벌이도 했잖아. 번역도 하고. 박성득 음, 상당히. 이런 머리는 또 좋아.
<보도지침>을 세상에 내놓은 후 어떻게 지냈나?
박우정 나도 그랬어. 자급자족했지.
김언경 자 우여곡절 끝에 정말 <보도지침>이 나왔
이석원 우리는 수배 생활을 정말 여유롭게 했어요.
어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친구들 만나면 “정말 정말 큰일 했다”며 자꾸 후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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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을 주는 거에요. 덕분에 정말 수배생활 잘했
박우정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질 못하니까 내가.
어요. 홍수원 나는 어디 나갔다가 들어갈 때면, 꼭 5층 박우정 나는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어.
반포아파트 옥상으로 올라서 아래를 먼저 살펴봤
날 숨겨준 양반은 교수니까 활동을 하면서 늦게
어요. 혹시 차 안에 사람이 한두 명 있는 차가 머
들어오는 거야, 술 잔뜩 취해가지고. 그럼 난 아침
물고 있다 그러면 안 들어갔어요.
부터 저녁까지 그 방 전체를 다 혼자 쓰는 거지. 거기서 번역거리 누가 보내줘서 그거 번역해서 보
박성득 굉장히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야. 생각해보
내고 막 이래가지고 현지 조달했지(웃음).
니 예전 기상청에 있을 때 말이야. 같이 어디 가서 오는데 갑자기 내 팔을 탁 잡으면서 ‘저기 말이야,
박성득 나는 그때 어디로 갔느냐면, 후배 아버지가
저거 조금 이상하지 않아?’ 이러면서 겁을 탁 집어
신촌 사거리 뒤에서 만화방을 했다고. 그래서 내
먹더라고. 그러더니 사무실에 안 들어가고 또 한
가 만화방 점원이 돼가지고 떡 앉아있었지(웃음).
참 뱅뱅이 돌고 그랬어요.
만화방에서 맨날 자고, 그 때 만화책을 수천 권을 봤고. 밤에는 영감님하고 또 한 잔 하고.
홍수원 내가?
홍수원 그런데 난 수배 생활이 힘들더라고. 어때
박성득 그래. 한 번은 갑자기 막 심각하게 ‘박성득,
요? 수배가 힘들어요? 징역이 힘들어요? 난 아무
이리 와 봐’ 하더니 그 두꺼비집을 보면서 지금 이
리 편했다고 해도 수배생활이 더 좀 힘들던데.
집 주인이 수상하다는 거야. 우리가 모든 불을 껐 을 때 두꺼비집이 막 돈다나. 이게 뭔가를 연결시
박우정 힘들지, 아유. 힘들어요.
켜 놓은 거 아니냐고(좌중 웃음). 며칠 막 그러시 더라고. 굉장히 예민하고, 조심스럽고, 범죄형 기
홍수원 더 힘들어요?
질이 좀 있어.
박우정 네.
홍수원 하하하. 내가 그랬군. 수배 생활을 하면서
벌써 한 2~3년 수배 중이던 사람을 만났어요. 서 홍수원 어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로 얼굴은 아는 사이였지. 난 그 때 뭐 한 5~6개 월밖에 안 됐는데. 내가 그 친구한테 위안을 받은
박우정 난 아주 남의 집 살림을 살아줬으니까.
게, 벌써 나보다 훨씬 수배 강도도 높고, 오랫동안 시달려온 사람의 태도가 참 다르다 싶더라고요(웃
홍수원 음.
음). 나만 고통 받으면 다행인데, 집으로 남영동에 서 찾아와서 식구들에게 막 험한 소리하고. 그걸
박성득 아이, 그래도 징역보다는 낫지 않냐?
동네 사람이 보고, ‘야 저거 진짜 간첩, 간첩인가보 다’ 오해하고. 그리고 통반장들을 움직인대요.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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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사람들이 통반장을 움직이는지 몰라도, 이런 사람들을 막 움직여서 신경 쓰이게 만들고. 참 가 족들에게도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김언경 박우정 이사장님은 연행되셨잖아요.
박우정 장인이 그 때 굉장히 편찮으셔서 오늘내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갔지. 홍수원 선고도 그 때 끝났어요? 1심 선고 끝났고?
박우정 끝났고 재판 중이었던가 하여튼 그래요. 수
배도 풀렸으니 하고 자수하는 형식으로 경찰서에 갔는데 이 자식들이 남영동으로 끌고 가는 거예 요. 그나마 재판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불기 소 처분인가 받아가지고 나왔지. 많이 나. 그 양반이 여관방에서 얼마나 많이 잤겠 어.
마음이 여렸지만, 누구보다 용감했던 김태홍 선배에 대한 추억
홍수원 김태홍 선배가 여린 면이 있으니까 사람들
이 좋아한 거지. 강하게만 보인다고 사람들이 좋 박성득 참 돌아가셨지만, 김태홍 선배 하면 기억나
아하진 않지.
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그 양반이 개인적으로는 참 연약한 사람이야. 다정다감하고, 좀 싱거울 정
이석원 아이 우리 선배님들 사실은 다 그래요. 가
도로 연약한 양반이었어요. 그때가 보도지침 할
만히 보면 좀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분들이 더 많
땐지, 찍고 난 다음인지 아무튼 둘이서 여관에서
았죠.
잠을 자게 됐어요. 그 양반이 평소에는 뭐 용감한 척하잖아. 그런데 양말을 벗으면서 ‘성득아, 이 양
박성득 게다가 김태홍 선배는 사람이 용의주도한
말 사흘째 신는데 이 짓도 못하겠다’ 그러면서 ‘야,
데도 없어서 더 고생을 많이 했어요(웃음).
집안도 개판이고 우리가 언제까지 도망 다녀야 되 는지’ 푸념을 하는데 눈물을 글썽글썽 하더라고.
홍수원 김태홍 씨는 일을 벌리는 타입이고, 뒷수습
그 모습을 보니까 참 안됐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
은 누가 따라다니면서 했지.
침에 시장에 나가서 양말을 두 켤레 사다 줬어요 (웃음).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생각이 이상하게 더
이석원 그 양반 지나가시면 누가 빗자루 들고 다녀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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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겠습니다’ 하니까 그냥 조용히 ‘알았어요’ 하고 다녀오셨거든요. 마침 그날 저녁 회원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송건호 선생님이 ‘내 잡혀갈까봐 오늘 무 서워서 혼났어요. 그래도 칫솔은 내가 쓰던 걸 써 야 되겠기에 아침에 이렇게 칫솔은 가지고 나왔어 요’ 그러시더라구요. 송건호 선생님은 단상에 앉으 실 일이 많으셨는데, 또 나가라 말씀드리면 그렇게 나가서 앉아있고 그러셨죠.
‘보도지침 폭로’의 의미 박우정 ‘보도지침 폭로’의 역사적 의미는 다 짚었겠
지만. <보도지침> 나온 게 86년 9월이고, 그 다음 에 87년 6월 항쟁이 있었죠. 아까 보도지침과 박 종철 고문치사사건이 6·10의 전사(前史)라는 얘기 야 돼요(웃음).
가 나왔는데, 실제 ‘보도지침’은 6·10의 분명한 도 화선이 되었어요. 전두환 정권의 폭압성과 포악성
박우정 하지만 말이야. 난 생각해요. 김태홍 선배가
을 여실하게 드러낸 것이 보도지침이었거든. 아무
10·26 직후 기자협회를 정상화시킨다며 기자협회
리 독재정권이라고 해도 언론과 권력이 야합을 해
장이 되었고, 80년 5월 총회에서 검열거부와 제작
서 이렇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것은 있을
거부 결정을 했죠. 만약 김태홍이 아니고 다른 사
수 없는 일이니까요.
람이 기협 회장이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요? 그
특히 ‘부천서 성고문 사건’. 정권은 이 사건을 ‘성을
일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었겠어요. 나는 김태홍 선
혁명 도구화 한다’는 식으로 왜곡했어요. 그런데
배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 분
실상은 정권을 유지하려고 그렇게 참혹하게 학생
의 친화력과 노력이 그 일을 해 낸거죠.
을 고문한 것이었고, 그래놓고 그게 드러날까봐서 막 기를 쓰고 언론을 통제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석원 내가 볼 때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선배님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거죠. 박종철 사건이
중에 싸움꾼 기질을 타고났다 하는 사람은 이부
직접적인 도화선이긴 했지만, 보도지침 폭로도 큰
영 선배님 정도가 아닐까요? 다 여린 분들. 직장에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요.
서 쫓겨날까봐 달달달달 하시던 분들인데, 속으로
6월 항쟁 이후 군사 정권이 항복을 했어요. 정권
달달달 떨면서도 ‘그래도 해야지…’ 했던 분들 같
교체까지는 못했지만 그 여파로 해직기자들이 언
아요.
론자유를 외치며 복직투쟁도 하고, 제도언론에 더
생각해보면 송건호 선생님도 여리셨어요. 한번은
이상 기대할 게 없으니까 새 언론을 만들어야겠다
송건호 선생님께 ‘시국선언 하는데 선생님 나가셔
는 논의가 힘을 받은 거죠. 결과적으로 한겨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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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창간에도 결정적인 보탬이 된 게 ‘보도지침 폭
악한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진화를 했죠. 아무리
로’에요. ‘보도지침 폭로’를 통해 국민들이 기존 제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농성하고 이래도 사장과 경
도언론에 불신을 품게 되었고, 보도지침을 폭로한
영진, 지도부가 물러나지 않으면, 시청률이 떨어지
해직 기자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언론에 국민들이
든 말든 그대로 그냥 계속 굴러가고 있잖아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었죠. 홍수원 <보도지침>이 폭로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정권의 언론통제가 좀 있으리라 생각하는 정도였
나에게 <보도지침>이란? 후배들에게 한마디
을 거예요. <보도지침>처럼 이렇게까지 시시콜콜 하게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유도하고, 꼼짝 못하
김언경 마지막으로 예전에 했던 활동을 회고하시면
게 묶어 놓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실제
서 <보도지침>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한 번
<보도지침>을 보고난 후 너무 충격적이라는 표현
정리해주세요. 또는 지금 언론을 보며 드는 생각,
이 많았고요. 언론이 전두환 정권의 가장 중요한
언론인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 언협과 민언련 활
통치 수단이었구나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저는 그
동가들한테 해주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 주시
런 면에서 <보도지침>이 상당히 여러 가지 역할을
면 좋고요.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우정 나는 해직된 후에 ‘보도지침 폭로’나 <말>지 박성득 말해 뭐해. 화끈하게 보여준 거지. 완전히
발행과 같은 언협 활동 없이 그냥 허송세월했다면
‘똘마니들이구나’ 싶은. 언론이라는 놈들이 모조리
인생이 좀 비참했을 것 같아요. 근데 아까도 말했
똘마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옳다’ 하는 것 보니까
지만 해직기자들이 이렇게 노력을 해서 언협을 만
이게 똘마니가 아니면 뭐가 똘마니야.
들고 <보도지침>을 내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 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고 또 그것이 한겨레신
박우정 역대 독재 정권이 정권을 유지하는 두 가지
문으로 이어지면서 기자로 제대로 살 수 있지 않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소위 공권력이라는 검찰과
았나 생각해요. 그런 것이 없었다면 참. 내 인생이
경찰 권력. 그리고 그 다음이 언론이에요. 경찰은
가난했을 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언협이 참 고마
진짜 인신을 구속하는 것이고 언론은 정신을 지
운 존재지. <보도지침>은 각자에게 다 그렇겠지만
배하는 것 아니에요? 정신을 ‘보도지침’을 통해서
굉장히 획기적인 사건. 어떤 분수령적인 사건이에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 이게 상당히 중요하죠. 권
요.
력이 언론을 그런 식으로 통제했고, 통제하는 방
그리고 김 처장이 기자들한테 한마디 하라고 했으
식이 그 후로 굉장히 진화한다는 것. 그런데 당시
니 말해본다면요. 사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너
‘보도지침’처럼 요즘은 일일이 그러지 않는단 말야.
무나 태평세월이야. 아니 요즘 정권 비판한다고 해
대신 공영방송 같은 곳에는 정권이 사장을 직접
서 잡혀가서 치도곤 맞고 그러나? 현재 언론의 시
내려 보내 총통정치를 펼친단 말이에요. 사장 인
스템에도 문제가 있지만, 기자들한테 근본적인 문
사권을 쥐고서요. 말하자면 주요한 구성은 다 장
제가 있다고 봐요. 옛날 우리 그 당시 엄혹한 시절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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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보도지침>을 내놓기도 했는데 요즘 같은 상황
요. 이 근처란 건 알고 있지만 오늘 처음 이제 와
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기자들 자신한테
서 보니까 사무실도 크고, 상근자들도 많아서 든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든한 느낌도 들고. 또 최근에 갑자기 회원 수가 늘 었다 하니, 그게 나한테 제일 큰 뉴스였어요. 그래
박성득 나는 <보도지침>이 교과서에 들어가야 한
도 옛날에 뭐 한 축에서 조금 일을 거든 사람으로
다고 봐요. 왜 그런가 하면, 제가 서울 생활을 끝
서 사무실 와서 보니까 뿌듯한 느낌이 들어서 다
내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지역과 지
행이다 싶어요.
역 언론의 부조리는 또 만만치 않더란거죠.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승진하려면 돈을 얼마를 바
이석원 저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같이 했었구
쳐야 한다 같은 매관매직이 실제로 이뤄집니다. 그
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참 행복했다는 생각
런데 그 지역에 제대로 된 언론이 하나라도 살아
이 듭니다. 그 후에 저도 이런 단체도 했다가 저런
있으면 지역이 확 바뀝니다.
단체도 했다가 그랬습니다만, 언협 시절이 참 행복 했다고 생각합니다.
홍수원 그저 보탤 게 없는데. 아까 와 가지고 사무
실도 못 찾고 왔다갔다 했는데. 얼마나 그 동안 무 심했으면 이럴까 싶어 미안하더라고(웃음). 옛날 처음 언협이 생겼을 때 사무실이 이 근처였잖아
정리 김언경 사무처장 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특별 인터뷰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을 처음 기획하면서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많 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30년을 품어 온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편집부가 참 미숙했습니다. 그리고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 특별 인터뷰 중 만난 분들 보다 앞으로 만나야 할 분들이 더 많습니 다. 그래서 올해 12월과 2017년 1월에 걸쳐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을 모두 인터뷰한 후에 이를 묶어 서 회원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정리해야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이 펼친 활동을 온전하게 전달하고, ‘보도지침 폭로’의 역사 적 의미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12월 16일 6시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리는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과 ‘창 립 32주년 기념식’, 그리고 「보도지침 2016」 증보 발간 사업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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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주년 기념사업
청와대 홍보 수석이 공영방송 보도국장에게 전화 걸어 시시콜콜 보도에 간섭하는 2016년. 보도지침 폭로 30주년을 시민들과 함께 기념하고 시민의 ‘알 권리’와 시민에게 ‘알릴 권리’를 되찾기 위한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사업에 함께 해 주세요.
12월 16일
30주년 기념식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과 보도지침 폭로의 숨은 조력자들의 공을 기립니다.
시민들이 다시 펴내는
「보도지침 2016」 스토리펀딩을 통해 「보도지침」을 다시 펴냅니다. 12월 30주년 기념식에서 시작해 내년 4월에 출간합니다.
보도지침·언론통제
온라인 사료관 보도지침 폭로 이전부터 2016년 현재까지의 언론통제 실상을 정리한 온라인 사료관을 개설합니다.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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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와 뒷담화 | 2016년 9월의 좋은 보도상
“검찰과 경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물대포 때문이었다는 것을” 10월 28일 민언련 교육공간 <말>에서 민언련 선정 ‘2016년 9월 이달의 좋은 보도’ 시상식이 열렸다. ‘이달의 좋은 신문 보도’는 한겨레의 <최순실, 미르·K스포츠 연루 정황> 보도가 선정됐다. ‘이달의 좋은 방송 보도’에 는 JTBC의 <사망원인 다른 의견 강조하라”> 보도가 선정됐다. 9월에는 특별상으로 시사프로그램 부문도 선 정되었다. 주인공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편이다. 시상식에는 한겨레 김의겸 선임 기자와 류이근·하어영·방준호 기자와 JTBC 백종훈 기자, SBS 안윤태·김정덕·서정훈 PD와 김송은 작가가 참석했다. 9월의 좋은 보도 수상자들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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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이달의 좋은 신문’ 보도
“수많은 제보자들이 ‘그림’을 그려줬기에 보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왼쪽부터 박석운 공동대표, 한겨레 류의근·김의겸·방준호·하어영 기자와 강기 석 좋은보도 심사위원, 이완기 상임대표
을 다 내보냈을 때는 ‘이제 쓸 것이 떨어졌나 보다’
Q. 수상소감을 듣고 싶다.
했는데 이후 또 쓸 것이 생겨서 내보낼 수 있었다. 김의겸 선임 기자 다른 언론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그렇게 한 달 넘게 끌어온 것이다. 우리도 언제 끝
무관심, 나아가 냉대까지 하는 와중 홀로 보도를
날지는 잘 모르겠다.
이어나가는 것이 외로웠다. 그래서 동참을 요구하 는 칼럼을 쓰기도 했는데 막상 JTBC에서 태블릿 PC 관련 단독이 나왔을 때는 속이 많이 상했다.
Q. 검찰 수사 이후 사안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에 대한 대응책은 있나?
다들 JTBC만 얘기하니까, 세상이 우릴 이렇게 몰 라주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 민주언론시민
김의겸 선임 기자 개인적으로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
연합에서 우리가 ‘꾸준히 했다’는 것을 인정해줘서
해) 낙관한다. 권력이 살아있을 때는 검찰도 권력
기쁘다.
의 강아지 노릇을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공직자들도 청와대와 같이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상황이
Q. 아주 오랫동안 보도를 이어왔는데, 혹시 아직 내보
다. 검찰은 자기보호본능과 생존 욕구 때문에라도 타협하지 않고 최소한의 일은 할 것이다. 어차피
내지 않은 주요한 보도가 또 있나?
환부가 너무 넓고 깊어서 외과수술 하듯이 도려낼 김의겸 선임 기자 사실 별로 없다. 9월 2일 네 명이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모여 팀을 꾸리고, 9월 중순 첫 보도를 내보낼 무 렵 가지고 있던 기사도 두 건이 전부였다. 그 두 건
Q. 발언을 미처 못한 다른 분들의 소감도 듣고 싶다.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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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근 기자 처음 팀을 꾸릴 땐, 팀원 간 세대 차이
2016년 9월 ‘이달의 좋은 방송’ 보도
가 너무 나서 회사 내에서 최악의 조합이라는 말을
“보도의 가치를 처음엔 우리도 몰랐다”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취재는 개개인의 역량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홍길동으로 불리는 익명의, 때로는 실명의 수많은 제보자들이 그림을 그려줬기 때문
Q. 수상소감을 듣고 싶다.
에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백종훈 기자 담당 기자가 최순실 관련 취재로 자
리를 비워 대리수상을 하게 됐다. 기사에 대한 방준호 기자 개인적으로는 팀 안에서 세대 차이를
말씀은 많이 못 드릴 것 같다. 손석희 사장이
크게 느끼지 못했다(웃음). 그간 힘들고 기쁘고 아
신중하고 자중하라고 해서(웃음). 좋은 보도로
픈 순간이 정말 많았지만, 옆에서 발로 뛰는 선배
뽑힌 기사 중 사망진단서가 병사로 되어있다는
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 바도 많다. 어디까지 갈
기사는 사실 우리도 기사의 가치를 몰라 단독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열심히 하겠다.
달지 않고 흘러가는 두 번째 기사로 내보냈었 다. 그러나 애초 기대치가 낮은 검찰과는 달리
하어영 기자 김의겸 선임기자의 경우 탐사팀의 팀장
자신의 양심을 걸고 일하는 의사가 왜곡을 시도
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연차와 연령을 보유한 사람
했다는 측면에서, 해당 기사가 더 큰 의미를 지
이었기에, 누구도 이 팀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음
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 주셔서 감
을 이 자리를 빌려 공식적으로 밝힌다(웃음).
사하다.
이완기 상임대표(왼쪽)와 백종훈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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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시사프로그램 부문 특별상
“너무 늦었다고 반성하며 만들었다”
왼쪽부터 박석운 공동대표, SBS 서정훈·안윤태 PD, 김송은 작가, 김정덕 PD
Q. 수상소감을 듣고 싶다.
Q. 경찰청장이 방송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견해를
안윤태 PD 방송 이후 과분한 칭찬을 받고 있지만,
밝혔는데 어찌 생각하나?
사실 당연히 해야 했는데 오히려 늦게 한 일이다.
안윤태 PD 수박, 판자, 철판 등을 이용한 실험은 물
그 때문에 유가족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포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한 실험이었다. 반면 유
취재를 진행했었다.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이번
리를 가지고 한 실험은 경찰의 보고서에 대한 검
방송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아니라고 우기고 있는
증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었다. 물대포의 위력이 상
것을 어떻게 뒤집어서 보여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
당해서 당시 현장에서는 욕이 나올 정도였다. 공포
며 만들었다. 긴 싸움을 앞둔 유족들에게 조금이
감이 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래서 경찰 보고서가
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인간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 가 됐다. 이에 대해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끊임
이철성 경찰청장은 실험의 조건이 달랐다고 반발
없이 반성하고 지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은 강화유리를 사용했다
덧붙여 백남기 농민 사건뿐 아니라 최근 JTBC에
고. 그러나 경찰 보고서에는 애초 강화유리라고 적
서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는데, SBS를 비롯한
혀있지 않았다. 혹시 몰라 강화유리로도 실험해봤
지상파 구성원들이 배 아프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
는데, 그것도 박살이 났으니 그런 변명을 하는 것
라 더 빨리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체가 어이가 없는 일이다. 만약에 우리 실험 결
고 생각한다.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과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본인들이 살수차 를 가지고 있으니 직접 다시 실험을 해보면 될 일이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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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경찰의 공식적 민원제기도 없었다. 어쨌거나 현
명히 이야기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
장에서 물대포를 재현해 본 입장에서는 절대 사람
다 가해 책임이 있음에도, 이 당연한 것을 아니라
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장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우기고 있는 검찰과 경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친절하게.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제 대로. 물대포 때문이라고.
Q. 제작 과정에서의 외압은 없었나? 안윤태 PD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사안은 계속 관심
이 있었음에도, 이런 주제를 다루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내부 구성원들이 자기검열을 하는 분 위기 때문에 빨리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가 청문회
Q. 발언을 미처 못한 다른 분들의 제작 소감도 들어 보고 싶다.
에서 관계자들이 당연한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
김정덕 PD 제작과정에서 편집과 실험준비를 담당했
과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다. 너무 늦었다고 반성하면서 만들었다. 시청률이
생각이 들어 결국 CP에게 아이템을 내놨다. 그런
좀 안 나온 것은 아쉽다. 이번 편은 예고도 본방
데 5초 만에 하자는 말을 들었다. CP도 다루고 싶
못지않게 상당히 공을 들여서인지 보통 3~4만 나
었던 주제였으나, 후배들에게 하자고 말하기는 어
오는 예고편 뷰가 이번엔 38만뷰 나왔다. 시청률이
려워서 서로 망설였던 것이다. 이번 사안의 경우 기
다 예고편으로 간 모양이다.
계적 중립이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했고, 할 말은 다 하자고 결심했다. 더 위쪽에서 전화를 받
서정훈 PD 프로그램 특성상 항상 돌아가신 분들의
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외압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너무
느끼지 못했다.
늦게 온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죄송스러 웠다.
Q.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시는 장면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준 이유가 궁금하다
김송은 작가 촬영 나가기 전, 전반적인 취재를 담당
했다. 팀에 합류해 처음 한 방송이었다. 모두가 다
안윤태 PD 잔인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증거
이미 알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사
영상이기도 하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실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는 시청소감을 보고 놀랐
에, 이 장면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납
다. 뿌듯하면서도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으
득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유족들에게 허
로서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락을 구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불편하지만 분
정리 배나은 활동가
2016년 올해 최고로 좋은 보도는? 올 한 해 최고의 보도가 궁금하시죠? 12월 16일에 열리는 32주년 창립기념식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일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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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6일(금) 저녁 6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신문토달기 |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사태에 대한 신문 모니터 보고서
국내 언론이 진화한 삼성 갤럭시 노트7 화재
지난 8월 19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7이 전 세계의 큰 관심과 기대 속에 화려하게 등장했 다. 그러나 출시 직후부터 국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스마트폰 배터리의 폭발로 인한 크고 작은 화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 삼성은 9월 2일 일시 판매 중단 및 리콜(교환)을 실시했다. 리콜 당시 삼성은 특정 업체가 생산한 배터리의 제조 공정상 미세한 문제와 미흡한 품질관리를 사고의 원인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교환된 새 제품이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 여객기 안에서 폭발한 것 을 포함해 수십 건의 사고가 추가로 발생했다. 미국, 호주, 일본, 캐나다 등의 정부 기관과 항공사들이 갤 럭시 노트7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사용 중단을 권고하는 사태에 이르자, 삼성은 10월 11일 갤럭시 노 트7의 전면적인 생산·판매 중단(단종) 및 환불 결정을 내렸다. 리콜이란 제품 결함이 소비자의 생명, 신체상에 위해를 입힐 우려가 있거나 실제로 입힌 경우 제조사 가 자발적으로 혹은 정부 기관의 명령에 의해 취하는 제품 점검, 교환 및 회수 행위 등을 말한다. 단종 은 이러한 리콜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취하는 마지막 조치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미국, 영국의 주요 외신들은 삼성의 문제 인 식과 상황 대처 및 소통이 미흡함을 지적하는 보도를 연달아 내놨다(다음 쪽 참조).
리콜 및 단종 조치가 칭찬받을 일인가?
이와 같은 해외 언론의 반응에 비해서 국내 5대 일간지는 리콜 및 단종 조치가 시기적절했다며 삼성의 용단을 칭찬하고, 기업의 빠른 안정화와 신뢰 회복을 염원했다. 동아일보는 외신 보도가 리콜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가 리콜을 바라보는 시각 차 때문이 아니라, 단순 히 갤럭시 노트7과 아이폰7의 경쟁 구도 탓인 양 사건 본질을 호도했다. 한겨레도 삼성의 리콜이 “솔직 함과 신속함”을 바탕으로 한 “통 큰 결단”이었다며 주요 외신들과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했다. 중앙일보는 삼성이 “리콜 전략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왔다”며 추켜세우면서도 그 근거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2013년 발행한 보고서 1건 만을 제시했다.
리콜과 시기는 적절했는가
리콜 시기가 적절했는지도 의문이다. 사태의 시발점이 된 최초의 배터리 사고 이후 일차적인 리콜 조치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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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기사 제목> 주요 내용 · <How Samsung Botched Its Galaxy Note 7 Recall> 9월 16일 삼성의 소통 부족, 부족한 정보 공유 및 관련 정부기관과의 불충분한 공조가 사태를 악화시킴. 특히 소비자제 품안전위원회(CPSC)의 공식 리콜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리콜을 발표해버린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잘
월스트리트저널
못된 방식”이라는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관계자 발언 인용 · <Samsung’s Attempt to Douse China Firestorm Has Consumers Steaming> 9월 20일 중국 내 배터리 폭발 사고를 악성 소비자 탓으로 몰아가는 삼성의 태도가 많은 중국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음. 삼성의 신뢰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배터리가 아니라 삼성이 보인 태도에 있다”는 소비자 발언 인용 · <Samsung’s Response to Galaxy Note 7 Crisis Draws Criticism> 10월 11일 삼성이 소비자들에게 피해 보상책과 관련하여 제대로 공지하고 있지 않음. 많은 전문가들이 “사태의 심각성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 · <Galaxy Note 7 Is Not Samsung’s Only Problematic Product> 10월 12일 스마트폰 외 삼성전자 가전제품들도 현재 그 안전성을 의심받고 있음. 현재 호주, 미국 등에서 세탁기 약 14만
뉴욕타임스
대의 리콜 문제가 발생한 상황. 과거에도 2003년 18만대의 전자레인지와 21만대의 냉장고, 2009년 전자레인 지 4만여대와 세탁기 2만대의 리콜 사례가 있음 · <Samsumg’s Uneven Handling of Galaxy Note 7 Fires Angers Chinese> 10월 18일 중국의 피해자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도. 리콜 당시 삼성의 기술적 오판이 결과적으로 중국 소비자를 속인 셈 이라며 분노한 소비자 발언을 여과없이 보도. “가까운 미래에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 · <Samsung Owners Furious As Company Resists Paying Up For Note 7 Fire Damage> 10월 19일
가디언
삼성이 갤노트7 소비자들로부터 호되게 비판받고 있음.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삼성이 “심각하게 준비가 부족 하다”고 설명. 실제 피해 소비자 3명을 인터뷰해 경위와 평가, 소감을 직접 인용
가 취해지기까지의 9일 동안 국내·외에서 발생한 갤럭시 노트7의 폭발 사고는 외부에 알려진 것만 35건 에 달했다. 단종 결정 역시 미국 4대 이동통신사의 판매·교환 중단 결정 이후에, 그리고 원인 조사에 착 수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조사 결과를 내놓기 이전에 내려졌다. 소비자 입장에선 뒤늦 게, 삼성 입장에선 유리하게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막과 세계 각지에서 빗발치는 소비자 비난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한 기사는 국내 5대 일간지 중엔 찾아볼 수 없었다. 단종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야 삼성이 보인 문제 인식과 해결 능력의 미숙함 및 이를 감싸 안는 언론의 행태를 지적하는 보도가 언론사별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도 결국 사 후약방문에 지나지 않았다.
배터리 결함의 근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단종 이후 1개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배터리 폭발의 근본 원인은 미지수로 남아있다. 제품 하자 관리의 첫 단추인 사고의 재연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삼성전자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한 들 과연 무얼 믿고 구매를 해야 하는 건지 의 문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을 지적하는 기사 역시 제품이 단종되고 난 이후에야 하나둘씩 보도되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언급 자체를 않거나 원인이 이미 밝혀진 것으로 단정 짓는 28
보도들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제품 불량 외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기사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소비자가 스마 트폰을 휴대, 소지 및 충전하는 방식에 따라서도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다며 마치 폭발 사고의 책임 소 재가 소비자 부주의에서 기인하는 듯한 기사를 내놨다. 중앙일보는 원인 조사과정에 대한 소비자와의 소 통이 충분하지 않다는 외신의 지적을 문화적 차이로 인해 “아시아식 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치부하고, “전형적인 미국 언론의 외국 기업 때리기”로 평가절하 했다.
피해 사례는 외면, 블랙컨슈머는 부각
이번 사태를 두고 해외 주요 외신은 개별 소비자 피해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룬 기사를 여러 건 보도했 다. 하지만 국내 언론 보도 중 개별 피해 사례를 다룬 기사는 5대 일간지를 통틀어 전체 보도량(455건) 대비 약 2%에 불과한 9건 이었으며 그마저도 구체적 취재가 아닌 기사 본문 중 짧은 간접 인용에 그쳤 다. 피해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 역시 국내 언론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대로 폭발과 화재라는 사고 의 특성과 위험 정도를 배제한 채, 단순히 사고 건수를 제품 출하량에 대입해 산출한 0.0024%라는 불 량률은 삼성의 리콜에 대한 과감성을 강조하는 기사에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인용했다.
안전보다 혁신이 더 중한가?
전 세계적으로 갤럭시 노트7의 폭발 사고가 큰 이슈가 된 와중에도, 국내 언론은 당시 출시를 앞두고 있던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7을 폄하하는 보도를 비중 있게 다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은 아이폰7의 성능, 제원 및 품질이 기대 이하라는 점을 적시하며 시장에서 갤럭 시 노트7과의 혼전이 예상된다는 보도를 내놨다. 논지를 확장하면 소비자들은 다소 혁신이 부족한 제품 과 폭발 위험 탓에 리콜이 진행 중인 제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어떤 경우에도 실체적 진실 보도라는 본연의 사명을 직시해야
이번 갤럭시 노트7의 리콜 및 단종은 전 세계 수많은 소비자들의 생명과 재산에 실질적 위해를 입힌 것에 대한 당연한, 그리고 뒤늦은 조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내 5대 일간지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삼 성 측의 판단과 대응을 추켜세우고 두남두는 호의적 보도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언론의 진정한 역할은 독립적인 발제 및 심층 취재를 통해 사안의 본질에 접근하는 정도를 따 르는 것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보수, 진보를 떠나 모든 국내 언론이 수익을 매개로 한 기업과 의 특수 관계에서 벗어나 소비자와 약자의 관점에서, 때로는 밖에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합리적 인 여론 형성과 실체적 진실 규명에 앞장설 그 날을 기다려본다.
정리 이훈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hoonihi1@gmail.com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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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
저널리스트들이 괴물 트럼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강준만이 쓰고 인물과사상사에서 펴낸 책,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책을 사두고 읽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 대선 전인 8월 19일에 나온 책이다. 당선이 확정된 날은 11월 8일이다. 이 책을 보고 미 대선을 주시했더라면 클린턴 승리 가능성 80%~90% 보도는 결코 믿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은 “트럼프 개인의 혐오할 만한 행태 보다는 그런 행태에도 그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이들은 ‘히틀러’, ‘나치’,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면서 트럼프를 히틀러와 동 일시한다. 하지만 저자 강준만은 ‘트럼프로 인해 그 누구보다 잃을 게 더 많은 이들이 그 런 반대와 저항’을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언론과 지식인들에게서 인종차별주의자, 무식하고 무지 한 자, 멍청이, 또라이, 인간성이 결여된 사람들 등으로 취급받는 것에 분노하고, 그래서 트럼프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트럼프에 대한 지지의 강도를 높여간다.” 미국인들도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혐오증이 극에 달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 당의 차이가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이들이 미국 민주당이 자신들을 대변하 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동운동가 앤디 스턴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볼보 자동차 를 타고 다니며, 비싼 커피를 홀짝이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고, 동북부에 살고, 하버드나 예일대를 나온 리버럴”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힐러리는 지난 4월, 경선에서 승리한 뒤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겠다”고 연설했 지만 당시 힐러리가 입었던 재킷은 이탈리아 명품으로 1만2,495달러, 한국 돈으로 1400 만 원짜리였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힐러리가 소득불평등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 각할까? 물론 트럼프도 평소 7천 달러짜리 이탈리아 명품 정장을 입는다. 하지만 상대적 으로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민주당 힐러리가 공격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힐러리는 또 국제금융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 기업인 골드만삭스에서 강연하고 무려 60만 달러, 한국 돈으로 6억7천여만 원의 강연료를 받았다. 그러니 힐러리가 월스트리트 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펼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가난한 사람들의 표 에 의존하는 민주당은 그들을 계속 가난하게 놔두면 계속 표를 얻게 된다. 슬픈 역설이 다” 하고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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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인들은 한국의 새누리당 정치인들과 마찬
언론이 만들어낸 셈”이라고 실토한다. 2015년 2월 25일
가지로 늘 아름답고 고상한 말, 당위적인 미사여구만 남발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럼니스트 코니 슐츠도 ‘우리, 저널리
한다. 강준만은 그걸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스트들이 괴물 트럼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반성했다.
사실상, 또는 제도화된 사기 행각에 질릴 대로 질린 유권
그는 “우리는 그의 혐오스런 표현을 오락으로 다루었다.
자들 앞에 전혀 다른 트럼프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그런
극우에 영합한 공화당이 그를 등장시켰고 우리는 날개를
감언이설을 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한다. 때로는 욕설과 조
달아주었다”고 자책했다.
롱을 하고, 당당하고 뻔뻔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트럼
미국인들은 기성 언론을 불신한다. 미국인 3명 가운데
프는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지만
2명꼴로 언론을 부정적으로 볼 정도로 유권자들의 불만
감히 그걸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이 그들의 대
은 높고 신뢰는 낮다. 이런 가운데 ‘미디어 혁명’이라고 해
변인 노릇을 하겠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말하
도 좋을 정도로 미디어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는 것’. 지지자들은 바로 그 점에 열광했다.
‘트럼프 현상’을 만들었다. 트럼프는 SNS에 능하다. 온라인
트럼프는 불사신이 됐다. 미국의 모든 언론이 집요하게
에 자신이 구축한 뉴스룸으로 트위터에 700만, 인스타그
공격을 해도 살아남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저자 강준만
램에 100만 명이 넘는 팔로어가 있다. 트럼프는 기성 언론
은 트럼프가 온갖 비난에도 끄떡없는 불사신이 된 데엔 미
에 논쟁거리를 던져 대서특필하게 만들었고, 트위터를 이
디어 혁명과 더불어 그 혁명에 대처하지 못한 언론의 문제
용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가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 저널리즘의 기본 작동 방식과 메
이제 트럼프가 사업가이건 나치건 파시스트건 미국의
커니즘에 근본적 결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트럼프 현상’을
는 정치도 사업 하듯이 한다. 그것은 언론을 이용하는 것
반면교사로 삼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미칠 영
이다. 트럼프는 언론을 활용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향을 생각해야 한다. 그 가운데 주한미군 문제가 불거져
다. 자신의 막말을 중계하게 해 홍보 효과를 누린다. 트럼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는 한국이 지켜라’ 하
프는 언론의 속성을 꿰뚫어보면서 그걸 이용하고 기성 언
면서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인 방위분담금을 한국이 더 분
론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경멸한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한
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니면 철수하겠다는 건데 이
다.
나라 부패한 지배층은 벌써부터 겁을 먹는다. 지난 22일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
방위사업청 장명진 청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
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
부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하면 수용할 수밖에
웠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없다”고 ‘백기 투항’했다.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
미국의 수구 언론 폭스뉴스에도 대차게 맞서는 트럼프
를 쓰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했으
처럼 한국의 조선일보에 맞서는 정치인은 없을까? 주한미
며,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군을 철수하겠다는 트럼프에 “철수하라”고 맞설 만한 그런
내가 관여한 거래는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성
대통령감이 한국엔 없을까?
격 덕분에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꽤 사업 수완을 보였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
글 안건모 <e-시민과언론> 기획위원 bus8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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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트럼프는
영화이야기 | <죽은 시인의 사회>
청소년에게 자유로운 사색을 허하라
집회에 참석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려면 성인 ‘쯤’은 되 어야 한다? 중고등학생이 스스로 자기 생각을 갖는 일은 어림도 없다? 지난 11월 5일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을 불순세력에 의해 선동된 비주체적인 인격으로 치부하는 발언이 나 왔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주인공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그는 법무부 장관에게 “중고생이 저러고 있는 저 배후에는 종북주의 교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중고생연 대에 대해서 이적성 조사를 하십시오”라고 했다. 사실 이런 발언이 나오는 거?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중고생이 집회에 나타나면 극우 보수는 언제나 배후세력 타령을 했다.
순종을 강요하는 어른들
이런 어른들이 한국 말고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 생각 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고등학생을 보면 그 나이에는 스스로 생각 할 수 없다면서 그들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어른들이 있다고 주장하 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기득권에 손해를 입힐 것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성인들을 배제하고 싶을 때면 순수한 청소년 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불순한 세력이라고 단정짓는 비열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성인이 한국 말고도 있단다. 그런데 지금 현재인 2016 년에 있는 것이 아니라 1959년에 있었단다. 2016년 한국의 어떤 어른들은 시간을 거스르고 장소를 달리한 1959년 미국의 어떤 어른들과 묘하게도 닮았다. 닮아도 아주 많이 닮았다. 1959년을 배경으로 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죽은 시인의 사회>
Society)>피터
감독 피터 위어
고등학교 교장을 필두로 한 선생들과 일부 학부모들이 그들이다. 그
출연 로빈 윌리엄스, 로버트 숀 레오나드, 에단 호크 제작 1989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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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 감독에
등장하는 몇몇 성인들이 주인공이다. 웰튼
들에게 스스로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사색을 즐기며 현재를 충실히 살 라고 학생들을 인도하는 키팅선생로빈 윌리엄스은 위험한 인물로서 배
제 대상이다. 이 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키팅이 영어 선생으로 새롭게 부임해 오기 전까지는 높은 명문대 진학률 때문에 획득한 최고 명문 사립고등학교라는 현재의 명성을 지키려는 학교의 이해와 자신의 아이 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졸업하여 확보하게 될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통해서 집안의 미래를 책임져주 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이해가 맞닿아 아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꿈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들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어 왔다. 개강일이자 입학식이 있는 날 학교를 찾은 닐 페리로버트 숀 레너드의 아버지커트우드 스미스는 아들의 방과 후 활동들 중에서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졸업연감 부편집장 일을 그만두라고 명령한다. 하고 싶 은 일이니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라고 충고하는 친구 찰리게일 헨슨와 녹스조시 찰스에게 닐은 너희들도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응수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영화는 이들이 모두 자신의 욕망과 반하더라도 부모의 명령에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살아온 학생들에게 키팅은 지식 주입에 몰두하는 다른 선생들과는 달리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 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학생들로부터 거리를 유 지하면서 감시와 견제의 시선을 던지는 다른 선생님들의 쇼트에 이어서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섞이면서 호의와 공감의 시선을 보내는 키팅의 쇼트가 배치된다.
현재에 충실하라
첫 번째 수업 시간에 키팅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래를 위해서, 즉 좋은 대학 진학 을 위해서 현재를 즐기는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왔던 학생들에게 이 메시지는 색다르고 흥미롭기는 하지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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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토드에단 호크가 공책에 현재에 충실하라seize the day를 썼다가 찢어버리 고 화학책을 뽑아드는 쇼트에서 알 수 있다. 식사 시간에 무리지어 잡담을 한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불려가는 억압적인 규율에 순종하는 학생들이 었다. 그들에게 키팅은 전통과 규율, 기존의 지식에 대해서도 낯설게 보고 자신의 생각대로 다시 들여다 보라고 권한다. 선생이 주입하는 지식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주체 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키팅에게 학생들은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가 기대게 된다. 수업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은 기꺼이 키팅이 크게 벌린 두 팔 안으로 들어가 변 하기 시작한다. 닐이 키팅의 졸업앨범을 찾아내서 친구들과 돌려보던 중에 그가 학교다닐 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닐의 주도로 찰리, 녹스, 토드, 믹스앨레론 러기로, 피츠제임 스 워터스톤,
카메론딜런 커스만 등 일곱 명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재결성하고 학교 밖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한 일탈의 경험 이후에 닐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연극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실행 에 옮긴다. 오디션이 있다는 것을 같은 방 친구 토드에게 말하는 닐의 들뜬 표정과 연극 무대를 바라보 는 닐의 환한 표정 쇼트들은 닐이 실제로는 연극을 정말로 하고 싶어했다는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한다. 공연 하루 전날 닐이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연극을 당장 그만둘 것을 명령하지만 닐은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공연을 허락해달라고 아버지를 설득한다. 완고한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고 닐은 아버지 몰래 공연을 강행한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공부를 방해할 것 같은 모든 활동을 34
불허하는 아버지는 공연장에 찾아와서 닐을 끌고 집으로 간다. 연극을 하는 것은 인생을 망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로 전학시킬 것이고 그 후에 하버드 의대를 보내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계획 이었다. 닐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계획이며, 그 계획에 닐이 반발하지만 아버지는 한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좌절한 닐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기
친구들은 닐의 죽음의 원인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만, 닐의 아버지와 학교는 키팅 선생을 닐의 죽음의 원인으로 몰아간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해온 방식과 다른 ‘튀는’ 교육 방식도 싫고 학생들이 변 하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조를 통해서 학생들로부터 닐의 일탈의 배후에 키팅이 있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그것을 근거로 키팅을 쫓아낸다. 부모와 교장의 강요로 거짓 자백을 해야했던 학생들이 떠나는 키팅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자신의 책상 위에 올라서고 교장이 협박을 해도 내려오지 않는 마지막 씬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키팅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키팅을 쫓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겉으 로는 그 학교 사회가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키팅을 통해서 학생들은 스스로 생 각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진심으 로 위로할 줄 아는 ‘성숙한’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글 염찬희 회원·영화평론가 chyom@hanmail.net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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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활동가 인사 | 안효광
두 번째 심장 소리가 들리나요
산티아고에서 산티아고 대성당 오브라도이로 광장/인파가 그리는 어지러운 동선 속에/ 나는 혼자 서서/한 점 배경으로 작아졌다/ 매일 삼사십 킬로미터, 힘을 쏟아 걸은/길 끝/ 나는 어떤 당신에게/이렇게 열심히 다가갔었는지/ 생장에서 산티아고 팔백 킬로미터 거리가/ 영이 되는 순간/멀고 먼 당신과의 거리를 생각한다/ 별이 흐르는 길이라는 까미노/온 힘으로 걷고, 먹고, 자고, 얘기하는/ 한 명 한 명 별들 사이에/캄캄해진 나를 탓한다/갈 곳 없는 거리에/시간은 같은 걸음으로 지나고/ 어느새 첨탑에 걸린 노을이/별빛으로 올라가 나를 부른다/ 다시 걸을 길이 남았다고/걸어야 한다고 민언련에 들어오기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한 달 동안 팔백 킬로미터를 걷는 긴 트레킹 코 스였습니다. 앞에 쓴 시는 마지막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마음을 적은 습작입니다. 순례길을 걷고 나면 인생의 큰 변화가 찾아온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가서 도 온종일 걷느라 바빴고, 걷는 동안에는 아픈 어깨 때문에 배낭을 고쳐 메고 발바닥을 달래며 걷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잠깐 아픔이 가시는 동안에는 ‘잃어버린 관계’를 생각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심장
왜 순례길을 걸었냐고 누가 물어보면 ‘잃어버린 관계’를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일반 회 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산티아고로 떠났지만 떠난 이유는 그보다 전에 활동했던 ‘맥놀이’라는 단체에 있 었습니다. ‘맥놀이’는 학교 선후배가 모여 만든 작은 인권연극단체였습니다. 자취하던 선배의 보증금을 빼고 각자 돈을 보태 얻은 월세방에서 대본 쓰고 연습하면서 연극을 올렸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월급 받 은 사람이 있으면 그날은 ‘아구찜 대짜’같은 거창한 야식을 시켜놓고 밤새 술 먹고 토론을 했습니다. 한 번도 고민한 적 없던 ‘성 소수자’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것도 그 시절이었습니다. 한 선배는 이렇 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주제든 말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은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이 있 어. 그러니 나는 이 ‘심장’에 함께하고 싶어.” 36
‘맥놀이’는 소수자와 내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첫 번째 공간이자 관계였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이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고 일반 회사 생활을 하게 된 이후 몇 년은 캄캄한 시간을 보냈 습니다. 캄캄한 시간이 더는 길어지면 안 되겠다 느꼈을 때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깨달 은 것은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런 관계도 회복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두 번째 심장
한국에 돌아와서 파파이스를 듣다가 우연히 민언련을 알게 됐습니다. 공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지원하고 싶었지만, ‘언론에 대한 활동가’로서 자신이 없었습니다. ‘언론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 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성격이었으면 망설이다 말았을 텐데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운 좋게 면접까 지 보게 됐고 작은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신입 활동가 맞이 첫 회식에서 소감을 말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언론 민주주의는 제겐 너무 큰 말입니다. 그냥 여기 앉아 있는 모든 분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배우겠습니 다”. 겸손의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배울 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보고서와 씨름하느라 야근하면서도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 몇 번씩 돌아보는 당신, 행사에서 혹시나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을까 인원 배치를 다시 고민하는 당신, 회원과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당신, 깃발을 꼭 쥐고 천천히 걸어가는 당신, 나열 하기 어려운 수많은 ‘당신’이 있었습니다. 그 한 명 한 명에게서 심장 박동이 들립니다. 민언련은 언론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두 번째 공간이 돼가고 있습니다. 저는 겁이 많아서 한 번에 한 걸음밖에는 걷지 못 합니다. 지금도 이 옆에 앉아있는 열 명,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육천 명 ‘당신들’ 심장 소리에 기대서 천천 히 또박또박 걷겠습니다.
글 안효광 홍보 담당 활동가 seodol00@gmail.com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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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
누구나 같은 마음이죠? 박근혜를 퇴진시켜야 하는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회원·시민들과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집회에 함께했습니다. 얼굴을 직접 뵙진 못했지만 필시 대다수 회원들께서도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100만, 200만 명 중 일인으로 자리하셨으리라 믿습니다.
퇴진 요구가 격화될수록 민언련이 함께하고 있는 ‘언론단체시국회의’와 ‘시 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도 발 빠른 현안 대응을 위해 자주자주 모이고 있 어 안팎으로 몸과 마음이 바쁜 시절입니다. 생각해보면 대선이나 굵직굵직한 사안들로 연말을 조용히 넘긴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2016년 겨울은 비 교불가 ‘역대급’ 겨울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민언련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범국민 대회 참여는 물론 12일과 26일에는 언론단체 사전 행사를 갖는 등 집회에 참 여한 시민들에게 언론현안을 알리는 활동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한편 11월 10일에는 상암동 MBC 앞에서, 24일에는 여의도 KBS 앞에서 박 근혜·최순실 게이트 공범 두 공영방송사에 대한 규탄과 각성을 촉구하는 촛 불집회 함께했습니다. 2012년 언론대파업 이후 오랜만에 열린 촛불집회였고, 특히 MBC 앞 촛불집회는 4년 4개월 만에 열린 노동조합원 총회와 겸해 두 배로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이 와중에도 각종 회의와 회원모임, ‘좋은보도 시상식’, 체계적인 사무처 운 영을 위한 제도 마련 등 고유한 민언련 활동도 등한시 할 순 없었겠지요. 하루 빨리 박근혜가 퇴진하길 염원합니다.
본격적인 추위가 오고 있는데요. 건강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 게 애쓰는 것도 좋은 세상에서 건강히 살기 위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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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활동소식
11월 3일 사무처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적한 곳에서 코 에 바람도 좀 쐬려고도 했으나 일정도 빠듯하고, 식구들이 많아져 이동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야해 교육공간 ‘말’에서 진행했습니다. 대신 맛 난 것 먹었습니다. 신입 활동가를 포함 모든 활동가가 자료를 충실히 준비해 어느 때보다는 내용있는 워크숍이 되었습니다. 지난 2월 워크숍 이후 총선 이 후 활동과 5월 말 폭발적인 회원가입 등 변화된 상황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평 가했습니다. 평가를 했으면 당연히 개선점과 계획도 도출했겠지요. 이날 나눴 던 많은 논의들을 지면에 소개해 드리긴 힘들테고, 활동으로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 같습니다. 내년 정기총회를 준비하면서 좀 더 다듬고, 이에 맞 춰 활동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회원활동 소식
신문모니터위원회 이번 달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삼성 갤럭시 노트7 폭발사건’ 관련 5개 일간지 모니터 보고서를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갤럭시 노트7의 리콜 및 단종은 당 연한, 그리고 뒤늦은 조처였음에도 우리 언론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삼성 측 의 판단과 대응을 추켜세웠지요. 이번 보고서는 2달치 관련 보도를 모두 보 고 열심히 작성했습니다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정국 속에서 크게 주목받 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두 달 연속 고생해주신 이훈 회원님께 감사와 위 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훈 회원이 매일매일 보고서에 붙은 추천수를 세고 있다는 ‘소문’도 있으니, 오마이뉴스에 올라간 분과 보고서에 추천을 살 짝 눌러주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세요. 이번달부터는 박제선 홍보부장이 신 문분과와 함께 해주시기로 했는데요! 아직 환영 파티도 열지 못했습니다. 다 음 달에는 즐거운 환영 파티를 했다는 분과 소식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래분과 ‘막모인사람들’ 11월 19일, 막모인사람들이 첫 정기공연을 했습니다. ‘첫 공연 주의!’라는 이름 에 걸맞게(?) 실수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즐겁고 행복한 무대였습니다. 함께 해준 민언련 회원들과 지인들의 응원 덕분이었겠죠? 공연을 위해 힘써 주신 민언련 사무처에도 감사 드립니다. 조만간 더 많은 회원분들께 즐거운 공 연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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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회의 결과
운영위원회 올해 1986년 민언련 기관지 ‘말’이 보도지침을 폭로한지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는 큰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10월과 11월 총 4차례 열린 운영위에는 12월 16일 민언련 창립 32주년 기념 식과 함께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행사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폭로 에 관여했던 분들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하고, 내년 3월 정기총회에 맞춰 1988년 출간한 ‘보도지침’(두레출판사) 증보판도 낼 계획입니다. 더불어 ‘민언련 약사 1’도 총회에 맞춰 출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2016년 사업평가 및 2017년 계획안 논의 일정, 취업규칙 제정 등을 주요 안 건으로 다뤘습니다.
정책위원회 내년 1월 6일과 7일 정책위 워크숍에서 2017년 대선 언론정책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11월 11일 정책위는 분야별 쟁점을 점검하고 논의를 이 끌 책임자와 분과위원을 확정했습니다. 12월은 정책위 회의는 열지 않되 워크 숍 준비를 위한 분야별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어 14일 국회에서 열린 <유료방송산업 발전과 시청자 복지> 토론회에 김언 경 사무처장이 토론자로 참석하기로 해 민언련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정책위 원들은 IPTV, 케이블 및 위성방송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방송시장에서 사 업자들의 규제완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데 우려를 표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시청자복지는 각 매체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사안이지 규제완화의 교환조건은 아니라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정희종 회원이 직접 농사 지은 무농약 감귤 이용해 주세요
무농약 감귤 10kg 25,000원 택배비 포함 가격 중 8,000원은 내년 3월 발간 예정인 <보도 지침 2016> 제작 비용으로 쓰입니다. 정희종 회원 이 후원해 주셨습니다. 감귤 신청 010-30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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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보고
오늘 신문보도 •이재용 등기이사 선임 앞두고 ‘화이팅’만 외친 중앙 (10.27) 외 20건
어제 방송뉴스 •대통령의 ‘개헌 카드’, KBS는 따랐고 JTBC는 ‘그래도 최순실’ (10.25) 외 23건
며칠 전 종편시사 •최순실 셀카의 진위를 파헤친다, 종편 어벤저스 (11.7) 외 15건
모니터 보고서 •[신문모니터위원회] 국내 언론이 진화한 삼성 갤럭시 노트7 화재 (11. 21) •[2016년 10월 좋은 온라인 보도] 경찰의 거짓말, 결정적 증거로 반박한 민중의소리 (11. 21) •[2016년 10월 좋은 신문 보도] 소문의 ‘예술계 블랙리스트’ 현실로 끌어낸 한겨레 (11. 23) •[2016년 10월 좋은 방송 보도] ‘역대급 좋은 보도’, JTBC의 ‘최순실PC 단독보도’ (11. 23) •<민언련 좋은보도상-특별상 시사프로그램편> 선정 사유보고서 (10. 26) •[방송모니터위원회] SBS <미운우리새끼> 모니터 보고서(10. 27) •[종편 모니터] 김갑수와 정청래에 대한 ‘막말 쓰리쿠션 공격’ (11. 7)
논평·성명·기자회견문 •[논평] 박석운 대표 모욕죄 무죄 판결, 사필귀정이다 (10. 28) •[논평] 인터넷언론의 자유와 다양성을 허하라 (10. 28) •[논평] ‘기레기 언론’ 청와대 기자단은 반성하라 (11. 7) •[논평] 부역자 조우석, 청산대상 1호가 될 것이다 (11. 14) •[논평] ‘최순실 허수아비 정부’ 눈치 보는 방통위, 당장 공영방송 정상화에 나서라 (11. 15) •[논평] 특검, 언론탄압의 주범과 공범들을 철저히 수사하라 (11. 16) •[논평] KBS·MBC, 박근혜 정권과 동반몰락 선택했다/공정방송의 새 역사를 쓰자 (11. 23) •[성명] 박근혜 대통령은 ‘어물쩍’ 그만 하고, 국민 앞에서 명확한 입장 밝혀야 (11. 14) •[성명]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즉각 중단하라! (11. 15) •[성명] 검찰은 ‘박근혜 범죄 정권의 공범’ 김성우를 당장 구속하라! (11. 24) •[기자회견문] 무너진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울 책임은 언론에 있다 (10. 31) •[기자회견문] 청와대기자단은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질문하라! (11. 15) •[기자회견문] 특검은 대통령부터 언론부역자까지 남김없이 조사·청산하라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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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좋은 신문 보도
•한 겨레 ‘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단서제시 보도 • 매체 한겨레 • 보도 <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단서 나왔다> 보도 • 보도 시기 10월 10일 • 취재 기자 손준현 노형석 기자 한겨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근거로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예술계 ‘블랙리스트’ 의 존재를 최초로 폭로했다. 정부는 문화예술인들의 지원 심의를 진행하는 심의위원 선정에 개 입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 솎아내기를 해왔다. 또한 한겨레는 11월에도 블랙리스트 문 제의 핵심이 청와대 등의 윗선에 있음을 밝히는 후속보도를 내놓았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임 중일 때 정무수석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 했으며 블랙리스트 이행 실적 평가에 따라 문체부 관료들의 인사 파행까지 빚어졌다는 관련자 들의 증언을 전한 것이다. 한겨레의 <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단서 나왔다> 보도는 겉으로는 문화융성과 한류를 홍보하겠다면서, 속으로는 문화예술을 장악하고 탄압해온 박근혜 정부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에 민언련은 한겨레의 보도를 10월의 ‘이달의 좋은 신문보도’로 선정했다.
나쁜 신문 보도
•조 선일보 노동자=귀족노조, 농민=준공무원 낙인찍기 보도 • 매체 조선일보 • 보도 <철도노조 및 농민 비판> 보도 • 보도 시기 10월 3일~25일 • 취재 기자 조선일보 논설위원실,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손장훈·홍준기 기자 조선일보는 공공부문 파업에 참여한 철도노조를 깎아내리기 위해 아예 사실관계가 ‘틀린’ 기 사를 내보냈다. 먼저 귀족노조 프레임 강화를 위해 철도노조의 평균임금을 부풀렸다. 또한 그 만 하고 싶다는 노조위원장이 위원장 자리보전을 위해 강경 투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 업이라면 치를 떠는 조선일보가 장기화되고 확대되는 파업을 축소, 왜곡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번 보도는 ‘관점의 차이’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사실관계가 잘 못된 심각한 왜곡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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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동자를 ‘귀족’으로 부르길 즐기던 조선일보가 이번에는 농민을 향해 “매출액의 절반 가 까이가 세금”이니 “농민은 준공무원이나 마찬가지”라고 이죽거리는 사설을 내놨다. 이는 농민 을 쌀값 보장을 해 달라 떼쓰고 세금이나 축내는 존재로 낙인찍는 심각한 망언이다. 고 백남기 농민이 ‘쌀값 보장·밥쌀용 쌀 수입 반대’를 외치며 민중 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 직사로 인해 돌아가신 상황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이에 민 언련은 조선일보의 <철도노조 및 농민 비판> 보도를 ‘이달의 나쁜 신문보도’로 선정했다.
좋은 방송 보도
•J TBC의 ‘최순실 PC 청와대 문건’ 폭로 보도 • 매체 JTBC • 보도 ‘최순실 PC 청와대 문건’ 폭로 보도 • 보도 시기 10월 24일 • 취재 기자 ‘최순실게이트 특별취재팀’ 손용석·서복현·심수미·김태영·박병현·김필준 기자 10월 24일, JTBC는 ‘최순실 PC’ 속 청와대 문건을 단독 보도하면서 의혹만 무성하던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드러냈다. JTBC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 국무회의 발언 자료와 지자체 업무보고 발언 자료, 청와대 비서진 인사 자료 등 청와대 핵심 문건을 사전에 받아보고 수정까지 했다. 그야말로 최순실 씨가 전방위적으로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JTBC는 타사가 모두 ‘송민순 회고록’을 빌미로 한 ‘야권 종북몰이’ 보도를 쏟아낼 때도 꾸준히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했으며, 마침내 그 실체를 낱낱이 보여준 것이다. JTBC 보도를 기점으로 박근혜 정부의 ‘권력형 비리’는 ‘국정파탄’이라는 민낯을 드러냈고 타 매체들의 의혹 보도도 시작됐다. 현재의 범국민적인 ‘대통령 퇴진 운동’ 역시 JTBC 보도에서 시작됐다. 이에 민언련은 JTBC의 ‘최순실 PC 최초 단독보도’ 13건을 2016년 10월 ‘이달의 좋은 방송보도’로 선정했다.
나쁜 방송 보도
• KBS의 고대영 사장 ‘국감 답변 거부 지시’ 은폐 보도 • 매체 KBS • 보도 <“수신료 현실화”…‘언론 자유 침해’ 논란도>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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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 보도 시기 10월 11일 • 취재 기자 남승우 기자 10월 1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유승 희 민주당 의원이 KBS 보도본부장에 ‘이정현 보도개입 녹취록’을 왜 보도하지 않았냐고 묻자 KBS 고대영 사장이 보도본부장에게 “답변하지 마”라고 고압적으로 지시했고 유 의원에게는 “언론 자유 침해라고 본다”고 항변한 것이다. 이는 국회에 대한 모독이자, ‘언론 자유’를 훼손한 고대영 사장이 ‘언론 자유’를 외친 기현상이었다. KBS는 이날 이를 보도하면서 자사 사장의 ‘답 변 거부 지시’ 장면은 싹둑 잘라버린 채 수신료 인상, 공영성 증진, UHD TV 재원 문제 개선 등 자사에 유리한 발언들만 편집해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 추혜선 의원의 발언 취지를 심 각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공영방송 KBS가 뉴스를 사유화하여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이에 민언 련은 KBS <“수신료 현실화”…‘언론 자유 침해’ 논란도>(10/11)를 2016년 10월, ‘이달의 나쁜 방 송보도’로 선정했다.
좋은 온라인 보도
• 민중의소리 ‘경찰 백남기 상황속보’ 존재 폭로 보도 • 매체 민중의소리 • 보도 ‘경찰 백남기 상황속보’ 존재 폭로 보도 • 보도 시기 10월 18일 • 취재 기자 옥기원 기자 10월 18일 <민중의소리>는 경찰 측이 그간 없다고 주장해온 백남기 농민 물대포 부상 당시 ‘상 황속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해당 보도는 ‘11.14 민중총궐기대회 관련 상황 속보’ 작성자들이 “백 농민이 쓰러져 뇌출혈 증세를 보인 상황의 원인을 경찰 물대포 때문이라 고 파악”했으며 “‘빨간 우비 타살 의혹’에 대한 내용은 당일 작성된 상황속보 어디에도 기록돼 있지 않았”음을 알렸다. 이 단독 보도는 “경찰이 조직적으로 상황속보를 은폐”해 왔음을 밝혀 냈을 뿐 아니라, 백 농민 부상에 대한 핵심 증거가 담긴 민중총궐기대회 관련 상황속보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가치가 높은 것이다. 이에 민언련은 민중의소리 <경찰이 “파기 했다”던 상황속보 입수 “백남기 물대포 맞아 부상, 뇌출혈” 기록 담겨> 보도를 ‘이달의 좋은 온 라인보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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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2016년 10월 18일부터 11월 7일까지 배포한 내용입니다.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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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힘 대결’로 읽는 오늘과 내일
보수 정권 연장,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JTBC가 이른바 ‘최순실 PC’를 입수해 초대형 특
순히 레임덕을 거부했고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종을 터뜨렸지만 일찌감치 최순실에 집중한 건 TV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연합뉴스를 통해 “부패
조선이었다.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에 따르면 TV
기득권 세력과 좌파의 우병우 죽이기”라고 발끈하
조선은 4월부터 미르재단을 추적했다. 뒤늦게 공개
고 나선 건 조선일보를 겨냥한 우회적인 경고였다.
한 최순실 지하 주차장 인터뷰는 7월 17일에 촬영
그리고 난데없이 MBC가 우병우를 수사하던 특별
된 것이다. TV조선이 김종 차관과 차은택 감독 등
감찰관이 조선일보에 감찰 정보를 누설했다는 의
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봐서 이미 이때 최순실 게이
혹을 터뜨렸다. 그래도 조선일보가 항복하지 않자
트의 윤곽을 상당 부분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
급기야 ‘골수 친박’ 김진태 의원이 나서서 “대우조
무슨 이유에서인지 TV조선은 이 동영상을 석 달 이상 묵혀두다가 10월 25일에서야 내보낸다.
선해양에서 초호화 접대를 받은 언론인은 조선일 보 송희영 주필”이라고 폭로하기에 이른다.
JTBC가 이른바 ‘최순실 PC’를 단독 입수해 최순
급기야 사과문을 내걸고 송희영도 사퇴했지만
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열람한 정황
조선일보는 아마도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아
이 있다고 폭로한 다음 날이다. 이진동 부장은 미
마도 누가 먼저 칼을 휘둘러 주기를 기다렸을지도
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말을 빙빙 돌렸다. “청와대
모른다. 실제로 한겨레가 K스포츠재단 등에 최순
에서 조선일보 vs 청와대 프레임을 만든 것이 외
실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터뜨리면서 TV조선의
압이라 생각한다. 8월 초에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보도가 뒤늦게 빛을 보게 된다. 한겨레 김의겸 기
것도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TV조선 덕분에 특종이 가능하게 됐다”면서 “TV조선도 배후에 최
청와대 vs 조선일보 그 ‘전쟁’의 시작
순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조선일보는 이미 4월 총선 이후로 박근혜 정부와 결별을 준비한 것으로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로 변신한 조선일보
보인다. 본격적인 레임덕 국면을 앞두고 대통령과
전면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선을 긋고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전략이었을까.
JTBC가 선방을 날리자 조선일보와 TV조선도 맹렬
박 대통령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우병우를 가장 먼
하게 덤벼들었다. 10월 26일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저 공격한 것도 조선일보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순
“부끄럽다”였다.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로 발 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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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것은 단순한 레임덕이 아니다. 대통령 국
주도권을 확보한 조선일보는 최대한 판을 흔들고
정 운영 권능의 붕괴 사태다.” 조선일보는 “여야 모
새로운 아이콘과 아젠다를 내세워 부서진 콘크리
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거국 총리를 임명해 남
트 지지율을 복원하려 할 것이다. 송희영 말고도
은 1년간 경제와 내정을 맡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선일보의 다른 약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JTBC가 이른바 ‘최순실 파일’을 공개하고 난 뒤 독일에 있다던 최순실이 날아와 검찰 앞에 서기까
이제는 누구도 조선일보를 건드릴 수 없다. TV조 선은 내년 종편 재허가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다.
지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상 초유의 국정 농
대통령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졌지만 새누
단 사태, 사실상 박근혜의 정치적 생명력은 이미
리당 지지율은 아직 20%를 웃돌고 있다는 걸 눈
끝났고 당장 형사 소추를 당하지는 않겠지만 퇴임
여겨봐야 한다. 보수 진영의 새 판 짜기에 가장 큰
과 동시에 감옥행이 예정돼 있다. 문제는 퇴임이 1
고민은 비박계에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유승민으
년 4개월이나 남아있고 당장 탄핵하기도 쉽지 않
로는 콘크리트 조각이 붙지 않을 거고 누구를 내
고 스스로 사퇴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는 데 있다.
세워도 박근혜만큼의 구심력을 만들기 어려운 상
박근혜는 이미 죽은 권력이다. 조선일보는 박근
황이다. 반기문과 손학규, 안철수까지 엮는 큰 그
혜를 제거할 때를 기다렸고 때가 되자 과감하게
림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군과 적군의
선을 그었다. 조중동과 기득권 동맹에게 박근혜는
구분을 없애고 보수의 색깔을 희석하는 전략이다.
어차피 쓰고 버리는 카드였고 다만 버리는 시점이
조선일보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배후의
앞당겨졌을 뿐. 쳐도 우리가 친다, 조선일보와 박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식물 대통령을 발
근혜를 분리하고 국민들을 조선일보에 감정 이입
빠르게 용도폐기하고 적당히 포장을 바꾸고 새로
하게 하는 전략이다. “부끄럽다.” 익숙한 유체이탈
운 인물을 내세워 권력 연장을 꾀할 것이다. 손석
화법. 조선일보는 박근혜와 최순실을 신랄하게 비
희 사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JTBC 보
판하지만 결코 새누리당을 공격하지 않는다.
도 역시 조중동 카르텔의 큰 그림 안에서 움직이
박근혜가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다는 사실을 그
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JTBC는 최순
들이 몰랐을 리 없다. 말 한마디 문장 한 줄 제대
실 PC의 입수 경로를 밝혀야 한다. 최순실과 삼성
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아는 사람은 다
의 관계를 제대로 파헤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알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참담한 실패 이후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국정 농단의 전모를 밝혀
보수 기득권 세력은 보수 진영을 결집할 새로운
내는 것 못지않게 꼭두각시 대통령을 내세워 민주
아이콘이 절실했고 40년 전 박정희의 망령을 끌
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보수
어냈다. 새누리당은 빨간 옷을 갈아입고 박근혜가
기득권 세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죽은 박
되면 사실상 정권 교체라는 기묘한 프레임으로 여
정희의 망령을 끌어내고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론을 호도해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운운하며 국민을 호도하고 부패한 권력의 생명을 연장했던 추악한 음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철저하 게 진상을 규명하고 이 추악한 기득권 동맹에 책
‘프레임 전쟁’ 그 ‘배후’를 감시하라
새로운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핵심은 조중동
임을 묻는 것. 무너진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길이
+기득권 동맹에서 박근혜가 퇴출됐다는 것이다.
다. 글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blac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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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박근혜 게이트’, 향후 분노한 시민사회의 이익 대변할 언론과 정치 집단 부상 가능성
‘박근혜 게이트’와 언론, 어떻게 볼 것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혁명적 변화가 진행 되고 있다. 상전벽해의 변화가 단시간 내에 현실이
화 이후 전 종편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치부를 들춰내고 각인시키는 방송의 역할을 하고 있다.
되고 있다. 이 게이트와 언론의 관련을 살피면, 게
박 대통령이 JTBC 첫 폭로 뒤 정체불명의 비선
이트의 폭로와 그 이후는 종편 채널의 긍정적 역
세력에 의해 치밀하게 기획된 듯한 정치 스케줄을
할이 단연 돋보인다. JTBC가 태블릿 PC를 폭로한
시차를 두고 언론을 통해 공지한 것과 함께 종편
뒤 박근혜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자신의 과오 일
또한 모두 한목소리로 박의 시대는 끝났다는 조종
부를 자백하면서 상황은 급전직하로 전개되고 대
을 울리는 방송을 양산했다.
통령 지지율 5% 상황으로 치달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린 11월 12일 광화문 집회와 시위는 박 대통령에 대한 국
‘주군’에게 ‘칼’ 겨눈 종편
민의 공식적인 탄핵 선언이다. 이후 여야나 일부
게이트 폭로가 진행되면서 지상파TV가 여전히
종편은 박 대통령이 임기 이전에 하야를 하느냐
청와대 눈치를 보는 듯 하나마나한 보도를 한 반
아니면 탄핵으로 임기를 거의 채우는 쪽으로 가느
면 종편 채널은 대담 프로 등을 통해 재탕, 삼탕
냐를 놓고 견해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
보도를 하면서 의혹 규명에 목마른 시청자의 궁금
이 이미 생명이 다한 대통령으로 전락한 것에 대
증을 충족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 세력의 영
한 공감대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구집권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로 만들어 놓은 종편 채널이 박 대통령 몰락을 재촉하는 칼잡이로 변신 했다고 할까.
‘화염병 세례’ 걱정하게 된 지상파TV
이번 게이트의 전개 과정을 보면서 대중매체와
종편의 보도 태도를 보면, 게이트 폭로 전에는
소셜미디어, 그리고 제도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의
JTBC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박비어천가’를 부르
한국적 특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종편 채널의
는 청와대의 강력한 지원군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
게이트 보도가 긍정적 평가를 받고, 지상파TV 소
령의 2번에 걸친 게이트 관련 자백 또는 거짓말 담
장파 언론인들이 사장 퇴진 주장 등을 하면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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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KBS 등 지상파 방송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월 12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KBS 보도 차량에 항의하는 스티커를 부착해 놓은 모습.
거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
망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작했다. 그러나 KBS, MBC 경영진은 쇠귀에 경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양극화와 불평
읽기의 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변하
등 심화, SNS의 대중화 속에 출현한 21세기형 사
는데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회적 변화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이런 변화는 1%의
이 들 정도다.
기득권층에 대한 99%의 반발로 특징지어질 수 있
지상파TV 젊은 언론인들은 4·19 혁명, 광주항
다.
쟁에서 일부 언론사가 불탄 사례를 들어 향후 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이런 변화 속에서
느 지상파TV가 화염병 세례를 받지 않을까 우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면서 게이트 청산 이후
하고 있다. 종편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 악법에 의
우리 사회의 변화도 가속화될지 모른다. 이번 게
해 태어나서는 안 될 방송으로 지탄의 대상이었
이트는 개발독재자 박정희 향수로 무장한 30%의
지만 게이트 국면을 거치면서 화염병 맞을 걱정은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이 와해되면서 상대적 박탈
크게 안 하는 분위기다.
감에 분노한 시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 집단 과 언론의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집단이나 제도권 언론은 여
‘최순실 이후’ 언론의 숙제
이번 게이트 사태가 일단락된 뒤의 언론의 지
전히 과거의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있어 그런 변
형은 어떻게 될까? 이른바 권선징악이 될까, 아니
화를 적극 담아낼 것 같지 않다. 정치권은 당리당
면 언론이 제 기능을 회복하는 정상화가 실현될
략을 챙기는 구태를 반복하고 많은 언론은 선정주
까? 이 질문은 지난해 이후 영국 브렉시트, 미국
의, 황색저널리즘에 여전히 매몰된 채 사회적 파
대선의 샌더스, 트럼프 돌풍과 콜롬비아 내전 평
수견이나 목탁, 소금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
화협정 부결, 한국의 4월 총선 등에서 나타난 유
체제 속의 민주주의 사회가 병들게 만드는 언론은
사 현상에 주목하면 그 해답이 보인다.
반체제 언론으로 규정되어야 하는데 그런 반사회
이들 국내외 사례의 공통점은 주류 언론이 기성
적 언론, 그 종사자들을 어떻게 가려내 청산할 것
정치권의 지향성을 지지하는 보도 논평에 주력했
인가 하는 것도 큰 숙제다.
으나 빗나갔고 여론조사 결과가 현상의 점검과 전
2016년 12월
글 고승우 이사장 konews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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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언론조작 방치하는 언론과 창조적 시민 저항
왝 더 독(Wag The Dog), ‘최순실’을 끝내 숨길 수 있을까?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끝장낼만한 스캔들이 터
아 소녀로, 복역 중인 범죄자가 전쟁 영웅으로 ‘캐
졌다.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단 하나. 미디어와
스팅’된다. 테러의 참상은 스튜디오에서 촬영돼 컴
국민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안보에 대
퓨터그래픽을 거쳐 TV로 전달된다. 국민들은 테러
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리스트와 알바니아를 규탄하고, 전쟁 영웅에 열광
의제를 만들어 낸다. 예상대로 미디어는 던져주는
한다. 미디어는 대통령의 성추행을 은폐하는 도구
정보를 쫓아다니기 바쁘다. 이제 어느 누구도 대
로 쓰이고, 대중은 기만당한다.
통령의 스캔들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대 통령은 위기를 멋지게 돌파한다.
‘최순실’을 숨겨라! 새누리당 버전의 ‘왝 더 독’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 이야기다. 더스
2016년 한국사회에서도 ‘왝 더 독’ 시도가 벌어
틴 호프만과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만으로도 볼만
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까지
한 가치가 충분한 이 영화는 1997년 제작됐다. 거
불리는 최순실 씨를 숨기기 위해서다. 물론 박근
의 이십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여론조작과 미디
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영화만큼 치밀한 작전을 구
어 정치의 부작용을 다룰 때 언급된다. 제목 ‘왝
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의지와 간절함
더 독’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전도’의 의미
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를 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선물(先物) 거래가 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지고 여기
물(現物) 거래를 뒤흔드는 현상을 이렇게 부른다
에 최 씨가 연관된 정황이 일부 드러나자 새누리
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가짜 현실이 진짜 현실을
당은 그를 엄폐(掩蔽)하기 위한 온갖 무리수를 동
압도하는 모습을 빗댄다.
원했다. 국회의장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든다. 대중은 이
다며 국정감사 보이콧에 나서는가 하면, 이정현 당
토록 무기력한 존재인가, 여론조작은 도대체 어디
대표는 헌정사상 최초로 여당 대표 단식 농성에
까지 가능한가? ‘왝 더 독’은 전쟁조차 가짜로 만
돌입했다. 명분 없는 단식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들어 내는 극단적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대통령
비장함은 국민의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의 성추행 사건을 덮기 위해 백악관은 여론조작
그의 일주일 단식은 최순실로 향하던 대중의 관심
전문가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고용한다. 단지
을 자신에게 묶어두는 성과를 거두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라는 이유로 알바니아가 ‘적
파행 끝에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방송
국’으로 선택되고, 배우 지망생이 고통받는 알바니
인 김제동 씨가 애꿎게 걸려들었다. 새누리당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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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달기 운동을 처음 제안한 김 형민 PD의 페이스북
승주 의원이 김 씨의 과거 토크쇼 발언을 문제 삼
면, 현실의 한국 언론은 여론조작 의도를 알면서
아 “군 명예 훼손” 운운하며 억지 논란을 부추기
도 공범 역할을 하는 꼴이다.
자 김제동 씨는 국정감사의 최대 쟁점 인물로 떠
결국 권력과 언론의 ‘최순실 숨기기’에 맞서 시
올랐다. 반면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의 핵심
민들이 나섰다. SNS에서 벌어지는 ‘그런데 최순
인물인 최순실, 차은택 씨 등은 증인채택에서 빠
실은?’ 해시태그 붙이기 운동. 지난 7일 한 방송사
져나갔다.
PD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모든 포스팅 끝
앞서 8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물러나게 된
에 ‘#그런데최순실은?’을 붙이는 것이다. 네티즌들
것도 ‘최순실 지키기’였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시에
은 즉각 반응했고, 해시태그는 순식간에 SNS에서
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위 행위를 조사하던 것으
퍼져나갔다.
로만 알려졌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미르와 K스
해시태그 붙이기는 최순실 씨 의혹을 이대로 덮
포츠재단 의혹을 내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
고 가서 안 된다는 진상규명 촉구이자, 여론조작
다. 청와대는 그가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한 것을
에 속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영화 속의 대중은 무
두고 “감찰 내용 유출”, “국기문란”으로 규정해 끝
기력했지만, 현실의 시민들은 권력과 언론의 ‘최순
내 물러나게 했다.
실 숨기기’를 꿰뚫어보고 저항에 나섰다. 전통적인 시민운동 조직이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방식 으로.
시민의 저항, ‘#그런데최순실은?’
이처럼 최근 몇 달간 정부 여당의 납득할 수 없
새누리당은 다시 ‘문재인 종북몰이’ 카드를 꺼냈
는 무리수 뒤에는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연루돼
다. 진짜 대결은 이제부터다. 잊지 말자 ‘#그런데최
있다. 언론이 최 씨의 존재나 그를 둘러싼 온갖 의
순실은?’
혹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비선 실세의 국정농 단, 권력형 비리 의혹이라는 핵심을 뚫고 들어가 려는 언론은 극소수다. 여야 간 공방으로라도 최 순실 씨를 언급하면 다행일 정도다. 영화 ‘왝 더 독’ 속 언론이 권력의 여론조작에 속아 넘어갔다
2016년 12월
글 김유진 정책위원 findtruths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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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편파 왜곡보도의 유형’ 총출동한 언론 행태
‘요즘 언론’의 ‘수법’을 밝혀주마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언론 모니터보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서는 일과성 보도로
고서를 많이 쓰다 보니, 저에게 언론의 문제와 모
끝내거나, 묵살 또는 은폐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니터 방법을 강연해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옵니
저는 삼성의 직업병 보도를 듭니다. 삼성반도체에
다. 강의 주제나 청중의 연령대 등에 따라 내용은
다니던 사람이 그리 여러 명 죽었다는데, 영화로
바뀌지만, 거의 빠지지 않고 말하는 것이 <편파·
도 나왔는데 언론은 신기할 정도로 심층보도를 하
왜곡보도의 유형>입니다. 일정에 쫓겨서 항상 강의
지 않습니다. 최근 TV조선이 미르재단 문제를 가
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저는 가장 최신의 적
장 먼저 내놓고도 송희영 주필 등 ‘청와대와 기 싸
절한 사례를 콕 찍어주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경
움’에서 밀린 이후,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잠
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강의에서 저는 각
정 중단’ 수준으로 내지 않은 것도 자사의 이해관
유형을 설명하며 족집게처럼 최근의 사례를 뽑아
계가 얽히면 보도하지 않는 사례로 들 수 있습니
내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에게 없던 총기가 갑자기
다.
생겼을까요? 아닙니다. 최근 언론이 정말 기가 막 힐 정도로 <편파·왜곡보도의 유형>을 총체적으로
‘의사사건 연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기한 경험을 여러분
체제에 불리한 사안이 있을 때, 국민들의 관심
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편파·왜곡보도가 어떤 유형
을 돌리기 위한 정치권력이 ‘의사사건을 연출’해내
이 있는지와 그 사례를 짚어보겠습니다.
고, 언론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합니다. 과거 선 거 때마다 북풍 사건이나 간첩단 조작사건이 벌어
‘심층보도의 기피, 묵살 또는 은폐’
졌던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최근 정부에 불리한
언론이 많이 쓰는 왜곡의 수법은 ‘심층보도의 기
사안이 많을 때마다 불쑥불쑥 터지는 연예인 스
피, 묵살 또는 은폐’입니다. 아무리 국민의 관심사
캔들도 일종의 의사사건으로 보입니다. 최근 세월
가 높고 중대한 사안이어도 언론이 정치권력이나
호 문제, 공공기관 민영화 문제 등 정부에 불리한
재벌 등에 불리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거나 자사와
사안이 많았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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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면서 ‘박유천 스캔들’은 그렇게 부풀려 보도했
니다.
던 것도 여기 속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번 송민순 회고록을 빌미로 한 새누리당의 민주당
‘거짓정보의 유출’ 또는 ‘미확인 보도’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종북몰이 공세가 바로 우
정부나 정보기관 등은 기자들의 특종의식을 이
병우, 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한 의사사건이라고
용하여 허위정보를 흘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거짓
봅니다.
정보를 유출하거나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보도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짓정보의 유출’과 ‘미확인 보도’의 차이는 사실 의도성 정도입니다. 최근에
‘악의적 왜곡’
‘악의적 왜곡’도 자주 쓰는 수법입니다. 여기에서
여기에 속하는 보도는 ‘MBN의 쪽지 보도’입니다.
포인트는 ‘악의적’입니다. 그냥 왜곡은 엄청 많지만
MBN은 10월 19일과 20일, 이틀 연속으로 익명
‘악의적 왜곡’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진짜 악의가 제
의 “정보 소식통”이 주는 정보를 근거로 저녁종합
대로 묻어나야 하니까요. 대표적 사례로 1989년
뉴스의 톱보도를 내놨습니다. 이어진 보도까지 합
고 문익환 목사가 방북했을 당시 조선일보가 문
치면 총 6건을 북한에서 보낸 쪽지와 우리가 보낸
목사의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의 일부
팩스 문건이 국정원에 있다는 내용에 할애했습니
만 인용하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다. 그러나 이 보도를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보
말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도를 통해 제공하는 근거는 얼굴 없는 ‘정보 소식
며칠 전 민언련의 신문 일일 브리핑에서도 비슷
통’뿐입니다.
한 것이 있었는데요.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
북에서 온 쪽지 문구의 의미를 해석하고 반말
일위원회가 ‘송민순 회고록’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
이라고 지적하는 보도도 각 1건씩 내놨지만, 정작
에 대해, 10월 25일 조선일보는 <북이 편드는 듯
MBN은 10월 19일과 20일 익명의 “정보 소식통’이 주는
하자 화들짝 놀란 문재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정보를 근거로 뉴스를 내보냈다.
내놨습니다. ‘화들짝 놀랐’다니 문재인 전 대표가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 보인다는 뉘앙스가 짙게 담 긴 제목인 거죠. 그러나 정작 기사 내용을 보면 “문 전 대표의 대 변인 격인 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발언을 전달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악의적 왜곡입
10월 25일 조선일보의 기사. ‘화들짝 놀란 문재인’이라는 제목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뭔가 켕기는 것이 있다는 뉘 앙스를 짙게 담았다. 그러나 정작 기사 내용은 별 내용이 없었다.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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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백남기 농민 사망과 부검 논란 을 둘러싼 언론의 반인륜적 보도행태는 양비론이라고 보기에도 분통 터지는 수 준이었다.
그 문구는 송민순 회고록에서 이런 요지의 쪽지가
니다. 이처럼 산술적 균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
왔다고 나열한 내용일 뿐입니다.
히려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감추고 결과적으로 편
MBN은 자신 있게 관련 내용을 전하면서도, 국
파적인 보도가 되는 것임에도 언론은 이런 수법을
정원에서 쪽지를 제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하기는
자주 사용합니다. 공정성의 목적은 양적 균형 보
어려울 것임을 언급합니다. MBN의 쪽지 보도가
도나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능동
거짓정보인지 참정보인지를 떠나서 취재원도 밝힐
적으로 밝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수 없는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을 이렇게 단정적으
최근 백남기 농민 사망과 부검 논란을 둘러싼
로 보도하는 태도 자체가 이 사례에 들어간다 하
언론의 반인륜적 보도행태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겠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서 국민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명 백하게 그 모습이 촬영되었고 그 모습을 보면 기
기계적 균형 및 양비론
함을 하고 쓰러질 지경인데도, 언론은 계속 부검
언론은 정부의 언론 통제와 상업적 이익, 재벌
논란을 부추겼습니다. TV조선은 저녁 메인뉴스에
과의 이해 등에서 적당히 처신하면서도 국민으로
출연시켜서 경찰과 유족·대책위의 주장이 다르다
부터도 ‘언론답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기계적 균
고 전하고, 그러니 부검이 필요하다는 논조를 펼
형과 양비론을 많이 사용합니다. ‘도덕적 판단’을
쳤습니다. 그리고 경찰도 사과 정도는 해야 한다고
유보하고 모든 이해세력들을 다 비판의 대상으로
짐짓 충고합니다. 양비론이라고 말하기도 분통 터
삼는 것이죠. 명백한 사실, 진실의 경우에도 언론
지는 이런 보도를 내놓는 것이 지금의 언론입니다.
은 자꾸 논쟁적인 문제처럼 다루면서, 억지로 공
이렇게 돌아보니 참 가관이지요. 박근혜 대통령
정한 척합니다. 만약 싸움이 벌어졌는데 한쪽 편
과 청와대의 실정이 더 이상 말하기 어려운 수준
의 잘못이 80%이고 다른 편이 20%인데도 언론은
으로 극에 달한 지금, 우리는 사실 이 모든 실정이
공정성을 내세워 50대 50으로 양쪽을 똑같이 비
가능하게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언론의 왜곡 편파
판합니다. 보도량에서도 기계적 균형을 잡는답시
보도들이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고 인위적으로 찬반 입장을 똑같이 다루기도 합 54
글 김언경 사무처장 girl4223@gmail.com
시시비비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위한 과제
국정농단 특검도입, ‘양심언론’ 분발하라
대통령직이 ‘1+1’이 되어 버린 황당한 상황이 우 리 눈앞에 나타났다.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지도
이고,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직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않은 다른 사람이 대통령의 비호 아래 사실상 대
더욱이 안종범 전 정책기획수석이 박대통령의
통령 비슷한 권한을 행사하는 상황, 대통령연설문
지시에 따라 최순실의 위법한 국정농단을 도왔다
에 “빨간펜”하면서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
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 달리 무슨 다른 말이 필요
에 개입하고, 외교 안보 등 주요 정책을 사전 보고
하랴? 그래서 대통령으로서의 신뢰와 권위를 이
받는가 하면,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이권을 챙기
미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권자인 국민들은
는, 그 적나라한 실태에 일반 국민들은 엄청난 충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 포기하다시피 한 대통령직
격을 받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연이어 터져 나
을 아예 내려놓고 퇴진하는 것이 가장 빠른 수습
오는 새로운 뇌물 비리와 국정농단 사례를 접하고
방안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는 국민들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를 탄식하 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조차 파죽지세로 붕괴 되고 핵심 지지층조차 이탈하였으며, 광장에서 또 시정에서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대통령 하야” 가 대세가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무능하고 우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꼼수’로 피할 수 없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이런 상황은
한 대통령이 딱 그만두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대
그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핵심적인 책임을
통령은 여전히 “아몰랑”하며 하야를 거부한 채,
져야 한다. 헌법 제1조 제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
“그 나물에 그 밥” 방식으로 청와대 비서진을 교
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체하고, 또 국회와의 소통과정도 없이 “헬렐레” 수
나온다”라고 확인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국민들로
준의 총리를 지명하여 국면전환을 노리는 방식으
부터 위임받은 공적 권력을 최순실 일당 등 측근
로 대통령직의 유지·온존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
에게 공유케 하면서 사적으로 대통령에 준한 권력
나 그런 시도는 꼼수에 불과하고, 필경 실패하고야
을 행사토록 한 것은 바로 국민주권을 부정한 것
말 것이다.
2016년 12월
55
사진_오마이뉴스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고있는 가운데 본행 사가 끝난 후 행진을 시작하고있다
대통령 퇴진 위해 독립특검 도입해야
이렇게 국민주권을 우롱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 한 “식물 대통령”이 계속 버틴다면, 다음 순서는
전대미문의 위법행위, 즉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를 제대로 수사하는 것은 원시적 불능이나 다름없 다.
국회에서 탄핵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벌써 최순실의 기획 입국 이후 31시간 동안 체
대통령 탄핵은 국회에서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
포하지 않고 증거인멸과 범인들끼리 입을 맞출 수
핵소추가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을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나, 관계자들 압수수
하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아마도 상당한 시일이
색을 하면서도 유독 최순실과 정유라의 계좌는
소요될 것이다.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했던 사례 등만 보더라도,
그 사이에 외교·안보 문제는 어떡하고 또 민생
눈에 보이는 꼬리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직 연명”
은 어떡하나? 이렇게 국민의 신뢰와 정당성을 상
이라는 목적에 맞는 꼬리만 선별해서 자르는 방식
실한 “식물 대통령” 체제를 한동안 연명시키는 상
으로 진행될 검찰의 수사결과는 기다려 볼 필요
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지경이다.
조차 없을 정도로 결과가 뻔하다고 하겠다.
그래도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러나 아무리 여소야대라고 해도, 새누리당 의
각종 입체적 수단을 동원해서 그가 퇴진할 수밖
원들 일부라도 특검에 가세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에 없는 상황을 한시바삐 만드는 수밖에 없다.
다면, 또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대통령 퇴진을 위해서는, 또 명실상부한 민주공
행사해 버린다면, 독립특검이 안 되지 않느냐고 걱
화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박근혜-최순실 게
정될 수도 있다. 평상시라면 독립특검 실시가 쉽지
이트를 철저하게 수사할 독립특검을 지체없이 도
않을 것이다.
입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정치검찰이나 청와대검
그러나 지금은 전체 국민들 절대다수가 진상규
찰이 현직 대통령과 숨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진상규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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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특히 공영방송 내 양심세력은 분발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11월 24일 저녁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박근혜언론게이트 진상규명과 언론부역자 청산을 위한 촛불문화제.
위한 범국민적 항의행동과 국민여론의 힘으로 독
자들에게도 경고한다. “이미 본진이 털렸다”. 침몰
립특검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설사
하는 배 속에서 멍청하게 있지 말고, 지금이라도
박근혜 일당의 만만찮은 저항이 있을지라도, 기필
정신 차리고 살 길 찾기를 권고한다.
코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국민적 힘, 광장의 힘을 만들어 나가자.
보통의 공상 소설가 수준으로는 차마 지어내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엽기적인 양상으로 진 행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규명하고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는 일이나, 아울러 이 모
‘본진 털린 왜곡 언론’ 양심세력 분발하라
이와 관련하여 언론의 분발이 긴급하게 요구된
든 폭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정치검찰, 청와대검찰
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이나마 박근혜-최순실 게
의 적폐를 혁파하는 과제나, 청와대방송으로 전락
이트의 추악한 실태가 알려지게 된 것은 많은 부
하여 온갖 편파·왜곡 방송으로 일관하고 있는 공
분 한겨레신문과 JTBC의 헌신적 보도와 또 다른
영방송을 바로 세우는 과제는, 이른바 “맨정신으
의미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적극적 보도에 힘
로는” 잘 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입은 바 크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사례는 아
그러나 절실하면 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뜻
마도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을 모으면 대의가 성취되기 마련이다. 광장에서 집
박근혜-최순실과 그 부역자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결되는 국민직접행동의 힘으로, 또 직접민주주의
과정에서 국민주권을 우롱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
방식으로, 헌정 질서를 정상화시키고 명실상부한
하면서 국기를 문란시킨 상황의 대부분은 여전히
국민주권을 실현시켜 나가자.
물밑에 잠겨 있다고 본다. 언론, 특히 공영방송 내 양심세력의 분발을 촉 구한다. 또한 언론계 내의 기회주의자들이나 부역
2016년 12월
글 박석운 공동대표 aabb0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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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불복종의 권리와 내부고발의 의무
‘박근혜 게이트’에서 배우기
박근혜 대통령을 이제 대통령으로 부르지 못하
그러나 이제 국민들이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국민
겠다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아
들이 그런 마음을 공유하는 순간 박근혜는 더 이
졌다. ‘최순실 게이트’라고 언론에서 제목을 뽑지
상 권력자가 아니다. 애당초 권력은 박근혜 개인의
만 사실은 ‘박근혜 게이트’다. 우리의 대통령이 사
노력이나 능력으로 창출한 것이 아니었다.
실은 꼭두각시, 괴뢰(傀儡)였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후조종자들
언론들은 1974년부터 지금까지 42년을 꼭두각
민주주의는 절차다. 이미 많은 국민들로부터 금
시로 살았고, 꼭두각시의 줄을 조정한 사람이 최
치산선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어떻게 연
태민이었고, 최순실이었다는 증거와 증언을 날마
착륙시킬 것인지가 문제다. 탄핵에서부터 하야, 2
다 쏟아낸다. 세상이 바뀐 것처럼, 그때는 틀렸지
선 후퇴와 책임내각 등 여러 의견들이 나온다. 음
만 지금은 맞다는 것처럼. SNL과 ‘개그콘서트’에
모론도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 최순실의 관계를
서도 풍자가 살아났다. 막혔던 보가 터진 것처럼.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만든 배후조종자들에 대한
광화문광장에 30만 명이 모였어도 경찰과 충돌하
이야기다. 재벌일 수도 보수언론일 수도 있는 그들
지 않고 물대포도 없었다. 이제 경찰도 집회참석
이 이제 박근혜를 희생타로 내세워 또다시 보수정
자들과 같은 마음인 것처럼.
권을 이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 의 잔재를 박근혜 게이트라는 소용돌이 속에 묻어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풀은 바람에 눕고 울지만,
버리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의혹이다. 국민 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국민 여러분’은 이제 꼭 두각시 박근혜와 최순실의 권세가 끝났다는 걸 직
‘아직도 있는’ ‘나쁜 사람’
감했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로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하며 반대급부
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최순실과 나눠 분탕질했다.
를 기대하는 재벌의 돈을 긁어모으고 있을 때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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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은 뭣하고 있었느냐, 공무원들은 뭣하고 있었느 냐는 꾸지람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지적 이다. 그러나 국정농단의 사실을 알만한 자리에서 자 신의 직분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다. 최순실의 마 음에 들지 않은 승마협회 감사보고를 했다 박 대 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분류돼 좌천되고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 한마디에 옷을 벗은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이 있다.
알리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중계차가 쫓겨난 MBC에는
참여연대가 2010년부터 시작한 ‘공익제보자의 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김재철, 안광한
및 의인상 시상식’과 같은 행사를 널리 알려야 한
사장이 해고하고 징계하고 아무 상관없는 부서로
다. 나아가 내부의 비리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발령받은 많은 기자와 PD가 있다. KBS와 YTN도
사람을 처벌하는 법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주
마찬가지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일터에서 박
의는 의리나 정,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절차와 제
근혜와 그 배후조종자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밖
도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지시에 불복종 하는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약간의 진보
박근혜 게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또 무슨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박근혜는 86민중항쟁으로 이룬 우리나라 민주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은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
주의를 몇십 년 뒷걸음치게 했다. 국민들을 부끄럽
들에 대해 더욱 엄한 감시를 해야 한다는 학습을
게 만들었다. 차마 입에 담기 꺼려지는 수준까지
이미 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주어진 민주주
대통령직과 나라의 격을 떨어뜨렸다. 잘못은 박근
의라고 한다. 이씨 왕조시대와 친일 식민지시대의
혜와 그 배후조종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감시하지
지배의식을 갖고 있는 정치꾼들이 무늬만 민주주
못한 언론과 거부하지 못한 공무원들도 질책 받
의를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승만 독재는 4·19
아 마땅하다. 기득권 세력의 시스템의 압력에 맞
혁명을 불렀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86 민중항
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상관의 부당
쟁으로 무너졌다. 박근혜 정권은 어떤 모습으로
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물러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저열하고 천박한 인
확산시켜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물들이 패악질을 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 박근
무엇보다 ‘내부고발인’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
혜 게이트도 바람처럼 지나갈 것이다. 다시 일어난
다. 삼성재벌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
풀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박
호사, 보안사 민간인 불법사찰을 외부에 알린 윤
근혜와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어야
석양 씨가 배신자로 오해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다.
공익을 위해 자신이 일하는 직장의 비밀을 외부에
2016년 12월
글 안성일 MBC 전 논설위원 jesaisri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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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가붕현 강길탁 강무치 강민정 강상욱 강수경 강양구 강유복 강전도 강진구 강태욱 강혜숙 강화순 고겸 고동균 고상익 고영윤 고인수 고하람 공준기 곽지운 구민오 구성연 구진하 국명환 권명수 권수경 권오철 권일 권철 권효진 기선희 김건우 김경석 김경익 김경훈 김광동 김광철 김규봉 김금녀 김기용 김나영 김남혁 김대순 김대호 김도식 김동규 김동욱 김동환 카 김명선 김명희 김미경 김미소 김미자 김민경 김민철 김병모 김보경 김보현 김부용 김상덕 김상환 김석정 김선정 김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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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 강나영 강문구 강민지 강상현 강수곤 강연규 강유원 강정미 강진석 강태호 강혜인 강효근 고광백 고동혁 고성광 고영재 고인혁 고한별 공후연 곽진욱 구민준 구연석 구창범 국모신 권미숙 권수미 권오현 권재범 권태성 권효진 기성자 김건호 김경수 김경인 김경훈 김광명 김광태 김규영 김금주 김기욱 김나형 김남희 김대애 김대호 김도영 김동균 김동욱 김동환 김마리아 김명숙 김명희 김미경 김미숙 김미정 김민경 김민태 김병석 김보경 김보형 김부환 김상미 김상훈 김석준 김선주 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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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영 강명호 강민수 강삼규 강성희 강신성 강영철 강재기 강지환 강태구 강형석 강홍석 계미량 고대원 고삼석 고영매 고은희 고태영 공은해 곽우신 구미경 구본학 구종영 구희영 권녕찬 권세정 권오성 권은영 권지원 권혜인 기민수 김건영 김경민 김경원 김경홍 김관철 김광중 김규리 김근혜 김기연 김기호 김남진 김대기 김대현 김도경 김동건 김동옥 김동호 김락기 김명규 김명화 김문주 김미선 김미옥 김미희 김민철 김범휴 김병훈 김보영 김봉선 김상남 김상호 김석균 김선우 김성 김성민
강기태 강명훈 강민정 강상우 강솔 강신욱 강예성 강재영 강진 강태순 강형숙 강홍식 고강우 고대원 고상민 고영민 고의정 고태호 공종철 곽은정 구민예 구상회 구진경 구희태 권대철 권소현 권오숭 권은주 권진만 권호정 기보중 김건오 김경배 김경은 김경환 김광곤 김광진 김규봉 김근호 김기열 김나령 김남진 김대수 김대형 김도균 김동광 김동우 김동호 김레베 김명년 김명훈 김문환 김미선 김미자 김민경 김민철 김병기 김병훈 김보운 김봉태 김상덕 김상호 김석우 김선욱 김성권 김성민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성민 김성은 김성호 김소연 김수복 김수진 김순화 김승재 김신영 김양임 김연신 김영광 김영미 김영석 김영은 김영필 김영훈 김요안 김용래 김용익 김우선 김원진 김유호 김은경 김은수 김은주 김의수 김인봉 김인환 김재민 김재철 김정곤 김정빈 김정우 김정현 김정희 김종민 김종욱 김종희 김주현 김중석 김지연 김지형 김진경 김진열 김진웅 김진홍 김창우 김철성 김태규 김태수 김태원 김태훈 김평환 김학용 김헌성 김현수 김현정 김현진 김형배 김형진 김혜영 김호석 김홍준 김효중 김희동 김희정 나종찬 남궁정 남예람 남지현 노광일 노승현 노진규
김성수 김성일 김성화 김소연 김수선 김수천 김순희 김승주 김신욱 김양준 김연용 김영권 김영미 김영선 김영은 김영헌 김영훈 김요한 김용만 김용일 김우일 김원태 김윤규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의진 김인성 김일수 김재성 김재필 김정관 김정선 김정욱 김정현 김제문 김종배 김종욱 김주경 김주형 김중훈 김지연 김지혜 김진경 김진영 김진이 김진홍 김창인 김철진 김태균 김태수 김태원 김태훈 김필모 김학인 김혁 김현숙 김현정 김현철 김형섭 김형철 김혜영 김호중 김환균 김효진 김희동 김희홍 나준영 남극현 남오연 남태경 노귀성 노시화 노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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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연 김성진 김성희 김소희 김수정 김순배 김승덕 김승훈 김아름 김여환 김연지 김영근 김영배 김영순 김영준 김영환 김옥란 김용기 김용석 김용태 김웅식 김유동 김윤식 김은동 김은영 김은혜 김익삼 김인수 김장홍 김재영 김재환 김정만 김정숙 김정중 김정환 김종덕 김종성 김종택 김주연 김준식 김지선 김지용 김지훈 김진산 김진영 김진태 김찬영 김천수 김충녀 김태균 김태완 김태진 김택준 김하진 김한상 김현남 김현실 김현주 김현희 김형욱 김혜미 김혜정 김홍빈 김효석 김희경 김희수 나승연 나현철 남병철 남은영 남호섭 노민석 노영환 노현호
2016년 12월
김성연 김성진 김성희 김솔비 김수정 김순봉 김승민 김시몬 김아리 김연구 김연지 김영기 김영보 김영식 김영준 김영훈 김옥매 김용남 김용수 김용하 김원근 김유미 김윤영 김은미 김은영 김은혜 김인 김인숙 김재경 김재우 김재환 김정묵 김정실 김정진 김정환 김종동 김종수 김종필 김주열 김준영 김지선 김지웅 김지훈 김진섭 김진영 김진하 김찬용 김천종 김칠성 김태근 김태완 김태진 김택희 김학곤 김한종 김현대 김현영 김현주 김형국 김형주 김혜성 김혜정 김홍순 김효선 김희경 김희승 나양한 나혜진 남상모 남인주 남호찬 노병선 노원희 노호균
김성욱 김성철 김세준 김수경 김수정 김순성 김승빈 김시연 김아리 김연국 김연호 김영래 김영삼 김영심 김영진 김영훈 김옥선 김용덕 김용수 김용현 김원도 김유신 김윤정 김은범 김은영 김은혜 김인구 김인숙 김재관 김재우 김재환 김정민 김정아 김정태 김정훈 김종률 김종수 김종호 김주영 김준일 김지수 김지은 김지훈 김진성 김진용 김진현 김찬주 김철관 김태겸 김태민 김태용 김태학 김판수 김학동 김행정 김현무 김현오 김현준 김형규 김형준 김혜성 김혜정 김홍일 김효순 김희곤 김희열 나영애 남건우 남성우 남인호 남효숙 노삼식 노은기 노호현
김성욱 김성철 김세진 김수근 김수지 김순식 김승오 김시은 김아영 김연국 김연희 김영림 김영삼 김영아 김영진 김영훈 김옥연 김용덕 김용실 김용환 김원식 김유신 김윤정 김은상 김은임 김은희 김인규 김인종 김재광 김재우 김재훈 김정민 김정연 김정태 김정훈 김종명 김종애 김종호 김주영 김준태 김지수 김지현 김지희 김진솔 김진우 김진호 김창근 김철규 김태경 김태석 김태우 김태현 김평완 김학모 김향기 김현민 김현왕 김현준 김형균 김형중 김혜성 김혜진 김홍일 김효식 김희곤 김희원 나옥숙 남경숙 남소영 남정용 노경만 노선영 노인호 노희경
김성웅 김성태 김세환 김수련 김수진 김순자 김승우 김시창 김아정 김연상 김영 김영명 김영삼 김영애 김영탁 김영훈 김옥희 김용두 김용우 김용후 김원재 김유진 김윤중 김은선 김은정 김응남 김인기 김인중 김재두 김재원 김재흥 김정배 김정열 김정택 김정희 김종모 김종연 김종환 김주영 김준혁 김지수 김지현 김진 김진숙 김진우 김진호 김창수 김철규 김태경 김태성 김태우 김태형 김평호 김학배 김헌덕 김현석 김현웅 김현준 김형기 김형진 김혜숙 김호 김홍일 김효영 김희규 김희원 나의영 남광열 남수현 남주희 노경진 노수일 노정숙 도방주
김성원 김성태 김세희 김수만 김수진 김순종 김승욱 김신영 김애경 김연수 김영 김영모 김영석 김영옥 김영표 김영훈 김완묵 김용락 김용이 김용희 김원주 김유진 김은 김은섭 김은주 김의성 김인대 김인호 김재령 김재은 김정곤 김정본 김정우 김정헌 김정희 김종목 김종오 김종훈 김주현 김준휘 김지숙 김지현 김진각 김진숙 김진우 김진호 김창용 김철규 김태관 김태성 김태원 김태호 김평화 김학범 김헌범 김현수 김현웅 김현진 김형남 김형진 김혜연 김호림 김홍주 김효은 김희균 김희정 나인호 남광현 남영권 남준우 노경채 노승민 노정훈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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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도성수 류병열 류찬호 맹준열 문강한 문미정 문성준 문재권 문형천 민승현 민희웅 박경태 박귀용 박기호 박다슬 박명주 박미희 박병규 박병준 박상욱 박상현 박선희 박성원 박성희 박수환 박슬기 박영규 박영진 박용승 박원식 박은주 박일귀 박재환 박정숙 박정하 박종건 박종수 박주은 박준희 박지웅 박진철 박창봉 박철훈 박한신 박현애 박형인 박호영 박흥석 방규동 방현철 배수미 배준영 백광범 백수진 백승철 백정미 변성학 변지연 부영관 서광희 서동환 서병찬 서영관 서유하 서정문 서주연 선관석 설순자 성미경 성현진 손기호 손상흠 손유니 손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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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태 류병옥 류창하 맹지영 문건대 문병수 문성준 문재홍 문효선 민영미 박강호 박경태 박규장 박기호 박대선 박명철 박민상 박병규 박병진 박상욱 박상호 박선희 박성원 박성희 박숙희 박승태 박영글 박영진 박용식 박원일 박은진 박장호 박점희 박정숙 박정현 박종관 박종아 박주창 박중혁 박지윤 박진한 박창수 박춘달 박한엽 박현용 박형재 박호일 박희득 방기철 배강호 배수호 배준호 백귀정 백수진 백승호 백종선 변성혁 변지철 빈성용 서근범 서명교 서본근 서영석 서윤옥 서정민 서준혁 선길숙 설재욱 성부강 성희연 손대규 손석진 손은영 손진철
도정은 류성률 류현우 맹찬형 문경란 문병원 문소라 문종서 민경호 민용석 박건식 박경택 박규철 박길우 박대성 박명화 박민섭 박병규 박병철 박상원 박상희 박성귀 박성원 박세안 박순고 박신 박영기 박영태 박용웅 박원표 박은환 박재경 박정 박정순 박정혜 박종구 박종언 박주하 박지선 박지인 박진혁 박창우 박태구 박한용 박현용 박형철 박화석 박희성 방민수 배경애 배승희 배지영 백기욱 백수현 백신덕 백종인 변승순 변진극 사공엽 서기선 서명석 서상욱 서영수 서은남 서정웅 서지영 선대식 설재호 성상옥 소강혁 손동주 손석희 손은정 손창형
도진명 류성진 류형욱 명가영 문경태 문병일 문수경 문주남 민경훈 민은홍 박경근 박경훈 박균태 박길주 박도수 박명훈 박민수 박병근 박보현 박상율 박서경 박성규 박성원 박세영 박순교 박신서 박영미 박영훈 박용주 박윤경 박의호 박재근 박정국 박정아 박정홍 박종길 박종완 박주호 박지수 박지현 박진형 박창현 박태선 박한철 박현재 박혜경 박환신 박희승 방성근 배나은 배연정 배지영 백기현 백승기 백영직 백종필 변승우 변창형 사공차랑 서기환 서무근 서석범 서영수 서은석 서정원 서태동 선백민 설정수 성상욱 소동욱 손명국 손성원 손인학 손충구
도필환 류승준 류호성 명경관 문경호 문복산 문수만 문주희 민기숙 민일홍 박경문 박경훈 박근영 박꽃님 박동수 박무 박민영 박병수 박보희 박상재 박서리 박성민 박성원 박세진 박순숙 박아람 박영수 박영훈 박용현 박윤기 박이화 박재연 박정국 박정애 박정훈 박종남 박종원 박주희 박지수 박지혜 박진형 박창홍 박태성 박해령 박현정 박혜경 박효경 박희영 방성문 배노현 배영준 배진국 백동승 백승무 백영화 백진웅 변영식 변태영 사수현 서대원 서문규 서성근 서영윤 서인찬 서정은 서한진 선상원 설지원 성연준 소민욱 손명기 손성일 손재선 손태봉
동소연 류시향 류희준 명소현 문광현 문삼수 문수현 문준상 민동기 민정 박경미 박경희 박근영 박남규 박동찬 박문영 박민정 박병수 박복열 박상준 박서정 박성민 박성제 박소동 박순옥 박애정 박영숙 박영희 박우건 박윤미 박인 박재영 박정규 박정애 박정희 박종배 박종원 박준근 박지숙 박지호 박진형 박철규 박태순 박해부 박현주 박혜련 박효병 박희우 방윤규 배대권 배영철 배진모 백동훈 백승아 백윤아 백현우 변영은 변현식 상덕규 서대천 서미라 서성일 서영호 서일봉 서정파 서혜남 선승연 설희준 성용상 소병훈 손모선 손성진 손정대 손통일
두은서 류갑선 류연숙 류은화 마성일 마완 명호민 명호종 문근숙 문다혜 문석용 문성근 문승섭 문영하 문진수 문진숙 민만기 민미선 민정옥 민준기 박경민 박경선 박계윤 박고운 박기성 박기용 박남숙 박남훈 박동협 박동훈 박문현 박문현 박민정 박민호 박병완 박병원 박부열 박삼규 박상준 박상철 박석규 박석운 박성법 박성복 박성철 박성현 박소라 박소현 박순용 박순정 박양신 박연선 박영순 박영일 박영희 박옥희 박우섭 박우정 박윤숙 박윤정 박인범 박인숙 박재영 박재영 박정민 박정민 박정연 박정우 박제선 이슬비 박종부 박종서 박종윤 박종현 박준기 박준식 박지아 박지애 박진성 박진아 박진호 박진환 박철수 박철우 박태영 박태용 박해정 박해출 박현진 박형규 박혜성 박혜정 박효은 박효주 박희원 박희유 방윤호 방은호 배명순 배민수 배용호 배유재 배진형 배진호 백민정 백봉삼 백승우 백승욱 백은성 백은정 백형대 백홍종 변우섭 변윤정 변형규 변화영 상영숙 서강석 서덕수 서도원 서미랑 서민 서수경 서수경 서영훈 서용관 서일선 서일영 서정화 서정화 서혜정 서홍석 선주리(신정근) 성강일 성기남 성윤경 성윤식 소순영 손경선 손미란 손미영 손영삼 손영상 손정락 손정민 손향미 송경우
류귀순 류재원 마장석 모광희 문대진 문성길 문영호 문천풍 민병희 민진식 박경선 박광목 박기욱 박노곤 박동희 박미애 박민희 박병은 박상규 박상태 박선민 박성수 박성현 박수언 박순찬 박연수 박영일 박완규 박우진 박윤진 박인식 박재욱 박정민 박정운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용 박지연 박진영 박찬모 박철웅 박태율 박혁종 박형근 박혜정 박효진 박희정 방정배 배상길 배윤호 배진화 백삼철 백승재 백인석 변규식 변은화 변희재 서경국 서동건 서민경 서수정 서우성 서장식 서정환 서효원 선혜영 성기욱 성은형 손광일 손병일 손영주 손정애 송경재
류균 류정미 마준채 모명욱 문덕범 문성식 문옥심 문태숙 민보경 민찬홍 박경순 박광무 박기태 박노원 박리브가 박미은 박민희 박병일 박상우 박상향 박선영 박성영 박성혜 박수진 박순천 박연우 박영재 박완식 박운 박윤탁 박인우 박재필 박정삼 박정자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원 박지영 박진영 박찬일 박철원 박태희 박현선 박형석 박혜진 박훈상 반재윤 방정희 배상윤 배정욱 배천수 백선화 백승주 백인환 변남희 변재완 복진선 서경석 서동균 서민교 서승아 서원명 서재관 서정회 석상훈 선혜주 성기정 성주경 손규정 손병훈 손영진 손정한 송규주
류동훈 류정민 마혜란 모영용 문덕순 문성우 문은상 문현숙 민보기 민형원 박경식 박광우 박기현 박노원 박말태 박미정 박범진 박병주 박상우 박상현 박선영 박성우 박성호 박수현 박순태 박연재 박영조 박용규 박운용 박은미 박인헌 박재현 박정선 박정진 박제영 박종선 박종훈 박준형 박지영 박진우 박찬헌 박철홍 박필훈 박현숙 박형석 박혜진 박흥규 반현정 방종훈 배서현 배정철 배한진 백성환 백승준 백일용 변상준 변정목 복향숙 서경신 서동예 서범석 서승욱 서월석 서재승 서정훈 석원혁 설나영 성기형 성한경 손기찬 손보라 손운웅 손정호 송근이
류민지 류지순 마희영 목정민 문미원 문성은 문인주 문현주 민선홍 민혜경 박경임 박광훈 박기형 박노황 박명렬 박미현 박병관 박병준 박상욱 박상현 박선주 박성욱 박성호 박수현 박순홍 박영규 박영직 박용수 박웅경 박은상 박인혜 박재현 박정선 박정포 박제현 박종섭 박주령 박준희 박지용 박진주 박창덕 박철환 박하나 박현숙 박형수 박호 박흥규 방광열 방현배 배석기 배종만 백경아 백수임 백승직 백재혁 변선수 변준호 부근림 서경일 서동욱 서병수 서연경 서유택 서정문 서종화 석철수 설석천 성낙미 성한표 손기현 손상혁 손원휘 손종운 송기권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송기인 송명언 송선아 송용암 송인미령 송준용 송학선 송희성 신남수 신동향 신병현 신숙영 신원수 신재은 신진철 신학림 신혜진 심상진 심은영 심효찬 안길순 안병일 안설 안순주 안은영 안종환 안진우 안혜림 양길승 양상오 양승혁 양윤호 양창호 양희정 엄기환 엄지선 여태문 염혜영 오광수 오미숙 오선영 오승석 오원석 오정훈 오태우 오희성 우은아 원숙희 원휘정 유규상 유만성 유보현 유성용 유영주 유장환 유종혁 유창근 유혜영 윤고운하나 윤렬 윤상열 윤성도 윤순정 윤용신 윤정배 윤종현 윤태용 윤환상 이강일 이경미 이경일 이계숙 이광희 이근주
송길석 송명진 송선희 송용호 송인섭 송준호 송학주 송희준 신도익 신동현 신봉철 신숙자 신유진 신정근 신진태 신학재 신홍범 심상택 심재익 심훈 안대성 안병주 안성남 안순태 안익성 안주식 안진홍 안혜연 양덕수 양석신 양심전 양은정 양철원 양희정 엄대현 엄진섭 여현호 염흥섭 오기택 오민상 오선영 오승열 오원주 오정훈 오태훈 오희영 우인회 원영재 원희재 유규진 유명선 유복순 유세경 유영호 유재승 유종혁 유창혁 유혜정 윤광규 윤명자 윤상일 윤성수 윤승후 윤원구 윤정빈 윤주석 윤필석 윤효석 이강표 이경민 이경임 이관명 이교성 이근행
송길섭 송명호 송승자 송우철 송일식 송지아 송학현 승태숙 신동관 신동호 신상철 신순옥 신유진 신정우 신진형 신한준 신희령 심세엽 심재현 아영미 안대훈 안병준 안성미 안승진 안재우 안주원 안창호 안혜영 양덕춘 양석용 양안나 양은진 양한승 양희주 엄동수 엄창국 연성철 염희정 오기현 오민석 오선희 오언종 오윤덕 오종신 오한웅 옥동훈 우재현 원오희 위영호 유금주 유명자 유상균 유세진 유운상 유재헌 유주연 유창현 유호건 윤광렬 윤무종 윤상진 윤성준 윤신정 윤유상 윤정진 윤주승 윤해영 윤후상 이강헌 이경범 이경자 이관용 이교칠 이근형
송낙주 송명희 송승택 송원영 송재열 송지용 송한주 신경호 신동국 신동호 신서빈 신승배 신윤석 신정현 신찬규 신현 신희철 심승관 심재훈 안강기 안동운 안병진 안성민 안여라 안재현 안준상 안채호 안호진 양도일 양선미 양여원 양의청 양해구 양희철 엄동주 엄효선 연승익 예성혁 오남영 오민석 오성일 오연경 오은미 오중열 오행운 옥은경 우제열 원용무 위태윤 유기홍 유명제 유상배 유슬기 유원경 유재혁 유주연 유태경 유홍구 윤광영 윤문경 윤서정 윤성준 윤여덕 윤유현 윤정현 윤준기 윤현숙 은창현 이건 이경복 이경재 이광규 이구엽 이근호
송대갑 송미선 송승현 송원철 송재용 송지은 송해경 신기섭 신동규 신명교 신석호 신승연 신은하 신정호 신찬섭 신현민 신희철 심연주 심정보 안건영 안동환 안병천 안성은 안영건 안정빈 안준연 안철환 안효광 양동복 양성규 양연진 양인국 양현경 어성민 엄문용 여건구 연제창 오경수 오덕칠 오병남 오세민 오연호 오은정 오지영 오현숙 옥일권 우종욱 원용선 위훈희 유길연 유민수 유상원 유애리 유원영 유정민 유준영 유태수 유환석 윤광희 윤민숙 윤석구 윤성호 윤여현 윤은숙 윤정호 윤준의 윤형열 이가희 이건우 이경수 이경제 이광연 이군순 이금정
송대광 송대섭 송대순 송미숙 송민욱 송민홍 송승훈 송연옥 송영대 송윤석 송은미 송은아 송재우 송정경 송정민 송지훈 송지훈 송창건 송현관 송혜란 송혜미 신기식 신기영 신기인 신동규 신동우 신동욱 신문수 신미영 신미현 신선철 신성균 신성철 신연숙 신연실 신영수 신응균 신의용 신의철 신정환 신정훈 신종열 신창호 신천우 신춘근 신현실 신현준 신형직 (주)신화프린팅코아퍼레이션 심영구 심영섭 심우철 심정원 심주영 심진석 안겨라 안경애 안경호 안문규 안미숙 안민석 안상인 안상준 안상찬 안성일 안성희 안세훈 안영배 안영선 안영완 안정희 안종남 안종문 안중모 안중모 안중식 안치훈 안태원 안판석 안효민 안효숙 안훈모 양동철 양동춘 양동파 양성욱 양성중 양수호 양영삼 양영선 양영아 양일명 양재선 양재식 양현남 양현명 양혜영 어성희 어수헌 어혁수 엄민형 엄상천 엄순미 여병창 여선호 여영옥 연제희 염광민 염기현 오경아 오경이 오경주 오동운 오동헌 오명규 오봉열 오상영 오상일 오세진 오세철 오세희 오영란 오영섭 오영은 오은주 오의환 오인석 오진선 오창목 오창석 오현탁 오형옥 오혜경 왕수용 용상구 우대일 우종현 우지연 우호석 원용진 원윤제 원장희 유경리 유경아 유경애 유내선 유동선 유동숙 유민아 유민지 유범준 유상하 유석묵 유선욱 유연수 유영경 유영규 유윤지 유은선 유은하 유정아 유정일 유정훈 유준호 유중열 유지향 유한경 유현 유현경 유환선 유희락 유희영 윤국희 윤근배 윤기선 윤범영 윤병양 윤병재 윤석용 윤석주 윤석호 윤세민 윤소원 윤소정 윤영균 윤영웅 윤영지 윤은정 윤은정 윤인규 윤정환 윤정희 윤종성 윤중옥 윤지선 윤지은 윤형진 윤혜경 윤혜지 이강두 이강룡 이강문 이건욱 이건진 이겨레 이경수 이경숙 이경순 이경철 이경태 이경화 이광우 이광인 이광찬 이권모 이규석 이규재 이기린 이기명 이기범
2016년 12월
송대의 송민희 송영석 송은정 송정훈 송천호 송효근 신기철 신동원 신미희 신성희 신영식 신인재 신주연 신태범 신혜경 심대현 심원도 심창용 안광일 안병건 안서훈 안소랑 안영주 안종수 안중욱 안향미 양경자 양명선 양슬기 양용호 양재영 양홍석 엄경숙 엄인용 여운준 염민선 오경태 오명재 오상훈 오수형 오영일 오인선 오창훈 오홍영 우도양 우환식 원제환 유경주 유동식 유병선 유선호 유영규 유은하 유정희 유지현 유현종 육관우 윤나영 윤복남 윤선화 윤수정 윤영철 윤인섭 윤종연 윤진숙 윤혜진 이강욱 이경 이경순 이경환 이광철 이균락 이기복
송두호 송명선 송병기 송보미 송영숙 송영운 송은주 송인강 송주휘 송준관 송철민 송충훈 송효열 송훈 신기훈 신나영 신동윤 신동진 신민수 신민영 신소정 신수정 신용호 신우용 신재관 신재민 신주원 신지연 신태섭 신태진 신혜영 신혜영 심명숙 심명오 심원보 심유성 심현보 심현보 안교찬 안규만 안병기 안병욱 안선경 안선정 안소연 안수철 안영진 안용석 안종욱 안종원 안진 안진걸 안현수(안주원) 양귀용 양규식 양문석 양부순 양승동 양승복 양우경 양유경 양재창 양종진 양홍열 양회웅 엄경철 엄경호 엄재현 엄정순 여운혁 여운혁 염상균 염수정 오경호 오경환 오명환 오문기 오선모 오선숙 오승목 오승민 오영주 오영주 오재홍 오정교 오철훈 오춘영 오효순 오흥실 우상민 우상준 원동주 원동현 원종수 원종효 유경한 유관열 유동현 유두열 유병욱 유병일 유선희 유선희 유영모 유영민 유인경 유일선 유종석 유종안 유진만 유진원 유현진 유형기 윤경남 윤경수 윤대문 윤덕한 윤복자 윤봉철 윤선희 윤성광 윤수현 윤숙희 윤예랑 윤옥선 윤인태 윤재국 윤종욱 윤종욱 윤진원 윤찬기 윤호정 윤홍렬 이강욱 이강욱 이경례 이경미 이경아 이경영 이경훈 이경휴 이광표 이광호 이근수 이근영 이기수 이기수
송명숙 송보현 송요훈 송인덕 송준규 송필영 송훈 신낙현 신동찬 신민정 신수정 신원범 신재석 신지영 신하영 신혜정 심민혁 심윤석 심효진 안규창 안병욱 안선진 안순섭 안용수 안종철 안진열 안형노 양규하 양삼주 양승진 양윤미 양주연 양효준 엄기웅 엄정우 여창환 염찬희 오고니 오미선 오선실 오승민 오원교 오정한 오충환 오희경 우수경 원상규 원창수 유광종 유련 유병철 유성국 유영옥 유일환 유종오 유찬조 유형우 윤경자 윤동현 윤상숙 윤성규 윤순재 윤용석 윤정문 윤종혁 윤창현 윤화중 이강원 이경미 이경원 이경희 이광훈 이근영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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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기재 이기철 이남진 이남표 이대연 이대영 이동관 이동구 이동원 이동원 이동현 이동현 이명순 이명순 이문복 이문숙 이미영 이미옥 이민철 이민형 이범찬 이병국 이병학 이병호 이상걸 이상경 이상미 이상미 이상욱 이상욱 이상춘 이상태 이상훈 이상훈 이선근 이선명 이선화 이선화 이성백 이성연 이성희 이성희 이송지혜·박상남 이수영 이수영 이수현 이수호 이승규 이승규 이승우 이승우 이승준 이승준 이승호 이승호 이억한 이연경 이영미 이영복 이영주 이영찬 이오철 이오현 이용석 이용석 이용준 이용진 이우철 이우현 이원주 이원형 이윤숙 이윤애 이은령 이은미 이은재 이은정 이은희 이의영 이인향 이일섭 이재민 이재복 이재영 이재우 이재천 이재혁 이정 이정갑 이정상 이정석 이정애 이정애 이정현 이정화 이정희 이제 이종보 이종수 이종한 이종헌 이주민 이주식 이주형 이주홍 이준호 이준호 이지연 이지영 이지현 이지형 이진아 이진영 이창길 이창석 이철영 이철우 이충기 이충렬 이태희 이택기 이한주 이한진 이헌서 이헌석 이현달 이현미 이현식 이현식 이현태 이현혁 이혜연 이혜영 이홍복 이홍석 이훈우 이훈희 이희찬 인상우 임경민 임경민 임남규 임다심 임병도 임병수 임성율 임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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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태 이남훈 이대욱 이동규 이동원 이동협 이명우 이문자 이미자 이민형 이병권 이보경 이상국 이상민 이상윤 이상필 이상훈 이선미 이선희 이성우 이세용 이수 이수영 이숙희 이승민 이승우 이승진 이승호 이연경 이영삼 이영한 이옥진 이용석 이용진 이운영 이원희 이윤정 이은석 이은정 이의행 이자영 이재숙 이재우 이재현 이정국 이정석 이정오 이정화 이제용 이종식 이종현 이주연 이주환 이준희 이지원 이진 이진영 이창우 이철재 이충영 이택순 이한표 이헌수 이현미 이현우 이현희 이혜영 이홍장 이희길 인선홍 임경희 임도영 임산하 임성환
이기택 이남희 이대원 이동규 이동은 이동훈 이명원 이문정 이미정 이민호 이병규 이보나 이상귀 이상붕 이상윤 이상학 이상훈 이선애 이선희 이성우 이세진 이수강 이수용 이순분 이승민 이승욱 이승철 이승훈 이연호 이영선 이영혜 이옥희 이용성 이용철 이원 이유리 이윤정 이은성 이은정 이익상 이장묵 이재숙 이재우 이재현 이정국 이정석 이정용 이정화 이제운 이종실 이종호 이주엽 이주희 이준희 이지원 이진경 이진이 이창우 이철호 이충인 이택양 이해영 이헌용 이현민 이현재 이현희 이혜인 이화구 이희선 인용현 임고운 임동식 임선규 임세영
이기호 이내규 이덕성 이동규 이동주 이동희 이명재 이문준 이미향 이민화 이병남 이보나 이상균 이상선 이상은 이상해 이상훈 이선영 이선희 이성은 이세호 이수경 이수원 이순수 이승연 이승원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숙 이영화 이완기 이용성 이용택 이원근 이유미 이윤종 이은성 이은주 이익주 이장영 이재승 이재우 이재호 이정기 이정선 이정우 이정환 이제헌 이종열 이종호 이주용 이준기 이중각 이지윤 이진구 이진주 이창원 이철희 이충환 이표 이해원 이헌의 이현민 이현정 이형걸 이혜정 이화신 이희성 인유진 임관수 임동우 임선영 임수재
이기환 이노형범 이덕수 이동규 이동주 이두수 이명헌 이미경 이미현 이민희 이병문 이보라 이상근 이상술 이상의 이상혁 이상희 이선옥 이성관 이성인 이소영 이수경 이수일 이순옥 이승연 이승원 이승철 이시원 이연희 이영순 이영환 이완우 이용수 이용필 이원근 이유미 이윤태 이은숙 이은주 이익주 이장희 이재식 이재욱 이재호 이정란 이정선 이정욱 이정환 이제혁 이종욱 이종호 이주철 이준석 이중섭 이지은 이진길 이진혁 이창준 이청항 이태곤 이필규 이해종 이혁 이현민 이현주 이형상 이호성 이화형 이희숙 인정임 임광식 임동이 임선영 임수정
이기훈 이다미 이도섭 이동근 이동찬 이득흔 이명화 이미라 이미희 이배근 이병민 이보윤 이상기 이상승 이상익 이상현 이상희 이선용 이성광 이성자 이소영 이수경 이수임 이순임 이승열 이승은 이승한 이시현 이영 이영순 이영환 이완주 이용신 이용현 이원복 이유진 이윤호 이은숙 이은지 이인규 이재경 이재식 이재운 이재홍 이정림 이정선 이정윤 이정환 이제훈 이종원 이종환 이주학 이준수 이중용 이지전 이진섭 이진화 이창현 이청희 이태범 이필원 이행영 이혁수 이현선 이현주 이형욱 이호열 이회국 이희숙 인창규 임규섭 임동철 임선영 임승빈
이나미 이다혜 이도연 이동근 이동철 이래연 이명희 이미란 이민구 이백운 이병선 이봉수 이상기 이상엽 이상일 이상호 이석 이선우 이성길 이성재 이소유 이수남 이수정 이순전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시형 이영관 이영운 이영환 이용구 이용연 이용호 이원석 이유철 이윤희 이은실 이은진 이인라 이재구 이재식 이재웅 이재화 이정묵 이정섭 이정은 이정훈 이조은 이종윤 이종훈 이주한 이준엽 이중헌 이지해 이진수 이진희 이창형 이춘상 이태신 이필희 이행희 이혁승 이현수 이현주 이혜경 이호웅 이효석 이희숙 인현식 임규성 임동하 임선정 임승철
이낙연 이대건 이도연 이동근 이동철 이만성 이명희 이미리 이민숙 이백준 이병설 이봉우 이상덕 이상요 이상준 이상화 이석남 이선웅 이성남 이성헌 이소진 이수만 이수진 이순홍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신형 이영구 이영은 이영환 이용규 이용우 이용화 이원일 이윤 이은경 이은아 이은하 이인배 이재근 이재식 이재원 이재훈 이정미 이정승 이정이 이정훈 이존희 이종인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민 이지현 이진숙 이진희 이창호 이춘옥 이태욱 이학민 이향복 이혁진 이현수 이현주 이혜담 이호진 이효정 이희완 인호진 임기남 임동환 임선하 임승희
이남석 이대기 이도영 이동명 이동한 이만영 이명희 이미선 이민재 이범석 이병용 이부덕 이상돈 이상용 이상준 이상화 이석인 이선자 이성렬 이성현 이소형 이수민 이수진 이슬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안나 이영균 이영음 이영희 이용기 이용운 이용희 이원재 이윤기 이은경 이은열 이은해 이인선 이재덕 이재연 이재윤 이재흥 이정미 이정식 이정임 이정훈 이종기 이종찬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상 이지현 이진순 이차동 이창희 이춘자 이태은 이학범 이향자 이현 이현수 이현진 이혜란 이호희 이효진 이희용 임강섭 임기임 임두현 임성대 임식경
이남숙 이대로 이도운 이동수 이동해 이명문 이무섭 이미연 이민정 이범수 이병하 이부지랑 이상래 이상우 이상진 이상훈 이선경 이선주 이성렬 이성호 이소혜 이수복 이수헌 이슬아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애영 이영록 이영재 이영희 이용대 이용주 이우경 이원정 이윤상 이은구 이은영 이은혜 이인성 이재룡 이재영 이재은 이전석 이정범 이정신 이정태 이정훈 이종미 이종철 이종흔 이주현 이준영 이지숙 이지현 이진식 이찬은 이창희 이춘홍 이태환 이한규 이향희 이현경 이현숙 이현진 이혜성 이홍구 이후삼 이희용 임강수 임기종 임매순 임성래 임영섭
이남임 이대섭 이도원 이동애 이동헌 이명숙 이문규 이미영 이민정 이범재 이병학 이삼희 이상목 이상우 이상철 이상훈 이선규 이선호 이성미 이성환 이송원 이수연 이수현 이승계 이승용 이승주 이승현 이양애 이영미 이영주 이예술 이용마 이용준 이우민 이원주 이윤석 이은규 이은영 이은희 이인철 이재명 이재영 이재진 이전희 이정복 이정아 이정택 이정훈 이종민 이종청 이종희 이주현 이준형 이지연 이지현 이진아 이창경 이채민 이충걸 이태훈 이한섭 이헌범 이현구 이현숙 이현철 이혜승 이홍란 이훈 이희윤 임강훈 임나연 임범상 임성원 임영수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임영숙 임장원 임종문 임진수 임한수 임혜림 장대성 장미애 장성훈 장영덕 장우석 장윤석 장주영 장태욱 장혜경 전기정 전미자 전성배 전영일 전정수 전진 전홍표 정공준 정기동 정대환 정명옥 정미정 정병석 정상조 정선아 정세원 정순호 정연우 정영하 정용희 정윤섭 정의진 정재권 정정일 정준혁 정진산 정창운 정택준 정현주 정호인 정희영 조강숙 조규범 조명근 조민지 조상현 조성은 조순인 조영혁 조유식 조장훈 조진오 조해관 조현준 조효근 주성기 주재환 주희운 지용동 진교영 진형수 차의섭 채창병 천세환 최경 최광호 최대건 최두열 최미선
임영숙 임장춘 임종섭 임진순 임한신 임혜영 장대열 장미정 장소희 장영묵 장우성 장은아 장중현 장택수 장혜숙 전다슬 전미희 전성수 전영재 전정숙 전창성 전훈 정광 정기영 정덕순 정명진 정미희 정병용 정상준 정선영 정세훈 정슬기 정연택 정영학 정우성 정윤영 정이랑 정재련 정정일 정준형 정진상 정창인 정한석 정현진 정호진 정희종 조강일 조근성 조명아 조민혁 조석우 조성일 조승현 조영희 조유정 조정심 조짐모 조해나 조현진 조훈제 주성종 주정규 지경주 지은희 진규엽 진희영 차익준 채희명 천승처 최경숙 최규남 최대섭 최두영 최미아
임영우 임재경 임종안 임진우 임향란 임홍갑 장덕남 장병옥 장수규 장영수 장우식 장은영 장지현 장학중 장호걸 전대석 전미희 전성일 전예화 전제훈 전태성 전흥표 정광석 정기영 정덕진 정명현 정민 정병욱 정상준 정성길 정세훈 정승용 정영 정영현 정우진 정윤종 정익수 정재석 정종운 정준호 정진숙 정창현 정해문 정형송 정홍섭 정희진 조경래 조남득 조명훈 조민호 조선미 조성지 조아라 조예진 조유진 조정옥 조창현 조해성 조현호 조휘행 주성태 주지혁 지광해 지정구 진길임 차문조 차인섭 채희진 천승환 최경순 최근석 최대식 최명식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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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만 임정규 임주현 임치형 임현무 장국남 장동주 장석운 장애령 장영채 장원석 장인선 장진호 장현길 전갑진 전동열 전삼모 전수영 전우진 전종현 전한수 정경두 정국진 정길용 정동익 정문주 정민현 정산 정석구 정성원 정수영 정시연 정영민 정완균 정원석 정은경 정인준 정재철 정종천 정지은 정진화 정철훈 정현석 정혜영 정효진 제갈종길 조경희 조동원 조미란 조병창 조성래 조소원 조영규 조용준 조윤호 조준호 조탁현 조현경 조혜연 주경선 주영삼 주현우 지삼녀 지혜선 진상훈 차성환 채도진 천명주 천태환 최경준 최기윤 최동신 최명희 최민선
2016년 12월
임우선 임우요 임정민 임정민 임지영 임지웅 임태수 임태윤 임현수 임현일 장기석 장기섭 장동호 장두영 장석태 장선경 장연미 장연선 장용광 장용철 장원철 장유식 장인철 장인호 장창덕 장창호 장현주 장현주 전경원 전경일 전명옥 전명욱 전상구 전상우 전숙현 전순미 전원실 전인원 전준희 전지영 전한진 전현수 정경성 정경순 정국화 정군주 정길화 정길훈 정동철 정득철 정미란 정미선 정민호 정민호 정상모 정상안 정석구 정석근 정성일 정성필 정수진 정수철 정안수 정애경 정영연 정영주 정용석 정용우 정원영 정원철 정은수 정은영 정인희 정일찬 정재철 정재철 정주란 정주영 정지은 정지은 정찬무·강윤경 정청래 정춘희 정현석 정현석 정혜영 정혜정 정효진 정효진 제명신 제용순 조광연 조광훈 조동주 조동준 조미숙 조미연 조병현 조봉매 조성민 조성애 조수연 조수연 조영란 조영수 조용진 조용필 조은실 조은영 조중훈 조지숙 조태호 조태훈 조현구 조현동 조혜영 조홍찬 주동원 주미영 주영희 주완돈 주현정 주현주 지성스님 지수경 지혜영 진각유 진수호 진승모 차영옥 차영천 채복희 채수인 천무영 천민경 천현숙 천혜빈 최경희 최관집 최기은 최낙선 최동진 최동철 최무현 최문규 최민섭 최민호
임우택 임원양 임정수 임정식 임지원 임지원 임태진 임평희 임형석 임형수 장기혁 장길수 장명숙 장문규 장성룡 장성봉 장연수 장연우 장용화 장우봉 장유정 장윤 장재웅 장점봉 장채리 장철규 장현진 장형종 전광배 전광수 전명원 전미경 전상주 전선영 전양희 전연희 전일근 전재수 전지영 전지현 전현숙 전혜숙 정경호 정경희 정귀연 정규현 정다훈 정대선 정래훈 정만수 정미숙 정미숙 정백란 정병규 정상영 정상용 정석생 정석인 정성현 정성현 정수현 정숙경 정양석 정여진 정영주 정영진 정용운 정용재 정유나 정유림 정응섭 정응희 정장환 정재경 정재형 정점숙 정주영 정주영 정지하 정지혁 정찬미 정찬영 정태성 정태휘 정현선 정현숙 정혜진 정호식 정희경 정희경 제임스옥(옥진욱) 조국연 조권도 조동준 조동현 조미형 조민성 조부민 조상기 조성연 조성연 조수영 조수장 조영수 조영식 조용화 조우일 조인한 조인혜 조지연 조진모 조하나 조학현 조현우 조현정 조환 조환규 주상모 주상현 주유인 주은수 주형민 주혜진 지영선 지영선 진경희·이산하 진은혜 진재욱 차옥숭 차은선 채영미 채장기 천복기 천석봉 철오큰스님 최갑식 최관철 최광옥 최낙훈 최달호 최동혁 최동현 최문찬 최미라 최민희 최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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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최병호 최병호 최상필 최상한 최선희 최성관 최소미(정성연) 최순천 최슬기 최안진경 최양림 최영주 최영준 최용석 최용수 최윤대 최윤범 최은주 최은지 최인창 최인호 최재원 최재혁 최정아 최정운 최종식 최종윤 최지영 최지용 최진영 최차봉 최태용 최태훈 최현주 최현진 추명성 추민경 탁종열 태양훈 하대호 하상필 하지아 하지영 한경민 한경선 한병기 한병철 한서윤 한서현 한승윤 한승윤 한영실 한영애 한제영 한주엽 한태욱 한택규 함종빈 함진호 허수련 허영강 허재우 허정운 허태준 허태환 현일훈 현정 홍미영 홍미정 홍성재 홍성주 홍승훈 홍승희 홍재완 홍정배 홍지훈 홍진 홍혜진 황경희 황민우 황민지 황선영 황성수 황승미 황승용 황인용 황인웅 황지훈 황철환 황화인 황희관
최보영 최상호 최성권 최소영 최승규 최양희 최영준 최용식 최윤실 최은지 최인희 최재현 최정호 최종훈 최지원 최참 최학봉 최현진 추연균 태영원 하상훈 하지혜 한경송 한보경 한석만 한승주 한오형 한준수 한해진 함판식 허영수 허정현 허현주 현주 홍민 홍성철 홍연 홍정연 홍진숙 황광수 황병원 황성식 황승훈 황인찬 황춘화 황희원
최보영 최석봉 최성일 최수경 최승혁 최영균 최영준 최우람 최윤영 최은희 최일광 최재호 최정훈 최주리 최지윤 최창규 최한성 최형순 추연수 태은정 하성용 하춘욱 한귀순 한삼덕 한성욱 한승철 한용주 한준희 한현희 허경태 허영재 허정화 허혜민 형재영 홍민희 홍수영 홍연금 홍정우 홍진숙 황교남 황병준 황성애 황애자 황인희 황충모 Bahda Han
최보윤 최복규 최석종 최석태 최성하 최성헌 최수정 최수진 최승호 최승호 최영묵 최영민 최영철 최영태 최우복 최우석 최윤정 최윤준 최은희 최은희 최일남 최장근 최재환 최재환 최정훈 최정훈 최준규 최준락 최지환 최지훈 최창석 최창수 최해창 최헌 최형용 최혜영 추연숙 추원호 편성훈 편일란 하영은 하용근 하치동 하태욱 한기성 한도일 한상덕 한상선 한성일 한성환 한승희 한신애 한용희 한우 한지현 한진석 한혜란 한호석 허남옥 허미진 허영진 허영진 허정화 허종환 현금이 현기남 홍경진 홍근표 홍병진 홍서희 홍수원 홍수정 홍영기 홍영미 홍정윤 홍정환 홍진일 홍찬이 황대선 황덕홍 황보반 황보영근 황성욱 황성운 황영민 황용석 황재희 황정기 황태근 황태원 David Cho Hunk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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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열 최상천 최선욱 최선중 최세성 최세연 최숙희 최순규 최시연 최아현 최영애 최영우 최옥현 최용 최유진 최유환 최은심 최은자 최인숙 최인정 최재웅 최재원 최정식 최정실 최종문 최종배 최지연 최지영 최진성 최진솔 최태명 최태선 최현우 최현재 최희동 최희영 탁범우 탁승수 하경옥 하국봉 하재철 하정순 한갑수 한강희 한미희 한병기 한상혁 한상호 한승동 한승우 한영선 한영식 한재운 한정호 한철우 한충희 함석일 함선호 허성식 허성식 허윤호 허인순 허창구 허창수 현영권 현영돈 홍남균 홍미숙 홍선비 홍성모 홍승현 홍승혜 홍장혁 홍재범 홍준기 홍지현 홍현준 홍형숙 황미선 황미연 황상인 황선영 황순구 황승동 황인성 황인성 황중길 황지현 황현표 황혜성 Powon Corp
그리고 60분이 부정기 후원해 주셨습니다.
신입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강선 이인선 조현주
김민혜 이재원 조희화
김영균 이태곤 최영준
남현수 이혜승 최지원
박소라 이호진 하상훈
박연선 임태진 하헌미
이성일 조광옥
2016년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새로 가입한 20분입니다.
·‘회원정보 동의’까지 완료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름을 확인 못한 분이 계실 경우 사무처로 문의해 주십시오. (02-392-0181)
부탁 드려요
1. 사용하지 않는 계좌는 변경해주세요. 2. 잔액을 채워 주세요.
잔액 부족으로 회비 인출이 되지 않아도 CMS 수수료는
내야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면 꽤 큰 돈이 됩니다.
3. 우편물을 받지 않고 싶은 분은 전화로 연락 주세요. 4. 이메일을 등록해 주시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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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회비 관련 문의 전화
02·392·0181
2016년
민주언론시민연합 창립 32주년 기념식 2016년 12월 16일(금) 저녁 6시 장소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일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경향신문사 옆
<식순>
1부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 2부 제2회 성유보 특별상 시상식 3부 창립 32주년 기념식 ·제18회 민주시민언론상 시상식 ·2016년 ‘올해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