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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을 어떻게 폭로했을까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 임재경·김정남·함세웅

2017년 1월


민언련 포커스

민언련은 민주정권을 수립을 위해 대선 언론 대응에 정성을 기울이겠습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

은 지금 대선 언론정책을 다듬고 있고, 대선 과

니다. 그런데도 <날자꾸나 민언련> 1월호를 여

정에서 이를 시민사회에 공표하고 대선후보들에

러분께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소식지

게 전달해 그들의 공약에 반영되도록 촉구할 예

제작이 늦어진데 가장 큰 책임은 사무처장인 저

정입니다. 또한 대선 이후에는 언론 개혁을 위한

에게 있습니다. 제가 정리해야 할 원고를 빨리

구체적 활동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그런 과정

주지 못했거든요. 마지막 원고로 ‘민언련 포커스’

에서 민언련 회원 여러분들이 민언련의 회원으

를 넘겨야 하는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

로서, 후원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함께

참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를 해도

하실 일들도 만들어 내겠습니다. 새롭게 충원된

2017년 1월호에서 해야 할 말은 ‘2017년 우리는

활동가들이 많아 부쩍 젊고 활기가 넘치는 민언

무엇을 할 것인가’인 것 같네요.

련 사무처가 더욱 안정된 상황에서 창의적으로

2017년 민언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다가올 대선을 ‘잘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 니다.

근혜 정부’를 겪으며 우리는 언론을 바로 세우기

개인적으로 저의 계획도 있습니다. 2016년은

위해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뭐가 중요한지 깊게 생각할 시간조차 갖지 못

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현재와 같이 뒤

한 채, 그야말로 닥친 일을 해치우느라 급급했

틀린 언론 상황 속에서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

습니다. 그런 저를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2017년 저는 사무처장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따라서 민언련은 그 어떤 선거보다 최선을 다해

은 최대한 동료들과 분담하고, 사무처장이 해야

언론을 감시하겠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한심한

할 일에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태를 뒤쫓아 현황을 알리는 역할에만 그치지

저는 분산할 것은 분산하고, 거절할 것은 거절

않겠습니다. 어떤 정책보도가 나오고 어떤 선거

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겠습니다. 말문이 터지

보도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언론의 방향을 앞서

니 2017년에 해야 할 일은 민언련도 저도 끝이

제시하고 독려하겠습니다. 모니터링에만 급급하

없네요. 저는 그저 2017년의 시간을 허투루 보

지 않고 더욱 많은 분들과 그 결과를 공유하고

내지 않고 정성을 기울이겠다는 말씀으로 마무

구체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행동할 방안을 시의

리하겠습니다.

적절하게 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선 이후 바로잡아야 할 많은 언론 개혁 작업을 준비하고 실천하겠습니다. 민언련 2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소식지

02

-

04

-

발행인 이완기 기획위원 김경실 김언경 박제선 조영수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장 김은규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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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 임재경·김정남·함세웅

18

-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창립 32주년 기념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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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지침을 어떻게 폭로했을까? | 김언경

언론의 역할과 민언련이 해야 할 일을 재확인한 2016년

편집기자 김유나 박제선 박성원 배나은 안효광

신문토달기

2016년을 빛낸, 신문 속 ‘참 나쁜 필진들’ |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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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실 김서중 김성원 김수정 김언경 박석운 박제선 안건모 이기범 이완기

여는글

정유년 새해, 첫 번째 청산 대상은 70년 묵은 부역언론이다 | 이완기 -

2017년 1월

민언련 포커스

책이야기

더 이상 절망에 익숙해지지 말자 | 송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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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그들이 없는 언론>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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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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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없는 7년, 3,000일, 3,001일, 3,002일… | 장아영

편집기자 유민지 이봉우 최민호 디자인 박제선

-

인간다운 일상이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바꾼다 | 이재홍

인쇄 신화프린팅 발행일 2017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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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04207)서울 마포대로14가길10 동아빌딩 4층 전화 02)392-0181 팩스 02)392-3722 이메일 ccdm19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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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활동가 인사

진실의 힘을 느낀 민언련 다섯 달 | 최민호

발행처 (사)민주언론시민연합

- 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민언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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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올해의 좋은 신문·방송 보도

홈페이지 www.ccdm.or.kr 후원계좌 신한 100-019-186241(민언련)

<날자꾸나 민언련>은 민언련이 회원에게 보 내드리는 선물입니다. 또한 공익적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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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공영방송 정상화가 적폐청산의 출발점이다 ·종편의 변심, 그 이유는?

로 도서관이나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경우 에 한하여, 1년에 1만원의 비용을 받고 ‘자 료회원’으로 등록해 <날자꾸나 민언련>을

50

시시비비

60

2016년 11월 1일~30일 후원자 명단

-

보내드립니다. 현재 <날자꾸나 민언련>은 화강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전국의 대안고등학교 도서관 과 마포, 은평, 서대문구의 작은도서관, 지 역아동센터에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날자꾸나 민언련>을 권하고 싶은 분은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지정하신 곳 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문의 070-4849-3027

언론포커스

-

·‘격세지감’·‘음수사원’이 떠오르며 자괴감에 울컥 ·100만 촛불 앞에 CCTV 자처하는 종편은 언론이 아니다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도 있다 ·권력 농단의 뿌리 재벌이 물린 재갈, 이젠 벗어 던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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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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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정유년 새해, 첫 번째 청산 대상은 70년 묵은 부역언론이다

혁명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었다. 이 땅의 개·돼지 민중은 4.13 총선에 서 선거혁명의 기적을 이루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기울어진 언론 과 야권의 분열 속에서 언론, 여론조사기관, 정치평론가 등 이른바 여론 주 도층들은 누구나 아는 상황논리로 새누리당의 압승을 점쳤지만, 개·돼지 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소야대’의 대변혁을 일구어냈다. 병신년의 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2월 9일 광장의 촛불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능과 불통과 거짓으로 얼룩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 시키고 사회 구석구석의 적폐 청산을 위한 대장정에 나섰다. 누구의 지시 에 의해, 누구에 끌려서 일사천리로 걸어온 길이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일어난 목불인견의 국정농단을 목도한 수백만의 촛불시민들이 고고지성으 로 ‘퇴진’을 외쳐 이룩한 결과다. 사실상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만천하에 드러나고도 ‘탄핵’이라는 말은 상당 기간 동안 자제해야 할 금기어였다. 여소야대라고 하지만 야권 단독 으로는 탄핵소추 가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정파성과 보수 성도, 유약하기 짝이 없는 야권의 뒷심도 우려스러웠다. 무엇보다 부담스러 웠던 것은 수구언론의 간교한 되치기였다. 그러나 촛불 시민은 이 모든 것을 극복했다. 부지불식간에 폭력사태라도 터져 촛불이 꺼질까, 정보기관의 은밀한 공작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 지만 병신년 마지막 날까지 촛불을 밝힌 민중의 행보는 이제 거침이 없다. 누구의 말대로, 바람이 불면 꺼지는 촛불이지만 언제고 다시 켜면 될 일이 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촛불은 스스로 자신감을 확인했 다. 바야흐로 촛불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70여년 적폐를 청산하기 위 한 대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적폐는 겨울 들판에 흩어져 있는 지푸라기처럼 곳곳에 널려있다. 전근대 적 사고에 젖어 썩어문드러진 권부, 그를 보위하는 검찰과 경찰, 권부와 유 착해 민중의 피를 빨아 먹는 재벌, 국가의 안위보다는 정권 안위에 여념 이완기 상임대표 wklee10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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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정보기관, 자주를 상실한 외교와 국방, 대안은 없고 경쟁만 부추기는


부패한 교육, 교언영색의 학자와 지식인, 좌파타령으로 연명하는 극우단체, 기득권의 단물에 빠져 있는 야당, 이 모든 것이 적폐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70여 년 동안 이 부 패한 수탈공화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혹세무민의 부역언론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돼지의 민중은 제대로 된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다. 그 청산 대상의 적폐들이 반동의 몸짓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2월 16일 헌재에 제 출된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청와대 측의 답변서는 그 신호탄이다. 답변서는 “현직 최고지도자를 범죄자로 재판에 넘긴 적은 없었다”며 생짜를 부렸다. 반성은커녕 왕조 시대의 낡은 인식으로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답변 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정상 근무’를 했고 피해자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 고 했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무죄추정원칙’을 위반한 것이고, 검찰의 공소장은 ‘검사의 의견’일 뿐이며, 국정농단에 대한 언론보도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라고 비난했다. 이권 개입은 중소기업의 ‘애로사항 청취’고, 인사 개입을 대통령이 묵인한 것은 정치·도의적 책임일 뿐 탄핵사유는 아니라고 강변했다. 뻔뻔함의 극치요 추잡하고 비굴한 권력자 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친박과 박근혜 내각 등 권력 잔존 세력의 움직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친박 의원들 은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들과 위증을 모의했고, 태블릿 PC의 소유주 논란이 법정 공 방으로 비화하고 있다. 박근혜의 아바타 황교안이 권한대행의 자리를 이용해 ‘안보’를 운위하고, 국정원은 느닷없이 태영호 탈북 공사의 사회활동을 전파하며, 극우 집회현 장에서는 ‘북한지령망국촛불’의 팻말이 나도는 등 일련의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마침 내 애국진영은 “대통령이 탄핵 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떼를 쓰는 상황까지 왔다. 이 혼란의 와중에 또 다른 반동의 몸짓이 있다. 죽은 권력 박근혜를 처참하게 짓밟 은 수구 하이에나 언론들이 되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과 맞불을 저울질하 며 좌우로 편을 갈라 구체제를 이어가려 한다. 이들은 아마도 휴전선 인근이나 연평 앞바다에서 포성이 울리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이 땅의 개·돼지들은 중요한 역사의 고비마다 어렵사리 쟁취한 혁명의 과실을 강탈당했다. 빼앗은 자들은 하나같이 민족 반역자와 독재자들이다. 8.15 해방 은 이승만에게 헌납했고, 4.19 혁명은 박정희가 갈취했다. 5.18 피의 민주항쟁은 전두 환이 유린했고, 6.10 시민혁명은 노태우가 탈취해 갔다. 그리고 그렇게 죽 쒀서 개 준 도로무공(徒勞無功)의 어두운 그늘 뒤에는 늘 혹세무민의 언론이 도사리고 있었다. 촛불이 2016년 병신년의 마지막 집회를 ‘송박영신’이라 칭한 것은 박근혜로 상징되 는 70년 구체제를 이번에야말로 깨끗이 날려버리자는 다짐일 터이다. 그래서다. 이 다 짐을 성공시키기 위해 2017년 정유년 새해에 첫 번째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은 70년 묵은 부역언론이다.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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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3 | 임재경·김정남·함세웅

보도지침을 어떻게 폭로했을까?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 오후, 민언련 창립 32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6 시부터 시작되는 보도지침 30주년을 준비하느라 사무처 활동가들은 4시부터 프 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행사가 곧 시작되리란 생각에 마 음이 바빴지만 이날이 아니면 두 번 걸음 하셔야 할 어르신 임재경 선생님, 김정남 선생님, 함세웅 신부님 이렇게 세 분을 뵈었다. 세 분은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이다. 임재경 선생은 보도지침 폭로 이후 김 태홍, 신홍범, 김주언 3인이 구속되었을 때, 이 사건에 대한 국제적 석방운동을 이끌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한 살인 정권이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인권탄압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었을 것이다. 이를 분명히 알았 던 임재경 선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도지침 사건을 국제적 이슈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김정남 선생은 보도지침 폭로 과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 보도지침은 성공적 으로 세상에 폭로할 수 있었고 구속된 세 분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임에도 다른 사건에 비해서 비교적 가벼운 형기를 받아 출소했다. 그러나 보도지침을 폭로하기 까지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특히 보도지침의 내용과 의미가 은 폐되거나 왜곡되지 않아야 했고, 관련된 사람들도 최대한 보호하고 싶었다. 그래 서 온갖 경우의 수를 고민해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김정남 선생은 이런 고민을 함 께 나누고 기획하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하 언협)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하 정의구현사제단)을 연결하는 소통작업을 함께 했다. 함세웅 신부는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일원이었다. 언협이 보도지침 폭로 과정에서 큰 울타리가 되어주실 것을 부탁했을 때, 정의구현사제단은 아무 조건 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의 고난을 함께 했고, <말 보도 지침 특별호>를 출간할 수 있도록 출판비까지 지원했다. 이후 보도지침 구속자를 위한 구명운동에 큰 힘을 보냈고, ‘보도지침’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는 데 적극적으 로 나서주기도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지원은 그야말로 전폭적이었다. ‘보도지침 3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 두 시간 전에 만나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겨우 마칠 수 있었던 세 분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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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 선생은 보도지침 폭로 후 석방운동을 위해 노력 했다. 언론자유와 양심의 구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 했던 전두환 정권에게도 국제 연대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국제 연대로 전두환을 궁지로 몰아넣다, 임재경 선생

협 공동대표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나에게 했었어 요. 내가 그때 출판사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의 편집고문이란 직책으로 공밥을 먹고 있었는데 출 판사 창비는 영업 취소가 된 상태였지요. 이래저

김언경 언협에서 보도지침을 입수해서 폭로하려고

래 고려할 사정이 많아서 내가 공식적으로 언협

한다는 점을 언제 아셨어요?

직책을 맡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성유보 선생에게 사정하고 양해를 구했지요.

임재경 보도지침을 폭로한 것이 86년 9월이지? 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기사를 자주

전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긴

쓰겠다는 것과 <말> 인쇄에 필요한 자금조달 문제

했지만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것은 폭로

등에 조력을 하겠노라 약속을 했지. 하지만 자금

기자회견 이후지요. 언협이 만들어졌던 1984년부

지원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어요(웃음).

터 늘 ‘언협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지만 나는 실상

공덕동 당시 창비 편집실과 언협 사무실은 길

그때 언협에서 책임질만한 자리를 맡고 있지 않았

하나만 건너면 되는 정도, 걸어서 300미터 될까

어요. 그냥 회비 내는 보통 회원이었죠. <말>지에

말까할 가까운 거리였어요. 그러니 김태홍 언협

원고를 꾸준하게 쓰는 ‘열성 회원’이라면 적절하겠

사무처장과 성유보 <말>지 편집국장은 며칠에 한

네. 당시 <말>지 기사에 필자 이름을 달지 않았으

번씩 만나서 밥 먹고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니 정확하게 내가 도합 몇 차례나 원고를 기고했

했죠. 시시콜콜 귀띔해주지는 않았으나, 느낌상 조

는지는 모르지만, 꽤 여러번 썼던 건 틀림없어요.

만간 뭔가 큰 게 터지겠구나, 그리고 굉장히 위험

뒤늦게나마 밝힐 일은 작고한 성유보 선생이 언

한 지경에 처하겠구나 하는 감은 잡고 있었죠.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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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경 예전에 저와 인터뷰 하실 때, 작고하신 성유

것이외다. 당시 사무처장인 김태홍 선생에게만 그

보 선생님이 보도지침 폭로 과정에서 강하게 폭로

짐을 짊어지게 할 수 없으니, ‘당신 김태홍은 사무

를 주장하셨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당시

국장 직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하고, 보도지침 폭

사실 언협 안에서 찬반 의견이 많았지요?

로의 책임은 나 신홍범이 진다’ 이렇게 된거지요. 뭐 결국 둘 다 잡혀 들어가고 말았으니 긴 말은 필

임재경 맞아요. 당시에 신중히 처리하자는 의견도

요 없게 되었지요.

분명 있었어요. 해직 언론인들이 몹시 어려운 상 황에서 언협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민주화운동을

김언경 신홍범 선생님께서는 보도지침 폭로 당시

꾸준히 밀고 나가자고 했는데, 만들자마자 조직이

임재경 선생께서 정말 큰 도움을 주셨다고 강조하

완전 와해될 정도의 큰 사안을 벌이는 것이니 신

셨어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중론이 왜 없었겠어요. 난 이걸 무조건 비겁하다 고 볼 수는 없다고 보고요. 지금 와서 그때 그런

임재경 일단 신홍범과 김태홍 두 사람 다 나 개인하

의견도 많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부끄러운 것도

고 특별히 친근한 사이였습니다. 내가 조선일보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는 말로 다하기 힘

서 일하던 시절 신홍범과 신문사에서 안에서 굉장

든 폭압이 예사였으니 말이에요.

히 가까웠어요. 다섯 살 후배인데, 신문기자 사회

아무튼 언협의 공식 논의 구조상 당시 보도지침

는 밥그릇을 중요하게 여겨서인지 신홍범 선생이

폭로 여부 결정에 내가 참여할 입장은 아니었지요.

나를 굉장한 선배처럼 대했어요.

그건 의장과 사무처, 실행위원들이 함께 논의할

그러니까 1975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문제지요. 폭로 결정이 나기 얼마 전 당시 민주통

자유언론 투쟁을 벌였을 때 후배를 돕는 것이 나

일민중운동연합(이하 민통련)이 거의 와해 직전의

의 책임이며 의무라 느꼈지요. 이런 사정으로 조선

위기에 몰리면서, 성유보 선생이 민통련의 사무처

일보 해직기자 후배들과는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장으로 차출되는 지경이 되었지요.

한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게 된 거지요 그리고

그러자 성유보 선생은 언협이 정 못 내겠으면 민

한국일보로 옮긴 뒤에는 김태홍 선생과 가까웠고,

통련에서라도 내겠다고 단호한 결심을 내게 전합

동아투위 출신으로는 성유보, 이부영 둘이 나와

디다. 이런 마음들이 언협의 내부 사정이 순탄치

의기투합하는 후배였다오.

않더라도 ‘이건 언협에서 해야 할 일이다. 이걸 안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언협, <말>지 ‘보도지침 사

하면 언협이란 조직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지 않냐’

건’ 등으로 얽혀 있었고, 이런 사람들이 옳은 일

라는 생각으로 모아져 결국 언협이 용기 있게 이

하다가 곤경에 빠지자 나로서는 발 벗고 나설 수

일을 폭로하게 된 거지요.

밖에 없었던 거지.

그리고 또 하나. 지난 <날자꾸나 민언련> 신홍 범 선생 인터뷰를 보니까, 신 선생이 굉장히 그 조 심스럽게 자기는 한 게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던

보도지침 폭로 후 넘쳐난 국경을 넘은 연대의 물결

데 말이에요.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신홍 범 선생은 잡혀 들어갈 각오를 하고 일을 시작한 8

김언경 폭로 후 언협 상황을 좀 이야기해주세요.


임재경 언협 입장에서는 보도지침 폭로가 보통 큰

저녁을 사고 싶다는 거야. 그러면서 저녁 자리에서

일이 아니었어요. 언협에서만 두 명이 잡혀가고,

각기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총액 2~3백 달러를

간사들은 전부 피신해야 했고, 장부고 뭐고 다 가

모아 내게 주며 언협 활동가들과 밥을 한 번 사 주

지고 가고 그러니 사실 조직이 쑥대밭이 된 거죠.

라고 부탁을 하더군. 아무튼 우리에게 연대를 표

그래도 초기의 언협 사무실에는 늘 농성하는 사

시하는 단체들이 여럿에 달했어요.

람들이 열사람 남짓 모여 있었어요. 하지만 86년 12월쯤에 이르자 언협 사무실 농성장에 한두 사

김언경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 대해서도 좀 알려

람 나올까 말까 하게 되더라고요.

주세요.

하지만 나는 안 나갈 핑계를 댈 수가 없었어요. 이런 가운데 내가 가장 열심히 한 활동은 외국 언

임재경 보도지침 폭로 재판 과정에서 외국 언론과

론과의 인터뷰였지. 특히 외국 사람들이 만나자고

의 인터뷰가 많았어요. 당시 군사정권은 88올림픽

하면 거의 거절하지 않고 다 만났지. 이제 너무 오

을 앞둔 상황이니 이전과는 달리 국제적 이미지에

래 지나서 정확히 어디 어디 외국매체와 인터뷰했

굉장히 민감해졌지. 외국 기자들이 올림픽 열리기

는지 자세히 기억하기가 힘들어요.

일 년 앞서 한국에 와 다방면에 걸쳐 취재를 했어 요. 그때 큰 관심거리의 하나가 보도지침 사건이었

김언경 당시에 외국에서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단

던 것 같아요. 한국이 언론자유가 굉장히 형편없

체 등의 활동도 있었나요?

는 나라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으니까. 기자들이 뉴스거리 없나 찾아보다가 취재요청을

임재경 지금 기억나는 게 떼르데좀(Terre des

해오는데, 잘못 얘기하면 겁나고 그러니까 자꾸

Homme)이라는 스위스 국제인권단체, 그러고 독

나에게 덤터기를 넘긴다고 할까. 그 짐이 내게로

일 에카데(EKADE)라는 기독교 조직 그러고 내

밀려오는 거였지. 나로서는 친한 친구들이 붙잡

회고록에 한 번 언급했지만, 독일에서 자원봉사단

혀 들어가 있는 터라 내가 일부러 찾아다니며 인

그룹이 왔었어요. 언협을 돕기 위해 왔다며 돈을

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만나

주겠다고 하는데, 내가 사무처장도 아닌데 그걸

자는건 무조건 다 만나겠다고 결심했어. 그때 만

받으면 곤란할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겁도 났

난 매체는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맨체스터 가

고 외국인한테 돈을 받는 것은 그 당시 한국에서

디언, 독일의 통신사 DPA. 홍콩에서 나오는 영자

는 말하자면 목숨 내놓고 해야 하는 것이라서 거

지 <Far Eastern Economic Review> 미국 주간

절한 경우가 있어요.

지 <Newsweek> 등이지요. 기자 이름이 또렷이

또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총 금속노조쯤 되는 독일의 산별노조(IG Metall)가 있는데 거기에서도

남아있는 것은 르몽드의 여기자 도미니크 바루슈 (Dominique Barouche) 하나뿐.

10여 명의 활동가들이 왔었어. 우리가 얼마나 어 떤 방법으로 얼마나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어, 내

김언경 부담스럽지 않으셨어요?

가 거절하면서 “사기진작(moral support)한 것으 로 충분하다”고 응답했다. 계속 고사를 했더니 또

임재경 나는 보도지침을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2017년 1월

9


사명감 하나뿐이었어요. 그러니 부담스러운 것도

지. 6월 항쟁 덕을 본 거죠. 물론 6월 항쟁은 보

몰랐고, 사실 ‘나 바쁘니까 니가 좀 해달라, 나 한

도지침이 큰 힘이 된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해요. 6

번 했으니까 이번엔 니가 해라’ 이럴 대상도 없었어

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쌓이고 쌓인 당

요. 내가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냥 대충

연한 결과지만, 직접적 도화선은 박종철 고문치사

하면 막 통하는 거지. 그러다 몇 번 해보니까 ‘아,

사건이었고, 그 이전에 보도지침도 절대적인 영향

이건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구나’하는 요령도 생기

을 미쳤다고요. 게다가 6월 항쟁이 이후 한겨레 창

고 말이야.

간으로까지 이어졌지. 만약 보도지침이 없었다면 한겨레신문이 그렇게

김언경 저희가 에드워드 베이커 씨에게도 감사장을

순조롭게 모금됐을까?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적

드리려고 만들었어요. 그분 이야기 좀 해주세요.

지 않은 희생을 치룬 해직기자들이 좋은 신문 만 들려고 하니 믿어도 되겠다는 신뢰가 많은 뜻있는

임재경 에드워드 베이커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 있

시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말이

는 연구소 부소장이에요. 이분이 한국 역사를 전

에요.

공했고, 한국 민주화운동에 굉장히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시민 운동하는 김언경 처장도 이걸 잘

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협력자입니다. 故 김대중 대

염두에 둬야 해. 시민단체 운동단체가 조직을 만

통령이 사형선고 받고 미국 망명 갔을 때도 배후

들어서 일정한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을 하는 것

에서 작용을 했고요.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미국에

은 매우 중요하지. 그런데 실제로는 시민들이 감각

공부도 하러 갔죠. 미국에 있으면서 자주 만나고

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신세도 많이 졌어요.

우리말로 갑자기 설명이 안 되는데, 독일어의 형용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의 네이션(<The Nation>)이

사 비르클리히(wirklich

wirklich 현실의, 실제의, 사실의,

라고 한국으로 치면 <시사인>에 해당된다 할 진보

실재(實在)의라는 의미)라고

하면 어떨지? 김 처장 독일

적인 시사주간지 발행인이 보도지침에 대해 인터

어 사전 한 번 찾아봐요. 그러니까 그 활동의 외형

뷰를 하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알고 왔냐

은 어떻게 되던 간에 우리에게 다가와 콕콕 찔러

고 그랬더니 에드워드 베이커라는 사람이 가보라

대며 세상을 올바르게 보게 만드는 계기를 가르키

고 그랬다고 말이에요.

는 거야. 시민운동, 사회운동에서는 그런 게 필요 하다는 뜻이요.

김언경 그래도 이 사건이 당시 정권에 큰 타격을 주

이를테면 이번 촛불 시위는 우리현실에서 매우

었고 국가보안법 위반까지 걸려 있어서 옥고를 더

‘비르클리히’한 거야. 박근혜를 대통령자리에서 끌

오래 치르실 줄 알았는데 6개월 만에 나오게 되셨

어내리고 한국 민주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잖아.

는데요. 그런 배경엔 국제여론에 대한 부담도 컸기

이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거야.

때문 아닐까요? 김언경 그러니까 ‘진짜 사실’ 뭐 그런 거죠? 그리고 임재경 하하 사실 그건 6월 항쟁 덕분이죠. 6월 항

쟁 아니었다면 아마 1심에서 그렇게 빨리 못 나왔 10

보도지침이 ‘비르클리히’했다는 생각이신 거예요?


임재경 그렇지. 보도지침도 그렇게 비르클리히한 거

손해서 우리가 무슨 보상을 바라고 했냐 이런단

였어. 일단 실재하는 물건이 있잖아. 박불똥 화백

말이야. 그런데 그래도 역사적으로 볼 때는 분명

이 그린 그림도 있고, 이거 몇만 부 정도 찍었다 그

히 공적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어요.

랬지요? 김언경 지금 대략 2만 부 정도 찍은 것으로 들었어

‘폭로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김정남 선생

요. 김언경 올해가 보도지침 폭로 30주년이라서 신홍 임재경 그건 엄청난 겁니다. 그때 말하자면 SNS가

범 김주언 두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물어물어 인터

없었고 볼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데, 더구나 이

뷰를 하다가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두

거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 가지고 있

분 선생님께서 당시 이야기를 하시던 중 언협이 보

어도 잡혀갈 시기에 2만 부가 나갔다는 것은 보통

도지침을 입수한 다음에 폭로를 할까 말까, 어떻

일이 아니지. 그러니까 이거는 정말 대단한 비르클

게 공개할까, 어떻게 폭로할까 고민을 하다가 ‘언

리히카이트(Wirklichkeit)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협’ 힘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니 신부님들과 상의

내가 보기엔 보도지침 폭로한 사람들은 모두 민주

하자 그렇게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김정남 선생님

화 과정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보도

께서 정의구현사제단과 연결하는 큰 역할을 해주

지침 폭로에 직접 참여했고 돌아가신 분들, 송건

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꼭 선생님과 만나서 당시

호, 김태홍, 성유보, 그리고 형무소 갔던 분들, 만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든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는 두고두고 감사해야해 요. 그런데 언론운동 하는 사람들은 모두 너무 겸

김정남 하하, 뭐 뭐가 있을까. 할 이야기가… 김태

김정남 선생은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주언 기자를 어떻 게 보호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김주언 기자가 김승훈 신부에게 양심선언을 하는 방식을 택하자고 제 안했다. 그의 제안으로 보도지침 폭로는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킬 수 있었다.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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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씨가 참 사교적인 사람이었어요. 나하고 상당

폭로할 결심을 하셨는지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기간 같이 활동을 했는데, 처음 인연이 된 것은 그 양반이 기자협회장을 하다가 수배가 되었거든

김정남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양심선언’이었어요. ‘양

요. 그런데도 하도 활동적이어서 말이야. 오늘 저

심선언’은 1974년에 지학순 주교가 자신이 잡혀

녁에 어디서 누구랑 만나서 술을 먹었다. 이러면

들어가면 치도곤을 당할 것을 예상하고, “내가 지

그게 내일이면 수사기관이 인지를 해가지고 같이

금 기자회견 석상에서 이야기한 것 이외에는 어떤

있던 사람이 잡혀가 두들겨 맞고 쫓기고 그런 상

발언이 나오더라도 그건 내 양심에 따른 의견이 아

황이 이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어디 썼습니다만 박

니다. 유신헌법은 그 자연법에 반하는 것이기 때

윤배라는 분한테 ‘김태홍이라는 사람이 쫓기고 있

문에 인정할 수도 없고 수용할 수도 없다. 난 유신

는데 불안하다. 서울에 놔두기가 힘들다. 도와 달

에 반대한다” 이런 양심선언을 하셨거든요.

라’ 요청했거든요.

그때 우리 같은 사람은 수사기관에 끌려가면 고

그렇게 보내놓고 잘 있는 줄 알았는데 열흘 만

문을 당하거나 협박에 의해서 천편일률적으로 “나

에 박윤배 씨가 잡혔어요. 그 이유로 박윤배 씨는

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사회에 불만을 갖고 살

남영동에 끌려가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건 물론

아오던 중, 이러이러한 책을 읽고 공산주의자가 되

이고, 이근안이 “너 이 자식, 니가 기다리면서 한

었습니다. 그래서 뭐뭐를 했습니다”라는 자술서를

번 당해 봐라” 그러면서 묶어 놓고 관절을 전부 뺐

썼거든요. 그러고 나면 양심이 너무 괴로운 겁니

대요. 결국 김태홍 씨도 잡혔지만 아무튼 그 양반

다. 심지어는 자기가 수첩을 가지고 있으면 수첩에

이 엄청 혹독한 고생을 했어요. 그런 일을 겪으면

친구 이름을 적어놨는데, 그 친구를 데려다가 ‘너

서도 김태홍 씨와는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조

도 같이 공모한 놈 아니냐?’ 이래가지고 그 사람도

력을 하면 지냈지요.

고문해서 같은 공범을 만들고 이럴 때니까, 이게

그러다가 어느 날 김태홍 씨가 자기네들이 보도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우리는 이 양

지침 자료를 비밀리에 이제 입수를 했다고 하더라

심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방법으로 지

고요. 자세한 내용을 다 보진 못했고 설명을 듣고

학순 주교가 고안안 ‘양심선언’이 참 좋은 방법이

한두가지 샘플을 보여줬어요. 당연히 폭로했어야

다 생각했던 거죠.

할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우리가 제일 걱정한 것은 보도지침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느냐 치도곤

김언경 그래서인가요? 김주언 선생도 당시 양심선

을 당하게 되었을 때, 폭로자인 김주언 기자를 어

언문 같은 것을 쓰신 게 있는데 그게 참 감동적이

떻게 보호할 것인가였어요. 김태홍 씨 말이 자기가

었어요.

끌려가보니 고문을 당하면 견디기가 너무 어렵더 라. 그러니 이거에 대한 방패막이랄까 알리바이 같

김정남 맞아요. 당시 김태홍 씨는 잡혀가서 누가 이

은 걸 준비해놓지 않고서는 폭로하기가 어려울 것

걸 제공했냐 고문을 당할 때 김주언을 지킬 자신

같다는 거였죠.

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누군가가 이것만 담보해 준다면 자기가 모든 건 책임질 수

김언경 아 너무 끔찍해요. 그런 시기에 어떻게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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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다 이랬어요. 그래서 내가 사제단에게 상의를


했고요. 김주언 기자가 홍제동 성당 김승훈 신부 님께 가서 양심선언을 했고, 정의구현사제단이 이

핍박받는 언론자유의 든든한 울타리, 정의구현사제단

걸 폭로한 것으로 하자 이렇게 말을 맞췄죠. 사실 처음 신부님들하고 상의를 하고 나서 보도

김언경 신부님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

지침 자료를 실제로 봤을 때, 신부님들도 모두 놀

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오늘 행사에서 상을

랐어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두 가지 받으셔야 합니다. 함세웅 신부님께 드리

세상이 이렇게 부도덕할 수가 있나? 그동안 언론

는 것과 정의구현사제단께 드리는 것 두 가지 모두

이 왜 이러나 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좀 풀리는구

받아주셔야 해요.

나 한탄하셨어요. 함세웅 하나만 주면 되지 뭘 그렇게 했어요. 김언경 제가 듣기로는 사제단에서 인쇄 비용도 많

이 내셨다고 들었어요.

김언경 (하하) 그게 또 개인에게도 드리지만, 그 단

체에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민변 김정남 맞아요. 인쇄비용도 거의 전액에 가깝게 냈

과 정의구현사제단 두 단체에 감사장을 드립니다.

던 걸로 알아요. 왜냐면 그때 언협이 상당히 어려 웠어요. 사무실 자체를 운영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함세웅 아이구, 안 해도 되는데 뭘 이렇게 하나.

나도 지금 정확한 액수는 모르는데 우리 함세웅 신부님이 졸라가지고 돈을 인쇄소에 갖다 주고,

김언경 그래도 30년이나 됐는데 한 번은 해야 되지

그 대신 3천부인가 얼마를 인수하고 그랬던 것으

않겠어요. 너무 늦었어요. 사실 이번에 행사를 준

로 기억나요.

비하면서 너무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놀

1986년 9월 보도지침 폭로를 함께 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함세웅 신부. 사제단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랐을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어두웠던 군사독재 시 절, 사제단은 핍박받는 이들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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랐고 죄송했어요. 제대로 증언도 못 듣고 감사도

그런데 명동성당 앞에서 하는 기도회와 시위에

표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입니다. 특히 당시 함께

서 사람들이 언론이 회개하고 개혁되어야 한다 이

하신 신부님들 중에서 함세웅 신부님만 지금 오실

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동아일보 기자

수 있으셨잖아요. 김승훈 신부님과 정호경 신부님

들의 자유언론수호투쟁을 알게 되고 기자들과 가

돌아가시고, 김택암 신부님도 은퇴하셨고, 이번에

깝게 만나면서 언론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어

연락드리며 정말 늦어서 죄송하다 그런 생각이 많

요. 예를 들어서 이제 그 당시에 황새 다리가 하나

이 들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주

뭐 다쳤다. 그런 건 그냥 사회면에 사진이 크게 나

세요. 정의구현사제단이 언제부터 모여서 활동을

오는데, 정작 중요한 학생들 구속되었거나 감옥에

시작하신 건지도요.

끌려가 사람이 죽어도 보도가 안나와요. 기껏 나 와 봤자 1단으로 몇 줄만 보도되고 이랬으니까요.

함세웅 사실 저는 보도지침 폭로 상황에 대해서는

물론 황새도 소중한 생명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그렇게 상세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우리 정의구현

희생되는데 언론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

사제단은 민청학련 사건 등을 체험하고, 지학순

면서 언론과 성서를 연계하는 공부를 시작했고요.

주교님이 구속되시던 74년에 시작되었죠. 가깝게

그 과정에서 세상을 바꾸려면 언론의 역할이 중요

는 우리 주교님 석방을 위해서 모인 사제들이 그

하다는 점, 우리 성서에서 말하는 복음 선포라는

과정에서 유신체제를 더 잘 알게 되었고요. 그러

것도 진실을 전하는 일이기에 언론의 역할은 그만

다 더 많은 분들이 구속되고 민주화운동으로 고

큼 중요하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초를 겪으시니까 그분들을 만나고, 그 가족들을 만나고, 학생들 석방운동도 돕고 이러면서 우리 사

김언경 양심선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주세요.

제들이 세상을 더 깊이 알게 된 거죠. 세상을 바 라보는 눈이 커지고, 교회의 구원이라는 게 불의

함세웅 당시 ‘양심선언’은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한 것을 타파하는 이런 것이구나. 이런 성서에 따

하나의 방법도 되지만 불의에 대한 저항의 의미

른 가르침을 더 깊이 현장에서 깨닫게 되었어요.

가 커요. 또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양심인데, 그 양심이 짓눌렸을 때 인간의 자기 상실, 자기 파

언론이 회개해야 한다

괴가 큽니다. 그걸 회복시켜주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죠. 양심선언은 인간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김언경 함세웅 신부님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

작업, 구원을 향한 작업, 또 불의에 맞서 싸우는

원회 해직 언론인 어르신들과 유난히 인연이 깊으

하나의 저항의 의미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데 언론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 가요?

김언경 신부님께서는 그렇게 흔들리는 시간이 없으

셨어요? 함세웅 정의구현사제단이 언론 쪽에 더 관심을 가

지게 된 것은, 70년대에 우리들 사건이 너무 보도

함세웅 저도 80년에 중앙정보부 합동수사본부에

가 안 되니까 그 답답함에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가서 고생을 했어요. 그때는 ‘민주화는 이렇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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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것인가?’, ‘자포자기가 이렇게 되는 거구나’

그러니 우리 사제가 도울 수 있는 것, 우리가 보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두 달 동안 거기서 조

호막이 될 수만 있다면 교회 공동체가 결단을 해

사받을 때 다행히 내가 성경을 가지고 있었어요.

야 한다 그랬죠. 이런 활동이 모두 구원의 의미라

그런데 그때 성경을 보다 보니, 예수님이 마귀 들

고 본 거죠. 그리고 이 사안이 워낙 큰 것이니까,

린 사람을 쫓아낸 이야기가 나와요. 예수님이 내

김승훈 신부님이 맡으시고, 성당에서 발표하는 게

쫓은 마귀들이 나가서 어디 정착 할 데가 없으니

좋으니까 명동성당 바로 옆 문화관에서 기자회견

까 더 나쁜 자기 친구 마귀들까지 데리고 다시 돌

을 했어요. 저희는 그냥 좋은 일, 독재자와 맞서

아와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그런 성경 말

싸우는 일, 언론 본연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돕

씀이에요. 잘 준비하지 않고 정화되지 않으면 이전

는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한 거죠.

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그런 성서의 교훈인데 요. 실제로 80년 광주항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김언경 폭로 이후 법정 투쟁 당시에도 정의구현사

들었어요. 박정희도 불의한 정치인이고 독재자였

제단에서 많이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어요. ‘카톨

는데 전두환은 그보다 더 잔인무도한 거예요. 그

릭자유언론상’도 주셨고요.

래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더 큰 걸 당할 수 있

보도지침 폭로 언론인의 정신을 지금 언론인들이 본받았으면…

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김언경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우리 민주화운동

에서 참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셨어요. 하지

함세웅 예수승천주일을 홍보주일로 정했어요. ‘세계

만 그만큼 힘드셨을 것 같아요. 보도지침을 폭로

홍보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요. 이때에 맞춰

하기까지 언협 이상으로 고민이 크셨을 것 같은데

서 서울 대교구에서 ‘가톨릭자유언론상’을 제정해

요.

서 김태홍, 신홍범, 김주언 이 세 사람한테 첫 번 째 시상을 했어요. 본인들이 감옥에 있으니까 부

함세웅 천주교가 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방

인들이 와서 받았죠.

한하시는 등 큰 행사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80 년대에는 70년대처럼 열심히 항거하지는 못했습니

김언경 궁금했는데 혹시 그 상을 일부러 만드신 거

다. 82년 문부식 등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예요?

청년 학생들이 구속되었을 때 천주교가 이를 함께 하면서 또 큰 상처를 받았죠. 함께 싸웠지만 한계

함세웅 사실 그 당시에는 그 분들을 돕기 위한 지향

도 있었고요. 그러다 부천 성고문사건이 터진거예

으로 특별히 만들긴 했어요. 어느 공동체나 사회

요. 당시 제가 홍보국에 있어서 25만 부 정도 나가

나 좀 앞서신 분들이 고난을 받고 고초를 많이 겪

는 주보에 소식을 넣는 등 이 사안을 알리려 노력

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렇게 세 분이나 끌려가서 고

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잖아요. 정말 이 언론

초를 겪고, 박종철 군이 또 고문으로 억울하게 돌

을 통제하는 독재자들을 타파하는 방법이 무엇일

아가셨지요, 다행히 이런 상황에 항거해 6월 항쟁

까 고민하고 있을 때, 보도지침을 알게 된 거죠.

이 일어났으니 다행이지요.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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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경 지금의 언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라 하고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닌 사람들한테 사 제단은 진정한 ‘구원’이었죠. 저도 그때 신부님을

함세웅 70~80년대 언론은 물리적인 육체적인 고난

도왔는데요. 돕는 제가 무서울 정도였어요. 최종

을 많이 받았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다른 방법

길 교수 관련된 글을 쓰면서 이래도 될까? 인혁당

으로 언론을 탄압하고 또 경제적인 미끼로 언론인

폭로하면서 이래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게 사

을 길들이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단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죠.

저는 동아투위 기자들이나 보도지침을 폭로했

사제단이 그렇게 울타리가 되어주시니 인혁당

던 언론인들의 저항정신을 지금 현업 기자들이 본

가족들이 ‘우리 남편 억울하게 지금 죽어가고 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최근 한겨레

다. 살려 달라’ 뭐 호소도 할 수 있었고요. 모든 사

김의겸 기자나 JTBC 등의 노력으로 박근혜 최순

람들이 의탁하고 싶어 하고 그런 심정들이 쭉 이

실 비리의 실체가 드러나 새로운 시민 촛불혁명이

어져 내려와서 이 사제단이 방패막이만 돼주면 어

일어난 걸 기쁘게 생각하고요. 그런 언론이 이어

쩌면 좀 우리가 안심하고 일을 추진할 수 있겠다.

진 것은 앞서서 고초를 겪으셨던 이런 분들이 계

이런 심정을 아마 다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물론

셨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원조가 이분들이다,

그것 때문에 사제들이 받은 상처도 많습니다. 특

이렇게 이분들의 정신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것

히 천주교 원주교구는 무슨 ‘지하 운동의 보고’처

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럼 돼가지고 빨갱이로 몰리는 수난도 당했죠.

김언경 김정남 선생님께서 계속 함세웅 신부님 말

김언경 마지막으로 함 신부님께서 해주실 말씀 없

씀을 들으시면서, 뭔가 더 보태고 싶은 말씀이 있

으신가요.

으신 것 같았는데요. 함세웅 돌아가신 김태홍 기자 늘 마음속에 모시면 김정남 함 신부님께서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셔서

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신홍범 선생님 그리고 또

조금 더 부연하고 싶었는데요. 동아투위 광고사태

김주언 기자님 더 건강하시도록 축원하고, 그리고

가 났을 때 사제단이 돈을 들여서 74년 12월 31일

또 민주언론시민연합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활동

인가 전면 광고를 했어요. ‘암흑 속에 횃불’이라고.

해주시길 기원합니다.

사실 그때 사제단은 정의의 화신이었죠. 정의에 목

2017년 1월 김정남 선생이 연하장을 보내왔다. 더디게 더디게 민주언론과 민주주의가 마침내 오는 2017년이 되 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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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김언경 사무처장 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보도지침 폭로 주년 기념사업

청와대 홍보 수석이 공영방송 보도국장에게 전화 걸어 시시콜콜 보도에 간섭하는 2016년. 보도지침 폭로 30주년을 시민들과 함께 기념하고 시민의 ‘알 권리’와 시민에게 ‘알릴 권리’를 되찾기 위한 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사업에 함께 해 주세요.

12월 16일

30주년 기념식 보도지침을 폭로한 사람들과 보도지침 폭로의 숨은 조력자들의 공을 기렸습니다.

시민들이 다시 펴내는

「보도지침 2016」 스토리펀딩을 통해 「보도지침」을 다시 펴냅니다. 오는 4월 말에 출간합니다.

보도지침·언론통제

온라인 사료관 보도지침 폭로 이전부터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까지의 언론통제 실상을 정리한 온라인 사료관을 개설합니다.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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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창립 32주년 기념식 후기

언론의 역할과 민언련이 해야 할 일을 재확인한 2016년 지난 2016년 12월 16일 저녁 6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강당에서 ‘창립 32주년 기 념식’과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2016년은 언론의 제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해였습니다. 동시에 ‘민주언론’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어떻게 활동해 야 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86년 보도지침을 폭로해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상관 관계를 밝 힌 사람들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친 ‘진짜 기자’들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민주언론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담았습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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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창립 32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민언련 회원들. ② 보도지침 폭로 주역인 김태홍 당시 언협 사무국장의 미망인 최옥정 여사, 신홍범 언협 실행위원,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 ③ <말> 보도지침 특별호를 제작한 박성득 당시 언협 회원과 박우정 <말> 편집장. ④ 보도지침 폭로 30주년을 기념해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새내기 김예리 회원과 최민호 활동가가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 시민 선언 ‘민 주주의와 언론통제는 같은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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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민주시민언론상을 받은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위)과 제18회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받은 영화 <자백> 감독 최승호 PD(아래).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부터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국정파탄 보도까지 사회 정치 현 안 전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주요 의제를 지속하려 노력했다. 최승호 PD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 >을 제작해 국정원이 저지르고 있는 ‘인권유린’을 폭로했다. ‘안보’라는 미명하에 국정원이 자행한 간첩조작사건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 내며, ‘국정원 개혁’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를 명확히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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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성유보 특별상을 받은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종술 시민기자는 1인 미디어라는 척박한 취재 환경 속에 서도 7년 동안 4대강 사업의 폐혜를 끈질기게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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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올해의 좋은 신문보도는 한겨레 <최순실, 미르·K스포츠재단 연루 정황> 관련 보도가 선정되었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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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왼쪽부터 류이근 기자, 김의겸 선임기자, 이완기 상임대표, 방준 호, 하어영 기자.

③ 올해의 좋은 방송보도로 뽑힌 JTBC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 왼쪽부터 박석운 공동대표, 손용 석, 서복현, 김태영, 박병현, 김필준 기자.

3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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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의 회원상’을 받은 자랑스러운 민언련 회원들. 왼쪽부터 김상경·이병국 회원, 김언경 사무처장과 나경렬·이훈 회원(위). ‘민언련 종편때찌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언론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린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팀은 특별 감사상을 받았다(아 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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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는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왼쪽부터 회원배가 활동을 열심해 해준 정청래 회원(대리 수상)과 김언경 사무처장, 사무실 리모델 링을 해준 조경민 님, 새로운 CI와 홈페이지를 개발해 준 서범기 님(위).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들은 회원 송년회에서 2016년을 빛낸, 신문 속 ‘참 나쁜 필진들’을 선정했다. 2016년을 빛낸 나쁜 신문 필진은 다음 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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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토달기 | 2016년 올해의 나쁜 필진 선정 사유 보고서

2016년을 빛낸, 신문 속 ‘참 나쁜 필진들’

보수언론의 논설위원들은 ‘개성 있는 문체’와 ‘주관적 감상’이 비교적 자유롭게 용인되는 칼럼의 특성을 악용해 극단 적 주장을 일삼고 있다.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사안에 대한 균형감 있는 인식을 제쳐두고 펜을 무차별적 으로 휘두른 셈이다. 이에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2016년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신문 지면에 소개된 기명칼럼을 대상으로 ‘올 해의 나쁜 필진’을 선정했다. 영광의 주역은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실장,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류근일 전 조선 일보 주필이다. 선정사유는 아래와 같다.

모니터 대상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종이신문 지면에 한함) 모니터 기간 2016년 1월 1일 ~ 11월 30일

‘어둠의 문사모’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실장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실장의 칼럼은 주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 세력을 겨냥한다. 단순히 친노를 겨냥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자신의 비난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논거가 모두 ‘무리 하고도 악의적인 가정’이라는데 있다. 사실과 논리에 기반한 글쓰기에 충실해야 할 신문사 논설위원의 글 이라고는 보기 민망할 정도다.

김순덕 문제 칼럼 ① 2016년 1월 4일 <丙申年, 1776년 정조와 2016년 더민주>

다 특권이 아쉬워서 그런 것이다. 왜 나쁜가?

핵심 주장

○ 민주당을 ‘반민주적 집단’으로 치부했으나 이

○ ‘노무현이 키운’ 민주당의 ‘386운동권’ ‘친노’ 세

를 뒷받침할 구체적 근거는 김현 전 더불어민

력들은 정권 탈환 뒤 초심을 잃고 특권에 안

주당 의원의 ‘대리운전 기사 폭행 혐의’가 전부

주했다. ‘주군’이었던 노무현을 두 번 죽이지

다. 한 의원의, 그것도 결론이 나지 않은 혐의

않으려면 이 ‘특권’을 놓고 떠나야 한다. 문재

를 들어 당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인과 이 친노 세력들이 만약 떠나지 않는다면,

지어 이 사건은 현재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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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왜 나쁜가?

김순덕 문제 칼럼 ② 2016년 2월 22일 <DJ는 개성공단 중단 찬성했을 것>

○ 개성공단 폐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안보관’을 의심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

핵심 주장

음에도 이 문제를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대해 부정적 견

몰아가고 있다.

해를 밝힌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북관과

○ 탄홍메이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조선한국연

안보관이 의심스럽다. 문 전 대표가 개성공단

구소 부소장의 논문을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

폐쇄 결정에 반대한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 마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 양 이야

‘계승자’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태도이기도 하다.

기하고 있으나, 이는 논문의 일부만을 인용해 의미를 왜곡한 것이다.

‘송평인의 슬픈 미래’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현재 뉴데일리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칼럼을 통해 정부 정책과 집권당을 옹 호하는데 주력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근거를 대고는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이들이 ‘합리적이 지 않다’고 몰아붙였다는 점에 있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이 지금처럼 계속 분발한다면, 이런 모습으 로 성장하지 않을까?

류근일 문제 칼럼 ① 2016년 7월 12일 <새누리 일부 사드 배치 반대, 집권당인지 콩가루인지>

류근일 문제 칼럼 ② 2016년 11월 1일 <엑소시즘 부르는 시국> 핵심 주장

핵심 주장

○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최순실 국정 농단’

○ 사드 배치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 결정에 반대

으로 ‘송민순 회고록’을 물타기 하려 하지 말아 야 하며, 박근혜 대통령 등은 최순실 사태를

하는 것은 ‘막무가내 투쟁’일 뿐이다.

‘기민하게’ 해결해야 한다. 왜 나쁜가?

○ 정부 정책에 반대 할 수 없는, 맹목적 찬성만 을 요구하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 불리지 않는다.

왜 나쁜가?

○ 최순실 일가를 비롯한 ‘삿된 기운’을 ‘퇴마’하기 만 하면 문제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결국 국정 농단 사태의 주범인 박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주장일 뿐이다. 애초 ‘삿된 기운’을 끌어들인 책임자는 박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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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노’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 ‘국가를 위한 것’임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제 송 위원의 주장은 현정부, 기득권, 친일 독재 세력의 이익에 부역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를 위해 개인 은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 역시 문제적이다. ‘애국자’가 아니라 ‘애국노’(애국 자+매국노)로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송평인 문제 칼럼 ① 2016년 8월 10일 <애국과 매국이 갈리는 뜨거운 여름>

뿐이라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법적 다툼이 된 모든 사망에서 부검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 다.

핵심 주장

○ ‘불법 시위 등으로 자초한 위험은 보호할 필요 가 없다’는 주장은 국민의 참정권과 자유권을

○ 성주 군민들은 이제 사드 배치 반대를 그만두

부정하는 반 헌법적, 반 인권적 주장이다. 설

고, 이를 받아들이는 ‘애국’을 해야 한다.

령 집회 참여 과정에서 ‘불법적 요소’가 있었다 왜 나쁜가?

할지라도 ‘죽어도 마땅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 정부의 정책에 두말없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 은 사실상 ‘애국’이 아닌, ‘정부에 대한 복종’을

정리 김형욱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ksrpg@naver.com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송평인 문제 칼럼 ② 2016년 10월 5일 <백남기 씨와 이언 톰린슨> 핵심 주장

○ 백남기 농민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했으며, 유

신문모니터를 함께 할

회원을 기다립니다 모임 일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하는 일 주요 일간지의 지면 보도를 본 후 토론을 통해 ‘보 고서로 쓰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겠다’ 싶은 주제를 정해

가족의 의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한 것이다. 사

이와 관련한 보고서를 매달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성

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 보고서는 민언련 회원 소식지인 <날자꾸나, 민언련>과 < 오마이뉴스> 등에 게재됩니다.

왜 나쁜가?

○ 가족이 ‘치료를 거부’해 병사했다고 주장하고, 지침을 어겨가며 경찰의 부검 요구 근거를 제 공한 사망진단서 문제가 단지 ‘기술적 문제’일 26

참여 문의 02-392-0181


책이야기 |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김찬호 김동춘 손아람 조국 정태인 지음·북콤마 펴냄

더 이상 절망에 익숙해지지 말자

외환위기가 터진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자아라 고 부를만한 게 형성되지 않았던 때인 만큼 내겐 그때의 기억이 없 다. IMF를 기억하지 못하니 그 이전의 기억이 없는 건 당연하다. 나 는 외환위기가 할퀴고 간 상처가 뚜렷하게 각인된 땅에서 자란 세대 다. 내가 우리 사회에 대해 갖는 인상도 상당 부분 이런 세대적 경험에 서 비롯한다. 불황이니 가계부채니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이 땅 에 고도성장이나 3저(低)호황 따위가 있었다는 게 하나의 신화처럼 느껴진다. 안방을 훈훈하게 데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마을 공동체의 모습도 생경하기만 하다. 고백하건대 이사를 온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나는 옆집 이웃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꿈이나 기회라는 단어는 신기루 같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민생은 늘 퍽 퍽했고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 기대할 만한 단서를 찾기도 어려웠으 니까. 이건 아마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이 공유하는 사회상일 것이다.

‘중산층이 꿈’인 청년세대

주변 친구들만 해도 그렇다. 한 후배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취 업이 잘 되는 과’로 전과를 하기 위해 학점에 목을 맸다. 갓 스무 살 이 된 아이가 먹고 사는 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어대는 게 어색하 지 않았다.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며 눈을 빛내던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그 어떤 안전망도 제공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한 발짝만 헛디뎌도 끝없이 추락하게 될 게 무섭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꿈을 포기했다는 사실보다 그녀가 보인 덤덤함이 더 슬펐다. 안정적 인 삶의 값이 너무나 비쌌기에 꿈이라는 기회비용은 더 이상 아까운 게 아니었다. ‘중산층이 꿈’이라는 건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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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농담이었고, 우리는 서로가 발을 헛디디지만 않길 바란다. 혹 자는 “현재의 청년 세대는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자신들 의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부모 세대가 엄청난 영광과 과실을 누리며 사는 것도 아 니다. 내 부모님은 밤낮 없는 노력에도 한번 기울기 시작한 가세를 다시 일으키지 못하셨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 실은 잊을 만하면 신문에서 또 방송에서 그 민낯을 드러낸다. 빈곤 을 체화한 노인들은 차가운 거리의 풍경과 하나가 되어 굳이 의식하 려 들지 않으면 존재감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 고 보니 지금 이곳에 깊게 배어 있는 불안과 절망은 호황이나 기회를 경험해봤는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추락하는 민생과 극대화되는 격차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다.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은 빼앗긴 지 오래다. 우리 앞에 놓인 생의 얼굴이 이렇게나 푸 석하다.

이런데도 ‘최악이 아니라’는 서늘함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은 이 땅의 민생에 대해 말한다. 다섯 명의 인터뷰이가 각자의 언어로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한 다. 종횡무진 오가는 대화의 폭은 꽤 방대해서 민생이라는 키워드로 얽힐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신자유주의라는 1997년 의 상처가 사회를 어떻게 파괴시켰고 또 파괴시키고 있는지를 소상 히 짚어주는가 하면, 친기업적 경제정책이 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에 대해 얘기하기도 한다. 민생이란 화두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데 그치는 정치권의 추악함을 비판하기도 한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삶의 퍽퍽함에 대해 진단하고 있는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냉정하고 신랄하다. 더 나아질 거야, 더 좋아질 거야.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이런 달콤한 메시지는 쉽게 눈에 띄지 않 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문제이며 왜 이지경이 됐는가’에 더 집중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손아람 작가가 ‘우리의 상상력은 아직 최악에 미치지 못했다’며 이곳은 ‘아직’ 지옥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이런 신랄함에 사로잡혀 책장을 넘기다보니 새삼 깨닫게 된 사실 이 있다. 생의 고단함에 익숙해진 스스로가 얼마나 냉담한 시선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다. 피선거권이 주어진 후부터 지금까지 얼마 28


되지 않았던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에 투표했다. ‘묻지마 투표’는 아니 었다.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서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이었고 진심으 로 변화를 바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하는 투표는 고작 국회 과반 의석을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지나 청와대 주인이 누가 될 것인 지를 결정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 고, 정치가 나의 삶, 나의 생활과 접점을 갖길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나는 정치가 민생을 개선해줄 거라고 진지하게 믿어본 적이 없는 셈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를 경계해야 한다며 설파하고 다 녔는데, 정작 스스로가 이렇게나 냉소적이었다. “보수적이 된다는 건 무관심해진다는 뜻”이라며 “판단을 중지하고 싶은 유혹이 가장 위협 적”이라고 경고하는 책의 구절이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 건 이런 자각 때문이었다.

‘박근혜 이후’ 과제는 우리의 몫

희망이 없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망이다. 없는 걸 갈 구하자니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게 당연하다. 내가 깨달은 스스로 의 냉소 역시 이런 맥락에서 당연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 히도 우리에겐 아직 희망을 가질 여지가 있다. 최근 우리는 긍지와 희망을 안겨 주는 작은 승리를 목격하고 있으니까. 몇 주에 걸쳐 식 지 않고 광장을 밝히고 있는 촛불, 이 촛불의 승리 말이다. 아직 넘 어야 할 관문은 많다. 긴 싸움 끝에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론 촛불로 표출된 열망들을 전부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박근혜 이후’로 남겨진 과제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우리 의 삶과 생활이 더 나아질 거라는 진실한 믿음을 주는 정치를 위해, 그래서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존엄함을 회복시켜 줄 사회를 위해 더 나아가야 한다. 추락하는 민생에 더 익숙해져선 안 될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언니에게서 “네 게 조카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득 조카가 태어나고 자랄 때 쯤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습관처럼 암담한 인상이 떠올랐지만 재빨리 지워냈다. 더 좋아질 것이다. 느리 더라도 세상은 변할 것이다. 아직 세상에 나지 않은 조카를 위해 희 망을 되뇌었다. 조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내일은 오늘보다 낫다’는 걸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글 송혜미 회원 shyemi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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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그들이 없는 언론> 리뷰

그들이 없는 7년, 3,000일, 3,001일, 3,002일…

2016년 12월 21일, 상암동 롯데시네마.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은 노 종면, 현덕수, 조승호,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선배가 해직된 지 삼천일 되는 날이었다. 영화가 끝 나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추스를 새도 없이 노종면 선배의 딸 해민이 얼굴 위로 핀 조명이 떨 어졌다. “아빠, 편지를 썼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내가 너무 철없는 말만 써놓은 것 같아서 못 읽겠 어….” 올해 수능을 본 해민이는 노 선배 해직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나는 입사한지 1년도 안 된 신입 기자였다.

제대로 뉴스 해보자고 한 게 이런 겁니까!

2008년 초여름, 사장이 바뀐다는 말을 들었다. 구본홍 씨라고, 이명박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하 던 사람이란다. 아직 수습 티를 못 벗은 우리도 두셋 모이면 수군댔다.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 면 안 되는 거 아냐?” 선배들은, YTN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채 기수들의 ‘낙하산 반대’ 성명이 쏟아졌고, 현덕수 선배가 단식농성에 나섰다. 사장 선임이 이뤄지던 7월, 주총장에서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고소하 겠다고 소리치는 이선아 선배, “제대로 뉴스 해보자고 한 게 이런 겁니까, 제 젊음을 다 바쳤습니 다, 이 회사에” 최기훈 선배의 오열,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홍주예 선배…. 2008년은 폭풍처럼 흘러갔다. 남대문 사옥 앞에 텐트를 친 채 여름을 났다. 6명이 해직되던 10월, 보도국에서 열린 사원총회는 너무 생생해서 요즘도 가끔 꿈에 나온다. 전두환 정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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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있는 언론인 대량 해고였다. 그래도 우리는 물러설 줄 몰랐다. 이틀 뒤, 앵커들이 ‘상복’을 뜻 하는 검은 옷을 입고 앵커석에 앉는 ‘블랙 투쟁’을 했다. 그리고 12월, 최시중 씨가 위원장으로 있 던 방송통신위원회가 YTN의 재승인 심사를 보류하며 회사 목을 졸랐다. 사내에서 침묵하던 사 람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난 건가요?

2009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촛불도 다 꺼진 그해 겨울은 유독 추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칼바람 불던 회사 뒷문, 사장실 앞 복도에서 주먹밥을 먹으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던 날들. 그 아침 집회 중의 하루, 복도에 놓인 TV는 불길이 이글대는 용산의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그 고립 된 건물처럼, 우리의 매일은 춥고, 뜨거웠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이따 금 물었다. “YTN 사태는 이제 끝난 건가요?” “거긴 이제 조용하죠?”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우리는 지금껏 두 차례 파업을 했다. 첫 번째 파업은 2009년 3월. 파업 전날 선배 4명이 체포 됐다. 이 중 노종면 선배는 구속됐다. 파업은 11일 만에 끝났고, 인질로 잡혔던 노 선배는 파업이 끝나던 날 풀려났다. 두 번째 파업은 2012년 언론노조 총파업 때였다. 비 내리던 여의도 공원과 텐트에서 1박 2일을 농성을 벌이던 밤들. KBS, MBC와 함께 있다는 위안과 곧 지긋지긋한 이명 박 정부가 끝나간다는 기대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박진수 선배의 ‘복직 송’ 춤이다. ‘Yes 복직’ 팻말을 흔들며 몸부림치는 선배 모습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지만, 우리는 얼 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늘 한결같이 절실했던 선배의 마음이 전해져, 지금도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운다. 2008년부터 이제 다시 한해가 지나 2017년까지. 그 긴 시간 동안, 해직된 선배들의 시계도 느 리지만 바쁘게 흘러갔다. 뉴스타파, 천안함 언론검증위, 국민TV, 기자협회, 책 출간, 미디어 피폭 지 국토 순례…. 선배들의 기사를 보면 ‘기쁘지만 슬픈’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선배들의 기사가 좋아서 기쁘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 좋을 텐데, 아니 같이 일하자는 말로 우리가 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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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는 것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무색하게 선배들은 끈질기게 복직의 끈을 놓 지 않았다. 지리한 시간을 거쳐, 대법원 판결이 난 지금까지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놓은 적 이 없다. 그 마음의 깊이를, 그 사적인 시계를 나는 모른다. 회사 출입증을 빼앗겼기 때문에 노조 사무실 에만 머물렀던 시간. 그마저도 어색해져 발길을 점점 줄여왔던 선배들의 시간. 아버지가 돌아가시 고 아내가 아프던 시간, 아이가 태어났던, 어린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난 시간. ‘공정방송’을 등에 써 붙인 채 컴컴한 길을 달리고 또 달렸던 시간들.

실패했지만, 옳았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우리,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수많 은 YTN, MBC 사람들을 대신해 짐을 짊어진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언론사 의 폐허, 그렇게 폐허가 된 언론을 가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앞에서 묘사한 장면은 우리가 지난 삼천일 동안 행사 때마다 마르고 닳도록 틀고 보아 와서 이 제는 머릿속에 박혀버린 장면들이다. 이 영상들이 번듯하게 극장에 걸렸다. 이제 그 영상 속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주먹을 쥐고 그러다가 웃기도 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가 YTN에 없다. ‘언 론 민영화’를 외치며 다양한 종편을 탄생시킨 이명박 정부 이후의 언론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직 사태가 없었다면 회사를 떠나지 않았을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 에도 세월의 흔적이 짙게 남았다. 이 영상들이 우리끼리의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극장에 걸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우리 이렇게 싸웠노라고, 그리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늘 이야 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지난 삼천일은 끊임없이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참히 실 패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더욱 깨닫는다. 우리의 싸움이 옳았다고. 우리가 싸운 상대는 교묘하 게 포장했지만 악이 맞았다고. 그리고 이 실패를 곱씹으며 앞으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2008 년 촛불의 학습으로 정부와 언론의 ‘폭력 프레임’ 빌미를 주지 않았던 2016년 촛불처럼. 옳으면서, 더 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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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아영 YTN 기자 slamjay@gmail.com


영화이야기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인간다운 일상이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바꾼다

노장 좌파감독 켄 로치의 귀환

“아무것도 안하고 죽는 것보다, 하고 있는 도중에 죽는게 낫다.”

<바람이 분다>(2013) 이후 은퇴를 선언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의 감독이 최근 은퇴를 번복하며 했던 말이다. 사람들은 그 의 번복을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고령의 감독이 던질 인간적인 메시지에 기대를 품었다. 여기 영국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다. 고령의 나이에 스스로 뱉 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카메라를 잡은 감독. 영원한 ‘좌파 감독’ 켄 로치다. 더 이상 자신에게 ‘극영화는 없다’고 선언한지 불과 2년, 그는 신작을 들고 돌아 왔다. 데뷔 반세기를 뛰어넘은 지금, 그는 다 시금 ‘다니엘 블레이크’란 인물을 통해 상식이 퇴보하는 세상 속 인 간의 가치를 부르짖는다.

처절한 인간 선언

그의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의 데뷔작 <캐시, 집에 오다> 와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주인공의 나이, 감독 스스로의 나이만 바 뀌었을 뿐, 부당한 복지제도와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날카 로운 시선은 그대로다. 50년 전 켄 로치가 젊은 미혼모에 자신을 동 일시했다면, 2016년의 그는 심장병이 걸린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 크에 자신을 투사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의료연금에 의존하며 죽 음을 앞둔 인물이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 간다. 이웃을 도와주고 부당한 권력과 싸운다. 자신을 관리 받아야 하는 한낱 개, 돼지로만 취급하는 제도적 폭력을 향해 그는 존중받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 켄 로치 출연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 이어, 딜런 맥키어넌, 브리

아야 마땅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영화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전하는 한편의 ‘인간 선언’이다. 심장병 과는 관련도 없는 기계적 질문을 던지는 의료 심사관, 평생 컴퓨터

아나 샨

를 만져본 적 없는 목수에게 컴퓨터로 연금을 신청하라 강요하는 행

제작 2016년 영국

정 시스템, 약속 시간에 5분을 늦었다고 위험 대상군으로 지정해 버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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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공무원. 숫자와 효율만을 최우선시 하는 무능력한 관료제를 보면서 관객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사 회적 약자의 생명선을 볼모로 잡은 그들의 폭력은, 과연 복지가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제도일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최소한 영화 속 영국 복지제도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인간 존엄성도 존재하지 않는 다. 단지 제도 속에 약자들을 가두고 절망과 가난을 정형화해, 관리하는 효율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 신을 지치게 만들고 이웃들을 등 돌리게 했던 그 철옹성 같은 시스템에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다. 컴퓨터 마우스가 아닌 다니엘 블레이크의 필체 그대로.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개돼지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렇게 처절해야 하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처절한 ‘인간 선언’을 보면, 왜 우리는 인간답게 대우받기 위해 왜 그렇게 처절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 전체에 감도는 유쾌한 분위기에 한바탕 웃다가도, 영화가 그려내는 비극적 현실에 금세 영화관의 공기는 숙연해 진다.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차치하더라도, 푸드뱅크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통조림을 뜯어내 허겁지겁 맨손으로 먹는 싱글맘 케이티의 모습에 관객은 동요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비참한 삶으로 이끌었는가?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 니엘 블레이크는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눈물 흘리는 케이티에 다니엘 블레 이크는 그 옆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절망의 순간에서 손을 내민 딱 한 마디 의 위로는, 그 어떤 복지 제도보다 더 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켄 로치 영화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현실의 일부가 된다. 도전적이고 성 취하는 인물이 아니라 연민과 슬픔, 웃음과 위로의 감정이 관객들을 끌어 당긴다. 평생을 좌파 감독으 로서 약자의 곁을 지켜온 켄 로치는 과장된 미학 언어로 관객들을 현혹하지 않는다. 지나친 수사와 선언 적 언어로 관객들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단지 가장 인간적인 감정과 보편적인 상황들로 자신이 가진 문제 의식과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말한다. 2006년에 이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두 번째 황 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은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필요하다고 34


우리는 말해야만 합니다”.

그의 데뷔작 <캐시, 집에 돌아온다> 가 만들어진지 50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세상은 더 어두워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켄 로치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한 시민이다

은퇴 이후 물고기를 조각하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강풍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렇게 꿈꾸던 의료연금 재 심사를 앞두고 그는 생을 다한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오전 9시에 열리는 가난뱅이의 장례식에서 케이티 는 블레이크를 대신해 그가 못 다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 험 번호 숫자,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 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는 단 한명의 시 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지 않았다. 하고 있는 도중에 죽었다. 죽음 앞에 서도 스스로를 위해, 이웃을 위해, 세상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끝까지 싸웠다. 인간다움을 포기 하지 않는 묵묵한 삶만으로도 싸움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문득 백만 개의 촛불이 광화문 거리를 밝힌 우리의 상황이 겹쳐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가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 에 우리는 외친다. “우린 고객도 사용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니다. 우린 다니엘 블레이크다. 존중받아야 마땅한 시민이다.”

글 이재홍 회원 ddpddpzzz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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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활동가 인사 | 최민호

진실의 힘을 느낀 민언련 다섯 달

안녕하십니까? 최민호입니다. 아직은 이름 앞에 종편 모니터, 그리고 이름 뒤 에 활동가라는 이름이 어색한 민언련의 신입 활동가입니다. 민언련에 입사한 것 이 어제 같은데 벌써 5개월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정현 녹취록으로 시작해 대 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달려온 것 같습니다. 이 소식지에 이렇게 신입 인사를 써도 되는 걸까, 고작 5개월의 시간으로 무언가 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제가 느낀 점을 간략하게 써 보려고 합니다. 촛불의 혁명이 이루어지던 그 순간까지 제가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은 그 거짓 조차 보기에 따라서는 진실과 대등해지거나,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 니다. 저는 27년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진실은 하나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팩트 (FACT)라고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실은 흔들리지 않고 영원하다 고 믿었습니다. 거짓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진실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 마음 으로 민언련에 들어와 언론개혁을 실천하고자 마음먹었죠. 하지만 실제 민언련에 와 방송 모니터 일을 해 보니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X개의 언론이 있다면 진실도 X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서로 의 사실이 다른 것은 물론이요,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하나의 보도를 보고 음, 맞는 말이네 하고 다른 보도를 보면 전혀 다른 생각이 듭니다.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코끼리는 귀가 넓다, 코끼리는 꼬리가 크다, 이 야기하는 장님의 우화처럼 말이죠. 장님의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보도에 는 일정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가공합니다. 진 실을 거짓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어느 언론이나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거짓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 “공문서 위조는 했지만 간첩조작은 아니다”, “물대포에 쓰러졌지만 병사다”, “기업에 모금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 모두 지금 이 시대의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사실’들입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들은 관계자 의 증언, 의혹, 혐의 등의 말을 붙여 진실처럼 보도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이 붙 36


은 거짓들은 진실과 같은 힘을 가집니다. 순식간에 두 세력이 만들어집니다. 그들은 내가 맞다, 네가 그 르다, 주장합니다. 당장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없으니 두 세력은 동등하게 대우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누 구나 내막이 밝혀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관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의혹이 꼬리를 물고 사건은 흐지부지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간첩조작 사건, 세월호 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민언련에서 이런 진실을 밝혀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개 시민단체에서 그것도 애송 이 활동가에게 그런 막중한 일이 가능할 리 없죠. 실제 모니터를 시작하자 진짜 같은 거짓, 그리고 가짜 같은 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보며 큰 벽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나?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말이 아닐까? ‘내가 이러려고 모니터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JTBC와 한겨레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와 시민의 촛불 혁명을 지켜보면서 어떤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거짓으로 진실을 감출 수는 있다. 그러나 영원히 감출수는 없다. 그런 자신감 말입 니다. 어느 날, 언론을 통해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밝혀진 진실은 그 고집스러운 대통령을 고개 숙이게 하 고 232만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나라 역사책에도 실리지 못했던 진정한 주권자의 투 쟁, 시민혁명의 한순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언론의 힘, 진실의 힘을 느끼게 했던 순간입니다. 촛불 혁명은 이루어졌지만 지금도 박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 그리고 일부 언론은 교묘하게 포장된 거 짓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해 줄 완벽한 정답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값진 승리를 통 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힘을 믿고 거짓의 틈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찾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 고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보지 않을지 몰라도 끝까지 길을 비추는 언론의 등대가 되는 것. 그것 이 30년을 이어온 민언련의 역할이 아닐까요?

글 최민호 종편모니터 활동가 349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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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

회원 여러분, ‘송박영신’하자고요! 사무처 활동소식

12월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로 이어지는 촛불집회와 12월 16일에 열린 보 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과 창립 32주년 기념식 준비로 안팎으로 정신없 이 보냈습니다. 12월은 원래 행사도 많은 시기지만 박근혜 퇴진과 탄핵까지, KBS 양대노조 파업도 있었고, 내외부 회의와 기자회견 등 민언련을 원하는 곳이 유난히 많기도 했습니다. 탁상달력에 적혀있는 빼꼭한 일정들 모두 중요 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다들 몸이 한 개인지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정에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연말이었습니다.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식을 치르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1984년 ‘민 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1986년 보도지침을 폭로하게 한 ‘못된 정권’의 습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한 언론이 있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고, 언론 보도에 눈 맞추고 귀 쫑긋 세우는 시민들을 보며 언론의 중 요성을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택 하겠다’는 말이 지금 상황을 절묘하게 설명합니다. 박근혜 탄핵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2016년이었습니다. 또한, 2016년은 민 언련 역사에서 네 배가 넘는 회원의 ‘폭발적 증가’와 이를 계기로 더 많은 활 동을 할 수 있는 변화의 시기로 기록될 것입니다. 2016년의 마지막 날까지 ‘송 박영신’ 범국민대회에 참여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고 또 애썼던 민 언련 모든 회원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2017년에는 승리만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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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활동소식

총무회계를 담당하는 박성원 활동가가 3개월 동안의 수습을 마치고 정규 활동가로 발령 받았습니다. 3개월, 민언련과 활동가 서로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는 시간입니다. 다행이 같은 결정을 내렸고, 앞으로 박성원 활동가를 민언련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언련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박 성원 활동가에게 짝짝짝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회원활동 소식

신문모니터위원회 이번 달 신문모니터위원회는 2016년 한 해를 빛낸 ‘참 나쁜 필진’ 3인을 선정 하고, 시상식을 진행했습니다. 행사 이후에는 선정 뒷담화 간담회를 진행하고 ‘좋은 칼럼’과 ‘나쁜 칼럼’, 나아가 ‘좋은 언론인’과 ‘그렇지 못한 언론인’을 가르 는 기준이 무엇일지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눠보기도 했구요. 13일에는 방송모 니터위원회에서 건너온 정현모 회원의 환영 파티가 열렸습니다. 이훈 회원과 나경렬 회원은 올해 민언련 회원상을 수상해 신문모니터위원회의 ‘명예’를 드 높였고요. 다음 달에도 함께, 즐겁게, 열심히 해봐요!

방송모니터위원회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방송모니터위원회가 지난 12월 29일부터 활동을 재개 했습니다. 분과장 김상경 회원과 김주리 이정진 이정화 회원이 새롭게 방송모 니터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에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합니다.

노래분과 ‘막모인사람들’ 막모인사람들은 정기공연 이후 잠시 내부를 정돈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 다. 그동안 활동했던 노래들을 영상으로 남기고, 정기공연 및 노래분과의 1년 활동을 돌아보며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에 비해 활동이 다양하고 많아졌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한 해였는데요. 평가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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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회의 결과

이사회 12월 2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2017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 논의 일정을 확정했 습니다. 예년보다 논의 일정을 앞당겨 민언련이 연초부터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아울러 2016년 11월까지 재정 운영 현황을 보고받고, 12월 예산안을 승인 했습니다.

운영위원회 12월 6일에 열린 21차 운영위는 창립 32주년 및 보도지침 30주년 기념식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보도지침 증보판 제목을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으로 결정 했습니다. 이어 2017년 3월 종편 재승인 대응책과 그 일환으로 시청자 의견서를 제출하 기로 했습니다. 한편 국회 탄핵안 가결 이후 △언론장악 특검 △방송법 개정 △언론부역 자 청산 등을 주요 의제로 배치해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습니다. 27일 열린 2016년 마지 막 운영위는 3월 대선 가능성까지 고려해 2017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기로 했고, 퇴직연금 가입 등 사무처 체계 정비와 관련한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정책위원회 12월 정책위는 전체 회의는 열지 않았습니다. 대신 1월 워크숍에서 논의할 대선 언론정책 분야별 회의로 대체했습니다.

활동 보고

오늘 신문보도 2016. 12. 1~12. 31 •문재인의 ‘최순실’?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위원의 저주 (12.1) 외 19건

어제 방송뉴스 2016. 12. 1~12. 31 •KBS는 ‘개헌몰이’ MBC는 탄핵 반대 기류에 ‘반색’, 공영방송의 현주소 (12.1) 외 22건

며칠 전 종편시사 2016. 12. 1~12. 31 •“최순실 없어도 잘하잖아?” 정치 고수 박근혜 대통령 (12.2) 외 18건

모니터 보고서 2016. 12. 1~12. 31 •[신문모니터위원회] 2016년을 빛낸, 신문 속 ‘참 나쁜 필진들’ (12. 16) •방송소위 회의록 속 종편 봐주기 심의 행태, 가관이다 (10. 27) •‘솜방망이 제재’에 ‘정치 심의’까지, 종편에 면죄부 주는 방통심의위 (12. 30) •[종편 모니터] ‘생계형 막말제조기’라는 신종 직업 창출한 종편 5년 (12. 1) •올해의 좋은 보도상은 한겨레, JTBC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보도 (12. 14)

논평·성명·기자회견문 2016. 11. 23~12. 31 •[논평] KBS·MBC, 박근혜 정권과 동반몰락 선택했다 (11. 23) 외 7건 •[성명] 검찰은 ‘박근혜 범죄 정권의 공범’ 김성우를 당장 구속하라! (11. 24) 외 4건 •[기자회견문] 지역방송은 지역민주주의의 보루! 방통위는 경인지역 시청주권 보장하라! (12. 19) 외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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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의 좋은 신문 보도 좋은 신문 보도

•‘소문의 권력실세’를 ‘국정농단 주범’으로 끌어내린 한겨레 • 매체 한겨레 • 보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 • 보도 시기 2016년 9월 20일~ • 취재 기자 최순실게이트 특별취재팀/ 김의겸 선임기자, 류이근·송호진·하어영·방준 호 기자 9월 20일, 한겨레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가 있 다는 정황을 최초로 폭로했다. 한겨레 보도는 ‘떠도는 소문’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격상시 키는 결정적 단초가 되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및 모금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두 달 전 최초로 보도한 것은 TV 조선이었다. 그러나 TV조선은 끝내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으며 송민순 회고 록 등을 빌미로 북풍몰이에만 전념했고, 조선일보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가장 늦게 지면에 소개하는 등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겨레의 보도 이후에도 상당수 언론은 비선실세 최순실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단순한 인용 보 도 수준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끊어지지 않도 록 꾸준히 보도를 이어갔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한 한겨레는 진실 을 추구하고 권력을 견제한다는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한겨레 특별취재팀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2016년 ‘올해의 좋은 보도‘ 신문 부문에 선정했다.

2016년 좋은 신문보도로 선정된 한겨레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 왼쪽부터 류이근 기자, 김의 겸 선임기자, 이완기 대표, 방준호 기자와 하어 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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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의 좋은 방송 보도 좋은 방송 보도

• ‘최순실-박근혜 국정파탄’의 진상 드러낸 JTBC • 매체 JTBC • 보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 • 보도 시기 2016년 10월 24일~ • 취재 기자 ‘최순실게이트 특별취재팀’ 손용석·서복현·심수미·김태영·박병현·김필준 기자 2016년 12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인 퇴진 요구, 국회의 탄핵 표결, 특별검사 및 국정 조사에 직면해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박 대통령은 역사상 초유의 불명예 퇴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퇴진 후 법적 처벌도 예상된다. 이 모든 사태는 지난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PC 단 독보도’에서 비롯됐다. JTBC는 권력형 비리였던 ‘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전모가 박근혜 대통령 지시 하에 이뤄진 전방 위적 국정농단임을 결정적인 증거로 보여줬다. JTBC는 ‘최순실 PC’ 보도 이후에도 대통령 측 의 사과와 해명을 치밀하게 반박하며 국민에게 사실을 전달했고 ‘박 대통령 비선진료’ 정황도 선도적으로 보도했다. JTBC 보도로 박 대통령의 ‘국정파탄’ 사실을 알게 된 국민은 ‘200만 퇴진 시위’로 탄핵 정국을 이끌어냈다. JTBC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기본적 역할은 물론, 권력의 치부를 드러 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저널리즘 정신을 몸소 보여줬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JTBC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2016년 ‘올해의 좋은 보도’ 방송 부문에 선정했다.

2016년 좋은 방송보도로 선정된 JTBC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 왼쪽부터 박석운 대표, 손 용석 기자, 서복현 기자, 김태영 기자, 박병현 기 자, 김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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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2016년 11월 8일부터 12월 20일까지 배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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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언론의 내적·외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네 가지 방안

언론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도 공범이다!” 촛불광장에 울려 퍼지고 있

계하여 KBS MBC 연합뉴스 YTN 등 공영언론을

는 주요 외침 중 하나이다. 소수 특권층의 권력유

장악했다. 이후 공영언론은 방송법이 정한 국민의

지를 위해 여론조작을 일삼는 언론의 악행을 청산

알 권리와 민주적 여론형성 책무와는 정반대의 길

하고 정상화하는 방도는 무엇일까?

에 들어서서 지금까지도 정권을 위한 거짓과 여론

2008년 이후 우리 언론은 정권과 재벌 등 소수

조작의 흉기 노릇에 매진하고 있다.

특권층의 여론 조작과 통제의 수단으로 심각히 퇴 행했고, 언론 자유도 역시 악화됐다. 그 퇴행과 악

제작·편성의 자율성 확보

화는 주로 정권에 의한 언론장악, 소수 기득권층

방송에서 제작·편성의 자율성을 회복·제고하

의 여론지배와 여론 독과점 심화, 정치적 표현에

는 일이다. 현행 방송법 제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

대한 유사검열과 인터넷 표현의 자유 제한 등에

와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업자가 방

의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회복과 진전을 위해서는

송편성책임자를 임명하고, (종합편성 또는 보도전

그 원인들을 제거하거나 완화하고, 민주적 대안을

문편성 방송사의 경우)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

제도화하는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견을 들어 편성규약을 제정하는 내용으로, 방송사

그 핵심은 ‘언론의 내적·외적 독립성을 확보하

업자가 제작과 편성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미치

는 일’, ‘95대5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완화·보완하

는 것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없는 구조이다. 정권

는 일’, ‘인터넷과 SNS 등에서 시민이 향유하는 표

과 대기업의 선의와 경영진의 의지가 없거나 약할

현의 자유 수준을 정상화하는 일’ 등 세 가지라 여

경우, 방송의 내적·외적 독립성은 구두선에 불과

겨진다. 오늘 언론포커스 지면을 통해서는 ‘언론의

할 수밖에 없다.

내적·외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네 가지 방안에 대 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 해서는 방송법 제4조에서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의 경우 노사 동수

방송장악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징계 언론인 회복

의 비율로 편성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하며,

낙하산 인사, 내부 탄압, 여론 조작·동원 등 이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편성위원회가 제청하는 인

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진 언론장악과 탄압의 진

사를 방송편성책임자로 임명하도록 하고, 편성위

상을 밝히고 그에 따른 법적·윤리적 책임을 묻고

원회가 ‘편성규약’을 제정토록 해야 한다. 또 편성

부당하게 징계당한 언론인의 원상과 명예를 회복

규약 안에 ‘노사동수로 구성되는 공정보도위원회

하는 일이다. 이명박은 불법·부당한 낙하산 인사

의 운영’과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 자율심의

와 이에 저항한 언론인 20명 해고 등 440명을 징

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도록 하고,

44


편성위원회로 하여금 ‘보도·제작·편성 분야의 간

나, ‘이명박근혜’보다 모진 정권을 만나 재차 방송

부의 임면 제도’를 직선제·임명동의제·추천제 중

이 장악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방안이다. 수

한 가지, 중간평가제·소환제 중 한 가지를 선택하

구 기득권층의 구조화된 여론지배와 여론 독과점

여 운영하도록 하고, 편성위원회의 구성·운영의

그리고 수구 기득권층 집권 시 반복돼온 언론장

내용을 사안별로 즉시 사내에 공개하고 매년 정기

악 행태 등을 감안할 때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는

적으로 대외 공표하도록 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정부의 공영방송 장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악이나 권경언 유착으로 보도기능을 지닌 방송사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협치를 위한 사장

의 독립성이 현저히 훼손되어 방송이 조작과 기만

과 이사 임명방식 곧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의 흉기로 전락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그 회복이

다. 그 핵심은 정권에 의한 낙하산 사장 투하가 재

요원하다고 일정 규모 이상의 시청자(선거권자)들

연되지 않도록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 민주적 협

이 판단, 2)청원의 방법과 청원인의 크기 등 법률

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은 정부여당

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여 방송의 일시적 중지를

이 공영 미디어 이사의 절대다수를 추천하도록 함

방송통신위원회에 집단 청원, 3)방송통신위원회가

으로써 이사회를 자신의 호위대로 삼고 이를 통해

해당 방송사의 일시적 방송중지에 대한 찬반 의견

낙하산 사장을 투하하는 것을 견제할 장치가 없

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 4)조사결과 방송중지에

는 상태이다.

대한 찬성이 과반일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공개

이에 대해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에서는 공영

적이고 전문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일시중지

방송 이사회를 여당이 7인 야당이 6인을 추천하

할 채널, 기간, 시간, 활용방안 등을 정해 집행하

고, 사장을 이사 2/3 이상이 찬성하는 특별다수제

는 것이다.

를 통해 선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

여기서 활용방안이란 중지 기간과 시간 동안 단

만 다수독재를 일삼아온 여당의 생리에 비추어 이

순 정파하는 것부터 별도의 운영진과 편성위원회

러한 방안으로는 공영언론의 정권 도구화를 막을

를 꾸려 독립성을 훼손당했던 기자·PD 등 해당

수 없고, 소모적인 정쟁의 늪에 빠지는 부작용도

방송사 실무자와 저널리스트로서 신뢰할만한 외

피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사의 일정

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사회조합채널

수를 의석에 비례하여 여야가 추천하고 나머지 일

로 편성·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정 수를 관련 학회와 시민단체 등 중립 영역에서

이 방안은 청원의 방법과 청원인의 크기, 여론

의 추천하도록 하여 사안에 따른 이합집산이 가

조사의 방법, 관련 재원의 조달방식 등에서 부작

능하도록 하며, 사장선임에 대해서는 사장추천위

용이 없도록 세심히 만들어져야 한다. 이 방안은

원회 제도의 도입을 통해 정권에 의한 낙점을 원천

방송의 독립성 훼손과 퇴행에 대한 1)국민적 저항

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권을 보장하고 2)처분의 실효를 제고함으로써 방 송의 공적 기능과 방송에 대한 국민주권을 보장· 제고하는 최후 저지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중지 특별청원제도 도입

이는 위 세 가지 방안이 불충분하게 진행되거 2017년 1월

글 신태섭 전 상임대표, 동의대 교수 sts19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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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언론의 근본적 변화는 구조적 문제 해결부터

공영방송 정상화가 적폐청산의 출발점이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일언반구 반성도 없이 개혁의 주체인 양 행세하고

안이 가결됐다. 위대한 촛불의 힘이다. 그러나 촛불

있다. 촛불이 꺼지고 상황이 바뀌면 언론은 언제 어

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날 광화문에서 다시 타

떻게 표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올랐다. 국정농단이 박근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

그러기에 언론의 발본적 개혁 없이는 오늘의 적

며, 바로 지금이 우리 사회 곳곳에 쌓인 적폐를 청

폐청산 논의는 무망한 일이다. 언론개혁이 우선되어

산할 적기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야 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촛불이 언론의 문제를 심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적반하장, ‘매 든 자’를 감시하라

“언론도 공범이다”는 단발성 외침만으로 언론은 변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수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시민들이 언론에 돌팔매질을

구 언론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다음 날

하기도 했고 5.18 광주항쟁 때는 방송사 건물을 불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 담화를 발표하자 봇물 터진

태우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저 현장의 기자들에

듯 ‘최순실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45일 동안 6차례

게 불만을 표출하고 욕설을 퍼부어 언론사 내부의

의 촛불과 보도홍수 끝에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

각성을 촉구하는 정도다.

통령은 “피눈물이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알겠다” 고 했다. 수족 같았던 정치인들의 배신이 뼈에 사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언론 개혁’ 시작이다

쳤고 주야로 박비어천가를 읊어댔던 언론의 돌변에

그러나 일회성의 문제 제기에서 좀 더 나아가 언

치를 떨었을 터이다. 그러나 모두 자업자득이다. 억

론의 구조적 문제에 끈질기게 천착하지 않는다면 언

울해할 일도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론의 근본적 변화는 요원한 일이다. 이를 위해 신문

문제는 적폐의 대상이었던 언론이 느닷없이 적폐

시장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조중동 족벌신문들의

청산의 주역으로 둔갑한 것이다. 2년 전 정윤회의

수구적 논조를 비판하는 일과 병행해서, 이들의 불

국정농단을 언론이 제대로 파헤쳤다면 이 사태가

법성과 반시장성에 대해 합당한 제재를 가해야 한

이처럼 눈덩이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4년 전 대

다. 정부의 종편 특혜정책과 약탈적 광고영업에도

선정국에서 언론이 진실을 보도했다면 박근혜 정권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이 제기되어야 한다.

은 탄생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제때 제 역할을 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

피하고 그렇게 국민을 기만했던 언론이 이제 와서

영방송이 권부의 스피커로 전락한 현실이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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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과정에서 KBS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이 명백히

했으나 2인의 새누리당 의원에 발목 잡혀 5개월

드러났고, 정권에 부담스러운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가까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래창조

KBS, MBC, 연합뉴스TV, YTN 등에 대한 보도통

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의 박대출 새누리당

제가 어김없이 이루어졌으며, 공영방송의 임원 선임

간사가 법안상정은커녕 관련 논의조차 거부하고

과정에서도 청와대의 입김과 전횡이 작용했음이 고

있는 것이다. 법안상정의 권한을 쥔 신상진 미방위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밝혀졌다.

위원장 또한 박대출을 앞세워 법안상정 의무를 기

특히 공영방송 MBC의 현실은 참담한 지경이다.

피하는 부작위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신 위원장

기존의 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 상당수가 취재·

은 당론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과 여야 합의의 원

제작현장에서 쫓겨나 광고영업, 스케이트장 관리

칙을 이유로 소위원회 상정을 기피하고 있지만 언

등 엉뚱한 일을 하고 있고, 그 빈자리는 권부의 입

어도단의 궤변이다.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에서 당

맛에 맞는 경력사원들로 채워졌다. 인종청소를 방

의 입장이 ‘절대 선’이 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이

불케 하듯 수십 년 동안 축적된 MBC의 유전인자

며, 박대출 간사 한 사람의 고집을 당의 입장으로

를 강제로 바꾸려는 패륜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

규정하고 있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뉴스 시청률이 사상 초유

촛불은 이 문제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의 2퍼센트대로 떨어졌고, 기자들은 시민들로부터

언론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론개혁

욕설을 듣고 쫓겨났으며, 취재현장에서 MBC로고

은 해결 난망이며 언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를 떼고 방송을 하는 상황까지 왔다. 정권의 입김

촛불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 곳곳의 적폐청산 또한

이 공영방송 사장에서 현장 기자에까지 영향을 미

어려워진다.

치는 이 가공할 지배구조의 사슬을 끊지 않는 한,

마침 여야 3당 원내대표가 12월 29일까지 임시

“언론도 공범이다”라는 촛불의 외침은 한낱 구두

국회를 열고 상임위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반가

선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운 소식이며 합당한 결정이다. 이런 현실 인식 속 에서도 박대출과 신상진의 몽니가 계속된다면 그

새누리, 언론 개혁 첫걸음을 막지 말라

것은 오늘의 탄핵 민심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21일 지배구조 개선을

며 박근혜와 함께 탄핵되어 마땅하다.

최우선 과제로 야 3당과 무소속이 포함된 160명 의 의원들이 방송장악금지법안을 공동으로 발의 2017년 1월

글 이완기 상임대표 wklee10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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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종편 ‘보도 행태 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

종편의 변심, 그 이유는?

전 국민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뜨린 박근혜-최순

했다. 최순실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해 ‘국정 개입’의

실 게이트는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지상파 방송사의

구체적 정황을 보도한 또 다른 종편 <JTBC>에 의

위상을 흔들어 놓았다. 그동안 방송 시청률에서 기

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

득권을 누려왔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번 박근혜-

다. 시청자들은 드러난 권력의 실체에 대해 허탈해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시청률 경쟁에서 종편에 참

하고 분노하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언론의 ‘권력 비

패를 당했다.

판’ 보도를 반겼다.

그동안 후발 주자로 시청률 경쟁에서 지상파 방

이후 모든 종편 방송사들은 정규 시사토크 프로

송사에 밀렸던 종편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그램뿐만 아니라, 뉴스특보와 뉴스특집 프로그램을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대중 앞으로 이끌어내면서 일

편성하면서 거의 매시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

약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중들은 매시간 박

련 내용을 방송하고 있다. 정부가 종합편성으로 허

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쏟아내

가한 허가사항과 달리 이미 시사보도 전문채널로 전

는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하

락한 종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의 실시간

고 있다.

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소식을 시청자들 에게 전달하며 시청자들의 정보소비 욕구를 충족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수’를 맞은 종편

켜 주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는 TV조선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2014년 최순실과 갈등을 빚 게 된 고영태로부터 비선실세 최순실 관련 제보를

종편이 ‘주인을 무는’ 이유 1 -‘썩은 동아줄은 놓는 것이 상책’

받은 TV조선은 1년여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쳤고,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지난 7월 관련 내용을 처음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

이명박 정부의 특혜로 출범해 박근혜 정부 탄생에

일보> 송희영 주필 사건이 터지면서 <TV조선>이 관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와

련 사건에 대한 보도에 주춤해 이 사안이 묻히는 듯

밀월관계를 유지해오던 종편이 왜 갑자기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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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옹

해 시청자들에게 자세한 해설(왜곡과 편파적인 정

호하거나 보호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공격하는

보임에도 불구하고)을 함께 제공해 줌으로써 시사

입장으로 돌아선 것일까?

토크 프로그램의 오락화를 이루어 시청률을 지속

TV조선, 채널A, MBN 등 JTBC를 제외한 종

적으로 끌어 올려왔다.

편들이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던 그동안의 보도 태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도 전 국

도를 바꾼 첫 번째 이유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민의 관심사인 대통령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라

게이트가 박근혜 정권 말기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

는 매우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를 적극적으로

문이다. 이미 레임덕 상태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의

활용해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시청률 경쟁에 뛰어

비리를 덮고 넘어가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

들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편성해

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

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달리, 뉴스특보와 뉴

지율 하락이 지속되고 있는 임기 말 대통령을 지

스특집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활용해 거의 하루

지하다가 대통령과 함께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

종일 뉴스 토크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새로운 정보

감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나 옹호 대신 비판으로

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주는 전략을 통해 시

돌아선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청률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얼마 남지 않은 대선 과정에서 보수정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일정 부분 달성된 것으로

권 재창출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그리고 현 정

보인다. 종편은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 비선실세 비

권의 부정부패를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합리적이

리 관련 이슈를 실시간 업데이트한다는 방송 전략

고 정의로운 보수언론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차

을 통해 시청률을 지속적으로 견인하고, 박근혜-

기 대선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통해 그동

략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종편의 박근

안 종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태도의 변화는 차기 대선

젊은 층과 중도성향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에서 보수정권 재창출과 이를 통한 자신들의 이익

적극 활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종편의 변심은 그 이유가 분명하다.

극대화를 위한 치밀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종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종편이 ‘주인을 무는’ 이유 2 -‘시청률은 보수정권

시청자들을 종편의 시청 층으로 끌어들여 시청률 경쟁에서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새로운

재창출의 자본’

두 번째로 JTBC를 제외한 종편들이 박근혜-최 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과정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보수정권 재창출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 해 레임덕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을 버린 것이다.

취하는 이유는 시청률 확대를 통한 지상파와의 경 쟁을 위해서다. 종편은 출범 초기 일명 ‘애국가’ 시 청률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 했다. 그런데,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편성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분야뿐만 아니라 문 화와 연예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뉴스와 이슈에 대 2017년 1월

글 최진봉 정책위원, 성공회대 교수 choi01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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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민중총궐기를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 심정 빙의 글

‘격세지감’·‘음수사원’이 떠오르며 자괴감에 울컥

지난 11월 12일 저녁, 어디에 계셨습니까? 뒷산

“지금 이 시각 서울 도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에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고 있으시지 않으셨

퇴진을 요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

는지요? 필녀인 전 외롭게 지냈습니다. 개인사들

리고 있습니다. 오늘 8시 뉴스는 평소보다 30분

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은 터라 괜히 밖에

일찍 시작해 2시간 동안 특집 뉴스로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화를 당할지 몰라 지인을 불러볼까 생각

참가한 민심을 전해 드립니다. 먼저 광화문 광장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에 저장해

로 가 보겠습니다.”

놓은 전화번호 10개가 모두 불통이었습니다.

이날 SBS 뉴스는 30분 일찍 시작하더군요.

만약 제가 밖에 나간다면 어떤 옷이 좋을까 생

<100만 명 모였다. 이 시각 광화문>이라는 리포트

각했지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써 보려 해도

를 시작으로 <청와대 1km 앞까지 행진>, <“대통

빨간펜이 없어 그만뒀습니다. 거울을 잠깐 보다가

령 하야” 한목소리>, <‘혼참러’, 수능생, 연인들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겨우겨우 점심을 먹었습

나왔다>, <종교계도 “퇴진하라” 한목소리> 등 온

니다. 여건이 좋지 않을수록 새로운 비전과 창의적

통 촛불 소식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2시

인 발상, 그리고 도전 정신으로 앞으로 과감하게

간 15분을 편성했다고 합니다. 뉴스 공백이 있을

달려 나가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요즘 들어

것 같아 MBC로 채널을 돌렸습니다. 첫 뉴스의 제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는 일이 많아 참 가슴이

목은 <100만 명 모였다 ... 이 시각 광화문>이었습

아팠습니다. 깊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잡념을 버리

니다. 이어진 앵커의 멘트를 듣자 식은땀이 흘러내

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했습니다. 머리가 한결 깨

렸습니다.

끗해졌습니다. 요즘 미디어를 잘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 합니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잭 팟 터트린 외

“분노한 민심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습니다.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지난 87년 6월 항쟁 때와 맞먹는 숫자입니다.”

교’, ‘유창한 외국어’, ‘레이저 눈빛’, ‘링거 투혼’, ‘선

뉴스는 8꼭지에 걸쳐 촛불집회 관련 내용을 전

거의 여왕’ 등 온갖 좋은 말을 해주던 기자들이

했습니다. 제목을 일부 과격하게 단 것처럼 보였지

더 이상 장점을 보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만 내용을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국민의 준엄

엔 예능 프로그램도 문제가 많이 있어 보여 토요

한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겸허한 자세로 민심

일 저녁 음식 소개 프로그램을 보기로 마음을 먹

을 듣겠다”, “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가 국

었습니다.

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

50


는 등 야당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만큼 향후 추이

>, <청와대 길목 집회 ... 이중 차벽 설치> 등 19건

를 고민하고 있다” 등 민심을 수습하려는 의지를

의 뉴스로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한 뉴스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

표현해 주고 있었습니다. 시민 인터뷰는 “민주주의가 자리를 되찾고 성

습니다. 어제 <靑 “시술 의혹 유언비어 경내서 정

숙할 수 있는 계기”,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면

상 집무”>라는 ‘앵커&리포트’를 통해 ‘성형 시술 의

안 될 것 같아서”, “저희도 어렵게 1대 구해서 지

혹은 유언비어’이며, ‘정상 집무’를 했고, 심지어 ‘내

금 올라왔습니다”,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하는 마

시경을 할 때도 수면 마취를 하지 않는다’고 전하

음으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오게 됐고요” 등

면서 “사실이 아닌데 악의적으로 의혹을 부풀려

약간은 공감이 갈만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보도하는 건 중대한 명예 훼손”에 해당된다고 했

그런데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본인께서 그

습니다.

법을 어겼다면 더 이상 대통령 자리에 있을 이유

뉴스를 보고나니 ‘격세지감’과 ‘음수사원’이란 말

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전 저

이 떠올라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

도 모르게 “수사가 진행 중인데”라는 말이 터져

힘이 들었습니다. 10월 25일 녹화해 사과문을 내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MBC 로고가 없이

보내기 전까지 방송 3사에서 ‘게이트’는 단연코 없

현장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약간 의아스러웠습니

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독’을 붙이며 이것저것

다. 이후 미국 트럼프를 보면서 자신감도 찾게 됐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고, 소방관들이 일할 때 소음에 시달린다는 것도

지금 일부 언론들은 질문까지 한다고 야단입

알게 됐습니다. 기분이 약간 좋아져 국민의 방송

니다. 제발 ‘음수사원’이란 말을 되새겼으면 합니

KBS를 봤습니다. 그런데 <끝없는 촛불 최대 규모

다. 이러다가 이러려고 질문을 받았나. 자괴감이

집회>라는 뉴스가 나와 놀랐습니다.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는 세상을 보는 창이라

“‘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는 시국집회 이른바 <

고 합니다. 창이 깨끗해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려

습니다. 아 또 다른 필녀가 산을 내려가고 있군요.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는 앵커의

저 역시 따라가 봐야겠습니다.

말을 시작으로 기자를 현장 연결해 별 중요하지

글 이기범 웹진기획위원 bumcom@daum.net

않은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친 구끼리 ... 변화한 집회 문화>, <성숙한 시민 ... 평 화로운 집회>, <진압 대신 안내 ... 경찰 대응 변화

* 이 글은 ‘박근혜 대통령’에 ‘빙의’하여 ‘박근혜 1인칭 시 점’으로 쓴 것임을 밝힙니다.

2017년 1월

51


시시비비 | 촛불엔 ‘의심’, 청와대엔 ‘신뢰’하는 종편 행태

100만 촛불 앞에 CCTV 자처하는 종편은 언론이 아니다

0. 0. 시민 연행자 0명, 경찰 부상자 0명

촛불집회 중계방송을 했던 채널A와 TV조선은

4차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아무도 다치거나 끌려

연행자와 부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집회 결과가

가지 않았다. 대다수의 언론들이 ‘축제로 자리 잡

다소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중계방송

은 촛불집회’라거나 ‘꽃보다 아름다운 평화의 촛

내내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을 찾아내려 애쓰는 흔

불’, ‘평화시위의 교과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

적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히 이번 집회는 수능을 마친 고교생을 포함한 학

타 방송사들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목소리

생들이 대거 참여한 집회라 어른들이 성숙한 시민

를 들려주거나 평화롭게 축제를 즐기듯 어우러지

의식을 보여주려 함께 노력한 흔적을 고스란히 느

는 모습들을 보도한 것과 달리 두 보수 종편 방송

낄 수 있었다.

사들의 화면에서는 반/반으로 나뉜 모습이 주로

행여 폭력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타났다. 방송화면의 반은 어두컴컴한 경찰의 헬

어른들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내며 함께 촛불

멧으로, 나머지 반은 빼곡한 시민들의 모습으로

을 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300여 명의 아이들을

채우고 있었다. 채널A와 TV조선의 방송은 촛불집

지켜내지 못했지만 국민은 수천, 수만 명의 아이

회의 중계방송이 아니라 폭력의 증거를 찾기 위해

들을 앞으로도 쭉 지켜낼 것이다.

클로즈업한 CCTV였다. 지난 3차 촛불집회 때 TV조선은 20건의 뉴스

폭력 찾아 눈에 불 켜는 종편, ‘채널 CCTV’

보도를 하면서 폭력 상황 발생 여부에 촉각을 곤

이렇게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국민들의 함성에

두세웠다. TV조선은 청와대 앞 내자동 로터리 집

도 불구하고 보수언론들은 여전히 귀를 막고, 해

회 상황을 보여주면서 “시위대 중에서도 과격한 주

서는 안 될, 하고 싶은 말만 골라 하고 있다. 그동

도세력이 있는 것 같다. 차로 밀고 오면 위험하다.

안 진실을 덮으면서 덩치를 불리고 커질 대로 커져

경찰이 다칠 수 있고 뚫리면 청와대까지 걷잡을

버린 보수언론들에 대한 책임이 느껴져, 아이들에

수 없다”(11/12)라고 방송했다.

게 어른으로서 참 미안하다. 52

<평화적 대형 집회 전통 만드나>의 타이틀을 내


보내면서도 “폭력 행위 하나로 전체의 폭력사태로

데에도 언론이 할 일이 많다. 하지만 TV조선은 박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경찰도 유연 대처할 필요가

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덮고 왜곡하기에 여념이 없

있고 시위대도 목소리 충분히 내고 있으므로 폭력

다.

행위까지는 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쪽에 깃

TV조선은 국가 2급 비밀인 대통령의 혈액이 유

발 흔들리는 모습 보이는데 자세히 확인 안 되는

출된 것에 대해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며 문제의

데 노조나 단체 상징하는 깃발인 것 같다”고 말했

본질을 왜곡하였다. 박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대해

다. 채널A는 이날 방송에서 내자동의 ‘탈진 환자

서도 불법성과 특혜의혹은 묻어두고 “박근혜 대통

발생’ 사태만 6건에 걸쳐 긴 시간 할애했다. 내자

령이 고령의 여성이고, 가족을 멀리해 그런 듯”하

동 및 경복궁 앞 사거리 등 청와대 앞 상황을 10

며, ‘청와대에 특수 미용 주사제’가 없기 때문에 비

여 건의 보도로 방송하면서도 “충돌 가능성은 없

선 진료를 받았다고 방송(11/17)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직을 그대

다고 보시면 됩니다”라는 멘트를 반복한 SBS와도

로 유지하든지, 아니면 탄핵을 당하든지, 둘 중 하

대조적이었다. 12일과 13일, 언론사들은 일제히 ‘비폭력 평화

나”라 강조하며 오히려 ‘대통령 버티기’에 ‘야당 책

집회’에 찬사를 보냈지만, TV조선은 <최종 23명

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검찰 조사뿐 아니라 국민

검거>를 강조하며 “이번 촛불집회는 외신도 극찬

적 요구인 하야와 퇴진도 거부하고 지지층 재결집

할 정도로 평화롭고 안전하게 진행됐”지만 “‘옥의

에 나선 청와대에 대하여 “이 같은 판단은 결국 대

티’도” 있었다고 ‘내자동 폭력 상황’을 전했다. 기자

통령직 유지를 위한 핑계일 뿐, 여론 수렴이 기본

는 일부 시민들의 물리적 충돌 장면을 보여주면서

인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고, 잘못에 대한 책임

“일부 시위대는 경찰의 방패를 뺏거나 헬멧을 벗

회피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대목”(11/17)

기기도 했”다고 했는데 정작 시민들이 방패를 다

이라고 질타하는 JTBC와는 많이 다르다. 이처럼 끊임없이 국민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는

시 돌려줬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보수 종편 방송사는 100만 국민의 촛불이 보여주 언론이 할 일 외면하는 종편

는 엄중함을 진정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가. 아

촛불로 민심을 표현하는 국민을 보도하는 것도

니면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서도 얻으려는 게 있기

중요하지만 지금 사태의 진실을 찾아내고 잘못을 짚어내어 국정을 바로잡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때문인가.

2017년 1월

글 이병남 정책위원, 언론학 박사 lisa0912@nate.com

53


시시비비 | 질의응답 없는 청와대 기자회견, 기자들이 먼저 거부해야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도 있다

기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

된 데에는 그동안 언론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지

“길지 않게 메시지만 전달하고 들어가신다. 질

못한 탓도 크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언

의응답 할 시간이 없을 거다 … 다시 말하지만 질

론이 박 대통령의 주변을 더 적극적으로 검증했다

의응답 상황과 분위기 아니다”

면? 2014년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이 터져 나왔을

지난 11월 29일, 대통령의 세 번째 대국민담화

때 언론이 의혹의 실체를 더 물고 늘어졌다면? ‘대

를 10분 앞두고 청와대 춘추관장은 기자들에게

통령의 7시간’에 대해 더 파고들었다면? 지금과 같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은 자기 할 말만 하

은 처참한 결과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 들어갈 테니 그리 알라는 통보다. 그간 청와대 가 어떻게 국민을 대해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지

기자, ‘저항’해서 ‘정상화’하라

만, 한편으로는 기자들이 얼마나 얕보였길래 저럴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새삼 관심이 쏠린

까 싶었다.

지금이 기회다. 풀어나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

기자들이 기자회견의 들러리로 앉아있는 광경,

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감시

이번 정부 들어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박 대통령

와 검증의 기회를 대폭 늘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

은 드물게 있는 기자회견 때마다 각본에 따라 질

다.

의응답을 했다. 질문할 사람도, 질문도, 응답도 다

우선, 지금껏 되풀이되어 온 ‘짜고 치는’ 대통

정해져 있는데 대변인은 ‘질문 있는 기자 손을 들

령 기자 회견을 기자들이 먼저 거부해야 한다. 통

라’며 국민들 앞에서 회견 장면을 연출했다. 청와

상 대통령 기자회견을 앞두고 청와대와 출입기자

대의 국정홍보 쇼에 동원된 기자들을 보며 착잡했

들은 질문 개수와 내용 등에 대해 사전 조율을 한

지만, ‘저 사람들이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하는 마

다. 그런데 대략적인 질문 주제에 대해 공유하는

음에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도가 아니라, 질문지, 질문할 기자, 순서까지 미

몇 달 동안 이어진 ‘최순실 정국’을 언론이 주도

리 정해놓으면서 아예 각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사태가 이 지경이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원치 않는 질문이 제외되

54


(공직선거법에서는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후보자토 론회는 3번 이상 할 것을 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양자 토론이 아니라 다자토론으로 진 행되다 보니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어 려웠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후보들에게 배포하고 후보들이 준비된 답안을 읽 어가는 경직된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후보자의 생각을 검증할 수도 없었다. 결과를 두고 하는 얘 기지만, 지난 대선에서 충분한 토론의 기회가 있 었다면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진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 횟수 자체를 대폭 늘리는 문 제, 토론의 방식에 있어 현장성을 강조하는 문제 등을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 가 아니다.

청와대는 12월 초 대통령이 최근 벌어진 일과 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해서는 현안에 대

관련해 끝장토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한 대통령의 생각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 자체가

토론을 피해 온 대통령의 성향과 그의 지금 처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언론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를 감안할 때, 토론다운 토론이 정말 진행될지 매

전달하는 메시지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우 의문이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일방적 정견발표

는 사전조율 없이 대통령과 기자들이 질문을 주

회를 진행하려 한다면, 기자들이 이를 거부해야

고받다 보니,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는 질문이 나

한다.

오고, 대통령이 기자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도 종

백악관 최장수 출입기자였던 헬렌 토마스가 했

종 볼 수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나서서, 앞으

다는 말들이 요즈음에 와서 유독 뼈아프게 들린

로는 사전 조율 없는 생방송 기자회견이 아니라면

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기자회견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사회가 아니다.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

한다.

은 왕이 될 수도 있다”. 준비해 온 원고만 읽고 자

제도적으로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부터라도

리를 뜨는 정치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철저한 검증 기회가 충분 히 보장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이 방송으로 박 대통령의 토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3번이었다

2017년 1월

글 정민영 정책위원 minyoung.ch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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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죽어가는 권력보다 살아있는 권력 ‘재벌’을 감시하라

권력 농단의 뿌리 재벌이 물린 재갈, 이젠 벗어 던져야

‘식성’을 바꾼 ‘하이에나’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맹수’를 사냥하라

언론의 자유가 활짝 핀듯하다. 권력 앞에 주눅

그러나 이미 저항할 힘을 잃어가고 있는 권력을

들어 아첨을 떨어대던 몇 달 전의 언론이 아니다.

짓밟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만만해진 정치권

특별 취재팀을 편성하여 연일 숨겨진 진실과 사건

력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초라한 몰골로 주권

의 조각들을 들추어낸다. 정권의 비리와 국정 농

자인 시민 앞에 끌려 나와 있을 뿐이다. 정작은 살

단은 군침 도는 먹잇감이다. 온갖 상상과 추측까

아있는 권력을 어떻게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

지 양념으로 곁들여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지폈

냐다. 여전히 언론 통제의 시퍼런 날을 휘두를 수

다. 불쏘시개에 기름을 붓는다. 상업언론들에겐

있는 권력은 바로 재벌이다. 그들이 내미는 광고와

잘 팔리는 뉴스거리를 주는 꿀단지다. 드라마보다

협찬비는 언론의 돈줄이며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다는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률 팔이도 쏠쏠

삼성에 비판적 보도를 했다가 광고가 끊어진 트라

할 것이다.

우마도 생생하다.

<TV조선>을 비롯한 종편들이 쌍심지를 켜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더 날뛰는 모습이다. 권력에 부역했던 자신들의 켕

재벌은 권력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의 모습으로 분

기는 모습을 씻어내기라도 할 듯한 기세다. 마침

장하고 나타났다. 시민들은 무능한 정치권력을 내

내 멈칫거리던 공영방송마저 대열에 동참한다. 정

세워 온갖 잇속을 챙기는 해괴한 국정 농단의 뿌

치적 입장과 논조마저 다 팽개쳤다. 선명하게 날을

리엔 재벌이 있음을 간파했다. 재벌들은 경제민주

세운다. 하이에나 근성을 보여준다. 이참에 권력에

화라는 공약을 호기롭게 내걸고 개혁이라도 할 듯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감시견으로 보이고 싶은 심

한 기세였던 정권을 유혹하고 부리면서 자신들의

산일지 모른다. 기자들도 덩달아 신명 난 듯하다.

충직한 심부름꾼으로 만들어갔다. 언론과 정치권,

언론 권력 맛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예능 프로그

관료, 검찰 등 기득권 세력도 재벌의 손아귀에서

램에도 시국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들로 봇물을 이

자유롭기 어렵다. 이익조직인 전경련은 그 선봉대

룬다. 박근혜 정권 조롱이 국민 예능이 된 듯하다.

였다. 시민단체나 인터넷 카페로 위장한 전위조직

56


들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지원했다. 어버이연합을

신의 소나기를 피하려는 얕은꾀가 아닌가하고 별

비롯해 극우 정치단체들을 앞세워 여론을 호도하

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하다. 힘 빠진 권력을

고 시민의 활동을 방해했다. 재벌과 박근혜 정권,

난도질한다고 비판적이고 양식 있는 기자가 되는

새누리당이 한 통속이 된 여러 정황이 뚜렷하다.

것은 아니다. 살아있으면서 좀 더 긴 생명력을 가

그런데 언론은 청와대 심처는 샅샅이 뒤지면서 도 뿌리인 재벌의 행태와 범죄는 좀처럼 파고들지

진 재벌을 어떻게 감시하느냐에 진정한 기자정신 이 달려있다.

않는다. 그저 조금 드러난 사안만 간간히 보도할

수백만 촛불로 드러난 민심은 단순히 박근혜 정

뿐이다. 집요하게 추적하고 온갖 정책과 국가 운영

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체제를 전면

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치열하게 취재하는

재편하여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부당

흔적은 없다.

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외침이다. 서민과 노동

양쪽을 오가며 심부름했던 전경련 핵심간부에

자들의 고통과 희생을 자양분으로 공룡처럼 몸집

대한 추적 취재와 보도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처음

이 커진 재벌체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특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요

과 반칙, 억압과 차별이 없는 평등하고 공정한 사

설과 거짓증언으로 국민을 속이려 한 인물인데도

회를 향한 거대한 시민혁명이다.

말이다. 검찰도 이들에 대한 수사에는 비중을 싣

이 체제의 가장 강고한 뿌리인 재벌. 재벌에 대

지 않는다. 박근혜 무리에 대해서는 작은 의혹을

한 비판과 감시 없이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은

탈탈 털던 기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없다. 저절로 불거지거나 드러난 것만 을 그저 받아쓰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취재와

‘몸 피한’ 재벌을 감시하는 것이 진정한 기자정신

질문 없이 받아 적는 기자들은 그저 홍보직원일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뿐이다. 언론과 기자정신은 잠깐의 눈속임이냐 아

고 한다. 공정보도위원회를 요구하면서 편집과 보

니면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함께 하느냐의 갈림길

도의 쇄신을 주장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에 서 있다. 불법과 뇌물로 정치권력을 앞세워 온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기자들은 반성한다고 했다.

갖 이익을 탐한 재벌의 실상을 파헤치고 보도하지

기레기라는 시민들의 조롱에 참담함을 느끼고 진

않는 기자정신은 가짜다. 줄줄이 국정조사 청문회

정한 기자정신으로 되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불

에 불려 나온 재벌들. 시민들은 언론보도를 부릅

과 2년 남짓 전이다.

뜨고 지켜본다.

시민들은 이 다짐과 반성이 쏟아지는 비난과 불

2017년 1월

글 정연우 정책위원, 세명대 교수 58cy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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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갈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

탄핵이 끝인 언론, 탄핵이 시작인 언론

2016년 12월 9일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또 하나

됨은 물론이고 온갖 거짓 정보조차 우리 편이라는

의 이정표가 만들어진 날이다. 한국 현대사의 큰

이유로 눈감아 주는 일이 일어난다. 여기에 그치

병적 존재가 균열을 보인 날이기 때문이다. 박근

지 않는다. 특정한 행동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거

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칠고 지저분한 표현들이 등장하여 말하는 사람과

의원도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탄핵에 동참하여 이

말을 듣는 사람이 모두 인격과 인권에 손상을 입

른바 한국 정치의 가장 암적인 현상이라 할 ‘진영

게 된다.

론’이 허물어지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하 는 사람이라면 보수든 진보든 한국사회에 만연해

탄핵의결 과정에서 본 진영론의 붕괴 조짐

있는 진영론을 우려하는 이유가 이런 몰 합리성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34명이 탄핵 소추안에

에 있다. 나라의 분단에 더하여 정파에 의해 또다

찬성표를 던졌다. 소추안을 발의한 야당과 무소속

시 분열된 몰 합리한 토론 구조 속에서 세계와 어

의원 171명에 더하여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예

깨를 겨루는 선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일은 나

상되는 국회의장,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62명의 의

무숲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과 다름이 없는 일이기

원이 찬성표를 던져 모두 234표가 된 것으로 보인

때문이다.

다. 이는 국회 재적의원 전체의 78%에 해당하며

한국사회가 작고 적은 땅덩어리와 자원에도 불

여당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숫자(48.4%)가 찬성표

구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 살기 좋은 나라가

를 던진 숫자이다.

되기 위해서는 평균 학력 수준이 높고, 근면성도

‘진영론’이란 알다시피 단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좋은 국민들의 잠재력을 총동원할 때에만 가능할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리 합리적이고 혁신적인 이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

야기라 할지라도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논의구

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가장 크게 방해하

조를 꼬집기 위해 통용되는 개념이다.

는 관행이 ‘진영론’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논리 전개의 합리성이 상실 58


촛불 민심 요구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 역사 창조

모든 정치인은 오롯이 국민을 위해 깨끗하고 유능

이번 탄핵소추안 가결을 둘러싸고 진영론의 붕

한 인력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촛불을 들고 광

괴 조짐이 보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참으로 큰 희

장에 나와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간

망의 빛이었다. 물론 이를 만들어낸 힘은 자신들

자신이 지지해왔던 정파가 그저 내 편이기 때문에

이 차지할 권력에만 관심이 가 있는 정치인들이 아

여전히 지지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

니라 자신의 일상적 손해를 감수하고 촛불을 든

다. 정치인들이 다 그렇고 그럴 정도로 못난 사람

민심이었다.

이기 때문에 국민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요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국회의

있다.

원들의 권력욕을 활용한 분열책으로 다시 진영론 에 불을 지피려 하자 민심은 더 성난 모습으로 전

어떤 이야기인가? 광장에 나와 본 정치인은 이

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어 올려 이를 막아섰다. 국

미 알아차렸겠지만 대한민국을 새로이 열어가자는

민들이 하나의 가치 즉 부정과 부패, 무능은 결코

요구다. 박근혜라는 수준이 안 되는 정치인을 갈

수용할 수 없다는 가치를 어떤 정파적 이해보다

아치우는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앞서 세워줌으로써 국회의원도 모두 이 테두리 내

선진국으로 만들어가자는 요구다. 그래서 탄핵을

에서 토론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보수 성향을 띄어 온

이니까’, ‘내가 찍은 정치인이니까’와 같은 이유로

매체나 지상파 방송은 탄핵을 끝이라고 이야기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었

고 있다. 자사의 현역 주필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다. 나보다 잘 났으니 오죽 잘 알아서 할까 생각했

사임시키고 사장을 사과하게 만든 청와대에 대한

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접하면서

보복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 치더

나보다 잘 날 만큼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이 몰래

라도 다른 매체들이 이렇게 보도하는 이유가 무엇

숨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 챙

일까? 왜 촛불보도에 섞어 누가 차기 대권을 잡니

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민들의 태도는 달라

마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들은 정말 대

졌다. 정치인을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버리고 광장

한민국이 지금까지의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도

에 나와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좋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큰 반성을 촉구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요구한 내용은 정파를 떠나

2017년 1월

글 정연구 이사, 한림대 교수 ygcheong@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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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가붕현 강길탁 강무치 강민정 강상우 강솔 강신욱 강예성 강전도 강진석 강태호 강혜인 강효근 고광수 고명섭 고성휘 고영철 고일근 고혁규 곽기수 곽철주 구병석 구영선 구축련 국중식 권미애 권수보리 권옥분 권재현 권혁권 권희명 기영란 김경남 김경수 김경자 김경훈 김광모 김광현 김규표 김금화 김기원 김낙규 김남희 김대영 김대환 김도윤 김동민 김동욱 김동환 아 김명숙 김명희 김미경 김미소 김미자 김민경 김민태 김병석 김보경 김복도 김사무엘 김상민 김상훈 김석준 김선주 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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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 강경구 강나영 강남이 강문구 강문석 강민지 강민찬 강상욱 강상현 강수경 강수곤 강양구 강연규 강유복 강유원 강정미 강정연 강진선 강진숙 강한성 강항준 강혜정 강혜정 강효기 강효정 고광인 고광현 고명인 고문병 고세창 고수경 고영환 고유라 고일웅 고정주 고현강 고현경 곽노필 곽동훈 구강회 구경애 구본권 구본수 구완회 구원 구태형 구태환 굿모닝렌트카안광희 권미영 권민석 권순우 권순재 권용배 권용찬 권재현 권정민 권혁근 권혁상 금동기 금종섭 기원도 길덕영 김경란 김경래 김경숙 김경숙 김경장 김경주 김계성 김고은 김광민 김광민 김광호 김광호 김규환 김규환 김금희 김기남 김기율 김기주 김난경 김난슬 김남희 김내인 김대영 김대욱 김덕수 김덕원 김도현 김도현 김동섭 김동섭 김동윤 김동의 김동훈 김동훈 김만수 김만욱 김명오 김명옥 김명희 김문 김미경 김미경 김미숙 김미숙 김미정 김미정 김민경 김민균 김민혜 김민호 김병선 김병식 김보경 김보경 김복수 김복희 김삼 김삼일 김상식 김상엽 김상훈 김서영 김선경 김선기 김선형 김선호 김성기 김성길

강경식 강대경 강미 강범구 강석봉 강승민 강연지 강윤영 강정훈 강진우 강행권 강호년 강희 고굉주 고문석 고수영 고은별 고정현 고형석 곽민섭 구계영 구본엽 구자룡 구태회 권강범 권민수 권영아 권용호 권정환 권혁하 금종화 길섭 김경래 김경실 김경태 김고은 김광수 김광훈 김규훈 김기대 김기창 김난영 김다애 김대위 김덕재 김도형 김동성 김동주 김두산 김만중 김명자 김문경 김미경 김미연 김미정 김민기 김민호 김병옥 김보경 김본일 김삼진 김상원 김서영 김선미 김선호 김성동

회원님들의 후원은 민주언론을 향한 활동의 근간입니다. 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 사이에 후원해 주신 분은 모두 5,792분입니다. 강경운 강경화 강대석 강대진 강미경 강미숙 강병국 강병수 강선정 강성남 강승연 강승일 강영건 강영모 강윤희 강윤희 강제호 강종석 강진학 강진호 강혁 강현 강호민 강호성 강희경 강희성 고구연 고규석 고병년 고병언 고승우 고아람 고은영 고은주 고제석 고주봉 고형승 공경남 곽보천 곽성호 구교선 구교선 구본엽 구본영 구자숙 구자옥 구태회 구현주 권건욱 권경엽 권민호 권상현 권영원 권오복 권웅기 권위상 권정희 권주용 권현아 권형준 금준경 기대정 길찬호 김강균 김경량 김경미 김경심 김경아 김경필 김경현 김고훈 김관규 김광수 김광욱 김교민 김교식 김균하 김근영 김기석 김기성 김기철 김기태 김남균 김남석 김다혜 김대균 김대응 김대일 김덕종 김덕현 김도형 김도형 김동수 김동수 김동찬·김고은 김두언 김두찬 김만중 김말숙 김명정 김명주 김문규 김문기 김미니 김미덕 김미영 김미영 김미정 김미정 김민식 김민정 김바다 김배중 김병욱 김병원 김보규 김보름 김봉기 김봉덕 김상경 김상규 김상원 김상유 김서윤 김서중 김선배 김선숙 김선화 김선화 김성락 김성례

강국일 강대필 강미숙 강병조 강성옥 강승일 강영선 강은미 강종헌 강진희 강현용 강호영 강희정 고근영 고보곤 고영대 고은주 고준호 공덕호 곽세영 구교선 구본주 구자중 구현회 권광태 권선애 권오설 권유림 권준수 권혜영 기명 김강민 김경미 김경옥 김경호 김관석 김광원 김권식 김근영 김기성 김기학 김남윤 김대균 김대진 김덕환 김도형 김동영 김동학 김두한 김맹환 김명진 김문선 김미라 김미영 김미진 김민지 김백일 김병찬 김보명 김봉모 김상균 김상중 김서현 김선애 김선화 김성만

강귀동 강덕구 강미정 강보배 강성종 강승천 강영수 강익희 강주현 강철원 강현우 강호재 강희정 고기원 고삼석 고영매 고은채 고창석 공영목 곽수영 구규림 구본직 구정회 구형욱 권기경 권성희 권오성 권은영 권지원 권혜인 기민 김강선 김경민 김경완 김경호 김관식 김광일 김귀영 김근한 김기수 김기현 김남중 김대기 김대현 김도경 김동 김동영 김동혁 김두환 김면수 김명철 김문섭 김미라 김미영 김미현 김민진 김범규 김병현 김보성 김봉민 김상기 김상천 김서현 김선영 김선희 김성미

강규상 강동오 강민구 강보휘 강성주 강승현 강영순 강인규 강준구 강충원 강현우 강호준 계명석 고대원 고상민 고영민 고은희 고태영 공은해 곽우신 구미경 구본학 구종영 구희영 권녕찬 권세일 권오숭 권은주 권진만 권호정 기민수 김건엽 김경민 김경원 김경홍 김관철 김광중 김규리 김근혜 김기연 김기호 김남진 김대수 김대현 김도균 김동건 김동옥 김동현 김두환 김명걸 김명철 김문재 김미란 김미영 김미화 김민찬 김범용 김병화 김보승 김봉선 김상남 김상철 김석 김선옥 김선희 김성미

강기민 강명수 강민성 강복순 강성하 강승희 강영재 강장진 강지영 강태구 강형석 강홍석 계미량 고동균 고상익 고영윤 고의정 고태호 공종철 곽은정 구민예 구상회 구진경 구희태 권대철 권세정 권오철 권일 권철 권효진 기보중 김건영 김경배 김경은 김경환 김광곤 김광진 김규봉 김근호 김기열 김나령 김남진 김대순 김대형 김도식 김동광 김동우 김동호 김락기 김명규 김명호 김문정 김미란 김미영 김미희 김민철 김범휴 김병훈 김보영 김봉태 김상덕 김상호 김석균 김선우 김성 김성민

강기영 강명호 강민수 강부근 강성환 강신광 강영주 강재기 강지환 강태순 강형숙 강홍식 고겸 고동혁 고성광 고영재 고인수 고하람 공준기 곽지운 구민오 구성연 구진하 국명환 권명수 권수경 권오현 권재범 권태성 권효진 기선희 김건우 김경석 김경익 김경훈 김광동 김광철 김규봉 김금녀 김기용 김나영 김남혁 김대애 김대호 김도영 김동규 김동욱 김동호 김레베카 김명년 김명화 김문주 김미선 김미옥 김미희 김민철 김병기 김병훈 김보현 김부용 김상덕 김상호 김석우 김선욱 김성권 김성민

강기태 강명훈 강민정 강삼규 강성희 강신성 강영철 강재영 강진구 강태욱 강혜숙 강화순 고광백 고동형 고성일 고영주 고인혁 고한별 공후연 곽진욱 구민준 구연석 구창범 국모신 권미숙 권수미 권오훈 권재순 권해준 권희도 기성자 김건호 김경수 김경인 김경훈 김광명 김광태 김규영 김금주 김기욱 김나형 김남희 김대엽 김대호 김도원 김동균 김동욱 김동환 김마리 김명선 김명훈 김문환 김미선 김미자 김민경 김민철 김병모 김보경 김보형 김부환 김상미 김상환 김석정 김선정 김성균 김성민


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성수 김성일 김성화 김소연 김수선 김수천 김순희 김승직 김신욱 김양준 김연용 김영권 김영미 김영수 김영일 김영형 김영희 김용구 김용백 김용준 김우현 김위근 김윤덕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이슬 김인성 김일수 김재성 김재필 김정곤 김정빈 김정우 김정현 김정희 김종민 김종욱 김종훈 김주현 김준휘 김지숙 김지현 김진각 김진숙 김진우 김진호 김창수 김철규 김태경 김태성 김태우 김태형 김평호 김학배 김헌덕 김현민 김현왕 김현준 김형균 김형중 김혜성 김혜진 김홍일 김효식 김희곤 김희원 나영애 남건우 남상모 남인주 남호섭 노민석 노영환 노현주

김성수 김성자 김성훈 김소영 김수안 김수현 김숭곤 김승철 김신제 김양중 김연이 김영규 김영미 김영숙 김영재 김영호 김예리 김용규 김용범 김용진 김욱환 김유경 김윤섭 김은경 김은아 김은주 김이준 김인수 김일용 김재성 김재필 김정관 김정선 김정욱 김정현 김제문 김종배 김종욱 김종희 김주현 김중석 김지연 김지형 김진경 김진열 김진웅 김진호 김창용 김철규 김태관 김태성 김태원 김태호 김평화 김학범 김헌범 김현석 김현웅 김현준 김형기 김형진 김혜숙 김호 김홍일 김효영 김희규 김희원 나옥숙 남경숙 남성우 남인호 남호찬 노병선 노원희 노현호

김성수 김성재 김성훈 김소영 김수연 김수호 김슬기 김승형 김신중 김양현 김연일 김영균 김영민 김영숙 김영조 김영호 김옥남 김용균 김용석 김용태 김웅식 김유나 김윤수 김은규 김은아 김은현 김이지 김인수 김자영 김재성 김재현 김정근 김정선 김정원 김정현 김종구 김종배 김종원 김주경 김주형 김중훈 김지연 김지혜 김진경 김진영 김진이 김진홍 김창우 김철성 김태규 김태수 김태원 김태훈 김평환 김학용 김헌성 김현수 김현웅 김현진 김형남 김형진 김혜연 김호림 김홍주 김효은 김희균 김희정 나의영 남광열 남소영 남정용 남효숙 노삼식 노은기 노호균

김성수 김성아 김성연 김성중 김성진 김성진 김성훈 김성희 김성희 김소원 김소희 김소희 김수영 김수영 김수정 김수호 김수환 김순배 김승곤 김승규 김승덕 김승환 김승훈 김시몬 김실희 김아름 김아름 김언경·최대식 김여환 김연정 김연주 김연지 김영균 김영근 김영기 김영민 김영배 김영보 김영순 김영식 김영심 김영주 김영주 김영준 김영호 김영환 김영환 김옥란 김옥매 김옥선 김용기 김용덕 김용덕 김용수 김용수 김용실 김용하 김용현 김용환 김원근 김원도 김원식 김유동 김유미 김유신 김윤식 김윤영 김윤정 김은동 김은미 김은범 김은영 김은영 김은영 김은형 김은혜 김은혜 김익곤 김익삼 김인 김인수 김인수 김인숙 김장곤 김장수 김장홍 김재식 김재영 김재영 김재호 김재홍 김재화 김정기 김정란 김정란 김정수 김정수 김정수 김정은 김정은 김정준 김정호 김정화 김정환 김종규 김종근 김종덕 김종복 김종석 김종선 김종윤 김종일 김종찬 김주리 김주리안 김주상 김주호 김주희 김준석 김증임 김지묵 김지민 김지연 김지연 김지영 김지혜 김지환 김지후 김진구 김진국 김진만 김진영 김진영 김진영 김진일 김진정회·이철호 김진홍 김진환 김진희 김창인 김창일 김창헌 김철진 김추월 김춘광 김태균 김태균 김태균 김태수 김태연 김태영 김태원 김태윤 김태이 김태훈 김태희 김태희 김필모 김하나 김하성 김학인 김학준 김학철 김혁 김현 김현 김현수 김현숙 김현숙 김현정 김현정 김현정 김현진 김현철 김현철 김형배 김형섭 김형수 김형진 김형철 김형철 김혜영 김혜영 김혜영 김호석 김호중 김호진 김홍준 김환균 김황하 김효중 김효진 김훈 김희동 김희동 김희령 김희정 김희홍 김힘찬 나인호 나종찬 나준영 남광현 남궁정 남극현 남수현 남영권 남예람 남주희 남준우 남지현 노경만 노경채 노광일 노선영 노수일 노승민 노인호 노정숙 노정훈 노호현 노희경 도방주

김성연 김성진 김성희 김솔비 김수정 김순봉 김승민 김시연 김아리 김연구 김연지 김영래 김영삼 김영아 김영준 김영훈 김옥연 김용두 김용우 김용후 김원재 김유신 김윤정 김은상 김은영 김은혜 김인구 김인숙 김재경 김재우 김재환 김정만 김정숙 김정중 김정환 김종덕 김종성 김종태 김주성 김준성 김지석 김지영 김지훈 김진무 김진영 김진철 김진희 김창회 김춘균 김태균 김태영 김태장 김태희 김하식 김학희 김현경 김현식 김현정 김현철 김형수 김혜경 김혜원 김호환 김회연 김훈재 김희선 나경렬 나창수 남기욱 남오연 남태경 노귀성 노승현 노종면 도성

2017년 1월

김성욱 김성철 김세준 김수경 김수정 김순성 김승빈 김시연 김아리 김연국 김연호 김영림 김영삼 김영애 김영진 김영훈 김옥희 김용락 김용이 김용희 김원주 김유진 김윤중 김은선 김은임 김은희 김인규 김인종 김재관 김재우 김재환 김정묵 김정실 김정진 김정환 김종동 김종수 김종택 김주연 김준식 김지선 김지용 김지훈 김진산 김진영 김진태 김찬 김채빈 김춘호 김태균 김태오 김태준 김택수 김하자 김한도 김현경 김현식 김현정 김현택 김형수 김혜경 김혜원 김홍국 김효민 김휘민 김희수 나기문 나채길 남남영 남유경 남태우 노금재 노시화 노진규 도성수

김성욱 김성철 김세진 김수근 김수지 김순식 김승오 김시은 김아영 김연국 김연희 김영명 김영석 김영옥 김영탁 김영훈 김완묵 김용래 김용익 김우선 김원주 김유진 김은 김은섭 김은정 김응남 김인기 김인중 김재광 김재우 김재환 김정민 김정아 김정태 김정훈 김종률 김종수 김종필 김주열 김준영 김지선 김지웅 김지훈 김진섭 김진영 김진하 김찬영 김천수 김충녀 김태균 김태완 김태진 김택준 김하진 김한상 김현국 김현식 김현주 김현화 김형우 김혜리 김혜정 김홍기 김효상 김흥수 김희수 나민우 나현윤 남대근 남윤재 남현수 노금철 노영민 노진호 도인태

김성웅 김성태 김세환 김수련 김수진 김순자 김승우 김시창 김아정 김연상 김영 김영모 김영석 김영웅 김영표 김영훈 김요안 김용만 김용일 김우일 김원진 김유호 김은경 김은성 김은주 김의성 김인대 김인호 김재두 김재원 김재훈 김정민 김정연 김정태 김정훈 김종명 김종애 김종호 김주영 김준일 김지수 김지은 김지훈 김진성 김진용 김진현 김찬용 김천종 김칠성 김태근 김태완 김태진 김택희 김학곤 김한종 김현남 김현실 김현주 김현희 김형욱 김혜미 김혜정 김홍빈 김효석 김희경 김희수 나승렬 나현채 남문경 남윤환 남현일 노도영 노영숙 노택상 도정은

김성원 김성태 김세희 김수만 김수진 김순종 김승재 김신영 김애경 김연수 김영 김영미 김영선 김영은 김영필 김영훈 김요한 김용민 김용재 김우준 김원태 김윤규 김은경 김은수 김은주 김의수 김인봉 김인환 김재령 김재은 김재흥 김정배 김정열 김정택 김정희 김종모 김종연 김종호 김주영 김준태 김지수 김지현 김지희 김진솔 김진우 김진형 김찬주 김철관 김태겸 김태민 김태용 김태학 김판수 김학동 김행정 김현대 김현영 김현주 김형국 김형주 김혜성 김혜정 김홍순 김효선 김희경 김희승 나승연 나현철 남병오 남은경 남형석 노동기 노영숙 노현수 도진명

김성은 김성호 김소연 김수복 김수진 김순화 김승주 김신영 김양임 김연신 김영광 김영미 김영선 김영은 김영헌 김영희 김용겸 김용민 김용정 김우찬 김원택 김윤기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의진 김인성 김인희 김재민 김재철 김정곤 김정본 김정우 김정헌 김정희 김종목 김종오 김종환 김주영 김준혁 김지수 김지현 김진 김진숙 김진우 김진호 김창근 김철규 김태경 김태석 김태우 김태현 김평완 김학모 김향기 김현무 김현오 김현준 김형규 김형준 김혜성 김혜정 김홍일 김효순 김희곤 김희열 나양한 나혜진 남병철 남은영 남호삼 노미정 노영재 노현정 도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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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동소연 류시향 마성일 명호민 문근숙 문석용 문승섭 문준상 민동기 민정 박경미 박경희 박근영 박남숙 박동찬 박무 박민수 박병규 박병철 박상원 박상희 박성귀 박성원 박성희 박수환 박슬기 박영규 박영진 박용수 박운용 박은상 박인혜 박재현 박정선 박정포 박제현 박종섭 박주령 박준용 박지연 박진실 박진호 박철수 박태용 박해부 박현주 박혜련 박효병 박희우 방윤호 배명순 배용호 배진형 (1년약정) 백승무 백영직 백종필 변승우 변창형 사공차랑 서기환 서문규 서성일 서영호 서인찬 서정은 서한진 선상원 설정수 성상옥 성희연 손대규 손석진 손은영 손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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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은서 류연숙 마완 명호종 문다혜 문성근 문영배 문진수 민만기 민정옥 박경민 박계윤 박기성 박남훈 박동협 박문영 박민영 박병근 박보현 박상율 박서경 박성규 박성원 박성희 박숙희 박승태 박영글 박영진 박용승 박원식 박은주 박일귀 박재환 박정숙 박정하 박종건 박종수 박주은 박준원 박지영 박진아 박진환 박철우 박태율 박해정 박현진 박혜성 박효은 박희원 방은호 배민수 배유재 배진호 백동훈 백승아 백영화 백진웅 변영식 변태영 사수현 서대원 서미라 서수경 서영훈 서일봉 서정파 서혜남 선승연 설지원 성상욱 소강혁 손동주 손석희 손인학 손창형

류갑선 류귀순 류은화 류재원 마장석 마준채 모광희 모명욱 문대진 문덕범 문성길 문성식 문영하 문영호 문진숙 문천풍 민미선 민병희 민준기 민진식 박경선 박경선 박고운 박광목 박기용 박기욱 박노곤 박노원 박동훈 박동희 박문현 박문현 박민정 박민정 박병수 박병수 박보희 박복열 박상재 박상준 박서리 박서정 박성민 박성민 박성원 박성원 박세안 박세영 박순고 박순교 박신 박신서 박영기 박영미 박영태 박영호 박용식 박용웅 박원일 박원표 박은진 박은환 박장호 박재경 박점희 박정 박정숙 박정순 박정현 박정혜 박종관 박종구 박종아 박종언 박주창 박주하 박준형 박준희 박지영 박지용 박진영 박진영 박찬모 박찬일 박철원 박철홍 박태희 박필훈 박해출 박혁종 박형규 박형근 박혜정 박혜정 박효주 박효진 박희유 박희정 방정배 방정희 배상길 배상윤 배윤호 배정욱 배진화 배천수 백민정 백봉삼 백승우 백승욱 백윤아 백은성 백현우 백형대 변영은 변우섭 변현식 변형규 상덕규 상영숙 서덕수 서도원 서민 서민경 서수경 서수정 서용관 서우성 서일선 서일영 서정화 서정화 서혜정 서홍석 선주리(신정근) 설희준 성강일 성연준 성용상 소동욱 소민욱 손명국 손명기 손성원 손성일 손재선 손정대 손충구 손태봉

류균 류정미 마혜란 모영용 문덕순 문성우 문옥심 문태숙 민보경 민찬홍 박경순 박광무 박기태 박노원 박래혁 박미애 박민호 박병완 박부열 박상준 박석규 박성법 박성원 박세진 박순숙 박아람 박영수 박영훈 박용주 박윤경 박의호 박재근 박정국 박정아 박정홍 박종길 박종완 박주현 박준희 박지웅 박진우 박찬헌 박철환 박하나 박현선 박형석 박혜진 박훈상 반재윤 방종훈 배서현 배정철 배한진 백삼철 백승재 백은정 백홍종 변윤정 변화영 서강석 서동건 서민교 서승아 서원명 서장식 서정환 서효원 선춘욱 성기남 성윤경 소병훈 손모선 손성진 손정락 손통일

류동훈 류민지 류정민 류지순 마희영 맹준열 목정민 문강한 문미원 문미정 문성은 문성준 문은상 문인주 문현숙 문현주 민보기 민선홍 민형원 민혜경 박경식 박경임 박광우 박광훈 박기현 박기형 박노황 박다슬 박리브가 박말태 박미은 박미정 박민희 박민희 박병원 박병은 박삼규 박상규 박상철 박상태 박석운 박선민 박성복 박성수 박성제 박성철 박소동 박소라 박순옥 박순용 박애정 박양신 박영숙 박영순 박영훈 박영희 박용하 박용현 박윤기 박윤미 박이화 박인 박재연 박재영 박정국 박정규 박정애 박정애 박정훈 박정희 박종남 박종배 박종원 박종원 박주현(박효수) 박중혁 박지선 박지윤 박지인 박진주 박진철 박창덕 박창봉 박철훈 박춘달 박하나 박한솔 박현숙 박현숙 박형석 박형수 박혜진 박호 박흥규 박흥규 반현정 방광열 방현배 방현철 배석기 배수미 배종만 배준영 백경아 백광모 백선화 백성환 백승주 백승준 백인석 백인환 변규식 변남희 변은화 변재완 변희재 복진선 서경국 서경석 서동균 서동욱 서범석 서병수 서승욱 서연경 서원철 서월석 서재관 서재승 서정회 서정훈 석상훈 석원혁 선혜영 선혜주 성기옥 성기욱 성윤식 성은형 소순영 손경선 손미란 손미영 손영삼 손영상 손정민 손정애 손향미 송경우

류병열 류병옥 류찬호 류창하 맹지영 맹찬형 문건대 문경란 문병수 문병원 문성준 문소라 문재권 문재홍 문형천 문효선 민승현 민영미 민희웅 박강호 박경태 박경태 박귀용 박규장 박기호 박길우 박대선 박대성 박명렬 박명주 박미진 박미현 박범준 박범진 박병일 박병주 박상우 박상우 박상향 박상현 박선영 박선영 박성영 박성우 박성현 박성현 박소현 박수언 박순정 박순찬 박연선 박연수 박영일 박영일 박영희 박옥희 박우건 박우섭 박윤숙 박윤정 박인범 박인숙 박재영 박재영 박정민 박정민 박정연 박정우 박제선·이슬비 박종부 박종서 박종윤 박종현 박주호 박주희 박지수 박지수 박지현 박지혜 박진한 박진혁 박창수 박창우 박태구 박태선 박한신 박한엽 박현애 박현용 박형인 박형재 박호영 박호일 박흥석 박희득 방기철 방민수 배경선 배경애 배수호 배승희 배준호 배지영 백광범 백귀정 백수임 백수진 백승준 백승직 백일용 백재혁 변상준 변선수 변정목 변준호 복향숙 부근림 서경신 서경일 서동환 서명교 서병찬 서본근 서영관 서영석 서유택 서유하 서정문 서정문 서주연 서준혁 석철수 선관석 설나영 설석천 성기정 성기형 성주경 성지혜 손광일 손규정 손병일 손병훈 손영주 손영진 손정한 손정호 송규주 송근이

류성률 류형욱 명가영 문경태 문병일 문수경 문종서 민경호 민용석 박건식 박경택 박규철 박길주 박대일 박명철 박미희 박병관 박병준 박상욱 박상현 박선주 박성우 박성혜 박수진 박순천 박연우 박영재 박완규 박우정 박윤진 박인식 박재욱 박정민 박정운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근 박지숙 박지호 박진형 박창현 박태성 박한용 박현용 박형철 박화석 박희성 방성근 배나은 배연정 배지영 백기욱 백수진 백승철 백정미 변성학 변지연 부영관 서광희 서명석 서상욱 서영수 서윤옥 서정민 서지영 선길숙 설순자 성낙미 성한경 손기찬 손보라 손운웅 손종운 송기권

류성진 류호성 명경관 문경호 문복산 문수만 문주남 민경훈 민은홍 박경근 박경훈 박균태 박꽃님 박도수 박명화 박민상 박병규 박병준 박상욱 박상현 박선희 박성욱 박성호 박수현 박순태 박연재 박영조 박완식 박우진 박윤탁 박인우 박재필 박정삼 박정자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기 박지아 박진만 박진형 박창홍 박태순 박한철 박현재 박혜경 박환신 박희승 방성문 배노현 배영준 배진국 백기현 백수현 백승호 백종선 변성혁 변지철 빈성용 서근범 서명준 서석범 서영수 서은남 서정웅 서춘원 선대식 설재욱 성미경 성한표 손기현 손상혁 손원휘 손중양 송기인

류승준 류희준 명소현 문광현 문삼수 문수현 문주희 민기숙 민일홍 박경문 박경훈 박근영 박남규 박동수 박명훈 박민섭 박병규 박병진 박상욱 박상호 박선희 박성원 박성호 박수현 박순홍 박영규 박영직 박용규 박운 박은미 박인헌 박재현 박정선 박정진 박제영 박종선 박종훈 박준식 박지애 박진성 박진형 박철규 박태영 박해령 박현정 박혜경 박효경 박희영 방윤규 배대권 배영철 배진모 백동승 백승기 백신덕 백종인 변승순 변진극 사공엽 서기선 서무근 서성근 서영윤 서은석 서정원 서태동 선백민 설재호 성부강 성현진 손기호 손상흠 손유니 손진철 송길석


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송길섭 송명호 송승택 송원철 송재우 송지은 송현관 신기식 신동규 신명교 신서빈 신승배 신유진 신정근 신진형 신한준 신희령 심성희 심재익 심효찬 안길순 안병욱 안선진 안순섭 안용수 안종철 안진우 안혜림 양길승 양상오 양승혁 양윤호 양주영 양효준 엄기웅 엄정우 여태문 염혜영 오고니 오미선 오선영 오승석 오원석 오정훈 오태훈 오희영 우인회 원영재 원휘정 유규진 유명자 유복순 유세은 유원경 유재혁 유주연 유태수 유환석 윤구현 윤무종 윤상진 윤성준 윤여덕 윤유현 윤정현 윤준기 윤필석 윤효석 이강표 이경민 이경자 이관명 이교성 이근형 이기태

송낙주 송명희 송승훈 송은미 송정경 송지훈 송혜란 신기영 신동규 신명철 신석호 신승연 신윤석 신정우 신찬규 신행준 신희철 심세엽 심재현 심훈 안대성 안병일 안설 안순주 안은영 안종환 안진홍 안혜연 양덕수 양석신 양심전 양은정 양창호 양희정 엄기환 엄지선 여현호 염흥섭 오광수 오미숙 오선영 오승열 오원주 오정훈 오한웅 옥동훈 우재현 원오희 원희재 유금주 유명제 유상균 유세진 유원영 유정민 유준영 유한경 유환선 윤국희 윤문경 윤서정 윤성준 윤여현 윤은숙 윤정호 윤준의 윤해영 윤후상 이강헌 이경범 이경재 이관용 이교칠 이근호 이기택

송대갑 송미선 송연옥 송은아 송정민 송창건 송혜미 신기인 신동우 신문수 신선철 신승철 신윤진 신정현 신찬섭 신현 신희철 심승관 심재훈 아영미 안대훈 안병주 안성남 안순태 안익성 안주식 안창호 안혜영 양덕춘 양석용 양안나 양은진 양철원 양희정 엄대현 엄진섭 연성철 염희정 오기택 오민상 오선희 오언종 오윤덕 오종신 오행운 옥은경 우제열 원용무 위영호 유기홍 유미라 유상배 유애리 유윤지 유정아 유준호 유현 유희락 윤근배 윤민숙 윤석구 윤성호 윤영균 윤은숙 윤정환 윤중옥 윤현숙 은창현 이건 이경복 이경제 이광규 이구엽 이금정 이기호

송대광 송대섭 송대순 송미숙 송민욱 송민희 송영대 송영석 송영숙 송은정 송은주 송인강 송정훈 송종호 송주휘 송천호 송철민 송충훈 송효근 송효열 송훈 신기철 신기훈 신나영 신동욱 신동원 신동윤 신미영 신미현 신미희 신성균 신성철 신성희 신연숙 신연실 신영수 신은하 신응균 신의용 신정호 신정환 신정훈 신창호 신천우 신춘근 신현민 신현실 신현준 신화프린팅코아퍼레이션 심연주 심영구 심영섭 심정보 심정원 심종문 안강기 안건영 안겨라 안동운 안동환 안문규 안병준 안병진 안병천 안성미 안성민 안성은 안승진 안여라 안영건 안재우 안재현 안정빈 안주원 안준상 안준연 안채호 안철환 안치훈 안호진 안효광 안효민 양도일 양동복 양동철 양선미 양성규 양성욱 양여원 양연진 양영삼 양의청 양인국 양일명 양한승 양해구 양현경 양희주 양희철 어성민 엄동수 엄동주 엄문용 엄효선 여건구 여병창 연승익 연제창 연제희 예성혁 오경수 오경아 오기현 오남영 오덕칠 오민석 오민석 오병남 오성일 오세민 오세진 오연경 오연호 오영란 오은미 오은정 오은주 오중열 오지영 오창목 오현숙 오현탁 오형옥 옥일권 왕수용 용상구 우종욱 우종현 우지연 원용선 원용진 원윤제 위훈희 유경리 유경아 유길연 유내선 유동선 유민수 유민아 유민지 유상원 유상하 유석묵 유연수 유영경 유영규 유은선 유은하 유은하 유정일 유정훈 유정희 유중열 유지향 유지현 유현경 유현종 유현진 유희영 육관우 윤경남 윤기선 윤길자 윤나영 윤범영 윤병양 윤병재 윤석용 윤석주 윤석호 윤세민 윤소원 윤소정 윤영웅 윤영지 윤영철 윤은정 윤은정 윤인규 윤정희 윤종성 윤종연 윤지선 윤지은 윤진숙 윤형열 윤형진 윤혜경 이가희 이강두 이강룡 이건우 이건욱 이건진 이경수 이경수 이경순 이경철 이경태 이경화 이광연 이광우 이광인 이군순 이권모 이규석 이기린 이기명 이기범 이기환 이기훈 이나미

송대의 송두호 송병기 송보미 송영운 송요훈 송인덕 송인미령 송준관 송준규 송필영 송학선 송훈 송희성 신낙현 신남수 신동진 신동찬 신민수 신민영 신소정 신수정 신영식 신용호 신의철 신인재 신주연 신주원 신태범 신태섭 신형직 신혜경 심대현 심명숙 심우철 심원도 심주영 심진석 안경애 안경호 안미숙 안민석 안상인 안상준 안성일 안성희 안영배 안영선 안정희 안종남 안중모 안중식 안태원 안판석 안효숙 안훈모 양동춘 양동파 양성중 양수호 양영선 양영아 양재선 양재식 양현남 양현명 어성희 어수헌 엄민형 엄상천 여선호 여영옥 염광민 염기현 오경이 오경주 오동운 오동헌 오봉열 오상영 오세철 오세희 오영섭 오영은 오의환 오인석 오창석 오창훈 오혜경 오홍영 우대일 우도양 우호석 우환식 원장희 원제환 유경애 유경주 유동숙 유동식 유범준 유병선 유선욱 유선호 유영모 유영민 유인경 유일선 유종석 유종안 유진만 유진원 유형기 유형우 윤고운하나 윤대문 윤덕한 윤복남 윤복자 윤선화 윤선희 윤수정 윤수현 윤예랑 윤옥선 윤인섭 윤인태 윤종욱 윤종욱 윤진원 윤진희 윤혜지 윤혜진 이강문 이강욱 이겨레 이경 이경순 이경아 이경환 이경훈 이광찬 이광철 이규재 이균락 이기복 이기수 이낙연 이남석

2017년 1월

송명선 송보현 송용암 송인섭 송준용 송학주 송희준 신대만 신동향 신민정 신수정 신우용 신재관 신지연 신태진 신혜영 심명오 심원보 심창용 안광일 안병건 안상찬 안세훈 안영완 안종문 안중욱 안향미 양경자 양명선 양슬기 양용호 양재영 양혜영 어혁수 엄순미 여운준 염민선 오경태 오명규 오상일 오수형 오영일 오인선 오철훈 오효순 우상민 원동주 원종수 유경한 유동현 유병욱 유선희 유영옥 유일환 유종오 유찬조 유혜영 윤광규 윤동영 윤봉철 윤성광 윤숙희 윤용남 윤재국 윤종혁 윤찬기 윤호정 이강욱 이경례 이경영 이경휴 이광표 이근수 이기수 이남숙

송명숙 송명언 송선아 송선희 송용호 송우철 송일식 송재열 송준호 송지아 송학현 송한주 승태숙 신경호 신도익 신동관 신동현 신동호 신병현 신봉철 신숙영 신숙자 신원범 신원수 신재민 신재석 신지영 신진철 신하영 신학림 신혜정 신혜진 심민혁 심상진 심유성 심윤석 심현보 심현보 안교찬 안규만 안병국 안병기 안서훈 안선경 안소랑 안소연 안영주 안영진 안종수 안종욱 안진 안진걸 안현수(안주원) 양귀용 양규식 양문석 양부순 양승동 양승복 양우경 양유경 양재창 양종진 양홍석 양홍열 엄경숙 엄경철 엄인용 엄재현 여운혁 여운혁 염상균 염수정 오경태 오경호 오명재 오명환 오상훈 오선모 오승목 오승민 오영주 오영주 오재홍 오정교 오춘영 오충환 오흥실 오희경 우상준 우수경 원동현 원상규 원종진 원종효 유관열 유광종 유두열 유련 유병일 유병철 유성국 유성용 유영주 유영호 유장환 유재승 유종혁 유종혁 유창근 유창현 유혜정 유호건 윤광렬 윤광영 윤동현 윤렬 윤상숙 윤상열 윤성규 윤성도 윤순정 윤승후 윤용석 윤용신 윤정문 윤정배 윤종현 윤주석 윤창일 윤창현 윤홍렬 윤화중 이강욱 이강원 이경미 이경미 이경원 이경일 이경희 이계남 이광호 이광훈 이근영 이근주 이기영 이기재 이남임 이남표

송명진 송승자 송원영 송재용 송지용 송해경 신기섭 신동국 신동호 신상철 신순옥 신유진 신재은 신진태 신학재 신홍범 심상택 심은영 심효진 안규창 안병욱 안선정 안수철 안용석 안종원 안진열 안형노 양규하 양삼주 양승진 양윤미 양주연 양회웅 엄경호 엄정순 여창환 염찬희 오경환 오문기 오선숙 오승민 오원교 오정한 오태우 오희성 우은아 원숙희 원창수 유규상 유명선 유보현 유세경 유운상 유재헌 유주연 유태경 유홍구 윤광희 윤명자 윤상일 윤성수 윤신정 윤유상 윤정빈 윤주승 윤태용 윤환상 이강일 이경미 이경임 이계숙 이광희 이근행 이기철 이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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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남희 이내규 이대원 이대전 이동규 이동규 이동원 이동은 이동협 이동훈 이명우 이명원 이문자 이문정 이미자 이미정 이민형 이민호 이병권 이병규 이보경 이보나 이상국 이상귀 이상민 이상붕 이상윤 이상윤 이상필 이상학 이상훈 이상훈 이선애 이선영 이선희 이선희 이성우 이성우 이성희 이성희 이송지혜·박상남 이수영 이수영 이수현 이수호 이승규 이승민 이승우 이승우 이승준 이승진 이승호 이승호 이연경 이연호 이영삼 이영선 이영철 이영한 이오현 이옥진 이용석 이용석 이용진 이용진 이우현 이운영 이원주 이원형 이윤숙 이윤애 이은령 이은미 이은정 이은정 이의영 이의행 이일섭 이자영 이재숙 이재숙 이재우 이재우 이재현 이재현 이정국 이정기 이정석 이정석 이정연 이정오 이정화 이정화 이제용 이제운 이종식 이종실 이종현 이종호 이주연 이주엽 이주환 이준기 이준희 이중각 이지원 이지윤 이진경 이진구 이진이 이진주 이창우 이창원 이철재 이철호 이충영 이충인 이택양 이표 이한표 이해영 이헌수 이헌용 이현민 이현민 이현재 이현정 이현희 이형걸 이혜인 이혜정 이홍석 이홍장 이훈희 이희길 인상우 인선홍 임경희 임고운 임덕진 임도영 임병수 임산하 임성재 임성준 임영숙 임영숙 임자운 임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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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형범 이덕성 이동규 이동주 이동희 이명재 이문준 이미향 이민화 이병남 이보나 이상균 이상선 이상은 이상해 이상희 이선옥 이선희 이성은 이세용 이수 이수영 이숙희 이승민 이승욱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숙 이영혜 이옥희 이용성 이용철 이원 이원희 이윤정 이은석 이은정 이익상 이장묵 이재승 이재우 이재호 이정란 이정선 이정용 이정화 이제헌 이종열 이종호 이주용 이준석 이중섭 이지은 이진길 이진혁 이창준 이철희 이태곤 이필규 이해원 이헌의 이현민 이현주 이형상 이혜정 이화구 이희선 인유진 임관수 임동식 임선규 임성환 임영우 임장춘

이다미 이덕수 이동규 이동주 이두수 이명헌 이미경 이미현 이민희 이병문 이보라 이상근 이상술 이상의 이상현 이상희 이선용 이성관 이성인 이세진 이수강 이수용 이순분 이승연 이승원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순 이영화 이완기 이용성 이용택 이원근 이유리 이윤정 이은성 이은주 이익주 이장희 이재식 이재욱 이재홍 이정란 이정선 이정우 이정환 이제혁 이종욱 이종호 이주철 이준수 이중용 이지전 이진섭 이진화 이창현 이청항 이태범 이필원 이해종 이혁 이현선 이현주 이형욱 이호성 이화신 이희성 인정임 임광식 임동우 임선영 임세영 임영환 임재경

이다혜 이도섭 이동근 이동찬 이득흔 이명화 이미라 이미희 이배근 이병민 이보윤 이상기 이상승 이상익 이상호 이석 이선우 이성광 이성일 이세호 이수경 이수원 이순수 이승연 이승원 이승철 이시원 이영 이영순 이영환 이완우 이용수 이용필 이원근 이유미 이윤종 이은성 이은주 이익주 이재경 이재식 이재운 이재화 이정림 이정선 이정욱 이정환 이제훈 이종원 이종환 이주학 이준엽 이중헌 이지해 이진수 이진희 이창형 이청희 이태신 이필희 이행영 이혁수 이현수 이현주 이혜경 이호열 이화형 이희숙 인창규 임규섭 임동이 임선영 임수재 임옥균 임재영

이대건 이도연 이동근 이동철 이래연 이명희 이미란 이민구 이백운 이병선 이봉수 이상기 이상엽 이상일 이상화 이석남 이선웅 이성길 이성자 이소영 이수경 이수일 이순옥 이승열 이승은 이승한 이시형 이영관 이영운 이영환 이완주 이용신 이용현 이원복 이유미 이윤태 이은숙 이은지 이인규 이재구 이재식 이재웅 이재훈 이정묵 이정섭 이정윤 이정훈 이조은 이종윤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민 이지현 이진숙 이진희 이창호 이춘상 이태욱 이하영 이행희 이혁승 이현수 이현주 이혜담 이호웅 이회국 이희숙 인현식 임규성 임동철 임선영 임수정 임완란 임재하

이대기 이도연 이동근 이동철 이만성 이명희 이미리 이민숙 이백준 이병설 이봉우 이상덕 이상요 이상준 이상화 이석인 이선자 이성남 이성재 이소영 이수경 이수임 이순임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신형 이영구 이영은 이영환 이용구 이용연 이용호 이원복 이유진 이윤호 이은숙 이은진 이인라 이재근 이재식 이재원 이재흥 이정미 이정승 이정은 이정훈 이존희 이종인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상 이지현 이진순 이차동 이창호 이춘옥 이태은 이학민 이향복 이혁진 이현수 이현진 이혜란 이호진 이효석 이희숙 인호진 임기남 임동하 임선정 임승빈 임용만 임재형

이대로 이도영 이동명 이동한 이만영 이명희 이미선 이민재 이범석 이병용 이부덕 이상돈 이상용 이상준 이상훈 이선경 이선주 이성렬 이성지 이소유 이수남 이수정 이순전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안나 이영균 이영음 이영환 이용규 이용우 이용화 이원석 이유철 이윤희 이은실 이은하 이인배 이재덕 이재연 이재윤 이전석 이정미 이정식 이정이 이정훈 이종기 이종찬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숙 이지현 이진식 이찬은 이창희 이춘자 이태환 이학범 이향자 이현 이현숙 이현진 이혜성 이호진 이효정 이희완 임강섭 임기임 임동환 임선하 임승철 임우선 임정규

이대섭 이도운 이동수 이동해 이명문 이무섭 이미연 이민정 이범수 이병하 이부지랑 이상래 이상우 이상진 이상훈 이선규 이선호 이성렬 이성헌 이소진 이수만 이수진 이순홍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애영 이영록 이영재 이영희 이용기 이용운 이용희 이원일 이윤 이은경 이은아 이은해 이인선 이재룡 이재영 이재은 이전희 이정범 이정신 이정임 이정훈 이종미 이종철 이종흔 이주현 이준형 이지연 이지현 이진아 이창경 이창희 이춘홍 이태훈 이한규 이향희 이현경 이현숙 이현철 이혜승 이호희 이효진 이희용 임강수 임기종 임두현 임성대 임승희 임우요 임정민

이대연 이도원 이동애 이동헌 이명숙 이문규 이미영 이민정 이범재 이병학 이삼희 이상목 이상우 이상철 이상훈 이선근 이선화 이성미 이성현 이소형 이수민 이수진 이슬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양애 이영미 이영주 이영희 이용대 이용주 이우경 이원재 이윤기 이은경 이은열 이은혜 이인성 이재명 이재영 이재진 이정 이정복 이정아 이정태 이정훈 이종민 이종청 이종희 이주현 이준호 이지연 이지현 이진아 이창길 이채민 이충걸 이태희 이한섭 이헌범 이현구 이현식 이현태 이혜연 이홍구 이후삼 이희용 임강훈 임나연 임매순 임성래 임식경 임우택 임정민

이대영 이동관 이동원 이동현 이명순 이문복 이미영 이민철 이범찬 이병학 이상걸 이상미 이상욱 이상춘 이상훈 이선명 이선화 이성백 이성호 이소혜 이수복 이수헌 이슬아 이승용 이승주 이승현 이억한 이영미 이영주 이예술 이용마 이용준 이우민 이원정 이윤상 이은구 이은영 이은희 이인철 이재민 이재영 이재천 이정갑 이정상 이정애 이정택 이정희 이종보 이종한 이주민 이주형 이준호 이지영 이지형 이진영 이창석 이철영 이충기 이택기 이한주 이헌서 이현미 이현식 이현혁 이혜영 이홍란 이훈 이희윤 임경민 임남규 임범상 임성원 임영섭 임원양 임정수

이대욱 이동구 이동원 이동현 이명순 이문숙 이미옥 이민형 이병국 이병호 이상경 이상미 이상욱 이상태 이상훈 이선미 이선희 이성연 이성환 이송원 이수연 이수현 이승계 이승우 이승준 이승호 이연경 이영복 이영찬 이오철 이용석 이용준 이우철 이원주 이윤석 이은규 이은재 이은희 이인향 이재복 이재우 이재혁 이정국 이정석 이정애 이정현 이제 이종수 이종헌 이주식 이주홍 이준희 이지원 이진 이진영 이창우 이철우 이충렬 이택순 이한진 이헌석 이현미 이현우 이현희 이혜영 이홍복 이훈우 이희찬 임경민 임다심 임병도 임성율 임영수 임은성 임정식


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임종규 임진세 임한신 임혜영 장대열 장미애 장성훈 장영덕 장우석 장윤미 장점봉 장채리 장현진 전광배 전명원 전상주 전양희 전일근 전지현 전혜숙 정경희 정규현 정대선 정만수 정미숙 정병규 정상용 정선아 정성훈 정순건 정연구 정영춘 정용해 정유희 정의진 정재권 정정일 정준형 정진산 정창운 정택준 정현주 정호인 정희영 조강숙 조규범 조룡상 조민숙 조상현 조성오 조수장 조영식 조우현 조인한 조중훈 조태호 조현경 조혜영 주경선 주영삼 주현우 지삼녀 지혜선 진보라 차성준 차지훈 천대철 천지현 최경원 최금희 최동선 최명호 최미현 최보영 최석봉

임종문 임진수 임향란 임홍갑 장덕남 장미정 장소희 장영묵 장우석 장윤석 장정우 장철규 장형종 전광수 전미경 전선영 전연희 전재수 전지현 전호용 정경희 정근희 정대용 정명구 정미옥 정병규 정상원 정선영 정세원 정순호 정연우 정영하 정용희 정윤섭 정이랑 정재련 정정일 정준호 정진상 정창인 정한석 정현진 정호진 정희종 조강일 조규숙 조명근 조민지 조상현 조성은 조수호 조영식 조유식 조인혜 조지숙 조태훈 조현구 조홍찬 주동원 주영희 주현정 지성스님 지혜영 진상훈 차성환 채도진 천명주 천태환 최경주 최기영 최동수 최명희 최민석 최보윤 최석종

임종섭 임진순 임헌영 임효영 장덕용 장병옥 장수규 장영수 장우성 장은아 장정윤 장철영 장혜경 전금희 전미선 전선형 전영명 전재현 전진 전홍표 정공준 정기동 정대환 정명옥 정미정 정병석 정상조 정선화 정세훈 정슬기 정연택 정영학 정우성 정윤영 정익수 정재석 정종운 정지석 정진숙 정창현 정해문 정형송 정홍섭 정희진 조경래 조근성 조명아 조민혁 조석우 조성일 조순인 조영혁 조유정 조일제 조지연 조하나 조현동 조환 주미영 주완돈 주현주 지수경 진각유 진수호 차영옥 채복희 천무영 천현숙 최경준 최기윤 최동신 최명희 최민선 최복규 최석태

임종안 임종업 임진우 임창빈 임헌준 임현 임효진 임흥규 장동민 장동욱 장병춘 장상길 장수익 장수진 장영숙 장영욱 장우식 장우철 장은영 장은영 장주영 장중현 장태욱 장택수 장혜경 장혜숙 전기정 전다슬 전미자 전미희 전성배 전성수 전영일 전영재 전정수 전정숙 전창성 전태성 전훈 전흥표 정광 정광석 정기영 정기영 정덕순 정덕진 정명진 정명현 정미희 정민 정병용 정병욱 정상준 정상준 정성길 정성문 정세훈 정소라 정승용 정승우 정영 정영교 정영현 정영훈 정우진 정욱 정윤종 정은 정인 정인선 정재연 정재진 정종원 정종일 정지연 정지영 정진욱 정진욱 정창호 정채영 정해인 정헌수 정혜선 정혜아 정화동 정화숙 정희찬 정희찬 조경록 조경민 조남득 조남혜 조명훈 조무상 조민호 조민환 조선미 조선영 조성지 조성진 조승현 조아라 조영희 조용감 조유진 조윤정 조장훈 조재성 조진모 조진석 조학현 조한웅 조현우 조현정 조환규 조회경 주상모 주상현 주유인 주은수 주형민 주혜진 지영선 지영선 진경희·이산하 진승모 진은혜 차영천 차옥숭 채수인 채영미 천민경 천복기 천혜빈 철오큰스님 최경희 최관집 최기은 최낙선 최동진 최동철 최무현 최문규 최민섭 최민호 최봉산 최봉호 최선근 최선미

임종우 임충주 임현무 장국남 장동주 장상득 장시영 장영익 장욱상 장은희 장지현 장학중 장호걸 전대석 전미희 전성일 전예화 전제훈 전태진 전희락 정광수 정기은 정도영 정무정 정민규 정병훈 정상진 정성식 정수미 정승헌 정영교 정영훈 정운봉 정은경 정인원 정재천 정종주 정지은 정진홍 정철윤 정현락 정혜영 정효준 정희천 조경희 조대현 조문성 조민희 조선이 조성환 조안나 조용상 조윤주 조정심 조진오 조해관 조현주 조효근 주선혜 주은현 주홍근 지영은 진광호 진재욱 차은선 채장기 천석봉 최갑식 최관철 최낙훈 최동혁 최문찬 최민희 최상민 최선영

임종헌 임치형 임현수 장기석 장동호 장석운 장애령 장영채 장원석 장인석 장지훈 장한무 장홍석 전대진 전민선 전성호 전용우 전종우 전평구 전희만 정광택 정기주 정동경 정문기 정민영 정봉근 정서영 정성우 정수양 정승환 정영무 정옥희 정원교 정은경 정인준 정재철 정종천 정지은 정진화 정철훈 정현석 정혜영 정효진 제갈종길 조광연 조동연 조미경 조범연 조성국 조성훈 조연경 조용완 조윤형 조정옥 조짐모 조해나 조현준 조훈제 주성기 주재환 주희운 지용동 진교영 진형범 차은호 채종우 천성하 최강호 최광옥 최달호 최동현 최미라 최병국 최상열 최선용

2017년 1월

임지영 임지영 임태수 임태윤 임현일 임형석 장기섭 장기혁 장두영 장명숙 장석태 장선경 장연미 장연선 장용광 장용숙 장원석 장원철 장인선 장인철 장진숙 장진욱 장한식 장해랑 장환순 장희상 전도훈 전동수 전민용 전병탁 전수경 전수민 전용자 전용주 전종우 전종현 전한나 전한수 전희만 정경두 정광현 정국진 정길용 정길화 정동수 정동익 정문선 정문주 정민주 정민현 정부활 정산 정석구 정석근 정성원 정성일 정수영 정수진 정시연 정안수 정영민 정영연 정완균 정용석 정원석 정원영 정은수 정은영 정인희 정일찬 정재철 정재철 정주란 정주영 정지은 정지하 정찬무·강윤경 정청래 정춘희 정현석 정현석 정혜영 정혜정 정효진 정효진 제명신 제용순 조광훈 조국연 조동원 조동주 조미란 조미숙 조병창 조병현 조성래 조성민 조소원 조수년 조영구 조영규 조용준 조용진 조윤호 조은미 조정화 조정훈 조창현 조채훈 조해성 조해형 조현호 조형철 조휘행 조희정 주성종 주성태 주정규 주지혁 지경주 지광해 지은희 지정구 진규엽 진길임 진형수 진희영 차의섭 차익준 채창병 채희명 천세환 천승처 최경 최경숙 최광웅 최광호 최담담 최대건 최동훈 최두열 최미라 최미선 최병주 최병호 최상열 최상천 최선욱 최선중

임지웅 임지원 임태진 임필순 임형수 임혜경 장길수 장나리 장문규 장문택 장성룡 장성봉 장연수 장연우 장용철 장용화 장유식 장유정 장인호 장재기 장진호 장창덕 장현길 장현주 전갑진 전경원 전동열 전명옥 전삼모 전상구 전수영 전숙현 전우진 전원실 전준희 전지영 전한진 전현수 정경성 정경순 정국화 정군주 정길훈 정다솜 정동철 정득철 정미란 정미선 정민호 정민호 정상모 정상안 정석생 정석인 정성필 정성현 정수철 정수현 정애경 정양석 정영주 정영주 정용우 정용운 정원철 정유나 정응섭 정응희 정장환 정재경 정재형 정점숙 정주영 정주영 정지혁 정지현 정찬미 정찬영 정태성 정태휘 정현선 정현숙 정혜진 정호식 정희경 정희경 제임스옥(옥진욱) 조권도 조귀환 조동준 조동준 조미연 조미형 조봉매 조부민 조성애 조성연 조수연 조수연 조영란 조영수 조용필 조용화 조은실 조은영 조정희 조종현 조철원 조충현 조향연 조향옥 조혜경 조혜련 조희정 조희화 주수석 주수진 주진택 주하형 지근성 지민숙 지준옥 지창훈 진남순 진남희 차문조 차민숙 차인섭 차재엽 채희진 천경수 천승환 천용우 최경순 최경식 최규남 최근석 최대섭 최대식 최두영 최명식 최미아 최미애 최병호 최병흥 최상필 최상한 최선희 최성관

임지원 임한수 임혜림 장대성 장미림 장성식 장연후 장우봉 장윤 장재웅 장창호 장현주 전경일 전명욱 전상우 전순미 전인원 전지영 전현숙 정경호 정귀연 정다훈 정래훈 정미숙 정백란 정상영 정석조 정성현 정숙경 정여진 정영진 정용재 정유림 정의석 정재관 정정기 정주희 정진근 정창숙 정택일 정현영 정호엽 정희금 제지현 조규민 조동현 조민성 조상기 조성연 조수영 조영수 조우일 조은현 조준호 조탁현 조현 조혜연 주강호 주영복 주한나 지병현 지형락 진덕수 차상훈 차정자 천기호 천정은 최경아 최근철 최도훈 최명찬 최미영 최보영 최상호 최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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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최성일 최수경 최승혁 최영묵 최영준 최우복 최윤정 최은희 최일광 최재호 최정훈 최주리 최지윤 최창석 최해창 최형용 추연숙 편성훈 하용근 하태욱 한도일 한상용 한성환 한신애 한우 한진석 한호석 허삼영 허옥현 허준기 현기훈 홍근표 홍서희 홍수정 홍영미 홍정환 홍찬이 황대선 황보반 황성운 황운선 황정민 황태현 Paul Kim

최성하 최성헌 최수정 최수진 최승호 최승호 최영민 최영민 최영철 최영태 최우석 최우진 최윤준 최융 최은희 최은희 최일남 최장근 최재환 최재환 최정훈 최정훈 최준규 최준락 최지환 최지훈 최창수 최창우 최헌 최혁 최혜영 최혜진 추원호 추일웅 표석 표수호 하원식 하은경 하태웅 하태진 한동균 한로사 한상일 한상일 한성희 한세용 한애경 한애련 한우전 한운동 한찬우 한찬희 한효진 한훈희 허상대 허선미 허용수 허욱 허준식 허준호 현상윤 현성우 홍기 홍기상 홍석경 홍석구 홍수호 홍순풍 홍용웅 홍우식 홍정희 홍종두 홍태용 홍해정 황덕홍 황도형 황보영근 황보인구 황성준 황성하 황의근 황의청 황정현 황준범 황현 황현성 Powon Corp

최성혁 최성호 최수진 최수현 최승환 최승희 최영범 최영식 최영학 최영희 최웅식 최원석 최은동 최은미 최의순 최의찬 최장옥 최재규 최정규 최정록 최정희 최정희 최중억 최중일 최진각 최진규 최철원 최춘식 최현근 최현영 최홍덕 최홍석 추점자 추준안 표완수 표지영 하재기 하재원 하헌미 하현주 한만정 한명선 한상진 한상혁 한소연 한수정 한연기 한영관 한윤희 한일희 한창석 한철모 한희정 함보현 허선회 허성식 허육 허윤호 허진 허창구 현승준 현영권 홍기성 홍난희 홍석진 홍석훈 홍순형 홍승수 홍인선 홍인용 홍주표 홍주희 홍현봉 홍현수 황명숙 황명식 황부자 황삼봉 황수민 황순구 황인 황인성 황준혁 황중길 황현주 황현표 Soyoug lee

신입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최성황 최숙 최시안 최영아 최오수 최원일 최은숙 최인미 최재균 최정미 최종관 최지선 최진동 최칠영 최현영 최효진 탁미란 하경옥 하재철 한갑수 한미희 한상호 한승동 한영선 한재운 한철우 함석일 허성식 허인순 허창수 현영돈 홍남균 홍선비 홍승현 홍장혁 홍준기 홍현준 황명필 황상순 황승동 황인성 황지현 황혜성

강창수 김준모 성기옥 은기환 정수현 홍성원

최세경 최숙경 최시연 최영아 최오수 최유진 최은순 최인섭 최재욱 최정순 최종목 최지수 최진봉 최태명 최현우 최희동 탁범우 하국봉 하정순 한강희 한병기 한서윤 한승우 한영식 한재인 한충희 함선호 허수련 허재우 허태준 현용주 홍미숙 홍성모 홍승혜 홍재범 홍지현 홍형숙 황미선 황상인 황승미 황인용 황지훈 황화인

고공석 김진업 심성희 이기은 정지현

최세성 최숙희 최아현 최영애 최옥현 최유환 최은심 최인숙 최재웅 최정식 최종문 최지양 최진솔 최태선 최현재 최희영 탁승수 하대호 하지아 한경민 한병기 한서현 한승윤 한영실 한정호 한태욱 함종빈 허영강 허정운 허태환 현일훈 홍미영 홍성재 홍승훈 홍재완 홍지훈 홍혜진 황미연 황선영 황승용 황인웅 황철환 황희관

고영주 김한나 심종문 이선희 조규숙

최세연 최순규 최안진경 최영우 최용석 최윤대 최은자 최인정 최재원 최정실 최종배 최지연 최진영 최태용 최현주 추명성 탁종열 하상필 하지영 한경선 한병철 한석만 한승윤 한영애 한제영 한택규 함진호 허영수 허정현 허현주 현정 홍미정 홍성주 홍승희 홍정배 홍진 황경희 황민우 황성수 황승훈 황인찬 황춘화 황희원

김낙천 김희경 심준섭 이원복 조영기

최소미(정성연) 최순천 최슬기 최양림 최양희 최영주 최영준 최용수 최용식 최윤범 최윤실 최은주 최은지 최인창 최인호 최재원 최재혁 최정아 최정운 최종식 최종윤 최지영 최지용 최차봉 최참 최태훈 최학봉 최현진 최현진 추민경 추연균 태양훈 태영원 하상훈 하성용 하지혜 하춘욱 한경송 한귀순 한보경 한삼덕 한성아 한성욱 한승주 한승철 한오형 한용주 한주엽 한준수 한해진 한현희 함판식 허남옥 허영재 허영진 허정화 허정화 허혜민 현금이 현주 형재영 홍민 홍민희 홍성철 홍수영 홍연 홍연금 홍정연 홍정우 홍진숙 홍진숙 황광수 황교남 황민지 황병원 황성식 황성애 황애자 황영민 황인희 황재희 황충모 황태근 David cho Hunkook

김은성 나민우 양우연 이정연 조은현

김재현 민영록 양종석 임성준 조재성

최소영 최승규 최영균 최영준 최우람 최윤영 최은지 최인희 최재현 최정호 최종훈 최지원 최창규 최한성 최형순 추연수 태은정 하영은 하치동 한기성 한상덕 한성일 한승희 한용희 한준희 한혜란 허미진 허영진 허종환 현기남 홍경진 홍병진 홍수원 홍영기 홍정윤 홍진일 황규석 황병준 황성욱 황용석 황정기 황태원 joo

김종찬 박병주 윤용남 임지영 조정화

2016년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새로 가입한 36분입니다.

·‘회원정보 동의’까지 완료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름을 확인 못한 분이 계실 경우 사무처로 문의해 주십시오. (02-392-0181)

부탁 드려요

1. 사용하지 않는 계좌는 변경해주세요. 2. 잔액을 채워 주세요.

잔액 부족으로 회비 인출이 되지 않아도 CMS 수수료는

내야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면 꽤 큰 돈이 됩니다.

3. 우편물을 받지 않고 싶은 분은 전화로 연락 주세요. 4. 이메일을 등록해 주시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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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회비 관련 문의 전화

02·392·0181


는 보 로 으 눈 , 고 듣 귀로

연 출 련 언 민

사 총 삼 트 스 팟캐 하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종편때찌프로젝트’ 매주 금요일 저녁 6시 업로드 *종편때찌프로젝트는 격주 출연합니다

국민라디오 <민동기의 뉴스바> 김언경·이봉우·배나은의

‘민언련 뉴스빡’ 매주 금요일 자정 업로드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김언경 사무처장의

‘미디어포커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방송


19대 대통령 선거 선거보도 감시단 교육 안내 죽 쒀서 개 주지 맙시다 박근혜 탄핵에 따라 이른 대통령 선거가 확실해 지고 있습니다. 선거 시기 언론은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일부 언론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오히려 망쳐왔습니다. 이번에도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9대 대통령 선거 선거보도를 감시하려고 합니다. 그 첫 시작으로 오는 1월 23일(월)부터 ‘19대 대통령 선거 선거보도 감시단 교육’을 실시합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합니다.

강의일정 1강 | 1. 23(월) | 오보·막말·편파 보도의 폐해 |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 2강 | 1. 31(목) | 19대 대선의 의미와 선거 보도의 중요성 |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 민언련 정책위원장 3강 | 2. 2(목) | 20대 총선 보도의 경향과 19대 대선 보도의 주요 쟁점 | 김언경·배나은·이봉우 민언련 활동가 4강 | 2. 7(화) | 19대 대선 선거보도 모니터 방법론 ①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5강 | 2. 9(목) | 19대 대선 선거보도 모니터 방법론 ②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6강 | 2. 14(화) | 19대 대선 선거보도 모니터 방법론 ③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대상 모집기간 수강료

관심 있는 시민 누구나 2017년 1월 9일 ~ 1월 20일 (정원 40명 선착순 마감)

무료

신청방법

전화(02-392-0181) 신청 또는 인터넷 신청

교육장소

민언련 교육관 서울 마포구 공덕동 110-22 3층 (5호선 공덕역·애오개역 4번 출구)

강좌기간

2017년 1월 23일(월) ~ 2월 14일(화) 매주 화·목 저녁 7시, 23일은 월요일

*모니터 교육 종료 후 수강생 중 신청자에 한해 신문·방송모니터위원회 등 감시단으로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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