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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 최민희

“‘보도지침’ 폭로는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린 한 축이었다” 언론포커스 ·대선 이후 촛불이 분노하지 않도록 정치 머슴 대오각성해야 ·지지율에 매몰된 대선 보도 ·언론개혁이 선행되어야 민주 대개혁 실현할 수 있다 ·적폐 청산의 ‘주적’ 언론,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짜’ 가짜 뉴스에 대한 오해와 환상 시시비비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조선일보 퇴장이 우리의 미래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민언련 포커스

민주언론을 위한 정도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그길을 가겠습니다 2008년 연말,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KBS <개그콘서트>

다 ‘더 잘하라’는 질책을 더 많이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닷

를 올해의 나쁜 방송으로 선정했습니다. ‘개콘’ 전체를 모두 선정

없이 무슨 소리냐고요? 우리가 드디어 해냈기 때문입니다. 이 생

한 것은 아니고, 일부 코너의 여성비하 발언, 심한 막말, 패륜적

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우리는 드디어 정권교체를 이루

언행, 여성에 대한 외모 비하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KBS

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변화의 조짐이 피부로 느껴집니

연예대상 생중계에서, 한 개그맨이 수상소감으로 “한 단체가 <

다. 하지만 민언련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개그콘서트>를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으로 선정했습니다. 우리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우리 언론은 정말 많이 망가졌습니다.

가 아이템 회의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그런 얘기 못 했을

보수정권은 야만적 수준으로 공영언론을 장악했고, 미디어 악법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을 통과시켜 보수신문 조중동에게 종편이라는 특혜를 주었습니

당시 그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감히 우리를 비판

다. KBS와 MBC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종편의 정치적

하느냐’는 분노에 빠져, 무엇을 지적받았는지 찬찬히 살펴보지

편향성과 상업성이 심화되면서 국민은 알 권리를 잃었고 공론장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답답했습니다. 당시 협동사무처장

을 빼앗겼습니다.

으로 방송모니터위원회를 책임졌던 저는 이 일을 겪으며 누군가

이 모든 적폐를 정리하고 언론환경을 개선하려면 민언련은

를 비판하는 일은 신중해야 하며, 정제되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

더 할 일이 많습니다. 예전보다 더 섬세해야 하며, 더 다양한 문

해야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절대

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 과정

저 개그맨처럼 행동하지 말자’는 다짐을 교훈으로 얻었습니다.

에서 기대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한탄도 있을 것이고, 생각하는

그러나 살면서 저는 자주 그와 같아집니다. 누군가 제 실수나

방향이 달라서 아쉽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민언련이 해야 할 언

단점, 잘못을 지적하면 일단 방어하는 마음부터 듭니다. 그리고

론개혁, 민주언론을 위한 정도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그 길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잔소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가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

제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로 누군가에게 어쭙잖은 충

이고 토론하고 성찰하는 ‘시민단체’가 되겠습니다.

고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편을 드는 것도 아닙니다. 진심 으로 저 자신을 다잡는 말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요? 이제부터 저도 수고했다는 격려보

2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소식지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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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포커스

04

-

여는글

언론개혁을 향한 질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 신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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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7 | 최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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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토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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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보도지침’ 폭로는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린 한 축이었다” | 김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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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은 ‘여론조사’ 속내는 ‘반문본색’ |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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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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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2017 민언련 오월 광주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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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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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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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토론에서도 문제 드러낸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 이정진

발행인 이완기 기획위원 김경실 김언경 박제선 조영수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장 김은규

-

언론개혁으로 ‘오월 정신’ 완수하자 | 박제선

<e-시민과 언론> 편집위원 김경실 김서중 김성원 김수정 김언경 박석운 박제선 안건모 이기범 이완기 편집기자 김규명 박성원 배나은 안효광 편집기자 유민지 이봉우 이정일 디자인 박제선

-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 신호승

-

꿈을 이루지 못해도 |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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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민언련 소식

인쇄 신화프린팅 발행일 2017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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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3월 및 2017년 1~3월 결산 보고

발행처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주소 (04207)서울 마포대로14가길10 동아빌딩 4층 전화 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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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3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팩스 02)392-3722 이메일 ccdm1984@hanmail.net 홈페이지 www.ccdm.or.kr 후원계좌 신한 100-019-186241(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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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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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날자꾸나 민언련>은 민언련이 회원에게 보내드 리는 선물입니다. 또한 공익적 목적으로 도서관 이나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여, 1년

·대선 이후 촛불이 분노하지 않도록 정치 머슴 대오각성해야 ·지지율에 매몰된 대선 보도 ·언론개혁이 선행되어야 민주 대개혁 실현할 수 있다 ·적폐 청산의 ‘주적’ 언론,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짜’ 가짜 뉴스에 대한 오해와 환상

에 1만원의 비용을 받고 ‘자료회원’으로 등록해 < 날자꾸나 민언련>을 보내드립니다. 현재 <날자꾸나 민언련>은 화강문화재단의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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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조선일보 퇴장이 우리의 미래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을 받아 전국의 대안고등학교 도서관과 마포, 은 평, 서대문구의 작은도서관, 지역아동센터에 보내 고 있습니다. 주변에 <날자꾸나 민언련>을 권하고 싶은 분은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지정하신 곳으로 보내드 리겠습니다.

문의 070-4849-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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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31일 후원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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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 4월호 제작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날자꾸나 민언련> 2017년 4월호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56쪽 기사 중 일부 가 58쪽 오른쪽 하단에 중복되어 실렸습니다. 필자와 회원 여러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꼼꼼하게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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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언론개혁을 향한 질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불법부당한 언론장악과 탄압의 진상을 규명하고 부당징계자의 원상을 회복하는 일이다. 진상규명에는 책임규명이, 원상회복에는 명예회복이 포함된다.

사전기획된 공영미디어 장악

이명박 정권은 감사원·검찰·국세청·교육부·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 등 공정 하고 중립적이어야 하는 국가기구와 공공기구를 동원해 KBS, MBC, 연합뉴스, 신태섭 이사·전 상임대표 sts1957@naver.com

YTN 등 공영 미디어들을 부당불법하게 장악했다. 많은 언론인들이 파업 등의 방법으로 이에 항의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19명 등 440명에

대한 징계였다. 이명박 정권의 공영 미디어 장악은 낙하산사장 투입을 통한 경영권 장악과 간부 교체, 노 조원 등 비판적인 사내 구성원들에 대한 탄압과 징계, 비판 프로그램의 폐지·축소와 정권홍보 프로그램 편성 등의 수순으로 진행됐다. 2008년 1월 2일, 이명박 정권 인수위는 문광부에 언론사 간부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 보고할 것 을 지시했다. 그리고 2월 말 정부출범과 동시에 공영 미디어 경영진 사찰 등 언론장악을 위한 공작에 착 수했다. 2012년 3월 ‘리셋 KBS 뉴스’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의 ‘2008년 (대통령) 하명사건 처리 부’를 폭로한 바 있다. 이 기록에는 ‘KBS 이사선임 부적격 여부 확인’ 등 방송장악과 관련된 불법사찰의 정황과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정권에 의한 언론장악이 일정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채 사전에 기획된 것임을 추론케 한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한 공영 미디어 장악·탄압에 그치지 않았다. 헌법상의 기본 권인 ‘표현의 자유’를 축소하고 억압하는 일도 열심히 했다. 미네르바 구속을 필두로 한 광범한 누리꾼 고 소·고발 등 탄압, 누리꾼들의 발언을 구조적으로 위축시키기 위한 친고죄 예외 목적의 사이버 모욕죄의 도입,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대한 인적 장악과 이를 통한 유사검열 자행,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강제 등등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한 다종다양한 반민주 악행들도 구석구석 촘촘히 챙긴 것 이다. 이명박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디어 관련법 제·개정을 통해, 방송을 재벌과 과점신문에게 넘 겨주어 소수 기득권층에 의한 언론지배를 확대·고착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공영미디어 장악이 일단락 된 2008년 말부터 글로벌 미디어 육성과 대규모 고용창출이라는 거짓 슬로건을 내걸고 조선·중앙·동 4


아·매경이 종편방송을 겸영하도록 방송법을 개악하고 허가한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 목도하고 있는바, 소수 기득권층에 의한 여론 지배와 독점의 심화·고착, 그리고 광고시장의 수용능력을 크게 초과한 데 따른 공멸위기의 언론생태계 파괴이다.

언론장악 진상규명과 부당 징계자 원상회복의 의미

사법부는 낙하산사장 투입과정에서 해임된 KBS 사장과 이사에 대해 그 해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또 한, 방송장악에 저항하다 해고 등 징계를 당한 MBC 노조원들에 대해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은 정당하 다며 징계무효 판결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세월호 보도와 이번 대선 보도에서 보듯 반국민적 편파·왜곡 방송은 계속되었고, 방송인들의 저항과 징계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정권에 의한 공영미디어 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의 진상과 책임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해직자들은 여전히 해직자이고, 부당징계자 의 원상회복도 요원한 상태이다. 이명박 정권이 구축하고 박근혜 정권이 계승한 언론장악과 탄압의 진상은 명백히 규명되어야만 하고, 그것을 주도한 자와 부역한 자에게 응분의 법률적·도의적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 그 부당함에 항의 하다가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의 명예와 원상 또한 온전히 회복되어야 한다. 정권에 의한 공영미디어 장 악과 탄압이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는 반헌법적인 폭거라는 점을 명확히 기록해야 한다. 방송장악과 탄압의 진상규명과 부당징계자 원상회복은 공영미디어 정상화를 위한, 민주주의의 회복과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자 초석이 아닐 수 없다.

시민주권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개혁 과제 두 가지

2008년 정권의 공영미디어 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이 있었다. 2009년 방송법 날치기 통과, 2011년 종편 출범의 구조개악이 진행됐다. 2012년에는 방송독립성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170일간의 언론노조 대투 쟁과 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론의 극심한 왜곡보도와 이른바 ‘기레 기’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있었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광장에서 “언론 도 공범이다! 부역자 퇴진하라!”는 목소리가 터지고,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지금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국 민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요구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 ‘공영미디어 장악의 진상·책임 규명과 부당 징계자 원상·명예 회복’이다. 이는 수구 기득권층의 폄훼·왜곡처럼 정치공세나 정치보복이 아니다. 이는 공영미 디어의 정상화, 언론개혁, 민주주의 회복·발전의 진정한 시작이자 불가결한 토대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 주권 민주주의의 확립과 안착’을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이다. 언론의 독립성과 언론자유 확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확대, 미디어·통신 시장 공정성 제고, 여론다양성과 매체다양성 제고, 시청자주권· 이용자복지 확장, 정부의 대국민 소통방식 개선 등을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담보해야 한다. 언론적폐 청산과 민주언론 회복·발전을 향한 질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성공의 동력은 시민과 언론인 의 열망과 참여이다. 당연히 동시에 고맙게도,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이를 자신의 선거공약으 로 천명한 바 있다. 열망과 참여의 각오를 벼리며 미래를 기대한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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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폭로 30주년 특별 인터뷰 7 | 최민희

“‘보도지침’ 폭로는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린 한 축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호까지 6개월에 걸쳐 ‘보도지침’ 폭로와 초기 <말>지 관련하여 열 일곱분을 인터뷰했다. 안타깝게도 언협과 <말>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오신 분들 중 몇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몇 분은 보도지침 사건 때 피신을 하거나 구속되기도 해서 공백기가 있었다. 기자들도 매 호마다 드나듦이 있어서 언협과 ‘보도지침’ 폭로 전후의 <말>지 상황을 일관된 맥락으로 짚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독재 정권하에서 비밀리에 진행한 일들이다 보니 각자 자신이 맡은 일 외에는 잘 알지 못해 구멍이 뚫리는 부분도 있었다. 여기에 더해 30년 전 일이니 서로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공통으로 나오는 말이 “그건 최민희 씨가 가장 잘 알 텐데”였다. <말> 1호 기자 최민희 민언련 전 대표(전 민주당 의원)는 언협과 <말>지의 비어 있는 중요한 퍼즐을 맞춰 줄 사람이기도 했고, 전체를 한 번에 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증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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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최민희 씨가 가장 잘 알 텐데…” 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조선투위, 80년해직언론인, 그리고 출판문화운동 협의회 이 4개 단체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구 성했어요. 출판 쪽은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

김경실 ‘보도지침’ 관련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랐

다 와서 사회과학출판사를 차린 의식 있는 분들

습니다. 이전 인터뷰들에서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

이 많았어요. 당시 해직 기자들은 가장 나이가 적

이 나왔지만, 여러 분들의 인터뷰가 따로따로 진행

은 선배가 38세인가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함께

되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을 한 번에 꿰기가 어려운

일할 청년들이 필요했는데 출판 쪽에서 그런 분들

측면이 있었어요.

이 결합하게 된 거죠. 해직 언론인 선배들이 언협을 결성한 이유가

최민희 언협(민주언론운동협의회, 민언련의 옛 이름)과 <

<말>지를 내기 위해서였어요. <말>지 창간호가

말>지에 대해 전체적으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

1985년 6월 15일에 나왔는데 그때 제언이 ‘새로운

을 거예요. 저는 양쪽 일을 다 했고 오래돼서 모두

언론기관의 창설을 제안한다’입니다. 해직 언론인

를 잘 알고 있었어요. 김태홍 선배가 ‘보도지침’ 폭

들의 목표는 잡지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언론사를

로 후 도망을 다닐 때에도 저에게 연락을 했어요.

세우는 것이었는데, 당장은 언론사를 못 세우니

그렇게 저를 중심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잡지라도 내자는 거였죠. 그러려면 기자가 필요한

행적을 알아요. 그때 김태광 씨도 기자로 잠시 있

데, 제도언론 기자를 데려올 수는 없었고 학생운

었지만 중심에 있지 않았었고, 제가 조직 전체를

동 출신 중에서 글도 잘 쓰고 기자가 희망인 사람

꿰고 있었어요. 상황이 그랬어요.

을 찾았어요. 그 작업을 공동체출판사를 하던 김 도연 선배가 맡았고, 김도연 선배는 김근태 선배의

김경실 특히 <말>지를 운영하면서 돈이 어떻게 들

민청련 쪽에 부탁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제가 <말

어오고 어떻게 나갔는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지 1호 기자로 들어가게 된 거죠.

들 모르시는 것 같아요. 김경실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소개를 받아서 <말> 최민희 선배들이 돈에 관해서 어떻게 알겠어요. 전

지에 들어가게 된 거군요. 기자가 되고 싶어서.

혀 모르죠. 언협은 <말>이라는 훌륭한 상품이 있 어서 돈 걱정 안 하던 시절도 있었고, 돈이 없어서

최민희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제 돈으로 운영한 적도 있었는데, 그런 걸 일일이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언협과 <말>지의 돈

어른들한테 말씀 드리지도 않았고요.

문제에 관해서는 성유보 당시 사무국장님과 해직 기자 몇 분이 책임을 지셨어요. 돌아가신 성유보

김경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최

국장님이 대내외적으로 신뢰가 무척 높았던 분이

대표님은 <말>지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요.

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물론 문제가 없는 기금이라야 받을 수 있었어요. 해외 언론단체나

최민희 먼저 언협은 1984년 12월 창립했어요. 송건

민주화운동 단체에서 일부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

호 의장님과 해직 기자들을 중심으로 동아투위,

액수가 크지는 않았고,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많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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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어요. 해직 기자들은 워낙 능력 있는 분들이어

을 구축하고 판매를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들 했는

서 대기업 홍보부에서 일 하거나 개인적으로 사업

지, 7개월 정도 만에 <말>지 영업을 본 궤도에 올

을 해서 성공한 분들이 많아서 후원을 많이 해주

려놨어요. <말>지가 나올 때마다 인기가 너무 좋

셨어요. 단체는 가난했지만 회원들은 부자였기 때

기도 했구요. 저는 그때 밤을 새서 글을 써도 하나

문에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꽤 됐어요.

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중요한 게 <말>지 자체가 첫 호부터 손익 분기를 넘겼어요. 창간호가 8천 부가 나갔으니까

김경실 <말>지에서 어떤 기사를 쓰셨나요.

요. 사회과학서적이 아무리 잘 나가도 2천 부 수 준일 때인데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거죠. <말>지

최민희 르포 기사를 주로 썼어요. <말>지 창간호에

를 내고부터는 판매 기금이 운영의 상당 부분을

실린 ‘어느 목동 아줌마의 서울 행적’이라는 기사

차지했어요. 지출 집행은 성유보 당시 사무국장이

가 제가 처음 쓴 기사예요. 그리고 대우자동차 파

하셨고요.

업이 있었는데 대우 자동차 파업기사는 당시 자대 기련에서 <말>지로 파견 나온 우찬제 회장이 쓴

김경실 기자들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는

거예요. 그 기사의 사진이 생생한데, 그 사진은 제

않았겠네요.

가 대우자동차에 잠입하려다 실패하고 인천노동 자복지협의회 양승조 선배를 통해서 노동자들에

최민희 기준의 문제 아닐까요? 85년에 제가 월급을

게 사내 시위 장면을 받은 거예요.

15만원을 받았는데,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받는 정도는 됐죠. 월급이라

김경실 취재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기보다는 활동비인데 감지덕지였어요. 우리는 학 생운동을 하고 그랬기 때문에 가난은 각오해야 한

최민희 그 당시에 제가 스물다섯밖에 안 된 여성이

다고 생각했으니까.

긴 했지만, 우선 일선 경찰들도 우호적이었어요. 군부독재 하에서 일선 경찰들은 우리를 좋아했어

김경실 그때나 지금이나 출판사가 잡지 팔아서 생

요. 해직 선배들이 인텔리고, 기자 출신이어서 민

존하기는 어려운데 놀라운 일이에요.

언련에 우호적이었어요.

최민희 <말>지는 잘 팔리는 잡지였어요. 영업망도

김경실 이제까지 인터뷰를 읽어보면 최 대표를 어

있었고요. <말> 창간호는 공동체출판사 이름으로

떤 분은 최 기자로, 어떤 분은 최 간사로 부르셔

냈는데 2호부터는 체제가 확 바뀌게 돼요. 박우정

요.

선배가 편집장으로 들어오고 권영철 씨(본명 정수웅. 그때는 <말> 기자들이 필명을 써야 했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최민희 저는 언협 일과 <말> 지 기자 일을 병행했거

가 2호 기자로 들어와요. 영업 조직도 제대로 만

든요. 기자들이 글만 쓴 건 아니에요. 멀티플레이

들었어요. 김태홍 선배를 영업국장으로, 배시병 씨

어였어요. 운동단체가 하는 모든 일을 했으니까.

를 영업 담당 간사로 두고 전국을 돌면서 영업망

시위, 회의와 같은 일들. 저만 그런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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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전 대표가 <말> 창간호에 처음 쓴 기사 ‘어느 목동 아줌마의 서울 행적’. <말> 창간호는 1985년 6월 15일에 나왔다.

모든 세포가 <말>지만 생각했고 <말>지에 모든 것을 걸었던 때

고. 한 번은 경찰에 자진해서 신고를 했어요. 그러 니까 <말>지는 늘 뺏기는 걸 각오해야 했어요. 으 레 그런 방식이니까 기사 내용을 사식을 쳐서 레

김경실 언협은 1986년 9월 <말>지 특집호에 ‘보도

이아웃까지 다 하면 꼭 복사해서 다른 곳에 가져

지침’을 폭로합니다. ‘보도지침’에 직접 관련해서는

다뒀어요. 그랬다가 원본을 뺏기면 마스터를 해서

주역이신 신홍범, 김주언 두 분을 비롯한 여러분

내는 거죠. ‘보도지침’은 탄압이 더 심할 줄 알고

의 인터뷰가 몇 회에 걸쳐 이미 나간 상황이라 다

복사를 해서 곳곳에 숨겨뒀죠. 다행스럽게도 무사

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주언 기자

히 2만 3천 부를 찍었어요, 공식적으로 찍은 것만

가 빼내온 보도지침을 최 대표가 다시 복사하셨다

요. 해적판은 어마어마하게 나왔고요.

고 들었어요. 김경실 30년 전 일인데 어떻게 숫자들을 그렇게 정 최민희 김주언 선배가 복사를 해서 가져온 걸 다시

확하게 기억하세요.

복사한 거죠. 따로 보관하려구요. 뺏길 수 있으니 까. 그 당시에는 <말>지를 인쇄하고 제본하는 게

최민희 그 시절에 저는 모든 세포가 살아 있었고

무척 어려웠어요. <말>지 정도는 인쇄를 해줘도

오로지 <말>지만 생각했어요. <말>지에 제 모든

되는데 그것도 문제가 될까봐 한 번은 그냥 해주

걸 걸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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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실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문제 때문에 언협 내

김경실 그걸 인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부에서 굉장한 격론이 있었고, 최 대표님도 민언련 30년사 『민주언론, 새로운 도전』에 언협이 보도지

최민희 그렇죠. 이렇게 위험한 인쇄물은 보통 인쇄

침을 폭로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쓰

비 ‘따불’을 주는데 ‘보도지침’은 ‘따따불’을 달라

셨어요(285쪽). 당시 상황을 조금 설명을 해주세요.

고 했어요. 그래서 초기 인쇄 비용이 1,700만 원 이 나왔어요. 월급이 15만 원일 때니까 얼마나 큰

최민희 언협은 크게 동투, 조투, 80년 해직 선배들

돈인지 알겠죠. 그 돈을 구할 데가 없으니까, 결국

이 있었는데, 동투 선배들은 적극적으로 몸이 움

김태홍 선배가 자기 친구를 털어서 1700만 원을

직이는 스타일이고 조투 선배들은 논리에 강하세

가지고 오셨어요. 그 친구 분에겐 그 후로도 오랫

요. 그리고 80년 해직 선배들은 동투, 조투 선배

동안 제가 인사를 드렸고 감사함을 표했어요.

들이 워낙 큰 거목들이기 때문에 그분들 뜻을 거 스르지 않으셨어요. 좀 특이하신 분이 임재경 선생님이세요. 조투

김경실 제작비를 대신 그분 이름을 말씀해주실 순

없으세요? 혹시 그 일로 고초를 겪진 않으셨나요.

출신인데 늘 동투 쪽에 힘을 실어 주셨거든요. ‘보 도지침’을 놓고 벌인 논쟁은 동투, 조투의 성향상

최민희 설애 아빠라고 불렀는데, 보호는 잘 해드렸

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한 쪽에서는 ‘보도지침’을

어요. 이름을 밝히는 걸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내면 조직이 깨지게 될 테니까 조직 보위를 고민

이제는 밝혀도 되겠죠. 성함이 전희장 님이세요.

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우리가 이걸 왜 만들었나,

굉장히 감사한 분이죠.

역사적으로 민언련에 부여된 역할을 해야 한다로 맞섰어요. 그 팽팽한 긴장을 깬 분이 임재경 선생님이세

해직 선배들은 한 분, 한 분이 정말 대단한 분들이세요!

요. 임재경 선생님이 내자고 하셨고, 송건호 회장 님이 결연하게 결정을 하셨어요. 사실 ‘보도지침’

김경실 ‘보도지침’ 폭로로 여러 분이 수배되었다 결

은 애초에 김주언 기자가 빼와서 김도연 선배가 민

국 세 분은 구속되고 밖에서는 구명운동이 벌어지

통련 사무차장 자격으로 받은 거예요. 그걸 어디

잖아요.

에서 터뜨리느냐를 두고 의논을 했는데 많은 선배 들이 언협 조직이 약하니 민통련 차원에서 내자고

최민희 보도지침을 인쇄해서 쫙 깔고 나서, 보도지

했을 때 김태홍 선배가 ‘민통련이 내면 이건 그저

침에 관계된 선배들이 일제히 피신했어요. 홍수

그런 운동권 문건이지만, 해직 기자들이 내면 전

원, 박우정, 박성득, 신홍범, 김주언, 그다음에 김

세계적인 폭로물이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안기부

도연, 이석원. 모두 도망을 갔는데 핵심적으로 김

등에서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게 뻔했거든요.

태홍, 신홍범, 김주언 이 세분만 경찰이 끝까지 잡

조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도 김태홍

아서 구속시키고 기소했죠. 신홍범 선생님은 보도

선배가 끝까지 <말>지에서 낼 것을 고집하셨어요.

지침의 선언문을 쓰셨고, 김태홍 선배는 사무국

그 판단이 맞았던 거죠.

장, 김주언은 보도지침을 빼돌린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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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사람이 또 있어요. 실제로 보도지침을 하

적으로 군부독재의 언론통제 실상을 폭로한 것이

나하나 편집한 사람은 홍수원 선생님이에요. 그때

기 때문에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고, ‘이것이 전두

사무실 뒤에 창고가 있었는데 그곳에 책상 하나

환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린 한 축이다’라는 평가

놓고 그 한여름에 그 작업을 혼자 하신 거예요. 러

를 그때 이미 받았어요. 재판이 진행될 때 많은 분

닝셔츠 바람으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

들이 변호를 맡았는데 그 중 핵심이 조영래 변호

지도 몰랐을 거예요. 거의 창고 밖으로 나오시지

사와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였어요. 돌아가신

도 않았어요.

조영래 변호사가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모습, “이 법정에 있어야 할 건 이 양심적인 언론인

김경실 당시에 갓 들어온 기자들은 홍수원 선생님

들이 아니라 군부정권이다”라고 하시던 모습은 잊

얼굴만 잠시 뵀을 뿐 무슨 일을 하시는지도 몰랐

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외국에서도 엄청난 지원이

다고 하시더라고요.

들어왔어요. 국내에는 이 재판 기사가 한 줄도 안 낫지만 외신은 굉장히 주목하는 재판이었어요.

최민희 해직 선배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세요. 역

사적 역할도 다 하셨지만 한 분 한 분이 대단했어

김경실 임재경 선생님이 이 사건을 외국에 알리는

요. 전문성, 성실성, 신념, 역사를 보는 혜안까지

데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세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 에서 종교인과 지식인 등 여러 그룹이 자기 역할을

최민희 도움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임재경 선생님

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자기 몫을 잘한 분

의 일이었죠. 임재경 선생님이 원하지 않아서 한

들이 해직 언론인 선배들이라고 생각해요.

번도 직책을 맡지는 않으셨지만 거의 부회장 격이

특히 ‘보도지침 폭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었어요. 도움이 아니라 당신 일을 하신 거예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1987년 4월 1일 열린 보도지침 첫 재판이 끝난 뒤 재판정에서. 앞줄 왼쪽부터 채현국, 조영래, 최민희, 임재경, 고은.

2017년 5월

11


결혼자금도 털어넣고 거리에서 책도 팔고

김경실 선선히 내주시던가요.

최민희 제가 말을 잘했겠죠. 아마 그 돈을 불릴 수 김경실 주요 인사들이 구속되거나 피신하면서 조직

있다고 구라를 쳤던 것 같아요.

은 거의 가동이 되지 않았을 텐데 그 사이에 언협 과 <말>지는 어떻게 지탱을 했나요.

김경실 아, 사실대로 얘기한 게 아니고.

최민희 어른들은 다 피신을 했지만 기자들은 있었

최민희 사실대로 얘기하면 줬겠어요(웃음)?

어요. 책이 못 나오는 공백기가 석 달인가 지속됐 는데 그때는 운영이 어려워서 제가 월급을 마련했

김경실 대단한 책임감, 대단한 열정이셨네요.

어요. 제 나이가 스물일곱인가 그랬는데, 제정신 이 아니었나봐요(웃음)…. 책임감 때문에 그랬겠

최민희 그랬죠.

죠. 김경실 <말 소식>이 그 무렵에 나오나요? 김경실 오래전에 최 대표가 쓰신 글에서 읽은 기억

이 나는데, 부모님이 결혼자금으로 주려고 모아둔

최민희 <말 소식>지는 <말>지가 나오지 못하던 공

돈을 받아서 쓰셨다고.

백기에 냈어요. 선배들이 없다고 그냥 손놓고 있어 서는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제가 임

최민희 저를 위해 적금을 계속 들고 있었던 거죠,

재경 선생님께 제안을 했어요. 본격 잡지는 못 내

우리 부모님이. 그걸 내가 달라고 했어요.

도 소식지 정도는 내서 계속 보도지침 관련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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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의 소식을 알리고 그 밖에 민주화 운동 소식

의 어둠을 넘어』(광주 5월 민주항쟁 기록물, 최근 증보판

을 전하자고요.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반절지

이 출간됐다) 책을 들고 나가서 150만 원, 200만 원

양면으로 1주일에 한 번씩 <말 소식>을 냈어요.

씩 벌었는데요. 1천 부 2천부 씩 팔았어요. 당시

무지하게 바빴죠.

여의도에 김대중 후보 유세에 3백만이 모이고 김 영삼 때는 2백만이 모였어요. 제가 김대중 대통령

김경실 정상모 선생님 인터뷰(<날자꾸나, 민언련> 2017

을 좋아하는 이유가 김영삼 유세에 가서 팔면 천

년 3월호)를 보면 ‘그때 최민희 기자가 <말 소식>을

부밖에 안 팔리는데, 김대중 후보 유세를 쫓아다

직접 가지고 나가 팔았는데 25만 원을 가져왔더

니면 2천 부, 2천 5백 부 가져간 걸 싹 팔고 와요.

라. 엄청난 돈이었다’는 증언이 나와요.

그래서 제가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했어요. 그런 이유로. 그때 제가 재정을 책임지고 있었거든요.

최민희 그때 25만 원은 무지 큰돈이죠. 더 놀랄 수

밖에 없는 게 한 부에 500원 이었거든. 그런데 몇

김경실 그러면 6월항쟁 때부터는 재정 충당은 책을

부를 팔았으면 25만 원을 벌겠어요.

파는 걸로?

김경실 놀랍네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파실 수 있었

최민희 그때는 그걸로 충분했어요. 넘쳤어요. 뭘 해

어요?

야 되는데 돈이 없으면 <말>지 들고 운동단체든 어디든 가서 팔아서 돈을 마련하고 그랬어요. 언협

최민희 주로 명동 성당 길목 같은 데서 호객을 하

은 <말>이라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상품을 가지고

죠. 큰 소리로. “여기에 이런 소식이 있다!” 외쳐

있었던 거죠.

요. 그때는 제가 머리 긴 젊은 아가씨고 보기에 괜 찮았어요(웃음). 그런 아가씨가 민주주의를 얘기 하면서 소리를 치니까 다들 와서 보고 사 간 거죠.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도 사람들이 무리 지어서 오

무엇이 폭력에 대한 공포를 넘게 했나

면 선배들이 “야, 빨리 외쳐라. 사람들 온다”고 하 고 저는 외치고 그랬어요.

김경실 6월항쟁이 여러 면에서 분기점이 됐겠지만,

그 이전에 활약이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경찰도 최민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하고요.

김경실 몇 분이 같이 나가셨군요.

실제로 잡혀갈 뻔한 위기도 여러 번 있었고. 최민희 책도 들고 나가야 하고 호객도 하고 팔기도

해야 하니까, 저는 주로 소리 지르고 선배들은 가

최민희 그런 얘기는 수도 없이 많죠. 김태홍 선배랑

지고 가서 팔고 그랬죠. 젊은 활동가로 허정화 선

같이 동대문 사거리에서 수갑 채워져서 끌려갔던

배도 있었고, 배시병 씨도 같이 들고 나갔고. 6월

것부터 <말>지 창간호 나왔을 때도 그랬고. 아, 우

항쟁 이후 대선판이 벌어졌을 때는 더 잘 팔았어

리가 보도지침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무슨 증

요. 그때는 <말>지, ‘보도지침’, 『죽음을 넘어 시대

거를 입수했는지 퇴근하려고 마포경찰서 앞으로

2017년 5월

1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1987년 5월 23일 YMCA 앞에서 열리기로 한 시위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이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성유보 언협 초대 사 무국장과 최민희 <말> 기자. 당시 성유보 선생은 민통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다.

나오는데 20명이나 되는 안기부 직원이 저를 덮

진이 있는데, 저는 그 사진만 봐도 공포심이 들어

친 적이 있어요. 잡아가려고. 제가 그때 마포경찰

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나요. 그런 폭력적인

서 앞에 설치되어 있던, 경찰이 올라가서 호루라기

상황들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불고 교통정리하는 둥그런 콘크리트 단 위로 올라 가서 소리를 막 질렀어요. ‘저 사람들이 안기부 직

최민희 저는 이미 감옥에 다녀왔잖아요. 무서웠던

원이고 나는 <말>지 기잔데 나를 잡아가려고 한

건 대학교 4학년 때 시위 주도하고 감옥 갔을 때

다’고. 그랬더니 사람들이 몰려들고 우리 기자들이

두들겨 맞고…. 옷이 완전 다 벗겨진 채로 두려움

나오고 하니까 나를 잡으려던 사람들이 스멀스멀

을 겪고 난 후여서, 그 이후에 벌어진 폭력적인 상

흩어져서 가더라고요. 나중에 김도경이라고 우리

황은 무섭지 않았어요. 그때 감옥에 갔을 때 공포

담당하는 형사가 와서 잘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가 너무 컸죠. 대학생이고 어리기도 했고 그래서. 정말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을 대학교 때 이미

김경실 정상모 선생님 인터뷰에도 그런 이야기들

겪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뭐….

이 나옵니다. 담당 형사가 ‘자꾸 최민희 씨에 대한 보고가 올라오니 우리도 힘들다. 어떻게 좀 말려

김경실 트라우마가 극복되던가요.

달라.’고 했다고. 참 대단하세요. 6월항쟁 즈음에 YMCA 앞에서 성유보 선생님과 최 대표 두 분이

최민희 극복은 마흔에 되었어요. 둘째 아이 윤서 낳

전경들에 둘러싸인 채 시위하는 아주 인상적인 사

고 그 후에야 극복이 되었어요. 그 전에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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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도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치욕을 당한 그 기억

고, 9호를 그해 12월 31일에 냈다). 그때 굉장한 갈등이

은 극복이 안 됐어요. 그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었죠. <말>지를 계속 내야 이 조직이 계속 갈 수

있는 게 마흔 살이었어요. 그 누구에게도 얘기해

있다는 쪽과, 지금 <말>지를 내면 안기부의 탄압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 치욕스러웠어요. 그 이

때문에 조직이 견딜 수가 없을 테니 중단해야 한

후로는 안기부 직원이 열 명이 와도 ‘죽기밖에 더

다는 쪽이 첨예하게 맞섰어요. 그럴 만도 했죠. 보

해?’ 이런 생각이 들 만큼 그때 그 치욕이 너무 컸

도지침 내고 바로 다음 날 수사관들이 쇠파이프

어요.

로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으니까요. 그런데 그때도 임재경 선생님이 내자고 하셨고,

김경실 치욕이 너무 커서 공포감은 문제가 안 됐

송건호 의장님이 해결하셨어요. 단호하게 내야 된

다….

다고 하셨죠. 송건호 의장님의 매력이 그거예요. 평소에 되게 신중하세요. “언론인은 글을 써야지,

최민희 그 치욕이 너무 컸어요. 위안부 할머니들 너

<말>지 기자는 글을 잘 써야지” 이 얘기만 하셨어

무 이해해요. 지금은 더 이해해요. 사람이 느끼는

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딱 결단을 내리세요.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미 내가 감옥 갔다 오

“운동단체는 <말>지를 내야 된다. 그게 언협의 존

고, 운동을 계속 하겠다, 사회 개혁에 나를 바치겠

재 이유다”라고 하시고, “이에 반대하려면 이제 언

다, 그렇게 생각을 했을 때는 모든 걸 내놓는 거였

협에 오지 마시오” 그렇게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

어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상태였어요. 옷만

어요. 그 후로 다시 안 오신 분들이 계셔요. 가슴

안 벗기면, 저들이. 그때는 공개기구에서는 그런

아픈 부분이죠.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지금은 싫어요(웃음). 나이 드니까 더 싫어.

김경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도 서로 다른 길을 선

택해야 할 순간이 생기고, 그럴 때 단호한 결단을 내리기가 참 어렵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겠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송건호’라는 사람

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할 수 있도록

김경실 치욕 때문에 공포를 넘는다는 게 참…. 다

최민희 송건호 의장님이 그런 일을 하셨어요. 결정

시 <말>지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보도지침 사

적으로 보도지침을 낼 때, 보도지침 내고 조직이

태 이후 <말>지를 다시 낼 때도 격한 논쟁이 있었

어려울 때, <말>지 다시 낼 때, 그때 그런 모습을

죠.

보여주셨죠. 단순한 바람막이, 방패막이가 아니었

해주시는 것도 어른들의 큰 덕목인 것 같아요.

어요. 조직이 가장 힘들고 어른의 결정이 필요할 최민희 1986년 9월에 보도지침 폭로를 하고부터는

때 진보적인 견해에 서서 젊은 사람들의 손을 들

조직이 가동이 안 되고, 석 달간 <말>지를 못 내다

어주셨죠.

가 다음 해 3월경에 <말>지를 다시 내요(<말>은 보

그리고 지금 또 하나 생각나는 게 보도지침 틀

도지침 특집호와 함께 제작했던 8호를 86년 9월 30일에 내

별호 내고 모두 피신하고 저 혼자 있는데 송건호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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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1987년 6월 3일 송건호 의장(왼쪽 세 번째)이 보도지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신홍범 언협 실행위원(왼쪽 두 번째)과 김태홍 사무국장(왼쪽 다섯 번째)을 격려하고 있다. 리영희 교수(왼쪽 네 번째)의 모습도 보인다.

의장님이 나오셨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잡혀가

해직된 게 아니에요. 사표를 쓰고 나온 거예요. 사

서 하루 있다 나오셨는데 바로 회의 소집을 했어

주가 ‘젊은 기자들을 잘라라’ 하니까 ‘올바른 얘기

요. 실행위원회를. 그때 딱 세 분이 오셨어요. 송

를 하는데 어떻게 자르냐?’ 그러고 사표 내고 나오

의장님, 윤활식 선생님, 정상모 국장님. 바로 그

신 거예요. 그걸 언론계의 큰 거목 정도로 말하는

자리에서 다시 <말>지 재건이 시작된 거죠.

건 폄훼예요. 제도권에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라 는 건 국회의원 비례는 따놓은 자리예요. 그런 걸

김경실 송건호 선생님은 언론계의 거목으로 알려져

안 하시고 나온 거예요. 그리고 공부를 하셨어요.

있는데….

한국 근현대사를. 그래서 신탁통치에서 찬탁과 반 탁을 가장 정확하게 정리를 해 놓으셨어요. 우리

최민희 송건호 선생님을 언론계의 거목이라는 정도

현대사의 굴절의 시작을 해방 이후 찬탁과 반탁으

로만 말하면 안 돼요. 송건호라는 사람은 언론 운

로 보신 거죠. 그래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서도

동에서 독특한 분이세요. 무슨 말이냐면, 해직기

한 부분의 획을 그으신 거예요. 지식인으로서도

자 선배들 중에 편집국장 자리까지 올라갔던 분은

뛰어난 분이었어요.

송건호 선생님이 유일하세요. 송건호는 동아일보

그리고 신문사 그만두고 나오니까 오랫동안 정

편집국장이었어요. 그래서 1972년에 우리 측 언론

권에서 회유가 들어왔어요. 박정희도 데려가려고

사 대표로 북한까지 간 분이에요.

그랬고, 전두환도 그랬어요. 그걸 다 거절한 분이

이게 뭘 말하냐면 언론계에서 출세할 데까지 다

에요. 그게 왜 훌륭하냐. 박정희 때까지는 어른들

하신 분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청와대 가는 것이

이 다 지조를 지켰는데, 전두환 때 다 넘어가요.

순서였어요. 이게 중요해요. 이분이 동아일보에서

왜냐. 79년에 박정희가 죽고 80년에 민주화의 봄

16


이 왔는데 이게 실패하니까 좌절해서 군부독재와

급하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럴 만

손잡아 버려요. 그래도 송건호는 타협하지 않고

한 분들 중에 생각나는 분이 있으신가요.

남아 있었잖아요. 선비로서의 지조가 강직한 분이 었어요. 또 후배들이 언협 한다고 했을 때 공부만

최민희 허정화란 이름이 책이나 인터뷰에 언급돼

하겠다고 하고 같이 안 할 수도 있는데 그 군부독

있나요. 그 당시에 박찬숙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는

재 시절에 회장을 맡으신 거예요. 실제 <말>지에

데. 그다음에 우찬제와 김원옥.

제언도 계속 쓰셨어요. 진짜 훌륭한 분이세요. 생 활도 너무 청렴했고 무엇보다 성실해서 회의를 빠

김경실 우찬제 선생님은 우리 30년 사 책에 <말>지

지시는 일이 없었어요. 전 그런 점을 아주 높이 평

기자로 기록이 있어요. 허정화란 이름은 저는 못

가해요. 해직 기자들의 성실함.

본 것 같은데요….

김경실 네, 민주화를 위한 결기도 결기지만 정말

최민희 연대 간호학과 나온 김원옥 씨는 초기 언협

유능한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총무를 잠시 했죠.

최민희 박성득 선배도 되게 능력 있는 분이세요. 그

김경실 그분은 기록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분의 능력은 뭐였냐면 인쇄소를 찾아내서 인쇄해 오는 능력이었어요. 우리가 ‘보도지침’ 내고 그 뒤

최민희 김원옥씨라고, 간사 일을 했어요. 경리 일도

에 <말>지 내기가 어려워서 제본을 직접 했어요.

하고 전화도 받고. 6개월 하다 그만뒀나 그랬지만

스테이플러로 일일이 찍어서 제본해야 하니 얼마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나 짜증이 나겠어요. 그러니까 실무자들끼리도 티 격태격하게 돼요. 기자 일 하러 왔는데 너무 힘드

김경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니까. 제본이 쉽지가 않거든요. 어느 날 박성득 선배가 그걸 보고 ‘이렇게 일하

김경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행복해요. <말>지

면 안 된다’고 하더니 그걸 다 싣고 가서 책으로

는 성공한 잡지였고, 민언련도 성공한 단체니까요.

만들어 왔어요. 그때 정말 박성득 선배가 마이더 스의 손같이 보이더라고요. 박우정 선배도 그래

김경실 젊은 날을 돌이켜보고, 그래서 지금 행복하

요. 평소에 되게 샤이하세요. 그런데 정말 능력이

다고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겠죠. 숱한

특출한 분이시죠.

고난과 괴로움을 겪었던 시절을 돌아본 건데도 말 이에요.

세계 어디에서 만나겠어요, <말>처럼 훌륭한 잡지를!

최민희 <말>지처럼 훌륭한 잡지를 전 세계 어디에

서 만나겠어요. 이스크라(레닌 등이 발행한 러시아 사 김경실 <말>지나 언협 관련해서 다른 분들은 기억

회민주노동당의 기관지)보다 훨씬 나은 잡진데!

이 잘 나지 않거나, 있었던 기간이 짧거나 해서 언

2017년 5월

인터뷰 김경실 부이사장 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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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토달기 | 19대 대선 주요 일간지 여론조사 보도 모니터

포장은 ‘여론조사’ 속내는 ‘반문본색’ 대선을 앞두고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는 3월 18일부터 4월 29일까지 6주 동안의 경향·동아· 조선·중앙·한겨레의 여론조사 보도를 모니터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거나 아예 여론조사 실시 과정 에서 편향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는지, 그럼으로써 여론을 파악하기보다 특정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에 여론조사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 기간 문제적 여론조사 보도를 주로 쏟 아낸 것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였다. 두 매체는 여론조사 보도를 ‘민심 전달 수단’이 아닌 ‘반문 정서 띄우 기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는 주로 ‘문재인 깎아내리기’와 ‘안철수 띄우기’로 나타났다.

반안·반홍정서는 없는데 반문정서만 문제라는 동아일보

여론조사 보도에서 조선·동아의 ‘반문본색’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 경선 시기부터다. 대표적인 것은 동아일보의 <대선주자 호감도 안희정 56% 문재인 47%>(3/18 홍수영 기자)다. 해당 기사에서 동아일보 는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인용해 “중도· 보수층의 반문 정서”와 “비호감 정서”가 뚜렷하다고 보도했는데, 그 근거는 국민 의당·자유한국당 지지층의 문재인 전 대 표에 대한 비호감도가 각각 62%, 99% 로 나타났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해 당 여론조사의 이념성향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문 후보에 대한 ‘중도’ 성향 응 답자의 호감도는 52%로 비호감도 44% 보다 높았다. 반면 다른 경쟁후보들의 비호감도는 오히려 문재인 전 대표보다 높았는데, 홍 조선일보아 동아일보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시기부터 ‘반문본색’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기사가 동아일보가 3월 18일 6면에 게재한 <대선주자 호 감도 안희정 56% 문재인 4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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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표 후보의 경우 호감도는 7%, 비호감 도는 84% 수준에 달했다. 이처럼 안철수


후보나 홍준표 후보를 명백하게 ‘싫어하는’ 유권자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선택은 ‘반안정서’나 ‘반홍정서’ 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지 않으면서, 유독 문재인 후보와 관련한 여론을 설명할 때만 ‘반문정서’를 반 복적으로 부각한다면,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지지세 높은 40대 아예 외면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문 후보 지지세가 강하 고 인구통계에서도 20·30·50대 보다 많은 40대의 여론을 의도적 으로 여론 조사 보도에서 지우는 방식으로 ‘반문 프레임’을 강화하 려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30 vs 5060… 문·안의 투표율 셈법 >(4/19 홍영림·김아진 기자)에서는 제 목 그대로 기사 내에서 아예 40대

조선일보는 4월 19일 문재인 후보 지지세가 강한 40대 여론을 의도적으로 여론조사 보도에서 누락시켰다. 40대는 연령별 인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세대다.

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낀 세대인 40대 “2030보다 5060에 세대차이 더 느껴”>(4/24 양승식 기 자)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칸타코리아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선을

둘러싼 세대 간의 이질감이 수치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체로 친문(20~30대)과 반 문(50대 이상)으로 세대가 갈렸”다는 점만을 강조했다. 20·30과 50·60을 친문과 반문, 즉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역시 40대 지지율에 대한 언급은 피한 것 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일보가 칸타코리아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40대의 문 후보 지지율은 51.8%에 달한다. 이는 그 어떤 세대보다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정황은 조선일보가 스윙보터인 40대의 문 재인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 상황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아낸다. 수 치상으로 드러나는 ‘문재인 대세론’을 최대한 부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앞서 조선일 보는 50대 이상을 반문으로 규정했지만, 문 후보 지지율이 30%에 달하는 50·60대를 ‘반문’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단일화 훈수’ 소재로 이용한 조선일보

이 기간 조선일보는 <동서남북/3당 연대가 안 되는 이유>(4/24 이동훈 정치부 차장)나 <김대중 칼럼/보수는 왜 단일화 못 하나>(4/25 김대중 고문) 등을 통해 ‘좌파 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 바 른정당을 향해 ‘후보 단일화 합의’를 종용해왔다. 이는 그 자체로도 촛불 민심이 만들어낸 촛불 대선을 앞두고 후보 간 야합을 종용하는, 염치없는 선거 개입 행태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오피니언란에 그치지 않고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하는 기사에서조차 ‘단일화에 대 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실제 <문·안 양자대결 땐 41.4% 대 41%… 안·홍·유는 “단일화 안해”>(4/24 최승현 기자)에서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칸타코리아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선거 2017년 5월

19


막판 단일화 논의가 다시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뒤 곧바로 “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격차는 5자 구도일 때보다 4자, 양자 구도에서 더 줄어들었다” “결국 이 여론조사로 보자 면 문·안 후보 양자 대결 상황만 오차범위 내 승부가 되는 셈”이라 강조했다. 선거가 반드시 ‘오차범위 내 승부’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문재인 후보의 일방적 승리를 막 을 ‘방법’으로 ‘후보 단일화를 통한 양자 대결 구도’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해당 기사는 <4자 대결 때도 판세 변화 미미>, <막판 단일화 다시 떠오를 수도>라는 부제를 달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보도 행태는 여론조사 결과를 ‘단일화 종용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후보들은 생각 없다는데 양자대결 결과만 보도하는 동아

‘문재인 깎아내리기’와 함께 시도되었던 것은 ‘안철수 띄우기’다. 안철수 띄우기는 주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실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 세를 보인 것은 맞다. 그러나 여타 후보들 이 모두 단일화에 ‘명백한 거부감’을 드러 내고 있는 상황에서, 성사 여부도 불분명 한 양자 대결 구도를 다자 대결 구도보다 부각해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행태다. 이런 보도 양상은 동아일보의 3월 31 일자 지면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아일 보는 이날 (주)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보도를 7건 지면에 배치했는데 1면 보도인 <문재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를 부각 하는 방식으로 안철수 후보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다. 동아일보는 3월 31일 1 면(그림)을 비롯해 4면과 5면에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양자대결 구 도를 강조하는 기사로 채웠다.

41.7% vs 안철수 39.3%>, 4면 보도인 < ‘몰아주기’ 사라진 호남… 문재인 44.1% vs 안철수 37.7%>, 5면 보도인 <안희정 경선 탈락땐… 지지층 33% 안철수로,

20%는 문으로> 등이 모두 두 후보의 양자 대결구도를 부각하는 제목을 달고 있다. 다른 기사 역시 <‘절대 투표하지 않을 후보’ 문 27.5% 1위>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부정적 여론조사 결 과를 부각한 것이며, <“연정 찬성” 45.9%… 반대보다 8.8%P 많아>, <반문 단일화 찬성 41.2%, 반대 43.3%>에서는 ‘연정’ ‘반문 단일화’ 등의 사안을 부각했다. 이쯤 되면 양자 구도를 부각할 목적으로 여론 20


조사를 실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들 지경이다. 동아일보는 <“안철수는 보조타이어”…“문재인은 펑크난 타이어”>(3/29 황형준 기자)에서도 문-안 후보 간 신경전이 격화돼간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문-안 후보 간 지지도 격차가 작게 나타난 ‘양자 가상대결 결과’만을 전했다. 반면 당시 해당 여론조사에서 실시한 8인 다자대결(문33.2%-안13.1%), 4자대결(문 43.8%-안21.3%), 3자대결(문44.6%-안24.2%)의 격차는 아예 보도하지도 않았다. 대놓고 ‘문재인 vs 안 철수’ 구도에 유권자들을 가두려 했던 셈이다.

안철수에 유리한 여론조사만 ‘골라’ 보도하는 조선

조선은 논란이 있는, 그러나 안철 수 후보에게 매우 ‘큰 의미를 지 닌’ 여론조사 보도를 반복적으로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를테 면 처음으로 오차범위에서 안 후 보가 문 후보를 앞섰다는 결과 를 담은 4월 1주차 내일신문과 디오피니언 여론조사는 조사 과 정에서 대표성 없는 표본을 이용 했다는 등의 의혹이 불거진 ‘문제 적 여론조사’다. 그런데도 조선일 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4월 4일부터 7일에 걸쳐 무려 7건의 기사에서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 레는 이 여론조사를 인용한 보도 를 아예 내놓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조선일보는 대선 후보가 5명으로 압축된 3월 5주

조선일보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를 앞지른 한 여론조사 결과를 4월 4 일부터 7일까지 7건의 기사에서 중복해 언급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표본 선정 등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조선일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부터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만 을 인용하고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지면에 일체 인용하지 않기도 했다. 리얼미터와 갤럽 모두에서 다자구도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앞섰지만, 지지율 격차는 한국갤럽보다 리얼미터에서 더 크게 나타났 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일보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 것으로 조사된 리 얼미터의 결과 값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정리 김형욱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2017년 5월

21


TV 속으로 | 2017 대선 방송 토론·시사 프로그램 모니터보고서

선관위 토론에서도 문제 드러낸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1차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회>(4/23), 2차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회>(4/28), 3차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회 >(5/2)를 비교분석했습니다. 평가 항목은 후보 간 발언기회의 공평함을 나타내는 ‘공정성’과 시청자가 기대 하는 정보제공 여부를 뜻하는 ‘유익성’으로 설정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사회자의 공통질문을 제외한 ‘후보 간’ 질의응답으로 한정했습니다.

유익성·공정성 두드러진 2차 토론회, 비결은 ‘정책발표’

3차에 걸친 선관위 주최 토론회는 방송 3사 토론회와 비교했을 때 형식이나 사회자 역할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특히 1차와 3차 선관위 토론은 공통질문에 각 후보가 답변을 하고 시간총량제 자유토론을 구 성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던 KBS 토론과 유사한 방식이었습니다. 2차 토론회는 달랐습니다. 1·3차 토론회에 없었던 ‘정책발표’ 시간을 갖고 이후 1:1 자유토론으로 모든 후보가 서로 질문-답변을 나누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각 후보는 준비해온 경제정책을 설명하면서 공평 하게 자기어필을 할 수 있었고, 유권자는 후보의 주요 경제정책을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판단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후보별로 자신의 공약을 전달하는 시간이 토론을 주최하는 곳에서 결정한 ‘공통 질문’에 답하는 시간보다 토론의 효율성과 생산성, 유익성 면에서 모두 더 나았던 겁니다. 1차

2차

3차

형식

·스탠딩 토론

·곡선 좌식

·스탠딩 토론

방송시간

·2시간

·2시간

·2시간

1) 정책발표 3분

1) 공통질문 답변

2) 1:1 자유토론 각 2분

2) 자유토론 각 18분(시간총량제)

· 경제 각 후보가 발표한 경

· 사회 복지·교육정책, 국민통

토론 방법 1) 공통질문 답변 2) 자유토론 각 18분(시간총량제) 토론 주제 · 정치 외교 안보 및 대북정 책, 권력기관 및 정치개혁

제 정책

합 방안

방안 <표 1> 선관위 주최 대선 후보자 토론 ‘포맷’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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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의 ‘진행 발언’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


‘발언 쏠림 현상’ 가장 극심했던 선관위 3차 토론

민언련은 각 토론의 후보 간 ‘총 발언 횟수 편차’ 및 ‘질문-답변 횟수 차이’, ‘사회자 개입 횟수’로 토론이 후보들에게 얼마나 공평한 발언 기회를 제공했는지 살펴봤고 ‘주제에서 이탈한 질문 수’로 토론의 유익성 을 비교했습니다. 먼저 후보 별 질문과 답변 횟수를 합한 총 발언 횟수의 편차를 보면 1~3차 토론에서 후보들의 발언 기회에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잘 드러납니다. 총 발언 횟수들의 표준편차를 비교해보면 3차 토론은 무 려 27회로서 1차 9.4회, 2차 7.1회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3차 토론에서 후보 간의 총 발언횟수가 균등하지 않고 후보별로 큰 차이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일례로 3차에서 가장 발언이 많았던 문재인 후 보는 94번이나 질문·답변을 했지만 가장 적은 심상정 후보는 27회에 불과했습니다. 두 후보 간 차이는 67회(문 94회 - 심 27회)에 이릅니다. 반면 1차의 경우 가장 발언이 많은 문재인 후보와 가장 적은 홍준표 후보의 차이는 23회이며, 2차는 이 차이가 17(홍 51회 - 유 34회)로 더 줄어듭니다. 2차 토론에서 각 후보 에게 가장 고른 발언기회가 주어졌고 3차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질문 + 답변, 횟수

답변 (회)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차

48

25

48

39

41

9.4

2차

47

51

48

34

39

7.1

3차

94

81

56

45

27

27.0

편차

<표 2> 선관위 주최 대선 후보자 토론 후보 간 ‘총 발언횟수 편차’ 분석

심상정 후보는 질문만 하다 끝난 선관위 3차 토론

대선 토론에서는 유력 주자에게 질문이 쏠리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총 발언횟수의 쏠림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토론 방식에 따라 후보들의 질문 횟수 및 질문 대상을 공평하게 하도록 강제할 수 있으므로 토론의 질은 ‘질문-답변 횟수 차이’로 더 세밀히 따져볼 수 있습니다. 질문 - 답변, 횟수

답변 (회)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차

22

1

10

11

13

11.4

2차

9

3

10

6

11

7.8

3차

34

5

10

23

21

18.6

편차

<표 3> 선관위 주최 대선 후보자 토론 후보별 ‘질문-닫변 횟수 차이’ 분석

‘질문-답변 횟수 차이’의 평균값 역시 3차 토론회가 가장 컸습니다. 3차 토론의 질문-답변 격차는 후 보 당 평균 18.6회에 이르렀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대답횟수는 64회로 질문횟수보다 2배 많았습니다. 반 면 심상정 후보는 질문 횟수가 과도합니다. 심 후보는 24회의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3회에 지나지 않았 습니다. 이는 3차 토론의 질문 기회가 공평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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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TV토론회.

반면 2차 토론은 ‘질문-답변 횟수 차이’의 평균이 7.8회로 가장 작습니다. 이는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과 달리, 1:1토론을 2분간 모든 후보와 갖게 함으로써 발생한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1차 토론회의 ‘질문-답변 횟수 차이’ 평균이 9.4회로 2차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1차 토론은 3차 토론과 방식이 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발언 횟수 편차와 질문답변 횟수 차이에서 3차 토론보다 훨씬 양호했습니다. 이는 사회자 역할이라는 다른 요소로 인해 나타 나는 차이입니다.

사회자 개입 너무 적었던 3차, 포맷 비슷한 1차보다 못할 수밖에

1차 토론과 3차 토론이 포맷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3차 토론의 후보 간 총 발언횟수 편차가 크고 후보 별 질문-답변 횟수 차이도 컸던 이유는 사회자 개입 횟수에 있습니다. 사회자는 토론이 주제에서 벗어나 거나 한 후보에게 지나치게 발언이 쏠릴 경우 이를 제지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3차는 3차 토론은 1·2 차 토론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3차 토론은 12회에 불과했지만 1차는 39회, 2차는 32회에 달했습 니다. 특히 1차는 2차 토론보다도 사회자의 개입 횟수가 많았습니다. 이는 1:1 자유토론 기회 부여가 없 이 시간총량제 자유토론을 도입했음에도 1차 토론의 발언 횟수 격차가 크지 않았던 원인으로 보입니다. 1차

2차

3차

김진석 (KBS 기자)

박용찬 (MBC 논설위원장)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

제지 및 중재 횟수

19

17

10

시간체크 횟수

20

15

2

합계

39

32

사회자

<표 4> 선관위 주최 대선 후보자 토론 ‘사회자 개입 횟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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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회자의 ‘진행 발언’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


4월 23일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1차 TV토론회. 이날 토론회는 전체 질문 중 절반을 넘는 질문이 주제 이 탈 질문이었다.

주제 이탈 질문이 50%가 넘은 1차 토론회

유익성은 전체 질문 중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 수의 비율로 판단했습니다. 타 후보 비방 및 인물 검증성 질문을 던지는 경우, 모두 유익성을 저해하는 발언으로 간주했습니다. 포맷이 비슷한 3차에 비해 토론의 질이 양호했던 1차는 이 항목에서 실망스러웠습니다. 1차 토론은 전체 85개 질문 중 절반에 달하는 44 개가 주제이탈 질문이었습니다. 1차 토론에서 사회자의 제지와 개입이 가장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 보들이 유독 1차 토론에서 주제 이탈 질문을 쏟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 후보의 경우 “제가 갑철수 입니까. 안철수입니까”, “제가 MB의 아바타입니까”와 같이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반복해 문 후보를 당 황케 했습니다. 1차

2차

4차

전체 질문 수

85

119

159

주제 이탈 질문 수

4

34

41

51.8%

28.6%

25.8%

비율

<표 5> 선관위 주최 대선 후보자 토론 ‘주제 이탈 질문 비율’ 분석

2차 토론회와 3차 토론회의 주제이탈 비율은 각각 28.6%, 25.8%로 비슷한 수준입니다. 2차 토론에서 이탈 질문이 가장 많았던 후보는 홍준표 후보였습니다. 27개의 질문 중 절반에 가까운 14개의 질문이 주 제와 어긋났습니다. 홍 후보는 ‘경제정책’을 논하는 시간에 ‘북한 인권 결의안’과 ‘북핵문제’를 꺼내 논지를 흐렸습니다. 3차 토론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홍 후보의 38개 질문 중 22개가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 였습니다. KBS와 비슷하게 시간총량제 자유토론을 도입했고 사회자 개입이 적었던 선관위 3차 토론은 발언 기회의 공정함과 토론 내용의 유익성에서 모두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습니다. 과연 한국의 정치 지형과 선거 제도에서 ‘시간총량제 자유토론’이 실효성이 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 이정진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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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2017 민언련 오월 광주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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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으로 ‘오월 정신’ 완수하자

한 달 전 전두환은 ‘회고록’이라는 걸 내놓고 오월 항쟁을 ‘사태’로 깎아내렸습니다. 여전히 정신 못차린 일부 종편과 출연자들은 학살자의 궤변을 옹호했습니다. 새 정 부 출범 이후 벌인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은 언론개혁을 검찰개혁, 정치 제도개혁, 재벌개혁에 이어 4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오월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 언론개혁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입 니다. 지난 5월 13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으로 다녀온 ‘민언련 오월 광주순례’ 현 장을 중계합니다. 글·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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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① ‘이명박근혜’ 시절 오월 광주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공식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오월 광주와의 연관성을 놓고 볼 때, 이는 오 월 광주의 의미를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습니다. 새 정부 출범 3일째인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정부 공식 기념식에서 제창하도록 했습니다. 오월 영령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② 구묘역에 있는 전두환 비석입니다. 학살자 이름의 앞글자 ‘전’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밟혀야 그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할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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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① 민언협 초대 의장 송건호 선생 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번 광주순례에서는 김태진 민언 협 전 의장에게 송건호 선생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시간 이 부족해 김태진 의장이 준비 한 내용을 모두 듣지는 못했는 데, 이후 송건호 의장과 언협 초기 활동에 대해 듣는 시간을 한번 더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3 ②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어두 웠던 시절 청년들의 사상의 은 사였던 리영희 선생에게 인사 를 드렸습니다.

③ 2대 사무국장을 지낸 보도지 침 폭로의 주역 김태홍 선생도 망월동에서 계십니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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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 『큐리어스 마인드』·브라이언 그레이저 지음·박종윤 옮김·열림원 펴냄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2013년 타개한,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은 동료 기자들에게 경고했다. “우리(기자들)는 이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질문을 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왕이 될 수 있다.”

<혁신가의 질문>(박영준) 프롤로그 맨 앞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문단의 소제 목은 이렇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오바마가 한국 기자들에 게 질문 기회를 주었을 때, 누구 하나 손들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질문 하지 않는 기자를 둔 국민은 대통령을 왕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왕’은 촛불 든 시민의 힘으로 왕좌에서 쫓겨나 차디찬 감방에 머무르 고 있다. 촛불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브라이언 그레이저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호기심은 주제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복적이고, 혁명적이다.” <큐리어스 마인드> 31쪽

촛불을 들고 우리는 질문했다. 세월호는 왜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었나? 구조에 실패한 까닭은 무엇인 가? 최순실은 박근혜와 어떤 관계인가? 정유라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도 학점을 받을 수 있었던 메커니 즘은 무엇이었나? 등. 브라이언은 이런 질문을 추동하는 힘이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하늘이 왜 파란지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아이는 자라서 좀 더 과격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어른이 된다. 어째서 나는 종이고, 당신은 왕인가? 태양이 정말 지구 둘레를 돌까? 왜 피부가 검은 사람은 노예가 되고, 흰 사람은 주인이 되는가? 호기심이란 얼마나 위협적인가?” 같은 책 31쪽

대통령 면전에서 질문 건네는 사람은 기자다. 기자가 질문을 건네도록 하는 힘은 국민 하나하나가 질문 을 품는 것에서 나온다. 왕이 되었다가 종국엔 감방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대통령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대통령을 왕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질문이다. 호기심이다. 대통령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호기심과 질문은 혁명과 전복이면서 또한 배려와 사랑이기도 하겠다. 지난 5월 18일,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대통령이 행한 연설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 경험 을 나는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연설을 본 당일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5·18 대통령 추도사를 보며 가슴과 눈에서 빗물이 멈추지 않는다. 광주는 살아 있다 외치며 몸을 던져 먼저 간 벗들과 운동 과정에서 얻은 병마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했거나 여전히 그 병마와 싸 30


우고 있는 이들이 떠올랐다. 오늘 대통령 연설은 그이들에 대한 헌사였다. 해원의 몸짓이었다. 오늘 이 연설 들으려 이렇게 살아 있나 보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눈부시다. 먼저 간 이들도 함께 축 하하리라 믿는다. 먼저 간 후배와 함께 이 장면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가면 쓴 쇠주 한 잔 올려야겠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훌쩍거리며 글을 쓴다.”

이날의 감동이 그저 감동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살아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5·18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는다는 게 왜 그리 중요 한가요. 전국의 5·18을 기억하자고 했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요. 등등. 감동이 현실 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질문이고 그 질문을 추동하는 힘은 바로 호기심이다. 브라이언 그레이저는 자신의 책에서 호기심의 개인적인 측면에 많은 걸 할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공적인 호기심’이다. 여기서 그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회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없다면, 권력자를 의심할 수 없다면, 곁에서 느릿느릿 걷는 사기꾼 -정치 또는 종교-에게 붙잡힐 수밖에 없다.”

새로운 대통령에게서 받은 감동이 그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회의적인 질문을 계속 건네야 한 다. 질문을 건네는 일은 그를 사랑하기에 하는 행위이다. 우리 공동체가 광주에서 흘린 눈물을 삶으로 이어가기 위한 일이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우리는 그 책임을 외부에 떠넘기는 일이 잦아졌다. 먼저 언론이 질문하 게 한다.(그러고는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또는 너무 공격적이었다고 언론을 비난한다.) 의회가 질문 하게 한다.(그러고는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또는 너무 공격적이었다고 의회를 비난한다.) 활동가들이 질문하게 한다.(그러고는 너무 편파적이라고 그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책임의 소재는 시민이다.” 위 책 234쪽

그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시민의 책임을 언론, 의회 그리고 활동가에게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시민은 위대하고 현명했다. 지난겨울 들었던 촛불로 우리는 무혈혁명을 이루어냈 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 냈다. 시민의 힘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이룩한 고귀한 성과다. 이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다 이루었다고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른바 맹목적 지지자를 칭하는 각종 ‘빠’들이 위험한 까닭은 이런 호기심과 질문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 이다. 열린 질문과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할 때, 사회는 다시 암흑으로 빠질 수 있다. 지 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촛불로 이룩한 위대한 시민혁명을 지속해 나가는 일이고 광주에서 흘린 감동의 눈물을 우리 삶으로 체화시켜 나가는 일이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고, 그 출발은 호기심 어린 눈 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거침없이 질문을 건네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브라이언의 책이 반가운 까닭이다.

글 신호승 동그라미대화센터 대표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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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 <키즈 리턴>·<태풍이 지나가고>

꿈을 이루지 못해도

<키즈 리턴>, ‘꿈은 정답이 없는 현재진형형’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마짱(카네코 켄)과 신지(안도 마사노부)가 나눈 대화는 유명하다. 100분 넘게 담담하게 흐르다 ‘찡하게’ 울린다. 고등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마짱은 수업엔 전혀 관심 없다. 순진한 신 지를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 돈을 뺏고, 성인 영화관을 드나들며 제 멋대로 지낸다. 어느 날 마짱한테 돈을 뺏긴 아이가 권투선수를 데 려온다. 주먹 한 방에 고꾸라진 마짱은 권투를 배우기로 한다. 신지 도 함께 권투를 시작한다. 정작 권투에 재능 있는 쪽은 신지였다. 두 사람이 벌인 스파링에서 신지한테 카운터펀치를 맞으며 주저앉은 마 짱은 권투를 포기한다. 자존심도 구겼다. 두 사람은 헤어졌다. 마짱이 떠난 후 신지는 유능한 권투선수로, 마짱은 야쿠자 중간 보스로 성장한다. 상승세도 언젠가는 꺾이는 법, 신지는 시합에서 <키즈 리턴> 감독 기타노 다케시

연달아 패배하며 권투선수의 꿈을 접는다. 야망이 컸던 마짱은 ‘나 대는’ 바람에 다른 보스들한테 린치를 당하고 버림받는다. 기타노 감

출연 카네코 켄, 안도 마사노부

독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마짱과 신지의 시간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제작 1996년 일본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다. 신지는 마짱한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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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한다. 신지가 신문 배달할 때 타는 자전거로 고등학교 운동장을 돌며 신지가 마짱에게 묻는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마짱이 웃으며 대답한다.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택시기사, 엘리베이터 보이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희극배우를 향한 꿈을 키웠다. 성 인 스트립 극장 만담꾼으로 시작한 여정은 마침내 꽃을 피웠다. 최 고 연기파 배우이자 실력파 감독으로 우뚝 선 그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사고 회복 후 연출한 영화가 <키즈 리턴 >이다. 감독은 별 볼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마짱과 신지의 젊은 날을 나 무라지 않는다. 좌절한 그들을 달콤하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불확실 한 꿈을 향해 내달리는 청춘에게 고요히 말한다. 꿈은 정답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ing’ 현재진행형이라고. 청춘의 온도가 마냥 뜨거 울 리 있을까? 뜨거울 때도 차가울 때도 있다.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OST는 1번 <Meet again>부터 15번 <Kids Return>까지 젊은 날의 다양한 감성을 섬 세하게 담았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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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인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

영화 원래 제목은 ‘바다보다 더 깊은 海よりもまだ深く’이다. <월량대표아적심 月亮代表我的心>으로 유명한 등려군이 일본에서 활동하던 1987년 발표한 <이별 예감 別れの予感> 가사에서 따왔다. 이 대목은 극 중 료타(아베 히로시) 엄마 요시코(키키 키린) 대사에도 등장한다. “난 인생에서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해본 적 없어.” 한때 문학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작가였던 료타는 흥신소에서 사립탐정으로 일한다. 작품을 쓰기 위 해 취재를 한다지만 현실은 시시껄렁하다. 글쓰기 진도는 나가지 않고 주머니는 텅 비었다. 행복했던 가 정은 이미 깨졌다. 가끔 만나는 아들 싱고에게 야구 글러브 한 개 사주지 못하는 신세가 괴롭다. ‘내 인 생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건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료타는 답답한 심정을 포스트잇에 남긴다. 료타는 영광으로 가득 찬 미래를 맞을 수 있을까. 23호 태풍이 지나던 밤, 료타는 어머니 요시코 집에서 헤어진 아내, 아들과 하룻밤을 보낸다. 어색한 자리, 태풍이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잠시나마 마음의 문을 열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건 그대로다. 이혼,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는 현실, 옅어지는 희망. 제아무리 강력한 태풍이 휩 쓸고 지나간 들 하룻밤에 ‘멋진 어른’으로 거듭날 리 만무하다. 다만 태풍 덕분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오래전 행복했던 시절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냈을 뿐.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 질문에 료타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이 세상에서 원하던(!) 어른이 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영화는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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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평범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수시로 삶을 흔든다. 지금 나아가는 삶 의 방향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달아도 일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의욕 을 잃고 낙심한 료타는 어머니 요시코에게 “미안해, 능력 없는 아들이 라” 말하며 고개를 떨군다. 요시타는 “난 인생에서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해본 적 없어”, “그래 도 살아가는 거야”라며 담담하게 료타를 위로한다. 요시코는 누구나 인 생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단 걸 먼저 깨달았다. “행복은 무엇 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거란다”라는 요시코의 조언 을 과연 료타가 받아들일지 알 순 없다. 하나레 구미가 부른 영화 주제가 <심호흡 深呼吸> 가사가 쓸쓸하게 흩어진 마음을 붙잡는다.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든 잘 가 어제의 나 맑게 갠 하늘의 비행기구름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료타 어머니 요시코를 연기한 키키 키린은 올해 1943년생 75살이 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다섯 편에 출연했다. <걸어도 걸어도, 2008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 <태풍이 지나가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히로시, 마키 요코, 요 시자와 타이요, 키키 키린

다, 2013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태풍이 지나가고, 2016년 >. 고레에다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가족영화 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글 김현식 이사

제작 1996년 일본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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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이렇게 달렸어요!

본격적인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개혁에 나설 때

이렇게 달렸어요!

5월 18일 열린 ‘대선보도 총평가 토론회’를 끝으로 두 달여 간의 ‘2017 대 선미디어감시연대’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신문, 방송, 종편 보도 모니터는 물 론, 포털, 언론사 SNS, 통신사, 경제신문까지 모니터 영역을 넓혔습니다. 모 니터 영역을 넓혀 해당 매체에 감시하는 시민의 눈이 있다는 신호를 줬다는 점은 분명 성과로 평가해야 할 지점입니다.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 활동은 180건이 넘는 보고서와 두 번의 토론회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5월 첫 주 황금같은 연휴를 고스란히 반납한 활동가들과 인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 능했습니다. 유권자의 알 권리와 올바른 선택을 도운 대선보도는 무엇이었는 지, 국민들의 열망을 꺾기 위해 왜곡편파 보도를 쏟아낸 언론사는 어디인지 백서로 남겨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개혁을 위한 근거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한편, 지난 4월 20일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언론개혁과 적폐청산 을 위한 원탁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전국 단위의 시민사회단체 대표 316명의 의지를 모아 선언문을 발표했고, 행사에도 70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또 후보들에게 보낼 언론 의제 질의서도 채택해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 로부터 답변을 받았습니다. 답변을 한 후보들은 각론에서 약간 차이는 있지만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개혁 요구에 대체로 동의했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취임 일주일 여 만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처리 지시,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많은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론 개혁은 대통령 ‘지시’로 간단히 바로 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 관련 공약을 반드시 지킬 수 있게 하는 과제가 우리에 게 있습니다. 언론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따라 국회가 언론장악 청문회 를 개최하고, 관련 법을 정비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입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이라는 ‘1단계’, 정권 교체라는 ‘2단계’까지 새로운 민 주주의를 위한 걸음을 마쳤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개혁 에 나설 때입니다. 성원에 성원을 더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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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활동소식

사무처는 대선모니터 등으로 한 달 넘게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활동가와 인턴 등 20명 넘는 인원이 사무실을 빼곡히 메우고 대선보도를 모니터 했습니다. 대선 이후에는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개혁은 물론, 그리고 연 초에 계획했던 사업을 점 검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 마련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탄핵과 대선으로 잠시 미 뤄뒀던 회원님들과의 소중한 만남도 기획할 예정입니다. 대선이 한창일 때 새 활동가를 맞았습니다. 종편모니터를 담당하는 김규명 활 동가와 이정일 활동가(홍보)입니다. 소식지에서 뜨겁게 인사드리겠습니다.

회원활동 소식

신문모니터위원회 신문모니터위원회는 대선보도감시연대와 발맞춰 3월부터 주요 일간지의 여론조 사 보도를 모니터했습니다. 감시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보고서 작성 주기도 달에 한 번에서 주에 한 번으로 바꿨지요. 힘들지도 모르니 2주에 한 번 보고서를 내놓는 것은 어떻겠냐고 슬쩍 권유한 담당활동가를 향해 ‘왜 말리냐. 우린 할 수 있다’고 반박한 열정 넘치는 모니터위원회 구성원들. 너무너무 든든하고 멋지지 않나요?

방송모니터위원회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지난 3월 20일부터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 소속으로 대선 관련 방송 토론·시사프로그램을 모니터했습니다. 5월 7일 마지막 보고서로 뜻깊 은 대선 감시 활동을 끝마쳤습니다. 총 9개의 보고서로 22개에 달하는 방송 토 론·시사프로그램을 감시했고 6개의 대선주자 TV토론까지 분석했습니다. 비록 지 난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공정한 선거를 어지럽히는 방송 프로그램의 횡포를 직접 목격하고 비판하는 보람찬 경험이었습니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대선이 있었 던 5월 둘 째주에 잠깐 휴식을 갖고 다시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 활동을 시작합니 다. 날씨가 좋아진만큼 바깥 나들이도 겸할 계획입니다. 많은 회원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주요 회의 결과

운영위원회 4월, 운영위를 세 차례 개최했습니다. 7차(5일) 운영위는 대선미디어감시연대 활동 과 20일에 열린 ‘언론개혁·적폐청산 원탁회의’ 행사 준비를 점검했습니다. 이어 이 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언론장악백서와 왜곡편파보도백서를 발간해 언론 적폐청산과 개혁의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16일(8차)에는 공채 논술·면접을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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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회의 결과

진행해 모니터활동가로 김규명 씨를 홍보활동가로 이정일 씨를 채용했습니다. 29일 9차 운영위는 ‘참언론아카데미 기획팀’ 회의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전체 강좌 실태와 수요, 역 량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할 TF를 구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백서 제 작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보완 의견을 나눴으며, 대선보도 총평가 토론회 일정 등을 조 율했습니다.

정책위원회 4월 정책위는 대선보도모니터와 대선 관련 대응이 한창 벌어지는 관계로 휴회했습니다. 다음 달 소식지에 5월 정책위원회 소식 전하겠습니다.

활동 보고

어제 방송뉴스 2017. 4. 1 ~ 4. 30 •‘한겨레 기자 사망 사고’ 연속 보도한 MBC, 왜 이러나 (4. 27)

19대 대선 보도 신문 모니터 2017. 3. 20 ~ 5. 18 •‘종북몰이’·민주당 ‘집권당 행세 비판’으로 시작된 선거보도 (3. 20) 외 68건

19대 대선 보도 방송 모니터 2017. 3. 20 ~ 5. 18 •기지개 켜는 방송사 대선 보도, 벌써부터 ‘반문재인 성토장’? (3. 20) 외 61건

19대 대선 보도 경제신문 모니터 2017. 3. 20 ~ 5. 18 •대선 맞이한 경제지들 일제히 ‘정치 혐오’, 그 목적은 ‘대기업 지키기’ (3. 27) 외 9건

19대 대선 보도 언론사 SNS 모니터 2017. 3. 20 ~ 5. 18 •MBC 페이스북, ‘대선’은 잊고 ‘우리말’ 삼매경? (3. 28) 외 8건

19대 대선 보도 종편·보도전문채널 시사토크쇼 모니터 2017. 3. 20 ~ 5. 18 •방송 출연 이유부터 ‘문재인은 안되기 때문’ (3. 20) 외 20건

19대 대선 보도 방송 토론·시사프로그램 모니터 2017. 3. 20 ~ 5. 18 •MBC의 대선후보 검증 프로그램을 검증해야 할 판 (3. 24) 외 8건

19대 대선 보도 뉴스통신 모니터 2017. 3. 20 ~ 5. 18 •뉴스통신사도 문재인은 불리하게, 안철수는 유리하게 보도 (4. 18) 외 3건

19대 대선 보도 포털사이트 모니터 2017. 3. 20 ~ 5. 18 •2017 대선, 포털 모바일 뉴스 모니터의 시작과 그 의미 (4. 19) 외 3건 *3월 20일부터 19대 대선보도 감시 체계로 전환해 활동했습니다.

논평·성명·기자회견문 2017. 4. 1 ~ 4. 30 •황교안은 방통위원 알박기 인사 당장 중단하라(4. 5) 외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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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원

결산 보고

과목

2017년 3월

1~3월 누계

Ⅰ. 수입

94,325,348

285,616,582

91,968,099

276,577,099

-

1,320,000

정기후원회비 강좌수입 특별후원회비

·2017년 3월 및 ·2017년 1~3월 누계

Ⅱ. 직접사업비

18,753,596

56,018,472

-

1,350,000

모니터보조

7,166,982

19,669,482

임원활동비

400,000

1,200,000

6,262,480

17,365,260

원고료

370,000

980,500

광고선전비

225,635

530,598

전산유지비

-

2,514,990

1,869,500

3,408,420

홍보비

회의비

1,737,100

7,148,500

9,525,000

9,525,000

200,000

300,000

Ⅲ. 수입 - 직접사업비

47,815,055

165,605,360

Ⅳ. 운영비

35,955,614

108,341,418

19,696,340

62,204,191

언론개혁활동비 회원감사활동 연대활동비

직원급여

1,538,000

7,430,908

퇴직급여

791,700

2,368,980

사회보험

잡급

1,459,990

4,470,960

복리후생비

910,420

3,180,580

여비교통비

127,000

263,560

접대비

40,800

774,800

통신비

250,590

809,130

수도광열비

419,479

1,181,254

지급임차료

1,265,000

3,795,000

차량유지비

-

45,000

44,000

139,000

운반비 도서인쇄비 소모품비

1,565,710

4,674,810

1,100,000

3,300,000

Ⅵ. 영업외수익

1,300,000 57,263,942

1,554,416

4,890,396

676

676

기타수입

1,295,240

4,630,220

행사수입

258,000

258,000

500

1,500

-

170

잡이익 Ⅶ. 영업외비용 Ⅷ. 법인세차감전이익 Ⅸ. 법인세등 Ⅹ. 당기순이익

2017년 5월

100,000 11,859,441

이자수익

잡손실

*지역 민언련 활동비는 지역 민언련 회원들이 낸 회비입니다. 현재 민언련은 7개 지역 민언련 회비 CMS 업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988,600 11,414,645

건물관리비 Ⅴ. 영업이익

② 민언련 30년 사 「민주언론, 새로운 시작」 발간 비용입니다.

347,000 6,299,585

지급수수료 용역수수료

③ 3월 기타수입에는 「민주언론, 새로운 시작」 판매 비용이 포 함되어 있습니다.

7,719,483 120,011,222

강좌진행비

지역민언련활동비

① 지난 1월과 2월 회원들에게 보고한 정기후원회비에서 오류 를 확인해 1월부터 3월까지 누계에 바로 잡았습니다.

2,357,249 46,510,293

-

170

13,413,857

62,154,168

-

-

13,413,857

62,15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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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좋은·나쁜’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2017년 3월 좋은 신문·방송·온라인 보도 없음. 민언련이 좋은 보도를 선정하여 수상을 한 이후, 선거 시기에는 주로 선거보도만을 대상으로 수상 작을 뽑았다. 그런데 2017년 3월에는 신문과 방송, 온라인 부문에서 모두 좋은 보도가 선정되지 않 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 보도에서 ‘좋은 보도’라고 선정할만한 수작이 없었다는 점이 참 아쉽다.

나쁜 신문 보도

세월호, 대선주자 비방 소재로 이용한 조선 대선을 앞두고 세월호 인양을 계기로 세월호 이슈가 다시 부각되자, 조선일보는 이를 야권 대선후보 를 비판하는 정치공세 소재로 이용했다. 주로 ‘2기 특조위 운영’ 혹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야권 대 선 주자를 비방하거나, 야당과 야권 대선 주자들이 안보 문제와 직결된 ‘천안함 사고’에는 관심을 기 울이지 않는다고 비방하는 식이었다. 그간 진상규명을 방해하며 유족과 희생자들을 모욕해 온 조선 일보가 반성은커녕 여전히 ‘자사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세월호 이슈를 흔든 셈이다. 이에 민언 련은 조선일보 ‘세월호 인양 빌미 대선주자 비판 보도’를 2017년 3월 ‘이달의 나쁜 신문보도’로 선정 했다.

나쁜 방송 보도

무너진 공영방송 MBC의 ‘천태만상’ 선정 배경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 국면이 본격화된 3월 21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노조 탄입, 국정농단 사태 부실 보도 등 MBC의 최근 행태를 비판했 다. 무너진 공영방송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비판이었지만 MBC는 바로 다음날부터 보도로 보복했 다. 문재인 후보가 공영방송을 압박하며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사 성명을 일 방적으로 읽는 보도가 반복되면서 고질적인 ‘뉴스 사유화’가 또 노출됐고 리포트에서 질문 내용을 왜곡하는 등 기본적인 언론 윤리 위반도 발견됐다. 이에 민언련은 MBC <후보 검증 토론회서 공영 방송 비난>(3/22 육덕수 기자) 등 5건의 보도를 2017년 3월 ‘이달의 나쁜 방송보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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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웹진 ‘e-시민과 언론’ 2017년 3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배포한 내용입니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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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사드 배치 이후 불안한 안보 정세 외면하는 언론에 고함

대선 이후 촛불이 분노하지 않도록 정치 머슴 대오각성해야

선거는 유권자에게 최대의 축제다. 정치 머슴을

러내고 있다.

뽑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제는 사회

이번 대선이 촛불이 탄핵한 박근혜의 아바타인

적 동물인 인간이 확립한 정치제도 가운데 최신의

황교안 대행과 행정부가 포진한 상태에서 진행되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변화가 생기

는 측면도 아주 볼썽사납다. 박근혜와 함께 국정

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 형식이 실천되는 일이 잦

농단에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이 다 버티고 있다

아지고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이 매개체가 되어

보니 87년 6월 항쟁 후 전두환 체제 속에서 치러

신속한 의사소통과 집단지성의 실현, 대규모 동

진 대선을 연상케 한다. 파렴치한 박근혜 추종세

원 등이 가능해졌다. 한국의 경우 2008년 광우병,

력들이 박과 함께 축출된 상태에서 대선이 치러졌

2016~17년 박근혜 게이트 상황 속 촛불이 대표적

다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이다. 안보 불안 방치하는 대선 보도는 재앙이다 대선이 코 앞인데, 흥미 위주 보도만 하는 언론

이번 대선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놓고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한반도가 얼마

는 아쉽고 실망스럽다. 언론은 누가 앞선다는 식

나 심각하게 외세에 종속되었는가 하는 점이 확

의 경마식 보도에 매달리거나 후보 검증보다 시시

인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드로 인해 한반

콜콜한 신상 문제 등에 더욱 열심이다. 개를 무는

도 정세가 냉전시대와 달라지는 조짐이 확연한데

사람을 찾는 것이 언론의 체질이라 해도 과거 기

도 대선 후보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

레기 언론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후보들

도 걱정스럽다. 중국이 남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도 촛불의 염원을 담아낼 국민에 무한 봉사할 정

행사하게 되면서 향후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서 더

책과 통 큰 비전을 제시하는 믿음직한 정치 머슴

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드 사태를

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흥분된 모습을 드

통해 중국이 한류와 무역, 관광 등에서 한국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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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공격은 한반도 전면전으로 비 화되고 그것은 민족 최악의 재앙이 될 것 이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백악관 홍보 매체같은 태도를 보이거나 강 건너 불구경 식 기사를 쏟아낸다. 사진은 4월 11일 KBS 의 칼빈슨호 출동 관련 보도 화면.

타격을 주면서 대선 이후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

것에 대해 외세가 어떻게 판단할까를 생각하면 소

될지 주목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예고되었지만

름이 돋는다.

박근혜 정권은 무대책이었고 국내 기업이나 상인 들만 피 말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종북몰이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국가보안법’

한국 정치권과 학계 등은 사드가 한미상호방위

사드 사태에 대한 국내에서의 미흡한 대응을 보면

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에 의해 한국 배치가 추

서 이승만 이래 실시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해

진되는데도 이 조약에 대한 언급하지 않는 것은

를 실감하게 된다. 반미=친북이라는 말도 되지 않

해괴한 일이다. 이번 대선이 미국의 손아귀에 있

는 논리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여전히 그 독기가 지

는 한국의 군사적 주권 실상과 그 개선을 위한 문

독하다. 수구진영은 이번 대선을 ‘좌파에게 정권을

제제기를 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는 점에서 매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며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

우 아쉽다. 시민사회단체라도 더 늦기 전에 발 벗

다. 국가보안법에 의존하는 추악한, 막가파적인 종

고 나서야 한다. 미국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방

북공세 정치행각이다. 언론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안도 검토 중이라는데 한국 언론은 미국 백악관의

수십 년을 억눌리면서 국가보안법에 마비되었거나

홍보 매체인 양 보도한다.

자기검열을 체질화한 상태다. 이번 대선도 언론의

미국의 북한 공격은 한반도 전면전으로 비화되

병든 모습이 거듭 확인된다.

고 그것은 민족 최악의 재앙일 터인데 연합뉴스,

선거는 정권을 심판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가능

KBS 등의 관련 보도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의

할 채비를 갖춘다는 중요한 행사다. 이번 대선은

기사를 쏟아낸다. 대선에서 안보 불안을 야기하려

민주주의와 자주권 회복, 국가보안법 폐기를 위한

는, 공작 정치 뺨치는 보도의 노림수는 수구꼴통

최상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의 결집이 아닌가. 남북한 간 평화적인 공존과 교

갇힌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의 구태의연한 모습

류협력과 함께 평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

은 실망스럽다. 해방 이후 남한의 정치발전은 민초

사적 자주권 확보 등이 시급하고 그것을 위한 공

들에 의해 이뤄졌다. 대선 이후 촛불이 분노하지

론화가 활발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 머슴을 뽑는

않도록 정치 머슴 등은 대오각성해야 한다.

큰 행사에서 군사 주권의 핵심 문제를 외면하는 2017년 5월

글 고승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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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경마중계식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지지율에 매몰된 대선 보도

언론학에서 선거 관련 보도를 분석할 때 흔히 사

선 관련 보도에서도 이러한 언론의 경마중계식 보

용하는 용어가 바로 ‘경마중계식(Horse Race) 보

도 형태는 반복되고 있다. 조기 대선으로 대선 후

도’다. 경마중계식 보도는 언론사들이 선거보도를

보에 대한 검증시간이 짧아 유권자들이 후보자들

하면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속한 정당의 정책

의 공약과 대선 후보로서의 자질에 대한 보다 정

이나 후보 개인의 공약, 그리고 후보로서의 자질

확하고 세밀한 검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중요

에 대한 분석이나 검증 없이 단순히 누가 여론조

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유권자들에게

사에서 가장 앞서고 있고, 누가 당선 가능성이 높

후보자 검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보다는

은지 등을 단순히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나타난

여론조사 지지율을 중심으로 한 경마식 보도에 혈

지지율 숫자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안이 되어 있다. 제대로 된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

마치 경마중계에서 어떤 경주마가 가장 앞서고

에 대한 검증 보도는 온데간데없고, 대부분 독자

어떤 경주마가 우승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서만

들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이고

중계하듯이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만 하는 언

선정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관행은 여전

론의 선거보도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결국, 경마

히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계식 보도는 언론이 선거 관련 보도를 하면서

문제는 언론이 대선 관련 보도를 여론조사 지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

지율을 중심으로 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경마중

고 선정적인 내용들만을 주로 보도하는 관행을 비

계식 보도로 일관하면서 정작 유권자들이 자신의

판적으로 꼬집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데 반드시 알아야 하는 대선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의 실현가능성과 후보

대선을 ‘말 달리기’로 착각한 언론

개개인의 자질에 대한 검증보도는 찾아보기가 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들다는 것이다.

이 탄핵을 당하면서 조기에 치러지게 된 이번 대 44

선거보도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은 유권자들이


언론이 경마중계식 보도에 몰두하다 보면 지나친 속보경쟁을 유발하게 되어 오보 로 이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또한 경마중계식 보도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 선거결과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심층취재를 통해 각

은 후보에게 표가 쏠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후보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

와 반대로 ‘언더독(Underdog)’ 효과는 절대 강자

다. 특히, 유권자들이 국가를 위해 일할 능력과 자

에 대한 견제심리를 일컫는 것으로 약자에 대한

질을 갖춘 대통령을 올바로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연민이 작용해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낮은 후보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

를 유권자들이 지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결

라 언론의 대선 관련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선거

국, 밴드웨건과 언더독 효과로 인해 여론조사 지지

보도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후보자들의 정책

율을 기반으로 한 언론의 경마중계식 보도가 유

이나 공약에 대한 분석과 검증에 관한 기사를 찾

권자들의 올바른 대선 후보 선택을 왜곡시킬 가능

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기 대선 정국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

유권자 선택 왜곡하는 경마중계식 보도

인 보도에 매몰되어 정책보도는 안중에도 없고 오

선거보도에서 경마중계식 보도는 여러 가지 문제

로지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경마

점을 양산하게 된다. 먼저 언론이 선거보도에서 독

경주 중계하듯 여론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피상적

자와 시청자들의 눈길만을 끌기 위해 후보들의 공

이고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내는 경마중계식 보도

약과 정책에 대한 검증보도를 외면하고 경마중계

행태는 근절되어야 한다. 대선 관련 보도에서 언

식 보도에 몰두하다 보면 지나친 속보경쟁을 유발

론사들의 이러한 경마중계식 보도 행태는 유권자

하게 되어 오보로 이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또한

인 독자와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행위이

경마중계식 보도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

고, 선거보도에서 올바른 언론의 역할과 사명을

쳐 선거결과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언론의

망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

경마중계식 선거보도가 선거 결과를 왜곡시킬 가

온 조기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능성이 있는 이유는 ‘밴드웨건(Band Wagon)’ 효

있도록 언론사들은 피상적이고, 표피적이며, 자극

과와 ‘언더독(Underdog)’ 효과 때문이다.

적인 경마중계식 보도에서 벗어나 유권자들이 올

밴드웨건(Band Wagon) 효과는 선거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유권자의 심리 현상 중 하

바른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 는데 선거보도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나로 선거기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 2017년 5월

글 최진봉 정책위원·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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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언론개혁의 골든타임을 맞이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

언론개혁이 선행되어야 민주 대개혁 실현할 수 있다

지난 몇 개월간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항

가는 개혁’으로 우선적인 과제가 된다. 촛불광장의

쟁’이 성과 있게 마무리되고 있다. 헌정유린과 국

힘으로 열어젖힌 촛불대선이건만 이번 대선시기에

정농단을 자행했던 대통령 박근혜는 결국 파면되

제도언론이 보이고 있는 각종 왜곡·편파 보도행태

고 구속되었다. 또 최순실, 김기춘, 이재용 등도

를 보라. 지난 시기의 ‘청와대 방송’이나 관제언론

구속되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

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의 막장 보도행태를 보

던 일이 우리 눈앞에서 현실화되는 놀라운 일이

이고 있지 않은가?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냥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동은 딱 거기까지다.

두고서는 새 정부의 민주개혁도 그냥 희석되거나

이른바 “법꾸라지”로 불리던 우병우 등은 불구

좌초되어 버리는 초전박살을 당할 위험이 있다.

속기소 되어 여전히 감옥 밖을 활보하고 있고, 뇌 물 주고 특혜 받았던 롯데, SK, 현대차 등 재벌총

언론장악 부역자 청산·해직언론인 복직이 언론개혁

수들도 대략 구속이나 실효성 있는 처벌을 피하고

출발점

있는 형세다. 그리고 우리는 대선국면으로 빨려 들어가 있다.

언론개혁의 출발점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부역자를 청산하고, 부당하게 해직된 언론인 들을 복직시키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미 전

언론개혁은 모든 민주개혁을 열어가는 개혁

국언론노조에서 언론장악 부역자 60명의 명단과

촛불광장의 염원인 새로운 민주공화국 실현은 민

그 구체적 부역행위 내용을 공개한 바 있는데, 이

주주의와 평등, 사회공공성 확대와 평화체제 구축

들과 그 외 부역자들을 신속하게 청산하는 과제가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민주대개

언론개혁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혁의 핵심 내용은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또 MBC, YTN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과 또

그리고 정치개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당징계를 당하고 제작현장에서 쫓겨나 자신의

그중에서도 언론개혁은 그 ‘모든 민주개혁을 열어

전문성과 무관한 업무에 ‘유배’되어 전전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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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수많은 언론인들을 제작현장에 복귀시키는 일

성 보장 문제는 언론개혁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이 선결적 과제라 하겠다. 아울러 권력이 불법부

실질적 조건이다. 편성·제작 책임자의 임명동의제

당하게 언론을 장악하고 언론인을 탄압했던 상황

또는 중간평가제 실시를 법제화하고 또 편성·제작

에 대해 독립적인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행정부 차

위원회의 실효성 있는 구성과 운영 실태를 방송의

원에서 구성되든지 아니면 국회 차원에서 구성되

재허가나 재승인 시 중요 판단사항으로 삼도록 법

든지 간에 권력이나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진상

제화시킬 필요가 있다.

조사 단위가 구성되고 실질적 또는 법적 권한을

사실 위의 개혁방안 이외에도 종편특혜 환수,

갖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에서의 국정조사

뉴스보도를 광고 또는 협찬금과 바꿔먹지 못하게

나 청문회가 자칫 ‘정파 간의 정쟁’ 양상으로 치달

하는 방송사의 광고 직접영업 금지, 편파 심의와

을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면죄부 심의를 일삼는 방송통신심의위의 민주적 이고 공공적 기구로의 전면개편, 미디어 다양성을

공공적 규제기능과 진흥기능 분리·방송통신위 민주

위해 지역언론을 살리고 독립미디어를 활성화시키

적으로 재구축 필요

는 대책 등도 뒤따라야 한다.

다음으로 언론장악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 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새 정부

새 정권 출범 초기가 언론개혁의 골든타임

출범과 함께 진행될 정부조직개편과 관련, 방송통

얼마 안 있어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하게

신위 기능 중에서 공공적 규제기능과 산업진흥적

된다.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헬

기능을 분리시키고, 방송의 독립성과 여론다양성

조선에는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새 정권하

에 기반한 민주적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독립적인

에서는 국민들이 투표일에만 주권자가 되는 ‘투표

정책·행정 규제기구로 재구축하는 조치가 필요하

자’를 넘어서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진짜 주권자

다.

가 될 수 있을까? 촛불광장을 가득 메운 대다수

공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방송통신 관련 국가기

민초들의 삶에 어떤 희망이 깃들 수 있을까?

구의 구성방식도 정파 간 나눠 먹기 비슷한 현행

그 결정적 분기점이 제대로 된 언론개혁에서 시

방식을 극복하고 다양성과 정파 독립성이 실질적

작된다. ‘촛불항쟁’을 우리 사회를 진정한 민주공

으로 확보되어야 마땅하다. 또 공영방송의 정상화

화국으로 바꾸는 명실상부한 ‘촛불혁명’으로 발전

와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해 청와대와 여당 추천

시키는 과제도 언론개혁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회는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구성으로 변경되어 야 한다.

특히 새 정권 출범 초기가 언론개혁 성공의 골 든타임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새 정권이 수구언 론의 눈치를 보면서 좌고우면하다가 결국 언론개

방송 편성 및 제작의 내적 자율성을 강행규정으로

혁도 또 다른 민주개혁도 무산시키는 우를 범하지

법제화해야

않도록, 깨어 있는 우리 시민들이 정권 초기부터

편성·제작에 있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언론개혁의 기세를 거세게 휘몰아쳐 나가자!

독립을 보장하는 문제, 즉 편성·제작의 내적 자율 2017년 5월

글 박석운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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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 | 대선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주문

적폐청산의 ‘주적’ 언론,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선 일주일 전, 수구언론은 여전하다

보 사퇴’ 따위로 선거판을 흔드는 정치야바위꾼들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꼭 일주일 남았다. 3일부터

의 간교한 장난에 수구언론이 장단을 맞추고 있

는 여론조사 결과도 공표할 수 없는 블랙박스 기

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적폐청산의 대상 1호인 친

간이 시작된다. 편승효과(bandwagon effect), 열

박당의 대통령 후보가 “언론을 손봐야 한다”거나

세자효과(underdog effect)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여론조사 업체를 응징하겠다”며 겁박하는 웃지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유권자들은 선거

못 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때마다 정치공학적 선택을 강요당해 왔던 것이 사 실이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물론 정치에 있지

광장에서 드러난 적폐, 그 청산의 걸림돌

만 언론의 책임이 더욱 크다.

이러한 언론 현실은 선거 이후의 정국을 더욱 어

촛불이 만들어낸 선거정국이지만 언론의 어느

둡게 하고 있다. 물론 언론이 어느 날 갑자기 개과

구석에서도 촛불의 시대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천선해서 ‘민중의 횃불’이 되고 ‘사회의 소금’이 될

언론은 특정 후보 깎아내리기나 특정 후보 띄우기

리는 만무하다. 일제와 독재권력의 시녀였던 시대

에 여념이 없고 검증이라는 미명하에 네거티브에

를 지나 지금은 권력을 창출하는 ‘킹메이커’로 행

빠져있다. ‘주적 논쟁’ 같은 적폐세력의 단골 메뉴

세하는 언론권력에게 구습과 악폐를 스스로 씻어

가 언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것도 여전하다.

내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걱정은 이

불편부당, 중립성, 균형성 등 선거보도준칙을 언급

런 언론현실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촛불시민

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언론은 정파의 홍보 역

이 염원했던 적폐청산은 기대난망이라는 점이다.

군이 된 지 오래다.

지난겨울 그 어떤 권력도 촛불시민의 정의의 힘

달라진 것은 수십 년간 적폐세력의 공범자였던

앞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정보기관의 음험한 공

수구언론들이 여론조사 결과가 들쑥날쑥하자 새

작도 통하지 않았다. 도로교통법, 소음공해 따위

로운 보수 후보를 찾아 시시각각 논조를 변화시킨

를 들이대면서 ‘불법집회’로 몰았던 경찰도 촛불의

다는 점이다. 판세가 변할 때마다 ‘후보 통합’, ‘후

집회현장을 보호해 주었고 법원은 청와대 코앞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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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선 과제는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정상화다. 특히 MBC의 형질개조 작 업을 해왔던 적폐부역세력들에 대한 확실한 청산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것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지 시위대에 길을 열어 주었다. 수도 서울에 위치

언론개혁, 공영방송 정상화가 시작이다

한 광화문 광장은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 기적

그래서다. 소수의 건강한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같은 촛불혁명의 성공은 그 무엇도 아닌 깨어난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95:5로 기울어진 언론지

촛불시민이 만들어낸 것이며 비록 극소수지만 그

형이지만 그 ‘5퍼센트’의 개혁적 힘이 시민사회와

나마 언론다운 언론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함께 시너지를 발휘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민주정

광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들이 낱낱이

부, 민주언론, 민주시민이 함께하는 것이다. 무엇

밝혀졌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청와대는 물론

보다 적폐청산의 ‘주적’인 언론을 개혁하는 것이 먼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과 재벌이 적폐라

저다. 최우선 과제는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는 꼬리표를 달았다. 세월호, 사드 등 감추어졌던

정상화다. 특히 MBC의 형질개조 작업을 해왔던

적폐의 모습들이 드러났다. 양극화, 청년실업, 독

적폐부역세력들에 대한 확실한 청산이 절대적으

거노인, 사교육, 비정규직, 가계부채, 농촌, 핵폐기

로 요구된다. 그것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절반은 성

물, 4대강, 미세먼지 등 쌓였던 난제들이 과제로

공한 것이다.

떠올랐다.

속지 말아야 한다. “겁박과 협박으로 언론독립

그러나 이 산적한 적폐청산의 과제들은 하나도

을 훼손하고 공정방송을 장악하려는 민주주의 공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적들”, “편향적 정치 성향으로 언론독립과 공정성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부는 여소야대의 약체 정부

을 말할 자격조차 없는 사실상의 정치집단” 이것

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선거가 끝나면 집권당은

은 노조의 성명서 문구가 아니라 MBC 언론부역

논공행상에 여념이 없을 것이고 야당은 정치적 이

자들이 노조를 공격한 말이다. 사탄도 성경구절을

합집산으로 분주할 것이다. 삼권분립이 엄존하고

웅얼대듯 부역자들도 공정방송을 운위한다.

있는 민주정체에서 여소야대 대통령의 지도력에는

진퇴양난의 시점에 중요한 것은 원칙에 충실 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적폐청산에는 법과

는 일이다. 방향은 분명하고 전략은 정교해야 한

제도 개혁의 주체인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언

다. 수구언론의 눈치를 보면서 좌고우면하면 실패

론장악방지법에서 보았듯 날치기를 막기 위해 만

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수구언론들은 ‘통

들어졌던 국회선진화법이 이제는 개혁의 걸림돌로

합’이니 ‘국민화합’이니 하면서 적폐세력과의 동거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적폐세력과 손을 잡을 수

를 주문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개혁세력과 적폐세

도 없고 손을 잡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언론 또

력의 어설픈 화합이 아니라 구습과 악폐에 젖어있

한 시대정신을 이끌어갈 책무가 크지만 적폐세력

는 적폐세력을 국민으로부터 떼어내는 일이다.

과 공범으로 낙인찍힌 수구언론이 개혁에 동참하 기는 쉽지 않다. 진퇴양난이다.

2017년 5월

글 이완기 상임대표

49


언론포커스 |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건 여론 왜곡하는 나쁜 뉴스

‘진짜’ 가짜 뉴스에 대한 오해와 환상

먼저 나쁜 뉴스와 가짜 뉴스는 구분할 필요가 있

나쁜 뉴스가 가짜 뉴스인가?

다. 가짜 뉴스는 뉴스가 아니면서 뉴스인 척하는

가짜 뉴스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지만 진짜 뉴스를

거짓 정보를 말한다. 그러니까 가짜 뉴스는 좋고

흉내 내서라기보다는 뉴스인 것과 뉴스가 아닌 것

나쁘고를 떠나 아예 뉴스가 아닌 것이지만 그렇

의 경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

기 때문에 나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불러서는

이고 본질이다. 누군가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기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N 기자

사 요약처럼 보이는 텍스트는 그게 진짜 기사인지

의 질문에 “You are fake news(당신들은 가짜 뉴

악의적으로 만든 거짓 정보인지 알 방법이 없다.

스야)”라고 윽박지른 것처럼 (내가 보기에) 나쁜 뉴

다만 많은 사람들이 언론이 늘 진실을 말하는 건

스를 가짜 뉴스라고 매도하기 시작하면 논점이 흐

아니라고 생각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진짜 고

트러진다.

급 정보가 따로 있다고 믿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의 가짜 뉴스는 미국과는 양상이 조금

다들 경험하지 않나.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볼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코멘트와 기사 제목

말라고 선언했다”는 등의 거짓 정보가 페이스북을

만 보고 열어보지도 않은 채 기사를 공유하곤 한

타고 확산됐는데 알고 보니 뉴스 사이트로 위장한

다. 그게 어느 언론사의 기사인지, 애초에 언론 보

사이트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서 가짜 뉴스

도인지 커뮤니티 게시판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뉴

사이트가 발견된 바 없다. 가짜 뉴스라고 논란이

스가 파편화되고 뉴스의 브랜드가 해체되고 있다.

된 여러 사례들은 늘 있었던 유언비어거나 진짜

기사의 한 문단이나 코멘트 한 줄이 출처도 없이

뉴스의 잘못된 보도거나 ‘내가 보기에’ 나쁜 뉴스

떠다니다 보면 맥락을 잃고 왜곡되기 쉽다. 뉴스인

를 가짜 뉴스로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것과 뉴스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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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기자의 질문에 가짜 뉴스라며 윽박지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반기문 전 유엔 사무

찌라시가 더 솔깃한데?

총장은 술잔을 바로 받아 마시지 않았다. 퇴주잔

트럼프가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 한국을 보라”고

을 받아 두 번 돌리고 난 다음 묘소에 뿌렸고 다

말했다는 언론 보도는 가짜 뉴스라기보다는 명백

시 음복잔을 주니 받아 마신 것이다. 정석대로 했

히 오보였다. 출처는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하면 이

고 나름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커뮤니티

기지 않을까”라는 한 페이스북 글이었다. 그나마

게시판에 떠돌았던 이른바 ‘움짤’만 보면 반 전 총

좀 규모가 있는 YTN 보도였기 때문에 상당수 사

장이 퇴주잔을 받자마자 ‘원샷’하는 것처럼 보인

람들이 속아 넘어갔다. 흔히 오해하지만 가짜 뉴

다. 중간 부분을 잘라내고 붙인 ‘악마의 편집’이었

스는 주류 언론의 외부가 아니라 주류 언론의 공

다. “허걱, 저걸 왜 마셔?”하는 반응이 나올 수밖

백, 그리고 주류 언론의 한계와 주류 언론에 대한

에 없다.

불신을 파고든다.

악의적 목적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재미였을 수

“문재인이 치매에 걸렸다”는 출처 불명의 카카오

도 있지만 이 13초짜리 ‘움짤’은 엄청난 속도로 확

톡 찌라시는 가짜 뉴스인가? “JTBC의 태블릿 PC

산됐고 한때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 전 총장의 낙

는 조작됐다”는 박사모 카페 게시물은 가짜 뉴스

마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인가? 뉴스처럼 보이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면 명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움짤’은 가짜 뉴스인가?

백히 가짜 뉴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찌라시

이 ‘움짤’을 인용하면서 트래픽 장사를 했던 수많

들은 굳이 뉴스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

은 언론 보도가 가짜 뉴스인가? 엄밀하게 말하면

히려 주류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에 기대어 ‘이것

둘 다 가짜 뉴스라고 할 수는 없다. 가짜 뉴스의

은 찌라시지만 이것이 진짜 뉴스야’라고 속삭이는

개념 규정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다.

것처럼 보인다. 찍어누른다고 사라질 종류의 의혹 이 아니다. 2017년 5월

51


반기문 ‘퇴주잔 논란’이 편집으로 인한 ‘가짜 뉴스’였음을 밝힌 한국일보 유투브 영상

찌라시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고 진

독자들이 판별하겠지만 독자들 역시 뉴스 전체를

짜 뉴스도 거짓을 말할 때가 있다. 결국 형식이 아

불신하는 시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그런 시대가

니라 내용이 문제다. 친박 집회에서 뿌려졌던 노컷

됐다.

일베나 프리덤뉴스 같은 신문을 가짜 뉴스의 사례

오히려 가짜 뉴스는 언제나 있었고 시대의 변화

로 꼽지만 이들은 버젓이 신문의 형태를 하고 있

와 플랫폼의 확장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고 정식으로 등록된 매체들이다. “태블릿 PC는 조

게 맞다. 술자리 뒷담화를 통제하기 어려운 것처럼

작됐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 보기에 따

가짜 뉴스는 평판의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자연스

라 악의적인 나쁜 뉴스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형식만

럽게 소멸하게 돼 있다. 가짜 뉴스일 수 있다는 걸

으로 가짜 뉴스라고 할 수는 없고 이를 막을 방법

알면서도 굳이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도 없다.

그걸 찍어 누르거나 처벌한다고 해서 여론이 정화 되는 건 아니다. 원래 여론은 시끌시끌하고 온갖

평판의 시장 이외의 해법은 없다

잡음을 동반하면서도 결국 진실에 수렴하기 마련

반기문 퇴주잔 논란에서 보듯 이제는 유언비어가

이다.

뉴스로 살아나고 카톡 찌라시가 주류 언론 못지않

가짜 뉴스를 수집해서 리스트업하자는 제안도

은 신뢰를 갖는 시대가 됐다. 카톡으로 떠도는 몇

있었고 기사마다 빨간색 파란색 신호등을 붙이자

줄의 글이 진짜 뉴스를 요약한 것인지 누군가가

는 등의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모두 현실적인 해법

악의적으로 만든 뉴스 비슷한 가짜 정보인지 판별

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뉴스가 아니다”, 아

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제는 찌라시와 주류 언론이

무리 강조하거나 비난해도 이런 음성적인 정보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결국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진실은 칼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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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 한국을 보라” 고 말했다는 오보의 진원지 페이스북 글

르듯 명쾌하지 않을 때가 많고 원래 수많은 의혹

변죽을 울리는 엉터리 해법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

과 논쟁을 낳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까지 모두를

다.

설득할 수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상당수 사람들이 JTBC밖에 믿을 게 없

공론장 회복이 해법이다

다거나 다른 언론은 모두 뭔가를 숨기거나 왜곡하

사실 가짜 뉴스보다 더 위험한 건 여론을 왜곡하

고 있다고 믿는 현상도 매우 위험하다. 그 반대편

고 호도하는 나쁜 뉴스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

에서는 또 다른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

스가 공존하고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를 밀어내

나 다음 등 주류 콘텐츠 플랫폼이 무색무취 정치

는 게 평판의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다. 진짜 뉴스

적 중립을 표방하면서 독자들을 정치 혐오로 내모

가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짜 뉴스가 힘을 잃

는 현실도 바람직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진짜’ 진

는다. 신뢰의 위기의 시대, 진짜 뉴스의 신뢰를 회

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

복하는 게 가짜 뉴스에 맞서는 근본 대안이라고

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본다. 원론적이지만 공론장의 회복과 평판 시장의

가짜 뉴스도 진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실제

작동, 그 이외의 해법은 있을 수 없다.

뉴스의 형식을 갖춘 거짓 정보를 가짜 뉴스라고 불렀다면 이제는 뉴스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뉴스 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뉴스가 소비되는 방 식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퍼뜨릴 수 있 게 됐다. 가짜 뉴스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 만 최근 진행된 여러 논의는 호들갑이 지나치거나 2017년 5월

글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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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2017 대선미디어감시연대에 거는 기대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지난 3월 20일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가 발족

충분히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했다. 5월 9일로 예정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맞

둘째 유권자들이 당장의 이익을 기대거나 후보

춰 민언련은 언론시민단체들과 함께 전국 신문·방

자의 대중적 인기를 보고 투표하게 두어서는 안

송 뿐 아니라 통신사와 포털, SNS까지 모니터하기

된다. 언론은 후보자의 정책 의제를 중심으로 대

로 결정했다. 종전의 선거보도 감시활동을 더 포

중에게 제대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사실 검증과

괄적이고 집중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

실현 가능성의 검증, 합리적 고려의 검증 등을 포

비를 했다.

함한 정책중심 보도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정책

짧은 기간 안에 치러야 하는 선거여서 모니터 결

중심 보도와 언론사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과를 대중에게 알리고 언론사에 압력을 줄 수 있

사실확인 보도는 가짜뉴스(페이크뉴스)의 기승을

는 기회가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40

염려하는 현 시국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

여 일 앞둔 투표를 위해 시민사회의 선거보도 감

다.

시활동이 중요한 이유 3가지 정도를 요약해 본다.

또한 시민사회여론을 적극적으로 언론이 반영 하여 보도해야 후보자는 물론이고 후보자와 함께

선거보도 감시활동이 중요한 이유 3가지

정책을 준비하는 구성원들이 시민들의 직접적인

첫째 선거 관련 보도에서 언론사가 공정한 보도를

요구와 바람이 무엇인지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단순히 기계적 중립을

후보자나 정당이 만들어낸 의제도 중요하지만, 유

표방하는 보도의 많고 적음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

권자인 시민이 요구하고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

니다. 단순 동정보도는 줄이고 객관적 사실을 정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확하게 보도해달라는 요청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

셋째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 왔던

보자에게 편파적이지 않도록 보도의 불공정을 유

선거보도 모니터 활동을 통틀어 볼 때, 빈번하게

념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신진·소수·진보세력을

지적했고 지양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해온 문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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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열린 ‘2017대선미디어감시연대’ 발족 기자회견

보도 형태를 반복 혹은 확대하지 않도록 주의를

은 온라인으로 선거 관련 보도에서 문제가 있는

기울여야 한다. 선거 관련 보도에서 문제적 보도

경우를 신고할 수 있는 국민신고센터를 운영하기

라고 지적해 온 수많은 유해성 보도는 편파·왜곡

로 했다. 더 많은 시민들이 모니터 보고서를 접할

보도를 포함해 경마성 보도, 선정성 보도, 가십

수 있도록 트위터 논평, 카드뉴스, 동영상 뉴스,

보도, 연고주의 보도, 색깔론 보도, 정치 혐오성

유인물, 팟캐스트 등 다양한 형태로 홍보한다는

보도, 따옴표 보도, 흑색선전, 오보 등등 그 종류

계획도 세웠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해줄 대감연

도 여러 가지가 있다.

모니터활동가들의 수고와 노력에 응원을 보탠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보도의 중요성은 아무

선거 때마다 유권자 중심의 선거보도를 강조했

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반복적으로 유해

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없다. 보다 다양하고, 정확

성 보도를 접하는 유권자들이 알아서 올바른 프

하고, 올바른,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권자 중

레임을 고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심의 대선 미디어 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에 대감연

신종수법마냥 가짜뉴스를 비판하면서 가짜뉴스를

의 역할이 작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쁜’ 박근

유포하는 식의 문제성 보도를 잡아내야 하는 어려

혜 정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언론이 진정으로

움도 생겨났다(하나 예를 들자면, 종편 시사토크

제 역할을 할 때다.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프로그램 일일브리핑 <‘가짜뉴스’ 비판하며 ‘문재인 가짜뉴스’ 유포하는 TV조선>.

언론, 이제는 제 역할을 해야 할 때

대선미디어감시연대와 민언련은 시민들이 전화 혹

2017년 5월

글 김수정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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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수구보수 세력의 재편을 도모하는 조선일보, 그 퇴행적 미래를 경계하라

조선일보 퇴장이 우리의 미래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면, 2014년 세월호의 침

이 되었다”

몰과 국가의 무책임을 목격한 평범한 시민들은 정

소설가 한강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했다는 ‘소년

치를 바꾸는 데 나섰다. 박근혜 탄핵과 구속은 그

이 온다’의 한 구절이다. 소설은 광주항쟁을 다루

시작이다.

고 있지만 곳곳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나 라’라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죽음을 무릅

세월호 돌아온 날, 조선일보 “진상규명은 증오의 말”

쓰고 이타적인 선택을 했을까, 타인의 죽음 앞에

세월호 참사는 그저 불행한 사고로 남지 않았다.

내 삶이 장례식이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이유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무엇일까.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과 수

지난 3월 31일 세월호가 돌아왔다. 목포는 노랗

구보수 세력은 세월호가 우리사회에 불러올 변화

게 물들었다. 각지에서 세월호를 찾는 시민들의 발

가 두려웠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일

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미수습자 모두를 찾아 달

뿐이라고 강변하고 온갖 궤변으로 희생자와 가족

라,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자, 잊지 않겠다. 시민들

들을 모욕했다. 수구보수 언론은 진상규명 요구는

은 노란 리본에 마음을 묶는다. 세월호를 맞는 희

물론이고 시민들의 작은 추모 노력마저 불순한 선

생자 가족들, 그 중에서도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

동으로 몰았다. 시민들은 지치지 않고 맞섰다.

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부터 채 3년이 되지 않아 박근혜 정권은

를 함께 아파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연대했던 수많

무너졌고 새누리당은 쪼개졌다. 그러나 수구보수

은 시민들의 마음도 간절하다.

언론은 여전하다. 특히 조선일보는 세월호의 의미

지난 3년 세월호는 우리에게 끈질기게 물었다.

를 깎아내리고 진상규명 노력을 공격하는 데 앞장

도대체 ‘나라’라는 게 이래도 되는가, 당신이 그 배

서고 있다. 세월호가 뭍으로 돌아온 날도 예외가

에 탔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아이들이 죽어갈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에서 위선과 증오를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많은 평범한 사람들

파는 사람들>(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이라는

이 이 물음에 응답했다. 이제라도, 무엇이라도 할

칼럼을 실어 진상규명 노력을 “위선과 증오”로 몰

게. 광주항쟁의 진실을 접한 80년대 젊은이들이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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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 이렇게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보는 다시 한 번 단속에 나섰다. 4일 사설은 “안

전 대통령 때문이 아니고 구조에 실패한 것 역시

(철수) 후보에게서 ‘미래’를 보고 문 후보에게선 ‘과

그의 지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세월호 참사

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 후보가

에 올라탄 정치·운동권 세력은 세월호 7시간 의혹

힘을 줘 해온 말과 약속이 대부분 과거 지향이었

만 집요하게 제기했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진상

다”며 과거에 머물면 이번 대선도 실패할 것이라고

규명’을 약속하는 것은 3년 묵은 증오의 말을 되

겁을 준다.

풀이하는 일이다! 조선일보 주장 대로면 차기 정권

조선일보는 수구보수 이데올로그로서의 본분을

이 세월호 진상규명에 나서는 것은 과거를 붙잡고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있다. 어차피 박근혜는 ‘버리

증오를 부추기는 일이 된다.

는 패’였고 누가 정권을 잡아도 압박하고 흔들 준 비가 되어 있다. 적폐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 요구 를 ‘과거 지향’으로 몰아붙이고, 수구보수 세력의

세월호 진상규명, 조선일보 퇴장이 우리의 미래

앞선 3월 11일, 박근혜 탄핵 다음 날도 조선일보

재편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꿈꾸는 미 래는 시민들에겐 좌절이자 퇴행이다. 두 미래는

는 비슷한 주장을 폈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은 ‘세월호 7시간’을 탄핵소

공존할 수 없다.

추안에 포함시킨 국회를 질타하고, 민주당 문재인

세월호를 통해 각성하고 박근혜 탄핵이라는 승

후보가 팽목항을 찾았다며 비난했다. ‘통합’에 나

리를 경험한 시민들은 다른 미래를 위해 싸운다.

서야 할 시점에 ‘갈등의 단면’이 된 곳을 찾았다는

이들은 이념과 정파가 아닌 세월호 진상규명을 매

게 비난 이유였다. 문 후보가 방명록에 “너희들이

개로 광화문에서, 목포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 새

촛불광장의 별이었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쓴 것

로운 세상을 향해 연대하고 있다. 세월호의 진실

을 두고는 “탄핵시켜줘 고맙다는 뜻이냐”, “불행을

을 은폐하려는 세력, 적폐 청산을 막는 세력, 민주

당한 학생들을 정치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물고

주의를 또다시 훼손하려는 세력을 완전히 퇴장시

늘어졌다. 국민들에게는 탄핵 정국이 끝났으니 일

키는 것. 이것이 시민들의 미래다. 조선일보의 미

상으로 돌아가라고 훈계했다.

래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조선일

2017년 5월

글 김유진 전 사무처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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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 19대 대선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한 복합 빌딩 위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거리에

다. 아래층 화장품 매장 주인의 사정과 이 층 식당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일층 매장에서 새로 출시된

주방장의 고민과 3층 셀러리 맨, 건물 관리인과 경

화장품 판매를 위해 최신 가요에 맞춰 매장 안으

비원. 그리고 손님과 매장 아르바이트 노동자. 복

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주인은 지나가

합 빌딩을 중심으로 수많은 ‘세상’들이 하루하루

는 이들의 시선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드 때문

삶의 촛불을 켭니다.

에 북적이던 중국 관광객이 많이 줄었습니다. 항 시 사람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지난 4개월 매출

세월호 참사 3주기 전날, 지상파는 무엇을 보도했나

타격이 큽니다. 씀씀이가 큰 이들이 대량 구매가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합니다. 1층과 2

사라졌기에 더욱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아야

층 그리고 꼭대기에 사는 이들의 삶을 이어주고,

합니다. 하지만 창밖 사람들은 뭐가 바쁜지 총총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두 각

총 걸어갑니다. 이 층에 있는 음식점도 매출 걱정

각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 연결이 되

은 마찬가지입니다.

어 있습니다. 리모델링한다거나 ‘뜻밖의 손님’ 방

그래도 토요일이 되면 큰 집회가 열려 음식점 이 가득 차지만 일요일 저녁은 조용합니다. 조그

문,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한 건물에 있다’고 알게 됩니다.

만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습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지상파 방

니다. 주방장은 식자재값이 올라 음식값을 올린다

송 3사 저녁 메인 뉴스를 봅니다. 북한 열병식과

고 하는데 우리 사장님은 나의 임금은 왜 올려주

관련 대북 보도, 대선 후보 등록과 각 후보자들의

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조선족 출신의 꼬불꼬불

움직임을 주요하게 전했습니다. KBS는 16건 아이

파마 머리 이모가 주문을 넣습니다. 3층 사무실은

템(스포츠, 날씨 제외) 중 <북, 신형 전략 무기 총

주말이지만 출근한 이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동원 공개>, <북, 신형 ICBM 추정 미사일 3종 공

창가에 꽃이 핀 화분을 보면서 봄꽃 맞이 가족 나

개…성능은?> 등 북한 관련 국제 뉴스를 8건을 보

들이를 생각해 봅니다. 동일한 시기에 서 있지만

도했습니다.

지나온 삶과 현재 처지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 58

여기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IS 근거지에 대


표기가 쓰인다’는 인터넷을 통해 퍼진 내용은 사실

형 폭탄을 투하한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첫날 13명 접수… 역대 최대 대선 후보

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전했습니다.

등록>, <바빠진 발걸음…정책 행보 지역방문> 등 대선 관련 4건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남은 4건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에, ‘우리’는 없다

에서는 고영태 구속, 못 믿을 미세먼지 측정, 간추

북한 열병식은 중요한 뉴스입니다. 북한이 어떤 미

린 단신, 오소리에 주민 부상을 다뤘습니다.

사일을 가지고 있고, 핵 실험 또는 미사일 발사를

MBC 역시 이날 <북, 대규모 열병식… “전면전

할지 등은 한반도는 물론 국제적으로 중요한 뉴스

도 불사”>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열병식의 이모저

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나라는 빠져 있는 것

모를 전하며, 미사일 행렬에서 나온 신형 무기 소

같습니다. 그다음에 수많은 대선 후보들의 동정이

개 등 북한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반응을 전했

나오지만 여기에 북한 관련 대선 후보들이 어떤

습니다. 또 16일 한국에 오는 마이크 펜스 미국

입장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북한 문제에

부통령이 북한 선제 타격을 거론할지 주목되며,

우리는 뚝 떨어져 있고 미국과 중국만 있는 것 같

‘칼빈슨 호에 이어 니미츠호 추가 투입’했다는 일

습니다. 열병식과 관련 국내 정치인은 물론 국민들

본 언론 보도를 전했습니다.

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다만 북한 문제 전문가와

MBC는 19개 기사 중 북한 관련 5건, 대선 후

어떤 무기인지 설명만 나올 뿐입니다.

보 관련 2건을 전한 뒤 각종 사건 사고로 채웠습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합니다. 그 창에

니다. 이 중에 올빼미형 수면 문제, 특색 있는 지

우리가 빠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언제

역 맥주, 고래 떼 장관인 장생포, 위험천만 바운스

는 우리가 나왔나 할지 모르지만요. ‘지상파’에 노

하우스 등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월호

동자 서민의 삶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

3주기와 관련 광화문 촛불 집회와 박근혜 탄핵과

운 일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7년 4월 15일

구속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말 집회 “탄핵 무효”

지상파 3사에서 나온 뉴스에 만족하시나요? 다가

VS “진상규명”>라는 제목으로 묶어 보도했습니다.

온 대선, 후보 결정에 도움이 되셨나요? 세월호 3

SBS는 전체 16개 기사 중 <북, 신형 IBCM 추정

주기를 앞둔 우리의 모습을 전했나요? 텔레비전

미사일 공개> <고체연료 쓰는 ‘북극성 3형’?> 등

에 나오지 않는 소식 중 하나를 전하며 글을 마무

북한 관련 6건, 대선 5건, 세월호 3주기 관련 2건

리합니다. 지난 14일 해고된 노동자 6명이 광화문

을 내보냈습니다.

한 빌딩의 광고탑 위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

SBS는 KBS, MBC와 달리 미국이 이날 공개

동악법 철폐, 노동법 전면 제 개정, 노동 3권 완전

한 아프간 폭탄 투하 영상을 쓰지 않았습니다. 또

쟁취>, <세월호 진상 규명>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미 “최고의 압박과 견제”>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

고공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해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지만 당장 군사행동 나서 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또 대 선 후보와 관련 ‘문재인 후보 부인, ‘의자 구입’ 말 바꾸기 논란’, ‘안철수 부인 ‘1+1 특별 채용 논란’ 해명 말 바꾸기’ 또 ‘안철수 회사에서 만든 전자개

2017년 5월

글 이기범 웹진 <e-시민과언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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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가붕현 강건우 강길탁 강나영 강무치 강문구 강민지 강민찬 강상욱 강상현 강수경 강승민 강연규 강연지 강윤영 강윤희 강종석 강종헌 강진호 강진희 강혁 강현 강호민 강호성 강희성 강희정 고구연 고규석 고병년 고병언 고승우 고아람 고은주 고은채 고준호 고창석 공영목 공은해 곽수영 곽우신 구교선 구미경 구본직 구본학 구자중 구정회 구형욱 구희영 권광태 권기경 권선애 권성희 권오설 권오성 권유림 권은영 권주용 권준수 권혁하 권현아 금종화 금준경 길섭 길찬호 김경래 김경량 김경실 김경심 김경태 김경필 김고은 김고훈 김광수 김광수 김광훈 김교민 김규훈 김균하 김기대 김기석 김기철 김기태 김남균 김남석 김다애 김다혜 김대욱 김대위 김덕재 김덕종 김도현 김도형 김동성 김동수 김동찬 김고은 김두언 김두찬 김말숙 김맹환 김명주 김명진 김문섭 김문재 김미라 김미란 김미영 김미영 김미정 김미진 김민식 김민정 김백일 김범규 김병현 김병화 김보승 김보영 김봉민 김봉선 김상남 김상덕 김상호 김상환 김석우 김석정 김선욱 김선정 김성근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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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강남이 강문석 강범구 강석봉 강승연 강영건 강은미 강주현 강창수 강현용 강호영 강희정 고근영 고보곤 고영매 고은희 고태호 공종철 곽은정 구민예 구상회 구진경 국명환 권녕찬 권세일 권오숭 권은주 권지원 권형준 기대정 김강균 김경미 김경아 김경현 김관규 김광욱 김교식 김근영 김기성 김기학 김남윤 김대균 김대응 김덕현 김도형 김동영 김동학 김두한 김면수 김명철 김문정 김미란 김미영 김미현 김민지 김범휴 김병훈 김보운 김봉태 김상덕 김상훈 김석준 김선호 김성길

강경식 강대경 강미 강병국 강선정 강승일 강영모 강익희 강준구 강철원 강현우 강호준 계명석 고기원 고삼석 고영윤 고의정 고하람 공준기 곽지운 구민오 구성연 구진하 국모신 권대철 권소현 권오철 권인숙 권지현 권혜영 기명 김강민 김경미 김경옥 김경호 김관석 김광원 김권식 김근영 김기수 김기현 김남중 김대균 김대일 김덕환 김도형 김동영 김동혁 김두환 김명걸 김명호 김문주 김미선 김미영 김미화 김민진 김병기 김병훈 김보현 김부용 김상민 김상훈 김선경 김선호 김성동

회원님들이 후원해 주신 회비는 민주언론을 향한 활동의 근간입니다. 2017년 3월 1일부터 31일 사이에 후원해 주신 분은 모두 5,715분입니다. 강경운 강대석 강미경 강병수 강성남 강승일 강영선 강인규 강진 강충원 강현우 강홍석 계미량 고대원 고상민 고영재 고인수 고한별 공후연 곽진욱 구민준 구연석 구창범 국중식 권명수 권수경 권오현 권일 권진만 권혜인 기민 김강선 김경민 김경완 김경호 김관식 김광일 김귀영 김근한 김기연 김기호 김남진 김대기 김대진 김동 김도형 김동옥 김동현 김두환 김명규 김명훈 김문환 김미선 김미영 김미희 김민철 김병모 김보경 김보형 김부환 김상식 김석 김선기 김선화 김성락

강경화 강국일 강귀동 강대진 강대필 강덕구 강미숙 강미숙 강미정 강병조 강보배 강보휘 강성옥 강성종 강성주 강승천 강승현 강승희 강영순 강영재 강영주 강재기 강재영 강전도 강지영 강지환 강진구 강태구 강태순 강태욱 강형석 강형숙 강혜숙 강홍식 강화순 강효근 고강우 고겸 고공석 고동균 고동혁 고동형 고상익 고성광 고성일 고영주 고영철 고영환 고인혁 고일근 고일웅 고혁규 고현강 고현경 곽기수 곽노필 곽동훈 곽철주 곽한일 구강회 구병석 구본권 구본수 구영선 구완회 구원 구축련 구태형 구태환 굿모닝렌트카(주)안광희 권미숙 권미애 권미영 권수미 권수보리 권순우 권오훈 권옥분 권용배 권재범 권재순 권재현 권철 권태성 권태진 권호정 권효진 권효진 기민수 기보중 기선희 김건엽 김건영 김건우 김경민 김경배 김경석 김경원 김경은 김경익 김경홍 김경환 김경훈 김관철 김광곤 김광동 김광중 김광진 김광철 김규리 김규봉 김규봉 김근혜 김근호 김금녀 김기열 김기용 김기욱 김나령 김나영 김나형 김남진 김남혁 김남희 김대선 김대수 김대순 김대현 김대현 김대형 김도경 김도균 김도식 김동건 김동광 김동규 김동우 김동욱 김동욱 김동현 김동호 김동환 김락기 김레베카 김마리아 김명년 김명선 김명숙 김명희 김명희 김문 김미경 김미경 김미경 김미소 김미숙 김미숙 김미옥 김미자 김미자 김미희 김민경 김민경 김민철 김민철 김민태 김병석 김병선 김병식 김보경 김보경 김보경 김복도 김복수 김복희 김삼 김사무엘 김삼숙 김상엽 김상원 김상원 김서영 김서영 김서윤 김선미 김선배 김선숙 김선화 김선화 김선희 김성례 김성만 김성미

강규상 강동오 강민구 강복순 강성하 강신광 강영철 강정미 강진석 강태호 강혜인 강효기 고광백 고명섭 고성휘 고유라 고정주 고형석 곽민섭 구경애 구본엽 구윤서 구태회 권강범 권민석 권순재 권용찬 권재현 권해준 권희도 기성자 김건호 김경수 김경인 김경훈 김광명 김광태 김규영 김금주 김기원 김낙규 김남희 김대애 김대호 김도영 김동균 김동윤 김동환 김만수 김명오 김문경 김미경 김미숙 김미정 김민경 김민혜 김병옥 김보규 김본일 김삼일 김상유 김서중 김선애 김선희 김성미

강기민 강명수 강민성 강부근 강성환 강신성 강예성 강정연 강진선 강한성 강혜정 강효정 고광수 고명인 고세창 고은별 고정현 고형승 곽보천 구계영 구본엽 구자룡 구태회 권건욱 권민수 권영아 권용호 권정민 권혁권 권희명 기영란 김경남 김경수 김경자 김경훈 김광모 김광현 김규표 김금화 김기율 김난경 김남희 김대엽 김대호 김도원 김동민 김동의 김동훈 김만욱 김명옥 김문규 김미니 김미연 김미정 김민광 김민호 김병욱 김보름 김봉기 김삼진 김상중 김서현 김선영 김성 김성민

강기영 강명호 강민정 강삼규 강성희 강신욱 강유복 강정훈 강진숙 강항준 강혜정 강희 고광현 고문병 고수경 고은영 고제석 공경남 곽성호 구교선 구본영 구자숙 구현주 권경엽 권민호 권영원 권웅기 권정환 권혁근 금동기 기원도 김경란 김경숙 김경장 김계성 김광민 김광호 김규환 김금희 김기주 김난슬 김남희 김대영 김대환 김도윤 김동섭 김동주 김동훈 김만중 김명자 김문기 김미덕 김미영 김미정 김민균 김바다 김병원 김보명 김봉덕 김상균 김상천 김서현 김선옥 김성권 김성민

강기태 강명훈 강민정 강상우 강솔 강양구 강유원 강제호 강진학 강행권 강호년 강희경 고굉주 고문석 고수영 고은주 고주봉 공덕호 곽세영 구교선 구본주 구자옥 구현회 권경희 권상현 권오복 권위상 권정희 권혁상 금종섭 길덕영 김경래 김경숙 김경주 김고은 김광민 김광호 김규환 김기남 김기창 김난영 김내인 김대영 김덕원 김도현 김동섭 김동진 김두산 김만중 김명정 김문선 김미라 김미영 김미정 김민기 김배중 김병찬 김보성 김봉모 김상기 김상철 김석균 김선우 김성균 김성민


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김성수 김성일 김성화 김소연 김수연 김수호 김승곤 김시몬 김아리 김연국 김연호 김영림 김영삼 김영아 김영진 김영훈 김옥선 김용덕 김용실 김용현 김원식 김유신 김윤정 김은범 김은임 김은희 김인구 김인숙 김재경 김재우 김재환 김정묵 김정아 김정태 김정훈 김종률 김종연 김종환 김주원 김준태 김지선 김지웅 김지훈 김진산 김진영 김진하 김찬영 김천종 김충녀 김태균 김태완 김태진 김택희 김학동 김한종 김현남 김현실 김현주 김현화 김형우 김혜리 김혜정 김홍기 김효민 김흥수 김희승 나양한 나현철 남병철 남은영 남호섭 노민석 노영환

김성수 김성자 김성훈 김소영 김수영 김수환 김승규 김시연 김아리 김연국 김연희 김영명 김영삼 김영애 김영탁 김영훈 김옥연 김용덕 김용우 김용환 김원재 김유신 김윤정 김은선 김은정 김은희 김인규 김인종 김재관 김재우 김재환 김정미 김정연 김정태 김정훈 김종명 김종오 김종훈 김주현 김준혁 김지수 김지은 김지훈 김진섭 김진영 김진현 김찬용 김철 김칠성 김태만 김태완 김태학 김판수 김학모 김행정 김현대 김현영 김현주 김현희 김형욱 김혜미 김혜정 김홍빈 김효상 김희경 김희열 나영애 나혜진 남상모 남인주 남호찬 노병선 노원희

김성수 김성재 김성훈 김소영 김수정 김순배 김승덕 김시은 김아정 김연상 김영 김영모 김영석 김영웅 김영표 김영훈 김옥희 김용두 김용이 김용후 김원주 김유진 김윤중 김은섭 김은주 김응남 김인기 김인중 김재광 김재원 김재훈 김정민 김정열 김정택 김정희 김종모 김종욱 김종희 김주현 김준휘 김지수 김지현 김지훈 김진성 김진용 김진형 김찬주 김철관 김태겸 김태민 김태우 김태현 김평완 김학배 김향기 김현무 김현오 김현주 김형국 김형욱 김혜성 김혜정 김홍순 김효석 김희경 김희원 나옥숙 남건우 남성우 남인호 남효숙 노삼식 노윤희

김성수 김성중 김성훈 김소원 김수정 김순봉 김승민 김시창 김애경 김연수 김영 김영미 김영석 김영은 김영필 김영훈 김완묵 김용락 김용익 김용희 김원주 김유진 김은 김은성 김은주 김의성 김인대 김인호 김재령 김재은 김재흥 김정민 김정우 김정헌 김정희 김종목 김종욱 김주경 김주현 김중석 김지수 김지현 김지희 김진솔 김진우 김진호 김창근 김철규 김태경 김태석 김태우 김태형 김평호 김학범 김헌덕 김현민 김현왕 김현준 김형규 김형주 김혜성 김혜정 김홍일 김효선 김희곤 김희원 나의영 남경숙 남소영 남정용 노경만 노선영 노은기

김성아 김성연 김성진 김성진 김성희 김성희 김소희 김소희 김수정 김수지 김순성 김순식 김승빈 김승오 김신영 김신영 김양임 김양준 김연신 김연용 김영광 김영권 김영미 김영미 김영선 김영선 김영은 김영일 김영필 김영헌 김영훈 김영훈 김요안 김요한 김용래 김용만 김용일 김용재 김우선 김우일 김원진 김원태 김유호 김윤규 김은경 김은경 김은수 김은숙 김은주 김은주 김의수 김의진 김인봉 김인성 김인환 김일수 김재민 김재성 김재철 김재필 김정곤 김정곤 김정배 김정본 김정우(소라) 김정현 김정현 김정희 김제문 김종민 김종배 김종윤 김종일 김주리안 김주상 김주호 김주희 김중훈 김증임 김지숙 김지연 김지현 김지현 김진각 김진갑 김진숙 김진숙 김진우 김진웅 김진호 김진호 김창수 김창용 김철규 김철규 김태경 김태관 김태성 김태수 김태원 김태원 김태호 김태훈 김평환 김필모 김학용 김학인 김헌범 김헌성 김현석 김현수 김현웅 김현웅 김현준 김현준 김형균 김형기 김형준 김형중 김혜성 김혜숙 김혜진 김호림 김홍일 김홍일 김효순 김효식 김희곤 김희규 김희정 김희정 나인주 나인호 남광열 남광현 남수현 남영권 남주희 남준우 노경진 노경채 노수일 노승민 노인호 노정숙

김성연 김성진 김성희 김수경 김수진 김순자 김승우 김신욱 김양중 김연이 김영규 김영미 김영수 김영재 김영형 김영희 김용겸 김용민 김용정 김우준 김원택 김윤기 김은경 김은숙 김은주 김이슬 김인성 김일용 김재성 김재필 김정관 김정빈 김정욱 김정현 김종구 김종배 김종찬 김주성 김준모 김진 김지연 김지형 김진경 김진열 김진이 김진홍 김창우 김철성 김태규 김태수 김태원 김태훈 김하나 김학준 김혁 김현수 김현정 김현진 김형남 김형진 김혜연 김호석 김홍주 김효은 김희균 김희홍 나종찬 남궁정 남예람 남지현 노광일 노승현 노정훈

2017년 5월

김성욱 김성철 김세준 김수근 김수진 김순종 김승재 김신제 김양현 김연일 김영균 김영민 김영숙 김영제 김영호 김영희 김용구 김용민 김용준 김우찬 김위근 김윤덕 김은경 김은아 김은현 김이준 김인수 김자영 김재성 김재현 김정근 김정선 김정은 김정호 김종규 김종복 김종태 김주연 김준석 김지묵 김지연 김지혜 김진경 김진영 김진일 김진홍 김창인 김철진 김태균 김태연 김태윤 김태희 김하성 김학철 김현 김현숙 김현정 김현진 김형배 김형진 김혜영 김호성 김홍준 김효중 김희동 김힘찬 나준영 남극현 남오연 남태경 노귀성 노시화 노종면

김성욱 김성웅 김성철 김성태 김세진 김세환 김수만 김수복 김수진 김수천 김순화 김순희 김승주 김승직 김신중 김실희 김언경 최대식 김연정 김연주 김영균 김영근 김영민 김영배 김영숙 김영순 김영주 김영주 김영호 김영호 김예리 김옥남 김용규 김용균 김용백 김용범 김용진 김용태 김우현 김욱환 김유경 김유나 김윤섭 김윤수 김은경 김은규 김은아 김은영 김은형 김은혜 김이지 김익곤 김인수 김인수 김장곤 김장수 김재식 김재영 김재호 김재홍 김정기 김정란 김정수 김정수 김정은 김정준 김정화 김정환 김종근 김종덕 김종석 김종선 김종택 김종필 김주열 김주영 김준성 김준식 김지민 김지석 김지연 김지영 김지혜 김지환 김진구 김진국 김진영 김진영 김진정회 이철호 김진환 김진희 김창일 김창회 김추월 김춘광 김태균 김태균 김태영 김태영 김태이 김태장 김태희 김태희 김하식 김하자 김학희 김한도 김현 김현경 김현숙 김현식 김현정 김현정 김현철 김현철 김형섭 김형수 김형철 김형철 김혜영 김혜영 김호중 김호진 김환균 김황하 김효진 김훈 김희령 김희선 나경렬 나기문 나창수 나채길 남기욱 남남영 남유경 남윤재 남현수 남현일 노금재 노도영 노영민 노영숙 노진규 노진호

김성원 김성태 김세희 김수선 김수현 김숭곤 김승철 김아름 김여환 김연지 김영기 김영보 김영식 김영준 김영환 김옥란 김용기 김용석 김용태 김웅식 김유동 김윤식 김은동 김은영 김은혜 김익삼 김인수 김장홍 김재영 김재화 김정란 김정숙 김정중 김정환 김종덕 김종수 김종호 김주영 김준영 김지선 김지영 김지후 김진만 김진영 김진철 김진희 김채빈 김춘균 김태균 김태오 김태준 김택수 김하진 김한상 김현구 김현식 김현정 김현철 김형수 김혜경 김혜원 김호환 김회연 김훈재 김희수 나승렬 나현윤 남대근 남윤환 남형석 노동기 노영숙 노택상

김성은 김성호 김소연 김수안 김수호 김슬기 김승훈 김아름 김연구 김연지 김영래 김영삼 김영심 김영준 김영환 김옥매 김용남 김용수 김용하 김원도 김유미 김윤영 김은미 김은영 김은혜 김인 김인숙 김장환 김재우 김재환 김정만 김정실 김정진 김정환 김종동 김종애 김종호 김주영 김준일 김지선 김지용 김지훈 김진무 김진영 김진태 김찬 김천수 김춘호 김태균 김태완 김태진 김택준 김학곤 김한수 김현국 김현식 김현정 김현택 김형수 김혜경 김혜원 김홍국 김효담 김휘민 김희수 나승연 나현채 남문경 남은경 남호삼 노미정 노영재 노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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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노현정 도필환 류승준 류호성 명소현 문경호 문삼수 문영배 문진수 민만기 민정옥 박경선 박고운 박기용 박노곤 박동훈 박문현 박민정 박병완 박복열 박상준 박석운 박성영 박성혜 박수현 박순태 박영규 박영직 박용규 박우진 박은상 박인혜 박재현 박정선 박정포 박제영 박종섭 박주령 박준오 박지영 박진아 박진호 박철수 박태영 박해령 박현정 박혜련 박효경 박희원 방은호 배상길 배유재 백경아 백성환 백승철 백정미 변성혁 변진극 사공엽 서기선 서명석 서본근 서영석 서유택 서정문 서주연 석철수 선혜주 성기정 성주경 손경선 손병일 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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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주 동소연 류연숙 류희준 명호민 문광현 문석용 문영하 문진숙 민미선 민준기 박경선 박광목 박기욱 박노원 박동희 박문현 박민호 박병원 박부열 박상철 박선민 박성우 박성호 박수현 박순홍 박영규 박영진 박용수 박운용 박은주 박일귀 박재환 박정숙 박정하 박제현 박종수 박주은 박준용 박지영 박진영 박진환 박철우 박태용 박해부 박현주 박혜미 박효은 박희유 방정배 배상윤 배윤호 백광모 백수임 백승호 백종선 변승순 변창형 사공차랑 서기환 서명준 서상욱 서영수 서유하 서정민 서준혁 선관석 설나영 성기형 성지혜 손광일 손병훈 손영진

노현호 두은서 류은화 마마준(주) 명호종 문근숙 문성근 문영호 문창영 민병희 민진식 박경순 박광무 박기현 박노원 박래혁 박미애 박민희 박병은 박삼규 박상태 박선영 박성우 박성호 박수환 박슬기 박영글 박영태 박용승 박원식 박은진 박장호 박점희 박정숙 박정현 박종건 박종아 박주창 박준원 박지용 박진영 박찬모 박철웅 박태율 박해정 박형규 박혜성 박효주 박희정 방정희 배상호 배정철 백광범 백수진 백신덕 백종필 변승우 변태영 사수현 서대원 서무근 서석범 서영수 서윤옥 서정웅 서지영 선길숙 설순자 성낙미 성한경 손규정 손보라 손운웅

노호균 류갑선 류재원 마성일 모광희 문다혜 문성길 문옥심 문천풍 민보경 민찬홍 박경식 박광우 박기형 박노황 박리브가 박미정 박민희 박병일 박상규 박상향 박선영 박성원 박성희 박숙희 박승태 박영기 박영호 박용식 박원일 박은환 박재경 박정 박정순 박정혜 박종구 박종언 박주하 박준형 박지웅 박진우 박찬일 박철원 박태희 박해출 박형근 박혜정 박효진 반재윤 방종훈 배서현 배종만 백귀정 백수진 백영직 백진웅 변영식 변현식 상덕규 서대천 서문규 서성근 서영윤 서은남 서정원 서춘원 선대식 설재욱 성미경 성한표 손기찬 손상혁 손원휘

노호현 류귀순 류정미 마장석 모명욱 문대진 문성식 문은상 문태숙 민선홍 민형원 박경임 박광훈 박기호 박다슬 박말태 박미진 박범진 박병주 박상만 박상현 박선주 박성원 박성희 박순고 박신서 박영미 박영훈 박용웅 박원표 박의호 박재근 박정국 박정아 박정혜 박종길 박종완 박주현 박준희 박지윤 박진주 박찬헌 박철홍 박평옥 박혁종 박형석 박혜정 박훈상 반현정 방현배 배석기 배준영 백기욱 백수현 백영화 백현우 변영은 변형규 상영숙 서덕수 서민 서성일 서영호 서인찬 서정은 서태동 선동욱 설재호 성부강 성현진 손기현 손상흠 손유니

노희경 늘푸른나무 류균 류동훈 류민지 류정민 류주형 류지순 마준채 마혜란 맹준열 모영신 모영용 목정민 문덕범 문덕순 문미원 문성은 문성준 문성준 문인주 문재권 문재홍 문현숙 문현주 문형천 민승현 민영록 민영미 민희웅 박강호 박건식 박경태 박경태 박경택 박귀용 박규장 박규철 박기호 박길우 박길주 박대선 박대성 박대일 박명렬 박명주 박명철 박미현 박미희 박민상 박병관 박병규 박병규 박병주 박병준 박병준 박상우 박상욱 박상욱 박상현 박상현 박상호 박성귀 박성규 박성민 박성원 박성원 박성제 박세안 박세영 박세진 박순교 박순숙 박순옥 박아람 박애정 박양신 박영수 박영숙 박영순 박영훈 박영희 박영희 박용주 박용하 박용현 박윤경 박윤기 박윤미 박인 박이화 박인범 박재연 박재영 박재영 박정국 박정규 박정민 박정애 박정애 박정연 박정홍 박정훈 박정희 박종남 박종배 박종부 박종원 박종원 박종윤 박주현(박효수) 박주호 박준희 박지선 박지수 박지인 박지현 박지혜 박진철 박진한 박진혁 박창덕 박창봉 박창수 박철환 박철훈 박춘달 박필훈 박하나 박하나 박현민 박현선 박현숙 박형석 박형수 박형인 박혜진 박혜진 박호 박흥규 박흥규 박희득 방광열 방기철 방민수 방현철 배경선 배경애 배수미 배수호 배승희 배준호 배지영 배지영 백기현 백동승 백동훈 백승기 백승무 백승아 백윤아 백은성 백은정 백형대 백홍종 변규식 변우섭 변윤정 변은화 변화영 변희재 복진선 서강석 서경국 서경석 서도원 서동건 서동균 서미라 서미랑 서민경 서수경 서수경 서수정 서영환 서영훈 서용관 서일봉 서일선 서일영 서정파 서정화 서정화 서한진 서혜남 서혜정 선백민 선상원 선승연 설정수 설지원 설희준 성상옥 성상욱 성연준 성희연 소강혁 소동섭 손기호 손대규 손동주 손석진 손석희 손성배 손은영 손은정 손인학

도방주 도인태 류병열 류병옥 류찬호 류창하 맹지영 맹찬형 문강한 문건대 문미정 문병수 문소라 문수경 문종서 문주남 민경호 민경훈 민용석 민은홍 박경근 박경문 박경훈 박경훈 박균태 박근영 박꽃님 박남규 박도수 박동수 박명화 박명훈 박민섭 박민수 박병규 박병근 박병진 박병철 박상욱 박상원 박상희 박서리 박성민 박성법 박성준 박성철 박소동 박소라 박순용 박순정 박연선 박연수 박영일 박영일 박옥실 박옥희 박운 박우건 박윤숙 박윤정 박인숙 박인식 박재영 박재욱 박정민 박정민 박정우 박정운 박제선 이슬비 박종서 박종석 박종현 박종훈 박주희 박준근 박지수 박지숙 박지호 박진만 박진형 박진형 박창우 박창현 박태구 박태선 박한솔 박한엽 박현숙 박현애 박형재 박형철 박호영 박호일 박희성 박희승 방성근 방성문 배나은 배대권 배연정 배영준 배진모 배진형 백민정 백봉삼 백승우 백승욱 백인석 백인환 변남희 변상준 변정목 변준호 복향숙 부근림 서경신 서경일 서동예 서동욱 서민교 서범석 서승아 서승욱 서우성 서원명 서장식 서재관 서정환 서정회 서홍석 서효원 선주리(신병근) 성강일 성기남 성용상 성윤경 소동욱 소민욱 손명기 손모선 손성원 손성일 손재선 손정대

도정은 류성률 류현우 명가영 문경란 문병원 문수만 문주희 민기숙 민일홍 박경미 박경희 박근영 박남숙 박동찬 박무 박민영 박병수 박보현 박상율 박서정 박성복 박성현 박소현 박순찬 박연우 박영재 박완규 박우섭 박윤탁 박인우 박재필 박정삼 박정자 박제성 박종석 박종훈 박준기 박지애 박진성 박진형 박창홍 박태성 박한용 박현용 박혜경 박화석 박희영 방윤규 배명순 배영철 배진화 백삼철 백승재 백일용 변선수 변지연 부영관 서광희 서동환 서병수 서연경 서원철 서재승 서정훈 석상훈 선춘욱 성기옥 성윤식 소병훈 손미란 손성진 손정락

도진명 류성진 류형욱 명경관 문경태 문복산 문수현 문준상 민동기 민정 박경민 박계윤 박기성 박남훈 박동협 박문영 박민정 박병수 박보희 박상재 박석규 박성수 박성현 박수언 박순천 박연재 박영조 박완식 박우정 박은미 박인헌 박재현 박정선 박정진 박제성 박종선 박종훈 박준식 박지연 박진실 박진호 박철규 박태순 박한철 박현재 박혜경 박환신 박희우 방윤호 배민수 배용호 배천수 백선화 백승주 백재혁 변성학 변지철 빈성용 서근범 서명교 서병찬 서영관 서월석 서정문 서종화 석원혁 선혜영 성기욱 성은형 소순영 손미영 손영삼 손정민


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손정애 손정한 송규주 송근이 송명선 송명숙 송보미 송보현 송영석 송영숙 송은아 송은정 송정우 송정훈 송지훈 송창건 송혜란 송혜미 신기영 신기인 신동욱 신동원 신미영 신미현 신성균 신성철 신승철 신연숙 신윤진 신은하 신정현 신정호 신찬규 신찬섭 신행준 신현 신화프린팅(주) 심승관 심연주 심재훈 심정보 아영미 안강기 안동운 안동호 안병주 안병준 안성남 안성미 안순태 안승진 안재우 안재현 안준상 안준연 안치훈 안태원 안효민 안훈모 양동춘 양동파 양수호 양슬기 양용호 양우경 양재창 양종진 양혜영 양홍석 어혁수 엄경숙 엄재현 엄정순 여운혁 여창환 염수정 염찬희 오경희 오고니 오미숙 오민상 오선영 오선영 오승석 오승열 오원석 오원주 오정한 오정훈 오태우 오태훈 오희경 오희성 우수경 우은아 원상규 원숙희 원종효 원창수 유규상 유규진 유련 유명선 유병철 유보현 유성국 유성용 유영호 유운상 유일환 유장환 유종혁 유종혁 유창현 유태경 유홍구 유환석 윤광영 윤광희 윤렬 윤명자 윤상열 윤상일 윤성준 윤성준 윤신정 윤여덕 윤유상 윤유현 윤정진 윤정현 윤주승 윤준기 윤창현 윤철용 윤홍렬 윤화중 이강원 이강일 이경미 이경미 이경영 이경원 이경휴 이경희

손정호 송기권 송명언 송선아 송영운 송은주 송종호 송천호 송효근 신기철 신동윤 신미희 신성희 신연실 신응균 신정환 신창호 신현민 신희철 심영구 심정원 안건영 안동환 안병진 안성민 안여라 안정빈 안준희 안판석 양경자 양문석 양승동 양유경 양주연 양홍열 엄경철 엄정우 여태문 염혜영 오광수 오민석 오선희 오언종 오윤덕 오정훈 오필웅 오희영 우인회 원영재 원휘정 유근완 유명자 유복순 유세경 유원경 유재승 유주연 유한경 유환선 윤구현 윤무종 윤상진 윤성호 윤여현 윤은숙 윤정호 윤준의 윤태용 윤환상 이강표 이경민 이경일 이경희

손종운 송기인 송명진 송선희 송요훈 송인강 송주휘 송철민 송효열 신기훈 신동진 신민수 신소영 신영수 신의용 신정훈 신천우 신현실 신희철 심영섭 심종문 안겨라 안문규 안병천 안성은 안영건 안정희 안중식 안향미 양귀용 양부순 양승복 양윤미 양주영 양회웅 엄경호 엄지선 여현호 염흥섭 오기택 오민석 오성일 오연경 오은미 오종신 오한웅 옥동훈 우재현 원오희 원희재 유금주 유명제 유상균 유세은 유원영 유재헌 유준영 유현 유희락 윤국희 윤문경 윤서정 윤세민 윤연희 윤은정 윤정환 윤중옥 윤필석 윤효석 이강헌 이경범 이경임 이계남

손중양 손진철 송길석 송낙주 송명호 송명희 송승우 송승자 송용암 송용호 송인덕 송인미령 송준관 송준규 송충훈 송필영 송훈 송훈 신나영 신낙현 신동찬 신동향 신민영 신민정 신소요 신소정 신영식 신용호 신의철 신인재 신종열 신주연 신춘근 신태범 신형직 신혜경 심대현 심명숙 심우철 심원도 심주영 심준섭 안경호 안광일 안미숙 안민석 안상인 안상준 안성일 안성희 안영배 안영선 안종남 안종문 안중욱 안진 안현수(안주원) 양규식 양규하 양삼주 양상오 양승진 양승혁 양윤호 양은정 양진용 양창호 양효준 양희정 엄기웅 엄기환 엄진섭 엄창국 연성철 연승익 염희정 예성혁 오기현 오덕칠 오병남 오봉열 오성태 오세진 오연호 오영란 오은영 오은정 오중열 오지영 오행운 오현숙 옥은경 옥일권 우제열 우종욱 원용무 원용선 위영호 위훈희 유기홍 유길연 유미라 유민수 유상배 유상원 유세진 유애리 유윤정 유윤지 유재혁 유정민 유준호 유중열 유현경 유현종 유희영 육관우 윤근배 윤기선 윤민숙 윤범영 윤석구 윤석용 윤소원 윤소정 윤영웅 윤영지 윤은정 윤인규 윤정희 윤종성 윤지선 윤지선 윤해영 윤현숙 윤후상 은창현 이건 이건우 이경복 이경수 이경자 이경재 이계숙 이관명

손창형 송대갑 송미선 송승찬 송우철 송인섭 송준용 송학선 송희성 신남수 신동현 신병현 신수정 신우용 신재관 신주원 신태섭 신혜영 심명오 심원보 심진석 안교찬 안병건 안상찬 안세훈 안영완 안종수 안진걸 안형노 양길승 양석신 양안나 양은진 양철원 양희정 엄대현 엄효선 연제창 오경수 오동운 오상영 오세철 오영섭 오은주 오창목 오현탁 왕수용 우종현 원용진 유경리 유내선 유민아 유상하 유연수 유은선 유정아 유지향 유현진 윤경남 윤길자 윤병양 윤석주 윤수정 윤영철 윤인섭 윤종연 윤지은 윤형열 이강두 이건욱 이경수 이경제 이관용

2017년 5월

손충구 송대광 송미숙 송승택 송원영 송일식 송준호 송학주 송희준 신동관 신동호 신봉철 신수정 신원범 신재민 신지연 신태진 신혜영 심민혁 심유성 심창용 안규만 안병국 안서훈 안소랑 안영주 안종욱 안진우 안혜림 양덕수 양석용 양여원 양의청 양한승 양희주 엄동수 여건구 연제희 오경아 오동헌 오상일 오세희 오영은 오의환 오창석 오형옥 용상구 우지연 원윤제 유경아 유동선 유민지 유석묵 유영경 유은주 유정일 유지현 유형기 윤경수 윤나영 윤병재 윤석호 윤수현 윤예랑 윤인태 윤종욱 윤진숙 윤형진 이강룡 이건진 이경수 이경철 이광규

손태봉 송대섭 송민욱 송승하 송원철 송재열 송지아 송학현 승태숙 신동국 신동호 신상철 신숙영 신원수 신재석 신지영 신하영 신혜정 심상진 심윤석 심현보 안규창 안병기 안선경 안소연 안영진 안종철 안진홍 안혜연 양덕춘 양선미 양연진 양인국 양해구 양희철 엄문용 여병창 염광민 오경이 오명규 오상훈 오수형 오영일 오인석 오창훈 오혜경 우대일 우호석 원장희 유경애 유동숙 유범준 유선욱 유영모 유은하 유정훈 유진만 유형우 윤경자 윤대문 윤복남 윤선희 윤숙희 윤용남 윤재국 윤종욱 윤진원 윤혜경 이강문 이경 이경숙 이경태 이광연

손통일 송대순 송민홍 송승훈 송윤석 송재우 송지용 송한주 신경호 신동규 신명교 신서빈 신순옥 신유진 신재은 신진철 신학림 신혜진 심상택 심은영 심현보 안길순 안병욱 안선정 안수철 안용석 안종환 안창호 안혜영 양도일 양성규 양영삼 양일명 양현경 어성민 엄민형 여선호 염기현 오경주 오명재 오선모 오승목 오영주 오인선 오철훈 오홍영 우도양 우환식 원제환 유경한 유동식 유병선 유선호 유영민 유은하 유정희 유진원 유혜영 윤고운하나 윤덕한 윤복자 윤성광 윤순재 윤용석 윤정문 윤종혁 윤진희 윤혜지 이강욱 이겨레 이경순 이경화 이광우

손향미 송대의 송민희 송연옥 송은경 송정경 송지은 송해경 신기섭 신동규 신명철 신석호 신승배 신유진 신정근 신진태 신학재 신홍범 심성희 심재익 심효진 안대성 안병욱 안선진 안순섭 안용수 안주식 안채호 안호진 양동복 양성욱 양영선 양재선 양현남 어성희 엄순미 여영옥 염민선 오경호 오명환 오선숙 오승민 오영주 오재홍 오춘영 오효순 우상민 원동주 원종수 유관열 유동현 유병욱 유선희 유영옥 유인경 유종석 유찬조 유혜정 윤광규 윤동영 윤봉철 윤성규 윤순정 윤용신 윤정배 윤종현 윤찬기 윤혜진 이강욱 이경례 이경순 이경환 이광인

송경우 송두호 송병기 송영대 송은미 송정민 송지훈 송현관 신기식 신동우 신문수 신선철 신승연 신윤석 신정우 신진형 신한준 신희령 심세엽 심재현 심훈 안대훈 안병일 안설 안순주 안은영 안주원 안철환 안효광 양동철 양성중 양영아 양재영 양현명 어수헌 엄인용 여운준 염상균 오경환 오미선 오선실 오승민 오원교 오정교 오충환 오흥실 우상준 원동현 원종진 유광종 유두열 유병일 유선희 유영주 유일선 유종오 유창근 유호건 윤광렬 윤동현 윤상숙 윤성도 윤승후 윤원구 윤정빈 윤주석 윤창일 윤호정 이강욱 이경미 이경아 이경훈 이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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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광표 이근수 이기수 이낙연 이대건 이도연 이동근 이동철 이래연 이명희 이미란 이민구 이백준 이병용 이부지랑 이상래 이상우 이상철 이상훈 이선근 이선호 이성렬 이성헌 이수강 이수용 이순분 이승연 이승원 이승철 이시원 이연희 이영순 이영환 이완우 이용수 이용필 이원도 이유리 이윤종 이은성 이은주 이익주 이재구 이재식 이재윤 이재훈 이정묵 이정신 이정택 이제 이종수 이종헌 이주식 이주환 이준희 이지원 이진구 이진주 이창준 이철희 이태곤 이표 이한표 이헌의 이현민 이현우 이현혁 이혜영 이홍구 이훈 이희용 임강수 임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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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근영 이기수 이남경 이대기 이도영 이동명 이동한 이만성 이명희 이미리 이민숙 이범석 이병하 이삼희 이상목 이상욱 이상춘 이상훈 이선명 이선화 이성미 이성현 이수경 이수원 이순수 이승연 이승은 이승한 이시현 이영 이영운 이영환 이완주 이용신 이용호 이원복 이유미 이윤태 이은숙 이은주 이인규 이재덕 이재연 이재은 이재흥 이정미 이정아 이정현 이제용 이종식 이종현 이주연 이주희 이준희 이지윤 이진길 이진혁 이창현 이청항 이태범 이필규 이해영 이헌철 이현민 이현인 이현희 이혜영 이홍란 이후삼 이희윤 임강훈 임다심

이광훈 이근영 이기영 이남석 이대로 이도운 이동수 이동해 이만영 이명희 이미선 이민재 이범재 이병학 이상걸 이상미 이상욱 이상태 이상훈 이선미 이선화 이성백 이성환 이수경 이수일 이순옥 이승열 이승일 이승헌 이시형 이영관 이영은 이영환 이용구 이용연 이용화 이원복 이유미 이윤호 이은숙 이은지 이인라 이재룡 이재영 이재진 이전석 이정미 이정애 이정화 이제운 이종실 이종호 이주엽 이준기 이중각 이지은 이진섭 이진화 이창형 이청희 이태신 이필원 이해종 이혁 이현민 이현재 이현희 이혜인 이홍복 이훈우 이희찬 임경민 임덕진

이광희 이근주 이기은 이남숙 이대섭 이도원 이동애 이동헌 이명문 이무섭 이미연 이민정 이범찬 이병학 이상경 이상미 이상웅 이상필 이상훈 이선애 이선희 이성연 이세용 이수경 이수임 이순임 이승엽 이승일 이승헌 이신형 이영구 이영음 이영환 이용규 이용우 이용희 이원석 이유진 이윤희 이은실 이은진 이인배 이재명 이재영 이재천 이전희 이정복 이정애 이정화 이제헌 이종열 이종호 이주용 이준석 이중섭 이지전 이진수 이진희 이창호 이춘상 이태욱 이필희 이행영 이혁수 이현봉 이현정 이형걸 이혜정 이홍석 이훈희 인상우 임경민 임도영

이교성 이근행 이기재 이남임 이대연 이동관 이동원 이동현 이명숙 이문규 이미영 이민정 이병국 이병호 이상국 이상민 이상윤 이상학 이상훈 이선영 이선희 이성우 이세진 이수남 이수정 이순전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안나 이영균 이영재 이영희 이용기 이용운 이우경 이원일 이유철 이은경 이은아 이은하 이인성 이재민 이재영 이재혁 이정 이정상 이정오 이정화 이제혁 이종욱 이종호 이주철 이준수 이중용 이지해 이진숙 이진희 이창호 이춘옥 이태은 이하영 이행희 이혁승 이현선 이현주 이형상 이혜정 이홍장 이희길 인선홍 임경희 임동식

이교칠 이근형 이기철 이남표 이대영 이동구 이동원 이동현 이명순 이문복 이미영 이민철 이병권 이보나 이상귀 이상붕 이상윤 이상해 이상훈 이선옥 이선희 이성우 이소영 이수만 이수진 이순홍 이승용 이승재 이승현 이애영 이영록 이영주 이영희 이용대 이용주 이우민 이원재 이윤기 이은경 이은열 이은해 이인철 이재복 이재우 이재현 이정갑 이정석 이정용 이정환 이제훈 이종원 이종환 이주학 이준엽 이중헌 이지현 이진순 이차동 이창희 이춘자 이태환 이학민 이향복 이혁진 이현수 이현주 이형욱 이호성 이화구 이희선 인용현 임고운 임동우

이구엽 이근호 이기태 이남훈 이대욱 이동규 이동원 이동협 이명순 이문숙 이미옥 이민형 이병규 이보나 이상균 이상선 이상의 이상혁 이상희 이선용 이선희 이성은 이소유 이수민 이수진 이슬 이승용 이승주 이승현 이양애 이영미 이영주 이예술 이용마 이용준 이우철 이원주 이윤상 이은구 이은영 이은희 이인향 이재숙 이재우 이재현 이정국 이정석 이정우 이정환 이조은 이종윤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진 이지현 이진식 이창경 이창희 이춘홍 이태훈 이학범 이향자 이현 이현수 이현주 이혜경 이호열 이화신 이희성 인유진 임관수 임동이

이군순 이금정 이기택 이남희 이대원 이동규 이동은 이동환 이명우 이문자 이미자 이민형 이병남 이보라 이상근 이상술 이상익 이상현 이상희 이선우 이성관 이성인 이소진 이수복 이수헌 이슬아 이승우 이승준 이승호 이억한 이영미 이영주 이오철 이용석 이용준 이우현 이원주 이윤석 이은규 이은영 이은희 이일섭 이재숙 이재우 이재호 이정국 이정선 이정윤 이정훈 이존희 이종인 이종훈 이주한 이준영 이지민 이지현 이진아 이창길 이채민 이충걸 이태희 이학춘 이향희 이현경 이현수 이현주 이혜담 이호웅 이화형 이희숙 인정임 임광식 임동철

이권모 이기린 이기호 이내규 이대전 이동규 이동주 이동훈 이명원 이문정 이미정 이민화 이병문 이보윤 이상기 이상승 이상일 이상호 이석 이선웅 이성광 이성일 이소형 이수연 이수현 이승계 이승우 이승준 이승호 이연경 이영복 이영찬 이오현 이용석 이용진 이운영 이원형 이윤숙 이은령 이은재 이의영 이자영 이재승 이재욱 이재호 이정기 이정선 이정은 이정훈 이종기 이종찬 이종훈 이주현 이준영 이지상 이지현 이진아 이창석 이철영 이충기 이택기 이한규 이헌서 이현구 이현숙 이현진 이혜란 이호진 이회국 이희숙 인창규 임규섭 임동하

이규석 이기명 이기환 이노형범 이덕성 이동규 이동주 이동희 이명재 이문준 이미향 이민희 이병민 이봉수 이상기 이상엽 이상준 이상화 이석인 이선자 이성길 이성자 이소혜 이수영 이수현 이승규 이승우 이승진 이승호 이연경 이영선 이영한 이옥진 이용석 이용진 이원 이원희 이윤애 이은미 이은정 이의행 이장묵 이재식 이재운 이재호 이정란 이정섭 이정이 이정훈 이종미 이종철 이종흔 이주현 이준형 이지숙 이지현 이진영 이창우 이철우 이충렬 이택순 이한섭 이헌석 이현달 이현숙 이현진 이혜성 이호진 이효석 이희숙 인현식 임규성 임동환

이규재 이기범 이기훈 이다미 이덕수 이동근 이동찬 이두수 이명헌 이미경 이미현 이배근 이병선 이봉우 이상덕 이상요 이상준 이상화 이선경 이선주 이성남 이성재 이송원 이수영 이수호 이승민 이승욱 이승철 이승훈 이연호 이영숙 이영혜 이옥희 이용성 이용철 이원근 이윤 이윤정 이은석 이은정 이익상 이장희 이재식 이재웅 이재홍 이정란 이정승 이정임 이정훈 이종민 이종청 이종희 이주형 이준호 이지영 이지형 이진영 이창우 이철재 이충인 이택양 이한주 이헌수 이현미 이현식 이현철 이혜숙 이호진 이효정 이희완 인호진 임기임 임두현

이균락 이기복 이나미 이다혜 이도섭 이동근 이동철 이득흔 이명화 이미라 이미희 이백운 이병설 이부덕 이상돈 이상용 이상진 이상훈 이선규 이선주 이성렬 이성지 이수 이수영 이숙희 이승민 이승원 이승철 이승훈 이연희 이영순 이영화 이완기 이용성 이용택 이원근 이유경 이윤정 이은성 이은정 이익주 이재경 이재식 이재원 이재화 이정림 이정식 이정태 이정훈 이종보 이종한 이주민 이주홍 이준호 이지원 이진경 이진이 이창원 이철호 이충환 이평세 이한진 이헌용 이현미 이현식 이현태 이혜연 이호희 이효진 이희용 임강섭 임나연 임매순


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임범상 임성율 임영수 임은성 임정식 임지원 임필순 임형수 장나리 장미림 장성식 장연후 장우석 장윤미 장점봉 장채리 장현진 전광배 전명원 전선형 전영일 전제훈 전평구 전희만 정국진 정길용 정동익 정문주 정민주 정산 정석구 정성원 정수영 정승환 정영무 정영훈 정원교 정윤종 정익수 정재석 정종운 정지석 정진숙 정창인 정한석 정현주 정호인 정희종 조강일 조귀환 조동준 조미연 조병현 조성래 조수년 조영란 조용필 조은영 조종현 조충현 조현 조혜련 조희화 주수진 주하형 지민숙 지창훈 진남희 차문조 차인섭 채희진 천용우 최경식

임병도 임성재 임영숙 임자운 임종규 임진세 임한수 임혜경 장대성 장미애 장성훈 장영덕 장우석 장윤석 장정우 장철규 장형종 전광수 전미경 전성배 전영재 전종수 전한나 전희만 정국화 정길화 정동철 정민 정민현 정상모 정석근 정성필 정수진 정시연 정영미 정옥희 정원석 정은 정인 정재연 정종원 정지연 정진욱 정창현 정해문 정현진 정호진 정희진 조경래 조규민 조동현 조미형 조봉매 조성민 조수연 조영수 조용화 조은현 조준호 조탁현 조현경 조혜연 주강호 주영복 주한나 지병현 지형락 진덕수 차민숙 차정자 천기호 천정은 최경아

임산하 임성환 임영숙 임장원 임종문 임진수 임한신 임혜림 장대열 장미정 장소희 장영묵 장우성 장은아 장정윤 장철영 장혜경 전금희 전미선 전성수 전예화 전종우 전한수 정경두 정군주 정길훈 정득철 정미란 정민호 정상안 정석생 정성현 정수철 정안수 정영민 정완균 정원영 정은경 정인선 정재진 정종일 정지영 정진욱 정창호 정해욱 정형송 정홍섭 정희찬 조경록 조규범 조룡상 조민성 조부민 조성연 조수연 조영수 조우일 조인한 조중훈 조태호 조현구 조혜영 주경선 주영삼 주현우 지삼녀 지혜선 진보라 차상훈 차지훈 천대철 천지현 최경영

임상진 임세영 임영우 임장춘 임종섭 임진순 임향란 임혜영 장덕남 장병옥 장수규 장영수 장우식 장은영 장주영 장태욱 장혜경 전기정 전미자 전성애 전용우 전종우 전한진 정경성 정귀연 정다솜 정래훈 정미선 정민호 정상영 정석인 정성현 정수현 정애경 정영연 정용석 정원철 정은경 정인원 정재천 정종주 정지은 정진익 정채영 정해인 정혜선 정화동 정희찬 조경민 조규숙 조명근 조민수 조상기 조성연 조수영 조영식 조우현 조인혜 조지숙 조태훈 조현동 조홍찬 주동원 주영희 주현정 지성스님 지혜영 진상훈 차성준 차현진 천명주 천태환 최경원

임선규 임송섭 임영환 임재경 임종안 임진우 임헌영 임홍갑 장덕용 장병춘 장수익 장영숙 장우철 장은영 장중현 장택수 장혜숙 전다슬 전미희 전성일 전용자 전준희 전현수 정경순 정규현 정다훈 정만수 정미숙 정백란 정상용 정석조 정성훈 정수현 정양석 정영주 정용우 정유경 정은경 정인준 정재철 정종천 정지은 정진홍 정철윤 정향미 정혜아 정화숙 정희천 조경민 조근성 조명아 조민숙 조상현 조성오 조수장 조영식 조유식 조일제 조지연 조하나 조현우 조환 주미영 주완돈 주현주 지수경 진각유 진수호 차성환 채도진 천무영 천현숙 최경주

임선영 임선영 임선정 임수재 임수정 임승빈 임옥균 임완란 임용만 임재영 임재하 임재형 임종업 임종우 임종헌 임창빈 임채영 임충주 임현 임현구 임현무 임효영 임효진 장국남 장동민 장동주 장동호 장상길 장상득 장서형 장수진 장시영 장애령 장영욱 장영익 장영채 장욱상 장원석 장원석 장은희 장인석 장인선 장지현 장지훈 장진숙 장학중 장한무 장한식 장호걸 장홍석 장환순 전대석 전대진 전도훈 전민선 전민용 전병탁 전성호 전수경 전수영 전용주 전우진 전원실 전진 전지영 전지영 전현숙 전혜숙 전호용 정경호 정경희 정경희 정근희 정기동 정기영 정대선 정대환 정덕순 정명구 정명옥 정명진 정미숙 정미옥 정미옥 정병규 정병규 정병석 정상원 정상조 정상준 정선아 정선영 정선화 정세원 정세훈 정세훈 정숙경 정순건 정순호 정여진 정연구 정연우 정영주 정영진 정영춘 정용운 정용재 정용해 정유나 정유림 정유진 정은수 정은영 정응섭 정인희 정일찬 정장환 정재철 정재철 정재형 정주란 정주영 정주영 정지은 정지하 정지혁 정진화 정찬무 강윤경 정철훈 정청래 정태성 정헌수 정현락 정현석 정혜영 정혜영 정혜영 정효준 정효진 정효진 제갈종길 제명신 제용순 조경신 조경희 조광연 조남득 조남혜 조대현 조명옥 조명훈 조무상 조민지 조민혁 조민호 조상현 조석우 조선미 조성은 조성일 조성지 조수정 조수호 조아라 조영혁 조영희 조예진 조유정 조유진 조윤정 조장훈 조재성 조정심 조진모 조진석 조진오 조학현 조한웅 조해관 조현정 조현주 조현준 조환규 조회경 조효근 주상모 주상현 주선혜 주유인 주은수 주은현 주형민 주혜진 주홍근 지영선 지영은 지용동 진경희 이산하 진광호 진승모 진은혜 진재욱 차영옥 차영천 차옥숭 채복희 채수인 채어진 천민경 천복기 천석봉 천홍권 철오 큰스님 최경준 최경희 최관집

2017년 5월

임선하 임성대 임승철 임승희 임우선 임우요 임정규 임정민 임주현 임지영 임치형 임태수 임현수 임현실 장기석 장기섭 장두영 장명숙 장석운 장선경 장연미 장연선 장용광 장용숙 장원철 장윤 장인철 장인호 장진욱 장진호 장해랑 장현길 장희상 전갑진 전동수 전동열 전상구 전상우 전숙현 전순미 전인원 전재수 전지현 전지현 전홍표 전훈 정광 정광석 정기영 정기은 정덕진 정도영 정명현 정무정 정미정 정미희 정병용 정병욱 정상진 정상훈 정성길 정성문 정소라 정수근 정슬기 정승용 정연택 정영 정영하 정영학 정용희 정우성 정유희 정윤섭 정응희 정의석 정재경 정재관 정점숙 정정기 정주영 정주희 정지현 정진근 정찬미 정찬영 정태화 정태휘 정현석 정현석 정혜정 정혜진 정희경 정희경 제임스옥(옥진욱) 조광옥 조광훈 조동연 조동원 조문성 조미경 조민환 조민희 조선미 조선영 조성진 조성환 조안나 조연경 조용감 조용상 조윤주 조윤형 조정옥 조정화 조짐모 조창현 조해성 조해형 조현진 조현호 조훈제 조휘행 주성기 주성종 주재환 주정규 주희운 지경주 지은희 지정구 진교영 진규엽 진형범 진형수 차은선 차은호 채영미 채장기 천성하 천세환 최갑식 최강호 최관철 최광옥

임성래 임식경 임우택 임정민 임지웅 임태윤 임현일 장기혁 장문규 장성룡 장연수 장용철 장유식 장재기 장창덕 장현주 전경원 전명옥 전상주 전연희 전재현 전창성 전흥표 정광택 정기종 정동경 정문기 정민규 정봉근 정서영 정성식 정수미 정승우 정영교 정영현 정우진 정윤영 정의진 정재권 정정일 정준형 정진산 정창숙 정택일 정현선 정호식 정희금 제지현 조국연 조동주 조미란 조범연 조선이 조성훈 조영구 조용준 조윤호 조정훈 조채훈 조향연 조형철 조희정 주성태 주지혁 지광해 지준영 진길임 진희영 차의섭 채창병 천승철 최경 최광웅

임성원 임영섭 임원양 임정수 임지원 임평희 임형석 장길수 장문택 장성봉 장연우 장우봉 장유정 장재웅 장창호 장현주 전경일 전명욱 전선영 전영명 전정수 전태진 전희락 정광현 정기주 정동수 정문선 정민영 정부활 정석구 정성우 정수양 정승헌 정영교 정영훈 정운봉 정윤우 정이랑 정재련 정정일 정준호 정진상 정창운 정택준 정현숙 정호엽 정희영 조강숙 조권도 조동준 조미숙 조병창 조성국 조소원 조영규 조용진 조은실 조정희 조철원 조향옥 조혜경 조희정 주수석 주진택 지근성 지준옥 진남순 차기현 차익준 채희명 천승환 최경순 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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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입니다. 최규남 최대섭 최두영 최미애 최보영 최상호 최성권 최소영 최승규 최영균 최영철 최원석 최은심 최인숙 최재웅 최정아 최종윤 최지영 최진영 최태용 최현주 추명성 태양훈 하상훈 하지혜 한귀순 한상덕 한성욱 한승철 한용주 한주엽 한현희 허경태 허영강 허정현 허현주 현정규 홍민희 홍성철 홍연금 홍정윤 홍태용 황덕홍 황보영근 황성하 황의청 황지현 황화인

최근석 최대식 최명식 최미영 최보윤 최석봉 최성일 최숙 최승혁 최영묵 최영태 최원일 최은자 최인정 최재원 최정운 최종훈 최지용 최참 최태훈 최현진 추연균 태영원 하성용 하춘욱 한기성 한상복 한성일 한승희 한용희 한준수 한혜란 허남옥 허영수 허정화 허혜민 현주 홍병진 홍수영 홍영기 홍정환 홍해정 황도형 황보인구 황수민 황인 황지훈 황희관

최근철 최도훈 최명찬 최미현 최복규 최석종 최성하 최수경 최승호 최영민 최영학 최유진 최은주 최인창 최재혁 최정호 최주리 최지원 최차봉 최학봉 최현진 추연수 태은정 하영은 하치동 한동균 한상용 한성환 한신애 한우 한준희 한호석 허만훈 허영재 허정화 현금이 홍경진 홍서희 홍수원 홍영미 홍정희 홍현봉 황명숙 황부자 황순구 황인성 황철환 황희원

최금희 최기영 최기윤 최동선 최동수 최동신 최명호 최명희 최무현 최민선 최민섭 최민호 최봉산 최봉호 최상덕 최석태 최선근 최선미 최성헌 최성혁 최성호 최수정 최수진 최수진 최승호 최승환 최승훈 최영민 최영식 최영아 최영희 최옥현 최용석 최유환 최윤대 최윤실 최은지 최은지 최은희 최인호 최인희 최일광 최재현 최재호 최재환 최정훈 최정훈 최정훈 최준규 최준락 최중억 최지윤 최지환 최지훈 최창규 최창석 최창수 최한성 최해창 최헌 최형순 최형용 최혜영 추연숙 추원호 추일웅 편성훈 편일란 표석 하용근 하원식 하은경 하태욱 하태웅 하태진 한로사 한만정 한명선 한상일 한상일 한상진 한성희 한세용 한소연 한애경 한애련 한연기 한우전 한운동 한윤희 한진석 한찬우 한찬희 한효진 한훈희 한희정 허미진 허삼영 허상대 허영진 허영진 허옥현 허종환 허준기 허준식 현기남 현기훈 현상윤 홍기 홍기상 홍기성 홍석구 홍석진 홍석훈 홍수정 홍수호 홍순풍 홍용웅 홍우식 홍인선 홍종두 홍주표 홍주희 홍현수 홍현준 홍형숙 황명식 황명필 황미선 황상순 황상인 황선영 황승동 황승미 황승용 황인용 황인찬 황인희 황춘화 황충모 황태근 David Cho jungsil Choi

신입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최기은 최낙선 최동진 최동철 최문규 최문찬 최민희 최병국 최상민 최상열 최선영 최선용 최성황 최세경 최수현 최숙경 최승희 최시안 최영아 최영애 최용수 최용식 최윤영 최윤준 최은희 최은희 최일남 최장근 최재환 최정규 최정희 최정희 최중일 최지선 최진각 최진규 최창우 최철원 최혁 최현근 최혜진 최홍덕 추점자 추준안 표수호 표지영 하재기 하재원 하현주 한갑수 한미희 한병기 한상혁 한상호 한수정 한승동 한영관 한영선 한인섭 한일희 한철모 한철우 함보현 함석일 허선미 허선회 허용수 허욱 허준호 허진 현성우 현승준 홍난희 홍남균 홍선비 홍선영 홍순형 홍승수 홍인용 홍장혁 홍준기 홍진 홍혜진 황경희 황미연 황민우 황성수 황성식 황승훈 황애자 황재희 황정기 황태원 황태현 Moon Ho Hwang

김명규 김은희 송미란 이동환 최은아

김미숙 김희동 송승하 정호영 허균

최낙훈 최동혁 최미라 최병주 최상열 최선욱 최세성 최숙희 최시연 최영우 최우람 최은동 최의순 최장옥 최정록 최종관 최지수 최진동 최춘식 최현영 최홍석 탁미란 하경옥 하재철 한강희 한병기 한서윤 한승우 한영식 한재운 한충희 함선호 허성 허육 허창구 현영권 홍민 홍성모 홍승현 홍재범 홍지현 황광수 황민지 황성애 황영민 황정현 황현성 paul Kim

최달호 최담담 최대건 최동현 최동훈 최두열 최미라 최미선 최미아 최병호 최병호 최보영 최상천 최상필 최상한 최선중 최선희 최성관 최세연 최소미(정성연) 최순규 최순천 최슬기 최아현 최안진경 최양희 최영주 최영준 최영준 최우복 최우석 최웅식 최은미 최은숙 최은순 최의찬 최인미 최인섭 최재규 최재균 최재욱 최정순 최정식 최정실 최종문 최종배 최종식 최지양 최지연 최지영 최진봉 최진성 최진솔 최칠영 최태명 최태선 최현영 최현우 최현재 최효진 최희동 최희영 탁범우 탁승수 탁종열 하국봉 하대호 하상필 하정순 하지아 하지영 한경민 한경선 한경송 한병철 한보경 한삼덕 한서현 한석만 한성아 한승윤 한승윤 한승주 한영실 한영애 한오형 한재인 한정호 한제영 한태욱 한택규 한해진 함종빈 함진호 함판식 허성식 허성식 허수련 허인순 허재우 허정운 허창수 허태준 허태환 현영돈 현용주 현일훈 홍미숙 홍미영 홍미정 홍성원 홍성재 홍성주 홍승훈 홍승희 홍연 홍재완 홍정배 홍정연 홍지훈 홍진숙 홍진일 황교남 황규석 황대선 황병원 황병준 황보반 황성욱 황성운 황성준 황용석 황운선 황의근 황준범 황준혁 황중길 황현주 황현표 황혜성 PowonCorp

김병규 문상두 안대권 제백문

김수진 박진호 원경재 채어진

·2017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새로 가입한 18분입니다. ‘회원정보 동의’까지 완료한 분들의 이름입니다. ·이름을 확인 못한 분이 계실 경우 사무처로 문의해 주십시오. (02-392-0181)

부탁 드려요

1. 사용하지 않는 계좌는 변경해주세요. 2. 잔액을 채워 주세요.

잔액 부족으로 회비 인출이 되지 않아도 CMS 수수료는 내야합

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면 꽤 큰 돈이 됩니다.

3. 나무에게 미안해서 우편물을 받지 않고 싶은 분은 전화로 연락 주세요. 4. 이메일을 등록해 주시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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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회비 관련 문의 전화

02·392·0181


민주언론시민연합

팟캐스트 좋아요 민주언론시민연합 자체 팟캐스트

미디어탈곡기 평일 오전 페이스북 생방송 후 업로드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청년회장 이봉우 활동가, 부녀회장 배나은 활동가. 그리고 동네 마실 청년 이정일 활동 가가 매일매일 미디어를 ‘탈탈탈’ 털어드립니다. 하트와 다운로 드, 댓글로 꼭꼭 함께해 주세요.

하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종편때찌프로젝트 매주 금요일 저녁 업로드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미디어포커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방송

* 팟빵(www.podbbang.com)에서 ‘미디어 탈곡기’를 검색해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애플 공식 팟캐스트에서도 구독할 수 있습니다.


사 민연합 30년

I

민주언론시 도전 운 로 민주언론, 새

. 수 있습니다 해주세요. 에서 구입할 도서 신청’을 인터넷 서점 에 ‘희망대출 동네 도서관 또는 가까운

1984년 12월 19일. 7·80년대 해직기자들과 출판인들이 민주언론운동

협의회(언협)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단체 이름은 민주언

론시민연합(민언련)으로 바뀌었다. 하는 일과 사람들도 조금 달라졌다.

언협 초기는 ‘말’의 시대였다. 모든 제도언론이 침묵할 때 언협은 세련

된 대항매체「말」을 만들어 국민에게 진실을 알렸다. ‘보도지침’을 폭로

해 흔들리던 전두환 정권에 치명타를 날리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언협

은 언론단체이자 시민단체로 변모했다. 일반 시민들이 회원으로 참여하

기 시작했고 언론 감시, 언론정책 감시가 핵심 활동이 되었다. 2000년

이후 회원은 1천 5백여 명까지 늘었는데 그중 80% 정도가 일반 시민이

다. 언협과 말지를 만들었던 해직기자들은 언론운동의 원로이자 시민단

체 민언련의 지도부로 참여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세상을 떠나 역사 속에 남았다.

시간이 흐르고 하는 일과 사람들이 달라졌지만 언론운동단체로서

민언련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의 목적은 민언련 초기라 할 수

있는 1988년까지의 역사를 통해 언론단체로서의 근본정신을 되짚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민언련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민언련은 어디쯤에 있었던 것인지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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