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spring & summer vol.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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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명단 (가나다순)
펴낸날
강지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회원조직사업부서장
펴낸곳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
김 우
4.16연대 운영위원
문석연
(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회원조직사업팀장
기획
'사월십육일의약속' 편집위원회
박현민
4.16연대 시민소통팀 활동가
디자인
사과나무
박희정
《금요일엔 돌아오렴》 공동저자
이명재
디자인 사과나무 대표
일러스트
최시내 chsinae@gmail.com
이태호
4.16연대 집행위원장
인쇄
예진원색인쇄
도움
4.16재단, 문학동네
2022. 4. 1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서울 종로구 대학로 45 임호빌딩 6층 / 416act.net 02-2285-0416 / 416network@gmail.com
041-578-5324 / design.sorrytree@gmail.com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design
소식지 디자인과 표지 일러스트를 만든 디자인 사과나무는 지역에서 꾸준히 세월호참사 연대활동을 했습니다. 평화/인권/페미니즘/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지역의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2
사월 십육일의 약속
2022. spring & summer vol.02
05
편집인의 글
이룬 것과 이룰 것을 살피고, 옆과 뒤를 보는 마음으로
06
특집 01
슬픔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가 세월호를 기억해온 청년들이 말하는 ‘세월호참사 이후’
12
특집 02
촛불시민들의 열망으로 열린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문재인 정부의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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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문재인 정부 5년, 진상규명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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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해경 지휘부에 대한 1심 판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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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참사를 만나다
김용균재단 이윤과 생명, 무엇을 선택할지 분명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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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엄마아빠는 싸울 거야, 그 말이 제 마음의 방패를 부쉈죠” 소설가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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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2022년, 속초 약속지킴이들은 다시 시민들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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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10반 그리고 11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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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토리
기억과 빛 서로의 힘과 용기가 되어 기억을 지키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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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공간 소개
팽목기억관 “이곳은 아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공간이자, 국가의 무능함을 확인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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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공연
간절함이 기록과 만나 빚은 유산 《그날을 말하다》
46
만화
말로 하지 못한 노랑
48
4.16연대 활동
세월호참사 8주기 행사 안내 <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과 약속의 달> 이렇게 참여해요 SNS로 본 4.16연대 4.16연대 활동 일지 4.16연대 활동 소식 행사후기: 「팽목 기억 캠프, 기억 예술마당」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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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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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이룬 것과 이룰 것을 살피고, 옆과 뒤를 보는 마음으로
봄입니다. 일 년이 흐르고 또 일 년이 흐르고 그렇게 어
곧 새 대통령을 맞을 4.16연대 회원들께 보내드릴 첫 소
느덧 팔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그날 앞에 섭니다. 날짜를
식지에 어떤 말을 전해야 좋을까 고심할 때 이 말이 떠올
헤아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어째서 해를
랐습니다. 새 정부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선 더 나은 미
단위로 시간을 나누어 살아갈까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
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비탄과 두려움의 목소리가 더 많이
로 둥글게 돌고 그래서 계절이 생기고 그에 맞춰 생물들
들려옵니다. 취약한 삶이 더 취약해지고, 싸우는 사람들이
이 피고 시들기 때문일까요.
더 험한 싸움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예감 앞에 무력감이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오십하고도
스밉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 이
사년 전 시월의 끝자락에, 피난민들이 모여 만든 가난한
루어지길 기대했던 피해자들의 마음도 착잡하기 이를 데
낙산 달동네에서 작고 마른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
없겠지요.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참사의 책임 세력
이는 자라서도 몸을 움직이거나 말로 자기를 표현하기 어
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형국이니까요.
려웠지요. 세상은 그와 같은 사람을 중증장애인이라고 불
절망이 전부인 듯 보이는 순간에는 멀리 있는 희망을 이
렀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세 글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
야기하기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게 움직일
동민. 동생들에겐 너그러운 형으로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힘을 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외로운 채로 있어선 안 됩
우동민은 42년의 삶을 살다 흙으로 돌아갔는데, 그중
니다. 사람은 힘들 때보다 외로울 때 쓰러지기 쉬우니까
34년은 집 아니면 시설에 꼬박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이
요.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옆과 뒤
러한 삶은 결코 너의 운명이 아니며, 너와 가족들의 책임
를 보는 마음이 아닐까요.
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동지들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매해 돌아오는 4월
은 문턱을 넘지 못하는 휠체어가 아니라 휠체어를 가로막
16일은 참사가 일어난 그날과 꼭 같은 날은 아닐 겁니다.
는 문턱을 쌓는 사회가 문제라고 외치는 사람들이었습니
우리는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한 점으로 되돌아갈 수
다. 이들과 함께 우동민은 세상으로 나와 장애해방을 위해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새로운 4월 16일을 맞이한
싸우는 활동가가 됐습니다.
다는 것은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참사의
우동민의 죽음은 이명박 정부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의미를 곱씹으며 현실을 바꿔낼 힘을 다시 채우는 시간인
2008년 시작된 이명박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과
것은 아닐까요. 억울하게 죽음당한 이들과 지금 이 순간에
역할을 축소하고 정부와 여당의 입맛에 맞는 기관으로 길
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들이고자 했습니다. 파행 운영을 거듭하는 국가인권위원
깊이 슬퍼하기를, 쌓인 숫자를 보며 낙담하기보다 잘 싸
회를 정상화하려는 시민사회의 투쟁이 정권 내내 끊이지
워갈 힘을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직 우리는
않았지요. 2010년 10월 현병철 위원장 사퇴운동이 전국
이 비극에 대한 모든 답을 듣지 못했으니까요.
적으로 벌어졌고,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
두 번째 《사월십육일의 약속》은 옆과 뒤를 볼 수 있는
애인활동가들이 인권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갑니다.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8년간 우리가 이룬 것을 확
그러자 인권위는 혹한 속에 농성장의 난방을 끊어버렸습
인하고 앞으로 이룰 것을 가늠하기 위한 이야기들입니다.
니다. 우동민은 그만 폐렴을 얻어 긴급 이송되었고 이듬해
함께 모여 읽어주시고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해주시면 좋
1월 2일 세상을 떠납니다.
겠습니다. 서로 손을 잡을 때 안갯속에서도 길은 이어질
평소 말이 없던 우동민은 어쩐 일인지 농성 중 이런 말 을 남겼다고 합니다.
것입니다. 박희정 《4월 16일의 약속》 편집위원장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렇게 함께 갑시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5
특집1
슬픔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가 세월호를 기억해온 청년들이 말하는 ‘세월호참사 이후’ 글 김예림 안산에서 태어나 안산에 살고 있습니다. 책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포도밭출판사, 2021)를 썼습니다.
Ⓒ Re;cord
성수대교붕괴참사가 일어난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벌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이 대사가 좋은 이유는 ‘모른다’고 말하고 있 지만, 실은 들려줄 이야기가 더 있을 거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온갖 절망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8년 전 세월호참사로 삶이 뒤흔들린 시민들 또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8주기를 마주하는 시점에서 그중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대선 국면에서 청년이 중 요한 정치 주체로 떠오르는 듯 했지만, 사실 한국 사회는 청년들에게 충분히 말할 자리를 주지 않는 다. 혹시 ‘공정’을 되뇌이는 20대 남성의 모습으로만 청년을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단일하지도 균일 하지도 않은 ‘청년들’ 중 세월호참사에 관통당해 삶이 바뀐 10대와 20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6
청소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Re;cord’: “기억은 부딪히며 생겨나는 것”
분한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따라다녔다. 다큐멘터리 예산 마련을 위한 펀딩에는 이런 소개글이 쓰여 있다. “이야기 끝에 한 가지 공통된 결론을 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슬퍼했고, 저희 역시 그 슬퍼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많이 모르 고 있구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눈물만 흘려야 하나?”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만들어간’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세월호참사는 각자의 삶과 더 가까워졌다. 다큐멘터 리 팀을 따뜻하게 맞아준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활동가들
2021년, 세월호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이우 학교 2, 3학년 학생 12명은 지난해 ‘Re;cord’라는 팀을 구 성해 다큐멘터리 <기억해, 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 은 세월호참사 당시 10살, 또는 11살이었다. 참사에 대해 뚜렷하게 기억을 가진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 ‘세월호참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을 함께 품었다. 감독을 맡은 최호영 씨의 제안으로 처음 프로젝트가 시 작됐다. 호영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2년간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에 다녔던 경험이 있다. 제작을 맡은 김벼 리 씨는 참사 당시에는 ‘배가 침몰한 사건’으로만 희미하 게 남아있던 기억이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를 계 기로 선명해졌다고 말한다. 이우학교에서도 매년 세월호 참사 추모행사를 하고 노란 리본을 달았지만 ‘이걸로 충
의 마음 때문이다. “팽목항에 고우재 학생의 아버님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다음번에는 여기 와서 밥 먹으라고, 배를 깎아서 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기억하기 위해 만난, 따뜻하고 소 중한 만남이라는 느낌.”(벼리) “가족극단 노란리본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예요. 연출가 김태현 님이 세월호 피해자들과 활동하시게 된 계기를 말 씀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겪은 분들에게 연극이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흥미를 의미 있는 주제로 연결하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김태현 님 말씀을 듣 고 ‘문화·예술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걸 고민해보게 됐어요.”(호영) 세월호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영화의 주제이기 도 한 물음은 아직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벼리 씨는 자신 7
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던, 노란리본을 달거나 세
불구하고 참사 이후 청소년들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
월호 관련 영상을 시청하는 범위를 넘어 움직이고 행동해
은 곱지 않았다. 거리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서명운동
얻은 결론이 있다고 한다. 바로 “기억하는 데에는 사랑이
을 받고 있으면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것 아니냐’는 시식
머물러야 한다”는 것. 사랑이란, 몸을 움직여 다가가고 알
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과
게 되는 것이다.
정에서 청소년은 왜 주체로 나서기 어려웠을까. 곰곰 씨는 청소년을 존중받아야 할 주체적 개인으로 보
청소년 인권을 고민하는 곰곰: “청소년의 삶이 바뀐다면” 곰곰(활동명) 씨는 세월호참사 당시 19살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일찍 집을 나와 쉼터를 전전하던 중 안산에서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이하 엑시트)를 만났다. 엑시 트는 거리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곳에 대형버스를 개조한 쉼터를 세워놓고 청소년과 만나는 활동을 한다. 청소년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동료 시민으로 함께한다는 원칙 위에 서 청소년을 지원한다. 엑시트를 운영하는 ‘들꽃청소년세 상’은 통제로만 일관하는 기존 쉼터 대신 청소년이 스스
지 않고 보호받아야 되는 미숙한 존재로만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어른들이 미안해’ 같은 말이 그런 고정관념을 드러낸 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주체적으로 살라고 말을 하지 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그 기대에 잘 부응했을 때만 ‘기특해’한다. 곰곰 씨가 활동한 4.16실천단은 이러한 어 른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회 주체들의 연대였다.
강호연, 장유진: “차별과 경쟁이 주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로 꾸려가는 주거공간인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도 함 께 운영했는데, 곰곰은 2014년 가을 이곳에 들어갔다.
한국사회의 지금을 말할 때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빼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급했던 곰곰에게 세월호참사
놓을 수 없다. 일상적으로 체감하는 불평등은 타인의 고통
는 조금 먼일이었다. 그러나 주거가 안정되고 자활매장에
을 줄이고, 조직의 문화를 바꾸고, 사회 구조를 바꾸는 데
서 일도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세상에도 눈을 돌릴 여유
에 관심을 돌리도록 만든다. 2015년부터 3년간 4.16연대
가 생겼다. 엑시트와 자립팸에 함께하는 청소년들이 주축
에서 활동한 강호연 씨는 이토록 문제적인 한국사회에서
이 되어 ‘4.16기억과행동청소년실천단’(이하 4.16실천단)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던 게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 꾸려지자 바로 참여했다.
“저 취직할 때쯤에 ‘남자가 스펙’이라는 얘기가 많았어
“처음에는 거창한 생각 없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활동을
요. 대학까지는 어떻게든 같은 출발선에서 열심히만 하면
하면 할수록 나라에 의무를 다하며 사는 국민을 국가가
해낼 수 있었는데, 취직할 때는 출발선 자체가 뒤로 밀리
책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왔어요. 나랑 전혀
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때는 한국을 떠나
관련 없는 일이 아니구나. 유가족 분들 만나서 얘기를 들
는 게 목표였죠. 나이주의며 성차별이 다 싫어서요. 이미
었던 게 영향이 컸어요.”
한국사회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방송에서 가습기
도보행진, 유가족 간담회, 서명운동 등 세월호참사 진상
살균제 사건을 봤어요. 그런 와중에 세월호참사가 일어났
규명으로 시작된 4.16실천단 활동은 청소년참정권, 강정
고요. 이런 나라에서 살다가는 랜덤하게 죽을 수도 있겠다
평화운동, 성소수자인권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연대하
싶었어요.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발신된 것으로 기록된
는 활동으로 확장됐다.
문자가 ‘기다리래’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저였어도
“4.16실천단은 매년 4월 16일이 되기 약 일주일 전부터
시키는 대로 기다렸을 거 같아요. 세월호 안에 있는 게 나
캠프를 기획해 진행했어요. 스무 명 남짓한 참가자들끼리
였을 수도 있겠다, 이건 정말 내 문제라고 생각해서 4.16
서로 활동에 대해 정보를 나눴어요. ‘이런 거 한다는 데 같
연대에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을 줄이
이 가볼래?’ 그렇게 연대의 고리가 생겼죠.”
는 일을 한다면 조금 더 살 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청소년은 세월호참사 당시 주된 피해 당사자였음에도 8
었던 거죠.”
진보대학생넷 대표 장유진 씨도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각한다.
청년의 녹록치 않은 삶을 예민하게 체감한다. 20대 후반
“예전에 세월호참사에 대한 책에서 ‘참사는 일격에 벌어
쯤 되면 직업을 어떻게 구할지 아등바등하지는 않으리라
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었어요. 단 하나의 잘못으로 참
생각하며 자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사가 터지는 게 아니고, 수많은 묵인들이 쌓여서 발생하는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 꿈을 이루는 것은 바라지 않더라도
거라고. 진짜 위기상황일 때 아무도 얘기 못하는 조직의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할
문화, 우리 안의 공기가 참사를 일으키는 거라는 얘기였어
텐데, 그러려면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영역의 일을 선택
요. 어쩌면 사회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들여다본다는 점에
해야 한다. 뉴스 기사에 나오는 직장 내 폭언과 무시, 차별
서 세월호참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한 소수자의 관점
대우가 “이 단어 안에 담기지 않을 만큼 실재하고 있구나”
과도 닮은 것 같아요. 참사에서 말하는 ‘안전’도 여성의 안
를 친구들을 통해 실감한다. 청년들은 “이런 직장에 다녀
전이나 성소수자의 안전이 될 수 있겠죠.”
야 하고, 이런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런 청 년 세대를 향해 기성세대는 ‘뚝심 없다’는 섣부르고 오만 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장유진씨가 바라는 ‘세월호참사 이후’는 한국 사회가 근 본적으로 가치의 전환을 이룬 사회다.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열심히 해서 능력이 있어야만 먹
그러나 장유진 씨는 이런 현실을 바꿀 희망이 있다고 믿
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 아니라 대단한 능력이 없
는다. 세월호참사에 전혀 관심 두지 않았던 자신이 다큐멘
어도 국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이 열렸으
터리를 한 편 본 뒤 생각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
면 좋겠어요. 청년들이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남도 안
도 달라질 수 있다.
보고, 나도 돌보지 않고, 경쟁하고, 혐오하고, 차별할 필요
강호연씨에게 4.16운동은 그 자체로 다양한 사유가 가
없는 그런 세상.”
능한 주제다. 4.16운동이 무엇이며, 그 방향성과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끊임없이 토론되어야 한다고 생
Ⓒ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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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시민단체 활동가 윤유진: “진상규명이 우선” 안산 시민단체 ‘평등평화세상 온다’ 상근 활동가 윤유진 씨는 2014년 세월 호참사 당시 안양에 있는 평범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게 맞 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꾹꾹 눌러 담아온 생각이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고 비로소 터져 나왔다. 직장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유진 씨는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 페이스북에서 유가족들이 단식농성 중인 광화문으로 1박2일 동조단식을 하러 간다는 포스터를 보고 여름휴가를 내어 참석했다. 알고 보니 외부 참가자는 자신뿐이었던 그 캠프에서 윤유진 씨는 안 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안산새사회연대 일:다’(평등평화세상 온다 의 전신) 회원들을 만났다. 이후 안산 지역 세월호 캠페인에 꾸준히 참가하던 윤유진 씨는 2014년 말,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멀리 떠난다. 세월호 이전과 다 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윤유진 씨는 이전과 다른 일, 일상과 떨어진 장소로 멀리 떠났다. “그동안 당연하게 오는 거라고만 생각한 ‘내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세월호참사가 체감하게 해주었습니다. 참사 이후에 청소년이 주체로 살아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대안학교 교사로 2년 반 동안 일한 뒤 100일 정도 동남아 지역을 여행했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윤유진 씨는 자연스럽게 ‘일:다’의 상근활동가로 일하게 되 었다. 세월호참사에 더 많은 시민이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캠페인을 기획했다. 단체 회원들과 노란리본 나눔, 온라인 캠페인 등 일상 실천을 운영하 고, 지역 시민들과 4.16 기억교실과 생명안전공원 부지를 기행하는 프로그램 을 진행했다. 2020년 총선 때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투표하자’고 외쳤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며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총선 이후에도 진상규명에는 큰 진척이 없었다. 윤 유진 씨는 ‘세월호 이후’를 생각하면 이 지점이 못내 아쉽다. “세월호가 남겨준 과제가 뭘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고민하 다보면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책임자 처벌조 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저는 노란리본을 다는 게 생각보다 힘이 세 다고 생각해요. 싸우는 사람들이 외로워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는 가장 쉬운 방 법인 것 같아요.” 윤유진 씨는 세월호에서 시작된 ‘질문’들을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대 해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성찰하듯이, 한국도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성찰의 공 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윤유진 씨가 삶의 의미를 찾던 그날로부터 8년이 지났 다. 어느새 윤유진 씨 곁에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서있다. 10
*윗글은 다음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Re;cord
벼리, 호영, 호윤, 현서 님
평등평화세상 온다
윤유진 님
전 4.16연대 활동가
강호연 님
4.16 실천단 활동가 진보대학생넷
곰곰 님 장유진 님
Ⓒ 평등평화세상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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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문재인 정부의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말한다
촛불시민들의 열망으로 열린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글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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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피해자 가족과의 약속을 세월호참사 7주기까지 이행하여 신의를 지켜야 합니 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지금 즉시 피해자 참여에 바탕을 둔 재조사 및 재수사 방 안을 마련하고, 국정원, 군 등 정부가 보유하고도 아직 공개하지 않은 모든 세월 호참사 관련 기록과 증거가 즉시 공개될 수 있도록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최적기입니다. 국회와 정부는 더 이상 환경과 조건 을 핑계삼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1)
문재인 대통령, 무엇을 약속했나 2017년 박근혜 정부의 탄핵을 이끈 촛불집회와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2014 년 세월호참사와 그 이후 피해자와 시민들의 행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세월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의했던 많은 시민들의 공통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 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당시 여당의 일부도 초정파적으로 동참했기에, 문재 인 정부 출범 직후에는 세월호참사와 그 이후에 벌어진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 하는 일에 일시적이나마 초정파적 동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 명은 과거 정부의 권력기구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적폐청산’ 작업의 중심 축의 하나였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우호적인 환경만 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적폐청산’과 연결되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구 여당과 그 지지자들의 정치적 저항에 부딪혔다. 소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세월호참 사 피해자들을 향한 혐오발언과 직접적 폭력도 심각해졌다. 진상규명 운동이 박 근혜 정부 하에서 ‘반정부 운동’으로 규정되고 탄압당했다면, 문재인 정부에 와 서는 ‘특권’이라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가로막히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이루어진 진상규명 관련 공약과 그 이 행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자회견문> “21대 국회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관해 피해자와 국민과 맺은 5가지 약속을 꼭 기억하고 7주기까지 반드시 이행하십시오” 2020. 6. 18, (사)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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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문재인 정부 진상규명 관련 공약/약속 이행현황 진상규명 주요 공약 사항
선체조사위와 세월호 특조위를 통해 세월호의 진실을 성역 없이 끝까지 규명
이행 여부
설명
- 선체조사위 활동 종료(2018. 6) - 20대 국회 특별법 제정으로 이행중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설립
- 참사 4년만인 2018년 12월부터 본격적인 포괄적 진상조사 진행 중
선체조사위 인력 예산 신속배정을 통한 본격 활동 지원 제2기 특조위가 신속하게 구성, 운영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사전 준비 공약사항
이행
- 선체 수색, 선체 직립 등 지원
이행
- 총리실에 출범 지원체계 구축
불법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 4대 공안범죄에 연루, 가담한 조직과 인력에 대한 책임추궁 및
이행중, 미진
처벌 형량 강화 압도적 당선 시 대통령기록물 공개 국회에 직접 요구
- 국정원/기무사 민간인 사찰 등 자체조사 - 기무사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한 군 특별수사단 수사 - 검찰 특별수사단에서의 수사
미이행
- 21대 국회 결의안 발의
이행중, 미진
- 국정원 군 정보 공개 중 - 정보 공개 미흡
국정원, 군을 비롯한 정부기관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에
- 전임 정부 세월호 문건 관련 조사 및 수사 의뢰
적극 협조할 수 있도록 역할
- 전임 정부 세월호 문건 관련 조사 및 수사 의뢰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특별검사 수사, 감사원 감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기타 정부 차원 진상조사
미흡
- 진상조사 방해 관련 해양수산부 자체 감사, 징계 및 수사의뢰
- 인양지연, 추가지출, 선체훼손 등에 관한 감사원
공약 외
감사
- 사참위 수사의뢰, 피해자/시민 국민고소고발 운동 재수사
미흡
등을 계기로 검찰 특별특수단, 국회의결에 의한 증거조작 특검 수사
- 수사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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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문재인 정부 기간 세월호참사 관련 기관별 주요 조사/수사 현황 구분 특별법에 의한 조사
정부 자체조사
조사/수사 주체
기간
선체조사위원회
2017. 03. - 2018. 08.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018. 12. 11* -
감사원 문화체육부 감사(블랙리스트 관련)
2017. 01. - 2017. 06
해양수산부 자체 감사(특조위 조사방해 관련)
2017. 07. - 2017. 12
국정원 개혁위원회(자문위) 및 국정원 적폐청산 TF
2017. 06. - 2017. 12.
국방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TF
2017. 09. - 2018. 06.
기무사 개혁위원회(자문위)
2018. 05. - 2018. 08.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감사원 해양수산부 감사(선체인양과 훼손 관련)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대법원 내부 특별 조사단(대법원 자체조사)
2017. 07. - 2018. 06.
2018. 12. - 2019. 01. 2018. 04. - 2018. 06.
기타** 서울중앙지검 등(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진의 세월호 검찰수사
최초보고시간 조작 및 허위공문서 작성, 특조위 조사 방해, 사법농단 등에 관한 수사의뢰사건, 기타 피해자
2017. 03. - 2019.
고소고발사건)
특별수사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2019. 11. - 2021. 01.
4.16 세월호참사 증거조작·편집 의혹사건 특별검사
2021. 05. - 2021. 08.
기무사 의혹 군 특별수사단
2018. 07. - 2018. 11.
* 법제정 2017. 11. 개정 2020. 12. 보고서 작성 포함 활동종료는 2022. 9. 예정 ** 검찰 과거사 조사위원회(2017-2019)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2017-2019)는 기대와는 달리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과거사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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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기구의 진상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졌나?
독립적인 기구를 통한 조사와 수사에 적극 협력했나?
표로 열거한 바와 같이 국정원, 군 기무사, 해양수산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은 사참위
문화체육관광부, 사법부 등에서 세월호참사 관련 불법부
와 더불어 전면 재수사를 진행할 특별수사단의 구성을 촉
당행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문재인
구했다. 그러나 특별수사단 구성과 전면재수사를 요구하
정부에서 선체조사위원회나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회
는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청와대는 아직 직접 특수단
설립에만 한정하지 않고 국가권력기구 전반에서 적폐청
구성을 지시할 단계가 아니므로 사참위 활동을 지켜보자
산작업과 더불어 세월호참사 관련 국가책임과 폭력에 대
고 답변했다. 그 후 결과적으로 검찰 스스로 특별수사단을
한 진상규명 활동이 비교적 다양하게 이루어졌다고 평가
구성하여 재수사에 착수했는데, 사참위가 고 임00군 해경
할 수 있다.
지휘부의 구조방기 의혹과 관련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목한 4대 공안범죄의 장본인
하고 수사의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백서를 쓰
인 국정원에 대해서는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조사가 배제
는 심정으로’ 전면재수사를 약속한 검찰 특별수사단은 1
되고 자체 TF에 의해 불투명하게 이루어졌다. 이 자체조
년여 수사끝에 검찰 수사외압 의혹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
사는 국정원이 업무범위를 넘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의
안에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특히 검찰개혁을 둘
정보를 수집한 행위는 불법으로 볼 수 없고 처벌도 할 수
러싼 정치적 공방과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성역 없는 수
없다는 입장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러한 소극적 해석은 검
사 및 처벌의 의지와 약속이 크게 퇴색되었다.
찰 특수단의 수사에도 이어졌다. 검찰은 국정원과 기무사
대통령 기록물 공개를 요구하겠다는 공약은 아직 이행
의 사찰행위가 “유가족들의 구체적 권리를 현실적으로 방
되지 않았다. 이에 10만국민동의청원을 통해 피해자들과
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시민들이 국회에 청원하여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
감사원은 자신의 세월호 부실감사에 대한 자체감사를
으로 결의안 발의가 이루어진 상태이지만, 아직 상임위에
진행하지 않았고 징계나 수사의뢰도 진행하지 않았다. 검
계류된 채 통과를 위한 논의는 멈춘 상태다. 야당은 이 결
찰 특별수사단도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의안을 반대하고 있다.
검찰은 검찰과거사위원회를 외부인사 중심으로 구성했
정부 권력기구들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의 정
지만 세월호 관련 청와대의 수사개입 등은 조사대상으로
보공유와 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여 피
삼지 않았다. 검찰 특별수사단 수사에서 이들 쟁점은 무혐
해자와 시민들이 청와대 농성에 돌입하자, 뒤늦게 대통령
의로 결론지어졌다. 경찰도 이전 정부의 직접적인 물리력
과 국정원장,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이 국정원 및 군의
사용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외부인사 중심의 조사위원
세월호 관련 정보에 사참위가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
회를 구성했지만, 세월호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
다고 약속했다.
았다.
2)
그러나 국정원은 ‘세월호’ 단일 키워드로 검색된 문건에 한해서만 목록을 작성하고, 이 목록의 공개를 거부했다. 여론의 압박을 받은 후 사참위의 목록 열람을 허용했으 나 사참위가 요구한 정보를 내부 TF의 검토를 거쳐 비식 별처리해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뒤 늦게 정보공개를 약속한 군 역시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
2)당시 활동 중이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검찰/검찰 특별수 사단의 조사와 수사를 고려한 외부인사들의 독립적 판단일 수 있다.
16
템’(KNTDS)의 열람을 허용했으나, 표시된 데이터에 대한 사참위의 검증은 거부하고 있다.
‘촛불 정부’의 수반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선을 다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 수사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 하고는 공안권력기구와 수사기구, 특별조사기구의 자율 에 맡기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과적으로 권력기구의 기득 권을 깨고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진실을 성역 없이 드러내 고 책임을 규명하는 데 큰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경향 은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다른 적폐의 청산과 개혁에 관 해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진 진상규명 작업의 수많은 진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피해 자들의 희생과 분투, 촛불시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낸 다 시 오기 힘든 기회를 맞아 대통령의 권한과 의지를 충분 히 사용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성역 없이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에게 응당한 처벌이 가해졌는가?
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이 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하급 공무원들의 의무사항이 아닌 일을 하게 한 것이 아 니라거나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혐의 대 부분이 기소되지 않거나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또한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된 시각과 대통령 의 구체적인 지시내용에 대해서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사 실과 다르게 외부에 알린 사실도 확인됐다. 역시 이에 대 한 책임은 묻지 못했다. 피해자 권리침해의 경우, 기무사에서 유가족사찰을 지 시하고 실행한 책임자에 대한 재판은 진행됐지만, 기무사 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한 상태다. 국정원의 경우 사찰행위 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특수단* 은 국정원 활동의 일환이고 구체적인 권리침해가 입증되 지 않는다고 판단해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특수단·단장 임관혁 서울고검 검사)
새 정부로 넘겨진 과제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완수는 부득이 다 음 정권의 숙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새 정부는 봉인된 대
구조방기의 경우, 해경지휘부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
통령 기록물과 군, 국정원 등 세월호참사 관련 정부 기록
당시 해경지휘부의 무능함과 구조체계의 부실함이 확인
물을 완전히 공개하고 검증해야 한다. 아직 조사활동이 마
됐다. 123정장과 세월호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재판에서는
무리되지 않은 사참위가 제한 없이 진상규명에 관한 조사
참사 당일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
를 완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부가 전폭적으로 협력해야
러나 기소된 해경지휘부 관계자들 외에 대통령을 필두로
한다. 새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세월호참사와 그 이
당시 청와대는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하지 않았는지, 그
후 발생한 국가폭력에 대해 피해자와 국민들 앞에 공식사
리고 이에 따른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여전히 밝혀
과해야 한다. 그동안 밝혀진 일부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새
지지 않았다. 결국 현장 구조세력 일부에 대해서만 책임을
대통령이 책임 있게 사과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잘못의
묻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정과 사과를 통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방해의 경우, 1기 특조위의 설립 및 활동 방해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책무를 재확인
와 관련하여 일부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 및 재판이 진행
해야 한다. 피해자와 국민은 정부가 제대로 협력하도록 감
됐다.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규명을 해야 할 청
시하고 압박해야 한다. 더불어 검찰과 사법부가 과거의 참
와대와 정부 책임자들이 오히려 대대적이고 조직적으로
사들과 마찬가지로 처벌에 금기를 두고 책임자에게 면죄
진상규명을 방해하려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대
부를 주지 않도록 역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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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살펴보기] 문재인 정부 기간 중 활동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기구 진단
이루어졌을지 모른다는 불신이 팽배했다. 국내에 이해관계
1. 선체조사위원회
를 가지지 않는 해외 전문기구들의 용역수행에 중심을 두는 입장과 선체조사위의 직권조사 등에 중점을 두는 입장 사이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는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반대로
에 갈등이 빚어졌고, 각 위원 간에 서로를 탄핵하는 상황까
2년에서 10개월로 조사활동기간이 축소되면서 처음부터
지 이르렀다. 이는 조사의 효율과 시너지를 약화시키는 요인
큰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마무리되지 못한 미수습자 수습과
으로 작용했다.
유류품 유실물 수습, 진상규명을 위한 선체조사, 안전사회를
내인설과 열린안으로 나누어진 보고서를 발간하는 한계를
위한 선체처리·보존까지 수행해야 할 과제는 많았지만, 미수
보였지만, 침몰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조사-용역 결과를 담
습자 1차 수습 후 선체 직립이 이루어진 시점은 사실상 선조
은 체계적인 보고서를 발행하여 이후 미진한 논의의 준거점
위의 조사활동기간이 거의 끝나는 시점이었다.
을 제공하고 이를 공론화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침몰된
1기 세월호 특조위가 정부에 의해 강제 종료된 후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고 그 침몰에 대해 종합적인 조사와 보고서 작
가 인양되고 설립된 선조위는 미수습자 수색과 유류품 발굴,
성을 시도한 예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선조위 설치의 의미
증거자료 수집, 선체 조사 등을 본격화했다. 이 가운데 세월
와 그 행적은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두 가설에
호 화물칸에 실려 있던 차량에서 블랙박스를 수거, 일부를
따른 침몰원인 규명을 통해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와 책임
복원해 침몰 당시 화물칸의 모습이 담긴 영상 기록 데이터를
배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함의까지 제시하거나 공론화
확보하면서 주요한 자료로 활용했다. 세월호 선체 직립 후에
하지 않으면서 기술적 검증 쟁점만으로 논의를 좁힌점은 아
는 외관 조사뿐만 아니라 선체 내부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핵
쉬움으로 남는다.3)
심 구역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선조위는 조사결과를 담은 종합보고서에 2각각 다른 입장
2.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의 2개 보고서를 함께 실었다. 【김창준 위원장, 김영모 부위 원장, 김철승 위원 의견〔내인설〕】, 【권영빈 제1소위원장, 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활동종료 기한을 아직 6개
동권 위원, 장범선 위원 의견〔열린안〕】 내인설과 열린안은 복
월여 남겨두고 있다. 사참위 활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원성, 조타기, 기준시간 및 횡경사, AIS항적 분석 및 모형실험
는 출범과 그 이후의 상황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참
비교 등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비슷하지만 사고 원인을 놓고
위법은 세월호참사의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
이견이 두드러졌다. 내인설은 사고 원인으로 솔레노이드 밸
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우호적인 환경에서 제정되었으며, 새
브 고착을 주로 다뤘으며, 열린안은 스태빌라이저의 균열 등
정부 출범을 거치면서 ‘여소야대’ 국회가 다시 ‘여대야소’로
을 들어 외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변화된 지형 속에서 입법화되었다.
이 밖에 제도개선안과 유류품·유실물에 대한 ‘세월호 유품
세월호참사만이 아니라 가습기살균제참사라는 거대한 과
보존처리 특별조사보고서’를 작성했고 세월호 인양과정(선
제를 기존 특조위의 인력규모로 대응해야 했고, 특히 제한된
체 거치과정 포함)에 대한 감사원 감사 요구를 결정했다. 그
수의 위원들이 두 과제로 배분되어 위원회와 소위원회의 논
리고 선체보존·처리수립계획에 관련해 보존 형태와 활용 방
의력이 크게 위축되는 걸 감수해야 했다.
안, 운영 방안, 기타 계획서 발간을 의결했다.
사참위는 이미 참사로부터 4년이 지난 상황에서 활동을
선체조사위 조사과정은 어떻게 신뢰할 만한 조사결과를
시작했다. 관련 재판도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새로운 증거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이루어졌다. 여야의 정치
나 진술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고, 주요 범죄혐의들은 공소시
적 긴장 외에도 한국해양심판원 등 초기 국내 전문가들의 조
효에 쫓기는 상황에서 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권력기구는 높
사가 해운업계 혹은 조선업계와 연계된 기득권 구조 속에서
은 장벽 속에 중요한 정보를 감춰두었고 그때문에 어려움이
3) 박상은, “'세월호 조사’ 결론 못 낸 결정적 이유, 그리고 1년의 기회”, 《한겨레21》(20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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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중되었다. 초기에 사참위가 수사 의뢰에 집중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이해될만한 조사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진실과 대안을 밝히되 밝혀진 것 과 밝혀지지 않은 것, 현단계에서 밝힐 수 있는 것과 과제로
하지만 2020년의 법개정으로 권한, 활동 기간 확대, 공소
남겨두어야 할 것 등을 확실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활동 종
시효 중지 등이 이루어지면서 그간 한계로 여겨진 상황에 변
료시까지 밝혀진 것을 바탕으로 우리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화가 온 것도 사실이다. 남은 6개월 동안 의미 있는 성과를
나가야 할지 분명히 할 뿐만 아니라 이 운동에 함께해온 모
이루어내길 바라며, 사참위가 실천해야 할 활동 방향에 대해
든 이들과 공유하고 확인하는 임무에 충실할 것을 다시금 촉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구한다.
첫째, 사참위가 수사의뢰했거나 피해자와 시민들이 국민 고소고발 한 후 검찰이 불기소/무혐의 처리한 사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여 성역 없는 처벌을 위한 새로운 수사/기소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피해자와 시민의 노력으로 확보되기 시작한 국정원, 군 등의 정보를 아무런 제한 없이 확보하고 철저히 조사하여 새로운 진실을 찾고 진상규명작업을 진전시켜야 한다. 셋째, 침몰원인의 경우에는 선체조사위원회에서 결론이 난 것과 쟁점으로 남은 것을 분명히 하고 두 안의 공통분모 에 기초해 새로운 조사를 시도하되 그 의미를 명확히 공론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체조사위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회의와 회의록, 용역내 역과 그 보고서를 대부분 공개하면서 가족/시민과 소통하고 공론장을 활성화한 반면, 사참위는 대부분의 안건과 회의를 비공개하고 회의록도 비공개하는 등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 명과 재발방지대책 조사작업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데 소극 적이었다. 그간의 여러 사정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비판이 불 가피하다. 위원들의 활동이 잘 드러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것은 비공개 위주 조사활동의 큰 부작용이다. 최근 전원위원 회 등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다. 넷째, 책임자 처벌을 이끌어낸 것은 일보전진한 것이 맞지 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정리한 종합보고서이다. 이 보고서가 어느 날 갑자기 소수 위원들의 결정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9개월은 이 보고서를 공론장에서 국민과 함 께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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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5년, 진상규명의 발자취
인포그래픽
2019년
2월
세월호DVR 수거 관련 검찰 수사 요청
2.12 희생학생 단원고 명예졸업식
2018년
3.17 세월호광장 이운식, 천막 철거 4.12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 개관 4.16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식/ 문재인 대통령,
2월
2017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출범
3.31 세월호 선체 인양
문재인 대통령, 4주기 메시지 발표 "진실 끝까지 규명할 것"
선체조사위원회 활동
5.9
문재인 대통령 당선
5.10 세월호 선체 직립
8.16 문재인 대통령,세월호참사 피해자 및
가족들에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 의지 천명. 피해가족 청와대 초청 9.28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입법 촉구
시작 - 촛불문화제, 전국 서명, 국회행진 등 진행
검찰, 국방부 검찰부 기무사 사찰 건 관련 3명 구속기소
6.29 진상규명조사 방해 은폐, 왜곡, 공작, 조사
촉구 기자회견 진행
8.6 9.3
선체조사위원회 활동종료 동거차도 세월호인양 감시·기록 초소와 팽목항 분향소 철거·정리
9.19 세월호참사 전면재조사, 재수사 촉구
국민선언, 촛불집회 10.13 세월호참사 전면 재조사, 재수사 촉구
국민대회
10월 사참위법 수정안 가결을 위한 국회 농성
12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개시
10월 검찰, 보고서 조작 불법변개 (變改, 대상
(2018년 12월 ~ 2020년 12월)
을 고치어 바꿈) 혐의 김기춘 외 3인 불구속 기소 12.12 사회적참사 진상규명법 제정, 시행
서명(83,686명 참여) 전달 5월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6월
산업은행 불법대출 혐의에 대한 수사 요청
6월
적폐청산촉구 광화문 국민촛불
8월
세월호참사 피해자 모욕, 명예훼손, 집회 방해 등 고소고발
5.12 4.16재단 설립 6월
검찰 특별수사단 설치와 세월호참사 전면재수사 청와대 국민 청원 돌입/ 국민
4.16 세월호참사 4주기 기억식 및 정부-희생자
합동 영결식/ 정부합동 분향소(안산) 철거/
4.16 세월호참사 3주기 기억식
4월
재수사! 매일 촛불
3.10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17년 3월 ~ 2018년 8월)
다짐 약속" 발표
사퇴 촉구 단식과 삭발 3.29-4.13 세월호참사 구조방기, 침몰원인 전면
1월
5주기 메시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최우선
사참위 상임위원 황전원, 이동곤 즉각
9월
제주기억관 개관
9월
세월호 구조 적정성 및 산업은행 불법 대출 관련 수사 요청
10.7 세월호참사 2000일 기억문화제 11.2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고소
고발인대회 11.6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출범
(2019년 11월 ~ 2021년 1월) 11.15 1차 국민고소고발-청와대 및 정부책임자,
해경지휘부, 특조위조사 방해세력, 전원 구조오보 언론인, 혐오집회를 주최한 극우보수단체, 피해자 모욕, 명예 훼손 고소고발 12.27 2차 국민고소고발-청와대 및 감사원,
해경구조세력, 선내구조세력, 유가족사찰 관련 기무사, 조사방해세력
20
2021년
2020년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1.19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활동종료 (2019.11.11 ~ 2021.1.19) 1.22
진상규명약속 이행 대통령의 답변 요구하는 삭발식/ 검찰특수단 수사결과
규탄 4.16시민동포가족 공동 집중행동선포 1월
전 기무사와 청와대 관계자 등의 민간인
1.23, 1.25-30 검찰 특별수사단 결과 규탄, 문 대통령의 진상규명 약속 이행 응답 촉구 촛불
사찰 혐의에 대한 수사 요청
피켓팅
1월
세월호참사 구조 책임자 해경 지휘부 기소
2.1 문재인 대통령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 약속이행 의지와 권한실행 천명'을
3월
21대 총선 후보, 세월호참사 관련 5대
기다리는 청와대 노숙농성 종료 (2020.12.24 ~ 2021.2.1)
정책과제 약속 운동
2.2 세월호참사 구조방기 해경 지휘책임자 엄벌촉구 탄원서(탄원인 2020명) 제출
4월
국정원의 세월호 관련 민간인 사찰에
2.6-4.10 문재인 대통령 약속이행 응답촉구 촛불 피켓팅
관한 중간 조사결과 발표 및 수사 요청
2.15 검찰 특수단 기각에 대해 항고/ 세월호참사 해경지휘부 1심 무죄 선고
청와대 등에 의한 세월호 특조위 조사
3월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 촛불 집회(매주 토요일)
활동 방해 관련 수사 요청
4.10 세월호참사 7주기 기억문화제
4월
4.16 세월호참사 6주기 기억식/ 노란차량행진/
4.12 복원된 4.16기억교실(4.16민주시민교육원)개원
문재인 대통령, 6주기 추모 메시지
4.16 세월호참사 7주기 기억식,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 문재인 대통령, 7주기
"진상규명 최선을 다하겠다" 발표
메시지 "진실만이 비극을 막는다", 사참위법 개정안 언급하며 "잊지 않고 있다"
세월호참사 당시 청와대의 최초 인지 및
발표
전파시각 등 관련 수사 요청
5.13 '4.16세월호참사 증거자료의 조작, 편집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5월
청와대 등에 의한 특조위 조사방해 기소
활동 시작(5.13 ~ 8.10)
6월
세월호참사 초기 해양경찰 항공출동
6.21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수사결과'에 대한 재항고 기각
세력에 대한 수사 요청
7.12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에 맞서 지키기 실천 활동
5월
6.2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검찰청 앞 촛불
7.3
8월
9월
7.23~27
세월호 기억공간 지키기 노숙농성
문화제
8.10 '4.16세월호참사 증거자료의 조작, 편집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활동
3차 국민고소고발-유가족사찰 관련 국가
종료(5.13 ~ 8.10) - 무혐의 처분
정보원
10.1-10.31
세월호 기억공간 이전 설치 모금캠페인
세월호 선체 거치 보존 장소로 목포 고하도
10.16
세월호참사 성역 없는 진상규명 촉구 전국 동시다발 국민대회
결정
10.1-12.31
진실여행 : 진실을 위한 모두의 걸음
사참위, 세월호 블랙박스 CCTV 조작 관련
11.19 서울시의회 앞으로 세월호 기억공간 이전
특별검사 요청 9.24-9.30 CCTV 특검요청 청와대 노숙 농성 10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법 개정안 &
대통령기록물공개 입법 국회국민동의청원 10.6~10.26 1차 진실버스 11.21-12.15 2차 진실버스 12.9 '사참위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12.10 세월호 CCTV·DVR 조작 의혹에 관한
특별검사요청안 가결 12.24 문재인 대통령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 약속
이행 의지와 권한실행 천명, 사참위법 개정 촉구 청와대 노숙농성(12/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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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해경 지휘부에 대한 1심 판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글 오민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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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법원은 세월호참사 이후 6년만에 재판을 받게 된 해경 지휘부 (당시 해양경찰청장,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목포해양경찰서장 등) 11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대해 검사가 항소 하여 항소심에 이르게 되었고, 올해 3월 첫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1심 판결 의 주요 내용이 어떠하였는지, 어떤 문제점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6년만에 이루어진 해경지휘부에 대한 기소
를 구조세력에게 전파하거나,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구조
2019년 11월 설치된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이하
법원의 ‘무죄’선고
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서도, 이에 대한 책임을 해경지휘부 개개인에게 묻기는 어 렵다는 취지였다.
‘특수단’)은 2020년 2월 해경 지휘부 11명을 업무상과실 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하였다. 피고인들은 세월호의 침 몰 상황이 공유되면서 당시 설치된 중앙구조본부, 광역구
우선 지역구조본부(목포해양경찰서)의 경우, 세월호 여
조본부, 지역구조본부의 각 본부장인 김석균, 김수현, 김
객부 영업직원으로부터 ‘배가 45도 기울어 움직일 수 없
문홍과 각 구조본부에서 이들의 임무를 보좌하는 지위에
고 상황파악과 구명동의 착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신
있던 이들이었다. 각 구조본부와 구조본부에 속한 해경의
고를 받았고, 9:05경부터 9:22경까지 세월호 승객들로부
임무는 선박의 침몰·침수·전복 등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
터도 배가 물에 잠기고 있는 상황, 구명동의를 입지 못한
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생명과 신체를 지키기 위해서
상황 등에 관하여 112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목포해
필요하고도 상당한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양경찰서는 이와 같은 신고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다른 구
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사불란한 구조활동을
조본부나 구조세력에게 전파하지 않았다.
위해서는 실시간 구조 상황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여 구조 계획을 수립하고, 파악된 정보는 구조본부와 출동한 구조
광역구조본부(서해지방해양경찰청)의 경우, 당일 9:25
세력에 신속하게 공유·전파하며, 현장에 도착한 구조세력
경 ‘세월호가 50도 정도 좌현으로 기울었고, 선장이 승객
으로 하여금 즉시 구조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휘해야
들의 비상탈출 여부를 해경에 문의한다’를 보고를 받았다.
했다.
이에 대해 승객들의 퇴선여부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 는 취지로 답변하였는데, 그러면서도 이후 세월호 승객들
특수단은 당시 해경지휘부가 각 구조본부의 위와 같은
의 퇴선준비상황이 어떠한지, 선장이 승객들의 비상탈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 사망과 상해의 피해가 발생하였
을 결정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았
다는 이유로 이들을 기소하였다. 세월호의 선원과 선장 그
다.
리고 123정장이 세월호참사 직후 재판을 받았던 것과 달 리, 이들은 6년이 지나서야 검찰의 제대로 된 수사를 받고
중앙구조본부(해양경찰청)의 경우, 당일 9:19~20경 서
법정에 섰으며,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참사
해지방해양경찰청과 목포해양경찰서와 연락하는 과정에
당일 각 구조본부가 세월호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
서 세월호가 좌현으로 약 40~50도 기울어진 상황임을 인 23
식하였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 김경일로부터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고, 구명벌도 투하한 것도 없고 아마 선박 안에 있나봅니다.’, ‘갑판 위에 사람들이 한명도 안 보인다. 바다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구명동의, 구명정, 구명벌은 그대로 다 있고, 하나도 투하 안했다. 배는 좌현으로 50도 기울었고, 지금 계속 더 기울어지고 있다.’ 등의 보고를 받 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을 다른 구조본부에 전파하 지 않았다.
구조세력의 현장 도착 후 – 현장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법원은 세월호참사 당일 초기 각급 구조본부가 112신고 를 한 승무원, 진도VTS를 통하여서라도 선내 상황을 자세
123정이 현장에 도착한 9:32경 이후, 123정장은 구체
하게 확인하였더라면 대부분의 승객들을 안전하게 구조
적인 현장상황을 보고하지 않았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확인하
은 9:37경 진도VTS에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은 탈출 시
려고 하였다면, 승객의 퇴선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
도하라고 방송하였다’고 교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피고
고 있었던 사정을 알았을 것이고 지체 없이 해상으로 투
인들이 승객들이 선내에 퇴선준비 없이 잔류하고 있는 사
신하도록 하는 조치를 실행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정이나 침몰상황의 급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보았 다. 현장에서 123정장은 9:44경 ‘승조원을 세월호에 승선 시켜 퇴선을 유도하겠다’라고 보고하고도 세월호가 침몰 에 이를 때까지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계속 구 조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고하였다. 이에 법원은 당시 해 경지휘부가 123정 승조원들이 선내에 진입하여 승객들을
구조세력의 현장 도착 전 - 당일 교신의 어려움이 있었다? 법원은 참사 당일 피고인들이 사고 상황을 인지한 이후 123정이 현장에 도착한 9:32경까지 세월호와 교신을 통 해 선내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거나 이를 토대로 구조계획 을 수립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선장 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광역구조본부에서 세월호 선장 의 탈출문의에 대해 ‘선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후에는 세월호에서 어느정도 퇴선준비가 이루어 졌고 퇴선 여부의 결정만 남은 상태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각급 구조본부의 상황실과 현장의 구조세 력 사이에 원활한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인명구조가 어 려웠고, 이와 같이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기술 적 수단과 제도적 보완책을 촉구하는 것을 넘어서 구조임 무와 관련하여 피고인들에게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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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선시키고 있다고 오인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였 다. 법원은 구조세력들이 현장에서 구조업무를 능숙하게 처 리하지 못한 데에는 평소 해경에서 대형 선박의 조난사 고에 대비한 교육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 않았고, 침 몰하는 선박에 진입하여 승객들의 퇴선을 유도해본 경험 이 없었기 때문에, 피고인들에게 조직 상급자로서 관리책 임에 관한 질책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구조업무 와 관련하여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리 고 세월호의 복원성 부족, 고박 불량, 과적뿐 아니라 수밀 문 개방 등 선체 내부결함으로 인하여 구조세력 현장 도 착 후 불과 20분 만에, 특히 123정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현장상황을 보고한 09:38~09:44경부터 약 10분 남짓한 시간 만에 선내진입을 통한 구조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까지 예상하고 대비하기 어려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 다고 판단하였다.
우리는 재난 상황에서 구조세력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위와 같이 해경 지휘부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법원은 당 시 중앙구조본부, 광역구조본부, 지역구조본부가 123정 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교신을 계속 유지하지 않았고, 교신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구조상황에 대해 파악된 정보를 전파하지 않고 구조계획 수립을 소홀 히 하였다는 사실은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책 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당시 세월호의 선내 상항을 각 구조본부와 현장에 출동한 구조세력이 공유하였다면
더욱이 법원은 해경지휘부가 현장상황을 오인했을 가능 성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위험 에 처한 상황에서, 현장에 나가있는 구조세력과 이들을 지 휘하는 해경지휘부 간에 상황에 관한 정보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이로 인해 해경지휘부가 상황을 오인하고 제대 로 지휘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일까? 이번 해경지휘부에 대한 1심 판결은 재난상황에서 우리 가 국가에게, 구조세력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 지 되묻게 한다. 현장 구조세력에게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지휘부에게는 현장 상황을 신속하 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지휘하지 않아도 괜찮 다는 시그널을 줄 수밖에 없는 이번 판결이 마땅히 비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확인 후 퇴선조치를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승객을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다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각급 구조본부가 설치되고 상황실을 통해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전파하는 것은 당일 구조를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였다. 현장의 불충분한 보고를 듣고, 구체적 인 구조상황을 확인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있었던 해경지휘부는 각 구조본부에서 해야할 최소한의 의무를 따르지 않았다. 갑판이나 수면에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는 보고를 받았을 때, 선내에 승객들이 있을 가능성을 전 제하고 구조를 지휘하고, 구조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의무와 권한이 있었던 해경지휘부는 자신의 임무를 철저 히 져버렸다. 그럼에도 1심 재판의 판결은 이들에게 아무 런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위와 같이 1심 판결에 많은 한계와 문제점이 있었고 항소심에서는 다른 판 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 재판이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일 환이라는 것, 그리고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고 당일 해경지휘부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 다시금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는 3월 29일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진행될 항 소심 재판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호소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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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참사를 만나다 김용균들과 함께 싸우는 ‘김용균재단’
이윤과 생명, 무엇을 선택할지 분명하지 않나요? 글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 노동자 만24세 김용균. 순하고 고운 얼굴의 이 청년을 우리는 영정사진으로 처음 만났다. 아들의 취업 을 축하하며 양복을 사준 부모에게 보인 수줍은 미소가 사라진 뒤 에야. 어떤 노동자들의 삶은 죽음을 통해서만 세상에 드러난다.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에 입사하여 운전원으로 일 했다. 2018년 12월 10일, 어두운 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다 석탄운 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목숨을 잃었다. 김용균에게 들이닥친 사고는 비정규직 고용구조가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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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얼굴의 청년이 일깨운 진실 권력을 쥔 자들은 언제나 우리 경제가 ‘위기’라고 말했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같이 살 수 있다고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가속화하면서 기업은 이 윤극대화에만 골몰했다. 노동자들은 계약, 파견, 도급, 하청,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쪼개졌고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었다. 원청-하청 구조 속에서 취약한 노동자들은 더욱 취약해졌다. 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놓인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에게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이 집중 되었다. 이것을 ‘위험의 외주화’라고 말한다.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하청노동자들의 손으 로 움직였다. 컨베이어 벨트를 가동하고, 정비하고, 석탄을 관리하는 모든 곳에 하청노동자 들이 있었다. 김용균이 속했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은 업무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하 청업체의 이익이 0원인 계약서를 체결한 뒤, 하청노동자의 피땀을 쥐어짜는 식으로 이익을 남겼다. 원래 책정된 임금의 절반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하청 회사가 가져갔 다. 석탄가루가 날리고 유해물질이 가득한 현장은 어두웠다. 그런 곳에 노동자를 밀어넣고 랜턴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서류상에는 2인 1조로 작업하게 되어 있었지만, 김용균은 홀로 일했다. 하청회사가 인건비를 아끼려 인원을 더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의 개선을 요구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묵살당했다. 개선되지 않는 현장은 결국 김용균을 집어 삼켰다.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은 하청업체의 실질적 관리자였다. 하청업체에 어떤 자격이 있는 노동자가 입사해야 하는지, 몇 명이 일해야 하는지, 어느 곳을 점검하고 손봐야 하는지, 석탄 량을 어느 정도 옮겨야 하는지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시했다. 그러나 한국서부발전은 김용균 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겼다. 하청업체는 이 사건을 김용균 개인의 과실로 묻으려 했다. 유가족과 동료,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노동자를 죽 음으로 내모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투쟁했다. ‘김용균투쟁’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머뭇거리던 국회는 부랴부랴 산업안전보건법 을 개정했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지 않는 선에서의 개정이었다. 2019년 2월 5 일 정부와 여당이 협의문을 발표하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와 원하청업체가 합의서를 작성했 다. 그러나 일터에서의 죽음은 계속되었다. ‘일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 자체가 문제였다. 그런 사회를 바꾸어야 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또 다른 ‘김용 균들’의 죽음과 재해를 막기 위해 활동할 상시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2019년 10월 26일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하 김용균재단)이 출범했다.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문을 연 김용 균재단은 출범 후 한동안 독립된 공간 없이 활동했다. 공공운수노조의 사무실에서 딱 책상 두 개만큼을 빌려 썼다. 어차피 사무실보다는 바깥에 있어야 할 일이 많았다. 산재 사건이 수 시로 발생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목동빗물펌프장 사고 때도, 한익스프레스 건설현장 사고가 났을 때도,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와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죽음에 대 한 투쟁에도 함께했다. 생일날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 앞 에서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재단으로 전화한 따님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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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나기도 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을 만날 때면, 조급하
고인들은 1심 선고를 받았다. 3년 2개월을 기다려 받은
게 생각하지 말라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하라고,
재판 결과는 분노 자체였다. 원청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억울한 죽음으로 남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유를 말하면서도 원청 대표이사는 무죄라고 했다. 원하청
했다. 시간이 지나 덜 후회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법인에 대한 벌금은 구형보다 낮춰줬고, 다른 원하청 피고
《산재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를 발행했다. 산재
인들은 모두 집행유예 아니면 벌금이었다. 제대로 처벌받
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과 ‘산재재난참사 피해자모임’
은 이가 없는 1심 선고였다. 김용균재단은 제대로 처벌받
을 통해 피해 가족들과도 함께 하고 있다.
을 때까지 끝까지 대응한다고 밝힌 대로 2심을 준비하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김용균
있다.
재단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에도 나섰다. 재단 출범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를 발족하
산적한 숙제
는데 힘을 모으고, 김용균의 어머니이자 재단 대표인 김미 숙 님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청원 대표로 나
김용균의 죽음 이후 많은 사람이 함께 투쟁한 덕분에 세
섰다. 한 달 안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기 위해 모든 힘을
상은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산적한 숙제가 있다.
모았다. 매일 몇 명이 동의했는지 확인했다. 시민들의 반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시
응도 뜨거웠다. 김용균재단에서는 6개의 번호를 정해서
작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
그 번호의 발의 동의자에게 재단 이름이 새겨진 텀블러를
들의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비인격적 대우, 장시간 노
드린다고 했는데, 정말로 정해놓은 번호에 해당하는 발의
동 등이 주로 거론되었다. 세월호참사로 생명중심과 안전
동의자가 연락을 해와서 텀블러를 보내드린 일도 있다.
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공감대를 얻었지만, 노동자들의
10만 명이 발의했는데도 국회에서는 논의를 미뤘다. 이 대로 해를 넘길 수는 없다는 절박감에 2020년 12월, 국회
산재는 경제성장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처럼 남겨져 있다.
안과 밖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유가족과 노동자들이 단식
3년 차에 들어선 김용균재단도 할 일이 많다. 김용균 죽
에 들어갔다.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
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책임자처벌 만이 아니라,
정됐다. 그러나 국회는 원안의 중요한 요구들을 많이 빼고
또 다른 김용균들의 건강과 목숨을 지켜내는 것이 ‘김용
법을 통과시켰다.
균투쟁’이기 때문이다.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응하는 한편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중요
법과 제도를 바꾸는 활동,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힘을 갖는
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피해자들의 죽음, 피해가족들의
활동들이 우리가 해야 할 김용균투쟁이다. 그래서 매년 김
활동, 노동자 시민의 투쟁과 연대로 만들어진 법이다. 산
용균 추모주간은 생명과 안전을 위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
업재해와 시민재해를 정부와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
동자들의 투쟁이 모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고 있
회적 동의를 담았다. 그러니 아쉬움을 접어두고 시행된 법
다.
이 제대로 적용되도록 감시하고, 개정도 해나가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되었다).
산재에 대한 사회 인식도 바꾸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도 더 많이 묻고, 제도도 바꿔야 한다. 피해자 권리도 보장되
‘김용균투쟁’도 끝이 아니다. 발전비정규직들의 정규직
도록 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화를 위한 투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김용균 추모조형물
해야 한다. 재단이 더 튼튼해져서 노동안전을 위해 활동하
도 회사의 약속 불이행으로 오랜 투쟁이 필요했다. 2021
는 사람들에게 공간도 내주고 싶고, 기록관도 만들면 좋겠
년 4월에야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조형물을 세웠다.
고….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울 정도로 과제는 많다.
이 조형물을 통해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죽는 일이
무엇을 하든 김용균재단은 ‘노동자-시민의 편’에 서 있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회사의 책임과 의무라는
을 것이다. 산재는 재수 없어서 당하는 일이 아니고, 국가
말을 하고 싶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도 2020년 8월
비용과 이윤을 한쪽에 두고, 생명과 안전을 다른 한쪽에
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재판 내내 원하청 피고인들은 “왜
두는 저울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너무
김용균이 죽었는지 모르겠다” “2인 1조를 할 필요가 없
나 분명하다. 김용균재단은 일하다 다치고 아프고 죽는 노
다”는 이야기를 뱉어냈다. 피고인들과 사측 변호사들은
동자들을 만들어내는 잘못된 사회를 바꿔가기 위해 지치
반성도 사과도 몰랐다. 2022년 2월 10일에야 원하청 피
지 않고 움직여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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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가 황정은
“엄마아빠는 싸울 거야, 그 말이 제 마음의 방패를 부쉈죠” 글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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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에 대한 사회적 발언을 꾸준히 해오셨어요. 서
고 싶어요.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은 정말 이상한
울과 팽목, 목포에서 열린 여러 집회와 광화문 기억공간을
도구라서 말하면 말할수록 뻔해지고 마모되는 것들이 있
지키는 1인 시위에도 함께하셨고요. 지난해 말 펴낸 첫 에
으니까요.
세이 《일기 日記》에 실린 〈목포행〉이라는 글을 통해 그간 의 경험과 고민을 전해주셔서 반가웠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으셨다고요.
갈 수 있을 때는 꼭 갔어요. 같이 사는 사람과 뜻이 맞아서
문장을 다 쓸 수 없었어요. 소설을 쓴다는 건 사람을 계속
둘이 다녔죠.
생각하는 일이잖아요. 당시엔 사람을 생각한다는 게 끔찍 해서 글을 쓸 수 없었어요. 너무 큰 고통이 있으니까 말문
참사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세월호참사에 대한 사
이 막히고 글문이 막혔던 것 같아요. 무력감도 들고요. 저
회적 발언이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는 글을 쓰면서 삶을 다시 살기 시작했거든요. 글을 쓸 수
요. 그런 점에서 부담을 느끼시진 않나요?
없게 되면서 사는 것 자체가 좀 어려워졌어요. 그때는 저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다 그랬을 것 같아요.
부담을 느낄 정도로 제가 뭘 많이 얘기한 건 아니라고 생 각해요. 요 몇 년 사이에 제가 쓴 소설이나 산문에 세월호
어떻게 다시 쓰시게 됐나요?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해요. 그럴 땐 저도 모르게 유가족들에게 상처가 되는 글을 쓰지는 않았는지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쓰기밖에 없어서. 하던 대로 천
걱정이 되죠. 요즘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호
천히 한 문장씩 썼어요. 글쓰기 자체가 그 상태를 견디고
사건을 말한다는 게 미안할 때가 많아요. 유가족들에게요.
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고통, 고민, 걱정, 불안… 이
내가 너무 뻔뻔한 것 같고. 그런 부담은 있죠. 세월호 사건
런 것들은 형태가 없잖아요. 그런 걸 골똘히 생각해 문장
과 관련된 말을 할 때에는 말이 뻔해지지 않도록 조심하
으로 쓰면 ‘생각 거리’가 돼요. 마음은 아무 때나 넘쳐서
2005년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황정은은 ‘황정은 풍’이라는 말 이 등장할 만큼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세 권의 소설 집과 세 권의 장편소설, 두 권의 연작소설을 썼고 10여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 《디디의 우산》과 2020년 《연년세세》 연이어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작품을 올렸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황정은의 문학은 2010년 펴낸 첫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부터 큰 변화를 겪는다. 현실 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적 폭력에 직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용산참사의 영향을 받은 《百의 그림자》는 철거를 앞둔 서울시 종로구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그림자가 일어서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2019년 《디디의 우산》(창비, 2019)
《연년세세》(창비, 2020)
펴낸 《디디의 우산》은 혁명의 의미를 새로 쓴 작품으로 세월호참사와 촛불항쟁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출간 한 달 만에 1만5천부가 판매될 만큼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만해문학상과 5.18문학상을 수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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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감정이나 일상에 마구 영향을 주는데 그게 생각 거리
그렇죠. 사람이니까. 어쩌면 때때로 놓치는 순간들이 있어
가 되면 약간은 거리를 둘 수 있고 조금 더 안정적인 상태
서 지금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百의 그림자》가
로 그걸 대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복간됐어요. 이 소설은 주인공 무재와 은교가 어두 운 길 위에 놓인 채로 이야기가 끝나요. 2010년에 쓴 작가
용산참사와 세월호참사 유가족을 만나면서 ‘나를 지키기
의 말에는 “밤길에 간 두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기를 소망
위해서 들고 있던 방패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경험하
한다”고 쓰셨는데, 최근 인터뷰를 보면 그들이 “누군가의
셨다고요.
얼굴을 그 밤길에서 만났을 것”을 “믿는다”고 말씀하시더 라고요.
그 전까지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어요. 저는 제 가 이미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이렇게 고
《百의 그림자》를 쓴 이후로 제가 수많은 얼굴들을 만나왔
통이 많은데 보호는 허술하고 폭력은 치밀해서 이렇게 다
듯 두 사람도 누군가를 만났을 거라고 믿는 거죠. 광장에
망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
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유가족들이 외롭지 않
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어요. 그러다가 용산참사 현장을
도록 그 자리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저에게
오가게 되었는데 내가 이미 안다고 생각한 세계는 단지
는 동생들이나 동거인도 그런 얼굴들이에요. 생활하다보
내 세계일 뿐이라는 걸 거기서 알게 된 거죠. 정말 오만했
면 저도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을 잠깐씩 놓을 때가 있
다고요.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그 장소에선 그런 태도가
어요. 사람을 둔감하고 무심한 상태로 굴러가게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남일당에서 유가족과 인터뷰
생활의 무참한 면인데, 그런 무심한 상태로 너무 오래 지
를 한 적이 있어요. 작은 비닐백에 담긴 유품을 보여주셨
내지 않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요.
는데 그걸 보여준 유가족의 얼굴 앞에서 뭔가가 깨졌어요.
그리고 저는 ‘믿는다’는 말이 힘 있는 동사라고 생각해요.
생각이나 마음처럼 형태는 없지만 제가 그때까지 가지고
의심 없이 믿는다는 뜻이 아니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있던 태도 같은 것들이요. 상처받기 싫어서 들고 있던 방
일단은 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뜻으로요. 그런 바
패였다는 걸 그때 알게 된 거죠. 그 방패가 그때 깨졌어요.
람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무언가를 바라는
워낙 오래 가지고 있던 태도라서 그 뒤에도 약간은 그런
사람이 있어야 그 무언가가 오는 길이 뚫릴 테니까.
냉소가 남아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깨진 게 세월호참사 유가족의 말을 듣고 나서였어요. 《디디의 우산》(문학동네,
8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진
2014)에 실린 글에도 썼는데, 세월호가 가라앉고 백 일이
상규명이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서 답답함과 무력감
되는 날 유가족들이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걸어온 일이
을 느낀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려오는데요. 황정은 작
있어요. 그날 한 어머님이 무대에 올라 그런 말씀을 하셨
가님은 어떠신가요?
거든요. “엄마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그런 면에서는 제게도 좀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완전한
사건 일어나고 나서 사람들이 이게 나라냐, 정말 다 망한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응답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했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 어머
나봐요. 그 와중에 팬데믹으로 광장에서 말할 기회도 많이
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들이 부끄러웠어요. 싸우겠다
사라진 거잖아요. 2020년과 2021년 내내 유가족들이 매
고 얘기하는 건 싸움에 응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기대
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저는 한국 사회에
가 있어서잖아요.
서 구조적 죽음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유가 그 사건들이 충분히 회자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그 말에 지금까지 응답을 계속해오고 계시네요.
그걸 덜 생각하고 사건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왜
가끔은 놓치기도 합니다. 사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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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를 묻는 질문은 이미 많고 나름의
대답도 많아요. 저는 그래서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에 는 사람들의 마음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작년 연말에 제가 여수에 갈 일이 있어서 이순신마리나에 들렀어요. 홍정운 학생이 사망한 장소에 헌화하고 일어났 는데 어떤 사람이 제게 침을 뱉으면서 욕을 하더라고요.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제가 돌아서는 순간에 그렇게 한 거 예요. 저는 그때 그 사람이 몸으로 보이지 않고 마음의 모 습으로 보였어요. 저건 어떤 마음이다, 이렇게요. 그런 마 음들이 세상엔 있어요. 굳이 침을 뱉는 마음보다는 더 평 범한 형태도 있을 수 있죠. 타인의 고통이나 절망 같은 어 두운 이야기를 접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남의 일로 여기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 자기 고통만 아느라고 남의 고통은 모르려는 마음. 이런 마음은 괴물처럼 특별한 상태 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문득 문득 출몰하는 마음이고, 어떤 사건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온 사람들이 어느 순간 지쳐서 가지게 되는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 마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에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윈 디고’라는 괴물 이야기가 나와요. 아메리카 원주민 설화 에 나오는 괴물인데 사람 사는 사회가 혼란스럽고 각박 할 때 특히 더 자주 출몰한다고 해요. 항상 배고픈 상태라 서 자기 입술마저 뜯어먹어서 입술이 없는 괴물이에요. 아 메리카 원주민이 이 괴물에게 대응하는 방법이 이렇습니 다. “어둠을 직시하고 인정하되 양분을 주지는 말 것.” 이 게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윈디고에게 먹히는 사람 이 더는 늘어나지 않도록, 양분을 주지 않는 선택 쪽으로 조금씩 움직여보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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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2022년, 속초 약속지킴이들은 다시 시민들을 만나러 갑니다 글 박희정
춥고 메마른 계절을 지나면 텅 빈 땅에도 푸른 빛이 돈 다. 풀씨는 어딘가에서 날아오기도 하고, 흙 속에 웅크리 고 있다 따뜻한 비를 만나 일어나기도 한다. 그제야 우리 는 깨닫는다. 그곳이 그저 텅 빈 곳이 아니었음을. 속초의 약속지킴이들도 그렇게 곳곳에서 웅크리고 있다 서로를 만나 푸르게 일어났다. 2020년 1월. 세월호참사로부터 6 년이 흐른 즈음이었다.
구심점이 된 다섯 사람
지내고 있나 궁금해 연락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청년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체감
이 만남은 서울시 도봉구에서 세월호약속지킴이로 활 동해온 현순애씨로부터 시작됐다. 교사인 현순애 씨는
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채 방황하던 제자들에게 일주 일에 한 번씩 만날 것을 제안했다.
2017년 속초의 한 특성화고등학교로 발령받아 속초에 왔
“같이 리본 만들기 하자. 우리 학교에서 했던 거.”
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라 활동을 이어갈 생각을 못
현순애, 정호진, 최유진 세 사람은 2020년 1월부터 매주
했지만, 학생들과 노란리본을 만들고 세월호참사에 대해
한 번씩 만나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통
이야기하는 활동만은 그만두지 않았다.
해 그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 변인미, 박명숙 씨가 결합했
“학생들을 볼 때마다 세월호참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
다.
는 마음이 들어요.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다가 죽을 수 있
속초 토박이 변인미 씨는 2014년 세월호참사가 일어나
구나. 국가가 잘못해서 죽을 수 있구나. 그게 너무 충격으
자 운영하던 카페에 노란리본과 서명지를 배치하고 손님
로 다가왔거든요. 이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근무 중
들에게 세월호참사를 알려왔다. 카페를 운영하기 전 오랫
에도 고민하거든요. 현장실습 나간 학생들의 반복된 죽음
동안 꽃누르미(압화) 작가로 활동했는데, 그 경험이 계기
앞에서도 그래요. 정부가 제도 개선을 하고 있다는데, 이
가 되어 세월호 유가족들의 꽃누르미 작품전시가 속초에
게 제도 개선만으로 막을 수 있나? 근본적인 것은 무엇일
서 열리는 데도 힘을 보탰다.
까? 학생들의 노동을 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박명숙 씨는 경남 창원 출신이다. 속초로 ‘한달살기’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았다. 외지인들에게 텃세를 부리지 않
시간이 흐르며 현순애 씨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이 졸
는 속초의 열린 분위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마음을 사로잡
업해 직장인이 되었다. 유달리 성실했던 두 사람이 어떻게
았다. 두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필리핀으로 함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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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수를 떠났다가 세월호참사 소식을 접했다. “저거 잘못된 뉴스 아냐?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 어요.” 돌아가기 두려워졌다. 그 많은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둔 곳 에서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2년을 예정했던 필리핀
행될 때라 서명도 많이 받았다. 변인미 씨는 광장으로 나 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역은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무심해요. 공 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시민들을 직접 만나서 아 직도 기억해야 할 일이라는 걸 나눠야겠다 싶었어요.”
살이가 9년이 되었다. 그러다 향수병이 났다. 속초가 그리
엑스포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고맙다, 리본 하
워 홀로 돌아왔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 박명숙
나 더 가져가도 되냐, 우리도 뭐 할 거 없냐는 사람들이 더
씨는 ‘정치’에 빠져들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영
많았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아직까지 세월호냐'
랑호 개발 반대 등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삶
같은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 그래도 여럿이 함께 있으니
에 들어왔다.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매일같이 다양
까 크게 상처받지는 않는다. “그래서 모임이 필요한가 봐
한 활동이 이어졌다.
요”라면서 변인미 씨가 밝게 웃었다. 그러나 변인미 씨의
“살면서 처음 정치가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은 따로 있다. 펜데믹 상황이 심각
내가 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인식한 거예요. 적극적으
해지면서 시민들을 대면하는 활동이 거의 중단된 것이다.
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이렇게 모인 다섯 사람이 속초약속지킴이 활동의 구심 점이 되었다.
방식으로든 다시 시작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서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사이 속초 약속지킴이들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모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임의 마중물이 된 현순애 씨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현순애 씨는 고심 끝에 박명숙 씨에게 속초 약속
현순애 씨는 자신이 속초에서 세월호약속지킴이 활동을
지킴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박명숙 씨는 잠시의 망설
새롭게 싹틔운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온 이들의 활동이
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것만큼은 고민할 필요가
연결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라 말한다.
없었다. 희생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쏟은 눈물이 박명숙
“지역에서 모임이 꾸준히 이어지려면 담당하는 주체가
씨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있고 서로 함께할 활동을 만들어 가야 하잖아요. 그렇게
속초 약속지킴이들은 2022년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갈
활동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시민단
힘을 모으는 중이다. 8주기 추모식을 위해서 준비위원회
체들은 단체마다 본연의 역할이 있어서 바쁘잖아요. 하고
를 만들고 어렵더라도 시민들과 만나는 활동을 다시 펼치
싶은 마음은 있지만 구심점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마음이
고자 한다.
빨리 모였던 거 같아요.”
“아직 진상규명도 안 됐고 책임자 처벌도 안 됐잖아요.
세 사람이 다섯 사람이 되면서 활동 무대와 내용도 커졌
그걸 이룰 때까지 지역에서도 활동이 이어져야 해요. 중앙
다. 매달 한 번씩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엑스포광장’으로
에서 아무리 잘해도 지역에서 잘 연결이 되어야 진상규명
나갔다. 리본나눔과 피켓팅뿐만 아니라, 2020년에는 세
운동에 힘이 실리죠. 전국 각지에서 작은 힘이나마 꾸준히
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 국민동의청원운동이 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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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10반 그리고 11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10반’, ‘11반’의 이름을 가진 세월호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가족들 이 제게 나눠주시고 닿았던 말들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생생 하게 남길 바라며 재구성했습니다. 소중하고 귀했던 시공간 그 일 부에 함께해주세요. 이후에도 계속될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글 이동경 극작가, 드라마터그, 아키비스트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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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반
권지혜 어머니 이정숙 님 , 구보현 어머니 김경애 님
“얘들아 잘 있니?” 우리 10반은 여학생 이과반이에요. 14년도 팽목에 있을 때, 외부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누가 누구의 부모인지 모 르니까 반마다 반티를 만들었어요. 우리 반 어떤 엄마가 그 반티에 ‘얘들아 잘 있니’ 라는 글귀를 넣었어요. 아이들 이름도 같이 적어서요. 그 물음이 안부를 묻는 거잖아요. 우리 엄마들은 잘 있으니까, 스무 명의 우리 아이들도 잘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많이 위로가 됐어요.”
있는지 아닌지…. 티 입고 있으면 우리 반 누구의 엄마구 나, 외우게 되고. 초창기에는 직장생활 하거나 아픈 부모 도 있고 하다보니 그 빈자리를 이모, 삼촌, 할머니 친인척 분들이 메꿔주시고 골고루 섞였었어요. 지금까지 열 분의 부모님들이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죠. 고정적으로 6~7명 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반에 비하면 우리가 조 금 적어요. 마음은 있으신데 몸들이 좀 많이 불편하세요. 그래도 도보행진 할 때 제일 많이 모였어요.
“부모가 나서야 뭐든지 이루어진다는 마음이 있다보니까 안 나가면 아이한테 미안했죠.” 그 예닐곱 명이 주구장창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다 소화 했어요. 서명이나 간담회, 피켓도 들고, 양평, 천안도 가고.
사고 나고서 우리 10반 조직표를 받았는데 너무 충격적 이라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서로 집이 제일 가까 운 거예요. 그래서 이름 옆에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엄마네’ 하고 써놨었어요. 이전에는 서로 몰랐잖아요. 만 나서 아이 어릴 때부터의 사진을 함께 보니 같이 발레도 하고 재즈교실도 다녔네. 결혼기념일도 4월 16일 똑같은 날인 거예요. 참 슬픈 일이다…. 둘이서 아침에 산에 가서 운동했었어요. 한 시간가량 만나서 아이 얘기도 하고, 꿈 꿨던 얘기도 하고, 속 얘기 다 하고. 집에만 있던 사람들은 토해내지 못하잖아요. 진짜 아팠을 때 그게 참 많은 치유 가 됐던 거 같아요.
“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이 정말 너무 좋았어요.”
되는대로 다 다녔어요. 교육청, 해수부 앞, 국회, 청운동, 광화문… 동거차도에 들어가는 것도 다른 반은 나눠 들어
어떤 시민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잊지 않겠습니다.
가는데 우리 반은 사람이 적으니까 모두 들어가요. 동거
함께 하겠습니다.” 그 구호는 세월호참사 이후 처음 나온
차도 올라갈 때면 일주일 치 물 먹을 걸 엄마들이 짊어가
거였대요. 그전에는 없었대요. 참 기억에 남았어요. 이번
지고 산 넘어서 올라가요. 지금 팔이 빠져서 아파요. 치료
설 때는 서울시의회에 있는 '세월호 기억공간'에 많은 시
해도 낫지도 않고 무리하면 또 빠져요. 안 한 게 없어, 사
민분들이 와주셨는데 진짜 고맙더라고요. 명절에다 코로
실은. 바보 같은 엄마들이 이렇게 하면 우리 아이들의 억
나 때문에 안 나가고 싶었을 텐데, 우리 아이들과 함께해
울함이 풀어지리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
주겠다고 많은 분들이 그 추운 데 와서 떨면서 그러시는
지요. 다닐 때는 아픈 줄 모르는데 집에 와 저녁에 자면 또
거예요. 그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또 이어지고 올
아프고. 눈 뜨면 나갔어요. 안 나가면 내가 못 사니까. 아픈
수 있어요. 시민분들 참 대단하시다, 고맙다… 위로도 되
줄 모르고 다녔죠. 다들 피부가 새까맣게 됐어요. 이렇게
고 견딜 수 있게 한, 그랬던 시간이었어요. “제대로 된 특
까지 오래 갈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다시는 이런 참사
검을 통해 진실이 규명됐으면 좋겠어요.” 전면 재조사해
가 일어나지 않고 반복되지 않게 우리가 안전하게 잘 만
서 제대로 된 처벌을 하고요. 양심선언, 내부 고발 그런 게
들어서 다음 세대에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게끔 하기 위
제일 필요해요. 약속했던 안전공원도 지연되고 있는데 하
해서요. 그래서 끝까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루빨리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37
11반
문석연 회원조직사업부 팀장, 장애진 아버지 장동원 총괄팀장
11반, ‘생존자’
당시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게 많았어요. 애들이 연수 원을 나와서 학교 들어가는 데까지도 여러 가지 일들이
11반은 스무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단원고 생존학 생 가족 열일곱, 화물기사 일반인 생존자 가족 셋. '11반' 이 부르기 쉽고 연결성도 있고, '생존자'라는 말이 주는 아 픔이 있기에 그렇게 하게 됐어요. 일할 때 조금 수월하고 편하지만, 없던 게 생겨난 거잖아요. 그 기분이 묘해요. 활 동이 변화되는 과정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세월호 참사에는 당연히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 게 있고 역사고 기록인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있 어요. 누가 물어보면 생존학생 누구 엄마, 아빠 이렇게 부 르죠. 그리고 사실 생존학생보다는 생존 학생 부모반이죠.
많았는데, 하나하나 그 과정들을 계속 만들어왔어요. 누 구하고 상의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거예요. 교육청은 전 혀 전문적이지 않고 우왕좌왕했고, 매뉴얼에는 문외한인 거죠. 전문가들이 이렇게 얘기했으니 해야 된다 그러는데, 다 용역준 거예요. 세월호참사로 인해서 그런 과정들이 잘 만들어져야 된다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때도 말했어요.
“이번 한 번만, 국회 앞까지만 걸어가보자.”
부모님들이 하시니까요.
“처음부터 피해자들이 하나로 뭉쳐서 가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부모님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할 때, 애들이 자기 들도 뭔가 해야 되겠다고 했어요. 진상규명에 있어서 세월 호 특별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아이들 자존감을 회복하 려고, 그래서 ‘도보행진’을 시작했던 거예요. 의외로 애들
워낙 큰 참사다보니까 안 그러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 을 거예요. 초반에는 진상규명은 둘째 치고 누구든 얘기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됐죠. 활동하면서 생존학생 소희 아 빠하고 동거차도에 들어가 처음 천막치고, 배 운전 배워서 가족들 데리고 가족협의회 깃발 달고 일주일에 한두 번 바다 나가서 인양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가까이서 보 고 기록도 남기고 했었죠. 유가족 분들은 너무 잘 챙겨주 셨어요. 아무래도 거기에 껴서 우리 뭐가 필요하다는 말은 되게 어렵거든요. 초기에는 더 많이 그랬고, 해결되지 않 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회의 가면 생존학생 가족들은 어떻 게 하실 거냐고 먼저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은 또 분위기 가 다르죠. 유가족 분들도 더 편안하게 대하시고. 처음부 터 열심히 함께했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 많이 참석했어요. 되게 보람 있었다고 해요. 근데 그게 시민의 힘이었어요. 도보행진에 한 명, 두 명 따라붙던 시 민들이 갑자기 열 명, 스무 명 하다가 백 명, 이백 명… 국 회에 도착할 땐 몇백 명의 시민들이 뒤에서 아이들과 함 께 걸어왔거든요. 이런 과정들이 그때는 굉장히 고민이 많 았죠. 생존학생들에 대해 아픈 얘기들이 계속 나올 것만 같고. 부모들 말 한마디가 잘못 나가서 아이들 욕 먹이는 꼴이 될까봐. 다만 우리 아이들이 아픔만이 아니라 각자 느낀 것을 가지고 성숙한 시민으로 잘 살아냈으면 좋겠어 요.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면서요.
“시민 여러분이 지금까지 함께해오신 것만큼 그 마음 잊지 않으셨으면…”
내가 만약 유가족이었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 각을 해볼 때가 있었어요. 이렇게 함께 행동하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깊은 울림이 있었어요. 되게 존경 해요.
가족의 몫으로 넘겨졌던 생존학생 보호와 안전
2014년 4월 16일 잊지 않겠다, 진상 규명을 밝히겠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잊지 말자' 의 의미를 활동하면서 알겠더라고요. 기억하는 것뿐만 아 니라 활동을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정말 그걸 잊는 순간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다음 정부에서는 세월호참사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사회적인 관계를 만들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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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토리 기억공간 활동가들의 이야기
서로의 힘과 용기가 되어 기억을 지키는 청년들
‘기억과 빛’ 지킴이 여란, 재승, 태균, 나래의 이야기
글 박현민, 이경희 4.16연대 참여소통팀
작년 7월, 서울시는 광화문에 있던 ‘기억과 빛’의 철거를 요구했다. 공간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썼고, 같은 해 11월, ‘기억과 빛’은 서울시의회 앞마당에 자리할 수 있었다. 기억공간의 지킴이로 활동 중인 청년 여란, 재승, 태균, 나래를 만나 이전된 ‘기억과 빛’의 이야기를 들어보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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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빛’이 알려준 것 7주기부터 자원활동가로 함께한 여란은 기억공간 철거 소식을 접한 뒤 이곳을 지켜야겠다는 생 각이 들어 지킴이로 활동하게 됐다. 재승은 문화예술을 통해 세월호참사를 알리는 활동을 하다 지 킴이를 찾는다는 소식을 보고 합류했다. 보다 밀도 있고 지속성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기억공간 지킴이 모집은 기회로 느껴졌다. 태균은 퇴사 후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던 중 지킴 이가 되었다. 돈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것을 위해 살아보자는 마음이 들던 차였다. 글을 쓰는 사람 이라 자신을 소개한 나래는 세월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지킴이 활동을 시작했다. 네 사람은 기억공간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음 한쪽에 의구심을 품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줄까. 많이 잊힌 것은 아닐까.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기억공간을 찾았다. 야외에 있다보니 추위와 싸우느라 힘들지만 보람이 훨씬 컸다. 지킴이들의 마음을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날씨보다 차가운 몇몇 시민들의 반응이다. “나는 그런 거 관심 없어. 세월호 그런 거 아직도 해?” 그냥 속으로 생각하지 싶은 말들을 왜 굳이 내뱉는 것일까. 때로는 작정하고 덤벼드는 극우 유투 버들보다 지나가는 이가 슬쩍 보인 악의가 마음을 깊이 할퀴고 지나갔다.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지킴이는 기억공간의 얼굴이니까 행여 나도 모르게 욕이라도 할까 긴장하 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기억공간 주변을 오갔을 때도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지 킴이들의 쓰러진 마음을 일으킨 것 또한 ‘사람’이었다. 박근혜의 사면 발표 당일, 세월호참사 희생 학생들의 부모 또래로 보이는 시민들이 오셔서 지킴이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울었다. ‘엄마가 미안 해.’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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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면 기억공간 이전은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광화문에 있을 때는 기억공간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으니 방문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공 간을 찾아오는 시민들이 있다. 지킴이 활동은 기억공간 현판에 쓰인 ‘시민과 함께하는’이라는 말의 의미가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다. 고 생한다고 먹을 것 하나라도 챙겨주는 분들, 힘들 때 울어주는 분들을 보며 기억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재 승은 보수 유튜버의 촬영 시도로 소란이 일자 지킴이들이 해를 입을까봐 같이 지켜준 시민들의 모습이 마음 깊이 남았다. 연대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따뜻하구나 그런 걸 느꼈다.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키는 청년 넷은 모두 대선에 관심이 많다. 차기 대통령에 따라 앞으로의 많은 것들이 바뀌고 또 새로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두고 고심하다가도 뜨개질을 해보고 싶다, 2년 내로 해 외에 나가 살아보고 싶다, 헌혈 가능한 몸 상태를 만들고 싶다는 등의 일상적 소망을 이야기하는 모습에 미 소가 지어졌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야말로 큰 파동을 만들 것이다. 지킴이 활동은 네 사람을 크게 변화시켰다. 고등학교 때부터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활동을 해왔다는 여란은 슬픔을 딛고 담대하게 실천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나래는 시민들에게 받은 것이 많아 봉사활동을 시작 했다는 유가족을 만나고 놀랐다. 나래 또한 유가족들의 봉사활동에 동참할 계획이다. 태균과 재승은 자신들 을 살뜰히 맞아주는 유가족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느낀다. ‘기억과 빛’을 지키는 네 청년은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지 골똘히 생각하며 길을 만들고 있다. 이 청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기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41
4.16 공간소개 팽목기억관 ‘팽목기억관’을 지키는 “이곳은 우재 아빠 고영환 님의 이야기를 듣다 아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공간이자, 국가의 무능함을 확인한 곳” 글 박현민 4.16연대 참여소통팀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의 기억공간 중 어느 곳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팽목을 이야기하는 마음은 특히 무겁다. 국가가 생명을 버리는 현장을 목격한 유가족들의 아비규환이 서린 곳. 소중한 가족이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이 끝내는 텅 빈 가슴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 그곳에 참사를 기억하는 기림비와 기억관을 세우려는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팽목항 방파제 바로 옆에 자리한 ‘세월호 팽목기억관’은 참사 직후 분향소로 설치된 가건물 이다. 유가족들은 이곳을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의 희망을 담은 기억관으로 바꿔냈다. 그 러나 이 소중한 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진도군은 지역 이미지와 경제를 앞세우며 팽목기억관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인근에 건설 중 인 ‘국민해양안전관’에 추모공간이 조성되니 팽목기억관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전라남도 가 2019년 팽목기억공간 건립을 약속했고, 청와대 국무조정실에서도 협의안을 내놓았으나, 진도군의 태도는 완강하다. 곧 있을 여객선 취항(5월)을 앞두고 최근 53만여 원의 이행강제 금까지 부과했다. 오랫동안 팽목기억관을 지켜온 ‘우재 아빠’ 고영환 님의 이야기를 통해 현 장 소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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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팽목기억관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재가 생각나서 힘들어요. 힘을 준 분들도 많이 계셨죠. 여기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제주도 가는 배가 여기서 출발을 하거든요. 그 공사가 진
죽었냐고 안타까워 해주시고, 세월호 기억공간이 생기지
행되고 있어요. 선착장을 만들고 있어요. 매일 불안하죠.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답답해하시죠. 왜 안 되느냐고 물
강제철거하겠다고 계속 겁을 주니까 스트레스가 이만저
으시는데… 나도 모르겠네요. 말하는 나도 답답해요.
만이 아니죠. 진도군과도 계속 싸웠어요. 정부가 팽목에
세월호참사 당시에 6~7살이었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어줄 것처럼 하더니 안 해줬잖아
견학도 많이 와요. 왜 이런 참사가 생겼는지 저에게 묻죠.
요. 예산 집행처가 진도군으로 바뀌고 난 다음에는 예산
제가 뭐라고 설명하기 전에 세월호참사가 어떤 의미인지
책정을 아예 안 해요. 팽목기억관 화장실 임대료, 수도세,
이미 다 깨우친 거 같더라고요. 세월호참사에 관해 자기들
전기세도 안 내줘요. 그래서 통지서가 내 명의로 날아와
끼리 연극도 만들고 다큐멘터리도 찍어요.
요. 현장에 있는 저는 독촉당하는 것도 스트레스죠. 이제 는 진도군에서 벌금까지 물리겠다고 하네요.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해양안전관을 2월에 개관한다고 해요. 가서 보니까 세월 호 출항부터 사고 날 때까지 시간대 정보도 안 맞게 전시
이곳은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되어 있더라고요. 게다가 국가에서 운영비를 일부만 지원
가슴 아픈 자리이며 국가의 무능함을 확인한 장소에요. 언
해요.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상황이 뻔히 눈에 보이죠.
론과 기자들의 무책임함과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공무원 과 정치인들의 민낯을 보여주었던 곳이죠.
2014년 10월부터 팽목항을 지켜오셨어요. 유가족에게 는 고통스러운 현장인데, 이곳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 은 이유와 지금까지 버텨온 힘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같이 아파하고 슬퍼해주신 많은 분들도 계세요. 개 인 및 종교, 단체 자원봉사자와 잠수사 등 수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와주시고 기억해주셔 서 감사하죠. 기억관은 이런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
처음부터 이곳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우
들고 싶어요.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정부와
재는 5일 만에 나왔어요. 내 아이는 찾았지만, 아직 아이
해수부, 언론이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는 잘못을 자라나
를 찾지 못한 엄마아빠들이 많았어요. 꼭 아이를 찾아서
는 아이들에게 생생히 보여준다면 이런 참사는 다시 없으
다 같이 떠나자고 약속했었기 때문에, 아이 상 치르고 난
리라 생각해요. 과거를 잊기보다는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
뒤에도 안산과 팽목을 왔다 갔다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는 것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모습이 되어야죠.
다들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팽목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남기로 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팽목에 남 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가 환경이 열악해 서 지내기 쉽지는 않아요. 광주 세월호시민상주모임 분들, 진도와 목포의 시민분들 아니면 못 남아 있었을 거예요. 딸은 언제 안산 오냐고, 왜 안 오냐고 자꾸 물어보죠. 딸한 테는 참 미안해요.
이 공간을 지키시면서 많은 시민을 만나셨을 텐데 기억 에 남는 분들이 있다면요?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어요. 태극기부대와 박근혜 지 지자들도 왔었고, 천안함 희생장병의 부모가 와서 욕을 하 고 가기도 했어요. 희생자에 대한 대우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그럭저럭 견 딜 만해요. 정말 힘든 건 우재 또래 아이들을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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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공연
간절함이 기록과 만나 빚은 유산
리뷰 <4.16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하다>
그날을 말하다
글 유해정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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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참사는 여러 지점에서 우리 사회에 질적 변 화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주목할 변화 중 하나가 ‘기록운
이 《그날을 말하다》라는 총 100권의 방대한 기록물로 출 판되었다는 점이다.
동’의 형성이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억압하는 권력과 언론
198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에서 구술은 어둠에 깊이 파묻
에 대항한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저항은 참사 초기부터 터
힌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저항의 도구로 활용되곤 했다.
져 나왔고, ‘기록운동’으로 이어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일군의 연구자들이 4.3, 5.1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심지어 국내외의
목소리를 통해 폭력의 참상을 ‘먼저’ 전하고 진실의 조각
경계를 넘어 세월호참사를 기록하고, 진실 알리기에 나섰
들을 모았다. 4.16 세월호참사를 목도한 연구자들 역시 전
다. ‘4.16구술증언사업’ 또한 그 흐름 속의 중요한 물결 중
령사와 문지기로서의 임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총 13명의
하나다.
연구자들이 4.16기억저장소의 우산 아래 모여 4.16 세월 호참사 피해자에 대한 구술증언 청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4.16구술증언사업이 다른 기록운동과 다른 지점은 사업 의 주체가 유가족의 진상규명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이었
이 작업은 2015년 7월 첫 구술 청취를 시작한 이래 2019 년까지 계속됐다.
다는 점, 증언사업이 4년간 꾸준히 계속됐다는 점, 기록의 대상이 유가족과 피해자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결과물
“본 구술증언은 4.16 사건에 대한 참여자들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에 남김으로써 이후 진상규명 및 역사기술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모든 구술 회차에 담긴 이 시작 인사말은 ‘증언’으로서
고통받고 있는 잠수사들의 일상과 세월호참사의 또 다른
의 구술기록의 취지와 이 ‘증언’을 지키기 위해 외부예산
피해자인 동거차도의 주민들이 그날 이후 겪어낸 현실을
지원 없이 이 작업에 몰두해온 연구자들의 다짐을 확인하
접할 수 있는 것 역시 이 책이 가진 중요한 의미다.
게 한다. 2019년 4월부터 2020년 4월까지 1년에 걸쳐 발
물론 구술자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기록하기
간된 100권의 《그날을 말하다》는 한국 재난사에 유례가
위해 구술의 과정을 그대로 전사했다는 점에서 어떤 대목
없는 기록물이다. 피해가족 88명(88권)과 잠수사 4명(4
은 쉽게 읽히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권), 그리고 동거차도 어민 10명(3권)의 이야기까지 참사
고 ‘날 것’이 갖는 생생함과 역사적 가치가 묵직하게 다가
와 관련된 다양한 목소리가 두루 담겼다. 4.16TV, 4.16합
온다. 증언사업이 종료된 터라 모든 인터뷰가 2019년 이
창단 등 피해자들이 일궈온 활동 단체(5권)의 역사도 기
전에 멈춰 있어 아쉬움이 있지만, 다시 한국 사회가 이런
록됐다.
묵직한 기록을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날을 말하다》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알지
소중한 기록이다.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
못했던 진실로 우리를 인도한다. 참사 발생 직후 팽목항
원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찬호 아빠 전명선님은 “너무
과 진도, 바다에서의 초기 상황에 관한 중요한 증언을 포
나도 마음이 아파서 들추어내기 싫어하는 기억을 기록으
함해, 그 이후로 오랫동안 계속된 국가의 민낯을 보여준
로 남기는 것은 그 아픔과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다. 동시에 단장지애의 상실과 고통을 경험한 이들이 어떠
함이며, 안전한 사회에 대한 염원이 너무나도 간절하기 때
한 갈등과 진동을 거쳐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주체로 변화
문”이라고 이 책의 의미를 말한다. 이 간절함에 여전히 응
해왔는지, 그리고 수없이 다시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
답하고자 하는 당신의 손에 이 책이 머무르길 바란다.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잠수병과 트라우마로 45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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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단원고 2학년 6반 고 권순범 학생의 어머니 최지영 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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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8주기 행사 안내 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과 약속의 달(2022. 3.16-4.16)
“진상규명을 향한 힘찬 걸음, 생명안전사회를 향한 굳센 연대”
(사)세월호참사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세월호참사 8주기를 맞아 3월 16일부터 4월 16일까지를 “기억과 약속의 달”로 선포하고, 다양한 추모행사와 더불어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실천활동에 집중합니다.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진상규명을 향한 힘찬 걸음, 생명안전사회를 행한 굳센 연대” 를 8주기 사업을 포함한 2022년 활동 표어로 정했습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 호참사와 그 후의 진실 은폐, 국가폭력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당의 후보자가 대통령 으로 당선된 현실 앞에 기죽거나 좌절하지 말자는 다짐을 담았습니다. 성역 없는 진상규 명의 완수를 향해, 생명이 존중받고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향해 더 단단하고 폭넓은 연대 를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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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과 약속의 달>을 선포하며 시민들께 드리는 글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진상규명을 향한 힘찬 걸음, 생명안전사회를 향한 굳센 연대 세월호참사 8년, 우리는 여전히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상규명의 성역과 싸우고 있습니다. 왜 침몰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숨기려고 했는지, 어떻게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절박한 질문에 답을 얻고자 지난 8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 월호참사의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참사와 그 후의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인정과 사과, 성역 없는 진상규명의 완수를 촉구합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마무리되고 있지만 아직 약속 은 온전히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20대 대선의 당선인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검찰 특수 단의 재수사는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무혐의와 불기소로 결론을 지어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임기 만 료를 앞둔 문재인 대통령과 대선으로 새롭게 취임할 새 대통령은 참사와 그 후 일어난 초헌법적이고 불법적 인 국가폭력에 대해 국민과 피해자 앞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제와 정책의 정비를 완수해야 합니다.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를 향한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건설 현장의 연이은 붕괴 참사, 산업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 음, 최근 일어난 동해안 최악의 산불은 이 나라가 여전히 사람과 자연을 살리고 보호하는데 얼마나 무관심한 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 을 살리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한 제도와 인력, 시설과 장비에 과연 얼마나 투자하고 있습니까? 그래 서 우리는 세월호참사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권리, 나아가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 갈 권리를 향한 투쟁을 멈출 수 없습니다. 4월 16일의 기억 · 약속 · 책임! 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과 약속의 달을 선포합니다. 다시 세월호! 우리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 스러져간 안타까운 304명의 목숨을 기억하고 그 안식을 기릴 것입니다. 그동안 이루어진 진상규명의 의미와 한계를 살피고 문재인 정부가 마무리해야 할 과제와 새 정부가 약속하고 이행해야 할 과제를 전국의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함께 요구할 것입니다. 올해 안에 세월호참사와 그 이후의 폭력에 대한 대한민국의 책임 있는 사과와 진상규명의 완수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을 모을 것입니다. 시민들께 호소합니다. 별이 된 304명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시 노란리본의 물결을 만들어주십시오. 2022년 3월 16일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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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과 약속의 달> 이렇게 참여해요
팽목 기억 순례
[토론회]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안
우리는 팽목항에 갑니다.
전사회 건설을 위한 새 정부의 과제
2022년 3월 16일(수) 오전 11시
일시
일시
장소
2022년 3월 26일(토)
2022년 4월 둘째주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공간 앞
오후 4시 16분
진도 해역 선상 추모식
세월호참사 8주기 국민대회와 행진
기억과 약속의 달 선포 기자회견 일시
세월호참사 8주기 전야제 (기억문화제)
일시
일시
2022년 4월 10일(일)
2022년 4월 9일(토) 오후 2시 행진,
일시
장소
오후 4시 국민대회
4월 15일(금) 오후 7시
진도 해역
장소
장소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공간 앞
안산문화광장
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식 일시 2022년 4월 16일(토) 오후 3시 장소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잊지 않고 기억, 행동하기 세월호 영화 상영으로
세월호참사 판결
찾아갑니다
비평 북콘서트
온라인
2022년 4월 2일(토)
지금까지 진행된 세월호참
함께해주세요
추모관을
오후 2시
사 관련 재판과 특별수사단
노란리본 팔찌와 뱃지,
운영합니다
<당신의 사월>,<세월>,
의 수사 결과 비평을 통해
<로그북> 상영과
진상규명의 현황을 알 수 있
세월호 가족 간담회
는 북콘서트를 진행합니다.
노란 물결 운동 기억마스크 시즌2 펀딩에
스티커를 달아주세요
노란리본을 만드는 개인, 모임, 단체에 볼체인을 지원합니다. 세월호참사 8주기를 앞두고 지역 사업을 지원합니다. [기억-잇다] 팽목항과 목포신항 현수막을 새롭게 교체합니다.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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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본 4.16연대 2022년 2월 18일 기준
전체 팔로워 수 59,736 페이스북 4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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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인기글 ㅣ2021년 9월 3일
‘세 가지 소원’ 진실여행 테마송 https://www.youtube.com/ watch?v=2eZR-xWgUEk
페이스북 인기글 l 2021년 8월 21일
#조회수: 1.623명 #좋아요: 102명
세월호 기억공간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트위터 인기글 l 2021년 12월 24일
8월 20일(금) 서울시의회 1층 전시공간에 세월호 기억 공간을 재단장하였습니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서울시
[성명] 박근혜 사면에 대한 4.16
청 맞은 편 서울시의회 1층 전시홀에 마련되어 있습니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
다.
대 입장
세월호참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우리 사회의 우선
누구를 위한 사면인가, 세월호참
적 가치이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사 책임의 몸통, 박근혜 사면을 규
가장 기본적 책무임을 성찰하게 해주었습니다.
탄한다.
홈페이지 이동
세월호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이 만든 세월호 기억공간 은 추모와 기억의 공간이며 약속의 공간입니다. 또한 국
성명 자세히 보기
가의 책임을 묻는 공간이며 안전에 대한 우리의 다짐
http://416act.net/105016
공간입니다.
http://pic.twitter.com/ ZiIP3XF1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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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보기 http://416act.net/103675 홈페이지 이동
#노출수: 60,189명 #참여: 2,109 #좋아요: 278 #리트윗: 953
#도달: 13,268명 #참여수: 1,343명 #좋아요: 852명 #공유: 99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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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 활동 소식 2021년 8월 – 2022년 2월
[기억] 팽목 기억순례 & 기억캠프
[기억공간] 세월호 기억공간 이전 운영
10월 30일~31일 팽목항에서 1박 2일 기억캠프를 진행했
광화문광장에서 철거된 세월호 기억공간이 세월호 가족들
습니다. 광주시민상주모임, 목포공동실천회의, 4.16약속지
과 시민들의 모금으로 서울시의회 앞마당으로 이전하였습
킴이 도봉모임, 세월호 제주기억관과 보물섬 청소년들, 대
니다. 11월 20일 운영을 시작하였으며, 운영시간은 매주
구4.16연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함께 기억 순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입니다. 시
를 시작으로 4.16합창단과 함께하는 기억예술마당, 기억
민들의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
캠프, 목포신항 세월호 참관으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진상규명] 진상규명 종합보고대회
[후원의 날] 기억하장 함께하장
“문재인정부 5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은?” 세월호참사 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진상규명 활동비 지원을 위한
상규명 종합 보고대회를 통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약속
후원의 날 <기억하장 함께하장>을 진행하였습니다. 문화
했던 문재인 정부 5년을 분석 및 평가하고, 우리의 과제를
예술인의 애장품 경매와 물품 판매를 통해 진상규명의 의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지와 활동비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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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누구를 위한 사면인가! 세월호참사 책임의 몸통, 박근혜 특별사면 반대' 기자회견
[기억] 목포신항 새해맞이 합동차례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책 임자 처벌을 다짐하는 임인년 새해맞이 합동차례가 있었습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변 세월호참사 대응TF와 함
니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과 처벌받아야 할 책임자들
께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
이 있음을 떠올리며 22년에도 현재 진행형인 진상규명의
령의 박근혜 특별사면 조치는 촛불혁명의 후퇴이며, 시대정
걸음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의 파괴라고 규탄하며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습니 다.
[기자회견] 20대 대선 약속운동 발표 기자회견
[정기총회] 2022년 4.16연대 8기 정기 총회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와 4.16연대
4.16연대는 2월 26일(토) 서울여성플라자에서 4.16연대
는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세월호참사 성역없는 진상규명
회원들과 함께 정기 총회를 개최했습니다. 1부 문화제를 시
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정책 제안 6대 과제를 발표하고,
작으로 2부 총회에서 21년 사업 결과에 대한 평가와 결산
시민들과 함께하는 약속운동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안 처리, 22년 4.16연대 임원 선출과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사업계획을 확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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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 활동 일지 2021년 8월 – 2022년 2월
2021년 8/6
[기억]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 해체 후 이전
8/12
[성명] <증거 조작 의혹 특검>의 수사결과를 수용할 수 없음
증거자료 조작·편집 의혹 특검 발표에 대한 입장
8/12
[진실여행] 진실여행 홍보 영상 촬영
8/20
[기억] 서울시의회 내 세월호 기억공간 임시 설치
8/28
[기억] 광주시민상주모임, 대구4.16연대, 4.16연대 사무처 세월호 선체 내부 참관 및 팽목 기억순례
8/30
[연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30km 오체투지 대학로~종로5가 구간에서 동참
9/7
[진상규명]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간담회
9/11
[기억] 팽목항 현수막 교체
9/21
[기억] 서울시의회 전시공간에 마련된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추석 상차림 진행
9/24
[연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엄중판결 촉구하는 탄원서 제출
9/30
[연대] 임성근 탄핵 촉구를 위한 시민 행동 동참
10/1
[소식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소식지 《사월십육일의약속》 출간
10/16
세월호참사 성역 없는 진상규명 전국 동시다발 국민대회(온라인 대회)
10/20
[진실여행] 안산_판결 비평 북콘서트
10/22
[지역협력] 노란리본 볼체인 11개 지역 지원
10/26
[연대] 고 이한빛 PD 5주기 추모식
10/27
[진실여행] 전주_판결 비평 북콘서트
10/28
[기자회견] 사법농단 관련 결정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10/30~31 [기억] 팽목항에서 1박 2일 팽목 기억순례 & 기억캠프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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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기억] 세월호 기억공간 이전 설치 모금캠페인 진행(누적모금액 2,004건 약 5,812만원)(10/1~31)
11/2
[연대] 현장학습 희생학생 유가족의 국민청원 및 기자회견
11/5
[피해자지원] <피해자 혐오모독 사례수집 및 삭제> 교육 및 대응 체계 구축
11/10
[연대]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시민대행진/ 한국선급 ‘선박안전법 위반 2심 선고’ 입장표명 기자회견
11/12
[연대] 4.16재단 이전 개소식
11/16
[집중행동] 진상규명 촉구 온라인 서명운동 집중의 날 진행/ 4.16연대 뉴스레터 <16일의편지> 첫 발행
11/20
[기억공간] 세월호 기억공간 서울시의회 앞마당으로 이전 운영
11/23
[연대] <국회법 개정안>시민사회단체 입법청원 기자회견
11/24
[성명] 서울도서관 ‘4.16세월호 기록공간’ 철거에 대한 입장 발표
11/28
[진실여행] 부산 4.16판결 비평 북콘서트
12/2
[연대] 전국빈민대회 및 5인 미만 차별 철폐 촛불집회
12/3
[연대] 스텔라데이지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예비비 편성 협조 촉구 기자회견
12/6
[회원] <로그북> 무료 시사회
12/8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종합보고대회
12/14
[진상규명] 세월호참사 책임자 해경 지휘부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12/15
[진실여행] 판결 비평 북콘서트 - 천안
12/22
[재판] 차명진 민사소송 1심 선고 - 세월호참사 유가족 126명 1인당 100만원씩 배상
12/23
[성명] 차명진의 배상책임 인정한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12/24
[성명] 박근혜 특별사면 반대 성명 발표
12/27
[기자회견] ‘누구를 위한 사면인가! 세월호참사 책임의 몸통, 박근혜 특별사면 반대’
12/30
[간담회] 더불어민주당 사회적참사 특위 간담회
2022년 1/1
[기억] 목포신항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다짐하는 새해맞이 합동차례
1/4
[기억] 4.16연대 사무처 기억 순례(서호추모공원, 효원가족공원, 안산하늘공원)
1/10
[연대] 이한열 열사 배은심 어머니 추모제
1/15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진상규명 활동비 지원을 위한 후원의 날 <기억하장 함께하장> 2022년 전국민중총궐기
1/19
[간담회] 서울시의회 민주당 세월호TF 간담회
1/25
[연대] 참사 피해자 단체들과 <대선 캠프 초청 국민생명안전 대토론회> 개최
1/28
[선전전] 설 귀향 서울역 선전전
2/1
[설 합동차례]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세월호 가족, 시민 설맞이 합동차례
2/7
[연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고소고발 기자회견
2/8
[사무처]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4.16연대 사무처 단합대회
2/9
[연대] 대구지하철참사 19주기 추모식 및 대선후보 생명안전 국민약속식
2/14
[기자회견] 20대 대선 약속운동 선포 기자회견
2/18
[연대] 대구지하철참사 19주기 추도식
2/25
[기억] 4.16생명안전공원 보고회
2/26
[총회] 제8기 4.16연대 정기총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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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후기 「팽목 기억 캠프, 기억 예술마당」을 다녀와서 4.16연대는 지난해 1박 2일(10.30~10.31)에 걸쳐 ‘팽목 기억캠프 순례, 예술 마당’을 진행했습니다. 기억의 숲-팽목순례길-4.16합창단과 함께하는 팽목 기 억예술마당-팽목 기억캠프-세월호 참관(목포신항)으로 이어진 활동에 함께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4월16일의약속지킴이도봉 김일오
광주시민상주모임 정기열
만만한 일정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이른 아침 출발해 7시간을 달려 진도에
세월호참사 2757일, 오늘도 우리는 팽
도착했다. ‘기억의 숲’을 향해 도보로 행진하는 앞 팀을 만나 중간에 합류하
목항에 간다. 우리가 매달 팽목 기억순례
여 함께 걸었다. 간간이 비가 내리긴 했지만 탓하지 않았다. 도착한 ‘기억의
길을 걸으며 길 위에 기억을 새기는 것과
숲’에는 김관홍 잠수사의 동상과 결결이 심겨 있는 노란 은행나무들이 우
‘팽목기억예술제’를 통하여 사람들의 머
리를 맞이해주었다. 아직도 가냘픈 은행나무들을 보며 얼마나 시간이 흘
리와 가슴에 팽목을 각인시키는 것, 거친
러야 우리도 은행나무들도 든든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바람에도 안온한 품을 내어주는 팽
제주에서 온 ‘동백꽃’ 대안학교 아이들과 함께 숲 이야기를 듣고 팽목항으
목식당을 꾸미는 것. 이 모두가 세상 사
로 다시 걸었다. 팽목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세월호 가족들과 공연을 준비
람들에게 더 이상 아픔이 없기를, 꽃다
하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조용한 진도의 풍경을
운 나이에 스러진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
바라보며 7년이 지난 지금 진도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히 기억하며 아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졌다.
가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팽목항은 하늘도 바다도 너무 예뻤다. 저 섬들 넘어 아이들이 있었지. 얘들
렇기에 팽목기억공간이 계속되기를 소망
아 잘 있었어? 4.16합창단의 노래는 해가 바뀔 때마다 나에게 조금씩 다
한다. ‘팽목 기억예술제’는 세월호참사 후
르게 다가온다. 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서러움이 아닌 평온함으로 들
돌아오지 않은 분들이 하루빨리 돌아오
려오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다. 기억예술마당이 끝나고 군데군데 모여
길 염원하며 시작한 ‘팽목 기다림의 예술
서로의 마음과 온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했던
제’에 이어 팽목항을 기억하고자 시작했
시간이 있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다. 팽목의 기억은 우리만의 기억이어서
이튿날 목포신항으로 이동하여 세월호 선체를 직접 바라보았다. 선체 내
는 안된다. 팽목이 후세대의 안전을 기약
에서 나온 녹슨 잔해들과 검은 비닐이 덮여 딱딱하게 굳어버린 개흙을 떨
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기억의 자리로 매
리는 손으로 만져보니 잔인하게 흘러버린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
김하기를 바란다.
다. 세월호 선체에 흘러내린 붉은 녹물들을 바라보며 가족들의 가슴은 이 미 저 붉은 녹물보다 훨씬 더 진한 색으로 고통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 이 힘들어졌다.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우재 아버지가 자꾸 생각이 난다. 떨 리는 목소리로 팽목항의 일상을 들려주는 모습이 자꾸 기억난다. 삶이 어디 우리 맘대로 되던가. 그래도 함께 발맞추고 손잡고 뒤에서 지켜 주며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같은 곳을 향해 모두 걸어가 는 것이겠지. 팽목항에서 바다 위 섬들 너머로 찬란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 며 세월호 가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저물어가는 해가 슬픔이 아 닌 찬란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 다. 함께한 도봉의 식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음에 고마운 1박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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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제주기억관과 보물섬 청소년들
보물섬 학교는? ‘함께 크는 우리아이’라는 라는 공동육아 철학을 기본으로 설립된 공동육 아 대안학교입니다. 사람, 생명,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보물섬 학교는 철학과 역사를 통 해 세상을 이해하고, 프로젝트중심의 교육과정과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성장하는 학교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아픔을 함께하는 사회 적 실천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학교로 1학 년부터 9학년까지 한 식구처럼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10학년 오준서
10학년 송유찬
선생님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간 곳은 ‘기억
처음에 작은 규모로 우리 학교랑 세월호 제주기억관 분
의 숲’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
들만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랐다.
리는 은행나무들이 심겨 있었고 지금은 돌아가신 김관홍
걷기도 하고 ‘기억의 숲’도 가고 팽목항 가서 노래도 듣고
잠수사의 동상도 있었다. 김관홍 잠수사도 세월호 피해
세월호도 보고 유가족 분이랑 얘기도 하고 ‘팽목기억관’
자 중 하나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 얘기가 정말 좋았다.
도 보고 여러가지를 해서 좋았다. 옛날에 친구가 이런 말
다음으로 4.16km의 ‘팽목순례길’을 걷고 세월호 희생자
을 했었다. 세월호참사는 망각과의 싸움이라고. 위에서
들이 바다에서 처음으로 올라온 곳인 팽목항에 도착했
는 어떻게 해서라도 세월호를 우리 기억 속에서 잊게 만
다. 팽목항은 내 생각보다 작았다. 거기서 4.16합창단을
들 거라고 말을 했다. 세월호 기행에서도 진행하시는 분
만나서 합창단 공연을 봤다. 생각 외로 정말 잘했다. 마이
이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가 걷지 않으면 길이 만들어지
크를 뚫고 나오는 성량과 울림이 정말 좋았다. ‘팽목 기억
지 않고 아무도 걷지 않게 될 거라고. 이런 말들을 들으면
관’을 철거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국가에서 일어난 참사
서 왜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행동하겠다고 하는
인데 지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철거를 한다니 충격이었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 코로나 이후에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행 사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정말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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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학년 현수민
8학년 김원
처음 이 기행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선생님의 추천이었다.
맨 처음 ‘기억의 숲’에 갔다.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타고 간
올해 학교 수업으로 세월호 제주기억관에 가서 리본을 만
거여서 걷는 게 힘들었지만 김관홍 잠수사 동상도 보고 설
드는 활동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주기적으로 하지는 못했
명도 재미있게 해주셔서 좋았다. “밟아야 길이 만들어진
지만 기억관에서 하는 다양한 행사들에도 참여했다. 그러
다”고 하신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 다음에는 팽목항까지
던 중 2022년 세월호 행사는 제주의 청소년들이 주체가
가서 합창단의 노래를 들었는데 굉장히 잘 부르시고, 자
되어서 진행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선생
신들의 아픔을 노래로 표현한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님은 우리가 내년 2022년 세월호 기억 행사를 진행할 것
그날 저녁에 팽목기억관에 갔는데 기억관을 짓기 위해 얼
이라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세
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는지 보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
월호참사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고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다. 다음날 세월호 선체를 봤다. 설명을 쉽게 해줘서 이해
분들을 만나서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
가 잘 되었고 배에서 나온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세월호 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놓는 것을 보면서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가 정말 잘 느껴졌
우리가 처음으로 갔던 곳은 ‘기억의 숲’이었다. 김관홍 잠
다. 기행을 다니면서 사고가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
수사의 동상과 세월호를 상징하는 조형물 등이 있었다. 김
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났고, 얼른 진실을 찾는
관홍 잠수사의 동상이 유독 내 눈에 많이 들어왔던 것 같
노력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왜냐하면 이 기행 이전에 《나는 세월호 잠수사다》 북 콘서트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다. 그리고 ‘기억의 숲’ 길지 기 분이 하신 말 중에 “우리가 이 길을 걷지 않으면 이 길은 아무도 걷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았 다. 그 후에도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노래도 듣고, 진상규명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뇌리에 깊숙히 박힌 단어는 바로 ‘기억’이었다. 세월호참사는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나 는 세월호참사가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가는 진상규명 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세월호라는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작은 공간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세월호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호참사가 끝났 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역사를 잊어버리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끝까지 이 역사를 기억 해야 하며 이 역사를 그저 하나의 슬픈 사건으로 남겨두 는 것이 아닌 이 역사 그 이면의 가치까지 기억해야 한다 는 생각들 들었다. 즉 우리,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세대에게는 세월호가 진상규명이 되고 세월호를 단지 하 나의 슬픈 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와 가 치를 기억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이번 기행에서는 다양한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 내년 세월호 행사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서 굉장히 뜻깊고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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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학년 김태은 팽목항은 처음 가보았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시신 을 수습했던 장소라고 해서 머릿속에 그때 모습이 상상 되었다. 잠수사 분들의 책을 읽고 가서 더 그랬던 것 같 다. 팽목항에서 4.16합창단의 노래를 들었는데 〈가을 우 체국앞에서〉 라는 노래를 부르셨다. 그 노래를 좋아하기 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시니까 진짜 소름이 돋았다. 나도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참여해서 뿌듯했다. 저녁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많은 사 람들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유가족 분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조금 추웠지만 텐트도 좋았다. 일요일은 목포신항에 가서 세월호를 봤다. 이번이 두 번 째였다. 처음 갔을 때는 앞에서만 봤는데 이번에는 뒷모 습까지 다 보고 관계자분이 직접 어떤 부분인지 설명해 주셔서 너무 뜻깊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뉴스에 나오 는 장면이 어느 부분이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
8학년 전강
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세월호 제주기억관 선생님 분들이랑 전국 각지에서 오신 선생님들 덕분에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에 진실을 바라는
재밌게 다녀올 수 있었던 거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간절함이 느껴졌다. 정말 힘드셨을 텐데 이겨내시고 어
또 다녀오고 싶다.
떻게든 진실에 다가가시려는 모습이 멋지고, 오히려 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어른들이니 미안하다고 하셨을 때 마음속 한구석에서 울컥함이 올라왔다. 우리는 아이
8학년 김은혜
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배움을 주는 어른으로 크자는 생 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월호를 같이 기억하시는 분들과
4.16합창단은 노래를 정말 잘 부르셨다. 합창단의 이야
걷고, 활동하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지 않은데 초대받
기를 담은 책의 구절들을 읽어주시고 이야기도 해주셔서
게 되어서 정말 좋았고, 간식도 많이 주시고 저녁도 맛나
뜻깊은 시간이었다. 팽목기억관은 잠깐 동안만 들어갔지
게 주셔서 여행이 허전하긴커녕 배움이 가득하고 푸짐한
만 세월호 제주기억관과는 다르게 전시관 느낌이 났고
느낌이 들었다. 목포 근대문화역사관 해설가 분도 적절
세월호 리본도 여기저기 있어서 세월호 기억관다운 느낌
한 비유로 지식을 해설해주셔서 재미있었다. 한편 세월
이 많이 났다.
호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봤는데,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세월호 선체에 갔을 때였다. 선
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분들과 연
체를 처음 본 날이었다. 설명해주시는 분이 선체의 곳곳
대하는 여행이어서 이번 캠프가 인상 깊었고, 내년에도
을 보여주시며 이곳은 왜 녹슬었는지 이곳은 왜 뚫려있
이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
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셔서 좋았다. 또 선체를 올리는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만을 따지면서 생긴 문제들도 이야 기해주셔서 중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사건은 그냥 지나칠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신 게 생각난다. 하나 의 사건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매듭을 지으면 그 전, 그 후 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들도 같이 매듭을 지을 수 있지 않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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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 후원•회원가입•자원활동 안내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이 되어주십시오. 4.16연대는 시민들의 참여와 회원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302-703452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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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부문: 강하니 (NCCK 정평위), 김승주 (노동자연대), 김희룡 (성문밖교
양경수(민주노총),
회), 노희창 (촛불교회),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류순권 (전국목회자정
오혜란(4.16안산시민연대),
의평화협의회), 문은영 (민변 세월호 법률지원단), 박승렬 (전국목회자
한미경(전국여성연대),
정의평화협의회), 박정순 (실천불교승가회), 선지영 (다산인권센터), 손
김종기((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지은 (전교조 세월호특위장), 양경수 (민주노총), 양한웅 (조계종 사회 노동위원회), 오민애 (민변 세월호 법률지원단), 이단아 (원불교인권위
[상설위원장]
원회),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선미 (참여연대), 이승훈
- 진상규명위원회: 오민애(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이종문
- 대외협력위원장: 한미경(전국여성연대)
(한국진보연대),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해솔 (한국YMCA
- 지역협력위원회: 김현석(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전국연맹),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장현술 (민주노총), 전남병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정규석
[상임집행위원장]
(녹색연합),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최헌국 (예수살기), 한미경 (전국
이태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여성연대), 한석호 (4.16재단), 한찬욱 (사월혁명회)
[상임집행위원]
-지역: 김계봉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 양천 시민모임), 김규원 (세월
공동대표 박승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앙경수(민주노총)
호음성대책위), 김미나 (세월호와 함께하는 성남시민모임), 김우 (4.16
오혜란(4.16안산시민연대), 한미경(전국여성연대)
마포모임(마포세월공감)), 김종민 (부산 화명 촛불), 김주묵 (세월호참
김종기(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춘천시민행동), 김지영 (마로니에촛 불), 김현석 (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김형미 (세월호 제주기억관 운
이태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김현석(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영위원), 남기업 (수원4.16연대), 문규옥 (살맛나는 민생실현연대), 박
오민애(민변 세월호 법률지원단), 손지은 (전교조 세월호특위장), 이
명숙 (속초 세월호약속지킴이), 박미자 (광주시민상주모임), 민성기 (홍
승훈(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종문(한국진보연대), 장현술(민주노
성문화연대-홍성촛불), 박신호 (대구4.16연대), 박은주 (성남4.16연
총), 한석호(4,16재단), 한유미(대구4.16연대), 김순길(4.16세월호
대), 신동훈 (세월호 제주기억관), 심유리 (국민주권실현 적폐청산 대
참사가족협의회), 정성욱(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정부자(4.16
전운동본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오혜란 (4.16안산시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최순화(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강지
연대), 위성태 (4.16안산시민연대), 유재상 (구리남양주 4.16약속지킴
은(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이), 유주호 (수원4.16연대), 이경숙 (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 이병 무 (전주남문농성장), 이세우 (세월호전북대책위), 이용후 (천안4.16연
[감사]
대), 임한숙 (울산4.16기억행동), 정기열 (광주시민상주모임), 정영희
나승구(신부), 조영관(변호사), 한성진(회계사)
(세월호참사를 밝히는 의정부대책회의) 정웅용 (4.16정읍시민모임), 조장우 (세월호충북대책위), 최용재 (목포공동실천회의), 한유미 (대구 4.16연대), 황미경 (세월호를 기억하는 밀양시민모임)
[고문] 김상근(목사), 김중배(전 MBC 사장), 문정현(신부 / 4.9통일평화재 단 이사장), 박재승(전 대한변협 회장), 윤준하(전 6월 민주포럼 회
-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임원: 김종기 (운영위원장), 김순길
장), 이창복(전 통일맞이 이사장), 이해동(목사), 임재경(언론인), 청
(사무처장), 정성욱 (진상규명부서장), 정부자 (추모사업부서장), 최순화
화(스님), 함세웅(신부), 박순희(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대외협력부서장), 강지은 (회원조직사업부서장), 김내근 (1반 대표), 윤 옥희 (4반 대표), 최지영 (6반 대표), 김명임 (7반 대표), 김정해 (8반 대
[사무처]
표), 박정화 (9반 대표), 이정숙 (10반 대표), 문석연 (11반 대표), 고영환
사무처장 김선우
(팽목기억관장), 박혜영 (직무감사), 오홍진 (직무감사)
활동가
이미옥, 채은, 최진호, 박현민, 이경희, 류현아 - 해외 : 권오복 (해외연대 – 독일), 정니콜 (해외연대 – 미국 LA), 레베카 정 (스프링연대 – 뉴질랜드), 김현정 (스프링연대 –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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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의 성역 없는 수사와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로 안전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요.
http://416family.org (우)15396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685(초지동 666-2) 산업지원본부(옆) 대표전화 031) 482-0416 (월~금 : 오전9시~오후5시) 팩스 031) 413-5380 이메일 416family.org@gmail.com 후원안내
기업은행 409-107078-01-027 | 예금주: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믿는다’는 말은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뜻으로요.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무언가가 오는 길이 뚫릴 테니까. 황정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