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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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어떤가?” A군이 후원자에게서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다. 단도직입적이네, 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들어 남자를 마주보았다. 처음으로 대면하는 후원 자는 꾹 다문 입가의 주름부터 네모진 안경까지 구석구석 완고한 인상이 었다. 한참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으니 직선으로 굳어 있던 남자의 입매 가 슬그머니 무너지며 웃음기가 돌았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미안하네. 아직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았군. 자네는 내 오랜 친구를 무척 닮았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격의 없이 대하고 말았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실례했네요. 상태는 상 당히 괜찮습니다. 모두 후원해주신 덕분이지요.” “아직 조금 불편한 것 같은데?” 남자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A군의 다리를 응시했다. 면밀히 확인하는 듯한 눈빛에 짐짓 가볍게 대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A군은 실없이 웃으며 앉아 있는 전동 휠체어의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아하하, 아무래도요. 그렇지만 한동안은 무균실에서 나오지도 못했는 걸요. 이 정도로 개선된 것만 해도 기적이죠.” “그렇지. 자네의 몸은 엉망이었어. 조직과 세포를 완전히 재건하는 것 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걷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 가지도 못하고, 식사 대신 수액만 맞아야 했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차도 마실 수 있으니까요. 으음…….” “차가 입에 맞을까 모르겠네.” 여전히 탐색하는 것 같은 눈매에 A군은 가벼운 긴장감을 느끼며 고개 를 끄덕였다. “수온도 적당하고, 꽃향기가 아주 향긋하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원래는 녹차를 즐겼다네. 그런데 홍차를 좋 아하는 친구를 떠올리며 마시다 보니 취향도 변하더군. 그 친구가 곁에 있을 때 진즉 이 맛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어.” “생각보다 다감하시네요.” 무심코 중얼거린 A군이 급히 덧붙였다. “아. 초면에 무례했네요. 죄송합니다, 하스미 케이토 씨.”


“그런 말은 됐네. 자네에게 사과를 듣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지.” “이상합니까?” “그래. 그냥 편하게 말했으면 좋겠군. 그 편지에서처럼.” 남자가 눈짓하자 A군은 잠시 머뭇거리다 테이블 한쪽의 편지 더미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소년처럼 수줍게 웃는 것이었다. “역시 알아보시네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여기까지 들 어오기 힘들지 않으셨나요?” “괜찮네. 검사를 스무 가지쯤 받고 전신 소독까지 거치긴 했지만……. 오면서 예상한 일이고 말일세.” “아, 죄송합니다. 이제 저도 면역력이 생겨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 을 텐데요.” “무리하지 말게. 자네는 매일 받는 검사지 않은가. 나와 오래 대화하는 것도 힘에 부치지 않겠나?” “아닙니다. 지금 무척 기뻐서, 매일이라도 이렇게 하스미 씨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고집불통이군.” 짧게 대답한 케이토가 차를 홀짝거렸다.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예스러운 안경이네요. 손편지도 그렇고, 오래된 문물을 좋아하시나 봐 요.” “옛 물건을 오랜만에 꺼냈더니 이 모양이라네.” 케이토가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아내며 답했다. “내 나이가 적지 않으니, 자네로서는 대하기 불편할지도 모르겠군.” “오히려 반갑습니다. 저도 골동품을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흠.” 짧은 헛기침 후 이어지는 침묵에 A군은 어김없이 작은 긴장을 느꼈다. 상대는 오래도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한때 아이돌이었던 것치고 완고한 사람이라고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본디 말이 많은 사람인 줄 알 았는데, 이렇게 침묵이 계속되니 괜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 에 안 드나? 그렇지만, 먼저 보자고 한 쪽은 분명히…….


“내가 왜 갑자기 자네를 보자고 했는지 궁금하겠지.” “하하, 네……. 제 치료를 후원하신 지는 벌써 좀 되셨잖아요.”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때는 만나려도 만날 수 없었지. 자네의 몸 때 문에. 그래서 대신 편지를 주고받았네만, 이제는 자네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잠시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던 남자는 이내 선고처럼 엄격하고 담담하 게 말을 이었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자네를 직접 보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네. 유언, 이라고 하면 거창하려나.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이의 회고 정 도로 생각해도 되겠군.” “아…….” 고개를 끄덕이던 A군이 문득 동작을 멈추었다.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던 A군은 이윽고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편지 더미를 바라보다가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역시 농담이시겠죠. 이렇게 정정하신데.” “그렇게 보이나……. 한때 시선을 받는 몸이었으니, 아무래도 겉모습은 신경 쓰게 되더군.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네. 기다려야만 하는 것 이 있어서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세상을 너무 오래 살았어. 그러니까, 나 는. 내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왔다네. 언제나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친구였거든.” “이상한 말을 하시네요. 유언이라면 보통 친구가 아니라 본인 이야기 를 하는 거 아닌가요? 죽을 때까지 자길 신경 쓰게 하다니, 굉장히 나쁜 친구네요.” “하하. 죽을 때까지가 아니야. 아마 나는 죽은 후에도 그 애를 신경 쓸 테니까……. 이래서야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케이토는 이곳에 도착한 이래 가장 사심 없이 말갛게 웃고 있었기에, A군은 말없이 차를 들이켰다. 미적지근했다. “뭐, 자네로서는 죄다 갑작스러운 소리일지도 모르겠군. 나는 사후에 내 모든 재산을 자네에게 양도할 걸세.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적은 돈은


아니야. 내게는 가정도 없고, 아이도 없고 제자나 후계자도 없다네. 그러 니 모두 자네에게 넘기고 싶은 게야. 대신에 내 이야기를……. 아니 내 친구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줬으면 하는 거라네.” 답이 없는 A군에게 케이토가 재차 물었다. “괜찮겠나?” “……네. 들어보고 싶습니다.” “좋아,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자네는,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나?” “누군가의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것이겠지요.” “원론적인 대답이군. 그렇다면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것은 언제일까? “선문답 같네요. 일반적으로 인식하기에 심장과 뇌가 멎을 때, 그래서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때가 아닐까요?” “……그런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 내 친구는 말일세. 여러모로 조금 독 특한 녀석이었어. 녀석은 늘 죽음에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더군. 죽음은 관념이라고. 생각하 기에 따라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을 우리가 끝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고.”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뭐, 그래서……. 내가 얘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군……. 한번 들어 보겠나.” 케이토는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기기를 꺼냈다. 재생 버 튼, 정지 버튼, 전원 버튼 세 가지만 달린 간소한 재생장치 역시 수십 년 전의 물건이 틀림없었다. A군이 가만 고개를 끄덕이자 케이토가 버튼을 몇 번 달칵거렸다. 기기에서 젊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 다. 음질은 좋지 않았다.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인 소리는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하염없이 낡은 소리에는, 어쩐지 그리운 느낌도 있었다. A군은 기기에서 재생되는 목소리가 귀에 익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1. - 이쪽 봐, 케이토. 예쁘게 웃어봐. 미간 찌푸리지 말고. 자. 학원 최 강 유닛이었던 홍월 리더님의 아이돌 스마일이야. - 뭐야……, 비디오카메라인가? 이런 건 왜 찍는 거지? - 기록을 남기고 싶어. 간만에 별장이잖아. 후후, 게다가 모처럼 좋은 용모로 태어났는데 좀 더 영상을 남기지 않으면 아깝지. - 이미 네 영상이라면 잔뜩 있을 텐데, 새삼 아이돌답지 않은 소릴 하 는군. 그나저나 팔에 안은 건……, 꽃다발인가? - 저쪽에서 꺾어 왔어. 케이토도 머리에 꽂을래? - 됐어, 그런 건……. 너는 남자아이면서 남사스럽지도 않나 보군. - 케이토야말로 아이돌답지 않은 말을 하는구나. 자신을 치장하는 건 굳이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너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고 싶은걸. -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얼마 안 지나서 죽을 녀석처럼. - 케이토. 내가 왜 아이돌이 되겠다고 결심했는지 알아? - 글쎄다, 언제라도 네 녀석 생각을 알 수 있던 적이 있어야지. 갑자 기 아이돌이 되겠다고 한 게, TV에 매일 나오던 그 사람이 은퇴할 즈음 이었나. - 응. 그 사람, 서른도 안 된 나이였지. 너무 젊은 나이에 은퇴한다고 다들 소란스러웠어. 그렇게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이룬 듯이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그리고 사랑받고 있어서, 나는 그때 알아챈 거야. 아이돌이 란 건 사랑받는 직업이기에, 일찍 꺾일수록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거 지. 이 꽃처럼. - ……이렇게 멋대로 한 아름이나 꺾어와 놓고서 좋을 대로 말하는군. 그렇게 죽네마네 하면서, 늙어빠질 때까지 살 셈이잖아. 이런 곳에서 요 양하면 네 증세도 곧 나을 거다. (기침 소리가 났다.) 괜찮아, 에이치? - 저녁은, 조금 춥네. - 몸조심해라. - 응……, 겉옷 고마워. 따뜻하네. 케이토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끊기자 조용해졌다. 케이토는 안경을 거듭 고쳤다. 침묵이 의식될 만큼 길어지기 전에 A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랄까……, 간지럽네요. 제가 이렇게 들어도 되는 건가요?” “역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몇 부분을 추려왔네만……, 듣기 거북한가?”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부분도 들어 보죠.” A군이 짐짓 담담하게 말했으므로 케이토도 말없이 기기를 달칵거렸다. 다시 들리는 두 목소리는 아까보다 선명했다.

#2. - 늦었군, 에이치. - 걱정했어? - 아니. - 눈이 부었잖아. 너는 거짓말에 재능 없어, 케이토. - ……. - 나도 팔이 부었지만……. 이것 봐, 링거 자국이 잔뜩 남았어. 간호사 들 실력이 영 좋지가 못하네. 그만큼 급했던 거겠지만……. - 정말, 제멋대로 쓰러지고 말이다. 너무 걱정하게 하지 마라. 내가 다 수명이 줄어들겠어. - 벚꽃을 보러 가고 싶었는데, 입원해 있는 사이에 폭우가 쏟아졌네. 전부 떨어졌겠어. - 지금이라도 보러 가자. - 별로 보고 싶지 않네……. 바닥에 떨어진 벚꽃은 볼썽사나워. 그렇게 추하게 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 길에 꽃잎이 쌓인 모습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만. - 하지만 비에 젖은 꽃잎은 금방 찢어지고 더러워지지. 케이토, 머리 를 빗겨 줘. 이제 쉽게 빠지니까 조심조심 빗겨 줘. - ……그래.


- 응, 역시 보기 싫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궁금해. 비바람 에 금방 떨어질 꽃은 왜 피는 걸까. 그래도, 꽃이 만개했을 때 본 사람들 은 그 모습을 기억하겠지. 케이토. 내가 죽어도 너는 나를 잊지 않겠지? - 그 소리도 오랜만에 듣는군. 그렇게 멋대로 편하게 떠날 것 같은 대 답은 해주지 않겠어. 살아라. - 나도 그러고 싶어.

“에이치는…….” 재생이 끝난 후의 정적 속에 케이토가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급격히 증세가 악화되어 요양을 가면서, 인생을 녹음하기 시작했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지.” “어째서였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일단 녹음을 더 들어 보지.” 케이토가 작게 웃었다. “미안하네. 이야기가 길어지는군. 사실 정말 여러 파일을 준비했네만, 일단 중요한 것만 듣도록 하지.” “저는 괜찮습니다.” 확인하는 눈짓 후에, 다시 천천히 소리가 흘러나왔다.

#3. - 미안해. 옷이 더러워졌네. - 상관없다. 이런 거 뜨거운 물에 삶으면 금방 깨끗해져. - 케이토, 핏물은 따뜻한 물로 빨면 엉겨 붙어. - 그 정도는, 알고 있어. - 후후……. - 그만 말하고 누워라. 칭얼대지 말고 쉬어. 금방 의사가 올 테니까, 그때까지 눈 좀 붙이고 있어.


- 케이토, 죽음이 뭐라고 생각해? - 그만 조용히 눈 좀 붙이래도. - 그건 싫어. 케이토. 무서워. 눈을 감는 건. - ……. - 역시, 너는 따뜻하네. 있지. 요즘 들어서 조금 생각해봤어. 죽음이라 는 건 지극히 추상적인 관념이 아닐까. 예전에는 심장의 정지를 죽음의 기준점으로 삼았다지. 하지만 심폐소생술이 발달한 오늘에는 이미 옛이야 기야. 지금은 뇌 기능의 정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지만, 그것까지도 되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후후, 일부 멸종한 종들은 수백 년을 넘어서 복 원되기도 하잖아. 나라마다 종자 은행이라는 게 있어……. 꽃의 씨앗을 건조하고, 극저온에서 보관하는 거야. 그렇게 십 년 전에 보관된 씨앗의 90퍼센트 이상이 싹텄다고 해. 그렇게 수 세기를 넘어서, 다시 피는 거 야……. 콜록, 콜록. - 나는……, 네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에이치. - 아, 응. 또 기침이……, 닦아줘서 고마워.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 아서……. - 그래도 말은 잘도 하는구나. 걱정 마, 에이치. 너는 비에 젖은 채로 죽지 않아. 내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아. 편하게, 그래, 그렇게 몸을 기 대고 있어. - 응. 나도 더는 너의 애물단지가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잊히고 싶지도 않아. 그게 언제나 날 고민하게 했지……. - ……조용하군. 잠들었나.

“그래서였겠지.” 케이토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녹화와 녹음은 녀석이 잠든 후 재산과 함께 나에게 양도되었다네. 녀 석은 내가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랐던 거야.” “원망하나요?”


“그렇진 않아. 다만……, 다시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은 있었어. 왜 일구었던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겼는지. 나라면 그 정도 자산을 관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건지. 대체 어떤 마음이었는지…….” “재산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나요?” “당연하지. 녀석은 꽤 현실적이었어. 돈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고, 늘 어딘가에 투자했지. 그럴만한 자금이 있었으니까. 학원 시절 에는 황제라고, 거창한 별명도 있었어. 한 번은 학원 유닛의 이적료로 사 람당 천만 엔을 불렀는데……. 다시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군. 녀석은 아이 같았어. 생각이 많으면서도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그래, 그러니까 녀석은……, 단지 내가 친우이기 때문에 모든 걸 넘겼겠지.” 케이토가 작게 웃었다. “그래……, 이제 이걸 들으면 되겠군.”

#4. - 짜잔, 케이토. 이게 뭐게? - 꾸러미잖아. - 케이토를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야. - 네 녀석의 선물 따위 받고 싶지 않다. - 그렇게 매정한 소리 하면 슬프잖아.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줘. - 상냥하길 바란다면 네 멋대로 굴지 좀 마. - 알잖아, 케이토. 나는 원래 제멋대로잖아? 이거 봐, 사용인들이 별장 에 있던 꽃들의 씨를 거두었어. 베르가못과, 국화와, 작약과……. 몇 묶음 은 종자은행에 개인적으로 위탁할 거야. 몇 묶음은 나와 함께 동면할 거 고……, 몇 묶음은 네가 보관해 줘. 나라고 생각하고, 잊지 않고 가지고 있어 줘. 그리고 내가 깨어나면, 그 꽃을 넣어 차를 우리는 거야. 나는 홍차를 좋아하니까. 네가 좋아하는 녹차에는 향이 어울리지 않아서 아쉽 지만……. - ……제발, 부탁이다, 에이치.


- 들어주지 않을 거야? - ……들어줄게. 알았어. 몇 번이고 들어줄게. 알잖아, 에이치. 나는 너 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했어. 학원에 입학하고, 학생회를 지키고, 이렇게 곁을 지키고……. - 응. 잘 알고 있어, 케이토. - 하지만 너는,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건가? 나는 무섭다, 에이치. 나도, 나도 알아봤어. 그런데 그게 죽음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어. 현재 는 되돌릴 수 없는 기술이 없다면서. 몸에 내동제를 채워도 세포 간 연 결이 파괴되고, 장기에 균열이 생기고, 세포가 독성에 상하고, 먼 훗날에 정말로, 재생할 기술이 생긴다고 해도, 그래도……, 네가 지금 여기서 사 라지잖아.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에 이치. - 곁에 있기 위해서 하는 거야. 더 오래 네 곁에 남고 싶어서. (곧이어 천이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마지막이네.” 케이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스미 케이토 씨. 친구분은 말도 안 되게 제멋대로네요.” “그렇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서 늘 전전긍긍했어. 그런 녀석을 좋아했지…….” “그 후로 괜찮으셨나요?” 케이토가 입을 뗐다가, 다시 닫고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말을 잇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어려서부터 종종 상상했어. 에이치가 죽으면 얼마나 거대한 묘지를 만들까, 장례는 어떤 식으로 치를까……. 우리는 어릴 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거든. 그리고 에이치의 부재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거야. 내가 그때 상상할 수 있었던 건 죽음이 아니라, 단순한 의식일 뿐이었다고.”


이내 케이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나는 그 녀석을 위해 살고 싶었어. 아주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그랬 어. 동정이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항상 녀석을 보호하려고만 들었고, 그 때문에 싸우기도 했으니까……. 어릴 때는 그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네. 녀석은 아마 나보다는 짧게 살 테니까, 그때까지만 녀석 의 꿈을 도와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래서 결국 내 삶의 태반은 녀석이었어. 그런데, 상상할 수 있겠나.” 아까의 웃음이 입가에 남은 채, 그의 얼굴은 기이하게 고통스러운 표 정이었다. “내 삶이, 갑자기 긴 잠에 빠진 거야. 영영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긴 잠에. 괴로웠어. 내 신장, 내 장기를 하나쯤 떼고 세상을 재구축 하는 것 같았지. 감당할 수 없이 괴로워서, 잊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내 앞으로 남겨진 그 에이치의 영상들과 녹음본이 생각났 어……. 그리고 견딜 수 없었어. 에이치의 사생활일 뿐인데, 대부분의 녹 음에 내가 있었거든. 그 순간, 묵직하게 받아들이는 기분이 들었어. 분리 할 수는 없겠구나. 잊을 필요도 잊을 권리도, 잊을 생각도 없는 것을 내 가 잊으려고 했구나.” 그렇게 고백하듯 털어낸 케이토의 얼굴은 기묘하게도 소년 같아 보였 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듣는 상대에게 매달리는 듯한 눈빛 이었다. A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렇다네.” 케이토는 묘하게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한참이 나 말이 없었다. 정적 같지 않은 정적을 먼저 깬 쪽은 A군이었다. “그러면, 이제 제 얘기를 할 차례겠군요. 들어주시겠지요?” A군이 온화하게 웃었다. “창백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또한 고통스러운 세상이었습니다.” 케이토가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가끔 붉은색과 녹색의 빛이 점멸했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


어로 시끄럽게 떠들며 몸을 갈랐습니다. 그런 것조차 그리울 때도 있었 습니다. 그 잠깐을 제외하고는 저는 창백한 세상에 잠겨 있었으니까요. 무엇도 없었습니다. 다만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감각뿐이었습니 다.” 그는 자신의 몸을 흘끗 내려다보고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고통뿐인 세상에서 나 자신을 ‘나’로서 인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 고, 언어를 찾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온몸을 갉작거리는 감 각으로 가득한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눈 물이 나더군요……. 의식은 이상했습니다. 나를 나로 인식하고부터 더욱 이 힘들었습니다. 외롭고 괴로워 눈물을 흘리다, 무언가를 떠올렸습니다. 색과, 노래와, 온기와, 목소리와…….” A군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맑게 파란 눈으로 허공을 보다가 다 시 눈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상하지요. 제 의식은 창백한 세상에서 태어난 것이었는데. 저는 머 릿속에 라디오를 하나 두고 있었어요. 내가 태어나서 겪지 않은 기억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기억은 슬프고, 애틋하고, 황홀하게 근사했어요. 애 달프고 황홀한 기억들이 흘러들어, 나는 덕분에 창백한 세상을 견딜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편지가 있어서.” “아, 나는 친구를 좀 더 일찍 깨워야만 했어. 하지만 무서웠다네…….” “기억하던 그 친구가 아닐까 봐요.”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내가 병에 걸린 것을 알고, 더는 미룰 수 없었어.” “이해합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 “반가워요.” A군은 눈을 반 접어 웃었다. 기억 속의 미소와 꼭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토는 무언가 억누를 수 없는 것을 애써 억누르는 표정으로 꽉 잠


긴 목소리를 냈다.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네. 깨어난 사람들이 모두 이전의 이름을 택 하지는 않는 것을 알아. 하지만 원한다면 텐쇼인 그룹이 자네의 것이야. 오래전에 사망 처리된, 텐쇼인 에이치의 신분을 복원해 주지.” “텐쇼인 에이치는 기억되었나요?” “나는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어. 잠을 잘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목 에 걸려서 잊히지 않는 것이 있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요?” “물론 텐쇼인 에이치는 오래도록 기억되었어. 유메노사키에 재학했던 모두와, TV를 보았던 팬들까지 마음 깊이 애도했어…….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죽었어. 말했잖아,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고.” “그런데도 나를 지금까지 기억해 주었구나……. 무척 기뻐. 고마워, 케 이토. 지금까지, 수고했어.” “아…….” 케이토는 눈가를 눌렀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에이치는 언 제나 그를 그렇게나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아주 어려서 장례식에서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할 때부터, 병원에서 간호사들 몰래 숨어든 이불 밑에서 도,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오랜만에 마주쳤을 때도, 예고 없이 퇴원하고 학생회실에 나타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졸업 후 처음으로 데뷔한 무대 의 백스테이지에서도, 그리고 함께 요양하던 시절, 꽃이 많은 별장에서 도……, 그리고 그 후에는 간혹 녹음된 음성으로 듣던, 그 다정한 부름이 수백 계절을 거치고 수십 해를 돌아 드디어 그에게 돌아왔다. 오래된 빙벽이 녹듯이 억누른 것들이 북받쳤다. 몸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아 참을 수 없었다. “텐쇼인 에이치라면 그렇게 말했겠네요.” 순간 방금 들은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케이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 고 멍하니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제가 과연 누구일까요? 원래 있던 간을 들어내어 다른 사람의 것으로 채워 넣고, 신장을 바꾸고 심장을 바꾸었어요. 손상된 뉴런을 임의로 복


구하여 기억도 지식도 명확하지 않아요…….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 다. 제 머릿속의 라디오 같은 것 덕분에요. 라디오보다는 텔레비전에 가 까울까요. 텐쇼인 에이치가 어떤 사람인지,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 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꼭 포기해야만 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힘을 다했죠. 그리고 그 사실에 스스로 긍지가 있었어요. 그 런 게 그 사람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마음이 들 지 않아요.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탓일까요, 내 출생을 이 시설로 기억 하는 탓일까요. 본디 텐쇼인 에이치가 가지고 있던 것을 찾기 위해 무리 해 노력할 욕심도, 엄두도 들지 않아요. 이런 존재는, 텐쇼인 에이치라고 하기는 무리겠죠.” A군은 케이토를 향해 예의 바르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저만의 삶을 살고 싶어요. 일부 이어받은 것이 있다 해도 텐쇼인 에이치는 하지 않겠어요. 청이 있어요, 하스미 케이토 씨. 저를 잊어주세요. 돌아간 후에는 저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연락도 소식도 듣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후에는 새 이름을 지을 생각입니다, 텐 쇼인 에이치를 기억하는 누구도 알지 못할 이름이요. 당신께 받은 것으 로 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그런가…….” 케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그는 웃고 있었다.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당신에게는 죄송하다고,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한가. 내 이야기가 부담되었겠군. 그래, 나는 정말로 오래 기다렸 어. 에이치와의 약속을 수백만 번도 더 곱씹을 만큼 긴 시간이었어. 그동 안 상상 속에서 아픈 곳 하나 없이 깨어난 에이치와 인사를 하기도 하 고, 나도 함께 젊어지거나,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 둘이 되어서 함께 뛰어 다니기도 했어.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전부 내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 다는 뜻이네……. 자네가 아는 체를 않으니, 사실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 다네. 만약 이제 와서 그 아이를 보아도, 무슨 얼굴로 보아야 할지도 모 르겠고…….”


“그도 그렇겠군요.” A군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나 긴 시간이 지났군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하스미 케이토 씨. 이제는 텐쇼인 에이치에게 작별 인사를 해주세요. 하셔도 됩니다.” 케이토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어 소리 내지 않고 짧게 중얼거렸 다. 입이 움직이는 모양뿐이었지만 A군은 어렵잖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안녕, 에이치. 내게 오래도록 뿌리내린 꽃. A군은 케이토가 다시 얼굴을 들 때까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묵념을 마친 케이토가 말했다. “자네 뜻이 그렇다면, 재산 건에 대해서는 대리인을 보내겠네.” “알겠습니다, 하스미 케이토 씨. 저도 대리인에게 부탁해 놓았습니다.”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가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자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겠네.” “감사합니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케 이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나려던 A군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 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급히 케이토의 이름을 불렀다. “케이토 씨.” “무슨 일인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조문이나 비석을 작성한다면, 텐쇼인 에이치 는 스물두 살에 스스로 동사를 택했다고 적어주세요.” 케이토는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는 그걸 바랐을 거라고, 작은 라디오가 말하고 있어요.” A군이 머리를 검지로 가리키며 작게 웃었다. “그런가……. 알겠네.”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 케이토 씨, 행복하세요.” “……자네도 안녕히 들어가게.” 케이토는 짧게 답하고 저벅저벅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대로 곧장 걸 어서 방을 나오자, 마침내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자 케이토는 발을 멈추


고 벽에 기대었다. 곧바로 나오지 않으면 어떤 표정이나 어떤 행동을 할 지 가늠할 수 없었다. 뒤돌아보니 방금 나온 방은 질릴 만치 새하얬다. 오염이 묻지 않게 관리할 수 있도록, 얼음처럼 창백하게 새하얀 건물이 었다. 케이토는 창백한 세상과 라디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제야 눈물이 흘렀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요절한 추억 속의 아름다 운 에이치와, 에이치가 남긴 아름다운 젊은이가 가슴에 메었다. 또한 기 묘하게도 행복했다. 이제는 그를 기리고, 그를 축복할 수 있다. 드디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 케이토는 아득히 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나는 이 생을 끝까지 너를 위해 살았구나.” 케이토는 환하게 웃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고마워, 에이치. 나는 이 삶에 만족해.” 길고도 긴 기다림에 방금 끝을 고한 것이다.


“고마워, 에이치. 나는 이 삶에 만족해.” 남자는 문가에 귀를 기울이고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문틈 으로 오래도록 귀를 대고 있다가 마침내 발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이내 아주 우스운 것을 참지 못 하는 아이처럼 웃고 말았다. “후후후…….” 그는 계속해서 키득거렸다. 웃다 못해 벽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 았다. 반동으로 팔에 꽂힌 링거가 떨어졌다. 그는 바닥을 더듬거리며 전 동 휠체어 옆에 떨어진 산소호흡기를 주워들었다. “하아, 아직은 안 돼…….” 호흡기에 대고 거푸 숨을 들이킨 그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갈겨쓰듯 서명했다. 상단에는 단정한 글씨로 유언장이라고 적혀있었다. “오늘까지도 조금 고민했어, 케이토. 어쩌면 너를 만나면 살고 싶어지 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는 아까 케이토가 나간 문 쪽을 멀거니 보다가 자조하듯 웃었다. “그런데 역시, 아닌 것 같네. 상상 이상으로 만족스러워서, 또 미안해 서 견딜 수가 없어.” 다시 그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네가 안다면 내게 왜냐고 묻겠지. 네 잔소리는 끔찍하니까 나는 항상 먼저 일을 벌이고, 결국에 들켜서 또 잔소리를 듣기를 반복했지.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잔소리 듣지 않을 거야. 나는 원래 제멋대로였잖아, 케 이토.”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웃던 그는 헐떡거리며 다시 더듬더듬 호흡기를 찾았다. 가쁜 숨 끝에 파란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창백한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흐느낌과 웃음이 구분되지 않았다. “죽은 후의 시간에도 널 정복한 걸로 충분해. 내 죽음에 만족해. 더 이 상 너의 애물단지가 되고 싶지 않아. 이런 몸으로는 살아도 산 게 아니 니까.” 그는 호흡기를 구석에 내던졌다. 그리고 팔에 꽂힌 관들을 힘을 주어


빼어버렸다. 힘이 부족해 나중에는 가까스로 긁어내는 꼴이 되었다. 채 뽑히지 못한 수액이 양팔에 남아 날개처럼 달랑거렸다. 잠시 동안 방 안에서 가쁜 숨소리와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창백 한 눈가에 눈물 자국이 얼음 결정처럼 하얗게 말라붙었다.


텐쇼인 에이치가 동사한 지 수십 해 하고도 몇 달이 지나서 그의 묘비 가 생겼다. 베르가못과, 국화와, 작약이 만발한 정원의 한가운데,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비석이 온갖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꽃 때문에 비석이 잘 보이지 않아서 사람이 손으로 꽃을 헤쳐 놓은 자국이 있었다. 꽃무더기 사이로 보이는 비석의 글귀는 이러했다.

텐쇼인 에이치, 꽃으로 잠들다. 황제 회장 그리움 동경의 이름을 한 사람이 꽃다운 나이에 꽃다운 모습으로 얼다. 눈물도 시신도 없이, 꽃이 하얗 게 지듯이, 얼음이 투명하게 녹듯이. 아름다운 것은 질 때도 아름다운 법 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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