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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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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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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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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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명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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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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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색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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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반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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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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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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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살을 누르는 감각이 생경하다. 서툴러 거칠기까지 한 손길이었 지만 달뜬 공기 속에서는 그것마저도 자극인 듯하다. 손가락이 닿는 곳 마다 점점이 열이 올라 붉어진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이츠키는 움찔거 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정직하고 노골적인 반응이라 오히려 거짓 말 같았다. 여린 살 안쪽에 손을 대자 이츠키는 숨을 흡 들이키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니토, 니토. 그만…….” 내가 한때 이 사람을 신처럼 올려다보았다니. 나즈나는 묘한 기분이 되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긴 눈꼬리 끝 이 붉게 상기된 채, 젖은 눈동자로 애원하는 얼굴은 오히려 상대에게 보채는 것만 같아 보인다. 거울이라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강제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빼는 거야, 이츠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하지만 니토 나즈나는 이츠키 슈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하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정말 안 돼, 스승님? 나, 스승님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즈나는 예전, 발키리 시절에 있을 때 줄곧 그랬듯 눈썹을 올린 채 눈을 크게 뜨고 이츠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는 나쁜 아이구나. 그 시절의 옷을 입고 그때의 얼굴로 스승님을 부르는 자신을 이츠키 슈가 내칠 수 있을 리 없다. 그게 죄책감 때문이든, 혹은 다른 무엇 때 문이든 결과는 확실하다. 이츠키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얼굴을 붉힌다. 웃음이 났다. 쾌감이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찌르고 어깨가 가벼워서 날 아갈 것 같다. 드디어 벗어던졌어. 마냥 착한 아이로 지내는 건, 정말 지긋지긋했어.


1. 토끼

“잘했어, 나즈나. 착한 아이구나.”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니토 나즈나는 말재주는 없어도 충분히 영리했기에 성공의 요령을 알고 있 었다. 일단 한 발짝 빠져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모든 것이 확실해 지는 때에 실패 없이 단번에 해내는 것. 그렇게 하면 온갖 달콤한 것들 이 호박 넝쿨처럼 줄줄이 얽혀서 작은 손안에 굴러들어왔다. 애정, 칭 찬, 인정, 신뢰. 그래서 나즈나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성서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빠짐없이 성가를 부른 이 유는 단순하고 확실했다. 사람들의 웃음이 좋았다. 있는 힘껏 노래를 부르고 나면 사람들이 보여주는 믿음 담긴 미소가 좋았고, 애정에 가득 찬 목소리가 좋았다. 그렇게 해서, 열다섯 해 동안 그럭저럭 행복한 인 생이었다. 나즈나의 방은 언제나 조금씩 어질러져 있었다. 한쪽에는 플레이하 다 그대로 놓은 게임 패드가 있었고, 작은 플라스틱 함에는 모아 둔 캔 배지가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벽에는 키 재기용 줄자가 붙여져 있고 (설마 고등학생이 되면 키가 더 크겠지!), 인테리어나 침구의 색조도 밝 은 톤이라 항상 이래저래 정신없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부모님이 퇴근 하시기 전 시간이면 나즈나는 잽싸게 바닥을 대충 치워놓았다. 애교가 많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집에 들어오는 대로 나즈나부터 찾 아주었다. 그리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메뉴는 무엇일까 상 상하는, 그런 작고 소소한 온기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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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내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남들보다 부쩍 크지 않는 키가 걱정이었고, 토끼가 자꾸 케이지 밖에 멋대로 똥을 싸놓았고,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즈나가 어릴 적부터 예뻐하 시던 나이 많은 목사님 대신 새로 온 젊은 목사가 지휘를 맡았는데, 그 는 꽤나 엄숙하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한 달쯤 전에는 성가 대회가 있 었는데, 나즈나가 대회 날 성가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자 그가 야단을 쳤다. “남에게 자랑하려고 입는 옷이 아니야. 주님께 더 좋은 노래를 헌상 하기 위해서 입는 거지.” “죄송해요.” 물론 나즈나는 남에게 보이려고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사 실은 조금도 죄송하지 않았다. 대회에서 우열을 가리면서 자랑하지 않 는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나즈나에게 그가 덧 붙였다. “요즘 목소리가 조금 걸걸해진 것 같더구나. 네 고운 목소리는 주님 이 너를 사랑하셔서 내려주신 게니까, 그렇게 계속 불경한 태도로 임하 면 큰일이 날지도 몰라.” 당연히, 신 같은 건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쉽게 되지 않는 게 있었다. 현실주의자가 성격을 바꿀 수 없고, 무신론 자가 신을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내 목소리야. 내가 연습해서 갈고 닦은 노래야! 하지만 이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속으로 불평 하다가 눈을 드니 목사가 대답이 없는 나즈나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나 즈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목사님.” 어쨌거나, 어려서부터 남들이 보는 나즈나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 다. 그 믿음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4


“만약에 신이란 게 있어도, 그 사람 같은 성격일 거야.” 혼자 있는 집 거실에서 나즈나는 입을 오물거리는 토끼를 안고 케일 을 먹이며 말했다. “권위적이고, 변덕스럽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아끼다가도 내버려 서 벌을 주고……. 구약성서 속의 신은 그렇잖아. 정말로 인간을 사랑 하기는 하는 걸까? 그런 신은, 있어도 난 그냥 안 믿을래. 그리고…….” 갑자기 짜증이 치솟은 나즈나가 눈썹을 찌푸리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연습해서 갈고닦은 거야, 이 목소리는! 누가 멋대로 앗아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큰 소리도 아니었는데, 깜짝 놀란 토끼가 후다닥 튀어 올라 케이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던 나즈나는 곧 토끼 는 소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토끼는 아직 거실 구석에서 눈을 크게 뜨고 나즈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잘 놀라고, 귀가 커서 소 리에 민감하고, 계속해서 남의 눈치를 살피는 토끼. 나즈나는 다시 조 심스레 다가가 몸을 숙이고 토끼의 하얀 털을 쓰다듬었다. “너도 불쌍하구나.” 그리고 제 입에서 나온 소리에 흠칫 놀랐다. 아니야, 나는 불쌍하지 않아! 나즈나는 흠칫 일어나 몸을 뒤로 빼고, 혼잣말을 들은 사람이 없 는지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벽에 걸린 거울을 마주했다. 나즈나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고 반질반질한 유리면에 하얗게 비친 얼굴을 바 라보았다. 붉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는 자신의 모습은, 정말로 토끼를 닮았다.


2. 천사

이제 공연까지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츠키 슈는 아직 새 의상의 레이스를 뜨고 있었고, 다른 두 사람은 수예부실에서 그 모 습을 그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정은 간단했다. 원래 벚꽃페스 에 참가하기로 했던 유닛의 멤버들이 여자와 놀다가 적발되어 지역 신 문에 실리고 자숙을 선언했다. 그래서 대타로 무대에 설 것을 요청받은 때는, 이미 공연 일주일 전이었다. 물론 이츠키 슈는 완강하게 거절했 다. 하지만 그 능글맞은 양호선생이 완고한 슈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결국 참여하겠다고 대답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만, 너희가 신경 쓸 건 없다. 조금 부지런을 떨면 내 능력으 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이야.” ……라고 말했지만 역시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침묵 을 지키던 나즈나가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스승님……. 레이스 같은 디테일은 생략하는 건 어때? 이제 사흘 남았는데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조용히 해라, 니토. 집중이 흐트러진다.” 이럴 줄 알았지. 나즈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동안 옆에서 미카가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응아아, 스승님. 바빠 보여서 나도 좀 도와줄라 캤는데 이 레이스 엉켜버린 것 같다! 이걸 어째?”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니까! 실패작 같으니. 좀처럼 말을 듣지를 않는구나! 오늘 저녁은 해주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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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안타, 스승님!” 좀이 쑤시는지 슈의 눈치를 보던 미카가, 나즈나가 말을 거는 동안 레이스에 손을 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럴 실력은 못 되는데 말이지. 괜스레 미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나즈나가 대신 사과를 했다. “미안, 스승님. 괜히 내가 말을 걸었지…….” “미안해할 것 없어. 너는 나의 최고의 작품이니까.” 그가 레이스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로 당연하게 이런 말을 하는 데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낯간지럽다. 예전에는 들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던 칭찬 아닌 칭찬에 소름이 돋고 얼굴이 달 아올랐다. 그리고 슈가 얼굴을 들었다. 역시 가장 낯간지러운 것은, 표 정이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마주하면서 이런 표정을 할 수 있는 걸 까? 지금까지 살면서 들었던 모든 칭찬이나 보았던 웃음을 가벼운 것 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표정이었다. “아무튼, 이제 구상이 끝났으니 너희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거다. 둘 다 조용히 하거나 멋대로 나가서 차나 마시고 있거라.” 그렇게 말하고 슈는 옆에 있던 모포를 뒤집어썼다. 그가 극도로 집중 할 때마다 하는 습관이었다. 긴 손가락이 하얗게 빛나는 은사를 들어, 날실과 씨실을 엮고 꽃잎 모양의 레이스를 짜낸다. 길고 얇은 눈꺼풀을 내리깐 채로 집중하는 얼굴이 창백하다. 예전에 성당에서 보았던 마리 아상이 꼭 저런 모습이었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즈나는 고개를 세 게 흔들었다. ‘하지만 스승님은 인간인걸. 신데렐라 이야기 속 요정도 아니고, 인 간이 저 많은 양을 한 번에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무리 스승님이라 도 중간에 타협하겠지.’ 나즈나의 생각에 아랑곳없이 슈는 하염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자세 가 추처럼 굳게 고정된 채로 손가락만이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손 7


끝에서 줄줄이 레이스가 완성되어 나오는 모습은 흡사 기계 같아 보이 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것을 보면 기계라기보다는 차라리 마법 같았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완성된 직물 끝에는 봄의 꽃과 나비와, 하늘과 아지랑이와 온갖 꿈같은 것들이 가느다랗게 빛나는 은사로 그려져 있 다. 나즈나는 넋을 놓고 완성된 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 사람은 그냥 인간이 아니었지.’ 그렇게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자 슈가 나즈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했다. “왜 그러지, 니토? 이 직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냐? 그런 표정은 아닌데……? 뭐, 좋아. 이렇게 고비는 넘겼다만, 솔직히 오늘 저녁까지 는 고생을 좀 해야겠구나. 그러니 사랑스러운 너는 좀 더 나의 창작욕 을 고취시켜 주거라. 자, 예쁘구나.” 슈는 나즈나의 얼굴 위에 방금 온 정성을 기울여 짠 레이스를 베일처 럼 씌우고 웃었다. 눈앞에 희고 반투명한 은빛의 직물이 너울거렸다. 어지러웠다. 어쩐지 머리에 쓴 레이스와 슈의 손을 그대로 내치고 싶었 다. 예쁜 인형 취급받는 것이 답답했다. 가슴이 갑갑할 뿐만 아니라 울 렁거렸다. 아마 아직도 인형처럼 취급받는 게 낯간지럽고 어색해서, 그 리고 또한 그런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노래에 자신감을 잃고 헤매고 있던 나즈나를 발굴해낸 프로듀서이고, 지금의 자신을 만든 창조주이고, 인형의 마스터이고, 신 이었기에. 열여섯에, 니토 나즈나는 처음으로 신을 만났다.


3. 운명론자

노력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가령 자신을 자신이 아닌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대개 수포로 돌아갔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도 니토 나즈나는 어쩔 수 없는 무신론자였고, 현실주의자 였다. 그러니 더욱이 운명론자일 리는 없다. 하지만 그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마치 그 순간이 운명 비슷한 것이었던 듯 생각하게 될 것 같은 감상을 느꼈다. 장미 봉오리가 맺히는 계절이었다. 이른 봄에 급하게 피어난 꽃들은 이미 땅에 떨어졌고, 재빠른 학생들은 그 전에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학원 안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녀석들은 학생회에 들어갔고, 전부터 눈여겨본 유닛이 있는 녀석들은 잽싸게 지원했으며, 아직 일학년인 주 제에 새 유닛을 만드는 대범한 놈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즈나는, 기도 실로 향하고 있었다. 유메노사키는 일단 종교의 자유가 있는 학원이었 지만, 시스템은 영 뒤죽박죽이어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기도실이 한 곳 에 있었다. ‘어차피 진심으로 믿지도 않는데 상관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도실로 향하고 있는 자신이 가장 우스웠다. 들어선 기도실 안에는 십자가와 마리아상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나즈나는 마리아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동안 교회에서 기도해 온 것은 십자가인데, 어째서 그 쪽으로 가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기댈 곳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의 형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 다. 목소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뜻대로 불러지지 않고 낮아지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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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이, 그리고 노래에 묘하게 섞이는 쇳소리가 귀에 긁혔다. 목이 뜻대 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 목소리는 내가 연습해서 갈 고닦은 건데! ……라고 생각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른 흔한 학 생들처럼 아이돌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명함으로 생각하고 놀아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싫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노래 하나만을 믿 고 들어온 학원이었다. 달리 자랑할 재주나, 미리 다른 ‘유닛’의 선배들 에게 인맥을 쌓아둘 붙임성 따위도 없었다. 다만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 있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기도를 통해서 무언가 실제로 이루어지리라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무 의미 없는 무언가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스스로 기도하는 이유 도 모를 정도로 절박한 상태로 들어간 기도실에는, 그날따라, 먼저 온 선객이 있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는 마리아상을,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엄하게도 똑바로 서서 마주보고 있는 남자. 보이는 것은 교복을 입은 뒷모습뿐이었지만 키가 꽤 컸기에 차마 비 켜달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키기를 잠자코 기다렸지만, 남자 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조급함보다도 호기심이 앞섰다. 저 남자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나즈나는 슬쩍 발소리를 죽여 옆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본 남자 의 눈빛은 상상과는 영 딴판으로 절박한 느낌이었다. 기도하는 남자. 그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괴로운 표정인가, 아니면 애틋한 표정인가. 온갖 감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을 한 남 자가, 마리아상보다도 더 인상 깊은 존재감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원래 온 목적도 잊고 그 얼굴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나즈나 쪽을 돌아보았다. 10


“우냣?” 하지만 나즈나보다도 남자가 더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날카로 운 눈을 크게 뜨고 나즈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몇 걸음을 내딛더니, 갑자기 뒤를 휙 돌아서 후다닥 기도실을 나갔다. 나즈나는 완전히 멍한 기분이 되어 빈 기도실에 홀로 남았다. 귀에 잔상처럼 남은 남자의 발 소리만이 방금까지 있던 일이 꿈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 후로 나즈나는 기도실에서 그 남자와 몇 번이고 더 마주쳤다. 그 남자는 원래 과묵한 성격인지 별말이 없었고 기도조차도 하지 않았다. 대체, 기도실에는 왜 오는 걸까? 신경이 쓰여서 쳐다보면 눈이 마주쳤 다. 이쪽을 보던 것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당당한 시선에 나즈나가 지레 놀라 고개를 홱 돌렸고, 마침내는 서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졌 다. 그리고 마주친 횟수가 더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아졌 던 날,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인식하 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를 인정해 말을 걸었던 나즈나는 구원받 았다. 언젠가 그때를 떠올리면서 나즈나가 물은 적이 있다. “스승님은 역시 모태신앙이지?” “전혀 아니다. 우리 집안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전통을 중시하는 쪽이 니……. 교회라고는 크리스마스 때 간 게 전부구나.” “그치만 우린 기도실에서 만났잖아……?” 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화제가 나와도 말만은 청산유수인 그로서는 드문 일이다. 찰나의 정적 후 슈가 대답했다. “마리아를 보러 갔지……. 예전에, 마리아상을 닮은 사람을 알았어.” 대답에서 다소 신경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11


“과거형이네?” “말이 많다, 니토.” 대답은 짧고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그 간단한 대답으로 상대를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임을 빠르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나즈나가 잠자코 입을 닫자 이츠키 슈는 부드럽게 웃었 다. “눈치가 빠르구나.” 기도실에서 곁을 지키던 때부터, 늘 그랬다. 슈와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명석한 사람과 명석한 사람의 관계, 혹은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의 공감대. 더 간단하게 말하 면, 그저 같이 있는 것으로 좋은 관계. 둘은 서로 일부러 의사를 묻거나 생각을 캐묻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의 온기를 느꼈고 상대 가 다음에 할 일을 알았다. 그때도 나즈나가 말없이 기다리고 있자 슈 가 당연하다는 듯이 다음 말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 너를 만났지. 네가 그 사람과 더 닮았더군. 마리아 상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어.” “그러면 왜 계속 기도실에 간 건데?” “그야…….” 잠깐의 짧은 침묵 동안, 나즈나가 머릿속에 예상하는 대답은 이미 하 나로 정해져 있다. 자신이 ‘그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것인지, 바 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즈나는 굳이 그것을 물었다. 그리고 기대는 어긋나지 않고 되돌아온다. “너를 보러 갔지.”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나즈나는 자신에게 말할 것이다. 이 세상에 구 세주는 있었다고.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대칭이 되도록 다듬었다. 12


뺨에는 윤이 나도록 진주 가루, 붉은 눈동자가 더 돋보이도록 분홍 분 을 바른다. 붉은 벨벳과 머리카락을 닮은 금빛 장식, 검은 레이스 띠로 치덕치덕 휘감긴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었다. 평범한 소년이었던 나즈 나 자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곱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차 라리 인형 같았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산 제물 같기도 했다. 그렇 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고 보면, 그 눈이 있었다. 고개를 숙여 한껏 이쪽을 향한 얼굴과, 웃음기 담아 둥글게 올라온 뺨과, 그 위에서 둥글게 휘어 반짝이는 눈매가 있었다, 나즈나가 살면 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종류의 눈빛이었다. 나즈나는 그 눈빛에 이끌려 입을 열고 노래를 부른다. 변성기가 온 목 안쪽이 베이는 듯이 아프다. 그래도 힘을 주어 성대를 울리고 소리 를 낸다. 그렇게 그가 눈짓하는 대로 뒤따르면 소리는 곡조가 되었고 몸짓은 춤이 되었다. 조명에 불이 들어오고 무대장치의 태엽이 돌아간 다. 나즈나가 그렇게 계속 슈에게 집중하는 동안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러니, 이츠키 슈는 온전하게 세상의 신이었다. 두 사람의 안온하게 닫힌 세상의 신.


4. 방조자

짓고, 노래하고, 세우고, 발맞추고. 그렇게 시간은 꿈처럼 지나가 고 계절은 빠르게 바뀌었다. 마침내 뺨이 얼어붙고 쏟아지는 눈송이 사 이로 입김이 하얗게 날리던 날, 스승님이 말했다. “유닛에 새 멤버가 들어올 거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방식 자체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슈는 지시 하고, 나즈나는 따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Valkyrie가, 세 명이라고? 다른 유닛들처럼, Valkyrie도 언젠가 후배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상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 리라고는, 역시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몇 학년이야?” “이번에 들어올 신입생이다. 용케도 입학시험에 통과했더군.” 그 말인즉, 입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점 찍어둔 사람이라는 뜻이 다. 그 완벽주의자인 스승님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 이 신입 생은 굉장한 천재이거나 적어도 온갖 방면에 뛰어난 수재가 분명했다. 흥분과 기대 한편으로, 불안이 스몄다. 너무 굉장한 멤버가 들어와서 내가 뒤로 밀리면 어떡하지? 스승님이 나 같은 건 더 이상 눈여겨보지 않으면 어쩌지? 애초에, 두 사람이 아닌 Valkyrie같은 건 진지하게 생각 해본 적도 없었다. 자꾸만 유치한 생각이 드는 것 같아 나즈나는 발걸 음을 멈추었다. 슈가 뒤돌아본다. “왜 그러지, 니토?” 그 눈빛을 보고서야 다시 안심할 수 있었다. 스승님은 언제나 상냥한 사람이야. 그런 생각을 하거나, 내색을 해서 불편하게 해서는 안 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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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면 나쁜 아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즈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 그러면 혹시 지금……?” “맞아.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거다.” 갑작스러운 말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쭉 두 사람으로 지내온 Valkyrie에, 당장 새 멤버라니.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렇게 복잡한 머리로 한참을 걷고 있는데, 저만치 눈 사 이로 흐릿한 인영이 보였다. 자그마한 인영은 두 사람 쪽을 보고 잠깐 몸을 움츠리더니 도도도 이쪽으로 뛰어왔다. 유달리 하얀 얼굴의 아이 는 달려오기 무섭게 스승님의 등 뒤로 숨더니 얼굴을 배꼼 내밀고 나즈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 보았지만, 분명히……. ‘오드아이?’ “나와라, 카게히라. 어린애처럼 굴지 마.” 그러자 아이는 ― 작은 체구에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어서 헷갈리지 만 소년이겠지 ― 얼굴을 내밀고 나즈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낯선 아이 가 빤히 쳐다보자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스승님이 왜 이 아 이를 선택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양쪽 색이 다른 밝은 색의 눈동자가 인형 같았다. 심하게 말라서 볼품없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런 걸 감안하 지 않아도 고양이 같달까, 묘하게 시선을 끄는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너무 깡마르고 낯을 가려서, 귀엽고 어색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동시에 일었다. 동생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나즈나는 한 번도 형제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둘 다 서로 낯을 가리면 영 어색할 텐데, 친근한 형제끼리는 어떻게 하지? 별명, 별명 같은 걸 부르나? “저, 이름이 뭐야?” “미카……. 카게히라 미카.” “예쁜 이름이네! 미카칭, 미카칭이라고 불러도 될까?” 15


그렇게 물어도 아이는 묵묵부답으로 뚫어져라 나즈나의 얼굴만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러더니만 툭 튀어나와 스승님에게 말했다. “스승님, 여기 남학교라고 안 했나?” “니토라면, 일단 남자아이니까 말이다.” “참~, 내도 착각이 심하다. 잘 부탁합니더, 카게히라 미카입니더. 앞 으로 스승님한테 신세를 지게 됐습니더.” 스승님이 데려왔다니 분명 예쁘장한 인형 같은 아이일 거라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아이가 진한 관서 사투리 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순간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의 Valkyrie는 절대 지금까지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 늘 조용하던 부실이 시끄러웠다. 카게히라 미카는, 단적으로 말해, 실수투성이였다. 쾌활하고 명랑하게 구는 건 좋다만, 산만하고 주의력 이 낮아 비슷한 실수를 거듭하는 타입이었다. 나즈나가 기억하고 있던 두 사람의 조용한 Valkyrie는 이제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 것은 아무 래도 좋았다. 자신을 선뜻 형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미카는 귀엽고 수더 분한 동생처럼 느껴지고, 새로운 분위기에는 맞추면 된다. 하지만 적응 되지 않는 것은 역시 처음 보는 스승님의 모습이었다. “그 상태로 무대에 서는 건 내 눈을 파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어, 카 게히라. 노래가 안 되면 최소한 스텝이라도 맞출 수 있게 만들어라. 그 전에 네 몸에 밴 천박한 품성부터 고치는 것이 먼저겠지만. 앗, 장식을 함부로 건들지 마라, 이 실패작이!” 고향에서 만난 슈가 일부러 권유까지 해서 유메노사키에 입학했다는 미카는, Valkyrie의 무대에 올라갈 수 없었다. 대신 슈의 노성과 짜증을 받아야 했다. 슈가 역정을 내고 혀를 차도 미카는 마냥 환하게 웃으며 응대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16


“미카칭은 힘들지 않아?” “뭐가?” “매일 스승님한테 잔소리만 듣는 거. 너는 고향을 떠나서 여기까지 왔다며. 그런데 스승님은 배려하거나 따뜻하게 대해주지도 않잖아.” “응아, 그야 내가 스승님 기준에 못 미치니까……. 어쩔 수 없지 않 나? 그래도 스승님은, 진짜 천재니까. 이렇게 눈이 휘둥그레지는 무대 를 만드는 예술가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좋다. 내 의 견 같은 건 없어도, 그냥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 그걸로 좋은 기 다.” “그런 건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이상하잖아. 그렇게 막말을 들어도 아무런 불만도 말하지 않고 따른 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스승님은 자기 마음대로인데, 너는 불만 하나 없이 믿고 따를 뿐이고. 어떻게 그렇게 맹목적일 수 있는지…….” 말하면 할수록 덫에 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나즈나는 말 을 뚝 멈추고 말았다. 그러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니토 나즈나? 그리고 머리는 빠르게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스승님이 날 구원했 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천재니까.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고 있던 때, 이 학원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의미를 준 사람이니까. 만약에 스승 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스승님이, 나를 버린다면 어떨까? “나즈나 형, 와 그러노? 안색이 창백하다. 어디 아픈기가?” 심장이 뛰고 속이 메슥거렸다. “미안, 미카칭. 나 조금 속이 안 좋아서, 먼저 가볼게!” 나즈나는 고개를 돌리고 급하게 방을 나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 대체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들고 있던 거야. 17


그러므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슈는 계속 미카를 박대하고 미 카는 주인에게 거역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형처럼 웃고 그리고 그때 마다 나즈나는 움찔거린다.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려 해도 계속 귀에 걸리기 시작하는 언어들이 있었다. 인형 주제에, 나를 따르기만 하면 돼. 나즈나는 그런 말을 들으며 가끔 감히 슈의 말에 반박하고 미카의 편을 드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슈가 역정을 내며 자신에게서 뒤돌아 서는 것까지 상상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거기에서 그만두고 만 다. 슈는 미카를 실패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즈나는 걸작이라고 부 른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면 나즈나도 언제든지 실패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구역질이 날 것 같 았다. 아마 나즈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상도 못 하고 있을 슈가 머 리에 미니햇을 씌워주고 웃는다. “오늘도 아름답구나, 니토.” 나즈나는 웃었다. 입술을 반쯤 깨물고 억지로 웃었다. 그러지 않는다 면 울 것 같았다. “아아, 귀여운 네 모습을 세상의 속물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정 도야!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너는 무대에서 내 뜻대로 춤을 추겠지. 과연 완벽하게 조율된 나의 걸작이야.” 아니야. 나는 원래부터 당신 같은 천재가 아니야. 사실, 죽도록 노력 하고 있고, 언제 실수해서 삐끗할지 모른다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고 보면, 여전히 그 눈이 있었다. 고개를 숙여 한껏 이쪽을 향한 얼굴과, 웃음기 담아 둥글게 올라온 뺨 과, 그 위에서 둥글게 휘어 반짝이는 눈매. 나즈나가 살면서 처음으로 보았던 종류의, 여전히 예쁘고 따뜻해서 뭉클해지는 눈빛. 이 사람만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절대로, 이 사람에게 미움 받고 버림받고 싶지 않다. 만일 그런다면 나는 가슴이 미어져 죽어버릴지도 몰라. 스승님을 18


만나기 전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쓸모없는 아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말할 순 없어. 어떻게든 착한 아이인 척 해야 해. 온통 극단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벌레처럼 떠돌았다. 오후 느지막이 귀가하고 보니 집이 엉망이었다. 토끼장을 뛰쳐나온 토끼가 베란다에 내놓은 케일을 갉아먹고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똥을 싸놓았다. 한숨을 쉬며 가방을 내려놓고 똥을 치우던 나즈나가, 한 구 석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토끼를 보고 버럭 짜증을 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이렇게 굴면 누가 널 예뻐하겠어?”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어뜨렸다. “왜 그러는 거야. 왜……?” 메인 목에 찬물을 꿀꺽 마시고 계속 바닥을 치우다 보니 어머니가 들 어왔다. “어머. 얜 또 밖으로 나와서 하루종일 집안을 돌아다녔나봐! 지금까 지 치우고 있던 거야? 착하구나, 나즈나.” “내가 치우지 않으면요? 착하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니. 착한 아이잖아.“ 나즈나는 그 말을 듣고 어쩌질 못하고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방문에 기대어 주르륵 미끄러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이 칭찬은 사람을 정해진 궤도에 속박하기 위한 족쇄였다. 다른 사람에게 매어 자 신이 원하는 길로 움직이기 위한 굴레였다. 그리고 나즈나는 그 궤도에 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나즈나는 자신이 없는 동안 토끼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토끼장에 자물쇠를 채웠다.


5. 회색분자

목소리를 잃었다. 어느 날 크게 앓은 감기와 함께 목소리가 심하 게 갈라져, 도무지 전과 같은 노랫소리를 낼 수 없었다. 슈가 걸걸해진 노랫소리를 녹음으로 대체하기를 원했으므로 당연히 그렇게 했다. 여 전히 인형처럼 몸에 줄자를 대어 치수를 맞추고, 머리를 자르고, 프릴 을 몸에 둘렀다. 그러나 예전과는 어딘가 다른 기분이었다. 나즈나는 스승님에게 맞추기 위해서 조금씩 자신을 깎아나갔다. 입 을 닫고 불만을 가슴속으로 삭이고 더는 잘 웃지 않게 되었다. 깎아져 빈 곳에 조금씩, 조금씩 물이 고이듯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괴로움과 원망. 그리고 가끔 물이 차올라 넘실거릴 때, 나즈나는 제멋대로 구는 슈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미워. 권위적이고, 변덕스럽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벌을 주는 신.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은 바닥에 떨어진다. 이제는 미워할 수조차 없게 된 채로, 겨울이 찾아왔다. 뼛속까지 시 린 혹한이었다. 세 사람의 비명 같은 불협화음이 뇌리에 박혀 방송위원 회 활동을 시작한 나즈나는 이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믿었던 신은, 왜 멋대로 땅으로 떨어졌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보면 마드 모아젤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슈가 보인다. 그런 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는 미카도 당황스러웠다. 보란 듯 십자가에 못이 박힌 신은 삼 개월이 지나도 부활하지 못하고, 나즈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3학년을 맞았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을 만난 것은 기적이었다. 티 없이 들판을 뛰어다 니는 새봄의 작은 토끼 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은 천재도 아니었고,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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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재주도 없었지만, 순진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유메노사키에 처음 입학했을 때의 나즈나가 아이돌이 되겠 다는 꿈에 부풀어서 환하게 웃었던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그 웃음만 은 지켜주고 싶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노래를 부르고, 웃고, 그리고 이 제야 인형은 제 발로 걸어갈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늘 버림받 을까 가슴 졸이며 두려워했던 신을 먼저 버리는 데에는, 묘한 해방감마 저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만이 남았다. 어두운 과거는 과거에 두 고 오면 되는 것이다. 아직 여러모로 서툴지만 열심인 아이들은 병아리 처럼 나즈나를 믿고 따르고, 작은 일에도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그것 이 좋아서 형을 자처했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었다. 힘들었던 과거 시절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 아이 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마친 후 서로 눈을 맞추며 끌어안을 때는, 어찌나 행복한지! 새봄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웃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마음에 거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니토 나즈나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이야기였으면 좋았을까?” “계속 과거 한탄이나 하려고 나를 부른 거야? 과거에 얽매이는 남자 는 최악이야, 나즈냥. 네가 모처럼 하는 얘기니까 들어주는 거지.” "후회돼. Valkyrie가, 미카칭이, 스승님이……. 두고 온 일기장처럼 자 꾸만 눈에 밟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마음이 무거워져.” 이즈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나즈나에게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너, 착한 아이 콤플렉스야. 뭐가 그렇게 어중간해? 이츠키를 미워하 려고 했으면 끝까지 미워해. 탓하려고 한 부분은 끝까지 탓하면 되잖 21


아. 너는 노력했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서 다른 사람으 로 보일 정도로 자신을 바꿨어. 그런데 아무 쓸모도 없는 죄책감 때문 에 이도 저도 못하겠다고? 뭐가 그렇게 질척질척해? 쓸데없이 착한 척 하지 마. 자. 따라 해봐. 내 탓이 아니야. 나쁜 건 저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이즈미칭처럼 나쁜 아이가 되어서 징계를 받는 것도 좀…….” “아, 정말! 짜증나게.” 이즈미가 버럭 짜증을 부리는 동안 나즈나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일부러 미워하려고 한 건 아니야.” “그래도 원망했지? 그런데, 그게 뭐가 나빠? 알고 있잖아? 이츠키는 사람한테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고, 말도 솔직하게 못 하고, 한눈에 호 감 가는 성격은 아니라고.” “이즈미칭도 성격은 나쁘잖아.” “하, 그래서? 아무튼 네가 이츠키를 미워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게다 가 그 녀석, 네가 미워하든 말든 너에게 위해를 가할 리도 없고. 알잖 아? 이츠키는 네게 해를 끼치는 일에는 감히 손끝도 못 대.” “그게 문제야.” 나즈나는 살짝 웃는 듯하더니, 우는지 웃는지 모를 기묘한 얼굴이 되 어 말했다. “왜 그러는 걸까? 난 혼자서 행복해지기 위해 달아났는데……. 나는 내가 쓸모없어지면 스승님이 나를 버릴까봐 항상 두려워했어. 거스르 면 비난당하거나,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도 움만 받고 있잖아. 차라리 계속 매도당했다면 마음이 편했을까. 이즈미 칭도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이츠키를 좋아하지?” “뭐?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지만 뭐, 싫어할 이유도 없잖 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은 녀석이고.” 22


“왜 나만 그걸 몰랐을까? 곁에 있던 시간은 내가 가장 길었는데.” 오래 지속되는 얘기에 목이 타는지 이즈미가 물을 대충 마시며 대답 했다. "나는 모르지. 너희, 내가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한 관계였으니까. 동 급생인 주제에 서로 스승님이니 인형이니, 보통사람은 이해 못 할 둘만 의 세계여서, 둘이 뭐 그런 건가 했는데. 지금 보면 딱히 그것도 아니었 던 것 같고, 그럼 대체 왜 그런 건데? 아무튼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런 게 눈을 멀게 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즈냥……." 길게 말하던 이즈미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리고 혀를 쯧 찼다. "울지 마. 아, 정말!" 그 말을 들을수록 오히려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둑 터진 듯이 흐르 기 시작한 눈물이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이미 너무, 너무 늦었다.


6. 반역자

한겨울인데도 의상 안쪽에 땀이 흐른다. Valkyrie에서 한창 활동했 던 시절과는 치수가 달라져서, 몸에 꼭 맞도록 재단했던 재킷의 허리가 튿어졌다. 그 정도로 무대에 온 힘을 다하고 말았다. Ra*bits 아이들의 저력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간의 죄책감을 무마하기 위해서일까. 그런 것은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앞장서는 슈를 따라 복 도를 걸으며 나즈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성야의 밤은 불빛투성이라 눈이 시릴 정도였다. 밤이 깊어가는 데 아랑곳없이 교내방송으로 계속 캐럴이 들린다. 슈가 중얼거렸다. “시끄럽구나.” “모처럼 크리스마스인데, 떠들썩한 게 좋잖아?” “흥, 경건해야 할 성자의 탄신일을 세속에서 상업화하여 대중들이 기 성품을 소비하도록 만든 안이한 축제다. 신격을 땅에 떨어뜨린 게나 마 찬가지야.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니 용서해야겠구나.” 그리고 둘 다 다시 말이 없었다. 아직 크리스마스 축제가 한창이라 교정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특히나 수예부가 있는 복도는 더 한적했 다. 빗장을 끄르고 문을 연 슈는 부실의 불을 켰다. 아까 슈가 한 말과 는 다르게, 부실 안은 은빛의 장식을 단 트리와 겨우살이로 소박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있었다. 슈는 트리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나즈나가 얌전히 의자 위에 앉자. 슈는 의상의 재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둔 후 나즈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줄자를 꺼냈다. 슈가 말했다. “많이 자랐구나.” “1cm 정도? 나는 더 자라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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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하지 말거라. 너는 지금도 아름다우니까.” 오랜만에 듣는 낯부끄러운 대사에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줄자가 재 킷 위로 지나가고, 슈는 적당한 위치에 시침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재킷을 벗겨 초크로 선을 긋고 다시 나즈나의 앞에 앉았다. 익숙하게 양팔을 드는 나즈나의 가슴둘레를 재고, 허리둘레를 잰다. 예전에는 매 일 당연하게 했던 일인데, 새삼스럽게 목이 바싹 말랐다. 어쩐지 가슴 이 뛰는 것을 느끼며 나즈나는 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도 슈는 시간이 공백이 없었던 것처럼 의연하게 치수를 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츠키……?”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랬었지. 그렇지만, 이츠키. 누구에게라도 미움이 있는 게 이상하 지는 않잖아? ……라고, 아는 사람이 그랬어. 아마 미움보다 좋아하는 감정이 훨씬 큰 거겠지.” “그러면, 왜……?” 슈가 고개를 들었다. 나즈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많은 질문이 담긴 것을 느꼈다. 본래 두 사람은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는 사이였으니. 그러면 왜 나를 떠났지? 왜 Valkyrie를 탈퇴했고, 그렇게 행동했고, 지금 다시 돌아왔지? 나즈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떠난 걸 후회하지는 않아. 그 덕분에 너와 이렇게 동등하게 마주설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깨달을 수 있는 게 있었으니까.” 나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 단 창가로 향했다. 계속 앉아서 이야 기하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이츠키. 나는 너를 정말 미워했어.” 뒤따르던 슈의 발이 멎는 것을 느꼈다. “너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너는 한때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니 25


까. 내 고통도 즐거움도 전부 너에게 받은 것이었겠지.” 나즈나는 빙글 뒤돌아서, 손을 뒤로 모아 깍지를 끼고 수줍게 씩 웃 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거야. 나의 즐거움도 고통 도 한 사람에게서 받는다는 게,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신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주,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던 말이었다. 슈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고, 다시 천장을 보더니 말했다. “니토. 너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아니, 알아.” 나즈나는 슈에게로 몇 걸음을 더 다가가, 발꿈치를 들었다. 힘을 주 어 바짝 올라간 발꿈치가 금방 아래로 떨어졌다. "안다니까." 나즈나가 붉게 상기된 뺨으로 웃었다. 슈가 언젠가 사랑해 마지않았 던 예쁜 미소였다. "너도, 나를 좋아했지? 사랑했던 사람을 닮은 예쁜 인형이라고 했지 만, 니토 나즈나에게도 아주 조금은 진심이었지?" “나는, 니토.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나를 위로하는 인형으로서…….” 말을 잇지 못하던 슈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즈나의 눈을 보고는, 마 침내 괴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좋아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너에게 더는 괴로운 말을 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 보여줘.” 그렇게 말하고 나즈나는 흘끗 천장을 쳐다보았다. 슈의 눈도 나즈나 의 시선을 따라 위를 향한다. 천장에는 붉은 리본을 맨 겨우살이 장식 이 빛나고 있다. 26


“응? 스승님…….” 슈가 여전히 레이스 뜨기를 좋아하는지, 곁의 선반 위에 짜다 만 넓 은 레이스가 놓여있었다. 나즈나는 그것을 집어 슈의 머리 위에 씌웠 다. 눈앞에 희고 반투명한 은빛의 직물이 너울거린다. 시야가, 서로를 보는 눈빛이 하얗게 이지러진다. 나즈나는 그 레이스 양 끝을 잡아당겨 슈에게 입을 맞추었다. 곧 팔을 목에 둘렀다. 혀와 혀가 얽히고, 입천장 을 긁고, 치열을 간지럽히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입을 떼자 입김이 올랐다. 슈가 숨을 몰아쉬며 짧은 신음을 뱉 었다. “하, 윽…….” 나지막한 신음에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들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였다. “기분 좋아, 스승님? 날, 좋아했다며. 그럼 전에도 이런 상상을 했 어?” 슈는 난처한 표정으로 눈을 피하다 어쩌지 못하고 나즈나를 바라보 았다. 이미 한번 거짓말에 실패한 사람은 어쩌지 못하고 상대의 이름만 부를 뿐이었다. “니토…….” 뺨부터 귀까지 붉게 달아오른 채, 날카로운 눈매를 난처하게 내리깔 고 번들거리는 입술로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색스럽다. 머리가 돌 것 같았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나? 이츠키 슈가, 그 긍지 높은 제왕이 이 런 표정이라니. “왜 대답을 못 해? 날 생각하면서 몽정이라도 했어? 대답해봐, 스승 님. 이츠키. 이상하다. 왜 기쁘지. 스승님, 키스만으로도 이렇게 단단해 졌는데.” 바지 겉으로 부풀어오른 앞섶을 작은 손으로 살짝 쥐자 슈가 읏, 하 27


고 몸을 비틀었다. 나즈나는 지퍼를 내리고 슈의 성기를 꺼냈다. “그만, 니토…….” “응? 꿈이라고 생각해, 이츠키……. 아니, 꿈보다 더 좋은 걸 해줄게. 꿈에서도 이런 건 별로 못 봤을걸? 내 얼굴, 좋아하잖아.” 나즈나는 슈의 앞에 무릎을 꿇고 물건을 입에 물었다. 귀두를 입 안 에 머금은 채, 눈을 내리깔고 혀로 기둥을 핥았다. 할짝거리는 소리가 난다. 결코 익숙한 행위는 아니지만, 입에 문 물건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에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슬쩍 눈을 들어보니 슈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의 입을 막고 있었다. 나름대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래의 반응은 정직해서 얼마 지나지도 않아 완전히 꼿꼿해진 채였다. 상황 자체가 자극이 되는 거겠지. 이렇게까지 하면서 계속 참 도록 놔둘 생각도 없었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자 나즈나는 입술로 귀 두를 힘주어 눌렀다. 슈가 기묘한 숨소리를 몰아쉬었다. 곧 입을 뗐지 만, 발기한 성기에서 흐른 액이 일부는 입가에, 일부는 슈의 의상 위에 묻었다. “니토……, 니토, 미안…….” “그보다, 이츠키. 아끼는 의상이잖아. 벗어두자?” 나즈나는 입가를 슥 닦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부실의 문을 닫아 걸쇠 를 걸고 남은 천 뭉치를 문틈에 밀어 넣었다. 수예부실의 구조라면 아 직 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귀 끝까지 달아오른 채 완전히 힘이 풀린 듯 벽에 기대어 있는 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목에 맨 리본 초커 를 풀고 금장 단추를 차례대로 끌어내렸다.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이라 도 푸는 기분이었다. 하얀 목선과 그 아래의 쇄골이 드러났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곁에서 지냈건만 이 남자의 속살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늘 목까지 꽁꽁 싸맨 모습이었지. 그것을 떠올리며 나즈나는 드러난 목 에 입을 맞추었다. 상대가 흠칫 놀라는 것을 느끼며 가슴을 거쳐 허리 28


까지 지나갔다. 짙은 붉은색 블라우스가 흐트러지고, 그 사이로 흰 가 슴팍과 꼿꼿하게 선 유두가 드러났다. 머리색과 꼭 닮은 분홍색의 돌기 를 만지자 슈는 읏, 하고 낮게 신음했다. 지금의 슈는 마치 자극하는 그 대로 반응하는 물건 같았다. 애무인지 실험인지 모를 서툰 손길을 멈출 수 없었다. 살이 살을 누르는 감각이 생경하다. 서툴러 거칠기까지 한 손길이었 지만 달뜬 공기 속에서는 그것마저도 자극인 듯하다. 손가락이 닿는 곳 마다 점점이 열이 올라 붉어진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슈는 움찔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정직하고 노골적인 반응이라서 오히려 거짓말 같았다. 아까 연 바지춤 사이로 손을 밀어 넣고 여린 살 안쪽에 손을 대자 슈는 숨을 흡 들이키며 몸을 움츠렸다. “니토, 니토. 그만…….” 눈물이 고인 채 애원하는 눈은 오히려 보채는 것 같다. 귀까지 발갛 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 젖은 입술을 달싹거리는 그에게 거울이라 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 내가 한때 이 사람을 신처럼 올려다보았다니.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이렇게나 뚜렷한데. 난 어째서 몇 년이나 몰랐을 까. 버림받을까 무서웠기 때문에? 두려워서, 착한 아이인 척하느라 인 정할 수 없었던 걸까? “여기까지 와서 빼는 거야, 이츠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그런 말은 이제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리한 머리만 먼저 빠 르게 돌아가 나즈나는 눈을 크게 뜨고 슈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안 돼, 스승님? 나, 스승님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예전 발키리 시절에 있을 때 줄곧 그랬듯 눈썹을 올리고 순한 표정으 로 그렇게 물었다. 죄의식인지 무언지 모를 것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아. 나는 나쁜 아이구나. 그 시절의 옷을 입고 그때의 얼굴로 스승님을 29


부르는 자신을 이츠키 슈가 내칠 수 있을 리 없다. 그게 죄책감 때문이 든,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이든……. 슈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얼굴을 붉힌 다. 웃음이 났다. 쾌감이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찌르고, 어깨가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 드디어 벗어던졌어. 마냥 착한 아이로 지내는 건, 정말 지긋지긋했어. “응, 스승님. 이츠키……. 책임져줘…….” 나즈나는 그대로 몸으로 떠밀어 슈를 부실 바닥에 쓰러뜨렸다. 동시 에 옆에 세워져 있던 천 더미들이 넘어졌다. 벨벳과 트윌이, 레이스와 샤무즈가, 온갖 빛깔의 천이 바닥에 흐트러졌다. 슈의 바지를 끌어내리 자 하얗고 매끈한 나신이 얼룩덜룩한 천 사이에 있었다. 나즈나는 그 위로 몸을 포갰다. 이제 거부하는 시늉도 하지 않고 올려다보는 슈에게 입을 맞추며 슈의 배 위에 중심을 비볐다. 금색과 분홍색의 머리카락이 엉켰다. 한참 혀를 얽다가 멈추자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타액이 늘어 졌다. 서로 마주 보는 눈과 눈이 젖어 있다. 나즈나는 몸을 일으켜 걸리적거리는 옷가지들을 벗어 던졌다. 붉은 벨벳과 검은 공단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슈의 다리를 벌리고 성기 를 사타구니에 비비다가, 아래에 손가락을 넣었다. 구멍이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문다. 더는 참을 수 없다. 나즈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빼고 물 건을 머리부터 조금씩 밀어 넣었다. 너무 뻑뻑하고 조인다 싶은 느낌 이, 그대로 잠시 있자 어느 정도 풀렸다. 뜨겁고 좁은 안이 기분 좋아 입에서 단 한숨이 났다. 모든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이츠키……. 역시 처음이 아니지?” 슈는 대답하지 않았다.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나즈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흣…….” 밖에서 계속해서 울리는 캐럴 사이로,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는 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츠키. 나야……. 괜찮아. 아무도 못 들어.” 30


“읏. 니토, 좀, 더…….” “응, 흣……. 나, 이렇게 기분 좋을 줄 몰랐…….” 조이는 내벽이 좋았고, 슈의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좋았고, 입을 벌린 채 더운 숨을 내쉬는 달뜬 모습이 최고로 기분 좋았다. “아, 니토. 니토, 니토…….” 예전에는 이 말이 무서웠는데. 스승님에게 좋을 대로 인형 취급받다 가 또 멋대로 버림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는데, 지금의 슈는 자신의 아 래에서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며 반응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었 다. 나즈나는 허리를 들어 결합부를 올렸다. “보여, 이츠키……? 내 거 야. 내가 네 안에 있어.” “흣…….” 슈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귀두 끝에서 묽은 액이 흐르고 있다. “아, 그것만으로 느끼는 거야……?” 기묘한 쾌감이 몸을 타고 오른다. 나즈나는 더 세게 쳐올리기 시작했 다. 오랫동안 동경하기만 했던 스승님과, 교합하고 있다는 사실이 꿈보 다 자극적이고 몽상보다 황홀했다. 하지만 슈 쪽이 더한 것 같았다. “아, 흣, 니토. 아…….” 캐럴을 배경으로 계속 울리는 신음이 적나라하 고 달짝지근하게 귀에 붙는다. 반쯤 최면에라도 걸리는 기분이었다. “이츠키. 스승님……. 그렇게 좋아? 인형사가. 인형에게. 변태구나 …….” 그렇게 말하자 안이 더 조인다. “정말이네…….” 그 사실에 욕정 하는 나도 마찬가지지. 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 읏……. 흐윽, 응!” 뿌리까지 힘껏 쳐올리자 계속 달뜬 숨을 뱉던 슈의 성기가 꿀렁꿀 렁 액을 뱉기 시작한다. 나즈나는 한손으로 슈의 물건을 꽉 쥐었다. “안 돼, 이츠키. 혼자 가면. 더 이상 배려 없는 건 싫어…….” 그 말에 슈는 거부하지도 못하고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웅얼거렸 31


다. “니토, 제발…….” 하지만, 나즈나 자신도 더는 한계였다. 박는 것이 빨라지고,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머리가 하얗게 달아오른다. 나 즈나는 사정과 거의 동시에 손을 놓았다. 슈가 뱉은 정액이 끈적하게 배 위에 묻었다. 계속 참다가 간 슈는 거의 녹초가 되어 바닥에 늘어져 버렸다. 슈의 안에 토정하고 행위를 멈춘 나즈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기묘하게도, 죄악 감을 느꼈다. 몸이 식고, 한기가 느껴졌다. 창밖에서 들리던 캐럴은 이제 한 차례 를 돌아서 성야를 축복하는 경건한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어질러진 부 실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 데……. 순간적으로 눈앞의 장면이 머리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 다. 그래도 한때 자신의 세상의 신이었던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발을 묶고 옷을 벗겨 땅에 떨어뜨렸다. 늘 강박적으로 정돈해 입던 유닛복이 바닥에 흐트러졌고 슈 본인도 온갖 액체가 묻은 채 엉망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복감과 동시에 죄책감이 일어 당황스러웠다. 돌이킬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방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온갖 잡념이 머리에 몰려드는 동안, 늘 어져 있던 슈가 눈을 들었다. 슈는 어찌할 줄 모르는 나즈나를 물끄러 미 바라보더니, 이내 옅게 웃었다. “니토. 돌아가.”


7. 배드보이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스타페스’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월에 Knights와의 합동 라이브가 기획되었으므로, 리더인 나즈나는 그 다지 쉴 틈이 없었다. Knights 측과 계속 접선하면서 무대에 대해서 의 논하고, 의상을 발주하고 쉬지 못해 지친 아이들을 도닥이고 기운을 북 돋워 주었다. 어느새 부쩍 라이브에 자신감이 붙은 아이들을 보며, 새삼스러운 기 분이 들었다. 처음 만날 때는 누군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어찌할 줄 몰 라 헤매던 아이들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강인해졌을까. 그래도 아직은,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남겨주어야 한 다. 그런 마음이었다. 너무나 정신없이 바빴으므로, 그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바쁜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답 없는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차지할 것 같았 다. 나즈나는 연말에도 계속 무대에 나와 어쩐지 부쩍 의욕이 넘치는 아이들을 코치했다. 하지메의 스텝을 지도하고, 미츠루의 노래를 교정 하고, 토모야에게는 무대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을 때, 강당 저편에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츠키 슈가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 이, 그대로 자리를 피했다. 그러므로 나즈나도 별 반응 없이 다시 아이 들을 돌보았다.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미안, 얘들아. 잠시만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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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착한 아이’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 보 면 그런 생각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싫 었다. 처음 라이브 대결을 했을 때도, 슈를 쫓아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하 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나즈나는 달렸다. 슈가 사라진 쪽으로, 숨이 찰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이츠키……!” 목이 터져라 부르자 슈가 이쪽 을 돌아본다. “이츠키. 이츠키!” 온 힘을 다해 달린 나즈나는 겨우 슈의 앞에 다다라 숨을 헐떡거리며 멈추었다. 슈가 몸을 돌려 나즈나를 바라 본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꼬를 터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금 어떤 표정을 해 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숨을 헐떡이며 다리를 짚고 몸을 숙인 나즈나의 귀에, 슈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상냥한 대사에 싸한 기분이 들었다. 짤막한 그 한마디가 냉정하게까 지 느껴졌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리가 없었다. 얼굴을 벌떡 들 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 할 말도 없었다. 나즈나는 스스로에 게 물었다. 뭘 하고 싶어? 감당할 수 있어? Valkyrie에서 탈퇴해서 새 유닛을 만든 자신이, 전 유닛의 리더인 슈 와 만나기라도 할 셈인가 자문했다. 주변의 의문스러운 시선은 받고 싶 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도 않았고, 혹여나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을 때 지금의 유닛 간의 관계가 지저분해질 것을 생각하 면 그것이야말로 싫었다. 그러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건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슈를 마냥 따르며 초 단위로 스텝을 맞추던 시절보다는 지금 스스로 유닛을 프로듀스하는 것이 훨씬 즐거 웠다.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도 그럴 것이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34


그럼 여기서 다른 뭐라도 더 했을 때, 일어날 일을 감수할 수 있어?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카게히라 미카가 나즈나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 낀 것은, 결코 단순한 까닭이 아니다. 그 아이는 슈를 동경한다. 완전히 슈에게 심취해 있고, 그 감정은 자신 이상으로 깊고 깊은 것이었다. 온 인생을 걸 수 있는, 감히 도전조차 할 수 없을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슈를 지켜서 다시 일으킨 것은 그 아이였고, 슈도 그 아 이 곁에 있기에 지금 굳건하게 설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돌고 돌아, 나즈나의 머릿속에서 도출된 결론은 하나였다. 아. 나는 정말, 한결같이 나쁜 아이구나. “스승님.” 망설이던 나즈나는 겨우 입을 뗐다. 그리고 고쳐 말했다. “이츠키.” 나즈나는 깊이 심호흡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별것 아닌 말이지만, 나즈나에게는 가장 무겁고, 어렵 고 두려운 선언이었다. “나는 정말 나쁜 아이인 것 같아.” 그리고 고개를 들고 보면, 아직도, 그 눈이 있다. “그런 것에 상관없이 나는 너를 좋아했어.”


8. BADBOYS

난데없는 키스였다. 빈 연습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안에 있던 나 즈나가 슈의 팔을 낚아채 바닥에 앉히고는 입을 맞추었다. 기습적인 입 맞춤에 슈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깐 채 응하다 상기된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흣, 응…….” “조용히 해, 이츠키. 남이 듣는다고.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자.” 나즈나가 주머니에 구겨 넣은 콘돔을 꺼내자 슈는 곧 울어버릴 것 같 은 서러운 표정으로 나즈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을 내려다보며 나 즈나는 거칠게 은박 포장을 뜯고는, 곧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던졌다. “저기, 이쯔키. 좋아서 대주고 있으면서 그런 표정 하디 마. 꼭 내가 억지로 하는 것 같아지겨듄?” 그러자 슈는 곧 시무룩한 무표정이 되었다. “흥.” “이츠키, 의외로……. 억지로 당하는 플레이 좋아하는구나…….” “흠.” “좋아하니까 해주고 있긴 한데, 하아, 모르겠다. 이런 거, 너는 정말 괜찮아?” “뭐가 말이지, 니토. 약간의 상상력은 사람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 이 되는 법이다. 폭력에 연루되는 것은 나도 싫다만, 피학의 경험을 통 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게다.” 나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지금 이건, 모른 척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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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얘기가 아니잖아, 알잖아……. 고지식한 사람이었잖아, 스승 님은. 자긍심이니 자부심이니 하는 피곤한 이야기만 하던 사람이었는 데. 이런 관계로 괜찮냐고.” 말을 마치고 잠깐 고민하던 나즈나는 붉어진 얼굴로 빠르게 덧붙였 다. “아니 물론 나야, 싫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보며 슈가 작게 웃었다. “알고 있어……. 니토, 나는 완벽해야 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고, 위기에 굴하지 않고, 긍지를 지키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어야 해. 아 직은 내가 책임져야 할 인형이 있으니까.” 속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인형. 스스로 불편해 걷어차고 나온 자리임 에도 미련이 남고 가벼운 질투가 인다. 이런 게 욕망을 가진 인간의 어 쩔 수 없는 본능이겠지. 나즈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물론 미카칭을……. 버리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아. 두 사람이 행복 해지길 바라는 건, 진심이야. 한때는 카게히라도 Valkyrie를 떠나길 바 랐어. 내 선택이 옳았다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지금은 아니 야. 서로의 길이 다를 뿐이라는 걸 알아. 내게 참견할 자격 같은 건 없 겠지. 하지만 이츠키. 어쨌든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 이건 긍지랑은 좀 거리가 있지 않아? 나는 확인하고 싶은 거야.” “새삼스럽게 구는구나. 설마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세우지 못하는 거 냐? 난 그렇게 부실하게 조율한 기억은 없는데…….” “아냣!” 나즈나가 발끈해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며 슈는 다시금 웃었다. “뭐, 그런 걸 전부 차치해도……” 슈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옆에 걸어놓았다. “애초에 우리는 마냥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그걸 너를 보면서 배웠는데.” 37


그리고 나즈나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 손끝을 할짝였다. “그런데, 혼자서 발을 뺄 거야?” 나즈나는 그만 피식 웃었다. 대놓고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말에 오히 려 마음이 가벼웠다. 상대의 마음을 원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심되었다. “나빴네, 이츠키.” 그러자 이츠키 슈는, 꽃이 피듯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전부터 네게 그 말이 듣고 싶었어.”



2017. 01. 07 D. FESTA 발간 앙상블 스타즈! 니토 나즈나 X 이츠키 슈 팬북 프린트매니아 출력소 글 - 셀라 표지 – CHANT 본문검수 얀몬, 사투리검수 캣시스, 편집도움 핀

※ 이 책은 신분증 검사를 통한 만 19세 이상의 적법한 성인에게만 판매되는 책입니다. 따라서 미성년자가 이 회지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은 신분증 위조 및 대리구매 등의 부당한 방법을 이용해 취득한 것이므로 판매자의 과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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