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발행) 제125호
2020 5,6월호
대구참여연대는 회원의 회비 및 후원금으로만 운영됩니다. 후원계좌 : 대구은행 036-04-000437-9 (대구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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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컷│
부녀가 함께 찾은 6월항쟁 33주년 기념식
<사진 정용태 미디어위원>
04
권두언
함께 가다 │임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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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
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강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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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
‘KAL858기 실종사건’ 의 진실을 찾아서 KAL858기 추정동체 촬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심병철
표지이야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 왼쪽 위부터 고(故)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씨앗 공출>, 고(故) 김화선 할머니 작품 <결혼>, 이어서 왼쪽 아래부터 고(故) 배춘 희 할머니 그림과 고(故) 강경덕 할머니의 그림 피해자가 원하는 사과를 받지 못하는 시대 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그림 하나하나가 서럽고 아프지만 그림으로 승 화된 애잔함이 작금의 시대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위 그림을 그리신 고 김화선(1926~2012) 할머니는 16세에 싱가포르에 끌려가 위안 부가 됐으며 해방 후 무사히 한국에 돌아 왔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수 치심과 자책감에 결혼도 포기하였다. 웨딩 드레스를 입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 던 할머니는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2012년 6월, 8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는 1923년 경북 성주 에서 태어나 1930년대 정신대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됐다. 할머 니는 광복 후 1980년대가 되어서야 고국 으로 돌아왔으나 가정을 꾸리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홀로 살았다. 1997년 경기 광 주 '나눔의 집'에 들어와 같은 아픔을 지닌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다 2014년 6월 8 일 별세했다. 1926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이용녀 할머니는 16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미얀마 양곤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갖은 고초를 겪 었다. 1995년부터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에서 생활하며 일본군의 비인도적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서다가 2013년 8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고(故) 김순덕 할머니는 1921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 간호사 를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 상하이에서 성노예로 억압을 받았다. 이후 남경을 거쳐 1940년 일본군 장교의 도움으로 귀국했 다.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한 김 할머니는 항상 분주하고 부지런해 쉼터의 사령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4년 6월 30일 늘 참여했던 시위 날인 수요일 아침 에 사망했다.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은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달됐다.
김건예 화가
대한항공(KAL858) 사건과의 운명적인 만남│신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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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재개발 갈등, 끝났다고 끝난게 아니다 │장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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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은 지금
[인터뷰] 톨게이트 노동자 문한수님|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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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길에서 만난 그림|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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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평
누가 우리를 대표하는가?| 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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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내부고발과 백래시(BACKLASH)| 차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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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동향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기초의원과 정책 소개 | 백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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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유우파'에 거는 기대 | 김윤상
40
청년시평
청년활동가, 이대로 살아도 괜찮나요? | 조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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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회원
서상민 회원 인터뷰 | 장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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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들여주는 이야기 ‘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의 활약 - 바이러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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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참여연대는 지금 대구참여연대 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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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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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납부명단
│권두언│
함께 가다
임우당 미디어위원장sandal9@naver.com
대프리카의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우리의 여
세워지고 실천되는 것도 기대합니다.
름은「5월을 넘어 6월로~ 6월을 넘어 통일로~」 가되 기를 기대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집콕”시대를 열면서 이제 당연한 것
꿈은 꿉니다.
을 당연하게 누리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항상 사람들과 술과 수다로 삶의
이번 회지에는 날카로운 비판보다, 아픈 사실과 마음
애환을 풀던 많은 이들이 이제는 집안에서 홀로 영화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사실보다 글
와 술을 소비하는 일상의 문화를 저는 적응하지 못하
을 쓴 필자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그 마
는 것인지 밤마다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음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코로나19의 최전방에서 헌신하신 의료진 여러분들, 회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함께 꾸는 꿈” 이 코로
밤낮으로 열일하신 공무원분들, 자원봉사자분들, 그리
나19사태로 우울한 대구사회에 희망소식을 많이 전해
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위생수칙을 지켜주신 시민분들
드리는 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있었기에 대구는 절망을 벗어나 희망을 함께 나누 는 지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설혹 제 2차 대유행이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우리나라를 상징하던
오더라도 함께 이겨내리라고“화이팅” 을 같이 외쳐봅
집단주의 문화가 개인주의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
니다.
으며 비대면 서비스, 급증한 보건방역시스템, 다양한 2020“함께 꾸는 꿈”미디어위원장을 맡게 된 임우당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입니다. 5년동안 고생하신 류영준위원장님, 편집위원 코로나19사태가 종식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으로 녹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언제든지 불
아, 한 자리를 잡는다면 대구시도 일시적 감염병 예
러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방체계가 아닌, 보건과 건강 중심의 자치단체 역할로 전환이 필요해 보입니다. 마침 대구시도 보건건강국
2020 ‘ 125호부터 함께 꿈을 만들어 가실 집필진과
을 신설한다고 하니 이참에 공공의료인프라의 대대적
사무처 활동가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항상 회
확충이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시민들이 자발
원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적으로 참여하는 진정한“대구형 생활방역”정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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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2020 대구민주시민포럼(1)
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정리·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니다. 1997년 IMF 위기 때 우리가 현명하게 대처하 지 못했던 결과 2000년대 들어 저출산, 고령화, 양 극화 등 각종 사회문제에 직면했던 것을 상기해 보 면, 지금 우리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절실한 과제가 있습니 다. 특히 위기를 더 크게 경험하고 있는 대구사회에 서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먼저 이 사태를 어떻게 경험하고 느끼고 계시는지요? 김동은 ■ 한마디로 정말 다행이다 싶습니다. 2월 18
일 대구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 어났습니다. 2,000여명의 확진 환자가 입원하지 못 한 채 자가 대기 했고, 기저 질환자의 사망이 속출 할 때 수천, 수만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지요. 그래도 신속하게 진단, 격리하면서 붕괴까지 가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지금 포스트 코 로나를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직 인 코로 나입니다. 서너달 거리두기하면서 지칠만도 하지만 김보영 ■ 오늘 하필 확진자 수가 70명이 넘고, 추적
경각심을 놓으면 안될 상황이죠.
안 되는 분도 9%나 된다고 하는데요. 확진자 50명, 미추적 5% 이하로 설정한 생활방역의 기준이 무너
엄창옥 ■ 비대면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몰랐는데,
지고 있습니다. 대구가 가장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
이번에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확실히 경험하고 있
에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도전의 상황이 온
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집에서 혼자서 밥 먹고 혼자
것 같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영
서 술 마시고, 혼자서 피시방 가고 하는 경향이 있
화 속 설정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
는데, 전에는‘그렇게 하면 사회생활이 되겠냐’하
지고 있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변화를 체감하 고
곤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렇게만 말할 수 없어졌어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겁
요. 그것이 일상이니까. 비대면의 기저에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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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두려워서 생긴 거리감, 가까움에 대한 두려움이 기
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누리는 또 다른 쾌락 같은 게 있었습니다. 비대면의 근저에는 이 둘이 공존하
강금수 ■ 시민단체도 비대면 활동에 적응, 변화를 모
는 것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색 중인데 온라인 총회, 화상회의를 처음으로 해봤
서 비대면 기업활동이 강화되고 있는데, 이런 경향
고, 예술활동가들은 세계최초 드라이브 스루 공연을
이 보편화 되면 어떻게 되나 사실 좀 걱정입니다.
기획하고 있기도 합니다. 몇가지 느끼는 것은 우
말하자면, 비대면으로 인해서 출근 안 하고 재택근
선 대구시 행정의 무능함이 확실히 검증되었다, 수
무를 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근무시간의 노동강도
십년간 특정정당이 독점하면서 축적된 관료주의
가 더 강해지고, 업무평가도 더 촘촘해지면서 오히
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거고, 둘째는 시
려 몇 시간을 일했는지, 누구를 얼마나 만났는지,
민들의 높은 참여의식과 연대성인데, 장기간 사회적
성과가 무엇인지 더 꼼꼼한 지표로 성과를 평가하
거리두기는 물론이고 대구시민센터가 전국의 시민
게 되면 어떻게 될까 걱정인 거죠. 다른 한편 우리
들의 나눔을 연결해 주었고, 전태일의 친구들은 김
대구사회의 비대면도 염려됩니다. 요즘 느끼는 것은
밥을 싸서 돌봄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타지역 사람들이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대구를 염려
많은 시민,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 연대했지
하면서도 과거 대구의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화되
요. 세 번째는 우리 시민단체들의 정책역량이 많이
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번에 코로나를 극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코로나사태 이전의 정책, 방
복하면서 대구가 세계적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하
식 중에 좋은 것들도 이 상황에서는 별무효과구나,
면서도 대구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코로나를 경험
그러면 더 나은 제안을 해야 되는데 역량이 부족하
하면서 이것이 또 다른 지역주의 형태로 고착되지
다는 거죠. 지금부터라도 지역의 지식역량, 현장의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죠.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만이
활동역량이 만나서 체계적인 연구와 정책개발을 시
아니라 대구시민을 위한 심리적 방역도 필요하다는
작해야 되겠다 싶습니다.
생각이 듭니다. 김보영 ■ 의료시스템 붕괴로 치명적 타격을 입을 뻔 채장수 ■ 대학은 가장 느슨하고 편한 조직인데 지금
했는데 정말 다행이긴 합니다. 그래도 병원 문턱을
대학도 멈춰서 사람이 안 보입니다. 저도 이 상황에
못넘고 사망하는 비극적 상황도 있었는데 의료현장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죠.
러한 비극적 각성의 순간이 처음인가 생각하게 됩 니다. 몇 년 전에 포항에서 큰 지진이 있었고 입시
김동은 ■ 대구 시내에 메디시티 대구 간판이 즐비하
시험이 연기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후 어떻게 변
죠. 그래서 시민들이 보건의료는 걱정 안 해도 되는
했고,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답답하
줄 생각했는데 이번에 확진자가 급증하고 병원치료
죠. 제가 있는 경북대학도 총장선거 문제 등 구조적
도 못 받고 죽는 사람이 생기니까‘아, 이게 아니구
모순 속에서 갈등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봐도
나’하게 된 거죠. 그만큼 공공의료 인프라가 부족
그렇고요. 어차피 닥친 시련이고 비극 중에도 삶이
하다는 것인데요, 대구에 공공병원은 경북대병원
지속되는 것이라면 비극성을 부각하기보다는 이후
을 포함해 10%밖에 안되고 실질적으로는 대구의료
를 대비하고 이런 삶이 더 연장되지 않도록 각성하
원 하나밖에 없습니다. 국립대병원은 사실 민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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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다를 바 없는 게 이번 경우만 봐도 환자들에게
나라들에 비해 모범적으로 하고 있는 건 맞지만, 병
병상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들을 수용한 곳은 대구
상이 있어도 확보하지 못해 집에서 사망한 사람
의료원밖에 없었다는 거죠. 인구 243만 도시에 공
들이 있었고 그 가족들에게도 과연 k-방역이 어떤
공병원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역부족이
의미가 있었는지 짚어봐야 되지않나 싶습니다. 특
었다는 겁니다. 음압병상도 메르스 이후에도 10개
히 대구는 더 심각했는데, 이건 결국 정치적 리더십
밖에 안 되고, 역학조사관이 1명에 불과한 등 공공
문제일 텐데요.
의료 인프라가 너무 부족합니다. 시스템도 문제인 것이 경증환자가 국가지정 음압병상에 수용되니 그
채장수 ■ 한마디로, 정치의 시간이지만 정치가 없는
후 발생한 기저 질환자 등이 집에서, 병원 문 앞에
상황이죠. 정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책임지고 결정
서 사망하는 일이 생겼죠. 경증환자는 의학적 서비
하는 것이고, 위기의 시간이야말로 정치의 시간이
스보다 격리 차원에서 관리하는 건데 경중 가리지
죠. 유명 학자 지젝이 지금은 과학의 시간도, 의학
않고 선착순으로 입원시켰기 때문인데 이런 문제를
의 시간도 아니고 정치의 시간이라 말한 것처럼 누
초기에 지적했는데도 수용이 안 됐고요. 또 하나는
군가 책임지고 결정해줘야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사전준비의 문제입니다. 1.21 서울에서 최소 확진자
과연 대구에 정치의 시간이 있었던가, 책임지고 결
가 생긴 후 2.18 대구 첫 확진자가 나왔는데 그사
정하고 대중들을 설득하는 그런 과정들을 아직 발
이 한달 가량이 골든 타임이었죠. 그 사이 환자가
견하지 못했습니다. 더 보기 힘든 것은 시장이 메디
늘 때를 대비해서 대구의료원의 환자를 옮기고 병
시티가 대구방역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 대선출마를
상을 비웠어야죠. 환자가 하루만에 몇백명 느는게
언급할 때였는데 참으로 무책임한 거죠. 이것은 적
아니니까 500병상이 비어 있었으면 감당이 가능했
이 없는 상황, 경쟁과 성찰이 부족하니까 일상적 비
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준비는 안 하고 확진자 16
정치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로 인한 무능력이 가감
명밖에 안 되는 이튿날 바로 정부지원을 요청하는
없이 노출된 거죠. 그렇다면 행정적 합리성이라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 거죠. 역학조사관이 부족하
있어야 되는데 내부 운전실력마저 없다는 것이고
면 민간역학 조사관이라도 뽑아야 했는데 안 했고,
이는 적이 없는 민주주의의 가장 나쁜 모습이죠. 그
의사 간호사도 확보가 안 됐지요. 총체적으로 문제
런데 더 큰 문제는 본인들이 이걸 모른다는 겁니다.
가 드러난 겁니다. 그런데 지금 대구가 잘했다고 하 는데 이제 1회전을 넘긴 것일 뿐 자찬할 때가 아니
김보영 ■ 이 사태 초기에 대구참여연대도 내부 논의
죠. 지금은 가을에 올 2차 감염을 준비해야 되는데
를 할 때 지금은 방역을 위해 협력할 때니 비판을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병상을 확보하고 인프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상당히 자제를 했
라와 체계를 갖추어야죠. 이제 예전으로 못 돌아갑
습니다. 그런데 대구시 행정의 문제들이 계속 나와
니다. 코로나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만큼 중환자,
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위기상황 극복을 위
사망자를 줄여야죠. 시민사회가 제기해서 시를 움직
해서도 가만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이고, 정부를 움직여야 합니다. 강금수 ■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신천지 발원, 김보영 ■ 요즈음 정부 당국자들을 보면 k-방역에 지
확산될 때 경기지사나 서울시장은 매우 선제적으로
나치게 심취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다른
대응했는데 대구는 난리가 났는데도 전수검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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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늑장 대처로 비난받았죠. 소상공인 자금대출도 제
멸되고 있어 지식인의 한사람으로서 괴롭습니다.
때 안되서 수백미터 줄서는 상황이 연출됐고, 긴급 생계자금도 지원범위가 좁고, 속도도 늦고, 기술
경제문제로 넘어가면, 경제문제의 가장 큰 연결고리
적 결함까지 생겨서 난리를 쳤고요. 지역상품권 문
는 국제분업 다시말해 글로벌 공급망인데 이것의
제도 그런 게 정부 지원이 많고, 시민들 혜택이 큰
붕괴가 파국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데, 그래서 정부가 더 발행하라고 권유해서 대전시
대구경제의 국제공급망 구조를 보면, 수출면에서
등은 4~5천억원을 발행하는데도 대구시는 고작 1
30%가 중국, 20%가 미국, 10%가 일본, 이렇게 세
천억원밖에 안하고 있죠. 거기에다 이런 것을 비판
나라가 60%를 넘게 차지하는데 중국부터 시작된
하는 언론에 대해 엄포를 놓고 고소까지 하고, 확진
공급망 붕괴로 인해 수출이 지난달 27%나 감소했
자가 엄청 많이 나온 시기에도 안하던 마스크 행정
습니다. 이것도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커지기 때문
명령을 생활방역 시기에 내리는 등 일관성도 없고,
에 대구상공회의소 조사에 의하면 상공인 70% 이
민주적 소통도 없고, 선도적 모습도 없는 총체적 무
상이 향후 몇 개월 내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
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치권도
습니다. 특히 대구는 산업구조가 단순해서 기계부품
큰 문제인 것이 적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이 25%, 자동차. 섬유 등인데 이 산업들이 코로나
관료주의가 심화됐고, 기업중심 성장일변도의 정책
에 가장 치명적 타격을 입은 업종입니다. 그래서 고
을 수십년 하다 보니 기본소득 등 비상한 민생대책
용률이 전국평균 65.4%에 비해 대구의 고용율이
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미래통합당은 포퓰리즘 타령
59%로 저조합니다. 특히 대구는 비제조업이 60%가
을 하고, 시장과 소속정당과 입장이 달라 심지어 시
넘는 소비도시라 고용구조가 더 취약해서 소비감소
장이 포퓰리즘 아니니 도와달라고 읍소하는 상황까
율도 23%나 되고요. 역시 핵심은 공급망의 문제이
지 연출되었죠. 매우 걱정스럽고 그런 만큼 총체적
고, 해서 수출의 다변화가 중요한데 그것이 지체되
혁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고 있어요. 경제전망수치 즉 BSI가 대구는 2010년 부터 100%이하였는데 올 1월 73%, 최근에는 43%
김보영 ■ 코로나 사태는 보건의료에 재난으로 다가
로 떨어졌고, 비제조업은 32%까지 떨어졌습니다.
왔고, 극복은 정치, 행정의 문제였지요. 그러나 부
전국평균 50%대인데 대구가 가장 취약한 겁니다.
실한 정치, 행정의 대가는 결국 경제와 노동이 감당
이 엄청난 경기심리 악화는 중국 공급망 붕괴로 인
하는 것이죠. 경제활동이 상당히 경직되었는데 문제
한 것인데, 더 큰 문제는 회복 시기가 불확실하다는
는
점입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이번에 정부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거죠. 특히 지역사회 재난
재정지원을 할 때 고용유지를 전제로 했다는 점입
시기에 나타난 경제문제, 어떻게 보십니까.
니다. 대구기업들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엄창옥 ■ 앞선 얘기를 들으니 경제문제 이전에 정치,
해고인데 이번 위기 때 해고가 많이 없었던 것도
행정이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대구의 큰 문제 중
이런 점 때문인데, 이번 정부의 대응방향이 옳은 것
하나가 비판적 세력의 붕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지만, 보조금으로 고용을 지속할 수는 없는 것이
어떤 지식인들은‘대구 지금 애쓰고 있으니 비판
니, 대구는 이런 점에서 고용유지 정책, 위기 극복
좀 자제해달라’ 고 얘기하는데, 시민들의 정치 다양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겠지요.
성은 높아졌음에도 지식인들의 비판적 역할은 소 -8-
김보영 ■ 경제위기, 지금 어려움도 크지만 이것조차
위한 이동 사회에서는 지역의 역할이 크다는 점 주
태풍 전야의 전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IMF 후 양극화 고령
더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번 사태는 특정 일부
화, 저출산이 심화 되었는데 이번에는 더 나은 사회
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닥친 일이라는 점에서 청
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도 논의 과제죠.
중 여러분의 경험이나 질문도 들어봐야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먼저 향후 공공 보건의료의 정책방향 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윤종화 ■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 이번 사태 초기에
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대구에서 30여년
김동은 ■ 먼저 앞선 질문에 답하면요, 뉴노멀을 말하
시민운동을 했는데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어려움
는데 지금은 뉴노멀을 말할 때가 아니고, 과거로 돌
을 겪고 있는지 자료가 전혀 없었다는 거죠. 멘붕에
아가면 안 되죠. 뭐가 문제여서 이런 사태까지 왔나
빠졌다가 관료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찾아서
성찰해야죠. 앞산에 터널을 뚫었고, 달성공원은 동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어 지원했고 그후 또 다른
물원이 아니라 감옥이나 마찬가지죠. 닭가슴살 키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에게 눈을
려고 24시간 불을 켜고, 화학적 기술을 쓰죠. 이런
돌려 활동가들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지원하는 일을
과정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생기고, 감염되는 것이니
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코로나 이후 과연 달라질
까 결국 인간이 만든 재앙인 거죠. 생명보다 돈을
것인가. IMF 때도 달라지지 않고 되돌아갔기 때문
중시하는 것이 문제고,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죠. 지금 일부 비대면 혁신 활동들도 있지만 사람
화상회의, 좋더라구요. 시간 아끼고, 돈 아끼고, 뒤
들의 오랜 습관이 쉽게 바뀔 것인가. 논의해 봤으면
풀이 술 안 먹고, 다음날 헤롱 안 해도 되고^^ 삶
합니다.
자체가 낭비였죠. 필요 없는 소비를 줄이고 자연친 화적 삶을 선택해야겠죠. 안 그러면 코로나보다 더
도근환 ■ (동구의회 의원) 이번 사태 때 방역통을 메
센 놈이 올 테니까요.
고 동네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기초행 정이 사태 초기에는 방역에, 조금 지나서는 지원에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한다고 하는데 보건소
급급했는데 전반적으로 시스템 없이 상황관리에만
의 경우 직원 증원 없이는 고통만 가중될 뿐입니다.
급급했다는 거죠. 기초단위 공공의료기관은 보건소
보건관리 외 인허가 등 행정적 일도 많고요. 보건소
밖에 없는데 코로나 대응하다보니 일반 건강관 리
부터 역학조사관 배치, 인력확충, 행정업무 감축이
에 공백이 생겼죠. 또 민간의 노력도 많았는데 행정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이번에 정부의 엄청난 지원
과 자원, 역할 분배도 제대로 안 됐고요. 그래서 든
으로 다소간 극복하고 있습니다만 중앙인력들은 현
생각은 시스템 없이 이래도 되는가, 기초단위의 정
장을 잘 모르니까 로컬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치, 기초의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거죠. 지금도
매우 중요하지요. 시장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거
이후 준비가 없는데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
말고, 기초행정을 비롯 감염병, 예방의학, 역학 전
입니다.
문가 등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 로컬 거버넌스가 빨 리 구축되어야 합니다. 공공의료 문제는, 우선 제2
김보영 ■ 광역행정 얘기만 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
대구의료원을 빨리 지어야 하고 동구에 짓는 것이
비대면, 디지털, 네트워크 등 많이 얘기하는데 광범
좋겠습니다. 건강 불평등 지표로 보면 수성구, 달서
-9-
│기획│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구는 괜찮은 편이고, 서구는 대구의료원 확충을 통
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작년에 전국 4곳에 사회서
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데 동구는 열악하기
비스원이 설치되었는데 이번에 특히 대구사회서비
때문이죠. 동구에 3~ 500병상의 의료원을 설립하고
스원이 긴급돌봄서비스를 해서 재난상황에서 방치
여기에는 음압병상, 중환자실, 감염병 전문시설을
된 분들을 보호했는데 그건 잘한 일이었죠. 그러나
많이 넣어서 유사시에는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전환
한편에서는, 확진자가 생기면 자가격리나 입원을 해
해야 합니다. 이번에 정부가 지정하는 권역별 감염
야 되는데 집에 애를 돌봄 사람이 없거나, 노부부나
병 전문병원 유치에 지역 대학병원들이 다 신청했
장애인 가정의 경우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방치
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기존 병원에 시설을
되어 실신하거나 기아 상태로 내몰린 경우, 요양보
확충한다고 해서 유사시에 이 병원들이 감염병 환
호사나 활동보조인이 감염 우려나 자가격리로 방문
자들을 제대로 받을 것인가 의문이기 때문이죠. 동
을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죠. 문제는
산병원만해도 사태가 발생하면 저 또한 다시 일선
이런 일이 어디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파악도 못하
에 나서야 되는데 인공호흡기 등 부족해서 대처가
고 대처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이 매우 두렵
안 됩니다. 의병 즉 민간병원에 기대지 말고 공공병
다는 겁니다. 이 점에서 지역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원이 감당해야죠. 그러려면 대구의료원의 역할을 강
것인데 이런 문제는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도 할
화하고, 제2 의료원도 설립해야 합니다. 지금 대구
수 없는 문제고, 지역에 밀착해 있는 기초 지자체가
의료원은 의료인력 부족으로 있는 병상도 다 활용
해야 할 핵심적 역할이라는 거죠. 문제는, 지역주민
못하는 상황이고, 민간병원의 제도들이 다 들어가서
의 건강과 안전보호는 지방정부가 가장 우선적 역
공공성보다 경영성과를 앞세우고 있죠. 공공병원의
할인데도 이런 역할체계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지방
적자는 착한 적자인데 이걸 시의회 등에서 워낙 닦
자치 역사가 긴 외국 경우 사회적 돌봄이 지방정부
달을 하니까요. 공공병원에 영리를 앞세우면 의료진
업무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장기요양보
이 소신있게 못하고 공공병원 역할을 못하기 때문
험은 건강보험공단, 장애인활동보조 심사는 국민연
에 처우개선, 인력확충 등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공
금공단, 노인맞춤돌봄은 민간기관 이렇게 제각기 나
병원이 표준치료를 통해 불필요한 의료행위, 예산낭
누어 가진 구조입니다. 지자체도 주민에 대한 책임
비도 방지해야 하고요. 나아가 역학조사관 교육기관
성 없이 이런 기관들에게 이관하고, 이관받은 기관
을 세우고, 증원도 해야하고, 중환자 병상이 부족할
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책임을 안 져요. 비책임
때 민간병원을 활용하는 체계도 정비해야 합니다.
성의 카르텔이죠. 각 기관들은 기득권을 뺏기기 싫
프레임 문제도 좀 짚어야 하는데 이번에 특정 종교
고, 지자체도 책임을 떠안기 싫고, 중앙정부도 다
집단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메디시티 대구는 잘
떠맡아 관리하기 싫고... 결국 주민들만 공적보호를
했다고 하는 이런 프레임은 더이상 안됩니다. 외양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정치인들도 문제인
간을 잘 고쳤다고 자찬할 때가 아니고 지금 골든타
게 이런 상황을 잘 이해를 못하니까 정책제안이 수
임 때 공공의료를 확충해야죠.
용되지도 않고, 결정 권한이 있는 정치권에서 결정 을 안 해주니 지방행정도 답답한 상황이 악순환되
김보영 ■ 재난시기에 정책적으로 대응이 안 되었을
는 거죠. 이걸 어떻게 깨뜨려야 하나 고민인데 이제
때 보건의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생하게 말
기초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씀해 주셨습니다. 덧붙여 사회복지를 공부한 입장에 - 10 -
강금수 ■ 제2 대구의료원 말씀을 하셨는데 전적으로
렵고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닥치는 거죠. 공공병원
공감합니다. 해서 이번 기회에 말만 하지 말고 시민
반드시 더 있어야 하는 이유고, 제2 대구의료원 설
서명 캠페인을 하든지 무슨 수를 내서라도 시민운
립에 많이들 동의해주셔서 의사로서 눈물이 날 지
동으로 추진하자는 제안을 드리고요. 이번에 미국의
경입니다. 이제 진짜 시민운동이 나서야 할 때입니
처참한 상황을 보면서 전국민건강보험 등 보편복지
다.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 면 이참에 건강보험료 좀 더 내고 무상의료 수준으
비대면 진료, 원격진료는 제가 직접 시범사업으로
로 보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죠. 이번에 장애
경험했는데요, 울릉도 병원 환자와 화면으로 보면서
인이 자가격리 되었을 때 돌봄인력이 없어서 감옥
이비인후과 진료하는데‘귀를 비춰 주세요, 아 중이
에 갇힌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하다 안되니까
염이네요. 항생제, 소염제 처방해 주면 되겠습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방호복을 입고 직접 돌봄에
이렇게 하는데, 이게 의미가 없어요. 왜냐, 그곳에
나선 일도 있고, 장애인 가정에 생쌀, 생배추를 지
도 전문의들이 있고 그 정도는 의사면 누구나 똑같
원하니까 조리해서 먹지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도
은 처방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도 저에게 진료받
있었고, 맞벌이 가정 애들 경우 하루종일 애를 방치
는 것은 제가 뛰어나서가 아니고 대구 큰 병원 의
해야 하는 고통도 겪었죠. 이런 경우 정부시책으로
사니까 그런거죠. 비대면 진료라는 게 한번 만나서
돌봄체계를 대폭 확충해야 하고요, 직장에서 아플
진료한 후로는 쭉 원격으로 화상진료를 하는 건데
경우 병원에 가면 소득이 줄고 회사 눈치 보이니까
그렇게 되면 지역의 병원이 아니라 아산병원이나
병원도 못 가는 게 현실이니까 이참에 상병수당제
서울의 큰 병원으로 다 몰려서 재벌병원들만 좋아
도도 빨리 도입해야 됩니다.
지겠죠. 그렇기 때문에 의료자본이 지속적으로 주장 했고 벌써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공공
김보영 ■ 저도 역시 제2 의료원 설립 캠페인 제안이
의료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서 왜 이런
깊이 동의 되는데 프레임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재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되요. 지역의 시민, 시골
난 상황에서는 병상을 확보하고 의료서비스를 빠르
의 주민이 굳이 서울의 대형병원 진료를 받을 이유
게 투입하는 등 공공의료 확충이 어느 때보다 중요
가 있나요. 아주 고가의 전문장비가 필요한 전문적
한 상황에서 청와대 사회수석이나 사회정책 하시는
진료 외 대부분은 그럴 필요가 없고, 기본적으로 진
분들이 비대면 의료, 원격진료 얘기를 하는데 충격
료실에서 만나서 직접 얼굴을 보고, 손도 잡아보고,
을 받았습니다. 이거는 의료자본 의료영리화 세력이
대화를 해봐야 이게 진통제가 필요한지 마음치료가
주장한 것인데 공공의료 아젠다가 중요한 시점에서
필요한지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처방할 수 있는 거
이런 프레임으로 가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니까요. 때문에 중요한 것은 주치의 제도입니다. 주 치의가 직접 진료하고 필요하면 대형병원으로 안내
김동은 ■ 2.18 대구 첫 확진자 생기고 비상회의를 열
하면 되고, 화상진료를 하더라도 근거리에서 잘 아
었는데 대구의료원, 동상변원 환자들 빨리 빼라고
는 주치의하고 하는 것이 맞고, 해서 원격진료보다
했어요. 그런데, 동산병원 환자들은 성서 계명대병
주치의 제도가 먼저라는 겁니다.
원으로 가면 되는데 대구의료원은 가난한 중환자가 많은데 다른 병원들이 안 받아줘요. 결국 피해가 어
김보영 ■ 비대면 상황에서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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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해 전 세계가 빠르게 연결되겠죠. 그러나 삶 속의
황이긴 하지만 이 기회를 활용해서 새로운 사회로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생활과 분리된 것보다 지역
나아가야 겠습니다. 청중 질의나 말씀을 더 들어보
중심의 해법, 생활환경 속의 접근이 훨씬 중요합니
죠.
다. 지방자치, 지역 주도성의 문제도 살펴봐야겠습 니다.
시민 ■ 동구에 사는데 공공병원 반드시 필요하고 동
구에 설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구지역의 정치 채장수 ■ 대구의료원 적자는 당연한 데 시의회, 정치
인들도 동구에 병원을 지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
가 이윤논리로 닦달을 하죠. 이게 정치의 문제입니
이는 거 같아 기대가 됩니다. 주치의 제도를 말씀하
다. 공공재의 생산, 유통은 시장이 못해요, 돈이 안
였는데 좋긴 하지만 실현 가능한지 고민했는데 말
되니까. 때문에 공적 부문, 정치의 역할의 중요하
씀을 들어보니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다행입니다.
죠. 공공재는 적자가 나도 해야 되는데, 위기가 오
그런데 주민은 많고 의료진은 적은데 어떻게 가능
면 기댈 곳이 국가인데, 효율성, 이윤논리가 정치영
할지요?
역을 지배하고 있으니 위기 때 기댈 곳이 없어지고, 이후의 삶의 유지될 수 있을지 두려움에 빠지는 거
김동은 ■ 금방은 안되지요. 가정의가 많아져야 주치
죠. 답은 나와 있어요, 코로나 사태 시장논리에 충
의 제도가 되는데 지금 우리나라엔 전문의는 과잉
실했던 국가일수록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고 개인들
이고 가정의는 부족합니다. 일부의 고가의 전문적
에게 전가되었고, 미국에 총기사고가 그렇게 많아도
진료만 전문의가 하면 되는데 지금 전문의가 많고,
규제가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윤논리에 빠진 정치
필요 없는 검사들도 많은데 매우 비싼 고가 장비들
때문이잖아요. 심각하게 각성해야죠. 지역정치 문제
이 한국이 제일 많습니다. 의료과잉으로 이어지고
로 들어가 보면, 제가 가르치는 대학원에 지방의원
있습니다.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면 의료낭비도 줄고
들도 공부를 하는데‘ “여러분은 심부름꾼이 아니고
생활적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조례를 만드는 입법자들입니다”하면,“그게 현실적
한 주치의가 50명의 주민을 담당한다고 하면 외국
으로 됩니까” ’ 라고 말해요. 정치란 정해진 판에서
에서는 50명이 모두 건강하면 수당이 더 올라가기
잘 싸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판을 바꾸는 것도 정치
때문에 아픈 사람이 적도록 관리하게 되고 의료비
입니다. 지금 지방의원들 무슨 힘이 있어 제2의료원
도 적게 드는 것이죠. 지금처럼 진료행위가 많아야
만드나요. 기초, 광역의원들이 결정하고 책임질 권
돈을 더 버는 것과 확실히 다른 거지요. 주치의가
한이 없어요. 그럼, 그것부터 바꾸고 실질적인 권한
마음에 안들면 바꿀 수도 있고요. 1차 의사를 늘려
을 가지고, 실질적인 조례를 만들어야죠. 정치를 포
서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주치의 상담 후 필요하
괄적으로 생각하고, 뭘 바라는지 그걸 위해 뭘해야
면 큰병원 가면 되는 거지요.
되는지 비극적이긴 하지만 지금 정치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 공간입니다.
김보영 ■ 코로나 사태로 사회경제의 위기에 직면했
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은 전조일 뿐 앞으로 파 김보영 ■ 위기는 곧 기회고 지금 정책에 있어서는
고가 더 클 것이라는 건데요, 지역의 사회, 경제, 노
기회의 창이 열렸습니다. 이전에 안 된 것들이 지금
동 어떻게 변화, 전환되어야 할까요
은 될수도 있는 상황이 와 있는 것이죠. 비극적 상 - 12 -
엄창옥 ■ 코로나19 이후 무엇이 바뀔 것인가에 대한
하는 건 환영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뉴딜
담론이 분분합니다. 코로나 대란이 끝나면, 어떤 건
(new deal)이란 국가가 사회와 어떻게 새로운 계약
과거로 돌아가야 되지만 결코 돌아가서는 안 될 것
을 맺가 하는 것인데, 예를들어 최근에 제시되고 있
들이 많습니다. IMF 이후 별로 바뀐 게 없다고 하
는 전국민고용보험은 전형적으로 새로운 계약을 의
는데 사실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요. 예를들어 소상
미하는 거죠. 이전에 이문제가 거론되었다면 이마
공인제도 같은 건 IMF 이후 생긴 노동시장의 붕괴
굉장한 반대에 부딪혔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난하
로 생긴 것인데, 그 이후 정책과 예산이 많이 늘었
게 우리사회가 이를 수용했던 것도 새로운 합의가
지요. 재난 이후 가장 큰 충격은 노동시장이고 재난
일어나는 구조로 가는 거죠. 코로나를 통해 한국자
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을 먼저 공격합
본주의가 변화할 것이고 또 변해야 됩니다. 그런 점
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산업구조의 전환인데, 산업
에서 지금은 국가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과정에 있
구조 전환에 대한 적응 여부에 따라 삶의 질에 현
는 것이고, 그 과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대적
격한 차이가 납니다. 아마도 코로나 충격에 적응하
자율성이 있죠. 때문에 이 문제에 시민사회가 어떻
는 새로운 자본이 형성되고 그 힘이 사회를 좌우하
게 개입하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시
게 되니까 이런 변화에 대한 취약계층의 대응이 중
민주도로 공공의료원 하나 더 짓자, 이런 것도 한
요합니다. 해서, 코로나 이후는 우리사회의 의료 문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제를 넘어서서 사회경제 문제에 주목해야 되는 것 이죠.
채장수 ■ 뉴딜은 자유방임자본주의로 해결될 수 없
는 상황이 왔고 그래서 나온 전환이죠. 코로나도 상 세가지의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데 하나는, 의료재
당한 충격인데 이 위기를 포착하고 전환하려는 정
난, 포항지진 등을 겪고 보니 재난은 모두를 공격하
부의 노력도 중요하고 진일보한 것이라 봅니다. 그
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죠. 대구시 공공의료원
런데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만 위기고 재난
하나 더 만들자고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겁
인가,‘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도 일상은 계속된
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기후 변
다’ 는 말이 있는 것처럼 코로나가 아니라도 비정규
화가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확인
직이 하루 3명 죽어 나가는 사회구조 자체가 재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린뉴딜의 적극적 추진 가
이자 위기라는 거죠. 자연재난과 사회재단 사이에
능성이 높지요. 세 번째는, 자연재난이든 인재든,
어떤 경계가 있을까, 기존의 사회재난은 어떻게 봐
위기 때는 국가를 불러낸다는 건데, 자유주의자조차
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 국가에
도 그렇습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가적 정책을 주도
만 맡겨둘 수 없는 문제고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
한 김종인씨를 불러내는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잖
합니다. 지금 이 사태는 공적 시스템 강화를 유도할
아요. 코로나 이후에는 자본이 국가와 어떻게 결합
것인가 대자본 주도의 원격진료 산업의 강화로 귀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것입니다. 국가가 글
결될 것인가, 성장주의 패러다임의 진보적 전환점이
로벌화된 디지털 산업과 결합하느냐, 앞서 토론했던
될 것인가 4차산업혁명의 도약대가 될 것인가, 공
것처럼 마을 주치의 등 공동체와 결합하느냐가 매
적국가로의 가속기가 될 것인가 감시사회로의 진입
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성격이 중요하
로가 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부가 한국형 뉴딜을 추진
코로나 이후 사회는 다를 것이라고 하는데 구체적
- 13 -
│기획│코로나 사태, 대구사회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으로 어떻게 다를 것인가 없이 막연히 달라지리라
이고, 또 하나는 핵문제, 안전문제를 초래하는 고도
고 기대하는 것은 현상유지나 다름없지 않나 싶고
기술의 위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술혁신도 이런
요, 지금 필요한 것은 코로나이후를 둘러싼 전면적
문제를 극복하기보다 일자리 축소와 양극화 심화로
담론투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갈 개연성이 높고, 정부가 4차산업혁명을 많이 말
언급한 주치의제도, 제2의료원 등도 중요한 담론이
하는데 위험하다는 느낌도 들고요. 이 부분은 전문
죠. 중요한 것은 틈새는 벌어졌는데 이 틈새를 공공
가들이 좀 짚어 줬으면 합니다. 대구를 보면 소상공
의료가 메울 것인지 대자본 주도의 원격의료가 막
인이 가장 많은 도시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소상공
을지는 모르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레디컬
인 복지시책을 미리 대비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
해도 된다, 상상력을 더 크게 동원하고 발언력이 세
을 것이고, 전국민고용보험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해서 이제는 치안의 시간이
중 하나죠. 사실 이런 것들은 특별한 전환도 아닌데
아니라 정치의 시간이 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특별한 것이 지금까지 정치행정, 경제정
국가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책의 주체들이 배제한 길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
시민의 힘이 필요한 것이 예를들면 정부도 공적의
금 대구시가 또 관료, 상공회의소, 대경연구원 등과
료 확충, 전국민고용보험 얘기를 하는데 고용보험과
재난극복 경제전략을 세운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대
원격의료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문제가 있기
구를 이렇게 만든 주체들이 할 수 있을까요, 더 엉
때문이죠. 또 우리가 전반적 지향을 논의하는 것도
망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그래서 대구참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당장의 사회적 약자를 어떻
여연대는 비상거버넌스를 제안했는데요, 정말 실력
게 보듬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있는 학자들, 현장의 활동가들, 여야 정치권이 제대
요. 대구 정치를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상대 없는,
로 거버넌스를 해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
적이 없는 민주주의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이죠.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는 또 아무런 교훈
대의제의 기본은 반응성과 책임성인데 시민의 요구
도 얻지 못하고 과거를 반복하지 하겠지요.
에 반응하고 정책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 런데 이것이 무너져 있는 것이고 이것을 복원하지
엄창옥 ■ 자본주의는 끝없는 경쟁을 부추키면서 성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바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장하려 하겠고, 어쨌든 산업구조는 바뀔텐데 그 방
거죠.
향은 사회구성원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몇 가지 사건은 반드시 일어날 텐데 하나는, 최근
강금수 ■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공
노사정협의회가 열렸는데 ‘고용 유연화’ 문제와
유가 중요한 과제였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지요. 만
‘고용 안정화’문제가 쟁점이었죠. 노동측은 고용
약 그렇게 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겪는 충격은 훨씬
유연화는 절대 안 된다는 강변에 대해 경영측은 해
덜 했을 겁니다. 때문에 그 방향으로 다시 촉진해야
고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면서 반발하고 있는데, 사
하고요.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경제도 국제교역이
실상 이제는 고용 유연화와 고용 안정화 사이의 거
막히니까 한계가 바로 드러났기 때문에 이전에도
대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선택이 중요한 시
내수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과제라고 했는데 역시
점입니다. 두번째는 대구의 산업환경 문제입니다.
그렇게 가야 되겠죠, 현대 산업구조 문제는 하나는
대구청년들이 왜 떠나나,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생태적 위험을 초래하는 것
청년스럽게 일할 데가 없기 때문이죠. 지금 세계적
- 14 -
으로 기업유턴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구는 없어요.
블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묻고 반성하는 공론화 장
정부도 기업유턴 추진하는데 대구도 해야 됩니다.
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정치적 경쟁 상대가 없는 대
그러기 위해서는 데구로 유턴하는 기업이 유능한
구에서는 지식인, 시민단체라도 관주도 공론화가 아
인재를 대구에서 확보해야 하는데, 청년 인재들이
닌 더 넓은 형식의 연대, 비판적 공론의 장을 만들
대구를 다 떠나면 어떻게 대구로 유턴할 수 있겠습
어야 하겠습니다.
니까. 청년이 대구를 떠나지 않도록 대구의 산업환 경을 청년스럽게 전환해야합니다. 그래서 기업고용
김보영 ■ 사회복지 측면에서 좀더 살펴봐야 할 것
문화가 중요합니다. 대구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
중의 하나가 전국민고용보험제도입니다. 경제적 타
하자는 얘기를 많이 하니까 대구시가 겨우 보고서
격이 본격화되면 대량실업 피하기 어려운데 1차 방
만들고 끝을 냈습니다. 기업들은‘코로나로 어려운
어선이 고용보험제도입니다. 근로인구 절반이 고용
데 사회적 책임까지... 안 그래도 비용 높은데 기업
보험의 보호막이 없는 상태니까요. 두 번째 방어선
다 떠난다, 그런 말 하지 말자’ 고 합니다. 기업이
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겨급여인데 재산 날리고,
사회적 책임을 잘하고 시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으
중위소득 30%이하 극빈 상황에서 가족도 없어야
면서 세계적 기업과 경쟁, 연대하는 구조로 가야죠.
되는 것이라 중간이 비어있는 상황이죠. 그런 점에
건강한 기업문화가 있어야 대구 청년들이 대구에
서 전국민고용보험제도는 매우 의미가 크죠. 지금의
남는 거니까 대구시가 주도하고 타협을 이끌어야
사업장별 가입이 아니라 소득기준으로 모든 국민이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글로벌
가입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대통령의 연설
공급체인, 소위 우회생산이 너무 길다는 점입니다.
에도 불구하고 정부내부에서 정책전환의 준비가 안
이 때 일어나는 불안정성을 코로나19 사태로 경험
되어 있고 대상자만 조금 늘리는 정도만 고민하고
했으니까 우회 생산라인을 짧게 하는 게 대단히 중
있는 것이죠. 해서 비어있는 보호막을 채우는 제도
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장치산업은 어쩔 수 없더라
의 도입, 입법을 압박해야 되겠습니다. 한국형 실업
도 마을경제, 공동체경제 등 사회적경제 영역을 확
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이번에 통과됐는데요, 50
대하고 이런 영역이 우리 삶에서 더 많은 부분을
만원, 생겨급여 정도를 지원하는 것이라서 아직도
차지해야 됩니다. 세 번째는 대구도 이제 에너지 전
매우 취약한 실정입니다. 실질적 취업지원도 제도도
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 전환의 대타
필요하고요.
협을 이루는 중요한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런 건 가만히 두면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이번
오늘 많은 토론을 했고, 확실해진 것은 여전히 인코로나
코로나는 단순한 의료의 문제를 넘어 환경의 문제
중이라는 것, 그럼에도 이후의 문제들을 지금부터 치열
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코로나
하게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
19는 에너지 전환의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구시의 정책방향을 잡아 나가기 위한 중요한 제
생각을 정리하면, 준비된 자본은 자기의 길을 만들
안들도 있었고 앞으로도 지속적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어 가면서 돈을 버는데 우리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
는 점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
을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점
니다.
에서 시민들의 느슨한 연대체를 만들어서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대구 정책의 중요한 주체들을 테이 - 15 -
│기획│ ‘KAL858기 실종사건’ 의 진실을 찾아서
KAL858기 추정동체 촬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 심병철 대구MBC
평소 관심에서 우연히 시작한 KAL858기 실종사건 취재 지난해 3월 일본군 위안부 특집 제작을 위해 미얀마를 열흘 정도 방문했다. 대구의 문옥주 할머니가 일본 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미얀마 현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미얀마는 사실 우리 세대에게는 매우 특별한 나라이다. 과거 버마로 불리던 동남아 국가로 KAL858기 실종사건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KAL858기가 안 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11월 29일은 6월 민중항쟁으로 쟁취한 제13대 대통령 직접선거를 2주일 앞둔 때였 다. 온 나라가 선거열풍으로 떠들썩했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학력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사건 직후부터 정부는 북한이 저지른 테러로 단정했고 텔레비전에서는 온통 KAL858기 사건으로 도배되 었다. 대통령선거 바로 전날에는 마유미라는 김현희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입에 재갈을 물고 비틀거리며 탑승계단을 내려오는 그의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은 모두 놀랐다. 그리고 다음날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노태우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피를 제물로 삼 아 정권을 훔친 전두환 군사정권은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인 1988년 대학생인 된 나는 캠퍼스 벤치에서 우연히 주운 대자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건이 안기부에 의한 자작극이라는 주장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KAL858기 실종사건은 내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구MBC의 방송기자가 되었지만, 지역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에 취재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언제가 기회가 되면 꼭 취재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데 이제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대구MBC 특별취재단 본격적인 취재 돌입 취재진은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소와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도 KAL858기와 관련된 내용을 묻고 다녔 다. 그러던 중 현지 코디를 통해 KAL 858기의 엔진을 인양한 어선의 선장이 있다는 의미 있는 정보를 얻 었다. 우리는 귀국하자마자 KAL858기 유족회 지원단 총괄팀장인 신성국 신부를 찾아갔다. 17년째 KAL858 기 실종사건의 진실 규명에 매달린 신 신부는 이미 이 선장을 만나 상세한 조사를 한 상태였다. KAL858기 의 엔진 사진을 보여줬더니 선장은 같은 모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선장도 비슷한 지점에서 비 행기 엔진을 건졌는데 같은 내용의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취재진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취재부장과 보도국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우리가 KAL858기 동체를 찾는 취재를 하고 싶다고 하자 처음에는 놀 라는 눈치였지만 기꺼이 동의해줬다. 지역방송이 다루기에는 너무 규모가 큰 소재이지만 정보만 확실하다 - 16 -
면 엄청난 특종 거리라며 선배들은 의욕까지 보였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이 꾸려진 것이다. 얼마 뒤 특별취재단은 미얀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KAL858기 엔진을 건졌다는 어선 선장을 만나기 위해 양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다웨이까지 날아갔다. 어선 선장은 다웨이 시내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변두리에 살고 있었다. 저인망 어선 선장 생활을 30년째 하고 있는 그는 안다 만 해역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선장의 말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KAL858기 엔진을 건졌다는 곳 의 정확한 좌표 위치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좌표는 천 분의 일 초까지 나왔다. 오차범 위가 5m 이내로 좌표만 정확하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긴 하지만 선장의 말이 맞으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선장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 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예산과 시간이 들어가는 취재인 만큼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 다. 이후 취재진은 한 달 이상 간격을 두고 2차례나 더 미얀마를 방문해 선장을 다시 만났다. 우리가 알게 된 내용이 잘못된 정보일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KAL858기 동체를 찾는 무모한 도전은 이 렇게 시작되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의욕은 앞섰지만 큰 난관에 부딪혔다. 여러 차례 미얀마를 드나들며 현지 수색에 사용할 배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미얀마 정부에 정식으로 KAL858기 수색을 위한 취재 허가를 낼 수는 없었다. 북한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결론이 났고 국제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어서 미얀마 정부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문재인 정부도 수색을 고려했지만 새로운 증거 가 나오지 않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취재진은 미얀마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수색에 나설 배를 몇 달 만에 겨우 찾아냈다. 그리고 첫 수색 일을 KAL858기가 실종된 11월 29일 바로 다음 날로 잡았다. 특별취재단은 수중 촬영에 사용할 수중드론을 구입했지만 가장 중요한 SONA(음파탐지기)를 확보하지 못 했다. KAL858기 동체를 찾는 데는 SONA가 없으면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된다. 수색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데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취재진은 처음에는 KAL858기를 건졌다는 선장의 저인망 어선을 빌려서 그물로 바다 바닥을 훑으면서 동체를 찾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선주가 반대하는 바람에 어선을 빌리는 데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대안으로 겨우 운반선을 빌렸는데 문제 는 해저에 있는 물체를 찾는 SONA가 없었던 것이다. 수색 일은 2주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취재진이 SONA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딱했던지 김성전 씨가 다이빙벨의 주인공인 해난구조 전문가 이종인 씨를 소개해줬다. 김성전 씨는 공군 중령 출신의 전 민항기 조종사로 2004년부터 KAL858기 실종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분이다. 김성전 씨는 이종인 씨와 천안함 사건의 진실 규명 을 위해 함께 고생해 온 사이였다. 김성전 씨의 제안에 이종인 씨는 두말도 하지 않고 수색을 도와주기로 했다. 국내 최고의 해난구조 전문가가 대구MBC 특별취재단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 었다. 언론사 최초로 KAL858기 동체 수색에 나서 2019년 11월 27일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드디어 KAL858기 수색을 위해 미얀마로 향했다. 이틀 동안 - 17 -
│기획│ ‘KAL858기 실종사건’ 의 진실을 찾아서
양곤에서 수색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사고 29일 미얀마 동남부 도시인 다웨이로 갔다. 호텔에 도착하고 저 녁 식사를 마친 뒤 취재단은 수색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수중카메라와 이어진 전선 과 밧줄을 묶는 작업인데 밤새도록 이어졌다. 다음날인 2019년 11월 30일 새벽 5시 취재단은 우리를 기다 리고 있는 배가 있는 항구로 향했다. 2~3시간밖에 자지 못해 다들 매우 피곤했지만, 역사적인 작업에 참여 한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2006년 국정원 발전위원회가 KAL858기 사건의 진상을 규명 하기 위해 수색에 나선 지 13년 만이고 언론사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2019년 11월 30일 미얀마 다웨이.) 특별취재단을 태운 배가 6시간 정도 항해해 목표지점에 다가가자 음 파탐지기에 길이가 10m가 넘는 금속성 물체들이 잡혔다. 직경 200m 안의 해저에 수많은 금속성 잔해들이 있었다. 어선 선장이 준 좌표 위치에 가까이 갈수록 금속성 잔해들이 해저에 흩어져 있는 모습들이 나타났 다. 취재진은 수중드론으로 촬영에 나섰지만, 시속 6노트가 넘는 조류 때문에 해저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 다. 다음날 이종인 수색단장이 기지를 발휘해 무거운 쇠 도르래를 수중드론에 매달아 촬영을 시도했다. 다 행히 54m 해저에 도착한 수중드론이 몇십 분간 촬영을 했지만 특이한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급기야 수 중드론은 동체로 추정되는 잔해를 둘러싼 그물에 걸려 파손되고 말았다. 이틀 예정이었던 1차 수색은 이렇 게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숙소로 돌아온 특별취재단은 촬영한 영상을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살펴본 결과 아주 의미 있는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3초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그물로 둘러싸인 큰 물체를 발견한 것이다. 취재진은 이 물체가 KAL858기 동체임을 확신했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이번에는 KAL858기 동체 촬영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아쉬운 1차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특별취재단은 수중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꼼꼼히 확인했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살펴본 결과 아주 의미 있는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3초 정도밖에 안 되 는 짧은 영상이지만 그물로 둘러싸인 큰 물체를 발견한 것이다. 취재진은 이 물체가 KAL858기 동체임을 확신했다. 특별취재단은 수중드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특수 수중카메라를 준비했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2차 세계대전 때 필리핀에 침몰한 일본 군함을 수심 200m 해저에서 촬영한 적이 있다. 이 수중카메라는 바로 그때 사용했던 장비이다. 이종인 단장은 이번에는 KAL858기 동체 촬영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자 신감을 보였다. 5전 6기 만에 KAL858기 추정 동체 촬영에 성공하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특별취재단은 다웨이 공항에 내렸다. 다음 날인 2020년 새해 첫날, 2차 수색을 위해 다시 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음파측정기를 이용해 10m 이 상 되는 물체를 4개나 확인했다. 그중에서 길이가 30미터 정도 되는 동체 추정 물체의 높이가 10m 가까이 나 됐다. 취재진은 특수 수중카메라를 물속에 넣어 직접 촬영에 나섰다. 촬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 중카메라가 해저에 닿으면서 진흙이 묻는 바람에 렌즈 앞을 가리면서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이종인 수색 단장이 궁리 끝에 높이 1m 20cm 정도의 틀을 만들어 수중카메라를 위쪽에 수평으로 매달았다. 틀 다리도 장애물에 걸리지 않게 썰매날 모양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수심 50여m 해저에서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잔해들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성벽처럼 우 - 18 -
뚝 솟은 큰 물체와 엔진 모양의 둥근 물체를 비롯해 수많은 잔해를 찍을 수 있었다. 어선 선장의 말대로 이 물체들은 온통 수많은 그물에 감싸여 있었다. 하지만 이 잔해들이 KAL858기의 것인지 식별할 수는 없었다. KAL858기 동체인지 알려면 잠수사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곳곳에 그물이 흩어 져 있어서 잠수사가 내려가면 그물에 걸려 사망사고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취재진은 너무나 안타 깝고 답답했다. 자신만만했던 이종인 수색단장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수색 마지막 날에는 수중카메라 틀이 장애물에 걸려 꼼짝도 못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카메라를 회수하지 못하면 2차 수색은 완전히 실패로 돌 아가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우리를 인솔했던 잠수사를 바다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틀이 그물에 걸린 지점은 수심 30m 정도니까 잠수사가 수중카메라의 틀과 연결된 줄을 타고 내려가서 장애물과 얽힌 그물의 밧줄을 끊고 올라오면 된다. 그렇지만 혹시나 일이 잘못되어서 잠수사가 그물에 걸리기라도 하면 정말 큰 일이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가슴을 죄어오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5분이나 지났을 까? 수중카메라가 찍은 화면에 잠수사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는 계획대로 틀과 엮인 그물의 밧줄을 끊고 유 유히 수면으로 올라왔다. 모두들 환호했다. 이런 기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색 마지막 날을 수중카메라를 회수하는데 다 보내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33년을 기다려왔던 유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취재진은 수색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수색을 하루 만 더 해보기로 했다. 2차 수색 넷째 날인 2020년 1월 4일, 특별취재단은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안다만 해역으로 나섰다. 다행 히 이날은 파도도 잠잠하고 자연광도 매우 좋아서 수색을 시작한 이래 수중촬영하기 가장 좋은 날이었다. 마침 하늘 위로 여객기 한 대가 유유히 지나갔다. 33년 전 KAL858기가 지나갔던 그 항로이다. 순간 당시의 비극이 머리에 떠올랐고 우리는 더욱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배가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바로 수중카메라를 바다에 내렸다. 바닷속은 잠잠했지만 역시 (수중) 촬영은 쉽지 않았다. 수중카메라가 858기 추정 동체를 둘 러싼 그물에 계속 걸렸다. 취재단은 점점 초조해졌다. 시간은 자꾸 흘렀고 철수 시간은 1시간 30분밖에 남 지 않았다. 허탈했다. 모두들 절망에 빠진 그 순간 하늘은 우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수중카메라가 KAL858기 추정 동체의 엔진과 날개를 포착한 것이다. 누가 봐도 비행기의 엔진과 날개가 분명해 보였다. 어지럽게 쌓인 거대한 인공 구조물들 사이에서 둥그렇고 단단한 무언가, 그리고 그 위로 이 어져 길쭉하게 뻗은 물체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종인 수색단장은 배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 닌 틀림없는 대형 여객기라고 단정했다. 이 지역에 여태까지 KAL858기 이외에는 떨어진 게 없으니까 이거 는 858기 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취재단은 이밖에 큰 대야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둥근 형체의 물체 와 기계나 부품 같은 작은 물체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도 촬영했다. 대구MBC가 촬영한 동체는 KAL858기가 거의 확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귀국 후 항공 전문가 여섯 명을 상대로 촬영한 영상이 KAL858기가 맞는지를 확 인했다. 5명은 KAL858기라고 말했고 1명은 대형 여객기라고 대답했다. 특히 날개와 엔진을 연결하는 장착 대인 파일론의 모양이 KAL858기의 기종인 보잉 707과 같다고 했다. 추정 엔진은 카메라에서 8~10m 정도 거리에서 촬영됐는데 취재진은 이 엔진의 크기를 측정해 봤다. 같은 수중카메라로 수중 풀에서 8m 떨어져 - 19 -
│기획│ ‘KAL858기 실종사건’ 의 진실을 찾아서
KAL858기의 엔진 지름인 1m로 원형 고리를 만들어 촬영했다. 그 결과 858기의 엔진인 P&W JT3D-3B의 지름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사고 자료도 일일이 확인했다. 대구MBC가 촬영한 지 점에 추락한 항공기는 KAL858기 이외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추정 동체가 KAL858기가 아닐 가능성은 극히 적지 않을까? 대구MBC는 2020년 1월 23일 서울 뉴스데스크 시간에 톱뉴스로 40분 동안 KAL858기 추정 동체 촬영 소 식을 전했다. 이튿날도 톱뉴스로 전국 방송으로 20분 정도 보도했다. 33년 만에 나타난 KAL858기 추정 동 체의 모습에 전 국민이 놀랐다.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KAL858기 실종사건에 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커졌다. TV조선을 비롯한 전 거의 모든 매체들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KAL858기 유족들도 예상하지 못 한 반가운 소식에 모두들 눈물을 글썽였다. 비행기의 날개와 엔진이 분명해 보이는 영상에 유족들은 이제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유족들은 취재진의 손을 몇 번씩 꼭 잡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 다. 그동안 국가는 직무를 잊었고 언론은 유족들을 외면해 왔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33년 동안 시신조차 못 찾은 유족들이 왜 이런 말을 해야만 하는가?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지난 3월 초 다시 미얀마 안다만 해역을 찾았다. 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 해서 3차 수색에 나선 것이다. 이번에는 KAL858기의 또 다른 엔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2차 수색 때 촬영된 엔진은 날개와 연결된 것이지만 이번 것은 밑 부분이 크게 깨어진 채 홀로 떨어져 있었다. 지난번 수색에서 촬영된 엔진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찍혔다. 취재단은 여객기의 객실과 화물칸이 있는 주 동체도 촬영했다. 비행기의 외피와 외피가 압력에 휘어지는 것을 막는 스트링거, 화물칸과 객실을 나누 는 보와 지지대, 세로대와 같은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대구MBC가 추가로 촬영한 영상을 보고는 KAL858기가 확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33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을 숨기는 세력이 있다. 취재진은 촬영한 KAL858기 추정 엔진의 영상을 대한항공 측에 공문을 보내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 족 대표들과 함께 대한항공 사옥까지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들도 피해자라 면서 확인해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호순 KAL858기 유족회장은“언론이 대한항공 비행기를 찾아 줬 는데 감사해야 할 일이지 왜 이런 식으로 협조하지 않느냐” 고 강하게 항의했다. 마이동풍이었다. 대한항공 은 유족들의 염원을 철저히 외면했다. 대한항공 소유의 항공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어렵게 촬영해 왔는데 왜 이들은 반기기는커녕 불편해하는 것일까? 취재진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도 공문을 보내 KAL858기 기종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적극적인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담당자는 이미 테러 사건으로 결 론이 났기 때문에 인양과 재조사는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유족들이 KAL858기 동체 인양을 요구할 때 가장 반대했던 곳이 바로 국토교통부였다. 국토교통부는 (당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동체만 찾으면 인양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발뺌을 했다. 그런데 정작 KAL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해 오니까 지금 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KAL858기 실종사건은 폭파범이라는 김현희의 자백에 의해 북한의 테러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김현희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떠한 물증도 없다. 김현희는 폭발물이 든 비닐봉지를 여객기 객실 선반에 두고 내 - 20 -
렸고 그것 때문에 KAL858기가 폭발해 추락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시한폭탄으로 사용했다는 소형 라디오 에는 콤포지션 C4 폭약 350g이 절반도 들어가지 않았다. 폭파전문가들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라며 김현 희가 진짜 폭파범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사건 발생 2주일 뒤에 미얀마 화물선에 의해 발 견된 KAL858기의 구명정에는 어떤 폭파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김현희가 두고 내렸다는 폭발물과 불과 5 m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말이다. 또 1990년 3월 태국 어선이 인양한 KAL858기 동체에서도 폭파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구MBC 특별취재단은 KAL858기 동체 수색 이외에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취재도 병행했다. KAL858기 실종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참여정부 당시 출범했던 국정원 발전위원회의 민간조사관들을 접촉해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직접 썼다는 조사관은 취재진에게 놀라운 사실 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는 실종사건 당시 미국 CIA와 안기부가 김현희 일행의 행적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언급하면 나중에 국정원이 정보협조를 받을 수 없 기 때문에 보고서에는 담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이 사건을 선거 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무지개 공작 수준이 아니라 안기부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최소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이런 사실을 숨겼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사실은 국정원 발전위원회가 보고서에서 안기부가 사전에 김현희 행적을 몰랐다고 기록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취재진은 사건 발생 바로 전날 아부다비의 한 식당에서 아랍에미리트 주재 한국대사관의 고위공무원 A씨 가 KAL858기 부기장을 만나서 긴급 시 신호 방법 등을 물은 사실도 확인했다. 유족이 이런 사실을 수상히 여겨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협박을 했다. 자식들을 생각하면 조용히 사는 게 좋을 것 이며 언론에 절대로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취재 결과 A씨는 김현희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했고 검거에도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나중에 외교부의 최고 직위인 대사까지 오르기도 했다.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숨겨야만 하는 진실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KAL858기 실종사건은 20세기 한국 역사의 최대 미스터리이자 항공사고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로 기록되 고 있다. 단 한구의 시신도 돌아오지 않았고 사고원인은 아직도 의혹투성이다. 33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아 직 바다에 묻혀있고 115명의 탑승자는 안다만 해역에 수장되어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들을 외면해 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낯선 이국의 바다에 수장된 KAL858기를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 비행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동체를 인양하 면 거짓은 금방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히 재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철저히 역사에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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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KAL858기 실종사건’ 의 진실을 찾아서
대한항공(KAL858) 사건과의 운명적인 만남 ‘버리지 못한 약속’ 신성국 신부, 대한항공858기 사고 탑승희생자유족회 고문,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
2003년 5월 진달래가 만발한 어느 봄날, 저는 대한항공 858기 사건 탑승희생자 유족들과 만남을 통해 기 나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부터 이 사건과 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고 햇수로 어언 18년 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유족들과 처음 만나고 헤어지면서 굳게 약속했습니다. “제가 당신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오랜 세월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아픔, 그리고 진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제 양심을 움직였고, 그 이후 진상규명의 깃발을 들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태껏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아주 위험한 활동이었으며 분단 상황의 현실 과 이념적 갈등이 심각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진상규명 활동에 뛰어든 순간부터 국정원의 협박과 회유, 방해 공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했습 니다. 손을 떼라는 강한 압박이 국정원으로부터, 교회 내부로부터, 청와대로부터 전방위적으로 조여오면서 제 삶의 하루하루는 긴장과 갈등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고, 초심을 잃 지 않고 흔들림없이 행동하였습니다. 저를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한 유일한 힘은‘어머니들과의 약속’ 이었습니다. “만일 나마저도 유족들을 외면하고 이 사건에서 손을 뗀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그때까지 수많은 시민단체를 찾아가 호소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마지막으로 작은 시골 성당의 신부를 찾아와 호소하는 상황이었는데, 만일 나마저 외면한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절 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18년간 이 사건을 놓지 못한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둘째,‘진실을 끝까지 찾는다.’저는 시간만 나면 관련 자료를 찾고,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한걸음 한걸 음 진실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 22 -
셋째,‘안다만 사고 해역의 수색 필요성’ 이었습니다. 비행기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누구도 동체를 본 적 이 없고, 단 한구의 시신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안다만 사고 해역 어딘가에 남아있을 동체 잔해들, 유해 들이 있다면 반드시 수색을 하고 재조사를 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표가 끝까지 이 사건에서 손을 떼지 못한 동아줄이었습니다. 2020년 대구 MBC 방송 특별 취재팀이 연초에 안다만 해역에서 추정 동체 발견에 성공하였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으면서 저는 꿈인지 생시인지, 충격과 동시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33년전에 남의 나 라 바다에 추락한 비행기를 찾는 일은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구 MBC 특별취재 팀은 무모한 모험을 시도했고, 지혜롭고 용기있는 행동을 펼치면서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대구 MBC의 수색 성공으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은 유해 수습을 통해 희생자들을 모셔와 제사를 지내고 싶어합니다. 국민들은 동체 인양을 통해 사 고의 원인이 무엇이며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전면적인 재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987년 11월 29일, 안다만 해역에서 항공기 사고로 33년간 돌아오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 115명의 유해 를 찾아 하루빨리 모셔와야 합니다. 70년전 한국 전쟁 시기에 전사한 유해를 찾아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정 부가, 33년 전 중동에서 산업역군으로 일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희생된 우리 국민들을 모셔오는 일도 당연히 국가의 책임이며 공적인 임무입니다. 국민의 생명이 존중받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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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재개발 갈등, 끝났다고 끝난게 아니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 movieknight@hanmail.net
지난 4월말 지역언론을 통해서 충격적인 장면이 보도 되었다. 바로 크레인에 컨테이너를 달아서 강제철거를 집행하는 장면이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2009년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를 떠올 리게 했다. 2박3일동안 계속 진행된 강제철거는 다행히도 큰 사고 없이 멈추었다. 하지만 재개발 현 장에서 보여준 모습은 많은 시민들의 우려를 모았고, 이에 대구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 임대구지부가 주축이 되어 대구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 진행했다. 지난 3월말부터 계속된 동인동 3가 재개발과 관련된 갈등은 4월말 절정에 달하고 다소간 소강상 태이긴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농성자들과 재개발조합측은 여전히 날선 언어와 폭 력적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언제든지 다시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지난 주말 법 원의 집행관에 의해서 모두 퇴거되었다. 이로서 동인동 3가 재개발 갈등은 공식적으로는 일단락 되 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으 앞으로 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하여 어디서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다. 한동안 잠잠했던 대구지역의 재개발/재건축 열풍은 2019년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구시 전체에 여의도면적(2.7제곱키로미터)에 준하는 지역이 개발을 시작했고, 앞으로 진행을 앞둔 지역도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상(1.6제곱키로미터)에 달한다. 참고로 해당 통계는 정비구역으로 지정 된 곳들의 넓이이다. 특히나 칠곡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공택지개발 까지 합치면 대구에서 건설 되는 공급되고 건설되는 아파트의 양이 어마무시하다. 그러기에 가난한 서민들이나 세입자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특히 나 비슷한 가격대, 비슷한 주거환경을 가진 곳들이 동시다발 적으로 재개발되다 보니 갈곳이 없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기 좋은 조건이다. 그럼에도 대구시나 관계기관은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물론 코로나 방역과 경제활성화가 최 우선 임무라고 하지만, 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개발에 대한 우려는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제기되 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구시의 대책이나 계획은 전무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발생 한 동인동 3가 재개발과 관련된 갈등은 단지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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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의 전초전이며 예고이다. 대구의 상주인구는 줄고 있고, 신규아파트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의 대표건설사인 현대건설이 아파트인‘힐스테이트’ 가 대구시에 현재 건설중인 현장만 15곳이다. 이 처럼 아파트 공급량이 가파르게 늘어나지만 가난한 서민들에게 주거권은 불안정해지는 사회적 모순 이 대구에서 응축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구 아파트 가격이 상승함으로서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 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는 자신의 존재감과 역할을 드러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개 발과 관련된 갈등에서 묵묵부답은 물론이고, 주거약자들을 위한 눈에 띄는 주거정책이 보이지 않는 다. 사회주택 및 지원주택의 활성화와 공급확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소규모 예산만 관례적으로 투 입할 뿐, 현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대응준비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더욱 우려스럽다. 소 잃고 외 양간 고치기 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집을 잃어버린 시민, 쫓겨난 서민들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헤어져 나오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대구시에서 필요한 것은 재개발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대비와 폭력적 갈등 에 대한 개입을 위한 준비와 주거불안정, 자산불평등 해소를 위한 주거대책과 주택공급정책의 대대 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닌 불나고 사람 잃는 비극적 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예언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유추한 예측이다. 제발 예측이 틀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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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은 지금│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
[인터뷰]
톨게이트 노동자 문한수님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
5월 14일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노동자들이 도로공사 업
었다고 합니다.
무에 복귀한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투쟁 이후 톨게이트 노동자들 이야기가 가끔 언론에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 가
- 우선 현재 상황을 좀 듣고 싶습니다.
까이에 있는 분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5. 14일에 계속 투쟁하고 있던 494명이 도로공사 업
5월 28일 대구 시내 한 곳에서 성주 톨게이트에서 일을
무에 복귀했습니다.
마치고 저녁 식사도 못한 채 급하게 달려오신 문한수 님
- 처음에 1,5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는데 그럼 나머
을 만났습니다.
지 1,000여 명은 어떻게 됐나요? 한국노총 소속 900여 명의 조합원들은 2019년 9월 1
문한수 님은 지인의 소개로 성주 톨게이트 일을 시작
일 회사와 합의해서 2015년 입사자 관련 파결 전에 기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소개받고 처음 갔을 때 임금
간제로 복귀했고, 2015년 이후 입사자들도 정규직으로
이 너무 적어서 안 할려고 생각했는데 면접을 본 영업
인정하라고 계속 투쟁했던 민주노총 4개 노조 소속 조
소 사장이 인상이 너무 좋다며 당장 일하라고 붙잡는
합원들이 이번에 복귀한 겁니다.
바람에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 사장님이 후회 많이 하셨겠죠 ^^)
- 회사가 2015년 이후 입사자들도 도로공사 정규직으
하신 일은 요금수납 업무는 아니고 과적 차량 단속
로 인정했나요?
업무를 했습니다.
5. 15일 판결이 나서야 인정하겠다고 한거죠. 14일
예전에 15명의 노
복귀 시에도 2015년 입사자는 배제한 상태여서 아직도
동자가 4조 3교대
(5.28일 현재) 사번이 나오지 않아 업무 배치가 늦어지
로 일했는데 2명이
는 상황입니다.
줄어 지금은 13명 이 일하고 있다고
- 복귀 후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합니다. 1년마다
주로 청소 업무를 하고 있어요. 고속도로 나가기 전
새롭게 계약을 할
길목이나 휴게소 인근, 졸음 쉼터 같은 곳을 청소합니
때면 이번엔 몇 명
다. 업무가 익숙지 않아 힘듭니다. 또, 우리가 청소 업
을 줄일지? 내가
무를 맡게 되니 기존 청소를 하던 외주업체 직원들이
잘리진 않을지? 불
감원됐습니다.
안과 두려움을 겪 - 26 -
- 자회사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1,500명 결원은 채워졌나요? 1,500명 중 900명 정도만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기 간제로 채용하고 나머지는 결원상태로 있습니다. 신임 김진숙 사장이 2023년까지 고속도로 스마트 톨링을 전 면 시행하겠다고 밝혔으 수납원을 계속 감원하려고 하 로서는 적당한 업무 배치가 어렵다고 우리가 생각해서
는 것이죠.
합당한 업무를 제시하면 고민해보겠다고 말하더라구요. 지위확인 소송은 끝났지만, 임금 소송도 진행 중입니
- 노조활동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요? 노조에 가입한 지 오래되진 않았고, 2018년 여름쯤
다. 법원에서 우리가 정규직 직원이었으면 받을 수 있
가입했어요. 대구·경북지역에선 제가 처음으로 민주노
는 임금을 도로공사에서 가장 낮은 직급인 조무직과 같
총에 가입한 거더라고요. 도로공사 소장이 와서 대구·
다고 봤습니다. 연봉이 4,300만원 정도 되는데 그 차액
경북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한 명 있더라고 하길래 그냥
을 받기 위한 겁니다. 최종적으로는 자회사를 없애고 모두가 도로공사 직원
‘네’했죠. ㅎㅎ
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죠.
- 작년에 투쟁할 때 성주지회장님이시던데 지금도 그 -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네요?
런가요?
네. 많아요. 아직까지 이 사람들(도로공사)은 우리를
지금은 톨게이트지회 조직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자기네 식구라고 보질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직원으로 인정은 하지만 실제로 차별이 많아요.
- 와~ 중앙 간부를 맡으셨군요. 핵심이시네요. 아... 아닙니다. 저도 중앙 간부 맡은 지 얼마 안 됐습 니다. 처음엔 뒤에서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김천 본사
투쟁하면서 연대하러 오신 분들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투쟁이 장기화되고 어려울 때 지부장님이 저한테 정책
분들이 있느냐 물으니 망설임 없이 “구미 아사히하고
부장을 맡아서 서울 투쟁을 이끌어 가달라고 하시더라
KEC.” 라고 하셨습니다. 자신들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 힘들
구요. 나는 선동 같은 건 한번도 해본 적 없고, 정책이
게 싸우고 있으면서도 톨게이트 투쟁에 언제나 함께 해줘
라는 말도 뭔지 몰랐어요. 그치만, 싸우면서 동료들한
큰 힘이 되었답니다. 지난번 아사히 후원주점 갔을 때 톨게
테 감동받은 적이 많았어요. 능력은 부족하지만 이 사 람들을 위해서 해야겠다 싶어 한 겁니다. 후회도 했지
이트 노동자들은 현장에 복귀하게 됐으니 좋겠다, 부럽다고 하는 걸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도 하셨습니다.
만, 제 역량이 부족해서 안타까웠어요.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자회사로 퉁치려는 꼼수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
-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직은 단체협약이 없어 현장 근무를 다하고 저녁이 나 휴일에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5.27 일) 처음으로 도로공사와 만나 노사협의를 진행했는데 청소를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니 회사
를 제기하고 맞선 투쟁입니다. 또, 1,500여명의 노동자가 개별적 이탈 없이 끝까지 함께 한 투쟁입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단해지고 성장한 투쟁 입니다. 남은 과제들도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응원 보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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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길에서 만난 그림
김병호 화가 cosmo4189@hanmail.net
화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시장을 둘러보던 중 가게 하나가 눈에 띕니다. 점포가 아니라 길가 벽에 물건을 쌓아놓고 영업하는 노천 만물상인데, 오래된 물건들이 수북합니다. 가까이 가 보니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오래된 녹음기나 앰프도 신기하지만 아주 낡은 가죽가방이 참 인 상적입니다. 누군가의 세월을 묻혀 고스란히 그 서정을 담고 있는 것들은 정겨우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줍니다.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니 한쪽에 그 림도 보입니다. 미대생이나 초보 화 가들이 그린 듯 조금은 어설픈 그림 의 모서리에 화가를 꿈꾸던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캔버스 가 많이 상했네요. 모두 추억할 만한 누군가의 기록들입니다. 둘러보던 중 한쪽 구석에 눈에 띄 는 그림 한 점이 보입니다. 무희를 그 린 그림입니다. 조금은 미완성 같은 이 그림은 붓 터치나 화법으로 보아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뒷면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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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조금은 습기에 차 있긴 했지만, 상당히 고급재료입니다. 캔버스 틀도 좋은 나무에 고급 아사 천으로 입혀진 캔버스입니다. 1994년에 그려진 외국 작가의 작품으로 사인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재료가 좋은 것은 싸구려 복 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가게 주인에게 그림 가격을 물어보니 오만 원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그림, 가격대비(재료비만도 그 이상일 듯합니다)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 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이 그림은 다른 이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파는 일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 그림보다 열 배, 아니 그 이상 더 비싼 제 그림은 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조용히 생각에 잠기며 반문해봅니다. 길을 걷다 만난 그 림 하나가 많은 생각을 줍니다. 이국의 화가가 그린 그 그림이 어떻게 칠성시장 만물상으로 흘러왔는지, 또 어 찌하여 저를 만나게 되었는지 제 마음은 참말로 곰곰해 집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예술은 우리의 삶 주변과 또 그 삶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싸거나 비싼 물건으로서의 가치를 떠나 나의 형편에 걸맞은 그림이나 예술작품 하나 소장 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삶과 함께 예술을 누리며 동행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구역 뒤쪽 담 따라 꽃시장을 향하던 길 위 에서의 조우가 그저 반가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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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평│
누가 우리를 대표하는가?
강우진 경북대 정외과 교수, 대구참여연대 좋은정책네트워크 소장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 t breathe). ‘ 백주
는 광역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구·경북의 현실
대낮에 경찰 4명에 의해서 목이 눌려 죽은 조지 플
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드(George Floyd)의 마지막 외침이 미국 전역
지난 30여 년 동안 특정 계열 정당에 대한 일방적
을 뒤흔들었으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플로이드의
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의 정치는 왜 지
마지막 말은 경제적·인종적으로 편향된 미국 체제
역민들을 대변하지 못했을까?
에 의해서 제대로 대표되지 않은 배제된 사람들의 절규를 나타낸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수
던 미국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들을 제대로 대표하
도권으로 집중되는 수도권 공화국의 현실이다. 한국
지 않았다. 누적되어온 대표되지 않는 사람들의 분
정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지역주의였던 시절은
노가 한 흑인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폭발했던 것
이미 지났다. 한국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두 개의
이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죽음이 상징하는 대표
나라로 갈라져 있다는 현실 진단이 지나치지 않은
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분노는 우리나라에도 던지
말이다. 실제로 국토의 12%에 지나지 않은 수도권
는 시사점이 크다. 특히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에 인구의 절반, 활동기업, 지역 총생산, 지방세 규
대구에 사는 시민들의 시각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
모 등 중요한 지표의 절반이 몰려있다. 교육, 의료,
은 대구·경북의 정치는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대
문화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프라 규모의
표했느냐는 질문이다.
차이는 더 크다. 이러한 경향이 더 가속화된다면 일 본이 먼저 경험한 지방소멸이 우리의 문제가 되는
두루 알다시피 대구·경북 지역은 5명의 전직 대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 집중의
통령을 배출한 보수의 정치적 본거지이다 특히, 한
문제는 단순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의 문제를 넘
국형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어서 시민으로서 존엄의 문제로까지 확산된다. 이
대구·경북 사람들은 이 지역이 한국의 경제 번영
지역 젊은이들이 수도권에 진출하면 듣는‘지잡대’
을 주도했다는 역사적 자부심을 품게 되었다. 이러
심지어‘지방충’ 이라는 말은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
한 자부심은 민주화 이후 30여 년 동안 정치적 상
게 드러낸다.
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이어지는 정치적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대
수도권 집중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
구·경북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
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구·경북 지역의 정치
구 경북 지역은 삶의 만족도는 광역시도 최하위권
가 지난 30여 년 동안 지역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이다. 또한 젊은이들(특히 20대)이 가장 많이 떠나
응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 우리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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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질문해야 한다. 대구·경북지역의 정치는 누구를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해서 무엇을 대표해왔으며 하고 있는가? 대구·
서울에 중앙당을 두어야 하며(제3조), 전국에 5개
경북 지역에 25명의 국회의원(대구지역 12명, 경북
이상의 시·도당을 설립해야 하며(제17조), 각각의
지역 13명)이 있다. 만약에 지역 주민에게 대구·경
시·도당은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해야 한다
북 지역 국회의원 중에서 누가 지역 주민과 동고동
(제18조). 현재 정당법의 규정한 정당의 진입장벽을
락하면서 지역 주민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낮추어야 한다. 정당설립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자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얼마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유민주주의 체제의 원리에 부합한다. OECD 국가
자신 있게 자신의 지역구 대표자가 그렇다고 말할
중에서 정당설립 요건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과 독일 정도에 그친다.
우리는 지역에서 항상 선거와 마주한다. 2017년
해외에는 다양한 지역당이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2018년 제7회 전국
고 있다. 미국에서는 알래스카 독립당(Alaska
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올해에는 제21대 국회의원
Independence Party), 버몬트주의 버몬트 진보당
선거가 있었다. 2년 후인 2020년에는 제20대 대통
(Vermont Progressive Party), 뉴욕주의 뉴욕 자유
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
당(Liberal Party of New York)을 포함해서 다양한
다. 우리의 삶과 항상 함께 하는 선거에서 지난 30
지역당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독일 지역당으로는
여 년 동안 우리는 우리 지역의 문제를 지역에 뿌
바이에른 기독사회연합(Christian-Soziale Union in
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정당과 정치인에게 의탁해
Bayern)이 대표적이다. 영국도 잘 알려진 스코틀랜
왔다. 역설적인 것은 민주화 30년 동안 지역주의가
드 국민당(Scotland National Party)을 포함해 다양
한국 정치를 지배했으며 지역주의의 한복판에 대
한 지역정당이 활성화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구·경북 지역이 있었지만, 대구·경북 지역에 뿌리
나라인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오사카
를 내린 정당은 찾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지역
유신회가 모체였던 일본 유신회가 있다. 우리나라도
민들은 빈번한 선거에서 주인이 아니라 동원된 구
풀뿌리 옥천당(2005년), 마포파티(2014), 과천 풀뿌
경꾼에 머물렀다.
리(2011) 모임을 비롯하여 지역당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정치권에서도 정당설립 요건을
이제 응답하지 않는 지역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우리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대표할 것인가를
완화하여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자 하는 노력이 계 속되었지만 열매를 맺지 못했다.
고민하고 행동에 나설 때다. 한국 민주주의의 분기 점을 만들었던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이 외친 가장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과거를 잊어버리곤 한
중요한 구호는‘나는 내가 대표한다’ 였다. 지역은
다. 2000년대 이후 지방분권운동의 중심지는 대구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의 현장이
였다.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다. 지역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기 위해서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해온 방식처럼 중앙정치에 우리의 정치적 대표를 의탁할 것이 아니라 지역당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 31 -
│젠더비평│
내부고발과 백래시(BACKLASH)
차우미 참여연대 미디어위원
최근 일본의 전쟁범죄를 세계에 알리고 여성인권
웅 서사와 피해자 서사의 이분법을 경계하면서도
평화운동으로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정의연(정대
피해자 서사가 갖는 독특한 지위를 언급하고 있다.
협)과 30년을 함께 했던 이용수 선생의 기자회견으
기고문은 슈미트의 논문을 인용해 피해자가 된다는
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두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
것은 권력의 서열에서 낮은 위치에 서 있다는 것,
을 통해 이용수 선생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
따라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
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수
임없이 인정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요집회를 없애야 한다” ,“성금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피해사실이 국가적 피해와 연결되어 있을 때는 여
위해 쓰이지 않았다” ,“위안부 단체에 이용당했다” ,
론의 인정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제도적인 인정 또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한 받아내야 하기에 그 인정투쟁이 성공하면 피해
등의 취지로 정의연 운동방식을 비판하고 위안부
자 서사는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주
역사관의 건립과 한일 젊은 세대에 대한 위안부 역
체가 되는? “피해자 민족주의 서사” 로 전화하고, 피
사교육 등으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이 전환되어야
해자는 그 진리의 살아 있는 담보자가 되어 절대적
함을 주장했다.
인 권위를 부여받는다고 전하고 있다. 즉 피해자의 서사가 민족과 국가의 서사가 되면 이 서사는 도전
이용수 선생의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에 대한 비판은 보
을 받지도 질문의 여지도 둘 수도 없는“성역” 으로
도를 통해 의혹이 제기된 것을 일부 기정사실화 하거나 감
자리매김하고, 피해자에게는“판결자” 의 지위가 주
정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맥락적으로 깊이 숙고해야 하는
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고통의 역사에 대한 새
운동성에 대한 함의가 있었다. 피해자들이 운동의 도구로
로운 관점이나 평가가 불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하기
소외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우려에 대한 숙고와 그럼에도
도 한다.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피해당사자들뿐만 아니라 활동 가 자신들의 실질적 자유를 증진하는데 어떤 기여를 해왔
조교수는 이어 한국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는가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운동
해결 운동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지위는, 피해자/생
이 수행되는 과정 및 현장 그 자체도 끊임없이‘지배와 억
존자의 서사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피해자민족주의
압’ 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표가 응당 적용되어야 하는
와 결합하여 있다는 것, 즉“판결자” 의 지위를 획득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것의 일부로 사유할 것을 요청하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담론은
있는 것이다(정용택, 제3지대, 2020).
민족과 반민족, 정의와 불의, 양심과 비양심을 가르 는 기준이었다. 그 기준의 중심에는 고통의 상징인
한편 조지타운대의 조민아 교수는 기고문에서 영
생존자들이 있다. 이 신념이 깨어진다면 담론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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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진실 자체가 무너질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30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의혹
년 동안의 인정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이기도 하지만,
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대
위안부 피해자라는 정체성 외에 다른 모든 삶의 기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국회의원 대표발의
회를 반납한 결과이기도 한 이 피해자 서사는 정의
로‘여성인권평화센터’설립을 위한‘일본군위안부
연 운동의 정체성과 동일시되었다고 조민아 교수는
법률 개정안’ 이 발의되었지만 통합당의 반대로 여
지적한다.?30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
성가족소위원회조차 넘어서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이 여성인권운동으로서 이룩한 여러 결실에도 불구
그러나 통합당은 마치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지지
하고 사회적 인식은 생존자들을“피해자” 로, 정의연
해 온 것처럼 국민을 기망하며 확인되지 않은 의혹
을 단순히 생존자들을 돕는 “피해자 복지단체” 로
으로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을 공격했다. 반일종족주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던 것은 운동의 방식이 피
의를 지지하는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노골적으로 일
해자민족주의에 머물렀던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기
제에 의한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
도 하다(조민아, 제3지대, 2020).
고 피해자들을 폄훼하는 역사적 백래시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민족주의를 부각시킴으로써 위안부 이슈가 전 국민적 호응을 얻고 운동의 성과를 거둘
수잔 팔루디는 그녀의 저서‘백래시’ 에서‘백래
수 있었지만 이제 피해자민족주의는 일본군위안부
시’ 를‘사회진보와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 로
문제 해결 운동이 극복해 가야 할 시대적 딜레마이
정의하고 있다. 수잔 팔루디는 여성의‘진보’ 를 위
기도 하다. 조민아 교수의 기고문은 이용수 선생의
험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적
기자회견과 관련한 작금의 사태가 위안부 문제해결
개심’ 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증상들이 급성으로 나
운동을 떠받치고 있었던 거대한 ‘피해자민족주의
타나는 현상에‘백래시’ 라는 이름을 붙인다. 정의연
담론에 균열이 생기면서 터져 나오는 굉음’ 이라고
을 둘러싼 언론과 수구세력의 맹렬한‘백래시’ 는정
표현하고 있다. 생존자들을 피해자라는 단일한 이미
의연이 추구해 온 인권과 평화의 가치, 즉 한국사회
지에 가두었던 피해자민족주의 담론에 비로소 금이
에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의 가치에 대한 급
가고 있는 소리라는 것이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 백래시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민주세력
피해자 민족주의를 넘어선 여성운동, 인권운동으로
의 성장은 수구세력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깊은 불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
안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용수 선생의
환이며, 지평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운동가는‘판결
기자회견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손상시
자’ 가 아니기에?생존자들을, 이용수 선생을, 소녀상
키고 국민을 분열시켜 약화되어 가고 있는 수구적
에 갇힌 피해자가 아니라 비판을 할 수도 비판을
기득권세력의 만회를 위한 절호의 기회인지도 모른
받을 수도 있는 운동가로 존중해 드리는 게 생존자
다. 많은 언론들의 맥락을 무시한 정의연에 대한 무
들과 이용수 선생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될 수 있
차별적 공격은 궁극적으로 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
을 것이라는 조민아 교수의 지적은 피해자/생존자
의 거대한‘백래시’ 와 함께 하는 것으로 보인다.
를 성역화 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이용수 선생의 이 소동을 틈타, 지난 2015년 12월 18일 박근혜
내부고발을 비판적으로 객관화 할 수 있는 길을 여
정권 하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당사자와의 어떤 합
는 관점이기도 하다. 한편 이용수 선생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언론은
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행해진,‘한일위안부합의’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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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정당화하려는 시도마저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
왔다. 최근 대구지역에서도 내부고발로 인해 30년
26일에는 이승만 학당과 반일동상 공동대책위원회
간 지역 여성운동계에서 활동하며 지역 이주여성운
라는 단체가 위안부의 역사를 부정하고 폄훼하는
동의 발판을 마련했던 한 여성운동가가 사회적 경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 그 실체를 밝힌다’ 라는 심
제적 사형선고를 당하며 삶이 파탄되고 단체는 결
포지엄을 열었다. 그 심포지엄에는“위안부는 일종
국 와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목격자로서 그 사건의
의 매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연세대의 류석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며 필자는 결국 (내부고발
춘 사회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고,‘반일종족주
자를 앞세운) 여성운동진영에 대한 백래시가 이 사
의’ 의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발표자로
건에도 작동한 것 같은 혐의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나섰다. 심포지엄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서 이 전 교
비극적이게도 같은 비전을 공유한다고 믿었던 이들
수는“가난한 집안의, 성 윤리가 결여된 가부장이
의 집요한 공격과 지역 이주여성인권운동의 맥락을
딸을 결혼시키면 돈이 드니, (매춘)주선업자가 찾아
무시한 일부 언론의 무차별적 보도행태가 한 여성
와 돈을 제시하면 뿌리치지 못하고 딸을 준 것” 이
운동가의 참혹한 몰락과 지역이주여성운동의 와해
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전문가이기도 한 성공회대 의 강성현 교수는 ‘반일종족주의’ 현상이란 한일
이용수 선생의 내부고발은 역사에 대한 백래시와
양국 우파가 합작한‘역사 부정’ 과‘혐오’ 의 거대
여성인권운동을 포함한 시민운동에 대한 백래시로
한‘백래시’ 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그들이 이용수
돌아오고 있고,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의 와해는 지
선생의 목소리를 맥락과 상황 모두 배제하고 활용
역여성운동과 이주여성운동에 대한 백래시가 되었
하는‘증언 착취’ 를 하고 있다며 비판하였다. 필자
다. 이용수 선생의 내부고발과 대구이주여성인권센
의 고모도 16세에 이른바‘처녀공출’ 을 피해 만주
터의 와해는 보다 탄탄한 시민운동의 시스템 마련
로 시집을 가 조국의 분단으로 인해 오랜 세월 고
과 운동의 대상화와 수단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
향 땅을 밟지 못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아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스템 마련과 운동에 대한
님의 초청으로 고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던 고
성찰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백래시로 인한 운동
모의 비극적 삶도 위안부를 전쟁군수품처럼‘공출’
의 분열과 헌신한 활동가들의 허탈감과 소진 이 커
했던 일제 만행의 결과였던 것이다.‘처녀공출’ 이라
지고 있다. 이와 같은 시민운동에 대한 타격으로 시
는 말이 뜻하듯 강제동원의 명백한 증거와 당사자
민운동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의 생생한 증언을 부정하는 역사 왜곡의 무리들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용수 선생의 발화를 ‘증언 착취’ 하며 정의연을 이 글을 수정하는 이 시간 정의연의 마포 쉼터‘평화
매도하고 역사의 백래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의 우리집’소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
이용수 선생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일본군위안부
가 떴다.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아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
의 존재를 부정하고 폄훼했던 세력에 의해 가속화
을 빈다. 최근 12년의 지역이주여성인권운동을 이끌었
된 역사적‘백래시’현상은 한국 사회가 해결해 가
던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의 법인청산도 마무리되었다.
야 할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과제를 알려줌과 동시
불행한 종말을 맞은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도 깊은 조
에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과 같은 슬픈 현실을 불러
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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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동향│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기초의원과 정책 소개 Ⅰ 수성구의회 김두현 의원, 육정미 의원, 박정권 의원 백경록 대구의정참여센터 운영위원장
볼썽사나운 자리다툼 코로나 19사태 연수 기초의원 사과 ‘술병 폭행’물의 ‘제 식구 감싸기로 뭉친’ ‘기초의회’ 를 검색하면 도출되는 지방자치의회에 대한 부정적 기사들이다. 시민들은 이러한 모습에 기초의회가 불필요하 다는 이야기를 자주 말한다. 하지만 정말 기초의회는 필요 없는 것일까? 기초의원들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것일까? 대 구의정참여센터는 기초의원들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고, 활동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조사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카드뉴스를 발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구광역시 수성구의회 의원들의 활동소식을 소개한다.
김두현 의원과‘주차안심정책’ 【지역 최초 실행, 차에 남겨둔 휴대폰번호! 범죄 악용될까 불안하지 않으셨나요?】
자동차 전화번호는 차 안에 놓아두는 것이 에티켓처 럼 되어 있는데, 사실 차 안에 놓아두기도 그렇다고 없 애기도 어려운 마음속 갈등이 존재한다. 왜냐면 자동차 안 전화번호는 그동안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에 악 용되는 사례가 많았고 그중에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 는 경우도 있다. 김두현 수성구의원은 이 같은 점에 착안, 구청 교통 과를 통해‘주차안심번호’도입을 2019년 처음 제안한 다. ‘주차안심번호’서비스란 차주의 휴대폰 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호출용 대표번호를 통해 호출자와 차주 를 자동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앞서 언급한 차량 내 휴대폰 번호가 범죄 등에 악용될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 한 공적 서비스이다. ‘주차안심번호’ 는 2020년 3월 추가경정 예산안이 통과되어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간 가운 데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수성구청이 가장 먼저 도입하였다. 수성구민 차량 운전자라면 누구나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무료로 신청 및 이용가능하다.‘주차안심번호’정 책에 대한 서비스를 받는 이들은 이를 제안한 의원의 이름을 한번쯤 기억해주는 것도 기초의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 35 -
│의정동향│
육정미 의원과‘마더센터’ 【구정질의, 5분 발언, 조례제정 등 끊임없는 노력 끝에 설립 눈앞】
‘노키즈존(No Kids Zone)’ 어린아이가 들어올 수 없게 만든 가게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가게 사장님의 마음도 한편 이해되지만, 어 린아이와 함께 거의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 엄마 입장 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서운할 수밖에 없다. 이에 육정미 수성구의원은 2018년 9월‘독박육아의 해소와 세대간 소통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인‘마더센 터’설립에 관해 최초로 구정질의를 한다. 그리고 동료의원들과‘서울관악행복마더센터’ 에 비교 견학을 다녀오고 2019년 6월에는 다시‘여성이 행 복한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양육자 중심의 육아 공간 마더센터 설치’ 를 촉구하는 5분 발언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2월에‘대구광역시 수성구 마더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을 대표 발의·제정하기에 이른다. 조례는 제정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생활의 변화를 이끌어 낼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되는 만큼, 수성구가 수성대학교 내‘마더센터’ 의 공간을 확보하는 등 정책실 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마더센터’ 를 잘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한다면,‘수성구 마더센터’ 는 차 한잔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카페를 비롯해 공연 등이 가능한 다목적 프로그램실,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룸으로 구성되어 있으 며 1천여 권의 책이 있는 미니도서관도 마련되어 어린이와 엄마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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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 의원과‘옐로카펫’ 【아픈 통계를 기반으로 만든 어린이가 안전한 동네】
2018년 대구지역에서 어린이 교 통사고가 발생한 곳은 총 440곳! 그중 수성구는 88곳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하며 대구지역 어린이 사망자 3명 중 2명이 수성구에서 발생한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 었다는 슬픈 현실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 정권 수성구의원은 2018년 12월 주민의견 청취를 시작으로 2019년 3월에는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옐로카펫 필요성을 제기하고 수성구 초등학교 전 지역 확대 설치를 제안하는 5분 자유발언을 진행하 였다. ‘옐로카펫’ 이란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횡단보도 근처를 노란색으로 표시한 어린이 안전 공간 인데, 설치 후 운전자·보행자의 시선집중도가 40%에서 90% 수준으로 상승하였고 특히 설치구간에서는 운 전자 91%가 감속과 일시정지를 하더라는 통계가 있다. 박 의원이 이를 제안할 당시 전국적으로 1천곳 이상 설치되어 있었지만, 대구지역에서 설치된 곳은 1곳뿐이었다. 이에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안심통학로 조성을 위한 제언을 이어간 끝에 2019년 8월 수성구 최초로 용지초등학교와 수성초등학교 주변에 옐로카펫이 시범적으로 설치되기에 이른다. 앞으로도 옐로카펫은 지 속적으로 확대 설치될 예정이다.
카드뉴스 볼수 있는 곳 : 대구의정참여센터 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daeguc.center ② 카카오채널 https://pf.kakao.com/_NJRmxb 친구를 추가하시면 다양한 정보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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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지보유세 + 비례대표제' 비전으로 보수 개혁을
김윤상 칼럼니스트, 대구참여연대 자문위원
※ 이 글은 2020.6.1. 평화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평화뉴스 및 필자의 동의를 받아 싣습니다.
선배님께. 4.15 총선 후 선배님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오늘 어느 자유우파 모임에 갔는데 누 가‘자유우파는 문재인정부 비판에 열중하는 나머지 미래를 얘기하고 희망을 얘기하거나 비전을 제시하 지 않는다.’ 라고 했다. 이 말에 충격. 이제 대안 있는 비전 제시로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늘 성실하게 살아오신 선배님이 충격을 받으셨다면 지금쯤은 자유우파에 어울리는 비전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계시겠지요. 특히나 미국 명문대 경제학 박사에 대학교수와 총장까지 역임하신 분이므로 자유 우파에 걸맞은 경제정책을 구상하고 계실 것으로 추측합니다. 저는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지만 선배님께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이 글을 씁니다. 토지보유세 중심의 세제개혁 잘 아시다시피,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자유시장경제의 대표적 이론가입니다. 그는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정부 재원은“가장 덜 나쁜 세금” 인 토지보유세, 환경세 등으로 우선 충당해야 한다 고 하였습니다.‘가장 덜 나쁜 세금’ 이란 물론 필요악인 세금 중 가장 좋은 세금이라는 뜻이지요. 이건 프리드먼의 독단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생산, 유통 등 경제활동에 부과하는 세금이 시장작용을 저해한다는 사실은 경제학 교과서에 다 나옵니다. 반면 토지는 인간이 생산하지 않았고 존재량을 변화 시킬 수 없으므로, 토지 보유에 부과하는 세금은 시장친화적이라는 사실도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계 의 통설입니다. 그렇다면 시장경제를 위해서는 토지보유세 중심의 세제개혁을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면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으므로 부동산 지옥에 시달려온 국민 대다수, 내 집 마련의 꿈도 꿀 수 없는 미래 세대에게 큰 희망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의 보수진영은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극력 반대하며 심지어‘사회주의’ 라고 매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국민은 보수진영을 가난한 서민보다는 부동산 부자를 더 감싸는 기득권 연합 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유우파가 시장경제에 충실한 세제개혁안을 제시한다면,‘보수진영은 가진 자의 편’ 이라는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매우 효과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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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그대로의 선거제도 개혁 아울러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선거의 비례성 강화 정책도 같이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자유우파의 기본 가치에는 자유민주주의도 당연히 들어갑니다. 정치 분야에서 민주주의란 민심 그대로의 정치를 의 미합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선택을 잘 반영하는 선거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4.15 총선에서 거대양당 은 67.1%의 정당득표율로 94.3%의 의석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이상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더구나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한 보수진영은 실리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이번 총선에 적용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비례성이 더 높은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했다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의석수가 130석 대 114석으로, 격차가 많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통계가 있지 않습니까? 자유우파가 기존 보수진영을 설득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들과 과감히 결별한다는 각오도 필요합니다. 보수집권을 위한 정치공학에 매여 자유시장경제와 민심 그대로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뒷전으로 미룬다면 ‘자유우파’ 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맙니다. 원론에 충실한 정파로 독립하여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 입니다. 양식 있는 우파와 합리적인 좌파의 연합 국민의 정치적 욕구가 다양한 만큼 정당도 다양해야 합니다. 의회의 비례성이 강화되면 어느 정당도 과반수 의석을 얻기 어렵고, 양대정당제 대신 다당제가 정착될 것입니다. 자유우파가 기득권우파와 갈 라설 수 있는 정치 풍토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그러면 정당 간의 정책연합이 불가피합니다. 자유우 파가 누구와 연합하는 것이 좋을까요? 합리적인 평등좌파입니다. ‘우파와 좌파가 연합한다고?’그렇습니다. 좌파에도 여러 부류가 섞여 있습니다. 좌파 중에 결과의 평 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쪽과는 얼마든지 연합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부동산 불로소득을 재원으로 하는 복지제도를 설계한다면 그야말로 좌도우기(左道右器), 즉 좌파의 가치를 우파의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도 소득세 제도를 활용하여 저소득층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마이 너스 소득세’ (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선배님은 기독교 신자이십니다. 예수는 자유우파와 평등좌파 중 어느 쪽일까요? 저는 평등좌 파라고 봅니다. 예수는 스스로 대가 없는 사랑을 실천하였고 특히 세리, 창녀, 죄인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 먹고 마시기를 즐겨 하였습니다.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는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파 기독교 신자도 실은 좌파 스승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혹 생소하다고 느끼실까 하여 졸문 한 편을 소개해 드 립니다. (<평화뉴스> "예수는 좌파"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5988) 자유우파가 토지보유세 중심의 세제를 담은 진정한 시장경제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진정한 연동 형 비례대표제를 제시한다면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새로운 보수, 건강한 보수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은 정치인이 아니시지만 적어도 보수진영의 성찰적 지식인들 사이에 이런 방향의 개혁을 거론하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지긋지긋한 혐오와 대결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양식 있는 우파와 합리적인 좌파의 연합이 사회의 주류가 되 어 평화롭고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 39 -
│청년비평│
청년활동가, 이대로 살아도 괜찮나요?
조영태 대구참여연대 회원
“활동을 그만두겠습니다.” 최근 또래 활동가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활동을 그만두는 이유는 다양하다. 취업을 해서, 시험 준비 해야 해서, 단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등. 그 다양한 이유 속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생계 문제. 즉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다. 활동가로 살아가다 보면 생계 문제가 늘 뒤따른다. 20대 초반이라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대학생일 테다. 일찍 취업해서 일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지만 사회초년생의 월급은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이는 돈과 별반 다 르지 않다. 따라서 활동가와 대학생, 사회초년생의 생활 수준은 비슷한 정도다. 문제는 20대 중반이 되고 후반으로 진입하면서 점차 뚜렷해진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활동가의 길을 걸어 온‘나’ 와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착실하게’생활해 온‘친구’ 의 경제적 수준과 여유는 상당하다. 이런 표현을 쓰기는 싫지만 이따 금‘상대적 박탈감’ 을 느낀다.
‘비교하지 말고 살아라.’ ,‘네가 선택한 길을 믿고 가라.’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과 주변에서 해주는 조언들은 가끔 공허하게 느껴진다.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일 테지만 가끔 현실성과 동떨어질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희생이 뒤따르는 사회활동 영역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선배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욱 불안해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대로 활 동해도 괜찮을까.
‘활동가로 살고 싶다.’ 청년활동가들은 말한다. 활동가로 살아가는 게 좋다고. 하지만 불안하고 막막한 현실이라 고민된다고. 활 동가로 살아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건 선배 활동가들의 잘못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같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NGO 영역에서‘돈 이야기’ 란 꽤 민감하니 말이다. 작년 8월, 청년활동가들과 함께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대만에 다녀왔다. 주거 문제, 청년 문제, 성 소수자 인권 문제와 같은, 비슷하나 다른 문제를 겪고 있는 대만에서 활동하는 청년단체와 활동가들은 어떤 생각 을 가졌는지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중 사회주택추진연맹에서 활동하는 Lin이라는 활동가의 답변이 인상 적이었다.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열정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되면 조직 또한 소중한 인력을 잃게 된다고 말이다. 사회주택추진연맹은 소 - 40 -
액이라도 안정적으로 월급이 지급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시대역량 사회민주당, Tongi, 동등결혼연맹 등의 NGO 단체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 모두 임금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 단체가 재정적으로 여유로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임금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이 부분에 대해 대만 시민들도 반감은 없다고 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회활동 영역으로 뛰어든 이들은 없을 것이다. 대다수가 사명감을 가지고 단순히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환경에서도‘그래 도 살아갈 수 있다’ 는 믿음과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 믿음과 보장 없이는 떠나는 친구에게 떠나지 말라 이 야기할 수 없고 새로운 세대에게 같이 활동가로 살아 보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청년활동가,‘이대로 살아도 괜찮아’ 라고 말하기 위해 우린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 및 단체설명> 1) 대구시 청년정책 2019 글로벌프로젝트‘발품’ : 총 5개 팀이 선정하여 팀당 500만원의 예산이 지원되고 각 팀은 예 산 내에서 스스로 방문계획과 예산계획, 방문단체소통을 진행하여 해외에 다녀오는 탐방프로젝트
2) 사회주택추진연맹: 1989년 민달팽이 운동이라는 주거운동 시위를 시작으로 2010년 13개 단체의 연맹으로 시작된 단체. 현재 청년과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음
3) 시대역량: 해바라기 운동 이후 청년들이 모여 창당한 정당. 현재 원내 3석을 보유하고 있다.‘공평과정의’ 를 내세우고 있으며 중국과 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 내고 있다.
4) 사회민주당: 해바라기 운동 이후 청년들이 모여 창당한 정당, 대만 내 좌파정당으로 노동운동. 청년운동을 하고 있다
5) Tongi: 성소주자 인권 단체, 전화상담과 동성애 커뮤니티, 성소수자 교육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6) 동등결혼연맹: 2017년 5개 단체가 모여 만들어진 성소수자 인권단체. 성소수자 관련 정보를 알리고 집회를 기획하여 활동하고 있다. - 41 -
│이달의 회원│
서상민 회원을 만나다
글. 대담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 movieknight@hanmail.net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지금 참여연대에서 하고있는 일들의 모토? 목
네. 안녕하세요. 이천…, 몇 년이더라.. 아! 2009년에 대
표? 이런 것들이 한번 설정해서 금방 완수되거나 해서
구참여연대에 가입한 서구 사는 서상민입니다.
끝나는 일들이 아니잖아요. 참여연대가 시정을 감시하 고 하는 것들은 꾸준히 해야 하니까요. 제가 참여연대
본인 소개를 좀 더 해주세요
회원을 오래 했으면서도 그런데 관심을 못 둔 것 같아
지금은 녹색당 대구시당 사무처장으로 있구요. 요즘은
요. 죄송하긴 하지만 저는 회원들의 친목 모임 같은 걸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당내에서 이런저런 일을 열심히
더 많이 알았고 참여연대의 권력감시 활동을 상세하기
하고 있습니다.
알지는 못했는데 앞으로는 시정감시 활동을 회원들과 함께해본다거나 공부를 같이해본다거나 해서 관심을 모
2009년에 가입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가입하게
았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 회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
되셨나요?
정감시 활동이나 대구시가 잘못하는 부분들을 지적하는
2009년에 회원 활동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원
것들이 있으면 잘되지 않을까요? 요즘은 주민자치제도
들끼리의 소모임이 있었는데 기타를 배우는 강좌가 있
나 참여예산 이런 것들도 많잖아요. 저도 참여 예산제
었어요. 거기에 합류하게 되면서 회원들하고 자주 만나
를 참여연대를 통해서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경
고 저녁마다 기타 배우고 곁가지로 음주도 좀하고 그런
험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미가 있어서 가입하게 되었죠.
혹시 요즘 근황은 좀 어떠신가요? 그렇다면 참여연대 회원가입 한 이후에 삶이 변했다거
요즘 살도 좀 찌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건강관리 중이
나 영향을 준 부분이 있나요?
구요. 우리 집에 강아지 식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아프
그럼요. 저는 참여연대에 2009년에 가입하고 한창 기타
고 해서 여러모로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배운다고 회원들 만나고 뒷풀이도 하고 그러면서 난생 처음 밴드라는 것도 조직하고 참여했구요. 그게 예술감
마지막으로 회원들이나 참여연대에 하고픈 말씀이 있
각이라곤 제로이던 저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기도
으면 해주시죠
했구요. 그 안에서 노래부르면서 민중가요라는 것들도
이제 여름이 다가오니까 생각나는데, 항상 여름이 되면
접해보고 집회도 자주 가보게 되었고, 참여연대 회원들
기대되는 게 참여연대 여름 캠프였는데 올해는 코로나
을 많아 만나는 캠프도 참가하게 되었구요. 그러면서
때문에 야외활동을 줄이고 건강에도 조심하고 있어서
제가 녹색당에 발을 딛게 된 계기도 되었구요. 그래서
캠프가 열리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
제 인생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어요.
쩌겠어요. 이런 기회에 우리가 건강도 생각하고 주변 환경도 생각하고 해야 하니까 다들 조그만 자리에서라
그럼 참여연대가 이랬으면 좋겠다든지, 바라는 점이 있
도 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다들 건강 조심하시길
나요?
바래 봅니다. - 42 -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의 활약 - 바이러스 이종득 역사교사 duke13@hanmail.net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컴퓨터와 휴대폰이 있
법을 찾는다.
고 그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컴퓨
하지만 컴퓨터나 휴대폰 하나하나가 작은 세상을
터, 휴대폰 안에는 작은 세상이 있고 그들이 모여
형성하고 이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가상세계는 너
인간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가상의 세계를 형성하
무나 넓고 그 속의 괴물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
고 있다.
아 완전히 무찌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 컴퓨터 안의 세계는 나쁜 괴물이 없는 깨
그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하나를 무찌른다고 하더라
끗하고 순수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쁜 사람들이 괴
도 이내 새로운 것이 생기고 모습을 수시로 바꾸는
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약하고 보잘것
놈도 있었다.
없는 존재였으나 컴퓨터 속 세상이 넓어지고 사악
그래서‘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과 부하들은 바이
한 인간의 마음이 더해지면서 스스로 진화하여 강
러스의 대장을 찾아 무찌르면 그 부하들이 힘을 못
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 몰래 가상세계
쓸 것으로 생각하고 대장을 찾아 나선다.
를 오염시키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인간을 괴롭히고
하지만 이 넓은 가상세계에서 대장을 어떻게 찾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러한 컴퓨터 속 세
는단 말인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
상을 오염시키고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를 바이러스
는데…….
라 부른다.
고민을 거듭하던‘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은 가상
바이러스들은 서로 연결된 길을 따라 컴퓨터와 휴대폰을 휘젓고 다니면서 이용자의 감정을 조정하
세계에 함정을 만들어놓고 바이러스 대장을 유인해 공격하기로 한다.
여 모르는 사이에 점점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만
‘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과 그의 분신은 자신의
들었다.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늘어나고 세상의 따
컴퓨터 속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아주 순수한 사
뜻한 정이 점차 사라져가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지
람인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순수한 사람을 보면 나
1)
킴이와‘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은 원인을 찾으려
쁘게 만들려는 바이러스의 속성을 이용하려는 것이
한다.
었다. 한참을 가상세계에 머물러 있던‘뭐든지 말하
지킴이가 자신의 친구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행
면 되는 놈’ 은 바이러스가 자신의 공간을 공격하려
동과 생각을 분석한 결과 컴퓨터 속 가상세계의 나
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강력한 보호막으로 둘러싸
쁜 괴물인 바이러스 때문이란 사실을 알아낸다. 하
인 그곳을 바이러스가 공격하기엔 쉽지 않았다. 혼
지만 가상세계는 지킴이도 어찌할 수 없었고 최고
자서는 안되니 친구 바이러스 수십만 마리를 불러
의 두뇌를 가진‘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이 지킴이
서 한꺼번에 공격한다. 그래도 보호막이 뚫리지 않
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오랜 연구 끝에 가상
자 안달이 난 바이러스들은 드디어 자신의 대장을
세계에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바이러스 퇴치할 방
부르게 된다.
1)‘뭐든지 말하는 놈’은 첫째아들 주원이의 꿈이었으며, 이 글에서는 어른이 된 주원이를 뜻합니다. 지킴이는 우리 집 화장실에 살면서 가족을 지켜주 는 괴물입니다. - 43 -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강력한 보호막으로
빼놓기 위해 수학과 온갖 기호들을 섞어 공격을 가
차단된 컴퓨터를 접한 바이러스들은 화가 나서 경
한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컴퓨터 속의 세상과 그
계를 느슨히 하고 보호막을 뚫는 데만 열중한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 수학과 기호에 의
화가 나서 식식거리며 공격을 하던 바이러스 대
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주 어렵고 치밀한 수학을 통
장은 한참을 공격하여 힘이 다 빠질 때쯤 드디어
해 상대방의 몸에 침입한다면 그의 힘을 빼거나 아
보호막을 뚫고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이놈 어디 맛 좀 봐라. 착한 것들은 이 세상에서
여태껏 보지 못한 공격을 받은 바이러스 대장은
모두 없애 버리겠다’ 며 단단히 벼르고 들어간 공간
긴장하며‘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의 공격을 막아
은 생각보다 좁았고 그 속에는 8살쯤 돼 보이는 아
내고 자신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수학 공식과 문제
이 한 명이 있었다. 바로‘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들로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천재적인 두뇌와 수학
이 만들어놓은 컴퓨터 속 분신이었다. 아니 차라리
실력을 갖춘‘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에게 그 정도
‘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자체라고 하는 게 더 정
공격을 막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이제는 상황
확할 런지도 모르겠다.
이 바뀌어‘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이 공격하고 바
바이러스 대장은 이런 어린놈이 그렇게 강력한
이러스 대장이 이를 막아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
이후 방법을 바꿔가며 더 강력한 공격을 가하자 바
만 어쨌든 착하고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
이러스 대장은 더는 막아낼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
던지라 빨리 나쁜 놈으로 오염시키기 위해 공격을
렀다. 공격이 워낙 강력한 데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
하였다.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다 보니 더이상 이를
하지만 이상하게 그동안 수많은 컴퓨터와 휴대폰
막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을 오염시켰던 공격은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다. 약
끝없이 이어지는‘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의 어려
간 긴장하였지만 어리고 힘도 없어 보여 얕잡아본
운 수학 공격에 견디지 못한 바이러스 대장은 드디
대장은 좀 더 강력한 공격을 가하였다. 두 번의 공
어 자신의 숨겨진 허점을 노출하고 작은 수학 기호
격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정신력을 소유한 데다 프
들로 부서지고 점차 하나씩 녹아 없어져 버렸다. 대
로그램의 허점이 없었던‘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장이 이렇게 사라지자 부하들도 더는 힘을 못 쓰고
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상세계에서 사라져버렸다.
‘겨우 그 정도 공격으로 가상세계를 더럽히고 인 간을 나쁘게 만들었단 말이냐….’‘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의 호통이 있은 후 둘의 싸움은 본격적으 로 시작되었다.
이제 컴퓨터 속 가상세계는 예전의 깨끗함을 되 찾고 맑은 세상이 되었다. ‘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은 임무를 완수하고 컴퓨 터 속 자신의 분신을 불러들였다.
본래 바이러스의 공격방식은 새로운 컴퓨터에 몰
그런데‘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의 컴퓨터 속 세
래 들어가 그곳의 오류나 허점을 찾아내 순수하고
상은 완전히 깨끗해진 건 아니었다. 바이러스 대장
착한 정보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거짓말하고 공격하
의 몸의 일부였던 기호 한 개가 남아있었다. 몸의
고 속이는 나쁜 정보들을 심어놓음으로써 그 컴퓨
대부분이 사라져버린 터라 힘을 쓸 수 없었지만, 끝
터를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없이 넓은 가상세계의 어느 한구석에 자신의 몸을
자신의 공격이 하나도 먹혀들지가 않았다.
숨기고 있었다. 사악한 인간들이 언젠가 다시 자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바이러스 대장을 지켜본 ‘뭐든지 말하면 되는 놈’ 은 바이러스 자체의 힘을 - 44 -
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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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보고│
※ 본자료는 회계감사의 감사를 받기 전 자료로서 회계감사후 일부 계정 및 계수의 조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회원·시민 여러분의 회비와 후원금 깊이 감사드립니다. - 48 -
│회비납부명단│
납부하신 회비는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강경애 강금수 강동인 강동철/신동주 강선구 강옥련/박창호 강우진 강재기 강준구 강준식 강진호 강현구 경나윤 고춘자 고한용 공정옥 곽연하 곽이화 곽현수 구수용 구인호 권근환 권기동 권대용 권덕기 권명오 권미숙/박재범 권상구 권상범 권석우 권수용 권수임 권영규 권영래 권영태 권영해 권영희 권오혁 권옥자 권재영 권재욱 권진희 권추경 권택흥 권혁장/추정화 권현준 권흠기 금송민 김갑진 김건예 김건우 김건훈/김향미 김경근 김경환 김광석/이혜영 김규엽 김규종 김근아 김기용/김선희 김남수 김동명 김동익 김동현 김두현 김명호 김미경 김미수 김미정 김미정 김민재 김 배 김병옥 김병채 김병하 김병호 김보영 김보임 김봉심 김삼/한효정 김상수 김상숙 김상순 김상호 김석동 김석수 김선영 김선우 김선희 김선희 김성구 김성수 김성태 김성택 김세화 김소언 김수동 김수옥 김수정 김숙희 김순규 김순옥 김승주 김신애 김신일 김애화 김억남 김언호 김연희 김영근 김영도 김영록 김영문 김영애 김영일 김영지 김영진 김영철 김영화 김용락 김용원 김용진 김우주 김유진 김윤상 김윤정/김수일 김은숙 김은정 김익현 김인하 김인호 김일수 김재권 김재승 김재호 김재훈 김정미 김정민 김정화 김종건 김종록 김종봉 김주영 김주영 김주욱 김주태 김주희 김준호 김지연 김진숙 김진태 김진환 김채원 김천중 김철원 김철현 김태균 김태석 김태영 김태일 김학준 김해원 김해환 김현희 김형섭 김형진 김형태 김혜정 김효경 김효정 김휘수 김희섭 김희진/변정호 나순단 남성욱 남영주 남채현 남호진 노경미 노미경 노승석 노연수 노인만 노태맹 노형석 도영주 도윤백 류덕제 류보경 류영준/이영주 류영철 류은경 류태하 문경자 문영곤 문용우 문종상 민정식 민천식 박건상 박건욱 박경로 박경순 박경순 박경욱 박경찬 박근식/강문희 박금동 박노진 박대희 박명리 박명호 박민경 박병철 박상화 박선미 박성미 박성민 박성찬 박성한 박송빈 박수열 박순일/이미숙 박시재 박신호 박양주 박여경 박옥순 박완슬 박은정 박은주 박인규 박인철 박재락 박재일 박정민 박정호 박종률 박지윤 박찬영 박찬웅 박창호 박청진 박현정 박현탁 박호석 박희동 배갑기 배금정 배대환 배은경 배준석 백권기 백미숙 백승대 백진욱/이선희 백차흠 변영숙 서덕교 서두진 서보경 서보성 서상득 서상민 서상철 서인찬 서정욱 서준하 서준호 서창환 석민철 석성진 설동진 성상희 성언제 성재환 소영진 소유철 손관영 손광락 손대락 손상호 손재봉 손재운 창희/홍경미 손형민 송명수 송미진 송보경 송상욱 송윤식 송해익 시정기 신기복 신기완 신도환 신동민 신동민 신동완/정희선 신동화 신득렬 신명희 신미정 신성욱 신수정 신숙경 신영숙 신유지 신윤정 신정석 신중석 신효철 심윤철 안경완 안경욱/박지선 안병학 안상진 안승택 안영미 안영배 안정임 안헌수 안현재 양선진/임호성 양영일 양유선 양진모 양 희 엄시근 엄창옥 오문섭 오신택 오용태 오의식 오철희 오현주 우성문 우웅택 우장한 원준호 유경진 육정미 윤 영 윤명화 윤문주 윤병대 윤병철 윤상호 윤성아 윤영식 윤용희 윤재석 윤정호 윤종화 윤태자 윤형철 윤호석 이경미 이경상 이경호 이광모 이교남 이규호 이근덕 이근수 이기락 이기수 이남훈 이동기 이동인 이동진 이두옥 이만호 이명원 이명자/안효용 이미지 이병동 이상구 이상돈 이상목 이상수 이상술 이상식 이상원 이상원 이상훈 이서준 이선영 이선영 이성해 이성희 이소령 이순재 이승도 이승수 이승연 이승익 이승후 이연주 이영도 이영희 이원준 이윤희 이은아 이은영 이은정 이의호 이재남 이재문 이재성 이재욱 이재일 이재호 이재희 이점미 이정동 이정만 이정선 이정수 이정연 이정화 이종길 이종우 이종춘 이종필 이주형 이준우 이준홍 이진희 이창수 이창순 이창화 이창환 이창환 이철환 이춘곤 이충기 이태영 이태우 이풍락 이현미 이현숙 이현옥 이형규 이형석 이화선/정호태 이화정/최훈태 임성무 임순광 임현수 임현태 장밝은 장세윤 장영훈 장우영 장은우 장준현 장태철 장현주 장화환 전미영 전승훈 전영주 전재영 전창훈 전홍철 정갑환 정강미 정경열 정규진 정금숙 정길운 정민경 정상기 정선기 정수현 정승필 정용훈 정우근 정우달 정원숙 정은정 정이성 정인숙 정일선 정재봉 정재영 정재형 정정숙 정준호 정지욱 정창수 정하진 정현숙 정혜숙 정호원 조광진 조병집 조영철 조영태 조용식 조재민 조희래 조희숙 조희재 주보돈 진광식 진금염 진성섭 진수미 진수일 진용인 진정화 차우미 채장수 채장식 채형복 채휘균 천기철 /고춘자 천덕우 천용길 최개천 최경호 최기현 최나래 최문석 최병덕 최병우 최병학 최병해 최상주 최선애 최수영 최신일 최연석 최용환 최원준 최유리 최정민 최종태 최진욱 최철영 최현겸 최현숙 최현진 최혜진 추호식 태찬인 하경호 하성협 하영선 하유신 한경국 한광훈 한대환 한부득 한상훈/최경화 한승균 한승훈 한은영 한태수 허 종 허노목 허 소 허은경 허주녕 현명호 현호성 홍상익 홍순표 홍영표 홍원대 황선명 황성욱 황성주 황순오 황양운 황정화 황중진 평생회원 권흥락 김 미 김성희 김은주 김응곤 김영화 성상희/이선례 신숙경 이경옥 이종만 진미화 윤지현 이찬진
*위 명단은 2019년 7월부터 2019년 9월 동안 회비가 인출된 명단입니다. 이름이 없는 등 기타 오류가 있을 시, 사무처로 연락 바랍니다. ☎ 053) 427-9780 담당 : 장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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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발행) 통권 125호
2020 5,6월호
등록번호 대구라01132 등록일 2000년 8월 4일 제호 함께꾸는꿈 간별 격월간 디자인 참디자인 발행일 2020년 6월 26일, 통권 125호
발행처 ‖ 대구시 중구 서성로 14길 59, 2층
■ 풀뿌리주민자치
전화 : 053) 427-9780~1 상담 : 053) 427-9788 팩스 : 053) 427-9723
- 동구주민회
홈페이지 : http://www.civilpower.org
대표 : 박호석
전자우편 : dgpeople@gmail.com
운영위원장 : 양희
후원계좌 : 대구은행 036-04-000437-9 (대구참여연대)
Add. 대구시 동구 입석로 96, 연우빌딩 2층 Cafe : http://cafe.daum.net/dongjumin
■ 함께 꾸는 꿈 편집위원회 미디어위원장 : 문용우 미디어위원 : 강금수 김형진 조영태 차우미 편집담당 : 김형진
공 동 대 표 ‖ 박호석, 이두옥, 정혜숙 운 영 위 원 장 ‖ 박경로 사 무 처 장 ‖ 강금수 상 근 활 동 가 ‖ 장지혁
박청진
곽현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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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516-0160
수경한의원 김기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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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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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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