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소식지 제88호
2011
특집 연평도 문제의 본질은 영해문제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 사람과 사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백창욱 칼럼 함종호가 쓰는 대구의 근현대 진보운동 이야기
주고도 뺨 맞기 이달의 회원 지금 시작합니다! 이승익
대구참여연대는 회원의 회비 및 후원금으로만 운영됩니다
http://www.civilpow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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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HIGH KICK vs KICK ASS│구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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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인사
대표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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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연평도 문제의 본질은 영해문제│김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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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김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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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백창욱│정위지, 박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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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고도 뺨 맞기│전대환 함종호가 쓰는 대구의 근현대 진보운동 이야기│함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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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설명 시민학교 사회정의교실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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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뉴스
지역 권력감시와 견제는 계속되어야 한다!!│최인혁 좀비 인권위원회│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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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저는 이 사진이 참 좋습니다.│정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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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행사
2010년‘송년의 밤’│김주욱, 안재순, 윤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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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주민자치 소식 구미참여연대│이봉도
동구참여연대│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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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회원
지금 시작합니다! 이승익│정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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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울(기자단)
우리도 알건 다 안다고요!│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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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소감문
대구참여연대와 함께한‘현장실습’ 을 마치며...│박혜정,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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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고/사무처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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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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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납부·후원인 명단
등록번호 대구라01132 등록일 2000년 8월 4일 제호 함께꾸는꿈 간별 격월간 디자인 참디자인 발행일 2011년 1월 10일, 통권 88호
│여는 글│
High Kick vs Kick Ass 글. 구수용 (미디어위원장, sykoo@tsu.ac.kr)
2010년에 떡실신녀, 빵꾸똥꾸 등의 유행어를 남긴「지붕뚫고 하이킥」 이라는 시트콤이 있었다. 하루 의 피곤을 거침없이 날려버리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시트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 욕망, 수치심 등을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든 내면의 상처, 외로움, 치사함을 웃음으로 풀어내 는 장면들을 보며 유쾌해 했던 기억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의 아쉬움이란...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또 한 번 유쾌한 킥을 날린 영화가 개봉되었다.「킥 애스 : 영웅의 탄생」 . 이 영 화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의 계보와는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이다. 슈퍼 히어로 시리즈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출발해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뻔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 지만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영웅의 모습, 연인과의 사랑과 실연과 같은 인간적인 내용이 양념 처럼 곁들여져 재미를 더한다. 초인적 힘을 가진 영웅에 대해 대리만족하면서도 일반인과 같은 내면 세계의 고뇌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진 것이 슈퍼 히어로 영화의 특징이다. 「킥 애스 : 영웅의 탄생」 은 초능력은 없지만 슈퍼 히어로가 되기를 꿈꾸는 소년 데이브가 어떻게 정한 영웅이 되어가는 지를 보여 준다. "왜 나보다 먼저 시작한 사람이 없었을까?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솔직해 지자. 우리 모두 인생에 한번쯤은 영웅이 되길 원한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데이브의 목소리이다. 주인공은 전 형적인 루저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왜 이 세상에서 영웅은 만화책에만 존재하는지, 왜 아무도 영웅 이 되려 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직접 영웅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초록색 쫄바지에 허접한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배회하며 좌충우돌한다. 주인공은 많은 우여곡절을 통 해 정의를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으로 발전해 간다. 진정한 영웅은 내면에 있는 정의감을 마음에만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이를 몸소 부딪치며 실천함으 로서 탄생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생각과 행동, 그리고 자신만의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 만 외롭고 바쁜 삶에 익숙해진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자신과 가족, 직장, 국가에 대한 생각들을 진 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에는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내면의 생각을 말하고 행동하는 하이킥과 킥애스 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2011년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늘이 준 2011년이라는 선물 안 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포장을 뜯어 그 안에 어떤 선물이 있는지 보려면 365일이 걸린다. 긴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열었을 때‘멋진 나 ‘를 발견할 수 있도록 모두가 뜻 깊은 한해를 보내길 기원한다.
02 03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새해인사│
글. 김영화
어느 해 보다 유난히 어수선하고 불안했던 올 한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다. 아쉬움과 미련을 뒤로 하고 한 해 를 보내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우리에게 내일은 분명히 오는 것인데, 그 내일을 향하여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할까? 내일 지구의 종 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 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며,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내고, 또 그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곳에는 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다. 희망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며, 내일은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신념이다. 인간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인간만이 희망의 정치가 가능하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 아야 하며, 나아가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참여연대가 사람들에 게 더 많은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민들을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 이라 믿는다.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나무를 심고, 그 나무그늘에 앉아 평화로움을 서로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 다. 그리고 빨갛게 익은 정의의 사과를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서로에게 힘을 주고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새해에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조그만 지역공동체에서 따뜻하게 서로 행복을 나누고, 충족감과 평화로움으로 모두에게 넉넉한 이웃이 되기를 희망한다.
글. 법 광
서설 앉은 겨울산사에 풍경(風磬)이 사방으로 울고 산솔바람은 긴 소리를 휘감습니다. 엄동의 산중(山中)에서 참여연대 모든 회원과 가족여러분들께 새해 첫인사를 드립니다. 2011년의 시민사회는 다시 민주주의와 생명, 평화를 얘기해야 합니다. 일방향적 권력에 의해 지난 3년간 강역이 마구 파헤쳐 지고, 분단의 포연(砲煙)이 가득한 작금에도 이 땅의 진정한 가치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뭇 생명, 한반 도의 평화이며 시민들의 보편적 욕구와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우리 모두는 사회경제적으로 초집중화된 과두화(寡頭化)속에 잃어버린 우리 사회, 대한민국의 보편적 공 공성을 새롭게 세우고, 기층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하며, 한반도에 생명과 평화의 정신이 살아 숨쉬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시민 사회적 노력 속에 대구참여연대의 선명한 활동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 울러 대구의 시민운동, 일상운동, 생활운동, 평생운동의 화두(話頭)를 같이 참구해 갑시다. 금년에도 대구참여연대가 사업과 활동을 통해 더 따스하고 엄중하며 훈훈한 정분이 느껴지는 시민공동체의 살림을 더해 가길 바랍니다. 새해 새아침에는 저마다 많은 꿈들을 얘기하며 시작하십시오. 2011년! 신묘년에는 여러분들의 원하고 뜻하는 바가 어려움 속에서도 일찌감치 환하게 성취되는 통쾌한 한 해가 되시길 산사의 기운으로 축원드립니다.
法 光 손모음
글. 원유술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 고...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1:1~ 3)” 회원여러분! 신묘년 새해 힘찬 출발을 기원합니다. 작년 한해 사회진보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나 회원들에게는 좀 착잡하고 힘겨운 시간들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따 지고 보면 올해라고 정치상황이나 사회분위기가 더 나은 것은 아니어서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보다 곧은 마음, 지혜로운 생각으로 주변을 살피고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 요. 그러다보면 위 성경구절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만사가 형통하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새해 좀 더 힘내시고, 대구참여연대와 함께 더 나은 사회를 향해 파이팅 합시다. 멀리서나마 회원들과 함께 새해 를 시작하는 축배를 듭니다. 이상은 높게! 사랑은 깊게! 잔은 평등하게! ^^
글. 한재흥
회원여러분! 어느 경전에‘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라는 말씀같이 지난 일 년 우리는 이러한 심정으로 대구참여연 대를 섬기며 동행했습니다. 일 년 동안 진행되고 변화한 것이 다 하늘의 뜻이다 여기며, 이제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거운 심정에서 벗어나 밝 고 소망스러운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 망각(忘却)과 미지(未知)가 있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을 마땅히 잊어버리는 망각과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기에 여전히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새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대구참여연대 공동체 안에 서로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에는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으로 아직은 대안공동체까지 이르지 못 하더라도 세상의 여기, 저기로부터 과연 대구참여연대 공동체답다는 대비공동체로서의 출발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한해 참으로 수고하셨고 함께 하여 준 대구참여연대 임원님, 활동가님, 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11년 새해 복 넉넉히 누리십시오.”
04 05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특집│
연평도 문제의 본질은 영해문제 MB, 북한붕괴론의 망상에서 벗어나야 글. 김두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citizen2001@hanmail.net)
우리군의 연평도 사격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우려로 전쟁의 공포에 휩 싸였던 20일(월)이 무사히 지나갔다. 지난 11월 23일 우리 군의 호국훈련과 이에 대한 북의 연평도 포격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한고비를 넘어서고 있 다. 물론 여전히 북은“한계 없는 우리 혁명무력의 2차, 3차 강위력한 대응 타격” 을 공언하고 있는데다가 우리 역시 대북 심리전의 상징적인 조치인‘애기봉 등 탑’점등식을 기어이 강행하고 말아 긴장의 여진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연평도 사건의 본질은 영해문제
한반도에서 교전이 발생하거나 북의 군사적 조치가 일어났을 경우 전문가들과 언론은 북측 정권의 의도부터 추리 하는 맥락읽기가 앞서나갔다. 하지만 정작 이 같은 의도 읽기는 사건 자체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가리는 역 할을 해왔다.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는 필요하나 공개되고 확인된 사실로부터 사건의 경위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기본적으로 이번 연평도 사건의 본질은 영해를 둘러싼 남북 간의 갈등이다. 우리는 이번 사격훈련이 이루어진 지역이 연평도 남서쪽 우리 측 영해이며 이곳에서 훈련을 하는 것은 정당한 주 권적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은 일관되게 서해 5도는 남의 영토이지만 서해 5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한 방 울의 물도 남측 권한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다시 말해 남측이 생각하는 영해와 북측이 생각하는 영해가 서로 다르다 는 것이다. 남측은 북방한계선 남쪽을 남측 영해라고 하지만 북은 단 한 번도 북방한계선을 정당한 군사분계선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고 12해리 영해 원칙에 따라 설정한 자신들의 해상군사분계선 북쪽, 즉 서해5도를 모두 포함하는 해역을 자 신들의 영해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북방한계선은 정당한 군사분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방한계선은 정당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에서 합의된 해상경계선이 아니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이 선 이상 더 북쪽으로 갈 수 없다' 라고 견제하기 위해 설정한 한계선"에 불과한 것이다. 정전협정에는 지상군사분계선과 한강수역외에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을 합의하지 못하였고 이것이 결국 지금의 서해 상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북과 유엔군이 합의한 선도 아니고 남과 북이 합의한 선도 아니다. 또한 북한이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하도록 설정한 선도 아니고 오직 이승만 정부의 무모한 도발을 막기 위해 유엔군이 남측해군의 북측 수 역 진출의 한계선 (Limited Line)이지, 남북한의 해상을 획정하는 경계선(Boundary Line)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이는 북방한계선이라는 명칭에서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남측이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북방한계선(NLL)을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사수하려고 하는 것 이 서해상 남북 간 분쟁의 원인인 것이다. 남북 간에는 이미 서해상 분쟁 해결의 방안을 합의한 바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평화번영선언이다. 10·4 평화번영 선언 5항에서 남과 북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포함하여 그 주변지역에 서해평화협력특별 지대를 설치하고 이를 공동어로구역과 경제특구 건설 등을 통해 공동번영을 위해 이 지역을 활용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정부가 지난 정부의 합의는 북한에 끌려간 잘못된 합의라고 평가하며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의 주범은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북을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호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도발이 평화정착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번 연평도 포격만 봐도 지난 정권이 퍼주기가 포탄이 되어 돌아왔다고 생 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진실일까? 물론 북의 과도한 대응도 한반도 긴장위기에 한 몫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붕괴론의 환상에 빠진 MB정부이다. MB정부는 북한이 권력승계과정에서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조금만 더 압박하고 곧 무너질 것이 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 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 한“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는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과 북의 관계가 호전되고 교류가 진전되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의 길이 멀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 온“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는 발언과 잇단 북한 변화발언은 곧 조금만 밀어붙이면 북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발언들이다. 이런 인식은 결국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모든 대화를 무의미하다고 봐 북미대화 움직임을 가로막고자 하는 발언으로 나타난다. 이는 리처드슨의 방북과 합의에 대한 정부당국자들의 '북한의 선전에 놀아난 것이며', 합의 사항이라는 것이‘새로 운 것이 없고’ ,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평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는 한반도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근본주의가 개입되어 있고 북한붕괴론의 철학이 작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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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응하지 않은 이면에 리처드슨의 방북과 북한당국자들과의 대화와 합의가 작용했 다는 점이다. 어렵게 열린 대화의 창을 근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MB정부가 닫으려고 한다면 이제 한반도 전쟁위기의 공범을 넘어 주범이라는 평가를 면키 어렵게 될 것이다. 결국 희망의 창을 여는 것은 안타깝지만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내년 봄 한반도 전쟁 위기가 거치고 평화의 봄 이 찾아올지 기나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특집│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 글. 김근식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kimosung@kyungnam.ac.kr)
지금 김정은 후계과정은 후계체제의 완성이 아니다. 후계과정은 크게 구축과정과 공고화과정으로 구분되는데 지금 단계는 후계체제 구축을 완료하고 공고화하는 게 아니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 공식 진입한 것이라는 의미다. 1974 년 김정일은 당 정치위원에 선출됨으로써 후계자로 공식 내정되었고 이후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국상무위 원과 당비서 및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됨으로써 실질적인 후계자로 공식확정되었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 김정은은 당 중앙위원과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지위이지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비서직을 갖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 히려 1974년 김정일의 지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은은 앞으로 검증과정을 거쳐 나머지 고위 당직과 국가기관 직위까지를 확보함으로써 공식적인 후계자로 확정되는 절차를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지위는 1974년 김정일의 지위와 비슷하지만 공개적인 대외 행보는 1980년 후계자 확정 이후 김정일의 수준 이상이다. 즉 권력 지위와 대외 공식화 사이의 불일치가 있는 점이 지금 후계체제의 특징인 셈이다. 또한 김정 일의 경우는 당활동을 통해 당을 장악하고 후계자 내정 이후 대중을 상대로 공개 활동을 시작한 반면, 김정은의 경 우는 후계자 공식내정과 대내외 선포를 먼저 한 후 당내 리더쉽 확보와 군장악에 나서는 역순의 과정을 밟고 있음 도 차이점이다. 이는 후계구축 과정을 서둘러야 하는 지금 북한의 다급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만큼 김정은의 권력토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향후 김정은 후계과정은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후계과정이 안정적으로 진 행될 것이라는 전망은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는 권력이고 그가 선택한 후계자와 그 후계자를 후견할 김경희, 최룡 해, 리영호, 장성택 등이 최선을 다해 후계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후계자 낙점 이후 후계체제 대비용 국 방위 인선을 확대하고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 개정으로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했다. 후계 체제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금년 최고인민회의에서 북은 후계체제를 국방위 차원에서 책임질 인사로 장성택 부장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고속 승진시키고 후계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영림 내각 체제를 굳혔다. 헌법개정과 국방위 강화를 거쳐 내각 재편을 단행한 이후 9월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함으로써 후 계체제용 당정비와 당조직 인선을 완료했다. 그리고 연이어 당창건 기념일 열병식을 통해 외신기자까지 초청해서 후 계자 내정을 대내외에 공식 선포하는 절차를 밟았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후계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이는‘압축적’후계과정 자체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압축성장의 빛과 그늘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압축 후계 과정은 당연히 부작용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스스로 당생활을 통해 쟁취한 권력, 확보한 권력, 검증 받은 권력으로서 후계자의 입지를 다져갔다면 김정은은 부여받은 권력, 올려 세운 권력으로 후계체제를 시작한 것이
우리의 합리적 대응이 북한의 올바른 정책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 때문에 권력토대의 측면에서는 상대적 불안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후계자 내정 이후 김정은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더더욱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불안해질 수 있다. 후계자로 선택된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감당해야 할 과제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도 많다. 중앙위원으로 둥지 를 튼 노동당에 대한 리더쉽 확보도 문제이고 당과 군과 국방위원회를 연결하는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의 수행과 이를 통한 군장악도 관심거리다. 주체사상을 넘어서서 이른바 선군사상을 체계화시키고 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 석권을 후계자가 확보할 수 있을 지도 지켜봐야 한다.
후계체제를 떠받치는 권력엘리트의 변화도 불안정성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인선의 핵심인 리영호 총참모장의 부상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과의 쇠락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둘러싼 인적 변화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 다. 2009년 국방위원회 확대 당시 국방위원에 들지도 못했던 리영호가 1년여 만에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 위 부위원장과 인민군 차수 자리를 거머쥐고 후계자의‘정치적 스승’ 으로 등장한 것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화 려하게 부상했던 오극렬이 이번 당인사에서 정치국과 비서국, 중앙군사위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극명하 게 대비되는 권력엘리트의 부침이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떠오르는 권력집단과 내리막길의 권력집단이 생겨나는 것은 아무리 수령제하의 일사불란한 체제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될수록 한반도의 불안정성도 커진다. 후계구축 과정에서 북이 경직된 보수화로 기우는 것을 최대한 막아내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도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을 제어해야 한다. 더불어 후계 과정의 필요에 의해 북이 중국에 의존하는 것 역시 우리로서는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다. 후계체제가 남북관계와 북 미관계 진전으로 결과되고 유연하고 전향적인 대내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 한 것이다. 08 09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후계과정을 단지 놀랍고 비난할 일로만 간주하기보다는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향후 김정일과 김정은의 바람직한 정책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죽일 놈 살릴 놈의 야단법석이 아니라 후계체제가 한 반도의 안정과 평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 개혁개방의 북한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우리의 개입 력과 영향력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전면파탄에 직면해 있는 지금의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 다. 우리의 합리적 대응이 북한의 올바른 정책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사람과 사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상임대표
인터뷰. 박근식 (미디어위원회, myid67@hanmail.net) 정리. 정위지 (미디어위원회, ohmydaegu@nate.com)
대구로 오게 된 건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되었다. 그때가 5월이었는데, 재수
2006년도 서울에서 목정평(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
하기도 애매해서 교회 다니기 딱 좋았다. 그 해 여름
협의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진로를
수련회에게 특별한 경험을 했다. 기독교에서는 거듭난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보통 길을
다라고 표현하는데, 그 때 체험을 했다. 형식상 크리스
찾고자 할 때 기도에 전념한다. 그때 이틀에 걸쳐 특
천이었다가 내용적으로, 마음으로 동의하는 크리스천
별한 경험을 했다. 내 속에서 나온 게 아닌, 위에서 떨
이 되었다. 그때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성서를 탐독했
어진 지시가 있었다. 개척교회를 하라는 것과 대구로
다. 그런 것들이 작용을 해서 신학대학교를 갔다.
가라는 것이다. 기겁했다. 평범한 사람들이야 어느 지 역이든 똑같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구에서 보여준 반역사적인 행보들과 부정적 이미지는 운동하는 사람 들에게 특히 강하다. 가족들이 처음에 많이 놀랐다. 동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풍파가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가장이 그런 결 정을 내린 것에 대해 잘 받아줘서 고맙다.
내가 복학하고 처음 본 대자보가 광주항쟁의 전말을 쓴 대자보였다. 전지가 벽을 다 메울 만큼 길게 붙어있었다. 나는 그 걸 처음 접했다. 광주항쟁은 80년도에 일어났는데, 나 는 84년도에 봤다. 그 전지 열 댓 장을 다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걸 왜 이제 알았을까. 내가 모르면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언론에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나의 특징 이다. 좌우를 보지 않고, 거기에 올인 해버린다. 서울공고 를 다녔고, 취업 나가고 1년 정도 일하다가 현장에서
서도 교회 선배들도 말해주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 다. 의문을 가졌다. 내가 몸담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사회와 이렇게 동떨어진 교회에 반문하게 된 것이다. 2학기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근현대사 공부를
했다. 지금 한국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알고 있으니까 나에게 연락이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이르렀나. 그 근원부터 쭉 탐구를 했다. 지금도 그 감
그게 시작이었다.
정이 기억이 난다. 초겨울 들어갈 때쯤, 찬바람이 불 때 도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바뀌었다, 어제의 내가 아니다, 그런 자의식이 나를 붙잡았다. 85년도 새학기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내 성격상 등 록금을 안내고 다닐 수 없어서 그냥 자퇴를 해버렸다. 학교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 내가 단순하다. 휴학해 도 되는데, 왜 자퇴서를 썼는지 쓰고 후회했다.
많은 통일운동단체가 있는데, 평통사가 그들과 다른 점은 이슈를 분명이 할 수 있고, 투쟁의 선명성이 남다 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군문제를 들 수 있는데, 압축적으로 말 하면 북한에 대한 시각과 주한미군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수없이 많은 캠페인을 했을 때 대중들이 보이는 반응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식과 미군이 철수하게 되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현 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면 남한의 안보가 보장이 되느냐에 대한 우려를 가장 많이 접한다. 이것만큼 뿌리박힌 거짓이데올로기가 없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열심히 소시민으로 살며
다. 북한에 대한 가장 큰 부정적 인식은 60년 장기집
결혼을 했고, 그렇게 십 수 년을 살았다. 소시민으로
권으로 인민을 굻어 죽이는 부도적한 정권이라는 것
사는 것에 대한 보람이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이, 그러면서도 정권유지를 위해 온갖 호전적인 일을
것인가 하는 회의가 있었다. 마음먹고 성경을 집중해
한다는 이미지, 주한미군의 문제와 북한의 부정적 이
서 보았다. 이게 내 길이고, 이걸 회피하면 내가 죽을
미지는 맞물려있다. 주한미군이 항구적으로 존재할 의
것 같았다. 늦었지만 내 길을 찾았다. 정말 학구열이
미가 있느냐. 사람들이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없다.
폭발하고, 그 길에 대한 의심도 없었고, 이젠 돌아갈
미군이 없으면 우리 안보에 구멍이 난다고 생각한다.
길도 없다. 거기에 전념을 했다.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평통사가 던지는 것이다.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와 인연은 평택 미군 기지 문제로 시작되었다.
대구 내려와서 가장 어려움이 사람을 모른다는 것이다. 학교, 출신, 이력, 서로 다 알지만 나는 전혀 모른
평택 미군기지 때문에 대추리 주민들이 쫓겨나는 상
다. 그게 핸디캡이었는데, 장점일 수도 있다. 차라리
황, 그 대응 속에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기독교대책
허심탄회하게 이해관계에 쏠리지 않고 내 역할을 할
위가 구성이 되고 내가 사무국장일을 했다. 평택범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도 요즘 지쳤다. 나는
위에 기독교 대표로 가서 얘기를 했다. 국가공권력이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한 게 큰 착각이었다. 올무에 빠
너무 강고해서 분위기가 쳐져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진 느낌.
내 덕에 활력소가 되었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모든 대책위가 그렇지만 처음에는 결합단체가 많다. 하지만
인터뷰하면서 처음부터 회고해볼 수 있어서 한 편으 로 다행인데, 기력이 쇠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만 남는다. 그런데 평통사가 확 고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대구로 와서 인연이 끝난 줄 알았는데, 평통사는 평통사대로 지역조직을 확충하는 게 큰 과제였다. 대 구평통사를 조직해야하는데, 그동안 잘 안되고, 좌절했 단다. 내가 대구에 있는 걸 알고, 평택범대위 경험을
약자와 함께하는 하는 것이 운동가의 원칙이다. 자기 소양을 위해서든 스펙을 쌓기 위해서든 이 일 에 뛰어든 동기는 제각각 이지만, 이 일에 들어온 이상 그런 걸 뛰어넘어 진보시키고 영역을 확장시켰으면 좋 겠다. 사회도 좋아지고 자기 자신도 커질 것이다.
10 11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칼럼│
글. 전대환 (前공동대표·한울교회 목사, qooqle@naver.com)
어떤 못난 남자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현관 문 따는 소리가 나자 이불 속에 누운 남자가 아내에게 말 했다.“방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도둑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남자는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훔쳐 가기만 해봐라!”훔칠 물건을 다 챙겨 나가자 그제야 큰 소리로 말했다.“또 오기만 해봐라!”거기까지는 그래도 남자의 소심함 탓이라고 봐줄 수 있다. 날이 밝자 남자는 아내의 따귀를 올려붙이며 소리쳤다.“그동안 문단속을 어떻게 했기에 집에 도둑이 들어와?” 도둑과 관련하여 최악책은 도둑맞고 마누라 뺨치는 것이고, 하책은 도둑을 때려잡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책은 문단속을 잘하고 하는 것이고, 최상책은 도둑이 없는 이웃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 어린 시 절 어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야기는 '도둑이 들어오면 잡으려고 하지 말고 기척을 내서 스스 로 나가게 하라'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집안에 침입한 도둑을 때려잡아 분풀이를 하고 싶겠지만 그 렇게 했을 때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기에 그런 교훈을 주셨으리라. 잘 알려진 어느 명사의 어머니는, 밖에 나갈 때 마다 꼭 뒤주문을 열고 쌀 위에다가 손가락으로 글씨 를 썼다고 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기척을 내 스스로 나가게 하라.’ “양식이 아쉬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도와주어야지 훔쳐 가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양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란다. 뒤주를 자물쇠로 잠그면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그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 고 집을 비우면 나쁜 짓을 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지. 쌀을 퍼간 사람보다 그런 틈을 준 사람이 더 죄를 짓는 거란다.”선조들의 지혜다. 연평도 포격이 있은 뒤 어김없이‘좌파정권 10년’탓을 하는 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에 좌파정권이 들어섰던 적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지만 어쨌든 이전 정권에서‘퍼주기 하느라고’국방을 소홀히 해서 이 런 결과가 생겼다는 핑계로 들린다. 이제 12월이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만 3년이 다 돼간다. 버나드 쇼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글이 생각난다.“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 언젠가는 내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지!”세기의 희 극작가다운 묘비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며 94년을 살다가 간 인물도 이런 말을 하는데, 5년의 대
통령 임기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테이프를 되감듯이 역사를 3년 전으로 돌려놓고 보자. 4대강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4대강은 파괴되어,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걱정거리가 되어 있다. 그때 한미 FTA가 타결된 상태였지만, 우리나라보다 미국이 더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추가 협상 결과를 놓고 미국이 박수를 치고 있다. 우리 관리들은 쇠고기 협상은 없다고 공언하지만 외신들의 보도를 보면 썩 믿을 만하지는 않다. 그냥 가만히 놓아두기만 했어도 될 것을, 긁어서 상처만 키웠다. 3년 전 우리 민족에게는 6·15합의가 살아 있었고, 10·4선언의 잉크가 아직 채 마르기 전이었다. 그 러나 지금은 '전쟁이냐 평화냐' 하던 선거구호가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아직까지 '처절한 보복'이니 '몇 배의 응징'이니 '확전 불사'니 하는 말이 시장 막걸리집이 아니라 주요 언론들에서 난무하는 것을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최근 연평도 주민들이 겪은 아픔을 조금이라 도 헤아릴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MB정부 주는 기술‘낙제점’ 전면전이 시작되면 하루 만에 남측 사망자가 수백만에 이르리라는 것이 각종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의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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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의 대북지원을‘퍼주기’ 라고 몰아대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북에 지원한 금액도 만만치 않다. 6·15 합의를 바탕으로 한 10·4선언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상황과 나란히 놓고 보면 극과 극이다. 사람을 도와줄 때 상대의 처지나 인격을 고려하지 않고 하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노무현정부도 퍼 주었고 이명박정부도 퍼주었지만 이 정부는 주는 기술에서 낙제였다. 주고도 뺨을 맞았기 때문이다.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칼럼│
활동가의 눈으로 역사를 보다
글. 함종호 (4.9인혁재단 상임이사, utopiaham@hanmail.net)
두 번째 이야기 10월항쟁 2 대구의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에서 끝까지 애국적 지조를 지킨 민족주의자는 전국적으로 극히 드물다. 일제강점 기 초기의 민족주의자 거의 대부분이 후기에 이르러 적극적 친일파로 전향하였고 그나마 남은 민족주의자 도 해방 때 거의 대부분 이승만-친일파 연대세력에 편입된다. 그러나 대구에는 끝까지 지조를 지킨 비타협 적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 중 해방 때 활동했던 대표적 인물이 김관제, 채충식, 이선장 등이다. 해방 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시인 이육사, 이상화도 이들과 동지들이다. 백산 안희제, 경주 최부자 집(최전)도 이 들의 후원자들이다. 이들은 멀리는 의병운동(왕산 허위선생)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의열단 등에 참여하였고 해외독립운동계열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조선은행에 폭탄을 투척했던 장진홍열사와 함께 한 세력이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혹은 비합법적으로 심지어는 부자들에 대한 테러에 의해 독립자금을 모집하 여 해외 독립운동 진영에 보낼 만큼 적극적이며 전투적이었다.
건국준비과정과 10월항쟁에 참여 10월 대구항쟁은 식량, 친일 경찰, 토지개혁문제를 직접적 계기로 폭발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새로운 국 가권력 형성 방안을 둘러싼 세력 간 충돌에서 비롯된다. 핵심적으로는 자주적 권력과 미군정 권력 간의 갈 등이다. 갈등은 맥아더의 포고령으로 현실화 된다. 10월항쟁은 이러한 심각한 갈등의 결과이며 이 갈등의 폭발이다. 어떤 학자들은 10월항쟁으로 갈등이 심각해졌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모자의 책임론을 펼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뿐이다. 갈등의 한 축인 자주권력 세력들은 전국적으로는 여운형을 중심으로 건국동맹(일제강점기 말기), 건국준 비위원회, 인민공화국(북한 정권이 아니라 여운형의 인민공화국)을 경과하면서 친일파 배제를 전제로 모든 민족세력을 규합해간다. 대구와 인근지역은 전국 최대의 독립운동 역량을 지니고 있었던 만큼, 전국의 축소 판으로서 다양한 세력이 결집하여 건국운동을 활기차게 진행한다. 대구와 인근지역의 건국운동을 주도한 인물들, 즉 경북 건국준비위원회의 집행부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 운동을 했던 사회주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기독교사회주의자 그리고 친일을 하지 않았던 양심적인 유 지로 구성된다. 이들은 대개가 대구 대봉동 학원가의 학생운동 출신들이다. 특히 실무 집행부인 청년들은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구분하지 않고 자주국가 수립에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 명확했다.
거의가 대구고보을 중심으로 하는 대봉동 학생운동 출신들이었고 상층 대표들은 1920년대 신간회에 참여하 는 등 탄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선배 애국자들이었다. 이들 중 숫자는 적었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세력이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다. 해방 직후 대 부분의 애국자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강요에 못 이겨‘소극적 친일행위’ 를 한 경력 때문에 자괴감을 지니 고 있었다. 경북건국준비위원회 집행부의 다수도 그러했다. 그런데 김관제, 채충식 등은 해방을 대구경찰서 유치장에서 맞이한다. 감옥에 있었던 이들은 친일의 결점이 없었다. 때문에 아마 이들을 매우 존경했고 그 래서 건국준비위원회의 대표로 추대하였을 것이다. 거기다가, 해방 때, 전 민족적 결집을 위해서는 민족주의자들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가면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은 거의가‘적극적’친일파로 전향한다. 그 중 끝까지 지조를 지킨 애국자는 매 우 드물었다. 이때 대구에는 김관제, 채충식이라는 소위 거물 민족주의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이 들의 정치적 위상은 매우 높았을 것이다. 이들은 매우 개방적이었다.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구분하지 않고 자주국가 수립에 모두 힘을 합쳐야 한 다는 생각이 명확했다. 오히려 이들이 지닌‘출신’ 과‘사회사상’ 은 이승만과 김구가 주도한 우익과 가까웠 을 것이지만, 친일파와 손잡은 이승만과는 절대로 손을 잡지 않았다. 이와 달리, 김관제와 함께 대구의 민 족주의자의 양대 쌍벽을 이루었던 서상일은 이승만과 손을 잡는다. 이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었던 소수의 민족주의 진영이 갈라지게 되었으며, 이들만이 최종적으로‘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의 명성을 얻었다.
남로로 까지 이어진 정치활동으로 가문은 몰락하고 그 정신만 역사에 남겼다 대구의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여운형의 근로인민당과 결별하면서까지 남로당에 참여한다.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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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했던 여운형이 아니라 편협하다고 여겨졌던 박헌영에게로 가는 인간적 아픔도 감수한다. 이 역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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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로 인해 그들 자신은 물론 가문도 몰락한다.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김관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유력하게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형무소에서 총살당한다. 채충식의 아들 채병 기는 대구형무소에 있다가 가창골에서 학살당한다. 채충식의 사위이자 이선장의 동생인 이규형은 역시 수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운좋게 살아 남았다. 살아남은 본인과 가족들은 계속되는 감옥생활, 탄압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으며 가문이 몰락한다. 그러나 그 가문의 역사적 헌신은 끝나지 않았다. 채충식의 손녀 채영희는 연좌제의 억압과 극빈 속에서 도 살아남아, 지금은 10월항쟁유족회의 회장을 맡아 10월항쟁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앞장서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 사랑방이 있었다. 이곳에 애국자들이 모여 운동을 만들어 갔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의 사랑방이자 건국준비위원회의 산실 복양당 과거에는 정치 사랑방이 있었다. 이곳에 애국자들이 모여 운동을 만들어 갔다. 그 대표적인 정치 사랑방 이 약전골목에 있었던 김관제의 복양당(한의원)이다. 이곳에는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건국준비에 관련 된 인사들이 집결했다. 사랑방 수준을 넘어서는 규모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통이 큰 애국자였던 서상일 은 조양회관을 만들어서 운동가들을 지원했다. 조양회관은 해방 때는 애국적 우익의 집결처가 되었고 동지 였던 김관제의 복양당과는 정치적으로 대립한다. 조양회관은 지금 망우공원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약전골목 복양당은 지금은 다른 건물로 바 뀐 채 그 자리만 기억으로 남아 있다. 건국과 10월항쟁의 상층 집행부의 집결처이었던 옛 복양당한의원 자 리에 이런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여기 이곳은 해방 때 경북의 애국자들이 모여 건국을 준비하던 곳이다’
▲약전골목 제일교회 맞은 편, 구 복양당한의원 자리 앞에 선 필자 ▲채충식 선생 유품전시회 앞에 선 손녀 채영희 선생, 가운데 채충식 선생
정|정|합|니|다 지난 호 각주 4)의 최무학, 최문학이‘서울 출신이라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며 대구 달성군 출신으로 여겨진 다.’ 를‘...경북 울릉군 출신이다.’ 로 수정합니다.
│대구지역뉴스│
지역 권력감시와 견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 대구시의회 2010년 행정사무감사 현장을 모니터하다. 글. 최인혁 (시민사업센터, gom5566@nate.com)
제192회 대구광역시의회 제2차 정례회가 2010년 11월 10일부터 12월 21일까지 총42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이 번 2차 정례회는 행정사무감사, 2011년도 세입세출안 예비심사, 2011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010년 추가경정세 입세출안, 각종 안건심사 등 대구시가 올 한 해 동안 시민세금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했는지 그리고 잘했는지 못했 는지 평가를 받고, 더불어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는 시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의정활동기간입니다. 그중에서도 행정 사무감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대구시의회는 운영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문화복지위원회, 경제교통위원회, 건설환경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총 6개의 상임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6개의 상임위원회는 각각의 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 대구시 각 실국과 현장본부를 중심으로 행정사무감사(이하 감사)를 진행합니다. 감사에 앞서 시의원들은 반드시 해당 피감기관에 대 한 전반적 이해를 통해 통계자료 및 현장밀착형 정보수집 등 감사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는 사전노력이 요구됩 니다. 또한 감사 진행과 관련된 비합리적인 행태를 자제하기 위해 피감사기관 간의 서로 협력적 거버넌스체계를 구 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구광역시 지방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대구시장은 행정사무감사란 곧 지방정부 운영의 합 리성과 민주성을 제고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장치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감사에 임하여야 합니다.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발족 및 기자회견> 지난 11월 9일 오전 10시 30분 대구시의회 회의실에서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발족기자 회견을 가졌습니다. 지난수년간 소홀히 했던 권력감시활동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가 대구 시·의회에 대한 권력감시활동과 견제역할을 다시금 충실히 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기자회 견에서 행정사무감사에 대한 23개 시민단체요구안을 발표와 동시에 감사기간 중 현장모니터를 통한 본격적 감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고) 10/21~10/22 이틀에 걸쳐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제1기 지방자치예산학교를 통해 지방정부예산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대구시·교육청에 대한 예산분석, 의정활동 모니터 방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청문회나 국정감사 등 TV를 통해‘저건 감~사야, 감~자야’ ,‘저게 뭐꼬(!)’등 높은 분들의 비상식 적 행태에 대해 분노와 한계를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행정사무감사 모니터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래도 가끔 청문회스타를 본적이 있는 것 같아‘혹시나’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역시나’였습 니다^^;; 그래도 몇몇 시의원의 열의와 열성은 긍정적!!) 그리고 국회의원·시장·시의원이 블루(?)독점정치세력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단순히 형식적인‘짜고 치는 고스 톱’ 이 될 여지가 있기에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지방의회에 진출하여 직접정치를 해보는 것도 좋 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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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사무감사 기간 중 : ○○연대 ○○님 모니터 후기> “○○○○위원회 ○○국의 행정사무감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위원장의 선언과 함께 대구시민단 체연대회의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의 2010년도 행정사무감사 모니터활동도 시작되었다. 처음하는 활동이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는 분위기에 어떠한 내용을 메모를 해야 할지 솔직히 힘들었다. 시의원들이 무슨 말을 하기는 하는 데...... 아무튼 잘 안 들렸다. 이런 식으로 모니터활동도 엉망진창이 될 거 같아 일단 모든 발언을 노트에 적기로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적기 시작하였다. (근데 더 웃긴 건 옆에 다른 아저씨(?)가 내걸 보고 따라 적고 있다는 사실^^;;) 이번 행정사무감사에서 각 위원회별로 베스트 시의원을 뽑기로 사전논의를 했었기 때문에 각각의 시의원들의 발언 횟수와 내용, 질의할 때 태도, 사전준비성, 출석여부 등을 고려하고 모니터 활동을 하기로 되어있었기에 점심 먹고는 좀 더 신경 써서 모니터하였다. 모니터를 하다 보니 시의원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눈에 띠는 의원들이 있었다. 점심 먹고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밖으로 담배 피우러 가고, 어떤 의원은 해당사업내용과 전혀 무관한 질의를 한다 거나, 감사 내내‘내가 몰라서 그러는데 이사업은 어떤 것입니까?’이 말만 되풀이하는 의원도 있었다. 심지어 본 인이 요청한 자료가 제출되었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재차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잡다한 민원에 집착한 질의를 하거나, 지인이 어떤 이야기를 하길 래 물어봤다거나, 아는 의원이 이렇다고 추천하길래 이야기한다 등 시의원 수 준에 걸 맞는 조사나 연구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에 기대어 질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르면 사전에 공부를 좀 하고 오시던지!! 대구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의정활동하는 양반(?)들의 수준이 이래 도 될까? 싶을 정도로 한심한 의원들이 있었다.‘뺏지만 달고 있으면 시의원인가’ 고 그 자리에서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중 가장 한심한 질의 중 하나를 소개 해 드리면‘대구에 성매매가 허가지역이 있나’ 라고 질의하여 그냥 웃어넘겼다. 그래도 그중에는 사전통계자료도 준비하고, 질의내용도 명확하고,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는 등 열성과 열 의를 가지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적극적인 자세를 지닌 의원을 베스트 의원으로 추천하였다. 이런 동료 의원을 보면서 다른 의원들이 좀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시민들의 세금이 아깝지 않게... 이번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우리가 시의회에 제출한 23가지 감사요구서에 대한 질의도 대부분 나왔다. 그러나 대 충 이런 게 있더라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는 시책들에 대한 문제제기였지만 간단한 질 의와 확인하는 수준에 그쳐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도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행정사무감사장에 질의내용
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우리의 성과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우리를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러한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모니터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우리스스로 전문성 을 키워 정책대안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권력감시운동은 그리 어려운 활동이 아니라고.......생각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 했다.
행정사무감사가 올바르게 이루어지기 위해 지방의원들은...... 첫째, 행정사무감사의 방향을 생활자치의 민생문제, 조례안·예산안·결산 등 각종 안건 심사에 필요한 정책 자 료 및 정보수집 등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피감기관의 수감태도 향상 방안을 위하여 감사 자료를 요구하는 내용의 질과 의원들의 질문 내용 수준을 높여가야 합니다. 셋째, 일과성 또는 한건주의식 감사해소 방안을 위하여 의원 스스로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 력이 필요합니다. 넷째, 지방의회의 행정사무감사는 행정기관 식 감사를 탈피해야하고, 정책 입안 단계에 치중하여 정책 판단 착 오로 인한 예산낭비를 사전에 예방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지방의회 의원들의 역할이 명확하게 주어질 때 법적·제도적으로 미비한 내용이 개선되어 질수 있을 것이고, 각 기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성숙한 파트너로서 발전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만들어 갈수 있을 것 입니다.
비교) 그렇다면 국정감사와 국가예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의 수준은? 한나라당의‘3년 연속 날치기’ 통과로 사상유래가 없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입니다. 정부에서는 내년도 예산을 '서민희망예산'이라고 부릅니다. 서민들의 어려움을 '확실하게' 해결하겠다 고 합니다. 대통령은 복지국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진실일까요? MB정부와 한나라당이 목청 높여 주장했던 '70% 복지'는 무엇인가요?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한 영유아 필수예방접종비용지원사업, A형간염 백신지원 예산도 삭감되었습니다. 이밖에도 법정급여인 기초노령연금, 장애인연금 예산 등 국회 복지위 증액안 중 무려 80여개의 복지예산이 삭 감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지국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입니까?? ▷ 민생복지 삭감예산 (총 1조 1,000억 원 삭감) ·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 지원사업 0원 · 빈곤층 생계급여 예산 32억 원 삭감 · 영유아예방접종 확대 예산 339억 원 삭감 · A형간염 백신지원 예산 63억 원 삭감 · 양육수당 2,744억 원 삭감 · 산모신생아 도우미 310억 원 삭감 ·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 200억 원 삭감 · 간병서비스 제공사업 3억5천만원 삭감 · 차상위계층 장학금 2학기부터 폐지 · 기초노령연금 611억 원 삭감 · 장애인연금 313억 원 삭감 · 저소득층 국민연금보험료 지원 185억 원 삭감 · 그 외 수많은 민생복지예산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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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발족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좀비 인권위원회 글. 이주영 (한국인권행동 상임활동가, hrkorea2004@empas.com)
지난 11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9주년을 맞았다. 9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전국 700여개 단체 와 야 5당, 학계, 법조계, 여성계 등 무수히 많은 이들이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 고, 고등학생들까지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상하는 인권상 수상 거부를 선언했다. 내부적으로도 지난 11월 1일 유남영, 문경란 두 상임위원이 사퇴한데 이어, 10일에는 조국 비상임위원 이, 그리고 15일에는 전문위원과 자문위원, 상담위원 등 전체 위촉위원 중 1/4에 해당하는 61명이 동반 사퇴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 사이의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좀비 인권위, 식물인 권위란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크게 2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현재 가장 크게 가시화되고 있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문제이다.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전문적 접근과 민주적 운영 둘 다에 실패했다. 사실 현씨의 비전문성은 임명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인권과는 논리적 접근방식이 상반된다 할 수도 있는 민법 그것도 물권법을 전공한 사람이다. 물론 전공 외 인권분야 활동경력도 전무 하다. 작년 7월에 취임한 현 위원장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옹호 발언, 국가인권위 독립성 훼손 발언 등 국 제인권기준에 반하는 발언을 수도 없이 해 왔다. 또한 그는 독단적 운영으로도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PD수첩 사건, 야간 시위 위헌법률심판제정 등의 의견제출을 모두 부결시켜 정권 눈치 보는 국가인권위라는 말을 듣게 만들었고, 올해 초 용산참사 재판부 의견제출을 위한 회의에서는 안건 상정 자체를 막기 위해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회의장을 나가버리는 등 최소한의 절차상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않았다. 현씨의 이러한 인권에 대한 비전문성과 편파적 이해 그리고 민주주의의 노골적 무시가 결국은 현재의 파행을 초 래했다. 그렇다면 현병철 위원장만 사퇴시키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상화는 가능한가? 물론 아니다. 현씨의 문 제 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대통령을 비롯 현 정부와 여당 보여주는 인권에 대한 편파적 정파적 이해 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 때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대통령직속기구 화를 시도했고, 이것이 무산되자 조직축소와 인물 물갈이에 총력을 쏟았다. 조직을 20% 이상 축소하면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는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주로 별정직으로 일하던 단체 출신 직원들을 대거 도려냈고, 인권정책과 교육 기능을 대폭 축소시키는 대신 대북 인권정책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확대했다. 현 정부의 잘못된 구시대적 정책으로 인권문제가 야기되면, 남북 대치상황을 이용 남한과 북한의 인권문제를 대립시켜 자국민의 인권보호라는 자신의 최 우선적 책무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현 정부와 여당의 인권에 대한 정파적 이해는 관련 인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강력한 사퇴여론 을 몰고 온 현병철 위원장 뿐 아니라, 줄사퇴 이후 새로이 임명된 김영혜, 홍진표 상임위원의 면면은 더 욱 심각하다. 특히 홍진표 위원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 중 한 명이며,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 물의를 일으킨‘조전혁 의원 대책위원회’ 에 참여하여 조전혁 의원을 적극 지원하고, 법원이 조 의원에게 부담하 도록 한 강제이행금 모금운동도 전개했다. 또한 홍씨는 법원의‘피디수첩’판결에 대해‘판사의 무리한 판결’ 이라는 입장을 취했고,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밝힌 바 있다. 비 전문성을 넘어 노골적인 친정부인사 심기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인사정책이 이러하니 현병철 위원장 사 퇴를 주장하는 단체들 사이에서 사퇴 다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는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사 회가 인권보호를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메커니즘이자 인프라이다. 하나의 인권보호 인프라가 무너질 때 무수히 많은 국민의 기본권이 흔들리며, 인권을 침해당한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통령과 여당의 실증법 준수와 결단 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인권위원의 자격을“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 라고 규정 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실증법을 위반한 현재까지의 잘못된 인사를 철회하고 일대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을 정파싸움에 이용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인권은 특정 이데올로기, 특정 정치세력, 특정 집단을 위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인권은 다양한 사상 과 생각의 공존, 다양한 정치세력의 공존, 다양한 문화의 공존, 다양한 사람의 공존을 통해 현실의 평등 과 평화를 가능케 하는 미래지향적 가치이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 선진국으로의 도약 등 현재 대한민 국이 말하고 있는 모든 과제는 공존을 위한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천명할 때에만 가능함을 명심해야 한 다. 그리고 희망을 잃은 국민이 무엇을 선택할지를 명심해야 한다.
20 21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한 컷│
사진·정위지
“저는 이 사진이 참 좋습니다.” ‘나의 삶, 나의 직업’ 여러분은‘나의 무엇’ 을 고민하고 계십니까?
│회원행사│
- 2010년 마지막 회원행사‘송년의 밤’- 이야기 글. 김승주 (회원참여센터, misa1052@nate.com)
그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0. 공정을 이야기 하면서 가장 불공정한 정부, 소통을 내세우면서 귀를 막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 우리 모두 답 답해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돌아보니 회원들을 대하는 우리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회 원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의견에 귀 기울이 못했고 회원이 있기에 참여연대가 존재함을 알면서도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에도 불구 하고 늘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우리 회원들의 마음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2월 16일‘오후가 예쁜 야외 테라스 cafe 집’ 에서 열린 2010년 송년의 밤은 회원들에게 이런 미안 함,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상근자들이 틈틈이 시간을 내서 노래연습도 하고, 작은 퍼포먼스도 준비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이 많이 좋아하고 즐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엿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대구참여 연대의 든든한 디딤돌이자 버팀돌은 역시 회원들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더 나은 2011년을 다짐해 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지난 송년의 밤에 참석해준 회원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과, 성찰하고, 변화하 고 실천하는 대구참여연대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전합니다.
참여연대의 송년의 밤은 참 좋았습니다. 분위기 있는 와인바도 좋았고, 사람들의 따듯한 웃음소리 또한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다라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내가 좋다고 하는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우리 표정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게 합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늘 내 곁 에서 나의 일상이 되어주는 사람에게 더 절실한 한 마디가 좋아한다는 한마디가 아닐까 합니다. 사랑 한다는 표현이 아직까지 부끄러워서일까요..? 제가 좋 아하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멋진 말들로 꾸며댈수록 나의 마음을 가릴 것 같아. 빼고 또 빼고 줄여갈수록 보석과도 같이 남아있는 이 한마디 좋다!” 참여연대의 송년의 밤 참 좋았습니다. 참여연대 참 좋습니다. ps 반딧불이도 좀 좋아해 주세요! ^^*(조그맣게 써야지) <김주욱>
22 23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퇴근 후 학원 다녀온 후에 찾아간 회원송년모임. 공교롭게도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행사가 있어 cafe.집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 입구 유리를 통해 관찰하던 중 한 분 과 눈이 마주쳐 용기를 내어 들어섰습니다. 첨 만났지만 너무 반갑게 맞아주시는 미녀(?)간사님들과 멋진 회원분들이 계셔서 내심 안심했습니다. 다들 술을 좋아하셔서 그런지 눈빛이 참이슬(?)처럼 너 무 맑으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재단이나 기타 단체에 기부 해왔지만 참여연대에 대 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변 가까운 곳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송년의 밤에 상영된 올 한해 활동영상을 보고 내가 내는 회비가 참 작은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주변 친구들을 한번 엮어봐야겠구나...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 부탁드리고 기 회가 된다면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안재순>
'와~우!' 라는 말로 시작해서 '와~우!' 로 끝난 2010년 송년회 송년회 오라는 연락에 후원회밤에 가지 못한 미안함과 한해를 함께 정리해보고 싶 은 맘에 출발했지요! 오~
장소가 아주
멋있는데, 분위기도..
많은 회원들
음~
이 오기엔 조금 좁은 듯하지만 나름 감탄 사 연발하면서 참여하였네요! 익히 아는 몇 몇 분들이 한 테이블을 떠~억하니 차 지하고 계시니까
괜시리 저 자리는 피
하자 싶더군요! 오랜만에 와서 새로운 분들 뵙고 싶기도 해서, 그것이 오늘의 자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기에 그런데 이러한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래 도 나쁘지 않은데라는 생각을 하던 찰 라 참, 와인이 있다고 했지? 그리고... 집행부에서 한 분씩 장미를 건네며 노래를? 오~ 지난번 운영 위 워크샵에서 나온 울 회원님들의 바람에 나름 120% 부합하는 이후 진행방식... 전 8·90년대 시민들의 욕구에 부합하여 출발한 시민단체가 어느새 엘리트주의에 빠져 점점 시민들 과 간극이 벌어지고 이를 만회하려하지 않은 모습에서 잠시나마 떠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참여연대를 비롯한 여타의 단체들이 새로운 활로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 는 이즈음 이번 송년회는 어찌보면 나에겐 좀 더 시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의 연장선에서 보여 졌 습니다. 물론 이 작은 이벤트 속 몇몇 프로그램으로 이것이다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날 참 여하신 회원님들에겐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은 변화... 물론 작습니다. 때론 미미하기까지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걸 또 놓쳐서 못 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 기에 이 작은 설레임, 기쁨을 다가오는 2011년엔 참여연대 전체 사업에 조금씩 녹아나게 준비해야 하 지 않을까요? 어느 한분의 기획이기에 그저 작은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왜냐면 그 자리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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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한 분들은 그 속에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그리 멀지도 힘든 것이 아님을 조금이나마 느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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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윤용희>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풀뿌리 주민자치 소식│
구미 참여연대
글. 이봉도 (구미참여연대 대표, bisan485@hanmail.net)
구미지역 무상급식 예산확보 노력 구미전지역(읍 면 동)초등학교 1~3학년은 2011년부터 무상급식 실시를 위해 구미시 예산은 확보 를 했지만 교육청에서 요청한 무상급식 예산을 경북도의회에서 전액 삭감했습니다. 구미참여연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풀뿌리 희망연대는 무상급식 실시를 위한 공청회와 강 연회를 실행하면서 초등학교 전 학년 무상급식 실시를 요구했습니다. 일단 구미시 예산의 확보로 경북도 예산이 없이도 무상급식은 실시됩니다. 물론 무상급식 대상 학 년은 조정될 것으로 생각 합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경북도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미 흡하지만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해 한걸음 전진한 것이라 평가합니다.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장학금 알선 구미참여연대에서 운영하는 비산·신평지역아동센터에서는 연말을 맞이하여 아동들에게 장학금을 알선하여 지급했습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60만원, 야은로타리클럽에서 3명 각20만원씩, 한 자녀 더 갖기 운동본부 에서 30만원, 합계 150만원의 장학금을 확보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5명의 아동에게 지급했습니다.
구미에서 제일 비싼 뷔페에서 식사했습니다. 구미참여연대 회원 우기원(한솔번역통역연구소대표)님이 회장으로 있는 평생학습원 지도사 모임에 서 여러 회원님과 함께 비산·신평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을 위해 아름다운 합창을 선사하시고 아동들 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구미에서 제일 비싼(?) 파라다이스 뷔페에 데리고 가서 저녁을 사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신 홈페이지 ▶ http://gumisimin.org 구미참여연대 사무실▶ 구미시 공단동 96번지 1층 / 054-465-0468
구미참여연대
바람 났습니다. 화장실 보고도 놀라고, 음식보고도 놀라고, 꼬맹이들 놀이터 보고도 놀랐습니다. 아이 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신 우기원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구미참여연대 송년모임 했습니다. 12월 16일 구미참여연대 송년모임 했습니다. 20여명의 회원 이 모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술 마시고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가 장 인기 많은 요리는 김찬회원분이 직접 담그신 막걸리 최고였습 니다. 송년모임을 위해 몇 주 전 부터 심혈을 기울인 작품 이였습 니다. 막걸리에 버금가는 인기 식품 역시 술입니다. 사람 사는 세 상 구미에서 활동하시는 모래님이 찬조하신 맥주입니다. 맥주 역 시 모래님께서 직접 제조해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맛있는 술과 멋있는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1년도에는 목요 공부모임을 2주에 1회로 줄이고, 2주에 1 회는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하고자 의견을 모았 습니다. 역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하면 해결책이 나온다는 평번 한 진리가 빛나는 모임이었습니다.
동구 참여연대
글. 김영숙 (동구주민회 국장, duprass@nate.com)
동구주민회 제7차 운영위원회 개최 11.16(화) 저녁7시 제7차 동구주민회 운영위원회 진행되었습 니다. 녹색나눔가게추진사업 점검을 통해 2011년 초부터는 기금, 공간마련, 홍보활동에 집중화하기로 했습니다. 동구주민회 진로를 모색하고 총회준비를 위한 운영위원·회원이 함께하는 2~3차 례 비젼토론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
주민자치 및 복지, 환경관련 대외활동 지난 11.12(금) 동구청, 팔공환경21에서 주최한 그린리더 워크 샵과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세미나(엑스코)에 참가하였습니다. 또 한 12월 8일 대경연구원과 대구시민센터에서 주관하는 지역공동 체 연구회 정기세미나, 12월 21일 풀뿌리공익활동 활성화를 위 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하였습니다.
반야월 녹색-나눔가게 인큐베이팅 활동 지난 10월 30일 마을축제 바자회 개최 및 홍보캠페인 진행이 후 11월에는 다양한 곳으로 현장탐방을 다녀왔습니다. 11월 16
평등/복지/교육/문화 풀뿌리주민공동체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동구주민회 사무실▶ 대구시 동구 율하동 230번지 2층 / 054-956-3374
동구주민회
일 아름다운가게 탐방 진행(대구지역 2곳-남산점, 월성점), 11월 27일 원주지역으로 협동조합 탐방을 진행했습니다. 원주의료생활 협동조합, 행복한 시루봉, 행복한 도시락 등 사회적기업 방문이 있었습니다. 이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간마련을 위한 다양한 기금조성 활동이 진행됩니다. 녹색나눔가게는 생활 속에서 버려 지는 물품을 재사용, 순환시켜 판매수익금으로 마을내 아동 문화 활동, 사각지대 이웃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쓰입니다. 나눔후원과 사회공익출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주민이 만들어가는 재활용 공익나눔가게 만들기에 함께해요.
미디어교육 및 퍼블릭액세스 지원활동 지난 11월 22일부터 12월 30일까지 대구영상미디어센터와 대구여성영상상영공동체 핀다 협력으 로 미디어심화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 13일에는 대구MBC주최로 열린 제1회‘열 린TV 희망세상’우수프로그램 시상식에서 아띠미디어팀이 생애 첫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올해 4 월부터 아이 키우며 도서관 사서하며 어렵게 미디어기초교육과 심화교육을 받으면서 작품제작 활동 을 해 온 결실입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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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회원│
> 회원인터뷰 <
지금 시작합니다!
이승익
회원
인터뷰. 정위지 (미디어위원회, ohmydaegu@nate.com)
인터뷰를 이미 한 번 거절당한 상태에서 다시 부탁하자 이번에 는 마지못해 허락하셨다. 법률학교 강사로 나오게 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인터뷰하기로 했다. 첫인상은 매우 바쁜 사람, 그러나 웃는 모습이 아주 착해 보이는 사람. 인터뷰 내내 가족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는 걸 보니 자상한 사람. 그러나 대답을 좀 길게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게 하는 사람. 만나보시죠! ^^ ↓
어릴 적의 꿈은 자꾸 변한다. 대통령, 군인 등 수많
변호가의 꿈은 늦게 이루어졌다. 89학번이다. 본격적
은 꿈이 있었지만 특히 육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었다.
으로 공부를 시작한 건 98년도였고, 2008년도에 개업
보통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은 로봇이나 군인모델이니
을 했다. 인호형(구인호변호사)이 여러모로 많이 도와
까 그게 멋있어 보였지. 영화도 많이 봤다. 전쟁영화,
주고 있다. 같은 민변활동을 하고 있었고, 2010년도부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가 우리 때는 유명했다. 남과 다를 바 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공 부를 못했다는 것? 대신 책을 많이 읽었다. 5학년 때 부터 재미를 붙였는데, 전기소설, 위인전을 읽었다. 그 리고 6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터 같은 사무실을 쓰며 함께 활동하고 있다. 법률학교 도 자의반 타의반 하게 되었다. 대구참여연대 법률학교 첫 강의 인호형의 추천으로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수강생 이 적었던 것이 아쉽다. 13~14명 정도였는데, 2시간
학교는 모두 걸어서 다녔다. 집이랑 가까워서. 그래
이란 시간이 많이 짧게 느껴졌다. 나는 처음이라 준비
서 다리가 튼튼하다. 공부할 때는 농구를 많이 했다.
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일단 홍보가 좀 더 잘되었
지금은 변호사들끼리 판사팀과 한 달에 한 번 축구만
으면 좋겠고, 내년에는 더 준비를 잘해서 충실한 강의
간단히 하는 정도이다.
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일반 서민들은 법을 잘 모르
고,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오는 걸음이 무
울릉도에는 꼭 한 번 가보세요 누나가 살고
거운데, 이런 기회가 많으면 생활에 도
있어서 울릉도에는 두 번 가봤다. 꼭 한 번
움이 많이 될 것 같다.여러 가지 역할
가봐야 할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을 하는 게 힘들다. 지금 민변 사무국
독도를 못 간 것이 아쉽다. 울릉도를 가는
장의 역할과 단체활동까지 하니까 시간
것도 독도를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이 바쁘게 흘러간다. 사건이 민변 쪽으로 올 때는 사무국장인 내가 제일 먼저해야하고 일일이 체크하는 게 많다.
날씨가 많이 도와줘야한다. 가고 싶은 여행지 는 제주도. 신혼여행을 싸이판으로 가서 아직 제 주도를 못 가봤다. 좀처럼 기회가 안 생긴다. 요즘은 책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공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는 항상
의 시대’ 를 읽으려고 준비 중인데, 추천하
가족과 함께한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고 싶은 책이 있다면‘정의란 무엇인가’ ,
외출하기 힘들다. 돌이 지나야 나들이
‘소유의 종말’정도이다. 자본주의가 새로
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내를 만난
운 국면에 접어들고, 사람들이 더 이상 소
건 2008년 도 추석쯤이었다. 열심히 쫓아 다녀서 결국 결혼했다. 아내에게는 항상 고맙 다. 맞벌이를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일과 살 림을 같이 하는 아내를 보면 고생시켜 미 안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항상 가족과
유가 아닌 접속의 시대를 맞이한다는 취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보통 자투리 시간을 이용 해서 읽고 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거 짓말이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28 있는 시간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함께하려고 한다. 친가와 외가가 대구 라서 다른 가족들과도 자주 만난다. 어 머니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자식 을 위해 긴긴 시간을 뒷바라지해주셨다. 아 버지가 살아계실 때를 생각하면 참 잘해주셨다.
항상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마흔인데, 어떻게 살아야할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 다. 아직도 미래를 고민하고 뜻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활동을 더 해가고
좋은 부모님을 만났다. 2남 1녀인데, 누나는 울릉도에
싶다. 구체적으로 확답할 수 없지만 대구참여연대 활
살고 있다.
동은 열심히 해보겠다.
29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해울│
우리도 알건 다 안다고요! 글. 조재형 (기자단‘해울’ , vidalcho@nate.com)
대학교 캠퍼스를 비교적 오래 누비고 다녔다.
학벌에 대한 자긍심 등 과 상관없이 대학생이라는
2002년에 입학해서 2010년 8월에 드디어 졸업장을
사실 하나만으로 특권을 누리거나 사회적 존경심
손에 쥐었다. 처음 학교에 들어간 2002년과 나올
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때의 2010년 사이에 대학생들과 대학생 문화는 그 틀은 비슷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급속도로 변화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구심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주변에서 이들을 바라보
된다. 오늘날 대학생이란 과연 어떤 존재라고 할
는 시각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최근 들어,
수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대학생들과 그들의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가장 선도적인 역할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이러
을 자임하던 주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들은
한 현상에 대해 서로 간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래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그 어떤 정치적 행동도 잘
도 사회는 기성세대의 입장을 좀 더 대변해 주고
하지 않는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예전과
있다. 그래서 최근 대학생 문화에 대해서 잘 분석
같은 게토나 진지가 아니다. 초국적 기업이 침투한
해 놓은 글과 본인과 주변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장소이고, 경영마인드가 잠식한 제도이며, 무한 경
가지고 대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아가 현재
쟁이 지배하는 관계들이다. 역사적으로 주어진 각
대학생들과 대학생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이
본을 거부하고 창조적 행위를 창안했던 '그' 대학생
글을 기획하게 되었다.
들은 이제 상상 불가능한 신화가 되고 말았다. 이 와 같이 대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더 이상 그 어떤
먼저, 현재 환경적인 요인부터 다루어 보자. 지금
선도성과 존경심조차 보증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은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대학교 입학정원이 더 많
면, 어쩌면 우리는 역사적 조건이 이전과 달라졌음
은 시대이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이
을 시인하고 전혀 새로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르는 동안, 고급인력 양성이라는 명목 하에 대학생
할지 모른다.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중소규모의 대학들이 신설됐고, 사립대학의 지역캠퍼스가 설립됐으며,
다음으로, 얼마 전까지 대학생의 신분이었던 본
야간 학과 신설을 중심으로 기존 캠퍼스의 입학정
인과 주변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원도 대폭 증원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과 '대
내가 대학에 막 입학했던 2002년에는 대학생 문화
학생'이라는 표상이 의미하는 바가 이전과 달라질
라는 것이 유형적으로 존재했다. 단대 건물 앞에서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누구나 대학생이 될 수
반미 시위를 하기도 하고,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잔
있다면 대학이라는 기호를 둘러싸고 일종의 인플
디밭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들에 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대입 이후의 안도감이나
다가 시간이 흘러 2005년, 2006년에는 대학생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한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
사이에 대학생활의 우선순위를 놓고서 주로 내면
만들고 있다. 수업과 과제, 시험공부를 하는데 필
적인 갈등을 했던 시기였다. 내가 볼 때, 이 시기
요한 시간과 함께 취업프로그램을 참가하기 위한
가 과도기가 아닌가하고 생각된다. 취업의 문이 좁
시간을 더 하면 대학생 문화를 창조하고 즐기는데
아지면서 사회진출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 잡게 되
쓸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면서부터 사회적인 관심에 대한 중요성이 퇴색하 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스펙'을 쌓는다는 말이 나
어쩌면 기성세대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오기 시작했으며, 나조차도 취업을 위해 잠시 사회
어깨에 올려 진 짐을 가볍게 해주고 너그러움을 바
에 대한 관심을 접어 두었던 적이 있었다고 솔직하
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어
게 고백한다.
울려서 한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 일지도 모른 다. 대학생, 그들은 솔직히 기성세대와 언론 등 사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대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회 주류층의 차가운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있는 시점에서 지금 1,2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
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은 정의로운 사회, 모
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들
두가 행복한 사회, 자신들이 자신답게 사는 사회를
은 대학생 문화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는 대신 그만
꿈꾸면서 더 나아진 사회가 될 수 있길 바라고 있
큼 쉽게 싫증을 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발달된
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터넷을 통하여 사회적 관심은 예전 대학생 못지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서 희망적인 요소를 발견하
않게 가지고 있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고 그들의 발판을 제공하는데 힘을 쓰기보다 자신
그들의 관심은 공통 관심사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들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한 비난의 대상으로 삼고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교류와 연대에 관해서 욕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감히 어른들에게 제안해 본
구를 가지고는 있지만, 서로 서로 개인의 관심사와
다. 한 번 몸소 그들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교류
욕구를 우선 시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또한
해보면 어떨까하고 말이다. 그들은 어린이도 아니
한 대학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이 있는데 그러
요,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아닌 다음 바통을 이어
30
한 것을 충족시켜줄 동아리나 대학 내 집단이 없다
받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31
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요즘 대학 내 동아리는 차 츰 줄어들고 있으며, 각 학과에서 활동을 하고 있
[참고자료]
는 학생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역사평론, 특집: 대학의 붕괴-기업화, 서열화, 지성의
함께, 각 대학은 취업률을 높이고자 다양한 프로그
몰락,『대학생, 대학생문화,(불)가능성의 조건』 , 김성윤
램을 학생들에게 심지어 의무적으로 참가하도록 편집자 주 |‘해울’ 은 대구참여연대 미디어위원회 기자단의 이름입니다. 해울 코너는 기자단이 취재한 글로 구성됩니다.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우리들의 소감문│
대구참여연대와 함께한‘현장실습’을 마치며... 글. 박혜정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학의 시작은 한 학기동안 함께했던 실습단체와도 마지막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도 아닌 두 번째 실습단체이건만‘마지막’ 이라는 것은 역시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대구참여연대’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3대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는데, 회원 수는 물론 포괄하는 활동범위 역시 다양한 ‘참여연대’ 에 대한 저의 관심은 그때 시작된 것 같습니다. 처음 사무실을 방문하고 위지간사언니와 앞으로 활동에 대해 계획을 세울 때, 무엇보다 우리가 관심 있 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하는 언니의 모습에 한 학기동안 배움으로써 보람 있 는 시간들로 가득 채워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부장님과‘참여연대가 걸어온 길’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부의 후원이 아닌 오로지 회원의 회비와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주 한 두 번이지만 사무실을 찾아오면서 각자 맡으신 분야 별로 열심히 하시는 상근자분들의 활동모습을 보면서도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사회정의 교실’ 은 잊지 못하는 저희 실습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반부터 늦은 밤까 지 강의를 듣고 열정적인 질문의 시간을 가졌던 사회정의교실, 저희 역시 작지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준비하는 과정에 동참을 하며 수강생 분들과 강사님께 조금이라도 편안한 강의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정의교실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된 것은 사무실의 상근자분들뿐만 아니라 저희 참여연대의 회원 분들, 다른 시민단체에 계신 분들, 일반 시민 분들,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 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얼굴만 보아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몇몇 분들이 계시기에 이 실 습의 마무리가 더욱 더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사무실 한 벽면에 있는 과일나무와 보름달은 저와 실습생 윤지원 학우가 신입회원들을 알리 기 위한‘알림의 장’ 을 꾸민 것입니다. 처음으로 저희가 계획과 마무리를 모두 맡아 한 과제인 만큼 부족 한 점도 많지만 무언가를 했다는 것, 사무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물론 도움이 되었는지, 도리어 애물단지 가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것을 했다는 그 뿌듯함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앞으로 사회에 나가 어떤 일을 맡아 하던 살과 피가 될 수 있는 ‘준 사회경험’ 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리더십 현장실습’ 이라는 수업의 일환을 넘어 책임감, 최선, 열정 등을 스스로에게 주문하며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 였지만 되돌아보며 참으로 많이 부족했던 실습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2011년 새해에도 대구참여연대 식구들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글. 윤지원
한 학기 동안의 실습을 끝내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시민학교’ 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정의 교실을 큰 틀로 하여 매번 다른 주제로 다양한 강사님들이 해주시는 강의는 시민단체 실습 중에서도 참여연대를 통해서만 경험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총 8번의 강의를 들으면서 각계각층의 강사님들이 속해 계신 곳의 이 야기를 들을 수 있어 유익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노동문제에 대한 강의를 해주신‘하종강’ 선생님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게‘노동’ 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 알게 모르게‘노동자’ 를 나와는 먼 사람들로 생각해왔던 것이 들켜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아버지도 노동자인데 저는 그것을 알 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고 나서도 내가 여태까지 아무렇지 않게 넘겨왔던 것을 다르게 인정하기가 쉽지 않 았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면서 노동자들의 현실에 눈물이 나기도 했고, 가슴 아픔을 느끼면서 나를 반 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이 생각했던 것보 다 너무 열악한 것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노조·파업’ 과 같은 일에 자신의 불편함만을 토로하며 무조건적인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저로썬 그에 또 일조를 한 것 같아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 게 가슴이 먹먹해질 때 쯤, 하종강 선생님은 희망을 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자신들을 점차 노동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노동운동의 범위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 은 분명 좋은 징조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도 이제부터라도 노동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어 다행이고 미래의 노동자로써 앞으로의 노동현실에 많은 관심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추운날씨에도 이토 록 알찬 강의를 해주신 강사님들, 강의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주신 참여연대 간사님들과 매 강의 때마다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수강생분들 모두 정말 저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외부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면서 저와 동기실습생인 박혜정 학우는 사무실에서 신입회원들을 위 한 소개란도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평생 잊을 수 없는 실습작품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싶습니다. 물론 처음에 널따란 사무실 한쪽 벽면을 보고 있자니 막막하기도 하고 간사님이 내리신 특별 임무를 잘해낼 수 있을 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혜정 학우와 같이 구상을 하고 하나씩 꾸며나가면서 점차 알록달록 해지는 벽면을 보고 있자니 완성 무렵이 되어선 오히려 뿌듯하기까지 했습니다. 솔직히 하는 내내 망치면 어쩌나 살짝 불안했는데 막상 완성해놓고 보니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사무실에 계시는 간사님들도 예쁘 다고 칭찬해 주신 덕분에 마음도 편했습니다. 2010년 하반기 내내 저에게 있어 핫이슈였던 실습은 짧은 기간인듯 하였으나 예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후원의 밤이나 대구현대사 답사와 같은 체험들도 생소하 지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면서 동시에 실습도 끝이 났지만, 실습하는 동안 함께 했던 것들은 저에게는 오래오래 떠올리고 싶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실습생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많이 챙겨주시고 보듬어 주신 참여연대 식구들 모두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참여연대를 어디서든지 응원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32 33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활동보고/사무처동정│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11월 1일
전교조 교사 징계강행 규탄 기자회견(시교육청 앞) 사회정의교실 2강, 시민을 위한 사법개혁(이국운)
11월 2일
시의회 행정사무감사 관련 간담회(시의회 회의실)
11월 4일
대구참여연대 창립12주년 후원의 밤(웨딩 비엔나)
11월 5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회의(시민센터 회의실)
11월 6일
사회정의교실 3강, 사회정의를 위한 연대와 공동체(박원순)
11월 8일
cbs방송인터뷰 - 시·의정감시활동 관련 사회정의교실 4강,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하종강)
11월 9일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발족 및 행정사무감사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시의회 회의실) 시의회 의장단 면담 중구사회복지협의체 회의 참가(중구청)
11월 10일
대구시 시민봉사과+시민단체 간담회
11월 11일
대구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방청
11월 12일
대구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방청
11월 13일
사회정의교실 5강, 역사, 인권과 만나다(김찬수, 소모뚜, 이지상)
11월 15일
대구시의회 방청 사회정의교실 6강, 국제분쟁과 정의(김재명)
11월 16일
대구시의회 방청 동구주민회 운영위원회
11월 17일
대구시의회 방청 대구시장+시민단체 간담회
11월 18일
대구시의회 방청 6·15공동선언실천대구본부 후원의 밤
11월 19일~20일
제5회 대구시민사회포럼
11월 22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회의 미디어위원회 기자단 모임
11월 23일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집행위원회(서울 참여연대) 사회정의교실 7강,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변영주)
11월 25일
시의회 예산심의 모니터 활동 미디어위원회 실행위원회 회의 제10차 집행위원회
11월 26일
시의회 예산심의 모니터 활동
11월 29일
사회정의교실 8강, 과거사의 상흔치유와 정의(정호기)
12월 1일
시의회 예결특위 방청 집행위원회 송년모임
12월 2일
시의회 예결특위 방청 우리복지시민연합 후원회/정신대할머니시민모임 후원회 19기 법률학교 1강, 이혼과 상속, 주택임대차 등(박경로)
12월 3일
시의회 예결특위 방청
12월 6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심달연할머니 문상(곽병원 장례식장)
12월 7일
공동대표단 모임 경실련 후원의 밤
12월 9일
19기 생활법률학교 2강, 임금체불, 산재·부당해고 등(하만호)
12월 10일
대구여성회 후원행사(노보텔 뒤 호프집 파프리카) 19기 생활법률학교 3강, 민형사 소송 절차 등(이승익)
12월 11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시의정감시활동위원회 회의(대구KYC)
12월 13일
총회 준비위원회 1차 회의
12월 15일
19기 생활법률학교 4강 개인파산·개인회생(서정욱)
12월 16일
2010년 송년의 밤(cafe '집') 구미참여연대 회원송년회
12월 20일
2기 시민학교-사회정의교실 평가 모임
12월 21일
대구시장 방문 간담회(사무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송년회
12월 22일
2011년 총회 준비위원회 2차 회의 34 35
사무처·회원 동정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됩니다
축하합니다 홍상익회원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행복하세요!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재정보고│
11.12월 재정현황 및 운용 결과
(사무처 재정보고/지역조직 제외)
수입부 항 목
11월
지출부 12월
증감
항 목
7,929,000
7,874,000
-55,000
급여지급
일반후원금
0
100,000
100,000
사업후원금
0
700,000
700,000
회비
특별기금후원금
0
0
11월
12월
전월대비 증감
7,781,413
7,781,413
0
업무지원비
950,000
950,000
0
사회보험료
981,420
998,290
16,870
0
0
0
0
0
0
0 퇴직급여충당금전입
사업수입
2,611,000
1,530,000 -1,081,000
상여금
명절/후원행사수입
18,010,000
1,600,000 -16,410,000
일반관리경비
2,605,171
2,201,400
-403,771
홍보비(소식지등)
1,221,990
6,140
-1,215,850
사업집행비
4,950,030
3,445,222
-1,504,808
790,000
770,000
-20,000
0
0
0
6,219,000
0
-6,219,000
35,700
29,000
-6,700
잡이익
0
0
0
이자수입
1,234
2,228
994
기타수입
200,000
240,000
40,000
광고수입
0
0
0
240,842
114,670
-126,172
0
0
0
일상수익사업수입 기타사업수입 수입계
28,992,076 12,160,898 -16,831,178
교부금 및 지원금 잡손실 후원행사비용 자원활동가지원금 지출계 수입-지출
25,534,724 16,181,465 -9,353,259 3,457,352 -4,020,567
* 수입 및 지출은 현금입출금 기준이 아니라 당월의 발생분을 기준으로 합니다.
설 물품판매 권구형, 권석우, 권영태, 김미경, 김선우, 김수민, 김종협, 김지숙, 김지연, 김 혁, 배은경, 서덕교, 서상민, 석영숙, 신동주, 신성욱, 안재순, 이미화, 이태호, 장준민, 최봉춘, 최영준
구인호, 권도준, 김동식, 류영준, 백진욱, 윤용희, 이정동, 이정환, 이준혁, 정위지, 최상돈, 홍상익
고맙습니다.
사과 (저농약) 가격 : 52,000원(택배비 포함) 생산지 : 경북 청송군 진보면 신촌2리 청송농원 품명 : 로얄후지 규격/수량 : 10kg (36과~38과) 사과즙 가격 : 30,000원(택배비 포함) 생산지 : 사과 생산지와 같습니다. 수량 : 1박스 50팩 사과즙은 생산농가에서 생산한 여름사과 정품을 사과즙 으로 제조한 것입니다. 원료 : 100% 사과 (첨가제 없이 사과만을 즙으로 짜서 포장한 제품입니다.) - 사과즙 1박스(50팩)에는 사과가 약 9kg 가량 사용되 었습니다.
│회비납부·후원인 명단│
납부하신 회비는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2010.11.01 ~ 2010.12.31 회비 및 후원금 납부자 명단 / 가나다 순 / 거주지 기준입니다. / 같은 이름은 동명이인입니다. ) 경산 강선구 권난경 김영범 박옥순 소영진 윤용희 이종구 전주태 구미 고봉수 김재우 박찬문 우기원 이삼범 이종득 정기백 조현문 황대철 남구 강금수 김주태 박근수 신응식 이상훈 장주효
강영걸 강재기 고동우 곽현수 구자목 권수임 권현주 금창수 김명호 김상수 김재춘 김태일 나인호 박병진 박순태 박원형 박철홍 박환순 배병철 배정규 손제호 안승철 안헌수 안현효 오신택 이동기 이성희 이승근 이윤희 이응창 이철환 임순광 임재홍 장대수 장태철 전홍철 최상주 한성덕 홍덕률 홍희정
권경자 김 찬 김상목 김종권 김중형 도영주 배윤선 배재국 서승대 유미영 윤필영 이동식 이상돈 이선정|최인혁 이호준 임영미 임지현 정도욱|신윤정 조병찬 최명희 최현진 한상일
김성대 박영백 송진환 이미영 이성규 장준민 조복래 홍남일
김윤수 박종인 신명희 이봉도 이성우 장혜숙 조용래 홍종범
강상호 권옥자 김상희 김성훈 김주욱 김현근 김현철 김효정 노형석 도경화 박근식|강문희 박정호 손상호 신기욱 안영미 위한기 윤인현 윤정호 이복수 이영구 이윤희 이재욱 이재철 이준혁 최신일 최진욱 한상훈|최경화 허노목
달서구 감병호 강경애 권명오 권석우 권영래 권영주 권오혁 권재영 김광진 김상호 김상희|이재일 김시익 김영철 김은경 김인호 김종봉 김채원| 강구배 김희정 나인엽 노승석 노춘화 노태맹 류덕제 류영철 박경로 박명리 박명섭 박명호 박세정|김은희 박신호 박영미 박용우 박인철 박종률 박지윤 박현탁 배종훈 서덕교 서미옥 서정욱 성언제 송호상 신기복 신동완|정희선 안기훈 양선봉 양소희 양인석 양정아 양진모 우재동 윤영욱 윤창옥 윤태자 이갑순 이경상 이금화 이대영 이덕수 이동형 이명호 이석진 이선혜 이성해 이소령 이승천 이재성 이재일 이종길 이종춘 이창화 이충기 이현숙 이현옥 이현우 임성무 임전수 정갑환 정경열 정기숙 정재형 정호원 조병집 조인선 조재민 주진혁 차호영 천영애 최상돈 최영준 허경주 황현익 달성군 곽민채|강상훈 김언호 배은경 신경희 신청호 이경선 이성희 정금숙 최수영 최종현 홍지영 동구 강옥련 고춘자 권덕기 권순천 김갑순 김경환 김광석 김광석|이혜영 김량현 김미수 김석수
김석원 김선영 김성수 김수정 김순규 김인하 김정길 김정미 김정희 김현우 남상권 노영석 류춘희 문경자 문영곤 민정식 박경욱 박기석 박순일|이미숙 박점용 박호석 백경록 서창환 서한교 손태운 신병호 신영숙 신영욱 염상현 우성문 우혜정 유길의|이은희 이경리 이병학 이영도 이옥례 이종수 이준일 이태영 이화선|정호태 임현수 장영희 조해기|이은경 조희재 진수미 최병우 홍영표 홍현덕 황윤호
김연희 김휘수 문재환 박인규 손관영 오문섭 이병동 이춘곤 정재영 허 종
북구 강동인 권태호 김승주 김정화 김형기 박찬웅 성록희 신숙경 양영일 이명균 이용재 이정수 임우정 정재봉 조일선 하만호
강현구 구인호 권수용 권재화 김기용|김선희 김사열 김선희 김신애 김애화 김영화 김원희 김종혁 김주영 김진숙 김진숙 남인숙 노미경 노인만 박 경 박헌국 백진욱|이선희 변재호 성재환 손락천 손성봉 손일선 신연자 신하영 안경완 안새봄 엄시근 윤보욱 윤성아 윤재석 이미화 이상번 이상술 이선영 이은현 이의호 이인호 이재남 이정우 이정화 이중형 이창용 전종오 정강미 정용태 정위지 정준호 정지욱 조영미 조원규 조현우 주보돈 지은혜 채장식 하영수 한승균 황성주
서구 김봉심 백부례 임호성 하홍자
김세일 김주혁 도영옥 박병규 박병철 서인찬 서준영 서준호 신정석 양선진| 이종필 이창환 정대열 진성섭 최정민 한재흥 홍상익
권추경 김성수 김은정 김해광 박상국 서상훈 신도철 안재순 이동진 이성우 이정동 임병훈 정인숙 조윤식 최미애
수성구 강영한 강준구 강진호 강천식 강호중 공미정 구수용 구찬동 권도준 권영규 권오현 권진희 권혁장|추정화 권흥락 김갑진 김경호 김규원 김남희 김동식|박원영 김문봉 김미경 김미향 김병주 김보규 김상태 김상호 김순옥 김승현 김영미 김영수 김용락 김용승 김용원 김용훈 김원현 김윤상 김윤정|김수일 김재권 김재승 김재우 김재형 김정곤 김종태 김종필 김지일| 박선영 김철원 김태균|김순옥 김태석 김현익 김형태 김혜란 김희섭 김희진|변정호 남호진 도국배|김순섭 류명숙 류영준|이영주 류태하 류후기 민천식 박광우 박노진 박덕수 박덕환 박명석 박선영 박수열 박재범|권미숙 박희진 배재수 백권기 백승대 백정한 변화진 서두진 서상득 서상철 서철현 석성진 설창환 성이화 손재봉 손창희|홍경미 송경란 송광근 송상욱 송해익 신동민 신동민 신성욱 신윤정 심병철
심윤철 안미정 안영배 안정임 안형진 여용석 예병환 오규섭 오영미 오태동 유미정 유윤정 유택규 윤 영 윤병대 윤병철 윤영식 윤종화 윤호석 이경일 이광동 이교희 이금용 이남수 이동인 이두병 이명자 이상목 이승국 이승익 이시하 이양우 이연재 이영윤 이영희 이원복 이재문 이정원 이정화 이종길 이종우 이종한 이준홍 이진희 이창건 이화정|최훈태 임기섭 임채영 임현태 임후순 장성수 장영목 장원용 장호원 장화환 전형수 정경하 정기철 정낙찬 정성욱 정수철 정순재 정연하 정용교 정우근 정일선 정종배 정지철 제갈남규 조영준 조용 식 조혜진 조흔명 채쾌수 채휘균 천기철|고춘 자 최경호 최명희 최봉춘 최성남 최연석 최원 준 최진욱 최현복 최혜진 추정화|권혁장 하정 봉 한광훈 한대환 현영철 홍원대 황선명 중구 곽병호 권경옥|김세현 김경환 김명환 김인석 김재호 김태숙 박배일 유지웅 이기수 이상원 이재천 이재호 정승필 진혜전 천덕우 현명호 황성연 칠곡 신동필 채영희 기타 강경수 권용원 김상석 김우주 곽이화 박주용 설동진 오창훈 이병술 이재성 이해선 장밝은 정혜숙 한은영
강동철|신동주 강성태 곽이화 권구형 권형우 김경근 김남수 김병환 김보혁 김상인 김수동 김억남 김영도 김영진 김은영 김정애 김지영 김항서 김해환| 김형섭 박대기|이정희 박신영 박은정 박현호 박형룡 백미숙 백진숙 서주헌 신기권 신동주 신성호 염율희|이상길 유병록|윤명화 윤종만 이균호 이대전 이상율 이석주 이승수 이원영 이장열 이재희 이정만 이종명 이춘철|류정숙 이형석 이희창 임기혁 임영택 임윤환 장우철 전영주 전용배 정연광 정탁현 조정봉 최병해 최태석 최현석 하승헌 허주녕 현호성 홍원진 황인주 황재철
연회비납부자 강옥련 김광진 김석호 김성균 김응곤 남상걸 박근식 박동규 박정연 송종대 윤용희 윤천용 이상규 이용하 이정만 이재복 전병영 전형수 조국래 질비오 조억제 평생회비납부자 권흥락 김 미 김성희 김은주 김응곤 김영화 구수용 신숙경 이경옥 이선례 이정환 이종만 윤지현 정강미 진미화 최봉태 유영선
36 37 함 께 하 는 만 큼 변 하 는 세 상
1998년 대구참여연대는 우리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발전, 참 된 지방자치의 실현을 통한 참여민주사회의 건설 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10여년 걸어오는 동안 성과도 많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해결해야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시민들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수렴할 새로운 민주주의, 낡은 경제 정책을 대체할 정책대안, 민생의 고충과 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희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대구참여연대는 더욱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시민들과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향한 희망과 대안을 찾아 나가겠습니다.
회원소식지 제88호
2011
■ 지역조직 발행인 ‖ 한재흥
- 동구주민회
발행처 ‖ 대구시 중구 문화동 7-9번지 3층 우)700-160
운영위원장 : 유길의 사무실 : 053) 956-3374
전화 : 053) 427-9780~1
대구시 동구 율하동 230번지 2층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상담 : 053) 427-9788 팩스 : 053) 427-9723
- 구미참여연대 대표 : 이봉도 사무실 : 054) 465-0468
홈페이지 : http://www.civilpower.org 전자우편 : dgpeople@gmail.com
경북 구미시 공단동 96번지 1층 구미참여연대 공 동 대 표 ‖ 김영화, 원유술, 법광
■ 회원자치모임
상 임 대 표 ‖ 한재흥 사 무 처 장 ‖ 강금수
- 산행모임‘가 자’ 대표 : 윤호석 - 기타모임‘미칠레’ 대표 : 하만호
상 근 활 동 가 ‖ 김승주, 박인규, 임성혁, 정위지, 최인혁 동 구 주 민 회 ‖ 김영숙 미디어위원장 ‖ 구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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