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꾸는꿈 111호 (2017년 5월)

Page 1

격월간 제111호

대구참여연대는 회원의 회비 및 후원금으로만 운영됩니다.

2017

http://www.civilpower.org


│이 한 컷│

<사진 : 정용태 편집위원>

2016. 11. 12 광화문. 100만 시민촛불 2016. 12. 9 국회.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2017. 3. 10 헌법재판소. 대통령 박근혜 파면

2017. 5. 9

대한민국은?


04

권두시

꽃들에게 물어보자 │김수상

05

대표편지

개불알꽃│오규섭

06

특집

대선과 사회개혁 ‘촛불대선’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여정 | 박근용 19대 대선 정치토크‘2017, 한국사회 개혁과 대구사회 혁신을 논함’

표지이야기 히에로니무스 보쉬 (1450경~1516) “쾌락의 정원” 쾌락의 정원 중 왼쪽 ; 에덴동산, 패널 에 유채, 220x195cm, 1500년경 제작 쾌락의 정원 중 오른쪽 ; 지옥도, 패널 에 유채, 220x195cm, 1500년경 제작 총 3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 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다. 왼쪽 패널은 그리스도가 아담과 이브의 결합을 축하하고 있는 에덴동 산의 모습이다. 오른쪽 패널은 탐욕적 인 인간이 온갖 방법으로 벌을 받는 지옥을 표현했다. 글·김건예(화가, 편집위원)

16

이슈

돌덩이처럼 쌓여가는 적폐 사드(THAAD) | 장지혁 성주촛불열전 : 만능 농사꾼 김상화 | 박중엽

23

Art & Culture

우리들의 혁명은 무엇입니까? | 김병호

26

이달의 회원

최엄윤 회원 인터뷰 | 최나래

28

노동현장은 지금

30

사람 사는 세상

33

고전읽기

36

詩 읽는 저녁

38

Book & Cine

40

방방곳곳

41

문화톡톡

42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46

풀뿌리주민자치

48

재정보고

49

회비납부명단

‘고용불안’해결방안은 없나?│정현태 찌질과 불신의 10년│하태경 「맹자」- 좋은 삶을 위한 좋은 정치

│최병덕

선택 /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권순진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창비출판사)』│박현정


│권두시│

꽃들에게 물어보자 물어보자 여기 소성리의 꽃들에게 물어보자 너 혼자 힘으로 피었는냐고 사월의 꽃들이 봄볕에 고개를 흔든다 아니, 우리는 바람과 흙과 물의 뜨거운 동맹이야 자, 이번엔 그들에게 물어보자 성주에 꼭 가봐야 하느냐는 대권후보에게 물어보자 저 혼자 힘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느냐고 여름에 시작한 평화 항쟁이 300일이 다 되어가는데, 광장에서 쫓겨나고 눈비가 퍼부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촛불을 들었는데, 거길 꼭 가봐야 하느냐, 이런 막말을 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물에 빠진 놈을 건져놓았더니 내 봇짐 내놔라, 하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촛불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오른 자가 촛불을 밟아 뭉개려고 한다 캄캄한 길을 촛불로 밝혀주었더니 촛불의 이름을 팔아서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 다투어 피어나지만 남의 자리를 뭉개지 않는 꽃들이 혀를 차고 있다 표에만 눈독을 들이는 저 파렴치를 우리가 어떻게 심판해야 하는지 꽃들에게 물어보자 롯데 골프장의 잔디도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피어나는 잔디들한테도 물어보자 소성리 할매들이 팔이 아파 반팔 만세를 부른 게 아니다 사드가 가기 전엔 봄이 봄이 아니고 평화가 오기 전엔 만세가 만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드 때문에 지금은 사는 기 사는 기 아니야. 작은 마실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기 바로 저 놈들인데. 우리가 살 날이 얼매나 남았다고 이 우환을 일으키는가 몰라. 내사 마, 지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해볼 때까지 해볼란다” 우리가 싸워 이겨서 할매들의 나머지 절반의 팔을 활짝 들게 해드려야 한다 수천 명이 다시 모이고 깃발의 대오가 소성리를 뒤덮고 평화버스가 수백 대 달려와도 오만한 권력을 정신 차리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싸움은 죽 쑤어 개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꽃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항쟁이 되려면 우리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다시 한 걸음을 더 내디뎌야 한다

길을 막는 할매들의 낡은 유모차가 무서워서 시누크 헬기로 전쟁의 장비를 실어 나르는 저들이야말로 비겁한 겁쟁이지 않은가 찌그러진 세숫대야를 두드리며 사드배치 원천무효 팻말을 목에 걸고 싸우는 소성리의 할매들이 역사 앞에 더 떳떳하지 않은가 소야의 봄꽃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 평화를 능멸하고 꿈자리를 더럽힌 저들이 누구인지 소성리의 꽃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소성리의 할매들 말마따나 어떤 놈이 암까마구인지 수까마구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하우스의 참외꽃을 믿듯 자연의 섭리를 믿을 것이고, 철조망 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믿을 것이고, 마을회관 할매들의 반팔 만세를 믿을 것이고, 부녀회원들이 장만한 국밥의 힘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모인 깃발들의 자세를 믿을 것이다 파리 떼 같은 저들이 권력의 단맛에 미치기 전에 저들을 다시 우리의 땅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우리는 어중간한 성명서 발표나 들으려고 싸우는 것이 아 니다 해마다 논둑에 피어나는 쑥들에게 민들레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어린 후손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선거의 꽃놀이패에 취해 흥청망청하는 시절에 울면서 이를 악물고 싸우는 성주의 사람들이 있다 천 길 낭떠러지 위로 평화의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는 맑은 거울, 꽃들을 따라 진군하는 평화와 생명의 동맹군이다 사드배치 원천무효! 사드 가면 평화 온다! 전쟁은 가고 평화여 오라! 김수상 1966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2013년『시와표현』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으로『사랑의 뼈들』 (삶창)이 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4-


│대표편지│

개불알꽃 오규섭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saram70@hanmail.net

‘풀꽃’ 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 맑은 사람들이다. 오래

끝에 가냘프게 작은 꽃을 지천에 피우지요.

전부터 그리 생각했습니다. 지천에 피어도 세심하지 않 으면 볼 수가 없고, 다가서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몸

늦가을, 겨울에 발아하여 한 여름 불더미 속에 자신

숙이지 않으면 인연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마음입

을 온전히 소멸시켜 다시 살아가는 한해살이, 겨울과

니다. 사람들이야 다가오던 말든 풀꽃은 세상 탓, 남

여름사이 생의 한 가운데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해 넘

탓, 시절 탓, 탓 할 것 많은 사람살이 척박함 속에서도

어 살이 봄까치꽃. 생물학적 분류 방법에 따르면 속명

단 한 번도 자기 삶을 어긴 적이 없으니 무심의 자기살

이 라틴어로 Veronica입니다. vera (진실) + ica (참 모

이 신공에 몸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습). 진실의 참 모습입니다. 베로니카라 불리는 이 여 인은 2000여 년 전 시대의 아픔을 십자가에 지고 해골

한 청년과 취직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힘들기보다

언덕 사형 형장으로 올라가는 한 사람을 방관과 광란의

는 두려움이 더 큰 거 같아요.”라는 말씀을 들었습니

무리들 속에서 뛰쳐나와 흰 수건 한 장으로 피땀을 닦

다. 그날 밤 칠흑 같은 어두운 벌판에서 열여덟 젊은

아 그의 아픔을 감싸 안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여

나이에 벗은 몸으로 걸어가는데 발 디딘 데마다 희끗

인입니다. 조금만 툭 건드려도 수술이 금 방 떨어지는 가냘픈

희끗 한 것들이 뼈대만 백골로 살아 땅을 헤집고 나와

풀꽃 개불알꽃,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꽃받침이 지체

끝도 없이 날 따라오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없이 뛰쳐나와 암술을 부등켜 감싸 안아 생명을 이어가 는 삶을 통해 봄까치꽃 베로니카를 대합니다.

꿈일까 생시일까…? 아픔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아픔이요 우 리들의 아픔입니다. 2017년 봄기운은 촛불 혁명으로 시

진실의 참 모습은 내 자신,이웃 등등 시대의 아픔을

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겨울을 넘어 5월로 왔네요. 아마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감싸 안는 것입니다. 촛

이 편지 글이 전달 될 쯤은 대통령 선거는 끝나고 탄핵

불 혁명은 시대의 아픔을 감싸 안은 풀꽃들이 점 점 히

심판은 한참일 것이고 적폐청산은 혁명의 완수를 위해

모여 지천에 핀 봄까치꽃입니다. 참여연대 우리들의 만

제대로 마음 모을 때이겠지요.

남도 그러하지요.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길을 가시는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

전 점점이 모인 촛불을 통해 풀꽃 중 개불알꽃을 생 각했습니다.‘봄까치꽃’ 이라고도 불리는 연유 때문이지

오늘은 주변에 봄까치꽃, 개불알꽃 한번 몸 숙여 인

요. 개불알꽃, 봄까치꽃. 하나의 사실 앞에 달리 이름붙

연 맺어 보세요. 군청색 꽃잎 속에 연한 붉은 빛이 안

인 극단의 느낌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들이나 길가,

으로 도는 피땀 스며든 조그만 흰 수건 한 장, 진실의

논두렁, 밭두렁 조그만 공간만 있으면 가느다란 꽃자루

참 모습 한 여인의 가슴을 대할 것입니다.

-5-


│특집│대선과 사회개혁

‘촛불대선’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여정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2017대선주권자행동 공동기획단장

지난 2~3년을 돌아보면 역사의 발전과 시민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온 세상과 시민 을 비탄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 이후 정권의 노골적인 방해에도 시민들은 1,000일이 넘게 그 참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2015년 가을,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한 국민적 저항, 2015년 연말 기습적인 한일정부 간 일본군강제위안부합의 무효화를 위한 시민행동도 놀랍습니다. 2016년 2월 국가정보원에게 국민 인권침 해 권한을 몰아준 테러방지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최장 시간의 국회 필리버스터도 시민의 힘이 있었기에 가 능했습니다. 작년 4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제2당으로 만들어버린 투표 결과나, 경찰의 살수차(물대포)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고(故) 백남기 농민에 대한 정부의 강제부검을 막은 2016년 9~10월의 시민연대도 그러합니다. 2016년 10월부터 이어진 대통령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위한 촛불시민혁 명의 성공까지. 60년대, 그리고 7~80년대 역동적인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7년 대선을 맞이하는 지금, 그리고 87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앞둔 지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 니다. 사람들마다 관심을 두는 게 조금씩 다르겠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지 난 3월 참여연대(서울)가 발표한 <이게 나라다 ? 참여연대 19대 대선 19대 정책방향 제안>을 바탕으로 새로 운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회복을 위해 지난 2~3년의 시민행동은 국민을 주권자로 보지 않는 위정자들과 부패한 집권세력에 대한 거대한 저항이 었습니다.‘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에서 시작했으나, 주권자의 위대한 힘으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 살아 있 는 나라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진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 구현되는 국가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 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고 보장하는 선거제도, 국회와 대통령 선출방식에서 국민 대표성을 높 이는 선거제도를 시행해야 합니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와 정당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선거법 93조 1항 등을 전면 개정해야 합니다. 18세 국민에게도 투표권을 보장하고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도 보장해야 합니다. -6-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배분제(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하고,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결선투표 제를 시행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국민발안제도를 도입하고 국민투표제도를 개선하여 직접민주주의 절차를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의 약점과 한계를 보완해야 합니다. 검찰권을 행사하는 책임자인 지방검사장도 국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고, 검찰이 장악한 법무부도 탈(脫) 검찰화해야 합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은 당연합니다. 권력부패 가능성도 억제되고 적발 및 처벌가 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기간에 국가정보원이 벌인 정치공작과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활동한 과거사조사위원회같은 기구입니다. 진상규명에 이어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전면 금지하고 해외정보 수집만 담당하는 기구로 국정원법 등을 대폭 개정해야 합니다. 정부에 대한 시민의 비판과 견제, 책임추궁 가능성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청와대, 국회, 국무총리 공관 100미터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집시법 11조를 폐지해야 합니다. 중요 정부기관 회의록은 속기록 형식으로 작성하고 공개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위법하거나 부당하게 세금을 낭비하는 사 업에 대해서는 국민소송법을 도입해야 합니다. 정부기관은 물론이거니와 민간기업의 부패와 불법을 제보한 공직자와 시민을 더 많이 보호해야 합니다. 공익제보자 보호 범위를 정한 부패방지법이나 공익신고자보호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여러 기관에서 나누어 맡고 있는 공직윤리 업무와 부패방지 업무를 통합하고 위상이 높아진 독립적인 반부패 및 공직윤리확보 전 담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그리고 노동존중 사회를 위해 촛불시민혁명은 승리했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국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 유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엔 재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뇌물범죄와 정경유착을 통해 정권으로 부터 온갖 특혜와 비호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독점과 탐욕을 심화시켜 나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커다 란 분노가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신속하게 재벌체제가 개혁되고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는‘공정하고 평 등한 사회’ , 민생문제가 해결되고 복지가 획기적으로 확대되는‘복지국가’ 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서 생생하게 드러난 정경유착과 재벌에 대한 특혜는 영구히 추방해야 합니 다.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규제프리존법’ 은 폐기하고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범죄 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 와 엄중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불법, 탈법적인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막아야 합니다. 상법, 보험 업법, 공정거래법 개정 등 재벌개혁 입법과 그간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한 이익에 대한 환수조치가 이루 어져야 합니다.

-7-


법인세를 인상하여 조세정의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고 재벌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중소기업 과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적합업종특별법을 제정해야 하고, 대기업 복합쇼핑몰 등 초대규모 점포의 진출을 좀더 규제해야 합니다. 상가임대차보호 제도도 좀더 강화해야 합니다. 소비자로 서의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집단소송법,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시급히 도입되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기본적 소득보장도 필요합니다. 아동수당, 상병수당을 도입하여야 합니다. 고용보험 적용대상 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고용보험 가입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어 있는 이들(미취업 청년,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구직활동이나 직업훈련을 위한 실업부조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기초연금 지급 금액과 지급 대상도 확대해 야 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도 높여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들을 위한 따뜻한 돌봄의 실현과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국 공립어린이집, 국공립요양시설, 공공병원 등 공공인프라의 확대는 공공부문에서 국민들의 삶의 안정을 제고 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줄 것입니다. 세입자들의 장기간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전월세 상한제, 공공임대주택의 획기적 확충으로 국민들의 삶을 옥죄는 주거문제도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 같은 정책적 기초위에서 우리 사회는 일하는 사람들이 더욱 행복 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땀 흘려 일하면 먹고는 살 수 있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고, 미래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사회 로 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체불임금의 철저한 근절, 노동시간 단축 등의 정책 이 절실합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노동과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돼야 우리 국민들의 생존도, 행복도 가능해 질 것입니다.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위해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 모든 영역에서의 후퇴가 있었지만, 특히 외교안보통일 분야에서는 퇴보의 연 속이었습니다. 지금까지 5차례의 핵실험과 수십 번의 미사일 발사를 진행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더욱 고도화되었습니다.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제재가 반복되었고, 남북간의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 폐쇄까 지 이르렀지만, 한반도 핵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남북간의 기존 합의는 모두 무시되었고, 북한 붕괴론 에 기댄 비현실적인 통일방안이 전면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비핵개방 3000’ 에 이은 박근혜 정 부의‘한반도신뢰프로세스’ 와‘통일대박’ 이 그러합니다. 국가예산의 10%를 늘 국방예산에 할당하지만, 늘 군사적 위협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는 무기한 연기하였고 주한미군을 위한 방위비부담금만 매년 인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는 언제 나 군사적 긴장이 감돌고, 남북과 주변국들의 군비경쟁은 더욱 첨예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 -8-


국 추종을 숙명으로 여기는 외교국방의 역량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만 하고 있 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가의 책무는 실종된 지 오래입니 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더 디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 다. 현재 입구부터 막혀 있는 비핵협상 을 재개하기 위해 한미군사훈련과 북의 핵미사일 동결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미중 갈등과 불안정 한 역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절된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남북 당국자 회담 재개를 비롯해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해야 합니다. 한미동맹의 그늘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 군사동맹은 도리어 사드 배치나 위안부 합의 압박,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등으로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미동맹 중 심의 외교에서 탈피하여 균형적인 선린외교와 다자안보협력 외교로 전환해야 합니다. 사드 배치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미일 MD참여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조속히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고 기형적인 한미연합사도 해 체해야 합니다. 병역자원의 감소와 전투 역량 숙련도를 고려했을 때 군 병력 규모와 복무기간을 대폭 축소하여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계획했던 2020년까지 병력규모 50만명, 군복무기간 18개월(육군기준) 단축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군 복무기간은 21개월로 동결된 상태이고, 병력 감축 목표연도는 2030년으로 다시 연기되었습니 다. 대규모 병력 규모를 유지하려는 군 당국의 의도 때문입니다.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600~800여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수감시키지 말고 보편적 권리로 인 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군대 내 인권 개선을 위해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여 인권 침 해 실태를 성역 없이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월호 선체의 인양이 진행 중입니다. 정부 차원의 방해로 중단되었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당연히 해야 할 숙제입니다. 수사권은 물론 기소권까지 보유한 제2의 세월호특조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세월 호특조위의 강제 중단, 세월호 선체의 인양 방해 등 정권 차원의 진상규명 방해 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합니다.

-9-


│특집│대선과 사회개혁

19대 대선 정치토크 ‘2017, 한국사회 개혁과 대구사회 혁신을 논함’

이글은 지난 4월 10일 대구참여연대가 주최한‘대선정

들이 집회에 나온다는 게 정말로 놀랐고, 또 하나는

국 정치토크’ 에서 아래 사회자, 패널들이 토론한 내용을

제도 정치권은 자꾸 뒤로 빼는데 시민이 앞서서 정치

녹음, 대폭 편집한 것으로 말씀의 취지와 내용이 정확하

권을 견인했다는 겁니다. 이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

지 않더라도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편집위원회)

운 모습이거든요. 이런 모습을 볼 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대의민주주의는 수명이 다한 것이 아니냐 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시민참여

사회: 정혜숙(계명대 교양교육/ 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

를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고 또 정치권이 그 모

패널: 김윤상(경북대 석좌교수/ 대구참여연대 고문)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양이니까 결국은 시민이 더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하

상임대표)

는 당위성도 느꼈습니다.

김관옥(계명대 정치외교학과/ 중국문화학회 부회장)

직접민주주의 당위성을 보여준 촛불혁명 최봉태 우리가 대통령을 끌어내렸지만 지금 정치인들 보니까‘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하는 생각이 듭니

김태일 박근혜 탄핵은 이른바‘최소강령’이었죠. 그

다. 아들 취직문제니, 조폭동원이니 하고 있는데 이건

런데 우리는 촛불광장에 박근혜 탄핵의 최소강령을

우리 책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탄핵된 이후에 심부름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요구와 가치들이 쏟아져 나왔

을 잘 시켜야하는데 우리 주권자들이‘어련히 알아서

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고

하겠지’하고 놔둬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오

민들이 가지 수가 많고 빛깔도 다양하니 어떻게 잘

늘 촛불혁명 이후에 주권자들이 뭘 해야 할지 지혜를

묶어서 과제의 우선순위를 만들고 또 힘을 모아 가야

모아서 한국사회는 물론 대구사회를 개혁하는데 좋은

될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겠죠.

시사점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관옥 이번 탄핵은 이화여대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 정혜숙 저희가 5월 장미대선을 치룰 수 있었던 이유

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어렵게 과정을 거쳐나가면

는 아마도 광장에 촛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서 그게 언론에 연결되고 언론사들이 제 기능을 하니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광장의 촛불과 관련된 기

까 문제들이 하나하나 드러났고 그리고 그것들을 실

억을 나눠볼까 합니다.

질적으로 이어간 것이 촛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 정에서 국회의원이 역할을 상당히 했고 결국에는 헌

김윤상 제 소감은 두 가지, 하나는 정말 새롭고 놀라

재가 탄핵을 결정했죠. 이게 다 시민들이 자기 본연의

는 현상이다. 그 추운 겨울에도 그렇게 줄기차게 사람

역할을 하니까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방향으로 모

- 10 -


든 것들이 결정된 거 아닌가. 그래서 과거의 민주화

민들이 보여줬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구조적인 모

운동이 대학생 중심이었다고 하면 이번 촛불은 모든

순들을 국민들이 슬기롭게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 아

사람들이 주인이고 모든 역할들을 같이 나누는 새로

닌가. 사실 우리 한국사회에서 부족한 것이 관용, 협

운 민주주의 시대,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력, 신뢰 등의 시민문화가 없는 것이었는데 이번 촛불

싶습니다.

에는 관용도 존재했는데 태극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 건 딱 200m 차이였어요. 200m를 두고 서로의 존재를

정혜숙 좀더 생각해 보면 탄핵까지의 어떤 방아쇠, 최

인정해 주고 그 과정을 밟아 나갔다는 것은 이제 시

순실 게이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고, 그럼

민문화가 태동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도 그것 하나만을 촛불혁명의 배경으로 볼 수는 없 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촛불 시민혁명의 정치적, 사회

정혜숙 어쨌거나 우리는 광장에서 승리를 일단 거둬

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냈습니다. 이제 이런 승리를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어떻게 수렴해 내고, 어떤 과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

김태일 2017년의 이 명예혁명은 세 번째 민주혁명의

면서 일을 해나가야 될까요?

물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1960년 4월 혁명 이었고 주체는 학생, 학생혁명입니다. 그 다음 1987년

김윤상 이번에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

6월 항쟁은 이른바 시민혁명이었다면, 2017년의 명예

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은 지금과 같은 대의민주주

혁명은 국민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4월 혁명

의 하에서도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못한 부분들

은 자유라는 가치가 그 중심이었다면 6월 항쟁은 민

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컸습니다. 권력분

주라고 볼 수 있고 2017년 촛불혁명의 가치는 공화가

립을 제대로 안 해서 그렇습니다. 헌법에 있는 대로

아닌가. 그러니까 다양한 것들이 서로 차별하지 아니

안 해서 그래요. 그 중에서 큰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

하고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에서 공화주의 실현인데

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 임명하고, 국

이것이 2017년 명예혁명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죠.

회의장도 자기 당을 통해서 해왔죠. 검찰총장도 대통 령이 임명하지 않습니까? 중립적 공공기관의 장을 거

촛불혁명은 공화주의 가치 드러낸 명예혁명이자 국

의 예외 없이 대통령이 실질적 인사권을 행사합니다.

민혁명

만약에 검찰총장이 정말로 중립적인 절차에 따라서 임명이 되었다면, 그 전에 정윤회 사건이 났을 때 이

김관옥 배경 차원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

미 신문에 보도가 다 됐는데 검찰이 가만히 있었겠습

고 싶은데 일차적으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가 고도

니까? 가만히 안 있지.

화 되면서 기회의 집중과 편중, 부의 양극화 등 구조

또 하나는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 이런 것이 시대정

적인 문제가 이번 촛불을 이미 잉태하고 있었다고 봅

신인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대의적 체계만으로도 어

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적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느 정도는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시민

법적인 절차를 따라서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것은

들의 생각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적어도 중립기관

위대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모든 국가는

인사에 국민의 상식이 반영되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잘 극

다. 또 가령 지금 아일랜드에서는 헌법을 시민대표가

복하고 새로운 길로 가느냐인데 그 능력을 이번에 국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시민의회 그런 방식, 나아가

- 11 -


주제로 시작해볼까 하는데요. 대선전에 다들 각자 마 음속에 대선 후보로 나온 사람들에 대한 인물평, 대선 에 대한 예측과 기대가 있을 텐데요? 김관옥 한 시대를 끊어내는 그런 과정의 선거, 아류시 대의 끝인 것 같아요. 이 전에는 카리스마, 배타적인 지역 독점권 등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향유하면서 사실은 소통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치가 지속돼왔 던 거죠. 이제는 그런 정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시대로 들어왔다, 서로 소통하고 국민이 뭘 원하는지 서는 무작위로 추첨해서 뽑은 시민대표(추첨대표)와

를 모르면 안 되는 시대 즉, 정치정상화 시대에 들어

선거로 뽑은 선거대표가 같이 국정을 결정하는 그런

온 것이고 그 과도기에 진입을 한 거라고 봅니다.

쪽으로 가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윤상 이번 대선은 종래와는 구도가 굉장히 다릅니 대통령 권한 축소, 시민의 직접정치로 나아가야

다. 메인스트림을 대변하던 정당이 자멸하고 나머지 끼리 시합을 하는데… 메인스트림은 지금 양강 중에

김태일 그런 것도 있고 동의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자기 말을 조금 더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반드시

본질적으로 갖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임민주주의의

어떤 식으로든 손을 잡을 생각을 하고 표가 급한 양

한계라고 하는데, 우리가 투표를 해서 사람들을 뽑고,

강 중에 어떤 사람은 반드시 그 쪽에 손을 또 벌릴

국가기구를 구성했는데 필연적으로 그 메커니즘 속에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 가장 유용한 수단

는 배반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항상 이런

이라고 하면 지역감정, 불안감 뭐 이런 거잖아요. 그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주권자

런 것에 의해서 투표를 했는데 요번에는 지역감정을

가 나서서 의사결정을 하고 국가기관을 컨트롤하는

어떻게 할 입장이 안 되니까 아마도 안보를 통한 불

것이 필요하고 이번 촛불혁명 과정에서도 그 점을 국

안감 조성 뭐 이것이 중요한 쟁점 또는 수단이 되지

민들이 확인해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않을까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드 문제도 있고 트럼

제가 이번 촛불 혁명과정에서 가장 머리에 남는 메시

프가 시진핑과 회담도 하고 하니까 중요하게 등장하

지가 있었습니다.‘나는 내가 대표한다.’입니다.‘그

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러니까 깃발 치워라, 더불어민주당이고 정의당이고

두 번째 화합, 통합의 문제인데… 유승민 공약까지

국민의당이고 필요 없다, 참여연대고 민주노총이고

도 사실은 신자유적인 내용에서 탈피해 있습니다. 그

필요 없다, 내 문제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세상의 주

러니까 공통점은 아마 겉으로 드러나기는, 적어도 신

인이다 ‘라고 하는 인식이 이번 촛불혁명 기저 속에

자유주의의 종언이 아닐까 생각을 하구요. 공존을 추

깔려 있었습니다. 이 정신과 이것이 갖는 역사적 정치

구하는 자유파와 평등파가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면

적 의미를 어떻게 제도화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해 낼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을 저는 좌도우기라고 표현합니다. 좌파가 추구하는 가치를 우파가 동의하는 방식 얼마든지 이룩할 수 있

정혜숙 두 번째는 19대 대선과 한국사회 개혁이라는 - 12 -


다는 겁니다.

다시 돌아오면 결론은 삼권분립에 충실하면 된다. 사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이 아니죠. 가장 막

이효성(정치학과) 저는 이 시기가 서애 유성룡 선생께

강한 권한은 인사권에서 나오는데 인사권이라는 것이

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재조산하의 정신으로 후보들이

견제가 안 됩니다. 미국식의 실질적인 삼권분립이 필

정말 올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까

요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각제로 가야겠지만, 지

김윤상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삼권분립이 형식

금 여러 가지 정당의 문제를 볼 때 4년 중임제로 가

적이지 실체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최근에 나온

는 것이 삼권분립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말이 4권분립을 하자, 입법, 행정, 사법, 플러스 시민

유일한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권을 만들던지 아니면 검찰과 감사원을 합쳐서 감독 권을 만들던지….

이원집정부제는 보수세력의 전략, 제대로된 삼권분 립이 중요

송명수(역사학과)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과거처럼 일당적, 제왕적 권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

김윤상 삼권분립은 헌법 개정 안 해도 됩니다. 지금도

능하다고 봅니다. 다수 국민들의 의견이 더 요구될 것

우리 헌법에 사실상 대통령 권한이 총리와 나눠져 있

이고 그 부분에서 파이가 나눠진다는 것은 결과적으

습니다. 그런데 헌법을 안 지켜서 그래요. 역대 대통

로 정책 과정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민의사가 좀더

령이 위헌적인 통치를 했습니다. 내각제 말씀하셨는

많이 반영되지 않을까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

데 내각제는 소선구제에서 비례대표제로 가야 의미가

다.

있는 겁니다. 그건 국회의원 선거법만 바꾸면 되잖아 요. 요즘 뭐 개헌을 안 하면 나라가 잘 안 돌아갈 것

정혜숙 제왕적 권력의 집중을 권력구조의 개편을 통

같지만 사실은 들여다보면 개헌할 필요 없어요. 법률

해서 바꿔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번에 이뤄내야

만 바꾸면 됩니다. 지금 과반수 의석을 야권이 갖고

할 과제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건데요.

있으니까 마음만 바꾸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런데 안 하는 겁니다.

김관옥 사실 내각제가 제일 낫습니다. 내각제가 갖는 책임성, 효율성이 굉장히 높아서 대부분의 선진국들

정혜숙 권력구조 개편이나 개헌도 중요하지만 또 중요

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 데 내각제라는 것은 정당이 핵심이고 정당이 입법부 와 행정부 두 개를 동시에 포괄하는 것인데 우리나 라는 어느 정당이건 체계적이지 않고 역량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의 당이 다르게 되는 데 이렇게 되면 조금만 잘못되면 서로 책임회피가 비 일비재할 수밖에 없고요. 가정입니다만,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합치면 다수당이 돼요. 그럼 여기 서 총리가 나와요. 저는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13 -


한 게 사회를 개혁하는 일일 텐데, 적폐를 청산하고 정

김태일 지역주의는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투표율이

치, 사회의 개혁을 할 때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요?

예전처럼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줄어들고 있는데 요. 그러나 구조적으로 심화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동

김태일 개헌보다 중요한 것이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시에 가고 있는 거죠.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되어야 혹은 또

구조적 심화과정은 이런 겁니다. 처음에 지역주의를

그것을 해서 건강한 정당체제를 만들고 개헌 논의의

동원할 때는 감정선을 자극 했습니다. 이게 오래가다

지형을 만들어서 개헌을 할 때만이 비로소 민심을 반

보니까 정당일체감이라고 하는 것으로 구조화가 됐

영하는 개헌이 되겠죠. 또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죠. 정당일체감이 지속되다 보니까 그 정당이 가지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확대, 구조화 되고 있다는 겁니다.

있는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겁니다. 이제

그래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휘발유가 붙어 버린 것

는 어느 정당을 배제하고 어느 정당을 독점적으로 지

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렇게 구조화되고 있는 양극

지하는 것이 논리도 갖추게 되고, 자기 가치를 가지고

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하는 것이 이 촛불

이것을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어버렸습니다. 훨씬 더

혁명이 우리에게 던져준 가장 압축적인 이야기가 아

세련된 장치들을 갖춘 지역주의가 된 것이죠.

니겠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정한 사

하나는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들 이 만들어 지고 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감옥에 가

회, 정의가 이야기 됐던 것 같고요.

고 보수적 기반은 무너졌습니다. 지금 지지도가 제일 김윤상 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 대표성 높이기, 헌

높은 건 더불어민주당입니다. 이건 수십 년 만에 처음

법 제1조대로 하자는 겁니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제

있는 일입니다.

대로 된 여론반영이 안 되거든요. 비례대표제가 제대

그런데 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역의

로 되어야죠. 그리고 적폐 청산에는 인적 청산과 제도

보수적 기반과 그 보수정치세력들은 끊임없는 부활의

개혁 두 가지가 있는데. 인적 청산은 물론 중요합니

서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활에 서사는

다. 생각이 낡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정책을

아주 위력적입니다. 대단히 민중적 언어로 서사를 만

내 놓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숙청으로 갈 수

들어 냅니다. 이거 겁나는 거예요.

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사회 아닙니까. 결

그래서 대구지역의 정치적 변화는 대단히 위험성을

국 제도개혁입니다.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만 반영이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믿는 것은 정치적 다양성의

되면 좋은 제도에 합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이 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다양성은 정치적 경 쟁을 심화시킵니다. 정치적 경쟁은 유권자에게 정치 적 서비스를 제공시킵니다. 정치적 서비스의 제공은

개헌보다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

주권자들의 효능감을 증대시키죠. 효능감의 증대는 정혜숙 세 번째 주제는 19대 대선과 대구혁신입니다.

참여의 확대를 가져옵니다. 이런 선순환이 시작되고

대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조금더 판이 흔들리고 있

있고, 이 맛을 사람들이 봤다는 것이죠. 이 맛을 정말

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분화되고 있는 대구정치 지형

잘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에 우리가 조금 더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정혜숙 대구정치 지형에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현실

아니면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걸까요?

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대구혁신의

- 14 -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는 말씀이네요. 대선이 끝나면 지방선거가 있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김관옥 대구에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이 사라지길 바 라지 않습니다. 좀더 건전한 보수가 되길 바랍니다.

김태일 국민들은‘나는 내가 대표한다.’ 는 생각이 분

예컨대 진보가 모든 보수를 대체하기를 바라지 않습

명합니다. 이제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이제 선택지를

니다. 진보가 균형만 맞출 수 있는 수준만 된다면 경

제공하는 쪽이 뭔가 좋은 상품을 내 놓아야 할 것 아

쟁을 붙여서 그 혜택을 대구시민이 보는 구도가 가장

닙니까. 현재까지는 그게 좀 아쉬운 대목이었어요. 그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장면이 없었거든요.

런데 그건 이유가 있는 일이죠. 상품 내놔도 팔리지가

지금 다당제가 되어가고 있고 그 부분이 창을 약간

않으니까... 그게 악순환을 이뤄왔는데 이제 좀더 좋

열어주는 그런 장면이 나올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

은 상품을 내놔야할 것 같고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들

의 이 상황에서 사회계약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정

이나 지식인들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럴 경

치권과 시민단체 등 주체들이 모여서 대구만의 룰을

우 뭘 주목해야하면 현장에 가서 뒹굴어야 합니다. 풀

정해서 대구만의 정치문화, 특정정당이 다시는 독점

뿌리 정치는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합

요.‘시민운동하는 분들이 풀뿌리 정치에 진출하기 위

니다.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 개 정당에 초집중이 안

해서 공짜 점심은 없다, 가서 열심히 뒹굴어라’ 라고

되도록, 일종의 불가역적 다당제가 만들어 지도록 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는 것이 좋겠죠. 김관옥 대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불가역적인 견제균 대구정치 다양성의 길 열려, 정치서비스 경쟁에서 앞

형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한다면 2018년 지방선

서야

거가 꽤나 핵심적인 선거라고 봅니다. 예컨대 여전히 자유한국당이 다수당을 이루고 있고 독점적인 위치를

김윤상 결국 시민의 의식과 제도 이 두 가지 측면인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일정부분 행정

데, 의식과 제도는 서로 영향을 주는 그런 관계거든

의 서비스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 몇

요. 그런데 의식은 우리가 알다시피 바꾸기가 참 어려

개의 구를 확보해서 어느 당의 행정서비스가 낫게 제

워요. 그러니까 단기간에 성과를 얻으려면 제도개혁

공되는 가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개헌하면 좋겠

경험이 다음번에 또 다른 표로 이어지는 지거든요.

지만 개헌까지 안가도 됩니다. 법만 바꿔도 됩니다.

또 한가지는 쉬운 어젠다를 잡아야 한다. 대구는 어

국회의원 선거법을 고쳐서 실질적인 비례대표제 소위

느 정도 조금만 복잡해지거나 조금만 기존의 것들 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저절로 정치적 다양성이

어 가려고 해도 굉장한 거부감을 보여요. 접근이 안

이루어집니다. 정치적 다양성이 이루어지면 대구가

되는 거죠. 쌓아온 시간 자체가 굉장히 긴 시간들이기

한 정당만 찍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정당법을 개정해

때문에 그걸 무너뜨리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봅니다.

서 지역정당도 생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온건하게 마음의 문을 녹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

정혜숙 정치권에서 말하고 있는 개헌은 적절하지 않

다.

고,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다양성을 만드는게 중요하

- 15 -


│이슈│

돌덩이처럼 쌓여가는 적폐 사드(THAAD)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 movieknight@hanmail.net

또 하나의 대국민 사기극이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실은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사드가 전격적으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어둠을 틈 타 4월 26일 기습적으로 일부 포대가 배치되었다. 사드는 박 근혜정부의 주요한 적폐 중에 하나로 지난 촛불시위에서도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대구참여연대도 2016년 18차 정기총회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의 위험성을 예고하고 적극적인 연대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 했고,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의 결성과 활동에 열심히 하고 있다. 사무처 상근자들 뿐만 아니라 성주에 사시는 회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고 계속해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많은 회원들이 참 여하고 있다. 성주 소성리 사드 체계의 일부가 배치되는 동안 단 한 번의 진실이 드러난 적이 없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짓과 부정의로 일관되었다. 첫째, 사드 도입 결정부터가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전까지 미국정부의 지속적인 요 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운용하는 MD(Missile Defense : 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된 어떤 무기의 한반도 배치 를 허용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이 계속되어도 한반도 영토의 특성상 거리가 짧아 미 국의 MD 체계가 필요하지 않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 방어에 필요한 체계는 KMD라는 한국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했다. 이는 군사적인 논리임과 동시에 한국의 최대 무 역수출입 국가인 중국이 미국 MD에 대한 거부감을 고려한 일관된 외교적인 논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일관된 군사정책과 외교정책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사라지고 사드가 도입되기로 한 것이었다. 이전의 군 사정책과 외교정책은 집권정당과 대통령이 바뀌 어도 세부적인 사항은 변화는 있되 대한민국 정 부가 십수 년 고집해온 정책이었다. 이만한 외교 적 - 군사적 정책이 전환될 때는 그에 따른 상당 한 이유가 필요하나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 도 없다. 사드의 도입 결정부터 왜? 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두 번째, 일부 정치인들이 말하듯 이것은 국가 - 16 -


간의 합의가 아니다. 국가 간의 합의라고 한다면 국민들의 선 출한 의회의 승인 또는 행정부를 집행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이 관계국과 합의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하지만 사드도입과 관련 된 합의서는 맨 처음에는 있다고 했다가, 합의서 자체가 없다 는 것이 드러났다. 사드도입의 근거는 그저 한미공동실무단의 보고서에만 있다. 이는 해방이후 38도선의 존재가 미국 실무진 들에 의해서 결정된 것처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협 에 대한민국 정부의 어떠한 권리행사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

사진 : 뉴스민

다. 결국 이는 국방부의 주장처럼 한국과 미국이라는 국가가 약속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배치결정에 따라 국방부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사드도입과 관련하여 후보지로 물망이 오르던 지역들은 사드 레이더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거부의 사를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는 레이더로 인한 인체와 동식물에 대한 위험성은 없으며 안전하다고 거듭 밝히 고 있다. 이는 거짓말이다. 안전성이 검증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직까지 한국 정부와 관련당국은 이처럼 대 규모 지상 운용 레이더의 전자파 관련 가이드라인과 안전검증정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사드에 따라오는 X밴드 레이더가 발생시키는 출력의 전자파와 관련된 어떠한 연구도 진행한 바 없다. 위험요소가 발생한 적이 없다는 말이 안전 검증을 받았다는 말은 논리적으로도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현재 미국이 운용중인 다른 지 역의 사드의 경우에는 미군 교범에 따른 일정한 반경 안에 인구가 살지 않거나 바다로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포괄하는 성주 소성리와 완전 다른 환경이다. 네 번째, 정말 소성리는 배치 최적지인가? 사드도입 결정하고 최초의 최적지는 성주의 성산포대였다. 그런 데 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어느 순간 말을 바꾸어 소성리 롯데 CC 지역이 최적지라고 발표해 버렸다. 국 방부가 말하는 대로 한반도의 방어에 엄청나게 중요한 무기라면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졸속적으로 그 위치 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인가? 터무니 없는 일이다. 다섯 번째, 최근에는 미국의 고위 관료가 한국을 방문해 사드 배치는 다음정부가 결정한다고 했는데, 이 글 을 쓰는 4월 26일 기습적으로 비행기와 배로 들어왔다는 사드의 포대, 레이더, 통제장치들이 경찰 수천 명의 호위 속에서 수백 명의 주민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짓밟으며 진행되었다. 경찰의 통제영역에 접근하여 차량과 인원의 이동을 통제하는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그 수많은 경찰 의 간부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처절하게 어두운 밤, 성주 소성리에는 주민과 연대시민 수십 명이 경찰 3000여명에게 들려나가며, 부서지며 고통을 겪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다면서 시민들의 평화를 짓밟 았다. 우리가 차근차근 간단하게 살펴본 대로 사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절차적 민주성, 공공성, 투명성이 하 나라도 지켜지지 않았던 거짓의 무기이다. 이것의 우리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두고 볼 것이다. 우리는 잊지 않았다.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 밀양 그리고 성주 소성리 국가와 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그 죄악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 - 17 -


│이슈│

성주촛불열전 : 만능 농사꾼 김상화

박중엽 뉴스민 기자

매일 저녁 열리는 사드배치 철회 촛불집회가 끝나고 성주읍내를 진전하다 김상화(38) 씨를 자주 마주쳤다. 2009년 귀농한 그는 얼 큰하게 취한 채 자주 눈에 띄었다. 성주 자치 조직 활동에 왕성하게 참여하느라 술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상추를 재배하는 농사 꾼이다. 술자리에서 절도 있게 술잔을 꺾으며 잔을 받는 모습에서는 수완 좋은 장사꾼 면모가 보였다.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에 서 초기부터 활동하며 이제는‘동남청년단’청년으로 온갖 궂은일에 나서는 모습에서는 전업 활동가 느낌도 났다. 그리고 어딘가 모를 선비의 모습도 느껴져, 가끔 성주 토박이로 느껴질 정도였다. 김상화 씨는 사드 투쟁 현장에서 가장 앞선 곳에 있었다. 소성리 집회에서는 할머니들 앞에 섰다. 집회만이 아니다. 김세환 전 성주 부군수의 땅투기 의혹을 집요하게 캐냈고, 사드 배치의 행정적 문제점을 잡으려 살피다 사드 부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착수 사실을 어느 기자보다도 먼저 밝혀내기도 했다. 대구공항 이전 설명회에서는 이전 반대 측 대표로 발표했다. 타향 출신임에도 성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훗날 김상화 씨의 선조를 알고 보니, 그의 모습이 선조를 닮은 듯했다. 그의 증조부 故김점학 씨는 일제강점기 신간회 조직활동에 나서 국내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증조부에 대한 기록은 국가보훈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구청년동맹 집행위원, 신간회 대구지회 간사, 경북청년연맹 집행위원. 대구중등학생 비밀결사 활동 중 체포 등으로 실형을 살았지만, 2008년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았다.

‘옛날은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서로 반목(反目)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되어 양자가 합동한 이유는 현재 조선의 사정은 외래의 자본에 압박받고 중산 계급 이하는 급속도로 경제적인 파멸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이해관계는 조선 전 민족이 똑같은 입장이다 … 대 자본가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민중은 이 때문에 직업을 잃고 더욱 빈궁에 빠졌다. 이에 우리들은 합동하여 자본가에 대항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30년 재판 기록에서 故김점학 씨의 검찰 신문 당시 진 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방적 사드 배치에 저항하고 나선 성주 상황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일까. 검찰과 판사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았을 故김점학 씨의 모습이 김상화 씨에게도 이 어지는 듯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기를 즐겼다. 할머니가 자 주 챙겨주는 요구르트와 초코파이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들 려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이던 할아버지는 댁에 들를 때마다 장기나 한판 두자며, 장기판을 앞두고 이야 ▲2016년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송년 술자리 후 뒷정리를 하고 쓰러진 김상화 씨

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훈장 선생님처럼 엄격했던 할아버지는

- 18 -


내게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증조부 이야기도 자주 하셨는데, 나이를 먹고 나서 증조부의 자취를 되짚어보며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달성군 옥포면에서 태어 난 증조부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 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천석 꾼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나서며 형편은 전보다 나빠 졌지만, 증조부의 정신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까지 이어졌 다. 바르게 살고자 했던 어른들로부터 여러 가치관을 배웠다. 학교에 다니며 어머니가 구해다 주는 책을 탐독하며 착실하 게 공부했다. 중학생이 되자 운동하는 친구들을 사귀며 공부 보다는 운동에 빠졌다. 키도 큰 편이라 농구에 소질이 있었는 데, 대학생이 되어 농구 경기에 출전해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트로피는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렸다. 일제강점기 청소년 농구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갔으나 편파 판정으로 결승전에서 일본 고교 팀에 패했던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으면서도 기뻐하시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나는 대학 시절 동아리도 다섯 개나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며 교우관계도 좋아, 단과대 학생 회장도 맡았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돼볼까 해서 경영학과에 진학했는데, 막상 대학생이 되어 보니 학교에서 얻은 행복감도 좋아 대학교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졸업 후 곧바로 전문대 교직원으로 취직했다. 취직 후 마주한 대학은 내가 알던 대학 세계와 달 랐다. 총장과 이사장, 그 친족과 교수진들의 가장 밑바닥에서 사무를 봐야 하는 교직원으로서 조직 생활에 희망을 느끼지 못했다. 취업 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사회로 팔아넘긴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1년을 채우기 전에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학교 선배와 이야기하며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농업계 회사에 다니 는 선배는 대구의 섬유산업도 무너지는 걸 보라며, 농업은 무너지지 않는다며 농업을 권유했다. 당시 금융업에 나선 친구를 보며 농사 지을 생각을 굳혔다. 그 친구는 펀드매니저로 떼돈을 벌더니 금세 벤츠를 뽑았다. 벤츠 뚜껑을 열고 자랑하는 친구 앞에서 나는 그건 운이라고,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결국, 그 친구는 벤츠를 팔고 증권회사를 그만뒀다. 2009년 귀농을 마음먹고 성주군 가천면 마수리로 들어왔다. 성주는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가야산자락 포천 계곡(성주군 가천면) 안에 집을 하나 더 마련해, 그곳으로 틈만 나면 나와 동생을 보냈다. 고향 생활을 알려주고 싶으셨을까. 잘 모르겠 지만 애착이 갔다. 성주는 대구와 여러모로 다른 곳이었지만,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붙임성 좋게 솔선수범했더니 그만큼 고령의 주 민들도 마음을 열었다. 다만 처음 짓는 농사는 쉽지 않았다.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작물을 해야 성공하겠다고 생각해 생와사비 재배에 도전했다. 생와사비 하나는 6년근 인삼 한뿌리보다 비싸다는 말을 들었다. 못해도 투자비는 회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첫 수확 후 1년간 딱 한 명이 샀다. 판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비싼 값에 배웠다. 2011년 대가면 대천리로 이사했다. 그곳은 상추터였다. 이번에는 만전을 기하며 작목반에 가입했다. 작목반 회원들에게 상추 농사 를 배웠다. 납품 물량을 채우기 어려울 때는 작목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와사비와 상추 재배에서 한국 농업의 문제를 체감했다. 생 산비 보장이 안 됐다. 도매시장에 출하했을 때 kg당 생산비 2천 원이던 상추 값은 500원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밤낮없이 일해 직 거래를 시작했다. 대구에 품질 좋은 상추를 공급하다 보니 거래처가 늘며, 사업이 안정권에 들었다.

- 19 -


│이슈│

농촌생활도 빠르게 적응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농 촌사회는 여러모로 달랐다. 농촌은, 적어도 성주는 조직사회였다. 농사에서 크고 작은 마을 행사, 정치, 자치행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일이 조직 중심으로 굴러갔다. 와사비 재배할 때 많이 느꼈던 것인데, 군 에서 하는 보조사업을 예로 봐도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조직은 비교적 접근이 쉬웠다. 대학 시 절 동아리 들듯 여러 조직에 들었다. 의용소방대, 농 업경영인회, 자율방범대, 귀농인연합회까지. 젊은 사 람이 부족한 농촌에서 의용소방대 활동은 힘들었지 만, 인정받았다. 듣기로 성주는 소방관이나 경찰 1인당 책임질 사 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했다. 산불이라도 나면 젊은 사람들이 진화작업에 나선다고 했다. 2013년 겨울, 수륜면에 산불이 나자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나와 밤샘 진화작업에 나섰다. 연기를 잔뜩 마시고 새벽에 내려와 보니, 소방대장 사모님이 돼지고기에 막걸리를 준비 해뒀다. 술잔이 돌 때 기회를 잡아 인사와 함께 건배를 외쳤다. 이후에도 단체에서 필요한 역할, 특히 어른들이 하기 어려운 컴퓨터 작 업 같은 일을 도맡았더니 수월히 성주 사회에 섞일 수 있었다. 내부에서 보니‘조직사회’ 는 더욱 뿌리 깊었다. 자치조직이라지만, 군청 대소사에 동원될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상상 이상이었 다. 군청은 작은 행사도 관성적으로 조직의 힘을 빌렸고, 조직은 군청 일에 나서는 만큼 여러 편의를 받는 듯했다. 여하튼 조직사회의 정점은 선거 때 드러났다. 기초의원, 광역의원, 군수나 대부분 관변단체 선거에서도 드러나기로, 출마자가 가장 먼저 찾고, 중요하게 여 기는 것이 조직이었다. 그리고 그 조직은 내부 회원에게는 물론 지역사회에서 암암리에 여론을 조성했다. 대구와 달리 자치조직의 힘이 강한 것은 순기능도 있었지만, 개인으로서는 불합리한 조건이었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악조건이었다. 이런 성주의 특징은 2016년 8월 22일 성주군수가 사드 배치 제3부지를 발표하고 나서 여실히 드러났다.

제 멋대로 사드배치 군청 행정 안에 성주군민 없었다 사드 배치는 발표부터 성주군의 민심과는 조금도 상관없이 진행됐다. 7월 13일, 국방부의 성주 성산포대 사드 배치 공식 발표를 앞 두고 성밖숲에서 열린 범군민 궐기대회에 참가할 때만 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작목반에서 집회가 열린다 는 연락을 받고 무작정 아내와 함께 나갔다. 나처럼 영문모르고 온 사람이 많아 보였다. 군중 앞에서는 미사일 모형이 불타고 혈서도 나왔다. 그날 오후, 국방부 발표를 보고는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긴장감을 가지고 15일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성주 방문에 맞춰 나갔다. 그들은 이미 뉴스에서 들은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이대로 보낸다면 저들이 마치 성주군에서 무난하게 설명회 를 마쳤다고 보도할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판단했는지, 계란과 물병도 날아갔고,‘원점 재검토’ 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꽁 무니를 내빼는 총리와 장관을 쫓는 시간이 긴박하게 흘렀다. 경찰이 만든 틈을 통해 탈출하는 그들을 보고 나는 성주여고 쪽 도로로 가서 차를 막았다. 억울하다고, 제대로 말이라도 하고 가라고 외쳤다. 총리, 장관이라는 자들이 앵무새처럼 쓸데없는 말만 읊으려면 도 대체 왜 온 거란 말이냐. 셀프감금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 20 -


어이없는 행정은 군도 마찬가지였다. 8월 22일 김항곤 성주군수는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성산포대가 아닌 제3부지를 검 토하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그날은 법 도, 헌법도, 도의도 없는 비극의 현장이 었다. 군수의 기자회견장에 참여하려는 군민을 군 공무원들이 벽을 쌓고 막았다. 성주에 정착하며 사귄 공무원도 더러 눈 에 띄었다. 작목반 일로 군청을 방문할 때마다 봤던 담당자도 서 있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다고 하지 않았 나. 공무원은 군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누굴 위해 우리를 막고 있나. 군수가 사드를 성주군 다른 곳에 ▲백철현 군의원과 악수하는 김상화 씨

배치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어나 보려고 하는 군민들을 군청이 막

는다. 너희들이 여길 왜 막고 있는 것이냐. 군민에게 할 짓이냐. 그들은 못들은 채 복지부동이었다. 번갯불에 콩 볶듯 기자회견이 끝나 고 나서 배은하(42) 투쟁위 대변인이 펑펑 울며 말했다. “주민의 뜻과 다른 군수의 오늘 기자회견은 무효입니다! 군민들은 40일간 싸우고 있는데 사드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성주 사드 배치 저지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불통 군청 원인은? 부군수 점찍어 싸움 나서다 사드 투쟁, 지역 적폐 민낯 드러냈다 실패 두려워말고 싸워야 공무원들이 무엇 때문에 이정도까지 군민들과 척을 지려는 것일까. 고민을 거듭했다. 군청 조직도를 봤다. 유일하게 군수 의 인사권이 안 먹히는 사람이 있었다. 김세환 (전) 부군수였다. 부군수는 경북도청에서 김관용 도지사가 파견하는 사람이 었다. 알고 지내던 공무원들을 탐문했다. 부군수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다. 제3부지 찬성 집회를 지 원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 단체들 호소문도 부군수가 만들어줬다는 말도 나왔다. 21일 <뉴스민> 보도를 보니 국방부 기 획조정실장은 투쟁위의 제3부지 요청 건의 기자회견문 문구에 개입하다가 부군수실로 도망갔다. 왜 부군수랑 붙어먹을까. 정보공개청구를 해 봤다. 군청 폐쇄 이후 천막 철거 행정대집행 관련 공문, 경찰병력 동원 요청 공문 등 주요 공문들이 군 수가 아닌 부군수 전결로 처리돼 있었다. 군수보다 부군수가 어긋난 행정의 핵심인 것일까.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나중에는 경상북도 공무원의 예천군 땅 투기 문제가 벌어졌는데, 부군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도청에 민원도 넣고 경북도청까지 가서 기자회견도 열었다. 하지만 부군수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썩 통쾌한 결과는 아니었다.

- 21 -


│이슈│

사드 투쟁 과정에서 군수를 주민소환하자는 의견도 왕왕 터져 나왔다. 다른 사례처럼, 주민소환이 실패한 후 상황 악화 를 염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주민소환 운동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추진했다면, 성 공 가능성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 에 나서는 사람들은 군민이 머뭇거리다가 포기하는 모습보다 주민소환 운동에 적극 나서는 게 오히려 경각심을 줄 수 있 지 않았을까. 군청에서 군의회, 지역 정당까지 촘촘히 얽힌 이 성주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당선 후에는 거칠 것 없다는 태도에 일침을 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군의회를 보라. 의원 8명 중에 누구 한 명이라도 사드 제3부지 요청 건의에 반대한 사람이 있었나.‘결사반대’ 하라는 것도 아니고, 반대 입장을 내는 의원 단 한 명이 없다니. 그러니까 군수가 군청을 폐쇄하면 군의회도 뒤따라 폐쇄하는 거다.

주민소환제에 아쉬움이 남고, 민원 제기나 정보공개청구에 매달렸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 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주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 주권자가 행정에 참여할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면서 정치와도 멀 어진다. 이제 투표밖에 남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모두 선거 전에는 나라 최고의 일꾼이다. 머슴이다. 선거가 끝나면 그 많 던 일꾼은 오간 데 없고 배신자만 남는다. 나 같은 농사꾼에게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야 하고, 더욱 많아 져야 한다. 의회조차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성주군에서 군민이 직접 의사를 표현할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박근 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회 분위기는 크게 변했다. 정치인들이 두려움을 느꼈다. 앞으로는 성주에서도 잘못된 정치인의 자격을 군민 힘으로 박탈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성주에서는 사드 사태 이후 정치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행정관료와 정치인의 실체가 드러났고, 그들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졌다. 사드 투쟁은 제도적이진 않지만, 민의를 강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촛불을 들고 반대했기 때문에, 아직 사드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대구공항 이전 후보지로 성주가 거론됐으나, 이제는 군 민 반대로 물 건너갔다. 성주 촛불 이후 새누리당이 쪼개졌고, 박근혜가 탄핵됐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의견을 표 했을 때, 작지만 사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른다. 결과가 어떻든 분명 성주는 바뀐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역할을 찾을 것이다.

* 이 글은 뉴스민의 2017년 4월 17일자 기사 입니다. <뉴스민>은 성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만난 성주 사람 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성주촛불열 전]을 매주 월, 목요일 연재하고 있습 니다.

▲군공항 반대 발표에 나선 김상화 씨

- 22 -


│ART & CULTURE│

우리들의 혁명은 무엇입니까?

김병호 화가, 편집위원 cosmo4189@hanmail.net

1. 테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내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9년 1월 빈센트 반 고흐 2. 아바나 농업 재건의 해를 기념하며 이 순간 나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마 리아 안토니아의 집에서의 첫 대면, 당신과 함께 오자는 제의, 그리고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그 모든 긴장들, 언제인가 누군가 우리 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죽어야 할 순간이 오지 않겠냐고, 죽어야 할 순간이 현실적으로 우리에 게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사 로잡았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었고 (어차피 그래야 한다면) 혁명 속에서는 이기는 자 도 있으며 죽는 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 니다. 승리로 오는 길목에서 많은 동지들이 그렇 게 쓰러져 갔습니다.

- 23 -


지금은 모든 것이 그때만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더 원숙해졌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 실은 반복되는 법입니다. 나는 쿠바혁명에서 내가 할 바의 몫을 수행했다고 여기며 어느덧 내 자신의 일부 가 되어버린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쿠바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 중략 … 나는 찬란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당신의 곁에 머물면서 카리브 해의 위기가 야기한 슬프고도 저 빛나는 시간들을 우리의 민중과 더불어 함께 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낍니다. 그날들보다도 더욱 빛나는 시간을 가진 정치가는 없을 겁니다. 아울러 망설임 없이 당신을 따랐고, 당신의 사고방식에 내 자신이 기꺼이 따랐 다는 점 역시 자랑스럽습니다.

이 세계의 다른 땅에서 미약하나마 나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쿠바의 수반으로서 지 고 있는 책임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작별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당신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희열과 고통이 어지럽게 내 마음을 휘젓는군요. 여기에 나는 건설자로서 나의 가장 순수한 희망을 두고 갑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친자식처럼 따뜻이 맞아주었던 쿠바의 민중을 두고 떠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희망의 일부로서 계 속 남아 있을 겁니다.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막론하고 새로운 전장에서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심 어주었던 신념, 민중의 혁명정신, 가장 성스런 의무를 수행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있을 겁니다. 이것들이 있다면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위로받고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1853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그를 지속적으로 힘들게 했던 가 난과 고독 그리고 예술에 대한 끝없는 집착으로 번민의 삶을 살면서, 1890년 권총으로 자살할 때까지 모두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 24 -


│ART & CULTURE│

그의 그림은 독창성에 관해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 독창성은 저절 로 얻어진 것 이 아니었다. 밀레의 <씨 뿌 리는

사람-

1850~1851년, 유화>이 고전의 맥을 이어간 따듯한 그림이었다면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1889년, 유화>은 밀레의 그림을 토대로 하였음에도 그것은 혁명이었다. 그 이전도, 당대 그 어느 누구도 그런 화풍을 가진 자가 없었다. 그는 즉각적인 인상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끊임없이 표현해내는 비운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었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영혼마저 내놓았다. 문득, 혁명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을 뒤엎는 장쾌한 혁명도 있겠지만 우리 안에서의 소리 없 는 혁명 또한 거대한 물결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인다. 이미 민중에서부터 생성되는 거대한 혁명은 역사 안에 면면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개인의 삶을 뒤집 는 혁명’ 이란 무엇일까? 그 해답을 나는 피델에게 보내는 체게바라의 편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완벽 한 혁명을 이끌었고, 또 혁명국가를 재건한 거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혁명은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그가 민중 지도자로서의 삶을 버리고 다시 숲으로 돌아간 것은‘순수’ 였다. 인간으로서의 순수, 예술가로서의 순 수, 혁명가로서의 순수가 그의 손에 다시 총을 쥐게 하였다. 그것은‘혁명을 쫓는 삶’ 에 새로운 혁명이었고, 진정한 혁명을 위해 다시 혁명을 버리는 순수였다. 나는 때때로 작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민중의 혁명을 꿈꾸었다. 이 나라의 천박함은 구더기처럼 들끓 고, 악의 근원까지 보여준 지난 대통령을 통해 그 추악함을 목도한 바가 있다. 무례하고 극악한 군상들의 적폐를 청산하는 길은 혁명만이 유일한 해결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치욕스럽고 참을 수 없는 울분으로 가득해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처럼 느껴졌다. 혁명이란 무엇일까? 고흐가 살았던 삶의 발자취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혁명을 이루거나 체게바라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숲으로 되돌아갔던 그 혁명은 과연 또 다른 하나의 혁명일까? 많은 것들이 쏜살 같이 지나가는 현대사 안에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은 혁명들은 어떤 혁 명일까? 나는 스스로 자문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오늘을 같이 살아가는 당신들에게도 물어본다.“우리들의 혁 명은 무엇입니까?”

- 25 -


│이달의 회원│

“아직 이루지 못한 꿈. 저는 예술가로 살고 싶어요. 창작하다 죽고 싶어요.” 예술가 최엄윤 회원

글. 대담 최나래 정책사업팀 간사 skfo7438@hanmail.net

연극인이자 저자, 그리고 현재 대구참여연대에서 진행 하

컸었던 것 같아요.

고 있는 6월항쟁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있는 최엄윤 회원 을 이달의 회원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본인이 적절한 대

Q. 그 이후에도 계속 연극을 하셨나요?

상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겸연쩍게 웃으며 시작한 인터뷰.

저는 중·고등학교 때도 계속 연극을 했어요. 당시에는 연극

어느덧 저녁시간을 훌쩍 넘겼고, 우리는 배고픔도 잊은

과가 없어서 대학에 가서는 연극동아리를 했고 졸업하고는 야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녀 같다가도 촌철살인을 날리는 그녀의 삶 이야기에 누구나 매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인으로 죽고 싶다는 최엄윤 회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에서 연극을 가르쳤어요. 노동야학이었는데 IMF가 자기 삶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논의를 하며 대본을 만들고 공연을 했어 요. 그때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고 싶단 생각을 한 거죠. 사 실 왜 연극을 하는 게 좋은가 하는 질문했을 때 나도 몰랐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몰랐는데 유학 가서 알았어요. 당시 프랑스 교수님이‘너는 연극이 너에게 치유의 과정이었구나.’그러더

Q. 줄곧 연극인이 되기를 꿈꿔왔다고 들었어요. 어떠 한 계기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라고요. 생각해보니 사람사이에서 위로를 받고 나를 통해 누군 가가 위로가 된다는 것이 내 삶에 많은 감동을 줬어요. 내가 영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가면 사람이 없었어요. 외로움을 달

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공동체정신이 좋았던 것 같아요.

래기 위해서 TV를 보게 되었고, 연기가 재미있단 생각을 했었 어요. 거울보고 연습도 하곤 했으니까요. 그 당시에 전국어린이 연극대회 출마를 위해 학교에서 오디션을 한참 진행하고 있었

Q.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프랑 스생활은 어떠셨나요?

어요.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었음에도 할머니 역할을 따냈죠. 그

한국에선 가족이 있다 보니 혼자 힘으로 하는 것들이 적었어

연극을 위해 학교수업을 마치고 강당에 모여 몇 달을 연습을

요. 그런데 프랑스는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했어야 했어요. 언

했어요. 친구들과 모여서 연습을 하면 집에 늦게 갈 수 있어서

어도 그랬어요. 한국 친구 같으면 아주 길게 푸념을 할 부분도

좋았고, 함께 어울렸던 친구가 있었고 노력해서 이루는 기쁨이

프랑스 친구에겐‘나 오늘 너무 슬퍼’라고 말하면 끝인 거죠.

- 26 -


그러면 그 친구는‘그래? 그럼 영화 보러 갈까?’라고 대답하 곤 했어요. 그냥 그게 다인거에요. 저는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 어요. 내가 어떤 단어를 배우고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어 린아이가 세상에 눈 뜨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 어가 온전히, 충만하게 나에게 다가왔어요. 아마 우리가 태어나 서 언어를 배울 때 그랬겠죠? 근데 우린 잊고 살아 왔던 거죠.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가 하나하나배우는 것들이 즐거웠고, 열심히 했을 때 듣는 사람들의 칭찬도 좋았어요. 적이 있어요. 그때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사람들이

Q. 귀국해서는 프로젝트 모임 <소풍>활동을 하셨죠? 연극자리 소풍은 원래 프로젝트모임으로 시작을 했다가 지금 은 연극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로 그림자극을 하고 있어요. 영 어로 picnic이라 풀이 할 수 있고 한자로 웃음 소(笑) 바람 풍 (風)을 써서 smile wind 라고도 해요. 소풍이란 이름이 정겹기 도 하고 여러 가지 중의적 표현이 있는 이름이에요. 저는 스텝 이나 기획, 극작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했었고, 지금은

저를 가만히 두질 않았어요.‘어디 경리라도 들어가지 왜 여기 서 김밥을 마냐’ ‘말 못할 사연이 있냐.’등등. 이 사회는 경제 적 환산이 분명한 것들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다보니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이 폭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나 아졌고 예술인에 대한 복지가 늘어나고 있긴 해요. 그런데 프 랑스는 어느 정도 활동한 것이 인정되면 나오는 예술인실업급 여라는 것이 있거든요? 우리나라도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기본 수당이나 실업급여 같은 체계가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또

함께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풍은 내 인생에 중요한 곳이에요.

노동이란 개념 속에 예술 업계를 인정해줬음 좋겠어요. 예술은

Q.‘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

우리가 살아갈 때 꼭 필요한 것이고 공공서비스거든요. 예술인 스스로도 노동자란 생각을 해서 그만큼의 성실함을 담보했으면

기도 합니다. 저는 마을공동체를 전공했기 때문에 집을 극장으로 활용해보

좋겠어요.

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그런데 연극을 하다 보니 자금이 부족했 고 지원금을 받아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책이‘이천동 도

Q.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의 옛 고향’ 이에요. 그때 당시 대구 남구 이천동은 재개발 지

제 주위에 아직도 수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있고, 예술적

역이다 보니 문화적으로 소외 되어있는 곳이었어요. 극장에 평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인생을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생 못가 본 사람이 많은 동네였죠. 거기서 공연활동을 시작했

사람도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증명이 되지 않는

어요. 우리 집도 극장이 될 수 있고 동네 할머니집, 골목, 학교

예술가들은 많은 박탈감에 빠져있어요. 그런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 어디든 극장이 되었어요. 그 활동을 기록하면서 여러

‘국경없는광대’ 를 꾸리고 싶어요.‘국경없는의사회’ 는 전 세계

가지 사회현상과 재개발지역의 문화소외. 재개발의 문제점들을

에 있지만‘국경없는광대’ 는 많지 않거든요. 저는‘국경없는광

다뤘던 책이에요. 지금은 정부지원금으로 생활문화공동체사업

대’한국지부를 너무 만들고 싶어요. 문화가 닿지 않은 곳, 특

들이 많지만, 2007년 그 당시는 지역에선 거의 없었던 시기여

히 분쟁지역을 찾아가서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

서 하나의 모험이라 생각했는데 우수교양서적으로 선정이 돼서

리고 예술가 스스로도 웃음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

기뻤어요.

해요. 10년 이내에 하고 싶네요.

Q. 최엄윤엔게 연극이란?

Q. 많은 예술인들이 생활고에 힘들어합니다. 이러한

아직 이루지 못한 꿈. 저는 예술가로 살고 싶어요. 창작하다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프랑스에서 논문을 쓰다가 돈이 없어서 한국에 귀국한

죽고 싶어요.

- 27 -


│노동현장은 지금│

빈발하는 간접고용노동자 집단해고 ‘고용불안’해결방안 없나?

정현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사무처장 alswneorn@daum.net

3∼4년 사이 전국적으로도 ‘고용승계’ 와 ‘노조

늘어나는 간접고용, 커져가는 고용불안

인정’ 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부 간접고용은 원청 사용자가 업무에 필요한 노동자

쩍 늘었다. 주요 진원지는 대부분 청소·경비, 제조

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타인이 고용한 노동자를 이

업 사내하청, 서비스 직종이다. 통상적으로 간접고

용하는 고용형태다. 이런 간접고용은 상시적 고용불

용 노동자들은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반복·갱신

안과 노조를 만들더라도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의

하며, 이때 업체가 변경·폐업할 경우 노동조건이

책임 회피로 노동3권을 온전히 행사하기도 어려운

악화되거나 고용 단절 또는 해고의 위험에 처한다.

특성이 있다. 지난해‘고용공시제’ 를 통해 확인한

경북대병원의 주차노동자 집단해고 사례나 민들레

300인 이상 대기업의 간접고용 규모가 155만 명이

분회 탄압 사례5)처럼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거나 노

니, 건설 일용직과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까지 포함

조간부의 활동을 막기 위한 의도적 업체변경 및 위

하면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폐업도 수시로 일어난다.

최근 몇 년간 대구남구청1), 경북대병원2), (주)홈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

3)

타 , 아사히글라스 등에서 집단해고가 빈발하였다.

예산도 줄이고 노동조건 개선

이들은 모두 원청에 직접고용되지 않은 용역업체

반복되는 계약갱신 분쟁,

4)

또는 하청회사 소속 간접고용노동자들이다.

‘고용승계’법에 명문화 필요

1) 남구청의 청소용역회사인 (주)진솔환경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2015년 6월에 대구지역일반노조에 가입하고, 임금착취 및 근로기준법 위반 등 업체의 비리 를 고발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이에 업체는 노조 가입 및 활동을 이유로 5명을 부당해고 하였다. 2) 경북대병원은 2015년 9월 23일 새로운 주차용역업체로 리더스디벨럽먼트와 계약을 하였다. 공공병원인 경북대병원은 용역근로자보호지침에 따라 용역 업체가 바뀌더라도 용역노동자들의 고용은 승계된다. 그럼에도 새 용역업체는 채용공고 및 면접을 통해 채용하겠다고 하였고 노조가 이에 반발하자 26 명을 집단해고하고 신규 노동자를 채용하였다. 3) 레미콘 8개, 아스콘 4개, 석산 2곳 등 (주)홈센타의 운송을 담당하는 (주)황재물류 소속 덤프트럭 지입차주 및 기사들은 2015년 노조(건설노조 황재분회) 를 결성하고, 홈센타와 운송료 인상 및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합의에도 불구하고 홈센타는 황재물류와의 운송계약 재계 약 시점(2017년 3월 4일)이 도래하자 계약만료를 통보하고 새업체로 동일중기를 선정하면서 75명의 덤프노동자를 해고하였다. 4) 아사히글라스는 유리를 생산하는 경북 최대의 외국인투자 기업이다. 정규직 800여명, 3개 사내하청업체에서 300여명의 비정규직이 일해 왔다. 아사히 글라스는 2015년 5월 29일 설립한 노조가 하청업체와 교섭중이던 6월초에 17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문자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희망퇴직을 강 요하던 하청업체는 7월 29일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5) 의료연대대구지부 경북대병원 민들레분회는 주차현장, 본원청소현장, 칠곡병원 청소현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북대병원은 주차용역업체 변경과정을 기회 로 주차현장노조원들을 집단해고했다. 청소현장에 대해서는 노조파괴를 약속한 동양산업개발(입찰시 노조탄압 및 파업대응계획을 제출)과 계약하고, 동양 산업개발은 단체교섭을 해태하고 분회장을 부당해고하는 등 노조를 탄압했다.

- 28 -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과 이러한 처

법으로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하자.

지를 이용하여 저임금노동에 내몰리고 노동조합을

현행 간접고용노동자의 고용불안정을 규제하는

설립·운영할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법·제도는 정부의「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과「용

해소할 수 있을까?

역근로자 보호지침」에 불과하고, 구체적 사안은 법 원 또는 노동위원회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

첫째, 공공부문부터 정규직 전환을 모범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민간으로 확대하자.

러나 현행 대법원 판례는 통상 입찰을 통해 용역업 체가 변경될 경우, 고용승계 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최근 몇 년간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와 국회 청소 노동자 직접고용 전환 등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사

있다. 노동위원회도 부당한 계약해지 구제신청 건에 대해 고용승계의무를 인정한 경우가 거의 없다7).

례를 취합해 직접고용 전환 효과를 분석한 결과, 비

입법적 해결방안이 절실하다. 영국의 경우 외부위

정규직 규모를 축소할 수 있고 직접고용 전환 정책

탁 및 위탁업체 변경을 포함하는‘사업이전’ 시 노

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직접고용 전

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용승계 의무화를 법으로

환 시, 해당 기관의 예산을 절감하고, 노동자들의

정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근로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효과도 나타났다. 올해

기준법 제23조의2(사업이전에 의한 해고의 제한)를

초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한 국회는 약

신설하여‘도급에 따른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가

5억 원의 비용을 절감하여 노동자 1인당 월평균 20

위탁업체의 변경 등에 의해 이전되는 경우, 해당 근

만원의 처우 개선비용을 마련하였으며, 광주시는

로자에 대한 권리 또는 의무는 사업이전에 따라 변

2015년 이후 896명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한 이후

경된 하수급인에게 승계된다.’ 는 내용으로 입법이

임금을 평균 13.4% 인상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적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극적으로 공공부문 직접고용 전환을 추동한다면 민 간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6)

진짜 해법은 간접고용 철폐!

실제, 민간의 경우 300인 이상 대기업의 간접고용 남용이 심각하지만 강력한 규제조치가 부족하고,

간접고용은“수익자부담원칙” 이라는 근대법 정신

‘정규직 전환 지원금’정책도 정부의 수수방관으로

에 위배되는 고용형태이다. 노동력을 제공받으면서

예산 집행이 2% 미만에 그치고 있다. 공공부문부터

혜택을 누리는 자라면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부담

선도적으로 정규직(직접고용)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간접고용은 이러한 상식을

서 민간에 대한 사용남용 규제와‘정규직 전환 지원

정면으로 비껴간다. 따라서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8)

금’ 의 실질적 집행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강화를 통해서 간접고용노동시장으로의 신규 진입 을 막고, 간접고용을 사실상 철폐해 나가야 할 것이

둘째, 실효성 없는 정부지침, 법원판결 보다는 입

다.

6) 직접고용 전환시 예산 절감 효과 : 부산대(청소업무 직영 전환/3억 2,737원), 국회 (207명 직접고용 전환/5억원), 서울시(청소 분야 직영 전환 및 처우개 선/53억 원), 광주시(896명 직접고용 전환/15.7% 절감), 서울시(지하철 안전업무 7개 분야 직접고용 전환/47억원) 7) 매출 500억 원 33개 인력공급업체 대상 부당해고(2008년-2012년, 73건) 분석 결과 : 중앙노동위원회는 구제신청에 대해 9건(12.3%)만 부당해고 판 정했다. 그러나 계약기간 만료 후 제기된 37건 중 불법파견에 따라 원청의 고용의무(고용의제)가 인정되거나 새로운 용역업체에 고용승계의무가 인정된 경우는 단 1건도 없다.(경향신문, 2014년 1월 15일) 8)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차별처우금지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강화, 파견 사유·대상 업무 제한 강화, 불법파견 처벌 강화 등

- 29 -


│사람사는 세상│

찌질과 불신의 10년 대구. 20대 청년의 구직 체험기

하태경 법률사무소 노역왕으로 근무, hma6645@naver.com

언제였던가. 작가 이외수는 한 인기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다

의에 의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노동법의 개정으로 1년이 넘

시는 20대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적이

은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챙겨줘야 한다는 점주의 이야기에 부

있었다. 청춘의 방황과 배고픔과 싸우던 가난한 청년의 시절은

득이 아쉬움이 가득한 채 로 나의 첫 번째 일자리를 그렇게 떠

유명 작가가 되고 난 뒤 돌아 봤을 때 그렇게도 힘들고 지겨웠

나보냈다.

던 시절이었을까? 사정을 알게 된 나의 고모가 곧 다른 아르바이트를 소개 시 내 나이 이제 서른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그때 이

켜주어 같은 동대구역의 커피와 도넛을 판매하는 매점에서 일

외수 작가가 한 말을 떠올리며 지루한 스무 살 시절을 돌이켜

하게 되었다. 이전에 일했던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주말 오후에

볼 때가 있다.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서른의 나는 지금 이러한

만 근무를 하기로 했었고, 방학 때는 시간을 유기적으로 이용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지

할 수 있다는 확답과 함께 시작했다. 관리자와 점주는 소개를

난 세대들의 훈계는 곧 나의 이십대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

시켜준 고모와 친분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러한 사정을 유

었고,“해보긴 해봤어?”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는

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아르바이

그 시절 대기업 창업주의 말처럼 어쨌든 사회에서 성인으로 인

트를 시작하며, 인정관계로 시작된, 굳이 그러한 관계가 아니더

정받을 수 있는 열아홉이 지나 스무 살을 맞이했을 때 알 수

라도 근무를 같이 하며 업주와의 신뢰와 교감은 곧 인정으로

없는 흥분감과 짜릿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변질되어 고용관계를 평등한 것이 아닌 약자와 강자의 사이로 기울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나는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시절

나는 스무 살이었던 3월에 대학 입학과 동시에 대구의 관문

에 깨달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그해의 법정 최저 시급과

인 동대구역의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원래 남의

추가 수당은 전혀 요구할 수도 없었고, 어찌 요구 한다 하더라

돈 버는 건 간 쓸개 다 내놔야 하는 일이니, 열심히 일하라는

도, 내가 일자리를 내일 당장 놓쳐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가지

엄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거의 1년 남짓 주말과 방학 때는

고 고용주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절 업

평일에도 일했다. 내 첫 번째 사회활동이었다. 나는 그 편의점

주는 일자리 하나의 소중함과 내 가족 안에서 나의 위치와 책

아르바이트가 상당히 재밌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태경

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나의 이러한 상황을 잘

씨” 라고 존칭을 들어보기도 했고,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회식

알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본인을 향한 인정을 베풀

을 즐기기도 했으니, 처음으로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내 스

기를 바랐고, 나는 인정관계에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나의 족

스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뿌듯함을 가지기도 했다.

쇄가 되어버렸고, 나는 부당한 처우 등을 한번 건의 해보지도 못한 채 참고 묵묵히 그 가게의 매출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일하고 월급을 받아 내 용돈도 하고 가끔 동

주말이나 어쩌다 갑작스런 평일 근무요청에도 거절하지 못하

생 용돈도 주게 된 재밌었던 첫 번째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타

고,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마감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동

- 30 -


대구역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나는 그 해 대학 전공 필수과목

서 한 고생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는지, 가치를 느끼는 액세서리

에서 처음으로 F학점을 받았다.

를 사는지 모르겠다. 핸드폰 요금 내고, 차비를 하고, 필요한 책 을 사고, 취업준비를 위해 또 다시 책을 사고 사진을 찍는 비용

이때는 몰랐다. 이 학점이 졸업 후 내 5년을 결정할 중요한

이 생기는데, 면접을 보는데도 비용이 생기고, 그것을 또 엄마

알파벳 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이 시기에 허리 디스

께 손을 벌릴 수 없는 노릇이라는 사실을 그때쯤이면, 내 나이

크 질병을 얻었다. 그리고 그 시기를 거치며 내가 얻은 것은 무

또래면 누구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엇일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았다.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 나는 이렇게 겪은 불신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 나는‘불신’ 을 얻었다.

나는 그렇게 휴학 한번 안하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내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모습을 눈 여겨 보던 다른

주 6일을 아침 9시 부터 저녁 7시까지 하는 소규모 제조업체

매장의 업주가 평일 이틀, 주말 이틀 그곳에서 일하고 금요일

의 경리 자리였다. 수습의 급여는 그때 80만원이었다. 수습이

하루에 오후 시간대만 근무해줄 수 있냐고 제의 했다. 나는 그

지나면 90만원으로 올려준다. 이 금액에는 주휴수당과 퇴직금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평일 하루 더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

분할 지급액도 포함되어있다. 1년 반을 하고 다른 직종으로 이

5일을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해보긴 해봤어?”일제강점기

직을 하였을 때 본사를 가진 프랜차이즈 업장의 점주는 본래

시절, 오롯이 개인기로 창업하여 기업을 만든 창업주 이야기들,

출근시간인 8시보다 한 시간을 일찍 나와 부지런함을 보이길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이미 한 시대를 지내온 중년들의

원했다. 인사 평가권을 가진 자의 엄명이었다. 당연히 출근 카

미화된 가르침이 내게 남긴 것은 내가 결국 캠퍼스 빈민이었단

드는 8시쯤으로 체크한다. 두꺼운 매뉴얼 책은 당연히 능력껏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취업

공부하는 것이고, 매장도 업무도 당연히 능력껏 알아서 돌봐야

준비로 하던 아르바이트는 겨우 줄여 주 5일에서 주 1일을 하

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매출이 전국 매장에서 열손가락 안에

며 손님 없던 시간에 폈던 시사인에서“캠퍼스 빈민” 이라는 소

드는 매장에서 나는 하루에 12시간씩 그 매장 안에서 근무라

재로 지면을 할애한 부분을 보게 되었다. 내가 느꼈던 불신과

는 것과 매니저 수련을 하고 있었다. 수련하는 것은 그 매장을

막막한 내일, 이대로 취업이 성공할 수 있을 것 이라는 확신조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업장에 딱 맞는

차 가지지 못한 채 그래도 나지막이 붙잡고 있던 꿈을 이루기

인재를 사측에서 양성하는 과정이다. 나는 인생이 불쌍해서 합

위해서 밤낮없이 일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기사를 보며, 잠시

격선에 가능한 점수는 준다는 점주의 말을 들으며 전국에서 최

외로움을 잊히기도 했다.

하점으로 수련교육에 통과하고 최종에서 떨어졌다.

그 외로움에 공감한다고 해서 내 절박함이 나아지는 것은

나는 깊이 좌절을 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다 하

아니었다. 이제 사회 문제로서 캠퍼스 빈민의 계층이 나타남을

지 못했다는 사실과, 사회 실패자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알리는 기사였다. 형편이 좋지 않은 가족 안에서의 맏이 라는

혼자서 고생하시는 엄마께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고,

무게, 이건 상당히 보수적인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족

나는 생활비라도 보태보고자, 술을 판매하는 곳에서 바텐더로

을 외면하며 개인의 실속을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간의

일하기도 했다. 좋게 생각하면 그것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꿈

아르바이트, 그 월급을 받아 집안의 주요한 대소사에 금전적으

의 일부였다. 처음 직종에서 완전히 다른 서비스직으로 전업하

로 도움이 되고 자 하게끔 하는, 그것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게 된 것은 관리자로서 효율적인 매장 운영을 해보고 싶다는

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내 적성과 일치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일 하는 넉 달 동안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나가서

그래서 그 시간을 줄이기로 하고 시작한 새로운 아르바이트

새벽녘에 들어오는 생활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필사적으로

자리에서도 업주의 요구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시간

기회를 찾고 있었고, 객실 60개짜리 소규모 호텔의 예식사업

따위는 업주가 베푸는 시급에 종속되어있었다. 누가 젊어서 사

부 예약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 31 -


참으로 재밌었던 업무였다. 고객들의 중요한 행사를 문제없

위는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고용했던 사람들의

이 치러낸다는 것, 드디어 내가 경력을 만들 수 있는 직업을 찾

현실적인 이익을 충족 시켜주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이러한 이

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저돌적으로 열심히 일이라는 것을 했다.

십대를 겪었다. 대학의 낭만과 이상의 교육 혜택을 꿈꾼 곳에

고객의 불만을 직접 해결하고 부서 간 의견을 조율하며 고객이

서 나는 캠퍼스 빈민이 되었고, 학점 관리부터 실패를 했고, 그

만족을 느낄 수 있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일, 나는 그런 일을 하

것이 커리어에 실패를 이끌었다. 절박함이란 것은 이성을 마비

고 있었다. 그러나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희열은 오

시킨다. 이 경쟁사회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꿈꾸는

직 나만의 것이었을까…. 조직에서 한 사람만의 기형적 희생은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는 곧 사회에서 배제를 뜻하

그 사람의 문제일까 조직의 문제일까 고민을 하게 된 시기를

기 때문이다.

지난 것 같다. 이렇게 지난 시간 쌓여왔던 불신이라는 감정에 나는 지금 호텔에서도 일을 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대해 확신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매장운영을 할 수 있는 매니저 업무도, 경리 업무도 하고 있지 그리고 옮긴 강의 에이전시 직장에서 회사 대표의 히스테리

않다. 그 일이 있고 삼년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 최저 임금

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끊임없는 새로운 요구에 새벽녘에 집에

도 안 되는 곳 에서 사회인으로서 감을 잃지 않고 배제 되지

들어가 아침 8시 반에 출근해도 업무량이 줄지 않는 곳에서 몸

않으려고 버텨냈고, 3년 중 1년의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시간

에 이상을 느꼈고, 양해를 구하고 다시 예전 직종으로 옮겼지

을 거쳐 지금은 법률 사무소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만 내가 이전에 섣부른 판단을 했다 여겼을까…. 내 직업 운명 내가 생각했던 신뢰라는 것이 무너지고, 그것이 나에게 영향

이 왜 이렇게 가혹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좌절을 겪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들어간 회사는 이미 내 자리에 여러 명

을 주고, 내가 힘들었던 시절이 서툴렀던 20대의 10년이다.

이 거쳐 간 뒤였고, 그로 인해 서류 툴이 망가져 늘 새로움을

타 지역에도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나는 쉽사

요구하는 대표와 야근을 하며 회의를 하고, 그 회의 뒤에는 밀

리 이 대구를 떠나지 못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일까…. 좌절과

린 업무를 처리를 마무리 하기 위해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

우울함을 겪고, 자존감을 긁어대는 내 사수들과 선임들을 경험

가곤 했다.

하며 대구지역에서 지난 20대의 10년을 구직활동을 하며 보 낸 느낀 점은 세대 간 교류의 확신을 제공할 여력이 없다는 점

늘 궁금했다. 이러한 일이 내가 무능하여 벌어진 일일까? 나

이다. 나는 이러한 점이 현재 대구시의 젊은 층 인구가 유출되

는 이렇게 야근을 하며 야근 수당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리고

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 생각하고 있고, 나는 이러한 불신을 겪

요구해본적도 없다. 요구하면 나의 무능을 책망하는 책임자의

으며 지난 20대를 구직활동을 견뎌왔다. 하지만 내 동생들과

모습을 겪어왔기 때문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자리는 소중했기

그 또래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불신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

에 참고 업무를 마무리하며 새벽에 퇴근 후, 몇 시간 자지 못하

겠다. 나는 이미 대구지역의 경제활동에서는 신뢰가 사라졌다

고 아침출근을 반복했다.

고 생각하고 있다. 집중된 부는 임금격차로 나타나고 이것은 패배감을 느끼기 충분한 요인이라 생각한다. 창업자든 근로자

스물여덟, 사회생활 8년 만에 처음 겪는 일도 겪었다. 어쩌다

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활력이 넘치는 사회라고

야근할 업무량이 줄어들어 해가 떠있을 때 퇴근이라도 하는 날

생각한다. 사회의 활력은 신뢰의 회복에 기인한다. 구조의 정

이면 회사 대표는 나를 불러 지하 펍에서 맥주라도 한잔하자며

상화는 물론 도덕적 책임감까지, 더 이상 누구의 탓도 아닌 곳

밤 열두시까지 붙잡아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일이 세 번째 있

에서 불신으로 인해 그 누구도 패배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었던 날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정수리에 원형탈모와 왼쪽 얼굴에 신경마비까지 얻었고, 우울증을 얻게 되었다. 모든 게 싫어졌다. 나의 사회 행 - 32 -


고전읽기

『맹자』- 좋은 삶을 위한 좋은 정치

최병덕 연구공동체‘두루’bydchoi@gmail.com

2017년 3월 10일

에서 많은 우려와 염려도 있었다. 과연 국민의 요구가 실현될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여러 정치적 사건들처럼 변죽만 울리다

재판관 전원일치로“피

흐지부지 끝나는 것은 아닐까?“정의가 서지 않는 세상에서 누

청구인 대통령 박근혜

가 열심히 노력하겠는가.” 라며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이 우리

를 파면한다” 는 선고를

사회의 민주주의 실현과 정의 실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

내렸다. 한때 대통령이

다. 우려와 달리 당연한 결과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국정농단

었던 그는 더 이상 대

의 책임을 지고 구속되었다.

통령이 아니며 심지어 뇌물수수 등 국정농단

당시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던 국정‘농단’ 이라는 말은 사

을 이유로 구속된 범죄

실『맹자』 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농단(壟斷 혹은 ?斷)은 원래

인이 되었다. 작년 10

‘우뚝 솟은 높은 언덕’ 을 말하며, 동사로 전용되어‘시장의 이

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민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익을 긁어모은다.’ 는 뜻으로 사용된다.『맹자』 에는“옛날에 시장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평화로운 요구

에서 교역하는 자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자기에게 없

는 대통령의 탄핵으로 귀결되었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할

는 물건과 바꾸면 시장을 맡은 관리는 그것을 관리할 뿐이었다.

수 있는 장을 열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촛불혁명’ 이라 한

그런데 어떤 비열한 장사꾼이 있어 반드시 우뚝 솟은 높은 언

다. 그것이 시민의 요구를 전적으로 반영하는 실질적인 민주주

덕에 올라가 좌우를 둘러보면서 시장의 모든 이익을 혼자 챙기

의의 실현으로 귀결될지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문제 중 한두

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 장사꾼을 비열하다고 여

가지를 해결해 나가는 또 하나의 과정으로 귀결될지는 좀 더

겨, 이로서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였다. 상인들에게 세금을 징수

지켜볼 일이다.

한 것은 이 비열한 장사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는 내용이「공

맹자(BC 372년 추정~ BC 289추정)

손추장구하」 편에 나온다. 박근혜는 무능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위법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파면되었다. 그 시작이 어디서부턴지 특정하기 어렵지

또 파면된 박근혜를 어떻게 불러야할까? 연일 쏟아지는 언론

만, 지난 해 10월‘비선 실세’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대

매체의 뉴스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파

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국정을 농단했다

면되기 전에 대통령이었으니‘전 대통령’ 이라 부는 것이 당연

는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검찰의 수사와 특별검사의

해 보인다. 하지만『맹자』 에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양혜왕

수사, 그리고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거치면서 박근혜를

장구하」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선왕이“상나라 탕왕

비롯해 국정농단에 관여된 자들은 구속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

이 하나라 걸왕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정벌

- 33 -


하였다 하는데, 정말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라며 신하가 군

들 혹은 제자들 간에 서로 문답한 것이며,‘양혜왕(梁惠王)’ ,‘공

주를 시해해도 되는가라고 묻자, 맹자는 그러한 기록이 있긴 하

손추(公孫丑)’ ,‘등문공(?文公)’ ,‘이루(離婁)’ ,‘만장(萬章)’ ,‘고자

지만 이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며,“인

(告子)’ ,‘진심(盡心)’등 7편이 각각 상하로 나누어 총 14편으

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잔(殘)’ 이라

로 구성되어 있다.

하며, 이러한 잔적한 사람을‘일부(一夫)’ 라 합니다. 저는 주나 라 무왕이 일부인 주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가 자기 군

『맹자』 를 구성하는 각각의 편이나 각 편을 구성하는 각각의

주를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미

장들은 내용적 연관성이나 일관성을 가지지 않고 서로 독립되

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왕으로 볼 수

어 있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이 있다면 그것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천하의 모든 백성이 따르면 천자가 되고,

바로 인정(仁政), 즉 어진 정치의 구현이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천하 모든 백성이 떠나면 일부가 된다.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정치적 분열 상태를 극복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면 잘했든 못했든‘전 대통령’ 이라 불러야 할 것이지만, 범죄를

길이 인의(仁義)의 도덕에 바탕을 둔 어진 정치인 왕도정치를

저질러‘파면’ 을 당하였다면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이

실현하는 것이라 믿고, 양나라, 제나라, 위나라, 등나라 등의 제

제 그는 더 이상‘전 대통령’ 이 아니라 그냥 국정을 농단한‘한

후국을 다니며 각국의 군주들에게 그것을 역설하였다. 그래서 『맹자』 의 첫 내용은 맹자와 양나라 혜왕의 대화로 시작한다. 양

개인’ 일 뿐이다.

나라 혜왕이 나라의 이익에 대해 말하자 맹자는“왜 하필 이익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런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 맹자(孟子)는

을 말하십니까? 오직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의가 있을 뿐입니

어떤 사람이었을까? 맹자는 대략 기원전 372년에서 태어나 기

다.” 「양혜왕장구상」 ( )라고 대답한다. 이익 추구가 반드시 나쁜

원전 289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전국시대(戰國

것은 아니겠지만, 맹자에 의하면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익을 들

時代)로, 철기가 확산되면서 생산력이 급격히 발달하여 힘을 기

먹이면 그 아래 사람도 자연 이익을 들먹이게 되어 모두가 이

른 제후들이 치열한 영토 쟁탈전을 벌이던 전란의 시대였다.

익만 추구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오로지 이익만 다투는 비극

170여개에 달했던 제후국들이 동맹과 연맹의 결성, 외교적, 군

이 초래될 수 있으니 진정으로 추구할 것은 오직 인의도덕뿐이

사적 전쟁을 통해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한, 위, 조, 연,

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비극이 맹자의 말처럼 이익추구

제, 초, 진이라는 7개의 제후국으로 정리되었고, 이들은 서로 천

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

하를 제패한다는 한 가지 목표를 두고 약육강식의 전쟁을 전개

적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하였다. 동시에 이 시대는 중국사상사에서 가장 자유롭고 다채 로운 논쟁이 전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였다. 미증유의

인의(仁義)가 실현되는 도덕적 사회는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법가, 도가, 농가, 종횡가, 음양가, 잡가

도 실현될 수 있겠지만, 맹자는 그것을 정치의 몫으로 보았다.

등을 표방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나타나 왕성한 사상활동을 펼

그것이 바로 인정(仁政)을 베푸는 것이고,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치며 각기 다른 삶의 방법과 세상을 구제할 방법에 대한 다양

것이다. 맹자는 군주들에게 인의도덕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베풀

한 견해를 제시하며 논쟁하였다. 그래서 이 시대를‘백가쟁명’ ,

고 군주 자신의 이익을 넘어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백화제방’ 의 시대라고도 한다. 맹자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사람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치를 실천해야 진정한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진짜 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민동락의 정치는

이었다.

백성들이 자기 삶에 만족하고 즐거워하면 군주도 즐거운 정치 맹자의 사상은『맹자』 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알다시피『맹

이다. 바로 백성들에게 경제적 터전을 마련해 주고 인륜을 가르

자』 는 유교의 핵심 경전인 사서삼경의 한 권으로 널리 읽는 책

침으로써 백성들이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맹자의 언행과 맹자와 그 당시 사람

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정치가 달성해야 할 가장 기본

- 34 -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더라도 일정한 마음을 갖는 것은 오

적 과제이기도 하다.

직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의 경우 일정한 생활 근 오로지 부국강병만을 추구하는 전란의 시대에 맹자가 현실과

거가 없으면, 그로서 일정한 마음도 없어집니다. 진실로 일정한

는 다소 동떨어진 왕도정치니, 여민동락이니 하며 정치의 도덕

마음이 없어지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간사하고 사치하는 등 못

성을 앞세운 것은 왜 일까? 물론 그것이 세상의 안정을 가져오

하는 짓이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에 빠지게 된 연후에 쫓아가

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 처벌한다면, 이는 그물을 쳐놓고 백성들을 잡는 것입니다.

그 근저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

어떻게 어진 사람이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물을 쳐놓고 백

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보았다. 문제는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

성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양혜왕장구상」 ( ).

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역할은 그것이 잘 발현될 수 있 선비와 일반백성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외부적 조건과 상관없이 일정한 마음을 유지하지만, 어떤 사람 모든 인간에게는 남의 불행을 차마 그대로 넘기지 못하는 마

들은 일정한 일자리가 있어야 일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음인‘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이 있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을

맹자의 말은 모든 사람을 삶의 조건과 상관없이 일정한 마음에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맹자는 이러한 인간의 착한 본

따라 살아가는 선비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도 일정

성의 드러남인‘불인인지심’ 을 네 가지 다른 마음으로 구분하

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일정한 생활 근거를 보장해야 한다

였다. 그것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

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다. 맹자는 삶의 조건도

심,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

보장해 주지 않고 법과 질서만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그물질하

지심,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그리고 옳고

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도덕의 타락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그

그름을 알고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인 시비지심이다. 이 네 가지

러한 삶의 조건이 되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마음은 인간에게 착한 본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단서, 즉 사단(四端)이다. 이 사단을 잘 따라가면 그것을 드러나

지금은 무한경쟁의 시대이다. 개인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

게 한 인간이라면 마땅히 갖추고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는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면서 모든 것을 경쟁으로 인식하고 이

네 가지의 도덕적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관계로 판단하여 이익을 얻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만을 최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이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이 의의 단서

고의 가치로 삼는 듯하다. 그 속에서 삶의 물질적 측면은 점차

이고, 사양지심이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이 지의 단서이다. 맹

풍요로워졌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

자는 인간다움의 본질적 특성인 인의예지의 네 가지 도덕적 본

함이 있다. 물질적 풍요로움만 추구하다 인간다움을 잃어 버렸

성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이

것이 있다는 단서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현실에서

아니라 인간다움이다.『맹자』 는 좋은 세상은 이익의 추구가 아

사람들이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도덕

니라 도덕성을 추구할 때 실현될 수 있음과 그 책임이 정치에

적 본성을 완전히 실현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 시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우리

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본성을 각성하고 그것을 완전히

삶의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비록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이익을 향하여 치달리는

2,000여 년 전에 쓴 책이지만『맹자』 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도

마음을 거두어들이며, 호연지기를 길러가는 부단한 수양의 공부

있을 것이다.

를 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확충 시켜 나갈 수는 없다. 내면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은 외부적 조건이다. - 35 -


詩 읽는 저녁

선택

이수익

글. 권순진 계간‘시와시와’편집주간 act4ksj@daum.net

과녁을 향하여 정조준을 끝낸 화살을 띄운다 마지막- 이라는, 필생의 한 판 승부를 위하여 저 먼 하늘 끝으로 시위를 날린다 날아가는 일은 지금의 운명, 포기할 수 없는 힘에 갇힌 중력으로 한번 거칠게 부딪쳐 보자는 듯 더 높이 떠오르는 일의 불굴의 욕망만으로 그의 입은 가득해진다 마침내, 떨어져 내려야 할 충격적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면서 불의 주둥이에 갇힌 크나큰 고통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끌어당기는 하강의 속도로 파르르 떨리면서 한 순간에 힘을 쏟아야 할 시점에 이르러, 그것은 폭풍 같은 명중으로 가슴을 치면서 우뚝 서 있거나 또는 어처구니없이 텅 빈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의 그 중에서 하나가 될 것이므로 오, 마지막 선택은 시작된다 - 계간 『시와 세계』2010, 봄호

*모든 선택의 시간은 화살이 시위를 떠난 순간과도 같아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 오로지 운명처럼 화살이 날아가서 과녁을 명중시키거나 빗나가는 일만 남는다. 그것은‘폭풍 같은 명중으로 가슴을 치면서 우뚝 서 있거나 또는 어처구니없이 텅 빈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가운데 하나일 것이므로 언제나 선택은 우리를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삶에는 원치 않은 불가피한 선택의 시간도 있을 것이고, 그 선택이 결정적인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 든 어떤 과녁으로 향하든 그 결과는 미래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한 순간의 선택이 삶의 격을 높이기도 나락으로 떨어 뜨리기도 한다.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선택에 쏠린 무게는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기원전 중국의 철학서 <회남자>에도‘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은 마치 활 쏘는 사람과 같아, 그 손에서 털끝만큼만 빗나가도 결과에 가서는 몇 길이나 어긋나게 마련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과 화살이 당사자뿐 아니라 수 천 수백만의 삶에 차질을 빚게 하고 근심을 안기기도 한다. 그만큼 최적의 의사결정이란 어려운 것이다. 정치적 선택의 오류는 대체로‘불굴의 욕망’탓이다. 인간은 욕망으로 실존하고, 인생은 욕망의 연속이라지만 쩨쩨하고 사소한 개별적인 욕망보다 늘 공적 이익에 그 신념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체 높은 신분이 아닌 민초의 작은 선택 하나가 때 로는 통치자의 선택 못지않은 결정적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5년 전의 선택이 우리를 얼마나 옥죄고 비참하게 했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민의 선택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님 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럼에도 한 나라의 운명은 국민의 손을 통해 공정하고 성숙하게 결정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어처구니없이 텅 빈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 은 더 이상 없어야겠다. 지금 다시 그 선택의 순간이 왔다. 우리는 모두에게 정의롭고 이익이 될 수 있으며 역사 발전과 적폐청산, 개혁과 민생경제회복에 원동력이 될 선택의 기로 에 있다. 내 선택의 한 수가 수많은 사람의 삶에 벅찬 희망을 가져다 줄 수도 , 주름과 시름이 될 수도 있다. 환호의 마음으 로 가슴을 치느냐, 비통함으로 가슴을 쥐어뜯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오, 우리의‘마지막 선택’ 만이 남았다.

- 36 -


詩 읽는 저녁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B. 브레히트 詩 글. 권순진 계간‘시와시와’편집주간 act4ksj@daum.net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손수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그 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자신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 Chris Harman의 『민중의 세계사』 첫머리에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영웅주의 사관의 허구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1939년 작품이다. 황산의 길고 아슬아슬한 돌계단을 밟으며 다시 또 이 시가 생각났다. 그리고 잠시 외면한 대선정국을 떠올렸다. 인간은 두 가지 지위가 있다. 창조적인 소수 자와 그를 뒷받침하는 민중. 역사는 대체로 이들의 조화로써 만들어간다. 하지만 세계의 역사서는 왕과 귀족, 장군과 소수 엘리트 집단을 중심으로 서술된 성공적 위인전이거나 그 실패담의 통사일 따름이다. 때로는 조화가 아니라 빼도 박도 못하 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였다. 큰 욕망의 뿌리가 굵은 나무를 세울 동안 잔가지나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잎사귀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나무라 하지 않아도 좋단 말인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흑싸리 껍데기나 졸에 불과한 걸까. 그렇다고 역사는 본디 민중의 것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역사책의 부피를 고려한다면 그들을 일일이 불러내어 기록하는 건 패스해도 좋다. 하지만 개개인의 이름이 없다고 해서 민중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옳지 않다. 지배자들은‘민중’ 이나 ‘노동자’ 란 단어의 생성조차 막아왔고 금기시했다. 한때 그 언급만으로도‘평지풍파’ 를 일으키는‘불순세력’취급을 받았 다. 그런 가운데서도 역사는 노동자들이 일을 조금씩 적게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더 음식의 질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발전 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권력자나 사용자가 그저 손에 쥐어준 은전이 아니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곳곳의 민 중들이 일어나 맞서 싸워 쟁취한 성과였다. 그래서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해 가는 것을 우리는‘진보’ 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진보는 대체로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인간의 상식이 통하는, 민중을 깔보지 않는 권력이라면 싸움이 아닌 그들의 열린 감성과 이성에 기대어 세상이 좀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피 흘리지 않고도 나아지는 세상을 기대한다. 적어도‘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을 이해하고 공손 하게 답할 마음이 되어있는 권력이라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 앞으로도‘그 많은 사실들’ 과‘그 많은 의문들’ 이 보태어 지고 소문은 파다해지리라.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상력이며, 그 상상력 속의 권력자와 창조 적 소수자가 그때마다 조금 겸손해져서 잔가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다. 정권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국가와 국민은 영원하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을 떠받들기에 앞서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부를 원한다.‘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에 공손히 답할 줄 알고,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나라에서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호흡 하는 그런 대통령을 바란다. 정말 그것뿐이다. - 37 -


│Book & Cine│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창비출판사)』 술, 무엇을 위해 마시는가.

박현정 회원 jennyphj@hanmail.net

술을 마신다. 기분이 좋아진다.

서도 개그맨 뺨치는 넉살이 그 선배의 거부할 수 없는 치

기분이 좋다. 술을 마신다.

명적인 매력이다.

술을 마신다. 마음이 슬퍼진다. 지난해 말,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를 읽었

마음이 슬프다. 술을 마신다.

다. 온통 술꾼들이 버글버글한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소주 ‘내가 술을 원하는 때는 언제던가?’라는 조금은 엉뚱해

향기가 나서 곤란했다. 더 버거웠던 건, 술만 마시면 자주

보이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그 술의 종목은 언제나

보이는 그 선배의 습관적인 눈 부라림이 책을 읽는 내내 계

소주였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 건 우연한 계기였다.

속 떠올랐다. 그의 부담스러운 그 행위가 자꾸 생각나서 몰

이런 이유로 술을 마시고, 저런 이유로 술을 마셔야 하며,

입이 되지 않아 얼마나 곤란했는지 모른다.

오늘은 그러한 이유로 술을 마셨던 오랜 인연의 한 선배가 있다. 그의 이유는 언제나 합당했다. 왜냐면 합당하게 말을

이 책에는 일곱 명의 굵직한 술꾼들이 등장한다. 다들 각

했으니까. 이유를 들어보면‘마시지 않을 수 없네.’싶은 고

양각색의 모습으로 합당한 이유를 대며 술을 마구 마셔댄

개 끄덕임을 넘어, 당장 달려가 술을 대령해야 할 것 같은

다. 마치 무지개 색을 하나씩 뽑아드는 뽑기 하는 아이들과

기분이 든다.

같다. 순진하다면 순진할 만큼의 이유로 술을 마신다. 그렇 지만 결국은 무지개 색을 섞어버리면 온통 검정색이 되듯

어느 날 오후, 오랜만에 그‘술사랑’선배와 전화통화를 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초과해, 스스로가 봐도 눈

그렇게 눈앞이 깜깜해진다. 앞날 역시 거무죽죽해 보인다. 답답할 노릇이다.

에 띄게 나빠졌단다. 가급적 적당하게 마신다는 말은 최근 에 들은 소식 중 최고로 반가운 말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훈아, 훈아! 규가 외쳤다. 주란하고 얘기할 필요

말이 이제는 작정하고 일주일에 3번으로 횟수를 줄였단다.

없어. 난 말해. 너의 이런 씨발, 같이 술 먹다가 훌

‘그게 적게 마시는 거냐?’콧방귀가 나왔다. 여전히 영웅

쩍, 이런 너의 무신경이, 너무너무 싫다고. 싫어 죽

담으로 되뇌는 알코올 중독 치료센터의 문을 깨부수며 박

겠다고. 알지, 이거 취한 거. 주란이 말했다. 훈은

차고 나왔던 몇 년 전의 이야기를 또 다시 들어야했다. 참

스트레이트로 양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아는데 이

으로 여러 번 들은 이야기인데, 어쩜 그리도 감칠맛 나게

녀석이 아까부터 자꾸 나 힘들게 하네. 훈이 너 이

이야기를 하는지.‘아, 듣고 또 들어도 웃겨’힘겨움 속에

새끼, 같이 술 처먹다가 씨발, 그게 뭐하는 짓이냐

- 38 -


고? 그러면 같이 술 처먹던 난 뭐가 되냐고?

는 사실만이 남았다, 널브러진 술병들과 함께.

「삼인행」 ( 중에서) 옳지 못한 건강과 장시간 능력 부재 때문에 친자포기각 시시콜콜한 관계에서 여행을 떠한 세 명의 남녀가 말

서를 쓰게 되었다는 선배의 최근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진

그대로 시시콜콜한 이유들로 신경전을 벌인다. 어디서부

심으로 큰 박수를 쳐 주었다. 당연히 그의 무절제와 무능

터인지도 모를 어긋난 문제들이 가득하다. 답답한 인생을

력에는 한숨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술이 아니면 당신의

사는 게 뻔히 보여 적나라할 정도다. 진실을 외면하려는

인생은 누가 위로해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을 잊

그들은 술을 찾게 되고, 술을 매개로 필사적으로 자기방어

기 위해 술을 마시며 아슬아슬한 하루를 보낸다. 취하면

를 한다. 산다는 게 참 먹먹하고 또 갑갑하다. 단순한 술

취할수록 선명해지는 기억과 함께 또 그것들은 제멋대로

주정이 아니다. 갑갑한 현실과는 반대로 그들의 진심이 선

의 모양으로 일그러진다.

명하게 보이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웃한 아파트에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주머니가 한

“참 장한 커플이다, 우리.” “맞아, 당신 참 장해.

분 계신다. 걷기 싫다는 개 두 마리를 멍한 눈으로 마구

오래 버텼어. 다녀와라.”영경의 젖은 눈에 퍼뜩

끌고 다니는데, 개들 역시 술 취한 듯 비틀거린다. 취한

생기가 돌았다.“정말 괜찮겠어?” “난 괜찮아.”영

모습의 아주머니가 공원 벤치에 쓰러져 있던 작년 어느

경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나 정말 안 나가겠다는

날, 그녀를 흔들어 깨우고 부축했다. 술이 좋다고, 술 아니

말은 못하겠어, 환아.”“그래, 다녀오라니까. 너무

면 누가 내 곁에 있어 줄 거냐고 외쳐댔다. 그 말이 아직

오래 있지만 말고.” “오래 안 있어. 사흘, 아니 이

도 귓가에 생생하다. 선배도 그랬고, 아주머니도 그랬다.

틀. 환아, 그 정도면 충분해. 이틀만 있다 들어올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술이 유일한 친구였던 것이다.

게. 딱 두 밤 자고 들어올게, 환아.” 「봄밤」 ( 중에서) 우리는 술을 마신다. 이런 이유로 마시고, 저런 이유로 이 이야기는 또 어떤가.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만나 서

마시며, 그런 이유를 찾아 열심히 마신다. 오늘도 술을 마

로 아껴준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마저 무너

시고, 어제도 마셨고, 이변이 없는 한 내일도 마실 것이다.

지는 아픈 인생이다. 알코올성 치매인 영경이 아픈 수환을

그렇게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산다. 멀쩡한 삶을 살면서

두고 술을 마시러 간다. 술을 마시는 외출은 이번이 정말

휘청대고, 휘청거리면서 또 균형을 잡으며 산다. 텔레비전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하며 병원을 나선다. 그것이 끝, 영

속 엉망진창 현실을 바라보며, 성주를 바라보며, 방송국의

경은 자기가 취한건지, 세상이 취한건지 구분을 할 수가

대선토론회를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인다. 웃기는 세상 속

없다. 다만 곁에는 이제 더 이상 익숙했던 한 남자가 없다

에서 술을 마신다. 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 39 -


│방방곳곳│

방방! 정용태 편집위원 joydrive@daum.net

감은사지와 함께 감포 앞 바다는 93년 유홍준의'나의문화답사기' 이후 최고 관광지였을 테다. 감은사지를 지나 동쪽으로 난 샛길로 직 진하여 닿는 바다, '신라 동해구'다. 샛길에는 7기 비석이 서있다. 입 구에 있는 '신라 동해구'부터 내리막 오른편 우현 고유섭 선생의 '대왕 암'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와 '문무대왕 유언' 비석까지. 바다 남쪽 바위섬은 문무왕의 대왕암이니 이곳은 문무왕의 바다고 신라의 바다 다. 문무대왕(제30대 왕, 재위 661년 음력 6월~681년 음력 7월 1 일)은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나를 놀라게 하고, 그 시대를 다시 보게 만든 유언을 남기셨다. 비석에 새긴 왕의 유언 가운데 일부를 전한다. 초등생들과 답사를 가면 꼭 같이 읽는데,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왕의 유언을 모든 이들과 같이 읽고 싶다. "…병기를 녹여 농구를 만들어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누리게 하였다. 또 조세를 가볍게 하고 부역을 덜어주니 집집이 넉넉해지고 사람마다 풍족해져서 백성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어졌으며, 창고에는 곡식이 산처럼 쌓이고 감옥은 텅 비어 풀이 무성해졌으니, 남이 보지 않는데서나 보는데서나 부끄러움이 없었 으며…"

곳곳! 이정연(대구참여연대 회원)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막걸리집 이야기를 읽 자니 아름다운 금호강 사진이 보였다. 마침 현수막에 적힌 전화번호 로 위치를 알고, 햇빛 좋은날 대구 동구 금강로235로 찾아갔다. 금강 경로당과 같은 건물, 협동조합 '금강동행복마을카페'다. 각산역에서 618번 또는 849번 버스를 타면 금강동까지 들어가고 금강동 정류장 에서 카페까지 300미터 조금 더 된다. 이 카페에서 특별한 것은 아름다운 금호강이다. 술과 음식으로는 연근막걸리와 연근빈대떡이 제일일 게고, 불로막걸리, 캔맥주, 소주와 몇 가지 안주들이 있다. 주말에는 색소폰 연주도 하는 모양이다. 바람 이 적당하면 가게 안보다 지붕만 덮은 바깥 탁자가 좋다. 강변에는 유채꽃 폈고, 초록의 나무들이 즐비하다. 작년 9월께 꾸민 '금호강 동 행길'과 금강역을 보고 카페를 연 것 같다. 바람 맞으며 금호강을 보 자니 동무들과 멱을 감고 놀던 한 40년 전 추억이 떠올랐다. - 40 -


│문화 톡톡│

<골목화담> 2017 마당극이어달리기 <괜찬타! 정숙아> 2017 북성로

[2017 북성로 골목화담]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북성로 골목에서 이야기꽃이 핍니다!

골목의 봄 골목대장이 들려주는 골목이야기 & 통기타 공연 5월 30일 | 오픈하우스 | 차정보 작가

오피스 아키텍톤 집 고친 이야기 & 현장견학 6월 27일 | 오픈하우스 | 오피스 아키텍톤 최영준 소장

264 작은 문학관 오픈하우스 & 시낭송회 7월 25일 | 오픈하우스 | 264 작은 문학관 박현수 관장

2017 마당극이어달리기 <괜찬타! 정숙아> 일시 : 2017년 5월 17일(수) ~ 6월 3일(토) 시간 : 매주 수요일 ~ 토요일, 평일 오후 7시30분 /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 대구시 남구 명덕로 98-2 1층 소극장 '함세상' 출연 : 강현경, 박연희, 박희진, 손병숙, 안문규 연출 : 김창우 작 : 공동창작 공연시간 : 80분

- 41 -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3·4월 주요활동 시·의정 감시활동 땅투기로 발생한 보궐선거, 자유한국당의 공천 중단 요구 성명 발표 (3.6) 징역 2년 구형! 차순자 즉각 사퇴 및 엄벌 촉구 성명 발표 (3.9) 대구시의 희망원 감사는 부실감사, 제식구 감싸기 징계! 성명 발표 (3.13) 경대병원의 보광직물 구매내역 비공개 규탄 성명 발표 (3.15)

차순자 지방자치법 위반 고발 및 땅투기 구속 촉구 기자회견

도시철도공사의 교통카드 충전선수금 30억 사회 환원 촉구 성명 발표 (3.21) 땅투기, 지방자치법 위반 논란 차순자 의원 즉각 구속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 (3.28) 교통카드 충전선수금 사회환원에 대한 대구은행 입장 질의(4.12) 차순자 구속 촉구 캠페인 (4.13)

대선정국 시국활동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에 대한 논평 발표 (3.10) 졸속, 정략적 개헌논의 중단 및 개혁 촉구 성명 발표 (3.15) 시국기획시리즈 4. 녹색당 초청강연회 (3.17) 시국기획시리즈 5. 대선정국 정치토크 (4.10) 홍준표 후보 도지사 사직 촉구 공동성명 발표 (4.7) 가짜뉴스 고발전화 개설 등 깨끗한 선거 대구시민행동

대선 후보 선거캠프 초청 정책토론회

보도자료 (4.13) 조원진 후보 가짜뉴스 유포 관련 성명 발표 (4.18) 대구적폐/정치부패 관련 성명 발표 (4.18) 대선 후보 선거캠프 초청 정책토론회 개최 (4.20)

회원사업 신입회원 한마당 (3.22) 19주년 창립기념일 홈커밍데이 (4.11) 2017 대구참여연대 민주시민학교 오픈특강 <미래시민의 조건> (4.13) 2017 대구참여연대 민주시민학교(4.27~ / 매주 목요일 저녁7시/ 7강) 6월항쟁 30주년‘6월의 함성’책자 발간 작업 중 5.18 광주순례 (5.13) 준비 - 42 -

민주시민학교 오픈 특강 중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연대사업 롯데 이사회의 사드 부지제공 결정 규탄 긴급 기자회견 (3.3) 대구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사태에 해결의지 없는 대구시 규탄 기자회견 (3.3) 선거법개혁 공동기자회견, 대통령 탄핵 후 정치개혁 과제는 선거법 개혁! (3.22) 팔공산 구름다리 계획 철회 촉구 공동 기자회견 (3.23) 희망원 대책위 1박 2일 집중집회, 기자회견, 대표자회의 참가 (3.29)

사드가 들어갈 길목을 확보하기 위해 소성리 마을회관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

2017대선 주권자대구행동 출범 기자회견 (4.12) 2017대선 주권자대구행동 캠페인 (4.15) 세월호 참사 3주기 대구시민대회 참가 (4.15) 사드장비 강제진입 규탄 집회, 기자회견(4.26)

대구참여연대 새 둥지 서성로 14길 59를 소개합니다!! 대구참여연대가 새로 입주한 사무실은 49인혁재단에서 구입한 지하1층 지상 3층의 건물입니다. 1층은 49인혁재단과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평화와 통일을 만드 는 사람들(대구경북 평통사) 이 사용하고 2층은 대구참여연대가 3층은 대 구참여연대의 일촌단체인 청소년 교육문화공동체‘반딧불이’ 가 자리 잡 았습니다. 지하공간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입니 사무실 전경

다. 북성로 수제화 골목으로도 알려진 사무실 인근은 대구근대역사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희움’ , 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 녹향 음악감상실, 264 작 은문학관 등이 있습니다. 대구 근현대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자, 기억의

희움

공간들입니다. 개성이 강한 카페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상감영공원이 가까이 있어 요즘 같은 봄날에는 만개 한 꽃들과 푸르른 나무들을 보는 여유와 즐거움이 큰 몫을 더합니다. 항상 그래왔듯이 새 둥지 또한 회원의 힘과 손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목수회원이 책상을 만들고 전기기술자 회원은 조명을 달고 소파를, 컴퓨

근대역사관

- 43 -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터를 의자를 그림을 책을 기증하고 직접 청소를 하며 함께 만든 공간입 니다. 그러하기에 무엇보다 마음을 담아‘담소방’ 을 마련했습니다. 청소

언제든 방문하여 책도 읽고, 업무도 볼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수 있는 ‘담소방’ 에 회원님들의 발걸음이 가득하길 바래봅니다.

# 회원의 힘으로. 2007년 봄 문화동 개소식 노보텔 뒤편 동성로 사무실로 이사를 간 것이 2007년 3월이었지요. 그로부터 꼭 10년의 시간이 지난 2017년 2월. 대구참여연대의 새로운 둥지인 서성로 사무실로 이사하였습니다. 담소방

10년 전에도 그랬듯이 새 둥지 또한 회원님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모이 고 쌓여 만들어 졌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돌을 뚫는다. 2016. 11월 후원주점.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촛불이 전국을 뜨겁게

밝히던 2016.11. 25. 사무실 이전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이 열렸습 니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의 문구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회원님들의 마음이 모여 사무실 이전의 재정은 마련되었고 시민들의 촛 불이 모여 대통령은 탄핵되었습니다.

#4 이제. 다시 시작이다. 2017. 3월 개소식 10년의 세월만큼 쌓인 묵은 짐들을 정리하는 시간은 그리운 것들을 그 리워하고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떠나보내는 경계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활동의 자료들과 사물들에는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이, 목소리가, 땀과 열정의 기억이 베여 있었지요. 얼마나 그리운 세월들입니까? 후원주점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지치고 낡아지고 생기를 잃은 매너리즘 에 빠진 우리의 모습도 함께 묻어 있었습니다. 떠나보내야 할 모습들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새로운 현판을 달면서‘언제나 다시 시작’ 하는 일신우일신 의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개소식 때 최봉태 대표님의‘이 건물은 49인혁열사들의 목숨의 대가이 다. 열사들이 지켜보고 계신다. 똑바로 일해라!!’던 준엄한 말씀이 오랫

개소식

동안 가슴에 머뭅니다.

- 44 -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반갑습니다! 청년인턴활동가 조수빈입니다!

조수빈 청년인턴활동가 whdkfk5929@hanmail.net

3월 2일부터 대구참여연대 청년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조수빈입니다. 뉴스레터와 신입회원한마당, 홈커밍데이를 통해 회 원님들에게 인사를 드렸지만, 아직 뵙지 못한 많은 회원님들에게 소식지를 통해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인사 를 드립니다. 글솜씨는 없지만 마음을 다해 인사드립니다. 제가 대구참여연대 활동가 지원을 결정하고,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잊을 수 없는 한 문 구가 있기 때문인데요.‘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라는 헌법34조의 조항입니다. 처음 활동가로 지 원하기 전, 대구참여연대의 일들이 저에게는 너무 거시적이어서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예산에 대해서도, 의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에 예산감시, 정부권력감시라는 일을 한다는 것이 충분히 매력적임에도,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 나 제가 바라본 참여연대의 모습, 대구 시민에게 힘을 돌려주고 그들의 권리를 함께 주장하는 그 모습이‘모든 사람이 인 간다운 생활을 하게 하겠다!’ 라는 제 목표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 신념의 바탕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대구참여연대 인턴활 동가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차순자 시의원 재판 방청도 해보았고, 시국대회와 소 성리 평화발자국 등 많은 집회에 참여하며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이 변화되고 있지만, 저는‘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하겠다’ 라는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대구참여연대의 젊은 세대로서 최선을 다 해 열심 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상근활동가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은‘대단하다’였습니다. 선배님들은, 지금 당장 법이 바 뀌어 대한민국이 변하지는 않아도, 작은 날개짓이 큰 변화를 일으켜 가듯 작은 것 하나부터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 시고 기자회견 한 번, 시국강연 한 번에 가장 좋은 것들을 시민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쏟아 항상 최선을 다하셨 습니다. 그런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며‘아 지금까지도 이렇게 오랜 시간 노력해온 분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우리나라가 여 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 열정과 노력에 감탄하는 순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선배님들의 모습 에 겨우 한 달 전 신입의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자는, 나로 인해 세상이 변화될 것이라는 어리고, 패기가 가득했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지금은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배우며, 시민들이 살기 좋은 대구가 되기를 바 라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잘 알지 못하고 부족한 것들 은 공부해 메우고 있습니다. 회원님들께서도 언제나 제가 잘 하고 있는지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저는 활동 홍보물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 람들이 제가 만든 웹포스터와 카드뉴스에 짧지만 눈길 한 번 더 머물고, 한 사람 더 자리에 함께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강 연에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으면 시무룩해지기도 하고‘이렇게 좋은 강연이 있는데, 다음 홍보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회 원님들! 시국강연과 시민학교 강연, 집회에 관심도 가져주시고, 오셔서 좋은 강사 님들의 강연도 들으시고, 인턴활동가인 저도 보러 꼭 참석해주세요~ 대구참여연 대 파이팅 입니다!

- 45 -


│풀뿌리 주민자치 소식│구미참여연대

구미참여연대는 지난 3월 1일 2017년 상반기 회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도영주 회원이 주관한 이번 여행은 대구근대사기행 2탄 <순종 어가길 투어>로 구미참여연대 (회원 24명과 비회원 3명)이 참여 하였습니다. 가까운 동네 대구의 아픈 역사의 현장 과 비운의 황제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 어가 길을 걸으며 힘없는 나라의 마지막 황 김병철 구미참여연대 사무국장 pmo515@hanmail.net

제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고 그 황제를 위해 암흑의 시대에 그를 위해 희생한 많 은 사람들을 되새기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청라언덕 주변의 많은 역사자료를 답사하 고 2017년 새롭게 시작하는 구미참여연대가 되자고 함께 다짐하며 회원 여행을 마 무리 했습니다.

구미참여연대 4월은 구미시 3대 적폐청산 사업을 시작합니다. 1. 박정희 기념사업 중지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하여 2017년에도 계속적 으로 중단 촉구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새마을과’폐지·예산축소 전국 어느 지방자치단체에도 없는 새마을과에 대한 폐지를 요구할 계획입니다. 대구근대사기행 <순종어가길 투어> 단체사진

3. 한국노총 보조금 특혜중단 2016년 한국노총 특혜 건에 대한 감사원 감사청구가 받아들여져 시 감사를 착수 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이에 구미참여연대는 객관적인 감사가 진행되는 지를 감시할 계획입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추가조치가 있기를 구미시에 요구할 것 입니다.

가슴 아픈 4월 세월호 추모행사를 지역 시민단채들과 함께 시민들과 함께 추모주관을 운영 하였습 니다. 4월 13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김선애 님을 모시고 강연 간담회를, 4월14일 추모영화상영‘망각과 기억’2, 4월15일 구미역 광장에서 추모촛불 문화제 및 추모 행사를 가졌습니다. 구미참여연대는 세월호 종이배 함께 만들기 부스를 운영하여 학 생 및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 속에 추모행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17년 구미참여연대는 구미시 시정에 대한 감시자로서 그 역할 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 46 -


│풀뿌리 주민자치 소식│동구주민회

2017년 4월 8일(토) 반계공원에서 세월호 장바구니 만들기 및 나눔 부스 운영과 사진 알림전, 공원나무에 노란개인현수막 붙이기 등 세월호 3주기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장날이라서 아이들 손잡고 놀러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고, 가족 단위로 많이 참여해 주셨 습니다. 어떤 분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는 얼굴이거나 낯선 이름이거나 후 원하고, 참여하고, 도와주시고…. 궂은일, 힘든 일 부스에서 뿐 아니라 현수막게시, 천막설 치, 뒷정리까지 알아서 다 맡아주셨습니다. 반야월의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은 마을 분들의 말보다 실천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세 월호 행사는 주민들의 자부심이고 자존심입니다.‘세월호 지킴이’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2017년 4월 16일(일) 세월호 3주기 당일, 버스를 대절하여 목포항을 방문했습니다. 생 각보다 많이 참가자가 많아서(총 48명) 버스 좌석이 모자랐고, 어쩔 수 없이 참가자 중 5분 은 대구 민예총 지역예술인 분들의 차로 동행했습니다. 반야월을 떠날 땐 동네 소풍가는 것처럼 간식도 받고, 휴게소마다 들려 커피도 마시고, 도란도란 웃기도 했는데 어느새 세월호가 보였습니다. 그 순간 버스 안에 있는 모두가 배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목포항을 벗어나더라도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보고만 있었던 그 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 세월호에는 우리 마음도 폐허가 되어 버려져 있습니다.

마을 행사 안내 1. 제15회 동구 어린이날 큰 잔치 일

시 : 5월 5일, 오후 3시

소 : 안심근린공원

2. 2017 강동 마을 어린이 큰 잔치 일

시 : 5월 5일, 오전 11시 30분 ~ 오후 4시 30분

소 : 금호강 둔치 (금호강 구름다리 북쪽)

프로그램 : 페이스페인팅, 기타공연, 텃발교실, 인형탈, 경주형 오토바이 전시 등

- 47 -

양희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운영위원장 outside63@hanmail.net


│재정보고│

※ 본자료는 회계감사의 감사를 받기 전 자료로서 회계감사후 일부 계정 및 계수의 조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48 -


│회비납부명단│

납부하신 회비는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강경수 강경애 강금수 강동인 강동철|신동주 강상채 강선구 강선구 강옥련|박창호 강재기 강준구 강진호 강혁진 강현구 고동우 고미숙 고봉수|임선정 고춘자 공미정 곽기순 곽이화 곽현수 구수용 구인호 권경자 권구형 권근환 권덕기 권도준 권명오 권미숙| 박재범 권상대 권석우 권수용 권수임 권순진 권영규 권영래 권영태 권영해 권오성 권오혁 권오현 권옥자 권재영 권재화 권중일 권추경 권택흥 권혁장|추정화 권현준 권 홍 금송민 금창수 김 찬 김갑진 김강택 김건예 김건우 김건훈|김향미 김경근 김경숙 김경환 김광석|이혜영 김광희 김교정 김규엽 김규종 김남수 김남희 김다희 김동익 김동현 김량현 김명호 김명환 김미경 김미수 김미정 김민수 김민재 김민지 김배 김병철 김병호 김보임 김봉심 김삼/한효정 김상수 김상숙 김상순 김상호 김석동 김석수 김석원 김선영 김선우 김선희 김선희 김성수 김성수 김성택 김성현 김소언 김수동 김수성 김수옥 김수일 김수정 김순옥 김승주 김승현 김신애 김신일 김애리 김애화 김억남 김언호 김연희 김영도 김영록 김영문 김영미 김영일 김영진 김영철 김용원 김원현 김유진 김윤상 김윤정 김은영 김은정 김응호 김인하 김인하 김인호 김일수 김일영 김임곤 김입분 김재권 김재승 김재우 김재우 김재호 김재훈 김정미 김정애 김정화 김정희 김종권 김종록 김종봉 김종태 김종필 김종협 김주영 김주욱 김주태 김주혁 김주희 김지연 김지일|박선영 김진석 김진숙 김진환 김천중 김철원 김철현 김태균 김태성 김태숙 김태영 김태일 김학준 김항서 김해원 김해환|곽이화 김혁 김현근 김형기 김형석 김형섭 김형우 김형준 김형진 김형태 김혜수 김혜정 김효경 김효정 김휘수 김희진|변정호 나경희 나대활 나문석 나순단 남권희 남상권 남성욱 남영주 남호진 노경미 노규철 노대형 노미경 노승석 노연수 노인만 노태맹 노형석 도국배|김순섭 도영주 도윤백 류대하 류덕제 류보경 류시걸 류영준|이영주 류영철 류은경 류태하 류행민 류후기 마동철 문경자 문영곤 민정식 민천식 박건상 박건욱 박경로 박경순 박경욱 박경찬 박근식|강문희 박근영 박노진 박덕수 박명리 박명섭 박명호 박명환 박병득 박병철 박상민 박석분 박선우 박성미 박성찬 박수열 박순일|이미숙 박순태 박순화 박신호 박양주 박여경 박영백 박옥순 박원형 박은영 박은정 박은주 박인규 박인수 박인철 박재범|권미숙 박재일 박정민 박정호 박종률 박지연 박지윤 박찬문 박찬용 박찬웅 박창호 박현정 박현탁 박현호 박호석 박희진 배갑기 배대환 배병철 배상우 배윤선 배은경 배재국 배재수 배주영 백경록 백권기 백미숙 백부현 백승대 백진숙 백진욱|이선희 변창우 변화진 서덕교 서두진 서보경 서보성 서상득 서상민 서상철 서인찬 서정욱 서준하 서준호 서진숙 서창환 석민철 석성진 설동진 성상희 성언제 성재환 소영진 손관영 손광락 손대락 손상호 손석철 손선희 손순옥 손영호 손재봉 손정숙 송명수 송보경 송상욱 송용자 송윤식 송진환 송해익 시정기 신기복 신기완 신기욱 신동민 신동민 신동연 신동완|정희선 신동주 신동찬 신동화 신득렬 신명희 신미정 신병호 신상길 신상봉 신수정 신숙경 신영배 신영숙 신윤정 신정석 신중석 신호식 신효철 심병철 심윤철 심주석 안기홍 안상진 안영미 안영배 안정임 안종권 안헌수 안현재 안현효 안형진 양만재 양상한 양선진|임호성 양수길 양영일 양유선 양진모 양희 엄시근 엄창옥 여검옥 염상현 오명준 오문섭 오신택 오용태 오철희 오태동 오현주 우기원 우성문 우재동 원준호 유경진 유병록|윤명화 유영직 유해록 육심원 윤 영 윤규성 윤명화 윤문주 윤병대 윤병철 윤보욱 윤상호 윤성아 윤영식 윤영욱 윤용희 윤재석 윤종화 윤태자 윤형철 윤호석 은영지 이가영 이경미 이경상 이경선 이경호 이계성 이광현 이교희 이권주 이균호 이근덕 이근수 이기락 이기수 이남수 이남훈 이동기 이동석 이동선 이동인 이동진 이두병 이만호 이명분 이명원 이명자 이미경 이미영 이미지 이범주 이병동 이병목 이봉도 이상구 이상돈 이상목 이상미 이상민 이상복 이상술 이상용 이상원 이상훈 이석주 이선영 이선영 이성우 이성해 이성희 이성희 이세은 이소령 이수정 이순재 이승수 이승연 이승용 이승익 이승호 이승후 이연주 이영구 이영도 이영우 이영욱 이영윤 이옥례 이용기 이윤희 이윤희 이은정 이은정 이의호 이재남 이재문 이재성 이재욱 이재호 이재희 이정동 이정선 이정수 이정연 이정영 이정원 이정혁 이정화 이정화 이종길 이종득|김민지 이종우 이종춘 이종필 이종한 이준혁 이준홍 이지이 이진희 이창수 이창순 이창윤 이창화 이창환 이창환 이철환 이춘곤 이충기 이태영 이해선 이현미 이현숙 이현옥 이형규 이형석 이화선|정호태 이화정|최훈태 임성무 임순광 임전수 임지현 임현수 임현태 장기태 장밝은 장성수 장영훈 장준민 장준현 장태철 장혜숙 장화환 전대환 전승훈 전영주 전은희 전주태 전창훈 전현배 전형권 전홍철 정갑환 정강미 정경식 정경열 정경하 정계순 정금숙 정기백 정기숙 정기철 정도욱|신윤정 정도해 정범철 정보름 정선기 정승필 정우근 정우달 정우선 정우영 정웅권 정원숙 정윤수 정은주 정이성 정인숙 정일선 정재봉 정재형 정종배 정준호 정지욱 정탁현 정하진 정해숙 정혜숙 정호원 정화주 정희정 조광진 조병집 조상우 조영미 조용국 조용래 조용식 조윤기 조윤식 조윤정 조일선 조재민 조정화 조준한 조판제 조혜연 조혜진 조희재 주보돈 지은혜 진성섭 진수미 진용인 차우미 채영희 채장수 채장식 채형복 채휘균 천기철|고춘자 천덕우 천용길 최개천 최경호 최기현 최명규 최문석 최병덕 최병우 최병학 최병해 최봉태 최상돈 최선애 최수영 최신일 최엄윤 최연석 최원준 최유리 최일배 최정민 최종현 최진욱 최진혁 최창훈 최해천 최현겸 최현일 최현진 최혜진 최희철 추원일 추호식 태찬인 하경호 하성협 하유신 한경이 한광훈 한대환 한상구 한상렬 한상훈|최경화 한승균 한은영 한정화 함종호 허 종 허경주 허광희 허노목 허미경|최근성 허 소 허주녕 현명호 현호성 홍남표 홍상익 홍 숙 홍순표 홍영표 홍운기 홍원대 홍일표 홍종범 홍창영 황대철 황선명 황성연 황순오 황양운 황인수 황장원 황중진 황진섭 평생회원 권흥락, 김 미, 김성희, 김은주, 김응곤, 김영화, 성상희|이선례, 신숙경, 이경옥, 이정환, 이종만, 진미화, 윤지현

*위 명단은 2017년 1월부터 2017년 4월 동안 회비가 인출된 명단입니다. 이름이 없는 등 기타 오류가 있을 시, 사무처로 연락 바랍니다. ☎ 053) 427-9780 담당 : 김채원

- 49 -


■ 풀뿌리주민자치 - 구미참여연대 대표 : 김찬, 이봉도, 전대환 운영위원장 : 우기원 사무국장 : 김병철 Tel. 054-716-0023 Add. 경상북도 구미시 신시로 14길 58 3층 E-mail : gumipspd@hanmail.net

격월간 제111호

2017

Cafe : http://cafe.daum.net/chamyeogm 등록번호 대구라01132 등록일 2000년 8월 4일 제호 함께꾸는꿈 간별 격월간 디자인 참디자인 발행일 2017년 4월 29일, 통권 111호

- 동구주민회 공동대표 : 박호석 운영위원장 : 양희 Add. 대구시 동구 입석로 96, 연우빌 2층 Cafe : http://cafe.daum.net/dongjumin

발행인 ‖ 원유술, 오규섭, 최봉태

■ 회원자치모임

발행처 ‖ 대구시 중구 서성로 14길 59, 2층

- 밴드‘미칠레’대표 : 최명구 010-9352-2001

전화 : 053) 427-9780~1

- 독서모임‘오, 지락’ 대표 : 권영태 010-6826-8809

상담 : 053) 427-9788

Cafe : http://cafe.daum.net/people-and-book

팩스 : 053) 427-9723

- 정치철학강독모임 좌장 : 노태맹 010-5634-7194

홈페이지 : http://www.civilpower.org 전자우편 : dgpeople@gmail.com 후원계좌 : 대구은행 036-04-000437-9 (대구참여연대)

■ 함께 꾸는 꿈 편집위원회

공 동 대 표 ‖ 원유술, 오규섭, 최봉태

편집위원장 류영준. 부편집위원장 김수상,

운 영 위 원 장 ‖ 오규섭

편집위원

집 행 위 원 장 ‖ 박근식

김건예, 김병호, 이영욱, 정용태

편집담당 활동가 민경환

사 무 처 장 ‖ 강금수 상 근 활 동 가 ‖ 김채원, 장지혁, 민경환, 최나래 청년인턴활동가 ‖ 조수빈


대표변호사 | 구인호 변 호 사 | 박경로 박진수 박준혁 이승익 손충환 김도현 서부지원 분사무소 변호사 | 박경찬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348-17 우정법원빌딩 1층 전화 : (053) 756-2600 팩스 : (053) 756-2607 홈페이지 : www.chamgillaw.com 서부지원 분사무소 대구 달서구 장산남로 21 법조빌딩 805호 전화 : (053) 743-0034 팩스 : (053) 743-2034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