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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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6 Summer 2012
On the Road Again
장기하 - 그가 꿈꾼 길은 결국 모두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The Great Expectations: 네 가지 길, 네 가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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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션 월드와이드와 모모트, 종이로 通하다 OPEN YOUR EYES by RAY + H&M
03
Contemporary Art‒Street Art Utopia 너의 마음을 그려봐
Cover Image 일러스트레이터 김진영이 ‘길’을 모티프로 작업한 라인 드로잉. 우리가 매일 접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길의 다양한 모습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우 리 는 낯 선
길 에 서 세 상 과
사 랑 을 한
만 나 고
마 주 치 고
품 고
시 절 ,
성 장 했 습 니 다 .
그 리 고 ,
지 금
길
서
위 에
사 람 을
두 근 거 림 을
다 시
새 롭 게
있 습 니 다 . 안 고 .
난
CONTENTS LIFE IS ORANGE 2012 SUMMER ISSUE
CREATOR'S NOTE
No.06
LETTER
04 INTERVIEW I’m Lucky to be a Musician 장기하 인터뷰 그가 꿈꾼 길은 결국 모두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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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REPORT Reborn, Repositioned, Revived Roads 홍대 앞과 서촌길, 길의 미시사회학
Loving Small Shops, Living the City Life 작은 가게와의 달콤한 연애
Marketing for Walking for Fun 어떻게 걸을 것인가를 제안하는 마케팅
Every Village Has a Story 동네 잡지의 사명, 동네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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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CASE The Great Expectations: 2 Essays and 4 Road Cre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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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길, 네 가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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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BORATION INNOCEAN, MOMOT and Paper Toy 손맛 좀 아는 세 남자, 종이로 통(通)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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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IMELIGHT OPEN YOUR EYES RAY와 H&M, 제대로 뭉치다
WE KNOW THE PIZZA!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만드는 도미노피자의 새로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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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REPORT Draw Something You Want 너의 마음을 그려봐
24h
New Homo Faber Takes His T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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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즐거움, 노동을 위한 조건
The Opening of Public Information
BE BRAVE
공개하라 그러면 풍요로울 것이니
CANNES LIONS 2012 with INNOCEAN World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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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CONTEMPORARY ART
이노션 월드와이드, 그리고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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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color the World! Street Art Utopia 뒷골목에 새겨진 거리예술가들의 자유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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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T T E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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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Network of Imagination 길과 사람은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작은 길에서 시작해 더 큰 길로 나아가 세상과 연결됩니다. 다 른 점이 있다면, 길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성장하며 무수한 가지로 연결되어 도시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지금 서울의 길은 세계 그 어느 대도시에 못지않게 가 장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Life is Orange> 여름호는 지금, 서울 곳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길 위의 에너지에 주목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발견의 즐거움, 노력해야 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 하루가 다르게 매 력적인 콘텐츠를 채워가고 있는 서울의 길은 한 도시가 가질 수 있는 오리지낼리티와 진보의 극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줍니다. 마치 이 새롭고 낯선 길들은 상상력으로 빚어진 끝없는 네트워크처럼 보 여지기도 합니다. 이 길 위에서 저희는 생각합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담는 이 길처럼 우리의 길도 끝없이 펼쳐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 원동력은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상상력에서 시작해 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도시를 탐험하는 마음으로,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찾아낸 이 새로운 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 대표이사 사장 안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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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LUCKY TO BE A MUSICIAN I’M SO LUCKY TO BE LOVED I’M THE LUCKIEST MAN TO MAKE MY ROAD
I N T E RVI E W
그가 꿈꾼 길은 결국 모두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Chang
30여 년 전, <산울림>의 첫 공연에서 전율을 느꼈던 한 광고인, 그리고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답을 찾아낸 한 음악인. 이 두 사람에게 창작 과 새로움을 발견하는 직관이라는 대화 소재는 세대의 차이를 잊게 만들 만큼 서로의 가슴에 늘 뜨거운 화두로 간직하고 있는 공통점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와 이노션 월드 와이드의 이현석 전무가 만났던 어느 금요일, 이 둘이 함께한 두어 시간의 기록을 공개한다.
Interviewer. Lee Hyun Seok (Sr.Vice President, INNOCEAN Worldwide) Photography. Kim Dong Yul Cooperation. Foresta
이현석 전무(이하 이) 오늘 장기하 씨를 만나러 오기 전에 마침 중앙일보 기사를 봤어요. 리버풀에 다녀온 내용인데, 그 기사에서 스스로를 길 치라고 밝혔더군요. 길을 잘 못 찾는다는 이야기인데, 음악에서는 새롭고 독특한 시도로 자신의 길을 잘 찾아낸 과정이 비교되어 재미있게 읽 었어요. 장기하(이하 장) 실제로 길을 찾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에요. 음악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인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운 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디 뮤지션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해 인디의 길을 택하는데, 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저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 대중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오 든, 음악을 듣고 난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게 하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그게 많아봐야 100 명, 200 명이지 몇만 명 앞에서 공연을 하 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실제로 길을 찾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에요. 음악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인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디 뮤지션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해 인디의 길을 택하는데, 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저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 대중음악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오든, 음악을 듣고 난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게 하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이 소위 인디라고 하면 소수의 열광이나, 특별한 계층이나, 연령대를 타깃으로 삼기 마련인데, 대중 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음악을 할 때에도 대중성이라는 부분에 욕심을 가졌군요. 장 그렇죠. 듣는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부르는 사람인 저와 듣 는 사람인 상대방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들으려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많은 대중이 제 음악에 공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죠. 이 스스로 보기에, 인디라는 장르와 대중적이라는 장르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장 그건 개념의 문제인데, 인디와 마이너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인디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 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투자를 받는다거나 거대 시스템에 들어가
지 않고 자기 스스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지요. 마이너는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인디로 출발해서 메이저 장르로 발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제가 보기에 인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메이저 급으로 성장하게 된 가장 좋은 예가 <산울림>이라고 봐요. 제가 그 세대예 요.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전까지 대중가요를 이끌던 장르와 확연히 달랐죠. 인디, 마이너리티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신드롬, 트렌드로 돌풍 을 일으켰죠. 그런 의미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장 결과적으로 저희가 <산울림>을 롤 모델로 삼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특별한 계획이 있던 건 아 니었어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어요. 대중 음악을 언급한 것도 클럽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의미였지, 인기를 위해서 TV 프로그램에 나가고 프로모션을 하고 그럴 계획은 전혀 없었죠.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저희 밴드가 인기를 얻게 된 과정이 <산울림>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어요. 그 분들도 특별한 생각 없이, 졸업 기념으로 자작곡을 묶어 앨범을 발표한 것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런 면 에서 보면 오히려 저희보다 <산울림> 선배들이 더 전략이 없으셨다고 봐요. 저희는 계획은 없었으나, 최종 목표는 대중이 좋아해주길 바랐으니까요. 이 음악을 시작할 때, 산울림과 교류가 있었나요? 장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에 시작한 밴드이고, 2002년부터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밴드 활동을 했 어요. 그 밴드가 롤 모델로 삼은 밴드가 바로 <산울림>이었어요. 그 전에는 그렇게 오래된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밴드에 들어오려면 <산울림> 음악을 카피라도 해야 한다고 하니까 들어보다가 빠져버린 거죠. 결국엔 어떤 생각까지 했나 하면 한국어로 록 음악을 한다고 하면 이게 정답이라고,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산울림>에서 가지를 쳐서 그 시대의 음악을 듣다 보니 당 시의 음악들이 좀 더 우리 식의 정답에 가까웠다고 생각했어요. 그 느낌이 우리 음악에도 많이 반영됐고, 장기하 음악에도 많이 반영됐죠. 교감이 있었다고 할 수 있죠.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따로 뵙지 못하고 나중에 김창완 선배님을 술자리에서 뵈었어요. 저는 기억하는 데 그 첫 만남을 선배님은 기억하지 못하시더라구요. 그 다음에 서로 기억을 하는 첫 만남은 EBS의 <스페 이스 공감>에 ‘헬로 루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저희가 ‘이 달의 헬로 루키’와, ‘올해의 헬로 루키 7인’에 들어서 연말 <산울림> 헌정 공연을 다같이 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내마음의 주단을 깔고’ 1절을 부르면, 간 주 때 김창완 선배님이 깜짝 등장해서 2절을 부르시는 무대였죠. 그 후에는 아껴주시고, 투어도 함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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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있어요. 매력싸움의 무한 경쟁의 장에 들어섰다고 봐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건 없어요. 예능이든 프로그램 진행이든 광고든 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섭외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와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여러 요소가 딱 맞아야만 좋은 결과를 낸다고 생각하고, 지금으로서는 라디오 DJ를 시작한 것이 옳다고 봐요. 처음에는 마치 출근하는 것 같은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걱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매일 정해진 일을 해내는 것에도 어떤 에너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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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도 여기저기서 같이 하고 그랬어요. 돌이켜보면 <산울림> 음악을 처음 접하고, 빠져든 그 시기가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없었으 면 <장기하와 얼굴들>도 없었을 거예요. <산울림>을 알고 빠져들기까지가 몇 달 걸리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송골매, 송창 식, 정태춘, 신중현 등 1960~80년대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그게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비틀즈도 그때 알 게 되었죠. 대중적인 노래 몇 곡 알던 정도였는데, 한국 밴드를 들으면서 영미권 밴드로 확장되어서 음악을 진지하게 듣게 된 거예요. 그때가 음악인이 되는데 있어서 필수전공이라고 해야 할까요? 1학년 전공과목이었던 셈이죠. 이 그 시대의 음악을 ‘가요적 명곡’ 이라고 표현했던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장 가요(歌謠)라면, 대중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이죠. <송골매>와 <산울림>의 음악을 지금으로 따지면 <빅뱅>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어요. 전위예술을 하던 분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신중현 선생님의 ‘미인’도 모두 흥얼거릴 수 있잖 아요. 그와 동시에 예술적으로도 명곡이라는 것이 지금의 노래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장기하 씨의 목표도 가요적인 명곡을 만드는 것인가요? 장 지금은 그렇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죠. 전위적이거나, 인기만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산울림>의 음 악처럼 정말 주옥같으면서도 가요인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 가사나 곡도 직접 쓰는데, 창작에 대한 인사이트는 어디서 얻고, 어떻게 발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궁금합니다. 장 저는 참 평탄하고 무난하게 살아왔지만, 그중에서도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든지 그 런 것들. 실제로 슬픔의 감정이나 구체적인 인간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에서 빌려 쓰죠. 이 창작에도 주기가 있나요? 폭발적으로 뭔가가 생각난다든지 아니면 슬럼프라든지. 장 보통 답보 상태예요. 어떤 순간이 있는 거죠. 그 순간에 꽂혀서 긍정의 에너지가 솟을 때가 있어요. 1집을 만들 때는 모
든 순간이 그랬고, 2집은 일부러 만드는 것도 해봤어요. 초반 몇십 초 만들고 난 이후엔 몇 달 동안 두고두고 고치기도 하고요. ‘TV를 봤네’, ‘그 렇고 그런 사이’는 한 번에 후루룩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든 곡들이 역시 반응이 좋더라구요. 이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는데, 스스로 인디나 마이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중 프로그램에 나가면 신비감이 사라지는 부작용 도 있잖아요? 독립성을 지향해야 하는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장 예능 자체에 거부감은 없어요. 하지만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프로그램에 나가면 아마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부자연스러워지면 저 는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이번에 <힐링 캠프>에 출연한 것은 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실제로 녹화하고 나서도 느낌이 좋았어요. 잘되는 프로그램은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이 TV 프로그램의 진행 같은 섭외가 들어온다면? 장 저는 이제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있어요. 매력싸움의 무한 경쟁의 장에 들어섰다고 봐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건 없어요. 예능이든 프로그 램 진행이든 광고든 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섭외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와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여러 요소가 딱 맞아야만 좋은 결 과를 낸다고 생각하고, 지금으로서는 라디오 DJ를 시작한 것이 옳다고 봐요. 처음에 는 마치 출근하는 것 같은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걱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매일 정해진 일을 해내는 것에도 어떤 에너지가 있어요. 이 홍대에서 공연을 시작했으니 이곳이 익숙 할텐데, 요즘은 공연장이나 아티스트 들도 이동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혹시 장기하 씨가 요즘 낭만을 느낀 곳은 어디인가 요? 장 문래동에 ‘로 라이즈’라는 클럽이 있어요. 정비소를 개조해서 만들었다는데 정말 희한해요. 주말에 모든 가게가 문 닫은 골목 어디로 스윽 들어가면 공연장이 있어요. 마치 <벨벳언더그라운드> 같은 그룹이 나와서 공연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예요. 최근 에는 홍대에도 메이저 지향적인 밴드나 뮤지션이 많이 등장했어요. 인디라는 브랜드 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거죠. 그런데 이 클럽에는 완전히 뚝심으로 실험하는 그런 밴드들이 등장해요. 제가 최근에 꽂힌 <무키무키만만수>라는 밴드 음악도 여기서 들 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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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최근 쉬는 동안에 리버풀에 다녀와서 ‘뜻밖의 발견’이란 말을 했던데, 뜻밖의 발견이란 것도 아티스트 에게는 중요하죠? 발견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장 전 여행이 너무 좋아요.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외국 여행을 가면 공연을 많이 봐요. 일본만 가도 좋은 공연들이 항상 있으니까요. 관객 50~60명 앞에서 공연하는 유명 뮤지션들이 항상 있어요. 그 리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볼 수 있죠.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은 미국에서 본 폴 매카트니. 세 번 봤거든 요. 미국에서 연이어 이틀을 보고 최근에 영국 가서 한 번 봤는데, <장기하와 얼굴들> 2집은 폴 매카트니 공연을 본 에너지로 만들었어요. 이 장기하 씨는 그 직관에 따른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 비결을 묻고 싶군요. 장 저는 각자 자기의 직관에 집중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어울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서 저만의 뚜렷함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해요. 그래서 너무 바쁜 것도 안 좋아하고요. 이것은 모두가 공유 할 만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이 광고계도 포장이 잘되어 있어서 그렇지, 타고난 직관과 재능이 필요한 분야예요. 늘 아이디어를 개발 하는 방법, 사고법 이런 교육을 많이 받아서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도 있지만, 어설픈 관심을 가지고 성공 하긴 힘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행운이죠. 그 두 개를 잘 조화시키는 사람이 결국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겠죠. 광고도 조금이라도 뒤틀거나 쪼개서 달리 보여주 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 늘 딜레마고 고통이에요. 아직 광고에 출연한 적은 없죠? 장 전 광고는 좋은 내용이라면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일 년 정도 됐어요. 이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기하 씨의 음악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어 떨것 같아요? 장 전 차라리 다시 만드는 것을 선택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섭외가 들어와도 광고를 아예 안 하겠다는 생 각도 했어요. 저희는 일개 힘 없는 신인 밴드일 뿐인데, 우리의 생명줄은 이미지밖에 없는데, 광고를 통해 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쪽으로 굳어버릴 것 같았어요. 뮤지션은 음악을 들려주면서, 시간을 거쳐 만들어져 야 하죠. 하지만 광고는 워낙 강력한 매체이다 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과 비교도 안 되게 빨리 우리 이 미지를 다른 쪽으로 고착시킬 것 같았아요.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2장의 앨범을 내면서 데뷔 앨범이 그저 운이 아니었냐 하는 의혹 정도는 불식시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광고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저희도 함께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해요. 이 최근에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많지요. 예를 들 어 최근 현대카드와 <빅뱅>의 ‘몬스터’가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경우도 그렇지요. 이런 형태의 작업은 어떻 게 생각하나요? 장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은 굉장히 섬세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해요. 그래야 결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그런 고집은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배철수 씨가 ‘거물이 아니더라도 거물인 척해라’라 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고집의 줄을 잡고 버틸 필요도 있어요. 장 저는 항상 <장기하와 얼굴들>의 비즈니스 프론터에 있었거든요. 최종 결정은 항상 제가 했기 때문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음악 생명이 끝나는 일은 정말 일어나기 쉬운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본인의 10년 후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항상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장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Music is My Life!’ 이렇게 외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지금 까지는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년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항상 저 는 음악이 일 순위가 아니라, 제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이 일 순위예요. 제 스스로 음악하는 것이 싫 어졌는데, 억지로 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보다 인기가 많아지더라도 하기 싫은 음악을 억지로 해서 이상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더 책임감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음악이 좋아요. 그리고 이제 시작이니 까, 오래 지속되길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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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결성된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9년 2월, 첫 번째 정규앨범 <별 일 없이 산다>를 발표, 발매 두 달 만에 3만 장이 넘게 팔리며 대중에게 확고한 위치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의 노력은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란 평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6월, 두 번째 정규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이 발표되었다. 1집보다 더욱 매끄럽고 견고해진 그들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는 바람직한 2집이었다. 이로써, 장기하와 얼굴들이 ‘반짝 인기’를 구가할 것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순식간에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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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 S U E R EPO RT
Reborn, Repositioned, Revived Roads 홍대 앞과 서촌길, 길의 미시사회학 Text. Hwang Dong Il (Contents Planner)
태초에 길은 없었다. 신이 만든 피조물의 목록 중에 길은 들어 있지 않았다. 사람이 걷기 시 작하면서, 비로소 길은 생겨났다. 처음에 혼자 걸어간 곳을 여럿이 함께 걸어 사람의 냄새와 족적이 오랜 시간 퇴적하면 그곳은 길이 되었다. 그러니까 길은 가장 인간적인 발명품이며, 그 자체로 인류가 남긴 발자취이자 그 발자취의 집적물이다. 따라서 길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사람의 속살, 곧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과 시대의 욕망과 지향, 그리고 시대정신의 향방을 살피는 일이 된다. 길 속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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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우 또한 다르지 않다. 다사다난한 대한민국 현대사를 ‘길의 미시사’(微時史)를 통해 되짚어보는 일은 자못 흥미롭다. 해방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화 과정을 겪으면서 길은 물자와 재화 를 빠른 시간 내에 실어 나르는 ‘생산성과 효율’의 공간이 되었다. 경부고속 도로는 그 자체로 ‘조국근대화’의 대동맥이자 으뜸 상징이었다. 그 대동맥으로 부터 검은 아스팔트 정맥과 모세혈관들이 증식해가며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압축 성장’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엄청난 성취를 일구어냈다. 하지만 늘 길의 역사가 정 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역사와 행복하게 동거했던 것은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항해 사람 들이 저항의 깃발을 들어 올린 곳은 바로 길 위였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아프게 가로지르는 봉 기와 혁명도 모두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마감하였다. 4.19의 경무대 앞이 그랬고, 80년 광주의 도 청 앞 금남로 일대가 그러했으며, 87년 6월 항쟁의 서울시청 앞이 그러하였다. 불의와 부패에 대한 저항과 응징은 늘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잡아낸 대한민국의 90년대 이후 길은 극적 인 변화를 겪게 된다. 길은 특유의 ‘정치성’을 급격히 탈색하고 자본주의 소비문화로 옷을 갈아입었 다. 90년대 언론의 가십란을 장식했던 이른바 ‘야타족’은 대한민국 사회의 극적 변모와 그에 기인한 ‘길의 문화사회학적 변화’를 짚어볼 수 있게 해주는 키워드다. 그것은 80년대 중후반 이후 이른바 ‘3 저 호황’이라는 엄청난 경제적 버블을 바탕으로 하고, 88년 올림픽을 문화적 도화선으로 해서 90년 대 들어 본격적으로 만개한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키치적 일면이었다. 사람들은 80년대, 길 위에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부르짖었던 역사를 땅에 파묻고 그 위에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좌판을 펼 쳤다. 2000년대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모든 길 위를 가득 메운 붉은색의 쓰나미와 함께 시작되었 다. 2002년 월드컵이라는, 비정치적이거나 최소한 ‘덜’ 정치적인 스포츠축제를 통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남녀와 노소, 빈부와 이념 등 모든 차이를 넘어서서 ‘둥근 공’을 매개로 해서 그야말로 하나의 ‘국민’이 되었다. 한반도의 전 역사를 통해 이 땅에 살아온 모든 사람이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하나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 일사불란함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전체주의의 불길한 냄새를 맡을 정도로 그것은 놀랍도록 ‘거대한 일치’를 연출해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축제는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길 을 떠나 각자 자신들의 사적 공간으로 돌아갔다. 다시, 길들은 자동차의 행렬로 가득 찼고, 거리 는 크고 작은 자본들의 각축으로 분주하다. 오늘날 이처럼 심드렁한 ‘일상성’이 지배하는 것 처럼 보이는 길들과 거리는 실상 어떠한가?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중단하고 빈약한 두 다리를 떼어 몸소 보행에 나선다. 내가 길과 거리의 속살을 살피기 위해 오늘 걸어야 할 곳은 홍대 앞과 삼청동 옆 효자동 일대를 아우르는 ‘서촌’(西村) 길이다. 그 두 곳은 각각 80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대표하고 상징하면서 시나브로 다 가올 미래를 예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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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을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 드는 ‘다양성’이다.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똑 바로 걸어가면 15분 남짓이면 끝점에 도달할 수 있는 이 좁은 공간에 다양한 문화, 다양한 시대, 다양 한 국적, 다양한 세대,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성적 취 향 등이 일종의 불협화음을 빚어내며 혼거하고 있다. 고급과 대중, 명품과 키치, 오버와 언더그라운드…. 홍대 앞의 성지 중 한 곳인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자리 잡고 있는 놀이터에는 경로당이 당 당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홍대 정문 앞 사거리 한 귀퉁이에 위치한 프리마켓은 상설시장이 아니다. 평시에는 놀이터이자 경로당으로 쓰이는 공 간이 주말이 되면 액세서리며 온갖 생활 소품들이 향연을 펼치는 프리마켓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니까 100평이 조금 넘을 이 공간은 어린아이와 가장 늙은 세 대, 그리고 피와 끼를 주체하기 어려운 젊은 영혼들이 흥겹게 동거하는 카니발적 공간이 다. 이 좁은 공간에서 순수 미술과 조형 미술, 생활 공예와 급진적인 미술적 시도, 오래되고 낡은 세대와 새로운 세대, 정적인 미술과 동적인 음악 공연이 무정부적으로 어우러진다. 이 카니 발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평화로우며, 번잡하지만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그러니까 이곳 놀이터는 홍 대 앞의 현재를 증거하는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다. 프리마켓을 나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100여 미터를 내려오면 다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른바 ‘주 차장길’로 들어서게 된다. 홍대 앞 주차장길이란 독막길(합정역에서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이름) 발전소 사거리에서 놀이터 입구 수노래방 사거리까지, 또는 더 확장하여 홍대 정문 앞길에 이르는 공영주차장 좌우 도로를 가리킨다. 산울림소극장에서 프리마켓을 지나 극동방송국에 이르는 길이 홍대앞의 ‘올드 버전’, 또는 문화 생산 기지를 상징한다면, 주차장길은 ‘뉴 버전’, 요컨대 90년대 중후반 이후 급팽창한 클럽 문화와 패션, 그리고 유흥 문화를 대표한다.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는 두 길의 은유! 주차장길 좌우로 옷가게와 패 션 소품점, 다양한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과 클럽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주차장길의 소비문화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수노래방’ 바로 옆으로 복합 문화 공간 ‘상상마당’이 자 리하고 있다. 홍대 앞에서 가장 유명한 유흥 공간과 동시대 가장 젊고 도전적인 문화 예술적 실험을 선뵈는 공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몹시 흥미롭다. 홍대 앞은 이렇게 동시대 소비 문화의 늪 속으로 일방적으로 빠져들지 않으면서 나름의 독자성과 독 특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건물과 건물을 구성하는 소품들 자체가 카페이면서 박물관인 ‘aA뮤 지엄’,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미술적 시도들을 즐겨 소개하는 ‘스타일큐브 잔다리’, 대안 미술 공간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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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등은 그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80년대 정치 문화적으로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길거리와 담벼락에 암각화를 그리듯 그림을 새겨넣기 시작한 지 30여 년, 홍대 앞은 그 모든 다사다 난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이렇게 새로운 실험들과 시도를 통해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꿈꾸려 하고 있다. 홍대 앞에서 273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려 광화문의 서쪽, 그러니까 행정구역상으로는 통 의동·창성동 일대면서 통상적으로는 ‘서촌’으로 알려진 청와대길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 서촌 일대가 4~5년 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북촌의 덕을 입은 바가 크 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시작된 삼청동과 북촌 일대가 최근 지나치게 ‘자본화’, ‘상업화’하면서 임대료가 대폭 상승하고 문화적 분위기 또한 많이 퇴색함에 따라 일군의 문화·예술가들이 일종의 ‘대안적 공간’을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하나둘씩 늘기 시작한 미술 관련 전시 공간만도 20 여 곳을 헤아릴 정도이다. 때로는 모래 위를 지나간 게걸음처럼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통의동과 창성동의 경계를 이루는 ‘영추문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가로로 늘어선 죄우 대로변으로 북카페 b612, 전시 공간 팔레 드서울, 스튜디오 ‘워크룸’, 갤러리 ‘팩토리’, 카페 Mk2와 헌책방 가가린 등이 주욱 도열해 있다. 그리 고 그 대로변을 끼고 한 발짝 더 골목길로 옮기면 자인제노, 쿤스트독 등의 전시 공간들이 존재를 드 러낸다. 말하자면 이곳이 바로 통의동·창성동 일대의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고, 터줏대감들 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여 전, 그러니까 2007년 무렵부터 몇몇 젊은 문화예술인이 삼청동의 비싼 임 대료와 번다함을 피해 이곳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카페이자 빈티지 소품들을 전시해 놓은 Mk2의 주 인장인 이종명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사진작가인 이씨의 작업실은 원래 삼청동 정독도서관 부근에 있었다. 주말이면 떼지어 몰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피해 이씨는 이삿짐 을 쌌다. 이런 이씨의 내력과 사연은 영추문길 주변에 자리 잡은 다른 문화예술인들에게도 공통적이 다. 그러나 이들이 도도한 상업화의 물결에 마냥 떼밀리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 이들은 발랄한 상상 력과 ‘발칙한’ 시도로 ‘상업주의’에 맞서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헌책방 ‘가가린’이다. 가가린은 상업적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공간이다. 태생부터가 그랬다. 마땅히 무엇을 하자 고 결론을 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게를 임대했다. 빈 공간에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 해 Mk2와 워크룸과 팩토리, 그리고 건축가 서승모 씨가 급히 십시일반 돈을 보태 ‘선도입매’해버린 것이다. 돈을 들여 빈 공간을 임대했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 내 최초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헌책방이다. 이 책방에서 책을 팔기 위해서는 연회비 2만원(평생회원 5만원)을 먼저 불입해야 한다. 회원 가입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 가입은 안 되고 직접 책방 에 들러 손수 이름을 써내야 한다. ‘고객 우선’의 시대에 웬 삐딱선인가 싶다. 심지어 가게문도 오후 12시 30분에 연다. “오전 나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란다. “그래도 하루 10여 권 정도는 나간 다”는 책방 직원의 전언이다. 앞서 삼청동과 북촌이 그러했듯 이제는 ‘자본’의 거센 물결이 서 촌 일대에 밀어닥치고 있다. 몇 개의 건물이 새롭게 올라가고 있고, 최근 부동산 불황에 도 낡은 한옥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소문이다. 이곳은 동시대 젊은 문화예술 인들에게 또 하나의 ‘막다른 골목’으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활로로 남을 것인가? 가을을 맞이한다는 아름다운 뜻의 영추문(迎秋門)을 지나며 공간과 사람의 앞날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긴다.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낸 자에게 만 아름다운 가을은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젊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가을이 영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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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와의 달콤한 연애 Text. Kim Sun Kyung (Writer)
스몰 숍은 작은 단위의 자영업자이자 ‘지역적 취향의 생산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특정한 지역으로 오는 이유, 그곳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이들이 내세운 취향에 사람들이 호응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감독이 운영하는 밥집, 건축소장이 차린 바, 생계형 창업과는 약간 다른, 문 화적 취향의 적극적 발현이 드러나는 스몰 숍은 도시의 골목길에 생기를 가져다준다.
Loving Small Shops, Living the City Life 18
미국 뉴욕 맨해튼 81번가 주민들에게 작은 화석 전문점 ‘막실라 & 맨더블’은 박물관이자 선물 가게였 다. 센트럴파크 서쪽의 뉴욕 자연사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도 신기한 이 가게를 즐겨 찾았다. 27년 전 문을 연 ‘막실라 & 맨더블’은 그러나 지난해 8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가게 주인 헨리 갈리아노는 블로그 ‘웨스트사이드 레그’에 “체인형 가게들이 밀려들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료가 올랐다. 대형 상점들이 손으로 훑듯 작은 가게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블 록 떨어진 이탈리아식 정육점 ‘오토마넬리 브러더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지난해 가게를 접었다. 문 구점, 열쇠점, 신발 수선 가게, 안경 가게, 옷가게, 24시간 식당 등 지난 2년 동안 이 정육점과 같은 블 록에 있다가 문을 닫은 작은 가게는 최소 7개에 달한다. ‘자가용 없는 도시’ 뉴욕의 보행자들을 즐겁게 했던 작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대형 체인점에 밀려 빠 르게 사라지면서 뉴욕시가 이들 가게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뉴욕시의 회에 상정된 ‘어퍼웨스트사이드(UWS) 지역 소매점 거리를 위한 특별 상업 지구’ 계획은 센트럴파크 서쪽 UWS 지역에 문을 여는 가게들의 폭을 제한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과거 가난한 학자들이 모여 살았던 UWS는 이들이 즐겨 찾은 작고 친근하고 저렴한 가게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뉴욕의 부동산 개발 붐으로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영세한 이들 작은 가게는 대형 약국 체인, 대형 슈퍼마켓, 은행 지점, 대형 패션 브랜드 매장 등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작은 가게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뉴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길은 걷는 사람들이 있어야 생명력을 얻는다. 그 어떤 길에 가도 똑같은 프랜차이즈 숍들이 있다면 굳이 자신의 거주지 이외의 곳에 갈 이유가 없다. 서울에서 도 트렌디한 장소로 떠올랐던 가로수길이나 부암동, 북촌 등을 살펴보면 그곳에 무명 디자이너, 파격 적 발상의 독립 큐레이터, 나만의 요리에 목숨 건 젊은 요리사들이 ‘생애 첫 가게’를 낼 수 있는 가능 성은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대로변이 급변하는 동안 스몰 숍들은 대로에서 한발 더 들어간 작은 골 목길 안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 있다. 대로의 프랜차이즈 대형 베이커리 상점과 비교되는 골목길 안의 작은 빵집 가게들은 자연 발효를 앞세우면서 ‘동네 빵집’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어내기도 했다. 글로벌 SPA 브랜드 매장이 점령한 곳의 안쪽 길에는 주인의 개인적 안목이 돋보이는 작은 셀렉트 숍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한 골목길 안으로 숨어 들어간 스몰 숍들 덕분에 도시는 구석구석 행인들을 맞이하고 활기를 되찾는다. 여전히 젊은 예술가들의 ‘놀이터’를 중 심으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홍대, 이제 막 제 이름을 내걸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 들이 모여든 신사동 가로수길, 개인의 일상마저 공개하며 자신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을 불러 모으는 도산로 뒷길, 서울을 처음 찾는 외국인처럼 관광지도를 들고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하 게 되는 북촌, 동네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꾸미고 닦은 혜화동 언덕 위 낙산 등 우리에게도 런던의 노팅힐, 홍콩의 소호, 도쿄의 키치조지 같은 개성 만점의 길들이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기대하는 것 은 10평 남짓 협소한 공간이라도 갓 내린 핸드 드립 커피의 깊고 신선한 맛이라든가, 파리에서 공부 를 하고 돌아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파티시에가 온갖 공을 들인 색색의 사랑스러운 디저트 같은 것 들이다. 영화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주인이던 여행 책 서점처럼 세상의 온갖 여행 책만 모아둔 작은 서점이 이태원에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 라도 꼭 이태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빈티지를 가르쳐준 소품 가게도, 벨기에식 와플의 맛을 알려준 곳도, 장 푸르베의 의자가 원래 초등학교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라는 비밀을 알려준 곳도 모두 작은 가게의 주인장들이었다. 세상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지식이 아니더라도 이 도시를 살 아가는 용기와 즐거움을 주는 곳, 작은 가게의 끝없는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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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ing for Walking for Fun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의 자기 극복 스토리보다 가볍게 거리를 산책하자는 제안에 더 솔깃 해지는 세상. 삶의 속도를 떨어트리고 그 틈에 여유를 선사해주는 ‘걷기’는 단순히 스포츠 나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즐거운 놀이로 변하고 있다. 이에 걷는 자, 걷고 싶은 자들을 위한 마케팅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어떻게 걸을 것인가를 제안하는 마케팅 Text. Min Hee (METATREND Media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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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걷기 열풍이다. 일찍이 나이 드신 분들 은 산행을 즐겨 하셨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들까지 나서서 걷기에 동참하 는 모습이다. 걷는 행위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트 렌드 안에서 탄생한 것으로,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슬로 라이프(Slow Life) 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걷기를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매우 친환경적이다. 걷기는 별다른 도구나 특별한 학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또한, 걷기는 다른 운동에 비해 신체적인 부담이 없고, 정신적으로 스 트레스를 안겨주지도 않는다. 걷기는 고도의 산업화와 복잡한 도시화, 항상 연결돼 있는 디지털 로 인한 피로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준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돌아보며, 자연을 느끼고, 느 긋한 여유를 만끽하는 것은 바쁜 현대인들의 이상향이다. 걷기는 그것을 실현해주는 가장 간단하면서 도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걷기는 모험이 가득 찬 놀이 길은 언제나 모험이 가득 찬 공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익숙한 길로만 이동하며, 새로 운 길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은 비용이나 위험 부담 이 적은 걷기를 통해서 억눌려온 탐험 욕구를 해소한다. 길 위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게임 중 하나 로 지오캐싱(geocaching.com)이 있다. 특정 장소에 보물을 숨겨 놓고 GPS와 인터넷으로 그것을 찾아내는 게임으로, 평소에는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도시가 거대한 탐험 공간이 되어 색다른 재미를 부여한다. 제레미 우드(gpsdrawing.com)는 GPS 장비를 휴대한 채 17일 동안 238마일을 걸어서 위 치 정보를 추적한 1:1 축적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의 걷는 행위는 그대로 지도이면서 예술 작품이 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지금까지 놓쳐왔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체험하기를 기대한다.
길 위에 사람 사는 이야기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길에서는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목적지까지 곧장 도착할 수는 있지만 길 위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스쳐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이동 수단을 버리고 걷기 시작하면 이전과 는 다른 길을 느낄 수 있다. 걸음으로써 우리 동네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에게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태그왓(tagwhat.com)은 증강현실로 여러 사람이 남긴 특정 장 소에 대한 사진, 동영상, 링크와 코멘트를 확인하고, 내 이야기도 남겨 놓을 수 있는 위치 기반 서비 스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사람들은 길 위에 있는 특정한 장소에서 만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길 위의 이야기들은 길 위에서 발견되고, 길을 따라 널리 퍼져 나간다.
자연 그대로의 걷기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오장육부와 연결된 발의 혈관을 눌러주어 혈액순환이 잘된다.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더욱 활기찬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러한 맨발의 보행 효과를 극대화한 맨발 신발 (Barefoot Shoes)은 맨발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신발이다. 가볍고, 통기성이 우수하며, 매우 유연 하여 맨발처럼 밀착된 착용감을 자랑한다. 가능하면 아스팔트 길보다는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피 톤치드(Phytoncide)가 풍부한 숲 속의 흙길이라면 더욱 좋다. 자연과 유리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 들에게 걸으면서 함께하는 자연은 쉽게 경험할 수 없기에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단한 계획이 나 거창한 볼거리가 없어도 충분히 경이롭다.
이제 에어 조단의 놀라운 점프 능력을 강조하거나, 올림픽 영웅의 사인이 들어간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하는 식의 마케팅으로 걷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그들은 단순하게 걷 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충만하게 해줄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 점점 단순해지는 운동화와 첨단의 위치 정보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트렌드에 열광하는 이들의 마 음은 이런 것이다. ‘걷고 싶어, 그것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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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Village Has
대중음악이나 영화평론에 관심 있는 이라면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라는 매
거진 이름에 익숙할 것이다. 뉴욕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관광지의 하나인 그리니치 빌리지
(Greenwich Village)의 동네 잡지로 출발한 이 매거진은 이와 같은 장르에서 가장 성공한 주
간지가 되었다. <빌리지 보이스>의 성공 배경에는 물론 ‘뉴욕’이라는 도시와 그들의 목소리를 충 실히 들어줄 열혈 독자층이 있을 테고, 결국 뉴욕의 한 동네를 넘어, 세계대중예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에도 이런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한국식 ‘동네 잡지’의 꿈과 미래 도시의 발전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네 잡지의 사명, 동네 기록하기
a Story
Text. Kim Do Hee (Editorial Dept)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 아파트 광고가 아니다. 동네 얘기다. 사는 동네가 곧 성장 환경 과 집안 분위기, 정치적 성향과 취향 등의 정보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네를 하나 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방식이 획일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새로 지은 아파 트와 대학 진학률을 좇아 이사 다니는 것은 보편적인 삶의 궤적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높아지는 아 파트와 함께 자랐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데 익숙해졌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겨우 몇 년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동네는 삶의 터전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동네가 달라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동네 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주민 스스로 만드는 동네 매체, 동네 기반 문화예술 프로젝 트가 많아졌다. 젊은 세대는 좋아하는 동네를 찾아 독립하고 동네 풍경과 이웃, 자신의 일상을 함께 기록한다. 한 동네에 모인 예술가들은 환경을 미화하는 것을 넘어 환경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을 벌인 다. 이런 흐름은 거주 형태, 삶의 방식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스트리트H>의 정지연 편집장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1인 가구가 늘면서 아프고 힘들 때 기댈 커뮤니티에 대한 욕구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 가 동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촌라이프>의 설재우 발행인은 “자신 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목생활을 하던 한국인들이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기 시작한 징조”라고 설명 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학교나 직장 등의 조건이 거주지를 정해주었지만 최근에는 직장과 좀 멀 더라도 마음에 드는 동네에 사는 경우가 많아졌죠. 주거 기준이 달라진 것 같아요.”
동네를 기록하는 마음, <스트리트H> 홍대 앞 터줏대감인 정지연 편집장과 장성환 발행인이 동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만들어온 <스 트리트H>는 그 진정성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매달 전해지는 알찬 소식들과 정확한 지도는 상업화와 재개발 이슈, 오해의 여지에 둘러싸인 홍대 앞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홍대 앞은 문화의 최전방이었 고, 그 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늘 가능성이 꿈틀거리고, 그렇기 때문에 멋진 동네고, 지 키고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게 한다. “홍대 앞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어요. 워낙 변화가 심하니까요. 역사와 사람을 기록하는 것이 이 동 네와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정지연 편집장의 말처럼 기록은 공동의 기억이고, 소통과 연대를 낳는다. 사람들을 부지런히 잇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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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게 함으로써 <스트리트H>는 홍대 앞 문화의 중요한 매개로 자리 잡아왔다. 방문객과 행인의 호 응도 컸다. 외국인에게까지 <스트리트H>가 친절한 가이드로 소문났을 정도다. 서촌에서 나고 자란 설재우 씨에게는 서울 사람들 대부분에게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고향이다. 급속 도로 변하는 서울에서 드물게 변함없는 서촌의 모습은 항상 설재우 씨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주었다. 2년 전,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설재우 씨는 이제 고향에 필요한 일을 해보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만들 어진 것이 <서촌라이프>다. 40년째 효자동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효대 내과·소아과 원장은 < 서촌라이프> 창간호에서 증언한다. “효자동은 가난한 동네였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어 요.” 그에 이어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등장했으며,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화가 이중 섭의 작업실 등 서촌 곳곳의 보물 같은 장소를 잇는 ‘문화로드’ 역할을 해냈다. 월간지로 기획되었던 <서촌라이프>의 생명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종이 매체로서는 중단되었지만, 설재우 대표 는 온라인 공간에서 서촌을 중심으로 공동체 문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설재우 발행인의 장기적 목표는 개발이 아닌, 보존을 통해 서촌의 살림살이와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 거대 자본에 맞서 시간 의 지층들을 지키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태원 주민의 기발한 삶 <이태원 주민일기> 9명의 예술가가 이태원에 살았다. 디자이너, 사진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역은 각각이지만 인연 의 꼬리가 길어 점점 마주침과 어울림이 잦아지던 이들은 어느 날 ‘일기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따로 또 같이, 이태원에서의 삶을 기록해보자는 것이 작년 3월 나온 <이태원 주민일기>의 출발점이 었다. 방식은 각자의 영역만큼이나 달랐고 기발했다. 일러스트레이터 나난은 아침 산책길에 발견한 식물 주변에 화분을 그려주는 ‘가드닝’을 했고, 사진가 장진우는 요리에 대한 재능을 살려 이태원 주 민들의 집을 찾아 한 상 차려주는 출장 요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가 사이이다는 철거 직전에 놓인 자신의 집을 스튜디오로 꾸미고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다. 패션 디자이너 곽호빈은 이태원을 배 경으로 자신에게 슈트를 맞춘 사람들의 사진을 남기고 그 사연을 적었다. 공간 기획자 이해린은 퇴근길에 만난 이태원 주민들에게 물었다. “왜 이태원에 사나요?” 이태원에는 재미있는 데가 많다는 이야기, 아리랑 사우나에 가면 동네 소식을 한번에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 외 국인들이 참 젠틀하다는 이야기,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 이 술술 풀려나온다. 이태원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태원은 다른 동네에 비해 새로운 건물, 새로운 세대, 새로운 문화가 급하게 들어온 흔적이 없어서 좋았어요. 요즘 새로운 상권이 급하게 개발되고 있는데, 먼 미래까지 지속될 수 있는 건물, 세대, 문 화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주민 사이이다의 마음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이태원 주민일기>는 좋은 동네에는 집과 사람, 관계와 시간의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것은 행복한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나난은 “영향을 주는 친구들과 가깝게 산다는 게 제일 좋 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일기를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시절도 매 순간을 남기고 싶을 때다. 이태원에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했으면. 아직, 우리나라 동네잡지의 미래를 말하기에는 이른 감도 있다. 동네의 주민뿐 아니라, 그 동네의 골목골목마 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그들이 열혈 독자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 는지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동네의 개성을 발견하고, 그 동네이기에 가 능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일구어내는 데 열성인 이 작은 잡지들의 존재는 고마운 일이다. 홍대의 골목, 서촌의 작은 가게, 그리고 이 태원의 동네 역사, 이들이 기록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서도 찾 을 길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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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OW CASE
The Great Expectations: 2 Essays and 4 Road Creators 언제부턴가 우리는 길을
걷습니다. 매일 걷던 길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고,
낯선 길의 끝에서 어떤 새로움을
네 가지 길, 네 가지 삶
만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걸으면 한계는
Text. Lee Hyun Hwa (Editorial Dept) Photography. Kim Dong Yul
무한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있는 서울은, 걷지 않고는 찾을 수 없는 도시니까요. 지금, 서울에서 가장 의미 있는 네 가지의 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길 위의 사람도 만나볼 수 있겠지요. 서울, 당신은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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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빨간 바지, 그리고 새로운 길
선수들도, 빨간 옷의 원조인 산타할아버지의 나라 핀란드 남자들도, 왜 빨간 바지는 선뜻 안 입을까? 아마도 이탈리아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빨간 바지를 입으면 굉장히 튈
Text. Seo Jeong Keun
것이다. 그런데! 광고도 그래야
(Creative Director, INNOCEAN Worldwide)
마음에 안 들면 안 팔겠다는 태도다.
하는 거 아닌가? 일단 튀고 눈에
그는 사장도 아니다. 점원이다.
띄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빨간
패션에 대한 개념과 철학이 확고한
바지 입는다고 창의적인 사람이
이 이탈리아 선수는 계속 나의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내가
혹시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건
에메랄드색 눈빛의 그 자부심 강한
똑같은 빨간색의 반바지와 긴 바지
아냐?’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이탈리아 점원은 내 눈을 바라보고
중에서 무얼 살까 고민하고 있자,
있는 사람은 되는 것 같다. 심리학
있었다. 나는 약 3초간 더 망설인
이렇게 말해준다. “이쪽의 반바지는
용어로 창의성의 가장 큰 방해물은
후에 대답했다. “아이 윌 바이 잇.”
휴일에 입으세요. 대신에 비즈니스
동조성(conformity)이라고 한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는 꼭 살 뺀
할 때나 오피셜한 자리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다수의 의견에
후에 입으리라 침만 흘리던 48
있는 BOGGI MILANO(봇찌
반드시 이쪽의 긴바지를 입으세요.”
따르려는 성향, 남들과 다르면
사이즈였다. 또한 그것은 색깔이 새,
밀라노)라는 옷가게에서였다. 그
하하하, 빨간색 긴바지는 격식을
불안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빨, 간, 바지였다. 그가 씩 웃으며
작은 골목길에서, 언젠가 이탈리아
차릴 때 입으란다. 그 순간 나는
의미이다. 광고의 운명은 남과
말했다. “굿 초이스, 잇츠 빤따스틱.”
가면 빨간 바지 하나 사와야지, 했던
느꼈다. 아, 얘들은 색깔에 대한
달라야 하는 거다. 남과 다름을
내가 페라리 레드 컬러 팬츠를
나만의 소박한 꿈을 이루고 온 거다.
고정관념이 없구나. 그렇지. 왜
불안해하지 말자. 불안한 사람은
사다니…. 서울에서 이렇게 빨간
아니 어떻게 보면 크리에이터로서의
빨간색 바지는 남자가 입으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바지 입는 남자는 한 명도 없을 텐데
새로운 유연성이랄까, 세상의
안 되지? 왜 빨간색은 격식에 안
이탈리아 여행에서 서울로 돌아온
어떻게 입으려고 .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맞다 여긴 거지? 왜 분홍색은 여자
며칠 후, 나는 빨간 바지를 입고
2012년 5월 이탈리아 로마. 나는
있는 마인드랄까 하는 것을 얻어온
것이라고 생각했지? 왜? 왜? 왜?
길을 나섰다. 3분 안에 거리의
그 골목길에서 생애 최초로 빨간
거다. 생의 새로운 길을 만나고 온
누가 그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어머, 저
바지를 샀다. 로마의 북서쪽
것이다.
없다. 고정관념을 깨준 이탈리아
남자 바지 색깔 좀 봐!” 거리를
번화가, 스페인 광장 주변 콘도티
나에게 용기를 준 그 이탈리아
선수! 너 정말 고마워!
지나 사무실에 들어섰다. 팀의
거리(Via dei Condotti) 뒷골목에
점원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축구만 했다 하면 붉은 악마이고
카피라이터가 단 하나의 짧은
내가 피팅룸에서 적당히 편안한
태극기의 절반도 레드인데,
감탄사 ‘헉!’으로 반응한다. 나는
사이즈를 입고 나오면 가차 없이
한국 남자들은 왜 빨간 바지를
약간 불안해졌다. 하지만 견디기로
“낫 꿋(Not Good)!” 하체 여러
못 입을까? 복을 가져다준다며
했다.
곳에 압박감을 느끼며 남우세스러울
간판이고 탁자고 죄다 빨간색으로
정도로 타이트한 옷을 입고 나오면
칠하는 중국 남자들은 왜 빨간
그제서야 “뻐펙(perfect)!” 3초도
바지를 못 입을까? 한 패션 한다는
안 걸린다. 거의 자동이다. 표정은
뉴요커들도, 단풍의 나라 캐나다
진지하다. 그리고 판결해준다. 경음화 현상이 심한 이탈리아식 발음이다. 낫 꿋! 뻐펙! 또 내가 아래위 완전 똑같은 색을 입고 나오면 “낫 꿋(Not Good)!” 같은 계통을 톤온톤으로 입고 나오면 “뻐펙(perfect)!” 이건 뭐 마치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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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보물찾기가 시작되는 곳, 팔판동 ‘그릴 데미그라스’
팔
판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한 보석 같은 추억이 있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어서 아쉬운, 다시 만나면 나만 알고 싶은 그립고 그리운 공간. 그래서 우리는 주말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골목의 끝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그렇게 헤매고 탐험하다 어느 날, 청와대와 경복궁 언저리에 조용히 숨어 있는 팔판동까지
맛있게 먹던 경양식집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걸음이 닿는다면 드디어 옛 추억과 재회할지도 모른다.
아쉬웠던 그는, 아직도 경양식이 인기인 일본을 모델로
시끌벅적한 삼청동 초입, 청와대 뒷길로 통하는
삼아 직접 레스토랑을 차렸다. 손수 인테리어를 만지고
바리케이트를 슬쩍 비껴나가면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놓기까지 꼬박 3개월. 여백을 좋아하는 그의
골목이 펼쳐진다. 오래된 돌담 사이로 담쟁이덩굴이
취향에 맞게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가 완성됐다.
가득하고, 고즈넉한 주택 사이로 갤러리와 카페, 게스트
마치 그의 음식처럼.
하우스 등이 보이는 곳. 바로 ‘여덟 판서가 산다’ 하여 이름
“역시 함박이 제일 애착이 가죠. 소스 만드는 것도
붙은, 팔판동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추억의 경양식을 맛볼
일이고, 고기 만질 때도 손이 많이 가니까요. 그래서 가게
수 있는 레스토랑 ‘그릴 데미그라스’가 있다.
이름도 데미그라스 소스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저에겐
그릴 데미그라스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리저리
‘경양식=데미그라스 소스’란 향수가 있거든요.” 마침,
헤매다 결국 전화를 걸었고, 셰프복을 입은 김재우 대표가
예약한 손님의 식사가 끝났다. 강남에서 넘어온 듯한 이
직접 마중을 나온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엔
커플에게 그가 주변에 둘러볼 만한 장소를 짚어준다.
다들 그러세요. 여기도 골목인데, 한 꺼풀 더 벗기고
남녀는 다정히 팔짱을 낀 채 처음 내딛는 길 사이로
들어와야 하니까요.” 무더운 날씨에 땀이 송골송골한
사라졌다.
이마를 훔치며 그는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서 한 번 왔던
“여기는 주말에도 삼청동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
분들이 계속 오시나 봐요.”
않아요. 아주 번화한 거리의 인근에 있으나 굉장히
그에게 ‘경양식’은 어린 시절의 특별한 향수를 담고 있다.
한산한, 조용한 주택가 같은 느낌이죠. 법적으로 개발규제를 받는 곳이라 지금과 크게 변하긴 어려울 거라 하더군요.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손님들은 레스토랑이 이런 데에도 있다며 무척 신기해합니다.” 딸랑. 도어벨 소리가 울리며 다시 손님이 들어왔고, 그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과 홀 사이의 길쭉한 창문 너머로 고기 치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방금 온 그녀들 역시 길 따라 굽이굽이 탐험하며 이곳까지 당도했을 터다. 파란 잔디와 장독대를 지나, 창문 하나 없이 아늑한 이곳으로. 이제 사람들은 그릴 데미그라스 앞에 팔판동이란 수식어를 덧붙인다. 팔판동 그릴 데미그라스. 그릴 데미그라스는 하루의 깜짝 이벤트처럼, 김재우 (그릴 데미그라스 대표)
오늘도 팔판동 골목길에 숨어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20년 동안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 오랜 꿈이었던, 나만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남자. 중국집과 경양식집을 고민하다 점점 사라져가는 추억의 경양식집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식전에 나오는 사라다빵과 함박스테이크, 비후까스가 인기.
ADD.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8번지 TEL. 02-723-1233(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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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라 까떼넬라는 ‘chain’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샌프란시스코 마켓과 유니페어, 라 까떼넬라가 한 체인이란 의미와 동시에 슈트의 어깨 부분에 들어가는 유연하면서 탄탄한 스티치를 뜻한다. 그에게 이곳은 상점이라기보다 아틀리에에 가깝다. 그것이 넓은 강남에서도 이곳, 도산공원을 선택한 이유다. “도산공원 인근, 옛날에는 압구정동이었죠. 우리 세대에게는 어떤 동경의 장소였어요. 가로수길이 좀 더 상권이 발달했지만, 우리 타깃에는 이 장소가 더 맞는다고 생각해요. 우리 브랜드의 메인 퀘스천은 ‘내가 입고 싶은 옷’이니까. 보세요, 로데오거리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지 않나요?” 남자의 동경이
그는 자신이 만든 브랜드가 고객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길
여전히 살아 숨 쉬다,
원한다. 같이 공감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도산공원길
믿는다. 그런 그의 이상 덕분에 한창 20대 때 이곳에서
‘라 까떼넬라’
청춘을 불사른 마흔은 이제 거리낌 없이 구 압구정동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청춘의 장소, 20대의 열정을 덧칠하던 도산공원 인근에서 구두를 주문하고, 슈트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잠들어 있는 도산공원 인근은
맞추면서 말이다.
강남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남에 사실 이렇게 예쁜 공원이 별로 없잖아요. 이
신사동에 속하지만 ‘구 압구정동’이란 말이 더 잘 통하는
지역 전체가 하나의 ‘가든’이 되었으면 해요. 예전부터
이곳은 갤러리아 백화점부터 이어지는 명품거리와는
베이커리가 있었으면 했는데 많이 생겨나서 참 좋고,
다른 품격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로데오거리와는 다른
카페는 이제 충분한 것 같고…. 아, 동네에 없는, 창의적인
활기가 꿈틀댄다. 그리고 그 물결의 중심에는 지난 4월,
향수가게가 있으면 어떨까요?”
신개념 오더메이드 숍 ‘라 까떼넬라(La Catenella)’를 오픈한 한태민 대표가 있다. 그는 남성패션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편집숍’이란 개념을 처음 들여온 사람이다. “이탈리아에서 5년 정도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내 옷을 팔 공간을 찾아봤지만, 럭셔리 브랜드 아니면 저가의 캐주얼 브랜드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그래서 2005년 이곳에 처음 ‘샌프란시스코 마켓’을 열었어요. 그러다보니 또 구두가 아쉬워서 지인들과 합심해 바로 인근에 ‘유니페어’란 슈즈 전문점을
도
산
만들었고. 라 까떼넬라는 좀 더 특별한 요구를 하시는
한태민 (라 까떼넬라 대표)
손님들을 위한 맞춤숍입니다. 테일러링은 물론이고,
열정으로 가득 찬 20대와, 가장 충실히 일한 30대를 보내고 이제 40이 된
일본에서 공수한 오더메이드 청바지도 다루고 있지요.”
샌프란시스코 마켓, 유니페어, 라 까떼넬라를 운영하며 바쁘게 도산공원 일대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 이탈리아에서 배우고 일한 감각으로
누비고 있다.
ADD. 서울 강남구 신사동 653 4층 TEL. 02-517-3156
공
원
길
Nothing’s between You and Art, 문래동 ‘솜씨’
문익점이 목화씨를 처음 퍼뜨렸다 하여 이름 붙은
홍대 등에서 작업을 하던 작가들이 점점 올라가는
문래동은 그 이름처럼 본디 전국에서 가장 큰 방직공장이
자릿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찾은 대안이 바로
자리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부터 철공소가
문래동이었다. 오래 비어 있던 공간이니 월세가 저렴했고,
모여들며 서울의 공업 중심지가 되었다. 40년이 지난
본디 공장이라 층고가 높아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도
지금, 문래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쇳소리와 땀으로
좋았다. 주변 철공소에서 쉽게 자재를 구할 수 있는 점도
가득했던 철공소들은 산업구조가 변하며 하나둘 문을
한몫했다.
닫았고, 비어 있는 공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래동 작가들이 주로 오지만, 동네 주민과 철공소
그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들어서며 문래동은 어느새
단골들도 꽤 많아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재밌어서
‘예술촌’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오시는 분들이죠. 철공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찌
‘솜씨(Cottonseed)’는 2년 전 문래동에서 태어난
보면 몇 십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장인이잖아요. 그래서
비영리 문화공간이다. 문래동에 예술의 씨앗을 심어서
예술가들과 통하는 부분이 꽤 있어요.”
널리 퍼뜨리겠다는 취지로 2층짜리 건물을 개조하여
그녀는 솜씨가 쉬운 공간이 되길 바란다. 예술은 고상하고
아래층엔 전시공간과 카페를, 위층엔 문래동 예술인들의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든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아카이브를 마련해 놓았다. 온통 하얀 벽의 공간에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페가 큰 도움이 됐다. 선뜻
들어서자, 이미 예술인 몇몇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문을 열고 들어오기 꺼리던 사람들이, 차를 즐기면서
피우고 있었다.
편하게 둘러보게 된 것.
“7~8년 전부터 문래동에 이미 작가들이 모이고 있었어요.
“문래동에 커뮤니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에요. 내부에서
여기서 뭘 하면 재미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래동의 창고
워낙에 활기도 있었고 복작복작했는데, 다만 그것이
역할을 하기로 했죠. 작가들이 저마다 아틀리에에서
표출되고 공개되는 큰 통로가 없었을 뿐이죠. 지금은
작업한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도 필요했고, 작가들끼리
작가들끼리 와서 알아서 친분도 쌓고 다음 작업에 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통할 장소도 필요했으니까요.”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그래요. 솜씨가 새로운 생각의
문래동에 예술인들이 모인 이유는 단순하다. 합정이나
허브가 됐다고나 할까요? 처음 의도보다 훨씬 더 그물망이 촘촘하게 자리 잡아 참 뿌듯합니다.” 그녀는 문화와 장소가 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솜씨 같은 공간이 더 많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현재 문래동에서는 작가들이 자기 작업실을 개조하여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아틀리에 겸 전시 공간 겸 작은 파티도 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 아마 운이 좋으면 작가를 직접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녀가 귀띔했다.
김정희 (솜씨 실장)
문
올 7월이면 꼬박 2년이 되는, 문래동 작가들의 ‘복덕방’ 솜씨를 운영하는 그녀. 전시공간의 확대와 일상 속의 예술에 관심을 갖고 매일같이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다. 문래동의 안주인이자 작가들의 청량제.
ADD.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58-15 TEL. 02-2637-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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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동
있는 클럽’이라 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1층은 카페 겸 바가, 2층은 공연장이, 3층에는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옥상이 있다. 패션사진과 영상을 공부한 그가 디렉팅하는 공연처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미묘하고 매력적인 공간. “이면도로라 좋았어요. 대로변에 있으면 손님을 막을 수 없잖아요. 이왕이면 우릴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와주셨으면 하니까. 그리고 전 남산이 참 좋아요. 도시 중심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자연과 연결해주는 곳이 드물지 않나요?” 그는 일부러 1층의 테이블을 자유분방하게 배치했다. 동선이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서로 친분을 나누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다. 가파른 경리단길을 올라와 루프까지 찾아와서 인디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성향도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마니악한
“아버지 세대에게 돈이 생존의 목적이었다면, 우리는 그
도심 속 아지트,
돈을 어떻게 쓸지 관심을 기울이는 세대죠. 그래서 남들이
경리단길
좋다는 것보다 내가 좋은 걸 찾고 싶은 욕심, 내 걸 갖고
RUFXXX
싶은 기억. 그런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루프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이런 마음이 강할 겁니다.” 그는 청담동이나 홍대와 분명히 다른, 경리단길만의
가끔씩 ‘내 편’이 미치도록 그리운 순간이 있다. 아무
뚜렷한 문화가 생겨날 것이라 믿고 있다. 한 달에
사람이 아닌, 나와 비슷한 ‘동지’들을 만나 위로받고 싶은,
열 명꼴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모여들지만 아직
그런 순간 말이다. 대로에 있어 변별력 없는 사람들이 쉬
비어 있는 공간, 새로운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드나들어도 안 되고, 너무 유명해 문턱이 반질반질 닳아도
인터내셔널 커뮤니티를 가질 수 없어 답답했던 사람이
안 된다. 꽁꽁 숨겨놓고 나만 알고 싶은 곳, 이 도시 속
대부분으로, 벌써 자기들끼리 파티를 벌이며 친분을 쌓고
나만의 아지트는 어디에 있을까.
있다고.
이태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태원 경리단길을
“지난 2년 동안 무수히 많은 가게가 생겨났다 사라졌어요.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경리단길에서도 한 골목
맨 처음 여기 들어왔던 목적을 잊지 않으면서, 자기
들어간 이면도로의 주택가 사이에 감쪽같이 숨어 있는
공간을 잘 지켜나갔으면 해요. 콘텐츠가 있고, 그 뒤에
루프엑스(RUFXXX, 이하 루프)를 아는 사람은 더더욱
이야기가 이어져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드물다. 만약 알고 갔더라도 방문했던 모든 사람이 100% 재방문을 기약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만큼 루프는 열려 있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친절한 공간은 아니므로.
경
“이곳을 무어라 부르든, 보는 사람의 몫이죠.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바(bar)보다는 퍼포먼스를 위한 공간이라는 거예요. 매주 금, 토, 일에 열리는 공연이 메인이고, 바는 공연을 보러 오신 손님들에게 케이터링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까요.” 루프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형남 씨의 말처럼, 루프는
김형남 (RUFXXX 디렉터)
단독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 전문 바’다. 아니, ‘바가
한국에서 패션사진을 전공하고, 런던에서 영상연출을 공부했다. ‘소비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매주 금~토 저녁 9시부터 50분 동안 소리와 움직임을 결합시킨 ‘데일리 프로젝트’의 공연을 연출,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 중.
ADD.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5-27 TEL. 02-511-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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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33
단
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민감해야 하는 광고인, 특히 소비자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플래너로서, 핫플레이스의 변화는 흥미롭다. 청담동과 초기 가로수길의 키워드는 거리와의 ‘단절’에 가까웠던 것 같다. 들어 서기 전까지는 일상적인 서울의 거리에 서 있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외부와 단절되어 마치 뉴욕의 고백하건대, 나는 원래 걷는
트렌디한 바를 방문한 것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공간들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길을 세 개만 꼽는다면
개방된 ‘그들만의 리그’ 같은
두무개 다리길, 잠수교길, 남산1호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세로수길이나
터널로, 보다시피 음악을 볼륨 8
한남동 뒷길, 경리단길, 상수동
정도로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하는
어느 트렌드 서적에서 ‘Next
등은 오히려 결혼식 하객 복장으로
것이 더 어울리는 길들이다. 그런데
가로수길’에 대해 읽은 적이
방문하기엔 조금 과하다 싶은
얼마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있다. 내가 여느 팬시한 카페나
‘편안한 공간’이라는 점이 다르다.
우습지만 원인은 패션이었다.
레스토랑보다 가로수길에서
약간 소설을 써보자면, 트위터를
맨 다리나 스키니진에 러닝화를
훨씬 시간을 많이 보내기 시작한
위시하여 페이스북과 같이 자신의
장착하는 룩이 여전히 인기인
시점이 벌써 5~6년 전이니까,
생각을 다양한 사람과 공유하는
때, 나도 마음에 드는 러닝화를
지금의 가로수길 메인로드가
SNS가 인기를 얻고, 전 세계의
장만했다. 힐을 신고 얼마 못 가
삼청동의 그것이 겪었던 변화를
정보를 누구나 어디에서든 접근할
백기를 드는 심정으로 택시를 잡아
답습한 것은 슬프지만 당연하다.
수 있게 만들겠다는 구글이 가장
타던 때와는 달리, 발을 감싸는
특색 있는 가게들이 세로수길로
멋진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러닝화의 넉넉한 쿠션 위에서 좀 더
옮겨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의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여유롭게 길을 걷는 재미가 들었다.
사실 세로수길의 클라이맥스는
있는 것 같다. 여러 관념과 문화적
요즘 같은 계절인 것 같다. 날씨
취향이 섞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좋은 여름밤, 가게 면적만큼 넓은
시너지가 가장 트렌디한 요즘,
테라스가 이어지는 세로수길에는
‘단절’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서의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시간을
거리가 핫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내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홍콩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란콰이펑을 처음 가봤을 때의 느낌처럼 이 길은 힙하면서도 왠지 아늑하다. 언덕을 따라 거리 전체를 빼곡히 메운 바들이 테라스를 모두 열어젖힌 채,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엉키며 거리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받아들인 곳. 그곳은 화려하지만 지극히 호의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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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한강 북쪽의 골목길들에 부쩍 관심이 간다. 결혼과 동시에 거주지역도 바뀌고 자전거도 장만하고 나니, 여름밤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려 상수동의 카페에서 아이스 드립 커피를 마시는 한가로운 취미가 생겼다. Next 가로수길의 조건으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기존 핫플레이스와 가까우나 임대료가 약간 쌀 것,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길이 있을 것, 다국적 문화를 수용하기 좋은 환경일 것. 조심스럽게,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민감해야 하는 광고인, 특히 소비자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플래너로서,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한강 북쪽
맛있는 이자카야도 있으면 한다.
우리 집 앞 골목길을 핫플레이스로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아 골머리가
‘강추’해본다. 최근 집 앞 신축
썩을 때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건물에 괜찮은 베이커리가 들어오길
아이스 드립 커피를 흡입하고,
소망했건만 흔한 커피체인이 또
이자카야에서 제일 친한 친구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상심했던
인생의 고단함을 나누다 보면
마음을 달랠 겸, 집 앞 거리를 내
인사이트가 마구 솟아오를 것 같다.
맘대로 핫플레이스로 구상해보는
아, 모든 가게는 문을 활짝 열 수
상상을 한다. 천연발효 빵을 파는
있는 테라스를 두어 소통할 수 있는
작은 베이커리를 두고, 드립 커피도
분위기로 만드는 건 잊지 말아야지.
맛있지만 일단 분위기가 좋은
마지막으로 유럽 소도시마다
카페를 한 켠에 두어 친구들과
구시가지 중심터 시장에 자리 잡고
파티를 해도 좋겠다. 매일 한
있는 예쁜 식료품 거리가 이 길의
가지 메뉴만 만드는 가정식
일부이길 욕심 내본다. 요리와
가게도 섭외하고 특별히 우동이
건강한 먹거리가 초미의 관심인 시대, 이런 트렌디한 시장까지
핫플레이스의 변화는 흥미롭다.
열린다면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핫플레이스 종합선물세트가 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이 계획안 서울시에 민원 넣어볼까?
Text. Kim Yun Jung (Senior Planner, INNOCEAN World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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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NOTE Calligraphy by Bae Geum Byul (Creative Director, INNOCEAN World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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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INNOCEAN, MOMOT and Paper Toy
CO L L A BO R AT I O N
광고마케터 홍순상 대리와 카피라이터 이재훈 대리가 페이퍼 토이의 베테랑, 모모트(Momot)의 아틀리에를 급습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에서도 아기자기하기로 소문난 두 남자답게, 켜켜이 쌓인 박스를 조심스레 지나 바닥에 깔아놓은 인조잔디를 사뿐히 즈려밟는, 공손하고 곱디고운 급습이었다. 디자인만 빼놓고 다 잘하는 모모트의 수장, 박희열은 특유의 잔뼈 굵은 미소로 두 남자를 맞이했다.
종이로 통(通) 하다
Text. Lee Hyun Hwa (Editorial Dept) | Photography. Lee Seung Jun
손맛 좀 아는 세 남자,
손으로 만지는 즐거움이 통(通)하다 홍순상 대리(이하 홍) 광고마케터로서 꼭 한번 뵙고 싶었 습니다. 모모트는 모든 게 종이로 만들어지잖아요. 디지털 시대의 첨단에 와 있는 지금, ‘종이’라는 아날로그적 소재 를 택한 이유가 무척 궁금합니다. 박희열 제너럴매니저(이하 박) 음,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죠? 어렸을 때부터 ‘아트 토이’에 흥미가 많았어요. 그중
박 네, 없었어요. 물론 유럽과 일본에 ‘작가’ 개념으로는
에서도 피규어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자금이 부족해서 종
있었죠. 그런데 보통 디자이너가 만드는 장난감이라 하면
이로 시작했던 거예요.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라 종이를 잘
가격이 엄청 비싸잖아요. 일 억짜리 그림 하나 파는 것보
다루기도 했고, 종이로 왜 피규어를 못 만드냐! 하는 오기
다 백 원짜리를 여러 개 팔아서 일 억을 만들고 싶었어요.
도 있었고. 아날로그니 디지털이니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
대량생산을 해서 단가를 낮추면 보다 여러 사람이 우리의
죠.
아트워크를 경험해볼 수 있잖아요. 직접 보고, 평가하고,
이재훈 대리(이하 이) 종이로 만든 피규어라…. 확실히 신
의견도 나누고. 그런 게 더 재미있지 않나요?
선하긴 해요. 개인적으로 일러스트나 캐릭터 산업에 관심
이 음…. 아까 홍순상 대리가 모모트를 ‘아날로그적’이라
이 많아서 모모트를 쭉 지켜봤었거든요. 모모트 이전에 종
표현했었죠. 희열 씨는 계산한 부분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이로 무언가를 만들어 파는 업체는 없었죠?
저도 모모트가 아날로그적이란 데 동의해요. 직접 손으로 접고 풀칠해서 만들고, 그것을 소유할 수 있잖아요. 손으 로 만지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꽤 크더라고요.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부분 때문에 모모트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 네요.
저는 실력이 없는데 뻥을 치면 사기꾼이고, 실력은 있는데 뻥을 치면 사업가라고 생각해요. 디즈니한테도 ‘우리는 토이 분야에서 확실히 실력이 있으니 믿어보라’고 했죠. 본래 디즈니는 캐릭터 변형이 금지되어 있지만, 저희는 다 모모트식으로 바꿨어요.
박 폭넓은 팬층. 저희한테는 정말 중요한 가치예요. 마니 아 위주의 토이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기 울였어요. 모모트는 똑같은 형태에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재미를 주는 플랫폼 토이라 확실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이 가장 중요했죠. 기획만 1년이 넘었고 플랫폼이 완성되 기까지 1년 반이 걸렸네요. 홍 그러고 보니 모모트 멤버들이 대학 선후배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머지 세 분은 어디 계신 건가요? 박 저 너머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하 는 프로젝트만 10개가 넘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든 요. 막내는 얼마 전에 독립해서 나갔고, 지금은 3명이 같이 해요. 직원을 다 합치면 열두 명 정도? 저는 모모트의 전 체적인 방향성을 잡고, 기업 프로모션 등 모든 외부일정을 담당하고 있고요. 동생들은 오로지 디자인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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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아,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손으로 만지는 즐거움!
꿈에 대한 순수함이 통(通)하다
광고의 기본은 ‘공감’이지만, 광고 마케팅에서는 공감에
홍 사람들이 모모트에 이렇게까지 호응하리라 예상했었
앞서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과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
나요?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일반인은 기업 메시지에 별 관
박 전혀 아니었어요. 맨 처음 투자받으려고 한 열 군데 정
심이 없으니까. 그런데 모모트가 바로 장치, 그 자체 같아
도 찾아갔었나? 다 안 된다고 했죠.
요. 종이라는 친근한 소재에 정교함과 창의성을 입혀 관심
홍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였던 이유는?
의 대상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봐요.
박 음…. 솔직히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잖아요. 밑
박 두 분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수많은 소재 중 특별히
져야 본전이지 싶어서 용감하게 뛰어든 거죠. 그리고 제가
‘종이’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네요. 종이가 어찌 보
졸업한 호서대학교에서 많이 지원해줬어요. ‘학생벤처운
면 참 단순하지만, 그 표현방법이 무궁무진하더라고요.
동’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사업자등록부터 임대차계
이 저는 자칫 ‘키덜트’ 취향에 국한되었을 위험을 다양한
약서, 일할 사무실 등을 학교에서 도와주는 것이었죠. 그
콜라보레이션으로 승화한 부분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맨
렇게 벤처활동으로 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시작을 했는데,
처음 모모트를 알게 된 것도 <무한도전>과의 콜라보레이
당연히 처음부터 잘될 리가 없었죠. 모모트를 계속하기 위
션이었거든요. 빅뱅이나 나이키, 마블코믹스의 어벤저스
해서 그야말로 온갖 부업을 다 해봤어요. 종이비행기를 몇
시리즈 등…. 무수한 콜라보레이션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천 개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찌라시’ 디자인
폭넓은 팬층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도 했었고…. 공짜 사무실을 찾아 전전하느라 1년에 이사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통(通)하다 홍 이노션도 조직이 굉장히 방대하지만, 기본적으로 분업 체계예요. 그러다 보니 갈등이 많이 생기죠. 이 단계에서 를 다섯 번 정도 했던 것 같네요. 차 한 대에 컴퓨터 네 대
만들어져서 올라온 걸 다음 단계에서 못 받아들이면 그럴
를 싣고 임대 사무실에서 잠깐 작업하고, 다시 움직이고.
수밖에요. 그렇지만 그런 갈등이 또 의미가 있으니까, 싸
그런 와중에 사기도 당해서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우면서도 계속 의견을 교환하는 거죠. 1, 2, 3등 하던 분들
이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멤버들끼리 갈등은 없었나요?
과 함께 일하는데, 서로 주장도 강할 것 같고 갈등이 없지
박 제가 성격이 좀 강해서 동생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않을 것 같은데요.
초짜 티를 내면 프로세계에서 먹히지 않을까봐 뭐든지 완
박 이 친구들은 완전 디자이너구요, 저는 완전 ‘돈’만 봐
벽하려고 했달까. 아직 동생들이 그럴 마음이 없는데도 제
요. 딱 두 갈래인 거예요. 그러니 대립이 될 수밖에 없어요.
가 그걸 억지로 주입시키려다 보니 자꾸만 윽박지르게 되
제가 볼 땐 정해진 시간 안에 넘기는 것이 중요한데, 디자
홍 아웃풋이 확실하니까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일에 대한
고. 그땐 다들 힘들었어요.
이너 입장에선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만지고 싶고
분담이 확실히 잘되어 있는 것 같군요.
이 위기를 넘긴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욕심이 생기겠죠. 그래서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확
박 저희 넷의 꿈이 비슷했어요. 남의 밑에서 일하느니 장
실히 배고픔 앞에 장사 없더라고요. 배고픔이 모든 걸 해
준비된 열정, 그 하나로 통(通)하다
렬히 내 사업을 해보겠다는 꿈. 저 말고 나머지 셋은 과에
결해줬어요. 그래도 지금은 저도 배운 게 있어서 어느 정
이 아까 모든 프로모션을 기업에서 제안받았다고 하셨는
서 1, 2, 3등을 하던 애들이었는데, 3천 원짜리 삼겹살 사
도 의견을 조율하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데, 맨 처음 시작은 어떻게 하셨나요?
주면서 꼬셨거든요. 내가 이런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네
이 음, 그래도 디자인팀 내부에서 선호하는 방향이 다를
박 2010년이었나. 첫 프로모션이 나이키였어요. 네 명 다
가 1년 동안 취업 안 하면 돈 벌게 해줄게. 만약 지금 나와
수 있잖아요. 상품 하나를 내놓는 과정에서 누구의 디자인
참 좋아하는 브랜드였고, 그래서 프로모션을 하기 전에 우
약속하면 부자가 될 것이고, 다른 데 취업하면 넌 배반자
을 쓸 것인가 하는 결정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리끼리 모모트로 나이키를 만들어봤었죠. 마침 상상마당
다. (웃음) 그래서 교수님들이 절 되게 싫어하셨죠. 학교에
박 저희들은 친하지만 작품에 관해서는 서로 주장이 강
에서 무료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나갔더니, 운 좋게 나이키
서는 이 아이들 유학까지 보낼 생각이었는데, 제가 잡아버
해요. 하지만 디자인은 결국 상업적인 거잖아요. 소비자가
담당자가 놀러 오셨던 거예요. 바로 다음 날 연락이 오더
린 셈이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교수님들이 아무리 뭐라
더 선호하는 것, 많이 팔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최대한
라고요. 3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만약 그 시간 안에
고 하셔도 ‘보는 눈은 있습니다. 못 그려서 그렇지’ 하면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고요,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즉석 평
모든 걸 준비하라고 했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
꿋꿋이 버틴 보람이 있네요.
가단을 만들기도 해요.
데 우리는 미리 다 해놨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홍 그 정도로 설득할 정도였으면 뭔가를 본 것 아닐까요?
이 가끔 디자이너가 자기 의견을 관철하다가, 더 대박을
있죠.
가능성이 있겠다는. 혹시 그 말로만 듣던 천재?
낸 사례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역시,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박 아니요! 저는 어떻게 보면 참 감으로 움직이고 기분파
박 마블이 그런 경우였어요. 계약을 하려고 봤더니, 마블
느낍니다. 저도 명색이 카피라이터라, 이것저것 창의적인
예요. 그걸 동생들이 많이 완충해주죠. 어느 날 미팅하고
의 미니멈 개런티가 생각보다 너무 크더라고요. 그때 자금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기회가 되면 모모트와 함께
기분이 잔뜩 업 돼서 ‘5만 개 주문해!’ 하고 지르려 하면,
사정이 별로였거든요. 저는 하지 말자고 했지만, 디자이너
뮤직비디오나 팝업북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새로
‘형, 그냥 만 개만 넣어요.’ 이러면서 이성을 찾아줍니다.
들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죠.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가
운 아티스트나 스토리텔링을 결합하면 재미있는 결과물
처음 하자고 한 사람이 다 책임져라. 하고 반 농담으로 진
이 나올 것 같네요.
행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난 거죠. 올해 3월에 시작해서
홍 저는 제 모티베이션 중 하나인 자동차와 관련된 콜라
지금까지 반응이 무척 좋아요.
보레이션이 떠오르네요. 현대자동차 각각의 캐릭터를 잘
홍 브랜드와 직접 접촉을 하신 건가요?
잡아서 자동차 전 라인업을 모모트화하는 것도 의미 있을
박 네. 저희는 다 직접 계약에 들어가요. 프로모션 같은
것 같습니다. 기존 브랜드 외에 타 브랜드 오너에게까지
경우는 다 브랜드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어요.
현대자동차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그럼 브랜드 담당자가 기대하거나 바라는 게 많지 않
박 저야 물론 기회만 주시면 언제든 재미있게 일을 벌일
던가요? 제약도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크리에이터가 몽땅 모
박 장난 아니죠. 저는 실력이 없는데 뻥을 치면 사기꾼이
여 있는 이노션이니, 더 스릴 있는 작업이 되리란 예감이
고, 실력은 있는데 뻥을 치면 사업가라고 생각해요. 디즈
드네요. 얼마 후면 정든 이곳을 떠나 더 큰 사무실로 옮길
니한테도 ‘우리는 토이 분야에서 확실히 실력이 있으니 믿
예정인데, 어디 또 대박 한번 쳐볼까요?
어보라’고 했죠. 본래 디즈니는 캐릭터 변형이 금지되어 있지만, 저희는 다 모모트식으로 바꿨어요. 아마 우리나라 에서 최초일걸요. 다 잘난 동생을 둔 덕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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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하는 걸 좋아했어요. 섬세하고 코 파는 걸 좋아하고, 낙서도 많이 합니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지만 꼭 일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해두지요. 학창시절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일러스트 작업을 하기도 했고요. 아마 이런 성향이 있기에 최근 ‘KT WARP 버스커버스커편’ 아이데이션 작업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네요.” - 이재훈
이재훈 대리(Copywriter, INNOCEAN Worldwide)가 만든 천둥의 신 ‘토르’. Marvel Comics와는 다른 모모트만의 개성이 잘 녹아 있다.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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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섬세한 수작업을 통해 뭔가가 완성되는 과정에 굉장한 매력을 느낍니다. 어려서부터 프라모델이나 목공예, 인쇄해서 만드는 각종 종이 인형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있지 않나 싶어요. 수만 개의 부품이 조립되어 완성되는 자동차는 늘 저의 모티베이션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제가 하는 일이 광고회사에서 가장 창의력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렇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 홍순상
홍순상 대리(Marketer, INNOCEAN Worldwide)는 또 다른 Marvel Comics 시리즈의 주인공인 ‘아이언맨’을 만들었다. 역시 그의 자리에서 직접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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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N T H E LI M E L I G H T
OPEN YOUR EYES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노션 월드와이드이기에 할 수 있었던 ‘멋진 사고’가 일어났다. 기아자동차의 RAY 와 글로벌 SPA 브랜드 H&M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낸 것. 그것은 단순한 자동차와 패션의 만남이 아니 었다. 장장 1년에 걸쳐 마케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세 명의 용감한 이노시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RAY + H&M,
제대로 뭉치다
Text. Lee Hyun Hwa (Editorial Dept) | Photography. Lee Seung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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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18일에 언론홍보용으로 진행된 RAY 아트카와 모델 촬영. RAY 아트카에 사용된 그림은 시각장애인 미술교육 프로그램인 ‘우리들의 눈’ 작품으로, H&M 압구정점 건물 외벽에도 전시되어 있다. 한편, 남녀 모델 역시 ‘우리들의 눈’ 작품을 활용해 디자인한 OPEN YOUR EYES 컬렉션을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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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M 압구정점의 쇼윈도에 디스플레이된 OPEN YOUR EYES 컬렉션. 남녀 각각 일곱 가지 스타일의 티셔츠와 탱크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OPEN YOUR EYES 컬렉션은 H&M 전 매장에서 한정으로 판매되며, 수익의 25%가 시각장애인 창의예술 프로그램인 ‘우리들의 눈’에 후원된다. 3 이번 OPEN YOUR EYES 프로젝트를 처음 발안한 SI팀 김양아 차장. 행사 내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출몰하며 엄청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4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로모션팀 홍성국 차장과 SI팀 남재영 차장이 기아자동차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5 고생한 만큼 예쁘게 나와 모두가 만족한 케이터링. 그 중에서도 RAY 로고가 들어간 형형색색의 마카롱이 단연 인기였다. 6 저녁 7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론칭 파티. 이날 소녀시대, 손태영, 유진, 장재인, 정겨운, 슈퍼주니어, 유키스, 여진구 등의 셀러브리티가 OPEN YOUR EYES 컬렉션을 입고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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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N T H E LI M E L I G H T
WE KNOW THE PIZZA! 지난 6월 7일, 파주 헤이리마을에 심상찮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북카페 하나를 점령한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조명과 카메라,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만드는 도미노피자의 새로운 맛 Text. Lee Hyun Hwa (Editorial Dept) | Photography. Lee Seung Jun
마이크를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련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화덕에 피자를 굽기 바빴다. 고소하면서도 달달한 피자냄새에 슬슬 배가 고파질 무렵, 새카만 차에서 도미노피자의 새 모델인 정일우와 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디!” 여자스태프의 경쾌한 목소리가 모두를 긴장시켰다. 나무 바닥에 발소리가 울릴세라 조심조심, 모두가 숨죽여 지켜봤던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첫 도미노피자 CF 촬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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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촬영현장을 지켜보는 CR팀의 김정아 CD와 김배성 대리. 이날 촬영은 의욕적인 두 모델 덕에
“오늘의 촬영
훈훈한 분위기
포인트는요….”
속에서 매끄럽게
촬영스태프가
진행되었다.
도미노피자의 새
김정아 CD는 때론
광고모델인 정일우와
진지하게, 때론
수지에게 설명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있다. 이노션
여유 있게 현장을
월드와이드에서는
지휘했다.
기존 도미노피자의 ‘We Know the Pizza’ 슬로건을 그대로 살리되, Maker의 관점에서 Consumer의 관점으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다른 경쟁 브랜드가 선보여온 원톱, 혹은 그룹 모델이 아닌 남녀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정일우와 수지는 도미노피자의 유저로서, 실제 피자를 먹을 것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소비자 호감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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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눈으로
#.02 식품 CF의 생명은 무엇보다 제품을 맛있게 연출하는 것.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 비주얼을 만들어내기 위해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피자가 만들어졌다. 최상의 재료를 엄선하여 토핑 하나하나 정성껏 다듬은
잠깐의 휴식시간 뒤
피자를 구워내는
다시 촬영에 돌입한
과정은, 마치 장인이
CR팀. 아까보다는
도자기를 빚는 것과
훨씬 긴장이
같은 엄숙한 풍경을
풀린 모습이다.
자아냈다.
“생각보다 더 잘 나올 것 같은데?” 같은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라 지겨울 만도 한데, 촬영장에는 웃음소리가 줄곧 떠나지 않았다.
#.03 촬영장소가
북카페인지라,
장소의 제약이
어느 정도 있던
상황. 광고 촬영
전문 스튜디오가
아니다 보니 공간이 비좁아 모니터링은 아래층에서
이루어졌다. 화이트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기획팀의 이형석 차장과
기획팀의 서희곤
의욕에 가득 찬
국장과 조병훈
이세라 사원의 모습.
대리가 다른 일정을
모니터에 비친 촬영
마친 뒤에 합류했다.
장면은 현장에서
서희곤 국장은 오전
보는 것과 또 다른
동안 진행된 상황을
느낌으로 다가왔다.
체크한 뒤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모니터링 내내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제 도미노피자의 새 광고에서 단어 하나, 자막 하나, 컬러 하나까지 모두 도미노피자가 연상되는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치밀한 기획력을 TV에서 직접 확인해 볼 일만 남았다.
BE B RAVE
CANNES LIONS 2012 with
INNOCEAN Worldwide 2012. 6. 19 & 2012. 6. 23 PLACE | CALTON BEACH TITLE | OPENING & CLOSING GALA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후원하는 음악과 영상쇼를 곁들인 갈라 디너 현장. 칸 국제광고제는 전통적으로 별도의 개막식과 폐막식 없이 갈라쇼로 행 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한국 기업 최초로 세 계 최대 광고 축제인 칸 국제광고제 오프닝과 클로징 갈라의 스폰서를 맡 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파티를 주최했다. 전 세계의 크리에이터가 참 석하여 서로 끈끈한 교류를 나눈, 무척이나 뿌듯한 순간이었다. 한편, 이 노션 월드와이드는 이번 칸 국제광고제에서 동상 5개를 수상하며 창립 7년 만에 본상을 거머쥐었다.
2012. 6. 17 ~ 2012. 6. 23 PLACE | PALAIS DES FESTIVALS TITLE | VISIT HYUNDAI CAR EXHIBITION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칸 국제광고제의 오프닝과 클로징 갈라 이외에 6월 17일 부터 23일까지 현대자동차 Veloster 전시를 통한 클라이언트인 현대자동차의 브랜딩도 함께 진행하였다. 아름다운 칸의 자연과 어우러진 컨셉으로 행사장 메인 광장에 전시되었던 Veloster는 광고제 참석자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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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 DEBUSSY THEATRE, PALAIS DES FESTIVALS TITLE | RE:GENERATION MUSIC PROJECT : THE EVOLUTION OF BRANDS AND ARTISTS IN THE CREATIVE PROCESS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칸 국제광고제에서 창립 이래 최초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2011년 현대자동차 벨로스터 론칭 캠페인 ‘Re:Generation Music Project’의 Creative Platform에 대한 토론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이 패널로 참석해 큰 호응을 얻었다. DJ 겸 뮤직 프로듀서인 Mark Ronson, 음악기획사 GreenLight Media & Marketing의 총감독 Nick Davidge, 그리고 이노션 월드와이드 미국법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Tom Pettus가 전 세계 Creative Community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또한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인 Amir Bar-Lev가 세미나 Moderator로 참석 했다. 또한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Microsoft Advertising과 공동주최로 Beach Club Concert를 열기도 했다. 세미나 패널인 DJ Mark Ronson과 보 컬리스트 Erykah Badu의 공연을 포함, 총 22명의 아티스트들이 흥겨운 공연을 펼쳤다.
2012. 6. 20 | 1:30PM ~ 2:15PM
CREATOR’S NOTE Photo and essay by Jon Lane (Art Director, INNOCEAN Worldwide Canada)
“Where there are trees standing in the water.” 이 말은 원래 토론토의 어원이 된 Tkaronto의 의 미입니다. Tkaronto는 원래 북미 동부지역에 살던 모히칸족의 언어인데, 5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 호수 옆에 나무가 많은 도시이니 정확한 묘사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독특한 개성과 문화 와 다채로움을 지닌 토론토 거리의 간판과 그라피 티 아트, 포스터 등에서 다양한 타이포를 촬영하 여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모두 다른 모양의 이 글 자들로 토론토의 거리가 나에게 주는 크리에이티 비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토론토에 대 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큐 형식의 사진을 찍기보다는 이러한 토론토의 특성을 간판, 그라피티, 행사 고지 광고물 등 토론 토 길거리 곳곳에 있는 다양한 타이포를 촬영하여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02 60
CREATOR’S NOTE Photo and essay by Nelson Quintal (Creative Director, INNOCEAN Worldwide Canada)
“City in Transformation” 도시의 길은 계속 변화하고 쉬지 않고 모습을 바꿉니다. 도시는 당신의 눈 앞에서 계속 진화합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마천루들이 들어서고, 주차장이었던 곳이 호텔의 수영장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문화의 씨앗이 뿌려지고 그 형태를 바꾸어가며 번창해나갑니다. 길 위에 서면 길은 다양한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도시의 모습, 소리와 컬러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감정을 불어넣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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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TRE ND R EPO RT
Draw
something
You Want 너의 마음을 그려봐 Text. Seo Jae Woo (Editorial D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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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과
한 느낌의 ‘아날로그(Analog)’를 담아야 한다. 점점 더 미
화려한 기능의 게임에
니멀해지고,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며 정서적 동 물인 인간의 다양한 감정 또한 배려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있다.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의 크기와 해상도가 경쟁적으로 늘
스마트폰의
어나며 필기 입력이나 그림 메모 등에 대한 요구도 따라
디스플레이 기능이
서 커지고 있다. 보다 민감해지고 정확해지는 입력기능
확대되면서
의 발달과 더불어 메모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영역이 확대 되어 펜과 같은 스마트폰 액세서리도 잇달아 출시하고 있 오래전부터 6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통해 사람들이 드
다. 손가락으로 뭉툭하게 입력했던 예전의 두터운 선이 아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로잉이라는 예술을 세상에서 가장 쉽게 만나고 즐길 수 있
니라, 삼성전자의 S펜, LG전자의 러버듐펜 등과 같은 전
앱과 함께
도록 도와주는 시도를 했던 김충원 교수는 그림 그 자체의
자 펜을 통해 머릿결과 질감까지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세
그림을 매개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한 터치가 가능해졌고 여기에 여러 가지 효과를 부과하
“그림을 그리면 세 가지 즐거움이 있어요. 첫째는 몸을 쓰
는 애플리케이션은 그림을 그리는 기능 그 자체를 강조해
니 육체적 감각이 살아나는 ‘감각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ART RAGE,
되고, 둘째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의 즐거움’이 일어
SKETCHBOOK 등의 앱들이 탄생. 수채화, 아크릴, 수묵
나며, 셋째는 그리거나 만들어놓은 것을 보는 ‘시각적 즐
화 등의 기능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종이의 재질까지
스마트폰 세대들이
거움’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미술이라는 장르는 음악이
선택할 수 있다. 애정과 노력을 쏟아 부은 나만의 작품을
지금 열광하고 있는 것은
나 문학과 달리 온전히 시각적 산물이라 자기가 만든 작품
SNS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곁들여짐은 물론이다.
그림 그리기
을 자기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리는 행위에 앞서 말한 SNS기능이 더해진다면 어떤 프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더할 수 없는 충족감과 안정감을 주
로그램들이 탄생할까? 눈앞에 놓인 작은 화면을 통해 연
지요. 다시 말해 잘 그렸든 못 그렸든 사람들은 자기가 그
결된 수많은 사용자는 빠른 LTE 속도 위에서 커뮤니케
린 그림을 보고 눈을 의심하며, 잠시 동안이라도 스스로를
이션을 즐기고 있다. 예를 들면 ‘DRAW SOMETHING’
기특해하고 감동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각예술,
과 ‘캐치마인드’. 위 게임들은 그림을 그려서 단어를 맞히
바로 그림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자아도취적인 매
는 PICTIONARY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실시간으로 여
력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림을 통해 만나
러 명이 한 방에 들어와서 한 사람이 그리고 나머지가 맞
는 이 세 가지 차원의 즐거움은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을
추는 방식인데 스마트폰의 특성을 매우 매력적으로 표현
위로하고 치유한다는 것입니다.”
해내고 있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그림 그리기는 마우스
그리는 행위에는 세상과 자신이 세운 잣대에서 벗어나 본
의 그것과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유저들의 아
연의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오감을 깨우는 과정이 담겨 있
날로그 감성을 제대로 자극해 현재 1750만 건의 다운로드
다. 그래서 그림은 직관적이고 본능적이다. 아기들은 말과
를 돌파. 게임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유저 외의 사람을 오
글을 알기 전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이 닿
랫동안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는데
는 곳이라면 어디든 낙서를 하면서 논다.
‘DRAW SOMETHING’은 그 기다리는 것을 ‘시청하는 재
서로 소통하며 즐기는 게임에 이르기까지
이다.
미’로 바꾸어놓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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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캔버스
로운 재미로 다가왔다. 손바닥 화면이 제공하는 무한한 여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어 용기 있게 펜을 들어보지만 아무
백은 손가락 끝과 닿아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하
것도 그리지 못할 때가 있다. 자신의 형편없는 그림실력
고 있다.
을 떠나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움이
처음에는 음성 통화에서, 문자로, 그리고 그림으로. IT의
필요하다면 최근에는 편하게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볼 수
기술은 날로 발전해가는데,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있는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서도 간단한 낙서와 그림을 그
과 표현 방법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향하는 듯한 모습도
려볼 수 있다.
느껴진다. ‘무선 전화기’에서 ‘디지털 캔버스’로 진화한 기
최근 스마트 기기들의 특징은 편리함 가운데서도 아날
술과 함께 커뮤니케이션과 놀이의 영역을 하나로 합치는
로그적 감성을 담아냈다는 것. 차가운 느낌의 ‘디지털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인류에게 주어진 이 새
(Digital)’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그 속에 감성적이고 따뜻
로운 캔버스는 무한 질주 궤도로 진입 중이다.
TRE ND R EPO RT
New Homo Faber
takes
His Tools 생산의 즐거움, 노동을 위한 조건 Text. Kim Min Kyung (Editorial D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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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하는 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는
텍사스대학의 심리학 교수, 샘 고슬링은 자신의 저서인
이 장면을 지켜보면 끊임없이
<스눕 (Snoop: What Your Stuff Says about You)>에서 사람들이 물건에 집착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힐 수는
도구에 집착하는 이들을 이해하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용적인 이유로 물건을
된다. 다만 이제는 생산 그 자체를
모으거나, 수집하는 행위 자체에 도취되거나 또는 추억을
위해서라기보다 도구를 소유하고
회상하기 위한 감상용으로 끊임없이 물건에 집착해 왔다.
있고, 다룰 줄 안다는 즐거움으로 그
요즘 세상의 이목을 끄는 수집가들은 우리가 ‘감상적 수집
최근 취미와 관련된 업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
증 환자’라 부를 수 있을 만한 특징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
연코 아웃도어 산업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주 5일 근무
신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이나 사건 또는 사람을 떠올리
제를 기점으로 등산 등의 취미활동 인구가 늘면서 업계는
게 하는 물건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의 장난감, 가족과 함
해마다 두 자리수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글램핑’
께 떠난 휴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 할머니의 컵 같은
(글래머러스한 캠핑이라는 뜻으로 고가의 캠핑 용품을 사
물건에 개인의 기억을 담아 소중하게 수집한다. 그들에게
용하는 캠핑을 뜻함) 인구가 늘어나며 프리미엄 캠핑 상품
수집이란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며, 수집품을 음미하는 시
의 매출도 증가하고 있으며, 여름에 일시적으로 놀러 가는
은 칼 세트 등의 주방용품이다. 주방용품에 대한 관심은
간 역시 소중하게 여긴다.
‘바캉스족’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캠핑을 즐기는 매니아층
비단 국내의 얘기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작년의 대지진
최근에는 그 수집의 대상이 ‘도구’로 옮겨가고 있다. 완성
을 중심으로 글램핑 관련 상품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과 원전 사고 이후, 외식을 삼가고 가정에서 음식을 만들
품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수집의 대상
이 글램핑 족들이 텐트와 각종 장비를 장만한 이후에 관
어 먹는 경향이 두드러지며, 주방용품 매장도 활기를 띠고
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변화이다. 빈
심을 두는 쪽도 역시 캠핑에 필요한 도구들이다. 캠핑 브
있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전반적
티지 옷에 관심이 많던 이는 집에 미싱을 들여 놓는다. 발
랜드인 스노우피크(SNOW PEAK)에서 만드는 동헤드 펙
인 경기 부진에 영향을 받아 주방용품의 수요 또한 줄어들
품을 팔아 하나뿐인 에디션을 찾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해머나 장작용 수제 손도끼 같은 아이템이 대표적이다.
었다고 하지만, 실용을 강조하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개발
리폼 작업도 하던 이들이 그도 성에 안 차 자신에게 어울
텐트를 칠 때나 걷을 때 사용하는 해머의 머리 부분에 황
과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시 집에서 요리하는 이들이 증가
리는 옷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식이다. <프로젝트 런웨이
동을 덧댄 펙 해머는 한 번 텐트를 치고 나면 그 노동의
하고 있다고 한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살피지 않아도 건
코리아> 시리즈나 최근의 드라마 <패션왕> 처럼 주인공이
흔적이 그대로 황동 부분에 새겨지게 된다. 한 번 캠핑을
강을 위해 스스로 요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거나,
디자인을 하고 미싱을 사용하여 완성작을 만들어내는 과
다녀 온 기억이 이 펙 해머에 고스란히 담기는 셈이다. 일
요리하는 남성에게 더 호감이 간다는 자료쯤은 어렵지 않
정이 담긴 내용도 이 열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품 브랜
반 망치라면 다른 금속보다 무른 황동을 사용할 리가 없
게 찾을 수 있다. 파스타 한 가지 정도는 능숙하게 조리하
드의 핸드백이나 구두를 소비하는 것보다 전문가들이나
다. 사용할수록 빨리 닳기 때문이다. 만약 기능만 생각한
거나, 나만의 특별한 레시피를 갖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사용하는 미싱을 구입하여 스스로 생산하는 사람이 된다
도구라면 이보다 쓸모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캠
되었을 정도이다. 숱한 요리 블로그들 사이에서 점차 남성
는 데에 더 큰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핑의 기억을 간직해주고 증언해주는 데에는 또 이만한 도
블로거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서로 연관이 있을 것이다.
구도 없다. 캠퍼들 사이에서는 이 동헤드 펙 해머가 닳는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고 즐거운 창작
것을 느끼기 위해 캠핑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도
행위로 요리를 즐기는 이들에게 주방 도구는 당연히 예술
있을 정도이다.
을 위한 도구로 여겨진다. 식재료에서부터 주방기기, 테이
목적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블웨어에 이르기까지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들에 ‘요리하는 이들의 시대가 왔다’
게 도구는 역시나 중요하다. 독일의 졸링겐 지방에서 생산
스타일이 아니라 요리가 중요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한
하는 강철로 제작한 주방용 칼 세트, 프랑스산 주물 냄비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을 지켜보다 보면, 유난히 눈에 들
와 100% 스테인레스 소재의 프라이팬, 실리콘으로 제작
인간에게 도구가 어떤 의미를
어오는 것이 다양한 사이즈의 주물 냄비와 쉐프 못지 않
한 스파출라에 이르기까지 애써 잘 고른 식자재의 영양소
지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이다.
를 파괴하지 않고 요리의 모양새를 위해 도구는 그 무엇보 다 소중하다. 인간에게 도구란,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자로서의 자부심 을 뜻한다. 생산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우리는
유인원에 불과했던 인류가 우연히
이 자부심으로부터도 멀어졌던 것은 아닐까? 21세기 호모
손에 넣은 도구는 허공을 가로질러
파베르(Homo Faber)에게 도구는 생산이자 놀이이다. 우
우주선으로 변신한다. 65
리의 먼 조상이 그러했듯이.
TRE ND R EPO RT
The Opening of
Public Information 공개하라 그러면 풍요로울 것이니 Text. Lee Hee Wook (Editor-in chief of 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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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게 해줬다. 지금껏 버스정류장 안내 화면에서나 볼 수 있
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라 호주 정부는
모바일 혁명을
었던 정보였지만, ‘서울버스’는 누구나 스마트폰에서 손쉽
2010년 5월부터 수상과 내각, 법무부장관 등으로 구성된
게 확인할 수 있게 바꿨다.
‘정부2.0 주관그룹’ 주도로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불러일으킨
허나 얼마 뒤, ‘서울버스’는 제 기능을 잃었다. 서울시와 경
한국도 2000년대 들어 ‘전자정부’ 추진을 위한 풀무질을
스마트폰의 미래는
기도가 서비스를 중간 차단했기 때문이다. ‘서울버스’는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전자정부란 기존 프로세서를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서울시 웹사이트에 공개된 정보를 가져다 서비스로 구현
온라인으로 옮기거나 자동화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꽁
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불법’이라고 했다. ‘서울버스’ 앱은
꽁 가둬두고 시민이 요구할 때만 생색내듯 찔끔 풀어주는
GPS 정보를 활용하는데, 그러려면 사전에 사업자 등록을
정보가 무슨 소용 있나.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정보를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공공정보
살찌우고, 이 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만들어
이지만, 함부로 가져다 쓸 수 없는 정보. 우리 상식에 비춰
디지털 경제를 살찌우고, 이렇게 구축된 시스템이 우리네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도시를 살찌우는 그런 ‘열린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바꿀
공공정보는 공공의 것이어야 한다
제2의 ‘서울버스’ 앱을 기다린다
거대한 흐름이
‘서울버스’ 앱 사건은 우리가 공공정보 개방을 목청껏 외
국내에서도 느리지만 뜻깊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행
쳐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공공정보란 무엇인가. 정
정안전부는 지난해 중순부터 ‘공유자원포털’(http://www.
부나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정보, 즉 데이터다.
data.go.kr) 서비스를 열고 국가가 보유한 공공정보를 한
여기엔 서울지역 버스 운행정보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
곳에 모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2012년 6월 현재 22개 기
체 예산, 공공 도서관이 보유한 도서 목록이나 전국 초중
관에서 모은 648종 정보를 제공한다. 지방자치단체 가운
그것은
고교 급식정보까지 방대하고 다양한 정보가 포함된다.
데는 서울시가 ‘열린데이터광장’(http://data.seoul.go.kr)
모바일 서비스와 결합한
이들 가운데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될까.
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이나 기업
안타깝지만, 우리는 코끼리 다리 만지는 장님에 불과하다.
은 서울시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가공해 원하는 서비스를
방대한 공공정보 가운데 접근할 수 있는 항목은 많지 않은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이 서비스 혜택은 결국 시민에게 돌
탓이다. 주된 까닭은, 공공기관이 정보 공개를 꺼리는 데
아간다. 그러니 서울시도 손해 볼 것 없잖은가.
있다.
제2의 ‘서울버스’ 앱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교육이나
모름지기 공공(公共)이란 무엇이던가. 공동체(公)에 귀속
의료정보, 공원이나 학교 같은 공공 시설물 정보부터 중
2009년 말, 한국에 아이폰이 들어왔다. 그 전까지 휴대폰
되고, 널리 나누는(共) 것 아니던가. 정부기관이나 연구소
앙·지방정부 예산이나 정책 보고서까지 우리가 활용할
이란 이동통신사가 미리 넣어준 기능만 쓰도록 만들어진
가 만든 수많은 보고서는 왜 한두 번 인용되고는 사무실
만한 데이터는 널려 있다. 정부 역할은 두 가지다. 시민사
물건인 줄 알았다. 휴대폰에서 인터넷을 쓰려면 ‘nate’나
캐비닛에서 먼지에 쌓여 잊혀야 하는가.
회가 공공정보를 쉽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show’, ‘ez-i’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
‘정부2.0’에 대한 요구는 그래서 당위성을 얻는다. 시민이
과 ‘데이터’를 만들어주고, 민간이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다. 천문학적인 이용료가 각인시킨 무선인터넷 공포는 또
자유롭게 참여해 정보를 쌓고, 이를 누구나 손쉽게 소비하
경쟁하도록 심판을 보는 일이다. 공공정보를 활용해 다양
어떠했던가. 휴대폰에서 와이파이로 사실상 공짜로 인터
도록 개방하고, 이를 활용해 더 나은 정보를 만드는 선순
한 서비스를 만들고 경쟁하며 도시를 풍요롭게 만드는 건
넷을 누리고, 원하는 기능은 응용 프로그램(앱)으로 깔아
환 체계를 구축하자는 운동이다. 한마디로 ‘참여, 개방, 공
시장의 몫이다.
쓰는 이 평범한 진실을 우리는 몰랐다. 아이폰이 들어오기
유’의 정부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전까지.
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른바 ‘웹2.0’ 흐름과 더불
아이폰에 모바일 천지를 개벽할 무렵, 공공정보 영역에서
어 공공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선순환하자는 정부2.0
도 조용한 혁명의 불씨가 일었다.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
운동도 불씨를 댕겼다. 호주 정부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자마자 인기 앱으로 사랑받았던 ‘서울버스’에 대한 이야기
호주 정부는 2009년 6월 산학연 전문가 15명으로 구성
이다.
된 정부2.0 태스크포스팀(TFT)을 일찌감치 꾸리고 공공정
‘서울버스’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유주완 군이
보 개방을 위한 풀무질을 시작했다. 그해 9월에는 정부의
만들었다. 서울지역 버스 운행정보를 손쉽게 검색하고, 내
주요 공공정보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 조
가 타려는 버스가 어디쯤 오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
건으로 공개했고, 12월에는 정부2.0 정책을 제시하는 보
첨단의 게임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생활을
바로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공공정보의 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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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N T E M PO R A RY A RT
Let´s color the world! 그림은 반드시 새하얀 캔버스에 그려야 하고, 조각 작 품과 사진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되어야 할까? 꼭 그 렇지만은 않다. 어떤 예술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예술 의 고전적인 수법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가 건물 벽이
Street Art Utopia 나 전봇대, 공중시설물 등등 도시의 산물을 도화지 삼 아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작품을 설치한다. 즉, 구태 의연한 예술의 행위에서 벗어나, 언제 어디에서나 예 술의 자유분방함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가들
뒷골목에 새겨진 거리예술가들의 자유와 정신 Text. Seo Jung Im (Senior Editor of Kyunghyang article)
이 바로 ‘그라피티아티스트’ 혹은 ‘스트리트 아티스트’ 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그들은 주류에 편승하기보다 는 언더그라운드 아트 채널을 추구하며, 친대중성을 전제로 장소의 구속됨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창 작의 자유를 누리며 삐뚤어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제 스처를 서슴없이 표출한다. 해서 이번 호에는 세계 곳 곳을 돌아다니며, 유머러스하면서도 그 안에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진지한 장난을 거리에 펼치는 스트리 트 아트계의 대표 주자 3인방을 소개한다.
Mark Jenkins
Banksy
JR 69
그라피티아트의 바이블, 뱅크시 그라피티아티스트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영국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뱅크시(Banksy)’이다. 그는 철저 히 신분을 감춘 채 이름조차 가명을 쓰며 그림을 그리는, 즉 ‘익명성(Anonymity)’을 무기로 하는데, 속칭 얼굴 없는 아트 테러리스트, 게릴라 예술가 등으로 불리는 뱅크시가 구사하는 전략은, 형식적으로 스프레이 페인트로 벽에 그림을 그리 는 그라피티아트이자 팝아티스트, 공공미술작가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래서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바탕재료는 길거리의 ‘벽’이다. 기법도 단순한 스텐실 프린팅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그의 행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게릴라 아티스트라 는 별칭에 걸맞게 주로 정치에 대한 풍자, 환경에 관한 문제 제기, 자본주의 비판, 반전과 평화 등 부조리한 세상의 진면 목을 고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실천은 ‘패러디’와 ‘차용’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명화나 미키마우스와 같은 팝 아 이콘, 유명인사 등을 작품 내부로 끌어들여, 조롱과 야유 따위를 패러디로 명기한다. 에드워드 호퍼(Hopper Edward) 의 <Night Hawks>와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의 <The Singing Butler>를 각각 권력의 횡포(Hopper)와 반전 (Vettriano)의 개념으로 패러디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작 <Mona Lisa>를 ‘바주카포’를 들고 있는 모나리자로 둔 갑시키고 엉덩이를 들추고 있는 모나리자를 통해 미술명작으로서 절대성을 자랑하는 특유의 권위의 탈을 벗기기도 했 다. 한편, 그의 작품에는 쥐와 아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영국 골목골목마다 뻔질나게 등장하는 ‘쥐’의 경우 평화마 크를 목에 걸고 A(무정부주의를 뜻하는 아나키즘(Anarchism)의 맨 앞 글자)자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는가 하면, 경찰과 함께 나란히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쥐의 메타포는 시궁창을 뒤지는 존재가 평화를 요구하고 자유를 달라고 하며 인간 의 권위에 거세당한 불특정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쥐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의 경우엔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에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자기 몸보다 큰 폭탄을 껴안으며, 네이팜탄에 놀라 발가벗고 길 위 를 내달리던 <베트남소녀>가 이젠 맥도널드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오고, ‘살인 하라’는 단어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는 작품에선 순진한 아이들이 한결같이 정 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곤경을 겪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로써 그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풍자 특유의 웃음을 유발하고 짜릿한 여운을 남긴다. 최근 그는 영화감독으로서도 크게 활약하고 있다. 근작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 구> 영화는 그라피티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이 시대 예술가 나아 가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비판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Banksy 1
70
1 뱅크시의 그라피티아트에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에 희생당하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2 뱅크시에게 쥐는 일종의 분신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말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권위에 거세당한 불특정 다수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2
71
거리의 악동, 마크 젠킨스 거리에서 펼쳐지는 예술이 뱅크시의 작품처럼 벽화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포장용 테이프’로 만든 조각 작품들 로도 거리에서 예술적인 해프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투명한 재료 로 몸과 오브제를 감싸거나 대상물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는 방 식으로 ‘거리’를 자신만의 ‘무대’로 삼으며 수많은 에피소드를 발 생시키는 마크 젠킨스(Mark Jenkins)처럼 말이다. 그는 저렴하 고 가벼운 포장용 셀로판테이프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몸이나 오 브제(아기인형, 물건 등)를 떠내는 캐스트 방식으로 조형물을 제 작하고, 이것에 옷을 입혀 도시의 특정 장소에 개입시키는 ‘스트 리트 아티스트’다. 마크 젠킨스의 거리예술은 초기, 세계 어느 도시에나 흔히 있는 기념비적 동상들을 공략했다. 작가에게 있어 과거의 영웅과 역 사적인 전쟁 등을 묘사한 조형물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도시민 의 생각을 과거 속에 가두고, 변화된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도 못 하며, 공간이 가진 현대미를 은폐시키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는 테이프로 본뜬 작은 아기들과 동물들을 그곳에 개입시키며, 도 1
시민에게 익숙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했다. 예 를 들어 교차로의 말을 탄 동상을 타깃으로 삼은 <Traffic-Go-
Round>의 경우, 주변 가로등에 테이프로 만든 색색의 말들을 배치하고, 원래의 공간이 가진 취약한 구조를 폭로하며 회 전목마가 있는 유희적 놀이동산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로써 작가는 일상 속에 현실과 허구를 혼합시키며 사람들에게 도 시에 대한 비평적 사고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테이프로 몸을 캐스팅해 공공장소에 제시하는 인체조각들을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유머와 협박 사이에서 양 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Embed> 시리즈에서는 거리에서 멀쩡한 사람의 머리가 건물 벽을 통과하거나 쓰레기통, 교통 신호등의 상자에 곤두박질치는 캐릭터의 모습을 대면하게 했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새로운 질 문들을 던지게 했다. 스웨덴 말뫼에서의 설치는 많은 사람을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작품이 설치되기 3주 전 실 제로 이 장소에서 일어난 납치사건을 특정 건물의 구석에 뒷모습을 보이는 소년과 버려진 곰 인형으로 재현했기 때문이 다. 거리에 쓰러진 여자아이의 모습을 연출한 이탈리아 프라토(Prato)에서의 프로젝트 역시 사회적 사건을 모티브로 했 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 주먹질을 당하고 쓰러졌고 약 30분 후 숨을 거두었으나, 500여 명이 그곳을 지나가면서도 쓰러 진 사람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이가 없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마크 젠킨스의 테이프 조각은 우리의 몸과 도시의 공공장소에 존재하는 시각적 대상물-공공조형물, 간판, 광고물 등-이 맺는 정치·사회학적 관계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된다. 이에 따라 그의 조각은 주변 공간에 영향을 주기 위한 촉매 제로 작용하며, 사회적인 구조에 시각적 왜곡을 창조하게 된다. 즉, 공간과 상황, 조각 그 자체 사이에서 일상공간을 낯설 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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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Jenkins 1 Mark Jenkins. Locker Jam 2 Mark Jenkins. Diplomats
7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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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R
그라피티-포토그래퍼 JR 영국에서 그라피티아트가 불법인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거리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종 종 범법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특히 그들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항을 예술의 주제로 다룬다면 더욱 그렇다. 때 문에 거리예술가들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이러한 면에서 단시간에 여러 장을 인쇄해 벽에 재빨리 풀을 바르고 붙일 수 있는 사진은 아주 유용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그라피티-포토그래퍼 ‘JR’이 보여주는 사진 벽화처럼. JR은 대량 복제 가능하고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거리에 심는다. 특히 유독 세상의 정치적 흐름에 관심이 많은 JR은 분쟁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와 연관된 대형 초상 사진을 벽 에 붙인다. 즉, 대중매체를 통해 이슈가 되고 있는 정치·종교분쟁 현장을 직접 체감하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국경을 넘어 위험한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일례로 2005년 JR은 활동가 마르코(Marco)와 함께 <Face2Face>를 기획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하 기로 결심했고, 여행 1주일 만에 그들은 그곳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유태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성지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쌍둥이 형제처럼 같은 것을 보며,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음에도 서로 끝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JR과 마르코는 ‘그들’ 얼굴 정면에 쌍둥이 형제인 ‘그들’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해 이 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8개 도시 속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대형 초상 인쇄물을 붙이며 단순한 예술의 차원을 넘어 인간 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길,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 전쟁을 지연시키고 멈추길 희망했
1 JR. Los Surcos de la Ciudad - Pasting in a old factory, Cartagena - july 2008 © jr-art.net
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의지에 동조한 지역민들은 반정부세력으로 몰릴 수 있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자신의 얼굴도 도 움이 된다면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이는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 늘어난 자원봉사자들 덕에 방대한 규모로 진행되었 다.
2 JR. 28 Millimetres, WOMEN - Favela Morro da Providencia, Rio du Janeiro, Brasil - august 2008 © jr-a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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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미술관을 등한시하거나 그곳에 들를 만큼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술을 배달하는 JR은 미술의 권위 와 제도권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미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던지며 사회 속에서 미술이 진정한 회복에 일익을 담당해야 함을 실천하기 위해 여전히 불법(?)전시를 하고 있다.
CREATOR’S NOTE Photo and essay by George Koshy (Creative Director, INNOCEAN Worldwide India)
하우즈 카(Hauz Khas)라는 지역은 원래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물을 저장하던 곳입니다. 그 러나 지금 이곳은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변신했습니다. 한때 귀족 계층이 거주하던 이 지역의 거리와 저택이 이제 는 독특한 레스토랑과 아트 갤러리, 바와 디자이 너 부티크로 가득합니다. 전통이 남아 있는 골목 은 라이브 뮤직과 LP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음 악과 어우러집니다. 이 지역의 모든 거리는 가장 예스러운 것과 모던한 문화로 대조를 이루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사람들이 모 이는 이유는 과거의 품 안에서 내일의 삶이 서로 기쁘게 한데 어울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입니 다. 마치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이 우리 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과거와 미래 를 완벽하게 하나로 화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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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h
IWI
INNOCEAN WORLDWIDE NEWS
INNOCEAN Worldwide India (New Delhi, Nov 2005)
IWUK INNOCEAN Worldwide UK (London, Jul 2006)
*IWA INNOCEAN Worldwide Americas (Huntington Beach, CA, Dec 2008)
IWCa INNOCEAN Worldwide Canada (Toronto, Jan 2010)
Central Europe INNOCEAN Worldwide Central Europe office (Vienna, Apr 2010)
IWF INNOCEAN Worldwide France (Paris, Jan 2010)
IWC SH I NNOCEAN Worldwide China (Shanghai, Nov 2006)
*IWE INNOCEAN Worldwide Europe (Frankfurt, Jul 2007)
*IWC BJ INNOCEAN Worldwide China (Beijing, Dec 2005)
INNOCEAN Worldwide HQ (Seoul, May 2005)
IWTr INNOCEAN Worldwide Turkey (Istanbul, Jul 2009)
IWCZ INNOCEAN Worldwide Czech office (Prague, Jul 2009)
IWR INNOCEAN Worldwide Russia (Moscow, Jan 2009)
IWS
INNOCEAN-CBAC
INNOCEAN Worldwide Spain (Madrid, Nov 2009)
INNOCEAN-CBAC (Beijing, Jan 2010)
IWIt
Nanjing
INNOCEAN Worldwide Italy (Milan, Aug 2008)
INNOCEAN Worldwide China Nanjing office (Nov 2008)
IWAu INNOCEAN Worldwide Australia (Sydney, Aug 2008)
*=RHQ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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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CEAN Worldwide HQ
#01
IWA
#01
(Seoul, May 2005)
INNOCEAN Worldwide Americas (Huntington Beach, CA, Dec 2008)
INNOCEAN Worldwide celebrated its seventh anniversary on May 17, 2012. In the
IWA held a party to celebrate its third anniversary in April. In addition to watching
seven years since it first began operations, the company has grown into a global
a commemorative video outlining the company’s growth and operational results,
marketing communications leader, boasting over 1,000 employees and twenty-one
the participants drank a toast proposed by Mr. Tony Kim, CEO of IWA, to celebrate
offices in sixteen countries around the world. In his speech at the celebration, Mr.
their achievements over the past three years and offer their hopes for even greater
Ahn Kun-Hee, Global CEO, asked his many employees to continue taking on new
successes in the future. IWA has grabbed the world’s attention by producing Hyundai
challenges instead of resting on the successes they have enjoyed so far. He also
Motor’s Super Bowl and Academy Awards commercials since 2010.
expressed his gratitude for their hard work, dedication, and loyalty.
이노션 월드와이드 미국법인(IWA)이 지난 4월, 창립 3주년 기념 파티를 열었다. 전 직원이 참석한
2012년 5월 17일, 이노션 월드와이드(IWHQ)가 창립 7주년을 맞았다.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현재 유럽,
가운데 회사의 성장 과정과 업적을 담은 기념 영상을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고, 지난 3년간의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16개국에 21개 거점과 1,000여 명의 직원을 둔 글로벌 마케
업적 달성을 축하하고 더 큰 발전을 기원하는 김태영 법인장의 건배 제의로 마무리됐다. IWA는
팅 커뮤니케이션 회사로 성장했다. 안건희 대표이사 사장은 창립 기념사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 직
2010년부터 현대자동차의 슈퍼볼 광고, 아카데미 시상식 광고 등을 제작하며 글로벌 광고업계의
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과 회사에 대한 열성적인 애정에 감사한다”고 전하며 “지난 7년 동안
주목을 받고 있다.
이루어놓은 성장과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나갈 것”을 당부했다.
#02
#02
INNOCEAN Worldwide won five bronze awards at the 2012 Cannes Lions International
IWA held its first-ever seminar at the 2012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Festival of Creativity. They included five Bronze Lions for its “Re:Generation Music
Creativity. It included a discussion of the production process for the “Re:Generation
Project,” Hyundai Motor’s launching campaign for the Veloster; a print ad for Hyundai
Music Project,” Hyundai Motor’s Veloster launching campaign. The seminar was
Motor’s Azera; and “Love Parking Campaign,” a joint social contributions campaign
followed by a Beach Club Concert hosted by INNOCEAN Worldwide and Microsoft
undertaken by Home Plus and Good Neighbors. Besides sponsoring the opening and
Advertising, and attended by artists who had participated in the “Re:Generation
closing galas of the Cannes Lions, the company carried out branding activities for
Music Project” campaign. To put even more icing on the cake, Mr. Tony Kim, CEO of
Hyundai Motor. It also hosted a seminar and a Beach Club Concert in collaboration
IWA, was selected as one of the jurors for the “Creative Effectiveness Lions.”
with Microsoft Advertising.
이노션 월드와이드 미국법인(IWA)이 ‘2012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이노션 월드와이드(IWHQ)는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열린 ‘2012 Cannes Lions
에서 창립 이래 첫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The Evolution of Brands and Artists in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에서 창립 7년 만에 처음으로 칸 국제광고제 본상을 수상하며
the Creative Process’란 주제하에 2011년 현대자동차 벨로스터 론칭 캠페인 ‘Re:Generation
세계적으로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현대자동차 밸로스터 론칭 캠페
Music Project’의 제작 과정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세미나에 이어 IWA는 마이크로소프트
인 ‘Re:Generation Music Project’, 현대자동차 아제라(국내명 그랜저) 인쇄광고, 홈플러스와 굿네
애드버타이징과 공동주최로 ‘Re:Generation Music Project’에 참여했던 뮤직 아티스트의 공연을
이버스가 함께한 사회공헌 캠페인 ‘Love Parking Campaign’으로 동상 5개를 수상했다. 이노션 월
볼 수 있는 비치클럽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김태영 법인장은 한국인 최초로 미국 대표 심
드와이드는 전 세계 50여 명의 직원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번 칸 국제광고제의 오프닝
사위원으로 위촉되어 ‘Creative Effectiveness Lions’ 부문 심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과 클로징 갈라, 세미나, 비치클럽 콘서트 등을 진행하며 글로벌 광고회사로의 입지를 다졌다.
IWE
IWS
IWUK
INNOCEAN Worldwide Europe (Frankfurt, Jul 2007)
INNOCEAN Worldwide Spain (Madrid, Nov 2009)
INNOCEAN Worldwide UK (London, Jul 2006)
INNOCEAN Europe RHQ became the newest member of
IWS’s “Cee’d Auction Online Promotion with Nadal” was
IWUK has moved to Piccadilly Circus, in the very heart of
the European Association of Communications Agencies’
included in the digital, promotional marketing, and PR
London. The area, which combines the traditional with the
(EACA) International Agencies’ Council. This honor
categories at the El Sol advertising festival held in May.
modern in perfect harmony, is a hallmark of British culture
means that Europe RHQ will be able to increase the
The campaign used the proceeds from the eBay auction of
and an ideal setting to enhance people’s creativity and
European advertising market’s awareness of INNOCEAN
a Kia Motors’ Seed owned by tennis giant Rafael Nadal to
inspiration. The move is especially meaningful because it
Worldwide’s brand and to take advantage of the EACA’s
support his Nadal Foundation’s fundraising campaign. The
means that the company is now located cheek by jowl with
information and networking services. The company
El Sol is the world’s largest Spanish-speaking advertising
other leading players in the European advertising market.
also participated in the Art Directors’ Club Germany in
festival. IWS also won the 2011 Best Mobile Campaign of
이노션 월드와이드 영국법인(IWUK)이 ‘런던의 심장’ 피카딜리 서커스
Frankfurt, acting as its principal sponsor. Europe RHQ
the Year award for Kia Motors’ Picanto. The award was
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무엇보다 유럽의 광고시장을 리드하는 최고의
leveraged its leadership role at the event to carry out a
given at the Unidad Editorial Internet Awards the same
에이전시, 프로덕션, 스튜디오들과 나란히 위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variety of branding activities for INNOCEAN Worldwide
month. Winning it was especially meaningful because the
의미가 있다. 이번 사무실 이전은 IWUK가 계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
targeting advertisers.
competition is sponsored by Spain’s biggest media group.
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이노션 월드와이드 유럽지역본부(Europe RHQ)가 유럽광고대행사
이노션 월드와이드 스페인법인(IWS)의 ‘Cee’d Auction Online
협회(EACA) 운영위원회의 신규 회원사로 가입했다. Europe RHQ
Promotion with Nadal’이 지난 5월에 열린 ‘El Sol’ 광고제 3개 부문
는 EACA의 운영위원으로서 유럽 광고시장 내에서 이노션 월드와
(디지털, 프로모션 마케팅, PR)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이 캠페인은
이드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협회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 및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이 소유하던 기아자동차 씨드의 이베이 경
네트워크 활용의 기회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Europe
매 수익금을 ‘나달 재단’을 통한 기부 활동으로 연결시킨 IMC 캠페인
RHQ는 5월 9일부터 3일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독일 아
이다. 올해로 27회째를 맞이한 ‘El Sol’은 스페인어 문화권 최대의 광
트디렉터 클럽(ADC Germany)의 메인 스폰서로 활약했다. ADC
고제다. IWS는 같은 달에 열린 ‘Unidad Editorial Internet Award’
Germany는 45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독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
에서 기아자동차 피칸토(국내명 모닝) 모바일 캠페인으로 ‘2011 올해
계의 가장 큰 크리에이티브 컨퍼런스 중 하나로서, Europe RHQ는
의 베스트 모바일 캠페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페인 내 최대 규
컨퍼런스에 참석한 크리에이티브, 광고 마케팅 관련 분야의 다양한
모의 미디어 그룹이 주최하는 광고제인 만큼 수상의 의미가 크다.
광고인을 대상으로 이노션 월드와이드를 효과적으로 브랜딩했다.
79
E P ILOG U E
PEOPLE ON THE ROAD
1
2
3
헤이리마을에서
O형이라지만,
2012년 칸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어쩐지 ‘B형 남자’ 느낌을
국제광고제에서 이노션
도미노피자 광고촬영 현장. CR팀의
주는 장기하와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월드와이드의 활약은 그야말로
김정아 CD와 김배성 대리, 기획팀의 서희곤
이현석 전무가 홍대에서 만났다. 제법
‘대단했다’. 메인 스폰서로 참여해 칸 곳곳에서
국장과 이형석 차장, 조병훈 대리, 이세라 사원이
거리가 있어 보이던 두 남자는 ‘송골매’ 하나로 세월을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15초의 미학을 완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차라리 한
뛰어넘어 진하게 교감하고 있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이현석
물론, 세미나와 갈라쇼 주최, 7년 만에 본상 수상까지. 열정으로
편의 대서사시에 가까웠다.
전무님과, 다부진 서른을 맞이한 ‘장교주’께 심심한 감사를.
가득한 이노시안의 잊지 못할 순간들이 이어졌다.
4
5
페이퍼 토이의 개척자이자
기아자동차 RAY와
‘난 놈’들이 뭉친 모모트와 이노션
패션브랜드 H&M이 보여준
월드와이드의 카피라이터 이재훈 대리와 마케터
콜라보레이션은 기존의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홍순상 대리가 참여했던 콜라보레이션 인터뷰. 거침없는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냈다. 근 1년 동안 준비했던
말투의 모모트 박희열 매니저와 ‘부끄부끄 열매’를 먹은 듯한 두
프로젝트를 하루 만에 다 보여준 SI팀의 김양아 차장과 남재영 차장,
이노시안의 대립구도가 무척 유쾌했다.
프로모션2팀의 홍성국 차장. 아마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섭섭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NOT FOR SALE
Life is Orange +no.06
Summer 2012
On the Road Again
이른 더위가 한창인 여름, 길 위에서 만난 새로운 개척자들에게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정을 배웠습니다.
자신의 삶과 희망을 콘텐츠로 삼은 이들, <Life is Orange> 여름호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이들이 선택한 길과 그들이 그 길 위에서 펼쳐가고 있는 가능성과 즐거움에 전염되어 유독 이번 여름호를 만드는 과정은 뜨겁고 치열했습니다.
서울의 낯선 골목,
발행인 안건희
여러분만의 지도를 들고 거대한 이 공간 안에
발행일 2012년 6월 30일
조용하게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837-36, Yeoksam-dong, Gangnam-gu, Seoul, Korea
신세계 속으로 모험을 떠나 보세요.
발행처 이노션 월드와이드 INNOCEAN Worldwide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37-36 랜드마크타워 Tel. 02-2016-2214
길 위에 서지 않은 이에게는 더 이상 놀라움도 흥분도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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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하고 창조하는 역할이 아니더라도 낯선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기획 제작 iPublics Inc. 02-3446-7279 인쇄 (주)삼성문화인쇄 02-468-0361
이미, 다시 길 위에 서 있는 당당한 사람입니다. 본지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을 나타냅니다. 본지에 실린 이노션 월드와이드 관련 콘텐츠는 본사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