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Jaguar_V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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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A ㅣ녹취록

1 ㅣ시찬이 어머니 저는 2학년 8반 박시찬 엄마예요. 네. 우리 아들은 둘째고, 위에 누나가 있고. 키, 그때

인트로ㅣ흑표범

도 막 한참 클 때고, 몸이 볼 때 다리가 엄청 길어가지고. 하여튼 지나가는 애들만 보면 거기에서는 인제 얼굴은 아닌데, 다리나 그런 거 그 비슷한 비율의 애를 막 나도 모르게

조명이 어두워지고, 영상 자막과 함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찾는 거죠, 이제. 거기 있으면서, 교복 입은 애들 보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보면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보이시나요? 저 맞은

내가 왜 이러나 이런 생각도 들고.

편 창문 밖에 거리에서 여러분을 보고 있어요. 네, 지금 나오는 소리 실시간으로 저도 같이 듣고 있습니다. 계신 공간 안에 작은 의자들이 많이 보이시죠, 한 분씩 의자에 앉 아주세요. 계속 앉으시면서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공간에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이 걸 려있는데요. 웹에서 수집한 세월호 사건 당시 진도 체육관의 모습 중에서 유가족 어머 니들을 한 명씩 그린 것입니다. 저희가 가장 많이 접한 세월호 이미지 중에 하나가 진도 체육관의 정경일 것인데요. 거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계셨죠. 그중에서 세 어머니를 제가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오늘 같이 들어보고자 여러분들을 모 셨습니다. 네, 자리에 앉으셔서 저와 마주한 채로 이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오늘 퍼 포먼스입니다. 자리가 모자라 미처 앉지 못하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공간 밖에서 관람하 셔야 합니다. 외부에 안내 요원이 계세요. 그분의 안내를 받아서 각자 소지하신 핸드폰 으로 아프리카 TV에 들어가셔서 공간 해방을 검색하시면 지금 방송 중인 게 보일 겁니

시찬인 자전거 타는 거 되게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나와서 여기 큰길 따라서 중 앙역, 고잔역에서도 많이. 어렸을 때도 저기 공간 있잖아요. 롤러스케이트 타는데 있잖 아요. 친구들하고 자전거 타고 많이 왔죠. 그 새로 나온 거 바퀴 얇은 거 있잖아요. 나는 모르겠는데 그게 애들 사이에 또 유행이었던 거 같더라고요. 그거를 사줘가지고 그렇 게 좋다고, 이제 그 얇은 자전거, 새 자전거니까 자전거 열쇠를 고르는데, 엄마 이거 끊 어도 안 끊어지는 거지? 하면서 그거도 고르고 골라가지고 해가지고 집에 묶어놓고. 한 삼년 전에 모르겠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자전거를 배워야 되겠다 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아들하고 둘이 인제 그 앞에 원일 초등학교 있어요. 둘이 가서 인제 배우는데, 아빠도 안 잡아주고 얘가 자전거 뒤에 잡아줘 가지고 배웠어요, 자 전거. 그 여름에 한 여름에 둘이 가가지고, 학교에서 자전거. 집 앞에 초등학교에서 둘 이 자전거 배워가지고 한 시간 만에 배워 와가지고.

다. 접속하셔서 실시간으로 소리를 같이 들으시면서 관람을 하시길 바랍니다. 퍼포먼 스는 한 오십분 정도 소요되고요, 외부에 계신 분들이 중간중간 추위를 피하실 휴게실 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옆 카페 린다 린다 린다가 문을 닫은 상태였는데 오늘 특별히 일 일 휴게실로 내부를 공개했습니다. 관람을 하시다가 추우시거나 피곤하시면 안에서 좀 쉬시길 바랍니다. 네, 그럼 나머지 분들은 밖으로 나가주시고요. 잠시 음악이 흐른다. 거진 다 앉으셨나요? 그럼 여러분 양옆에 계신 분들과 살짝 눈을 마주치면서 눈인사를 가볍게 하고 퍼포먼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본격적으로 퍼포먼스를 시작 을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그런 게 있어요. 어릴 때도 그러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까 주말에는 당연히 애들하 고 노는 거고 애들하고 같이 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되게 강했어요. 미안하니까. 저 녁에 싫다고 해도 얘네 데리고 나가서 항상 운동을 시켰어요. 농구도 같이 시키고, 자전 거도 타고, 거기 운동장 달리기도 하고. 근데 우리 딸은 사춘기 되면서부터 짜증내고 잘 안 가는데, 항상 안 가면 우리 둘이 가는 거예요. 시찬이하고 나하고. 항상 저녁에도 그 렇게 가고. 토요일이면 이제 회사를 안가니까, 이제 둘이 항상. 안산에 공원이 많잖아 요. 집 뒤에도 공원이 있어가지고, 한 바퀴 돌면 한 시간이에요. 항상 시찬이, 그 일 일


주일 전에도 갔었어요. 항상 둘이, 항상. 가서 가을에는 뭐, 밤 매달려있으면 밤도 따고, 봄이면 뭐, 꽃도 보고. 하튼 같이 항상 다녔어요. 우리는 둘이는, 항상 그렇게. 낮에만 같 이 안 있지, 항상 주말에도 시찬이 친구들 만나러 가고 컴퓨터 하지 않을 때는 같이, 우 리 아들하고 항상. 가서 뭐 손잡고 가면서 얘기하고. 그리고 인자 갔다 내려오면 항상 인제 바나나 우유나 하나씩 사주고 그러고 오고. 그거나 먹고 오고, 그랬던 거 같애요. 그때는 우리의 사생활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진짜. 왜 그러냐면 거기가 원래 체육관이 잖아요, 자체가. 근데 첨에 우리 갔을 때 보면 되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일층이 있고 이층이 있으면 이층에서 보면 진짜 한눈에 다 보여요. 그 밑에가 다 보이는데, 진짜 무 슨 저도 그전에 티브이에서 언젠가 인천 폭격 사건 나오고 찜질방인가 어딘가 잔뜩 모 여 있었잖아요. 그 넓은 공간에... 근데 그때 생각해보면 내가 거기 있더라고. 그런 상황 이 내가 돼가지고. 시찬이는 5월 5일 날 왔어요. 어린이날 와가지고, 인제 우리가 8일 날 장례식 해줬는 데, 그때가 한 스물 몇 명 남은 상태였어요. 마지막 때는 우리는 못 봤어요. 시찬이 아빠, 시찬이 아빠하고 큰아빠만 살짝 보고, 우리 딸하고 나하고는 인제... 시찬이는 처음 올 라왔을 때 인제 바람막이를 입었는데, 양쪽 주머니 한쪽에는 핸드폰 넣어 놓고, 한쪽에 는 지갑을 넣어 놨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딱 박시찬이라고 이름이 떴더라고요. 그때 당 시에 바로 누구누구 인상착의가 아니라 박시찬이라고 이름이 딱 떴더라고요. 옷 입은 것도 집에 있는 가져간 거 그냥 그대로 입고 오고, 예상했던 대로 그대로 입고 오고, 봤 는데 이제 사진을 그때 당시에는 날짜가 한참 지났잖아요. 그 비디온지는 모르겠는데, 티비 화면을 해서 보여주는데 천천히 다리부터 보여주는데 이제 우리 딸하고 나는 이제 여기 턱까지는 봤는데, 그다음부터는 아빠가 막 돌리면서 막 소리 지르면서 보지 말라 고 막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때도 그랬어요. 제발 손이라도 좀 잡게 좀 해달라고. 근데 지금도 그게 마음에 자꾸 걸려요. 그래도 손이래도 한번 잡아봐야 되는데, 못 잡아 본 게...


뭐라고 해야 되나. 많이 꿈꿨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네다섯 번은 꿨던 거 같애요. 처 음에는 그랬어요. 시찬이 그 4월 16일 이후에 시찬이 꿈을 꾼 게, 그니까 한 16일 있고 나서 꿈을 꿨는데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거기 팽목항 가기 전에 농협 있거든요. 시찬이 가 꿈에 나와서 그러는 거야. 엄마 나 우체국하고 농협 사이에 있다고 그러는 거야. 꿈 속에서. 그래서 꿈속에서 아, 내 생각인가 어쨌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꿈에서 막 그러면서 그 당시에 인자 엄마! 부르는 소리가 막 그렇게 애절하게 부르다 꿈에서 깨어 났는데, 그래가지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첫 번째 꾼 꿈에. 그래서 이제 애 아

에 있다고 알려준 건지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꿈꾸고 나서 시찬이 장례하고 나서 꿈이란 게 뭐, 정확하게 뭐 그 부분만 시찬이를 안 고 있다가 깨어난 부분, 그런 꿈도 꾸고. 한번 인제 안아보는데, 그 느낌, 아 느낄 수 있 으면 좋겠다, 그랬었어요. 그니까 꿈을 꿔도 진짜, 안았는데 꽉 차 있는 거 있잖아요. 사 람을 진짜 안았을 때, 그 느낌. 원래 걔가 그랬어요. 애기 때도 우리 애, 애기 때아니더라 도 좀 커서도, 이제 이렇게 집에서 안잖아요. 그러면 걔는 안으면, 딱 맞춘 느낌 있잖아 요. 딱 공간이 없이, 딱 안기는 느낌...

빠한테 시찬이 꿈을 꿨는데, 시찬이가 거기 있다고 하니까 한번 가보자고. 애 아빠도 그 랬을 거야. 이 여자가 진짜 미쳤나. 거기를 왜 있어. 그러면서도 안 갈 수가 없으니까 같 이 가줬을 텐데, 막상 가면서 농협은 봤는데 진짜 농협 앞에 우체국이 있는 거예요. 거 기가. 그래가지고 그 사이에 있다고 했는데, 그니까 그 사이에 뭐 이런 도랑 같은 뭐라 고 해야 되나, 강은 아니고 그냥 물 흘러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냥 미친 거 같이 정 신없이 한, 한 시간을 헤매다가 다시 왔죠. 그러다 삼일 후에 이제 시찬이가 왔는데 그 원래 시찬이가 7반, 8반이, 그 오십 명이 한 방, 그 다인 실에 있었어요. 그때 당시가 거의 7반, 8반 거의 다 나오고, 다인 실에 있 던 애들 다 나오고, 우리 반도 한 두세 명 안 나오는 상황이니까, 21명 늦게 됐으니까. 얘가 그때 배가 당시 거의 기울어가지고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런 상황이잖아요. 그래 서 밑에, 침대 밑에나 어쩌나 깔려서 못 나오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늦게 나오 나 그런 생각을 해가지고 그렇게 기다리고 걱정을 하는데, 애 아빠도 마음에 준비하라 고 이제 그렇게 늦게까지 안 오니까 시찬이 얼굴 못 볼 수도 있다고 그런 얘기하고 그랬 었거든요. 근데 얘가 거기서 안 온 거예요. 거기가 아니고 그 다인 실하고 여기 근께 옆 에 사이에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순간에 생각하기를, 모르겠어요, 꿈은 그런 건 정확 히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쉽게,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계속 거기 있는 거, 넓은 방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시찬이가) 그렇게 보여준 건지...인자 하튼 그 사이

내 품에 들어와서, 엄마를 꼭 안고 있는 따뜻한 느낌...


2 ㅣ흑표범 그러니까 내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좀 이상한 꿈을 꿨어요. 실제로는 저한테 아직 애기

럼 물어본 거예요. 그랬더니 애기가 나한테 뭐 어디 간대, 뭐 시험을 보러 가는지 회사

가 없잖아요. 근데 꿈속에서는 아들이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아들이 어쩔 적엔 아이로

를 가는지 어디 가야 한대. 그래서 나한테 인사를 하러 왔다는 거야. 근데 그 말을 듣는

나왔다가 또 어쩔 땐 어른으로 나왔다가 이렇게 막 반복해서 나오는 거예요. 다른 모습

데 기분이 좀 이상한 거예요. 뭔가 겁이 확 나고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

으로. 처음에는 한 다섯 살? 애기가 유치원 같은 델 다니나 봐, 제가 거길 데리러 간 상

지 말아라, 가지 마, 가지 말아라, 가지 말라고. 애기가 없는 거예요. 벌써, 벌써 간 거야.

황이에요. 그 애를 제가 불렀어요. 그랬더니 그 애가 뒤를 쏙 돌아보더니 엄마~ 이러고

벌써 이제 딱 눈앞에 사라져버렸어. 그래서 너무 놀래가지고 막 쫓아나갔어, 막 쫓아나

쪼끄만 게 막 쫓아와가지고 제 품 속에 쏙 안기는데 너무 이쁜 거야, 진짜.

가면서 막 아들! 아들!

근데 얼굴을 이렇게 딱 보니까 뭐가 안 좋아 표정이 좀 침울해. 그래서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랬더니 자기가 몸이 허약해서 유치원에서 외톨이래. 그래서 집에 가서 지를 깨끗하게 씻겨가지고 예쁜 새 옷으로 갈아입혀 달래요. 그 말을 듣는데 내가 마음이 왜 이렇게 아퍼? 꿈인데. 그래서 엄마랑 집에 가서 새 옷 입자.~ 이렇게 달래 가지고 애기 를 안고 집에 왔어요. 오는데, 애기가 이상하게 정말 쬐깐한 애긴데, 엄청 무거운 거예 요. 막 몸이 천근만근 엄청 무거워서 팔이 너무 아픈 거야. 애기를 안고 있는 제 팔이. 근 데 꿈을 깨고 나서도 팔이 아픈 거야. 그러니까 좀 이상하죠. 그리고 또 몇 주가 지났어요. 이번에는 제 배속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전으로 돌아갔나 봐, 나오기 전으로. 임신을 한 상태인 거 같은데, 배가 이렇게 불러있는데, 그러니까 제 가 이제 울면 배속에 있는 아들도 같이 슬퍼하고, 또 제가 막 웃으면 배 속에 있는 그 애 도 막 좋아하고, 제가 먹는 거, 보는 거, 듣는 거 그런 걸 다 같이 공유하는 그런 상태였 어요. 그런데 누가 문을 뚜드려. 그래서 딱 나가봤더니, 너무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가 문 앞에 서있는 거예요. 근데 난 딱 보고 알았어. 내 아들인 거야. 그 남자가. 근데 너무 이상한 상황이잖아요. 그러면. 배 속에 들어있는 상탠데 어른이 되가지고 나를 찾아왔 으니까 동시에. 근데 꿈속에서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되 게 자연스럽게 너 어디 가냐? 어디 가길래 이렇게 옷을 쫙 잘 빼입고 나왔냐? 막 농담처


3 ㅣ영만이 어머니 영만아, 영만아 일어날 때 됐어. 속삭이듯이 영만이를 제가 쳐다보면 너무 이쁜 거야. 쳐다보면서 볼에다가 쪽 쪽 쪽 뽀뽀를 해도 싫 다 소리를 안 해. 맨날 히히 좋아가지고 히죽히죽 웃어요. 너~~무 이쁜 거야. 정말로. 어 쩜 이렇게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너~~무 이쁜 거야. 너무 감사하고. 허우, 내가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낳았을까 정말. 어떻게 이런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됐을까. 직장을 나가고 했는데, 음 우리 큰 아이나 영만이나 공부를 참 잘해서 제가 살면서 별로 이렇게 직장 다니고 일하는 거에 고달프다는 생각을 제가 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 때 문에 너무너무 삶이 저한테 굉장히 힘이 되는 그런 애들이었기 때문에. 막, 엄청 추워가 지고 손이 막 시리도록 발발 발발 떨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방에서 뭐 하다가 얼른 나 가가지고 또 지키고 있고. 진짜 서프라이즈처럼 짠! 하고 막~ 손 흔들고. 아주 특별한 아이였다는 거. 응! 영만이를 나았을 때 정상적이지 못했어요, 위에 식도가 바로 연결이 돼야 되잖아요. 근 데 우리 영만이는 식도가 기도에 붙은 거예요. 태동? 숨소리 이런 게 규칙적이지 않았던 거 같애. 초음파나 이런 걸로 봤을 때 그러니까 큰 병원을 가라고 하고 하혈도 하고 하니 까 큰 병원을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가 안 좋아요? 그랬더니 선생님 오시면 얘길 할 거라고 그래. 이제 아이를 낳았죠. 아이를 낳았는데 애가 숨을 안 쉬었나 봐요. 그때 도 그랬어. 태동 검사할 때도 애가 숨을 쉬었다 안 쉬었다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그 때부터는 제가 이제 알은 거죠. 아, 아이가 상태가 응 좋지 않은가 보다. 친정엄마가 와 계셨으니까 저보고 애기를 못 보게 하더라고요. 상태가 그때 되게 심각했으니까. 어른 들 그렇잖아요. 나이 드신 어른들. 인명은 제천이라고 응? 만약에 이렇게 해가지고 떠나 게 되면 또 상처가 될 테니까 그냥 아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저도 그때 생각하니 까 애한테 너무 그것도 미안한 거예요. 엄마가 아무리 저기하면은 그런 말에 제가 아이


를 안 봤어요. 그런데 5일 정도 되니까 수술을 할 거라고. 그래서 아이를 기도에 붙어있

는데 오른쪽 여기 눈퉁이가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는 거예요. 아무 데도 이상이 없어. 근

는 식도를 분리를 해서 위에다가 연결하는 수술을 하고. 그래서 그거 수술하는 거 때문

데 여기만, 오른쪽 누두 덩이만 새파랗게 멍이 들어있어. 입관한다고 그러길래 제가 예

에 겨드랑이 밑에 한 20센티 정도 겨드랑이 밑에 수술 자국이 있고, 여기 배, 배꼽 있는

전에 저희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제가 염하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거를 생각을

데에다가도 호스 같은 거 꽂아가지고 배꼽 바로 위에 두 군데 정도가 한 5센티 정도 되

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지막으로나마 내가 우리 아들을 또 내가 우리 아들 모습을 다 볼

는 수술 자국이 두 개나 있고. 그래서 제가 우리 영만이 나올 때도 제가 생각을 하고 있

수 있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입관한다고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가보니까 우리 아들을 다

었어요. 거기 신상에 이름이 없으니까. 아, 이 수술 자국이 분명히 나오겠구나.

싸놓은 거야. 얼굴만 냄겨놓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내가!

번호가 124번이었어요. 그날도 참 신기한 게 한, 3일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너무 비참

기억에 남는 꿈이, 만나가지고 어떤 가운데 시골, 이렇게 개울같이 넓이가 그래도 좀 꽤

한 생각이지만 아이가 살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3일 정도 지

넓은 개울이 있고, 돌다리 같은 게 죽 놓아져 있는데 옷도 제가 생생하게 기억을 해요.

나면서부터는 아, 우리 아들이 이제는 응.

우리 아들이 입었던 옷, 내가 입었던 옷. 저는 제가 어디 조문 가고 할 때 입는 원피스가

근데 4월 23일 날 7일째 되는 날인가요. 열시 정도 돼가지고 텐트에 들어가가지고 잠 을 잘라고 누워서 잔 거 같애요. 잠이 들었는데 한 2시쯤 됐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잠이 깨었어요. 바람이 불어도 이런데 일반 육지 바람하고는 정말 달라요. 바람이 아주 무섭게 불어요. 그래서 그때 2시즘 잠이 깨어가지고, 그냥 옷을 잠바를 그땐 뭐 잠바고

있어요. 곤색의 원피스가 있는데 그 원피스를 제가 입고 있고, 우리 영만이를 거기 그 개 울가에서 만났는데 우리 영만이는 까만 바지에다가 위에 베이지색 같은 티셔츠를 반팔, 반바지 이렇게 입고 있었는데 그때 만나가지고, 이미 그때 서로를 알았던 거 같애. 영만 이도 나도.

뭐 벗을 새도 없이 그냥 이러고 쭈구리고 자니까, 옷을 다 여미고서는 터덜터덜 그 현

그러면서 영만이한테 제가 영만아, 이제 엄마랑 같이 못 있는다고. 내가 우리 영만이한

황판에 와서는 이렇게 봤어요. 그랬는데 124번에 딱 있는 거야. 우리 영만이가. 키는

테 그런 얘기를 하고 붙잡고 엄청 울었어요. 영만아 이제는 엄마랑 같이 못 있어. 그러면

175센티 정도라고 돼있었나. 175센티 정도에 얼굴형은 갸름한 얼굴형에, 바지는 아디

서 그게 이별을 서로 이제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거 같은 느낌인 거예요. 이제는 엄마랑

다스 바지, 빨간 옆에 삼 색 선.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배 위에 수술 자국! 그거를

같이 못 있어, 영만아. 그러면서 영만이도 엄청 울고 나도 엄청 울고. 개울가에서 그러다

딱 보는 순간 아 우리 영만이가 왔구나! 그때는 그게 반갑다고 아들이 온 게 너무 반가

가 제가 영만이를, 엄마가 업어줄게~ 그러면서 영만이를 업으려고 그랬는데 내가 옷이

워서 정신없이, 정신없이 그 텐트를 어떻게 기어갔는지 모르게 막 쫓아가서 갔더니 아

불편하다 보니까 원피스를 입고 옷이 불편해서, 애기를 내가 놓쳤나 봐. 그러면서 그렇

빠가 옆에 있어. 아빠를 막 깨웠어요. 여보, 우리 영만이 왔다고. 애를 쳐다보니까 손을

게 한참 울고 그러다가 가는데 보니까, 내가 놓쳤다고 그랬잖아요? 엉덩이 여기, 오른쪽

보니까 물을 먹어서 그런지 손바닥은 하~얗고, 정신이 없어서 애를 다 둘러보지 못했어

엉덩이 한쪽에 흙이 이렇게 묻어있는데 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영만이 보고 영만아, 근

요.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거야. 그것도 너무너무 막 너무너무 아쉬워 죽겠는 거야. 애

데 하나님 어디 계셔? 그러니까 저기! 그러는데, 그게 보이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저기!

를 보낼 때 자세히 한 번이라도 더 만져보고 보낼걸. 거기서 내 애가 맞는지 안 맞는지

또 다른 데로 옮기셨는지, 저기! 저기! 그러면서 두 번을 다른 곳을 가리키면서 손가락

그냥 그거 확인한 거처럼 들어가가지고. 애 쳐다보고 한참 울다가 얼굴 보니까 누워있

질을 하더라고요. 근데 저기할 때 보니까 어떤 한 분이 그 돌다리를 이렇게 여자 분이 한


육십 대 정도 되시는 어떤 분이 돌다리를 건너시고, 우리 영만이가 저기! 하고 가리키는 데 거기 빛이 환하면서, 거기에 그 아이들이 어떤 다운증후군 같은 이런 표정이 있는 아 이들도 있고 많은 아이들이 거기를 막 이렇게 지나가요. 영만이가 가리키는 하나님이 어디 계셔? 했을 때 저기하는데, 그런 아이들이 막 지나가고 어떤 분이 돌다리를 지나 가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영만이는 일루 걸어가고, 두 번을 물어보고 저는 그냥 이 개 울 건너편 쪽으로 걸어가고, 따로 그렇게 갔었던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어요.


4 ㅣ흑표범

목소리 _ 곽성욱 학생

개울따라 쭉 걸어가면 떡집 지나고, 약국이랑 분식집 지나서 버스 정류장 나오거든요?

원짜리 들이 막 허공에서 날리고, 엄마가 소리 지르고.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기억은 나

근데 거기서 217번 타면 학교까지 한 삼십분 걸려요. 근디 거기서 동면 탄광촌 길 있는

거든요.

디 그 길을 지나믄 좀 험하거든요. 근디 그 길 지나고 화순군까지 가면, 화순고라고 인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산 18-1.

문계 고등학교가 나와요. 제가 거기 다녔거든요. 여기가 다 같이 살던 우리 집이거든요. 근디 이번에 전시하면서 거의 이십 년 만에 와 집에 올 때도 이 개울 따라서 쭉 걸어가고, 물이 맑아서 아침에 학교 갈 때 보면, 막 학이 나 두루미도 내려와 있고 그랬어요. 아, 진짜 추억이다. 근데 개울 주변에 나무가 엄청 무섭게 생겨가지고, 다가갈... 어우 다가갈 수가 없었어요. 진짜.

봤는디, 그동안 아무도 안 살아가지고 집이 완전히 폐가가 돼있었어요. 아, 근데 대문도 빨갛게 녹슬어가지고 만지면 막 부서질 거 같고, 엄청나게 무섭게 생겨가지고 막 들어 가 볼 생각도 안 들었어요. 글고 엄청 궁금했어요. 내 방에 두고 온 다이어리가 있거든

근데 여기는 시골이었어요, 그냥. 어디 갈 데도 없고, 놀데도 없고. 그냥 밭에서 놀면 밭

요? 근데 그 다이어리랑 아빠 화실에 있었던 내 그림도 있었고, 그 그림이 아직도 거기

에서 놀고, 산에서 놀면 산에서 놀고. 사평은 기정 떡이 유명했어요. 근디 여기 떡집 아

에 있을까. 가끔 궁금해요. 그냥.

들이 나보다 동생이었는데 착하고 귀여웠어요. 그리고 마을 입구에 분식집 아들은 나랑 친구였는데, 약간 유승준처럼 생기고. 이렇게 둘이가 교회에서 만나서 처음 친구한 애 들이었는데, 우리 아빠가 같이 못 놀게 난리 쳐갖고.. 아, 진짜. 사평엔 중국집이 딱 하나 있는디, 거기가 배달이 안 돼요. 그래서 막 언덕 내려가서 걸 어 갈라면 한 이십분 걸리거든요. 근디 가끔 논에서 태우는 냄새 막 구수한 냄새나는데 그 냄새가 나면 곧 추석이 돼요. 막 그 가을 오는 냄새가 뭔가 정겨운 기분이 든달까? 네, 그래서 저는 쫌 좋았어요. 근데 엄마는 맨날 바빴어요. 집에 애가 넷이나 있응께, 돈 번다고 맨날 고생했죠. 사업 한다고 맨날 나가 있어가지고 몇 달에 얼굴 한번 볼까 말까 했는디.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어요. 맨날 망해서 빚쟁이들 찾아와가지고 엄마 어딨냐! 막 소리 지르고, 저 는 그냥 엄마 없다고 엄마 없어요, 엄마 없어요, 그랬죠. 근데 마지막으로 크게 망하기 전에, 엄마가 읍내 김밥 천국에 가가지고, 천 원짜리 돈뭉치를 막 던진 적이 있어요. 근 디 그 가난한 시절에 왜 천 원짜리 돈을 던졌는지 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거든요. 천


5 ㅣ예진이 어머니

집이 굉장히 낯설었어요. 예진이가 없으니까. 처음에 진도에서 올라올 때는 집에 못 들

하게 여학생들이 연예인 따라다니기 좋아하고 방송국 다니고 그냥 요 정도로만 생각을

어갈 거 같았어요. 무서울 거 같았어요. 왜냐면 애가 없어진 데를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

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더 관심을 갖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뮤지컬 배우가 되

니까 이거 감당을 못할 거 같은 거예요. 근데 막상 집에 오니까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

고 싶다고. 일 학년 때도 단원고 축제가 있어요. 그 영상을 예진이 가고 난 다음에 학교

래서 예진이 방에 들어가서 예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준비물 포스트잇에 써놓은

에서 보내준 거죠. 그거 보면 앞에서 거의 중심에 서서 춤도 추고, 엄청 잘 했더라고요.

거 뭐 이런 게 다 있더라고요. 여자애들 뭐 속옷 팬티 몇 개 브라 몇 개 이런 거 다 적어

그 동방신기 유노윤호하고 같이 공연한다고, 엄청 팬이어서. 그리고 영어 팝송대회 같

놓고, 그런 거 봐가면서 하나하나 봐가면서 인제 울기도 했다가 이렇게, 이렇게 했었구

은 것도 아이들하고 모둠으로 열 명 이렇게 나가서 약간씩 율동해서 영어팝송대회에서

나, 이렇게 들떴었구나 왜냐면 수학여행 가기 전 날 내가 조금 야단을 쳤거든요. 학원에

도 상 받아오고 그런 영상을. 우리 예진이가 맨날 연습하는 건 알았어요. 집에서. "엄마

서 늦게 끝났어요. 열한시 넘어서 온 거 같애. 늦게 끝나서 왔는데 차에서 내리는 걸 분

언제 해." 하는데 허투루 들었죠. “상 받았어. 우리 모둠” 이런 건 허투루 들었는데

명히 봤는데 안 들어오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가까운 친구 집에 모자를 빌리러 갔던 거

예진이 가고 나서 학교에서 그런 자료들을 다 보내주니까 아 이게 얘가 말했던 그거구

예요. 몇 개를. 이제 모자를 몇 개를 빌려왔는데 침대에 앉아서 안자고 계속 카톡을 하

나 연결이 됐던 거죠.

는 거예요 그 열두시가 훨씬 넘었는데 그래서 빨리 자라고~ 내일 수학여행 가려면 피곤 한데 얼른 자라고 내가 막 그러니까 아 알았다고~ 이러면서 애가 잤는데 나중에 지나고 나니까 그 저기 뭐야 컴퓨터로 카톡한 애들이 있더라고요. 걔네 반 단체 카톡. 거기에서 애들이 들떠서 밤새 카톡하고, 새벽에도 막 여섯시부터 카톡하고 막 이랬더라고요. 단 체 카톡이. 그날이 또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 생일이었으니까 그거에 대해서 누가 케이 크를 만들어 올래, 선물은 어떡할래, 이런 거. 그랬으니 내가 빨리 자라고 하니까 짜증 나죠.~ 그니까 자꾸 이렇게 끼워 맞추다 보니까 미안한 게 더 많이.. 들더라고요. 미안 한 생각이.

자기가 예쁜 줄 아는데 (웃음) 제 눈엔 제 딸이 예쁘죠. 근데 객관적으로 봤을 땐 그냥 평범한 여학생이었어요. 애가 키가 저보다도 크고 체격이 있어요. 체격이 있어서 옷을 제가 못 사줘요. 제가 사주면 맘에 안 들어 하고 근데 덩치가 있는 반면에 감각이 있어 서 옷 같은 거 사는 거나 좀 튀는 걸 좋아했어요. 얘가 눈이 좋은데도 썬그라스 같은 거 연예인들이 이렇게 닫았다 벌렸다 이런 거도 집에서 쓰고, 속눈썹도 제가 안 붙여 봤으 니까 모르잖아요. 약간 구박 반 이러면서 막 깔깔대고 웃고.. 보통 평범한 엄마 딸? 그러 면서도 왜 내꺼 썼냐 이러면서 티격태격도 하고 그런 딸... 그리고 제가 회를 굉장히 좋 아했었거든요. 우리 신랑하고 싸우면 그걸로 저를 풀어줄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엄마

너무 적극적인 아이라 앞에 서길 좋아했고, 수업시간 이런 때 선생님들 말씀 들어보면

죽으면 제사상에다가 회를 꼭 올려줘 그러니까 엄마는 그런 말만 한다고.. (웃음) 그만

오후 시간 되면 굉장히 졸리잖아요. 그럼 우리 예진이 앞으로 불러내서 분위기 업 시키

큼 좋아한단 소리야~ 그리고 나이 먹어서 엄마가 너 돈 없으니까 사주지 마 해도 그건

고. 다가가는 아이였어요. 친구들한테도 다가가는 아이였고 굉장히 활달한 아이였어요.

진심이 아니니까 끌고라도 가서 사줘~ (웃음) 그런 말 농담 식으로 많이 얘길 했었어요.

우리 예진이는 확실히 정해졌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중학교 때까지는 그냥 평범

밥상 차려놓고 애 깨워서 예진이가 제일 먼저 밥을 먹어요. 식탁에서 먹는 동안 저도 이


쪽에 서서 바쁘니까 막 서서 먹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맛있어요. 한 시간 동안 움 직였으니까. 엄마는 앉아서 먹지, 서서 먹는다고 막 짜증을 내는 거예요. 앉아서 여기서 같이 먹지 왜 그렇게 서서 먹느냐고, 대접 못 받는다고. 얘는 그런 게 싫었나 봐요. 엄마 가 막 그러는 게.. 너 살았냐고 그랬더니 “응, 아빠 나 살았었어. 섬에 있다가 지금 온 거야.” 그러면서 의찬이가 오니까 슉 하더니 소파 뒤로 숨더래요. 왜냐면 깜짝 놀래게 할라고. “누나 왔 다!”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요. 그렇게 할라고 숨었다고 그러면서 깼는데 아우 정말 그 게 현실 같았다고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막 그러더라고요. 받아들이기 싫은데 안 보이니까, 안 보이니까 그렇죠. 저 같은 경우도 예진이 방 그대로 에요. 쓰레기통조차도 버리지 못 해서 그냥, 그냥 그대로 놨어요. 옷 같은 거도 애가 뒤 집어서도 벗어놓고 이런 거 있잖아요. 하나도 건들지 못하고 그냥 바닥만 청소하고 그 렇게 하죠. 이사를 못 가는 것도 저희 작은 아이가 두 살 차이 나서 지금 고등학교 1학 년이거든요. 근데 집에서 좀 멀리 다녀요. 그래서 올해 1학년 들어갈 때 학교 가까운 데 로 이사 갈까 그랬더니 안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누나하고 같이 있던 데 아직까지는 떠 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몰랐는데 저녁만 되면 애가 불을 켜놓더라고요. 누나 무서울 까 봐. 그런 말을 하는데.. 아후... 우리 예진이가 진짜 살아서 올 줄 알았어요. 걔가 그렇게 쉽게 갈 애가 아닌데. 정말 쉽 게 갈 애가 아닌데. 그날도 16일 날도 저랑 막 통화를 했거든요. 처음에는 저를 안심을 시켰고, 제가 막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발을 동동거리고 이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9 시 44분인데 예진이가 저를 안심을 시키더라고요. 상황을 얘기해가면서. 내가 어떤 상 황이야? 그러니까 헬기가 떠있고 구명조끼 입고 있고 하니까 지금 기다리라고 해서 기 다리고 있다고 해서 저는 배 밖인 줄 알았어요. 헬기가 보인다고 그래서. 그러면 예진아 니가 뭐라도 들고 있으면 왜 이렇게 옛날에 재난 같은 거 났을 때 보면은 헬기를 향해서 막 흔들잖아요 그래서 손수건이나 뭐라도 있으면 흔들어라 갑판인 줄 알았으니까 근데


알고 봤더니 사층 선미 쪽 창문을 통해서 보였던 거예요. 그때 예진이가 저를 막 안심시 키고 제가 일단 회사에서 나와서 학교든 어디든 간다고 확 나오는데 십분 뒤 54분에 그 때는 막 울드라구요. 그때는 막 엄마 울면서 엄마 꼭 살아서 간다고 내가 전화기도 꼭 들고 있으니까 엄마 내가 나가서 꼭 전화한다고 엄마 그래서 저는 막 야단쳤어요. 무슨 숙제처럼 그러니까 짜증나더라고요. 당연히 와야지 무슨 목적 갖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 처럼 얘기하니까 속상해서 당연히 와야지 무슨 소리냐고. 그 함성 소리가 막 들리더라 고요. 그땐 배가 확확 넘어갔나 봐요. 애들이 막 저쪽에서 막 아악! 이런 소리? 그러니까 우리 예진이가 왜! 왜! 왜! 이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전화가 끊겼죠.



VEGA Installation View


어머니가 수집해온 이영만 군의 유품 설치


일곱 개의 시계 베가

5.18 희생자 사진, 낡은 시계, 오일 칼라, 스와로보스키 지름 34cm 고 이영만 군이 어릴 적 주워온 돌, 스와로보스키 2016

2012 VEGA Installation View


VEGA Installation View


VEGA ㅣ 흑표범 하나의 죽음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사랑과 기쁨, 고통과 슬픔, 체험과 인식 등, 아무하고도 닮지 않은

찻길을 사이에 두고 전시장 안팎에 마주한 관객과 나는 멀리 떨어져서 같은 목소리를 듣고 있다. 두 공간

따라서 아무하고도 뒤바뀔 수 없는 그만의 소중하고도 고유한 세계의 소멸을 뜻한다.1)

을 가로지르는 어머니들의 목소리는 아이와의 온갖 기억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나는 팽목항에서

2013년 나는 낡은 시계에 광주 항쟁 희생자의 사진을 붙이고, 그 훼손된 신체 이미지에 유화 물감과 큐빅들로 상흔을 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사진 속 얼굴을 보았는데 극단적인 폭 력을 고스란히 받아낸 그 얼굴은 더 이상 얼굴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게 그 사람에

가져온 이불을 덮고 유리창 안의 관객들을 바라본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유가족들의 몸짓 을 수행하면서, 상실을 애도하고 그 기억을 함께 구술하는 그리움의 제의로써 무너진 공동체를 호출한 다.

관한 어떤 정보나 연관도 없었지만 그 얼굴이 본래 지녔을 고유의 모습이 그리웠다. 그것은 같은 인간 으로써 느낀 상실감이었고, 입 밖으로 쉽게 꺼낼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다음해 4월 여객선을 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천천히 수장되는 과정을 미디어로 지켜보았다. 수많은 의 혹들만 남긴 채 아이들은 죽었고, 시스템은 무능했을 뿐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의미 없이 죽었다는 것 을 애도할 기회조차 제거했다. 아이들의 죽음은 온갖 감정(혐오)정치와 자본논리로 희화화되고 왜곡되 었으며, 죽음에 대한 슬픔은 무감 혹은 비공감, 반애도 속에 내쳐지고 있다. 결국 프레이밍된 논쟁만 남 고 정작 아이들의 얼굴은 사라진 현 상황에서 광주와 세월호는 생명체에 잠재된 인간의 얼굴을 감지하 지 못하는 국가에 의해 얼굴이 강제적으로 지워졌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있다. 그것은 각 개별적 존재의 고유한 세계를 부정당하고 훼손당하는데서 오는 차마 언어화되지 못하는 상실감과 그리움, 비애를 포 함한다. 전시명 <VEGA>는 세월호 유가족인 영만이 어머니가 여름내 자택 베란다에서 보았던 별, 직녀성의 이 름에서 가져왔다. 매일 아침과 밤마다 학교에 다녀오는 영만이를 배웅하고 마중했었던 베란다에서, 별 은 그리운 아들을 대신하는 위안이다. 지난 몇 달간 나는 그녀를 포함한 세 분의 유가족 어머니를 만나 며 그녀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면서, 거대한 사건 밑에 가려져 있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기억들에 주목하 게 되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새겨진, 아이가 자주 가던 장소를 거닐고, 영상 속 아이의 몸짓을 따라 하거나,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 내가 머물렀던 그리운 장소들을 되짚는 여정이 이어졌다. 이 과 정에서 꾸었던 꿈속 아들과의 이별이나, 이십년 만에 찾아간 고향집의 황량한 모습과 과거의 기억은 세 어머니들의 기억 사이를 백일몽처럼 유영한다.

1. 박완서,<한 말씀만 하소서>,세계사,2004,54쪽


VEGA Performance 2016.2.13 영상링크 ㅣ https://vimeo.com/157226826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 ㅣ 김경주 / 시인 1. 패스워드로 락(LOCK) 걸어두기 이미 지나쳐온 과거의 시간들을 소환해내기 위해 나는 꼬박꼬박 숫자들을 채우며 살아왔다. 유년기부

연 18일째, 임신 21주차 등의 표제가 붙은 기록은 특정한 테마 속에서 구성 전개의 높낮이를 가지며 진

터 채집해놓은 무수한 숫자의 배열 중에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동네에서 가장 잘 살던

행된다. 특별할 것 없는 날들과 비슷한 모양새처럼 보이지만 기록하고 있는 본인만이 아는 특별한 리듬

집 앞에 주차된 세단의 차량번호나 십수 년 전 헤어진 옛 애인의 삐삐번호, 수학 능력 시험 수험번호나

과 속도의 시기. 아침에 일어나 때때로 한 끼 정도의 식사를 건너뛰고 일정한 시각에 일을 마무리하고 귀

처음으로 당첨된 3등짜리 복권 숫자 따위는 애써 외우질 않아도 이미 나라는 사람에게 체화된 암호나

가해 잠에 드는 것. 면밀히 살펴보아도 그다지 별다를 게 없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지만 기록자만

다름없다. 어떤 알고리즘적 개연성 없이 그것들은 여태껏 나의 계좌나 공인인증서, 각종 웹사이트의 패

이 체감하는 일상의 균열, 기울기의 변화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 시기에 저장되고 있는 기록들은 이전의

스워드로 쓰이고 있다. 개인만이 알고 있는 숫자의 질서들은 개인의 삶을 영구화시킨다. 뒤를 돌아보는

날들과는 다르게 서술되어 개인의 유물로 완성된다. 기록함과 동시에 개인의 생에서 유별난 날짜들로 분

것은 어쩌면 그러한 숫자들을 하나둘 더듬는 일일지 모른다. 기념해둘 만한 날짜를 지정해 매년 기리는

류되어진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날들은 결코 알 수 없을 세계로의 진입. 망각과 휘발이 없는 장소로의 이

것 또한 지나온 시간을 영구히 가둬두는 숫자의 역할일 것이다. 일기의 서두에는 늘 숫자가 쓰여진다.

행. 그곳에서 기록들은 암호화된 날짜를 자물쇠 삼아 굳게 잠긴 것이다. 되새김질하면 할수록 더욱더 선

실제로 겪은 일이나 그날 느꼈던 감정의 소회에 대해 온전히 묶어두고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채우는 것

명하고 견고해지는 므네모시네 의 샘물처럼.

이다. 사는 내내 인간은 숫자에게 일정한 책무를 짊어주고 얼마간 그것에 기대어 자신의 생을 쓰다듬는 다. 암호화된 기억들이 많을수록 삶이라는 저장고는 풍성해지는 법이다.

1)

2. 깊은 물, 깊은 망각 2)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호출하고 소환해내는 것은 기록이 담당해왔던 일이다. 수많은 비망록과 회고록

바르트는 2년 4개월 동안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글로 남겨두었다. 그는 상실로 인해 파생되는 갖

에 첨부된 도큐먼트들은 비가역적인 시간에 거세게 대항하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이 몸부림은 어떤 의

가지 감정들에 대해 무심하게 응대했으며 그것들을 함부로 진단하거나 정리하려 들지 않았다. 삶의 여정

미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죽어버린 날짜들에 대한 추모이자 애도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내내 골몰했던 분석적이고 탐구적인 태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글줄의 나열. 그의 문장들은 액체 속에

는 노랫말처럼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앞으로 건너간다. 건너가는 내내 멈춰보려 애를 쓴다. 하지

담겨있는 것처럼 자주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착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문장들은 멈추지 않고 어

만 물레방아는 멈출 수 없다. 시간이라는 폭포는 결코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은 앞으로 걷는 내

딘가로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명백하지 않은, 희미한, 소실점도 마침표도 없는 액화된 문장들. 점성

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기이한 반동과 충돌 사이에서 발생하는 파편들이다. 모든

이 하나 없는 그의 기록들은 깊고 고요한 웅덩이가 되어 고여있었다. 어머니에 관한 그의 짤막한 노트들

비망록에 깃든 정서가 폭발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미국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딘 에치슨(Dean

은 애도의 형식을 띤 채 출간되었다.

Gooderham Acheson)은 비망록이란 쓰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쓰여진다고 말한다. 정치적인 맥락 의 정의라고 할 수 있지만 기록을 통해 보존되는 삶의 영속성을 생각해볼 때, 그의 발언은 보편적인 공 감을 불러일으킨다. 기록은 분명 우리의 보호막 내지는 투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잠식과 수장.‘물’이 건네어주는 어떤 이미지들. 기원전 신화에서부터 지금껏 오랜 시간 피력되어온 물의 상징은 죽음이었다. 나의 시원에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영구한 세월 동안 물은 죽음이라는 이미지를 품고 현재에까지 흘러왔다.‘망각의 강을 닮은 호수가 의식 있는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기록 행위는 활자와 이미지, 장면(scene)과 멜로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되어지고 있다. 기록된

결코 눈을 뜨려고 하지 않는다. 로즈마리가 무덤 위에 잠자고 백합은 물결 위에 누워 있다. (중략) 모든 아

축적물들, 그러니까 사후 이전에 발생된 유물들은 개인의 생몰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쌓여간다. 기록

름다운 잠잔다.' 에드거 포를 위시한 수많은 작가들은 물속에 잠겨 눈을 감은 인물들을 그리며 죽음을

의 서두나 표피에는 사는 동안 채집해온 숫자들이 넘버링 되어있다. 그레고리력으로 셈하는 날짜인 경

표현했다. 바슐라르는‘물’ 이 가장 아름다움에 충실한 죽음의 물질이라고 했다. 물만이 가장 아름다움을

우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개인이 지정한 숫자들의 연속일 때도 있다. 너와 헤어진 지 398일째라거나 금

간직한 채로(보호된 채로) 잠들 수 있는 물질이라고 여긴 그는 훼손이 적은 상태로(보존된 채로) 잠든 이

3)

4)


미지가 마지막 기억으로 남겨진다고 생각했다. 물에 비치는 한 개인의 최후의 모습은 그 자의 마지막

3. 멀찍이 서서 응시하기

시각적 기록이 되는 셈이다. 또한 물의 고요함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물의 깊이와 침묵의 부피는 비례

' 패스워드 416’의 기록들이 담긴 종이박스는 광장 한복판에 버려진 채 눅눅해져갔다. 습하고 더운 장

한다. 물의 말수가 적어지는 것은 죽음이 조용히 찾아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이 없어지고 잠에 드는

맛비에 흠뻑 젖은 박스 표면은 쉽게 허물어졌다. 볼품없게 변한 외관 덕에 사람들은 구석에 몰아두어야

것,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가늠할 수 없는 적막의 무게가 차오르는 것이다. 물이 지닌 속성에 기대어 우

할 문젯거리로 보기 시작했다. 단풍잎에 쓸리고 눈길에 얼다 녹길 반복하며 박스는 찢어진 구멍의 너비

리는 자주 죽음을 추억해왔다. 기실 죽음은 추억될 수 없다. 경험해본 적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를 넓히다 못해 조금씩 내부의 기록들이 유실되기도 했다. 갖가지 프레임이 막무가내로 씌었다 벗겨졌다

죽음으로 기인한 상실감을 죽음으로 해석할 뿐이다. 이별하고, 실종되고, 사라지고, 없어지고, 보지 않

하면서 박스 중심부에 단단히 고정돼있던 것들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지나며 흘깃거리

기로 하고, 보지 않고, 볼 수 없는 그 모든 상태를 우리는 죽음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모든 상실은 모든

다 마는 전광판 위 숫자들. 이달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 00명. 분명히 누군가는 죽었는데 누군가는 멀거

죽음에서 비롯된다.

니 쳐다보다가 마는 일. 그러한 무의식적인 치환들이 끔찍하게 일어나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는 일

허나 나는 더 이상 물이 가져다주는 혹은 물로 인해 연상되어지는 죽음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기가 버겁 다. 유구한 세월을 지켜낸 물의 고유한 상징적 의미들이 언제부턴가 불편하고 힘겨워졌다. 그런 시기 에 내가 떠올린 숫자의 배열은 다음과 같았다. 4-1-6. 사일육. 4월 16일. 2년 전 그날 이후로 물은 더

상. 개별자의 윤리관이나 성품과는 아무 관계없이 벌어지는 이러한 일상적 체험은 나의 문제도, 너의 문 제도 아니지만 우리의 문제인 일들로 멀찌감치 떨어져 희석되고 있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아두고 기화시 키는 날짜들 속에 2년 전, 그날의 일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이상 상징이 아닌 실재한 공포로 다가왔고, 그것은 결코 아름다움이니 고요함이니 따위의 수사를 붙여

용산구 해방촌 인근에 위치한 공간 해방에서는 거세된 애도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예술가들의 기록들을

가며 노래할 수 없는, 일종의 ‘사어’가 된 셈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헐리

꾸준히 전시해왔다. 올해 2월에 전시된 흑표범의 <VEGA>展 역시 그날의 상실과 죽음의 상흔을 꺼내든

우드 제작의 대형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들이 새삼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여드는 긴장감이 오

전시였다. 작가 흑표범은 광주항쟁과 관련한 전시를 준비하는 중에 세월호 사건을 맞닥뜨렸다. 죽음에

락적 재미를 최대치로 조성하는 영화들. 문득 무심하게 마우스 버튼을 누르며 보던 기사들 역시 떠올

대해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참사와 관련된 외부적인 논쟁들이 시시각각 매스컴을 장악했고, 그로

랐다. 내전 폭격으로 죽은 소녀의 시체 이미지, 지진과 해일 등의 재해로 파괴된 도시 이미지들. 클릭,

인해 정작 들여다보아야 할 상처의 중심부는 쉽게 잊혀졌다. 작가는 개별적 존재의 고유한 세계를 부정,

클릭, 소리를 내며 눈앞에서 스쳐 지나간 모든 이미지들이 자각몽을 일으키며 한동안 나를 불편하게

훼손 당한 상흔들, 끝내 어루만져지지 못 했던 그들의 상실에 착안해 작업을 진행했다.

쫓아다녔다. 지금껏 보아왔던 모니터 화면에 비치는 이미지들은 모두 실재한 참상이자 현실이었다. 살갗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갗이 다치는 듯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 보드리야르는 매체를 통해 보게 되 5)

전시장 내부에 앉은 관객들은 길 건너에 있는 작가를 본다. 검은색 옷차림의 작가는 진도 팽목항 체육관 에서 가져온 담요를 덮은 채 앉아 있다. 전시장 내부의 통창은 TV 브라운관의 테두리를 연상시킨다. 창

는 사건들을 3면 기사(사회면 기사)적 성격이라고 규정한다.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는 완전히 현실적

너머에 보이는 작가의 행색은 체육관에서 쪽잠을 자며 아이들을 기다리던 부모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전

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 매개물에 의해 현실에서 멀어져있는, ‘기호’로 환원되어지는

시장 내부의 빔프로젝터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작가와 관객들은 인터넷 방송 어플리케

실상이라고 말한다. 타국이나 외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가난의 비극, 갈등의 현상을 이미지라

이션을 통해 교감한다. 준비된 퍼포먼스와 영상은 전시장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실시간으로 생중계

는 지표로 확인하고 소비한다는 것이다. 매체가 전달하려는 현상의 장소들은 현실이 아닌 현실, 기실

된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 난 찻길로 차들이 움직이고 행인들이 지나다닌다. 작가의 모습은 마치 브라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장소의 제공, 즉 그것은 현실의 현기증일 뿐이라는 것이다. 416이라는 암호

관 속 영상처럼 멀리에, 너머에, 비현실적인 현실(3면 기사)처럼 느껴진다. 퍼포먼스를 알리는 작가의 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갔다. 쓰는 자를 지키기 위해 쓰이는 것을

사말이 끝나고 유가족 어머니들의 육성이 시작된다.

비망록이라고 한다면 ‘패스워드 416’의 기록들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채 지금도 천천히 수장되 고 있다. 레테의 강 속으로 매우 깊게 말이다.

세 명의 어머니들은 차례로 자신의 아이에 대한 추억을 되짚는다. 아이에 대한 추모의 육성이 들리는 동 안 영상에서는 아이와 함께 거닐던 학교, 공원, 아이의 방 등이 비친다. 오디오와 비디오가 공감각적으로


6)

맞물리면서 관객은 이윽고 장례적 행위에 동참하게 되고, 전시장 내부의 관객은 창 너머, 길 건너편의

랑하는 사람은 나의 중개자가 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의 나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전기작

작가를 응시하게 된다. 남겨진 사람, 상실을 안게 된 자가 저 너머에 실재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가가 되고, 가장 넓은 영토의 유적지가 되는 것이다.

이다.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는 것. 결코 그들이 겪고 있는 슬픔의 정도와 타격을 알 수는 없지만 죽음이 라는 거대한 상실, 그 깊은 침몰 속에 남겨진 사람들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죽는다는 건 뭐지,라는 호기심과 공포는 매일의 동력과 허무를 반복 해서 실어다 주었다. 죽음은 일상에서 가장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살갗에 볼

전시장에는 삼베 천 위에 유가족들이 그려져있다. 팽목항 체육관을 수놓은 오방색 담요들, 그 위로 넋

을 부대끼는 유일무이한 근거이기도 했다. 무자비한 살상의 풍경은 사는 내내 도처해있을 것이고, 가까

을 잃은 채 구부정하게 웅크려있던 부모들이 있었다. 전시장 내부에 가득 차오르는 남겨진 자들의 목

운 지인의 부고를 대비해 나는 검은색 정장을 갖춰놓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상실하고 있다. 오늘도 누

소리. 자전거를 처음 타던 아이를,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약하던 아이를, 여행에 설레어했던 아이에 대한

군가에게 잊혀졌고, 오늘도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졌다. 문제는 죽음이 아니다. 죽음 후에 남겨진 유품

육성 기록. 비망록은 쓰는 자를 지키기 위해 쓰인다고 했다. 죽은 아이를 잊지 않기 위해 진술하는 담담

과 그들과 얽혀있던 사람들, 상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들, 그들이 겪을 시간들이다. 애도라는 감정의 반

한 어머니의 목소리는 작가에게도 전이된다. 작가는 어머니들의 육성 사이에 자신의 자전적인 진술을

응에 기본적으로 수반되어지는 건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몸부림의 시간이다. 바르트는 애도를 회복

의도적으로 집어넣는다. 아이가 없는 작가 자신이 꿈속에서 아이를 만나게 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나 원상태로 복원해야 할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도라는 감정, 혹은 애도 속에 머무는 자들의

아이임에도 마치 실제로 자식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가는 아이와의 대화를 들려준다. 작가는 본

상태는 아마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는 것, 상실 그 이전의 시간으로 역행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아마

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노출시킴으로써 이입과 공감의 정서 쪽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이국의 내

도 그것은 정상적인 반응일지 모른다. 잊지 않기 위해 쓰여지는 기록들, 기억이 많을수록 풍성해지는 삶.

전, 전광판 속 사망자 수, 타인의 고통이라고 단정 짓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멀어지도록 유도한다. 이러

우리는 상실 후 남겨진 자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고, 지인은 나의 부고

한 유도를 통해 작가는 관객들에게 무심한 고요, 무서운 침묵에 대해 묻는 것일지 모른다. 공동체 속의

를 대비해 검은색 정장을 맞춰놓았기 때문이다. 입을 다물어버린 물이 아직 우리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개인, 개인에게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우회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만나본 적 없는 팽목항 체육

는…… 우리는 아직 온전히 애도하지 못 했다. 어쩌면 영영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7)

관의 부모들과 단원고 학생들, 아프리카 항구도시에서 성매매를 하는 십대 소녀들, 대한민국 영토에서 는 볼 수 없던 종교적 갈등과 인종간의 불화. 유리창 너머에, 차들과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찻길 건너편 에 앉아있는 ‘실재하는’ 작가의 모습과, 그를 보고 있는 관객들, 또한 앞서 열거한 사람들은 병렬구 조로 놓여있다. 작가는 아마도 이러한 공동체적인 의미의 스왑(swap)을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4. 서쪽 하늘에 비치는 환시 직녀성(vega)은 한반도 지형에서 여름밤에 가장 잘 보이는 별 중에 하나다. 작가는 영만이 어머니의 자택 베란다에서 본 별의 이름으로 전시 제목을 택했다.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봄에서 여름으로 절기 가 바뀌었다. 어머니는 매일 밤 베란다에 나가 한참 동안 직녀성을 쳐다보았다고 한다. 석 달이 넘은 기 간 동안 밤마다 베란다에 서서 보았던 것은 별이 아닌 별에 비치는 아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영만이 어머니의 기록을 통해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매일 학교에 다녀오는 아들을 마중하고 배웅했을 자리. 그곳에 서서 아들에 관한 아주 세밀하고 촘촘한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는 어 머니를 보면서, 작가는 추모는 기실 시간을 꼼꼼하게 되짚어가는 일임을 느꼈을 것이다. 바르트는 사

1)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기억의 여신. 2) <애도일기>, 롤랑 바르트, 2012, 이순출판사. 3)《이렌느》, 에드거 포. 4) <물과 꿈-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 바슐라르, 2004, 문예출판사. 5) <소비의 사회>, 보드리야르, 1992, 문예출판사. 6)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2012, 이순 출판사. 7) <물과 꿈-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 바슐라르, 2004, 문예출판사.


VEGA Performance 2016.2.27


VEGA ㅣ이수정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추위가 한창이던 몇 개월 전, 흑표범 작가를 만났다. 공간 해방을 통해서 세월호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로 고통받게 된다. 따라서 긴장감, 피로감 등을 느끼며 늘 위험을 경계하는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는

꾸준히 기획하고 참여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할 예정이라

‘과각성’,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마치 계속 그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하며 벗어나지

하였다. 얘기를 나눈 후, 안산에서 약속이 있다며 총총 떠났다.

못하는 상태, 일시적인 기억 상실처럼 억제시키는 상황 등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세월호 유

그리고 몇 달 후, 개막 퍼포먼스 소식을 받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토요일 오후 퍼포먼스가 열렸 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갔던 나는 퍼포먼스를 보고 싶었지만, 졸리고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 에게 쏟아지는 비를 맞게 할 일이 엄두가 안 나 작가에게 겨우 눈인사만 건넨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거의 도달했을 즈음, 비는 거짓말같이 그쳤다.

가족뿐 아니라 세월호 사고를 지켜본 사람들 중 다수가 느끼는 무력감, 공포, 그리고 외면하고자 하는 마 음 등은 모두 이러한 증상과 일치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점차 조금 씩 언어로 표현해내는 과정을 거쳐, 조금씩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안 전한 환경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안전하고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뜻도 포함하지만, 심리적 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는 환경, 즉 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는 심리적 환경으로도 볼

혼자서 다시 찾은 공간 해방. 작은 공간에는 교복과 양말, 양치컵 등 소소한 물건들이 걸려 있었고, 한 쪽 벽에는 영만이, 시찬이, 예진이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이야기가 정리돼 있었다. 삼베와 종이 위에 작가가 어머니들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이 벽면과 천정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세 어머니가 들려주는 세 아이 이야기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수 있다. 그곳에서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할 때 충격으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지나 분노하고 슬퍼하는 여러 단계를 지나면서 상실과 상처를 돌아보면서 점차 치유의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갖게 된다. 흑표범이라는 낯선 예술가, 타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친근했던 분신과 같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과정이 어머니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흑표범뿐 아니라 문인들이나 언론인들에 의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은 미술의 역사에서 고전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아들 예수를 잃은 마리아

4.16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여러 활동들이 펼쳐져 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일들

는 실신하거나 누군가의 부축을 받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혼자서 바로 서거나 설 수 없는 지친 상태

은 가족들에게 몸도, 마음도 힘들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일 것이고, 때로는 하고 싶으면서도 힘들어

의 모습으로, 참담한 표정으로 애통함을 표현한다. 독일의 화가 케테 콜비츠는 18세였던 둘째 아들 페

서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세상에서 잊혀질 것 같은 사고, 세상에서 잊혀질 것 같은 아이에 대해서 증

터가 세계 대전에서 참전 20일 만에 전사한 후, 아이를 잃은 슬픔과 막막함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반전

명하고 증언하는 일이기에 그 어떤 일보다 시급하고 급박한 일이면서도, 때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사

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흑표범이 그린 진도 체육관에서의 어머니들의 모습은 그와 같

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라는 그 냉정한 현실이 무겁고 끔찍해서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은 고통의 도상이었다. 흘러나오는 눈물에 얼굴을 가린 어머니와 그녀를 감싸 안으며 지탱하는 다른 어 머니,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 바닥에 엎드려 몸을 낮추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 어머니가 거기 있었다. 그 처연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힘이 빠지고 눈물이 흘렀다. 이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세 아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과정을 읽으며 그 잔인한 마지막 만남의 순간에 분노가 치밀었다. 영 상 속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웃다가 울다가 했다. 가슴 아픈 장면을 보고, 가슴 아픈 이야기 를 읽으며, 또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작업들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에게 의미를 가질까 생각했다. 어머니들에게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작가를 만나는 시간이 어떻게 남았을까.

하지만 어머니들은 흑표범에게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관객에게도 전해진 그 이야기에는 엄마가 무섭지 않도록 사이좋게 저녁 운동을 가는 마음 따뜻한 아들 시찬이가 있고, 급하게 서서 아침을 먹는 엄마에게 제발 앉아서 먹으라고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는 착한 딸 예진이가 있고, 가족들에게 요리 를 해주는 자상한 막내아들 영만이가 있었다. 담담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 영상이지만, 그 속에는 꿈을 가 졌던 아이들 각자의 고유성, 귀한 한 존재로서의 존엄이 담겨있다. 지금,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 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겠지만, 흑표범의 전시를 통해 확신한 것은 예술이 차가운 통계와 뉴스 속에 묻힌 이런 고유한 이야기를 살려내는 것, 즉 인간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라진 아이들을 고유한 존

주디스 허먼에 따르면 갑작스런 충격과 상처는 심리적 외상을 남기며,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 정상적

재로 되살려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들의 삶에 잠시나마 기운을 불어넣고, 무심하거나 잔인하게

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면한 이들의 시선을 잡고,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


전시 마지막 날, 시찬이 아버님, 어머님, 영만이 어머님,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그러한 확 신이 더 강해졌다. 다 함께 모여서 흑표범 작가가 반대편 건물 주차장 바닥에 앉아서 펼치는 퍼포먼스 를 보고 듣고 난 후, 긴 시간 대화가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궁금했던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낯선 예술가 가 와서 이러한 일을 함께 하자고 했을 때의 소회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이유에서 참여하셨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단순했다.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지 않을 수 없었어 요.”라고. 이 답변은 중의적이다. 첫째는 ‘세상을 떠난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이고, 둘째는 ‘다들 세월호와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든 상황이라 이 비극과 문제점에 대 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이다. 아이가 생전에 즐겨 먹던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변을 하던 부 모님들은 간간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아들이 만들어주었던 두부 크로켓, 여느 10대들처럼 좋아했던 치킨, 이런 얘기와 함께 웃었다. 연극이나 전시, 문학과 방송을 통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작업을 해온 관객들은 그간의 경험을 나눴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현장을 지켜왔다는 자원봉사자와 여고생의 활 동에 그간의 무관심을 미안해했다.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지겹다고 악담을 퍼부을 만큼 우리 사회가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언론을 통해서 갖 게 되었던 오해도 풀었고, 생각보다 꿋꿋하게 잘 버텨나가시는 모습에 응원도 이어졌다. 그래서 그 시 간을 마치고 오는 길에 생각이 정리되었다. 공간 해방에서 머물렀던 2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의 순간 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에게 기꺼이 감당해야 할 부담으로 남았다. 감정에 대한 공감이나 지 원일 수도 있고, 관심을 지속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함께 그들이 찾고 있는 답을 찾는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와 내 가족, 내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무게를 생각하게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치유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는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자책하거나, 잘못된 사람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스로가 설득될 때 비로소 강박적으로 매여 있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어쩌면 ‘예술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부 터가 틀렸을지 모른다. 지금 해야 할 행동이 예술일 필요도 없고, 예술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더 중요한 질문은 지금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 가이다. 그것이 예술이든, 운동이든, 정치든 상관없다고. 그저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가고, 무 엇이든 한다는 시찬이 아버지의 말씀처럼, 우리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야 할 것이다.


2014 20:00 -21:00

4.15

해경 세월호 출항 허용

09:47-50

세월호 60도 가까이 기울어 좌현 완 전히 침수

예진이 학원 끝나고 집에 바로 안 오

09:50-53

23:00

고, 친구 집에 모자 빌리러 다녀옴

예진이가 울면서, 꼭 살아서 간다고,

새벽까지 안자고 담임선생님 생일

나가서 꼭 전화한다고 엄마한테 얘

이벤트 단톡 회의하다 엄마한테 혼남

기하는데, 갑자기 저편에서 아이들

학생들 스스로 탈출 시도

09:54

함성소리가 들리고 예진이가 왜! 왜! 왜! 소리치면서 전화가 끊어짐 08:49

4.16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 들어선 세월 호 갑자기 서남쪽으로 변침 뒤 급격

10:17

세월호 108.1도로 기울어짐

히 기울며 표류하기 시작

10:21

배 완전히 넘어감

08:52

학생들은 방송에서 시키는 대로 대기

11:01

단원고 학부모들에게“학생 324명

08:54

오전 9시 26분까지 119와 해경에 모

전원 구조 완료되었습니다” 단체 문자

두 36건의 구조요청 전화가 걸려옴. 09:07

11:24

수중 수색작업 중단

16:00

3009함 탑승 잠수부,“청와대에서

진도 VTS, 세월호 근처에 있는 둘라

걸려온 많은 전화로 인해 회의가

에이스호에 구조 협조 요청을 함

5분 만에 끝났다”

전남소방본부 긴급구조통제단 가동

16:30

탑승459명(학생 325명, 교사 15명, 일반인 89명, 선원 30명), 구조 164명,

09:10

국정원, 청해진해운의 보고 수신

사망 2명, 실종 293명이라고 잘못

09:15

전남소방본부, 전남도청에 상황 통

공식 발표

보119종합상황실, 진도군청에 사고 소식 통보 09:20

라에이스호 (진도VTS에)“사람들이

단원고 학생 3명, 객실 안 사망자

4.19

최초 확인

탈출을 안 하면 배 옆에 붙을 수 없 다.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승객 들이 탈출하면 인명구조 하겠다” 09:23-26

4.22

예진이 발견, 엄마 품에 돌아와서 안

07:49

심한 편안한 표정으로 보였다고 함

VTS “경비정 도착 15분 전입니다. 방송하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등의 착 용토록 하세요”

02:00

4.23

에 수술 자국이 있다는 신상 정보가

세월호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

124번에 올라온 것 확인하고 정신

입니다 ”

없이 쫓아가보니 영만이가 오른쪽

09:37-46

선장 포함 선원들 탈출

눈두덩이에 새파랗게 멍들은 채로

09:43

123정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

누워있음

가 기울어서 못나오고 있다” 목포 상황실“무응답” 예진이 전화로 구명조끼 입고 있다

영만이 어머니 현황판에서 배 위

09:44

5.2

시찬이가 어머니 꿈에 나와서 우체

03:00

국하고 농협 사이에 있다고 알려주 면서 엄마를 부름

고 상황 설명하면서 엄마 안심시킴. 헬기가 보인다고해서 갑판인줄 알았 는데, 나중에 보니 이때 예진이는 사 층 선미 쪽에 있었음.

5.5

다인실과 그 옆 칸 사이에서 시찬이 가 나옴 집에서 입고 간 옷 그대로였 고, 주머니 속에 핸드폰이랑 지갑이 있었음. 화면을 통해서 아이를 확인 하는데 사건 발생 19일째였기 때문 에 시찬이 몸이 많이 상해서 남자 가

사건 타임라인은 4.16 기억저장소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기록은 작가가 어머니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족들이 여자들에게 아이 턱까지만 보게 하고 얼굴을 못 보게 함

21:00


흑표범

1999

화순고등학교 졸업

2004

호남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2016

'VEGA' , 공간해방, 서울

2013

'Who all are coming?', CSP111아트스페이스, 서울

2010

'POSSIBLE_Another spot' , CSP111아트스페이스, 서울

2009

'Possible', 오프도시, 서울

2009

'Things', 반디, 서울

2006

'A , R , T ', 살롱드코소, 서울

2004

'도대체', 롯데, 광주

그룹전 및 스크리닝, 퍼포먼스 2015

'이 불 한 장 _기다림' , 공간해방, 서울

2014

'시크릿 액션' , 토탈미술관, 서울

2014

'Katalista', 비바엑스콘, 라살 미술관, 바콜로드

2014

'사적 감성의 폭력성', 미디어큐브338, 광주문화재단, 광주

2014

'몸.살', 성곡미술관, 서울

2013

'시국선언 ', 평화박물관, 서울

2012

Homa 큐레이터 프로젝트,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11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발 'Nemaf', 서울

2011

주안 미디어 페스티발, 인천

2011

'정오의 목욕' 게릴라 퍼포먼스, 광주

2011

Asia Young Artist Festival, 미테우그로 & 쿤스트할레, 광주

기타 2015

이주여성 영상 스토리텔링 워크숍 '그대, 그리움을 말해요.', 서울문화재단

2014

HIV감염인 연극 '한 이불 덮고 만져줄게 워크숍', 플레이스 막, 서울

2013

방송 재규어에잇!,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서울

www.black-jaguar.com

이미지

구글

4.16 기억저장소


흑표범 2016.2.13_2.28 공간 해방 오프닝 2.13 17:00

2.13

18:00 퍼포먼스 VEGA 흑표범

2. 20

18:00 젊은 작가 프로그램, <나쁜 나라> 상영과 토크 진행 홍태림 / 크리틱-칼

2.27

18:00 퍼포먼스 <VEGA> 흑표범 19:00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관객 토크 진행 이수정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영만이 어머니 예진이 어머니 시찬이 어머니,아버지

퍼포먼스 시간에 아프리카 TV에서 "공간해방"을 검색하시면, 퍼포먼스에 흐르는 어머니들의 음성과 영상을 실시간으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

공간 해방

목공

박상보

김경주, 이수정

사진

홍철기

영상 촬영

김비오, 데프, 이랑

목소리출연

곽성욱(JL아카데미)

디자인

윤소담

토크

시찬이 어머니, 시찬이 아버지, 영만이 어머니, 예진이 어머니

토크 진행

홍태림, 이수정

공동체상영 <나쁜나라>

시네마달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고요서사

www.haebang.org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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