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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과 안보, 장병에게 하고픈 말

남자답게 세상을 사는 방법

September 2011 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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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MILITARY LIFE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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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n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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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1 vo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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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n STYLE

CULTURE n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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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1 vol.5 Military Culture Magazine HIM Honour & Indomitable Mind HIM

twomir@hanmail.net nanumbook@paran.com

him2011@hotmail.co.kr booky@booknanum.org media@booknanum.org inshide@gmail.com

bosspenny@gmail.com

bnc@booknan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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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석

CULTURE n EDUCATION

RMN / Musée d'Orsay - GNC media, 2011

2011 오르세미술관展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전성기 때 그린 최고의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르누아르의 <소년과 고양이>, 밀레의 <봄> 등 인상주의 걸작들로 꾸며진 ‘2011 오르세미술관 ’은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을 주제로 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상주의’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오르세미술관은 파리 센 강변을 따라 들어서 있던 철도역사를 개조하여 재탄생했으며, 한 해 600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방문해 빛과 색채의 향연에 맘껏 취할 수 있는 세계적 명소이다. 오르세미술관 인상주의 전시실의 공사 덕분에 해외 반출이 쉽지 않았던 작품들을 국내에서도 관람하게 되었는데, 우면산 산사태로 하마터면 전 인류의 문화예술 유산이 물에 잠길 위기를 겪기도 했다. 화가들의 치열한 삶과 예술세계가 담긴 작품의 혼 이 불의의 수마 수 있다.

02-325-1077~8 / www.orsay2011.co.kr

빈센트 반 고흐 _

Vincent VAN GOGH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La nuit étoilée, Arles

를 이겨낸 것이라고 볼



에드가 드가 _

Edgar DEGAS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

클로드 모네 _

Danseuses montant un escalier

Claude MONET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

Portrait de Madame Gaudibert


장 프랑수아 밀레 _ 봄

Jean François MILLET

Le Printemps

폴 세잔 _

Paul CEZANNE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Les joueurs de cartes


알렉상드르 카바넬 _ 비너스의 탄생

Alexandre CABANEL

Naissance de Vénus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_ 소년과 고양이

Pierre- Auguste RENOIR

Le garçons au chat


에바 곤잘레스 _

Eva GONZALES

극장 이탈리안의 특석 Une Loge aux Italiens

앙리 루소 _ 전쟁

Henri ROUSSEAU

La Gu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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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n INTERVIEW

고운기

김윤아

인내와 포용의 멘토 온조왕 백제를 세운 온조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복잡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자신의 주장보다 양보와 인내가 앞서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실행해 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관을 세워야할 때는 그 길을 버리지 않았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총이 아닌 펜을 무기 삼아 장병들의 전투 의지를 앙양했던 문인 클 럽‘창공구락부’의 정신을 계승해 새롭게 결성된 ‘창공클럽’의 회장 고운기 시인이 병사들에게 들려주는 ‘멘토’ 로서의 온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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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애호 문인단체인 ‘창공클럽’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고운기 님은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 업했으며,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그 밖에도 삼국유사 원전을 우리말로 쉽게 옮긴 『삼국유사』를 비롯, 삼국유사 관련 연구서로 『일연을 묻는다』『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길 위의 삼국유사』를 펴냈다.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 방문연구원, 메이지대학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복잡한 가세로 처신이 어려웠던 온조

그런데 형은 이곳을 떠나잔다. 차라리 새 나라를 세우자고 한다.

백제를 세운 온조왕에게는 형이 둘 있었다. 의붓형인 유리와 친형인

온조왕의 포옹력도 새겨야 할 교훈

비류가 그들이다. 두 형들 사이에서 온조는 늘 깍두기 신세였다. 그래 온조는 비류의 의견을 따랐다. 친형의 뜻을 저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도 그는 나라를 세웠다. 온조가 이렇듯 복잡한 가계(

) 속에 얽히게 된 데는 설명이 필요하

기약 없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이른 곳이 지금의 서울이었다.

다. 기록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동부여 출신인 주몽은 그곳의 금와왕

같이 길을 떠나온 신하들이 건의했다.

아래에서 살다가 그 아들들에게 쫓겨 졸본부여로 왔고, 거기서 소서

“이 하남 땅은 북으로 한수(

노라는 여자를 만났다. 소서노는 이미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고 있었

있으며, 남으로는 비옥한 들판을 바라보고, 서쪽에 큰 바다가 막혀 있

는데, 남편이 먼저 죽자 홀로 살다 주몽과 재혼하였다. 소서노의 두 아

습니다. 이만큼 하늘이 내린 요새와 땅이 주는 이득이 큰 곳을 얻기

들이 바로 비류와 온조였다.

어려운데, 여기에 도읍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실은 주몽 또한 재혼이었다. 동부여에 살 때 결혼하여 한 아들을 두었

온조는 이 말에 따라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았다. 열 명의 신하가

다. 급히 피난 오느라 처자식은 그대로 둔 채였다. 그러고서 소서노와

보필하게 되어, 나라 이름을 십제(

재혼하였던 것이다.

다음 해인 B.C.18년의 일이었다.

의붓 자식 둘을 얻은 채 주몽은 새 부인 소서노의 도움을 받아가며 결

그러나 비류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조의 두번 째 고민이 시작되었다.

국 고구려를 세웠다. 소서노의 도움이란 곧 그 집안의 도움이었다. 그

여기까지 온 것도 형의 강압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따라 온 신하

러니까 주몽은 처가 덕을 본 원조라고나 할까.

들의 말을 받아들여 자리 잡으려 하는데, 형은 다시 고집을 부린다. 온

그런데 여기서 주몽의 친아들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왕위에 올

조로서 중대한 결단의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형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라 20여 년 간, 처가에 둘러싸여 불안한 세월을 보내던 주몽은 친아들

비류는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자리잡았다. 미추홀은 지금 인

이 오자마자 태자에 책봉하였다.

천의 문학산 주변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곳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갈등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온조의 처신 또한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것을 금방 알았다.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었다. 따라

비록 왕비의 자리에 있건만 소서노로서도 당혹스러웠을 것이고, 비류

온 백성들은 돌아가자 아우성이었다.

는 이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례성은 활기에 넘쳐 있었다.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은 태평하였

“처음에 대왕께서 부여에서의 환란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까지 왔을

다. 그런 광경을 보는 비류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형으로서 동생만 못

때 우리 어머니가 집안의 재물을 쏟아 부어 나라의 창업을 도와 이루

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정치 일선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지내기로

었으니,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공로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왕께서

한 것이 이 때부터였을 것이다. 비류가 ‘깊이 뉘우치다 죽었다’는 『삼

세상을 뜨시자 국가가 유리에게 돌아가니, 우리들이 공연히 여기 있으

국사기』의 기록은 그것을 말해준다. 비류의 신하와 백성 또한 모두 위

면서 군더더기 혹처럼 암울하고 답답하게 지내느니보다는 차라리 어

례성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돌아오는 이들을 십제의 모든 백성이 매

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땅을 점쳐 따로 나라의 도읍을 세우는

우 기뻐하며 맞았다. 그러면서 나라 이름을 백제(

것이 나으리라.”

온조의 생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복잡한 집안의

누구 덕분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우리를 찬밥 취

둘째 아들로, 자신의 주장보다 양보와 인내가 앞서야 했던 사람이었

급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다. 그는 실행해 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관을 세워야할 때는 그 길

이 때문에 괴로운 것은 온조였다. 이미 주몽을 이어 유리가 왕에 오른

을 버리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사람일지

다음이었다. 그 아래에서 편히 먹고 살 수 있다면 있는 처지였다. 유리

라도,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때 받아들인 포용력이다. 이제 한번 그의

의 인격으로 보건대 먹고 살 자리까지 빼앗으리라 생각할 수 없었다.

생애를 멘토 삼아봄은 어떨까.

)를 두르고, 동으로 높은 산에 기대고

)라 하였다. 주몽이 세상을 떠난

)라고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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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n INTERVIEW

민승현

대한민국 군 전력의 70%가 집중된 지자체장에게 듣는다!

경기도지사 김문수 군과 안보, 장병들에게 하고픈 이야기

유성욱

임재문


&*

발전과 국민들의 평화와 안정은 지속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한창의 나 이에 하고 싶은 일을 잠시 접어둔 채 집을 떠나와 힘들고 어려움이 많 겠지만 잘 참고 이겨내리라 기대합니다. 검게 그을린 여러분의 늠름하 고 씩씩한 모습을 보면 항상 믿음직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국방은 국가존립의 기본으로 이것이 흔들린다면 아무리 경제가 발 전하고, 문화가 꽃피어도 소용이 없으므로 튼튼한 국가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경기도는 지정학적 위치상 언제 북 “을지연습이 서면계획처럼 되어 너무 형식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제가

한의 도발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접경지역으로 안보태세 확립은

국민들의 안보의식 함양을 위해 각 군에 제안했습니다. 고맙게도 각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지요.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방문해서

군에서 호응해주셔서 을지훈련 기간 동안 ‘안보재난장비 전시회’를 도

안보태세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청에서 갖게 된 겁니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북한과 최접경지 역에 위치하다 보니 항상 북한의 국지도발 가능성에 대해 철저한 대비 의식을 갖고 있다”며 “특히 힘의 우위가 없는 한 남북대치는 바로 무너 질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 안보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다”

통일은 우리 국가와 민족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통일비용 등을 들어 회의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분도 상당히 있지만 통일하지 않음으로써 드는 비용이 사실 더 많습니다. 지난 연평도 사태에서 보 셨듯이 남북간 긴장관계 속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희생, 국방・물류비 용, 북한 주민과의 이질감, 북한지역의 황폐화 등 분단으로 인한 비용 이 엄청납니다. 통일이 된다면 이러한 비용을 없애고 주변의 중국, 러 시아와 연결되어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해 강대국으로 갈 수 있

“경기도는 육해공 전력의 70%가 집중된 곳입니다. 군부대는 415곳이

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며, 군 비행장도 17개나 됩니다. 미군부대는 90%가 경기도에 있습니 다. 그래서 경기도 전체면적의 23.2%인 2,363.8㎢가 군사시설보호구 역입니다. 이는 서울 전체 면적의 4배에 달합니다. 특히 경기북부 지역 은 전체면적의 44%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인데, 연천군의 경우 군 전체 면적의 98%, 파주시의 경우 시 전체면적의 91%가 군사시설보호구역

“통일이 되면 열악한 북한의 SOC를 건설하는 것부터 시작해 해야 할

이지요. 경기도와 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연천군민은 모

일이 무궁무진해 우리 젊은이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두 4만5천명인데, 그 중 군인이 3만5천명에 달하니까 말이죠.”

예를 들어 북한의 산들이 모두 민둥산인데, 그 산에 조림을 다 하는 데만 30년은 걸린다는 추산입니다. 도로를 건설하고 공장을 짓고 발 전소 만드는 수많은 SOC건설에도 많은 투자와 인력 투입이 필요합니 다. 이런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북한 학생들에게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교육을 실시하는데 학교 선생님 수만 명이 필요하고, 북한지역 행정을 위한 공무원 조직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등 인력 수요가 무궁 무진합니다. 이런 모든 기회가 통일을 통해 열리는 것입니다. 또한 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젊음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금은 국토가 섬처럼 갇혀 있는 상황이지만 통일이 되면 대륙인 중국,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분단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여

러시아, 유럽과 연결되어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러분 같은 젊은이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의

다양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

해 취약한 전력인 조기경보 등 정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자가 시 급하다고 봅니다. 정보능력이 향상되면 도발징후 시 선제적 타격이 가 능하고, 만일 전쟁이 나더라도 개전 초기에 우리 장병들의 희생을 크 게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군인들의 5년간 평균 취업률이 50%가 조금 넘으며, 취업업종이 보안이나 영업직 등 지극히 제한적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힘을 보태 고자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실제로 전역예정자와 기 전역 제대군인의 성공적인 사회진출 지원 및 중소기업 구인난을 해소하기 위해 2010년 하반기부터 추진하고 있지요. 이를 위해 2010년 9월 육군과 제대군인 취업지원 업무협력 MOU를 체결했습니다. 추진내용으로는 제대군인

“군생활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근래 군에서 일어난 사건・

취업지원 교육을 연간 4회 운영했으며, 군 복무 현역장병을 위한 군부

사고를 보면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의 관

대 순회 취업특강을 연간 20회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61명

점이긴 하지만 일단 생활관 시설과 장병급식의 질 등 필수적인 것부터

의 교육 수료생 중 78%가 취업에 성공했으며, 올해 역시 80%의 취업

확실히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병들이 먹고 입고

률이 예상됩니다.”

자는 기본적인 생활과 관련된 부정은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아울러 병영생활을 하면서 상하급자간, 동료 병사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 등으로 인한 사고가 많은데 이는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군의 기강은 엄격히 하면서도 서로 아끼고 돕는 전우애가 싹틀 수 있는 병영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미 경기도에서는 대학생들을 위한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장학사 업을 하고 있으며, 예비역 복학생을 비롯한 대학생들을 위한 취업장려 제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협의 중에 있습니다. 요즘 장병들의 82% 이상이 초대졸 이상의 높은 학력입니다. 그들을 위한 장학사업 확대도

“분단의 현실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의 확고한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응태세가 중요하므로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한 군대로 만들겠습니 다. 또한 젊음을 바쳐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의 노고에 조금이 나마 위안이 될 수 있도록 후생・복지도 과감히 개선해 즐겁고 활기찬 병영생활이 되도록 뒷받침하겠습니다. 아울러 사회 일반의 인식을 바 꾸는 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따금 군인들을 ‘군바리’라고 비하하

“무기 등 전력증강도 중요하지만, 우선 국론 통일과 국민단결을 강조하

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방의무의 신성함 그리고 군대와 군인의 중요성

고 싶습니다. 우리가 철통같이 단결돼 있으면 누가 우리를 넘보겠습니

을 일반인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군에 대한 사회의 인식 개선에도 힘

까? 국론이 통일돼 있으면 어려움이 있어도 바로 극복할 수 있을 것입

쓰겠습니다.”

니다. 또한 전력면에서 저는 향후 전시작전권 전환이 이뤄질 때를 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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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한창 하고 싶은 일 이 많은 나이에 모든 것을 잠시 접어 둔 채 낯 선 곳에서 군 생활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저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무심코

또한 젊은 시절 노동・민주화 운동을 하다 감옥

읽은 한 권의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에 가고 공장생활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도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특히 자칫 딱딱하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세계 유일의 분단현장이면서 생태계 보고인

무미건조하기 쉬운 군 생활에 있어 독서는 지

젊은 시절의 고민, 어려움은 더 큰 도약을 위

DMZ에서 다큐영화제를 개최함으로써 전 세

식・교양을 쌓고 병영생활을 더욱 활기차게 해

한 밑거름인 것 같습니다. 멀리서 항상 장병 여

계에 평화와 생명사랑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

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에서는 병영내 열

러분을 생각하는 부모, 친지, 애인들이 있다는

기 위해 2009년부터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악한 도서관 시설을 개선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실을 위안삼아 꿈을 잃지 마시고 군 생활 충

로 3회째를 맞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책도 보급하는 병영도서관 사업을 지속적으

실히 잘 하시기 바랍니다.”

는 통일을 염원하는 다양한 문화축제를 마련

로 지원하고 있으며, 군부대를 순회하는 독서

하여 DMZ가 전쟁의 공간에서 평화와 생태환

프로그램도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의 국제적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 고 있습니다.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민통선 내 도라산역, 파주출판도시 일대에서 개최하 며 올해 30여 개국 100여 편 국내・외 다큐영화 가 상영되고, 다양한 부대행사로 풍성하게 진 행됩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정 신』 그리고 최근에 나온 책으로 이태석 신부 님을 다룬 『울지마 톤즈』를 꼽고 싶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사랑에는 국경이 없음을 실 “경기도는 산, 바다, 강을 접하고 있고 연

천하신 분으로, 평생 가난한 이들을 보살폈죠.

중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개최되어 볼거

저는 테레사 수녀님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실

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천하는 용기를 얻었으며, 나라와 국민을 사랑

9・10월에는 세계도자비엔날레를 비롯하

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

여 경기도가 자랑하는 다양한 축제들이 많

고 있습니다. 또한 『독립정신』은 대한민국

“우선 병영매거진 월간 <HIM>의 창간을 늦

은 만큼 휴가시 장병 여러분들의 친지나 연

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이 1904년에 한성감

게나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국가를 위해

인과 함께 오시면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

옥에 갇혔을 때 집필한 역사서이자 한국인 최

소중한 젊음을 바치고 있는 군 장병 여러분들

을 것입니다. 또한 9월 28일부터는 경기

초의 외교사 저술서인데, 대한민국 발전의 원

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군 생활 마치

도 남양주시 팔당권역에서 ‘IFOAM 세계

동력인 자유민주주의의 철학과 이승만 대통

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건강하

유기농대회’라는 큰 행사가 열립니다. 최근

령의 신념이 잘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길 기원드립니다. 장병 여러분, 사랑합니다.

의 웰빙바람과 맞물려 많은 관심을 모으

태석 신부님은 남수단의 오지에서 한센병환자

파이팅!”

리라 예상되는데 체험행사도 많은 만큼 가

등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

족끼리도 한 번 들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봉사하신 분인데, 이런 섬기는 리더십이야말 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라고 생각

경기도의 주요 축제로 남양주 세계유기농대회, G푸드쇼 (9.28.~10.2.), 양평 경기레포츠페스티벌(10.7~10.9), 이 천・광주・여주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9.24~11.22), 파주 개성인삼축제(10.15.~10.16)가 9,10월 준비되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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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n INTERVIEW

유성욱

임재문

STX그룹의 싱크탱크 STX미래연구원 신철식 원장

가장 전형적인 모범 인생을 살아온 이만이 멘토로서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STX미래연구원 초대원장으로 그룹의 다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신철식 STX 부회장은 학창시절 공부도 1등이었지만, 주먹도 1등이었다. 공직 생활 30년 동안 ‘풍운아’ ‘베스트 드레서’ ‘공직사회의 자유스런 영혼’ 등 갖가지 닉네임을 얻으며 ‘가장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으로 꼽혔던 신 부회장. 그러나 누구보다 떳떳하게 공직생활을 마무리 짓고 기업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그는 ‘초식남 시대’의 진짜 남자로 손색 없어 보인다. 신 부회장에게 듣는 남자의 자격, 그리고 자기답게 세상을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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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생활 30년, 공무원같지 않았던 공무원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자!” STX그룹 신철식 부회장에게 평소의 좌우명을 묻자, 그 한마디가 돌아왔다. 인터뷰 말미에 병사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 를 구했을 때도 문장의 어미만 바뀐, 그 한마디였다.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떳떳하면 당당할 수 있다. 당당함은 자기다운 개성을 갖고 가장 나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비결이다. 사실 신 부회장은 그 말을 부친에게서 들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사실 이지만, 신 부회장은 한국 현대사의 거물이자 대표적 경제관료였던

신현

확 전 총리의 외동아들이다. 신 부회장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4・19혁명이 일어났다. 자유당에서 한 자리 했던 사람들은 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도망갔다. 그러나 신현확 전 총리 는 제발로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신 부회장이 ‘떳떳하게 살아라’란 말을 아버지에게 들었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서대문형무소로 향하기 전, 아버지 는 아들을 앉히고는 유언처럼 말했다. “떳떳하게 살아라!” 신 부회장은 그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 부회장의 어머니인

김혜배 여사 역시 대단한 내조자였다. 당시 형무

소는 난방이 제대로 안될 만큼 시설이 열악했는데, 집안의 가장이 겪는 고 충을 알아야 한다며 아들과 함께 마당에 이불을 깔고 1년 가까이나 ‘노숙’ 을 했던 것. 아버지가 안 계신 만큼 신 부회장은 더욱 떳떳해야 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심지어 주먹으로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 각오로 학창시절을 보내며 경기고와 서울대를 마쳤고, 행정고시에 합격하 며 1978년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에 몸담으 며 예산과 기획 파트의 전문가로 30년을 살아온 공직생활의 출발이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신 부회장은 공직사회에 매몰되지 말고 ‘나답게 일 하자’라고 다짐한다. 그것은 언뜻 사람들에게 파격으로 다가온다. 그의 트레 이드 마크였던 올백머리와 콤비정장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공무원 사회에 서 보기 힘든 스타일이니 말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 1992년 자신의 끼를 살려 앨범까지 낸 적 있다. 김현식, 송 창식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명곡들을 직접 불러 녹음한 앨범이다. 그런저 런 덕분에 신 부회장은 당시 출입기자단이 뽑은 ‘가장 공무원같지 않은 공 무원’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고.


''

STX그룹의 미래 10년 설계자로 새 인생 지난 2008년 3월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차관급)으로 30년 공직생활

고 늘 말씀하셨죠. 그래서 지원이 부족한 기초 인문학 분야의 학술 연

을 ‘떳떳하게’ 마무리한 신 부회장은 아버지의 호를 딴 우호문화재단

구를 격려하기 위해 학술상을 제정하며, 인문학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

을 설립해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게 된다.

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이지요.”

개발경제 시대 정・관・재계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

그 무렵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고 지난 2007년 별세한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외아들인 신 부회장의

선친의 이름이 포함된 일이 있었다. 당시 신 부회장은 법정 소송 등 끈

삶에도 커다란 후광이자 그림자였다. 전교 1~2등을 다투며 경기중고,

질긴 노력 끝에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지만, 아버지와 비교하면 늘 모

그런 그가 2010년 2월 STX의 미래전략을 짜는 기업인으로 새로운 도

자란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젊

전에 나서며 큰 주목을 받았다. 사실 고액연봉을 조건으로 내건 몇몇

은 시절, 그래서 더욱 주먹과 잡기에 몰두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펌의 제안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해오던 터였다. “로펌 고문으로 뒷방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 더욱 그 존재감을 크게 느낀다고.

에 있다가 공직 후배들에게 부탁이나 하는 일은 저 스스로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제 전공을 살려 기업의 새

“선친께서는 평소 인문학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했습니다. 아무리 경

로운 미래에 기여하는 게 좀 더 보람된 일이란 생각을 가지게 됐던

제가 발전해도 인문학적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겁니다. ”


'(

“인류 최고의 발명은 바로 종이와 책!”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자’라는 좌우명은 대대로 이어진다. 신 부회장 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다. 지금은 컨설팅회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 들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사실 군대에 입대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일부러 시키지도 않았는데, 육군에 자원입대해 창녕의 통신 부대에서 2년을 당당히 복무했다.

“저는 일병으로 전역했는데, 아들이 나보다는 계급이 높습니다. 허허!”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하며 눈이 많이 나빠진 신 부회 장은 신검에서 병종 판정을 받고 방위병으로 복무한다. 한때의 학교 ‘짱’으로서 조금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데 당시의 추억이 잊히지 않는 것은 복무 중 인생의 반려를 만났기 때 문이었다.

“선친의 영향으로 인문학은 물론 문학을 아주 좋아했어요. 그런 데 같은 공감을 가진 여성을 만난 겁니다. 시간을 길게 끌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복무 중 가발을 쓰고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겁니다.” 복무 중 맞선을 통해 만난 이가 바로 지금의 배우자인 수필가 주연아 여사다. 주 여사는 이일향 시조시인의 딸로 3대째 내려오는 문인 집 안 출신, 일찍이 책을 좋아했던 신 부회장으로서 놓치기 아까운 신붓 감이었던 것이다.

“저는 인류 최고의 발명이 종이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한하고 이를 위해 STX는 STX미래연구원을 독립 법인으로 설립하고 신철식 부

한정된 삶에서 무한한 간접체험을 가능케하는 게 독서의 매력이

회장을 초대원장으로 선임했다. STX의 미래전략을 짜게 된 신 부회장이

지요. 자기보다 앞서간 사람들의 지혜도 책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10년 후 STX의 비전을 담은 ‘비전 2020’

흡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욱 의미있고 생산적인 취미활동이 있

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 부회장은 지난 4월 중국 다롄에서

을까요? 저는 군대에 있는 병사들에게 정말 독서를 권하고 싶습

가진 출범 10주년 기념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비전 2020’을 공식 발표하게 된다. 중국 다롄은 세계 최대의 STX조선해양 종합생산기지가 있는 곳이다. “향후 10년의 비전 발표와 함께 주사위가 던져졌으니 앞으로 STX미래연 구원은 이를 구체화하는 전략 개발 및 실행에 몰두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

니다. 군 생활 동안 책만이라도 맘껏 읽고 나오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입니다.” 신 부회장은 지금도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책이 주위 에 없으면 정서적 불안을 느낀다니, 중독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신 부회장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기만의 개성있는 삶을 살

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존 경영시스템을 진단하며 개선책을 내놓

고 있는 밑바탕에는 어릴 때부터 몰두한 폭넓은 독서, 그리고 인생을

을 예정이구요.”

함께한 수많은 책들을 자기의 재산으로 삼았던 든든한 배경이 있는 지도 모른다.

그룹의 ‘싱크 탱크(Think Tank)’ 로서, 나아가 그룹 내 변화와 혁신을 주도 하는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로서 신 부회장은 지금까지와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가 달랐지만, 월간 <HIM>이 찾은 인생

다른 인생을 당당히 살고 있다.

의 멘토들은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

FEATURE n INTERVIEW

김서권

권윤성

현빈이 찾은 이름, 김태평

훈련병 2101번, 번호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하다던 미남배우 현빈. 그는 6주간의 고된 훈련을 통과한 뒤 해병대의 자존심, 빨간 명찰을 달고 인터뷰에서 ‘김태평’이란 자기 이름을 찾은 것이 해병대 입대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부와 인기를 한 몸에 몰아 준 현빈이라는 이름 대신, 평범하다 못해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제 이름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하니, 과연 군대는 사람을 철들게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평소 TV를 즐겨보지 않아서 현빈이라는 배우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가끔 신문 광고를 통해 만난 그는 멋있었다. 그가 말한 제 이름, 김태평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소 지나친 내 나름의 해석일지는 모르겠으나, 대중 속에 비친 현빈이라는 이름이 어쩌면 조작된 모습이고 상업화된 인간이라면, 반면에 김태평이라는 이름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진정한 자아, 진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가면을 벗 어던진 ‘자연인’으로의 회귀(

recur)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이 시대는 청년들의 절망을 화두(

) 삼아 고민하고 있다.

서 청춘들을 사랑하고 돕고 싶다.

시간당 4320원의 최저 임금, 한 달 25일 죽자하고 일해도 86만 4000

실제로 청년들과 후대들을 위한 사역에 내 목회인생을 걸고 있기도 하

원, 일이 끝나면 고시원 방에서 고단한 몸을 겨우 누이지만 대학생 5

지만, 우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가

만 명이 800억이라는 대출의 덫에 걸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기도

치와 정체성을 가르쳐주고 싶다.

전에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다. (ㅈ일보, ㄱ일보 기사 참조) 설상가상, 일해서 학비 대느라 스펙 쌓기는 물 건너가고 보니 취업 또

영원한 화두, 진정 나는 누구인가?

한 쉽지 않다. 직장을 찾아 헤매는 60%의 청춘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20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소크라테스 이후로 영원한 화두이다. 화두

대 꽃다운 청춘들이 그 향기를 발산하지도 못한 채 자살이라는 극단

란 불교에서 참선 수행을 위해 이끌어내는 이야기의 실마리다. 주로

적 선택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은 무얼까’하는 인간 본연에

그나마 열정이 남아있는 청춘들은 힘겨운 아르바이트, 학업 스트레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시작된다.

스, 깨어진 인간관계, 이 모든 짐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과 맞장 뜨며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스님들은 겨울에 삼 개월, 여름에 삼 개월을 오직

자신의 한계를 넘어 참된 자아를 찾아보리라는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선방에 틀어박혀 기도에 정진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기며, 원망하지 않고 의연하게 조국의 부름에 달려간다.

며칠 전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하지만 군대 또한 만만치 않은 또 하나의 세상이고 청춘들은 그 곳에

가톨릭 베네딕도회 소속, 독일 스위스 탄자니아 국적 수사들이 서울

서 절망과 소망을 오가며 인내와 절제와 우정과 이타적 사랑을 배운

삼각산 자락 화계사에서 긴 다리로 108배를 하느라 고행을 하며 ‘천당

다. 그러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가는 길,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는 길, 절대 자유의 나’를 화두 삼아

그래서 나는, 청춘(

)들을 예찬한다. 청춘(

)들을 사랑한다. 청

참선한다는 것이었다.

)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의 기도는 그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중 한 수사의 질문이었다. ‘저는 전생에 무엇

숱한 절망의 산맥을 넘어온 인생의 선배로서,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이었을까요?’ 대답은 이렇다. ‘독일 사람이었을 수도, 한국 사람이었을

가치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민했던 청춘의 시간을 살아온 목사로

수도 있지요. 동물이었는지도 몰라요.’(ㅈ일보 기사 중에서)

춘(


'+

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답 속에서 고통 받는 티벳 민족의 영적 지

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죄를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도자, 살아있는 부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달라이 라마의 고민이 생

슬프고도 솔직한 고백인가.

각났다. 그는 모기를 죽이는 것이 큰 갈등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조상 중에

하나님 말씀을 복음, GOOD NEWS라 부르는 이유

모기로 환생한 사람이 있거나 전생에 모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세에 모기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 설마,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 나와 너의 정체성, 우리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말해준다.

그 심오한 의미를 모르겠다. 어쨌든 이 시대의 종교와 인문학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 무수히 질문

너와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아름다운 존재로서, 이 세

을 던지고 그 질문에 이런저런 답을 내놓지만 아직도 시원치가 않다.

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할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창세기 1장

그나마 불교계의 큰 스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용맹정진으로 존 경을 받은 성철 스님은 열반하시기 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모기나 개나 돼지 같은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하나님의 호흡을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귀한 말씀을 남겼다.

불어 넣어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해 정진했던 그가 54년 동안 단절하고 살았던 딸

시는 하나님, 영적인 창조주에게 예배하며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만

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옥에 간다. 우리에겐 구원이 없다. 산 보

이 에덴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창세기 2장 그러나 사탄이라는 존재,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고 우리에게 찾아와 종교적 교리와 철학과 윤리, 도덕의 잣대를 내밀어 끊임없이 우리의 기쁨과 행복을 도둑질하는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사탄이다. -창세 기 3장, 요한복음 8장, 10장 골로새서 2장 이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새가 하늘을 날지 못하여 자유롭지 못하듯이, 물고기가 물 속에 있지 못하여 갈증 나 듯이, 나무가 땅에 있지 못하고 시들어가며 열매 맺지 못하듯이 우리 는 공허와 어둠과 혼돈 속에서 원죄라는 죄업을 지고 운명이라는 이 름의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몸부림친다. -창세기 1장, 3장 이 운명과 죄의 문제에서 사탄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만왕의 왕으로, 대 제사장으로, 참 선지자로, 삼중직,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이 직접 오셨으니 그분이 예수시다. -요한일서 3장, 요한 복음 14장, 로마서 8장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요한복음 1장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금 있는 그 곳에서 천국을 누리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예쁜 여자 바라보고 음심을 품지 않으려 고 눈을 질끈 안 감아도, 시원한 맥주 바라보고 마실까 말까 갈등 안 해도, 고독하게 보초 서며 맛있게 담배 한 대 피워도 충분히 ‘죄로부 터 자유한 나’로 살아가는 길이 복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

), GOOD NEWS라 부른다. 복음이

진리다. 진리는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것이다. 그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자유하다. -요한복음 8장 그러고 보니, 배우 현빈이 아니라, 자연인 김태평으로 군대 생활을 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www.jxlove.or.kr



'-

홍민석

FEATURE n INTERVIEW

군종특별교구장 자광스님과의 차담법담(

권윤성

)

‘군대는 자비행을 배우는 인생대학’ 음력 7월 보름은 스님들이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하는 ‘여름 안거’를 끝내는 해제일이다. 세속에서는 이 날을 백중(百中) 이라 하는데,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이나 우란분재라하여 5대 명절 중 하나로 여긴다. 이처럼 의미 깊은 바로 다음 날, 한 말씀 듣기 위해 자광(慈光) 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조계종군종특별교구 교구장으로 30여년째 군과 인연을 맺고 있는 군불교의 대 표적 어른이다. 스님과 차를 마시며 나눈 차담(茶啖)은 이내 법담(法談)이 되어 참된 군생활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국방부 청사 뒤편 언덕에 자리한 조계종군종특별교구인 국방부원광

데, 요즘은 ‘힘들면 아빤테 전화해’라고 말하는 세태입니다. 이러니

사는 군불교의 총본산이다. 군종교구에는 150여명의 군승(

)들

자신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병사들이 군대생활에 쉽게 적응

이 소속되어 있으며, 400여 곳의 군사찰에서 연간 11만명의 장병들

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강

이 수계식을 갖는다. 법회에 참석하는 인원도 200만이 훌쩍 넘는다.

인하고 큰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부모들부터 마음을 바꾸어야합

1970년 군승 중위로 임관, 1995년 국방부 군종실장(예비역 대령)으

니다.”

로 예편하기까지 스님은 25년간 군포교에 매진했다. 누구보다 가까 이서 병사들과 생활한 스님은 신세대 장병들의 개인주의와 나약함

스님은 가정을 떠나 사회성을 배우고, 남을 위해 배려하며 자신을

에 대한 염려부터 털어놓았다. 스님이 예편하던 1995년과 2011년

희생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군 생활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나

사이의 간극이 차이는 얼마나 될까. 스님은 신세대 병사들의 나약함

를 낮추는 하심(

과 개인주의적인 가치관도 문제지만 부모들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에서 살아온 한 젊은이가 자신의 삶을 테스트하고, 사회성을 배우는

)이 요구되는 군 생활은 성인이 되도록 부모 밑

‘인생대학’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군에 가는 아들에게 아버지들이 군대에서 인내하는 것을 배워라.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불편을 감수하며 군 복무를

“군대는 인간과 세상을 배우는 유일한 곳 입니다. 어느 대학에서도

하는 것이 앞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가르쳤는

어느 학원에서도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곳은 없습니다.”


'.

부모들의 그릇된 편애가 더 큰 문제

불가에서는 이를 포괄적으로 인연법(

스님은 1957년 화엄사로 입산해 손경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

밥 한 그릇에도 농부를 비롯 석유를 캐준 중동의 어떤 노동자 등 수많

지했으며, 해인사를 비롯한 명찰도량에서 참선 수행하고 자운 율사를

은 사람의 공력이 들어가 있고, 태양과 비 등 온 우주의 에너지가 담겨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역임한 손경산 스님은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밥 한 그릇에도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있을 진

해방 이후 불교 정화 운동에 앞장섰던 선지식인이다.

데 어찌 삶이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으로 이해하는데, 스님은

스승의 권유로 군승이 된 스님은 본래 3년 정도만 할 생각이었으나, ‘인생을 걸만한 일’이라고 깨달아 군포교에 청・장년 시절을 다 바쳤다. 군종교구장으로 취임하며 군불교를 다시 이끌게 된 스님은 군이 선교 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다고 우려한다. “전쟁을 치르듯이 각 종교가 교 세를 확장하기 위해 혈안”이라며 “포교전쟁으로 군에 있어서의 종교 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가 변질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스님은 불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가 이러한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며,

“남이 없으면 내가 없는 것입니다. 네가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남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야합 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남을 위해 배려하고 베푸는 자비를 통해 깨 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사랑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까이 있는 전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

군이 지향하는 목표에 경쟁적인 포교활동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니까. 전우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이 전우애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그

고 역설한다. 그래서 스님은 군승들에게 군불교 본연의 초심으로 돌

리된다면 따돌림이나 억압, 구타와 같은 그릇된 병폐가 없는 병영이

아가 병사들이 평상심을 갖고 병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강

될 것이며, 군 생활도 활기차고 보람될 것입니다.”

조한다. “군승들에게 ‘포교하지 마라’, ‘올바른 인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 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먼 훗날에라도 스스로 깨달으면 됩니 다. 그래서 불교에 집착하지 말고, 공동체 삶에서 올바르게 처신하며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인간을 만드는 일에 열정을 쏟을 것을 요구하 고 있습니다.” 스님은 “원광(

) 법사가 신라화랑에게 주었던 오계(

)가 아직도

유효하다”며,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평화적인 통일로 민족의 염원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군불교 총본산 의 이름이 원광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님이 말하는 ‘강병(

)’의

비결은 바로 전우애다. 스님은 전우애를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으 로 풀어주었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다 연기법은 부처님의 가장 큰 가르침으로 불교철학의 핵심이다. <중아함 경>에는 연기법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

), 이것이

).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라고 쓰여

있다. 부처님은 이 짧은 글귀 속에서 우주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진리를 연기법(

)으로, 질서를 인과법(

)으로 설파했다. 간단히 풀

이하면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것이다.


(%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은 나 하기나름

불교철학의 정수인 인연법은 나의 존재가치는 물론이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밝혀주는 지혜이기도 하다. 부처님 당시 인도 종교의 가르침 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라도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기도해주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믿었다. 반면 기도를 안 해주면 하늘나라에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지 어느 제자가 의문을 품고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은 제자를 연못으로 데려가 돌멩이를 집어서 물에다 던졌다. 돌멩이가 가라앉자 부처님이 ‘연못가에 바라문들이 모여 ‘돌멩이여, 물 위로 뜨라’고 기도하면 뜨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뜨지 않습니 다. 무거운 것이 가라앉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번에는 기름을 병에 담아 물에 던졌다. 기름이 병에서 빠져나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처님이 다시 ‘바라문들이 모여 기름이여, 물 밑으로 가라 앉으라’고 하면 그렇게 되겠느냐’고 묻자, 제자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악행은 악행으로 자비는 자비로 자신의 업( )이 된다는 가르침으로, 죄를 지었다할지라도 자비를 실천하면 기름이 물에 떠올라 증발하듯 업장 (

)이 눈 녹는 듯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삶에서 인연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스님은 이 세상에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은 없다고 일갈한

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겪는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인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좋은 인연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인연이 되기도 합니다. 인연의 좋고 나쁨은 내가 하는 것이지 상대 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를 베풀었는데도 고마워하지 않는 다고 상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기대심도 없이 희생과 배려로 베푸 는 것이 참된 자비이며, 그리할 때 나의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병영생활의 지혜가 바로 이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하심으로 전우에게 무한한 자비 를 베푸는 것입니다.” 스님은 심지어 근무로 예배에 참석을 못해 고민하는 동료 병사가 있으면, 예불에 가야 하더라도 동료가 예배를 볼 수 있도록 대신 근무를 서주라 고 말한다. 동료의 고민과 번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자비라는 것이다. 자비는 이처럼 무한하다. 스님의 법명이 자비의 빛을 밝히는 자광인 것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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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빈

FEATURE n INTERVIEW

김윤아

임관빈 국방정책실장이 전하는 성공 인생 메시지

취업의 열쇠가 군대에 있다! 자네야말로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 다음은 내가 군 생활을 마치고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본다고 할 때의 가상 시나리오다. 면접관 : 자기소개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자랑 한 번 해보세요. 나 : 저는 저의 군 생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저는 전방부대에서 말단 소총병으로 2년간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면접관 : 고생 좀 했겠네요? 그런데 군 생활이 회사업무하고 크게 연관이 있을까요? 나 : 네.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은 기간이

었습니다. 저는 만일 입사를 하게 된다면 더도 덜도 아니고 제가 군 생활에 서 깨닫고 배운 그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면접관 : 그래 어떤 것을 배웠는지 한 번 들어 봅시다. 나 : 네. 저는 군대에서 무엇보다도 국가와 상관에게 충성하는 것을 배웠습

니다. 저는 입사를 한다면 군인으로서 국가와 상관에 충성을 다했던 것처럼 이 회사와 사장님을 비롯한 저의 상사들에게 진실로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면접관 : 좋습니다. 그 다음은요? 나 : 제가 군대에서 배운 두 번째 요소는 책임감입니다. 군대에서는 “A고지

를 탈취하라”, “B능선을 사수하라”하는 명령을 받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어떠한 과업이라도 저에게 맡겨지 면 이런 정신으로 그 과업을 반드시 완수할 것입니다.


((

면접관 : 알겠습니다. 그 다음은요?

사로 근무했지만, 계급이 올라갈수록 자연히 책임이 늘어나고 하급자 를 리드하게 되며, 병장 때는 분대원 8명을 거느린 분대장도 정식으로

나 : 제가 군대에서 배운 세 번째 요소는 협동정신입니다. 군대에서 전

해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책임이 커질수록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고,

투를 할 때는 누구 하나만 잘해서는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보병이

또 커지는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과 인품을 키워

공격을 할 때, 포병의 지원사격, 탄약이나 유류의 적시적인 지원 등이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군 생활을 통해 사회와 조직의 책

잘 이루어져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나 혼자, 내 부서만 잘

임 있는 일원으로 살아가는 자세를 확실하게 배웠고, 이 회사에 입사

해서는 회사가 잘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주변 동료・인접부서와 긴

하게 된다면 이러한 자세를 확고히 가지고 업무를 수행해 나갈 것입니

밀하게 협조하며 일할 것입니다.

다. 비록 보이는 스펙은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나 회사를 위한 자세는 절대 남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면접관 : 좋은 이야기입니다. 또 있습니까?

군 생활은 절대 인생의 공백기가 아니다 나 : 네,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배운 네 번째 요소는 불

굴의 의지입니다.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100km

정말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장이 사원으로 선발하

행군을 하며 통제된 내무생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인내

지 않겠는가? “자네야말로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다”라며 두 손을

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잘 견디어 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도 어떤 어

꼭 잡을 것이다.

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굴하지 않고 이를 잘 이겨낼 것이며, 또 회사에

군 생활은 절대 인생의 공백기가 아니다. 오히려 취업을 하고 이 세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회사와 끝까지 함께 하는 파수꾼이 될 것입니다.

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러나 누구도 잘 가르쳐 주지 않는 성공 노 하우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학교인 것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

면접관 : 마지막 하나는 무엇입니까?

세로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보물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우리 병사들과 초급간부들이 잘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 : 네, 제가 군대에서 배운 다섯 번째 요소는 리더십입니다. 비록 병


()

조상목

MILITARY LIFESTYLE

유성욱

육군 제12사단 을지포병연대 황소대대 병영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 7월 29일 개관됐다. 황소대대 장병들에게 책과 문화가 있는 병영생활 을 통해 지혜의 힘을 갖게 해 줄 병영도서관은 군부대를 대상으로 ‘병 영도서관 건립 국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와 월 간<HIM>이 개관을 지원했다.

12사단 황소대대 병영도서관 ‘지혜의 숲’ 개관

미니 인터뷰 병영도서관 개관식에서 만난 박주홍 이병


(*

SPECIAL THEME

작지만 강한 힘! 해병대


(+

홍민석

SPECIAL THEME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해병대만의 특별한 문화와 정신

‘해병의 힘’은 뜨거운 전우애와 도전정신 해병대가 특별한 전공을 세울 때마다 국민들은 ‘귀신잡는 해병’ ‘무적해병’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붙여주었는데, 해병대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부대다. 어떠한 임무도 완수해내기 위해 육・해・공군 병사들이 받는 훈련을 두루 받고 있으며, 해군에 속해 있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육군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임무 특성상 해병대는 특수부대처럼 소수 정예를 지향하고 있어 타군과 다른 해병대만의 문화와 정신을 만들어냈다.

HIM

소수 정예부대의 특별함

다수 해병과 해병대의 지난 역사는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창파를 헤치며 무쌍의 청룡 / 험산을 달리는 무적의 맹호 / 바람아

‘귀신잡는 해병’, ‘무적해병’이라는 영광스런 별칭은 해병대 스스로

불면 불라 노도도 친다 / 천지를 진동하는 대한 해병혼 / 나가자 서

가 붙인 것이 아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

북으로 푸른 바다로 / 국방의 최강부대 대한 해병대’

던 해병대의 혁혁한 전공을 국민들이 신뢰하고 인정한 것이다. 물

창설 직후인 1949년 제정한 군가 ‘나가자 해병대’ 2절의 가사처럼

론 어떤 이유로도 병영 내 구타와 따돌림은 용납될 수 없다. 해병대

해병대는 해안절벽을 거침없이 때리는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험

의 빛나는 전공은 구타와 기수열외, 배타적인 패거리 문화에서 비

준고령

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을 맹호처럼 누비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6 25 전쟁과 월남전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특

해병대는 소수 정예의 특별한 군대다. 창설 직후부터 ‘무에서 유를

별한 존재로 성장해 온 해병대가 뼈를 깎는 변혁의 시간을 보내고

창조’하듯 열악한 무기와 장비,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조건 등을

있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총기사고로 지난 62년간 쌓아온

딛고 각종 임무를 완수해냈다. 따라서 해병대의 찬란하고 특별한

명성까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작지만 강한 해병대’를 지향하며

전통은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신사적인 군대’라는 지향점에서 비

‘신속 기동군’의 임무 수행을 위해 묵묵히 맡은바 직무에 충실한 대

롯되었다.


(,

해병대를 상징하는 슬로건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은 6 25 전쟁 때 주요 전투를 함께 수행한 미 해병대 의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에서 유래했지만, 반세기가 넘게 사용해 오면서 자연스레 우리 해병대의 슬로건이 되었다.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자부심과 긍지, 명예심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해병대의 의식 구조를 대변하고 있다. 예비역들까지 자랑스레 해병대 복장을 하고, 해병전우회로 똘똘 뭉치는 것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휴가를 나가는 후임 병사의 군복을 선임이 정성껏 다려주고, 돈을 모아 휴가비까지 챙겨주 는 독특한 ‘전우애’도 이런 정신의 산물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생활하는 부대 특성, 강도 높 은 훈련과 특별한 임무 수행도 강한 결속력을 요구하고 있어 남다른 전우애가 필요한 곳 이 해병대다. ‘나’보다 ‘우리’를 우선하는 집단의식은 전우애로 나타나기 마련이며, 강한 전 우애는 전투력의 근간이 된다. 따라서 해병대의 눈부신 전공의 밑바탕에는 전우애가 담겨 있다. 동굴탐색 중 월맹군이 중대원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자 자신의 몸으로 덮쳐 병사들의 목숨을 구한 청룡부대 제3대대 고 이인호 대위(소령추서 해사11기)의 일화는 해병대의 전우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새롭게 거듭나는 해병대의 병영문화

‘ 필승의 신념 ’ 이 해병정신 해상으로부터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해안두보(beachhead)라는 공격의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강 건너 적측의 지역을 확보하는 상륙작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무 의 상태에서 병력과 장비, 물자를 축적하여 유 를 창조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불굴의 도전 정신이 바로 해병대의 주임무인 상륙작전에서 싹이 텄 다. 한편으로는 무기도 장비도 병력도 부족했던 초창기부터 최강의 군대를 만들겠다고 다 짐하며 정신력으로 모든 불리함을 견뎌냈던 해병대의 역사에서 유래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신력의 뿌리는 해병혼

으로, ‘필승의 신념’으로 승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동시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뜻한다. 해병대의 핵심가치이자 정신체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6 25 전쟁 당시 해병대 제1대대가 단독으로 통영상륙작전을 감행, 북한군 제7사 단을 통쾌하게 격파한 것을 비롯해 월남전에서 미군과 프랑스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 고도 여러 차례 실패해 포기한 작전을 단 하루 만에 성공시키는 믿을 수 없는 전공으로 표 출되었다. 따라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필승의 신념은 해병대의 자부심과 명예라고 할 수 있다. 불과 380명의 소수 병력으로 창설해 전사

상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전통을 기

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용맹함은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또 하나의 슬로건 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전투에서 불패의 신화를 이룩하며 만들어낸 이 슬로건은 강한 충성 심에서 비롯되었다. 해병대는 부여된 임무는 반드시 완수하고 만다는 사명감과 특유의 강 한 충성심으로 지금까지 제시된 목표를 한 번도 완수하지 못한 적이 없다. 해병대 중에서 도 가장 강한 훈련을 받는 수색대의 슬로건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지금은 해병대의 임무완 수 정신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해병대의 강인한 이미지는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 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해병대원의 도전과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병대 의 정신과 혼을 배우기 위한 해병대 캠프에 기업과 학교를 비롯한 단체, 심지어 국가대표 선수들까지 참가할 정도이다. 체력을 단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내력과 유대감을 결속하 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해병대 정신은 우리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 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해병대가 본연의 정신과 문화를 오롯하게 추스르며 병영문화를 개선해 더욱 강한 군대로 거듭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

SPECIAL THEME

홍민석

무적해병의 신화…해병대 7대 작전

‘해병신화의 원천은 우애와 조국애’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창설된 해병 대는 불멸의 전투력으로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전사(戰史)에 길이 남 을 전공을 세울 때마다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영광스런 칭호가 붙 었다. 불과 380명의 소수정예로 탄생해 6・25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감히 누 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전공을 세운 해병대의 7대 작전을 통해 ‘최강의 전투력 을 가진 신사적인 군대’ 해병대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

해병대는 소수 정예군이지만 임무와 역할이 다양하고 막중하다. 상륙작전 ・ 지상작전 ・ 특화거점 방어 ・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방어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국토방위의 전략적 요 충지인 서북도서로부터 제주도 남단까지 우리 땅 곳곳에 배치되어 있 다. 이런 이유로 해병대는 부대별 작전 수행의 전문성과 부대 운영의 특성이 타군과 다르다. 21세기 해병대는 현재 다양한 임무와 대비, 그리고 미래의 전장 환경 에 적합한 다목적 신속 대응군으로써 고강도 전면전으로부터 전쟁 이 외의 작전활동에 이르기까지 제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상시 전투 준비가 완료된(Force in readiness)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 고 있다. 미래전의 양상은 해상을 통한 대규모 병력과 장비의 전력 투사(Power Projection)로 연안지역 중심의 작전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해병대는 해상 및 주직 상륙돌격 ・ 연안 도시지역 작전 ・ 초수평 선 입체 기동상륙 작전 ・ 전략도서 및 전략기지 방어 작전 등의 교리를 발전시키고 있어, ‘작지만 강한 해병대’를 지향한다.

380명 소수 정예요원으로 창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지리적 여건상 수륙양면 작전의 필요성이 높은데, 여순반란사건까지 터지자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 에서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대를 창설했다. 창설 멤버는 초 대 사령관 신현준 중령 휘하 380명으로, 해군에서 편입한 장교 26명 과 하사관 54명, 그리고 해군 13기에서 특모한 병 1기생 300명이었다. ‘작지만 강한 군대’로 탄생한 해병대는 숱한 전공으로 신화를 써왔다. ‘백성 없이 군대 없다’는 표어 아래 지리산을 근거지로 진주지역 일대 에 출몰하는 공비 소탕 작전을 시작으로 6・25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무수한 전공을 세웠다. 대한민국 국군의 꽃을 자부하는 해병대의 7대 작전은 통영지구, 경인 (인천상륙ㆍ서울수복)지구, 도솔산지구, 김일성고지, 양도작전, 장단지 구, 짜빈동 작전이다. 해병대는 창설된 지 불과 1년 뒤인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구 국의 선봉군으로 진동리 지구 전투와 통영상륙작전에서 연전연승함 으로써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원한 애칭을 얻어냈다.

‘통영상륙작전기념관’ 개관


)%

‘귀신잡는 해병’ 명성 얻은 통영상륙작전

01

인천상륙 서울수복 작전의 창끝 선봉

02

낙동강 방어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괴군 제7사단이 거제도를 점

인천상륙작전과 9ㆍ28 서울수복작전에서도 해병대는 선봉에 섰다.

령하고, 전략 요충지인 마산과 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해 통영

1950년 9월 15일, 항공모함 함재기 200대의 공중 폭격과 함포 사격

에 침입했다. 이에 해병대 김성은(예비역 중장, 해병대사령관 및 국방

후 해병대는 미 해병대와 함께 400여 척의 상륙주정에 분승하여 4회

장관 역임) 부대는 1950년 8원 17일 18시 7척의 해군 함정의 지원 아

에 걸친 파상공격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해안에 상륙, 인천을 방어하

래 장평리 해안에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2일 만

는 북괴 인천경비여단과 제18사단 및 제31사단을 격파하고 인천 시가

에 전술 요충지 통영을 탈환한 뒤, 원문고개에서 적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하고 이 지역을 방어했다. 이 전투는 인천상륙작전보다 한달 앞섰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발 발 이후 유엔군과 국군이 낙동강까지 밀리며 방어전을 펼 때 유일하 게 공격에 나서 북한군을 물리친 작전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뉴욕 헤 럴드 트리뷴>은 해병대의 활약상을 ‘그들은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

지와 해안두보를 확보했다. 이는 수도 서울을 조기에 탈환함은 물론 낙동강 전선의 총반격 작전을 성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창끝 임무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한 해병대는 역시 미 해병대 와 함께 선봉부대로 서울 서측방에서 도심 중심부로 공격을 개시했 다. 해병대는 9월 20일 한강을 도하, 수색방향으로 진격한 뒤 최후 방 어선인 104고지(연희동) 일대의 적을 격퇴하고, 시가지 전투를 전개하 여 잔적을 격멸했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06:10 중앙청에 태극기

도로 용감했다(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라고 보도했다. ‘귀

를 게양함으로써 90일 동안 적의 점령 아래 있던 서울을 탈환했다. 서

신 잡는 해병’이란 별칭이 여기서 유래한다.

울을 수복한 다음날인 28일 정오, 감격의 수도탈환식이 국회의사당 에서 거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가 참석한 기념식에서 서울수복의 선봉인 해병대를 대표해 박정모 소대장(예비역 해병대령)

03

과 최국방(예비역 하사) 해병이 태극기를 게양했다.

04

무적해병의 신화 도솔산지구 작전

신인이 경탄할 공훈 김일성고지 작전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 5월 춘계 공세를 격퇴한 직후, 해병대 제1연 대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 요충지인

휴전회담이 제기된 직후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해병대 제1연대는 강원

도솔산을 확보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

도 양구 북쪽 해안분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형상 불리한 조건을 무

는 거대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한군 제5군단 제12사단과 제32사단

릅쓰고, 3주간 피의 대공방전을 감행하였다. 제1단계 작전시 현재의

의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무수한 희생 끝에 격퇴하고, 도솔산

을지전망대와 가전리 일대에 배치된 북괴군 제3군단 제1사단을 치열

을 탈환함으로써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작전이다.

한 혈전 끝에 격퇴하고 펀치볼을 확보하였으며, 제2단계 작전시 간무

도솔산 탈환에 실패한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임무 교대한 해병대 제1

봉 일대 적의 은거지를 제압하여, 내금강산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지

연대가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암석지대를 이용하여 수류탄과 중화기

형을 장악하였고, 좌측방에 배치되었던 육군 제5사단의 가칠봉 점령

로 무장한 적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 이에 주간 공격을 야간 공격

을 용이하게 하였다.

으로 전환하여 결사적인 돌격작전을 감행하는 등 난공불락의 진지를

펀치볼 작전의 제1단계는 김일성 및 모택동고지 전투였다. 펀치볼 북

17일간 피와 땀으로 얼룩진 끈질긴 공격 끝에 점령하였다.

쪽 능선 일대에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지뢰가 매설되었

북한군 2개 사단을 격퇴했을 뿐만 아니라, 교착상태에 빠진 아군 전

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4일 동안 두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혈전 끝에

선의 활로를 개척한 쾌거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도솔산을 방문하

탈환함으로써 펀치볼을 조기에 확보하게 되었다. 이 전투로 해병대의

여 ‘무적 해병’이라는 휘호를 하사했다. ‘귀신잡는 해병’에 이은 또 하

위용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신인(

나의 별칭이 생긴 것이다.

탄할 공훈’이라고 격찬했다.

)이 경


)&

06

수도권 방어선 구축한 장단지구 작전

양도(

전략도서 확보한 양도 작전

)작전은 전략적 가치가 높은 섬을 확보한 작전이다. 6ㆍ25전

쟁 동안 해병대는 부대의 특성을 활용하여 38도선 이북 동ㆍ서해안의

05

전략 도서 확보 작전을 통해 적 해안을 봉쇄하는 한편 적 후방을 위협 하고, 첩보 수집 및 유엔군의 해상 활동을 보장하는데 기여하였다. 해병대는 동해안 도서 확보를 위하여 독립 제42중대를 편성, 1951년 2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개최될 당시, 피아간에 보다 유리한 지역을 확

월 14일 원산 앞 여도에 상륙하여 영흥만 일대의 신도 등 7개 도서를

보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초 진지 쟁탈전이 계속되자, 중・동부에서 서

점령하고 원산항을 봉쇄했다. 독립 제43중대도 함경북도 명천 부근의

부전선 장단(사천강)지구로 투입된 해병대 제1연대가 휴전 때까지 약

양도에 상륙하여 차기작전에 대비하는 중, 적 상륙기습부대 1개 대대

1년 4개월 동안 판문점에서 사천강에 이르는 임진강 하구까지 11km

를 완전히 섬멸하는 전공을 세웠다.

에 달하는 주 저항선 전방의 8개 전초진지에서 중공군 2개 사단(제

한편 서해안 도서 확보를 위해 편성된 독립 제41중대는 교동도, 백령

194사단ㆍ제195사단)과 대결한 방어 전투이다. 해병대는 사천강을 경

도, 진남포에 인접한 석도에 각각 상륙하여 해안선을 봉쇄하였다. 해안

계선으로 중공군 2개 사단의 네 차례에 걸친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여

선 봉쇄를 강화하기 위하여 사령부 직할부대로 도서부대를 편성하여

군사분계선을 아군에 유리하게 확정짓도록 하였고, 수도 서울의 관문

제7대대를 서해도서인 석도 및 초도에 주둔케 하고, 제9대대를 백령도

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켜 수도권 방어에 기여했다.

및 연평도에 증강 배치하였고, 제8대대를 동해도서인 여도 및 양도에

2차대전 이래 최고의 승전보 ‘짜빈동 작전’

07

주둔케 하여 휴전 때까지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이 전략도서 확보 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작전은 휴전 뒤 백령도를 비롯한 서북 6개 도서 를 아군 통제 아래 두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국가 안보에 있어 전략적 가치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방사 창설로 서북도서 방어력 보강

건군사상 처음으로 해외 원정군으로 장도에 올랐던 제2여단(청룡부 대)은 캄란만에 상륙한 이래 6년 5개월간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 를 올리는 한편, 친선 활동 등 대민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그 중 가장 빛나는 전투가 짜빈동 작전이다. 짜빈동 작전은 청룡부대 3대대 11중 대가 월맹정규군 제2사단 제1연대와 21연대 및 지방 게릴라 1개대대 가 인해전술과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해 기습공격을 하였으나 전술기 지에 구축한 외곽과 내곽방어선으로 연하는 교통호를 이용하여 일제 사격과 수류탄 및 크레모어로 침입하는 적을 격퇴한 전투다. 결과는 적 사살 243명, 포로 2명. 적 1개 연대 공격을 우리 해병 1개 중대가 막 아내자 미국 언론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고의 승전보라 평가했다. 이 전투 후 뉴욕타임스가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라’는 월맹의 지령문을 보도했다. 또한 월맹군은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니 비무장 한국군에게도 함부 로 덤비지 말라’고 전 군에 통보했는데, 짜빈동 작전에 참가한 병사 전 원이 1계급 특진을 했다. 이는 대한민국 훈・포상법 제정 이래 처음있 는 일이었다. 6・25전쟁과 월남전을 거치면서 우리 군은 세계가 무시할 수 없는 최강의 군대로 재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해병대의 전투력은 무수한 별칭에 손색이 없다.


)'

SPECIAL THEME

유성욱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 & 해병 3・4기 전우회

되 주제 짚도 어 왜는 본 병해 해대 병 제2 3 창의 . 설 4 로지 기불 의 까릴 신 ? 화 제주도는 대한민국 해병대에 있어 제2의 창설지와 같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 등화같던 1950년 9월 1일 제주도에서 자원한 해병 3・4기 3,000명은 인천상 륙작전 출정을 위해 산지부두를 출항했다. 그 날을 기려 해병대는 매년 9월 1 일 제주 해병의 날 행사를 갖는다.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서울탈환작전, 도 솔산지구전투, 김일성고지(펀지볼)전투, 전략도서 확보 작전, 장단 사천강지구 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통해 ‘무적해병 상승해병’의 전통을 수립한 해병 3・4기 의 신화와 의미를 되돌아봤다.


)(

제주해병의 날 기념식 매년 9월 1일 개최

명으로 창설됐다.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해병 1기생들에 대한 신병교육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제주해병 3・4기가 출항한 산지항(제주항) 인근

을 마친 다음 해병 2기생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1기생들

동문로터리에는 해병혼탑이 우뚝하다.

이 주축이 된 주력부대를 진주로 파견함으로써 해병대의 진주 주둔

‘여기 탐라의 푸른 넋이 엉겨 탑이 되다. 갈리운 땅덩이 위에 통일의 횃

기를 거치게 되었고, 그해 12월 28일 1,100명으로 늘어난 해병대의 전 병

불을 높이 든 해병혼은 솟았나니, 평화를 염원하는 상 앞에 겨레여!

력이 제주도로 이동하면서 제주시대가 시작된다.

옷깃을 여미이시라’ 해병대 신화의 초석이 된 제주 해병 3・4기는 호남 향우회, 고려대동문회와 더불어 대한민국 3대 조직이라는 해병전우회 에서도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기별 전우회로 알려져 있다. 해병대사령부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해마다 9월 1일이 되면, 제주 해병의 날 행사를 성대하게 갖는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해병 3・4기는 특별한 존재인가? 초대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고 신현준 예비역 중장은 생전에 “북괴 군의 남침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서 당시 모병을 할 곳은 제주 와 부산지구뿐이었다. 해병대가 제주에 주둔하였던 것이 얼마나 다행

전쟁실록 집필가 정채호 씨의 설명 - “창설 무렵 제주도로 이동했던

이었던가! 그해(1950년) 8월 제주청년과 학도병 등 3,000명을 모병(해

해병대는 발상지인 진해 덕산비행장이나 진주에서 겪었던 어려움보다

병 3・4기)한 것이 해병대가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라고 밝힌 바 있다.

더 심한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4・3사건으로 인해 피폐된 제주도민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해병대는 출발 당시부터 ‘저비용

들에 대한 민심수습과 치안유지 및 자체훈련을 겸한 한라산 공비토벌

고효율’ 군대의 전형이었다. 명색이 초대사령관이었음에도 그에겐

작전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6・25가 발발하자 거도적으로 해병대에

380명의 소수 병력과 일본군이 남겨놓은 99식 소총과 철모가 전부였다.

자원입대한 3천명의 신병을 확보하게 되었으니, 해병대로서는 제주도

그러한 해병대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곳이 바로 제주도였던 것이다.

가 제2의 발상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해병대의 진운(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380

한 영향을 미치게 한 지역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에 중대


펜 대신 총을 들다, 제주 해병 3・4기!

해에서 교육받은 300여명의 1기 신병들과

다.

600여명의 2기 신병들을 포함한 해병대 이전

이후 숱한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한 해병 3・4

북한의 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같

병력은 모두 해군으로부터 해병대로 전입한

기는 1951년 6월 도솔산지구 전투로 전사에

던 1950년 8월 5일 제주도의 애국청년, 교사,

사람이었는데 비해, 해병 3・4기 신병들은 해

찬란히 남을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하게

학생 등 1,500명이 혈서 지원 등 구국의 일념

군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해병대에 입대한 최초

된다.

으로 자원입대해 제주시 소재 제주농업중학

의 신병들이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해병 3・4기는 김일성 고지(펀치볼)

제주 해병 3・4기는 남다른 각오로 입대한 만

전투와 모택동 고지 전투의 선봉에 서며 한

큼 누구보다 용감했다. 제주 해병과 함께 전

국 해병대의 위용을 국내외에 과시했으며, 서

선에 나섰던 지휘관들은 한결같이 ‘복종심이

북 6개 도

서를 아

강하고 잘 싸웠으며, 특히 단 한명의 이탈자

군의 통

제 아래

도 없었다’ 라고 증언한다. 게다가 해병3・4기

두 는 데

결 정 적

어깨에는 제주 4・3사건으로 인하여 실추된

역 할 을

수 행 한

제주인의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사

전략도서

확보작전

명감도 지니고 있었다.

과 통해

휴전 당

시 군사

분계선을

아 군 에

유리하게

확정짓는

데 큰 역

교와 대정읍 소재 모슬포부대에서 신병훈련 을 받는다. 이들이 바로 해병 3기들이다.

인천상륙작전 선봉으로 무적해병 신화 창조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8월 30일 제주도내 각 중학교에서 1,500명의 학생들이 해병 4기에

제주도에서 3기와 4기 신병을 모병하며 연대

할을 한 장단・사천강지구 전투를 통해 ‘귀신

자원하여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입대식을 갖

급으로 증강된 해병대 전 병력은 1950년 인

잡는 해병’의 신화를 이어간다.

는다. 당시 이들 학도병들은 중학교 2학년부

천상륙작전을 위하여 산지항을 출항, 진해를

한편 제주 해병 3・4기의 신화를 이야기할 때

터 6학년(당시 제주농업중학교는 6년제였음)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새롭게 신무기를 지급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대한민국 최초

까지의 어린 학생이었으며, 상당수의 교사와

의 여군이라고 할 수 있는 해병

여성(126명)도 포함됐다.

대 4기 여해병 126명이다. 우리

당시 교복 대신 군복을 갈아입은 학도병들의

나라 여군의 역사는 1948년 8

입대 선서식에게 신현준 초대 사령관은 이렇

월 간호장교 후보생 교육으로

게 말했다고 한다.

시작되지만, 일반 여군으로 범 위를 좁힌다면, 1950년 8월 30 일 입대한 해병 4기 여해병 126 명이 최초라 할 수 있다. 육군의 여군이 같은 해 9월 5일 탄생했 으니, 그보다 6일이 빠른 셈이 다. 받은 해병대원들은, 261척의 대 함대를 동원

여군 해병은 진해 경화초등학교에서 남자들

해 감행한 유엔 제7합동상륙기동대의 선봉

과 똑같이 제식, 총검술, 사격, 포복 훈련을 받

으로 9월 15일 미 해병대 제1사단과 함께 세

고 수료와 동시에 소위 2명, 병조장(원사) 4명,

“학도병 제군들은 학업을 멈추고, 펜 대신 총

계 전사에 찬연히 빛날 인천상륙작전을 전개

1등병조(상사) 6명, 2등병조(중사) 6명, 3등병

을 들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한다.

조(하사)15명, 상병 93명이 탄생한다. 당시 똑

불타오르는 애국심의 발로로 결심해 준 그 용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유엔군은

같은 훈련을 받고도 계급이 달랐던 것은 여

기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하며 감개무량하다.

9월 18일 서울로 진격하여 11일 동안 작전을

중(중・고교 통합)재학생부터 전문학교, 대학

잘 결단하였다. 제군들은 불법 남침한 공산

전개한 끝에 서울 외곽 지역과 시가지에서 북

출신까지 학력이 달랐으며, 같은 학생이라도

당을 몰아내기 위하여 해병대에 지원・입대하

한군 4개 사단을 격퇴하고, 서울을 탈환한다.

학년이 달라 계급에 차등을 두었기 때문이

였다. 공산도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전술과

이 작전에서 한국 해병대는 미 해병대 1사단

다.

끈기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어렵고 괴롭더

과 함께 선봉부대로 서울 서측방에서 수도

당시의 여성 해병들은 현재 ‘해병대 4기 여해

라도 참으며 끝까지 견디어내는 극기훈련을

중심부로 공격하게 된다.

병회’를 구성해 ‘열혈남아’못지 않은 ‘열혈여

통해 최강군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져서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서울을 수복한 우리 해

아’로 각종 행사를 가지며 활발히 활동하고

는 안 되며, 어떤 난관이 닥쳐오더라고 이겨

병대는 1950년 10월 1일 국군과 유엔군이 38

있다. 해병대는 지난 2001년부터 다시 여군을

내야만 한다.”

도선을 돌파하며 북진할 때, 동해안 묵호와

선발해, 훈련조교와 소대장 등으로 수십여명

해병 3・4기는 혈통에서도 의미있다. 사실 진

원산, 고성에 상륙하여 북진 작전을 개시한

의 여군이 복무중이다.


)*

제주해병의 날 기념사 6・25전쟁 참전용사와 예비역 전우 여러분!

이러한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역사 속에, 이곳 제주특별자치도는

그리고 존경하는 내・외 귀빈을 비롯한 제

제2의 해병대 발상지라 할 정도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주특별자치도민 여러분!

당시 해병 3・4기생으로 입대한 3천 여 명의 제주 해병들은 오직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애국심 하나로

오늘 우리는 61년 전, 북한의 불법 기습 남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6・25전쟁의 모든 중요한 전투에 참전하였

침에 맞서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으며,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습니다.

위해 해병대에 입대한 해병 3・4기생 3천 여

이러한 제주 해병들의 고귀한 애국심과 승리의 전통은 지금도 면

명이 전쟁터로 떠났던 제주도 출정식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면히 충천하여 연평도 포격전에서 보았듯이 후배 해병들은 쏟아

모였습니다.

지는 적의 포탄과 화염 속에서도 용맹스럽게 대응사격에 임하였

본인은 먼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

습니다.

을 바치신 호국영령들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며, 참전 영웅

친애하는 내외귀빈 및 제주도민 여러분!

들께 해병대 전 장병과 더불어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은 영원히 발전할 수 없으며, 자유와 평화는 거

우리 해병대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그리고, 최근에

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키겠다는 강한 힘과 국민의 의지가

는 연평도 포격전을 통해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필승의 전통을

모아졌을 때 우리 힘으로 지켜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우며, 오늘 날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호국충성 해병대로 거

오늘 11번째를 맞은 제주도 해병의 날 행사가 민・관・군이 화합하

듭 발전해 왔습니다.

여 대한민국의 번영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2011년 9월 1일

미니 인터뷰

명예해병 1호 제주특별자치도에 소

대대로 이어진 의사 집안의 장 회장은 6・25동란이 일어나자 군의

재한 (주)삼남석유 장

관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것을 결심하고 군에 입대해

시영 회장은 군의관 출

해군 중위로 임관했으며, 군의관으로 해병대에 배속된다.

신 예비역 해군 대위이

장 회장은 6년의 군생활 중 만 3년을 해병대에서 생활하며 주로

지만, 어느 누구 못지

해병 3・4기와 도솔산전투, 김일성고지와 모택동고지 전투, 장단지

않게 ‘해병의 혼’을 지

구 전투 등 전후방 전선을 돌며 피비린내 나는 격전으로 부상당

닌, 제주 해병의 정신

한 전우를 치료하며 고락을 함께 했다. 그중에는 전사자도 있었으

적 지주로 평가받는다. ‘전국 명예해병 제1호’란 타이틀을 갖고 있

며, 총상과 지뢰폭발 등으로 신음하는 부상병도 있었다. 그 대부

는 것도 그 때문.

분이 해병 3・4기였다고 한다.

장 회장의 넛할아버지(아버지의 외숙) 장한규 선생은 1912년 조

전쟁이 끝나고 장시영 회장은 ‘해병혼 탑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

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를 수료한 의생(

) 제1호이다.

아 1960년 4월 동문로터리에 탑을 세우는데 중심 역할을 한다. 또

이 강습소는 오늘의 서울의대 전신이기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한 해병3・4기전우회 고문으로서 제주시 용담동 자신의 건물에 전

졸업 제1호라고 할 수 있다. 장한규 선생은 1914년 5월 제주에서

우회 사무실을 마련해준다. 지난해에는 출정 60주년 기념 책자의

인화의원을 개원했다. 제주에서 현대의학으로 개업한 제1호 병원

발간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다.

장회장은 “해병 3・4기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고통을 참으며 싸

또한 장한규 선생의 문하생이기도 했던 장회장의 아버지 장익준

워 이긴 공훈이 제주인의 자존심과 명예”라며, “해병혼 탑은 제주

선생은 의생 제2호. 장회장 역시 1945년 의사 검정에 합격해 의사

인들의 기상으로 60여년 전 제주역사의 상징물로 그 과거사와 과

로서 활동했으며 1947년 제주도의사회 설립을 주도했다.

정을 잊지 말고 새겨야 이 지역이 발전될 것이다”라고 회고한다.


)+

SPECIAL THEME

홍민석

플래닛미디어

새내기 열혈해병 7인의 선택과 도전

‘나는 해병이다’

Son Mik Seok

지난 4월 22일, 해병대 교육훈련단. 푸르른 초여름 기운이 완연하던 날. 해병대 1137기 729명이 수료식을 가졌다. 입대 7주, 본격 훈련 6주 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긴 그들의 얼굴에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물씬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자랑스런 해병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라는 말에 수백 개의 모자가 허공으로 날아 올랐고 지축을 울리는 함성에 군악대의 팡파르는 묻히고 말았다.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둥굴게 원을 그리는 병 사들, 서로 부둥켜않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병사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137기 파이팅’ ‘해병대 파이팅’이 끝없이 메아리 쳤다. 이렇게 1137기는 해병이 되어 각기 새로운 부대로 흩어졌고, 지금 이 순간 에도 묵묵히 가슴에 ‘빨간명찰’을 달고 복무하고 있다.


),

Shin Mi Sik

Son Mik Seok

미국 시민권을 뒤로하고

연평도는 내가 지킨다 김 홍 순 일병

‘어머니!’ 저는 지금 제가 그렇게나 오고 싶어 하던 바로 그곳에 와 있습니다.

Son Mik Seok

지난해 11월,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바로 그 섬, 쏟아지는 포탄 속에

되었습니다. 남한이 약해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거라고 하더

서도 해병대 선배들이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운 그곳, 철모에 불이

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해병대에 지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붙은 줄도 모른 채 자주포 기지로 달려가 적의 해안에 대응 포격을

우리말이 유창하지는 않지만, 순대국이 가장 먹고 싶다는 대한민국

가한 용감한 해병대 선배들이 지키고 있는 연평도에 말입니다. 제

젊은이 김홍순. 이른바 포스트 연평도 세대인 김 일병은 해병대훈

발 그곳만은 가지 말라던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를 뿌리치고 기어이

련소 철인소대에서 무려 13kg을 감량하느라 훈련과 다이어트라는

연평도에 지원하여 포병이 되어 이곳에 오고야 말았습니다. 어머니,

이중고를 겪으며 인내를 배웠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핑핑 도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중략) 어머니, 보고 싶지

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다. 훈련을 마치고 휴가를 가서 참고 참았던

만 잘 참고 견디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어머니, 당신

식탐이 폭발해 배탈이 나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김 일병은

의 아들은 이제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이랍니다.’

단단하고 야무진 해병으로 거듭났다.

김홍순 일병이 미국 시민권을 뒤로한 채 애틀란타에서 인천으로,

기계화학교에서 4주간 후반기 교육을 받고 연평도에 배치된 김 일

인천에서 포항으로, 포항에서 장성으로, 장성에서 인천으로, 그리

병은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게 보였

고 다시 인천에서 연평도로, 참으로 먼 길을 달려 해병이 되고, 연평

다”며 “불에 탄 산과 포격을 맞아 쓰러진 민가를 보고 있자니 내가

도를 지키는 포병이 된 것은 오직 ‘북한이 도발한 그곳을 내 손으로

왜 지금 이 자리에 서있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키겠다, 그들이 다시 도발해오면 백 배, 천 배로 갚아주겠다’ 는

벌컨포 소대원인 김 일병의 일과는 훈련의 연속이다. 북한군의 야간

그 생각 하나였다.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 새벽 2시부터 시작되고, 오후에는 벌

김 일병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컨포 진지를 경계하는 근무를 선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

“어느 날 미국인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가 있고 적들도 바로 눈앞에 있다.


)-

Shin Mi Sik

캐나다 유학 중

수색대 지원한 강한 해병 윤 사 헌 일병

해병대 수색대는 우리 땅 곳곳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

윤 일병은 사단에 배치되자마자 또 다시 훈련의 연속이다. 매일 부대

포에 있는 2사단 수색대대 역시 그렇다. 이곳에 1137기 중 체력과 정

에서 문수산 유격장까지 10km를 구보로 이동했다. 산을 두 개나 넘는

신력에서 단연 돋보이는 해병이 있다. 더 강한 훈련, 더 힘든 훈련을 찾

험난한 길이다. 그렇게 힘들게 이동해 유격훈련을 받고, 유격이 끝나

아서 일부러 수색대대에 지원한 윤사헌 일병은 캐나다 유학을 시작하

면 실내 체육관에서 등선기라는 장비를 이용해 줄을 타고 오르는 훈

면서 조국의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해 태권도를 배웠다. 지금은 태권도

련을 받았다. 그 다음에는 야외에서 팀별로 정찰훈련을 받았다. 비트

3단의 유단자다. 군살하나 없는 강인한 체격과 매서운 눈초리, 확고한

를 파고 야외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했고, 통신장비 운용법도 다

신념.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 윤 일병에게도 수색교육대에서의 훈련

시 제대로 배웠다. 이어 태권도 훈련도 있었고, 국방부 유해발굴사업

은 힘겨웠다.

단이 벌이는 발굴 현장에 나가 지원 임무도 수행했고, 주말에는 전투

“수색교육대에서의 훈련은 반복이 너무나 많아서 지겹고 더 힘이 들

수영과 대테러 출동 훈련 등을 받았다.

었습니다. 식전마다 하는 PT체조를 낮에도 끝없이 시키는 겁니다. 그 야말로 무한반복입니다. IBS(Inflatable Boat Small) 훈련을 할 때도 머

“짧은 기간에 다양한 훈련들을 받았는데, 저로서는 똑같은 훈련을 반

리에 보트를 이고 선착순을 시키는데 끝이 없습니다. 페달링 훈련도

복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훈련이 이어질 텐

한 번 하기 시작하면 기본이 한나절입니다. 계속 페달을 들고 노 젓는

데 어떤 훈련들일지 기대가 됩니다.”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페달이나 IBS(Inflatable Boat Small) 에 익숙해진다는 건 알겠는데, 몸으로 따라 하는 건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배울게 많고, 훈련이 다양해서 재미있다니 천상 윤 일병은 자타가 공

얼핏 소림사 무술훈련이 떠오른다. 어린 묘목을 심어 놓고 매일 뛰어넘

인하는 해병대 수색대원 중에서도 특공전사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기를 했더니, 나중에는 지붕 높이까지 자란 아름드리나무도 가뿐하게

윤 일병은 “해병대 훈련이 힘들다지만 누구나 해낼 수 있다”며 “어떤

뛰어넘는 것. 그렇다. 반복은 몸과 정신을 장비(무기)와 하나로 이어지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훈련받는 자세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훈

게 한다. 정신을 잃으면 몸이,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정신력으로 장비

련을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이 다를 것이다”고 말했다.

를 다루어 임무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모든 교육훈련의 지

진정한 해병은 무엇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의지, 신사다운 품위를

향점이다. 그런 점에서 임무 자체가 특별한 수색대대원에 대한 교육훈

갖춰야 한다. 한 사람의 해병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강인한 체력이나

련은 더욱 가혹했으리라.

전투력 이전에 제대로 된 생각과 철학을 갖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동반입대한 쌍둥이 형제

‘우린 언제나 투 마린스’ 정 성 우 , 정 성 진 일병

“며칠째 먹고 자고 아침 구보 이외에는 하는

싶고 눈물이 납니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

게 없어서 몸은 정말 편합니다. 생활실도 동

야 철이 든다고 하는데 빈말이 아닌 것 같습

정성우ㆍ정성진 일병은 동반입대한 쌍둥이

기들끼리만 사용하기 때문에 눈치 볼 일도 없

니다. 이제부터 부모님께 정말 잘해드릴 것

형제다. 김포의 문수산성 아래에 있는 부대에

고, 과업이나 특별한 지시도 없습니다. 교육

같습니다.”

배치되어 동화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은 동

훈련단에서 훈련하던 때와 비교하면 여기는

반근무 신청제도를 이용했다. 동화 교육은 갓

완전 천국입니다.”

전입 온 신병들이 해당 부대에 익숙해질 수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의 동생 정성진 일병의

있도록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실시하는 일종

말이다. 하지만 형 정성우 일병은 마냥 좋지

의 체험 및 관찰 교육이다. 특별한 과업을 부

만은 않은 모양이다.

여하는 대신 부대가 맡은 임무와 역할이 무엇

“몸은 한없이 편하지만 마음은 항상 긴장 상

인지, 선임병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훈련하고

태입니다. 어느 소대에 편성되어 어떤 과업을

근무하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배우도록

맡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도

하는 것이다.

걱정입니다.”

Shin Mi Sik

Shin Mi Sik

Son Mik Seok

이래서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말이 있는

이들 형제도 교육훈련소에서 극기주 첫날 새

것이 아닐까. 불과 2분 차이지만 형이라 그런

벽에 목봉체조를 하면서 ‘어머니 은혜’라는

지 동생보다 과묵하고 당장의 편안함보다 불

노래를 부르며 눈물깨나 흘렸다. 동료들과 함

확실한 앞날도 걱정할 줄 안다. 아마도 동생

께 호흡을 맞추어 무거운 목봉을 들었다 놓

이 있어 든든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염려가

는 동작을 반복하느라 팔다리가 떨려서 미칠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경인데, 어머니의 은혜라니…. 이들만이 아

소대 편성을 앞두고 설레임과 긴장의 시간을

니라 누구나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리고 자랑

보내고 있는 이들 형제가 해병대에 동반입대

스런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으리라.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군대는 이 땅의 젊은이

아니었다.

들을 성숙하게 만들고 효자로 거듭나게 하는

“저희가 나란히 해병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인성훈련장’인 셈이다. ‘쌍으로 미친놈들’이

어머니는 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쌍으로 미

아니라 ‘투 마린스(Two Marines)’ 로 변신한

친놈들’이라고 욕까지 하실 정도였습니다. 집

이들이 해병으로 어떻게 거듭날 것인지 궁금

에서 걱정하고 계실 생각을 하니까 더 보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신검 3급

해병대의 꽃 수색대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해병이 되었다 정 성 록 일병

강한 해병은 바로 우리다 조 건 희 일병 ㆍ 최 문 혁 일병 Son Mik Seok

Shin Mi Sik

Son Mik Seok

Son Mik Seok

해병대가 대한민국 군대의 꽃이라면 수색대는 해병대의 꽃이다. 선발 기준이 엄격하고 경쟁도 치열하다. 해병대 훈련 가운데서 가장 힘든 지옥훈련을 비롯하여 고강도 훈련들을 줄줄이 받아야 하고, 체력이 김포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직

든 정신력이든 가장 강한 해병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수색

접 대치하고 있는 엄연한 최전방 지역이

대다.

다. 2km도 안 되는 강 건너가 바로 적이

백령도 수색중대에 배치된 조건희 일병과 최문혁 일병에게 힘들기로

진을 치고 있는 북한이다. 수영으로도 건널 수 있고 느린 배로도 5분

소문난 수색대 지원 동기를 묻자 조 일병에게서 “수색대는 적은 인원

이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맑은 날이면 강가에 나와 목욕하는 북한 병

이 팀을 이루어 생활하고 훈련을 받습니다. 서로 더 아끼고 소중하게

사들이 보일 정도다. 행주대교 밑에서부터 한강의 남쪽 강변을 따라

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수색대의 최고 장점인 것 같습니다. 전에 수

개설된 제방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길게 이어진 철조망을 볼 수 있는

색대원들이 구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가슴이 뛸 정도로 멋져 보

데, 이곳 역시 38선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철조망이다. 이 철조망 곁에

였습니다. 그때부터 수색대원이 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라는 답이

서 해병대 병사들이 24시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정 일병은 이 경

돌아왔다.

계작전의 야간조에 편성되어 낮에는 자고 밤에는 근무를 서는 올빼

최 일병 역시 “저희는 사회나 타군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저격이나 공

미 생활을 하고 있다.

수같은 훈련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훈련의 경험들이 나중에

“저의 근무 시간은 밤 8시부터 아침 6시까지입니다. 소초에서 경계를

사회에 나갔을 때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

서거나 철조망을 따라 순찰을 돌기도 합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

다. 두 해병 모두 수색대의 특별한 임무에 반해 지원한 것.

까지가 취침 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에 식사를 하거나 개인적인 용무

수색대에 뽑힐 정도로 건장하고 다부진 이들도 신병훈련이 만만치

를 해결합니다. 남은 오후 시간에는 부대 정비 작업을 하거나 즉각조

않았다고 고백한다. 유격을 마치고 4시간여 실시한 야간 행군과 극기

치사격 등 교육 훈련을 받습니다.”

주 훈련의 첫 관문인 목봉체조가 그러했다고. 아마도 대한민국 모든

자동차만 쌩쌩 지나다니는 강변에 서서 어두운 강 건너를 몇 시간이

해병들에게 목봉체조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이자, 가장 소중한

고 응시해야 하는 경계근무는 간단치 않다. 그냥 맥없이 서있는 것처

추억일 터.

럼 보여도 추위와 무더위, 송곳처럼 온 몸을 파고드는 각종 벌레들, 그

기초수색 훈련 역시 의례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IBS를 머리에 이고 백

리고 외로움과의 사투(

사장을 오전 내내 달리고, 머리에 인 채 밥을 먹었다. 은밀한 침투가

)다.

정 일병은 본래 신검에서 체중 미달로 3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해병

주임무인 수색대원들에게 IBS는 보병의 소총만큼이나 친숙해지지 않

대 입대를 목표로 유도 학원에 다니고,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는 등 체

으면 안 되는 장비이기 때문이다.

력을 길러 해병대에 입대할 수 있었다.

여객선을 타고 4시간 반이나 가야 하는 서해의 마지막 섬. 군사적 긴

“어쩔 수 없이 끌려서 군대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게 오래 전부터 들어

장이 가실 날이 없는 그곳에서 수색대원으로 복무한다는 것은 분단

온 아버님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한다.

의 최일선에서 가장 먼저 전투에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준비된 해병이기에 정 일병은 매일 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누산리가

수색대를 선택한 이들은 군대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할

있는 한, 서부전선 이상없다, 악!”을 외친다. 잠이 부족해 눈 밑에는 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무려 9주에 달하는 본격적인 수색교육

로로 인한 다크서클이 깔리는 경계부대원으로 오늘도 서부전선 이상

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색대원에게 전우는 가족만큼,

무에 힘을 보태고 있는 정 일병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하다’는 이들에게 강한 자긍심과 영광만이

인내력이 많이 강해졌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있을진저.


*&

해병대 출신 명사들의 격려인터뷰

‘우리는 믿는다! 자랑스런 해병의 힘!’

해병대 62년 역사에 있어 씻을 수 없는 비극으로 기록될 총기사건이 벌어지자, 원인에 대한 규명부터 해결책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무수한 논쟁의 핵심은 전우애가 생명이며, 힘의 원천인 해병대에서 어떻게 전우를 위해하는 일이 벌어졌냐는 것이었다. 해병대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래도 해병대를 믿는다. 강한 군대 해병대가 거둔 빛나는 전공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도 이번 사건으로 해병대가 위축되지 않을까 누구보다 걱정이 많은데, 인터뷰를 통해 해병들을 격려하는 ‘힘나는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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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P ECIAL T HEME

해병대 출신 명사 인터뷰

문화체육관광부 정병국 장관

%&

홍민석

깔끔한 외모와 뿔테 안경 속에 빛나는 눈매

다면 가장 군기가 세고 혹독하다는 해병대가

는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라며 “이를 악물고

가 인상적인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제 자신을 갈고 닦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고된 훈련을 받고 힘들게 복무생활을 하면서

별명은 ‘슈퍼맨’이다. 슈퍼맨처럼 어떤 문제도

며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했는데, 지금 생각

‘불가능은 없다’라는 정신을 함께 했던 전우

시원스레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인

해도 해병대 입대는 정말 잘했다”고 말한다.

들과 울고 웃었던 해병대 복무기간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소중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데, 어떤 악조건도 극복하며 임무를 완수해 해병대에서도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헌병으

강인한 해병정신이 인생의 버팀목이라는 것

로 복무한 정 장관은 “군대시절 가장 행복했

이다.

던 시간을 돌이켜 본다면, 흰 눈과 어둠이 교

해병대의 시련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

차하는 초소에서 칼바람 맞으며 근무를 서고

는 정 장관은 해병대는 반드시 이번 일을 계

돌아와 잠시나마 책을 읽던 순간”이었다며,

기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 때의 경험과 기억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의

해병대에 복무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애정어

정활동 중 병영도서관 활성화에 힘을 기울이

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게 만들었고, 장관 취임 이후에도 국방부와

“군 복무 2년은 소모적으로 흘려 보내는 시

함께 ‘책과 문화가 있는 병영’을 만들기 위해

기가 아니라 자기계발을 기하고 육체적, 정신

많은 노력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

적으로 또 다른 자신을 담금질 할 수 있는 인

다. 군 경험이 병영문화 개선에 관심과 열정

생의 중요한 전환기라고 생각합니다. 병사들

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훈련과 근무 외의 주어진 시간에 자기학

정 장관에게 해병대만의 특별한 문화는 무엇

습, 교양증진, 동호회 활동 등 다양한 문화적

이냐고 묻자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

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가꾸어 나가고, 국

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만큼 군기도 세고 전

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기가 되기를

우애도 각별한 곳이 해병대입니다. 또, 해병

바랍니다.”

대하면 ‘강한 군대’, ‘싸우면 이기는 군대’ 라

본지를 발행하고 있는 (사)사랑의책나누기운

는 인식이 국민들에게도 각인되어 있습니다.

동본부 이사이기도 한 정 장관은 2000년대

그것은 해병대만의 독특한 전통과 병영문화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1600 곳의 병영도서관

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러나 해병대

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50개 시범부대에 도서

정 장관은 올해 신년 벽두에 연평도를 찾아 1

의 병영문화에 대한 변화요구도 있는 게 사실

관 리모델링 비용으로 각각 5천만원씩을 지

박2일 경계근무를 섰으며, 지난 8월 3일에는

입니다. 따라서 좋은 전통과 문화는 이어 나

원할 계획이다. 현재 병영도서관의 1/3은 컨

해병대 제1사단을 방문해 ‘지식강군, 병영독

가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발전적인 변화를

테이너나 창고 등을 개조해 만들어 시설이 열

서 훈련으로부터’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이루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

악하다.

했다. 해병대, 아니 대한민국 군에 대한 사랑

했다. 좋은 전통은 계승 발전시키고, 그릇된

또한 병영에 필요한 우수도서 8만여 권을 제

이 남다른 정 장관은 2004년 ‘도서관법’ 개정

것은 과감하게 떨쳐버리는 취사선택(

공하고, 지역 대표 도서관과 연계한 독서프로

내는 해병대를 연상시킨다.

그렇다. 정 장관은 바로 해병대 416기 출신이다.

을 주도해 병영도서관이 대대 단위까지 확산

)의 기로라는 것이다.

그램도 실시할 계획이다. 군 장병들이 준비된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해병대 출신의 긍지가 남다른 정 장관은 “군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정 장관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대는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문화부의 계획은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

강제징집을 당했는데, “기왕에 군생활을 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다녀와야 하

가 실무를 주관하게 된다.


*(

%'

해병대 출신 명사 인터뷰

인천유나이티드 FC 허정무 감독 유희종

2010년,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온 국민에 기쁨

전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장은

을 안겨준 허정무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FC에 새 둥지를 틀고 따뜻한

잔디가 아닌 흙바닥에, 비까지 온 터라 진흙투성이였다.

리더십으로 팀을 이끄는 그는 해병대 357기다.

그러나 해병대의 투지는 남달랐다. 해병대팀은 예상을 뒤엎고 육군팀

1978년, 잘 나가는 스타선수였던 허 감독은 ‘멋있어서’ 해병대를 선택

에 승리를 거두고 우승했다. 허 감독은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

했다. 당시 해병대 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던 박세혁 감독의 스카우트

이 바로 해병정신이 아니었나 싶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의도 있었지만, 이왕 다녀올 군대라면 남자다운 해병대가 제격이라

그는 사회생활이든 군생활이든 축구든, 객관적인 전력보다는 정신력

는 생각에서였다.

이 승패를 가른다고 믿는다. 당시 부장이었던 우영목 소령에게서 “너 야말로 수륙양용 해병대”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 밀려든 해병으로서

허 감독에게 군대는 축구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의 자부심, 그 날의 전우애는 여전히 허 감독의 몸과 마음에 생생히 살아 있다. “해병대 출신이라면 모르는 사람도 관심이 가고 금방 친해

‘나’보다 ‘우리’가 먼저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 그렇기에 무엇보다 소

진다”는 허 감독은 해병대 출신 구단직원들에게도 선배노릇을 톡톡

통과 배려가 중요하다는 것이 허 감독의 생각이다. 유난히 고되기로

히 하고 있다고.

소문난 해병대 훈련. 허 감독은 “개인의 정신력도 중요하겠지만,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팀워크 없이는 힘든 훈련을 견뎌내기가 어렵다”고

허 감독이 해병대를 통해 얻은 것은 인연만이 아니다.

조언한다. 군 생활의 기본은 상명하복이지만 그 근간에는 소통과 배 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 시절 생겨난 자신감과 끈기는 선수생활에서나 지도자 생활에서 그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군 생활에 임했다

의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 모두가 만류하던 월드컵 대표팀 감독직을

는 허 감독. 그는 “즐기는 마음으로 자신감을 갖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

수락했을 때나 기업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시민구단의 감독

면 누구보다 의미있는 군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옛 추억을

직을 수락할 때도 마찬가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안 되면 되게 하

되새겼다.

는’ 해병대 정신이 그를 움직였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기가 말

그가 해병대 축구단에 있을 때만 해도 육해공 삼군에 모두 축구단이

처럼 쉽지 않은데, 해병은 그런 면에서 한발 앞서있다”고 말하는 허 감

있었는데, 라이벌 의식으로 전력의 편차가 있었음에도 물고 물리는 박

독. 그에게서 여전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빙의 승부를 연출했다. 그 중 조광래, 박창선, 이강조, 최종덕, 박성화

끝으로 허 감독은 해병대 후배들에게 “우리나라의 안보의 선봉에는

선수가 포진한 육군팀은 그야말로 최정예팀이었다.

늘 해병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늘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당시 가장 큰 대회는 인도네시아 알할린컵 진출권이 주어지는 대통령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건강하고 강

배선수권대회였다. 해병대(해군)팀의 경기 상대는 육군팀. 객관적인

건한 해병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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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출신 명사 인터뷰

배우 최필립 박현주

‘배용준을 닮은 배우’로 한동안 유명세를 떨쳤던 배우 최필립. 사람들

그는 이번에는 오디션 현장 대신, 드라마 감독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

은 그가 닮은꼴 배우라는 이유 하나로 그 역시 부드러운 남자일 거라

러고는 “출연을 시켜 달라”고 막무가내로 통사정을 했다. 그때 감독의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표정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는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하

편견이다. 그는 해병대(903기)에서 조교로 늠름하게 국방의 의무를 성

지만 그는 해병대 정신, ‘안 되면 될 때까지’ 라는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실히 마쳤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던 그가 굳이 해병대를 택한 이

매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후,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자

유는 무엇이었을까.

신에게 바짓가랑이를 잡혔던 감독으로부터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의 데뷔작 MBC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다.

“무용 콩쿨에서 입상을 하면 군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적이 있습

해병대 정신으로 배우의 자리에 오른 그. 이번에는 추억의 병영 에피소

니다. 그때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군 면제’를 아쉬워하지는 않았습

드 하나를 들려줬다. “이병 때, 육・해・공군이 모두 참여하는 3군 노래

니다. ‘대회 입상’보다 ‘군 면제’를 더 바랐다면, 아마 전 제 자신을 비겁

자랑에서 해병대 대표로 선임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병사들

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당히 군에 입대해 국방

의 박수 갈채를 가장 많이 받아 ‘해병대 인기상’을 받았습니다. 포상휴

의 의무를 다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해병대’를 선

가를 받은 저는 첫 휴가 날짜와 합해 총 14박 15일의 휴가를 다녀왔습

택했습니다. 강인한 남자를 표방하는 곳이니까요.”

니다. 그야말로 이병에게는 꿈만 같은 시간이었죠.” 너털웃음을 지으며 추억을 곱씹는 그에게 ‘군대’의 의미를 물었다. “지

그렇게 최필립은 ‘최필순’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빨간 명찰을 달고 자랑

금도 가끔 군 생활을 하는 꿈을 꾼다”며, “병영체험이라도 해 보고 싶

스럽게 병역이행을 다했다. 전역한지 9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는 해

다”고 한다. 그만큼 최필립에게 군대는 생애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

병대에 감사함을 느낀다. 자신의 꿈인 ‘배우’가 될 수 있도록 가장 커다

는 뜻이다.

란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역 후 배우 오디션을 숱하게 보던 어느 날,

처음 만난 사람이 그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보는 시

그날도 역시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우울한 마음을 달

각이 금세 달라진다고 한다. 그때서야 감춰진 그의 마초적인 성향을 깨

래고자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그때 마침 해병대 1000기가 입소하는 장

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하나만으

면이 나왔다. 해병대에 입대한 후배들의 모습을 보다 그는 갑자기 정신

로도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뿌듯해한다. 마치 가슴 속에 길이 남을 태

을 차리게 된다.

극기와 같다고. 해병대를 위한 일이라면 자진해서 적극 앞장서고 있는 그는 “해병대에

“‘후임들은 해병대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데, 해병대 정신을 물려받

입대하는 모든 남자들은 진짜 사나이입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시간을

은 나는 정작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자신이 너무 한심해

낭비하지 않는 청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래도 여러분은 자랑

보이더군요.”

스러운 대한의 건아입니다. 힘내십시오!”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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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출신 명사 인터뷰

포항스틸러스 김원일 선수 조상목

포항 스틸러스의 '해병대 스타' 김원일. 등 번호 13번인 그가 경기에 나서는 날이면 관중석에는 빨간 명찰과 팔각모가 물결을 이룬다.

인 김 선수는 K-리그에서 얼마 되지 않는 ‘막군’ 출 신이다. 막군이란 상무나 경찰청 등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병사 가 아닌 일반 병사를 일컫는 축구계 은어다. 숭실대 재학 중 입대, 포 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에 배치된 김 선수는 군복무를 하면서 틈틈이 축구도 했다. 해병대 대표 선수로 나가 군내 축구 대항전인 2008년 군 대스리가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자부심 있는 군 생활을 하고 싶어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그는 군 생활 의 추억으로 IBS 기초 훈련과 KCTC과학화훈련을 꼽는다. 훈련을 준 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해병대를 대표해서 나간다는 생각으로 마 음을 다잡았다. 5개월간의 준비 끝에 강원도 인제의 육군과학화훈련 단(KCTC) 훈련장에서 실제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훈련을 받았다고. 그는 “훈련이 시작되고 정말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4시간 동안 산넘 고 물건너 적참호에 도달했지만, 도착하기 직전 지뢰를 밟아 죽고 말았 다”며 아쉬움을 비쳤다. 고된 훈련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줄 아는 김 선수야말로 진정한 사나이가 아닐까. 지금도 그의 가슴 속에는 늘 ‘무적해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 과 같은 해병대 구호가 맴돈다.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최선 을 다한다”는 김 선수의 모습은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대한민국 해병 의 힘을 보여주는 듯 하다. 김 선수가 군생활을 통해 키운 것은 정신력과 전우애만이 아니다. 군 대는 가족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고. 그는 “사회와는 많이 다른 군 생활을 겪으면서 부모님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며 “지금은 항 경기가 끝나면 김 선수는 관중석을 향해 절도 있는 자세로 경례를 하

상 효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고, 그를 지켜보는 해병대는 우레같은 함성으로 답한다. 포항 스틸러스

김 선수의 해병대 생활이 이토록 값진 시간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의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해병대 출신인 김 선수는 물론

변화하려는 의지와 해병으로서의 긍지 덕분이다. “항상 문제는 나에

포항스틸러스의 다른 선수들도 열화와 같은 응원에 큰 힘을 얻는다. 지

게 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서 문제를 찾아 고치려고 노력”하는 겸손

켜보는 후임들 때문에라도 김 선수는 온 힘을 다해 필드를 뛴다. “후임

한 태도로 군 생활에 임했던 것.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바꾸

들 앞에서 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한 발짝 더 뛰게 된다”는 그는, 경

고자 하는 자세는 자부심과 긍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김 선수 역시

기를 마치고 경례를 하러 갈 때마다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자부심만 있다면 힘든 군 생활도 이겨낼 수 있다”고 조언한다.


*+

MILITAR Y L IF EST Y LE

유희종

유성욱

임재문

민승기


*,

무적해병으로 변신한 오종혁 이병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해병대사령부의 군악대실에 들어서자 날선 돌격머리의 오종혁 이병이 서 있었다. 클릭비 출 신인 오 이병은 입대할 때보다 다소 마 른 듯한 모습이었지만 해병대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명찰과 세무워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는 오 이병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하게 살아있었다. 귀신잡는 해병으로 다시 태어난 그를 <HIM>이 만났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군인이고 싶다

오 이병은 해병대에 지원할 때 수색대를 1지망으로 적 었다. 늦은 입대인 만큼 제대로 된 군 생활을 하고 싶 어서다. 결국 2지망인 군악대로 입대하게 됐지만 전투 병으로 복무하고 싶다는 바람을 떨칠 수 없었다. 입대 후에도 계속 수색대로 배치 받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 한 끝에 마침내 기회가 주어졌다. 해병대 제2사단 군악대에서 이미 자대생활을 하고 있 지만, 오 이병은 이달 후반기부터 수색교육에 들어간 다. 10주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그토록 염원하던 수색 대원이 될 수 있다. 수색대는 해병대에서 특수임무를 위해 조직한 부대로 육군 특전사, 해군 UDT/SEAL, 공군 CCT, 항공구조단 등과 더불어 자부심이 남다 른 특수부대다. 수색교육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극 한의 훈련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바라던 일이긴 하지 만 막상 교육을 앞두고 두려움이 밀려오진 않을까 염 려스러워 물었더니 명쾌한 대답을 들려준다. “두려움은 없습니다. 잘 해낼 겁니다. 평생에 2년뿐인 만큼 스스로 자랑스러운 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다 만 수색교육을 원하는 선임들보다 먼저 교육을 받게 돼 죄송하고, 친해지기 시작한 선임들과 이야기를 더 나누지 못해 아쉬움은 남습니다.” 휴가도 외박도 아닌 수색교육이 가장 기다려진다며 눈을 빛내는 이 남자, 천상 해병이다.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정리를 했는데, 돌이켜보면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회에 나가면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

해병 오종혁을 만든 사람들

나이를 잊고 여유를 배우다

오 이병이 해병대 복무를 희망하게 된 데는 예비역 소령

해병대는 평균 연령이 타군보다 낮은 편이다. 오 이병의

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 그가 아버지에게 물

선임들은 대부분 그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리다. 그러나

었다. “아빠, 내가 군대 가기 싫다고 하면 빼줄 힘이 있

병영에는 나이를 잊게 만드는 또 다른 사회가 있었다.

어?” 그러자 돌아온 대답. “힘은 있지. 하지만 그 힘을

해병대는 그에게 나이를 떠나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가

널 해병대에 보내는데 쓸거야.” 그 한 마디로 해병대는

르쳐주었다.

오 이병의 운명이 됐다.

군 생활에 적응이 빠른 것 같다는 말에 오 이병이 멋쩍

오 이병이 아는 한 가장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이라는 그

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도 사회생활을 잠시 접어두어야

의 아버지. 오 이병의 형이 군에 지원했다가 장기대기자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사회에서 그는 쥐고 있는 끈이

로 면제 판정을 받자 “내 아들은 군대에 보내야 한다”며

많았다. 클릭비, 뮤지컬,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까지.

통고장을 들고 직접 병무청까지 찾아가셨다는 일화는

그는 입대 이틀 전까지도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 정리에

그 성품을 짐작케 한다.

매진했다. 그런데 막상 입대일이 되자 초조함은 초연함

그를 해병대로 이끈 사람이 아버지라면, 진짜 해병으로

으로 변했다.

만들어준 사람은 훈련병 시절 소대장을 맡았던 이대성 중사다. 엄하기로 유명했던 이 중사는 훈련 초기 오 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정리를 했는데, 돌이켜보면 대

병에게 말했다. “네가 남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으면 그

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회에 나가면 많은

마저도 특혜가 된다. 남들보다 더 힘들게 하는 모습을

시간이 주어진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보여야 다른 훈련병들이 널 동기로 인정해줄 거다.” 단 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40km 행군을 마치고 파김치가

여유를 갖게 된 데는 자대의 밝은 분위기도 한 몫을 했

된 훈련병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이 중사의 소대는 곧바

다. 이등병도 의견을 내놓을 수 있어 ‘말을 할 수 있는

로 목봉 훈련에 들어갔을 정도니까.

실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진촬영을 할 때도 구경 온

그런 이 중사가 직접 명찰을 달아준 수여식의 감동은 남

선임들과 쉬는 시간마다 <HIM>을 들여다보며 웃음꽃

달랐다. 수여식 당일, “넌 고생 좀 더 해야 하는데”라면

을 피우던 오 이병의 모습이 스쳐갔다.

서도 대견해하던 이 중사를 오 이병은 가장 닮고 싶은 군인상으로 꼽는다. 이쯤해서 그에게 빨간 명찰을 단 소 감을 물었다. “빨간 명찰을 다는 순간의 느낌은, 직접 해보지 않는 이 상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직도 수여식의 감동이 느껴지는 듯, 그는 명찰을 소중 히 어루만졌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명찰의 진홍색 은 피와 정열, 그리고 약동하는 젊음을 조국에 바친 해 병대의 전통을 상징한다. 이름을 새기는 황색은 땀과 인 내의 결정체임을 의미한다. 오 이병이 빨간 명찰을 소중 히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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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생활을 이겨내는 힘

인터뷰 내내 강인한 해병 그 자체였던 오 이병도 여느 이등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가장 먹고 싶 은 음식을 물었을 때다. 훈련병 때는 단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동기가 감춰둔 과자를 몰래 훔쳐먹기도 했다는 오 이병. 지금은 초콜릿류와 삼겹살이 가장 먹고 싶단다. TV에서 기름이 지글지글한 삼겹살을 보면 고기 냄새 가 솔솔 나는 것 같다고. 음식도 음식이지만, 군인의 힘은 편지에서 온다. 오 이병은 훈련병 시절부터 이런저런 사회 소식이 적힌 팬들 의 편지를 많이 받아서 부대 내 소식통으로 통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클릭비 멤버인 김상혁 이병 의 소식을 담은 편지다. “주말에 훈련받고 돌아왔는데 ‘상혁(육군) 오빠는 토요일이라 쉰다는데 오빠도 쉬고 있겠네요’하는 편지를 보 면 괜히 상혁이가 부럽고 미워졌습니다. 허리를 다쳐 조건미달만 안 됐어도 같이 데리고 오는 건데….” 친구가 얄미워질만큼 힘든 훈련을 마친 오 이병의 군악대 정복에는 ‘특등사수’가 선명하게 새겨진 휘장이 달 려 있다. 해병대 1140기인 오 이병은 신병훈련소 수료식에서 특등사수로 상장을 받았다. 특등사수 상은 신병훈 련기간 내 사격훈련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신병에게 주어지는 것. 특등사수에게는 교육훈련단장으로부터 특등 사수 상과 전투복에 부착할 수 있는 휘장 등이 수여된다. 끝으로 클릭비의 데뷔 12주년을 맞아 팬들을 위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오 이병은 얼마 전 팬들의 마음을 아프 게 한 일이 있었다며 짧은 말을 전했다. “사고뭉치라서 미안합니다.” 추측컨대 오 이병이 급하게 입대하느라 팬 들에게 다소 서운한 일을 저질렀나 보다.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와 브라운관을 지배했던 이 남자. 머지않 아 해병대의 꽃인 수색대원이 되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 생각하니 매력 그 자체다.

해병대사령부 군악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창설

평화를 향한 60년의 울림


+&


+'

MILITAR Y L IF EST Y LE

유성욱 박현주

권윤성

민승기

“6・25 참전국 이름없는 영웅들을 기립니다” 창단 후 첫 해외공연, 국군교향악단 구슬땀 현장을 찾다!

국방부 근무지원단(단장 황우현 준장) 소속으로 지난해 2월 창단된 국군교향악단이 오는 9월 최초의 해외 순회연주회를 갖는다. 6・25 참 전국에 대한 보은 및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할 순회연주회 첫 방문국은, 참전과 함께 가장 큰 희생을 치른 혈맹 미국. 특히 국군교향악단 중 심의 ‘드림팀’으로 구성된 이번 순회공연단은 미 제1해병기동군(I-MEF)과 미드웨이 항모 선상공연으로 한미동맹 강화는 물론, LA한인축 제에도 참여하는 등 모두 5회의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어 현지 교민들의 애국심 고취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순회연주회를 앞 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국군교향악단 연습현장을 찾았다.


+(

SYMPHONY ORCHESTRA

55년만에 부활, 군악의 새 장을 열다

미드웨이 항모 선상 공연으로 피날레


+)

현장 인터뷰 연습장에서 만난 5인의 소감

조동민 소령

박완 상병

김남훈 상병

박진우 상병

변해영 중령


MILITAR Y LIFEST Y LE

박현주

권윤성

공군의 1등 취사병, 장문수 상병

“매일 맛있는 인생을 요리합니다” 공군 1전투비행단의 취사병이 화제다. 호주 유학파 출신 요리사이자, 국제요리대회 군인 부문에서 1등을 석권한 장문수 상병이 그 주인공. 요리로 ‘맛있는 인생’을 꿈꾸는 그를 <HIM>에서 만났다.

+*


++

국제요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실력파 그의 열정은 유학생활 중에도 계속됐다. 1급 호텔 주방장 스태프로, 유명 레스토랑에서 수석 쉐프로 일 하기도 한 것. 좋은 곳에서 스펙을 쌓은 것도 대단하지만, 그런 그가 군 입대를 포기하지 않은 것도 놀라 운 일. 호주에서는 요리사를 포함한 특수직업군의 경우, 자국의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부 여한다. 특히 장 상병처럼 유학 중 현장근무 경험이 있는 유학생에게는 가점을 준다. 당시 장 상병의 목 표는 서양 요리와 한국 요리를 접목해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었기에, 영주권을 받아 호주에 서 더 큰 꿈을 키워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외국에서 지내다 보니, 애국심이 더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군 입대를 결정했습니다.” 장 상병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취사병으로 군 복무 중이다. 장 상병은 군대에서도 요리로 이력을 쌓았 다. 지난 3월 공군요리경연대회에서는 숯불맛 떡볶이와 영양밥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한 달 뒤에는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군인 부문에서 창작요리와 규정요리 종목에서 각각 금상을 수상했다. 공군요리 경연대회는 국제요리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한 선발전이다. 따라서 3인 1조로 공군요리경연대회에서 1 등을 한 장 상병의 팀은 2명의 팀원을 추가해 5인 1조로 한 달 동안 국제요리경연대회를 위한 조리 실습 에 들어갔다. 국제요리경연대회는 전 의경을 포함한 3군이 참여하는 대규모 대회인 만큼,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 장 상병은 단체 대회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한다. “대회 준비를 하면서 동료들과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요리대회를 통해 협동심과 함께 사회성을 길렀습 니다.”


+,

장 상병이 대회에 참여할 때 갖는 마음가짐은 어떨까. 무엇보

‘잘 먹었다’ 등의 글을 남깁니다. 그러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다도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며, ‘할 수 있다’ 는 자기 최면을

보람을 느낍니다.”

건다고 한다. 자만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대회에 성실하 게 임하는 것이다.

급양중대 박도연 상사의 말에 따르면 장 상병은 다른 병사와 달리 해 보지 않은 요리는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병사로 유명 하다.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군대에서 터득

‘ 끝 ’ 을 모르는 타고난 요리사

한 레시피가 여러 개 된다고 밝혔다. 땀에 젖은 그는 무더운 여름, 병사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요

현재 1전투비행단에는 모두 20명의 취사병이 복무 중이다.

리로 ‘주꾸미 볶음’을 적극 추천했다. 여름 보양식으로 많은

그 가운데 정기휴가 등을 이유로 몇몇의 병사가 자리를 비우

사람들이 삼계탕을 먹지만, 주꾸미도 그에 못지않은 보양식

게 되면, 14명이 하루 4200인분의 식사를 만든다. 취사병의

이라며 기자에게도 적극 추천했다. 장 상병의 여유가 돋보이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데, 조식 중식 석식을 준비하

는 순간이었다.

려면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어 보인다.

장 상병은 입대 후 군 급식을 만나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

장 상병은 음식재료 손질을 비롯해 밥을 짓고 배식하는 일,

던 또 다른 ‘요리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후임이 만든 음식을 맛보는 일을 맡는다. 이 외에도 훈련 중 병사식당이 피폭될 경우를 대비해 야전에서 조리가

“호텔과 레스토랑 요리는 개인을 위한 음식이지만, 군 급식

가능한 비상급식을 만드는 훈련도 받는다.

은 단체를 위한 음식입니다. 그렇기에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

군 식당의 메뉴는 월 단위로 상무대에서 정한다. 3군에 들어

는 군 급식은 그 맛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가는 요리 재료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특별한 요리 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장 상병은 틈틈이 병사들을 위

군 급식을 만나 ‘차이’를 발견하면서 군 복무에 더욱 열중하

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 있는 것이다. 전역까지 1년이 남은 시점에서, 그는 전역 후 의 계획과 함께 인생 최대의 목표까지 세워두고 있다. 먼저

“제가 얼마 전에 소스를 개발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 메뉴

전역을 하면 에드워드 권과 같은 훌륭한 멘토를 만날 것이다.

가 양념 통닭입니다. 튀긴 닭에 이 소스를 얹을 것입니다.”

채찍과 당근을 함께 줄 수 있는 멘토에게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최대의 목표는 세월이 흘러 최고의 경지에 오

준비된 튀김 닭에 소스를 얹어 살짝 맛을 보니, 그 맛이 일품이

르게 되면, 한식을 체계적으로 전수해 주는 학교를 설립하는

다. 병사들도 장 상병이 만든 요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단다.

것. ‘한식의 세계화’가 아닌, ‘세계의 한식화’를 꿈꾸기 때문 이다. 요리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는 타고난 요리사임이 틀

“가끔 병사들이 각 대대 인트라넷 홈페이지에 ‘맛있었다’,

림없다.


+-

MILITAR Y L IF EST Y LE

박현주

권윤성

‘사랑의 자물쇠’로 약속한 7년의 사랑 육군 1사단 신병교육대 류지웅 상병 & 정혜민 양

남매처럼 꼭 닮은 류 상병과 혜민 양을 만난 날은 가랑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그칠 줄도, 굵어질 줄도 몰랐다. 하지만 ‘미소천사’인 두 사람의 웃음은 점점 함박웃음으로 커져만 갔다. 빗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러브 바이러스’를 마구 발산하는 두 사람,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

서로가 행운의 열쇠인 커플

장기 연애의 비법을 밝히다

처음에 기자가 바라본 두 사람의 이미지를 날씨에 빗대 표현하자면, 혜민 양

솔로인 기자는 커플이 선망의 대상이며, 그 중 장기 연애 중인 커플

은 ‘맑음’, 류 상병은 ‘흐림’이었다. 시종일관 밝게 웃었던 여친과 달리 그의

은 존경의 대상이다. 한 사람을 장기간 만나는 재주가 없는 기자는

표정은 조금 어두웠기 때문. 그래서 기자는 웃음이 헤픈(?) 여자와 웃음에 인

두 사람에게 물었다. 7.년.동.안.교.제.하.는.비.결.에.대.해….

색한(?) 남자의 조화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메라 셔터가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참는 것’이었다. 누구나 참는 것에는 한계가

터지기 시작하자, 류 상병의 웃음도 함께 터졌다. 뿐만 아니다. 손발이 오글거

있는 법. 허나 두 사람은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고 해도 ‘무

릴 정도의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했을 때에도 전혀 스스럼없었다. 능구렁이

조건 참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참을 인’으로 마음

가 따로 없을 정도. 뱀이 허물을 벗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을 수양했던 것은 아니다.

류 상병은 군인으로서 다소 무거운 타이틀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27세, 분

“처음 3년 동안은 정말 한 번도 다투지 않았어요. 정작 싸우기 시

대장, 조교’가 바로 그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청스런 남자가 될 수 있었던

작한 건 3년 이후부터에요.”

건 모두 여친의 사랑 덕분이라고. 집에서는 무뚝뚝하기만 한 아들이지만, 여

교제 4년째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친 앞에서만큼은 ‘확’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혜민

고 헤어지지 않고 7년을 만나고 있다.

양은 류 상병보다 한 살 아래지만, 풍기는 인상이며 말솜씨가 어른스러웠다.

“제가 화가 났을 때는, 오빠가 참구요. 반대로 오빠가 화가 났을 때

그리고 때로는 남친을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했다. 성숙한 혜민 양은 ‘한

는, 제가 참아요. 상대방이 화가 났을 때, 똑같이 화를 내면 절대 안

남자’에게 사랑받기에 충분한 여자였다. 혜민 양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돼요. ‘싸워서 끝을 보자’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말을

류 상병에게 ‘여자친구가 참 어른스럽다’고 칭찬했다. 그 또한 기자의 생각에

초래하기 때문이에요.”

동의하며 여친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은 기자를 흐뭇하게

“제 여친은 무엇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어요. 우선 저희 부모님께 참 잘해요.

했다. 왜냐하면 존댓말은 상대방을 높여주는 말로, 사용하다 보면

일주일에 3~4번 꼭 전화를 드리고, 한 번은 꼭 찾아 뵙고 함께 식사를 하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

그리고 꼼꼼해요. 제가 사소한 것들을 잘 놓치는데, 그럴 때 옆에서 잘 챙겨줘

“하하, 특히 서로에게 원하는 게 있을 때, 더 존댓말을 해요.”

요. 또한 부지런하죠. 저랑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그래서 갑자기 존댓말이 나오면 서로 긴장해요. 하지만 전 평소에

싸요. 이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죠?”

도 오빠보다 존댓말을 더 많이 해요! 히히.”

혜민 양이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탓에 두 사람은 함께하는 것

존댓말을 누가 더 많이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상

이 많다. 따라서 데이트 범위도 넓은 편. 볼링, 포켓볼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대방의 기분을 배려할 줄 아는 내공이 쌓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

야구 관람을 가장 즐겨한다고.

상병말인 류 상병은 올해 12월에 전역을 한다. 마침 전역일이 크리

“처음에는 야구에 ‘야’자도 몰랐는데요, 야구를 좋아하는 오빠를 따라 야구

스마스 전이라 그 기쁨은 두 배라고.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하는 연인

장에 자주 가다 보니,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되려 오빠보다 제가

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수 있다는데,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연

더 야구를 좋아해요.”

애 선배 류 상병과 혜민 양을 만

지금도 여전히 서로에게 좋은 ‘짝’이 되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 그들의 사랑

나기 전 날, 기자는 모처럼 소개

에 ‘아웃’은 영원히 없을 것만 같다.

팅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개 팅 잘하는 법’조차 모르는 기자 는 두 사람에게 배울 점이 많았 다. 연애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 거니와 장기 연애는 더더욱 아무

두 사람의 인연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류 상병이 혜민 양의 ‘교회 오빠’였던 셈. 그로부터 한 달 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한 달 만에 관계가 깊어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잠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혜민 양은 교회 전도사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류 상병은 군인으로 병역이행 중이다.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7년 동안 ‘사랑의 자물쇠’로 단단하게 지켜온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공개한다.

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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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데이트 코스 / 파주 일대 명소

‘고즈넉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데이트

파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간직한 곳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유적지와 모던한 분위기의 예술적 공간이 모두 마련되어 있는 것.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 혹은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데이트 분위기를 달리할 수 있다. 이는 최근 파주가 ‘서 울 근교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복합문화공간, 임진각 평화누리

황희의 여생이 담긴 곳, 반구정

동화 속 마을, 프로방스

☎ (031) 954 - 2710

☎ 1644 - 8088 ☎ (031) 953 - 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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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예술마을, 헤이리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첼시’

수제 돈가스 전문점, 하루

☎ 1644 - 4001 ☎ (031) 946 - 8551

DATE TOGETHER

☎ (031) 942 - 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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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석

MILITAR Y L IF EST Y LE

임승경

매주 목요일, 라디오를 듣다보면 배꼽이 빠진다. 가슴 찡한 사연을 듣다보면 눈물도 찔끔 난다. MBC라디오 <여성시대>의 목요일 코너 ‘장용의 단결필승충성’이 군대에 아련한 향수를 가진 청취자들을 추억의 세계로 안내하기 때문. 방송에 소개된 사연 중 참모병장 장용을 웃기고 울린 걸작 에피소드를 만나보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김구 예비역 병장의 사연

적과의 동침! 때는 1990년, 저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황00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너무 친해서 그 친구는 재수를 해서 저와 같은 대학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야만 하는 군대 앞에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먼저 입대를 했고, 한 달 후 저 또한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입대한 친구가 보낸 편지를 통해 저는 입대 전 친구의 자대 주소가 ‘경기도 파주군 00포병여단’이란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정부 훈련소를 거쳐 자대배치를 받은 곳이 저 또한 파주군에 있는 ‘흰말부대’였습니다. 부대가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병장이 될 때까지 휴가 때만 만나 각자 부모님께 안부를 전했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제 부대는 단결도 필승도 충성도 아닌 부대 이름을 경례구호로 쓸 정도로 이름난 월남파병부대, 그야말로 훈련에서 시작해서 훈련으로 끝나는 ‘흰말부대’ 입니다. 여기서 제 보직은 중대장을 보필하고 모든 작전계획과 지형을 숙지하고 전술을 중대장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병사, 그렇습니다. 바로 작전병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작전병이지 1년의 반은 전술훈련으로 야외에서 먹고 자고, 짧아야 일주일에서 최장 1개월짜리 훈련에 낮밤 없고, 여름 겨울 없는, 게다가 훈련 중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중대장님의 개인 물품을 제 군장에 같이 넣고 다니느라, 그 무게에 짓눌려 고달픔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고생도 끝이 있는 법! 어느덧 저에게도 말년이 왔고, 게다가 갓 대위 달고, 부임한 지 보름 밖에 안 되는 신참 중대장님을 만나 마지막 연대전술훈련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름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에 유격훈련도 아니고, 손발 얼어터지는 혹한기전술훈련도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참관하는 사단합동전술훈련도 아니고, 250km 행군하는 공군/지상군 합동훈련도 아니고, 사방팔방 미사일 날아다니는 한미연합훈련도 아니다. 아, 이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된다!’ 라고 말이죠. 여러분, ‘대항군’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권투에 스파링 파트 너가 있듯이 전술훈련에도 부대마다 병력과 화력에 걸 맞는 적군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대항군입니다. 출동 준비에 짐 싸느라 정신이 없는 저희에게 중대장님이

중대장: “이번 대항군은 파주에 있는 00포병여단이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출동 명령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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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정문을 나서며 외치는 “전방에 힘찬 함성 3회!” 함성이 지축을

아십니까? ” 라고 적군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병사는 고개를

흔들고,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신참 중대장님은 훈련

갸우뚱하며 “황 병장님요? 우리 부대도 아닌데 황 병장님을 어떻게

내내 연대장님의 지적과 훈시에 곤혹을 치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십니까?”하더니 손가락으로 “저기 위에 트럭에서 취침 중이십니다”

저희 공격진지에 당도하려면 산을 2개나 넘어야 하는 상황에서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황00이 제 친굽니다” 라고 하면서

기어이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 비도 주룩주룩

그 병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저는 중대장님 판초우의만 챙기고 제

적군 진지에서 둘도 없는 친구와 만나다니, 정말 이런 우연이

우의는 가져오지 못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있을까요? 적병의 인도를 받아 찾아간 트럭 안에서는 정말로 제 친구

저녁이 다 되도록 자기 중대의 공격진지도 구축하지 못 한 걸 만약

황 병장이 자고 있었고, 잠에서 깬 친구는 저를 보자마자 마치 귀신을

연대장님께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그야말로 크게 혼쭐이 날지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어 친구는 트럭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대장님께 우선 우리가 서 있는

안에서 보병으로선 꿈도 못 꿀 라면까지 끓이고, 감춰둔 소주까지

곳에서 가까운 야산으로 피했다가 새벽에 감시가 없는 틈에 다시

권하면서

공격진지로 이동하자는 안을 내놨고, 중대장님도 방법이 없는

친구: “ 와 이리 많이 젖었노? 이게 꿈이가? 생시가? 많이 묵으라!”

듯 제 뜻을 따르게 되었지요. 그렇게 중대원들에게 초소 배치를 지시하고 중대장님 초소에서 잠자리를 봐 드리고 나니 어느덧 9시가 다 되어 전투 식량으로 식사를

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군 생활 이야기, 학교 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의

기, 제대 후 이야기까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없이 너무 떨어서인지 도무지

저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수통의 물 밖에는 아무것도

지났을까? 계곡을 울리는 함성소리에 놀라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잠에서 깼습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피곤한

대원들: “ 하나, 둘, 셋! 김 병장! 하나, 둘, 셋! 김 병장!”

중대원들은 하나둘씩 잠에 빠졌습니다. 반면 저는 잠시 마지막 훈련에 대한 상념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면서 중대원들 모두가 저를 찾고 있는 것이

그런데 그때 백미터도 안 되는 계곡

아닙니까? 친구에게 작별을 고할 새도 없이 저는

저편에서 희미한 불빛과 군인으로 보이는

반대편 계곡 위를 거쳐 우리 중대원들이 눈치 채지 못

사람들 몇몇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하게 잽싸게 저를 부르고 있는 대열 뒤편으로 숨어 들었습니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피신해 온 이

다. 그러고는 마치 큰 볼일을 보고 나오는 것처럼 바지를 추켜올리면

야산이 바로 우리 대항군의 방어진지였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서 “저!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나타났죠.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상대방 초소를 향해

그야말로 작전 성공이었습니다. 중대장님은 뭔가 의심하는 눈치였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적군의 병사가 저를 발견하고는

지만 갈 길이 바쁜 터라 “중대장님, 빨리 가셔야 됩니다!” 라는 제 말

큰소리로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하면서 암구호를 대라고 하는데,

한마디에 금세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천만다행으로

제가 적군의 암구호를 알리가 있습니까? 그리하여 졸지에 저는

연대장님께 들키기 전에 우리가 가 있어야 할 공격진지에 도착했습

적군의 포로가 되었고, 실전에서라면 사살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니다.

만약 적군의 간부에게 보고라도 되는 날엔 필시 말년에 영창신세를 져야 할 상황이었지요.

군 생활 마지막 전술훈련을 스펙타클하게 끝내고 제대한 지도 어언

그런데 그 순간, 적군 어깨에 선명한 ‘00포병여단’ 마크를 보게

20여년이 되었네요. 지금도 제 친구를 볼 때면 그 시절의 기억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만요, 혹시 황00 병장

아련하게 추억으로 밀려오곤 한답니다.


,)

홍민석

MILITAR Y L IF EST Y LE

‘하늘의 전투지휘소’

방위사업청 대변인실

미사일접근경보기 (MAWS) 장착 (6곳)

한국형 E-737

‘한반도의 평화를 지킨다’ 채프 플레어 살포장치 8개

내년부터 4대 운용… 24시간 한반도 감시

AIRBORN WARNING&C ‘하늘의 전투지휘소’라 불리는 한국형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737 1호기가 드디어 우리 영공을 지킨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눈이라는 뜻의 ‘피스

아이Peace Eye’로 명명된 이 비행기가

휴전선 부근에 뜨면 대북 상공과 해상 감시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차세대 핵심 무기체계로 기대를

모 으 고 있는 E-737의 무한한 힘과 능력을 조명한다.


,*

2

1

3

370 km

4

E-737의 핵심은 ‘MESA 레이더’… 반경 370km 감시

N E E A R LY CONTROL Information

제원

감시영역 및 특징


,+

독고순

MILITARY LIFESTYLE

임승경

과학으로 입는 군복의 진화

‘군복은 전투력을 올려주는 또 하나의 무기’ 군대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원색이었던 군복은 위장과 보호로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꾸준히 진화했다. 우리 군도 단순 디자인에서 수풀지대용 얼룩무늬를 거쳐 올초부터 신형전투복을 보급하고 있다. 신형전투복은 기존의 4도색 얼룩무늬에서 5도색 디지털무늬로 변경해 위장성을 강화했다. 디지털 무늬는 디지털 사진의 픽셀처럼 도트 모양으로 되어 있어 항공기나 위성으로 정찰사진을 찍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단순한 옷의 기능을 뛰어넘어 또 하나의 무기인 군복 패션의 역사를 살펴본다.

야상점퍼가 몇 년 전부터 지난 겨울까지 젊은층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더니, 지루한 비가 계속되었던 여름 장마 기간에도 야상베스트를 등장시키 며 유행을 이어가고 있다. 야상이란 야전 상의를 줄인 말로, 패션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군복을 끌어와 패션의 주요 아이템으로 활용하고 있 는 것이니 아이러니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군복이 사회의 패션에 영향을 미친 역사는 제법 오래 되었다. 트렌치 코트(trench coat)는 본래 제1차 세계대전 중 겨울 참호 속의 혹독한 날씨로부터 영국군과 연합군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한다. 조밀한 조직의 개버딘 에 방수 코팅을 하고 허리 벨트를 착용하는 트렌치 코트는 전후

에도 유행했으며, 특히 레인코트의 기본이 되었다. 또 전쟁은 여성의 의복 길

이를 점점 짧아지도록 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행했던 직선의 어깨선과 짧은 타이트스커트도 이제는 여성 패션의 고전이 되어버렸다. 이 외에도 견장과 금빛 단추 등을 활용하여 밀리터리 룩을 선보인 이브 생 로랑 등과 같이, 최고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밀리터리 룩은 꾸준히 발전해


,,

왔다. 그럼 정작 군복의 역사는 어땠을까? 19세기까지만 해도 군대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원색을 많이 사용한 화려한 군복이 주 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화기

가 급격하게 발달하게 되자 원색 군복은 야전에서 쉽게 적의 눈에 띄어 표적이 되는 문제가 생겼

다. 그러던 중 영국군이 1899년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카키색의 전투복을 처음 사용해 보호 효과를 얻게 되자, 각 국의 군대가 이를 모방해 요즘 볼 수 있는 짙은 녹색이나 황갈색의 전투복을 입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보호나 방호 기능은 물론 기동에 불 편이 없도록 기능성을 강조하는 추세이다.

기능성 전투화와 방한복 등 피복의 질 향상 우리나라의 경우, 창군 초기에는 군복의 대부분을 미국 원조에 의지하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비로소 미군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의 체질과 고유의 전통을 표방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군복의 국산화, 단순화가 이루어졌고, 1991년 에는 민무늬 군복을 수풀지대용 얼룩무늬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 전체의 삶의 질 수준이 높아지면서, 똑같은 품질 을 수십 년째 유지해 왔던 군복, 특히 전투복에 대한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저 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최근 국방부는 피복 품질개선을 위해 제 자리걸음을 해왔던 피복 예산을 2010년 11.4%, 2111년 11.3% 인 상했다. 2011년 피복비는 3223억원으로, 전년도 2895억원에서 328억원 증액된 예산이다. 이에 따라 일반전투화를 기능성 전 투화로 대체 보급하고, 보온성과 방 ・ 투습력이 강화된 기능 성 방한복을 GOP 장병 등에 보급하는 것 이외에도 신형 전투복을 선보였다.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신형 군복은 신소재를 사용해 신축성과 항균방취성 등 기능 성을 강화하고 디자인을 기존의 4도색 얼룩무늬에서 5 도색 디지털무늬로 변경해 위장성을 강화했다. 디지털 무늬는 디지털 사진의 픽셀처럼 도트 모양으로 되어 있어 항공기나 위성으로 정찰사진을 찍어도 잘 드러나 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군복의 발전은 더욱 획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 다. 미국은 나노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전투복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나노기술을 적용해서 머리카락 한 가닥의 1/100 정도로 두께가 얇은 섬유를 기존의 섬유와 적절히 혼 합한 소재로 전투복을 만들면, 주변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동으로 색깔이 변하기도 하고 전투복 안의 온도도 자동으로 조 절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공기의 출입을 조절해서 화생방전투에서 화학물질과 미생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줄 수도 있으며, 전투복의 중 량을 대폭 줄여 기동성도 높일 수 있다. 이제 우리 군도 ‘그까짓 옷쯤이야 무엇 을 걸치든…’이라는 단순 용감한 생각보다는 ‘옷이 전투의 날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과학적인 생각으로 전투복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

임승경

MILITAR Y L IF EST Y LE

사랑의

그대의 빈자리가

우체통 손 편지든 이메일이든, 하다못해 문자메시지라도 그리운 것이 병영생활입니다. 기다림이 또 하나의 존재의 이유인 병사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님의 편지는 힘든 훈련이나 막연한 외로움을 한방에 날려주는 그야말로 ‘위문편지’입니다. 월간 <H I M>은 대상, 사연, 길이를 불문하고 병영으로 보내는 ‘사랑의 편지’, ‘위문편지’의 튼 실한 우체통과 우체부를 자처합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애인, 친구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크게 느껴지네


,.

너를 기다리는 지금, 내 인생 최고의 순간

네 편지에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어


-%

너와의 첫 여행을 잊지 못해


-&

국방부 시계가 제일 느리다지만, 엄마는 ‘벌써’란다

Mini Message

군대 간 남친에게 보내는 200자 응원 메시지


-'

유희종

MILITAR Y L IF EST Y LE

본지 예비역 병장 자문단

따끈따끈 예비역 병장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모았다!

군대생활백서

생활전반 편

Tip 3. 전화예절, 실전이 중요하다! 교육은 실전과 다르다. 아무리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도 실전 에서는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살 길은 연습뿐이다.

Tip 1. 능동적으로 임무에 뛰어들자! 재미있게 군 생활을 하는 비법 중 하나는 군 생활을 자기 발전 의 시간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려면 입대할 때부터 전역 후를 생각해야 한다.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꿈은 무엇 인지를 고려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주특 기에 지원하자. 별 생각 없이 입대해 ‘어떻게든 되겠지’하며 자신과 맞지 않 는 주특기를 받는 순간, 국방부 시계는 한없이 느려진다.

Tip 4. 변명은 죄악이다!

Tip 2. 모르면 물어라. 처음 업무를 시작하면 당연히 모르는 게 태반이다. 문제는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배우고 대처하는 방법이다. 혼자서 해내려고 객기를 부리는 대신 묻자.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 법이니까.

군 생활은 실수의 연속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훈련병으로 시 작해 뼛속까지 군인이 된 병장으로 제대하기까지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피해야 할 한 가지, 바로 구구절절 늘어놓는 변명이다.


-(

집과 학교를 벗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작은 사회 군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병도, 생활관이 내 집 같은 병장도 저마다의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후배들의 고민을 덜어주려 막 영광의 전역마크를 단 예비역 병장들이 나섰다. 웃음을 자아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함께 군대의 달인으로 만들어줄 군 생활 팁을 제시한다.

인간관계 편

Tip 3.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군대는 나이보다 계급이 우선이다. 학교에서 고학번 선배였다 고, 사회에서 부하직원 거느린 상사였다고 군대에서까지 대접 받으려는 태도는 버리자. 군대는 무조건 ‘늦게 온 게 죄’다.

Tip 1. 공통점을 찾으면 친해지기 쉽다. 2년 동안 한 생활관을 쓰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 선임, 후임들과는 빨리 친해지는 게 상책이다. 취미나 임무의 공통 점을 찾으면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일단 친해지면 생활관 분 위기가 즐거워진다.

Tip 4. 라인? 군대에선 접어두자! 인생은 줄타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줄타기는 금물이 다. 나를 잘 봐주던 고참도 언젠가는 전역한다. 잠깐 편하자고 꾀 를 부렸다가 두고두고 고생하느니 차라리 지금 힘든 게 낫다.

Tip 2. 간부와 병사 사이, 선임병에 달렸다! 군대에서는 멀게 느껴지는 간부들보다는 함께 지내는 선임 병의 말이 잘 통한다. 간부와 병사 사이에 신뢰를 쌓기 위해 서는 선임병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랑스러운 예비역 마크를 단 조현경 병장의 부러운(?) 모습

하지만 지금부터가 새로운 고행의 시작임을 그는 알까?


-)

Trend n St yle

장병들의 애환이 깃든 그 곳, 얼마나 아시나요?

동서울터미널 일대 ●

맛집 & 쉼터 ALL GUIDE 전국에서 모여드는, 혹은 전국으로 흩어지는 군인들이 꼭 거치는 장소. 가 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리고 가장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장 소. 바로 터미널이다. 사회와 군대 사이에 있는 문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터 미널이기에 이곳에서 보내는 1분 1초는 더욱 소중하다. 군인들에게 있어 자유와 구속의 갈림길, 동서울터미널 일대를 집중 탐구했다.

조상목

유희종

민승기 신승호 송민수


-*

교 세

동서울터미널은 어떤 곳?

컬 뜨 쳐 락

LA CO VA 황 FF TE 실 EE 짜 장

울 당

4

3 동

1

닭 갈 2호 비 점

2

강변

2


복 나 끝 려 가 휴 운한 내 가 서 서 휴 , 에 며 고 스 들 내 버 보 이 을 음 만 저녁식사 함께 시간 가를 나왔지지기엔 어쩐지 아쉬운 마 ! 부대군인원들의들과 그대로 헤어 한 번 아쉬움이 밀려올 때이다. 귀하려니 또낼 수 있는 곳도 동서울터미널 마음을 털어 -+

기획 특집–

동서울터미널, 상황별 가볼 만한 곳 ①

산골 닭갈비

11:00AM ~ 11:00PM

02-444-7985

02-444-3985

9000

동서울터미널 당구장

8:00AM ~ 12:00AM 10

1500

02-444-8858

황실짜장

10:00AM ~ 9:00PM 7000 14000

4500

02-444-6078


순 는 있 을 간 께 오 시 함 것. . 과 말 다 인 이 지 연 쁨 치 는 기 놓 나 큰 를 트데이트 명소 틱한 데이 랜만에 만 말로 휴가가 주는 가장 울로맨 의 널 미 터 야 서 이 동 것 면 는 다 내 보 고싶 기 즐 이 같 알 간순간을 깨 기획 특집–

동서울터미널, 상황별 가볼 만한 곳 ②

크로스 컬쳐 뜨락

40000

12000

10:00AM ~ 10:00PM

12000

02-444-0101

LAVATE COFFEE

02-444-4393 11:00AM ~ 12:00PM 4000

1:00AM ~ 12:00PM 6000

테크노마트 하늘공원

10:00AM ~ 11:00PM

8000

-,


--

기획 특집–

‘차군남’의 고독

동서울터미널, 상황별 가볼 만한 곳 ③

헌혈의 집

9:00AM ~ 6:00PM

10:00AM ~ 6:00PM

02-446-3526

프라임문고

10:00AM ~ 6:00PM

까치만화방

02-447-3088

오락실

02-3424-1450


-.

터미널에서 만난 장병들에게 물었다!

나만의 자투리시간 보내는 KNOW - HOW

15사단 수송대 어영광 일병

동서울터미널 근방에서 즐겨 찾는 곳이 있다면?

강원도 속초 102기갑여단 서경범 일병

동서울터미널 근방에서 즐겨 찾는 곳이 있다면?

복귀 전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뭘 하시나요? 복귀 전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뭘 하시나요?

27사단 78연대 수색중대 최락원 병장

제16 전투비행단 작전전대 공중작전과 임찬우 병장

동서울터미널 근방에서 즐겨 찾는 곳이 있다면?

동서울터미널 근방에서 즐겨 찾는 곳이 있다면?

복귀 전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뭘 하시나요?

복귀 전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뭘 하시나요?

군화의 영원한 짝꿍, 곰신들에게 물었다! 동서울터미널의 가슴 설레는 추억 첫 휴가의 기쁨을 간직한 아릿한 그곳

서로의 의미를 깨닫게 한 1분의 엇갈림

이나리 (21세, 대학생)

남윤희 (23세, 어린이집 교사)


.%

Trend n St yle

반듯한 어깨, 첫인상을 결정한다! 사람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어깨에서 결정이 난다. 특히 여성에 비해 몸에서 어깨의 비율이 중요한 남성들은 얼굴과 어깨로 첫인상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깨가 넓은가 좁은가, 반듯한가 비뚤어져 있는가는 그 사람의 첫인상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캐주얼이든 슈트든, 옷맵시가 나고 안 나고는 이미 두 어깨에서 판가름 난다.

박현주

넥서스


.&

스트레칭

어깨 뒤쪽 늘이기 _

본 운동

머리 위로 덤벨 들어 올리기 _

@5<


.'

덤벨 앞으로 들어 올리기 _

@5<

상체 숙여 덤벨 옆으로 들어 올리기 _

@5<

TIP

여기서 잠깐! ‘요요’ 잡는 음식에는 뭐가 있지?

신진대사량 높이는 견과류 식욕 감소에 도움, 블랙커피 100% 콩의 위력, 두유 피부 트러블까지 잠재우는 양배추


복학생 아저씨? 아니 간지나는 오빠! 남자의 모든 스타일 매뉴얼 맨즈 잇 스타일

북 만드는 스타일 여친을 소시로 4

4


.)

위원석

Trend n Style

위원석 기자의 축구 100배 즐기기

잘 나가는 일본, 죽 쑤는 한국…

한국축구, 일본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한국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국가대표경기(A매치)를 치른 나라는 어디일 까. 정답은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이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예선에서 첫 맞대결을 한 이후 지난 8월 10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원정 평가전에 서 0-3으로 치욕적인 패배를 할 때까지 무려 75번을 싸웠다. 총 전적은 75 전 40승22무13패로 한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2000년대 이 후에는 4승6무3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을 뿐이다. 이제 한일 양국의 축구실력은 종이 한장 차이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일본이 앞서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번 ‘삿포로의 굴욕’은 이런 새로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일전의 추억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대한축구협회


.*

한국과 일본축구 언제부터 역전됐나

일본축구의 시스템 무엇이 다른가


.+

Trend n St yle

김상호

JYP엔터테인먼트


.,

더성숙하게돌 아 온미쓰 에이

3 연 타 석 ◦

다 Interview

JYP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미쓰에이가 올여름 거침없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원더걸스, 2PM을 발굴해 정상으로 이끈 박진영이 야심차게 선보인 걸그룹 미쓰에이는 지난해 7월 데뷔곡 ‘배드걸 굿걸’로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쓸며 단번에 정상을 밟았다. 후속곡 ‘브리드’로 연타석 인기 홈런을 날린 후 잠깐의 휴식기를 가졌던 미쓰에이는 올여름 13트랙이 담긴 정규 1집 음반으로 힘찬 복귀를 알렸다. 미쓰에이는 지난해의 성공이 ‘반짝인기’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했다. 새 앨범 타이틀곡 ‘굿바이 베이비’는 멜론, 벅스, 엠넷닷컴 등 각종 온라인 차트 선두에 올랐으며 KBS2 ‘뮤직뱅크’와 SBS ‘인기가요’, 케이블 엠넷의 ‘엠카운트다운’등 음악 방송 1위를 싹쓸이했다. 올여름 가장 ‘핫’한 그룹이 된 미쓰에이를 만나 여러 궁금증을 풀어봤다.


.-

‘굿바이 베이비’로 성숙하고 여성스러워졌다!


..

“연기자 수지와 민의 활동도 기대해 주세요”


&%%

Trend n St yle

군인들의 영원한 사랑

걸그룹이 진리다 군인에게 걸그룹이란? 꿀처럼 달콤한 오아시스 라고나 할까.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청순하고 때로는 섹시한 그녀들의 모습에 잊었던 설렘을 되찾는 장병들은 주목하시라. <HIM>이 전하는 따끈따끈한 연예계 소식!

조상목 유희종


&%&

보일 듯 말 듯, 아찔한 그녀들 최근 여자 아이돌의 선정성 문제가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나치게(?) 섹시한 안무와 옷차림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하지만 유난히 아이돌 가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이돌 선정성 논란, 그 속사정을 들춰본다.

꼬리를 숨긴 씨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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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걸즈, 달아 오른 일요일

왜 현아 한테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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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깜짝뉴스 치솟는 인기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소녀들.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인기절정 걸그룹의 근황을 살짝 들여다보자.

은반 위의 카르멘, 크리스탈

<나는 가수다> 효린을 탐내다

5인조 신인 걸그룹 쇼콜라가 온다

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

‘런닝맨’에 소녀들이 떴다! 걸

이>가 막을 내렸다. 그랑프

그룹 여고생 특집에 출연한

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거머

설리와 루나, 수지, 지연. 여

쥔 팀은 크리스탈과 이동훈

고생다운 상큼발랄한 매력으

커플! 열정적인 카르멘으로

로 오빠들의 마음을 설레게

변신해 최종 1위를 차지했다.

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짝꿍

김연아가 참여한 아이스쇼

을 너무 부러워할 건 없다. 이

‘올댓스케이트 서머 2011’ 에

튿날 아침, 소녀들은 길이 남

서도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준 두 사람.

런닝맨, 소녀들의 짝꿍 레이스

을 한 마디 ‘꿈 깨라’와 함께 김숙, 안문숙, 신봉선, 양정 아로 변해 있었으니.

MBC <나는 가수다>의 신정

8월 14일 열린 ‘유나이티드

수 PD가 씨스타 효린의 재능

큐브콘서트’. 예상치 못한 폭

을 인정했다.

우 속에 현아의 섹시함이 돋

‘아이돌의 나가수’격인 KBS-

보였다. 한쪽 어깨와 쇄골이

2TV < 불후의 명곡2 > 에서

드러나는 미니 원피스를 입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효

고 무대에 오른 현아. 갑작스

린. 신 PD는 “가창력과 퍼포

런 폭우였지만 태닝한 몸 위

먼스, 곡 해석능력까지 탁월

로 떨어진 빗물이 반짝이며

해 아이돌 중 가장 탐나는 친 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 다고.

하늘은 현아를 돕는다?!

무대가 더욱 빛났다고. 하늘 도 현아의 섹시함에 감동한 걸까.

다섯 명 중 세 명의 멤버가 혼

<미남이시네요>에서만 해도

혈이라는 이유로 데뷔 전부

이렇지 않았다. ‘아이돌이 무

터 관심을 끈 쇼콜라. 15살

슨 연기냐’며 사람들의 시선

막내 티아와 멜라니, 17살 쥴

도 차가웠다. 그러던 그녀가

리앤이 이국적인 외모를 자

달라졌다. KBS-2TV의 새 주

랑하는 혼혈 멤버들이다. 든

말드라마 <오작교 형제들>에

든한 큰언니 민소아, 메인보

서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선

컬 제윤과 함께 지난 18일 첫

보인 유이 말이다. 맹랑한 백

선을 보였다. 평균 연령 18.6 살의 소녀들이 일으킨 ‘신드 롬’에 병영도 출렁거렸으리.

유이의 연기가 달라졌다 <오작교 형제들>

자은이 되어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는 유이. 덕분에 주말 이 기다려진다.


&%)

Trend n Style

내가 좋아하는 그녀,

어떤 사람일까?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에게 고백하려고 하는가? 고백에 성공하는 비법을 알기 전에, 시간을 두고 내가 좋아하는 그녀에 대해 알아보자. 당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갈 연애의 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랑 고백 전 필수 체크 사항!

01 02 03

송창민

임승경


&%*

04 05 06 07 08 09 10 11


&%+

최규문

Trend n Style

‘페이스북 게 섰거라!’

구글의 네 번째 도전은 성공할까? 지난 6월말 구글은 ‘ 구글플러스 ’ 라는 이름의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구글플러스’를 선보였다. 구글플러스는 국내에서 구글의 이니셜 ‘G(쥐)’와 플러스의 학점식 표현인 ‘뿔’을 따서 ‘쥐뿔’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페이스북을 향한 구글의 네 번째 도전기. 그 반응을 IT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

구글플러스, SNS 시장에서 큰 관심거리

다기능에도 불구, 국내에서의 성장 미지수


&%-

홍민석

Trend n Style

팜므파탈 전도연 카운트다운

VS

터프걸 신세경 푸른소금

‘그녀들의 변신은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한다’ 한국산 블록버스터 <퀵> <고지전> <7광구>가 외화外畵와 맞서는 한편 서로 간에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추석특수를 노린 신작들이 속속 개봉대열에 합류했다. 그중 <카운트다운>의 전도연과 <푸른소금>의 신세경이 각기 다른 매력과 변신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도연이 스크린 여왕의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신세경이 스크린까지 점령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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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빠질 준비 됐나? 가문시리즈 일발 장전!’

국내 유일의 코미디 프랜차이즈

가문의 수난 _

세계가 주목한 우리 영화

◎ what's new 콜롬비아나

Colombiana

파퍼씨네 펭귄들

샤크나이트 3D

Mr. Popper's Penguins

Shark Night 3D

댄스 타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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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Trend n Style

첫 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씨스타

‘씨스타와 써니힐의 컴백…’

참을 수 없는 그녀들의 매력! 군인들에게 걸그룹의 컴백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최근 씨스타와 써니힐의 컴백 소식에 오빠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다. 각각 데뷔 2년차와 5년차인 두 걸그룹이 이번에는 또 어떤 매력을 선보일지 기대되기 때문. 그룹명이 주는 어감이 비슷한 두 걸그룹의 서로 다른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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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힐이 전하는 간절한 ‘기도’

Information

<위대한 탄생> 의 두 남녀, 그들이 부르는 위대한 노래

양정모 ‘사랑인가봐’

백세은 ‘뿌듯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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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n Style

박현주

긴급 특보! 새 한류 바람이 세계를 강타한다!

뮤지컬 <늑대의 유혹> & <비밥> 최근 ‘한류’의 척도가 바뀌었다. 드라마에만 국한되어 있던 한류가 K-POP으로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제낀 것이다. 한편 공연계에서는 이러한 트렌드를 뮤지컬에 잘 담아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K-POP을 활용한 뮤지컬과 또 다른 한류의 가능성이 농후한 ‘한식’을 무기로 내세운 뮤지컬이 바로 그 예. 뮤지컬 <늑대의 유혹>과 <비밥>은 또 다른 한류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학원물과 K-POP의 만남 <늑대의 유혹>

02-73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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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오감만족 공연 <비밥>!

한류 열풍의 다음 주자 LIVE 코믹 뮤직쇼 <판타스틱>

02-6401-5959

02-76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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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n Style

RPG가 아니라 디아블로를 만들었다

디아블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下 ‘ 블리자드 노스’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완성

‘ 돌연변이 장르의 게임’ 이라는 악평도 받아

박원기


Information

<디아블로>는 블리자드에서 만든 게임이다. 지금 이 명제를 의심하거나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명제 역시 뒤바뀔 뻔 했던 적이 있다. <디아블로>가 블리자드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디아블로 자투리 이야기

미리 보는 <디아블로 3> - 주요 시스템 체력 회복 시스템

장인 시스템

빌 로퍼, 그의 성공과 몰락

투기장 시스템

추종자(용병)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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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n EDUCATION

홍민석

권윤성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장우브랜드마케팅그룹 이장우 회장

나를 최고로

‘브랜드 마케팅하는 힘은 독서’ SNS 나이 28세의 청춘과 나눈 ‘생기충만 무한상상’ 인터뷰 SNS시대, 대중과 소통하며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회장은 스스로를 28세라고 말한다. SNS시대에는 신체 나이에 0.5를 곱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모도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생기발랄한 청춘인 이 회장은 90분 남짓한 1회 강의료가 5~600 만원인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강사다. 독서의 힘으로 SNS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이 회장과 나눈 생기충만 무한상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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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경쟁력은 다독 多讀ㆍ다관 多觀ㆍ다상량 多想量

SNS를 통해 수시로 75,000여명과 소통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SNS 코스모폴리탄이다. 이장우 회장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클라우트 스코어(Klout Score) 평가지수가 70점으로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68점), 박용만 두산 회장(67점) 등을 누르고 1위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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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배운 리더십과 인내가 내 삶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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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석

CULTURE n EDUCATION

안준우

김윤아

통찰력을 일깨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홍대 앞 카페에서 술에 취한 한 작가가 말했다. ‘소설은 죽었다!’

소설의 힘

멀어지자, 출판사 사장이 말했다 ‘이제 소설은 더 이상 팔리지도 않는다!’ 그 역시 사라졌다. 만화와

덩그러니 술잔을 남기고 작가는 빗속을 걸어갔다. 그의 등 뒤로 쏟아지는 빗방울과 불빛이 점점 영화와 게임에 밀린 소설은 이제 변방의 문화다. 하지만 소설은 지켜져야 한다.

‘거침없는 재미와 상상의 바다에 빠져보자’

IT에 기반을 둔 여타의 장르가 제 아무리 첨단기법으로 시대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묘사로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표현한다고 해도 소설의 무한한 상상과 표현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 소설가는 ‘천만의 군대가 진격한다’는 짧은 문장을 불과 몇 초만에 표현할 수 있지만, 이를 영화로 표현하려면 어마어마한 공력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은 읽어야 한다.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하기 때문에 통찰력을 일깨워준다. 이런 이유로 월간 <HIM>은 테마연재-커피 한 잔에 담긴 스토리텔링, 미니픽션에 이어 단편소설을 소개한다. 문학탐험 자문을 맡고 있는 소설가 황충상 ( <문학나무>발행인) 님이 추천한 작품은 신예작가 안준우의 <마지막 콘서트>.

마지막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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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식

CULTURE n EDUCATION

남성들의 세상이었던 병영에도 여군들이 늘어나고 있다. 숫자만이 아니라 영역에도 제한이 없어져 여군은 우리 군의 또 하나의 중추로서 자리매김했다. 또한 조만간 다문화 가정 출신 병사들도 입대하게 된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나와 다름’ 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해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을 주제로 한 칼럼을 게재한다.

하나가 되는 군대

‘차이’는 나와 다를 뿐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선녀와 나무꾼> 입장 바꿔 다시 읽기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씩은 읽거나 들은 적이 있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동화가 있다. 내용을 간단하 게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린시절에 착한 나무꾼을 두고 아이들과 하늘 로 날아가 버린 선녀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갖게 되면 서 선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고, 전혀 다른 이야기 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선녀의 입장이 되 어 보니 지금까지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동화는 철 저히 나무꾼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읽혀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선녀의 입장에서 이 동화를 ‘다시 읽게’ 되면 나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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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더 이상 불쌍한 사슴을 구해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선녀가 하늘

서로간의 다양한 유적 조건이나 사회, 경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함으

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소중한 날개옷을 훔친 도둑이고, 다른 선택이

로써 정책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강제적 합의’에 의한 결혼을 강요했던 사람일 수

따라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도 나무꾼과 선녀라는 성별 차이에

도 있다는 것이다. 천상의 선녀가 선택이 가능했다면 지상에서 어려

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남성들 내부의 차이, 여성들 내부의 차이에 입

운 농사일을 하면서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가난한 나무꾼과 과연

각하여 또 다시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시 한 걸음 더 나

결혼했을 것인가?

아가 나무꾼과 선녀의 가족 내에서 가장 약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이

<선녀와 나무꾼>이야기를 나무꾼에서 선녀의 입장으로 ‘다시 읽기’

야기를 써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즉 나무꾼도 선녀도 아닌 ‘나무꾼

는 등장인물들간에, 특히 성별간에 서로 다른 입장이 있을 것이라는

과 선녀’의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결

‘다양성과 차이’를 고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바로

정할 수 없는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선녀인 엄마에게 안겨 하늘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나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이들은 지상에 두고 온 아빠나 할머니도

이다. 즉 성인지 감수성은 처음에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주목하지

보고 싶을 것이고, 하늘나라의 다른 아이들과 구별되는 외모나 말투

만, 더 나아가 성별을 넘어서 여성들 내부의 차이, 남성들 내부의 차

등으로 또래 집단한테서 왕따나 폭력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을 수도

이까지 주목하게 한다.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 내에서 가장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도록 하는 성인지 감 수성은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집단 생활하는 군대에서

약자의 입장 이해하는 성인지 감수성

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군인들은 표면적으로는 드러나는 신체적 특성은 물론이고 지역, 학력, 연령 등을 위시해 문화적 경험과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을 정책적인 차원에서 개념 정의하면 ‘정책과

사회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매우 다양할 것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성별 역할과 지위에 있어 사회적 관행과 역학

다. 이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집단생활을 하

관계를 이해하고, 성별 입장과 경험을 동등하게 고려함으로써 성차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별적인 영향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통찰력과 기술, 지

국방부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감수성 훈련을 위해 우리 원

식을 의미’한다.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손잡고 동영상 및 교재 개발을 추

적인 성(sex)과 성 역할(gender-role)의 차이로 인한 사회적인 성

진하고 있기도 하다.

(gender) 차이가 있고, 이 둘의 차이로 인해 성별이 다른 남녀는 생애 주기에 따라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삶의 질을 갖

이제 군대에서도 여성비율이 점차 증가함과 함께 신병으로 다문화가

게 되어, 결과적으로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정책적 관심과 요구를 갖

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입대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 군의 구성원에

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집에서 한 가족으로 사는 여성과 남성

‘차이’가 더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차별’의 요인이

은 생애주기에 따라 아내와 남편으로, 때로는 어머니와 아버지로 살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오히려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군 생활을 풍

아가면서 서로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다른 삶의 질을 갖게

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되도록 해야한다. 이

되어 서로 다른 정책적 요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지 감

러한 노력은 군대 내에서는 성군기

수성에 의해 수립된 정책을 ‘성인지 정책’이라고 하며, 성인지 정책

사회 전체에서 보면 양성평등 사회실현으로 직결될 것이다.

은 우선적으로는 성별을 중심으로 하되 더 나아가서는 연령, 인종 등

사고 예방이 될 것이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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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n EDUCATION

배정원

정답 없는 대립…

혼전순결이냐, 혼전섹스냐?

요즘 신세대들도 기성세대처럼 혼전순결에 대해 갈등한다. 혼전에 섹스를 하면 남자의 마음이 변해 헤어지게 되지는 않을지, 연애할 때 섹스를 거부하면 그 연애가 끝나지 않을지, 결혼 후 배우자는 상대의 혼전섹스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많다. 최근 결혼 연령이 늦어짐에 따라 혼전섹스에 대한 갈등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실제로 십대의 어린 나이에 섹스를 시작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중학교 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연애를 시작하게 되기도 한다. 연애를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자연스레 스킨십이 많아지고, 또 그러다 보면 섹스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단계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혼전섹스에 대한 솔직하고 다양한 생각

순결의 사회적 기준, 남자에게도 적용되어야 섹스를 할 만큼 상대를 사랑하느냐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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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n EDUCATION

박현주

군대는 편입공부

워밍업의 교두보! 전역 후 대학편입으로 인생역전을 꿈꾼다면, 군 생활 동안 영어에 대한 감을 익히고 서서히 공부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워밍업하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군 복무 시절만큼 공부하기에 좋은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군인이 편입공부하기에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규칙적인

상대적으로

인터넷 사용이

생활로 체력을

영어교재를

가능해 정보를

쌓을 수 있다

볼 시간이 많다

얻을 수 있다

위드유편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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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도전은 아름답다

문덕 교수의 쉽게 익히는 편입어휘

amiable - (성품이) 상냥한 (good-natured) amicable - (분위기가) 우호적인 (friendly)

enamor = [ en (만들다) + amor (사랑) ] - 매혹하다 (charm) amity = [ am (사랑) + ity (명사형 접미사) ] - 우호감 (friend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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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비전찾기, 독도법만큼 중요하다!

박원철

CULTURE n EDUCATION

우리 사회에서 한가락하는 사람들이 모두 출발점에서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수없이 넘어지 고 부딪히면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길을 돌고 돈 사람도 있다. 이번호부터 병사들에게 취업 가이드를 해 줄 성공 멘토 ‘찰스’도 그 중에 한 사람. 그의 성공기와 취업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첫 번째 주제는 ‘방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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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번째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제 적성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전공에 관심이 없다 보니,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정조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신입생 1년을 완벽한 실패로 보낸 후, 돌아보니 두 학기를 합친 제 학점은 1점이 안 되는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결국 저는 답답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군대’로 직행했습니다.

군대에서 찾은 확고한 비전

‘찰스’의 취업 Talk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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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목

CULTURE n EDUCATION

국제천문연맹(IAU)이 공인한 별자리는 88개. 이중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목인 황도를 따라 배치된 12개의 별자리(황도 12궁)는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사수 염소 물병 물고기자리가 있다. 약 5000년 전 바빌로니아인들이 별과 별을 가상으로 연결한 선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바빌로니아 천문학이 그리스로 전해지면서 신화 속의 신, 영웅, 동물의 이름이 더해져 지금의 별자리로 자리 잡았으며,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의 운명이나 나라의 장래를 점치는 점성술이 발달했다. 인간은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로 고대에는 전쟁이나 왕위 계승, 재난에 대한 분석이나 대비도 점성술에 근거했다. 하지만 점성술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따라서 점성술로 푸는 ‘이달의 운세’는 그야말로 재미에 불과하다. 다만 별자리의 운세가 좋으면 ‘행운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밝게 생활하고, 행여 좋지 않다면 ‘보다 조심하고 본연에 충실’한다면 군 생활에 있어 긍정과 경계

의 힘이 되지 않을까.

물고기자리

양자리

황소자리

1.20 ~ 2.18

2.19 ~ 3.20

3.21 ~ 4.19

4.20 ~ 5.20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5.21 ~ 6.21

6.22 ~ 7.22

7.23 ~ 8.22

8.23 ~ 9.23

물병자리


&((

천칭자리

전갈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

9.24 ~ 10.22

10.23 ~ 11.22

11.23 ~ 12.24

12.25 ~ 1.19

아이돌 스타 틀린 그림찾기


국방에 헌신하는 병사들을 위한

<HIM 캠페인> 1999년 발족 이래 60만 장병이 헌신하고 있는 군부대를 대상으로 ‘병영도서관 건립운동’과 ‘책과 문화가 있 는 병영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사)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가 국내 최초로 밀리터리 컬쳐 매거진 <HIM>을 창간하고, <힘내라! HIM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HIM 캠페인>을 통해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 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전・의경, 경비교도, 공익요원에게 사랑과 격려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1 열독률과 타깃이 뚜렷한 <HIM> 광고

2 정기후원 회원가입

3 지정기증 후원 신청

광고게재나 <HIM> 기증 관련 02-465-5417 02-465-5418 http://himnanum.tistory.com bosspenny@gmail.com


낱말퍼즐과 스도쿠를 풀어 보자. 시간을 재면서 문제를 풀면 그 재미는 두 배가 된다. 스도쿠 푸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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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HIM 캠페인> 에 동참해주신 개인 및 단체입니다 ! 월간 <HIM>은 장병들에게 힘을 주는 유익한 매체로 인정받아, 국방부로부터 육해공군 해병대 생활관에 비치를 승인받았습니 다. 나라사랑 장병사랑의 마음으로 국토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의 쉼터에 월간 <HIM>이 전달될 수 있도록 많은 성원을 기대합니다. 지정기증 후원

정기후원 회원

재능기부 회원

<HIM> 캠페인에 참여하는 ‘또 하나의 방법’

<HIM> 9월호에 협찬해 주신 기업 및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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