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유즈드 프로젝트’ 공동 대표 홍대에 새로운 중고 가게가 생겼다. 김준혁과 친구가 함께 운영하는 ‘유즈드 프로젝트’는 어릴 적 장난감을 모아놓고 버리지 않은 친구의 방에 놀러 간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을 꽉 채운 책장을 책, 비디오, CD와 LP, 컵과 비커, 장난감 등 아기자기한 잡화가 메우고 있다. 10 명 정도 들어서면 꽉 찰 것 같은 좁은 공간이지만 구경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김준혁은 지난 6월 내한한 일본의 유명 리사이클 브랜드 디&디파트먼트의 대표 나가오카 겐메이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는 1960년대 미니멀한 디자인 제품을 재생산하는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 감명을 받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던 통의동의 위탁 판매점인 ‘가가린’ 같은 곳이 홍대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몇 년 동안 모은 본인의 물건이나 디자인이 좋은 신제품을 함께 팔고 있는 분위기라 굳이 중고로 살 필요가 없는(예를 들면 집에서 쓰던 마우스) 같은 물건은 위탁 판매를 거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가게는 주인의 취향을 많이 반영해 중고 셀렉트 숍 같은 느낌이다. 그는 자신이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 선물한 거라면서 책장에 진열해놓은 손바닥만 한 책 <사랑의 밀어>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절판된 책이나 중고품으로 사도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끔 오래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할머니들이 버리는 파이렉스 컵이나 찻잔, 오래된 소품 같은 걸 주워와요.” 공용 작업실로 쓰려던 계획은 호응이 없어 실패했지만, 소소하게 일본어나 우쿨렐레를 배우는 워크숍을 열 계획이다. “편하게 와서 중고 물건을 구경하세요. 사실 그게 콘셉트예요.” www.usedproject.net K I M YO O N JU N G
새로운 소비
생활
디자인이 괜찮은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중고 가게, 매달 월세를 받으며 선반을 대여하는 위탁 판매점, 사용된 물건의 역사와 전주인까지 알려주는 가게 등이 중고 물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자, 2011년부터는 새로운 소비 생활에 동참해보자.
사진 HWANG HYE JEONG
E D I TO R : K I M YO O N JU N G , L E E S A N G H E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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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진영, ‘반지하 드림’ 숍 매니저 합정역 뒤쪽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반지하인 것도 같고 지층인 것도 같은 가게가 있다. 안쪽 선반을 들여다보면 피규어, 카메라, 그릇, 카주 등 온갖 잡화를 진열해놓은 터에 대체 어떤 가게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이곳이 인기 블로거로 알려진 일본인 나오키가 운영하는 위탁 잡화점이다. 홍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나오키가 ‘유바’라는 큰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다가 이곳을 임대했는데 마침 방이 2개가 남아서 위탁 가게를 생각하게 되었다(실제로 가구가 쌓여 있는 뒤쪽이 나오키가 살고 있는 방이다). 보증금 없이 선반에 월세를 내고 작은 가게들이 입점하는 식인데, 자신이 만든 브랜드 제품이나 창작품도 눈에 띈다. “‘반지하 드림’에는 2가지 뜻이 있는데 ‘반지하에서 꿈을 이뤘다’는 의미와 ‘반지하를 빌려드립니다’는 의미가 있어요. 상상마당의 인디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숍 매니저인 구진영이 말했다.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손이 많이 닿는 위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월세가 3만원에서 2천원까지 점점 싸진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 뚫려 있는 문턱을 넘으면 중고 옷과 신발 등을 팔고 있는 공간이 ‘반지하 더 드림’이다. 매니저 말에 따르면 이 작은 가게에 80명이 월세를 들어 있고, 하루에 1백 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한다. “3개월 동안 안 팔린 옷은 다시 가져가라고 공지하는데도 안 찾아가고 옷이 계속 쌓이면 파격 세일이나 공짜로 드릴 거예요. 대신 다른 물건은 판매자에게 판매 금액을 돌려줘야 하니 깎아달란 말은 말아주세요.” banjiha-dream.net K I M YO O N JU N G
최진욱, 빈티지 애호가 “돈은 모아야 하는데 멋은 또 부려야 되고.” 맞은편에 앉은 최진욱은 인류의 보편적인 고민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다. 바지·카디건·코트·스카프 할 것 없이 빈티지를 입고 나온 그는 그래서 트리프트 숍(버린 물건이나 기증받은 물건을 판매하는 중고 할인점)과 이베이를 애용한다. 캐나다에 잠시 살던 그는 그곳에서 ‘밸류 빌리지’라는 트리프트 숍이나 야드 세일(집 앞마당에 자신이 쓰던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리프트 숍에 가면 티셔츠는 거의 1달러고, 10달러가 넘는 옷이 없어요. 남이 입던 걸 다시 입는 데 거리낌이 없죠. 그리고 내가 입던 걸 남이 사면 기분이 좋고요. 그 사람이 내 안목을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통도 크고 길이도 안 맞는 옷을 수선해서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그가 빈티지를 입는 이유는 너무 많다. “기성복이 70년대나 80년대 빈티지의 색이나 느낌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새 옷을 입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비싼 돈 주고 새 옷을 샀는데 한 번만 입으면 헌 옷이 되니까 마음이 아프잖아요. 빈티지는 아무리 입어도 빈티지니까요.” 여러 사람 손을 타던 중고품이었으니 그가 한 번 더 입는다고 해서 더 닳거나 해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안 입는 옷은 리폼해서 입거나, 팔거나, 다른 사람을 줘요. 잘 버리지는 않아요. 아깝잖아요. 그래도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까 부담이 없어요.” 한국에 살고 있는 요즘은 동묘앞 벼룩시장과 광장시장을 이용하는데, 이베이(www. ebay.com)와 크랙리스트(www.craigslist.org)에서 거의 모든 중고 물품을 국내에서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걸 귀띔해준다.
trend
K I M YO O N JU N G
2011.6.24 3:17:52 PM
렐킴, 마빈, 리사이클 디자인 그룹 ‘오브젝트’ “가구나 소품에 관심이 많아 인테리어 숍에 들르면, 예쁘지만 살 수 없는 제품이 너무 많아서 눈요기만 하다 왔거든요. 그런 고민을 해소하자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어요.” 질리지 않는 디자인의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문화를 누구나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게 오브젝트를 탄생시킨 취지다. 마빈의 취지를 들은 렐킴과 케빈(인터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도 뜻을 모아 함께하게 되었다. 오브젝트의 3가지 카테고리인 오리지널, 리사이클(재활용), 바터(물물 교환) 중 가장 중점을 두는 건 리사이클이다. 누군가 쓰다 버린 의자라도, 여전히 사용이 가능하고 디자인적으로도 가치가 있다면 리사이클을 통해 아무런 가공 없이 재판매된다. 오리지널은 오브젝트의 철학에 부합하는 질리지 않는 제품을 직접 고르거나, 자체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카테고리다. 렐킴은 3가지 카테고리 중 물물 교환인 바터가 입소문을 타고 활성화됐으면 한다. ‘오브젝트’를 직접 피부로 느끼며, 자기가 쓰지 않는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고,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제품을 가져갈 수 있는 좋은 기회기 때문이다. 반지하 드림, 공중가게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오브젝트 제품은, 아직 매장이 없어서 부피가 작은 그릇 위주로 판매하고 있지만 언젠가 매장이 생기면 가구와 다양한 소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는 굳이 상표를 붙이지 않아도, 콘셉트나 형태를 보고 ‘무인양품나 유니클로일 거야’라고 인식하잖아요. 오브젝트도 그렇게 스타일만 보고도 알아챌 수 있으면 좋겠어요.” Blog.naver.com/kultech L E E S A N G H E E
고봉화, ‘공중가게’ 대표 고봉화가 위탁 판매를 시작한 건 결코 거국적인 취지에서가 아니었다. 가로수길에서 홍대로 이전하면서 배로 넓어진 사무실의 남는 공간을 매일 열리는 플리마켓으로 활용해볼까 해서 열게 된 게 공중가게다. 이곳에는 아마추어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부터, 쓰던 건데 버리긴 아까운 잡동사니와 만화책 세트까지 다양한 물건이 위탁 판매되고 있다. “입점하는 물품은 딱히 냄새가 난다거나 살아 있다거나 하지만 않으면 다 받고요, 종류의 제한도 없어요. 너무 성인물이나 공익에 위배되는 것만 아니면 돼요.” 입점된 물건만큼 판매자도 다양하다. “19세짜리 판매자가 있는데 곧 있으면 20세가 된다며 벌벌 떨고 있어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죠.” 위탁 판매로 접하는 세컨드 핸드의 매력은 각각의 물건에 쓰던 사람의 스타일과 체취가 남아, 물건마다 각자의 스토리가 있다는 거다. “세컨드 핸드는 저렴한 가격으로 사는데 각각의 스토리가 있으니까,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거 같아요. 재미있고, 누가 쓰던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제 오픈한 지 2개월이 채 안 된 공중가게에 대한 고봉화의 꿈은 소박하다. “공중가게에 가면 ‘스토리가 있는 물건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면 좋겠어요. 굳이 사진 않아도 마음이 삭막해질 때마다 들르는 그런 가게 있잖아요.”
김선구, 설혜윤, 온라인 숍 ‘아사 24.5’ 대표 김선구와 설혜윤이 운영하는 아사 24.5는 그릇과 컵, 생활용품 등을 파는 잡화 판매 온라인 숍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리사이클 카테고리가 있어 중고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파는 사람의 얼굴과 프로필을 걸고. “일본에 갔을 때 ‘패스더바튼’이라는 리사이클링 매장에 갔는데 50년 동안 건축을 한 분이 내놓은 자가 있더라고요. 그 자는 보통 자가 아닌 거죠.”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실현된 건 가수 오지은 덕분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그녀와 이야기하다가 공연할 때 협찬받은 물건이 쌓여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수가 많이 늘어 디자이너, 모델, DJ, H&M의 VMD,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쓰던 물건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필요없다고 생각해선지 가격을 너무 싸게 매겨요. 괜찮은 중고는 제값에 맞게 팔려서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이트에 팔고 있는 깔끔한 디자인의 새 그릇 때문인지 다른 곳에 걸려 있으면 눈여겨보지 않을 제품도 한 번 더 보게 된다. 그런데 접속자는 리사이클링 메뉴 쪽에 더 많다니 신제품과 중고 제품의 공생이 계속 되었으면 한다. “브랜드에서 조금 흠이 있어서 팔지 못하는 물건들도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해서 팔고 싶어요. 어차피 버리는 건데 싸게 사면 좋잖아요.” 고객의 입장에서도 대찬성이다. www.asa245.com K I M YO O N JU N G
구영준, 세컨드 핸드 판매자 중학교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던 구영준이 처음 세컨드 핸드를 접한 건 운동화였다. 리미티드 에디션의 ‘그 운동화’를 사려면 중고밖에 구할 방법이 없었고, 막상 사서 신어보니 희소성만큼이나 상태도 괜찮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세컨드 핸드 패션 연대기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입던 옷을 팔 때는, 새 옷처럼 정갈하게 비닐로 다시 포장하고, 태그도 다시 달아, 박스에 넣어 보내준다. “더 가치도 있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잖아요. 물건 하나 사면 비닐도 안 버리고 그 영수증까지 다 가지고 있거든요. 혹시 몰라서요.” 이렇게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옷을 보관하니, 그가 입던 옷들은 세컨드 핸드라도 꽤 잘 팔린다. “이거 보세요, 지금 휴대폰에도 모르는 번호가 이렇게 많잖아요. 다 물건 사려고 물어보는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주변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구도 아직까지 세컨드 핸드를 꺼리기 일쑤다. 좀 찝찝하기도 하고, 곰팡이 슬고, 냄새도 날 거 같아서란다. 그래도 그가 세컨드 핸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세컨드 핸드만의 멋스러움과 희소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탓인지, 새 옷을 선호하는 획일화된 우리나라의 패션 트렌드는 세컨드 핸드를 ‘남이 입던 중고’로만 보는 것 같아 아쉽다. “세컨드 핸드 제품이든, 새 옷이든 그걸 믹스 매치 잘하는 사람이 진짜 옷 잘 입는 사람이지 않을까요?”라며 반문하는 그에게는 별문제가 아니지만 말이다. L E E S A N G H E E
LEE SANG HEE
+ 위탁 판매 가게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나요? ‘유즈드 프로젝트’와 ‘반지하 드림’을 방문한 에디터의 1인칭 시점 동영상은 www.nylonmedia.co.kr의 나일론 TV 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옆의 QR 코드를 비추면 지금 바로 동영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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