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veller] 상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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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형예술가 장민승과 작곡가 정재일이

않을 거예요.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장민승+정재일’이란 이름의 미디어 아트

천년의 숲처럼 상림의 노래도 미래의 누

그룹으로 등장한 건 2009년이었다. 그들

군가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고전으로 남았

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신인, 옛

으면 좋겠어요.

기무사 건물에 일주일간 머물며 거기서

애플리케이션 안에 담긴 상림의 모습이

느낀 인상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보기+

궁금해요. 다섯 편의 영상+음악은 지난

듣기’를 통한 공감각적 장소 경험이라는

천년간 인간의 눈으로는 발견하지 못했

전에 없던 예술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

던 신비로운 숲의 경관과 시간을 보여줍

러다 이들 듀오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니다. 숲에 살고 있는 새, 다람쥐 등 다른

건 재작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전

생명체의 시점으로 숲을 자유롭게 유영

시 <The Moments>를 보고 나서다. 전시

하는 듯한 영상이 펼쳐지고 이와 함께 상

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외부와 차단된 전

림숲을 모티브로 한 음악이 흐르죠. 그

시실에 들어가서 천장에 매달린 헤드폰

안엔 숲에서 직접 채집한 자연의 소리와

과 만나게 된다. 헤드폰을 쓰는 순간 음악 이 흐르며 스포트라이트가 사진을 비추 는데, 파도를 찍은 사진은 조명에 따라 움

“바람이나 공기가 그렇듯 음악도 오랫동안 상림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상림 공공 예술 프로젝트 미디어 아트 그룹, 장민승+정재일이 함양에 위치한 상림을 예술로 바꾸었다. 그들은 천년숲의 온도와 바람을 영상+음악에 담아 도시로 배달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그대가 어디있든 상림을 거닐 수 있다. the traveller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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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전재호 자료 제공 장민승+정재일 www.sanglim.org

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캄캄한 밀실에 홀

다양한 악기가 유기적으로 하모니를 이 룹니다. 매일 이곳을 지나다니는 함양 사 람들조차 새로운 모습의 상림을 발견하 게 될 거예요.

로 서서 출렁대는 파도를 멍청하게 바라봤던 몇십 분은 그해 내가 본 어떤 영화보다 마

작품 안에 어떤 서사나 내러티브가 포함되어 있나요? 특별한 내러티브가 들어 있진 않

음에 깊이 남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물처럼 차올랐다.

습니다. 그저 상림에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 냄새, 공기 같은 걸 담으려고 했죠. 영상은

작년 여름, 장민승+정재일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경상

아주 낮은 시점부터 하늘에서 숲을 조망하는 새의 시점까지 다층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남도 함양의 상림上林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라운드 프로젝트’의

상림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다양한 시점의 영상처럼 음악도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한 부분을 맡은 것이다. 상림은 통일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 지방의 태수로 있을

어떤 곡은 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고, 무반주 첼로 독주곡이 나오다가, 대금과 일렉트

때 홍수를 막으려 만든 인공림으로 알려져 있다. 무려 1000년이 넘은 숲이다. 라운드

릭 기타가 즉흥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그중 ‘상림의 노래’만이 숲을 닮은 아이들이 한데

프로젝트는 예술을 통해 상림공원 내의 상림숲과 연꽃공원, 고운광장을 유기적으로 연

모여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갖고 있어요.

결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며 작년 상림에 란디&카트린의 <타워맨>과 정소영 작가의 <빛

‘상림의 노래’와 ‘상림의 편린’이란 곡을 지역 청소년 관악단과 함께 작업했다고 들었어

의 정원>이란 설치물을 심었다. 마지막으로 장민승+정재일의 작품 <상림>이 공개를 앞

요. 함양군에는 인구에 비해 비교적 많은 지역 음악 단체들이 있어요. 함께 작업한 다볕

두고 있다. 그간 그들의 작품은 음악과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외엔 별로 알려진

청소년 관악단은 전국 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우수해요. ‘상림의 노래’는 다

것이 없었다.

볕 청소년 관악단원 45명이 초가을 상림숲에서 연주한 영상+음악을 담았어요. 오래된

장민승+정재일의 네 번째 작업인 <상림>은 어디서 관람할 수 있나요? 애플리케이션

숲의 오라, 선선한 저녁 밤의 분위기가 상림숲을 닮은 아이들과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상림’을 이용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3월 5일부터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다운로드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리고 ‘상림의 편린’이란 곡은 2명, 4명씩 팀을 꾸리고 상림의 일

에서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어요. 거기엔 우리가 작년에 상림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받

곱 지점에 흩어져서 짧은 단락을 연주했어요. 숲에 흩어진 수십 종의 다양한 화성을 모

은 감동을 예술적으로 기록한 5개의 영상+음악이 담겨 있어요. 직접 함양까지 가지 않

아 하나의 곡을 형성한 거죠. 아이들이 숲에 사는 요정이 되어 각자의 소리를 내는 장면

고도 상림을 여행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죠.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을 상상한 결과입니다. 바람이나 공기가 그렇듯 음악도 오랫동안 거기에 있었던 것처

집중해서 영상과 음악을 감상한다면 그 사람이 어디 있든 그 장소가 곧 상림이요, 미술

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관이 될 것입니다.

공동 작업을 하면서 다투진 않았나요? 우리는 어려서 록 밴드를 결성하면서 유대감을

그동안 둘이 해왔던 작업은 관람객이 특정 장소를 직접 방문해서, 작가가 설정한 기간

형성해왔고 커서는 영화음악 프로듀서와 작곡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오랜 시간

동안만 공간과 음악을 감상하도록 하는 식이었어요. 보여주기의 방식을 바꾼 이유가

봐왔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죠. 게다가 상림의 작업은 워낙 즉흥적으로

있나요? 상림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기존처럼 상림

이루어졌어요. 영상 5편과 음악 5곡이 나오게 된 것도, 함양에서 다볕 청소년 관악단을

을 방문한 사람들만 지정된 장소에서 영상과 음악을 감상하도록 하는 청사진을 세웠어

만나게 된 것도 해프닝에 가깝죠. 영상과 음악 작업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자

요. 하지만 여건상 상림에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감상할 기회를 놓친다면

연스럽게 서로가 맞닿는 지점이 생겼어요.

그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공공미술은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덕분에 상림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아요. 영상+음악으로 상림의 ‘소리 풍경’

그래서 무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누구나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상림을 만날

을 접한 사람들에게 상림이라는 곳이 ‘언젠가 한번 찾아가 봐야지’ 하는 잠재적인 여행

수 있도록 했어요. 유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고음질 음원의 수익은 전액 상림의 나

지가 된다면 더 큰 의미가 생기겠네요.

무를 가꾸는 데 기부됩니다.

실제로 상림을 찾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어요? 상림을 찾은 여행객은

무형의 공공미술이라니 낯설게 느껴지네요. 작년 2월 처음 상림을 방문했을 때, 이미

애플리케이션에 내장된 GPS와 지도를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애플리케

숲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누각과 어느 공원에나 있을 법한 물레방

이션은 상림의 다섯 지점으로 여행자를 인도하고, 어느 지점에 이르면 각 지점을 위해

아, 관광객을 위해 심은 족보 없는 연꽃 등.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더 이상

작업된 영상과 음악이 자동으로 재생될 테니까요. 듣고 보고 걷고 감각에 집중하는 동

상림에 아무것도 세우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상림

안 숲의 표정과 그 안의 이야기들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질 겁니다.

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인간과 숲, 역사 등 수천 년을 이어온 관계를 방해하지 않기 위

‘장민승+정재일’의 다음 여정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우연찮게 1년에 한 작품씩 내

해서 공공미술품이 숨 쉬는 공기,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같이 존재했으면 하고 바랐

놓고 있네요. 실은 2015년 1월 19일에 ‘장승민+정재일’의 타이틀을 건 공연을 준비하고

죠. 그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상 최초로 무형의 결과물이 탄생했습니다. 공원에 설

있어요. 지금껏 해온 프로젝트를 공연 형태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

치된 스테인리스 조형물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동안에도 영상+음악의 가치는 변하지

극장에서 단 하루, 딱 1회만 공연할 생각이에요. 159

the traveller m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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