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veller] 박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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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마셰코> 박준우의 와인 클래스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1의 준우승자 박준우가 서촌에 유럽식 카페를 차렸다. 그곳에서는 대낮에 맥주 마시는 문화를 전파하며 쉬는 날 은밀하게 와인 클래스가 열린다는데….

크림소스와 파프리카 쿨리를 곁들인 닭가슴살구이, 버섯 소테 부르고뉴 오트 코트 드 뉘의 섬세한 화이트 와인에 어울리는 요리. 캐릭터가 있는 화이트 와인에는 버섯을 곁들인 닭고기 요리를 내는 프랑스 전통에서 힌트를 얻어 메뉴를 선정했다. 닭가슴살을 버터에 굽고 버섯 소테를 곁들인다. 크림소스와 화이트 와인은 궁합이 잘 맞으며 파프리카 쿨리의 청량감 또한 화이트 와인에 걸맞다. 닭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잘라 크림소스와 파프리카 쿨리에 동시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서촌에 자리를 잡은 박준우. 카페 앞의 그를 본뜬 캐릭터가 익살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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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 국민을 요리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1의 준우승자,

했다. “한 번도 요리사가 된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어요. 원래 시인이나 수필가가 되려고

박준우가 돌아왔다. 까칠함을 트레이드마크로, 셰프 강레오와 설전을 벌이던 남자 말

했는데 돈을 벌려다 보니 요리에 관련된 칼럼을 쓰게 된 것처럼요. 내 입에 들어가는 요

이다. 그가 서촌에 작은 유럽식 카페를 열었다. 이름은 오 쁘띠 베르Aux Petits Verres.

리 외에 별로 해본 것이 없어서 가족이고 친구고 측근들도 제가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프랑스어로 ‘작은 유리잔’이란 뜻이다. “유럽식 카페를 만들고 싶었어요. 차도 마시고

걸 알지 못했죠. 방송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셰프라고 부르게 된 게 솔직히 당황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한잔할 수 있고 해가 중천인데 와인 한 병 따도 괜찮은 그런 곳.

스러워요.” 그래서 메뉴판엔 조그맣게 ‘간단한 식사’라는 의뭉스러운 메뉴만 만들어놓

가볍게 들러서 디저트랑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요. 벨기에에 살다가 한

았다. 샐러드, 수프 등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요리라고만 알아두자. 오늘의 요리는

국에 와서 제일 아쉬웠던 건 와인을 잔으로 팔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냥 내가 필요한

매일 박준우의 결심에 따라 결정된다. 대신 그는 매일 주방에서 타르트를 굽는다.

거, 하고 싶었던 걸 하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친구들의 반응이 아주 신선하다. “(쇼윈

이쯤에서 그의 이력을 뒤져본다. 요리사를 꿈꾸지 않았던 사람이 어째서 화려한 경력

도를 가리키며) 니가 좋아하는 것만 가져다놨구나?” 쇼윈도에는 타르트와 벨기에산 맥

을 가진 요리사를 제치고 준우승을 하게 되었을까? “돌아보면 요리보다 와인이 먼저

주, 베이비슈가 들어 있다.

였어요. 개인적으로 술을 무척 좋아하는데 와인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맛있

쉽게 말하자면 이곳은 박준우가 벨기에에서 11년간 생활하며 체득한 취향을 노골적으

는 요리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 뒤엔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고 ‘집에서 한번

로 드러내는 장소다. 그는 스스로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저

해볼까?’ 싶어서 요리를 시작한 거죠.” 여기까진 맛집 블로거나 여타 미식가와 다를 바

는 단것과 와인을 좋아해요. 그리고 벨기에 맥주와 프랑스 와인이 최고라고 생각하죠.

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정규 과정을 차례로 밟아왔다기엔 모자라도 공인된 기관에서 정

체코 맥주와 칠레 와인은 안 마셔요. 또 평소엔 커피보다 차를 즐겨 마시고요.” 고로 오

식 요리 교육을 받은 바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프랑스 친구의 소개로 벨기에 시골의

쁘띠 베르에서는 디저트와 벨기에 맥주, 프랑스 와인, 벨기에에서 가져온 유럽식 차를

기술 중고등학교에서 와인 수업과 파티시에 수업을 청강했어요. 웨이터와 소믈리에를

맛볼 수 있다. 간판에는 아예 ‘프랑스-벨기에적인France-Belgie 카페 비스트로’라고

양성하는 반에서 와인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제과반에서는 제과와 제빵, 초콜릿 만드는

새겨놓았다.

법을 배웠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는 아이들과 함께요. 파리에서는

의외로 메뉴에는 그럴싸한 요리가 빠져 있다. 셰프란 호칭을 질색할 때부터 알아챘어야

페랑디Ferrandi라는 국립요리학교에서 6개월짜리 코스를 수강했고요.” 그리고 뛰어난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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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기뇽 소스를 응용한 삼겹살 요리 1

보르도 와인보다는 가볍지만 다른 부르고뉴 와인보다 맛이 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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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와인에 어울리는 요리. 육수, 베이컨, 허브, 레드 와인으로 부르기뇽 소스를 만들어 삼겹살을 조리했다. 거기에 렌틸 콩과 양파, 당근을 닭 육수에 삶아 함께 냈다. 부르기뇽 소스에는 보통 수란과 소고기를 곁들이는데 소스에 들어가는 베이컨에서 착안해 삼겹살을 사용한 점이 독특하다. 와인의 시큼한 맛이 삼겹살에 잘 배어 있다.

1 오 쁘띠 베르의 대표 메뉴인 레몬 타르트.

요리사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하듯 박준우의 어머니도 한식, 양식, 중식, 일식을 아우

큼은 향과 맛, 식감을 고려한 박준우 표 마리아주를 마음껏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

르는 요리 솜씨를 자랑한다. 심지어 여자들의 요리 솜씨와 남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이

에 왜 이 와인에 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셰프의 설명도 곁들여진다.

대물림되고 있는 집안이란다. 그러니 요리를 못한다고 빼는 건 겸손이고 다른 일에 더

와인 클래스에 대비한 요리를 미리 좀 보여달라고 졸랐다. 오늘의 와인은 부르고뉴에서

욱 흥미를 느끼는 거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생산된 레드 와인과 부르고뉴 오트 코트 드 뉘 지방의 화이트 와인이다. 그는 레드 와인

일단 공간이 생겼으니 박준우와 친구들은 재미있는 일을 벌일 참이다. 앞서 얘기 못했

에 어울리는 ‘부르기뇽 소스를 응용한 삼겹살 요리’를, 화이트 와인에 맞춰서는 ‘크림소

지만 오 쁘띠 베르는 회계사와 와인 컨설턴트와 박준우, 세 친구가 함께 꾸리는 공간이

스와 파프리카 쿨리를 곁들인 닭가슴살구이, 버섯 소테’를 준비했다. <마스터셰프 코리

다. 그들은 6월부터 와인 클래스를 시작한다. 카페가 쉬는 월요일 저녁 시간에 카페에

아>에서 발휘했던 독창성이 여전히 접시에서 빛나고 있다. 보통 붉은 살코기인 소고기

모여 이론 1시간, 실습 1시간씩 와인을 공부하는 클래스를 열 예정. 첫 주에는 와인에 대

는 레드 와인과, 흰 살코기인 돼지고기는 화이트 와인과 함께 마시는 게 정석. 그런데 삼

한 포괄적인 얘기로 시작해 매주 품종별, 지역별로 주제를 바꿔가며 진행한다. 최대 정

겹살을 과감하게 부르기뇽 소스에 조리해 내온다. 그뿐인가. 닭가슴살구이에선 닭 한 마

원은 8명. 4주 단위로 팀이 바뀌는 식이다. 여기까진 공식적인 입장이고 그는 금세 와

리를 사서 가장 맛있는 부분을 직접 도려내는 정성을 쏟았다. 요리가 와인을 부르고 와

인을 마음껏 마시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는다. “서울에서 와인을 마시려니 제약이 많

인이 요리를 불러 바쁘게 손을 놀려야 했다. 동시에 그의 요리를 수시로 맛볼 수 없다는

아요. 유럽에서는 슈퍼마켓에 널려 있던 와인이 여기선 구하기도 힘들고 와인 바에 가

생각에 침울해졌다.

면 보통 10만원 이상은 깨지죠.” 옆에서 와인 컨설턴트 이인경도 거든다. 그녀는 프랑

그의 요리를 맛보는 기쁨은 아니지만 햇빛 비치는 날 오 쁘띠 베르의 테라스에 앉아 맥

스에서 와인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재원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와인 마시

주 한잔 홀짝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테라스에는 화분이 작은 숲을 이루고 건너편으

는 모임을 갖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이론은 와인을 잘 마시기 위한 준비 단계고요. 비슷

로 천재 시인 이상의 집 제비다방이 자리하고 있다. 카페의 주인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한 와인을 여러 가지 놓고 테이스팅하면 와인에 대한 이해가 더욱 빠를 거예요.” 그러

건 디저트와 와인의 조화다. 레몬 타르트에는 화이트 와인, 딸기 타르트에는 로제 와인

니 초보자도 환영이다. 비록 사사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할지라도 구미가 당기는 조

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단 것과 쌉살한 것에 취해 잠시 벨기에 어느 뒷

건이 아닌가. 매주 와인 컨설턴트가 고른 와인에 박준우의 요리가 준비된다. 이 시간만

골목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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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전재호 촬영 협조 오 쁘띠 베르 070-8231-2199

2 소박한 실내의 모습.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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