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veller] 레이먼 킴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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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레이먼 킴의 육식 특강 채식을 권장하는 시대에 태어난 건 다이어트를 의무시하는 풍조만큼이나 괴롭다. ‘고기는 고기 맛이 나야 하고 채소는 채소 맛이 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셰프, 레이먼 킴이 고기 요리 3종 세트로 우리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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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찹 몬트리올 시즈닝을 첨가한 미국식 돼지고기 요리. 통밀가루에

“샐러드는 드레싱으로 먹는 사람의 혀를 속일 수 있지만 고기는 그럴 수가 없어요. 요리사의 기본기는 고기 굽기에서 여실히 드러나죠. 직화든 팬 프라이든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요. 때로는 너무 뒤집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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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힌 돼지고기 등심을 팬에 구운 다음, 사과로 만든 소스를 올린다. 통밀가루를 묻혀 구우면 조리 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는 걸 막을 수 있다. 원래 갈비뼈에 붙은 고기 자체에 수분과 기름이 많기 때문에 촉촉함이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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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그릴드 치킨 데킬라와 맥주를 뿌려 껍질째 재운 닭고기를 18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케이준 시즈닝을 써서 구웠다. 이 요리의 특징은 1퍼센트 모자란 상태로 주방을 떠난다는 것. 손님 테이블에서 요리 위에 바카디를 뿌리고 불을 붙여야 비로소 요리가 완성된다. 그릴에 구워 담백한 살코기와 케이준 시즈닝의 매콤한 맛이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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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을 알리는 책이 널리 읽힌다. 육식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간이 온갖 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데 공감 디너 포 투Dinner for two 뼈가 붙어 있는 꽃등심을 팬에 구운 스테이크는 요리사의 내공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고기 맛으로도 충분하지만 직접 만든 토마토잼, 머스터드, 치미추리 소스(파슬리로 만든 소스)가 더욱 구미를 당긴다. 세트를 주문하면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가 한꺼번에 서빙된다.

하지만 평생 고기를 잊고 살아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채식이 인류의 구원일진 몰라도 나의 구원이 아닌 건 틀 림없다. 나는 차선책으로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나의 고기 인생 전반기와 안녕을 고하겠노라고. 이제는 적은 양의 고기 를 맛있게 조리해서 먹는 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때다. 제대로 된 고기를 먹고 싶어서 신사동에 있는 캐주얼 다이닝 ‘시리얼 고메’로 레이먼 킴을 찾아갔다. 그는 올리브TV의 요리 프로그램인 <샘과 레이먼의 올리브 쿠킹타임 듀엣>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셰프다. 그가 헤드 셰프로 있는 시리얼 고메는 브런치로 먼저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샌드위치나 오믈렛만 깨작이다 나올 걱정은 없는 곳이다. 수제로 만든 루이지애나식 소시지와 미니 스테이크를 팬케이크와 동등한 위치로 배치한 세트 메뉴에선 고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만나자마자 시작된 ‘레이먼의 고기 강의 제1장’은 고기와 요리사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파스타나 샐러드는 양념, 드레싱으로 먹는 사람의 혀를 속일 수 있지만 고기는 그럴 수가 없어요. 요리사의 기본기는 고기 굽기에 서 여실히 드러나죠. 직화든 팬 프라이든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느 나라에서든 고작 1~2년 정도 요리 하고서 고기 굽는 그릴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최소 4~5년은 필요하죠. 고기 굽기는 오랜 경험으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에요. 때로는 너무 뒤집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고기 본연의 육즙, 수분, 향 의 손실이 적을수록 ‘제대로 요리된 고기’에 가깝다. 그에게도 물론 갓 요리를 시작했을 때가 있었고, 고기 안이 적당히 익었는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칼집을 내가며 살펴보던 기억이 있다. ‘그만 불에서 내려놓아야 할 타이밍’이란 주 방에서 수도 없이 고기를 뒤집으면서 익혀지는 것이다. 그는 20대 중반에 ‘셰프’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일곱 살 때 이미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부터다. 중학교 때 캐나다로 홀로 이민 가서 매일 스스로의 식사를 챙겨 먹어야 했던 상황 도 한몫했으리라. 항공 학교로 진학한 후 직업 요리사가 될 결심을 굳힌 그는 오전에는 항공 학교, 오후에는 요리 학교,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렇게 요리를 시작한 지 벌써 18년이 지났다. 고기를 구울 수 있 는 자격을 얻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뼈에 붙어 있는 고기가 훨씬 맛있어요.” 돼지고기 등심 폭찹과 소고기 꽃등심으로 만든 스테이크(두 요리 모두 뼈가 붙 어 있는 부위를 사용했다)를 내오는 레이먼의 발걸음은 들떠 있었다. 그러더니 곧장 ‘레이먼의 고기 강의 제2장’, 고기의 부위엔 귀천이 없다는 내용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살코기만 있는 부위보다 뼈에 붙어 있는 살코기가 수분과 기름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외국에서는 잔 갈비뼈에 붙어 있는 고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어려 워요. 따로 주문해서 구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는 삼겹살, 소고기는 등심, 안심 하는 식으로 특정 부위 만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소 한마리를 잡아 안심과 등심을 먹어치우고 남는 부위는 그야말로 광활하다. “소고기 볼 살 먹어봤어요? 근육을 계속 움직이는 부위라서 진짜 부드러워요.” 오랜 외국 생활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고대 요 리책Ancient Cooking Book>이 레이언에게 이런 유연한 사고를 심어주었다. 미개척된 돼지고기의 부위도 많다. 오죽하 면 “삼겹살 말고 목살도 먹어보라”고 권하는 TV 광고가 있겠는가. 반면 유럽에서는 돼지고기가 없으면 요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돼지고기 요리가 발달해서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다. 고기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고기가 그렇듯 돼지고기도 미디엄으 로 익혀서 먹으면 훨씬 부드럽고 맛있다. 돼지고기를 덜 익혀서 먹었을 때 발생한다는 낭미충증에 걸릴 확률은 몹시 희 박하다. 이것이 ‘레이먼의 고기 강의 제3장’, 육류의 조리 방법이다. “닭고기는 다 익혀서 먹어요. 덜 익은 닭고기는 맛이 없거든요. 닭고기를 가장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털을 뽑지 않은 채로 진흙을 발라서 굽거나 튀김옷을 꼼꼼히 입혀서 튀기는 거예요. 그러면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어느 부위든 퍽퍽하지 않죠.”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고기 본연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레이먼은 훈제로 익히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고기 향이 훈 제 향에 완전히 덮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특히 선호하는 고기 요리법은 무엇일까? “푹 삶아서 국물까지 다 먹는 요리를 좋아해요.” 언뜻 들어서는 떠오르는 요리가 없다고 반문했더니 그는 놀라서 대답한다. “백숙은요? 이탈리 아 소정강이찜인 오소부코Osso Buco나 닭을 와인에 조려 만드는 프랑스 요리 꼬꼬뱅Coq au Vin도 있고요. 삶으면 살 코기뿐 아니라 물렁뼈가 씹히는 맛까지 즐길 수 있죠.” 그는 세 번째 요리인 ‘멕시칸 그릴드 치킨’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독주 바카디를 뿌려 불을 붙였다. 이로써 레이먼의 고기 요리 3선 ‘폭찹’, ‘스테이크’, ‘멕시칸 그릴드 치킨’이 한곳에 모였다. 모아놓고 보니 지도가 그려졌다. 몬트리올 시즈닝을 첨가해서 만든 폭찹, US 프라임 등급 꽃등심으로 만든 스테이크, 데킬라와 맥주에 재워서 18가지 케이준 시즈닝을 첨가 한 멕시칸 그릴드 치킨은 차례로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 북미 대륙의 나라와 연관성이 있다. 캐나다에서 공부한 레이 먼이 북미에 헌정하는 요리를 앞에 두고 있자니 육식의 종말 따윈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레이먼은 고기 요리만 하는 셰프가 아니다. ‘고기는 고기 맛이 나야 하고 채소는 채소 맛이 나 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할 뿐. 그는 제철에 나는 가장 맛있는 재료를 가져다가 본연의 맛을 살려 요리하는 게 즐 거운 사람이다. 시리얼 고메가 계절에 따라 메뉴를 바꿔온 것도 그 때문이다. 시리얼 고메에는 활기차게 주방을 진두지 휘하는 레이먼 킴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방문했을 때 내놓는 음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정성스럽게 키운 소를 잡아서 소스에 범벅되지 않은 채 잘 구운 스테이크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의 죄를 사하소서. 나의 고기 인생 후반기에는 ‘제대로 구운 고기’만 먹겠나이다. 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방문수 촬영 협조 시리얼 고메 02-542-0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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