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veller]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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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street 패전 후 귀향한 다자이 오사무가 머물렀던 방. 그를 찾아오는 문학도들로 붐볐던 곳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을 찾아가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쓰가루 고쇼가와라역에서 달려라 메로스 호를 타고 출발하는 것.

아오모리 현에서 만난 <인간 실격>의 나날들 아오모리는 혼슈의 가장 북쪽에 있는 현으로, 겨우내 쌓인 눈이 4월 초까

기의 시간은 다자이가 살았던 20세기에 멈춰 있었다. 다자이의 책을 옆구

지 남아 북국의 설경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곳엔 세계 최대의 너도밤나무

리에 끼고 마을 산보에 나섰다. 그가 태어난 사요칸에서 가나기역으로 가

원생림, 세계 최장의 벚꽃 길, 일본 전체 수확량의 50퍼센트를 차지하는

는 고갯길이 <달려라 메로스>에 나오는 ‘메로스 고갯길’이라고 하기에 발

아오모리 사과와 특산품인 달큰한 가리비가 있다. 사람들은 속세와 떨어

걸음은 절로 느려졌다. 평일인데도 소설가의 흔적을 찾아 동네를 기웃거

져 자연에 숨어들거나 만개한 벚꽃에 파묻히기 위해서, 혹은 다자이 오사

리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작은 산골 마을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꽤

무의 흔적을 찾아 북쪽으로 향한다.

이름난 여행지인 까닭도 지역 출신의 걸출한 작가 덕분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패전 후 데카당스 문학의 선봉에 서서 방황하는 청춘의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시노 공원에서 다자이의 얼

심정을 대변했던 소설가다. 우리나라에는 <인간 실격>으로 잘 알려져 있

굴(다자이 오사무의 동상이 있다)을 잠시 마주 본 다음, 히로사키 시로 걸

는데-일본에서도 1948년 발간된 뒤 지금까지 600만 부 이상 팔려 나쓰

음을 옮겼다. 히로사키는 다자이 오사무가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머물

메 소세키의 <마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소설이다-이 책에는 전

렀던 도시다. 그리고 소설가가 화류계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다자이 오사

후 일본 사회의 일그러진 영웅인 요조가 등장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무의 부화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도시이기 이전에 벚꽃으로 유명한

배고픔과 가난을 모르고 자란 유년 시절의 요조, 술, 여자, 좌익사상과 얽

곳이다. 벚꽃 조경으로 치면 일본에서 따라올 곳이 없는 히로사키 성에는

혀 자살을 시도하고 집에서 의절당하는 요조, 인간을 부정하고 약물 중독

매년 2600그루의 벚꽃나무가 만개한다. 벚꽃놀이 인파를 뒤로하고 다자

에 시달리는 요조. 이 소설은 사소설私小說(자신의 사생활을 고백의 형태

이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그가 졸업한 히로사키 고등학교(지금은 히로사

로 폭로하는 소설)의 대표 작품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작가의 이름으로 바

키 대학교)와 3년간 머물면서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하숙집, 고등학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서

꿔 써도 무방하다.

교 때 드나들던 카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으로 숨어든 옛 카페에서 다

디젤 열차를 타고 쓰가루 고쇼가와라역에서 가나기역으로 이동했다. 어

자이의 이름을 딴 커피를 마시면서 그자가 자신의 고향 쓰가루 반도를 여

<인간 실격>을 옆구리에 끼고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을 거닐었다. 그곳에서 필명을 쓰기 전 어린 쓰시마 슈지와 소설가가 된 다자이 오사무를 번갈아가며 만났다. t h e t r av e l l e r j u n 2 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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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요조와 만날 약속이라도 잡은 것처럼 가슴이 울렁댔다. 27년간의 수기

행하면서 쓴 <쓰가루>의 앞부분을 되짚어보았다.

를 읽고 나서 일생을 옆에서 보아온 누이의 마음이 되었다. 가나기는 노송

“나는 어떤 잡지사로부터 ‘고향에 부치는 말’을 부탁받아 그 대답으로, 너를

나무와 편백나무 재배로 번성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1만 2000명 정도가

사랑하며 너를 미워한다. 꽤 히로사키의 험담을 했는데, 이것은 히로사키에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와 별채, 어린 시절

대한 증오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반성이다. (중략)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쓰

뛰놀던 절, 귀향한 후 자주 술을 마셨던 주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나

가루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 피난의 집 원래 이 건물은 사요칸 내에 다자이의 형 내외를 위해 지은 별채였다. 38세의 다자이 오사무가 미타카 다마 강에 투신한 뒤 지주 제도의 붕괴와 형의 국회의원 출마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사요칸을 팔고 별채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가족들이 살았다. 다자이는 아직 별채가 사요칸에 있던 당시, 전쟁에서 패하여 황폐해진 도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다. 그는 1945년에서 1946년까지 1년 4개월을 지내면서 <고향>, <판도라의 상자>, <친우 교환>, <겨울의 불꽃> 등 23개의 작품을 집필했다. 그 당시 많은 문학도들이 다자이를 찾아와 친분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글을 쓰던 자리에 작은 앉은뱅이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다다미에 앉아 집주인에게 옛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의 풍경이 그려졌다. 이곳은 쓰시마가가 집을 처분한 뒤 집주인이 두 번 바뀌면서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다가, 2006년 가을부터 ‘다자이 오사무 피난의 집’으로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open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45분 LOCATION 317-9 Asahiyama, Kanagi-machi, Goshogawara-shi TEL +81-173-52-3063

달려라 메로스 호 1928년에 개통된 쓰가루철도는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사철이다. 쓰가루 고쇼가와라역을 시작으로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난 가나기를 경유해 쓰가루 나카사토까지 쓰가루 반도 20.7킬로미터를 종단한다. 열차의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소설 <달려라 메로스>에서 따온 것. 오렌지색 열차의 앞머리에 커다랗게 이름이 쓰여 있다. 이 열차에는 1950년대의 추억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그 당시 사용했던 디젤 열차가 하루 세 번 운행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일반 열차가 오간다. 개찰구에서 쓰가루철도사의 직원이 두꺼운 종이 티켓에

가나기역

펀치로 구멍을 내면서 검표하는 모습도 예전 그대로. 봄에는 벚꽃 열차, 여름에는 마츠리 열차, 가을에는 방울벌레 열차, 겨울에는 스토브 열차를

구식 디젤 열차를 타고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다자이의 흔적을 품은 가나기는 20세기에 시계를 멈추고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운행하는데, 그중에서도 열차 안 스토브에서 불을 쬘 수 있는 스토브 열차가 가장 인기다. 겨울철 차장 너머로 눈보라 치는 경치를 바라보며 카트에서 파는 오징어를 구워 먹는 동안 열차 안에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LOCATION 7-5 Omachi Goshogawara-shi, Aomori TEL +81-173-35-7743 WEB tsutetsu.web.infoseek.co.jp

“기차 안의 승객들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본래 쓰가루 사람이었던 것이다. 가와베 역에서 고노선으로 갈아타고 10시경에 고쇼가와라역에 도착했 을 때는 못 알아듣는 말이 없을 정도로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

사요칸

다. 그렇지만 내가 순수한 쓰가루 사투리로 말할 수 있을지 여부

붉은 지붕을 가진 사요칸은 과거 대지주였던 쓰시마가의 위세를 보여준다. 다자이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07년, 아버지 쓰시마 겐에몬이 지은 대저택은

는 알 수 없었다.” - <귀향> 중에서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쌀 창고까지 이 지역의 노송나무로 만들

다자이 라면

정도로 공을 들였다. 다자이는 사요칸이 지어지고 태어난 첫 아이였다.

사요칸 바로 맞은편, 가나기 관광물산관에 들러 ‘다자이

메이지유신 이후 토지와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불린 다자이의 할아버지, 신흥

라면’을 먹었다. 다자이의 아내이자 작가인 쓰시마 미치코가

상인지주로 국회의원을 지낸 부친 덕분에 그는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그 시절

쓴 회고록에는 그가 죽순과 다시마를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사요칸의 부엌에서는 식구 15명과 인부 15명의 식사를 위해 매끼 30인분의

있다. 다자이 라면은 말린 생선으로 낸 국물에 가는 면발의

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요칸 때문에 그는 혜택받은 자로서 못 가진 자에

라면을 담고 그릇을 꽉 채울 정도의 미역, 그리고 죽순을

대한 죄의식을 평생 짊어졌고 그러한 부채의식은 그의 삶과 문학을 좌우했다.

올려 만든다. 쓰가루에서 생산되는 죽순은 아스파라거스

다자이는 중학교를 아오모리로 진학하기 전까지 이곳에 살았다. 그는 11명의

정도의 크기와 두께에 뿌리가 휘어진 모양으로, 초봄에

형제자매 중 10번째 아이이자 6번째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방을 가질

입맛을 깨우는 식재료다. 돈코츠 라멘처럼 진한 돼지고기

수 없었으며,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는 1년의 반 이상을 도쿄에서 생활했고

국물이 아닌 생선 국물을 사용해 산뜻하고 담백한 맛이

엄마는 몸이 약해 이모와 유모의 손에 자랐다. 형과 의절해 집에 돌아오지

특징이다. 라면에 ‘다시마 주먹밥’도 곁들였다. 다시마

못하다가 10년 만에 가족과 조우한 장소 또한 이곳이다.

주먹밥은 봄에 수확한 얇고 부드러운 야카 야若生 다시마를

open 오전 8시 30분~오후 6시(5~10월), 오전 9시~오후 5시(11~4월) LOCATION 412-1 Asahiyama, Kanagi-machi, Goshogawara-shi

사용해 만드는데 다시마로 주먹밥을 만드는 것은 쓰가루만의

TEL +81-173-53-2020

먹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했던 반찬을

독특한 방식이다. 다자이는 다시마 주먹밥을 야식으로 즐겨 기본으로 하여 만든 다자이 도시락도 준비되어 있다.

“나와 남동생이 쌀가마니가 빽빽이 쌓여 있는 넓은 곳간에 들어

OPEN 오전 9시~오후 6시 PRICE 다자이 라면 7백30엔, 다시마 주먹밥 2개 3백50엔

가 재미있게 놀고 있자니, 아버지가 입구에 가로막고 서서 이 녀 석, 나와, 나와 하고 야단쳤다. 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아버지의

LOCATION 가나기 관광물산관 195-2 Asahiyama, Kanagi-machi, Goshogawara-shi

커다란 모습이 새까맣게 보였다.” - <추억> 중에서

TEL +81-173-54-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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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노공원역에 정차하면 기차역 대신 카페 에키샤가 여행객을 맞이한다.

아시노공원역 아시노 공원의 벚꽃 길을 통과해 다자이 오사무에게 간다. 이상한 미남의 얼굴을 보고 나오는 길에 공원 입구에 있는 카페에 들러 그의 소설 몇 권을 뒤적였다.

아시노 공원 사요칸에서 아시노 공원까지는 차로 10분, 걸어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그는 어린 시절 아시노 공원에서 자주 놀았다고 한다. 그가 다녔던 가나기 초등학교도 공원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호수를 품고 있는 80헥타르의 거대한 공원이 봄이 되어 벚꽃으로 뒤덮이는 관경을 다자이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독특한 점은 일본 내에서도 드물게 공원 안으로 철도가 지난다는 것. 쓰가루 고쇼가와라역에서 출발한 쓰가루철도의 기차가 벚꽃 터널과 호수 옆 절경을 지난다. 가나기역에서 한 정거장 더 북쪽으로 달리면 아시노공원역에 도착한다. 다자이 오사무와 마주하기 위해 아시노 공원에 들렀다. 이곳엔 다자이 오사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다자이 오사무 동상이 있다. 그의 얼굴은 그가 35세이던 1944년 도쿄의 미타카시 자택 부근을 산책하고 있는 사진에서 본떴다. 그는 생가인 사요칸 쪽을 바라보며, 웃지도 무표정도 아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듯 입꼬리를 약간 일그러뜨린 표정으로 망토를 여미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 동상 근처에는 다자이 오사무 문학비도 세워져 있다. 그곳에 쓰인 구절은 “선택된 황홀감과 불안감 2가지가 내겐 공존한다”. 그의 단편 소설 <잎>에 삽입된 베를렌의 시 한 구절이다. 매년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난 날인-미타카 다마 강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한 날이기도 한- 6월 19일에는 문학비 앞에서 탄생제가 개최된다. LOCATION Ashino Park, Kanagi-machi, Goshogawara-shi

“겉멋이 잔뜩 들었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경박하다고 하기도 그렇 다. 교태를 부리고 있다고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중략) 나는 지금까지 이렇 게 이상한 미남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 <인간 실격> 중에서

에키샤 아시노 공원 입구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건물은 아시노공원역 구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카페 에키샤다. 열차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아시노공원역이 무인역으로 바뀌었는데 비영리단체에서 구역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카페 내부에는 매표소 창구와 역장의 사무실 간판을 그대로 간직한 채 커피 향기를 풍긴다. 이곳에선 다자이가 드나들었다고 알려진 히로사키의 카페 만찬에서 블렌딩한 원두를 가져다 커피를 내린다. 다자이가 살았던 쇼와 시대의 스타일로 만든 쇼와의 커피를 시켜놓고 그의 소설을 뒤적이는 여유를 즐기기에 완벽한 곳이다. 카페 직원 맞은편에 앉아 다자이 오사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다자이가 소설 <쓰가루>의 집필을 위해서 쓰가루반도 여행길에 올랐는데, 보모 다케를 만나러 나카사토로 가던 쓰가루철도에서 아시노공원역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한쪽 벽에는 기차표가 붙어 있고, 카페에서 열차표를 구입할 수 있다. OPEN 오전 10시 30분~오후 4시 30분 price 쇼와의 커피 5백엔 LOCATION 84-171 Ashino, Kanagi-machi, Goshogawara-shi TEL +81-173-52-3398 WEB pr.amiz.jp/c/133

“이윽고 가나기를 지나 아시노 공원이라는 건널목 초소 정도의 작은 역에 도착했다. (중략) 창에서 머리를 내밀어 그 작은 역을 보니, 지금 막 구루메가스리를 입은 젊은 아가씨가 큰 보자기 2개를 양손에 들고 차표를 입에 문 채 개찰구로 달려와서….” - <쓰가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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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사키 히로사키는 다자이 오사무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는 이 도시에서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했고 커피 향과 여자, 술과 좌익 사상에 취해 <인간 실격>의 탄생을 예고했다.

다자이 오사무 배움의 집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가나기의 사요칸에서 지낸 다자이는 아오모리 시에 있는 중학교를 다닌 후 히로사키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는 3년 동안 히로사키 성 앞마을에서 하숙을 했다. 그래서 이곳을 ‘다자이 오사무 배움의 집’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그가 실제로 사용한 책상이나 다다미, 문살의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그의 방 한가운데 전시된 다자이 오사무의 익살스러운 사진이다. 이 사진은 당시 다자이 옆방에 살았던 주인집의 장남이 찍은 것이다. 사진에 찍힌 익살스러운 표정과 달리 그 시절 그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보낸 고등학생 시절은 쓰시마 슈지가 화류계에 흘러들어 다자이 오사무를 잉태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다자이는 기다유(일본 전통 예능의 하나로 샤미센 반주에 맞추어 옛날이야기를 읊어나가는 것)에 빠져 있었으므로 그의 방 어딘가에는 샤미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동시에 그는 일본 열도에 번지던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었으며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느끼고 그의 2층 방에서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쳤다. OPEN 오전 10시~오후 4시 LOCATION 9-1 Miyuki-cho, Hirosaki-shi TEL +81-172-82-1642

“히로사키 고등학교 문과에 3년간 다녔는데, 그 무렵 기다유에 빠져 있었 다. (중략) 어째서 그런 분수에 맞지 않는 이상한 짓을 시작했을까? 그 책임 이 전적으로 히로사키 시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일부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기다유가 성행했다.” - <쓰가루> 중에서

만찬 히로사키는 숨은 커피의 고장이다. 히로사키의 커피 역사는 무려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855년 히로사키 번사(藩士, 영주의 심부름꾼)가 추위와 비타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약으로 배급했던 것이 바로 ‘번사의 커피’. 일본에서 서민이 마신 최초의 커피다. 히로사키에서 3대째 대를 이어 커피를 내리고 있는 만찬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을 딴 커피가 있다. 1929년 개업한 이 카페에는 고등학생이던 다자이 오사무가 드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화가 아베 고우센과 소설가 요지로 이시자카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 ‘다자이 커피’는 그가 드나들던 시절의 레시피를 재현한 것이며 직접 블렌딩한 원두를 사용해 융 드립으로 내린다. 만찬의 대표 커피인 ‘다자이 커피’와 ‘히로사키’는 가루 상태로 진공 포장해 판매하는데, 주인은 집에서 종이 드립을 사용할 때 거름종이를 2장 사용하길 추천한다. 그러면 종이 드립의 거친 감을 줄여 집에서도 다자이가 즐기던 커피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다자이 커피 외에 그의 흔적을 찾긴 어렵지만 3대를 이어온 커피 맛 때문에라도 좁은 골목길을 헤맬 이유는 충분하다. OPEN 오전 11시~오후 6시 PRICE 다자이 커피 5백엔, 히로사키 커피 5백엔 LOCATION 36-6 dotemachi, Hirosaki-shi TEL +81-172-35-4663 WEB www7.ocn.ne.jp/~manchan

쇼와 시대의 커피 향으로 가득 한 카페 만찬. t h e t r av e l l e r j u n 2 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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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이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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