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veller] 핀란드 디자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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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핀란드 디자인 여행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아르텍의 조명 by 에이후스 핀란드 음악에 장 시벨리우스가 있다면, 디자인에는 알바 알토가 있다. 그는 핀란드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사랑받는

헬싱키에서 가구 예술을 공부한 디자이너 이방전을 앞세워 서울 곳곳을 누볐다. 서울에 숨어 있는 핀란드 디자인을 찾아서.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다. 건축뿐 아니라 유리공예, 가구, 조 명 등의 디자인으로도 주목받았으며, 알바 알토가 아내, 친 구들과 설립한 가구 브랜드 아르텍은 아직도 그가 디자인 한 의자와 조명을 생산하고 있다. 자유로운 곡면 형태를 즐 겼던 그의 디자인은 핀란드의 자연을 연상시킨다.

여행의 시작은 우연히 본 알토 베이스Aalto Vase에서부 터였다. 입구가 호수 모양으로 생긴 유려한 디자인이 시 선을 사로잡았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핀란드에 살다 온 친구는 알토 베이스가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 Alvar Aalto의 작품이라고 알려주면서, 그가 어떤 심정으 로 이 ‘국민 꽃병’을 디자인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들려 주었다. “핀란드가 핀란드어로는 수오미Suomi인데, 그게 ‘호수의 나라’라는 뜻이야. 핀란드에는 엄청나게 많은-약 19만 개-호수가 있거든. 알바 알토가 호수의 물결 모양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알토 베이스를 디자인했대.” 그녀는 알토 베이스가 핀란드 가정마다 하나씩 있으며, 그대로 장식품으로 쓰기도 하고 겨울에는 작은 전구를 넣어놓기 도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듣고 보니, 거기엔 이제껏 스 칸디나비안 디자인으로 소개되었던 제품과는 확실히 다 른, 더 정제되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었다. 호기심을 연 료로 서울에서 핀란드 디자인을 찾는 여행이 시작됐다. 우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와 그곳의 디자인에 대해 서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줄 가이드가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디자이너 이방전과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핀란드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교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고 알 바 알토가 설립한 브랜드 아르텍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력 이 있었다. 이 여행의 가이드로 적임자였다. “핀란드는 국 토의 75퍼센트가 산림이에요. 그래서 자작나무로 만든 가 구가 많아요. 핀란드인들은 인공 처리 없이 나뭇결 그대

섹토 디자인의 조명 by 이노메싸 핀란드의 북부 지방은 북극권에 속해 있어 최북단에서는 겨울에 51일 동안이나 해가 뜨지

로 만든 가구를 선호해요. 자연스럽고 군더더기 없고 과

않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 조명이 발달한 건 당연한 이치다. 섹토 디자인Secto Design의 조명은 건축가 세포 코호Seppo

하게 꾸며지지 않은 제품을 좋아하죠.”

Koho가 디자인한 것으로. 가장 핀란드다운 디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핸드메이드로 자작나무를 구부려 만든 프레임,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디자인, 나무 그 자체의 자연색이 특징. 특히 ‘조명은 사람을 주위로 불러 모으는 유도체’라는 철학을 담

지금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친환경 디자인, 자연적인 디

아 단순한 발광 물질이 아니라 ‘빛이 아우르는 공간’을 디자인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자인은 이미 60~70년 전 알바 알토의 손을 거친 의자와 건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칸디나비아는 겨울이 길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기 때문에 인테리어가 발달했다. 덴마크 디자인에서 장인의 손맛이 느껴지고, 스웨덴 디자 인이 화려한 패턴과 색감을 선호한다면, 핀란드 제품은 형태가 단순하면서도 기능을 중시하고 산업과 친밀하다. 핀란드에서는 디자이너의 작품이 ‘보기 좋은 남의 떡’이 아니라 당장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섬유는 마 리메꼬, 유리 제품은 이딸라, 가구는 아르텍, 휴대전화는

서울에서 핀란드 디자인 여행 가이드가 되어준 디자이너 이방전. 옆에 놓인 조명은 핀란드 건축가 유하 레이비스케Juha Leiviskä가 디자인한 아르텍 제품이다.

노키아 등 굵직한 회사의 제품들이 ‘메이드 인 핀란드’ 상 표를 달고 온 세계를 누빈다. 이방전의 손에 이끌려 그들 의 실체를 목격했다. 서울 틈틈이 핀란드의 자연과 기능 주의를 품은 핀란드 디자인이 숨 쉬고 있었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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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는 디자이너의 작품이 ‘보기 좋은 남의 떡’이 아니라 당장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섬유는 마리메꼬, 유리 제품은 이딸라, 가구는 아르텍, 휴대전화는 노키아 등 굵직한 회사의 제품들이 ‘메이드 인 핀란드’ 상표를 달고 온 세계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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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비의 카드 by 루밍 동물 모양으로 생긴 이 테이블 장식의 본래 기능은 우편엽서다. 얇은 핀란드산 자작나무 합판으로

아라비아 핀란드의 빈티지 컵 & 소서 by 데미타스 부암동 카페 데미타스의 주인 김연화는 아라비아 핀란드의 빈티지

만들어진 엽서의 오른쪽에는 짧은 메모를 남길 수 있는 칸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동물 모양 오브제를 조립할 수 있는

제품 컬렉터다. 아라비아 핀란드는 이딸라와 함께 핀란드를 대표하는 테이블웨어 브랜드. 그녀는 출장차 들렀던 헬싱

재료가 담겨 있다. 별도의 도구 없이 손으로 자작나무 조각을 엽서에서 떼어내 조립하면 3D 입체 카드로 변신한다. 핀

키, 코펜하겐, 독일의 벼룩시장에서 빈티지 찻잔과 그릇을 사 모았고, 그녀의 카페에서는 실제로 그 그릇을 사용해 손님

란드의 신진 디자이너 앤 파소Anne Paso는 엽서를 받은 사람이 엽서를 서랍 깊숙이 넣어버리면 영영 보지 못하게 되

에게 서빙한다. “이 그릇들은 애초에 쌓아서 보관할 수 있고 식기세척기에도 씻을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

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이 기발한 엽서를 만들었다. 앤 파소가 만든 브랜드 러비lovi에서는 동물 모양의 엽서와, 자작

에 관리하기가 어렵지 않아요.” 그녀는 또, 핀란드는 자연이 발달하다 보니 나뭇잎, 꽃잎, 열매 등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

나무를 같은 방법으로 조립해서 만드는 트리를 선보이고 있다.

온 디자인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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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핀란드의 빈티지 티포트 & 그릇 by 데미타스 유리 공방에서 테이블웨어 회사로 변신한 이딸라에 비해, 아라 비아 핀란드는 애초부터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출발했다 (지금은 이딸라 그룹에 인수되었다). 1873년에 설립된 회사 이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디자이너 카이 프랑크 Kaj Franck를 빼놓고 아라비아 핀란드를 설명할 수 없는 데, 1950년대에 그가 디자인한 단순하고 실용적인 테이블 웨어는 현대적인 핀란드 디자인의 기준이 되었다. 그가 아 라비아 핀란드를 위해 디자인한 킬타Kilta 시리즈는 지금도 이딸라에서 티마Teema란 이름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1 러비의 나무 장식 by 루밍 앞서 소개한 러비의 트리. 역시 핀란스산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오너먼트나 동물 모양 엽서 로 나무의 각 줄기를 장식할 수 있다. 2 한나 코놀라의 카드 & 프린트 by 에이치픽스 핀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 한나 코놀 라Hanna Konola의 겨울 카드 컬렉션과 리미티드 에디션 프린트. 눈, 섬, 항해, 빙산 등을 표현했다. 3 톤피스크 디자인 Tonfisk Design의 웜 티 & 커피 세트 by 에이후스 디자이너 브라이언 키니Brian Keaney가 고안한 웜 티 & 커피 세트로, 티포트와 컵에 나무 소재의 손잡이를 둘렀다. 차를 따뜻하게 보온하고, 뜨거운 잔을 잡기에 좋다. 4 무민 by 루밍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 무민Moomin. 토베 얀손Tove Jansson이 1945년에 쓰기 시작한 어린이 동화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로, TV 시리즈와 영화는 물론, 이딸라의 무민 그릇, 아라비아 핀란드의 무민 머그잔 등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아르텍의 플로어 램프 by 에이후스 이 조명은 알바 알토가 1955년 헬싱키 사회보장보험위원회 건물 을 위해 디자인한 플로어 램프를 변형해 만들었다. 그는 건물을 지을 때, 계단 끝부분의 디테일, 손잡이 등 건물의 세밀한 부 분은 물론 때로는 의자와 조명까지 디자인하곤 했다. 이 조명을 포함해 파이미오Paimio요양원을 위해 만든 파이미오 의자와 비푸리Viipuri 도서관을 위해 디자인한 L 레그L leg 의자도 현재까지 아르텍에서 생산하고 있다.

“핀란드인들은 인공 처리 없이 나뭇결 그대로 만든 가구를 선호해요. 자연스럽고 군더더기 없고 과하게 꾸며지지 않은 제품을 좋아합니다.” t h e t r av e l l e r J A N 2 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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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전재호 촬영 협조 데미타스 02-391-6360 루밍 www.rooming.co.kr 에이치픽스 www.hpix.co.kr 에이후스 www.a-hus.co.kr 이노메싸 www.innomet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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