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STUDY 2011. 7. 27 Wed - 9. 2 Fri
Artist List 고낙범
Kho, Nak Beom
김명숙
Kim, Myung Sook
김정욱
Kim, Jung Wook
박혜수
Park, Hye Soo
정
Chung, Hyun
현
양대원
Yang, Dae Won
임영길
Yim, Young Kil
프란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칼더 빅토르 바자렐리
Bacon, Francis Calder, Alexander Vasarely, Vi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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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전을 열며 1902년, 27살의 젊은 시인 릴케는 조각가 로댕에 관한 에세이를 쓰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갑니다. 릴케는 파리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어느 날 로댕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호소합니다. 시인의 말에 로댕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위로는커녕 ‘계속해서 일하시오’ 라고 단 한 마디로 잘랐다고 합니다. 릴케는 거장의 작업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술은 영감이나 천재성의 소산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경험담을 <로댕론>에 담았습니다. 릴케는 공부하는 예술가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세잔의 열혈 팬이기도 했습니다. 아내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지요. ‘30여 년 동안 세잔은 창작 이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 끊임없이 화를 내고 자신의 모든 작품과 갈등을 빚었던 것도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그림을 통해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오’ 2011년 사비나미술관의 여름기획전 <STUDY> 전에서는 로댕과 세잔의 예술혼을 이어받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특정주제를 탐구한 결과물들을 감상하면서 예술가들의 치열한 공부정신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1년 7월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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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예술가, <STUDY> 전을 기획하며 강재현 (사비나미술관 전시팀장)
사비나미술관이 2011년 여름 기획전으로 마련한 <STUDY>전은 하나의 주제에 깊이있게 몰두하여 오랜 시간 탐구와 고민을 거듭해가는 예술가의 일관된 태도와 진중한 작품을 함께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스마트 시대 현대인들의 생활은 최첨단 과학기술과 뗄 수 없는 환경에 있다.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인터넷이 우리 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라고 하면서 “디지털 기기의 발전에 의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인터넷이 사람의 뇌구조까지 바꾸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깊게 생각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늘여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미술계도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예술, 첨단 기술과 접목된 예술,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춘 예술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한 세기 전 미술계가 폄하했던 키치(Kitsch)는 이제 가벼워진 현대인의 의식을 대변하며 동 시대 사회의 면모를 충실히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수 년 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예술성보다 시각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사회의 트렌드에 맞춘 작품이 미술시장을 통해 거래되어 왔다. 반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예술과 삶을 일치시켜 자기 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군은 지금까지도 꿋꿋하게 미술계의 다른 한 축을 단단히 받치고 있다. 그들은 시대의 고민을 대변하고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쳐 그에 대한 답을 탐구해가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를 비추는 또 다른 축의 거울로 미술계를 조용히 이끌어왔다. 이에 사비나미술관은 <STUDY>전을 통해 유행이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철학으로 개인과 사회, 개인과 개인, 그 밖의 다양 한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하나의 주제에 몰입하는 작가의 진중한 자세와 탐구 과정을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본 전시 에는 현대미술가 고낙범, 김명숙, 김정욱, 박혜수, 양대원, 임영길, 정현, 7인의 작품과 프란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칼더, 빅토르 바자렐 리의 판화작품 및 영상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주제와 재료, 표현방식, 사회와 자아에 대한 연속된 질문과 탐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도출되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먼저 고낙범의 연구 주제는 색이다. 그에게 색은 언어의 수단이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의 중심에는 색이 있다. 색은 형태와 함 께 시각이 인식하는 기본 요소이자 시각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적 요소로, 작가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그것의 연상과 상징이 다 르게 해석되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는 인물에 대한 정체성을 색으로 표현하거나 명화에 사용된 색을 분석하여 색띠로 재구성함으로써 색에 대한 상징성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다루어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치유를 경험하기도 한다는 고낙범은 이번 전시에 <모닝글로리-Yellow>와 <Skin> 연작을 출품한다.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레몬색에 가까운 노란색과 신체의 표면을 확대하여 기 하학적으로 표현한 두 작품은 나팔꽃의 습성이나 확대된 피부조직의 연결고리로써 현실과 맞닿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명화에 나타나는 색을 번역하고 재구성하여 제작한 자료집 <뮤제 퍼스널 MUSEe personnel>을 통하여 작가가 그동안 탐색해 온 과정을 면밀 히 살펴볼 수 있다. 김명숙은 명화를 통해 작가의 정신을 연구한다. 출품작 <The Works for Millet>는 화가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며 작품속 인물들의 삶과 작업을 역추적 해나가고 거장의 작가적 태도와 정신을 탐구한 끝에 탄생시킨 <키질하는 사람>(1847~1848경) 연구 결과물이다. 마치 점 차 밝게 빛나는 보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한 김명숙의 작품 속 키질은, 육체적 노동과 아날로그적인 삶을 지향하는 작가의 진지한 자 세와 일치되며 그가 그동안 꾸준히 탐구해 온 밀레의 삶과 닿아있다. 작가에게 있어 그리기 행위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두 려움과 분노, 절망과 아우성치는 혼돈 속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통로이며, 농사의 과정이자 호흡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김정욱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작품 속 인물은 기괴하고 낯설지만 아련한 느낌을 받게 한다. 작가에게도 이들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의 중간쯤 살아가는,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가늘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커다란 얼 굴에 박힌 새까만 눈동자, 봉제인형과 같은 신체 표현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기법을 통한 먹의 스민 흔적과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한다. 김정욱의 작업은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보다는 작가의 모든 감각기관을 열 어 감지할 수 있는, 혹은 감지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질문의 연속이며 결국 세상과 칠흑같은 어둠에서 빛을 찾아가는 성찰 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박혜수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연구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리서치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그 결과물을 작품으로 제작한다. 작가는 사람들의 답변을 통해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특정 과제 를 위한 연구자의 태도와 닮아있다. 즉 작가는 본인의 관심사 및 타인들의 공통된 관심사를 세분화하고 분석하고 확률화시켜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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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이나 사회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종의 조사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러한 데이터를 여성학자, 심리학자, 국어학자, 점술가, 조향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의 코멘트와 함께 제시하여 보다 확장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이러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10년의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일상에 미술개념을 부여한 퍼포먼스라고도 할 수 있다. 양대원의 연구 주제는 인간이다. 이번 전시에는 십년이라는 시간의 차를 두고 제작된 두 연작이 출품되는데, 이를 통해 작가가 그동안 일관되게 고민해 온 주제와 표현기법에 대한 흔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공통점은 화면에 나타나는 동그란 형태이 다. 화학을 전공한 작가는 분자의 결합이 유기적 생명체를 만든다는 가정 하에 분자의 형태를 차용하여 인간을 표현하였다. 인간의 욕 심과 욕망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분자의 형태가 2008년의 작품에서 더욱 짜임새 있고 완결된 형태로 발전되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눈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작품의 내용이다. 화면 밖으로 과감하게 쏟아내는 <눈물 I>(1999)과, 동글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Ⅴ,Ⅵ>(2008)에서 인간의 심리와 사회 현상에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작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임영길은 자연 만물의 기본요소인 불, 물, 흙, 공기를 테마로 작업해왔다. 이는 우주의 에너지의 흐름에서 인간과 문명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유도한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물’을 테마로 한 <철학적인 물> 연작이 회화 및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판화로 선보인다. 작가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물이 지니는 상징성을 건축물, 곤충, 해와 달처럼 보이는 도형을 통해 인간과 그 문명사를 대자연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또한 그는 그동안 <한국의 12도깨비>나 <12지신>, <한국의 12길상동물>, <삼두매>, <삼족오> 등의 전통적인 한국의 도상에 집중하여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판화작업을 연구해왔다. 이번 작업 역시 음양오행의 전통에 바탕을 둔 소 재에 대한 해석이자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한 매체 연구라 할 수 있다. 조각가 정현이 탐구하는 주제는 실존적 인간과 사물이다. 작가의 손끝을 거친 작품은 자연을 닮아있다. 그 결과물은 대부분 인체의 형 상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사용한 재료의 물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마치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다한 후 버려진 사물을 발견하고 관찰하며 사물의 에너지에 집중하기는 과정을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 다. 그는 철로용 침목, 아스팔트 콘크리트, 자연석, 석탄, 석탄에서 나온 액체인 콜타르(coal tar)등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를 선택하여 오 랜 시간을 두고 이러한 재료의 본성을 파악하는 일에 주목해왔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침목으로 제작한 인간 군상 작품 역시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온 재료의 속성을 그대로 살려 하찮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의 지내온 시간에 대한 근원적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은 인간내면에 대한 표현을 사진이나 필름의 이미지를 통해 연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시 각적 아름다움을 배제한 인간 본연의 움직임을 구상도 추상도 아닌 변형된 형태로 제작하여 세상에 대한 폭력성을 화면에 담아낸다.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조각에서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어린 시절부터 서커스에 흥미를 가진 칼더는 곡예사의 움직임을 관찰하 여 기계적인 요소와 조형적인 감각을 결합하였다. 그 결과 움직이지 않는 3차원의 조각을 넘어, 공중에 부유하고 실제의 움직임을 구 현하는 신개념의 조각을 창안할 수 있었다. 빅토르 바자렐리(1908~1997)는 인간의 망막에서 일어나는 잔상효과로 인해 마치 화면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 으키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를 지속적으로 연구하였다. 특히 그가 2년 여간 의학을 공부하며 습득했던 체계성, 객관성 등과 같은 규 칙적이고 엄격한 과학성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고수한 탐구 주제였다. 바자렐리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면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원근 법을 극대화 함으로써, 보는이로 하여금 화면이 팽창하고 수축하거나 파도처럼 물결치는 형태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경험할 수 있 게 하였다. 이 모든 작가들의 공통점은 미(美)와 의미의 고찰을 위해 시간을 가지고 관찰하고 실험하며 사고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이러 한 과정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행위일 것이다. 이들은 대상을 단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치장하 지 않으며, 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류이건 아 니건 간에 그들은 자신만의 철학으로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디지털화된 문명의 편리함으로 너 무 쉽고 가볍게 세상과 소통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본 전시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이들 예술가의 내면 세계에 귀 기울여 함께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전시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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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낙범
Kho, Nak Beom
“나에게 색은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한 언어 수단이다.”
Mornig Glory - Yellow 181.5Ă&#x2014;181.5cm, oil on canva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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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며, 예술의 본질(혹은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을 무엇이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것이 예술을 추구하는 이유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싶다. 나 역 시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 기 하자면, 그것은 미술가가 작품을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 이것이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 지인의 초상 연작부터 명화를 이용한 색채분석 작업, 기하학적 추상작업 등 그 소재는 달라도 작업의 중심에 는 항상 ‘색’이 존재한다. 작업을 끊임없는 색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가? 6년간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미술관 입구에 설치된 백남준 선생님의 ‘다다익선’ 작품을 거의 매일 접하게 되었는데,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 시간에는 작품의 스위치가 꺼져있고 수많은 모니터 에는 화면 조정용 색띠(테스트패턴)만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색 팔레트 같다고 생각했다. 즉, 선이냐 색이냐 하는 오래된 미술사 속의 논쟁 끝에서 나는 색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색채를 언어화 시키는 것이 내 작업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색 자체는 빛하고 관계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림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림자는 항상 빛과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림자에 대한 이해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부분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이다. 3. 1990년대 중반 이후 제작된 <뮤지엄 프로젝트>에서부터 2000년대 영화와 공연의 단편을 회화로 재구성 한 작업을 거쳐 이후엔 기하학적 추상작업으로 변화되는 흐름을 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작업의 변화를 가 지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아 색의 상징성을 부여하였는데 지극히 비현실적인 형태로 제작되 었다. 사선적인 세계를 연구하다 보니 에너지의 흐름이나 방향성으로 접근하게 되었고, 에너지의 흐름은 물 리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어떤 움직이는 요소를 떠오르게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에너지의 움직임을 보 면 그 최소 단위는 모나드이다’라는 정의를 고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런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단 위에 내 생각이 도달하게 되었고, 또 작업에서 도형과 기하학적 요소를 먼저 생각하는 나에게는 이런 아이디 어가 새로운 작업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는 보다 현실과 맞닿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어 <스킨>연작 과 같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4. 선생님에게 ‘색’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동안 탐구했던 색에 대한 특성을 정리해 본다면? 나에게 색은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한 언어수단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언어적인 방법으로 색채, 인물, 공간 중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이 색이다. 나는 미술의 역할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치유라고 본다. 예전부터 최초의 예술가는 샤먼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 다는 내용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에서 샤먼은 치유와 치유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의학적 인 것도 포함하지만 나중에 세분화되면서 예술가도 그 중 하나가 되는 거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작업을 하면 서 얻는 치유의 효과가 많이 있다. 색은 굉장히 연금술적인 것이고 매직컬한데, 이건 어디에건 갖다 붙이면 다 된다. 심리학적인 관점, 문화적인 관점, 정치적인 관점 등에 다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 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내 스스로를, 그리고 작업을 색채로 조절한다. 그것이 나에게 치유가 될 수 있다. 내가 나를 치유하 는 것, 즉 칼라테라피하고 관계가 있다. 칼라테라피가 원래 색채로 사람을 치유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커튼을 바꾸고 하는 것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 5. 모닝글로리(나팔꽃)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설명하자면? 그 작업 속에서 나는 내가 가진 아이덴티티를 연관시키고자 한다.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고, 또 밤 에 그리다가 담배 한 대 피우고 화장실 갔다 오고, 샤워 한번 하면 카타르시스라는 느낌을 갖는다. 카타르시스 는 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고 나팔꽃이 아침에 이슬을 머금고 있다가 한번에 활짝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움직임 자체가 굉장한 카타르시스로 느껴진다. 이렇게 한번 꽃이 활짝 폈다가 오므라드는 그런 움직임이 인간의 어떤 유기적인 상황하고도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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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앞으로의 작업계획은? 딱히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부딪히며 다양한 현상들에 크고 작은 영향 을 받게 된다. 최근에는 지구의 온난화로부터 오는 환경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앞으로 어떻게 작업에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본 인터뷰는 Melencolia_리안갤러리(2007) 전시도록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함
Skin 165×165cm, oil on canva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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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Kim, Myung Sook
“밀레의 키질하는 사람은 곡식 낱알이 빛 알갱이가 되고, 키질이 무도가 되어갈 때까지 키질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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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s For Milet 180×120cm, 크레프트지에 혼합재료, 2008 (each), 소장처_(주)쌈지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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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wful darning of a moment's surrender which an age of prudence can never retract. By this and this only, we have existed. -The Waste Land 중, T. S. Elliot
노련한 분별로도 삼갈 수 없는 한순간의 귀의, 그 경이로운 결행 이것으로,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느니 -황무지 중, T. S. 엘리엇
돌이켜 보니 25년 동안의 나의 일들은 “work(deed)"에 관한 공부였던 것 같다. 시지프스(Sisyphus)에 관한 공부들, 나무의 나무되기에 관한 공부들, 자신의 심연에로의 하강을 수행하는 유영하는 사람들에 관한 공부 들, 수련연작을 하고 있는 86살의 “느티나무“-모네에 관한 공부들, ”노동은 나의 강령이다“라고 말했던 밀레 의 농부들에 과한 공부들. 밀레의 농부들은 내게 시지프스들의 초상이었다. 그가 그린 키질하는 사람은 곡식 낱알이 빛 알갱이가 되고, 키질이 무도가 되어갈 때까지 키질을 계속한다. 2010년 작업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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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며, 예술의 본질(혹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환쟁이로서 내가 할 수 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할 뿐이다. 그래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일까를 생 각하기 보다는 내 손 끝에서 그림이 빚어지기를 바란다. 작업실을 이사 다닐 때 마다 맨 먼저 짐 꾸러미를 열 어 벽에 붙여두는 경구가 내게 그것을 되새겨준다. “예술은 삶의 부정에의 모든 의지에 대한 비할 데 없이 탁월한 대항력에 다름 아니다.” - 니체 2. 그동안 숲, 인물, 동물 등의 소재를 통한 작품에서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탐구를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 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선생님이 생각하는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며 그런 점에서 화가의 길 은 그 의미를 구현하는 데에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가? 숲을 그렸을 때조차 나는 그것이 풍경화(landscape)가 아니라 숲의 초상화(land portrait)라는 것을 깨달았 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라는 렌즈만 가지고 세계를 들여다보지 않는가. 매 순간 인간이라는 가능성 과 인간이라는 한계를 정당화(justify)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그것을 끊임없이 입증(prove)하는 과정이 작 업의 과정이다. 3. 농촌의 외양간을 작업실로 사용하는 등 시골 한복판에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농촌과 농민의 일상을 소박 하면서도 외경스럽게 표현한 ‘밀레’를 테마로 작업하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농촌에 작업실을 구한 것은 아무래도 자연이라는 학교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자연은 관조나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늘 준엄한 스승이다. 내가 밀레의 그림을 공부하게 된 것은, 밀레가 농부를 그려서가 아니라 그 의 예술이 어느 순간 렘브란트나 고야의 세계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고등학생이었 던 딸이 학교 바자회에서 500원을 주고 사온 오래된 에미타쥬 미술관 화집에서 밀레의 잘 알려지지 않은 “땔 감 나르는 소녀들”이라는 작은 그림과 마주쳤다. 그 순간 갑자기 밀레의 모든 그림들, 키질하는 사람, 삽질하 는 사람, 괭이질하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들이 바르비종파라는 미술사적 울타리를 뛰어넘어 마치 그리스 신 화들의 현전을 느끼듯, 니체적 탐구자들의 알레고리들로 느껴졌다. 밀레의 키질하는 사람은 곡식 낱알이 빛 알갱이가 되고 키질이 무도가 되어 갈 때까지 키질을 계속한다. 얼마 전 병원의 대기실에 앉아 자리에 놓인 신 문을 보다 혜능법사와 그의 스승의 대화 한 토막을 발견하였다. 스승이 혜능에게 “방아는 다 찧었느냐”고 묻 자 혜능은 “방아는 다 찧었지만 키질을 아직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스승은 혜능에게 스승의 자 리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4. 종이 위에 거칠게 표현된 흔적에서 날 것 같은 치열함과 생생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흩어지고 뭉친 수많은 선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 듯한데, 재료나 기법, 표현 방식과 선생님이 천착해온 ‘행위’, ‘행동’ 등의 탐 구 주제와의 연관성을 알고 싶다. 2010년 사비나미술관에서 “The Works for Workers” 전시를 하면서 비로소 내가 작업을 통해 탐구해온 것이 행위, 행동(deed, work)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내가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이 온전히 대상이기 위해 내재하고 있는 힘, 견지 하고 있는 힘, 획득하려는 힘, 분출되는 힘과 억압되어 있는 힘들, 모든 대상에 작용하는 중력과 원심력들, 대 상의 내부와 외부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며 환원되는 힘들의 흔적들이었던 것 같다. 마치 지관이 수맥 을 더듬어 찾아내듯 나는 대상들의 힘의 맥들을 더듬어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5. 작업의 시작에서 결과물을 도출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작업의 시작에서 결과물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불행하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매번 잊어버린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의 의지와 습관 너머에서 내 손과 내 손이 선택한 재료(medium)들이 종이 위에서 만나 부딪히며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 작업, 즉 철저히 그 과정이 계획되고 예상되는 작업 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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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Kim, Jung Wook
“알 수 있는 만큼 알 수 없다. 이 잘 말할 수 없는 과정들이 그림이 되는 듯하다.”
111.5×162cm, 한지에 먹, 채색, 2008 (위) 168×116cm, 한지에 먹, 채색, 2010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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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지지부난 하고 험난한 고민이 남녀노소를 고사 했던가. 새겨들어 비문에 세로 적어도 내 마음은 한 치 움직여지는지 모르겠다. 일 겁은 찰라 임을 머리는 아는 듯하다. 내가 중시하는 마음은 중요하고 중요하여서 이리 단단한 것 인가.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만물은 생성하고 항시 움직이는데 나도 그런지라 흐르고 있다고 감격하고 싶다. 문득 찾아오는 적막은 귀하고, 나를 몹시 처연하게 하는데 적막과 처연과 충만은 한 곳에 있음을. 그런데 허나, 찾아 헤매 인다. 눈물겨운 나날들이 각각에 있고 그 모양새들을, 비밀들을 아름답다 찬미하지만 이내 발등에 떨어진, 떨어지려 하는 것엔 두려움이 지긋지긋하게 생생하다. 내가 요즘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을 다 알고 이해하긴 나도 어렵다. 잘 아는 것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것에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니 그 전체적인 움직임들의 모양새가 경이롭다. 찬란하고, 너덜너덜하고, 두려울 만큼 정교한 삶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이치들을 펼쳐 살피고자, 깊이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은 그 반폭도 펼치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 어리석은 나는 그 견딜 수 없이 많은 것들을 감지하여 보고, 생각하고, 행한다고 믿는다. 내가 지탱하고 해오는 일들의 기적 같은 상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알 수 있는 만큼 알 수 없다. 이 잘 말할 수 없는 과정들이 그림이 되는 듯하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2011년 작업노트
변신술 變身術 - 그러나 내부에서 변신한 것이 커져 완전히 변할 수 있으니, 그 경계를 조심 하라. 절차탁마 切磋琢磨 -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 (파생적 의미로 보통 학문이나 덕행을 수양한다는 의미) 초자연적 신비- 과학의 최첨단 스티그마타(Stigmata) - 성스러움과 세속. 두렵고, 매혹적인 신비. 결핍과 충만의 눈물. 사실적이지 않으나 더욱 사실적인-이해시키거나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에 어떤 것을 느낀 그대로, 나를 통해 다시 그 상태가 된다. 관계 - 개별 된 세계 속 존재들의 조우, 다른 차원의 존재들의 만남 사람의 점 : 평균 144개 휴지기 없이 자라는 머리카락의 길이 : 최고 9m
2010년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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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30cm, 한지에 먹,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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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
Park, Hye Soo
“내겐 사람들의 익숙하고 사소한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Project '대화' 일상생활 속의 대화를 소재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형식의 프로젝트, 아카이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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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며, 예술의 본질(혹은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내게 이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비슷하다. 그러니 예술의 본질은 아직까진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수잔 손탁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야기 했듯이 예술이 좀 더 사 람들이,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게 할 수 있는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기술의 발전이 빠른 문명의 진보를 추구하면서 인식하지 못하는 속도와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능력은 퇴화되 고 있는 것 같다. 감성과 정신 그리고 감각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을 예술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때문에 익숙하고 사소한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자세가 내겐 가장 중요하다. 2. 기존에는 관객의 참여가 필요로 한 인터렉티브 작업을 선보이다가 2005년 이후부터 사람들의 성향이나 성 격을 분석하여 ‘나만의 향기’를 제작해 주는 방식의 작업을 시작으로, ‘엿들은 대화’처럼 참가자들과의 직·간 접적인 소통을 유도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방식의 관객 참여를 유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설문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을 얻을 만큼의 데 이터가 쌓인 이후엔 굳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의 리서치를 통해 관객을 작품의 요소로 끌어들이는 것은, 예술가만의 세계로 서로 다른 취향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통된 무언가를 전달하고 느끼게 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예술이 그들의 삶에서도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솔직히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불과 몇 분이면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를 위 해 길게는 몇 년, 짧아도 몇 달을 고민한다. 그 몇 분간의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몇 년을 고생하는 것에 회의 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작품에게 미안했고 좀 더 긴 생명력을 주고 싶었다. 작품이 미술관을 벗어나서도 생명력을 가지려면 관객의 내면과 기억에 남아야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관객들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기억하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관객들이 내 작품을 기 억해주기보단 자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3. 이번 전시에 출품된 <Project Dialoge-Archive> 중 <뒷담화>에 대한 작품이 인상깊다. 작업의 시작에서 결 과물을 도출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매우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다. 우연히 자신의 엄 마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20년을 살아왔다는 친한 친구와, 집에서도 부모님과 전화로만 이야기한다던 학생 을 만나면서 ‘왜 가족에게까지 우린 속마음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된 걸까’란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프로젝트 대화>가 시작됐다. 프로젝트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쳤는데 우선 서울시내 공공장소에서 엿들은 일반 사람들의 대화를 녹취하거 나 기록하면서 짧은 대화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화에 해당하는 관련자들에게 보내어 대화를 이어나가 달 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돌려받은 대화 들을 가지고 2009년 소마드로잉센터 에서 발표했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고 50개 의 일상대화가 300여개의 대화로 늘 어나게 되었다. 모여진 이야기들을 카테고리 화(化) 하고 그 안에서 나름 주제를 잡아나가 는 이후의 과정에서부터 예술가의 개 입이 들어간 시도를 하려고 계획했고, <뒷담화>는 수집한 특정 대화에 대한 뒷담화 가변크기, 각종 전자시계, 모션센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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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라기 보단 ‘대화’라는 형식을 재 해석한 설치작품에 가깝다.
4. 그동안 진행했던 작업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작가가 혼자 작업하는 것과는 달리 혼자서는 진행할 수도, 완성 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 즉 여성학자, 소설가, 음악가, 정신분석학자, 점술가 등의 코멘 트를 동반한다. 마치 작가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들과 협업하는 감독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되 는데, 이에 따른 문제점은 없는가? 참가자를 어떠한 방식으로 섭외하는가?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설문조사를 통한 결과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관객들의 설문내용에 따라 전 문가 혹은 협업 집단을 결정한다.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 <꿈의 먼지>의 내용이 됐던 설문조사 ’당신이 버린 꿈‘의 답변을 받은 후 정신을 다루는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철학가, 종교인, 심리학자, 정 신과의사, 점술가 중에 정신과의사와 점술가와 협업을 하게 되었다. 섭외는 항상 어렵다.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그 분야의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적합한 사 람을 섭외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동기를 이해하고 그를 수긍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과 일 하는 것을 추구한다. 전문가들을 섭외하면서 느끼는 점은 지금 하려는 작업이 정말 꼭 필요한 거라면 자연스 럽게 정말 적당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인생에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작품이 다 자기 때를 알아서 자기 자 릴 찾아가는 것 같다. 5.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현대인들이 가지는 생각에 대한 다양한 나름의 결과물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렵겠지만 간단한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늘 외롭다. 6. 매번 전시하는 동안 작가가 매일같이 직접 관람객을 맞이하여 설문을 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하다. 보다 쉽고 많은 자료를 취합하기 위해 앞으로 온라인을 활용한 소셜네트워크나 그 밖의 매체를 활 용할 생각은 없는지? 내겐 굉장히 모순적인 면이 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자면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친교적일 거라고 생각하 지만 나는 혼자 있는 걸 즐겨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잘 가지도 않고 언론이나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일도 매 우 불편해 하는 편이다. 관객들에게도 꽤 까칠한 작가인데, 이런 내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만 하는 이런 작업을 왜 하게 됐는지 나조차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 때문에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는 많이 예민해지는 편인데, 간혹 친절치 못한 내 태도에 불평을 하는 관객을 만 날 때도 있다. 이때문에 갈등이 있는데 최근에 알게 된 철학가분이 “예술가에겐 높아서도 낮아서도 안 되는 적정한 높이의 좋은 담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나름 해답을 찾은 것 같다. 물론 내 적정 높이의 담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처럼 활발한 소셜네트워크는 그 거리감이 너무 가깝다. 개인 사생활까지 관심사가 되어 이야기 거 리가 되는 요즘의 문화를 매우 경계하고 있는 편이어서, 일부러 홈페이지와 메일을 제외한 어떠한 소셜네트워 크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작품의 리서치를 위해 갑자기 소셜네트워트를 한다는 건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생각 이 들어서 매우 꺼려진다. 시간이 걸려야만 하는 일은 시간을 걸려서 하는 게 좋다. 7. 작업이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라고 알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계획은? <Project Dialogue>(2009~)는 총 5개 시리즈로 진행될 예정이다. <Archive>(2009, 소마드로잉센터)와 <vol.1 - 꿈의 먼지>(2011, 금호미술관), <vol.5 - 예술가로 살아남기>(2010, 서울시립미술관)전을 진행 했 고, <vol.2 보편의 정의>, <vol.3 Money(가제)>, <vol.4 사랑과 결혼(가제)>이 남아있다. 2~3년 간격으로 진행하고자 하며, 모두 관련 전문가들과 협업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보고자 한 다. 아마 <vol.3 - 보편의 정의>가 다음이 될 것 같고 2~3년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 지금은 관객의 설문을 진 행하기 전이기 때문에 어떤 전문가와 협업할지 결정되진 않았다. 그리고 발표 프로젝트들이 더 깊이를 가질 수 있도록 변형된 형태로 보여지는 일도 병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한 10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서 <Project Dialogue>의 책을 출판해서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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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원
Yang, Dae Won
“내 작업은 물리적 인간을 심리적 인간의 지점으로 이끌어내는 사고(思考)의 반복 과정이다.”
의심-눈물Ⅵ 222080 171×150cm, 광목천 위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올리브유,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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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눈물Ⅶ 013080 171×150cm, 광목천 위에 한지, 아교, 아크릴 물감, 토분, 커피, 올리브유,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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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며, 예술의 본질(혹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은 예술가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을 통해 마음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고 삶을 각자의 방식으 로 이해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그동안 <중독>, <외출>, <의심>, <푸른 섬>, <난> 등의 연작에서 사회적인 현상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한 심리에 대한 메시지를 전개해 왔다. 이렇게 일관되게 불편한 현상들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쎄, 불편한 현상들에 집중하는 이유는 불편함을 개선하고픈 열망이거나 습관화시키기 위한 행위인 것 같다. 항상 사회의 일원이었고,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나와 그들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하는 것이다. 단지, 개인 에 대한 접근(근거리), 단체에 대한 접근(원거리), 꿈에 대한 접근(이상) 등 각각의 의미에 따라 이야기 방식 이 달라질 뿐이다. 3.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별도로 자료를 수집하는가?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는가? 물론 각종 매체에서 다루는 사건, 사고들에 대한 개인적인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되기 도 하겠지만. 인간본성에 대한 탐구가 아니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직감 같은 것, 아니면 경험에서 오는 경험론적 사고가 바 탕이 되어 그것이 오히려 사회현상에 의해 구체화된다는 것이 맞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인간의 조건이 아 닐까? 4. 본 전시에 출품된 두 작품의 공통적인, 혹은 또 다른 눈물의 의미가 궁금하다. 본 전시에 출품된 두 작품의 공통점은 의도하지 않은 조형적 형태의 유사성인데, 이것은 단지 나의 개인적 조 형 취향이라고 말하고 싶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형태를 발견하고 개인적 으로도 흥미롭게 생각했다. 또한 1999년 제작한 <눈물Ⅰ>이 내안의 나를 바라보는 눈이라면, <눈물Ⅵ>, <눈 물Ⅶ>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눈이다. 5. 초창기 작품부터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동글인’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는 귀여운 이미지 같지만 그 내면을 보 면 폭력적이거나 불신에 가득 차 있다. 또한 마치 컴퍼스로 그려진 듯한 빈틈없는 형태를 보면 수학적인 원 리가 숨어있을 것 같다. 이러한 형태를 갖추게 된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화학에서의 분자 개념이 발단이 되었는데, 분자의 합(合)이 원자가 되고 원자 의 합이 어떤 유기적 생명체가 된다는 가정(假定)하에 인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글인’은 어떤 분자들의 합이 라는 물리적 개념과 더불어 인간의 욕망(동글동글 터질듯한 이미지)을 표현하기에 적절했다. 그래서 ‘동글인’ 은 욕망으로 가득 찬 나의 모습이자 아바타가 되었다. 6. 사용하는 재료에 독특한 기법과 노하우가 있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기까지 겪었던 과정이 궁 금하다. 재료는 작품 이미지나 느낌과 부합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인두질이 내가 생각하는 작품의 느낌을 받아들였고, 지금의 방법은 제도화가 가속되는 경직된 사회 현상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인두질을 할 때 나 지금이나 나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 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재료는 재료일 뿐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7. 최근 작품들에는 그동안 보였던 기하학적인 요소나 도형적 구성, 그리고 식물의 형태도 보다 적극적으로 등 장한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시작도 인간(人間)이고 끝도 인간(人間)이다. 즉, 내 작업은 물리적 인간을 심리적 인간의 어떤 지점으로 이 끌어 내는 사고(思考)의 반복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해왔던 스토리 라인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사(史)를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과 연민을 갖고 싶다. 그러니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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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Ⅰ 401099 180×200cm, 패널위에 광목천, 아교, 토분, 먹, 커피, 인두질, 아크릴 채색, 1999 (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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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길
Yim, Young Kil
“나는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물질의 기본 원소를 중심으로 ‘보는 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철학적인 물-9 55×66cm, 판화지에 컴퓨터프린트, 칭꼴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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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물-10 55×66cm, 판화지에 컴퓨터프린트, 칭꼴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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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며, 예술의 본질(혹은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살면서 느끼거나, 깨달은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그동안 ‘철학적인 불’ 과 ‘철학적인 물’을 테마로 작업해 왔는데 특별히 이러한 테마로 작업하게 된 동기는 무 엇인가? 또한 그동안 ‘물’ 작업의 변화과정이 궁금하다. 시대에 따라서 사물을 보는 방법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았던 ‘물’은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는 ‘물’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물질의 기본 원소를 중심으로 ‘보는 법’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2005년경에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에는 물이 가진 성질을 인공적인 건축물 과의 관계에서 시각화시켰으나 최근에는 자연의 순환에 관련된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형상화 하고자 한다. 3. 작품 제목에서 말하는 ‘철학적’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물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는데, 과거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이 아침마다 부엌에 정화수를 떠 놓고, 동시에 조왕신을 모시면서 물을 신성시 하였던 것처럼 신앙적으로 물을 보는 방법에서부터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까지 보는 방식이 다양하다. 나는 과거 그리스인들이 사유하던 방식과 같이 인간의 삶과 문명,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의미로서 물 을 바라보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즉, 사물에 대한 속성과 그 본질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다시 재해석한다는 의미에서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4.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기원이며, 존재의 모태, 치유의 원리 등 다양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생님 에게 ‘물’이 갖는 의미는 어떠한가? 내게 물은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다. 전통적인 오행 사상에 의거해서 물의 의미를 찾는다면, 나의 경우 금(金) 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물을 가까이 하면 에너지가 더욱 생(生)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水)은 금(金)을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양에서는 오행 원리에 의하여 만물이 서로 생하거나 극하는 것으로 보았고, 인간 또한 오행의 성질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동양의 오행 개념은 지극히 자연 친화적인 점이 특징이라고 본다.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밭에서 모든 식물들이 말라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식물이란 ‘일어선 물’과 같다고 생 각했다. 식물의 다양한 형태에 의해서 서로 다른 형상을 갖지만 공통적으로 그 안에 있는 것은 물이라는 것이 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물도 마찬가지이므로 물은 생명을 이루는 기본 물질이다.
철학적인 물-11 78×49×1cm, 한지에 컴퓨터프린트, 칭꼴레,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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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업시 중점을 두는 시각적 표현요소가 있는가? 작품에 등장하는 물에 잠긴 서양식의 건축물이나 잠수함, 그 리고 물방개나 오리 등의 생명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물을 형상화 하는데 있어서 시각적인 표현요소로써 중점을 두는 점은 ‘투명성’이다. 물은 투명하기 때문에 그 투명성을 살리기 위해 물을 층으로 형상화한다. 고려 불화를 보면 투명성이 특징인데 나는 이러한 것을 물을 통해서 현대에 재생산 하고자 한다. 서양식 건축물이나 잠수함은, 물과 관계되는 인공적이거나 자연적인 다양한 사물들을 엮어서 물이 가진 의미 를 더욱 구체화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작품의 주제는 물이라는 점이고 물은 이러한 모든 것 을 품어준다는 것이다. 6. 회화 작업 이외에 판화, 북아트 등의 다양한 기법과 각각의 매체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작품의 표 현적 특징은 무엇인가? 각각의 매체는 세계를 보는 틀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매체는 각각 보는 방식도 다르다. 예를 들면 북아트(아티스트북)는 그 구조상 페이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세계를 종합적, 연속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게 해 주고 텍스트에 일정 부분을 의존하므로 사물의 표현보다는 기술(description)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 고 판화는 그 특성상 상대적으로 회화에 비해서 내용과 주제가 보다 대중적이고, 당대의 기술적인 측면을 반 영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회화는 물리적인 크기를 확대시킬 수 있고, 보다 즉흥적인 리듬을 살 릴 수 있는 경험의 장을 제공한다. 7. 현대미술에서의 판화에 대한 의미와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시대의 미감과 기술로 동시대를 시각적으로 담는 것이 판화의 속성이다. 이러한 속성이 있는 판화는 에디 션을 가진 매체이기 때문에 현대미술 속에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대중 예술시대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사진이나 멀티플 아트와 같은 에디션 아트가 점점 중요해 지고 있기 때문에 판화도 새 시대에 맞게 개념 설정을 확장 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철학적인 물-13 91×117cm, 캔바스에 아크릴칼라, 칭꼴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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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현
Chung, Hyun
“나에게 인체는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정신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다.”
무제 300×75×25cm, 침목, 200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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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며, 예술의 본질(혹은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화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른 좋아 보이는 것도 많지만 예술가는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가 좋은 꿈을 가지고 가는 것과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 요하다고 본다. 결국 이러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딛고 일어나느냐에 따라 성장할 수 있고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이란 니체가 말했던 긍정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긍정이란 인정, 설 득 같은 이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처음의 위치로 되돌아감으로써 본래의 손상되지 않은 총체성을 고스란히 회 복하는, 그러한 신체적 운동이 수반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긍정에 대한 지향은 내가 재료를 발견하 는 입장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2. 선생님 작업을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면, 인체조각을 통한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요약할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작업에서 인체에 대한 표현 자체가 우선시 된 적은 없었다. 나에게 인체는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정 신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인체는 인간의 실존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재료라고 생각한다. 굳이 인간의 존재를 논하기 보다는 하찮아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낸 모든 것들에서 에너지를 느 끼고 발견함으로써 자칫 지나쳐 버릴 수 있었던 것들에게 경의를 표하는것이 나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3. 선생님 인체조각의 핵심은 ‘힘’, ‘에너지’, ‘덩어리 감’, ‘물질성’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작품 속에 담긴 그 힘이 정적이라기보다 동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동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움직임을 표현하는 말인데 내 작품은 외형적으로 운동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 려 절제된 동감에서 긴장감을 끌어내는 쪽이다. 힘이나 에너지는 그것을 표현하려고 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 다. 그 근원과 깊이를 찾아 가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조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동안 사용했던 재료들은 철로용 철도 침목, 아스팔트 콘크리트, 자연석, 석탄, 석탄에서 나온 액체인 콜타르(coal tar) 등인데 이는 조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는 아니다. 왜 이런 재료를 선택하게 되었으며 재료상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재료를 확보하는가? 조각의 특성상 재료의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작가의 생각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찾는 것인데. 재료가 예쁘 면 사색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는 것들이지만 세월을 겪고 난 다음에 이미지가 돌 출되는 재료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재료를 발견했다고 해서 바로 작품이 되진 않는다.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오 랜 시간 고민한 끝에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나의 작품을 본 최태만 교수의 ‘날것과 숙성’이라는 언급에서, '날것'은 재료가 가지고 있는 요소를 그대로 드 러내며 가능한 가공하지 않고 작품이 가진 본래의 성질을 살리는 의미를 담은 반면에, '숙성'의 의미는 정현이 라는 작가를 통해 소화가 잘 되어 나오기 때문에 숙성시켰다고 했다. 침목의 경우 견뎌온 세월의 흔적, 인고의 미학이 심어져 있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 시대를 격렬히 살아온 인간의 모습과 같은 에너지를 담고 있다. 이를 발견함으로써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연관시킬 수 있다. 막돌은 보통 조각의 재료로 사용할 수 없는 재료로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형태도 그렇고 돌 속에 균열이 많기 때문에 막돌이 가진 결은 어떻게 잘려나갈지 모르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이것은 계산되지 않은 흔적들이다. 이러한 막돌 특유의 성질을 통하여 예상치 못한 우연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는데, 그 효과들을 이용하여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 수 있고 또 이러한 방식으로 재료가 갖는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이처럼 각 재료의 본성을 끄집어내 내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조각에서는 물질 자체, 재료 자체가 이미 이야기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이미지 관찰이 중 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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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업의 변화를 이룬 계기나 동기, 또는 이유가 있다면? 유학 시절의 작업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작품 속에 시적 감수성과 철학이 잘 배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 2000년대에는 침목, 아스콘 등의 재료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6. 선생님에게 조각은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쉽게 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작업이 삶이고 생활이다. 7. 현대미술이, 혹은 현대조각이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조각의 퇴조현상은 인정한다. 이것은 세계 미술계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조각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자기극 복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볼 수도 있다. 퇴조하고 있는 것은 특히 ‘재현적, 리얼리즘적, 기념비적 조 각’ 이지만, 반면에 최근의 매체확장 및 탈장르와 같은 실험 속에서 조각이 영역을 넓혀나가는 측면도 있다. 요즘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빠르게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하는데, 새로운 장르만 단 시간 에 찾아가게 되면 작품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작품성의 의미보다는 상업성을 따지기 쉬운데, 그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작업이라는 것이 아이디어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겪고, 체득하고, 표현되는 것의 반복으로 인한 연속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끊임없이 궁금해 해야 하고, 그것을 찾아가고자 해야 한다.
무제 39×27cm, 종이에 콜타르, 1997 (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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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
Bacon, Francis
“변형과 왜곡의 이미지는 구상과 추상미술 사이에서 하는 일종의 외줄타기이다.”
1944년 세 폭 그림을 개작한 두 번째 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옆에 있는 형상들의 세 습작> 실크스크린, 1988, 소장처_아트블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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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과 공간을 주제로 격렬하고 동적인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공포와 폭력적 자아를 표현해낸 작가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의 기운 속에서 느낀 긴장감과 폭력의 분위기, 그리고 20년대 당시의 유럽 화단을 풍미한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그는 자신만의 리얼리티를 구축한다. 그의 세계에서 일 그러지거나 구겨지고, 시각적 아름다움이 배제된, 인간 본연의 움직임과 변형된 형태와 공간이 그만의 사 실적(reality) 기법을 통해 구사된다.
“나는 미술이란 기록하는 것(recording)이라고 믿는다. 또한 미술은 보도하는 것(reporting)이라고 생각한다. 추상 미술에는 보도라는 것이 없다. 거기엔 오로지 화가의 미학과 약간의 감각만이 있을 뿐이다. 추상 미술에는 긴장감이 없다. 나는 추상 미술이 아주 약화된 서정적 느낌(feeling)은 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상 미술이 원대한 감각 차원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 지 않는다. 내게 느낌은 준다는 것은 그것이 보다 사실적(factual)이라는 것과 같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옆에 있는 형상들의 세 습작, 1944
1. 작품에 등장하는 독재자, 고깃덩어리, 친구의 얼굴, 자화상 등으로 왜곡된 인체와 냉정하고 무심하게 에워싼 배경공간들은 생명체의 생생한 현장감을 극적으로 고조시킨다. 사람들은 내 작품을 보고 내가 고통의 느낌과 횡포적인 생활을 전달시키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 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은 태어나는 것 자체가 마치 삶과 죽음의 사 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험난한 것이다. 나는 작품 속의 기괴한 형상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우리의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해 감각을 자극하게 하고, 그로써 무의식적으로 가득 찬 고통과 절망의 인생을 느끼는 체험을 매개해주고자 한다. 2. 작품에서의 이미지 변형과 왜곡이란? 이러한 이미지는 구상과 추상미술 사이에서 하는 일종의 외줄타기이다. 그 이미지는 추상과 비슷하겠 지만 실은 추상과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그것은 정서적인 자극으로 말미암아 구상적인 것을 보다 폭력 적이고 보다 날카롭게 인식하게 되는 신경 시스템상의 자극을 위한 노력이다. 3. 작품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에 관람객들은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이 내 작품에 나타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난 늘 매우 놀라곤 한다. 나 자신은 그것이 폭 력적인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결코 폭력을 추 구하지 않는다. 내 그림들에는 아마도 그런 인상을 줄 만한 리얼리즘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삶이란 참으로 폭력적인 것이다. 내가 그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다. 우리는 늘 폭력에 노 출되어 있다. 요즘 전 세계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수백만의 이미지들을 보라.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하 며 영원하다. 54
끊임없이 자신의 그림 속 이미지에서 설명적인 기능과 이야기를 제거하고자 했던 베이컨은 3개의 분리된 패널들로 이루어진 삼면화(triptych)에 매료되었다. 그가 그린 삼면화는 전통적인 삼면화에 담긴 서술적 구조는 배제하면서 패널들의 분리라는 형식만을 도입한 것이다. “인물들이 세 개의 다른 캔버스에 그려진 다면 스토리텔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그의 말과 같이, 베이컨은 각각의 패널에 인물을 그림으로써 이미지들 간의 연결을 막고, 삼면화의 분리된 패널이 지닌 ‘고립‘의 특성을 중점적으로 차용하고자 하였다.
4. 왜 삼면화를 하게 되었는가? 사실 내 경우에 삼면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세 개의 캔버스가 있고, 당신이 그것을 오 랜 전통과 연관시킬 수 있겠다. 그러나 내 작품의 경우를 보자면, 삼면화는 필름위의 연속적인 이미지들 의 개념에 더 들어맞는다. 주로 세 개의 캔버스를 사용하지만, 거기에 계속 덧붙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5. 1944년에 그렸던 「십자가에 못박힘을 기초로 한 세 인물 연구」란 제목의 삼면화를 1988년에 다시 개작하였다. 난 늘 좀 더 큰 판형으로 그 그림을 다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일을 하기로 결 심했다. 그런데 난 정확히 똑같은 작품을 재창조하지는 않았다. 그건 1944년 판과 비교해 색채에서 약 간의 변형이 있었다. 첫 번째 판에선 오렌지색이 압도적인 반면에 두 번째 판에선 붉은 색이 두드러진다.
* 인터뷰 David Sylvester : The Brutality of Fact Miriam Gross. “Bringing Home Bacon.” Observer Michel Archimbaud. Francis Bacon in Conversation with Michel Ardhimbaud
1944년 세 폭 그림을 개작한 두 번째 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옆에 있는 형상들의 세 습작,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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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칼더
Calder, Alexander
“공간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유로운 물체에 대한 아이디어가 내게는 형태의 이상적인 근원으로 여겨진다.”
Asymetrie 89×59cm, 석판화, 소장처_아트블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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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 80×60cm, 석판화, 소장처_아트블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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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칼더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30년대 유럽에서 몬 드리안과 뒤샹, 미로 등의 현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기하학적 추상이나 유기적 형태 등의 개념에서 영 감을 받아 자신만의 영역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가 만들어낸 모빌은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를 적용시 킨 결과물인 동시에, 자연물에서 모티브를 따 생태적이고 유기적인 형상을 띠는 움직이는 입체조각이다. 칼더는 1927년 파리의 작업실에서 조각을 하면서 취미삼아 나무와 철사를 이용해 장난감 같은 동물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을 가지고 매주 소형 서커스를 연출하였는데, 파리의 많은 주요 미술가들 과 문필가들이 이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관람자 중에는 몬드리안, 미로, 뒤샹, 르 꼬르뷔지 에 등이 있었고, 이들과의 교류는 칼더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작은 조각상들과 연속적인 선 으로 그리는 드로잉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칼더는 이내 철사를 이용한 조각들을 만들면서 ‘모빌’을 탄 생시켰다.
1. 모빌 작품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26년에 나는 파리에서 어떤 유고슬라비아 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내가 역학적인 장난감을 완성 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사람일 거라고 내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모빌을 시작하게 된 것은 몬드리안의 그 림을 보고 난 후이다. 나는 1930년 서커스 공연을 통해 그를 만났고 그의 집에 초대되었는데, 그가 캔 버스와 벽에 그려놓은 다양한 색의 직사각형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추상적인 그림 을 그려보려고 했지만 2주도 못가서 다시 조소 재료들에 매달렸다. 공간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 유로운 물체에 대한, 그리고 다양한 크기와 밀도, 색채, 온도에 대한 아이디어가 내게는 형태의 이상적 인 근원으로 여겨졌다. 2. 그렇다면 작품에서 색상은 어떤 역할들을 하는가? 색은 2차적인 것이다. 나는 모든 사물들이 다르게 구별되기를 원한다. 검은색과 흰색이 먼저이고, 그 다 음은 빨간색이고, 그 나머지는 모호하다. 혼합색이나 중간색은 윤곽의 선명함을 흐릿하게 만든다. 나 는 가장 큰 대비를 이루는 색인 검은색과 흰색을 주로 사용해 왔다. 빨간색은 기타 원색들처럼 이 두 가 지 색과 또 다시 최대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색의 구별 기능이지만 나는 모든 것을 빨갛게 그리고 싶을 정도로 빨간색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가끔 1905년 야수파의 화가가 되기를 원하 기도 한다. 3. 어릴 적 엔지니어링 교육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가? 엔지니어링은 모빌의 메커니즘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잡해 보이는 것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내 작업이 기술적인 것과 크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미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4. 자연과 현대기계문명 중에서 당신에게 더 영향을 주었던 것은 무엇인가. 자연이다. 사람은 자연을 보고서 그것을 모방하려 한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원구와 원이다. 내 작품에 서 형태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우주적 시스템을 닮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주에서 떠다니는 독 립적인 동체처럼... 나는 원반을 통해 그 형태를 표현하고 변형시킨다. 나의 전체 미술이론은 형태와 무 게, 그리고 운동의 상위성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 내 삼각형들은 비록 변형된 형태를 지니고 있기는 하 지만 원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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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적 정신에서 나온 움직이는 오브제와 미국적인 밝은 색채를 지닌 칼더의 작품을 보고 뒤샹은 ‘모빌 (mobi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를 본 장 아르프는 이전의 칼더 조각들을 ‘스태빌(stabile)’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이후 공공조각으로 입지를 굳힌 거대한 스태빌 작품과,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있 는 것처럼 보이는 모빌 작품은 칼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5. 움직이는 모빌 작품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육중한 스태빌 작품 역시 균형을 맞추는 원리가 가장 중 요할 것 같다. 나는 작품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 있어서 삼각형을 가지고 이쪽과 저쪽 끝에 무게를 더하고 수직선을 여러 번 그려가며 중력의 중점을 찾는다. 직사각형은 쓰지 않는데, 이는 그것이 움직임의 여부를 두지 않 고 멈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직사각형을 쓸 때는 작품을 고정시키거나 움직임을 막고 싶을 때이다. 6. 작품을 제작하는 의도에 있어서 스태빌과 모빌이 어떻게 다른가? 스태빌이 움직임을 내재한 전통 회화의 개념으로 돌아가는데 비해, 모빌은 스스로 실제의 움직임을 가 지고 있다. 한 예로, 바젤미술관에 있는 나의 스태빌 작품은 많은 삼각형과 거대한 아치형이 서로 기대 어 균형을 맞추고 있는 형태로, 관람자들이 걸어서 통과할 수 있다. 이처럼 관람자는 스태빌 주위를 돌 아다니면서 작품을 감상하지만, 모빌은 관람자 앞에서 실제로 춤을 춘다.
* 인터뷰 From The Artist’s Voice : Talks with Seventeen Artists, Harper & Row, New York and vanston- Katherine Kuh
The Black Elephant painted Bronze Mobile, 소장처_아트블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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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바자렐리
Vasarely, Victor
“운동은 구성이나 특정 주제가 아니라 바라보는 행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Vega-Bi-Arct 50×50cm, 실크스크린, 1970-1976, 소장처_아트블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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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바자렐리는 엄격한 규칙과 도식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혼란과 같은 망막의 반응을 작품의 소재 로 삼은 옵티컬 아트(Optical Art, Op Art)와 공간속에서 실제 움직임을 구현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는 중요한 미술경향을 형성한 미술가이다. 그가 본격적인 예술가 교육을 받기에 앞서 의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25년 학사학 위 취득 이후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2년 여간 의학을 공부하며 습득했던 체계성, 객관성 등과 같은 규칙 적이고 엄격한 과학성은 바자렐리가 평생에 걸쳐 고수한 탐구 주제였다. 1929년 부다페스트의 바우하우스(Bauhaus)라 알려진 뮤엘리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예술 학업을 계속 한 바자렐리는 말레비치나 칸딘스키 등이 추구한 현대적인 색채 이론과 시각 이론을 접하고 다양한 시 각적 형태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듬해 파리에 정착한 바자렐리는 검은색과 흰색의 시각적 교차로 사물 을 단순화하고 도식화며, 기하학적 패턴을 구성하는 그래픽 작업에 몰두한다. 당시 Belle-Isle라는 섬에서 자주 휴가를 보냈던 바자렐리는 그곳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부 터 내적 기하학(internal geometry)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형태와 색상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과, ”모든 형태는 색채를 위한 베이스이고, 모든 색채는 형채의 속성(attribute)이라는 것 을 확신하였다“고 밝혔다. 이 시기의 그는 대부분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색채의 변화를 주고 선의 교차 와 변형된 형태를 재개하였다.
Cebras 92×116cm, 캔버스에 유화, 1950
“우리의 관심은 가슴이 아니라 눈의 망막(retina)이다.” 1955년 파리에 있는 드니즈 르네 갤러리에서 “움직임(Le Movement)”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개최되 었다. 바자렐리, 뒤샹, 만 레이, 칼더 등 당대의 실험적 예술가들은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작품으로 선 보여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바자렐리는 「황색 선언문」(Yellow Manifest)을 발표하였다. 그는 선언문을 통해 새로운 미술이 란 평균된 형태, 모듈, 그리고 색채를 활용하는 것이라 역설하였다. 이처럼 조형단위의 재현성에 있어서 독립된 색채와 형태의 특징을 궁극적으로 구현하는 특징은 러시아의 구축주의와 바우하우스 등 당시의 기하학적 추상의 경향을 이어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바자렐리는 움직이는 현상에 관해 작업하는 키네틱 아트 화가들이 추구할 예술의 목적을 밝혔다. 즉, 대상 그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도 시각적 자극 과 착시만으로 어떤 움직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관람객은 작품 속 요소들이 팽창하고 수축하거나 파도 처럼 물결치는 형태로 움직이는 듯 한 착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2차원의 평면에 구체적인 움직임의 효과를 도입하기 위해서 바자렐리는 그만의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 는 먼저 원근법을 대립시키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는데, 면과 면, 형태와 형태 사이에 거리감을 주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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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크기의 차이를 극도로 과장하였다. 엄격하게 계산된 크기의 변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최대한의 입 체감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방법은 강렬한 색상의 대조를 통해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평 면에 그려진 색채와 형태의 연쇄적 구조가 우리의 망막에 와 닿는 자극에서 비롯되는 움직임, 즉 시각적 (optical)인 착시에 주목하는 이러한 예술이 바로 옵아트이다.
“ 도시와 미래의 조형예술은 본질적으로 키네틱하고 다차원적이며, 공적이고 완전히 추상적이며 과학 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에게 있어 움직임이란 요소는 예술의 영역에서 나아가 도시와 미래를 결정짓는 이념의 소산이다. 세 계를 순수한 형태와 색채만으로 표현해내기를 꿈꾸었고 자신의 조형언어로 이를 실현시켰던 바자렐 리의 세계는, 1976년 프랑스 액상프로방스에 바자렐리 파운데이션이 설립되면서 구체적이고 실제적 인 국면을 맞았다. 특히 예술의 순수성과 독자성을 고수하면서 작품의 조형성을 대중화시키려고 했던 그의 의지는, 옵아트를 일상생활 및 의상 디자인이나 건축 구조물 등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바자렐리 작업노트
Feny Arny 80×80cm, 캔버스에 아크릴, 1970-1976,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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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biography
고 낙 범 Kho, Nak Beom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010 2007 2006 2005 2002 2001
Color Pause, 코리아나미술관 space*c, 서울 멜랑콜리아, 리안갤러리, 대구 5각(형), 카이스갤러리, 서울 갤러리아 뮤즈, 갤러리아 백화점, 수원 비온 뒤, 두개의 모나드(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 가나아트포럼스페이스, 서울 리메이크 ‘홋카이도의 홋카이도’, 야마구치갤러리, 도쿄, 일본 홋카이도의 홋카이도, 프리스페이스 프라하, 삿포로, 일본 개인의 작은 신화들(프랑스 작가 이방 르보젝과 함께), 한림미술관, 대전
주요 기획전 2011 2009 2008 2004
추상하라!, 덕수궁미술관, 서울 Alogon Affair, 학고재갤러리, 서울 Ultra Skin, 코리아나미술관 space*c, 서울 리얼리티 - 자화상, 자하미술관, 서울 반응하는 눈_디지털 스팩트럼,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팝아트의 세계,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성남 월웍스, 카이스갤러리, 서울 국경을 초월한 미술의 모험, 홋카이도미술관, 삿포로, 일본
김 명 숙 Kim, Myung Sook 주요 개인전 2010 2008 2006 2003 1999
사비나미술관, 서울 금산갤러리, 도쿄, 일본 금호미술관, 서울 스페이스 몸, 청주 금호미술관, 서울
주요 기획전 2009 2006 2005 2004 2003 2002 1999
3인전, 베를린, 독일 한국미술 100년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금호미술관 개관 15주년 기념전, 금호미술관, 서울 한독여류교류전 Giegen, 독일 신체풍경전, 로댕갤러리, 서울 지독한 그리기,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미스테리전, 갤러리 사비나, 서울 식물성의 사유전, 갤러리 라메르, 서울 산수풍경전, 선재미술관,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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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욱 Kim, Jung Wook 덕성여자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08 2006 2004 1998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갤러리 피쉬, 서울 금호미술관, 서울
주요 기획전 2011 2010 2009 2008 2007
Reopen at Hanmam,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비형식의 논증, 자하미술관, 서울 Inside & Outside - 김정욱·천성명 2인전, Unseal Contemporary, 도쿄, 일본 젊은 모색三十,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수맥의 초상 2009 - 한·일 두 개의 오늘, 홋카이도 도립근대미술관, 홋카이도, 일본 안창홍·김정욱,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Emotional Drawing, 소마미술관, 서울 신소장품 200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A Perspective on Contemporary Art 6 : Emotional Drawing, 동경국립근대미술관, 도쿄 / 교토국립근대미술관, 교토, 일본 여성 60년사, 그 삶의 발자취(여성부건국60주년기념전), 서울여성플라자, 서울 37 31′ N 126 58′ E Seoul, Archeus Gallery, 런던, 영국 hommage100(한국현대미술1970-2007), 코리아아트센터, 부산 한국화 1953-2007,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도시조망 : 서울, ifa갤러리, 슈튜트가르트, 베를린, 독일
박 혜 수 Park, Hye Soo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011 2010 2009 2008
Project Dialogue vol.1 - 꿈의 먼지, 금호미술관, 서울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포스코 미술관, 서울 Missing, 갤러리현대 윈도우갤러리, 서울 Into Drawing 10 - Dialogue, 소마드로잉센터, 서울 잠겨있는 방, 갤러리원, 서울
주요 기획전 2011 2010 2009
SeMA 2010 이미지의 틈,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신진기예, 토탈미술관, 서울 프로포즈7, 금호미술관, 서울 Close Encounter,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HOME, 아오모리 현대미술관, 아오모리, 일본 인천여성비엔날레,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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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 원 Yang, Dae Won 세종대학교 화학과 졸업, 동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0 2009 2008 2007
의심Ⅱ, 동산방갤러리, 서울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웨이방갤러리, 서울 의심, 사비나미술관, 서울 Seoul Fine Art Show - 한국미술 현장과 검증, 예술의 전당, 서울 제1회 인사미술제 - 단순과 복잡, 동산방갤러리, 서울
주요 기획전 2010 2009
2010 KIAF(동산방갤러리), 코엑스, 서울 2010 싱가폴 아트페어(심여화랑), Suntec, 싱가폴 양대원·정정엽 2인전, 심여화랑, 서울 Asian Art Top Show 2009 Art Fair, 중국국제무역센터, 중국 변신, 사비나미술관, 서울 Cow Parade Seoul 2009, COEX, 서울
임 영 길 Yim, Young Kil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 판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1999 1996 1992 1986
인사갤러리, 서울 빅토리아 예술대학 화랑, 멜버른, 호주 뉴욕주립대학교 미술관, 뉴욕, 미국 관훈미술관, 서울
주요 기획전 2010 2009 2007 2006 2005 2001 2000
현대판화의 지천명 - 성찰,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 충북 전통매체와 새로운 매체 - 그 길항의 여정, 영은미술관, 경기 “언어의 날개”: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북아트, 샌프란시스코 북 센터, 미국 국제현대멀티플아트전, 경남도립미술관, 경남 미디어엣지, 사디 스페이스갤러리, 서울 세화견문록,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리메이크 코리아, 스페이스씨갤러리, 서울 디아나의 노래, 한국문예진흥원미술회관, 서울 신소장품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Millennium Grafica 요코하마국제판화전, 요코하마미술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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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현
Chung, Hyun
파리국립고등미술대학교 조소과 졸업 홍익대학교 조소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주요 개인전 2009 2008 2007 2006 2004 2001
Today Art Museum, 베이징, 중국 학고재갤러리, 서울 Gaierie Tokyo Humanite, 도쿄, 일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김종영미술관, 서울 금호미술관, 서울
주요 기획전 2010 2008 2007 2005 2004 2003
젊은모색30주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경기도의 힘, 경기도미술관, 경기 2인전(Chung-hyun, Ashton), IBU Gallery, 파리, 프랑스 앤터포즈, 이영미술관, 경기 Salon du Dessin Contemperain Paris, 파리, 프랑스 인생유형시, 포스코미술관, 서울 공간을 치다. 경기도미술관, 경기 일·한 현대미술초대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일본 올림픽미술관 개관 기념전(정지와 움직임), 올림픽미술관, 서울 1회 북경 비엔날레, 중국미술관, 베이징, 중국
프란시스 베이컨 Bacon, Francis
(1909~1992)
1933 1934 1937 1945
런던 런던 런던 런던
메이어 갤러리 기획전 트랜지션 갤러리 첫 개인전 Agnews 갤러리 기획전 Lefevre 갤러리 전시
1946 1949 1954 1955 1962 1963 1966 1967 1971 1975 1985 1989-1990 1996
Lefevre, Redfern 갤러리, Anglo-French 아트센터 기획전 런던 한오버갤러리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초대작가 런던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첫 회고전 런던 테이트 갤러리 회고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독일 서부 지겐도시 루벤상 수상 미국 피츠버그 세계박람회 카네기 미술대상 수상 프랑스 그랑 팔레 개인전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 <Recent Paintings:1968-1974>전 런던 테이트 갤러리 회고전 뉴욕 현대미술관, 워싱턴 DC 허시혼박물관과 조각공원, LACMA 회고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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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칼더 Calder, Alexander
(1898~1976)
뉴욕 아트스튜던트 리그 스티븐스 공과대학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1931 1932 1937 1943 1952 1958 1964 1965 1966 1975 1976
베네치아 비엔날레 조각대상 뉴욕 아티스트 갤러리, 첫 유화 개인전 파리의 작업실에서 서커스 모형 완성, 공연 뉴욕 7번가에서 찰스 서커스 공연 Weyhe Gallery에서 철사조각 주요작품으로 첫 개인전 파리 Galerie Billiet-Pierre Vorms에서 개인전 “Abstraction-Creation” 아티스트 그룹 합류 Percier 화랑에서 기하학적 추상 구조물 작품 개인전 2월 파리 버그농 화랑에서 움직이는 조각 전시 뉴욕 피에르 마티스 화랑, 호놀룰루 미술학교 <환상미술 - 미로와 칼더>전 뉴욕현대미술관 회고전 베니스비엔날레 조각 부문 최우수상 카네기 국제전 1등 밀라노 나비글리오화랑, 베니스 카발리노 화랑 <과슈>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파리 매그갤러리에서 ‘모빌‘과 ’스태빌’을 결합한 ‘토템’ 연작 발표 자서전 출판 U.N. 평화상 수상 뉴욕 휘트니미술관, <Calder’s Universe> 회고전
빅토르 바자렐리 Vasarely, Victor
(1908~1997)
뮤엘리 아카데미 포돌리니 볼크만 아카데미 부다페스트 대학 의학 전공 1930 1944 1955 1964 1965 1967 1968 1969 1970-1996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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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Kovacs Akos 갤러리 첫 개인전 파리 드니즈 르네 갤러리 첫 전시회 파리 드니즈 르네 갤러리, 움직임(Le Movement)전시 개최 「황색 선언문」 (Yellow Manifest) 발표 브뤼셀 미술평론가상 수상 뉴욕 구겐하임상 수상 상파울로 비엔날레 1등상 뉴욕현대미술관 <The Responsive Eye> 기획전 프랑스 문화부, 예술과 인문기자로 위임 도쿄 비엔날레 외무성 장관상 폴로니아 제2회 국제 판화비엔날레 자유소재 1등상 부다페스트 <부어오르기> 회고전 남프랑스 고르드에 바자렐리 교육미술관 설립 (폐관)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에 바자렐리 재단 설립 고향인 헝가리 페치에 바자렐리 미술관 개관
STUDY 2011. 7. 27 Wed - 9. 2 Fri
기획 총괄 기획 진행 교육·홍보 진 행 테크니션
이명옥 (관장) 강재현 (전시팀장) 박민영 (에듀케이터) 김소정, 민지영, 진은지, 최재혁 (인턴큐레이터) 박노춘
발행처 발행인 디자인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kc communication T 02_2277_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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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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