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콜렉션
2002
GALLERY SAVINA
www.gallerysavina.com ←경북궁
우110-2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736-4371/ 2, 736-4410 Fax 02-736-4372 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좌측 (종로경찰서 맞은편)
조계사↓
백상 기념관 •
풍 문 여 고 •
갤러리사비나 걸스카 안국역 우트 1번출구● 회 관
하나은행 주차장
•우체국
• 안국역● 인사 • 종로경찰서 동 길 크라운 베이커리 주차장 ↓
원서동→ 낙원 상가 ↓
안
창
홍
Ahn,Chang-hong 죽음의 콜렉션
2002년 10. 14(월) - 11. 10(일) Opening : 2002. 10. 14(월) pm5:00
안창홍 2002 이작품집은어떠한경우에도저작권자및화랑의동의가없이는 전체로나부분으로나복사·복제또는사진및기타정보기기에의해 이용하실수없습니다. 전시기획 갤러리사비나 우110-2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736-4371/2, 736-4410 Fax 02-736-4372 사진│서용돈 H.P 017 743 1150 평론│성완경/미술평론가, 인하대 교수 편집│K·C기획 Tel. 02 2277 5246
표지그림
기념촬영-노랑나비 팔랑팔랑, 182×217.2cm, 사진 위에 드로잉 잉크, 아크릴릭, 2002
GALLERY SAV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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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창홍, 죽음의 콜렉션
안창홍의 작업에서 죽음은 거의 생애적 주제라고 할만큼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왔다. 마치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외상(外傷)이나 천형(天刑)처럼 혹은 로망스처럼, 그것은 초기작 이후 내내 그의 그림에 강박과 멜랑콜리의 그림자를 드리워 왔고, 다양한 형식의 탐닉과 관조의 대상이 되어왔다. 때로는 광폭하게 자학적으로, 때로는 냉소적이고
성 완 경 / 미술평론가, 인하대 교수
도발적으로. 혹은 화려하게, 혹은 우울하면서도 부드럽게. 때로는 푸르스름하게, 때로는 분홍빛으로. 때로는 핏빛이나 비로드의 빛, 살갗의 빛으로, 때로는 잿빛이나 별의 빛, 뼈의 빛으로.
1 2002년 9월 15일 일요일 밤. 안창홍은 부엌 냉장고로부터 죽은 새의 시체를 하나 가져다 보여준다. 박제하려고 냉동실에 오랜 동안 보관해 두었다는 딱다구리의 시체다. 숲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 했다. 약간 축축하고 차가운 날개 죽지의 촉감이 손바닥에 느껴진다. 좌우 비대칭으로 가슴 높이 깨에 올려 붙은 두 다리와 그 끝의 오그라진 회색 빛 발가락들. 그리고 머리 위 중앙에 모여있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운 선명한 붉은 색 깃털들. 안창홍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꼭 같은 애정을 보인다. 보고 만지고 말하는 것이 의사 같기도 하고 생태연구자 같기도 하다. 또 화가답기도 하다. 죽은 것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산 것을 대하듯이 대한다. 생생한 호기심과 주의력. 그리고 탐욕스런 심미안. 안창홍에게 있어 자연은 생존과 죽음의 수많은 사건들, 생존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생존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사건들의 교차가 끝없이 이어지는 극장이다. 자연에서의 죽음이 모두 삶으로의 순환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그가 안 것이 꼭 최근의 고비사막 여행 이후인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오래 전, 그때가 아마 그가 양평에 정착한지 (벌써 거의 13년인가 되었다) 얼마 후였을 것이다, 그는 한 봄에서 다음해 봄까지 사계절이 한번 바뀌는 걸 그대로 보고 냄새 맡고 느끼면서 생명의 덧없음과 그 피고 지는 영고성쇄를 더 느끼게 되었다는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생태의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소리로 냄새로 알아내는 데 있어 그만한 관능을 가진 사람을 나는 익히 보지 못하였다.
안창홍의 작품에서 이런 주제의 최초의 표현은 1976년의 <화장막에서>와 <병실>과 그 직후의 <인간 이후>연작 그리고 1980년부터 83년까지의 <가족사진>연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가족사진>연작들에서 가면 같은 얼굴들이나 검게 뚫린 눈들은 시간과 기억의 관계, 존재와 죽음, 두려움, 상실, 폭력성 등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그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위험한 놀이> <전쟁> <새> <얼굴> <가면>연작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 그의 작업에서 이미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그가 일상의 표면 너머 죽음의 감추어진 얼굴을, 더 정확히 얘기하면 죽음과 권력과 성과 폭력, 그리고 죽음과 기억과 금기, 시간 등의 상호관계를 일찍부터 민감하게 읽어내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그가 보여주고 있는 세계는 특이한 이중구조로 찢겨져 있는 세계이다. 일상의 거죽 밑에 감추어져 있는 공포를 그리므로써, 아니 일상의 거죽 그 자체에서 공포가 느껴지게 그리므로써 결국 가족 사회 등 인간관계 깃들여 있는 상처를 그리는 것이다. 상처를 내는 자와 상처를 입는 자는 꼭 같은 무모함과 불안에 의해 지배된, 결국 공포에 의해 지배된 세계 속에서 함께 만나고 있다.”(졸고, 1983) 이 시기 작업들은 불구, 고독, 상처, 반항, 연민 등 멜랑꼴릭하고 감상적인 낭만성이나 저항적이고 도발적인 공격성이 짙게 느껴지는데 이런 성격은 작가의 개인사적 배경과 그 속에 감추어진 어떤 정신적 외상과 연관된 것일 수 있다. 초기작에서의 이 같은 죽음의 이미지는 개체와 집단의 관계 즉,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이 <인간과 죽음>에서 얘기하는 죽음의 인식과 개체성의 표명 사이의 관계, 사회적 억압에의 복종(산다는 것은 바로 집단에 깊이 소속되는 것이다)과 금기의 위반 사이의 관계라는 시각에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권력, 집단과 개인, 폭력, 고독감,
“귀를 간지럽히는 온갖 벌레 소리들. 초록 수풀 사이를 나풀거리는 별박이세줄나비와 노랑나비. 쥐똥나무 잔가지 사이를 후룩 후루룩 나르는 박새 날개짓 소리. 배추흰나비 애벌레 나뭇잎 갉아먹는 소리. 아작 아작 풀무치 씹어 삼키는 사마귀 소리. 두눈박이 쌍살벌 꽁꽁 묶어놓고 너무 기분이 좋아 왕거미 줄 퉁기는 소리. 지익 지이익 늦털매미 울음소리. 귀뚜라미, 여치 날개 비비는 소리. 진딧물 궁뎅이 단물 받아 삼키는 개미 목에서 나는 소리. 고추잠자리 암수 성기 비비는 소리. 하루살이 숨 넘어가는 소리. 작업실 유리창에 머리 박고 떨어지는 오목눈이 두개골 부서지는 소리. 열나게 전리품 물어 나르는 일개미 발자국 소리. 소나무 아래 몰락한 개미 왕국의 사지 짤린 개미들의 비명 소리. 장수하늘소 참나무 갉아먹는 소리. 네점박이노린제가 바늘 같은 주둥이를 보라금풍뎅이 갑옷 사이 겨드랑이 속에 깊이 박고 쭈욱 쭈욱 체액 빨아먹는 소리. 두더지 삽질하는 소리와 그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지렁이 가쁜 숨소리...” 해가 내리쬐는 그의 뜨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에, 이 모든 사건들, 느낌들에 그는 관심이 많다.“아직 내가 모르는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또 다른 사건들도 궁금하다. 애기똥풀의 노란 수액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고 노란 수액의 빛깔이 어떻게 그렇게 선명할 수가 있는지 더 궁금하다. 일상 속의 이 모든 것들, 머지 않아 소멸될 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이 세상의 모든 죽음들에 나는 이끌린다.”위 딱따구리 시체를 본 날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안창홍이 이번에 갤러리 사비나에서 보여주는 작업의 대부분은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관심과 생명에 대한 관심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관심이 작동하는 방식이 동일하지는 않다. 하나는 생존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의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이나 금기로서의 관심이다. 즉 권력, 폭력, 성, 금기, 기억 등에 작용하는 힘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다.
냉소, 도발, 저항, 성, 죽음 등 안창홍 작업의 주제의 지속성이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설득력 있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88년 양평에 이사온 후 이어진 다양한 작업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의 대면을, 혹은 죽음과 삶의 현대적 대면의 양상을 보여준다. 우선 철학적이고 우주적인 통찰과 자연으로의 회귀가 이 시기의 새로운 특징이 된다. 더욱 본질 회귀적인 운동과 열려진 정신성, 개인적 원초성, 냉소적이고 저항적인 객기, 과장된 절박감과 공격성으로부터 더 보편자적이고 우주적인 세팅으로서의 밤의 명상성과 신비성으로의 이동. 또 한가지 이 시기 작업의 특징으로 주제와 표현 형식 모두 많이 확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녀 간 애정, 도시 풍속도, 개인주의적 쾌락 등 성애적, 소비적 카니발리즘의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어둠과 죽음의 냄새. 한편으로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우주적 명상이,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사회의 자본, 권력, 위선 성 등에 대한 폭로적 공격과 도발, 혹은 그 반대로 도시의 천박하고 유치하고 통속적인 삶의 양상들과 그 생명력에 대한 화려하고 도발적인 긍정이 공존한다.‘폼나고 당당한 것들보다, 가벼운 것, 하찮은 것, 유치한 것, 천박한 것, 통속적이고 별 볼 일 없는 것, 은폐되고 금기시된 것들’과‘보이는 것의 뒷면, 감추고 싶은 것의 안 쪽, 바른 것 속의 뒤틀림, 하찮음 속의 고귀함, 천한 것 속의 당당함’등에 그는 이끌린다. 소비사회이든 환경 생태이든, 혹은 존재론이든, 성 풍속이든, 자본의 탐욕이나 도덕적 위선에 대한 조롱이든, 도발적 폭로와 긍정 사이를 오가며 그는 때로는 엽기적으로, 때로는 탐미적이고 컬트적으로, 때로는 리얼리스트로, 때로는 초현실주의로, 정물과 누드와 인물과 사진작업과 꼴라쥬와 드로잉으로 폭넓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잠재적 혹은 은유적 형태로 죽음, 성, 권력, 폭력, 생명 등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최근에 올수록 점차 넓은 진폭으로 자유롭게 이 주제들을 다루어왔다고 할 수 있다.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에서 죽음은 삶의 비밀을 의미한다.”그만큼 죽음은 깊은 주제다. 프랑스의 아날학파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 인류학자인 필리프 아리에스는“죽음은 우리가 끊임없이 그 실체를 확인해야 하는 가장 위대한 실존적 진리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에 따르는 허무는“더 이상 거의 정확한 기하학적 허무가 아니며, 의식의 발전과정 속에서 두터운 지속성과 징후로서의 위력을 획득한다.”라고 말한다. 죽음이 그 위력을 획득하는 것은 공적 영역 곧 한 사회에 통용되는 상징과 도상의 표현을 통해서다. 인류의 역사는 다양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죽음의 이러한
3 안창홍은 작업이 자기 변신과 확장을 거듭하면서, 최근 들어 그것이 내적 일관성 내지 생애적 주제에 접근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자신의 세계를 적절히 심화 확장해나가는‘안정적 운동성’을 찾아냈다고 할까. 무언가 새롭고 긴 사이클이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향의 상호교차적, 상호보완적 운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징후로서의 위력’을 표현하고 축적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죽음은 방송매체를 통해 너무
첫째, 소비사회의 욕망의 카니발리즘과 그 퇴폐성의 도발적이고
일상화되어버렸고, 병원의 한쪽 구석에서 슬며시 진행되고 있는 죽음 역시 그 절박성을 잃어버렸다.
화려한 표현.
오늘날의 죽음은 고독감과 무책임 속에서 슬며시 진행된다. 방송이나 영화, 만화 등 대중 문화영역에서
둘째, 죽음에 대한, 그리고 자연, 존재, 우주 등에 대한 철학적,
다양한 죽음의 표현이 있지만 바로크미술을 능가할만한 그 기이함과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인문적 통찰.
옛날과 같은‘인간 의식의 발전과정 속의 두터운 지속성과 징후로서의 위력’을 회복해내지 못하고
셋째, 농밀하고 자유로운 회화적 표현미학과 장인성.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죽음의 억압적 성격은 상품, 공간, 속도, 스펙타클, 자동화, 의료, 미디어, 과학, 성, 음식, 관료조직 등 사물과 생활 형식 속에 훨씬 더 일상화되고 감추어진 방식으로 스며들어
이 세 가지 경향은 동시에 합쳐져 나타나는 것이고 본능적
있다. 죽음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 간접적인 것으로 되었을 뿐 아니라, 이와 더불어 인류의 오랜 문화
직관과 농밀한 표현 미학 속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속에서 지속되어온 삶과 죽음간의 대결과 그 가능한 중재, 마음과 육체 사이의 중재의 가능성도 상심의 바다│ 40.9×31.8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실제적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래바람-고비사막가는길3 144×384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따로 떼어서 얘기하기 힘들다. 사실 안창홍은 핵심적 미덕은
바로 그 복합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창홍이 도발적이고 퇴폐적이고 화려하고 혹은 문학적이고 인문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머리로서가 아니라 손으로 그렇다고
사진은 죽음과 가면, 에로티즘과 죽음 그리고 복제와 죽음, 시간과 기억, 금기와 폭력, 박물관과 죽음, 클리셰(상투형)와 금기 등 걸리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모든 안창홍의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손이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관능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직관을 가진 손에 의해 하나의 호흡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안창홍의 작업의
지도에 관계된다. 이런 관계망을 의식하여 안창홍의 최근 작업 전체를 키워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각 작품들은 이 키워들 중 적어도 5개 안팎에 항상 걸릴
진짜 화려함은 주제나 도상학 자체가 아니라‘그리기의 관능’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지고 마무리되는 그 융합성에 있다. 그의 장인적 기량은 스트레이트하고 자신 있는
것이다. 이 배열은 그래서 이번 개별 전시작들을 그의 작업의 전모 속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것이다. 이런 특징이 작가의 어떤 삶의 형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적된 것인지를 이해해 볼 필요 있다. 그의 관능은 그냥 한가로운 룸펜 생활이나 자폐적 아웃사이더의 천재성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독립생활자로서의 삶의 구체성 속에서,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삶의 두터운 지속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고 건강한 것이다. 그는 그냥 룸펜 작가가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생물들의 생태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잘 안다. 그는 몸으로, 생물과 생물의 부딪침 속에서, 생물을 이해하고 거느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시간과 장소의 관리자, 자기 작업공간과 땅의 관리자로서의 확실한 규율이 몸에 배여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양평에서의 지난 13,4년의 생활이 이
[죽음]
[에로티즘]
=>(사진-가면-박제-가짜-수집-박물관)
=>(공격성-새디즘-마조히즘-죽음-권력)
=>(우주-순환-소멸-탄생)
=>(환각-카니발리즘-화려함-소비-청춘-불면)
=>(심장-기계-사이보그)
=>(두려움-폭력-금기-고통-상처-은폐)
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야생성과 관능은 이런 것에 기반한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연작은 안창홍이 작업실 뜨락이나 수풀 속에서 찾아낸 곤충, 식물, 새, 오브제 등 버려진 주검들의 잔해를 그린 것이다. 검은 아크릴릭 물감에 대리석가루를
또 한가지 덧붙여 말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내적 일관성과 점진적 자기 변신의 능력이란 것이다. 이것 역시 양평 정착 이후에, 더 정확히는 최근에 분명히 느낄 수
섞어서 꼭 같은 규격의 캔바스에 하나씩 그렸다. 저절로 찍혀진 프린트(화석)처럼 손의 느낌을 억제한 그림들이 수집물들을 새로운 시간 속에 가두고 박물학적 질서 속으로
있다. 그것은 오래 지속하며 변형되고 발전하는 생애적 화두 내지 체질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의 구조적이고 완만한 지속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서
고정시킨다. 흙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건조되고 분해될 이 덧없는 존재들은 탄생 때부터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었던 죽음의 시간 속으로 영원히 되돌려진다.
어떤 모티브를 취해 이것을 상호교차, 연속시키면서, 내연시키고 변용해내는 능력 말이다. 최근작을 보면 주제나 소재 선택에 적극성과 자신감이 생기고 그리고 회화적
<모래바람- 고비사막 가는 길>연작은 작년 늦가을 부산(남산화랑)과 서울(이목화랑)에서 보였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2000년 여름에 몽고 고비사막 여행을 갔다 와서
표현이 더 명료하고 정제되고 농밀해진 느낌이다. 여전한 도발성에도 불구하고 이 점이 그림에 더 확신과 안정적인 매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전보다
그린 것들이다. 사막의 들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하얀 동물들의 두개골과 뼈들에서 소재를 취한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연작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시간에 관한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면서 원숙해지고 자유로와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 긴 사이클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작 가운데 하나인 <자화상-33년 뒤>에서 안창홍은 그 객관화된 새로운 예술가적 페르소나(인격. 개성)의 탄생을 암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감이 없이는
형태의 출발은 점으로 시작한다 할 수 있다. 무수한 점의 만남, 그것이 형태가 된다. 아스라한, 아지랑이 같은 공간감을 주는 점들. 그 무수한 점들은 또한 우주에 흩어져
이런 특별하고 이상한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면 누드로 표현된, 붓을 들고 있는 작가의 자화상인데 작가의 허벅지 한곳에 구더기들이 움직이고 있다. 예전 중 3
있는 별일 수도 있다. 자연의 냉엄한 진리, 순환과 생성의 원리가, 생명을 떠난 물질을 통해서, 곧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갖고 있는, 그것들을 덮고 있는 모래들과 더불어
때 가출 직전, 차마 아버지를 찌르지 못하고 대신 자신을 찔러 자해했던 그 허벅지의 상처에 슬고 있는 구더기들이다. 구더기에 의한 상처의 유기적 분해를 통하여 안창홍은
보여진다. 말 해골은 실재와 비실재의 중간에, 이쪽과 저쪽의 사이, 껍질(잔여)과 시작의 중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랜 동안 자신을 감옥처럼 가두었던 정신적 외상으로부터의 해방, 곧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한다. 실로 33년만에.
화석화된 죽음의 이미지는 <기념촬영>연작에서 반복된다. 확대된 공적 사적 기념사진을 회화적으로 재 작업한 이 작품들에서 죽음-이미지(모든 사진은 죽음이다)는 공격적
그의 거실 벽에는 임팔라 사슴의 머리 해골이 걸려 있다. 임팔라는 고비사막과 아프리카등지에 사는 동물인데 안창홍이 고비사막 여행 때 그 두개골을 구해 가지고 들어온
사회비평이거나 초시간적 영매 혹은 초현실주의적 충격이 된다. 이미지가 대단히 충격적이다. <김치> <쌍파리채와 파리채들> <노랑나비 팔랑팔랑> <콧잔등에 파리가
것이다(그것도 본능으로 익힌 교묘하고 원시적인 밀반출 기술을 써서 싸
앉았고나>는 역사적 사진을 이용한 것이고 <봄날은 간다>1과 2는 일반 기념사진을 손댄 것이다. 전자는 대단히 공격적 풍자적이고 후자는 시적이고 초현실적이다. <눈을
갖고 들어왔다. 어쨌든). 일단 육탈은 되었지만 안전하고 완전한 해골을
감고 찍다>2에서 풍크툼(‘찌르는 것’, 언어화하기 힘든 사진의 핵심)은 중앙의 여인 손목의 시계다. 따지고 보면 이 사진들의 진정한 주인공은 시간이고 존재의 부재, 곧
모래바람-고비사막가는길1 96×195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얻기 위해 안창홍은 그것을 여러 차례 삶고 세제로 닦기를 거듭한다.
죽음이다. 이미지의 훼손과 변형은 공적 사진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의미를 띈다. 놀라운 것은 이 도상의 효과가 대단히 무대적이라는 것이고 안창홍이 그 무대감독 본능을
그러나 하얗게 건조된 완벽한 해골을 만드는 데 계속 실패한다. 부패의
가졌다는 점이다. 이 작업들은 숙성하는 데 거의 10년 가까운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10년 전에 확대 복사해놓은 사진을 계속 오랜 동안 놔 둔 채, 머리 속에서 숙성시킨
원인이 되는 유기물의 완벽한 제거가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안창홍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을 땅에 묻는다. 그랬더니 얼마 후 모든 뼈의 표면에서 구더기가
미장원의 여성 헤어스타일 모델들(전부 동일인이다)과 해골(두개골)을 하나 건너씩 반복 배치한 회화 설치작업 <헤어스타일 콜렉션>에서는 죽음 같은 거의 컬트적인
생기고 그리고 결국엔 감쪽같이 뼈만 남기고 모든 살이 분해된다.
에로티즘의 미혹이 해골의 비틀어진 미소를 동반한다. 이 그림은 굉장히 심리적인 그림이고 문화적인 해석을 요하는 그림이다. 인쇄물처럼 대단히 평면화된 그림인데, 앤디
완벽한 분해와 소멸. 구더기가, 구더기만이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
와홀과 비교하면 와홀보다 심리적인 것을 더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여인의 입가의 문드러진 루즈 자국이 많이 사람이 지나간 침대를 떠올리게 한다. 폭력. 중독. 혹은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 벽에 걸려 있는 것이 그 동물의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 현대문화의 징후로서의.
두개골이다. 이 경험으로부터 안창홍은 삶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다시
심장, 가시나무, 호랑나비, 곤충 등이 한데 얽힌 <심장>연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생존과 소멸, 탄생과 죽음의 우주적 순환에 관련된 명상 속으로 우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림 속 자신의 허벅지 상처 주변의 구더기는 바로 그
초대하는가? 나로서는 침묵을 택한다. 심장이 인간 신체의 장기 가운데 가장 기계적인 부위라는 사실만은 기억하자. 인공심장을 장착해야 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장-뤽
상처가 상징하는 그의 인생 전체에 걸렸던 외상의 완벽한 분해와
낭시는 인공심장에 관한 사유가 철학적으로 얼마나 끔찍한 고통스러운 주제일 수 있는가를 환기시킨 바 있다. <사이보그의 눈물>은 91년의 <어둠 속에 부유하는 영혼>
소멸(의 바램)에 대한 상징으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연작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여기서 그것은 더욱 영화적, 영상적 상상력(이를테면 스필버그의 <A. I.>)의 옷을 입고 있다. 사이보그의 배꼽에 달린 탯줄은 인간의 심장이 그렇듯이 꼭 같은 기계성에서 기원하고 있다.
4
<시선>연작은 도발적인 반(半) 누드 초상들인데 여기서 죽음의 환기는 훨씬 미묘하다. 엿보기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영화적 프레임, 감정이 배제된 냉소적이고 도발적인
구더기 다음엔 사진을 얘기해야할 것 같다. 아마도 완벽한 육탈(肉脫)이 불가능한 것. 죽음이면서 아직 죽음이 아닌 것. 심리학과의 결별이 불가능한 것. 그것이 사진이라고
시선, 재현의 차가운 평면성과 인공적 색채감이 우리를 성적 팡타즘과 죽음의 환기 사이의 기묘한 경계선 속으로 내몬다. 이 그림은 냉소적이고 차가운 그림이다. 엿보기
해야할 것이다. 사진의 도상성으로부터, 그것의 유령, 팡타즘, 심리학, 주술로부터 인간은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 자체가 죽음인 그것이, 항상 우리 곁에 함께 살며
시선 같은 분위기를 주는 긴 프레임. 통상적인 화가의 모델로서의 적극적 그림 그리기를 위한 포즈도 아니고, 에로티즘에 초점을 둔 그런 포즈도 아닌, 그러면서도
우리에게“너의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고 말한다.
여자로서의 (뜨거운 시선이 아닌) 차갑고 냉소적인, 약간 금속성의 (알루미늄 같은) 표정과 시선. 관계를 느끼게 하는, 그 관계의 심리적 상황의 복잡함을 느끼게 하는
인간이 사진이미지의 주술로부터 풀려나지 못하는 것처럼 현대의 모든 경험과 언어가 사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들은 사진과 영상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림이다.
위험하리만큼 큰 빚을. 현대의 미술도 또한 그러하다. 사진의 기술과 도상학과 종교학을, 그 매체론과 예술론을 떠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미술의 창작에 사진을 응용한다는
칼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전거를 탄 장난감 개구리를 그린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는 대량생산된 사물(장난감 캐릭터)의 평면성과 재현의 평면성(현대적인 디자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예술이라는 존재론 자체가 사진과 영상미디어의 편재성에, 그 권력과 모호성에 대한 인식론 없이 성립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렌더링과 인공적 색채감)이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 색채 감각과 회화적 렌더링의 기량이 정말 놀랍다. 이건 어떤 젖은 생물학(이를테면 진짜 개구리)도 그 안에 들어올
안창홍의 예술도 또한 그러하지 못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안창홍처럼 영상적 인간, 도상적 작가도 드물다. 그의 예술의 핵심이 도상성과 심리학이 아닌가.
수 없는 완벽하고도 우아한 세계, 해골보다 더 해골 같은 완벽한 죽음의 공간이다. 다시 말해 디자인과 문화산업의 아우라가 빛을 발하는 모조의 세계다. 그러나 그 재질감과
그는 본래 환각과 아니마(정령), 독심술과 영매의 작가가 아닌가. 그리고 또 에로티즘과 금기와 폭력, 이미지의 도발과 속임수, 가면과 박제와 상투형이 바로 그의 세계가
색채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개구리라는) 우화적 캐릭터의 침묵은 어떤가. 앞서 말한 죽음의 현대적 상황의 모호성에 대한 완벽한 은유일 수 있지 않은가. 죽음의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안창홍의 작업에서 사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사진이미지와 죽음과 에로티즘의 상관에 대한 주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증발. 죽음의 죽음.
기념촬영-콧잔등에 파리가 앉았고나 140×90cm, 사진위에 드로잉 잉크, 파리채(오브제), 2002
기념촬영-쌍파리채와 파리채들 180×244cm, 사진위에 드로잉 잉크, 2002
자연사 박물관 연작 기념촬영-봄날은 간다.1 140×96cm, 사진위에 드로잉 잉크, 마른식물들, 매미, 2002
방아깨비 48×48cm, 천 위에 아크릴릭, 대리석가루, 2001 말 매미 깡통 고비사막의 야생초
오목눈이 48×48cm, 천 위에 아크릴릭, 대리석가루, 2001 꼽등이 미키마우스의 두개골 잘려진 날개
헤어스타일 컬렉션中 각 48×48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심장1 227.5×180.5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사이보그의 눈물 194×97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메이드 인 차이나 194×97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심장2 227.5×161.5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시선4 116.7×41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시선3 116.7×41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시선1 41×116.7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시선2 41×116.7cm, 천 위에 아크릴릭, 2002
안 창 홍 Ahn,Chang-hong 안창홍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그곳과 인근 유천에서 유년기를, 대구와 부산에서 소년기와 청, 장년기의 일부를 보냈다. 1988년 작업실을 서울로 옮겼다가 그 해 가을 다시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삼가리로 옮겨 그 곳 선바위골에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1976년 2인전으로 첫 발표 이후 시대정신전, 삶의 미술전, 현실과 발언 동인전 등 여러 그룹 활동에 참여했고, 많은 화랑들과 미술관의 기획전, 초대전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1년 부터 지금까지 열 일곱 차례의 개인전을 치뤘으며, 이 개인전들을 통해서 인간이후 연작, 가족사진 연작, 위험한 놀이 연작, 새연작, 우리도 모델처럼 연작, 여장남자 연작,‘모래바람-고비사막 가는 길’연작 등을 발표하였다. 안창홍은 여행과 견문이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틈틈히 국내외를 여행을 하였는데, 첫 외국 여행은 1979년 여름 일본 여행이었고, 동경과 교또, 나라 등지를 돌아보았다. 그 후 10 년만인 1989년 여름, 프랑스 여러 지역과 영국,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태리,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였다. 1995년 여름에는 인도 켈커타를 출발하여 바라나시, 델리, 아잔타, 엘로라, 봄베이, 아마다바드 등지를 찾아보았다. 이듬해인 1996년 겨울, 두번째 인도 여행에서는 델리를 시작으로 아우랑가바드, 푸나, 봄베이를 거쳐 조드푸르, 자이살메르, 타르사막까지 여행하고, 특히 이 두 번의 인도 여행에서 자신의 삶과 작업에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해 여름 동아그룹의 후원으로 고고학자, 촬영 팀, 그리고 몇몇 작가들과 함게 실크로드 답사 여행을 다녀왔다. 답사 행로는 몽골(울란바토르, 호쇼차이담, 예르베니조우)에서, 카자흐스탄공화국(알마타, 타쉬켄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우르겐치,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 펜지켄트, 호젠트, 코간트), 러시아공화국(모스크바, 자고르스크, 성 페데르부르크)까지 였다. 이 여행 중 몽골평원에서 받은 인상을 지울 수 없어 2000년 여름 다시 몽골을 찾았고 울란바트르에서 고비사막까지 여행하였다. 그 때의 인상들을 연작으로 제작,‘모래바람-고비사막 가는 길’이라는 타이틀로 이듬해인 2001년 가을 부산과 서울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 해 겨울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체류하면서 화랑들과 미술관등지를 관람하였다. 한편 앙굴렘과 노르망디 쪽도 여행하였고,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반 고호 무덤앞에서 잠시 감회에 젖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2년 1월에는 중국, 중경의 가릉강, 곤명, 석림, 계림, 요산 등지를 여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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