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나팔 16호 _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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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나팔 2018· 10 · 제16호 천주교의정부교구 “뿔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실 때 울려퍼지던 소리입니다. 정의 평화 위 원 회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상,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발행인 상지종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층 •전화 031 850 1501 •이메일 upeace@ujb.ucaholic.or.kr

공론장과 대안공동체 운동, 그리고 교회 (4)

경동현 안드레아 / 의정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우리신학연구소연구실장 이러한 인식의 제고를 위해 종교 기반의 공동체 운동으로 확장 가능한 시민사회 공동체 운동의 사례를 농촌과 도시 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이번 지면에서는 농촌 지역의 사 례로 협동조합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곡성당 사례 하나만 소개하고자 한다. 2) 협동조합운동과 전곡성당 사례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협동해서 자신들의 경제적 발전 을 추구하는 조직체다.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사업을 통해 협동의 가치를 이루고자한다는 점에서 탐욕에 기반을 둔 주류 경제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은 종 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여기서는 가톨릭의 사례만 간 략히 살펴보겠다. 한국협동조합운동의 역사를 논할 때 농협이나 수협 등 정부 주도의 생산자협동조합과 달리 민간이 주도한 아래로 부터의 협동조합운동은 “신용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캐나 다 신용협동조합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은 메리놀회의 메리 가별 수녀의 지도로 1960년 5월 부산 메리놀 병원, 가톨릭 구제회 직원들의 ‘성가신용협동조합’과 같은 해 6월 서울 장 대익 신부의 지도로 시작한 ‘가톨릭중앙신용협동조합’이 그 출발이다. 부산과 서울의 두 흐름은 1963년 협동교육연구 원으로 합류했고, 적극적인 교육활동으로 신협이 활발하게 설립되었다. 이후 1972년 신협법이 제정되었고, 1973년에는 277개 조합을 회원으로 하는 신협연합회가 공식 발족하였 다. 가톨릭교회가 신용협동조합을 통해 협동조합운동에 적 극성을 보인 이유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라는 교회의 가르침과도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강 원도 원주와 충남 홍성에서 진행되는 협동적인 사회운동의 사례는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전형을 만들고 있는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곳이다. 협동조합운동의 생태계를 일구어 가는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는 지학순 주교, 장일순 선생 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교회의 관심과 참여와 관련이 깊다. 국내 사례 외에도 협동조합의 해외 사례를 논할 때 빠지 지 않는 사례가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이다. 연구자 들은 물론이고 운동가들이 몬드라곤에 주목하는 이유는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를 인간 중심 으로 재편하는 협동조합 실험이 충분히 주류 경제의 대안

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몬드 라곤협동조합, 부산과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용협동 조합운동, 협동조합의 생태계를 일구어가는 원주지역의 사 례들은 협동조합 사회화의 주역이 가톨릭교회와 깊은 관련 이 있음을 보여준다. 협동조합운동에서 종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협동의 원리로 운영되는 공동체 운동에 서 종교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지원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럼에도 협동조합운동이 교회 안에서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는 ‘1인 1표’로 상징되는 수평적인 협동조합의 문화와 성직자 중심의 교회문화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사제 중심의 교회문화에서 협동조합 활동은 사제가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8년이면 서품 20년 차인 김규봉 신부는 이곳 전곡성 당이 첫 본당이다. 원래 신학교 시절부터 노동사제의 꿈을 키워왔는데, 사제서품을 받고 보니 노동의 문제보다 농업 과 농민을 둘러싼 농적 가치를 회복하는 일에 마음이 끌려 농촌 지역에서만 줄곧 사목하고 있다. 서품 후 군종신부로 지냈던 몇 년간을 제하면 의정부교구에서 유일하게 군 단위 농촌지역인 연천에서 계속 지내왔다. 전곡으로 부임하기 전 부터 농민사목 전담신부로 활동하면서, 이 지역 시민단체와 신뢰를 쌓아 온 것이 협동조합을 일구어 가는 데도 큰 자산 이 되었다. 김 신부는 앞으로도 연천군을 근거지로 삼아 농 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그의 사목비전을 지속하기 위해 교구와도 긴밀히 논의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의정부교구 전곡성당에서 추진하 는 협동조합의 사례는 협동조합운동이 교회 안에서 확산되 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곡성당은 2016 년 봄에 진행한 총 14강(탐방 2회 포함)의 협동조합 강좌에 80여 명의 신자와 주민들이 수강한 것을 계기로 협동조합 운동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노인들이 많은 농촌 지 역의 특성을 고려해 요양·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1호 협동 조합 ‘우리랑’을 2016년 10월에 설립했다. 이어 2017년 4월 에는 두 번째 협동조합 ‘참게여울주가’를 만들었다. ‘참게 여울주가’는 로컬푸드로 지역경제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주류협동조합이다. 연천군 농산물의 소비 를 촉진하고 전통시장 살리기와 연계해 지역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창립했다.

꼭 협동조합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그는 지역에서 본당공 동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거창한 수식어 보다 구체적 실천으로 드러내는 삶을 추구한다. 2016년 10 월에는 교리실로 사용하던 성당 지하 공간을 단장해 어린이 와 청소년 전용 도서관인 ‘참게 도서관’을 열었다. 신자들 만 사용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공간을 공유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의 호응이 좋고, 도서관이 생기면서 신자 아닌 아이들과 엄마들이 본당을 찾는다며 교우들도 긍정적 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물론 기도하는 공간이 소란스러 워졌다거나, 돈 낭비라며 불편해하는 신자도 있지만, 도서 관을 찾는 젊은 부모들과 함께 공동육아, 청소년 교육 문제 등을 논의하게 된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말한다.

취재와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지속성의 문 제였다. 실제로 대구교구 구미의 ○○본당의 경우 사제의 인사이동 이후 지속성에서 문제가 드러난 사례를 발견하기 도 하였다. 전곡성당 협동조합 사례를 인터뷰하러 간 지난 해 여름, “참게여울주가”의 조합원 회의가 있어서 참관할 수 있었다. ‘참게여울주가’는 2017년 5월 말 현재 40여 명의 조 합원이 7,500여만 원의 출자금을 모았으며, 이날은 법인설 립에 필요한 절차를 점검하는 회의 자리였다. 또 회의가 열 리기 일주일 전에 조합원 5명이 일본협동조합(요양원, 양조 장, 생협)을 탐방하고 온 직후라 이에 대한 보고회를 겸하 는 자리였다. 10명 남짓 모였는데 신자가 아닌 조합원도 있 다 보니 회의는 종교색을 싹 빼고 격의 없이 자유로운 분위 기에서 진행됐다.

2015년 말 기준 연천군의 인구는 46,000여 명이다. 김 신 부는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몬드라곤의 모델을 전 곡을 중심으로 한 연천 지역에서 만들어보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몬드라곤의 인구 역시 연천과 비슷한 47,000여 명이다. 그곳은 110여 개의 협동조합과 8만여 명의 조합원 이 있는데, 스페인에서 매출규모가 7위, 고용규모가 4위일 정도다. 이처럼 튼튼한 협동의 경제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점이 그를 설레게 하는 모양이다. “노동이 자본을 통제하 고, 일하는 사람들 누구나 똑같이 1표씩의 권리를 행사하 며, 이익과 손실을 나누는 협동조합 100개 만들기”가 요즘 구체화된 그의 목표이자, 함께 협동조합을 꾸려나가는 조 합원들의 희망이라고 한다.. (그동안 연재해 주신 경동현 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곳에 교회는 언제나 현존하고자 합니다." (복음의 기쁨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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