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2020 · 02 · 제24호 “뿔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실 때 울려퍼지던 소리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상,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발행인 상지종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층 •전화 010 8599 8412 •이메일 upeace@uca.or.kr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본 진실과 거짓 김명식 요한 신부 / 전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많은 사람들이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
을 대피시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도 정부는 “잠깐 대피
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사
하는 것이니 조용하게 질서를 지키기 바랍니다.”라고 방송했
람은 매우 드물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지난 해 5월~6월
고 사람들은 2-3일 있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에 ‘체르노빌’(Chernobyl, 2019년 미국 HBO 제작)이라는 드
이라고 믿었다. 정부 당국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사고
“진실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선택하든 눈을 돌려 외
라마가 미국에서 반영되었고, 이 드라마는 미국 사회에 큰
사실을 외부에 숨겼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퍼진 방사선 물
면하든, 언제나 반드시 존재한다. 진실은 우리의 필요와 바
파장을 일으켰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체르노빌’은
질까지 막을 수는 없었기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체르노빌 원
람 체제와 이데올로기 종교에 관심이 없다. 진실은 언제나 저
HBO에서 만든 드라마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전 사고의 사실을 국제 사회에 인정한다.
뒤에 버티고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이 교훈은 체르노빌이 우
미국 텔레비전계의 최고의 상이라고 하는 에미상(EMMYS) 에서 10개 부문에 걸쳐 수상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체르노 빌’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우리는 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고 또 하다 가, 진실이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리에게 준 선물이다. 나는 한때 진실의 대가가 두려웠으나, 언뜻 보면 드라마 ‘체르노빌’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
이제는 묻고 싶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
고에 대한 내용만을 다룬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드라 마는 참사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의 패닉 상태 그
“우리가 하는 거짓말 하나하나는 진실에게 빚을 지는 겁니
나 역시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체르노빌’이 한국에서
리고 사고를 수습하는 그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재현했기 때
다. 그리고 빚을 지면 그게 언제가 됐든 그 대가를 치러야 합
블루레이 디스크로 발매되자마자 구입하여 감상하였다. 역
문이다. 그러나 드라마 ‘체르노빌’이 다루는 더 깊은 주제는
니다.”
시 소문은 그대로였다. 드라마를 감상하는 내내 한탄과 슬
진실을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 즉 거짓말로 진실을 덮으려
픔, 괴로움과 안타까움, 분노와 희열의 연속이었다. 내가 느
는 사람들과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대면하려는 사람들의 싸
우리 신앙인들은 진실의 사람들인가? 거짓의 사람들인
낀 모든 것을 이 지면에 담을 수는 없지만 한 개인으로서 드
움이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초반에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가? 모두 진실의 사람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여러
라마 ‘체르노빌’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을 이 지면에 담고자 한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거
분이 믿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진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
다.
짓의 대가는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스도의 가르침과 사랑에서 나오는 진실인가? 아니면 세상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거짓
이 여러분에게 알려준 진실인가?
1986년 4월 26일 밤 1시 23분, 소련 연방의 체르노빌 원자
대가는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고 자연의 파괴였다.
력 발전소의 4번 원자로가 폭발한다. 화재 경보를 듣고 출동
‘체르노빌’ 극 중에서 체르노빌 주변 지역의 동물들을 살
했던 소방관들은 엄청난 방사능에 자신들이 노출되고 있다
그런데 어디 거짓의 대가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
상하는 임무를 맡은 한 군인이 후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는 사실도 모른 채 화재 진압에 열중한다. 주민들은 원자로
체르노빌만의 문제이겠는가? 세월호 참사, 5.18 광주 민주
“누군가에게 총알을 박아. 그럼 넌 더 이상 네가 네 자신이
의 폭발로 원자로에서 생겨나 뻗어 나오는 파란 불빛의 아름
화 운동, 제주 4.3사건, 한국 전쟁 당시 있었던 수많은 민간
아니라고 생각할거야. 영원히 예전의 너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다움을 넋을 잃고 감상한다. 또한 어떤 주민들은 하늘에서
인 학살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자연 파괴 등,
말이지.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보면 넌 네가 그대로
떨어지는 방사능 재를 하얀 눈을 맞듯이 낭만적으로 만끽한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진실을 은
라는 것을 알거든. 그럼 넌 네가 항상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
다. 주민들은 원자로가 폭발한 다음 날에도 직장과 학교로
폐하려는 세력들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을 깨닫는 거야. 그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처음에는 세
향하며 일상을 맞는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음에도 그들
세력들은 진실을 덮기 위해서 수많은 가짜 뉴스들을 만들어
상의 거짓에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워할지
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가짜 뉴스들은 사람들이 진실
는 모르겠지만, 그 거짓에 자꾸 노출되면 그 거짓에 익숙해
문이었을까? 그것은 인간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이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만들며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
지게 될 것이다. 그 거짓에 아주 익숙해져서 마치 원래 내가
까지 상실케 만든다.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그 거짓에 속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 현장에
지 말기를 바란다. 여러분을 거짓에게서 다시 사들이며 치른
투입할 수 있었던 것, 주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가장 애썼던 실제
대가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기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정확한 정보와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인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소련 연방의 화학자 발레리
를 바란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참된 진실을 밝히는 이, 이
은폐한 관계자들과 정부 당국의 거짓말 때문이다. 그들은 원
레가소프(Valeri Legasov, 1936-1988)는 극 중에서 진실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전 폭발 36시간이 지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람들
거짓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