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나팔 2019 · 02 · 제18호 천주교의정부교구 “뿔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실 때 울려퍼지던 소리입니다. 정의 평화 위 원 회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상,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발행인 상지종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층 •전화 031 850 1501 •이메일 upeace@ujb.ucaholic.or.kr
영혼 없는 사회에서 희망 찾기
평
김명식 요한 신부 /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운정성당 부주임
사 목을 하면서 내가 주로 많이 만나는 사람들은 어린 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들이다. 이들을 만나면서 매번 생각하는 것은 ‘과연 사목자로서 나는 이 시대에 이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이다. 매번 고민하고 고민하지만 항상 고민에 그 칠 뿐이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내 능력의 한계를 개탄 할 뿐이고, 그저 답답함에 걱정과 근심만 늘어날 뿐이다. 매주 신부님들에게 전달되는 주간지 중에서 ‘빛두레’라는 주간지가 있다. 거기에는 ‘사제가 사제에게’라는 코너가 항상 제일 앞면에 실린다. 사제가 다른 사제들에게 들려주 고 싶은 이야기, 사목을 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을 담 는다. 며칠 전에는 청주교구 청소년 국장 신부님 글의 제목이 눈 에 들어와 읽어보았다. ‘성당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 ’1) 자주 내가 고민하는 질문이라 관심을 갖고 신부님의 글을 읽었다. 글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나는 청소년 사목을 공부했기에 주위에서 자주 ‘주일학 교 아이들 많이 늘었어?’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다 똑같죠!’라며 대답했다. 사실 모든 본당의 아이 들의 숫자가 줄고 있다. 하루는 더는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성당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 다. 나의 이 물음에 아이들은 놀러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장소는 학교와 성당만 아니면 어디든 그냥 좋다고 했다. 나중에 놀이동산을 가기로 하고 다음 주에는 떡볶이를 직 접 해 먹기로 했다. 떡볶이를 해 먹는 단 30분의 교리 시간 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서둘러 교리실을 나갔다. 그런데 교리실을 나가는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확 바뀌는 것이다. 교리 시간에는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교 리실에 혼자 서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교리 안 하는 것!’인가? 학교에서, 학원에서, 가정에서 교육에로의 강요를 받는 아 이들은 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는 사목이 아닌 교육만 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의 고민과 상처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나? ”
나 역시 본당에서 아이들에게 교리 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주 물어본다. 나의 이 질문에 아이들은 그저 침 묵으로 일관할 때가 많다. 그런데 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 다. “신부님, 기도하고 싶습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안 될 까요? ” 나는 그 아이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 았다. ‘그래, 나는 신부구나. 나는 함께 기도해 주는 사 람이었구나.’ 신부는 어쩌면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 라, 함께 있어주고, 함께 공감해 주고, 함께 기도해 주고, 함께 견뎌주면서,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는 말했다. ‘누군가 의 머리’ 속에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 보자’는 것 이 ‘유토피아’라면, ‘자신의 마음’에서 ‘자신이 이렇게 해 보려 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나는 유토피아를 꿈 꾸는 사람인가, 아니면 희망을 품는 사람인가? 본당 신 부들의 주보 성인라고 하는 요한 마리아 비안네(Sanctus Ioannes Maria Vianney, 1786-1859) 신부님은 자신이 발 령 받은 아르스의 본당에 가는 길에 한 양치기 소년을 만 났다. 비안네 신부님은 그 소년에게 아르스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서 이렇게 말한다. “얘야, 네가 나에게 아르스로 가는 길을 알려주면, 나는 너에게 천국 가는 길을 알려주 겠다.” 천국은 희망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신부는 유토 피아가 아니라 희망을 품으며, 그 희망을 이 영혼 없는 세 상에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중국의 작가 루쉰(Lǔ Xùn, 1881-1936)은 그의 책 ‘광인 일기(狂人日記)’에서 ‘박해 망상증’을 앓고 있는 한 미치광 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광인일기’라는 소설의 제목을 통 해서 섬뜩함을 느낀다. 그런데 내용은 더 섬뜩하다. 이 이 야기는 식인(食人)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미치광이는 자신의 형, 집안의 노비, 동네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 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가 보고 듣는 일상의 일들은 모두 자신이 곧 잡아먹힐 것이라는 공 포감의 알리바이가 된다. 이 미치광이의 말을 통해 독자는 식인의 공포를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은 사람을 잡아먹으 려 하면서도 남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그래 서 모두 의심스런 눈초리로 서로 상대의 얼굴을 몰래 훔쳐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마음 편히 일하고, 길을 걷고 식사하며, 잠을 자면 얼마나 즐거울까!” 2) 그런데 이 미치광이의 말을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 고 우리 한국 사회를 발견한다. 항상 사람을 잡아먹어 온 곳, 거기서 나도 오랜 세월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아왔다. 나의 부모 형제를, 나 의 친구들을,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그리고 자연 생태계 를 잡아먹으며 살아왔다. 그냥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먹 고, 먹히며 살아야 하는가? 먹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몰래 훔쳐보며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먹히지 않게 훈련시키고, 끊임없는 긴장의 삶 속으로, 영혼 없는 삶 속 으로 이끌어야 하는가? 과연 나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는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선한 것들을 행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아직 이 세상에는 한 번도 사람을 잡아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잡아먹은 아이들의 상처를 치 유하고 그들의 죄책감과 슬픔을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영혼 있는 이들이 어찌 다른 이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까? 영혼이 없 기에 다른 이들을 잡아먹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 데 우리 아이들은 그 영혼을 구하고 싶어 한다. 나에게 함 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아이의 말이 이렇게 들린다. “신 부님, 저와 함께 기도해 주세요. 한 주간 동안 제가 제 영 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제 영혼을 단단히 잡고서 다른 이 들을 잡아먹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우리에게 아 직 희망이 있다. 아직 함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아이 들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1) 민광호, “성당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 빛두레, 2019.01.20., 1쪽. 2) 이계삼,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녹색평론사, 2009, 20-21쪽.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는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되었고 계속해서 모든 사람 가운데에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선포한다." (간추린사회교리 60, 사목헌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