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나팔 2019 · 08 · 제21호 천주교의정부교구 “뿔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실 때 울려퍼지던 소리입니다. 정의 평화 위 원 회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상,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발행인 상지종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층 •전화 031 850 1501 •이메일 upeace@ujb.ucaholic.or.kr
현대적 의미의 정결과 평화 김승한 요셉 신부 /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토평동 주임 이제 희망을 안고 다가올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가 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의 하나인 복음삼덕, 그 중에서도 정결 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복음 삼덕이란 예수님의 삶의 세 가지 덕목을 말한다. 그 것은 바로 가난, 정결, 순명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 가지 덕목을 수행의 과제로 삼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삶의 길이 곧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 명이다.’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예 수님께서는 가난, 정결, 순명의 삶을 통해 당시 세상-인간의 삶의 모순이 담긴-을 바로 잡으려 하셨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이 세 가지 덕목은 단순히 윤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인 간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 혹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 시대나 오늘날이나 우리 사회에 항존(恒存)하는 문제는 동일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빈부 차이의 문제, 차별이나 계급의 문제, 권력 문제들은 시대를 초월해 서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면 항상 있어왔던 본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것 인데, 여기에 더해서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욕심에서 문제 들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빈부의 문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고, 계급의 문제는 사 람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고, 권력 의 문제는 자신의 존재를 더 높게 하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 이라 할 수 있다. 1)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가난, 정결, 순명의 삶을 사셨다. 그 중에서도 정결의 덕이란 단순히 독신이나 부부가 정결 의 삶을 지키는 성적인 문제로 국한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 다.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자 하는 욕 망의 절제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명령 받기 보다는 명령하기를 더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내 의도대로 혹은 내 이익대로 조종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 차별이나 계급을 형성 하게 되고, 동시에 성적인 문제로 들어와서는 다른 사람을 자기 쾌락의 도구로 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정결의 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삶을 성찰해 보면 분명 예수님은 독신으로 사셨 고, 여성들을 존중한 면을 보면 정결의 삶을 사신 것이 분명 하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모습이 정결의 덕의 참 모습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당시 예수님 의 시대는 율법적 가치에 따라 사회 계급이 형성된 사회였다.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바라사이나 율법학자들 은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고, 율법을 어겼거나 율법을 지킬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이른바 죄인이라는 낙인으로 사회 적 배제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 예수님 께서는 스스럼없이 죄인들과 어울리셨고, 죄인의 집에 들어 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친교를 이루셨다. 배제된 사 람들,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죄인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던 모습이야말로 참된 정결의 덕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멸시받던 세관장 자캐오에 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하고 말씀하셨고, ‘의 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죄를 용 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으로서 그 사람과 그 사회를 정화시키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우리 사회에는 정결의 덕이 요 구되는 현장이 존재하는가?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이다. 사 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정결의 덕이 요구 된다. 예수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차별 과 편견이 존재한다. 최근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항시 존재했던 것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 빈부, 인종, 학력, 지역 등의 차별이 존재한다. 사람들 이 서로 같을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으로 함께 모여 사는 것이 당연하고, 어쩌면 하느님의 창조의 아 름다운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름을 차별의 도 구로 사용한다면,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은 욕 구에 휩싸인다면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고 서로 간에 적대감 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의 긴장 과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차 별의 무의식은 이제 혐오라는 말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주로 혐오의 대상은 약한 주체들을 향해 있 는데, 특정한 사람들이 행하는 일탈 정도로 이해하기엔 너 무 자주 등장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차별의 의식이 혐오라 는 말로 표현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살 펴보면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갑질의 일상화 내지는 보편화가 아닐까? 갑질하면 떠오르는 것이 대기업의 오너들이나 사 회 지도층의 안하무인의 태도를 연상하기 쉬운데 우리의 일 상에도 알게 모르게 갑질이 용인되거나 혹은 내 자신이 갑질 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가령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는 데 나중에 온 사람에게 먼저 갖다 주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 게 하는가? 당당히 손님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며 종업원 을 다그치거나 심하면 혼을 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상황 에서 가만히 있으면 온당한 대접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생 각에 평소보다 과도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는 차별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어서 선망의 원동력으로 작용
하기도 한다. 우대, VIP, 프리미엄 등의 말이 그것이다. 이런 말에는 자산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로 치환되어 작용한다. 더 많은 소비의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더 많은 권한과 혜택이 주 어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은밀이 경험되는 이러한 차별이 사 람들로 하여금 더 악착같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더더욱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 소한 부당한 대우도 참기 어려워진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 는 자본주의에서 물신이 만연해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앞서 음식 주문의 예를 다시 보자. 우리가 만난 직원이 너 무 분주해서, 혹은 주인이 직원을 넉넉하게 고용할 형편이 안 되어서 내 차례가 잠시 밀렸을 뿐인데 우리는 힘들게 곤역을 치르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내가 지불할 돈의 위력을 과시하 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인 이미지로 원수를 사 랑하라 하셨다고 생각한다. 원수를 사랑하려면 원수가 누 구인지 알아야 한다. 어떤 상태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때 가 되어 적당한 조건이 이루어지면 사랑할 준비만 가지고 있 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로 알아듣는 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가 어떤 사 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비유 속에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잘못은 불쌍한 라자로에게 인색하게 한 것에 있지 않 다. 문간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 무관심이 불러일으킨 잘 못인 것이다. 문제는 보려고 해야 보인다는 점이다. 정결의 덕은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온전한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데에 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이웃도 보이고 원수도 보인다. 그리고 만약 원수가 내 멱살을 잡으려 달려든다면, 멱살 한 번 잡혀 주자! 되갚지 않으려는 용기를 내자! 그러면 사람 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야 예수님이 찾아가신 이 시대의 약자들이 보일 것이고, 악착같은 마음에 갑질의 주체가 되는 내 이웃이나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정결의 덕을 새롭게 조명 한다면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 존하는 평화의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우리에게 주 어질 평화의 시대를 관조하면서 예수님이 가르쳐준 정결의 덕 을 마음에 새겨 본다. 1)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이 세상의 문제는 물질(재화), 사람, 하느님을 자기 욕심대로 하고자 하기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물질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빈부의 문제가 생기고, 사람을 함부로 하기에 차별의 문제가 생기 고, 하느님을 함부로 하기에 권력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