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나팔 2017 · 10 · 제10호 천주교의정부교구 “뿔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실 때 울려퍼지던 소리입니다. 정의 평화 위 원 회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상,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발행인 상지종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제3호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층 •전화 031 850 1501 •이메일 upeace@ujb.ucaholic.or.kr
우물 안에 개구리가 보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평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이웃을 사랑할 것이니,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첫째가는 계명들이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띠노 규칙서의 1,1) “너희가 하나로 모여 있는 첫째 목적은 한집 안에서 화목하게 살며, 하느 님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이 되는 것이다.”(사도4,32) 이 말씀으로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규칙서는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 수도공동체 형제들은 살아가고 있습 니다. 얼마만큼 중요하면 규칙서 서두에 이 말씀을 지키라고 아 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말씀하셨는지? 사실 이 부분은 진위 논 란(알리피우스 성인의 친구)이 있지만 전 세계 아우구띠니안들 이 이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생활 전체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사랑이 살아 있는 표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수도공동체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 우리 신앙인들 안에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살아 있다 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의 말씀은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서 말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 저는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규칙서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을 사랑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 공동체의 삶이 조금은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았 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정의 활동을 소극적으 로 참여해왔습니다. 물론 사회의 중요 이슈가 있을 때 마다 공 동기도 시간에 기도지향을 기도했지만 현장에서 함께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또한, 저는 수도회 울타리를 너머에 있는 이웃과 사회 문제에 조금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사실 수도자의 삶은 기 도와 일하는 것 외에 공동체 삶의 여정입니다. “하느님 사랑” 이 부분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서 살아 왔다고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은 무관심과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미사 강론 때 사회적 이슈나 문제, 정치적 이야기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거부반응 없이 많은 신자들이 받아들이고 이해해서 함께 할 수 있는지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 이나 문제를 문제라고 지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우리 신앙인 입장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우리가 받아 드려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사회 교리 안에서 설명
해주는 것은 분명 사제나 수도자들이 해주면 좋을 것이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부족합니다. 심각하게 이웃 사랑에 대해 서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있었으며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했습 니다. 수도회 안에서 또는 주변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실천 또한 미비했습니다. 수도원 방문객들에게 반갑 게 맞이하는 것 또한 어쩔 때는 약간 귀찮아 할 때가 있고, 밖 에 일을 마친 후나 집안 청소 후에 잠깐 쉬려고 할 때 오시면 저 도 모르게 귀찮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하루 에 수 없이 수도원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친절하게 받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도원에서 이웃과 소통하는 중 요한 수단이 제 생각에는 전화입니다. 많은 전화들이 걸려오고 전화를 통해서 이웃을 만납니다. 역시 우물 안에 개구리의 모습 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고 함께 하 면 좋은데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을 핑계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제가 이웃 사랑이라는 계 명을 실천해야 하는지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저는 수도회 공동 체 정신 중에 ‘다양성’을 공동체 삶 안에서 이야기 합니다. 저의 수도회 공동체 정신 중에 “다양성” 이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형 제들의 다양성을 존중해는 주는 것이 ‘형제들 안에 계시는 하느 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수도회 규칙 서 1장 1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나 어떤 상 황, 어떤 문제를 갔다 대입해도 이 다양성이라는 부분에서는 모 든 것이 다 해석 가능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판단할 수 없고 형 제의 옳고 그름을 말하기 어렵게 합니다. 본래적 의미로서 저희 안에서 다양성 정신은 “형제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이고 내 형제를 내 이웃 같이 사랑하라는 것” 즉 하느님을 사랑 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일상 생활 안에서 수도 생 활 안에서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쉬지는 않습 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더 큰 공동체인 우리 살아가는 사회와 교회 안에 있는 이웃들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많이 어렵 습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다양성 이라는 부분 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쉽게 접근 할 수 있습니 까?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해답을 가지고 있 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 게 이해 할 것인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알고 제대 로 받아 들인다면 교회 안에 “다양성 정신” 또한 조금 쉽게 이해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
김창호 요한 신부 / 아우구스티노수도회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명확한 답은 사실 잘 모 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교리 지식이나 성경 지식이 해박하고 많이 알고 조금 알고를 떠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안에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양성을 강조해서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다 양한 입장을 가진 예수님이 우리 곁에 오시다면 우리는 분명히 12사도처럼 누를 범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겠지만, 12사도처 럼 다시 예수님께 돌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할 것입 니다.
“우물 안에 개구리”가 경험하고 있는 수도 공동체 삶 안에서 한 집안에서 화목하게 살며,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과 한 뜻이 되기 위해서 이 다양성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존중해야 한 다고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인정을 하고 이해를 완전히 하는 내적 역량(내공)을 부족하지만 부족한 것을 채워주 시는 성령께서 우리 기도 안에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너무 걱정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 시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을 한 다면 성령의 도움으로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이 지역은 한 집안이고 우리는 화목하 게 살아가고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과 한 뜻이 되도록 만들어 가 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 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하느님 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 만, 우리 모두 신앙을 가지고 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고 예수님께 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하느님의 백 성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