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나팔 2018· 4 · 제13호 천주교의정부교구 “뿔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실 때 울려퍼지던 소리입니다. 정의 평화 위 원 회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상,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발행인 상지종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층 •전화 031 850 1501 •이메일 upeace@ujb.ucaholic.or.kr
공론장과 대안공동체 운동, 그리고 교회 (1)
평
경동현 안드레아 / 의정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우리신학연구소연구실장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되고 있 다. 방송과 미디어는 물론이고 의료분야, 교육분야 등에서 공 공성 개념은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기업은 물 론 민간 기업에서조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명분으로 공공 성 개념이 자주 거론된다. 최근에는 건축, 문화 예술의 공공성 그리고 종교와 교회의 공공성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지는 추세 다. 신학계에서 공공성 논의는 주로 개신교의 논의가 주를 이룬 다. 왜냐하면 신뢰를 상실하고 침체에 빠져있는 개신교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공적,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 로운 인식의 확장을 안팎으로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면 한국천주교회는 공적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물 론 반론의 여지는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공공성에 관한 신학적 담론이 빈곤한 대신 고통 받는 사회현실 한가운데에서 다른 어 느 종교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해 왔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 현안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사회교리와 교황 회칙 등의 공식 문서로 발간되어 있고, 교황청에서부터 지역교회, 교구에 이르 기까지 ‘정의평화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설치가 제도적으로 보 장되어 있으므로 공공성에 관한 신학적 담론의 필요성이 개신 교만큼 절실하지 않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교리 와 전담 기구의 존재 여부가 한국천주교회의 공공성을 담보하 지는 않는다. 사회 현안에 대해 교회가 분명한 입장을 갖는 것 과 이를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공성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에, 단정적으로 개념 화하기가 어렵지만, 오늘날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어떠한 협박이나 위협에서 벗어나 서로 비판적인 논의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적인 삶이자, 여론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그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적인 삶을 위한 투쟁은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고 더 나 아가서는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건강한 토대이자 지표가 된다. 여기서는 공공성 개념을 사회적으로 동의 혹은 공감이 이루어 지는 공론장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공론 장은 사회 어디에나 편재하며,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의 과 정을 되풀이하는 역동적인 공간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 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천주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공적 역할
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사회의 공론장 안에 참여 하는 시민들로부터 교회가 얼마나 동의와 공감을 얻어왔는가 하는 성찰과 관련이 깊다. 먼저 한국 사회의 공론장 형성에 교 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대항 공론장 개념과 연결지어, 대안공동체 운동 사례를 통해 구체화해보겠다. 한국천주교회와 공론장의 변동 한국 사회 대중들의 동의와 공감이 이뤄지는 ‘공론장’ 안에 서 그동안 한국천주교회는 어떻게 인지되어 왔는지, 이를 통해 한국천주교회가 한국사회의 규범적 공론장을 형성하고 제도화 하는 데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알아보자. 1) 한국천주교회 창설기 교회사에서 최초로 수난을 당했던 이가 조선시대 중인(中人) 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향후 전개될 교회사의 방향이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리라는 점을 예시해 주는 것이다. 당시의 천주교 신자들 은 자신의 신앙을 통해 자기 양심, 자기 인격을 확인하고 있었 다. 그런데 당시에는 보편적 인간성이나 인격이 인정되지 않던 때였는데, 천주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다 같은 자녀요, 존엄하고 평등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애초부터 강조해왔다. 이 를 통해 볼 때 천주교 신앙은 일종의 평등사상이었다. 이는 조 선 왕조가 유지하던 당시의 신분제적 질서에 의한 권위적인 사 회 체제라고 하는 공론장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자 반대였던 것이다. 당대 권력자의 눈으로 볼 때 천주교 신앙은 일종의 혁 명 사상이었다. 유교 이념에 융통성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던 조선 사회는 천 주교의 이런 도전을 막아 낼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할 수 없었 고, 따라서 가장 융통성 없는 방법인 투옥, 고문, 매질, 사형 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에 대한 탄 압과 금지정책은 조선에 천주교가 1784년에 세워진 직후부터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1886년까지 1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1801년(신유박해), 1815년(을해박해), 1839년(기해박해), 1846 년(병오박해), 1866년(병인박해)에는 전국적인 박해가 있었고, 국지적인 박해는 수시로 이루어졌다. 그 백 년 동안에 대략 1만 여 명의 신도들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개화기에서 일제 식민 통치기까지 19세기 후반기 우리나라 역사는 일대 격변기에 처하게 된다. 1876년 조선이 일본에 문호 개방을 한 이래로(강화도 조약), 이 나라는 외세의 침략 앞에 무방비 상태로 완전히 노출되게 되었 다. 이러한 나라 상황을 직시한 조선의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국권을 수호하고 스스로 근대화를 진행시키려고 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500여년을 이어오던 조선사회의 신분제적 질 서에 의한 권위주의라는 공론장이 그 수명을 다하면서 개항 이 후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한 공론장에 등장한 것은 반봉건 운 동과 외세의 침략에 대항해서 국권을 수호하려는 반제국주의 운동이었다. 반봉건, 반제국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가치는 이 당시의 한국사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공론장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당시의 한국 천주교회를 바라볼 때도 이 두 가지 공론장이 표방했던 가치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반봉 건 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에 교회는 어떤 기여를 했고, 무슨 일을 했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 에 걸쳐 신・구교를 막론하고 1910년 이 나라에 나와 있었던 대 부분의 선교사는 한일 합방을 지지하거나 묵인, 방조했다. 한 일 합방을 지지하면서 그들은 일본의 문화적인 통치에 의해서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더 발전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특히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조선 왕조가 멸망한다는 것은, 박해시기 조선 교회가 걸어온 순교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그다지 아쉬울 게 없었던 것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일합방 이후 10년 기간의 교회의 신자 증가율이 연평균 2.10%로 이전 시기의 신자 증가율에 비해 매 우 낮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구의 자연증가율에도 미치지 못 하는 증가율인데, 이는 교회가 ‘반봉건’, ‘반제국주의’라는 당 대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 부합하지 못하고 공공성을 상실했던 것이 주된 이유라 하겠다. 다시 말해 교회가 마땅히 민족을 위 해서 봉사할 바를 다하지 못했고, 민족의 아픔을 치유해 줄 능 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신자들의 숫자가 격감한 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추후수습자/미수습자(9명) -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이영숙, 조은화, 허다윤 1반(17명) -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한고운 2반(24명) -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유림 3반(26명) -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4반(28명) -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훈,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무, 홍순영 5반(27명) -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6반(23명) -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박새도,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전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7반(32명) - 곽수인, 국승현,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8반(29명) -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면,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형우, 제새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9반(20명) - 고하영,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10반(20명) -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교사(10명) - 유니나, 전수영, 김초원, 이해봉, 남윤철, 이지혜, 김응현, 최혜정, 강민규, 박육근 일반인(30명) - 김순금, 김연혁, 문인자, 백평권, 심숙자, 윤춘연, 이세영, 인옥자, 정원재, 정중훈, 최순복, 최창복, 최승호, 현윤지, 조충환, 지혜진, 조지훈,서규석, 이광진, 이은창, 신경순, 정명숙, 이제창, 서순자, 박성미, 우점달, 전종현, 한금희, 이도남, 리샹하오 선원(6명) - 박지영, 정현선, 양대홍, 김문익, 안현영, 이묘희 선상 아르바이트(4명) - 김기웅, 구춘미, 이현우, 방현수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라."
(이사야 4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