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ISE CITY Integrated Resort 파라다이스 시티는 국내 최초로 건립되는 IRIntegrated Resort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관광 복합 리조트입니다. 호텔, 국내 최대 규모의 카지노, 컨벤션과 다양한 F&B와 리테일, 아트갤러리와 아트하우스 등 다양한 시설은 고객들에게 풍성한 경험 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간삼건축은 국내외 수많은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명성을 쌓아 왔으며, 특히 120여 수행 실적을 갖 고 있는 호텔 및 리조트 분야는 창의적 디자인과 건축적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고객으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 고 있으며, 한 번 맺은 인연을 더욱 소중히 키워 나가는 지속가능한 파트너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Completion 2018 | Location Incheon | Site Area 324,857㎡ | Gross Floor Area 307,000㎡ | Type Hotel, Casino, Convention, Spa, Boutique Hotel, Plaza, Art Gallery, F&B, Retail, Club, Wonder Box, 8-Square, Real Exhibition, Sub Culture Zone | Total Floor B2, 10F | Consortium WATG, Hawkins\Brown, MVRDV
Jeju Pheonix Island
Jeju ORA Resort Master Plan
Alpensia Resort of Daegwanryeong
WIDE AR #57
CONTENTS
PUBLISHER’S COLUMN
저널링 Journaling
[4]
[18]
건축가 정수진
PROFILE EDITORIAL
[23]
SWITCH —건축소수자 되기
[27]
PROLOGUE
[32]
MAJOR WORKS
[33]
TALK ONE. ONE DAY MET
[34]
산전수전
<이-집> 설계과정
<하늘집>
대표작
입면을 만들지 않는다. 이유는
다이어그램, 이게 뭔 짓
TALK TWO. CHARACTER
[52]
정수진이라는 사람
휘트니 비엔날레
독립, 고립
‘SIE’의 의미
파리 유학
첫 번째 기회, 아쉬움
트라우마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1
두 번째 기회, 좌절
‘E’의 의미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2
세 번째 기회, 성취
양면성, 하지만 편집증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3
중정형 주택
대학생 정수진
아뜰리에 3년, 대형 설계사무소 3년
TALK THREE. ARCHITECTURE
[86]
작업 방향
퀄리티=감리
외부 마감 재료
색깔 혹은 고집스러움
건축가가 만나는 전문가들
‘빈 곳’, 공간, 感
도면과 시공
나이>건축가<여성
퀄리티 그리고 디테일
안 되면 다 뜯는다
건축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
TALK FOUR. VISION
[114]
하고 싶은 건축 EPILOGUE
2
[120]
저널링 Journaling
PUBLISHER’S CULUMN
인천의 대표적 근대건축자산 중 하나인 중구청 건물, 바로 그 앞에 위치한 문화살롱 花요일(이하, 화요) 한뼘갤러리에서 부부 건축가 권형표, 김순주(bau architects)씨의 작은 전시가 한창입니다. (전시기간: 6월 15일~7월 31일) 인하대학교 건축과 동문이기도한 두 사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12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습니다.
0.5~6평 남짓하고 천장고도 낮아 다분히 협소한 느낌의 갤러리에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간의 작은 크기를 전시 기간으로 보상한 이 장소에서 적게는 1인, 보통은 2~3인, 많게는 6~7인이 관람하는 행태가 채집됩니다. 전시 콘텐트는 주거중심의 공간에 타 기능실을 덧대어 짓는 하우스 플러스 알파(House+α)의 공간적 속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개항장 도시 인천의 역사성이 진하게 배어있는 이 곳 주변에 건축된 근대도시 가로의 분위기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학생,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일쑤입니다. 화요가 이 자리에 둥지를 튼 건, 2년 전의 일. 짧은 시간이지만 이 작은 공간이 그새 장소성을 갖추고 지역사회에 보란 듯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화요인문말판, 한뼘 갤러리, 미니 책방, 작은 우체국, 카페의 기능을 주된 콘텐트로 담고 있는 이 작은 공간은 바닥면적의 합이 채 열 평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집의 특징은 단골손님이 많다는 것입니다. 단골이 많다는 얘기는 이미 장소가 되었다는 다른 말이지요. 기실 화요가 들어선 곳은 ‘일본풍 가로 만들기’의 대상 건물로 한때 나를 위시하여 지역 안팎의 여러 사람들이 극렬하게 비판했던 건물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늘 그 건물에 세 들어가서 문화의 향기를 뿜어내는 화요를 상찬하고 있습니다. 겉모습이 풍기는 反문화적이며 非역사적인 인천 중구의 파사드를 불식시킬 정도의 소박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이 장착된 이유 때문입니다.
글. 발행인 전진삼
4
www.101-architects.com
박춘명�1924�2017��예종합건축사사무소���대한생명보험초고층사옥��서울��1979년�1985년
기본설계도면집��1979년���건축가�기증���MC17�A�5
목천김정식문화재단 mokchon�kimjungsik�org T�02�732�1602
THE BOOK CO.
Premium Fasign Trespa
다양한 컬러와 감각적인 디자인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감에 탁월한 실용적인 소재 건축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TRESPA(고밀도 목재패널)
A Thousand City Plateaus Winner of International Idea Com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Jamsil Sports Complex
UnSangDong Architects
본지는 2010 년 이래 꾸밈건축평론상과 공간건축평론신인상, 와이드 AR 건축비평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오고 있습니다 . 우리는 한국 건축평단의 재구축은 물론 건축과 사회와 여타 장르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건축비평의 가치를 공유하는 젊은 시각의 출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새 얼굴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제8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시상내역
당선작 발표
- 당선작: 1 인 - 기타(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당선작 외에도 가작을 선정할 수 있음)
2018 년 1 월 초 개별통보 , 《와이드 AR 》 2018 년 3/4 월호 지면 발표 및 2018 년 1월 초 네이버카페 <와이드AR > 게시판 및 SNS 발표
수상작 예우
심사위원
- 당선작: 상장과 고료( 100 만원) 및 부상
수상작 발표와 함께 공지 예정
- 가작: 상장과 부상 - 공통사항
시상식
1 ) 《와이드 AR 》 필자로 대우하여 , 집필 기회 제공
2018 년 3 월(예정)
2 ) ‘건축평론동우회’의 회원 자격 부여
응모작 접수처 응모편수
widear@naver . com
- 다음의 ‘주 평론’과 ‘부 평론’ 각 1 편씩을 제출하여야 함 .
주 평론과 부 평론의 내용은 아래 ‘응모요령’을 반드시 확인하고 제출바람
기타 문의
1 ) 주 평론 1 편( 200 자 원고지 50 매∼ 100 매 사이 분량으로 ,
대표전화: 02-2235-1960
A4 용지 출력 시 참고도판 등 이미지 제외한 6 매∼ 10 매 사이 분량 .
단 , ‘주 평론’의 경우 응모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분량의 제한을
응모요령
두지 않음)
1 . 모든 응모작은 응모자 개인의 순수 창작물이어야 함 .
2 ) 부 평론 1 편( 200 자 원고지 20~30 매 내외 분량으로 , A4 용지 출력 시 2~3 매 분량)
응모자격 내외국인 , 학력 , 성별 , 연령 등 제한 없음
기존 인쇄매체(잡지 , 단행본 기타)에 발표된 원고도 응모 가능함 . (단, 본 건축비평상의 취지에 맞게 조정하여 응모 바람) 2 . ‘주 평론’의 내용은 작품론 , 작가론을 위주로 다루어야 함 3 . ‘부 평론’의 내용은 건축과 도시의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시의성 있는 문화현상을 다루어야 함 4 . 응모 시 이메일 제목란에 “제 8 회 와이드 AR 건축비평상 응모작”임을
사용언어 1 ) 한글 사용 원칙 2 ) 내용 중 개념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괄호( ) 안에 한자 혹은
원어를 표기하기 바람
표기할 것 5 . 원고는 파일로 첨부하길 바라며 원고 말미에 성명 , 주소 ,
전화번호를 적을 것 6 . 원고 본문의 폰트 크기는 10 폰트 사용 권장 7 . 이메일 접수만 받음
응모마감일 2017 년 11 월 30 일(목) 자정(기한 내 수시 접수)
8 . 응모작의 접수여부는 네이버카페 <와이드 AR >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음
역대 수상자(좌→우), 박정현-이경창 -송종열
22
ARCHITECT
JUNG SU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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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수진. 1969년생. 누군가는 이름을 듣자마자 ‘철의 여인’이라고 말했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안다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씩씩하고 단호하다는 점만큼은 공통분모에서 빠지지 않는다. 솔직함, 성실함, 올곧음 같은 말들이 어울리는 사람. 독립 후 일이 없을 때도 설계비 10원 깎아본 적 없다는 건축가. 한국의 건축 이야기들이
주로 남성들을 통해서 나오고 그 안에 많은 타협과 비겁함을 극복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부조리에 대해 ‘아니니까 아닌 거’라며 단칼에 자르고 군소리도 덧붙이지 않는 대범함이란 흔히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싫은 소리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한다’고 말하듯 소소한 외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고, 대의大義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도의道義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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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2017년 6월의 그녀에게 연락할 누군가를 위해 힌트를 남겨두자면, 그녀의 벨소리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맞다. 다만 바리톤이 부른 노래라면 그건 잘못 걸었거나 함정일 테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무관한듯 비슷하게, 대학이 건축 인생의 진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2017년의 그녀에게 건축가가 된 이유를 물어보는 것은 1989년의 그녀에게 건축과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러워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아이의 부모님이 학교에 기증한 피아노에 새겨진 ‘◦◦건축사무소’ 글자는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죠.” 하지만 영남대학교 학부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의 이력만으로는 지금의 건축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녀의 건축은 폐쇄적인 외관의 인상 이전에 스스로를 규칙 안에 구속하려는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작업에서 규율에 비중을 둔다는 것이며, 규율은 보다 과거의 전통이나 정해진 틀 안에서 시작하기 쉬운 부분이다. 파리-벨빌 건축대학교는 그 부분에 대한 좀 더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서조차 ‘건축가이자 선생님’이라고 적혀 있는 앙리 시리아니Henri Ciriani(1936–)는 한국에서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아마도 가장 보수적인 스타일의 선생들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 청강 기간에는 마지막 크리틱에 참석도 못 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그대로 귀국할 뻔했던 그녀는 필요한 시간들을 버텨냈고 선생이 졸업을 앞둔 제자에게 무한한 신뢰를 담아 건넨 ‘가서 나 버려’라는 말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는 지금도 여전한 자신감의 원천 중 하나다. 2008년 독립 후 하늘집(2011)을 완공하며 2012년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수상한다. 수상 경력은 2013년 노란돌집, 2014년 붉은벽돌집과 각설탕, 2015년 별똥집, 2016년
이-집까지 반복된다. 거기에 더해 2015년엔 한국건축가협회의 엄덕문 건축상도 수상했다. 소개받은 클라이언트는 하늘집이 유일하며, 이후 모든 클라이언트들이 이전 작업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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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왔다. 그래서 매 프로젝트에서 세상과 공유할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초기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판교 신도시 주택단지에 위치한다는 것은 일정 수준의 작업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와 함께 꼭 그만큼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예측 안에 갇히는 것과 같다. 더구나 프레임처럼 씌워진 채 답이 없는 사적 영역에서의 공공성 문제는 외부에 닫힌 태도를 취하는 듯한 그녀의 디자인에 좀 더 가혹했다. 생각해 보면 하늘집은 클라이언트 요구에 대한 성실한 대안이기도 했고, 입면을 세세하게 만지기보다는 큰 계획scheme을 먼저 정하는데 익숙한 그녀의 건축에도 적절한 방식이었다. 큰 윤곽schema이 먼저 잡히면 나머지는 논리적인 도식schematic으로 풀린다.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적 의지를 소중히 다루기 마련이고, 주요 골자를 이루는 면들은 시공 후까지 비교적 순정純正하게 남는다. 그런 식으로, 별똥집의 특별한 프로그램적 상황에서 잠시 타협처럼 등장했던 입면의 사선斜線은 이어지는 이-집에서 다시 반듯함을 되찾는다. 그러나 작업의 엄격함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건축가 정수진은 자신의 마음을 이끌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1908–2004)의 사진에서처럼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다양함들이 건축 안에서 발견되어지고 기쁨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 옛날 파리의 거리에서 하얀 천이 펄럭이는 장면을 바라보며 느꼈던 것처럼 장소와 현상과 기억과 체험이 하나의 풍경 안에 생생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직은 ‘해보고 싶은 작업’이 더 많고 그 욕구들을 심플(S)하게 정제해가는 과정이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덴티티(I)를 알아 ‘해야 할 작업’을 하게 되고 종국에는 도구·방법·논리보다 감동(E)을 세상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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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 — 건축소수자 되기
27
글. 편집장 이중용
주택 시공, 공정률 95%, 내부 마감 마무리와 조경이 한창인
설치하기로 한 대문은 아직도 디테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현장. 막 도착한 건축가 정수진은 현장소장과 반갑게 인사를
계획만 6개월째입니다. 원하는 것을 시공할 수 있는 방법이
나눕니다. 차의 트렁크를 열고, 가져온 조명기구들을 챙깁니다.
풀리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니 이거 참,
집의 현관으로 들어섭니다. 바로 이어지는 복도는 반원형의
이런 건축가들과 일을 하려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내는
아치 곡선을 수평으로 뽑아낸 높고 좁고 긴 공간입니다.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건축사무소와 제작소 사이에 오간
부드러운 천장면, 그리고 구석의 천창과 주변 실내에서
많은 도면들에는 풀린 문제들과 풀리지 않은 숙제들의 흔적이
번져오는 빛 때문에 더욱, 이 복도 공간은 이동이라는 행위를
잔해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디자인, 적정 구조, 개념, 중량,
자극하기보다는 이동하는 사람의 긴장을 이완시킵니다.
두께, 휨, 간격, 배열, 시공성 등 다양한 이슈 안에서 제안 또는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색채 없는 공간은 건축가의
동의하며 최적의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준공이 얼마
의지를 통해 고유의 분위기와 색채를 가진 공간으로
남지 않았지만 건축가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을 아는 이상
전환SWITCH됩니다.
플레이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협업이라는 전제 위에서, 공격과 수비가 끊임없이 전환SWITCH됩니다.
건축가는 복도와 2층 계단과 거실 입구가 만나는 공간에 섭니다. 그리고 가져온 세 가지 조명 중 한 개를 꺼내어
고집을 부린다는 것 이전에, 건축가는 화가 난 상태입니다.
기존에 설치된 복도 조명과 교체합니다. 공간의 부드러움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대화하기 위해 사각의 금속틀로 만들어진 기존 조명을
더 화가 나는 건 이미 건축가가 제시한 기준이 있는데도
틀 없는 구 형태 조명으로 바꾸기로 한 겁니다. 나머지
다른 이가 ‘요 정도는 어떠냐’며 간을 보는 상황입니다. 한
조명들도 현장 시공팀과 협의가 잘 끝났습니다. 건축가는
걸음 더 나아가,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화된 퀄리티의 작업을
지하부터 2층 발코니까지 익숙한 걸음과 시선으로 작업의
하려는 것뿐인데 ‘건축가의 자기만족’이나 ‘예술’ 같은
상태를 둘러봅니다. 곳곳에 시공하는 사람들이 있고, 건축가는
이야기로 정당한 노력을 편협하게 만드는 발언들은 건축가
거의 늘 먼저 단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이전에 작업자로서의 분노를 더욱 불타오르게 합니다. 그 왜,
“안녕하십니까—.” 이 여성 건축가는 남자들보다 더 ‘다나까’
버튼이 눌린다고 하죠.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폭발하는 거
말투에 익숙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당에서 조경가와 담소를
말입니다. 누구나 마음에 건드려서는 안 되는 버튼이 하나쯤
나누고 밝은 표정으로 현장을 나섭니다. 역시 여성 건축가라
있고, 그 버튼이 눌리면 달팽이관과 뇌를 연결하는 통로가
현장 분위기도 여자여자한 것 같고, 시공자 입장에서도 편할 것
차단되고 합리적 이성 기능이 멈추면서 불편한 감정이 빡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설치하기로 한 대문 이야기로
올라옵니다. 왕왕 정신을 차리기 위해 마시는 에스프레소
넘어가면서 분위기는 험악한 쪽으로
전환SWITCH됩니다.
커피도 더블샷이 있듯 절대 눌러서는 안 될 버튼이 콤보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축가의 작업을 자기만족으로 치부하는 경우는 좋은 건축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갖고 있는 버튼이고, 정수진의 경우 또 하나의 노이로제 버튼이 있습니다. ‘폐쇄성’, 그리고 거기에 연장된 의미에서의 ‘공공성’입니다. 정체되고 답답한 도시에서 잠시 눈 둘 곳 만들어주는, 눈길 끄는 건물의 특이한 모습도 공공성으로 설명하는 건축가가 있듯 공공성에 대해서도 건축가마다 다양한 해석과 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가 정수진에게 (꼭 그 정도의 느낌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공공성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하면 ‘도대체 공공성이 뭐냐’는 반문부터 돌아옵니다. 뻥 좀 많이 보태서 설명하자면, 지킬Jekyll에서 일순간 하이드Hyde로 인격이 전환SWITCH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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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11월호 {SPACE} 잡지1를 보면 건축가 정수진이 왜
“주택의 계획에 있어 배치의 편리성을 확보하는 것은 건축가의
그렇게까지 그 말들에 예민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세 번째
기본적인 의무지만 그것 자체는 결코 건축이 아니다.” 이
주택 작업인 붉은벽돌집이 소개되고, ‹판교에서 건축가에게
문장은 {아메리칸 아키텍트 앤드 빌딩 뉴스American Architect and
요구되는 것›이라는 크리틱이 함께 게재됩니다. 건물들이
Building News}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는 판교주택단지, 그 안에서 개구부
혹은 다른 이의 마음에 들도록 주택의 평면을 조정할 능력을
없이 외부에 대해 방어적인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정수진의
갖춘 사람은 매우 많지만 구구단에 통달했다고 수학자인
건물은 공공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에게라면
건 아닌 것처럼 주어진 여건과 문제에 대한 해결만으로는
지나치리만큼 폐쇄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같은
건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3
지역 내에 지어진 앞의 두 주택인 하늘집, 노란돌집 역시
140년 전에도 건물을 두고 건축이니 아니니 따졌었나 봅니다.
건축적으로 동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혐의는 더더욱
마찬가지로 건축가들은 건물과 건축을 구분하고, ‘건축’이라는
증폭됩니다. “주택은 외관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단어의 정의를 국어사전에 맡기지 않습니다. 로시Aldo
없다. 대신 집의 모든 풍요로움은 그 실내에서 명확해져야
Rossi(1931–1997)가
한다”2는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1870–1933)의 주장에
찬사인 “시장을 위한 생산과 산업의 변화에 저항하고, 시대를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로스의 건축이 좀 뚱해 보여 그렇지
초월해 영원한 아름다움을 지닌 대상을 창조했다”4는 표현은
정수진의 외벽만큼 개구부가 없진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건축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유형상으로는 중국 남부의 전통적 집단주거지인
‘토루土樓’의
창간호(1876.9.30)에 게재된 것입니다. 거기엔 ‘자기
미스Mies van der Rohe(1886–1969)에게 보낸
그에 비한다면 건축가 정수진의 작업은 시대에 대한 저항에
개인주택 버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부는 닫혀
무심하며, 오히려 현실의 조건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에
있고 내부는 열려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비난할 필요는
집중합니다.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충실한 상품이라는
없습니다. 평균 230m 규모 필지에 10억원을 웃도는 현재의
측면에서) 완결된 작업은 외벽 개구부 면적을 제로로
주택 가격, 게다가 집값이 꾸준히 높아져 온 상황을 감안하면
수렴시키려는 건축가의 열망/의지로 인해 아주 잠깐, 현실을
애초에 판교주택단지가 추구했던 것이 순수한 공동체도
초월할 가능성을 내비칩니다. 이는 본인이 피규어figure라고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돈 있으면 땅 사서 집 짓고
말하는, 초기 개념 작업에서 드러나는 가시적이고 명료한
도로와 공원을 공유하며 살고, 돈 부족하면 한 건물에서
프로젝트에서의 방향성이 현실에 구현된 순수한 면들과
필요와 능력에 따라 공간을 각자 나눠 쓰면서 복도와 정원을
일치함으로써 생기는 신호의 중첩과 교란처럼 느껴지지만
공유하는 그런 상황인 겁니다. 자산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개구부 면적이 늘어나는
공동체라는 개념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통의 목표로
프로젝트를 볼수록 줄어드는 아우라를 느끼면서 단지 ‘입면
존재하지 않는데 공공성을 언급한다는 건 지반검사도 안
디자인을 못 하기 때문에 가급적 입면을 손대지 않으려
하고 대안도 없이 모래밭 위에 일단 기초부터 타설하는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일반적 전략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도
강점강화와 약점보완과는 또 다른, 순순히 약점을 받아들이고
폐쇄적인 것들이 꽤 있어서 지금은 그다지 유별난 유형도
이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캐릭터를 형성한 독특한 사례라는
못 됩니다. 어쩌면 그 지역 최초의 중정형 주택인 하늘집이
생각도 듭니다. 정수진을 괴롭혔던 ‘판교 중정형 주택 전문
눈치만 보던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할 방법을 열어준 것일
건축가’와 ‘폐쇄성’이라는 평판을 만든 그녀의 디자인 스타일은
수도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서 ‘담을 치면 안 된다’는 규정을
확실히 약점이면서 동시에 최대 강점입니다. 그리고 강점보다
피하기 위해 프로그램이 들어간 매스로 담을 대신할 방안,
약점을 더 크게 신경쓰면서도 매 프로젝트에서 일관성이
일종의 해법을 만든 셈이니까요. 그 방법이 계속 발전하다보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건축 작업에 대한 긍지와 규율이
담으로 활용되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의 매스가 비품창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스승인 시리아니와 프랑스 유학 시절
정도로 얄팍해지는데,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부분들은
경험으로 연결됩니다. ‘학생 정수진’은 심리적으로 ‘건축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인 체계가 어디까지 허약할
정수진’을 지탱하고 있으며, 다시 ‘여성 건축가 정수진’이라는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좀 씁쓸하긴 합니다.
자신감으로 전환SWITCH됩니다.
2
사례가 욕망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회죠. 어쨌든 하늘집 이후 프로젝트들의 클라이언트들이 모두 지어진 건물을 보고 찾아왔다는 사실은 중정형의 유용함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품으로서의 유용함은 다시 건축적 감각으로 전환SWITCH됩니다. 29
똑같이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의 세계에서 ‘여성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의 찬사와 질시 속에
건축가’라는 타이틀이 쉽게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여성 건축가 에이린 그레이Eileen Gray(1878–
한편으론 여전한 구조적 차별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1976)는
여성이 소수는 아니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그들은 소수자의
모든 것이다.”6 새로운 사회를 열망했던 폭력의 세기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활이
위치에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한국건축에서 ‘대표적인, 여성, 단호하고 선언적인 외침이 유효했습니다. 코르뷔지에의 건축가’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건축가를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5원칙은 건축을 꿈꾸는 사람들의 눈과 뇌를 물들였고, 그에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을 기록해
대한 그레이의 비판은 시대의 무거운 공기를 뚫고 나가지
온 역사가 그들의 이야기와 방식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못 했습니다. 한편으론 그레이의 화법 또한 상대에 대한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흙이 콘크리트로 대체되듯 자연적
적대시와 처단의 날을 세운다는 점에서 남성들의 그것과
순환이 문명의 직선적 진보에 억눌려 있듯 여성성도 남성성에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죽이는 오이디푸스, 기성세대를
가려져 있습니다. 건축에서 여성이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누르고 일어서는 신진세대의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은 이젠
많은 주장들도 당분간은 정치적 프레임으로 이용될 뿐 있는
철 지난 방식입니다. “생활이 모든 것이다.” 자신의 정당화를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세상은 아직 좀 멀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고히 하는 부정적 전제를 설정하지 않는 개인의 순수한
다행히 다원주의로 방향을 잡으며 종말 프레임에 갇힌 채
신념을 지키는 일은 탈진실Post-truth의 세계 속에서 더욱 쉽게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축이야기의 현 상황이 소수자
희석돼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념의 공백 뒤에 숨어 인간으로서
건축가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습니다. 남성들이 접시를
혹은 건축가로서의 의지마저 버리는 세태 속에서 다음 세대로
깨는 일에 익숙해지는
동안5,
여성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이어져야 할 질문들을 남겨두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방법에
꾸미게 만드는 거울을 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여성 건축가’는 결국 ‘건축가’로
전환SWITCH됩니다.
대한 고민은 이어져야 할 것이나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성별 구분이 의미 없습니다. ‘여성 건축가’는 없습니다. ‘건축가’가 있을 뿐입니다. ‘여성 건축가’가 소수자이듯 ‘건축가’도 소수자이며, 다양한 차원과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환을 겪는 일은 건축소수자인 건축가에게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여성과 남성, 부드러움과 강인함, 열림과 닫힘, 의지와 트라우마,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이 가진 양면성을 끊임없이 전환시키며 대응해야 했던 건축가 정수진의 이야기를 지금, SWITCH, 좀 더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 ‹붉은 벽돌집›, {SPACE}, 2013.11, pp.92–97 2 «프라이버시와 공공성», 베아트리츠 꼴로미냐 지음, 박훈태 · 송영일 옮김, 문화과학사, 2000, p.47
3 «아키텍트», 스피로 코스토프 편저, 우동선 옮김, 효형출판, 2011, p.392 4 «시적 공간», 이종건 지음, 궁리, 2016, p.114 5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김국환 노래, 양인자 작사 / 김희갑 작곡, 1992 6 «차이와 차별», 김혜정, 공간사, 2006, p.129
30
ARCHITECT
JUNG SU JIN
31
PROLOGUE
6월 7일 수요일 오후 3시, 약속시간에 맞춰 SIE 건축사사무소에
스터디 과정 내내 정수진이라는 건축가에게 씌워졌거나 씌워질
들어섰다. 사무실 회의 테이블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문 쪽을
편견들과 매체로서 {와이드AR}이 확장해나가고픈 방향을 함께
바라본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듯 간단한 인사가 오간다. 한 시간여
고민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 내용이 최소한
지속되던 건축 프로젝트 회의는 적당히 마무리되고, 인터뷰 준비를
건축가에 대한 선입견은 줄여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의
위해 소장실 회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다. 건축가는 한 시간가량 건축
색깔이란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과 그에 따른 작업자로서의 결과라는
프로젝트에 관해 협의 중이었다며 들고 있는 컵에 커피를 더 채운 후
것에 동의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의 결과를 내보이고 싶은 건축가의
자리에 앉는다.
모순된 듯 보이는 욕구의 이유까지도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이 될 것 같았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가까이에서 만나는 그는 좀더
‘사전 취재용 인터뷰’, 향후 기획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판단하기 위해
다채로운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그 안에 그를 더욱 그답게
건축가를 알아가는 시간. 웃음소리까지 글자로 적어야 할 만큼 유쾌한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독자들이 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표정도 보이지만, 얼굴의 경련이 눈에 보일만큼 피곤한 기색도 보인다.
(우리는 건축가를 건축가답게 하는 작은 차이를 보기 위해 노력하며,
그렇게 녹음기에 기록된 시간은 3시간 38분 17초. 인터뷰를 마치고
그것에 기쁨을 느낀다.) 그렇게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하기 위해
돌아온 다음 날, 목요일 오후부터 풀기 시작한 녹취록 정리를 마친
경기장이나 룰을 변경할 필요를 느꼈고, 그것이 이번 57호의 전체
것은 일요일(6.11) 아침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녹취록을 몇 번이나
포맷이 변경된 이유다.
보면서, 그 뒤로 몇 차례 건축가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에 마음이 끌렸다. 이야기가 특별하다기보다는 매번
내용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구술집이기도 하면서 각각이 독립된
건축가를 다룰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와 방식을 찾는 게
이야기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체
익숙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사전 인터뷰라는 상황 때문인지 편하게
흐름을 크게 네 가지 정도로 구분했다. TALK ONE, ‘ONE DAY
되는대로 나눴던 대화가 그 전까지 건축가에 대해 막혀 있던 생각을
MET’은 건축가 정수진을 만나고 금방 이루어졌던 이런저런 건축
열어줬다.
이야기들이다. TALK TWO, ‘CHARACTER’는 건축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정수진의 연대기적 과정에 관한 것이다. TALK
건축전문지 독자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건축을 전문적으로 다룰
THREE, ‘ARCHITECTURE’는 건축에 관한 그녀의 생각과 태도를
때는 ‘건축을 건축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라는 감춰진 명제가 있다.
접할 수 있으며, 세대와 성별 사이에서 고민하는 오늘의 여성 건축가의
그리고 이야기에도 ‘급 級’이 있다. ①공간, 시간, 유형, 물성 등 본질에
모습 또한 그려볼 수 있다. TALK FOUR, ‘VISION’은 건축가로서의
가깝다고 생각되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②향/조망, 환기, 동선, 법규
목표를 내비친 부분으로 실은 그것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등 현실에 가까운 문제가 있고, ③비례, 스케일, 볼륨, 구성 같은
지금까지 프로젝트들의 과정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민임을
건축적 논리와 감각에 의거해 설명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④니즈,
전달한다.
비용, 편익, 유행 같은 대중적 효용과 취향에 의거해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은 그 모든 게 건축 이야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논하는
우리가 원하는 정보는 엄격한 근거 위에 엄정한 규정이기를 바라지만,
영역인 이론과 행정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외 부분들은
우리가 바라는 대화란 그저 이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정도의 것이다.
가려지기 마련이다. 가치를 논하면서 가격은 부차적인 문제로 돌리고,
진위眞僞, 선악 善惡, 호오好惡를 따지는 일 만큼이나 우리가 어느
같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논하면서 개인은 자세히 보지 않을 위험…
시간, 어느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상시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 매달 혹은 매일, 건축 전문지와 웹을 통해
역시 중요하니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진리가 아니라 공통의
소개되는 건축가들로 넘치는데도 정작 우리 잡지에 소개하고 싶은,
감수성이라면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어제보다 조금 더 타인을
소개할 만한 건축가들을 찾기가 어려웠던 이유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견디는 일일 수도 있다. 2017년을 살아가는 69년생 건축가 정수진의
{와이드AR}의 지난 과정 역시 가치나 목표에 대한 고민을 현실과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 기록해둔다.
별개로 두지 않아야 한다고 수도 없이 되뇌인 끝에 건축가 이야기를 조금씩 현실적인 부분과 연결지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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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OR WORKS 하늘집 (2011)
펼친집 (2014) 위치: 경상남도 거제시
위치: 경기도 성남시 용도: 단독주택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1,656.00m2
대지면적: 265.2m2 건축면적: 131.77m2 연면적: 222.96m2 건폐율: 49.69%
건축면적: 225.40m2 연면적: 326.68m2 건폐율: 13.61%
용적률: 84.09%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용적률: 13.56% 규모: 지상 1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사암, 멀바우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페인트
외부마감: 백색 사암, 송판 노출 콘크리트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타일, 무늬목
스프레이, 무늬목
노란돌집 (2012)
이-집 (2015) 위치: 경기도 성남시
위치: 경기도 성남시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264.8m2 건축면적: 132.12m2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255.10m2 건축면적: 127.10m2
연면적: 191.92m2 건폐율: 49.89% 용적률: 72.48%
연면적: 217.04m2 건폐율: 49.86% 용적률: 85.08%
규모: 지상 2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막스민스톤(사암)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규모: 지상 2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황토벽돌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자작나무 합판
각설탕 (2013)
삼봉집 (2016) 위치: 경기도 용인시
위치: 경기도 성남시 용도: 다가구주택 대지면적: 231.4m2 건축면적: 114.55m2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239.00m2 건축면적: 118.76m2
연면적: 278.77m2 건폐율: 49.50%
연면적: 222.48m2 건폐율: 49.69%
용적률: 89.99%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스터코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벽지, 타일
용적률: 77.45%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삼한C1 벽돌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붉은벽돌집 (2013)
작은구름집 (2016)
위치: 경기도 성남시 용도: 단독주택
위치: 경기도 용인시 용도: 다가구주택
대지면적: 231.8m2 건축면적: 113.61m2
대지면적: 251.80m2 건축면적: 125.80m2
연면적: 231.80m2 건폐율: 49.01% 용적률: 87.87%
연면적: 217.17m2 건폐율: 49.69% 용적률: 86.25%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치장벽돌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타일, 무늬목
규모: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스터코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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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ONE
34
ONE DAY MET
01
산전수전
“시공사한테 쫓겨난 건 서너 번 됩니다.” 그런 일(시공사가 도망가는)을 한 번 겪은 거예요? 한 번 겪었어요. 앞으로 몇 번 더 겪지 않을까요? 시공사 도망간 건 한 번이구요. 저희가 시공사한테 쫓겨난 건 서너 번 됩니다. 하하. (웃음) (웃음) 시공사한테 쫓겨난 거요? 예. 감리하다 쫓겨난 건 서너 번 돼요. 작년에 다가구주택 하나 완공한 것도 저희, 골조 치고 쫓겨났고요. 쫓겨났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감리 저렇게 더럽게 해가지고는 공사 못 하겠다. 선택해라.’ 감리를 아예 잘린 거예요? 예. 그렇죠. 벌써 (시공사 쪽에) 돈이 가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건축주분께서 그쪽을 선택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세 번 정도 쫓겨났어요. 한 집은 건축주가 무서운 분이셔서 욕을 욕을… 말도 하지 마세요. TV도 아니고 영화에서 나오는 온갖 잡스런 욕을 다 먹었어요. (웃음) 저 이 정도면 산전수전 다 겪지 않았습니까? ‘신세계'(영화)였겠네요. (웃음) 그쵸. ‘신세계'. 하하. (웃음)
35
A
02
대표작
저희가 도면을 하늘집(2011)부터 체크해봤거든요. 프로젝트들 중에서는 제일 집중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 이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맞습니다.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부터 계속 변형해나가는 과정처럼 보이고, 나중에 이-집(2014) 프로젝트까지를 한 세트로 재밌게 봤어요. 네. 이-집이 어떻게 보면 집대성이에요. 흥미있더라구요. 단지 형태만 그런 건 아니구요. 보통 르네상스하고 바로크,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고전에서 규칙이나 조화를 이야기하다가 불규칙하고 기이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뭔가
36
A. 하늘집의 진입부를 중정에서
바라본 장면. 사적 생활 공간인 2층을 위해 바깥 시선을
차단하는 벽을 세웠다. B. 이-집의 거실 앞 중정에서
본 진입부. 사진 우측에 2층 높이로 솟아오른 볼륨은 고측창clerestory으로 빛을 받아들여 집의 진·출입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하는 현관 부분이다.
B
그런 식의 흐름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변화 같기도 하고…
아, 그러세요?
다행이다… 그렇게 봐주셔서. (웃음)
건축주분하고 미팅을 할 때, 아… 그냥 아무 얘기나 막 해도 돼죠?
아, 그런가요? 재밌는 건 각설탕(2013) 같은 경우 출입구 쪽 귀퉁이
네. 편하게 해주세요.
부분의 창고가 묘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출입구를 나누는 게
건축주하고 미팅을 할 때 건축적인 얘기를 안 해요. 전혀. 공간이
문제긴 했지만, 한 쪽 위로는 뚫려 있고 독립적인 요소면서 전체 안에
어쩌고, 이런 부분의 이야기가 어쩌고, 이 부분의 의미가 어쩌고 이런
묶여 있거든요. 이-집 현관을 볼 때 왠지 각설탕의 이 부분이 생각이
얘기는 해봐야 소용도 없고,
나더라고요. 기존에 스터디된 부분이라 나중에 과감하게 나온 것 같기도 하고요. 건축주에게 설명하실 때 좀 더 드라마틱하게
이전에 게재된 잡지에는…
표현하신 것과 맞지 않았나 하고…
집의 스토리예요. 그냥. 그런데 그 이야기를 건축주분한테 한 적은
이 부분요? 그런 얘기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없어요. 이-집 같은 경우는…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집을 이만큼
37
C
D
해오다 보니까… 여기 이런 것(현관 부분 디자인)도 되게 해보고 싶었고, 얘(복도 디자인)도 되게 해보고 싶었고, 여기(주방)도 되게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뜯고 싶은 거야. 아래 위층. 그래서 뜯긴 거고, 그래서 이-집은 이만큼 해보고 싶은 걸 표현한 걸 건축주가 오케이해서 된 거예요. 근데, 실제로 그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설계를 했어요.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건 복도예요. 쓸데없는 복도. 그리고 십일자로 긴 주방공간을 연출해보고 싶었어요. 어떤지, 느낌이.
38
25
N
0 5 10
I
E
4
11
2
12
11
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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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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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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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6
2
12
3
1 11 9
10 11
4
10
6
8 8
C. 전면 도로에서 바라본 각설탕
전경 D. 각설탕 위치도 E. 각설탕 지붕층 평면도 F. 각설탕 2층 평면도 G. 각설탕 1층 평면도
H
H. 각설탕 지하 1층 평면도 G. 각설탕 단면도A 11 4
I. 각설탕 단면도B 1. 거실 2. 부엌 3. 안방
8 5
4. 방 5. 공용거실 6. 화장실 7. 드레스룸 8. 창고 9. 주차장
8 1
2
5
N
0
10. 현관 11. 데크 12. 다용도실
39
03
<이-집> 설계과정
이-집 건축주분들이 저한테 찾아오셨을 때 느낌이 어땠냐며는요. 이분들이 설계를 세 번 하셨어요. 다른 건축가 통해서요?
“저는 원하시는 거 다 해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예. 두 곳과 먼저 협의를 하고 나서, 저를 다시 찾았대요. 노란돌집을 보고 ‘이 건축가 찾아보자' 하셨대요. 첫 번째 만남에 가족분들이 오셔서 남편분, 대표님이 말씀하시는데, ‘나는 내 삶을 마감하는 집을 지으려는데, 일반적인 집에 살고 싶지 않다.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집을 짓고 싶다.’ ‘그러면 어떤 집을 짓고 싶으십니까?’ 물었더니 특별하지 않은 얘기 하셨어요. ‘방 몇 개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얘기 정도였어요. 그래서 첫 번째 아이디어는… 그분이 미국에 오래 사셨는데 미국에 있는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서 자격증을 따셨대요. 그게 뭐예요? 요리학원. 프랑스의 유명한 요리학원이에요. 그리고 이 분이 뭘
A. 대문 앞 중정에서 부엌 쪽을
하셨나면, 조선회사에 부품을 만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납품하는 일을
바라본 장면
하셨어요. 엔지니어세요. 은퇴를 하시고 오자마자 후쿠오카로 가서
B. 이-집의 부엌. 가장이 제2의
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실 거래요. 일어 공부를 하고 있으시대요.
인생으로 준비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은 하기 힘든 일이거든요. 요리가 제2의 꿈이래요. 그래서
‘요리’의 중요성에 근거하여 집의 중심 공간으로 계획했다.
A
40
얘(이-집의 주방)가 나온 거예요.
그렇군요.
있던 따님이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태도를 바꿔서. (웃음)
제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건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구체적으로
그러면서 ‘긴 복도' 그랬더니, ‘긴 복도? 어떤 복도요?’ 그래요. 그래서
원하는 게 있으면 자기가 설계하지 뭐 하러 돈 주고 맡기냐는 거예요.
‘거기는 기능이 없는 복도일 겁니다. 하지만 되게 중요하고, 멋있는
(웃음) 그래서 ‘좋습니다. 저는 대표님이 원하시는 거 다 해드릴 수
복도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이서 노후를 보내시는 마지막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그랬더니,
집이기 때문에, 두 분께서 의미를 찾으시는 주방을, 식당도 아닌
좋대요.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린 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긴- 복도
주방을 제일 중요한 자리에 갖다 놓을 겁니다. 요리하시면서 주변도
만들어도 돼요?’ 그랬더니 ‘그 공간이 집에 필요하다면 만드세요’
볼 수 있고,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을 가지게 할 겁니다.’ 그랬더니
그랬어요. ‘그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리는 공간입니다…’
눈이 반짝반짝반짝하는 거예요. 그렇게 첫 번째 미팅이 끝나고 이분들 미국 돌아가시고 한 달 뒤 오셔서 이 안으로 브리핑을 했더니
뭔가 딜레마가 있네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간을 만드는 건 좋은데
너무 좋아하세요. 그래서, 이 공간은 그냥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집에 필요한 공간이라야 하니까요.
처음에 문을 딱 열고 들어오면, ‘우리는 현관을 단지 신발 벗는
네. ‘설계에 필요하면 만드세요’ 그랬어요. 그러고 여기가 남향이고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집으로 들어올 때 나를
중심이 되는 자리라서 거실이 이쪽(현재의 주방 쪽)으로 가야 돼요.
처음으로 반겨주는 게 현관이고, 그 현관이 높으면 내가 기분이 좋지
‘주방하고 거실하고 바꿔도 됩니까? 거실이 제일 중요한 자리에 가야
않겠습니까? 빛도 촤악 들어와요.’ 그랬더니 좋으시대요. 좋대요.
됩니까?’ 하고 물었어요.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다들 그 부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그것도 상관 없으시대요. ‘그러면 됐습니다.’
현관 위가 열려 있는 건가요?
그러고는 미친듯이 설계를 단숨에 다 했어요. 일단 큰 게 정리가 다
여기(현관 상부 측창)가 열려 있어요. 그리고 2층 층고예요. 여기가
돼버리니까 더 이상 할 게 없잖아요.
이 집에서 제일 높아요. 쓸데없이. 그다음에 말씀드린 것이 ‘여기는 긴 복도입니다’…
네. 그래서 (안이) 나온 거고, 제가 그 이야기를 막 하니까, 다른 쪽 보면서
폭이 1m 정도 되나요?
B
41
좁은 부분은 80cm 정도밖에 안 되고 가면서 커져요. 그리고
거실 층고는 어떻게 되나요?
이걸(도로 측 건물 외벽 평면) 이렇게 꺾은 이유는… 대지보다 더
여기가 2m 60cm 이상이 될 거예요. 제가 보통 기준 층고를 2m
꺾었잖아요?
50cm 정도로 잡는데요.
네. 도로 쪽과 맞춘 건가요?
2m 60cm가 판교 주택에선 그렇게 높은 건 아니지 않나요?
아니요. 지금 보면 못 맞춰서 직각을 만들려고 더 꺾어놨고, 현관 쪽
근데 일반 주택을 제가 2m 50cm를 잘 안 써요. 왜냐며는 넓이 대
복도에서 거실 쪽 복도로 가면서 폭을 더 작게 만들고 싶었어요. 더
높이라는 게 참 묘해가지고요. 자칫 잘못 쓰면, 넓은 공간이 좁아보일
좁아 보이게. 그래서 거실 부분은 되게 대공간이 되고, 복도는 낮아요.
때가 있거든요. 높이를 너무 높게 잡으면. 그래서 높이를 높게 잡거나
낮고 길고 깊고, 그다음에 거실이 높거든요. 거실에서 확 터지는
지나치게 낮게 잡을 때는 그냥 거기서 그런 효과가 났으면 좋겠다 할
거예요.
때 말고는 아무리 높여달라고 그래도 기준 층고 정도만 써요. 넓이에
C
C. 이-집 주방에서 식당을
바라본 장면 D. 이-집 1층 평면도 E. 이-집 2층 평면도 1. 거실 2. 부엌 3. 식당 4. 안방 5. 방 6. 드레스룸 7. 화장실 8. 서재 9. 현관 10. 복도 11. 데크 12. 테라스 13. 창고 14. 주차장 pp.44–45.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긴 복도. 측면의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이 유리면을 타고 내려온다. 윗 부분이 바깥으로 접힌 이 유리면은 계획 초기 투시도에 담았던 복도 공간의 비례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사용자의 시야 레벨에서 협소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복도의 바닥 폭은 평균 80cm 정도이며, 상부는 1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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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 11 5
8
4
1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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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7
7 1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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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5
12
10
N
0
1
2
5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만요.
쪼끔만 줄여도 크게 상관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됐고, 그다음은 말씀하신 대로예요. 순차적으로 이 집의 이야기를 풀은
그러면 복도는…
거예요. 현관에서 거실, 그 다음 여기(주방)는 두 부부의 메인main
2m 20cm 좀 안 되요.
공간이고, 끝에 방 하나 있고요. 2층에 올라가 보면 딸과 부부의 방이 있었는데, 서재를 꼭 2층에 올려달라고 그랬어요.
그렇군요. 네. 그래가지고, ‘이 복도는 그냥 기-인 복돕니다. 천창에서 빛이 촤악
서재 끝 부분에 방이 있어서…
들어와서 입구에서는 높은 데서 내려오는 빛을 보시고, 복도에서는
원래는 방을 안 막고 서재를 넓게 계획했었어요. 어느 날 사모님이
처-ㄴ천히 걸어가시면서, 긴 복도를 향해서, 집으로 들어간다는
전화가 왔는데, 골방을 어디 만들어 달래요.
마음으로 쉬면서 들어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이게 제가 말씀드린 쓸데없는 복돕니다’ 했는데, 투시도가 나쁘지 않으니까, ‘오, 좋습니다.
그렇군요.
오케이’.
예. 그런데 벌써 틀이 다 짜여져 있어서 갈 데가 없잖아요. 건폐율도 다 맞춰놨고. 그래서 그러면 됐다, 오케이, 이거 찢자, 그래서 서재 줄이고
복도 벽면에 유리는 일부러 대신 건가요? 사선을 그려놓으셨던데.
침대 하나 들어가는 방을 만들고, 그러면서 얘(계단실 옆 부분)를 터
넓이가 안 나와가지고요. (웃음) 이 느낌을 내려니까 거실 쪽 복도
버린 거예요.
입구 부분 폭이 너무 좁은 거예요. 이 폭을 너무 키우면 복도 전체가 어벙벙해지고요. 이 공간에서 발치하고 머리 쪽 폭이 틀려요. 사실
계단실이 (분위기가) 좀 더 좋아졌네요.
발치 쪽은 넓지 않아도 크게 못 느끼는데 여기(눈 높이)가 좁으면 사람
훨씬 좋아졌죠. 2층에 요구사항이 따님 방 하나 있으면 좋겠고, 안방
시야 때문에 좁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벽의 사선을 중심으로 위쪽이
있으면 좋겠고, 미국에서 아들이 오면 서재를 쓰도록 하겠다… 해서
바깥으로 약간 접혀 있어요. 그러면 실제로 발이 닿는 공간은 80cm
세 개를 가지고 구성을 해달라고 그랬는데, 살다 보면 가족들 얼굴 잘
정도밖에 안 되는데, 위쪽은 1m 정도가 되거든요. 시각적인 것 때문에
안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여기(서재)에서 얼굴 보시라, 여기에 책도
꺾은 거예요. 별의별 짓을 다한 집이에요. (웃음)
있고 컴퓨터도 있고… 써야 될 거니까,
건폐율 때문에 더 면적을 못 잡은 건가요?
일종의 가족실 같은 거네요.
아니요. 건폐율도 크게 문제는 없었어요.
그렇죠. 그냥 그런 얘기 가지고 전체 구성을 한 거예요.
건폐율도 거의 다 찾은 거 같던데요? 그건 주방이나 거실 때문이고 사실 여기서 (주방과 거실 면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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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5
04
입면을 만들지 않는다. 이유는
“저는 입면을 못 만들어요.” 영상 있잖아요? 2008년 <땅집사향> 세미나 발표 영상. 거기 마지막에 누군가 질문하니까 소장님께서 그런 말씀 하시더라고요. 유행을 잘 캐치한다고, 그리고 빨리한다고, 그게 자신의 장점이라고요. 제가요? 아~ 그거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구요. 예. 저는 유행에 민감한 것 같아요. 그걸 캐치도 잘 하는 편인 것 같고요. 그때 누군가 한 분이 말씀하셨어요. ‘정 선생은 참 때를 잘 만난 것 같애.’ 왜냐면 저희 이전에 날라가는 건축이 유행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나올 즈음에 그 날라가는 건축이 시들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이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몰려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어요. 몇 년도 쯤인가요? 그게 2008년, 9년, 10년, 요 때. 네. 2000년 전후로 해체주의 등이 유행이었죠. 예. 저는 성격상 그런 걸 잘 못 해요.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배운 것도 딱딱한 것들이었고. 그러고 저는 입면을 못 만들어요. 그게 좀 궁금하더라고요. 설계 심의 들어가시면 입면도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예. 만들죠. 그래서 ‘설계를 했어, 안 했어’ 이런 얘기 되게 많이 들어요. 하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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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주요 작업들의 매스 이미지.
입면을 꾸미지 않는 건축가 정수진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건물 전체의 매스를 다루는 전략으로 이어진다. (좌에서 우, 위에서 아래 순으로) 노란돌집 리빙큐브 별똥집 붉은벽돌집 붉은벽돌집2 삼봉집 순천짝 울산긴집 펼친집 하늘집
우리가 입면도도 받아봐야 할 것 같은 게, 진짜 없는데 클났네. 잡지에 넣기 위해 받는 게 아니구요. 저희가 스터디하려고요. 입면의 개구부 구성 같은 걸 스터디해보려고요. 예. 입면을 저는 못 만들어요. 이전에 나온 어느 잡지에서도 입면도를 안 그리신다고… 안 그리는 건 아니고요. 입면을 만들진 않는다는 얘길 거예요. 음… 그렇군요. 예. 입면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 거기다 뭔가를 하는 거는 잘 못 해요. 못 해서 안 하는 걸 거예요. 안 할려고 안 하는 거 보다는.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제가 잡은 전략이 매스였을 거예요. 프랑스에서도 그랬어요. 아무래도 학생 때였기 때문에 좀 더 그런 것들을 받아주셨고, 선생님들도 그러셨어요. ‘너한테는 매스감이 참 중요할 것 같다’고요. 그렇군요. 예. 그게 계속 발전이 되다 보니까, 이제는 입면이라고 그러면 통상 입면에 재료가 어떤 것들이 붙는가 또는 창이 어떻게 나는가에 대한 스터디는 별로 안 해요. 그냥 3D 만들어 놓고, 어디 창 뚫어야 되겠다 싶으면 스텝에게 ‘여기 뚫어봐’ 해가지고 가로세로 크기만 맞으면 ‘됐어’ 해버리거든요. 그게, 이 창이 뚫림으로 해서 내가 원하는 매스감이 깨지지만 않으면 오케이예요. 그래서 창은 ‘필요한데 나는 게 창이야’라는 게 내 생각이에요. 일단 필요한 곳에 창은 있는 거죠? 당연히 있죠. (웃음) 그건 너무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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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하늘집>
얘(하늘집)는 ㄷ자 집이 아니고 ㅁ자 집이거든요. 이게 왜 힘드냐면,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중정의 크기거든요. 중정의 크기가 안 나오는 집은 중정을 만들면 안 돼요.
“<하늘집>에서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문이 없는 집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이전 잡지에서 쓰신 그런 표현을 읽었어요. 예. 그러면 과감히 포기를 해야 되는데, 하늘집에서 중정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정말 많이 그렸어요. 그래서 벽을 만드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고요. 이 집에서 건축주의 처음 요구사항이 문이 없는 집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문이 없는 집이요? 네. 모든 가족들이… 하여튼 다 공간이 하나였으면 좋겠대요. 딱 그거 하나가 요구사항이었거든요. 그래서… 주택에 대한 통념 때문에 고민을 했어요. 집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거실이구요. 두 번째로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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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출입구에서 보이는 하늘집
내부 구성 전경. 우측의 도어가 설치된 부분이 현관이며, 좌측의 도로면에 위치한 매스가 욕실 부분이다. 안쪽으로 보이는 중정의 크기는 5.5m × 7.5m이다. B. 화장실. 23m2 규모이며,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크게 계획되었다.
B
A
건 저는 마스터룸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부모가 열심히 돈 벌어서 자기 돈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스터 베드룸이 중요한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늘집 초기 계획 과정에서 살펴보니 안방 자리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렇다고 도로에 머리를 면해서 잠을 잘 수는 없다고 나도 똑같이 생각을 한 거예요. 처음부터 지금 같은 계획은 아니었고 계속 (계획을) 밀고 당기고 하고…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욕실에 대한 개념을 바꾼 거예요. 지금 계획된 욕실 넓이가 상당히 넓거든요. 욕실은 그야말로 볼 일 보고 목욕하는 곳이거든요. 좀 작아도 충분히 다 해결이 돼요. 근데 이걸 이렇게 키운다는 게 처음에는 좀 그랬었어요. 음…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저는 욕실이 좀 근사하고 넓은 걸 좋아해요. 이 집도 근사할 것 같은데요. 예. 처음에는 욕실도 일반적인 욕실로 그렸는데, 해보고 싶었던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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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면, 옛날 영화 같은 데를 보면 욕조에서 창문 열어놓고 별을
해봤었구요. 그랬다가, 마스터룸을 뒤에 놓고 (도로 쪽에) 서비스존을
보면서 와인 한 잔 하는 그런 게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정말
만들자, 그러면 일단은 도로에서 (마스터룸이) 멀어지는 거고, 욕실을
해보고 싶었고, 그리고 그 집 주부가 얼마나 깔끔한지 알려면 걸레
길게 빼자, 너무 긴 게 그러면 창고를 넓게 잡으면 되지, 그렇게 해낸
보면 된다고 그랬잖아요?
게 이 집이었구요. 마침 이때 다른 건축가의 중정형 주택을 봤었어요. 그런데 그 중정이 좀 작았거든요. 가서 보니까 좀 감옥 같았어요.
아… 그렇군요. 갑자기 저희 집 걸레가 생각나네요. (웃음)
다락까지 있어가지고 3개 층이 올라가는데, 거기 들어갔더니 숨이 콱
그런 말이 있거든요. 살림 잘 하는 주부는 걸레가 깨끗하대요. 그래서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하늘집 계획할 땐 땅에 가가지고 이 크기를 다
집의 청결도를 확인하려면 걸레를 보면 된다더라구요. 그것처럼
재 본 거예요.
집이 어느 정도 퀄리티가 되는지를 보려면 화장실을 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미팅, 두 번째 미팅, 세 번째 미팅
몇 미터인가요?
때 지금 계획안을 끄집어냈을 거예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별의별
이게 5.5m에 7.5m 정도 될 거예요. 해봤더니 느낌이 나쁘지 않아요.
짓을 다 해봤어요. 안 되면 나중에라도 벽을 세울까 하는 생각도
그러고 건축주도 좋다고 그러고. 그래서 오케이가 된 거거든요.
C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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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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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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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N
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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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C. 하늘집 2층 평면도 D. 하늘집 1층 평면도 1. 거실 2. 부엌 3. 보조부엌 4. 안방 5. 방 6. 2층 거실 7. 화장실 8. 드레스룸 9. 창고 10. 비품창고 11. 현관 12. 식당 13. 데크 14. 정원 15. 채전 E. 거실 앞 중정에서 보이는
욕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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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늘집의 다이어그램.
내·외부 공간 구성을 네 단계로 설명한다. 단일 매스, 중정을 통해 열리는 내부, 외부 공간의 적절한 간섭을 통한 내부 구성 조정, 닫힌 면으로 단일 매스감을 형성하는 과정의 순이다. A
06
다이어그램, 이게 뭔 짓
구성하기로 했다.’ 이 부분 하나가 외부의 조건이나 요구사항에 의한 것보다 좀 더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건축가의 건축적 의지로 비쳤거든요. 그리고 이후 프로젝트로 갈수록 건축을 설명하는 방식이 조금씩 조금씩 세상이 원하는 쪽으로 달달하게 변해가는 느낌이에요. (웃음) 그래서도 더더욱 하늘집을 중요하게 봤던 거고요.
“문 없는 집을 만들기 위해 서비스 공간들이 계속 치고 들어오게 만들었어요.”
잘 보셨어요. 그 문장 하나가 이 집 컨셉이에요. 그 집에서 건축주가 문이 없는 집을 만들어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문이 없는 집을 어떻게 만들어, 세상에, 실 구획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을 안 만들지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서비스 공간들이 계속 치고 들어오는
어쨌든 전체 프로젝트를 체크해 보면 하늘집이 중요한 것 같다는
거예요.
생각은 들어요. 아, 그럼요.
그때는 다이어그램들도 그리셨었죠? 네.
구성 자체가 견고하고, 여기서 소장님의 작업들이 계속 변형돼 나가는 기본 틀로 활용되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는 중요한 것 같고,
그 다음 프로젝트들에서는 다이어그램이 중요하진 않았나요?
재밌게 본 건… 사실 저는 건축을 건축으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아니요. 그 프로젝트들도 다이어그램을 그리라면 그렸을 거예요. 근데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컨셉츄얼하거나 자신이
처음 잡지에 이걸 실고 나니까, ‘이게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이랬어요.
지향하는 방향이나 이념을 내세우는 이야기에 좀 더 솔깃할 때가 많은데, 요즘 건축가들은 현실적인 조건 얘기하고 땅의 여건이
(웃음) 그랬군요.
이래서 이렇게 나왔습니다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흔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도 어디 게재하자는 얘기하면서 다이어그램도 좋고
‘그러면 건축 이야기는 어딨지?’ 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스케치도 좋고 그러면, 우리는 일괄 사진만 나가요. 그냥 저희
문제를 좋은 방법으로 풀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건축은?’ 하고
사무실의 방침입니다. 꼭히 ‘다이어그램을 그려주세요’, ‘컨셉을
생각하게 된단 말이죠. 소장님께서 기존에 게재했던 글들 올려주신
설명해주세요’ 하면은 생각했던 것들을 드리는데요. 지금까지는
걸 다 체크를 해봤어요. 쓰시는 글투 같은 것도 스터디해야 돼서요.
그때가 딱 유일하게 하나 나간 거였어요.
그 중에서 유일하게 좀 더 건축적 의지로 저한테 비쳤던 부분이 하늘집의 이 부분이요. ‘고유한 자신의 틀을 가지지만 힘이 가해지면
어쨌든 여기 하늘집에서의 생각들은 비슷하게 계속 가는 거죠?
줄어들고 늘어나면서 탄력적인 틈새를 형성하는 스프링 같은 공간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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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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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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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이란 사람
“저 되게 여린 사람이에요.” 작업들을 전체적으로 보고 나서 궁금했던 건… 제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이전에 김찬중 소장님({와이드AR} 53호) 할 때를 생각해 보니까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했던 거예요.
가령 김인철 선생님이나 승효상 선생님 같은 분들은 직접 쓰신 책들도 있고 출간된 자료도 많고 그래서 그것들을 정리하면서 생각을 먼저 파악하고 거꾸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으로도 할 수 있었는데, 젊은 분들 경우는 어떻게 보면 긴 과정의 앞쪽 어느 한 부분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뒤쪽을 예측해보기 위해 그 사람의 지나온 앞의 과정을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에 계속 도면하고 텍스트하고 전에 말씀드렸던 건축가가 작업 과정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 협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먼저 스터디하고 있다보니까, 문득 ‘아, 답을 너무 빨리 내려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노트에도 적었는데, 정수진은 어떤 사람인가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네. 저요? 저 되게 여린 사람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정말 드라마 보고 잘 울구요. 그러세요? 저도 그런데. (웃음) 예. 그러구, 주변에 안된 거 있으면 가슴 너무너무 아파하고, 상처도 너무너무 잘 받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하고요. 고집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지금처럼 거센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음… 하나씩 한 번 체크해 볼 게요. 네. 1969년 생이시죠?
네. 아, 제가 왜 이렇게 평이하게 묻냐면, 이건 설명을 좀 드려야 될 것 같은데, 전에도 제가 ‘여성 건축가'라는 용어에 대해 말씀드렸잖아요? 생각 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여성 건축가들은…’ 같은 일반화 시켜버리는 말을 하게 돼요. 하셔도 돼요. 네. 그냥 가급적 ‘여성'은 빼고 ‘건축가'로서만 생각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과정에 대한 건 성별에 상관없이 동일한 궁금증들을 질문드린다는 점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근데 여성 건축가임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여자로서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나 여성의 특성 같은 건 인정합니다. 장점도 많고요. 단점도 있고. 네. 다만 어느 쪽에 치우쳐서 바라보는 식의 이야기는 지양하는 게 좋겠다는 거고요. 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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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면 다시… 초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그렇군요. 파리 벨빌은 학부? 대학원인가요?
대구의 계성초등학교. 그때는 계성국민학교였죠.
거기는 그런 구분이 없어요. 그냥 여기 끝나면 끝이에요. 그 다음부터는 이론을 하기 위해서 다른 학교에 아카데미에 가서 박사
입학이 몇 년도인가요?
과정을 밟죠.
76년 정도 됐나봐요. 2001년 귀국 후 바로 취직을 하시나요?
그리고 나서 6년이 지나면…
2001년에 와서 대구에 몇 달 있다가 2002년 1월부터 사무실을
중리여자중학교. 그러고 3년 뒤에 효성여자고등학교, 한 해 재수하고
나가기 시작했죠.
89년에 영남대학교 건축학과, 93년도에 홍대 대학원 건축학과, 96년도부터 파리 벨빌대학교.
거기가 어딘가요? 플러스 건축사사무소. 요 근처에 있는 동네 건축사무소예요. 그리고
95년에 준비하시고 96년도부터?
2005년부터 동우건축. 2008년 1월까지 하고 2008년 2월에 개소.
네. 2001년도 귀국했으니까. 나오자마자 바로 개소하신 거네요? 졸업은 언제인가요? 2001년도 졸업했죠.
보통 그렇게 긴 코스인가요? 저는 짧게 하고 왔어요. 이 시기 파리에서는 7–8년에서 10년이 기본이었어요.
54
개소하려고 나온 거니까요.
네.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미니멀minimal’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근데 그것도 영어잖아요. 게다가 미니멀은, 제가 극단적으로 모든 걸 다 쳐내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심플이 가장 적당한 단어라고 생각은 하는데 아직까진 한글로 번역 못 하겠어요. ‘단순'은 절대 아니에요. 건축을 어떻게 단순하게 해결을 해요. 그건 아닌 것 같고요. 하여튼 심플Simple을 하나 찾았고, 건축가들은 흔히 단순하게 구조를 드러낸다는 생각들 하시는 것
08
‘SIE’의 의미
같은데 그건 어떠세요? 그건 조금 비슷해요. 그리고 심플하기만 하면 그건 아무것도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이덴티티를 생각한 거예요. 여기까지는 금방 나왔어요.
“근데 저는 저의 아이덴티티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덴티티는 뭔가요? 정확하게. 자기가 갖고 있는 힘인 거죠.
SIE는 어떤 의미로 지은 이름인가요?
그 힘이라는 건 건축가에게 있나요, 아니면 프로젝트 자체에 있나요?
지은 지 되게 오래됐어요. 프랑스 있을 때 내내 생각했어요. 그때…
프로젝트에 있죠. 근데 뭐, 동질한 거 아닌가요?
그런 거 있잖아요. ‘건축가는 자기 색깔이 있어야 된다.’ 그 생각을 저는 좀 빨리 했어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생각을 했거든요.
음… 저는 기본적으로 작업자(건축가)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반드시 내 색깔이 있는 건축가가 될 거야'라고 대학교
건축을 통해서 건축가인 저를 표현하는 거니까… 근데 저는 저의
2학년 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고요. 내 색깔이 어떤 걸까를
아이덴티티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럼 맨날 이런
구체적으로 한 거는 파리 가서였어요. 그래서 첫 번째 찾은 단어가 S,
거(중정형 주택들)밖에 못 하잖아요.
심플Simple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입면도 복잡한 것 못하고, 그러고 보면… 단순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런 거밖에’라고 표현하세요? 그 나름 대단한 거 같은데요.
그때 그린 투시도들은 복잡하지 않았나요?
작업들은 무게감을 중요시한 거예요. 덩어리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그거는 단순한 것들이 겹쳐서 보이는 현상일 뿐이지, 그 자체를 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도 처음에 딱 한 번 나무하고 돌하고 두 개 섞어
뜯어놓고 보면 하나도 복잡하지 않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금방
썼어요. 그러다가 ‘이것도 안 돼', 그다음부턴 한 가지만으로 갔거든요.
음… 비슷한 종류의 아주 무거운 거요. 한 마디로 이때까지의
생각해 낸 게 I, 아이덴티티Identity였어요. 음… 심플Simple을 그냥 단순한 거라고 설명하는 게 저한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음… 이-집 같은 경우는 바깥에서 황토벽돌로 메지 없이 들어가고,
왜냐면 영어로 표현하면 굉장히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내부에서는 일부 타일을 쓴 것 같던데요?
우리나라 말은 ‘단순'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그쵸. 타일 하나 들어갔죠. 그것도 쭉 변하는 단계가 있어요.
55
A
09
트라우마
중정형 주택이 변하기 시작한 거는 결국은 별똥집부터, 빨간 벽돌집 하고 매체에 너무 호되게 당하고 나서… 왜요?
“그러다보니 거기서 새로 생긴 게 마당을 들어올리는 거였어요.”
너무 폐쇄적이라고 너무 신랄하게… 전문지에 실린 거 보고 건축주분 난리가 나고, 일간지에까지 실리니까 노발대발하셨죠. (웃음) 그렇군요. 그러고 나니까 그게 저한테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래서 별똥집 부터는 겁을 냈죠. 그래서 별똥집 앞쪽이 사선으로 기울어지면서 내부가 좀 더 드러나보이기 시작했어요. (웃음) 그게 제 나름대로는 노력을 무지 한 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집에서 다시 변했죠. ‘됐거든!’ 하하. (웃음) 사실 그때 좀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주변에서 너무 얘기를 많이 하니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너무 폐쇄적이다. 너무 똑같다’ 계속 그런 얘기를 하니까 거의 병이 날 지경이더라구요. 그렇게 생각 안 하면서도 ‘내가 나를 카피하고 있나? 늘 똑같은 거 하고 있나?’ 그리고 별똥집 할 때가 돼서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랬을 때 별똥집에서 구세주가 ‘별동'이었어요. 별동別棟, 떨어진 건물.
A. 진입로에서 바라본
저희도 그걸 어제 회의하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게 별동이라서
붉은벽돌집 전경
별똥집이네’ 하면서, ‘아, 그렇구나' 그랬어요. 그 전에는 ‘별똥’과
B. 진입로에서 바라본 별똥집
전경
56
관련된 별똥집인 줄 알았어요.
B
하하. (웃음) 그게 건축주가 지은 건데요. 건축주는 별동이 별똥
공간이 어우러지는 방법, 채와 채가 만나는 방법, 채와 담이 만나는
같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뒤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며는 아무것도
방법, 공간이 겹쳐지는 방법, 공간이 확장되는 방법 이런 것들이 내가
없는 벽에 제가 창을 안 만들려고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커다랗게
배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도어만 하나 있어요. 대문. 제가 그 디자인을 고수를 하려고 무던히도 건축주를 설득을 했었고, 그거를 건축주분이 ‘별똥'이라고 표현을
음… 그렇군요. 원래 소장님은 본인이 뭔가를 규정하는 걸 좋아하는
하셨어요. 하얀데 새까만 게 하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입구에 별
스타일이신가요?
모양을 하나 만들어서 달까 그런 얘기도 했었거든요. (웃음) 그렇게
아뇨. 근데 그런 건 좀 있는 거 같아요.
그 집부터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집은 겁을 많이 내서 최대한 오픈하려고 노력을 했던 집이고, 그러다보니 거기서 새로 생긴 게
석사 논문에 관한 설명을 하시는 동영상에서 빌라 사보아를
뭐였냐면 마당을 들어 올리는 거였어요.
아크로폴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게 본인의 해석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더라구요.
어떻게요?
맞아요. 근데 그거는 제가 해석을 한 거지만 실제로 문헌들을 보면
바깥보다 마당이 높아요. 제가 여행 다니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요.
르 코르뷔지에가 ‘여기서 내가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만 없다뿐이지
2002년도 봄에 추사 고택을 갔었어요. 저는 그 전에 한국 건축물을
거기서 나온 것 같아요. 안 그럴 수가 없어요.
답사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주 싫어했어요. 모르니까 싫어하는 거였겠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답사를 갔는데
뭐, 맞나 틀리나보다 건축가마다 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확인만 해본
거기서 한 마디 했다가 선생님들한테 엄청 욕먹었는데, 저는 거기서
거예요.
제가 배운 것들을 다 봤어요. 제가 프랑스에서 배워 온, 프랑스
하여튼 그래서 그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는데, 그냥 그러고
건축에서 말하는 공간을 거기서 다 본 거예요. ‘어머 세상에, 이건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계속 중정형 주택을 하다보니까… 한지로
한국건축인데 왜 이런 게 여기 있지? 여기 있지? 여기 있지?’ 너무도
된 문을 썼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왜 썼냐고 묻는데 그건 정말
충격이 컸었어요. 그래서 저녁에 뒤풀이 시간에 그거 얘기했다가 욕을
예뻐서 썼어요. 그리고 특히 하늘집 같은 경우는 다 유리잖아요.
많이 먹었거든요. 개뿔도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웃음) 근데 그건
이걸 블라인드나 커튼으로 다 가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아는 소리든 모르는 소리든 내 맘이니까… 거기서 큰 공간과 작은
끔찍하겠어요. 그래서 한지문이 너무 좋았고, 그리고 유리문도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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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걸로 하기보다 부분부분 다른 걸로 하려고 했었어요. 변화되는 느낌을 줄려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조잡해질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한지문으로 선택하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거예요. 근데 잘 보시면 내가 얘기하는 게 결국 예전 (‘땅집사향’ 세미나) 동영상 있죠? 그 안에 있는 이야기가 발전해나가는 걸 거예요.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별똥집 바닥이요. 그래서 바닥이 높아진 게, 안에서 보면 밖이 훤히 다 보여요. 진짜로. 눈높이보다 담이 낮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내부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살짝 안 보여요. 이게 전형적인 한옥의 방법이거든요. 이걸 그때 가서 본 게 생각이 난 거예요. 가서 보면 밖에서는 담이 높아요. 그런데 안에서 보면 밖이 훤히 다 보여요. 이때부터 이런 방식이 다른 집들에도 쓰여요. 60cm나 1m 정도 경사지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정말정말 유용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도면을 보면 별똥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세 계단 올라가게 되어 있네요. 예. 예전에 친구랑 판교 주택단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 저는 별로 그 동네에 건축적인 감흥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 별똥집이 우연히 뒤에 서 있던 걸 보게 됐어요. 구성이나 비례감이 아기자기해서 ‘여자가 계획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웃음) 맞아요. 처음으로 이 집을 보고 우리 선배들이 여성스러워졌다고 그러더라고요. 이제 여자가 한 것 같다고 그랬어요. 다 똑같은가봐. (웃음) 그때 저도 입구 쪽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입구는 입구처럼 보이는 문을 중심으로 디자인될 텐데, 건물 입면에 대한 집착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요.
‘E’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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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을 때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제대로 살은 건축가가 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그리고 ‘에스S, 아이I’까지 이야기가 됐어요. 네. 그래서 이E는… 처음에는 그냥 이코노미Economy를 생각을 했어요. 경제적이어야 된다고. 에스테틱Esthetic도 생각해 봤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이E’에 대한 결론을 냈어요. 그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모션Emotion’. 그래서 이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세계적인 대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 하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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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이름은 2009년에 지은 거잖아요? 그때는 무슨 생각이셨어요? 그때는 ‘이E’만 계속 몰랐어요. ‘에스아이SIE’는 프랑스에서 벌써 고민을 했던 거예요. ‘에스아이이’인데 ‘이’ 두 번 하기 힘들어서 그냥 ‘에스아이’라고 하거든요. 처음에는 한글 표기도 ‘에스아이’라고 돼 있더라구요. 네. ‘에스아이’. 나중에 보니까 ‘에스아이이’라고 써 있는 게 하나 정도 보였어요. 아, 그래요? 그건 잘못 썼을 거예요. 어쨌든 2009년에는 ‘이E’가 비어 있는 상태로 시작된 거네요. 그렇죠. 처음엔 ‘이코노미Economy’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하하. (웃음) 그렇군요. 그래서 이름을 함부로 못 바꾸니까 계속 찾은 거예요. (웃음) 그게 ‘이모션Emotion’에 이르는데 영향을 가장 많이 준 건축가가 피터 줌터Peter Zumthor(1943–)죠. 분위기Atmosphere 얘기 하시잖아요. 네. 정말 많은 걸 생각했었어요. (웃음) ‘이E’로 시작하는 단어는 다 찾아봤을 거예요. 예전에 소장님께서 인터뷰한 내용 생각나네요. 본판이 예뻐야 한다는 거요. 골조 한 번 잘못 치면 나중에 맞추기 힘드니까 처음부터 잘 해야 된다고… 예. 하하. (웃음) 이름도 처음부터 잘 지어야 되겠네요. (웃음) 근데 결론적으로 제일 마지막이 ‘이모션’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지막이라는 게 어떤 측면인가요? 사람이 받을 수 궁극적인 건 ‘감동’ 아닌가요? 심플이 제일 먼저였구요. 그다음에 소위 정수진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것 같고, 이다음에 이것들이 내가 죽을 때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제대로 살은 건축가가 되지 않겠습니까. 음… 누구나 꿈꾸고 있죠. 그렇죠. 그러고 싶습니다.
pp.58–59. 진입로에서 바라본
별똥집의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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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성, 하지만 편집증
“가끔씩 정말정말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걸 하고 싶거든요. 아마 언젠가는 할 것 같아요.” 사람이 보통 공부를 하는 시절에 뭔가 꽂히는 쪽에 초점을 맞춰 가기가 쉽잖아요? 예를 들어, 해체주의에 꽂히면 다른 건 다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이고, 모더니즘에 꽂히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그때는 시간이라는 걸 생각을 못 했던 거 같아요. 선배 세대들도 그렇고 오랜 시간 동안, 편협했던 때도 있고 세상과 교류하는 시절도 있고 하면서 변해가는데, 생각이라는 게 좀 그런 것 같아요. 한 번 꽂히면 세상을 너무 좁게 보는 것 같아요. 시간이 쌓이면 거기 분명 뭔가가 있겠죠. 저도 집착이 강한 편인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가끔씩 저도 저를 잘 모르겠는 게요. 제 성격이 너무 양면적인 게 많은 것 같아요. 특히 기호적인 측면에서. 단적으로 예를 들면, 아주 극단적으로 심플하게 디자인하는 분들도 좋아하지만요. 프랭크 게리Frank Gehry(1929–)도 되게 좋거든요. 저도 건축가로서 다 좋아해요. 그리고 저는 천경자(1924–2015)씨의 색을 너무 좋아해요. 마크
왜요?
로스코Mark Rothko(1903–1970)도 색깔 너무너무 좋잖아요. 그 두 분의
저는 그런 거 못 한다고 그랬잖아요. 하하. (웃음) 기본적으로 저는
그림이 너무 다르잖아요? 근데 두 분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요. 한자도
복잡한 산수는 싫어하기 때문에요. 저는 숫자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반듯하게 쓴 해서楷書체도 좋아하고 흘려 쓴 초서草書체도 좋아해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저도 제 정체성이 궁금해요. 뭘 좋아하는지. 숫자가 맞아 떨어지는 거요? 다 좋아하면 안 되나요? 다 좋아해도 돼요. 되는데, 근데 다 좋아할 수가 있나요?
딱딱 맞아 떨어져야 돼요. 그러니까 비틀어져 있는 거를… 못 봐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힘들어해요. ‘이빨이 안 맞다’ 그러죠. 이빨 안 맞는 건 도면도 싫어하고 현장도 싫어하고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되게
좋아하는 건 자유 아닌가요? (웃음) 근데 좋아하는 것과 만들어내는
힘들어하는 게, 캐드CAD 치다 보면 0.0000 몇 나오잖아요?
것과는 다른 문제 같은데요. 그죠. 근데 저는 그걸 다 하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프랭크 게리
맞아요. 정말 이상할 때가 있어요.
같은 걸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돌아버려요. 저는 그걸 다 잡아야 다음 진도가 나가요. 그래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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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그걸 한두 개 내놓으면 그때부터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주연 배우면 다 좋은 거 아닌가요?
거예요. 일을 못 하니까. 그게 조금 편집증적인 요소인데요. 그거는
연기 잘 하면 다 좋아요. 이쁜 거보다 연기 잘 하면 다 좋아보여요.
오히려 극단적인 심플에 가까운데요. 가끔씩 정말정말 화려하고
무용 잘 하고 연기 잘 하면 그 사람이 막 빛나 보이는 거 있잖아요.
그로테스크한 걸 하고 싶거든요. 아마 언젠가는 할 것 같아요. 요즘
근데 좋아하는 거하고 그걸 하는 거는 다른 거거든요. 하여튼 뭐가
살짝살짝 넘어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긴 한데요. 아직까진 발표가
뭔지 모를 때가 있는데 언젠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도 안 돼서 그런데, 우리 직원들이 요즘 그런 이야기를 해요. ‘이거 도저히 정 소장님 작업 같지가 않다. 자꾸 변한다.’ 좀 더 과감한 쪽으로 갈 수 있다면 저 같은 성격은 어떻게 만들지 실험 과정인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다 좋아하면 안 되요?’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특별히 누가 최고야 하는 건 별로 없어요. 저는 존 포슨John Pawson(1949–)도 좋고, 게리도 좋고, 쟝 누벨Jean Nouvel(1945–)도 좋고, 줌터나 헤르조그Herzog & de Meuron, 잘 하는
사람은 다 좋아요. (웃음) 연예인도 특별히 누가 좋은 게 아니고…
A. 진입로에서 바라본 이-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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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수진
“목표는 잡았는데 실컷 놀았어요.” 어쨌든 그러면 자신의 색깔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건 파리… 아뇨. (웃음) 내 색깔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건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그때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으로 주택 과제를 했거든요. 그때 친구가 «한국주택 100선»이라는 컬러판의 큰 책을 하나 사줬어요. 사실 저는 건축가가
관심도 없고 학교도 잘 안 다니고 그랬거든요. 근데 일단 숙제를
A
해야 되니까, 펼쳐서 보는데요. ‘어머 세상에 이게 집이야?’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저랑 나이 차도 별로 안 나시는데 그렇게 빨리요? 그때 좋은 혼처가 한 군데 있어가지고, ‘졸업을 했으니 얘를 시집을
별로라서요?
보내야 되겠다' 했는데 그때 엄마가 몰래 서울로 보내줬어요. 그래서
너무 좋은 집이 많았어요.
이모 집에 놀러간다고 얘기를 하고 서울에서 두 달 동안 공부를
아… (웃음)
대학원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시집 이야기가 터지는 바람에
나는 맨날 동네에 있는 양옥, 단칸방 이런 거밖에 못 봤기 때문에
도저히 집에 머무를 수가 없어서, 엄마가 ‘그럴 것 같으면 그냥 서울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집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는 단편적인
가라. 잠시 이모네 가서 공부를 해라' 그러셔서 서울에 가는 김에 좀
부분만 나오잖아요. 근데 책에는 사진이 꽤 많았어요. 그걸 보는 순간,
제대로 가야겠다 싶어서 뒤졌는데 그냥 홍대밖에 안 보이더라구요.
죽어라고 해가지고 대학원에 입학을 하고… 원래는 대구에서
‘나 이런 집 짓는 건축가 할래.’ 이렇게 된 거예요. 어머님은 어쨌든 응원해주셨네요. 그렇군요. (웃음)
예. 왜냐며는 시집 갈 생각이 없는 애기 때문에… (웃음) 그래서
(웃음) ‘나는 이런 집 짓는 건축가 할 거야.’
엄마가 두 달 동안 용돈 주고 거짓말 시켜주고, 그때 최초로 공부를
그건 100선이었잖아요. 101번째 집을 짓겠다는 목표가 선 건가요?
일곱 권짜리하고 토플 책 딱 하나만 샀어요. 사서 토플 책을 두
그때 섰어요. ‘나 이제 건축 할 거야.’ 그때 이전에는 건축 하고 싶은
번을 보구요. «맨투맨»을 한 번 다 보고. 그리고 건축이론을 시험을
생각 없었어요.
쳤거든요. 저 대학교 때 엄청 놀았다고 그랬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피터지게 했었어요. 정말 공부 많이 했어요. 두 달 동안. 그때 «맨투맨»
이론 책을 샀어요. 역사책을. 지금도 다 있어요. 노트 정리한 것도 어떠셨어요? 4학년 때까지, 순조로우셨나요?
아직까지 유용하게 쓰고 있고. 그때 건축이론 시험이 주로 나오는
아뇨. 실컷 놀았어요. 4학년 때까지. (웃음)
게, 근대건축에 대해 쓰라는 게 나온대요. 제가 그때 나온 책을 다
목표는 잡았는데? (웃음)
밖에 안 잤을 거예요. 그래서 홍대 들어갔는데, 건축시험은 조금
네. 목표는 잡았는데 실컷 놀았어요.
못 봤대요. 근데 영어를 만점 맞았대요. 그래서 뽑혔답니다. 그래서
끌어모으니까 일곱 권 정도 되더라구요. 그렇게 두 달을 하루에 3시간
서울에 간다고 하니까 우리 아빠가, 네가 서울을 왜 가냐고… 하하. 어… 그러면 목표를 향한 행동은 언제 옮기게 되나요?
(웃음) 그래서 서울 오게 됐구요.
그게 그냥 막연하게 말로만 하던 목표를 실행으로 옮긴 게 집에서 시집 가라고 난리를 쳤는데…
그렇군요. 시험은 겨울에 치셨고요? 3월에 공부 시작해서 5월에 시험 봤을 거예요. 그리고 9월부터 학기
언제요?
시작했고요. 그리고 대학원 와서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휘트니
4학년 때, 졸업할 때쯤.
비엔날레 때문이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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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건축학과 재학시 설계실에서
촬영한 사진 B. 1993년 서울에서
개최된 휘트니비엔날레 포스터(국립현대미술관 디지털아카이브 제공)
아, 서울에서요? 휘트니 비엔날레가 3대 비엔날레 중에 하난데, 그게 지명이 아니고 사람 이름이래요. 그게 여기 현대미술관에서 했어요. 아, 와서 한 거예요? 예. 아… 이거 녹음된 걸 타이핑해서 인터뷰로 풀면은 여기 편집장 되게 B
무식하다고 그러겠는데요. (웃음) 하하. (웃음) 근데 정말 심각하시네. 저도 그게 계기가 돼서 공부하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거기 가서 그림을 다 봤어요. 다 보고나니까 동기들이 집에 가쟤요. 그래서 제가 ‘집에 가면 어떡해?’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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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비엔날레
다 봤으니까 가쟤요. ‘야, 휘트니 비엔날레를 안 봤잖아. 휘트니 비엔날레가 어딨어?’ 이랬더니 완전 뒤집어진 거예요. 그렇군요. (웃음)
“그때 진~짜 진짜 챙피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파기 시작한 거였어요.”
저는 그게 사람 이름인 줄 알았어요. ‘휘트니 비엔날레’라는 작가의 개인전을 보라고 그러는 줄 알고… 그 정도로 무식했어요. 그래 갖고 쓸 말이 없으니까 그걸 다 썼어요. 그때 교수님이 김성국 교수님이었거든요. 유명한 분이세요. 그로피우스Walter
휘트니 비엔날레요?
Gropius(1883–1969)의 제자고, 그분한텐 C도 받기 힘들고 하여간
예. 제가 대학교 때 얼마나 심각하게 놀았냐면, 저는 대학교 때도 르
한 시대를 풍미하신 분이 계세요. 그분 수업이었는데 제가 쓴 걸 다
코르뷔지에라는 사람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읽으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분이 껄껄껄 웃으시더라구요. 누군지 안 밝히겠다고. 그때 진~짜진짜 챙피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파기
저랑 비슷하시네요. 아, 저는 3학년 이후에는 알았어요.
시작한 거였어요. 예술책, 철학책, 건축책, …
저는 4학년 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대학원 시험 때문에 건축사를 공부하다보니 그 사람이 나오는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도
음… 뭔가 영감을 받아서 시작한 게 아니고…
몰랐구요. 그냥 역사 속의 한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챙피해서… 하하. (웃음)
수업 시간에 휘트니 비엔날레 보고 와서 감상문을 쓰래요. 몇 학기 때였나요? 휘트니 비엔날레는 뭐예요?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그림들 모아놓고 전시하는…
1학기 때요. (웃음) 다행이었죠. 그게 3학기 쯤 됐으면 큰일 날뻔
했는데. 그리고 원래 책을 읽는 걸 좋아했었어요. 근데 그 전에는 소설, 에세이, 시집 이런 거 읽다가, 그때부터는 철학책, 예술책, 건축책, …
그게 어디서 했는데요?
또 홍대 분위기가 그래요. 서점에 가서 새 책 쓸어 오는 게 일이었어요.
여기…
그때 공부를 정말 많이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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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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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유학
어떤… 라 투레트Couvent de La Tourette(1959). 음… 강의 영상에서도 나왔던… 네.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 감동이… 딱 두 번 소름이 끼쳤거든요.
“감동을 받은 건물이 딱 하나 있었어요.”
첫 번째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 세제션관Secession Building(1898)을 보러 갔는데… 그냥 건물을 보러 갔는데 문을 열고
전시장을 들어가니까 천정화가 있어요. 금박에 화려하게 있는데 저 파리 벨빌대학은 어떤 계기인가요? 전에 말씀하셨던 여행 가서의…
그런 거 정말 싫어했거든요. 아르누보 풍의. 딱 보는데 온 몸에서
(이전 취재에서 정수진은 파리로 유학을 간 이유에 대해 ‘인상이
지지지지지 하는 느낌 있잖아요?
강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한국에서 여자는 담배도 숨어서 피는 분위기였는데 담배를 아무 곳에서나 자유롭게 피는데다
전율.
지저분하기까지한 파리 거리가 신기했고, 다음 날 새벽 너무 깨끗해서
네. 그게 컸고요. 그러고 라 투레트 수도원 가서, 복도에서 문을
더 놀라웠다고 했다.)
딱 열었는데 저 앞에서 빛이 촤~악 들어오는데, 화~ 역시, 그래서
네. 그것도 있었고, 그리고 우리 지도교수님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코르뷔지에라고 얘기하는구나… 그래서 코르뷔지에 광이 된 거죠.
오셨고요. 김형우 교수님이라고. 코르뷔지에 초기 건물들이 어떻게
그러면 당연히 파리로 가야 되겠죠. 그런 많은 것들이 엮여 가지고
보면 심플하잖아요? 보다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알기 시작하니까.
파리로 갔던 거예요. 쓰레기도 중요했구요. 아, 진짜 중요했어요. 그
대학원에서 코르뷔지에를 공부를 하다 보니까 너무 좋았고. 그런데
분위기가.
책의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거가 너무너무 다른데요. 제가 그때 유럽 가가지고 7개국인가 8개국인가 돌아다녔는데, 감동을 받은
그랬군요. 파리 벨빌에서는 96년에 가서 청강하셨고요?
건물이 딱 하나 있었어요.
96년은 청강했었고, 97년부터 정식 학년이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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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C
A, B, C. 정수진이 촬영한 라
투레트 수도원. 특히 수도원 본당으로 이어지는 회랑(A)의 분위기에 감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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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1
“건축가가 선을 쓸 때 그 선의 의미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소장님이 어쨌든 지금처럼 건축을 하는 틀이 잡히신 건 이 시기(프랑스 유학)인가요? 그렇죠. 설계를 가르쳐주신 분은 시리아니Henri Ciriani(1936–) 선생님이세요. 그 전에 저는 입으로만 따불따불 아는 척하는 거였고. 프랑스에는 선생님이 시리아니밖에 없나요? 프랑스 다녀오신 분은 다 그 분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은데. 아뇨. 되게 많으신데요. 저희 학교에서는 시리아니 선생님이 대장이세요. 그 외에는 다 시리아니 선생님이 ‘쯧’ 하면 가만 계세요. (웃음) 완전 독재자예요. 특별히 어떤 부분이 더 키워진 거 같으세요?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건축적으로요. 그분이 교육자로서 유명하시잖아요? 어떤 부분을 끌어내 주시던가요? 건축가가 선을 쓸 때 그 선의 의미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선을 쓸 때, 그 선의 의미. 네. 선이 말하는 거. 이 선을 이렇게 쓰면 공간이 어떻게 바뀌고 그런 것들을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주셨어요.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냥 제일 쉽게 얘기하면 저희가 첫 수업이 이거예요. 벽 하나에 기둥 하나. 벽 앞에 선 기둥이 벽의 가운데 있으면 그 양쪽 공간이 비등비등해요.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는 거예요. 이 상황이 공간화가 됐을 때. 만약 기둥을 좀 더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면 분위기가 변하죠. 그리고 3차원이 됐을 때의 높이를 가지고 얘기를 해요. 그랬을 때 공간의 경계라던가 공간의 확장이라던가 공간의 상호관입이라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축의 모든 언어는 이 얘기로 다 되거든요. 모든 곳에 다 숨어 있어요. 그런 얘기들이. 공간을 분절할 때, 공간을 연결시킬 때, 실제로는 연결되는데 시각적으로만 끊어버리고 싶을 때, 또는 실제로는 끊어버렸지만 시각적으로 연결하고 싶을 때, 그런 얘기들이 투시도들에 있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가르쳐주신 거예요. 결국은 이 얘기에요.
pp.66–67. 정수진의 첫
학기 점·선·면 과제 스케치. 기둥과 단면선, 상부 히든 라인hiddenline으로 구성된 2차원 요소들을 3차원
투시도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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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15-2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2
“적어도 저는 제가 쓴 벽 하나하나에 대해 ‘왜 이렇게 썼습니까'라고 물으면 다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싫은 얘기 듣는 건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음… 그냥 생각났어요. 설명해주신 것들이 일종의 공간 다루는 기술 같은 거 아닌가요? 그쵸. 네. 맞습니다. 건축가로서 색깔을 가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런데 이건 건축의 보편적인 기술 같은, 물론 건축가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부분이지만요. 이 방식에 천착하다보면 아이덴티티는 더 약해지지 않을까요? 아, 거기에서는 조금 문제가 생기는데요. 거기는 기술이라는 얘기를 할 수 있구요. 이론이라고 얘기를 할 수도 있어요. (시리아니) 선생님은 뭘 가르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예. 맞아요. 그 안에는 기술도 있어요. 벽을 휘감고 어떻게 전개돼 나가고, 이건 기술이에요. 근데 가장 근원적인 점과 선과 면과 덩어리에 관한 건 기술이 아니라 이론이에요. 저는 그렇게 봐요. 이 분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셨거든요. 여기서부터 가르쳐주시는데, 이거 모르는 건축가들 정말 많아요. 그냥 감각으로 써요. 그리고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 되게 많아요.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저도 억지 논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저는 제가 쓴 벽 하나하나에 대해 ‘왜 이렇게 썼습니까'라고 물으면 다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그냥 여기는 이렇게 돼야 될 것 같아서’가 아닌 거예요. 근데 저는 그분(시리아니)의… 어떻게 보면 테크닉이라는 말이 맞아요. 그분의 테크닉은 싫어해요. 그분의 테크닉은 지독하게 프랑스적이구요. 그건 그분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그분의 테크닉이죠. 제가 한 건 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저의 테크닉이라고 얘기할 수 있구요. 전쟁기념관 기억이 나요. 삼각형 형태로 된… (삼각형 형태의 프로젝트 명칭은 아를 고고학 박물관 Musée Deacutepartemental Arles antique(1995)이다. 앙리 시리아니의 다른 프로젝트인 페론
전쟁기념관 Péronne historial de la grande guerre(1992)과 기억이 뒤섞였다.) 전쟁기념관하고 그다음에 하신 박물관이 유일하게 덜 그런 거예요. 너~무너무 복잡하고 막 돌려놓고 그 공간의 유희가 소위 미로처럼 돼버린, 그래서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그런 부분을 비판을 많이 한다고 하거든요.
pp.68–69. 유학 중 수행했던
과제들. 주거(좌, Logement)와 단지계획(우, Piece Urb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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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70–71. 파리 벨빌
졸업설계작, 영화 학교Ecole de Cinema의 도면과 내·외부
투시도 및 모형. 학위 논문 주제인 시각적 산책Promenade visuelle의 개념을 적용했다.
15-3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3
“‘넌 이제 학생이 아니잖아’… ‘가서 나 버려', 그러셨어요.” 프랑스 유학 다녀오신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스트림을 형성하고 있지 않나요? 한국에 있는 건축가들이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거든요. 다들 그걸 벗어나려고. 근데 그게 우리나라하고 안 맞아요. 프랑스는 우리하고 기후가 너무너무 틀리기 때문에 그런 유형이 어울리는데요. 우리는 그런 유형을 갖고 오면 추워서 못 살아요. 비도 많고. 그래도 많은 시리아니 제자분들이 그걸 답습을 하고 있어요.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들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을 쳐요. 제가 직·간접으로 작품을 접해본 적 있는 프랑스 출신 건축가들이… 한만원(1956–), 전인호(1959–), 한형우(1961–), 이은석(1962–), 정재헌(1964–) 등등을 보면, 제 느낌엔 다 다른 것 같아요. 그죠?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일종의 토착화 과정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걸 향해 다들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예. 각자. 그리고 선생님이 저한테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떠나오기 전에… 정말 독재자예요.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난리가 나요. 모든 논리와 방법들을 설명하는 것들이 자기가 말한 이론에 다 맞아야 되거든요. 근데 마지막에 한국에 들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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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다가 ‘어, 이거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거 아니잖아요’ 그랬더니, ‘넌 이제 학생이 아니잖아’… 아… ‘가서 나 버려’, 그러셨어요. 그렇군요. 처음에 뭐라고 하셨나면, 학교 처음 시작할 때 다른 한국 학생한테 한 얘기가 막 역정을 내시면서 ‘너 한국에서 꺼 다 잊어버려!’ 이러면서, 그때 그 학생이 ‘한국에서 우리 교수님이…’ 그랬더니 ‘여긴 한국이 아니야!!!!!’ 그랬는데, 제가 한국 올 때쯤 햇수로 7년 뒤에 ‘이거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거 아니잖아요.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랬더니 ‘넌 이제 학생이 아니야’ 이제는 자기를 잊어버리라고, 가서 네 거 하라고… 이건… 옛날에 좋은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요. 뜻을 얻었으면 말을 버리라고? 아, 그래요? 그래서 그 말씀을 해주셨을 때 진정한 교육자라고 생각을 했구요. 어떤 선생님이 자기를 잊어버리라고 그러겠어요. 그래서 ‘너는 좋은 건축가가 될 거야. 열심히 해’ 그러셨어요.
pp.72–73. 지도교수 앙리
시리아니Henri Ciriani를 포함한 비평가critic들 앞에서 졸업설계 발표 중인 정수진의 모습. 성적란에 A++가 기재된 수료증. 심사위원장(Beaudouin Lauret) 의견 란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심사 위원들은 정수진의 재능과 통찰력을 높이 평가한다. 우리는 이 학생의 미래에 큰 희망을 가진다. 정수진은 정교함과 명확성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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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뜰리에 3년, 대형 설계사무소 3년
예. 근데도 막연히 상황이 불안했어요. 그 불안의 요인은 뭔가요? 개인적인 상황이 너무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을 거
“빨리 지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작은 데로 갔어요.”
같아요. 건축적인 건 아니었구요? 건축적인 건 아니었고. 근데 프랑스에서도 사실, 제가 지방대여서
교육이 끝난 지점까지 해서, 본인이 어떤 건축가가 될 거라고
힘든 게 쪼끔 있었어요.
생각하셨나요? 저요? 어떤 건축가… 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은
프랑스에서도요?
없어요.
예. 그래서 그런 부분도 조금은 작용한 것 같아요.
아니면 자신감?
벨빌이 지방대라는 건가요?
자신감, 어유 장난 아니었죠.
아니죠. 영남대학교가.
이제 (한국) 들어가면… (웃음)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지방대 서울대를 따지나요?
승승장구지. 하하. (웃음) 진짜 그러고 들어왔어요. 왜냐면 학점이
거기도 한국 사람들이 많잖아요. (웃음)
에이 플러스A+까지 있잖아요. 아… 그렇군요. (웃음) 그쵸.
홍대 대학원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것도 많이
저 투플러스 받았거든요.
느꼈었고, 그리고 두 번째는 큰 데를 가면… 저는 지어보고 싶은, 그게 엄청난 자부심인 거예요. 빨리 지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그런 것도 있어요?
하다가 ‘작은 데 가야 되겠다’, 근데 너무 아는 데가 없으니까 그냥
예.
아는 분이 소개를 해주는 데 갔어요. 그게 플러스 건축사사무소고, 들어가자마자 부소장으로 갔어요.
공식적으로요? 네. 제 성적표에 있어요. (웃음)
당시에는 정보를 접하기도 어려웠죠? 진짜 뭐… 서울에 연고 자체도 없으니까. 그냥 일단은 연결해주는
근데 귀국하시고 처음 들어간 데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서 무조건 들어갔고, 그리고 졸업할
플러스 건축사사무소.
때의 자신감으로 ‘내가 어디 가든 뭘 못 하겠어’ 하하. (웃음) 그래서 거기서 3년 있었구요. 있으면서 거기서도 우여곡절이 되게 많았구요.
{플러스} 잡지랑은 상관…
유일하게 딱 한 채 지었어요. 딱 나가시면 바로 보실 수 있어요.
아니에요. 나가실 때 제 첫 작업을 보여드릴게요. 바로 이 근처에 있어요. (웃음)
3년 동안 한 채요?
그때는 어떠셨어요?
지어져 있고,
아뇨. 여러 개 지었는데요. 제가 계단실을 여기에 그렸는데 저기에 그때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지방대 나왔었고, 대학원 마치고 (프랑스로) 바로 갔었고, 그리고 사실 돌아올 타이밍이
왜요?
아니었어요. 그때 저는 박사학위를 하려고 거의 어드미션을 받아놓은
그냥 다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상태였거든요. 근데 들어왔다가 다시 나갈 생각이었는데 못 나갔거든요.
시공자가요?
귀국하시고요?
엄청 올려놨거든요. 그때 설계비가 집 한 채 짓는데 700만 원
네. 못 나갔거든요. 개인적인 일이 좀 있었는데 길어져가지고. 그
받았데요. 저는 대뜸 ‘설계비 3,000만 원인데요’ 그랬어요. 저는 그
당시에는 다들 큰 사무소, 공간, 희림, 정림 이런 데를 가야된다고
정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못 받으면 2,500만 원 하면서
생각을 했는데, 저는 도저히 자신이 없더라구요.
설계를 많이 했는데, 다 그렇게 (마음대로) 짓더라구요. 그래서
건축주… 공사하는 과정에서. 제가 프랑스건축사라는 걸로 설계비를
유일하게 얘 하나 성공하고 ‘더 이상 안 해’, 그러고 간 데가 동우건축. 어떤 게요?
처음부터 생각한 게 3년, 3년, 독립 계획을 세우고 있었구요. 큰
거기 가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데가 먼저인지 작은 데가 먼저인지 그랬는데 일단 작은 데를 먼저
프랑스에서는 승승장구 생각하고 돌아오셨는데요?
동우에서 오라고 그래가지고 들어가서 3년 있고, 그러고 3년 뒤에
들어갔으니까 큰 데를 들어가야 되겠다 해가지고 생각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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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플러스 건축사사무소
개업을 한 거죠.
재직 시 담당했던 첫 번째 완공 프로젝트의 개념 스케치와 모형
동우에서는 어떠셨어요?
그리고 완공사진.
정말 싫었어요. 제가 제일 싫었던 게 뭐냐면… 외국 건축가들하고 협업이 많았어요. 우리한테 대안을 갖고 오라고 해서 가져가면 ‘이걸 설계라고 했니’ 하는데 그다음에 외국 건축가가 거의 같은 걸 가져오면 너무 좋다는 거예요. 저는 본사에서 6개월 정도 있었고 별동부대로 일을 했어요. 주로 합사를 했어요. 턴키, BTL, 현상 등 오만 거 다 하고 돌아다녔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한 2년 넘게 했었어요. 3년을 채우고 싶었지만 3개월 덜 채웠을 거예요. 3년씩이나 버틴 거네요.
약속을 했으니까. 나랑. (웃음) 근데 지금은 후회가 돼요. 한 1년만 빨리 끝낼 걸. 3년씩 안 가도 됐는데.
A
B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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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독립, 고립
독립하면서 저는 제가 정말 잘난 줄 알았어요. 3년은 작은 사무실에서, 3년은 큰 사무실에서, 이제 막 정통 코스를 다 밟았으니까, 이제 내가
나가면 일이 막…
“‘내 몸값이 그거밖에 안 돼요? 내가 안 하면 안 했지 그렇게는 못 해요.’ 그래가지고, 2년을 놀았어요.”
들어오실 줄 아셨군요. 클라이언트 좀 데리고 나오지 않으셨어요? 전혀요. 바라지도 않았고. 저는 설마 그러고 나오면… 지금 생각해 보면 뭔 배짱인지 참 웃기는 일이지만요. 일이 막 쏟아질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 8개월까지는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노는 게. 일은 좀 들어왔나요? 안 들어왔죠. 당연히. 하하. (웃음) 근데 그때도 참 희한하게, 과천이 처음 사무실을 한 데였는데, 여기 지은 집을 보고 누가 전화를 했어요. 아, 예전에 플러스에서 했던 거요. 예. 저를 수소문해가지고, 그분이 어느 건축가 선생님이 지은 집에 살다가 그 집을 부셨어요. 설계를 하고 싶어서 저한테 의뢰를 했는데, 똑같았어요. 제 몸값을 엄청 비싸게 부른 거예요. 그 당시 2008년도에 제가 설계비를, 처음 설계비를 3,000만 원을 불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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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노트에 담겨 있는 스케치들. 주로 일상적인 풍경과 심상을 표현한다.
주택이요?
강의는 하고 계셨군요?
네.
네. ‘싸게 해라. 싸게 해라…’ ‘내 몸값이 그거밖에 안 돼요? 내가 안
제가 2004년에 완전 선생님급에서 들어보니까 ‘오천을 주던 일억을
결국은.
하면 안 했지 그렇게는 못 해요.’ (웃음) 그래가지고, 2년을 놀았어요. 주던 주는 대로 받어' 그러시더라구요. 그리고 사오십대 유명 건축가 분들은 삼천에서 오천 사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생각보다 많이 받지는
그래도… 뭔가 존경스럽습니다. 그 부분은 정말.
않는다는 느낌이었어요.
어, 근데 저도 그게 정말 잘 했다고 생각이 돼요. 정말 1년을 꼬박 놀고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저는 포트폴리오가 하나도 없잖아요.
나니까, 돈이 없잖아요. 진짜 돌아가시는 분들 이렇게 붙잡고 싶어요. ‘싸게 해드릴게요. 하시죠. 그냥' 그러고 가시면 혼자 막 설계를 하는
소장님 정도면 그때는 천…
거예요. (웃음) 땅도 다 봤으니까. 설계를 막 해요. 오시면 하려고.
천오백. 맞아요. 딱 그 급이에요.
하하. (웃음) 자존심 때문에 전화는 못 해먹겠고, 혼자 다 설계 해보고
그것도 안 주려고 그러고. (웃음)
하다가, 1년 조금 지나니까 돈이 없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사이트도 또 가보고, 할 일이 없으니까. 혼자 스케치도 해보고 그렇게 예. 그쵸. 그랬더니, 일단 그분은 제가 한 걸 봤으니까 하고는 싶은데
다시 큰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써주기 시작했어요. 제가 턴키, BTL
너무 비싸서 계속 ‘깎아달라’ 그리고 ‘가설계 보자’, ‘가설계 난 안 해요’
대표였잖아요? 식은 죽 먹기인 거예요. 알바생 하나 데리고 보고서를
그래가지고 다 무산이 된 거예요. 3,000만 원에서 10원도 안 깎은
쓰기 시작했어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알던 교수님들이 저한테 뭐라고 하셨죠. ‘정 선생 그래가지고는 사무실 결국 문 닫는다. 해라. 낮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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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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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연명을 하다가, 운 좋게, 동우에서 처음 만났던
첫 번째 기회, 아쉬움
한미파슨스라고 있어요. 거기랑 일을 잘 했는데, 희한한 게 제가 성격이 딱 부러지고 못된 성격이거든요. 일할 때 보면. 근데 의외로
“아쉽죠. 공사가 생각만큼 안 나왔으니까.”
협력업체에서 그런 성격을 좋아들 하시더라구요. 음… 일할 때는 번거로운데 어쨌든 일은 깔끔하니까요? 예. 그래서 거기 계신 분이 연락이 왔어요. ‘너 설계사무실 냈다며. 이거 할래?’ 그래서 첫 번째 일을 시작을 한 거예요. 그게 미래나야 사옥이에요. 제가 오픈하고 첫 프로젝트예요. 아쉽죠. 왜요? 공사가 생각만큼 안 나왔으니까. 설계는 어떠셨어요? 설계는 맘에 들어요. 설계는 최곤데, 항상 시공이 문젠가요? 그렇진 않아요. 그렇진 않고, 그 프로젝트에서 설계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뽑았다고 생각을 해요. 면적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외부 재료도 노출콘크리트에 세로 줄눈처럼 홈들이 가 있던데… 네. 그런 건 제가 잘 못 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아마 제 똘끼가 나오는 거였을 거예요. ‘나는 반드시 이런 건축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래요. 남들이 하는 거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내 성격도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옷을 입었는데 남들이 같은 옷을 입으면 그다음부턴 입기 싫어져요. 하하.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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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C
A. 미래나야 사옥의 상부.
사선의 노출콘크리트 매스에 세로 줄눈으로 홈을 내서 수직의 느낌을 강조했다. B. 맞은 편에서 바라본 미래나야
사옥 전경 C. 미래나야 사옥 업무공간 D. 미래나야 사옥 계단실 E. 미래나야 사옥 고측창clerestory
D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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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일이 없어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제가 한국에 왔을 때 첫 번째
두 번째 기회, 좌절
사무실의 첫 번째 클라이언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플러스 건축사사무소 들어가셨을 때?
“나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네. 그분이 전화가 왔어요. ‘요즘 바빠요? 나 집 한 채 지어야겠는데’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얘기가 되는데, 또 없어진 거예요.”
해가지고 만난 게 횡성 공방인 거예요. 횡성 주말주택, 횡성 공방 시리즈가 결국은 하늘집으로 연결이 된 거였어요. 횡성 공방은 나중 일이고, 횡성 주말주택을 설계를 했는데 그걸 못 하게 돼서 제가 방황을 하다보니 그분이 ‘빨리 돌아와라. 인테리어라도 마무리해라’ 해가지고 그걸 하던 중에, 그 인테리어 끝날 무렵에 하늘집 건축주분 손을 붙잡고 오신 거예요.
A
방황을 하고 계셨어요? 그럼요. 왜냐며는 얘(미래나야 사옥) 땜에, 나는 ‘빵’하고 세상에 터트려야 되는데 얘가 생각만큼 못 나왔기 때문에 이걸 어디 발표를 못 하잖아요. 그래서 설계하고 뭐하고 1년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쏟아붓고 꽝이 됐고, 그리고 나서 또 일이 없잖아요. 당연히. 난 빨리 발표를 해야 일을 할 텐데 또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건축주 전화 왔을 때 저 집에서 술 퍼마시고 완전 그로기 상태로 누워있는데 만나자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샤워하고 술 깨고 나갔는데 횡성에다가 별장을 하나 지어야 되겠다고, 그래갖고 설계를 다 했는데, 이제 허가서에 도장 찍으러 오시라고 한 날 약속대로 오셨는데, 갑자기 이걸 허가를 내지 말자는 거예요. 왜 그러시냐니까 부모님이 갑자기 편찮아 지셔서 옆에 집을 사셨대요. 그러니까 이건 단순하게 집을 한 채 못 짓는 게 아니고, 나는 세상에 발표를 해야지,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얘기가 되는데 또 없어진 거예요. 그게 벌써 3년이 넘었잖아요. 그러니까 ‘알겠다’ 그러고 그날부터 잠적을 한 거예요. 제가. ‘시간을 조금만 달라.’ 정말 세상 다 싫더라구요. 그래서 차를 몰고 무작정 막 돌아다닌 거예요. 그랬더니 연락이 와서… 문자가 수도 없이 남아 있어요. 어디냐고 하도 와가지고 ‘강원도 어디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디로 와라. 여자가 어디 겁도 없이 혼자 그러고 다니냐. 여기에 방 얻어 놨으니까 여기 와서 쉬어라’ 그래서 일단은 돈도 없는데 공짜라서… 하하. (웃음) 가서 쉬는데 하루는 저녁에 오셨어요. 오셔서는 잠깐 보면서… ‘적당히 해라’ 하하. (웃음) ‘와가지고 해라’ (웃음) 그래서 와가지고 리모델링을 한 거예요.
A. SIE 개소 후 발표된 작업
없이 3년째 되는 해에 수행했던 횡성 주말주택. 이 계획안은 결국 지어지지 못했으나, 이후 하늘집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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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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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기회, 성취
횡성 공방 앞 동을 먼저 리모델링을 하고 나니까, 건축주분이 하늘집 건축주분을 모시고 왔어요. 되게 친한 지인이신데, 그분이 그러셨대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맡기냐' 그랬더니,
“<하늘집>은 너무너무 의미가 큰 집이에요. 저를 건축가로 만든 집이에요.”
그냥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그랬대요. 그러니까 횡성에서 리모델링한 걸 보시고 ‘됐다’ 싶으셨나봐요. 계획안도 다 보셨으니까. 그래서 ‘내가 다 책임을 질 테니까 해라' 그러고 10원도 안 깎으셨어요. (웃음) 그래서 저한테는 하늘집이 너무너무 의미가 큰 집이에요. 저를 건축가로 만든 집이에요. 열심히도 하셨고, 생각하신 대로 발표도 하셨고, 네. 하하. (웃음) 인상적인 게, 매스 두 개 만나는데 마감재 두께 만큼만 맞춰 놓으신 부분 있잖아요. 의지가 없으면 그렇게까지 하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A. 남측 전면 도로에서 바라본
그게 이 당시 존 포슨에게 빠져 있을 때였어요. 이 사람이 보면 되게
하늘집 전경.
뭉툭뭉툭한 거 같은데 정말 정교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pp.82–83. 2층에서 내려다 본
하늘집 중정
무지하게 베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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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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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형 주택
평지붕, 그러고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창이 큰 걸 좋아해요. 무조건 창이 커야 돼요. 에너지 효율 낮아질 텐데요? 아… 건축주들이 다들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창은 크게, 집은
“그래서 더 난리였어요. 첫 번째 제대로된 중정이 있는 집이었어요.”
따뜻하게. (웃음) 돈은 적게 들이고 집은 좋게 뭐 그런 식인데, 외관에도 창이 많은 걸 좋아하세요. 일반적으로. 실제로 살아보면 주변이랑 시선 겹치는 거 되게 싫어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은 안 드셨나요? 가령 있잖아요. 가령, 낡은 이야기를 하는
네. 근데 그런 거 아랑곳하지 않아요. 잘 모르시니까. 처음 이
건 좀 그렇긴 한데, 우리 앞 세대분들이 ‘비움’, ‘없음’ 이런 이야기를
분(하늘집 건축주)은 정말 아무 말씀을 안 하셨어요. 어떤 것도.
하시잖아요? 지금 보면, 만약에 수졸당(1995)하고 하늘집 보여주고
그래서 되게 힘들었구요. 그다음부터는 이런 집을 하기가 쉬웠던
건축주들에게 ‘두 건축가 중 누구한테 지으시겠어요’라고 물으면, 뭐… 게, 이거 보고, 이 집은 그 동네에서 너무너무 획기적이었어요. 창이 수졸당 고르시는 분들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 박스여가지고, 두 번째 건축주가 도대체
아마 일반적으로는 수졸당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훨씬 많이.
저 안에 뭐가 있을까 너무너무 궁금했대요. 어떻게 이렇게 집이 땅을 꽉 채우고 다 있을까, 실제로 공사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럴까요?
들어왔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광고를 했어야 됐기 때문에, 환영,
네.
그래서 두 번째 건축주가 이걸 보고 왔어요.
하늘집이 훨씬 더 깔끔하고 정리도 잘 되어 보이잖아요.
이 유형은 판교 필지 안에 이전에도 있었나요?
얘가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하는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없었어요. 처음이에요. 그래서 더 난리였어요. 첫 번째 제대로 된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집이에요.
중정이 있는 집이었어요. 다 닫힌.
어떤 측면인가요?
그 부분을 고민을 하셨나요? 어떻게든 다 닫아서 중정을
첫 번째는 밖이 너무 막혀 있잖아요? 그게 사람들한테 너무너무 큰
만들어야겠다는 고민.
거부감을 주는 것 같아요. 너무 폐쇄적이다…
아, 그럼요.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내가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고, 내가 소통하고 싶을 때 소통하고 소통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어느 분 글에는 수졸당도 도심형이라 등 돌리고 앉아 있다고…
소통하고 싶지 않아’라고 (건물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수졸당은 외부에서 보이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게 바라간Luis Barragán(1914–2009) 건물도 그래요. 하늘집은 사면이 다 뚫려 있어요. 옆집들하고 이격거리도 있고, 사면이 다 막혀 있는 걸로 보여요. 이런 건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을 수 없다는 데 공감해요. 아니 뭐, 건축가들조차도 이 건물 보고 ‘너무 폐쇄적이야'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저는 그런 건축가들한테 묻고 싶어요. 폐쇄적인 게 뭐냐고. 사실 일반적으로 창 많이 뚫어놓고 사시는 분들도 다 외부에 노출되는 건 꺼려하시고 커튼이든 가려놓고 사시니까요. 네. ‘그러면 그게 개방인가요? 창 뚫으면 그게 오픈인가요?’ 난 그게 묻고 싶거든요. 집들 봤는데, 건축가분들이 ‘공유’에 대한 얘기도 하고 그러시잖아요? 사람들이 잘 쓰는 걸 본 적은 없거든요. 판교주택단지 정서 자체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그러니까요. 왜 사람들에게 삶을 강요하냐는 거죠. 전원주택단지도 아닌데, ‘척’을 하냐고… 오히려 자기 삶에 대해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p.85. 하늘에서 내려다본
음… 근데요. 여기 안에서 사나흘만 살아보시면 좋아하실 것
하늘집의 단지 전경. 옥외 공간
같은데요. 그냥 봐서는 거부감이 큰가봐요. 왜냐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성에 중정을 디자인했다는
일반적인 집의 로망은 통상 박공지붕, 거기서 취향이 한 발 더 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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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 주변의 다른 주택들과 차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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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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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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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방향
“우선은 ‘그냥 열심히’구요. 두 번째는 처음에 얘기한 내 색깔이 뭔가를 찾아가는 거고.” 아까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가지고요. 보통 수졸당 같은 걸 얘기할 때, 건축가 개인의 과정을 떠나서 한국건축의 맥락에 놓기 위해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수졸당이 다른 것보다 예쁘냐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럴 때 얘기하는 게 있잖아요? 승효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그런 정도의 도심형 필지는 대부분 개발할 때 꽉꽉 채워질 텐데, 좀 더 분할해서 나누고 스케일도 좀 더 작게 하고 ‘가짐보다 쓰임, 더함보다 나눔' 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말하자면 어떤 건축작업이 그 시대의 선언적 의미 같은 걸 담을 때 ‘아, 그 건축은 그 시대에 의미가 있었어'라고 정리를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주택 작업에서? 솔직히 말씀드리기 좀 챙피하지만요. 수졸당은 제가 대학원 있을 때 답사를 갔었거든요. 지금 생각나는 거는 대지가 있으면 별채가 있었고 한옥에서 쓰는 담이 있었고 마당이 있었어요. 봤을 때, 첫 번째 느낀 건 ‘집이 예쁘다’, 실제로 이렇게 주택에 제대로 들어가 본 적은 여기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별채가 되게 독특하다', ‘한식 담장이 있네. 하지만 한옥은 아니네.’ 그냥 그런 생각했어요. 그냥 그 정도 생각밖에 없었구요. 그러고 나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다만 승 선생님의 작업은 좋아해요. 제가 그 «빈자의 미학»(1996)이란 책을 읽어봤는데요. 저는 막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는 싫어해요. 근데 다만 이 분의 집이 좋은 이유는요. 방금 말씀하신 거는, 방금 들으면서 생각한 게 ‘그렇게 따지면 내가 그분의 <비움>이라는 걸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며는 맞는 게, 이 당시에 이렇게 집을 길게 늘어뜨리고 분할하고 하는 집이 정말 없었던 거 같아요. 다 박스 형태의 집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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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개발시대였기 때문에 그런데 더 반감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엄청난 거 맞네요. 그러고 지금은 그분의 작업을 좋아하는 게, 그분은 매스와 외부 공간의 관계를 정말 잘 푸시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래서 작업에 대해 ‘그 작업 정말 좋다' 하고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게 있을 텐데, 한국건축이 나아가는 과정에 이 작업의 의미를 두려면 ‘이런 시대니까 이런 집이 필요해'라던지, 뭐 꼭 선언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는 선언이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라는 판단, 혹은 ‘지금은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그 성취들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뭐 이렇게 자기 나름의 결론, 건축가로서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어요. 음… 건축가로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건가 하는 고민들, 그냥 열심히? 우선은 ‘그냥 열심히’구요. 두 번째는 처음에 얘기한 내 색깔이 뭔가를 찾아가는 거고. 사실 윗세대에서도, 한국에서는 자기 색깔을 잘 만들어내신 분이 참 없죠. 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는, 근데 처음에는 단지 너무 폐쇄적이라는 이유, 집들이 다 중정형이라는 이유로 사실 욕을 정말정말 많이 먹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몇 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욕을 이렇게 끊임없이 하는 걸 보면 관심이 있는 거네? (웃음) 그래서 이제는 좀 괜찮아요. 오히려 욕을 안 하면 심심할 것 같으세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욕을 하니까요. 끊임없이 이슈가 되고, 다른 분 작업과 비교하면서 누가 누구 걸 베꼈냐는 얘기가 끊임없이 되니까, 그게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다가 작년부터는 정말… 이제는 그래요. ‘음, 계속 관심 있단 말이지. 알았어.’ (웃음) 아, 그렇군요. (웃음) 편하게 생각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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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혹은 고집스러움
오히려 그, 자기 색깔이라는 부분을 좀 더 고민해보지는 않았나요? 지금 계속 고민하는 중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매번 한 집, 한 집, 한 집, 한 집을 다르게 하려고 정말 고민을 나름대로 죽기 살기로 하거든요. 하늘집에서 노란돌집 갈 때, 노란돌집은 참 땅이 효자라서
“사람들이 ‘이것도 정수진이 한 것 같아’라고 하면 거의 맞대요.”
형태가 상당히 이형적이기 때문에 다른 집이 됐었구요. 그러고 그다음에 했던 집이 붉은 벽돌집인데, 하늘집하고 노란돌집은 계속 평면 밖에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러다가 다락이라는 주제가 주어지고 나니까 그 싫은 박공을 해야 되잖아요. 음… 적극적으로 하셨던데요? 매스 분할하는 제스처도 그렇고요. 네. 그걸 하면서 그다음에는 수직에 대한 거를 고민한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 각설탕은 다가구 문제를 푸는 거에 집중을 했었구요. 그러고 나서 그다음이 별똥집이거든요. 별똥집은 수직, 수평이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채를 가르는 거예요. 원래 처음에는 완전 채를 나누고 싶었어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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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모퉁이 필지를 이형異形으로
구획하는 동측 사선 도로에서 바라본 노란돌집의 모습. 이 도로에 접한 내부 공간은 사다리꼴의 안방으로 계획되었다. p.90. 거실에서 안방을 바라본
장면 p.91. 1층 복도와 계단
A
완전히 나눠져 있지 않나요?
예. 이-집도 만들었고. 그러고 시공방법도 다르게 하고 싶고. 그래서
아, 여기에 브릿지가 있습니다. 조그만. 원래는 다 끊었어요. 끊는
그런 것들이 보통 사람에겐 비슷한 집들로 보일지 몰라도, 저
것도 오케이 하셨는데, 살다보면 불편하실 것 같아서 제가 말씀
나름대로는 정말 피 터지는 발악을 하고 있는 거라고 보시면 되고요.
드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주시라고… (웃음) 사는 게 불편할 것 같아 이어드렸구요. 얘는 평면은 단순한데 실제로 들어가 보면
뭐, 집이 비슷한 것보다, 전체 작업들에서 건축가 한 사람이 보이면
높이가 정말정말 다양해요. 1층에서는 별채가 박공이기 때문에
그건 그 나름대로 좋은 거죠.
높구요. 2층에서는 모든 방들이 수직과 수평의… 아까 말씀드린
예. 건축주분들이 그런 얘기를 가끔씩 하세요. 저한테 오시기 전에
것처럼 넓을 때 높은 거하고 이런 비례 때문에 공간감이 다 달라진다고
판교 투어를 하신 분들인데, 되게 기분 좋은 말이에요. 어떤 분은
말씀드렸잖아요. 그걸 이 집에선 원 없이 써봤어요. 수평 수직에
그냥 노란돌집을 보고… 노란돌집하고 이-집이 인기가 많은데요,
대한 것들을 여기서 했고, 그리고 형태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구요.
노란돌집을 보고 저한테 전화를 하고 판교를 다시 갔는데, 판교 가서
물론 재료도 끊임없이, 정말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줄눈 없이
‘이것도 정수진이 한 것 같아'라고 하면 거의 맞대요. 그래서 저희 작업
시공하는 거, 마감을 정리하는 거… 저는 돌을 제가 중국에 직접
두세 개 보고나면 다른 것도 다 찾을 수 있대요. 공사 중인 현장을
찾으러 다녀요. 같은 거 쓰기 싫으니까.
보고 전화가 와요. ‘선생님, 이 동네 어디어디에 이거 하세요?’ 그래요. ‘어떻게 아셨어요?’ ‘지나가다 봤는데 완전 선생님 거 같더라고요. 좀
삼봉집(2016)에서는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하시구요.
들어가봐도 돼요?’ 그러고 전화가 와요. 그런 거는… (색깔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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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만큼은 보인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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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과 시공
어디서 보이는 것 같으세요? 그건 저도 몰라요. 하하. (웃음) 처음에 조금 다르게 느낀 부분은… (입)면 있잖아요. 단지 폐쇄적인
“저는 이해가 안 되면 진행이 안 돼요.”
부분이 아니라, 건축가가 계획하는 손이 시공하고 끝마무리까지 보인다는 느낌? 근데 창호가 너무 없기 때문인지 계획에서 시공까지
이전에는 시공 도면을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거든요.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건축주들이 보면요. 딱 세 부류예요. 제가 아까 양면적인 얘기도
지금도요?
잠깐 했는데, 제일 많은 분들이 엔지니어세요. 기계 만드는 분들. 두
어우, 지금은 잘 그리죠. 얘(하늘집) 그릴 때 처음 시공 도면을
번째로 많은 분이 예술하시는 분들, 그다음이 의사, 딱 셋 밖에 없어요.
그렸어요.
장사하시는 분들 전혀 없어요. 제가 생각을 해봤을 때, 이분들이 좋아하시는 이유는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전혀 내 취향이랑
이전 사무소에서는요?
맞지 않는 이분들(엔지니어)이 왜 좋아할까. 전혀 미적인 감흥이 없는
그냥 그림만 그렸죠. 얘(하늘집)를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도면을 세
분들 같은데, 이분들은 우리가 설계한 집이 기계 같아서 좋아하시는
벌을 얻었어요. 정말 도면 잘 그리신다는 분들 거 세 벌을 얻어가지고
거예요. 퍼즐 같으니까. 딱딱 맞으니까. 그러구 아까도 말씀드렸듯
펼쳐놓고 그걸 공부하면서 도면 싸짊어지고 다니면서 욕 얻어먹어
저는 어긋난 거를 못 봐줘요. 어긋난 것도 다 계산해서 어긋내거든요.
가면서 배웠거든요. 세 개를 펼쳐놓고 그거를 보면서… 제가 되게
그렇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저희 집에서 사시는 분들, 협력업체 분들이
더뎌요. 제 별명이 ‘뒷북’이었거든요.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어, 저거 비뚤어졌어.’ ‘저거 안 맞아.’ ‘어, 저기 핀 나갔네.’ 그런 것들을 살면서 배우세요. 다른 데 가서 자기가 그러고
‘뒷북’이요?
있대요. 좀 안 맞게 대충 놓인 게 있으면 바로 놓고 오신대요. 그런
제가 건축가로 나오면서 선배 한 분이 하신 말씀이, ‘나는 네가 건축할
것들이 아마도 공통적으로 작용을 할 거예요. 저는 그거 아니고는
줄 몰랐다’, ‘뒤에 늦머리 터지네’ 그러셨어요. 하여튼 저는 이해가
잘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 실수를 안 만들려고 정말
안 되면 진행이 안 돼요. 그래서 시공사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요.
노력을 많이 하고 시공사들 괴롭히고 그러죠.
근데 결과가 나오면 그게 틀어진 게 보이니까, 이제 두 번째 시공한 게 하늘집이잖아요. 여기서는 더 치밀하게, 앞에서 실수했던 걸 바탕으로
음… 입면 구성을 잘 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창을 안 뚫는 것
더 치밀하게 그렸는데, 여기에선 제가 정말 욕심을 많이 낸 거예요.
뿐이라구요? 그건 아니에요. 더 이상 밖에 창 뚫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저희
그러면 도면의 양도 많은가요?
펼친집이나, 중정으로 도심형 주택을 만들 이유가 없는 곳에서는
예. 양은 지금도 많아요. 디자인에 대해서 너무 과욕을 부린 거예요.
자유롭게 창을 뚫어요. 판교는 그 나름대로 땅이 특수하기 때문에
왜냐면 내부 전체를 글래스로 쓰고 싶은데 그걸 커튼월로 쓸 수 없기
이렇게 만드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또 제가 창을 안 내고 싶은 이유도
때문에 그 앞을 빔으로 다 잡고 콘크리트 다 끊고… 지금 생각하면
있어요. 그거는 정말 여기서 매스를 강조해서 그 어떤 것도 얘를
미친 디테일을 쓴 거거든요. 디테일 하나도 모르고 그렸어요. 그걸
건드리고 싶게 하지 않을 때, 그때는 창을 안 내요. 필요해도 안 낼
시공사에서 단도리를 다 해주신 거예요. 그러면서 이걸 할 때
때도 있어요.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요. 그걸 대신해 줄 수 있는.
다음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맨날 현장 가서 살았어요. 그 현장 앞에 김승회(1963–) 교수님 현장이 있었고요. 그 뒤에 정재헌 교수님 현장이 있었고, 주변에 유명한 건축가들의 현장이 너무너무 많았어요. 맨날 거기 가서 살았어요. 가서 사진 찍고, 그냥 거기 현장 인부 아저씨 보고 ‘아저씨, 이건 뭐예요?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하늘집 끝나고 그다음부터는 건축 책을 보면 보이는 거예요. 디테일이. 잡지 사진을 보면 ‘여긴 아마 이런 디테일로 했을 거야, 이건 이렇게 공사를 했을 거야' 해가지고, 왠만한 디테일은 솔직히 겁 안 나요. 지금은. 그리고 재료 쓰는 것도 그렇구.
p.93. 하늘집의 단면 상세도.
진입부 위의 슬라브와 2층 보 모서리 부분의 외장재가 서로 접하는 면적을 최소화하도록 디테일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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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와 협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안 되면 다 뜯는다
시공사 협의는, 저는 안 되면 다 뜯어요. 그냥. 그래서 그걸 안 하려는 시공사한테는 쫓겨나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안 넘어가요. 그냥 두말 안하고 ‘다시'.
“저는 안 넘어가요. 그냥 두말 안하고 ‘다시'.”
네. (웃음) 지난 56호 조병수(1957–) 선생님 인터뷰 첫 번째 페이지에, 처음 시공을 했는데 이게 박스로 올라가야 하는데 마름모꼴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고… 아… (웃음) 그래서 ‘이거 비뚤어졌는데?’ 그랬더니 안 그렇다고 말해서 자를 가져와서 재봤더니 많이 틀어져 있어서 ‘이거 보라’고 했는데 자꾸 발뺌해서 싸우기는 싸우셨대요. 그래서 그다음에 어떻게 하셨냐고 물었더니 ‘그냥 했죠’ 그러시더라구요. (웃음) 그게, 골조는 그걸 보기가 참 힘들어요. 골조 칠 때 저희가 나가서 체크를 다 하는데, 이 골조가 어디서는 조금 휘어서 올라가요. 근데 그게 조병수 선생님 집은 좀 커서 모르겠지만, 되게 작은 집이었어요. 아, 그래요? 근데 그게 보일 정도면 엄청난 거네. 얘가 거푸집이 좀 꿀렁꿀렁 하다 보면 위로 가면서 그 오차가 5cm씩 차이가 나거든요. 사실 그거 저희도 못 잡아요. 아, 그렇군요. 예. 그걸 골조에서 못 잡아내고, 심각한 부분은 골조에서 최대한 수리를 하고 마감에서 잡아내죠. 마감에서 어떻게든 잡아내게 만들어요. 처음 계획하신 것보다 내부 치수가 조금씩 변하거나 그럴 거 아녜요. 조금씩 변하죠. 그 오차 범위는 감안하고 설계를 하죠. 그래서 통상
A
2–3cm 오차는 생긴다고 봐야 돼요. 근데 거기서 얻은 노하우가 또
뭐냐면, 정말 타이트한 치수 이런 건 잘 설명을 해요. 이런 건 ‘골조 틀리면 다 깬다’고 해요. 아… (웃음) (웃음) 그래서 절대 틀리면 안 되는 곳은 찍어요. ‘이건 죽어도 틀리면 안돼요.’ 그러면 거기는 아주 신경 곤두 세워서 해요. 뜯는 거 아니까.
B
A, B. 하늘집에서 정밀한
시공이 요구되었던 지점의 골조 및 외장재 설치 현장 p.95. 완공 사진. 큰 오차 없이
상세도면의 계획이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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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 = 감리
“그렇게 나가고도 퀄리티를 못 잡으면 안 되죠.” 결국은… 퀄리티는 신경 써서 하면 되는 거네요? 어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 시공사하고 일을 많이 했어요. 다른 건축사무소에서 그 시공사를 소개해달래서 소개를 해주고 이제껏 단 한 번도 칭찬을 받은 적이 없어요. 왜요? 공사를 너무 느리게 해요? 아뇨. 퀄리티가 생각만큼 안 나오니까. (웃음) 똑같은 시공사인데. 그게 무슨… 그럼 제가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세요? ‘감리 몇 번 가셨어요?’ 아… (웃음) 저희는 서울에 있는 현장은 통상 70–100번까지 나가요. 음… 소장님 프로젝트 중에 기간을 보니까, 보통 설계 6개월에 시공 8개월 정도인 것 같던데요.
네. 8개월에 70–100번이요?
네. 그냥 매주 나간다고 보시면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직원들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나가고, 지금 운중동 현장 같은 경우는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나가고 있어요. 그렇게 나가는데, 그렇게 나가고도 퀄리티를 못 잡으면 안 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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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96–97. 별똥집 감리 기록
중 일부. SIE는 통상 8개월 간의 시공 기간 중 상황에 따라서는 주 2–3회씩, 총 70–100회 현장감리를 수행한다. pp.98–99. 남측의 주차공간
면에서 바라본 별똥집 전경. 사선 담장과 들어올린 마당, 외벽과 동일한 마감재를 사용한 박공 지붕과 세로로 긴 석재 마감 등 앞선 작업들과 다른 여러 시도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군요. 감리비는 어떠세요? 감리비는 그만큼 못 받아요. 손해잖아요. 근데 그거는 어떻게 보면 제 작업을 위한 투자예요. 후속타를 위한. 대신 설계비는 중견 건축가들만큼 받죠. 후속 작업을 고려하신다는 건 어쨌든 지금 하는 작업이 중요한 거네요. 아, 그럼요. 저는 지금까지 소개받은 건축주는 하늘집 건축주 밖에 없어요. 이후로는 다 저희가 한 걸 보고 오셨기 때문에 저는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구요. 그리고 실패하는 게 싫어요. 솔직히. 실패하는 게 싫기 때문에… 그래서 건축주가 쫓아내지 않으면 끝까지 해요. 거제도의 집을 2년 가까이 감리를 했었고요. 순천은 지금 2년째 하고 있어요. 거제도라는 게… 펼친집. 2년 했어요. 설계까지 해서 2년 반 넘게 했을 걸요. 거제도면 차비만도 많이 나왔겠네요. 그렇죠. 그때는 그런 엄청나게 넓은 땅을 처음 받았기 때문에, 다 이런 중정형 집만 하다가 완전히 눈이 뒤집어져가지고, ‘죽어도 잘 해야 돼’, 근데 거제도를 가는데 나중에는 정말 힘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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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기획
가구업체
심의위원
인테 리어
심의
기본 설계
인/ 허가
실시 설계
시공 입찰
시공사 선정
견적
구조
건축과 공무원
가족/지인
전기
기타부서
공인중개사
기계
건축주
설계담당자
디벨로퍼
창호
풍수지리
마감
현장소장
토목 정화조 에너지 C.G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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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만나는 전문가들
예. 시공에 대해서 의문이 날 때. 기본설계에서요? 기본설계에서는 신나게 설계만 하고, 끝나면 실시설계 들어가서 끝
어쨌든 좋은 퀄리티를 내는 과정에서, 제가 처음 뵐 때 이야기했는데,
무렵에 인·허가 들어가요. 저희 같은 경우는 그래요.
건축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좀 막연하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스터디를 해봤어요. 이게 맞는진 모르겠어요. 크게
아, 기본설계 끝나면 인·허가부터 들어가는 게 아니구요?
그냥 피저빌리티 스터디하고, 기본 설계하고, 인·허가, 실시설계하고,
실시설계가 끝나야지 저희는 인·허가 들어갑니다. 구조에서 안 되면
시공/감리, 준공, 거의 이런 과정이죠.
많이 바꿔야 되기 때문에. 기본설계는 저희가 그림 그려서 (건축주)
네. 맞습니다.
보여드리고, 그 과정이 끝나면 저희가 평·입·단면을 촤악 그려요.
그래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데 어디서 만나는지 저희가 좀 더
어느 정도 어바웃이 나오면 그 도면을 가지고 나머지 외주업체들에
뜯어봤는데요. 기본 설계과정에서 이렇게 많이 맡기지는 않으시죠?
넘기는 거예요. 그리고 인테리어는 기본설계 단계에서 컨셉이 다
그리고나서 제일 먼저 구조한테 넘겨요. 그러면 구조에서 검토해서
다 맡겨요. 무조건 맡겨요.
끝나요. 저희는. 그래서 기본 협의 과정도 창호, 시공사, 마감, 가구가 저희는 기본설계에서 다 끝나요. 기본설계가 끝나면 디자인이
주로 어느 부분을 맡기세요?
끝났다고 보시면 돼요. 실시설계에서는 이빨 맞추는 과정이에요.
통상 우리가 맡기는 게 구조, 전기, 기계, 토목은 필요할 때가 있고, 정화조하고 에너지도 가끔 필요할 때가 있고, CG는 저희가 하고요.
그러면 시공사는 나중에 딱히 시공입찰을 하거나…
소방도 가끔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규모에 따라서. CG만 저희가 하고
하죠.
이것들은 통상 저희는 외주업체를 끌고 갑니다. 시공사가 만약 거기서 떨어지면 어떡하나요? 그 외에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자문을 하는 거죠. 어쩔 수 없는 거죠. 근데 시공사에서 잘 가르쳐줘요.
이 정도면 된 거 같아요. 그리고 필요할 때는 창호, 시공사…
‘내가 이러이러한 걸 하고 싶은데 이런 시공이 가능한가요, 이런
시공사 선정을 하기 전에요?
네임밸류 있는 시공사들은 편하게 다 설명해주세요.
시공법이 있나요’ 하고 물어보면, 어느 시공사에 물어봐도 어느 정도
100
석공
주택 한 채가 지어지는 과정과 협력자들을 풀어놓은
도장
다이어그램. 건축가는 20여
단열
단계의 절차와 대략 50여개
지붕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야 한다. 최근에는 변하는 추세를
바닥
보이고 있으나, 현재까지 대부분의 건축 관련 분야의
목공
착공 신고
감리
토목 공사
골조 공사
목공
창호
철근
방수
철물
타일
거푸집
조명
전기
유리
종사자들은 남성들로 구성된다.
기계
미장
배관
도배
기자
특검
마감 공사
조경
준공
사진
매체
그렇군요. 나중에 선정하고 상관없이.
심의는 주로 교수님들이신가요?
상관없이. 그래서 시공 입찰을 한 세 군데 정도 하거든요. 해서
섞여 있어요. 건축가랑 교수님들이랑.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도
선정하고, 착공신고하고, 감리, 토목/골조, 마감, 조경, 준공… 그렇게
있고요.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들어오시죠. 주로 토목 들어오시고,
진행됩니다.
구조 들어오시고.
그러면 규모가 큰 경우 구조, 전기, 기계 같은 것도 감리가 따로
심의 받아보신 적 있으세요?
있다던데 주택 같은 경우는…
있죠. 다가구주택. 단독주택은 안 들어가구요. 통상 그게 동네가
없어요. 저희 쪽에서 다 해요.
중요하더라구요. 어떤 동네는 심의 반드시 받아야 되고.
마감공사 같은 경우에는 또 다른 참여하시는 분들은 없나요? 목공도
삼청동 같은 곳이요?
거푸집 있고, 수장공 있고 그러시다던데요.
네. 경관지구, 미관지구 이런 곳은 심의 받아야 되고, 그래서 꼭히 몇
아… 네. 다 틀려요. 골조 공사에도 철근 매시는 분, 목공, 거푸집
층에 어떤 용도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매시는 분, 전기, 기계… 들어가죠. 그리고 콘크리트 타설하면 미장하시는 분들 있고, 그래서 이분들이 막 섞여서 들어와요. 배관
준공할 때 특검하시는 분이 계시다면서요? 건축사라고 하시던데.
같은 경우도 필요한 것들은 다 심어야 되니까. 그리고 콘크리트
네.
자체에 철물을 앵커링하는 경우에는 철물도 따라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고 마감 공사 때, 도장, 단열, 지붕, 바닥, 목공, 창호, 방수,
그러면 대략 이 정도의 전문가들과 함께 주택 한 채를 만들고 계신
타일, 조명, 유리, 철물, 미장, 도배, … 석공. 외장이 있네요. 외장에도
거군요?
여러 가지가 많으니까. 외장 공사.
그렇죠. 근데 실시설계까지는 설계 과정이라 저희가 다이렉트로 하고 공사 들어가면 시공사에서 총괄하게 돼서, 필요한 때는 다이렉트로
심의 과정은 없으세요?
붙을 때도 있지만 주로 현장소장하고 해요.
있죠. 주택은 거의 없어요. 근데 심의가 지역 지구에 따라 다르고, 구마다 다르기 때문에 필요하면 들어가죠. 심의는 인·허가 과정에
현장소장이 중요하겠네요.
포함돼있는 거죠.
예. 이 모든 걸 현장소장이 총괄을 하기 때문에 현장소장하고 얘기가 거의 다 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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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건축가 < 여성
한국에서 소장님이 지금은… 40대신가요? 아직 40대죠. (웃음) 곧 오십대네요. (웃음) 물론 수명이 90, 100세 이러니까 그렇게
“건축 판이 남자 판이다 보니, 설계는 여자가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요.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한계가 오지 않을까...”
중요한 게 아닌데, 지금 50대 중반 정도가 기성 건축가들의 아래층을 형성하고 있으시거든요. 한 10년 지나면 기성 건축가실 거 아녜요? 5년만 지나도 기성 아닐까요?
그럴 거 같아요. ‘이제 곧’일 거 같아요. 어떠세요? 앞 세대 분들은 건축이라는 일을 조금 일찍 경험을 한 것 같아요. 30대 초반부터 하신 분들도 계시고요. 뒷 세대로 갈수록 조금씩 늦게들 시작하시는 것 같은데, 뭔가 계속 자기 일을 열심히들 해나가면서 또래 세대들을 볼 거 아녜요? 50대가 돼서 할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저요? 저는 안 생길 것 같아요. 그냥 계속 열심히 과정을 다듬어가시는 건가요? 네. 다만 그런 생각은 해봐요. ‘내가 몇 살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은 여러 번 했어요. 그게 원래는 내가 55세가 되면 관두겠다고, 안 나타날거라고 얘기했는데… 예전에 {와이드AR} 55호 최욱 선생님 인터뷰 보면, 넣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원래 계획은 작년까지만 하고 그만하시려고 했는데, 그죠? (웃음) 사무실 세팅하는데 너무 시간이 걸려가지고, 한 5년만 더 해야 될 것 같다고 그러셨어요. (웃음) 그래서 55세라고 생각을 하는 거에는 결국 ‘여성’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데요. 왜요? 저는 설계가 여성에게 되게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설계는 여자들이 하는 게 맞다고 봐요. 왜냐하면 섬세한 부분도 많고, 꼼꼼한 부분도 많고, 그리고 설계도 임기응변에 능해야 되거든요. 여자들이 말 더 잘하잖아요. 음… 그래도 왠지 남성차별 같은데요. (웃음) 근데 그건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보편적인 특성이에요. 설계가 여자들에게 더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건축 판이 남자 판이다 보니, 설계는 여자가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요. 제가 지금은 아직 나이가 덜 나가니까 괜찮은데 앞으로 나이가 더 나가면 과연 누가 나한테 일을 줄까, 정말정말 잘 나가지 않는 다음에는, 일을 줄까라는 생각이 첫 번째구요. 지금 잘 해나가고 있는데도요? 그래도 그럴 것 같아요. 두 번째 이유가 통상, 클라이언트들이 나이 많은 건축가를 싫어해요. 아, 네. 왠지 그, 정말 유명하신 몇 분한테 찾아가시는 분들, 이랬던 저랬던 저 분한테 설계를 받아야겠다는 분들 말고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은 가능하면 자기랑 의사소통이 잘 되는 건축가들을 찾고 싶어하고요. 그 연령대가 자신보다 월등히 많은 사람들을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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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가들의 클라이언트들이 젊은 것과 같은 거네요.
살고 있기 때문에 계속 발전해나갈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네. 그래서 저희도 건축주분이 삼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정말
그게, 다시 예전에 했던 얘기로 돌아가면, 우리는 유행에 너무너무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유가 또 하나가 있고. 세 번째는 젊은
민감해요. 우리나라는 특히. 그렇기 때문에 이게 물밀 듯이 얘가 확
건축가들이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로 누군가 나처럼 밀고 올라올
좋아졌다가 또 확 싫어졌다가 막 정신없거든요. 어느 분이 저한테
텐데, 우리 세대들이 기성 세대를 밀고가는 것처럼, 그런 때가 왔을 때
‘넌 참 시대를 잘 타고 사무실을 오픈했어’라고 얘기하듯이, 그건지,
그들한테 노땅 취급 받으면서 이렇게 근근이 살아남아야 할까… 라는
그게 때가 맞아서 이렇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건지… 또 한편으로는
생각, 그 생각 때문에 55세가 되면 관둬야 되겠다, 55세가 될 때까지
다행이다 싶은 게, 저희 클라이언트들은 다들 좀 독특해요. 정말정말.
빨리 뭐라도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하다못해 김밥집 할 가게라도
시공사들이 하는 얘기가 정말 희한하대요.
하나 차려야 되겠다… 그랬는데 55세가 이제 몇 년 안 남아가지고요. 쫌만 더할까, 하하. (웃음)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니까. 근데 60을
어떤 면이요?
넘기면 정말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꼰대’라 그러죠? 꼰대.
오타쿠래요. 그러고 한 분이 광고하시는 분인데요. 그분이
제가 벌써 꼰대가 돼가고 있는 걸 느껴요.
그러셨어요. TV에 유명한 광고 많이 찍으시는 분인데요. 제 건축은 딱 일정 부류 말고 좋아할 수가 없는 집이래요. 근데 그게 그런 거
작업 지금처럼 하면 꼰대 소리 들으실 것 같아요. (웃음)
같아요. 이걸 제가 꼭히 그럴려고 그랬던 게 아니고, 우연히 생각을
예. 이것도 꼰대고, 우리 직원들한테도 안 하는 척하면서 엄청 많이
하다보니까 클라이언트 부류가 딱 이래요. 엔지니어, 예술가, 의사.
하고 있고, 현장에선 두말할 나위 없고요. 그러니까 인간적으로도
이게 이런 분들 말고는 이런 집을 좋아할 수가 없다는 얘기거든요.
꼰대가 돼가는 거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바램은 하고 싶은데요…
그렇군요. 그러면 자리를 이렇게, 비켜주시는 건가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규모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은…
음… 우리는 사실 앞 세대의 꼰대스러움을 너무 많이 봐가지고요.
벌리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구요. 저는 설계사무실 그렇게 키우고 싶은
그러니까요. 그걸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근데 그분들도 꼰대가 되고
생각 전혀 없구요. 큰 프로젝트도 별로 관심 없어요.
전혀 없어요. 저는 큰 건물도 관심 없고, 돈은 먹고 쓸 만큼만 꾸준히
싶어서 그러시겠어요? 그분들은 애정을 담아서 하시는 표현일 수 있는데… 그러니까요. (웃음) 저는 건축 이야기가 재밌어서, 할아버지도 좋고 돌아가신 분도 좋고 그런데요. 새로운 건축 얘기는 괜찮은데요. 열 번도 백 번도 넘게 들은 자기 자랑, (웃음) 근데 그걸 제가 은연중에 하는 거예요. 오늘은 썰을 풀라고 해서 아주 신나서 마음대로 하고 있는데, 은연중에 그런 저를 보면 사실 섬뜩해요. ‘내가 벌써 이러고 있네?’ 근데 만약에 있잖아요. 소장님이 초기에 생각하셨다는 ‘색깔'이요. 누가 봐도 헤르조그고, 누가 봐도 안도安藤忠雄(1941–)고, 누가 봐도 비야케Bjarke Ingels(1974–)고 이런 것처럼요. 누가 봐도 정수진은 색깔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 그러면 계속 하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계속 하고 싶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좋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좋은데, 모든 게 그렇듯이 놔야 될 순간이 있을 거예요. 그게, 아까 ‘여성’ 말씀하셨는데, 여성이라서 자기 작업을 원하는 곳까지 밀고 가는 게 힘드실 거라는 우려도 있으신 건가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작업을 밀고 나가는 게 힘들다고 생각을 한 게 아니구요. 세상은 되게 많이 변하잖아요. 새로운 것도 많고. 그랬을 때 과연 내가 이걸 가지고도, 지금 정수진이 만들어내는 건축물을 가지고도 10년, 20년, 30년 뒤까지도 이만큼 강력하게 뭔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에 대한 한계가 오진 않을까… 설계 자체의 한계인가요? 환경까지 포함한 건가요? 환경까지 포함한 거죠. 물론 끊임없이 나름은 열심히 치열하게 103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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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
저도 사실 잡지 만든다고 편집장 된 게, 작년 유월에 소장님 뵀을 때요. 그때가 초기였어요. 이제 여섯 권 내고 일곱 권째 만드는 건데, 그때 제 생각이 어땠냐면, 51호는 덜한데 52호 내용에는 굉장히 편협한 제가 들어 있어요. 김인철 선생님하고 대화하는 부분에서요. 어, 그거 봤는데?
“끊임없이 변하고 싶죠. 하지만 절대로 근간은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래요? 거기 인터뷰 뒤쪽에 보면 빌라 사보아 이야기 하는데, 저는 작업이라는 게 결국은 ‘너머',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현실을 문제풀이 하듯 잘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가지고, 마치 모형에 아크릴 상자를 씌워 놓잖아요. 저는 길을 가다가 좋은 건물을 봤다고 할 때, 그 건물이 마치 역사책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는 느낌을 받아요. 언젠간 헐리겠지만, 마치 유리관이 씌워져서 오랫동안 이야기로 남겠구나라는 느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되게 편협한 데가 있거든요. (웃음) 그래서 요즘 삼사십 대분들이 ‘지금 시점에 이런 건축이 필요해'라는 말씀은 잘 안 하시고, 보통은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한 작업들을 보여주시잖아요. 확실히 앞 세대보다 감각은 좋아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까 소장님이 말씀하신 거랑 비슷한데, 이분들은 감각적으로 좋은데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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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나 하는 건 잘 모르겠거든요. 만약 이 상태로 10년이 지났어요.
그건 저도 몰라요. 아직은.
그러면 지금 이삼십대들이 삼사십대가 될 거잖아요. 환경적으로 이 사람들은 훨씬 더 좋은 여건에서 건축을 공부를 하고 감각을
혹시 시리아니 선생님께서 그런 데 대한 힌트는 안 주셨나요? (웃음)
키웠을 거거든요. 그러면 십년이 지나면 이 앞 세대와 뒷세대 사이에
그거는 선생님께서 네 거 하라고 했으니까, 제가 찾아야 되는 숙제
이야기들이 각 세대의 고민이나 이야기로 채워져서 지나가는 게
아닐까요. 하하. (웃음) 근데 하여튼 가장 기본적인 거는 입면을
아니고, 그냥 감각으로 뒤엉켜 싸우는 투쟁의 장밖에는 안 될 것
못 그린다는 거, 만들 줄 모른다는 거… 는 빼… 도 박도 못 하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기정사실이구요.
그게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 아니에요? 항상 있잖아요. 특이한 것들이 그 사람의 개성이 되기도 하는데, 아… (웃음)
대체적으로 보면 그 사람의 한계가, 음… 벽을 만나면 넘어가든
좀 비판적인 의견인데요. 아까 그런 말씀드렸어요. ‘저는 바라간도
통과하든 하려고 애를 쓰잖아요? 그런 것들이 특징이 되는 경우가
좋아하지만 프랭크 게리도 좋아합니다’라고 말씀드린 게요. 그러고
많은 것 같아요.
되게 좋은 말씀하셨는데, 좋아하는 거랑 실제로 하는 거랑은 틀리다고
저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아요.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과연 지금의 정수진이 프랭크 게리 같은 작업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되게
김찬중(1969–) 소장님도 지금은 패브리케이션 이야기 당연하게
궁금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니까 그런갑다 하는데, 알고 보니까 초기에 언어장벽 때문에 건축을 설명하는 게 힘들어서, 그 상황에서 건축을 논리적으로 부품적으로
궁금한데요.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도 하듯이요. 그래서 그 입면을 못 그리신다는
네. 근데 이런 작업도 하고 싶어요. 게리뿐 아니라 지금 저와는 전혀
부분도 저는 좀 독특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극단적인 작업도 하고 싶다는 얘기거든요. 중요한 건 적어도
어떻게 보면 못 그렸기 때문에 (프로젝트들이) 좀 더 유사하게 나왔을
이거하고 저거하고 일맥상통하는 건 있어야 돼요. 저는 그게 있어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교를 못 부리니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음… 보통은 못 하면 잘 하려고 애를 쓰던지 할 거 아녜요? 추구하는 핵심?
그쵸. 애를 쓴 게 (웃음) 다른 걸 찾아간 거예요. 어우, 그래도 이게
네. 그게 말씀드리는 ‘원판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해요.
노력 안 한 거 같아도 나름 노력한 거예요. 노력 많이 한 거고.
제 생각에는 ‘색깔'이라는 단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노력 안 했다고 안 했어요. (웃음)
네. 제가 쌩얼이라는 말을 되게 많이 쓰는데요. 그게 ‘쌩얼미인'이라고
하하. (웃음) 하여튼 뭔가 예쁘게 예쁘게, 결국은 입면을 만든다는
생각해요. 쌩얼미인은 야한 화장을 해도 수수한 화장을 해도 파자마를
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는 입면을 만들
입혀놔도 공주 같은 드레스를 입혀놔도 얘는 얘예요. 기본 불변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법칙이죠. 입면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변했을 때, 문제는 핵심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왜 만들어야 할까? 그걸? 건물 표면을? 예쁘게? 건물 자체가 이쁘면
거죠?
되지.
그렇죠. (핵심이) 보여야 하는 거죠. 공간이 보이잖아요. 지금 말투가, 예전에 김경진 국회의원이 청문회에서 ‘했쓰까’ 하던 그러면 소장님한테도 그런 부분이… 전 싫어요.
그런 느낌이에요. (웃음) 하하. (웃음) 그냥 그 생각이 되게 많아요. ‘건물 표면을 왜 만들어야 되지?’
어떤 거요? 변하는 거? 아뇨. 변하는 건 좋죠. 저도 끊임없이 변하고 싶죠. 핵심이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그쵸. 절대로 근간은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근간. 그게 뭔지는 몰라요. 정수진의 근간. 예. 뭔지 몰라요. 찾아가는 과정이겠죠. A. 거제도 바닷마을에 위치한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힌트도…
펼친집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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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마감재료
“저는 실패한 걸 성공으로 꼭 끝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거 같아요.” 마감재료를 모듈화된 걸 쓰는 이유는 뭔가요? 모듈화된 마감재료요? 사실 매트mat한 표면을 표현하려면 스터코 같은 재료로 한 판으로 표현하면 쉬울 텐데, 굳이 조적 재료를 쓰는 이유요. 아, 첫 번째는, 저는 스터코 좋아하거든요. 건축주들이 싫어해요. 그리고 그게 또 안 좋은 이유가, 관리가 힘들어요. 약해요. 그래서 안 쓰시려고 해요. 사실 저희가 디자인한 건물에 가장 어울리는 재료는 말씀하신 스터코예요. 아예 폼보드처럼 화이트로… 네. 이게 덩어리 자체기 때문에, 덩어리를 표현하기에 최고 좋은 게 스터코, 드라이비트거든요. 저는 되게 좋아하는 재료구요. 다만 건축주들이 되게 싫어하세요. 싫어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그 외에 재료는 어차피 큰 판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또개야(쪼개야) 돼요. 그래서 그 또개는 작업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또개는 작업도, 그 전에 외국에는 사례가 있었는데요. 통상 저희가 돌 같은 경우에는 300(mm)에서 600, 가로가 300에서 900을 잘 안 넘어요.
하늘집은 250에 500 정도인가요? 얘는 300에 900이요. 얘에서 처음 써본 게 오픈 메지(줄눈), 실리콘 안 쏘는 거였어요.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게 3mm 줄눈이었어요. 5mm 이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때 철물을 제작을 다 했어요. 이거 성공하고 그다음에 시공사에 전화해서 ‘길이 얼마나 더 붙일 수 있어요?’ 그때 ‘1200까지 가능한데요.’ ‘그럼 이 폭 얼마나 줄여도 돼요?’ ‘한 200?’ 그래가지고 돌이 길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이것도 아마 우리나라에서 처음 했을 거예요. 200에 1200이요?
네. 그게 하늘집이고, 이게 극대화된 게 별똥집에서 200에 1800까지 가요. 시공사들 죽었어요. 재료를 이렇게 쓰려면 재료에 대해 정말 공부 많이 해야 돼요. 그래서 재료도 자신 있어요. A
그렇군요. ‘죽는다’라고 표현하셨는데도, 사실 저는 시공을 안 해봐서 왜 죽는지 몰라요. (웃음) 네. (웃음) 그 ‘왜 죽는지’를 아는 게 결국은 경험이고 공부거든요. 한 번 실패하고 나면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게 제가 집요하다고 한 게, 저는 실패한 걸 성공으로 꼭 끝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거 같아요. 실패하면 그다음 현장에서 또 해봐요. 그랬을 때, 제가 해보면서 관심을 갖는 또 하나가 뭐냐면 재료 부분이에요. 아까 말씀드렸듯 제가 딱 한 집에만 두 가지 재료를 쓰고 다 한 가지만 쓴 이유가 결국은
A, p.107. 별똥집 외장재
시공 현장 및 근접 촬영 사진. 하늘집에서부터 외장재는 점차
처음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들이 매스를 어떡하면 가장 표현을 잘 할
좁고 길어졌다. 일반적으로
수 있을까, 내 집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떡하면 재료들이 표현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석 표면에
잘 해줄까…
강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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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패턴을 넣어 수직성을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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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빈 곳’, 공간, 感
근데 지금 계속 ‘면'이라는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학생들한테 강의할 때도 그렇게 얘기해요. 우리가 설계하는 건 하나의 재료고 하나의 부재들이고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해내는 건 <빈 곳>이다. 건축가는 한 면을 만드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재료들이 만나서
“여기서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여기서 주고 싶은 감이 뭔지 공간의 성격이 뭔지… 그 얘기가 중요해요.”
어우러내는 감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면이 어떻구요. 이 재료가 어떻구요라는 건 사실 그닥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울려서 보여주는 이게 뭔지를 봐야 되고, 이거는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느꼈을 때 첫 번째, ‘좋아’, 그거는 기호에 맞아서 좋다는 게 아니고 일단 기호에 맞든 안 맞든 뭔가 좋은 거 같애, 근데 어떤 게 좋은 거 같애, 저 부재가 좋은 게 아니고, 저기는 좀 날카로운 느낌이야, 예를 들자면, 그걸 누군가, 누구든지 말할 수 있어야 돼. 그러고 그걸 듣는 건축가는 그 공간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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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각설탕 2층 임대 세대의
침실. 남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이 공간은 이웃한 주택들과 마주한 두 면에 서로 다른 높이의 창을 내었다. 바닥과 천장의 마감 선이 그대로 개구부로 이어지고 두 창의 위 아래 선이 이어지도록 디자인했다. 바닥과 천장의 모서리는 모두 마이너스 몰딩으로 처리했고 조명은 천장 마감 내부에 설치되었다. pp.110–111. 저층부에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한 붉은 벽돌집2 의 3층 다락. 최근 완공된 이 작업에는 외벽 마감재료와 같은 붉은 색의 벽돌이 내부 마감에도 적용되었다.
게 좋아요. 어떤 건축 언어가 성공적으로 완성됐다는 거 보다는 그냥 내가 느껴줬으면 좋겠는 그 느낌을 받아줬으면 좋겠는 거. 그러면 굳이 거기에서 뭐가 창이 하나가 제대로 안 뚫렸네, 층고가 낮네 높네 그런 거 보다는, 어쨌든 그 얘기가 완성이 됐으면 굳이 제가 건축적인 썰을 풀 이유도 없고, 그걸 제대로 봐줄 수 있는 건축가라면 제가 썰을 풀지 않아도 무슨 얘기하는지 벌써 다… 다들 선수잖아요. 그래서 시상식 같은데 건축가들 오시면 저는 설명을 안 해요. ‘다들 선수시니까, 궁금하신 부분만 저한테 물어보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안방입니다, 부엌입니다, 거실입니다' 끝. 아무것도 설명을 안 해요. 뭘 설명하겠어요? A
‘건축문화대상' 이런 거요? 네. 저는 설명 안 해요. 그러면 설명 좀 하시래요. (웃음) 상 주러 오신 분들한테 설명하는 것도 저는 정말정말 좀 그렇구요. 평론 그래서 제발, 여기는 어떻게 돼서… 이런 얘기는 중요한 게 아니야.
쓰셔야 하는 분들… 은 얘기를 해드려야 좀 더 정확한 얘기를 하실 수
특히 중평이나 종평 할 때 그런 얘기 하지마. 해서, 네가 여기서 어떤
있으니까, 제가 설계한 의도라던가 하고 싶었던 걸 설명을 하고요.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네가 여기서 주고 싶은 감이 뭔지 공간의
저는 그렇게 접근하는 게 커요. 그래서 건축주들한테도 여기엔 어쩌고
성격이 뭔지 그걸 얘기해.’ 근데 건축가들 중에도 그거 얘기하시는 분
저쩌고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한편으론 (웃음) 제가 무식하니까 그걸
별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어요.
드러내지 않는 방편일 수 있구요. 또 한편으론 그런 얘기들이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구요.
왜요? 다들 ‘이런 재료를 썼는데 어쩌고, 이 면은 어떻고, 여기 창문이 하나가
맞아요. 어쨌든 공부할 때는 앞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잖아요?
잘못 났고, 돌아가서 꺾이는 부분이 뭐가 잘못 됐고… 그래서 ‘네가
그래서 무거운 개념도 있고 시대적 선언도 있고 그런데 희한하게 다음
이걸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됐을 거 같애?’라는 게 아니고 단지 그것만
세대는 그런 거에 대해 얘기도 없고 그냥 감이 좋으면 그게 최고고,
지적을 하세요. 그거는 별로 듣고 싶은 얘기도 아니구요. 제가 자꾸
대체로 그런 거 같아요. 처음에는 좀 ‘왜 그런가’ 의아해하다가, ‘그런
입을 닫게 되는 이유가 그런 건 거 같애요. 그러구… 그냥 저는 그런
분위기가 왜 생기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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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 그리고 디테일
“결국 디테일은 돈이에요.” 저희가 어제(현충일) 밤늦게까지 고민했던 게, 퀄리티 문제가 건축 역사나 이론을 보는 데 중요했던 적이 있었나를 가지고 토론하고 고민했었어요. 요즘은 퀄리티를 현실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이는데, 퀄리티 문제는 늘 부수적으로 다뤄졌던 것 같아요. 건축가가 프로젝트에 담으려는 이야기가 중요하고, 프로젝트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같은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과거에는. 그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요? 제가 옛날 고건축도 그렇고, 우리나라 근대건축도 그렇구요. 가서 보면 퀄리티가 장난 아닌 건축들 정말 많아요. 디테일도 그렇고.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디테일을 썼을까? 여럿 죽였겠구나’, 그거는 실제로 답사 가면 진~짜 많이 느껴요. 엄청나요. 그 퀄리티에 대한 집착들은. 다만 그게, 아마도 퀄리티는 권력과 돈에 밀접하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얘기가 안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디테일이라는 것도 작은 규모 주택에서 추구하기 쉬운 건 아니죠? 디테일은 결국 돈이에요. 거의 이퀄이라고 보시면 돼요. 돈이 많으면 온갖 디테일을 내 맘대로 다 써서 스카르파Carlo Scarpa(1906– 1978)처럼 집을 만들 수 있는데요. 저희도 보면 공사 금액대가 정말
버라이어티하거든요. 거의 두 배까지 가니까. 그러면 여기(비용이 적은 경우)에서는 제일 많이 노력하는 게 디테일 없이 어떻게 이 느낌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에 정말 주력을 하고요. 비용이 되는 경우는 이 느낌까지는 됐고, 그다음에 이 느낌을 정~말 정교하게 디테일을 뽑는 거예요. 디테일이 좋은 쪽으로 가면 갈수록 건축가의 만족도는 무지하게 커지죠. 무지하게. 일반 사람들은 이거나 저거나 큰 느낌을 못 받아요. 똑같이 하얀 내벽 있는 집에 들어가면 ‘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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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2017년 7월 준공 예정인
운중동 주택에서 검토된 외장재 가공 샘플. 한 가지 종류의 석재 표면에 대해 각각 정다듬, 브러싱brushing, 톱니로 긁어내는 방식을 섞어가며 스터디했다.
등은 좀 비싸 보인다, 저게 칠이 좀 곱다' 이 정도의 차이지 확 다르다는 느낌은 잘 모르시거든요. 근데 건축가들은 귀신 같이 알아내죠. 그 디테일들을. 다 돈이니까. 그렇군요. 디테일 수준도 계속 높여가시는 거죠? 장난 아니죠. 그거는. (웃음) 그래서 저는 돈이 많은 집에 좋은 재료를 쓸 수 있다는 것보다는요. 내 맘~대로 원하는 디테일을 다 딸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이제 결국 재료를 공부하고 하다 보니까 이 재료를 정말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보고 싶은 거예요. 그게 제일 큰 게 쿠마 켄고隈 研吾(1954–)예요. 쿠마 켄고가 설계한 집을 보고, 저는 건물도 건물이지만 그 재료를 어떻게 안에다가 이렇게 기가 막히게 녹여놨나 싶어서 진짜 감동 받았거든요. 재료도 절대 비싼 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재료를 여기 딱 맞는 떡 같이 만들려면 결국 그 재료를 디자인을 해야 되거든요. 근데 재료를 디자인하려면 돈이 없으면 전혀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똑같은 돌도 이렇게 가공하고 저렇게 가공하고 생난리를 치고, 앞으로 치고 뒤로 치고 모서리 다 따고 중간에 뜯어내고 이렇게 하는 게 돈 없이는 안 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정말 재밌어요. 그리고 걔네들이 확확 변화를 시켜요. 완전 다른 애를 만들어 놔요. 똑같은 공간인데도? 완전. 그러니까 똑같은 페인트를 가지고 매끈하게 칠하는 거하고 거칠게 칠하는 거하고, 얇은 롤러로 칠하는 거하고 두꺼운 롤러로 거칠게 칠하는 거하고 완전 애가 달라져요. 똑같은 공간에.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 자체를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고 매번 비싼 돈 많은 건축주들을 만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걸 공부하지 않으면 원하는 거를 만들기가 되게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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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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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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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건축
“La Promenade Visuelle” 이제… 하고 싶은 건 명확해요. 그게 옛날에 <땅집사향> 세미나에서 했던 내용과 마찬가지거든요. 옛날에 썼던 논문들도 마찬가지고… 이 주제가 되게 오래됐어요. 그게 언제부터 하고 싶었냐면 대학원 때 논문을 쓴 게 있거든요. 그게 시발점이 돼서 지금까지 왔고, 지금도 진행중 이에요. 사무실에 있던 작은 모형들이 그건가요? 작은 스케일의 모형들이 있던데. 영화박물관 프로그램 다루신 거요. 네. 그게 원도시에서 했던 전시 내용이에요. 그런 것들이 하고 싶은데, 사실, 건축 공간에서 그걸 나타내기가 정말 어렵더라구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거는 일전에 사진집(«Henri Cartier-Bresson», PHOTO POCHE, 1982) 보여드렸잖아요? 제가 ‘이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게 그
사진들 때문이었어요.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용어와도 관련이 있나요? 그럼요. 공부를 엄청 많이 했어요. 프랑스에 있을 때 책도 많이 보고, 사진과 영화에 관한 서적도 꽤 많이 봤어요. 영화학교 가서 도강도 많이 했었구요. 그래서 거기서 썼던 논문은 빛의 현상에 관한 거였어요. ‘빛의 현상’이요? 예. 파리를 갔는데, 한 번은, 하얀 천이 지붕에서 펄럭펄럭 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바람에 따라서 한 방향으로 펄럭이는 게 아니고, 온 방향으로 자유롭게 펄럭이더라구요. 옛날 기저귀 펄럭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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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요?
‘시각적 산책’이요?
예. 기저귀 펄럭이는 그런 거 보셨죠? 우리 세대는 봤을 거야.
그 당시에는 ‘시각적 산책’이라고 그랬어요. 내가 저기 있는 걸
그거처럼 사방팔방으로 펄럭이니까 제가 눈을 어디다 둬야 될
누리려면 내가 저기까지 걸어서 가야지 누릴 수 있는데, 건축에서도
지 모르겠더라구요. 우리가 뭔가를 볼 때 원근법의 한 초점에
사진처럼, 여기서 저기까지 가지 않고도 저걸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맞춰져 있잖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진들도 원근법에 초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맞춰져 있어요. 바라보는 대상이 있고, 그 주변은 장면에 실려가는 배경이잖아요? 근데 그때 봤던 빨래가 펄럭이는 느낌은 그런 게
아… 그렇군요.
아니더라구요. 그러고는, 그때 되게 이렇게 한참 쳐다봤어요. ‘멋있다’
네.
이러면서. 아마 흰색 침대시트 같은 것들이었을 거예요. 그러고는 우연히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1908–2004)의 사진을 본 거예요.
건축이 너무 시각 이야기로 압축되어 버렸다는 그런 비판은 없었나요?
사진을 딱 봤는데, 사진의 한 부분을 보고 나서, 나머지 부분들에도
주변에서?
계~속 눈을 주면서 보게 되는 거예요.
그 당시에 제가 세미나를 했을 때는 특별한 반론은 없었구요. 파리에서는 그 얘기를 가지고 시각예술 하시는 분을 찾아갔어요.
맞아요.
논문 검수를 받으려고. 보자르에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신데요.
대부분의 사진은 하나를 딱 보고 나면, 중심을 보면 그 외의 것들은
하버드 교환 교수를 가세요. 그분이 자기랑 박사 하자고, 이야기가
심각하게 보지 않고 넘기거든요.
너무나 새롭다고, (박사 하기로) 얘기 다 끝내놓고 못하고 나온 거예요. 그분으로서는 이런 관점 자체가 너무 새롭대요. 그러고…
브레송 사진 중에 애가 큰 병 두 개 들고 가는 거 있잖아요? 그 부분
브레송 하나만으로는 얘기를 못 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베르나르
보고 옆에 핀이 나간 흐린 부분 속의 애들도 함께 보게 되더라구요.
플로쉬Bernard Plossu(1945–)라는 사람을 끄집어온 거예요. 근데 그
그런 주변들을 다 포함해서 한 장면이더라구요.
사람 사진은 완전 반대예요. 사진 찍는 기법도 완전 다르고, 사진에서
맞아요. 그 사람은 모든 사진이 다 그래요. 그렇게 우연히 그 사람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다르고. 브레송은 사진 안에 시간과 장소를
사진을 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처음으로
다 응축해버리는데요. 플로쉬는 사진 안에 시간이 있어요. 이 사람이
‘시각적 산책La Promenade Visuelle’이라는 말을 쓴 거예요.
원하는 대로 따라가야 돼요. 완전 달라요. 그러면서 시간 얘기를 해요. 한 사람은 시간을 눌러버리는 반면, 한 사람은 눌러진 시간을 펴는
그렇군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단적으로 했던 게 그때 원도시 전시에서
코르뷔지에가 ‘건축적 산책La Promenade Architecturale’이라고
겹쳐놓았던 거였어요. 근데 그건 시각적인 전시기 때문에 가능한데,
그랬잖아요? 그거는 결국 사람의 동선하고 연관된 말이에요.
사실 공간에서는 이걸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가장 쉽게 얘기하는 건 ‘투명’이에요.
예전에 프랑스 쪽 유학 다녀오신 분들이요. 건축적 산책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의 작업에서 연출되는 장면, 씬scene들을 많이
‘투명’이요?
그리셨던 것 같아요.
네. 공간의 ‘켜’라고 하죠. 공간의 켜와 켜가 투명한 매개체를 가지고
예. 그래서 코르뷔지에가 ‘건축적 산책’이라고 얘기를 하는 게, 한
계속 겹쳐져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하나의 공간에 여러 개가… 그건
집에는 여러 가지 동선이 있잖아요? 그 중에서도 메인main 동선이
너무 물리적이고 너무 일반적인 방법이구요. 그게 아닌 게 있을 거라고
있어요. 메인 동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건축적 산책로를 만드는
생각을 하는 거죠. 거기까지는 못 갔어요. 근데 어느 날 남궁(선)
게 코르뷔지에거든요. 산책로를 따라가다보면 공간들이 되게
작가가 노란돌집에서 사진을 하나 찍어 왔어요. 그 사진을 딱 보고, 난
많고 다채로워요. 자기가 생각하는 주된 경로를 타고 쭈욱 공간을
두 장의 사진을 겹쳐 놓은 줄 알았어요. 제가 다니면서도 그런 공간을
이동하면서 향유하는 거를 코르뷔지에는 ‘건축적 산책’이라고 하는
못 봤거든요.
거거든요. 근데 그건 시간하고 공간하고 동시에 움직이는 거예요. 근데 저는 브레송의 사진을 뭐라고 생각하냐면 시간을 응집한
아… 혹시 그건가요? 내부에서 찍었는데 바깥쪽이 보이는 유리에 벽체
거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결국 건축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빼면 전혀
단면이 겹쳐 반사되면서 두 장 이미지를 겹쳐둔 것처럼 보이는 거요.
경험할 수가 없는 건데, 브레송 사진이 그게 되더라구요. 시간을
네. 맞아요. 이걸 도대체 사진을 어떻게 찍었지 했어요.
압축해버리니까. 그래서 하나의 2차원 안에 눌러놓지만 우리는 그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눈으로 경험을 하면서 시각적 산책을 하는
저도 처음에 두 컷 붙인 건가 해서 자세히 봤어요.
거예요. 그게 가장 주된 생각이거든요. 그러면서, 건축에서 그런
그죠? 그 사진을 보고, ‘사진 두 컷을 왜 붙여놨지’ 하고 한참을
시각적인 산책을 어떻게 하나, 그 얘기가 결국 현상학이나 리좀이나
들여다봤더니, 한 컷이에요. 그러고나서 거기 가서 봤어요. 그 느낌인
시간의 응축 등 모~든 얘기들이 얽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맞아.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거야.’ 하나의 예였던 거예요.
얘기들을 하는 게, 아마 옛날부터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체계적이지
모르고 한 거예요. 그냥. 그러고나서 그런 장면이 매 집마다 다 나와요.
못 하게 막 얽혀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아직까지도
그래서 내가 ‘남궁 작가님, 내가 생각도 못 했던 걸 찍어왔냐’고,
명확하게 하지는 못 하겠어요. 그리고 아직까지 공간에서 명확하게
그랬더니 그 분 특유의 말없음… (웃음)
구현해내지도 못 했고요. 근데 제 집을 보시면 그런 부분이 되게 많아요. 그거를 보는 사람이 남궁선 사진가예요. 어떤 집에서든 그런
맞아요. ‘있으면 찍어… 없으면 못 찍어…’ (웃음)
사진 몇 장을 꼭 찍어갖고 와요.
그러니까… (웃음) 제가 너무너무 좋아했거든요. 그게 매 집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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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근데 저는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어요. 가끔씩 투명한 것들
‘시각적 산책’이라는 이슈가요. 사람이 그 장면을 경험했을 때, 뭔가
사이로 몇 켜를 너머 반대편 집이나 산이 보이는 경우는 있어요.
좋은 효과가 있는 건가요? 추구한다는 건 뭔가 좋은 게 있으니까
솔직히 그건 나도 모르고 설계를 하는 거거든요. (웃음) 제가 어떻게
추구하는 거겠죠?
그거까지 계산을 하겠습니까. 최근에 짓고 있는 집에서도 그런 게
그쵸. 왜냐하면… 욕심스러운 건데요. 브레송 사진은 되게 욕심스러운
보이더라구요. 몇 개 걸러 걸러 걸러 보이는 거요. 근데 그건 ‘투명’에
게 뭐냐면 자기가 찍은 피사체의 그 어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관한 거거든요.
거예요. 다 중요한 거예요. 심지어는 구름 한 조각도 다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자기 사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을 다 하게
투명하다는 게 시각적으로 투명한 것도 있는데요. 그거 말고 공간
만들어요. 그 사람이 대단한 거는, 그것들이 말을 다 하기 시작하면
구성이 너무 명쾌해가지고, 보이는 건 복도인데 방이나 거실 등을
도떼기시장 같아질 것 같잖아요? 그렇게 만들지 않는 거예요.
암시하는 것들이 있어서 전체 구조가 투명하게 느껴지는 그런 건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에 우위를 주지 않는 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없을까요?
보거든요. 브레송 사진을 보다 보면 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그런… 거 보다는, 결국은 그게, 투명하다는 얘기보다는 그냥 말 그대로 암시일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어떤 공간에 연결되는 공간이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게 있고, 찬찬히 주변을 다 살피게 되더라구요.
많을수록 통합적이고 명료하다는 거고, 그런 얘기는 어떤 건축에서든
네. 저는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건축에서.
다 나올 거예요. 제가 2층에 보면 외부공간을 많이 집어넣잖아요? 저희가 만든 집 보면 2층에 외부공간이 안 들어간 집이 한 집도 없어요. 아무리 좁아도 외부공간은 넣거든요. 결국 그 얘기(암시)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외부공간이에요. 암시라는 게 내가 어디를 쭈욱 가다가 옆에 공간이 있어서 암시가 아니고, 이 공간, 저 공간이 따로 있는데 외부공간이 개입함으로써, 그러니까 전혀 성격이 다른 공간이 개입하는 거죠. 그 공간이 겹쳐져서 인식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공간이 투명하지 않아도 반대편의 공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시각적 산책’에서는 ‘건축적 산책’에 필요한 동선은 아무런 필요가 없어야 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A
A.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집. 압축된 시간이 담긴 브레송의 사진들은 정수진의 벨빌 학위 논문 주제인 시각적 산책La Promenade Visuelle 개념에 영감을 주었다. pp.118–119. 노란돌집의
거실에서 침실과 중정을 동시에 바라본 장면. 두 개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건축 공간의 동시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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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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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세상은 어느덧 구분 자체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위대함과 소소함을 구분하려 애쓰는 일은 되레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일이 돼버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시대와 사회를 가르고 오늘과 내일의 건축을 규정하려는 힘에 대한 열망은 전설 속의 봉인된 검처럼 한동안은 보이지 않게 될 운명에 처한 것 같습니다. 모든 중심주의가 공격 받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려 노력하는 시절에 건축과 건축가의 서사 또한 바뀌기 마련이겠지요. 하지만 질문의 맥락이 바뀔 수는 있더라도 지금까지의 질문 자체에 변함은 없었습니다. ‘저것은 건축인가?’ ‘저 사람은 건축가인가?’ 질문을 바꿔야 할까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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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 CREDIT
REFERENCE
CREDIT
인터뷰
건축가제공
일시 : 2017.6.7 / 6.14 / 6.28
38D, 39, 43, 46–47, 50C–D, 51–52, 54-55, 62, 64–73, 75-77, 80, 93–94,
장소 :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370-11번지 3층 SIE 건축사사무소
96–97, 106, 112-113
건축가 자료 일반
19-22, 33, 36–37, 38C, 40-42, 44–45, 48-49, 50E , 56–61, 78–79, 81–83,
SIE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sie-jungsujin.com
88–91, 95, 98–99, 104, 107–111, 114–115, 118–119
건축가제공 ⓒ 남궁선
정기간행물 ※ 발행연도 순
김재경
2011.7 {SPACE} / 스프링하우스-하늘집
23–25, 34–35, 85–87
2012.6 {Economic Review} / 흙 밟는 마당 깊은 집 한옥의 아름다움을 품다 2012.9 {SPACE} / 노란돌집
이중용
2012.10 {전원속의 내집} / 건축가 정수진의 노란돌집
117, 120–121
2012.11 {시사IN} / 낮엔 노천 카페 밤엔 야외 식당 2012.11 {전원속의 내집} / 건축가와 함께한 주말주택 개조기, 횡성에서 만나다
전진삼
2012.12 {Queen} / 자연과 함께 숨 쉬는 휴식처, 횡성 주말 주택
4
2013.10 {주택저널} / 박향인의 ‘미니가든’ 2013.10 {동아일보} / 밖은 닫히고 안으로만 열린 붉은 벽돌집
표지
2013.11 {SPACE} / 붉은벽돌집
SIE에서 작업한 주택들 모델 ⓒ 김재경
2014.1 {DOCUMENTUM} / 각설탕 2014.1 {월간중앙} /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2014.12 {SPACE} / 대단지 주거 계획이 만든 판교의 새로운 유형과 현상 2015.1 {와이드AR} / 펼친집 2015.3 {전원속의 내집} / 본질이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건축가 2015.4 {SPACE} / 별똥집 2016.1 {전원속의 내집} / 이이야기가 있는 모두의 집, 이-집 2016.1 «한국의 아름다운주택 70선» / ‘별똥집, 펼친집, 하늘집’, LH, 2015 2016.2 {리빙센스} / 마당 한가득 품은 별빛, 판교 별똥집 2016.5 {여성중앙} / 자연을 품은 공간, SIE건축 정수진 2017.2 {리빙센스} / 같은 듯 다른 두 가족이 함께 사는 작은 구름집 2017.3 {전원속의 내집} / 세 바람이 모여 이룬 집, 삼봉집
기타 «깊은 이미지», 이종건 지음, 궁리, 2017 «시적 공간», 이종건 지음, 궁리, 2016 «아키텍트», 스피로 코스토프 지음, 우동선 옮김, 효형출판, 2011 «차이와 차별», 김혜정 지음, 공간사, 2006 «프라이버시와 공공성», 베이트리츠 꼴로미냐 지음, 박훈태 · 송영일 옮김, 문화과학사, 2000
프로젝트 자료 및 진행 협력 박준희 / SIE 건축사사무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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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 53
건축가 김찬중
WIDE # 54
WIDE # 55
건축가 승효상
건축가 최욱
EDITORIAL
EDITORIAL
EDITORIAL
EDITORIAL
시스템 —‘우리’라는 믿음에 이르는 방법
스케일 — 일원一元과 다원多元 사이에서
in-in-ter-com-na-p-tio-re-nal-ssi-ism-
이방인의 건축법
균형을 취하는 이원二元의 감각
ble
SCALE
INCOMPRESSIBLE SCENE
VERSIONS V.0.1
건축가 조병수
VARIABLE
THIS MAN의 시스템
연결통로의 법규 해석
V.0.5 개념과 현실
1 완결하는
#1 영상으로 기록하다
외장재 교체
V.0.8 기술적 특이성과 합리성
2 조율하는
#2 정체성을 시각화하다
나무를 피하는 골조선
V.1.0 빠르게 싸게 다르게
3 인식하는
#3 감각을 일구다
와이어를 활용한 녹화 입면
V.1.5 산업적 이미지의 건축
4 통합하는
#4 현장에서 교감하다
시간을 들여 결정에 다다르기
V.1.7 이기는 전략으로서의 외부공간
5 근거하는
#5 조직을 운영하다
와이어 브레싱
V.2.0
6 기록하는
#6 가치를 나누다
역보의 활용
#7
안전환경수용설계
THE_SYSTEM LAB
V.2.5 SALE & SAIL INTERVIEW INTERVIEW
건축가 승효상
건축가 김찬중
경기대 교수/{건축평단} 편집주간 이종건
더_시스템 랩 실장 박상현
F1963
WIDE # 56
이화여대 교수 이혜선
DRAWING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사무국장 김미현
수졸당
환경을 조성하다
#8 그리고 일상
건물 진·출입 데크 조정 구조의 지속가능성
INTERVIEW
조경을 활용한 보완
건축가 최욱
수직 패턴 변주
시가현립대학 교수 인나미 히로시
디자인과 시공성을 반영한 입면 120-40=80
수백당
PROJECTS
PROJECTS
수눌당
팔판동 스몰주택
흡음재 없이 흡음하는 방법
이건창호 쇼룸
노헌
아트 버스 쉘터
지붕 경사도 조정
더 라스트 하우스
와헌
마포대교 플라자
부족한 공사비, 남은 주요 작업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
시경루
가회동 4제
설계 변경과 대체 자재
연희동 갤러리
퇴촌주택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경암층의 출현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모헌
현대카드 HQ3
예산과 계획의 입장 차이
SK 행복나눔재단 사옥
말리부주택
(구)서울시장 공관
INTERVIEW
KH바텍 사옥
청고당
판교주택
건축가 조병수
한남동 핸즈코퍼레이션 사옥
논산주택
미래디자인융합센터
수우재
PROJECTS
판교 현대백화점 어린이책미술관
온그라운드 갤러리
경기도지사 관사 리노베이션
F1963
더엠빌딩
격월간 건축잡지 {와이드AR} 정기구독 및 구입안내는 128p 참조 124
제 33차 상영작
WIDE 건축영화 공부방
렘브란트의 심판
2017년 WIDE 건축영화공부방의 키워드는
[감독탐구]입니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 감독을 선정하였습니다. 1년(6회)에 걸쳐 그의 대표 작품을 함께 감상하며 감독의 시선을 따라잡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일시 2017년 8월 9일(수) 7:00pm
장소 ㈜ 원도시건축 지하 소강당 방장 강병국(간향클럽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참석 신청 예약 총원 총 40인 내외로 제한함(선착순 마감 예정) 신청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건축영화공부방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접수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후원 ㈜ 원도시건축
상영작 rembrandt's j'accuse│2008│100분
개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그리고 렘브란트의 “야경’은 서구의 4대 명화로 꼽힌다. 에밀 졸라가 프랑스 대통령에게 ‘드레퓌스 사건’을 비난하는 공개편지를 보낸 이후로, “나는 고발한다!”라는 표현은 분노, 특히 권력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는 표현이 되어왔다. 전작 <야경>을 통해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의 창작 과정에 대해 얘기했던 피터 그리너웨이는, 범죄 혐의가 있는 그림 속의 현장으로 돌아왔고, 그 자신이 직접 형사로 분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의기양양한 민병대와 함께 그림 속에 암시되어 있는 살인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지배한 상류층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왔고, 과두 정치 지지자들은 렘브란트가 지배층에 대한 앙갚음으로 한 행동이라며 그를 파멸시키기 위한 행동을 했다. 이 극화된 다큐멘터리는 반 렘브란트적인 음모론을 더 깊이 파고들어, 기존의 이론에 신뢰를 더해 준다. 그리너웨이는 파괴된 예술가를 조망하기 위해 그림 속 34명의 인물들에게 가능한 동기들을 부여하면서 풍부한 증거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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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클럽, 미디어랩& 커뮤니티
간향클럽 사람들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와이드AR 편집실 editorial camp]
파트너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청년(youth),
편집장 이중용
진정성(authenticity), 실용성(practicality)”에
사진총괄 김재경
시선을 맞추고,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꿈을,
편집간사 정평진
건축하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전하자는 목표
디자이너 신건모, 낮인사 [와이드AR 논설실 editorialist]
아래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함께 힘을 보태겠습니다.
논설고문 이종건 논설위원 김정후, 박인수 [와이드AR 전문위원실 expert member]
우리는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비평전문위원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사진전문위원 남궁선, 진효숙 [와이드AR 발행편집인실 publisher & partners]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발행위원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오섬훈, 우의정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지렛대가 되고자 합니다. 그로써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공동편집인 김재경, 이주연, 정귀원
건축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건축과 대중 사회를
네트워크팀장 겸 에디터 박지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되겠습니다.
마케팅팀 박미담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우리는 [와이드AR 유통관리대행 distribution agency]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월례 저녁 강의
직판 박상영, 삼우문화사 [와이드AR 제작협력 production partners]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ture Bridge(ABCD파티)}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인천건축도시컨퍼런스ICON-Ex}
인쇄관리부장 손운일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인쇄제작국장 김은태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인쇄처 대표 강영숙, 서울문화인쇄
신예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간향 커뮤니티 GANYANG Community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간향저널리즘스쿨 GSJ} 건축 비평 도서 출판 {간향 CRITICA}
[고문단 advisory body]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명예고문 곽재환, 김정동, 박길룡, 우경국, 이상해, 이일훈, 임창복, 최동규
{WIDE 아키버스}
대표고문 임근배
인간 · 시간 · 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고문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이충기
{WIDE 건축영화공부방}
[후원사 patron]
건축 · 디자인· 미래학 강의실 {간향 AQ포럼}
대표 김연흥, 김찬중, 박달영, 승효상, 이백화, 이태규, 장윤규, 최욱
어린이 · 청소년 건축학교 {AB스쿨}
[자문단 creative body] 운영자문 공철, 김동원, 김종수, 김태만, 류영모, 신창훈, 안용대, 이성우, 임재용, 정승이,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우리 건축 문화의 켜를 기품 있게 다져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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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anyangclub.com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하며
조남호, 최원영, 최재형, 하광수, 황순우 전문분야 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박병상, 박철수, 안철흥, 이정범, 전진성, 조택연 [협력기관 program partnership]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심원건축학술상 역대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계열사 project partner]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약칭, 땅집사향)
우리 건축 장(場)의 새 얼굴로부터
건축가 초청강의 : Architects in Korea
(시즌5)
2017년 7월_제127차 : Architects in Korea 15
기성, 중견, 노장 건축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하에 이 땅에서 활동하는 벽안의 건축가까지 주목하고자 합니다. 기획위원회 박지일, 백승한, 심영규, 최호준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유오스Knollkorea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이야기손님 서재원, 이의행(aoa architects) 7월 12일(수) 7:30pm
일시
장소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와이드AR,
주제 rational irrational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년 8월_제128차 : Architects in Korea 16
이야기손님 우지현, 차상훈, 최영준(OFFICE ARCHITEKTON) 8월 16일(수) 7:30pm
일시
장소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수사적이지 않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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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통권 57호, 2017년 7–8월호, 격월간
2017년 7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창간호(통권 1호) 발행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발행인 겸 편집인 : 전진삼 발행소 :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주소 : 0399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175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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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25-9470)
《와이드AR》 과월호 구입처 선인장 (서울 통인동, 02-725-9470) 바로 잡습니다. 지난 2017년 5/6월호(통권 56호) 내용 중 <와이어 브레싱> 편(pp.48-49)은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빌라 D타입 시공 과정에서 캔틸레버 구조를 와이어 가새 고정으로 보강했다고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캔틸레버 구조로 인한 편토압 대책으로 CIP(Cast in Place Pile)를 설치하는 것까지만 진행했으며, 와이어 브레싱 보강은 협의 후 최종 진행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서에 의존해 담당자의 진술을 교차 검증하지 않아 발생한 오류입니다. 해당 문제를 제보해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정보 검증에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09년–2015년 발행된 본지를 파격 할인가로 구입 가능합니다.(한정수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