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no.59,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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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50년, 더불어 100년! 정·림·은·사·회·에·대·한·기·업·의·책·임·으·로·건·강·한·공·간·환·경·을·만·들·어·더·불·어·사·는·세·상·과·함·께·합·니·다


WIDE AR #59

CONTENTS

PUBLISHER ’ S COLUMN

건축가 주대관

2042 년에

[ 29 ]

[ 30]

PROFILE

EDITORIAL

건축가의 위치 ─ 언어와 현실 사이, 거부와 실험 사이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집짓기 오늘의 집이 내일을 지탱한다 보존과 보상

부작용

실마리

[ 33]

[ 37 ]

집짓기의 목적

[ 38 ]

SHUT CLOCK_ 철암 2006

[113 ]

EPILOGUE

[120 ]

[ 40]

목차

서투른 손

[4]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투 바이 식스

잇다

세가지 제안

도서관의 입지 조건

실험을 넘어서

[ 52 ]

[64 ]

투 바이 텐

인제에서 영월로

2km

양구에서의 교훈

2350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마가지

마가지 2 호

4 평학교

포도 넝쿨

농성장에서 추모장으로

캉촹 炕床

미인도

꿀잠

[ 78 ]

먼립

INTERVIEW

[96 ]



2042년에

PUBLISHER’S COLUMN

월간지 { SPACE(공간)}가 금년 11월호로 통권 600 호를 발간했다.

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 깊은 잠을 그대로 느끼며 바닥에

1966 년 11 월호로 창간한 지 51 년만의 기록이다. 반세기.

넘어진 태엽 인형의 어색한 동작처럼 천천히 몸을 움직여 나갔다.(중략)

발행인 칼럼

창간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간}지가 이 땅에 뿌려온 수많은

욕실에 들어서자 샤워 튜브의 유리벽에 파란글씨의

화제들을 거론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땅에 심어온 수많은

옵션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샤워를

가치들을 열거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땅에 불러낸 수많은

할까? 옵션을 고르면서도 생각은 자꾸 가이아 회의에

인재들을 거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집중되었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뒷목을 주먹으로 몇 번이나 두드려 보았다. 요즘 계속되는 회의로 인한

통권 300 호 발간 당시 {공간}지의 편집장으로서 필자 또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가끔씩 뒷목과 어깨가 뻐근해 오는

600이란 숫자는 상상 이상의 기쁨의 숫자다. 청년 {공간}지가

고통을 느꼈었다. 아침부터 너무 긴장된다는 생각을

장년의 시대를 맞음이며, 우리가 이제껏 경험치 못하였던

떨치려고 옵션 7번- 근육 이완 샤워-버튼을 눌러 보았다.

신기원을 향해 다시금 항진하고 있음을 울림으로 보내오기 때문이다.

“바이탈을 스캔하겠습니다. 팔을 위로 뻗어 주십시오.” 박막 모니터에는 팔을 위로 뻗고 있는 인체의 실루엣이 투영되었고, 빨간 색으로 표시된 고리모양의

{공간}지를 떠나서 1996년 3월호로 {건축인poar }(월간)를

스캔 라인이 10번 정도 그 실루엣 위로 지나갔다.

창간할 때에 별책부록으로 건축소설(건축미래과학사고실험)을

“샤워 준비가 되었습니다. 시작하시려면 모니터의 반짝거리는 녹색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후략, 일부 내용 윤문)

12 회에 걸쳐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 글을 쓴 이는 조택연(현,

홍익대학교 미대 산업디자인과)교수였고, 제목은 “2042 년 여름”이었다. 연재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2042 년은 {공간}지 통권 900 호 발간의 시절이다. 600 호 발행의

공간 표지를 기쁨과 감동으로 보면서 동시에 떠올린 숫자가 900이었다. 25 년 뒤에 이 땅의 누구나가 맞을 행복한 사건. 8 월 29일의 아침.

단순히 장수하는 {공간}지를 염원한 것은 아니다. 누구도 가보지

객실제어컴퓨터는 조성하 박사가 입력시켜 두었던

향기롭고 윤택해지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못한 길 위에 서 있는 {공간}지로 인해 이 땅의 삶과 문화가 더욱 일정표대로 새벽 5시가 되자 그의 잠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따뜻한 이온시트 속으로 자꾸만 몸을 밀어 넣었다. 그대로 10 분만 더 자고 싶다는 욕구가 그의 피로에 지친 몸을 좀처럼 일으켜주질 않았다. 객실제어컴퓨터는 조성하 박사를 깨우기 위해 계속해서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조성하 박사는 맑은

4

글. 발행인 전진삼


www.101-architects.com



배기형�1918�1979��구조사�건축기술연구소���경향신문사사옥��서울��1968

외부투시도��1968���구조사종합건축사사무소�기증���MC23�0263�6000�0001

목천김정식문화재단 mokchon�kimjungsik�org T�02�732�1602



Bojeongdong house karoarchitects.co.kr

Photograph

Jin Hyo Sook



THE_SYSTEM LAB

2F 15, Yanghyeon-ro 94beon-gil, Bundang-gu, Seongnamsi, Korea www.thesystemlab.com T. 82 31 701 2880-1 E. tsl@thesystemlab.com


현


부평구 굴포천 도시재생 활성화 프로젝트

현일건축

인천광역시 부평구 경인로 707(십정동, 일진빌딩) 502호 tel.032-471-7437 │ fax.032-441-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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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 AURI 개소 10주년 기념 포럼

대한민국 건축정책 10년

2017.12.12.(Tue) 14:00-17:30 세종국책연구단지 연구지원동 대강당 세종특별자치시 시청대로 370

프로그램 [1부] 개막행사

[2부] 기조연설 및 발제

[3부] 전문가 좌담회

개회사 및 축사 AURI 10년의 발자취

기조연설: 건축정책 10년, 성과와 과제 발제: AURI의 사업별 성과

좌담회: 건축정책이 나아갈 방향

주최 및 주관

후원

대강당 홀에서 연구소 10주년 전시도 함께 진행될 예정입니다.

문의 _건축도시공간연구소 044.417.9639


A Thousand City Plateaus Winner of International Idea Com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Jamsil Sports Complex

UnSangDong Architects

와이ᄃ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 2 017.11.11 & 11.25 ●

[소록도 마을 공간] 보존과 재활용을 위한 [세미나]와 [심포지엄]과 [전시] [1차 세미나] 2 017년 09월 25일 [월] 3시 [2차 세미나] 2 017년 10월 26일 [목] 3시

[1차 심포지엄] 2 017년 11월 11일 [토] 2 → 6시

[2차 심포지엄] 2 017년 11월 25일 [토] 2 → 6시

[전시] 2 017년 11월 11일 [토] → 11월 28일 [화]

[장소] 통의동 보안여관

주최=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

후원=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후원은 계속됩니다!] [수류산방 02.735.1085(sejs@chol.com)]으로 연락 주세요.

주관[기획과 진행]=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성균건축도시설계원(SKAi), 통의동 보안여관

와이드(210.287)-광고(건축의소멸).indd 1

2017. 10. 30. 오후 7:25


당신의 위치, 나의 위치, 우리의 위치

당신은 나는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서울 세종대로, 2017


시민의 위치 공동체

국가

의무

보장

상품

비용

시민

장터

배움터

비용

습득

보상

노동

일터

22

시민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울 노량진, 2017 23


건축의 위치

시민

건축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울 연남동, 2017


건축가의 위치

공유영역 공유 vs 사유 사유영역

건축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CREDIT

서울 공덕동, 2017 27


28

크레딧


ARCHITECT

JOO DAE KHAN


건축가 주대관. 1958년생.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 대표. ‘Your right is my left.’ 2017년 늦여름의 첫 만남에 그는 자신이 지은 멋진 카피 문구를 들려주었다. ‘너의 오른쪽은 나의 왼쪽이야.’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이념, 지역, 권력, 경제력, 종교, 학교, 성별 등 많은 것을 통해 분리되는 한국인의 특성을 떠올릴 수 있어서 쉽게 납득이 갔다. 권리와 딴지가 분리되지 않음을 생각하게도 했다. 그것은 차갑게 꼬집는 말이 아니라 중세시대 기사들이 ‘널 해칠 무기가 없어’라며 내미는 손 같은, 반창꼬 같은

말처럼 들렸다. 비슷하게, 그와 대화하면서 그가 달변은 아니지만 비교적 언어를 잘 활용하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터주택’, ‘정서적 생태주의자’, ‘사회적 건축’ 등 자신의 설명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말들은 철학에 뿌리를 둔 용어들과 달리 현실적이면서도 미묘하게 생소한 것이라 상대로 하여금 대화에 흥미를 불어넣거나 쉽게 주목하게 만든다. 처음엔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일종의 메타 프레임 전략, 그러니까 여러 자잘한 논의를 더 높은 차원에서 간단히 묶어 복잡한 논의도 정리하고 방향도 자기 쪽으로 유도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도 말했다. 논의 자체를 하나로 모으고 프로필

‘완성’하기 위한 프레임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의 개별

문제들을 논의의 장으로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위한 프레임이 그에게는 필요했을 것이다. 현실에 발 묶인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에게 현실을 끊어낼 것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다음 논의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어쨌든. (하지만 그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디자인을 보고 든 생각은, 디자인은 그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디어와 전략에 대해 토론할 때, 실행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근사하다.) 일반적인 건축가의 복잡한 심정을 낱낱이 풀어 쓸 수 없어 단순하게 말하자면, 오늘의 건축가는 기성 시스템right의 충실한 보완자accepter와 그 ‘반대편left’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대안자alternative로 구분할 수 있다. 점점 더 매끄럽고 탐스럽고 그럴듯하게 지어지는 도시환경 속에서 개별 욕망이 공공의 지향보다 우세한 삶과 인간을 만들어내고, 법과 윤리의 통제만으로는 비집고 나오는 욕망을 어찌 해 볼 수 없어 불평등과 불안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시스템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성과와 이미지를 지향하는 오브젝트 메이커object maker로 살아가든 시스템 자체를 고민하고 인식과 환경의 개선을 지향하는 시스템 코디네이터system coordinator로 살아가든 건축가로서 큰 카테고리에서의 선택은 비교적 선명해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스스럼없이 후자를 선택하기란 어렵다. 아니, 인생의 초창기에는 그런 선택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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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가 있을지언정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건축가 주대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체주의 바람과 루이스 칸에 대한 관심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졸업 후에는 여느 건축가들처럼 사회와 현실건축을 겪어나갔다.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던 철암 작업에 자신을 내던진 것은 나이 마흔에 이르러서였다. 사회에 투신投身하는 사람들은 보통 투신鬪神인 경우가 많은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오히려 투신投信 기관 마인드로 일을 하는 것 같다. 공공영역에서의 다양한 열망들을 모아모아서 관련 이해 당사자들 각각이 납득할 수 있는 미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물론 건축가 자신도 처음부터 결과가 좋았던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그 말도 일리一理는 있다. 과거 개발성장시대에는 할 일도 많고 성과도 많고 생각할 시간은 적었기에 힘을 가진 리더를 따르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비교적 소수였다. 하지만 구호나 윽박이 통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공공영역을 민주적으로 다루는 섬세함이란 전문가 개인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2000년대 중반 문화부 공간문화과나 국교부 도시재생사업단 등 다양한 부처에서 다루기 시작한 공간과 지역의 문제는 국가PROFILE

주도에서 전문가-주도, 시민-주도로 지향점을 바꾸며 다양한 프로젝트와 시행착오를 겪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건축가 주대관은 2000년 전후의 지역재생 작업인 철암지역 건축도시작업의 의미를 이어 2006년 1월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를 개소한다.

주요 방향은 세 가지였다. 철암에서 이어지는 집짓기와 어린이건축교실, 그리고 문화도시(마을)와 관련된 각종 연구과제 수행 등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집짓기, 농촌주택, 마을만들기, 문화도시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대안 실험을 이어왔다. 그는 사회의 내일을 위해 건축, 도시,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색한다. ‘갈등을 미봉하지 말고 드러내놓고 논의를 하자. 그리고 방법을 찾아보자.’ 그는 철저하게 현실에 근거한 사고와 대안과 행동을 추구한다. 한 가지 궁금했다. 그렇게 현실적인 사람이 자유경쟁시스템 안에서 위법하지 않은 선을 지키며 자신의 욕망도 추구하고 사람들 인정도 받고 하는 게 보통일 텐데, 왜 굳이 사회를 위해 불편하고 폼 안 나는 길을 걷는 걸까? 그는 그냥 ‘도리道理’라고만 말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듯 시민이 사회에 대해 하는 정도의 도리. 어느 날 그가 필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하여,마침내어스 름동짓달이되어,여행자는도시의입구에다다랐다.성문앞 에서한사내가말했다.저도시에는걸인과폭력과불결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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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친다오..그렇다면나는들어가지않겠소. 투덜대기위해진흙탕에빠질필요는없지않겠소?’ (그는 문자와 SNS에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차라리 행을 띄운다.) 그는 이것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했고, 확인해 본 결과 ‘통과에 대하여’라는 장에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있었다. 짜라투스트라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에서는—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도시를 통과했고, 이어서 보낸 건축가 주대관의 문자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그게,나의기본적인생각이오.반대로,진흙탕에선머드팩을.’

사람을 볼 때 말이 아니라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일단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사회적 건축의 첫 걸음’이라고 말하는 그를 확인하고 싶다면,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해온 ‘집짓기’ 프로그램을 보면 된다. 누군가는 봉사 혹은 헌신이라고 말하고, 그는 ‘그냥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찾고, 해보고, 그리고 그 방법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일을 반복한다. 남은 삶이 그려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는 그를, 그가 걷는 길을 프로필

보호해야 한다.

32


건축가의 위치 ─ 언어와 현실 사이, 거부와 실험 사이

CREDIT

33


글 . 편집장 이중용

가정을 해봅시다. 나는 선생이고, 당신은 학생입니다.

현실적인 지역 공동체는 형식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설계수업시간입니다. 설계 프로젝트를

오늘날의 공동체에 대한 통찰도 필요합니다. 어찌보면

해보는 겁니다. 지금부터 설계 과제를 설명하겠습니다.

1인가구 증가는 필연입니다. 남성 수입에 의존한 가족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국 1인가구 비율은

형태에서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지는 쪽으로 변해오면서

2006 년 14 . 4%에서 2016 년 27 . 2% 로 증가했습니다.

서로 불편, 불화를 참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아실현

2016 년도 국토연구원 주거실태조사 내용입니다. 통계청은

역시 남성에서 양성 모두의 문제가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2045 년 1인가구 비율이 36 . 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혼인율은 낮아지고 이혼율은 높아졌습니다. 개인주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주거비입니다. 특히나

강화되고, 물리적 네트워크를 보완할 가상의 네트워크도

청년층과 고령층이 문제입니다. 단적으로, 1인가구

발전했습니다. 우리들은 푸어poor들의 공동주택을

청년은 집 없는 ‘하우스푸어’고, 1인가구 노인은 네트워크

계획해야 하지만, 실상은 현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빈곤의 극한 고독을 견뎌야 하는 ‘사일런트푸어’입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어쨌든 이번 프로젝트는 거주자 특성과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설계해야 하는

요구에 맞는 주거 유형을 개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주제는 <300 가구를 위한 공동주택>입니다. 세계대전과

겁니다. 최대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게 목표이므로

경제공황이 반복되던 20세기 초의 건축가는 <300만을

용적률 게임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자, 사이트와 관련

위한 도시>를 제안했는데, 극단적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정보를 나눠드리겠습니다. 질문 있으면 하고, 없으면

오늘의 세계에는 대규모 개발보다 소규모 생존 전략이

계획을 시작해 주십시오 …

에디토리얼

더 절실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프로젝트에서, 1인가구 노인들이 투자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잘 해야죠’. 대부분의

월세가 나오는 1인가구 청년들을 위한 원룸을 짓기로

학생들은 충실히 설계를 수행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했습니다. 마침 사이트가 대학가 근처라서 수요는 걱정

아마 이 글을 읽는 건축인 중 열에 아홉은 프로젝트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대학교

자체에 대해 판단하고 있겠죠. 문제를 어떻게 하면 잘

입학정원은 50만 명인데 반해 2023년 대입 희망자는

해결할 수 있을까, 대지면적은 얼마일까, 혹은 300세대

39만명까지 급격히 감소할 추세니까요. 교수 일자리도

공동주택의 대략적인 볼륨을 떠올리며 공간구성방식을

2013 년 7 만3 천에서 2023 년 6 만3 천으로 줄어들 거라는

떠올릴 수도 있고, 도시형생활주택 최소면적 기준 14m²을

전망입니다. SKY 대학 근처라면 영향을 덜 받겠지만,

적용한 콤팩트한 원룸 유닛의 디자인을 상상할 수도 있고,

이 프로젝트에서는 시장의 평균을 가정하기로 합시다.

구체적인 조건이 부족하니 이미지만 떠올리고 판단은

참고로 우리나라 2016년 출산율은 1 . 3이며 세계 190위라서

나중에 하겠다는 분도 계실 겁니다. 어찌 됐든 중요한

한동안은 교육시장 수요가 회복되기 어려울 겁니다.

건 긍정이든 부정이든 생각의 초점이 주어진 문제 안에

따라서, 건물은 1인가구 청년 학생들 뿐 아니라 이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간혹 열에 아홉 아닌 열에 하나 정도,

졸업을 하면 청년 창업자로 활동하며 살아가는데 유리한

아니, 백 명에 한 명 정도일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공간환경이면 좋겠습니다. 이 건물은 주거용으로도

애초에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 말입니다. 집은

적절해야 하며, 창업과 사업 지원 역할도 할 수 있어야

무작정 비싸고 청년은 기성세대 자산 불려주느라 좁은

합니다. 노인과 청년 주거의 배치 방식은 여러분의

방 한 칸을 집이라 부르면서 온 종일 열심히 살아야 하는

아이디어에 맡기겠습니다. 바람이라면 일반적인

것도 짜증나는데 개발 명분인 ‘소셜믹스social-mix’ 같은

아파트에서 부작용만 많은 소셜믹스의 성공사례를 여기서

그럴듯한 말로 프로젝트 포장에 신경이나 쓰고 있으면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청년과 노인이 공존하는

정말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냐고 말하는 사람 말입니다.

풍경을 기대하겠습니다. 주거 방식도 제안해주십시오.

가정을 꾸리려면 반드시 다른 집을 찾아 나갈 수 밖에 없는,

원룸, 룸쉐어, 코하우징을 비롯한 모든 가능성을

포괄적인 거주inhabit를 구현할 수 없는 단순 거주처habitat

열어두겠습니다. 아파트는 16세기에 ‘분리된 장소 a separated

기능만 있는 것에 ‘집’이라는 지위를 부여해도 좋은가

place ’ 의 의미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문하는 사람 말입니다. 쉽게 말해, 건물보다 세상을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국가라는 커다란 공동체 틀만 남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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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는 이 설계


과제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건축가의

재고에 대한 불안을 상쇄시킬 만큼의 지불을 했어’라는

소소한 보람이나 충족시키는 미봉책이라며 딴지를 걸

안도감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체로는 기쁨도 안도감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선택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없지만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불안과 불만은

프로젝트 자체를 거부하거나 혹은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끝이 없지 말입니다. 불안은 돈으로, 불만은 꿈으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그에 반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시적이나마 해소될 수 있습니다. 돈과 꿈은 사람들의

남이 시킨 일을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의지에 가장 불을 붙이기 쉬운 도화선입니다. 결과는

모든 역량을 사용합니다.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구나 불꽃놀이를 희망하며 불을 당깁니다. 창의적으로 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되는 단순한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발을 내딛으며 신고식을 치릅니다. “사회초년병 홍길동,

대부분은 자신의 노동이 될 겁니다. 그것 자체가 상품은

‘물구나무 서서 불을 붙여야 불꽃이 터진다더라’는 식으로 대단한 일이 됩니다. 돈을 다루는 재테크와 꿈을 다루는 자기계발은 비용을 지불하기 가장 쉬운 분야입니다. 하지만 어제 흐른 강물은 이미 오늘과 같지 않고, 어제의 방법에 골몰하는 동안 오늘이 지나갑니다. 사실은 모든

아니지만, 노동과정 역시 근사하게 포장된 상품처럼

게 설계대로 제대로 만들어져 있다면 제대로 작동을 해야

보여야 합니다. (물론 노동하는 사람도 상품처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 구조를 제대로

하고, 준비물은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계하고 제작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일은

그것을 소비라고 하지 않고 투자라고 합니다. ) 만들어지는

적당히 하면서 불 붙이는 방법으로만 고심합니다. 게다가

과정에서의 땀과 눈물이 포장지에 얼룩을 만들지 않도록

도화선이 타들어가면서 주는 기대감은 중독성이 있어서

세심하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과정은 만든 이에게나

실패조차 다시 하고 싶게 만드는 끌림이 있습니다. 공장은

중요한 것이고 사람들은 결과에 값을 지불하니까요.

공장대로 가게는 가게대로 부품은 부품대로, 끊임 없이

하지만 결과물이 곧 상품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소비시키기 위한 생산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 문득

있습니다. 노동과정을 파는 겁니다. 상품은 국가와 계약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불꽃은 왜 자꾸 터뜨려야

공장에서만 만들고, 국가와 계약한 가게에서만 팝니다.

하지? ’ 4 차산업, 인공지능, VR/AR , 가상화폐, 인류가 BC

그러니 시장에서 상품을 만들기로 국가와 계약한 개인은

3000 년 이전부터 지금까지 마신 맥주보다 더 맛있는 맥주,

인간이면서 동시에 공장이고, 상품을 팔기로 국가와

그 외에도 무수히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 에덴동산에 살던

계약한 개인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가게입니다. 사업자가

두 사람의 삶이 오늘날 75억 5천만 개의 삶으로 분화되었을

아닌 사람들은 공장이나 가게에 자신의 노동과정을

뿐 실은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는 크게 변한 것도 없는데

부품으로 제공합니다. 인증과 유통에 진입하지 못한

말입니다. 불꽃을 만드는 도전에 심취하고 불꽃이 터지는

노동과정의 결과물은 아직 상품이 아니므로 시장가치는

모습에 열광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가정한다

제로입니다. 다만 노동과정 없이 상품은 생산되지 않기에

하더라도 궁금증은 남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고심했던

노동 자체에 가치를 지불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노동의

문제들이 지나치게 개별화된 건 아니었을까? ’ 하나의

가치는 국가의 모든 공장과 가게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지구를 공유하고 살아가면서 공동의 목표를 전제하지 않은

전체 구성원 개인의 최소한의 소비력에다가 상품이 가진

채 개인의 목표만 추구하며 달려왔다는 생각 말입니다.

향후 리스크를 고려한만큼 안에서 조정됩니다. 따라서

공동의 목표‘만’ 강조해서 실패한 ‘- 주의-ism’들의 실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란 자신이 만든 것이 만들어내는

피하고 싶지만 전체적인 방향을 바꾸려면 공동의 목표는

긍정적 가치에 대한 보상인 한편 공장이나 가게가 처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정적 환경에 대한 최소 지출이기도 합니다. 노동과정을

거기에 생각이 미친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별 수 없이

제공하는 사람은 흔히 ‘내가 열심히 일하고 만든 결과에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사피엔스의 특기, ‘허구虛構’가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았어’라며 기뻐하지만, 다른 면을

필요합니다. 대중의 상식에 새로운 이야기로 균열을

보면 그것은 노동력을 제공 받는 사람의 ‘팔리지 않는

내려는 사람에게 세상은 ‘생각이 어디에 미치더니 드디어

사회에서 건축업으로 먹고 살 것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 시장에서 먹을 것을 구하려면 먼저 가진 것, 교환할 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창업이 아니라면

35

EDITORIAL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해봅시다. 학생들은 사회로 첫


미쳤다’고 고개를 흔들고, 2000년 전에는 대못으로 지금은

방식이 합당한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냉소 혹은 무관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타당합니다. ) 거기에 가장 쉽게 소환되는

생각은 신앙이 되기도 하고, 다양하게 집단화되고, 새로운

것이 유토피아적 상상력입니다. 이미지는 일견 대안처럼

세상을 꿈꾸게 하다 이내 관료화되고 정체되고 급기야는

보이지만 실은 생각을 오래하기 힘든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부패합니다.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끌어 오래 고민해야 할 일도 손쉽게 호불호를 정하게

세계를 위한 다음 출구전략을 꿈꾸는 사람의 선택은 둘 중

합니다. 그러니 먼저 할 일은 지난 세기의 메가스트럭쳐나

하나일 겁니다. 시스템화 되어가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도시 판타지를 부활시킬 계획 아닌 ‘일단 멈춤’입니다.

모든 기존 시스템을 거부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만들 수

우리는 계속 살기 위해 살아가고 있고, 그 과정이 생각에

있는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그리고 역시나 대부분의

영향을 미칩니다. 생각을 하려면 일단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을 창의적으로

것을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한계, 건축의 한계와는 또 다른 ‘우리의 한계’ 등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에

물론 세상이 이렇게 간단히 설명될 수는 없을 겁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안’에 있는 사람은 자꾸 문제를

더구나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에서 엘리트 중산계급의

규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문제 자체를

태도를 취하는 건축가들이 간단하게 시장 지향, 혁명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문제를 ‘거부’하거나 대안을

지향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는 오히려 건축가의 돈의 옆 자리입니다. BC 27 세기 건축가 임호텝은 권력을

‘실험’하는 것을 택할 텐데, 책상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기어코 책상을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걸 이해하려면 머리통을 깨부숴야 해요.” 건축가 주대관의 생각과

신격화하는 데, AD 20세기 건축가 슈페어는 제국의 비전을

건축에 대해 자꾸 되묻는 필자에게 건축가 주대관 자신은

계획하는데 그들 자신의 재능을 쏟았습니다. 그 사이

정확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머리통을 깨부숴라.’ 언어의

쓰여진 건축사의 주요 양식과 오늘날에 이르는 대부분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이상, 우리는 다시 사피엔스의

건축이 권력과 부의 취향을 대변했습니다. 다른 한 곳은

허구나 유토피안들의 이미지를 기웃거리게 될 것입니다.

건축가들의 ‘건축(가)-다움’에 대한 생각 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건축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건축가는

BC 1 세기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아마도 건축가는 언어와 현실의

갖춰 지고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정당한 건축가의 위치를

사이 어딘가에서 거부와 실험을 반복하며 현재로서는 알 수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고, 20세기 건축사가 페브스너를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기회로 판명될 어떤 순간을 준비하고

비롯한 많은 이들이 건물과 건축을 구분하려 애썼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다 … 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에디토리얼

위치를 두 곳에서 또렷하게 새깁니다. 한 곳은 권력과

21 세기 한국에는 건축을 재테크나 저비용- 고효율로

판단하는 대중이 지배적인데 무모하게도 건축가의 자질이나 개성을 구분하려는 작업을 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안 될 일입니다. 어찌됐든 건축가는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이 곧 건축가의 한계선을 형성해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건축가가 천착한 첫 번째 한계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선의 위치 역시 건축을 구심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범위의 가장자리였습니다.

‘용적률 게임’이 절반만 긍정적인 이유는 그 전선이 건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 자체가 문제인데 시스템이 내 준 숙제만 풀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삶의

36


EXPERIMENT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집짓기

오늘의 집이 내일을 지탱한다

실험을 넘어서

서투른 손

투 바이 텐

부작용

2km

보존과 보상

2350

실마리

인제에서 영월로 양구에서의 교훈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투 바이 식스

마가지

세가지 제안

4 평학교

잇다

농성장에서 추모장으로

도서관의 입지 조건

미인도 먼립 마가지 2 호 포도 넝쿨 캉촹 炕床 꿀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발을 내딛는 일을 우리는

주대관은 건축을 필요로 하지만 시장과 행정으로 개략되는

실험이라고 부른다. 그간 현대건축은 수많은 실험들을 거듭하며

현 시스템의 기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대안들을 실험해왔다.

오늘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재료와 형식, 구법 등은

{와이드AR} 편집실은 그가 16년 동안 지속해온 ‘집짓기’를 ‘사회적

모두 자율성이 보장된 건축가의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실험’으로 인식하고, 그 성격이 전환되는 지점들을 기준으로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 실험이 수행된 사회의 체제 내에서만

총 네 시기로 구분했다. 각각의 시기마다 일종의 가설이 세워졌고,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에 속한 회차들에서는 가설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시행착오를 기록했다. 제한된 시공간적 조건 아래에서 수행되고

하지만 오늘도 우리가 매순간 공기처럼 당연하게 들이마시며

결론지어지는 임상 실험과 달리 사회적 실험에는 미처 통제할 수

살아가는 현재의 시스템에도 ‘초미세먼지’ 같은, 눈에는

없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개입했고, 그 성패에 대한 판단 역시

보이지 않는 모순과 결함들은 늘 상존하고 있다. 황사 마스크와

아직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의 호흡 안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공기청정기를 넘어선 대책이 우리에게 필요하듯, 체제 안에서

/ 진행. 정평진

이루어지는 건축의 내재적 실험과 구별되는, 시스템의 외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건축의 사회적 실험이 필요한 이유다.


집짓기의 목적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집짓기

글 . 정평진

피라미드의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 지난날의 건축술은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집짓기를 통해 지어진 집들은

극히 제한된 지배계급을 위한 궁궐과 신전, 왕릉을 짓기

미학적, 형식적, 기술적으로 동시대의 가장 앞서 시장에서

위해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유통되는 현대건축들에 비해 지극히 보통의 수준인 것이

궁궐 같은 혹은 궁전의 이름을 가진 주택에 산다.

사실이다. 매번 제한된 실험적 여건 아래에서 단순히

그만큼의 돈이 지갑에 있다면, 보통 사람도 귀족처럼

학습을 위한 시도를 넘어선 안정된 결과를 구현해야 했기

차려입고 시장에 나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다는

때문이다. 집짓기를 수행했던 대상 지역의 기존 가옥들은

음식들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바야흐로 손님이,

움막에 가까운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소비자가 왕인 시절이다. 과거 왕에게 복무하며 훌륭하게

집짓기가 극복해야 했던 기존 가옥과 보통의 집 사이의

성장한 오늘의 건축가는 이제 달라진 세상에서 현재의

시대적 간극은 첨단의 현대건축과 보통의 집 사이의

왕들을 위해 성심껏 집을 짓는다.

그것만큼이나 깊은 것이었다.

피라미드의 구조는 이렇듯 사회의 체제가 변함에 따라서

그러나 집짓기의 그러한 도약을 가능하게 했던 평범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해졌지만, 그럼에도

수준의 건축술이 과거의 피라미드와 현재의 시장 안에서

여전히 견고하다. 지불능력이 없어 아직 왕이 되지 못한

이루어진 건축 행위들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 역시

자들은 오늘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늘의 체제

부정할 수 없다. 과거 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개량되어

안에서 건축가가 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야할 이유는 딱히

온 음식들이 이제는 달라진 세상에서 모두의 식탁

없기 때문이다.

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듯, 체제 내에서 건축의 내재적 발전을 위해 수행되는 일반적인 집짓기와 보다 더 많은

반면, 어떤 집들은 피라미드의 구조 밖에서 지어진다.

사람들이 그 성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적 구조를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오늘과 다른 미래를 구성하는

그리는 집짓기는 병행되어야 한다. 피라미드 안팎에서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건축가와 꿀벌을 은유적으로

건축가들이 계속해서 집을 짓는 한 오늘의 견고한

비교했다. 그는 정교하고 과학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을

이 구조는 아래로부터 위로, 조금씩 더 평평해져 갈

통해 완성도 높은 벌집을 짓는 꿀벌의 행위보다 체계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집짓기 이야기는 이와 같은 방향

밖에서 자신이 지을 세계를 사전에 설계하고 구상하는

위에서 전개되며, 이것은 또한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특징을 가진 건축가의 행위가 더 큰 의미를 지니고

벌집에서 이탈한 건축가의 이야기다.

있음을 역설한다. 하비의 은유 안에서 주대관이 수행해온 집짓기는 꿀벌의 그것과 구분되는 건축가의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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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연변 용정

2007 양구 정림 EXPERIMENT

2006 양구 팔랑 2004 인제 서화 2009 인제 서화 2005 인제 용대

2015 미아리고개

2010 인제 합강

2015 광화문광장

2011 인제 신남

2015 마포 공덕 2014 용산 해방촌 2017 영등포 신길

2012 영월 주천 2002 태백 철암 2003 태백 철암 2004 태백 철암

2016 홍성 장곡

2008 서천 문산 2013 완주 삼례

2014 제주 강정

2016 제주 성산

39


크레딧

철암, 2017

40


CREDIT

41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집짓기

오늘의 집이 내일의 프로그램을 지탱한다

집짓기는 2002년 당시 철암에서

철암에서의 집짓기는 여러 어려움들을

진행하고 있던 도시건축작업의 일환으로

거치며 3년간 지속된 끝에 그 동력을

시작되었다. 작업팀은 가까운 미래에

잃고 말았으나, 작업팀은 철암의 경험을

대체산업이 아닌 지역을 회생할

바탕으로 인제라는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해 보존사업을

또 다른 실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계획하였으나, 그러는 동안에도 철암의 집들은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집짓기는 향후 철암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될 때, 그것을 지탱할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시작되었다. 42


2017 연변 용정

2007 양구 정림 EXPERIMENT CREDIT

2006 양구 팔랑 2004 인제 서화 2009 인제 서화 2005 인제 용대

2015 미아리고개

2010 인제 합강

2015 광화문광장

2011 인제 신남

2015 마포 공덕 2014 용산 해방촌 2017 영등포 신길

2012 영월 주천 2002 태백 철암 2003 태백 철암 2004 태백 철암

2016 홍성 장곡

2008 서천 문산 2013 완주 삼례

2014 제주 강정

2016 제주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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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집이 내일의 프로그램을 지탱한다

서투른 손

순탄치 않았던 첫 시도에도 불구하고, 작업팀이 그리는 전망은 밝았다.

2002 태백 철암

공사 전 4, 5호 집과 주변 상황

철거 작업 후 남겨진 구조

엉성하게 연결된 부재들

첫 집짓기의 과정은 크고 작은 작업상의 문제들을 드러냈다. 먼저, 작업의 대상지가 차량출입이 어렵고 물이 나오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자재를 운반하기 힘들었다는 것.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수선되어온 대상 가옥의 상태를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고, 증개축 과정에서 돌발변수가 많아 계획한 순서대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급 자재와 공구가 제한되어있어 철거 과정에서 나오는 목재와 합판, 창호 등 폐자재를 재활용해야 했고, 이로 인해 초기의 설계가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변경되는 경우가 많았다. 끝으로 가장 큰 어려움은 거의 대부분의 과정이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공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부족했고 기계와 공구의 부족으로 작업 효율도 매우 떨어졌다는 것이다. 작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모든 종류의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잡부가 목공일은 물론 조적, 미장, 지붕공사, 철거공사 등의 모든 일을 한 셈이다. 자연히, 작업 기간이 부족해졌고 공기를 당초 예정된 한 달에서 열흘 가량 연장하였지만, 그 역시도 너무 짧아 강행군이 불가피했으며 결과적으로 각 과정을 꼼꼼하게 수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건축가와 지역 주민, 후원기업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적 활동에 참여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학생들의 참여는 제도권 내의 대학 교육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교육적 효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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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기간 : 2002. 7. 11. – 2002. 8. 17. 규모 : 5개 동, 209.22m2 후원 : 강원랜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예산 : 38,550,000원 설계 및 목공 책임 : 이정렬, 한응전, 최찬환, 이선영, 홍순보


EXPERIMENT

완공 시점의 마을 전경

평면도 (공사 전)

평면도 (공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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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집이 내일의 프로그램을 지탱한다

부작용

첫 해에 지어진 집들은 예상치 못한 부정적 효과를 불러왔고, 작업팀은 또 다른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2003 태백 철암

보수작업 중인 강원산업 외국인 숙소

지난해 무상으로 제공된 집들은 두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하나는 대상 가옥 거주자들의 지나친 수혜심리로, 작업이 진행되는 중에도 관심이나 참여가 충분하지 않았으며 완공된 이후에도 최소한의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웃 주민들의 시기였다.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대한 불만을 비롯해, 불법건축행위로 신고를 하거나 공용공간의 사용을 트집 잡기도 했다. 심지어는 담장이 경계를 넘었으니 슬레이트를 치지 못하게 하고, 따듯한 격려를 건네다가도 어느 날은 술에 취해 새로 짓는 집이 높아서 자신의 집에 피해를 끼쳤다고 격렬하게 항의를 하는 탓에 그의 집 부엌에 새로 창을 내주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완화하고자 2003년 ‘집짓기’에서는 거주민에게 최소한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거주자도 지난해에 비해 애정을 가지고 시공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무상이 아니므로 주민들의 시기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무상에 대한 기대심리로 인해 신청자가 줄어 대상자 선정은 더욱 어려워져서 3–4가구의 집을 지으려던 당초의 계획은 두 집으로 축소되었고, 작업팀은 그 대신 강원산업의 폐광 이후 버려져 있다가 지역회생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태백선린교회에서 인수한 외국인 숙소 건물의 보수 작업을 수행했다.

46

위치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기간 : 2003. 7. 11. – 2002. 8. 7. 규모 : 2 개 동, 119,01m2 후원 : 강원랜드, 한보에너지 예산 : 20,270,000원 책임 건축가 : 송인호, 조정구, 최찬환, 박태홍, 이상구, 임지택, 윤희진


20,000,000

한보에너지 (목재합판)

3,764,000

김택기 (국회의원)

4,000,000

동명상사 (창호)

50,000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목사)

4,000,000

현물 후원 합계

3,814,000

유네스코 청소년팀

1,600,000 김영수

1,000,000

김환식 (이신컨설팅)

1,000,000

류재인

300,000

486,000

조성실 외

400,000

600,000

홍진표

500,000

권문성 (아뜰리에 17) 김길웅(S&PI) 홍진표

1,000,000

화성건재

500,000

전교조선생님들

140,000

강원랜드 지원금 중 일부

2,206,000

박용순(쇠바우식당)

200,000

현금 후원 합계

5,206,000

(주)강원랜드 조경팀일동

200,000 후원 합계

9,020,000

윤은경

500,000

주대관

1,000,000

주민 자부담 (25평 X 450,000/평)

11,250,000

엑토건축 (결손금 충당)

2,085,000

총 계

20,270,000

대동벽지

840,000

최세창 (목재 방문틀 5조)

500,000

전영덕 (한일설비, 연탄보일러 5대) 총 계

완공 시점의 마을 전경

400,000 38,550,000

철암 집짓기 예산 내역 (좌 : 2002년, 우 : 2003년)

진입로에서 올려다 본 7호 집 (좌 : 공사 전, 우 : 공사 후)

47

EXPERIMENT

강원랜드


오늘의 집이 내일의 프로그램을 지탱한다

보존과 보상

보존 작업을 위한 예산 유치에도 불구하고, 수해와 도로 확장에 따른 철거 및 보상으로 철암에서의 집짓기는 본래의 취지를 지켜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2004 태백 철암

철암 수해에 대한 뉴스(SBS) 보도

9, 10호 집 평면도

수해 복구 공사 현장

철암에서 진행된 세 번째 ‘집짓기’는 전·현직 광부 가족의 집을 짓는다는 사회학적 의의와 철암에서 조사된 다양한 강원산간지방 주택의 특성을 본격적으로 적용하여 유형학적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욕적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집주인과 주민들의 문제 그리고 재원마련의 어려움과 지자체의 비협조적 태도 등이 표면화됨에 따라 결국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로 종료되었다. 한편, 2004년 철암도시건축작업팀은 마침내 문화관광부와 강원도로부터 보존 작업에 활용될 적지 않은 예산 유치에 성공한다. 그러나 ‘집짓기’가 시작된 2002년과 그 이듬해 발생한 태풍 매미와 루사에 따라 반복된 철암천의 범람과 수해는 주민들 사이에 ‘차라리 또 수해가 났으면 좋겠다’는 농담이 오고갈 정도로 철거와 보상에 대한 바람을

부추겼으며, 태백시는 철암의 인구가 최고치에 달했던 1985년 고시된 도로확장 사업과 수해재발방지를 위한 천변재정비 사업을 시행하고자 태백역 앞 천변의 건물들의 철거를 결정한다. 아직 불확실한 철암의 미래보다 당장의 보상을 원하는 주민들은 보존사업을 반대했고, 이같은 갈등 상황 속에서 작업팀은 철암에서 ‘집짓기‘를 계속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일뿐만 아니라 최초에 설정했던 ‘집짓기’의 의미를 지켜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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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기간 : 2004. 7. 1. – 2004. 7. 31. 규모 : 2 개 동, 97.52m2 예산 : 29,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박상욱, 김성홍


상량식 직후 촬영한 집짓기팀 단체사진

태백역 앞 천변의 상가들 (상 : 철거 전, 하 : 철거 후)

49

EXPERIMENT

2002, 2003 반복된 수해 피해 현장


오늘의 집이 내일의 프로그램을 지탱한다

실마리

탄광에서 시작된 ‘집짓기’는 농촌에서 새로운 실험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2004 인제 서화

공사 전 대상 가옥의 외부 전경

기존 가옥의 평면 스케치

내부의 생활 공간

작업팀은 2004년 철암과 동시에 인제군 서화면에서도 작업을 진행했다. 서화 집짓기는 같은 해 국토부의 인가를 받은 새건협의 대외지원위원회와 공동으로 주관했는데, 이때부터 작업을 함께하기 시작했던 건축가 임지택, 강승희는 향후 집짓기에 지속적으로 기여한다. 서화에서의 작업이 철암과 다른 점은 처음부터 지자체 및 마을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허름한 기존 가옥은 거주자인 할머니의 소유였지만 토지는 외지로 나간 주민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건축행위허가를 위한 토지 사용승낙의 과정에서 토지주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건물의 소유를 마을로 귀속시켜 사용승낙을 받고, 할머니가 거주하다 돌아가시면 마을에서 다른 노인에게 집을 제공하는 방안이다. 즉, 이전까지는 소유주와 거주의 일치를 원칙으로 진행했으나 서화에서는 소유와 거주가 분리된 것이다. 이는 마을이 소유하고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농촌임대주택의 모델로서, 향후 진행될 집짓기의 실마리가 되었다.

50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1리 786-2 기간 : 2004. 7. 1. – 2004. 7. 31. 규모 : 50m2 예산 : 15,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임지택, 이진욱, 강승희


11호 집의 평면 계획안

51

EXPERIMENT

지붕 마감재 시공 당시의 모습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양구 팔랑리, 2017 52


EXPERIMENT

53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2005년 이후 네 번의 집짓기는 각기

여기에 속하는 모든 프로그램들,

다른 프로그램을 갖는다. 이들은

노인임대주택과 귀농지원 시설,

외부로부터 요구된 것에 대한 번역,

마을학교와 아티스트 레지던시, 도서관

포장 혹은 표현의 결과가 아닌 지역의

등은 각 지역이 처해있는 서로 다른

사회학적 과제들에 대한 건축가의

상황들과 관련되어있었고, 따라서 진행

판단에 따라 대안으로 제시된 것들이다.

양상이나 그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

어떤 프로그램은 성공적으로 운영된

또한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어떤 집은 다 지어놓고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쓰이기도 했다. 사전에 마을의 거의 모든 집들을 실측하기도 했고, 주어진 대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계획한 때도, 선정한 프로그램에 적합한 대지를 찾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54


2017 연변 용정

2007 양구 정림 EXPERIMENT

2006 양구 팔랑 2004 인제 서화 2009 인제 서화 2005 인제 용대

2015 미아리고개

2010 인제 합강

2015 광화문광장

2011 인제 신남

2015 마포 공덕 2014 용산 해방촌 2017 영등포 신길

2012 영월 주천 2002 태백 철암 2003 태백 철암 2004 태백 철암

2016 홍성 장곡

2008 서천 문산 2013 완주 삼례

2014 제주 강정

2016 제주 성산

55


투 바이 식스

지난 작업들에 비해 개선된 여건에도, 여전히 극복할 과제는 남아있었다.

대표적인 후원 단체들의 로고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2005 인제 집짓기 포스터

2005 인제 용대

2005 용대 집짓기에서는 철암과 서화에서 진행했던 기존 작업들에 비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포스터를 제작하여 여러 대학의 건축학과에 배포해 참여의 폭을 넓혔고, 지난 집짓기에 3회 이상 참여한 학생들 가운데 팀장을 선발해 작업 진행의 상당 부분을 주도하고 처음 온 참가자들을 리드하도록 했다. 한국농촌건축학회와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 스튜가 등 전문단체들의 후원도 확장되었으며, 이들의 자재후원협조와 기술지원을 통해 계속해오던 블록조 방식이 아닌 2×6 목구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술적인 시도가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을 넘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이를 공간사회학적인 시도로 연장했다는 것이다. 마을회관 주변에 마을 소유의 주택을 짓고 마을의 가장 어려운 노인을 거주하게 하는 것은 읍내의 병원이나 도시락 배달 등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와 제공받는 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주민들과 만날 기회를 잦게 함으로써 정부차원에서 집중시설의 설치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을 단위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세 개의 집 가운데 한 채는 결국 경로당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는데, 마을의 부담금을 모금이 아닌 마을기금에서 지출했고 시공 과정에서 이를 입주 노인만을 위해 쓸 수는 없다는 주민들의 의견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필요 이상의 고급 자재가 후원되어 예기치 못한 부속 자재와 기능공의 인건비가 추가 지출되거나, 농촌 주택의 문제가 에너지문제와 밀접하다는 관점에서 석유 위주의 에너지원을 대체하는 방안으로 지중열 방식으로 도입하고자 하였으나 소형주택에 적용했을 시 가정용 전기요금체계상 실익이 없고 충분한 기술과 비용이 확보되지 않아 중도에 변경되는 등 여전히 부족한 지점들은 존재했다.

56

위치 :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기간 : 2005. 7. 1. – 2005. 8. 8. 규모 : 3개 동, 148.76m2 예산 : 92,467,750원 책임 건축가 : 임지택, 황희준, 주대관, 홍성천, 강승희


마을 경로당으로 쓰이게 된 12 호 집

EXPERIMENT

13, 14호 구조 엑소노메트릭

농촌의 정주성을 고려한 노인 케어의 공간적 대안

57


세 가지 제안

지역 조사를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2006 양구 팔랑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마을 학교 전경 (좌/상 : 공사 후, 우/하 : 공사 전)

2006년 집짓기 팀이 향한 곳은 강원도 양구 팔랑리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작업팀은 먼저

마을에 소재하고 있는 건물들에 대해 실측 및 인문 조사를 실시한다. 모두 89채의 건물을 대상으로 실측 도면과 사진 기록을 남기고 위생, 난방 등 생활 여건과 관련된 항목들을 확인했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대상 가옥을 선정하고, 나아가 마을의 현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 인구 유치, 노인 주거문제와 관련된 세 가지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마을학교는 마을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할 뿐 아니라, 많은 공해에 노출된 도시의 아이들을 초청하여 농촌체험을 하기 위한 시설로 청정한 먹을거리와 환경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마을의 농산물 판매를 증진하는 다목적 프로그램이다. 한편, 귀농을 지원하기 위한 주거 프로그램은 마을로 이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거주하며 농사일을 배우는 동안 마을과 이웃에게 적응하는 기회를 갖고 정착을 도모할 수 있도록 무상임대주택 형식으로 제공된다. 노인 주택은 인제 집짓기와 같이 건축물에 대한 권리를 마을에 양도함으로써 공공에서 집을 수리해 거주 노인들이 여생 동안 무상으로 지낼 수 있도록 계획된 프로그램이다. 세 가지 제안은 모두 기존 건물을 증개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는 프로그램을 위한 새로운 대지를 마련하기 어려운 예산 내에서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농촌 주택의 절반 이상은 1960년대 이전에 지어진 초가집에 지붕과 난방 방식만을 개량한 주택으로 단열 성능과 주택 가격 모두 0에 가깝다. 2006 양구 집짓기는 그러한 상황에서 마을이 낙후된 기존 가옥들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함으로써 마을에 필요한 공공시설과 단열 및 난방기능이 개선된 귀농, 노인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시도였다.

58

위치 :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1리 기간 : 2006. 7. 1. – 2006. 8. 5. 규모 : 10개 동, 405.95m2 예산 : 170,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강승희


노인 주택 (좌 : 공사 전, 우 : 공사 후)

NO. 04 건축 년도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1리 548번지

소유주/거주자

증·개축년도

거주 기간

1976년

-

김 정 훈 (40세)/폐가 32년

건물 양식

건물 구조

벽체 재료

지붕 구조

지붕형태

지붕 재료

처마/차양

한 식

목 조

콘크리트

3량

맞 배

슬레이트

홑처마

한 식

철 골

기 타

-

맞 배

슬레이트

-

한 식

콘크리트

콘크리트

-

맞 배

슬레이트

-

한 식

목 조

나 무

-

맞 배

슬레이트

-

기름보일러

목욕실

있음

화장실

재래식

부속동/ 창고 부속동/ 화장실 부속동/ 창고 부엌 기

개량-실내식 난방 방식 아궁이→싱크대

개량 희망공간

EXPERIMENT

동 구분 주동/안채

부엌, 다락방

실측 조사 카드

귀농 주택 내부 (좌 : 공사 전, 우 : 공사 후)

59


2007 양구 정림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잇다

지역의 문화자산과 소외된 주민들을 집짓기를 통해 서로 연결하였다.

준공 시점의 전경

지난해와 같이 2007년 집짓기는 강원도 양구군에서 진행되었으나, 제안된 프로그램과 그에 접근하는 방향은 달랐다. 당시 양구군은 적은 인구와 남북접경지역이 지닌 각종 규제와 제한 등으로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었고, 그러한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화가 박수근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림리에 2002년 개관한 박수근 미술관을 중심으로 문화예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지역발전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에 집짓기 팀은 시가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박수근 미술관과 지역의 주민들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갤러리를 제안한다. 충분한 소득이 없는 예술가들에게는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농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교육적, 문화적 소외를 일정 부분 해소하고, 나아가 지역 내 관광 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박수근 미술관 앞 시가지로 이어지는 도로에 면한 300여 평의 대지를 양구군에서 매입했고, 그 위에 세 동의 스튜디오와 갤러리가 세워졌다. 한편 2007 양구 집짓기에서는 자재협찬 및 후원 협력단체인 한국목조기술협회에서 운영하는 목조건축학교가 병행되어 3주 이상 작업에 참여한 경우 수료증이 발급되었다. 한 명의 총팀장 아래 각 동을 책임지는 3명의 팀장과 총무, 기록, 식사 당번 등 역할을 나누고 작업 중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등 시공 과정에서의 학생들의 자치성도 높아졌다. 40여일 간의 집짓기를 통해 완공된 스튜디오와 갤러리에서는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발하고 작품을 전시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프로젝트 ‘잇다 展’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

60

위치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기간 : 2007. 7. 1. – 2007. 8. 10. 규모 : 3개 동, 231.4m2 예산 : 130,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강승희


정림리 위성 지도

1팀

2팀

직소를 이용하여 동쪽면의 창문을

목건 사람들이 서쪽면에 외장을

뚫는다.

한다.

보를 걸치기 위해 치수를 재고,

2층에 지붕도 완성된 상태

걸친다.

서까래를 모두 얹혔다.

3팀

배관을 정리한다. 창호가 도착해서 각 팀별로 배분

외벽 합판을 끝내는 것이 오늘의

석고보드가 부서지지 않게 하는

목표

작업들

벌어진 벽체를 조여주기 위한

어제 기둥을 세우느라 틀어졌던

앵글붙이기

수평, 수직을 맞춘다. 점심시간, 어김없는 설거지 가위바위보! 지금까지 기록 중 최고인 45장의 영광은 우주오빠에게 돌아갔다. 3시부터 작업 시작하는 1팀 2,3팀은 조금 늦게 도착하려나보다. 내벽합판 (준규팀 ; 창연,문수) 타이벡작업 (영진팀)

외벽합판 붙이기

2층으로 이어지는 보작업

기둥간격이 일정하지 못해서 다시 맞추는 작업

상을 대는 상준 (상 ; 내부에 합판을 댈 때 걸리게

오늘 오후 작업목표는

외벽합판붙이기

기둥간격재를 만들고 스터드가

할 부분)

약한부분 보강하기 (현주, 선미, 서까래와 외벽의 빈틈을 합판으로

세현)

메우는 진철

보를 올릴 때 높이가 맞지 않는 부분은 잘라낸다.

서까래가 뜬 부분을 베우기 위한

타이벡 바를 재료 준비

작업 계속 (진철, 길수)

사다리 만들기 (강송, 길수, 영진,

부재만들기 (목공소, 민섭, 정필,

태양)

태석)

간격재 빠진 부분 채워넣기 (현주, 선미, 세현)

(나연, 진철, 나리)

2층으로 ENfgfl는 보 넣기위해 2층 벽 뚫기

가새를 뽑는다. (상준, 용희)

(태호, 민재, 기억)

형민) 벽의 수직이 맞지 않아서 철사로 묶어 당긴다. (종민, 영순, 동국) 외부합판대기 계속 계단 옆에 기둥 만들기 (인호, 김양, 기록) 창문스터드 만들기 (진석, 미정)

공사 전 대상지 전경

남쪽벽 수직 맞추기 위해 실 띄우기

하루종일 간격재 만드는 선민

(재원, 성욱, 정현)

(계속 슬라이딩 돌린다)

사다리 만들기 (준희, 종준)

간격재를 댄다. 차단기를 안 내려가게 하려는 창현

철물을 박고 합판을 댔어야 하는데

방수테잎 ; 찢어진 부분,

기둥간격 맞추기

순서를 실수했다.

모서리부분을 막기 위해

노출기둥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떼어내고 다시 박을 예정

타카 조심할 것!

하다.

타이벡의 마무리는 뒷편에서

보 받침대를 만든다.(지원)

서까래 간격 맞추기 서까래와 박공 사이의 간격

참이 와도 관심이 없는 부지런한 일꾼들 냉면, 군만두, 떡 보를 박을 때 보니 그것의 하중을 실을 띄운 후, 배가 부른 벽에 가새를 대고, 가새에 2x6를 끼운 후!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수정

받칠 부재가 없어서 수직부재를 하나 더 댄다.

기둥고정작업(종민)

(민재)

합판작업

서까래 구멍뚫기 (세현, 선미, 현주) 현장이 온통 뿌옇다. 모래 반 톱밥 반이다. 앵- 슬라이딩, 직소, 스킬, 스킬다이 목공소 그 자체!

각 팀별 공정 기록 일지(김민주)

작업용 조끼

완공 후 운영 현황

61

EXPERIMENT

‘ㄴ’ 철물을 댄다 기둥과 바닥의 일체화

보의 아구 맞추기 (영석, 지원,


2008 서천 문산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도서관의 입지 조건

프로그램을 먼저 구성한 뒤 그에 적합한 대상 마을을 선정했다.

준공 시점의 도서관 후면 전경

서천군에서의 집짓기는 프로그램이 먼저 정해졌다. 농촌 마을들은 젊은 인구의 과소화로 인해 지속가능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 정주민의 확충이 필요하지만 마을 단위의 교육, 문화 시설에 대한 투자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집짓기 팀은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과 함께 농촌마을의 문화적, 교육적 소외를 개선하기 위한 최소생활문화시설으로 마을 단위에서 운영되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프로그램이 정해진 후 서천군과 책사회 그리고 집짓기 팀은 여러 마을들로부터 신청을 받고 현지를 실사하여 대상마을을 선정했다. 해당 마을의 인구 현황과 인접 마을과의 지리적, 정서적 접근성 그리고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의지와 관련 경험이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었다. 대상지는 논의 끝에 시초면 선암리와 시초면 소재지 그리고 문산면 소재지 등 3개 후보지 가운데 문산면에 위치한 군유지로 결정되었다. 건립된 도서관은 책사회로부터 수천 권의 책과 운영 프로그램을 지원받았으며, 서천군이 마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협의하여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3년 뒤인 2011년 이 건물은 진행과정에서의 사회적, 경제적 건강성과 단순하고 쉬운 구법 및 디테일 통한 건축적 완성도 등을 평가받아 세 명의 심사위원 전원 동의하에 제6회 농어촌건축대상을 수상한다.

62

위치 : 서천군 문산면 기간 : 2008. 7. 1. – 2008. 8. 10. 규모 : 지상 2층, 230.3m2 예산 : 258,693,7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강승희


마을 위성 지도

공사 전 대상 부지

배치도

EXPERIMENT

시초면

마을명

문산면

계 구 분

초현리

선동리

신흥리

선암리

용곡리

신곡리

태성리

봉선리

문장리

1,391

241

185

155

160

88

176

102

88

196

15세 이하

101

16

13

16

10

3

19

9

3

12

16-60세

565

104

77

63

65

34

56

38

34

94

61세 이상

725

121

95

76

85

51

101

55

51

90

완공 후 내부

인근 지역의 인구 통계

63


크레딧

인제 합강리, 2017 64


CREDIT

65


실험을 넘어서

실험을 넘어서

2004년 철암을 떠나며 작업팀은 인제

서화와 합강, 신남에서 보완과 수정을

서화에서 새로운 실험의 실마리를

거치며 진행된 일련의 작업들은

찾았다. 이후 인제 용대와 양구, 서천을

일정한 성과 내며 이어진 영월에서

거쳐 다시 인제로 돌아온 것은 4년 만의

일단락되었고, 집짓기 팀은 또 다른

일이다. 그동안 앞서 용대와 서화에서

곳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다.

시도했던 마을단위 노인임대주택의 긍정적 측면과 한계를 확인한 인제군은 이를 정부 정책으로 확대하기 위해 시범적 모델을 마련하는 과정을 함께해줄 것을 집짓기 팀에 제안했고, 이로써 집짓기는 실험을 넘어 실질적인 대안 모색의 과정으로 접어들게 된다. 66


2017 연변 용정

2007 양구 정림 EXPERIMENT CREDIT

2006 양구 팔랑 2004 인제 서화 2009 인제 서화 2005 인제 용대

2015 미아리고개

2010 인제 합강

2015 광화문광장

2011 인제 신남

2015 마포 공덕 2014 용산 해방촌 2017 영등포 신길

2012 영월 주천 2002 태백 철암 2003 태백 철암 2004 태백 철암

2016 홍성 장곡

2008 서천 문산 2013 완주 삼례

2014 제주 강정

2016 제주 성산

67


실험을 넘어서

투 바이 텐

집짓기 팀은 지역에 적합한 단열 방식을 찾기 위해 3개 동에 각자 다른 방식을 적용한다.

2009 인제 서화

완공 후 전경

5년 만에 다시 찾은 서화면에서 작업팀은 먼저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노인들의

주거환경실태를 조사하였다. 모두 30여 가구에 대한 사진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노인들의 성향을 파악해 실정에 맞는 주거 형식을 고안하고, 이들 가운데 농업활동의 경험과 가구원 구성 등의 기준에 따라 입주자가 선정되었다. 부지는 입주자들이 농산물을 경작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생산적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면사무소와 인접하고 활용 가능한 작은 텃밭이 있는 곳으로 마련했다. 2009년 집짓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저에너지 주택을 짓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겨울철 난방비용이 저소득층 노인들의 생활비용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고, 이는 난방 회피와 그에 따른 노환의 악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집짓기 팀은 에너지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시급한 요인이라고 판단했고, 지역에 적합한 단열 방식을 찾기 위해 2×10 목구조에 SIP(Structural Insulation Panel)와 그라스울, 연질 우레탄 총 세 가지 단열재를 각 동에 적용한다. 또한 3동 모두 폐열회수 시스템과 태양열 온수난방, 기름보일러가 시공되었다. 입주 후에는 단열기능과 난방연료비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고, 겨울철 온수사용을 위한 1시간 정도의 기름보일러 가동만으로도 실내온도가 22 도 이상 유지되었으며 바닥과 천장의 온도 차이가 2 도를 넘지 않는 등 놓은 효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순환펌프용량의 부족과 창호성능미흡으로 인해 결로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점들도 드러났고, 이러한 결과들은 모두 이듬해 집짓기에 보완되어 반영된다.

68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699-4 외 기간 : 2009. 7. 1. – 2009. 8. 5. 규모 : 3개 동, 231m2 예산 : 344,753,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강승희


공사 전 대상 부지

주택점검 및 면담카드 연

15

세대주명/시설명

서화면 서흥리 193-1 12/1

서 봉 순

연 락 처

자가, 자가타토, 전세, 월세, 무상임대, 기타 :

주거형태 가 옥 주

지원내용

연 락 처

거주가구원수

1 명 (세대주외

명)

성별/생년월

가구원특기사항

족 능

부양금

462-1542

여/

건강상태

약도

국가지원금

30만원(연금 포함)

자원봉사자

자활센터 일주일에 두 번 청소, 빨래

질병

중풍(07 세브란스병원), 교통사고(15년전)

치료상태

가사방문 서비스

양자 1명을 어릴 때부터 함께 살다가 약 10년 전부터 연락 두절. 20년전 할아버지와 사별한 후 혼자서 생활. 현 주거는 비어있던 집은 교회에서 주선해서 약 6년전부터 현 주택어서 생활 할아버지 생전에 농사경험.

양자1(호적상 친자) 약 10년전부터 연락두

중풍. 허리통증(교통사고). 거동불편.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교체.

절. 30대.

기타

창피해서 면에 이것저것 요구하지 않음. 그저 주는 것만 받아 생활. 면에서 실질적으로 챙겨주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함. 가족이나 친지 전혀 없음. 친정식구들과는 오래전에 왕래 없음. 전기 : 보통 3만원

※ 가구원 특기사항 - 노령자, 장애인, 와병자 등의 특기사항 기록

가 이주년도

10년이상

옥 현

수도 : 5천원 보일러 : 연탄지원받음

면적

대지 _평, 건평

자가, 자가타토, 단독, 다세대( 층), 아파트( 층), 기타 :

주택형태 방 주방 화장실 난방시설

( 1 )개

특기사항 :

재래식, 개량식, 입식, 기타_

특기사항 :

재래식, 수세식, 욕실형, 기타_

특기사항 : 외부화장실 있음

장작아궁이, 연탄아궁이, 연탄보일러,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 도시가스보일러, 기타_

상하수도시설 일반구조

마당

유, 무

벽체

흙벽, 벽돌, 블록, 샌드위치판넬, 기타_

지붕

기타_

특기사항 :

사진

특기사항 :

나무, 블록, 벽돌, 샌드위치판넬, 시멘트판넬, 기타_

EXPERIMENT

담장 주거희망

특기사항 :

초가, 슬레이트, 기와, 슬라브, 샌드위치판넬, 칼라강판,

특기사항 : 없음

이주 의지 강함.

가전제품

TV,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김치냉장고, 전자레인지, 에어컨,

보유내역

기타_

노인주거실태 조사카드

단열 시공 과정 (그라스울)

단열 시공 과정 (SIP)

단열 시공 과정 (연질 우레탄)

69


2010 인제 합강

실험을 넘어서

2km

예기치 못한 대상지 변경으로 사전조사는 무력해졌고, 입주자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맞은편에서 바라본 합강 주택 전경

당초에 집짓기를 계획했던 장소는 합강리가 아니라 상남면이었다. 작업팀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먼저 대상지 인근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노인들의 주거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대상의 범위는 150여 가구로 확대되었고, 서화면에서 조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작업의 편의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세분화된 선택항목으로 조사카드를 보완했다. 그런데 땅이 바뀌었다. 기존에 계획했던 상남면의 군유지에서 경작을 해오던 주민들이 농로 신설과 기존 식재에 대한 권리를 요구함에 따라 대지의 가용면적이 지나치게 줄어든 것이다. 앞서 농작물에 대한 과도한 보상액 요구에 포기하고 옮긴 일도 있었다. 입주 대상자들이 교통 약자임을 고려해 면소재지나 읍내에 위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인제군에서도 끝내 마땅한 부지를 마련하지 못했고 결국 읍내로부터 2km 가량 떨어진 합강리에서 집짓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변경된 대지에 따라 설계안의 배치를 바꾸어야 했고, 계획했던 조손 가정의 입주를 위해 2층으로 구성된 주택은 인제군 전체를 대상으로 입주자 선정을 했으나 불리한 입지조건 탓에 결국 마땅한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단열 수준은 지난해보다 하향 조정되었다. 서화에서의 경험을 통해 농촌의 노인들이 열손실이 적은 방과 미지근한 바닥보다는 단열수준이 낮아지더라도 잦은 환기와 따듯한 바닥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벽체의 두께를 2×10에서 2×8으로 줄였고, 지난 작업과정에서 시공성이 좋지 않았던 SIP 대신 연질 우레탄과 그라스울을 사용하였다. 합강 집짓기에서는 목조 정자도 추가되었다. 뒤편의 공동 창고에 구조적으로 의지해 있으며, 노인들이 함께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자 마을의 버스 정류소로 쓰이는 이 구조물은 2011년 목조건축대전의 특선작으로 선정된다.

70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98-1 기간 : 2010. 7. 1. – 2010. 8. 5. 규모 : 2 개 동, 248.76m2 예산 : 357,239,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조사번호

개인별면담카드

거주년수

생활보호 경제활동

자가(싯가: 모름) 자터

타터

월세

보증

만원

만원 선정사유

농사 현직업

무상임대

기타

보유질환 상태

장애

미성년

지붕

기타

농사경험

현재텃밭농 사여부/작목

다소건강/작업활 관절계 허리 중풍 등 동에 지장없음 불편 불편 거동불능

무 관계 등

부양협력자

무 관계 등

재산사항

공공지원 종류/금액

사적지원

없음 특기사항

다세대

연립 임대

(양식) 경량철골조 목구조 (조립식)

RC평슬래브

RC경사슬래브

LDK

L-DK LD-K

BATH

현 대 현 대 재 래 양변기 내부 식 식 식 욕실

가전제품 보유

연탄아궁이 기름 연탄보일러 보일러

가 스 보 일 러 심 야 전 기 장작/기름 겸 기타 (LPG포함) 보일러 용보일러 가스 레인지

주택보수 지원사항

냉장고

세탁기

김치 냉장고

전자 레인지

헛간

재 래 입 외부 식 식 솥단지

TV

합계

조손 가정을 위해 계획된 2층 주택의 단면 투시도

기타:

KITCHEN

외부 외부 세면장 변소

기타

기타:

구옥 흙벽조 시멘트 시멘트 적 벽 조립식 양식 콘크리 기타: 목조 흙벽돌조 블럭조 벽돌조 돌조 패널 목구조 트조

ROOM

오토바이

분양

구조

마당포장 여부/재료 구술사항

다가구

시멘트 흙 노 시멘트 적벽돌 노 비닐 목재 노 적벽돌 기타: 미장 미장 출 미장 치장쌓기 출 사이딩 사이딩 출 치장쌓기

난방 장작 시설 아궁이 경제활동

신옥

아파트

마감

부양협력

월소득

없음 자동차

저층공동주택

EXPERIMENT

부양의무자

평면 구조

교통수단 소유여부

단독

슬레 골 함 아스팔 조립식 몰탈방 아스팔트 강판 강판 기와 이트 석 트슁글 패널 수마감 슁글

(구옥) 목구조

구조

벽체 치매/ 정신질환/ 장기입원 알콜중독

사용면적

버스 운행간격

490m

가족내 거동 불능자 유무

구옥

마감 기와

노령

치료방법/기관 매우건강

전체면적

년/ 월 저소득

버스정류장으로 km 부터의 거리

접근로의 상태

주택의 형식

병력/치료

건강상태

주택의 소재 및 상태

본인

나이

조사원/조사일

인제군 상남면 및 기린면 저소득층 주거실태조사

소재지 내/ 외

주택의 소재 및 접근성

이주사유

관계

성별/나이 전세

선정년수 전직

가구유형판정 이전 거주지/년수

*가구주 포함

조사번호 k101

주소 현거주지 거주년수

동거가구원

거주형태

면담조사원/조사일

인제군 상남면 및 기린면 저소득층 주거실태조사

k101

기타

특기 사항

기타의견

2010년 사용된 주거실태 조사 서식

합강주택의 목조 정자

합강리 위성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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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인제 신남

실험을 넘어서

2350

세 번째 해를 맞는 인제 집짓기는 여러 면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신남 주택 단면도

2009년 이후 인제에서 이어져온 집짓기는 조금씩 수정, 보완되어왔다. 노인들의

생활방식에 따라 벽체 두께를 줄여 지난해 하향 조정된 단열 수준을 보완하기 위해 신남 주택은 예산을 더 할애하여 방사율이 낮은 Low-E 유리를 사용했다. 합강리에서 정자를 구조적으로 지탱했던 공동 창고는 입주자들 간 공동생활의 가능성을 확대하고자 공용 주방으로 용도를 바꾸었다. 단면의 구조도 이전의 집들과 달라졌다. 지난 집짓기에서는 외벽의 높이를 문의 규격(2150mm)에 맞추고 지붕 단열을 함으로써 박공 천장을 그대로 노출했던 반면 신남 집짓기에서는 평천장에 단열재를 시공하고 지붕재는 단열 없이 얹는 대신 층고를 2350mm까지 높였다. 서화와 합강의 집들을 모니터링해본 결과 적용된 단열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층고를 높이더라도 난방 성능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입주자 선정 과정 또한 앞선 두 차례 경험을 통해 조금 더 개선된다. 조사카드와 선정 지표에 몇가지 항목들이 추가되었고 신남리가 속해있는 남면의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전체를 대상으로 하되, 계획된 임대주택의 공간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을 가진 가구들은 사전에 제외하였다. 덕분에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선정과정에서 부적합한 가구들을 배제했던 지난해에 비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적정한 조건을 가진 입주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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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남리 190 외 2필지 기간 : 2011. 7. 1. – 2011. 8. 5. 규모 : 2 개 동, 200.5m2 예산 : 296,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완공 후 전경

EXPERIMENT

창호 시공 과정

공동주방과 정자 평면도

정자와 결합된 공동주방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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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영월 주천

성과를 거두며 영월에서 일단락된다.

실험을 넘어서

인제에서 영월까지

2009년 시작된 일련의 실험들은 일정한

건물 구조도 초기 계획안

서화와 합강, 신남을 거쳐 2012년 집짓기는 영월로 이어졌다. 대상지와 입주자 선정 절차, 농촌 지역의 생활방식에 적합한 단열기술과 공간구성 등 영월 집짓기에 도입된 요소들은 모두 인제에서의 작업들을 통해 마련된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대상 부지는 복지,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입주민들의 여건에 맞춰 면사무소와 보건소, 119 안전센터 등 주요 시설들과 가까운 곳으로 선정되었다. 갑작스러운 대지변경을

겪었던 2010년 합강 집짓기의 경우와 같이 기본설계가 완료된 후 한차례 대상지가 바뀌어 설계안의 배치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나, 곧 기존 대지와 인접한 곳으로 대체 부지가 마련돼 큰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졸업 후에도 매년 시간을 내 현장을 찾았던 집짓기의 초기 멤버들은 작업 기간 중 두 차례에 걸쳐 총 6일 동안 설계안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았으나 합강과 신남에서 입주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목조 정자의 시공을 도왔다. 한편 영월 집짓기에서는 2007년 이후로 6년 동안 집짓기와 병행되어온 목조건축학교의 이론 강의를 보강했으며,

그와 더불어 참여 학생들에게 학점을 수여하도록 하는 서울시립대와의 교과 협약이 체결된다. 농촌임대주택의 시범적 모델을 제안하기 위해 2009년 인제에서 시작되었던 집짓기는 농림수산식품부에 시범사업을 신청하고 농어촌연구원에서 관련 수요조사를 실시하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고,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반복되었던 일련의 시도는 영월 집짓기를 끝으로 일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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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1458-33외 1필지 기간 : 2012. 7. 1. – 2012. 8. 3. 규모 : 226.26m2 예산 : 274,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완공 후 전경

EXPERIMENT

초기 멤버들의 참여로 세워진 목조 정자

2012년 목조건축학교 포스터

서울시립대와 체결한 교과목 협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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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완주 삼례

실험을 넘어서

양구에서의 교훈

완주에서의 새로운 실험은 지나온 길들과 어딘가 조금 닮아있었다.

완주 삼례 게스트하우스 전경

지난해 영월에서 농촌임대주택의 시범적 모델을 제안하기 위한 4년간의 실험을 마무리한 집짓기 팀은 전라도 완주로 향했다. 당시 완주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양곡창고 등 근대 유산들을 활용해 삼례문화예술촌을 조성하고 있었고, 작업팀은 인근 부지에 방치되어있던 다섯 채의 적산가옥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해 예술촌과 연계하여 운영할 것을 제안하였다. 먼저 사전 조사를 통해 기존 건물들의 상태를 점검했고, 그 결과 철거할 것과 남길 것이 정해졌다. 부지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철거해 넓은 마당을 만들고, 수명을 다한 전면의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신축 건물이 세워졌다. 나머지 건물들의 경우 기존의 일식 목구조에 경량목구조를 더해 보강하고 부분적으로 헐거나 필요에 따라 증축되었다. 완주 집짓기는 새로운 지역에서 이전과 다른 프로그램을 시도하였으나, 2006년과 2007년 양구에서의 작업들과 유사한 지점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팔랑리에서 집짓기

팀은 보존 목적이 아닌 예산의 한계로 인해 오래된 가옥들의 구조를 보강해서 활용해야 했고, 정림리에서는 박수근 미술관이라는 지역이 가진 문화자산과 연계하여 그 가치를 확산시키는 프로그램으로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제안했다. 양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모델링된 건물은 2014년 목조건축대전에 선정된 세 작품 가운데 특별상을 수상했고, 게스트 하우스는 귀촌 청년들의 협동조합 ‘씨앗’에 위임되어 성공적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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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음 후정리 254-5번지 외 5필지 기간 : 2013. 7. 1. – 2013. 8. 22. 규모 : 4개 동, 314.63m2 예산 : 349,739,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구조 보강 시공 과정

EXPERIMENT

구조 전개도

(위) 공사 전 대상 부지 (아래) 준공 시점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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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서울 광화문광장 78, 2017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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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2014년 이후 집짓기는 매년 2개의 짧은

또한, 이 곳들은 그간 우리 사회의 주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갈래로

이슈들을 드러내는 장소로서, 건축이 할

전개되어 나간다. 섬마을의 농성장에서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 모색이 필요했다.

도심 내 쇠락한 시장, 추모를 위한 광장, 고가도로의 하부 공간, 공유지 운동 현장, 귀촌 청년들의 농장, 두만강 접경지역의 장애인 주택,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쉼터까지. 작업팀이 향한 장소들은 때마다 달라졌지만, 이들은 모두 앞서 집짓기가 진행되었던 곳들과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그들이 각자의 이유로 건축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시스템 내에서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80


2017 연변 용정

2007 양구 정림 EXPERIMENT

2006 양구 팔랑 2004 인제 서화 2009 인제 서화 2005 인제 용대

2015 미아리고개

2010 인제 합강

2015 광화문광장

2011 인제 신남

2015 마포 공덕 2014 용산 해방촌 2017 영등포 신길

2012 영월 주천 2002 태백 철암 2003 태백 철암 2004 태백 철암

2016 홍성 장곡

2008 서천 문산 2013 완주 삼례

2014 제주 강정

2016 제주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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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지

2014년 집짓기 팀은 바다 건너 활동가들을

2014 제주 강정

위한 컨테이너 하우스를 짓는다.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공사 전 현장

운반 과정

도색작업 후 전경

컨테이너 설치 후 전경

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되면서 제주 강정마을에는 공사 현장을 둘러싼 1.5km 구간의 펜스가 설치된다. 중덕 삼거리는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유일하게 펜스를 설치하지 못한 곳으로 사업 부지가 위치한 구럼비 해안으로 연결된 마지막 통로였으나, 2011년 9월 2일 새벽 투입된 경찰병력에 의해 농성장은 해산되고 3시간가량의 충돌과정을 거쳐 끝내 펜스가 세워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활동가들은 중덕 삼거리에서 반대운동을 계속 이어나갔으나, 운동이 장기화됨에 따라 생활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졌고 그로 인해 건강도 악화되어갔다. 이에 활동가들은 ‘오막살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 ‘마가지’라는 이름의 주택협동조합을 결성했고, 2014년 집짓기 팀과 함께 운동의 지속을 위해 활동가와 방문객들이 머물 게스트 하우스

건설을 추진한다. 주택의 형식은 지가 상승과 활동가들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고려해 철제 컨테이너를 구입하여 단열 성능 보강 등을 통해 주택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으며, 2016년 7월 철거되기 전까지 활동가들의 보금자리로 이용되었다.

82

위치 :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기간 : 2014. 7. 7. – 2014. 7. 21. 규모 : 6개 동, 109.2m2 예산 : 53,2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4평 학교

탄광과 농촌을 거쳐온 집짓기는 도심 속 마을에서 계속되었다.

공사 전 건물

2014 용산 해방촌

철거 과정

EXPERIMENT

완공 시점의 전경

해방촌은 남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해 한국전쟁 시 월남자들이 주로 정착해 마을을 이루었다. 2014년 당시에는 앞서 추진되어왔던 재개발 사업의 무산 이후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러한 배경과 입지조건 아래 빈집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의 마을만들기 운동들이 나타났다.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 내 기간 : 2014. 7. 7. – 2014. 7. 21. 규모 : 33m2 예산 : 7,200,000원 책임 건축가 : 허길수

오랫동안 집짓기를 함께해왔던 스튜디오 정미소의 허길수 소장은 해방촌에서 자리를 잡고, 마을 회생을 위해 마을활동가 협의체와 함께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신흥시장 내에 위치한 점포들 중 한 곳의 무상 임대권을 얻었다. 집짓기 팀은 이 공간을 전시와 세미나 등의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곳은 완공 이후 해방촌 4평 학교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에 의해 활발히 활용되어오고 있다.

83


농성장에서 추모장으로

광화문 광장을 더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머물 수 공간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2015 광화문 광장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재정비 전 현장

모형 사진

시공 과정 정비 후 천막 안팎의 전경

2015년 7월 11일 4시 16 분 광화문 광장에서는 농성 1주년을 맞아 새단장식을 진행했다.

집짓기 팀은 그에 앞서 광장을 재정비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했고, 광장의 성격이 농성 공간에서 추모와 기억을 위한 장소로 전환되어야 한다는데 주최 측과 의견을 모았다. 작업팀은 먼저 강풍에 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래주머니 대신 합판으로 세워진 벽 내부에 시멘 블록을 충전해 경관과 안전을 확보했고, 시민들의 시야와 통행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광장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동상을 가로막고 있던 분향소의 위치를 옆으로 옮겼다. 집짓기 팀은 이와 같은 공간 재정비에 따라서 그동안 멈췄던 분수대가 다시 가동하게 되는 등의 변화로 더 많은 아이들과 시민들이 광장을 찾을 수 있도록 장소의 기능이 확장될 것을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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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광장 기간 : 2015. 7. 5. – 2015. 7. 10. 규모 : 15개 동 예산 : 25,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미인도

미아리 고개에서의 집짓기는 어두침침한 고가 도로 밑을 환하게 밝혔다.

2015 미아리 고개

공사 전 현장

철거 과정

EXPERIMENT

완공 후 전경

동선고가차도는 미아리 고개를 오가는 교통상의 편의를 위해 1996년 준공되었다. 고가의 건설로 신호대기가 불필요해짐에 따라 교통체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그로부터 20년 후 도로의 하부 공간은 음침한 우범지대로 변해있었다. 집짓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전까지 고가 하부는 오랫동안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한 집하장으로 이용되거나

위치 :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3가 22-6 기간 : 2015. 7. 1. – 2015. 7. 21. 규모 : 500m2 예산 : 153,000,000원 책임 건축가 : 정기황

자율방범대를 비롯한 개별 주민들이 창고 등 임의적인 용도로 공간이 점유되고 있었다. 문화도시연구소의 정기황 박사는 이 프로젝트의 총괄기획자로서 성북문화재단, 스페이스 오뉴월과 동선고가차도 하부공간 개선사업을 민간주도형 거버넌스의 형태로 발전시켜나갔고, 집짓기 팀은 기존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자율방범대와 환경미화시설을 철거하고 위치를 옮겨 새로 조성한 뒤 주민쉼터와 전시, 공연, 세미나 등의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진행할 수 있는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프로젝트의 이름 ‘미인도’는 역사, 예술로 구성된 소프트웨어를 의미하는 미아리 고개의 앞 글자와 공간을 사용할 주민, 예술가 등의 휴먼웨어를 칭하는 ‘人’, 그리고 하드웨어로서의 고가도로를 뜻하는 ‘道’의 조합으로, 이 세가지 요소들이 신윤복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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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먼립

개발이 한창인 도심 한복판에서 집짓기 팀은 나무 기린을 만들었다.

2015 마포 공덕

공유지 운동이 진행 중인 늘장 전경

서울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경의선 지하화에 따라 발생한 폐선 부지를 공원화하고 역 주변을 개발하기 위한 상호업무협약을 체결한다. 이후 (주)이랜드월드가 공덕역 부근 개발사업주관자로 선정되었고, ‘늘장’은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방치된 부지에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협동조합을 꾸려 벼룩시장 운영을 마포구에 제안하여 2013년 문을 열었다. 집짓기 팀은 늘장에 문화도시연구소의 K12어린이 건축학교 운영교실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존의 공간을 정비하고 부지 내 빈 공간을 활용하여 어린이 건축학교 강의실 겸 다목적공간을 신설한다. 개선된 공간과 시설은 늘장에 귀속되고 문화도시연구소에서 운영과 관리를 맡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2015년 말 마포구는 계획된 개발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늘장과 사용계약을 종료하고 공간을 비워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늘장은 이 땅을 공유지로 남기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 집짓기 팀은 그 일환으로 이듬해 봄 하루 동안 이 곳에 두 마리의 나무 기린 만들기를 계획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계획된 도안을 제공했고, 기린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2×4 목재로 제작되었다. 이미 늘장에는 2015년 집짓기 과정에서 만들었던 기린 ‘먼립’이 서 있었다. 먼립은 먼 곳에 있는 잎사귀를 따서 먹는 기린의 모습을 이상향에 대한 은유로서 표현한 것이다. 세 마리의 기린 가족이 완성된 이후에도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26번째 자치구를 선언 등을 통해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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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169-12 기간 : 2015. 2. 23. – 2015. 4. 25. / 2016. 5. 7.

책임 건축가 : 주대관


나무 기린 도안

다목적공간의 3D 모델링 투시도

EXPERIMENT

나무 기린과 공사 현장의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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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는 중덕 삼거리의 컨테이너

내부 시공 과정

2016 제주 성산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마가지 2호

중덕 삼거리의 컨테이너들은 철거되었으나, 집짓기는 계속되었다.

개조 작업 현장

2014년 강정마을 중덕 삼거리에 집짓기 팀이 설치했던 여섯 동의 컨테이너는 강정 크루즈

터미널 진입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된다는 이유로 2년 만에 철거된다. 집짓기와 철거를 경험한 마가지 주택협동조합은 앞으로도 제주에서 운동을 이어갈 활동가들을 포함해 취약한 주거환경에 놓이게 될 상황에서 사용될 시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집짓기 팀과 함께 4 동의 컨테이너를 긴급구호주택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을 위해서는 포장된 공간이 필요했고, 성산읍에 위치한 지구마을평화센터 부지 내의 공터에 공간이 마련되었다. 작업팀은 출입문과 창호의 위치 및 크기에 따라 모두 세 가지 타입의 주택을 계획했고, 단열와 창호, 전기설비, 마감을 통해 주택으로 개조된 컨테이너는 주최 측에 귀속되어 필요한 때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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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1725 기간 : 2016. 7. 12. – 2016. 7. 23 규모 : 4개 동, 61m2 예산 : 25,000,000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포도 넝쿨

홍성 장곡 집짓기는 귀촌 청년들의 농장에서 진행되었다.

2016 홍성 장곡

완공 후 외관

EXPERIMENT

기초와 주변 전경

조리실 내부

홍성군은 서로 인접해있는 농촌의 여러 마을들을 하나의 권역 단위로 개발, 정비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오누이 권역을 추가했고, 건축가 주대관은 이듬해 실시된 오누이권역 단위종합정비사업 설계공모전에 당선된다.

위치 :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기간 : 2016. 7. 4. – 2016. 7. 16. 규모 : 97.76m2 책임 건축가 : 정기황

정비사업이 완료된 후 집짓기 팀은 오누이 권역 내에서 운영되고 있던 귀촌 청년들의 협동조합인 ‘젊은 협업 농장’과 함께 추가적으로 필요한 시설을 모색하던 중 인근에서 생산된 채소 등으로 요리 실습이 가능한 아웃도어 키친을 제안한다. 작업팀은 농장에서의 출입이 자유로운 공간 구조와 비닐하우스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과 이질적이지 않은 외관을 계획했고, 측면과 상부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개구부에는 향후 포도 넝쿨이 자라면서 계절에 따라 일조량을 조정해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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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촹 炕床

집짓기의 첫 해외 작업은 두만강 접경지역에서 주거환경의 개선 사례를 마련했다.

2017 연변 용정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공사 전 건물 외관

(위)시공 전 내부 (아래) 사용되고 있던 아궁이

바닥 난방 시공과정

용정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지금까지도 아궁이에 석탄불을 지펴 바닥을 데우는 난방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캉 또는 캉촹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한국의 온돌과 같은 것으로, 효율은 낮고 가스 중독 사고 발생의 위험이 높았다. 2017년 집짓기는 한반도연탄나눔운동, 연변조선족자치주 장애인협회와 함께 용정

시내에 위치한 주택 2 호에 대한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부엌과 침실을 구분하는 벽을 세우고 침실 외벽에 단열재와 창호를 교체 설치하였으며, 바닥 난방은 석탄보일러로 대체되었다. 이번 집짓기을 통해 작업팀은 유사한 기후와 조건에 놓여있는 연변과 북한 지역 주택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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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기간 : 2017. 7. 10. – 2017. 7. 17. 예산 : 18,813,172원 책임 건축가 : 주대관


꿀잠

집짓기 팀은 12년 만에 마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을 그들과 함께 지었다.

2017 영등포 신길

공사 전 건물

EXPERIMENT

완공 후 전경

철거 과정

2017년 8월 19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쉼터 ‘꿀잠’이 문을 열었다. 2015년 10월 17일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10주년 평가 토론회에서 처음 제안되어 모금을 시작한 지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186-201 기간 : 2017. 7. 1. – 2017. 7. 8. 책임 건축가 : 정기황

22개월만의 일이다. 2000여 명의 후원자들로부터 7억 6천만 원의 모금액이 마련되었고,

꿀잠은 이를 밑천으로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4 층 건물을 매입한다. 문화도시연구소의 정기황 박사가 이윤하 생태건축연구소장과 함께 공간 설계를 맡아 기존 세입자가 사용하고 있는 2, 3층을 제외한 1층과 4 층, 지하 1층과 옥상의 리모델링 작업이 시작되었고, 집짓기 팀은 공연, 전시 공간으로 계획된 지하 1층의 시공을 진행했다. 완성된 집의 이름 ‘꿀잠’은 건립을 함께해온 송경동 시인이 2006년 출간한 시집의 표지작 제목이기도하다. 시인은 고단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편히 잠들 수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비정규직의 집 꿀잠은 개관식 당일 8명의 손님을 맞이하는 것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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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명단 제공 : 문화도시 연구소, 스튜디오 정미소

송이설 안종진 윤경미 이승준 이혜영 정운영 조성원 최성민 최현승 한원준 황태상

2002 태백 철암

집짓기 크레딧

권이철 백준호 유병욱 이지영 차승원 최연웅

김규리 서지학 유용근 이진주 차종호 허성주

김준구 손성원 이기웅 임창휘 최기원 현명석

박문석 손종태 이용주 정기황 최기인

방유경 신철호 이주연 정유석 최무규

배 지 염진영 이지애 정창용 최연욱

2003 태백 철암 강경아 고정훈 권경언 김민선 김민영 김세민 김윤하 김주희 김지연 김혜정 김호진 나명희 문상호 문서영 문선애 박소영 박지현 박소현 백준호 서윤희 성태원 신유정 신정원 신혜숙 영 철 윤윤정 오세민 이강일 이경진 이보람 이용수 이용훈 이우정 장 원 장종진 전형준 정희태 조남석 조은주 최기원 최다희 최보리 한원준 허선미 허성주

권기환 김수광 김지은 나애진 문정은 박혜명 손성원 심재만 원유정 이상수 이정민 정영일 조정진 최용훈

김건호 김수미 김형신 류종안 박민영 방승률 송혜미 안효숙 유지영 이상준 이주현 정영철 조현준 최윤미

김난주 김영수 김혜영 류지영 박소연 방유경 신상현 여수진 윤 미 이순화 이홍석 정윤선 차종호 한상일

2004 태백 철암 공희경 권기환 김건호 김주호 김지혁 김철환 문소정 박형준 백준호 신정원 이보람 이영재 조정진 한원준 현승헌

김민영 김태중 서윤희 이윤주

김세희 김효경 서 원 이지현

김승현 문서영 송유근 정희태

2004 인제 서화

길정환 김명현 김윤하 김지연 김학로 김호진 류지영 서지현 손건국 송혜미 신은경 여수진 우철민 이강일 이충현 정호건 추동혁 한상일 2005 인제 용대 강정윤 고영동 권두현 김건호 김남진 김남희 김범준 김샘이 김세진 김일규 김정화 김지연 김형준 김혜진 김호진 문서영 문정환 박계정 박영선 박주영 박준근 봉혜정 서원진 서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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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근 김명현 김세희 김지현 나명희 박근준 박춘병 서효정

권호석 김민경 김 완 김한상 류정선 박래훈 박헌춘 송민섭

길정환 김민조 김윤하 김형수 류태열 박소영 백상엽 송승현

송지욱 양정원 윤광일 이윤주 임영빈 정원철 조영수 최성춘 최현일 한인호

송혜미 여수진 윤예화 이재영 장연재 정은주 조장희 최영호 추동혁 허일강

신병민 오현영 이경애 이지명 장정윤 정주홍 조정진 최유영 하용식 현승헌

신상현 오혜원 이상혁 이택호 장종진 정희태 채송화 최윤호 하현수 황보람

신정원 우철민 이순화 이학로 정병규 조미화 최민경 최종민 한대성 황윤성

2006 양구 팔랑 국승탁 권기환 길정환 김건호 김기철 김동국 김동환 김명지 김명현 김선민 김수정 김운빈 김원일 김인수 김일규 김장선 김정아 김주현 김주희 김지혁 김진우 김현명 김효성 나명희 남진희 류정선 박두리 박소영 박영빈 박은영 박찬석 박혜민 방용현 백상엽 서원진 서윤동 서장원 선진우 송민섭 송상헌 신율재 심석용 안종진 양영화 양은영 양정원 오현영 유문경 윤광일 윤재원 윤형진 이경애 이민재 이상준 이상호 이성욱 이슬희 이승태 이연영 이영재 이윤주 이정보람 이종민 이중빈 이지남 이지연 이춘원 임도영 임성현 임종희 장종진 장한승 장현규 전한병 정수희 정희진 조만경 조성원 조영수 조정진 조중훈 지강일 진달현 채송화 최다영 최보람 최성민 최연정 최영호 최유영 최재선 최현승 최현일 탁우빈 탁현우 한인호 허길수 허승욱 황규범 황대근 황호연 2007 양구 정림 강나리 강송이 강태석 김기철 김동국 김명지 김민주 김병규 김선민 김선욱 김세현 김연미 김유나 김윤겸 김인호 김정민 김정아 김정환 김준희 김진우 김진철 김태수 김태호 김한결 김형민 김혜진 나상공 남진희 노예슬 다 영 도재민 라 완 류정선 류혜선 명나연 문 경 문배움 박기억 박영빈 박옥미 박유미 박은주 박지용 박태양 배수열 백상엽 백승욱 봉혜정 상 준 서 원 선진우 임소영 손유정 송민섭 송성희 신나래 신상현 신지원 심우성 안성찬 양영화 양웅호 양은혜 엄진용 염수희 오설미 오정현 오혜원 옥지해 유인규 유종근 유준호 윤병담 윤선미 윤재원 이 민 이경미 이경애 이문수 이문지 이미옥 이민재 이민정 이상옥 이상호 이성욱 이슬희 이승태 이아름 이연영 이영순 이우람 이우주 이정보람 이종준 이준성 이중효 이지회 이진나 이창연 이창현 이현주 임미정 임세인 임주호 장경환 장내임 장종진 장현규 장현준 정두영 정선이 정영석 정은주 정은진 정진석 정희태 조명선 조성규 조성원 조성필 조준규 조한석 주정필 채송화 천나래 최송이 최연미 최영진 최영호 최유영 최종민 최현일 하영아 하은경 하지원 한용희 허길수 황 준 황진애

김진섭 김효진 문제형 박소영 배현호 신상현 양영화 유재헌 이문지 이예림 이창현 전나눔 정은진 조재용 지용성 최원정 허길수

김진철 노병래 문형선 박영규 서정화 신수현 오설미 유종근 이민우 이욱진 이한나 전수성 정재윤 조정진 차상열 최유리 홍석환

김현수 노예슬 박기억 박옥미 선진우 신주영 오세원 윤병담 이민재 이유리 임미정 전현주 정해린 조한송 채송화 최유영 홍창욱

김현일 라 완 박나례 박종완 손경민 안종진 오현영 윤재원 이성욱 이윤숙 장세륜 정선이 정희태 조혜진 최봉석 최현일 황소영

김형민 김효전 명나연 문소정 박범수 박선윤 박지혜 방소람 손우진 손창국 안지선 안진호 우승윤 원대한 윤주환 이동근 이슬희 이안나 이정보람 장세연 장한주 정성희 정영석 조영호 조은지 조효재량 최선미 최연미 하지원 한원준

2009 인제 서화 강경화 강태용 강희인 곽예진 구자형 구정은 권기덕 권도훈 군두현 권성욱 권혁철 김가람 김가희 김경환 김대성 김덕수 김명규 김미라 김민경 김민서 김범준 김병덕 김병동 김보라 김산영 김상현 김서리 김석주 김석진 김설아 김성수 김승경 김승환 김아름 김아리 김연정 김영균 김예진 김우중 김유나 김윤식 김은경 김익환 김인호 김재현 김정인 김종오 김지인 김지헌 김지혜 김진운 김진철 김진형 김태수 김한성 김형철 김형태 김혜경 김효진 김 훈 김흥섭 김희민 김희준 나용희 노국래 노병래 노승정 류민정 문은진 박규태 박노학 박상현 박선현 박성연 박아영 박영규 박영지 박영하 박옥미 박은주 박진영 박진용 박찬호 박철민 박초롱 박현민 반가희 방소람 배종윤 배진형 배하나 백다예 백상엽 백수진 서다인 서병덕 서 원 서정석 서종화 선진우 성병준 손경민 손나영 손영관 송민섭 송우람 송윤정 신나리 신상영 신성범 신수현 신주영 신학철 심우리 안소진 안치원 양범모 양승규 양정원 양준석 양혜령 오순택 오한진 옥민진 우승윤 우현혜 원승연 유은숙 유정희 윤두경 윤벼리 윤승업 윤지혜 이광욱 이동규 이동열 이 민 이민구 이민섭 이민우 이상호 이상휘 이서청 이석주 이수경 이슬희 이우조 이은영 이재민 이정보람 이정석 이정희 이준호 이진복 이채윤 임성엽 임세인 임수영 임진영 임화련 장세륜 장세연 장연주 장은숙 전새미 전수혜 전재준 전현주 정병규 정송이 정윤금 정의성 정일성 정재우 정준우 정해남 정현수 정홍재 정희태 조금은 조우연 조은정 조일연 조재욱 조재혁 조정진 조효재량 주미희 지용성 채민수 채정현 최권영 최미영 최영호 최원정 최재혁 최종규 표지선 하지원 한유재 한정호 허경영 허영웅 홍민지 홍상원 홍창욱 황소영 황은영 황혜영 BAT-OCHIR_ERDENEDAVAA BAYARAA-ARIUNJARGALAN DAVAGOCHIR DORJBAT ENKHBOLD GANZORIGT JARGAL

2008 서천 문산

MARTINA-ROSENTHAL MUNKHTUR

강설화 강송이 고재미 공진선 권기덕 권민아 권혁진 권혁철 김가희 김나은 김명호 김민영 김민재 김민주 김예진 김재랑 김재평 김종하

NARANTSATSRALT TUVSHINTUR URTNASAN


이예림 이재완 이지원 이효진 임청록 정 진 조현우 최서영 최창락 한주희 황정일

이예슬 이정익 이춘재 임경일 임화련 정찬우 조현정 최서원 최호진 한휘석 황태식

이우조 이제경 이태겸 임수옥 전종윤 정희섭 차지환 최선미 추연경 허경석

강덕호 기홍석 김민형 김은진 김지은 노희섭 박소영 서 원 송우람 안민섭 오정민 윤종혁 이슬기 이지수 임보람 전예진 조한동 최동헌 최해인 허길수

강상원 김기억 김범수 김은하 김태호 류민정 박송이 선예지 송윤경 안숙영 오태수 이규은 이예림 이철우 임종성 정성희 조현우 최서영 편혜숙 홍명주

강치묵 김동필 김상헌 김인호 김해민 마동휘 박수진 선진우 송진산 양경모 우윤지 이보경 이예슬 이택수 임지현 정 진 주현욱 최선열 한미옥 홍치연

2013 완주 삼례

강경화 강희라 김근우 김상혜 김인호 김형교 노수헌 박귀석 박원희 백기호 서 현 송이나 염진민 윤재원 이두영 이수진 이재승 이주영 이한결 임주혜 장희원 정민지 정현수 주찬혁 최은희 한봉일

CHINZORIG_GOMBOSUREN PUREVEE_AMARBOLD 2011 인제 신남

강상원 곽기문 권형주 김병규 김아리 김예진 김종현 김혜정 노국래 박성원 박정훈 백상엽 선진우 송주익 안두현 유명재 윤아람 이강현 이상명

강창하 곽용성 길기윤 김상우 김연정 김은진 김준하 김홍현 류한욱 박성훈 박준원 백성준 설영호 승경수 양유영 유승애 윤지영 이경필 이상준

강희라 구승규 김기홍 김상현 김영조 김인영 김준현 김효진 마혜영 박소영 박태서 백정환 손승문 신다빈 양정배 유한규 윤현필 이다홍 이상혁

고광영 국승탁 김도영 김선혜 김영택 김정욱 김지선 나선이 박경현 박수진 박태신 서예은 송나리 신용환 오정우 유현무 윤현호 이민구 이상호

고나연 고주진 권준석 권혁철 김동근 김민겸 김성수 김수진 김영현 김예지 김종울림 김철영 김태준 남동훈 남윤영 박민영 박상욱 박영리 박재한 반가희 백다예 서우림 서이레 송민호 송우람 신재형 신정아 오현애 유대종 유훈상 윤 솔 윤휘취 이가혜 이민기 이산하 이승윤 이승태

이유선 이준호 이한별 임지환 정승훈 조혁주 최명식 최진수 한수정 황신혜

2012 영월 주천

ERDENEBAATAR_GANBAATAR MUNKHJARGAL_BAYARMAGNAI

이원영 이주은 이하나 임종묵 정선주 조아란 천정봉 최유림 한상현 현원철

강병찬 고재영 김동범 김세연 김재섭 김형진 노희지 박대현 박하랑 백다예 성가인 신재형 오태영 이가윤 이두희 이 슬 이정수 이주은 이해경 장광원 전명규 정성희 정환영 주태호 최재근 한수정

홍치연 황보현주 황신혜 2014 용산 해방촌

김민정 박문용 신정원 이경미 이태상 한원준

김상헌 박성언 심수림 이동규 장수연 허길수

김유섭 박창훈 오태영 이상호 최선락

김은혜 백경인 윤은지 이아라 최승영

김찬주 백다예 이가윤 이유나 최현일

박경현 서 원 이건학 이정훈 하지민

2014 제주 강정

JARGAL_BAZARRSAD BAT-OCHIR_ERDENEDAVAA

이웅희 이종영 이택수 임은정 전호성 조경연 채희창 최선열 편혜숙 허경영

강상원 곽민석 김민아 김연호 김준태 김희민 문자영 박성언 박혜수 변경림 성병준 안민섭 유성인 이건학 이문지 이예림 이정연 이주호 이현석 장성희 전에나 정아름 조미미 채송화 최진호 한원준

강희라 김무언 김아라 김정아 김현아 박경현 박시우 성병준 신재형 양범모 유덕근 이상용 이은영 이호경 장세륜 조성원 지용성 최성근 한수정 황신혜

권지연 김민정 김언정 김주란 김현지 박병민 박하랑 손지연 신지우 오세후 유재영 이선혜 이주은 이호윤 전수진 조아란 채송화 최재혁 한원준 황현정

권희경 김민주 김용순 김준현 나종철 박선민 백다예 송민영 안도영 오수진 윤재원 이수진 이주호 임민영 전승미 조은원 천정봉 최정임 한재원

강유나 권수미 김민정 김예진 김진아 남석우 문지연 박소영 반가희 변선영 송민섭 양범모 유승은 이경태 이상민 이예슬 이제경 이중민 이효빈 장세륜 전해빈 정은국 조성원 천정봉 최희용 한준희

강창근 권용준 김민형 김용순 김태호 남수원 민경은 박수진 방준규 서 원 송영대 양은군 윤성빈 이규은 이상준 이용현 이종상 이지원 임민영 장유한 전환준 정 준 조소현 최대호 표지은 홍명주

강혜정 권지연 김빛나 김은진 김현아 남지현 박경현 박시우 배성봉 서윤정 송우람 양해미 윤은지 이동규 이석이 이유빔 이종서 이태상 임수연 장주영 정권준 정 진 조웅전 최서영 한가희 홍상원

강민경 강연철 김유진 김재호 김희민 남지현 남효림 노수헌 라영준 박정훈 양해미 윤남경 이지원 장혜령 정재훈 천정봉 최선경 홍민지 홍상원 2015 공덕 늘장 김상현 김은진 김재호 박경현 이예슬 전명규 정 진 천정봉 한주희 2015 미아리 고개 강희라 김경민 김균언 김선의 김수빈 김예진 김유진 김은수 김진형 김희민 노수헌 라영준 박건우 박경현 박정훈 성환진 안두현 양해미 이건학 이경준 이수진 이시온 이신비 이어진 이용제 이정수 이정훈 이진희 이효상 임서현 임 혁 정 진 주지영 천정봉 최낙원 최서영 한주도 한주희 허경영 허윤서 홍민지 황보현주 황인재 2015 광화문 광장 권나은 기민석 김다예 김진우 나진주 남욱진 박규호 박동선 박정훈 심규현 윤남경 윤하준 이형성 전병철 전병훈 조소희 천정봉 최강산

김성민 남지현 박주희 윤현진 정주영 최현호

김유진 노수헌 박하랑 이가치 정 진 한주도

김종태 류동현 성형석 이원준 정진선 홍상원

2016 늘장 기린 강희라 김기억 김초희 김태호 박경현 서 원 송우람 윤재원 이예슬 이정수 임민경 전원구 채송화 천정봉 최민혁 허경영 허길수 홍치연 2016 제주 성산 권상우 김선환 김현재 남지현 박경현 배준호 심원용 어우진 유성연 허길수 2016 홍성 장곡 고정우 권지연 김기억 김희민 송혜린 심호진 이주호 이철우 임해진 최동헌 최우재 최지훈

김상호 안유현 정아현 한영균

김현우 김혜지 이의상 이정인 정민규 정지현 홍치연

2017 연변 용정

권지연 김기억 김기열 김민정 김상호 남도현 박경현 서 필 이규선 장다혜 최서영 최용민 한수정 허길수 홍치연 2017 영등포 신길

권지연 김혜지 박수진 송진산 양해미 염지원 이예령 이철우 홍민지 홍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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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MENT

2010 인제 합강 강성민 강수원 강승일 강창하 강희라 강희문 고주진 곽용성 구본영 권혁철 김기범 김나래 김동희 김민경 김범준 김병동 김빛나 김상균 김상현 김상희 김새로미 김석진 김성연 김성학 김수진 김승환 김시욱 김아리 김애니 김여현 김은성 김은수 김익환 김정수 김정우 김주태 김준영 김지선 김지은 김지훈 김진영 김진원 김창준 김창현 김태영 김태호 김학재 김현규 김형은 김효전 김효진 김희민 나선이 남주형 남태양 노국래 노동우 노서영 도광훈 마혜영 명보미 문선웅 박가희 박고은 박민경 박민영 박소영 박예림 박재욱 박종진 박 진 박진경 박진욱 박초희 박칠준 박현배 박혜인 박희영 반가희 배근원 배종윤 백다예 백상엽 변정호 변희수 서 원 서이레 서장욱 서종화 선진우 설지혜 소성일 손승문 손은경 손지호 송민권 송민섭 송엄지 송우람 신상영 신소현 신수지 심수림 안두현 안사랑 안치웅 양범모 양웅호 양하느리 오동욱 오지연 오현경 오혜경 우현혜 원미희 유사무엘 유종식 육현아 윤수호 윤영훈 윤일상 윤휘치 이광민 이대화 이두영 이득규 이민구 이민수 이민호 이상명 이상민 이상준 이석현 이수정 이수진 이승태 이우조 이은영 이은행 이주은 이준성 이지원 이지은 이지훈 이택수 이홍익 이희성 임수옥 임주영 임화련 장세륜 장현지 전 민 전수진 전해빈 전효진 정봉진 정선주 정소연 정재준 정 진 정해남 조만경 조명선 조윤길 지용성 채송화 채유경 채한샘 최가현 최민우 최성민 최영호 최원상 최원정 최원진 최진손 최학현 최한솔 틴 틴 편혜숙 한유림 허경영 허재진 홍상원 홍연경 홍은진 홍정화 홍종대 황보현주 황신혜 황현정 황호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태백 철암, 2017 94


철암역 앞 천변의 건물들은 도로가 확장되며 결국 철거되었고, 과거 반려되었던 보존 작업은 그로부터 몇 년 뒤 논란 끝에 다시 재개되었으나 그것은 이미 지켰어야 할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일이다. 그리고 태백의 인구는 오늘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철암의 문제는 비단 철암뿐 아니라 오늘날의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 모든 지역들에서 앞으로도 조금씩 양상을 달리하며 지속될 것이다. 이 곳들은 모두, 철암을 포함하여, 어디선가 이어질 ‘집짓기’와 같은 건축의 사회적 실험에 부과된 과제이자 그것이 수행될 장소로 남아있다.

EXPERIMENT

95


INTERVIEW

인터뷰

건축가 주대관

녹취를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그는 언어로 간단히 규정해버리는

인터뷰어 자신이 조금 씁쓸하기도 했고, 늦었지만 또 그만큼은

우愚는 피하려 하면서도 생각의 범위의 차이는 가능한 조정하려고

어찌어찌 이해해 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와이드AR}의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건축을 근사한 개념이나

건축가 특집 인터뷰 방식은 건축가의 생각에 더해 건축가의 모습을

선언적 문구로 축약하고 인지되길 바라는 어떤 건축가들과 달리,

담기 위한 것이었다. 늘 그렇듯 건축가 특유의 화법話法을 살리고자

그는 끊임 없이 변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 건축이라는 실천 행위

하는 이유 역시 언어를 통해 건축가를 볼 수 있는 그나마 나은

자체를 살핀다. 그런 그에게 언어란 틀로 찍어낸 응고된 형태가

방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건축을 다룰 땐 건축가로서의 그 사람을

아니라 소통 가능한 범위에서의 흐물거리는 내용물이어야 했던

보려고 애썼는데, 건축가를 다루게 되자 비로소 건축가 이전에 그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건축’에 대해 어찌어찌

사람 자체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의 호흡을 따라가주길 바란다.

이해해보겠다고 말을 하고 다음 만남에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96


2017. 10. 09

구축하는 행위가 가장 위대한 건축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랬는데 그게 철암에 가서 완벽하게 무너졌죠. 철암에 간

주대관 : 집짓기 얘기를 좀 하면, 2002년부터 시작을 했고요.

이유이기도 하고. 왜냐하면… 비오는 날 지나가는데, 농부건축가나

2004년까진 철암에서 했고, … 철암에서 시작된 게 두 가지가

광부건축가나 자기가 자기 공간을 구축한 건 똑 같잖아요? 그런

있는데 하나는 집짓기고 또 하나는 어린이건축교실이에요. 지금

면에서 광부건축가의 집이 개집으로 변한 상황에 대한 충격이

어린이건축교실은 홍성천 소장이 전담을 하고 있고 집짓기는 제가

나한테는 상당히 컸죠. 그러니까 그 원인이 뭐냐라는 생각을

여전히 챙기고 있는 그런 상황이죠. 어떻게 보면 2004년까지가

한 2년 동안 했죠. 그랬을 때 결국 이 ‘사회'인 거죠. 사회로부터

탄광촌 집짓기… 나부텀도 사실은, 이때 건축가라고 하지만… 잘

건축이 떨어져 있는 거 아닌가. 그 전까지는 사회와 동떨어져서

몰랐죠. 그러고 이때는 도네이션도 안 되고 돈도 없고 이러니까...

개개의 심미주의적인 ‘건축을 위한 건축’에 상당히 취해있었다면, 그때부터는 ‘아, 건축이라는 게 사회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구나’,

이중용 : ‘몰랐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결국은 사람이 안 살면 무너지는 게 집이고, 자기가 자기

아, 설계하는 거하고 현장의 기술적인 부분은 좀 많이

공간을 구축했더라도 그렇게 사람들이 스스로 구축해서 도시가

다르죠. 그래서 예를 들면 집을 다 지었는데 장판이 붕 뜨거나 이런

만들어졌더라도 그것은 폐허가 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일도 있어요. 왜냐면 이게 방풍을 안 해가지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그때 가장 커다란 변화였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러면 한 번

밑으로 들어가가지고 장판이 떠요. 이렇게. (웃음) 그런 일도

가장 압축적shirinking으로 진행된 탄광촌을 직접 가보자고 해서

있었어요. 목조로 지으니까. 틈새가 있잖아요. 바람이 들어와서

아무 것도 모르고 갔던 거고. 가서 접해보니까 거기 있는 주민들은

그런다던가, 물이 샌다던가 이런 것들이 있었구요.

사실은 그냥… 순진한 나에 비해서 훨씬 욕망에 찬 사람들이었고,

2005년도는 농촌으로 옮겼죠. 사실은 99년도에서

차별적인 사람들이고 그런 거죠.

시작된 철암 작업이 2004년도에 거의 끝난 거다, 우리에게는. 그 이후에는 간혹 가는 정도만 하고 그 다음에는 안 가는

처음 가실 때 혼자 아니고 여럿이 함께 가셨잖아요?

거였죠. 물론 시작도 끝도 우리 맘이니까 관계는 없는데. 탄광촌

설득은 하셨어요?

작업이 저한테는 중요한 영향을 미쳤어요. 대표적인 건 어쨌든,

예. 그랬던 거 같아요. 그땐 참 열정적이었죠.

지금과 같은 약간 유물론자적인 생각 이런 부분들, 그 전에는

주말마다 가고 막… 그때 그러니까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약간 심미적인 게 더 많았고요. 예를 들면 90년대 같은 경우는

(다른 분들이) 함께 해 준 것만으로도 큰 힘이었죠. 전인호(1958–)

해체주의에 거의 빠져 있는…

선생, 권문성(1959–) 선생 이런 분들… 지금 가자고 그러면 아무도 다음에 «철암세상» 책도 만들고 이렇게 했던 거고. 그것을

네. 가장 해체적인 건축가였어요. 해체적인 건 뭣도

하면서 현장에서 실측하고 그들의 구조와 삶 이런 것들을 고민한

모르고 좋아했던 거고, 그게 IMF 거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게 집짓기 과정이고. 그 다음에 어린이건축교실 같은 경우는

생각들이 주로 아돌프 로스적인 생각이었죠.

소프트웨어적으로 어떻게 지역을 살릴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다보니까 결국은 교육이다, 교육을 어떻게 할 거냐 해서…

그러면 혹시요. ‹집을 잘 지어보고 싶은

사실은 어린이건축교실만 시작했던 게 아니고 어린이영화교실,

욕심›({건축사}, 1999)이라는 글이 있던데요. 1995년

어린이사진교실 이런 걸 했는데 그건 한 번 하고 끝났어요. 다들

96년 정도의 일인데, 거기 나온 집이 아돌프 로스의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고나서 2004년도에 어떻게

스타일인가요?

해보려고해도 더 안 됐던 게, 그 사람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단계가

아뇨. 그건 관계 없고요.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하는데…

됐죠. 그래서 ‘아, 이제는 아니다', 그래서 2005년도부터는 강원도

누구나 개업을 하면, 전에 있었던 사무실에 실장으로 있을 때

인제 가서 본격적으로 하는데… 사실은 철암에서 집짓기 할 때는

영화榮華를

돈이 없어가지고 45각 목재(45×45mm), 요것만 가지고 집을

되게 그리워하게 되죠. 왜냐하면 그 전에는 (설계비가)

3천만 원이었는데 내가 개업을 하니까 갑자기 1천만 원짜리가

지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얇겠어요?

되거나, 그러면서 점점점점 내려가는 거죠. 그러고 설계를 거의 무보수로 해줬는데도 자기네들 맘대로 바꿔버리고 이런 일들.

아… 45에 45가 뭐예요? 투 바이 투(2×2in)예요?

오히려 비싼 집은 안 바꿔요. 싼 집이 바꾸지, 맘대로. 왜냐면

투 바이 투는 정규격이고, 이거는 ‘사재’라고 얘기하는

공사비에서 건축주가 업자의 설득에 넘어가는 그런 부분하고

보통 목재가 있어요. ‘다루끼’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국내 규격으로

관계가 있었을 것 같고. 아돌프 로스에 제가 심취했던 것들은 농부건축가의

30×30이 있고, 45×45 있고, 30×40도 있고 한데. 근데 그게

이제 45×45 각으로 집을 지었으니, 이걸로 지붕 트러스를 짜면요.

집이라는 문장이었어요. 여러 군데 그 얘기는 썼었는데.

옹이가 있는 곳은 뚝 부러지거나... (웃음) 그때는 평 당 오륙십만

농부건축가의 집이 가장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가장

원…

잘 표현하는 말이 하이데거가 얘기하는… thinking, building, dwelling인가요?

평당 오륙십만 원이요? 예. 그때로 봐도 말도 안 되는 비용이죠. 지금

음… 사유하기, 거주하기, 짓기…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건축가들이 얼마나 현장, 실물,

예. 그런 연장선이었죠. 왜냐면, 자기가 자기 공간을

머티리얼material을 모르고… 그래서 2005년도에 양구 집짓기를

97

INTERVIEW

안 갈 거야. (웃음) 그렇게 가고 조사하고 전시회도 하고, 그 아, 소장님도요?


하고…

보고하고 이렇게. 양구요? 양구는 2006년, 2007년 일인데요?

도네이션은 주로 어디를 통해서 들어왔나요?

아, 인제구나. 인제의 용대리에 1리, 2리, 3리에

이때부터는 이제, 2005년부터는 군청.

마을회관을 짓게 되죠. 아니, 마을회관이 아니라 마을 회관 옆에다가 집을 지었는데, 그때부터 조금 더 소프트한 쪽에 관심을…

그 외 민간에서는요?

그러니까 건축하고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방식…

민간에서는 자재 이런 거, 개인기업이 조금 후원하는 식으로 했죠. 이때부터 그런 걸 하게 되는데, 하다보니까 제대로된

프로그램이요?

목조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게 달라요.

예. 프로그램을 결합하는 방식. 이때 고민했던 거는 철암에서 개인주택의 한계… 그러니까 대안적인 시도를

아, 그래서 목조주택학교까지 이어지는 거군요?

인터뷰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죠. 2005년도에. 그래서 마을에 있는

예. 2009년부터 4년 동안은 맥이 좀 다르고.

노인들을 케어하는 방안을 제안을 하려고 했어요. 그거는 이제,

여기서의 맥은 주로 농촌의 프로그램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마을 노인들이 마을 구석에 있어요. 산 골짜기 빈 집 이런 데

실험적으로 제안하고 실제로 해보느냐 하는 문제였고. 2009, 10,

들어가 살고 하니까, 공공에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11, 12는 사실은 2005년도하고 연결이 돼요. 2005년도에 우리가

거죠. 효율이 떨어지고. 그래서 이 사람들을 마을회관 옆으로

했던 시도가 군청에서 보니까 ‘아, 그게 효과가 좀 있는 거 같더라.

끄집어내면, 서비스하기 좋고 자원봉사자들도 좋고. 근데 사실은

본격적으로 한 번 해봅시다’ 이래가지고 했던 게 9, 10, 11 세

용대 1리, 2리, 3리 중에 3리만 그게 성공했어요. 1리는 들어가지도

번이고, 그게 12년엔 영월 가서 했는데 다 같은 프로그램입니다.

못 했어요. 3리를 제가 주로 맡고 계속 왔다갔다 했는데, 2리

이 프로그램은 뭐냐면 농촌의 독거노인문제가 심각한데 그

같은 경우에는 집은 다 짓고 했는데 거기가 백담사 입구라서

주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그랬을 때 독거노인 문제를

장사하시는 분들이 마을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3리가 가장

기존의 방식으로는 최하위만 케어하는 방식이었는데 좀 다르게

관심이 있고. 1리 같은 경우에는 그 대상되는 주민들을, 할머니를

했죠. 그 지역에 오래 산 분들 중에… 이때는 소유가 마을 소유가

입주도 못 하게 하고 자기들이 뺐어버리는 일이 발생을 하죠.

아니라 군청 소유고, 그때는 마을회관이었는데 이제는 면사무소

그래서 이제 2005년도를 거치면서 ‘야, 마을공유라는 것도

옆에다가 짓는 그런 개념으로. 그리고 2005년에는 한 집이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사실 말도 안 되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게

2009–2012 이때는 여섯 집씩 들어가는 거고.

돼죠. 그래서 2006년도에 양구 팔랑리에 가서 리모델링을 다섯 채 하게 되는데, 이때는 보다 농촌 대안에 대해 고민을 해서

면사무소 옆이라는 건 어쨌든 군청에서 토지를

최초로 귀농인큐베이터하우스라던가 이런 개념을 제시했죠.

소유하는 건가요?

귀농인큐베이터하우스는 귀농하는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

그죠. 군청에서. 우리는 지어서 다시 주는 거죠.

랜딩landing(정착)하기

어려우니까 마을마다 그런 집을 하니씩

지으면 그런 사람들이 와서 살면서 농사일도 배우고 땅도 구하고

그래가지고, 이걸 하면서 농촌노인 실태조사를 굉장히 꼼꼼하게 했었고요.

농사도 짓고 하지 않겠냐, 물론 조금은 이상적인 생각이었고, 그거를 이제 기존의 빈 집을 리모델링해가지고 했고요. 그 다음에

아, 보고서 봤습니다.

2007년에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했는데, 그거는 철암에서의

이 보고서 거의 안 나갔는데? 프라이버시가 있어서.

경험을 연장해서 ‘교육만이 살 길이다’, 즉 귀농을 하더라도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또 다시 고민하는 걸 조금 완화시켜보려고

발표된 자료들만요.

하면서, 아티스트가 여기서 작업을 하되 한 달에 몇 시간을 지역에

아, 예. 그래서 어쨌든, 그런 걸 꼼꼼하게 조사하면서

봉사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해보자, 그런데 이것도 뭐…

농촌주거문제와 관련된 고민들을 했었고. 여기서 중요했던 건 뭐냐면, 이건 사실은 정책에 나중에 반영이 많이 됐어요.

쉽지 않죠.

이 프로그램이. 예를 들면 농촌 노인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고

쉽지 않죠. 아뇨. 운영은 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했을 때, 농촌특별법 같은 데서 뭐 독거노인주거라던가 관심을

지자체에서 별로 그런 인식이 없으니까 어려웠고. 양구

갖기 시작했죠. 이거 덕분에. 그랬을 때, 이때는 뭐냐면 면

정림리였고요. 돌아가신 이종호 선생이 지은 박수근 미술관

단위에서 혼자 구석에 사는 노인들을 마을 안에다가 공동으로,

앞에다가 초라하게 지었죠. (웃음)

단독주택이지만 집합주택 형식으로 같이 거주하는 방식으로 네 개를 제안했었구요.

아, 네. 그 다음에 2008년도에는 마을도서관이라는

‘인제 서화’하고 ‘인제 합강’은 {와이드AR}(22호,

프로젝트를 하는데, 여기까지(2005–2008)가 다 소프트웨어에

2011. 7–8)에 실렸던 게 있더라구요.

대한 고민이었고요. 프로그램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맥이

예. 구리 느낌이 나는. 이때도 굉장히 커다란 배움을

또 달라집니다. 2005년부터 달라진 부분은 뭐냐면 조금 집을

한 것 중 하나가, 요때는 또 커다란 특징 중 하나가 단열 관련된

제대로 짓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도네이션이 좀 되고, 군청에서

에너지 실험을 많이 했어요. 레귤러하게 제대로 자제를 쓰면서.

돈을 좀 지원금을 주고 보조금을 주고 그거 정산해서 우리가

이전에 한 것들이 공부도 됐고. 그래서 2009년(서화)에는 투

98


바이 텐(2×10)으로 단열을 한다던가,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시작이 된 일이 지금 공유지, 26번째 자치구 어쩌고 하는 ‘늘장’.

하게 돼죠. 영월은 못 했는데. 사실은 신재생에너지로써 지열과

3월달에, 2월달이었나? 열다섯 평짜리 무허가 건물을 지어요.

태양광을 2008년부터 사용했죠. 영월에 지열을 못 했던 건

텐트하우스를 지었어요. 일종의 공용공간처럼. 어차피 철거하니까.

토질이 나빠서, 구멍을 뚫었는데 무너져버려서 못 했고. 어쨌든

일종의 가설건물처럼. 그렇게 했던 이유가, 그렇게 하면서 경의선

그런 식으로 주택과 에너지 문제를… 근데 우리 성미가 하나만

폐선부지에 대한 주변지역조사를 해서 전시회를 그 안에서 열죠.

하면 재미가 없거든. 그래서 우리한테 적절한 단열 수준이

그랬는데 메르스(2015. 5. 20 – 7. 28)가 왔죠. 그래가지고 약간

무엇이고 공법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텐(2×10)으로 시작했는데

흐지부지 되기는 했으나, 중요한 것은 그거를 통해서 ‘늘장 공유지

나중에는 식스(2×6)로 하게 되죠. 왜냐하면 팔(2×8)을 했는데도

시민행동’이 출범을 했다는 거예요. 공유지시민행동이 문화연대,

노인들이 문화적으로 외풍이 센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문을

도시연대, 참여연대 등 많은 단체들이 들어가서, 커먼스(공유)에

열어요. 답답하다고. 왜냐하면 패시브라고 하는 건 기밀성이

관한 거를 실천한… 한 40여 개 시민단체들이 참여해서 돌아가면서

굉장히 중요한데 너무 타이트하면 답답하니까 문을 열어. 그래서

당번도 서고 그랬죠. 이게 왜냐면 철도국유지고 시설관리공단에서

‘아, 이거 소용 없는 거구나’, 근데 지금도 예를 들면 학계에서는

관리하는가 그런데, 그쪽에서 대기업하고 개발을 하려고,

계속 제로에너지를 우기죠. 나는 제로 에너지 필요 없다라고

그래서 개발을 못 하게 해서 공유지로 남겨야 된다, 해서 일종의

주장하거든. 근데 그거는 경험적인 사실이거든요.

점거행동을 상당히 지속적으로 하는 거죠.

그 다음에 집짓기는 크게 전환을 하게 되는데, 지금도 계속 하고 계신 건가요?

2013년도에 크게 사고가 나요.

예. 지금은 아까 얘기한 정기황 박사가 협동조합을 완주 삼례에서요?

만들었는데, 협동조합 이사장을 하고 있고요. 그거까지

예. 거기서 마지막 날 학생들이 찬 타가 뒤집어지면서

2015년도에 세 가지를 한 거예요. 미아리하고 세월호광장하고

한 학생이 죽고, 뇌출혈로. 이런 일이 있으면서 약간 좀, 어… 뭔가 제대로 된 강력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거나 이런 것보다는 약간 좀

늘장. 그 다음에 2016년도에는 두 가지를 했죠. 하나는

단발성이고 조금은 도시적이고 조금은 운동적인 걸로 전환이 돼요.

정기황 박사가 농촌에 일종의… 뭐라고 해야 되나요? 마을보다는

2014년도부터. 그래서 2014년도에 강정마을에…

더 작은 단위의 협동조합…

2014년부터요?

예. 공동작업장 같은 걸 짓는 걸 했고. 나는 그때

귀농베이스캠프 같은 걸 제안을 했고. 삼삼오오 게스트하우스예요.

다시 제주도 가서 2차 컨테이너 짓는 걸 하고 오고. 그 다음에

그게 2013년은 이쪽(2006)에 속한다고 봐야죠. 이거는 앞에

올해(2017)는 두 군데 했어요. 정기황 박사가… 음…

이어서 연달아 실험을 했던 거고. 2014년도는 달라지는 게, 강정마을에 가서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협동조합형 활동가숙소를

신길동 비정규직…

하고, 약간 좀 도시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으로 갑자기 많이

신길동 비정규직 쉼터. 나는 연변에 가서 연변

돌아서죠. 그리고 2014년도에 또 한 팀에서 한 게, 해방촌 네 평

지체장애인 주택 리모델링 하는 걸 하고 왔죠. 2013년 그 사건을

학교. 그 다음에 2015년도에도 두 가지를 했는데, 하나는 세월호

계기로 약간 단타식이고 사회참여형으로 집짓기가 많이 바꼈죠.

광장 리모델링을 했죠. 13년을 계기로요?

그게… 리모델링인가요? 일종의 리모델링이죠. 왜 그러냐면, 겉으로 보면

아까 얘기했던 사고. 그 정도 사고면 사실… 이거를 그만 둬야 되는 정도의 사고였는데, 어쨌든 OB 친구들이나

텐트인데, 속에는 투 바이 포에다가 양면 합판하고 그 속에 바람에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 그래가지고, 조금 방향을 바꾼 거고.

흔들리지 않도록 벽돌을 쌓아서 넣었어요. 투 바이 포(2×4in)가

사실 그러다보니까 축적이 좀 안 되는 성향은 있죠. 아이들도 약간

89mm잖아요? 합판을 먼저 조립해서 넣고, 90mm 벽돌 쫙 쌓고.

좀 재미 없어 하고. 애들은 찐득하게 막 하고 땀으로 뭉치고 이래야

겉으론 똑 같아요. 그 안에다가 합판을 딱 맞춰서 몽골텐트를

되는데, 여기서는 짧게 하니까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실측을 해서 그걸 따로따로 합판벽을 넣고 바깥에서 피스를 박아서 일체화시키고. 겉으로 보면 똑같지만 완전히 다른, 일종의

기간도 짧아졌나요?

리모델링이라고 봐야죠.

그렇죠. 보통 2주 정도.

그런데 왜 그런 식으로 계획을 한 건가요?

농촌으로 다시 갈 계획은 있으세요?

음… 왜 그런 식으로 한 거는 조금 이따 하고요.

물론 다시 갈 계획은 있지만은… 근데 나는

개별적인 프로젝트 이야기니까. 2015년도에 세월호 광장을 하고...

2009년에서 2012년까지 한 농촌형 임대주택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빼놓고는 반복적으로 잘 안 해요. 반복적으로 안 하는 것은 미아리고개 집짓기도 있고요.

뭐냐면, 내가 많이 했던 말로, ‘전문가는 대안을 만드는 사람이지

그거는 내가 안 하고 정기황 박사가 한 거고. 미아리는

자원봉사하는 사람은 아니다’, 반복적으로 똑 같은 걸 한다면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아서 했고. 또 하나는, 2015년도에

자원봉사를 하는 거죠. 그건 국가가 돈을 대서 하고, 우리는 그걸

99

INTERVIEW

예. 2013년도는 완주 삼례인데, 이게 일종의 청년들

정평진 : 공동작업장.


실험적으로 해보고 그걸 모니터링하고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알리는 거 그렇게 하는 게 이 광장의 역할이다, 그 전까지는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했으면 공공이, 국가가 그걸 취사선택해서

농성장이었는데 이제는 추모의 장으로 개념이 바뀌는 거죠.

하면 되는 일이지 우리가 그걸 다 할 수는 없죠. 그건 우리가 원하는 건 아니다… 이래서 반복적으로 잘 안 하죠. 그래서 이제

이건 소장님께는 좀 시시한 질문일 텐데요. 이런 일이

만약에 반복적으로 하면, 거기에 꼭 다른 실험들이 들어가요.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단열재 실험이 들어간다든가, 기술적으로 공법이 달라진다든가,

아뇨. 전혀 그런 생각 없는데요. 예를 들면 내가

예를 들면 홍천의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 들어보셨어요? 그때

촛불집회에 스물 세 번을 다 나갔다고 해서 내가 말 그대로

한참 유행했어요. 왠만한 건축가들은 한 번씩 다 갖다오고

민주당이라던가…

그랬어요. 근데 그런 경우에 거기에서 썼던 것들이 정말로 실제로 우리에게 맞는 건가 해서 ‘그 공법대로 지어볼게’ 했는데 결론은

다 나가셨어요?

‘말도 안 된다’ 이런 식의…

예. 그런 건 어떻게 보면 시민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 아닐까요? 그게 꼭 뭐 정치적인 성향이 있어야 하고, 정치적으로

직접 해보셨어요?

줄을 대야 그걸 하는 건 아니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죠.

그렇죠. 거기는 샌드위치공법이었는데, SIP(Structure 그렇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미흡해서 할 말이

Insulated Panel) 공법에다가 OSB 합판을 붙여서 구조재로 쓰는데

훨씬 복잡해요. 인건비나 여러 가지로 보면 그게 별로 도움이

없어서요. (웃음)

안 돼요. 그런 실험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단열재도 그라스울만

아니, 별 말씀을. (웃음) 얘기를 꺼내셔서.

그냥 쓰는 게 맞냐, 기밀성을 위해서 연질 우레탄을 한 번 쓰고 그라스울을 쓸 거냐 이런 실험도 하고, 두께에 관한 실험 등 여러

전체적으로 볼 때 ‘집짓기’ 부분이 다른 건축가들하고

가지 했죠. 그러니까 이게 매번 비슷하게 반복이 되지만 이 안에서

확연히 다른 지점이기도 하고…

다양한 실험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이게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전에도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린 적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총괄계획가로서의 자문 등과 합쳐지면서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이건 사회참여의 문제가 아니라 저로서는 제 건축의 실험 혹은

게, 서울시 도시재생의 에너지재생총괄건축가…

진원지의 성격이 강하죠. 그 자체가 제가 가지고 있던 건축관을

인터뷰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이 된 거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돈 많이 서울시에서요?

들어가는 건축이 제가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정말로 싸고 좋은

예. 도시재생사업에서의 주거에너지문제를 맡고 있죠.

집을 지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싸고 좋은 집. 싸고 좋은 집이라고 하는 생각이 왜 중요하냐면, 직접 지어보면, 도네이션이나 보조금

서대문구 총괄계획가 같은 건가요?

받아서 지어보면 정말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잖아요. 가장

그거하고는 좀 다른 거고. 이거는 뭐라 그럴까,

집을 건강하되 경제적으로 짓는 방법… (을 고민하게 돼요.) 실제로

어느 분야나 다 마찬가진데 우리나라는 사회가 워낙 빨리

자기가 직접 집을 지으면 의외로 돈이 많이 들어요. 디테일을

변하니까, 어떤 일을 제대로 해보려고 그러면 제일 먼저 없는

몰라서.

게 사람이에요. 사람. 예를 들면 주택에너지 문제를 다룬다고 그러면, 신재생에너지나 제로에너지 하는 학회에서 밥그릇 때문에 바글바글 있지만, 이걸 사회적인 방식으로 가려고 하면, 관련된 걸

직영 같은 걸 하면요? 예. 오히려 더 많이 들어요. 가장 잘 하는 전문가한테

아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시켜야 되는 거고, 그것을 가장 설계 잘 하는 사람이 도면이나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어떡하면 교육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디테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돼요. 그러면 그

주택에너지 문제에 관한, 이걸 지금 프로그램을 짜놨어요.

사람들이 딱 준비를 해요. 우리는 (집짓기 프로그램 할 때) 80평 정도의 주택을 짓는데 딱 35일 걸리거든요? 정말로 모든 것에 대한

문화도시연구소에서 기존에 특강 프로그램 중에도

준비가, 자재수급 일정까지 다 체크해서 가도 현장에서는 빵꾸가

에너지 관련 내용이 있었던 것 같던데요.

나요. 근데 그거를 해비타트는 6개월 걸리는 작업인데 우리는

예. 그래서 아까… 세월호 광장 프로젝트

35일 만에 하는 거죠. 그건 결국 준비예요.

물어봤었잖아요? 그 일은 우연히 내가 그런 일을 하는 걸 알고 부탁을 해와서 갔었고요.

그렇군요. 아까 오는 길에 정평진 기자하고 그런 얘기를 했는데, ‘루럴 스튜디오Lural Studio’ 있잖아요? 사무엘

누가 부탁을 한 건가요?

막비Samuel Mockbee(1944–2001). 거기서는 학생들이

그냥 거기에 관여한 사람이 부탁을 했죠. 그래서 제가

계획도 하는 것 같던데요. 여기 집짓기 프로그램은

조건 아닌 조건으로 얘기했던 게, 그때는 세월호 유족 천막이

기존에 알려진 자료들을 체크해 보면 사전에 계획을

분향소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이거 (천막을) 돌립시다’, 이게

다 정해두는 거 같더라구요? 집짓기 활동 하러 가기

내 조건이었어요. 돌려야 이순신 장군상이나 분수광장도 있고

전에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해야 사람이 온다고 했죠. 이거를

예. 근데 그게 일장일단이 있는데요. 거기 같은

유족들이 격론 끝에 합의를 해주셔서 이렇게 했고. 그때 내 생각이

경우는… 그 양반이 학교 교수의 신분이잖아요. 자기 밑에 학생들이

뭐냐면 결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이곳의 진실을

있고 하니까 가능한 측면들이 있고요. 그리고 한 마을을 대상으로

100


하고.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격이 좀 다른 거죠. 우리도 예를 들면

대해서는 지역차별한다고 하고 자기네들은 하위지역을 차별하는

학생들한테 꼼빼를 하게 하거나 하면, 그렇게 하면 두 달 걸려야

이중성들, 그리고 예를 들면 유학파들 이런 사람들이 동아시아를

되거나 돈이 두 배로 들어가거나 이런 문제가 있죠. 어떻게 가장

얘기할 때하고 서구에 가서 얘기할 때하고 다른 이중성들에 관한…

경제적으로 하면서 제대로 짓는, 어떻게 하면 물이 안 들어가고

그러니까 ‘지역’이라는 말들이 끊임 없이 소비되면서 기득권을

이런 걸 다 성취하려고 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죠.) 또

유지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그런 얘기 위주로 썼던 것 같아요.

하나는 학생들이 아이디어로 내는 집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짓는

근데 거기서 뭐가 궁금했어요?

것이… 적절한지? 그건 예를 들면 내가 대학원의 교수고 학생들을 데리고 평소에 같이 디자인을 하는데 소장이 직원한테 시키듯이

오늘 아침에 제가 오기 전에 책을 다시 펼쳐 봤거든요.

한 번 해보라고 하는 건 가능하지만, 말 그대로 다 학생들인데

마지막 페이지에 못 본 구절이 있더라구요. 각주

그걸 시킨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목표가 다른 거죠. 사무엘

부분인데, 거기에 소장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막비하고.

적어놓으셨더라구요. “나는 시간/공간/사람에 열려 있는 건축/도시/사회를 꿈꾼다.” 현장 사진들 중에 소장님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렇고

그건 맞아요.

컴퓨터 놓고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들이 있더라고요? (사전에 설계가 다 준비되어 간다면) 그런 장면들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공간/사람에 열려 있는

뭐예요? 도면 수정 같은 걸 하세요?

건축/도시/사회를 꿈꾼다’는 게…

아, 그거는 이제 현장도 군부대 작전 같은 거랑

그때 그걸 왜 썼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구요.

비슷해요. 거기에도 많은 직책들이 있어요. 직책이라기보다는

아마 따옴표를 했다는 건 내가 쓴 말이 아닐 확률이 높고요.

책임이죠. 그 안에서 설계팀장이 있어요. (웃음) 작업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 했던 문제들이나 학생들이 잘못 제작해서 치수가

아, 정말요? (웃음)

늘어나거나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트러스 가공도면까지

예. 그러기 때문에 따옴표를 쓰지 않았을까요?

다 그려서 가지만 이걸 또 변경해야 되잖아요. 그런 작업들을 현장에서 다 하죠. 그리고 자재 수급 상황이 달라지면 디테일이 또

하고 싶은 말이라서 강조한 느낌이었는데요.

달라지고. 그런 걸 거기서 다 하죠.

나도 다시 찾아봐야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시간/ 공간/사람에 열려 있다는 건 대부분이 우리가 건축을 할 때 자기 디자인을 건축가들이 길이길이 남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일단은 학생총팀장이 있고, 그 다음에 동 별로

사유(재산) 건물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어지고나서는 자기도

학생팀장이 있고, 그 다음에 설계팀 있고, 그 다음에 자재… 보급팀

잘 못 들어가는 집을 계획하는 그런 상황에 대한 반대편이죠.

같은 게 있고, 대충 그런 정도죠. 체계적이진 않지만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영수증이 어디로 사라지면 다 정산해야 하니까. 정산

정평진 : 그러면 그게 소유에 대한, 권리에 대한

서류가 이만큼 돼요. (바닥에서 30cm 높이 가량 손을 들어 올려

문제일까요? 그 공간이나 건축이나 도시에 대한 권리를

표현한다.) 항상. (웃음) 이게 되게 많아. 이게 귀찮아. 카드로 다

누가…

써도, 이게 정부 보조금을 받아서 쓴 거잖아요. 그러면 세세하게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전에도 어디

다 정리해줘야 되고. 그리고 외부에서 자재 후원을 받으면 이걸

쓴 적이 있는데, 건축을 고정된 용도로 보지 않는 측면이 저는

또 어디에 어떻게 썼다는 걸 보내줘야 되고. 투명하게 처리해야

굉장히 강하죠. 굉장히 커요. 고정된 용도가 아닌 것 중에 대표적인

하니까.

예로 제가 잘 써먹는 게 길상사거든요. 길상사는 옛날에는 요정집(대원각)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엄숙한 절로 쓰는데 아무 2015년에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지장이 없어요. 근데 우리는 그걸 아주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책에 글을 하나 쓰셨더라구요. ‹건축의 생산›이라는

거죠. 이게 무슨 ‘다목적이다' 이런 것과도 다르고요. 뭐랄까,

제목으로요. 소장님이 쓰신 게…

건축은 껍데기라는 거예요. 껍데기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가장 인상적이었죠? (웃음)

쓰느냐에 따라… 그거에 열려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있는 거죠. 그래서 주변에 동료 건축가들 중에도 그

소장님 거 밖에 못 봤어요. (웃음) 소장님이 쓰실 만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 내가 입을 닫죠. 싸워야 되니까. (웃음)

결론인 것 같더라구요. ‘주민들과의 합의, 토론 과정을

그래서 건축의 기능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되죠.

통해 정리되고 구축되는 것이 지역건축일 것이다'라고.

창작작업에서. 구조도 그렇고. 근데 그것이 거꾸로 굉장히 중요한

그때 썼던 것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지역'이라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시간이라던가 사용, 사람이나 이런 것에

말을 쓸 때의 이중성, 이거에 대해서 내가 집중적으로 썼던 것

대해서 제약으로 작용하면 안 된다는 거죠.

같고... 가령 여기(2005–2008 집짓기)서 프로그램에 네. 글의 앞 부분에 있었어요.

신경을 쓰셨다는 건요. 그때의 공간들은 어떠셨나요?

예. 특히 그거는 나 같이 지역에 많이 다녀본

고정적이진 않았나요?

사람으로서 보면, 그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으로 상위지역에

어… 그건 특수한 문제니까 조금 다른 부분이 있죠.

101

INTERVIEW

그렇군요. 그러면 조직이 틀은 있는 건가요?


우리가 이만큼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고 해도 어떨 때는 훨씬

하면 이들을 믿어도 된다는 거죠. 각각의 가능성을 믿어도 되는데

작게 실천할 여지 밖에 없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다른 방향에서

정치나 이런 건 자꾸 묶어 가지고 자기 편을 만들려고 하잖아요.

일부분만 실천할 여지 밖에 없고 그럴 때가 있기 때문에, 다

근데 개별적으로 있는 사람들의 집합, 컬렉티브한 그런 것들처럼

어떻다하고 얘기할 순 없는데, 그냥 저의 기본적인 거는 고정되지

씬scene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않았다라고 하는 자체가 갖는 것은 ‘건축은 껍데기다’라는 의미,

거죠.

껍데기이기 때문에 너무 사진빨 나게 돈 들여서 만들었다고 해서 대단한 척하지 마라는 것도 있죠. 특히 현대건축이 좀…

그렇군요. 다양한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풍경 같은 거네요.

그러면 건축이 그냥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아뇨. 그건 좀 달라요. 건축이 분명히 하드웨어로 거기

예. 그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거하고, 이게 뭐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조직된 것은 아닌 거죠. 어바니즘이라고 할

서 있으면, 서 있음 그 자체로 제한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걸

때에는 계획가의 의도라던가 여러 가지가 복합된 느낌이 강하죠.

되도록이면 늘려주려고 하는 태도에 대한 문제랄까… 인프라라는

근데 별 거에 다 주목을 하시네. (웃음)

건 좀 다르죠. 예를 들면 그 자리에 요정집을 지어서 술 먹고 별 짓 다 했을 텐데 지금 거기서 ‘스님의 처소이니 정숙하기 바랍니다’

그냥 이것저것 짚어보는 거죠. (웃음) 자유주의자라면

이렇게 써붙여 있어요. 그러면 건축은 뭐냐는 거예요. 거기서. 제가

리버럴인가… 그건 또 이즘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아까 처음에 철암에 갔을 때와 동일한 문제죠. 건축이 거기서 뭐고

어… 제가 좋아하는 저자 중에 샹탈 무페Chantal

여기서 뭐고… 동일한 문제에요. 건축이 우리에게 분명히 중요해요.

Mouffe(1943–),

그렇지만 건축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특히 형태에 대해

사람이죠. 그냥 자유주의라기보다는 다양성을. 포스트모더니즘

과도하게 이런 건 난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그런 정도의 의미… 가

같은 경우는 그냥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제를 이야기하잖아요?

있죠.

또는 소쉬르 언어학 같은 경우는 차이를 구별하는 이야기만 하고.

인터뷰

여담인데, 처마라는 것은 외부와 내부를 중재하는

그 분이 정치철학자인데 다원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무페의 책 이름이 뭐더라… (이전의 취재에서 건축가 주대관이

것이기 때문에, 처마가 ‘있다’ ‘없다’는 결국 비 올 때 창문을 열 수

소지하고 있던 책은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었다.) 그 사람 같은

있다와 열 수 없다의 차이가 있는 거죠. 그러면 빗소리를 듣거나

경우는... 우리가 통합에 대한 기대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비 냄새를 못 맡거나 이런 문제까지 다 걸려 있는 문제인 거죠.

그거는 말도 안 되는 거다, 인간은 이기주의라서 안 된다, 그래서

그러니까 기능적으로, 비를 피하거나 건물의 건강에 좋다면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얘기하는 게 공산권의 붕괴 이후 좌파의

미학적인 걸 포기해서라도 처마를 뽑는 게 낫다, 저는 그렇게

길을 이야기하면서 나오는데, 어느 사회나 어느 한 쪽이 붕괴하면

생각해요.

또 다른 적대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의 굉장히 중요한 컨셉 중에 하나가 호스탈러티hostility, 적대예요. 결국 적대라는 건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에 보면 마지막

갈등이잖아요. 갈등과 입장이 다른 것, 이것을 어떻게 그 자체로

부분에 ‘랜드 씬land scene’이라는 단어가 있더라구요.

인정하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문제인데…

그게 ‘물리적 특성까지 포괄하는 지역의 총체적 풍경'이라는 표현을 쓰셨던데, 그 표현을 생각해보니까

주대관 소장님께 적대적인 상황들이나 존재들은

그냥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이라는

뭔가요?

기존의 용어가 있는데 굳이 그런 표현을 썼을까 하는

나는 개인에게 적대라는 얘기는 아니구요. 사회 자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럴 수는 있겠는데요. 어반 씬urban scene라고 얘기하는 것과 urbanism은 분명 다르죠. 그 ‘씬scene’이라는

사회 자체가요? 예. 왜 그러냐면 민주주의의 문제니까. 특히 미국식

말이 가지고 있는 형용사에 ‘the’를 붙인 느낌, 예를 들면

민주주의는 항상 위대한 가치 아래 통합하는 이야기잖아요.

‘사회성’이라고 얘기할 때는 소셜리티sociality 이런 말을 쓸 수

그러니까 통합이란 불가능하다는 거죠. 통합이란 불가능하다는

있죠. 근데 ‘사회적인 것들’이라고 할 때는 ‘The social’이라고

것은 정치적으로 보면 자유주의의 의견이고요. 통합에 희망을 거는

쓰거든요. 그러니까 집합으로서의 느낌이고, 명사적인 느낌과

것은 주로 공동체주의의 바람이에요. 미국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형용사적인 느낌이 많이 다르다면, scene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를

공동체주의이고, 그게 우리나라로 보면 박원순(서울시장) 류의

구성하고 있는 사물들이 특별한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건 아니죠.

마을만들기가 마을을 하나로, 하나로 통합된 행복의 마을을 만들고

그냥 집합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을

싶어하는 그런 거죠. 아니, 거기에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scene이라고 한다고 하면,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 다시 쓰라고

많은데… 가난한 청년들도 세 들어 살고 있고 이런 부분들. 제가

해도 ‘랜드 씬'을 쓰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집단적이다'라는

무페 얘기를 하는 거는, 우리가 사회에서 갈등의 상황을 드러내고

말을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거보다는 컬렉티브collective하거나

중재하고 논의를 하는 구조를 통합우선주의자들은 늘 뭉개버려요.

멀티튜드multitude하다든가….

(갈등이) 없는 것처럼. 근데 그거를 드러내고, 그 적대라고 하는

예를 들면 군중이라고 할 때하고

다중이라고 할 때가 다르잖아요. 인민이라고 얘기할 때 또 다르고.

것이 새롭게 발생한다는 건 이해관계가 달라진다는 거죠. 더 큰

제가 그런 면에서 약간 공동체주의자라기보다는 자유주의자에

적이 있어서 그 안에서 미봉되어 있던 것들이 큰 것들이 죽으면서

가까운데, 그건 뭐냐면, 나는 청년들에 대해 기대를 하는 것 중

또 갈라지는 거, 동인 서인 하다가 노론 소론 하는 것처럼, 그거

하나가 기성세대에 비해서 굉장히 시민의식이 높아요. 그렇다고

자체를 인정해야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마을로 오면, 세입자

102


문제를 포함해 많은 문제가 걸려 있는 거죠. 근데 공동체주의가

도덕주의는 진짜 나쁜 거예요. 자기들은 다 가지고 있어요.

갖고 있는 한계가 그런 것들을 뭉개고 ‘우리는 행복하게 마을에서

중산층에다가 월급 꼬박꼬박. 사람들은 헉헉거리고 청년들은

친구도 만나고 아이를 맡기고 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일자리가 없고 취직하느라 바쁜데 (공동체 관련된 일에)

좋은 동네로 소문 나니까 집세 올라가고 다 쫓겨나고 하는 이런

안나온다고 비난한다고 그게 나와지냐고요. 중요한 거는 그들의

일들이 일어나는… 안 되는 거죠. 근데 그 가능성을 우리가 인정을

그런 상태를 인정하고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같이

한다면, 우리가 미리 논의를 할 수가 있는 거죠. 우리는 다르고,

논의해야 하는데,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이해가 상충한다는 걸 인정하면 그러면 ‘나는 이만큼

‘너네는 왜 안 나오냐’고 하는 건 안 된다는 거죠. 비법이 있다면

양보할 수 있는데 넌 뭘 할 수 있니?’ 이걸 하는 거죠.

나는 그거예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참여하지 못 해요.

소장님은 어쨌든 현장에서 주민들을 중재해 본 경험들이 많죠?

그러면 소장님이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든 건축이든,

조금 그런 편이죠.

그런 부분이 제일 중요한 건가요? 굉장히 중요하게 보죠. 저는. 왜냐하면 청량리 620

그런 면에서는 많이 준비가 된 거네요. 사실 저만해도

프로젝트 경우를 보면, 거기서도 갔더니… 뭐라더라? ‘청량리 588

사람이 많으면 좀 불편하거든요. 정리를 하기가. (웃음)

흔적 남기기’ 뭐 제목이 이래가지고 용역이 됐어요.

(웃음) 저도 불편해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라고 얘기를 하는 건 뭐냐면, 인간은 자유주의 또는

네... (웃음) 뻘건 색 쇼윈도 남기고 그런 건가요?

그것의 경제적 형태인 신고전주의 경제학 또는 신자유주의,

(웃음) 아니 그래서 ‘그게 말이 되냐?!’ 옆에서 고층

자본주의의 문제는 모든 인간의 행위 동기를 자기 이해利害에

아파트 분양 받아서 오는 사람들이 이걸 용인할 거 같냐. 이 사업

기반한다고 보는 거거든요. 그래서 인간은 욕망적인 존재라는

하고 싶냐 안 하고 싶냐 그랬죠. 그건 입장만 바꿔보면 금방 나오는

거죠. 공동체는 그 다음에 생각하는 거고. 나한테 이익이 될 걸

걸, 왜냐하면 유곽 흔적 남아 있고 그러면 애들 교육 상 안 좋고

먼저 생각한다 뭐 이런 거하고 관련해서 본다면, 예를 들면 최근에

맨날 그럴 거 아녜요?

한 노동운동하는 분이 그랬어요. 페북에 ‘정규직들이 양보를 안 해가지고…’ 하는 속 터지는 얘기를 올렸어요. 나는 기본적으로

그쵸.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자나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기본적인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상대방이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악하다거나 이렇게 단정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 욕망을

전제하는 경향이 있죠.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보면. 근데 그들도 다

보려고 노력하는 것? 욕망이 때로는 과도하게 자기의 이利를

같이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들도 언제든지 자기들에게 뭔가를

취하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의 옥죄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잡을 기회가 있으면 잡고 돌아설 수가 있는,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 부분을 잘 읽으면 대개 타협의 여지가 보이죠.

일반적인 경제학적 인간관을 설정하시는 거네요.

그렇군요. 저는 «자본론» 같은 책을 안 읽어서 잘

오히려… 어떻게 보면 성악설을 믿는 거죠.

모르는데,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1883) 같은 사람들이 현실을 세밀하게 보라고 하나봐요?

성악설이요. 예. 그렇다고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란 뜻은 아니고, 그런 전제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대개 문제의 실마리가

아뇨. 마르크스한테 배운 건… 마르크스한테서 나도 높이 생각하는 거는, «자본론»은 나도 몇 번 보긴 했는데 해설판도 잘 나와 있어서… (웃음)

보여요. 갈등 구조에서는.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욕심을 갖고 있구나…

정평진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같은 거요. (웃음) (웃음) «자본론»에서 보는 건 결국 ‘노동가치’죠.

빚이 있구나… (웃음) (이전 취재 과정에서 그는 한

다른 건 나는 별로… . 노동가치라는 건 결국 가치, 밸류라는 것의

공공 프로젝트에서 이해 주민에게 공공성보다 그의

출처가 어디냐는 건데 가치의 출처는 결국은 ‘노동’인 거죠. 조금

문제(빚)를 해결할 방안을 제안함으로써 프로젝트를

더 사회학적으로 바꾸면 ‘행위’가 되는 거죠. 그것을 인정하고

진행시킬 수 있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안 하고의 차이가 정말 세상의 앞 면과 뒷 면처럼 다르죠. 예를

예. 그런 거라든가. 근데 그 대표적인 반대가 뭐냐면,

들면 우리가 도시재생을 해가지고 청년들이 뭘 하고 예술가들도

그 왜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로랑 베그)라는

뭘 했는데,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아니한, 부재 지주가 임대료를 쏙

책이 있었잖아요? 지금도 책방에 깔려 있어요. 그래서 저는

빼간다,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도덕적 인간을 안 좋아해요. 도덕적 인간들은 상대방에게 도덕을 강요하는데, 대표적인 게 공동체죠. ‘아니, 너네 마을을 위해서

정평진 : 불로소득.

정부에서 돈을 내주는데 너네들은 왜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불로소득이죠. 나는 심지어 개념미술도 부정을 해요.

않니’라고 말하는 건… 제삼자로서 보면 ‘세입자들 주민들한테

쳐주지를 않아요. 그 얘기를 하면 큐레이터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하나도 이득될 게 없는데?’ 이런 거죠. 근데 그걸 갖다가 학자들

고루하다는 듯이 보는데, 왜냐하면 개념미술은요. 예술노동이

이런 사람들은 주민의식이 그렇다… 이거 도덕주의거든요.

안 들어가 있어요. 머리 속으로 아이디어 하나 내면 도네이션

103

INTERVIEW

전제로 깔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는 당연히 그들을 착한 것으로


해주는 데서 돈을 줘요. 그걸 가지고 사진작가를 사. 이렇게 이렇게 찍어주세요, 아니면 공장에 가서 이렇게 이렇게 스케치하면서

아, 어쨌든 건축가니까? 그렇죠.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게 그거예요. 그

맡겨, 그게 무슨 예술이야 예술은. 예술은 손 끝에서 이걸 막 해서,

다음에 그 ‘사회적이다’라는 말 조차도 그가 건축을 배워가고

노동을 하면서 만들어야 예술 아녜요?

트레이닝해나가는 과정에서 자기가 정리해나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이건 어차피 형용사에 더The 정관사를 붙인 거니까

아… (웃음)

집합적인 개념이잖아요. 딱 정의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웃음)

집합으로서의 사회와 관련된 건축인 거죠.

저는 요즘 예술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가 좀 생긴

한 시점에서 다양한 풍경이 보이는 걸로 생각하면

상황이라서요. 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이해가 될 것 같은데, 가령 역사적인 관점도 있잖아요?

그건 또 따로 토론하기로 하고.

묶어서 보면 조금 더 공통지점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너무 꿰맞추시려고 하는 불길한 예감이

소장님께서 다른 곳에 설명하실 때 사회학 하는

드는데, (웃음)

건축가…? 아뇨. ‘사회적 건축가’.

아니면 역사 자체는 안 중요한 건가요? (웃음) 아뇨. 왜 안 중요하겠어요. 아니 그러니까 이게

근데 사회적 건축가도 건축을 이야기하는 거죠?

무슨 고무줄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 사회적인 거라는 말을 내가

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지금 이것(취재 상황)도 사회적인 것이고, 사회적이다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보통 보면은 형태, 공간, 디자인, 개념, 역사, 재료,

관련된 모든 것들은 대부분 다 사회적이죠. 그랬을 때 조금 더

공법… 이런 것들이 건축 안에서 주류 비주류로 나누든

우리가 온정주의적인 부분은 있겠죠. 아무래도. 근데 그런 부분이

간에 이야기가 되게 마련인데, 사회적 건축가에

사회적이다라는 건 아니고, 그 반대편이 무엇인가를 보면…

대해서는 어떤 게 가장…

언어학에서 그런 얘기를 해요. 우리가 이 안경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죠. 더

소셜The social.

이 물건과 같지 않은 모든 물건을 부정하는 행위예요. 소쉬르

인터뷰

언어학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그거예요. 그것처럼 우리가 건축에서요? 디자인할 때도 그렇고, 지을 때도 그렇고,

사회적이다라는 걸 이해하려면 사회적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재료에 대해서도 그렇고…

다 제외하면 사회적인 게 이해가 돼요.

아니, 거기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게 뭐냐면, 구조라던가 기능의 문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건축, 사회적 건축가라는 건) 각자의 숙제로

어떤 경향을 보이는 사람은 나머지는 다 무시한다고 생각해요.

남겨지는 거군요? 그렇죠. 그것은 워낙 폭이 넓은 이야기기 때문에

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거를 탁 정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복잡한 얘기가 많으니까,

그런데, 저는 제 경력이면 물론 특수한 분야에 대해

뭐냐면 그건 강물하고 똑 같아요.

디테일한 지식이 부족할 수 있지만 건축에서 기본적으로 얘기하는 건 마스터했다고 봐요. 그렇게 마스터한 상태에서 어떤 걸 더 많이 볼 거냐라고 할 때 나는 ‘사회적인 거’라는 거죠. 그 사회적인 것이

강물이요? 예. 강물에 대해 두 가지 철학적 논제가 있는 걸로

어떤 때는 비용의 문제로 나타날 때도 있고요. 어떨 때는 쓰는

알고 있는데, 하나는 뭐냐면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볼 거냐

사람의 액티비티나 기능으로 나타날 수 있죠. 근데 분명한 건

고정된 사물로 볼 거냐의 문젠데 자꾸 사물의 틀로써 사회적인

형태는 아니죠.

걸 설명해달라는 건데 나는 지금 현상의 문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거든요. 강물은 흘러가는 현상이 있을 뿐이지, 그 물에 내가 발을

주대관 소장님을 롤모델로 생각하거나, 혹은 (건축가가

담궈도 그 물은 이미 다 흘러간지 오래된 거잖아요? 거기에는 ‘물이

돼서) 사회적인 역할을 고민하는 젊은 건축하는

흘러간다'라는 현상만 있는 거죠. 그거랑 비슷한 거죠.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 그 ‘사회적 건축’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을 해주시고 싶으세요? 그냥 비용에 대해서

네… 그렇게 이해를 해 볼 게요. (웃음)

고민하라거나… 아니, 아니죠. 그렇게 얘기할 건 아니고. 만약에 그런 생각을 하는 청년이 있다면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건축을

2017. 10. 14

좋아하는 일이죠. (그는 요즘 토요일마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 건축을 좋아하는 일이요? 어째서요?

뵙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그는

건축을 좋아해야 돼요.

단지 후회를 덜 하려고 그러는 것일 뿐 가족들, 혈육에 대한 애틋함은 없다는 식으로 덤덤하게 이야기를 했다.)

104


이중용 :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강해 보이는 컨셉을

(당시 낮 최고온도는 21도, 조금 쌀쌀하긴 했다. 취재를

만드는 거예요?

진행했던 장소가 외부인데다 바람이 불어서 더 그랬다.

주대관 : 아뇨. 원래 그래요. 어머니한테 하는 것도

몸이 조금 경직되긴 했지만 취재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애틋함보다… 그냥 도리잖아요. 도리. 자식으로서 해야 되는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도리지, 그 이상의 ‘효도다, 아니다, 애틋하다’ 이런 건 아니에요.

커피를 마시다가, 콧물이 흘렀다. 그는 사적인 이야기는 공개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건축가들을

그러면 사회에 대한 감정은 어떤 거예요?

만나온 경험으로 볼 때 건축가들마다의 다른 방향과

사회요? 비슷해요.

결과에 인생 경로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인 것 같고, 건축가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일부에

아, 비슷한가요? 도리?

대해 기록으로 남겨둔다. 물론 사전에 원고 협의는

그렇죠.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자가

했다. 그는 도리를 우선한다고 말하기 위해 애정에 선을

안스럽다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인 거죠. 그냥. 그런 쪽이에요.

긋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행위 없는 애정을 말하지

저는 원래. 유도심문이었군요?

않으려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뇨아뇨. 전혀 그런 게 아닌데…

‘사랑’에 대해서라면 내가 말할 용의가 있어요.

아까 궁금하다는 게 뭐였죠? 사랑에 대해서요… 독자들 입장에선 호기심 가는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감에 따라 어떤 경우들과

주제일 것 같긴 한데, 제가 어디서 질문을 던져야 할

선택들이 있는지 궁금했다고 물었다. 그는 입바른 말만

지 잘… 그렇다고 제 개인 컨설팅을 해달라고 할 수도

하면서 모시지는 않는 사람들이 싫다고 했다. 하지만

없고… (웃음)

자식들이 너무 괴로워하며 버티는 것보다는 합리적으로

내가 이건 책도 한 권 쓰고 싶어요. 사랑에 대해서. 그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게 좋다고도 했다.)

누굽니까? «열정으로서의 사랑» 보셨어요?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1927–1998).

요양원은 경제로 보면 선물경제예요. 선물. 거기 어떤 이야기인데요?

할머니들이 많잖아요? 누군가 뭘 갖고 와요. 그러면 다른 집에서

옛날에, «폭풍의 언덕» 시절에 사랑은 결투하고 끝나는

땐 오징어를 주실 때가 있어요. 근데 상상을 해보세요. 요양원에

거였대요. 열정으로서의 사랑이죠. 그 이후에 결혼으로 가는 것을

계신 노인네한테 오징어를 사다주는 가족이 있다는 거 아녜요.

사회적으로 더 높게 친 거고. 그 전까지 결혼이라는 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집에 묶어두기 위한 장치였던 거죠. 그러니까

(웃음) 씹기도 힘드실 것 같은데…

결투까지 할 정도가 지고한 사랑이고 그걸 넘으면 이미 끝난

그거를 내가 집에 가져와서 물에 삶아 봤는데도 이거는

거예요.

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예를 들면 카스테라 같은 거 노인들이

저는 아직 그런 여자를 못 만난 것 같아요.

잘 먹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나이 들면 밀가루 소화능력이

그런 얘기 있잖아요. 남자는 ‘여자 만나봐야 다 똑

떨어져서 못 먹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에요.

같아’라고 얘기하는 순간 결혼한다고 그러죠.

그렇군요. 쌀로 만들어야겠네요.

다 비슷한 것 같기는 한대요.

그런 거 하나하나가 굉장히 별거 아닌데, 그냥 설탕

그러니까 어떤 기대를 접고 ‘에이, 다 똑 같지’ 하고

잔뜩 들어간 거 있잖아요. 자기는 그냥 마트에 가서 사기 쉬운

생각하는 순간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아직 (이 편집장은) 기대가

거 사서 안기는 거예요. 그럼 그게 나한테 와요. 돌아서. (웃음)

남아있다는 이야기죠.

받아놓기는 했는데 어머니도 안 드시고 그 할머니도 안 드시는 거야. (웃음) 참 그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만남이에요.

아… 기대가 좀 있긴 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거꾸로 인터뷰를 한 번

굉장히 섬세해지시겠는데요?

해봅시다. (웃음)

아, 정말로 그래요. 그 부분에서, 누군가를 배려하는 부분에서 상당히 섬세하고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어… 저는 이런 것도 인터뷰에 싣는 경향이 있는 사람인데요. (웃음) 제가 좀 실수한 것도…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시겠어요. 예. 춥지 않아요?

그러면 안 되지. 그런 건 오프 더 레코드지. 사적인 건 나는 하지 마요.

좀 쌀쌀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래도 소장님의 지나온 과정, 프로필은 좀 알긴 알아야

나는 괜찮아요.

할 것 같아요.

105

INTERVIEW

받은 게 있으면 줘요. 그러면 그게 돌아서 나한테까지 와요. 어떨


다른 건축가들에게도 다 물어본 정도의 내용인데요?

응. 뭐 프로필이랄 게 없어요.

물어보지 마요. 아픈 과거를. 일반적인 게 있을 거잖아요? 출생은 서울인가요? 아픈… 건가요? 지금 멋있으면 과거도 다 좋은 일

그게 나도 잘 몰라요. 서울인지, 분명 월계동에 살았는데, 아니면 부모님 고향이 전북 완주거든요. 거기서 출생을

아닌가요?

했는지 그건 불확실해요. 확실한 거는… 이건 역사와 관계된 건데

아니 뭐 그렇게 별로 재밌는 얘기도 아닌데.

박정희가 쿠데타하면서 뭘 했냐면요. 귀농정책을 쓰면서 땅을 79년에 서울시립대를 가신 거죠.

나눠줬어요. 그때 아버지가 충남 서산으로, 태안으로 가셨어요.

79년도에 시립대를 입학만 해놓고 군대를 갔죠.

그때가 몇 년인가요?

그리고 그 해에 십이륙(10.26 사태)을 맞았죠. 첫 휴가를 나오려고

61년… 쯤 되겠죠? 그러고서 고등학교 갈 때가...

하는데 십이륙이 터져서 못 나오고 조금 진정된 다음에 나왔다가

73년도죠. 76년에 졸업했고. 우리까지 시험 보는 해였으니까.

십이십이(12.12) 사태 일어난 날 들어갔어요. (웃음)

73년도에 서울로 왔는데 사실은 72년도에 아버지가 빚잔치를

정평진 : 일부러 날을 맞춰서… (웃음)

하셨죠.

역사에서… (웃음) 73년에 서울로 오셨고요. 빚잔치를 하셨다는 건…

그러면 그 전부터 대학을 가고 싶으셨던 거였나요?

농사를 지었는데, 계속 한해와 수해가 반복돼서 농사를 정리를 하셨죠. 10년만에 다 망하신 거죠.

그랬죠. 계속 떨어졌죠. 저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렇군요. 61년도에 땅을 무상으로 나눠줬다고요? 그랬을 거예요. 지방에 개간이 안 된 땅을 국가가 수용하면서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거기로 보냈어요. 거꾸로.

건축과를 지원한 계기는 뭐예요? 그냥 뭐 갈 만한 데가 거기 밖에 없었어요.

인터뷰

그때도 예를 들면 해방촌 같은 데를 보면 이농하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하셨던 일이랑 제일 가까웠나요?

하니까, 베이비부머들이 많이 태어난 그 전 단계에서도 보면,

그렇죠. 아무래도. 그리고 제가 어릴 때부터 미술대회

소유하고 있는 땅이

장자長子

혼자 먹고 살 정도의 땅 밖에

이런 상은 좀 탔어요.

없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둘째 이하는 다 서울로 갔단 말이지. 그런 상황이었는데 거꾸로, 지방으로 보내는 정책을 했었던 거죠.

소장님 또래는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 건축과로 간

그랬던 것 같아요.

케이스가 많은 것 같아요. 아뇨. 꼭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소질은 좀 있었죠.

그러면 76년도 졸업을 하신 고등학교는 어디인가요?

그쪽으로. 그게 영향을 미쳤는지 어쩐지는 모르겠고.

철도고등학교. 그때 건축에 대한 인식은 어떠셨어요? 그건 어디에 있는… 어… 지금은 없어졌죠. 철도고등학교가 가난한

뭐 전혀 없었죠. 저같은 경우에는 어쩌다 (건축과) 와봤더니 적성에 맞더라 이런 쪽이지, 무슨 뭐 누구에 감명을

수재들이 가는 학교였죠. 우리까지는 시험을 봤는데, 내가 들어갈

받아서 이런 거 없어요. 원래 감동을 잘 못 느껴요. 소시오패스적인

때쯤이면 용산고등학교 수준은 됐을 걸요. 지금은 교통대학이

데가 있어서.

됐죠. 정평진 : 사회적인 공감을 잘 못 하고… 그러면 76년도 고등학교 졸업한 시점에 대학교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들어간 건가요? 아뇨. (대학은) 79년도에 입학했어요. 3년 동안 철도 쪽 일을 했죠. 사실은 노동자죠. 노동자. 철도 노동자. 강원도에 가서. 강원도 정선에 가 있었는데…

그래요? 지금 하시는 일이랑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그냥 농담이죠. (웃음) 너무 진지하게 들으시는 경향이 있는데? (웃음)

정확하게 어떤 일인가요?

농담과 진지한 게 섞여 있어서 그걸 구분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기능공이죠. 선로 보수하는 일이었어요.

(웃음) 그리고 군대 다녀오시고 86년도에 졸업하신 걸로 되어 있거든요.

아, 그 이미지는 알 것 같아요. 철길을 걸어가다가보면 ‘우리 똥 좀 치워주세요’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사적인 걸 왜 그렇게 많이 물어봐요?

82년 말에 제대 했으니까. 무려 33개월 18일을 했죠.

왜냐하면 전두환이 무슨 군사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서 앞뒤로 선임, 후임을 차출해서 걔들이 먼저 제대하는 바람에… (웃음) 공병대를 나왔어요.

106


저도 공병대… 삽질만 하다 왔어요. (웃음) 대학교

칸에게서…

졸업하시기 전에 환경동인건축사무소에 들어간 걸로… 뭘 배우셨어요?

졸업하면서 들어갔는데?

루이스 칸한테 배운 거는 한 가지인 것 같아요. 감동. 졸업하기 전 해 11월 달. 4학년 11월이면 다 취업하잖아요.

건축은 결국 감동이다… 그러니까 루이스 칸의 «Complete Works 1935-74»라고 옆으로 긴 작품집 있어요. 그때 돈으로 그 작품집이 35만 원이었어요.

네. 그러면 석사는 언제 들어간 건가요? 어… 88년에 갔죠.

지금은 공(0) 하나 더 붙겠는데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지금으로 치면 백만 원 정도는

석사 졸업은 90년이라고 돼 있는데요.

되겠죠. 그거를 사가지고 계속 스케치를 트레이싱하면서,

그러니까. 2년 만에 잘 했어요. 첫 학기만 직장

건축이라는 게 어떠한 논리보다도 결국은 감동을 줘야 되는

다니고, 두 번째 학기부터는 풀타임으로 했으니까. 그때 열심히

거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죠. 그걸 배웠던 것 같아요.

공부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면서...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는지는… 어떠세요. 지금은 그때 ‘건축 형태의 중심화에 관한 연구’ 하시면서,

알고 계신 것 같으세요?

대학원 내내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에 대해

잘 모르죠. 뭐.

굉장히 심취해 있었던 건가요? 루이스 칸에게서는 뭔가를 느끼신 거잖아요?

예.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형태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던가요?

나오곤 했어요. 형식주의 문제라던가 그랬는데. 그때 잡지에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때는 어떤 분위기가

나오는 글들은 미술관 비평 정도의 글들이었고, 그랬는데 그런

있었냐면 작가연구나 이런 부분에서 자료가 많지 않았어요.

거하고는 별개로… 뭐라 그럴까요. 그 감동이라는 것은 대학교 다닐

우리나라에 원서가 들어오기 시작한 게 80년대 초반이거든요.

때 보면 다들 그런 얘기 하잖아요. ‘좋은 건축이란 뭐예요?’라고

그전까지는 다 가리방がりばん 교재로 배웠어요.

물어보면 참 할 말이 없잖아요. 그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가리방’이 뭔가요?

필경筆耕… 프린트한 걸로. 제대로 된 교재가

어펙션affection...

없었어요. 우리 웃대는. 나는 사실 그래서 학교를 늦게 다닌 걸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쪽인데, 그러다가 원서를 일본어로

어펙티브한 거든 무엇이든 그건 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번역한 말도 안 되는 어설픈 책들을 가지고 공부한 세대가 80년대 중반부터였죠. 대표적인 게 그 뭐냐… 어느 출판사에서

(주위의 건물들을 가리키며) 여기는 어떠세요?

나온 책들이 다 그렇게 나온 책들이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을

여기요? 건물에 대해서는 별로 감동 안 해요. 요즘에는.

다닐 때 영문 원서를 같이 놓고 보면요. 빨갛게 다 고쳐가지고… 번역자들이 영문을 본 게 아니고 일본어를 놓고 번역을 한 거라.

예전에는 어떤 건물에 감동 받으셨어요?

사전 찾아가면서 원서를 보면 번역이 말이 안 되는 거야. 80년대

별로 감동 받은 건물이 사실은 없어요.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그런 교재들이… 교재라기보다는 그런 이론서들이 좀 돌아다녔죠. 또 하나 저거한 건 그때만해도

감동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 것 같으세요?

작품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설계사무실도 어느 정도였냐면요.

제가 아까 얘기했잖아요.

소장이 잡지책 있는 서가를 잠가놨던 시절이었어요. 감동을 잘 못 느끼신다고… (웃음) 정평진 : 귀해서요? (웃음)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나…

귀하고, (그들의 설계가) 사실 거기서 베낀 거거든. 베낀 건데 그걸 안 보여 주려고. 그러니까 정보가 굉장히 중요하던

저도 되게 감동을 못 받는 스타일이거든요. (웃음)

시절이죠. 90년대 넘어서 정보가 확 들어오면서 나아진 건데.

아, 그래요?

그러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학교 다닐 때도 도서관에 가서 작품집들을 카피를 떠가지고 트레이싱지에 대고 그리면서

그러면 예술 분야는 어떠세요? 건축 이외 분야, 잘

건축 공부를 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아직 대가들에 대한 관심들이

모르는 분야에서요. 음식?

많이 남아 있을 때죠.

음식은 별로 감동 안 받고요. 미술하고 음악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사실은 음악하고 건축이 좀 비슷한, 미술보다는 좀 더

아…

가까운데, 그 부분은 뭐냐면, 우리가 아우라라고 얘기를 하고 여러

그래서 그렇게 물어봤으면, 그러면 뭘 배웠냐, 루이스

가지 얘기를 하지만,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음악은 거리距離하고

107

INTERVIEW

‘감동이 있으면 좋은 건축} 같아요. 근데 그 감동이 정동적인?


관계 없이 우리 귀로 들어와요. 눈을 감아도. 그런데 미술은 거리를

작업에서 했던 것들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주변에서 계속 그걸

띄고서 봐야 되요. 그래서 좀 다른 종류인 것 같고요. 근데 건축도

해야 하지 않겠냐 해서 했던 게 문화도시연구소고요.

거리를 띄워서 봐야 되지 않느냐고 얘기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엑토로는 안 되셨나요? 그렇죠. 그건 비영리적인 일이고, 엑토는 영리적인

(인터뷰는 잠시 중단되었다. 이날, 토요일의 대학로는

설계회사고. 물론 많이 겹치긴 하지만 문화도시연구소는

정치적 이슈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때마침 시위대를

외부의 멤버들이 많았죠. 그때 경기대 이상구 교수하고 나하고

몰고 가던 확성기 장착 차량이 인터뷰 장소를 지나다

주축이었고, 그리고 나중에 추가로 오신 분들이 시립대 김성홍

멈췄다. 우렁찬 음악소리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집어

교수, 경기대 윤희진 교수, ...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참여를 해서

삼켰다. 잠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우리는 별 수

같이 연구용역도 하고…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배롱나무가 있는 인근의 비교적 조용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윤희진 교수님은 서천 봄의마을에 설계를 다 하셨더라고요? 건물들.

소장님은 대학 석사 졸업하고 건축문화건축사사무소

예. 어떤 프로그램 어떤 자리에 대한 기본계획을

들어가시고요. 92년도에 건축사 면허를 따셨네요.

내가 한 상태에서 윤 교수에게 설계를 부탁했죠. 굉장히 그건

면허를 비교적 빨리 딴 셈 아닌가요?

인격적으로 중요한 일이에요. 설계 전 과정을 보면 옆으로도

3일 만에 땄는데요? 3일 공부하고.

있지만 앞뒤로도 있잖아요? 시간적으로. 나는 주로 앞쪽에 많이 가게 되고, 뒤쪽의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3일만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화낼 것

하는 일이 되게 재밌더라고요.

같은데요. (웃음) 화나죠. 사실은 꼴찌했어요.

그렇군요. 문화도시연구소는 서천 봄의마을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만드신…

꼴찌해도 붙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웃음) 아니, 그때는 (도면을) 맨날 손으로

인터뷰

그렸으니까, 필기만 붙으면 거의 되는 거죠.

아뇨. 전혀 다른 맥락이죠. 문화도시연구소가 용역 하려고 만든 건 아니고요. 크게 보면 세 개의 축이 있는데, 하나는 어쨌든 집짓기를 매년 했고요. 또 하나는 어린이 건축교실. 부설로 돼 있어요. 철암에서 시작된 두 가지를 이어가는 거죠. 또 하나가

그렇군요. 그러면 사무실을 다니다가 95년에

연구용역인데 그건 비용도 마련해야 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엑토건축사무소를 개소한 건가요?

생각하는 방식을 세상에 제안을 해야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세

아뇨. 92년도에 건축사 면허를 따고 사무실에서

가지를 계속 해왔던 거고요.

나왔어요. 몇 군데 실장을 뽑는다고 해서 원서를 냈는데 디자인이 너무 강하다고 그래가지고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네. 알겠습니다. 프로필 관련해서는 이 정도 정보면 될

없이 사무실을 냈어요.

것 같고요. 지난 번에 주신 자료들도 보고 했는데, 저희 생각에는 ‘집짓기’ 관련해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언제 내신 건가요?

전체적으로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93년도. 92년 말까지 이전 사무실 다니다 그만두고

정평진 기자가 하는 이야기에서

준비해서 5월달인가 냈어요. 그냥 개인 사무실을 냈고,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는데요. ‘사회적 건축’이라는

93년이었는지 94년이었는지 여러 사람이 합쳐서 법인화 하기로

표현 있잖아요. 소장님이 쓰신 이야기({SPACE},

했었는데 잘 안 됐어요. (엑토는) 94년도에 법인화 됐을 거고,

2013.4)도 잘 알 것 같아요. (건축가가) 건축 행위

3-4명인가 하다가 97년도 IMF 맞고 98년도에 삼성동 있었는데

말단에서 디자인하는 사람 아니고 실천 현장에서

빚잔치하고 여기로 넘어왔을 거예요.

사회적 자원을 건축해야 한다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내가?

성북동? (그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가 성북동에 있다.)

잡지에 쓰신 글에 있어요.

아니, 혜화동… 동숭동에 자리가 있어요. 그 이후에

그래요? (웃음)

계속 이쪽에 있는 거예요. 정평진 : 동명이인인가? 그러면 철암 작업도 엑토 있을 때 하신 거고요. 지금

함께 : (웃음)

문화도시연구소 상임대표? 시기가 2006년? 2006년 1월.

근데 제가 사회적 건축이라는 용어를 검색도 해보고… 없어요.

문화도시연구소는 왜 하게 된 건가요? 문화도시연구소는 철암 작업의 연장이죠. 철암

108

맞아요.


내가 만든 말이에요. (웃음)

되는대로?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가요? 그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공부를 하는 스타일도 두

그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을 해야 할까를

가지가 있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는 표, 매트릭스가 있어서 이걸

생각해보니까요. 건축가가 결국 어디에 있는가…

읽고 그 다음에 이걸 읽고, 선배들이나 지도교수가 가르쳐 준 책을

그 문제를 사람들에게 떠올리게 하는 게 중요할 것

읽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그런 식의 독서 방식이 아니라, 한

같았어요.

권을 읽고 거기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이런 부분은 있어요. 제가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또 다시 책을 찾아서 읽고 이런 식으로 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에…

건축’이라는 말은 썼었는데, 그 부분이 사실 저는 굉장히 중요한

지금 쓰는 논문도 매일 바뀌죠. 목차가. (웃음)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가 말단이 아니라 저 앞으로 가서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하는 것부터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웃음) 지금 쓰는 논문 제목은 뭐예요?

그걸 안 하면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번역해주는 사람 밖에 안

아직 좀 왔다갔다 해요.

되기 때문에. 그러려면 현장에 가야 되는 거고. 예를 들면 큰 프로젝트였지만 서천 봄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내가 만든 프로젝트예요. 프로젝트 자체를.

아니면 주제요. 사회적 건축인가요? 아뇨. 인위적 공동체에서 이해상충의 문제 정도? 처음엔 공간가치의 문제였는데. 마을만들기에서 결국은 다원적

지자체에 제안을 하신 건가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얘기예요. 공간민주주의. 광부 같은 거죠.

그게 버려져 있다시피하고 주자창으로 사용하던

광부인데 옛날식 광부.

곳인데, 군청하고 주민들하고 갈등이 빚어지고 하는 걸 ‘저거 내가 해결해보겠다’...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캐보는 건가요? 아니죠. 어떤 징후를 가지고 우리는 금맥을 찾아서

네. 처음 시작 동기는 어떤 건가요? 철암처럼

가지만, 위에서 넓은 지역을 스캐너로 스캔해서 ‘여기, 여기 있어’

지나가다가 보시고 제안을 한 건가요?

하는 식의 그런 건 아니고, 땅 속으로 들어가서, 여기 뭐가 나올

서천군에 자문으로 다녔는데 갈등 이야기를 많이

것 같은데 하면 그냥 캐기 시작하는 거죠. 캐다가 보면 이쪽에서 이쪽으로 흘러간다, 그러다보면 무너져서 내가 죽을 수도 있겠죠

그때 문화부에 가서 공간문화과에 관련된 공모사업이 없는지

물론. 그러니까 나는 어쨌든 체계적인 인물은 아니다… 근데

문의했더니 이런 게 있다고 해서 공모사업에 제안을 내서 국비를

사람들이 제가 무지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하는 걸로 오해를

받아서 그 일을 시작을 하고, 국토부에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제안서를 내서 또 예산을 받고 이렇게 한 거기 때문에… 근데 그거를 내가 만약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그 일은 그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 처리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계속 갈등 상황으로 지금까지 왔을지도 몰라요.

사실은. 아니, 그 일을 만났을 때는 그렇게 해야죠. 그 일을

그렇겠죠.

처리할 때는 굉장히 꼼꼼해야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문제는 전혀

그러니까 건축가가 결국은 공간적으로 가장 프론트에

다른 문제라는 거죠. 중요한 건 그 순간순간에, 음… 내가 반복하는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생각이 정말로 거기까지 가야

걸 싫어한다고 했잖아요? 새로운 방향이 어딘지를 끊임 없이

되는 거죠. 그거를 작동시키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되죠.)

고민하려고 하고 찾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집짓기가 지금 그런 시스템인 거죠. 집짓기가 그냥 집짓기가

거지, 해야 될 일이 생겼을 때는 착착착착 해야죠. 아주 꼼꼼하게,

아니라, 내가 사회에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시간을 잘 짜서 해야죠. 근데 그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좀

하지만 사회는 늘 증거를 요구하고 선례를 요구하잖아요. 그러면

다르다, 뭔가 착안하는 일은 좀 다르다는 거죠.

우리는 누군가 했던 일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문제를 인식하고 프로그램을

그렇군요. 저는 지난 번에 소장님께서 (스스로를)

만들어서, 아무도 돈을 주지 않으니까 설득해서 돈을 만들어서

자유주의자라고 하신 거 있잖아요. 그 부분이 내내

직접 설계를 해서 작동되는 방식까지 내가 제안을 할 수 있는

생각이… (웃음) 근데 정말로 자유주의자라고

거… 그런 특권을 가진 건축가는 거의 없죠. 근데 집짓기를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농담처럼 얘기를 하시는

통해서 가능한 거는 바로 그 점이에요.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 그

건가요? 왜냐면 일반적인 건데 프레임 이론에서

점이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어서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자유하고 평등은 배치되고, 자유는 보수가 되고 평등은

건축’이라는 말이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진보로 연결되잖아요. 자유가 보수가 되는 건 아니죠.

처음에 집짓기를 시작하셨던 계기는 어떤 거였나요? 철암에서 여러 사업들 중에 집짓기가 필요했기

보통은…

때문인가요?

요즘은 거꾸로예요.

그렇죠. 처음부터 생각했던 건 아닌데… 저는 이렇게 되는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거꾸로요?

109

INTERVIEW

들어서 ‘해결해보겠다. 전권을 주겠느냐?’ ‘좋다', 그래서


예. 공동체주의자들이 보수적이에요. 자유주의의 반대는 공동체주의예요.

그렇군요. (웃음) 그들이 어떻게 보는지 관심도 없어요. 진보에서 저를 관심 두겠어요?

아, 그런가요? 예. 자유는 개인의 권리나 이런 걸 더 중요하게

보통은 ‘사회적 건축’이라고 하나의 큰 틀을 그려

생각하는 거죠. 근데 이제 경제로 가면 그 반대인데, 경제적

넣으면, 사회를 바라본다는 게 개인 이해利害가 지나친

자유주의는…

걸 부정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무슨 뜻이죠?

지금 하나의 방향 안에서 둘을 나누고 계신 건가요? 저요?

이익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요. 좀 더 공정하고 공평하길 바라는 경향이 있을 거 아녜요.

네. 진보의 방향에서 공동체주의와 자유를 나누고 계신

‘사회적 건축’이라고 할 때는. 그렇지 않은가요? ‘사회적

건가요?

건축’이 추구하는 세상의 분위기는 어떤 건가요? 가령

아뇨. 그게 아니라, 공동체주의는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이런 건 지향하는 이미지가

좌파들이 갈 곳이 없으니까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확실하잖아요. 물론 그게 지나치게 한 면만 강조돼

대안을 찾아보자라고 한 게 공동체주의거든요. 미국에서의

보이니까 문제긴 하지만요.

공동체주의하고 한국에서의 공동체주의가 또 다르고요. 미국은

‘사회적 건축’은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고,

굉장히 보수적인 공동체주의고, 우리는 진보 진영이 공동체주의로

그게 건축가들의 실천을 통해서 정의가 되는 건데, 말 그대로

많이 빠졌죠. 근데 그렇기 때문에 그 말 자체를 프레임 속에서

프레임으로 그걸 정의할 방법이 없는데…

이야기하는 건 좀 어렵고요. 제가 자유라고 하는 건... 인간은 자기이해의 동물이라고 하는 건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죠.

그러니까 그 실천이 어느 정도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그 부분은 나는 맞는 거 같아요.

그건 좀 궁금해요. 이상적인 그림은 아니더라도. 목표가 있어야 될 거 아녜요?

그렇군요.

인터뷰

해방촌이 내 사이트(논문 대상지)인데, 거기서

그게 왜 있어 되죠? 무페 같은 경우는 사회란 없다, 사회적인 것이지 사회란 없다고까지 얘기를…

연구를 해보면요. 청년들은 충분히 시민정신을 잘 가지고 있고요. 그들은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희망이…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그 마을의 영주권이 주어지지

사회란 없다? 예.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학의 원리가

않아서, 왜냐하면 집이 없고 이러니까, 그랬을 뿐이지 그들에게

뭐냐면요. 리미트limit 개념이에요. 리미트 X가 0으로 갈 때 f(X)는

마을을 맡긴다면 진짜 자유로운 영혼으로 공동체도 훨씬 더 잘

얼마다라고 정의를 하잖아요. 근데 f가 0으로 간다는 것은 0이

할 거라고 믿어요. 근데 공동체주의자들이 하는 것은 기득권을

절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게 극한값의 정의예요. 그거하고

지키기 위한 것들이 많고, 더 행복하게 잘 살자라는 건데 그게

비슷한 거죠.

뭐 중요한 일인가라는 거죠. 그래서 한국의 공동체주의자들은 좌파들이 보수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보기

음… 그냥 그때그때 문제를 잘 풀면 되는 건가요?

때문에 프레임의 용어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거고, 오히려

주어진 문제를?

시민성이라던가… (시위 소리가 나는 쪽을 가리키며) 저기

아니, (웃음) 자꾸 왜 그렇게 정답을…

저 사람들 공동체주의자라고 봐야 돼요. 그런데 청년들은 다 자유주의적이에요. 그 사람들은 장소보다는 공기를 좋아하고,

아, 제가 너무 좁게 얘기를 하는 건가요? (웃음)

어떤 분위기를 더 좋아하죠. 여행자처럼. 근데 공동체주의자는

예. (웃음) 아니, 내가 이전에 너무 과격하게 얘기했나

분위기보다는 장소에 애착을 가져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그

싶었는데, 머리를 깨버려야 한다고 해서. 너무 미안했어요. (웃음)

프레임은 적절한 것 같지 않다… 단, 제가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무페라던가 왈저Michael Walzer(1935–) 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 그 부분이 크게 문제되진 않았는데, 그냥 좀

다원적이고 서로 존재를 인정하는 그 상태에서 우리가 만났을 때

궁금했어요. ‘사회적 건축’이라고 하는 게 지향하는

공동체주의는 갈등을 인정 안 해요.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노력해야

바가 있을 것 같은데…

될 것은 해야 되지만, 우리는 다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예를 들면, 행복하고도 비슷하잖아요. 우리가

충돌할 수 있는데 그거를 오히려 터트리고 드러내서 서로의 다름을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 뭔가가 달성됐을 때 딱 한 순간 느끼는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데, 공동체주의자들은 그걸 미봉하고 ‘우리는

건데 우리는 착각으로 그게 계속 지속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게 싫다라는 거지, 공동체적으로

비슷한 정도의 차이? 그런 정도의 뉘앙스?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닌 거죠.

아까 리미트, 극한값의 정리를 얘기했던 거는, 선善이라는 것도 그렇고 뭔가를 했을 때도 그거에 가까이 가려고 하는 노력 자체를

그러면 소장님은 진보 쪽에서 입지는 어떤가요?

극한값으로 정리하는 것이지, 거기 퐁당 빠져서 X=0이다 하면

없어요.

그건 극한값이 아니에요. 그건 그냥 딱 끝나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110


근데 f(X)가 0으로 간다는 건 그 방향은 알려주는 거잖아요. 거기로 수렴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정리가 안 된다고요. 나도.

그러니까 어쨌든 ‘사회적 건축’은 말 그대로 ‘사회적인 것들을 위한 건축’이죠. 명사인 ‘사회’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들을 위한 건축이고, 사회적인 건 참 많죠. 어떤

방향은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가령 마을만들기를

경우에는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피난의 건축이 될 수도 있고,

하면, 어떤 건축가는 개인들의 이익을 먼저 챙겨 줄

어떤 경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건축이 될 수도 있죠.

거냐, 아니면 어떤 건축가는 공적인 영역을 잘 확보해서

근데 그것이 분명히 지칭하는 것, 지정하는 것, 우리가 지난 번에도

사람들이 이곳을 잘 활용하도록 하게 할 거냐, 그거는

얘기했지만 언어학에서 무언가를 지정하는 것이 나머지 것들을

건축가 본인이 갖고 있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제외하는 건 분명히 있긴 해요.

거잖아요. 개인의 이익을 챙겨주라고 건축가가 있는 건 아니죠.

네. 맞아요. 예를 들면 뭐, 부잣집이라던가 이런 걸 사회적

그런 부분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건축이라고는 안 하겠죠. 개인에 의해서 점유되는 부분들. 그러나

아무래도 퍼블릭한 쪽을 더 많이 생각을 하죠. 오늘

개인에게 점유되더라도 공간적으로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문자가 이렇게 왔어요. (핸드폰 메시지를 찾는다. 서천시 봄의마을

들어가서 안식을 느끼면 사회적 건축이 될 수 있겠죠. 뭐 그런

광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행사를 즐기는 사진이 있다.) 여기가

정도. 뭐라고 정의는 여전히 안 되지만.

봄의마을이에요. 네. 그래도 소장님께서 ‘반란적 건축가’ 사람들 많네요.

특집({SPACE}, 2013.4)에서 쓴 것처럼 데이비드

그러니까, 오늘 평생학습 뭐가 열렸대요. 그래서

하비의 말을 빌어서 건축가들을 전선으로 불러오기를

사진을 보냈네요. 사람들이 많이 있네요. 나도 이거는 지금 처음

요청한다고 표현하셨는데, 어쨌든 건축가에게 싸워야

봤는데, ‘오늘도 광장은 살아서 가을 하늘과 어우러지네. 참

할 전선이라는 건 있다는 거잖아요? 사회에서. 그걸

성(형)은 큰 일을 하였소’ 이런 메시지를 보냈네요. 여기에서 보면

인식하고 있으신 건 아닌가요?

생각보다 건물 얘기는 아무도 안 해요. 그죠? 우리 건축가들은

그렇죠. 그거는 인식하고는 있죠. 그런데 그 전선이

건물에 굉장히 목을 매는데 반해서 건물 얘기 안 하잖아요.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니까. 서부전선처럼 독일군하고 대치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은 도처가 전선이죠. 왜 그러냐면 온통 다 자본주의로 되어 있잖아요. 자본주의때문에 삶터나 일터나 이런

얘기하지 먹는 사람은 또 다를 거 아녜요. 그런 정도의

부분들이 최소한의 실존의 문제를 위협하는 모든 곳은 ‘사회적

차이 아닐까요?

건축'의 전선이 되겠죠. 어디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장일 수도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의도를 가지고

있고… 그럴 거라고 봐요. 워낙에 전선이 선으로 형성돼 있는 게

만들어 놔도 사람들이 그렇게 쓰지 않으면 그건 ‘사회적 건축가'

아니라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아니에요. 나 혼자 만든 것도 아니라는 거죠. 사람들이 이렇게 쓰기 때문에 이게 사회적 건축인 거죠.

젠트리피케이션은 워낙 이슈화가 돼서 많은 건축가들이 관심은 가질 것 같은데요.

음… 그러면 이런 건물(프렌차이즈 카페)도 사회적

아뇨. 건축가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요.

건축인 건가요?

그거는 이제… 아까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로 가면, 자유주의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쓰는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국가의 개입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공동체주의는 그 반대편인데, 그래서 국가개입을 하느냐 안 하느냐 따라서 완전주의 국가와

(웃음)

반완전주의 국가로 나뉘는데, 국가가 법으로 딱 실천을 하면 돼요. 아니 (웃음) 그 용어를 쓰시려고 하면서…

아주 간단한 거예요. 명확하게 해야 될 건 해야 되는데 국가가 그걸

나는 내가 하는 거에 대해서만 쓰는데 왜 남이 한

안 해버리니까. 그래 놓고서 그걸 협약을 맺어서 하라는 게 말이

것까지 물어봐요.

돼요? 그게?

저도 글을 다루는 입장이다보니까요. 단어가 가지는

일정 부분은 큰 공동체 테두리가 강제하는 부분은

한계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실재를 개념으로)

필요하다는 건가요?

지나치게 한정시켜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다만

그렇죠.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의무를 안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러고 말단끼리만 공동체를 하래, 말이 안 되잖아요.

지난 주부터 ‘사회적 건축’을 정의를 하려고 엄청 네. 맞아요. (웃음)

애쓰시네요.

그래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국가가 필요한데, 딱히 정의할 생각은 없는데, 소장님이 기존에 매체에 쓴

우리에게는 국가가 자본주의화 돼버리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말도 있고 하니까 그걸 참고해서 이해하면 될 것 같긴 한데요…

그러면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문제가 벌어질 때,

111

INTERVIEW

요리사도... 요리사들끼리나 (음식의) 형태 이런 걸


건축가가 역할을 할 수 없다… 고 하셨나요?

것도 아니죠. 그러면 대부분의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거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건축가는 오히려 자본의 편을

건축가들이 그런 행동을 안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들어왔죠.

시작을 하면 좋을까요? 나는 꼭히 그렇다고 생각은 안 해요. 정말로… 저는 그

경의선의 공유지행동처럼 먼저 가서, 이슈가 되는 지점에 먼저 가서 싸워야 되고 그런 건가요?

부분은 믿어요. 거창하게 얘기하면 역사라는 걸 믿는데, 예를 들면

어… 그럴 수도 있고요. 다양한 방법이 있겠죠. 일단은

내 생각이 옳다면 내 생각에 찬동하는 후배 건축가들이 많아지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건 마음을 어디다 두느냐부터 해야 되겠죠.

조금 낫겠죠. 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거는 그냥 씨앗도 안 되고 먼지 티끌 하나 밖에 안 되는 거고 그냥

어디다 둬야 될까요?

휩쓸려 사라지는 거고요.

반대편에 둬야겠죠. 그래야 싸울 방법이 뭔지, 전선을 제일 작은 일은 어떤 것부터 시작할 수 있나요? 사회적

어떻게 형성할 건지가 보이는 건데,

건축. 그냥 생각만 해서는 안 될 거 아녜요. 사실 저는 아, 여기서 ‘반대편’이 어디를 말하는 건가요?

행동하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자본의 반대편이죠. 근데 우리는 자본하고 친해야지 잘

그런데 자꾸, 아까부터 들어보면, 편집장 개인의

살잖아요. 권력하고도 친해야 하고.

고민을 상담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웃음)

소장님이 집짓기 같은 걸 하고, 사회적으로 그런 일이

모든 건축가들이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웃음)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고 하면 국가도 약간씩 길을

소장님 만나 뵈면서 또 그 나름대로 생각할 ‘꺼리’들이

열어주진 않을까요?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어떤 부분은 계속 맴도는

그러니까 국가가 그런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부분도 있고 해서…

그걸 하는 거죠. 대안이라는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일 년에

담배 한대 피고 합시다. (웃음)

한 건 두 건… 뭘 바꾸겠어요? 문화도시연구소 같은 작은 공동체 (잠시 후)

안에서 시도를 하지만 결국은 세상이나 국가가 그것을 받아들여서

인터뷰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아주는 국가, 그래서 사회적인 것들을 좀 더 챙겨주고 보호해주는 역할, 그게

얘기하신 것 중에 대답 안 한 걸 마저 대답을 하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국가가 할 역할이거든요. 그렇게 하는 쪽으로

그냥… 바로 여기서 시작하면 돼요. ‘지금 여기’. 어디서부터

우리가 (국가에게) 아이디어를 주고 명분을 주는 거죠. 공무원이

시작하냐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거창하게 시작할 게 아니라는

뭔가를 하려고 해도 설계가 없으면 안 하잖아요. 우리가 설계를

거죠. 예를 들면 정평진 기자가 예전에 팟캐스트를 했던 것도

만들어주겠다 이거예요.

나는 시작이라고 보고요. 너무 거창하게 하는 것보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제가 뭘

네. 어쨌든 그런 식의 일이라는 게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알고서 철암을 갔던 게 아니거든요. 뭔가를 해야 되니까… 라고

아뇨. 힘든 일이 아니고 재밌는 일이죠. (웃음)

해서 갔던 거 뿐이니까. 그거는 어디에나 있다고 봐요. 동네에도 있고.

그렇군요. (웃음) 쉽게 선택을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가지고… 저도 곰곰히 생각을 해보거든요. 근데

그때 철암을 지나가게 됐던 계기는 뭔가요?

아까 자본주의 반대편에 서야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출장이죠. 부산에서 속초로 현장을 보러 가던

물론 제가 특집으로 다루는 건축가고 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이의는 없는데, 저

길이었어요. 집짓기하고나서 많은 분들이 물어봤어요. ‘참 좋은

자신은 딱히 반대편에 있어야 할 이유를 잘 못 느끼는

일 하십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를

사람이에요.

하는데 그분들이 다시 온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러나 ‘재밌을

근데 자본주의 반대편에 선다고 해도, 우리 사회

거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와요. 내가 건축을 좋아해야

전체가 자본주의인데… (웃음) 얼마나 서겠어요. 그러니까 그거는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관심을 갖고 좋아하고 해야겠다고 생각을

별로 문제가 안 돼요. 우리가 예를 들면 균형 잡힌 저울 위에 있는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죠.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지,

게 아니거든요. 한참 기울어져 있어서 내가 반대편에 간다고해도

엄청나게 계기를 잡아서 자기 일도 다 때려치고 이건 아닌 것

안 돼요. 기껏해야 상징적인 의미 정도 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같아요. 그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걸 해야 되는 이유는 뭐냐? 그게 옳기 때문에 해야 되는 거예요. 소장님은 어디까지 해보셨어요? 그동안 많이 하셨잖아요. 아이고, 이 거대한 역사에 티끌도 안 되는 그걸... 어떻게 많이 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웃음) 정말로 그거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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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 CLOCK_ 철암 2006

59호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진가 김재경의 철암 사진들을 떠올렸다.

사진을 사용하기로 하고, 독자들에게 도움될 정보가 더 있을까 하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행본, «셧클락, 건축을 품다»(김재경, 효형출판, 2013)에 간단한 내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서야 책을 읽은 기억이 났다. 글을 다루는 사람에게조차 이미지는 가깝고, 글자는 멀다. 내용을 읽었다. 문장이 사람을 닮았다. 글도 사용하기로 했다. 사진 속 건물들은 이미 그곳을 떠났다. 다시 기록될 수 없는, 기록으로만 남은, 기록의 의미를 발견해 줄 독자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다. 근래에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하며 효율을 위해 지방 역시 도시처럼 콤팩트해져야 한다는 주장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보았다. 세상이 변한다더라는 걱정과 뭔 일이야 있겠냐는 낙관이 새벽안개처럼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중심 아닌 주변의 모든 일상 위에 공평한 해의 빛에 대해 생각했다. / 진행: 편집실 글: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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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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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년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지인 둘과 점심을 같이 하던

자리였다. 그곳에서 제안을 하나 받았는데, 철암에서 하는 도시 건축 작업을 함께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는 지역사회의 회생을 위한 공동 작업이었고, 여기에 사진으로 참여해보면 어떻겠냐는 요지였다. 향후 그 결과물은 여러 방편으로 지역과 공동 작업의 홍보를 위해서 전시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됐다. 그런데 쉽게 동참을 결정하기에는 평소의 사진 작업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혼자 조용히

CREDIT

작업하는 평소의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이 어떤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건 핑계일 뿐, 차마 말할 수 없는 다른 속사정이 하나 있었다. 제안을 한 J형은 평소에 남다른 건축적 태도로 그 혜안이 뛰어난 이였다. 그런 그의 제안을 박절하게 거절한 것이 이후에도 마음의 빚으로 계속 남았다. 몇 해가 흘러 2006년, 철암 근처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 무렵 인근에 지을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현상 공모가 나왔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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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사진을 찍기 위해 태백시 동점동을 가게 된 것이다. 그곳은 철암동에서 출발해 구문소 터널을 빠져나와 오른편 계곡 옆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로 불과 십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90 년대 중반 사북, 고한, 나한정 역의 스위치백switchback 열차 선로

등의 촬영을 위해 근처를 다닌 적이 있었다. 하얗게 내린 눈으로 도로가 얼어붙은 어느 날, 낡은 자동차로 함백산을 넘어갔다 돌아오던 길에 1000m 아래로 구를 뻔했던 일도 있었지만 그때도

크레딧

철암을 직접 볼 일은 없었다.

시간을 역산했다. 아침에 현장에서 사이트 사진을 찍기 전 철암에 들러서 오면 된다. 출발 전 8 × 10 뷰카메라를 준비하며 홀더에 필름 대신 인화지를 장전했다. 일종의 캘러타이프calotype로 네거티브 대신 포지티브 인화지를 사용했다. 11월 늦가을에는 해가 늦게 뜨지만 미리 도착해 기다리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철암에 도착했을 때 밖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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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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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꺼풀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밖을 보니 미명이 밝아온다. 몸을 좌석에서 일으켜 밖을 살폈다. 뭔가 이상하다. 한 치 앞도 안 보이게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철암동은 양쪽에 높은 산을 끼고 개천을 따라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지형 때문인 듯하다. 멀리서 밤새껏 달려왔건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 혹시나 하는

크레딧

심정으로 그저 날이 개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촬영을 다니다보면 가끔씩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주위는 이미 훤하게 밝았어도 마치 우윳빛같이 진한 안개가 온통 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주위가 밝았어도 해는 아직 동편의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올라오던 해가 산등선에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토록 진하던 안개가 거짓말처럼 빠르게 걷히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얼른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고 장화를 챙겨 신었다. 삼각대에 얹은 뷰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아래의 철암천으로 달려 내려갔다. 안개가 걷히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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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그토록 진하던 안개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사라졌다. 이윽고 주위는 본래의 청명한 아침 빛으로 충만해 있었다. 촬영을 마친 후 개천에 서서 천변마을을 천천히 바라보니 시간은 어느덧 여덟 시 삼십 분에 접어들고 있었다. 천변가로에 면한 좁은 대지에 지어진 집들, 그곳에는 철암 주민들의 신산했던 삶이 있었다. 그 모진 세월의 편린과 구축의 원초적 갈망이 눈에 아른거렸다.

CREDIT

119


EPILOGUE

건축사진은 건축에서 이미지만 떠 내어 사람들에게 ‘이미지화된 건축’을 전달합니다. 그 ‘이미지화된 건축’을 다시 건축으로 번안할 눈이 없을 때는 이미지에 대한 판단이나 감상만 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봤어?”라고 말합니다. 현장에는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미지 안에 건축의 가능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현장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건축의 가능성은 사진이 아니라 건축과 건축가에 달린 일이라 솔직히,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포샵을 어떻게 해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폰카로 찍은 장면만으로도

에필로그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혹은 그 반대의 판단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멋진 장면에 목을 매는 건 좀 더 좋은 건축, 좀 더 의미 있는 건축의 문제 이전에 건축과 무관한 훨씬 많은 대중, 예비 건축주들을 설득하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데 훨씬 유용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책이나 웹에 실린 건축사진을 볼 때 사진이 전달하는 환영이나 결핍 말고 의미에 감동하는 경우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건축사진은 건축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의미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건에 있습니다. 건축의 의미는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축가가 남겨 놓은 결과물과 의미를 읽는 눈을 가진 독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집니다. 건축사진은 이를 중재하는 또 다른 사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입니다. 기록으로 남겨둠으로써 새로운 독자들이 계속 의미를 발견할 기회를 마련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건축사진이 이미지보다는 해당 건축의 건축적 성과와 일상을 정확히, 많이 기록해두길 바랍니다.

120


하지만 요즘의 사진은 번번히 이미지만 그럴싸해서 정말 별 이야기도 없는 건축 포장만 과하다는 느낌일 때가 많습니다. 건축사진가는 건축사진가의 일을 하는 것이니 의미도 없는 장면에 뭐 그리 힘을 써가며 찍었냐고 얘기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사실은 이 말도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 그러면 의미는 누가 정해놓은 것이냐는 반문도 가능합니다. 누구는 의미 있고 누구는 의미 없냐… 그걸 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냐… 건축이란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과정들의 결합인 이상 어떤 작업이 간단하게 폄하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이 자유와 평등을 조금씩 열어온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낳은 성과와 폐해와 반성을 포함하여 여전히 그러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의 현재-위기-선동이 아니라 역사가 보여주는 인간의 가능성 그 자체를 믿는다면, 새로운 건물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 만큼 새로운 건축 의미의 탄생을 시도하거나 보려고 애쓰는 일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무엇이 지켜지고 무엇이 변했는지, 다른 인식의 관점을 제공하는지, 어떤 가능성을 열었는지, 그런 식의 생각하고 기록하기 귀찮은 것들. 따라서 이미지화된 건축사진은 감성소비를 촉진하고 지갑을 열게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건축사진은 인류의 존속 기간 내내 탄생할 건축의 독자들이 의미를 읽어낼 수 있도록 충분히 보여줄 소스를 남기는 것, 그것을 위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들을 찾아다니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카메라와 사진가가 선 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것, 덕분에 건축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움을 느끼는 독자, 그런 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121

EPILOGUE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가정이 가능하다면,


REFERENCE / CREDIT REFERENCE

기타

인터뷰

«건축십서», 모리스 히키 모건 편저, 오덕성 옮김, 기문당, 2011

일시: 2017.9.20 / 10.9 / 10.14 / 10.19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운생동 출판, 2015

장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52번지 3 층 문화도시연구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건축형태의 중심화에 관한 연구›, 주대관 외 1인,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건축가와 함께하는 “어린이 건축교실 프로그램”», K-12건축학교(집필:주대관+홍성천), 걷다출판사, 2011

논문집-계획계, 1990.4

동숭동 대학로 방송통신대 교정 / 커피빈 대학로마로니에점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창비, 2017 건축가 자료 일반

‹서울시 한옥주거지 실태조사 및 보전방안 연구›, 정석 외 5인, 서울연구원, 2006.12

문화도시연구소 홈페이지 culturecity.kr 엑토종합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ectosis.com

«셧 클락 건축을 품다», 김재경, 효형출판, 2013

«95:15»,엑토건축, 2015

«지방소멸», 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2015

«철암세상», 철암지역건축도시작업팀, 포월, 200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2002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주대관, 문화도시연구소, 2006

«철암에서 집짓기», 철암지역건축도시작업팀, 이상건축, 2002 정기간행물 *발행연도 순

«현실과 노스탤지어», 주대관, 문화도시연구소, 2011

1998.11 {건축문화} / ‹현상설계경기는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것›

‹후적지 정비를 통한 서천읍 공간문화 재구성사업 ─ 봄의마을 만들기›,

1999.04 {CONCEPT} / ‹응모작 : 성북영화기념관 및 제2구립도서관›

문화도시연구소, 2007.02

1999.04 {건축사} / ‹작품노트 - 집을 잘 지어보고 싶었던 욕심›

«희망의 공간»,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외 3인 옮김, 2001

1999.05 {건축사} / ‹형식과 시학을 넘어서(Ⅱ)›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jovis, 2007

2000.04 {건축문화} / ‹KIST 산학연 협력연구동 로비› 2001.04 {이상건축} / ‹철암, 그 미래를 위한 제안›

프로젝트 자료 및 진행 협력

2002.05 {CONCEPT} / ‹서대문 청소년수련관›

허길수, 스튜디오 정미소 대표

2003.04 {건축} / ‹건축가의 공공적 역할 - 철암 프로젝트›

정기황, 문화도시연구소 이사

2004.08 {도시와 빈곤} / ‹철암 프로젝트 사례 - 사회전반의 패러다임 전환과

집짓기 친구들 옹이

소지역 회생의 공간사회학적 접근의 중요성›

레퍼런스 / 크레딧

2004.10 {건축문화} / ‹서울시립대학교 조형관› 2005.06 {건축} / ‹농촌주택문제의 사회적 중요성과 개선 방향› 2006.10 {건축역사연구} / ‹농촌마을 건축문제의 중요성과 대안모색

─ 2006 양구농촌집짓기를 중심으로›

CREDIT

2007.09 {건축과사회} / ‹건축가의 의무와 권리로서의 농촌마을가꾸기› 2007.09 {건축과사회} / ‹’한국의 농촌마을가꾸기’ 토론회›

건축가제공

2011.07 {와이드AR} / ‹인제 합강 주택 + 서화 주택›

44, 45, 46, 47, 48, 49, 50, 51, 56, 57, 58, 59, 60, 61, 62, 63, 68, 69, 71상,

2012.12 {한국관광정책} / ‹건축가의 눈으로 본 관광정책 : 요강과 와인, 그리고

71중, 71좌하, 72, 73, 74, 75, 76, 77, 82, 83, 84좌, 85, 87상, 87중, 88, 89, 90,

시간의 풍경화›

91

2013.04 {한국지역사회생활과학회} / ‹농촌마을 리모델링 방법론› 2013.05 {SPACE} / ‹건축의 사회적 참여와 사회적 건축› 2013.12 {한국산학기술학회} / ‹지역별·시기별 농촌주택의 재료 및 구법 특징

변화 연구›

김재경 21, 23, 25, 27, 29, 30, 31, 32, 40-41, 52-53, 64-65, 70, 71우하, 78-79, 84 우, 86, 87하, 96, 114, 115, 116, 117, 118

2014.03 {도시정보} / ‹전통미를 살린 농촌주택의 방향과 과제› 2014.06 {건축과사회} / ‹국토해양부 지자체 경관전문가지원 시범사업 : 완주군

민간전문가제도의 운영› 2014.08 {농정연구} / ‹농촌주거문제의 실태와 개선방안› 2014.09 {농촌계획} / ‹농촌마을 유형에 따른 거주환경 분석과 만족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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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생활문화장터 ‘늘장’ 內 기린 조형물 ⓒ 김재경


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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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55

건축가 최욱

WIDE #56

건축가 조병수

WIDE #57

WIDE #58

건축가 정수진

EDITORIAL

EDITORIAL

EDITORIAL

PHOTO-LOGUE

in-in-ter-com-na-p-tio-re-nal-ssi-ism-

이방인의 건축법

Switch—건축소수자 되기

도시와 건축가

건축가 김영준

ble VARIABLE

TALK ONE. ONE DAY MET

STORY-A

INCOMPRESSIBLE SCENE

연결통로의 법규 해석

산전수전

시차

#1

외장재 교체

<이-집>설계과정

#2 정체성을 시각화하다

나무를 피하는 골조선

<하늘집>

ESSAY

#3 감각을 일구다

와이어를 활용한 녹화 입면

대표작

나의 건축 좌표

#4 현장에서 교감하다

시간을 들여 결정에 다다르기

입면을 만들지 않는다. 이유는

#5 조직을 운영하다

와이어 브레싱

다이어그램, 이게 뭔 짓

ARCHITECTURE & ANALYSIS

#6 가치를 나누다

역보의 활용

#7

안전환경수용설계

TALK TWO. CHARACTER

쓰는 말用言 ㄱㅣㅁ-ㅇㅕㅇ-ㅈㅜㄴ

영상으로 기록하다

환경을 조성하다

YO2 프로젝트 읽기

건물 진·출입 데크 조정

정수진이라는 사람

구조의 지속가능성

‘SIE’의 의미

INTERVIEW

조경을 활용한 보완

트라우마

PROJECTS

건축가 최욱

수직 패턴 변주

‘E’의 의미

박수근 미술관

시가현립대학 교수 인나미 히로시

디자인과 시공성을 반영한 입면

양면성, 하지만 편집증

경세원

120-40=80

대학생 정수진

서광사

PROJECTS

예산과 계획의 입장 차이

휘트니 비엔날레

자하재

팔판동 스몰주택

흡음재 없이 흡음하는 방법

파리 유학

자운재

아트 버스 쉘터

지붕 경사도 조정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1

서귀포주택

마포대교 플라자

부족한 공사비, 남은 주요 작업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2

MG주택

가회동 4제

설계 변경과 대체 자재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3

Y주택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경암층의 출현

아뜰리에 3년, 대형 설계사무소 3년

K주택

독립, 고립

허유재

#8 그리고 일상

현대카드 HQ3 (구)서울시장 공관

INTERVIEW

첫 번째 기회, 아쉬움

파주 상업시설

판교주택

건축가 조병수

두 번째 기회, 좌절

동일테라스

세 번째 기회, 성취

국립현대미술관

중정형 주택

학현사

PROJECTS

네오텍

온그라운드 갤러리 F1963

TALK THREE. ARCHITECTURE

파주출판도시 공동주거

작업 방향

가평 주거단지

색깔 혹은 고집스러움

고덕강일 2 지구 8단지

도면과 시공

휴맥스 연수원

안 되면 다 뜯는다

하이난 리조트 마스터플랜

퀄리티=감리

베이징 물류항 마스터플랜

건축가가 만나는 전문가들

하이퍼 카탈루냐

나이≻건축가≺여성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건축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개념

외부 마감 재료

건축 올림피아드 함부르크

‘빈 곳’, 공간, 感

행정도시 첫마을

퀄리티 그리고 디테일

출판도시 2 차단지 기본구상 태권도 공원

TALK FOUR. VISION

하고 싶은 건축

ZWKM 블록

현대자동차 그룹 신사옥 남해명주 에코아일랜드

격월간 건축잡지 {와이드AR} 정기구독 및 구입안내는 128p 참조


건축영화 공부방

제35차 상영작

WIDE

2017년 WIDE건축영화공부방의 송년

프로그램은 가슴을 조이며 들여다봐야 하는, 그래서 가슴 따뜻하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집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정유년 한 해를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일시 2017년 12월 6일(수) 7:00pm

장소 ㈜원도시건축 지하 소강당 방장 강병국(간향클럽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참석 신청 예약 총원 총 40인 내외로 제한함 (선착순 마감 예정) NOTICE

신청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 건축영화공부방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접수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후원 ㈜원도시건축

상영작

지붕Il tetto,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1956│91분 개관 <자전거 도둑>이나 <해바라기>의 감독,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의 명성 때문에 오히려 이 영화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영화는 워낙 다 대단하니까! 굳이 이태리 ‘네오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꺼내어들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6 ·25전쟁을 겪어서인지 이태리 전후 사정을 잘 이해한다. 아니 공감한다. 손바닥만한 방안에 도대체 몇 명이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인지...? 옷 갈아입는 문제는 그렇다 치고, 도대체 신혼부부에게 그 일은 어떻게 해……? 코딱지만한 집! 기껏해야 2미터×2미터! 이 조그만 집 한 채가 하루밤 새 동트기 전까지 완성되기를 그리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한 적이 있을까? 예전에 이탈리아에는 한시적으로 아주 웃기는 건축 조례가 공표된 적이 있었다. 국가가 소유한 공터에 누구든지 집을 지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단 하룻밤 만에 지붕까지 올려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건축에 도전하지만 대부분 동이 트고 지붕을 올리는 순간에 단속 경찰에 발각되어 다 지은 집이 뜯기고 마는 수난을 당한다. 자, 이제 우리의 주인공 루이자와 나탈레가 그 건축에 도전을 한다. 사방팔방에 땡빚을 내어 건축 자재를 사고 두 사람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건축을 시작한다. 점점 동이 터오고 지붕을 올리기도 전에 저 멀리서 단속반이 다가오고 있다. 두 사람은 과연 이 집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에피소드로도 유명한 영화다. ‘인생의 영화’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대답한 영화가 바로 <지붕>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순자 씨와 사귀면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군인으로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별을 선언했으나 여자는 스스로 가난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송년 프로그램이므로.

125


간향클럽, 미디어랩& 커뮤니티

간향클럽 사람들

우리는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와이드AR 편집실 editorial camp]

청년(youth), 진정성(authenticity),

편집장 이중용 사진총괄 김재경

실용성(practicality)”에 시선을

편집간사 정평진

맞추고,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디자이너 신건모, 낮인사

꿈을, 건축하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전하자는 목표 아래 건축한다는

[와이드AR 논설실 editorialist]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논설고문 이종건 논설위원 김정후, 박인수

짓는데 함께 힘을 보태겠습니다. [와이드AR 전문위원실 expert member] 우리는

비평전문위원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사진전문위원 남궁선, 진효숙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공론화하고, 나아가

[와이드AR 발행편집인실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publisher & partners]

공동편집인 김재경, 이주연, 정귀원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네트워크팀장 겸 에디터 박지일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마케팅팀 박미담

미래를 견인하는 지렛대가 되고자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합니다. 그로써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소식

발행위원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오섬훈, 우의정, 조택연

[와이드AR 유통관리대행

건축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distribution agency]

커뮤니티가 되겠습니다. [와이드AR 제작협력 production partners] 우리는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직판 박상영, 삼우문화사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인쇄관리부장 손운일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인쇄제작국장 김은태

월례 저녁 강의

인쇄처 대표 강영숙, 서울문화인쇄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ture Bridge(ABCD파티)}

간향 커뮤니티 GANYANG Community

{인천건축도시컨퍼런스 ICON Party}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고문단 advisory body]

신예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대표고문 임근배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고문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이충기

{간향저널리즘스쿨 GSJ} 건축 비평 도서 출판 {간향 CRITICA}

[후원사 patron]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WIDE 아키버스}

[자문단 creative body]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전문분야 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박병상, 박철수,

{간향 AQ포럼}

안철흥, 우종훈, 이정범, 전진성

어린이·청소년 건축학교 {AB스쿨}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협력기관 program partnership]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하며 www.ganyangclub.com

126

운영자문 공철, 김동원, 김종수, 김태만, 류영모, 손도문, 최원영, 하광수, 황순우

건축·디자인·미래학 강의실

나가겠습니다.

대표 김연흥, 김찬중, 박달영, 승효상, 이백화, 이태규, 장윤규, 최욱

신창훈, 안용대, 이성우, 이수열, 이윤정, 임재용, 정승이, 조남호,

따라잡는 {WIDE 건축영화공부방}

우리 건축 문화의 켜를 기품 있게 다져

명예고문 곽재환, 김정동, 박길룡, 우경국, 이상해, 이일훈, 임창복, 최동규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심원건축학술상 역대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계열사 project partner]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건축가 초청강의’ : Architects in Korea (시즌5)

(약칭, 땅집사향)

우리 건축 장場의 새 얼굴로부터 기성,

2017년 11월_제131차 : Architects in Korea 19

중견, 노장 건축가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하에 이 땅에서 활동하는 벽안의 건축가까지 주목하고자 합니다. 2016년 5월부터 2017년 2월까지 10회에 걸친 1라운드 건축가

초청강의에 이어 향후 12회에 걸쳐 2라운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획위원회 박지일, 백승한, 심영규, 최호준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유오스Knollkorea

㈜이건창호 문의

이야기손님

NOTICE

후원

김창균(UTAA건축)

일시

11월 15일(수) 7:30pm

장소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UTAA건축 이야기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와이드AR,

2017년 12월_제132 차 : Architects in Korea 20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 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손님

지정우(EUS+ architects 소장)

일시

12월 20일(수) 7:30pm

장소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Gradation and Boundaries

127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정기구독(국내 전용) 신청방법 안내

{와이드AR}주요 배본처

<구독자명(기증하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온라인 서점

<배송지 주소>, <구독희망 시작월호 및 구독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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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통권 59호, 2017년 11-12월호, 격월간

적으시어 {와이드AR}공식

알라딘

2017년 11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이메일: widear@naver.com

11번가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팩스: 02-2235-1968

인터넷 교보문고

창간호(통권 1호) 발행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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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서점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무통장입금방법

대형 서점

발행소: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입금계좌: 국민은행, 491001-01-156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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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점(02-5300-3301)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팩스, 이메일로 확인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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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를 금합니다.

부산점(051-806-3501) 부산 센텀시티점(051-731-3601)

1권 가격: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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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구독: 110,000원

종로점(02-399-5600) 미아점(02-2117-2880) 명동점(02-3783-4300) 청량리점(02-3707-1860) 김포공항점(02-6116-5544) 여의도점(02-6137-5254) 홍대점(02-2250-7733) 서울문고 건대점(02-2218-3050) 종로서적 종로점(02-739-2331) 북스리브로 홍대점(02-326-5100) 동네 서점 효자책방 소란(서울 통인동, 02-725-9470)

[社告: 가격 인상 공지] {와이드AR} 과월호 구입처 2018년 3/4월호부터 본지의 가격을 아래와 같이

인상코자 합니다. 용지대 인상 등 제작여건의 변동에

선인장(서울 통인동, 02-725-9470)

따른 조치임을 양해 바랍니다.

*2009년~2015년 발행된 본지를 파격 할인가로

구입 가능합니다.(한정수량) 1권 가격: 12,000원(인상 전; 11,000원)

연간구독료 1년 구독: 65,000원(인상 전; 60,000원) 2년 구독: 120,000원(인상 전; 1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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