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4,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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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는 한 젊은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단명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후원회입니다.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 <심원건축학술상>은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사업으로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 학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 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 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 응모작 접수 일정 ⓢ 1차 모집 | 2008년 9월 1일 ~ 10월 10일 ⓢ 2차 모집 | 2008년 11월 1일 ~ 12월 10일 ⓢ 추천작 발표 일정 ⓢ 1차 추천작 발표 | 2008년 11월 15일(격월 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2008년 11-12월호 ⓢ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지면) ⓢ 2차 추천작 발표 | 2009년 1월 15일(격월간

ⓢ 당선작 | 1편

건축리포트 <와이드> 2009년 1-2월호 지면)

ⓢ 부상 | 상패 및 상금 500만 원과 단행본 출

ⓢ 추천제 운용 방식 | 1/2차 추천작을 중심으

간 및 인세 지급 ⓢ 응모 자격 | 내^외국인 제한 없음

로 운영위원회는 소정의 내부 심사 절차를

ⓢ 응모 분야 | 건축역사, 건축이론, 건축미학,

통하여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별도

건축비평 등 건축인문학 분야에 한함 (단, 외

의 프로그램을 지원함. 그 가운데 매년 1편

국 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대상으로 한

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

연구’에 한함)

작 심사에서 탈락한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3년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됨.

ⓢ 응모작 제출 서류

ⓢ 최종 당선작 결정 | 1/2차 추천작 중 1편을

ⓢ 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고

선정함

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크

ⓢ 당선작 발표 | 2009년 5월 15일(격월간 건축

기 프린트 물, 흑백^칼라 모두 가능) 4부 ⓢ 2) 응모자의 이력서 1부(연락처 명기) 별도 첨부 ⓢ (운영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 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 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 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는 반환하지 않음.) ⓢ 제출처 | 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 럼빌딩 1층 간향미디어랩 (100-834) (겉봉에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이라고 명기 바람)

by 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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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리포트 <와이드> 2009년 5-6월호 지면) ⓢ 시상식 | 별도 공지 예정 ⓢ 출판 일정 |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6개월 이 내 ⓢ 건축학술상 운영위원 |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전 봉희(서울대 교수), 전진삼(격월간 건축리포 트 <와이드> 발행편집인)

ⓢ 주최 | 심원문화사업회 ⓢ 주관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 기획 및 출판 | 간향미디어랩 ⓢ 후원 | (주)엠에스 오토텍 ⓢ 문의 | 02-223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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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2

WIDE EDGE


웰콤시티

34번째의 아름다운 건물

저 아름다운 건물을 누가 세 웠을까? 사는 사람까지도 아 름다워 보이는 건물을 설계 하는 것이 건축가의 능력이라 면 그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 하는 것은 건설 회사의 능력 입니다. 건물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기능들과 그 안에 머 무는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 게 만드는 각종 첨단 설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면서, 건물이 추 구하는 아름다움과 예술성까 지 조화롭게 완성할 때 건물 은 건물로서의 가치를 드러 낼 수 있습니다. 고도의 시공 시술과 탁월한 예술 감각으 로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건 물들을 완벽하게 완성시켜 온 삼협건설 — 사람들의 마음을 잡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아 름다운 건물 뒤에는 늘 삼협 건설이 함께 합니다.

삼협종합건설(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70-7 홍성빌딩 4층 Tel : (02)575-9767 | Fax : (02)562-0712 www.samhyub.co.kr

Welcomm City by Samhyub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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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gan Architect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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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cheon Architectural Culture Festival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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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unwoo Structural Engineers I D E D G E

구조설계 | 안전진단 | 구조물 보수^보강

(주)건우구조엔지니어링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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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Wes Architects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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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3 Publishing C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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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Group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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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기 사진전 The Po p p y 2008년 8월 13일(수) → 8월 19일(화) 오프닝 8월 13일(수) 오후 6시 인사아트센터 02.736.102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Cha ng- ki CHUNG phot ogra ph E x hibit ion The Poppy 13 - 19 t h , August, 2008 Ins a Ar t Ce nt e r 188, Gwanhoon-dong, Jongro-ku, Seoul ope ning d a t e 6 pm , 13 th , Au gu s t , 2008

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 o k o f Sury us a n b a n g

정창기 사진집 <양귀비꽃 The Poppy>

이 책은 사진가 정창기의 여덟 번째 개인전 <The Poppy>(2008년 8월 13~19일, 인사아트센터)의 도록으로 제작, 출판되었습니다. 양귀비꽃(poppy)을 모티프로 한 작품전은 크게 호평을 받았던 지난 해의 <The Poppy—그 진홍빛 끌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질감이 느껴지는 한지에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게 프린트된 이 작품들은, 언뜻 보는 이들에게 사진이 아니라 그림으로 착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정물의 영역에서, 회화에서 기대되는 감성과 사진에서 기대되는 감성의 접점을 탐구한다고도 평가받습니다. 피고 지는 꽃의 다양한 모습에서 작가는 인간 영혼 깊숙이 침잠해 있는 미지의 세계를 읽어내고자 합니다. 작품에 드러난 응축적이면서도 풍부한 시각은 중견 작가로서 정창기의 내적 통찰이 더욱 무르익었음을 보여 줍니다. 탁월한 감수성으로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초월한 작품을 선보여 온 작가는 이번에도 사색적인 화면으로 스트레이트 사진의 한계점을 개척합니다. 무한대로 향한 깊은 톤과 투명함이 담긴 <The Poppy> 연작은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생명을 지닌 존재의 당위성을 말함으로써 예술적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by Suryusanbang 10

WIDE EDGE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제1권 04호, 2008년 7-8월호

WID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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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헤이리 마당 안 숲>과 <신현리 주택>

WIDE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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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공간, 땅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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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n Architectural Culture Festival

집담회 | 건축가 김인철, 이번에는 또 뭘 해낼까? | 김인철, 이용재, 이충기, 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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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woo Structural Engineers

리뷰 | 김인철 건축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vs 모포시스(morphosis) |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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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Wes Architects

8 C3 Publishing Co. 9

WIDE ISSUE 1

59

창조적 파괴를 권하는 사회 : 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

60

사라지는 이 땅의 현대 건축 | 윤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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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 예고된 재앙? : 건축계가 쉬쉬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전진삼

Vita Group

10 정창기 사진전 The Poppy | 사진집 <양귀 비꽃 The Poppy> | Suryusanbang 12

Architecture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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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s... | Cho, Taigyoun

WIDE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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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이화 캠퍼스 콤플렉스 )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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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The Ewha Campus Complex), 발의에서 완성까지 | 강미선

18 ‘바람길’과 건축 | Lee, Young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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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를 향한 젊은 건축인들의 시선 | 박병규, 전진석, 이웅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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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건축가 초청 12강의 — 나의 건축, 나의 세 계 | WIDE 구름 위에서 보는 세상 | Jeagal,Youp

57 미로와 다층적 길 | Oh, Seomhoon 58 Hyewonkaci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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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4> | 알버트 도크(Albert Dock), 폐허의 부두에서 문화 기지로

94 궁궐의 현판과 주련 1,2,3 + Traditional

Spacetime

100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4> | 단지 형태의 선교 기지, 순천 선교마을

Korean Crafts :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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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書欌 | 장정제 씨와의 대화, ‘김기현 법칙-II’의 실체 엿보기

조 | Suryusanbang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4> |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Sketches of Frank Gehry)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4| 일본 격주간지 닛케이 아키텍처(日經ア—キテクチュア) | 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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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영의 <도시 동네 늬우스 04> | 유형의 도시, 무형의 도시 : 2단계 파주출판도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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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계획안 100선 04| 용인 동백지구 단독 주택 | 박인규

124

이종건의 <COMPASS 01> | 이명박 정권과 촛불 집회와 건축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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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개발 행위를 반성하다 | 제5회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 리뷰

WIDE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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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정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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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 신청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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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함께 만드는 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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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병일의 <블랙 앤 화이트 04> | 아현동 이용재의 <종횡무진 04> | 봉정사(鳳停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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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

128 와이드 칼럼 | 나오시마의 일몰 | 최동규 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표2

FOSCO

표3 MS Autotech Co., Ltd. 1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2

Dongyang PC,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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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hy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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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gan Architects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김인철의 <헤이리 마당 안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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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ure Record 12

WIDE EDGE


editor’s letter

와이드 레터 | 누구든 말하고 어떤 말이든 들어 주는 열린 건축 사회 건축 동네에는 참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새로 탄생한 건축물을 리뷰하는 것에 서부터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슈에 이르기까지, 기분 좋은 소식도 있고 개탄 스러운 내용도 있다. 당연히 취재를 하는 잡지사 기자로서는 좋은 소식을 좋게만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단 발행편집인 고문 |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발행편집인 겸 대표 | 전진삼 운영위원 | 박민철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오섬훈 이영욱 제갈엽 조택연 편집장 겸 대표 | 정귀원 편집자문위원 | 곽재환 구영민 김병윤 송인호 편집자문위원 | 윤인석 이일훈 편집위원 | (수도권) 박민철 박혜선 손장원 이충기 장윤규 김진모 | (중부권) 김종헌 송복 섭 한필원 황태주 | (남부권) 김기수 안 용대 안웅희 송석기 | (유럽권) 김정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박상일 전속 사진가 | 이병일 진효숙 정세영 로고 글씨 | 김기충

전달하는 것이 일하기에도 편하고 마음도 즐겁다. 게다가 취재원과의 관계도 매 끄럽고, 때로는 과분한 대접도 받는다. 문제는 좋은 소식이라고 그저 좋게만 전할 수 없는 기사들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건축계의 민감한 사안들을 취재할 때다. 원만한 관계나 대접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연락이나 닿고 진실한 몇 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일 텐데, 도무지 접근조차 어렵다. 평소에는 건축 저널이 해야 할 일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이 들도 막상 한 말씀만 부탁하면 입을 딱 봉해버리고 만다. 참 답답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건축을 ‘말할 권리’와 ‘들을 의무’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건축물 자체든, 건축계의 민감한 사안이든, 적어도 건축을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타인의 다양한 의견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건축 물의 경우에는, 물론 내 집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기분 나쁠 수 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게 설계한 내 작품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것이 화가 날 수 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재밌어 하고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이벤트처 럼 말이다. ‘들을 의무’가 당연시 되면 화자의 ‘말할 권리’도 보다 많은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 다. 그리하여 누구나 건축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 비로소 건축은 익숙하고 친근 한 대상으로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 <와이드>는 ‘말할 권리’와 ‘들을 의무’가 특히 요구되는 기사들로 채워졌 다. 예상한 바대로 ‘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취재원 접촉을 수차례 해야만 했다. 또 건축주와 사용자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이화 캠퍼스 콤플렉스’의 기획도 도중에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은 있어도 말하기를 꺼렸고, 모두가 별로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렵고 불가 능하다고 껄끄러운 취재를 포기하지는 않겠다. 미약하지만 작은 목소리들이 쌓 여간다면, 누구든 말하고 어떤 말이든 들어 주는 ‘열린 건축 사회’가 요원한 것만 은 아니기 때문이다. ⓦ

| 글 | 정귀원(편집장)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 광고 마케팅 및 판매 대행사 광고 영업 대행 | 아크비즈 Agency 이사 | 박종호, 담당 팀장 | 이나영 대표 전화 | 02-2235-1968, 팩스 | 02-2231-3373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대표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제작 지원사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박상일 + 朴宰成 섹션 표지 그래픽 | 음문영 대표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필름 출력 | 두산출력 인쇄 | 예림인쇄 | 박재성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제1권 04호 7-8월호 2008년 7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정가 8,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극동상 가 502호 (120-796) 편집실 주소 | 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 럼빌딩 1층 (100-834) 대표 전화 | 02-2235-1960(관리) 02-2235-1968(편집) 팩스 | 02-2231-3373 공식 E-mail | widear@naver.com, widear@gmail.com 공식 URL | http://cafe.naver.com/aqlab, http://widear.blogspot.com ⓦ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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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s...

by Cho, Taigyoun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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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ic © Eum Moonyoung

국민은행 : 491001-01-156370 | 예금주 : 전진삼(간향미디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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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초청 12강의 — 나의 건축, 나의 세계 <건축가 초청 12강의 — 나의 건축, 나의 세계>는 매월 한 분의 건축가를 초청하여 그 분의 건축 이야기를 듣고 묻는 시간 입니다. 열두 분의 건축가를 만나가면서 우리 건축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① 7월의 초청 건축가 | 윤창기(종합건축사사무소 경암 대표)

주제 | 플로팅 건축 Floating Architecture

일시 | 2008년 7월 23일(수) 저녁 7시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문의 : 02-2231-3370/02-2235-1960)

② 8월의 초청 건축가 : 손세형(건원종합건축사사무소 상무이사)

주제 | 영국에서의 디자인 경험과 디자인 프로세스

일시 | 2008년 8월 20일(수) 저녁 7시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문의 : 02-2231-3370/02-2235-1960)

*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AQkorea,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최 : AQkorea,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주관 :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 GML 협찬 : 우리북, 디자인그룹 L2S, 시공문화사 spacetime

by WIDE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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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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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길’과 건축 우리 나라에서 제일 더운 도시 중 하나를 꼽는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시가 어디일까? 아마도 ‘대구’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대 구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타이틀’을 다른 도시에 내 주고 있으니 대구 시민들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6년부터 녹 화 사업을 추 진해 10년간 1,00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녹지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 도시의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표면이 태 양열을 흡수하여 표면 온도와 그 주변의 전체 온도를 상승시킴으로써 고온의 도심 공기가 정체되어 섬 모양으로 뒤덮는 현상) 효과를 낮춘 것 이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대구와 같은 분지형 도시에서는 열섬 현상과 더불어 대기 오염의 문제가 같이 수반된다. 물론 도 심의 녹지 공간이 오염 물질의 해소에 도움은 주겠지만 그 영향은 크지 않다. 그럼 시민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는 이런 것들을 없앨 수 있 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대구와 같이 분지에 세워진 공업 도시로서 역시 대기 오염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해 오다가 바람길(위 사진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시는 법 개정을 통해 환경 보호와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바람길 조성과 활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후 대기 오염 자료와 온도, 습도 바람 등의 기상 자료를 파악하여 기후 지도를 만들었고 바람길에는 고층 건물들의 신축을 불허 하고 대신 도로를 넓히거나 공원 등의 녹지 공간을 조성했다. 이런 노력으로 주변 녹지 등에서 발생한 신선하고 차가운 바람이 도시로 내려와 바람길을 통해 오염된 공기를 멀리 이동시킴으로써 오염 물질을 30% 이상 제거하는 효과를 보았고 ‘공업 도시’에서 ‘녹색 도시’라는 명칭을 얻 게 되었다. 바람길은 말 그대로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다. 이 바람길에 있는 건물은 바람 자체의 풍향과 풍속을 바꾸어 ‘빌딩풍’이라 불리는 다 양한 형태의 바람을 만드는데, 문제는 이 바람들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이 런 ‘빌딩풍’에 대한 법적인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대책 또한 아주 부족한 실정이다. 초고층 건물의 수와 높이가 최근 회자되고 있는 ‘명품 도시’의 상징이듯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들에서 초고층 건물이 경쟁적으로 지어지고 있다. 과연 그런 모습이 우리가 바라는 도시일까? 도시가 먼저 숨을 쉬어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우리도 숨을 쉴 수 있다. 이제라도 바람길을 고려하여 건물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 글 | 이영욱(운영위원, 공학박사, (주)지디엔지니어링 상무)

by Lee, Youngwook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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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4호 | 와이드워크 땅의 공간, 땅의 집 김인철의 <헤이리 마당 안 숲>, <광주 신현리 주택>

graphic © Eum Moonyoung

KIM IN CHEURL + (주)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Archium

강남역과 논현역 사이 네거리, 벽체에 구명이 숭숭 뚫린 랜드마크 하나가 섰다. <어번 하이브(Urban Hive)>, 우리말 로 도시의 벌집쯤 되는 이 건물의 설계자는, <웅진 씽크빅 사옥>으로 지난해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아르 키움의 김인철 교수다. 그동안 설계해 왔던 프로젝트보다 다소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잇달아 발표하고, 무게를 두었 던 ‘공간’적인 작업이 아닌 랜드마크적인 형태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와이드>는 그의 변화를 감지했다. 이쯤에서 최 근의 작품들을 통해 건축가 김인철의 요즘 생각을 들어보고, 큰 변화와 작은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진행 | 정 귀원(편집장), 사진 | 이병일(건축 사진가, LEE STUDIO)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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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no.4 : WIDE WORK 김인철 | <헤이리 마당 안 숲> Heyri Residence Kim In Cheurl + Archium

WIDE WORK : KIM, IN CHEURL


↑ <헤이리 마당 안 숲> 길가에서 바라본 마당 안 숲. ↑↑ <헤이리 마당 안 숲> 본채 식당. → <헤이리 마당 안 숲> 본채 안방. 노출 콘크리트 벽의 긴 창이 이채롭다. ← <헤이리 마당 안 숲> 별채에서 본채 계단실을 보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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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리 마당 안 숲> 계단실. 다시 두 개의 동으로 나뉜 본채를 연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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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KIM, IN CHEURL


↑ <헤이리 마당 안 숲> 경사지를 살리면서 포기했던 마당을 지붕 위에 만들다.

↑ <헤이리 마당 안 숲> 동판 마감한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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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리 마당 안 숲> 1층 평면도. ↙ <헤이리 마당 안 숲> 2층 평면도. ↗ <헤이리 마당 안 숲> 좌측 입면도. → <헤이리 마당 안 숲> 정면도. ↘ <헤이리 마당 안 숲> 우측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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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KIM, IN CHEURL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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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no.4 : WIDE WORK 김인철 | <광주 신현리 주택> Sinhyunri Residence Kim In Cheurl + Arch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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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지붕층의 옥상 정원. 마치 작은 성을 연상케 한다. ↑↑ <신현리 주택> 식당에서 바라본 거실. 화장실이 숨겨진 매스가 호기 심을 불러일으킨다. → <신현리 주택> 데크가 딸린 방. 모든 방들은 데크를 가진다. ← <신현리 주택> 전경. 집이 45도의 땅을 타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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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수직, 수평 이동을 위한 내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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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경사진 정원, 이미 나무들이 베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시 조성하였다.

↑ <신현리 주택> 입구 부분. 집의 게이트로서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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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1층 평면도. ↙ <신현리 주택> 2층 평면도. ↗ <신현리 주택> 3층 평면도. → <신현리 주택> 우측면도. ↘ <신현리 주택> 정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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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인철, 이번에는 또 뭘 해낼까? 집담회 | 김인철, 이용재, 이충기, 정수진

<헤이리 주택, 마당 안 숲>의 데크에서 커피 한 잔

ⓦ 이충기 |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려니 일어나기가 싫군요. 이 집은 산이 흘러 내려오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앞쪽에 길이 있고 뒤쪽으로 산이 있는 경우에는 산을 등지고 길을 향해 집을 앉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은 산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 김인철 | 이 집을 보고 처음에는 실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일단 집 안으로 들어와서 산으로 열려 있는 것을 보면 매우 놀라지요. 사 진을 찍을 때도 산을 향한 쪽이 메인 뷰(main view)고요. ⓦ 이충기 | 하긴 길에 면해 있다고 다 그쪽으로 창을 내지는 않죠. 일단 집 안에 들어가 봐야 건축가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거예요. ⓦ 정수진 | 지형을 살려 땅과 나무를 중심에 두고 집을 가장자리에 배치한 것도 흥미로워요. 땅의 경사도가 한 20도 되나요? ⓦ 김인철 | 네. 그쯤 되지요. 땅의 모습을 흩뜨리지 않고 집을 놓으려고 했어요. 안채와 별채로 나누어 건물을 가장자리에 두고 한 층을 띄워 두 채를 연결했습니다. 땅에 묻는다는 개념으로 집은 지면에 묻히기도 하고 때로는 드러나기도 하지요. ⓦ 정수진 | 지면에 묻히는 층의 지붕은 마당으로 쓰이는 건가요? ⓦ 김인철 | 경사지를 살리면서 포기했던 마당을 지붕 위에 만들었지요. 넓은 판을 만들고 다시 흙을 덮어 산과 이어지게 했어요.

← <헤이리 마당 안 숲> 데크. → <헤이리 마당 안 숲> 20도 경사의 지형을 그대 로 살린 자연 정원.

김인철은 홍익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엄덕문 문하를 거쳐 인제건축을 개설했고, 1995년 아르키움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김옥길 기념관(1998), 행당동 동사무소, 펼쳐지는 집(2002), 휘어지는 집(2003), 마당 안 숲(2006), 웅진 씽크빅 사옥(2006) 등으로 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건축문화대상, 김수근문화상, 아시아태평양문화 건축디자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르키움의 파트너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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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안 숲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통일동산 내 1652-386번지 | 지역 지구 : 관리 지역 | 해당 용도 지구 : 개발 진흥 지구 | 용도 : 다가 구용 단독 주택 | 대지 면적 : 646.40㎡ | 건축 면적 : 196.30㎡ | 연면적 : 326.72㎡ | 건폐율 : 30.37% | 용적률 : 40.23% | 규모 : 지하1층, 지상2층 | 구조 : 철근 콘크 리트조+철골조 | 외부 마감 : 노출 콘크리트, 투명 복층 유리, 동판 돌출 이음 | 내부 마감 : 도배, 온돌 마루 | 주차 대수 : 2대(법정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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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신현리 주택>의 거실에서

ⓦ 김인철 | <경기도 광주 신현리 주택>(이하 신현리 주택)은 이미 공사가 시작된 상태에서 집주인이 헤이리의 집들을 보고 다시 설계를 의뢰한 주택입니다. 건축주는 헤이리의 집들을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특히 <마당 안 숲>을 보고 제게 연락을 하셨죠. <마당 안 숲>이 20도 경사의 집이라면, <신현리 주택>은 45도의 경사를 가지고 있어요. 전원 주택 단지로 조성되었다는 대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미 나무들은 다 베 어지고 흙더미만 쌓여 있더라고요. 경사진 땅에 5m의 축대를, 그것도 3m, 2m로 나누어 쌓아 평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45도의 땅을 타고 올라가는 집이 다시 계획되었죠. 헤이리의 집이 땅에 박힌 듯이 들어간 형상이라면, 이 집은 땅을 올라타고 앉혀진 형태지요. 또 다른 점은 <마당 안 숲>이 원래 있던 나무를 살렸다면, 이 집은 이미 나무들이 베어졌기 때문에 다시 조성했다는 거예요. ⓦ 정수진 | <마당 안 숲>은 자연이 너무 강해서 집이 제대로 인지되기 힘들었어요, 실외에서도 실내에서도. 특히 실내에서는 줄곧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에 반해 <신현리 주택>은 절제되어야 할 곳과 정리되어야 할 곳을 명확히 구분을 하신 것 같아요. 연속된 실내 공간과 사이사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실외 풍경들이 아주 다양한 볼거리를 연출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집이 훨씬 좋습니다. 전자가 숨기지 않고 보여 주는 집이라면 이 <신현리 주택>은 아주 조금씩 비밀스럽게 속삭이는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평면을 보는데 현관과 거 실을 잇는 둔각부로 처리된 화장실 자리가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리는 거예요. 근데 막상 와서 보니까 참 재미있게 처리하셨네요.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호기심도 나겠고요. 역시 그림으로 그 실재를 말하기는 어려워요. ⓦ 이충기 | 경사를 맞추려고 해서 그런 것인지 뒤쪽 옹벽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한편으론 뒷산으로도 창이나 가벽을 좀 열어 놓았으면 어땠을 까 싶은데요. ⓦ 김인철 | 주말에는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뒷산을 많이 오고 가죠. 집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좀 강화해 준 겁니다. 사실 이 집의 고민은 주변의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앞으로 뒤쪽으로 집들이 계속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 이충기 | 그래서인지 <마당 안 숲>보다 <신현리 주택>이 훨씬 도시적인 냄새가 나는군요. <마당 안 숲>이나 <신현리 주택> 둘 다 경사지이지 만, 집단 단독 주거지 안에 있어 더 도시적인 환경이라 할 수 있는 <마당 안 숲>보다 <신현리 주택>이 훨씬 도시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배치 나 평면 구성이 도심에 집을 지을 때의 동선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고, 경사 중정도 전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도심 주택의 중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벽을 높이 올린 것도 주변의 보기 싫은 환경을 가린다는 측면에서 도시적인 느낌을 주고요. ⓦ 이용재 | 제일 아래 레벨의 방에서 밖을 내다보니까 집장사 집들이 즐비하던데요. ⓦ 김인철 | 만약 축대를 쌓아서 땅을 평지로 만들고, 그 위에 집이 정면으로 딱 앉았다면 시야에 빨간 벽돌밖에는 안 보였었겠죠. 지금은 사이사 이로 바깥 풍경들이 언뜻 보일 정도입니다. ⓦ 이충기 | 주거에서 마당이나 정원도 독립된 공간이고, 그래서 당연히 프라이버시(privacy)의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마당 안 숲>은 앞쪽이 2층 매스로 가려져 있지만 마당의 역할을 하는 경사 지형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누구든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하고 시 각적으로 열려 있어 정원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요. 반면, <신현리 주택>은 도로에서 접근도 어렵고 시각적으로도 노출 방향이 다 른 쪽이어서 마당 역할을 하는 정원이 독립된 느낌처럼 아늑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 정수진 | <신현리 주택>도 많이 열린 집인데, 절묘한 배치 때문에 외부인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것 같아요. <마당 안 숲>이나 <신현 리 주택> 모두 주거인데, 두 작품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있어요. 주거로서 외부에 대응하는 프라이버시의 보장은 확실한데 가족 간의 프라이버시 는 이색적으로 해결하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방과 방이 마주보면서 같은 마당을 사용한다던지 하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다른 견해가 있으 신지요?

ⓦ 김인철 | ‘프라이버시’란 말은 우리말로 번역이 어려운 외래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서비스(service)나 스트레스 (stress)처럼요. 과거 우리에게 그런 개념이 존재했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한옥은 밖에서 헛기침만 해도 안에서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구조지요. 이런 공간에서 어떻게 아이를 만들었을까, 궁금하지 않나요? 내 생각엔 뽕나무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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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거실과 주방 및 식당. 거실 창으로 정원의 풍경이 들어온다. ↓ <신현리 주택> 집이 45도의 땅을 타고 올라간다.

경기도 광주 신현리 단독 주택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506-40번지 외 1 | 지역 지구 : 관리 지역 | 용도 : 단독 주택 | 대지 면적 : 760.00 ㎡ | 건축 면적 : 201.40㎡ | 연면적 : 230.30㎡ | 건폐율 : 26.50% | 용적률 : 30.30% | 규모 : 지상3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외부 마감 : 노출 콘크리트(쪽널), T24 복층 칼라 유리 | 내부 마감 : 무광 흰색 도장, 온돌 마루 | 주차 대수 : 1대(법정 1.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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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물레방앗간에서 만들었다고 보는데….(웃음) 언젠가 어떤 도예가의 집을 설계할 때였어요. 안주인이 도어 핸들의 잠금 장치를 빼달라는 거예요. 자식들이 툭하면 들어가서 문 잠그고, 그래서 부모의 권위가 안 선다고. 대신 아이들한테는 들어갈 때 노크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저런 경험에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이 땅의 건축 형식에서 벽이라는 것은 얇은 종이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막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가린다는 정도의 개념이라는 거죠. 가려야 할 일이 생기면 커튼을 치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가족인 것이겠지요. ⓦ 이용재 | 건축가들이 그런 것도 가르쳐야 하나요? ⓦ 김인철 |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제공만 했을 뿐이고, 나머지는 사는 사람의 문제일 겁니다. ⓦ 이용재 | 그래도 의견을 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 김인철 |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불편하다는 사람은 없었어요. 불편했다면 사는 사람들이 이의 제기를 했겠죠.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 지만, 아예 확 열어버리면 오히려 프라이버시가 보호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중간하면 오히려 관음증을 발동시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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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데크에서. ↓ <신현리 주택> 데크가 딸린 방. 모든 방들은 데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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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리 마당 안 숲> 외장. ↘↘ <헤이리 마당 안 숲> 외장.

두 집의 재료를 비교하며

↘↘↘ <신현리 주택> 외장.

ⓦ 이충기 | 두 집을 보면서 <신현리 주택>이 진화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재료적인 측면에서 말이죠. 재료라고 하지만, 재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드러나는 공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같은 노출 콘크리트인데도 <마당 안 숲>이 매끈하고 평평한 것이었다면, <신현리 주택> 은 송판 노출 콘크리트를 써서 전체적으로 전원 주택에 어울리는 다소 거칠고 자연스러운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 다. 사실 <마당 안 숲>은 전원 주택인데도 도시의 그것처럼 너무나 정확하고 매끈한 재료와 마감이어서 좀 실망했거든요. 도시의 한 주택을 전원 에 옮겨 심은 듯, 마치 자연과 건물이 따로 노는 것 같았습니다. ⓦ 김인철 | <마당 안 숲>을 할 때는 땅에 묻는다는 개념 하나만을 생각했지요. 나머지는, 그러니까 외벽 마감이나 지붕 동판은 사실 많이 고민하 지 못한 부분이에요. 공사비의 한계도 있었고, 테크닉에 대한 고민 또한 많이 못했죠. 노출 콘크리트 거푸집은 유로폼이구요. 처음에 가벼운 집을 염두에 두고 얇은 지붕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 동판으로 드러났지요. 재료를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쉽고 편하게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도 불만이긴 해요. <신현리 주택>은 송판을 썼지만 자세히 벽을 들여다보면 이어치기 한 자국을 볼 수 있어요. 한 번에 쳤어야 했는데, 이 집에서 도 공사비의 한계라든가, 시공자들의 능력의 한계가 있었죠. ⓦ 이충기 | 재료와 관련해서, 건축 실무를 하면서 저 역시 반성하는 부분이지만, 건축가들이 재료에 대해 연구와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습 니다. 딱히 한국적인 건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부재한 것도 건축가들이 재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전통적인 재료, 즉 돌 이나 나무를 이용하여 건축가들이 앞장서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죠. 어떻게 보면 노출 콘크리트는 디테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재료인지라 설계보다는 시공에 그 운명을 맡겨야 될 정도로 건축가한테는 굉장히 편한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을 비롯해서 많은 건축 가들이 노출 콘크리트를 즐겨 쓴다고 보는데요. 다른 재료를 생각해 보시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 김인철 | 건축은 건축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이나 유럽의 건축 작품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건축가들에게 끊임없이 제공되는 재료나 기술 정보들이에요. 건축가들은 감각에 따라 재료의 선택만 하면 되지 요. 그 디테일들 역시 재료 생산자들이 다 해결해 주고요. ⓦ 이용재 | 20년 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긴데 여전히 그렇습니까? ⓦ 김인철 | 요즘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어요. <김옥길 기념관>을 할 때였는데, 투박하고 심플한 전기 스위치 플레이트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파트에 수십 만 개씩 공급되는 일반적인 플레이트는 생산하지만 그런 특별한 플레이트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청계천 자재상들의 답변이었죠. 겨우 찾은 스테인리스 플레이트에 잡철 공사하는 친구가 레이저로 구멍을 일일이 뚫어 줘서 붙일 수 있었어요. 그 나마 <김옥길 기념관>의 경우는 건축주가 건축비에 대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신현리 주택>도 전기 스위치 플 레이트는 외제를 썼습니다. 심플한 걸 찾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디자인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또 다른 예로, 나도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알 아보고 써보려고 한 재료가 폴리카보네이트예요. 하지만 디테일 해결을 아무도 못 해주는 거예요. 현장 인부에게 부탁해서 이리저리 가공을 해보 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는 포기하고 마는 거죠. 아무튼 건축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 에 재료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앞서 말한 이유들로 가장 안전한 방법을 가진, 내가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하게 되 는 것이에요. 최근에 준공한 <어번 하이브>도 처음 아이디어는 목재 혹은 스틸의 루버를 내려서 건물에 발(주렴)을 드리우는 방법이었는데, 디테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어찌어찌해서 겨우 찾아냈더니 이번에는 또 공사비에서 걸리는 거예요. 싼 기성품 대신 루버 를 비행기 날개 모양으로 제작해야 하니까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죠. <어번 하이브>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결정적인 이유도 모험보 다는 안전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 이용재 |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그런 태도를 견지할 생각이신지요? ⓦ 김인철 | 비단 재료뿐 아니라 행정 등 모든 것들이 건축을 위해 서포트(support)가 되지 않은 이상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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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 공간에서 영역으로

ⓦ 이용재 | 두 집은 조형성보다 땅과 집과의 관계가 강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 김인철 | 땅이 가지고 있는 공간 자체는 건축이 만드는 공간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공간성이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건축이 만드는 공간, 특히 우리 공간에 대한 규명이 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제 생각엔 현대 건축에서의 공간은 이너스페이스(inner space), 즉 내부 공간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싶어요. 구축되어서 생성된 공간을 공간이라고 한다는 거죠. 보통 우리는 그것을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 아우터 스페이스(outer space)라고 하여 내외 구분을 하는데, 저는 그러한 이분법적인 설정 자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전통 건축은 내외 구분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요. 그렇다고 우리 전통 건축의 대청마루나 툇마루 등을 절충 공간, 완충 공간이란 애매한 표현으로 규정하는 것도 매우 궁색한 논리라고 봅니다. 그 역시 안팎의 이분법적 구분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죠. <웅진 씽크빅 사옥> 마당에서 오프닝 행사를 할 때가 기억나는군요. 마당에 자리한 참석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이 장소가 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밖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통상의 상식으로는 지붕이 없으니까 밖인데, 어떤 행위가 일어나고 있고 사방으로 실내 공간들이 둘러싸고 있다는 점에서는 안이기도 한 거예요. 이처럼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지요. 안팎이 통합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봅니다. 이처럼 이분법적이 구분을 배제하고, 땅이 품고 있는 공간을 조절하는 행위로 건축을 바라보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구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땅 자체가 공간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땅의 공간은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의 범위가 되고, 그것은 바로 영역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건축에 어울리는 말도 공간이 아니라 ‘영역’이겠구요. 요즘 특강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주제로 삼는 것이 ‘공간에서 영역으로’에요. 굳이 영문으로 표기하자면 도메인(domain)정도가 될까요? 집을 하나 지으면 그 집의 어떤 힘이 차지할 수 있는, 확장될 수 있는 한계까지를 내 땅으로 보자는 겁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거처했다는 독락당(獨樂堂)을 보면, 독락당의 영역은 대지 경계선의 영역이 아니라 그 대지가 가지고 있는, 관계하고 있는 모든 면의 확장된 영역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옆의 자계(紫溪)가 독락당의 땅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거기에 계정(溪亭)을 두어 자계를 독락당의 영역으로 만들고 있지요. 김봉렬 교수가 말하는 ‘집합’의 개념도 결국은 영역의 이야기가 아닐까 해요. 그 영역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차이 때문에 우리는 같은 유형, 같은 형태의 전통 건축들을 자연스럽게 구분해낼 수 있는 거구요. 결국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방법론이란, 땅 위에 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이 아니라 땅이 가지고 있는 공간에 건축이 놓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건축이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은 땅을 굉장히 무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게 아니라 건축이 땅에 끼어들어가는 거지요. 땅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빌리는 느낌으로 말이죠. 경사도가 20도, 45도의 주택에서 이미 그러한 방법론이 적용되었고, 아직 허가가 나지 않은 춘천의 60도 경사지에 계획된 것도 거의 경사지를 건드리지 않고 집을 얹은 형태입니다. 또 가평에 <오버 더 마운틴>이란 이름의 펜션 단지를 계획하고 있는데, 남쪽으로만 트인 말굽형 분지의 대지에 집들을 묻는 콘셉트에요. 존재감이 보이게 집의 일부만 들어 올렸지요. ⓦ 정수진 | 대지의 조건은 프로젝트마다 매번 다를 것이고 그 대지를 해석하는 방법도 그 프로그램에 따라 각기 다른 해결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 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내^외부 공간, 중성적인 공간 등등 공간의 명칭이 부여된 것은 그들 공간이 가지는 속성이 대지나 프로그램과 상 호 연동하여 생성된 필요의 공간이지 않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외 공간의 구분을 없애거나 영역의 확장을 유도하시려는, 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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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리 마당 안 숲> 배치도. ↓ <헤이리 마당 안 숲> 숲에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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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생각을 조금 더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역도 결국은 경계의 한 속성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아닌가요? ⓦ 김인철 | 서양의 건축과 우리 건축의 가장 큰 차이는 조적조과 가구조의 차이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서양의 건축은 영역들을 디파인 (define)해 나가는 방식이고 우리는 영역을 설정하는 방식이란 말이죠. 우리 건축을 만들고자 하는 입장에서의 방법론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 해야겠지요. <신현리 주택>의 경우, 평지를 만들어서 그 위에 멋있는 공간을 계획하는 것이 더 구축적인 방법이겠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의 방법론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런 방식이 아니었을까, 제안을 해본 거예요. ⓦ 이충기 | 부연하자면, 오늘 본 집들도 분명히 대지의 경계는 있어요.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없다고 볼 수 있죠. 저 너머 산까지가 내 것인 거예 요. 영역도 집이 들어서는 땅의 지형이나 장소에 따라 범위가 결정되지요. 한편으로는 건축가의 고민, 즉 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영역 또 한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겠고요. 그러한 측면에서 앞과 뒤쪽으로만 열려 있는 <마당 안 숲>은 다양한 시점의 <신현리 주택>보다 불리한 조건이었 을 것 같아요. 아마도 <신현리 주택>에 영역의 개념을 더 잘 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드네요.

↖ <가평 행현리 다가구 주택> 모형. ↑ <춘천 가일리 다가구 주택>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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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리 주택> 배치도. ↓ <신현리 주택> 지붕층의 옥상 정원. 마치 작은 성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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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에서 벗어난 지 오래

ⓦ 정수진 | 교수님의 예전 작업들은 형태적인 매트릭스에 주안점을 많이 두신 것으로 봤는데요, 제 생각엔 <김옥길 기념관> 이후에는 굉장히 공 간적인 작업으로 전환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 김인철 | 우리 전통 건축은 왜 목조를 선택했을까요? 돌은 지천에 깔렸고, 벽돌도 도자기 굽는 기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집을 짓자면 평지를 만들어야 하죠. 그런데 우리 나라의 땅은 대부분 경사져 있고, 이것을 평지로 만들려면 방법은 하나예요. 높은 쪽의 땅을 깎아서 낮은 쪽의 땅을 메워 평지로 만드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한쪽은 절토고, 한쪽은 성토가 되는데, 하나의 건물을 앉히는 지반 조건이 달라요. 그래서 우리 나라는 옛날부터 땅 다지는 기법이 발달되어 있는 거예요. 성토한 땅을 절토한 땅과 똑같은 지내력으로 만들려면 메우고 다져야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다져도 원래 땅만큼의 지내력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만약 조적조로 성토 반, 절토 반의 땅에 집을 짓게 되면 한쪽이 주저앉는 부동침하가 생기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일단 가벼운 재료를 써서 가벼운 건축을 해야 하고, 또 한 쪽 지반이 꺼지더라도 금방 보수가 가능하거나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무를 엮어서 틀을 짜놓으면 한 쪽이 무너지더라도 조금 삐걱은 하겠지만 무너지지는 않죠. 목조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경사지인 땅의 조건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와요. 또 성토를 하게 되면 성토한 면에 축대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기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지요. 평지인 연변의 조선족 마을의 한옥을 보면 기단이 없다고 합니다. 땅에 바로 주춧돌을 놓고 집을 지어 올린 형태인 거죠. 그런데 목조 가구식은 구사할 수 있는 형태가 한정되어 있어요. 건축의 유형을 보면 건물의 프로그램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나오지요. ‘form follow function’이란 말처럼. 그런데 우리 전통 건축은 주택이나 학교, 사찰, 궁궐 등이 다 똑같은 형태예요. 목조이기 때문에 다 똑같은 거예요. 형태는 아웃 오브 컨선(out of concern), 즉 관심 밖인 거죠. <웅진 씽크빅 사옥>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뭐냐면, 파주 출판도시의 지침에 의해 형태가 바위 유형으로 정해진 것에 대한 의견이었어요. 창작을 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았느냐는 거지요.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규정이 굉장히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어요. 공간을 고민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건축주와 의견 조율도 훨씬 용이했고요. 가장 조율하기 힘든 것이 형태 아니겠어요? 일단 도시를 만드는 원칙에 동의한 이상 규정을 지켜야 하므로 공간에 관한 것만 이야기하자고 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전통 건축도 땅의 조건 때문에 목조가 되었고 또 목조가 되다 보니 형식이 정해졌고 그 형식으로 구사할 수 있는 형태라는 것 또한 뻔하고, 그러다 보니 형태보다는 공간에 더 집중한 것 아닐까요? ⓦ 이충기 |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교수님의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갈 것입니다. 제 경우도 형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사람들은 형태에 우선 관 심을 가져 주지요. ⓦ 김인철 | 최근 강남역과 논현역 사거리에 준공된 <어번 하이드(Urban Hive)>도 구조가 먼저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 이용재 | 제 블로그에 그걸 올려놓았는데 사람들이 건축가 김인철이 한 줄 몰랐대요. 경지에 오르셨구나, 생각했죠. ⓦ 이충기 | <행응 어린이집> 할 때 변화가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건축사>지에 이일훈 선생과 대담한 내용이 ‘탈각의 몸짓’이란 제목으로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건축사, 1997.10) 그동안 형태적이고 조형적인 작업을 하다가 <행응 어린이집>을 계기로 공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변화 에 대한 지적을 이일훈 선생이 하니까, “내가 이제야 공간에 대한 이해와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이후 계속 공간 작업을 해 오다가 <김옥균 기념관>을 기점으로 미니멀한 경향을 보이셨고, 최근 <어번 하이브>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건축가 김인철의 건축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지요. 이번에는 다시 형태적인 것으로 돌아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형태가 아니라 구조라고 하니 의외네요. 아무 튼 그것이 형태든 아니든 변화하는 모습은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자유스러움이랄까, 별로 구애받지 않는 태도가 좋습니다. 재료나 형태를 끝까 지 못 버리고 집착하는 사람도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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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 씽크빅 사옥> 전경. 사진 아르키움 제공 ↓ <웅진 씽크빅 사옥> 마당. 사진 아르키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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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가 우선인 최근작 <어번 하이브>

ⓦ 김인철 | <어번 하이브>는 형태를 우선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형태는 단순한 박스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일반적인 커튼월로 계획하여 허가까지 받았었는데, 사용자들과 땅 주인 사이의 갈등 때문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죠. 사용자들의 임대가 만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약 6개월 남짓이었어요. 그 때 ‘스킨’을 주제로 한 특강을 듣게 되었는데, 나 역시 본질인 공간보다 껍데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구나, 싶었죠. 일반적으로 건축 행위는 골조를 만들어 프레임을 형성해 놓고 거기다가 옷을 입히는, 스킨을 조작하는 방식이지만 스킨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뒤집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골조가 밖으로 나오고 스킨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죠. 골조를 밖으로 꺼내다 보니 자연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가 소재로 결정이 되었는데, 그걸로 17층을 짓는다고 상상하니까 좀 끔찍한 거예요. 작은 집 하나를 노출로 하는 것도 어려운데 말이죠. 그러다가 하루는 새로 뚫린 대관령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100m 가 넘는 교각들을 보게 되었어요. 아주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였는데, 가만히 보니까 스틸폼을 썼더라고요. <디보이드>에서 스틸폼을 쓴 적도 있고 해서 자신있게 노출 콘크리트로 결정했지요. ⓦ 이용재 | 재설계한 것일 텐데, 그러면 설계비는 손해가 아닙니까?

ⓦ 김인철 | 당연하죠. 건축가가 바꾸는 것이니 추가 설계비를 못 주겠다고 하지요. 뭐, 좋다고 했어요. 그보다도 노출 콘크리트로 정리한 것이 과연 잘 한 일인지가 더 고민이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는 무미건조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다가 양감이 주는 부담스러운 이미지가 있지요. 더구나 도심 속에 들어서는 건데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더라고요. 그래서 무게를 좀 줄일 수 있고, 소프트하고 밝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어요. 그 결과로 지금처럼 구멍을 뚫게 되었지요. 스펀지처럼 볼륨은 있지만 가볍게 보이고자 한 것이에요. 색도 조금 밝은 회색을 지향했고요. 콘크리트의 철근 구조는 수직 수평의 네모 교차가 아니라 사선으로 마름모꼴로 교차합니다. 다이어고날(diagonal)로 구조 응력을 받게 되니 그 사이에 뚫을 수 있는 것은 동그라미밖에 없지요. 105cm 지름의 동그라미 3371개가 만들어진 배경이에요. 이처럼 벽 자체가 구조체가 되는 것을 먼저 생각한 것이지 형태를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잠깐 쉬어가기 ⓦ 이용재 |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햇수로 얼마나 되었나요? ⓦ 김인철 | 만 10학기 된 것 같군요. ⓦ 이용재 | 몇 명이나 가르치셨는지? ⓦ 김인철 | 첫 졸업시킨 학생이 4명입니다. ⓦ 이용재 |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학생이 있나요? ⓦ 김인철 | 1명 정도. ⓦ 이용재 | 근데, 그 일을 왜 하십니까? ⓦ 김인철 |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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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번 하이브>전경. 사진 아르키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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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주와 좋은 건축

ⓦ 이용재 | 두 집의 건축주들은 건축가를 신뢰하는 것이 남다른 것 같은데요, 건축주의 수준이 높으면 건축의 완성도 역시 높아지지 않나요? ⓦ 김인철 | 자꾸 전통 건축 이야기를 하니까 마치 그 분야의 학자가 된 것 같은데, 강의를 하면서 정리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사실 한국의 전 통 건축은 목조 가구식이고, 그래서 형태가 없단 말이죠. 디자인이라는 것도 집을 어디에 어디를 보고 몇 칸을 놓을 것인가가 다입니다. 소위 말하 는 아키텍트(architect)라는 게 우리 건축에는 없었다는 거죠. 결국 집주인의 안목과 식견에 의해 집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한 전통 이 계속 우리의 DNA 속에 있어서 우리 나라 건축주들은 건축가들을 인정하지 않나 봅니다.(웃음) 그래서 좋은 건축주를 만나는 것이 좋은 건축을 위한 중요한 요인이 되어 버렸어요. 다행히 <김옥길 기념관>이나 <웅진 씽크빅 사옥>, <헤이리 마당 안 숲>, 그리고 <신현리 주택>까지도 건축주 가 건축가에게 모든 걸 위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생각을 솔직히 말했을 뿐인데 건축주들이 좋아해 줘서 가능했어요. ⓦ 이충기 | 수준 높음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요? 건축가를 인정하는 수준 높음인지, 아니면 아는 것이 많은 수준 높음인지. 후 자의 경우는 간섭이 심할 수도 있겠죠. ⓦ 김인철 | 한때 건축가들이 ‘우매한 대중’을 놓고 울분을 토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어요. 대중들은 굉장히 영악해 요. 아는 것도 많고 본 것도 많고. 오히려 건축가들의 실력이 모자랐던 거죠. 이런 말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건축사, 건축가라고 자처하는 사람 들이 1,000명이 있다 합시다. 과연 그 속에 진정한 건축가는 몇 명이나 될까요? 학생들한테도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는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고, 또 다른 하나는 설계 기술을 구사하는 건축가가 그것이죠. 다시 말하면, 단순히 설 계를 할 줄 아는 것 때문에 건축가인 사람과 자기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지요. 그 중 내 생각엔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는 1%고, 나머지 99%는 설계 기술자인 것 같아요. ⓦ 이충기 | 현재 건축사와 라이센스(license) 없이 건축을 하는 사람을 통틀면 만 명 정도 있는데 그 중 백 명이라는 이야기네요. ⓦ 김인철 | 내게 가장 혹독한 비평가는 집사람이에요. <김옥길 기념관> 준공식을 하는 날, 한 번도 칭찬하지 않던 집사람이 내게 잘했네, 그러더 라고요. 그러면서 조금만 더 쓰지 그랬냐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맨 끝 지붕 하나에 변화를 주지 그랬냐는 거였어요.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고. 아무튼 대중들은 좋은 건축에 감동을 하죠. 왜 좋은지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좋아할 수 있어요. 잘 만들면 설명 같은 건 필요 없지요. 최근 <어번 하이브>가 준공 전에 일반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어요. 나의 건축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죠. ⓦ 이용재 | 건축 인생 30년사에서 말씀입니까? 작품 수가 몇 개인데요? ⓦ 김인철 | 한 200개 되죠. ⓦ 이용재 | 200개 중에서 <어번 하이브>가 가장 마음에 드나요? ⓦ 김인철 | 그건 아니에요. 입지적인 위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 이용재 | 저는 책을 쓰면서 독자들의 만족보다는 나의 만족이 더 중요해요. 사람들이 뭐라 그러든, 책이 팔렸든 안 팔렸든 간에 내가 만족할 때 까지 책을 쓸 겁니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 김인철 | 물론 제가 만족할 때까지 할 거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건축에서 내가 만족하는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요? ⓦ 이용재 | 르 코르뷔지에라면. ⓦ 김인철 | 아니. 그도 만족 못했을 거예요. 타인이 인정하는 것과 자신이 인정하는 것은 다르지요. ⓦ 이충기 | 예전에 김수근 선생의 TV 대담을 본 적이 있어요. 지금까지 한 건물 중에 가장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작품이 뭐냐는 질문이었는데, 선생께서는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거라고 대답하셨지요. ⓦ 이용재 | 자신의 작업에 만족하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김인철 | 그럼 끝나는 것 아닐까요? 작업 동기가 사라지는 거죠. ⓦ 이충기 |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만족할 수는 있을 거 같아요. 나는 여기까지구나,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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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화하는 건축가

ⓦ 이충기 | 안도 다다오의 경우, 작은 규모의 건축을 설계하던 그가 유명세와 더불어 대형 건물 설계 의뢰를 받았고, 스케일이 커지면서 비례가 안 맞는 어설픈 건물들을 많이 설계했어요. 가벽 두께가 1미터가 넘는 경우도 봤으니까요. 아마도 안도에게는 발전에 대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규모나 장소가 달라지면 거기에 맞춰서 언어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언어를 커진 규모에 적용하다 보면 비례가 안 맞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교수님의 경우, <웅진 씽크빅 사옥>은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형태상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에 공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을 테고, <어번 하이브>도 구조를 스킨과 바꿔 보는 시도 등을 했기 때문에 반응을 얻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변화의 시도들이 김 인철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좋은 평가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는 데 있고요. 그는 골자가 되는 언 어는 유지하되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한 건축가지요. ⓦ 김인철 | 내가 나를 모방하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신현리 주택>의 건축주는 헤이리의 내 작품을 보고 집을 의뢰했으니 <마당 안 숲>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요. 처음에는 나도 같은 경사지 주택이란 측면에서 <마당 안 숲>의 포맷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그리다가 어, 내가 같은 설계를 또 하고 있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접고 말았지요. 새로운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결국에는 경사가 더 급하니까 올라타자, 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시 스케치를 하게 된 거예요. 건축계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두 가지인 걸로 알고 있어요. 생전의 장세양 씨가 “형은 항상 성(constancy)이 없다”라는 이야길 자주 했지요. 그 때는 조형에 집착하던 시기였어요. ⓦ 이충기 | 그 때문에 교수님에 대한 오해가 많았던 것 같아요. ⓦ 김인철 | 그 시기의 작업들은 일종의 탐색전 같은 거였지요. ⓦ 이용재 | 알고 한 작업들인가요? ⓦ 김인철 | 알고는 있었지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내가 배운 건축의 방법론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말 이죠. 또 하나의 평가는 민현식 씨의 말을 빌려 설명될 수 있겠는데요, 그는 나를 두고 다이달로스(이카루스의 아버지) 같다는 표현을 썼지요. 못 만드는 게 없다는 거죠. 뭐, 재주는 좋은데 내용이 없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웃음) 어쨌든 할 수 있는 걸 다해 보고 나서 <김옥길 기념관>과 < 행응 어린이집>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그 때 비로소 ‘형태는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 이용재 | 그러한 탐색전, 연습 기간이 스승이 없어서 더 오래 걸린 것은 아닐까요? 졸업하고 김수근 사단으로 들어갔더라면 연습 기간이 좀 짧 아지지 않았을까요? ⓦ 김인철 : 어차피 독학 아니었을까요? 우리 세대의 건축가들은 거의 독학을 했지요. ←← <신현리 주택> 땅을 올라타서 앉혀진 집은 데크로 된 통로를 따라 이 어진다. ← <신현리 주택> 거실과 주방 및 식당. 거실 창으로 정원의 풍경이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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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항상성에 대해

ⓦ 정수진 | 교수님의 대표 작품으로는 <김옥길 기념관>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 발표하신 자료를 보면서 그 시기와 또 다른 언어를 보여 주 는 사실에 무척 놀라고 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얼마 전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칸영화제 60주년을 기 념하여 ‘영화관’을 주제로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 35명이 3분짜리 스케치 33편을 찍어 완성한 영화입니다. 크레딧이 마지막에 올라가는 형식 으로, 누가 만든 것인지는 각 단편의 맨 나중에 알 수 있지요. 영화를 보면서 감독 맞추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군요. 그 짧은 3분이란 시 간조차도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기에 짧은 시간이 아니더군요. 우리 건축가들도 그들 각자의 색깔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건축가 김인 철에게는 그런 색깔이 없는 것인지, 지금 만들어 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색깔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인지,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작 업들을 보면서 잠시 이런 것이 궁금해집니다. ⓦ 이용재 | 어떤 건축가는 누구 작품인지 몰라야 달인의 경지에 오른 거라고 말하기도 하던데요?

ⓦ 김인철 | 나는 건축 작업이 회화나 음악 작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작 과정이 다를 뿐이지 처음 모티브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개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같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순수 예술의 장르에서는, 예를 들어 내가 빨간색 하나를 정해 놓고 계속 빨간색만 고수한다면 그 예술가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봅니다. 스스로 동기 부여가 안 되니까요. 이거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이거 해보면 재미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몰입이 되지요. 만약 빨간색으로 정했다면 직원들한테 빨간색이야, 하고 지시만 하면 그만일 겁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이 빠지면 의미가 없지요.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매년 강의 계획을 새로 짜게 되지요.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재미없는 일입니까? 언젠가 시립대학교에서 주야간 강의를 했던 적이 있어요. 주간에 했던 강의를 야간에 또 하는 것이 싫어서 다른 이야길 했더니 불평이 들어오더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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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하는 선배에게

ⓦ 이충기 | 이 땅의 건축가로 한국적인 건축에 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앞으로는 내공 있는 선배님들의 한국적인 건축을 위한 재료 연구 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루이스 바라간이 특별한 재료를 가지고 자기 나라의 풍토를 표현해 낸 것은 아니거든요. 코르뷔지에가 썼던 노출 콘크리트 를 안도는 유럽에서 동양적인 선(禪) 사상, 즉 지극히 일본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 것을 가지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해요. 제 자신도 못하면서 선배님들께 부탁드리는 것은 아직 저희들은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에요. 선배님들 정도라면 건축주와의 관계라든가, 기술적인 뒷받침 같은 시스템의 제약들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학자들이 할 일이라기보다는 설계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또 한 가지, 선배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설계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달라는 거예요. ⓦ 이용재 | 이것도 20년 전 이야기가 재탕되고 있군요.(웃음) ⓦ 이충기 |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 마을을 하면서 이 땅의 최고 건축가들이 설계비를 평준화시킨 데 대해 아직까지 후배들 사이에서 말이 오고 가고 있지요. ⓦ 이용재 | 선배들의 대사회적인 발언도 중요할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일간지 기자에게 이 나라 언론이 너무 건축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 건축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좀 많이 써주길 바란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답변이 왔어요. 그건 너희들이 안 한 거지 우리들이 안 한 것이 아니라고요. 건축가 들이 칼럼도 쓰면서 끊임없이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는 거죠. ⓦ 이충기 | 협회들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 발표도 안 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버렸어요. 아무튼 교수님을 비롯, 여러 선배님들께 부탁 하고 싶은 이야기로 흘렀는데요, 마지막으로 건축가 김인철의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궁금합니다.

ⓦ 김인철 | 나도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요. 나의 관심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그 곳으로 가겠죠. 하지만 주관은 뚜렷하다 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좋은 건축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건축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런데, 인생을 쭉 살다보니까 변 화의 리듬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요. 젊었을 때는 왔다 갔다를 자주 반복하고 높낮이의 차이도 많이 나던 것이 어느 단 계가 되니까 길이는 길어지고 오르내리는 폭도 좁아지는 형태로 변하더라고요. 지금의 나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폭이 좁은 단계에 있겠죠. 그래도 나는 계속 웨이브를 그릴 테고, 어느 순간 곡선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내가 간 날이 아닐까 싶어 요.(웃음) 300평을 하던 시대에서 3,000평의 시대—<웅진씽크빅사옥>이나 <한겨레 학교>, <어번 하이브> 등을 통해서—로 되었는데, 과연 30,000평의 시대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또 어떻게 변화할지 나도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매너리 즘에 빠졌다고 느꼈을 때 붓을 놓아야 하겠지요. 아무튼 범주화시키지 말고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이 이번에는 또 뭘 해낼까? 라는 시선으로요. ⓦ 정리 | 정귀원(편집장)

←← <헤이리 마당 안 숲> 거실 앞 데크. ← <헤이리 마당 안 숲> 숲에서 길 쪽을 보다. → <헤이리 마당 안 숲> 본채 거실, 숲의 풍경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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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워크 | 김인철 WIDE ARCHITECTURE no.4 : WIDE WORK Urban Hive Kim In Cheurl + Archium <어번 하이브> 벽 구멍 너머의 풍경.

이용재는 명지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 평론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경>의 기자를 지냈으며,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 살기가 이렇게 힘든 거예요?』 『딸과 ,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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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기는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한메건축을 운영하면서 가나안교회(2001,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인삼랜드휴게소(2001,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옥계휴게소(2005,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동다주택 등의 대표작을 내었다. 아울러 마을 가꾸기, 공공 디자인 등의 활동과 건축기본법, 건축사법, 건축교육인증원, 건축사등록원 등의 법^제도 관련 활동, 새건축사협의회 활동 등 사회^ 공공적 분야에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수진은 프랑스 건축사로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Ecole d’Architecture de ParisBelleville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현재 Architects & Partners edo 대표로 있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및 아산시 건축자문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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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김인철 건축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vs 모포시스morphosis

글 | 이충기(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나에게 김인철(존칭 생략. 교수가 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고 난 그에게 교수보다 선생이라는 칭호 가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은 몇 번의 뚜렷했던 건축적 변화와 시기로 기억된다. 첫 번째 변화 <행응 어린이집> ⓦ 1990년대 초 선배 건축가들이 4.3그룹을 결성하여 한국의 모더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 할 때에도 큰 변화 없이 자신의 ‘형태주의’를 고집하던 그가—아니, 그 때부터 그는 이미 건축에 있어서 공간의 의미에 대해 심 각하게 고민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1997년 <행응 어린이집>을 계기로 ‘공간’이라는 단어에 무게 중심 을 두기 시작하면서 그의 건축 언어가 크게 달라진 것을 그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 때부터 그는 공간 과 형태의 일의적 표현에 유리한 노출 콘크리트의 벽들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아마도 당시의 답사와 기행으로 접했던 르 코 르뷔지에와 안도 다다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케 한다. 두 번째 변화 <김옥길 기념관> ⓦ 이후 동사무소, 교회 등 소규모 공공 프로젝트로 공간적 작업을 지속하던 그가 1998년 <김 옥길 기념관>을 발표하면서, 내 기억으로는 두 번째 변화를 시도한다. 삼각형의 대지에 작은 오브제 같은 건축을 앉힌 것이 다. 이른바 미니멀리즘 건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그 건물을 필두로 그는 내부는 빛과 벽이라는 공간 언어를 추구하면서도 형태는 다시 조형적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이 시기의 형태 변화는 이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단순하고 절제된 하나의 매스 로 이루어진 조형성을 띠면서 미니멀한 미학적 요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약간의 비틀기와 엇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미니멀의 한계를 벗어나는 언어적 유희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변화 <웅진 씽크빅 사옥> ⓦ 세 번째 변화는 그동안 쌓은 명성으로 얻은, 아마 그의 최대 프로젝트로 기록될 2006년 의 <웅진 씽크빅 사옥>이다. 나는 안도 다다오가 소규모 건축에서 얻은 명성으로 얻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노출 콘크리트 라는 자신의 항상성에 집착한 나머지 비례와 균형감을 상실한 몇 개의 프로젝트를 기억한다. 안도가 시도했던 벽 두께가 1.5m 나 되는 거대한 형태적 요소의 가벽은 재료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그의 게으름 혹은 어리석음이었거나 오만한 독선이라 생 각했던 내게 김인철의 <웅진 씽크빅 사옥>은 또 다른 건축적 변화로 읽혀졌다. 규모가 커지면 구조도 달라지고 공간, 형태 모 두 다른 비례와 균형을 요구한다. 이 때 지금까지 형태 언어로 즐겨 사용하던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은 안도 다다오의 경우처 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인철은 노출 콘크리트를 과감히 버리고 공간 언어에 집착하여 반외부적, 반 내부적 공간들을 생산해면서 또 다른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가장 최근의 변화 <어번 하이브> ⓦ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의 변화로 오피스 빌딩인 <어번 하이브>를 들 수 있다. 그는 이미 진 행한 설계를 스스로 바꾸면서 이른바 노출 콘크리트의 외피로 구조를 삼고 유기적 형태주의를 구사하면서 커튼월 상업 건물 일색인 강남대로에 <교보빌딩>의 마리오 보타와 당당히 맞서서 토종 건축가의 위상을 뽐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형태가 아니 라 구조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형태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나쁠 것도 없을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또 다시 건축 시장 의 주목을 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말보다 작품이 앞서는 사람 ⓦ 지금까지 개괄한 김인철의 건축 편력에서 나는 모포시스(morphosis)적 성향과 메타모포시스 (metamorphosis)적 성향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다양한 형태—벽(노출 콘크리트)—솔리드 매스(유리, 노출 콘크리트)—유 기적 매스(구멍 노출 콘크리트) 등으로 외형적 변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고, 그의 그런 모포시스적 변화는 지나치게 혹은 솔직 하게 드러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쉽게 놓지 못하는 노출 콘크리트로 그의 재료적 항상성을 여 전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감한 형태적 변화는 항상성에 대한 오해를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 나 그는 그것에 대한 콤플렉스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이 그의 큰 장점이고 그것이 그가 지금도 늘 발전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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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KIM, IN CHEURL


청년 같은 건축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가 그런 일련의 형태적 변화와 진화 과정에서 메 타모포시스적 성향, 즉 공간적 변화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세로 보인다. 1990년대 후반에 얻은 그의 건축에 있어서의 금과옥조는 여전히 공간이고, 그 공간은 건축 연륜으로 얻은 땅과 도시를, 그리고 건축을 진실되게 보 는 눈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그것이 앞으로 그의 메타모포시스적 성공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말보다 작품이 앞서는 사람이다. 다변이 아니라 과변이요, 달변이 아니라 눌변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말이 재주와 재능을 추 월하는 사람보다 느린 체계의 건축적 성향에 잘 맞는지도 모른다. 그의 성공은 그런 그의 기질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선 그의 모포시스적 수사를 기대한다. 구사하는 메타모포시스 역시 남 보다 앞선 것이기를 후배들이 희망하고 있음을 그가 알았으면 한다. ⓦ

↑ <어번 하이브>의 펀칭된 벽 구조체. 사진 아르키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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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자연 발생적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치, 사회적인 이유로 새 도시가 만들어져야 할 경우, 인위적으로 일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제 도 시는 더 이상 자연발생적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일시에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도시 환경은 많은 환경 오염과 도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도시는 그 곳에 살기 시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건과 삶의 일상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들의 기억과 시간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 아닌가?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쌓여 자연적인 체취가 느껴지는 장소적 의미와 역할이 도시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도 시의 이야기는 이방인들과 방문자들에게 자극을 통해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이를 통해 타인의 삶에 이정표를, 일상적 풍경 화를 그려 줄 수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동네를 성인이 되어 다시 찾고, 전에 방문한 도시를 다시 찾는 의미는 그 곳에 여전히 어린 시절 혹은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 글 | 제갈엽(운영위원, 건축가)

by Jeagal, You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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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Seo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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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오섬훈(운영위원,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대표)

도시의 활력과 정체성은 이처럼 한 켜 뒤의 미로적 성격의 길과 다층적 길이 풍성해질수록 커지고 깊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모한다. 길 주변에 형성되어진 프로그램의 성격이 이 길의 다층적 이벤트 형성에 기여한다.

퇴근길로서, 점심 때는 주변 회사 사람들을 상대로 형성되는 벼룩시장, 또 저녁 때는 몇 개의 포장마차가 생기는 노점 형태로 변

20여 년간 생활해 온 원서동의 현대사옥 옆길은 시간대마다 여러 모습들을 보여 준다. 아침에는 중앙고 학생과 현대직원들의 출

밀접한 이벤트를 담고 있다.

럼 생긴 그 통로들을 통해 ‘지역 이동’을 하는 것이다. 보편화되어 가는 대도시의 큰 길들과는 달리 도시의 뒷골목은 일상 생활과

과하여 시부야까지 자신도 모르게 끌려간다. 도시의 한 켜 뒤 길들끼리의 연결이 만들어져 있다. 큰 길들을 가로질러서 미로처

다. 하라주쿠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10대들이 다케시다 거리로 꾸역꾸역 밀려들어 온다. 다케시다 거리에서 캣츠 스트리트를 통

연초에 쇼핑몰 탐색 때문에 도쿄에 간 적이 있었다. 안내한 유학생이 우리 얘기를 듣고 데려간 곳이 5~6m 폭의 다케시다 거리였

미로와 다층적 길


by Hyewonkaci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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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4호 | 이슈 1 창조적 파괴를 권하는 사회 : 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graphic © Eum Moonyoung

건축가 김정수 선생이 설계한 장충교회가 철거되고, 김수근 선생의 한국일보사 사옥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 의 타워호텔은 현재 리모델링 중이다. 근현대 건축 유산의 훼손, 변형, 철거는 따지고 보면 새로운 일도 아니다. 박길 용 선생의 화신백화점이나 김중업 선생의 제주대학교 본관 건물을 비롯, 이렇다 할 대응 없이 수난을 당한 한국 현대 건축물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문제는 앞일이다. 슘페터는 낡은 것을 파괴, 도태시켜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변혁 시키는 기업가의 도전 정신을 ‘창조적 파괴’라고 했다. 그 ‘창조적 파괴’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자연히 경제 성장 지향의 정권 아래 창조적 파괴를 권하는 사회가 심화되고, 많은 근현대의 산물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을 거란 예측에 이른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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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이 땅의 현대 건축 글 | 윤인석(편집자문위원,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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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번 세기에 들어서부터가 아닐까 한다. 물론 1960년대 초부터 이 땅에 세워진 서양풍 건축의 변천 과정에 대한 조사와 고찰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있어, 몇 권의 책 이 출판되기도 하였다.『한국 양식 건축 80년』 (윤일주, 야정문화사, 1966) 등이 거기에 해당된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메이지 시기의 건축부터 타이쇼, 쇼와 건축에 대한 연구자들과 서적이 발간되어 이 책이 그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자료가 되 었다. 그 후 이 자료들을 토대로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고 전국적으로 전 시대적으로 그 대상이 넓혀져 갔다. 하지만 1980년대 까지 한국의 근대 건축은 그야말로 순수한 학문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동시대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 있더라 도 한^중^일 근대 건축사 비교 연구만 부분적으로 행하여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5년 8월, 광복 50주년 기념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대역사가 실행되니 그 후부터 이 땅의 근대 건축물은 속속 헐려 나갔다. 아니, 그 전부터도 많은 근대 유적들이 철 거되어 왔지만, 조선총독부 철거 이후에 그 가속도가 붙으며 거듭되었고, 남아 있는 것 중 수준작은 거의 없어지고 대단치 않 아 보이는 것들만 서 있는 셈이 되었다. 이렇게 근대 유적들이 없어지는 데에는 우선 멀지 않게 느껴지는 과거

등록문화재’라는 초보적이며 융통성 있는 완만한 장치를 문화재 보호

의 유물들이 귀중해 보이지 않다는 것과 한국 근대기의 대부분을 차지

법에 추가하였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하는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배자들의 수탈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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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다수였기에 민족 감정상 그것들이 살아남

우리는 그간 한국의 근대라 함은 막연히 개항부터 일제강점기 동안을

아 있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정서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

일컫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한

로는 근대 유산들이 구 도심 지역에 세워진 것이 많다 보니 6^25라는

국 근대기의 건축물 대부분이 그 시기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생

큰 전쟁과 도시 재개발, 도로 확장 등, 급격한 주변 여건의 변화에 기인

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바쁘게 살다보니 지금으로

하는 바가 크다.

부터 50년 전이면 1958년이라는 것에 크게 주목하지 못했다. 그저 일

이렇게 근대 건축물이 헐려 나가는 와중에도 우리들이 생생하게 기억

제 강점기의 물건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광복

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중반,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 박길용 선생 설

이후 13년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만들어진 건축은 이제 보호

계의 화신백화점이 도로 확장으로 인해 헐린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김

대상에 들어간다는 말이 된다. 광복 후 혼란기, 곧 이어진 한국전쟁 등

정동 교수가 사회 각계에 보존의 당위성을 알리고 당시 그가 주간으

으로 어려운 경제 사정과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건축을 만

로 봉직하고 있던『꾸밈』 지를 통하여 고군분투했던 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 내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의 건축이 우리의 현대사의 현장

서 있었던 근대 유산 보존에 대한 최초의 제안일 것이다. 지금이야 근

이 되어 역사를 말해 주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될 만큼 연륜이 쌓였다

대 유산 보존 운동 단체도 많이 생기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하

는 의미이다.

나의 사회 현상으로 굳혀져 가고 있지만 당시 김 교수의 화신백화점 보

이 시기의 건축물은 물자 부족의 악조건에서 태어난 것임은 물론이려

존 활동은 참으로 외로운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니와 일제 강점기 동안 중요한 정책 결정과 중요 사안을 기획^입안해

다행히도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에서 이제는 근대기의 유산들을 남겨

본 적 없이, 초급 기술자 단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 건축 기

놓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중앙 정부에서는 건립 후 50년

술자 또는 건축가들이 광복 후 열악한 건설 현장과 건축계를 이끌며 외

넘는 건축에 대해서는 우선 보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

국 현지에서 보았던 것, 잡지 문헌에서 보았던 사례를 실현시켜야만 하

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유네스코 회관 투시도. ↗ 유네스코 회관.

↑ 메트로호텔 옛 전경. ↓ 메트로호텔.

↑ 제동빌딩 옛 전경. → 제동빌딩(미시건 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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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철근을 간단히 깔고 콘크리트로 평 슬래브를 쳐 버리는 것이 신속,

는 시대적 과제의 결과물이었다.

간단할 수 있는 작업이었으므로 모두 이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고 결과 광복 후 한국 현대 건축계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적으로 국제주의 양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자연스레 일어

1. 오랜 기간 조선을 강점하여 왔던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기관에 의해

나게 되었다.

진행되어 온 건축 관례들이 급히 멈추어지지 않고 커다란 관성의 힘으

5. 일제 강점기 동안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서 근대식 건축 교육

로 진행을 계속하여, 제도와 법과 재료, 구법, 설계 경향 등이 당분간 일

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한국인 건축 기술자는 일본인을 포한한 전체 건

제 강점기의 분위기 그대로 유지, 지속되고 있었다.

축인의 1 | 10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들이 광복 후 한국의 건축계를 이

2.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에 주둔하게 된 미군에 의해 남한의 대부분은

끌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하루빨리 건축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후진 양

이끌려 나가게 되었다. 이른바 일본군의 무기를 압수, 해제시키고 남한

성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건축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에 민간 정부가 생길 때까지 통치하였던 미국 군대에 의한 기술력 이입

건축가들이 오늘까지도 활약하는 원로가 되었고, 한국 건축계에 큰 영

이 성행하고 있었다.

향을 끼치는 인물이 되었다.

3. 일제 강점기 동안에는 일본을 통해서 바깥 세상의 정보를 접하였지

6. 건축가의 앞서가는 설계 콘셉트를 현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

만, 광복 후에는 주한 미국 군대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써 대다수의 국

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설사 그 뜻을 헤아리고 실현하려고 해도 기술

외 정보가 미국으로부터 들어오게 되었다. 대학의 교환 교수 프로그램

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경우와 재료를 충분히 조달하지 못하여 겉

으로부터 기술 지원, 물자 지원까지 인적 물적 교류가 미국을 중심으

모양만 흉내 내는 정도에 그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로 이루어졌다.

이렇듯 한국전쟁에서 허물어진 건물과 도시, 도로와 교량을 복구하는

4.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망가진 산하를 다시 바르게 세우고 폐

데 온힘을 쏟는 한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도 정진하여야 하던 시

허가 된 시설물들을 고치는 온힘을 쏟는 한편 새 건물 세우는 데에도

절의 역작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건축물들은 마치 연로한

게을리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전쟁 복구 기간 동안, 언제 어디서나 모

신 어르신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어려운 시기를 헤쳐 온 선물들

더니즘의 디자인, 그 중에서도 국제주의 양식으로 대표되는 상자곽형

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건물이 대세를 이루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허물어진 것 고치는 작업만

이 시기에 세워진 건축물을 소개한 고 윤일주 교수의 글이『서울 600

하더라도 불타버린 경사 지붕이었던 것을 다시 정교한 경사 지붕으로

년사 제5권, 건축편』 에 실려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 몇 개만 살펴보

복구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물자 수급 면에서나 어려운 일이었으므

면 다음과 같다.

ⓦ 신신백화점 1955년 준공되었고 도시 재개발 사업에 따른 현 제일은행 본점 신축을 위하여 1983년 중반 철거되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강당 1956년에 양쪽 날개 부분이 미완성인 채로 준공하였고 1965년에 증축을 완료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재일 미국인 건축가 윌리엄 보리즈의 설계 사무소에서 한국의 기독교 관련 건축 설계를 담당하였던 강윤이 설계하였다. 최근 강당 내부를 새로운 재료들로 바꾸는 개 수 공사를 하였다. ⓦ 중앙방송국청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긴 후 세워진 남산의 통감부가 한국전쟁 때 파괴되고 그 자리에 중앙방송국이 세워졌다. 김태식의 설계로 1956년 준공되었다. 1976년 방송국이 여의도로 옮겨 간 후 국토통일원으로 사용되다가 그 후 용도가 여러 차례 바뀐 후 1999년 서울 애니 메이션 센터로 사용되면서 많은 변형이 생기게 되었다. ⓦ 국제극장 1957년 준공되었으나 1980년대 말 현 동화명세점 등 도심 재개발 계획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천승의 설계로 알려져 있다. ⓦ 명보극장 1957년 준공되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중업의 첫 작품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김중업에 의해 리노베이션을 한 차례 거 쳤다가 199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 상영관으로 바뀌면서 원래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리모델링 설계는 김석철이 담당하였다. ⓦ 동국대학교 석조전 1958년 준공으로 송민구가 설계하였다. 모더니즘 스타일의 설계를 즐겨하던 건축가의 고딕풍 디자인으로, 당시에는 대학 건물을 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우던 분위기의 한 단면이다. 현존하고 있다. ⓦ 대한극장 195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58년 완공될 때까지 설계자와 시공자가 여러 번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헐리고 그 자리 에 2001년 연말 복합상영관이 신축되었다. ⓦ 혜화동 성당 1958년 준공된 가톨릭 성당으로, 당시까지는 고딕 양식에 익숙해 있었던 성당 건축의 고정 관념을 깨고 모던한 디자인의 건축으 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희태의 설계이다. 2006년 3월 등록문화재 230호로 등록됨으로써 광복 후 한국인 건축가 설계의 현대 건축물이 등록되는 첫 사례를 만들게 되었다. ⓦ 국립중앙의료원 1958년 스칸디나비아 3국의 원조를 받아 지은 종합 병원으로 스웨덴 건축가 Birth Lindgen가 설계하였다. 대수선과 증축을 통 해 아직도 병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 진명여고 강당(삼일당) 1958년 준공된 건축물로 종합건축의 이천승의 설계였다. 1989년 서울 도심 학교들의 강남 이전에 따라 목동으로 학교 를 옮긴 후, 다른 기관에서 용도를 바꾸어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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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 한국은행별관 옛 전경. ↖ 한국은행 별관.

← 한일은행 옛 전경. ↓ 한일은행.

↑ 명동성모병원(현 카톨릭회관).

↗ 대한체육회관 옛 전경. → 대한체육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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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여고 과학관 1958년 준공한 이 건물은 종합건축의 김정수가 설계한 합리주의 양식의 건축이었다. 주변 재개발 사업에 의해 철거되었다. ⓦ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1959년 준공된 건물이다. 김태식의 설계로 합리주의 양식의 건축으로 건물 북쪽 부분의 대강의실 바닥이 강단 쪽으로 경사지게 되어 있으며 이를 따라 발코니도 경사진 난간 벽면으로 처리되어 있어, 경쾌한 기분을 주고 있었다. 2006년, 새로운 국제관 신축을 위 하여 철거되었다. ⓦ USOM_KOREA OFFICE 겸 그랜드호텔 1959년에 준공된 철근 콘크리트 7층 건물로 남대문 로터리의 북쪽에 위치하는 입지를 잘 활용하여 곡면 으로 정면을 만듦으로써 주변을 의식한, 당시로서는 대규모 건축물이었다. 설계자는 나상진이다. 그 동안 마감 재료를 여러 차례 바꾼 적은 있으 나 아직까지 잘 사용되고 있다. ⓦ 중앙대학교 도서관 1959년 준공인 이 건물은 주로 고딕식 건축이 대학 건물로 지어지던 당시의 유행과는 달리 구조를 잘 드러내는 합리주의 디 자인으로 만들어졌으며 아직 현존하고 있다. ⓦ 국립중앙관상대 청사 1960년 준공한 이 건물은 정인국이 설계한 건물로 본격적인 커튼 월 기법을 도입한 건물이다. 하지만 국산 알루미늄 섀 시의 생산 기술이 일천하여 긴 부제를 만들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수직 방향으로 길게 잇지를 못하고 한 층씩 토막을 내어 섀시를 설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구조안전진단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2006년 철거하였다.

이 밖에도 많은 건축이 세워졌으나 많은 수가 없어지거나 크게 변형되

물도 주인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여 국가에서 정한 등록문화재의 자격

일제 강점기의 산물들도 역사적 교훈 운운하면서 남겨 놓는 판에 한

으로 본다면 50년이 경과한 것들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국인 건축가의 대표작들이 스러져 가게 내버려 두는 것, 아니 아예 무

된다. 그렇다면 1960년대의 물건들은 어떠할까? 군사 쿠데타 이후 경제

관심한 것은 참으로 우리가 처신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죄책감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펼쳐진 건설 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세워진 갖가

이 든다.

지 건물도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처럼 개발 속도가 빠른 데에서는 도심지 내에 있는 근대의 흔적들

그것들도 역시 무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쉽게 없어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국토 개발을 최우선 정책을 내세우

우선 2007년 하반기, 1969년 세워졌던 김수근의 한국일보사 사옥이 철

는 현 정권이 들어선 기간 동안은 많은 근현대의 산물들이 설 자리를 잃

거되었다. 주변 재개발 사업에 따라 주상 복합 시설 건축을 위하여 철거

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등록문화재 등록 자격의 기한

되었다. 경복궁으로부터 따지는 문화재보호 구역의 범위를 명확히 하

을 건립 후 30년 정도로 단축하여 주변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느라 몇 차례 문화재 관련 회의를 하였지만 건물이 가지고 있는 한국 현

생각된다. 재개발 설계가 다 끝난 시점에 가서야 근현대 유산이 철거 위

대 건축사적 가치 판단, 설계자가 차지하고 있는 한국 건축계 내에서의

기 대상에 포함된 것을 알아차리고 뒤늦게 떠들썩한 보존 운동을 펼칠

위치에 대하서는 한 번의 고민도 없이 헐어버렸다. 10년도 넘는 일이기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탐지하여 보존^존치 건물로 결정을 해 두는 작

는 하지만 김중업의 제주대학 본관도 안전상의 이유로 간단히 헐려나

업을 펼쳐 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 당시에 활약했던 건축가들은 다음과

가고 말았다. 대학로에 있던 김희춘의 성공회 성 베다관도 우리가 알지

같은 분들이 있었다. 건축가별로 중요한 작품을 파악하여 보존 대상을

못하는 사이에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그 자리에 세워졌다. 김수근의 부

추려보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여박물관도 백제 시대의 궁궐터 발굴과 복원에 얽혀 철거될지도 모르 는 상황에 처해 있고, 김희춘의 서울대학교 농대 캠퍼스(수원) 내 각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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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 상업은행 옛 전경. ↙ 상업은행.

↑ 오양빌딩 옛 전경. ← 오양빌딩.

↑ 한국전력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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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철(1913~ , 김재철 건축연구소) : 1936년 경성고공을 졸업한 뒤, 일제 강점기에는 관의 설계 조직과 광복 직후 미군정청에서 근무하였다. 1960년에 설계 사무소를 종로에 개설하였다. 광복 후 초창기 건축계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 김희춘(1915~1993, 김희춘 건축연구소) : 경성고공 졸업 후, 관의 설계 조직에서 근무하다가, 일제 말기에는 일종의 부동산 회사라 할 수 있는 동경건물회사에서 활동하였다. 1952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경성고공의 졸업 작품에서부터 합리적인 작품 경향을 가 진 건축가였다. ⓦ 강명구(1917~ , 홍익대학 건축학과) : 일본 와세다공고에서 건축을 수학하고 광복 후 홍익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설계 활동을 했다. ⓦ 엄덕문(1919~ , 엄덕문 건축사무소) : 일본 와세다에서 건축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건축 설계 사무소를 설립하였다. 1960년대 초반에는 홍익 대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 장기인(1916~2006, 창건사) : 경성고공을 1936년에 졸업하고, 경성부청에서 근무하였다. 그리고 건축대서사 면허를 취득하고, 광복 후 창건사 를 설립하였으며, 1960년부터 부국건설주식회사에 근무하였다. ⓦ 김창집(1917~1990, 김창집 구조연구소) : 홍익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구조 설계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한국 건축 구조계에 커다 란 영향을 미쳤다. 구조 분야에서 그가 뒷받침해 줌으로써 모더니즘의 건축물들이 이 땅에 우뚝 설 수 있었다. ⓦ 배기영(1918~1979, 구조사) : 주로 산업 시설의 건축물들을 설계하였으며, 오늘날의 단어로 말하자면 하이테크적인 건물의 설계에 능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유네스코 회관을 비롯한 오피스 건축 설계에 주력하였다. ⓦ 강봉진(1917~ , 국보건설단) : 1941년 소화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한양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거듭하였다. 한국식 전통 건축에 기반을 둔 설계에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송민구(1920~ , 오성건축사무소) : 경성고공을 졸업한 후, 일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광복 후 귀국하여 관의 설계 조직에서 근무하다가 1961 년에 오성건축사무소를 개설하여 모더니즘의 색채가 짙은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 김중업(1922~1988, 김중업건축연구소) : 일본의 대학 중에서도 예술성을 강조하는 교육 풍토를 가지고 있는 요코하마고공을 졸업하고 서울대 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프랑스에서 코르뷔지에 한테서 3년간 또 다른 경험을 쌓고 1956년에 귀국하였다. 다시 홍익대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고 개인 건축전, 사무실 개설 등을 통해서 활발한 건축 활동을 하였다. ⓦ 그 밖에도 박학재(1917~1981, 국제건축연구소), 최창규(1919~1991, 신진건축연구소), 한창진(1928~, 제네랄건축연구소)를 위시하여 많은 사람 들이 설계에 정진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1961년에 5^16이 일어나고, 군부가 들어서면서 우선으로

앉히는 것으로 배치 계획을 하였으나 후반으로 넘어 올수록 건물을 인

하였던 경제 성장 정책에 힘입어 무엇보다도 외형적으로 발전해 나가

접 도로에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후퇴해서 짓는다거나 시민에 대한 배

는 우리의 모습이 급변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선배들

려와 도시 경관을 고려한 대안들이 제시되기 시작하였다. 광복 후, 건

은 우리네 실정에 맞게 건물을 지어 나가고, 또 국산화가 가능한 재료들

설 기술에 대해 제대로 습득하고 있지 못하던 상황에서 출발하여 6^25

은 서둘러서 국내 생산하는 데에 힘을 쏟아, 우리의 건축 생산 기술을

를 거치고,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건물들을 개보수해서 사용하던 시

축적하는 데에 진력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에 즐겨 사용되었던 노출 콘

절로부터 당당히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입으로 건축

크리트 마감 방법도, 해외에서 유행하고 있던 방법이기는 하지만, 따지

관을 정립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경지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사무

고 보면 딱히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외장 재료가 없던 때였기 때문에

소 건축이 아닌 다른 기능의 건축물에서는 한국적인 모습을 찾아내느

우리네 실정에 맞는 해결 방법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라 저마다 노력들을 하고 있었고, 사무소 건축에서는 그 기능성을 우선

또한 건축 계획의 측면, 더 나아가서는 도시 계획의 측면에서 이 시대의

하는 건축인지라 우선 합리적, 기능적, 국제주의적인 디자인이 주류를

건물을 살펴본다면, 1960년대 초반에는 주어진 대지에 건물을 꽉 차게

이루고 있었다.

ⓦ 유네스코회관 (배기형 | 지상13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59-1966) ⓦ 제동빌딩 (이희태 | 지상5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0) ⓦ 메트로호텔 (이희태 | 지상8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56-1960) ⓦ 한일은행 을지로지점 (구조사 | 지상4층, 지하2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0-1962) ⓦ 한국은행 별관 (한국은행 설계부 | 지상6층, 지하2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1-1963) ⓦ 대한체육회관 (김태식 | 지상10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3) ⓦ 한국상업은행 본점 (홍순오 | 지상12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3-1965) ⓦ 명동성모병원 (김정수 | 지상7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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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 삼정빌딩 옛 전경. ↙ 삼정빌딩.

↗ 대한교육연합회관 옛 전경. → 대한교육연합회관.

→ 대한기독교연합회관 옛 전경. → → 대한기독교연합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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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양빌딩 (김수근 | 지상6층, 지하 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4) ⓦ 한국전력별관 (정인국 | 지상9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4) ⓦ 서소문 삼정빌딩 (김창익 | 지상12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4-1965) ⓦ 대한교육연합회관 (무애건축 | 지상9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4-1966) ⓦ 대한기독교 연합회관 (차경순 | 지상10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7-1969) ⓦ 삼보 한우 공동빌딩 (지상12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7) ⓦ 서울YMCA (지상7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68) ⓦ 수운회관 (정인국 | 지상13층, 지하1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70) ⓦ 배재빌딩 (안영배 | 지상10층, 지하2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71) ⓦ 국민은행본점 (동방건축연구소 | 지상15층, 지하4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73) ⓦ 서울신탁은행본점 (임용택 | 지상18층, 지하2층 | 철골철근콘크리조 | -1976) ⓦ 동방빌딩 (박춘명 | 지상26층, 지하4층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6) ⓦ 남산무역회관 (이희태 | 지상, 지하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4) ⓦ 대우센터빌딩 (대우개발 | 지상, 지하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6) ⓦ 효성제2빌딩 (김종성+우일건축연구소 | 지상12층, 지하2층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7) ⓦ 극동빌딩 (임헌언 | 지상22층, 지하3층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7.2-1978.8) ⓦ 케미칼빌딩 (원도시건축연구소 | 지상13층, 지하3층 | 철근콘크리트조 | -1978) ⓦ 동아건설사옥 (엄이건축 | 지상16층, 지하3층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8) ⓦ 한국외환은행본점 (정림건축 | 지상28층, 지하3층 | 철골철근콘크리트조 | 1978-1981)

이상의 건축물은 아직 서울 시내에서 존재하고 있지만, 요즘 몰아치고

후회이기도 하였다.

있는 무늬만 도심부 재생인 도심 재개발 사업에 밀려 없어지게 될 운명

이제는 우리 모두 조금씩 관심을 나누어 가지고 광복 후 한국 현대건축

에 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실은 작년에 한국일보사 사옥이 철거

의 수명 연장에 힘을 합쳐 대책을 마련할 때가 온 것으로 여겨진다. 더

되고 있는 동안 김수근의 공간사 직원들이나 제자, 후배들이 출퇴근 시

이상 일제 강점기를 핑계대고 근대의 유산을 없애버릴 만한 꺼리는 없

간에 그 앞을 수도 없이 다녔을 텐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허물

고, 우리의 스승과 선배들의 작품이며 어려운 시대의 유산임을 인정하

어지는 것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한 번쯤은 건축계와 사회를 향

고 아낄 것인가, 구차한 시대의 구차한 유물이니 버릴 것인가 우리 자신

해 한마디 말을 걸고 얘기할 수 있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다 다 허물어

의 입장을 분명히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앞 세대의 산물을 아껴

진 후 드러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아차, 하고 서두르지 못한 것에 대한

야 뒤 따라오는 후배들이 우리 세대의 것을 아껴줄 것이 아닌가? ⓦ

글쓴이 윤인석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코모모 코리아(한국근대건축보존회) 회장으로 근대 건축 보존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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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삼보한우빌딩 옛 전경. ↗ 삼보한우빌딩.

↙ 서울신탁은행본점 옛 전경. ↓ 서울신탁은행본점.

↑↑ 배재빌딩. ↑ 배재빌딩 옛 전경.

* 이 글에 사용된 옛 사진은 옛 잡지들에 게재된 것을 사용하였고, 최근 모습 사진은 우리 연구 실 이현정 박사가 촬영한 자료를 제공받아 사용 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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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 예고된 재앙? 글 | 전진삼(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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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가 쉬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서울 장충체육관 건너편, 건축가 김정수에 의해 설계된 장충교회가 어느 날 갑자기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교회 건물이 공사 중에 있다. 1980년대 중반 박길룡의 화신백화점 철거와 김중업의 제주대학교 본관의 철거를 신호탄으로 소리 소문 없 이 사라진 근현대 건축의 소중한 유산이 한둘이 아니다. 김중업의 대표작이라 평가되었던 제주대학교 본관 건물이 건축계의 끈질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사라졌고, 2000년대 초반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찬디가르 행정 청사 장관 블록 입 면 디자인을 수행했던 그의 행적이 묻어나는 초기작 인천해무청사는 지역 사회와 건축계의 관심 밖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사 라졌다. 김수근의 한국일보 사옥은 그의 후배들이 계승하여 운영하고 있는 공간사옥에서도 한눈에 잡히는 서울 시내 한복판 에 서 있었지만 이렇다 할 대응 없이 도심지 재개발 사업에 밀려 근년에 사라져 버렸고, 일일이 거명하기에도 벅찬 1세대 한 국 현대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훼손, 변형, 철거되는 수순을 밟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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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건축가 작품의 수난, 예정되었던 수순?

뒤에서 재론할 것이다.)

ⓦ 김정수(1919~1985). 알루미늄 커튼월 공법의 명동성모병원, 종로

ⓦ 김수근(1931~1986). 한국 현대 건축의 논의에서 전통과 현대를 연결

YMCA 빌딩과 직경 80m의 대공간을 만들어낸 철골 돔구조의 장충체

하는 ‘공간’의 의미를 확장시킨 건축가로 평가되는 이다. 초기 그의 작

육관, 여의도 국회의사당, 콘크리트 패널이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입면

업 내용이 일본에서 익힌 모더니즘 건축의 반향이라는 점에서 저항이

으로 완성시킨 PC공법 적용의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을 설계한 김정수

만만치 않았다. 동시대 건축가들에 비해 지명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행

는 1세대 한국 현대 건축가들 가운데 특히 신공법, 신기술의 구축술에

복한 건축가’로 불렸던 김수근의 초기작 상당수가 오늘날 멸실^훼손되

천착한 작가로 분류된다. 그가 이룩한 건축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

었거나 철거의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세운상가가 철거를

한 뚜렷한 연구물(기록 작업)이 명료하게 추적되지 않는 것은 무척 의

목전에 두고 있고, 최근 외벽을 허물지 않는 조건으로 문화재심의위원

문되는 사항이 아닐 수 없다. 건축 학계와 건축 사회 내부에서의 저급

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화제가 된 타워호텔의 경우 향후 전개 방향에 관

한 관심이 이 건축가의 존재를 밝혀 주던 건물들을 빠른 속도로 지워

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건물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미(6^25

나가고 있는 셈이다. 독특한 양식을 선보였던 감리교신학대학 내 웰치

전쟁에 참전한 연합군 16개국과 한국을 상징하여 17개 층으로 건축됨)

교회가 새로운 채플을 건립한다는 이유로 2002년 철거되었고, 최근엔

도 중요하지만 유지 보존 상태가 불량했다는 점에서 건물 소유주가 벌

장충교회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 표면적으로 교회가 요구하는 기능실

이는 리모델링 작업에 대해서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도 채집된다. 기

의 부족, 즉 교육관, 주차장 등 부대 시설의 확충을 목적으로 신축이 결

존 건물의 건축 가치에 대한 연구 성과가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형

정되었고, 그 결과 철거되는 비운을 맞은 것이다. 새 건물의 설계자로

보존을 운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리모델링 업체에 따르

선정된 건축가로서도 기존 건물이 갖는 건축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보

면 이 건물의 상층부는 호텔 기능을 유지하되 저층부는 콘도 기능을 확

존을 주장하기엔 능력 밖의 일이었으리라고 판단된다. (장충교회 건은

충한다고 한다. 현재는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오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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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철거 현장. 사진 전진삼 ← 철거되기 전의 한국일보.

→ 인천지방해무청사. 사진 화도진 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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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 외관에 대한 입면 조정 사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타워호텔의 리모

다음은 그가 보내온 답메일의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델링 설계는 간삼파트너스 종합건축사사무소가 진행하고 있다. 전화

“장충교회에 대한 생각은 2005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주최하는 건축대

로 작업 진척 상황과 외관 디자인 관련하여 문의했으나 뾰족한 답변을

전에 초대작가로 출품시 생각을 표현했다. 시간이 있으면 다시 한 번 정

얻지 못했다. 일간지(이정훈 기자, ‘건축 거장 김수근 주요 작품 사라지

리해 보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유를 가질 수 없게 짜인 금

다’, 한겨레 2008년 5월 5일자 기사)에 보도된 여파가 컸던 탓이다.

년도 스케줄로 인하여 당장은 어렵다. 그리고 본관이 완공되려면 앞으

“현 단계에선 밝힐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현재는 인허가 이전 단계다. 보

로 약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때 가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 상세한 것은 건축 심의 과정을 마친 후라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현

단문의 답메일에서 김 교수가 남겨준 단서는 ‘2005년 건축대전 초대작

재 상황은 타워호텔 내부 대수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외부 입면 디자인

가 부문에 제출한 설계자의 생각’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들춰 봤다. 그

콤페(competition)에 당선한 사실은 있지만 그 안은 폐기되었으며 새

내용은 장충교회의 설계에 임하는 건축가의 시대 인식을 담은 ‘More is

로운 안으로 디자인 조정 중이다.” 설계담 당 E소장의 말이다.

Bore’라는 제하의 짧은 글이었다. 기존 건물에 대한 어떠한 의사도 발

ⓦ 김중업(1922~1988). 현대 건축의 세계적인 거장으로 꼽히는 르 코르

견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설계 목표로 제시된 그림 설명이 눈에 띄었다.

뷔지에의 문하생으로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의 프리미엄을 누렸던 그

그는 장충교회 설계 해법으로 ‘보전(保展)’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직

는 한국 건축의 전통적 형태미를 현대화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표현주

역하면 보호(保護)하면서 발전(發展)시킨다는 뜻이며, 대지 축제(site

의 경향의 코르뷔지에 후기 스타일을 완성한 건축가라는 최대의 찬사

celebration)의 개념’이라고 한자 조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기존

를 한몸에 받고 있는 건축가다. 건물 보존의 사회적 합의체 또는 시스템

건물을 무시할 수 있었던 배경은 김 교수의 이 같은 언질에 감춰져 있

이 준비되지 못했던 사이에 불거진 사태로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제

었다. 건축된 결과로 판단받겠다는 의사에 다름 아니다. 그는 건축가이

주대학교 본관 건물이 철거된 아픔은 이어지는 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

며 교수이면서 동시에 목사이기도 하다. 장충교회 측이 설계자를 결정

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 한국미술관도 도로 확장을 이유로 건물

하는데 이 같은 개인의 이력이 작용했을 터다. 당장은 답변을 유보하고

의 일부를 도려내는 아픔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사태는 건축가

있으니 보다 상세한 질의는 이 건물이 최종 완공되는 2009년 12월 이후

개인의 지명도를 무색케 하는 정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김

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업의 존재에 대하여조차 대학에서의 무관심이 여전하다는 점은 환 기되어져야 한다. 그와 관련한 연구 성과물이 생산되었던 시간대를 추

성약교회 철거 현장에 다시 서다

적해 보면 대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개략 10년에

이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민현식(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겪은 근

걸쳐 집중되어 있다. 그 이후는 소강 상태다. 건축의 역사 연구에서 근

년의 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목해 보자. 한때나마 그의 건축적

대 건축이 별도의 장르로 구분되어 학회를 구성한 것도 오래지 않은 것

판단과 기호를 수용했던 클라이언트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을 고려하건대 현대 건축 초창기를 풍요롭게 장식했던 김중업 건축과

지난 6월 19일, 성약교회의 철거 현장을 재방문했다. 4년 전 철거한 현

동시대 건축가들의 건축 세계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한두 학자의 손에

장은 최근까지 방치되었다가 얼마 전에서야 공사를 시작한 모양이다.

서 갈무리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주변은 성약교회가 건립되던 당시보다도 더 많은 모텔, 여관 등이 들어 서 있었다. 정주성이 떨어지는 입지 여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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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현장에 서서, 다른 건축가의 시선을 만나다

주변 여건은 교세 확장의 악재로 작용했을 것임을 쉬이 짐작케 한다. 결

장충교회 공사장 가림막에 붙은 공사 안내 표지판에 설계자로 명기된

국 교회 측은 교인들이 떨어져 나가는 교회의 위치를 더 이상 고집할 수

‘공간(Space Group)’을 찾았다. 타워호텔의 리모델링이 타 건축사사

없었다. 다행히 의정부역 주변의 개발 호재에 땅값은 부풀어 올랐다. 그

무소에서 진행된다는 것만으로도 착잡함이 컸을 김수근의 후예, 공간

돈이면 새로 시작하고도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 섰을 법하다. 교회 측은

이 장충교회를 허물고 새로 짓는 교회 건물의 설계자라니 아이러니가

건물을 매각하고 밀락동에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교회 건물로 이전

아닐 수 없다.

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당일은 오피스텔 신축 공사를 위하여 건물 잔해

“협력 차원에서 한동대 김학철 교수의 작업을 지원했다. 처음엔 정림

철거 및 반출 작업 중에 있었다. 눈이 퀭하였다. 현장을 배회하는데 이

건축과 진행하려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림 대표와의 논의 후 공간에

전 성약교회에 대하여 잘 안다고 밝힌 K씨가 다가와 말했다.

서 김 교수의 작업을 마무리 짓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이전 건물이 김

“건축계에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을지 몰라도 실사용자인 교인들에겐

정수 선생의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건축가에 대하여는 뒤에 알게 되었

불편했던 건물이었다.” 성약교회의 실험성에 열광했던 건축계 내부와

다. 기존 건물의 기록 작업 등에 대해선 김 교수 차원에서 이미 해결되

한 사람의 동조자였던 필자조차 무안해지는 비판이었다. 1997년 8월

었으리란 막연한 믿음으로 재론치 않았다. 기본 설계가 완성된 이후 회

호 월간『건축인 POAR』 . 제1회 크리악 어워드 후보작에 민현식의 성약

사 차원에서 이어받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별 고려 대상이 못되었다.”

교회가 선정된다. 그리고 두 편의 추천 글을 대신하는 비평문을 게재

설계 담당 A소장의 말이다.

하였다.

원설계자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이었다. 이메일로 김 교수에게 작

“민현식의 성약교회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그렇고 당시의 초기 의도에

업 수행 과정과 철거한 기존 건물에 대한 설계자의 입장 등을 질의했고,

서도 너무 멀리 동떨어진 우리 교회에 대한 분명한 안티다. 그것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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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장충교회. 사진 공간 제공 → 장충교회 신축 투시도. 사진 공간 제공 ↓ 장충교회의 현재. 사진 전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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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자)가 오늘의 교회에 던지는 강력한 언

7. 이런저런 사유로 교회에서 이 땅을 팔고, 주거 지역으로 옮기는 걸로

어적 이의 제기다.”(함성호)

결정하였으리라 짐작한다.

“민현식의 성약교회는 상식을 거부하는 건축가의 쾌거다.”(전진삼) 설계자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누가 뭐래도 민현식은 오늘날 한국 건축

“이 모든 사건은 실은, 설계 의도와 실현이 너무 내 자신의 강한 주장에

의 지성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아니던가?

만 경도되었지 않았나, 지금도 반성하고 있으며 이 일로 하여 깊은 성

민현식은 일단 자신과 자신의 작업이 검증되지 않은 단계에 있으며, 그

찰이 있었음을 밝힌다. 단지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이 시대가 가진 문

런 이유로 성약교회가 ‘한국 현대 건축의 수난’이라는 필자의 논점에서

제, 특히 자본주의 또는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해야 할 근본적인 역할

근본적인 문제까지 건드릴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환

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성찰해 볼 만한 일이다. 다음에 기회

기시켰다. 다음은 성약교회의 철거와 관련하여 짧게 정리해서 보내 준

가 주어진다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논의와 대사회적 발언을 할 수

그의 답메일을 요약한 것이다.

있으리라 (기대한다.)”라고 민현식은 답했다. 1년 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 응했던 민현식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1. (교회 측은) 성약교회의 철거 등에 관하여 설계자에게 협의한 바 없

“민 교수는 ‘집을 만들 때 진짜 문제는 (형태의 아름다움보다는) 주변과

다.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그의

2. (설계자로서) 풍문으로 듣고, 그리고 (언젠가 건축 잡지)『C3』 에 실린

철학은 ‘비움’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하는데 그 속에 들어

사진을 보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있는 집의 기능이 고정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리라.”(김인수 기자, ‘건축

3. 물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집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에서부터 기

명인을 찾아서—13’, 매일경제 2007년 6월 17일자)

인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제안이 기존의 교회 공간 형식과는 너무 달

성약교회는 열악한 주변 환경과의 마찰을 예견하고 그것을 교회라는

라(?), 설계 당시에도 설득이 어려웠고(다만, 목사님, 건축위원장 장로

공동체의 순기능을 통해 극복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뛰어든, 마치 오

님, 그리고 청년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사가 되었지만, 일부 교인들

지의 선교사와 같은 직임을 수행했으나 급기야 지역 정서에 의해서 참

은 반대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준공 후에도 이런 저런 소문들이

살당하는 수난(그것은 ‘순교’와 많이 다르다)을 겪은 것이다. 실사용자

무성함을 듣고는 있었다.

는 끝내 건축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했고, 교회는 건물 매매 차익에 중심

4. 단지, 현재는 좀 불편(?)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자

을 잃은 듯 급기야 건물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이것은 건축가의

부심을 가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작의가 실패했다는 비판에서 민현식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과 통한

5. 또한, 이 교회의 위치(문제)이다. 아시다시피 의정부역 부근은 말 그

다. 한편 교회 건축의 정위에 대하여는 민현식이 제기했듯 자본주의 또

대로 ‘러브호텔’로 가득한 곳이다. 교회가 이런 환경에 있다는 게 좋지

는 교회 건축의 향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면

않다는 정설(?)이 있었고, 물론 주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상주하는 주민

에서 이후 첨예한 논의 혹은 논쟁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각될 만하다.

은 거의 없고 소위 교회의 부흥이 잘 될 리가 없는 입지였지만, 나로서

74

는 이 곳의 기독교 공동체가 오히려 이 지역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이 될

건축에 대한 예의의 실종?

수 있을 거라는 합리화(?)가 전제되었다.

이처럼 건축계에 불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예

6. 물론 이 곳은 상업 지역이다. 이 땅을 팔아서 주거 지역 또는 아파트

의가 실종된 정황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실제적으로 자본에 종

단지의 종교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할 만

속된 건축의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 익숙한 개별 건축인과 건축사 사무

큼 지가가 높은 곳이다.

소들이 이런 상황에 대하여 일일이 토를 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

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 성약교회 외관. 사진 김철현 → 성약교회 내부. 사진 김철현 ↓ 성약교회 철거 현장. 사진 전진삼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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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로 심화될 수도 있겠고, 설령 그런 인식을 바

3)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등록문화재를 선정할 때 사회적 가

탕에 깔고 저항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칫 건축계 내부자 편들기 식의 소

치는 중시된 반면 건축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는데, 이유인즉

산으로 비추일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그 틈을 이용해서 건물 소유주는

해방 이전의 건물들이 수적으로 많지 않았기에 가능했으나 향후 1950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고 건축가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행위

년대 이후 건물의 수가 많아 건축적 가치 판단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를 일삼는 것이며 건축계는 그것을 알면서 조차 방조하게 되는 이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리부터 대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된다는 사실이다. 근본적으로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하는 건물 소유주들의 판단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적극적인’ 방도란 문화재

정 교수는 서울 소재 초기 현대 건축물의 보존 리스트 33개(표 참조)를

지정 등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의 ‘소극적인’ 행위 내에서만 가능하

작성하였다. 그가 활용한 선정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선정 과정에

다. 그것은 시간의 누적이 필요하고, 건축 가치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서의 합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나 해방 이전의 건물에 비해서 수도 많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건축가의 설계 저작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고 지어진 지 오래지 않아 건축계 내에서의 합의 도출이 결코 쉬운 일이

길은 건축 대상을 벗어난 타 매체를 이용한 권리 행사와 보호에 국한되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1950~1960년대에 발간된 건축 잡지들에서 인

는 것이다. 사진 및 인쇄물 등 시각 자료에서만 건축가의 저작권을 인정

용되었던 건물과 주요 건축 비평에서 인용된 건물들을 모두 조사했고,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건물은 사라지고 인쇄물만 남는다.

1990년대 이후 발간된 한국 현대 건축에 관한 주요 책들에서 자주 인용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건축에

되었던 건물들을 찾아 인용 빈도를 가려 총 41개 건물을 도출해 냈다. 그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실종된 이유를 따져 보자.

다음 건축가의 지명도, 기술적 가치, 미적 가치를 충족시키는 건물들을

한국 현대 건축의 ‘빛나는 유산들’이 비명에 횡사하는 배경 뒤엔 건축계

새로이 추가한 후 그 중 지방 소재 건물과 이미 멸실된 건물 및 초기 원

구성원들이 간과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 땅의 초기 현대 건축

형이 많이 훼손된 건물을 제외하여 보존 리스트를 완성했다고 한다.

과 건축가에 대한 관심 부재와 그로인한 연구 성과물이 취약한 결과에

그가 이미 전제했듯이 건축계의 합의로 구축된 보존 리스트는 아니어

서 기인한다. 둘째, 어떤 건축을 남겨야 되는가에 대한 건축계 내부 합

도 건축학계 일각에서 이러한 연구 성과물을 생산해 내었다는 점에서

의의 부재다. 셋째, 건축의 민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하는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좋다.

대중을 향한 수많은 건축 프로그램 대부분이 사실은 건축계의 자기 최 면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맺음말 다음은 건축계 내부의 문제다. 사라져가는 건축을 애도하고 저항하는

고독한 건축 사학자, 희망을 쏘다!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철거를 전후한 건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탈고 즈음하여 한 편의 좋은 연구 자료를 확보하였다. 서울시정개발연

건물 기록 작업의 일상화)가 통용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발행한『서울 연구 포커스』제56호(2006년 5월 15일 출판)에 ‘서

요구된다. 의정부 성약교회에서처럼 적어도 건축계가 존재 의미를 공

울 소재 초기 현대 건축물의 보존 및 활용 방안 : 1950~1960년대 대표적

조했던 건물이 건축가도 모르는 사이에 용도 폐기되고 결국 철거되어

건축물을 중심으로’라는 정인하(한양대) 교수의 글이 실렸다.

버리는 사태는 건축인 모두의 가슴에 파렴치한의 비수가 꽂힌 것과 같

이 연구 자료에는 근현대 건축 문화 유산에 관한 현행 정책의 문제점이

은 의미다. 그것이 어디 성약교회만의 문제이랴.

제기되어 있고, 서울 소재 ‘초기 현대 건축물의 보존 리스트’가 작성되

무대포로 건축의 영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 사회가 변형,

어 있다. 또한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사례로 프랑스 문화 건축물 보존

철거 등의 사안에 접하여 기존 건물의 가치를 음미하고, 설계 저작권

정책이 주는 시사점을 열거하고 있다. 끝으로 보존 리스트를 중심으로

자와 소통하며, 철저하게 기록하는 절차를 통하여 하나의 건물을 역사

한 활용 방안까지 세심하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화 시키는 작업이 공명되는 사회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하단 것을 강조 하기 위함이다.

항목별로 주요한 이슈를 옮겨보면 이렇다.

건물은 대지 위에서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순환의 고리 안에 존재한

1)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등록 기준이

다. 그 가운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 건물부터 허접한 건물

건설 후 50년 경과로 정해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현대 건축물을

까지 종도 다양하다. 그러나 어느 건물이 오래도록 영속할지 가늠하기

양산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 1세대 건축가들의 초기 작품이 멸실 위험에

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건축계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 도입하고 있는 ‘30년 법칙’과 프랑스

가 끊임없는 예방과 치유의 규범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

가 적용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건물들을 대거 등록문화재로 지 정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 우리의 경우도 많은 양의 근현대 건축물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었 으나 그것들을 분류하고 가치 평가하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많 은 혼란을 겪고 있다. 단순 열거식 건물의 목록화 작업은 아무런 의미 를 지니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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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The Suffering of Korean Moder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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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건물명

건축가

건립연대

보존상태

주한 프랑스대사관 자유센터 서강대학교 본관 성모병원 국립극장 YMCA회관 오양빌딩 남산시립도서관 삼일로 빌딩 절두산 복자기념성당 서울 타워 KIST 본관 혜화동 성당 남산 어린이 회관 한국문화방송국 사옥 유네스코 회관 국립중앙관상대 육군종교센터 워커힐 힐탑바 중앙빌딩 이경호 주택 타워호텔과 해피홀 중소기업은행 본점 동국대학교 본관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이화여대 대강당 성균관대 교수회관 장충체육관 한국전력 별관 서산부인과 병원 서울공대 도서관 정부종합센터 중앙대학교 도서관

김중업 김수근 김중업 김정수 이희태 김정수 김수근 이해성 김중업 이희태 장종률 김수근 이희태 이광노 김수근 배기형 정인국 김석재 김수근 배기형 김중업 김수근 엄덕문 송민구 김정수 강윤 김인석 김정수 정인국 김중업 김희춘 PA&E 차경순

1961 1964 1960 1963 1972 1968 1964 1964 1970 1967 1970 1969 1960 1969 1969 1966 1960 1969 1962 1965 1967 1964 1968 1956 1967-77 1950 1966 1963 1964 1965 1965 1970 1959

건물 일부분 멸실 건물 일부분 개보수, 초기상태 보존 건물 전면 개보수,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건물 전면 개보수,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건물 전면 개보수,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건물 일부분 개보수,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초기상태 보존

<표> 서울 소재 초기 현대 건축물의 보존 리스트(총 33개 건축물) (출처 : 정인하, 2006『서울 연구 포커스』제56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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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time 78

WIDE EDGE


와이드 4호 | 이슈 2 ECC(이화 캠퍼스 콤플렉스 )의 속사정 The Ewha Campus Complex

graphic © Eum Moonyoung

지난 2004년 이화여대는 지하 캠퍼스 설계안을 위해 외국 건축가 3인을 초청하여 국제 지명 현상 설계를 치러냈고, 도미니크 페로의 안을 당선안으로 선정한 바 있다. 그로부터 만 4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이화 캠퍼스 콤플렉스(이하 ECC)란 이름의 지하 대공간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때 맞춰 각종 매스콤에서는 이를 이슈화시켰고, 건축 매체들은 6 월호에 이미 건축적 의미들을 리뷰해 보였다. 그럼에도 뒤늦게 <와이드>가 ECC를 조명하는 것은 앞으로 얼마든지 기 획 가능한 외국 건축가의 대학 건축물이란 점에서다. 우리의 대학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캠퍼스 지하 공간 을 필요로 할 때 ECC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와이드>는 ECC의 발주에서 완성까지의 이야기를 들 어보고, 덤으로 젊은 건축인들의 시선을 채집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 사진 진효숙(건축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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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ECC(The Ewha Campus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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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이화 캠퍼스 콤플렉스), 발의에서 완성까지

2002년 말 발의되어 2008년 봄에 준공된 ECC의 진행 과정을 강미선 교수(이화여대 건축학부)로부터 들어본다. 그는 2005년 이화여대 재무처 부처장을 지내고 이후 공사가 끝날 때까지 ECC 건축팀장을 맡은 바 있다. 중간에 1여 년의 공백을 빼고는 ECC 의 전 과정을 함께 한 셈이다. 진행 과정 이외에 완성된 후의 모습과 속사정도 함께 전한다.

추진 배경을 말해 달라. ⓦ 대부분의 대학들이 엄청난 공간 수요에 직

자하 하디드가 경험이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엔지니어링의 컨트

면하고 있는 반면 서울 시대 대학의 경우 캠퍼스 공간의 확장에 제한이

롤 측면에서 외국 건축가들이 좋게 평가되었다. 결과적으로 ECC에서

많다. 그래서 고층 건물을 짓거나 지하 공간을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

도 외국의 엔지니어링 기술이 많이 활용된 측면이 있는데, 특히 이 건

다. 이화여대의 경우, 마침 정문 쪽의 철도를 복개하면서 지면의 레벨

물의 특징 중 하나인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이 실현된 것은 좋은 수확

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누적된 공간 적체 현상을 지

이라고 생각한다.

하 캠퍼스로 활용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지명 건축가 선정 작업에서 당선작 발표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말해

발의가 이루어진 후 학교 측은 어떤 준비를 하였나? ⓦ 2002년 말 발

달라. ⓦ 2003년 8월부터 프로젝트를 외부에 알리며 2개월에 걸쳐 지

의가 이루어진 후 2003년 2월에 10여 명의 교내 위원으로 공간위원회

명 건축가 선정 작업을 진행하였고, 2003년 10월 21일부터 2004년 1월

를 구성하였고, 모든 결정은 위원회의 단계적인 집단 의사 결정 과정

27일까지 99일간 본격적인 현상 설계 과정이 진행되었다. 2003년 7월

을 거치며 추진되었다. 이 과정은 교내 구성원들의 학습 과정이기도 하

에는 TFT에 의해 개략적인 설계 요구 조건이 정리된 프로젝트 브리프(

였는데, 구성원들이 함께 비전을 공유해 나가는 작업은 조직으로서의

일명 Red Book, 모든 참여자가 공유한 명칭)가 프로젝트 진행과 함께

건축주가 수행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교훈을 얻

작성되었고, 동시에 초청 건축가의 리스트 작성이 이루어졌다. 공간위

었다. 본격적인 디자인 공모 가이드라인 작성을 위해 TFT를 운영하며

원회가 선정한 15인의 건축가에게 이 Red Book이 보내졌고, 참여 의사

약 8개월 가량의 시간을 가이드라인 작성에 투자했다는 점은 고무적

와 작가의 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는 자료들을 요구하였다. 참여 의사를

이라 할 만하다. 또 이 프로젝트가 캠퍼스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

보내 온 7명의 건축가를 대상으로 서류 심사를 진행하였고, 다시 5개

로 학교의 비전을 다시 확인하고 마스터플랜을 재정비하는 과정도 동

회사를 선정하였다. 최종적으로 현상 설계 일정을 수용할 수 있는 도미

시에 진행하였다.

니크 페로 아키텍트, 자하 하디드, FOA, 3개 건축 회사가 참여하였다.

국제 지명 현상 설계 방식을 취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학교에는

2003년 10월 21일 현상 설계 가이드 라인인 Green Book과 많은 양의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조종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 그래서 그냥 턴

디자인 데이터가 3개 건축사에 주어지며 본격적인 현상 설계가 시작되

키 방식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내가 이 일에 개입했을

었다. 각 팀은 각기 사이트를 방문했고, 학교에서는 파리와 런던에 있

때는 국제 현상 설계라는 큰 틀 속에서 오픈 컴피티션(open competi-

는 건축가들의 오피스를 방문하여 프로젝트와 관련된 추가적인 질문

tion) 쪽으로 가닥이 잡혀 있었는데, 바로 실현을 해야 하는 건물이라

사항에 대하여 구체적인 답변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그 내용들은 온

는 점에서 국제 지명 현상 설계의 방식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또한 유

라인을 통해 모두 공유하였다. 심사위원단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

명 건축가들을 참여시킨 대대적인 건축 프로젝트의 진행이 대학들의

다. 지하 건축물이라는 특성상 구조, 설비, 방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

홍보와 모금에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외국의

된 기술심사단과 교내 및 국내외 건축가들로 구성된 본 심사단으로 이

경우 그러한 사례들이 많다.

루어졌다. 심사 전 모든 심사위원을 한 자리에 모시고 프로젝트 설명회

국내 건축가가 배제된 것은 한 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앞서 말한

를 가졌고, 기술 심사는 본 심사 하루 전에 이루어졌는데 세 개의 안을

펀드레이징(fundraising)의 이유가 컸다. 당시 재무처장의 말을 빌리

보면서 예상되는 기술적인 문제들을 살펴보고 기술 보고서를 작성하

자면, 모금에 의해 지어지는 건물이어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고려하지

였으며 이는 본 심사시 보고되었다. 본 심사는 참여 건축가들의 프로젝

않을 수 없었고, 모금 대상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긍정적인 의미에서

트 설명 및 질의 응답으로 구성된 오전 세션과 심사위원들 간의 의견을

이슈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의도가 있었다. 또 다른 이유로 지하 건축

주고 받는 오후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심사 끝에 도미니크 페로의 안이

물을 많이 경험한 국내 건축가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FOA나

선정되었고, 그 날 저녁 관련자들이 모두 모인 만찬에서 심사 결과를 공

WIDE ISSUE 2 : ECC(The Ewha Campus Complex)


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름만 빌리고 실시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변경하는 사례

당선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가? ⓦ 세 개의 안 다 매력이

와는 차별되는 좋은 선례라고 생각한다.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적으로는 하디드의 것이 굉장히 매력 있어 보였

프랑스 건축가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

지만, 실현되기에 어려울 거라고 봤다. 결정적인 것은 방재였다. 앞서

지역적, 시간적 갭들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재료에 대한 이해나

도 얘기했지만 기술심사단에서 그 부분에 대해 심사를 따로 했다. 하디

시공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설계사 및 시공사 간의 업무

드의 안은 아마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 이야기긴 하

범위에도 차이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실시 설계도를 건설사에서 작성

지만, FOA는 한국을 미리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특히 콘텍스트를

한다는 데서 오는 차이다. 물론 서로 메워 나가는 부분이긴 했지만, 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기존 운동장의 콘텍스트

정이 늦어지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페로는 건축의 완성도를 더 중

를 굉장히 많이 유지하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던 반면 그렇지

시하는 건축가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유연성을 발휘할 줄 아

않게 생각한 사람도 꽤 있었다. 페로의 안은 지하 캠퍼스에 대한 우리의

는 건축가다. 다시 말해 고집 부릴 것과 받아들일 것을 잘 알고 있는 건

우려를 강력한 콘셉트 밸리(valley) 하나로 날려버린 안이었다. 기술심

축가다. 끝나고 보니까 왜 그가 고집을 부렸는지, 혹은 쉽게 오케이를

사위원들이나 본 심사위원들이 볼 때 그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

했는지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을까? 작품의 실현성이란 측면에서도 이 안이 가장 나아 보였다.

완성된 ECC에 대해서 묻겠다. ECC의 콘셉트는 캠퍼스 밸리(campus

당선된 외국 건축가와의 계약은 어떻게 체결되었나? ⓦ 외국 건축가가

valley)라는 매우 심플한 개념을 가진다. 그런데, 이 밸리의 스케일이

참여한 국내 프로젝트들은 국내 건축가를 계약 대상으로 하면서 외국

너무 과하다는 의견도 많다. ⓦ 빛의 폭포가 양쪽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건축가는 국내 건축가와의 서브 컨트렉터(sub contractor)로 참여하

계곡의 콘셉트다. 폭 25m, 길이 250m의 거대한 계곡 양쪽에 지하 6개

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와 외국 건축가, 학교와 로

층이 섰다. 연면적은 70,000m2로 950석의 독서실, 41개의 세미나실, 5

컬 건축가가 직접 계약하는 삼자 계약 방식을 택했다. 선례가 없었으므

개의 유비쿼터스 강의실, 272석의 영화관과 670석의 공연 극장이 들어

로 어려움이 컸고, 또 국내에 건축 설계 계약을 이해하고 있는 국제 변

서 있다. 이런 거대한 지하 건축은 채광과 환기 문제의 해결이 제일 중

호사가 없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요하다. 프로그램을 담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고. 실제로 ECC는 지하 4

외국 건축가와의 협업에서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일은 만만찮아 보인

층에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밝기를 가진다. 낮에는 복도 조

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 학교에서는 외부 전문가 중 RA라는 역할을

명을 꺼둘 정도다. 아마도 창문이 적은 지상 건물보다 오히려 채광과

두어 두 조직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특히 업무 범위에 대

환기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같은 채광과 환기는 밸리, 즉 선큰

한 부분은 계약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그 범위를 확인하는 과정 또한 쉽

의 극대화를 꾀한 이유가 된다. 밸리의 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

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업무 범위와 계약의 핵심은 딜리버러블 리스트

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므로 막연히 넓다 좁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

(deliverable list)로 정리되었다.

을 것 같다. 구조 모듈이나 프로그램의 적정 크기들을 찾아서 결정했

외국 건축가의 업무 범위는 어디까지였나? 많은 경우에서 스키매틱 디

다고 생각한다.

자인(schematic design)이나 기본 설계까지만 하는 것을 봤다. ⓦ 페

지하 캠퍼스로 들어가는 중앙의 길은 완만한 경사로와 계단과 벤치 형

로는 실시 설계는 물론이고 아직까지 팔로우 업(follow-up)을 하고 있

태로 조성되어 있다. 단순한 ‘통과로’라기보다는 광장 혹은 거리로서

다. 국내 관행과는 다르게 외국 건축가가 실시 설계, 시공 지원 과정

페로는 이 곳이 야외 극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고, 또 보는 관점

(construction administration)까지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또 가구나

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실제로 다양한 기능

사인(sign) 등의 기본 설계도 페로가 직접 맡아서 했다. 외국 건축가의

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 나름대로 잘 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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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도 하고 작업도 하고. 계단은 잘 오르내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최소한의 개념이 지켜지는 선에서 양보를

외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다. 사실 ‘밸리’의 적극적인 활용

굉장히 많이 했다.

에 대한 문제는 그것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학교 운용의 문

내부 공간의 특징이 있다면 말해 달라. 또 내부 벽면의 흰색 페인트 마

제도 포함된다. 두고 볼 일이다.

감은 원래 제물 치장 콘크 리트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외장재나 마감

페로의 현상안을 보면 몇 개의 브릿지가 건물 양측을 연결하고 있었는

재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 큰 실이 있는 곳을

데,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 현상 설계 당선 이후 공사비나 한국적인

빼고 안쪽으로 복도가 하나씩 더 있다. 즉 실들이 배치된 곳은 레이어

정서 등을 고려하여 조정 작업이 있었다. 브릿지는 시야를 가린다는 측

가 두 개다. 이 같은 중복도 형식은 각 실을 어둡게 할 수도 있는데, 커

면도 있고, 또 추락의 위험성도 있어서 없어진 요소다. 그리고 직접 다

튼월과 나란한 벽들을 모두 유리로 해서 어둡고 폐쇄적인 느낌을 해소

녀 보면 알겠지만, 모든 층에서 건물 양측이 서로 통하고 있어서 굳이

했다. 또 유리벽에는 그라데이션(gradation)을 줘서 시선을 적당히 가

브릿지의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페로의 주장대로 모든 층이 그라운

릴 수 있도록 했다. 평당 500만원의 공사비 안에서 최소한의 재료가 적

드 레벨(ground level)인 셈이다.

절하게 쓰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이 공사비와 관련되어 있는데, 무

건물의 지붕, 즉 언덕 부분의 조경은 아마도 초기안과 비교했을 때 가

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재료는 친환경 시스템에 일부 쓴 걸 빼고 거의

장 변화가 많은 부분이 아닌가 한다. 키 큰 교목들은 키 작은 관목들로

100%로 국산화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협의를 충실히 했고, 국산화

교체되었고, 스트립(strip) 형태의 바닥 패턴은 구불구불한 길의 형태

시켰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건축가가 일일이 신경을 썼

로 변했다. 프랑스식 정원에서 한국식 정원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다. 디자인 과정에서 제물 치장이 어떨까, 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공사비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한국적인 정서에 맞춘 것 아닌가 싶은데?

우리의 정서라든가 여학교라는 점을 감안해 봤을 때, 그리고 그레이 계

ⓦ 진행 과정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던 페로는 한국

통의 스틸(steel)재와 함께 썼을 때의 느낌을 고려하여 화이트 마감으

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다녔다. 그리고 공사비를 고려하면서 한국적인

로 결정한 것은 굉장히 초기의 일이다. 또 다소 차가울 수 실내의 느낌

정서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을 하여 최종안을 만들어냈다. 애

을 완화시키기 위해 바닥은 부분적으로 자라목을 썼다. 물량이 많았던

초에 페로는 정원 같은 캠퍼스를 원했고, 실제로 건물의 상부에 파크

덕에 자라목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자세히 들

(park) 개념의 정원을 설계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교목을 심으려면 그

여다보면 ECC에는 필요한 것 이외에 재료가 과하게 사용된 부분이 없

만큼의 흙의 깊이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체가 요구된

다. 선택과 집중이 잘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다. 당연히 공사비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천장은 노출을 시키고 흡음판을 매단 형태다. 뭔가 마감이 덜 끝난 것

하나는 잘 다듬어진 프랑스식 정원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결국 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친환경 시스템

경 설계를 새롭게 해야 했는데, 그 때 이화여대에 있는 모든 나무의 수

과 관련 있다. 그 중 하나인 콘크리트 코어 액티베이션(Concrete Core

종을 조사하여 식재도를 처음 만들었고, 회양목처럼 교내에서 흔히 볼

Activation)은 콘크리트 노출 천장을 통한 복사 냉난방 시스템이다. 자

수 있는 나무들로 다시 정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디자인은 한국적인 것

연히 천장이 노출될 수밖에 없고, 거기에 가려야 할 부분과 흡음 문제

을 고려하여 교내 조경 담당 부서와 함께 의논을 해가면서 작업을 했

등을 고려하여 흡음판을 댔다. 지하 4층은 이 친환경 시스템이 적용되

다. 조경의 시공은 직영을 택했다. 조경은 집과 다르게 해가 갈수록 달

지 않았지만, 지하 1,2,3층의 개념을 그대로 천장에 반영했다.

라지기 때문에 실제로 관리하는 사람이 직접 공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

ECC에 도입된 친환경 시스템을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 ⓦ 친환경 설계

각에서였다. 사실 조경 부분이 미흡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물론 페로도

의 세계적 권위자인 독일의 Klaus Daniels가 맡아서 함께 진행했다.

이해를 한 부분이다. 그도 관철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Cooling Radiator, Thermal L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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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th, Concrete Core Activation 등이다. Cooling Radiator는 공조기

피트니스 센터, 은행, 편의점, 서점, 영화관, 교직원 식당 등을 중심으로

를 이용하여 찬 공기를 불어 넣는 냉방 시스템과는 달리 냉수를 파이프

커피숍이나 빵집, 꽃집들이 들어왔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그다지 과하

(radiator)에 통과시켜 복사 냉방 및 응축 효과를 얻는 냉방 시스템이

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 복사 냉방이 주된 냉방 방법이어서 공기를 직접 실내 거주자에게 많

공사비는 대략 어느 정도인가? 공사비 초과는 해외 건축가를 초빙했을

이 전달하지 않으면서도 냉방 효과를 얻으며, 지하수 개발 이용 시 에너

때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다. ⓦ 디자인 공모 시작부터 지속적으로 총

지 절약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Thermal Labyrinth는 지상에서 유입

시공비 예산을 명시했다. 공모 가이드라인뿐 아니라 설계 계약서에도

된 외기를 구조체와 지중벽 사이에 설치된 미로(labyrinth)처럼 구불

포함시킴으로써 외국 건축가를 초빙했을 때 늘 발생하는 우려를 해결

구불한 긴 통로를 지나게 하여 공조기에 유입되는 외기 온도를 자연적

했다. 2003년에 500만 원으로 잡았고 그것을 유지했는데, 그 금액에 이

으로 조정하는 에너지 절약 시스템이다. 열 미로를 지나는 외부 공기는

정도 퀄리티의 건물은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지하 6층에서 내부로 유입되기 전까지 여름에는 7도 정도 식혀지고 겨

마지막으로, ECC를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울에는 10도 정도 덥혀진다. 지하 건물인 ECC에 적용성이 크다고 할 수

조금만 들려 달라. ⓦ 알다시피 최근 국제 현상 공모가 무척 많이 추진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이야기한 Concrete Core Activation은 연중 일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의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은 것으

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지하수의 특성을 이용하여 실내 천장 슬라브에

로 안다. 이는 프로젝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선례에만 의존하기 때

냉난방을 위한 파이프를 매설하여 실내 공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시스

문이 아닐까 한다. ECC는 선례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젝트에 맞는 독특

템으로 지하수 개발 이용 시 에너지 절약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앞으

한 프로세스를 찾아나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공모 방식뿐 아니라 계약

로 주목 받을 부분이 이러한 환경 친화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물론 1

방식까지, 물론 나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년은 지나 봐야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놀랄 만한 체험을 했다. 실제로

현상 설계가 공공 프로젝트인 경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할 것

2월에는 에너지 사용 없이 난방을 했다.

을 권하고 싶다. ECC만 하더라도 1년을 꼬박 준비하면서 글로벌 스탠

엘리베이터 뒤편 선큰 가든(sunken garden)의 메탈(metal)로 된 거대

다드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런 일들은 다 사람이 하는 거다. 그

한 벽면이 인상적이다. 콘셉트가 뭔가? ⓦ 수직의 가든(garden)으로 계

런데 공공 프로젝트들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

획된 부분이다. 실제로 나무를 심을 계획이었으나 우리 나라의 혹한기

다. 자료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가이드 라인이 나온

때문에 포기됐다. 현재는 사선의 기둥을 둘러싼 형태인데, 모티브를 서

것을 보고 황당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ECC로 벤치마킹하러 무척 많이

도호 작가의 설치 작품 <군번표>(군번표를 이어 붙여 갑옷으로 만든)

들 온다. 벤치마킹도 좋지만 오랜 준비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거

에서 얻어 왔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약간씩 움직이기도 하고…. 메탈

듭 강조하고 싶다. ⓦ

표면에 반사된 빛이 안으로 좀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리 | 정귀원(편집장)

일각에서는 캠퍼스 공간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 것 같 던데? ⓦ 이 건물을 하면서 이용률 조사나 마스터플랜 점검 등, 1년간 기획을 했다. 그 과정에서 요즘 학생들은 단순하게 강의실만 양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학교의 생활 공간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캠퍼스 상업화에 대한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생들의 생활에도 확실히 변화가 있 음을 알아야 한다. ECC에는 열람실과 자율적으로 사용되는 세미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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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를 향한 젊은 건축인들의 시선

지난 6월 21일,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을 틈타 세 사람의 젊은 건축인이 ECC에서 뭉쳤다. 박병규(31, 이웨스 건축), 전진석(30, 리 건축사사무소), 이웅희(28, (주)혜원까치) 씨 등, <와이드>의 독자 기자이기도 한 이들은 새로 들어선 ECC를 견학하고 자 신들의 견해를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또 마침 작업실을 지키고 있던 이 대학교 건축과 5학년 학생들을 방문하여 사용 자가 갖는 생각을 함께 들어 보기도 했다. 아래의 내용은 이들의 이야기를 편집한 것이다. 거리낌 없는 대화를 위해 익명 처 리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했음을 밝힌다. 젊은 건축인들과 학생들의 의견은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일 수 있으 나, 건축이 우리의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을 활짝 열어 놓고 사심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필요할 것이다.

도미니크 페로의 ECC ⓦ | 박병규 | 도미니크 페로의 설계로 기대했던

그런데 여자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남성적인 이미지에 가깝

ECC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FOA의 작품이 아쉽다. 지금

다. | 이웅희 | 스케일과 관련 있지 않을까? 길이는 250m가 넘고 중앙

의 것은 너무 심플하지 않나? | 학생 B | FOA안은 기존 운동장의 형태

광장의 폭도 25m에 이른다. 또 4개 층 높이의 양쪽 건물과 크기에 있어

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안인데 동선을 연결하고 푸는 것은 괜찮아 보였

서 상식을 깨는 계단이 조감도로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스케일감을 주

지만 전체 콘셉트가 좀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 학생 A | 자

는 것 같다. | 전진석 | 덕분에 주변의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

하 하디드의 안은 곡선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정문에서는 그 건물

보인다. | 학생 B | 사진을 찍으면 사람이 개미처럼 나올 정도다. 하지

만 보였을 것 같다. 지금 페로의 안은 앞쪽으로 다 열려 있고, 또 뒤쪽

만 그 나름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시설이 들어간 후 내부를 사용하면서

의 건물들도 보인다. 캠퍼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건물들

부터는 그런 스케일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마 처음 본 사람들에게

을 서포트(support)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학생 D | 알고 있겠지

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응이 되어서 그런 건가? | 학생 D | 위압감

만, 원래는 정문을 같이 설계했다. ECC보다 먼저 완성이 되었는데 지

을 준다는 평가도 있지만, 밖에서 보면 그럴지 몰라도 실제 중앙 광장

금은 없어졌다. 좀 아쉽긴 하지만, 본관과 대강당을 가린다는 이유에

의 가장 낮은 레벨에 서 있어도 오히려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 박병

서 없앴다고 하더라.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페로의 안이 가장 적합

규 | ECC 안에서 느끼는 스케일감보다는 주변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

하다고 생각된다.

다. 스케일 차이로 인해 기존 건물들이 실제보다 더 작아 보이는, 그래

인지성 ⓦ | 학생 A | 이화여대 건축과 5학년이다. 공사하는 내내 학교

서 압도당하는 모습에서 부조화를 읽게 된다. | 전진석 | 하지만 그것

를 다녔고 또 완성된 것 보고 졸업해서 너무 다행이다. 이 학교의 학생

이 새로운 질서를 위한 장치가 될 수 있지도 않을까? ECC의 끝에는 본

으로서 ECC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학생 B | 상징적인 의미가 커

관 건물이 서 있고, 본관을 중심으로 중앙도서관, 학생문화관, 대강당

서 많이들 좋아하지만,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겐 공간 인지가 조금 어려

등이 산재해 있다. 어찌 보면 캠퍼스 전체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하

울 것 같다. 동선이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자주 이용하는 학생들

고 있는 셈이다.

에게는 문제가 없다. | 학생 A | 동감한다. 나는 그 공간들이 무척 재미

중앙 광장의 용도 ⓦ | 학생 A | 중앙 광장을 굉장히 큰 길이라고 생각

있다. 하지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 학생 C

했을 때 어차피 그 길 끝까지 걸어갈 일은 별로 없다. 적절한 지점마다

| 요즘은 외부인들이 ECC를 보러 참 많이들 온다. | 학생 B | 예전에는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고, 또 수직 이동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기 때

막혀 있는 것이 없었는데도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학교는 아니었

문이다. 그리고 나는 중앙 광장의 계단에 앉아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

다. 주변을 감싸 안으려는 듯한 계획으로 학교와 외부와의 경계를 허물

이웅희 | 대학을 도시로 개방시키고 도시를 대학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고 접근성을 높인 것 같다. | 학생 A | 정문에서 보았을 때 인지가 더 잘

페로의 전략으로 알고 있다.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 이 중앙의 광장이 아

될 수 있게 어떤 표지가 있다면 좋지 않았을까? | 학생 C | 페로가 설계

닐까 한다. 샹젤리제를 연상할 수 있는 공간이란 것도 이화여대 앞거리

한 신축 정문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지 않았을까? 분명 그 정문을 설계

의 연장으로 본 것일 테고. 페로의 생각대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한 건축가는 전체적인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것을 통해 지하로의

실제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 학생 D | 시험 기

접근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이웅희 | 많이 아쉬운가? | 학생

간에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중앙의 계단에 앉아서 정문 쪽을 바라

C | 아쉽다기보다는 허무하다. 그래도 애써 지은 것일 텐데….

본 적이 있다. 무용을 전공하는 고등학생 한 무리가 ECC 안으로 들어서

스케일 ⓦ | 학생 C | ECC는 매우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다. 페로 스스

는데, 반으로 나뉘어 굉장히 자유롭고 율동감 있게 걸어 들어오는 것을

로가 말한 커다란 바위가 갈라져 생긴 길의 이미지, 밸리(valley)의 이

보면서 퍼포먼스와 같은 공연을 해도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 학

미지를 비롯해서 블랙홀의 이미지, 모세가 가른 홍해의 이미지 등등….

생 B | 실제로 얼마 전에 ECC 내부 공간에서 전시(디자인 학부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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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던 걸로 기억한다)를 하면서 중앙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봤

을 경험할지도 모르는 거고. | 전진석 | 그래도 조경은 참 많이 달라진

다. | 학생 D | 아직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공사비 같은 현실적인 문

분명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가 있었을 수 있겠지만, 교목이 관목으로 대치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 | 박병규 | 지하 건축은 사실 새로운 개념

도 바깥으로 뻗은 직선의 바닥 패턴들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 이웅희

도 아니지 않나? 이미 페로는 자신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비슷한 개

| 방금 말한 것처럼 한국적인 정서가 가미된 것은 아닐까? 구불구불한

념을 썼다. | 이웅희 | 현재 국내외에서 유행하고 있는 ‘랜드스케이프

길과 키 작은 나무들의 조화가 딱 한국의 정원이다.

아키텍처’의 실현이라는 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개념 자

내부 공간 ⓦ | 이웅희 | 3여 년 동안의 작업이 드러난 건데 단순한 콘

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옥상 조경한 지

셉트에 솔직히 좀 허탈하다.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외형

하 건축물이란 느낌이다. | 전진석 | ‘건물이 아닌 랜드스케이프를 창

은 계곡이라는 콘셉트 때문에 그렇다고 치지만, 실내 구성에서 공간의

조’하고 ‘건축의 사라짐을 반영’하고자 한 것은 애초부터 페로의 의도

아기자기한 그런 맛은 없는 것 같다. | 학생 B |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였다. 대신 그는 비움과 침묵이란 요소들로 최소한의 개입을 꾀하고,

개인적으로 열람실을 좋아하는데, 보통 중앙도서실 같은 곳은 폐쇄적

그로부터 랜드스케이프와 현재의 주변 도시 콘텍스트를 변화시키고자

이 느낌이 있지만 ECC의 열람실은 빛도 들어오고, 앉아 있으면 반투

했다. 결국 ‘관계’를 추구한다는 관점에서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으로 바

명 유리창 너머 중앙광장과 반대편 건물이 아련하게 보인다. 그 느낌

라볼 수 있지 않을까? | 이웅희 | 학교의 중심축으로 예전에 비해 열려

이 좋다. | 학생 D | ECC 내부에는 전시나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공간

있는 캠퍼스를 지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 박병

들이 찾아보면 많다. | 박병규 | 엘리베이터 홀 뒤쪽에 메탈로 구성된

규 | 페로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기하 형태가 ECC에서

거대한 벽은 좀 이질감이 들더라. | 학생 D | 정원이라고 하던데, 지금

도 여전히 드러난다. 기하 공간이 지표면 아래로 침하된 것 같은, 좀 심

은 물이 말랐지만 물이 있는 공간이다.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내릴 때

하게 이야기하면 길이 264m의 오피스가 그냥 지하에 박힌 듯한 느낌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 입면에서는 모더니스트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금속판 때문

캠퍼스 내 상업 시설 ⓦ | 박병규 | 지하 4층에 몇몇 상업 시설들이 들

인지 좀 차갑고 권위적이다. 또 정면의 캐노피들은 수평 알루미늄 바의

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ECC를 많이 이용하는지 궁금하다. | 학

위치에 설치되어 있어서인지 잘 인지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결성을

생 B | 건축과 학생들은 밤샘 작업 후 피트니스 센터의 샤워실을 이용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복합 시설에 왜 차갑고 단조로운 패턴

하기도 한다.(웃음) | 전진석 | 요즘 대학들은 학생들이 학내에 더 오

의 입면을 계획했을까? 친근하고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느낌을 줄 수도

래 머무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고민한다. 상업 시설도 그것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학생 A | 스테인리스 스틸 핀이 빛을 반사하는

일환인가? | 학생 D |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또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모습은 아름답지만 측면에서 봤을 때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굳이 들어오지 않아도 될 업체들이

이다. 건물의 단조로움은, 무엇보다도 ECC는 학교 건물이고 지하 6층

들어와 있는 것은 좀 그렇다. 어떤 업체는 또 다른 분점이 ECC에서 5분

규모의 큰 건물이라는 데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한 것

거리도 안 된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되는데…. | 학생 A | 하지만 영

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화관이 들어선 것에 대해서는 환영이다. 특히 예술 영화 전용관이라는

초기안과의 비교 ⓦ | 박병규 | 초기안의 브릿지는 아예 사라졌다. 인

것이 더욱 기쁘다. | 박병규 | 학생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는데 학

상적이었는데…. | 학생 C | 초기안의 브릿지는 위험해 보였다. 실제로

교가 옛 가치만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사회의 모습

조경된 지붕의 난간 가까이에 서 있으면 그야말로 아찔한데, 브릿지가

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더 소중한 가치들

굳이 필요하진 않았을 것 같다. | 이웅희 | 그림으로 본 것과 실제는 많

을 보여 주어야 하는 곳라고 생각한다. | 이웅희 | ECC가 처음도 아니

이 다를 것이다. 길이가 20m 넘는 브릿지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구조

다. 이미 고려대, 숙대 등 몇몇 대학들이 도입하였고 몇몇 대학들은 구

물과 핸드레일이 먼저 떠오른다. | 박병규 | 그래도 건축가가 가능하

상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을 마치 동시대의 트렌드로 받아

고 나쁘지 않았으니까 계획했겠지. | 이웅희 |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

들이는 것은 문제다.

한 장치였을 수도…. | 박병규 | 독일의 건축 잡지 중에 유럽의 현상 설

젊은 건축인들의 아쉬움 ⓦ | 박병규 | 그런데, 국내 건축가가 참여를

계를 주로 다루는 잡지가 있다. 그 잡지의 말미에 보면 당선된 건물들

못한 것은 아쉽다. | 이웅희 | 한국 건축가가 몇 명 끼어 있었다면 외국

을 준공 후 다시 리뷰하는 란이 있다. 현상안 그대로 실현이 되는 걸 보

건축가들이 좀 더 한국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을까? | 박병규 | 우리 건

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 전진석 | 아무래도 한 번에 그 나

축가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했을까? | 전진석 | 그래도 건축하는 젊은

라의 풍토나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페로도 우리나

사람들이나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

라를 여러 번 오가면서 오류를 발견했을 테고, 당연히 수정을 했을 것 이다. | 박병규 | 하긴 백남준 기념관처럼 바뀌는 것도 있는데 사실 이 정도면 원안이 거의 고수된 것이긴 하다. 외국 건축가에게 실시 설계까 지 참여하도록 유도한 시스템이 마음에 든다. 오히려 그게 더 중요할 수 있다. ECC의 평가는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지만, 진행 과정은 좋은 선례 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또 앞으로 다른 대학에서 비슷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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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of Suryusanbang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의 책들 궁궐의 현판과 주련 1,2,3

조선 5대 궁궐에 숨은 뜻을 읽는다 1권 경복궁 편, 2권 창덕궁^창경궁 편, 3권 덕수궁^경희궁^종묘^칠궁 편 조선 왕조 500년의 숨결을 간직한 우리 궁궐에는 각각의 건물은 물론 드나드는 작은 문 하나에도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또 궁궐 안 수많은 전각 기둥에는 옛 경전에서 뽑은 구절이며 당대 문장가들이 지은 한시를 새긴 주련이 붙어 있다. 현판에 새긴 세 글자에는 해당 건물의 특성과 역할뿐 아니라 당대 통치 이념과 철학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으며, 주련에는 멋과 운치를 즐기던 옛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렇기에 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궁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며, 그 속뜻을 이해하고 나면 궁궐은 더 이상 적막한 옛 건물이 아니라 전통과 역사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 책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 국내 최초로 조선 5대 궁궐과 종묘에 남아 있는 모든 현판과 주련의 글씨를 일일이 해석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쉽게 풀어 냈다. 또 인덱스 기능을 강화하고 각 항목마다 현판과 주련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넣어 궁궐 답사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1년여에 걸쳐 촬영한 풍부한 사진을 통해 궁궐 구석 구석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Traditional Korean Crafts :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조

조선 사대부의 고아한 취향을 엿보다 공예는 그 자체로 예술이며 또한 삶을 비추는 증거물이다. 공예품에서 우리는 대를 걸쳐 축적한 지혜와 삶이 녹아든 솜씨, 그리고 삶의 깊은 가치를 읽는다. 2007년 미국 뉴욕의 UN 본부에서 열린 한국 전통 공예 UN 전시와 함께 발간한 이 책은 무형 문화재와 공예가 등 우리 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18세기 조선 사대부 일상의 문화를 재현한 작품들과 함께 본문을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에스파냐 어 4개 국어로 담았다. 쉽고 뛰어난 번역, 아름다운 작품 사진은 이 책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한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by Suryusanbang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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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4호 | 데일리 리포트

graphic © Eum Moo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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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도크(Albert Dock), 폐허의 부두에서 문화 기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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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4>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유럽이 항상 고민하는 것은 버릴 것과 남길 것의 선택이다. 물 론 유럽인은 버리는 것에 익숙지 않다. … 재생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 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현재에 적합하도록 지속적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작은 물건이 든 집이든 도시이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버리는 것은 적게, 남기는 것은 많게, 이것이 재생의 원칙이 다.” — 김정후,『유럽 건축 뒤집어보기』 리버풀이라는 도시 ⓦ 요즘 영국에서 돈이 몰리는 도시가 있다. 리버풀이다. 가장 큰 이유는 리버풀이 2008년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1985년 유럽연합이 제정한 유럽 문화 수도 제도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하여 1년 동안 도시를 집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혜

↓알버트 도크(Albert Dock) 내.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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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을 부여받는다. 글라스고우가 지난 1990년에 선정되었지만, 이는 스코틀랜드 도시이므로 명실공히 영국 도시로는 리버풀이 최초인 셈이다. 신청서를 낸 12개 도시 중에서 리버풀은 옥스포드, 벨파스트, 브리스톨, 카디프, 버밍엄, 캔터베리 등 쟁쟁한 경쟁 도시들을 물리쳤다. 그렇다면 리버풀이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현재의 가치보다는 유럽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 능성이 보다 높게 평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머지강을 중심으로 천연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리버풀은 17 세기부터 해상 무역 도시 및 제조업 도시로 성장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해상 무역 거래량 의 40%가 리버풀을 통하여 이루어질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리버풀의 성장은 달갑지 않은 오 명도 동시에 가져왔다. 무역의 발달과 함께 미국, 아프리카, 인도, 동유럽 등에서 온 노예들을 거래하는 유럽의 본거지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어쨌든 리버풀은 무역을 중심으로 세계의 문화, 예술 그리고 사 람들이 어우러진 화려한 도시였다. 17, 18세기의 역사학자들은 당시의 리버풀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 아볼 수 없는 역동적인 도시로 묘사한 바 있다. 유럽 대부분의 산업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수 백 년 동안 지속되었던 리버풀의 영광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크게 위축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지나면서 급격 히 쇠퇴일로에 들어섰다. 1980년대 중반 리버풀의 경제는 방향을 상실했고,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당시 리버풀의 실업률이 영국 전체에서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화려했던 과거 를 되로 한 채, 버려진 항구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음이다. 알버트 도크, 리버풀 변신의 서막을 올리다 ⓦ 테이트 모던의 예상을 뛰어넘은 성공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테이트 재단은 영국 내에만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등 네 개의 현대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다. 1897년에 개관한 테이트 브리튼이 본관이고, 마가렛 대처 정부 의 미술 정책 후원 하에 1988년에 테이트 리버풀이 두 번째로 개관했다. 급격히 쇠락한 항구 도시에 현 대 미술관을 설립한다는 생각은 당시로서도 무모하기 짝이 없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테이트 재단은 신 축이 아닌 머지 강변에 버려진 알버트 도크의 창고 건물 일부만을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결 정했다. 적어도 당시로서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파격적인 발상이었음에 틀림없다.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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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름없고, 결과적으로 테이트 모던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믿음도 테이트 리버풀을 통하여 얻은 것이 아닐는지. 테이트 리버풀로 탈바꿈한 알버트 도크는 엔지니어인 제세 하트레이(Jesse Hartley)가 1843년에 디자인했다. ‘ㅁ’ 자의 닫힌 형태를 가진 알버트 도크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머지강에 큰 배 들이 안정적으로 선착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립되었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하여 목재를 사용하지 않고 철, 벽돌, 돌을 주재료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명실공히 세계 최고, 최첨단, 최대 규모의 부두로 인정 받았다(선적량은 축구 경기장 4개를 합친 규모다). 하지만 알버트 도크는 해 상 무역의 쇠퇴로 인하여 100여 년의 화려했던 역사를 뒤로 한 채 1972년에 완전히 문을 닫고 방치되기 에 이르렀다. 이를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이 원형을 유지한 채로 최소한의 리노베이션만을 통 하여 미술관으로의 개조하도록 제안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건물의 원형은 거의 100% 에 가깝게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견상으로는 전면 회랑에 사용된 도릭 기둥에 주홍색을 칠해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도록 한 것이 유일한 차이다. 대규모 화물 운송 작업을 위한 창고였으므로 내부 공간은 다양한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창고 전면을 둘러싼 회랑은 있는 그대로 통로 및 외부 휴식 공간으로 바뀌었다. 테이트 리버풀이 알버트 도크에 자리잡은 것은 알버트 도크 및 리버풀 전체의 탈바꿈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테이트 리버풀은 거대한 알버트 도크의 북쪽 일부만을 사 용한다. 따라서 1986년에 해양 박물관이 이곳으로 이전했고, 1990년에는 리버풀 최고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비틀즈를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인 비틀즈 스토리가 개관했다. 그런가 하면 1994년에는 세계 최 초의 노예 박물관을 개관했다. 노예 박물관은 리버풀의 어두웠던 단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화합의 메 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전혀 다른 성격의 독특한 박물관들이 한 장소에 집중된 사례는 흔치 않을 듯싶다. 알버트 도크가 문화 예술의 거점으로 자리잡음으로써 도크 내의 나머 지 공간들은 레스토랑, 카페, 상점, 화랑, 기념품점, 각종 사무실 등으로 빠르게 채워졌다. 알버트 도크 는 명실상부한 다목적 복합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알버트 도크의 화려한 변신은 지속적으로 도시 전체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유발했다. 현재, 알버트 도크 주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 모 개발들이 한창 진행 중이다. 새로운 박물관, 국제 회의장, 공연장, 주거 시설 등 얼핏 보기에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항구 도시에서 문화 예술 도시로 거듭나다 ⓦ 항구 도시는 많은 장점과 단점을 갖는다. 가장 큰 장점은 교역을 통하여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리버풀 또한 그러했다. 17, 18세기 영국에서 런던을 제외하고 경제, 문화, 예술 모든 측면에서 리버풀과 경쟁할 수 있는 도시는 없었다. 건축적으로만 보더 라도 런던에 버금가는 많은 고전 및 현대 건축물들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로 인하여 전 세계의 문화 예술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과거에 유럽을 대표했던 항구 도시 중에서 여전히 그 명성 을 유지하는 도시는 거의 없다. 항구 도시는 산업 및 사회 구조를 전환하는 데 치명적 한계를 갖기 때문 이다. 리버풀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리버풀은 예상을 깨고 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 서 21세기에 유럽의 주역으로 빠르게 떠오르는 중이다. 이번에는 유럽을 주름잡던 항구 도시로서가 아 니라 문화 예술 도시로서다. 그러면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일까? 직접적인 계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한 도시 재생 정책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보다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리버풀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최상의 단 어가 ‘다양성’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인종, 문화, 예술, 건축 모든 측면에서 다양성을 지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쇠락한 도시의 다양성은 어우러질 수 없는 모 래알과 같은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버트 도크를 중심으로 문화 예술 도시로서 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리버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 부심’과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들만의 정체성을 일깨운 것이다. 그리고 유럽이 다시금 리 버풀의 다양성과 문화적 잠재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첨병의 역할을 한 알버트 도크가 지난 20년 동안 이룬 성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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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후는 2003년까지 한국에서 건축가와 비평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했다. 이후 영국 바쓰 대학 건축학 박사 과정과 런던 정경 대학 도시 계 획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런던에서 도시 계획 튜터와 컨설팅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공간 사옥』 (공저, 2003),『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 (2005),『 상상/하다, 채움의 문화』 (공저, 2006),『유럽 건축 뒤집어보기』 (2007) 등의 저서가 있다.『조선일보』 와 ‘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를 공동 기획했고, 현재 KBS와 SBS 의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 자문을 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의 ‘공공 디자인 유럽 연수 프로그램’ 지도 교수를 맡고 있다.

↑알버트 도크 주변에 새롭게 건립 중인 국제 회의장과 주거 단지.

인 생각이지만 버려진 산업용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연습을 테이트 리버풀에서 충분히 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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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형태의 선교 기지, 순천 선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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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4>

일상에서 벗어나 답사를 다녀오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더구나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없는 고장을 찾는 일정은 여러 가지 일들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작년 연말 순천 지역 답사를 준비하다 무산된 적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아예 구실을 만들어 벚꽃이 눈처럼 날리던 4월에 순천, 보성, 벌교 지역 의 근대 건축물 답사를 다녀왔다. 순천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매곡동에 위치한 선교 마을이다. 당시 전라도 지역의 선교를 맡은 미국 남장로회는 전남 남동부 일대와 인근 도서 지역 선교 를 위한 선교 기지로 순천을 택하고 이 곳에 선교마을을 세운 것이다. 순천시 난봉산 한 줄기에 자리한 선교마을은 순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선교마을의 터로 이 곳이 선택된 이유는 토지 매입 당시 공동 묘지 등이 들어서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 지가가 쌌고, 전망을 중시하는 외국인 들의 취향에도 맞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약 33,000㎡의 토지를 구입한 뒤 1911년부터 1925년까 지 이 곳에 선교사 주거 시설, 교육 시설, 의료 시설, 종교 시설 등 20여 채의 건물을 세웠다. 이러한 시 설들의 배치는 가장 높은 곳에 선교사 사택을 배치하고 그 아래에 차례로 교육 시설, 의료 시설, 종교 시 설을 배치하여 가장 높은 곳에 신성 공간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배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지방 에 세워진 선교 기지가 단지 형태로 건설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 곳에 단지 규모의 선교 시설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인적, 물적 자원이 완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사 감독은 프레스턴과 스와인하트(Mr. M. L. Swinheart)가 교대로 맡았다. 스와인하트는 광주 수피 아여고 본관(윈스보로우 홀), 숭명학교 등 전남 지역 선교와 관련된 건물과 이화여대의 Pfeiffer Hall, Case Hall, Thomas Gymnasium 등의 건축 공사에도 관여한 사람으로, 건축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선교사였다. 건축물의 전체적인 외관을 이루는 화강암은 순천 인근에서 채석하여 조달했고, 타일과 벽 돌 등은 공사장 근처에서 구웠다. 이외에 목재, 페인트, 시멘트 등은 미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20여 동 의 건축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7개 동이며,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선교마을 현존 건축물에서 찾을 수 있는 건축 어휘는 질박, 대비와 화강암과 회색 벽돌에서 배어나오는 회색이다. 질박함은 건축물의 벽체에서 찾을 수 있다. 석조 건물이 갖는 엄중함이나 위압감은 질박함과 편안함이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느낌은 돌 표면과 모서리의 처리, 줄눈의 폭, 그리고 정면을 구성하는 가로와 세로의 비에서 나타난다. 돌의 표면과 모서리를 정다듬으로 처리하여 날카로운 직선은 울퉁불 퉁함으로 대치되었고, 크기는 사고석 크기로 자른 비정형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형성된 외관 은 석조 건물이 갖는 위압감을 상쇄시키면서 질박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비는 형태 대비와 장식 대비 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태 대비는 밋밋하고 단순하게 처리한 건물의 정면에 비해 건축물의 배면에는 매스의 조합과 부가로 형태미를 연출하여 극적인 반전으로 만들어냈다. 장식 대비는 장식을 부가하지 않고 단순하게 처리한 벽체에 비해 지붕은 장식요소를 배제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식 대비는 건물에 사 용된 재료의 차이에서도 나타난다. 즉 석조 건물 창문 상부의 직선 부재인 인방을 벽돌조에서는 곡선의 결원 아치가 대신하고 있다. 벽돌 건물에는 1층과 2층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띠돌림과 현관 포치의 캐 노피를 설치하기 위해 세운 벽돌 기둥 내쌓기는 석조 건물에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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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손장원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로 있으며, 본지 편집 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다시쓰는 인천 근대 건축』 『건축 , 계획(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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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 가옥 : 평지에 세운 장방형 석조 건물에 회색 벽돌로 축조한 구조물을 달아내어 전체적으로는 T자형 건물이다. ↓↓매산관 정면. ↓↓↓매산관 후면. 남학교 교사 : 현재의 명칭은 ‘매산중학교 매산관’이며, 교사 (6개의 일반 교실과 도서실)로 사용 중인 화강암 석조 2층 건물이다. 선교마을에 세워진 다른 석조 건물들이 사고석 크기의 돌을 바른층 쌓기를 한 것과 달리 이 건물은 부정형의 돌을 허튼층 쌓기로 처리했다. 건물의 정면은 3개의 베이(bay)를 두고 중앙의 베이를 약간 앞으로 돌출시키고 지붕도 이에 따라 처리하여 형태상의 변화를 연출했다. ↓↓↓↓외국인 어린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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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왓츠 기념관. ↓↓조지왓츠 기념관 내부. 조지 왓츠 기념관 : 선교마을에 현존하는 건물들이 대부분 석조인데 반해 외국인 어린이학교와 이 건물은 회색 벽돌을 쌓아 만든 벽돌조 건물이다. 정면의 크기는 폭 12.0m, 높이 11.56m이나 시각적 오차로 폭보다 높이가 더 길게 보이는 건물이다. 정면은 좌우 대칭으로 입면을 구성하고 출입구 앞에는 포치를 달아냈다. 포치 상부를 덮은 캐노피를 지지하기 위해 세운 벽돌 기둥의 상부는 3 단 내쌓기로 처리하여 주두를 만들었다. 개구부의 상부에는 결원아치를 설치했으며, 층을 구분하기 위해 벽면 중간에도 벽돌을 내쌓아 띠를 돌렸다. 현재 이 건물의 1층은 진료실, 2층은 사료실, 3층은 선교사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유품이 전시된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프레스턴 가옥.

↓코잇 가옥. 코잇 가옥 사지에 세운 화강암 석조 건물로 구조는 반지하 1층, 지상 2층이며, 계단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현관의 한쪽에는 베란다를 설치했다. 정면의 일부와 굴뚝에는 회색 벽돌이 사용되었으나, 대부분의 벽체는 석조이다. 돌 표면은 줄정다듬으로 처리하고, 개구부 상부에는 인방돌을 올렸다.

건물명

위치

건축 시기

문화재 구분

현재 용도

코잇 가옥 프레스턴 가옥 로저스 가옥 남학교 교사 외국인어린이학교 교사 조지 왓츠 기념관 크레인 가옥

매곡동 166-3 매곡동 166-9 매곡동 166-9 매곡동 147-6 매곡동 167-2 매곡동 142-5 매곡동 167-1

1913년 1913년 1915년 1916년 1910년대 1910년대 1910년대

지방문화재 등록문화재 비지정 등록문화재 등록문화재 등록문화재 비지정

사택 교육공간 체육실(1F)+음악실(2F) 일반교실+도서실 예배당 병원+기념관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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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제 씨와의 대화, ‘김기현 법칙-II’의 실체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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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書欌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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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건축을 주제로 다작의 저자 대열에 합류한 젊은 필객 장정제(38) 씨를 만났다. 얼마 전 그는 결 혼식장을 찾은 하객들에게 당일 오전 출간된 책 한 권씩을 선물했다. 신혼 부부 공동 저자 명의의 책이 었다. 결론부터 밝히면 시공문화사를 운영하는 발행인 겸 제작자인 김기현(45) 씨의 ‘건축 책 저자 발굴 의 법칙’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김기현의 법칙-I’은 봉일범(39,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 씨가 실체다. 개 인의 연속 저작물( 『지어지지 않은 20세기 — 건축』10권)을 집필하는 사이, 1천 쪽 전후의 현대 건축 이 론서( 『Architecture Theory since 1968』 )를 번역하는 미션을 수행한 필객의 전형을 봉교수가 처음 시 작했다면, 그 두 번째 바통을 장정제 씨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늦깎이 결혼까지 김기현의 법칙을 완성 하는 프로세스가 너무 닮았다. 이 두 사람은 아직까지 상면하지 못했다. 1. 책을 쓰는 목적은? 처음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를 생산해야 했다. 남의 것을 소비만 하면 그 체계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나만의 이야기를 갖는 수순이 필요하다. 우선 책을 쓰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인생의 목표? 종국엔, 식당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 우리 나라를 온전하게 보여 줄 수 있 는 식당, 수저 하나 그릇 한 점의 가치를 존중하는, 그래서 훔쳐가고 싶은 충동이 이는 식당을 운영하 는 것이다. 그런 건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의 공부가 깊어진 연후에 가능하겠지. 한마디로 압 축하면?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건축, 그 안에서 발생하는 큰 문화 사업을 벌이겠다. 그런 면에서 ‘식당’ 도 거대한 꿈의 단편이다. 2. 책을 구성하는 내용의 크레딧이 의문되는데? 개인적인 한계를 지적한 것에 공감한다. 절반 정도는 원 전에 충실한 상태에서 역자로서의 번안 작업에 충실하고자 했다. 절반 이상은 내가 쓴 글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책에 담긴 일부 사진인데, 가급적 원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를 2차 가공했 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도 뒤에 문제 삼는 자가 나타난다면? 그런 일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고 보 진 않지만, 그 땐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치사하게 변명하며 회피하고 싶진 않다. 3. 책의 목차는 어떻게 구성했나? 사실, 각 권의 하나하나 단락은 논문의 제목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처 음 목차를 잡기 위해서 수백 장의 명함 뒷면에 단락을 이루는 제목들을 적어 놓고 매핑 작업을 수행했 다. 따라서 나의 연작에 동원된 스토리텔링은 작가 고유의 창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너무 쉽게 쓰 고,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그런가? 저자의 입장에서 참고한 원 저작물의 위대한 정신을 쉽게 전달할 필요 성이 컸다. 저자의 의지가 강요된 책읽기의 저작은 피했다. 책의 구성에서 보이듯 독자는 단락별로 끊어 서 앞뒤 순서에 무관하게 편의적으로 읽으면 된다. 최대한 가볍고,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의도했다. 책의 기획은 언제 시작되었나? 1998년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시작했고 이후 8년간 읽었던 모든 책의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고 그것을 일일이 워드로 옮기는 작업을 꾸준하게 해왔는데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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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마킹해온 글의 분량을 셈해 보니 A4로 2천 쪽(200자 원고지로 2만 쪽 분량) 이 훌쩍 넘어 있었다. 내 책의 내용은 그 같은 기반 위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이다. 5. 단숨에 다작의 저자가 되었다. 어떻게 가능했나? 최근 나는 3~4개월에 한 권꼴로 책을 발간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너무 쉽게 책이 만들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까진 대학에서 행한 강의록을 보완한 내용이고, 모든 지면을 파워포인트로 선행 작업 후 편집실에서 출판에 맞게 버전을 바꾼 것이다. 따라 서 완성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 사이 건축 출판 구조의 문제점에 대하여 느낀 바는? 책의 유통 구 조에 대한 의문이 크다. 출판사는 나름대로 서점에서의 책의 유통 결과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저자들은 알기가 어렵다. 좋은 출판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책이 소비되는 통계를 저자가 알 수 있는 시 스템이었으면 좋겠다. 6. 연작이 가능했던 것은 책 발간의 마스터플랜이 있다는 얘긴데? 건축 교재 용도로 4권을 기획하고 있다. 그 중『실내 공간 디자인』 이 먼저 출간되었다. 번역서로는 2권을 잡았다. 그 중『Companion to Contemporary Architectural Thoughts』 는 최근『현대 건축의 사고 』 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현 재 5권이 출판된 연작『아름다운 건축 시리즈』 는 총 11권이 기획되었는데 현재 발간된 것으로,『자유로 운 건축』 ,『개념으로서의 건축』 ,『개념으로서의 건축 I : 창조적 사고와 디자인의 도전』 , 『개념으로서 의 건축 II : 아름다운 건축, 인간이 꿈꾸는 건축, 건축이 그려내는 도시』 ,『알기 쉬운 건축, 건축을 모 르는 내 아내와 학생들도 이해하는 건축 이야기』등 다섯 권이다. 다른 6권은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집 필하고 있는데 내년 초까지 출간 계획이며,『건축으로 이해하는 세계, 생활 속의 건축 이야기』 ,『예술 로서의 건축, 형태^공간^시간 그리고 춤추는 감각』 ,『언어로서의 건축, 의미와 가치의 구조로서의 건 축』 ,『변화와 과정의 구조로서의 건축 I : 스타일^이즘^패러다임 그리고 상호 작용』 『변화와 , 과정의 구 조로서의 건축 II : 해체^탈주와 혼성 그리고 통합』 ,『즐거운 건축, 행복한 건축 그리고 재미난 건축』 이 준비되고 있다. 또 있나? 물론이다.『역사로서의 건축 시리즈』8권을 기획하고 있다. 내년 말까지 출 간할 생각이다.『인간의 역사로서의 건축』 ,『구축의 역사로서의 건축』 ,『형태와 볼륨의 역사로서의 건 축』 『건축이론과 , 개념의 역사』 『인간의 , 요구와 기능으로서의 건축』 『건축의 , 차원, 공간과 시간으로서 의 건축』 『주체의 , 인식과 존재적 실체를 위한 무대, 장소로서의 건축』 『의미와 , 가치, 기호와 상징 그리 고 건축적 매개체』 다.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 내가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이 행복하 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게 결국 내 행복이고, 즐거움이자 에너지의 비결이다. 최근 결혼했 다고 하던데. 아내(박성현 씨)를 만난 것은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평소 많은 책을 써 보겠다 고 하는 내 말이 현실로 옮겨지면서 아내의 마음까지 동시에 얻은 것 같다. 지금은 내 책의 사진을 도맡 는 공동 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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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18권 분량의『나의 나라, 건축과 도시의 향기』연작, 5권의『국내외 건축 기행서』 와 4권의 문 학 도서 집필계획을 세우고 글쓴이와 사진가로 역할을 나누어 놓고 있었다. 학기 중에 결혼식을 올린 까닭에 이번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로마와 피렌체로 신혼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여행의 결과 는 당연히 그들이 구상하는 건축 기행서의 한 권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발군의 집 필 속도와 동시에 책 편집 레이아웃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는 장정제 씨는 마음에 맞는 건축책 필자 들과 연합하여 무려 120권이 넘는『건축 디자인 총서』 의 발간에 돌입했다. 현재 5명의 필자들이 섭외 되어 집필 중에 있고, 저자 본인이 쓴 책『건축 제도의 이해』 는 출간되었다. 총서는 2011년 완간을 목표 로 진행 중이다. 7.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엔 무모하다, 정리가 안 되어 있다 등등 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괘념치 않았다.『아름다운 건축 시리즈』첫 책은 사실 가독성이 무척 떨어지는 편집이었다. 그건 인정한다. 그 러나 내겐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주변의 반응을 겸허히 수용하고자 했 다. 지금 이 순간 특히 감사하고픈 분은? 어머니다. 1992년 군에 있을 때 어머니를 졸라서 무려 20만 원짜 리 원서 1권을 샀다. 앞의 책『Companion to Contemporary Architectural Thoughts』 이다. 당시 한 학 기 대학 등록금이 80만 원이었으니 엄청 비싼 책이었다. 휴가 나와서 교보에 들러 만난 그 책을 귀신에 홀린 듯 사게 되었다. 군에 있을 때 짬짬이 두 번에 걸쳐 읽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세미나를 준비하면 서 군데군데 깊이 있게 읽게 되었다. 정작 번역에 뛰어든 것은 근년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좌절했던 시점에 다시 이 책을 붙잡게 되었고, 기 획서를 가지고 지난해 3월 시공문화사 김 사장님을 만나 긍정적 답변을 들었다. 겉으론 내색할 수 없었 지만 내가 살아날 유일한 통로였기에 몸과 마음을 다해서 이 책의 번역에 매달렸다. 그 후『현대 건축의 사고』 라는 대형 번역물로 출간되자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8. 개인적인 아주 개인적인 질문. 요즘 몇 군데에 나의 출간 스케줄을 기반으로 자금 또는 장비를 지원 해 달라는 제안서를 제출해 놓고 있다. 이미 반려된 것도 있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겠다고 의사를 표명 해 준 곳도 있다. 솔직히 신난다. 앞으로의 계획은? 즐겁게 책 쓰고 싶다. 직업(자산 관리 컨설턴트)을 갖 고 있는 아내지만 사진 작가로도 크게 성공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책이 디딤돌이 될 것이다. 올 해의 가장 큰 목표는 사랑하는 아기의 탄생을 기획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

장정제 씨는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생으로 논문「건축 언어에 의한 의미 구조와 가치 구조에 관한 연구」 (2005. 12)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및 대학원 박 사 과정에 출강하고 있다. (도서 구입 문의 : 시공문화사, 02-314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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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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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의 <블랙 앤 화이트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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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 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으로 6월부터 본격적 이주가 시작된 이 곳은 집집마다 벽면에 도배 를 해 놓은 위압적인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왕성(王城) 오부의 아현은 소의문을 통해 서강으로 가 는 길로 마포, 서강, 양화진까지 이어진 삼남의 상품과 곡물이 들고나는 곳이었다. 남쪽 만리현과 서북 쪽 대현, 두 큰 고개 중간의 작은 고개라 하여 애고(오)개, 즉 아현(兒峴)이라 하였고 훗날 아현(阿峴) 으로 고쳐 불렀다. 근대 산업화로 옛 모습은 사라졌어도 지형은 그대로 남아 크고 작은 언덕이 서민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곳도 개발에 밀려 곧 사라질 모양이다. 길 건너 저편 에서 연일 들려오는 촛불 시위의 함성보다 오랜 세월 이 곳에 정착하여 살아온 세입자들의 한숨이 더 욱 더 쓸쓸하다. ⓦ

사진가 이병일은 <건축세계>, <인테리어월드>, <건축인 poar>, <주부생활> 등의 사진기자를 거쳐 현재 <와이드> 의 전속 건축 사진 작가로 있다. 가장 사실적이며 객관적인 건축 사진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업 중이다. 건축 사진 전문 LEE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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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鳳停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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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종횡무진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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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뒷산 거무스름한 바위 밑에 천등굴이라는 굴이 있다. 어린 소년이 이 바위굴에서 계절이 지나는 것 도 잊고 하루에 한 끼 생식을 하며 도를 닦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춥거나 말거나. 지구가 돌거 나 말거나다. 아무 생각도 없고.

→극락전. ↘극락전. →↓대웅전. →↓↓만세루.

“아빠, 생식이 뭐야?” “익히지 않은 쌀.” “밥 안해 먹어?” “응. 귀찮아서.” 이렇게 십년 동안 도를 닦는데 어느 날 밤 홀연히 아리따운 한 여인이 나타났다. 흔들러 온 거다. “안녕하세유, 낭군님.” 옥이 굴러간다. 몸짱에 얼짱. 머리도 좋은 거 같고. 음 예쁘군. 맘은 흔들리고. 아제 아제 바라아제. “소녀는 낭군님의 지고하신 덕을 사모해 이렇게 찾아왔걸랑요. 낭군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부디 낭군님을 모시게 하여 주옵소서.” 어쩐다지. 여인의 향기는 죽이고. 아참, 나 스님이지. 여기 넘어가면 10년 공불 도로아미타불이고. “나는 안일을 원하지 않으며 오직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공적을 사모할 뿐 세속의 어떤 기쁨도 바라 지 않는다. 썩 물러나 네 집으로 가거라!” 후회도 되고. 왔다리 갔다리. “아빠, 대자대비(大慈大悲)가 뭐야?” “넓고 커서 끝이 없는 부처와 보살의 자비.” 여인이 돌아서자 구름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여인은 사뿐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대사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나는 하늘님 옥황상제의 명으로 당신의 뜻을 시험코자 하였습니다. 이 제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사오니 부디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비옵니다.” 여인이 하늘로 사라지자 산뜻한 기운이 내려와 굴 주변을 환히 비추었다. 그 때 하늘에서 여인의 목소 리가 울려온다. “능인대사, 아직도 수도를 많이 해야 할 텐데 굴이 너무 어둡군요. 옥황상제께서 하늘의 등불을 보내드 리오니 부디 그 불빛으로 더욱 깊은 도를 닦으시기 바라나이다.” 우째 이런 일이. 그래 우린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되는 거다. 능인은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아 더욱 열심 히 수련. 드디어 득도해 위대한 스님이 되고. 그래 산 이름도 천등산으로 바뀐다. 이에 감복한 능인대사 가 672년 종이 봉황을 날리니 진짜 봉황이 내려와 머물렀다. 좋다. 절 이름도 바꾸겠다. 봉정사. 스승님 고맙습니다. 의상대사의 제자니. “아빠, 왜 절 이름이 봉정(鳳停)이야?” “이 천등산에 봉황새가 머무르고 있걸랑.” “천등(天燈)은 또 뭐 야?” “스님들이 정상에 올라 천개의 등불을 바쳤걸랑. 그래 산 이름도 대망에서 천등으로 바꾼 거야.” “ 대사(大師)는 또 뭐야?” “위대한 스승.” “의상대사가 그렇게 센 스님이야?” “응. 10명의 위대한 제자들 을 배출할 정도로.” 의상십철(義湘十哲) 명단 보자. 오진(悟眞), 지통(知通), 표훈(表訓), 진정(眞定), 진장(眞藏), 도융(道 融), 양원(良圓), 상원(相源), 능인(能仁), 의적(義寂). 다 있군. 난 하나도 없고. 큰일. 시간은 없고. 부처 님 비나이다. 용재일철이라도 좀. 전화가 왔다. “야, 인마.” “예.” “니가 대사냐.” “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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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 우화루. 영산암. 봉정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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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대장(大藏)이 뭐야 첨 듣는데?” “뭐라. 위대한 물건을 감추어 놓은 집.” “그게 뭔데?” “대장경.” 조선 시대 들어 이름을 바꾼다. 극락전. 국보 제15호. 대한민국에서 젤 오래된 건축물. 나이 750살. 장 난이 아니군. “극락전(極樂殿)엔 석가모니 사셔?” “아니, 아미타불.” 서방 극락 세계에 살면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 고(無量光), 수명 또한 한량없어 백천억 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無量壽). 그래 이 부처를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1989년 배용균 감독이 봉정사 영산암을 찾았다. 어라 이거 뭐여. 우화루(雨花樓). 꽃비가 내린다고나. 장난 아니군. 고졸의 극치. “아빠, 고졸이 뭐야?”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 배용균은 집을 팔았다. 여기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찍겠다. 감독, 촬영, 조명, 편집, 혼자 다 한다. 대박 아니면 쪽박. 어차피 생은 공하며, 태어나는 것도 사멸하는 것도 아니니. “아빠, 달마가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유명한 거야?”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선종이 뭔데.” “도 만 닦는 거. 그럼 우린 따라가면 되고. 교종(敎宗)은 살림하는 사람들. 우릴 꼬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 람들.” “어느 게 맞는 거야?” “선종.” “아빠 왜 스님들이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거야? 빌어먹어야 하지 않 나.” “교종 스님들이야. 선종 스님들은 구름 타고 다니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 돈도 권력도 여자도 다 싫다. “아빠, 돈을 왜 싫어하는 거야?” “만지다 보면 다치걸랑.” “난 좋던데. 아빠, 전자 사전 사게 27만 원 줘.” “뭐라. 돈 맡겨 놨니.” “응.” 머리 깎고 520년 중국에 들어가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군. 얘들아 까불지 말고 좌선해라. 너만 똑바로 가면 되걸랑. “아빠, 근데 왜 달마는 동쪽으로 간 거야?” “서쪽이 낭떠러지라서.” 대박. 대박 이유. 아니 영산암에서 찍었는데 안 뜨고 배기겠나. 인산인해. 안동 봉정사를 가긴 좀 멀고. 제42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Uncertain Regard)’ 부문 선정, 스위스에서 열린 로카르노 국 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표범상 수상. 뭐야 이거 우화루라고나. 덤으로 대한민국 건축 세계 진출. 대한민국이 센 이유를 그들도 알게 된 거다. 인문학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자나 깨나 조심하자. 안동시 난리가 났다. 영화 관객들이 우화루로 몰려들기 시작한 거다. 새로 도로 포장. 주차장 만들고. 음 식점들 우후죽순 늘어나고. 돈은 날아다니고. 다치는 사람도 생기고. 근데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간 걸까. 아시는 분 없남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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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용재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경> 의 기자를 지냈으며,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 살기가 이 렇게 힘든거에요?』 『딸과 ,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등의 책을 썼다.

1260년 대장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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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의 스케치(Sketches of Frank Gehry)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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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4> Sydney Pollack, 2005

“형태를 말해라. 그러면 나는 그것을 건축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 프랭크 게리 벽과 지붕의 구분 자체가 어려운 조소적이고 자유로운 형태, 따라서 기능과 형태는 별개라는 게리의 주 장대로 형태는 그의 디자인 출발점이자 목표 그 자체이다.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브리핑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패널도, PPT도, 물론 모형도 준비되어 있다. 평면 도를 비롯한 각종 도면들, 혹은 컴퓨터 그래픽, 혹은 애니메이션까지 능숙한 달변과 함께 설명하지만 그래도 모형만한 게 없다. 그러면 그 모형이 건축주에게 얼마나 큰 감흥을 줄까? 모형이 주는 형태적인 느낌 말고는 개념도 공간도 필로티도 이해하기 힘들다. 건축가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지만, 그 의 눈에는 여태 봐 오던 건물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지구상에 널린, 여태 보아 왔던 건물과 완전히 다른, 정말 다른, 너무나도 독특한 형태. 학교 공작 시간에 만든 조형물 같기도 하고, 이렇게 구겨진 자유로운 형태가 과연 집이 될지 그의 호기심이 자극되는 순간이다. 자유로운 형태는 또 다른 공간을 낳기 마련 이다.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괴상한 건물은 당연히 랜드마크적이고, 돈 많고 독특한 건물을 원하는 부 자는 그를 찾게 되어 있다. 그를 두고 표현주의니 개인주의니 혹은 해체주의니 하는, 그의 작품을 두고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논 하고 조소적이니 자유롭다느니 모두 불필요한 수식어에 지나지 않는다. ‘추상적인 기하학’이니 이런 말 자체가 내가 보기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정의다. 오직 단 하나의 목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건물을 만 드는 것이다. 아주 특이한 모형이 건축주 앞에 있는 것이다. 자하 하디드도, 렘 콜하스도, 헤르조그도, 위니 마스도, 대개 그 범주에서 별로 다를 게 없다. 건축적인 이론이나 프로그램, 디자인 의도에 앞서서 말이다. 최소한 건축주에게는. 요즘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블루칩 건축가 프랭크 게리. 그 인기라는 범주가 사람마다 다르 겠지만, 모르긴 해도 누구나 세 손가락 안에는 꼽는 건축가가 게리가 아닌가 싶다. PGR 회사의 회장인 피터 루이스의 증언은 정말 놀랄 만하다. 게리에게 맡겨진 설계…. 결국은 짓지도 않게 될 주택을 12년 동안 게리와 즐겼던 셈이다. 아무 걱정 말고 계산서를 보내라는 금액은 6백만 달러를 넘어 마지막엔 8 천 2백만 달러가 되어 있었다. 8천 2백만 달러는 대략 달러당 천 원씩 환산하면 820억에 해당하는 돈이 아닌가? 로우스 회장의 일이 한 순간에 사라진 적도 있다. 게리와 함께한 저녁 식사 때 확인된 게리의 취 향 때문에 45명이 매달려 일하던 프로젝트는 그 자리에서 중지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순전히 프랭크 게리 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 오랜 친구이자 영화 감독 인 시드니 폴락은, 직접 게리에게 질문을 해 가며 대화 형식을 통해 영화를 전개해 나간다. 다큐는 게 리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포함하여, 그의 작업 과정과 주변 인물, 혹은 다양한 작품에 대해 비교적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다. 사무실 스태프들과 일하는 게리의 모습, 게리의 건축관, 건축주나 또 다른 예술인 들의 게리에 대한 평가나 생각, 특히 그를 치료했던 의사의 증언까지, 모두 다른 매체에서는 접하기 힘 든 영화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는 예술가 척 아놀디, 프린스턴 대학 의 예술 고고학 교수 할 포스터에 반해, 게리를 떠받들기에만 급급한 찰스 젱크스와 필립 존슨의 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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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 Architect_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uilding_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roducer_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ocumentary_건축적 다큐멘터리 | City_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iscellaneous_그밖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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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var Aalto.

← Young Gehry. ↓ Old Geh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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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투시도 강좌에서 도예 강좌로, 그리고 도예 선생의 추천으 로 건축 강좌에 참여하면서 그의 건축 인생은 시작된다. 그러나 건축적인 재능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로 다른 프로그램을 추천한 선생, 16살 때 건축 강좌에서 만난 알바 알토의 영향으로 게리는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트럭 운전 경력, 혹은 비행기 닦는 일, 그리고 오랫동안 정신 치료를 받으면서 20여 년 을 무명으로 지낸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후 드센 부인(결국은 이혼을 한다)에 의해 골드버 그라는 이름을 버리고 서서히 자신만의 건축적 실험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너무나 선전적(propaganda)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다큐라는 점도 그렇고, 보 는 이로 하여금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면도 그렇다. 단순히 자료적인 의미에 비중을 둘 뿐, 영 화적인 감동이나 메시지는 기대하지 말자.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가득한 전문 서적을 읽는 것 보 다는, 1시간 30분도 안 되는 시간 투자로 게리라는 건축가를 쉽게 이해하는 것만 해도 그 가치는 충분 하니까. 게리의 정신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 밀턴 웩슬러(Milton Wexler)의 증언을 들어 보자.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나한테 왔지, 자신을 바꿔 보고 싶어서 말이야.” “자신들의 욕망을 통제하고….” “결혼 생활에 대한 문제든, 아님 다른 문제든….” “더 나은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 했어.” “어느 날 한 예술가가 왔는데….” “그 친구는,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그걸 궁금해 하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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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병국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춘명 선생의 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고 한울건축과 신예거축을 거쳐 현재 ㈜동우 건축 소장으로 있다. <포이동 성당>, <쌘뽈요양원/유치원>, <장도박물관> 등을 설계했다.

로운 건축적 크리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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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격주간지 닛케이 아키텍처(日經ア—キテクチュ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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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4 | 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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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 어느 날 날아온 원고 의뢰 이메일 한 통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요즘 내가 즐겨 읽는 건축 잡지가 있는지? 잡다한 업무와 일상 속에서 내게 자극과 휴식을 가져다 주는 잡지가 있 는지? 물론 매달 외국 잡지 한 권과 국내 잡지 한 권이 때가 되면 내 책상에 도착해 있다. 처음엔 나날이 새로워지는 환상적인 건축물의 등장에 일하던 손을 놓고 그 잡지들에 마음을 뺏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 는 하나둘 쌓여 가는 이 잡지들이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되어 버린 듯싶다. 일본에서 석사를 마치고 지도교수의 소개로 동경의 한 설계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츠쿠바(筑 波)에서 학위를 계속해야 하는 남편과 동경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나의 근무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 기 위해 토리데(取手)라는 작은 도시로 이사를 했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며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출퇴근 시간. 이 무료한 시간에 내 벗이 되어 준 잡지가 하나 있다. 이 잡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첫 출 근지인 사무실의 회의 겸 점심, 오차 시간을 갖는 회의실의 잡지 코너에서였다.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이 곳에서 신간의 건축 잡지를 꺼내 볼 수 있었다. 이 곳에는 한국에서부터 이미 익숙해진『신켄치꾸( 新建築)』 『a+u』 , 『켄치구분카(建築文化)』 , 등도 있었지만, 내게는 생소한『닛케이 아키텍처』 를 많은 직 원들이 읽고 있었다. 물론 뉴타운과 하우징 분야를 주력 프로젝트로 하고 있는 사무소의 특성 때문이 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다음해인 1992년부터 개인 구독을 시작하여 출퇴근길의 내 가방 속에는 늘 이 잡지가 들어 있었다.『닛케이 아키텍처』 는 우선 크기도 A4 사이즈로 타 건축 잡지에 비해서 작고, 속지는 물론 겉표지도 매우 얇았다. 한손에 쥘 수 있는 크기와 부피감, 경량성으로 늘 들고 다니던 내 숄 더백에도 쏙 들어가며, 전철 속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타 잡지에 비해 저렴한 점 또한 매력이었다. 무가지가 일간지보다 좋은 점을 비교한 것 같이 되어 버렸 지만, 내용면에서도 물론 다른 건축 잡지와 비교되는 강점들이 많았다. 이 잡지는 격주로 발간되어 새로운 개발 지역과 건축에 대한 소개는 물론, 최신의 건축 이슈들에 가장 빨리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타 유명 건축 잡지와 같이 앵글과 감각이 돋보이는 사진들로 장식되지 않았 고, 책꽂이에 꽂아둘 정도로 폼 나는 잡지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매년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환경 디자인 / 랜드스케이프 등을 묶은 증간호가 출간되었고, 어떤 해는 주택 건축, CAD/CG 활용 최전선 등 의 특집이 꾸며졌다. 따라서 한 해의 주요 건축물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전체 맥락을 읽게 해 주 었고, 훌륭한 색인 및 자료로서의 역할도 하여 소장본으로서의 가치도 가졌다. 닛케이 아키텍처는 특히 실무 최전선에서의 주목할 만한 이슈를 특집으로 집중적으로 다루어서, 항상 트렌드를 읽어 시대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었다. 예를 들어 가장 처음 구독했던 1992년 1월 6 일자 잡지는 ‘아이 러브 건축’이 특집이었는데, 4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는 각 실무 자들의 ‘꿈, 프라이드, 책임감’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1992년 7월 20일자는 곧 열리게 되는 올림픽 시 설에 관한 내용으로, ‘오륜 도시 바르셀로나’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재미있는 것으로 <건축 설 계계 95>와 같이 매해 건축 설계 사무소에 대한 경영 동향 조사 결과가 그래프, 표 등으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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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울고 있다, 1992.01.20

↑오륜도시 바르셀로나, 1992.07.20

↑마쿠하리 베이타운, 파티오스, 1995.04.10

↑연차조사 : 건축설계계 95, 1995.08.28

↑신세기의 100인, 1997.01.13

↑한신 대지진으로부터 3년, 1998.01.12

↑기로에 선 근대 건축, 2003.02.03

↑아이 러브 건축, 1992.01.06

↑로 코스트 디테일, 1996.02.26

↑주택 재생의 경제학, 1996.04.22

↑CAD CG 활용 최전선 97

↑건축 주택 선집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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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스케이프 93

↑인테리어 92

↑환경 디자인 96

↑환경 디자인 97

건축 설계사무소, 적산^설비 설계 사무소, 구조 설계 사무소^컨설턴트 등, 건설 회사 설계 부문, 주택 메이커^부동산 회사 설계 부문 등으로 나뉘어 운영 및 실적에 관한 자세한 데이터 및 순위가 공개되 어, 내가 속한 회사가 올해는 몇 위를 했는지, 다른 사무소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을 비교할 수 있 어서 흥미로웠다. 1995년 4월, 8여 년에 걸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일본 건축에 대한 소식 을 이 잡지를 통해 늘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관여했던 마쿠하리 주거 단지인 <마쿠하리베이 타운 파티오스>도 4월 10일자 특집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내가 직접 설계를 담당했던 세타가 야 환경 공생 주택도 이 잡지를 통해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1995년 4월 22일자에서는 국내에도 요즘 이목이 집중되는 ‘주택 재생의 경제학’에 대한 특집을 볼 수 있 다. 1996년 2월 26일자는 ‘로 코스트 디테일’이 특집이었는데 흔히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재료 를 적절히 사용하여 경제적이고 세련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적 실례를 보여 주는 것 이었다. 1997년 1월 13일의 신춘 특별호는 ‘신세기의 100인’을 특집으로 실었는데, 21세기까지 4년을 남 긴 이 시기에 다음 세대의 건축계를 짊어질 젊은 세대의 활약에 주목한 것이었다. 건축에 관계되는 다 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젊은이들을 9개의 테마에 따라서 100명을 소개하였다. 대부분 새로운 얼굴들 이지만 올해의 공간 국제 공모전의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인 니시자와 류에의 이름도 눈에 띈다. 1998년 1 월 신춘 특별호에는 ‘한신 대지진에서 3년, 잊지 말자, 6,425명의 유훈(遺訓)’이란 특집을 실었다. 하늘 에서 본 피해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여 주고, 구조, 시공, 법조항, 보조금 등에 대한 문제점 등 을 단독 주택, 아파트, 마을 만들기 등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루었다. 『닛케이 아키텍처』 는 주로 일본 국내의 도시, 건축에 관한 문제에서부터 인테리어, 조경, 캐드,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 트렌드를 읽고 문제점을 밝히며, 건축가들이 놓치기 쉬운 사회 경제적인 측면 에서의 어프로치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주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에 민감한 점, 가끔은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건축에도 목말랐으나 일본에서는 물론 귀국 후에도 현장 감각을 잃지 않게 해 준 고마운 잡지였다. 이 잡지의 좋은 점을 피력하며 내가 근무했던 국내의 설계 사무실에도 구독을 권했 었다. 1992년부터 거의 10년을 넘게 구독했던 이 잡지도 2002년 9월 지금의 대학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2003년 이후 더 이상의 소장본이 없다. 실무 현장과 멀어지게 되니 자연히 이 잡지가 다루고 있는 이슈 들에 대해 거리감이 느껴지고 오히려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 쪽으로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리얼타임의 뉴스와 이슈 들로 나를 늘 깨어있게 했던, 또 비좁은 전철 안에서 그 많은 텍스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 썼던 잡지를 놓아버린 일이 지금 와 돌아보니 아쉽기만 하다. ⓦ 글쓴이 박혜선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노인 복합 시설 세대 간 교류 공간 계획에 관 한 연구」 (2007)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츠쿠바 대학(筑波) 예술연구과에서 디자인학 석사(1991) 학위를 받은 후 일본 이찌우라(市浦) 하우징 & 플래닝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귀국 후 정림건축, 단우모람건축, 공간건축을 거쳐 현재 인하공업전문대학 건축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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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의 도시, 무형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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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영의 <도시동네 늬우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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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파주출판도시 계획 — 종합 미디어 시티를 향한 꿈

통신—을 엮어 인간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언어’의 도시를 만드는 것, 그 무형의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유형의 ‘도시’ 시스템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그 인

파주출판도시는 오롯이 출판인들의 의지와 의리로 첫 삽을 뜬 도시다. 화려한 마

문학적 의미를 풀어낸다.

스터플랜과 고고한 건물들이 도시의 외형을 이루고 있지만, 그 내면엔 그저 좋은

그래서 2단계 출판 도시에는 외형적, 산업적 목적을 넘어 의미론적 도시를 완성

환경 아래서 책을 만들고자 했던 작은 소망과, 그 소망을 ‘도시’라는 거대 종합

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이 있다. 그 하나는 아시아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할 ‘아

선물 세트로 만들며 있었을 불편함을 감수한 관계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파주출

시아 지식 문화 아카이브’다. 아시아의 문화인류학적 유산들을 수집하고 보존^

판도시를 이끈 추진위 사람들을 만나면 유독 ‘의리’라는 말을 여러 번 듣게 된다.

유통시키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아시아 고유의 정신과 기억의

매우 소규모(?)인 출판, 인쇄사들이 집적 도시를 꿈꾼 것도, 기존의 도시 생성 과

복원을 지향한다. 또 하나는 사람들의 일생을 기록하는 ‘영혼의 도서관’이다. 기

정 대신 건축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위대한 계약’을 체결한 것도 그들에겐 ‘의리’

존 묘역이나 납골당처럼 유형적 장례 문화가 아닌, 개인의 역사를 ‘책’으로 구성

의 힘으로 가능해진 일이었다.

해 기록^보관하고 유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방문자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하

파주출판도시 내면의 의리는 ‘공동성’이라는 단어로 세상에 표현된다. 모두가 추

는 프로그램을 담는다. 이뿐 아니라 유망하지만 영세한(?) 출판^영상인을 위한

구해야 할 공동의 가치, 그래서 때론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더 많은 녹지, 1층 코

인큐베이터 시설까지, 도시는 시스템화된 산업 단지의 역할부터 보다 다원화된

리도(corridor)의 약속 등을 위해 사적 영역 안에서도 자유를 제한해야 할 부분

텍스트의 활용과 그 문화적 가능성의 실험까지 담아보고자 한다.

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동성’은 파주출판도시의 가장 기본이

이렇게 출판, 인쇄, 영상 등에서 100여 개 회사가 참여하는 2단계 출판 도시는 1

며 제일 상위인 가치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민간에서 시작해 이뤄낸 도시 개

단계 출판 도시의 북쪽, 약 685,000㎡에 걸쳐 계획되고 있다. 1단계와 마찬가지

발이라는 것, 건축가들이 도시 생성에 중점적 역할을 했다는 기록적 사실들 외

로 한국토지공사가 마련하는 기본적 도시 계획 안에서 건축 지침을 통해 도시

에 파주출판도시를 특별하게 하는 힘은 거기서 나온다. ‘공동성’은 파주출판도

적 풍경을 만들 것이고, 이 작업은 김영준 도시건축이 주축이 되어 시행하고 있

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신념을 뜻하기 때문이다. 의리는 곧 개개의 신념이 더

다. 1단계에서 불거졌던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필지를 잘게 나눠 분양하거

해져 가능한 것이었다.

나 충분한 주차 공간을 확보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공동성이 우선한다는 것

하지만 도시는 이제 의리를 넘어 시스템화된 미디어 시티로의 재편을 꿈꾸고 있

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결국 도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다. 1단계 출판 도시를 확장해 영화사 등 영상 업체가 참여하는 2단계 출판 도시

위함이며,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유형적 시스템을 지탱해주는 ‘규약’이 되

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직 자족도시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기 때문이다.

현재 출판 도시를 완성으로 이끌고, 출판과 영상을 아우르는 문화 예술의 도시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파주출판도시의 생성은 문화적으로도 도시적으로도 큰

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 추진 주체의 설명이다.

이슈가 되었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얼마쯤 잠잠해진 중에도 2단계 출판 도시 계

파주출판도시를 이끌어 온 이기웅 이사장은 출판 도시의 생성과 확장에 대해 ‘텍

획은 어떤 목표를 향해 도시가 지속적으로 움직여 왔음을 보여 준다. 언젠가 몇

스트의 복원’이라는 의미론을 강조한다. 모든 역사의 기본은 텍스트-문학-책이

사람이 파주출판도시에서 서서, 누군가는 미완의 도시 같지 않느냐고 했고 누군

고, 영화는 문학에서 피어났으며, 영화라는 장르가 없었으면 문학의 영역이 지

가는 너무 적막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거기에 누군가 이런 도시 하나쯤 있어

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출판과 영화산업의 만남은 당연한 현상이라

도 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질문자는 이렇게 천천히 완성

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종합 미디어 시티를 지향하는 것도 산업 단지로서의 편

을 향해 가는 도시도, 의리와 신념으로 만들고 무형의 어떤 정신을 목표로 하는

리성과 이점이 있지만, 결국 텍스트의 집적, 근원적인 무엇을 복원하려는 작업

도시도 익숙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답변이 맞는지는 2단계 파주출판

의 일환이란다. 그래서 파주출판도시의 원대한 목표는 3단계 통신, 방송까지 포

도시가 그들이 이야기한 무형의 의미들을 도시라는 시스템 안에 얼마나 녹여 내

함하는 종합 미디어 시티이지만, 결국 ‘말-언어’를 다루는 세 직종—출판, 영상,

는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

글쓴이 남소영은 경원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월간 <건축인 포아>에 입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며,『시티스케이프(가제)』 란 제목의 책을 쓰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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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동백지구 단독 주택 | 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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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계획안 100선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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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 건축주는 지인으로 월급쟁이이며, 건축 시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모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월급쟁이가 다 그렇지만, 아껴 모은 돈과 여기저기 융자받고 해서 집을 지으려고 상담을 하던 차에 설계를 맡게 되었다. 설계비를 당연히 적게 받으면서 정해진 금액에 시공비를 맞추어야 하니 골치 아픈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겐 즐거운 일의 시작이었다. 이유인즉, 이전의 주택 설계에서는 건 축주가 회사 사장인 관계로 돈 걱정 없이 이런저런 재료도 많이 쓰고 오버 디자인한 부분도 있었는데, 이번엔 정반대로 주어진 예산안에서 작업을 해야 하니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해결 과정에서 오는 뿌듯함을 만끽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부지 ⓦ 동백 택지 개발 지구의 단독 주택 택지는 대부분이 200㎡ 정도의 소규모로 강남권과 비교적 근 거리에 있어서 도심 생활자의 근거리 전원 주택지 개념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설계 및 시공과 정에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즉, 나이 많은 노후 층과 30~40대의 젊은 층이 주 류를 이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백지구의 주택 풍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데, 일반적인 전원 주택풍의 주택 형태와 요즘 유행을 반영하는 노출 콘크리트 주택들이 그것이다. 가르치는 직업에 있는 나는 학생들에게 곧잘 콘텍스트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부지를 두어 번 답사한 뒤 불현듯 이 곳의 콘텍스트가 무언지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다. 풍경, 스카이라인의 조화, 형태의 조화, 텍스추어의 다 양성, 자연과의 조화 및 구축물들 간의 맥락, 장소성…. 그런데 너무 제각각이다. 다행히 부지 맞은편 에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몇 동 있어 그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주재료를 노출 콘 크리트로 하여 최소한 블록 안에 있는 건물들이 일관된 재료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설계에 착수하였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 ⓦ 3번쯤 만든 계획안 중에서 건축주가 선호하는 지금의 형태가 나왔다. 계획 초기 에 건축주는 아이가 곧 태어나는 동서 부부와 함께 살 집을 원했는데, 동서 부부가 사는 공간을 1층으로 하고 건축주 부부와 아이 1명은 2층에 사는 구조를 요구했다. 또 집이 좁으니까 주방은 1층에 공유하는, 즉 2세대가 함께 사는 주택을 의뢰하였다. 그러면서도 각 세대의 프라이버시는 지켜달라는 요청이 있 었다. 자연히 공간을 꾸민다는 생각보다 최대한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공간 의 여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파트 120㎡ 정도라면 방도 3개 만들고 작지만 나름대로 여유 있는 공간 을 만들 수 있지만 단독 주택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벽체들을 최소한으 로 줄이고 없애서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자녀들의 성장에 대비해 가구들로 파티션을 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안이었다. 1차 안에 대해서 건축주 부부와 동서 부부를 만나 미팅한 결과 다행히 두 가족 모두 만족을 하여 설계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축주의 마음이 바뀐 것인지, 이번에는 동서 부 부와 안 살고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겠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계획안을 잡아야만 했다. 장인과 살아야 하는데 장인이 요리를 즐겨하고 나무 가꾸고 심는 것을 좋아하니 다용도실을 최대한 크게 하여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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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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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도. 2차안 모형. 외관.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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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 평면도. ↓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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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도1. ↓단면도 2.

용인 동백지구 주택 건축 개요 대지 위치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886-7 | 지역 지구 : 제1종 일반 주거 지역, 제 1종 지구 단위 계획 구역, 용인 동백 택지 개발 지구 | 대지 면적 : 222.9㎡ | 건축 면적 : 131.34㎡ | 연면적 : 238.19㎡ | 건폐율 : 58.92%(법정 60% 이하) | 용적률 : 106.86%(법정 120% 이하)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법정 지상 2층 이하) | 주차 : 계획 2대(법정 1.88대) | 주요 외장재 : 송판 노출 콘크리트, 고밀도 NT목재 패 널 | 주요 내장재 : V.P.도장, 자작나무 합판, 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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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관. ↓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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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2층 거실. ↗ 내부, 주방.

할 수 있는 공간과, 옥상 녹화를 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장인 장모는 방을 따로 쓰니 1층에 방을 2개, 2층의 건축주 공간에도 안주인 작업실 겸 해서 방을 2개 만 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방만 만들 수는 없고 2세대가 거주하니 각각의 거실이 필요한 데다가 경제적 공 간적인 이유로 벽들을 최소화하려 한 것도 무산되었다. 서너 번 건축주와 미팅을 가지고 지금의 안이 완성되었는데, 어느 날 걸려온 건축주의 전화! 장인 장모가 들어와 살기가 힘들 것 같다는, 그렇지만 지 금의 안대로 그대로 진행하자는 말에 안도의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설계 포인트 ⓦ 방(실)들이 많아 자연적으로 공간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가 능한 한 막힘이 없는 공간 구성을 의도하였다. 깊이감을 부여하기 위해 인테리어도 가구들의 돌출이 없 게 하고, 공간의 끝점에 창이나 개구부를 두어 시야 동선을 가급적 길게 잡으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계 단실과 주방 상부의 오픈 공간이 없었으나 최종적으로 건축주 부부만 산다고 하기에 오픈을 시켰고, 또 한 오픈 공간은 부모님이 들어와 살아도 프라이버시에 방해가 안 되는 독립된 켜를 가지고 있어 괜찮다 고 생각했다. 인테리어의 주된 컬러는 화이트 톤으로 일부는 자작나무 합판 마감이고, 좁은 공간이지만 2층에 옥외 데크를 두어 외부 공간과의 일체감을 확보했다. 이러한 옥외 데크를 가진 집은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동백 택지 지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이 주택에서는 외부 벽체에 루 버를 두어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자 했다. 잡생각 ⓦ 한정된 예산에서 해결하려다 보니 의도한 대로 진척되지 않은 측면도 있었으나 오히려 한계 가 있기에 그것을 극복하고자 시공 과정에서 건축주와 긴밀한 대화를 가졌던 점은 매우 좋았다. 건축가 는 자기의 디자인 의도의 관철이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건축주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아는 많은 경 험이 필요하다.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건축주, 시공업체와의 긴밀한 대화가 새삼 중요하다는 것 을 일깨워 준 프로젝트였다. ⓦ

설계자 박인규는 1964년 생으로 광운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 석사와 동경대학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배재대학교 건축학부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SP(Space Park)건축 대표로 건축 실무에도 종사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남계헌>이 있으며, 공사 중인 주택 외에 또 하나의 용인 동백지구 주택과 충남 당진의 근 린 생활 시설 설계를 진행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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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과 촛불 집회와 건축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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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의 <COMPASS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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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진흙탕 속에 발을 빠뜨리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 오스카 와일드 0. 이명박과 촛불꾼들이 목하 싸움 중이다. 무릇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싸우는 자든 구경꾼이든, 초미 의 관심사는 역시 누가 이기느냐일 텐데, 기 싸움에선 세 죽이기(혹은 불리기)와 버티기가 관건이다. 벌 써 두 번 꺾인 이명박은, 피로 강도로 세가 죽어드는 틈을 타, 공권력을 통한 공세에 나섰다. 이미 연행 자의 수가 천여 명에 이른단다. 우악스럽다. 촛불꾼들이 확연히 밀리는 형국에 돌연 예측 못한 복병이 출현. 9회말 투아웃 상황에 동점 홈런을 때렸다고 일갈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신부의 말이 맞다면, 종교계의 개입으로 싸움은 다시 팽팽한 구도를 이루게 된 셈. 이른 장마 비가 오는 날. 세 번째 미사로 시작된, 경찰 추산 3천 명, 주최자 추산 2만 명(왜 늘 다르지?)의 56번째 촛불 집회. 특수임무수 행자회 회원들은 그 전 날 진보신당에 난입해 당원들을 폭행했다. 1.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니체의 마지막 인간이 서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에서 출현하는 것을 목도 하게끔 했다. 니체의 마지막 인간이란, 이념도 대의명분도 정치도 다 폐기하고 그저 자신의 일상을 사 는 데,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 몰두하는 인간이다. 20대를 위시해서 대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한 대부 분의 사람들은, 그가 기업의 CEO 출신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마련해 주는 데 누구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환상으로, 그의 도덕적 흠결을 기꺼이 끌어안았다. 747 공약이 단지 수사적 술책일 것 이라는 생각은, 지금은 쉽게 할 수 있겠지만, 환상이라는 돌림병에 걸린 국민은 그 때 무자각하게 쏠렸 다.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압도적 지지를 얻은 지 불과 100일, 그의 정권은 거꾸로 유례없는 지지율로 곤 두박질쳤는데, 이 또한 마지막 인간들로 인해서다. 광우병 정국은 근본적으로 우리 각자의 먹거리 안 전, 곧 우리 몸뚱이 지키기에서 비롯된 것.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은 대체 로 민족주의로 수렴된다. 소위 검역 주권. 주권을 지키려는 민족주의가 사태의 뿌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근본주의와 쏠림의 성향에 깊이 침윤되었으니 굳이 민족주의라 한다면, 마 지막 인간들이 마치 2002 월드컵에서처럼 쏠린 현상에 다름 아니라 보는 편이 더 마땅하지 않을까? 민 족주의는 개별의 이해를 넘어서는 이념의 문제이지 않은가? 결국, 마지막 인간으로 성립된 이명박 정 권의 생존은 마지막 인간의 손에 있는 게 자연의 이치. 주권 회복이니 폭력 독재니 하는 이슈들이 과연 밥그릇 담보보다 더 힘을 쓸까? 2. 며칠 전 베를린에서 열린 한국 현대 건축 전시회를 다녀왔다. 가급적 객관적일 수 있을 조망을 확보 하기 위해, 개막식에 참여한 현지인들(건축가, 매체 종사자, 전시 관련인, 기타 전시 관람자 등)의 의견 (혹은 평가)을 구하려 애썼다. 여럿 중 몇몇의 말이 특히 흥미로웠다. 전시 작품들을 보니 거의 모두 소 위 힘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하기보다는 범속하며 일상적인 몸짓을 보인다는 것. 좋게 해석하면, 거대 담론이나 미학적 과장이나 건축적 이념과 같은 모더니즘적 소산을 버리고, 작위를 억제한다는 것. 다른 견지에서 말하자면, 현실을 초월하려 하기보다 그 곳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문제들을 끌어안는다 는 것. 그러니까 전시된 건축 작업들이 출현하는 지반은 개별적 삶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조건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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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 그런데 그들의 언어에는, 일상이 도라는 구태의 반복은 없다. 도리어 초월적인 것의 부재 혹은 사 소한 것의 만연, 곧 이념과 사유의 투쟁은 없고 오직 일상을 수행할 현실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도 거기 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까닭에, 바깥 시선에서 오는 지적이 더 통렬하다. 이왕지사 언급했으니 한 마디 더. 애초 아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독일전을 온갖 노고를 통과해 마침내 성공으로 이끈 주역들 중의 한 사람인 김성홍 교수. 그가 전하는 독일전의 의미는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포함 한 모든 전시회 큐레이터는 건축가가 아니라 이론(혹은 비평)가가 맡아야 한다는 것, 우리 건축은 소수 가 중심을 이루어 건축 문화를 주도하는 단일 그룹이 아니라, 관점 혹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집단을 형 성할 수 있는 복수적 상황으로 존재한다는 것, 이로써 우리(나아가서 세계) 건축 문화에 참여할 수 있 을 가능성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 줌으로써 건축가의 희망을 좀더 키울 수 있다는 것 등을, 이 전시 회를 통해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소망은, 건축가를 내세우기보다 이슈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절박하다. 3. 집(혹은 건축)은 무엇인가? 집의 기원 설화에 대한 비트루비우스의 해명에는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응시하는 인간이 언급된다. 이로써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건축의 욕망은 애초 초월적 존재를 땅위 사하듯, 건축은 본디 일상보다 더 큰(larger-than-life) 무엇을 붙들어 매고자 하는, 그리하여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과거에는 동물이 아니라 신들의 연관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규정되었다) 영혼의 몸짓이라 고 하는 사실을 주장하는 데 굳이 건축사를 거론할 필요까지 없다. 우리가 부르는 예술이나 문화는 몸 이 아니라 영혼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인문학을 접하는 사람은 대개 다 안다. 신의 죽음을 지나, 저자의 죽음을 지나, 토대 없음의 토대를 딛고 서 있는, 그래서 중심도 없고 중력도 없고 그저 모 든 것이 휘어진 현대성의 조건에서 초월성뿐 아니라 비평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소통의 준거 틀의 성립 불가능 속에서 거대 담론, 심지어 어떠한 논의조차 지난하다는 사실을. ‘모든 것이 건축’이라는 언 명을 지나, 건축의 욕망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혹은 죽었다는 사실까지도 미루어 안다. 그리하여 이제 건축은 힘의 역학 혹은 정치의 구도에서 오직 권력의 효과에 의해 성립한다는 것까지도 생각한다. 종교가 죽었다는, 그러니까 지금의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라고 하듯(부르디외), 건축은 이 미 죽거나 변절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상식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 건축에서 초 월성(혹은 정신)을 거론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 착오적으로 다가올지도 안다. 4.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이 모든 것에 맞서는, 누구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엄 정한 진실로 다가오는, 사소하지만 생생한 삶의 체험을 나는 겪었다. 일 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최근에 겨우 정상 상태 근사치로 돌아온 나의 부서진 어깨가 그것인데, 미끄러운 바닥과 나의 몸 사이의 힘의 균형의 순간적 상실이 나의 몸의 조건을 영구히 바꾸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이름으로 대지를 ‘ 가벼운 것’, ‘무중력의 것’으로 고쳐 명명하여, 언젠가 인간에게 나는 것을 가르칠 자가 모든 경계석들 을 옮겨 놓을 것이라 공언했지만, 나의 몸과 대지 간에는 엄연한 경계가, 그리고 그 관계에는 결코 부정 할 수 없는 중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테러 같이 순정한 진리다. 생각이 밀고 가는 한계와 우리의 육신 이 버틸 수 있는 한계 간에는 이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진정성은 일상에서도 본다. MOMA에 갈 때마 다 경험하는 특이한 상황.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땅보다 하늘에 더 큰 공간이 할당되고,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중심 구도를 이루는 이 그림은 늘 나 로 하여금, 밤하늘의 별빛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 보았던가 묻게 한다. 이즈음 승효상의 모습이 더 커 보 인다. 그는 도시의 좋고 나쁨이 좋거나 나쁜 인간을 만든다는, 무모한 환경 결정주의를 교의처럼 주창 하고, 김수근 선생만큼이나 폼 잡으며 우리 건축을 오만하게 휘젓고 있지만, 그가 건축에서 벌이는 대 결의 대상은 적어도 사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예술로 간주하는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는 소 위 작품들은 여전히 독자성을 결여하지만(최근 지산 발트하우스 클럽하우스는 마치 그가 퇴행하지 않 나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가 제안하는 건축의 가치는 고상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가 그러하듯, SA도 그립다.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우리 앞에 무엇이 있어야, 비판도 성립하고 그에 맞서는 캠프를, 그리고 아무리 실낱 같더라도 변증적 상향의 희망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촛불 집회가 시작되는 시점 부터, 민족주의든 혹은 독재 정권 타도 구호든, 그것이 부디 마지막 인간을 태울 수 있기를, 내 마음 속 에 촛불 하나 켠 채 간원하고 있다. ⓦ

WIDE DAILY REPORT

글쓴이 이종건은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이자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는 비평가다.『해방의 건축』 『중심 , 이탈의 나르시시즘』 『텅빈 , 충만』등을 썼다. 한국 현대 건축의 중심과 주변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주제와 평문들은 언뜻 날을 세우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 따뜻한 시선의 깊이로 문제의 핵심을 잘 집어올리고 있다.

에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것. 건축의 언어인 기하학이 바로 하늘의 질서를 땅에 옮긴다는 뜻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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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행위를 반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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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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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도코모모 코리아 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産文不二 : 근대 산업 시설과 생활 문화 공간의 공존은 가 능한가?’를 주제로 총 626팀이 작품 접수한 이번 공모전의 대상은 엄민호+박경한+김가은 씨의 ‘기억의 영속(永續)’ 이 차지했다. 이 작품은 부지를 갈대밭으로 남겨 두고 흉물로 보일 수 있는 근대 산업 시설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지 도록 구상하여 노을을 닮고 싶어 하는 당인리 발전소의 욕망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건축적인 장치를 모두 걷어낸 다소 파격적인 안이었던 까닭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허탈해 하는 참가자들도 많았고 실현성에 대한 우려나 위작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개발 우선주의 사회를 향한 무언의 항거와도 같 은 이번 대상작은 건축 행위란 과연 무엇일까를 새삼 반성케 하고, 당인리 발전소와 그 부지에 대한 일상적인 생각 들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편집자 주) 기억의 영속 (永續) 엄민호, 박경한, 김가은 일상 속의 기억은 문화가 된다. 당인리 갈대밭에 들어서자 햇살은 따가웠고, 들판은 온통 금빛으로 눈이 부셨다. 저 멀리 보이는 여의도와 한강,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펼쳐졌다. 갈대밭 입구에는 커다란 옛 터빈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갈대밭은 향기로운 미로였다. 시가 있는 길, 다정한 연인들의 속삭임이 있는 길, 옛 당인리의 기억이 놓인 길, 노부부의 편안함이 묻어 있는 길, 어 떤 길을 가도 나름의 멋이 있었다. 갈대는 도란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 주었다. 햇살과 바람과 갈대의 수런거림을 들으며 길을 따라 거닐자 밤섬 위로 아치형 다리가 시야에 잡히고 바다만큼 넓은 한강이 멈춘 듯이 흐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강물 너머로 서울 하늘에 글을 쓰고 있는 듯한 마천루가 보인다. 이 순간 비라도 촉촉하게 내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몽환적 분위기에 마음까지 젖어 일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 어느 화가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림 속의 당인리 발전소는 끊임없이 변하는 서울 도심 속에서도 전혀 왜곡되지 않은 순수함과 진실함을 간직한 채 자연 속에 동화되고 스며들어 있었다. 갈대숲을 따라 돌아오는 길에 주황빛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당인리 발전소는 저 노을을 닮아가고 있겠지. ⓦ

WIDE 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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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 WIDE Column no.4 : july-augu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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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4호 | 와이드 칼럼 나오시마의 일몰 | 최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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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부터 7일간 일본 나오시마 섬을 건축가들과 방문하게 되었다.

게 되었다. 남해안, 그리고 서해안에 섬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내 기억에

26명의 건축가들이 부부 동반하여 다녀오게 된 것인데, 예술 감상 취향이

우리 나라 섬 중에 특별한 섬으로 기억되고, 가보고 싶은 섬이 얼마나 있을

같은 주부들끼리 성지 순례 코스처럼 이 곳을 다녀간다는 것을 나중에야

까 생각하니 답답해졌다. 기껏해야 남이섬 정도가 아닐까?

알았다.

며칠 전에 생전 처음 울릉도에 가게 되었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어

나오시마는 오카야마 현에 속해 있는 작은 섬으로 중앙의 주거 지역 남측

서 구멍이 숭숭 뚫린 모든 산들이 일반 육지의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 자연 보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던 낙후된 섬이다. 이 섬이 새로운 예술

드러났다. 해변을 따라 코스가 몇 개 마련되어 있고 육지를 일주하는 도로

의 장소로 탈바꿈한 것은 통신 교육 관계 회사인 베네세 그룹이 새로운 문

를 따라 관광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제주도보다 작아서 그런지 정말 섬

화 예술 전략을 수립하면서부터다. 1989년 베네세 그룹은 상점과 어린이 캠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2박 3일간의 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천혜

프장 운영을 시작으로 섬 전체를 문화 예술 마을로 탈바꿈시키려는 장기 계

의 경관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리라. 평지는 매우 드물어 끊임없이 고갯길을

획을 세웠고, ‘건축과 현대미술의 활용’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이러한 계획

오르내려야 했고, 높은 산에는 케이블카를 놓아 섬 전체를 조망하게 만들었

을 추진하여 완성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건축을 의뢰, 계획을 구체

는데,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양호한 상황들에 무척 안심이 되었다. 이 섬

화시켜 나감으로써 이 섬의 장소성을 담보한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미술

에는 막상 볼 만한 것들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섬 전체가 쓰레기 하나

과 건축, 섬 전체의 조각 작품으로 장소의 소통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

없이 잘 관리되고 있는 것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여 주게 되었다.

나는 우리 나라 지자체 장들이 자신의 고장을 살리기 위해 그저 굵직한 제

몇 개의 문화 상품이 있지만 그 중 핵심인 것은 지중미술관이다. 모든 미술

조업체 유치, 대학교 유치, 지역 특산물 판매 등의 천편일률적인 식상한 방

관이 통상 지상에 만들어져 미술관 자체로 건축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혹자

법들만 하는 것을 보다가 나오시마 섬의 상품성에 놀랐다. 실제로 나오시마

는 미술품보다 더 튀는 미술관 건축이 전시 미술품에 도움이 안 되다고 생

섬은 섬 전체가 울릉도만큼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작은 섬이다. 천혜

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인데, 그에 반해 지중미술관은 미술관의 거죽은 사

의 아름다운 섬이 아니더라도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상품이 되는데 아름다

라지고 내부만 존재하는 심오한 반전의 건축 철학이 담겨져 있다. 이 건축

운 섬에 이런 전략적 접근을 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싶다.

철학이 그룹 회장의 생각인지 안도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늘 자신의 건축

며칠 전 조선일보에 언론인 신용석 선생이 쓴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기사가

이 마치 스타 배우의 그것처럼 드러내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가와 맞지

났다. 그중 이런 대목이 있어서 옮겨 본다. “우리 나라는 선진국의 평균 3배

않는 태도를 보여 내게는 의외였다. 어쨌거나 안도의 건축하면 너무나 많

가 넘는 국민 총생산의 15%를 건설 산업에 투입하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이 소개되어 큰 호기심이 없던 차에 다시 안도의 건축을 보기 위하여 한국

건물과 건축가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그 곳으로 가게 되었고, 다시 안도 건축의 힘을

왜 건축가가 없는가?

절감하고 오게 된 것이다.

유독 해외 브랜드에 중독된 한국의 부자 기업들이 문제요, 건축계의 사건에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안도의 건축이 극도의 상품성을 발

는 유독 인색한 언론과 매스 미디어가 문제요, 공공 건축의 발주에 대형 조

휘하여 한국의 부잣집 마나님들뿐만 아니라 건축가들까지도 일본의 한적

직만 유리하게 되어 있는 한국의 발주 제도가 문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 작은 섬으로 끌어들이게 된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또한 이런 악 조건 속에서도 곳곳에서 건축 문화의 꽃을 피워가는 한국의

점이다. 흔히 좋은 건축의 탄생은 건축가, 시공자, 건축주 3인의 의지가 맞

유능한 건축가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 떨어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해 왔다면, 이 곳에서는 예술적 안목이 높은

지자체 장들과 일본 나오시마 섬, 스페인의 빌바오,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

건축주, 탁월한 능력의 지명도 있는 건축가, 그리고 또 하나의 건축주라고

등을 같이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어 볼 기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해

말할 수 있는 월터 데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 2명의 예술가들의 의지가 맞

본다. 그리하여 지자체 장들의 머릿속에 이러한 문화 상품을 만들어야겠

아떨어져 늘 보던 안도의 건축이 아닌 전혀 다른 것으로 승화된 건축의 경

다는 의지가 생기고 가볼만한 명소들이 전국에 즐비하게 되는 날을 꿈꾸

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어 본다.

나는 즉시 우리 나라에도 이런 문화 상품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하

글 | 최동규(발행편집인 고문, 서인건축 대표)

WIDE ARCHITECTURE REPORT no.4 : july-august 2008

graphic © Eum Moo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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