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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Flow Map
김재경의 PHOTOSSAY 19 [18] 전진성의 건축에게 묻다 04 [36] 김정동의 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04 [52]
구분
RESEARCH [44]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14 이연경 영덕 영해장터거리 外
인물
REPORT [38] 원정수·지순, 그 60여년의 동반 김태형 한 살매 파이어니어로 살다 간 부부건축가
장소
GAIA TOPIC [34][78] 만든다는 것의 미안함 편집실 READING LISTS [57] 쑥을 태우는 집 가가묘묘-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
사무소
콘텐트 오호근↝ 원정수·지순↝ 이일훈↝ 최여진↝ 김명재↝ 세종 예술의전당↝ 영덕 영해장터거리↝ 스톤헨지↝ 브라이다 코페티 조각공원↝ 신월6동 이주단지주택↝ 장항↝ 딩가동2번지↝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Plot Architects↝ 오-스케이프 아키텍튼↝
[58]
DOCUMENTA 딩가동2번지; 중랑구 청소년커뮤니티센터 박선영 건축에게 묻다↝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RISING ARCHITECT 09 [68] Plot Architects 최여진, 김명재 이태현 [50]
THE E. IL HOON CODE 02 이일훈의 건축; 채 나눔의 윤리성 함성호
SPECIAL FEATURE [79] 건축가 오호근
제12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
제52차 WIDE건축영화공부방↝ 사건 땅집사향(제169차, 제170차)↝ ICON Party vol.016↝ 장항리파인문화재생사업↝ 쑥을 태우는 집↝
Oh Ho-keun Architect
PROJECT [82] 세종 예술의전당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Sejong Art Center
가가묘묘-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 ↝
추천도서
ESSAY [104] 두 개의 서로 다른 정면 만들기 오호근 GROUP DIALOGUE [114] 사이팅(Site-ing)으로서의 판의 건축 오호근, 백승한, 이주연, 전진삼
NOTICE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 접수 마감 제12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응모작 접수 마감 제52차 WIDE건축영화공부방 제169차-제170차 땅집사향
표지 이미지 설명: 세종 예술의전당 컨셉모형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2
파트너십
가로건축↝ 건축공감↝ 메가판넬↝ 삼현도시건축↝ 수류산방↝ 시공문화사↝ 심원문화사업회↝ 어반엑스건축↝ 엠에스오토텍↝ 오씨에이건축↝ 운생동건축↝ 원오원아키텍스↝ 유오스↝ 이건창호↝ 자연앤인문집↝ 퓨즈랩↝ 해안건축↝ 헌터더글라스 코리아↝ 현일건축↝
생산자
↝강병국 ↝권형표 ↝김기중 ↝김기현 ↝김승환 ↝김영철 ↝김용남 ↝김재경 ↝김정동 ↝김정숙 ↝김종수 ↝김태만 ↝김태형 ↝김현섭 ↝문진호 ↝박길룡 ↝박민지 ↝박상일 ↝박선영 ↝박승준 ↝박승홍 ↝박지일 ↝박지현 ↝백승한 ↝백현아 ↝서정일 ↝오섬훈 ↝윤세한 ↝이승용 ↝이연경 ↝이윤정 ↝이재혁 ↝이주연 ↝이태규 ↝이태현 ↝임근배 ↝임성필 ↝임재용 ↝장윤규 ↝전진삼 ↝전진성 ↝정승이 ↝조성학 ↝조진영 ↝조택연 ↝주성진 ↝최욱 ↝최원영 ↝편집실 ↝한국도시재생학회 ↝한동수 ↝한제임스정민 ↝함성호 ↝황순우
지면 123 12 8 122 표4 표2 9 18, 79 52 12 125 1 38 표2 79, 82 57 57 17 58 125 79, 82 125 57 114 12 표2 6 1 11 44 12 125 114 표2, 표3 68 125 12 5 16 2, 114, 125 36 10 57 16 15 12 3 14 2, 50 13 표2 7 5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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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of the Writers and Protagonists
pp.18-33 김재경은 인문학적 감각과 절제된 심미성을 바탕으로 공간과 건축, 인간의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가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사진집 『자연과 건축』, 『MUTE』, 『MUTE 2: 봉인된 시간』, 『수원화성』(공저) 및 『셧 클락 건축을 품다』,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의원』(공저) 등의 책을 냈다. 현재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이다.
취득했다. 심원건축학술상 제6회 수상자이며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2015) 및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공저) 등이 있다.
pp.36-37 전진성은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이며 독일 근현대 지성사와 문화사 분야의 전문가이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역사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독 사회사학의 전신인 구조사학을 다룬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독일 올덴부르크(R. Oldenbourg) 출판사에서 200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문화사와 인권사 분야로 연구의 지평을 넓혀가며 『박물관의 탄생』,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등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했다. 부산의 인권단체 ‘아시아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본지 기획자문이다.
pp.50-51 함성호는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믿는 남자다. 건축가, 만화광, 공연연출가, 여행가로 변신하는 중에도 그는 한 우물만 팠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 우물만 파다보니 여러 지층이 나왔고, 그것들이 세분화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1990년 계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세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이고, 『56억 7천만 년의 고독』 외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1991년 월간 《공간》 주최 공간 건축평론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건축평단에 발을 디뎠다. 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외 다수의 산문집을 냈다. 현재 건축디자인실험집단 EON 대표로 건축 작업을 해오고 있는 건축가다.
pp.38-43 김태형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한국의 근대건축을 공부하고 「구 서울역사의 건축구법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목천김정식문화재단, 목천건축아카이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한국의 근·현대건축 자료를 수집, 기록·연구하고 있는 건축전문 아키비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38-43 원정수· 지순은 본문에 포함 pp.44-49 이연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4
pp.52-56 김정동은 1970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근대건축사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목원대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명예교수). 이후 세운상가 내에 「우리근대건축연구소」를 열고, 운영해오고 있다. 건축문화재분야(건축시공기술사)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다. 토탈디자인 전문지 격월간 《꾸밈》의 주간을 역임했고, 도코모모코리아 창립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문화재청 근대건축분야 문화재위원장을 역임했다.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본지 명예고문이다. pp.58-67 박선영은 O-Scape Architecten 대표,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도시·건축·건축엔지니어링의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의 fosterandpartners,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삼성물산 등에서 실무를 익혔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및 마을건축가, 인천시 미추홀구 용일사거리 Master Planner로 활동 중이다. 도시·건축의 유형과 프로그램, 공간에 대한 지각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pp.68-77 최여진, 김명재는 본문에 포함 pp.68-77 이태현은 THE A LAB(에이랩 건축연구소)의 대표 건축가이다.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건축을 추구하며, 서울을 기반으로 실험적인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국민대학교 건축대학을 졸업했고, 바틀렛 건축대학원의 석사과정을 Distinction으로 졸업했다. ‘2017국제건축문화교류’에서 Best Fellowship을 수상했고, ‘2019 사회혁신 리빙랩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2021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미래학교’의 참여작가이다. 국민대, 한양대, 서울시립대에서 건축설계와 도시건축디자인을 강의하고 있으며,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 운영위원으로 대중과 건축의 소통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79-121 오호근은 본문에 포함 pp.114-121 백승한은 가톨릭관동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도시설계 및 건축역사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주요 연구 관심분야는 학제 간 도시연구, 하부구조론, 일상생활의 철학적 담론, 공동체와 공공성, 분위기와 정동이론, 신유물론, 동아시아의 시각문화와 매체경관 등을 포함한다. 최근 연구는 《Positions: Asia Critique》와 《Korea Journal》을 포함한 다수의 국내외 논문집에 게재되었다. 또한 정림건축의 《SPACE(공간)》 특별호
『일상감각: 정림건축 50년』(2017)을 총괄 기획하였으며, 서인건축 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 『다른, 상징적 제스처들: 서인건축 40년의 비평적 탐문』(2018)의 주요 저자로 참여하였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114-121 전진삼은 제4회 꾸밈 건축평론상(1988)을 수상하며 건축평단에 들어섰다. 월간 《공간》 편집장 역임하고 월간 《건축인(poar)》을 창간하여 초대 편집인 겸 주간을 맡았다. 13년간 계간 《황해문화》 문화비평/건축 고정필자로 활약했으며, 1980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건축의 발견』, 『건축의 불꽃』, 『조리개 속의 도시, 인천』, 『건축의 마사지 1, 2』 등 비평집과 『건축은 없다?』 『IMAGEABLE PLATE-AU』 등 다수의 공저를 냈다. 현재 본지 발행인이다. pp.114-121 이주연은 서울시립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월간 《공간》 건축담당 기자 활동을 시작으로 디자인전문지 격월간 《꾸밈》 편집차장, 건축+인테리어전문지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쳐 다시 월간 《공간(SPACE)》의 데스크로 자리를 옮겨 편집장과 주간을 역임했다. 그 후 건축 잡지 월간 《건축인(poar)》 공동편집인으로도 활약했다. 초대 한국건축기자협회장 및 건축저널리스트포럼을 주도했다. 도코모모코리아 부회장을 역임하며 건축비평과 근대건축보존 운동에 앞장서 왔다. 현재 본지 부발행인이다. pp.114-121 박지일은 본문에 포함 p.123 강병국은 본문에 약식 표기함 p.125 이재혁, 김종수는 본문에 약식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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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일건축은 인천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2021 Incheon Architect 5》 Awards를 응원합니다.
I n
C h e
O vol. 016
Party
N
Incheon Architect 5
NOV
와이드AR 선정, 2021 Incheon Architect 5 시상식 및 수상기념 강연 ●
수상자: 김정숙(이드건축 대표_기성부문), 백현아(이화건축 대표_신인부문)
●
일시: 21년 11월 6일(토) 2:00pm~5:00pm
●
장소: 인천건축사회관 2층 회의실
6th
*행사 당일 마스크 착용 후 입장 가능함
Conference 인천건축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문가 포럼 ●
주제: 우리가 디자인하는 법
●
발표1: 임성필(집파트너스건축 대표)
●
발표2: 권형표, 김순주(바우건축 공동대표)
●
일시: 21년 10월 30일(토) 2:00pm~5:00pm
●
장소: 인천건축사회관 2층 회의실
OCT 30th
*행사 당일 마스크 착용 후 입장 가능함
Open Studio 2019 Incheon Architect 5 수상자 주성진 건축사 초청 ●
행사: The Day of SUNGHAK Architecture & Engineering
●
일시: 21년 10월 23일(토) 2:00pm~5:00pm
●
장소: 성학건축 사옥 노아다움(인천 연수구 옥련동 538)
OCT 23rd
*사전 참가신청자에 한하여 마스크 착용 후 입장 가능함
Note
2021
주관 격월간 와이드AR 문의 02-2235-1960 참가 신청 widear@naver.com 주최 간향클럽, 2021인천건축문화제 조직위원회 후원 인천광역시,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건축사회
[장항리파인문화재생사업*]
장항 폐선로 유휴부지 활용 문화재생 아이디어 공모전 결과 발표
구분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팀명 김건우
작품명 IN THE WAY – 장항선 폐부지를가로막아 도시문제를 해결하다
강우린
장항시선
IN3(장성수, 신승아, 서진석)
Define. 장항
Astdlab(김지호, 이동원, 황다정,류세미, 김선주)
단절의 공간을 연결의 공간으로장항의 Corridor를 만들다
PARK LEE(이상무, 박재민)
직교하는 근대의 선형
한경대학교 건축학부(김건우, 박정현, 박경춘, 정준식)
Re seed hope
김지욱 스튜디오(김지욱, 하민지)
장항선:로(새로운 장항선의 항로)
때껄룩스(박소현, 이상희, 김가람)
On Line
성종협
주민 참여 선로 재생과 도시의 순환적 문화 시퀀스를 위한 4가지 콘텐츠
장미파(백지원, 김운효)
Refine Janghang, Rewrite Sign
· 주최 : 서천군 · 주관 : 한국도시재생학회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충청남도 · 홈페이지 : http://www.janghangrefine.org 참조
* 장항리파인문화재생사업은 장항화물선 폐선부지를 활용하는 사업으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폐산업시설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2023년까지 3개년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김건우 : IN THE WAY
29. 주님의 거룩한 변모. : 1680년대.
RUSSIAN ICONS : The Light of the North 2021.11.25.~2022.02.27.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Seosomun Shrine History Museum, Seoul, Korea
designed by SuRyuSanBang
러시아 이콘 : 어둠을 밝히는 빛
주최 : 천주교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 주관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협력 기관 : 러시아 이콘 박물관[http://new.russikona.ru]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시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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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드 모음_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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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집 조감, 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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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SAY
김재경의 포토세이 19
15평 짝꿍집(신월6동 이주단지 주택) 자료, 사진. 김재경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
“1960년대부터 도심을 본격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던
45년에 걸친 대도시 서울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특이한
서울시 ‘재정착사업’, 외곽지역에 형성한 신 ‘ 월6동
신 ‘ 월6동’의 경관을 형성했다. 전면 철거(2017.5.)되어
이주단지’는 이런 시책 아래 70년대 초에 형성되었다.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서울 도시-주거사의 한
이때 조성된 이주정착지는 80년대로 접어들며
장면이 되었다. 이주민들을 국공유지에 강제 소개했던
다가구주택단지 또는 재개발지구로 지정돼 아파트단지로
종전의 방식과 달리 서울시의 도시계획적 절차
변모해 나갔다. 그리고 후일 재정착 사업의 방향이
(토지구획정리사업)를 통해서 조성되었다. 토지소유권이
바뀌자(주택개량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 서울에 조성된
불하되어 자유로운 건축이 가능해 다양하고 역동적인
마지막 재정착지로 되었다. 전면철거(2017)된 신 ’ 월6동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1)
이주단지’는 최근 뉴타운재발사업을 완료했다. 이곳으로
“이제 역사에 한 페이지로 남을 신월6동은 지금 이주가
이주한 첫해(1973)에 집을 지은 이는 없었다. 이주민들은
막바지로 90퍼센트 이상 빈집으로 남아있다. 아이들이
기왕의 거주처에서 철거한 판자를 수거해 실어다 주는
어릴 적 뛰어놀던, 놀이터 신남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
조건으로 천막 1동을 지급받고 이주정착지조성사업에
딸들,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다녔던 이곳에서
동참한 셈이다. 집짓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자식들 결혼시켜 분가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정들었던
당시 건축법의 최 소 대지면적 27평 아래 ‘15평 단지집’은
고향 이웃들 이제 다 어디 가고 나 혼자 남아서 추억을
불가능했다. 따라서 30평 대지에 1호 주택, 2호 주택으로
담고 있나. 이제 다가올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 전에
건축허가가 진행되지만 동시에 똑같은 형태로 한 번에
산산이 부서져 버릴 건물들과, 골목 즐거웠던 추억들을.
지은 ‘짝꿍집’은 드물었다. 형편대로 일부만 먼저 짓고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40년 전 목재 학고방 천막으로
나중에 문간채를 짓거나 하는 식이었다. 동네목수와
지붕을 덮고 작두 우물을 길어다 먹고 살던 어려운 시절,
이웃들이 함께 건축 팀을 구성해 집을 짓는 등 상황과
추운 겨울을 연탄불로 덥혀 가면서, 초상이 나면 골목
여건에 따라서 ‘15평 단지집’이 건축되는 양상은 각기
한가운데, 연탄을 피우고 천막을 치고 동네 이웃들이
달랐다. 30평 대지를 좌, 우로 나눠 15평집을 짝으로
밤을 새우던 이곳 머나먼 싸우디. 아라비아 더운 나라까지
지었다. 총 492개 필지 중 상가는 173필지에, 30평형 40개
가서 돈 벌어다가 15평에다 2층집을 짓고 애들과 얼마나
필지를 제외하고, 좌우 각각 15평으로 나뉘어 건축된
좋아했던 이집 손수 벽돌 쌓고 미장하고 도배했던 이집이
299개 필지 가운데 속칭 ‘짝꿍집’(데칼코마니 그림처럼)이
철거되고, 분담금 때문에 아파트도 못 들어간다니. 슬픔이
된 집이 110개다. 이후 거주민의 편의대로 집을 고치며
쓰나미 처럼 밀려온다.”2)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정에 따른 변화는 거주민이 주도한 형태로 찾아왔다.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집, 평면이 바뀐 집, 대문간의 입면이 바뀐 집, 지붕이 바뀌거나 하나로 합한 집, 지붕 일부를 증축한 또는 좌우 같은 형태로 전체를 증축한 ‘짝꿍집’, 좌우 분리해 신축한 다가구 형태, 더 나아가 아예 좌우를 통합해 신축한 다가구형태 등으로 분화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30평형 3개 필지를 통합해 필로티형 다가구로 신축한 집도 있지만 뉴타운재개발 논의가 진행되며 단지 내 변화의 양상이 멈췄다. 신 ‘ 월6동 이주단지’의 ‘짝꿍집’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연속되는 특이한 골목경관을 연출했다. 이는 특수한 조건 아래 계획된 토지구획 틀이 유지되며 이주민들의 자율적 건축문화가 형성된 사례이다. 약
짝꿍집 내부 모습, 신월6동(2007) Ⓒ김재경
1) 출처: 「신월6동 짝꿍집의 건축형태와 변화양상 특성」안화영, 이상구(한국도시설계학회지 도시설계 19(3))에서 인용 2) 출처: 미래사진(2016), https://blog.naver.com/ mrgs7255/220643761896, 글쓴이의 호흡 그대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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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파사드, 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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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파사드, 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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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파사드, 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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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파사드, 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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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파사드, 신월6동(2007)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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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1)
GAIA Topic : 우리가 희?망녹색을 잃은 거지 지난 7월 작고한 건축가 이일훈의 책 『사물과 사람 사이』를 펴든다. 표지에 카메라를 들고 찍은 건축가의 초상이 마음을 흔든다. 지난해 여름,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의 타계(2020년 6월 25일)를 추모하는 본란(통권 72호)을 읽고서 보내온 이일훈 선생의 문자메시지; “아우님! 이번호 봤네 우리가 희?망녹색을 잃은 거지” 나는, 우리는, 이일훈의 부재와 함께 희망건축을 잃은 것 아닌가.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쯤은 살아 있는 이일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흉내라도 내보심은 어떨는지.
34
1) 이 꼭지의 명칭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최남선 선생(1890~1957)이 1908년 11월에 한국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발표했던 권두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로부터 100년 뒤 2008년 1월에 창간한 본지는 선생의 계몽주의적 정신과 시선으로 현 인류와 미래의 인류가 함께 살아갈 지구를 향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만든다는 것의 미안함 할퀴어진 저 지층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정선 두위봉에서 자라는 주목보다, 봉정사 대웅전보다, 무령왕릉보다도 더 더 더······ 오래 되었을 지구의 속살. 눈앞의 필요를 앞세워 지구의 살점을 떼어낸다. 지표의 상처위에 건축물이 들어서고 새 길이 트인다. 남은 살점들은 습지를 메우거나 쓰레기를 덮는 데 쓰일 것이다. 사람들은 습지와 늪지 보존에 목청을 올리지만 한쪽에선 삽질이 여전하다. 아니 한 수 더 떠 삽질만이 살길이라 외쳐댄다. 혼돈의 세상, 건축은 맨 앞에 서 있다. 건축의 이름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일이 대지에 내리는 축복이었으면 좋으련만 인간만을 위한 못질과 삽질은 2)
자연에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다.
p.78 2) 이일훈, 『사물과 사람 사이』(2013), 서해문집, pp.126-127
35
건축에게 묻다 04
탈정치 시대의 건축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 : 건축은 결코 자율적일 수 없고 자율적이어서도 안 된다 글.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역사학자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 우뚝 선 아이파크는 거주민의 편익보다는
공간의 근본적인 변화상은 유기체적 결속에 기반을 둔 확고한 정체성을
관광객의 시선을 염두에 둔 건물임에 틀림없다. 바닷물이 건물 안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기에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좀처럼
넘쳐 들어올 만한 위치에 자리 잡은 이 유리 마천루는 겉모습이 마치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바다에 둥둥 뜬 돛단배처럼 보이며 수면에 반사된 햇살을 가득 받아들인
이는 물론 아주 새로운 현상은 아닌 바, 오래 전에 오스트리아의
실내공간도 분주한 실생활보다는 온실화초의 배양에 더 적합할 듯싶다.
보수주의 미술사가 한스 제들마이어(Hans Sedlmayr)는 모더니즘
서로 연결된 주거동 사이에 자리 잡은 투명한 고급호텔은 거주민들에게
예술 전체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 기저에 흐르는 “중심의 상실”을
한밤의 포르노를 무료로 선사한다.
근대세계의 일반적 문제로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중세 교회가
사회라는 넓은 바다로의 출항을 거부한 채 제자리에 멈추어선 이 거대한
지녔던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의 성격을 상실한 19세기와
유리 돛단배는 주지하다시피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의 설계자 다니엘
20세기 미술을 “시대의 상징이자 증상”이라 보면서 “시대의 고통을
리베스킨트의 작품으로, 지구 반대편의 이 두 건물은 뚜렷한 질적
진단”하고자했다. 색채가 선과 형태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적 역동성을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공허(memory void)”를 체현했다는 점에서
획득한 회화처럼 건축도 종교적 가치와 장식의 풍요한 역사성을
공통적이다. 도시를 살찌웠던 유대인의 기억을 상실한 채 형편없이
떼어내고 홀로 “순수”하려한다. 기념비적인 박물관과 극장 건물부터
쪼그라든 베를린처럼 20세기의 파란만장했던 기억을 도외시하고 텅
비더마이어 풍의 주택공간까지 심미주의가 종교적 신심을 대체했으며
빈 수평선에만 기대는 21세기 부산의 창백한 자화상이 낯선 해체주의
에펠탑처럼 아무런 목적도 없는 건물이 등장했다. 근대의 공원 또한
건축에 아로새겨진 것이다.
자연을 박제화하여 일종의 박물관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들마이어는 런던
건축비평가 만프레도 타푸리(Manfredo Tafuri)가 선구적으로
만국박람회의 수정궁처럼 철과 유리로 지어진 건물에서 “유목민 정신”을
주제화했던, 아방가르드 이후의 소위 ‘자율적 해체’의 건축은 도시로부터
읽어낸다. 늘 교체가능한 집은 한낱 가구로 전락하고 건축가의 자리는
건물을, 도시계획으로부터 건축을 분리시켰다. 그것은 역사적 조건과
엔지니어가 차지하게 되었다. “비인간적인” 순수기하학에 사로잡힌 프랑스
사회적 환경을 아랑곳 않고 그저 디자인적 요소만을 부각시키는데,
혁명건축, 시체를 치장한 듯 생기 없는 역사주의 건축, 마치 반죽한 듯한
이제 건축이 되살리려는 것은 도시의 문화적 유산이 아니라 오로지
벽체가 참으로 연약해 보이는 아르누보/유겐트슈틸 건축, 무엇보다도
건축 자신,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제안대로 건축적 ”유령“에 대한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이처럼 우주선이 착륙하는 듯, 아니면 기중기에
기억이다. 이러한 추세는 이른바 ‘탈정치(post-politics)’ 시대에 잘
들린 듯 불안정해 보이는 필로티 구조야말로 “건축의 소멸”을 재촉할
부합한다. 어느덧 정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야심찬 기획이 아니라
뿐이다. 극도로 보수적인 미술사가의 시각으로는 회화와 건축, 조각
그야말로 효율적이고 안전한 경영관리로 축소되고 민주적 소통 대신
등의 독립은 “잔혹한 토막내기”에 지나지 않으며 각자 고립된 근대인의
전문적 지식과 합의를 강요하는 관료주의적 통치기구에 의해 장악되었다.
“공허함”을 표현할 뿐이다. 이처럼 사회문화적 뿌리 및 풍경 속의 유기적
이제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정신은 공간의 변화를 읽는 안목보다는
결속, 즉 “중심”을 잃고 일종의 “고향 상실”에 처한 예술이 기댈 곳은 고작
경영관리주의(managerialism)내지는 기업가주의(entrepreneurialism),
예술시장뿐이다.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조각가 같은 예술성이다. 그것은 겉으로만
제들마이어의 견해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그는 심지어 철-유리
혁신적일뿐 기득권의 질서에 안전하게 기생하는 건축이다.
구조물을 싸잡아 맑스주의의 발로라는 억지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어차피 현대사회의 공간은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가
그렇지만 그의 독특한 근대미술사 해석은 모더니즘에 내재한 ‘탈정치’의
말한 “무장소성(placelessness)”, 혹은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경향을 선구적으로 간파했다는 점에서 언급될 가치가 있다. 세상을
Augé)가 말한 “비장소(non-lieu)”의 특징을 보인다. 사람, 재화, 자본,
선도할 듯 호언장담하던 아방가르드 예술은 실제로는 현실의 지배체제에
서비스, 기술, 이념 등이 지역적 장소와 영토적 경계를 가로지르며
온순하게 길들여졌는데, 온갖 거창한 ‘선언(manifesto)’들이 난무하며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가정, 시민사회, 국가 등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고
문외한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신들만의 아성을 쌓고는 현존
근대 국민국가를 지탱해온 영토 주권의 원리도 와해된다. 이러한 와중에
체제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은근슬쩍 가로막는 역할을 수행했다.
지역 간 경쟁은 오히려 심화되며 불균등 발전이 고착된다. 이와 같은
본래 정치란 실제적인 갈등과 분쟁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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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경쟁하고 조정하고 결단을 내리는 열린 과정이지만 예술의
이미지만큼이나 건물의 위상도 예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전에
각 장르가 저마다 내뿜는 눈부신 광휘는 현존 체제의 실상을 가리는
의해 도구화되어 본래의 생명력을 잃고 엄밀한 의미에서 탈정치화된
장막이 되어주었다. 국제적 냉전의 심화는 예술이 자체 발광하며
모더니즘 건축은 결국 냉전의 붕괴와 더불어 수명을 다했다.
자기목적화 함으로써 정치적 현실과 분리되도록 부추겼다. 냉전기
냉전이 종식된 이후 이념으로부터 해방된 건축계는 본연의 탈정치적
특유의 이데올로기 과잉이 초래했던 탈정치 경향은 냉전기가 종식된 후
성향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이제 더더욱 건축은 건축가 자신을
탈이데올로기적인 ‘자율적 해체’의 건축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철학자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국제적 냉전을 대표하던 분단도시 베를린의 사례는 더 이상
말처럼 비정치적인 도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다. 주민의 구체적 삶을
아방가르드일 수 없었던 모더니즘 건축의 체제수호적 이데올로기와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삶의 현장을 떠나 있는 건축도 건축일 수
그로 인한 탈정치화의 양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1949년 건립된
있는가? 삶의 보금자리를 기꺼이 파괴하는 건축이라면 정녕 건축이라는
독일연방공화국, 즉 서독은 옛 파시스트 건축이나 소련식 공산주의
명칭이 마땅할까? 멋진 디자인을 선보이지만 현존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건축과는 차별화된 ‘자유세계’의 ‘모던’한 도시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받아들이고 영속화하는데 복무하는 건축가는 바람직한 건축가인가?
1920년대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베를린의 ‘고전 모더니즘(Klassische
기득권 세력과 갈등을 겪으며 설계 수주를 성사시키지 못하는 건축가는
Moderne)’의 유산을 소환했다. 하지만 ‘전후 모더니즘’은 ‘고전
무능한가? 과연 건축이 새로운 미래를 정치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
모더니즘’과는 달리 더 이상 아방가르드일 수 없었다. 냉전의 세계적
분명한 점은 건축이 자체 발광으로 정치적 소임을 다할 수는 없다는
구도 속에서 서독은 ‘서구로의 통합’을 추구했고 특히 서베를린은
것이다. 건축은 결코 자율적일 수 없고 자율적이어서도 안 된다.
사회주의 동베를린과 등을 맞대고 있었다. 자유세계의 최전선에
건축비평가 마틴 폴리(Martin Pawley)가 지적했듯이 “건축과 주거가
위치했던 서베를린은 인민의 평등한 삶을 강조하는 공산주의적 고밀도
대결”하는 양상은 치명적이며 일반 건물과 건축물이 구별된다는 발상도
도시에 맞서 ‘분절되고(gegliedert) 이완된(aufgelockert) 도시’, 달리
지양해야 옳다. 주민의 필요가 아니라 건축가의 이념을 우선시하는
말해 기능 분화되고 인구가 분산된 도시를 지향했다. 1957년에 개최된
풍조만큼이나 건축주의 요구에 쉽사리 굴복하는 풍조도 건축을
‘국제건축전(Internationale Bauausstellung)’, 일명 ‘인터바우 1957’은
탈정치화하는 요인들이다. 이에 비해 전지전능한 자본의 요구에 완전히
녹음 속의 고층아파트라는 새로운 발상을 건축적으로 구현했는데,
굴복하지 않고 그 틈새에서나마 색다른 ‘차이의 공간’을 구축하는
서베를린의 중심부에서 도보거리에 있으며 거대한 도심 정원인
것은 무척 바람직하다. 건축이 특별히 정치적일 수 있는 것은 선명한
티어가르텐 끝자락에 면해있는 한자 지구(Hansaviertel)에 13개국에서
이념 덕분이 아니라 건축의 본성상 현실에 직접, 그 무엇보다도
온 총 53명의 건축가가 각종의 실험적인 공동주택 건물들을 남겼다.
구체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한 기호들의 놀음으로 대체된
사실 이 기획은 수년 앞서 동베를린에 등장한 스탈린가로(Stalinallee)에
‘자율적’ 건축도 있지만 솔직히 건축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 점차로
대한 자유세계의 응전이라는 성격을 띠었다. 한자 지구와는 달리
‘과잉도시화(overurbanization)’하는 현대사회의 대세 속에서 건축은
스탈린가로는 소위 “노동자 궁전”을 중심으로 한 뚜렷한 공간의 위계를
도시와 농촌, 도시 내부의 불균등한 공간을 문제 삼고 다시금 주체적
바탕으로 “내용상으로는 민주적이되 형식상으로는 민족적”이어야한다는
삶들을 가능하게 할 대안적 공간상을 제시하여 우리 삶의 현장에 정치적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교의를 관철시키고자했다.
활력을 부여할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옛 바우하우스의 사회주의/
“내일의 도시”를 모토로 삼았던 한자 지구의 모던한 건축물들은
사회민주주의적 전망을 훌쩍 뛰어넘는 21세기적 전망이 필요하다.
스탈린가로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나치게 저밀도 공간을 유지하느라
19세기 중엽 독일의 대표적 미학자 프리드리히 피셔(Friedrich Theodor
당시 서독의 공동주택 건설비용 평균의 거의 두 배를 지출했다. 또한
Vischer)는 박물관과 미술품에 관한 자신의 글에서 “옛 미술품의
유명 건축가들의 개성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지구 전체의
미라들을 모아놓은 아름다운 묘지” 대신 “공공의 민중전당”이 지어지길
동선은 간과되고 주민들은 각 건물 속에 고립되었다. “내일의 도시는
희구했는데,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민중들 자신의 도시주택”이었다.
실은 어젯밤의 도시였다“는 농담이 유행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로
그것은 “민중의 윤리적 자기성찰에 순수하게 복무”할 것이었다. 다분히
‘자유’라는 이념은 정치적으로 무용하다 못해 기만적이었다. ‘인터바우
보수적이었던 이 고명한 미학자는 1848년 혁명이 발발하기 몇 년 전에
1957’의 일환으로 티어가르텐에 지어진 대회의장(Kongresshalle)
이 글을 발표했다. 건축이 정치적일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삶은
건물의 천장이 20여년 만에 무너져 내린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물론 미래의 삶에도 개입할 때일 것이다. 우리 삶의 현장은 늘 부침을
원래 이 건물은 문화적 자유를 선전하는 용도로 미국 CIA가 주도하여
겪고 있다. 현재는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양 발을 걸치고
지어졌다. 냉전의 절정기에 양국 친선의 상징으로 미국이 반공도시
있다. 봄의 온기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고 다가올 겨울 채비도 하지 않는
베를린에 선사한 이 건물은 미국 모더니즘 건축가 휴 스터빈스(Hugh
보금자리가 제대로 된 보금자리일 수 있을까? 장식은 화려하지만 배고픈
Stubbins)가 설계했는데, 과장된 포물선을 그리는 육중한 콘크리트
사람에게 밥 한 공기 주지 못할 집이 집 맞는가? 불의와 차별로 가득한
천장이 특징이었다. 미국정부로부터 파견되어 베를린의 부흥에
세상에 살면서 아무런 번민도 없이 안락한 집에서 다리 뻗고 편히 잠들
기여하여 ”베를린의 엄마“로까지 칭송받던 엘리너 덜레스(Eleanor
‘자유’란 과연 얼마나 소중한 이념일까? 건축가들이여, 삶의 가혹한
Lansing Dulles)의 표현에 따르면, 이 모던한 건물은 ”동방을 비추는
현장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열망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가? 더 나은
찬란한 불빛”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0년 5월 21일 오전에
미래를 위해 바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대회의장의 총 110제곱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천장이 사소한 건축 상의 취약점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이 사건은 의외로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았는데, 냉전의 절정기가 끝난 후 줄곧 실추되어온 미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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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원정수•지순, 그 60여년의 동반 : 한 살매 파이어니어(Pioneer)로 살다 간 부부건축가 글, 자료. 김태형 목천건축아카이브 연구원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의해 맞이한 해방 공간, 곧이어 발발한
두 건축가의 만남은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의 건축과에서
6.25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초토화되었고, 한국정부는 그러한 상흔을
《학생작품전》을 준비하던 지순에게 한 학년 선배인 원정수가 설계
이겨내기 위한 극복의 시기를 걸어야만 했다. 한국의 정신을 되찾고
작업에 도움을 주게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황폐한 국토를 되살려야만 했던 혼돈의 시기, 원정수·지순은 모든 것이 제 궤도에 올라서지 못한 전후 사회체제에서 배출된 건축가이자
지순
교육자이다. 당시 전후 복구건설의 주요 정책은 대단지 주택개발
지도했는데, 제도판 위에 엎드려 도면을 그리고 있는 내가 기특했는지
계획이었다. 건축자재는 벽돌과 블록벽, 시멘트 등이 전부였던
자료도 많이 가져다주고 구하기 어려운 책도 빌려주곤 했다. 학교
시절이었다. 건축허가제도는 일제시기의 건축행정을 답습하고 있어,
밖에서 만난 것은 주로 빌린 책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는데, 만나면 책
건축대서사가 건축가들의 허가를 대행해주어야만 하는 구조였다. 이
이야기며 작품에 대한 견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대화를 참 많이
시기의 실무는 훗날 이들에게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 건축가로서의 삶에
나누었다”며 두 학생의 초기 만남을 되돌아보았다.4)
“같은 과 한 학년 선배였던 남편은 3학년 때부터 후배들을
대해 진지하게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학 졸업 후 원정수는 신건축문화연구소5), 공군시설장교와 지순
“나는 두 번째 직장이었던 주택영단1)에서 집이 인간의 삶에
트랜스아시아(Trans Asia Engineering Associates, Inc.)6),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온몸으로 느끼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1950년대
구조사(構造社)7)에서, 지순은 종합건축8)과 구조사, 대한주택공사에서,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주택영단은 마포에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갔던 두 사람은, 1966년 건축사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나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면허(제676호, 제677호)를 취득하고 1969년 일양(一洋)건축연구소를
아파트 입주를 완료하고 1년 뒤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 사이 입주자들의
개소하면서부터 부부건축가로서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9)
생활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특히 공동생활에 대한 태도와 생활습관이
1963년 제정된 건축사법이 건축설계자의 저작권으로 건축허가 행정이
놀랄 만큼 변해 있었다. 그 일은 나에게 주택의 역할과 인간의 생활,
정착되면서, 건축에서도 창작문화가 활성화되었다.
건축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2),
지순
원정수
했어요. 그래서 제가 사무실을 차려 같이 일을 하기로 한 겁니다.
“우리는 해외 유학파도 아니고 한국 건축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주는 교훈을 고스란히 받은 사람들이라고 봐요.”, “내가
“당시 원 선생은 학교 강의와 설계 일을 같이 했기 때문에 힘들어
남편보조에 완벽한 셈이지요.”10)
1953학번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한 3학년 때쯤 될 거예요. 학생 때 처음으로 살던 집에다가 목수를 데리고 실험을 한 건데 〈청운동
초창기의 일양건축은 주택설계를 많이 하였다. 원정수는 일양건축에서
서재〉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1957년도에 졸업하고 실습을 하면서
지순과의 호흡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신건축문화연구소에서도 주택설계를 했고요. 1961년도에 공군 제대하고 트랜스아시아에 가서는 안국동에 있는 미국대사관 사택
원정수
“일양의 기본이 주택이에요. 일양에 직원이 별로 많지 않으니까 주택
일부를 설계하고, 그런 경험을 쌓았어요. 건축사법이 발효되고, 우리가 일양건축으로 개업했죠. 그러면서 주택설계를 본격적으로 한 거예요”3)라며 당시를 회상하였다.
4) 지순, 「같은 책」, 생각의 나무, 2004., 83쪽. 5) 1954년 엄덕문, 정인국, 김희춘, 김창집, 함성권, 배기형에 의해 개소되었다. 6) 한국에서 주로 주한미군 시설의 설계를 수주했던 미국계 설계사무소였다. 건축가 이구는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이 회사의 부사장을 지냈다. 7) 건축가 배기형이 1946년에 개소한 설계사무소이다. 8) 건축가 이천승과 김정수가 1953년에 개소한 설계사무소이다.
1) 1941년 조선주택영단으로 시작되었다. 해방 후 대한주택영단으로 개칭되었고,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되었다. 2) 지순, 「여성이 건축가로 산다는 것」, 세상을 바꾸는 여성 엔지니어, 생각의 나무, 2004, 90쪽.
9) 원정수와 지순은 1959년 10월 10일에 결혼하였다. 지순은 1960년 대한주택공사를 퇴사 후 〈양지회관〉(1963~1965) 등을 설계하였다. 원정수는 1963년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3) 목천건축아카이브, 『원정수·지순 구술집』, 마티, 2015, 325쪽.
10) 한은소식, 「본점 별관 설계자, 원정수·지순 부부」, 한은뉴우스, 198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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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운동 서재 스케치(1956) 2. 제일모직 대구공장에서_ 왼쪽 원정수, 오른쪽 배기형(1955) 3. 마포아파트 전경_출처 서울도시기본계획(1966) 4. 서울대학교 공릉캠퍼스 실측과 모형제작을 마치고_왼쪽부터 원정수, 홍성철, 류승근(1955) 5. 봉은사를 실측하는 지순(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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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는 나하고 지 교수하고 한두 사람 정도가 같이 했어요. 내가 계획을
가르치며 외부기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였으며, 지순은 연세대학교
하고 지 교수는 1/50로 주단면도를 그려서 벽에 딱 붙여줘요. 아주 잘
주생활학과(1971~1991)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주거공간과 부엌 연구에
그려요. 그러면 문제가 있는 부분을 다시 보고 그리고 하는 팀워크가
몰입하기도 하였다.
아주 좋았어요. 내가 디자인하면 지 교수가 도면을 그리고.”11) 1981년 〈한국은행 본점〉 설계가 재개되며 두 건축가는 다시 건축설계에 원정수는 자신의 건축 활동에서 아내 지순이 빠졌다면 불가능했을
몰두하게 되었고, 1983년 간삼건축을 창립하였다.13) 이때부터
거라고 생각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들 부부는 한 사람이 건축설계를
부부건축가는 건축설계의 규모, 구조 및 마감 재료의 선택과 사용
하면, 한 사람은 사무소 경영 등을 같이 고민하면서, 강단과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었다. 〈한국은행 본점〉(1987)에는
설계현장에서 동고동락해나간 것이다. 그러나 지순은 원정수와 다르게
철근콘크리트와 화강석을 사용하여 지하3층, 지상15층의 건물을
사무소 생활과 가정생활의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부부가 같은
발표하였는가 하면, 1995년 완공한 〈포스코센터〉에서는 철과 콘크리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두 가지 원칙을
그리고 유리를 사용하며 당시의 신공법들을 도입하였다. 이들
세우고 철저히 지켰다. 하나는,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건축에 대한
부부건축가는 30여년 전 벽돌과 콘크리트 블록이 건축 재료의 전부였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가족과의 대화에 집중한다’였다. 작품을 하다
시절을 지나, 공업화·규격화 된 산업 환경을 관통하며 탐구할 수 있는
보면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다투기도 한다. 그래서
최적의 요소들을 찾아내어 도시의 경관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우리는 일 때문에 다투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건축물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건축 재료에 대한 이해는 건축가의
12)
내일 마저 싸우자’하고는 집에 갔다”고 한다.
이 시기에 설계된 것이
창작의지를 표현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으며, 각 시대의 변화에
〈안암동 조씨댁〉(1977), 〈청운동 이씨댁〉(1978), 〈통의동 장씨댁〉(1981),
따라 함께 변화되는 건축자재의 생산수준은 건축 구상에 직접적인
〈평창동 이씨댁>(1984) 등이며, 조금 시기는 다르지만 분당 단독주택인
영향을 주었다.14)
〈해바라기 집〉(1991) 등도 함께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서울대학교 학생회관〉(1973), 〈대한마이크로전자 부평공장·기숙사〉(1973), 〈럭키
원정수는 정년퇴임 후 가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여천공장 기숙사〉(1974), 〈유한양행 안양공장〉(1975), 〈선경합섬
과거를 회상하였다.
체육관·기숙사〉(1977), 〈한국은행 강릉지점〉(1978), 〈대전천주교 문화회관〉(1979) 등이 일양건축 시절에 설계된 것이다.
원정수
“저는 행운인지 몰라도, 실무와 학문을 다 할 수 있었어요. 미국의
대학 교수는 작품 활동을 해요. 대학 교수가 되려면 작품이 쌓인 1971년 3월, 이들은 신문회관에서 《부부건축전》을 개최하였다. 한
게 있어야 하거든요. 반면 우리나라는 건축과 교수가 설계사무실을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원정수와 지순은 건축에 대해 “여러 사람의
병행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저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가 아내
두뇌와 협동, 노력이 삼위일체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덕에 임상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었어요.”15)
공동예술체입니다”라고 정의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참여하게 된 현상설계는 일양건축의 규모와 활동에 일시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이에 대해 지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지순은
하였다. 그들은 1970년대 중반 〈잠실지구 주택단지〉(1974)와 〈한국은행
일양건축 시절부터 가정과 일을 똑같이 병행해나갔기 때문이다.
본점〉(1976) 현상설계에 연이어 당선되었다. 그러나 두 건축가는 주최 측의 계획변경과 당선 무효화 등에 지난한 과정을 보내기도
지순
“건축사무소와 교수직을 함께했죠, 개인적으로 아이 넷을 낳았죠,
하였다. 원정수는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1963~1999)에서 학생들을 13) 원정수, 지순, 이범재, 김자호, 이광만의 파트너십 체제로 출발하였다. 간삼(間三, Group3)은 시 ‘ 간’, ‘공간’, ‘인간’의 ‘간, 세 개를 같이 한다’를 뜻한다. 11) 목천건축아카이브, 『원정수·지순 구술집』, 마티, 2015., 132쪽.
14) 원정수, 「[특집] 50년 건축경험의 증언」, 대한건축학회, 2005.10., 16쪽.
12) 지순, 「같은 책」, 생각의 나무, 2004., 85쪽.
15) 원정수·지순, 「포스코·한국은행 본점 설계한 부부건축가 원정수·지순」, 라이프, 1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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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6. 서울대학교 학생회관(1972) 7. 세종문화회관 현상설계 응모안(1973) 8. 잠실주거단지 현상설계(1974) 9. 안암동 조씨주택(1977) 10. 원정수-지순 건축전_토론장 모습(1971) 11. 대한마이크로전자주식회사(1973) 12. 선경합섬체육관(1977) 13. 신문로 주택(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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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 모시죠, 조카들 데리고 있지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 의지로 많이 이겨낸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일편단심 생각한 것은 저는 꺾이더라도 원 교수만은 고민하지 않고 건축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원 교수에게는 평생 사무실이나 가정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게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원 교수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습니다.”16) 두 부부건축가를 옆에서 지켜봐오던 건축가 김원은, “원 교수가 열정적으로, 때로는 무분별한 ‘하고재비’처럼 일을 벌여나가면 지 교수는 단단히 지출을 억제하고 살림살이를 꾸려나간다. 말하자면, 원 교수가 차를 몰아나가는 동안 지 교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이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대단히 상호보완적이구나’라고 느끼는 적이 훨씬 많다. 말하자면 ‘다르다’는 뜻이 된다. (중략) 지순에 의하면, ‘물론 시작부터 위계질서는 분명했으니까’ 그런 것은 쉽게 가능했을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원 교수는 어떤 카리스마 같은 것으로 위계질서를 잡고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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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상호보완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그러고도 거의 이상적으로 두 분에게 고루고루 몸에 배어 있는 점이 아닌가를 17)
원정수(元正洙, 1934~2021) 1957년에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군시설장교,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트랜스아시아 엔지니어링, 구조사건축기술연구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1963년부터
두 분이 목천건축아카이브에 기증하여 주신 시대의 증언과 자료는 한국
파트너십으로 일양건축연구소를 이끌었으며, 1983년부터는 간삼종합건축사무소 파트너
현대건축의 역사적 층위를 두텁게 해주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건축가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포스트모더니즘과 예술』, 『건축계획론』, 『한국건축 어디로
지금도 원정수 선생님의 친근한 말투와 지순 선생님의 또랑또랑한
가고 있는가』, 『원정수의 건축으로 세상보기, 건축세상만사』, 『부부건건축가 건축외길
목소리가 겹치어 입체적으로 들려온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담소를
50년』, 『집: 한국 주택의 어제와 오늘』 등이 있으며, 1999년에 국민훈장 목련장, 2000년에
나누고 계실 것만 같은 두 분, 평온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예총예술문화상 건축부문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9년까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9년 1982년까지 지순과
지순(池淳, 1935~2021) 1958년에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구조사건축기술연구소와 주택영단에서 실무를 익혔다. 1963년 설계한 〈양지회관〉이 그의 첫 작품이다. 1966년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여 1969년 일양건축연구소를 개소하였다. 1975년 〈한국은행 본점〉 현상설계에 당선되었으며, 1983년부터 간삼종합건축사무소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또한 1971년부터 1991년까지 연세대학교 주생활학과에서 학생들을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가르쳤으며,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여성건축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
본문 전체 자료 제공: 목천건축아카이브
서울시건축대상을, 1995년과 1997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을, 1999년에 초평건축상을 수상하였다.
16) 원정수·지순, 「앞의 글」, 라이프, 1999.8. 17) 김원, 「한길로 집 짓는 콤비」, 여성동아, 1978.7., 148-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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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울대 학생회관 설계 중에_여의도 아파트에서(1972)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죠. 우선 철, 시멘트, 유리로 현대건축이 출현했고, 초대형 공간, 초고층 건축, 광역거대도시들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인간생활의 편의와 안락에 건축문화가 도취하면 할수록 지구 종말의 환경파괴, 지진, 쓰나미 같은 문제도 발생했고, 9·11테러로 튜블러(tubular) 구조가 붕괴하며 인간몰살을 방관할 수밖에 없던 안타까움도 있었죠. 중국이 상하이 푸동에 맨해튼 같은 도시를 15년 만에 만들어 내는 급성장 모습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동시에) 전 국민의 수세식 위생설비로 인한 수자원 고갈, 초고층의 외줄타기 외벽 관리 등 첨단건축의 발전을 외면한 건축가들의 의식이 격변하는 미래를 감지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해요. (2015, 원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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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포스코21 외부 투시도(1991) 16. 평창동 이씨댁(1984) 17. 한국은행 3차안(1984) 18. 포스코 센터 전경사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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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14
영덕 영해장터거리 外 : 근대역사문화공간, 낯섦과 익숙함 사이 글, 자료. 이연경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지향하는 ‘근대’의 모습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된 후생시장
지향하고 있는 방향을 보여준다. 2019년 선정된
지난 세 번의 연재를 통해 살펴본 영주,
부근이 아닌 ‘관사골’이라 불리던 배후
근대역사문화공간인 경북 영덕 영해장터거리
익산, 통영은 2018-2019년 문화재청의
지역과 풍기-봉화를 잇는 영주의 주요 도로인
근대역사문화공간도 비슷한 성격의 공간이라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을 통해
광복로에, 익산은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이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읍성의 흔적이 여전히
문화재로 등록된 지역으로 각 지역에서
다수 남아 있는 일본인 중심 거리가 아닌
남은 곳에 조성돼 근대기 조선인 장터이자 오랜
그동안 관광지로 주목받던 지역이 아닌
조선인들의 생활터전이자 해방 이후 번성하였던
시간 개발이 정체된 채 남아 옛 모습을 그대로
새로운 지역, 즉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의 중심
‘솜리시장’ 일대를, 통영은 조선시대부터
간직하고 있는 곳, 바로 영해 장터거리이다.
역할을 하였으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중요한 항구였던 강구항과 그 배후의 옛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고 쇠락해왔던
길인 세병로를 중심으로 문화재 등록구역을
조선인의 근대 상점가, 영해장터거리
지역에 주목했다는 특징을 가진다. 영주는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익산 솜리시장의 경우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영해장터거리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일제강점기 ‘자생적으로 형성된 조선인의 거리’ 라는 측면이다. 고려시대 이후 경상북도 동북부 지역의 해안 방어의 요지였던 영해에는 1384년 영해읍성과 영해부 관아가 건립되며 주요 도시로 크게 성장하였다. 조선후기인 1871년에는 이필제와 최시형을 필두로 한 동학도들이 영해관아를 습격하며 동학혁명이 일어나기도 하고, 1896년에는 영해출신인 신돌석 장군이 이끄는 영릉의진이 영해읍성을 점령하는 등 의병활동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 이후 영해읍성과 관아는 모두 파괴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영해는 군소재지에서 면소재지로 전락하였다. 조선인의 중심이었던 영해 성내장터에서는 1919년 3월 18일 독립만세시위가 있었고, 군중들은 영해면 소재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당시 영해 3·18만세의거는 시위 참여 인원이 3천여 명이 달하는 한강이남 최대 만세 운동이었는데,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된 영해장터거리는 바로 3·18만세의거가 일어난 중심지였다. 영해장터거리는 일제강점기 조선시대 영해 읍성과 관아가 해체되고 새로운 도시 구조가 형성되며 새로 개착된 길로 현재는 남아 있지 않는 읍성의 남문과 서문-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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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덕 영해장터거리(작도: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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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해 3·18만세의거 경로(출처: 영덕군청) 3~4. 영덕 구 영해버스터미널(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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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를 잇는 ‘ ┘’ 모양의 길이다. 이 길은 조선인 장터싸전를 중심으로 한 거리로, 구 영해공립심상소학교,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위치한 일본인 중심지역에서 벗어난 조선인 중심 지역이었다. 이 길의 양 옆으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배수구가 그대로 남아 있어 20세기 초 한국에서 만들어진 근대적 도로의 원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도로의 구조나 도로 폭의 변화가 거의 없이 100여 년을 지내온 도로의 양 옆으로는 술을 빚던 술도가(문화재명; 영덕 영해양조장 및 사택)를 비롯하여 육수간(문화재명;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상가주택1), 신흥상회(문화재명;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상가주택2), 고무신가게(문화재명;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상가주택3), 신발가게(문화재명; 영덕 영해장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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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상가주택4), 소금상가(문화재명;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상가주택5) 등이 길을 따라 위치하고 있다. 이 상가들은 대부분 상점과 주택이 결합된 상가주택의 형태로 1950년대 이후 천주교 공소로 사용된 영해공소 역시 원래의 용도는 상가주택이었다. 영해공소 바로 옆의 영덕 구 영해언론인협회 및 구 대구매일신보지국 건물은 2동의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약 50년간 영해언론인협회 및 대구매일신문지국으로 사용된 이 건물 역시 도로에 면한 전면부는 쌀가게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영해장터거리는 말 그대로 ‘장터거리’ 즉 일제강점기 이후 영해의 중심적인 상점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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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장터거리의 중심부이자 조선시대 객사 터이자 일제강점기 주재소가 있던 자리에는 즉 구 영해의용소방대 건물이 있어 마을의 중심에서 마을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던 근대 경찰 및 소방 시스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은 3·18만세의거 당시 일제 통치기관인 경찰과 조선인 민중들 간의 충돌이 발생한 주요 시위 장소였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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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영해의 가장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옛 영해읍성 남문터 부근에는 영해터미널 건물과 영해금융조합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영해장터거리의 남서쪽 끝 양조장 바로 옆에 위치한 영해터미널은 본래 일제강점기 경북여객자동차주식회사로 건립된 건물로 미니버스 두 대가 드나들며 포항과 대구, 울진으로 승객을 수송하였다. 1973년 7월 터미널이 옮겨간 후 미니버스가 드나들던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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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영덕 구 영해의용소방대, 영덕 구 영해공소(출처: 문화재청) 7~8. 영덕 영해양조장 및 사택(출처: 문화재청) 9~10. 영덕 구 영해언론인협회 및 구 대구매일신문지국(출처: 문화재청)
무주공간이 있는 터미널은 중식당, 이발소, 극장, 태권도장, 페인트상점 등으로 사용되었다. 영해터미널과 양조장의 맞은편에는 일제강점기 은행이라 할 수 있는 영해금융조합에서 1935년 건축한 50평 규모의 영해금융조합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2층으로 보이나 내부에서는 1층인 이 건물은 근대기 금융기관 특유의 견고하고도 안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외관을 가지고 있다. 이후 창고로 사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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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가 폐쇄되고 외관상 변형이 있긴 하였으나 비교적 1930년대 신축되었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영덕 영해장터거리의 건물들은 길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도로의 모습 역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밀도가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근대기 한옥, 일식 상가주택, 절충식 건물뿐 아니라 1950~60년대 상점 혹은 상가주택의 모습들이 잘 남아 있어서 20세기 초중반 지방 소도시의 일상적 건조 환경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1919년 3·18만세의거의 장소성이 곳곳에 남아 있어 ‘한국의 자생적 근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가로로서의 상징성을 띄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개항장’의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 하지만 대중들에게 더 익숙한 근대 도시의 풍광은 인천이나 군산, 구룡포, 벌교 등에 조성된 일본풍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철근콘크리트의 건물에 일본풍 목조 파사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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씌워 획일적으로 그 때 그 시간, 즉 개항장이 설치된 이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르는 시간의 도시 풍경으로 재현한 지자체들의 관광 사업은 ‘기모노’ 혹은 ‘교복’을 입고 ‘인력거’를 타는 모습의 도시 풍경을 20세기 한국 근대 도시의 모습으로 고정시켜버리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8년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시범사업에 대표적인 근대 개항장 도시인 목포와 군산이 영주와 함께 선정되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97년 개항 이전까지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개항 이후 일본인의 이주가 시작되며 개발된 도시인 목포의 남쪽 항구 부근, 즉 유달산과 목포항, 그리고 목포역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인 목포진에서부터 개항 이후 설치된 구 일본영사관과 구 심상소학교 14
11~12. 영덕 구 영해장터거리 근대상가주택-1(육수간),-5(소금상점)(출처: 문화재청) 13. 인천 개항장 거리 14. 벌교 보성여관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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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포함한 항구의 배후지이자 일본인
등 다수의 등록문화재가 이미 등록된
축적된 시간의 켜가 있는 항만과 항만 배후의
거주지였던 곳으로 목포의 원도심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생활공간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지역이다. 개항 이후 계속된 매립사업으로
동아부인상회, 화신연쇄점을 비롯한 근대기
현재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목포의 해안선은 계속 변화하였고 많은
대표적인 상업시설들과 해안로와 번화로
사업이 진행 중으로 향후 이곳이 인천이나
일본인들은 상업 등에 종사하기 위해
주변의 상가주택들, 그리고 부두가 창고와
군산과 다르게 어떻게 다양한 시간의 켜를
목포로 건너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목포부립병원 관사를 비롯한 주택들,
녹여낼 것인가라는 기대감과 동시에 궁금함이
‘신시가지’ 목포는 반듯반듯한 가로
그리고 일본기독교회 등 다양한 성격의
남는다.
구획에 일본식 건축물들이 가득 들어서는
근대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풍경으로 변하였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인천이나 군산 등 개항장이라 불리는
군산은 ‘군산 내항역사문화공간’이라는
선정되기 이전에도 목포에는 개항 이후부터
지역들이 ‘일본풍’의 건물들을 복원하거나
이름으로 기존에 도시재생사업이나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많은 건축물들, 즉 구
재현하며 ‘이국적인 관광지’를 만들고자 했던
근대역사문화벨트화사업 등을 통해 이미
목포 일본영사관을 비롯하여 이훈동 정원,
상황에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개항부터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보수·복원되면서 ‘군산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구 호남은행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오랜 시간
근대화거리’라 불리는 시가지가 아닌 옛 군산세관이 있는 군산내항을 중심으로 한 항만 주변을 문화재구역으로 등록하였다. ‘군산 내항역사문화공간’에는 조석간만차와 상관없이 대형선박의 접안을 가능케 하도록 만든 항만시설인 뜬다리부두(부잔교)와 1905년부터 1938년까지 만들어진 군산항 축항 중 제3차, 즉 1932년 완공된 공사의 결과물인 호안시설, 그리고 항구와 철도를 잇는 내항 철도 등의 도시기반시설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와 함께 1970년대 초 항구 주변에 건축된 산업시설인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과 경기화학약품상사 공장이 함께 등록되었다. 이는 군산하면 떠올리던 개항 이후 형성된 일본식 시가지의 모습이 아닌 개항 이후부터 1960~70년대 경제개발기까지 이어지는 80여 년 이상의 시간이 축적된 산업공간의 전체적인 풍경을 담고자 한 특징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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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출처: 문화재청) 16. 군산 내항역사문화공간 (출처: 문화재청)
자생적 근대와 이식된 근대 사이 2021년도에는 서천 판교와 진해가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의 대상지로 선정(예고)되었다. 벚꽃이 만개한 군항제로 유명한 진해는 일제가 건설한 대표적인 군사항구도시이자 방사선형 도시계획이 시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한편 서천 판교는 일제강점기부터 1960~70년대까지 근현대기 농촌지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193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건축된 정미소와 주조장, 사진관, 극장 등이 잘 남아 있어 ‘시간이 멈춘 마을’로 자주 언급되는 장소이다. 이 두 곳의 선정은 앞에서 살펴본 우리의 근대도시공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 즉 자생적 근대와 이식된 근대라는 성격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는 언제쯤이면 ‘자생적 근대’와 ‘이식된 근대’라는 양 끝에 서 있는 프레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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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2018년부터 진행되어 온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은 ‘자생적 근대’와 ‘이식된 근대’라는 프레임을 넘어 그 사이에 쌓인 시간에 주목하고자 하였지만, 역으로 지나치게 ‘한국인’과 ‘자생’을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두 개의 프레임을 공고히 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1. 문화재청 문화유산포털 https://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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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목포 구 화신연쇄점 18. 항구에서 구 일본영사관 방향으로 바라본 목포 시가지 19. 군산 뜬다리부두 (출처: 문화재청) 20. 군산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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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건축의 코드 02
채 나눔의 윤리성 : 이일훈 건축의 목표, 그리고 이일훈의 침잠에 대하여 글. 함성호 스튜디오EON 소장
“조물주가 창조한 모든 것은 선하나, 인간의
가로수를 마구 잘라대는 작태를 맹비난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채와 채를 이동할 때
손 안에서 모든 것은 타락한다.” 루소는
“자연 보호를 외치며 자연 속의 도시에 살고
어쩔 수 없이 비나 바람, 햇빛을 맞이하게
『에밀』에서 이와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해
싶어 하면서 또 한편에선 자연을 파괴하며
되는데 그것이 채 나눔의 목적이다. 비 한
인간의 손 안에서 조물주의 선한 의지를
집을 짓는 시대,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방울, 햇볕 한 줌조차 쬐지 않고 생활이 가능한
유지할 수 있는 일반의지라는 방법을 찾으려고
갈등하며 사는 우리 자신이 모호하고 비겁하다.
현대주택들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차단한다.
했다. 결국 루소는 인간의 손 안에서는 모든
공익과 사익이 정반대인 세상은 후진사회다.
이일훈의 채 나눔은 그것을 벌려 놓자는
것이 타락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보다
공익과 사익이란 같이 가야하는 것인데, 세상도
것이다. 그리고 그 벌려진 사이에서 자연을
훨씬 이전 춘추전국시대의 순자도 인간의
정치도 개인도 다 잇속 앞에 흔들린다. 혼돈⋯
느낄 필요가 있고, 그것을 통해 자연으로서의
2)
부정적인 본능에 대해 사회적인 순화를 거쳐서
그 사회적 풍경, 우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인간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이일훈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타락한 손이 선한 의지에 정화되는
건축의 목표다. 그가 주장한 ‘불편하게
순자나 루소나 사회 안에서 인간 존재의
세상을 꿈꿨고, 사익과 공익이 일치해야
살기’는 한 마디로 ‘피난처로서의 집’이란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는 점은 같다. 이일훈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피난처로서의 집 즉,
역시 인간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은 타락한다고
건축으로 이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shelter’는 오랫동안 집에 대한 서구적 정의로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선한 의지 또한
바랐다. 건축이야말로 가장 인위적인 행위고
널리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집은 비와 바람과
믿었다. 어쩌면 이일훈은 인간의 의지와 손을
이 인위적인 행위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별개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인간의
그러한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정의를 조선집에 적용하기는 무척 난감하다.
의지는 선하지만 인간의 손은 그렇지 않다는
그가 과연 그러한 건축을 이루었느냐?는
조선집은 창호지를 통해 소리를 집안과 밖으로
것이다. 인간은 타락한 손과 선한 의지를
문제와 상관없이 이일훈의 건축은 초지일관
실어 나르며, 문은 외기가 드나들고 사람이
가진 모순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그것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넘나드는, 문과 창의 구별이 없다. 벽은 바깥을
이일훈을 평생 따라다닌 문제였다. 어떻게
그는 조선집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것을
차단한다기보다는 이러한 문으로 열려 있다.
인간의 선한 의지가 인간의 타락한 손에서
자신의 건축방법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래서 추위를 막지 않고 온돌을 통해 집안과
타락하지 않고 발현될 수 있는가? 이일훈은
단순히 건축방법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밖을 연결하는 기후를 만든다. 더위는 더욱
사회적 장치도 믿지 않았다. 그는 모든 법과
건축을 포함해 삶의 태도를 다루었다.
적극적으로 밖과 조응한다. 서유럽의 건축처럼 집은 피난처가 아니었다. 조선집은 오히려
제도를 불신했다. 이일훈에게 선한 의지는 인간의 육체와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나중에
이일훈 건축의 방법인 채 나눔은 조선집에서
바깥과 안의 자유로운 대기작용에 의해 집을
그는 그것을 자연에서 찾았고 마지막에는
차용되었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큰 차이를
만들었다. 이러한 집을 피난처라고 할 수
신에게 의지했다. 이일훈에게 인간의 선한
보인다. 조선집의 채 나눔이 반상의 구별,
있겠는가? 이일훈이 조선집의 이러한 관계를
의지와 타락한 손이 별개로 있었던 만큼,
안채와 사랑채의 주체, 농경제, 자연관
적극적으로 차용했음은 물론이다. 이일훈에게
자연과 신은 하나였다. 인간에 대한 모순이 더
등, 당대의 사회, 문화에 의해 그 기능이
있어 조선집은 숲의 지혜로 도시를 만들 수
깊어질수록 자연과 신은 더욱 조화로워졌다.
나누어졌다면 이일훈의 채 나눔은 자연과
있다는 위대한 증명이었다. 이일훈은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모순이 더 깊어갈수록 그는 점점
인간의 관계에 의해 나누어진다. 그에게 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더니즘의 유명한 경구
더 윤리적이 되었고, 자연과 신이 일치할수록
사회, 문화, 경제적 관계에 의해 나뉘는 것이
“less is more”에서 “작을수록 나눠라!”로 채
그의 건축은 점점 더 종교적이 되어갔다. 그는
아니라 근대 이후 멀어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나눔을 입자적으로까지 나눌 것을 강조한다.
“숲에서 배우는 지혜로 도시를 생각하고 만들
회복하기 위해 벌려진다. 그는 그 벌려진 틈,
이일훈에게 채 나눔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수는 없을까?”1)를 생각했고, 그런 반대편에서
혹은 사이로 사람이 자연을 감각하기를 바랐다.
본질이었다. 그것은 건축의 본질이었고 동시에
1)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17쪽/이일훈/사문난적/2011년
2) 같은 책 141쪽
50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는 나눌수록
대지가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았고, 대지가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하는 월례행사에서
건축을 “창녀”로 취급했다. 조형성이란 말을
풍요로워질수록 자연이 풍요로워진다는
해방되었다. 그는 혼자 일한 말년에 외려 가장
극도로 싫어했고, 유행에 휩쓸려 가는 세태를
걸 알았다. 그러면 인간이 풍요로워질 것은
그다운 일들을 많이 했다.
극단적으로 경멸했다. 같이 한국성을 논하던
당연했다. 그러기 위해서 거기에는 반드시
건축가 이일훈은 윤리적인 작가다. 일반적으로
동료 건축가들이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이 있었다. 그게
도덕은 가치의 규범이며 윤리는 행동의
급격하게 서구건축의 방법으로 편향될 때도
‘불편하게 살기’다. 불편하게 산다는 것 역시
규범이다. 도덕(Morality)은 공동체의 기준에
그는 외롭게 채 나눔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때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불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따라 옳거나 좋다고 여겨지는 개인의 가치이며,
한국건축의 전통을 운운한다는 것은 촌스러운
반드시 덕목이 필요하다. 나는 개별자가 아니라,
윤리(Ethics)는 이러한 도덕이 적용되는
짓으로 폄하되고 있었다. 그는 그 비웃음을
개별자이면서 나 아닌 것들과 상호 관계한다는
사회적 규범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가 인간의
견뎠다. 아니,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통찰, 나의 이기심보다 공공을 위해 나를
손 안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발현될 수
돌연 그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는 덕이 필요하다. 이일훈의 채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듯이, 도덕적이면서도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는 더욱 내면으로
나눔은 그것을 통해 완성된다. 불편하게 살기
윤리적이라면 좋겠지만 그 둘은 종종 서로
침잠했다. 그가 내면으로 침잠해 갔다는 말은,
위한 덕목이 없이 채 나눔은 존재할 수 없다.
엇갈리며 나타날 때가 있다. 공동체의 가치가
그의 건축어휘들이 기존의 건축일반의 정의를
결국 이일훈의 건축은 늘 미완성일 수밖에
꼭 개인의 가치와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벗어나 사회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없었다. 그는 늘 미완성인 건축을 통해 인간의
한 개인이 공동체의 가치와 다른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그의 스케치는 가난한
완성을 지향했다. 인간의 완성이 불가능한 꿈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꼭 비윤리적인
사람들을 향해 그려졌고, 그의 말은 배움에서
때, 이일훈의 건축은 그 이후에야 완성되는
사람인 것 또한 아니다. 도덕적이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귀에 맞게 맞춰졌다. 더욱
영원한 미완의 프로젝트였다.
비윤리적인 사람이 있고(예를 들어 변호사가
겸손해졌고, 그가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들어 의뢰인의 유죄를
때면 수도승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이일훈에게 있어 ‘불편하다’는 의미에는 두
주장할 경우),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윤리적인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쏟아 부었고, 우리는
가지가 있다. 그가 ‘불편하게 살기’를 주장할
사람이 있다(가족을 희생하며 빈민운동을
아이들처럼 웃었다. 채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때는 인간이 자연을 닮고자 애쓸 때이다.
하는 경우). 후자의 경우 도덕이라는 범위에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나는 아주
그러나 그는 마음이 불편한 것은 참지 못했다.
대해 상당히 논쟁적이지만 그것을 완전히
깊고 정답다고 생각했다. 이일훈과 처음 만났을
그에게 당대의 사회는 언제나 타락한 쪽으로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듯이 윤리와 도덕은
때, 나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쏠려 있었다. 그는 그런 자리마다에서 참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그는 뭐 그런 호칭이 다 있느냐는 얼굴로
못하고 일어섰다. 그 행위는, 그 자리에 있는
루소의 말을 떠올리자. “조물주가 창조한
웃으며, 형이라고 부르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
누구나 그가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은 선하나, 인간의 손 안에서 모든
후로 나는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게 또 희한하게도,
것은 타락한다.” 그리고 선한 의지와 타락한
언제나 나의 스승이었고 친구였으며 형제였다.
그들끼리 이일훈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결속을
손이라는 인간의 모순에 대해서도. 그러면
그리고 그는 나를 신촌 강화버스터미널 근처의
더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어느 정도 이일훈이라는 한 인간의
서서갈비집으로 데려갔다. 거기는 노동자들이
또 인간을 무시하는, 제도를 위한 제도를
고뇌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앉을 시간도 없이
무시했다. 그 무시가 자신에게 이익은커녕
건축가 이일훈이 윤리적 작가라는 말에는 이
급하게 소주 한 잔과 안주를 먹고 귀가하던
해를 끼칠 때도 그랬다. 그는 완고하리만치
모든 말들이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 이일훈은
선술집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서서먹는 집으로
윤리적인 인간이었다. 그것은 그가 건축을
처음부터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했고
통했다. 나는 거기서 형과 노동자들의 왁자한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되는 일임에도
끝까지 그것을 밀고 나갔다. 그의 초기 작업에
고함 소리와 함께 불판에서 피어오르는
사리에 맞지 않거나 부당한 요구사항이 있을
속하는 〈운율재〉의 작업노트에서 그는 이미
연기를 맡으며 소주를 마셨다. 며칠 전 나는
때는 가차 없이 거절했다. 누군가가 그 일을
그의 건축의 처음과 끝을 천명했다. “작품으로
거기를 갔어야 했다. 강화버스터미널은
해야 할 것이라면 적어도 자신은 아니라는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은 ‘좋은 집’으로 쓰여질
없어졌지만 그 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라고 왜 강하게 끌리는
때 가능하다. 내부 기능과 관계없이 만들어진
나는 거기서 주인장에게 술 두 잔을 준비해
일이 없었겠는가? 그가 완고한 윤리적 잣대를
형태의 소모성 유희는 건축의 건강함을 해친다.
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는 형의 잔이었다. 그는
가진 만큼, 이일훈이 남긴 건축은 적지 않지만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처음부터 낮은 곳에 있었고, 끝까지 그 애정을
많지도 않다. 당연히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환경과 변화될 상황의 예측이 전무한 채로
잃지 않았다. 타락한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만,
돈은커녕 그 일들은 그에게 빚만 떠안겼다.
지어지는 불감증의 건축이 얼마나 땅과 동네에
조물주가 창조한 모든 것처럼 선할 수 있는
말일이 다가올수록 그는 술자리에서 자꾸
대한 큰 해독이란 말인가.”3) 그는 당시의
일말의 가능성을 그는 건축에서 보았고, 끝까지
어디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았다. 돈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해체주의에 대한
그렇게 했다.
빌리려는 부탁 전화였고, 거절하는 전화였다.
건축계의 천박한 이해에 치를 떨었다. 한마디로
그렇게 그는 수십 년 동안 사무실을 꾸려갔고,
그는 ‘대문자 A 건축’을 경멸했다. 요즘 시대에
나중에는 혼자 일을 했다. 도와주는 사람이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일훈은 그런
있었지만, 적어도 말년의 그는 직원들의 월급
3) 《건축과 환경》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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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동 교수의 라이브러리
영국, ‘스톤헨지’ 위기에 우리 조선 왕릉 주변 아파트도 글, 자료. 김정동 우리근대건축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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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1. 아소시에이션(The Association)의 이 재킷은 스톤헨지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 음악 내용과도 관계가 없다. 다만 앨범 팀 이름 소개를 스톤헨지에 집어넣은 것이다. THE는 안 줄에 세우고 ASSOCIATION은 바깥 줄에 세웠다. H자는 선돌같이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 주변은 혹성의 표면이다. 달(moon)이다. 그 멀리는 어둠의 세계이다. 하얀 점들은 별들이다. Warner Bros, 1967년 판이다.
사학과나 고고학과 그리고 건축과는 역사 과목 첫 교시에 선사시대를
그런데 얼마 전 그 유산이 위기 유산이 될 수 있다(2021.7.30.)는 뉴스가
다룬다. 기원전의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 등을 배우는
떴다. 스톤헨지는 주변 도로의 터널 신설, 우리는 아파트 신축이 문제가
것이다.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첫 수업부터 맥이 빠지긴 선생이나
된다.
학생이나 마찬가지다. 너무 먼 시대 얘기이기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스톤헨지 밑을 지나는 약 3.2km 길이의 터널 건설 계획이 문제가
까닭이다. 더구나 먼 나라의 예는 더하다. 석기시대(Stone age)는
되었다. 등재자들은 터널이 스톤헨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거석(巨石), 즉 큰 돌 사용 때의 일이다. 구석기, 신석기로 구분된다. 이
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 일이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2009년
구분은 전문가 아니고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의 인근에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는
어쨌든⋯. 큰 돌 문화는 다시 선돌(立石), 고인돌(支石墓), 열석(列石)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장릉(사적 202호) 주변에 44개 동의 아파트가
류로 나뉜다. 열석 중 영국에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가 그
지어지고 있는데 19개 동은 전면에 25개 동은 후면에 세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된다. 스톤헨지는 신석기시대 원형 열석(Stone Circle)에
당국인 문화재청과 현지 허가 관청들이 국제적인 문제를 만든 것이다.
속하는 것이다. 스톤헨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가 된 꼴이다. 이제 와서 내놓는 수습안이 그야말로 눈
2 재킷2. LP 엘가(1857-1934)의 ‘수수께끼 변주곡(變奏曲)’(1899년) 판에 스톤헨지를 표지로 담았다. 엘가 자신의 수수께끼 변주곡 주제의 미스터리적 의미와 초자연적 음곡에 따라 스톤헨지를 사용한 것 같다. 진입로 우리 눈높이쯤에서 찍은 사진이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1882-1977)는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한 지휘자이다. 비교적 장수를 누렸다. 지휘자를 판에 앞세웠다. DECCA, 1977 라이선스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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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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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3.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 1874-1934)의 1917년 작 ‘유성(The Planets)’은 최근 상영된 우주영화의 우주 유영 장면에 쓰여 귀에 익다. 무한의 우주를 표현하는데 적절했다. 스톤헨지를 천문학상의 요소로 보고 사용한 것 같다. DECCA, 1958년 판이다.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기관의 판단에 따라 국격이
일식, 월식, 동·하지점 측정 등 천문현상도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
망신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게 되었다.
역할도 한다고 말해진다. 돌의 원에서 약 80m 떨어진 곳에 「힐 스톤(heel stone, 발꿈치 돌)」이란 것이 있는데 이곳에서 하짓날 태양이
나도 국내 여행 중 여러 곳에서 고인돌을 본 적이 있다. 매우
뜬다고 한다.
독특한 디자인의 돌무덤이라 생각했다. 교과서에 쓰인 대로 제사
그런데 이번에 그 스톤헨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1986년
의식이 행해진 곳인 것 같다. 오래된 책상같이 생겨 제천석(祭天石),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왕릉도 또 그러하다.
혼유석(魂遊石)으로 보이기도 했다. 선돌 그리고 이후 축조된 첨성대
모두 주변 환경 때문에 등록 취소의 위험이 있는 것이다.(재킷1)
등도 그런 종류의 것이다. 이러한 돌 유적은 국내외에 걸쳐 다양하게 분포한다. 오늘날의 개념에서 선진국, 후진국이지 옛날은 다 같았기
내가 영국 스톤헨지에 가 본 것은 20여 년 전이다. 런던을 벗어나자
때문에 성격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
전원주택이 눈을 끌었다. 이어 자연 그대로의 시골길이 이어진다. 구릉과
스톤헨지는 영국 땅의 고대인이 태양 숭배를 하던 곳으로 생각되었으나,
평원이 계속된다. 영국인 풍경화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4
재킷4.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96) 제7번 교향곡. LP판의 커버 그림은 영국인 풍경화 화가 존 컨스터블의 1835년 그림을 사용한 것이다(부분 사용). 그림은 1836년 런던 로열아카데미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것이다. 그림은 스톤헨지를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고 화가의 느낌으로 그린 것이다. 스톤헨지가 자연재해 등 내·외력에 의해 해체되어 가고 있는 것을 상상해 그린 것이다. 그림 오른쪽 에 한 사람이 앉아 있고 또 한 사람은 돌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 이 LP판에서는 바그너의 죽음을 상징해 사용한 것이다(원화 소장, 영국 런던 Victoria & Albert Museum). 이 화가는 건축물 기록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특히 솔즈베리 성당(Salisbury Cathedral from the Bishop’s Grounds, 1823) 그림이 유명하다. 미국, SQN, 1975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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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1837)의 그림 그대로인 것이다. 런던에서 남쪽으로 약 85km
관광객들은 도로에서 스톤헨지에 비교적 가까이까지 차로 진입한다.
떨어진 곳이다. 스톤헨지는 그런 자연의 연속선상 지평선에 놓여 있었다.
주차장이 있고 지하 매점이 있을 뿐 지상의 구축물은 없다. 바닥은
윌트셔(Wiltshire)주 솔즈버리 평원(Salisbury Plain)이다.
잔디로 덥혀 있다. 나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목재로 결구된 바닥 길
스톤헨지는 돌로만 이뤄져 있는데, 원형은 하늘에서 볼 때 보이는 것이고
즉, 데크를 거닐면서 원형의 열석을 순환하며 감상하게 된다. 다 열린
인간의 눈높이에서는 선돌이 겹쳐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선돌은
공간이라 이쪽저쪽이 서로 보인다.(재킷2, 3, 4)
간격을 두고 원형에 놓여져 있다. 스톤헨지는 기둥(柱) 돌에 보(梁) 돌이 짜여 진 것이 기본이다. 포스트
스톤헨지는 LP 표지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앤드 린텔법(Post-Lintel)이다. 공중에 걸쳐 있는 듯 보이는 돌 보
Stravinsky, 1882-1971)는 1913년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을
때문에 스톤헨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돌기둥은 대부분 높이
작곡했다. 원시주의 경향이 깊은 발레음악이다. 그는 공상 속에서
4.4m짜리이다. 매우 큰 돌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중국 땅에 있는
원시부락에서 제사장과 사제⋯.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교도의 제전,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높이 6.39미터, 무게 37톤에 이른다고 했다.
처녀가 제단 앞에서 희생되는 의식을 춤과 음악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스톤헨지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다.
레코드 재킷도 스톤헨지를 쓰고 있다. 이 사이트는 잉글리쉬 헤리티지와
스톤헨지는 돌 약 30개가 지름 90~100m나 되는 3개의 링으로 세워져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다. 우리도 이 단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있다. 큰 원, 작은 원이 겹쳐져 있다. 어떤 곳에서는 세월의 탓에 돌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혹은 쓰러져 기댄 채로 있다. 세월의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큰 돌은 50톤이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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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킷1. 아소시에이션(The Association)의 재킷 내부면
추천도서 브리프 건축학자의 집짓기 에세이
건축가의 에세이
『쑥을 태우는 집』
『가가묘묘-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
박길룡 지음
박민지, 박지현, 조성학 지음
도서출판 디 발행, 1만8,000원
공간서가 발행, 1만8,000원
건축전문가가 본인의 집을 직접 지으면 무엇이 다를까?
이 책을 지은 저자는 대학에서 건축설계와 평론 등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려묘를 키우는 집의 공간과
답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이다. 다만 거의 한 평생을
이론을 가르치다 정년퇴직을 한, 국내 건축계에서
그들의 반려묘 생활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저자인
건축계에 종사한 전문가가 짓는 집은 좀 다르지
알아주는 건축이론가이자 평론가이다. 뜻한 바가
비유에스건축에 설계를 의뢰한 네 가구와, 기존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있어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천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공간인 원룸, 투룸, 소형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세
궁금증을 참다못해 엿보기를 시도한다.
이사를 했다.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고
가구의 사례를 담았다. 모두 반려묘를 키우는, 미혼의
이 책은 집을 짓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공사일지처럼 공정을 따라가며 기록한 것도 아니고
1인 가구이거나 자녀가 없는 부부인 2인 가구들이다.
나아가 각 공정별로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집짓는 방법을 소개한 것도 아니다. 집짓는 현장에서
반려묘와 생활하는 집사가 설계를 의뢰한다면
그 결과가 전체 공사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마주대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고양이는 집사들만큼이나 중요한 건축주이다.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이는 각 요소들을 담당하는
적었다. 계절의 변화와 순환을 디자인에 담아 자연과
고양이들의 의사는 집사들의 입을 통해 건축가에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 요소들이
어울리며 사는 법, 자연을 이용하거나 추위와 먼지 등
전달된다. 습성도 스케일도 완전히 다른 사람과
집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불편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말한다. 자신의 생활방식에
고양이가 함께 살기 위해 집사와 건축가는 머리를
하다.
따른 공간구조나 공간구성방법, 나아가 늙음(말년)에
맞대고 의견을 모은다. 요즘 라이프스타일과 주거
적합한 집의 양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트렌드, 반려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2 1
1. 쑥을 태우는 집 2. 가가묘묘-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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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멘타
딩가동2번지 : 중랑구 청소년커뮤니티센터의 탄생기 글, 자료. 박선영 건축가, 오-스케이프 아키텍튼 대표
사업의 배경 서울 면목동에는 초등학교는 많지만, 인근에 중·고등학교가 없어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은 주로 버스로 통학을 한다는 분석을 통해 청소년들의 등하교 길을 파악하고 동네 곳곳의 근린공원들과 면목천로의 연결을 제안(Small Village Park-Linear Green Park)한다. 그
오-스케이프 아키텍튼은 2019년 서울시 마을건축가로서 중랑구의 도시리서치를 시작했다. 건축가는 면목동의 면목천을 복개한, 남북으로 펼쳐진 좁고 긴 도시공원인 면목천로에 주목했고 그곳에서 발견되는 ‘Linear Green Space’는 도시의 척추로서 추후 중랑천과 이어지는 ‘Green Pedestrian Route’가 될
중 첫 번째 시도로서 버스정류장 인근의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 본지는 마을지도의 작성단계로부터 건축으로 완성되기까지
면목천로의 이용이 가장 활성화된 통학로에
사업의 전모를 독자들과 공유코자 하며, 동시에 건축가 박선영의 건축적 유형의
청소년커뮤니티 공간을 배치하려 한다.
실험을 주목하고자 한다.
1
DOCUMENTA
1. 마을지도 확대
2
사업 추진과정 서울시 마을건축가: 중랑구 마을지도 만들기
→
서울시 마을건축가: 현황 조사 및 기획 방향 수립 -대상지 발굴, 프로그램 기획
→
중랑구청소년 공간창작단 2기 구성: 중랑구체육청소년과
→
사용자 참여 워크숍 수행: 오-스케이프, 공간창작단, 중랑구청
딩가동2번지 개소식: 청소년들의 피드백 청취
←
공사 진행시 감리
←
설계보고회 (서울시청, 중랑구청과)
←
건축설계
도시리서치: 마을지도 작성과 민관 협치 1. 서울시의 중랑구 마을건축가로 마을지도 작성을 통해 도시공간개선 제안 a. 중랑천을 복개하고 숲으로 이루어진 면목천로 일대는 도시의 선형(Linear) 숲이라는 특수한 도시구조형상을 보인다. 이러한 공공 소유의 녹지는 현재 공공화장실, 실버카페 정도만 있고 그 외 나머지 공간은 산책로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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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면목역 공원 일대 3. 서울시 마을건축가로서 도시분석을 통해 선정한 대지에 제안한 청소년시설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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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부전경(open) 5. 내부전경 6. 스터디공간 7. 실내마루와 조명책장 8. 학습공간 9.빔프로젝터 10. 휴식의자 11. 2층 12. 관리자 공간 13. 개수대 14. 신발장 15. 외부창고 16. 그물침대 17. 천창 18. 플랜트박스
b. 청소년들이 방과 후 하교 길에 학원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상황임을 확인했으며 청소년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주민 설문을 통해 프로그램을 확정했다. c. 도시리서치 결과 면목동에 청소년을 위한 공공공간이 없는 상황이며 중·고등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통학한다는 점에 주목해서 우리는 버스정류장 부근 면목천로 녹지(지목: 구거)를 사이트로 선택했고, 중랑구에서는 2019년 당시 청소년을 위한 공간인 딩가동1번지(리모델링) 계획 이후 딩가동2번지의 대상을 찾는 등, 중랑구에서도 청소년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의 확충계획이 있음을 상호 확인하면서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19
-> 이는 통상 대지가 주어지고 건축물을 계획하는 일반적인 과정과 다르게 건축가가 대지와 그 건축물의 용도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관의 협치가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중랑구 청소년 공간창작단 2기 구성 및 사용자 참여설계 진행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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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약 35명으로 구성한 공간창작단과 함께 디자인교육 1회를 포함해 사용자 참여설계 3회를 통해 청소년들이 원하는 공간의 컨셉과 구체적인 프로그램들, 공간의 분위기 등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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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서울시 마을건축가로서 도시분석을 통해 선정한 대지에 제안한 프로그램 20~22. 사용자 참여 워크숍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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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초 토대공사 24. 토대 위 기둥공사 25. 기초 도면 26. 토대 도면 27. 목공 작업 28. 천창 구조공사
사업의 전개 중랑구의 청소년들과 사용자 참여설계를 위한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고, 그로부터 아래의 핵심 디자인 언어들을 도출했다. 희망을 담는 공간, 나무와 함께 우리가 자라는 공간, 자연의 재료, 우리들만의 공간, 마을을 전망할 수 있는 공간, 29
무대와 관중석, 아늑하게 숨는 공간 사이트가 하천을 복개한 ‘구거’로 건물의 기초로 콘크리트를 사용할 수 없어서 대신에 창덕궁의 부용정 사례연구를 통해 전통한옥의 토대방식을 적용하면서 화강석 토대 위 중목구조(적송집성목)로 설계했다. 자연스럽게 외장재도 적송방부목을 쓰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나무색의 발현을 위해 투명 오일스테인을 바른다. 대지주변에는 뿌리가 깊은 나무들이 총 세 그루 있었는데 건물이 그 나무들과 공생하도록 건물 북, 동, 서 방향의 세 데크는 세 그루의 나무를 품게 했다. 램프/계단으로 데크에 오르면 동쪽의 나무가 아이들을 반긴다.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북측 둥근 형태의 데크에 떠 있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동그란 그물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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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면목천로 숲길을 바라보기를 바라면서. 현관으로 들어가면 전실에서 신발을 벗고 나무 바닥으로 발을 내디딘다. 온통 보이는 재료는 나무뿐이다. 북쪽에는 아이들이 원했던 작은 무대와 더불어 조명을 결합한 책장이 창문과 어우러져 있다. 건물에는 총 세 개의 고깔이 있는데 그 중, 두개의 고깔은 면을 찢고 이어져 2층이 되고, 나머지 하나의 고깔은 온전히 하늘, 그리고 하늘의 빛과 대화할 수 있는 중목의 보와 슬래브에 걸쳐져 떠 있는 공간이다. 서쪽에는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간간히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할 수 있고 동쪽에는 작은 실습실을 두었다. 실습실은 두 면이 때때로 열리는 곳으로 아이들이 원하던 배움의 공간으로 잘 쓰이기를 바랬다. 실습실 뒤쪽으로는 탕비실과 수납장 그리고 포켓 의자 공간이 있다. 사용자 참여설계시 청소년들은 숨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숨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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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곳곳의 밝은 공간에 숨는 공간들을 제공키로 했다. 주현관 왼편으로 상주 근무자 2명의 자리를 지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고깔 두 개를 이어 놓은 공간의 ‘높고’-‘낮고’-‘낮고’-‘높은’ 리듬감이 천장을 통한 하늘을 바라보는 청소년들의 마음에 무엇을 선물할지 기대해본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후문이 있고, 그 후문을 나가면 남쪽 데크에 기존의 터줏대감 나무가 있다. 그 나무와 인사하며 계단을 오르면 마치 굴뚝인지, 산인지 싶은 나무 고깔 세 개가 모습을 보이고 건물 너머 동쪽으로는 6차선 도로와 아파트단지가, 서쪽으로는 나지막이 보이는 좁은 길과 다가구주택들이 대조를 보인다. 32
도시에 끝없이 보이는 ‘선’적인 숲 우리가 한 일이 이 숲에 숨을 틔워준 것이기를 딩가동2번지-면목동 청소년커뮤니티센터를 시작으로 면목천로 숲길을 면목동 곳곳의 마을근린공원과 보행로(Pedestrian Route)로서 연결하고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담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개소식에는 발주처인 중랑구청장, 체육청소년과, 사용자 참여설계를 함께한 청소년들이 참석해서 결과물인 공간의 실현을 축하했다. 현재 이 공간은 청소년 운영진을 모집해서 공간사용프로그램을 청소년들이 직접 제안하면서 마술, 네일아트, 오락, 동영상 콘텐츠 제작, 보드게임 등을 하며 다채롭게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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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3. 모형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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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개요 설계 오-스케이프 아키텍튼(박선영 소장)+에이아이엠건축사사무소
구조 목구조
설계담당 박현비, 전우성, 이건우
외부마감 레드파인 데크재 21t (친환경 오일 스테인)
발주처 중랑구청
시공 ㈜호가종합건설
위치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 1505-9
건축사진 임학현
용도 가설건축물(청소년을 위한 야외 전시시설) 대지면적 1,185m2
사업기간
건축면적 101.81m2
2019년: 서울시 마을건축가-중랑구 마을지도 만들기 수행
연면적 88.60m2
2020년: 서울시 마을건축가-중랑구 공간개선사업선정
규모 지상2층
2020년 4월~6월: 중랑구 청소년 공간창작단 구성–사용자 참여워크숍 진행
주차 0대
2020년 7월~9월: 딩가동2번지 건축설계
높이 9.01m
2020년 11월~2021년 4월: 딩가동2번지 건축감리
건폐율 8.57%
2021년 5월: 딩가동2번지 개소식
용적률 7.47%
예산 총 4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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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배치도 35. 단면도 36. 1층 평면도 37. 2층 평면도 38. 지붕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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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드론 뷰 40. 전면 야경 Ⓒ임학현 41. 측면 전경 42. 후면 43. 옥상Ⓒ임학현 44. 드론 뷰 Ⓒ임학현 45. 옥외 데크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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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 실험 건축적 유형에 대한 실험 〈딩가동2번지_중랑구청소년커뮤니티센터〉 vs. 〈세 항아리_된장공장공장장은~〉
“건축적 대상의 본질은 그것의 반복 가능성에
세 개의 고깔 중 동측 고깔에 슬래브를 두어
토대로 건물을 약 1.3m에서 1.6m를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닥에서 떠 있는 철제계단을 통해 진입할 수
올린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입 데크가
“유형은 동일한 형식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있다. 서측 고깔은 동측의 계단과 대칭으로
생긴다. 기존의 나무를 유지하면서 데크
객체그룹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계단을 두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동선을
사이사이에 구멍이 뚫린다. 고깔 하나는
“건축가는 유형으로부터 시작한다.
유도한다. 고깔 내부에 전시를 할 수도 있지만
그대로 하늘로 열어두되, 고깔 두 개의 구조를
디자인과정은 하나의 작업을 특징짓는 정확한
빛의 변화를 만질 수 있게 했다. 외부로 나가서
연결하면서 다락 공간이 된다. 고깔의 높고
상태로 형식적 구조의 개념인 유형의 요소를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면, 시간이
낮음의 반복된 구성이 아이들이 원하는
가져오는 방법이다.”
흐름에 따라 산화되어 붉게 변하는 내후성
구석의 공간과 맞아 떨어진다. 시간상 오래
(Rafael Moneo, On Typology, MIT Press,
강판으로 둘러싸인 육중한 세 고깔이 주위의
머무르는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1978)
산과 더불어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산들에
마찬가지로 외부로 나와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둘러싸여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상에는 방부목으로 둘러싸인 고깔 세 개가
건축 프로세스는 같은 형식구조인
있다. 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질감과 색이
유형(Type)을 인식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딩가동2번지~〉는 서울시 마을건축가로서
자연스럽게 변하기 때문에 따로 다른 재료를
있다. 유형을 다루는 것은 배치, 구조형식,
대지와 프로그램을 도시 리서치 결과에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 옥상에서의 시선은 약
스케일의 변화, 재료, 규모 등을 다루는 것인데
따라 제안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이다.
1km의 면목천로 숲길을 향해 열린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같은 건축유형이 다른
숲길(면목천로)에 용도는 청소년들을 위한
숲으로 향한 선(line)의 시작점에 있다.
대지에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렇다면
커뮤니티시설로〈세 항아리~〉와 동일한 건축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궁금하다.〈세
유형을 대입한다. 지목이 구거로 아래에 하천이
이 실험으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항아리_된장공장공장장은~〉(2019~2020)와
흘러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쓸 수 없었다.
1. 동일한 유형에서 대지가 차이를 만든다.
〈딩가동2번지_청소년커뮤니티센터〉(2019~
주요구조는 목구조, 마감은 방부목으로 하고,
2. 동일한 유형 안에 어떤 활동들을
2021)는 하나의 ‘방’ 상부에 수직과 사선의
기초를 콘크리트로 할 수 없어서 화강석을
담아도 된다는 면에서 유형에 있어서는
벽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고깔 (향에 따라 회전(rotation)을 시켜 인식 가능한 빛을 내부로 깊이 끌어올 수 있다.)이 만나는 동일한 유형으로 설계했다. 〈세 항아리~〉는 강원도 홍천의 좌방산, 장락산, 숫산에 둘러싸인 대지에 수제 장을 만드는 영농조합의 근린생활시설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벽돌 마감, 고깔의 외장은 내후성강판 마감으로 단위건물은 땅에 붙어 있고 장독대를 품는 배치를 제안했다. 건물 안에서의 시선은 장독대들을 바라보거나 고깔 상부의 하늘을 바라본다. 콘크리트 고깔 내부의 마감재는 브루털한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다른 마감은 따로 정하지 않는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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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딩가동2번지_단면도
프로그램(용도)이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3. 동일한 유형의 요소가 구조, 외장, 배치, 스케일, 규모 등을 다르게 하면서 건축적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디자인의 작업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작동된다. 〈딩가동2번지~〉는 완공 이후 청소년들에 의해 다채롭게 사용되면서 이 장소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이 고깔을 품은 나무 방과 더불어 오래도록 함께할 것이고, 〈세 항아리~〉는 고깔을 품은 콘크리트 방에서 장을 담그거나 장을 활용한 요리를 체험하면서 차곡차곡 영농활동체험의 기억을 쌓을 것이다. 건축유형에 대한 실험의 궁극적인 목표는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형성하면서 장소(Locus)를 드러내게 하는 것에 있다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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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1)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박선영, 오-스케이프 아키텍튼 사진 크레딧(별도 표기 외): 오-스케이프 아키텍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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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ldo Rossi, The Architecture of the City, the MIT Press,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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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세 항아리, 천창 48. 세 항아리, 드론 뷰 49. 세 항아리_정면 야경 50. 세 항아리_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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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의 떠오르는 건축가 09
Plot Architects 최여진, 김명재 : 공간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변화시키는 건축가
Plot Architects(플롯건축사사무소)는 영국에서 오랜 유학과 실무를 경험한 두 건축가가 이끄는 건축사무소이다. Plot이 의미하는 ‘이야기와 땅’을 중심으로 그 안에 사 ‘ 람’을 담고자 하는 방향을 갖고 건축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들이 건축을 공부하고 실무를 경험해온 과정, 사무소를 설립한 계기, 사무소를 운영하며 갖게 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다. 국제적 실무경험을 갖고 있는 두 소장이 한국의 새로운 환경에서 사무소를 시작하며 그들 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무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지만 학교, 문학관, 주택 등 다양한 시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건축가의 이야기를 폭넓게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통해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이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인터뷰 일시: 2021년 10월 15일 오전 11시 인터뷰 장소: 플롯건축사사무소(서울시 송파구) 참석자: 최여진, 김명재(Plot Architects 공동대표), 이태현(본지 편집위원, THE A LAB 대표)
RISING ARCHITECT 68
1. 김명재(좌), 최여진(우)
용인 대지중 마스터플랜
zone), 스포츠 존(Sports zone), 외부공간(Outdoor space)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각 영역별 개발을
통합하여 다목적홀로 변경하고, 복도공간을
대지중학교의 마스터플랜은 변화하는 교육과정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현재
소그룹실로 계획하여 기존의 학교공간이 가지고
및 내용에 따라 학교의 공간구조를 재구성하여
3차례의 단계적 리모델링을 거쳐 크리에이티브
있던 권위적이고 전형적인 공간을 자유로운
한다. 1층 기존 교실공간은 3개의 실을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공간을 만들기 위한
존(Creative zone) 및 스포츠 존(Sports zone)이
교육이 가능한 가변적인 공간으로 치환하였다.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존 학교에서 사용해오던
완성되었으며 향후 학습존(Learning zone)의
3,4,5층은 학생들의 특별학습 공간을 중심으로
‘권위적이고 대칭적인 공간 구조’에서 '균형적으로
설계가 예정되어 있다.
구성하였으며 기존의 길고 어두운 중복도의
사용할 수 있는 공간 구조'로 재구성하는 것을
단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가운데 준비실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균형적인 공간의 정성적
Creative zone
중심으로 동선을 배치하고 각 실은 최대한의
변화를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자유롭고
지역주민과 공유할 수 있는 시설들이 배치되어
채광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자인되었다.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하도록 하며 민주적이고
있는 저층부는 부출입구 상부의 슬라브를
북측에는 고정된 교실을, 남측에는 가변형
유연한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제거하여 수직적으로 개방된 높이를 만듦으로써
교실을 배치하여 융복합교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L자 형태의 건물 구조 및 배치를 중심으로
입구성 및 개방감을 확보하였다. 또한 이는
하고 북측과 남측, 두 실 사이에 위치한 소규모
크리에이티브 존(Creative zone), 학습 및 행정지원
1층의 부출입구, 공유카페로부터 2층의 북카페
그룹실은 상황에 따라 각 실에서 사용 가능하도록
존(Learning & Admin zone), 서비스 존(Service
및 러닝센터까지의 시각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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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재 : 중복도의 긴 동선으로
b. 개념 : 빛이 필요 없는 공간(준
c. 제안 : 공간구성 개념을 유지하
교실 사이의 깊은 골짜기 공간이
비실)을 중앙으로 배치하여 진
면서 동선을 연결하고 가변적 공
생길 수밖에 없으며 복도는 빛이
입시 공간의 깊이를 줄이고 창과
간을 구성한다.
차단된 어두운 통로가 된다.
면하는 공간을 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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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스터플랜 다이어그램 2. 공간구성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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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대지로 용도: 교육연구시설 공사면적: 3,895.73 ㎡ 대상범위: 교사 서측 특별교실구역 (1~5층, 1층 급식실 제외) 설계: Plot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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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부 출입구, 기존(3) 및 변경 후(4) 5. 1층 다목적홀 6. 복도공간을 이용한 휴게공간 7. 5층 학생 커뮤니티홀 (공사 중) 8. 기존 화단 철거 후 신설된 외부 데크 9~10. 가변적 공간구성이 가능한 특별교과 존 11. 2층 러닝센터
ⓦ 안녕하세요. Plot Architects에 대한
나요. 그때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고 그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설계과목을 이수
소개를 부탁합니다.
후로 천천히 함께 스스로의 작업을 하기 위한
포기하려고 주임교수님께 가서 말씀드렸던
플롯은 건축적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억도 나요. 그런데 그러고 나와서 동기들이
‘스토리’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고유하고
팀작업 하는 걸 봤는데 콘타 만드는 게 너무
개별적인 공간 경험을 끌어 내기 위해 고민하고
ⓦ 두 분은 처음 어떻게 건축에 관심을 갖고
재밌고 해보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거기에
도전하는 두 여성 건축가가 운영하는 건축
시작하게 되었나요?
유혹당해서 그 이후부터는 치열하게 살았던
사무소입니다.
최여진: 기억을 더듬어보면 특별히 건축에
것 같아요. 교수님 사무실에서 인턴도 오래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어렸을 때부터
했었고 학부 3학년 때 다녀왔던 유럽여행과
ⓦ 사무소 이름에 들어간 ‘Plot’이라는 단어의
꼼지락거리면서 그냥 손으로 무엇이든 만드는
대학원 때의 국제워크숍들이 자극제가 되어서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외국에 가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있을까요?
만드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고 대학을 갈 때쯤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처음에는 너무
Plot은 ‘이야기’와 ‘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전공을 고민할 시기에 그럼 나는 건축과에
어려웠던 바틀렛 건축학교를 거치면서 ‘건축’
가지고 있어요. 저희가 프로젝트를 대할 때
가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자체보다는 ‘사람과 행위’들에 관심을 더 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요소를
김명재: 저는 중학교 기술시간에 처음으로
되었어요.
함축하고 있는 단어예요. 같이 사무실을
제도를 배웠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시점에 우리가
재미있어 했던 만큼 잘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실무를 하며 혹은
하고싶은 건축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이런 걸 좋아하고 잘하면 어떤 직업을 어울릴
현재 사무소를 운영하며 이어져온 생각들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건축을 하고싶다고
가를 찾아보다가 건축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있을까요?
얘기를 했어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갖기 시작했고 그때 부터 건축가의 꿈을 키워
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던 주제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플롯’이라는 단어가
나가기 시작했어요.
‘사람’과 ‘내러티브(Narrative)’ 이 두 가지가
떠올랐어요. 사용자의 내러티브(Narrative)뿐
Plot의 작업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드는 것
아니라 도시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어서 고민
ⓦ 학창 시절도 궁금합니다. 어떤
같아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 건축적 해결방식을
없이 결정하게 되었죠. 극의 플롯이 일련의
건축학도였고, 공부를 하며 관심을 갖고 있던
찾는 것 외에도 이 공간이 사용자들에 의해
사건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주듯이, 저희가
주제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쓰여질 가에 대한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건축은 단순한 기능의 조합에서 벗어나
김명재: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어요. 작은
해보고 그 상황에 맞춰 디자인을 수정하고
대지, 사용자와 함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일들이라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참여하곤
또 수정해요. 그러면서 각각의 작업들이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했는데 그런 습관들이 이어져서 대학생활 중
사용자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질 수
방학동안 태국에 머물기도 했었고 싱가폴로
있도록 노력해요.
ⓦ 두 분이 만나고 Plot Architects를
교환학생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결성하게 된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좀더 더 넒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친구들을
ⓦ 두 분 다 영국에서 학업과 실무를
바틀렛 건축학교에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강해졌어요.
경험하였는데, 이후 영국에서의 실무 경험은
없던 시절에 학교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래서 휴학을 하고 시카고에 어학연수를 가서
어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니진 않았지만 한국
건축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고요. 저는
8년의 영국 실무를 통해서 운이 좋게도 각자의
여학생들이 드물었던 시절이라 여러모로 서로
학교 안에서 배우는 건축설계도 재미있었지만
사무실에서 런던 및 영국 내의 여러 개의
의지하면서 지내기도 했고 회사 다니면서도
제 발로 직접 돌아다니며 배우는 도시와
빌트 프로젝트(Built Project)를 경험할 수
틈틈이 만나서 열심히 잘 놀았죠. 어쩔 수
건축 이야기들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있었어요. 실제로 영국 내에서도 한 프로젝트를
없는 건축쟁이들이라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 대학생활 동안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설계부터 완공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다 거칠
건축답사를 많이 다니곤 했어요. 런던에서
유학에 대한 결정으로 이어졌고요. 바틀렛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지 않거든요. 디자인
공부하고 각자 사무실을 잘 다니고 있었는데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단계에서부터 실시설계, 현장 감리 등 현실적인
한 5년이 지나니까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갔는데 제 포트폴리오를 유심히 보시던 회사
부분들까지 다 경험해 본 덕분에 어느 정도의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씩 생기기
사장님이 물으셨어요. “그래서 네 건축에서
자신감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와
가장 중요한 건 뭐니?” 그때 저는 주저하지
실무의 현실에서 부딪히면서 또 다른 어려움이
문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평생 정착해서 살 것
않고 “사람이요.”라고 대답했어요. 벌써 10년도
생겼지만 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헤쳐 나갈
같지는 않았고 그럼 나이가 들면 난 어디서
훌쩍 넘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그때의 장면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던 시기에
생생하네요. 아마 이 대화가 제 건축에서 가장
브렉시트가 결정되었죠. 사회가 혼란한 틈에
중요한 부분을 잘 보여주지 않나 싶어요.
ⓦ 사무소를 시작하고 Plot Architects가
김 소장과 피카딜리서커스 카페에서 만났는데
최여진: 사실 처음에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특별히 목표로 했던 것들이 있는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럴 거면 그냥 한국 가서
또 생각보다 어려워서 설계를 안 하려고
궁금합니다.
우리 일을 해보자 라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했어요. 2학년 학부 설계였는데 도대체 무슨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첫째는 나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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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문착창작플랫폼 ‘풀꽃, 대숲아래서, 꽃들아 안녕, 꽃그늘, 나무,
이 '틈'을 통해 건물은 숨을 쉬며 빛과 공기를 건물
행복, 들길을 걸으며, 돌멩이’ 나태주 시인의
내부로 끌어 들인다. 지붕의 형태는 대지 앞에
시의 제목들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위치한 풀꽃문학관의 경사지붕을 모티브로 하여
나태주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정경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매우 소박하지만 여운 있게 노래한다. 나태주 문학창작플랫폼은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소박한
매스 분절의 과정에서 생겨난 코너들은
모습으로 자연과 기존의 풀꽃문학관을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각실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지역 커뮤니티와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으면
내부에서는 불필요한 복도와 벽을 없애고
한다.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을 따라서 건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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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를 움직이도록 계획하였다. 이러한 유기적인 디자인 제안의 시작은 대상지에 자리한 봉황산과
평면구성은 공간의 사용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풀꽃문학관의 지붕 형태에서 시작한다. 여러
대응하며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사회적 교류와
개의 산봉우리들이 모여 산세를 형성하듯이, 작은
활동을 위한 거점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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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mass)의 중첩(layering)을 통해서 지형과 조화로운 건물을 만들어낸다. 매스를 중첩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틈'을 만들어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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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1. FUNCTIONAL ARRANGEMENT
2. TRANSFORMATION
3. COURTYARD EXPANSION
위치: 충남 공주시 반죽동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공립 문학관) 대지면적: 1485 ㎡ 연면적: 920 ㎡ 건축면적: 660 ㎡ 건폐율: 44.44% 용적률: 61.95%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설계: Plot Architects + (주)제이유건축사사무소
4. STEPPING
5. SLANTING ROOF
6. CREATING PROME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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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 POPPOP 조경: LIV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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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스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2. 투시도 3. 사색의 길 테라스 4. 하늘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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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레스토랑 리노베이션
위한 맞춤 양복처럼 사용자들에게 딱 맞는, 편안하지만 감동이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
성수동 고유의 붉은 벽돌 외관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어요. 둘째는 건물이 완공이 된 후에도
있는 주택은 3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온 만큼, 이
내가 가보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다시 방문할
집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었다.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주택의 1,2층을 합쳐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했었어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말이죠.
싶다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기존의 외관을
영국에 있을 때 아주 오랜 기간동안 참여한
최대한 유지하면서 레스토랑으로써의 기능을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보안상의 문제때문에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변경을 진행하였다.
완공이 된 후에는 특별한 허락이 있어야만
무분별하게 붙어있던 불법 증축 부분을 모두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철거해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고 붉은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벽돌 외의 재료는 이와 대비되는 모던하고 차분한
부분이 잘 계획되었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다크그레이 색상을 사용하여 외관을 차분하게
건물이 안팎으로 어떻게 늙어가는지를 관찰해
정리하였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성수동의 붉은 벽돌을 모티브로 하여 같은 ⓦ 이후 현재까지 Plot Architects가 이룬
재료를 내부 공간의 주재료로 선택하였다. 기존의 벽돌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새로 적용되는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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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들과 새롭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이
공간에는 가늘고 긴 고벽돌을 세로로 배치하여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재료의 다른 시간성을 강조하였다. 기존의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룬 셈이에요.
벽돌(1990년)과 새로 놓이는 벽돌(2021년)은 같은
사용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물성의 재료이지만,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재료가
딱맞는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했었는데
될 수 있기를 바랬다.
공간혁신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학교
층간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설치된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여러
내부계단은 기존 재료와의 차별성이 있는 메탈을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용하여 새로 설치되는 건축적 요소의 관입을
올해 초 공모전에 당선된 프로젝트가 나태주
강조하였으며 이를 통해 두 개 층을 연결하는
시인의 문학관이에요. 드디어 건물이 늙어가는
공간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모습을 오랜 시간동안 자유롭게 지켜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생긴 거죠. 아직 설계 진행 중이지만 기대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처음 생각했던 목표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6
건축개요 위치: 서울 특별시 성동구 서울숲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앞으로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저희의 건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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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제1,2종 근린생활시설
상상력과 만났을 때의 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대지면적: 188 ㎡
좀더 고민해보고 실험해보고 싶어요.
연면적: 260 ㎡ 건축면적: 93 ㎡
ⓦ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들 중 Plot
건폐율: 49.21%
Architects를 잘 보여주는 작업은 어떤
용적률: 92.66% 규모: 지하 1층, 지상 3층
것들이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설계: Plot Architects
2019년에 한 중학교의 리모델링을 맡게 되었어요. 공립학교였지만 흔치 않은 기회로 마스터플랜부터 단계적 리모델링을 거쳐서 거의 학교 절반의 공간을 재구조화 하게 되었어요. 사용자 참여 설계 과정을 거쳐서 햇수로 3년 정도 작업을 하고 최근에 마무리가 되었는데 재구조화 된 공간을 통해서 사용자들의 생각과 변화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기존 교실에서는 스스로 발표하기를 주저하던 아이들이 바뀐 공간에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거리낌 없이 본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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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경 6. 2층 테라스석 7. 고벽돌과 메탈 8. 2층 부스석 9. 1층 키친 10. 외부 테라스 11.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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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륜초 꿈담교실
STAGE PLATFORM
SECRET LOFT
교실로 들어서며 마주치는 교실 벽면은 학교라는 공간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느낌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따라서
CLASSROOM D
크기와 배치가 제각기 다른 4개의 교실 은 두 반씩 한 쌍을 이루어 모두 다르 지만 비슷한 규칙 속에 작게 분절하고 변화를 주었다. 같은 교실의 반복이었던 기존 꿈담 교실과 차별화하기 위해
CLASSROOM C READING BUNKER
선생님들은 네 개의 학급이 모두 다른 모습이기를
DRAWING PLATFORM
CLASSROOM B
원했고 그래서 그리기 및 표현 무대, 벙커 등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러면서도 과도한 실내장식을 지양해 아이들의 다양한 사고와
CLASSROOM A
창의적인 활동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CORRIDOR
주안점을 두었다. 먼저 배면에 화이트보드 패널을 설치하여 아이들이 낙서를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거나 벙커 위아래에서 자유롭게 앉아서, 때로는 그물 해먹에 누워서 부담 없이 책 읽는 습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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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는 공간을 계획했다. 더불어 표현무대를 통해서는 자유로운 발표와 연극을 하고 평상시 놀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이 제일 바라는 공간이 단순히 노는 공간이 아니라 여러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랬고 1학년 아이들의 신체 크기를 이용해 주로 입체적 공간 활용을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시각적 교류를 할 수 있으며, 그리기·읽기·놀이를 통한 학습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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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위치: 서울시 송파구 양재대로 용도: 교육연구시설 공사면적: 365.2 ㎡ 대상범위: 1학년 4개교실 설계: Plot Architect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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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SO VIEW_Colour, 1학년 4개학급 전체의 복도 입면과 각 교실 별 주제공간 2. 교실A 그리기무대 Ⓒ류광열 3. 교실 B 리딩벙커 Ⓒ류광열 4. 교실C 표현무대 Ⓒ류광열
생각을 표현한다고 해서 내심 깜짝 놀랐어요. 아직 그 과정은 진행 중이지만 사용자들에게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설계 작업을 하며 두 분이 크게 고려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건축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설득해보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대부분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거나 지금까지 본인들에게 익숙한 것들만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 현재 공동대표로서 함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서로의 파트너십은 어떻게 느끼시나요? 영국에서 같이 열심히 놀고 여행하면서 보고 경험한 것들 속에서 서로에게 부연설명 하지 않아도 될 건축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었던 거죠.(웃음) 그래서 디자인적인 측면으로는 서로 부딪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실제로 성격은 서로 다른 부분이 많은데 이런 부분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부족한 점들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 앞으로 Plot Architects가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한 종류의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작업을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종류의 작업에서도 서로 배울 점이 많거든요. 예를 들면, ‘집처럼 편안한 학교’, ‘카페같은 사무실’처럼 말이지요. 영국에 있을 때는 저희 둘다 업무시설 설계를 많이 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못 해봐서 5
업무시설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단순한 사무공간(office)에서 벗어난 편안하고 즐거운 업무공간(workplace)을 만드는 일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근린생활시설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한국 도시가로의 인상을 만들어 주는 일에 저희도 기여하고 싶거든요. ⓦ 두 분은 건축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도 궁금합니다. 최여진: 주로 산책을 하거나 시간이 되면 야구장을 가는 편이에요.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이나 사람들의 함성으로 인해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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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꿈담교실 진입공간, 처음 만나는 우리학교 Ⓒ류광열 6. 교실D 비밀다락 Ⓒ류광열 7. 작고 분절된 스케일의 복도 공간 Ⓒ류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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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홍콩도시건축비엔날레
가평 연하리 주택
주변환경으로부터 지나치게 부각되지 않도록
굽이치는 산줄기가 중첩 되어있는 계곡의
통창을 통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끝자락에 위치한 연하리 주택은 은퇴를 앞두고
풍요로운 집이 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진입부의
유도하고, 내부에서는 자연을 품을 수 있는 큰
있는 부부의 노후 주택이다. 처음 현장을
낮은 담장은 방문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방문한 순간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수려한
집으로 안내하고, 외벽을 따라 보호되어 있는
자연환경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건물의 외관은
마당은 안채를 통해 자연으로 열린 뷰와
간결한 형태와 어두운 재료를 사용하여
연결된다. 다르지만 닮아 있는 반하우스(b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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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콩도시건축 비엔날레 전시포스터 2. 홍콩도시건축 비엔날레 전시장 3. 진입 전경 4. 계곡에서 본 전경
house)는 부부의 생활공간인 본채와 자녀
건축개요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및 게스트하우스 공간으로 이루어진 별채로
위치: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
필라테스와 클래식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이루어져 있다. 본채에서는 서리산 줄기의 전나무
용도: 단독주택
풀기도 하고요.
숲을, 별채에서는 계곡의 파노라믹 뷰를 만끽하며
대지면적: 2460 ㎡
김명재: 저도 산책과 필라테스는 일상에서
시간과 자연을 품은 집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면적: 199.3 ㎡ 건축면적: 199.3 ㎡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고요. 주말에 여유가
건폐율: 8%
있을 때는 전시회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용적률: 8%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보면서 영감도 얻고
규모: 지상1층
일하면서 고갈된 에너지도 충전을 해요. 코로나
설계: Plot Architects
전에는 틈틈이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요즘엔 여행을 거의 못 가고 있어요. ⓦ 건축가로서 앞으로 되고자 하는 건축가의 상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공간을 통해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Plot Architects 사진 크레딧: 별도 표기 외 Plot Architects
최여진은 경희대학교 건축학부,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의 실무를 경험한 후 영국으로 유학, UCL의 바틀렛 건축학교에서 디플로마를 졸업하였다. 이후 런던의 TIMOTHY HATTON ARCHITECTS 와 ALLFORD HALL MONAGHAN MORRIS ARCHITECTS에서 학교, 오피스, 컨퍼런스센터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과 인테리어 등의 다양한 실무와 현장경험을 쌓았다. 영국왕립건축사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김명재 소장과 함께 플롯아키텍츠를 설립, 공동대표이며 현재 경희대학교에 겸임교수, 서울시 공공건축가, 경기도교육청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김명재는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와 영국의 UCL, 바틀렛 건축학교에서 디플로마/마스터 코스를 졸업하고 이후 런던의 MAKE ARCHITECTS를 비롯한 3개의 사무실에서 주거, 오피스 등을 포함한 다양한 건축 및 도시계획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영국왕립건축사이다. 폭넓은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다수의 수준 높은 건물들을 완공하고 영국과 스웨덴의 대학에 출강하였으며 이후 최여진 소장과 함께 플롯아키텍츠를 설립, 공동대표이며 현재 광운대학교 겸임교수, 인천시 공공건축가, 경기도교육청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5
1.현관 2.주방 및 다이닝 3.거실 4.안방 5.자녀방 6.욕실 7.드레스룸 8. 게스트룸 9.데크 10.정원
5. 연하리 주택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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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GAIA Topic : 풍선은 언젠가 쭈그러든다 고밀도의 도시를 바람이 가득 찬 풍선으로 본다면 각종 밀도가 낮은 지방 도시는 바람이 덜 찬 풍선이다. 바람이 차 있어야 풍선이지만 그렇다고 바람을 계속 넣기만 할 수 없는 일이다. 풀무질만 계속하면 풍선은 터지고 만다. 바람이 적당해야 풍선이 오래간다. 하지만 늘 그 적당함이 문제다. 개발우선주의 입장은 바람을 느슨하게 하자는 주장과 반대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개발 방식의 함정이 바로 풍선 속의 공기밀도와 같다. 재개발이란 할수록 밀도가 높아져야 성립된다. 재개발은 언젠가 재재개발·재재재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헌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지으면 개발 밀도는 더 높아지나 자연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진다. 그 보완책은 공적 투자로 도시지역 곳곳에 숨통(오픈 스페이스)을 조금씩 늘리는 것이다. 헐어야 하는 집을 작은 광장·놀이터·쌈지공원 등의 공동녹지로 전환시켜 동네 전체를 살려야 한다. 작더라도 숲이면 더 좋다.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공적 투자다. 지속가능성을 꿈꾼다면 느슨한 풍선 같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여유 있을수록 바람 빠질 3)
시절에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p.34 78
3) 이일훈, 『사물과 사람 사이』(2013), 서해문집, pp.248-249
Special Feature 9771976-74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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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오호근 Oh Ho-keun Architect
오호근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림건축을 거쳐 현재 디엠피건축 Design Principal/사장이다. 실무를 바탕으로 다양한 규모와 용도의 건축물을 설계해 왔으며 공연장 등 공공을 위한 문화시설을 통해 시민들을 위한 장소적 역할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적 맥락의 건축언어를 제안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새로운 형식의 건축언어를 구상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한편으로 도심지 내 공유오피스, 공유주거를 통해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공간의 관계로서 새로운 일상으로 연결하려 하고 있다. 경기도 건축상 금상(2021), 대한민국 국토대전 국토교통부장관상(2020), 제5회 한국문화공간상(2020), 서울특별시 건축상(2017) 등을 수상한 바 있고, 주요 작품으로 세종 예술의전당, 롯데 콘서트홀, 한강예술섬 서울 공연예술센터,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경남도청사 별관, 남사도서관, 평택휴게소, 코오롱 동탄물류센터, 헤이그라운드 공유오피스, 수송 스퀘어오피스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겸임교수(2013~2020), 서울시교육청 공모 소위원회(2021), 서울시 디자인거버넌스 정책위원(2016) 등을 역임하였으며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 문화시설 등의 심의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다. 대한건축사협회 정회원과 (사)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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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예술의전당 Sejong Ar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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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설계: ㈜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설계담당: 박승홍, 문진호, 오호근, 박세환, 박종인, 김지완, 문성우, 임수경, 이정화 대지위치: 세종특별자치시 국립박물관로 21 대지면적: 35,780㎡ 건축면적: 8,065.57㎡ 연면적: 16,186.35㎡ 규모: 지하 1층, 지상 5층 높이: 35.7m 건폐율: 22.54% 용적률: 28.29%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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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 단면상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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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서로 다른 정면 만들기 : 풍경과 장소로서의 〈세종 예술의전당〉 글. 오호근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사장
프롤로그; 아크로스틱 콘텍스트
드러내거나 하는 것이다. 텍스트에서는 아크로스틱
시도해본 작업은 해인사 내에 기와불사를 설치하는
조형과 공간적 대상을 통해 맥락을 이해하고
포엠(acrostic poem)의 형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것이었다. 이 때에 기와불사의 형태가 해인사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보통은
문장의 행과 열을 전환했을 때 전달되는 의미를
경내의 맥락에 개입하지 않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눈에 그대로 드러나는 대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르게 해보는 아주 오래된 시도가 있다.
기능이 갖는 원형을 잘게 잘라 펼쳐 놓는 시도를
벌어지는 일반적인 경험이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단면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여 입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단면’이 그 자체로 형태를 이루는 발견을 하게
그 자연스러운 경험을 비틀어 새로운 경험으로
완성시킨 첫 번째 작업은 계획안으로 끝난
되었다. 단면은 3차원의 형태가 2차원으로 인수분해
만들어보는 것이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역사박물관을 통해서였다.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건축에서는 실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공간을 가진 평면을 연결시켜 보이드로만
입체의 정보를 동시에 표현할 수 없어 낮은 차원으로
그러한 방법으로 주로 사용하는 과정적 도구가
완성되는 연결된 공간을 만들었고, 이것이 외부의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인데, 이 자체가 공간을
디멘젼(dimension)의 척도를 전환해 보는 것이다.
풍경과 만나 도시와 역사로 스케일이 확장되도록
이루는 조형적 어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도시를 형성하는 좌표의 축을 전환했을 때의
해본 것이다.
것이다.
맥락을 변형하거나, 좌표계의 차원을 분해하여
그러한 작업을 실재의 장소나 공간에 적극적으로
이러한 시도를 스케일을 훨씬 키워 건축물의 수준에서 구축해본 것이 용인 남사의 도서관과 스포츠센터이다. 단면에서 벌어지는 행위를 먼저 각각 구상하여 완성하고 이 각각의 단면을 연결시켜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이 공간이 다시 입체의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다. <세종 예술의전당>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되어, 척도의 전환이 맥락을 형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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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이 된다. 도시는 그리드로 구성되어 좌표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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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기 때문에 어떤 디멘젼의 축에서 어떤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 각각 다르게 상상해 보는 것이 장소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세종 예술의전당>이 들어서는 대지는 넓게 펼쳐져 도시와 선명하게 만나기 때문에 평면의 축으로도, 공간의 축으로도 읽혀지는 스케일을 달리해 가며 이해할 수 있는 맥락적 차원이 풍부했다. 3
환형(環形)의 도시 오랜 시간 도시가 성장하면서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맥락은 장소와 건물을 계획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더군다나 공연장의 경우 도시에 제공되는 주요한 공공 시설이 되기 때문에 도시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어떤 인상으로 드러나게 하는가는 4
ESSAY
1~4.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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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해인사 기와불사 8~11. 남사의 도서관과 스포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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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의 출발점에서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세종 예술의전당>을 계획하기 위해 대지에 처음 가본 때는 2012년, 거의 십년 전이다. 이때만 해도 세종시는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역사가 쌓아놓은 실재하는 도시의 맥락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계획되어 만들어지는 도시는 그 계획을 설명하는 텍스트와 설계되어진 도상학적 개념으로만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이 프로젝트 바로 이전에 사이트 가까운 곳에서 행정도시로서의 가장 주요한 시설인 정부종합청사(3-1구역)를 설계한 경험이 있어서 12
아무 맥락도 실재하지 않는 도시에서 계획을 진행하는 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정부종합청사의 마스터플랜이 세워져 맥락적인 개념과 기준은 뚜렷하게 주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렵지 않았다. 또한 본 프로젝트 이후에 바로 세종시의 주요 상업블록 안에 대규모 복합용도의 건물을 계획할 수 있었는데, 이 때는 도시계획적 기준이 지나칠 정도로 세세하게 형태와 맥락을 규정하고 있어서 오히려 건축가로서 제시해야하는 도시적 언어의 틈을 찾아 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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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던 이러한 이유로 <세종 예술의전당>은 계획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도시맥락을 이해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했다. 사실 세종시는 도시를 형성하는 도상학적 개념이 특징적으로 뚜렷하게 제안된 편이기도 하다. 세종시의 도시형태는 도시개념의 아이디어 공모에서 제안된 환상형 구조가 반영되어 있다. 길게 뻗은 그리드의 가로형 도시블록을 원형으로 구부려 연결하고 그 가운데를 비워놓는 것이다. 비워져 있게 되는 도시중심부인 기존의 장남평야 부분은 자연상태 그대로 두어 새로운 형태의 공공장소이자 시민친화적 자연공간이 되도록 했다. 이러한 방사격자형의 도시골격은 자연지형이나 주변 도시조직과 만날 때 경우에 따라서 팽창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면서 주변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두 방향의 서로 다른 정면 환형의 도시 구조에서는 비워진 중심을 향해 가로질러 연결하는 방사형 축이 중요한 도시적 기능이 되는데, 환형의 그리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잡은 축은 도시 외곽과 중심부를 연결하는 공공의 중요한 통로가 된다. 그러한 축의 하나로서 도시 상징광장이 계획되어 있는데, 비워진 도시 중심을 향한 그 끝에 세종 예술의전당이 긴 방향으로 접하여 자리 잡는다. 그러다 보니 장방형의 대지는 길이 방향으로 그 양쪽 끝에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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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부종합청사(3-1구역) 13. 세종시 복합용도건물 14~15. 환형의 도시
마주하는 도시의 맥락이 서로 완전히 다르며 동시에 각각에서의 도시적 접근이 위계 없이 동등한 수준의 정면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도시 방향에서는 시민의 접근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정면이, 반대쪽에서는 도시의 비워진 중심을 바라보는 풍경을 가진 정면을 동시에 요구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잘려서 들어 올려진 땅 도시와 공원을 향한 두 정면이 드러나도록 대지의 양 단부를 오려내어 서로 반대방향을 향하게 들어 올렸다. 건물의 입면으로 정의되는 정면이 아니라 땅의 절개 면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빈 공간이 그대로 정면으로서의 인상을 만들어 내기를 바란 것이다. 이로써 대지의 한 쪽은 도시 중심의 자연을 향해 들어 올려져 풍경을 만들고, 반대편은 도시 일상을 향해 들어 올려져 장소를 만들게 된다. 도시를 둘러싼 큰 환형의 일부로서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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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동시에 바라보는 두 개의 정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잘려서 들어 올려진 땅, 그 아래의 비어 있는 공간은 각 방향에서 접근하는 목적지로서의 정면이자 속도가 이완되어 경험이 전환되는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이 장소는 들어 올려 열려진 방향으로는 도시와 공원의 도시적 풍경이 열려 관입되어 들어오게 되고, 땅과 맞닿아 닫힌 방향으로는 들어 올려진 켜와 분리되지 않는 대지의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하고 싶었다. 다른 건축적 요소의 개입을 더하지 않고 개념적 언어를 가장 선명하게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옥상 면, 천장 면, 홀의 외벽 면은 하나의 조형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했고, 이 부분의 재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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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디테일을 풀어내는 것은 설계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도가 되었다. 특히 옥상 면과 천장 면을 구분 짓는 접점은 자칫 그 자체로 무거운 테두리의 면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디테일이기 때문에, 면이 존재하지 않는 ‘제로 디멘젼(zero dimesion)’을 개념적으로 전제해 두고 디테일을 풀어나갔다. 건축가가 공사의 과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공공건물의 성격 때문에 어렵게 풀어낸 건물 곳곳의 디테일들이 구현되지 못하고 시공된 곳이 많아 무척 아쉬운데, 옥상 면과 천정 면의 접점이 바로 붙고 홀의 외벽 면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큰 맥락을 전달하는 정도는 드러난다고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첫 번째 정면; 비워진 도시의 중심을 만나는 방법 개념을 건축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쉽지 않았던 또 하나의 개념적 대상은 투명한 외벽면이다. 들어
16. 괴화산 조망축과 문화시설 벨트 안의 사이트 17. 세종시 문화시설벨트 18~19. 땅의 절개 면이 만드는 거대한 빈 공간과 장소 스터디 20~21. 지붕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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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 열려 있어야 하는 삼면은 원칙적으로 파사드로 형성되는 입면 스스로의 어휘가 존재감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와 단열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만으로 이루어진 벽면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커튼월의 구조체와 옥상하중이 전달되는 건물 외곽의 구조체를 일체화 시킨 후 유리를 지탱하는 프레임의 간격과 단면 등을 조정해 가며 파사드의 존재감을 중성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파사드가 마침 북쪽을 향하고 있어 이른 시간의 22
동향 일사나 늦은 시간의 서향 일사가 옆으로 들어올 때 외에는 그림자가 지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투명한 성격의 공간이 드러나기 보다는 어둡게 그림자가 차 있는 공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후 늦게 사람들이 찾는 장소인 공연장의 성격상 홀의 공간을 채우는 조명이 외벽 면의 존재감을 지우고 홀의 덩어리를 투명하게 드러나게 하는데 특별한 조건이 된다. 사실 홀의 외벽 면은 공연장의 전형으로서 목재의 물성으로 계획되었는데, 공사과정에서 예산을 맞추기 위해 성형이 쉬운 석고계열의 마감재료로 변경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표피가 조명이 만들어내는 색의 질감에 더 편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도색 없이 재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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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을 그대로 두었다.
두 번째 정면; 시민의 시간과 도시의 시선을 만나는 방법 도시 쪽을 향하는 정면의 공간은 외부공간이다. 계획 당시에는 실내의 프로그램이 주어졌는데, 예산 등의 이유로 실내 프로그램의 면적이 제외되면서 지붕하부의 옥외공간만 남게 된 것이다. 공연장은 지역의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의 서비스여야 하는데, 보통 공연을 관람하는 제한된 시민들만이 한정된 시간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그래서 설계 초기부터 도시를 가장 가깝게 향한 이 정면의 공간이 접근하는 시민들에게 편하게 열려 일상에서 쉽게 이용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실내의 프로그램 없이 적당한 옥외공간의 쉼터로서 지붕만 남아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조형적인 측면에서는 실내를 구분 짓는 외벽 면이 필요 없게 되어 조형적이 측면에서는 반대편의 공연장 홀보다 개념적인 어휘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풍경을 담는 대지 이로써 땅에 붙어 남아 있는 중심은 건물의 뒷면이 등을 맞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는 땅의 연속면이 된다. 자연스럽게 대지의 중심은 물결의 가장 낮은 부분이 되어, 마치 풍경을 담는 오목한 그릇처럼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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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4. 커튼월 검토 25. 옥외공간 쉼터
하늘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치를 이루며 이 자체로 세종시를 기억하는 도시의 상징이 된다. 이렇게 도시 상징광장에 면하는 대지의 긴 쪽 방향에서 장소의 풍경은 들어 올려진 대지의 단면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호로 둘러싸이며 환형의 도시축을 비워진 공간으로 연결한다. 물론 장소가 단지 상징으로서만 시민과 만나는 것이 아니고, 도심광장과 나성리 역사공원을 이어주는 장소가 된다. 26
물결치는 여정 환형의 도시축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 힘을 따라 땅에는 파형의 주름이 새겨지며, 이 주름은 자연스럽게 길로 이어져 인접한 공원과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지루하지 않은 발걸음의 여정을 안내한다. 상징광장의 끝에서 넓게 연결되는 대지에서 별다른 시설이나 구조물 없이도 공연장의 입구나 펼쳐진 아크의 중심공간으로 많은 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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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을 안내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비어 있는 땅이 물결치며 만들어 내는 골과 마루에서, 녹지와 보행이 교차하며 목적지를 향해 길게 뻗은 길이 되기도 하며, 다양한 시야로 적절하게 멈춰서는 녹지가 된다. 여기서 아쉬운 것은 야외공연장의 성격을 가진 예술쉼터의 건축적 완성도이다. 단면적으로는 하늘을 품는 거대한 원의 호가 땅과 만나는 접점이 되는 것인데, 이 호가 공연장 쪽으로는 공원방향으로 길게 뻗는 대지가 되고, 도시 방향으로는 살짝 들어올려진 작은 옥외 객석이 되는 것이다. 원래 공연장 쪽으로 길게 뻗은 대지는 사람이 접근하여 도심 중앙의 비워진 땅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여정을 안내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전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공공건물의 특성상 팬스로 가로막혀 접근이 불가한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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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의 옥외 객석은 사실 살짝 들어 올려진 땅이 눌려 붙어 있는 조형적인 형태를 목적으로 비정형적 도구를 사용하여 지오메트리의 작은 단위까지 공들여 설계했는데, 시공과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임의적인 디테일로 구현되어 버렸다.
물결치는 감각 여정의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공연장의 홀은 중심으로 수렴되는 하나의 점이며, 그 자체로 다시 모든 감각이 만들어지는 오리진(origin)처럼 경험되기를 바랐다. 중심에서 물결치며 퍼져 나가는 소리와 빛은 마치 수많은 나팔이 울려 퍼지듯 무대를 감싸, 조명과 음향이 만들어내는 모든 감각이 다시 공연자에게 전달되는 상상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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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물결치는 여정 스케치 27. 야외예술쉼터 28. 안전을 위해 팬스로 가로막힌 지붕 29~30. 대극장 무대와 객석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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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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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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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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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지하주차장 2. 기계실 3. 전기실 4. 홀 5. 공조실 6. 시수조실 7. 직원식당 8. 주무대 하부 9. 오케스트라피트 하부 10. 오케스트라 리허설룸 11. 분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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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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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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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주차장 2. 다목적 연습실 3. 우측무대 4. 그리드아이언 5. 플라잉 갤러리 6. 주무대 7. 좌측무대 8. 소품창고 9. 사무실, 매표소 10. 로비 11. 갤러리창고 12. 직원식당 주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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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20m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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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4
7 9 3 8 11
2
1. 이벤트광장 2. 공공보행통로 3. 하역장 4. 사전작업실 5. 후무대 6. 좌측무대 7. 주무대 8. 우측무대 9. 객석 10. 그랜드홀, 갤러리세종 11. 사무실
0
5
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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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외예술쉼터 2. 이벤트광장 3. 지하주차장 4. 사전작업실 5. 지하주차장 6. 후무대 7. 시수조실 8. 주무대 9. 대분장실 10. 투광실 11. 포이어 12. 코트룸 주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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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평면도
1 2
3
1. 홀 2. 매표소 3. 포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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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20m
3층 평면도(위), 4층 평면도(아래)
1
3 2
4
1. 플라잉 갤러리 1층 2. 다목적 연습실 3. 객석 2층 4. 포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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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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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명판넬실 2. 플라잉 갤러리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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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팅(Site-ing)으로서의 판의 건축 : 오호근 디엠피(dmp) 디자인총괄 사장과의 대화 -일시: 2021년 10월 20일(수) 5:00pm~7:15pm -장소: 줌(ZOOM) 화상회의 -참석: 오호근(건축가), 백승한(본지 편집위원), 이주연(본지 부발행인), 전진삼(본지 발행인) 외 참관자(박지일 본지 섹션편집장)
{전진삼 발행인, 마이크를 켜고 집담회에 앞서서 참석자들 소개 및 인사 교환한다}
같은 네 개의 단계를 중심으로 어떤 경우가 해당 프로젝트에 적당할 것인가를 판단하게 됩니다.
본지 독자들을 향한 건축가의 자기소개라 생각하시고
프로젝트의 프로세스와 관련해서 사무소 초창기에는
오호근 사장님과 디엠피(dmp)의 인연에 대하여 가볍게 짚고
어떤 프로젝트든 시작할 때 프로젝트 관계자가 모두 모여서 이런저런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아이디어와 제안 등을 서로가 경쟁하듯 쏟아붓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노동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소모적인 과정이었어요. 야근,
모두들 안녕하세요. 개인적으론 오늘의 집담회라는
철야는 기본이었고요, 그래서 그것도 단계를 나누게 됩니다. 첫째는
형식이 처음이라서 부담스럽긴 합니다. 먼저 이 자리에 초대해주시어
프로젝트에 따라서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검토하여 접근해야 하는
감사드립니다. 저는 학교 졸업 후 바로 정림건축에서 설계를 시작했고요,
경우, 둘째는 일정한 방향 안에서 대안을 생산해내는 경우, 셋째는 대안이
거기서 만난 분들이 현재의 디엠피 공동 설립자인 박승홍 대표님과
존재하더라도 분명한 이유를 가진 제안으로 한정하여 진행하는 경우, 네
문진호 대표님이었어요. 그 분들과 함께 디엠피 초창기부터 이런저런
번째는 대안 없이 검토된 하나의 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로
프로젝트들에 관여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서 디자인총괄 사장의 책임을
구분하여 진행하는 거지요.
맡게 됐습니다.
〈세종 예술의전당〉은 두 경우에서 모두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합니다. 디자인프린시펄이 아이디어를 생산해내고, 의사 결정을 하고, 프로젝트 진행상에서도 가능한 한 모든 제안을 검토해보는
〈세종 예술의전당〉 스토리북을 보면서 디엠피(dmp)의 디자인
단계를 거쳤습니다. 스토리북을 보면 넓은 범위의 아이디어에서 점차
결정 단계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의
범위를 좁혀 가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생산 가능한 여러 대안들을
안이 결정되기까지 사무소 내부에서의 작업진행 과정을
통해서 가장 적정한 안을 찾고, 선택된 방향을 디벨롭을 시켜서 하나를
소개해주십시오.
결정해나가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에겐 익숙한 방식이 담긴 스토리북이라서, 어떤 부분을 흥미롭게 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림짐작으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디엠피(dmp)와 같은 큰 조직에서 프로젝트에 관한한 설계
설계할 프로젝트가 생기면 시작하기 전에 프로젝트를 정의하는 단계를
크레딧은 어떻게 규정하나요?
거칩니다. 이를 통해 해당 프로젝트를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할 것인가, 설계 크레딧, 저작권과 관련지어 질문해주셨는데 오히려
누가 그 프로젝트의 디자이너로서 책임을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에 대해 제가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외부에서는 실질적으로 그 중 디자인 책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4개의 경우를
어떤 식으로 작동하게 되나요? 예를 들어서 건축가로서 실적을 증명하는
구분합니다. 누가 실질적인 설계 작업을 수행하는가, 의사 결정은 누가 할
라이센스 크레딧이 있을 테고, 건축저널, 잡지 등 매체에 발표할 때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인데, 첫 번째는 디자인프린시펄이 직접 아이디어도
설계자를 표기하는 경우가 있을 테고, 현실적으로는 건축물을 통해서
내고, 드로잉 등으로 형태와 공간을 구현해내는 작업을 하면서 의사
저작권이라는 것을 주장할 만큼의 제도적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결정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디자인프린시펄이 의사
크레딧이 작동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의문이
결정을 주로 진행하고 팀 구성원인 프로젝트 디자이너(피디)가 주로
듭니다.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경우가 있고, 세 번째는 팀의 피디가 생산하고
저희도 원칙적으로는 프로젝트 생산에 기여한 모든 참여자가
조직의 장, 즉 캠프 단위의 장이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
크레딧을 가질 수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는 있어요. 그러나 외부에 보여질
번째로 피디가 직접 생산하고 의사 결정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때론 라이선스 크레딧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매체에서는 각각의
GROUP DIALOGUE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사무소 내부에서의 직급, 직위에 준하여 여러
사무소 명칭에 여전히 ‘디자인캠프’라는 이름이 존재하는데
참여자의 이름을 나열하기도 하고요. 저희 자체적으론 이 프로젝트가
디엠피(dmp) 설립 초창기와 현재 시점을 비교하여 그것이
누구의 디자인이야 하는 식으로 건축가를 명명하는 데 있어서는
작동하는 방식 또는 지향점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참여자를 다 포함시키지만, 보통의 사무소에서
무엇인가요?
건축가인 소장과 같은 경우라면 오피셜하게는 프로젝트를 담당한 디자인프린시펄에게 크레딧이 있다고 보고 그가 책임과 권한을 갖고 디자인을 판단합니다.
회사의 설립과 그 후 여러 가지 방향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고, 특별히 사무소의 지향점이라고 규정하고 지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면 초창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때와 지금 여러
세종 예술의전당 스토리북 마지막 쪽을 보니까 이
상황, 환경, 여건이 변했다고 보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캠프라는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완성 단계까지 참여했던 멤버들의
용어가 지니고 있는 역동성이나 현장감, 혁신성 등에 대한 지향점은
이름이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는 오 사장님을 위시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외부의 시각에서 디엠피 내부를 들여다볼 때
위로는 박승홍, 문진호 대표님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차이가 존재하는 거겠죠. 어쩌면 각각의 시대를 기록하는 (디지털)
이어서 후배 세대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더라고요. 그것을
미디어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요. 초창기에는 블로그를 중심으로 회사
보면서 그냥 이 프로젝트의 생산에 기여한 등장인물이
내부에서의 활동과 현장에서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회사의
이랬구나 하는 정도의 이해는 됐고요, 그런데 등장인물
위상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회사 내부에 미디어 운용을
가운데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을 수 있잖아요, 질문의
전담한 조직이나 사람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조직원이 거의 자발적으로
요지인즉 그 등장인물 가운데 주역과 조역을 어떻게
생산해낸 블로그라는 미디어의 세계를 통해서 디엠피가 새로운 에너지로
구분하느냐 하는 점이에요. 스토리북 판권에 등장하는
창작활동을 한다는 환경이 공유됐고, 그걸 보고 찾아온 구성원들이
명단에는 회사 조직도상의 위계로 나열돼 있다는 거죠.
자연스럽게 동질한 성격의 집단을 지속적으로 구성하게 되면서
정작 오 사장님도 순위가 밀려나 있다 말이죠, 우리가 통상
내부 에너지가 되먹임 되어 초창기의 텐션이 유지된 거죠. 이 초기의
크레딧 관련하여 얘기할 때 주역과 조역에 대하여 명확한
높은 레벨의 에너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되어 차분해지는
선을 긋지 않는 것은 건축생산의 시스템상의 문제에서
레벨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 외부에서 볼 때 변화로 보이는 것 아닌가
기인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싶습니다. 사실 디엠피 자체에서 바뀌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외부로
통칭하여 ‘설계자 디엠피’라는 회사의 이름으로만 발표되는
보여지는 활동적인 에너지보다는 오히려 프로젝트의 성격과 노동환경인
것이 아니라면 소속된 디자인프린시펄이라던지 동급의 여러
듯싶습니다. 초기 프로젝트는 주로 공공시설의 경쟁설계로 접근하는
구성원들의 분명한 역할이 있을 거고, 그로써 주역과 조역이
것이 많았는데 그렇게 수주한 공공 프로젝트는 대체로 주목받는
나눠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선명하든,
프로젝트로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됐고, 회사를 잘 알리게 되는
흐리던 어떤 내부 규정이 있지 않겠는가, 라는 점에서 하는
계기가 됐죠. 〈세종 예술의전당〉에서처럼 내부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질문입니다.
참여함으로써 활기를 불어넣게 되는 기회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공공 프로젝트에서의 경쟁보다는 민간 부문에서의 프로젝트
아, 네. 디엠피 내부에서는 그닥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지나온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졌어요.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론 외부로 드러나지
지점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제안인 것 같네요. 사실 앞에서도
않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에 캠프의 성격이 전달되는 데도 온도 차를 느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그것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해오지 않았습니다.
수 있을 거예요. 또한 특히 노동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인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이 크레딧을 갖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 52시간제 근무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저희는 디자인의 완성도를
있습니다만, 회사 내부에서는 프로젝트에 직접적이든 아니든 누구나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소위 뼈와 살을 갈아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주역/조역을 구분하는
시대와 맞지 않게 된 것이죠. 그러는 사이 작업 방식도 바뀌게 되는데
면에선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질문을 듣고
여럿이 모여서 밤도 새가며 치열하게 토론하며 작품을 만드는 상황이
보니 크레딧이 예민하게 작동하는 순간이 있다고 하면 그 순간은 무척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프로세스로 대체되는 거죠. 그러한 것도 영향을
고민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경우는
미쳤다고 생각해요.
거의 없었습니다. [전진삼; 해외 프로축구계의 발롱도르 어워드 관련하여
종합해서 보면 회사 내부에서의 지향점의 변화라기보다
최근 일고 있는 무용론-축구는 특정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스포츠이기
미디어 환경, 노동 환경 등등의 외적 요인이 디자인캠프의 이미지를 달리
전에 팀플레이로 완성되는 스포츠이므로 슈퍼스타 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이게 한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롱도르 어워드는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기업형 사무소의 건축 생산 시스템과 연계하여 등장인물 중심의 크레딧 표기의 한계 지점에 대하여 부연 설명하다.]
{백승한 편집위원, 마이크를 켠다.} 안녕하세요. 백승한입니다. 〈세종 예술의전당〉 답사를 하면서 피상적이지만 스노헤타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나 BIG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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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를 따라 오르내릴 수 있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 등 대지와
들뢰즈의 주름 개념을 인용하거나 그로부터 상상력을 끄집어내는데
관계 맺는 유사한 종류의 건축 작품 사례들 몇 가지를 떠올릴
있어서 연관성이 있어 보이긴 한데 이는 결과가 만들어진 뒤에 앞의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어떤 사례(건축가
개념을 덧 씌어본 것에 불과한 것이고요, 들뢰즈의 철학을 깊이
혹은 건축물)들이 본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서 유의미하게
이해하고 그걸 형용하는 작업을 한 건 아니에요. 다만 시대적 현상 혹은
영향을 주었나요?
흐름의 하나로서 (주름 이론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게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버나드 캐쉬의 오브젝타일 개념 등에 대하여도 먼저 공부가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유형, 타이폴로지나 트렌드, 디자인방법론을 못 본 채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채 영향을
되어 본 작업에 임했다면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좀 더 풍성했었겠다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외려 직접적인 영향은 디지털
받을 때가 있기도 하겠죠. 그것이 걱정이 되어 의식적으로 유사한 유형을
건축의 흐름 (추상적이며 도구적인 것) 안에서 이뤄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찾게 되면 피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풍미했던 건축적
연속면을 하나의 접선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툴을 통한 모델링의 기법,
언어나 풍경을 만드는 유형에 대해 저의 관심의 끈이 연결돼 있었다고
파라메트릭 디자인 기법 등을 이용하면서 결과적으로 형태를 구상하는데
한다면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종 예술의전당>이 갖는 대지의 조형은 저희가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 작업에 임하면서 여러 가지 영향을 카테고리화 하는 과정이 있는데요,
오랫동안 연습되어온 고유한 착상의 방법론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오호근; 다시 관련 자료를 공유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후반 설계를 시작할 때 사무소의 작업 성향을
이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초기 단계에 가장 큰 영향을
보면 매시브한 볼륨과, 건물 상단에 포스트모던한 장식들이 보이는
준 〈노들섬 프로젝트〉입니다. 그즈음 국내 건축가들이 아직 디지털
형식언어와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건축가가 착상을 구현해내는
툴에 익숙해 있지 않던 때였는데,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와의
도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당시 매시브한 프로젝트의 작업은
협업을 통해서 노들섬의 지형을 모델링할 때, 접선면이 연속적으로
스티로폼을 이용해 큰 덩어리들을 깎아내는 프로세스가 중요했어요.
하나로 연결되는 조형을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는 방식에 흥미를 느껴
당시 사무소정림건축에서 디자인프린시펄이셨던 박승홍 소장님이 건축을
방법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국제공모전에서 낙선한 〈부산
풀어내는 방식들이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많이 알려진 드로잉
오페라하우스〉작업인데요,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형의 연속면이 건물의
외에도 종이를 잘라서 모형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대지까지 이어지게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 것입니다. 이후 당선되어
거예요. 이게 기존의 덩어리가 지닌 양감을 다루는 것과 크게 다른 게
지금 공사 중인 〈부산 아트센터〉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프로젝트의 주제로
종이를 접어서 하는 디자인은 보이드와 외피만으로 표현이 되거든요.
삼게 됐죠. 전체 대지의 연속면을 계획부지에 끌고 오자는 개념이에요.
결과적으로 날렵하고 간결한 관계들이 보이는 거예요. 얇은 종이와
이러한 맥락의 조형적 작업이 가능한 경우는 주변에 콘텍스트가 없을 때,
그림자로 떨어지는 덩어리들이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즉 대지가 광활하다거나 새로 생긴 도시라거나 등등의 경우가 해당되는데
착상한 아이디어를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땅의 흐름, 토폴로지, 주름을 통해서 모더니즘적 착상에 기반해서 선을
되었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긋거나 기하학을 만들지 않고도 공간의 위상만을 통해 영역을 만들어낼
{오호근; 보충설명을 위해 준비한 ppt자료를 공유한다.〈세종
수 있는 디자인 방법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대지의 조건은 주로
아트센터〉(‘세종 예술의전당’의 직전 명칭임)의 작업에 앞서서〈부산
공연장의 경우에 일반적이어서 저의 경우 이러한 방법론은 주로 공연장
아트센터〉등등의 몇 개 프로젝트를 종이를 이용해 저층부와 볼륨을
설계에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구축해나가는 방식을 스터디했던 모형들과 〈세종시 정부청사〉, 〈한강 예술섬(노들섬) 프로젝트〉등의 부연설명을 통해 작업된 유형의 연속선상에서〈세종 예술의전당〉 프로젝트 디자인 안이 자연스럽게 나올
오 사장님은 “파형의 주름”을 환형 도시의 축을 따라
수 있었다는 프로젝트의 상관성을 설명한다.}
생성하는 “골과 마루” 또는 일종의 결(textures)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막상 〈세종 예술의전당〉 사이트를 밞아보면서 해당 대지와 드로잉에서 표현하는 비정형
대지의 켜가 들어 올려져서 두드러진 기념비 대신 건물-
등고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서로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대지가 연속적인 흐름을 생성하는 종류의 사고와 작업이
보였습니다. 환형 도시는 작업을 위해 주어진 현실(the
가능하게 된 몇 가지 요인들 중에는 1990년대의 디지털
given), 그리고 “골과 마루”는 그에 반응하는 이후의 제스처에
건축의 흐름과 질 들뢰즈의 “주름(fold)”(1993) 개념이
가까운 듯합니다. 이 지점에서 사이트에 대한 건축가의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이는 그렉 린, 피터
해석이 개입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어느 정도
아이젠만 등이 건축 작업으로 구현해내기도 합니다. 또한
자율적인(autonomous) 종류로 보입니다. 대지(사이트)에
비슷한 시기 많이 회자된 버나드 캐쉬(Bernard Cache)의
자연스럽게 조우하는 행위, 그리고 건축가의 자율적
오브젝타일(objectile) 개념도 떠오릅니다. 〈세종 예술의전당〉
개입이라는 두 가지 속성은 서로 다른 종류이지만 설계라는
작업에 있어서 이러한 흐름과의 연관/영향 관계가 있나요?
속성상 늘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는
혹시 그런 방면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으신지 궁금합니다.
콘텍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가의 자율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속성을 어떤
솔직히 말씀드리면 들뢰즈까지 소환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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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으로 이해하고 다루는지요?
〈세종 예술의전당〉이 지어지고 나서 누구도 제게 대놓고
이 프로젝트가 올해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 7 선정
얘기하진 않았지만 “골과 마루”가 만드는 환형이 너무 인위적이다, 라고
최종단계에서 아쉽게 떨어진 바 있는데요, 그때도 심사위원들에게서
비판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인위적인 것 맞습니다. 끌고 올 것이
유사 질문이 나왔어요. 요약하면 밖에서 보여지는 건축의 모습은
분명하지 않을 때는 자율적이란 게 적당한 핑계가 된다고 봐요. 반면
엄청나게 진보적인 시도들이 보이는데 내부는 정적이다, 라고 했어요.
주변의 콘텍스트, 끌고 올 것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그땐 그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오늘 말씀 듣고 보니 조금 이해가
아이디어를 개입시킬 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갈등도 하고, 선택도 하게
됩니다. 외부에서의 제스처가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되는데요, 제가 특별히 기준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진 않아요. 그때마다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론) 버튼을 누르는 것 같아요. 그 순간이 건축가로서의 자유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의 향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의지가 발현되는 것 아닐까 싶은 거죠. 모더니스트로서 합리적인 이유에
같습니다. 첫 번째 측면은 스케일의 문제였다고 봅니다. 여정의 최종
근거해서 결정을 할 때는 그 이후 설명의 과정에는 걱정을 안 해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부공간이 그 여정에 포함돼서 공간이 비어있어도
그런데 자의적인 어휘를 개입시켰을 때는 사실 걱정이 됩니다. 제 생각을
연결되는 하나의 경험으로 이해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케일이 커져
가볍게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건축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의
버리니까 내부공간에서는 여정이 단절되어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 거죠.
건축하는 태도를 저는 모더니즘 근본주의자라고 농담처럼 얘기하는
그렇다면 이 새로운 공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뭐냐? 라는 질문이
편입니다.{웃음} 너무나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여, 장식적이거나
당연한 거고, 결국 큰 스케일을 작게 다루는 과정에서 내부공간에서의
표현주의적인 것을 부정하는 의견들이죠. 이러한 시선에서 보면 제가
스케일에 대한 게 미흡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의도적인
사용하는 과도한 어휘의 표현은 걱정스럽다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것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여정이 흘러 들어와 멈추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든 사이트가 합리주의적이기만 한 태도로
무언가를 새로 주장하기보다는 비어 있다고 보는 것은 맞다고 봤습니다.
임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건축가한테 권한이 주어질 때 그
비어 있고, 틔어 있고, 그냥 멈춰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라고 애초부터
순간은 건축가의 자유 의지로 판단하고, 더러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할
생각했던 건데 그 의도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공간으로서 스스로
경우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임하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디테일이 주효했어야 했습니다만 사업 진행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뭔가 사회적으로 건축이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이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은데 그 지점에서의
되면 그거로도 의미 있다고 보는 거죠. 여담삼아 말씀드리면 〈세종
지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전당〉에 개입시킨 자의성의 모티브는 뭐냐면, {오호근; 손을 펴고 손등을 민다.}우리가 손가락으로 손등을 밀면 주름이 생기잖아요, 이 때 만들어지는 주름의 방향성,{함께 웃음} 이처럼 단순한 개념에서 출발한
안타깝게도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계획안에서의 개념이
것이에요. 얼핏 생각하면 장난스런 것 같지만 어떤 표피가 있을 때 힘이
현실화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지점에 응집되어 생기는 물리적인 현상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제안으로 남는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이러한 개념과 현실
그것이 공간에도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사이의 간극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공공(the public)-즉 클라이언트로서의 세종시-은 개념과 분리된 외부 현실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개념을 작동시키고
흥미로운 답변 감사합니다. 알베나 야네바(Albena
구체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인자 또는 에이전트라고도
Yaneva)란 분이 정의한 사이팅(Site-ing)이라는 진행형의
보여집니다. 조직으로서의 디엠피(dmp)는 이미지로 승부를
용어가 있는데 명사 사이트(Site)에 아이엔지(ing)를 붙여서
거는 페이퍼 아키텍트가 아니기 때문에 개념보다는 구현된
더욱 주관적으로 사이트와 관계를 맺는 현상에 대해 쓴
현실에 또한 무게를 좀 더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추측해
글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오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개념의 변형과 탈주(의 주체로서
그 같은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세종시와의 역학관계)는 피할 수 없는, 오히려 확장된
차이가 있다면 사례로 든 그이에게서 사이트는 물리적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실체가 아닌 관념의 대상인데 반해 건축가는 사이트와 관계 맺음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실제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건축가집단으로서의 디엠피를 이끌 때에 가장 어려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분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특집 기획서에는 디엠피를 기업형
다음 질문을 드리면, 방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외부에서의
설계사무소라고 적으셨는데 저희는 내부적으로 건축가집단이라고
파형적 주름과 겹겹이 쌓인 라인들 그리고 대지가 살짝 들어
생각하고 있고, 저희는 건축의 개념을 구현하는 것에 지대한 가치를
올려진 듯한 형상 등등 역동적인 모습에 비해 내부(로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오고 있지만 실제로
공간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물결치는 여정”보다는 탁 트인
지어진 건물들은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가 다루고 있는
시야가 보이는 매우 넓고 쾌적한 공간이면서 단조롭다는
건물 대부분이 자본, 공공 등 시스템상에서 의사 결정의 과정을
느낌이 생경하게 다가왔습니다. 바꿔서 말씀드리면 외부가
거치게 되는데 건축가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고 권한이
바로크적이라면 내부는 르네상스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이에
미약하죠.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공예품적) 건축의 가치를 완성시키기
대한 건축가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위해 디테일을 연구하고 도면에 반영하지만 진행과정에서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이 시대 건축이 처한 상황논리 속에서 디엠피만 예외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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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겠지요. 그 중의 하나를 저희가 경험하고 있는 거라고 봐요. 그러다보니
갖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계획할 당시만 해도 인근
디엠피 구성원들에게 건축가로서 자부심과 명예를 부여하지 못하는
나성리역사공원 외에는 허허벌판이었요. 그래서 더더욱 도상학적으로
경우가 많아요. 건축가집단이라고 하면 구현된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특별한 환형의 도시 구조의 개념을 이 사이트에 끌어오고 싶다고
지어진 순간 그 집단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매순간 평가에서
생각했습니다. 장축 방향으로는 멀리 도시를 향한 콘텍스트 하나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항상 아쉬움을
존재하고 도심과 도심 외곽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단축 방향으로는
안고 지내기 마련이죠.
전혀 다른 콘텍스트를 지닌 두 개의 정면성에 대해 주목하게 됩니다. 도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답변을 드리면, 구축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과 역사공원을 바라보는 풍경으로서의 방향이
개념에 다른 가치가 끼어들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점은 두 가지가
전혀 다르게 읽혀지지만 두 개의 축이 동등한 무게로 도시의 언어로
있는 것 같아요. 개념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컨트롤할 수 있는
존재하면 좋겠다고 본 겁니다.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공사비의 문제든 여타 다른 조건에 의해서든 변형을 해야 할 경우에 건축가의 동의하에 변형한다면 그건 변형이 맞고,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달라진 결과물은 변형도
답사 현장으로 가는 길에 멀리서 실루엣으로
변화도 아니고 그냥 완성되지 못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이
다가오는 〈세종 예술의전당〉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많아서 무뎌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이
있는 건축의 상황이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실제 사회가 바라는
단어를 이 프로젝트의 콘텍스트 요소 중 하나로 설정해
가치가 유리되어 있는 데서 기인한 것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본다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 질문하신 내용 중 랜드스케이프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랜드스케이프를 어떻게
{이주연 부발행인, 마이크를 켠다.}
정의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서요.][이;
이주연입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건축계획에서 콘텍스트는
풍경으로서의 랜드스케이프입니다.]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특별히 아크로스틱(acrostic)을 콘텍스트의 언어로 택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네, 그것은 저로서는 바라는 바이기도 합니다.{함께 웃음} 풍경으로서의 랜드스케이프는 저에겐 일관되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풍경이 어떻게 비춰지는가. 특히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일상에서의
〈세종 예술의전당〉이 아크로스틱 콘텍스트라는 개념의
풍경,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길을 걷든 늘 그곳에서 발견되는 도시의
시작점에 있는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또한 그것이 이 프로젝트를
장면으로서 이용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가가 공공건물에서는 매우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도 아닙니다. 사실 제 작업의 내용이나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오고 있고 그걸 반영한 결과 입니다. 또 하나의
건축 생각이 외부로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 아니고 어떤 건축의 이론을
풍경은 장남평야라는 도시의 중심부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입니다.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 작업을 소개할 수
야간에 이 건물의 조명이 켜져 있을 때 원거리에서 바라보이는 도시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 디멘젼의 척도를
풍경으로서의 〈세종 예술의전당〉 또한 중요한 접근이었습니다. 이 부분과
달리 해가면서 콘텍스트를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작업을
관련해서는 정확한 지점, 시간대 등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게 많습니다.
그루핑하여 아크로스틱 콘텍스트의 개념으로 묶어본 것이고요, 〈세종 예술의전당〉도 그 연장선상에서 거론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평소 건축 책보다는 자연과학 관련 도서를 많이 읽는 편인데
이 프로젝트를 랜드스케이프의 특징 가운데 장소성
디멘젼과 차원을 달리하는 관찰의 현상에 많은 영감을 받곤 합니다.
측면에서 경계를 소멸시키며 풍경을 하나로 묶어내는 대지의
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세종 예술의전당〉을 도시적
연장이라는 개념을 읽을 수 있는데 풍경으로서의 형태는
측면에서 보면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디멘젼과 스케일, 축의
‘판을 조작(디자인)하는 것’이라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방향들이 각각의 언어들로 분리되어 드러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이들
특징을 잘 구현한 작업으로 읽혀졌습니다. 형태론일 수도
언어를 콘텍스트로 이해하고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아크로스틱
있고, 건축계획이론이랄 수도 있겠는데 알레한드로 자에라
개념을 소개한 것이기도 합니다.
폴로의 요코하마 페리터미널의 주름 형태(수평적 흐름의 연속성)나 렘 콜하스의 주시유 도서관 계획안의 기울임 형태(대지와 건축의 연속적 흐름)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개념이 디자인 측면에서 어떤 형상으로 구체화되었는지
오 사장님의 디자인 컨셉과 무관할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견해를 이 프로젝트 안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크게 보면 도시에서 가로축과 세로축이 뚜렷한 도시 구조는 이해가 금방 될 수 있는데 세종시는 긴 그리드를 둥글게 말아서 연결시킨
보는 이들의 접근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겠지만
듯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환형도시의 특성상 일반적 계획도시에서의
풍경으로서의 장소와 경험으로서의 장소 모든 경우가 고려될 수 있다고
가로축과 세로축 그리드에 의한 직교축이 잘 읽히지 않는 공간 구조를
생각합니다. 소위 판이라고 말하는 경사면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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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졌던 여러 생각이 있었는데 저의 경험이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이
말씀드리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예측 가능한 불가론을
작업에 참고 되었을 수 있는 하나는 스노헤타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가
고스란히 반영하면 대개 보수적이고, 메아리 없는 건물이 되기 마련이죠.
있습니다. 그곳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경사면의 지붕으로
그런데 저는 여전히 건축가의 개념을 밀어붙여한다고 봐요. 설령 이루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올라 다니며 주변 환경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못하더라도 제안하지조차 못하면 이룰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진다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제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는 생각이
보는 거죠. 건축가가 스스로 한계 짓고 먼저 양보하는 자세로 프로젝트에
들어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그곳이 〈세종 예술의전당〉과 ‘다르다’라고
임하기는 싫습니다. 사실 매순간 갈등이 생기죠. [이; 현실적으로
한다면 사람들이 그 경사면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어렵겠지만 디자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을까요?]
결정적인 차이 같습니다. 스노헤타의 〈오페라하우스〉가 공공에게 열려
네, 제안은 계속 했어요. 심지어는 설계비와 별도로 대안을 제안해
있는, 이용자들이 누구나 잘 이용할 수 있는 곳인데 반해 이곳은 사람의
보완해주겠다고 까지도 했지요. 그런데도 안 되더라고요. 공공발주시스템
접근을 막는 (비)장소가 돼버린 거죠. 경사면이 그냥 대상으로서의
안에서는 모든 공정이 입찰에 의해 시행되는 까닭에 동일한 공사비용
풍경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점유에 의한 효용과 가치
내에서 가능한 건축가의 제안조차도 수용되는 시스템이 없는 거예요.
창출의 면에선 많이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이; 물론 그렇겠죠. 제가 그런 현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고요, 예컨대 최초에 정한 컨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지붕 경사면의 형태 또는 지붕으로 이르는 계단의 형식 및 접근 방법 등을 다르게 디자인할 수 있지
건축이라고 하는 대상이 그곳이 공공이든, 사유든, 도시에
않았겠나? 싶은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생각했어야 할 부분이 있긴
있던, 전원에 있던 그 자체로 일상의 풍경을 지니고 있다고
해요. 그 면에서 안일했다고 표현한 겁니다.
보는 데요, 그곳에 인위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스노헤타의 경사면의 경우 랜드스케이프적 관점에서 볼 때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경사면이 수변의
건축을 사회적 언어로 풀이하자면 매우 다양한 해석이
지형적 특징을 접하여 기울기를 가진 지붕면을 만든다고
가능할 겁니다. 그 다양함 가운데 공공재라는 개념에
보는데 건축 자체가 원 지형 안에 묻혀서 형태를 이루고
주목합니다. 건축은 사적/공적 기능, 크고/작음의 위용,
경사를 이루는 프로세스의 랜드스케이프인 점에 반해 〈세종
화려함/초라함과 무관하게 사람뿐 아니라 주변의 제반
예술의전당〉은 평지에 기반한 랜드스케이프라는 면에서
환경적 상황과도 소통하는 공공재라고 보는 것이지요.
출발이 다르다고 봤는데 판이라는 관점에서 랜드스케이프
디엠피(dmp) 또는 오 사장님의 건축 작업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형태화 한 것이 이 사이트에 잘 맞아떨어졌다고
사회적 언어를 어떤 개념으로 담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 제가 이 프로젝트를 다룰 때는 경사 지붕면에 사람이 있는
작업은 아니지만 저희 사무소 초기 작업으로 〈서울시청사 현상설계〉와
풍경까지 생각하고 접근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말씀을 드린 거고요,
이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에 박승홍 대표님이 주도하여 참여한 적이
장면으로서의 건축, 풍경으로서의 건축은 앞에서 말씀드린 거와
있었어요. 서울시청사의 경우 현재 지어진 건물은 자기만의 건축언어가
같습니다.
두드러진 특징이 있잖아요, 당시에 저희 회사에서 접근했던 것은 서울시청이 지니고 있는 도시에서의 기억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새 건물이 그 기억을 해치면 안 된다, 그래서 기존 서울시청 건물을 현장을 둘러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언급할 만한 사안인데
비껴나서 새 건물을 앉히는 제안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낙선했으니
양옆으로 솟아오르는 지붕면은 그야말로 야외 공연장,
할 말은 없지만 당시 평가 중에는 유걸 선생님의 현 서울시청사
놀이공간 등 다양한 이벤트나 퍼포먼스가 벌어지기에 적합한
안에 비하여 저희 제안이 너무 심심한 박스형 건물이다, 식의 얘기가
장소성, 공간성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바리케이드가 접근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형태를 고집해야만 했던 것은 그것이 사회적
막고 있는 상황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또한 공연장 2층
언어에 대한 저희의 개념이었거든요. 그 후 다음 기회로 찾아왔던 것이
플로어로 이르는 외부 계단에 핸드레일을 설치하고 계단참에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공모전이었는데요, 여기서 저희가 의도했던
색과 빛을 집어넣고 유리 난간을 설치한 것도 마찬가지지요.
것은 한강주변에서 시민들이 이곳을 바라볼 때마다 특별하게 주목 받는
이를 단순히 안전성, BF(Barrier Free,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완전히 새로운 건축어휘로 접근해야 했다고 생각한 거죠. 서로 다른
등의 제약으로 상실감을 갖기에 앞서 선제적으로 건축
두 개의 경우에서 저희가 주장하는 건축의 사회적 언어에 관한 단면을
디자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각각의 프로젝트를
궁금합니다.
대하면서 사회적 언어에 대하여 내부 토론도 치열한 편인데 그때그때 답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건축의 사회적 언어는 말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개념을 포기할
그대로 직접적인 형태적 언어 외에도 도시적 맥락 내에서 경관으로서의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공공의 의사 결정권자를
경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서의 경험도 아중 중요하다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종국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보고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작업합니다. 원칙적으로 공공이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달리
경험하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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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 발행인, 마이크를 켠다.} 디엠피(dmp)를 통해 여러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오고
{사전에 공유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끝나고 추가 질의 시간을 갖는다. 백승한 편집위원, 마이크를 켠다.}
있으신데 큰 조직 안에서 성공한 건축가로서의 성장을
질문이라기보다는 오 사장님의 마지막 코멘트 부분이
궁금해 하는 후배 건축인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흥미롭습니다. 한국 건축계의 여러 이슈들에 대하여 문제
오늘 집담회 내용 중에서 제일 민망한 질문이네요.{함께 웃음}
회사 내 포지션에서 기인한 답변이랄 수도 있겠는데 제가
이전에 현상으로 보신다는 것이 개인의 스타일일 수 있겠고, 직함이 주는 인상에서 기인한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공부하는 맥락에서 다르게 생각해보면 현상을 받아들이는
않습니다. 성공이라기보다는 성취가 있었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데 학술적으로 볼 때는 마르크스적인
성취에 이르는 과정, 경험이 후배들에게 일정 정도 가이드가 될 수도
학자들의 접근방식 즉, 현재의 자본주의 상황에 대하여
있겠다는 정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리두기를 통해 문제를 인식하는 경우도 있겠고요.
생각을 정리해보니까 일반론에 불과한데요, 굳이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에서의 후기 비판주의적 맥락에서
말씀드리자면 큰 조직에서 큰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게 되면 관여하는
자본주의를 주어진 상황으로 본다면 그게 꼭 포지션이나
층위가 너무나 다양해요. 외부에는 투자자, 건설사, 금융관계자, 공무원,
개인 성향으로 구분하기보다는 그것조차 포괄하는 현대성의
공사관계자, 각종 심의위원 등등. 내부에는 대표들, 설계실 선배, 후배들
맥락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싶었고요, 앞서 발표 내용 중에
기타 등등. 너무나 많은 분들이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사이에서 견디는
인상적이었던 게 세종시의 지도를 펴놓고 다섯 손가락으로
힘을 길러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그게 무엇이든 하나의 성취로까지
집어 올려서 만든 ‘주름’ 이미지 사진이 있었는데 그런
완결되는 거지요.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그 안에서 나라는 주체는 아주
시도가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 건축계가 안고 있는
작은 범위에서의 성취를 찾는 거다, 라고 말이죠. 많은 걸 조율하다보면
모더니즘의 근본주의적인 입장에 대한 말씀과 어울려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때마다 건축가의 한계에
생각해보니 모종의 연결고리가 느껴졌습니다. [오; 말씀
직면하기도 하거든요. 잘 견뎌내는 게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웃음}]
현 단계 한국 건축계가 당면한 문제인식에 대하여 오
{이주연 부발행인, 마이크를 켠다.}
사장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사무실 네이밍에 관한 추가질의입니다. 사무소 이름에 ‘디자인캠프’가 들어가 있잖아요, 앞에서 질의/답변이 이뤄진
개인 성향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낙관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문제들을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는
바 있긴 한데요, ‘캠프’라는 명칭이 작업 안에서 혹은 회사 내부에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궁금합니다.
편이에요.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예를 들면 건축계 안에서 젊은 건축가들과 시니어 건축가들 사이의 갈등, 공공발주 과정에서의 갈등 등
내부적으론 회사의 운영 면에서의 ‘캠프’에 대해 정의한 것이
다양한 데- 에 대해서 저는 각자의 위치에서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든
있긴 한데요, 설명을 하면 할수록 위상이 더 모호해질 것 같아요.{웃음}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죠. 물론 건축정책의 큰 흐름을 바꿔가려는
내용적으로 어떠한 부연 설명보다는 ‘캠프’라는 단어가 지닌 자체의 힘이
상위에서의 움직임 혹은 노력은 정말이지 존경스럽고 응원하고 있어요.
더 큰 것 같아요. 외부에서 볼 때 그 단어로부터 받은 인상 그 자체가 더욱
그것 외에 다른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수준에서 피할 수 없이 벌어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상이기 때문에 제 위치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법을 찾아가는 편이에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산이 깎이고, 사업이 중지되고, 디자인에 대한 다른 의견들이 개입되고 등등 문제들은 늘 있지만 점차로
{전진삼 발행인, 마이크를 켠다.}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자료와 현장 경험을 통해서 〈세종 예술의전당〉이 낮의
것들이 많은데 그걸 잘 해내는 거라고 봅니다. [전; 오 사장님 개인은
건축이기보다는 밤의 건축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낙관주의적 성향이 강한 분이라서 건축의 장에서 등장하는 문제들을
도시의 랜턴과도 같은 건물이란 생각이죠. 실제적으로도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디엠피와 같은 큰 조직의 헤드가
그렇게 기능할 것이란 기대가 큽니다. 동시에 이 건물 바로
되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라도 비판적 수위를 조절해야하는
앞의 초고층아파트단지에서 보면 조감되는 건축으로
위치에 놓이시는 건가요?] 말씀을 듣고 보니까 회사 내 포지션에서 오는
아이레벨 뷰의 건축으로서보다 버즈아이레벨에서의 판이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사회적으로 여러 다른 입장에
주는 건축적 특징이 더더욱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판의
있는 분들과 의견을 조절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제 개인적 의견이
건축이라는 개념을 놓고 앞에서 말씀 나눈 스노헤타의
회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비쳐줘 프로젝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오페라하우스〉와의 차이를 찾아보면 그 건물에서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 특정 사안에 대해 그것을
내·외부공간에서 공히 판의 존재를 즐길 수 있는데 반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도움이
〈세종 예술의전당〉에서는 내부공간 어디에서든 이 건축의
된다고 하는 것이 제가 문제를 풀어가는 고유의 성향인 것 같습니다.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오로지 외부에서만 그나마도 경사지붕면에 이 부발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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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에 의하면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서 접근을 차단하고 있어서 소극적으로 감각할 뿐이죠. 그런데 이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대 플라잉타워 하부(후무대) 공간에 놓여있는 역방향의 테라스 형태 지붕판과 기능상 유리로 최적화한 플라잉타워 상부의 공간 내부를 이 건물의 이용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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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건축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끔 보다 적극적으로 디자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스토리북을 훑어봤는데 애초 그 같은 시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시선에 대하여 건축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 건물의 가운데 이벤트 광장에서 읽혀지는 거대한 판의 언어와 전면의 아파트단지에서 보이는 판의 의미가 다르게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디멘젼의 변위에 따라서 다르게 읽혀지는 공간 언어인 것이죠. 말씀해주신 내용은 이 건물에서 발견해내신 것에 가까운 데요, 저희에겐 그 요소가 되려 방해요소로 봤어요. 건물의 기능상 후무대의 단면 스터디를 통해서 계속 그것을 감추려고 애썼던 기억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저희는 판의 언어가 연장된 정도의 의미에서 비교적 뒤에 결정된 부분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닿지 않았는데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말씀해주신 거고요, 이후에라도 공간 개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포함시켜서 풀어볼 용의가 있는 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장시간 집담회를 마치며 오호근 사장, 클로징멘트를 한다.} 오늘의 집담회 형식이 흥미로웠습니다. 비평의 장 안에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기회였고요, 개인적으론 매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와 제 작업을 타자의 시선을 통해 돌아보고 답을 할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도면 및 스케치 크레딧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건축 사진 크레딧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pp.82-83, p.100, p.101, p.105(상), p.107(중), p.108(중), p.109(상) Ⓒ윤준환: pp.84-85, pp.86-87, pp.88-89, pp.90-91, p.93, pp.94-95, pp.96-97, pp.98-99, pp.102-103, p.105(하), p.106(상, 중), p.108(하), p.109(중, 하) Ⓒ김재경: p.79
자료 협조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홍보팀
현장 답사 지원 임수경,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소장
현장 답사 협력 세종시문화재단 121
수는 없다. 오늘날 부엌을 가구가 아닌, 건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요구된다. 화려한 가전과 인 테리어에 가려진 참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주거에서 부엌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 다. 이 책은 동서양 부엌의 긴 역사 속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와 사건에 주목했으며, 이는 한국 근 대부엌의 정체성을 밝히는 과정과도 같다. 근대부엌의 탄생과 이면을 살피는 일은 나아가 한국 주거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기 위한 단계로 중요하다.
근대부엌 의 탄생 과 이면
부엌이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집과 가족, 그리고 건축으로서의 부엌을 섣불리 진단할
제11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
근대부엌의 탄생과 이면 도 연 정 지음
제11회 심원 건축학술상
수상작
도 연 정 지음
20,000원
구입문의 : 시공문화사 http://www.spacetime.co.kr, spacetime@korea.com, T. 02) 3147-1212, 2323, F. 02) 3147-2626
제52차 : 재개 및 종방 안내
WIDE 건축영화 공부방 코로나19의 여파로 코로나19의 여파로 기약 없이 연기됐던 《WIDE건축영화공부방》을 재개합니다. 세상은 어느덧 위드 코로나의 시간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전염성 강한 변이 바이러스 등 위험요인은 여전히 생활공간을 압박하고 있지만 조금씩 굳게 닫혔던 사회전반의 빗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WIDE건축영화공부방》도 꼬박 1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근 채 지나왔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프로그램
재개를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 다만, 재개
렘(Rem)│75min│2016│감독_토마스 콜하스(Thomas Koolhaas)
공지와 동시에 금회를 끝으로 2012년 4월 3일 첫 모임(상영 프로그램; ‘성가신 이웃’)을
감독의 이름이? 그렇다. 렘 콜하스의 아들이다. 그래서 영화제목을 ‘렘’이라고만 했나? 렘과의 관계를 은폐하려고?
가졌던 《WIDE건축영화공부방》(초기 명칭;
워낙 유명한 건축가니 ‘렘 콜하스’라고 했으면 더 파급력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도 정식으로 종방을
거의 모든 건축 다큐는 온전히 건축물과 그 배경에 대한 탐구가 전부다. 반면 토마스 콜하스가 바라본 시선은,
선포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할 때라
건축가와 아버지 즉 건축은 물론 인간적인 관계에도 할애되었다. 그렇다고 가족사 속에 숨겨진 비화 따위를 기대할
판단해서입니다. 오랜 시간 ‘건축영화공부방’을
필요까진 없다. 이 다큐는 시애틀 도서관에서 매일 숨어 지내는 노숙자, 카사 다 뮤지카를 뛰어다니는 파쿠르 뿐만
이끌어준 강병국 방장님께 감사의 말씀
아니라 렘의 삶과 작업방법, 철학 등 다양한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전합니다.
사실 렘 콜하스는 따로 설명이 필요한 건축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네덜란드 출생으로 OMA 설립 및 대표, 그의 유명한 책 『정신 착란증의 뉴욕』, 작품으로는 베이징 CCTV사옥, 시애틀 도서관, 포르투갈의 카사 다 뮤지카, 보르도 주택, 우리나라엔 서울대 미술관과 리움, 최근 갤러리아 백화점 광교점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시 2021년 12월 6일(월) 7:00pm
필자는 늘 그의 영화적 배경이 흥미롭다. 네덜란드 《헤이그 포스트》라는 신문사 기자로 일을 하다가 ‘르네 달더(Rene Daalder)’등과 더불어 필름그룹 1,2,3 이라는 팀을
장소
만들어 “1,2,3 랩소디”라는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고,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The White Slave”라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까지 했다. 건축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영화감독, 일라 베카(Ila Bêka) &
방장 강병국(본지 기획자문, WIDE건축 대표)
루이즈 르모안(Louise Lemoine)의 르모안이 보르도 주택의
신청 예약 방법
처음 알았다. 그가 렘의 보르도 주택에서 살고 있다니. 헉!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건축영화공부방
고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 모형이 영화에 나오는 것도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인상적이다.
접수
(글. 강병국 건축가)
건축주교통사고를 당한 건축주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후원 이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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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간향클럽 사람들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우리는
mc 1
프로듀서 전진삼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사진총괄 김재경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섹션 편집장 박지일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편집위원 김태형, 백승한, 이태현, 최우용 디자이너 심현일, 디자인·현
우리는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mc 2
사진위원 남궁선, 노경, 진효숙 비평위원 김현섭, 박성용,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이종우, 현명석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통합의 지렛대가
mc 3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되겠습니다.
인쇄처 서울문화인쇄 인쇄인 강영숙 제작국장 김은태 관리부장 손운일 우리는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mc 4
독자지원 및 마케팅 박미담 과월호 공급 심상하, 선인장
물론 건축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되겠습니다.
직판관리 박상영, 삼우문화사 우리는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mc 5
기획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김정후, 박병상, 박진호, 손장원, 신용덕, 신창훈, 안철흥,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우종훈, 이정범, 이중용, 전진성, 허은광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 Party》
고문 김종헌, 박민철, 박영채, 박유진, 이충기, 정귀원, 함성호, 황순우
지역 건축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응원하는 《ICON
명예고문 곽재환, 구영민, 김정동, 박길룡, 박승홍, 우경국, 이상해, 이종건, 임창복, 최동규
Party》
대표고문 임근배
인천건축의 디자인 리딩 그룹을 선정하는 《Incheon Architect 5(I.A.5)》
mc 6
운영자문 김연흥, 김창균, 이수열, 이윤정, 최원영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운영위원 강승희, 손도문, 이승용, 이치훈
《심원건축학술상》
발행위원 김기중, 김태만, 우의정, 임재용, 정승이, 조남호, 조택연, 하광수
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패트롱 김용남, 오섬훈, 이태규, 장윤규, 최욱
건축비평상》 내일의 건축에디터&저널리스트를 위한 《와이드AR
mc 7
부편집인 김재경
저널리즘워크숍》
부발행인 이주연
건축 비평도서 출판 《간향 critica》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건축가(집단)의 모노그래프 출판 《wide document》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mc 8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도연정, 서효원, 이상명
《WIDE아키버스》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영철, 김현섭, 서정일, 한동수
인간· 시간· 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WIDE건축영화공부방》 건축· 디자인· 미래학 강의실 《포럼 AQ korea》 건축 잡지&저널리즘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하는 《한국건축저널리즘연구회》 인천도시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준비하는 《인천건축발전연구소》 등 일련의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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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9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팀원 최지희, 고현경, 김용수, 김정아, 김찬양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건축가 초청강의’ 〈시즌6〉
《와이드AR》 2021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5
Architects in Korea· Ⅵ : 1라운드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수류산방 후원 ㈜이건창호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s://cafe.naver.com/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1년 11월(제169차) Architects in Korea 05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 Ⅴ EDITORIAL 한국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리더들에게 묻다 PROLOGUE 이제는 건축가의 호칭에서 ‘젊은’ 수식어를 빼자!
이야기손님 : 이재혁(admobe architect 대표) 주제 : 건축 널뛰기 33년 일시 : 11월 17일(수) 7:30pm | 장소 :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 2021년 12월(제170차) Architects in Korea 06
이야기손님 : 김종수(원스퀘어미터 건축연구소 소장) 주제 : 골프 클럽하우스 건축에 대하여 일시 : 12월 15일(수) 7:30pm | 장소 :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ESSAYS 건축이란 무엇인가? & INTERVIEW 김남건축(김진휴, 남호진) OA-LAB(남정민) 아이디알건축(이승환, 전보림) 준 아키텍츠(김현석) 이용주건축스튜디오(이용주) 착착 스튜디오(김대균) 포머티브건축(고영성, 이성범) 비유에스건축(박지현, 조성학) vs. 박지일 NOTICE 제13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0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와이드AR》 2020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4
강병국
Kang Byungkuk
최문규
Choi Moongyu
정재헌
Jeong Jaeheon
Lee Kwanjic
이한종
Lee Hanjong
손진
Son Jean
Lim Hyoungnam, Roh Eunjoo
김광수
"3$)*5&$54*/,03&"˽
"3$)*5&$54*/,03&"˾
이관직
임형남, 노은주
숞���뷺������퉣���
9튾쒆 (FOFSBUJPO9
한국의 건축가들 ˽
Kim Kwangsoo
김재관
Kim Jaegwan
이은석
Lee Eunseok
강승희
Kang Seunghee
김동원
Kim Dongwon
SE 04
SE 03
"3$)*ˊ 5&$54 JO ,03&"
《와이드AR》 2019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3
PARTNERS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 Ⅳ
ARCHITECTS IN KOREA . Ⅲ
EDITORIAL
EDITORIAL
나의 건축 인생작Masterwork
X세대 건축가들의 자서전Architect’s Autobiography
ESSAYS
ESSAYS
강병국 Kang Byungkuk_광양장도박물관
김주경 OUJAE Architects : 나의 건축 인생 연대기 혹은 기억조작
최문규 Choi Moongyu_KIST 숲속 어린이집 정재헌 Jeong Jaeheon_양평 펼친집 이관직 Lee Kwanjic_영남대60주년기념 천마아트센터 이한종 Lee Hanjong_가르멜의 모후 수도원 손진 Son Jean_아이뜰유치원 임형남, 노은주 Lim Hyoungnam, Roh Eunjoo_제따와나 선원 김광수 Kim Kwangsoo_부천아트벙커 B39 김재관 Kim Jaegwan_유진이네집 이은석 Lee Eunseok_새문안교회 강승희 Kang Seunghee_여목헌 김동원 Kim Dongwon_분당메모리얼파크 사옥
김범준 TOPOS Architectural Firm : 오리지낼러티 탐문의 건축여정 김태만 HAEAHN ARCHITECTURE : 실패의 역사 (to be) unbuilt 이상대 spaceyeon architects : 어느 건축 마라토너의 방백傍白 임영환 D·LIM architects : ‘지속가능한’ 아마추어 건축 김선현 D·LIM architects : 꿈꾸는 자의 행복한 건축 조성익 TRU Architects : 냅킨 드로잉 박창현 a round architects : 몇 가지 단서들 김세경 MMKM : 건축이라는 올가미 민서홍 MMKM : 건축 짓는 농사꾼의 길 조진만 JO JINMAN ARCHITECTS : 어느 젊은 건축가의 회상 홍재승, 최수연, 이강희 PLAT/FORM : 풍경風景, 반 풍경 그러나 알레고리
NOTICE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추천작 발표
NOTICE
제29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제11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제28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장학제 공모
《와이드AR》 2018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2
《와이드AR》 2017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1
PUBLISHER’S COLUMN – ABCD파티–올해의 발견
PUBLISHER’S COLUMN – 친구
ARCHITECTS IN KOREA . Ⅱ
ARCHITECTS IN KOREA . Ⅰ
EDITORIAL 한국 건축의 새 판을 여는 젊은 리더들의 12가지 화법 ESSAYS 건축의 엄밀성과 농담, 혹은 사랑과 체념 : aoa architects 건축이 남긴 이야기들 : CHAE–PEREIRA architects 새로운 프로세스와 시스템 : EMER–SYS
EDITORIAL 젊은, 내일의 건축 리더들이 말하는 우리 건축 장場의 단면 #1. 건축의 뿌리 혹은 공부의 배경에 대하여 #2. 한국 건축 비평(계)에 대한 바람 #3. 귀 사무소(팀)의 작업 화두는? #4. 현대건축을 수행함에 있어서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5. 귀하(또는 사무소, 팀)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6. 현 단계 한국 건축계, 무엇이 문제인가?
경계에서의 점진성 : EUS+ architects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리드하는 건축, 건축가 : johsungwook architects 엘리스의 비눗방울 놀이, 그리고 일상 속 이야기 생성 : L’EAU Design 스타일의 전략–작업의 방법에 대한 근본적 이해 : Min Workshop 근대 건축, 수용과 변용의 미 : OFFICE ARCHITEKTON 들띄우기와 흰색 그리고 부산 : RAUM architects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한 발견의 방식, 질문 : Samhyun Urban & Architecture 길, 에움길, 샛길 : SUPA schweitzer song 따뜻한 건축 그리고 10+ : UTAA NOTICE 제10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결과 발표 당선작 : 해당작 없음 심사위원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PROJECTS : OFFICE INFORMATION a.co.lab : 휴먼 네트워크의 수행자 BOUNDLESS : 관계의 진화를 엮는 전술가들 designband YOAP : 3인 3색의 피보나치 수열로 건축하는 집단 FHHH Friends : 좌충우돌 화려한 팀플레이 집단 HG–Architecture : 디지로그의 세계를 실천하는 스튜디오 JYA–rchitects :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로 무장한 팀워크 mmk+ : 한 방의 장외홈런 다음을 준비하는 히어로 OBBA : 건축, 내러티브의 소중함으로 승부하는 사무소 stpmj : 아트와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이어니어 Z–Lab : A to Z, 콜라보&커뮤니케이션스 컴퍼니 NOTICE 제9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 — 발전국가시기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1962~1973) 수상자 : 강난형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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