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 05-06, no.81 김재경의 PHOTOSSAY 21 [18] 건축 미학자의 편지 01 [36] 포스트모던의 포스트 X ? 김원식 김정동의 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06 [38] RESEARCH [50]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16 이연경 백령도 천주교 공소들과 소청도 작은 마을 THE E. IL HOON CODE 04 [48] 이일훈과 건축평론동우회 김종헌 FEATURE [45]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김영철, 김현섭, 서정일, 한동수 GAIA TOPIC [34][68] STOP INVASION, STOP WAR 편집실 READING LISTS [56] 정원도시 부여의 마을 동산바치 이야기 나무 신화 동네에 답이 있다 디테일로 생각하는 구조 디자인 젊은 건축가, 섬세하게 유연하게 낯설게 스페이스 도슨트 연희동 우현이 걷다
Contents & Flow Map 구분
인물
선벽원↝ 수애헌↝ 목인헌↝ 인왕산 초소책방↝ 장소 백령도 천주교 공소 외↝ 우크라이나↝ 옥탑방↝ 전주치명자성지 평화의 전당↝
환경조각
사무소
Chungkee Lee Architect
사건
표지 이미지 설명: 동측에서 바라본 〈인왕산 초소책방〉의 야경 Ⓒ김용순
2
↝ ↝ 땅집사향(175차-176차)↝ 와이드AR 건축 평론 공모 추천제↝ 정원도시 부여의 마을 동산바치 이야기
↝
나무 신화↝ 동네에 답이 있다↝ 디테일로 생각하는 구조 디자인↝
추천도서
젊은 건축가, 섬세하게 유연하게 낯설게
↝
스페이스 도슨트↝ 연희동 우현이 걷다↝
ESSAY [78] 시간의 축적 이충기
NOTICE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2022 와이드AR 건축평론 공모 추천제 시행 WIDE [영화로 건축 읽기] Academy 1기 모집 제175차-제176차 땅집사향
SS2↝ LIFE건축사사무소↝ WIDE [영화로 건축 읽기] Academy
PROJECTS [82] 선벽원 목인헌 인왕산 초소책방 수애헌 外
GROUP DIALOGUE [108] 공간재생의 사유와 논리 그리고 작법 이충기, 김태형, 백승한, 최우용, 전진삼
달콤한 상상↝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RISING ARCHITECT 11 [58] SS2 전재봉, 임근영 이태현
SPECIAL FEATURE [69] 건축가 이충기
콘텐트 이충기↝ 이일훈↝ 임근영↝ 전재봉↝
파트너십
가로건축↝ 건축공감↝ 삼현도시건축↝ 수류산방↝ 시공문화사↝ 심원문화사업회↝ 엠에스오토텍↝ 오씨에이건축↝ 운생동건축↝ 원오원아키텍스↝ 유오스↝ 인천광역시건축사회↝ 자연앤인문집↝ 제효↝ 퓨즈랩↝ 한국관광공사↝ 해안건축↝ 헌터더글라스 코리아↝
생산자 ↝강병국 ↝김기중 ↝김기현 ↝김명규 ↝김세진 ↝김승환 ↝김영철 ↝김용남 ↝김원식 ↝김인수 外 ↝김장섭 ↝김재경 ↝김정동 ↝김종헌 ↝김태만 ↝김태형 ↝김현섭
↝도리스 라우데르트 ↝박기범 ↝박민철 ↝박상일 ↝박지일 ↝방승환 ↝백승한 ↝경북 봉화군 ↝서정일 ↝심세중 ↝요시하루 가네바코 ↝우대성 ↝윤세한 ↝이백화 ↝이선 ↝이승용 ↝이연경 ↝이충기 건축연구실 ↝이태규 ↝이태현 ↝임근배 ↝임재용 ↝장윤규 ↝전진삼 ↝조윤희 外 ↝조진영 ↝조택연 ↝최우용 ↝최욱 ↝최원영 ↝편집실 ↝한동수 ↝한제임스정민 ↝한지영 ↝현영미 ↝황수용
지면 122 8 122 123 123 표4 표2 6 36 56 10 18, 69 38 48 1 108 표2 56 56 123 17 123 57 108 12 표2 56 57 57 1 5 56 11 50 69, 82, 92, 98, 104
표2, 표3 58 123 9 16, 16 108, 122, 123 57 16 14 108 3 15 34, 68, 123 표2 7 123 57 123
22 : 05-06, no.81 pp.18-33 김재경은 인문학적 감각과 절제된 심미성을 바탕으로 공간과 건축, 인간의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가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사진집 『자연과 건축』, 『MUTE』, 『MUTE 2: 봉인된 시간』, 『수원화성』(공저) 및 『셧 클락 건축을 품다』,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의원』(공저) 등의 책을 냈다. 현재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이다. pp.36-37 김원식은 필명인 김미상을 사용해왔으나 최근 출판사의 권유로 원명 김원식을 사용하곤 한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 및 석사 졸업했다. 이후 벨기에 루벵 가톨릭 대학교에서 예술사학과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한양대학교 교수 및 단우 도시·건축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예술사학자, 건축역사가로서 건축, 미술, 무용 등의 역사이론,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pp.38-42 김정동은 1970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근대건축사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목원대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명예교수). 이후 세운상가 내에 「우리근대건축연구소」를 열고, 운영해오고 있다. 건축문화재분야(건축시공기술사)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다. 토탈디자인 전문지 격월간 《꾸밈》의 주간을 역임했고, 도코모모코리아 창립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문화재청 근대건축분야 문화재위원장을 역임했다.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본지 명예고문이다. pp.43-47 김영철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2008년 베를린공대 건축학과 건축이론연구소에서 수학하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 건축이론연구소 군자헌을 개소했고, 현재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2년부터 매주 ‘토요건축강독’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편집위원장이며 현재 본지 기획자문이다. 4
Profile of the Writers and Protagonists pp.43-47 김현섭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정부장학생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셰필드대학교에서 공부했다. 2005년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를 주제로 셰필드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에서 AHRC박사후연구원으로 동서양 건축교류에 대해 연구했다. 2008년 고려대학교에 임용된 이래 건축역사·이론·비평의 교육과 연구에 임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의 건축』(2016),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2016), 『건축을 사유하다: 건축이론 입문』(2017) 등을 냈다. 현재 본지 비평위원이다. pp.43-47 서정일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심원건축학술상 제2회 수상자이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2009~2017), 미국 뉴욕대학교 예술대학교 객원연구원(2009~2020), (재)여시재 기획위원을 거쳐 현재 한샘드뷰연구재단 자문위원이다. 공동저자 및 역자로 『동서양의 접점』(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재현 분열의 시대』(2019,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건축론』(2019,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등을 냈다. pp.43-47 한동수는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립대만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고, 중국 청화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양대학교에 부임했다. 대한건축학회 특별상 남파상(2013), 한국건축역사학회 우수학술발표논문상(2015, 2016, 2019), ISAIA 우수학술논문상(2016) 등을 수상했다. 동양예술학회 이사(2018~현재), 서울시문화재 전문위원(2020~현재)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이다. pp.48-49 김종헌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계획 및 건축사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배재대학교
교수이며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관장(2008~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근대분과) (2007~현재), 해양수산부 등대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2017~현재)으로 맹활약 중이다. 한국건축역사학회 공로상(2016), 대한건축학회 특별상 남파상(2011)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등대』(2012), 『역사의 역사』(2004)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본지 고문이다. pp.50-55 이연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심원건축학술상 제6회 수상자이다. 현재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이다. 저서로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및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공저),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공저), 『쉽게 읽는 서울史(현대편 2)』(공저), 『서을 역사 답사기 5』(공저) 등이 있다. pp.58-67 전재봉, 임근영은 본문에 포함 pp.58-67 이태현은 THE A LAB(에이랩 건축연구소)의 대표 건축가이다. 국민대학교 건축대학을 졸업하고, 바틀렛 건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Distinction으로 졸업했다. ‘2017국제건축문화교류’에서 Best Fellowship을 수상했고, ‘2019 사회혁신 리빙랩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2021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미래학교’의 참여 작가이다. 국민대, 한양대, 서울시립대에서 건축설계와 도시건축디자인을 강의하고 있다.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 운영위원이며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69-121 이충기는 본문에 포함 pp.108-121 김태형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한국의 근대건축을 공부하고 「구 서울역사의 건축구법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목천김정식문화재단, 목천건축아카이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한국의 근·현대건축 자료를 수집, 기록·연구하고 있는 건축전문 아키비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108-121 백승한은 부산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설계 및 건축역사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주요 연구 관심분야는 학제 간 도시연구, 하부구조론, 일상생활의 철학적 담론, 공동체와 공공성, 분위기와 정동이론, 신유물론, 동아시아의 시각문화와 매체경관 등을 포함한다. 최근 연구는 《Positions: Asia Critique》와 《Korea Journal》을 포함한 다수의 국내외 논문집에 게재되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108-121 최우용은 2018년 일본 건축가 단게 겐조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일본건축의 발견』 등 몇 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우리 건축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글을 쓰며 공부하고 있다. 제10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수상하며 건축평단에 들어섰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108-121 전진삼은 제4회 꾸밈 건축평론상(1988)을 수상하며 건축평단에 들어섰다. 월간 《공간》 편집장 역임하고 월간 《건축인(poar)》의 창간인 겸 초대 편집인, 주간을 맡았다. 1980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건축의 발견』, 『건축의 불꽃』, 『조리개 속의 도시, 인천』, 『건축의 마사지(1권, 2권)』 등 비평집과 『건축은 없다?』 『IMAGEABLE PLATE-AU』 등 다수의 공저를 냈다. 현재 본지 발행인이다. p.122 강병국은 본문에 약식 표기함 p.123 한지영, 황수용, 김세진은 본문에 약식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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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동 단독주택 ‘오운’, 조성욱 건축사사무소, 사진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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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나는 봉화군 분천분교 문화체육관광부는 경상북도 봉화군청과 함께 2022년 지역 특화형 친환경 숙박시설 조성 사업을 벌인다. 금회 사업의 공모전 대상지는 봉화군 분천분교(2021년 폐교) 터다. 지역특화형 친환경 숙박시설 조성 사업은 국내 관광 시 여행객들이 체류할 질 좋은 숙박시설이나 규모와 서비스 면에서 부족한 공간이 많다는 판단하에 지역체류형 관광객 유치 및 지역 활력 제고를 위해 공공의 영역에서 숙박시설을 조성하여 특화된 ‘숙박체험’을 제공하고 지역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 소유 유휴시설을 활용하여 민간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지역의 맞춤형 콘셉트의 숙박시설로 조성하여 인근 관광 콘텐츠와 연계한 매력도 높은 지역특화 건축물로의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다. 문광부 관광산업정책과에 의하면 사업이해도와 참여 의지가 높고 매력도 높은 숙박시설로 리모델링 가능한 유휴시설을 보유한 지자체를 선정하여 민간 협업으로 숙박시설 자체가 방문 동기가 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민간협업으로 일반적인 숙박시설이 아닌 지역특화형 숙박시설 조성을 위해 공간 기획·개발팀과 건축설계팀이 함께 콘셉트 및 방향성을 설정하고 추가로 위탁운영자가 협력하여 구체적인 공간·프로그램·운영 방안을 계획하여 시설을 조성한다고 사업의 의의를 전한다. 참고로 위탁운영자는 사전 개발된 프로그램·콘텐츠 및 운영 매뉴얼에 따라 숙박시설 운영 수익을 통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로써 문화 예술자원을 활용한 연계프로그램이나 지역 자원과의 결합을 통한 프로그램 운영 등 다각적인 지역 관광객 유인 사업 추진도 지원한다.
대상지_분천분교 전경
[공모개요] – 대지위치: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풍애길 36 일원 (경상북도 봉화군 분천분교–2021년 폐교) – 대지면적: 9,110㎡ –연면적: 1,019㎡ –규모: 지상 2층 – 설계범위: 기존 건축물 리모델링 및 수평 증축 (숙박시설 기획에 따른 적정규모 제안) – 용도: 학교시설(초등학교, 용도 변경 진행 중) – 예정공사비: 6,924백만 원(부가가치세 포함) – 기획·설계용역비: 490백만 원(부가가치세 포함) [문의] – 경상북도 봉화군 문화관광체육과 관광마케팅팀 (Tel: 054-679-6343) – 공모관리팀 올어바웃플레이스 (Tel: 02-766-5456, E-mail: hotelproject2022@gmail.com)
[사례: 춘천오월학교(2020)]
운동장
카페
스테이
레스토랑
라운지
목공창작소
“강희안(姜希顔, 1419~1464)은 말한다.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작은 것이라도 각각 그 이치를 탐 구하여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양화 소록(養花小錄)』] 그렇다면 황수로의 『한국의 아름다 운 병화』는 완물상지(玩物喪志)가 아닌 관물찰리(觀 物察理)를 깨우쳐 주는 저술이라 할 만하다.” — 이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
“신라에 「도솔가(兜率歌)」가 있으니, ‘오늘에 <산화가 (散花歌)>를 불러 뿌리는 꽃은 곧은 마음의 명이니 미 륵좌주(彌勒座主)를 뫼셔라’라고 전해진다. | <산화 가(散花歌)>는 고대 부여(扶餘)가 행하던 제천 의식 을 담은 노래로, 신라인들은 꽃을 뿌려 신(神)을 영접 하고 있다. | ‘산화(散花)’의 신성한 꽃들이 훗날 한국 의 독특한 개성미를 지닌 병화(甁花) 양식으로 조형화 되었으니, 병화는 불교의 나라 고려 왕조의 화려 장엄 한 불교 문화와 조선조 후기 실학 사상이 탄생시킨, 한 국의 미를 간직한 아름다운 꽃 예술 양식이다.” — 황수로
●
한국의 아름다운 꽃, 병화[甁花] — 화장[花匠] 황수
로[黃水路]의 한국 병화 이야기 | 작품과 논문 황수로 | 편집과 디자인 수류산방(Suryusanbang) | 192쪽
© [Suryusanbang] Lee Jheeyeung
| ● 224×294mm | 값 49,000원
甁 花
한 국 의 아 름 다 운 꽃 , 병 화
18
동숭동, 옥탑방의 저녁노을 뷰(2015) Ⓒ김재경
19
20
석관동, 신혼부부방(2012) Ⓒ김재경
21
PHOTOSSAY
김재경의 포토세이 21
옥탑방, 꿈을 키울 만한 곳 글, 사진. 김재경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
우리 주변에는 틈새 공간이 많다. 눈여겨보면 자투리땅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에 선택하는 공간인 만큼 넉넉한
“멀리서 탑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옥탑방(屋塔房)의 법적
심은 상추도 보이고 파나 푸성귀를 심은 사람의 손길도
생활의 여유는 찾아보기 어렵다. 1960~70년대 산업화
이름은 옥상옥이다. 원래 건물의 옥상 출입을 위한 계단
보인다. 꽃을 가꾸는 마음은 주변을 변화시켜 온화하고
시기에도 도시로 몰린 세대는 싸구려 단칸방을 찾거나
입구 또는 옥외 물탱크를 설치한 15평가량 작은방 형태의
따사롭게 하는 힘이 있다. 햇살 비추는 골목 담벼락
반지하 셋방을 찾아 다녔고, 일터의 환경이 군색해 간이
구조물을 개조한 것이다. 수도법이 바뀌자(1990) 물통을
아래, 한 뼘 화단이나 스티로폼 박스는 식물을 키우고,
숙소든 아예 거기서 먹고 자는 형식이든 가리지 않은
빼내고 그 자리를 정리한 후 얻은 여분의 공간이다.
가까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메리야스와 빤스는 한가한
것은 이들이 도시에서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가받은 건축면적과 용도에 기반한 세금 부과는 개조
도심 주택지의 프로필이었다. 밀집된 고층 아파트라면
아픔이 따르나 그래도 가능성이 아주 없어 보이진 않았다.
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옥탑방으로 개조 후
이런 틈새 공간을 찾아내기 어려울 테지만 그동안의
대다수의 처지와 형편이 그랬듯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내놓은 월세는 알토란같은 수입이고, 세제상의 이점을
밀집 주거지나, 일반 주거지의 사무실, 상점들이 뒤섞인
당시의 문학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는
챙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오래 갈
곳에는 어김없이 옥탑방이 있다. 일터에서 가깝고
우리에게 도전의 대상이고 저마다 꿈과 좌절을 안고
수는 없었다. 법적 양성화 과정을 거치며 과세 대상이
싼 값에 삶의 공간을 마련하기 더없는 곳이며 남의
살아야 하는 점에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되었고, 옥상 구조물을 항공사진으로 찾아내 과징금
시선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서 공간을 누리는
시간은 장소에 사건을 만들고 그 공간을 채운 이야기는
또는 이행강제금조로 세금을 매긴다. 그조차 요즘은
색다른 맛이 있다. 협소한 환경이 쾌적하다 할 수 없으나
기억으로 남아 퍼져 나간다. 개인의 기억이 다수의
기왕의 주택지 재개발에 따른 주거지 변화와 수요 감소로
학생, 직장인, 전문인, 혹은 신혼부부도 살림을 꾸리는
기억으로 번지듯이 특수는 보편으로 옮겨간다. 이렇게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일반주거시설에 비해 환경이
대안공간을 자처한다. 싱글의 주거로 장점도 있으니,
일반화된 체험은 어떤 사실 앞에서 우리의 감성과 이해가
낮은 편이지만 2010년 이후 애초에 주거공간으로 지은
널찍한 옥상마당의 전망은 답답한 일상에 활력을 준다.
찰나적 공감을 얻는 밑바탕을 이룬다. 서로 공감이 가능한
옥탑방은 신축 원룸, 투룸에 비해 거주의 쾌적성이
누군가 경사지 높은 곳에 위치한 옥탑방을 얻었다 하면
상식이 넘치는 사회는 열린사회, 너그러운 이해는 감사와
밀리지 않는다. 너른 옥상 마당으로 나가 바깥바람을
펜트하우스 부럽지 않은 경관은 덤. 그런 옥상에서 채소를
존중이 뒤따르는 식이다. 발레파킹처럼 어느 누군가의
쐬거나 가벼운 운동 그리고 빨래 건조에 탁월하다. 주변
가꾸고 화초를 키우는 사람, 평상에 나앉아 여름 더위를
아이디어는 도시 주차난 해소에 기여하거나 포장마차,
경관이 좋으면 도시의 야경을 즐길 수 있으니 원룸에
식히는 사람, 빨래 너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등 활용이
푸드트럭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순기능이 좋은 예다.
비해 뛰어난 장점이다. 반면 여름철 내리쬐는 지붕의
매우 다양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찾아 들어온 사람이
이처럼 현실에서는 공식(Formal)과 비공식(Informal)이
복사열과 겨울철 한기는 거주자가 견디기 힘든 요건이다.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이며 한 때의 꿈을 키우기에 적절한
서로를 보충하며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여름철 옥상에 물을 뿌리거나 지붕에 농업용 망사그물을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옥탑에 붙어사는 거주의 삶에서 자기 존재 곧 실존에 대한
드리우고, 겨울철엔 비닐하우스를 덮는 두꺼운 비닐을
탐문이 가능하다면 이는 전적으로 삶의 형식에 달렸을
벽에 두르거나 우레탄폼과 스펀지 등으로 창문에 스미는
그러나 옥탑방 생활은 그만큼 감내할 것이 많다. 옥탑방은
터인데, 가진 것이 적은 단순한 삶이야말로 필수 조건에
한기를 차단한다. 화재 때에 옥상으로 대피하는 출입문을
기존 건물에 덧붙여진 부차적인 공간으로, 스스로
가깝고, 그래서 자신을 소유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일지도
함부로 차단할 수 없다.”
해결해야할 일이 많다. 덥고 추운 환경도 그렇지만 이미
모른다.
참조: [나무위키]namu.wiki/w/옥탑방, 2022-02-27
보광동(2012)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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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동, 옥탑방 문화(2012)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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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동, 학생자취방(2012)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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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2012)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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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2012)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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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동(2012)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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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1)
GAIA Topic 전쟁은 미친 짓이다.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용납돼선 안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은 온 인류의 아픔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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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꼭지의 명칭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최남선 선생(1890~1957)이 1908년 11월에 한국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발표했던 권두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로부터 100년 뒤 2008년 1월에 창간한 본지는 선생의 계몽주의적 정신과 시선으로 현 인류와 미래의 인류가 함께 살아갈 지구를 향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STOP INVASION STOP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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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미학자의 편지 01
포스트모던의 포스트 X ? : 전주치명자성지 평화의 전당 글. 김원식 예술사학자, 건축역사가
I.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아닌, 내부의 여러 공간을 덮는 큰 포장물-매스 정도로 기능하고 있다.
1981)’라는 영화가 있었다. 최초 개봉 시엔 ‘Postman’을 ‘우체부’로
중정으로 들어가면 그림으로 그려낸 아치, 불필요한 장식적 부축벽, 유리
번역하였으나, 후에 영화의 내용을 고려하여 제목을 영어단어의 음을
위에 그려진 고딕식 첨두아치, 망사르 지붕의 장식 첨탑 등···. 과연
그대로 표기한 ‘포스트맨’으로 정정하였다. 경우는 다르나 문화계에서
포스트모던적인 모순적이고 중의적인 표현으로 그득하다.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운동이 등장하며, 기존에는
은근히 발견되는 건축요소들의 낯선 조합보다도 나를 가장 많은 생각에
‘현대’로 번역되던 ‘modern’이란 형용사가 어느덧 슬며시 ‘근대’로
빠져들게 한 것은 왜 이 시대에 ‘포스트모던 양식’을 채택하였는지의
바뀌었고, ‘post-modern’을 ‘탈근대’로 번역하여 혼란스런 용례를
여부이다. 아울러 이 건물이 서 있는 곳이 전주이기에 과거 1980년대의
보인 때도 있다. ‘post’는 ‘~후’를 가리키며,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던 열풍과 아울러 문화와 전통에 대한 몰이해라는 죄명으로
모더니즘으로부터 벗어난다기 보다는 그것을 이어받는 동시에 견고한
수많은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전주시청사 역시 자연히 떠올리게
모더니즘 외의 가치들 역시 부가적으로 받아들이는, 상대적으로
되었다. 당시 전주시청 건물과 독립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는 아마도
후발성을 내포한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탈근대라는 표현보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열풍에 몸을 싣는 것이 안전한 것이고, 자신이 그러한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의 사용이 적절한 것으로
지류의 하나가 되는 합리적 창작물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사료되었던 것이다.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건축물들은 단순히 이종(異種)과 아종(亞種)의 요소들을 혼합하여 생겨난 결과물로 이루어졌으며,
II. 전주(全州)에 들러 예정에 없던 곳을 불현듯 방문하게 되었다.
두고두고 최악의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아마도 매순간 사고를
동행인들이 이끄는 대로 산길을 올라 너른 주차장에 이르니 전면에
정련시키며 예술적 사고와 연구에 집중하는 사람은 그의 건축물들은
포스트모던 양식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조각물,
포스트모던 건축에도 해당되지 못하는 아류임을 밝혀내고, 주장할 수도
안내판.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 등 모두 천주교 일색이어서 그제서야
있을 것이다.
천주교 소속 건축물임을 파악하게 되었다. 간단히 ‘평화의 전당’이라고들 부르길래 논란거리인 모 대학의 ‘평화의 전당’을 떠올리며 이 건물이
III. 포스트모던에 대한 몰이해는 그러한 건축가만의 것이 아닌 당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성격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건물 파사드를 보면서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창 불어 닥치고
사무실을 모아놓은 오피스 빌딩, ‘콤플렉스’, 소위 ‘센터’ 정도로만
있던 포스트모던에 관한 관심은 건축가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생,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당황케 하였고, 그 의미와 적절한 새로운 방향을 찾느라 모두들
밖으로 나와 측면으로 눈을 던지니 비로소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정신이 없었다.
건물임이 파악된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필자가 귓가로 흘려듣던
드디어 어느 날 새로운 건축의 흐름을 논하기 위한 토론이 공간사랑
그저 그 어떤 천주교 기념관이라고 생각했던 건물, 정확한 명칭으로
강당에 마련되었다. 막 떠오르고 있던 신진 엘리트 학자가 토론의
‘전주치명자성지 평화의 전당’은 전체적으로 보면 장축형 건물이다.
시작을 선포하였고, 엘리트 건축가와 비교적 젊은 교수 여럿이 패널로
건물의 성격을 파악하니 곧바로 거대한 바실리카를 연상시키는 건물 두
참가하고 있었으며, 청중석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진행된
동이 중정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놓여 있는 형국으로 느껴진다. 필자의
토론은 아마도 모든 패널들이 정확한 지식과 판단을 내리고 있지
상상에 의하면, 두 부분을 연결하는 날개 부분은 형식적으로는 주랑으로
못했다고 즉각 판단될 만큼 내용은 초점을 맞추지 못해 지지부진한 것은
구성되어 내부 중정, 즉 회랑(cloister)을 형성하는 것이 그럴듯할
물론, 탈선되어 원래의 방향과는 다른 궤도를 그리며 진행되고 있었다.
것이다. 파사드로는 파악되지 못했던 이 건물의 매스 구성은 서구의
해외에서 막 귀국해 도착한 어떤 해외파 신진 인물은 청중석에서 단상을
대수도원을 연상시키나 실제 상세에 있어서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향해 나름 열심히 질문을 하느라 - 아마도 자신을 각인시키느라 –
형식의, 우리가 흔히 생활하며 접하는 일반적 건축물의 평면배치 방식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운 청중의 바람에 부응하지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관념적으로 바실리카를 연상시키는
못하고 그 역시 허공을 치고 있었다. 청중석에서 바라보던 송민구 선생은
건물의 주 건물동은, 그 자체가 바실리카의 공간을 내포하는 것이
기호론을 중심으로 간략하고 명료하게 포스트모던 개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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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였다. 송민구 선생은 ‘공부들 좀 하셔야지’라는 일갈을 남기고
못해 나타나던 현상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그를 수행한 젊은이와 함께 홀연히 자리를 떴다. 그의 행동은 사람들을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향한 단호한 나무람과 항의였다. 당시 그는 기호론, 구조주의 언어학 등에
그런 가운데에도 이소자키 등 몇 인물은 포스트모던 시대뿐만 아니라
기반한 논문, 저술로써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소수였겠지만
포스트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적절히 변신하여 고려의 대상이 될 만한
적어도 그 자리에 참가한 학생들은 스스로 새로운 분야의 길을 개척하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있거나 송 선생 등의 논문에 의해 동기가 촉발된 이들로 맹문이들만은
필자는 그런 연유로 그 현상이 해학적인 동시에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아니었다. 그들은 단상의 인물들에 비해 웬만한 것, 최소한 알아야 할
이소자키 아라타의 팔라디오 관련 동영상을 지금도 가끔 꺼내 본다.
것은 알고 있었던 상황으로 생각된다. 패널로 참석할 것을 수락했으나
동영상에서의 이소자키는 영어로 팔라디오 건축에서 겪은 자기의 경험과
최후의 순간에 핑계를 대고 줄행랑을 친 사람 등, 배후에서 이루어진
생각을 동아시아적 표현과 감각적 방식으로써 서술하는데, 그의 허술한
우스운 일에 대해서도 필자는 웬만큼 알고 있어서 그 실망은 한이
일본식 발음을 보충하느라 영어에 영어 자막이 달린다. 동양인이 서구의
없었다. 필자에겐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던, 성과가 하나도 없는 학술적
합리적, 고전적 건축을 그들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의 말은 동양적
성격의 빈 토론회로 비쳤던 것이다.
감각과 감성적 경험을 싣고 있으며, 그 서양인의 언어에 서양 자막이
한 달 후 《공간》지에 수록된 그 토론의 내용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달리는 기묘한 동영상이다. 그가 쓴 글과 설계한 건축물의 작용과
순수한 창조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당시 한 사람이
역할은 이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과 유사한, 문화적 거리감과 차이,
책임을 지고 그 내용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즉 완전히 100% 가공인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징후라고 생각된다.
토론 내용, 시나리오가 실린 것이다. (온전한 토론 내용이 출판되었더라면
이소자키는 포스트모던 시기에 ‘Ledoux Connection’이란 글을 쓴 적이
굉장한 망신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끄기와 지적 능력은
있다. 이 글은 프랑스의 쇼(Chaux)마을의 소금공장(Saline d'Arc-et-
별개로, 사실이 아닌 창작물의 창조란 부분은 여전히 찜찜하다.
Senans)을 참조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적잖은 시간을 살며 르두의
당시의 지적 분위기나 수준을 알려줄 수 있는 토론의 진실성이 완전히
건축물을 체험하였고, 그 체험이 다수의 작품의 영감, 토대가 되었다고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였다. 아마도 일본 건축가 중에 주체적으로 서양을 향해 시류에
유학으로 긴 시간을 보낸 후 귀국하니 그동안 숨기고 있던 패널들의
걸맞은, 그리고 논지적으로 적절한 포스트모던 건축물을 제시한 인물
진면, 정체들이 차츰 알려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에
중의 하나였던 그는 서양 건물을 마주하여 이성주의자, 합리주의자인
당시 토론의 시작을 선포했던 그 학자를 만났다. 그는 이제 돌아보니
서양인과는 다른 신체적이고 감성적인 프로세스로써 접근하고 있음을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 포스트모던 운동이었다고 언급한다. 사실 이
보여주었다. 그는 서양 건축분야의 움직임과는 색다른 포스트모던의
부분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젊어서 목격한 바가 있어 듣기가
작품을 이어갔던 것이다. 이후 그를 비롯한 엘리트 그룹의 ‘post-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activity’는 ‘post-포스트모더니즘’으로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이행하였던 것이다.
IV. 이 부분은 우리의 위치를 알기 위해 서구보다는 이웃 국가와의 비교를 전제하도록 한다. 앞에서 언급된 그러한 지리멸렬은 본인
V. 포스트모던 운동이 등장함으로써 적어도 서구 문화에 대한 기존의
개인뿐만 아니라 필자가 속한 공동체로서의 우리나라 건축문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 정신 상태 등이 땅바닥에 내쳐져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된
풀릴 수 없는 콤플렉스로 느껴져 청년기엔 좌절스런 마음이 들기도
계기가 되었음을 필자는 높이 인정한다.
했다. 그러나 유학으로 출국 후 우리나라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러나 우리 건축문화를 돌아보면, 위에서 언급된, 우리나라에 비해
그들에게도 역시 동일한 문제거리가 생활의 큰 부분임을 알게 되어
비교적 순조로운 순차적 진행이 가능했던 그러한 기회와 노력은 갖지
근본적으로 그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도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못했다고 생각된다. 문화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리 귀중하고
건축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강했던 일본의 문화계와 지성계에 대한
중요한 자리를 점하고 있지는 못하며, 그 의미 자체의 비중이 그리
직접적 지식이 거의 없던 필자로서는 포스트모던운동의 여파 덕으로
높지 않음에도 우리의 건축역사는 그에 미치지 못해 표피적인 모방과
그들의 근본 중 큰 부분을 본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여러
몰이해로 수렴되곤 하였다. 불과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완성도가 낮거나
각도에서 우리나라에 비해 이미 많이 발달하고 진척되어 있는 것은
그저 팬시한 조형, 장식의 대상물 정도로 한정되곤 하였던 것이다.
사실이었지만 1980년대 중후반 포스트모던 운동이 창궐하던 시기
‘전주치명자성지 평화의 전당’, 더 연장하여 포스트모던식의 건축은 더욱
대다수의 그들이 보여준 정신적 태도는 유수의 건축 서적과 잡지에
견고한 정신적 준비와 마련이 전제되지 않아 시대적으로, 정신적으로
등장하던 작품과는 유리된, 다른 차원과 양상을 나타내곤 한다고
자기 자리 찾기가 수월하지 못한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예를 통해
느껴지기도 했다. 포스트모던 운동은 우리 전체를 흔들어 몽땅 같은
포스트모던의 체계에서는 건축물이 공허한 논리만을 보여주기 쉽다는
높이의 표고(標高) 0m에 떨어뜨린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다. 한동안
단점을 지니고 있음이 발견된다. 이곳저곳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러한
일본 건축가의 작품해설 중 권위 있는 글들은 거의 모두 서구인이
건물의 대부분이 표피적이며 장식적인 유희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게
작성한 것으로 일본인 자신들의 글이 강력하게 어필된 예는 거의
되는 까닭이다.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작성한 학술적인 글들이 국제적 저널에 간간이 발표됨에도 불구하고 학파를 형성하거나 지속적인 흐름과 연결 역시 그들의 나라 밖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주변 나라들도 서구의 문화 및 역사의 두께를 관통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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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동 교수의 라이브러리
〈전람회의 그림〉 중 ‘키예프 문’을 보고 : 음악가, 건축가 하르트만을 기리다 글, 자료. 김정동 우리근대건축연구소 대표
일어나라 우크라이나! 나는 오래전부터 외국 속의 우리 건축, 그리고 장소 찾기에 몰두해 오고 있다. 대부분 일본, 중국 그리고 구미제국(歐美諸國)이었다. 마침 1990년 한러수교로 소련(蘇聯) 즉, 러시아도 시야에 들어왔다. 그즈음 러시아 모스크바의 남쪽, 우크라이나(Ukraine, UKR) 수도 키예프(Kiev)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81)의 LP, 〈전람회의 그림〉을 통해, 한 건축가에 대해 알게 됐고, 그를 토픽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 1995.7.
키예프 공국(公國)은 흑해(黑海, Black Sea)에 면해 비잔틴, 페르시아와의 교류 루트로 번성했다. 9세기 이래, 러시아 3대 도시의 하나로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러시아와는 지정학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다. 키예프를 지금 ‘키이우’라 한다. 어쨌든 지금 그 키예프도 러시아의 ‘전쟁걸이’에 난장판이 되고 있다. 이 글을 쓰기로 했던 때 바로 종전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지금도 그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푸틴의 미사일과 탱크에 우크라이나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박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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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시 내놓는다. 러시아, 프랑스어 버전이 기본이다.(재킷 1)
이사했다. 그는 귀족층 관습에 따라 10세 때(1849) 근위(近衛)사관학교 예비학교에
나는 지금 러시아 LP 몇 백 장을 갖고 있다. 그중 무소륵스키의 것은 20여 장이다.
하르트만 키예프를 그리다
입학, 1856년 졸업, 출세가 보장된 장교 생활을
우크라이나의 것도 몇 장 있다. 무소륵스키의
무소륵스키는 러시아 프스코프 주(州)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22세 때(1858) 군을
조곡(組曲) 〈전람회의 그림〉(Tableaux
카레보1)에서 대지주의 네 아들 중 막내로
떠나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D'une exposition 혹은 Pictures at an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농노(農奴)의
1850년대 무소륵스키와 건축가 빅토르
Exhibition)은 1874년 피아노곡으로 작곡된
딸이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영향을 주게
하르트만(Victor Hartmann, 1834-73)은
것이다.(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프랑스
된다. 그는 열 살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생 신분이나 교육 정도가 비슷했으리라
작곡가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된 것이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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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레보는 그의 탄생 1백 주년을 즈음하여 무소륵스키로 개명됐다.
보여 진다. 하르트만이 다섯 살 위였으나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킷1. 키예프의 문 스케치 여섯 장 중 한 장이다. 하르트만은 과거 러시아(Ancient Russia), 슬라브 투구(Slav helmet)와 작은 돔(copola shaped) 모양을 스케치에 사용했다. 왼쪽은 문, 오른쪽은 종탑이다. 3개의 문과 3개의 종이 달려 있다. 가운데 문은 높은 사람용, 그 양쪽 문은 보통 사람용이다. 투과 장식 버트레스가 양쪽에 있다. 비교적 웅대한 규모(Massive style)이다.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의 창단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1883-1969)의 지휘 런던 판(1959), 그 후 일본판으로 다시 냈다.(1969)
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06
2 재킷2. 런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것인데 키예프 문을 표지로 삼았다.(Allan Steckler 제작,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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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를 지냈기 때문이다. 하르트만은 당시 러시아에서는 의식 있는 젊은 건축가의 한 사람이었다. 무소륵스키가 32살 되던 1873년, 하르트만은 아깝게 일찍 죽었다.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Vasilievich Stasov, 1824-1906)는 하르트만이 사망하기 3년 전쯤, 자기 별장에 무소륵스키와 하르트만을 부른 적이 있다.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러시아 최고 건축가 바실리 스타소프(Vasily Petrovich Stasov, 17691848)의 늦둥이 아들이었다.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음악, 미술평론가로서 러시아 황실박물관의 디렉터였다. 하르트만 유작전(遺作展)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전시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 사후 6년이 되어서야 림스키 콜사코프(Nikolai Rimsky Korsakov, 1844-1908)에 의해 출판되었다. 림스키 콜사코프는 무소륵스키와 같은 사관 생도였고 음악 친구였다. 그리고 〈전시회의 그림〉 악보(樂譜)는 블라디미르 스타노프에게 증정(Commemorating)되었다. 건축 드로잉, 음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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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에 걸려 있던 그림은 순수 회화가 아니고 궁전(Tuillerien Dispute d'enfants apres
‘건축 드로잉, 스케치’였다. 무소륵스키는
3)
등이다. 건축과 관련된 주제가 대부분이다.
1874년 하르트만의 유작 전람회가 열린
jeux)’, ‘리모쥬의 시장(Limoges- le
‘프롬나드(Promenade, 산책로)’는 장면 이동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전시회장(전람회장)에서
marché)’,4) ‘키예프의 대문(La grande porte
위해 설정해 놓은 것이다. 산책하듯 2, 3, 5,
그의 전시품 10장을 보게 되었다. 그를
de Kiev, 영어로는 the great gate at kiev)’,
7번째 그림 사이에 붙여 넣었다. 그 중 ‘오두막
애도하는 마음에서 그 10편에 곡을 붙여
‘오두막 집(La cabane sur pattes de poule,
집’의 건축 도면이 지금 남아 있다.
그에게 증정한다. 불멸의 세계로 이끌어 준
닭의 다리 위에 있는 오두막)’ 그리고 ‘발레를
하르트만은 청년 시절 프랑스 여행을 하고
것이다. 곡은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시를 읊는
위한 무대장치(Ballet des poussins dans
파리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장면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leur coquille, 달걀껍질 속의 병아리 발레)’
전통적 목조건축을 벽돌건축으로 바꿔 나가는
2)
곡의 장면은 ‘카타콤베(Les Catacombes)’, ‘옛 성(Le Vieux château, 古城)’, ‘튀일리
3) 프랑스제정시대에 파리 세느 강변에 있던 궁전인데 지금은 그 궁전의 일부가 루브르 미술관이 되었고 공원이 되었다.
2) 여기의 카타콤베는 로마의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것이다.
4) 프랑스 중부 리무쟁의 시골도시이다. ‘칠보’로 유명하다. 파리에서 남행열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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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 섰다. 목재와 벽돌과 같은 전통적인 건축 재료의 사용을 기초로 한 그의 서민적 건축형태 탐구는 러시아 건축의 발전에 큰
재킷3. 독일 함부르크 판이다. 전람회의 그림 중 가장 적절한 그림이다. 전시 그림은 왼쪽부터 하르트만, 키예프 문, 병아리 춤(ballet of the chicks in the shell), 카타콤, 시계 순이다. 10장면 중 5개만 그렸다. 판 제작자(hartmut pfeiffer)가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레코드 재킷에서 음악과 건축 읽기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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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4. ‘일어나라 우크라이나(You shall rise, Ukraine!)’, Commemorating 60주년 판, 사진,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은 키예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대표적 정교회 수도원이다.(캐나다 ARFA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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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하여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무소륵스키)
공헌을 해 이후 러시아의 붉은 벽돌 건축의 효시가 되었다. 그가 개발한 목조건축의 변용은 그가 모스크바에서 1872년 첫 민족 공예 전시회를 위해 설계한 공예박물관에 나타났다. 그는 이 박물관과 국민극장의 철거 때 그리고 그가 죽을 즈음 러시아에서 인정받게 되었다.5) 하르트만은 키예프 성벽 주 출입구에 대문을 계획한다. 이미 성문은 있었으나 그가 새 계획안을 낸 것이다. 그의 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선문(凱旋門) 타입이 아니다. 대문의 아치와 탑의 둥근 지붕(돔)은 모스크다. 마늘을 엎어 놓은 것 같다. 대문은 도시의 문 같지가 않고 목가적인 문으로 보인다. 동양적 요소가 큰 ‘아라비안 나이트’에나 나올 법한 문이다. 3개의 아치와 1개의 탑이 붙어 있다. 문은 비례가 맞지는 않으나 곡선을 이용했기에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탑에 달려 있는 3개의 종은 직설적이기까지 하다. (재킷 2) (재킷 3) 우크라이나를 생각하게 하는 샹송이 하나 있다. 1969년 프랑스 샹송가수 다니엘 비달(Daniele Vidal, 1952-)이 부른 〈천사의 낙서(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Aime Ceux Qui T’aiment)〉이다.(작곡, 파트리샤 카르리, 작곡 포촌킨)(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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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첫머리에 우크라이나가 나온다. Dans les plaines de L’Ukraine우크라이나
Peut revenir de la sorte다시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평생 친구이기를
행려병자로 지내다 1881년 42세의 나이에
벌판의
S’il le veut toute sa vie”
육군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Sur les murs gris des maison회색 집
바란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담벼락에는
(이하 생략, 불문학박사 이윤자 번역)
묘지에 묻혔다. 도스토옙스키, 글린카도 그
살고 있는 사람들
Les gens ecrivent eux-mêmes 자신이 적어놓은
속담이 있어요
En lettres dans ce dicton
가까이 누워 있다. 무소륵스키의 작품이 더 음악도 절절하다. 우리는 이 전쟁 우크라이나
이상 일본식 〈전람회(展覽會)의 그림(繪)〉이
편이다.(재킷 4)
아닌 〈전시회(展示會)의 그림〉으로 고쳐지길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은
“Celui qui passe la porte
단 한 번 친구로서
Une seule fois en ami
5) 엘레나 보리소바, ‘고전주의로부터 결별, 19세기 러시아의 역사주의’, 1989.4, 42-47쪽, 꾸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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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본다.(재킷 5) 무소륵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뒷골목 간이술집에서, 항구 인부나 불량배들과
명이 길어 언젠가 우크라이나에 가게 되면
어울려 지냈다.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
키예프를 먼저 가보고 싶다.
재킷5. 카라얀이 지휘한다. 영국 런던의 Philhamonia Orchestra, 1955년 미국 기념 공연 투어(memorable concert tour) 때의 녹음이다. 1957년 뉴욕의 에인절 레코드(Angel Record)의 것이다. 러시아-영국-독일 미국이 연관된 것이다. 미영독일은 6.25 전후 급격한 호황기였다.
심원문화사업회 2021~2022년도 지원 사업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당선작┃해당작 없음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는 제14차년도(2021~2022) 사업으로 공모한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최종심사 결과를 상기와 같이 발표합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미발표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 논문 포함) 중에서 학술적이며 논쟁적 가치가 높은 응모작을 대상으로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여 시상 및 출판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경과보고] 지난 1월 추천작 발표 후 4월 15일(금) 저녁 7시, 당선작 선정을 위한 최종심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3기 위원회의 심사는 연속 3차례(제13회 1차/2차 심사, 제14회 1차 심사) 비대면(줌)화상회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심사가 이뤄진 장소는 서울 새문안로에 위치한 스페인 레스토랑 엘꾸비또였습니다. 1기~2기 위원회 12년 동안 줄곧 대면 심사를 위한 모임 장소는 인사동 골목에 위치한 누리레스토랑이었는데 제14회 당선작 여부를 가리는 3기 위원회의 최종(본선)심사는 팬데믹 이전부터 수차례 사업회의 펠로우 초청 모임을 가졌던 엘꾸비또로 변경하여 새로운 기운을 북돋고자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지나 3개월여 기 추천된 1편(이수연 작, 〈근대 건설업의 기원과 전개〉)의 응모작에 대하여 1차 예비심사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 깊이 있는 다시 읽기를 수행하였습니다. 심사 당일에는 김영철 교수(배재대), 서정일 박사(한샘드뷰연구재단), 한동수 교수(한양대) 3인의 심사위원이 참석했으며, 김현섭 교수(고려대)는 안식년으로 미국 체류 중이어서 심사평을 서면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심사 자리에는 사업회에서 이태규 이사장과 신정환 사무장이, 주관사에서 전진삼 발행인과 김재경 사진총괄 부편집인이 동석했습니다. 심사는 각 심사위원들이 사전에 작성하여 보내온 심사평을 돌려 읽는 것을 필두로 건축학술상 본령의 의미를 재확인하며, 기 추천작이 그에 해당하는 가를 검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금회에는 아쉽게도 ‘당선작 없음’으로 심사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네 분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함께 게재합니다. 이후 심원건축학술상에 응모를 도모하는 신진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5월 심원문화사업회/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심사평 심사위원 김영철 배재대학교 주시경대학 교수
심사자는 응모작의 심사에서 다음 사항을
청부), 시공(공사) 현장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제정 상황의 측면에서 볼 때, 일반성을
고려하였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부분은 응모작의
확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응모작도 박사학위의
1. 해석의 틀(주제) 2. 주제의 가치와
큰 장점이었다.
논문에서처럼 청부업의 도입과 그 영향으로
의의(역사성) 3. 주제와 내용의 일치(논술 형식)
그렇지만 역사성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단점도
한정하였다면 연구의 목적에 내용이 더 잘
4. 사료, 논제의 구성, 해석의 역량(논증)
있었다.
부합하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토목과 건축의 시설물과 관련하여, 발주 주제: 해석의 틀
주체로부터 계획, 시공, 그리고 완공의 전
논증: 사료와 논제의 구성, 해석의 역량
응모작은 건설업(건설산업)의 의미와
과정에 대한 현재의 관점(근대화의 성과로서)은
응모작은 방대한 양의 사료가 동원되었고,
구조(체계)의 변화 과정뿐만 아니라, 근대
단지 서두에 제시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으며,
저자는 사료(국문, 일어와 한자)의 수집과
개념의 새로운 해명도 기대하도록 하였다.
각 역사적 단계마다 이 관점이 판단과 평가의
분석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
그런데 기술된 본문의 내용에서 ‘건설’, ‘건설업’
척도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부분은 흔히 보기 어려운 큰 장점이었다.
개념과 건축물 혹은 토목 분야의 ‘시공’ 개념은
그리고 청부 개념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
저자는 전체 논문을 특정 시기 단위로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어 혼동하는 모습을
개념의 관점에서 볼 때, 발주자를 관-민(국가-
구성하였다. 대한제국기, 1910-1920년대,
보여주었다. 그리고 해석을 주도해야 할 근대
개인)의 이분법 구도로 설정한 배경, 그리고
1920-1930년대, 1938-1945, 해방이후.
개념 설정도 기구적(직제와 행정)의 관점에
이후 각 과정에서 건설업의 근대적 성격의
무엇보다도 건설 기술의 내용(질적 가치)보다는
머물러 아쉬움이 남았다.
지속성과 합리성의 해명은 소홀히 다루어졌다.
정치/행정 체제(양적 조건)의 관점에서
본 논문은 청부 개념을 통해 “우리나라의
실물 생산의 주체(‘청부업자’)에 대한 경제적,
서술하였고, 각 장의 구분도 역사적 사실의
건설업이 발생한 시점을 앞당겼다”고 결론을
기술적, 제도(행정)적 접근 이외에도 사회적,
의미보다는 수치 편의의 단위로 설정하였다.
내리고 있다. 그러나 기원을 문제로 삼는다면,
계급적 접근도 근대 개념의 정의에 필요해
건설업의 질적 평가 내용에 바탕을 둔 장의
이 개념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단지 시점뿐만
보이지만 이들을 함께 다루려는 고민은 잘
구성이 가독성과 사태 연관을 위해 더 적절해
아니라, 사태의 속성, 구성 요소, 의미 등이다.
보이지 않았다.
보인다.
전개 개념도 중성적이어서 역사성 해석의
그리고 건설업의 구조적 속성과 건축 혹은 토목
본 논문에서 개별 사료의 사용은 적절하였다.
도구라고 하기 어렵다. 역사 연구가 객관적
작품의 완성도나 가치와의 연계도 기대할 수
이를 통해서 건설업의 다양한 조직적 양상을
사실의 나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목의
있지만 다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보여준 탁월함이 있었지만, 서술에서 건설의
근대적 성격과 건설업 속성 관계도 문제의
질적 속성과 그 내적 가치의 성격을 보여주는
여지가 있다. 내용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위
논술 형식: 주제와 내용의 일치
역량이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게도 전체 내용은
개념으로서의 청부 개념은 건설업 분야의
본 논문은 근대 건설업 주제를 통해 생산의
건설업에 관련된 사료의 전개에 머물러 있다.
제도적, 행정적 속성이지만 저자는 이를 근대
주체와 건설 과정의 구조, 그리고 이 주체가
건설업의 특징 그 자체로 해석하는 위험을
자립하고 제도화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우리나라 건설업의 전개
감수하고 있다. 건설업과 근대화 개념 사이의
응모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1890-
양상을 많은 사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연관은 모호한 것으로 남아 있다.
1950년대 청부업의 도입과 근대 건설업의
그렇지만, 이 논문은 근대적 성격이라고 할
형성〉이었다. 그런데 본 심사에 제출된
역사성의 특성, 건설업의 변화가 건축물이나
역사성: 주제의 가치와 의의
응모작은 〈근대 건설업의 기원과 전개〉로
토목 시설물과 맺는 질적 가치의 연관에 대해서는
저자는 1890년의 철도공사부터 1958년
바뀌었다. 이들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질문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로서
건설업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이 기간의
저자는 건설업의 근대적 성격을 청부업으로
심사자는 사료의 다양성에 만족해야 했다.
건설업의 다양한 양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 개념은 독자적
건설 기술의 변화와 건설 주체(정부/민간; 직영/
성격이며, 마지막에 논의된 1958년도 건설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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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 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국내 건설업의 초기 역사를 밝히려는 이
명확하지만), “근대 건설업의 기원과 전개”는
내용이나 내부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연구는 건축역사의 범위를 확장해 포괄적으로
보편적 상황의 표현이어서 앞에 한정사로
못한 내용, 혹은 같은 내용의 반복도 종종
보려는 근래의 연구 상황을 반영하며, 그
‘한국’ 혹은 ‘한국 내’ 등이 필요할 것이다.
보인다. ‘청부업’과 ‘건설업’의 규정 및 ‘전근대적 방식’과의 차이, 행정과 공사 체계의 발전과
점에서 무척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또한 철도공사가 시작된 1890년대부터 건설업법이
둘째, 앞의 연장선상의 견해이기도 한데,
관계된 ‘근대(성)’의 의미, 그리고 저자가 강조한
도입된 1950년대까지, 해당 주제와 관련된
한국인의 활동이 더 집중적으로 조명됐어야
‘연속’과 ‘단절’에 대한 내용 역시 더 명확한
가능한 모든 자료와 사료를 발굴하여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론에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서론에서 “반 식민-
체계적으로 보여주려 시도한 점도 뜻깊다.
일제하에 활동을 시작해 해방 후의 건설업을
민족주의 사관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에 대한
이 연구에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 건설사 및
이끌었던 여러 인사들을 언급함으로써 이들에
비판이 있었으니, 결론에서도 수미상관하게
건축사 연구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다양하게
대한 집중적 조명을 암시했고, 결론에서도
이를 논했다면 더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다.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의 역할을 밝혔다고 적으나 사실 본문은
중요한 자료와 사료의 발굴만으로도 의미가
“한국 근대 건설업은 1890년대에 시작됐다”는
여기에 지면을 그다지 크게 할애하지 않는다.
크다. 하지만 자료가 해석을 압도하도록 하는
논점도 무척 도전적이고 고무적이라 하겠다.
자료 부족의 이유도 있겠지만 연구의 초점이
대신, 해석이 적절히 자료를 제어하도록 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자의 소견에 이
분산된 탓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심사자의
더 좋았을 것 같다.
연구에는 몇 가지 중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소견에는 1900년 전후 국내의 주체적 노력을 배경으로 하여 (1899년 대한철도회사 성립,
마지막으로, 박사학위 논문과 출판기획서(가
첫째는 주체의 문제다. 한국 건설업의
1900년 궁내부 철도원 성립 및 서북철도원
말하는 ‘출판원고’) 사이에, 제목뿐만 아니라
주체를 여전히 ‘한국인(조선인)’에서 찾아야
증치, 1901년 국내 청부업체 등장 등),
기본 논점에서도 다소간의 차이가 읽힌다.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본고에서 중요하게
1920년대 국내 청부업자의 등장에 초점을
박사학위 논문이 후속 연구의 결과로 보완될
내세우는 ‘주체’는 ‘국가’나 ‘건축가’에 대비되는
맞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정이라 말하는데, 어떻게 보완될 수 있을지에
‘건설업자’로서 매우 다른 입장이다.) 이는
특히 1920년대는, 저자에 따르면, “관 발주
대해서도 밝혔다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논쟁적인
‘청부’공사”를 넘어 “청부업자가 ‘건설업’을
이슈이고, 그러한 주체보다 저자의 의도처럼
구축”한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서두에서 언급한
한국 내의 상황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더
부침 이후 1940년대 초 부림상회대림산업가
의미로 인해 앞으로의 잠재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포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목재업체로 대두하기도 했고 영단주택에
이번에 당선작에 들지 못했으나 여러 심사의견을
더 치열한 논리가 요구되는 것 같다. 예컨대
조선인 업체가 참여하게 된 일 등도 핵심
적절히 반영하고 녹여낸다면 더 나은 결과물로
저자가 표현한 ‘한국 건설업’은 ‘한국의
줄거리일 것이다. 본고가 너무 많은 것을
재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동학(同学)에게
건설업’인지 ‘한국에서의 건설업’인지 좀 더
담으려다 가장 중요한 것을 더 도드라지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심사자가 보기에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을 심사함에 있어 심사자 개인적으로는, 이 글에서 자명할 뿐만 아니라
(전자를 포함한) 후자를 뜻하는 것 같고, 이로써 “반식민적 사관을 극복”하겠다고
셋째,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 연구가 방대한
전회차 심사의견에 이미 피력했듯, 튼튼한 실증적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따르지 않았다.
자료를 정리해 보여준 것은 유용하지만 논점에
고찰에 더해 정교한 논리와 해석이 수반된 연구를
‘한국의 건설업’인지 ‘한국에서의 건설업’인지의
대한 좀 더 정교한 논리와 해석이 뒤따랐다면
기대한다. 그것이 “건축역사·이론·미학·비평
문제는 제목에서도 나타나는데(영문 제목
좋았을 것이다. 2~6장은 시기별 서술인데,
등 건축인문학 분야의 신진연구자 발굴”이라는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Modern
7장 결론은 대부분이 각 장의 소결을 반복한
심원건축학술상의 원 취지에 부합한다고
Construction Industry in Korea”는 훨씬
수준에서 그친다. 그리고 각 장에서도 모순된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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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건축학술상 역대 당선작 및 추천작 ⓢ 제1회 벽전(甓甎)-우리나라 벽돌 건축의 조영원리(박성형, 당선작)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김중업과 김수근을 중심으로(강윤식, 추천작)
심사평 심사위원 서정일 (재)한샘드뷰연구재단 자문위원
ⓢ 제2회 소통의 도시: 루이스 칸의 도시건축 1960-74(서정일, 당선작)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본 해방 전후 한국건축가의 정체성(김소연, 추천작) The World after the Eden(박성용, 추천작) 다시 쓰는 김중업 건축론_아버지의 이름으로: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강윤식, 추천작) ⓢ 제3회 해당작 없음 ⓢ 제4회 도리구조와 서까래구조-동아시아 문명과 목조건축의 구조원리(이강민, 당선작) 이상 소설의 인문지리학적 연구-장소(Topos)를 중심으로(차지언, 추천작) ⓢ 제5회 낙선재 일곽의 조영배경과 건축 특성(노진하, 추천작) ⓢ 제6회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이연경, 당선작)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 이미지(문근종, 추천작) 근대 서울의 도시사: 상업 공간(종로)의 변용(김은진, 추천작) ⓢ 제7회 해당작 없음 ⓢ 제8회 근세 도시사-아키치(明地)와 다이치(代地)를 통해 본 에도(江戶)(이길훈, 당선작) ⓢ 제9회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발전국가시기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 1962~1973 (강난형, 당선작) 현대 건축의 자율성과 비판성(이경창, 추천작)
이 응모작은 189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상황까지도 닿아 있는 우리나라 건설업의
한반도와 대한민국에서 “건설업”이 어떻게
근대적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발전되었는지 추적하고 해명한 작품이다.
키워드를 1890년대에 처음 나타난 청부제, 즉,
건설이 건축·도시문화의 토대임에도 불구하고
발주자-시공자 간의 “청부업적” 계약관계의
지금까지 그 근대적 역사가 학문적으로 덜
확장에서 찾았고 그것을 기반 삼아서
다루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기에, 이 새로운
근대건설업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저작이 제출된 것은 비록 그것이 1편의
그래서 저자는 일제강점기 관영 건축물
응모작이었을지언정 반가웠다. 동서양의
청부업에서 설계와 시공이 분할된 사실을
근대화과정에서 건축과 건설이 각자의 지식과
지적했고, 조선총독부가 중앙집권적으로 총괄
기술을 추구하며 별개의 전문영역들로
관리하다가 청부계약을 확대하자 그것이 당시
발전했고 나중에는 제도와 교육에서도 분리된
건설업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든지, 1920년대
점, 그래서 원래는 친근하고 통합된 분야였던
청부업자들이 “수직 수평 계열화”하면서
것이 결국 대립·모순 관계를 형성하게 된 점을
스스로 건설시장을 개척했다든지, 해방 이후
떠올리면, 건설업의 역사적 발전을 해명하는
청부계약 조건이 건설업체들의 법인화를
일은 더 나은 건축문화, 더 통합된 문화를
부추겼다든지 하는 발전에 대한 서사를
모색하는데 상당한 의의가 있다.
제시한다. 비록 해방 이후 건설산업 재편에 대한 설명이 앞장들에 비해 약해 보이고, 이는
저자는 한국사 분야의 관련 연구 성과를
또한 미국의 근대건설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참조하며 새로운 사료도 많이 발굴하고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전체 서술의 틀은
정리했고, 무엇보다 저자가 설정한 시공간적
상당한 일관성과 설득력을 지닌다.
ⓢ 제10회 유원지의 수용과 공간문화적 변화 과정(김정은, 추천작) 식물원의 탄생(김정화, 추천작)
범위에서 여러 가지 사실과 현상을 하나의
ⓢ 제11회 한국 ‘근대부엌’의 수용과 전개(도연정, 당선작) 북한의 주택 소구역 계획에 관한 연구(김민아, 추천작) ⓢ 제12회 근대 한국 건축문화유산의 형성과 보존–일제강점기 “보물 건조물” 수리공사 연구(서효원, 당선작) 안동문화권 정자건축의 특성에 관한 연구(박동주, 추천작) ⓢ 제13회 왕릉 정자각을 통해 본 조선후기 관영건축의 시공기술(이상명, 당선작) 한국 건축의 경계 공간 : 첨과 퇴의 기원과 변화(배창현, 추천작) 궁궐 연향 공간 연구(석진영, 추천작) ⓢ 제14회 근대 건설업의 기원과 전개(이수연,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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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제로 통사적으로 엮어 내려고 노력했다.
다만 세부 수준에서 논증의 풍부함과 서술의
짐작하건대 전근대와 다른 근대건설업의 핵심
치밀성이 부족한 대목들이 발견되어 아쉽다.
키워드를 찾는 것부터가 상당히 고심거리였을
학술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건축 및 관련
것 같다. 가령 건설 분야의 신기술, 신공법의
분야의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논지와
등장과 발전, 전문화와 분업화, 대량생산화,
무관한 부차적인 정보들을 정리해야 하겠다.
건물의 상품화와 시장화, 자본의 축적과 새로운
청부제의 근대적 성격이 건설업의 나머지
생산 관계 형성 같은 근대적 이슈들 가운데
중요한 근대적 특성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무엇이 건설업의 핵심이자 한반도의 맥락에
더 긴밀하고 풍부한 설명을 확충하면 좋겠으며
특히 유효한 설명을 제공할 것인가? 나아가
그렇게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이에 따라 시기적 발전과정을 구분하고 전체
그래서 저자와 다른 연구자들이 건축과 건설을
서사를 구성할 것인가? 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아우르는 폭넓은 조망을 발전적으로 제시하게
이에 대해 저자는 근대적인 “행정체계와
되길 바란다.
공사체계”를 보라고 가리킨다. 즉, 해방 후의
심사평 심사위원 한동수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심사평에 앞서 먼저 이번 심사에 임했던 개인적
바이다. 다만 논지의 전개를 위해서는 좀 더
출발하고 정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소회를 밝히고 싶다. 작년에 처음으로 심사위원
명확하고 정교한 분석과 해석은 물론 특히
전개되었고 그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위촉을 받고 지난 심원건축학술상의 응모작과
각 장절의 연계성이 보다 긴밀하게 이루어질
서술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나 이러한 내용이
당선작을 두루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필요가 있으며 균형감 역시 요구된다.
소략해 과연 전통적인 영조에서부터 청부,
자신의 박사논문을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건설이라 하는 것으로 변화해 가는 연결고리를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응모작이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응모작에서 주장하는
1편에 불과한 것에 대한 실망감도 크다. 최소한
핵심 키워드 청부업, 건설업을 어떤 시각으로
2편 정도는 되어야 서로 견주어볼 의미라도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각 시기별로 용어의
그밖에 응모자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기초적인
있는데 1편만을 심사하는 것은 그 부담과
쓰임과 적용 범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변화
역사 사료에 대한 입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어려움이 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건축이라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매우
없다. 일본인 또는 기관에 의해 생산된 사료를
분야가 가지고 있는 연구의 폭과 깊이에 한계가
중요하고 설계, 시공, 조직, 경영 등의 개념들을
무조건 선입견을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간의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한다. 만일 왜곡과 불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학술상 결과로 미루어 지원할 수 있는 범주를
여기서는 이러한 부분이 서로 혼재되어
있다면 그것은 연구자의 분석을 통해 입증을
미리 예단한 탓일지, 나아가 관심의 부족일지,
있어 서술의 일관성을 잃게 되었고 그렇다
하면 되는 것이다. 미리 전제를 두고 바라보는
홍보의 한계일지,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다.
보니 장절의 제목과 내용이 충돌이 일어나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1편이든 여러 편이든 숫자가 질을 담보하는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 보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 조정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아쉬움이 남는다.
제시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결국 1편의 응모작을 가지고 판단을 하기 보다는 비교의 잣대로 기존의
다음으로는 응모작의 중요한 연구 성과라고
수상작은 물론 미수상작을 되돌아볼 수밖에
이번 응모작은 〈1890-1950년대 청부업의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인 건설업의
없었다. 그럴 경우 과연 이번 응모작의 수준을
도입과 근대 건설업의 형성〉이라고 하는 응모자
기원에 관한 문제라고 보여진다. 이 역시 앞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심사자 스스로
자신의 박사논문을 〈근대 건설업의 기원과
이야기한 청부업, 건설업에 대한 시각과 연결이
반문을 해 볼 때 전체적인 논지 전개의
전개〉로 제목을 바꾸었고 각 장의 시작 부분에
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전근대 시기의 건설,
완성도와 주장에 대한 논증의 방식 등은
요약문이 추가되었는데 목차와 내용을 비교해
사실 건설보다는 영건이라고 불리던 부분에
만족스러운 당선작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볼 때 대체로 학위논문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관한 분석이 기존의 몇몇 자료 인용으로는
있다고 평가하였다.
판단이 된다.
부족한 감이 있다. 예를 들어 『영건의궤』 내용 이후 전근대와 근대의 접점에 있었던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응모작을 제출할
이 응모작은 다양하고 방대한 사료를
경복궁의 영건과 같은 사례를 중심으로 한 이
때 만일 그것이 학위논문이라면 논문의 형식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우리나라의 건설업의
시기의 다양한 영건 활동과 관련지어 응모자의
가감 없이 그대로 내기 보다는 연구 주제를
기원을 대한제국 시기로까지 소급하고 해방
시각으로 분석이 있었다면 건설업의 기원을
부각시키고 단행본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이후 건설업이 청부업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다 명확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관점을 세울
있도록 최소한 장절의 재편성과 내용의 조정을
밝혀내는 성과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주장에
수 있었을 것이다.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성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대해서는 심사자 역시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그리고 일본의 청부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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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건축의 코드 04
이일훈과 건축평론동우회 : 건축과 삶의 불일치로 병들어가는 사회를 치료하라 글. 김종헌 배재대 교수, 건축평론동우회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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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한국건축계에서 건축평론 풍토 진작이
건축, 공예, 가구 등 종합디자인지로서
배출하면서 건축평론동우회가 결성되었다.
미흡함을 운위하는 것은 진부한 상황이다. 한국건축
격월간으로 발행했던 《꾸밈》이 1984년 10월
이일훈이 초대회장을 맡고 〈꾸밈 건축평론상〉
평단의 활성화를 위하여 개척할 대지는 아직도 넓다.
50호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건축디자인관련
입상자(가작 이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따라서 이 땅에서 건축평론의 불모를 규명하려면
잡지 최초로 건축평론상을 공모하였다. 〈꾸밈
회칙도 마련하였다. 초기에는 매달 모여
일차적 책임은 건축평론에 뜻을 두고 있는 모든
건축평론상〉은 당시 《꾸밈》지의 주간으로
사회적 이슈나 관심이 될 만한 건물들을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직도 건축계의 제반
있던 김정동 교수의 기획으로 마련된
답사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연말에는 그동안
상황은 혼탁하다. 건축과 관계하는 사회적 여건이
것이다. 송민구(송민구건축연구소 대표),
발표된 글을 묶어 동인집을 발행하였다.
그렇고 건축계 내부의 기존의 질서에 기생하면서 몇
안영배(서울시립대 교수), 윤도근(홍익대
때마침 당시 건축비평지를 표방하는
푼의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일부 건축인의
교수)의 심사로 1부(대학원생 및
《건축과 환경》현, C3이 창간되었다. 《건축과
허위의식 또한 그러하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도
기성건축인)에서는 이일훈이 “건축의 환상을
환경》 주간을 맡았던 명지대 김경수 교수를
홀로서는 건축 평단이 되기 위하여 배척되어야 할
보는 또 다른 시각-안토니오 가우디에
중심으로 건축비평동인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것은 우선은 건축평론이 소수 건축인의 지식의 유희로
대하여”라는 글로, 2부(대학재학생)에서는
건축비평동인이 주로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끝나지 않아야 된다는 것과 건축평론 영역의 확장이
필자가 “깊게 그리고 보다 더 넓게-프랭크
학자들 중심이었다면 건축평론동우회는 평론상
우선 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아울러 건축평론을
로이드 라이트의 고찰”이라는 글로 각각
공모를 통해 배출된 사람들로 주로 현장에서
전달하는 기존 매체의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와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되었다. 처음 진행된
건축 설계를 직접 작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평론에 뜻을 둔 이들의 내적 충실이 기해져야함 또한
건축평론상 공모임에도 응모에 총 58점이
있었다. 두 모임은 1980년대 후반 건축비평의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출품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사회적 필요성에 힘입어 건축 전문 잡지에 활발한 기고를 하며 평론활동을 넓혀 나갔다.
또 해가 바뀌어 건축평론동우회 동인집을 두 번째로 묶으며 심한 자책과 반성을 같이 하며, 부끄럽지
필자가 이일훈을 처음 만난 것은 평론상
《꾸밈》은 이후로도 김진현비회원, 이공희(3회
않은 모습으로 설 날이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회의도
시상식에서였다. 까무잡잡하고 동그란 얼굴과
수상, 1986), 전진삼, 김영철, 유병우비회원
함께 느낀다. 그 속에서도 한 가지 자위할 수 있는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꽁지머리를
(4회 수상, 1988)을 배출하였다. 이후
것은 여기 묶인 그들이 최소한의 이 시대를 지배하는
한 그의 모습을 보며 스페인사람 같다는
수상자를 내지 못했던 〈꾸밈 건축평론상〉은
파벌주의와 자기 방어적 집단의식을 같이하며
생각을 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1989년까지 유지되다가 이후 《꾸밈》지가
얻은 추하디 추한 건축가적 명성에 편승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 이후
폐간되면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평론의 자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로의 권태와
신촌 보난자라는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1990년 《공간》지에서 〈공간 건축평론신인상〉이
무기력을 채찍질하는 여러 사람을 대신하여 졸필을
모습을 볼 때까지도 그의 모습은 거의 변화가
제정되어 수상자인 조인철(1회 수상, 1990),
맺는다.(이일훈, 1988년 12월)
없었다. 그는 모습만 변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함성호(2회 수상, 1991)가 건축평론동우회에
필자에 대한 마음 씀씀이나 격려와 배려 그
합류하며 모임의 외연을 넓혔다. 그러나
이 글은 이일훈이 건축평론동우회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직접 만났을
《공간》지에서도 〈공간 건축평론신인상〉
초대회장으로서 『건축평론동인집』 제2집의
때나 전화기로 전해지는 그의 마음은 언제나
공모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머리말에 쓴 글이다. 불편하게 살기, 채 나눔,
친동생을 챙겨주듯이 따뜻했다. 그의 다른
멈춰 섰던 건축평론가 배출은 2010년
재색불이, 가가불이 등 건축계와 일반 사회에
모습, 다른 생각은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했을
《와이드AR》이 건축평론동우회의 후원으로
수많은 담론을 던지며 건축 작업을 통해 이를
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았다.
제정한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통해 맥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온 이일훈이 평론상 공모를
잇는데 수상자로 박정현(3회 수상, 2013),
통해 등용된 제1호 건축평론가라는 사실은 잘
1985년 10월 제2회 〈꾸밈 건축평론상〉
이경창(5회 수상, 2015), 송종열(6회 수상,
알려져 있지 않다.
수상자로 이한종, 심영섭, 이선희, 신동훈을
2016), 최우용(10회 수상, 2020)을 배출했고
48
1. 1988년 발행된 『건축평론동인집』 제2집
2
논리의 허구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때문인지 그의 모든 건축 작업은 명확한
사회와 대중은커녕 건축가들로부터의 몰이해의
논리를 통해 진행되었다. 건축은 그의 논리를
실상에서 방황하며 건축가의 명성에 편승하려는
물질적으로 구체화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해도
자세와 현실로부터 때묻지 않으려는 지고지선의
과언이 아니다. 그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건축가와
주장해 왔던 것은 사실 상식과 다른 생각을
건축평론가의 관계에도 지독한 편협과 상호이해의
하자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바른 생각을
단절이 극심하다. 마치 분절과 혼돈이 유행인
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일 뿐이다. 겉으로
것처럼....
화려한 미사여구의 건축이 아닌 실질적인 생활
그러한 상호이해 단절의 극복을 위해 지워져야할
속에서의 건축을 느끼고 경험함으로써 건축과
편견에 대해 생각하자.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건축평론
삶이 일체화 되는 그런 건축세계를 꿈꿔왔다.
자체에 대해 불신과 기피 증세를 보인다. 쉽게 말해
신속하고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생활은
그들은 건축평론이 설탕 묻은 칭송과 찬사보다는
결국 삶 속에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무언가 거북하고 꼬집는 듯한 구절이 많다는 것을
생각했다. 효율적인 삶의 결과로 건축과 삶이
이들이 건축평론동우회의 후기 구성원으로
다분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건축평론의 결과를
분리되고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잃어간다고
합류하였다. 한편 건축평론동우회 내부에서는
이해하려든다. 그러함에도 우리현실에서 건축평론의
생각했다. 그는 건축과 삶이 일치되지 않을
건축평론가협회를 결성하자는 움직임도
활성화라든가 건축평론 풍토배양을 발언하는 경우는
때 사회는 병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있었지만 추진되지는 못하였다.
건축평론가들보다는 건축가들의 발언이 빈번함을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건축평론이 필요하다고
이일훈은 초대회장으로서 건축평론동우회
보면 이성과 감정이 뒤엉킨 이중구조의 아이러니를
생각했다.
모임을 주도하였고 새롭고 젊은 건축평론가들의
느끼게 한다. 건축가들은 건축평론의 기능을 무엇인가
합류를 환영하였으며, 누구보다도 먼저
트집 잡고, 꼬집는 것이라는 소아병적 이해에서 벗어나
언젠가 이일훈을 학과 수업의 건축비평
모임에 나와 이야기를 이끌었다. 그는 항상
건축평론은 건축창작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나타나는
시간에 초대했다. 학생들에게 이일훈의 작품을
화두의 중심이 되었다. 후배들은 그의 한
반성이자, 전문적 대화이며 건전한 문화토론이라는
비평하게 했다. 건축가 이일훈이 학생들의
마디 한 마디에 큰 자극을 받았다. 필자 역시
인식을 가져야 한다. 건축평론의 긍정적이고
작품을 크리틱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이일훈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그와의
생산적인 역할의 이해만큼 건축평론가들의 관심 또한
그의 작품에 대해 비평을 듣기 위해 학교에
만남은 만날 때마다 새로웠다. 사실 만날
확산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와 건축 작품만이
왔다. 학생들과 이일훈 사이의 신랄한 공방이
때마다 그 주변에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평론의 대상이 아니라 척박한 풍토에서 뿌리 내림을
끝날 때쯤 필자가 물었다. 공간 출신들은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건축계의 중심
위해서는 건축계가 지닌 구조적 모순과 사회적 현상,
김수근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데,
영역에서 벗어나니까 오히려 건축이 가깝게
나아가 건축계가 극복해야할 제도적 문제를 관심 있게
김중업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이일훈은 왜
와 닿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가 진행하는
감싸주며 방향을 제시할 자세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김중업의 제자임을 밝히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건축 작업은 언제부턴가는 건축계에서
한다. 건축평론이 창작의 현실과 대립의 관계에 있는
그는 가슴 속 지갑에서 김중업의 사진을
행해지는 방식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시각은 지극히 일반적
꺼내며 내가 왜 김중업의 제자임을 밝히고
e메일로 지은 〈잔서완석루〉가 그 한 예일
것임에도, 그것은 이해되지 않는 상식처럼 우리
싶지 않겠냐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뿐이다. 그의 작업은 건축 작업을 맡기는
모두를 괴롭힌다.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었다. 필자가
건축가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관료의식과 권위주의의
“내가 김중업 선생보다 더 훌륭한 건축가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관장이 되었다고 하자
배제를 위해 발언하고, 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호흡을
되지 못한 상태에서 김중업의 제자임을
나보다 오히려 더 기뻐하고 건축계에서 축하할
맞추며, 건축법은 지키면 손해라는 비뚤어진 대중의식
이야기하는 것은 선생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일이라고 하면서 로비를 해서라도 오래오래
수정을 위해 노력하여 열매를 거둘 때, 우수한 건축
내가 김중업에서 벗어나 훌륭한 건축가로
했으면 좋겠다고 축하해 주었다. 그의 격려
작품이 훌륭한 평론을 잉태시키는 평이한 금언을
성장했다고 생각할 때 이일훈이 김중업의
때문인지 아직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확인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건축인 모두의 관심은
제자였음을 말하겠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누가 회장이었든
분단된 한국현대건축사의 극복과 한국건축의 무한한
건축평론동우회가 최근까지도 유지할 수 있는
잠재력의 발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원동력이자 힘이 되었다.
그의 사회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생각은 『불편을 위하여』(2008년 2월 1일, 키와 채
이처럼 건축평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발행)에서 밝힌 글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가 건축평론에 어떠한 생각을
명료하게 제시한 글은 찾기가 쉽지 않다.
하고 있었는지는 1988년 6월 20일자
30여년이 지난 글임에도 건축평론이 이전보다
“이 책자의 글과 사진은 개인과 사회에 유익한
《건설환경신문》에 쓴 글을 통해서 명확하게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는 건축
목적이라면 저자의 의도를 왜곡, 훼손하지 않는
확인할 수 있다.
작업을 하는 환경 자체가 별로 진전이 없다는
한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것과 같다. 건축계의 이런 상황이 그를 힘들게 건축평론가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그들 또한
했는지도 모르겠다. 건축평론에 대한 생각
2. 격월간 《꾸밈》 통권 50호 표지
49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16
대한민국 최서단의 섬, 백령도와 소청도에서 ‘근대’를 만나다 : 백령도 천주교 공소들과 소청도 작은 마을 글, 자료. 이연경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인천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 그것도
선대암과 현무암 분포지, 콩돌해안, 사곶해안
‘한국 기독교의 섬’ 백령도와
바다상황이 좋아야만 그 시간 안에 닿을
및 천연기념물인 점박이물범 서식지 등 자연이
백령도 중화동 교회
수 있는 섬 백령도. 그리고 그 옆의 작은 섬
아름다운 섬으로 이름나 있다. 대한민국에서
2021년 백령도는 ‘한국 기독교의 섬’으로
소청도.
8번째로 큰 섬인 백령도에 비해 면적 2.91㎢,
지정되었다. 한국 기독교에서 백령도는 처음
인구 244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 소청도는
기독교가 전파된 성지로 여겨지는데, 이는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전쟁의 위험이 커질
아직도 화물선이 닿지 않을 정도로 개발이
1816년 한반도 서해안을 탐사하던 영국
때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이 섬은 북한이
제한된 지역이다. 우리나라 최북단 등대가
함대가 중화동포구에 상륙해 주민들에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북한과 맞닿아 있다.
위치한 이 섬은 한 때 소암도(小岩島)라 불렸을
처음 선물로 성경을 전달한 이후 1832년 한국
남한보다 오히려 북한과 가까운 백령도는
정도로 바위가 많았는데, 지금도 섬의 남쪽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가 처음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해안은 천연기념물인 스트로마톨라이트로
한문성경을 건네고, 이후 한반도 최초의 개신교
속하지만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황해도에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자연 풍광이 절경인
순교자 토마스 목사가 1865년 첫 한국 선교
속하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이 섬의
두 섬에 첫 발을 내딛었던 2021년의 여름,
일정을 시작한 곳도 모두 백령도였기 때문이다.
토박이이거나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그곳에서 ‘섬의 근대’를
이후 1896년 중화동교회가 설립되었고,
이곳의 군부대 소속 군인들이다. 백령도는
만났다. 대한민국 최서단 섬, 남한보다 북한이
사곶교회, 화동교회, 진촌교회, 가을교회,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개발이 제한되었고
더 가까운 섬들의 근대는 어떤 모습일까.
연지교회, 장촌교회 등이 차례로 설립되며
따라서 자연환경이 보존될 수 있어 두무진
백령도 전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지금도 유독 백령도에는 기독교 신도가 전체 인구의 6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중화동교회는 현재도 많은 기독교인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백령도의 역사적 장소이자 관광지인데, 현재의 교회 본당은 언덕 위에 위치한 1968년 4월 8일 신축한 건물로 최근 붉은 벽돌타일을 붙이는 등 내·외부 마감을 변경하는 리노베이션을 하여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전체적인 형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의 본당을 짓기 전에는 현재 교육관으로 사용하는 한옥 건물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 건물 역시 현재는 내·외부 마감재가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어려우나, 193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연지교회 등도 중화동교회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 건축된 교회로 추정되나 현재는 중화동교회와 마찬가지로 내·외부 마감재를 모두 교체하여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옛 정취는 잃어버렸지만 중화동교회나 연지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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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교육관으로 사용되는 한옥성당과 식당, 그리고 언덕 위의 중화동교회 예배당의 모습 (촬영: 이재권)
모두 백령도 근대의 한 모습인 기독교회의 흔적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도 한국 기독교에서 중요한 장소로 의미가 있다. 작고 아름다운 공소 따라 돌아보는 백령도 한 바퀴 한때는 기독교인이 백령도 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했을 정도로 백령도에서 기독교(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지만, 사실상 더 강렬하게 눈을 끈 것은 바로 백령도 곳곳에 남아 있는 작고 아름다운 천주교 공소들이었다. 개신교만큼이나 천주교 역시 백령도에서의 역사가 깊은데, 기록에 의하면 1839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앵베르(Imbert) 모방(Maubant) 샤스탕(Chastan) 신부가 잡혀 의주를 통한 육로로 입국한 바가 알려지자 페레올(Ferreol) 주교는 김대건 신부에게 해로를 통한 밀입국로를 개척하라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백령도가 밀입국로로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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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5월 14일 김대건 신부는 서울 마포를 출발, 백령도에 도착해 앞으로는 선교사들이 백령도를 통한 밀입국로를 이용하라는 페레올 주교의 서한을 중국 선원에게 전달하였고, 이후 1846년에서 1880년까지 메스트르 신부(1852년 입국)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 17명의 해로 입국 거점이 되었다. 백령도에 본격적으로 천주교 전교활동이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인 1947년 장연공소가 설치되면서부터였으며, 백령본당은 1959년 설립되었는데, 본당 성당은 백령도 진촌리에 백령진지가 있던 자리에 1961년 완공되었다. 바실리카식 평면에 하얀 종탑이 인상적인 백령성당은 백령진의 성곽 흔적과 함께 어우러져 백령도의 오랜 역사적 풍경을 만들어 낸다. 약 200평에 이르는 성당 부지에는 백령병원의 모태가 되는 김안드레아병원을 비롯한 고아원, 양로원, 결핵병동 등이 들어서며 백령도의 천주교 선교기지이자 의료 중심지가 되었다. 2019년에는 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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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신심순례지로 승인되며 많은 천주교도들이
관창동 공소를 따라 돌면 어느새 백령도 한
작고 단순한 형태의 두무진과 용기포 공소와
찾는 장소가 되었다.
바퀴를 돌게 된다. 10개의 공소들은 대부분
같은 다양한 유형이 나타난다. 60여년이
1960년대 초반 설치된 것으로 입구를 지나
지나 이제는 다소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지만
백령본당이 완공된 1961년, 백령도 마을
예배당 하나로 된 단순한 구조의 건물이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깔끔히
곳곳에는 백령본당의 공소들이 건설되었다.
나름대로의 멋과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단순한
정돈된 예배 공간과 방문객들에게 항상 열려
백령본당 홈페이지에 소개된 공소 순례길
구조의 작은 공소이지만, 바실리카식 교회의
있는 공소는 백령도의 평화로운 자연 풍광을
안내에 따르면 현재 백령도 내에는 백령본당
모습을 한, 중앙부가 높이 솟은 화동, 장촌,
닮아 있는 것 같다. 리노베이션과 신축으로 옛
외 10개의 공소가 있다. 백령본당으로부터
소가을리, 연화리, 가을리 공소와 같은 유형과
모습을 잃어버린 개신교 교회들에 비해 유독
시계방향으로 용기포, 사곶, 화동, 장촌,
장식적인 파사드가 강조되며 종탑이 따로
백령도의 천주교 성당과 공소들이 매력적으로
소가을리, 연화리, 두무진, 가을리, 신화동,
설치되는 사곶, 신화동, 관창동 공소, 그리고 더
다가오는 건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방치된
2. 백령천주교회 정면(정윤천 촬영) 3. 백령천주교회 측면(정윤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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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무진공소 ⓒ이연경
가을리공소 ⓒ이연경
관창동공소 ⓒ이연경
신화동공소 ⓒ이연경
연화리공소 ⓒ이연경
용기포공소 ⓒ이연경
소가을리공소 ⓒ이연경
장촌공소 ⓒ이재권
화동공소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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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령도의 공소들 5. 사곶공소의 종탑 ⓒ이연경 6. 사곶공소의 예배당 내부 ⓒ이연경
사곶공소 ⓒ이재권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이들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따스한 공간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리석이 나던, 반짝이는 바다를 닮은 소청도 작은 마을 백령도에서 배로 약 30분, 인천항에서는 배로 약 3시간 30분이 걸리는 백령도 남쪽의 작은 섬, 소청도. 이 섬은 면적 2.91㎢, 인구 244명에 지나지 않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여전히 화물선이 닿지 않고 큰 마을, 작은 마을 두 마을뿐인 이 작은 섬은 한 때는 ‘소암도’라 불렸을 만큼 ‘돌’이 많은 섬이다. 남쪽 해안은 천연기념물인 스트로마톨라이트로 이루어져 있는 이 마을은 한 때 국내에서 대리석이 채광되는 대리석 생산지이기도 하였다. 1931년 11월 18일 동아일보에는 장연군 백령면 대청리의 김정호가 소청도에서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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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대리석을 발견하여 총독부에 대리석광 채취허가원을 내고 총독부 기사가 실측한 바 그 면적이 63,337평에 이르고 매장량이 십억 만재에 이르러 일본과 조선의 대리석 채취량이 작아 이탈리아산 대리석 수입에 의존하던 것을 앞으로는 소청도산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향후 수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에 찬 기사가 실려 있다. 1932년 2월 23일에는 전년도 9월 대리석광 채광 허가를 얻은 후 4~5개월 준비한 후 2월에 개광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대리석광의 발견은 작은 섬 소청도에 새로운 ‘산업’이 개시되었음을 의미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당시 대리석 채취를 위해 경성에서 기사를 초빙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대리석광에서 일한 노동력들이 인근에서 오기도 하였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소청도는 항구 부근의 큰 마을과 산을 넘어 등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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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큰 마을에는 항구를 비롯하여 대청면
있었던 집들이었다. 작은 마을의 주택들은
않았고 따라서 건물의 개축이나 신축 역시도
소청출장소와 대청분교, 우편취급소 등
대부분 1910년대 후반~1930년대 건축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청도 작은 마을에는
공공행정시설들이 모여 있어 소청도 생활의
것으로 부엌과 방, 사랑방과 퇴칸으로 구성된
원래 이곳이 고향인 주민들이 대부분으로,
중심이 되고 있으며, 민박이나 식당 등
겹집 민가들이다. 현재는 흙바닥이었던
이들이 고령자이기 때문에, 향후 공가가
관광객 대상 시설들도 적지만 일부 있는
부엌을 대부분 실내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늘어날 수 있으므로 마을의 지속 가능한
편이다. 그러나 작은 마을은 약 40여 가구가
있으며 집집별로 증개축이 더하여지긴 했지만
유지를 위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말 작은 바닷가 마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마을의 경관은 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나 드라마 「갯마을
모습이다. 2016년 지붕 교체사업으로 지붕은
보존되고 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청도에
차차차」에서 볼 법한 바다마을의 고즈넉한
모두 주황색 양철지붕으로 통일되어 버렸지만
화물선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부두에서 먼
풍광이 그대로 남아 있는 소청도 작은 마을,
이 집들은 본래 소청도산 돌너와가 얹혀져
작은 마을에는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는 게 쉽지
조만간 소청도에도 화물선이 닿는 항구가
7~8. 소청도 작은마을 전경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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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소청도 작은마을 전경 ⓒ이연경 10. 소청도 큰 마을 한옥 ⓒ이재권
새로 생기고, 소청도 관광사업이 활발해진다면
가고 딱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
이 마을의 풍광도 완전히 변해버리는 것은
것도 사실이다. 소청도가 관광지로 개발되면
아닐까? 단절된 교통이 만들어 낸 근대 바닷가
이렇게 공가로 남아 있는 집들이 조만간 헐려
마을 풍경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가고 펜션과 카페들이 들어서지 않을까.
한편 소청도 큰 마을에는 수산학교 출신인,
소청도와 백령도에서 만난 근대의 풍경은,
P.S. 본 연재 글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당시로서는 최고 엘리트였던 어르신이
도회지에서 만나던 근대와는 분명 다르지만
세 번째 이야기로 다루었던 용산철도병원이
사셨다는 한옥이 한 채 남아 있다. 인천에서
또한 매력 있는 모습이었다. ‘근대’라는
〈용산역사박물관〉으로 개관했습니다. 새롭게 복원된
배로 목재를 하나하나 다 옮겨지었다는
단어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멀리
로비, 구석구석 경험해볼 수 있는 테라스와 옥상정원
1933년에 지은 이 한옥은 몇 년 전 집주인이
떨어진 섬의 근대 이야기, 2022년은 그
등 원형 고증에 충실하고자 한 용산박물관의
돌아가신 후 공가가 되어 점차 훼손되어 가고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몰랐던, 또
모습을 볼 수 있는데다가, 2022년 9월 18일까지
있다. 마을 사람들 중 뜻을 가진 분들이 이
알려 하지 않았던 또 다른 근대의 모습을
개관기념특별전 「용산, 도시를 살리다 – 철도 그리고
집을 보존하고 싶어 하지만, 집은 점점 낡아만
발견해나가는 시간이 되길.
철도병원 이야기」가 열리니 많이 가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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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기독신문 2021년 6월 23일 기사, 「[역사기획] ‘한국 기독교의 섬’ 백령도 교회들」 2. 경기신문 2021년 10월 14일 기사, 「인천 섬을 가다 48-백령도 천주교 이야기(1)」 3. 동아일보 1931년 11월 18일 기사, 「長淵에 大理石鑛 埋藏量十億餘才–明春에 開鑛한다고」 4. 동아일보 1932년 2월 23일 기사, 「長淵에 大理石鑛」
11. 소청도 등대가 보이는 풍경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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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브리프 정원도시 탐문서
인문학 번역서
건축학 연구서
『정원도시 부여의 마을 동산바치 이야기』
『나무 신화』
『동네에 답이 있다』
김인수, 김혜경 지음
도리스 라우데르트 지음, 이선 옮김,
박기범 지음
목수책방 발행, 2만5000원
심세중 편집, 수류산방 발행, 3만8000원
도서출판 집 발행, 1만 6000원
우리가 사는 동네의 비밀정원-
지금이나 동네 동산바치들이 만들고
이 책 『나무 신화』(원제 Mythos
이 책은 오래전부터 동네에 잠재된
저자의 표현이다-을 찾아서 그것을
가꾸는 정원은 존재했고, 지금도 여전히
Baum)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숲과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며 우리 사회가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것을
그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판단한다.
나무의 자연사와 문화사, 유럽에서
지향하는 삶의 모습은 결국 동네에서
품은 도시의 작은 이야기를 붙들고
이 책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친숙한 35가지 나무들에 깃든 신화와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연구자의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행위의
백제미의 조형 원리라고 말할 수
전설, 민속, 언어 등을 다룬다. 식물학을
‘동네 분석기’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산인가를 확인시켜가는 한 뜸 한
있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전공하고 가르친 저자는 고대 중근동과
‘주거정책 대안 제안서’이다. 저자는
뜸의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북유럽
현재 동네의 모습이 언제, 어떻게
부여가 백제 사비시대의 수도이며
의미의 “검이불루(儉而不陋),
신화, 언어와 민속, 민간의 속담과 민담
만들어졌는지 살피고 각종 통계자료를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잘 알려진
화이불치(華而不侈)”에 기대어 마을
중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옛
활용해 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유명한 역사문화도시로서 아직도
어디서나 관심만 가지면 찾을 수
유럽 사람들이 파악한 나무의 특성과
중간주택의 가치를 분석하고 이들을
부분적으로는 1970~1980년대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정원을 탐문하여
문화적 맥락을 소개한다.
어떻게 살려야 할지 정책 제안을 한다.
푸근한 시골풍경을 볼 수 있는 작은
기록하기로 한다.
농촌 도시라고 말한다. 저자는 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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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원도시 부여의 마을 동산바치 이야기
2. 나무 신화 3. 동네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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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구조학 번역서
건축가 작품집
건축 안내서
도시동네 안내서
『디테일로 생각하는 구조 디자인』
『젊은 건축가, 섬세하게 유연 하게 낯설게』
『스페이스 도슨트』
『연희동 우현이 걷다』
Yoshiharu Kanebako 지음, 건축정보센터
조윤희, 강우현·강영진, 이세웅·최연웅
방승환 지음
우대성, 현영미 지음
옮김, 도서출판 시공문화사 발행, 2만원
지음, 모로북스 발행, 2만원
현암사 발행, 1만8000원
픽셀하우스 발행, 1만8000원
이 책은 구조에 관심이 있는 건축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주최하는
이 책은 도시설계 전문가인 저자가
휴대전화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관계자, 특히 설계 활동을 시작한
‘젊은건축가상’의 2021년
도슨트를 자청하여 자신만의 시각과
찾아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을 의식해 정리하고 있다.
수상자 조윤희(구보건축),
풍부한 자료를 통해 도시 공간과
저자 ‘우현’은 연희동을 충분히 즐길 수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고안된 디테일을
강우현·강영진(아키후드),
건축물에 대한 독특하고 흥미로운
있는 주관적인 ‘진짜’ 지도를 만든다.
부감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보편화하여
이세웅·최연웅(아파랏체)의 건축
해석을 전하는 책이다. 각종 문헌,
걷는 사람들을 위한 이 지도에는 다른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프로젝트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학업과
설계안, 건축가들이 남긴 기록,
곳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좋은 풍광과
개별성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다양한 수련의 과정을 거쳐 독립해
위성사진, 조사보고서, 법률적 부분
장소들, 골목길과 맛집, 계절에 따라
접합부의 설계가 구조계획의 질을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동시대
등 풍부하고도 순도 높은 자료들은
걷기 좋은 길을 다양한 취향에 맞춰
결정한다는 모토하에 엄선된 41개
젊은 건축가들의 건축 일상, 건축적
도슨트의 해설을 탄탄히 뒷받침하며
소개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걷고 쓴
작품의 구조 도판 550점이 상세하게
고민과 바람, 그들이 그리는 내일 건축
흥미로운 볼거리와 새로운 시각을
동네의 보물 지도다.
해설된다.
이야기를 수록했다.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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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디테일로 생각하는 구조 디자인 5. 젊은 건축가, 섬세하게 유연하게 낯설게
6. 스페이스 도슨트 7. 연희동 우현이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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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의 떠오르는 건축가 11
SS2(에스에스투) 전재봉, 임근영 : 만들고 배우며 계속 진화하는 건축가
SS2(에스에스투)는 건축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중인 글로벌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두 건축가는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서로 다른 전공 교육과 건축에서의 다른 실무 경험을 통해 상호 교차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흥미로웠던 점은 건축에 대한 시작과 걸어온 과정은 다르지만 이들의 경험이 상호 보완적 혹은 충돌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웠던 것은 스튜디오 시작 이후 약 1년 반의 짧은 기간동안 다양한 현상설계, 준공을 앞두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 공공예술과 설치까지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며 두 건축가의 건축을 대하는 진정성과 성실성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만들고 배우며 계속 진화하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두 건축가가 어떤 건축가로서 혹은 어떤 실험과 경계 없는 활동을 통해 그들의 미래를 만들어갈지 기대가 된다.(필자 주) 인터뷰 일시: 2022년 3월 중 인터뷰 장소: SS2 office (서울시 가산디지털단지) 참석자: 전재봉, 임근영 (SS2 공동대표/소장), 이태현(본지 편집위원, THE A LAB 대표)
RISING ARCHITECT 58
1. 임근영, 전재봉
ⓦ SS2(에스에스투) 에 대한 소개를
5월부터 진행해온 마포구 서교동 사옥 신축
영화에 참여하였습니다. 제가 그린 공간이
부탁합니다.
현장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지어져서 거대한 스크린에 투영되었던 것은
SS2는 2020년에 설립한 뉴욕과 서울 기반의
틈틈이 현상공모 작업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매우 성취도가 높은 경험이었지만 궁극적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저희는 공공미술,
작년 연말에는 대구시 주최 K2 종전부지 활용
마음이 건축을 향했습니다. 진학하는 대신
건축 및 공간디자인, 설치, 그래픽 디자인 등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조경, 도시계획
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해왔습니다.
전문가와 협업하여 수상하였고, 올해 경상북도
건축의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건축학을 공부하고 예술 학교에서 예술과
농업자원관리원 국제 현상공모에 참가하여
기술을 연마한 전재봉 소장과 시각디자인을
수상하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약 1년 반 동안
ⓦ 두 분 다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셨네요.
공부하고 영화미술 및 건축 실무를 거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열심히
한 분은 쿠퍼유니온에서 그리고 한 분은
건축학을 공부한 임근영의 크로스오버는
했네요.
하버드GSD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건축교육
SS2의 경계 없는 활동을 가능케 합니다. SS2의
측면에서 특별했던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메니페스토는 ‘EXPERIMENT+MANIPULA
ⓦ 처음 SS2는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되었나요?
혹은 한국의 건축교육과 차이가 있었던 점은
TE+FABRICATE’인데요, 말그대로 실험하고,
두 분이 이전부터 사무소를 함께 할 계획이
어떤 게 있나요?
변형하고, 만들겠다는 저희 나름의 다짐입니다.
있었는지 혹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을
전재봉: 제가 공부한 학교만의 특성일 수 있는데,
했는지요?
미국 건축 교육은 아직 핀업 형태의 수업이
ⓦ SS2 라는 사무소 이름이 독특합니다.
기본적으로 저희는 둘 다 무언가 계속 직접
잘 보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넓은 복도의
사무소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근면한 편입니다.
벽을 (PPT나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은)
SS2는 ‘Studio Sweep2’의 약자입니다. 저희는
의기투합하여 같이 사무소를 차리자 하고
날것의 생각으로 가득 채운 후, 친한 친구와
오래전부터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 공간이나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내가 좋아하는
얘기하듯 인스트럭터 및 다른 동료들과 의견을
형태를 만들 때 3D 모델링 소프트웨어인
일을 저 사람과 함께하면 계속할 수 있겠다는
교환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라이노세로스(Rhinoceros)의 Sweep2라는
생각은 해 온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컴퓨터 모니터의 크기가 학생들의 생각을
명령어를 가장 자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졸업하고 두 사람 다 규모가 큰 회사에서 대형
제한하지 않으니 표현에 있어 더 다양하고
발견했습니다. 저희가 매일 쓰는 도구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속으로는 내 스튜디오를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 이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어 SS2를 시작하게
임근영: 하버드GSD에는 거의 모든 학생이
했었고, 하나의 기준선과 두 개의 프로파일을
되었습니다.
계단처럼 생긴 거대한 건드 홀에 모여 있습니다.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언가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형태를 만들게 해주는 Sweep2처럼 저희의 디자인 프로세스 또한
ⓦ 오래전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두 분은 처음
그리고 만들면서 기뻐하고 좌절하는 수백 명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의 미묘한 변형을 통해
건축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저도 같은 일들을 해야 했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어떤 건축학도 였는지도 궁금합니다.
것이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과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Studio
전재봉: 제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공작
많은 것을 익혔습니다. 아침에는 선 두께
Sweep2약자로 SS2를 사무소 이름으로
도감』이었고, 학창 시절 받은 상장의 대부분이
몇 밀리미터 차이를 가지고 3-4시간 동안
결정했습니다.
미술 교과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만들고
토론하고 낮에는 시멘트를 바닥에 쏟아가며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미대 입시는 제 길이
모델을 만들고 저녁에는 건물의 열관류율을
ⓦ 그동안 SS2가 진행해온 프로젝트나 현재
아닌 것 같다는 생각하던 중, 『공작 도감』책에
계산하는 과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의
SS2가 진행중인 프로젝트들은 어떤 것들이
나오던 작업을 하루종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세계는 넓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있는지요?
분야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입학한
앞으로 내가 무엇에 몰두해도 끝없이 건축의
SS2가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는
건축학과에서 정말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립도시건축박물관 국제 현상설계입니다.
다른 과 학생들이 시험 기간에 밤새 책을 펴
타사와 협업해 본선에 진출 및 2등 상을
놓고 공부할 때, 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제일
ⓦ 한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혹은 미국에서
수상하였습니다. 그 후 고덕 신도시 공공
좋아하는 만들고 그리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유학과 실무를 하며 생겨난 두 분만의 건축과
유치원 제안 공모, 어촌 뉴딜사업 마스터플랜
것에 행복해하면서 밤을 새웠던 것 같습니다.
도시에 대한 관심사나 주제 같은 것들이
제안 공모에 타사와 함께 제출한 계획안들이
임근영: 저는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선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습니다. 또한
전공하였습니다.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밤새
오래전부터 SS2는 도시와 건축, 인공물과 자연,
2020년에 계획한 공공미술 작품이 서울시-
작업한 과제물을 종이 한 장에 프린트해가는
인간의 관계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려
문체부 주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게 허탈해서 영화 소모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인공과 자연, 인간과 기계 등
종로구에 설치되었고,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했습니다. 합판에 이런저런 재료로 레이어를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 두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강남구
쌓아 세트를 만드는 일이 특히 재밌었고
가지 상반된 것들이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
삼성동 및 역삼동의 사옥 신축, 구로구 구로동
학부 3학년을 마치고 영화 프로덕션 팀에
혹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관심을
다세대 주택 등을 설계하고 있으며, 작년
들어가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님의
갖고 탐구해왔습니다. 또한 저희는 건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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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OUDS REST WALL 구름이 머무는 담장 ‘구름이 머무는 담장’은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서울, 25부작;에 출품한 공공미술 작품으로, 당시 SS2 사무실 바로 앞이었던 종로구 경기상고 담장 옹벽을 재정비하는 작업이었다. 총 길이가 약 150미터인 경기상고 담장 옹벽은 학생들을 비롯하여 등산객 및 주민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는데 상당히 노후화되어 있었다. 옹벽 상, 하부 식생이 계절에 따라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그 벽에 계속 바뀌는 자연현상을 투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벽면 전체를 바람개비 형상의 조각으로 가득 채워 바람에 의해, 사람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제안을 하였다. 초기에는 가볍고 잘 돌아가도록 플라스틱 사출 모듈로 계획하였으나 유지관리의 효용성을 고려하여 알루미늄으로 최종 변경되었다.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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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으로 인한 하중, 안전성, 작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단면 형태를 여러차례 수정했다. 구조 엔지니어와의 협업을 통해 수직하중, 풍하중, 마찰력, 공기역학 등을 검토하였고, 옹벽의 철근 탐사 및 구조안전진단을 하여 기존의 담에 구조적으로, 시각적으로 가장 최소화된 부담을 주는 프레임을 계획하였다. 또한 여름철 태풍이 왔을 때 금속 바람개비 4500조각이 한꺼번에 돌아갈 경우 발생할 소음에 대비하여 여러차례 목업을 만들며 베어링 성능을 개선하였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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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치 약정 기간인 3년 후 철거를 대비하여 벽 전체를 도색하였고, 바람개비 모듈이 쉽게 해체 분해되어 태블릿 거치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 부속을 제작해 두었다.
건축개요 사업명: 서울, 25부작;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4
위치: 서울시 종로구 경기상고 옹벽 용도: 가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작품 주최: 서울특별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종로구 도시디자인과 규모: 길이 35m, 높이 2m 재료: 압출 알루미늄 모듈 위 불소수지 도장, 아연도금 스틸 프레임, 스테인리스 스틸 부속품 제작기간: 5개월(2021.02.-2021.06.) 전시기간: 3년 (2021.06.-2024.05.) 구조: 은구조 금속: 정한메탈웍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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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완공사진 ⓒ권보준 4. 초기 컨셉 이미지 5. 제작과정-불소수지 도장 전 ⓒ권보준 6. 제작과정-불소수지 도장 후 ⓒ권보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건물의 시스템은 복잡하지만 건축가로서 이것이 아름답게 읽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관심 있습니다. ⓦ SS2를 시작하면서 SS2만의 특별한 목표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WELL MADE ARTIFACT(웰메이드 인공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웰메이드를 구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밀도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EXPERIMENT +MANIPULATE+FABRICATE’라는 저희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웰메이드와 정밀도를 구현하기 위해 건축설계 프로세스를 시스템화 하였습니다.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업무를 최소화하고 노동집약적 업무는 기계화, 자동화하였습니다. SS2의 모든 프로젝트는 전부 100% BIM 설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COVID-19 팬데믹 속에서도 여러 팀과 다양한 협업을 할 수 있었고 동시에 여러 업무의 퀄리티 컨트롤이 가능했습니다. ⓦ 그렇다면 현재까지 이뤄온 목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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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며, 이후 새롭게 더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는지요? 회사 설립 후 가장 최우선 과제이자 목표는 생존이었고 그 다음은 건축 프로젝트 수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전 프로젝트에서 배운 점을 다음 프로젝트에 연속성 있게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연구한 알루미늄이라는 재료는 〈THE BEAUTY OF SCIENCE〉의 주 외장재로 연결되었고, 4층 규모의 사옥건물의 효율적인 공간 조닝에 관한 스터디는 강남구의 〈THE PEAK〉이 들어설 소규모 대지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에 사용되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협업하고, 배우고 만들며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고 싶습니다. ⓦ 그리고 최근 시공중인 프로젝트들도 있는데, 하면서 느끼는 점들은 어떤 게 있나요? 설계사무소 소속 직원으로 일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무엇보다 직접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우선 저희가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는 방식으로 열심히 하면서 비즈니스로서도 지속 가능한 모델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8
7. 도면-단위 모듈 평면, 벽면설치 평입단면 8. 물성 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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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UTY OF SCIENCE THE BEAUTY OF SCIENCE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S사 사옥 신축 프로젝트이다. S사는 세계적인 브랜드의 실리콘 유통사로, 상근직인 업무지원팀과 외근직인 영업지원팀으로 이루어진 회사이며 최소 8대 이상의 영업팀 차량이 수시로 불편함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계획안을 요청하였다. SS2는 클라이언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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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하는 과학자’라 생각하였고 설계 과정의 모든 프로세스를 과학 실험하듯이 진행하였다. 주차의 편의성을 최상위 통제 변인으로 설정하고 지상 1층의 내외 공간 활용도, 코어 배치에 따른 내부 동선의 효율, 업무공간 진입의 용이성, 프로그램의 배치 등 차상위 변인들을 하나씩 더해가며 실험하고 실험군과 대조군의 전력을 능력치 오각형으로 그려 분석했다.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 영향으로 낮은 층고를 가진 건물에 창호 배치를 많이 하여 개방감을 주는 한편 알루미늄 루버를 설치하여 일사량을 조절하고 시각적으로
건축개요
차폐하였다. 창호와 함께 각 층에 발코니 및
사업명: 서교동 S 사옥 신축설계
베란다를 제공하였고 건물 전체에 맞통풍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자연환기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실험실을
용도: 근린생활시설(사무소)
최상층에 배치하되 북향으로 하여 가로 방향으로 열어주고 차광 및 일사량에 대한 부담은 덜었다.
대지면적: 253.6㎡ 건축면적: 150.49㎡ 연면적: 495.9㎡
지상층은 로비로 계획하되 필요시 건물 내부까지
규모: 지상4층
주차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총 9대의
높이:15.75m
주차 공간을 제공하였다.
주차: 4대
건물 내·외부 재료를 최소화하고 고성능 재료
구조: 철근콘크리트
건폐율: 59.34% 용적률: 195.54%
및 마감을 통해 빌딩 퍼포먼스를 강화하였다.
외부마감: 스토(STO), 알루미늄 루버
흄드실리카계 단열재 및 삼중 유리 알루미늄
내부마감: 마모륨, 천연 무늬목, 수성 페인트
시스템창호를 통해 단열 성능을 강화하였고
준공: 2022.05. 예정
외장재로 오염 방지 로투산 페인트 도장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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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다이징 마감 알루미늄 루버를 설치하여 내오염성을 높였다. 설계 및 감리 시 BIM 설계를 통해 물량을 정확하게 산출하여 VE 데이터로 활용하였고 가벼우면서도 조립과 설치, 유지관리가 용이한 프리 패브리케이티드 알루미늄 루버 모듈을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SS2의 패브리케이션 랩에서 3D 프린터, CNC 머신으로 1:1 목업 테스트를 해가며 루버 단면 및 결합 디테일을 테스트하여 현장에서는 단위 모듈로 조립되어온 루버를 실리콘 사용 없이 건식으로 조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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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면 모습 2. 후면 모습 3. 초기 매스 전략 4. 대안 분석 5. 1층 평면도 6. 3층 평면도 7. 4층 평면도
보니 같이 일하는 협업 엔지니어, 시공사, 업체들도 함께 계속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저희가 디자인한 공간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SS2가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들은 어떤 게 있나요? 우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탈 없이 잘해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최근에 작지만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프로젝트를 해보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좀 더 해보고 싶고 하이엔드 디자인 서비스 업무에 대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두 소장님 모두 활발한 활동들을 이어 나가고 있는데, 두 분의 개인적인 목표들은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재봉: 저는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다듬는 방법으로 본능과 직관으로 만들어진 모델을 가장 선호합니다.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많은 부분에 기계화, 자동화를 도입하고 싶지만, 저의 건축 아이디어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은 여전히 수작업을 기반으로 한 인간미 넘치는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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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항상 새로운 재료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방식으로 모델을 만들어보려 노력할 예정이며, 궁극적으로는 보스턴의 AUTOCAD 테크놀로지 센터에서 볼 수 있는 로봇 팔과 기계들이 가득 찬 패브리케이션 랩을 만드는 것이 가까운 미래의 10
목표이기도 합니다. 임근영: 전재봉 소장이 새로운 재료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방식의 모델을 만들어보려 노력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할 것 같고요, 개인적인 목표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계속 일하는 건축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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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에서 많이 영감을 받으시는지 또는 어떤 공부들을 많이 하시는지 혹은 취미나 놀면서 얻게 되는 경험들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여행하거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영감을 얻으려 합니다. 모형을 만들 때도 화방을 가서 재료를 얻기보다는 을지로,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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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벽 단면도 9. BIM 설계 및 디테일 10. 모형사진 11. 루버 조립과정 12. 루버 설치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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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자원관리원 국제 현상설계 본 설계안은 경상북도가 주최한 경상북도 농업자원관리원 국제 현상설계 공모전에 출품하여 최종 5등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대상지는 경상북도 농업자원관리원의 분원으로, 현재 분원으로 쓰이고 있는 면적의 4배가 넘는 39,555㎡ 크기의 넓은 대지에 경상북도 농업자원관리원의 본원과 분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제안해야 했다. 프로그램은 크게 사무동, 관사(기숙사), 창고로 나뉘는데, 전체 연면적 8,900㎡ 중 대부분이 종자 보관창고, 농자재 창고 등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창고였던 점이 본 현상설계의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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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이었다. 축구장 면적의 4배가 넘는 대지를 창고 건물로 채우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였고, 계절과 절기에 따라 사이클을 가지는 농업과 농업자원관리원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본 설계안의 핵심적인 디자인 모티브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대지를 가로지르는 두 동의 기다란 창고건물은 평소에는 창고 건물로 활용되지만, 필요에 따라 두 동 사이의 가변형 벽체가 열려 사 ‘ 이창고’ 라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 장소는 마을 행사, 장터,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화 공간으로 제안한 가변형 사이공간은 농업자원관리원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운영시나리오에 적합한 가변적 건축 장치로 탄력적으로 운영되며 공공영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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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Identity)를 나타내는 공간이 될 것이다. 건축개요
대지면적: 39,555㎡
주차: 40대
건축면적: 8,912.17㎡
건폐율: 22.53%
사업명: 경상북도 농업자원관리원 건립 국제설계공모
연면적: 8,900.66㎡
용적률: 22.50%
주최: 경상북도
규모: 지상2층(관리사), 지상1층(사무동, 농기계시설, 종자
구조: 철근콘크리트 + 철골조
위치: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단북다인로 434-17 일원
생산시설)
협업: 건축사사무소 두올아키텍츠
용도: 농업자원관리원 (사무소, 관리사, 창고)
최고높이:1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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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모형 사진 3. 가변형 전략 다이어그램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재료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 여행자,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의 신선함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 건축가로서 앞으로 되고자 하는 건축가의 상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만들고 배우며 계속 진화하는 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SS2 사진 크레딧: 별도 표기 외 SS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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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배치도 5. 입면도, 단면도 6. 내·외부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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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MENT FOR APPLEHOLIC 클라이언트는 영상 촬영 및 편집을 전문으로 하는 영상 제작가로, 한국에서 애플 전자제품이 지금처럼 널리 사용되기 전부터 애플의 전자제품을 사용하여 영상 제작을 해오고 있다. 당연히 그 브랜드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으며, 애플스토어같은 환경에서 영상 제작업무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새로 입주하는 공간은 지하공간으로, 애플스토어와는 다르게 건축의 가장 기본 마감만 거칠게 되어있는 상태였으며, 영상 제작 회사의 특성상 엄청난 양의 영상 촬영 장비가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다발의 전선 및 랜선이 사무실을 이리저리 관통하는 구조라 애플스토어의 잘 정돈된 느낌을 구현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정된 예산으로 지하공간을 밝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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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최소한의 석고보드 사용과 스마트 간접조명을 사용하여 벽체를 밝게 만들었고, 바닥과 천장은 거친 느낌을 유지하여 높은 층고를 최대한 강조하였다. 천장면에는 철제 레이스웨이를 설치하여 디자인 요소로 사용함과 동시에 전선과 랜선이 천장에 매달려서 필요한 장소로 연결되게 계획하였고, 장애물 없는 바닥 환경을 만들어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판매를 위한 전자제품이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되는 애플스토어의 정신을 이어받아 영상 제작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공간을 어지럽히는 골칫거리가 아닌, 회사의 공간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요소로 사용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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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한다.
건축개요 사업명: 연희동 I 사옥 인테리어 설계 위치: 서울시 마포구 연희동 용도: 근린생활시설(사무소) 면적: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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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완공 사진 ⓒ최경모
AUTOMATED CRAFTSMANSHIP
빠르고 효율적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내고
SS2 작업의 대부분은 모형제작을 수반한다.
두 소장의 손끝으로 마무리된다. SS2의 건축
단순한 모형을 만드는 것을 넘어선 건축
작업에서 기계화, 자동화는 결과물의 표준화를
있지만, 여전히 최종 단계는 장인정신을 발휘한
모형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예의 한계를 넘어설 수
다양한 재료를 실험해보고 제작 방법을 연구한다.
있게 도와주며, 더 정밀도 높은 작업을 효율적으로
최근에는 3D 프린터 및 CNC 기계를 활용하여 더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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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봉은 한양대학교와 미국 쿠퍼유니온에서 건축을 공부하였고, 한국 간삼건축과 미국 파퓰러스 보스턴에서 종교시설, 공항설계, 경기장, 그리고 클럽하우스 인테리어 설계 등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미국 건축사이며 SS2에서 새로운 재료의 실험적인 사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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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 모델 제작과 공간 설계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와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관악구 공공디자인 진흥위원회 위원이다. 임근영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미국 보스턴 페이엣에서 건축 실무를 하였다. 박찬욱, 김지운의 영화 미술팀으로 프로덕션 디자인에 참여하였으며 봉준호의 「괴물」 아트디렉터로 활동하였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및 부소장으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다양한 이력을 바탕으로 SS2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팅과 프로젝트 매지니먼트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금천구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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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S2 홈페이지 갈무리 2. Data Pollution 3. Plate Tectonics 4. This is not a P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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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GAIA Topic Stop Looting ! Stop Being Crazy ! We Stand With UKRAINE !
p.34 68
Special Feature 9771976-74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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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기는 현재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이며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이다. 서울시 명예시장(도시재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국토부 중앙건축위원,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 세운상가재생MP, 서울시 공공건축가 등을 역임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2010), 건축대전 초대작가(1998~현재), 블라디보스톡비엔날레(2008), 베를린DAZ초청전시(2008), 프랑크푸르트DAM초청전시(2007), 홍콩센젠비엔날레(2007)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주요 작업인 수연목서(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21), 인왕산 초소책방(서울시건축상 우수상, 2021/한국강구조학회 작품상, 2021/한국공공건축대상, 2020), 진집(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6), 선벽원(한국건축베스트7/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2013), 대연교회(부산시건축상 우수상, 2008), 제주전문건설회관(제주건축문화대상, 2006), 진광교회(인천시건축상, 2006), 옥계휴게소(한국건축문화대상, 2005), 인삼랜드휴게소(한국건축문화대상, 2001), 가나안교회(한국건축문화대상, 2001), 경주실내체육관(포스코 강구조상, 1999) 등으로 건축상을 수상했으며 금동주택, 동다, 수애헌 등 다수의 대표작이 있다. 최근 공간경영 및 공간전략, 리모델링, 건축과 마을가꾸기, 공공디자인 등의 사회/공공적 활동과 도시, 건축의 재생 및 재활용 분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축가 이충기 Chungkee Lee Architect
이충기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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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벽원 박물관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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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인헌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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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초소책방 Ⓒ김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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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축적 : 건축 나이 불혹(不惑)에 떠올리는 오래된 미래 글. 이충기 건축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기억과 흔적
장소와 기억
지리(psycho-geography)를 형성하게 된다. 진정한
시간이 전하는 말 특정 건물이나 공간을 볼 때,
도시침술요법 사람들의 옛 추억은 건물이나 장소와
망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우리가 보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그 순간의 빛,
함께할 때 가장 오래 기억된다. 말이나 글이 아닌
것처럼 도시와 건축의 과거나 역사는 기록되지
바람, 온도 등 비가시적인 요소들과 나무, 사물,
시공간으로 체화되어 작용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않더라도 사람들의 기억으로 대물림되어 나타난다.
사람 등 가시적 요소들을 함께 본다. 그리고 여러
과거는 보잘 것 없는 현재에 한층 영광스러운 배경을
그러나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해 재개발하는
요소들이 관여하여 형성하고 있는 전체적 상황,
마련해 준다.’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우리의 대도시는 이미 사람들의 집단기억과 시간을
형태 혹은 분위기를 느낀다. 더구나 ‘보다’라는
말처럼 지난 시대의 건축을 통해 기억된 역사와
파괴하여 심리적 충격을 가한 지 오래 되었고 지금도
행위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는 현재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주는 것임에
되풀이하며 대물림되고 있다. 로버트 베번(Robert
정성과 땀도 배어 있으며 기억과 추억이라는
틀림이 없다. 기억이라는 단어는 이탈로 칼비노(Italo
Bevan)은 그런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이름으로 시간의 흔적도 함께 관여하게 된다.
Calvino)의 도시에 대한 표현에서 한층 더 빛을
건축문화유산의 파괴로부터 야기되는 위험을
공간이나 건물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발한다.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경고한 지 오래다. 내가 관심을 두고 노력하는
시간 속에 축적되었던 이런 여러 요소들이 동시에
폴로(Marco Polo)의 입을 빌어 황제 쿠빌라이
도시재생이나 리모델링 작업은 도시, 건축의 시간과
발현되기 때문이다. 오래 되었든, 새로운 것이든
칸(Khubilai Khan)에게 그가 겪은 도시와 건축의
공간을 재배열하여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일에
모든 건물은 자기만의 기억이나 추억의 시간을 쌓고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름이 아니다. 집단기억의 파괴로부터 일어나는
있다. 시간성이 건축의 특별함이지만, 재생이나
사람들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치료하는 선한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특히 시간을 디자인하는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로 하지 않습니다.
역할을 한다. 기억을 유지하고 지역을 살리는
일이다. 설계과정에서 나는 늘, 기존 건물에 접혀져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도시침술요법인 셈이다.
잠들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드러내고 펼치기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희망했다. 건물이 지어지던 시기, 그 공간의 숨결과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재생과 리모델링
속살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벽돌을 나르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새로운 시간의 기록 도시 재생이나 리모델링은
쌓아서 건물을 짓던 인부들의 흔적을 만나고
담겨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새로운 시간을 추가하는 행위다. 공간의 기억과 흔적을 드러내고
여전히 그 공간을 떠도는 목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못질과 망치소리를 들었다.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해
이탈로 칼비노는 농학과 문학을 전공했지만 도시의
새로운 개입의 범위를 정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지붕틀을 짜고 창문을 만들어 끼우던 그들의 손을
기억에 대한 표현은 어느 건축전문가의 설명보다
시간을 기록하는 작업에 다름이 아니다. 2008년
보았기에 긁히고 조각나고 잘린 재료들의 시간까지
설득력이 있다. 건축은 도시를 구성하는 그 어떤
서울시립대학교로 부임한 후, 나의 작업 활동은
살려내려고 애를 썼다. 먼지 묻은 벽돌에서, 거미줄
요소들보다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오래 유지되기
〈진집〉과 〈수연목서〉를 제외하면 발표작의 대부분이
친 목재에서 작은 얼룩이라도 발견되면, 장인들이
때문이다.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기억은 건물과
도시재생과 리모델링 작업에 집중되었고 또
흘린 땀의 흔적인 양, 혹은 지친 노동을 위로했던
장소 그리고 그것에 부수되는 시설, 요소 등 대부분
두드러진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막걸리의 흔적인 양 반가웠다. 벽돌과 대화했던
건축에 대한 것이다. 그 자체로 사물 및 장소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재생이나
루이스 칸(Louis I. Kahn)처럼, 옛 벽돌과 나무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처럼 도시와 건축은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지식이나 현장 경험의 축적을
말이 들렸다. 나는 그들이 이 시대, 우리에게
여러 사람들에게 집단 기억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요구하는 작업인 만큼, 다행히도 내가 감당할
얘기하고 싶었던 의미를 전하고자 했고 벽돌이,
매개체라 할 수 있다. 건물이 지어지고 사용되며
수 있는 경력이 되었고, 학교로 옮기면서 별도의
나무가 전한 시간의 말은 나의 작품에 기억과
허물어지는 물리적 변화는 개인의 감정과 환경에
설계조직이 마땅찮은 상황이라 나의 개인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리적 환경으로 작용함으로써
능력만으로도 가능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에게 기억의 장소라 할 수 있는 심리적
결과로 연결 될 수 있었다.
흔적으로 들어왔다.
ARCHITECT'S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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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계휴게소 2. 동다주택 3. 인삼랜드휴게소 4. 가나안교회 5. 문화역사마을가꾸기 6. 찾아가는동주민센터 총괄 MP 7. 다시세운 총괄 MP 8. 목포 도시재생 총괄 코디 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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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은 〈군산주택〉, 〈동다주택〉 등 일련의
통한 소통은 매우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고
묻는다. 부끄럽지만 ‘이제야 건축이 내게 온 것 같다.’
주택프로젝트, 〈인삼랜드휴게소〉, 〈옥계휴게소〉로
있다. 1995년 건축사사무소 창업과 대학원,
건축을 알 것 같다는 표현에 다름이 아니니, 나는
대표되는 휴게소 프로젝트, 〈가나안교회〉에서
학부 강의를 동시에 시작하여 15년이 지난 후
이제, 립(立)한 셈이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이
비롯된 교회 프로젝트 등으로 연결, 축적되었다.
학교로 왔고 다시 15년이 흘렀으니 설계교육
적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대부분, 최초의 작업 이후 차기작으로 이어진
경력은 어언간 30년이 다 되었다. 교수로서의
실체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다행이라
연속작업이었고 좋은 결과로 저널에 소개되어
시간은 설계 현장을 통해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며 나의 건축이
그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신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었고 오히려 내가
‘지천명(知天命)’하고 ‘이순(耳順)’하며 ‘종심소욕
바탕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 재 수주는
더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불유구(從心所欲 不悠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회사의 안정적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건물의
일이다. 나의 주 강의과목은 건축설계와 실무
중3 때 전기가 들어온 고향마을, 한옥에서 20리길을
형태보다는 건축 공간에 몰두했던 나의 작업을
관련 교육으로 그 중에서도 현장 경험을 바탕에
왕복하며 다닌 초등학교 생활, 전통 유교집안의
설명하기 위해 시뮬라크르(Simulacre)와
둔 ‘통합설계(실시설계)’와 ‘건축경영과 창업’이다.
엄격한 인성교육, 대도시로의 전학과 질풍노도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는 철학용어를 동원해
통합설계는 4학년 학생들이 이전 스튜디오에서
중고교 시절, 대학에서의 민주화 운동과 건축수학,
현학하던 시기였다. 경험과 축적된 지식으로 맞이한
자신이 디자인한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도시,
군대의 조직생활과 훈련, 치열한 실무수련, 건축사
첫 재생 작업은 2000년대 초의 〈안동 군자리
건축의 법적규정과 구조, 기계, 전기 등의 설비사항,
취득과 건축사사무소 창업, 대학원 수학, 많은 작품
문화역사마을가꾸기〉 프로젝트였다. 지역의 이해,
무장애설계, 피난안전설계 등을 적용하여 건축
생산과 수상, 새건축사협의회 창립과 건축혁신
지속가능을 위한 자생력, 주민참여와 조직의
기본도면과 외벽 단면, 상세도면을 작성하도록
활동, 여러 대학에서의 설계교육, 베니스비엔날레
중요성, 전문가와 행정의 지원역할 등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실제 건축사사무소에서의
참여작가를 비롯한 국내외 전시회 참여, 서울시립대
배운 마을가꾸기의 경험은 이후의 도시재생이나
수준으로는 실무경력 5년 정도로 디자인과
전임교수, 정부와 서울시의 각종 정책, 심의, 심사
건축 리모델링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실시설계 과정을 한 학기 동안 경험하는 과정으로
관련 위원회 봉사, 건축문화제 감독, 공공건축가,
〈농촌마을가꾸기사업〉, 〈세운상가재생〉, 〈목포시
작년부터 전면 BIM을 적용하여 수업하고 있다.
명예시장 등 도시, 건축 분야의 봉사활동으로
도시재생뉴딜사업〉, 〈서울시 ‘찾동공간개선‘사업〉
‘건축경영과 창업’은 건축사라는 전문직의
건축 반생을 보내고 있는 나의 인생 여정은 이렇듯
등으로 연결되어 마스터플래너(MP)의 자격으로
이해, 창업과 조직, 건축주, 비즈니스/마케팅,
6줄로 압축되어 접혀 있다. 그러니 현재의 나는
쇠퇴한 지역과 마을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프로젝트수행 등의 내용과 인사관리, 재무관리,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간과 삶이 축적된 ‘나’라는
경험을 하였다.
계약과 저작권, 리스크관리, 건축사 책임과 직업윤리
정신과 신체다. 그 축적의 과정에서 건축을 만난
리모델링 작업은 〈수애헌〉으로 시작하여
등을 포함하는 건축사사무소 경영에 대한 수업이다.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지식과 경험을 쌓아 나이가
〈선벽원〉, 〈목인헌〉, 〈세운 베이스먼트〉, 〈삼일로
창업을 준비하거나 창업 초기의 건축사들에게
들수록 더 잘할 수 있게 된 직업이 건축이었고
창고극장〉, 〈종로 장애인회관〉, 〈인왕산 초소책방〉,
오히려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건축을 전혀 몰랐던 벽지 출신의 내게 다가온 대학
〈서울시립대-본관/학생회관/도서관〉 등 많은
15년간 건축학전공 학생들의 교육과 취업에
전공과의 만남도 어쩌면 그때까지의 기억과 삶과
리모델링 작업들로 이어졌다. 거의 동시에 진행된
참여하고 성과를 누린 것은 나의 가장 큰 기쁨이고
시간이 건축을 선택하도록 안내된 것이었다. 사람,
〈선벽원〉과 〈목인헌〉의 작업은 100년, 50년
보람이다.
지식, 경험의 시간들이 축적되어 현재의 나를 만든
전의 건물로 오래전 여행에서 만났던 캐나다의
것이었다. 이제 나의 축적된 시간은 이미 오래된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Distillery District)의
시간의 축적 그러고 보면 현재의 나는 지난 세월의
사례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기억과 삶이 접혀지고 압축된 존재다. 건축을 한 지
건축 여정
뭐라 해도 유혹당하지 않고 나만의 건축을 얘기하고
교육의 시간 나의 건축에 있어 학생들과의 교육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40년이 지났으니 건축 나이로 ‘불혹(不惑)’이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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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하고 있다.
선벽원 [82] 목인헌 [92] 인왕산 초소책방 [98] 수애헌 [104] 세운 베이스먼트 [114] 삼일로 창고극장 [116]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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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벽원 전경 Ⓒ신경섭 2. 배치도
선벽원(േ⾌ࠦ)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박물관, 자작마루 리모델링 시공간의 재생 현재의 경농관(전시공간, 연구소, 수장고), 박물관, 자작마루(다목적강당)는 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인 경성공립농업학교 시기인 1937년 건립한 것으로 대부분은 소멸되고 이 3개의 건물만 보전, 유지되고 있다. 건립 당시 경농관은 대학본관, 박물관은 교실, 자작마루는 대강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학교 건물로서 근대건축의 사료적 가치가 작지 않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세 건물 모두 벽체는 단열재 없이 적벽돌이 사용되었는데 벽 외부는 적벽돌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내부는 중간에 보수하면서 마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시멘트 몰탈로 마감되어 있었으며 지붕은 목조트러스 위에 3
목재널판을 얹고 아스팔트슁글(건립 당시는 기와 혹은 동판)마감을 한 건물이었다. 빛바랜 몇 장의 사진과 국가기록원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작마루 도면 한 장으로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건물 외형은 건립 당시의 형태대로 비교적 잘 유지되어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내부는 벽체와 마감재료 등 대부분 변형되었고 특히 천장부분은 자체무게뿐 아니라 냉난방 및 조명설비, 전시용 가설물 등의 과다설치로 목조트러스의 구조안전과 화재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개입하게 된 것은 학교 본부로부터의 정책과제 요청이 있었던 2012년 7월로 이미 3개 건물의 구조안전 및 소화, 방재를 위한 성능개선 공사를 위해 가격입찰로 설계회사를 선정, 설계를 완료한 상태였고 6월에 역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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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 시공사를 선정하여 초기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당초 설계는 세 건물 모두, 지붕은 철재단열판넬로, 천장은 석고보드와 전시와 행사를 위한 와이어매쉬 틀로, 벽체는 안쪽으로 내단열을 하여 석고보드에 페인트 마감을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제안으로 모든 공간구조와 마감재료 및 디자인을 변경하여 복원에 가까운 정도의 보수보강공사를 하게 된 것이다. 주요공사는 천장마감재 철거, 기존 목조트러스 구조보강, 소화용 스프링쿨러 신설, 냉난방공사, 목조트러스의 전기스파크감지기 신설, 외벽 단열공사 및 고파벽돌 치장쌓기, 내부 벽체 몰탈제거 후 씻어내기, 지붕 외단열 및 티타늄아연판 시공, 목재창호 설치 및 2중 창호(외부 목재창중간단열 알미늄창), 목재 쪽널 및 무근콘크리트 바닥공사, 화장실 벽돌, 목재마감, 자작마루 무대, 조명, 음향 및 중2층 발코니 설치 등이었다. 특히 기존 5
3. 경농관 메인홀 4. 경농관-제2,3전시실 복도 전시공간 5. 선벽원 경농관 제2전시실 내부(3-5. 사진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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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변경전)
지붕층 평면도(변경전) 6
1층 평면도(변경후)
지붕층 평면도(변경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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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농관 평면도(변경 전) 7. 경농관 평면도(변경 후)
천장마감을 제거하는 작업은 디자인 차원의 의도와 함께 이 공사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술적 이유였다. 트러스에 의존하고 있던 과도한 하중(마감 자체하중과 냉난방기기, 조명기구, 전시용 철제 구조물 등)을 줄여서 목조트러스의 구조안정성을 확보하고 화재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소방, 기계, 전기 등의 설비용 배관, 배선을 측벽과 천장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현장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공정상 매우 어려움이 많았다. 일정상 도면 변경의 시간적 여유가 없어 현장에서 스케치로 작업지시를 하고 사후에 도면을 작성하는 스케쥴로 진행하게 되었으나 결국 예정보다 3개월 정도 지연되어 2013년 3월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8
공간의 속살 이번 작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목표와 원칙은 벽돌과 목재로 대표되는 재료의 솔직함을 건립시기의 작업에 가깝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는 시간의 흔적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는 가장 유효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오래된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은 기존에 있던 천장재를 모두 철거하고 목조트러스를 노출시켜 공간볼륨을 높게, 크게 확장함으로써 시공간의 속살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937년부터 감추어졌던 목조트러스와 적벽돌의 속살이 드러난 순간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좋은 음악이나 명화를 통해 느끼는 감동과 같은 것,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공간 볼륨이 커지고 안정성이 확보된 경농관이나 자작마루는 어디에서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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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연극,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캠퍼스 내에 학생들이나 교수 모두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문화공간 대학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과정 속에서 그 공간주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 변형, 소멸되는 사 ‘ 회공간(social space)‘이다. 오늘날 대학캠퍼스가 비판과 저항공간, 파편화된 소비문화공간에서 일상공간으로, 그리고 다시 문화공간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더욱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공간에서 표출되는 문화와 공간으로 문화를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이제 이들 장소에서 공간과 몸, 공간과 귀, 공간과 눈이라는 공간문화의 속성을 고려하여 보고, 듣고, 10
8~10. 경농관 단면도-1, 2, 3(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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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도(변경전)
좌측면도(변경전)
우측면도(변경전)
배면도(변경전) 11
정면도(변경후)
좌측면도(변경후)
우측면도(변경후)
배면도(변경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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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경농관 입면도(변경 전) 12. 경농관 입면도(변경 후)
느끼고, 생각하고, 놀고, 만드는 다양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공간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행위들이 다시 시간의 흔적이 되고 공간의 속살이 되어 기억의 공간이 될 것이며 역사와 전통의 심리적 지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캠퍼스의 사적공간이 공공공간으로 확대되거나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문화발전소 개념으로 확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관심과 이해, 애용이 필요하며 그것이 이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의 지난 100년이 시간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었다면 이제 다가올 100년은 시간적 가치에서 탈출하여 경농관, 박물관, 자작마루의 공간적 가치가 발휘되는 미래가 되기를 희망한다. (글.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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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박물관-서측 Ⓒ신경섭 14. 박물관 내부 Ⓒ신경섭 15-16. 박물관 단면도-1, 2(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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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변경전)
지붕층 평면도(변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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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변경후)
지붕층 평면도(변경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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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박물관 평면도(변경 전) 18. 박물관 평면도(변경 후)
정면도(변경전)
배면도(변경전)
우측면도(변경전)
좌측면도(변경전) 19
정면도(변경후)
배면도(변경후)
우측면도(변경후)
20
좌측면도(변경후)
19. 박물관 입면도(변경 전) 20. 박물관 입면도(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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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변경전)
1층 평면도(변경후)
2층 평면도(변경전)
2층 평면도(변경후)
지붕층 평면도(변경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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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층 평면도(변경후) 24
21. 자작마루-북측 Ⓒ신경섭 22. 자작마루 내부 Ⓒ신경섭 23. 자작마루 평면도(변경 전) 24. 자작마루 평면도(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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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도(변경전)
배면도(변경전)
우측면도(변경전)
좌측면도(변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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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도(변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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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면도(변경후)
배면도(변경후)
좌측면도(변경후)
25. 자작마루 단면도-1, 2(변경 후) 26. 자작마루 입면도(변경 전) 27. 자작마루 입면도(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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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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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발코니 상세 (조적상부)
횡단면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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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면도 2. 횡단면도
목인헌 풍경으로서의 일상 풍경과 일상 목인헌은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내사산의 응봉자락, 성곽아래 동네에 숨은 듯, 일상처럼, 풍경처럼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곳의 레벨에서 서울도심을 바라보는 경관은 좌측 목멱의 길게 누운 듯한 모습과 우측의 인왕의 당당한 기세를 길게 펼쳐볼 3
수 있는 매우 드문 체험을 제공한다. 비슷한 규모의 집들이 불법으로 증축한 혹들을 달고 층층이 겹치고 쌓이면서 시간과 함께 만들어 낸 풍경은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마을풍경이다. 마치 집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듯한 풍경의 중간허리쯤에 목인헌이 위치한다. 산동네의 집단주거지 1958년,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후 낙산 성곽과 이화장 사이의 서쪽 사면에 수십 채의 현대식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지역의 역사를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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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 있는 서울성곽 아랫동네, 뜨거운 서향 햇빛이 수평으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도에 30도~45도의 가파른 경사지, 사람살기 어려운 이곳에 해방 후 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의 주도하에 우리의 기술로 지은 신식 2층 집이 새로운 역사와 일상을 시작한 것이다. 작은 집들이 가파른 산지에 높은 축대와 골목을 형성하면서 층층으로 풍경을 만들며 배치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성곽아래 이화동 마을은 수도와 연탄 보급이 어려운 산동네의 특성을 보이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모인 동네로 바뀌었다. 면적과 높이를 임의로 확장하고 증축하면서 건축가 없는 구조의 독특한 마을형태로 진화하였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당시에 너도나도 필요에 의해 처마 밑을 확장하고 2층 외부를 방을 만들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팽창만큼이나 거의 모든 집들이 골목을 제외하고는 빈 땅이 없을 정도로 확장되고 팽창되었던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마을 낙산의 성곽아래동네 이화동. 지금은 벽화마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동네다. 이곳의 시공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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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1960년 정도쯤 그렇게 멈추어 있다. 2006년, 낙후된 마을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작한 공공디자인사업으로 낡고 퇴색한 마을의 골목과 담에 진한 화장이 입혀졌다. 예쁘라고 그린 형형색색의 그림들로 무엇을 감출 수 있었을까? 이곳에는 그림으로 덮을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 일상이 있었고 산동네가 만든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 골목과 사람, 마을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일상의 생명력, 그것이 마을을 유지하고 있는 힘이 되었고 7
8 3. 공사 전 아래 골목 전경 4. 공사 전 좌측벽면 5. 철거 중 2층 내부 6. 이화동 마을 풍경 안에 스며든 목인헌 7. 안마당에서 본 목인헌의 측면과 마을 풍경(낮 풍경) 8. 안마당에서 본 목인헌의 측면과 마을 풍경(야경)(6-8. 사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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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철거 전) 우측면도
기존(철거 전) 좌측면도
기존(철거 전) 정면도 9
우측면도
좌측면도
정면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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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철거 전 입면도 10. 입면도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시간의 마술이 다시 한 번 작동하면서 골목과 벽화도 어느덧 일상처럼 마을의 한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즈음은 이곳에 외국관광객까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추억을 남기고 있다. 뉴타운의 광풍이 불어 재개발 조합까지 결성된 이 마을에 2012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마을가꾸기에 나섰고 주민과 함께 천천히 발전되어가는 마을,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마을, 현재의 골목 일상과 마을풍경이 유지되는 마을을 꿈꾸는 일이 시작되었다. 1958년의 기억과 목인헌 목인헌은 1층 30㎡, 2층 15㎡의 2층 구조에 단열 없이 6인치 블록 한 장으로 벽을 쌓고 ㅗ자형 지붕틀에 박공지붕을 하고 있다. 이화동마을의 집들은 증축으로 외형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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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지은 2층 주택의 원형은 유지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건축기술을 습득한 목수나 조적공의 기술은 단순하고 투박했으나 천장 안의 지붕목구조는 시간이라는 마술사 덕에 오히려 훌륭하고 멋진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1958년 사용한 목재가 60여년 인고의 시간동안 나무 본연의 생물학적 힘을 이기지 못하여 뒤틀리고 틈이 생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온순하고 어질게 되어 이제는 얌전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집이다. 내부에 사용된 1950년대에 생산되었던 시멘트블록의 벽체와 목재를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사용했던 목조지붕틀은 이 집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건축가의 디자인이 매순간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목인헌의 리노베이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설계와 디자인의 비중이 크고 12
기존 공간을 들어내고 덧붙이는 선택과 결정이 많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목인헌은 이 마을의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마당이나 외부공간을 모두 증축하여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의 작업은 신축이후 6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임의 증축 공간을 들어내고 1958년에 지었던 원형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것과 옛것의 표현 즉, 시간표현을 위한 마감재료와 색, 새로운 기능의 추가, 도시를 바라보는 경관, 마을을 구성하는 풍경인자로서의 자세와 대응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상으로서의 풍경과 물리적 실체로서의 건축에 대한 표현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이며 건축가로서의 내가 어느 정도의 깊이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였다.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집, 어진 나무의 집 이 집에서는 좌측으로 목멱산(남산의 옛 이름)과 우측으로 인왕산, 그 사이의 도시풍경이 한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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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층 홀 전경 12. 2층 창을 통해서 본 인왕산의 풍경 13. 2층 방(11-13. 사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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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발코니 상세도
2층 발코니 상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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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상세도 15. 1층 발코니에서 본 도시풍경,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들어온다. 그래서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집, 목인헌이라 이름을 지었다. 이울러 이 집에는 젊음을 누르지 못했던 나무들이 뒤틀리고 갈라진 흔적으로 드러난다. 60여 년 전 껍질도 못 벗은 채 이곳에 와서 콘크리트와 못에 강제되고 추위와 더위에 노출되어 온몸을 뒤틀며 힘으로 저항했던 나무들이 60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어질어 질대로 어질어 져 있었다. 나무가 어질어 진 집, 어진 나무의 집, 그래서 다시 한 번 목인헌이라 불렀다. (글. 이충기)
난간 상세도
건축개요 작품명: 목인헌
건축면적: 51.3㎡
용적률: 49.8%
시공: 서용균(이안건축)
설계: 이충기
연면적: 75.6㎡
구조: 조적조, 목조
설계기간: 2012.10.~2012.12. 시공기간: 2013.01.~2013.06.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규모: 지상 2층
외부마감: 드라이비트 외
19길 68-7 (이화동 9-541)
높이: 5.83m
단열, 아스팔트 슁글 지붕
용도: 근린생활시설
주차: 0대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투
대지면적: 151.8㎡
건폐율: 33.8%
명 에폭시
16
17
16. 내부 계단 17. 외부통로 부분(15-17. 사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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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층 평면도
01. 커뮤니티 공간 1 02. 커뮤니티 공간 2 03. 주방 04. 외부데크 05. 장애인 화장실
06. 남자 화장실 07. 여자 화장실 08. 기존 철문 09. 기존 벽 10. 기존 수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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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치도 2. 평면도
01. 커뮤니티 공간 1 02. 외부데크 03. 기존 파라펫
2층 평면도
인왕산 초소책방 비공개 방호시설에서 개방형 공공시설로 청와대 방호용 경찰건물을 시민에게 본 건물은 1968년 1·21 무장공비 김신조의 침투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을 위해 인왕산 자락길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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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병력이 주둔하는 용도(인왕CP)로 건축, 50년간 운영되었으나 청와대의 인왕산 지역 전면 개방계획에 따라 방호담당 경찰 인력의 축소, 이전으로 철거가 예정된 건물이었다. 그러나 경찰건물 주변은 산세가 수려하고 전망이 양호하여 시민들에게 숲속의 새로운 휴식공간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청와대의 의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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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주관기관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서 간 무상양여 협약을 통하여 건물 활용이 가능한 여건을 확보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하게 되었다. 본 사업은 대통령 경호처, 수도방위사령부, 서울지방경찰청 등 청와대의 방호목적 기관과 서울특별시(공원녹지정책과), 종로구(공원녹지과, 건축과), 공공건축가 간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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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방호시설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로 제공한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9월~12월에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 도시공간개선단이 참여하는 TF팀을 운영하고 전문가 자문회의 개최 등 기획단계를 진행하여 당시 서울시 공공건축가였던 내게 설계 재능기부를 요청해 와서 진행하게 되었다. 2018년 12월에서 2019년 5월까지 약 6개월간의 구조안전진단을 포함한 리모델링 설계 과정을 거쳐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공사를 시행하여 시민들을 위한 인왕산 숲속 새로운 쉼터와 조망의 공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능과 공간-기억과 흔적을 위한 장치 경찰건물(인왕CP) 증축 및 리모델링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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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으로 운영된 경찰건물을 증축 및 리모델링하고 훼손된 자연경관을 되살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여 시민에게 개방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진행하였다. 기존 건물은 1층으로 2개의 층고를 가진 건물이었으나 이를 활용하여 낮은 쪽 옥상 부분을 2층으로 증축하여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높은 부분을 전망대로 사용하도록 리모델링하였다. 아울러 인왕산스카이웨이를 산책하는 불특정 공원 이용객들과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이 용이하도록 개방적 공간을 구성하였고 특히 인왕산 자락길에 최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과 양질의 휴게공간을 11 3. 기존 건물 전경 4. 철거 전 지붕 5. 철거 전 내부 공간 6. 철거 후 내부 공간 7. 공사 전 (RC 구조) 8. 공사 중 9. 공사 중(증축부 철골 구조) 10. 남동측 전경 Ⓒ김용순 11. 서측 전경 Ⓒ김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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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측면도
남측면도
동측면도
북측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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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입면도
계획하였다. 아울러 주변에 조성되었던 기존 콘크리트 등의 인공시설물을 철거하고 훼손되었던 바위, 수목 등의 자연을 복원하였다. 리모델링 설계는 새로운 증축공간과 리모델링 공간이 주변 수목과 바위가 이루고 있는 경관이 실내공간으로 흐르도록 유리를 사용하여 외벽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1층에 폭 15.48m, 높이 3.4m의 슬라이딩 도어를 두어 개방 시 내부에서도 자연의 바람과 경관을 느끼도록 하였고, 2층도 2개의 층고를 이용하여 도시경관과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설계하였다.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일부는 증축하고 일부는 데크 면적을 넓게 확장하기 위해 기존벽체보다 후퇴하여 필로티를 만들어 태양과 비를 가릴 수 있는 처마공간을 조성하였다. 기존건물의 외벽 시멘트벽돌과 출입문을 일부 보존하여 시선을 차단하거나 벤치로 활용하여 기존 건물에 대한 기억과 흔적의 장치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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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경찰건물로 운영할 때 사용하던 기름탱크 역시 보존하여 외부 조경요소 및 풍경이 되도록 하였다. 외부는 산책하는 시민들이 쉽게 이용하고 휴식하며 경치를 조망토록 친근감 있는 목재 데크로 조성하고 H빔을 이용한 의자를 계획하였으며,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하여 기존 보도와 건축물 출입의 단차가 없도록 설계하였다. 증축부의 철골구조와 구조미 기존 건물은 콘크리트 가구식 구조로 내진 성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외벽은 시멘트벽돌과 플라스틱 판재로 마감된 건물이었다. 리모델링은 외부 벽체와 내부 칸막이벽을 모두 철거하고 기둥, 보, 슬래브는 보존하되 탄소섬유로 보강하여 내진 성능을 확보하였으며 증축 부분은 강구조를 채택하여 설계하였다. 본 리모델링 구조의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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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은 증축한 부분의 구조재료인 강구조를 모두 노출하여 기존의 RC구조와 구분되도록 철골의 구조미를 강조한 점이다. 증축 부분은 모두 H빔과 구조용 각관을 사용하여 시공성과 경량화를 도모하였으며 벽체는 투명한 유리로 계획하여 가볍게 보이도록 하였다. 2.3m의 낮은 층고와 그로 인한 기계설비와의 간섭, 전면 유리 시공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증축 부분의 철골구조와 기존구조의 내진보강 탄소섬유 보강재를 모두 노출하여 구조미를 강조하였으며 이는 개방감을 높이는 효과로도 작용하였다.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내부와 외부 2곳에 모두 철골로 설치하였다. 내부계단은 기존 슬래브를 오픈하고 철골조 계단의 구조미가 드러나도록 대리석 상판을 얹어 디자인하였으며 천장의 경우 천장재와 H빔 사이를 15
13. 서측 전경 14. 남측 전경 15. 남서측 전경(13-15. 사진 Ⓒ김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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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도 A-A′
01. 커뮤니티 공간 1 02. 주출입 방풍실 03. 1층 데크 04. 2층 데크
단면도 B-B′
01. 커뮤니티 공간 1 02. 커뮤니티 공간 2 03. 1층 데크 04. 2층 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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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단면도 17. 내부 계단 18. 2층 커뮤니티공간에서 본 동측 전경
띄우고 그 사이에 간접조명을 넣어 철골구조를 강조하였다. 아울러 1층 남쪽의 벤치와 2층 데크의 난간 상부를 H빔으로 디자인하여 철골구조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건축 시장의 경우 지금까지는 주로 대형건축물에서 철골조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신축공급이 거의 끝난 서울시 등 대도시의 경우, 향후 소형건축물의 증축, 리모델링의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시공성, 공사기간단축, 경량화, 건식/조립식 구조 등의 측면에서 유리한 강구조 사용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100㎡(30평) 규모의 증축이나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향후 소형건물 리모델링 시장의 강구조 사용 확대에 좋은 선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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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설계: 이충기 협력: 김진숙(공명건축사사무소) 프로젝트명: 경찰건물(인왕CP) 증축 및 리모델링 위치: 옥인동 산3-1 경찰건물(인왕CP) 규모: 지하 23.47㎡, 지상1층 195.85㎡, 지상2층 111.93㎡ 용도: 북카페, 공중화장실, 전망대 등 복합문화공간 구조: (기존) RC구조 (증축 및 리모델링) 철골구조: 탄소섬유내진보강 20
19. 2층 외부 데크 20. 2층 데크와 주변 전경(16-19. 사진 Ⓒ김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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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층 평면도 (변경 전)
지하층 평면도 (변경 후)
1층 평면도 (변경 전)
1층 평면도 (변경 후)
2층 평면도 (변경 전)
2층 평면도 (변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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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면도
수애헌(守愛軒) 추억과 기억을 간직한 새로운 공간 건축주 수애헌은 사랑을 나누며 사는 건축주 가족과 이 집에 대한 나의 헌사다. 신앙을 가지고 살아온 건축주와 그 가족의 집에 붙이는 이름으로 사 ‘ 랑’이라는 단어 이상으로 어울리는 당호(堂號)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애헌은 20여 년 전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몽학재’라는 집을 내가 리노베이션하여 붙인 새로운 당호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친구의 소개로 수애헌 건축주의 피부과의원 인테리어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기존 의원의 실내 공간 이미지를 새롭게 디자인한 것은 물론, 건축주의 긴 망설임을 설득하여 수십 년간 사용해오던 ‘000피부과의원’이라는 건축주 이름을 넣은 상호 대신 사 ‘ 랑의 피부과’로 개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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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과 건축주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표현한 근사한 마크와 로고 디자인을 하여 명함까지 디자인해주었으니 BI(BrandIdentity, 브랜딩디자인)를 해준 셈이었다. 건축주는 그 결과에 매우 만족하였고 나를 만날 때마다 평창동에 있는 본인의 주택을 리노베이션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바쁨을 핑계 삼아 미루다가 2년 후에 작업하게 된 것이 수애헌이었다. 건축주의 요구 대지는 가나아트센터 부근, 평창동 주택가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12m의 도로에 면하여 있으며 건물은 남동쪽과 북서쪽을 축으로 하여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수애헌은 원래 건축주가 40대 시절에 부모님과 2명의 자식과 함께 3대가 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지상 3층 규모의 전형적인 평창동의 경사지의 주택이다. 도로와 마당이 1개 층 정도 차이가 나고 1층이 마당레벨과 같이 있어 반은 지하에 묻힌 상태이며 2층이 도로레벨과 같아 도로 측에서는 2층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약 20년 전에 지은 주택들이 콘크리트구조에 벽돌이나 석재마감을 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이 건물은 철골조에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W패널이라는 단열성능을 가진 기성재 벽 패널을 사용하였다는 점이었다. 철골구조를 외벽입면에 드러내어 표현하고 공간을 작게 나누어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 설계의도로 건축저널에 널리 소개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축한 지 20년이 지나면서 신축성이 큰 철골조의 특성상 이질적인 벽 재료와 이격이 많이 진행되어 누수가 계속 발생하였다. 그리고 각 실이 좁고 층고가 낮아 매우 불편하였으며 노부모가 돌아가셔서 새로이 공간배치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리노베이션의 주된 이유였다. 건축주는 좁게 3
2. 배치도 3. 전경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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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횡단면도 5. 배면도 6. 전경 7. 거실 8. 계단 홀에서 바라본 주방 9.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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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획된 기존공간들을 통합하여 여유 있는 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면서 2층 거실과 3층 가족실을
있어 좁은 마당을 가리고 있었으나 이를 철거하고 그
재계획해 달라고 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기존 외벽과
확보하기 위해 3×4.5m 넓이의 2층 테라스 공간을
자리에 목재 데크를 설치하여 바비큐나 가족모임을
철골구조는 가능하면 그대로 둘 것, 마당과 거실을
확장, 증축하였으나 이전의 철골구조로 계획된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비워두어 이전보다 시원하고
연결하는 기존의 철골조 정자는 철거할 것, 지붕처마
좁은 스팬과 층고는 새로운 평면과 공간계획을
넓은 외부공간을 확보하도록 하였다. 공사는 나의
아래 비둘기들이 앉아 오물을 테라스에 배설하지
함에 있어 많은 애로사항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책임하에 현장 소장과 건축주가 직영하는 형식으로
않는 구조로 할 것(기존처마 아래의 철골빔에
2층의 거실공간의 너비를 확보하기 위해 기둥
진행하였다.
비둘기들이 않아 오물을 배설하여 테라스를
하나를 제거하고 철제 빔으로 보강하여 비교적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오염과 악취가 심하였음),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집의 높이를
공간기억
마당의 잔디관리를 위해 목재 데크 면적을 확대하고
피하여 동쪽으로 북악산이 보이는 좋은 전망을
40대에 이 집을 짓고, 20여년이 지난 시기에 이전
대문과 주차장 사이를 눈비가 떨어지지 않게 덮어
가지고 있었기에 모든 침실의 창을 남동쪽 모서리에
집을 헐지 않고 리노베이션하기로 한 건축주의
달라는 등의 요청을 하였다. 그리고 시공은 직영으로
‘ㄱ’자 형태로 새로 만들어 경관을 살리도록 하였다.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물어보지 않았지만 불편했던
하되 내가 건축주를 대신해서 역할을 맡아달라고
그러나 아쉽게도 모든 실의 코너마다 원래 있었던
것을 참고 지낸 세월을 얘기하는 건축주의 말 속에서
부탁을 하였다.
철골기둥이 그 방향을 가리고 있어 철골기둥을
이 집에 대한 애증이 묻어났다. 40대에 시작하여
세장하게 보이도록 마감 없이 노출하는 수밖에
건축주의 전성기와 함께한 삶의 공간이 불편함까지
없었다. 1층은 이전에 물탱크와 보일러실로 사용하던
정이 들어 익숙함이 되었을 정도로 이 집에 대한
리노베이션 설계 전에 기존 주택을 실측하고 구조와 벽 상태를
공간을 안방에 필요한 드레스룸과 파우더룸, 욕실과
애정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것은 옛
확인한 결과 반지하층에 해당하는 1층의 콘크리트
화장실로 재계획하였고 2층에는 좁았던 거실과
집과 공간에 대한 기억과 향수였다. 그래서 골조만은
구조와 2층과 3층의 철골구조는 모두 양호하여
주방, 식당공간을 재배치하여 보일러실, 세탁실,
남겨두고 추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재배치되는
그대로 사용해도 되었으나 2, 3층의 벽체는 예상과
뒷 주방 공간은 별도로 구획하여 소음과 냄새를
공간이라도 그 사이에 남아있는 자리, 장소, 터에
달리 사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부실하여 골조를
차단하고 메인 주방은 식탁공간과 오픈하여 넓게
대한 기억이나 추억은 뚜렷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외하고는 모든 벽체를 재시공해야 할 상황이었다.
보이도록 계획하였다. 식탁에서도 북악산 자락이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자녀들은 공사기간
돌아가신 노부모가 사용하던 마당레벨의 1층을
전망되도록 한 것은 물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중에도 빨리 평창동 이 곳으로 돌아가는 날이
부부의 안방과 드레스룸, 욕실, 서재로 계획하여
북악산이 보이도록 계획한 것은 이 집의 위치에서
언제냐고 그리워하며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들은
프라이버시 공간으로, 도로레벨인 2층은 거실과
얻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거실은 부부가 사용하던
이곳에서 살고 결혼도 할 것이며 평생 이곳을
주방, 식당의 공용 공간, 그리고 3층은 가족실과
기존의 안방과 테라스공간을 합쳐 넓게 계획하였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애헌은 두
두 남매를 위한 침실공간으로 두기로 하였다. 각
여기에 면하여 1층의 마당의 데크로 통하는 출입문
자녀가 결혼해서도 3세대가 불편하지 않게 살
층마다 거실이나 가족실 같은 공용공간을 계획하고
상부에 캐노피 역할을 겸하도록 남동쪽으로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모든 침실은 남향을 면하도록 창을 내고 북쪽
발코니를 달아내었고 아래층 서재 옆의 가벽 사이에
지하주차와 엘리베이터, 겨울에도 반소매차림으로
도로변으로는 생활소음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심은 대나무가 2층 거실에서도 보이도록 액자
지내는 아파트생활의 편리함을 그들이 모르지
최소한의 창을 계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같은 수평창을 설치하였다. 모든 침실에는 충분한
않았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 그에 면한 아름다운
수납공간을 두었고 방에서 필요한 가구를 붙박이로
이웃과 일상, 마당이라는 외부공간에서 느끼는
제작 설치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사계절의 풍광 등 공간에 대한 기억들은 그들의
이 집의 원래 외형은 완만한 2개의 곡선지붕이
성장과 함께하였고 이성과 감성이 풍부한 훌륭한
대칭 형태를 이루는 것이었으나 수애헌은 골조를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나는
그대로 두고 마감재만 새로운 티타늄 아연판
확신한다. 단독주택이 가져다주는 공간의 가촉성과
지붕재로 교체하면서 배수가 잘되도록 경사진
장소에 대한 기억과 추억, 정서적 효과는 이렇듯
형태로 하고 그것이 2, 3층의 샌드스톤 외벽을 따라
매우 크다. 이제 건축주는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흐르도록 하여 산자락에 있는 마을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새로운 공간에 만족하고 익숙해 질
담아 2개의 산과 같은 형태가 되도록 계획하였다.
것이다. 수애헌에서 그들 가족의 이 장소에 대한
거실 부분의 창문은 개방감을 주도록 크게 하고
사랑이 끝까지 지켜지고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침실은 비교적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작고 제한된
(글. 이충기)
방향으로 계획하였고 계단과 거실 부분에 스크린형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여 필요에 따라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문은 원래 있었던 콘크리트 가벽을 일부 이용하여 작은 대문과 슬라이딩 형태의 큰 대문, 그리고 그 위를 캐노피 공간으로 만든 것이 길에서 드러난 수애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마당에는 원래 마당과 2층 거실을 연결해주는 2층 높이의 철골조로 된 정자가 10
10. 주방(6-10. 사진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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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충기 교수와의 대화 : 공간재생의 사유와 논리 그리고 작법 -일시: 2022년 4월 23일(토) 10:00am-2:00pm -장소: 목인헌 -참석: 이충기(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가), 김태형(본지 편집위원), 백승한(본지 편집위원), 최우용(본지 편집위원), 전진삼(본지 발행인) 외 참관(이지선,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생)
[0] 인트로 전진삼 발행인, 집담회 시작에 앞서서 참석자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수님은 최근의 가장
『집단기억의 파괴』1)를 통해 주로 정복자의
큰 집단기억(건축문화유산)의 파괴 혹은 상실
피지배사회에 대한 집단기억의 파괴를
소개 및 진행 방식 소개한다.
등의 측면에서 대단히 심각하다고 여기시는 바가
다루었습니다. 아랍과 이스라엘, 나치 독일 등의
[전; 사전 공유한 질문지 순서대로 최우용
있다면 무엇인가요?
역사에서 보듯 식민지나 무력을 통한 정복의
편집위원이 집담회의 문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과정을 겪으면서 문화유산의 파괴가 일어나고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이 연구한
그걸 통해서 집단기억이 파괴되고 있음을
[1] 기억
집단기억의 의미는 주로 공동체에 대한 것입니다.
지적하고 있죠. 우리에게도 유사한 기억들이
최우용: 최근 십수년간의 작업에
공동체가 관습대로 내려온 제사 등의 의식을
있었지요.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대부분의
대하여 ‘기억’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하시는
공유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공동의 의식을
집단기억이 말살되고 파괴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베르그송은 과거와
집단기억이라 쓰고 있지요. 사회구성원이
그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된 민족의
현재는 기억을 통해 연결된다고 말했는데,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의미에서는
정체성과 문화적 기억들이 있습니다. 저는 로버트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기억 또한 이와 동일선상에
같지만 제가 쓰고 있는 집단기억은 살아가는
베번이 지적한 문화재나 건축유산이 아니더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단순한 향수 또는
배경으로서의 길이나 나무, 건물 등 도시에
현재 우리 도시가 겪고 있는 도시의 일상적 장소에
낭만으로서의 기억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루는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대한 집단의 기억과 파괴적 현상을 지적하고
존재의 바탕으로서의 기억을 말씀하시는
도시건축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재개발로
싶었습니다. 우리 도시에서의 집단기억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질의자의) 풀이가
인해 과거의 기억을 한꺼번에 지워버리는 일을
파괴는 겉으로는 아주 평화적입니다. 행정적인
건축가의 생각을 옳게 해석한 것인지요? 좀 더
수없이 보게 됩니다만 사전에 어떠한 논의의
절차로서 아무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 심지어
보태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과정도 없고, 시간이나 속도를 감내할 겨를 없이
파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않고 지나가요.
어느 순간 일시에 철거하고 그곳에 아파트를
이렇듯 도시에서의 집단기억은 일상에서는 잘
짓게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방식에 문제를
못 느끼다가 철거나 리모델링 등의 변화를 통해
운영하다가 2008년 학교로 온 후로 주로 재생과
잘 해석하셨습니다. 한메건축을
제기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살았던 지역의
그 기억이 사라지는 현상을 겪으면서 느끼거나
리모델링 작업을 하게 됐어요. 리모델링 작업의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발견하게 되는 단어입니다. 우리 개개인도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기억, 흔적, 속살이란
빠른 시일에 이익을 얻는 방식에 중독되어 있기
각자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 있고, 그 자체로 무척
단어를 썼는데 그게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기억의
때문이겠지요. 철거민연합회와 같은 조직적인
소중한데 시간이나 기억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소환 작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라는
움직임도 일부 있지만 우리가 집단기억의 파괴를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손쉽게 파괴해버리는
속성을 가진 건축 자체가 과거, 현재를 연결하는
통해 받게 되는 정신적 충격에 대해선 아무도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어요. 그것이 제가 집단기억을 거론한 배경입니다.
기억의 존재이고 나 역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학자들이
들어있는 존재인 까닭에 나의 작업을 설명하는
집단이 가진 도시의 기억을 파괴함으로써 겪게
의미단어로 그 단어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되는 문화적 충격이나 정신적 고통의 문제에
그런 이유로 언급하신 존재의 바탕으로서의
대해 지적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급속한
기억이라는 해석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범죄나 사회문제의 이면에 집단기억의 파괴로
최우용;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집단기억은 모리스 알박(Maurice Halbwachs)이 구체화한 (긍정적 의미로서의) 집단기억을
GROUP DIALOGUE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베번(Robert Bevan)은
최우용; 리모델링 작업을 하시면서 1) 로버트 베번이 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하는 『집단 기억의 파괴』는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야만적인 파괴의 참상을 고발한 책이다. 이 책은 인도에서 보스니아까지, 요르단강 서안에서 아일랜드까지 무수한 파괴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정복자들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그들의 건축물을 파괴해왔으며 지금도 파괴하고 있는지 전 세계 저널리스트들의 기사와 각 분야 저작들을 참고하여 살펴보고 있다.
캐나다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Distillery
지붕을 대부분 뜯어내고 샌드위치 패널로 덮고
유지되다가 그 건물의 기능과 수명이 끝에
District) 사례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내부엔 철골보로 보강하는 등 많은 문제들이
다다랐을 때 그 건물은 변화를 꾀하거나 새로운
언급하셨습니다. 제게는 다소 생소한
보였습니다. 이미 시공사까지 정해진 상태인지라,
질서를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재생 작업을
사례였습니다. 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그 자리에서 지적해서는 소용이 없을 것 같았어요.
함에 있어서 현재의 건축과 도시적 질서를
해주신다면, 그리고 그러한 영향이 작업에 어떻게
그래서 자문회의 뒤에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어떻게 정의내리며 설계를 진행하셨는지 건축의
반영이 되었는지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팸플릿과 하버드대 등의 재생 프로젝트 관련
원칙 혹은 접근의 방법론이 궁금했습니다.
자료를 들고 총장 면담을 요청했고 만나서
일반적으로 재생 프로젝트의 설계 과정에서
설득했죠. 학교 역사가 100주년이 다 돼 가는데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 변화하는 도시와의 관계,
지역 건축 재생의 사례는 일본 요코하마시
대표적 건물의 기억을 지금과 같이 훼손해서는
대지의 환경(지형, 지물), 기존 건축시스템의
미나토미라이의 붉은벽돌창고 아카렌가(Red
절대 안 된다고 말이죠. 총장님이 도와주기로
보존과 활용 방안(지워질 것-남길 것), 새로운
Brick Warehouse)였어요. 1910년대에 지어져
약속하셔서,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기억과
용도(요구사항)의 수용 등일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제일 처음 접했던
1989년까지 세관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흔적을 남기는 방식의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게
어느 건물이든 보존 가치가 절대적으로
리모델링한 것이었죠. 그 후 2000년대 초반에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본부로부터 3개 건물의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갔을 때 우연히 디스틸러리
리모델링 연구를 주제로 대학정책연구과제로
2)
디스트릭트(Distillery District) 를 방문하게
받았습니다. 부족한 연구비 대신에 설계와
사실 작업의 형식은 리모델링이지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그곳에 대한 정보를
공사 감리에 대한 전권을 달라고 해서 승낙을
제가 설계에 임하면서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어요. 2003년경에 오픈한
받았습니다. 어찌 됐든 정해진 일정대로 공사는
것이 언급하신 내용에 다 포함되어 있네요.
곳이니까 지금은 20년이 다 돼가는 곳이죠.
진행돼야 하니까, 급한 대로 도면대신 스케치를
첫째, 공간전략, 공간경영입니다. 설계 이전의
오픈 초기에 방문한 셈이었는데 당시 안내한
통해 작업지시를 하고 현장에서 구두로 조정을
공간전략에 대해 건축주들과 많은 대화를 합니다.
분이 방문지에 대한 사전 설명 없이 그냥 최근에
해나가며 작업을 하게 됐죠. 그때 디스틸러리
리모델링의 경우, 기존 건물의 용도가 한계에
오픈한 핫플레이스라며 데리고 갔지만 저는
디스트릭트의 방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다다랐기 때문에 잘 사용되지 않거나 시설 자체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1800년대에는 그곳이
[전; 〈선벽원〉 관련해서는 뒤에 재론할 시간이
낙후된 것이므로 신축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증류주를 주조하던 양조공장들이 바닷가를 끼고
있으니까 깊은 얘기는 나중에 하는 거로 하시고,
기획이 필요 합니다.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단순히
쭉 늘어서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1900년대에
김태형 편집위원의 질의로 넘어가겠습니다.]
고쳐서 쓰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사용의
쇠퇴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지역을 정비하는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어떻게
과정에서 영국 빅토리아풍 건축양식으로
[2] 재생
리모델링해야 지속성을 유지하는지를 강조해야
지어졌던 몇 개 건물을 문화재로, 지구 전체를
김태형; 금번 특집을 통해 오래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건축가
국가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하여 도시 재생을
전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들을 주로
스스로가 경영적 마인드로 무장돼 있어야 해요.
하였어요. 나머지 공장과 창고들도 단순히 건물의
소개해주셨습니다. 재생을 주제로 잡은 것은
생각해보니까 이러한 저의 태도가 학교로 온 후
외형이나 내부 공간을 리모델링한 정도가 아니고
어떠한 의도였는지요?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건축사사무소를 경영하지 않았음에도 설계 일을
건물 내부의 기둥, 보일러나 주조용 기계장치, 선반
살아가는 도시에 내재되어 있었던(드러나지
연속적으로 의뢰받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아요.
등을 살려 디스플레이나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한
않았던) 속성(건축물)들을 발견하여 재해석하는
저는 학생들에게도 설계하기 전에 공간 전략을
것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래되어
방법들을 논하고자 마련하신 것으로
먼저 세우고 그에 따른 디자인의 목표와 방향을
수없이 상처가 난 투박한 목재 선반에 놓인
이해되었습니다만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나
설정하라고 하죠. 두 번째, 설계전략으로서의
린넨 잠옷과 큰 목재 대문에 걸린 예쁜 옷, 녹슨
해서요.
들어내기와 드러내기인데요, 어떤 수준으로
철기둥과 보일러 사이에 걸린 현대 회화와 조각 등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 이렇게도 할 수
리모델링하면 좋을지를 건축주에게 적극 학교로 온 이후로 작업한 내용이
제안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있구나! 그 후 2008년 서울시립대로 부임하였고
거의 리모델링 작업이었습니다. 지난 15년 사이에
새로운 질서를 공간에 담아내는 제안을 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선벽원〉 리모델링을 하게
제가 했던 작업들을 살펴보니까 처음부터 다루는
것으로 순전히 저의 개인적, 건축가적, 창의적
됐습니다. 2010년에 학교의 100년이 다 돼가는
신축 건물 작업보다는 재생이나 리모델링을
능력의 몫이죠. 어떤 경우 전략적으로 아예
일제강점기 건물의 개보수공사를 위한 학교
주제로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지금
판단을 미루기도 합니다. 건축주가 저의 제안을
건설위원회의 자문 요청을 받았는데 당시 이미
시대의 주제 의식과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선택,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용하면서
설계가 끝나고 시공자까지 다 정해진 상태의 건물
정했어요. 그러다 보니 재생이나 리모델링 작업의
결정해도 된다고 후퇴하기도 해요. 설계 당시에
세 채(현재의 선벽원)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어요.
특성상 내재된 속성을 드러내고 해석하는 내용을
미래의 모든 걸 완벽하게 예측하고 결정한다는 건
거론하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하기에 처음에는 비워놓고 서서히 공간을
2) 1837년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해 2003년 양조장 사적지로 탈바꿈되었다. 이곳의 건물은 1850-1860년 빅토리아 양식의 산업 건물로 현재는 아트 갤러리, 부티크, 레스토랑 & 카페, 선물 가게, 초콜릿 가게 등이 영업을 하고 있다.
김태형; 도시 속의 건축은 파편적
가꾸고 채워나가는 방법을 권하는 겁니다. 물론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단위 블록 안에
특정 사안에 대해선 건축가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서서히 집들이 들어서면서 집합체가 되어 함께
대체로 건축가가 단정적으로 확정하고 건축주를
109
리드하는 것이 때로는 위험할 때가 많다는
천장고가 높고 공간밀도가 낮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목조 가구식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생각 역시 갖고 있습니다.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해요. 천장고가 낮은 아파트에서 자라다
오래된 건축물의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시간의
사용하면서 판단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굉장히
보니 카페에 가면 공간의 크기와 높이가
층위를 보여주기에 적절한 방식이 아닐까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의 융통성이죠. 그래야
다르니까 공간의 새로움과 만족감이 작용하고
합니다. 노후화된 목조 가구(架構)를 적극적으로
건물형태나 용도의 변화가 크지 않겠죠. 실제로도
따라서 그곳에 머물고 싶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노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 중에는 1, 2년이
실제로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존 메이어스-
무엇인지요?
지나지 않아서 변형된 사례들을 많이 봅니다.
레비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천장고가 30cm
건축주나 사용자에게 맞지 않았다는 증거겠죠.
높아질 때 창의력이 두 배나 올라간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겁 없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뢰한 범위를 벗어나 건물
공간환경에 있어 천장높이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런 오래된 집(목인헌)은
자체보다는 외부공간과 대지의 경계, 그리고 대지
것이죠. 미국의 경우 개인의 평면적은 줄어든
안전조치 없이 잘못 철거하면 작업 중에 무너질
밖의 도시적 상황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여 해답을
반면 천장높이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연구
수도 있거든요. 이 집(목인헌)은 철골로 먼저
제시하는 것이 건축주에게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도 리모델링
구조보강을 하고 시작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작업에서는 무조건 천장을 뜯고 봅니다. 우리가
한남동 소재 미발표 주택의 경우 1970년대에
앉아 있는 이 집(목인헌)도 높이를 확보하는
지은 집인데 얼마나 허술하게 지은 집이었던지
드릴게요. 뒤에 프로젝트에 관한 논의의 자리가
변화를 우선시했지요. 그 다음으로 평면적
벽체 일부를 철거하다가 집 전체가 무너진
김태형; 한 가지 추가로 질문을 준비돼 있긴 한데요, 그에 앞서 방금 하신
변화뿐만 아니라 외부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명사고 없이 좋은
말씀과 연관지어서 〈선벽원〉, 〈목인헌〉, 〈인왕산
방안을 모색합니다. 〈초소책방〉의 경우, 기존
결과로 마무리했습니다만 리모델링 작업을 할
초소책방〉의 경우 각각의 프로젝트 안에서
1층의 바닥면적을 줄이는 대신 외부공간은
때면 늘 구조적인 문제로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지키고자 했던 건축적 가치들이 궁금합니다.
매우 크게 확장했습니다. 내·외부 공간의 연결을
조심합니다. 겉은 멀쩡한데 뜯어보면 속은 엉망인
이를테면 제가 보기에 각각의 프로젝트들이
통해서 공간 크기의 변화를 확장시키는 방법을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목인헌〉과 〈선벽원〉은
구조적 특징, 공간적 해석, 땅에 대한 속성을 중심
채택하여 그 전까지는 개방되지 않았던 옥상을
거의 동시에 리모델링한 작업입니다. 〈선벽원〉은
가치로 삼은 게 아니셨나 싶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통상 천장을
적벽돌 치장쌓기와 목재트러스 지붕틀 구조로
뜯어내면 평소 볼 수 없었던 박공지붕의 내부
매우 튼튼하게 지은 건물인데 비해 〈목인헌〉은
속살이 다 드러나는데 그렇게 발견된 새로움이
블록 한 장으로 벽을 쌓고 목재 지붕을 얹은
두자면 〈선벽원〉은 구조와 공간, 〈목인헌〉은
이용자들에게는 아, 공간이 바뀌었구나 하는
단순한 구조였어요. 〈선벽원〉은 일제 강점기
그렇습니다. 굳이 중심 가치를 풍경과 땅, <초소책방>은 풍경과 땅 그리고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제가
때 당시 최고의 기술로 지은 건물로 보였어요.
구조를 중심가치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크게 신경을 쓰는 공간이 화장실입니다. 일반적인
실측하면서 앞에서 얘기했던 요코하마의
그러나 지적하신 그런 속성들이 오디오의
리모델링의 방법으로 감추어진 원래의 모습을
아카렌가에서 봤던 목재 결구들을 여기에서도
이퀄라이저처럼 정도의 차이를 두고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게 되지만 화장실만은
보았습니다. 장스팬일 경우 목구조의 보가
작동한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저의 리모델링
예산이 허락하는 한 최신 시설로 적극적인
쳐지지 않도록 두 목재를 연결한 디테일들을
작업이 기억과 흔적을 남기는 일을 작업의
변화를 주려 합니다. 기존시설의 불편함을
보며 100년 전 이 집을 지은 사람들의 기술과
바탕으로 삼지만 제가 가장 우선적으로
편리함으로 느끼게 하는 최일선의 공간이
정성의 흔적을 보았던 거죠. 리모델링 직전의
고민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공간의 크기에
화장실이기 때문입니다. 〈초소책방〉과 달리
〈선벽원〉은 원래의 목재 천장틀에 철재 천장틀을
변화를 주는 겁니다. 그래야 리모델링의 효과가
〈선벽원〉은 평면에서의 크기 변화는 거의 없이
추가로 달아서 사용하면서 천장과 트러스가
크죠. 리모델링은 신축에 비해 건축주에게 주는
천장을 뜯고 목조트러스를 드러내어 트러스의
스스로의 무게를 못 견디고 많이 쳐져 있는
새로움의 정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구조미와 높이의 공간감을 확장한 경우이고
상태였습니다. 내부의 벽체도 몰탈위 페인트로
가집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앞에서
〈목인헌〉은 동네의 골목과 풍경을 유지하면서
되어있어서 일부라도 뜯어보기 전에는 건물의
공간, 설계 전략이라고 했습니다만 평면,
불법 증축공간을 모두 철거하면서 원형적 규모와
구조적 안전 상태를 판단하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단면 크기의 확장 또는 축소를 통해 변화를
단아한 아름다움을 찾아낸 경우입니다.
개인적으로도 100년 된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이
추구해요. 〈초소책방〉의 경우는 1층 외벽선을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시공사 소장과 시설 담당
후퇴시켜 오히려 면적을 축소했고 대신 없던
[3] 프로젝트 〈선벽원〉 〈목인헌〉
공무원이 저를 믿고 판단에 필요한 모든 요청을
2층을 추가하여 증축하는 등 공간의 변화를
최우용;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잘 들어주셨어요. 내부 벽체의 경우 몰탈을
꾀했습니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변화는 공간의
얘기로 넘어왔는데요, 제가 준비한 질문도 그에
벗겨보니 적벽돌 막쌓기를 하고 회벽 몰탈을 발라
높이였습니다. 그래서 천장을 뜯고 노출하여
연장선상에서 답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놓은 구조였고 1980년대에 내벽의 창호자리를
높이를 높이는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의 근대
일제강점 당시 지어진 3개동 건축물의 리모델링인
메꾸기 위해 사용한 시멘트 벽돌들이 드러났어요.
건축물들은 일본의 영향이었는지 대체로 실
〈선벽원〉은 제 개인적 판단으로는 교수님의 최근
시멘트벽돌을 철거한 창호자리의 상부 인방은
크기가 작고 층고와 천장고가 낮습니다. 지금은
작업 중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아치쌓기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창호
남녀 모두 한국인의 평균 신장이 커졌어요.
3개동 리모델링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상부 벽체 어디에도 처짐이 없는 걸 보고 당시
요즘 아이들이 커피숍을 좋아하는 이유가
요소는 기존 목조트러스의 노출과 활용이라고
벽돌공들이 세심한 기술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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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처짐이 없었다는 게
교수님, 우리 학교에 〈선벽원〉이라는 건물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저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놀라웠죠. 벽체에는 예전 난로의 연통을 연결했던
따로 설계하셨나요?”{모두 크게 웃음} 그런 적도
이용자가 너무 좋아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저의
굴뚝의 흔적과 전기배선의 흔적도 드러났습니다,
있었습니다.
디자인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천장 속의 지붕을 받치고 있던 박공형 목조트러스 부재들, 전기 배선용 애자, 작업자들이 남긴
저는 그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시간이라고 백승한; 교수님은 에세이를
생각해요. 시간은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목재의 한자 표기 글씨 등 기억과 흔적, 공간의
통해서 〈선벽원〉 리모델링을 통해 드러나게 된
디자인해 줍니다. 사람들이 새 것일 때는 느끼지
속살을 눈으로 확인하게 됐지요. 현장에서 가장
목조트러스와 적벽돌을 두고 “감동적”이면서
못했던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때가 묻고 변화된
어려웠던 부분이라면 그것들을 일일이 확인한
또한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다음 드러내어 표현할 것인지 다시 감출 것인지
흔적이 드러나는 상황, 그리고 이에 감동 내지
수 있는 거지요. 얼마 전에 제가 새로 설계한 카페
신속하게 결정해 줘야 다음 단계의 작업을 할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수연목서〉에 갔었는데 몇 개월 만에 가보니까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판단하고 결정하지
엄밀히는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느낌이 너무 좋아진 거예요. 동행한 사람도 같은
못하면 현장 작업자들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그러한 정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거나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현장이 학교 내에 있어
공유되지 않을 수 있다고 봅니다.(즉 개인마다
못하지만 뭔가 그 공간에 작동하는 요소들이
급한 결정이 필요하면 굉장히 빠르게 대처했던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구석구석에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에
것 같아요. 특히 회벽을 발라놓은 벽체 같은 경우
판단, 그리고 감동이라는 정서적 반응을 배제한
스며든 커피 향기,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안쪽의 바탕인 적벽돌을 노출시키기 위해 많은
채 〈선벽원〉 공간을 경험하는 행위는 여전히
체취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매개체를 저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몰탈을 벗겨내는 작업의
가능하고 유의미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기억, 흔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목수들이
경우, 목업(mock up) 테스트를 위해 물을 뿌리고 파쇄기로 뜯어낸 다음 벽체가 마를 때까지
작업 중에 흘린 땀, 작업 도중에 마시며 바닥에 이미 프로젝트에 개입된 건축가가
흘린 막걸리 흔적 등등이 그 공간에 남아 있었을
기다렸다가 적벽돌의 바탕색과 희끗희끗한
예측하고 느끼는 공간과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로 인해 공간이
몰탈의 흔적을 보고 어느 정도의 질감과 색상으로
공간 정서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왔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표현할지를 정한 다음 비슷한 수준의 파쇄와
생각합니다, 건축가로서는 당연히 목적하는 바에
건축은 시간이 축적된 덩어리라고 생각해요.
흔적 남기기 작업을 진행했어요. 현장의 조건상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그 고민의 차이가 건축가의
현재는 현재대로, 시간이 흐르면 흐른 대로.
제가 말로 지시하더라도 벽체 몰탈을 제거하는
차별성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마치 화가가
사람마다 공간을 느끼는 것이 다른 이유이기도
작업자의 느낌과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의도한 그림을 관람자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보는
합니다. 요즈음은 공간이든, 시설이든 그냥 있던
상황이었죠. 정해진 마감을 덧붙이는 신축과 달리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서와
상태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보이지 않는 속을 드러내어 마감으로 표현하기
같은 지점에서, 저는 그런 차이를 자연스럽게
합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건데, 현재는
위해 걷어 내는 리모델링 공정이라 진행하면서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고 할
불편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다시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때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편해지기도 하니까 그냥 있던 상태 그대로 좀
아니었어요. 판단이 더디면 현장에선 기다려야
분위기를 느끼며 보는 것이거든요. 공간은 사람이
더 사용해 보고 기다렸다가, 필요할 때 고치면
하고 그러다 보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 버려서
그곳에 있을 때와 없을 때, 문을 닫아놓고 볼 때와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기다렸다가
가치가 있거나 소중한 부분을 살리지 못하고
문을 열어놓고 볼 때, 바람이 불 때와 그렇지 않을
마음이 충분히 익었을 때 리모델링하자는 것이죠.
철거할 수도 있거든요. 리모델링 작업은 즉각적인
때, 소리가 들릴 때와 조용할 때, 향기가 있을
리모델링 작업에서도 보통 욕심을 내어 신축처럼
판단, 순간의 선택과 결정이 곧 디자인이라는 것을
때와 없을 때 등등 상황과 상태에 따라 다 다르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데 재생이나
깨닫게 됐습니다.
느껴집니다. 즉, 대상을 보는 그 순간에 관여하는
리모델링은 경험의 축적에 따른 비중이 큰지라
모든 요소들이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게 하는
저도 추구하는 건축의 방식이 이전 보다 달라지고
원인을 만들어요. 같은 대상도 시간에 따라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 특집을
하나로 묶은 명칭이 〈선벽원〉이잖아요. [이; 네,
다르게 보이는데, 100년이 다 돼가는 시간의
리모델링 작업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습니다.]
흔적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 빛이 풍만한
에세이도 그것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썼습니다.
최우용; 기존에 있던 세 개 건물을
공간에 먼지들까지 비추고, 오래된 색깔, 짙게 〈선벽원〉이란 이름을 짓게 된 사유는,
밴 냄새 등이 작동했다면, 제가 그것을 특별히
백승한; 분위기 말씀을 하셨는데
작품 명칭을 학교의 사용명칭으로 하면 3개
좋아한 개인적 선호도까지 동원하여 감동적이란
교수님의 에세이에서도 피터 춤토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셔서 드렸던 질문입니다.
동이니까 ‘경농관, 박물관, 자작마루 등 리모델링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거겠죠. 제가 어떤
계획안’처럼 길어져요. 처음엔 그걸 그냥 쓸까도
의도를 가지고 설계를 하고 판단하고 표현했다
생각해봤는데 좀 간결할 필요가 있어서 오랜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와서 봤을 때 그 사람만이
시간 잘 견뎌준 착한 벽돌이란 의미로 착할
고유하게 가지게 되는 느낌으로 볼 겁니다. 저와
표현이 있잖아요, 벽돌도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는
루이스 칸 하면 떠올리는 철학적
선(善)자에 벽돌 벽(⾌)자를 써서 〈선벽원〉이라고
전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어요. 저는 그것이 같지
그 말이 젊었을 때는 단순히 멋진 표현이라고만
짓고 세 건물이 하나의 영역이란 점을 강조했던
않아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그곳을 이용하는 자가
생각했는데 요즈음은 단어 하나하나,
거지요. 나중에 총장님이 제게 그러더군요. “이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안 좋은 느낌을 받았을
문장부호까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예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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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벽돌이 분명히 내게 얘기를 했을 텐데 그
부분이 있어요. 천장을 걷어내면서 통기와 단열이
훌륭했던 것 하나로 지금은 사라진 공법인데
때는 듣지를 못했고 지금, 여기서는 들리거든요.
해결되었지만 건물의 통기구를 그대로 놔두고
현장물갈기바닥 마감과 몰탈씻어내기 마감이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나이가
보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근대 이전의 건물은
있는데 본 사람들 대부분이 돌이라고 생각했을
주는 지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건축 재료가
단열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단열이 안 되어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어요. 작은 종석을 몰탈에
되고 싶은 게 있다면 건축가로서 그걸 살려줘야
있었어요. 단열재로 외벽 치장벽돌을 가리면 안
섞어 미장한 다음 세밀한 씻어내기 공정을 거쳐
하는데 그걸 살려줄 생각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되니까 내단열로 하고 마감으로 벽돌을 쌓기로
마감을 하는 것으로 십여 미터쯤 떨어져서 보면
것만 고집한 시간들이 있었죠.{이충기 교수는 최근
했죠, 고벽돌로요. 당시 국내에서는 고벽돌을
돌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한 출판사의 요청으로 루이스 칸의 원전을 한글로
생산하지 않아서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중국산
옮기는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대화 도중 잠시
고벽돌을 들여와서 쌓았습니다. 단열재를 넣고
했습니다. 손으로 그리고 캐드 작업을 했는데
번역 관련하여 동기, 배경 등등의 얘기가 오갔다.}
고벽돌을 쌓았으니 자연히 벽체가 두꺼워졌어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도면, 스케치들로 전시를
이용자들은 원래부터 있었던 벽돌벽체인 줄
한 적도 있습니다. 〈선벽원〉의 세 건물의 경우는
김태형; 〈선벽원〉과 〈목인헌〉의
이 집(목인헌)도 모두 실측을
알겠지만 새로 쌓은 벽이고요, 복도와 면한
캐드 도면이 있었는데 문제는 디테일한 치수가
에세이를 읽어보면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대한
내부 칸막이 벽체는 회벽 몰탈을 다 깨어내고
적혀있지 않아서 전부 현장에서 실측하여 새로
건축가의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벽원〉은
벽돌벽을 노출시킨 겁니다. 그래서 상당히 거칠게
그렸습니다. 다행히 현장 소장이 데리고 있는
1930년대 말에 적벽돌 벽체에 목조트러스를 얹어
보이도록 했죠. 본관과 박물관은 외벽 치장쌓기로
직원이 캐드를 다룰 줄 알아서 그나마 작업이
지은 것이고, 〈목인헌〉은 시멘트 블록 벽체에
되어있었고 자작마루 건물은 당시 자금이
순조로웠지요. 처음에는 목재창호였는데 제가
목구조를 얹은 건물이었습니다. 이러한 건물들은
부족했었던지 그냥 외벽에 회벽을 발라놓은
공사에 관여할 때는 모두 알루미늄 창호로
도면도 없었을 것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건물의
것이었어요. 막상 뜯어보니까 막쌓기 벽돌이 너무
바뀌어 있었어요. 할 수 없이 옛날 사진을 보고
개략적인 구성을 알 수 있는 정보를 지닌 것이었을
거칠어서 이 건물은 경농관과는 반대로 벽체
추정하여 다시 목재 창호로 바꿨는데 단열을
것 같습니다. 설계프로세스를 설명해주실 수
외부로 단열을 하고 바깥에 새로운 고벽돌을
위해서 바깥쪽엔 목재 창호로 하고, 안쪽으로
있는지요? 실측 조사가 필요했을 것이고, 도면화
쌓았습니다. 벽체 두께를 450으로 두껍게 했던
알루미늄단열 창호를 설치하여 이중창호로
과정을 통해 공사 순서를 설정해야 했을 것
이유는 구조적으로 불안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시공했습니다.
같습니다.
위한 방법이었어요. 원래의 벽체 두께가 1.0B로 그리고 내부마감을 철거하면서
200정도였는데 무거운 목조트러스와 지붕 무게를
김태형;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면
겪었던 문제들은 없으셨는지요? 예상하지 못했던
받치고 있어서 구조적 불안정성을 해소시키려는
〈목인헌〉 규모의 집에서는 오히려 실측 도면을
문제에 직면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있으셨다면,
목적도 있었습니다. 목조트러스는 상태가 안
만드는 것이 귀찮은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현장에서 그러한 사안들을 어떻게 풀어
좋은 부분은 교체 했지만 기존의 트러스의
생각이 드는데요.
가셨는지요?
공간깊이가 커서 천장을 해체하고 드러낸 내부 공간감이 매우 좋았어요. 이 집(목인헌)도 옛날
두 건물이 건축된 시기가 좀 다르고,
공사비용을 산출하기 위해선 실측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벽체를 뜯고 보니까 집의
도면을 작성하는 것이 필수에요. 작업 현장에선
시간적으로는 거의 2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본체가 지닌 비례감이 꽤 예뻤어요.{이후 이충기
사실 지금 얘기한 것처럼 실측 도면을 작성할
건물이에요. 〈선벽원〉의 원래 건물은 1938년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인헌의 세세한 부분에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스케치를 통해 설명이나
일제강점기에 지어졌고, 〈목인헌〉은 원래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1958년경에는
작업지시를 우선합니다. 도면 보다는 현장에서
주택으로 1958년에 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에서
시멘트블록과 벽돌을 생산하여 전후 복구나
직접 보고 어떻게 하자고 말로 결정해 주면 되는데
지은 집이에요. 선벽원의 ‘경농관’은 학교의
신축건물에 많이 사용했던 시기였기에 〈목인헌〉
창문 모양이나 살면서 누군가에 의해 변형된
본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인데 치장쌓기로 제대로
벽체는 모두 시멘트 블록을 썼던 겁니다. 벽체 위
것과 원형을 살피는 차원에서 기록의 의미가
지은 건물이었어요. 내부의 복도 칸막이벽은
테두리보를 둘리고 목재지붕을 얹은 아주 간편한
크기 때문에 규모에 상관없이 실측 도면 작업은
막쌓기 후 페인트칠을 했고요. 일제강점기 건물의
방식으로 집을 지었던 거예요. 나무를 다루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징 하나는 천장이 있었다는 점이예요. 지붕은
기술로 역티(T)자로 박공을 만들고 목재 패널로
박공지붕인데 내부는 예외 없이 천장을 설치하여
덮은 것이나 보의 변형과 모멘트를 줄이기 위한
난방 면적을 줄였고요, 천장 속은 통기구를
결구 등에 적용된 기술이 일제강점기에 배운
같이 기존 건축물의 뼈대를 보여줌으로써
만들어 썩지 않도록 해놨어요. 물론 그곳이
기술이란 것을 알았죠. 우리나라 건축 기술뿐
‘시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의지를 극명하게
쥐구멍이 되어 쥐들이 들락거렸겠지만 누수가
아니라 행정,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36년을
보여주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접근하기
되어 썩는 것을 제외하고는 습기로 썩을 일이
지배했던 일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어려운 좁은 골목길과 높은 위치 그리고 위법
없었던 거죠. 일부 누수가 되더라도 통기구멍으로
생각해요. 사회체제, 행정, 도시공간구조가
증축된 공간들의 철거와 노후한 기존 뼈대의
인해 자연건조 시키는 방법이었는데 학교에서 이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받고 지금에 이르고 있는
보존 등과 같은 조건들이, 철거 후 신축보다
최우용; 〈목인헌〉 작업은 〈선벽원〉과
건물을 사용하면서 비가 샌다는 이유로 통기구를
겁니다. 해방됨과 동시에 그때까지의 모든
공사비가 높지 않았을까 예상됩니다. 그런 면에서
죄다 막아버려서 건물 내부의 상태가 습기로
질서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없앨 수 있는
질문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간(기억)의
썩고 곰팡이가 슬어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 아니었겠죠. 그때 사용되었던 기술 중에
가치’와 ‘기회비용’이 서로 어긋나는 상황이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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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하여, 발주자(또는 건축의뢰인)에게 이를
사람이건, 주택에 살았던 사람이건 아주 개인적인
추운 거였습니다. 건축주가 주유소 사장이라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취향과 습관의 문제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마당에 커다란 오일탱크를 묻고 보일러를 풀로
현장에 와서 교수님 자신이 이 집의 건축가이자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수십
가동했는데도 열기는 모두 위층으로 올라가니
건축주라는 말씀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이; 아,
년 살아온 태도나 습관을 바꾸기 위한 이해와
주로 사는 아래층은 추울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모르셨군요.] 네, 전혀 몰랐습니다.{웃음}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죠. 연면적 100평이 넘고
그때 배운 것이 거실의 층고를 조금 높게는 할
평당 공사비가 1000만원 넘어가는 주택설계를
수 있어도 두 개 층을 오픈하면 곤란하다는
할 때 얘기인데요, 건축주가 집에서 밥 해먹을
것이었어요.{웃음}
비용 측면에서 신축과 리모델링 공사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철거의
일 없으니 주방이 클 필요가 없다며 줄여달라고
범위, 증축의 규모, 구조보강, 냉난방, 단열,
했어요. 설득 끝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공간의
외벽마감 등에 따라 비용 차이가 결정되기
크기를 약간 줄여서 완성했는데 입주 후에 보니까
제목이자, 서울시립대학교의 선벽원 준공기념
때문이죠. 〈목인헌〉의 경우 신축공사와 비슷하게
이 분이 주방에서 살더군요, 새롭게 만든 달라진
발간 책자의 제목이기도 한 ‘오래된 현재’는 헬레나
최우용; 〈선벽원〉 관한 에세이
들었습니다. 불법증축이 많아 철거 규모가 컸고
환경이 너무 좋더란 거에요. 그 뒤 이제는 주방이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의 오마쥬인
차량 접근이 안 되는 계단 골목으로 폐자재를
작으니 어떻게 키워줄 수 없냐고 해서 주방
듯합니다. 교수님께서 작명한 ‘오래된 현재’의
마대에 담아 인부가 일일이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주위로 여유 공간을 활용해 해결해 드린 적이
의미 또는 가치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신다면
철거비용과 인건비가 많이 들었고 바닥난방,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설득의 과정이 곧
무엇인가요?
단열비용, 구조보강, 창호공사 등이 신축공사와
디자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여담으로 이충기
비용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선벽원〉은 면적의
교수는 동료 건축가들과 건축의뢰인 사이의
증가가 없었고 작업여건이 좋았기 때문에
이해상충된 관계 설정의 사례에 대하여 개인
것은 사실 그게 ‘오래된 미래’와 같은 의미를
신축에 비해서는 비용절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도면에
갖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것은
리모델링의 경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억과
직접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도면 안에 축적되는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고
흔적을 얻고 시간의 가치를 소유하기에 더 큰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건축가에게는 건축주를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3)이라고
이익이라 생각해요. 〈목인헌〉의 소유는 사실은
설득하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설계초기에
했는데 저한테는 시인의 말대로 선벽원의 과거,
제가 밝히지 않은 이유도 있어요. 처음엔 공동으로
스케쥴 중 많은 시간을 저와 소통해야 한다고
현재, 미래가 온 거였지요. 과거가 지금에 드러난
되었다가 한 사람이 빠져나가고 혼자서 소유하는
건축주에게 부탁합니다. ‘처음엔 다 불편할 수밖에
상태가 현재이니까 그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과정이 있었어요. 이 집과의 인연은 처음에
없다, 지금까지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그렇다,
흘러온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썼습니다.
맞습니다. ‘오래된 현재’라고 쓴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이 이 동네의 재개발을
장담컨대 이 새로운 집에 3개월만 맞춰서 살면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면 〈선벽원〉을
막기 위한 시민 활동 차원에서 지인들에게 참여를
불편이 사라지고 마음에 드실 거다’ 하는 식의
설계할 때 제가 총장을 찾아가 보존을 원칙으로
요청했고 저도 그 뜻이 좋아서 참여하게 됐던
뻥을 치기도 하죠.{함께 웃음} 평생 아파트에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을 알게 된
거고요.
살던 사람이 주택에 처음 입주하고 나면 모든
서울시 파견 공무원인 시설과장이 매우 화가 나
것이 다 불편하지요. 겨울에 춥다고 하면, 저는
있었어요. 모든 내부결재가 끝나고 시공사까지
농담조로 이렇게 말해요. 단독주택은 온몸으로
다 결정해놨는데 갑자기 건축학과 교수가 자기
건축의뢰인이 생각하는 가치가 서로 어긋날
단열해야하기 때문에 추운 거라고.{모두 크게
예정대로 진행하려고 했던 것을 못하게 막고 모두
때 건축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건축의뢰인을
웃음} 아파트는 위아래 층, 옆집에서 서로 불을
스톱시킨 것이 무척 기분 나빴겠지요. 불쾌한
설득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때니 따뜻한데 단독주택은 나 홀로 열을 내서
언사까지 하며 무시하는 통에 대놓고 싸울 수도
보온해야 하고 그것도 내가 불을 지피는 것이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조직의 특성을
최우용; 건축가가 생각하는 가치와
아니라 미지근한 상태로 전체를 덥혀야 하니
이용해 서울시 윗선에 전화하여 제 의견대로
제안을 관철하기 위해 건축주들과 굉장히 많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라고 하죠. 제 주택 데뷔작이
진행하도록 부탁했어요. 공무원 조직의 특성을
대화를 하는 편이에요. 내가 설계해주는 대로
〈군산주택〉이었는데, 주유소를 40개나 운영하는
이용했지요. 앞에서 놓치고 설명한 게 있는데
그냥 믿고 사용하라는 게 아니고, 저의 뜻을
지방 재벌의 집이었죠. 의뢰인이 부친의 집
천장을 드러내기 위해선 배선, 배관을 정리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요, 저의
이해시키기 위해서 치열한 설득 과정을 거칩니다.
설계의뢰를 해온 것인데 연면적이 약 100평정도
트레이박스와 스프링클러 배관을 디자인해서
때로는 싸우기도 할 정도로요. 그 같은 과정이
됐어요. 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제가 그때
넘겼더니만 소방에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설계로 사용 환경이 바뀌는
받은 설계비가 5000만원이었으니 당시 기준으로
소방방재학과의 윤명오 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것에 대한 건축주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큰 금액이었지요. 지금도 저는 설계비를 작게 받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자료를 만들어 제시했죠.
용도마다 다르겠지만 상업시설이나 오피스 등의
않는 편입니다만 어쨌든 그 비싼 설계비를 내고
또한 냉난방을 하게 되면 열교환기 설비를
경우는 분양이나 임대, 매출 등 경영적 측면을
지은 집이 겨울이 되면 거실에 앉아 있을 수가
설치해야 하는데 천장 부분에 그것까지 들어가다
강조하면 이용 측면에서는 사실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추워도 너무 춥다는 거예요. 살펴보니
보니 얼마나 복잡해졌겠어요, 목조트러스를
없어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근무하는 환경에
바닥난방으로 덥혀진 따뜻한 공기가 오픈된
노출하기 위해 그런 부분을 정리하는 작업이
익숙하고 어디나 비슷한 까닭에 새로운 환경에
거실의 2층 부분으로 올라가고 2층의 차가운
대부분 만족하지요. 근데 주택은 아파트에 살았던
공기가 1층으로 대류되면서 기류가 형성되어
3) 정현종 시, ‘방문객’의 내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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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 베이스먼트 세운 베이스먼트는 북쪽부터 현대상가(철거), 세운가동, 대림, 청계, 삼풍가, 삼풍나, 신성, 진양 등의 세운상가 건물 중 청계상가 지하의 기계실을 리모델링한 프로젝트이다. 당초 세운상가와 주변의 8개 구역은 모두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으나 대규모 블록의 이해 상충으로 개발되지 못하고 쇠퇴가 가속되자 서울시가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1km 길이의 세운상가만은 존치하여 재생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세운상가 주민들을 위한 활성화 프로그램을 지원하였다. 그러자 주민들이 청계상가의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옛 기계실 공간을 재생 활성화를 위해 사용하도록 내 주었고 서울시와 협의하여 작은 공간이지만 세운상가 주변의 도심제조업을 지원하는 로봇 이용 기술교육과 체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예산이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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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재생사업 엠피(MP)를 맡고 있던 내가 재능기부로 설계를 진행하였다. 쓰레기더미로 꽉 찬 지하실을 치우고 정리하자 옛 기계실에 방치된 오래된 보일러와 펌프, 배관 일부가 드러났고 기억과 흔적의 장치로 그 중 일부를 존치하여 사용공간을 확보하였다. 시공예산이 너무 적어 보일러와 배관을 해체하고 좁은 계단과 입구로 운반, 폐기하는데 더 많은 예산이 드는 것 또한 존치의 원인이었다. 외벽은 시멘트블록으로 공간 벽을 쌓고 바닥은 누수에 대비하여 피비시(pvc) 배수판 위에 무근콘크리트를 타설하였으며 천정과 기둥은 페인트를 칠하는 등 최소 예산으로 리모델링하였다. 기존 공간인 기계실의 기억을 살려 설비용 파이프를 이용하여 계단 가이드 레일과 출입문, 전기 배선과 조명 기구를 설계하였고, 냉난방 기능을 추가하여 용도에 맞게 기능 개선을 하였다. (글.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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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운상가 지하기계실 현황도 2. 세운상가 지하실 평면계획도 3~4. 내부 공간 Ⓒ노경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스케치해주며 작업을 지시했는데 나중에 현장에 가보니까 엉망진창으로 시공한 거예요. 아니다 싶어 뜯으라고 했더니 소방담당 감독이 말을 안 들었어요. 근데 소방시공사 반장이 저를 찾아와서 ‘교수님, 제가 보기에도 교수님 판단이 옳습니다. 교수님 주장대로 하세요. 제가 힘들더라도 교수님의 지시한 대로 바꾸겠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런 지지를 등에 업고 강하게 밀어붙였죠. 공사가 마무리되고 제게 언성을 높였던 시설 과장이 자치구로 옮겨간다고 제게 밥을 사면서, 저간의 일이 죄송했다면서 자기가 예산을 2000만 원 정도 남겨놓고 가니 그것으로 좋은 건설지를 제작하면 좋겠다, 라고 하더라고요. 그 덕에 건설지를 건설지 같지 않게 작품집처럼 만들었습니다. 그 건설지 제목이 ‘오래된 현재’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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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로젝트 〈인왕산 초소책방〉 김태형; 〈인왕산 초소책방〉(이하 〈초소책방〉)은 설계의 접근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 앞의 재생 프로젝트들과 다소 차이를 느꼈습니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인왕산이라는 자연환경을 지닌 대지에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져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방호시설을, 대중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로 재구성하는데 철과 유리를 사용한 것은, 그동안 이곳이 지녀왔던 음침한 분위기를 열린 공간으로 반전시키는데 굉장히 적절한 재료였다고 생각됩니다. 명쾌한 구조형식과 투명성을 강조한 외피, 지붕선 처리는 내외부와의 관계 등이 고려된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여기에 내부 공간의 구성을 보면 건물의 지속성에 대한 판단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초소책방’에서의 ‘초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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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건물이 지녔던 용도에 대한 기억, ‘책방’은 앞으로 그 용도가 변화하여도 큰 관계가 없는 일종의 가주어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잘 보신 것 같습니다. 〈초소책방〉은 애초에 서울시 총괄건축가 김영준 선생이 젊은 건축가 몇 분에게 설계를 요청했는데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고 할 일은 많다 보니 다들 맡기를 꺼리자 리모델링 작업의 경험이 있는 이충기와 조남호에게 초소 하나씩 맡긴 거였죠. 아시는 바처럼 과거 1·21사태 때 청와대 주변 권역이 철저한 방호체계로 굳게 닫혀버리게 되는데 그때부터 군인과 경찰 근무자들의 내무반 등으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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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세운상가 지하기계실 현황도 7. 내부 공간 8. 내부 계단(7-8. 사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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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 창고극장 삼일로 창고극장은 7080세대에게는 이름만으로도 특별한 기억의 공간이다. 1975년, 건축주가 주택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민간 예술단체에 임대한 이후 운영의 어려움으로 여섯 번의 개·폐관을 거친 민간 예술 공연의 상징적 공간이다. 2016년, 건축주가 내게 이 장소의 신축과 리모델링에 대한 검토를 의뢰할 당시 창고극장은 임대료 미납으로 수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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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상태였다. 넓지 않은 대지를 기존 건물이 대부분 덮고 있었고 경사지, 지하암반, 인접건물 붕괴위험, 주차장 확보 등의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어 신축하더라도 기존 면적만큼 확보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었고 명동성당 인접구역이라 문화재 심의와 인허가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건축주에게 장소의 상징성이나 역사성을 살려 신축보다는 리모델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제안하였고 2017년 불법적 요소를 모두 철거하고 지역 문화재 심의, 건축인허가 등의 적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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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를 거쳐 리모델링하였다. 마침 사라져가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삼일로 창고극장의 보존에 관심을 보인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2018년부터 창작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임대하여 장소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잇기로 하였고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원래의 창고극장은 공연장, 통기타 주점, 원룸형 임대주택으로 3개의 용도와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면 도로변으로 기존 건물이 1m 폭으로 침범하여 점유한 부분을 구조보강 후 모두 잘라내야 하는 문제와 뒤쪽의 창고극장으로의 진입로가 명동성당 소유로 되어 있어 별도의 출입구를 마련해야 하는 점, 그리고 건물 일부를 비워내고 주차장을 마련하는 것이 큰 해결 과제였다. 임의로 증·개축한 주택 부분과 전시공간 등의 서로 다른 레벨을 연결하고 불법 증축 공간을 철거하였으며 주차장, 정화조, 외부 진입 통로 등을 도로에 맞게 새로 조성하였다. 후면부의 공연장은 원래의 공간과 크기를 그대로 존중하여 존치하였고 도로에 접하여 통기타 주점으로 사용하였던 지하 및 지상 공간은 전시공간으로, 주택 부분의 1층은 사무지원 및 카페 공간으로, 2층은 연습공간으로 재배치, 리모델링하여 후면부의 창고극장 동선과 연결하였다. 외벽은 기존 벽체에 단열재를 보강하여 적벽돌로 마감하였고 내부 벽체는 기능에 맞게 철거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으나 천장, 창호, 박공지붕 등의 일부는 낮은 층고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흔적의 장치로 살려두었다. (글.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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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공사 전 전경 3. 원경 4~5. 외부 전경 6. 진입 공간(3-6. 사진 Ⓒ노경)
쓰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청와대 방호구역 축소로 초소들을 철거하게 되었는데 위에 군인들이 쓰던 초소와 아래 경찰들이 쓰던 초소 두 곳을 남겨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프로그램으로 리모델링을 하게 된 것이죠. 위에 조남호 소장이 담당한 군인초소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어쩔 수 없이 다 뜯고 새로 지어야 했고, 제가 담당한 곳은 콘크리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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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조로 되어 있어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습니다. 무악재 쪽에 거주할 때 이곳으로 자주 산책을 했는데 약 2.5m정도 높이의 펜스로 가려져 밖에서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죠. 막상 현장 조사를 가보니 1층, 2단 건물이었는데 높은 곳은 2층 침대를 놓고 소대규모가 내무반으로 쓰고, 낮은 곳은 식당과 화장실, 샤워실로 쓰고 있었어요. 낮은 쪽 옥상공간엔 운동기구가 놓여 있었고요, 바위 쪽엔 축대를 쌓아서 파고라를 설치해놨더군요. 골조만 남기고 모조리 철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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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 결정했어요. 벽체는 일부 흔적만 남기는 것으로 하고요. 초소 옆의 바위 위에 올라가서 봤더니 서울 시내 중심부가 다 내려다보였어요. 무엇보다도 이 멋진 뷰(view)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 앞 산책로를 지나다닐 때 가장 불편했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인왕산 스카이웨이에는 공중화장실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건물이 없으니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는 게 당연한 거였겠죠. 그러다 보니 등산객이나 일반인 모두 숲속에서 볼일을 해결했어요. 그래서 그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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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무성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요.{모두 크게 웃음} 〈초소책방〉에 다녀온 분 중에서 왜 가장 좋은 위치인 길에 면해 화장실을 배치했냐고 물어보는 분이 종종 있었어요. 그럼 제가 지금처럼 답을 해드렸어요. 〈초소책방〉의 공간적 특징은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다고 보는 게 맞아요.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곳이라 1층의 내부 면적을 줄여가면서까지 외부공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외벽 유리를 셋백하여 처마공간을 만들고 외부에서는 굳이 1층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2층 공간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외부계단을 만들어놨습니다. 내부에서도 올라갈 수 있고 동시에 외부에서도 올라갈 수 있도록 했어요. 외부 데크공간의 레벨도 두 개의 단차가 있어서 보이는 풍경이 다르지요. 남산이 보이는 조망과 달리 반대쪽의 큰 바위풍경은 기존시설물을 걷어내고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끌어 당겼습니다. 시공예산은 애초 3억 원이었고, 설계비가 1000만원이었어요. 그러니 외주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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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진입 공간 측면 뷰 9. 야경 10~13. 내부 공간 14. 주변의 풍경을 끌어안는 창호(7-14. 사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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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설계비로 누가 하려고 했겠어요. 그래서 제가 6개월 동안 서울시를 설득해서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건축 디자인의 질적 제가 그 글을 쓰게 된 배경 설명부터
기대치는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공예산을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고 설계비도
말씀드리죠. 이 건물이 강구조학회가 주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후배
3300만원으로 올렸습니다. 서울시에서 리모델링
강구조건축상을 수상했어요. 예상치 못하게
건축인들에게 조언하실 말씀을 부탁드려도
설계비로 책정된 예산이 생각보다 많이 낮아요.
강구조학회 회장님 전화를 받았어요. 산책 중에
될런지요.
서울시 푸른도시국이 예산을 만들고 종로구의
우연히 〈초소책방〉을 방문했는데 건물 규모는
공원녹지과가 시행을 한 프로젝트였는데 제가
작은데 철골을 사용한 것이 반갑고 흥미로워
내용을 들여다보니까 확보할 수 있는 조경
세세히 둘러보게 됐다면서 건축상에 신청해보면
자리에 오는 과정까지 운이 좋았던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 이
예산이 좀 여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풍경이
어떻겠냐는 얘기였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상을
어느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창작이
뛰어난 그곳에 특별히 인공적 조경이 필요하진
받게 된 것이죠. 기존 콘크리트 건물의 구조체를
주는 즐거움이 생존을 앞질렀기 때문이겠지요.
않잖아요. 자연자체가 조경인데... 그래서
H빔과 각 파이프를 써서 보강하고 투명성을
학생들한테도 이렇게 말해요. 우리 나이에 내
조경예산을 조정하여 외부공간의 데크를 깔고
높이기 위해 유리를 덧대고 내부 공간에는
친구나 아는 사람 중에서 건축 전공하고 집에서
바위 주변을 철거, 정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각관을 사용하여 건물의 부피를 줄이려고
노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이죠. 지금
사실 제가 이곳에 적용코자 했던 조경의
했습니다. 이곳은 특별히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당장의 소득 기준이나 업무의 고단함만을 가지고
개념은 실현시키지 못했어요. 프랑크푸르트의
확보하기 위해서 재료를 철과 유리 중심으로
판단하여 너희들의 미래를 재단하지 않았으면
모리스로즈에어필드(Maurice-Rose-
썼던 것이고요, 여기처럼 작은 건물이 감당하기
좋겠다고 말해줍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늘
Airfield)라는 공항 활주로 재생 프로젝트인데요,
어려운 공사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깥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좋은 생각,
활주로 아스팔트를 재생하여 자연 회복하도록
규격화된 제품을 가져다가 현장에서 조립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땅에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조경설계를 한 프로젝트였어요. 아스팔트를
방식이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내 건설
직업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의사는 늘 아픈
크기가 다르게 잘라 뒤집어 놓아 새로운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로 리모델링 보다 새로
환자를 봐야 하고, 변호사는 이기기 위해서
경관을 만들고 깨진 크기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짓는 게 좋다고들 해요. 사실 시공업자들이 그렇게
거짓말도 해야 하는 직업임에 비해 건축가는
종류의 식생이 자리 잡는 아이디어였지요.
호도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요. 리모델링이
성공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그와 같은 조경개념을 기초로 농구장으로 쓰던
여러 면에서 어렵거든요. 실측하고 구조보강 해야
업이니까 얼마나 좋은가 말이죠. 돈의 크기로 인해
콘크리트 바닥을 깨내어 재활용하는 개념을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디테일을 만들어서
어려움을 겪는 환경에 속한 이들도 있지만 그것이
담아 넘겨줬는데 결국은 그렇게 안 하더라고요.
작업해야 하는 등등 까다로운 조건이 많은
모든 건축가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식당 하는
공원녹지과나 조경업체 입장에서는 흔한
거죠. 구조계산하는 분들도 대체로 싫어해요.
사람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하는 사람이 있고,
조경석을 깔고 식재를 하는 것이 조경이라고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
돈 버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판단했던 거죠. 그나마 지금의 수준으로 만들
시공업자가 건축주에게 새로 짓는 게 훨씬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라고 말이죠.
수 있게 된 배경입니다. 〈초소책방〉은 공간의
싸고 안전하다고 유도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앞에서 공간전략, 공간경영에 관해
속살이 없는 대신 기억과 흔적을 남겼는데 원래
건축주들은 그런 말에 설득당해요. 여담으로
말했는데 우리 건축가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을
그 공간에 잠재돼있던 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가 최근 150평짜리 건물 설계 의뢰를 받아
들라면 비즈니스, 경영전략에 대해 무지하다는
펼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벽과 출입문,
제안한 적 있어요. 있는 건물 잘 살려서 해보자고
겁니다. 설계만 잘 하면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기름탱크 등의 흔적과 원래 규모를 짐작케 하는
했고 긍정적이었어요. 근데 계산해보니 철거
우를 범하고 있죠. 그건 착각이거든요. 그런
높이와 구조를 리모델링 스토리의 바탕으로 삼고
비용이 엄청 나오는 거예요. 건축주 입장에선
식으로 사무소를 운영하여선 늘 밑지고 힘들지요.
증축공간과 옥상으로 대변되는 외부공간의 힘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던지라 무척 놀란 것
디자인 공부 이상으로 경영을 공부해야 됩니다.
가치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케이스라고
같아요. 그러니까 시공업자가 건축주에게 옆으로
사무소를 오픈하고 의뢰받은 프로젝트가 돈이
생각해요.
얘기해서 철거하는 데 그 큰돈을 쓸 바에야 헐고
안 된다 싶으면 그 일을 하지 않아야 돼요. 근데
새로 짓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이죠. 결국 작지
밑지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하는 것을 종종
않은 설계비 문제도 작용한 듯 그 다음부턴 연락이
봅니다. 건축가가 왜 돈 많은 건축주의 건물을
김태형; 〈초소책방〉 에세이의 마지막 문단에서 대도시의 경우 “향후 소형건축물의
끊어졌습니다.{웃음} 개인의 역사, 기억, 흔적의
위해 희생을 해야 되나요? 그건 어리석고 잘못된
증축, 리모델링의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소중함을 존중하는 문화가 아니고 모든 게 돈으로
것이죠. 밑지지 않고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보셨습니다. 그랬을 때 건식, 경량화, 조립식 등의
귀결되는 상황이 안타까운 거죠.
막말로 허가방처럼 적게 받고 적게 그리면 됩니다.
측면을 주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건축 재료로 치환하면 철과 유리, 목재
근데 대부분 설계비는 적게 받아놓고 도면은 최우용; 앞의 김태형 편집위원 질문에
과하게 그려서 납품하잖아요. 그러니 늘 힘들죠.
등으로 대변될 텐데 이 재료들이 현장에서 사용될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미 한국의 GDP 대비
물론 작품 욕심에 밑지더라도 승부수를 던질 때도
때의 장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건설자본스톡이 선진국 평균을 웃돌고 있고, 이에
있습니다. 저도 젊어선 그랬으니까요. 재능 기부는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철은 구조보강에서
비례하여 건설투자 비중 또한 십수년 사이에 큰
나름 프로젝트 욕심이 나거나 여유가 있을 때
유리할 것 같고, 목재와 유리 등은 시공과 철거에
폭으로 주저앉은 상황입니다. 건축가들에게는
가능하지요. 지금 당장 손해볼 수 있어도 다음을
용이할 것 같습니다.
위기이자 기회라고도 생각합니다. 전체 파이의
기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하는 거죠.
118
우리가 설계사무소를 경영한다는
제가 세운상가 재생 총괄 엠피를 하면서 염두에
유리를 대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여 마치
것은 설계 이전에 사업이고 본질은 경영이거든요,
뒀던 것이 물리적 공간만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물처럼 정리했어요. 그것과 펌프 등 몇 개의
이윤을 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사람 재생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기계장치를 보존하면서 만들어진 사이에 사용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죠. 설계과목에서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재생을 할 수 있도록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기능을 특정하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데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시가 예산을 가지고 할 수
것이 아니라 비움의 공간을 만들어놓으면 그
학교에서도 설계만 잘 하면 된다고 가르치지
있는 것은 공간의 재생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만
공간의 가능성을 알아본 이가 어떤 형식으로든
말고 경영 공부를 함께 시켜야 해요. 건축학과
가지고는 안 되죠. 우리나라의 도시 재생사업이
쓸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죠. 그랬더니만 이
강의실에서도 경영학을 공부시킬 필요가 있는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가 다 사람재생이 안 되기
공간 얘기를 들은 학교의 황지은 교수가 로봇을
거죠. 건축가가 사무소를 차리고 세상에 발을
때문이라고 봅니다.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우리
이용한 제조업 관련 예산을 따와서 입주했습니다.
내딛는 순간 건축도 사업인 거예요.{이어서
이렇게 하자’‘이렇게 이용하면 좋겠다’ 하는 요구가
그게 세운상가의 제조업과도 연관이 있어서
이충기 교수는 학교로 오기 전에 운영했던
일고 그 요구에 의해 공간이 재생돼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공간의 성격이 연결된 사례입니다.
한메건축에서의 사무소 손익채무관련 여담으로
우리는 거꾸로 하고 있죠. 재생을 관이 주도해서
앞 얘기의 생생한 경험담을 공유했다.} [최;
먼저 하고 주민을 참여시켜야 구색이 맞으니
명칭과 용도를 제가 제안한 것이었어요.
그럼 학교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해주시나요?]
거기에 주민을 껴 맞추는 식으로 하다 보니 주민
종로구청에서는 리모델링으로 받은 이곳을 뭐로
저는 학생들에게 ‘건축경영과 창업’ 관련한
입장에선 공간재생의 현장에서조차 자기 동네에
쓰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좀 다른 얘기지만 〈초소책방〉의
과목을 가르칩니다. 파트1-건축주, 파트2-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담당한테 숲속에 있는 책방 개념으로 하자고
비즈니스 마케팅, 그 안에 인사관리, 재무관리,
본격적인 공간재생 전에 주민협의회 만들어서
했어요. 내가 알기로 구청장이 책에 관심이 많은
리스크관리까지 포함합니다. 그리고 파트3-
그분들과의 협의 과정을 통해 사업의 지향점을
분이라서 구청장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프로젝트 수행을 가르칩니다. 물론 학생들이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이 요구하거나 필요한
거죠. 담당의 보고를 받은 구청장이 대번에
이러한 강의 내용을 쉽게 받아먹진 못하는 것
시설들을 개선하거나 새로 만들어주는 과정을
좋다고 하더랍니다.{웃음} 그 후 이 집의 이름을
같아요. 외국에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쳤어요. 그러던 중에 주민들이 세운상가 지하실
공모했는데 제가 써낸 명칭이 선정된 거에요.
경영대학원인 엠비에이(MBA) 과정을 거치는
한 쪽에 버려진 장소가 있는데 거기를 재생하여
‘초소책방’이라고 제안한 것이.
것이 당연합니다. 요즘 젊은건축가들 중에는
사용할 수 있으면 쓰라는 거예요. 달라고 하고
건축의뢰인의 설계요청이 오면 의뢰된 성격에
요구하기만 하던 주민들이 신뢰가 생기니까,
지하여서 어떤 용도로 쓸까를 고민하기보다
맞춰서 비용에 해당되는 만큼의 미완성의 제안을
자기들의 공간을 내어 놓은 거죠. 그것만 해도
그냥 비워놓고 거기에 맞는 기능을 넣는
하는 등 철저하게 자기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요.
반은 성공한 셈이었습니다. 재생할 때 보면 쓸
방식을 택했는데 마침 로봇을 이용한 제조기반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거죠.
공간들이 부족해요. 젊은 창업가들이 들어오면
교육용 기관이 들어온 케이스에요, 여담이지만
그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보일러에 찢어진 상표가 붙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공간이 부족한 것이죠. 그래서 주민들 얘기를 듣고
‘로보트보일러’더군요. 야, 신기하다. 이런
현장에 가보니까 온통 쓰레기로 꽉 차 있었어요.
인연이.{모두 웃음} 요즘 서울시 분위기로
층고의 2/3 높이까지 쓰레기로 차 있었어요.
봐서는 재생은 물 건너가는 양해서 오래지 않아
리모델링도 여타 작업과 그 성격과 풍경이 꽤
안 쓰는 공간이니까 사람들이 쓰레기를 죄다
철거될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도 제가 얘기한 바
[5] 프로젝트 〈세운 베이스먼트〉 〈종로 장애인회관〉 〈서울시립대 대학본부〉 백승한; 〈세운 베이스먼트〉
그에 비해 〈세운 베이스먼트〉는
다른 편입니다. 에세이를 통해 현실적인 이유에서
거기에 버려왔던 거죠. 보일러 기술이 발전하니까
있지만 세운상가 주변 구역은 여태껏 개발이 멈춘
기존에 존재한 기계 장치들이 존치하였음을
옛날에 큰 공간을 차지하던 기계실의 반쪽
적이 없어요. 주변이 모두 재정비촉진구역이었고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실내공간의 분위기는
공간만 써서 새 보일러를 설치하였으나 오래된
지금은 8개 구역의 반은 개발되었지요. 원래
에폭시 바닥과 조명 등으로 인해 장치들이
보일러를 철거하는 게 비용이 많이 드니 그냥
세운상가를 헐고 그 자산을 옆의 블록이 떠안고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입니다. 남겨진 장치들은
놔둔 채로 오랜 세월 방치해 온 것이었습니다.
개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10년이 지나도록
그간 한 번도 주목을 받지 않아온, 시야에서
그 많은 쓰레기를 싹 걷어내고 보니 예전에
개발이 안 되니까 개발 가능하게끔 작게
벗어난 설비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리모델링을
사용했던 기계실의 보일러, 펌프 등 오래된 설비가
쪼개줬어요. 그래도 개발이 안 되었잖아요. 땅값이
통해 새롭게, 거의 처음으로 부각되는 이 “기억과
드러났고 그걸 보면서 앞에서 얘기한 디스틸러리
올라 사업성이 안 나오거든요. 그게 안 되니까
흔적의 [비인간] 장치”는 어떤 서사를 촉발한다고
디스트릭트의 재생 공간을 떠올렸어요.
지금 다시 개발의 사이즈를 키운다고 하는데
보시는지요? 그것으로 해당 건물의 과거와 현재를
지하층이니까 우수처리 등을 위해 일부 공간벽을
결과적으론 땅값 올리는 시그널이 되어 사업성이
어떻게 매개하려 했는지 궁금합니다.
쌓았고, 기계장치 일부는 해체 후 폐기했고
더 안 나오고 개발이 더 어려워 질 것으로 봅니다.
외부 반출비용이 부담되던 대형 보일러는 문에 백승한; 무장애설계의 맥락에서 〈종로
세운상가 재생사업 엠피(MP)를 맡아 5년여를 관여했습니다. 제가 박원순 시장 재임 시 주로 도시재생 관련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도시재생 명예시장4)에 위촉되었어요. 4) 서울시 명예시장은 시 ‘ 민이 시장이다’라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철학에 따른 것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과 서울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에서 2012년 3월 ‘명예부시장’ 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2016년 서울시는 명예부시장을 ‘명예시장’(임기 1년)으로 격상하였다. 이충기 교수는 2018년 서울시 제3기 명예시장 14명 중 도시재생 명예시장에 위촉된 바 있다.
장애인회관〉의 동선체계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가령 휠체어 동선의 맥락에서 어떤 공간 경험이 전개되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119
작업이었어요. 종로구청 장애인복지과에서
못한 까닭에 리모델링 전/후로 내부 공간에서는
설계의 〈서울시립대 대학본부〉만 빼고요. 반면에
연락이 와서 현장을 가봤더니 바로 종로3가역
어떤 변화가 계획되고 구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집의 원설계자는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선배
인근, 탑골공원 옆 우체국과 같이 쓰고
아, 그 건물은 파사드만 작업한
건축가인 까닭에 어떤 자세로, 어떤 대응논리로
있던 건물이었어요. 1층 우체국, 2층이
것인데요. 증축은 하지 않았는데 외관상으로는
리모델링 작업에 임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장애인연합회관이 있었어요. 장애인이 접근하기
증축한 것처럼 보이죠.{웃음} 원래 8층 건물인데
어려운 위치였습니다. 실측을 해보니까 이
8층 부분과 파라펫을 유리커튼월로 디자인하다
건물을 리모델링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보니 재료가 구분되어 증축한 것처럼 보입니다.
제 고교 친구가 집 설계 건으로 소개해 줄
고민하다가 구조전공 동료 교수의 협조를 구해서
외피만 개선하는 정도의 예산뿐이라며 학교에서
사람이 있다고 몇 번이나 부탁했어요. 하루 날
구조보강을 먼저 하고 진행했습니다. 2-3층의
도움을 청해 왔어요. 겉 화장만 한 셈이죠.
잡아 가봤는데 프로젝트가 집이 아닌 거예요.
그 전에 들려드릴 사연이 있어요.
장애인 사용시설로 접근이 용이하도록 1층에
구로구청 앞의 피부과였고, 얘기를 들어보니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우체국의 협조를
인테리어를 새로 해달라는 거였어요. 의뢰인은
받아내야 했어요. 근데 우체국 입장에선 쓰던
친구의 자형이었고 오랫동안 피부과의원을
공간의 일부를 빼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요.
운영해오고 있었어요. 당시 다른 일로 바쁘기도
우체국의 외관과 내부공간 일부를 고쳐주는
한데 어쩌나 하다가 신입사원 한 명을 데리고
조건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공간 만큼을 얻을
리모델링 작업을 했는데 원장님이 그 결과를 매우
수 있었습니다. 1층의 바닥 레벨이 30cm정도
만족해했어요. 피부과 상호도 바꿔 드렸는데요,
높아서 그것도 깨내고 무장애로 접근 가능하게
처음엔 사모님의 반대로 안 바꾸겠다고 했어요.
했지요. 층수와 면적은 바꿀 수 없어서 그대로
그래 제가 새 명함을 직접 디자인해서 제시했죠.
했는데 대신에 증축한 3층에 중정을 만들었어요.
기존의 ‘차 피부과’의 ‘차’ C/H/A 영문 이니셜을
중정을 만들며 확보한 바닥면적으로 옥탑의
이용하여 사랑의 마크를 형상화한 로고로 만들고
기존의 타일마감을 내부 벽체로 살리며 3층으로 증축했어요. 애정을 많이 쏟은 건물이었습니다.
1
이름은 ‘사랑의 피부과’로 바꾸어 제안했습니다.
3
종전의 건물은 원도시건축에서
교회 장로님이셨으니까 대번에 느낌이 오셨던
설계했고 원래 외벽마감은 타일이었습니다. 기존
게죠. 이후 그 명함을 사용하고 계시고 사업도
창호의 배열을 존중해서 적벽돌로 감싸려고
번창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을 갖고
하니 입면 비례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1-2층
있던 의뢰인이 밥을 먹자고 부르더라고요. 그
유리창은 아케이드 형식으로 재구성했고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는 거예요. 자기
3-7층은 원래 창호 크기를 반영했어요, 8층
사는 집이 지은 지 오래돼서 새로 지으면 좋겠다고
부분은 유리 커튼월로 계획했는데, 기존의 옥상
하는 거예요. 앞에서 얘기한 저의 공간전략이
파라펫까지의 높이가 너무 짧아서 비례가 안 맞아
주택설계로 이어진 거였죠. 그래서 평창동 집에
옥상 파라펫을 높여 비례를 맞추다보니 입면이
가봤더니 〈몽학재〉였고 집주인 이름에서 ‘몽’자를
좀 높아졌죠. 내용을 모르는 교직원, 동문들조차
따온 당호였습니다. 설계는 우경국 선생님이
증축한 것으로 오인하고 처음 본 사람들은 신축한
하셨고 여러 저널에 소개되어 저도 알고 있던
것으로 알더라고요.{웃음} 그럴 수밖에 없는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근데, 이 집에 들어 온 후로
것이 캐노피도 새로 바꾸고 했으니까요. 1층 홀
매년 물이 새고, 비둘기 배설물로 곤란했다는
부분까지 계획했는데 예산부족으로 벽체 일부만
등 생활의 불편을 얘기하셨는데, 그래도 집은
반영했습니다.
깔끔한 주인의 성격 그대로 깨끗하게 관리해 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 집 설계자를
[6] 프로젝트 〈수애헌〉
잘 알고 있고 그분이 설계를 잘 하시는 분이라고
전진삼; 오늘 대화 중에 빠진
했더니 그분한테는 절대로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프로젝트가 하나 있네요. 〈수애헌〉 관련하여
했습니다. 자기가 쓰기에는 불편했지만 고치려
추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누가 설계한 집인지
하니 건축가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거고 저
다들 아시죠?]{웃으며}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또한 우 선생님께 말씀도 못 드리고 죄송한 마음이
오늘의 퀴즈로 해야할 것 같네요. 이 집은
들었어요. 처음 지을 당시의 주택 설계는 실크기를
오래 전에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인데요,
대체로 작게 하고, 공간을 여러 개의 채로 나누는
대학본부〉의 외관에서 기존의 벽돌 외관과 증축된
그 분에 대해선 이 교수님이 답변 중에 직접
등, 건축가 중심의 사유가 강했던 시대 분위기가
상부 매스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소개해주시리라 생각하고요. 지금까지 논의된
있었어요. 이 집도 그러했구요. 건축주가 많이
상/하부 매스가 명료하게 구분되는 한편 상부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익명의 설계자, 이름 없는
춥다고 해서 마감재를 뜯어보니까 W판넬이라고
매스의 질감이 하부 매스의 개구부로 스며드는
누군가에 의해 작업된 것을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내부에 와이어매쉬를 넣어 단열을 동시에 하는
듯한 인상을 또한 전달받았습니다. 현장에 가보지
리모델링한 케이스입니다. 직전에 얘기한 원도시
자재가 사용되었는데 그걸 철골구조와 함께
2
백승한; 리모델링된 〈서울시립대
120
1. 종로 장애인 회관 전경 Ⓒ김용순 2. 종로 장애인 회관 변경 전 3. 서울시립대 대학 남서측 주경 Ⓒ이택수
썼더라고요. 철골재가 온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면서 외벽 자재와 차츰 이격이 생기고 그 사이로 빗물이 새자 매년 방수공사를 해도 해결이 안 되었던 거예요. 리모델링을 하면서 기존 철골 구조는 살리되 외부 형태부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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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크기도 싹 바꿨습니다. 천장고를 높이고 대부분의 실 면적을 두 배 정도 키웠으니 거의 다 바꾼 셈이죠. 결과적으로 공간이 커지니까 이분들이 무척 좋아하는 거예요. 대지가 단차가 있어서 도로에서 접근하면 1-2층이 보이고 지하층에서 보면 3층 규모의 집이에요. 마당이 있는 지하층 레벨은 부부의 전용공간으로 만들었고, 1층은 퍼블릭한 공간을 배치하였는데 기존의 발코니를 확장하고 거실, 주방과 식당도 면적을 모두 키웠어요. 2층에는 아들과 딸의 방을 재배치했습니다. 마당에는 철골로 만든 정자가 있었는데 건축주와 상의 후 없앴습니다. 원래 지붕은 곡선의 처마로 벽체보다 많이 튀어나오게 돼 있었는데 벽체에 노출된 H빔에 동네 비둘기가 모두 앉아서 배설한 것이 고스란히 데크에 쌓였고 그걸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집주인의 스트레스가 대단했던 것 같아요. 제발 비둘기 배설물이 쌓이지 않게만 해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하소연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돌출된 H빔을 포함하여 역경사의 지붕으로 새로 작업을 했습니다. 이 집의 장성한 아들딸이 있는데 공사하는 중에 잠시 아파트 생활을 하고 돌아와서는 죽어도 아파트 생활은 못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릴 적부터 이
모든 도면 및 스케치
주택에서 살아온 경험이 몸에 밴 까닭이겠지요.
Ⓒ이충기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통합디자인연구실
결혼식도 이 주택 마당에서 하겠다고 할 만큼 주택을 좋아했어요. 제가 이 집의 이름을
인물 사진
〈수애헌〉이라고 붙인 것도 ‘사랑을 지키는
Ⓒ김재경: p.69, pp.70-71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건축 사진
전진삼; 집담회의 공식 일정은
Ⓒ신경섭: pp.72-73, pp.82-83, p.87, p.90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노경: pp.74-75, p.93(중, 하), p.95, pp.96-97, pp.114-115(하), pp.116-117,
건축가께서 준비해주신 점심식사를 하면서
Ⓒ김용순: pp.76-77, p.99(하), p.101, pp.102-103, p.120(상)
못다 한 말씀은 이어가겠습니다. 점심식사는
Ⓒ진효숙: p.105, pp.106-107
동숭동에서 이태리 피자점을 운영하는 이원승(전
Ⓒ이택수: p.120(하)
개그맨 출신) 대표의 가게에서 배달해온 피자로 해결함.{피자 배달차 〈목인헌〉에 깜짝 등장한
현장 사진
이원승 대표로 인해 모두가 놀람. 알고 보니 이충기
Ⓒ이충기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통합디자인연구실
교수와 막역한 친구라고 했다.} 자료 협조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충기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통합디자인연구실 현장 답사 지원 이충기, 건축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지선,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생
『디테일로 생각하는 구조디자인』 Yoshiharu Kanebako 지음, 건축정보센터 옮김, 2만원
WIDE [영화로 건축 읽기] Academy 수강생(1기) 모집 요강 -수강생 모집 인원: 20인 내외(*수강료: 없음) -수강신청 작성 내용: ‘성명/성별/출생연도/사업장(또는 직장명) 및 직위/현재 활동지역/개인 수강 목표/휴대전화번호’를 기입하여 접수처 e메일로 전송(*신청자가 많을 경우 제출한 수강신청 내용 중심으로 수강생 선발 예정임) -수강신청 접수처: widear@naver.com -수강신청 마감: 2022년 5월 25일(수) -수강생 최종 발표: 6월 1일(수)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 및 개별 통지
『소우와 건축』 소우 윤장섭 교수 추모편집위원회 지음, 2만8000원
◎ 프로그램 성격 [삶][건축가][건축물][도시] 4챕터로 운용 ◎ 프로그램 운영 1년(2학기) × 4년 과정 9월 개강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저녁 7시 ◎ 최초 수강생 모집 5월 수강생 모집(20인 내외; 전문가 중심/일반인 포함) 6월 오리엔테이션-1; 렘(콜하스) 7월 오리엔테이션-2; 더 폴 [SUMMER VACATION] 9월(개강)/10월/11월/12월 [WINTER VACATION] 4월/5월/6월/7월(종강) ◎ 아카데미 펠로우 강의 책임: 강병국(WIDE건축 대표)
시공문화사 홈 페이지 : http://www.spacetime.co.kr 이메일 : spacetime@korea.com 구입문의 : 02) 3147-1212, 2323 / 팩스 : 02) 3147-2626
운영 책임: 전진삼(와이드AR 발행인) 운영 지원: 이윤정(대한여성건축사회 회장) 장소 지원: 주성진(성학건축사사무소 대표) -장소: 노아빌딩 3층(인천시 연수구 인권로 27 ) -주관: 와이드AR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와이드AR 건축 평론 공모 추천제 ; 2022년 1월부터 시행 본지는 2010년 이래 ‘꾸밈 건축 평론상’과 ‘공간 건축 평론 신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한국 건축평단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동안 3회(박정현), 5회(이경창), 6회(송종열), 10회(최우용)에 걸쳐 현 단계 한국 건축평단의 새얼굴을 배출한 통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러나 재작년 제11회(2020년)에 수상자를 내지 못한 채 지나온 것에 이어서 작년에 공모한 제12회(2021년)에는 응모자가 한 사람도 없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종전까지의 건축비평상 공모제 시스템이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건축가 초청강의’ 〈시즌6〉 Architects in Korea· Ⅵ 2라운드; Emerging Power
날로 무한 확장되는 개인 미디어 세계에서는 1년 주기의 시간성이 경쟁력을 잃었고, ‘비평상’이란 구시대적 발상의 제도 자체도 이미 낡아버린 양 합니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올해부터 본지는 건축비평상 제도에서 탈피하여 ‘건축 평론 공모 추천제’로 선회하려 합니다. 건축평단에 관심 있는 건축인들에게 활짝 문을 열고, 일련의 단계를 거쳐 등단이 가능한 공모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응모자격에도 나이 제한을 없앱니다. 건축 평론 공모 추천 3회(작가론, 작품비평, 시론 각 1회)를 통과한 응모자(제출 순서는 자유)에게는 본지가 발행하는 등단 증서와 함께 《와이드AR》 필자로 대우하여, 지속적으로 집필 기회를 제공합니다. 매번 추천된 응모작은 본지에 게재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수류산방, Knollkorea 후원 간향건축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s://cafe.naver.com/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2년 5월(제175차) Architects in Korea 11
[접수] widear@naver.com -응모작 제목 앞에 ‘[건축 평론 응모]’라고 기입 바람 -응모작은 ‘한글/워드’ 파일과 ‘pdf’ 파일을 동시에 제출 바람 [접수 마감] 홀수 달 25일 [응모 부문 및 분량] 1) 작가론 또는 작품비평(200자 원고지 50~60매 분량으로, 본문 10폰트 사용 A4용지 출력 시 6~7매 분량) 2) 시론(200자 원고지 25매 내외 분량으로, 본문 10폰트 사용 A4용지 출력 시 3매 분량) -참고 도판 및 사진은 분량에서 제외하며 별도로 제공 바람
이야기손님 : 한지영, 황수용(라이프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주제 : 의도를 드러내는 것, 순간에 집착하는 것 일시 : 5월 18일(수) 7:30pm | 장소 : Light House(서울시 중구 을지로 146-1, 5층)
> 2022년 6월(제176차) Architects in Korea 12
-각 부문 원고의 분량 초과 제출은 가능하며, 이 경우 원고료 산정에서는 제외함 [기타] -원고 말미에는 ‘휴대전화번호’와 ‘성명’을 기입하기 바람 -추천 통과 여부는 접수 시점 기준으로 1개월 내에 개인 e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로 통보함
이야기손님 : 김세진(지요건축사사무소 대표) 주제 : 담담함 너머의 것 일시 : 6월 15일(수) 7:30pm | 장소 : Light House(서울시 중구 을지로 146-1, 5층)
간향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간향클럽 사람들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우리는
mc 1
프로듀서 전진삼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사진총괄 김재경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섹션 편집장 박지일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편집위원 김태형, 백승한, 이태현, 최우용 디자이너 심현일, 디자인·현
우리는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mc 2
사진위원 남궁선, 노경, 진효숙 비평위원 김현섭, 박성용,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이종우, 현명석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통합의 지렛대가
mc 3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되겠습니다.
인쇄처 서울문화인쇄 인쇄인 강영숙 제작국장 김은태 관리부장 손운일 우리는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mc 4
독자지원 및 마케팅 박미담 과월호 공급 심상하, 선인장
물론 건축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되겠습니다.
직판관리 박상영, 삼우문화사 우리는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mc 5
기획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김정후, 박병상, 박진호, 손장원, 신용덕, 신창훈, 안철흥,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우종훈, 이정범, 이중용, 전진성, 허은광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 Party》
고문 김종헌, 박민철, 박영채, 박유진, 이충기, 정귀원, 함성호, 황순우
지역 건축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응원하는 《ICON
명예고문 곽재환, 구영민, 김연흥, 김정동, 박길룡, 박승홍, 우경국, 이백화, 이상해, 이종건, 임창복,
Party》
최동규
인천건축의 디자인 리딩 그룹을 선정하는 《Incheon
대표고문 임근배
Architect 5(I.A.5)》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mc 6
운영자문 김종수, 김창균, 이윤정, 최원영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 강승희, 손도문, 이수열, 이치훈, 임성필, 주성진
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축 평론
발행위원 김기중, 김태만, 우의정, 이승용, 임재용, 조남호, 조택연, 하광수
공모 추천제》
패트롱 김용남, 오섬훈, 이태규, 장윤규, 정승이, 최욱, 한승윤
내일의 건축에디터&저널리스트를 위한 《와이드AR 건축저널리즘워크숍》
mc 7
부편집인 김재경
건축 비평도서 출판 《간향 critica》
부발행인 이주연
건축가(집단)의 모노그래프 출판 《wide document》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WIDE아키버스》
mc 8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도연정, 서효원, 이상명
인간· 시간· 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영철, 김현섭, 서정일, 한동수
《WIDE건축영화공부방》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건축· 디자인· 미래학 강의실 《포럼 AQ korea》 건축 잡지&저널리즘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하는 《한국건축저널리즘연구회》 인천도시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준비하는 《인천건축발전연구소》 등 일련의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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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9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팀원 최지희, 고현경, 김현경, 김정아, 김찬양, 윤은지
《와이드AR》 2022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6
《와이드AR》 2021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5
PARTNERS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 Ⅵ
ARCHITECTS IN KOREA . Ⅴ
EDITORIAL 강호의 고수들
EDITORIAL 한국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 리더들에게 묻다
ARCHITECTS 구승민, 스튜디오 꾸시노 김종수, 원스퀘어미터 건축연구소 김태성, ㈜간삼건축 이수열, ㈜토문건축 이재혁, ㈜에이디모베건축사사무소 임성필, ㈜집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홍만식, ㈜리슈건축
PROLOGUE 이제는 건축가의 호칭에서 ‘젊은’ 수식어를 빼자!
ESSAYS & WORKS 내 건축의 주 종목 솔기의 상상 구승민; 갤러리, 주택, 펜션 무심한 아름다움 김종수; 대사관, 골프 클럽하우스, 목조주택 인간 시간 공간 김태성; 오피스, 연수원, 연구소, 학교, 상업시설 유형의 건축 이수열; 관공서, 캠퍼스시설, 가톨릭교회 놀이터 같은 최소한의 집짓기 이재혁; 협소주택, 상가주택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종교건축 임성필; 교회건축, 공공도서관, 교육시설 좌향 여백 표층 홍만식; 주거, 근린 복합시설, 일상건축 NOTICE 제14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1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73차-제174차 땅집사향
ESSAYS 건축이란 무엇인가? & INTERVIEW 김남건축(김진휴, 남호진) OA-LAB(남정민) 아이디알건축(이승환, 전보림) 준 아키텍츠(김현석) 이용주건축스튜디오(이용주) 착착 스튜디오(김대균) 포머티브건축(고영성, 이성범) 비유에스건축(박지현, 조성학) vs. 박지일 NOTICE 제13회 심원건축학술상 2차 본선 심사 안내 제30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125
《와이드AR》 2020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4
강병국
Kang Byungkuk
최문규
Choi Moongyu
정재헌
Jeong Jaeheon
Lee Kwanjic
이한종
Lee Hanjong
손진
Son Jean
Lim Hyoungnam, Roh Eunjoo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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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직
임형남, 노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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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축가들 ˽
Kim Kwangsoo
김재관
Kim Jaegwan
이은석
Lee Eunseok
강승희
Kang Seunghee
김동원
Kim Dongwon
SE 04
SE 03
"3$)*ˊ 5&$54 JO ,03&"
《와이드AR》 2019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3
PARTNERS
PARTNERS
ARCHITECTS IN KOREA . Ⅳ
ARCHITECTS IN KOREA . Ⅲ
EDITORIAL
EDITORIAL
나의 건축 인생작Masterwork
X세대 건축가들의 자서전Architect’s Autobiography
ESSAYS
ESSAYS
강병국 Kang Byungkuk_광양장도박물관
김주경 OUJAE Architects : 나의 건축 인생 연대기 혹은 기억조작
최문규 Choi Moongyu_KIST 숲속 어린이집 정재헌 Jeong Jaeheon_양평 펼친집 이관직 Lee Kwanjic_영남대60주년기념 천마아트센터 이한종 Lee Hanjong_가르멜의 모후 수도원 손진 Son Jean_아이뜰유치원 임형남, 노은주 Lim Hyoungnam, Roh Eunjoo_제따와나 선원 김광수 Kim Kwangsoo_부천아트벙커 B39 김재관 Kim Jaegwan_유진이네집 이은석 Lee Eunseok_새문안교회 강승희 Kang Seunghee_여목헌 김동원 Kim Dongwon_분당메모리얼파크 사옥
김범준 TOPOS Architectural Firm : 오리지낼러티 탐문의 건축여정 김태만 HAEAHN ARCHITECTURE : 실패의 역사 (to be) unbuilt 이상대 spaceyeon architects : 어느 건축 마라토너의 방백傍白 임영환 D·LIM architects : ‘지속가능한’ 아마추어 건축 김선현 D·LIM architects : 꿈꾸는 자의 행복한 건축 조성익 TRU Architects : 냅킨 드로잉 박창현 a round architects : 몇 가지 단서들 김세경 MMKM : 건축이라는 올가미 민서홍 MMKM : 건축 짓는 농사꾼의 길 조진만 JO JINMAN ARCHITECTS : 어느 젊은 건축가의 회상 홍재승, 최수연, 이강희 PLAT/FORM : 풍경風景, 반 풍경 그러나 알레고리
NOTICE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추천작 발표
NOTICE
제29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제11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제28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장학제 공모
《와이드AR》 2018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2
《와이드AR》 2017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1
PUBLISHER’S COLUMN – ABCD파티–올해의 발견
PUBLISHER’S COLUMN – 친구
ARCHITECTS IN KOREA . Ⅱ
ARCHITECTS IN KOREA . Ⅰ
EDITORIAL 한국 건축의 새 판을 여는 젊은 리더들의 12가지 화법 ESSAYS 건축의 엄밀성과 농담, 혹은 사랑과 체념 : aoa architects 건축이 남긴 이야기들 : CHAE–PEREIRA architects 새로운 프로세스와 시스템 : EMER–SYS
EDITORIAL 젊은, 내일의 건축 리더들이 말하는 우리 건축 장場의 단면 #1. 건축의 뿌리 혹은 공부의 배경에 대하여 #2. 한국 건축 비평(계)에 대한 바람 #3. 귀 사무소(팀)의 작업 화두는? #4. 현대건축을 수행함에 있어서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5. 귀하(또는 사무소, 팀)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6. 현 단계 한국 건축계, 무엇이 문제인가?
경계에서의 점진성 : EUS+ architects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리드하는 건축, 건축가 : johsungwook architects 엘리스의 비눗방울 놀이, 그리고 일상 속 이야기 생성 : L’EAU Design 스타일의 전략–작업의 방법에 대한 근본적 이해 : Min Workshop 근대 건축, 수용과 변용의 미 : OFFICE ARCHITEKTON 들띄우기와 흰색 그리고 부산 : RAUM architects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한 발견의 방식, 질문 : Samhyun Urban & Architecture 길, 에움길, 샛길 : SUPA schweitzer song 따뜻한 건축 그리고 10+ : UTAA NOTICE 제10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결과 발표 당선작 : 해당작 없음 심사위원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PROJECTS : OFFICE INFORMATION a.co.lab : 휴먼 네트워크의 수행자 BOUNDLESS : 관계의 진화를 엮는 전술가들 designband YOAP : 3인 3색의 피보나치 수열로 건축하는 집단 FHHH Friends : 좌충우돌 화려한 팀플레이 집단 HG–Architecture : 디지로그의 세계를 실천하는 스튜디오 JYA–rchitects :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로 무장한 팀워크 mmk+ : 한 방의 장외홈런 다음을 준비하는 히어로 OBBA : 건축, 내러티브의 소중함으로 승부하는 사무소 stpmj : 아트와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이어니어 Z–Lab : A to Z, 콜라보&커뮤니케이션스 컴퍼니 NOTICE 제9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 — 발전국가시기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1962~1973) 수상자 : 강난형 127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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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주요 배본처
2022년 5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구독자명(기증하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온라인 서점
잡지창간 등록일|2008년 1월 2일
〈배송지 주소〉,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11번가, 인터넷 교보문고
창간호 발행일|2008년 1월 15일
〈구독희망 시작월호 및 구독기간〉,
잡지사업 변경 등록일|2021년 1월 7일
〈핸드폰번호〉,
오프라인 서점
등록 번호|서대문, 마00029
〈입금예정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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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81호, 2022년 5-6월호, 격월간
본지 이메일|wide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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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광화문점(02-393-3444)
발행소|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책은 입금 확인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강남점(02-5300-3301) 잠실점(02-2140-8844)
주소|03733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문공원길 13,
무통장입금방법
목동점(02-2062-8801)
5층 (현저동, 극동프라자) Spa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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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점(02-393-1641)
전화|02-2235-1960
예금주|전진삼(간향 미디어랩)
영등포점(02-2678-3501)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분당점(031-776-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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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간향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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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점(02-2250-7733) ·종로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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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양
종로점(02-739-2331)
표지 지질: 아트지 300g 횡목 1권 가격 : 15,000원
내지 지질: 미스틱 105g 횡목
동네 서점 효자책방 소란(서울 통인동, 02-725-9470)
연간구독료 1년 구독 : 80,000원
주 활용서체 및 라인선스
2년 구독 : 150,000원
표지 및 본문: SM/직지폰트
《와이드AR》 과월호 구입처
라이선스 명: 프리 라이선스
본지 총판 정광도서
사용기간: 2022.04.27.~2023.04.27.
선인장(담당 심상하 방장, 02-725-9470)
인증코드: RW20220427BXXXXX
*2008년~2010년 발행본: 현재 1호~18호까지 품절되어 구입 불가합니다. *그 외 과월호 구입: 2011년~2021년에 발행된 《와이드AR》을 할인가로 구입 가능합니다. 본지의 오프라인 매대인 ‘선인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과월호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위치 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56 (통인동)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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