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28,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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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기 심원건축학술상 추천인단 발표 [제5차년도 2012~2013년] Ⓢ 추천인|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김원식(단우도시건축학연구소 소장), 김태일(제주

대 교수), 김희영(국민대 예술대 교수), 박성형(정림건축 소장), 박진호(인하대 교 수), 박철수(서울시립대 교수), 배정한(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서정일(서울대 HK 연구교수), 우신구(동아대 교수), 정진국(한양대 교수)

심원문화사업회는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후원회로서 지난 2008년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 미학과 비평 분야의 전도유망한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심원건축학술상>을 제정하여 시 행해 오고 있습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 받아 그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금회부 터 당선작에 대하여 1천만 원의 고료를 부상으로 지급합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은 지난 1, 2회에 걸쳐 당선작을 선정한 바 있으며, 현재 제1회 당선작『벽전』(박성형 지음), 제2 회 당선작 『소통의 도시』(서정일 지음)를 발간하였고, 내년 6월 제4회 당선작의 발간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는 배형민(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안창모(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 수), 전봉희(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전진삼(<와이드AR> 발행인, 간향미디어랩 대표) 4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주최|심원문화사업회 Ⓢ 주관|심원건축학술상 운영 위원회 Ⓢ 기획|<와이드AR>・간향미디어랩 Ⓢ 후원|(주)엠에스오토텍 Ⓢ 문의|070-771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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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3년]

제5회 심원건축학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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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고료 1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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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들의 많은 도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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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요강

Ⓢ 당선작 : 1편|상패 및 고료 1천만원과 단행본 출간 Ⓢ 응모 자격|내외국인 제한 없음.

Ⓢ 응모 분야| 건축 역사, 건축 이론, 건축 미학, 건축 비평 등 건축 인문학 분야에 한함.

(단, 외국 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한함)

Ⓢ 사용 언어|한국어 Ⓢ 제출 서류|

W

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고 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크기 프린트 물로 흑백/ 칼라 모두 가능)을 제본된 상태로 4부 제출. 단, 제출본은 겉표지를 새롭게 구성, 제본할 것.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 ① 응모작의 요약 내용이 포함된 출판 기획서(양식 및 분량 자유) 1부. ② 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에 대 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는 반환하지 않음.

Ⓢ 제출처|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간향미디어랩 (121-816) (겉봉에 ‘제5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이라고 명기 바람) Ⓢ 응모작 접수 기간|2012년 10월 15일~11월 15일(1개월 간) Ⓢ 추천작 발표|2013년 1월 15일(<와이드AR> 2013년 1/2월호 지면) Ⓢ 추천인단 운용 및 추천작의 자격 기한|위원회는 추천인단이 추천한 응모작과 일반 공모를 통해 응모된 연 구물에 대하여 소정의 내부 심사 절차를 진행하며, 그 가운데 매년 1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작 심사에서 탈락한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2년 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되어 총 2회에 걸쳐 최종 심사의 대상이 되며, 이 경우 심사평을 반영한 수정된 원고(수정의 범위와 규모는 응모자 임의 판단에 맡김)를 위원회가 요구하는 기한 내에 상기 응모작 제출 서류(완성된 연구물 사본 4부)와 동일한 형식으로 재제출해야 함. Ⓢ 당선작 발표|2013년 5월 15일(<와이드AR> 2013년 5/6월호 지면 및 대한건축학회 등 인터넷 게시판) Ⓢ 시상식|별도 공지 예정 Ⓢ 출판 일정|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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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로부터 발주된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 단계로 보통 건축가에 의한 설계프로모션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건축가는 제안된 설계가 채택되기를 바라고, 클라이언트는 제안설계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시행 가능성, 규모와 비용 및 수익 등을 가늠하게 된다. 건축가의 주요 관심사는 건축관 시도, 수주가능성 등일 것이고, 클라이언트측은 사업성에 따른 사업수익인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현상설계 등으로 진행될 경우에는, 건축가들 사이에 경쟁이 되기 때문에 건축가의 스트레스는 더욱 고조되기 마련이다. K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가 부산소재 통신시설 소유부지에 임대용 주상복합건물을 개발하기 위한 설계안을 지명현상설계로 공모한 경우였다. 지상부에 요즘 주거트렌드인 소형임대용주거와 저층부 임대용 상가용도로 38,000m2 정도를 건설하는 일반적인 개발형태이다. 인근 대학가 밀집지역의 주거 및 상업시설의 수요에 대응하는 임대시설로서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당선을 기대하면서 현지조사, 마케팅 협의, 대안 검토, 계획안 작성, 중간 수정, 피드백, 성과도 향상................... 스트레스, 스트레스.................. 어쨌든 제출. 결과적으로 우리의 제안은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얻지 못했다. 응모팀 중 누군가는 채택되고 순위도 매겨졌다. 무얼 잘못했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자연스레 생각이 간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의 관심사를 바꾸나? 아니면 클라이언트를 매료되게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아, 또 스트레스다.

(어반엑스 김기웅/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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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BRIDGE 공고

NES Ⓦ 건축 영화 스터디클럽 짝수 달 첫 번째 화요일 7:00pm에 모여 “교류→영화 상영→강의→와인파티”로 진행되는 건축 영화 스터디클럽에 초대합니다. 장소│서울 마포구 서교동 399-13 NES사옥 3층 NES舍廊 강사│강병국(동우건축 소장, 2011서울국제건축영화제 부집행 위원장) 참석 대상│고정 게스트 본지 발행 편집인단 위원과 초청 게스트(건축가, 아티스트 등 건축과 영화 애호가 중 개별 초대) 및 본지 독자와 후원 회원 중 사전 예약자로 총 25인 이내로 한정함 사전 예약 방법 ⓦ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예약 접수 (*참가비 없음) ⓦ 참석자는 반드시 10분 전까지 입실 완료해야 함 주요 프로그램(*본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 1st — 4월 3일(화) 7:00pm ‘꼬르뷔지에와 창문과 사람’ 상영작 <성가신 이웃> ⓦ 2nd — 6월 5일(화) 7:00pm ‘당신이 그 유명한 렘 콜하스 입니까?’ 상영작 <콜하스 하우스 라이프> ⓦ 3rd — 8월 7일(화) 7:00pm ‘미래-85년의 간극‘ 상영작 <메트로폴리스>(조르지오 모러더 버전) ⓦ 4th — 10월 2일(화) 7:00pm ‘도시에 쏟아내는 분노와 표출’ 상영작 <증오> ⓦ 5th — 12월 4일(화) 7:00pm ‘송구2012 영신2013’ 상영작 <크로노스>(론 프릭 감독)

주최│와이드AR 주관│와이드aBRIDGE 후원│NES코리아(주), 간향미디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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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와이드AR 건축 비평상 공모 ⓦ 본지는 2010년 이래 꾸밈건축평론상과 공간건축평론신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와이드AR 건축 비평상>을 제정하여 신진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건축 평단의 재구축은 물론 건축과 사회와 여타 장르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건축 비평의 가치를 공유하는 젊은 시각의 출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우리 건축계를 이끌어 갈 역량 있는 새 얼굴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공모 요강 시상 내역

당선작 발표

•당선작 : 1인

• 2013년 1월 초 개별 통보 및 <와이드AR> 2013년 1/2월호

• 기타(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당선작 외에도 가작을 선

지면 및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발표

정할 수 있음) 심사 위원•수상작 발표와 함께 공지 예정 수상작 예우 •당선작—상장과 고료(100만원) 및 부상

시상식•2013년 2월(예정)

•가작—상장과 부상 •공통 사항

작품 접수처•widear@naver.com

1) <와이드AR> 필자로 우대하여 집필 기회 제공 2) ‘건축평론동우회’의 회원 자격 부여

기타 문의•대표전화 : 070-7715-1960

응모 편수

응모요령

•다음의 ‘주평론’과 ‘단평론’을 동시에 제출하여야 함.

1. 모 든 응모작은 응모자 개인의 순수 창작물이어야 함. 기

• 주평론과 단평론의 내용은 아래 ‘응모 요령’을 반드시 확

존 인쇄 매체(단행본, 잡지, 신문 등)에 미발표된 원고여

인하고 제출 바람.

야 함.(단, 개인 블로그 게시글로서 본 건축 비평상의 취지

1) 주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매 이상~70매 사이 분량

에 맞게 조정하여 응모된 원고는 가능) 수상작 발표 이후

으로, A4용지 출력 시 참고 도판 등 이미지 포함하여 7매

동 내용으로 문제 발생 시 수상 취소 사유가 됨.

~10매 사이 분량)

2. ‘주평론’의 내용은 작품론, 작가론을 위주로 다루어야 함.

2) 단평론 2편(상기 기준 적용한 20매 내외 분량으로 A4

3. ‘ 단평론’의 내용은 건축과 도시의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용지 출력 시 3매 분량)

시의성 있는 문화 현상을 다루어야 함. 4. 응 모 시 이메일 제목 란에 “제3회 와이드AR 건축 비평상

응모 자격•내외국인, 학력, 성별, 연령 등 제한 없음.

응모작”임을 표기할 것. 5. 원 고는 파일로 첨부하길 바라며 원고 말미에 성명, 주소,

사용 언어 • 한글 사용 원칙—내용 중 개념 혼동의 우려가 있는 경우 에만 괄호( ) 안에 한자 혹은 원어를 표기하기 바람.

전화번호를 적을 것. 6. 원고 본문의 폰트 크기는 10폰트 사용 권장. 8. 이메일 접수만 받음. 9. 응 모작의 접수 여부는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응모 마감일•2012년 11월 30일(금) 자정까지

서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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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SINCE 2006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3’: New POwer ARchitect|

다섯 번째 주제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3’>는 우리나라의 차세대 건축을 리드할 젊은 건축가들을 초대하여 그 분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축의 주 제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땅집사향은 2011년에 이어 올해에도 국내외에서 맹활약하는 ‘젊은 건축가’에 시선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와이드AR> 독자님들의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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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스튜디오 ANM 디렉터)┃

7월의 초청 건축가

주제 | 관계 속에서 건축하기|일시 | 2012년 7월 18일(수) 저녁 7시|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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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월의 초청 건축가┃최종훈(NIA 대표)┃ 주제 | 아쉬운 과정|일시 | 2012년 8월 8일(수) 저녁 7시|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주관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AR>┃주최 |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도서 협찬 | 시공문화사 spacetime, 수

류산방┃와인 협찬 | 삼협종합건설(주)┃문의 | 02-2231-3370, 02-2235-1960┃*<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 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와이드AR,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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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를 기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땅과 건축과의 관계에서 생각한 조성룡 선생의 의도를 책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를 고민한 프로젝트. 한 방(?)으로 드러 낼 수 없는 조성룡 선생의 건축을 풍경을 매개로 하여 이응노라는 예술가의 맥락과 연 결시키기 위해 단순한 컬렉션 모음집을 지양하고 영화처럼 여러 방으로 긴장과 조화를 드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전체 화면은 컬 렉션과 건축과 풍경이 서로 스며들고 길항하면서 스쳐 지나가게 하고, (지질이 다른 인터미션 부분을 제외하고) 텍스트는 자막 처럼 아랫단으로만 배치했다. 표지는 얇은 종이를 먼저, 두꺼운 종이를 그 뒤에 배치한 이중 구조(더블 스킨)로 조직했는데, 흔 히는 자켓이 표지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고, 옷을 한 풀 벗기고 속살로 들어가라는, 겉모습에서 핵심으로 들어가 자는 권유의 장치이기도 하다. (수류산방 펴냄, 200쪽, 225×297mm, 값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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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ed & designed by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 02 735 1085

조성룡의 이응노의 집, 이야기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 (약칭,

와이드AR

)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통권 28호 2012년 7-8월호 ⓦ 2012년 7월 15일 발행

Issue 22

ⓦ <와이드 칼럼 | 박철수> 삼저주의 시대의 피로사회 증후군

25

ⓦ <COMPASS 25 | 이종건> 서울역사, 누구를 위한 보존인가?

28

ⓦ <와이드 포커스 | 전진삼> 김병윤號가 표류하는 다른 이유

Work 32

조성룡│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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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노의 집을 보는 몇 가지 건축적 시선—경관과 환경 속의 집 | 김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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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노의 집을 보는 역사학적 시선—망자의 귀환—이응노의 집에 대한 단상 | 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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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에서 기억으로—집담회—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 조성룡, 전진성, 최춘웅, 최상기, 김영철, 오섬훈, 전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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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비평가의 인상—이응노의 집—매너리즘의 징후인가? | 이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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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건축가의 인상— 풍경의 아크로바트—조성룡과 함께한 어느 날 오후 | 민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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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다한 이야기들— 조성룡 인터뷰—정작 중요한 이야기, 둘 | 조성룡 + 정귀원

New POwer ARchitect 87

ⓦ 뉴 파워 아키텍트 파일 17 | 오영욱 | 내가 건축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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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파워 아키텍트 파일 18 | 정의엽 | 역설적 조건에 대응하는 차이화의 건축

Report 98 101

ⓦ <근대 건축 탐사 28 | 손장원> 영천의 근대 건축 ⓦ <사진 더하기 건축 08 | 나은중+유소래 >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건축 The Decisive Moment and Architecture —이완 반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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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書欌 | 전진삼 > 국어 선생과 건축가—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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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리포트 1 | 와이드SA 아카데메이아 특강 | 강사 이종건 > 이종건 교수의 건축 비평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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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리포트 2 | LA한국문화원 전시 | 송종열 > 미국의 젊은 한인 건축가들, 한국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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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1 |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3> 공모전 > 1등상 ‘헤리티지 투모로우’에 건축가 첫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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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2 | <2012년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 대상작, 선원전의 상징적 의미를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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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3 | 전시 > 시베리안의 간절한 꿈 —곽재환의 <시베리안 랩소디 Siberian Rhapsody>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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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삼의 FOOTPRINT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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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구독 신청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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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레터 | 정귀원

ⓦ 표지 이미지 | 조성룡, 이응노의 집 배치 스케치 ⓦ 표2 | MS오토텍 ⓦ 표3 | NES KOREA ⓦ 표4 | Samhyub ⓦ 1 | 원도시건축 ⓦ 2-3 | SIMWON ⓦ 4 | Seegan ⓦ 5 | ONE O ONE ⓦ 6 | 가가건축 ⓦ 7 | Woojung ⓦ 8 | VINE ⓦ 9 | Dongyang PC ⓦ 10 | UnSangDong ⓦ 11 | UrbanEx ⓦ 12 | WIDE aBRIDGE ⓦ 13 | WIDE AR ⓦ 14 | 시공문화사 ⓦ 15 |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 16 | Suryusanbang ⓦ 17 | 목차 ⓦ 18 | 구독신청서 ⓦ 19 | 판권 및 와 이드레터 ⓦ 20 | Suryusanbang ⓦ 128 | U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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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미디어랩 은 “건축하는 후배들에게 꿈을, 건축인에게 긍지를” 주자는 목표 아래,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소수(minority), 진정성(authenticity)”에 시선을 맞추고 `건축 기반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간향미디어랩 의 사업 영역은 와이드 AR |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와이드SA | 각종 워크숍, 강좌, 아 카이브, 아키버스 주관┃와이드aBRIDGE | 세미나, 건축상, ABCD파티 등 건축과 사회의 연결┃와이드BEAM | 온오 프라인 도서 기획 및 편집, 출판

간향미디어랩 은 현재┃월례 세미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

TURE BRIDGE [ON AIR] CREATIVE PARTY>┃건축 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 학술상>┃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와이드SA 저널리즘워크숍>┃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 AR 건축비평상>┃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아키버스>┃색깔 있는 건축 도서 출판 <AQ북스>┃ 그 밖에 <건축유리조형워크숍>, <건축영화스터디클럽>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진행 해 오고 있습니다.

와이드AR 정기 구독(국내 전용)신청 방법 안내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구독자명(기증하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배송지 주소>, <구독 희망 시작 월호 및 구독 기간>, <핸드폰 번호>, <이메 일 주소>, <입금 예정일>을 적으시어 ⓦ <와이드 AR> 공식 이메일 : widear@naver.com ⓦ 팩스 : 02-2235-1968 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책은 입금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정기 구독을 하시면,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당사가 독자 대상으로 벌이는 상기 각종 행사에 우선 초대됩니다. ⓦ 연간 구독료 ☞ 1년 구독료 55,000원┃2년 구독료 105,000원┃3년 구독료 150,000원┃4년 구독료 190,000원┃5년 구독료 225,000원 ⓦ 무통장 입금 방법 ☞ 입금계좌|국민은행, 491001- 01-156370 [예금주|전 진삼(간향미디어랩)]┃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상기 전화, 팩스, 이메일로 확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 카드 결재 방법 ☞ 네이버카페 <와이드AR> 좌측 메뉴판에서 <정기구독 신용카드결재>란 이용하시면 편리합니다. ⓦ 정기 구독 및 광고 문의|070-7715-1960┃<와이드AR>의 광고는 본 잡지를 함께 만드는 건축(가)네트워크를 지원 합니다.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질적 수익 효과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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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약칭,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실— 발행 인 겸 편집인 | 전진삼—발행편집자문단장 | 김연흥—발행위원 | 박유진, 신창훈, 안용대, 오섬훈, 황순우 ⓦ 편집실—편 집장 | 정귀원—편집위원 | 김영철, 박인수, 최상기, 최춘웅—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박상일 ⓦ 고문실—상임고문 | 임 근배—운영고문 | 곽재환, 김정동, 이일훈, 임창복, 최동규—편집고문 |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박철수, 이종건 ⓦ 자 문단—자문위원 | 강병국, 김재경, 김정후, 김종헌, 김태일, 나은중, 손승희, 손장원, 박종기, 박준호, 안명준, 안철흥, 윤 창기, 이영욱, 이용범, 이충기, 임지택, 임형남, 장윤규, 전유창, 정수진, 조경연, 조남호, 조정구, 조택연, 함성호—대외협 력위원 | 김기중, 김종수, 김태성, 박민철, 박순천, 손도문, 조용귀, 최원영—전속 포토그래퍼 | 남궁선, 진효숙—제작 코 디네이터 | 김기현—로고 칼리그래퍼 | 김기충 ⓦ 디자인—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디자이너 | 변우석 송우 리 양다솜—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서점유통관리대행—(주)호평BSA—대표 | 심상호, 차장 | 정 민우—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제작협력사—인쇄 및 출력 | 예림인쇄—종이 | 대림지업사—제 본 | 진성 B&M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28호 2012년 7-8월호 ⓦ 2012년 7월 15일 발행 ⓦ 2008년 1월 2일 창간 등

록, 2008년 1월 15일 창간 ⓦ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 낱권 가격 10,000원, 1년 구독료 55,000

원 ⓦ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발행처 | (121-816)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대표 전화 | 02-2235-1960—팩스 | 02-2235-1968—독자지원서비스 | 070-7715-1960—공식 이메일 | widear@ naver.com—공식 URL | http://cafe.naver.com/aqlab—네이버 카페명 | 와이드AR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포 를 금합니다.

엄덕문 선생을 기리며

ⓦ 지난 7월 1일 엄덕문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 1919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건축가 1세대로 해방 후의 척박한 건축판을 일궜던 선생은, 우리 고 유의 전통적 요소, 이를 테면 전통 문양이나 소품 등을 건축에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잘 알려진 세종문화회관은 물론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이나 도원빌딩 등에서 현대적으로 추상화된, 우리 고유의 정서를 보 여주는 요소들이 발견된다.) ⓦ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문득 1996년 겨울 건축인 포아의 기사를 위해 뵈었던 일이 생각났 다. (‘원로 건축가에게서 듣는 한국 건축의 폄론과 진실’이란 꼭지였는데, 설계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작성하느라 엄덕 문 선생과 장기인 선생 단 두 분만을 취재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선생과 나눴던 얘기들이 두서없이 기록된 페이퍼들 을 책장 깊숙한 곳 먼지 앉은 클리어 파일에서 찾아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잠시 잊고 있거나 몰랐던 사실들을 여기 남겨 둔다. ⓦ <선생은 “건축쟁이를 목수나 미쟁이와 동일시 할 때……변명인 것 같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름대로 포부를 가지 고 우리 문화의 창달, 우리 문화를 재발견해 내려고 노력”하셨다. “대중의 인식이 열악하고 운영할 능력이 없어서……공 동 법률 사무소처럼 서로 도와가며 일하는 것이 마음 편했으므로” 정인국, 김희춘, 김창집, 원정수, 이윤형, 주경재 등으 로 구성된 신건축문화연구소를 만들어 건축 작업을 하시면서, 한편으론 1957년 1월 건축가협회의 창설에 힘을 보태셨다. 1954년에는 홍익대 미술학부에 건축학과를 개설하여 건축 교육에 힘 쓰셨고, 대중에게 건축을 알리기 위해 국전에 건축 부분을 만드셨다. (1955년 제4회 국전에 첫 건축 작품이 출품되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으시고 1988년에는 사재를 털 어 엄덕문특별상을 제정하셨다. “…사회적으로도 대우 못 받고 찬밥 신세에……상이라도 많이 만들어 줄 수밖에….” 없 었다 하셨지만, 사실은 상 받는 이가 잘나서라기보다 그것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잘난 사회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엣지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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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의 삼백육십도 이야기

지수화풍 360도 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는 “이 시대에 우리의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화 두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건축가 승효상이 맡아 자연에 한껏 어우러진 공간을 재 현했습니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가는 관문이며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바뀌는 가운데에 있는 클럽하우스, 그 공간 고유의 공동체적 기운을 하나의 마을로 풀어 낸 승효상의 건축은 자연 을 닮았고 인간을 품습니다.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 환경 안에서 우리는 늘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꿈꿉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그리움 중 가장 큰 아름다움은 당연히, 그러나 기이하게 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 바로 자연입니다. 아련한 기억을 부르는 흙냄새와 물소리, 불길처 럼 번지는 꽃 향기와 바람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잊고 있던, 잃어 버리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게 하지요. 지수화풍 360도 컨트리클럽에서는 숨가쁜 도시의 속도, 그리고 반복된 일상의 피로가 잠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소중한 까닭입니다. | (수류산방 엮고 펴냄, 322쪽, 207×15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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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8 | 엣지 Edge


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 07-08

2012•07-08 -

ISSUE

022

와이드 칼럼

삼저주의 시대의 피로사회 증후군

박철수 025

이종건의 <COMPASS 25>

서울역사, 누구를 위한 보존인가?

이종건 028

와이드 포커스

김병윤號가 표류하는 다른 이유

전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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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저주의 시대의 피로사회 증후군

한국 건축계 현실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 ⓦ 책상 위에 놓인 두 권의 책에서 글의 제목을 빌어 왔 다. 하나는 소위 ‘높고 크고 빠른 삼고(三高)에서 낮고 작고 느린 삼저(三低). 이것이 21세기 건축과 도시의 모습’이라는 머리글을 달고 있는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隈硏吾)와 사회학자라 불러야 마땅할 미우라 아 쓰시(三浦展)의 대담을 담은 『삼저주의』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철학 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라는 책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책 제목을 섞어 이으니 한국의 건축계 현실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앓고 있는 증상이 바로 ‘삼저주의 시대의 피로사 회 증후군’이기 때문이다.

Wide AR no.28 : 07-08 2012 Issue


효율과 성과가 지배하는 사회와 피로의 누적 ⓦ

각개 약진에 골몰하는 건축계 ⓦ 건축계는 헝클어

『삼저주의』에서 언급한 현상은 믿고 싶지 않을지는

진 전열은 가다듬지 않은 채 각개 약진에 골몰한다.

몰라도 우리 앞에 닥친 현재하는 상황이고 현실이다.

예술과 문화의 총아라 믿고 싶었던 건축 설계를 껄끄

‘생산성’이라는 모호한 가치에 편승해 권력을 획득한

러운 느낌의 어감을 주는 ‘산업’의 범주에 넣어야 하

‘효율성’이 야기한 ‘성과주의 사회’가 아직은 믿고 싶

고, 지식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소홀히 다루었

은 건축계의 지배 담론일 터. 그런데 아무리 거칠게

다고 남 탓을 하면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을 제정

진단하더라도 우리가 느끼는 현실 세계는 그 끄트머

하고 건축문화특별회계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믿고 싶지 않은

펼친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건축가의 발목을 잡았

것이 현실이니 당연히 피로가 생기고 그 양은 누적

다고 푸념하던 법과 제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과 ‘성과’가 여전히

것이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건축 설계’를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또 그렇다고 믿는 집단이 많

지식 산업으로 범주화하여 정책적, 제도적으로 지원

은 것을 움켜쥐고 있으니 드러내 놓고 피곤을 호소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나 이

할 수도 없다. 두 바퀴를 가진 자전거를 탔으니 넘어

역시 삼고주의 시대 부활을 기대하는 비장함에 밀려

지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으라는 명령을 따

공명의 파급 범위나 건축계 내부의 공감 숙성도가 충

르는 꼴이다. ‘성과 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

분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점은 삼고주의

시키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는 한병철의 『피

시대의 몸집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시혜를

로사회』에서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

바랄 뿐이라는 점이며, 건축계가 19대 국회 의원 구

이다. ⓦ 물론 몇 가지 손에 꼽을 정도의 예외는 있

성과 상임위 가동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었다는 점이

지만 21세기에 살며 여전히 20세기의 가치와 규범에

다. ⓦ 대학의 건축 교육 프로그램 역시 여전히 삼고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은 지속된다. 입으로 외치는 21

주의를 전제한 것처럼 비춰진다. 5년제 건축학 교육

세기와 몸을 움직이는 21세기가 서로 다른 시간대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건축 설계 사무소 취업을 기피

인 셈이다. 건설업체는 21세기의 삼저 현상을 구호

하는 학생들을 경원시하는 분위기가 대학 사회에 팽

로만 소비할 뿐, 규모의 거대화와 방대한 조직의 유

배되어 있다. 건실한 건축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프

지 관리에서 한 발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설계 사무

로그램이니 수긍하는 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삼고주

소는 변화하는 기류를 감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 시대를 관통하며 몸피를 유지한 건축 설계 사무소

건설업체에 종속되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을 뿐

의 누적된 피로사회 증후군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그

이다. 건실한 건축가 양성에 목표를 둔 5년제 건축학

럴 것도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장과 효

교육 프로그램은 점점 그 수를 늘려 가지만 캠퍼스

율의 시대, 생산성이 지고의 가치로 평가되던 속도의

밖의 상황은 녹록치가 않다. 가히 총체적 불안의 시

시대에 필요에 따라 몸을 불린 대학의 경우 무엇보다

대다. 삼고 시대에나 있을 법한 거대 단위 초고층 건

도 앞서 고민하고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교육 프로그

축 개발 사업 몇 가지가 간신히 불안의 무게를 떠받

램 자체라기보다는 학생의 규모다. 건축학 프로그램

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속

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집적의 이익과 집적의 불이

내는 전전긍긍이다.

익이 균형을 맞추었던 시대는 삼고주의 시절일 뿐이 다. 집적의 불이익이 집적 이익의 규모를 초과하면서 피로사회의 전형으로 내몰린 곳이 바로 건축 설계 사 무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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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저주의 시대에 걸맞는 움직임으로 ⓦ 삼저주의

념비적 건축을 떠나 일상의 건축으로 복귀해야 하는

시대는 기척 없이 다가온다. 조금 더 비관적으로 말

것인 바, 거대함으로 대표되는 삼고주의 시대와 다

한다면, 이미 삼저주의 시대의 한 복판에 우리가 서

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 이와 더불어 조심스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많이 늦은 셈이

럽지만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대학의 건

다. 서둘러야 한다고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축학 교육 프로그램 학생 규모의 축소다. 끝없는 성

서두름이 우리가 경험한 삼고주의 시대의 성찰 없는

장을 전제했던 개발 시대는 소용의 필요 규모에 따라

몸 불리기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삼저주의 시대

고급 인력 공급 시스템을 갖추었고, 그것이 오늘의

의 행동 강령은 서두르지 않음이 아니던가. 삼저주

대학이다. 당연히 삼저주의 시대에는 들어맞지 않는

의 시대의 피로사회를 해소하기 위한 건축계의 최우

거대 공룡이다. 서로 들어맞지 않는 조건들을 억지로

선 과제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궁리하고 토론하여

꿰맞추다 보니 피로사회 증후군이 심화되었을 뿐이

야 한다. 내홍이 없을 수 없다. 그저 몸과 마음을 키

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기시된 학생 규모의 축소라

우는 성장통이거나 가벼운 열병을 앓는 것이기를 간

는 고리를 이제부터라도 풀어야 한다. 이 역시 충격

절하게 바랄 뿐이다. ⓦ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짜내야 할 일이다.

에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을 하시게 될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끄트머리 시간에 동료들과 함

피로의 원인을 찾는 일이 우선 ⓦ 에너지를 많이 사

께 참석하였다. 강의 시간을 다 채우신 선생님께서

용하지 않으면서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은

하신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고 싶다. “아파트 천 세대

집을 짓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일은 외벽

를 하나의 설계 사무소가 맡아 합니다. 만약 지금의

량을 줄이는 것이고, 그 다음이 창호를 꼭 필요한 곳

아파트가 각각 개별적인 단독 주택이라면 천 명의 건

에만 두어야 하는 일이며 그 다음이 캐노피와 실내

축가가 하는 일일 것입니다. 되돌릴 수 있는 일일지

온도 조절을 위한 천장 등을 고려하는 일이 순서다.

는 모르되 건축가에게 주어진 일이 천 분의 일로 줄

삼저주의 시대를 맞아 누적된 피로사회 증후군을 치

어든 셈이지요.” 이 말씀이 던지는 메시지는 자명하

유하기 위해서는 삼고주의 시대에 만들어져 고착된

다. 건축 행위의 단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구조의 실체를 파악하고 피로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

속도와 효율은 지나간 시대의 전유물이었으므로. 그

이 중요하다. 단열을 확실히 하면 된다는 발상이 인

러니 상흔을 덜 남기며 이 시대를 살아 견디기 위해

간의 지나친 오만인 것처럼 피로 터널의 출구 찾기

서 가장 시급한 일은 ‘개발’보다는 ‘정비’요, ‘승자독

에 대한 낙관은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경계하기 위

식의 효율성’이 아닌 ‘나눔과 배려로 드러나는 다채

해 필요할지는 모르나 섣불리 드러낼 자신감은 아니

로움’일 것이다. 이름하여 ‘소단위 정비’가 필요하고

다. 이미 삼저주의 시대의 한복판에 우리가 서 있으

건축가의 모습은 ‘동네 건축가’일 것이다. ⓦ 동네 건

므로. 우리 모두가 이미 성과 사회의 고독한 피로를

축가가 주도하는 지역별 소단위 정비는 삼저주의 시

겪고 있으므로. ⓦ

대에 걸맞는 느린 움직임이다. 관찰하고 궁리하며 지 혜를 모으는 일은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고 골목 산 업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으며 부가 가치와 발생 이 익의 소비를 지역에서 받아 낼 수 있다. 착한 지역 경 제의 기본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이다. 기

Wide AR no.28 : 07-08 2012 Issue


????? ????????????????????????????????????????????????????????????????????????????? ????????????????????????????????????????????????????????????????????????????? 이슈 2012 07-08 | 이종건의 <COMPASS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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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 누구를 위한 보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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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건 | 본지 편집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최근 서울역사의 변화

보존에 대한 나의 생각

서울역사는 일본 제국이 우리나라를 한창 통치하던

나는 우선, 서울시청사 구관과 서울역사를 포함해서

시점에 일본인이 지은 것으로(1925년 준공), 우리의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이 지은 건물들(간략히 일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네이버 사

제 건물이라 칭한다)은 모조리 별 보존의 가치가 있

전에 따르면, 사적은 “기념물 가운데 역사적, 학술

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상황에서 공

적, 관상적, 예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국가가 법

간의 가치가 낮으면 부셔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보존

으로 지정한 문화재”를 일컫는데, “역사의 현장으로

해야 할 것은 특정한 장소성, 곧 여기에 이러한 모습,

서……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이러한 용도의 건물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며,

터전”이다. 그러니까 사적이란 결국 “역사의식과 민

그것은 바로 그 현장에 ‘실제의 건물이 아닌’ 다른 방

족정신”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

식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일제는 한산대첩지나 진주대첩지 같은 유적은 고적

다. 굳이 건물 그 자체를 보존해야 마땅했던 것은 국

으로 인정하지 않고, 임지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

립중앙박물관으로 썼던 조선총독부 건물인데, 안타

은 철저히 지정하여 보존하였다”는 것이다. 누구의

깝게도 전문가가 아니라 대중의 판단에 쏠려 소멸되

의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역사는 “일제 강점기

고 말았다. 사적을 지정하는 이유가 “역사의식과 민

의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외관”을 지닌 것으로 나타 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선지 우리의 문화재로 지정 된 서울역사는, 목하 문화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전 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데, 나로선 이 변화가 몹시 석연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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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정신”의 함양 혹은 전수라고 한다면, 그것 하나로

굳이 비석 풍경을 끌어안고 있는 형국이 아니라, 더

도 일본 제국주의의 비문화적인 지배와 우리의 굴욕

활기차고 신선하고 도전적이고, 그러면서도 탁월한

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따

공간과 풍경을 만들어 내어 그 주변의 우리 도시의

라서 지금이라도 조선총독부 건물은, 그것이 들어섰

삶을, 마치 퐁피두센터처럼, 더 역동적이며 풍요롭

던 바로 그 현장에, 윤곽만 구성한 설치물의 형태 정

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도로라도 다시 세우고, 여타 일제 건물들은 보존의 배의 역사성을 빼고 나면, 고작해야 서구 건물을 재

소멸이 아쉽다면 기억할 방도를 찾는 편이

현해 낸 일제 건물들이야 관상의 가치도 예술적 가

이러한 생각은, 어떤 이유에서든 소멸되어 버린 우리

치도 그리 대단하지 않고, 그 정도의 관상이나 예술

의 오랜 구축물들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

성의 수준은 오늘날 우리 건축가들도 충분히 미칠 수

컨대,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복원하는 일은, 내 눈

있고, 심지어 능가할 수도 있다. 혹 학술적 가치가 있

에 무척 마뜩잖다. 건물을 마치 살아 계신 증조할아

다면, 그것들은 실측 도면과 사진의 형태로 보존해도

버지 혹은 돌아가신 조상 대하듯 하는 태도는 순전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히 페티시즘이고, 따라서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니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제 지

무작정 보존보다는 지금 여기의 삶이 고려돼야

다. 소멸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고, 그래 서 소멸된 것은 소멸된 것으로 두는 것이 마땅한데, 굳이 그 존재의 소멸을 견딜 수 없다면 그것을 기억(

물론 오래된 건물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

혹은 기념)할 방도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지금의 우

리의 유구와 유물은, 특히 우리 땅에 워낙 희귀한 탓

리의 삶의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 넣는 원형 복원 작

에, 가급적 보존하려고 애써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업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설

것의 보존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에 그것이 주는

계 경기에 참여한 승효상은 끊어진 산성 구조물을 현

의미와 가치에 달렸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무작정

장에 복원해서 가급적 본디처럼 잇기를 제안했는데,

보존하려고 애쓰는 것은, 현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

이 또한 그리 탐탁한 생각이 아니다. 굳이 사라진 부

거나 작금의 삶의 역동성을 제한하는 것으로, 일부

분들을 살려 내고 싶다면, 그 또한 본디의 모양이나

탐미자들의 사치에 부응하는 낭비에 불과하거나, 그

구조가 아니라 소멸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본

럭저럭 손을 잘 보면 관광거리로나 적절할 정도다.

디와 다르게, 창조적으로 재/구성 혹은 표현하는 것

오래된 건물이 우리의 도시적 삶에 직접적으로 줄 수

이 건축을 제대로 하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삶을, 어

있는 것은 시간성의 누적과 맥락의 이탈로 인한 다

떤 이유에서든, 지나 버린 삶의 세계에 복무케 하는

양한 풍경인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표면의 풍경, 혹

것은, 니체가 비판한 바 있는 잘못된 역사주의를 반

은 풍경의 표면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고작 눈의 즐

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복원 작업 그 자체가 이미

거움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일제 건

건축적이지 않다.

물의 정면을 남긴 채 지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생산한 가치는 정확히 그뿐이다. 보존이라는 제약이 없었다 면, 뛰어난 건축적 역량을 지닌 건축가라면 아마도

Wide AR no.28 : 07-08 2012 Issue


모든 것이 문화가 된 세상, 그래서 서민의 애환 어린 공간에 아무 것도 문화가 아닌 세상 특권계층의 고급문화라니 일제 건물인 서울역사가 문화 공간이라는 근사한 이

일제 건물 서울역사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호명

름으로,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십이열차라 불리던

함으로써 누가 덕을 보는가? 단적으로 지구적 자본

완행열차를 타고 내리던, 민중의 고달프기도 하고

주의의 어두운 그늘 아래 힘겹게 살아 내는 대한민국

기쁘기도 하던, 그래서 더더욱 한이 많이 서렸던 이

국민이나 서울시민이나 우리 민중이, 그로써 한 치라

별과 만남의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다니, 참

도 삶을 더 수월하게 살 수 있게 되거나 살 만하게 되

놀랍고도 근사한 일이다. 그런데 다인종이 아니라 다

는 것이 있는가? 고급 갤러리처럼, 거기에 들어서는

문화 가정이라는 용어가 그러하듯, 이 문화라는 말

것조차 숨 막히도록 통제한 채, 소수의 소위 잘나가

이 수상쩍다. 그로써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는 작가들의 묵은 (마치 식은 죽 같은, 재방송 같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로써 실상 변한 것은 아무 것

개인전에나 공간을 할당하고, 건축이라는 특수한 직

도 없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능의 지리멸렬한 작동 방식을 보여 주고, 김종필의

문화라는 이름은 그저 포장지일 가능성이 지극히 농

권력과 결탁한, 대공분실을 만드는 데 주역이 된 김

후하다는 말이다. 푸코에게 배운 여러 지혜들 중 하

수근을 미화하고 선전하는(그의 모더니티라고? 그

나는, 호명이나 발화 뒤에 숨어 있는 사리사욕을 읽

의 건축이 유독 현대성과 상관할 거리가 어디 있으

어 내는 것이니, 우리들 중 문화를 거들먹거리는 자

며,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지극히 편협

가 누구이며, 그로써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헤아려

한, 소수 특권계층만 누릴 수 있는 소위 고급문화에,

봐야 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세기에 들어 문

서민의 애환 어린 공간을 송두리째 바치다니! 사적

화라는 말을 가장 먼저, 많이 그리고 흔히 들먹인 자

으로 지정한 건물을 기껏해야 문화 권력을 장악한 소

는 단연코 정치인이 아니던가? 아마도 대중의 환상,

수에게 돌리다니! 차라리 사적을 풀어 건물을 허물

민심의 선동을 먹고사는 그들은 어떤 말이 잘 먹히

어 버리고, 도심 공원을 만들든 여전히 부족한 도시

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소위 촉이 빠른 족속이기

의 공허부를 더 늘리는 것이, 혹 구조물을 만들게 된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세훈이 내세운

다면 그 아래에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들이나 볕도

캐치프레이즈가 ‘문화도시 서울’ 아니던가? 오세훈

들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서 갑갑하게 살아가는 이들

왈, “21세기에 세계의 도시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

이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숨 좀 쉴 만한 공간을 만드

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문화가 곧 ‘경제’

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인 까닭에 ‘경쟁력’이 된 시대라는 주장에 근거한 발

사적을 유지해서 껍질은 보존한 채 속을 문화 공간

화다. 어디 오세훈 뿐이던가? 지방자치 시대, 곧 주

으로 쓰고 싶거든 차라리 인디 문화와 같이 ‘자생적

민의 득표가 정치 생명이 된 시대가 열리면서 중소

인’, 그야말로 민중이 만들어 내고 향유하는 그런 문

도시 할 것 없이 떠벌이는 각종 행사들은 모조리 문

화를 담아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

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 않던가? 모든 것이 문화 가 된 세상이니,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문화 가 아닌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를 거들먹 거리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 술수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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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2012 07-08 | 와이드 포커스 ▽▽▽▽▽▽▽▽▽▽▽▽▽▽▽▽▽▽▽▽▽▽▽▽▽▽▽▽▽▽▽▽▽▽▽▽▽▽ ▽▽▽▽▽▽▽▽▽▽▽▽▽▽▽▽ ▽▽▽▽▽▽▽▽▽▽▽▽▽▽▽▽▽▽▽▽▽▽ ▽▽▽▽▽▽▽▽▽▽▽▽▽▽▽▽▽▽▽▽▽▽▽▽▽▽▽▽▽▽▽▽▽▽▽▽▽▽▽▽▽▽▽▽▽ ▽▽▽▽▽▽▽ ▽▽▽▽▽▽▽▽▽▽▽▽▽▽▽▽▽▽▽▽▽▽▽▽▽▽▽▽▽▽▽▽▽▽▽▽▽▽▽▽▽▽▽▽▽ ▽▽▽▽▽▽▽▽▽▽▽▽▽▽▽▽▽▽▽▽▽▽▽▽▽▽▽▽▽▽▽▽▽▽▽▽▽▽▽▽▽▽▽▽▽ ▽▽▽▽▽▽▽▽▽▽▽▽▽▽▽ ▽▽▽▽▽▽▽▽▽▽▽▽▽▽▽▽▽▽▽▽▽▽▽▽▽▽▽▽▽ ▽▽▽▽▽▽▽▽▽▽▽▽▽▽▽▽▽▽▽▽▽▽▽▽▽▽▽▽▽▽▽▽▽▽▽▽▽▽▽▽▽▽▽▽▽ ▽▽▽▽▽▽▽▽▽▽▽▽▽▽▽▽▽▽▽▽▽▽▽▽▽▽▽▽▽▽▽▽▽▽▽▽▽▽▽▽▽▽▽▽▽ ▽▽▽▽▽▽▽▽▽▽▽▽▽▽▽ ▽▽▽▽▽▽▽▽▽▽▽▽ '▽▽▽▽▽▽▽▽▽▽▽▽▽▽▽▽▽▽▽▽▽▽▽▽▽▽▽▽▽▽▽▽▽▽▽▽▽▽▽▽▽▽▽▽▽ ▽▽▽▽▽▽▽▽▽▽▽▽▽▽▽▽▽▽▽▽▽▽▽▽▽▽▽▽▽▽▽▽▽▽▽▽ ▽▽▽▽▽▽▽▽▽▽▽▽▽▽▽▽▽▽▽▽▽▽▽▽▽▽▽▽▽▽▽▽▽▽▽▽▽▽▽▽▽▽▽▽▽ ▽▽▽▽▽▽▽▽▽▽▽▽▽▽▽▽▽▽▽▽▽▽▽▽▽▽▽▽▽▽▽▽▽▽▽▽▽▽▽▽ ▽▽▽▽▽▽▽▽▽▽▽▽▽▽▽▽▽▽▽▽▽▽▽▽▽▽▽▽▽▽▽▽▽▽▽▽▽▽▽▽ ▽▽▽▽▽▽▽▽▽▽▽▽▽▽▽▽▽▽▽▽▽▽▽▽▽▽▽▽▽▽▽▽▽▽▽▽▽▽▽▽▽▽▽▽▽ ▽▽▽▽▽▽▽▽▽▽▽▽▽▽▽▽▽▽▽▽▽▽▽▽▽▽▽▽▽▽▽▽▽▽▽▽▽▽▽▽ ▽▽▽▽▽▽▽▽▽▽▽▽▽▽▽▽▽▽▽▽▽▽▽▽▽▽▽▽▽▽▽▽▽▽▽▽▽▽▽▽▽▽ ▽▽▽▽▽▽▽▽▽▽▽▽▽▽▽▽▽▽▽▽▽▽▽▽▽▽▽▽▽▽▽▽▽▽▽▽▽▽▽▽ ▽▽▽▽▽▽▽▽▽▽▽▽▽▽▽▽▽▽▽▽▽▽▽▽▽▽▽▽▽▽▽▽▽▽▽▽▽▽▽▽▽▽▽▽▽ ▽▽▽▽▽▽▽▽▽▽▽▽▽▽▽▽▽▽▽ 전진삼 | 본지 발행인 ▽▽▽▽▽▽▽▽▽▽▽▽▽▽▽▽▽▽▽▽▽▽▽▽▽▽▽▽ ▽▽▽▽▽▽▽▽▽▽

김병윤號가 표류하는 다른 이유

아직 공식적 발표가 없는 2012 베니스비엔날레 국

이다. 그 사이 불상사도 있었다. 커미셔너가 선정한

제건축전 한국관 ⓦ 여느 해라면 지금쯤 베니스비

작가군에 대하여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문

엔날레 국제건축전(8월 29일~11월 25일) 한국관

화예술위원회 차원에서의 관계자 회의가 이전 커미

참여 작가들의 출전 작품이 선적되고 있어야 할 때

셔너들을 소집하는 형식으로 개최된 바 있고, 그것

다. 이미 작가들의 면면도 세상에 공개되어야 했고,

말고도 수차에 걸쳐 커미셔너를 압박하는 전문가 회

나름 축하하는 자리도 엮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의가 열렸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 커미셔너 입장에

글을 쓰고 있는 7월 첫 주말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서는 곤혹스런 일련의 과정이었을 터다. 적어도 한국

출정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국가가 선임한 커미

관 전시 프로그램에 관련해서는 커미셔너의 직임이

셔너도 있고, 그가 선정한 작가군도 이미 알려질 대

독립적인 기구가 되었어야 마땅했음에도 주변에서

로 알려져 있는 상태인데 공식적으로는 감감무소식

감놔라 배놔라 하는 양이니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

Wide AR no.28 : 07-08 2012 Issue


그 바람에 초대 작가들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상황

론의 사위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에 놓이고 말았다. 외국 유명 비엔날레의 국가 대표

어떤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중무장을 하고 드러낸다

급 선수로 초대받은 것을 대놓고 기뻐할 수도 없고,

해도 침묵으로 일관한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설령 7

주변 돌아가는 상황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는 처

월 중에 기자 간담회를 가진다 한들 이제부터는 모든

지이고 보니 이건 잔칫집에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

것이 변명거리로 전락하고 만 지경이다. 이는 작금의

초상집에 들러리가 된 격이어서 속으로는 얼마나 타

사태가 커미셔너의 고집으로부터 촉발된 거라고 힐

들어가고 있으랴. ⓦ 문제의 발단은 커미셔너가 선

난하는 이들에게 쓸데없이 힘을 실어 주는 격이 되고

정한 작가군 중 대형 설계 조직(건축사 사무소) 4개

말았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저간에 보여준 태

사의 CEO들이 신진 건축가 4인과 함께 초대되었다

도는 점입가경이다. 커미셔너 선정위원회가 현재의

는 것에서 점화되었다. 그들이 각 사무소에서 디자

커미셔너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으로 하자를

인 책임을 맡고 있는 CEO라는 점이 부각되긴 했지

범한 것이 아니고 정상적으로—그것이 다수결의 원

만, 정서적으로 턴키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칙에 의한 것이었든 아니든—이루어진 거라면 선정

데에 앞장서 온 대형 설계회사를 초청하는 형식이었

된 커미셔너의 재량에 전적으로 일임했어야 함에도

다는 점에서 건축계 내부 일각에서의 저항에 직면한

지명 및 공모로 초대된 작가들의 면면을 알게 된 위

것이다. 특히 4개 사 중 2개 사의 CEO는 한국건축

원회 주변인들의 거친 항의에 중심을 잃고, 전직 커

가협회 전 회장과 차기 회장 예정자라는 점에서 커

미셔너들을 대거 소집하여 현 커미셔너를 압박한 것

미셔너 선정위원회 구성원들의 편향성이 급기야 초

이나 그와 준하는 소위원회를 소집하여 커미셔너의

대 작가 선정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으로

작의를 훼손케 한 점에 있어서는 사실 규정을 넘어서

까지 이어졌다. 현 커미셔너는 동 협회의 부회장으

커미셔너의 권한을 우회적으로 위협·강제하려는 의

로 재임하고 있다.

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사태가 이 지 경에 이르렀다면 사실 현 커미셔너가 스스로 자진 용

일련의 사태로 들여다보는 우리 건축계 ⓦ 금번 사

퇴하는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 마땅했다. 건축가로서

태의 종지부가 어떻게 찍힐지 현재로서는 오리무중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받은 커미셔너가 그 자리를

이다. 그러한 경황 중에도 커미셔너를 중심으로 초대

보전하고 있는 걸 보면 그것 또한 엽기적이다. 이렇

작가들의 회의는 진행되어 온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듯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국가를 대표하는 전문 문

이는 앞서의 여러 갈래의 회의 참가자들에게서 공통

화 예술 기관으로서 스스로 전문성을 실기한 채 건축

적으로 수집된 커미셔너의 불응 의지가 확고한 것과

계 내부의 잡음만 키우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뿔

통한다. 커미셔너의 원안대로 한국관 전시가 열리

난 소방수처럼, 이후 예견되는 사태에 필요한 내부

든, 혹은 일부 수정안으로 참가하든, 아니면 올해의

회의 서류를 만들고 챙기는 치사한 짓거리에 골몰하

전시 참가를 포기하는 수순으로 정리가 되든 건축계

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 이러한 점에

전방위적으로 후폭풍이 거셀 조짐이다. ⓦ 일단 언

있어서는 일부 건축가들이 보여 준 반응도 꼴사납기

론 공개를 통해 한국관 전시의 실체를 드러내야 함에

는 마찬가지다.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위상

도 커미셔너는 쉬쉬하며 여전히 거북이걸음을 하고

에 걸맞는 전시의 성격에 부합하는 작가군이 따로 존

있다(참고로 올해 한국관의 주제는 ‘건축을 걷다’이

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금번 사태로 알 수 있

다). 궁금해 하는 언론조차 무시하는 행태로 인해 언

는 것은 적어도 초대 작가군 선정 기준의 ‘묵계’가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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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커미셔너의 작의에 따라

가의 품계론적 선긋기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그 선의

선 초대 작가의 면면이 이전과 180도 달라질 수 있는

바깥에서 존재하는 다수의 건축가들이 새로운 품계

것임에도 소위 작가주의적 태도를 갖춘 이들을 중심

형성에 그닥 신중하지도, 치열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으로 주제를 해석시키고, 의미를 확장시키는 기회를

찾는다. 부러운 대상, 무시하면 그만인 대상, 패거리

부여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망신당하지 않는다’는

문화에의 혐오와 동경과 어중간한 관계망으로서의

속설에서 자유롭지 않은 까닭이다. ⓦ 그런 면에서

안도, 비슷한 유형으로 좌판을 벌리기는 해도 그것

금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대 작가 선정을 전후

이 지향하는 목적의식이 불분명한 건축의 소모임과

한 일련의 사태는 우리 건축계에 팽배해 있는 품계

단체들이 우후죽순 준동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주의를 도마에 올려놓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다. ⓦ 특히 작금의 30, 40대 ‘젊은 건축가’라 불리는

적어도 지난 십여 년 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세대들이 빠듯한 살림살이에 이골이 나서 스스로가

커미셔너로 선정되었던 건축가(그들은 공히 현장의

생계형 건축가의 표본처럼 행동하는 것에서 안타까

‘건축가’들이었다)들이 대학로 주변의 건축가 내지

움은 극대화된다. 적어도 오늘날 그들이 선망하는 20

는 특정 건축 그룹 소속 건축가들의 사슬로 이어져

년 전 30, 40대 건축가들은 같은 처지 내지는 더욱 혹

왔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독한 상황에 몰려 있었음에도, 비열하고 잔혹할 정도

곱지 않은 시선이 상존한다. 사실 2010년과 올해의

로 자기들이 속한 건축가 모임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커미셔너 최종 선정 과정에서도 이러한 정황이 작용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정위시켰다. 그 점을 간과하고

하여 최후의 2인에 올라간 후보 중에 ‘非대학로’파

본다면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품계론을

건축가가 선택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 돌이켜보면

‘성골—진골—6두품—5두품’식의 골품으로 구분하

전술한 이들, 현재 한국 건축의 리딩 그룹으로 분류

여 자기 비하용으로 이해하는 이는 후안무치가 아니

되는 일단의 건축가군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지나온

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무엇을 위해 모여 있는지,

20년의 시간 동안 저들 스스로가 각고의 투지와 실

왜 그 자리를 차고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할 것

험을 통해 작금의 위상을 점유하게 되었다는 점을 망

인지 등등 오늘날의 젊은 건축가들이 무심코 지나오

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

고 있는 각각의 현상을 깊게 들여다봐야 함에도 그

는 건축의 세계관에 동의하든 아니든 오피니언 그룹

점에서 특히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기에, 현

이라는 점만으로 어떤 식으로든 싸잡아 부정될 이유

실은 대중주의를 가장한 불손한 미디어정치 마냥 그

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수근, 김중업 선생 사후에 딱

들의 건축 또한 폼나게 무대를 밟는 기회를 누릴지

히 건축판의 선생이 부재하던 시절, 당시의 30, 40대

는 몰라도 결국엔 지리멸렬하게 소멸하는, 힘의 방

건축가들이 자진하여 토론과 여행을 병행하며 학습

정식에 갇힌 존재가 될 것이 심히 우려된다 하겠다.

하고, 그 결과를 작업으로 구체화해 온 역경의 시간 이 있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커미셔너의 시선을 통째로 부인하는 상황이 더 큰

그들의 건축가 네트워크는 나름 견고했고, 견고함의

문제 ⓦ 다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로 돌아가

항상성(또는 건강성)을 위해선 스스로들이 건축판

보자. 나는 현 커미셔너에게 무엇을 주문코자 하는

에서의 선긋기를 통해 품계 형성의 발판을 놓았다는

가? 선후배 건축가들을 통한 여러 형태의 직언과 간

점은 후배 건축가들이 주목할 대목이다. ⓦ 나는 오

언에 대하여 그가 “전시로 말하겠다”고 정리한 대목

늘날 한국 건축계의 가장 큰 두통거리가 저들 건축

에 방점을 찍고 싶다. 커미셔너의 능력을 믿고 안 믿

Wide AR no.28 : 07-08 2012 Issue


고의 얘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커미셔너 예비자

만, 동시에 그분들의 ‘비열한’ 처신으로 인해 오늘의

명단에 그가 추천되는 시점에 정리된 것이라고 본다.

‘김병윤號’ 사태까지 몰고 왔다는 점에서 스스로 관

비판 또는 비평적 관점에서 커미셔너의 선택을 저울

련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

질할 수는 있어도 그의 시선을 통째로 부인하는 것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의 수혜자로서 대형 설계 조직

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

이 주도해 온 2000년대 한국 건축의 기형적 시간표

니다. 나는 그것이 더욱 위험하다고 진단한다. 그 바

를 커미셔너가 주목하였다면, 바깥에서의 ‘우리’는

람에 표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안팎에서의 무차별

그가 선택한 건축의 이슈를 공론화하여 끝까지 실기

난사에 구멍 뚫린 ‘김병윤號’는 물먹은 난파선으로

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목적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망망대해에서 침수의 변

바람직할 것이다. ⓦ

고를 겪고 있는 형국이다. ⓦ 그 면에서 보면 커미셔 너가 보여준 고집불통의 인상보다는 심지 약한 태도 가 더욱 거슬린다. 그는 일찌감치 준비한 프로그램 과 연출력으로 세간의 비난에 당당히 맞서야 했다. 그럼과 동시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베니스비엔날 레 한국관 전시에 투입하는 ‘말도 안 되는 예산’—그 로 인해 역대 커미셔너들은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 해 얼마나 많은 주변인들을 힘들게 했던가?—등의 골칫덩이를 속시원하게 드러내 주었어야 했다. ⓦ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가 무 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작위를 하사하는 고관대작 나리들이 주는 대로 받고—소명감을 얹어서—군말 없이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작금의 방식에선 지적 허 영에 놀아나는 커미셔너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좋은 아이디어와 비판적 사유로 세계 건축의 향 방을 주시하는 이론가와 비평가들이 원천적으로 무 시되고, 마치 자금 동원력을 커미셔너의 주된 미션 으로 삼게 만든 현실—자연스레 자금 동원력에 가깝 게 있는 건축가들이 대오를 이루는 파행—을 바로 잡는 것이 수순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국가가 지원 하는 비용 내에서, 그것이 얼마나 황당한 전시 결과 물을 생산해 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저질러 보 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 저예산으로 최고 의 전시를 기획해 온, 그것으로 자존심을 세우고 있 는 전직 커미셔너들로 인해 우리 건축이 세계로 내 비치는 평균적 눈높이가 향상된 것은 고마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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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Joh Sungyong

32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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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 1944년 일본 동경 출생으로 인하공대 건축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5년 우원건축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83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및 기념 공원 국제 설계 경기에 당선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작업을 시작했 다. 광주 의재미술관, 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한강 선유도공원, 해인사 신행 문화 도량 설계 경기에서 1등 당선하 였고, 1987년 서울시건축상, 1993년과 2003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했다. 기타 주요 작업으로 인 하대 학생회관, 합정동 주택, 청담동 주택, 양재 287.3, 해운대빌리지, 지앤아트스페이스, 어린이대공원 내 꿈마루, 광 주 디자인 비엔날레 어번폴리 7 등이 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김수근문화재단 부설 sa/서울건축학교의 교장, 문 화재청 문화재 위원(2004~2009)을 역임하였고, 현재 조성용도시건축 대표,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석좌 초빙 교수로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2002년 한국관 전시회에 초대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기도 했다.

이응노의 집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La Maison de Lee Ungno 여기, 근대 한국 화단의 거장 고암 이응노 선생의 생가 기념관(이응노의 집)을 소개한다. 그동안 건축가 조성룡이 공공 건축 작업을 통해 보여 준 ‘기억의 재현’, ‘기억과 풍경’ 이란 주제 의식이 이응노의 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003 우리 시대 기억・기념의 건축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004 바, 본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설계자・발행 편집인단 → ↓

을 초청하여 진행한 집담회의 기록과 전문가의 리뷰를 함께 올리며, 설계자의 의도는 물론 이 집의 다른 가치를 들 어 보는 인터뷰란도 빼놓지 않았다.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진효숙(본지 전속 사진가, 별도 표기 외)]

33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이응노의 집 건축 개요

월산을 배경으로 안온하게 자리잡은 이응노의 집. 건축물은 집 앞의 마당, 연지와 들판, 멀리는 자연, 세계와 연결된다. 앞의 32-33쪽 사 진에 보이는 산은 용봉산이다.

대지 위치 : 충남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386-1번지 외 9필지 | 대지 면적 : 9,041.00m2 | 지역 지구 : 관리 지역, 농림 지역 | 용도 : 문화 및 집회 시 설 | 규모 : 기념관 본동 지하 1층, 지상 1층 / 부속 동 지상 1층 | 건축 면적 : 1,002.69m2 | 연면적 : 1,312.52m2 | 연면적(용적률 산정) : 1,002.69m2 | 건폐율 : 14.52% | 용적률 : 11.09%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외장 재료 : 노출 콘크리트 , 흙다짐 벽, 적삼목, 투명 유리 | 설계・감리 : 건축사사무소 조 성용도시건축(조성룡, 정상철, 이대우, 이시효, 이우 종) | 전시 설계 자문 : 최춘웅 | 전시 설계・시공 : (주)UDI | 조경 설계 : 정우건 | 건축・토목・기계 : 덕청건설(주) | 전기 : (주)거성전력 | 시행처 : 충 청남도 홍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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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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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이응노의 집 배치 스케치.

36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이응노의 집 배치도.

37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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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지에 기댄 채 무심하게 앉아 있는 기념관. 마을로 이어지는 농로 를 사이에 두고 부속동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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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이응노의 집을 보는 몇 가지 건축적 시선

기념관 그리고 미술관 ⓦ 이응노의 집은 그가 탄생 하고 소싯적을 보냈다는 충남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의 낮은 산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응노가 태어 나고 살던 집은 홍성읍으로부터는 북서쪽 4km지점,

경관과 환경 속의 집

주산(主山)인 용봉산 정상으로부터는 약 3km 지점 에 위치하는데, 주변의 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용봉

글—김미상

산과 오서산이 이루는 거의 정남북 방향의 축을 약간

[본지 편집고문, 단우도시건축학연구소 소장,

벗어난 서쪽, 백월산과 철마산이 이루는 정동서 방향

철학·문학 박사(예술사)]

의 축으로부터 약간 벗어난 북쪽에 위치한다. ‘이응 노의 집’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북쪽으로 홍성 의 주산인 용봉산, 멀리 그와 비슷한 각도로 서쪽으 로 치우친 북쪽 5km 지점에는 [그 남쪽 자락에 수덕 사가 있는] 덕숭산, 가까운 남쪽으로는 월산이라고 도 불리는 백월산이 자리잡고 있다. ⓦ 이응노의 집 은 대지 면적 2만 596m2, 건축 면적 1,002m2로 전시 홀, 어린이 미술실,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실내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복원된 생가, 야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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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건축가 스스로는 연밭이라고 이름 붙이기 원하

으로 덜, 그리고 늦게 발달, 진화된 것으로 생각되고

는 연지 공원(蓮池公園), 산책로 등을 갖춘 기념관이

있다. 서양식 미술관들이 지닌 공통의 문제는 압도적

자 미술관이다. 이응노 개인을 기리고자 마련된 기념

인 장관(壯觀)과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더할 나위 없

시설임에도 그 자신이 미술가였기에, 기능적인 측면

이 빼어난 건축물이 되지만, 전시물을 상대적으로 왜

에서는 전시와 수장 공간이 필수적인 미술관의 성격

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단점과 아울러 관

이 한층 더 강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

심을 건축물에 쏠리도록 하여 전시 공간으로는 적합

에서 이응노의 집은 기념관은 물론, 미술관의 측면에

지 않다는 평을 받곤 한다는 것이다. ⓦ 조성룡은 건

서 살펴봄이 당연하다.

축가로서 다양한 양상의 건축 작품을 창조해 내고 있 는데, 그의 건축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서양식 미술관의 딜레마에서 찾는 이응노 집의 긍

여러 특징 중 하나는 필요시 의도적으로, 그리고 노

정적 논의 ⓦ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각(閣), 전

련하게 자신과 건축물을 과도히 강조하지 않는 것이

(殿), 루(樓) 등 다양한 종류와 형식의 건축물로써 인

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한 소박한 외양과 배치, 건

물이나 사상, 사건 등을 기리고 경우에 따라 비(碑),

물이 들어설 터가 가지고 있는 기존 지형의 적절한

현판(懸板) 등을 장치하거나 보호하는 건축이 상당

적용, 또는 그 자신이 연출해 내는 건축물 내외의 인

히 발달되었다. 그러나 물체, 즉 예술적 성격을 지닌

공적 지형의 조성으로 인해 이동 경로는 무리 없이

것, 혹은 기념이 될 만한 오브제를 체계적으로 수장,

유연하고 자연스런 공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곤

보관하는 미술관, 박물관 등은 서양에 비하여 일반적

한다. 그는 기존의 구조물이나 건축물, 자연, 환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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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충분히 고려하여 그 안에 자신의 건축물을 삽입하

그의 근본적 건축 철학과 윤리적 정신을 웅변하고 있

는 것에서 뛰어난 기질을 보여 주는데, 소마미술관,

으며 이응노의 집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유도공원, 어린이대공원 내의 꿈마루 등은 각기 독 특한 성격을 지닌 색다른 장르의 건축물, 혹은 축조

거시적 측면에서 논하는 이응노의 집 ─ 경관과 환

물로서 언급한 공통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건

경 ⓦ 경관과 환경 등 거시적인 측면에서 논하는 이

축가 자신을 타인들과 변별토록 하는 요인이 되곤 한

응노의 집은 자연, 우주론 등을 고려할 때 많은 점에

다. 대지의 지형을 잘 이용하고 건물의 존재를 심히

서 타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시적인 차원

강조하지 않는 동시에 부담이 없는 완만한 경사로 등

에서의 건축물 자체, 그와 인접한 국지적 환경, 부지

으로써 분할된 전시실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

의 측면에서 볼 때의 아쉬운 점들은 성숙한 건축가

연스레 순차적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소마미술관이

조성룡에게서 아직도 다수 발견되는 부분이다. 흔히

나, 폐기된 정수장에 자연을 도입함으로써 정수장의

언급되듯 후위의 모더니즘이라고 할 만한 형태를 지

자취를 보존하며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선유도공원,

니고 있는 조성룡의 건물은 전대의 움직임 중 주요한

온갖 덧붙여진 군더더기들을 떼어 내어 원래의 건축

항목인 재료의 합리성이나 평면의 기능성, 이지적 공

물을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역사성을 재조명하고,

간의 연출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 비해─물론 작

기존의 역학적 구조물을 철거하여 한층 더 뛰어난 공

가 자신은 이런 논조에 반대하고 나서겠지만, 그리고

간성을 가진 건축물로 탈바꿈시키고, 건축가 자신과

필자는 조성룡의 태도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눈감는

그의 창조물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듯한 꿈마루 등은

입장이지만─상당히 감성적이며 예술 지상주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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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엿보이는데, 그조차도 개념이나 사상 자체의

하고 주된 부분인, 그리고 디자인의 출발점이 되었을

완결성보다는 절충적인 태도의 멘탈리티를 엿보는

로비와 기획 전시실은 정확하게 용봉산과 일원산을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절충적 태도가 문제시되지

연결하는 축(軸), 즉 북동-남서 방향 축선상에 배치

않는 현시대일지라도 의식적인 문제를 향한 명확한

되었다. 산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수법은 숭산 사상(

대결 태도가 아쉬워 보이는 이유는 작가 자신이 그

崇山思想), 주역(周易) 이론, 풍수 이론, 기(氣) 이론

문제들에 대해 아직도 적잖은 부분을 확실히 인식하

등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적용되어 온 전통적인 방식

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해결법을 확실하게 제시

으로 우주론을 근본으로 하는 정신적 배경에서 출발

하는 데에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필자

하는데, 이응노의 집은 월산, 용봉산, 태백산맥, 백두

는 이론가나 비평가들이 예술인에게 적절한 비평과

산, 그리고 하늘로 이어지는 맥, 그리고 한반도의 기

지침을 제시해 주어야 함에도 평가를 내리는 일에 대

의 정점에 이르는 배치로써 국토적인 스케일, 우주적

해서는 템포를 늦추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본고에서

인 스케일과 연관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물 전체

는 경관과 환경, 좀 더 넓은 지평으로는 거시적인 측

의 평면, 연지(蓮池)를 비롯한 대지 계획과 조경 혹

면에서 그의 건축을 논하고자 한다. ⓦ 이응노의 집

은 경관 계획 등은 주동을 기준점으로 계획되었으며,

에서 조성룡은 언급된 조건들을 건축물에 융축하여

대지 안에서는 지형 및 공간적 성격, 기능 등에 따른

소화시키고 있다. 주 건물동(主建物棟)이 앉혀진 삼

위계적 위치와 연출을 파악할 수 있다. ⓦ 이런 맥락

각형 터는 기념관의 부속동 및 생가와 소로(小路)로

에서 서양식 표현인 조경이란 말을 우리의 문화 맥락

써 분리되고 있다. 평면상 이응노의 집에서 가장 강

에서 재고하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르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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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응노의 집을 보는 몇 가지 건축적 시선 [경관과 환경 속의 집] 김미상


위 : 로비의 유리면에 머무는 바깥 풍경. 아래 : 기념관 입구. 유리와 나무, 콘크리트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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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에서는 독일어의 란트샤프트(Landschaft), 즉 ‘땅’

조) 또는 가든스케이핑(gardenscaping)에 머문 것이

이란 의미의 란트(land)와 ‘창조’ 및 ‘배열’의 의미

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에 더해

를 지니는 샤펜(schaffen)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조

우리의 전통 조경 방식, 그리고 그에 의거한 조성룡

어를 기본으로 하므로 영어에서는 랜드스케이프 아

의 조경 행위는 우주의 질서를 염두에 두는 까닭에

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고 표현하고 있다.

코스모스케이핑(cosmoscaping)이라고 불러도 무난

반면 라틴어 문화권인 이탈리아에서는 페사죠 아르

할 것이다.

키텍투랄레(pesaggio architecturale), 프랑스어로는 페이사지 아르쉬텍튀랄(paysage architectural)이라

대전시홀과 소전시실의 공간, 빛 ⓦ 항간에는 조성

고 부르는데,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건축적 풍경’

룡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합리주의적인 성격으로 구

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에서 조경이란 흔

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성룡 건축의 평면이

히 공원이나 정원을 조성하고 경영・관리하는 것, 경

나 입면 등에서 발견되는 기하학적 형태로부터 이러

관을 건축물로써 조성하는 행위 또는 건축물을 건축

한 판단을 도출하곤 하는데, 상세하게 파악하면 이

물로써 장식하고 강조하는 것을 지칭하므로 온 국

런 평가는 단순하고 미흡해 보인다. ⓦ 이응노의 집

토까지 대상으로 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우

에서 주동은 긴 직사각형의 상자이다. 기획 전시실과

리의 수법, 조성룡의 수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랜드

로비를 포함하는, 제1축을 형성하는 장방형 평면, 그

스케이핑(landscaping)의 관념에 오히려 더 가깝고,

에 예각으로 만나며 전시홀과 전시실 3으로 이루어

서양의 수법은 가르텐샤프트(Gartenschaft, 정원 창

지는 제2의 장방형 평면, 그리고 역시 주동에 예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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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붙은 사무실과 화장실은 미약하게 돌출되어 있지

단차와 경사로 등으로써 공간을 구획함과 아울러 유

만 제3의 축을 형성한다. 그러나 강한 축을 형성하는

동적인 움직임을 유발하며, 자연 채광으로는 소전시

주동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개의 축은 그 성격이 희

실 사이의 틈으로 인입되는 빛만이 존재한다. ⓦ 이

석되어 건물의 공간 내에서는 거의 의식하기가 어렵

응노의 집에서 빛의 연출은 철저히 우리 고유의 것이

다. 제2의 축을 형성하는 공간의 외피는 모두 유리로

라기보다는 다분히 서구적인 연출이 두드러지게 드

형성되었고 남쪽 단부에 놓인 전시실 4는 주축을 이

러난다. 고대 로마의 판테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듯

루는 부분과 만나 제2축 및 그 사이의 공간을 수용

이 폐쇄적인 공간에 대체로 규모가 작은, 아주 정교

하여 거대한 내부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단차를 제외

하게 위치가 계산된 개구부로 강조하는 빛의 연출 수

하면 경계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

법에 있어 정전적(正典的)인 전통의 하나이다. 그러

가 무질서하게 자의적으로 던져 놓은 듯한 전시실 1,

나 개구부의 위치, 그리고 그에 따른 빛의 방향 및 빛

2, 4는 제2축선상의 전시실 3과 아울러 주된 공간으

의 성상의 측면에서 고려한다면 조성룡의 의도와 연

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대전시홀은 사이 공간으로 변

출 효과는 로마의 판테온에서처럼 정전적인 고전주

화됨으로써 그 위계가 전도되고 있다. 창이 없어 폐

의적 방법보다는 의외와 우연성이 개입되어 바로크

쇄적인 소전시실들은 공간적으로 독립성이 강하며,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직으로 뚫린 측창(側窓)을

각 공간마다 개별 전시, 그리고 일련의 연속성을 염

통해 들어오는 강한 빛은 해시계의 그림자처럼 바닥

두에 둔 순차적 전시 시나리오를 가능케 하고 있다.

에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는데, 소전시실의 벽

부수적으로 발생된 느낌의 중앙의 대전시홀은 약한

체들로 인하여 그 방향과 조명 시간은 불규칙하게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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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응노의 집을 보는 몇 가지 건축적 시선 [경관과 환경 속의 집] 김미상


위 : 네 개로 분절된 서로 다른 방향의 전시실들이 산세와 더불어 농촌 풍경에 잘 어우러진다. 아래 : 부속동과 기념관. 북카페로 쓰이는 부속동은 마을 사람들의 사용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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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되며 빛의 근원을 알 수 없게 만들어 호기심을 돋

사이, 즉 공간 사이의 틈에 배치되었다. 일반적으로

운다. 강렬한 빛이 인입되는 시간은 장소에 따라 다

틈은 공간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지만 여기서는 사이,

르며 그 지속 시간이 짧다. 그러므로 대부분 직사광

혹은 사이 공간이 되며 이 곳은 양면의 벽체들로 조

보다는 벽체 등에 반사되거나 약화된 빛이 내부로 들

정되고 형성된다. 다른 한편으로 틈은 외부로 향하는

어오게 되어 전반적으로는 동굴처럼 어두운 공간이

시선의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이응노의 집 내부에서

조성되고, 태양의 궤적에 따라 이동되는 조명 지점은

나의 눈은 프레임을 구성하는 벽체에 의해 조정 받

장소와 시간에 따라 빛의 성상에 관한 한 각기 다른

는다. 벽체는 나의 눈에 절대적인 조건과 환경을 부

특성을 지님으로써 다변적(多變的)이고 색다른 인상

과하므로 눈이 물체에 의해 조정되고 맞추어지게 되

과 분위기를 조성한다. 빛은 해시계로서의 역할을 수

어 나의 눈, 나아가 나의 몸은 건축물에 맞추어지고

행하게 되는데, 해시계에서는 침의 그림자가 시간을

동화, 동질화되고 물화됨으로써 하나가 되도록 강요

가리키는 반면 이응노의 집에서는 빛 자체가 시침(時

받는다. ⓦ 동굴처럼 어두운 실내의 분위기는 불레

針)으로 기능한다.

(Boullée), 르두(Ledoux),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에게서 발견되는 매장 건축(archiecture ensevelie)

땅에서 솟은 집, 틈으로 이룬 공간 ⓦ 평면에서 볼

의 특징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조

수 있었던 공간의 전도, 빛의 역할의 전도와 같은 현

성룡의 이응노의 집은 건축물 자체가 지형의 연장이

상은 창의 근원적인 역할에 있어서도 같은 현상을 보

되고, 그 내부 공간은 마치 동굴처럼 여겨져 감각적

이고 있다. 창은 매스처럼 느껴져야 할 소전시실들

으로는 땅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도록 한다. 감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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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연역이지만, 좀더 연장하면, 물리적 구조체인 벽

는 동시에 각 공간은 완전한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은 땅의 연장처럼 해석이 가능하고 표피에 씌운 목

완전한 공간성과 장소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배

재, 그리고 석재를 연상케 하는 콘크리트는 그리 어

치 수법을 형태적으로 유사한 장 누벨의 리움 등 현

색하지 않다. 이것을 외연화(外延化)하면, 땅에서 나

대의 서양 건축가에게서 발견하기보다는 우리의 전

무처럼 박스가 솟아나오는데, 이 박스들은 자원의 상

통 건축에서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친숙하고 호소력

태인 혼돈을 상징하듯 아무렇게나 던져진 것처럼 배

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공간을 하나의 단일 오브

치되었다. 그러나 이런 혼돈적 배치에도 불구하고 장

제 내에 포함시켜 내부의 공간을 풍요롭게 하며 외적

누벨(Jean Nouvel)의 리움(Leeum)에서처럼 기본적

으로는 주변과의 대비성을 극대화하여 가소성을 최

인 합리주의적 평면은 엄연히 존재하여 질서를 암시

대로 이끌어 내는 서양 건축과는 달리 우리나라 건축

하고 있다. 확고한 질서 체계를 상징하는 주동은 건

의 특징은 단일채의 가소성보다는 전반적인 주변 환

물 평면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방향이 제각각인

경과의 어우러짐을 꾀하며 각 채와 채 사이의 틈을

소전시실은 독립적인 전시 공간이 될 수 있다. 건물

통하여 주변과 소통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우리 건

전체로 본다면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얽혀 통합되

축에서는 기계처럼 맞물리는 서양의 기능적이고 상

어 있다기보다, 언급된 것처럼 자의적이라고 할 만

호 의존적인 공간의 배열이 아닌, 비교적 성격이 확

큼 부수적인 평면들이 들러붙어 있는 형국이다. 평면

실히 부여되지 않은 다목적의 실들을 배치함으로써

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나타나는 소전시실들은 공간

서양의 경우처럼 요소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발생되

의 흐름을 단속적으로 차단하여 불연속성을 조성하

는 공간감은 약한 경우가 많다. 무거운 이론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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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이응노의 집을 보는 몇 가지 건축적 시선 [경관과 환경 속의 집] 김미상


의 공간론을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건축에서

명도, 채도 등의 미묘한 변화를 체험하게 하여 불멸

의 공간은 허(虛), 즉 틈새, 비움 등을 통하여 공간

의 대상인 듯한 자연 역시 범상(凡常)함의 속성을 지

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으며, 눈에 감지되지 않는 공

니고 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다. 잔 미풍에도 수시로

간 역시 실재의 공간만큼이나 살아 생생한 것으로 고

흔들리고 변하는 이미지는 이미 허상으로 비쳐지고

려되곤 한다. 이응노의 집에서 소전시실들의 배치에

있음에 더하여 불규칙성을 증폭시킨다. 연못은 동서

서 오는 공간과 건축의 연출은 이런 특징으로 설명

양 공히 살아 움직이는 자연처럼 취급한 경우가 많았

이 될 수도 있다.

는데 서양에서는 변덕과 무상함의 구현에 열중했던 바로크풍의 정원과 도시, 건축물에 즐겨 채용된 요소

마당-연지-들판-자연-세계 ⓦ 외부 공간을 언급하

이다. 조성룡은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꽃을 맺는 연

며 조성룡이 조성한 연지를 빠트릴 수는 없다. 연지

을 연못에 심고 그 안에 산책로와 데크를 설치함으로

는 기존의 논을 전환시킨 것으로 그 구축과 채용 및

써 만연된 불규칙에 제동을 걸음과 아울러 허상의 세

이용 방식에 종교적 의도는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오

계에 실재 세계의 대상물을 투입하는 결과를 가져왔

히려 미학적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연지

다. ⓦ 이응노의 집에서 건축물이 작게는 앞의 마당,

는 물을 담고 있음으로써 개념적으로는 거울을 사용

연지와 들판, 멀리는 더 큰 스케일의 자연, 세계와 연

할 때처럼 공간이 확장된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경관

결됨은 전통적인 건축 사상과 우주관을 잘 반영한다

요소이다. 물 속에 하늘, 구름, 산 등의 이미지를 거

고 느껴지며, 오브제 중심의 건축보다는 경관적이며

꾸로 반사시키며 변화하는 기상 등 환경 조건에 따라

다분히 생태를 고려하고 있는 건축으로 판단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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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로 생

자원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유대 장치로서의 이응

각된다. 이런 사고의 일환으로 조성룡은 주변의 수

노의 집의 필요성을 잘 의식하고 있음과 아울러, 쉽

덕사, 수덕여관, 선미술관, 그리고 바로 옆의 생가를

사리 소멸되곤 하는 땅의 역사성, 장소성, 정체성을

이응노의 집과 연결함으로써 소멸 가능성이 있는 땅

지키고 이어 나가고자 기본 구조를 구상하며 구축한

의 역사성을 되살려 기억을 되살리고 생생하게 살아

다. 이전의 작업에서 그가 거의 죽은 건축물과 환경

있도록 활성화하고자 하며, 변화된 성격과 전이, 그

에 성공적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재생산을 수행하였

리고 그 원천적인 흔적을 찾아 되살리는 데 주력한

듯이 이번 작업은 이응노를 중심으로 하는 홍성 중계

다. 전통적인 건축 사상의 맥은 그로 하여금 경관, 자

리의 역사적인 변화와 전이, 흔적을 찾아 장소의 기

연, 역사와의 연결을 잇는 주요한 기저가 되고 있다.

억을 되살리고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진행되 는 과정의 하나가 되었다. ⓦ [ * 이 글은 이응노 생가

풍경의 회복 ⓦ 그의 말을 빌어 지금까지 언급된 모

기념관의 개관 기념 책자 『이응노의 집, 이야기』에

든 것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고르자

실린 글을 필자가 보완, 재정리한 것이다.] ⓦ

면 ‘풍경의 회복’이다. 그는 홍성, 그리고 전국에 미 칠 가까운 미래의 내포 신도시로부터의 거대한 물리 환경적 압박과 필연적으로 도래할 파괴 현상을 잘 인 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풍경의 조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역사적 문화 시설과 현대의 문화 및 문명 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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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연밭에서 바라본 기념관. 서로 다른 경사 지붕의 겹침이 군집적이다. 아래 : 기념관 뒷쪽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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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선생의 유년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볼 수 있는 풍경. 한 눈에 보이는 용봉산의 풍모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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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기념관 전시홀 내 경사로. 아래 : 전시홀 가장 안쪽에서 바라본 기념관. 사선으로 휘어진 공간과 거칠게 마감된 표면, 육중한 바닥, 그리고 불규칙한 형태의 계단과 난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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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동굴과 같은 공간 안에서 문득 만나는 밝음. 아래 : 홀에서 바라본 전시장. 채와 채가 만드는 틈새로 하루종일 다양한 빛이 들어온다.

51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

이응노의 집을 보는 역사학적 시선

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망자의 귀환 ─ 이응노의 집에 대한 단상

이 곳은 미술관이 아니다 ⓦ 이응노의 집은 고암 이 응노 화백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아니다. 고암의 작품 세계는 이 곳 충남 홍성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 다. 이 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기억의 흔적 뿐이다. 그마저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고암을 떠올

글—전진성

리게 하는 흔적이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고암 자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독일 지성사 전공]

신의 기억, 고향에 대한 그의 아련한 추억을 우리에 게 반추해 보도록 만드는 흔적들이다. 아버지와 같은 용봉산과 어머니 같은 백월산, 시골집, 농로, 개천 등 그의 몇몇 작품이나 글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그 풍광을 우리는 이 곳에서 발견한다. 말하자면, 이 곳 은 고인의 기억을 기억하는 곳이다. 이응노의 집은 미술관이 아니라 ‘생가 기념관’이다. ⓦ 한 위대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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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가의 생가를 찾아 그의 작품의 진수를 보고자 기

찾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과거

대했던 방문객이라면 자칫 허탈할 수도 있다. 이 곳

로부터 무언가를 건져 내어 부활시키고 싶다면, 그것

에는 고암의 중요한 작품이 있지 않다. 사실 이응노

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의미를

의 집을 찾는 대부분의 방문객이 기대하는 것은 예술

주는 어떤 정신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의

품이지 ‘집’이 아닐 것이다. 그럼 여기에는 정작 화가

재연(reenactment)이 아니라 재현(representation)

이응노의 작품은 없고 건축가 조성룡의 의도만 있는

이 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재현시키고자 하는 대상의

것일까? 특별히 고암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지도 않

성격에 따라 제각기 상이한 재현의 전략이 요구된다

으면서, 그렇다고 고암의 생가를 원형대로 복원한 것

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 이응노의 집은 어렸을

도 아닌, 다소 ‘뜬금 없는(?)’ 모습의 건축물이 왜 이

적 고암이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것이 아니다. 주변

곳에 서 있는 것일까? ⓦ 여기서 미리부터 분명히 해

의 전원적인 경관과 큰 무리 없이 어우러지기는 하지

두어야 할 것은 ‘원본성(authenticity)’이란 그저 기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질성이 감지된다면, 이

만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암의 생가

는 여기에 재현된 것이 고암의 과거 그 자체가 아니

를 ‘원형 그대로’ 복원해야 고암의 삶과 정신이 되살

라 그의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응노의 집은 머

아난다고 하는 발상은 실로 촌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나먼 이국땅에서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욱 간절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거의

해져만 갔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러나 단순히

모든 종류의 기념 사업은 이 같은 발상에 기초해 있

향수를 느끼기에는 너무도 크나큰 상처를 안겨 준 고

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past) 과거(past)를 되

국에 대한 참담한 기억의 편린들을 건축적으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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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건축물과 풍광이 단순한 합일

인문·사회 과학에서 ‘트라우마’란 일정한 이야기로

보다는 일정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이는 고

풀어낼 수 있는 정상적 기억과는 대조적으로 극심한

암 자신의 굴곡진 삶에 대한 조각난 기억들의 도상

충격과 고통에 기인하는 분열적 기억을 지칭한다. 트

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이응노의 집

라우마는 시도 때도 없이 ‘반복 강박’적으로 출현하

은 작가의 작품들 대신 그의 분열적 기억을, 이른바

여 정상적 기억과 망각을 방해하지만, 동시에 시간의

‘트라우마(trauma)’를 소장한 기념관으로 자리매김

정연한 질서에 의해 가려진 체험의 심연을 넌지시 드

될 수 있을 것 같다. ⓦ 국도를 따라 달리는 여행자는

러낸다. 트라우마는, 말하자면 기억의 ‘결여’에 대한

자칫 이 곳을 지나치기 쉽다. 표지판은 있지만 건물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바, 무엇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 거의 숲속에 감추어진 듯 시야를 벗어나 있기 때

의식은 충분히 ‘환기적(mnemonic)’이다. ⓦ 이웅노

문이다. 쌍바위골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고 작은 다

의 집은 고향에 대한 통상적인 향수의 감정을 원천적

리를 건너 울퉁불퉁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으로 봉쇄한다. 이 곳에는 기억이 머물고 있지 않다.

새 여행자는 전혀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섰음을 느

이 곳에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기억의 결여

끼게 된다. 이응노의 집으로 가는 길은 고암의 멀고

이다. 과연 고암에게 있어 고향이란, 그리고 고국이

먼 기억 속의 공간으로, 그 트라우마적 심연으로 떠

란 어떠한 것이었을까? 도망치듯이 떠난 고향과 이

나는 여행이다.

국행도 그렇거니와, 그의 생애에 씻을 수 없는 상처 를 남긴 무자비한 정치적 탄압과 불명예가 정녕 그

트라우마의 건축적 재현 ⓦ 정신 분석학을 포함하는

에게 향수라는 감정 자체를 가능케 했을 것인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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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노의 집은 그가 태어나 자랐던 바로 그 장소에 기

칠게 마감된 표면, 이음새 없는 육중한 바닥, 그리고

억의 불가능성을, 정연한 시간의 질서에 편입되기를

불규칙한 형태의 계단과 난간이 이어진다. 출구에 다

거부하는 어떤 공백의 지점을 재현한다. 프랑스 과학

다를 때까지 관람자는 이 장소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그의 유명한

거듭해서 실패하고 만다. 고암의 유품 전시실과 미술

『공간의 시학』에서 집짓는 행위를 가리켜 혼돈된 우

품 전시실이 있지만 그저 부속 건물의 방들 같은 느

주(chaos) 안에 조화로운 우주(cosmos)를 창조하는

낌을 줄 뿐이다. 관람자의 시선은 이내 초점을 잃고

일이라 했던가? 그러나 이 집의 모든 건축적 요소들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 곳에서 고통과 상실

은 심지어 고향마저도 조각난 기억의 편린들을 보듬

의 느낌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보여 주기

는 ‘조화로운 우주’일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환기

보다는 오히려 감추는 듯 비밀스러움에 휩싸인 실내

시킨다. ⓦ 이응노의 집은 트라우마의 건축적 재현으

공간은 평범한 바깥 풍경과는 사뭇 이질적이다. 그러

로 볼 수 있다. 총 네 개의 전시실이 긴 홀을 따라 이

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인상일 뿐이다. 이응

어진 형태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홍성이 고암의

노의 집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원초적인 암영을 연

예술혼을 키운 고향임을 알리는 건축가의 글귀가 관

출하는 채광을 특징으로 한다. 공간 사이의 틈에 배

람객을 맞이한다. 이 곳의 장소성이 일견 분명해지는

치된, 그리 넉넉하지 않은 창문들을 통해 주변의 풍

듯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고개를 안쪽으로 돌리

광이 건물의 실내로 스며들어 온다. 시시각각 실내

자마자 고향의 안온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다분히

의 색채와 분위기가 변모한다. 가장 결정적인 시간

불편한 공간이 펼쳐진다. 사선으로 휘어진 공간과 거

대는 어머니와 같은 백월산 쪽에서 황금빛 저녁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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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이응노의 집을 보는 역사학적 시선 [망자의 귀환─이응노의 집에 대한 단상] 전진성


이 쏟아져 들어올 때이다. 정문 반대편 벽면을 불그

닫게 된다. 그것은 고암의 불행을 떠올리며 공감하

스름하게 물들인 햇살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어느덧

는 민족사적 트라우마일 수도, 아니면 극히 개인적

자신의 시선이 무언가와 만나고 있음을, 보다 정확

인 그리움이나 상실의 감정일 수도 있다. 어찌하였건

히 말하자면, 무언가가 자신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객은 이 곳에서 고암의 ‘응시’와 마주치게 된다.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프랑스 정신 분석학자 라캉

더이상 이 세상에 없는 고암이 자신의 집에서 세상

(Jacques Lacan)의 용어를 빌면, 관람객을 “응시(le

을 응시한다. 트라우마의 건축적 재현, 혹은 라캉 식

regard)”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응노의 집이라는 “물

의 ‘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집을 통해 비로소 관람객

(物, das Ding)”이다. 그것은 관람객 자신의 시선의

은 타자(他者)의 응시, 즉 고암의 눈높이로 주변 세

한계 내지는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햇살의 공간적 가

상을 바라보게 된다.

시화로, 여기에 없는 고암을 대신하여 관람객을 ‘응 시’한다. 부재하는 고암에 의해 비로소 존재하는 이

고암이 응시하는 홍성의 풍광 ⓦ 이응노의 집을 관

기념관은 결여된 대상의 자리를 대체하는 비(非)대

람하고 밖으로 걸어 나오면 관람 전과는 색다른 풍

상, 즉 ‘물’이다. ⓦ 이응노의 집은 건물의 동선을 따

광이 펼쳐진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던 농촌의 모습

라가는 데 있어 한계에 봉착한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

이 갑자기 고암이 응시하는 세계로, 그의 화폭 속의

신의 기억을 드러내어 반추하도록 햇살을 비춘다. 분

경관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기념관 바로 가까이에는

열적인 공간의 체험이 기억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관

대나무 숲으로 감싸인 고암 생가 터에 초가집이 새

람객은 문득 자기 자신의 기억이 분열되어 있음을 깨

로 지어져 있고, 주위의 과수밭과 매화나무들이 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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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져 한껏 목가적 정취를 자아낸다. 여기서 북쪽으

렁의 사라진 굴곡을 재생시켰다. 그럼으로써 단지 형

로 한눈에 보이는 용봉산의 풍모가 참으로 인상적이

태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마을의 생태계를 회복시

다. 외지인에게는 그다지 이름 있는 산이 아니건만,

켰다. 논두렁과 연밭의 조경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건

이미 고암의 눈높이로 주위를 둘러보는 관람객에게

축가의 생태주의적 안목은 이미 오래전에 한강 선유

는 여느 명산 못지않은 수려한 자태로 주위를 압도

도공원에서 선보인 바 있다. 물론 이 곳은 실제의 농

한다. 고암의 드로잉이 묘사했던 바 그대로 아버지

촌 마을인 만큼 훨씬 더 자연 친화적이다. 다만 연밭

의 위엄을 갖춘 채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용봉산 앞에

을 가로지르는 좁다란 산책로는, 선유도에서도 유사

는 구불구불한 논두렁을 따라 길게 펼쳐진 연밭이 화

한 모습을 볼 수 있듯이, 기하학적인 구성을 보이며

폭의 전경을 이룬다. ⓦ 영국 미술사가 사이먼 샤머

이 곳이 자연적인 소산이 아니라 재현된 공간임을 암

(Simon Schama)는 그의 저서 『풍경과 기억』에서 풍

시한다. ⓦ 이 같은 생태의 회복은 실로 고암의 뜻에

경이란 본래 순수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작

부합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암의 삶

용을 가하고 기억하는 문화적 산물이라고 말한 바 있

을 짓밟은 힘과 그의 고향을 짓밟은 힘이 사실상 동

다. 그는 이러한 풍경을 논함에 있어 무엇이 이미 사

일한 원천에서 비롯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

라졌는지보다는 무엇을 아직 찾아낼지에 주목할 것

손 대대로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온 농민들의 터전을

을 권한다. 이와 유사한 취지에서 건축가 조성룡은

얄팍한 효율성과 발전의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뒤엎

풍경의 빛바랜 기억을 찾아내어 다시금 생명을 불어

어 버린 소위 ‘새마을 운동’은 다름 아닌 박정희 개

넣는 작업에 임했다. 그는 옛 지도에 근거하여 논두

발 독재의 전형이었다. 고향의 산천에 가해진 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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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자비한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추상성과

정치적 폭력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

인간성의 변증법은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의 발로로

다. 고암이 동백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겪었을 고초를

이해된다. 그에게 있어 근대 서구가 지향한 추상성의

염두에 둔다면, 그 자신의 삶만큼이나 유린된 고향의

논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人間)의 어우러짐을 중시

생태를 회복하는 일은 분명 고인의 한을 푸는 한 계

했던 동양의 전통을 새로이 미적으로 승화시킴으로

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건축가의 노력은, 프

써 비로소 극복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추구한

로이트(Sigmund Freud)의 개념을 빌어 일종의 “애

소위 ‘조국 근대화’의 불미스러운 희생자였던 그에게

도 작업(Trauerarbeit)”으로 평가해 볼 수도 있지 않

환경과 사람 관계를 효율성과 발전이라는 추상적 논

을까? 대상의 상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시에 상

리로 손쉽게 재단하고 파괴하는 일은 결코 용인할 수

실 그 자체를 보다 진전된 삶과 정체성의 계기로 삼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암의 기억 속에 살아 있던

고자 했던 프로이트의 문제 의식과 일정한 공통 분모

어릴 적 고향은, 그의 드로잉 작품들이 증명하듯, 논

를 찾을 수 있다면 말이다. ⓦ 고암에 대한 애도 작업

밭의 모습이 산세를 닮아 각진 데 없이 둥글둥글하고

의 일환으로 고암의 눈높이로 재현된 새로운 생태 공

여러 갈래로 물과 길이 이어지며 사람 사는 내음으

간은 고암이 지향했던 예술적 이념과도 궤를 같이하

로 가득했음이 분명하다. ⓦ 연밭 건너 자리잡은 한

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천적으로 문인화(文人畵)

마지기 보리밭이 산바람을 타고 넘실거린다. 저녁 햇

의 맥을 잇는 그가 프랑스로 건너가 활동하며 ‘서구

살을 가득 머금은 보리밭으로부터 해가 넘어가는 반

적 근대성’의 문제와 평생 씨름했음은 미루어 짐작할

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담한 백월산이 어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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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닮은 부드러운 실루엣을 드러내며 마치 농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

를 품어 주듯이 나지막이 서 있다. 그리고 농가가 있

주의자’라는 낙인과 동양 전통의 현대적 계승자라는

어야 할 자리에 놓인,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구

통례적인 찬사 사이에서 그저 해맑게 웃는 노인의 이

수한 황토색 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응노의 집이다.

미지만이 뚜렷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작 품들을 통해 짐작해 볼 만한 것이 있다. 노년기로 갈

헤테로토피아를 찾아 ⓦ 이응노의 집은 주변의 국도

수록 더욱 강렬해져 간 어떤 유토피아(utopia)에 대

에서 그리 멀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농로를

한 갈구이다. 사람과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빙

따라 서 있지만, 실로 전혀 다른 시공간대에 위치한

글빙글 춤추는 세상, 더이상 아무런 폭력과 억압이

듯하다. 주변과 이질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변을

없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고암을 포함하여 사실상 거

끌어들여 색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외관상으로는 별

의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이상이 아니겠는가? 그

로 두드러지지 않는 이 건축물의 응시를 받음으로 인

러나 애석하게도 자신의 생애를 통해 고암은 그러한

해 홍성의 풍광은 전혀 다른 성격과 의미를 띠게 된

세상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 크나큰 절망을 맛보

다. 이응노의 집은 홍성 안의 다른 세계이자 달리 재

았다. 고향과 고국에 대한 그의 기억은 향수를 자아

현된 홍성이다. ⓦ 과연 이 곳은 진정으로 고암의 집

내는 아름다운 옛이야기로 승화될 수 없었을 것이며,

일 수 있을까? 그의 뜻을, 기억을, 응시를 제대로 구

조각조각 분열되어 흩어졌을 것이다. 돌아갈 제집을

현했는가? 고인의 혼백은 실로 이 곳에 영원한 안식

찾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망자(亡者)를 떠올려 볼

처를 얻을 것인가? 고암이 추구하는 세계가 정확히

때, 고통과 상처를 떠올리게 하며 주변 환경과 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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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이응노의 집을 보는 역사학적 시선 [망자의 귀환─이응노의 집에 대한 단상] 전진성


일체를 이루지 못하면서도 화해를 시도하는 이응노

는 상처를 재현하는 공간으로 거듭남으로써 현실 안

의 집은 참으로 그의 집답다. ⓦ 프랑스의 아웃사이

에 단단한 진지를 구축하고 기존 현실의 권위와 위계

더 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는 유토피아에 대

를 무너뜨릴 수 있다. ⓦ 평범한 농촌의 한가운데에

한 섣부른 희망을 일종의 기만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생가 기념관’이라는 진지를 구축한 이응노의 집은

현실의 대지 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가공의 미

분명 헤테로토피아의 일정한 구현으로 볼 수 있다.

래를 설계함으로써 자칫 일방적이고 아전인수적인

한 예술가의 역사적이며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소장

이념의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와 달리 푸코가

품으로 삼은 이 기념관은 전혀 색다른 시간과 공간을

제안하는 것은 선택, 다양성, 그리고 차이가 중시되

재현해 냄으로써 그 새로운 가능성의 힘으로 현실을

는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이다. 그것은 엄연

안으로부터 변화시킨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산

히 존재하는 현실을 그 자체로 인정하면서 현실의 구

업 사회의 규격화된 일상이라든가 살인적인 경쟁을

조를 안으로부터 와해시키는 재현의 전략이다. 예컨

야기하는 현실은 없다. 마치 그의 화폭 속에 나타나

대 박물관, 도서관, 유적지, 기념 공원, 공동 묘지처

는 경관처럼, 이 곳은 고암의 눈높이로 재현되어 있

럼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 제반 공간들은 늘 기억

다. 이 곳은 이응노의 집이다. 만약 일부 비평가들이

의 정치적 활용을 통해 민족국가나 제국주의 등 지배

이 곳에 정작 이응노는 없고 건축가 조성룡만 있다고

적 현실을 정당화하는 데 이바지해 왔다. 그러나 이

지적한다면, 필자 나름의 판단에 따라 다음과 같이

들은 그러한 기억의 정치에 개입하여 역사적 불연속

말하고자 한다 : 이 곳에는 사실상 고암도, 조성룡도

성이나 상이한 기억들 간의 갈등, 혹은 치유될 수 없

없다. 관람객이 실제로 마주치게 되는 것은 오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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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햇살이 동반하는 타자의 응시이며, 그 빛의

기념관이 들어서기 전 농사 짓기 편리하도록 직선으로 반듯반듯하게 정비된 형태의 땅(왼쪽 사진)은 용봉산을 비추는 연지가 되었다. 구불

파동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트라우마 깊숙이에서 공

구불한 논두렁을 따라 길게 펼쳐진 연지는 직선의 데크로 이 곳이 재

명을 울리며 이 곳을 채워 가는 웅성거림뿐이다. ⓦ

현된 공간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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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57 이응노의 집을 보는 역사학적 시선 [망자의 귀환─이응노의 집에 대한 단상] 전진성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 본지는 2012년 5월 21일 조성룡 선생 과 편집 위원 및 몇몇 전문가를 초청하여 ‘기억・기 념의 건축─이응노의 집’을 주제로 공개 집담회를 가 졌다. 이 글은 그 날의 작품 해설과 대화를 기록한 것

집담회 ─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이다. 비록 격식을 갖춘 자리는 아니었으나, 이응노 의 집을 비롯한 건축가의 작업을 들여다보고, 기억 의 재현・기념의 방식 등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 다. 여기, 그 내용의 일부를 남긴다. [정리 | 정귀원 (본지 편집장)]

조성룡, 전진성, 최춘웅, 최상기, 김영철, 오섬훈, 전진삼

[작품 해설 | 나의 건축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들 | 조성룡]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사진 1] ⓦ 독일의 설치 미술 가 요헨 게르츠(Jochen Gerz)와 에스더 샬레브(Esther Shalev)가 설치한 <하르부르크(Harburg) 반파 시즘 기념비>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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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이다. 1986년 제막될 당시에는 높이 12m, 가 로세로 1m의 속 빈 기둥 형태였지만, 현재는 완전히 땅 속으로 가라앉아 기둥 꼭대기에 세겨진 작품 제 목만을 확일할 수 있다. 납으로 마감된 표면에 방문 객들의 낙서가 채워질 때마다 1.5m씩 가라앉는, 이 른바 ‘사라지는 기념비’로 1993년 완전히 사라져 지 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불편한 기억이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사건을 시간 의 개념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기둥이 완전히 가라앉 기까지의 7년이란 시간 동안 기념비에 흔적을 남김 으로써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기억이다. 참으 로 근사한 일 아닌가……. 이와 같은 개념의 기념비 적 장소, 건축 혹은 오브젝트를 우리 시대에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기념관이나, 꼭 기념관은 아니더라도 기억을 주제로 한 건축 작업을 하면서 과거를 기억하 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 왔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 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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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기억・기념의 건축─이응노의 집’을 주제로 열린 공개 집담회에서 조성룡 선생과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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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이든 상관없이, 그것이 현재 어떤 의미를 갖고 어 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에 주목했다. 또 컨 텍스트나 컨텐츠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념/기억을 위 한 지역의 이른바 문화 시설이 어떤 목적으로 세워지 고, 어떤 장소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관 심사였다. 여기, 몇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기억의 재 현’이란 주제로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제주 4・3 평화공원 설계 경기 (2002) [사진 2] ⓦ 설 [사진 1] 하르부르크 반파시즘 기념비.

계 경기 때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프 로젝트로, 특히 1948년 4월 3일 무장 봉기를 포함하 여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역사 적 사건에 대해 건축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고, 또 어떻게 임해야 하고, 또 어떤 부분을 사회에 부각시 키는 것이 좋을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억압되고 잊혀진 진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 구체적으로 그러한 태도는 4・3 사건이 있어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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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제주도민들이 그 땅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가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대상 지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기억은 비교적 비옥한 중 산간의 경작지이다. 그 자리에 기념 시설이 들어섰을 때 그 땅으로부터 무엇을 재현해 낼 것인가.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어번 폴리 7 (2011) [사진 3, 3-1 : 조성용도시건축 사진] ⓦ 광주 폴리 7은 ‘기억 의 현재화’란 주제로 황금동 콜박스 사거리에 설치되 었다. 이 곳은 광주읍성의 서문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콜박스 사거리’로 불리는 번화한 거리이 다. 시간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차량 통행이 가능하 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크고 작은 상업 시설이 밀집 되어 있고, 자정이 지난 후에는 차량 유입이 빈번하 여 기둥 조형물로 계획된 초기안은 (통과 차량에 지 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콘크리트 마운드로 결정되 었다. ⓦ 이 프로젝트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보 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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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제주평화공원 배치도.

59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이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개념이다. 성곽(성벽)의 흔 적과 서문의 자리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결과적으로 가장 오래된 통일 신라 시대 광주 읍성과, 근대화 과 정에서 확장된 도시 가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5각형(읍성)의 격자 구조를 나타내는 황동 금속 틀 에 고강도의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양생 기간을 거쳐 그라인더로 갈아 내어 완성시킨 이 마운드는 방향 감 각을 잃은 이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 [사진 3]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어번 폴리 7.

특히 서문의 자리, 해가 질 무렵 이 장소가 시민들에 게 어떻게 인지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지도상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아직도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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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어번 폴리 7 꼴라쥬.

아 있는 콜박스 사거리란 이름이 이제부터 또 다른

고, 식수와 치수를 담당하는 정수장으로서의 기능도

의미로 기억되길 바랐다. ⓦ 이 작업이 반기념비(카

2000년도에 끝난 곳이지만 ‘장소에 대한 기억의 재

운터 모뉴먼트, countermonument)란 개념에 기대

생’, ‘산업 시설의 부산물에 대한 해석’ 등의 과제로

도 되지 않을까……. 형상 자체보다는 만드는 과정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특히 ‘녹색 기둥의 정원’은

속에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것의 의미가 어떻게든

지하 정수지의 덮개를 들어내고 그것을 지지했던 기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둥은 그대로 두어 장소로서의 의미와 선유도의 역사 적 궤적을 읽을 수 있게 한 쉼터이다. 일정한 간격으

선유도공원 (1999~2002) [사진 4] ⓦ 겸재 정선

로 늘어선 콘크리트 기둥에는 식물을 감아 올렸는데,

이 <경교명승첩>에 옮긴 옛 모습은 흘러간 지 오래

개관했을 때의 모습과 지금처럼 풀이 무성하게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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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선유도공원.

60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모습에서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 장

에 맞지 않는 것을 소멸시키지 않고 다른 것으로 변

소의 의미를 바꿔서 기억을 이어가는 작업은 결코 쉽

환시키는 작업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가

지 않다. 사람들은 계속 이 곳을 사용할 것이고 나무

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선배 건축가 나

들은 계속 자라날 것이며 보호받지 못한 방치된 구조

상진의 중요한 작품인 것을 알고 나서는 조금 주저했

물들은 그 존재가 점점 희박해질 것이다. 기억의 계

다) 클럽하우스라는 극히 소수를 위한 공간이 누구나

승은 특히 20세기 산업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가 천착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은 이 작업

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의 또 다른 의미이다. ⓦ 오래전에 사용했던 건물을 재활용하는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이점은 시간의 지

꿈마루 (2010~2011) [사진 5 : 김재경 사진, 사진 5-1] ⓦ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 지어졌지만 어린이 대공원이 들어선 이후 근 40년 동안 어린이들을 위 한 학습 공간, 관리 사무소 등으로 사용되던 건축물 을 새로운 요구와 기능에 부합하는 공간으로 재생시 킨 작업이다. 원래 건물은 철거하고 작은 규모의 관 리 사무소를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헐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원형은 보존하고 필요 한 부분은 고쳐 만든 독특한 사례이다. 현재의 기능 057 →

058 ↙

[사진 5] 꿈마루.

속성을 나타내면서 효율성 또한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또 이 곳처럼 실내 공간을 과감하게 외부 공간 으로 바꾸는 작업은 새로운 기능의 부여는 물론, 전 혀 예측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재미를 기대 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원래의 골조와 40년 동안 사 람들이 고쳐 쓰면서 사용한 흔적들, 또 새로운 조건 들을 한꺼번에 다 노출시키는 이러한 일들은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관청과 건설 회사를 설득해야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진 5-1] 꿈마루 스케치.

의재미술관 (1999~2001) [사진 6 : 김재경 사진, 6-1]과 이응노의 집 ⓦ 의재미술관을 소개하기 전 에 이응노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 처음 홍성을 방문했 때, 장항선 의 삽교역에서 홍성에 도착할 때까지 기차 차창 밖으 로 따라오는 긴 산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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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

61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집이 놓일 땅은 바로 그 산을 마주하고 있었다. 산의

의 이미지들이었다. ⓦ 광주 의재미술관이 마침 떠올

이름은 용봉산이었고, 집터는 용봉산과 월산 사이에

랐다. ⓦ 의재 허백련 선생은 진도 출신으로, 말년의

끼어 있는 형국이었다. 나중에 이응노 선생과 관련된

30년을 광주에서 보내고 의재미술관이 서 있는 무등

여러 자료에서 용봉산과 월산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

산 그 땅에서 작업하고 시민 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타나는 것을 알았다. ⓦ 집터 주변은 어디서나 볼 수

결국 이응노의 집은 의재미술관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있는 농촌 지역의 모습이고, 자연스럽게 이응노라는

계기가 됐다. 이 두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미술관이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

아니라 인물과 관련된 장소의 의미(고암은 홍성에서

도 이응노 선생을 잘 몰랐다. 오직 기억에 있는 것은

유년을, 의재는 광주에서 말년을 보냈다)를 담고 있

1967년의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선생이 간첩으

으므로 일반 미술관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

로 몰려 재판을 받았다는 신문 기사였다. 이응노 선

자연히 이 집들은 땅과의 연결이 중요하다. 의재미술

생의 일생 중 어느 한 지점이자 국민 대다수가 기억

관에서는 무등산이라고 하는 도시 외곽의 자연과 새

하는 시간을 어떻게 이 땅에 풀어낼 것인가……. 그

로운 기념 공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것

것은 중요한 도전이었고 쉽지 않은 문제였다. 여러

도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온차가 심한 땅에서 건축이

책을 통해 이응노 선생이 이 땅에서 그린 그림, 1940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재료나 터잡기

년대의 습작들, 어머니를 그린 그림과 스케치 등을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 주변의 풍광을 모두 끌

볼 수 있었다.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소년

어다 쓸 수 있는 점은 좀더 의미 있으면서도 지속적

이응노가 이 곳에서 체험하고 기억으로 간직했을 땅

인 공간 간의 관계 맺기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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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

라고 생각했다. ⓦ 의재미술관은 이응노의 집만큼 좋 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무등산에 오 르는 등반객 수가 1년에 300만 명으로, 등산로 옆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인식성이 뚜렷한 지역적인 장소 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무등산 봉우리를 어 떻게 하면 이 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경사로 공 사 중인 어느 날 집과 집의 틈사이로 상징적인 새인 봉을 보게 되었는데,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지리적 인 표식성이 강한 요소로서 사람들이 흔히 기억해 낼 수 있는 ‘기억의 인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겸재정선미술관과 다산기념관 설계 경기 (2007~ 2008) [사진 7, 사진 8] ⓦ 작은 일들이지만 인물 과 관련 있는 집을 몇 채 작업했었다. (그러나 실제 로 구현된 것은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밖에 없다) 그 중 겸재정선기념관은 <풍경 감응>이란 제목으로 2011년 작고한 정기용 선생과 함께 작업한 것이다. 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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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6-1] 의재미술관과 새인봉. 의재미술관 꼴라주.

62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사실 이 미술관은 ‘겸재의 그림이 없는 미술관’으로 부터 출발했다. “앞으로 예산을 세워 작품을 구입한 다”고 설계 경기 지침에서 밝히긴 했지만, 지자체에 서 겸재의 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건립이 불가능한─어떠한 컨텐츠도 없는─상황에서 지방 자치 단체의 욕망과 중앙 부처 예산 지원의 과 용이 낳은 프로젝트들이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다.─ 편집자 주) ⓦ 결국 장소의 의미를 확장하는 개념이 미술관 구상의 핵심이 되어야 했다. 겸재 정선은 나 이 65세에 양천(오늘날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 현령 [사진 7] 겸재정선미술관.

으로 제수되는데, 그에게는 오랜 벗인 사천 이병연이 있었다. 벗은 겸재에게 양천 현령으로 떠나는 송별시 를 지어 주었고, 겸재는 다시 벗에게 양천현을 중심 으로 한강 상류와 하류의 명승을 그린 그림을 보내 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병연이 보낸 시에 겸재가 그 림을 그려 함께 꾸민 화첩 <경교명승첩>으로, 이 집 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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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야깃거리이다. ⓦ 양화대교 건너 김포공항 가

에 겸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는 고속도로에 접한 바위산 궁산과 마을터(양천읍)

했다. ⓦ 강진읍에 세울 다산기념관은 겸재정선미술

는 겸재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장소이며, 미

관에 비해 그나마 실제 전시품이 있긴 했어도 내용

술관 대지는 그 일부분이다. 이 곳의 지형을 그대로

에 비해 집의 규모가 턱없이 컸다. 마찬가지로 땅이

보존하면서 훼손된 주변 환경을 회복하여 집터를 만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하여 불러낼 수 있는 상상력, 절

들고 이를 궁산의 영역에 편입한다는 개념을 세우고,

기에 따라서 변화하는 그 땅의 풍경, 이런 것들이 주

겸재의 그림은 없지만 그 땅을 매개로 하여 이 시대

제가 됐다. 구체적으로 귤동의 앞뒤로 자리잡은 다산 초당과 백련사, 강진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과 제였으며, 정약용이 절기에 맞춰 만든 「품석정사(品 石亭詞)」가 계획의 단서가 되었다. 이응노의 집(2008-2011) ⓦ 소년 이응노가 꿈을 키 우며 17년 간 살았던 땅과 주변 전체와의 관계성에 주목한 작업이다. 오래된 지도에 나온 대로 지형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은 후 그 안에 집을 어떻게 앉힐 것인가를 고민했다. 또 집터를 제외한 나머지 빈 땅 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도 많은 시간을 썼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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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1] 다산기념관 배치 패널.

63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위 : 전면 외벽이 흙다짐으로 마감된 전시장. 땅에서 솟아난 듯 의연한 모습이다. 아래 : 농로에서 바라보는 기념관과 용봉산. 건축가는 이 본래의 마을길로 들어서기를 권한다.

64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념관은 결과적으로 얕은 언덕 아래 가장 편안한 형

더라도 소년 이응노가 바라봤던 산과 밭, 고향의 풍

태로 배치되었고, 양쪽의 두 개의 산(용봉산과 월산)

경 속으로, 그의 기억 속으로 방문자를 편입시키려고

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 존재하게 됐

했다. 기념관 안에서건 밖에서건 사람들의 움직임에

다. ⓦ 이응노의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또한 매우 중

따라 어떻게 기념관이 인식되고, 풍경은 어떻게 보

요한 문제였다. 고암 선생이 이 땅에서 나고 자랐고

이는가를…….

또 그림을 통해 선생의 삶도 유추해 볼 수 있었지만, 과연 오늘날에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

[집담 1 |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

까……. 더구나 겸재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이 곳 역시

ⓦ 전진성(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 이응노의 집

이응노의 작품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집이 건

을 방문했을 때, 저 건물은 과연 무엇을 재현한 것일

립된 후 소장품이 많아지긴 했지만). ⓦ 그 때 생각해

까, 무엇을 기억하려고 한 것일까를 생각해 봤다. 이

낸 것이 콘크리트로 마감된 기념홀이고, 기념관에 붙

응노 선생의 작품을 재현한 것은 아니고 그 분의 삶

어 있는 전시 공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채워질지 모르

을 재현하고 기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관이 아

기 때문에 갤러리 기능만으로 남기게 됐다. 전시 공

니라 하나의 기념관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도 있지만,

간의 전면은 흙다짐으로 마감하고, 여러 가지 기능을

이응노 선생의 작품 주제 자체가 삶과 기억이기 때문

가진 공간들을 조합하는 문제에 집중하였다. ⓦ 고암

에 주제 의식과도 맞다고 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 체험했던 이 땅에서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기억

서 봐도 그랬지만, 나와서 자연을 보니까 이응노 작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직접적인 기억은 아니라고 하

가의 시선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처럼 작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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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서 주변과 자연 환경을 다시 보게 한다는 점이

기억했던 과정 자체를 기억하는 시설이 되는 것이 좋

특별했다. 과연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어떤 것을 재

지 않을까 한다. ⓦ 최춘웅(편집 위원, 고려대 교수)

현/기억할 것인가, 라는 기본적인 문제점을 던져 주

: 건축이 기억의 도구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는 집이라 생각한다.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어번 폴

그런데, 건축이 기억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야 하

리와 관련해서는, 차량에 의해 설치물이 파괴되는 것

는 것인지, 아니면 건축물 자체가 기억의 중거가 될

이 어떤 의미에서는 조성룡 선생이 생각하는 카운터

수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뉴먼트 개념에 더 맞는 것일 수 있다. 왜냐면 기념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려는 것이 성곽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기

기억의 어느 순간을 삽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때문이다. 즉 기억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쩌

어느 정도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

면 그 모든 과정이 기억의 과정이고, 그래서 만약에

면 지극히 배경이 되는 것인지에 따라서 건축가의 자

파괴되는 과정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라든가

세도 달라질 것 같다. ⓦ 전진성 : 당연히 건축가의

작품 같은 것을 덧붙일 수 있다면, 그 과정 자체가 반

의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응노의 집에 의

기념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선유도공원은 개인적

미를 두는 것은, 단지 이응노의 작품, 이를 테면 문자

으로도 좋아하는 곳이다. 녹색 정원의 기둥이 처음과

추상이라든가 군중의 모습이라든가 그러한 것들을

는 다른 모습인데, 사실 그 자체도 시간의 과정이 아

디자인적으로 재현해서가 아니라 이응노 선생이 세

닐까 한다. 그래서 기억과 관련된 건축은 단지 있었

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재현했기 때문이며, 그런

던 것, 즉 원본을 재현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점에서 건축가의 해석은 무한히 열려 있다고 생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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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

65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위 : 김재경 사진. 고향의 안온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다분히 불편한 공간. 아래: 김재경 사진. 체험학습실 복도 끝에서 바라본 기념관 입구. 나무로 마감된 부분이 사무실이다.

66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다. 당연히 건축가의 의도가 있는 것이고, 거기에 덧

보던 풍경, 그리고 그가 밟던 땅……. 그렇기 때문에

붙여 다른 이들이 해석을 붙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기념이라기보다는 기억의 건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건축의 문외한으로서 외람되지만, 건축가의 의도가

또 프로젝트들이 저마다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겠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재현해야 할 것인

만, 기억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는

가의 문제라고 답하고 싶다. 어떤 특정한 상이 아니

생각이 든다. 기억이라는 것은 여럿 가운데 어느 한

라 시선이라든가, 이를 테면 세상에 대한 이응노 선

부분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을 선택하느냐에

생의 해석 자체를 재현한다면 이 또한 의미있는 일

따라 건축가의 의도나 사관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아

이 아니겠는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응노 선생

닐까. 꿈마루를 예로 들면, 옛 건물을 유지하는 방식

의 해석 자체를 재현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주관적인

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선생님은 구조체를 기억의 매

해석이겠다. 다른 시설에 대해서는 감히 말씀을 드릴

개로 삼았고, 그것이 꿈마루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

수 없지만, 기념 시설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이다. 고

것이 아닐까 한다. ⓦ 조성룡 : 꿈마루에서는, 그것

정된 기억으로 자꾸만 특정 메시지를 강요하는 경우,

이 클럽하우스로 쓰였을 때도 천장 구조가 노출되었

예를 들어 독립기념관 같은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

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심

다. ⓦ 최상기(편집 위원, 서울시립대 교수) : 조성룡

정적으로는 천장이 있었을 것 같다. 콘크리트 구조물

선생의 작품들은 인물의 업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

노출은 그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기

라 대상 인물의 일상을 부각시키고 가까이 찾아갈 수

때문이다. 건축가가 노출로 설계를 했더라도 따로 천

있게 만든다. 그 사람의 일상과 걸어다니던 길, 바라

장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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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의 구조물로 다시 재현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가 하

해서 더욱 적극적인 행위를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닐

는 의문은 좀 들지만……. ⓦ 전진성 : 물론 선택적

까. ⓦ 전진성 : 기념이라고 하면 항상 어떤 특정한

인 기억이다. 문제는 어떤 특정 시점에 고착되어서

시점에 고착되어서 그것만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 시점만을 진정하다(authentic)고 생각하고 나머

그것을 다시 복원하는 식이다. 물론 그것에는 이데

지 것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예를 들

올로기나 정치적인 입장을 포함하고 있다. 왜 하필이

면 경복궁의 복원은 고종 때 중건된 것을 복원하는

면 그 시점을 강조하고 복원하려고 하는가. 왜 그 전

것이 진정한 것이라 얘기하는데, 사실 어느 시대 것

쟁을, 그 인물을 굳이 관심 가지고 복원하고 기념하

을 복원하든 상관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원래라

려고 하는가. 어느 시점에 와서는 그러한 기념을 반

고 생각하는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 니라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 왔고, 왜 기억해야 하는

[집담 2 | 카운터 모뉴먼트]

가 등을 반성적으로 고찰하게 됐다. 그러면서 기존

ⓦ 최춘웅 : 전진성 선생이 숙제를 내줘서 카운터 모

의 기념비를 반대하고 그것을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

뉴먼트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런데 정확하게 이해를

다. 역사학에서도 과거에 어떠했던가를 얘기하는 것

못한 것 같다. 전진성 선생께 다시 한 번 설명을 부탁

에서 이제는 어떻게 기억되어져 왔는가, 과거가 아니

드린다. 글을 읽으면서 카운터 모뉴먼트란 결국 모뉴

라 과거를 기억했던 것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먼트를 하지 않는 것으로 반항하는, 투쟁적인 의미가

고 있다. 아무튼 결론은 특정 시점에 고착되지 말자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갔다. 그렇다면 반하기 위

는 것이다. ⓦ 김영철(편집 위원, 건축평론동우회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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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 ↓

67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인) : 현대 건축에서 기념관이나 기념비는 어떤 사건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설계

의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생

를 할 때 레퍼런스가 별로 없었던 것이 해석을 더 열

각할 수 있는 가능성, 생각의 근거를 제시하는 방향

어 놓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

으로 가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끔찍한 사건에 대해

이 든다. 기념해야 할 대상을 두고 레퍼런스나 관념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을 전달하기 위해 끔찍한 공간

이 많았다면 좀 다르게 설계되지 않았을까. ⓦ 조성

과 조형물로 당시의 느낌을 전달해 주는 방식에서는,

룡 : 그랬을 수도 있겠다. 설계할 때 머릿속을 맴돌

옛 감흥은 재현될지라도 그 다음의 생각과 이야기가

았던 것이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이다. 몇 채

없다. 하나의 사건으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생

의 주택을 엮어서 개조한 곳인데, 거기서는 피카소

각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공간, 설령 아무 것이 없다

의 유명 작품보다 초기 스케치와 드로잉을 더 많이

고 하더라도 생각할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 더 중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응노의 집에는 고암의 중

요할 것 같다.

요한 작품이 그렇게 많지 않다. 집을 짓고 나서 기증 작품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 이미 운영되고 있는 대

[집담 3 | 이응노의 집이 기념하는 것]

전 이응노미술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그

ⓦ 최상기 : 기억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변한다는 것

래서 설계를 할 때 아예 이 곳에는 컬렉션이 없어도

에도 주목해 볼 수 있다. 교조적인 논리 없이 모두에

상관없다 혹은 없을 수도 있다란 생각을 전제로 했

게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놓는 것도 반기념비적인 행위

다. 미술관이 아니고 기념관이란 이유도 있었다. ⓦ

일 듯하다. 이응노의 집은 기억을 스스로 찾아낼 수

내가 이응노 선생의 삶 중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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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은 1967년의 동백림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면서 고

선생의 그림을 보기 전에 그 분의 삶을 좀 진지하게

통받았던 시기이다. 이후 선생은 파리로 건너가 고국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다. 하루 해의 움직임에 따

으로 되돌아오지 못한 채 1989년 세상을 떠났다. 많

라 빛을 유입한 것도 시간의 개념을 드러내려는 의

은 사람들이 이응노 선생을 모를 뿐더러 선생이 연루

도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기념관의 중요한 역할이라

된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며, 그저 어렴풋이

고 봤다. 이를 테면, 관계는 많이 다르겠지만, 베를

그 시절의 국가 반동 인물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개

린에 있는 슁켈(Friedrich Schinkel)의 노이에바흐

관식이 있던 날에도 집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사

(Neuebach)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되는 기념과

람이 있을 정도이니……. 나는 이응노 선생의 삶에서

비교해 볼 수 있겠다. ⓦ 김영철 : 이응노의 집을 위

바로 이 부분을 기념하고자 했다. 개관 기념 책자의

해 고암 선생의 세계로 들어가서 분명히 어떤 대화

첫 페이지에 적힌 “우리나라 사람 모두 이응노 선생

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광주 디자인 비엔날

에게 진 빚이 있습니다”는 그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

레 어번 폴리의 경우 통일 신라 시대부터 지금까지

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유년기의 기억과 더불어 어려

의 역사의 흔적들, 구체적으로 도시 구조를 우리들에

웠던 시기의 삶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게 보여 주는 방식인데, 과연 사인 체계와도 같은 그

전달된다면, 기념관으로서의 의미에 근접하지 않을

러한 흔적들이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

까, 생각했다. 농촌 마을에 어울리는 듯한 흙벽의 모

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재현을 해야 하

습과 달리 기념관 내부의 바닥과 벽을 콘크리트로 마

는 것들은 그런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 분위기

감하여 상대적으로 편안하지 않도록 한 것은 이응노

같은 것이지 단편적인 이야깃거리의 환기는 아니지

079 →

080 ↗

68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않을까. 건축에는 감흥을 전달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

운 부분이 있었다. ⓦ 전진삼(발행인) : 그와 관련하

들이 있는 건데, 이를 테면 아시아선수촌과 소마미

여, 건축적으로 해석하는 이응노의 미술 세계가 불필

술관에서는 큰 감흥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이응노의

요했던 것은 아닐까. 기념관 내부에서 홀을 중심으로

집에서도 다른 공간을 매개해 주고 구심적인 역할을

한 건축 동선은 느꼈는데, 솔직히 미술 동선은 느끼

하는 홀에서 그런 감흥을 받았다. 홀 공간의 응집력

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질문을 하자면, 작가로서

과 몇 가지 가능성을 읽은 것인데, 문제는 일반인들

의 고암 이응노에 대한 해석이 특별히 된 부분이 있

에게 그것이 얼마나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는지……. ⓦ 조성룡 : 어려운 질문이다. 이응노 선

것이다. ⓦ 오섬훈(발행 위원, 어반엑스 대표) : 조

생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해석까지 하면 좋은데,

성룡 선생의 작업들은, 기억의 대상이나 매개가 프로

그 부분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바르셀로나의

젝트마다 다르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여러 작품

피카소 미술관을 예로 든 것도, 적어도 생가 기념관

들에서 비슷한 맥락들이 읽힌다. 막연하게 고암 이응

이라고 하면 미술품 대신 그 사람의 삶의 흔적들이

노 생가 기념관이라면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이라든

많아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카

지 재현의 대상이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건물을 가서

소 미술관에는 유명한 대작보다 어린 시절의 스케치

보니까 화가 이응노보다 건축가 조성룡의 힘이 훨씬

들이 수없이 많고, 그것은 기념관이기에 수용 가능한

세게 느껴졌다. 다시 말해 건축가의 작업이 프로그램

작가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인구 9만의 소도읍 벌판

을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외람되

에 건립되는 기념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지만 기념관으로서 이응노 선생을 느끼기엔 좀 아쉬 081 →

082 ↙

[집담 4 | 이응노의 집이 갖는 또 다른 가치]

슷비슷한 밀랍 인형과 디오라마 등으로 구성된 전시

ⓦ 최춘웅 : 조성룡 선생의 작업은 수많은 과정이 있

를 봐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어 보자는 것이

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절차를 이해해야 하고,

큰 목표였다. 물론 어려웠다. 홍성군의 담당 공무원

또 전체를 주도해야 하는 건축 작업 외적인 힘이 있

팀이 개관할 때까지 4차례나 바뀌었고, 바뀔 때마다

어야 한다. 설계 자체도 그렇지만 그것을 이루어 내

다시 의도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홍성군에서

는 과정이 놀랍다. 보통의 건축가라면 타협하거나

이해하고 협조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축가로

절망하기 쉬운 상황일 텐데……. 이응노의 집 또한

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 가

설계 경기부터 개관까지 어려운 과정을 거친 것으로

지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편향되고 자의적인 기

안다. ⓦ 조성룡 : 이응노의 집을 건립한 홍성군의 경

억은 위험할 수 있으므로 기억의 재현은 어려운 문

우에서는 설계부터 개관 때까지의 과정이 중요하였

제일 것이다. 나의 작업을 너무 한쪽으로만 바라보지

다. (5인의 전문인으로 구성된) 운영 위원회나, 지방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건축 작업은 주어진 조

의 작은 기념관에 전문 학예사를 두고 지속적인 운영

건 안에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고, 결과물에

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

대한 평가는 상대적인 것이니까. ⓦ

했다. 또 미술관, 기념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태 의연한 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물 준공 후 개관을 1년 넘게 미뤘다. 기념이나 기억의 문제와는 또 다른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관람객들이 어디서든 비 083 →

084 ⓦ

69 기념에서 기억으로 [집담회] 조성룡 건축의 단서들


벽으로 구획된 전시 공간과 학습 공간.

70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한 비평가의 인상

한눈에 알아본 조성룡의 건축 ⓦ 유월 한여름의 햇 빛이 천지를 환하게 비추는 한낮, 그의 최근작을 찾 았다. 그의 작품들을 두루 살펴본 지 수년이 흐른 후 다. 다 왔다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더니, 이응노

이응노의 집 ─ 매너리즘의 징후인가?

의 집이 한눈에 쑥 들어왔다. 인공물이 별 없는, 수 평이 지배하는 평화로운 터라 그럴 것이다. 첫인상이 편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우연히 마주쳤어도, 저것이 조성룡의 솜씨란 것을 단박 알 수 있을 모양 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이종건 [본지 편집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몇 가지 의문들 ⓦ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와이드 AR> 편집장이 입을 열어 작품 설명에 나섰다. 급히 부탁한 탓에,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그저 몸뚱이만 챙겨올 수밖에 없는 형국이 저으기 미안해서 그랬으 리라. 부지가 저기서부터 시작된다며, 그래서 아주 큰 땅인데도 굳이 귀퉁이에 지은 것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둘러보니, 부지가 실로 컸다.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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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 ↙

우리 민족은, 산이나 구릉 자락에 터를 잡아 이처럼

전체 공간을 조망했다. 회색 콘크리트 마감 일색이었

혹은 눈썹처럼 들러붙어 살아왔으니, 이러한 입지는

지만 첫 공간만큼 긴장을 주거나 삼엄하지 않았다.

자연스럽다고 뱉는 것으로 첫 대화를 갈무리했다. 계

완만한 경사의 바닥으로 인해 점차 줄어드는 공간의

획에는 없던 예산을 추가하여 논이었던 곳을 연지로

크기와 여기저기 침투하는 제법 넓은 면적의 채광과

만들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조성룡은

산만한 바깥 풍경 때문인 듯했다. 느끼기 힘든 정도

건물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구조물을 만들

의 바닥 차이를 따라 오르고 내리는 동안, 조금씩 다

어 지경(땅의 경)을 만들었다. 휘어지는 길도 오르막

른 각도로 위치한 상자 공간 사이로 빛과 바깥 풍경

도 다 완만하고 크기도 단아한 것이, 평화로웠다. 물

이 쉽게 자주 비쳤다. 기념관 공간을 닫힌 상자들로

론 건물도, 그의 예전의 모든 건물들이 얼추 다 그러

구분한 까닭이 궁금했다(상투적이지 않은가?). 다시

하듯, 안온했다. 앞서 걷는 편집장을 따라 건물을 감

금 전시 공간 끝으로 가서 개구부를 통해 벽으로 나

고 돌아 뒤통수를 내려다보는 지점에 섰다. 저 위에

눠진, 진입할 때 마주쳤던 공간에 들어섰다. 강의실

올라가면 좀더 잘 조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길

공간이 다소 어색했다. 굳이 채광과 조망을 통제한

이 없는 곳에서 보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입구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완만한 경사로의 복

로 가는 줄 알았다며 퉁명하게 대꾸하곤, 오던 길을

도를 따라 올라가자, 왼쪽에 부출입구가 나왔고, 건

돌아 입구를 향했다. 외부와 달리 내부 공간은, 계단

물에 처음 들어서며 인상 깊었던 계단에 이르렀다.

이 박힌 좁고 높은 공간으로 인해 첫 느낌이 다소 삼

경사로로 바닥을 올렸다 계단으로 다시 내린 것이 어

엄했다. 너댓 걸음 걸어 전시 공간에 들어서서 잠시

색하고 이상했다. 돌아서서 다시 전시 공간으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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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8 ↓

71 한 비평가의 인상 [이응노의 집─매너리즘의 징후인가?] 이종건


맨위 : 로비에 서면 용봉산과 주변의 농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중간 : 어두운 동굴 같은 공간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원초적인 암영을 연출하는 채광. 아래 : 김재경 사진. 긴 고창을 가진 체험학습실.

72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가 관람을 끝낸 상황을 가정해, 나가는 동선을 따랐 다. 상자들 사이의 유리를 통해 바깥을 잠시 보았다. 밑에서 외벽의 황토 마감을 잡고 있는 아크릴이 눈에 걸렸다. 나갈 요량으로 출구로 다가가자, 바깥에서 는 보았지만 진입할 때 놓쳤던, 유리 박스 틈 공간이 전시 공간과 체험학습실 사이의 복도는 경사 지형을 따른다.

보여 거기에 들어섰다. 건물을 나가기 전 잠시 상념 하기에 알맞은 듯했다. 바깥 풍경이 거침없이 들어왔 다. 편집장의 말이 떠올랐다. 이 디자인에서 건축가 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저 산이라는 말, 말이 다. 그런데 내 눈에 저 산(용봉산)은, 어줍잖은 모형 처럼 만든 생가라는 초가며, 부속동이며, 주변의 다 른 풍광에 묻혀 평범했다. 중요했다면, 왜 중요하게 느끼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환기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기억 이 생생한, 수직 막대 창으로 들어왔던 산 풍경이 떠 올랐다. 이 풍경은 결단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밖 으로 나와 외관을 이리저리 뜯어봤다. 가까이서 그리 089 →

090 ↙

고 멀리서. 도로 쪽을 향하는 한 면을 황토로 다시 마

을 정도로 특이한 기법은 아니다. 여러 작은 매스들

감한 것 말고는 별 특이할 바가 없었다.

로 분할한 것이며, 여러 재료들을 써서 안온하게 보 이게 한 것이며, 지붕의 완만한 경사며, 전반적으로

이전에 비해 더 낫거나 특별하지 않은 ⓦ 조성룡의

이전 작들과 별 다르지 않다. 게다가 맥락에도 세심

이 최근작은, 자신의 이전 작들, 그리고 다른 이들의

하거나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은 것 같다(도심에서도

작들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지경을 만든 것은 어느

적절할 만큼 불/투명하다). 결론적으로, 조성룡은 그

정도 남다르지만(이 또한 이전 작에 이미 쓴 수법인

동안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은 채, 이전 수법들을

데, 올림픽공원에 입지한 미술관에 비해 건축과 지경

거푸 쓰고 있을 따름으로, 혹 그가 지금 매너리즘에

의 연관성이 썩 떨어진다), 대체로 그저 그런 평작이

빠져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형국은 아닌가 싶다. 물론

라는 판단이 들었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모종의 산

조성룡 건축에서 가장 아름다운 측면인 편안한 감성

에 따라 공간의 축을 잡는 것은 흔한 수법이고(이로

이야 여기서도 어김없이 잘 이루어 내었지만, 이전에

인해 발생한 ‘깊은’ 공간은 능선에 자리잡은 입지를

비해 더 낫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처음 섰던 곳에 서

고려하건대, 어색하다), 마치 흩어진 것처럼 상자 공

서 건물의 전체 외관을 마지막으로 다시 응시하며 편

간들을 끼운 공간 구성도 독자적인 것이 아니다. 승

집장에게 투덜거렸다. “몇 시간을 들여서 와 봐야 할

효상의 퇴촌주택이 그러하고, 이손건축의 운문유치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일찍 시작된 여름 날씨

원이 그러하고, 정기용의 어느 디자인(스케치) 또한

탓인지, 점심을 먹으로 떠나는 발길에 미련 한 점 걸

그러한데, 특별히 본디 저자를 가려야 할 필요가 있

리지 않았다. ⓦ

091 →

092 ⓦ

73 한 비평가의 인상 [이응노의 집─매너리즘의 징후인가?] 이종건


74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75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한 건축가의 인상

장항선 열차를 타고 ⓦ 참 오랜만에 맞은 유쾌하고 즐거운 오후였다. 몇 개월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지 만, 서로의 시간이 맞질 않아 미루고 미루던 여행이 었다. ‘좋은 집’을 방문하면서 작가와 동행하는 특별

풍경의 아크로바트 ─ 조성룡과 함께한 어느 날 오후

함에 더하여, 이민아(건축가, 협동원 소장), 정귀원 (와이드 편집장), 진효숙(건축 사진가) 등과 함께하 는 것 또한 귀한 일이었다. ⓦ 장항선 열차를 타기로 했다. 이는 오래전에 미리 정해둔 거였다. 고속 도로 와 자동차에 밀려나 이제 일반인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노선이지만, 나에게 ‘장항선’은 특별하다. 내 건

글—민현식

축의 큰 전환점에 설계한 집 ‘신도리코 기숙사’가 바

[기오헌 대표]

로 이 장항선 기찻길 옆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을 설 계할 때, 이 기찻길은 ‘논’과 함께 가장 중요한 땅의 조건이었고, 설계하고 짓는 동안 현장을 방문할 때마 다 구태여 온양역에서 기차로 상경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기차의 굉음이, 그 사람들, 집을 떠나 기숙 사에 머무는 신도리코의 노동자들의 심성에 불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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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키는 순수한 감상. 이제는 거칠게 들판을 지나가는

단순한 과거의 집합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주관적 의

온양 순환 고가로와 기찻길 가를 둘러친 방음벽으로

식이 전개되는 전 과정, 좀더 간명하게 정식화하자면

기숙사는 가려져서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섭섭했다.

역사 의식의 역사라 할 수 있다.”[정진성, 『역사가 기 억을 말하다』, p.39/42]라고 한다면, 조성룡 선생이

여행자 스스로 찾는 기억 ⓦ 기차는 의외로 크게 붐

‘땅에 새겨진 정신’이라 이름한 ‘이응노의 집’에 고암

볐다. 아마 주말이라 그런가 보다 했더니, ‘홍성 5일

이응노 개인의 ‘기억’과 ‘역사’가 어떻게 현재와 관련

장’ 때문이라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웃었다. 한

지어졌고, 객관화되어 우리에게 어떻게 감응하는가

가로운 기차 여행은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떠들썩한

는 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재 속에 존

분위기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편집

재하며, 과거와 미래는 어디까지나 현재를 사는 방식

장이 사온 캔맥주를 따는 여유가 생기면서, 개관하기

일 뿐이기 때문이다. ⓦ 홍성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전 지난 가을, 한 차례 방문한 경험을 근거로 조성룡

택시 운전기사들은 이미 이응노의 집을 잘 알고 있었

선생에게 ‘기억’ 그리고 ‘기념’에 관해 집요하게 여쭈

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낮게 펼쳐지는 풍경에 눈길을

었지만 구차스런 변명이 민망하다는 듯 미소만 지을

두고 있는 나에게, 선생은 이 곳 홍성이 배출한 걸출

뿐, 시원한 대답이 없으시다. 그래, 가서 보란 뜻이겠

한 역사 인물들을 일러 주었다. 당시의 대세였던 이

지. ⓦ “기억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과거를 현재화하

성계의 반란에 동조치 않았던 최영 장군, 사육신 성

는 정신적, 심리적 현상, 즉 한 주체가 자신의 과거를

삼문,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 그리고 침묵에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적 행위 및 과정이고, 역사란

서 영혼의 소리를 듣고자 한 한용운 등, 모두 세류(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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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流)를 따라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뜻을 세운

는지를 먼저 보여 주고자 하신 뜻일 것이다. 그것들

길을 걸었던 비주류들이다. 이 땅의 형국이 그들을

의 ‘관계 맺기’가 이 곳에서 행한 선생의 첫 건축 행위

그리 걷게 했는가. 여기선 환경 결정론이 꽤나 설득

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figure/ground가

력을 얻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ground/figure로 역전(逆轉)되면서, 풍경의 아크로 바트 조성룡이 조작한 풍경이 열린다. 건축은 사라지

풍경의 아크로바트 조성룡이 조작한 풍경 ⓦ 얕은

고 관계만이 보인다. 루이스 바라간의 말대로, 여기

고개를 넘자 그리 넓지 않은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조성룡이 만든 집의 ‘형상’

땅에 들어섰다. 우리 옛 지도의 표기법대로라면 여기

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응노가 보아 왔던 풍경을 지

의 산경(山徑)과 수경(水徑)은 가장 가늘게 그려졌

나 이응노의 뿌리를 빙자한 ‘조성룡이 여기서 보았던

을 것이다. 이 위요(圍繞)된 공간은, 지형 공간은 북

것’이다. 이응노의 일상이었을 용봉산을 조성룡이 만

측으로 크게 열리면서 저 멀리 굵게 그려졌을 능선과

든 틀을 통해 다시 본다. 이응노 개인의 역사적 사실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지는 ‘용봉산’이 갑자기 눈에

과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들을 살펴, 조성

다가온다. ⓦ 조성룡 선생은 입구가 있는 앞길로 가

룡은 ‘이응노가 구태여 말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밝

지 말고 에둘러서 옆길, 본래의 마을길로 들어서기를

혀내면서, 고암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

권했다. 아마 지난 가을,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 찍어

가 그를 비추게끔 하려 한다.

보내 드린 사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건물들, 보리밭 과 연지(蓮池) 그리고 용봉산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

고암과 고암 예술에 대한 오마주 ⓦ 그리고 건물의

097 →

098 ↙

입구를 지나쳐서 몇 기의 무덤이 있는 뒤편 언덕으

그 날의 푸른빛은 그 날만의 푸른빛 ⓦ 드디어 집

로 우리를 이끌었다. 물론 고암과는 무관한 무덤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던 선생

다. 선생은 이 무덤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이 집’

은 슬그머니 물러섰고 우린 자유롭게(?) 거닐기 시

을 아직도 귀향하지 못한 이응노의 무덤을 대신할 그

작했다. 들어섰으나 아직도 집 안이 아니다. ‘전시홀’

무엇으로 설계하리라 작정했다고 한다. 평생 노마드

이란 이름이 붙긴 했으나, 이 공간은 아직도 외부와

였던 이응노를 이제 여기 정착시키고자 하는 조성룡

크게 구별되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본래의 지문(

의 욕심이다. 자크 아탈리는 노마드를 “공간적 이동

地文)과 지형을 따라 그것의 형상과 기억을 그대로

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

옮겨 놓았기 때문인 듯하다. 땅의 형국에 따라 높이

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가 다른 판들을 설정하고 이들을 경사면으로 이어 놓

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라 했거

았다. 더하여 경사로를 따라 오르며 몸을 돌릴 때마

니와, 그것은 모든 예술가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적

다 바깥의 풍경과 만나는 공간을 마련했다. 바깥 자

인 삶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만일 이런 뜻에 거슬리

연의 일부를 선택하여 내부와 더욱 강하게 결속시켜

지 않으려면 이 곳, 한줌 흙이나 바람에 날려 보이지

놓았다. 마치 리처드 세라의 기법과도 유사하다. 그

않는 먼지 속에 거인 고암을 머물게 하고픈 뜻일 것

래서 바깥의 빛과 바람이 이 공간에서 행복하게 만나

이다. 해서 이 집은 고암과 고암 예술에 대한 조성룡

고 있었다. 이 집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이 곳에 들

의 오마주이다.

어서는 모든 순간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빛의 아 크로바트 루이스 칸의 킴벨 뮤지엄이 전혀 다른 모 099 →

100 ↓

77 한 건축가의 인상 [풍경의 아크로바트─조성룡과 함께한 어느 날 오후] 민현식


민현식 사진. 이응노의 집, 해질녘 풍경.

78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습이지만 전혀 똑같이 실현되었다. ⓦ “우리는 이 집

스로 조직하며 스스로 생성하도록 할 뿐이며, 그래서

이 항상 새로운 경이에 가득차 있음을 압니다. 매일

모든 가능성을 담은 본성의 상태로 남기는 것이었을

변화하는 빛의 질에 따라 어느 날 푸른빛은 그 날만

것이다. 햇빛이 공간을 비추고, 바깥의 풍경이 정제

의 푸른빛이며, 다른 날 푸른빛은 또 다른 그 날만의

되어 안으로 들기까지는 중성의 상태로 남아 기다릴

푸른빛입니다. 아무것도 고정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것, 바로 ‘중(中)’의 공간이다. 대저 ‘중’이라고 하는

질만 가지는 전기 불빛은 단지 하나의 느낌만을 당

것은 고정된 ‘체(體)’가 없으며, ‘시(時)’에 따라 구현

신에게 줄 것이지만, 태양빛은 하나의 질로 고정되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평상의 ‘리(理)’이다[蓋中無

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집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순

定體 隨時而是乃平常之理也].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

간순간의 횟수만큼 그때 그때의 새로운 분위기를 가

직 발현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을 담은 원형질의 상

질 것입니다. 이 집이 건물로 남아 있을 날까지, 매

태로 남아, 언젠가 발현되면 존재의 모든 상황과 조

일매일은 다른 날과는 다른 새로운 날이 될 것입니

화를 이루게 될 터이다.

다.” 그래서 여기 전시되는 작품은 인공 조명이 없어 야 제격일 터이고, 더구나 요즈음 모든 전시장과 박

풍경이 되는 집 ⓦ 이러한 관점에 서면, 자연과 인

물관을 점령하고 있는 가짜가, 현란한 천한 전시 기

간 그리고 자연 공간과 인공 공간의 경계가 와해되

법이 스며들 틈을 내주지 않았다. 조성룡 선생이 여

고, 인공물과 자연물의 구별 또한 무의미해지며, 우

기서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단지 관계를 맺어 주기만

리는 ‘건축들이 모여 특질을 가진 환경을 창조한다’

할 뿐, 미리 무엇을 결정하기를 미루어, 그것들이 스

는 근대 기획의 방법론을 넘어서서 ‘환경 또는 땅의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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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들에서 건축의 조건들을 도출한다’로 우리의 태

풍경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 집을 나와 연지를

도를 전환할 수 있게 된다. 건축을 하나의 오브제로

지나 보리밭 둑에 앉았다. 그리고 갑자기 한 번 보았

보기보다는 환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인자로 보는 것

다. 늦봄, 해질녘의 마지막 잔광이 어루만지는 흙벽,

이며, 따라서 건축 자체보다는 건축과 건축, 건축과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건축가 정기용의 흙벽이 붉게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더 주목하게 된다. 오브제로서

빛나고 있었다. 치열하게 건축을 살다가 간 한 건축

의 건축을 창조한다기보다 이미 있어 온 풍경에 하나

가에 대한 조성룡의 또 다른 따뜻한 오마주이다. 흠

의 집을 보태어 또 다른 새로운 건축적 풍경을 영조

뻑 취했다. ⓦ

하는 것이다. 새로 보태어진 집과 환경이 한동안 서 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련되어져 가서, 어느 날 이 새 집도 그 곳의 환경을 구성하는 한 인자로 근사하 게 변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환경에 대한 투철한 윤리 의식의 강한 표명이며, 이러한 사 유와 태도는 표상 중심주의 건축, 즉 대상화 수준을 넘어서는 건축으로 이행하는 실천의 길이다. ⓦ 이와 같이 이 곳은 시간의 감각으로 디자인되기 때문에, 저 멀리 용봉산으로부터 여기 ‘이응노의 집’에 이르 기까지 아무 거슬림이 없이 유연하게 흐르는 서사적 103 →

104 ⓦ

79 한 건축가의 인상 [풍경의 아크로바트─조성룡과 함께한 어느 날 오후] 민현식


못 다한 이야기들

#1. 롱테이크 시퀀스 ⓦ 홍성군 중계리의 홍천마을은 거칠고 강인한 용봉 산과 부드러운 월산 사이에 자리잡은 평온한 농촌 마 을로, 소년 고암이 세상에 나와 열일곱 살때까지 자

조성룡 인터뷰 ─ 정작 중요한 이야기, 둘

라며 그림에 뜻을 품었던, 소위 생가 터가 있는 곳이 다. 고암 선생은 생전 글을 통해 “그 이름처럼 보였 던” 용봉산과 월산을 자주 언급했고, “사랑하는 사람 들의 따뜻한 인상처럼 느껴졌던” 고향의 자연을 벗 삼아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며 외로움을 잊을 수 있

조성룡 + 정귀원

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 지난해 11월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이 문을 열면서 소년 은 작품의 원천을 이루었던 고향 마을 앞에 다시 섰 다. 그가 보았고, 그로 하여금 꿈꾸게 했던 고향 풍경 의 기억은 건축가 조성룡에 의해 재현됨으로써 그 곳 을 방문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되고 있다. ⓦ 그러므로 이응노의 집은 건축물만이 아니라 그 주변 의 풍광을 모두 아울러 이르는 것이 마땅하다. 고암

105 →

106 ↙

의 기억으로 재현해 놓은 농촌 풍경은, 땅의 경계를 물어 보지 않거나 연밭을 가로지르는 직선의 데크를 눈여겨 보지 않으면, 대지 경계선 너머의 풍경과 자 연스럽게 어우러져 이 곳이 재현된 공간임을 알지 못 한다. ⓦ 정겨운 시골길과 [생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서 일대의 평범한 민가를 참고해서 지었다는] 생가 초가집, 그 곁의 대숲과 청보리밭, 그리고 연밭 등으 로 계절에 따라 바뀌는 농촌의 정경이 용봉산과 월 산과의 전체적인 풍광 속에서 연속성을 가진다. 건축 가는 이를 두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소우주”란 표현 을 썼다. ⓦ 이러한 소우주를 위해 건축가는 가장 먼 저 원래의 땅의 모습을 찾는 데 주력했다. 지금 이 곳 의 길은 이응노 선생이 우리가 모르는 새 겪어야 했 던 굴절된 삶처럼 구불구불한 시골길 그대로이지만, 기념관 조성 바로 직전의 이 땅은 농사 짓기 편리하 도록 직선으로 반듯반듯하게 정비된 형태였다고 한 다. ⓦ “옛 지도를 찾아서 이 땅이 가지고 있던 원래 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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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80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의 패턴, 이응노 선생이 보았을 땅의 형태를 찾아내 어 구불구불한 형태로 돌려 놓았다. 큰 길에서 생가 초가집으로 이르는 길도 원래는 직선이었는데, 다시 곡선으로 구부려 놓은 것이다. 반면, 기념관과 부속 동 사이의 자연스러운 흙길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 1967년 항공 사진. 당시 이응노의 집 부근의 지형을 볼 수 있다.

던 농로이다. 생가 초가집 뒤의 마을로 들어가는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이 계속 이용해야 하는 길이다. 이 길은 그대로 두고 양 옆으로 부속동과 기념관을 배 치하게 됐다. 부속동은 현재 북카페로 쓰이는데, 마 을 주민들이 사용─이를 테면 동네 잔치나 모임─할 수 있게 여지를 두었다.” ⓦ 기념관 건물은 월산 기 슭 아래 구릉지에 기댄 채 무심하게 앉아 있다. 전면 의 흙벽 때문일까. 마치 땅 속에서 솟아오른 모습이 무덤을 닮았다. 건물 배치 방식은 옛날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농촌에서는 비교적 큰 집이어서 낮은 언덕과 나무들, 다른 집들과의 관계 속에 최대한 자 연스럽게 보이도록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한 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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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네 개로 분절된 서로 다른 방향의 전시실들이 서 로 다른 경사 지붕을 가지고 있어서 산세와 더불어 농촌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 “거기는 편편한 땅이 아니다. 따라서 기념관은 땅의 모양대로 툭툭 자연스 럽게, 무심하게 놓여졌다. 긴 홀에 서로 다른 네 개의 전시실이 이어진 형태인데, 경사를 따랐기 때문에 한 개 층인데도 실내에서 높이 차가 생긴다.” ⓦ 황토흙 마감의 건물 외관은 다소 부드러운 이미지지만, 막상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면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평온 공사 후(아래) 지형과, 공사 전 지형(위).

한 외부 공간에 비해 기념관 내부는 어둡고 불편하 다. 이것은 이응노 선생이 윤이상 선생과 함께 동백 림 사건을 겪거나 백건우, 윤정희 부부 사건에 연루 되기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 “이응노 선생의 무 엇을 이 시대에 되새길 것인가, 고민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분에게 가한 행위를 미안해 하고 반성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그렇다고 내부에 어두 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긴장감 있는 공간과 거친 콘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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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못 다한 이야기들 [조성룡 인터뷰] 정작 중요한 이야기, 둘


이응노의 집 1층 평면도, 종단면도와 단면도.

82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크리트 벽에 부딪혀 산란되는 빛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하루종인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일종의 환 영과 같은. ⓦ “애초에 창문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 었지만, 나는 기념관 안으로 빛을 가지고 들어오고 싶었다. 그것도 동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기우는 해 를 건물 안에 효과적으로 끌고 들어오고 싶었다. 네 개의 전시장이 약간씩 틀어져 배치된 이유이기도 하 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긴장감 있는 공간에 부드럽 게 산란되는 빛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예상하면서, 네 개의 덩어리를 조금씩 틀어가며 땅 위에 얹었다. 그 것에 따른 각도와 콘크리트 표면의 거친 질감이 미묘 이응노의 집 엑소노메트릭.

하게 다른 빛을 만든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겨울 에는 또 다른 느낌이다.” ⓦ 전시장을 돌아 다시 로 비에 서면 용봉산까지 펼쳐진 아득한 농촌 풍경과 마 주하게 된다. 그것은 특별히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 하여 억지로 끌어당겨 온 풍경과 다르다. 자연과 내 가 하나가 되는 것, 어느새 풍경 속에 내가 있는 것이 113 →

114 ↙

다. ⓦ “영화와 비교할 수 있겠다. 영화의 쇼트는 보

들었다. 원래 생가 터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기

는 순간 곧 과거가 된다. 사람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억을 살린다는 의미도 있다.” ⓦ 기념관을 둘러보고

이다. 영화가 한 장면만을 보여 주지 않는 것처럼 사

경사진 땅이 이끄는 대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자연스

람들의 움직임도 계속 장면을 바꿔 나간다. 한꺼번

럽게 연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대부분이 용봉

에 그리는 것이랄까? 전체를 한 번에 표현하고 스스

산이 아닌 연밭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

로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므로 움

연스럽게 용봉산을 눈에 담게 될 것이다. 연밭에 이

직이면서 조금씩 체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강렬

르면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용봉산은 보다 가까운 존

한 하나의 장면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은, 특히 작

재가 된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반대쪽 기념관을 바

은 땅이라면 몰라도 이만한 규모의 땅에서는 효과가

라보는 관람객의 시야에 잡히는 것은 그전까지 전

없다. 현장에 갔을 때가 4월, 5월말쯤이었는데, 논에

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월산이다. ⓦ “한 공간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때 용봉산과 월산이 물에 비

에서 한 공간으로 이르는 길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

치는 걸 본 거다. 이 두 산은 이응노 선생의 유년 시

고, 중간에서 다른 길의 개입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절에나 지금에나 변함없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기

것은 지앤아트스페이스나 꿈마루에서도 볼 수 있는

억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 두 산에 기댈 수밖에 없

수법이다. 물론 그러면서 풍경도 함께 들어왔다 나갔

었다. 용봉산을 물에 비치게 하는 방법으로 원래 있

다 하는 것이고. 지나간 장면의 잔상을 가지고 영화

던 (경작을 더 할 수 없게 된) 논을 연밭으로 바꾸게

의 다음 쇼트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걸으면서 방

됐다. 옛날에는 마을 입구에 정화 기능의 연지를 만

금 보았던 쇼트를 계속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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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못 다한 이야기들 [조성룡 인터뷰] 정작 중요한 이야기, 둘


이응노의 집 전시실 1 외벽 단면 상세도.

84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러니까, 이응노의 집에서는 기념관의 잔상을 가지고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 고마워서 홍성을 좀

경사진 길을 따라 연밭으로 내려올 때까지 용봉산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사실 이응로의 집은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로 말하면 롱테이크다. 카메

건축적인 의미 말고도 ‘공공 건축의 좋은 사례’라는

라를 고정시켜 촬영한 롱테이크는 시간하고 관계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기념관을 짓는 과정에서 건축

있다. 사람의 동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물과 풍

가는 진정한 공공 건축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자체

경의 관계를 만드는 시간의 개념이다.”

에 끊임없이 건의하였고, 홍성군은 열린 자세로 건축 가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

#2. 지자체 공공 건축의 좋은 본보기

다. 외부 공간 조성에 필요한 충분한 예산 확보도 그

ⓦ 이응노의 집에 처음부터 외부 공간 조성 예산이

러한 노력 중의 하나이다.

충분히 책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억이 안주하

이응노의 집은 공모전을 치르고 공사가 끝날 때까지

는 공간을 계획대로 만들기 위해서 건축가가 홍성군

담당 공무원 팀이 네 번 바뀌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

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 “용봉산과 월산의

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성심껏 들려 주는 건축가에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과, 연지를 비롯한 외부 공간들

게 신뢰감이 생겨서였을까? 이응노의 집은 공공 건

이 전체 자연의 연속적인 풍경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

축에선 보기 드물게 설계자에게 감리를 맡긴 사례가

분임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예산이 없다고 난색을 표

됐다. [우리 나라는 규모가 큰 공공 건축의 경우 건축

하더니 나중에는 수긍이 된다며 예산을 책정해 줬다.

가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의 공사를 감리할 수 없게

나는 그게 무척 고마웠다. 지방 자치 단체가 그것을

되어 있는데, 이것은 건축주와 감리자의 유착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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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기식’ 감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한 별도의 운영 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홍성군은

제도이다.] ⓦ “사실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공공 건

2011년 1월 학예사를 채용하였고, 나를 포함하여 유

축의 감리를 아주 못 하는 것은 아니더라. 홍성군에

홍준(명지대 교수), 이태호(명지대 교수), 안상수(홍

서 방법을 찾아 감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줬다. 공

익대 교수), 김민수(서울대 교수), 김호석(전 전통문

모에 당선됐고, 충실하게 도면 그려서 실시 설계 끝

화학교 교수) 등이 참여한 운영 위원회를 구성했다.

냈고,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고, 사회적으로 실

유홍준 선생은 개관전 준비 위원장을 맡았었고, 이태

적도 있고 믿을 만하다, 그 판정만 받으면 되는 거였

호 선생은 현재 명예 관장으로 있다.” ⓦ 요즘 전국

다. 홍성군의 담당자가 모든 서류를 꾸려서 조달청으

각지에서 뚜렷한 컨텐츠 없이 관광 상품화되고 있는

로 보냈다.” ⓦ 또, 개관 후에도 “고암을 왜 기억하고

미술관/박물관/기념관 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

무엇을 전달하며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 지속적으

자체마다 관광 상품을 만들면 중앙 부처가 예산을 지

로 고민하고, 더 좋은 전시를 기획할 수 있도록 시스

원해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템 구축을 요청하기도 했다. ⓦ “개관은 2011년 11월

가 지속적인 운영에 대한 고려 없이 일단 지원 받은

에 했지만, 이미 공사는 2010년 10월에 끝난 상태였

예산으로 집만 짓고 만다는 데 있다. 내용 없이 형식

다. 기념관에 담길 내용들을 정비하기 위해 1년 넘도

만 요란한 개관 전시는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고, 기

록 개관을 미룬 것이다. 우선, 소도읍의 작은 기념관

본적인 전시 기획도 별다른 게 없다. 당연히 한 번 본

이라 하더라도 전문 학예사가 필요하다고 건의하였

관람객들은 두 번 발걸음하지 않는다. ⓦ “과도한 전

고, 또 기념관의 운영 전반과 발전 방안을 도모하기

시 비용과, 납득하기 어려운 설계 공모 방식은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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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못 다한 이야기들 [조성룡 인터뷰] 정작 중요한 이야기, 둘


한 폐단에 한몫하고 있는 요인이다. 전시 시설의 설

진다면 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관의 입장

계 경기 규정에는 공공이 발주하는 5년 이내의 설계

에서도 두 번 일할 것을 한 번으로 끝내니 번거롭지

실적과, ‘건축, 전시 업체 간 컨소시엄 방식’ 응모가

않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의도가 개입됐

명기되어 있는데, 공식적인 전시 공사 실적을 입증하

다면 파기하여야 할 항목일 뿐이다. ⓦ “처음부터 이

지 못하면 설계 경기 자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

응노의 집에는 컬렉션이 없는 것으로 가정했다. 생가

든 이러한 규칙에서 건축 공간 계획보다 ‘전시를 위

기념관이니까 좋은 작품은 한두 점이면 충분하고, 대

한 전시 계획’에 의해 설계 경기가 좌우된다는 인상

신 젊었을 때 그린 습작들을 기증 받아 기념관을 채

을 지울 수 없다.” ⓦ 이응노의 집 역시 건축 설계 업

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전시 계획

체와 전시 업체 간 공동 응모였다. 공고문에 나온 추

을 보고서 매우 놀랐다. 고암 선생의 옥중 체험 장치,

정 사업비는 48여억 원. 이중 전시 공사비에 10억이

대나무 숲을 재현한 디지털 영상, 옥살이 후 잠시 머

투입되고 설계비는 2억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

무셨던 수덕여관 등이 기념관 공간을 가득 메운 그림

있다. 당선이 되면 건축 설계 사무소는 설계권을 얻

이었다. 1년 넘게 개관전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만 전시 업체는 공사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황

이다.” ⓦ 심지어 전시 공사비는 수십억을 훌쩍 넘기

이 이러다 보니 전시 업체로서는 전시 내용을 과도

면서 정작 건축물에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 기념

하게 부풀리는 게 상례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건축가

공원도 있다. 조성룡은 이러한 공공 건축물들이 국

와 전시 업체 간의 소통이 원활할 리 없다. 물론 공간

민들의 역사, 문화, 전시 공간에 대한 개념을 왜곡시

계획과 전시 계획이 처음부터 서로 협의 하에 이루어

킬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들의 문화적 잠재력을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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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내서 향상시켜야 할 시설들이 오히려 문화 시설에 대한 개념을 하향 평준화로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 다. 이러한 공공 건축물로 불행해지는 것은 결국 국 민들이 아닐까. ⓦ “전시 시설들은 주로 어린이와 학 생들이 과제를 하기 위해 이용한다. 그런데, 과연 디 오라마에 영상으로 구성된 엉성하고 천편일률적인 박물관식 전시가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지자체에서 세우는 미술관/기념관은 개인의 것이 아 니라 공공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도록 하기 위해 세워지는 ‘시민을 위한’ 지역 문화 공간임을 잊지 말 아야 한다.” ⓦ 이응노의 집은 컨텐츠가 부족한 상황 조성룡의 이응노의 집 스케치.

에서 건축가와 관이 합심하여 만든 지자체 공공 건 축의 좋은 사례로 기억될 듯하다. ⓦ [정리 | 정귀원 (본지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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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 워크 Work | 이응노의 집 La Maison de Lee Ungno | 조성룡 Joh Sungyong


와이드 AR 28 | Wide Wide Architecture ArchitectureReport Report2828| |2012.7-8 2012.7-8 New POwer ARchitect ARchitect 파일 파일17 17 오영욱 O O Youngwook Youngwook

오영욱 | 오영욱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스페인 ELISAVA 디자인 스쿨 마스터 과정을 졸업하 고 현재는 oddaa(ogisadesign d’espacio architects) 소장으로 건축, 인테리어, 일러스트, 카툰, 전시, 출판, 칼럼, 강의 등의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축과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고, 척박한 대한민국의 건축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소형 사무소의 시 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주주택, 안성 복합 상업 공간, 여수엑스포 사일로 리노베 이션 입상 안 등의 작업을 수행했고, 대표 저서로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그래 도 나는 서울이 좋다』 등이 있다.

오영욱 내가 건축하는 사연 최근 “나는 건축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봤다. 새삼스럽지만 정신없이 흘러가는 아틀리에 생활에서 문득 멈춰 서서 자신 을 다잡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제껏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였다. 일단 내가 선택하고 짧게나마 진행해 온 건축 일에 대해 의심을 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가장 최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바꿨다. “건축이 좋아요”라고 대답하는 대신 “건축을 진정 좋아한다면 건축 이론 이나 건축 비평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라고 살짝 반문한 후, “저는 만드는 게 좋고, 만들어진 게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게 좋아요”라 고 답을 했다. 그건 관심하고 있는 건축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무소의 생존에 대한 고민과 그로 인해 이것저것 닥치 도록 일을 하게 되는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답이었다.—물론 원래부터 비싸고 화려하거나 잡지에 나올 만한 썩 괜찮아 보이는 작업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딛게 된 건축가로서 지극히 현실적인, 속칭 '업자의 일'에 뛰어들었던 적도 있 었다. 그런 일들이 하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잘 나가는 건축가’의 요건이 될 수 없음은 자명했다. 최소한 건축 잡지에 소개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었다.—이런 현실적인 상황에서 다시금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내 가 부닥치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 대신, 공간을 만들 어 가는 물리적 행동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치열한 현실에 대응하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 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그 모습들을 담아내는 공간을 조직해 내는 일이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이다. 관심을 갖는 건축과 생존을 위한 건축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충족시키며 내게 방향을 정하 는 키워드가 되어 준다. 1 — 대중 건축 ⓦ 개인적으로 가벼운 언어로 쉽게 풀어서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을 지향한다. 건축 및 다른 매체들을 통하여 보다 많은 대중 들에게 건축이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기대하고, 궁극적으로 건축가들의 시장 영역이 넓어지길 바라는 중이다. ⓦ 2 — 지속 가능한 사무실 ⓦ 사무실이 안정적으로 잘 굴러가야 건축도 오래오래 계속할 수 있다. 작은 아틀리에로서 그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금방 망하지 않도 록 유지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3 — 대량 생산 ⓦ 지속성과 연관되어 효율성의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공장 생산과 가내 수 공업의 중간 영역에서 설계 및 디자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 4 — 한국성 ⓦ 마치 일본이나 멕시코의 건축가들 의 작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어쩐지 한국인이 디자인한 것 같은 작업인데?”라는 식의 반응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작업의 정체성 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5 — 닥건 ⓦ 닥치고 건축. 건축계의 혁명을 기대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좋은 여건에서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축구 전술 ‘닥공’처럼 건축도 일단 계속 질러 보는 거다.

87 87 와이드 AR 28 | 2012.7-8 New POwer ARchitect Architecture 파일 17Report | Wide | 오영욱28O Youngwook


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New POwer ARchitect 파일 17 오영욱 O Youngwook

사무실 oddaa ⓦ oddaa는 ogisadesign과 d'espacio architects라는 두 이름을 합친 명칭이다. 지속적으로 아틀리에로 활동한다는 전제 하 에 소규모 인원끼리의 이해과 협력을 바탕으로 특정한 한 명의 것이 아닌 같이 만들어 가는 작업을 지향한다.—사무실의 구색을 갖추고 프 로젝트를 진행해 온 지는 4년이 되었다.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 디자인, 전시 등의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며 건축적인 이슈에 대해 많은 고민 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지속가능한 사무실을 지향하기 위해 시스템 구축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따라서 모든 프로젝트는 건축적 고민과 더불어 경영적인 관점에서 판단되고 실행된다. 특히 경영적인 측면에서 는 많은 프로젝트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그러한 실패 사례들을 바탕 삼아 앞으로의 전략을 세우는 중이다.—이에 소규모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소 내규 및 연봉 체계 등을 문서로 조직하고, 구성원 각자가 1인당 매출액에 대해 스스로 관리를 하며, 경영적인 성과에 도움 이 되지 않을 일의 경우는 단호히 거절하는 편이다. 1년 중 두 번 이상은 해외 건축 답사를 추진하고, 작업의 진행은 각 프로젝트 담당자에 게 자율성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다.—무엇보다도 건강한 사무실 구조가 건강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 지난 4년 동안 약 7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전시, 그리고 건축 설계 공모 참여 등이었다. 그 중 20 개 정도의 프로젝트는 소위 물먹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실패의 기억이 되었고, 반면 현상 공모에서는 떨어졌으나 당당히 우리의 대표 작 업이라고 꼽을 만한 프로젝트도 있었다.—주변에서 비슷한 규모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배 건축가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를 설명 할 수 있는 단어로 ‘다작’을 꼽았다.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많은 작업들의 현황이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을 고 맙게 받아들이며, 일단 다양한 종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우리의 시도, 도전들의 집합적 형상이 우리를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그렇기에 우리의 프로젝트를 나타내는 이미지는 지금까지 작업했던, 날것 그대로의 사진들을 모은 것으로 표현된다. 보다 많은 사 람들에게 설명되기 위하여, 안정적인 사무실 운영을 위하여,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하여, 그리고 언젠가는 찾게 될 우리의 단단한 정체 성을 위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친 일들이다. 만약 건축이라는 행위에서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것이라 한다면, 우리는 좀더 세련된 시 행착오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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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New POwer ARchitect 파일 17 오영욱 O Youngwook

영주주택 ⓦ 대지는 경상북도 영주시 외곽의 작은 주거 단지의 끝자락이었다. 대지에 서면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아득하게 보였다. 한반도를 남쪽 방향으로 종단하는 거대한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건축주는 집 설계를 의뢰하기 전부터 집 터에 여러 수목을 심어 놓았다. 손수 꾸며 놓은 정원에 어울리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더불어 자연 환기 가 잘 되고 관리 비용이 적게 들며 1, 2층이 심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을 의뢰했다.—자연환기, 풍경, 일조량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 집은 자연스럽게 가로로 긴 형상을 갖게 되었다. 마치 한옥의 살림집처럼 집의 모든 방들이 남쪽의 태양과 북쪽의 풍경을 동시에 취할 수 있었다. 집은 정남향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었는데, 저층부는 정원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기에 대지 경계와 평행을 이루도록 25도 정도를 틀었다. 꺾인 1층의 상부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가 되었고, 2층 끝부분의 하부 공간은 정원에 차양을 만들어 주는 역할 을 했다.—공간을 구성하는 원리가 외부로 온전히 보이는 것을 의도했기에 외부 재료는 균질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관리 비용의 절약을 위 해 150mm의 외단열 시스템을 적용했고, 다른 재료의 덧붙임 없이 기능적인 사항이 필요한 부분, 즉 지붕, 창 주위, 땅과 만나는 하부 등에 만 금속 및 석재를 보강했다.—두 개의 각도를 갖는 수연재는 자연스럽게 근처에 위치한 부석사의 축을 연상하게 했다. 부석사를 오르는 길 의 마지막에 공간적 감동을 선사하는 무량수전의 틀어진 축과 그 곳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의 모습은 언제 경험하더라도 인상적이다. 인연 을 따른다는 의미의 수연재는 남향과 대지의 경계선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공간 구성 요소로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테라스를 통 해 부석사와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시간의 제약이 느껴지지 않는 그 깊은 풍경을 소박하게 담고, 그로 인해 진중한 사유가 피어나는 집 이 되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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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엑스포 사일로 리노베이션 ⓦ 30년 가까이 시멘트를 담고 있었던 사일로는 기능의 소멸과 함께 비워졌다. 우리는 그 빈 공간에 새로 이 담을 것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사일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지닌 원형적 가능성으로부터 찾았다. 그래서 우리의 개 념은 자연을 담는 프레임이었다. 사일로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기존의 형상 자체로 사일로는 하늘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되었다.—우리 는 바다를 보다 직접적으로 담고 싶었다. 두 사일로 중 한 기를 눕힘으로써 바다를 담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한 공간의 기능이 사라졌을 때 필연적으로 비게 되는 상황을 사일로의 가능성이라고 보았다.—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일로가 새로운 풍경과 사 람들의 일상적인 행위를 담으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과거의 구조체가 가진 가능성을 찾아내어 그 가능성을 이용 해 새로운 형태와 공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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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성남초등학교 문화교실 ⓦ 학교 그리고 교실은 배움과 가르침의 공간이자 학생들이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경험하는 장소이기도 하 다. 기존의 딱딱하고 획일화된 교실의 형태를 벗어나서 보다 다양한 방식의 행위와 자유로운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형성 해주는 것이 문화교실 디자인의 목표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의 전략을 구상했는데, 일단 평평하고 기능적인 과거의 교실 에 자유곡선 형태의 언덕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자유로운 이미지의 공간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영역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 을 열어 두고자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여러 구멍들을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일방향의 시선이 교환되는 것을 탈피하고자 정면성을 일부 배제 하여 시선의 다각화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 간의 격의 없는 대화가 이루어지길 의도했다.—커다란 밑그림이 그려진 후 이루어진 워크 샵에서 학생들은 뛰어놀 수 있고 어른들의 접근이 어려운 다락방 같은 공간을 원했다. 공간의 조절을 통해 새 교실의 한쪽 끝에 아이들만 접 근 가능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데, 준공이 된 후 개막을 하던 날, 학년에 상관없이 다락 공간을 오가며 자유롭게 뛰어놀던 아이들의 표정 이 프로젝트의 가장 인상 깊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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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7-8 New POwer ARchitect 파일 18 정의엽 Jeong Euiyeob

정의엽 | 인하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토론토대학 건축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미국 의 모포시스(Morphosis Architects)와 캐나다 엠제이엠(MJM Architects), 그리고 한국의 공 간건축에서 실무를 쌓았다. 2009년부터 에이엔디(AND)를 설립하여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으며, 홍익대학교와 한양대학교 디자인 스튜디오에 출강하 고 있다. 2011년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였으며, 주요 작업으로는 TOPOJECT(단독주택), SKINSPACE(아티스트 작업실), AGGRENAD(펜션) 등이 있다.

정의엽 역설적 조건에 대응하는 차이화의 건축 Paradoxical Architecture 불연속적 변화 and 다층적 공존 ⓦ 유년기 시골 마을의 이웃들은 모두 이모나 삼촌이었다. 익숙한 한옥과 초가집들 그리고 그 사이의 작은 골목길을 떠나 서울이라는 도시로 올라왔을 때 느꼈던 상실감과 충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달동네와 다세대 주택을 옮겨 다니다가 깨 끗한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우리는 행복해 했고, 서울은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이후 또 전혀 다른 기후와 문화적 배경의 도시로 이동하며 살다보니 나에게 고향의 사전적 개념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나는 A지역 사람이며, B지역 사람이기도 하고, C지역 사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곳에 우선적인 지위를 두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사람들과 같이 생존하는 것이므로. 도시적 and 내재적 조건 ⓦ 국적을 알 수 없는 이국종의 건축물들과 기호로만 식별 가능한 틀에 박힌 건축물들이 뒤얽혀 서식하고 있는 한 국의 도시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나)의 삶의 방식이 그것에 투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급조되다 시피 만들어진 도시에서 더이상 동일성을 전제로 한 정체성과 존재론적 의미의 자리는 비워진 듯하다. 우리 삶의 일부가 된 도시의 기억 상 실증적 공허부를 분열증적인 욕망으로 대신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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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화(Differentiation) and 신종(Novel) ⓦ 끊임없는 이종 교배 속에서 모든 것이 기원과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 는 모든 것이 새롭게 지속되고 있는 역설적 현실이 비옥한 대지의 충만함으로 느껴진다. 이 도시에서의 삶은 자신의 신체를 토대로 주변과 관계를 맺어 가는 접속의 연쇄이다. 차이를 긍정하며 공존하는 접속의 실천은 삶 자체이자 우리가 환경을 구축하는 방식이 되었다. 존재는 ‘~이다(is)’가 아니라 ‘~이고(and), ~이고(and), ~’의 연속 가운데 익명적으로 꿈틀댄다. 우리가 무엇으로 부르기 전에 이미 그곳에서 생성하는 힘을 감지하고 번식시키는 행위로써 만나게 되는 특이한 신종들, 그리고 그 잉여 가치를 찾는다. 일상 and 차이화의 장치 ⓦ 손과 손이 접속하는 일상적 행위를 악수라 부른다. 똑같은 악수는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우리가 악수라고 그 행위를 지시하는 순간 매번의 악수들은 쉽게 동일한 사건으로 고정된다. 그런데, 그 사건의 의미는 악수들을 동일화하지 않고 차이를 드 러낼 때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악수하며 발생하는 힘과 운동을 기계 장치의 고무손에 의해 추출, 변형하는 장치를 고안하였다. 이 장치 는 일상적인 사건을 기계적인 힘과 운동의 전달로 연결시킨다. 압축, 회전, 전도, 번짐 등을 실행하는 각 부분들의 연속은 결국 악수를 시 각적인 마크로 변환시킨다. 즉 일상적 사건의 차이를 제거하여 동일화하는 대신, 이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물리적인 기억을 만들어 낸다.

역설적 조건 and 건축적 신종 ⓦ 이질적 혹은 상호 양립 불가능한 역설적인 조건욕망들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구축될 수 있을 까? 단순히 우선적인 것(A)의 선택과 대립적인 것(counterA)의 배제를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그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 이들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응축할 수 있을까? 우리는 A and counterA의 접속이 생성시키는 건축적 신종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세 개의 작업(Trilogy)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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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TOPOGRAPHY) and 오브제(OBJECT): TOPOJECT ⓦ 이 주택은 서울의 아파트를 떠나 전원생활을 시작하지만 도시 생활을 병행하려는 한 가족을 위한 것이다. 농민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지만, 여행하는 도시인처럼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역설적인 욕망이 거 주할 수 있는 집이란 어떤 것일까? 대지에 인접한 계곡, 산과 같은 자연 지형과 건축물의 관계를 통해 이 문제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건축 물이 주변과 분리된 오브제(Object)인가? 또는 지형(Topography)의 일부인가? 이러한 유형적 이분법을 따르지 않고, 동시에 두 유형의 합 이상의 조건, 즉 이질적인 유형의 공간이 접속하며 만들어 내는 새로운 종(TOPOJECT)을 발견하고자 했다.—TOPOJECT는 주변의 지 형이 점점 융기하듯 계곡 방향으로 끌어올려져 마침내 지면 위로 부유하다 그 밑 수면에 투영된 모습 속으로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건물과 지형의 관계는 미분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며 변화한다. 외부에서는 건물과 지형의 경계를 알 수 없다. 외부 지형과 내부 공간의 다양한 접 속 방법은 지형을 내부화하고, 내부 공간이 외부로 확장하는 상호 관입과 그로부터 이탈하는 움직임 사이에서 변화하는 공간을 만든다. 내 부 공간은 4개의 레벨로 계획되었지만, 모든 레벨에서 외부 지형으로 연결된다. 잠깐 사이에 마치 땅속 동굴처럼 깊은 공간에서 외부로 확 장되는 공간, 하늘로 열린 경사진 공간, 마침내 부유하며 원경으로 열린 테라스 공간까지 압축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사이에서 거주자는 다중적이고 신축성 있게 공간을 점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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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피(SKIN) and 공간(SPACE): SKINSPACE ⓦ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그의 개인전 제목인 <나무에게 말을 걸다>, <생 각하는 숲>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풍경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그림 속의 사람의 신체와 풍경은 모두 단일 한 개체가 아니라 분자적인 집합체로 그려지며, 그들은 상호 연합된 풍경을 만든다. 다시 말해, 인간과 풍경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만, 연 속적인 질료의 파동과 강렬한 힘의 흐름은 경계를 관통하고 서로를 교감시킨다. 전원의 풍경 속에서 작업을 계속하고자 하는 작가를 위해 우리는 그의 그림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건축적인 해석을 제안했다. 보통의 외피(SKIN)는 건물을 외부와 경계 짓고, 공간(SPACE)은 그 안쪽에 위요된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디어는 외피가 건축물의 경계를 한정할 뿐 아니라 내외부가 상호 감응하는 틈(SPACE)이 되도록 하 는 것이다. 정면의 외피는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분열된 패널의 군집체이다. 외피가 내부로 말려들어가 뒷면으로 관통하는 흐름 속에서 각 각의 패널들은 변형되고 벌어져 군집적인 틈(SPACE)을 형성한다. 이 틈으로 풍경이 스며들고, 빛은 시간에 따라 다른 표정으로 공간을 물 들인다. 위치를 이동할 때마다 틈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민감하게 변한다. 스킨은 공간이 되어 가고 공간은 스킨이 되어 간다. 내외부를 통 과하는 흐름은 강밀 해지고, 경계는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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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체(AGGREGATION) and 단일체(MONAD): AGGRENAD ⓦ 칠천량 해전공원과 해수욕장 조성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이 지 역의 변화 속에 작은 펜션이 계획되었다. 어민들이 살아온 이곳은 곧 대중(Mass)의 집단적인 기억이 누적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곳에 찾아온 이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동일한 기억뿐 아니라, 누구나 자신만의(Individual) 기억을 위한 프레임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 다. 손을 모으면 하나의 대상으로 보이지만, 손가락을 벌리면 손은 손가락들의 집합이 된다. 그 중간쯤 이중적인 속성을 다 가지고 있는 모 호한 상태를 생각해 보았다. 손가락처럼 객실 유닛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유닛들의 집합체(Aggregation)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단일체 (Monad)로서의 완결성을 가진 상태(AGGRENAD)를 찾고 싶었다. 펜션은 마치 손에서 손가락들이 벌어지며 분기되듯 형성된다. 바다를 향해 벌린 각 유니트들은 주변의 섬들을 하나씩 가리키는 듯 뻗어 있다. 건물 주변을 감싸는 인근의 풍경은 보는 거리와 위치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프레임된다. 내부는 다섯 개의 객실과 작은 카페로 이루어져 있다. 3개 층의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엇갈려 쌓인 건물 중심부의 계 단실에서 객실들은 각기 다른 방향과 크기로 분화되면서 바다로 향한다. 각 객실의 바닥과 천장은 좌우로 어긋나게 벌어지며 주위의 풍경 을 빨아들이듯 열린 공간을 만든다. 그 끝에는 바다의 전망을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 모든 발코니가 다른 모양이며, 부분 적으로 하늘로 열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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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 07-08

2012•07-08 -

트 리포 098

ⓦ <근대 건축 탐사 28 | 손장원> 영천의 근대 건축 101

ⓦ <사진 더하기 건축 08 | 나은중+유소래 >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건축 The Decisive Moment and Architecture — 이완 반 IWan Baan 104

ⓦ <와이드 書欌 | 전진삼 > 국어 선생과 건축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짓기

106

ⓦ <와이드 리포트 1 | 와이드SA 아카데메이아 특강 | 강사 이종건 > 이종건 교수의 건축 비평 강의

111

ⓦ <와이드 리포트 2 | LA한국문화원 전시 | 송종열 > 미국의 젊은 한인 건축가들, 한국성을 말하다 116

ⓦ <WIDE eye 1 |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3> 공모전 > 1등상 ‘헤리티지 투모로우’에 건축가 첫 당선

118

ⓦ <WIDE eye 2 | <2012년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 대상작, 선원전의 상징적 의미를 되살리다 120

ⓦ <WIDE eye 3 | 전시 >

시베리안의 간절한 꿈 —곽재환의 <시베리안 랩소디 Siberian Rhapsody> 전 123

ⓦ 전진삼의 FOOTPRINT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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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근대 건축 탐사 28

영천의 근대 건축 손장원 | 본지 자문 위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

영천을 만나다 ⓦ 2년 전 1학기 강의를 마치고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경주로 가다가 벼르던 영천을 찾았다. 답사 대상지에 대한 사전 조사는 답사를 나서는 사람이 챙겨야 하는 필수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지에 가면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답사 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다 보면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는 다. 더구나 준비가 부족한 상태라면 아쉬움은 배가 된다. 느긋하 게 일정을 잡아 다시 찾아야 할 영천이다. 내가 아는 영천은 한 국 전쟁 당시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군을 물리치고 전쟁의 전환점을 만든 고장이라는 것이 전부다. 그런 배경으로 방문한 영천에서 뜻밖의 상황을 만나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르신! 여 인숙 건물이 아주 볼 만합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사진 은 뭐 할라고 찍노? 북한에 보낼라꼬.” 이 땅에서 같은 민족이 이념을 놓고 총을 겨누었던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넘었 건만, 아직도 남북한의 대결 구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실낱 같이 이어지던 화해의 빛은 최근 몇 년 사이 흔적마저 없어진 듯

영천역 급수탑—급수탑은 증기 기관차의 운행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운 구조물로 대부분 철근 콘크리조이다. 1967년 기차를 구동하 는 엔진이 디젤엔진으로 바뀜에 따라 쓸모가 없어졌다. 대부분 역사에 서 먼 외곽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관리 상태가 좋지 않다. 영천역 급수 탑은 비교적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하다. 과거는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을 넘어 미래 시제다. 역사 깊은 교통 도시 영천 ⓦ 태종은 즉위 13년(1413)에 이르 러 군(郡)이나 현(縣)임에도 고을 이름에 주(州)자가 있는 곳의 지명을 바꿀 것을 명한다. 이에 따라 고을에 큰 강이나 바다가 있는 곳은 주를 천(川)으로, 큰 산이 있는 곳은 주를 산(山)으로 지명을 바꿨다. 이렇게 생겨난 지명이 바로 인천(仁川), 익산( 益山)이며, 영천(永川)이란 이름도 이때 생겼다. 영천 근대 기행 의 주제는 기차와 교회에 있다. 영천은 예로부터 교통 요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지방 도시임 에도 중앙선과 대구선이 지난다. 여기에 경부 고속 도로와 국도, 지방도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사통팔달의 고장이다. 대구선은 ‘ 경동선(慶東線)’이라는 이름으로 1916년 동대구역에서 영천역 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개통되었다. 영천에는 금호역과 영천역 이 세워졌고, 1928년 10월에 이르러서는 대구에서 출발한 기차 가 영천을 거쳐 경주까지 운행되었다. 1938년 7월에는 영천에 서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운행 노선이 확장되어 영남 지역의 내

금호역사와 관사—영천시 금호읍에 위치한 대구선 금호역은 1918년 5 월 20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2007년 여객 취급이 중단된 역이 다. 대구선의 원래 이름은 경동선으로 우리나라에는 2개의 경동선이 있 었다. 하나는 대구~포항 간에 부설된 경동선(慶東線)이며, 다른 하나 는 인천~여주 사이에 놓인 경동선(京東線)이다. 이 두 노선의 또 다른 공통점은 민간이 건설한 사철이었고, 철도의 궤간이 762㎜인 협궤 선로 였다. ⓦ 큰 비가 내리면 자주 침수되어 운행에 차질이 많았던 경동선( 慶東線)은 조선 총독부가 인수해 표준궤도로 개조했지만, 수인선(水仁 線)과 수려선(水驪線)으로 바뀌는 경동선(京東線)은 폐선될 때까지 협 궤로 운행되었다.

Wide AR no.28 : 07-08 2012 Report


구 영천비행장 격납고—일제 강점 말기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하여 비행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와 봉죽리 일대에 7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비행기 격납고는 일부에만 거푸집을 대고 콘크리트를 타설한 탓 에 상태가 조악하다. 철근 콘크리트 타원형 구조물로 크기는 정면 폭 16m, 길이 15m, 높이 2.7~3.0m이며 뒤로 가면서 폭과 높이가 작아진다.

륙 거점인 대구와 동해안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발전했다. 현재

라 사람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상점은 없고, 읍내의 상권은 중국

는 대구와 영천을 연결하는 구간만을 ‘대구선’이라 한다. 서울과

인 7명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은 중국인에게

연결되는 중앙선은 대구선보다 20년 늦다. 1936년 12월 중앙선

구걸하다시피 생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집은 800

의 남부 기점인 영천역에서 착공된 선로 공사가 3년 간의 공사

호이나 초가집이었고, 전체 주택의 1% 정도만 일본식 기와집이

를 거쳐 1939년 12월 완공됨에 따라 영천은 동서(대구선)과 남

었다. 하천이 멀어 식수는 부족했고 어렵게 가설한 수력 발전기

북(중앙선)이 연결된 첨단 교통 도시가 되었다. 영천은 오래전

의 잦은 고장으로 전등을 켜지 못한 채 다시 등잔불을 켰다. 교

부터 이처럼 뛰어난 교통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으나, 도시로의

육 사정은 더욱 열악해 우리나라 사람 수의 1/100에 불과한 일

성장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본인이 다니는 학교는 2개인 반면, 우리나라 사람이 다닐 수 있 는 학교는 3개교에 불과했다. 다른 지방에 비해 근대화가 늦게

영천 곳곳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 1923년 9월에 발행된 <

시작된 탓에 영천은 다른 지방 도시보다 늦은 1923년 5월 5일에

개벽>에는 ‘곡향 영천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영천의 정

영천우편소에서 전화 교환 업무를 시작했고, 1932년에 이르러

황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영천에는 우리나

서야 조선 시대 관아를 개조해 사용하던 군청을 허물고 새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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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세웠다. 이 건물을 영천 최초의 근대식 건물로 표현한 신문

영천 과전동 성용환 가옥과 영천 구 화룡교(이상 등록문화재)

기사를 통해 영천의 당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영천은 2006

등 총 4기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보다 면밀한 조사로 영

년 3월 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금호읍 옛 영천비행장 격납

천이 갖고 있는 소중한 문화 자원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

고를 소유주가 철거하는 바람에 전국적 이슈가 되었던 지역임 에도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근대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구선과 중앙선에 세워진 역사와 관사, 완벽하게 남아 있는 지방 행정 관서, 공소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근대의 모 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님에도 이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지 않아 자천교회(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영천역 급수탑,

← 구 청통면사무소—오르내리창이 설치된 목재 비늘판벽, 건물 정면 중앙에 배치한 현 관과 급한 경사의 캐노피, 마름모 형태의 석 면 슬레이트를 올린 모임지붕 등 전형적인 일 제 강점기 건물이다. 게다가 본 건물 좌우에 는 부속 건물을 세워 전체적인 배치 또한 대 칭을 이룬다. 구 청통면 사무소는 일제 강점 기에 세워진 지방 관청 건물로서 가치가 높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등록문화재 지정 등 항구적인 보존 조치가 필요한 건물이지만, 목 록화 사업 보고서에는 누락되어 있다.

→ 영천 화산교회—1929년 11월에 개교한 화산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세워진 건물이다. 1967년 2월 화산초등학교가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한 뒤부터 화산공소로 사용했다. 1990년 에는 바로 앞에 지상2층 규모의 새 철근 콘크 리트 건물을 세워 화산공소를 이전하여 현재 는 비어 있다. 종탑은 공소로 쓰일 당시에 세 워진 것이며, 출입구와 창호 일부를 교체하였 고, 예배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 벽체 를 헐어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측벽은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했다. ⓦ 화산공소 는 1893년 용평공소로 세워져 1907년 5월 30 일 용평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15년에는 산 하에 하양공소(현 경산시 소재 하양성당)를 두기도 했던 공소지만, 현재는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1948년 영천성당에 소속되었다가 현 재는 1965년에 세워진 신녕성당이 관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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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사진 더하기 건축 08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건축 The Decisive Moment and Architecture

이완 반

Iwan Baan

나은중・유소래 | 본지 자문 위원, NAMELESS 공동 대표

사진의 발견 이후 재현의 수단으로서 사진이 갖는 파급력은 해당 분야를 넘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지배할 만큼 거대해졌다. 건 축도 이 흐름을 비껴나지 못했다. 모더니즘은 초기의 태성적인 지역성을 넘어 사진술의 보편화 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이미지의 대 량 복제를 통해 근대의 신화적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당시 이러한 매체의 흐름을 간파한 르 코르뷔지에는 군더더기 없는 건축 장 면을 위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건축 사진을 수정하고 덧입혀 출판물에 게재한 일화가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시점에, 건축가와 건축 매체에서 선호하는 건축 사진의 범주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정확한 프레임과 최적의 노출을 통해 한치의 흐트러짐 없 이 현실을 기록한, 그리고 건축을 읽는 데 방해가 되는 흔적들(그것이 그 장소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 혹은 행위 일지라도)을 말끔 히 제거한 건축 사진의 결과물은 실체와 재현 사이의 간극을 크게 만든다. 건축가들이 그들의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집착은 필연 적이다. 내재된 공간 이야기와 재료, 혹은 디테일에 대한 사고의 과정은 하나의 물리적인 대상, 즉 건축물로 귀결된다. 하지만 대 다수의 경우 우리는 그 물리적인 실체보다 종이 위에 재현된 몇 장의 사진을 통해 장소를 경험하게 된다. 건축가의 집착이 건물의 완공과 동시에 실체에서 미메시스(실체를 재현한 결과물로서의 사진)로 전이되는 합당한 이유일 것이다. I hated it. It was super clean, no people, bright sunlight…. — Iwan Bann 나는 건축사진이 싫었다. 빈틈없이 깨끗하고, 사람은 부재하며, 화사한 태양광에…. — 이완 반

KAIT Kobo, Kanagawa Institute of Technology・By Junya.ishigami + associates・for Domus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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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줄리어스 슐먼 사진상을 수상한 건축 사진가 이완 반(Iwan Baan)은 역설적으로 그의 사진에서 ‘건축은 배경(backdrop) 에 불과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배경이라는 대상을 통해 건축 사진의 ‘장소와 행위’를 바라보는 두 가지 틀을 제시한다. 1. 건축이 어떻게 장소를 점유하고 있는가. 이완 반은 자신이 담고자 하는 건축물에서 한걸음 물러나 주변 환경으로부터 대지를 기록한다. 이를 위해 헬리콥터 혹은 대지의 맥락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장소에서의 촬영을 통해 새로 구축된 환경이 도시 혹은 자연의 풍경 안에서 주변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기록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장소를 점유하는 건축물을 주체로서보다 대상을 둘러싼 환경으로 인식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완 반은 그의 사진 작업을 “건축 주변의 기록(Documentation around the Architecture)”이라고 이야기한다. 2. 건축이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 맺는가. 그의 건축 사진은 건물을 직,간접적으로 점유 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위에 집중한다. 이것은 기존의 건축 사진에서 흔히 목격되는 정적이며 고립된 장소의 기록이 아닌, 건축이 어떻게 사람들의 행위를 담고 상호적인 관계를 만드는지 보여 준다. 실제 그의 많은 사진들에서 건축물의 외형과 공간의 프레임 이 건축 자체의 구축적 사실 전달을 넘어 어떻게 사람들의 행위를 위한 배경으로 작용되는지 관찰할 수 있다.

Inner City Arts, Los Angeles・for Michael Maltzan Architecture

Towada Art Center, Towada・by Ryue Nishizawa・for Domus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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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ruction of the China Central Television Headquarters by Ole Scheeren and Rem Koolhaas・for OMA

이완 반의 토와다 아트센터(Towada Art Center by Ryue Nishizawa) 사진은 이러한 행위와 건축의 상호 관계를 효과적으로 드 러낸다. 백색의 분절된 미술관 건물은 프레임의 가장 뒤쪽에 배치되어 있다. 앞마당에는 현대미술관의 흰 벽과 강한 대조를 이 루는 붉은 개미 형상의 커다란 조형물이 놓여져 있다. 전면부에는 앞마당에 물을 주는 관리자가 포착되었다. 관리인이 사용하는 초록색의 호스는 바닥을 가로지르며 뒤쪽의 붉은 조형물과 색채적으로, 조형적으로 조응하며 건축물의 비워진 장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또 전면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벗꽃들은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할머니의 연분홍 머 플러, 자줏빛 옷과 조화를 이루며 그 순간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이러한 건축을 배경으로 한 일상의 순간 포착은 전체에서 부분들 사이의 새로운 맥락을 만들며 건축가가 의도했던 미술관과 도시의 소통, 관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이완 반의 이러한 장면 포착은 건축 사진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다큐멘터리적인 사진 행위, 소위 스냅샵으로 가능하다. 건축 사진 에 있어 디지털 장비의 보편화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형 필름 카메라의 버거운 사진 행위 이후 디지털을 통한 사진 작업 은 그나마 절차를 간소화시켰지만 정교한 구도와 깊은 심도를 위해 벌이는 사진 행위의 과정은 여전히 많은 인내를 요한다. 이완 반은 건축 사진을 시작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35mm의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삼각대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러한 행위의 가벼움은 현장에서 사진 작업의 유동성을 가능케 한다. 어시스턴트나 삼각대 없이 건축물을 돌아보며 직관적으로 장면들을 포착하면, 건물 주변을 지나다니는 이들은 그가 사진가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는 이런 점들이 그가 원하는 가장 적절한 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 건축 사진에 있어서의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이다. 또한 이완 반은 그의 사진이 리포터의 노트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여러 번 탈고를 해서 끝낸 잘 다듬어진 원고가 아닌, 현장에서 바로 적어 나간 생생한 실제 삶의 기록인 것이다. 그는 2005년 렘 콜하스와의 인연으로 건축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고, 때마침 시 작한 중국의 CCTV 건축 과정을 6년에 걸쳐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그는 두 달마다 현장을 방문해 사진으로 기록해 왔는데 공사에 투입된 10,000명이 넘는 숙련되지 않은 중국 인부들이 어떻게 최첨단의 건물을 완성하는지, 새로운 건축이 주변 의 낙후된 도시 공간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건물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건축 주변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포착함으로써 건물이 관계 맺을 도시, 사회, 경제 안에서 건축 형태 너머의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의 건축 사진은 고정된 건물 덩어리가 아닌 그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유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립된 실체로서의 건축은 종국에 미학적, 기능적 이야기로 함축될 수 있지만 이야기의 배경으로서 건축은 늘 변화하고 대화하며 문화로서의 장소 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건축이 ‘어떤 모습인가’보다는 ‘어떤 장소가 될 수 있는가’를 의도하는 이완 반의 사진은 오랫동안 굳 건했던 건축과 사진의 경직된 관계에 활기찬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 All images © Iwan Baan 1996–2010 www. i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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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書欌 | 전진삼

국어 선생과 건축가 |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짓기 한 사람은 우리 잡지의 정기 구독자이고, 한 사람은 우리 잡 지의 필자며 고문 역을 맡고 있으니 이 글을 통하여 사적으 로는 집안사람들에 대한 근황을 전하게 되었다. 앞사람은 주 택 설계를 의뢰한 국어 선생이고, 뒷사람은 건축가로 풍경 좋은 시골에 수년에 걸쳐 단독 주택을 지은 과정을 꼼꼼하 게 기록한 책을 함께 냈다. 건축가가 책의 첫 장에서도 강조 하고 있지만 집짓기 과정에서의 ‘건축주와 건축가 간의 은밀 한 연애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이럴 경우 직전까지의 둘 사 이에서의 은밀함의 가치는 사라지겠지만 공개된 연애담으 로 인해 건축의 로맨스 목록에 새로이 추가되어 만인의 사 랑을 듬뿍 받는 ‘로맨스 가이’로 두 사람의 건축 이야기는 앞 으로 널리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극영화 ‘건축학개론’이 첫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일훈・송승훈 지음, 서해문집 펴냄. 18000원.

사랑의 이야기를 집짓기에 담아 건축의 대중화를 선도한 올 상반기 문화판의 아이콘이었다면 이 책은 두 남자의 지적 투 지를 집짓기에 담아 ‘건축 대중화의 본령은 이런 거야!’라며

을 부여한다. 이 같은 구분이 마뜩잖지 않은 독자도 있을 것

영상 시대 대중의 눈높이에서 집짓기의 나침반이 되기를 의

이다. 건축 사진을 맡게 된 진효숙을 건축가에게 천거한 나

도하고 있는 교과서로서 하반기 서점가의 히트작 예감이 든

도 작게나마 이 책의 ‘착한 공범’으로 기여했으니 사실 이 소

다. 고등학교의 국어 선생으로 제자들에게 특별한 추억 만

개 글에 사심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다. 송

들기의 수업 방식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를 알아가는

승훈 선생이 건축가 이일훈을 찾아가는 경로에서 그가 뒤적

독특한 교수법으로 정평이 나 있는 송승훈은 주택 설계를 의

였다는 건축(비평)서와 국내 건축 잡지 10년치 분량을 눈감

뢰하는 초기에 이미 책으로 짓는 집을 구상한 것으로 알고

고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건축 책을

있다. 책이 그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해왔으니 그이의 이름

뒤지고, 관련 영상물을 확인하고, 건물을 찾아다니며 스스

으로 건축의 나침반을 구상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

로 건축 공부에 빠져든 저간의 일지까지 이 책에 빼곡히 들

이 아닐 수 없다. 주택 설계에 관한 수십 종의 단행본이 서점

어가 있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 엄청난 분량과 해제(그는

에 나와 있는 작금의 출판 지형을 살펴보면 다분히 유행가처

책을 읽고 솎아 내는 전문 책 털이 고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럼 집 짓고 사는 이와 집 지어 파는 이(그들 대부분은 건축

본문 주석에서 독자에게 보여준다)까지 덧붙여졌다면 솔직

가 또는 인테리어 작가가 주를 이룬다)의 경험을 수록하여

히 그가 지금처럼 따뜻한 건축주로 다가오기보다는 두려움

잠재적 의뢰인을 찾고 있는 뒤태가 독서 후 느낌을 반감시키

의 존재가 되었을 터다. 송승훈의 무지한 양, 정곡을 찌르고

기 일쑤다. 그에 반해서 이 책은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선물

덤벼드는 이메일을 이일훈은 상대가 숨 돌릴 겨를 없게 최대

하는 형식의 책으로 준비됨으로써 이전의 책들과 다른 매력

한 당일치기 글쓰기로 받아 낸다. 책으로 나온 글이 편집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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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단계에서 정도껏 손을 본 정제된 것이라 여겨지지만 하

화시키고 있는 것이 변화로 다가온다. 그는 종종 건물 내부

여튼 주고받은 이메일의 날짜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다 보

복도의 투시적 효과와 프로그램 계단, 벽체의 장치화를 통해

면 때때로 송 선생의 묵직한 질문까지 마파람 치대듯 답장을

기능적 보충은 물론 무미한 공간의 해학성(때론 장식성으로

쓰면서도 늘 깍듯이 예를 갖추고 의뢰인의 입장에서 최대한

드러나곤 하는데)을 제공하여 거주자의 공간 활용과 심미적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건축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오랜 세

흥미를 배가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이 집의 경우 ‘책의 길’이

월 집짓기를 수행해 온 건축가의 탁견과 늦바람 난 공부 벌

그렇고, ‘공중 서가’가 그렇다. 의뢰인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레의 건축 호기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비껴가며 통속적

를 궁리케 하는 그의 공간 작법의 출발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인 예산 문제, 주변인의 험담, 이웃집 민원 문제 등등을 지

건축주로 하여금 집의 사용 설명서를 스스로 만들고 익히게

혜롭게 헤쳐 나가는 과정이 기술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왜

하는 교수법(그런 면에서 이일훈은 치밀한 건축 선생이다)

건축가의 존재가 중요한가를 독자들에게 환기시켜 준다. 집

의 연장에서 읽히는 것이며, 무진장한 아이디어 충전소로서

은 짓는 것이기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건

건축가의 능력(이 면에서 그는 스승 김중업보다 할아버지뻘

축가의 화두에 건축주가 반응하는 일련의 과정은 주택 설계

스승 르 코르뷔지에를 빼닮았다)이 집의 구석구석에서 빛을

의 의뢰인이라면 누구든 경험했을 수 있는 집의 밑그림 그리

발하고 있음이다.

기(때론 베끼고 싶은 집의 이미지들의 모음)가 얼마나 허망 한 기계적 사고의 결과물인가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학습

독특하게도 그가 설계하고 지은 집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단

의 과정이기도 하다.

행본으로 작업하자는 주변의 입김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그때마다 책이 출간되었다면 이미 십여 종이 넘어섰을 터다.

이쯤 해서 이 책의 소재, 잔서완석루에 대한 건축 인상을 적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자비의 침묵 수도원’(미 출간), ‘기찻

어 보자. 이일훈이 걸어가고 있는 건축의 길목에서 더러 만

길 옆 공부방’(미 출간), ‘홍성주택’(미 출간), 『가가불이』(출

났던 그의 작품들의 일 경향성과 이 집은 어떤 차이를 지니

간), 『잔서완석루』(출간) 등이 있는데 이는 이일훈의 건축에

고 있는가? 이일훈의 건축은 그것이 도시에 있든 시골에 있

내재된 내러티브가 여타 건축가들에 비해 독창적이고, 확실

든, 건물의 성격이 어떻든 늘상 사방에서의 고른 입면성을

한 자기 철학을 배경에 깔고 있음에서 오는 이유이다. 또한

강조한다. 자연히 전후좌우 측면에서 조형적 다름(기능적

그와 건축주와의 교감이 통상의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서서

혹은 법률적 해석의 결과)을 적극적으로 디자인함으로써 건

정신적 연대로 묶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은 송승훈도

물의 표정을 다양하게 부여한다. 그것은 이일훈의 몸에 배어

같은 얘기를 적고 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집짓기를 통해서

있는 타자 존중의 생활 예법이 건축으로 드러나 있는 표현이

서로 닮아가는 일은 상대방의 존중과 존경, 그리고 자기 역

다. 이 점은 이 집에서도 동일한 조형 수법으로 비중 있게 나

할의 충실로부터 믿고 소망하며 사랑을 구현하는 일과 같다.

타난다. 이일훈의 착상과 이론화 작업 및 작품 발표로 우리

어떻게 사느냐의 답은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서 찾

옛 건축과 현대 건축을 잇는 독특한 공간 수법으로 자리매김

을 일이다. 각각의 집은 그에 대한 해석의 복합체일 때 존재

한 ‘채나눔론’은 이 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왕의 채나

의 의미가 커진다. ⓦ [글—전진삼(본지 발행인)]

눔론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의 건축 동선을 주요 골간으로 하는 ‘공간 전개형’ 배치 수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집에 서는 그의 표현대로 ‘시간 전개형 채나눔론’의 실험을 통해 집 내부의 방과 회랑형의 복도와 기능실로 건축 동선의 흐름 을 풀어 가는데, 이는 건축적 산책로와 미로의 개념으로 연 계되는 보편적 개념의 확장성으로 채나눔론의 속성을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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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리포트 1 | 와이드 SA 아카데메이아 특강

이종건 교수의 건축 비평 강의 강사 | 이종건(본지 편집 고문, 경기대 교수)

건축가에게 ‘비평’은 일상이다. 건축학도는 스튜디오에서 비평을 접한다. 여러 건축 잡지에는 건축에 관한 많은 글들이 실린 다. 온라인상에서도 건축에 관한 이런저런 평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비평인가?’, ‘비평은 어떻게 하는가?’, 혹 은 ‘왜 비평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또는 배울 기회가 없다. 한국 건축의 역사는 깊어져 가는데 비평가를 자처하는 이들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기존 평단이 메마른 만큼, 장래에 저널리스트나 비평가를 희망하는 이들이 건축적 글쓰기 혹은 방법론을 배울 기회 역시 빈곤하다. 지난 5~6월, 와이드에서 마련한 ‘이종건 교수의 건축 비평 강의’는 소수이 지만 건축 비평에 목마른 이들에게 단비 같은 강좌였다. 이종건 교수는 총 6번의 강의를 통해 건축 비평에 대한 학문적 이해 와 방법론, 구체적인 글쓰기의 전략, 그리고 한국 건축계에 대한 비평적 제안을 해 주었다. 우선 ‘왜 건축 비평인가?’(1강, 5 월 18일), ‘건축 비평이란 무엇인가?’(2강, 5월 19일)라는 주제를 통해 비평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 개괄했다. 이후 ‘건축 비평 은 어떻게 하는가?’(5월 25일)를 통해 미국의 저명한 건축 비평가들의 방법론을 소개했다. 그리고 수강생들이 직접 작성한 서 울시청사에 대한 비평문을 두고 ‘실제 사례의 분석과 평가’(4ㆍ5강, 5월 26일ㆍ6월 1일)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건축 비평을 위한 제언’(6강, 6월 2일)으로 숨가쁜 강좌를 마무리했다. [정리 | 김정은(도시건축 전문 기자,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왜 건축 비평인가? ⓦ 건축 비평(Architecture critic)을 왜 하는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적 차원에서 비평을 하는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 차원에서 비평의 존재 의 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개인적 측면에서 건축 비평을 하는 이유는 건축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길버트 하이트(Gilbert Highet →)는 그의 저서『The Art of Teaching』(1989)에서 직업인으로서 교육자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된다. 이 책에서 하이트는 좋은 선생이 되 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일 자체보다 그 학문 분과를 좋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신이 가르치 는 주제를 사랑하고 그 주제에 포함되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이 교육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것 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건축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건축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 어야 하고, 그 애정은 감정을 넘어 이성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또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건축 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습득하고 성장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은 선례와 선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1 그렇다면 우리에게 선례가 될 수 있는 건축 비평가들은 누가 있을까? 에이 다 루이즈 헉스터블(Ada Louise Huxtable), 블레어 캐민(Blair Kamin), 마이클 키멜먼(Michael Kimmelman),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 크리스토퍼 호손(Christopher Hawthorne) 등 은 건축 비평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건축 비평가들은 건축을 사랑 하고, 그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내적 욕구에 이끌려 스스로 비평가가 된다. 최근 발행된 알렉산 드라 랭(Alexandra Lange →)의 저서『Writing about architecture: Mastering the language of buildings of cities』(2012)는 건축 비평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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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머리에는 “어떻게 건축 비평가가 되는가”란 제목으로 여러 비평가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최초의 전업 건 축 비평가인 헉스터블은 뉴욕타임즈 커버스토리에 실린 건축물의 사진을 보고 이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편집장에게 보낸다. 그 글을 받은 뉴욕타임즈는 바로 헉스터블을 고용하고, 그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비평을 시작했다. 뉴욕시립 대학(City College of New York)에서 철학을 공부한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1910년대 하이라이즈 붐이 일 어났던 뉴욕의 거리에서 도시의 변화를 스케치하며 기록했다. 멈포드는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가 완공되자 마자 “미국 근대 건축에서 상상력과 지성의 가장 유감스러운 실패”라는 혹평을 담은 에세이를 <New Republic>지에 기 고했다. 이 에세이를 계기로 멈포드는 <New Yorker>지에서 스카이라인에 관한 칼럼을 요청받는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역시 자신이 살던 마을이 황폐화되는 모습을 보고 지방지에 글을 써서 스타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비평가를 만 들어 주는 제도는 없다. 대신 뜨거운 열정과 분노에 의해 지면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자청하여 투고하고, 그 글이 누군 가의 눈에 띄어 비평가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건축에 대한 개인적 욕망이 사회의 공적인 욕망에 부합할 때, 존 재와 사회 모두 확장된다. 역사/이론/비평과 내러티브 ⓦ 그렇다면 ‘왜 건축 비평인가?’하는 질문을 공적인 영역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건축이 무 엇이고, 건축은 어떻게 형성되는가?’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건축은 생존을 넘어선 잉여 욕망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잉여 욕망을 생산하는 것이 내러티브이다. 그런데 잉여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건축이란 이름 으로 규정해 나가는 것이 건축이다. 쉽게 말하면 내러티브가 없는 건물은 건축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내러티브를 다 루는 사람이 역사가, 이론가, 비평가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역사(history), 이론(theory), 비평(criticism)을 하나로 본 다. 역사는 당대 이전의 건축에 대한 내러티브, 이론은 초시간적으로 아이디어를 시스템화하는 것으로 시스템화된 내러 티브이다. 비평은 당대의 건축에 대한 내러티브이다. 역사란 승자의 역사이다. 즉 권력을 가진 사람이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따라서 비평은 역사를 다시 쓰고, 이 세 가지는 순환하게 된다. 그래서 비평의 선례는 대단히 중요하다. 일례로 현 대 건축을 정의했던 지그프리드 기디온(Sigfried Giedion)은 현대 건축의 본질을 공간으로 보고, 현대 건축이란 내ㆍ외 부 공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고 했다. 그의 프레임 안에서 현대 건축의 4대 거장도 나오지만, 그 프레임 속에 들 지 못하는 건물은 현대 건축에서 제외된다. 이렇듯 건축이 생산되고, 재규정되고, 소비되는 과정은 모두 내러티브에 의해 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내러티브의 틀이 없는 글은 평론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건축 비평이란 무엇인가? ⓦ 건축 비평이 ‘건축이란 무엇인가’하는 담론에서 출발한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고민 했던 철학자들의 시도를 통해 건축에 대해 접근해 보자. 세계적인 분석 철학자인 단토(Danto)와 하이데거는 공통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언어에 대한 규명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 규명하는 방법이 다. 예술(art)은 본래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예술과 기술이 미분화된 상태이다. 여기서 현대 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즉 어떤 낱말의 어원적(etymology) 의미를 규명하고, 그 의 미와 현실 사이에 불일치한 지점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본다. 건축에서라면 어떻게 적용될까? 건축에서 흔히 쓰는 컨셉트 (concept)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자. 컨셉트는 ‘임신하다’는 의미의 conceive(라틴어 concipere)에서 나온 말이다. 그 러므로 컨셉트는 마치 씨앗이 썩어 사라지고 나무가 되듯이, 무엇이 들어가서 사물의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소멸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컵셉트의 의미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새로

1 철학자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는 그의 저서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 1)』에서 새로운 지식은 항상 실수에 의 해 생겨난다고 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논문을 쓸 때 선행 연구를 검토하듯이, 선례와 선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해석학에서는 이를 전지식 (foro-Knowledge)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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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해석, 비판의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어원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둘째, 실제 예술 작품을 보고 예술이 란 무엇인가 규명하는 방법이다. ‘실제 예술작품 앞에서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현상학적 측면에서 예술이란 무엇 인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 비평가는 실제 건축물을 보고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볼 수 있을 것 이다. 셋째, 예술가를 통해 예술을 규명하는 방법이다. 예술가란 집단이 어떤 활동을 하는가를 통해 예술을 규명하는 것 이다. 마찬가지로 건축 역시 건축가를 통해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위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건축은 무엇인 가’를 규명할 수 있다. 이미 서구에서 혹은 선배들이 건축을 규정하여 왔지만 이 시대, 이곳의 건축은 우리 식으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하고, 그것이 건축 비평의 역할이다. 비평 정치학의 이름으로2 ⓦ 그렇다면 건축 비평이란 낱말은 무슨 뜻이며, 실제 비평가(critic)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또 실제 비평 작업(critique)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비평이란 “지식과 적절성으로 예술이나 문학 작 품을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따라서 비평은 예술 행위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대개는 비평을 작업이 끝나고 나서 따라가는 이차적 혹은 기생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평은 독자적이고 새로운 생산 활동이다. 왜 냐하면 건축은 건축가 개인이 만들었다기보다는 건축가가 속한 사회와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즉 건축가가 받은 교 육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이는 비평가가 건축가 혹은 건축물이 이 시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이야기할 수 있는 근 거가 된다. 따라서 건축가의 의도는 2차적인 자료에 불과하다. 비평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나눈다’, ‘분별(分割)한다’ 는 의미인 크리네인(chrinein)에서 비롯되었다. 비평이라는 것은 ‘분별해 내고’ 그것을 다시 ‘정리해 내는 지식’인 셈이 다. 그래서 비평은 반드시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성좌(constellation, 구성) 또는 좌표계를 만들어야 한다. 흩어진 별들을 엮어 눈에 보이지 않는 별자리를 만들 듯이, 추상적인 개념을 배치하여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 는 것이 비평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어떤 틀(frame)로 분별할 것인가? 혹은 이러한 틀은 어디서 가져올 수 있는가? 건축 은 항상 건축 외부의 영역과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 따라서 철학,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등 주변의 학문을 오가며, 혹 은 일상과 건축을 오가는 경계점에서 틀을 만들어야 한다. 즉 건축 바깥의 일상과 우리의 시대와 건축이 어떻게 관계되는 가의 문제이다. 건축이 개인의 작업이라면 건축 비평은 이를 사회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비평은 정치학이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권력의 정당성을 찾고 가치를 배분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의 의미를 캐서 그것을 우리의 삶의 현 장과 대질시켜 그 가치를 측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기존 권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쟁투하고, 그 안에 서 자유롭게 설득할 수 있는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비평의 근간이다. 건축 비평은 어떻게 하는가? ⓦ 알렉산드라 랭은 『Writing about architecture』에서 현대 비평의 갈래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형식주의적 접근(formal approach), 경험적 접근(experiential approach), 역사적 접근(historical approach), 행동주의(activism)가 그것이다. 첫째, 형식주의 비평은 건물의 추상적인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은 마천루를 미학적으로 바라보고 건축의 영역에서 논의3한 최초의 사람이다. 당시의 마천루는 개발업자나 엔 지니어, 시공업자 등에 의해 주도되는 산업의 산물이었고, 건축가에게는 포장지 디자인과 같은 피상적인 역할만 남겨졌 다. 그런 상황에서 설리반은 마천루의 구조와 형식 자체에 주목하고, 형태는 본질에서 계획적으로(programmatic) 도출

2 ‘비평 정치학의 이름으로’는 2001년 건축가협회 금요토론회의 발표 원고로, 이번 강좌에서 참고 문헌의 하나로 활용되었다. 이 글은 이종건 의 저서『텅 빈 충만』(2004)에 재수록되었다. 3 Louis Sullivan, ‘The Tall Office Building Artistically Considered’, <Lippincott's Magazine>, March 1896. 루이스 설리반은 마천루야말로 20세기 건축가들의 과제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이 글에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는 영향력 있는 경구를 남겼다. 4 Lewis Mumford, ‘House of Glass’, <New Yorker>, August 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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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루이스 멈포드는 마천루라는 건물 종류에서 이전의 건축 논의와는 다른 게임을 시작할 것을 제안 한다. 설리반이 고층 빌딩을 독립적인 조각물로 봤다면, 멈포드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오픈스페이스와 오피스의 채광, 그 리고 미국 낙관주의(optimisim)의 상징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고찰4했다. 설리반이 제도판에 앉아서 비평을 했다 면, 멈포드는 마치 영화를 찍는 것처럼 건물 외부의 도로에서 내부로 들어가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을 비평의 경로로 삼는 다. 헉스터블 역시 오피스 빌딩을 비평했는데, 시민의 시선으로 건물이 도시에서 만들어 내는 공간에 관심을 두었다. 일 례로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조각 레드 큐브가 건물 앞에 놓여 있을 때 이 건물과 조각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혹은 그 조합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즉 건물과 도시의 관계를 솔리드와 보이드의 관계로 파악하고 오픈스페이스를 그녀의 테마로 삼는다. 이를 위해 그녀는 현장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기록하고 글의 밑감으로 활용 한다. 흥미로운 점은 비평가는 에디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에디터란 무수히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특정한 요소만 잡아내어 자신의 이야기에 담아낸다. 결국 신선하고 가치있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경험주의적 접근 방식은 허버트 뮤챔프(Herbert Muschamp)가 정의했다. 그는 건축물과 독자의 교감을 위해 영화, 예술, 책, 시 등 무엇 이든 끌어들여 글을 풀어낸다. 그는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을 마릴린 먼로의 화신이라고 칭한다. 그 둘 모두 미국적(인) 이며, 스타이고, 섹시하고, 주목받고 싶어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든다. 이를 통해 뮤지엄을 관광과 경제 개발, 문화의 세 계적 무대의 배우로 돌려놓는다. 셋째, 역사적 접근은 폴 골드버거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골드버거는 건물이 아니 라 건축가에 관심을 두었다. 일례로 허스트타워(Hearst Tower)를 비평하면서, 그는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를 모 더니즘의 모차르트라고 말한다. 과장된 비유라 하더라도, 포스터의 여러 작업들에 투영된 속성이 모차르트의 그것과 일 치한다면 이러한 비유는 설득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건물을 생산하게 된 더 큰 맥락(국제적 건축 무대)에서 건축가 의 작업을 바라본다. 건축물을 건축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내는 내러티브 속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비평에서 도시와의 관계라든가 보행자의 경험 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행동주의적 비평이 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가장 저널리즘적인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 소킨(Michael Sorkin)이나 제인 제이콥스가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한다. 건축가였던 마이클 소킨은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가 제안한 휘트니 미술관 증축안에 대해 혹독하 게 비판한다. 소킨은 이 글5을 통해 일약 유명한 비평가로 성장했고,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안은 결국 부결된다. 물론 실제 로는 소수지만 다른 시각의 비평도 많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feminism) 비평과 탈식민주의적 시각(postcolonialism) 의 비평이 있다. 베아트리츠 꼴로미냐(Beatriz Colomina)6는 페미니즘 비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꼴로미냐는 기디온이 정리한 건축 역사에서 제외된 아돌프 로스 같은 건축가를 복위시킨 비평가이다. 기디온이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평가했 던 르 코르뷔제와 아돌프 로스는 대척점에 서 있는 건축가이다. 코르뷔제의 건축이 남성적이고 지배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아돌프 로스의 건축에는 제3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코르뷔제의 건축에서는 필로티를 세워 대지를 지배하 고 건축적 산책로를 통해 건축이 진행된다. 사진이 잘 나오도록 건물을 디자인하고, 실제 사진을 찍는 위치나 각도도 정 해 준다. 반면 아돌프 로스는 당시에 이미 건축이 미디어에 의해 소비되고 흡수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건축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렇듯 비평에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으며, 다른 관점에서 관심받지 못했던 건 축가를 정당한 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 한편, 탈식민적 관점은 특히 우리나라처럼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국에서 절실 하게 요구되는 관점이다.

5 Michael Sorkin, ‘Save the Whitney’, <Village Voice>, June 25, 1985. 6 꼴로미냐의 대표작으로 저서 『프라이버시와 공공성 : 대중 매체로서의 근대건축 Privacy and Publicity : Modern Architecture as Mass Media』 (1994)와 편저『Sexuality and Space』(199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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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전략 ⓦ 글쓰기와 비평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독자의 가슴에 불을 댕겨 실제 가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성 공한 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비평가들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건축물의 인상을 과장하 거나 파격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글쓰기 전략을 구사한다. 일례로 뮤챔프는 낭만적이고 사적인 글쓰기로 프랭크 게리 (Frank Gehry)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평론에 정도(正道)는 없다. 그렇지만 좋은 평론을 관찰하면서 그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렇듯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사람에 대한 생생한 묘 사(description)가 필요하다. 글의 첫머리에 건축가에 대해 간략하지만 인상적인 묘사를 두어 독자들이 글의 윤곽을 이 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역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따라서 앞선 것에 대한 견해 나 반박, 혹은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청이 지어졌다면, 이 시청은 다른 시청과 어떻게 다른지, 혹 은 시청이라는 건물은 역사적으로 어떠했는지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선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글의 권위를 확보할 수 없다. 덧붙이자면 글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에 관해 깊이 있고 상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개념 이든 사례이든, 전문적인 식견이 담긴 짧은 언급을 통해 권위 있는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셋째,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 독 자를 지겹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건축이 어떻게 보이는지, 또 어떤 느낌을 만들어 내는지 등 상상할 수 있는 단서를 주어 야 한다. 예를 들어 헉스터블은 상공회의소 건물을 ‘프렌치 빵(French pastry)’에 비유한다거나, 연방통화기관을 스톤월 페이퍼에 빗대는 등 문학적 비유를 통해 건축물의 형태적 특징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주장(point)이 선명하 게 드러나야 한다. 헉스터블은 1,200개의 단어를 통해 그녀의 요점을 전달한다. 이러한 요점을 통해 독자들은 글의 방향 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우리 건축 비평을 위한 제언 ⓦ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조건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대의 우리나라는 어느 지점에 있는지 고찰하고, 그 안에서 내가 주장하는 비평의 가치와 형식을 찾아야 한 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대를 통과했다. 그 과정에서 ‘건축’이란 용어를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 한 생각이 확립되어야 문화재가 무엇인지, 문화재를 보존할 것인지 등의 다른 문제들도 풀려나간다. 우리가 과연 서구의 방식으로 건축 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맞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의 조건을 보건데 게임의 룰을 바꾸기 어렵다면 제3 의 길을 찾아야 한다. 건축은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화도 변화한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 자체를 대면하고, 인식하고, 토론하고, 비판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비평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 은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바로 프로가 되어야 한다. 프로가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활동 기반이 주어지지 않는다. 프로 란 지식을 체계화시키고, 그 지식을 전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체계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프로로 대접한다. 그리고 나만의 체계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만들 수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책을 보고, 그 참고 문 헌의 참고 문헌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 이번 강좌는 건축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부터 글쓰기의 사소한 원칙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에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비평 강 의를 접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많은 단서들을 뿌려 놓은 셈이다. 이런 실마리를 토대로 나만의 비평 방법과 아이디어를 찾 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모든 노력에 선행되는 것이 바로 건축 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다. 이번 강좌 에서 이종건 교수의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글을 쓰는 목적은 바로 우리 건축 현실에 대한 자각과 분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평적 글쓰기란 가치를 투쟁하는 일이자 사회에 대한 저항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번 강 좌를 디딤돌 삼은 참가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는 비평적 목소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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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리포트 2 | LA한국문화원 전시

미국의 젊은 한인 건축가들, 한국성을 말하다 <인사이드 아웃 : 7인의 건축에 대한 생각> 展, LA한국문화원, 2012.6.9.- 6.28. <Inside out : 7 architectural thoughts>

전시장 풍경, 사진 LA한국문화원.

글 | 송종열(경기대 건축대학원 졸업, 번역 활동 중)

7인의 엘에이 한인 건축가 전시 ⓦ 문화의 용광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7명의 젊은 한인 건축가들이 2010년 10월 ‘한 국성(koreanness)’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는 ‘Inside Out’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열 었다. 수전 손택은 1964년 에세이 『캠프에 관한 단상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캠프(Camp)라는 주제를 놓고 근엄해지려는 것과 논문을 쓰듯 이를 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아니 내가, 되든 안 되든 캠프에 관련한 보 잘것없는 글을 써 보련다.…(중략)…나는 캠프에 강하게 끌리며, 또 그만큼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것이 내가 캠프를 논하고 싶은 이유이며, 논할 수 있는 이유다.” ‘인사이드 아웃’에 대한 글도 일정 부분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한다. 전시 코디네이터, 이상대의 표현을 빌리면 ‘Inside Out’은 장소의 경계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 주장이라는 도전에 맞선 움직임을 은유적으 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nside Out’이라는 용어는 관람자들은 물론이고, 전시를 준비한 작가들도 정확하 게 포착해 낼 수 없는 미끄러짐이 있다. 이 용어에 대한 (해석상의) 미끄러짐은 전시자들의 다양한 접근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 다. 이번 담론을 채우는 각기 다른 주제는, 한편으로는 그만큼 다양한 의미 부여와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이 들 주제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아래의 열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각각은 일정 부분 겹쳐지고 맞닿아 있는 것들이다. 마치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더라도 바람에 쓸려 넘어진 풀 잎사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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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쳐지고 맞닿아 있는 주제들 ⓦ 우선, 김경순의 <집합적 변형 : 건축에서의 인지 공간>은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본질 적으로 ‘일상의 삶’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그는 파편적인 삶의 경험과 그러한 경험들의 누적인 문화 형태가 맺는 관계,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인지하는 방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김동우의 <상(床)과 건축 사이의 캐스트 스페이스>는 구체적인 일상 사물인 상(床)을 개입시킴으로써 세계화의 틀에서 이면으로 밀려난 ‘개별 문화의 정체성’이 겪는 변화와 단절에 관한 위기의식에 집중 한다. 유송희의 <콩글리쉬 스페이스 : 한국화된 프랭크 게리>는 김동우가 보여 주는 입장과 달리, 이 같은 변화와 단절을 위기 로 인식하기보다 ‘변화가 지닌 가능성’과 그로 인한 상대성 그 자체에 주목함으로써 오히려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정위를 강화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이상대의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Los Angeles Affordable Apartment)> 은 앞의 세 사람과 달리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접근방식으로, 문화적 정체성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외연적 표상보다 ‘전통 적인 공간 구성’을 유형화(prototype化)하여 이를 주거나 복합 단지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공간의 구성 인자로 활용한다. 이 외에 안주호의 <가평, 안씨 주택>은 한옥 공간이 지닌 유연성(flexibility)을, 이웅희의 <벽을 넘어서(Beyond the wall)>와 임창 석의 <코리아타운, 도시적 개입(Koreatown Urban Intervention)>은 담과 청기와 같은 한옥의 물질적 구성 요소를 직접 ‘한국 성 논의’의 주제로 삼는다. koreanness 혹은 multidisciplinary aspect of architecture ⓦ 이들 전시 작품의 경향을 비교해 볼 때, <인사이드 아웃> 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작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 —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 을 바탕으로 ‘문화적 정체성’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성(koreanness)’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이며, 두 번째는 문화적이고 민족지학적인 접근보다 최근 서구 건축 이론에서 언급되는,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건축의 양상(multidisciplinary aspect of architecture)에 관심을 두는 태도다. 전자의 태도는 세계의 주도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문화적·정치적·경제적) 주변부이자 소수 민족이 주류 사회 — 다문화 사회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있는 미국에서도 명백히 존재하는 — 에 속하려는 과정 혹은 다양한 민족적·문화적 층위에 융합하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되는 양상인 반면, 후자의 태도는 ‘민족적·문 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 (이미 주류 사회에 속해 있는 학자들이나 건축가들이 그렇듯) 다른 학문 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건축의 현상’을 해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려는 입장이 주를 이룬다. 전통이나 정체성이란 것이 워낙 논하기 힘들긴 하지만, 특히 ‘한국성(koreanness)’을 다루기를 꺼려하는 데는 몇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선 그것이 단순한 물질성만을 지 칭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한국적인 정서’라는 지극히 규정하기 힘든 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정서를 표 현하는 말들이 수없이 많은 것도 논의의 범주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기껏 내놓은 몇 가지 정의 — 정 의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 마저도 그리 만족스러울 만한 게 없다는 데에 있다. 또한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성’에 대 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논리로 무장한 채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서구 이론과 브랜드건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담론의 공간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것도 이런 분위기를 암묵적으로 승인하게 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인지 공간>, 김경순 작, 사진 김경순. 김경순의 ‘인지 공간’은 구속계(Bound System)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구속계는 (개개인 의 경험이나 일상의) 파편들이 지니는 잠재력과 그 경계를 한정하는 시스템 사이에 작동 하는 역학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부분으로 나뉘어진 오브 제들(Segmented Objects)은 일상의 기억과 경험을 추상적으로 보여 주는 장치다. 그렇다 고 해서 그가 일상의 파편들이 지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 한 파편들은 어느 순간 (특정 집단이 지닌) 삶의 패턴과 문화-더 크게는 시스템이라 일컫는 것들-를 드러내는 인지 공간을 배태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파편들이 누적되어 형성된, 독 립체(Entity)를 인식할 수 있는 인지 공간은 경험들 내부가 아닌 경험들 외부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비판적) 거리 두기와 보편자를 상정하는 아르키메데스적 준거점(Archimedean Point)과 (이를 특정하는) 아나모르포시스적 시점은 (경험) 외부에 자리한 인지 공간을 드 러내는 이중적인 구속 장치다. 그러므로 인지 공간은 본질-개방된 기하학적 구조물(Open Geometric Structures)로 표상된-을 파악하고 부분과 형상의 관계를 포착할 수 있는 유일 한 장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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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글리쉬 스페이스>, 유송희 작, 사진 유송희. 유송희는 ‘콩글리쉬’라는 중간 언어(Interlanguage)의 지위를 통해 세계화의 틀 속 에서 진행되는 ‘변화(Variations)’의 상황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녀가 말하는 <콩 글리쉬 스페이스>는 이러한 변화 과정에 관련되어 있는 공간이다. 알다시피, 중간 언어는 아직 충분할 만큼 능숙하지 않지만 목표로 하는 언어에 거의 근접해 있는 ( 그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 발전시킨 언어 체계다. 따라서 중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부정확한’ 발언(Utterances)을 양산해 낸 다. 유송희가 제시한 <콩글리쉬 스페이스> 역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중간 언어(콩글리쉬)는 목표로 하는 언어(잉글리쉬 혹은 지배적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사고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중간 언어가 지닌 긍정적인 힘이자 존재 이유일 것이다. 다 시 말해, 그러한 과정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필연적으로 변화의 가능성 을 내포하고 있고, 무엇보다 지배적인 힘을 끊임없이 상대화함으로써 스스로의 자 리를 인식하게 하는 기회를 부여한다. 이는 곧 ‘부정이 내포하고 있는 잠재성’이다. 즉 <콩글리쉬>라는 부정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콩글리쉬 스페이스>라는 ‘오염된’ 공간이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극을 마주하는 장(場)이 되는 것이다.

네 개의 주목할 만한 개념 ⓦ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다시 ‘한국성’을 거론하는가? 그것은 아마 작가들 스스로가 처 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삶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될 사건(혹은 일)이 비교적 드 문 한국 땅이 아니라, 이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는 자극으로, 마치 일상처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이런 물음은 ‘일상화된 자극’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정체성의 문제’는 한국 땅에서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첨예하게 삶에 끼어드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그들이 ‘한국성’을 거론하는 일은 새 삼스러울 게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성’이 지금에서야 다시 ‘담론의 공간’으로 들어온 것은, 역설적이기는 해도 그만큼 ‘ 정체성의 문제’가 그들에겐 ‘일상’이 되어 버린 탓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전시에서 작품의 개별 주제가 보여 주는 시 각상의 차이는 문제를 풀어내는 ‘개념적 장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장치들은 그들이 ‘한국성’이란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다루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구체화하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제시된 여러 ‘개념 적 장치’들 — ‘정체성 형성’에 관한 관념적·추상적 해석에서부터 ‘공간 구성’이라는 실제적인 적용에 이르는 — 중, 네 개의 주 목할 만한 개념 — 인지 공간(Cognitive space), 캐스트 스페이스(Cast space), 콩글리쉬 스페이스(Konglish space), 다공질 공 간(Porous space) — 을 찾아낸 것은 이번 전시가 거둔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해석과 가능성, 그리고 한계 ⓦ 이 네 가지 공간 개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해석과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들이다. 이를 테면 김경순의 <인지 공간>은 파편화되고 일상적인 경험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 방식을 통해 일상의 피상적인 이미 지가 자칫 한정된 메시지로 축소될 가능성을 피하면서도 일상에서 드러나는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를 통 해 현상과 뭐라 말할 수 없는 본질(intangibe substance)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물질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김동우 의 <캐스트 스페이스>는 시선의 흐름을 관찰자의 시점이 아파트 ‘안’에 있든 아파트 ‘밖’에 있든 ‘수직블라인드 → 색선’으로 고 정시킴으로써 피할 수 없는 세계화와 그로 인한 문화적 위기를 현대 도시인의 시선으로 표현해 낸다. 특히 유송희의 <콩글리쉬 스페이스>는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이 개념을 통해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대다수의 상징적 건물(iconic buildings)이 의도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형태와 가시성을 활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공모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송희의 실험적 작업은 ‘한국화’와 문화 자본의 관련성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상대의 <다공질 공간>은 전통적인 공간 구성이 어떻게 삶의 질과 관련된 현대의 주거 (단지) 작업에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 여 준다. 그렇지만 그들의 개념적 장치들이 지닌 논리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작업이 애초에 의도했던 ‘한국성’과 관련 된 물음에 적절한 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다. 김경순의 작업에서는, 한국성 논의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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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도 한국성을 드러내는 어휘 — 그것이 정서든 물성이든 일반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 — 를 찾을 수 없다. 비록 그의 작업이 ‘일상적인 삶’에 대한 경험이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롭게 일구는 단초라는 인식에서 출발 한 것이라 하더라도 추상적인 연결에 지나지 않고, 정작 한국성의 논의에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 다. 김동우의 작업은, 설령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부각시키는 일이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긴급한 과제였을지라도 초기 의 추상적 단계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 전통 오브제를 한국성으로 보편화시키는 과정에서 드러난 ‘비약’은 오히려 (개념 작업에서 그나마 지니고 있던) 한국적인 물성까지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리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유송희의 경우, ‘콩글리 쉬 스페이스’를 구체화하고자 시도했던 <한국화된 프랭크 게리(Frank Gehry koreanized)>라는 실험적 작업에서 ‘프랭크 게리’ 라는 상징적 건물(iconic buildings)을 생산해 온, 소위 스타 건축가(star architect) 혹은 스타키텍트(starchitect)를 택한 것이 오류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게리의 건축 어휘는, 일반화나 보편화와는 반대되는, 이미 네임-브랜드(name-brand)를 갖춘 시 그너쳐 건축(signature architecture)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택이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그녀의 덤덤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카콜라(Coke)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듯 스타키텍트에 의해 생산된 문화 자본을 우 리의 입맛이나 습관에 맞출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처럼, ‘보편적 어휘가 아닌 특수화된 어휘를 한국화(koreanize)한다는 것

<캐스트 스페이스>, 김동우 작, 사진 김동우. 김동우의 캐스트 스페이스는 ‘균열된 시각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는 우선, 한인 사회의 세대 간 문화적 차이를 메우고 이어줄 수 있 는 연결 고리로 전통적인 소반, 즉 상(床)을 상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형상(Figure)을 직접적으로 내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보기에 한국적 정서와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 단서는, 적어도 미국 사회에서만큼은 외연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면 적 정체성을 은폐하는 (미국) 아파트의 외피-블라인드-의 이면에서만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체성은 확고하고 단단한 것이 아니라 ‘균열이 가 있는 정체성’이다. 이와 같이 그가 제시하는 상(床)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상(床)은 미국 내에서의 삶이 은 폐해 온 정체성의 균열과 위기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러한 균열을 봉합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게스탈트적 도식(형상-배경)을 이용한 그의 개념 이미지는 이러한 상황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명확한 형상’과 ‘배경만 남은 텅 빈 형상’은 각기 ‘확고한 정체성’과 ‘(미 국이라는) 배경 속에서 흔적만을 남긴 텅 빈 정체성’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형상(Figure) 혹은 상(床)의 치환-솔리드(Solid)로부터 보 이드(Void)로의 치환-은 다름 아닌 ‘정체성의 균열’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균열은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따 라서 무언가를 은폐하는 (아파트의) 수직 블라인드와 그 이면에 자리한 삶의 양태-시간의 흐름, 변화해 가는 삶, 정체성 혹은 정서의 변 화-는 변증법적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관계는 김동우의 작품에서 흰색의 수직 블라인드를 닮은 구조물(A Vertical-Blind-Like Structure)과 그 틈새로 비치는 검정-빨강의 색선으로 나타난다. 즉 감정을 ‘배제하는’ 구축물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색선의 대립으 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대립 관계 속의) 긴장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모호한 용어 <캐스트 스페이스>에 관한 김 동우의 정의-‘형상(Figure)과 맞서 있는 (혹은 형상과 대비를 이루는) 배경(Ground)을 구체화하는 공간’이며 ‘관찰자와의 거리, 깊이 상대성을 시각화하는 공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캐스트 스페이스는 ‘정체성의 균열’을 암시하는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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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공질 공간>, 이상대 작, 사진 윌리엄 조. 이상대의 다공질 공간은 전통적인 공간 구성(채, 마당, 골목길)이 빚어낸 공간이 다. 이러한 공간을 활용한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Affordable Apartment)> 은 적어도 세 가지의 이슈가 결합된 복합 단지다. 대도시 내 저소득층의 주거 문 제, 단지 내 공용 공간을 매개로 한 소통 중심의 인간 행위, 그리고 건축과 주변 경 관과의 관계가 그것이다. 이 건물이 지닌 수직성은 한정된 부지와 높은 지가(地 價)를 고려한 수직으로의 확장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접근에도 불구하 고 그의 작업을 독특하게 하는 것은, 그가 <다공질 주택(Porous Housing)>이라 는 개념을 통해 ‘주거가 사회적 소통 수단일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는 점이 다. 대개 주거는 소통의 공용성(Communality)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우선시 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말은 얼핏 부조리한 가설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은 (한국의) 전통 촌락에서 볼 수 있는 공 간 구성을 주거 단위(Dwelling Unit)로 재설정하고, 그 단위 요소들을 모아 맞추 는 데서다. 이렇게 조립된 주거 단위는, 마치 퍼즐처럼 매스와 보이드가 교차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로 인해 전체의 볼륨은 다공성(Porosity)을 띠게 된다. 이 러한 성질은 인위적인 파내기(Digging Out)가 아닌 전통적 공간 구성이 지닌 개 방성(Openness)을 통해 자연스럽게 획득된 것이다. 또한 단일 ‘주거 단위’를 집 합 주거로 확장시킴으로써 선뜻 내세우기 어려웠던 (인간 행위에 있어서의) ‘소 통’ 개념을 덧붙일 수 있는 당위성을 끌어안는다. 이처럼 둘 이상의 주거 단위가 함께 이용하는 보이드 공간은 (개별 주거를 분리하는 동시에) 도시의 생활 방식을 공유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장소가 된다. 이외에도 다공질 공간은 건축과 주변(경 관)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이를 테면 ‘침투가 용이한(Permeable)’ 공간의 성질 은 건축과 경관과의 엄격한 경계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공간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 다. 또한 건축으로 깊숙이 유입되는 풍부한 자연광과 통풍은 건축과 (자연) 경관 간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콩글리쉬’와 ‘한국화하는(koreanize)’라는 단어가 풍기는 유사한 분위기로 인해 스스로 <콩글리쉬 스페이스: 한국화된 프랭크 게리>라는 설정에 감춰져 있는 함정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 심스럽다. 게다가 그녀의 말대로 게리의 건축 어휘를 위상학적으로 뒤바꾸고 변형을 가했다 하더라도 ‘한국화된(koreanized)’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한국적인 요소들 — 솟대, 오방색, 홍살문 등 — 로 치장된 <오염된(contaminated) 프랭 크 게리>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대의 작업은, 저소득층이 속하는 거주자들 대다수의 삶이 그렇듯, 외면하기 힘든 현실 문제에 직접적으로 천착한다. 그들에게 정체성이니 전통성이니 하는 문제는 팍팍한 삶 앞에서 한낱 부차적 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가 풀어내고자 한 것도 매일같이 고투해야 하는 현실, 바로 그것일 수 있다. 그렇지 만 그러한 와중에도 ‘한국적 정서’를 좀더 구체적인 상태로 포착하려는 노력이나 시도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왜냐하면 일상적 인 삶이야말로 정체성을 실현하고 발현하는 최초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맺는 말 ⓦ 어쨌거나 이번 기획 전시처럼 서구 이론과 브랜드건축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있어서 전도사의 역할을 자처해 온 이 들 유학파들이 ‘한국성(koreanness)’에 관한 논의를 한국 땅이 아닌 미국 내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 한 일이다. 그들 스스로도 다양한 민족적·문화적 층위에 융합되는 방법에 관한 완벽한 해법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주제에 관한 대안(對案)은 늘 ‘현재의 상황에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 듯이 ‘한국적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이 문제는, 사회 구조와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고정불변의 원형(archetype)으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제로-합-게임(Zero-Sum-Game)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한인커뮤니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에 관한 물음으로만 그 치지 않는다. 전시 제목으로 내세운 <인사이드 아웃>은 ‘그들 나름의 깨달음과 그들의 감수성이 빚어낸 첨예한 갈등’을 건축을 통해 구체화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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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1 |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3> 공모전

1등상 ‘헤리티지 투모로우’에 건축가 첫 당선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주관하는 건축 설계 공모전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의 수상작이 지난 6월 29일 발표됐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이란 주제로 서울시 종로구 서인사마당에 신축될 전통문화 복합 시설을 대상으로 개최되었다. 올해 공모 내용은 지역·문화·역사적 특성과 시대와 장소성을 고려한 설계 및 프로젝트 제안으 로, 적층된 역사와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인사동이라는 장소에 공공의 가치 그리고 특별한 보편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접근을 시 도해 보고자 했다. 또한 올해는 종로구청과의 MOU체결을 통해 당선작의 현실화 방안을 모색하고 실제로 시행 가능한 공모전 으로 발전시켜, 보다 심도 있는 고민과 탐구의 장이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과년도에 비해 건축 실무자들이 높은 참여율(1회 17%, 2회 19%, 3회 43%)을 보였다. 심사 위원장으로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참여하였으며, 안상수 홍익대학교 교 수가 초청 크리틱으로 심사에 참여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252개 팀(460명)이 참가 신청을 하고 49개 팀(97명)이 최종 작품 을 제출했다. 이중 1등 상인 ‘헤리티지 투모로우’에 1개 팀, 2등 상인 ‘헤리티지 스피릿’에 2개 팀, 3등 상인 ‘헤리티지 챌린지’에 7개 팀이 선정되어, 총 10개 작품이 수상작으로 정해졌으며, ‘헤리티지 투모로우’와 ‘헤리티지 스피릿’ 수상자에게는 각각 1,000 만 원(상금 500만 원, 입찰 참여 시 진행비 500만 원 추가 지급), 200만 원의 상금과 건축가와 떠나는 해외 건축 탐방의 기회가 제공되며, 특별히 올해 ‘헤리티지 투모로우’ 수상자에게는 종로구청에서 시행하는 본 대상지 제안서 입찰 참여의 기회가 주어진 다. 또한 ‘헤리티지 챌린지’ 수상자에게는 아름지기 연회원권과 공모전 도록이 증정된다. 올해 1등 상인 ‘헤리티지 투모로우’에 는 기억의 축적인 인사동의 역사성과 그 기억을 소유한 개인, 행위 또는 시대를 환기시키는, 역사의 철학을 담는 인사동의 모습 을 제안한 송률과 크리스티안 슈바이처Christian Schweitzer(Supa Architects)의 <헤리티지 투모로우 서인사마당 - 전통 복합 문화 센터>가 선정되었다. 승효상 심사 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전체를 두 개의 매스로 분리하여 사이 공간을 오픈 스페이스로 두어 두 도로를 연결시킴으로써 주변과 좋은 관계를 가졌다. 현재의 기억을 유지하도록 한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것을 배려한 본 건물의 지붕 경사와 한옥의 시각적 애매모호함을 연상시키는 입면의 루버 처리 등 조형이 일관된 어휘를 가졌다”고 밝혔다. 안상수 교수는 “건물 외부와 지붕 경사 느낌이 좋다. 주변을 고려하여 건물 빛깔이 너무 어둡지 않으면 좋겠다”고 평했다. 또 ‘ 헤리티지 스피릿’에는 임현진과 이도은(1990 uao)의 <사이>, 오승태(Ecole d'architecture de paris la villitte)의 <대화>가 선정 되었고, ‘헤리티지 챌린지’에는 김웅과 김미나(숭실대학교 건축학부)의 <사이 공간에서 관계를 엿보다> 외 6개 팀의 작품이 선 정되었다. 수상작은 오는 8월 14일(화)부터 8월 26일(일)까지 인사동 홍보관(종로구 인사동 11길 19)에서 전시되고 오프닝 행 사는 14일 오후 4시부터 진행된다. ⓦ 〔자료 제공 | 재단법인 아름지기〕

투모로우. 송률(supa architects), 크리스티안 슈바이처(supa architects), <헤리티지 투모로우 서인사마당 _ 전통 복합 문화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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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오승태(Ecole d’architecture de paris la villitte), <대화>.

챌린지. 김웅(숭실대학교), 김미나(숭실대학교), <사이 공간에서 관계를 엿보다>.

스피릿. 임현진(1990 uao), 이도은(1990 uao), <사이>. 챌린지. 전윤철(충북대학교), 박송이(성균관대학 교), <서인사마당, 인사동에 스며들다...>.

챌린지. 김용수(전남대학교), <길 위에 새겨진 기 억들의 變貌>.

챌린지. 오용혁(연미건축), 김대현(한양대학교), 정호건(친환경건축연구센터), <윤리와 기억-총체 적 감응의 서사시>.

챌린지. 이현동(고려대학교), <담.마루.>.

챌린지. 이준호(디자인연구소 이락), <인사동을 아 로새기다>. 챌린지. 박성기(Harvard University), 신봉재 (Harvard University), 장혜민(국민대학교), <마 중, 마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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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2 | <2012년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대상작, 선원전의 상징적 의미를 되살리다 2012년도 제9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덕수궁과 그 경계를 너머>의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작품으로 배재대 학교의 노태호, 강현나, 김태환 학생의 <선원전 2012(기억의 궁궐)>이 선정되었다. 이번 공모전에는 626팀이 참가 신청을 하고 456팀이 작품을 제출하였다. 덕수궁 중심의 5개의 공간적 영역과 더불어 패널 구성 형식의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공정한 심사를 위한 판독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던 심사였다. 대상으로 선정된 <선원전 2012>는 지금은 미국대사관 관저와 구 경기여고 터에 놓여져 있었던 1910년대의 선원전 영역을 새롭게 건축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1910년대의 선원전을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지붕 을 제거하고 공간을 구획했던 열주들만을 배열하여 선원전 공간을 비우고 다양한 삶을 담아냄으로써 선원전의 상징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지하로 뚫린 빈 공간 주변으로 전시 공간을 설치하여 지상으로부터 새롭게 복원된 과거의 상징적 공간이 지하에서의 전시 기능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지형과 주변 경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과거의 유형적 복원 이 아닌 상징적 의미를 환원시킴과 동시에 선원전의 의미를 전시 기능으로 치환한 것이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문화 재청장상인 최우수작으로는 성균관대학교 최연준, 이성훈, 우경석의 <Implanting Scenery>가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덕수궁의 일부가 길에 의해 잘려 나가면서 파편처럼 흩어진 역사 유적들을 새로운 길에 이식시켜 연속된 경관을 통해 덕수궁을 하나로 연 결시켰다. 이는 지형적 특성과 유적들을, 도시를 탐험하는 관람 행위와 연계시켜 정동 지역 전체를 도시 경관적 관점에서 면밀 하게 해석한 작품이었다. 우수작을 받은 배재대 서종석, 장다운의 <덕수궁, 그 안에 시간을 담다 : 전통 근대 그리고 현대>는 중 화전과 석조전 사이의 분수를 대신하여 커다란 연못을 통해 전통, 근대, 그리고 현대의 역사성을 상호 투영시키고 하부에 전시 공간을 설치하여 석조전과 중화전 축의 충돌을 융합하려 시도하였다. 표현에 있어서는 매우 탁월했으나 지하의 공간 구조에 대 한 디테일이 미흡했었다. 또 다른 우수상인 가천대 이민기, 송장호, 박태신의 <THE ONE>은 시청 앞 광장을 비워 두기보다는 지하의 전철, 덕수궁 영역 그리고 황궁우를 하나로 연결하는 적극적인 활용 방안을 제안하였다. 덕수궁을 중심으로 매일매일 벌 어지는 일상을 기획한 동양미래대학의 주유장, 정지인 학생은 <정동 일상(貞洞日常) ‘단편 6제’>를 통해 특별상을 받았다. 이밖

대상. 노태호, 강현나, 김태환(이상 배재대학교), <선원전 2012(기억의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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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덕수궁 담장에 다양한 실용적 기능을 부여하려는 시도와 막혀 있는 담장에 문을 새롭게 설치하여 덕수궁과 궁궐 외부, 도 시 일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내려는 제안들이 있었다. 또한 미 대사관 관저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덕수궁을 황궁우나 환구단, 미국대사관 관저, 선원전, 중명전을 연결하여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통합된 영역으로 구성함과 동시에 대한제국 의 궁궐에서 벗어나 도시의 일상과 적극적인 관계를 시도하는 계획안도 있었다. ⓦ [글—이성관(심사위원장, 한울건축 대표)]

우수상. 서종석,장다운(이상 배재대학교), <덕수궁, 그 안에 시간을 담다; 전통, 근대 그리고 현대>.

우수상. 이민기,송장호,박태신(이상 가천대학교 경원 캠퍼스), <THE ONE>.

특별상. 주유장, 정지인(이상 동양미래대학), <정동 일상(貞洞日常) ‘단편 6제’>.

최우수상. 최연준, 이성훈, 우경석(이상 성균관대학 교), <IMPLANTING SCE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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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3 | 전시

시베리안의 간절한 꿈 | 곽재환의 <시베리안 랩소디 Siberian Rhapsody> 전 지난 6월 5일부터 6월 10일까지 류가헌 갤러리에서 곽재환(본지 운영 고문, 칸 건축사 사무소 대표)의 <시베리안 랩소디>전이 열 렸다. 이번 전시에서 건축가 곽재환은 동북아평화연대 등이 주최한 ‘2011 유라시아 철도 평화 대장정’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창작 한 작품 22점을 선보였다. 작가가 표현하는 그림 속 대상은 현실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재해석하고, 상상한 결과이다. 그 결과 대상의 성질을 다 중적이고, 상징적이며, 환상적인 존재로 바꾸어 시간적 스펙트럼을 신화에서 먼 미래로까지 이어지게 구성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적으로 현실성과 초현실성이 상호 반영되도록 하며 감상자가 자유롭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폭을 넓히고, 또한 대상의 형 상적 경계를 허물어 대상과 배경이 상호 관입, 침투하게 함으로 공간적으로 존재성과 비존재성이 모호하게 중첩, 교차되도록 한다. 그래서 화면 전체에 사실에서 비롯되었지만 몽환적인 시공간이 형성된다. 그 시공간 속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존재. 때 로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선명하게 드러내거나 혹은 암시하고 은유하는 것이다. 곽재환은 이번에 전시된 그림마다 마중글을 적었 다. 그러나 그는 마중글이 그림의 모티브가 된 서사와 그에 대한 언급일 뿐이지, 서사를 배제한 그림 자체가 형성하고 있는 형식과 내용을 해석한 글은 아니라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바이칼 호수까지의 긴 여정에서 접한 시베리아의 풍경, 민족, 신화, 역사, 문화가 배경이 된 일련의 서사에 근거한 <시베리안 랩소디>는, 그래서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그 결과 다양한 시공간 속에 다양 한 영(靈)들의 모습이 나타다는데, 그 영들은 ‘잃어버린 대륙의 영혼을 찾아서’ 길 떠난 곽재환의 감성과 이성의 촉수가 포착한 모 습들이다. 그는 이것을 ‘시베리안 랩소디’ 라는 표제로 엮고, <프롤로그>, 제1장 <카레이스키>, 제2장 <민족의 시원>, 제3장 <시비 르의 환상>, 제4장 <유토피아>, <에필로그> 순으로 정리했다.

← 신성한 숲, 제2장 민족의 시원 중. 자작나무 는 천손민족이 섬긴 신성한 나무입니다. 단군신화 의 신단수, 단목도 자작나무였다지요. 백두산을 경 외하는 백의민족, 밝달민족은 흰(白) 빛을 사랑했 습니다. 하얀 눈(雪)향기를 먹고 자랐나요? 고고히 기립한 수직의 정령! 순수로, 동심으로 인도하는 영혼입니다. 눈내린 겨울, 자작나무 숲을 걸어나온 백여우 한마리. 숲의 평화를 지키는 요정이라네. → 딸찌의 그림자, 제2장 민족의 시원 중. 딸찌 목 조박물관에는 18세기 이 지역에서 브리야트 민족 이 거주했던 가옥이 수몰 지역에서 옮겨와 복원되 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청량한 공기를 호흡하며 가만히 귀기울여 보세요. 바람결에 두런두런 들려 오는 소리. 그곳 자작나무 숲과 집의 그림자 속에는 먼 옛날 앙가라 강가에 살던 마을 주민의 영혼이 아 직도 그곳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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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마더, 제1장 카레이스키 중. 수이푼(솔빈) 강변에 가면 보입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나간 한 민족 150년 이주 역사의 슬픈 한을! 광야의 모진 칼바람을 한 겹 보자기로 견디며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각처에 잡초처 럼 흩어져 살아온 방랑의 삶. 그 처절했던 생명을 보듬어 강물처럼 이어온 카레이스키 어머니. 그 어머니 품의 아늑한 평화 와 지극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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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안 랩소디’는 시베리안의 영(靈)들에 관한 이미지의 시리즈이다. 그중 여러 곳에서 영이 까마귀로 표현된다. ‘구현몽’의 삼족오는 한민족의 얼로, ‘라즈돌로예 1937’ 에서는 고려인의 혼으로, ‘샤먼의 춤’ 에서는 신의 사자로, ‘유토피아의 꽃’ 에서는 러시아 민중의 혼으로, ‘허무주의자’ 에서는 혁명가의 혼으로, ‘딜레마’ 에서는 이념의 혼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잃어버린 대륙의 영혼을 찾아서’ 시베리아로 떠난 작가가 만난 영혼들은 그것이 한민족에 관한 것이었든, 러시아 민중에 관한 것이었든, 하물며 신화였든 간에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다 영원의 시간속으로 사라진 시베리안의 간절한 ‘꿈’의 모습이었다. ⓦ [글/사진 제공—곽재환]

← 구현몽 1. 제1장에서 부터 제2장까지 관류하는 이미지로서 천지의 성스러운 기 운을 모은 삼족오(태양조)에 대한 부활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 시베리아환상곡, 제3장 시비르의 환상 중. 어린 시절 꿈속에 자주 나타나던 백 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발랄라이카를 메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떠나겠다던 그 소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지바고, 라라, 파샤, 레닌, 파스테르나크, 그 들은 그후 모두 어디로 떠났나? 바이칼이, 시베리아의 설원이, 대륙의 황량한 바람과 자작나무의 혼이 이제 백발이 된 나를 아직도 손짓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 허무주의자, 제4장 유토피아 중. 가퐁 신부는 평화 시위 대열의 선두에 섰지 요. 피의 일요일이 벌어지고. 이어진 혁명의 격랑과 새로운 체제의 국가 출현. 그러 나 우리는 이제 그때를 잊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혁명이었나? 오! 사라진 혁명 가들이여.

Wide AR no.28 : 07-08 2012 Report


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07-08

전진삼의 FOOTPRINT 07 이 란은 본지 전진삼 발행인의 ‘공적/사

서울 지역 8개 대학 건축과 연합(AUUS)

적’ 기록의 장으로 구성된다. 현장성에

전시회를 참관했다. 전시의 주제는 ‘대학

바탕을 둔, 건축계 이슈와 개인의 동선

생 2인 주거’로 12㎡ 가상 면적에 1:1 모

이 이뤄 내는 건축과 문화판의 지형도를

델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방 출신

전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본지 편집위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에 착안하여 새로운

원들의 ‘공적 동선’이 박스 기사로 제공

주거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 전시다.

되어 한층 강화된 뉴스 지면으로서 독자

현실적 문제 제기의 건강성과 다르게 출품

들을 찾아가게 된다.

5월

있어서 참여 방안 등을 논의하였다.  6월 21일 (목)  새건축사협의회 가 주최하는 ‘건축잡담’ 모임에 강승 희 씨를 초대하여 그가 작업해 온 건 축물과 목조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참석했다. 잡담회 이 후엔 상임 위원 회의가 개최되어 건 축계의 현안과 협회의 상황 및 향후

● 박인수 편집 위원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사

 5월 11일 (금)  민간 경력자 5

진 제공: 박인수)

급(도시 디자인 분야) 공무원 채용 시 자격 기준에서 건축사가 제외된

 5월 8일 (화)  오후 6시, 시공문화사

것에 대하여 건축5단체(건축사협,

를 방문하여 저자클럽 행사 기획 관련 회

건축가협, 건축학회, 새건축사협의

의에 참석했다. 월말에 출간되는 책『건축

회, 여성건축가협회)가 건의한 문건

의 디지털 문화』 번역자 김원갑(경일대)

과 관련해서 국토해양부 장관 명의의

교수를 초빙하여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답신을 받았다. 다음 시기부터는 국

강연회를 개최키로 했다.

토해양부 관련 기술 분야 민간 경력

 5월 10일 (목)  오후 4시, 심원건축

자 채용 시 ‘건축사가 포함될 수 있도

학술상 후원사인 ㈜엠에스오토텍 홍보팀

록’ 적극 검토하여 반영하겠다는 내

우민주 씨 외 1인이 편집실을 찾아 주어

용의 회신이다.

그들이 제작하고 있는 사보 관련 편집 자

 6월 1일 (금)  저녁 7시, 젊은

문 회의를 진행했다.

건축가포럼코리아(Y.A.F.Korea)의

 5월 11일 (금)  낮, 제4회 심원건축

2차 모임이 양재동 힐스테이트 문

학술상 당선작(이강민의 ‘도리 구조와 서

화관에서 열렸다. 100여 명이 참석

까래 구조’)을 네이버카페 <와이드AR>을

한 이날 행사는 젊은 건축가들의 공

통해 공식 발표했다. 동시에 대한건축학

동 주택에 대한 생각과 의견 개진이

회 홈피 게시판 및 각 언론사 에 보도 의뢰

주제였다. 구본준(한겨레신문 기자),

작들의 디자인 이슈는 취약함을 드러내어

용 공문을 이메일 발송했다.

전숙희(건축가)씨의 공동 사회로, 하

아쉬움이 남았다.

 5월 11일 (금)  오후 2시 30분, 연세

태석 씨의 인사말에 이어서 김기중,

 5월 15일 (화)  오후 3시. NES코리

김창균, 신승수, 서승모, 문훈, 박인

아 2층 회의실에서 차영민 사장의 주선으

수, 이현욱, 임형남&노은주 씨가 발

로 국내 공연장 컨설팅 최고 전문가로 불

표했다. 서승모, 이정훈 씨가 코디디

리는 이동훈 대표와 회의를 가졌다.

네이터를 맡았고, 정림건축문화재단

 5월 16일 (수)  오후 1시 30분, 편집

이 후원했다.

실에 전국의 디자인학과 대학생들이 만드

 6월 9일 (토)  제2차 서울시 공

는 잡지 <디노마드> 이대우 발행인이 방

공 건축가 총회가 열렸다. 40여 명이

문,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여러 기획 프로

참석하여 공공 건축가의 향후 방향

젝트에 대하여 자문을 구해 왔다.

에 대한 모색이 있었다. 법적 지위가

 5월 16일 (수)  오후 4시, 홍익대 홍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문관 2층 현대미술관 2관. 한국건축설계

나누었고, 이후 기획·자문·설계에

교수회(회장 이영수, 홍익대) 창립 10주

대 신촌 캠퍼스 중앙도서관 앞에서 펼친

 6월 27일 (수)  명동 포스트 타워에서 아우리포럼이 열렸다. 포 럼은 “도심 재정비 소규모로 시작하 자”란 주제어로 진행되었고, ‘고도성 장 시스템’에 대한 한계의 인식과 대 규모 개발의 전환을 위한 실천적 방 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었다.

년 기념 초대 작가 전시 ‘낯설게 익숙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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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의 FOOTPRINT 07 탠포드대 이탈리아문학과 교수)이 쓴 『정 원: 인간의 조건에 대한 에세이(Gardens: An Essay on the Human Condition) 』 를 번역한 것이다. 숲에서 정원까지 서구 문명에 대한 상상과 탐구의 보고서로, 역 사의 광란과 소란으로부터 피난처로 제공 된 정원의 역사, 그것은 파괴로부터 새로 운 경작의 힘에 무게를 준 정원 문화의 문 명사적 비평서에 다름 아니다.(구입문의: 031-915-3803)  5월 18일 (금)  저녁 7시, 토즈 신 촌본점 9층 3호실에서 ‘와이드SA 아카데 메이아’ <이종건 교수의 건축 비평 강의> (이하, 건축 비평 강의)가 문을 열었다. 이 후 6회에 걸쳐 건축 비평의 ‘Why/What/ How’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교수 특유 월 15일~21일)오프닝에 참석했다. 이 단

은 건축가가 펼쳐든 해학과 재치와 용기

체는 대학에서 건축 설계를 지도하는 교

와 투지가 한꺼번에 와 닿았다. 장영철, 전

수들의 위상을 제고하고, 학생들의 수업

숙희(WISE건축), 이용범(SEESAW), 임

지도에 각 대학 간 경험을 교류한다는 기

태병(SAAI건축), 장정제(숙명여대), 박인

본 정신 하에 그동안 꾸준히 회원전과 함

수(파크이즈건축), 유리조형예술가 손승

께 작품집의 발간, 다섯 차례의 해외 건축

희 씨 등이 참석했다.(본문 ‘New POwer

답사를 추진해 왔다. 금회 전시의 구성은

ARchitect’ 오영욱의 글 참조)

구영민(인하대) 교수가 총감독을 수행하

 5월 17일 (목)  와이드BEAM 파트

여 예년에 비해 전시물의 질적 성장을 보

너 내정자 김정은(서울대 협동과정 조경

여 주었다. 다만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초

학 박사 과정)씨가 방문, 조경진(서울대

대 작가’의 타이틀에 걸맞는 엄정한 기준

환경대학원 교수, 대표역자), 황주영(서울

의 작가 선별이 아쉬웠다. 통상의 회원전

대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 과정 수료)씨와

이 그러하듯 허례적 전시 운영은 앞으로

공동 번역한 책 『정원을 말하다』(나무도

이 단체의 구성원들이 해결할 일이다. 윤

시 발행)을 전달해 주었다. 이 책은 로버트

세한, 이상림, 한철수 등 대형 건축사 사무

포그 해리슨(Robert Pogue Harrison, 스

소 대표와 이재림, 강정윤 씨 등 여성 건축 인들이 참석하여 눈길을 모았다.  5월 16일 (수)  저녁 7시, 제67차 땅 집사향을 주관했다. 5월의 건축가로 초대 된 오영욱 씨는 ‘내가 건축을 하는 사연’ 이란 주제를 통해 최근까지 추진해 온 건 축 프로젝트를 특유의 입담으로 전달해 주 었다. 그가 발표한 다섯 가지의 관심 주 제, ‘대중 건축, 지속 가능한 사무실, 대 량 생산, 한국성, 닥건(닥치고 건축)’는 젊

Wide AR no.28 : 07-08 2012 Report

의 입담으로 강론 및 비평문 첨삭이 이뤄 지게 된다.(본문 ‘와이드 리포트 1’ 참조)  5월 19일 (토)  오후 2시 30분, 토즈 신촌본점 9층. 와이드SA 저널리즘워크숍 3기 제2강을 겸한 와이드SA 건축 비평 강 의 두 번째 시간에 참석했다.  5월 21일 (월)  저녁 7시, 토즈 홍대 점 5층 1호 강의실에서 건축가 조성룡을 초대하여 그의 최근작 ‘이응노의 집’을 중 심으로 한 공개 집담회를 개최하였다. 본 지 발행편집인단의 박유진, 오섬훈(발행 위원), 김원식(편집 고문), 김영철, 최상 기, 최춘웅(편집 위원)을 위시하여 박상일 (크리에티브 디렉터), 심세중(수류산방), 전진성(부산교대), 손승희(유리 조형 작 가), 진효숙(사진 작가)와 성균건축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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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의 FOOTPRINT 07 원 2인이 참석하여 조성룡 건축의 건축 주 제에 대하여 격의 없는 토론에 임했다.(본 문 ‘와이드WORK’ 특집 기사 참조, 사진 제공: 진효숙)  5월 25일 (금)  저녁 7시~5월 26일

획과 운영진 개편안에 대한 숙의가 있었다. 건축 기행에는 민현식, 조성 룡, 김봉렬 등 18인이 참가했다.(사 진 제공: 최춘웅)

경, 박상일 님과 와이드AR 카페에서 선착 순으로 참가 신청을 받은 일반 관객 10인 이 함께 영화 공부를 빙자한 교제의 시간 을 가졌다. 다음 모임은 8월 7일(화)에 열 린다.(사진제공: 김재경)

(토) 오후 2시, 토즈 신촌본점 9층. 와이드

 6월 6일 (수)  오후 4시, 서울 통인

SA 건축 비평 강의 세 번째, 네 번째 시간

동 갤러리 류가헌 마당. 곽재환 드로잉전

에 참석했다.

이틀째 되는 날, 작가와의 대화 진행을 꾸

 5월 30일 (수)  저녁 7시, 편집실 인

렸다. 그는 최근 동북아평화연대(이하, 동

근 주점에서 일시 귀국한 재독 건축가 이

평) 상임 대표로 취임하여 건축가의 길에

은영 대표를 만났다. 본지 27호 WORK의

서 우회전, 생명·평화주의자로서 새로운

특집으로 소개한 슈투트가르트 시립 도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시는 작년에 그가 동평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시베리아 횡단

관의 게재를 빌미로, 일시 귀국한 그와의 만남이 이뤄진 것. 이 자리에는 본지 편집

 6월 1일 (금)  저녁 7시, 토즈 신촌본

열차의 탐사 동선에서 만난 고려인의 고

고문이자 이 대표의 오랜 친구인 김원식

점 9층. 와이드SA 건축 비평 강의 다섯 번

단한 삶과 역사, 우리 민족의 대륙 혼을 깨

소장이 동석하여 환담했다.

째 강의에 참석했다.

우는 드로잉-색연필화 연작으로 구성되었

 6월 2일 (토)  오후 2시, 토즈 신촌본

다. 동평의 기금 마련을 위해 그가 전 작품

점 9층. 와이드SA 건축 비평 강의 마지막

을 기증한 것이다.(본문 ‘와이드EYE’ 기

강의를 마치고 인근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

사 참조)

6월 ● 최춘웅 편집위원  6월 1일 (금)  오전 10시, 답 십리 고미술 상가. 아름지기 신지혜 팀장 외 2인, 이진오, 정현아, 김찬 중, 최춘웅 등 전문 자문단 4인이 참 석한 가운데 서울시가 추진 중인 답 십리 고미술상가 문화 명소화 사업 (2014년까지 동대문구 답십리 고미 술상가 거리를 문화 명소로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시작을 돕고 추후 민 간 주도에 의해 완성되는 새로운 형 태의 지역 문화 개발 사업)에 관한

겨 3주 6회 강의에 참가한 수강생들과 함 께 종강 파티를 가졌다.  6월 5일 (화)  저녁 7시, NES사랑_건 축영화스터디클럽 두 번째 모임 날이다. 서교동 NES코리아 3층은 26인의 동호인 들로 만원사례를 빚었다. 준비된 좌석은 일반석 열여섯 자리, 특석 두 자리, 그리 고 좌석 배당을 못 받은 8명은 상영 시간 내내 서서 봐야 했다. 상영작 ‘콜하스 하우 스라이프’. 렘 콜하스가 설계한 보르도하

 6월 8일 (금)  오후 5시, 토즈 홍대

우스의 청소부 아주머니의 동선을 통하여

점 1호 강의실. 제1회 SPACETIME 포럼

건축 이야기를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2012, 김원갑 교수 특강이 개최되었다.

본지 발행 편집인단의 고정게스트로 최동

『건축의 디지털 문화』 번역서 발간에 따

규, 이충기, 손숭희, 나은중, 유소래, 김재

른 강연회로 스페이스타임 저자클럽이 주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시 간을 가졌다.  6월 16일 (토)~17일 (일)  경 북 봉화 영양 일대에서 이건창호와 SA가 주관하는 건축 기행에 참가했 다. 특히 이번 기행에서는 최욱, 김광 수, 김일현, 하태석 4인을 주축으로 그동안 논의해 온 SA의 향후 활동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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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07-08

전진삼의 FOOTPRINT 07 관(간사 장정제, 숙명여대)하고. 시공문 화사와 본지가 공동주최하는 형식의 프로 그램이었다. 조택연(홍익대), 노휘(시성 N.U..D.L) 씨 등 학계와 실무계의 디지털 디자인 고수들이 함께 했다.

축), 김석순(아름터건축), 장명희(한 옥문화원), 이승섭(한옥문화원), 이 문호(가은 앤 파트너스, 발제), 류성 룡(고려대, 발제) 씨 등이 참석했다.

 6월 12일 (화)  오후 5시, 서울 강 남 신사동 원도시건축 1층 회의실. 원도

 6월 13일 (수)  저녁 7시, 제68차

시아카데미세미나 2차 운영 위원 회의에

땅집사향이 그림건축 안방마루에서 열렸

참석했다. 이 날의 목표는 2012 하반기 운

다. 정의엽(AND건축 대표)가 ‘역설의 건

영 프로그램을 도출하는 것. 전봉희(서울

축’을 주제로 최근까지 수행한 프로젝트

대), 박진호(인하대), 홍재정, 김종수(원

를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어 발표했다. 이

도시건축)이 동석하여 건축과 문화판 중

종건, 임근배 씨 등이 토론에 참여하였다.

심 인물 초청 형식으로 방향을 정하고 행

(본문 ‘New POwer ARchitect’ 정의엽의

사의 타이틀은 ‘건축, 다시 묻다’(가제)로

글 참조)

잠정 합의하였다.

 6월 14일 (목)  오후 4시 30분, 문화 역서울 284 2층 문화그릴에서 건축가 김

있는 완성된 건축계획안으로 1인(팀) 1작

● 김영철 편집 위원

수근 26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김도자 여

품 제출 원칙이며, 본상은 프리뷰 수상작

 6월 12일 (화)  저녁 7시 30분,

사와 김원석, 유걸, 강준혁, 민현식, 이범

들 중 완성된 작품을 대상으로 매년 별도

서울 종로구 통인동 길담서원에서 ‘

재, 류춘수, 박기태, 김건자, 민경식 씨 재

의 심사를 거쳐 하나의 작품을 선정하여

건축과 철학’ 주제로 강의했다. 작은

단 멤버들과 이상림, 서해천, 안재일 공간

수여하며, 그해 프리뷰 수상작과 함께 전

책방 길담서원(서원지기 박성준 교

그룹 맴버 등 30여 인이 참석했다. 추도식

시하고 출판한다는 계획이다. 2013년 첫

수)이 추대하는 건축과 인문학의 접

의 하이라이트는 강준혁의 기획으로 현대

번째 프리뷰상 응모작의 제출은 2013년 1

점을 찾는 세미나. 지난 5월 15일부

무용가 남정호, 섹소폰 연주가 강태환 선

월 31일 오후 5시까지이며, 자세한 내용

터 6월 26일까지 매주 한 차례씩 영

생의 협연으로 진중하게 치러졌다.

은 김수근문화재단 사무국(02-763-2011)

화(강병국), 문학(함성호), 도시(안

이 날 김수근문화재단 측은 새로 만든 김

으로 문의하면 된다.

창모), 역사(정만영), 미술(김홍기),

수근건축상의 공모 방식을 발표했다. 김수

 6월 15일 (금)  오후 3시, 서울 정동

음악(김헌), 철학(김영철)의 장르에

근건축상은 1990년 이래 최근까지 총 22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 소강당에서 제

걸쳐 진행되었다.

개의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였다. 최근

4회 심원건축학술상 시상식과 당선 작가

 6월 14일 (목)  오후 2시~6시,

몇 년간 이 건축상의 흥미와 권위에 대하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수상자 이강민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 소강당에

여 의문이 제기되어 오던 차 2013년 시행

비롯하여 임창복 건축학인증원장, 김종헌

서 한옥기술개발연구단과 한국건설

방안부터 ‘본상’과 ‘프리뷰상’으로 구분하

(배재대), 우동선(한국예술종합학교), 김

기술연구원 주최로 ‘신한옥의 보급

여 상의 흥미를 진작하고 권위를 높이겠다

재경(사진 작가), 서정일 2회 수상자 등

과 확산을 위한 제 문제’ 주제로 심포

는 발상이다. 프리뷰상은 실현이 예정되어

과 사업회 이태규 이사장, 운영 위원회 전

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선 한옥의 용어 정의, 기술과 경제, 생활의 차 원에서 많은 질문과 대답이 시도되 었으며 한옥에서 변화할 수 있는 요 소들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변의 형식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 확장 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장순용(삼 성건축), 김수암(한국건설기술연구 원), 이연노(명지대), 이주연(공간건

Wide AR no.28 : 07-08 2012 Report


와이드 AR 28 | Wide Architecture Report 28 | 2012.07-08

전진삼의 FOOTPRINT 07 7월

봉희, 안창모, 전진삼 3인, 신정환 사무장,

권형표, 이태상, 전진삼 등이 참석하였으

진효숙(전속 사진 직가), 이경일(건축문

며, 최근 문광부가 발표한 2012 젊은 건축

화 편집장), 주상훈(서울대 건축과) 씨 등

가상을 수상하게 된 바우건축의 권형표,

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사진 제공:

김순주 부부 건축가를 축하해 주는 자리

 7월 1일 (일)  원로 건축가 엄덕문

김재경)

도 되었다.

선생이 타계했다. 향년 93세. 삼성서울병

 6월 28일 (목)  오후 5시, 공식 오프

원 영안실 15호실에 빈소가 마련되었고,

닝파티 1시간 전. 아산정책연구원 중앙홀

영결식 및 발인은 7월 4일(수) 오전 8시에

을 방문하여 지니 서의 설치 작업 ‘Wave’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경기도 포천의 서능

전의 공간을 체험했다. 작가와 함께 오섬

공원에 모셔졌다.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훈(어반엑스, 본지 발행 위원)이 깜짝 만

대표 건축가 중 한 분으로 세종문화회관

남을 가졌다. 그녀는 one o one 건축 최욱

으로 80년대 공연장 건축의 문화적 코드

대표의 배우자이다.

를 주도한 바 있다.  7월 3일 (화)  저녁 6시, 양재동 392-5번지 2층 ㈜라이브스케이프 개업식 에 참석했다. 희림건축 조경 사업 본부 출 신 유승종 씨가 독립하여 조경 설계 사무 소를 열었다. 어느 하객의 말, “오랜만에 개업식에 참석한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고 있는 수상한 시절에 용기가 가상하 고, 한편으론 부럽다는 뉘앙스로 다가왔

 6월 21일 (목)  오후 2시, 운생동 건

 6월 28일 (목)  저녁 7시, 시공문화

다. 땅집사향(32차)의 초대 작가로도 출

축사사사무소 방문하여 장윤규, 신창훈 공

사 저자클럽의 비공식 모임이 인근 영천시

연한 바 있는 유 대표의 각오는 남달랐다.

동 대표와 만났다. 기존 지하의 아지트와

장 음식점에서 열렸다. 김기현, 장정제, 전

오랫동안 꿈꾸고 생각해 오던 것을 지금에

별개로 한옥을 개조한 일명 화이트관으로

진삼과 초대 손님 최지훈(전 효형출판 편

서야 비로소 초석을 놓은 것이니만큼 열심

공간을 확장하였다.

집장)이 함께 자리했다.

히 해 보겠다며 환하게 웃음으로 답했다.

 6월 22일 (금)  오전 10시, 본지 편 집실에서 6차 편집 위원회가 열렸다. 최춘 웅, 김영철 위원이 참석하여 28호 진행 상 황과 29호/30호에 대한 기획안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 6월 23일 (토)  오후 2시, 토즈 신촌 본점 9층 1호실에서 와이드SA 저널리즘워 크숍 3차 강의가 ‘기초 취재 연구’ 주제로 열렸다. 강의는 안철흥(전 시사저널/시사 IN 문화부 기자)가 맡았다.  6월 26일 (화)  저녁 7시, 인하대 후 문 인천건축재단 사무실에서 재단 운영 위 원들의 6월 정례 모임이 열렸다. 본격 모 임에 앞서 인하대 건축과 주최 인하국제 워크숍의 강사로 초대된 박진희, 존홍 부 부 건축가와 짧게 인사를 나눴다. 구영민, 박혜선, 강정윤, 이윤정, 김정숙, 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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