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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기 심원건축학술상 추천인단 발표 [제5차년도 2012~2013년] Ⓢ 추천인|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김원식(단우도시건축학연구소 소장), 김태일(제주
대 교수), 김희영(국민대 예술대 교수), 박성형(정림건축 소장), 박진호(인하대 교수), 박철 수(서울시립대 교수), 배정한(서울대 조경학과 교수), 서정일(서울대 HK연구교수), 우신구 (동아대 교수), 정진국(한양대 교수)
Ⓢ심 원문화사업회는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후원회로서 지난 2008년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 미학과 비평 분야의 전도유망한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심원건축학술상>을 제 정하여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심 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 ( 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 받아 그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 며, 금회부터 당선작에 대하여 1천만 원의 고료를 부상으로 지급합니다. Ⓢ심 원건축학술상은 지난 1, 2회에 걸쳐 당선작을 선정한 바 있으며, 현재 제1회 당선작『벽전』(박성형 지음), 제2회 당선작 『소통의 도시』(서정일 지음)를 발간하였고, 내년 6월 제4회 당선작의 발간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심 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는 배형민(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안창모(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전봉희(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전진삼(<와이드AR> 발행인, 간향미디어랩 대표) 4인으로 구성되어 있 습니다.
Ⓢ 주최|심원문화사업회 Ⓢ 주관|심원건축학술상 운영 위원회 Ⓢ 기획|<와이드AR>・간향미디어랩 Ⓢ 후원|(주)엠에스오토텍 Ⓢ 문의|070-771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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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신진 학자 및 예비 저술가들의 많은 도전을 기대합니다.
공모요강
Ⓢ 당선작 :1편|상패 및 고료 1천만원과 단행본 출간 Ⓢ 응모 자격|내외국인 제한 없음.
Ⓢ 응모 분야| 건축 역사, 건축 이론, 건축 미학, 건축 비평 등 건축 인문학 분야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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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고료 1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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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심원건축학술상 [2012~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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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외국 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한함) Ⓢ 사용 언어|한국어
Ⓢ 제출 서류|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고 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크기 프 린트 물로 흑백/칼라 모두 가능)을 제본된 상태로 4부 제출. 단, 제출본은 겉표지를 새롭게 구성, 제본할 것.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 ① 응모작의 요약 내용이 포함된 출판 기획서(양식 및 분량 자유) 1부. ② 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모 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는 반환하지 않음.
Ⓢ 제출처|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간향미디어랩 (121-816) (겉봉에 ‘제5회 심원 건축학술상 응모작’이라고 명기 바람) Ⓢ 응모작 접수 기간|2012년 10월 15일~11월 15일(1개월 간) Ⓢ 추천작 발표|2013년 1월 15일(<와이드AR> 2013년 1/2월호 지면) Ⓢ 추천인단 운용 및 추천작의 자격 기한|위원회는 추천인단이 추천한 응모작과 일반 공모를 통해 응모된 연구 물에 대하여 소정의 내부 심사 절차를 진행하며, 그 가운데 매년 1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 작 심사에서 탈락한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2년 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되어 총 2회에 걸쳐 최종 심사의 대상 이 되며, 이 경우 심사평을 반영한 수정된 원고(수정의 범위와 규모는 응모자 임의 판단에 맡김)를 위원회가 요 구하는 기한 내에 상기 응모작 제출 서류(완성된 연구물 사본 4부)와 동일한 형식으로 재제출해야 함. Ⓢ 당선작 발표|2013년 5월 15일(<와이드AR> 2013년 5/6월호 지면 및 대한건축학회 등 인터넷 게시판) Ⓢ 시상식|별도 공지 예정 Ⓢ 출판 일정|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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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명칭 싸움, 그만 합시다.
건축사 › Architect ‹ 건축가
영문 명칭 ‘Architect’을 사이에 두고 마치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는 양
보입니다.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진흙탕 싸움이 지속되고 있습니 다. 이제 더이상 용어로 인한 혼선과 이견으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은
멈추기를 바랍니다. 대한건축사협회와 한국건축가협회는 이 부분에 대
해 가장 먼저 합의를 보기 바랍니다. 하루라도 빨리 직접 만나서 처리하 기 바랍니다. 매체들을 이용해서 서로를 비방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린
애들 같습니다. 하나로 통일하든, 위계를 만들든, 차이를 분명히 하든 무 엇이든 좋습니다. 상호 간의 관계와 정의를 명확히 하고 건축계의 동의를
구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일반을 향해 홍보를 진행해 주기 바랍 니다. 국제적으로도 망신이고, 국내적으로도 건축하는 사람들의 위신이
실추되어 있습니다. 언론사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용어 싸움에 신기해 하 는 분위기입니다.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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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 갤러리 | Steven Holl Architects | 이래건축 이인호 | 사진 문정식
(주)제효에서 지은 집 건축가 상상 속의 건물을 구현하다 | www.jeh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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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건축사사무소 612-020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 중앙로 78 (센텀그린타워 507호) T.051.516.4875~6 F.051.516.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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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BRIDGE 공고
NES Ⓦ 건축 영화 스터디클럽
10월, 12월 건축 영화 스터디클럽 개최 요일이 <월요일>로 변경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정을 꼭 확인 바랍니다. 장소│서울 마포구 서교동 399-13 NES사옥 3층 NES舍廊 강사│강병국(동우건축 소장, 2011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부집행 위원장) 참석 대상│고정 게스트 본지 발행편집인단 위원과 초청 게스트(건축가, 아티스트 등 건축과 영화 애호가 중 개별 초대) 및 본지 독자와 후원 회원 중 사전 예약자로 총 30인 이내로 한정함
사전 예약 방법 ⓦ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예약 접수 (*참가비 없음) ⓦ 참석자는 반드시 10분 전까지 입실 완료해야 함
주요 프로그램(*본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 1st — 4월 3일(화) 7:00pm ‘꼬르뷔지에와 창문과 사람’ 상영작 <성가신 이웃> ⓦ 2nd — 6월 5일(화) 7:00pm ‘당신이 그 유명한 렘 콜하스 입니까?’ 상영작 <콜하스 하우스 라이프> ⓦ 3rd — 8월 7일(화) 7:00pm ‘미래- 85년의 간극‘ 상영작 <메트로폴리스>(조르지오 모러더 버전) ⓦ 4th — 10월 8일(월) 7:00pm ‘도시에 쏟아내는 분노의 표출’ 상영작 <증오> ⓦ 5th — 12월 3일(월) 7:00pm ‘송구 2012 영신 2013’
ⓦ 10월 상영작 <증오>
상영작 <크로노스>(론 프릭 감독)
주최│와이드AR 주관│와이드aBRIDGE 후원│NES코리아(주), 간향미디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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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SINCE 2006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3’: New POwer ARchitect|
다섯 번째 주제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 3’>는 우리나라의 차세대 건축을 리드할 젊은 건축가들을 초대하여 그 분들이 현재 관심하고 있는 건축의 주 제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땅집사향은 2011년에 이어 올해에도 국내외에서 맹활약하는 ‘젊은 건축가’에 시선 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와이드AR> 독자님들의 뜨거운 성원과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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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현+이민수(AnL studio 공동대표)┃주제 | 몽당 (夢堂)|
9월의 초청 건축가
일시 | 2012년 9월 12일(수) 저녁 7시|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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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초청 건축가┃박인수(PARKiz 대표)┃주제 | 전문건설업과의 협업—전남전문 건설회관을 중심으로|일시 | 2012년 10월 17일(수) 저녁 7시|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주관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AR>┃주최 |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도서 협찬 | 시공문화사 spacetime, 수
류산방┃와인 협찬 | 삼협종합건설(주)┃문의 | 02-2231-3370, 02-2235-1960┃*<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 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와이드AR,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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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 박완서 돈암동의 작은 한옥에서 잠실 아파트에 이르기까지—2011년 작고한 박완서가 남긴 구술은 격변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소시 민의 삶을 통시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서울 주거 공간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증언한다. 300여 개에 이르는 주석과 도판 자료를 통 해 입체적으로 읽는 박완서의 생애와 작품 세계 속 서울의 풍경. (수류산방 펴냄, 384쪽, 319항목의 주석, 58점의 도판 자료, 올 컬 러, 값 29,000원)
“우리는 그 집을 괴불*마당 집이라고 불렀다. 마당이 괴불처럼 세모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같이 그 집에 만족했고 또한 사랑했다. 오빠는 건넌방을 혼자 쓸 수 있었고 문간방은 세를 주었다. 기역 자 집의 양끝인 건넌방과 대문간을 직선으로 이으면 마당이 삼각형이 된다. 집이 들어앉지 않은 삼 각형의 한쪽 벽은 높은 축대고 축대 밑은 아랫집 뒤끝이었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중에서
*괴불: 괴불주머니. 어린아이가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 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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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ed & designed by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 02 735 1085
모양의 조그만 노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 (약칭,
와이드AR
)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통권 29호 2012년 9-10월호 ⓦ 2012년 9월 15일 발행
Issue 26
ⓦ <와이드 칼럼 | 구영민> 지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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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ASS 26 | 이종건> 누가 유걸을 탓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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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포커스 | 양건>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은?
Depth Report |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의 건축가들—새로운 베이스 캠프의 차 이와 기회 42
ⓦ 들어가며—서울의 조건을 묻다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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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담회—한국 건축의 시스템과 관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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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Christian Schweit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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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랑 페레이라 Laurent Per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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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윈스턴 페레토 Peter Winston Ferr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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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모네 카레나 Simone Carena & 마르코 브루노 Marco Bruno
Work | 이종호Yi Jongho—노근리 평화기념관 Nogunri Peace Memorial 68
ⓦ 건축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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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근리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 김백영
New POwer ARchitect 89
ⓦ 뉴 파워 아키텍트 파일 19 | 김희준 | 관계 속에서 건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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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파워 아키텍트 파일 20 | 최종훈 | 아쉬운 과정Architecture as a Process
Report 100
ⓦ <와이드 리포트 |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공통의 토대에서 길을 잃은 한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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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건축 탐사 29 | 손장원 > 김천의 근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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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더하기 건축 09 | 나은중+유소래 > 구조적 직관Structural Intuition—헬렌 비넷Hélène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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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1 |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3 공모전>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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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2 | MAXIMUM LIVINGin MICRO STUDIO 전시> | 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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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삼의 FOOTPRINT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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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구독 신청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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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레터 | 정귀원
ⓦ 표지 이미지 | 이종호의 노근리 평화기념관 ⓦ 표2 | MS오토텍 ⓦ 표3 | NES KOREA ⓦ 표4 | Samhyub ⓦ 1 | Wondoshi ⓦ 2-3 | SIMWON ⓦ 4 | PARKiz ⓦ 5 | ONE O ONE ⓦ 6 | Seegan ⓦ 7 | Jehyo ⓦ 8 | KAGA ⓦ 9 | SIGONG tech ⓦ 10 | VINE ⓦ 11 | Woojung ⓦ 12 | UrbanEx ⓦ 13 | Dongyang PC ⓦ 14 | UnSangDong ⓦ 15 | Kimoondang ⓦ 16 | WIDE aBRIDGE ⓦ 17 | ICON party ⓦ 18 | Spacetime ⓦ 19 |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 20 | Suryusanbang ⓦ 21 | 목차 ⓦ 22 | 구독신청서 ⓦ 23 | 판권 및 와이드 레터 ⓦ 24 | Suryusanbang ⓦ 128 | U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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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미디어랩 은 “건축하는 후배들에게 꿈을, 건축인에게 긍지를” 주자는 목표 아래,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소수(minority), 진정성(authenticity)”에 시선을 맞추고 건축 기반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간향미디어랩의 사업 영역은 와이드AR |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와이드SA | 각종 워크숍, 강좌, 아카 이브, 아키버스 주관┃와이드aBRIDGE | 세미나, 건축상, ABCD파티 등 건축과 사회의 연결┃와이드BEAM | 온오프 라인 도서 기획 및 편집, 출판
간향미디어랩은 현재┃월례 세미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TURE BRIDGE [ON AIR] CREATIVE PARTY>┃건축 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와이드SA 저널리즘워크숍>┃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건 축비평상>┃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아키버스>┃색깔 있는 건축 도서 출판 <AQ북스>┃그 밖에 <건축유리조형워크숍>, <건축영화스터디클럽>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와이드AR 정기 구독(국내 전용)신청 방법 안내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구독자명(기증하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배송지 주소>, <구독 희망 시작 월호 및 구독 기간>, <핸드폰 번호>, <이 메일 주소>, <입금 예정일>을 적으시어 ⓦ <와이드 AR> 공식 이메일 : widear@naver.com ⓦ 팩스 : 02-2235-1968 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책은 입금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정기 구독을 하시면,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당사가 독자 대상으로 벌이는 상기 각 종 행사에 우선 초대됩니다. ⓦ 연간 구독료 ☞ 1년 구독료 55,000원┃2년 구독료 105,000원┃3년 구독료 150,000원 ┃4년 구독료 190,000원┃5년 구독료 225,000원 ⓦ 무통장 입금 방법 ☞ 입금계좌|국민은행, 491001- 01-156370 [예 금주|전진삼(간향미디어랩)]┃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상기 전화, 팩스, 이메일로 확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드 결재 방법 ☞ 네이버카페 <와이드AR> 좌측 메뉴판에서 <정기구독 신용카드결재>란 이용하시 면 편리합니다. ⓦ 정기 구독 및 광고 문의┃070-7715-1960┃<와이드AR>의 광고는 본 잡지를 함께 만드는 건축(가)네트워크를 지원 합니다.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질적 수익 효과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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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약칭, <와이드 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실— 발행인 겸 편집인 | 전진삼—발행편집자문단장 | 김연흥—발행위원 | 박유진, 신창훈, 안용대, 오섬훈, 황순우 ⓦ 편집실—편 집장 | 정귀원—편집위원 | 김영철, 박인수, 최상기, 최춘웅—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박상일 ⓦ 고문실—상임고문 | 임 근배—운영고문 | 곽재환, 김정동, 이일훈, 임창복, 최동규—편집고문 |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박철수, 이종건 ⓦ 자 문단—자문위원 | 강병국, 김재경, 김정후, 김종헌, 김태일, 나은중, 손승희, 손장원, 박종기, 박준호, 안명준, 안철흥, 윤창기, 이영욱, 이용범, 이충기, 임지택, 임형남, 장윤규, 전유창, 정수진, 조경연, 조남호, 조정구, 조택연, 함성호—대 외협력위원 | 김기중, 김종수, 김태성, 박민철, 박순천, 손도문, 조용귀, 최원영—전속 포토그래퍼 | 남궁선, 진효숙—제 작 코디네이터 | 김기현—로고 칼리그래퍼 | 김기충 ⓦ 디자인—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디자이너 | 변우석, 송우리, 김영진, 양다솜—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서점유통관리대행—(주)호평BSA—대표 | 심상 호, 차장 | 정민우—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제작협력사—인쇄 및 출력 | 예림인쇄—종이 | 대림 지업사—제본 | 진성 B&M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29호 2012년 9-10월호 ⓦ 2012년 9월 15일 발행 ⓦ 2008년 1월 2일 창간 등
록, 2008년 1월 15일 창간 ⓦ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 낱권 가격 10,000원, 1년 구독료 55,000
원 ⓦ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발행처 | (121-816)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6-2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대표 전화 | 02-2235-1960—팩스 | 02-2235-1968—독자지원서비스 | 070-7715-1960—공식 이메일 | widear@ naver.com—공식 URL | http://cafe.naver.com/aqlab—네이버 카페명 | 와이드AR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 포를 금합니다.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전시ⓦ 아닌 말로 이 책 여섯 권째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아직 한 권이 더 남았는데 왠 송년 멘트인가 하시겠다. 세월이 하도 쏜살같아서 그렇다. 그렇게 1년 을 다섯 번 보내니 마지막 남은 한 권이 벌써 통권 30호다. ⓦ 새삼 감회가 새롭기도 하지만, 시시때때로 고개를 드는 조 바심은 감출 수 없다. 건축 저널의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독자들과 소통은 되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바로미 터의 눈금을 예측하기 어렵다. ⓦ 건축가 개개인의 능력은 나날이 향상되지만 최소한의 컨센서스조차 형성되지 못하는 건축계의 분위기도 조바심에 한몫한다. 어차피 적당한 개인주의가 상식인 동네에서 더 바랄 것도 없다는 무력감은 언제 든 스스로를 무장 해제시킬 수 있는 독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칼 한 자루 손에 쥐고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용병처럼 긍정의 힘으로 이 판을 지키고 있는 형님 아우들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된다고 했던가? 1966년 공간지가 창간된 이래(절대적 사견임)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이 위 를 걸었으므로 그래도 이만큼의 길이 생긴 거라고 믿고 싶다. ⓦ 괜한 넋두리에 전시 광고라도 하나 해야겠다. 길을 내는 데 걸음해 주셨고 지금도 여전히 길 위를 걷고 계신 건축 사진가 선후배님들의 <건축도시기행> 전이 10월 26일부터 11 월 21까지 헤이리 갤러리 모아에서 개최된다. “건축과 도시에 깃들어 살며 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록한 세상”을 주 제로 한국 건축 사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봄으로써 그 지점이 어딘지 알고 발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한 전시이다. 본지 자문 위원 김재경이 기획을, 전속 사진가 진효숙, 남궁선이 작가로 참여한다. 이참에 전시에 참가하는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해 보겠다. ⓦ “김태오, 김재윤, 남궁선, 윤재혁, 유현민, 이재성, 최충욱, 신경남, 진효숙, 이인미, 윤준환, 박영채, 박재영, 조명환, 김철현, 김재경, 염승훈 이상 17인.”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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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디자인 수류산방에서 새로이 기획과 디자인을 맡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계간 매거진 <공예플러스디자인> 여름 호(통권 제4 호). 보다 다양한 시점과 색다른 접근 방식으로 공예와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위해 로고와 표지, 내지 디자인이 크게 바 뀌었다. 새로 바뀐 로고는 글자를 겹침으로써 공예의 마음과 디자인의 정신이 서로 유기적으로 삼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짝수 와 홀수 페이지가 각각 나란히 흘러가는 본문 디자인으로 연결된다. 여름 호에서는 ‘공생’이라는 하나의 화두 아래, 요즘 수도권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도시 농부’, 공예의 전통이 깊은 ‘통영’, 디자인계에서 관심이 높은 ‘업사이클링’ 등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수류산방과 함께 다시 태어난 <공예플러스디자인>은 그 제호의 의미처럼 디자인과 내용을 하나로 결합하는 실험이자 시도로서, 삶의 흐름을 창조적으로 디자인하는 하나의 계기 혹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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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엣지 Edge
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 09-10
2012•09 -10 -
ISSUE
026
와이드 칼럼
지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구영민 029
이종건의 <COMPASS 26> 누가 유걸을 탓하는가?
이종건 032
와이드 포커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은?
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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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12 09-10 | 와이드 칼럼
지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구영민 | 본지 편집 고문,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
ⓦ 20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 예술의 전당 전광판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해”. 밀레니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문화의 세기’에 대한 호기심에 들떠 있었고, 건축을 문화의 큰 조각으로 조심스럽게 말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무대의 한가운데에 서서 한 동안 국토를 재편성하는 역사(役事)를 벌였다. 이제 21세기도 벌 써 강산이 변하는 시점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들은 불행하 게도 세계 경제 불황에 따른 혼돈일 뿐, 문화를 누릴 만한 여유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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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고했던 모든 것들이 세계화의 흐름 속으로 녹아들어갔던 1990년대, 그리고 뉴 밀레 니엄. 그 광란의 축제가 끝난 후, 남은 것이라곤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듣고 보아야 하는 “글로벌/금융/위기”의 전 지구적 뉴스다. 이들 주제는 궁극적으로 건축의 총체적인 위기 로 마감되었고, 지난 10여년 간의 축제는 그야말로 물거품처럼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자리잡을 즈음, 미국발 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사태(서 브프라임 모기지)가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촉발시키지 않았더라면, ‘글로벌’ 담론은 도시 공간의 투기적 재배치를 통해 수백의 유령 도시들을 더 만들어 냈을지 모른다. 두 땅에서 경쟁적으로 건축 붐이 일어난 시간에 비해 금융 위기가 번지는 속도와 범위는 걷잡을 수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나비의 날개 짓이 태풍이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듯했다. ‘그 토록 염원하고 추구했던 글로벌의 최후의 모습이 이것인가?’ 상상으로만 여겼던 많은 것 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세계는 점점 경악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 이종관 교수(성 균관대학교 철학과)는 이러한 현상을 디지털 공간과 인간의 장소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라 고 간파하고 있다. 즉, 디지털스페이스로 흡수된 금융 산업의 위험 생산과 소비 경제가 왜 디지털스페이스의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집’을 유동화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폭발 해 버렸는가에 대해 묻는다. 이 교수에 의하면, 인간이 사는 집을 가상 금융 시장이 자신 의 위험 생산 작업에 끌어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스페이스와 인간이 사는 곳이 디지털 금융 시장이 탄생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통해 링크되었고, 최종 적으로는 디지털 금융 시장의 공간성과 실존적 공간성을 동시에 파열시키는 경제 위기로 폭발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우리네 사회에서도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활개를 치던 소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건설업계를 거덜내기 시 작한 것이다. ⓦ 근사한 사업 계획은 있는데 돈이 없다. 담보로 잡힐 재산도 없다. 개인이 세운 일이라면 십중팔구 계획은 계획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희망찬 미래(비전)'를 담보로 돈이 있는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수단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하 PF, project financing)은 원래 이런 이 유로 등장한 금융 기법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떠오른 PF문제 는 이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엄밀히 말해 한국형PF는 건설사의 시공 보증이라는 담보 가 있는 `대출'로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그러니 이런 국가적 비전에 발을 담근 유 명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건축계는 앞이 안 보이 는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 여기서 이러한 혼돈의 세대가 벌어지게 된 이 유를 들춰 보자면, 결국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부를 쌓겠다는 정치적 비전과 돈(경제) 문 제가 21세기 문화(文化)를 문화(文禍)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근대건축 시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 모더니제이션과 글로벌리제이션은 둘 다 새롭고 거대한 욕망 과 함께 야만적이고 광적인 ‘자본주의’의 동력을 받아 새로운 종류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작금에 벌어지는 건축 사건들을 돌아보면 글로벌 리제이션은 아예 근대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두바 이든 중국이든 비전과 돈을 위해서라면 모든 장소에서 유지되어야 하는 인간의 권리마저 소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건축의 ‘큰 계획’ 이 저질렀던 원죄를 품고 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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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근대건축은 건축을 역사와 무관한 독립된 대상으로 보고 시 대를 재현하는 기술과 문명의 결과물로서만 인정했기 때문에 결국 건축과 도시는 분리되 고 말았다. 즉, 건축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이를 사적 영역으로 축소하였기 때문에 건 축이 가져가야 할 공공적 차원과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 공간의 의미가 소멸됐던 것 이다. 근대건축의 내향성은 양적 위주의 경제성, 기술성 및 기능성에 대한 자기 해석에 집 착하도록 만들었으며, 지역에 대한 적응성보다는 보편성에 근거한 원칙을 강조했기 때문 에, 근대건축은 “장소성”(보다 질적 위주이며 실존주의적 측면)에 대한 구심점을 잃어버 리고 말았다. ⓦ 오늘날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글로벌 도시 건축은 어떠한가? 마이크 데이 비스와 다니엘 몽크(Mike Davis & Daniel Bertrand Monk)는 두바이와 같이 격리된 새 로운 지형을 부의 풍경으로 채색시키는 도시는 결국 ‘악의 파라다이스(evil paradises)’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람’의 권리가 얼마나 존중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 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글로벌 담론이 추구하는 도시 공간의 투기적 재배치 는 다양한 제스처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생태’, ‘탄소’, ‘에너지’ 등을 주제로 최적의 환 경을 암시한다든가, 또는 ‘유비쿼터스’나 ‘스마트’를 붙여 테크노 유토피아의 환상을 서비 스로 제공하기도 한다. ⓦ 더 나아가 이들은 ‘역사적 환경’을 도시의 주제로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늘 새로운 패러다임인 양 선전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광적인 기능과 효율 성, 그리고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근대성의 오래된 습관이 배어 있다. 근대건축과 다른 것은 건축을 역사와 밀접한 대상인 양 선전하면서, 이를 통해 소위 문화라는 상품을 생산 해 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에 내재된 영속성과 연속성의 연장선을 미끼로 복 제된 시간을 양산하여 관광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그러면서 보존과 보전의 질타를 피해갈 뿐 모두가 정치적 비전과 돈의 복선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보전이라는 미명 아래, 사실상 연속성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기존의 콘텍스트를 파괴하는 역효과를 가 져다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늘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도시 건축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결국 곤경에 처한 삶의 현실과 충돌하며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 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 시론을 통해 들춰내고자 하는 것은, 21세기 이후의 문화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되는 허상으로 남겨지게 된 이유가 결국 인간의 욕심을 비전 과 돈, 그리고 문화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다시금 거대 계획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란 것 을 밝혀두고자 함이다. 작은 집을 통해 장소를 소유하고픈 원시적 욕망을 디지털로 체계 화된 금융 시장에 말아 넣고, 획일적인 투시도로 눈속임을 하여 금융권의 제도적 장치 속 으로 빨려 들어간 ‘비전’, 그리고 이들을 마무리하는 역사를 도용한 소위 문화적 건축 장 치들이 이 세대를 유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시대 건축을 조망하는 방법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금, 이 텅 빈 영점의 공간을 메워 줄 신진 세대와 중견 건축가 들의 비판적인 담론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
Wide AR no.29 : 09-10 2012 Issue
이슈 2012 09-10 | 이종건의 <COMPASS 26>
누가 유걸을 탓하는가?
이종건 | 본지 편집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가장 비난을 많이 그리고 심하게 받는 건축가 목하 유걸은, 자신의 서울시청 프로젝트로 인해 아마도, 자신의 생애에 걸쳐서도 그러하겠지만, 이 땅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들 가운데 가장 비난을 많이 그리고 심하게 받는 건축가인 듯싶다. 어떤 기자에 따르면, 그는 시청 건물을 함께 둘러 보며 눈 물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는 그만큼 건축가로서 극심한 심리적 압박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의 건축적 작업에 대해 누구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는 것이 좀 희한하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그를 겨냥한 부정적 언사 들은 얼추,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감정의 토로인 탓에, 비판이 아니라 확실히 비난이라는 점이다. 또한 비난의 주체가 건 축가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까지 널리 걸쳐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난은 아마도, 몇 번의 연기 끝에 개관하기 로 예정된 가을에 들어서는 좀더 심해질 가능성이 짙다. 우리가 그에 대한 비난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에 대 한 비난이, 서울시나 여타 다른 대상과 달리, 건축적인 외관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이지 않은 디자인에 가하는 폭력적인 언어들 대중들은 그가 디자인한 시청 건물이 폭력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렇게 말하는 것이 폭력이 지 그의 디자인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 디자인을 두고 폭력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파시즘의 건축의 모습, 그러니까 엄격 한 대칭, 거대한 열주, 비인간적인 척도, 주변과의 관계의 무시 등을 뜻하는데, 그의 디자인은 그러한 특질들을 전혀 띠고 있지 않다. 그들이 쓰는 폭력이라는 언어는 기실 그들의 보수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칭하는 잘못된 표현일 따 름이다. 대중들과 건축인들은 그의 디자인이 구 시청사, 그리고 나아가 주변 건물과 역사적 맥락과 조화되지 않는다고(아 마 그래서 폭력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힐난한다. 구 시청사부터 보자. 그보다 우선 모종의 건물(들)과 조화 를 이룬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덩어리나, 비례나, 재료나, 형태 등의 견지에서 유사성을 띠는 것이라고 한다 면, 그것은 곧 현재가 과거에 따르는, 그래서 복속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부당하다. 왜냐하면 때가, 건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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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기술이, 한 마디로 건축을 하는 현대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건물을 설계할 때 기존의 건물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학부 저학년이면 다 아는 것이니, 따라서 유걸이 그 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과도한 억측 주장은 삼가하 자. 이미 세계적인 비평가들이 가르쳐 주었듯, 건축적인 가치를 잃지 않은 채 기존의 건물(들)과 조화롭게 관계를 맺는 것은, DNA 혹은 정신 등의 차원이라는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가능하지, 즉물적인 조화는 무의미하다. 게다가 무엇과 조화를 이루고 자 할 때, 그 무엇은 그러해야 할 분명한 가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요구된다. 그 대상은, 우선 건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구 시청사는 그러한 가치가 있 는가? 어떤 건축적/사회적 가치가 있는가? 이미 훼손된 그것에 심지어 보존의 가치가 있을지조차 의문스러운 형국에, 왜 그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좀더 크게, 맥락이라는 차원에서 우리가 어떤 건물을 설계할 때, 그 주변의 역사적 건물(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건축적 방책은 무엇인가? 아니, 있기는 한가? 이 견지에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은 그에 대한 합리적 답변을 지니고 있어야만 그 비판이 부당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주로 자본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그래서 누구 도 조화의 미학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미 충돌과 병치와 부조화가 풍경의 본질인 현대의 도시적 상황에서, 어떤 건 물(들)과 조화를 이룬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는가 물론, 그렇다고 서울시청이나 유걸에 대한 비평이나 비판을 삼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비평 혹은 비판은, 대상이 그 누구든 당연히 절실하다. 그런데, 그것의 수행에는 기본적으로 분명하고도 옳은, 그리고 대화 가능한 입점(혹은 비평의 틀)의 인식과 노정이 요구된다. 그의 건축은,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그러니까 세계의 지평에서 건축의 지식을 논구하는 틀 안에서 보면, 건 축적 가치가 별 없다. 기껏해야 형태적으로는 10년 전에 이미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블라비텍쳐(Blobitecture)라는 유행의 아류에 불과하고, 투명성(투명성과 프로그램의 관계나 현대 미학으로서의 투명성)의 시각에서는, 이미 한참 전에 김빠진 맥 주의 새삼스러운 등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시청을 우리의 건축적 능력이라는 현실 안에서 보면, 유걸의 당선과 개입은 매 우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인정하리라 믿지만, 서울시청사의 초기 디자이너 유걸은 우리 건축 사회에서 최고급 수준에 속하는 건축가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우리 중에 그보다 현격하게 나은 건축가는 몇 사람 없다. 그러니까, 적 어도 극히 소수를 빼고는 우리의 건축가들은 그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특히 시샘이 많은 이 땅의 건축가들은, 다들 자신의 안이 더 낫다고 생각할 터이다. 그쯤이야 작은 투정이나 애교로 볼만하다. 그런데, 건축학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 닌, 대중의 시선과 귀가 머무는 공간에서 유걸을 비난하는 것은, 그야말로 누워서 침 뱉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 그런데, 우 리 사회의 최고의 건축 스타가 유걸의 건축 행위를 불륜이라 일갈했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픈 일이다. 문화재 심의 위원회의 월권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진, 턴키 방식으로 합법적으로 확정된 건설과 건축 행위를 살려 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시행한 초청 설계 경기에 응한 것이, 그래서 당선되어 턴키 당선자 측과 맺게 된 관계가 불륜인가? 그뿐 아니라, 그를 포함한 네 명의 건축가들은, 물론 프로젝트가 워낙 건축적으로 욕심이 나기도 했겠지만(어떤 건축가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초청되도록 선 정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야 분명히 지녔겠지만, 처음부터 그어진 극명한 역할의 한계를 보건대 아마도 구원 투 수의 심정 또한 지녔을 듯싶다. 잘 알다시피, 유걸은 당선 이후 3년 간 철저히 고립되었고, 결국 막판 끝내기에 기어이 투입되 어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자신의 건축 아이디어가 그나마 덜 망가지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끼어든 그 막판 개입이 불륜이라는 것인가? 그 어떤 직능보다 자존이 높은 건축가가, 어지간한 (의로운) 결단을 하지 않고서야, 자신의 건축 적 의도와 작업이 송두리째 외면된 채 완공 중에 있는 건물의 건축 과정에 다시 뛰어들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러한 그의 행위 는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 그저 고마울 뿐인데, 불륜이라니! 그를, 그의 작업을 응원하고 지원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Wide AR no.29 : 09-10 2012 Issue
유걸의 디자인이라 그나마 다행 합리적이고 공개적인 절차의 측면에서 볼 때, 서울시청은 시민의 혈세로 마련되는 애초의 건설비도 결국 대여섯 배 더 지불 하는 꼴을 낳으며 참으로 어둡고 오래되고 뒤틀린 과정을 겪었다. 거기에는 턴키라는, 건축가라면 특히 공공 프로젝트에서 는 무조건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가 가장 문제스러운데, 아마도 건설 회사에 비 해 현격히 떨어지는 정치력 열세 탓인지, 여전히 변화의 조짐이 안 보인다. 우리의 건축 단체들과 그 단체들의 어른들은 도 대체 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단체의 장이라는 이유로, 초청 설계 경기 심사를 맡긴 자(들)도(아마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우리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태도 탓인 듯싶다), 또 자신의 건축적 역량을 살펴 자신이 처해야 할 자 리인지 헤아리지도 않은 채 그것을 맡은 자(들)도 문제가 크다. 조민석과 류춘수의 안이 너무 유치하다고 판단하는 안목, 대중과 서울시장의 눈에 맞추려는 태도, 그리고 여전히 학연과 혈연에 매인 심사위원(들)의 작태도 따져야 마땅하겠지만, 문화재 심의 위원의 월권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한 공적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공적인 규칙과 법은 근본적으로 지키는 것이 옳다. 월권은, 사람의 좋고 나쁨에 따라 결과를 좋게도 나쁘게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서 울시청은, 바로 그 월권의 덕으로 우리가 유걸 디자인이라는, 그 이전의 안들에 비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스케치에 기초해서 짓는 행운을 가졌다(우리 사회의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거의 모조리 쓸어가는 소수의 대형 설계 사무소 가 그리도 유치한 설계안들을 낸 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절망적인 일이다).
서울시청의 건축가로서 떳떳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야 서울시청은 건축 사회로서는 여러모로 행운이다. 건축이 이토록 열띤 관심과 주목을 받은 적이 오랫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 집단도 활발한 논의를 해 왔고, 각종 신문을 포함한 대중 매체들도 그것을 한두 번 다룬 게 아니다. 이미 영화도 제작 중이고 공중파도 탔다. 박정희 기념 점 도서관 또한 엄청난 언론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그것을 둘러싼 문제는 건축이 아니 라 정치였다. 서울시청 또한 정치(전체 절차를 집행한 주체가 서울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었고, 심사위원들 또한 단체 의 장이었으니 온통 정치적)에 의해 휘둘리긴 했지만, 적어도 그것에 대한 전 서울시장을 포함한 비건축인들의 관심은, 설 령 표피 디자인이든, 상징성이라는 흐리멍덩한 표현이든, 건축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좀더 나은 우리 사회의 건축 문 화를 일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항차 서울시청이 그의 개입으로 인해 좀더 나아질 수 있도록(예컨대 측면은 다시 디 자인해서 무조건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용단을 내려 뛰어든 그의 건축적 용기와 헌신을 칭찬하고 고마워할 뿐 아 니라, 그가 서울시청의 건축가로서 좀더 떳떳할 수 있도록 모든 측면에서 지원하고 돕는 것이다. 그를 탓하는 것은 어떤 측 면에서도 옳지 않다. 나는 그가 시청 건물을 둘러보며 흘렸다는 눈물이, 자신을 향한 비난 때문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물이 생산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노건축가의 참으로 건축적인 안타까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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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12 09-10 | 와이드 포커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은? 양건 | 전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회장, 가우건축 대표
Wide AR no.29 : 09-10 2012 Issue
최근 제주에는 환경올림픽이라 일컫는 ‘2012세계자연보전총회(WCC, 2012.9.6~9.15)’가 개막되어 전 세계 환경 전문가 일 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자연의 회복력’을 주제로 인류와 환경 보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책 사업인 강정 해군 기지 등의 예민한 상황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제적 환경 도시로서의 이미지브랜딩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제주 건축계에는 멕시코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 1931~2011)의 작품인 <더 갤러 리 카사 델 아구아(물의 집)>(이후 더 갤러리)의 철거 논쟁이 화두가 되어 있다. 현행법을 위반한 건축물을 철거할 수밖에 없 다는 행정과 문화 예술적 가치와 공공성에 의해 집행의 유연한 대처를 요구하는 문화 예술계 간 의 첨예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더구나 주한 멕시코 대사(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가 직접 서귀포시청을 방문하여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 중단을 요구함으로써 한멕시코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철거 논쟁의 배경 ⓦ 2003년
제주특별자치도는 마이스(MICE) 산업의 중추적 시설로 제
ⓦ 문제의 출발은 여기서부터이다. 새로운 사업
주 컨벤션센터를 완공하였다. 컨벤션센터가 제 기능을 하기
자인 (주)부영주택 측이 앵커호텔과 부지를 인
위해서는 행사 지원과 숙박을 지원하는 앵커호텔이 필수적
수하면서 <더 갤러리>를 제외한 것이다. 즉, 부
인데, 재원 마련이 원활치 못해 지연되었다가 홍콩의 타갈
지는 부영이 소유하게 되고 더 갤러리의 소유권
더(Tagalder)그룹에 부지를 매각하면서 사업이 재개된다.
은 (주)JID에 남아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가 설 건축물의 존치 연장 신청이 되지 않았고, 관
2005년
현지 법인인 시행사 (주)JID는 앵커호텔과 레지던시 호텔의
할 행정청인 서귀포시청은 존치 기간 만료와,
설계를 리카르도 레고레타에게 의뢰하고, 동시에 한국의 설
중문관광단지 해안선 100미터 이내에는 영구
계 회사로는 간삼건축이 맡게 된다. 당시 자연 경관의 침해
건축물을 제한한다는 환경영향평가 규정을 들
가 예상되고 사업성에 의해 규모가 대형화되었다는 제주특
어 강제 철거 행정 대집행 명령을 내리게 된다.
별자치도 건축 계획 심의의 논란도 있었으나, 세계적 건축가
이후 (주)JID는 제주지법에 행정 대집행 취소
의 작품을 유치하는 차원에서 현재의 계획을 수용하게 된다.
소송을 냈으나 기각되었고, 서귀포시는 2012년 8월 6일을 행정 대집행일로 통보하여 놓은 상 태였다.
2007년
시공사는 금호산업이 선정되어 착공하였다.
2009년
호텔 <카사 델 아구아>의 분양을 위해 갤러리를 겸한 모델하 우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3월 완공된다.
2010년
그러나 골조 공사가 완료된 상태에서 시행사의 자금난과 시 공사의 워크아웃으로 본 공사는 중단된다.
2011년
(주)부영주택이 새로운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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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 반대를 위한 노력들 ⓦ ⓦ 강제 철거 행정 대집행의 급박한 상황에서 공평 아트
→ ⓦ 이 전시로 <더 갤러리> 철거에 대한 소송 관련에 무관
센터 공평갤러리는 국내외 조각가 20명과 함께 강제 철거
심하였던 제주의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주한 멕시
의 반대를 주장하는 방패 전시를 7월 23일부터 8월 30일
코 대사가 철거 집행 철회를 요청하며 서귀포시를 방문함
까지 열었다.
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 이후 예총 제주지회와 제주 민예총 등 문화 예술계에서
→ ⓦ 그러나 제주 건축계는 건축계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차례로 <더 갤러리> 철거 반대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별 다른 대응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지역 사회에서 행정의
연일 이어지는 지역 언론의 보도는 건축이 문화 예술의
테두리 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
한 분야임을 지역 사회에 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내었다. 제주의 건축 관련 3단체(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 축가회, 대한건축사협회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사회, 대한 건축학회 제주지회)가 공동 성명서까지 만들었음에도 외 압(?)에 의해 발표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향후 지역 사회 에서 이들이 주장하는 건축 문화에 대한 외침이 지역 주민 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회의가 드는 지점이다.
ⓦ 반면, 사단법인 한국건축가협회(회장 이광만)도 제주
→ ⓦ 이러한 움직임들에 의해 하나의 건축물이 외교의 문
지방법원에 철거 반대의 탄원서를 제출하였고, 제주특별
제, 더 나아가서는 국가 품격의 문제일 수 있음을 도민들
자치도, 서귀포시, (주)부영 등 3곳에 공문을 보내어 “서
이 공감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
귀포시의 강제 철거 행정 대집행 명령과 제주지방법원의
만 중앙의 건축계와 제주가 좀더 긴밀한 협력과 동조가 이
판결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이룩한 건축 문화 발전에 반
루어졌다면 그 결과가 더욱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
하는 것이다.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 건축의 정수이며
쉬움이 있다.
제주가 품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유산이다. 철거는 국가 외교 및 사회 전반적인 문화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국가의 품격까지 실추 시킬 수 있는 중대한 것이 다”라며 <더 갤러리>의 철거 반대 의사를 밝혔다.
ⓦ 지난 9월 초에는 제주의 건축학도들이 ‘미래의 제주 건 축 주역들이 말하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더 갤러리를 보존하여 야 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의미있는 활용 방안에 대한 진 중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 토론회는 제주 건축계의 유 일한 움직임으로 침묵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에 대한 항변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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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모임인 ‘제주미래전략산업연
→ ⓦ 그러나 토론자로 참석한 제주특별자치도 한동주 문화
구회’에서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왜 지켜져야 하
관광스포츠국 국장은 문화 예술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
는가?>란 주제로 토론회(2012.8.21)를 개최하였다. 발표
도, 현행법 집행에 예외를 둔다면 그 이후 제주 경관의 요
자로 나선 승효상 선생은 건축에는 예술적 측면에서 대체
지에 들어오는 건축가들의 작품엔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
불가능한 정신이 내재되어 있음을, 또한 건축은 기억의 장
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어려움을 토로함으로써 법집행의
치이며 그 기억은 사회 문화의 영속성을 지탱하는 근간임
완고한 의지를 보였다. 양자 간의 논의가 상반되기는 하지
을 역설하며 건축으로서 <더 갤러리>의 보전에 대한 당위
만, 행사 주최 측인 도의회와 토론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성을 피력하였다. 더 나아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문화 예술적 가치와 공공성이 담보된다면 법집행의 유연
를 파괴할 권리는 오직 리카르도 레고레타만이 갖고 있는
성을 발휘하여 <더 갤러리>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것이며, 제주특별자치도가 반달(Vandal)의 대열에 서는
토론회 이후 <더 갤러리>의 소유주인 (주)JID는 제주특별
것을 우려하였다.
자치도에 무상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이제 <더 갤러 리>의 운명은 (주)부영의 토지 사용에 대한 결정과 행정의 문제 해결 의지에 달려 있게 되었다.
ⓦ 이렇듯 2012년 여름, 제주의 건축 동네를 뜨겁게 달구었던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 논쟁에 대한 주요 관점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관계자들의 이권 다툼과 관계없이, 어떻게 문화 예술의 가치를 내세워 현행법 위반의 문제를 넘어서서 보전할 수 있느냐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법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를 <더 갤러리>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철거 반대를 위한 노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브랜드 가치 외에 건축 작품으로서 <더 갤러리>를 이 해하려는 자세는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철거 반대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예술계는 각자 자신들이 해 석 가능한 층위에서 <더 갤러리>를 논하고 있을 뿐이다. 정체되어 있는 <더 갤러리>의 논의 수준을 끌어올려 내재된 건축적 가치를 파악하기 위한 다음 단계의 노력들이 요구되며, 이 지점에서 건축계, 특히 제주 건축계의 역할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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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가치는 무엇인가 ⓦ 2000년대 들어서서 제주는 국제자유도시의 목표 아래 개발 지향주의적 태도를 일관하여 왔다. 그런 이유로 제주의 수려한 자연 경관은 대형 개발 사업으로 대체되고, 최종의 도달점이 어디인지 도 모르고 앞만 향해 가고 있다. 사업자들은 최대의 수익을 위해 가능한 최대의 용적을 추구한다. 이때 제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각종 심의의 원활한 통과와 마케팅을 위하여 브랜드 파워가 있는 세계적 건축가들이 동원(?)된다. 이것이 안도 다다 오, 마리오 보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업을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카사 델 아구아 호텔> 역시 국내 건축 설계 회사에 의해 몇 번의 건축 계획 심의를 진행하였으 나, 무리한 규모 계획으로 통과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레고레타의 설계로 전격 전환하여 세계적 건축가란 브 랜드 파워를 내세우게 된다. 섭지리조트에 안도 다다오를 초청한 것과 유사한 전략이며, 공교롭게도 동일한 한국의 건축 설계 회사가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레고레타 역시 시행사의 무리한 요구에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예상되지만, 3동의 타워 와 루프캐노피가 이루는 픽쳐 프레임으로 제주 경관과의 관계맺음에 성공적인 계획안을 제시함으로써 건축 심의를 통과 한다. 당시 제주 건축계에선 레고레타의 안이 멕시코의 지역성이 강하여 제주의 풍광에 맞는 것인가란 이견(異見)도 없지 않았다. 레고레타는 2008년 10월 내한하여 제주에서 강연회를 갖는다.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긴 여정 끝에 도착한 78세의 세계적 거장이 <카사 델 아구아>는 자신의 건축 스타일로 제주의 땅을 충분히 이해하여 설계하였음을 밝히는 경건한 자리 였다. 이렇게 하여 제주 땅에 레고레타의 작품이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 다음으로 과연 <더 갤러리>에 제주의 지역성이 담겨져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멕시코 이외 의 지역에 설계된 레고레타의 건축들을 통해서 그가 지역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자신의 작업으로 승화시켰는지 참고할 수 있겠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이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중심 도시 빌바오에 설계한 쉐라톤 호텔(Sheraton Abandoibarra Hotel, Bilbao, Spain)이다. 여기서 그는 바스크 지방의 조각가 칠리다(Eduardo Chillida)의 조각품을 매개로 바스크 지 방의 지역성을 이해하고, 호텔의 아트리움 공간과 외형적 이미지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카타르에 설계된 몇 개의 대학 프로젝트에서도 지역 특유의 문양을 건축의 외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였을 때, 멕시 코의 강한 지역적 특성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완성된 레고레타의 건축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건축이지만, 멕 시코 이외의 지역성이 강한 땅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서는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방식으로 지역적 특성을 가미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더 갤러리>에는 제주의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다만 레고 레타의 완결된 건축 방식이 제주의 풍광과 조화되었기에 아름다운 건축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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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제주 땅에 세워진 레고레타의 건축은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우 선은 작품의 희소성이다. 그의 작품집을 보면 아시아 지역에는 일본과 제주에만 작품이 있다. 그것도 대중이 접근 가능한 건축으로서는 <더 갤러리>가 유일하다. 더구나 조금 다른 화두(추후 반드시 다루어야 할)이긴 하나, 본 건축인 <카사 델 아 구아 호텔>이 사업자의 임의대로 고쳐지고 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이 희소성이 철거 반대의 대중적 이유일 것이며, 멕시코 대사관에서 성명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 그런데, 더욱 중요한 <더 갤러리>의 가치는 세계 건축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지역성과 보편성의 상호 보완적 완결성에 있어서 대표적인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제주의 건축가 더 나아가 한국의 건축가들이 글로벌한 보편성의 건축과 지역성의 완결체로서 자신의 건축을 만들어 갈 때, 그것을 하나의 참고서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지켜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보전의 당위성 ⓦ 제주에는 경관 관리 계획이 아주 강하게 작동되고 있다. 그러나 계획의 근본 이념과 달리 자연 경관에만 치중됨으로써 경직된 사고로 경관의 실체를 간과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저 아름다 운 중문의 해안 절벽 위에 앵커호텔이 들어서야 했던 이유, 다행히도 세계적인 건축가가 지역성을 자신의 건축으로 완결 한 작품이 서 있는 역사가 또 하나의 제주 경관을 이루는 인문적 환경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적층되어 제주 사회의 문화적 영속성은 유지되는 것이다. ⓦ 비록 원활한 개발 사업의 진행을 위해서 레고레타의 건축이 제주에 설 기회 가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더 갤러리>의 문화 예술적, 건축적 가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 제주 건축의 한 부분이며 역사이기도 하다. 법에도 공공의 가치 증대를 위한 시설이라면 예외 조항이 있다. 어느 기자의 표현처럼 <더 갤 러리>를 ‘특별 사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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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2012년 여름, 건축을 주제로 제주 사회가 이리 뜨거워 본 적이 있었던가! <더 갤러리>의 철거 논쟁으로 말미암 아 연일 이어지는 지역 언론의 보도, 문화 예술계의 성명, 도의회와 학교의 토론회 등은 제주 사회에서 건축의 문화 예술 적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제주 사회에서 건축계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이번 논쟁 을 통해 김형준 교수(제주대)가 <더 갤러리>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면서 문화에 대한 제주 지역의 인식 수 준과 철학이 없는 행정을 비판했듯이, 우리 모두가 자성의 노력이 필요함을 공감하게 되었다. ⓦ 제주는 이미 1995년 고 김중업 선생의 구 제주대학본관을 철거한 뼈아픈 과오의 기억을 갖고 있다. 아직도 행정은 요지부동이지만, 그러한 과오 를 다시는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란 희망을 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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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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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 t p r e D po e R
서 울 을 기 반 으 로 활 동 하 는 벽 안 碧 眼
의 건 축 가 들 41 / 41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들어가며 : 서울의 조건을 묻다
현장에 감리를 나가는 서울의 건축가들이다. 모토엘라스티
—
코(MOTOElastico)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시모네 카레나
서울은 매력적인 도시인가? 좀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바꾸
(Simone Carena)와 마르코 브루노(Marco Bruno), 송률
어 보자.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많은 도시가 있다. 건축가인
과 함께 Supa Architects Schweitzer Song을 운영하고 있는
당신이 연고지라는 태생적 이점을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당
크리스티안 슈바이쳐(Christian Schweitzer), 최성희와 함
신의 실무를 펼칠 거점으로 서울을 선택할 것인가? 바야흐
께 최-페레이라건축(CHAE-PEREIRA architects)을 이끌
로 세계화(Globalization)란 표현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반
고 있는 로랑 페레이라(Laurent Pereira), 그리고 PWFER-
면, 우리는 세계화를 거시적이고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RETTO의 피터 페레토(Peter Ferretto)가 그들이다. 이들
않은가? 해외의 유수 설계 사무소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한
은 모두 서울에 자리잡은 지 길게는 10년, 짧게는 4년 정도
다면 우리의 입지는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혹은 어려운 국
되며, 한국에서 실제 지어지는 프로젝트를 작업한 경험이
내 경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해외 시장을 개척할 것
있다. 또 대부분 고향뿐만 아니라 타국에서도 활동한 경험
인가에 관심을 둔다. 아니면 하루하루 버텨 나가기에 힘쓰
이 있는 이들이다. 본지에서는 이들에게 건축가로서 서울이
다 보니 그런 거창한 문제는 신경쓸 여력이 없다. 그래서 막
라는 도시의 실무환경에 대해 묻는 자리를 마련했다.
상 우리가 몸담고 있는 환경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
이번 기획을 제안했던 최춘웅 교수는 “출생 도시와 달리 의
으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창조적인 건축가를 끌어당길 만큼
식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기반 도시로 서울을 선택한 많은 건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었는지,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현실을
축가들은 서울의 창의적인 활동력에 매력을 느끼고 서울에
되짚어 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을 수도 있다.
정착했지만 여러 기관 및 지역 사회의 제도적, 관습적 폐쇄
여기, 젊은 건축가들이 있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태어
성으로 인해 고립되고 소외되는 경험을 겪는다”고 지적한
나 공부하고, 선배 건축가의 설계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았
다. 그리고 “다양한 신진 건축가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다. 국적은 다르지만, 현재는 서울에 정착하여 활동하는 40
국적에 관계없이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설계 작업을 수
대 초반의 건축가들이다. 즉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
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문화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서울
해 잠시 수입하는 명품 브랜드(소위 스타 건축가)로서가 아
은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질문한다.
니라, 서울에 사무실을 열고, 수주하고, 건축주를 만나고,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들을 ‘외국인 건축가’로 호명하지 않
Wide AR no.29 : 9-10 2012 Depth Report
Depth Report
으려고 했다. 흥미롭게도 크리스티안의 파트너인 건축가 송
유로 언어를 꼽기도 한다. 언어의 문제는 양면적인데, 영어
률은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과 한국 건축가들이 느끼는 어
가 쉽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실무의 장애물이기도 하지
려움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즉 실무에 임하는 건축
만, 또 이들이 쉽게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을 수 있는 보호막
가로서 직면하는 어려움은 비슷하지만 이를 인식하고 돌파
같은 역할도 한다. 따라서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오히려 특
해 가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이
권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한국인들에게 불만을 사는 이유가
차이와 공통점, 그리고 다른 시선으로 보는 서울의 가능성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력이 전지구적으로 활동하는 최근의
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더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건
경향과 기회를 찾아 상대적으로 쉽게 이동하는 이들 세대의
축가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자 했다.
특성을 고려한다면,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으로
물론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한국인 건축가들도 있
한국에 오면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적인 방식으로 일을 해야
을 것이다.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능력에 비해 특별 대우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를 받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인이
이번 토론은 온라인에서 시작하여 오프라인으로 마무리되
라면 쉽게 피해갈 수 있는 어려움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므
었다. 지난 7월 재미있는 방식으로, 그렇지만 즉답보다는 한
로, 결국 비슷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걸음 멈춰서 생각해 보기 위해, 이메일로 토론을 시작했다.
이들이 서울에 정착한 이유는 기회, 즉 유럽에 비해 기회가
그리고 8월 10일 홍대 근처에 모여 마무리 집담회를 가졌
풍부하다고 여겨서이기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시장의 경계
다. 이들이 논하는 내용 자체가 우리에게 새롭지 않을 수도
를 확장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더 면밀하게 들
있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가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지레
여다보면, 그 기회에는 사적인 조건(이들 대부분 파트너가
언급조차 포기했던, 우리가 실제 몸담고 있는 현실을 다각
한국인이다)이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서
도로 해석해 보고, 서로의 문제의식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
울이, 또 한국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축가들에게 녹
가 이번 토론의 의의일 것이다.
록한 실무 환경은 아님을 방증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언어의 장벽 때문이다. 이들은 영어 가 공용어인 홍콩 같은 다른 아시아 도시에 비해서 국제적
기획 및 진행—최춘웅(편집위원, 고려대 교수), 김정은(WIDE
인 설계 사무소의 지역 사무소가 서울에 개설되지 않는 이
beam 실장)┃글—김정은┃사진—진효숙(별도 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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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집담회: 한국 건축의 시스템과 관성을 말하다
최춘웅 와이드AR 편집 위원, 고려대 교수
피터 페레토 Peter Winston Ferretto PWFERRETTO, 서울대 교수
로랑 페레이라 Laurent Pereira CHAE-PEREIRA architects, 고려대 교수 마르코 브루노 & 시모네 카레나 Marco Bruno & Simone Carena MOTOElastico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Christian Schweitzer Supa Architects Schweitzer Song
Wide AR no.29 : 9-10 2012 Depth Report
집담회 : 한국 건축의 시스템과 관성을 말하다
최춘웅• 서울로 옮겨 온 이후 여러분의 작업은 어떻게 달
또 다른 혼란은 우리의 전문적 활동과 관계하여 비롯되는
라졌는가? 변화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변화
데, 그 원인은 우리의 교육적 배경에서 온다. 우리는 둘 다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건축가로 교육 받았지만(학사는 이탈리아에서, 석사는 미 국에서, 실무는 포르투갈, 영국, 자메이카에서), 건축을 가 르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앉은 지역
가부장적 시스템
교직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소수의 지역 실무자 친구들
—
이 있고 우리에게는 지역 건축 마피아의 대부가 없다. 그리
피터 페레토• 아웃사이더로서, 시스템에 속할 수 없는 건
고 우리는 결코 대박의 거래를 위해 룸살롱에 가지 않았다!
축가로서(한국의 시스템은 매우 가부장적이다), 서울에서
이러한 모든 개인적 불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실무는 꾸
일하는 것은 해방이다. 본래 시스템 내에서 일하게 되면 시
준히 증가하였고 우리 프로젝트의 규모는 확장되고 있다.
스템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경계 너머를 탐험하는
우리는 한국에서 최고의 이탈리아 건축 사무소라고 주장한
일은 불경에 가깝다. 런던에서의 작업에 비해 서울에서의
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업은 좀더 파편화되었다. 나는 총체적 의미를 찾는 대신
한국 사회에 비판적으로 도전하고 아이디어를 생성하기 위
추상적인 방식으로 개별적인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게 되
해 이러한 특권을 사용한다. 우리는 익숙하지만 낯설게 보이
었다. 설계는 마치 작곡이나 영화 편집 과정과 유사해졌다.
는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현지(지역)의 소스를 조작하
—
고 왜곡한다. 이를 통해 획일적인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
마르코 브루노•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다양한 의뢰를 받
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스템은 너무 거대
았다. 명함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설치 예술, 건축, 도시 계
하고 심각하여 쉽게 영향을 받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획 등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아직 동양의 깨우침에 다다르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고집
지는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구의 소크라테스식 사고, 즉
이 있고, 또 육감을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유머 감각이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에 깊게 뿌리박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실무를 하면 할수록, 어떻게 실무를 ‘해야 하는지’ 건축의 관념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곳 서
—
울에서 사무실을 열도록 권해도 될지 의문스럽다. 모토엘라스티코는 동일한 책임감을 가진 두 사람이 파트너
로랑 페레이라• 서울의 경관은 내가 건축을 계획하는 방식
를 이루고 있다.[헤르조그와 드 뮤론(Herzog & De Meu-
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곳의 모든 것들은 유동적이고
ron), 가베티와 이졸라(Gabetti & Isola), 로럴과 하디(Lau-
영구적인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콘텍스트’에 관
rel and Hardy)무성 영화 말기에서 유성 영화 초기에 걸쳐 활약한 미국 희극 영
해 생각하는 방식은 꽤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했다. 보이지
소니와 셰어(Sonny & Cher)1960~70년대 미국 팝 뮤직 듀
않는 힘이 물리적인 콘텍스트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현
화의 명콤비,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실에 따라 나는 접근 방식을 재정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
이런 경우가 드물다. 많은 회사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강
마도 유럽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이전 나의 자리로 되돌아갈
한 위계를 세워 놓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인에게 우리가 비
수 없을 것이다.
오이자 배우, 가수, 엔터테이너 팀 처럼
슷하게 보인다는 점(비슷한 키와 몸매, 같은 머리색과 자전
—
거 색상)은 때때로 완전한 카오스다. 가장 혼란스러운 일은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서울에서 설계를 하거나 건축적 토
우리의 두카티Ducati. 이탈리아의 바이크 정비공이 우리가 같은 사
론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글로벌한 담론에서 사용되는 동
람이라고 생각하고, 단지 기분에 따라 다른 모델을 운전한
일한 용어들이 적용된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다고 여기는 일이다.
러한 용어들은 서구에서 사용하는 것에 비해 더욱 극단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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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며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이 알고 있
의 전달 매체로 혹은 저장 공간, 혹은 사생활 발전기로서 고
는 것과, 우리가 하려는 일은 서울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않
도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벽을 공간 구성 요소에서 기능적
으며, 서울이라는 압도적인 유기체가 그 모든 것을 빨아들
인 요소로 변환시키며, 벽 저 편의 공간과 단지 분리되는 것
여 그냥 삼켜 버리고 만다. 서울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
이 아니라 완전히 단절시킨다. 서울의 최종 결론은, 도시와
던 건축의 구체성들을 관념적인 작업 안으로 녹아들게 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비교 기준점도
다. 서울에 도착한 이래로 우리는, 유럽에서 진실이라고 배
허락하지 않는 끊임없는 내부 공간의 연속이다. 서울의 한
웠던 모든 단어와 모든 단계를 다시 정의해야 했고, 처음부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것이기
터 새롭게 배워야만 했다.
도 하며 또한 이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의 질은 다
서울에 현재 ‘존재’하는 것들은, 건축 설계는 그것의 콘텍스
른 공간과의 관계가 관건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에 비해, 서
트와 함께 구축된다는 일종의 소통 방식으로부터 철저하게
울의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되는 추상적 공간이다.
물러나 있다. 표면적으로 서울의 건축은 어느 것과도 관계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개발된 형태 생성 방법론은 서울에서 거
를 맺고 있지 않으며, 오직 그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 보이
의 우연하게 적용되고, 이면에 있었던 이론과 상관이 없어
는 다양성을 보이지만, 금방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진다. 형태는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그저 적용될 뿐이며, 생
게 된다. 서울에서는 이용자의 행태가 프로그램화 되어 버
각의 표현으로서 형태는 형태의 표현으로서의 형태로 한계
린 하나의 건물이 무한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를 갖게 된다. 그렇게 서울은 형태를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
건물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대체 가능하다.
다. 형태는 콘텐츠, 아이디어, 방법론, 그리고 건축 프로세
그리고 서울의 시간은 선적이지 않다. 서울에서는 모든 것
스 그 자체와도 상관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동시다발적으로 급속하게 발생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건
그리고 그 기능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재료의 선
물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 자체도 그것이 생각난 순간 벌써
택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된다. 이는 재료의 건축
옛 것이 되고 만다. 도시의 변화 속도는 영구성과 영속성의
적 표현 가능성을 약화시키며, 재료는 더 이상 건물의 위상
의미를 무색하게 하며, 건축가는 어떠한 문제가 구체적으로
과 표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재료는
제기되기 전에 벌써 그것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현
한다. 이러한 모순은 건물의 짧은 수명으로도 표출된다. 건
재를 위해 존재하는 서울의 건물에는 재료의 내구성이나 지
물의 가치는 대지의 가치에 비해 형편없이 낮아서, 건물을
속 가능성, 유지 보수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고, 폭넓은 재료
존치시키는 데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서울의 모든 건
가 적용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단순한 플라스틱 천막 건물
물은 임시적인 구조물일 뿐이다.
이 더 오랜 수명을 가질 수 있으며, 다른 어떤 일반적인 재료
서울은 본질적으로 다기능적이다. 건물의 기능과 프로그램
보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심지어 건물이 지어지기 전이라
이러한 관찰은 우리에게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도 말이다. 서울의 건조 환경은 무엇에든 적응할 수 있지만,
무엇과도 관련되기를 원치 않고, 어느 것도 표현하지 않으
또 다음 순간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 기능은 그것이 비롯
려 하며, 기능도, 경제적 수명도 상관없는, 어느 누구에게도
된 구조와 상관없이 변화하고 중첩되고 교환된다. 이 프로
가치를 갖게 하지 않는, 이렇게 극단적인 서울에서 어떠한
그램의 중첩은 특정 기능의 소멸을 야기한다. 모든 것은 언
건물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서울은 ‘글로벌 도시’의 프로토
제 어디서나 어떠한 것으로든 가능한 능력을 가져야만 한
타입의 하나이다. 그러나 중국, 남동아시아, 인디아 또는 남
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도시의 방해 요소가 되고 만다.
아메리카와 비교하여, 서울은 규모와 복합성 면에서 여전히
이렇듯 서울의 공간은 이차원적이다. 공간은 내부 공간과 외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으며,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
부 공간을 분리하는 벽의 두께로 축약된다. 다른 형태의 공
게 가장 흥분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이 벽은 넘쳐나는 정보
Wide AR no.29 : 9-10 2012 Depth Report
—
집담회 : 한국 건축의 시스템과 관성을 말하다
최춘웅• 여러분들이 실무의 기반을 서울에 두고 활동한다
천국의 디자인은 건축과 불경의 상당히 멋진 역설을 재현한
는 사실은 분명, 여러분들이 한국 건축 문화의 한 부분을 차
다. 이는 재미있고, 심각하고, 명확하고, 창조적이고, 놀랍
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충분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고, 컬러풀하고, 깊고, 시끄럽고, 복합적이고, 고전적이고,
단지 다른 건축가들과 대화가 부족하거나, 혹은 영어에 대
펑키하고, 키치하다. 키치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는 올바르고
한 일부 알레르기적 반응 때문에 여러분들의 작업이나 생각
대단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키치를 다루기 위해서는 자신감
이 경계의 담론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키치의 사전적 정의는, “예술, 사물
는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
혹은 디자인이 과도한 반짝거림이나 감상 때문에 빈곤한 취
동하는 건축가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여러분
향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아이러니나 방법을
의 많은 동료들은 여러분이 무엇에 관해 생각하는지, 건축
알고 있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는 사전
가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질
의 대단한 반전이고, 이러한 반전은 “아이러니나 방법을 알
을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고있음”에서 힘을 얻는다. 여기서 지식과 아이러니는 빈곤 한 취향의 해독제와 같다. 모토엘라스티코는 광장시장(키치와 비단, 전통 그리고 관습
무질서한 현실과 키치(kitsch)
에 대한 도전의 바다)의 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제
—
안하는 공간의 긍정적인 풍미로서 이러한 현실을 자연스럽
최춘웅• 모토엘라스티코 작업의 유머 감각과 불경스러운
게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리고 한국
색조 감각은 정말로 상쾌하고 도발적이다. 당신의 프로젝트
에서는 부분적으로 선호하는 인간애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는 한국의 대중문화로부터 일상적 사물의 창조적 가능성을
우리는 이성적 측면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어지러운 현실에
매우 명쾌하게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 일
질서를 부여하길 희망한다. ‘질서’는 우리의 공간─미션의
각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키치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키워드가 될 것이다. 소음 안에서 당신이 발견할 수 있는 규
도 있다. 획일적인 시스템에 균열을 형성하고자 하는 당신
칙은 오직 키치 안에서 ‘지적인’ 삶에 대한 힌트이다. 그래서
의 바람에 관해 더 설명해 달라. 한국의 건축담론은 일상의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머의 안경을 쓰는
현실에서 너무 멀리 와 버렸는가? (그러한 담론이) 너무 이
것이다.(카펫 구렛나루가 있는 엘비스 안경은 우리 사무실
론적이고 심각한가? 우리는 사회 활동가나 학술적으로 현
아래 장난감 가게에서 4천원에 살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인인체 하는 것보다, 설계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야만 할까?
취향의 빈곤함을 극복할 것인가 고민한다. 알마니와 베르사
—
체, 냉철함과 매력 사이의 훌륭한 균형을 말이다.
시모네 카레나• 불경과 풍자는 광대의 무기이다. 건축가
—
는 엔터테이너와 학자가 복합된 존재로 헐리우드 스타부터
최춘웅• 크리스티안은 한국의 건축이 추상적이고, 건물은
오프브로드웨이의 연극배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단지 주어진 대지에서 일어나는 임시적인 일에 불과하다고
배우와 비슷하다(스타 건축가, 지식인, 지역 건축가 등). 종
보았다. 이러한 현실은 모토엘라스티코의 프로젝트에 합리
종 건축적 담론은 너무나 심각하여, 마치 슬픔이 필요하다
적인 정당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신의 프
고 오해된다. 그러나 당신이 색이나 음악 혹은 웃음에 관한
로젝트는 이와는 아주 다르다. 당신은 서울의 건축이 기능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때, 이는 삶의 긍정적인 면에 가까워
및 콘텍스트와 무관하고, 형태는 이론이나 문화적 콘텐츠를
진다.
상실했으며, 지역의 건축 커뮤니티 내에서의 대부분의 토론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르네상스의 황혼기에 퇴폐적인 교
이 거의 소용이 없다고, 통찰력있게 진술하였다. 나는 이러
회와 사회를 고발하는 『신곡』을 썼다. 그런데 문학적 형식
한 관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생각은 일
은 코미디(희극)를 선택했다.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 연옥,
하는 방식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일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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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서 교묘하게 만들어진 엑조티시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
되었다)이다. 1991년 프레드릭 제임슨(Frederic Jameson)
로운 제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은 “건축가가 세상과 대화할 수 있도록 남겨진 유일한 수단 은 죽은 언어뿐이다”라고 확신하였다. 서울은 우리가 그에 게 동의하도록 하였으나, 바로 지금 우리는 이러한 죽은 언
K-pop과 한국 건축
어의 어휘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마도 무언
—
가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우리는 (오늘날 건축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잉여나 생산 자본주의 개념, 마케팅, 소비로서 의 건축에 대하여 아주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적은 없다. 우
공모전 문화
리는 개념적이고 사회 비판적 대응의 도구로서의 건축에 더
—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국의 시스템에 꽤 매료되었다
최춘웅• 크리스티안과 피터는 최근 공모전에서 당선했다.
는 점을 인정한다. 건축 단체에서 시공사까지, ‘건조 환경’을
다른 사람들도 여러 공모전에 참여했을텐데, 한국의 공모전
생산하기 위한 글로벌한 메커니즘의 프로토타입을 보여 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축가로서 참여하는) 한국의 건설 산
—
업과 K-pop 현상 사이에는 꽤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엔
로랑 페레이라• 한국에서의 첫 한 달은 상당히 폭발적이었
터테인먼트 회사는 대중적이고 상품성 있는 보이그룹과 걸
다. 최성희와 함께 우리는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공모전의
그룹들을 생산한다.(나는 의도적으로 ‘밴드’라는 용어를 피
두 번째 단계에서 우승했다. 이것은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
하고자 한다.) 이 산업의 핵심인 실제 음악은 무작위로 대
졌고, 우리는 너무 급작스럽게 한국 사회의 현실로 뛰어들
체 가능한 주변 상품만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여전히 음
어갔다. ‘외국인 건축가’라는 위상은, 나는 그것이 진정 특권
악은 존재하지만 시스템 내에서는 사소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내가 디자이너로서 이해하
이러한 프로세스처럼, 한국의 건설 시스템에서 건축가는 경
기 힘든 문화적 격차를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이곳에서 어
제 효율을 위해 항상 다른 어떤 건축가로든 상관없이 대체
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추측한다. 외국인
가능하다. 롯데캐슬은 슈퍼주니어이다.
카드는 양날의 칼이다. 오히려 나는 한국 건축가가 되려고
이러한 시스템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건축 작업
노력한다. 실제로 매번 내가 한국 건축가로 여겨질 때 프로
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우리의 작업은 극단적인
젝트가 적절하게 완성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제거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디자인을 위해 어떤 ‘디자인’의
—
개념도 피하는 것이다. 건축법을 형태를 생성시키는 도구로
마르코 브루노• 디자인 공모전은 올바르지 않다. 믿을 수
이용하고, 특별한 전문가가 필요한 파사드 계획, 혹은 장인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는 삼성, 하나는 LG, 이런 식으로 전
을 필요로 하는 정교한 디테일이나 특별한 엔지니어가 필요
적으로 상을 주기 위한 거래일 뿐이다.
한 구조를 피하고, 지역의 건설 기술(한국 건설사들의 다양
—
한 콘크리트 다루는 솜씨는 실로 놀랍다)과 일상의 재료(파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공모전 프로세스 역시 그 사회의
랑─빨강─노랑의 차고 셔터, 다양한 알루미늄 문/창문 프
반영일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일은 합의의 사회이다. 독일의
레임, 녹색 지붕 방수 에폭시 등)들을 다른 콘텍스트에 활용
현상 설계에서는 가장 우수한 제안이 수상하는 경우보다 모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건설사나 건축주,
두가 합의한 중간 정도 우수한 프로젝트가 수상하게 되는 경
이용자 혹은 도시 그 자체가 진부하게 만들어 버릴 수 없는
우가 더 많다. 그후 지어진 건물이 높은 질을 가질 수 있도록
건물을 디자인하는 방법(여전히 아이디어 혹은 창조적인 의
건축가는 실시 설계 과정에서 더 나은 설계안을 추진한다.
지를 유통하는, 물론 이 역시 우리에게 의문스러운 용어가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강하며 혁신적인 제안이 당선되지만,
Wide AR no.29 : 9-10 2012 Depth Report
집담회 : 한국 건축의 시스템과 관성을 말하다
실시 설계로 갈수록 건축가의 영향력이 작아지게 되면서 프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유럽에서 나와 내 파트너는 그곳
로젝트는 점점 진부해지며 작업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에서 의미하는 일반적인 콘텍스트를 바탕으로 도시를 콜라
—
주하곤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이러한 전략을 적용하기가
마르코 브루노• 한국에서 우리는 몇몇 공모전에 참여했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한국의 도시들은 구체적으로 적용될
고, 국제적인 건축가로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그 중
수 있는 콘텍스트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적 문화 콘텍스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우리는 누구와도
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번 헤리티지 투
파트너십을 맺지 않았다. 우리는 단독으로 작업하려고 노력
모로우 공모전의 요강은 전통적인 부분을 대단히 강조했다.
하지만, 몇 번은 다른 사람들과 파트너로 작업해야만 했다.
우리는 주로 개념적인 접근으로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번
나는 이런 관행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모전의 대상지는 전통적인 맥락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한 거리가 있다. 참고로, 대상지 내의
피터 페레토• 일련의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건축사 자격증
한옥은 2006년에 지어진 이미테이션 한옥이다. 사람들이 원
이 필요하다. 한국의 매우 젊은 건축가가 파트너십으로써 (
하는 한국성 혹은 지역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
대형 설계 사무소와의) 협업을 생각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
리들 안에서 문자 그대로의 한국성을 구현하는 일은 아마도
로운 일이다. 한국 공모전에서 기대하는 것은 참가자의 이
계속해서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이라는 의미를 오브
력(경험)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
제와 연결시키기보다는 시간의 경과에 대한 존중-그것이 아
고 모든 일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다.
무리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이라 생각했고, 먼 과거로 돌
—
아가기보다는 그 동안 긴 역사를 지나온 인사동이 자연스럽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유럽에서는 거의 국제 현상 설계에
게 만들어 가고 있는 도시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작업을 진행
참여한 것에 비해,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규모가 작은 현상
하였다. 그래서 2006년에 지어진 이미테이션 한옥 또한 우
설계에 참여하곤 하였다. 점점 알게 된 사실은 참여했던 현
리에게는 존중 대상이었다.
상 설계에서 중간 정도도 아니고 ‘완전히’ 탈락하였다는 것
—
이다. 심지어 심사위원에는 건축가가 한 명도 없는 경우(그
피터 페레토• (한국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
저 자문 위원 자격으로 한 명 있는 정도였다)도 있었다. 모
하다. 나는 절대적으로 마당, 한옥, 조화 등과 어떤 연관도
든 것이 바로 지어질 수도 있고 건축주가 좋아도 했지만, 그
없다. 나는 한국의 전통적 공간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사랑
저 비싸 ’보인다’는 이유로 심사 처음부터 배제되기도 하였
하지만, 나의 작업은 한국의 은유와는 전혀 무관하다. 나는
다. 그후 우리는 심사위원 명단을 주의깊게 보게 되었으며,
서울 혹은 일반적인 한국 문화에서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
우리의 건축관과 조금이라도 통하는 건축가라 생각되는 심
이 무엇인가에 관한 감성적인 말이나 진부한 이야기를 싫어
사위원이 있는 현상 설계만 참여하기로 하였다.
한다. 한옥의 조화로움이나 역동적인 메트로폴리스의 속도 와 같은 상투적인 문구(clichés)들은 끝없는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클리셰가 된 한국성
용산공원 공모전에서 ‘마당’이란 개념은, 차 한 잔을 마시
—
며 앉아 있는 이미지를 준다. 말과 이미지를 해석하면서 한
최춘웅• 한국의 공모전에서는 전통적인 요소를 크게 반영
국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위험 요소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이 부분에 자신이 없었던 것은
가 있다. 그것이 마케팅 전략이 되어 무엇이든 포장할 수 있
아닌가? 특히 크리스티안의 경우 올해 헤리티지 투모로우 공
기 때문이다.
모전에서 당선됐는데, 전통적인 측면은 어떻게 다루었는가?
—
—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유럽에서는 역사적인 건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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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유지, 관리, 재사용에 관한 담론이 150여 년 동안 진행되었
로랑 페레이라•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정말로 더 이상 ‘한
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담론은 그 역사가 매우 짧다. 약 15
국성’에 관심이 없다. 특히 지금 여기에서는 문화적 전통주
여 년 전에서야 북촌의 한옥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되
의가 보수성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시모네가 잘 묘사했
었으며, 북촌과 서촌 등의 한옥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듯이, 북촌의 디즈니화를 목격하는 것은 고통스럽다.(일정
만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오랜 경험과 시행착
부분 나도 그 일부이다.) 이 놀이공원은 ‘전통으로 돌아가
오를 거친 서울에 적합한 전략/언어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다’의 엘리트 버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홍대에 사는
—
것이 기쁘다. 홍대에는 분명 전통적인 것이 없다. 이곳의 한
시모네 카레나• 한옥은 재미있고 민감한, 그리고 민족주
국 문화는 어떤 가짜 노스텔지어 없이도 창의적이다.
의, 자부심, 금기와 도그마에 대한 변화하는 인식을 드러내 는, 대단히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있는 주제이다. 이는 이론 젊은 세대의 가능성
대 현실, 뮤지엄 대 주택, 원칙과 변형의 재현이다. 궁과 기념비는 관광객과 학자들의 물결에 의해 살아남고 보
—
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도시 한옥에는 당대의 삶이 강하
최춘웅• 여러분은 모두 건축계의 젊은 인재들이다. 한국
게 주입되어야 한다. 북촌이나 삼청동과 같은 지역이 테마
의 젊은 세대들에게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마지막으로 한
파크에 감염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국 건축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한옥은 지역의 시공업자들에 의해 조합된다. 이들은 완성된
—
한옥에 대한 약간의 감을 바탕으로 (법적으로 허가 받은) ‘
피터 페레토• 서울에 관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직접적으로
전통적인 요소들’을 이리저리 섞는다. 이는 반복적인 패턴
나의 건축적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젊음의 힘이다. 한
작업이며, 잘 작동한다. 모든 단어가 거기에 있으며, 그 철자
국의 젊은 건축가나 디자이너와 일하고 가르치는 일에서 말
는 정확하고, 방문객들은 그 단어들을 학습한다. 그러나 모
이다. 젊은 학생, 인턴, 건축가, 아티스트, 프로그래머들은
든 사람들이 오늘날 그러한 건축이 전달할 수 있는 언어나
발견하고 의문을 가지는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메시지는 무시한다.
그들 스스로를 표현하는 플랫폼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재능
우리가 (다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덥 DUB music, 덥은 1960
을 가지고 있다.
년대 레게 음악에서 발전
—
된 형태로, 기존 레코드들의 두드러지는 악기 소리를 조작하여 리믹스한 것이다. 일례 로 보컬을 없애거나 드럼과 베이스의 빈도를 강조하고 잔향과 반향을 추가 또는 원래 버전의 가사를 부분적으로 녹음하기도 한다.
시모네 카레나• 젊은 한국에 대한 피터의 견해에 관해 말
에서 영감을 받았다. 덥은 자
하자면, 회사와 학교 그리고 가정의 피라미드 구조는 우리
메이카 음악의 일종으로, 작고 어지러운 열대의 장소가 우
의 클라이언트와 학생들 일부를 아주 노쇠하게 만든다. 그
리에게 밥 말리(Bob Marley)를 선사했다. 우리는 한옥 구
래서 젊고 역동적인 한국은 “끝없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키
조의 기본 선과 명랑한 리듬을 유지하고, 현대적 삶의 메아
는” 첫 번째 “상투적인 문구” 중 하나처럼 보인다.
리를 부가했다. 우리는 한국의 전통 건축을 왜곡하여 사용
물론 훌륭한 학교들도 있다. 그러나 일례로 홍익대학교는
하고, 생활을 가미했다. 그 한옥에 살면서 어떻게 전통 시공
학생들이 (웃기는 머리나 피어싱을 하는) 예술 전공 학생처
자들이 집을 짓고, 공무원들이 허가를 하고, 주민들이 살아
럼 보이지 않는 몇몇 학교 중 하나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너
가는지 알 수 있었다. 한옥에는 진정한 건축적 가치가 있다.
무나 보수적이어서 창의적인 누군가가 튀어나오면 언제나
그러나 한옥에 새 삶을 부여하려는 모든 노력은 오페라에
그를 고립시킨다. 역동적인 경제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새 삶을 부여하는 노력에 비견된다. 토착적인 것은 ‘너무나
신념에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상투적인 문구도 영감의 좋
문화적’이어서 꾸준한 삶을 원하는 청중으로부터 멀어진다.
은 원천이다.
—
—
Wide AR no.29 : 9-10 2012 Depth Report
집담회 : 한국 건축의 시스템과 관성을 말하다
로랑 페레이라• 이 사회는 진짜 코즈모폴리턴 문화를 창 조하고 있다. 모든 보수적인 시도와 허구적인 민족주의에도 말이다. 이러한 면에서 피터가 언급한 새로운 세대는 15년 전의 우리보다 좀더 글로벌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종 류의 사람들에 의해, 즉 이민에서 돌아온 한국인, 언어 강 사, 뮤지션,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수출 시장에 의해 활발하 게 독려되었다. ⓦ
Basecamp Mapping Supa Architects Schweitzer Song, 돈암동 (사진—건축가 제공) MOTOElastico, 예지동(사진—건축가 제공) CHAE-PEREIRA architects, 상수동(사진—박완순) PWFERRETTO, 봉천동(사진—건축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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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Supa Architects Schweitzer Song 크리스티안 슈바이쳐 만약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 다면, 기꺼이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로 만초 니(Piero Manzoni)를 인용하겠다. 1960년 7월 4일 오후 4시에서 6시 55분까지 그는 7,200m 길이의 선을 인쇄하였으며, 사각의 연판으로 만들어진 원통형 실린더 안에 그 인쇄된 선을 넣고 봉했다. 실린더 겉에는 그 선이 인쇄된 날짜, 시간, 장소가 적힌 라벨을 붙였다. 이 선은 그의 작업 <Linea di lunghezza infinita>(Line of Infinite Length) 시리즈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 작업은, 선은 무한히 연장될 수 있는 가능
↑ <Liquid Plan #10>, 남서울교회, 신길 동, 지명 현상 설계, 프로젝트 <the Liquid Plan Series> 중 발췌, 2006년, 진 행 중.
성이 있는 반면 종이는 구획된 면이라는 한 계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비롯 되었다. 이렇게 한 개체의 한계에 대한 논란
← 단독 주택, 원남동, 2012년, 진행 중.
은 세상 모든 것의 한계성에 대한 의문을 불
← 인사동 홍보관 및 전통 복합 문화 시설, 현상 설계, 2012년.
러일으킨다. 우리의 작업 <Liquid Plan Series>는 이러한 만초니의 시도의 연장선상에
↓ Flip Flap Loco 2, 공동 프로젝트(예술 가 이영호), 갤러리 세줄, 2009년 12월.
있다고 하겠다. 선의 확장성을 이용한 만초 니의 견해와 행위는, 정의될 수 없음과 정의 될 수 있음에 대한 은유이며, 시간의 선과 선 의 시간, 그리고 선의 경계와 시간의 경계의 비존재성에 대한 은유이며, 장소와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선은 사고의 연장으로서 스케치/설계를 의 미한다. <Flip Flap Loco> 설치 작업 또한 위 에 언급한 것의 은유이다. 만초니의 선의 시 간은, 선형을 통하여 시간이 정의될 수 있도 록 하기 위하여 변환된 자신의 한계 안에서 선물처럼 포장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볼 수 없던 것들이 보이게 되며, 시간은 선을 통하여 ‘자각’된다. 선은 시간의 투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 시간이 인간의 척도 로 형성된 어떠한 장소와 관계를 맺게 될 때, 선의 단일한 속성은 사람들의 움직임—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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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의 프로파일
의 시간—에 의해 달라지게 된다. 어떠한 장
← <Film Machine>, The Film 2012 전시 인스탈레이션, 대구시립미술
소에 의식적으로 형성된 선의 시퀀스는—대
관, 2012년 9월 25일~11월 25일.
구시립미술관의 설치 작업 <Film Machine>
↓ 예술품 보관 시설 및 사무소, 청운 동, 2011년, 진행 중.
의 경우처럼—건축적 사고의 은유로써 실린 더 안에 봉해진다. 관찰자들은 실린더 안 공 간의 환경에 따라 선의 물리적인 길이를 개 개인의 감성으로 다르게 인지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동일한 길이를 갖는 선들이 실 린더 안에 각각 다른 힘으로 말려들어 가는 것과 같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세계사> 전시 부스와 같이 의식적으로 그려진 선, 그리고 그려질 선들과 이 실린더와의 상호 관계는 건축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물 리적으로 정의된 객체에 대한 인식은 경험 되는 주변 환경에 의해 변화된다. 또한 움직 임의 본질은 관찰자의 개인적인 지각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다. <갤러리 7>과 청운동의 < 예술품 보관 시설>은 이 신체의 반응을 표현 하고 있다.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선에 대한 지각은 무의식적으로 그 선을 따라 움직이도 록 우리를 이끈다. ‘어떠한 장소에서의 무한 한 움직임의 선’의 한 견본을 의식적으로 ‘실 린더’ 안에 넣는 것, 즉 선을 인간이 잴 수 있 는 가능한 디멘션으로 치환하는 것은 건축적 프로세스이며, 이러한 프로세스는 예측 가 능한 움직임의 선을—그것의 치환을 통하 여—또 다른 가능성의 상황으로 이끈다. 하나의 완벽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 남동의 <단독 주택>과 <인사동 홍보관 및 전 통 복합 문화 시설> 등은 그저 실린더의 나열
↑ <세계사> 전시 부스, 서울 국제도서전, 2008년 5월.
이 아니라, 하나의 실린더 안에 선이 어떻게
← <갤러리7> 서촌, 프로젝트 2010년~2011년.
말아져 있는지를 경험하게 되며, 그 경험이 다시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에 관한 프로젝트 이다. 절대적 공간에 디멘션은 존재하지 않
는다. 대신 매 순간 새롭게 구축될 것이다. ⓦ
크리스티안 슈바이쳐(Christian Schweitzer) 1971년 오스트리아생으로 독일 카이져스라우터른 대학교에서 건축을, 프랑크푸르트 예술 학교 슈테델스쿨에서 ‘건축과 개념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요한-볼프강-괴테 대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과에서 비지 팅 스칼라로 수학하였으며, 2005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 송률과 공동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Supa Architects Schweitzer Song을 설립했으며, 2005년부터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크리스티안은 송률 등과 함께 프랑크푸르트에 에른스트-마이-뮤지움을 설립하고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이 뮤지움의 부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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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CHAE-PEREIRA architects 로랑 페레이라 세종시 한국법제연구원 → 한국법제연구원은 스토아(stoa)에서 건축 의 원리를 빌려 왔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롭 고 열린 공간인 스토아에서 법을 토의했는 데, 독특한 회랑이 그 특징이다. 한국법제연 구원은 연구실과 기타 시설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데 프로그램의 공간적 배치의 주 안점을 두었다. 공간 간의 연속성을 확보하 기 위해서 다공성의 벽체를 연결하고 분절 하여 연구자들의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교류 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했다. 스토아의 열주가 공간 구성의 기본이며 동시에 구조 체였다면, 한국법제연구원에서는 건축물의 외피와 슬라브가 건축물의 직접적인 구조체 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자유롭고 융통성 있 는 평면 구성이 가능하므로 미래 변화에 유 연히 대처할 수 있다. 거제도 병원 증축 → 거제도의 병원은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고 자 리잡고 있다. 기존의 병원 건물과 새롭게 추 가된 프로그램은 대지를 흐르는 유동적인 구 조물을 통해 통합된다. 산자락을 흐르는 유 동적인 조각들은 지형과 공원 중간에서 새로 운 경관을 형성한다. 각 조각들은 같은 재료 로 만들어졌지만 땅과, 조망, 그리고 다른 조 각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특정한 형태와 위치 를 갖는다. 각 프로그램은 외부와 내부의 폭 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다. 새로운 거 주 공간들은 새롭게 개조된 병원 시설과 연 결되고, 문화 및 레저 프로그램들이 네트워 크에 삽입된다. 병원 콤플렉스는 의료 행위 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시 자리잡으면서 사람과 경관에 토대를 둔 통합된 이미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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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미술관 → 장욱진은 1960~9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동양적이면서 동시 에 현대 서구의 회화와 연결된다. 미술관을 공간적이고 형식적으로 규정짓기 위해 그의 회화에서 방, 호랑이, 경관 속에서 부유하는 형태 등을 찾아냈다. 미술관의 공간은 마치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처럼 설계되었고, 각 실들은 ‘정신적 풍경’을 연상시킨다. 각 실 들은 서로의 관계와 주변 경관을 고려하여 배치했고, 이들이 연결되어 경관 속에서 부 유하는 호랑이의 몸과 같은 형태를 형성한 다. 건물의 형태와 하얀색 폴리카보네이트 파사드는 장욱진의 회화에서 느낄 수 있는 무중력을 반영하고, 건물의 내부는 모든 요 소가 제거된 단순한 기하학적 표면을 의도 했다. ⓦ
로랑 페레이라(Laurent Pereira) 1972년 벨기에생으로 생 뤽 건축 대학 졸업 후, 파리의 아틀리에 장 누벨에서 실무를 거쳤다. 최성희 와 함께 CHAE-PEREIRA architects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최성희와 서울 공연 예술센터 국제 아이디어 설계 경기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도시와 건축 설계에 정진하고 있다. 첫 주 택 설계 작품인 GODZILLA로 2009 서울시 건축상, 2009 한국건축가협회 엄덕문상을 수상하였고, 2010 하버드대 한국건축특별기획 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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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PWFERRETTO 피터 윈스턴 페레토
모형과 이미지 사이 아이디어를 프로젝트로, 건축적인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하다. 모든 전 문가는 그의 손을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한 다. 손을 이용하는 도구부터 가상 소프트웨 어까지, 전문가로서 우리의 삶은 아이디어 를 드로잉, 글, 치수(dimensions) 등 소통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데 소비된다. 나는 이렇게 지적인 생각과 모호한 직관을 물리적 으로 표현하는 행위에 몰두해 있다. 사고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옳다고 느껴 질 때까지 행동하고 반응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할 수 없는 비기계적인 과정이다. 빈틈없고 지속적인 아이디어의 실험 파편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 일련의 즉흥적 결정 과 우연한 상상을 거쳐, 마치 나머지 조각을 가리키는 퍼즐 조각처럼 점점 더 파편으로 구체화된다. 실험의 매체는 우리의 프로젝 트를 모형과 이미지라는 두 세계 사이로 던 져 넣는다. 모형과 이미지, 물리적 그리고 가 상의 재현은 변형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각 각의 모형은 스케일 혹은 가상적으로 주어진 상상의 공간을 재현하는 형태, 주어진 아이 디어의 구축된 현실이다. 지난 3년 동안 우리 사무실은 전시와 공모전 부터 실제 지어진 건물까지 20개가 넘는 프 로젝트를 진행시켰다. 우리 서울 사무실은 전통 시장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의 도적으로 일반적인 사무실 밀집 지역과는 거 리를 두고 선택한 위치이다. 이 장소는 우리 의 실험을 위한 생생하고 고무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이어지는 세 개의 프로젝트는 독립적인 프로 젝트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 디자인 과 정의 두 가지 면을 대변한다. 한 면은 아이
↑ 남산 버스정류장 공모전 제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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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가 구체화(materiality)되는 첫 단계, 즉 모형(model)으로 변형되는 초기의 날 것 그 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더 나아가 축 척화된(scaled) 공간이 이미지라고 하는 가 상의 재현으로 변형되는 두 번째 단계에 대 응된다. 다음의 이미지는 건축적 번역의 매 트릭스이다. 이는 우리의 디자인 과정을 형 성하는 모형과 이미지 사이의 이분법을 나타 낸다. ⓦ
경주 고속도로 휴게소 공모전 제출안 → 베이징 전시 ↓
피터 윈스턴 페레토(Peter Winston Ferretto) 1972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리버풀 대학교에서 수학 했다. 런던의 AA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2001~2007년 헤르조그 & 드 뫼론에서 실무를 했다. 2009년 서울에서 PWFERRETTO를 설립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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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벽안(碧眼)의 건축가들 ─새로운 베이스캠프의 차이와 기회
MOTOElastico 시모네 카레나 & 마르코 브루노 덥 건축, 옛것과 새것의 조화 삼청동 한옥은 모토엘라스티코의 상징인 ‘ 덥 건축(Dub Architecture)’을 잘 보여 준 다. 덥 건축이란 덥 양식을 활용하여 지역의 전통 건축을 재생하는 것이다. 이는 원래 구 조물의 리듬을 강화하고, 현대적인 특색과 기술을 부가하여 선택적으로 혼합하는 방식 이다. 옛것과 새것이 통합되지만 이 둘은 뚜 렷하게 대비된다. 이용자가 역동적인 공간 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내외부가 혼합된다. 한국인들은 가난, 추운 겨울, 다양 한 질병에 대한 기억으로 한옥에 살기를 두 려워한다. 어느 누구도 단지 한옥을 보존하 기 위해 삶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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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대적인 재료인 유리와 금속을 사용 4
하여 한옥의 기능을 강화하고 보완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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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현대의 주거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건 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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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의 나무기둥과 외부의 경계인 담장 사이 를 가구로 채워서 한옥 자체는 거의 비어 있 도록 디자인했다. 담장을 두른 집은 수납 상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L자 형태의 한옥 구 조물은 상자의 중앙에 자리잡고, 욕실, 부엌, 침실, 세탁실 등 새로운 기능은 상자와 기둥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운다. 창문은 기와로 보 호하고, 부엌 위에는 전망대를 마련하고, 지 하에는 천창을 삽입했다. 여기에 타공판으 로 만든 펜트하우스 등 새로운 요소들은 전 통 건축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삼청동 한 옥에서 이용자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옥의 내외부를 이동하고, 여러 시점에서 한 옥을 바라볼 수 있다.
↑ 삼청동 한옥 평면도와 단면도.
까레나 경비소는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100여년 역사의 벽돌 공장에 새롭게 리노베 이션된 건물이다. 이 경비소는 사무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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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자리잡고 있는데, 오래된 건조 가마를 개조하여 주거 공간, 로프트, 창고 등과 같은 새로운 기능을 수용했다. 기존의 지붕은 자 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조하였고, 내부 에는 나무와 잔디를 심었다. 다른 시공 현장 에서 사용되었던 재료들을 재활용하여 외벽 에 사용했고, 새로운 공간은 거친 대형 블록 으로 마감했다. ⓦ
↑ 삼청동 한옥의 입구 부분. 유리 지붕으로 한옥의 구조를 볼 수 있다. 삼청동 한옥의 툇마루와 전망대로 향하는 계단. ↓ 까레나 경비소.
시모네 카레나(Simone Carena) & 마르코 브루노(Marco Bruno) 토리노 폴리테크닉 대학교와 LA의 SCI-arc에서 수학했다. 2002년 서울로 옮겨온 이들은 모토엘라스티코(MOTOElastico)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모토엘라스티코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와 한국의 노하우와 원리, 디자인과 시공, 투자와 이익, 이상과 현실, 배움과 공유, 전통과 혁신, 기술 개발과 환경 사이를 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회사 이름처럼 이들은 이탈리아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으며, 카타르의 도하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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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워크 Work
노근리 평화기념관 Nogunri Peace Memorial
이종호 Yi Jongho
이종호 Yi Jongho 60 와이드 AR 29 | 워크 Work | 이종호 | 노근리 평화기념관
Nogunri Peace Memorial
노근리 평화기념관
노근리 평화기념관은 한국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기억하는 장소이다. 진실은 아직 현 재 진행형이지만, 당시 죽은 이들이 체험했을 공포와 유족들의 고통은 분명한 것이라고 판단한 건축가는 건물을 통 해 섣부른 애도나 어떤 정치적 윤색도 하지 않는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보여 주고 많은 부분을 관람객의 몫으로 열어 놓으려고 한다. 특히 아직 그곳에 있는 사건의 현장을 고려하여 기념관은 그 장소로 이어지는 통로의 역할이 부여됐다. 잊혀진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공식화된 기억에 쐐기를 박아서 틈을 벌리는 일, 즉 반 기억의 건축이 되고자 한 노근리 평화기념관의 이야기에 본지도 귀를 열어 놓는다. 더불어 김백영 교수(광운대)의 글을 통해 노근리 사건을 두고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짚어 보는 자리도 마련했다. 진행 정귀원(본지 편집장)—사진 김재경(건축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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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 부교수, 동교 도시 건축연구소(iua) 소장으로 서울 건축인 회의(sa) 의장, 스 튜디오 메타 대표를 맡고 있다.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 업하고 공간연구소 설계 실장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건 축과 예술을 통해 사회의 점진적 발전을 목표로 하는 스튜 디오 메타를 설립한 이후 건축, 도시 연구, 문화기획, 출판 등에 전방위적 활동 전개해 오고 있다. 춘천 어린이 페스 티발, 안동 탈춤 페스티발 등 여러 문화 프로젝트의 기초 를 놓았고, 베니스비엔날레, 홍콩-쉔젠 국제 비엔날레 그 리고 광주, 부산 비엔날레의 초대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 다. 이밖에도 2005년 ‘유로-패시픽 건축가 20’초대 건축 가 릴, 홍콩, 시드니, 동경에서 순회 전시 및 심포지움 개 최, 2008~2009년 피렌체, 로테르담, 루블라냐, 브뤼셀, 바르셀로나 등에서 <s(e)oul scape>전 참가, 2007~2009 년 독일건축박물관 초청의 <mega city network> 초대 건 축가, 이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바르셀로나 에스토니 아의 탈린 등에서 순회 전시회 및 국립현대미술관 <Comtemporary korean Architecture>전 참가 등의 전시 활동 이 있다. 명지대학교 방목기념관에서 시작된 기억에 관 한 근본적인 질문과 관심은 이후 박수근 기념 미술관, 분 원 백자관,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 이순신 기념관, 노근 리 역사 평화박물관 등 사회의 기억을 매개로 발언하는 건 축 작업으로 이어져 왔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 도 시 기본 구상, 순천 문화 도시 연구, 무주, 나주, 아산 등의 문화 도시 연구 및 제주 경관 기본 계획을 진행했으며 최 근 대구 문화 창조 발전소 조성 사업 연구를 진행하고 있 는 한편, 2014년부터 운용될 차세대 KTX의 차량 디자인 을 진행 중이다. 책 『건축, 사이로 걷다』, 『건축이란 무엇 인가』, 『Mega City Network』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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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근리 평화공원의 전체 전경. 오른쪽부터 교육관, 방문객 센터, 기념관이다.
노근리 평화기념관 건축 개요 설계팀—우의정, 이상진, 김영일, 김형석, 남궁설┃설계 기간—2009. 3.~2011. 11.┃공사 기간—2010. 4.~2011. 8.┃ 공사비—약 27억 원┃인테리어팀—메타┃구조팀—제이텍구조 엔지니어링┃설비팀—진경엔지니어링┃전기팀—극동 전기┃시공팀—(합)한양종합건설┃감리팀—(주)건화┃발주처—영동군청┃대지 위치—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683 -3번지 일원┃주요 용도—관광 휴게 시설, 문화 및 집회 시설—전시장┃대지 면적—132,240m2┃건축 면적—922.17m2┃ 연면적—1,891.75m2┃건폐율—0.7%┃용적률—0.94%┃규모—지상 2층, 지하 1층┃구조—철근 콘크리트조┃외부 마 감—노출 콘크리트, 내후성 강판, 투명 복층 유리┃내부 마감—노출 콘크리트, 수성 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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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워크 Work | 이종호 | 노근리 평화기념관
↑ 전면. 고통의 벽은 파편화된 하나의 감각을 물성과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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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객 센터에서 바라본 전경. 주어진 조경 플랜 대신 기념관 주변으로 건물을 비추는 반사 연못을 두었다. ↓ 전시를 관람하고 나온 후 바라보게 되는 기념관. 희생자들의 공포와 유족들의 고통만은 분명하다고 보고 그것을 방문객에게 환기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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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에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유리 박스는 이 기념관에서 가장 중요한 추모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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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이야기
#1 집단 기억과 반 기억 우리 사회는 꽤 오랫동안 한국 전쟁에 대한 공식적 기억을 공고히 다져 왔다. 그러나 실상 한국 전쟁을 겪었던 개인들의 기억과 경험은 저마다 달라서 모든 사람들이 이 공식화된 기억에 동의할 수는 없다. 특히 미군이나 국군, 치안 유지단 등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드러내지 못한 ‘비공식적’ 기억들이 있다. 그 것은 은폐되거나 억압된 기억들이다.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의 철로와 터널(쌍굴 다리라 부른다)에 대피 중인 피난민들을 미군이 무차별 폭격과 총격으로 살상한 사건, 일명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하 노근리 사건)도 그중 하나이다. “ 150인이 숨졌다. 13인의 행방을 모르고 55인이 다쳐 장애를 얻었다. 그러나 그 숫자들도 정확하지 않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흘 밤낮 동안 쌍굴 다 리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고 생사를 갈랐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러갔다. 아 무도 책임을 말하지 않았고, 진상도 알 수 없었다. 수천의 유족들은 위패 없 는 제사를 올려야만 했다. 유족 일부의 끈질긴 노력에도 진실은 재구성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은폐되기도 했다. 전쟁의 비극, 우발적 사건이라 했다. 다른 피해들과 묶어 위무되려 했다.” 그러나 노근리 사건은 생존자들의 노력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전쟁이 끝난 후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며, 지옥 같았던 당시의 상황을 소설로 엮기도 했다. AP통신은 1999년 이 사건 을 단독 취재하여 세계에 알렸고, 이후 한국과 미국의 합동 조사가 이루어졌다. 2004년에는 노근리 사건 특별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 특별법의 내용에 따라 위령 사업이 진행되었다. 2008년 6월, 황간면 노근리 옛 노송초등학교 일원 13만 2,240m2 에 국비 191억 원을 투입하여 노근리 평화공원을 착공하였다. 2007년 의 결된 ‘노근리 역사 공원’ 조성 기본 계획안은 피난 중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과 평화기념관, 조각공원, 야외전시장, 교육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위령탑 및 조형물이 2009년 3월 최종 선정됐고, 2009년 초 건축 설계 공모를 통해 평화기념관의 안이 채택됐다. “ 당시 위령 사업은 진행되고 있었으나 진실은 멀다고 생각했다. 공모전의 명 칭은 정확히 ‘노근리 역사 평화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노근리의 사건은 역 사로 말해지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이 남겨져 있고, 평화를 말하기에는 여전 히 주체와 대상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오직 희생 자들의 공포와 유족들의 크나큰 고통뿐이었다. 기념관을 통해 그것을 방문 객에게 환기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4・3사건이나 거창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 다. 역사로 정리된 기억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행하는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은 기념/기억의 방식 또한 부단한 진화 과정에 동참하는 한에서만 의미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집단 기억과 반기억(Counter-Memory), 이 두 단어에 집중했다. 노근리의 사건이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오로지 유족들의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그 들의 활동으로 역사적 기록의 조각들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사실은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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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노근리의 기억은 여전히 활동적인 집단 기 억의 과정에 속한다. 그리고 집단 기억의 과정에는 사건을 둘러싼 욕망들 사이에 어떤 긴장이 놓여 있게 된다. 국가 기관들, 피해의 당사자들 그리고 관찰자들의 욕망이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긴장의 상태가 정리되지 않은 노근리에서 ‘역사’와 ‘평화’를 말하는 공원은 아직 불안정하다. 또한 ’역사’ 와 ‘평화’를 말해야 하는 박물관은 공허하게 시작될 수밖에 없다. 공허하게 시작되는 건축은 집단 기억으로 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축이다.” 한국 전쟁 관련 기념물/기념관들은 대부분 전쟁에 대한 공식 기억의 일부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진정성 있는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채 희생자와 건립 주체만을 내세워 과대 혹은 축소 해석하거나, 피해자를 슬픈 존재로 만 바라보거나, 뼈아픈 희생(victim)을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키거나, 모든 죄악을 가해자에게 돌려 반공 감 정을 고취시키거나 하는, 대단히 정태적이며 위압적인 형태이다. “ 사실 사건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란 명칭 때문에 학살이란 단어에 꽂히기 쉽다. 이 부분은 이미 공식화된 기억 이다. 이러한 공식화된 기억에 쐐기를 박아서 틈을 벌리는 일, 이것이 반 기 억이다. 반 기억은 개개인의 경험이자 파편화된 기억이다. 자칫 제도화되려 는 기억의 틈새를 비집고 개입하려는 기억이다. 섣부른 기념비와 추모의 상 징이 가진 공식적 기억의 아우라를 벗겨 내는 기억이다. 홀로코스트가 기 억되는 방식을 예로 들어보자. 개인적으로 꼽는 최악의 기념물이 피터 아이 젠만의 <유럽에서 희생된 유태인들의 메모리얼(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for Europe)>이다. 관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 수천 개가 베를린 도심 한 블록을 폭력적으로 뒤덮고 있다. 그것은 공식화된 기억을 아주 직설적 으로 드러내는 기념 시설이다. 반기억의 정서란 조금도 없다. 반면 전혀 다 른 개념의 기념안을 제출한 독일 작가 호르스트 호하이젤(Horst Hoheisel) 의 행위는 대표적인 반 기억이다. 그는 프로젝트 <Brandenburg Removal> 을 통해 독일의 ‘최종 속죄’를 위해 “아예 브란덴부르그 문을 부수어 그 돌 들을 운터 데어 린덴 가로 바닥에 깔아주면 어떠한가?”라는 역설적 질문을 던졌다. 비록 탈락은 했지만, 그것은 기념 행위에 대한 어떤 강력한 발언으 로 남겨졌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또한 반 기억의 프로젝트이다. 거기서는 유대인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려 고 하지 않는다. 단지 베를린에 살았던 유대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사 라졌다, 라고 하는 팩트로서의 접근만이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다고 말한다. 오히려 재현은 그것이 가진 절대적 인 고통을 희석시킬 수 있으며, 평범한 감동을 주는 내러티브 또한 역사적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이다. 반 기억의 장소는 대신 관람자들에게 주체적 경험을 권유한다. 관람자 스스로가 기억을 만 들어 가는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 반 기억을 세우는 일에는 개인의 체험이 중요하다. 특히 그의 몸에 각인되 는 체험이 소중하다. 그럴 때의 체험은 정지된 곳으로부터의 시각을 넘어 움직이는 육신에 가해지는 공간성이 우선된다. 이처럼 역사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반 기억이 회자되면서 몸이 주요한 화두가 됐다. 몸으로 어떻게 직접 경험하게 하느냐, 그것은 또한 각자의 인식이 다를 수 있으므로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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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을 창출해 낸다. 그럼으로써 역으로 기억에 대한 상상력이 열리고 주 어진 기억이 아닌, 새로운 해석이 열리기를 기대할 수 있다. 리베스킨트의 프로젝트도 철저하게 몸의 문제였다. 그것은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달려 있 다는 점에서 (문학에서 시작된) 수용 미학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텍스트 대 신 몸이라는 장치를 통해 수용자에게 다양하게 전달됨으로써 고정된 역사 를 강요하지 않는다. 계획으로 남긴 했지만, 주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의 일 단테움(Il Danteum)에서 우리는 수용 미학에 대한 태도를 엿 볼 수 있다. 테라니가 활동하던 시절은 수용 미학의 문학적 논의가 활발히 벌어지던 때이기도 하다. 기념관을 통해 경험이 만들어 내는 수용자 나름의 해석들은 건축 또는 장소 전체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반면 일관된 공식의 역사만 강요된 시설에서는 풍부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수용자의 다양한 해석은 그 장소를 풍부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기억 자체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근리 평화기념관은 요청된 공적인 기억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우회하고 뒤집으려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즉, 스스로 이미 믿어왔던 것들에 틈을 비집어 내어 그 틈으로부터 새로운 의미가 솟아나도록 한 것이 다. 그럼으로써 공식화된 기억만이 다가 아님을 말해 주고자 했다. “ 노근리 평화기념관은 현재 진행형의 집단 기억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는 만 큼 반 기억의 건축이 되고자 했다. 그것은 방문자의 몸에 공간으로 개입하 는 건축이다. 그 개인의 개별적 체험이 누적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묻 는 건축이 되기를 바랐다.” #2. 궁극의 기념관 쌍굴로 가는 여정 공모전에서 노근리 평화기념관의 부지는 이미 공원 전체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태에서, 기념관이 품어야 할 이야기 하나 없이, 마치 하나의 점으로 주어졌다. 이런 상태에서 건축가의 선택은 딱 두 가지였다고 한다. “ 하나는 낙선될 게 뻔하지만 주어진 대지를 무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궁 극의 기념관을 사건 현장인 쌍굴로 보고 기념관을 그곳으로 인도하는 중간 장치로서 두는 전략이었다. 주어진 조건에서 경험을 만드는 방법은 이런 것 밖에는 없지 않겠느냐, 싶었다. 만약 근사한 위령탑(공모전 당시에는 위치 만 잡혀 있었다)이라도 세워진다면 그것과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이었고……. 평화기념관과 위령탑, 사건의 현장(쌍굴 주변)은 위치상 그리 고 의미상 더없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몇 가지 풍경을 조정하여 기념관이 풍경 속의 일부분이 되길 바랐다.” 주어진 조경 플랜 대신 기념관 주변으로 물을 채웠다. 제안서의 계획안을 보면 앞으로 나아갈수록 물이 더 넓 어지고 박물관이 수면에 더 비추인다. 지하층의 기념관 입구에 다다르는 경사로를 따라서 수면 아래로 점차 내려가면 앞쪽에 물이 떨어지는 작은 소리가 들리고 이내 박물관의 입구에 도달하는 시나리오이다. “ 기념관의 위치는 어쩔 수 없으니까 주변을 조정했다. 발주처로서는 당연히 난색을 표할 만한 일이다. 겨우 이뤄낸 것이 지금의 상태이다. 경사로 옆까 지 채웠던 물은 축소되고 대신 길이 생겼다. 어느 날 가봤더니 난간도 엉뚱 한 걸 매달아 놓았더라.” 실현되진 않았지만 주차장과 방문객센터의 위치도 바꾸고, 새롭게 게이트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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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샘은 축소되어, 경사로를 따라 수면 아래로 점차 내려가는 듯한 계획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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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수단으로 도착한 방문객들은 낮은 천장을 가진 게이트에 서게 된다. 오른편에 이어지는 벽을 따라 나아갈 길이 보이고, 반사 연못 저편에 박물 관이 서 있다. 방문객센터는 나오는 길에 들리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지하층 입구 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영상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꺾인 벽으로 안내되는 전시 공간이 있다. 영 상관에 들러 관련 다큐를 선택적으로 관람하고 나오면, 자연스럽게 오른쪽 전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다. 사건에 대한 객관적 기록들이 담담하게 전시되어 있는 지하 전시실이다. 영상을 통해 흘러나오는 당시 소 년이었던 어르신들의 증언은 진실을 말한다기보다 고통의 심연을 드러내는 듯하다. “ 지하 전시실에는 오로지 사실들만 열거된다. 개전 초기의 상황들, 군사적 기록, 피난 또는 강제 소개령 등을 배경으로 영동읍 주민들이 겪은 사건 직 전의 얘기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노근리 사건의 사실 들이다. 쌍굴의 공포와 고통을 복원하는 어두운 통로도 마련됐다. 그러나 기실 복원은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터널 전시실 안에 요란한 것들을 잔뜩 매달아 놓아 영 마뜩잖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밝은 공간이 전개된다. 아무 것도 애써 전시되지 않은 방이다. 다만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 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새기고 나면, 오를수록 점차 넓어지는 계단과 마주하게 된다. “ 공간의 반전이 있다. 공간이 굴절되고 밝아지는 계단을 오르면 1층의 전시 실이다. 집단 기억으로 나아가려는 노근리 사건을 지켜보는 공간이다. 사 건을 사건화시킨 모든 노력들이 전시된다. 그리고 현대의 전쟁 속에 스러져 간 여러 나라, 여러 민중들이 기록된다. 그러나 빈칸들이 남아 있어 앞으로 더 기록될 것들을 기다린다.” 전시 영역이 끝나면 좁은 계단이 2층 추모의 방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멀리 무심한 자연과 철길과 쌍굴을 한 꺼번에 품어내는 방 안으로 들어서면 그제서야 외관의 유리 박스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 좁은 계단은 제례의 길의 일부이다. 물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선택적이다. 바깥으로 한껏 돌출되어 노근리 사건의 현장을 한눈에 조감시키는 추모의 방은 이 기념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기념관이 방문객에게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이미 세상을 달리했거나 아직도 남아있는 유족들의 고 통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흐름에 따라 전시를 관람하고 다시 바깥으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좁고 긴 통로를 거닐게 된다. 건물의 벽체와 ‘고통의 벽’이 만드는 사잇길이다. 날카로운 파편처럼 찢기거나, 총알이 관통된 구멍처럼 여기저기 뚫 린 철판 벽이 빛에 따라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어 엄숙함마저 감도는 길이다. “ 출구를 나서면 다시 물과 대면한다. 그러나 물과 관람객 사이에는 시선을 가르며 갈라지고 뚫린 ‘고통의 벽’이 서 있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고심했 던 벽이다. 제안서에는 디자인이 결정된 후에 프로세스를 설명한 민망한 글 귀들이 있다.(웃음) 복잡해 보이지만 몇 가지 원칙들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제안했을 때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좁고 높은 공간이 됐다. 통 로를 가운데 두고 구체성을 띄는 콘크리트 벽과 뭔가 알 수 없는 듯한 철판 의 대비가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통로는, 말 그대로 전율을 일으키는 쌍 굴 콘크리트 옹벽의 총알구멍을 확인하기 전에 미리 예비 훈련을 시키는 통 로이다. 실제로 처음 맞닥뜨린 총알구멍들은 기념관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 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 쇼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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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카로운 파편처럼 찢기거나, 여기저기 뚫린 철판 벽이 빛에 따라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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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벽을 따라 통로 끝에 서면 위령탑이 시선에 걸리고, 쌍굴로 향한 동선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이끈다. “ 애초에 주어진 굉장히 작은 땅을 쌍굴과 위령탑과의 관계를 통해 크게 확장 시킨 것이다. 지나온 기념관보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조형물보다 더욱 생생한 사건의 현장이 저 앞에 있다. 철길, 옹벽의 탄흔들, 쌍굴 다리 의 바랜 벽들 그리고 그 너머의 무상한 자연이 최후의 기념관으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광장의 포장도 일정 범위까지 연장되어 현장으로 이끈다.” 사건의 현장을 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유족들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국가와의 타협을 위 해 망각을 선택하곤 한다. 그런데 노근리 평화기념관에서는 공포의 팩트와 학살 현장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 처음부터 희생자의 공포와 남은 유족들의 슬픔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전했다. 팩트만 보자는 것이 불편하기도, 철판 같은 재료가 볼썽사납기 도 했을 것인데, 잘 받아들인 유족들에게 감사하다. 또 전시도 내용은 유가족 이 만들었지만, 기본적인 공간 스토리는 내 계획을 따라 줬다. 물론 중간에 정구도 선생이 계시긴 했지만……. 감리를 못하는 사이에 건축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4D 영상물을 상영하는 이순신 기념관에 비하면 썩 나쁘지 않다.”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로 이상우 감독의 <작은 연못>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노근리 사건이 한 국 전쟁의 많은 비공식적 기억 가운데 유일하게 진상이 밝혀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악 구도로 접근하지 않는다. “ 화자는 피해자 측에 있지만 연극 연출가 출신인 감독은 영화에서 노근리 사 건의 가치 판단을 유보하고 관객들에게 넘긴다. 그것에 무척 공감이 갔다. 또 쌍굴 안 장면을 찍으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여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배열한 것이 인상 깊었다. 역시 쌍굴이 핵심인 것이다. 나 역 시 쌍굴이 핵심이고, 건물은 하이라이트인 터널에 봉사하는 정도로 생각했 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는 오직 희생자들의 공포와 유족들의 크나큰 고 통뿐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애도는 물론 어떤 정치적 윤색도 허락할 수 없 다. 상실의 아픔만이 있을 뿐이며, 학살 현장을 바로 앞에 둔 기념관은 오로 지 그 장소로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한 인터뷰에서 이상우 감독은 ‘인간 속에 숨어 있는 야수성’과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 다. 전쟁의 본질이 학살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선택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런 측면에서 트라우마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나타난다. “ 처음에는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정보는 있었지만 이것을 그저 ‘양민 학살’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조금 뒤로 물러서서 봐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됐다. 학살로만 본다면 가해자, 피해자로 양분하여 피해자 편에서 목청을 돋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 면 전쟁 초기의 미군들은 낯선 땅에서 적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다고 한다. 그럴 때 벌어진 일이다. 양쪽 다 손 붙잡고 울어야 할 사건이다. 둘 다 슬픈 역사 속에 놓인 존재들인데, 한쪽은 총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아무 것도 없 었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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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극의 기념관인 쌍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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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른 종류의 틈을 벌리는 작업 평화기념관보다 평화공원 조성이 먼저 시작됐다. 건축 설계 공모전이 제대로 된 기획을 가지고 처음부터 실 시됐다면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 공모전 지침서에 단 몇 문장만이라도 노근리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지침이 있었다면 건축가가 고민하는 단계는 생략됐을 것이고, 희생 자를 측은하게만 바라보는 기념관 대신 경쟁할 만한 훨씬 좋은 안들이 제출 됐을 것이다.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요청 사항들이 전제되는 기획이 필요하 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 사회는 기억의 장소 건립에 대한 다양한 욕망 들이 넘쳐나고 있다. 무수한 기념관의 이름들로 새로이 옛 기억을 불러내어 장소를 건립하고 그 기억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장소 마케팅이기 도 하다. 그런데 대개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부실한 기획과 저급한 건축이 졸렬한 전시와 짝을 이룬다.” 권력의 주체들이 필요에 의해 기억의 장소를 만드는 일에 봉사한 것은 건축가이다. 그런데, 이들 건축가의 열 이면 아홉이 공식화된 기억을 추종하다 보니 보는 이의 가슴에 전혀 와 닿지 않거나 공감을 이룰 수 없는 것 들이 많다. “ 공식화된 기억을 서로 공유하고 강조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들로서는 선 순환이고 기억을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를 테면, 5 ・18 민주화 운동은 끊임없이 공식의 역사, 공식의 기억이 순환되면서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됐다. 신성불가침의 역사적 사건이고 누구 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숭고한 일이라는 것에 건축가들이 몰려들었다. 개 인적으로 언젠가 5・18 관련 기념관을 만든 과정을 기록한 기념관을 만들고 싶다. 어떻게 사람들이, 소위 말해서 기억을 다루어 왔는지, 그래서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 왔는지를 정리해 주고 싶다. 기억을 기억하는 작업이다.” 기억과 관계된 공공의 일이 많다. 명지대 방목기념관에서부터 박수근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남광주역 전시장,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분원 백자관, 이순신기념관, 노근리 평화기념관에 이르기까지, 기억에 관한 근본적 인 질문과 관심을 드러내는 작업들이다. “ 집단적 기억의 욕망에 순응하며 봉사하는 자가 아닌 이상, 매 프로젝트에서 나의 주된 관심사는 상투성을 뒤집어 강요를 피하는 법, 그래서 진정한 기 억으로 다시 살아나는 법이다. 어떻게 그 욕망의 틈을 비집어 의미 있는 작 업을 피워내야 하는가.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도 건축가가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요구 사항을 슬쩍 되받아치면서 다 른 종류의 틈을 벌리는 작업, 이 같은 프로젝트에는 그런 재미가 있다.” ⓦ
*‘건축가의 이야기’는 인터뷰와 공모전 제안서, 그리고 건축가가 쓴 몇 개의 아티클을 참조하여 편집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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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고 좁은 통로는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 고통의 벽을 따라 통로 끝에 서면 위령탑이 시선에 걸리고, 쌍굴로 향한 동선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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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기념관 입구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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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로지 사실들만 나열된 지하 전시실. ↑ 터널 전시실을 나오면 갑자기 밝아지는 공간. ← 1층 전시실로 안내하는 계단. 오를수록 점차 넓어진다. ↓ 1층 전시실에는 노근리 사건을 사건화시킨 모든 노력들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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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길과 쌍굴 등 노근리 사건의 현장을 한눈에 조감시키는 추모의 방.
↑ 2층 추모의 방으로 이끄는 제례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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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샘 화합의 길 참배로 방문객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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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제1전시실 제2전시실 터널 전시실 영상관 관리실 창고-1 준비실 펌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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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제3전시실 기획 전시실 제2수장고/자료실-1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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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여) 화장실(남) 창고-2 창고-3
홀 추모의 방 자료실 유족회 사무실 사무실
6 제1수장고 7 자료실-2 8 창고-4 9 화장실(여) 10 화장실(남)
↑ 부출입구가 위치한 남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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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제1전시실 제2전시실 제3전시실 추모의 방 유족회 사무실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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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제2전시실 영상관 추모의 방 판매점 자료실
↑ 출구를 나서면 시선을 가르며 갈라지고 뚫린 ‘고통의 벽’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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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워크 Work | 이종호 | 노근리 평화기념관
노근리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글—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조교수)
1950년 7월 25일~29일의 5일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로 일대 에서 미군의 무차별 기총 소사로 250명 이상의 피난민들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이제 우리는 평화기념관에 형상화된 전시물 들을 따라가는 시선과 동선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고통의 벽’과 ‘추 모의 방’을 지나 ‘평화의 샘’을 바라보면서 관람객들은 60여년 전 피난길 노변에 서 미군들의 영문 모를 폭격과 총격에 의해 억울하게 숨져간 수백의 원혼들에게 추모의 묵념을 올리며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학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이 기념 공간이 사건 발생으 로부터 반세기도 더 지나서야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노 근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오랫동안이나 한국 전쟁에 대한 공식적 기억으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었을까. 과연 우리는 한국 전쟁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 었던 것일까. 지금 우리는 1950년의 노근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버린 것일까. 한국 전쟁과 기억의 정치 국가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의 역사를 기념하고 그 희생자들을 추모함으로써 국 민들의 일체감을 확보하고 정치체의 통합을 도모한다. 20세기 후반을 한반도 분 단 체제의 대립 구도 속에서 지탱해 온 남북한 정권은 각각 ‘반공’과 ‘반미’를 국 시로 통치 체제를 강화해 왔다. 해방 직후 정권 수립 당시 대단히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 기반 속에서 출범한 이승만 정권과 김일성 정권이 정권 초기의 분열과 혼 란을 극복하고 남북한에서 각각 국가 체제를 성공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던 데에 는 한국 전쟁이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로 작용했다. 한국 전쟁은 9・28 ‘수복’과 1・4 ‘후퇴’의 반전을 거듭하며 한반도 전역을 전장으 로 하여 전개되었기에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의 사지에 각인된 전쟁의 상흔은 너 무나 크고도 깊었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국가는 이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원수 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을 배양하는 산 교육의 재료로 정치적으로 가공하여 활 용했다. 국가적 필요에 의해 지난 반세기 동안 반공주의와 애국주의의 학습장으 로 재현된 한국 전쟁은 서울의 동작동 국립현충원과 용산 전쟁기념관을 비롯하 여, 백마고지 전적 기념관(강원도 철원), 태백 학도병기념관(강원도 태백), 춘천 지구전적기념관(강원도 춘천), 낙동강 승전기념관(대구),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인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경남 거제), 지리산 빨치산토벌전시관(경 남 산청) 등 전국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확산되고 재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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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쟁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자행된 야만적인 집단 폭력이 단지 정규군 들 간에만 행사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낙동강과 압록강을 오가는 극적인 반 전이 연속되면서 한국 전쟁은 정규군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민간인들의 목 숨을 앗아갔다. 거의가 집단 학살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후방의 비무장
2) 제주 4·3 평화공원에 대해서는 박경훈(2008), 「4·3평화기념관의 문제점 분석과 대안 모색」, 『4·3 평화와 기억』(제주 4·3연구소 창립
제19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발표문집); 김민환(2012),「동아시아의 평화기념공원 형성과정 비교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등
을, 거창사건추모공원에 대해서는 정호기(2007), 「거창추모공원 및 역사교육관」, 『한국의 역사기념시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백
영·김민환(2008), 「학살과 내전, 담론적 재현과 공간적 재현의 간극 : 거창사건추모공원의 공간 분석」,『사회와 역사』 제78집 등을 참조.
건추모공원 등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수의 기념 공간에 불과하다.2) 무엇보다도 한 국 전쟁기에 광범위하게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진실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발 화되지 못한 채 억압되고 은폐되어 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한국 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압도적으로 일방적이고 편향적으 로 전개되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20세기 동아시아 전쟁의 연쇄와 강요된/공모된 기억의 망각 한국 전쟁이 단지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격렬한 ‘내전’일 뿐만 아니라 세계 대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국제전’이기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부터 전쟁의 불씨를 넘겨받은 ‘국제전’으로서, 중· 소와 미·영을 비롯한 국제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간의 격전을 통해 이후 강고한 동아시아 냉전 체제가 구축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한·미·일 대 북·중·소라는 6자 구도로 재편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 도 바로 이 전쟁의 역사적 결과라 할 수 있다. 때문에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구 국의 은인’이자 ‘혈맹’인 미국의 영향력은 실로 전면적이고 압도적인 것이었다. 노근리 사건의 진실이 쉽게 드러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당시 다른 곳에서 얼마 나 더 벌어졌을지 모를 참전 미군들의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한 진상 발굴이 지지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현실적 역관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의 토사 속에 파묻혀 버린 그 모든 사건의 진실들을 밝혀내지 못하는 한 노 근리 이야기는 여전히 미완의 전주곡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비단 한국 전쟁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컨대 그것은 단적으로 우리가 일본의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평화공원이 던지는 평화의 메 시지에서 느끼는 ‘공허함’ 또는 ‘모호함’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핵폭탄의 파멸적 위험성을 경고하고 인류 평화의 메시지를 설파하지만, 전 일본인을 전쟁의 참화 속에 몰아넣은 천황제 제국의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나 핵폭격을 통해 대규모 비무장 민간인 살상을 자행한 미국의 끔찍한 가해 행위에 대한 비판은 일절 찾아 볼 수 없다. 전후 동아시아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과 일본은 극동 지역 반공 보루 의 구축과 자본주의 경제 부흥이라는 쌍방의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전시 기의 불편한 사실들을 기억 저편으로 묻어버렸다. 말하자면 과거사의 불편한 진 실의 은폐를 공모한 셈인데, 적어도 20세기 후반까지는 이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미국과 일본은 세계의 정치·군사적 패권과 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경제 위기와 후쿠시마 원전 피폭 사 태는, 철저한 반성 없이 덮어두었던 군국주의와 핵이라는 과거사의 끔찍한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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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1960년 4월 혁명 직후 조직된 피학살자유족회의 조사 결과이다. 김영범
후의 일로서, 그 가시적 성과물로 들 수 있는 것도 제주4·3평화공원과 거창사
(2001년), 「한국전쟁과 양민 학살」, 동아시아 평화인권 한국위원회 편,『동아시
상 규명 작업이 본격화된 것은 종전 후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난 1990년대 이
아와 근대의 폭력2 :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삼인, pp.91~92 참조.
민간인 사망자 수는 남한에서만도 무려 113만여 명에 달한다.1) 이들에 대한 진
이 부활하지 않을까, 섬뜩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한참 뒤늦게야 과거사의 진실과 대면한 노근리는 과연 히로시마와 나 가사키가 던진 평화 메시지의 모호함과 무력감을 넘어서는 강렬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을까. 국제적 탈냉전과 국내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 의 상황은 분명 20세기 냉전 시대보다는 나아진 점이 있지만, 여전히 군작전 통 수권이 미군에게 주어져 있고, 주둔군 지위협정(SOFA)의 독소 조항이 온존하 며,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이 국민들의 ‘반미’ 정서를 자극할 위험성이 잠재하 는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반도 분단체제가 온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근리 가 히로시마와 나가시키의 한계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상황이 그렇다면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닐까. 노근리 사 건은 태평양 전쟁-한국 전쟁-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진 20세기 동아시아 전쟁의 연쇄를 연결하는 매개 고리로 자리매김한다. 1950년 노근리에서 미국의 정예군 과 한국의 촌락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방적 살상극은 태평양 전쟁기 오키나와 나 1960년대 베트남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동형성을 띤다. 그 것은 맹목적 반공주의에 의해 초래된 비극이기 이전에,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 으로부터 파견된 ‘문명적’ 군인이 동아시아 어느 오지의 ‘원시적’ 지방민과 마주 친, 힘의 절대적 불균등 상황에서 초래된 참화다. 20세기 중반 식민지 제국 일 본의 야만적 군국주의로부터 갓 벗어난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앞에 들이닥친 것 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자의 압도적 힘이었다. 그것은 전쟁 국면에서는 압도 적 물리력으로, 종전 이후에는 절대적 풍요의 상징으로 동아시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포획해 갔다. 전시기에 노골화되었된 미국의 폭력성은 압도적인 제국의 힘과 물질적 풍요, 번영의 약속에 파묻혀 점차 망각되고 은폐되었다. ‘전쟁’이라 는 이름으로 20세기 동아시아 전역에서 자행된 끔찍한 학살의 광풍에서 한반도 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니 한반도야말로 20세기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거대 한 지각 변동, 그 거대한 힘들의 파국적 대결의 격전장이 아니었던가. 노근리 사 건은 이러한 국제적 힘의 대결 속에 무력하게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한반도 주민 들의 비극적 역사를 고발한다.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한 새로운 장으로의 노근리 평화공원 이런 의미에서 노근리 사건의 의미는 단순히 한국 전쟁 속의 은폐되고 망각된 무수히 많은 파편적 사건들 가운데에서 발췌된 하나의 단편적 서사에 그치지 않 는다. ‘노근리’는 단지 한국 전쟁 때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묻힌 과거의 이야기 만으로 간주할 수 없다. 어쩌면 노근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충격 파는 그것이 수백 명의 집단 살상이라는 끔찍한 사건 그 자체의 충격보다도 수 십 년간의 (공모된) 집단 망각이라는 세월의 둔중한 무게감에서 기인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 세대를 걸쳐 전승되어 온 미국의 힘에 대한 흠모와 선 망 속에 부지불식간에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문명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 반 세기 전 피난길에 망자가 되어 스러진 노근리의 가난한 촌부는 얼마나 아득히 먼 존재인가. 노근리 평화공원의 메시지가 제주4·3평화공원이나 오키나와 평화공원의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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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공명(共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것은 약자를 억누르는 강 자의 권력, 전쟁을 빌미로 ‘타자/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드러난 인간 의 적나라한 폭력성에 대한 폭로이자, 그 무수한 희생에 대한 망각의 터 위에 새 로운 개발과 번영의 탑을 쌓아올린 현대 문명의 모순과 역설에 대한 고발이다. 오늘날 제주도와 오키나와가 각광받는 것이 단지 이국적인 풍광 때문만은 아님 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참혹했던 과거, 어두운 역사를 발굴하고 재현함으로써 the attraction of death and disaster, Thomson.
3) John Lennon and Malcolm Foley(2000), Dark Tourism: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리고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3) 의 체험 장소 를 창출하는 것은 지역 발전의 새로운 중요한 모멘텀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한국 전쟁의 역사적 의미가 ‘한국’의 전쟁으로 독점되던 시대는 끝났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마을과 마을, 개인과 개인의 차원으로 더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지역 과 사건들과의 광범위한 연대의 고리를 모색해야 한다. 전쟁의 기억은 결코 국가 나 군대만의 독점물이 될 수 없으며, 역사는 더이상 강자나 승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전쟁이 남긴 상채기를 어루만짐 으로써 전쟁의 기억은 더욱더 총체성과 진실에 가까워지게 되고, 공식적인 역사 를 통해 드러나지 않는 개인적인 사실(史實)들을 찾아내어 기억해냄으로써 역사 는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기념 공간이 거대한 스케일, 기념비적 조형물을 통해 구현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해묵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반공주의의 전당인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 심지어 대안적 전쟁 기억을 추구하며 건설된 거창사건 추모공원조차도 관람자를 위축시키고 불편하 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평화의 메시지는 수직성의 절대적 기표보다는 수평성 의 상호 소통적 기표를 통해 훨씬 더 잘 구현되는 것이 아닐까. 노근리 평화공원 의 기념관이 작지만 알찬, 표준적이고 일률적이기보다는 지방색과 독특성을 드 러내는 선명한 개성을 뿜어내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평 화의 메신저로 한국 사회의 인권과 한반도의 평화, 더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공존·공영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발신처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조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일제 하 서울에서의 식민 권력의 지배 전략과 도시 공간의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 았다. 일본 교토대학 객원 연구원,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선임 연구원을 지냈다. 책 『경계의 섬, 오키나와: 기억과 정체성』(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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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 1968년생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대부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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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을 보냈다. 1996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조병
김희준 Kim KimHeejun Heejun
수 건축연구소를 다니다가 그만둘 때쯤 묵리주택 설계 의뢰가 들어왔 고, 이를 계기로 작업실 공간과 이름도 없이 일을 현장에서 상주하면 서 주택을 직접 설계, 시공하게 되었다. 이후 1999년 삼청동에 작업실 을 마련하고 영통 근린 시설, 수지 다가구 주택, 분당 영어 학원 등의 프로젝트를 설계와 현장을 병행하며 작업하였다. 2003년 작업실 이름 을 스튜디오 A&M(Architecture and more)이라 짓고 홍천 노일리펜 션, 양평 회현리주택 등의 작업을 하다가 2005년 TV드라마 오픈세트 작업을 계기로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사무실 이름을 TAoSA&M 이라 하여 소장으로 재직하였다. 2009년 9월 다시 스튜디오로 전환하 면서 ANM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디렉터로서 다수의 작업을 진행해 오 고 있다. ⓦ 주요 작업으로는 용인 묵리주택(1999), 수지 다가구주택
(2001), 홍천 노일리펜션(2004), 양평 마나스갤러리(2006), 평택 지 산동주택(2007), 양평 전수리주택(2008), 일월암 객실(2009), 곤지 암 힐링센터 예배당 및 패밀리 하우스(2011) 등이 있고, 현재는 곤 지암 힐링센터 생활관, 안성 삼성유치원, 여주 다사랑교회 등을 설
김희준 관계 속에서 건축하기 계하고 있다.
진정성, 자기 확신 그리고 격 ⓦ 학교를 졸업하고 다니던 사무실을 2년만에 그만두었다. 잠시 쉬고 있던 차에 단독 주택 설계를 맡아 달라 는 연락이 왔다. 의뢰인은 내가 이전 사무실에서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던 프로젝트의 건축주였다. 의외였다. 짧은 경력에 혼자서 설계를 직접 해 본 경험도 없는데……. ‘그래! 해 보자.’ ⓦ 1998년 9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절, 알고 지내던 동년배 친구들은 대부 분 실무를 익히거나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건축을 더 학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현실을 통해 건축을 경험하고 체득하고 싶었다. 단순한 도면 작업과 업무 범위를 넘어 현장에서의 실제적인 작업까지 관여하면서 하나씩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다른 작업들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랐다. ⓦ 나는, 이상은 현실을 제대로 알고 그 현실이 제약이 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하는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관계들을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먼 길이긴 하지만……. ⓦ 그래서 나는 기본적인 조건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것들은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하는 양념거리가 아니라, 망가지고 상하게 되면 두 번 다시 못 쓰게 되는 기본 재료와도 같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제대로된 제철 재료를 가지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 깊은 맛을 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 다. 건축은 그러한 것들을 밑바탕으로 하고 양분으로 하여 피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못 피어나는 경우도 허다할 테지만……. ⓦ 나 는 남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특별한 건축적인 관점이나 이론을 갖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건축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의 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나의 바람은 하고 싶은 일, 즉 건축을 하고 싶은 방식대로, 나의 삶으로서 사는 것이다. ⓦ 그동안의 작업과 경험을 돌이켜보면서 삶(=작업)의 가치와 자세, 그리고 목적을 정리하면 마음 속에 남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첫째 진정성(本)이다. 건축은 관계 속에서, 관계의 건강함 속에서 피어난다. 차별성만을 강조하고 기술적이고 방법론적인 것에 치우친 건축적 경향 속에서 실질 적이고도 진정한 관계들을 탐색하고, 그것에 건축가의 정직한 주관적인 해석으로 건강한 관계들 간의 힘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배어 나 오게 하는 것이다. ⓦ 둘째는 자기 확신(忠)이다. 건축가로서 남의 말을 듣는 것만큼이나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중심(中 心)이 없으면 흩어지기 십상이다. 건축은 주변의 요구와 건축가의 의도 사이에 화학 작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 순한 섞임이 아니라 여러 성분이 결합하고 반응하여 새로운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휩쓸리게 되면 건축가가 없는 건 축이 되거나 아니면 건축가의 의도만 탐욕스럽게 드러나는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건축가가 자기 확신 속에서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격(格)이다. 정직하고 군더더기 없는, 침착하고 품위 있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품위를 잃지 않아야 시 간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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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9 -10 New POwer ARchitect 파일 19 김희준 Kim Heejun
묵리주택 ⓦ 이 주택의 특징적인 요소는 개별적인 단위 공간들을 엮으면서 대지 자체를 분할하며 관통하는 복도 공간이다. 이는 남서쪽으 로 흐르는 경관의 흐름과 서측에서 바라다보이는 저수지에 대응하기 위한 주택 내부의 공용 공간으로, 투명한 유리면의 연속성과 경쾌함 으로 주변의 힘을 주택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한 역동적인 장치이다.—각 실들은 이것에 연속적으로 결합되면서 조금 더 정적이면서도 폐 쇄적인 분위기를 갖는다. 또한 침실에 대응하는 서비스실들이 개별 침실 사이에 배치되어 침실 간 프라이버시나 소음 차단에 효과를 주며, 복도를 통해 움직일 때 각 침실이 명쾌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단면상으로는 자연 채광을 위한 고창이 있으며, 이중 천장 구조 속에 다락 을 두어 충분한 수납을 고려하였다. 복도에 면한 벽체는 여닫이 식의 가변적인 장치로 실 내부에서도 충분한 개방감과 안정적인 폐쇄성을 동시에 갖도록 했다. 각 개실과 뒷마당은 조금 더 폐쇄적인 벽체로 기존의 수직적인 소나무와의 대비에서 오는 긴장감과 간접적인 빛을 위 한 수평적인 창을 설치하였다.—또 하나의 특징적인 요소는 복도 공간에 교차하는 축으로서 남쪽의 산봉우리와 거실 주방, 뒷마당(살림 마 당) 데크를 잇는 다양한 레벨을 수용하는 공간의 켜이다. 복도 공간에 비해서는 다소 정적이지만 시각적으로는 공간의 깊이를 풍부하게 한 다.—주택의 본체에 의해 형성되는 외부 공간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거실과 복도에 의해 형성되는 마당은 특별한 성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접근 자체가 지극히 한정적이고, 복도와의 단차가 1미터 정도, 마당면 자체도 1미터의 차이가 나는 경사면이다. 또한 난간이나 담장 없이 주변 경관 속에 중첩되어 같이 호흡하기를 바랐다.—뒷마당은 후면 벽체와 높은 옹벽, 그리고 기존의 소나무 숲에 의해 형성된 다소 정적 이고 후퇴된 공간으로, 주방과 연계된 살림 마당으로 계획하였다. 장독대 및 외부 수도가 부수적으로 설치되었다. 마지막으로 서측에 위치 한 마당은 실제 생활에서 좀더 거리감을 갖는 여가를 위한 장소이다. 소나무 숲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휴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묵리주택, 1999년, 사진 김용관.
90 와이드 AR 29 | New POwer ARchitect 파일 19 | 김희준 Kim Heejun
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9 -10 New POwer ARchitect 파일 19 김희준 Kim Heejun
마나스갤러리 ⓦ 대지는 양평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 위치하며, 주변으로 몇몇 특색 있는 갤러리들이 길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길 건너 남서측에는 백병산과 기존 갤러리가 위치하고, 북동측에는 개울과 들과 숲과 산이 겹겹이 흐르며 저 멀리 용문산 정상이 바라다 보인다.—프로젝트의 시작은 단순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창고를 짓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곱 차례의 계획안이 제시되었다. 그러한 과정 과 대화 속에서 기존 갤러리와의 관계와 새로운 대지의 활용에 대한 확신있는 방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주어진 대지를 최대한 활용 하면서 경제적이면서도 단순하고 기능적인 공간과 볼륨을 만드는 것이었다.—전체적인 배치는 백병산과 용문산 정상을 이어주는 볼륨( 일직선상은 아님)과 개울을 따라 굽어 흐르는 볼륨이 교차하도록 하였다. 바라보는 산과 지형에 따라 공간을 조직(weaving)하려고 한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구축과 동시에 마감이 되는, 즉 공정이 압축되고 과정이 곧 결과로 드러나는 방식을 채택하여 비용과 시간 을 절감하도록 하였다. 재료는 흔히 접할 수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결이나 질감이 살아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빛에 따른 다양한 변화를 유도하고, 자칫 단순한 형 태가 주는 무미건조함을 없애려고 하였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에 다가가기 위해, 풍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디테일과 색상 그리고 재 료를 최대한 신중하게 배려하였다.
→ 마나스갤러리, 2006년, 사진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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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9 -10 New POwer ARchitect 파일 19 김희준 Kim Heejun
전수리주택 ⓦ 훗날을 위해 건축주 내외가 오래전에 마련한 임야의 입구에 위치한 대지는 계곡을 낀 채 남한강을 내려다보고, 저 멀리 산 들은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었다. 방치된 계곡과 임야는 거칠었지만, 집터는 기운이 있는 땅이었다. 만질 수 있는 물이 있고 바라보는 물 이 있고, 거니는 산이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있어 좋은 땅이었다.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 집은 작고 단순해졌다. 재료와 색상 또한 절 제되었다.—볼륨의 구성은, 폐쇄적으로 보이는 사각 박스가 무게감 있는 중심을 잡게 하고, 개방된 두 개의 유리 박스를 돌출시켜 다시 주 변의 흐름에 대응하도록 하였다. 평면은 간결하고 컴팩트하지만, 여백을 많이 두어 풍경을 스며들게 하여 단조롭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다채롭고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주택의 중심에는 북측의 향을 이용한, 천창이 있는 계단실을 두어 수평적이고 트여 있는 다 른 공간에 비해 수직적이고 닫혀 있는 정적인 분위기의 작은 갤러리를 만들고자 하였다. 본채와 별채 사이의 외부 데크 공간은 건축과 지 형과 풍경이 통합되는 장소로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 전수리주택, 2008년, 사진 김용관.
92 와이드 AR 29 | New POwer ARchitect 파일 19 | 김희준 Kim Heejun
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9 -10 New POwer ARchitect 파일 19 김희준 Kim Heejun
일월암 객실 ⓦ 강원도 진부의 일월암 객실은 2009년 8월에 완공된 현대식 암자이다. 단층 건물로서 외부는 목재로만 마감되었으며, 면 적은 17.92m2, 높이는 5.8m이다. 암자는 2.7m×2.7m 방을 중심으로 상하와 전후좌우의 관계들을 만들어 가며 자연과 맞닿아 있다. 군 더더기 없는 형태와 정제된 최소 공간의 현대식 암자에는 종교적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저녁 무렵 배어 나오는 은은한 빛은 불 켜진 석 등을 연상하게 한다.—내부는 삼베와 한지로 정갈하게 마감되었다. 네 면의 문을 닫으면 상부에서 떨어지는 빛만이 공간을 채우며 정돈 한다. 문을 열면 문 너머 풍경이 내부와 소통한다. 전통적인 방의 공간 개념과 정자의 형태를 모티프로 자연과 수행자의 삶이 하나가 되 는 현대적인 공간을 의도했다. ⓦ
↓ 일월암 객실, 2009년, 사진 김용관.
93 2012.9 -10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와이드 AR 29 | Wide Wide Architecture ArchitectureReport Report2929| |2012.9 2012.9-10 -10 New POwer ARchitect ARchitect 파일 파일20 20 최종훈 Choi Jonghoon
최종훈 | 1968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림건축, M.A.R.U에서 경력 을 쌓았다. 주요 작업으로 상도동 골목집, 나루글로벌(NaruGlobal), 데몰리션, 용산공원(아이디 어)공모 등이 있고 김종규,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과도 여러 공동 작업을 수행하였다. 2004년부터 NIA건축(Network in Architecture)을 설립하고, 주변인들과 함께 건축의 모든 과정 에 대하여 실질적인 결과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종훈 아쉬운 과정 Architecture as a Process
70차 땅집사향은 유난했던 열대야와 런던올림픽으로 불면의 밤을 보 내고 있을 무렵 진행되었다. 지어진(built), 짓고 있는(being built), 지어지지 않은(un built) ‘건축 과정의 기록’들을 이야기하면서 건축 작업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동시에 그 의미를 다시 생각 해 볼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94 와이드 AR 29 | New POwer ARchitect 파일 20 | 최종훈 Choi Jo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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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growing pain ⓦ <공릉동 철길집>이 건축주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설계가 중지된 지 만 2년이 되어 가고 있다. 공릉동 주택은 당시 우리의 유일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다. 계획된 건물이 모두 지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진행하고 있던 일이 사라지고 기약 없는 상황이 되니 내 처치가 질리기까지 하였다. 건축을 시작하고 나름대로 쉼 없이 달려온 결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제 그만해야 하는가?” 사실 이러한 생존에 대한 고민은 적어도 내 주변의 건축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일상적 인) 패턴이기 때문에 동질감과 유대감을 갖기도 한다.—최근 건축의 이슈를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불합리한 건축의 과정’이다. 건축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기본적인 원칙들은 무시되기 시작했고, 시장 논리에 따라 생겨난 다양한 형태의 제도, 시스템, 욕망, 가치 등은 어 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하여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절차에 주안점을 두는 건축가에게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불합리한 건축의 과 정 속에서, 건축의 본질적인 과정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어떻게 만드는가? 그것을 하는 데 필요한 절차, 단 계, 혹은 방법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질문들을 풀어 나가는 과정이라면, 우리가 하고자 하고, 또 하고 싶은 건축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공릉동 철길집은 도시형 생활 주택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독립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크고 작은 4개의 생활 공간은 ‘임대 수익’ 이라는 현실 적인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한 확신으로 시작되었다. 임대 시장의 모범 답안을 미리 준비한 건축주와 새로운 주거 유형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많은 고민을 하였고, 대지와 경춘선 사이의 오래된 담장이 헐리고 폐선이 공원화되면 도시 구조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는 건축주 의 말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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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방법 만들기 ⓦ 건축주 입장에서는 불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는 건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잘 모르기 때문에 확신을 갖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편이며, 그러한 과정이 우리의 일상(업무)이다. 분업의 정점에 있는 건축 시장에서 건축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조금 비약하자면, 만드는 방법을 모르고 만들 수도 있는 시 스템이 우리 사회의 강점이기도 하다.—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도 시구르트 레베렌츠(Sigurd Lewerentz), 피터 마클리(Peter Markli), 안드레아 디플라제(Andrea Deplazes) 등 건축을 잘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들이다. 그들의 건축이 선명하다는 것은 건축적 의도가 집요하게 잘 표현된 드로잉을 보면 알 수 있다. 건축을 설명하는 데 드로잉이 언어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세심하고, 설명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건축을 만드는 방법으로 드로잉과 모델에 애정을 쏟는 이유가 된다. 잘 그려진 드로잉은 잘 보 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잘 보인다는 것은 건축의 의도 전달에 효과적이어서 잘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우리의 디자인 방 법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 대신 그림으로 증명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상도동 골목집(오른쪽)과 내곡동 나루글로벌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여러 제한된 조건(문 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건축(설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가졌던 프로젝트이다. 설계 과정에서 논리나 관념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소 건조하지만 재료와 구축 방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있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건물이 지어진 지 3~4년이 지난 현재까지 계속되는 문제들은 재료에 대한 철저한 리서치 (Research)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건축의 궁극적인 구축/표현 도구인 재료는 그 물성에 대한 이해와 쓰임 에 따라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 가능성이 재료의 오랜 시간 지속된 건축의 의미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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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과 함께 그리기 ⓦ 도시에서 새로운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사람이 기존 공동체 구 성원과 인사 정도는 하면서 살아 왔던 관습과 같은 것이다. 건물은 사람이 사는 장소이고, 따라서 도시의 새 건물은 주변의 지형과 건물 과 관계해야 한다는 건축의 모범적인 정의는 우리에겐 쉽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은 건물이 놓일 필지(筆地, plots)가 가지고 있는 본질인 ‘소유’라는 성격 때문이다. 네가 조금 내어 놓으면 너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강제적인 제도(법규)도 지주(地 主, landowner)에게는 그저 합법적인 땅 도둑일 뿐이다.—파주 <좋은생각>과 <열화당 신관>은 오픈스페이스가 관념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프로젝트이다. 외부 공간은 내부 프로그램과 관계하여 여러 가능성을 담을 수 있는, 작지만 매력적인 카펫(carpet)과도 같은 장소로 계획되었다. 새로운 건물이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주변 건물들 과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랐고, 이러한 ‘앙상블(ensemble)’이 도시의 질을 높이고 도시에 문명성(civility)을 부여한다는 믿음은 주변과 함께 그려진 다양한 모습의 드로잉과 모델을 통해서 건축주에게 설명되었다.
열화당 신관 배치 작업을 위한 주변 모형 만들기 : 좌로부터 활판공방(이로재), 좋은생각(ARU+NIA), 열화당 본관(ARU+MARU), 열화당 신관 (ARU+NIA), 한길사(어싸일럼).
파주출판도시의 좋은생각(왼쪽)과 열화당 신관(Florian Beigel, ARU와 공동 작업)은 ‘도시로서의 건축(architecture as urbanism)’에 대한 고민이다. 계획된 건물이 주변과 함께 문화 클러스터(cluster)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 오픈스페이스는 실 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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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9 -10 New POwer ARchitect 파일 20 최종훈 Choi Jonghoon
반복되는 아쉬운 과정 ⓦ 여전히 비가 새는 건물, 한 번에 끝나지 않은 대관 업무, 시공사의 푸념과 동일한 실수,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재 료와 디테일, 건축가를 위협하는 규칙적인 위험 요인, 그리고 가난한(?) 건축주와 저렴한 설계비/공사비…….—건축을 하면서 프로젝트 의 지난 과정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것은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과거의 불편한 기억이 추억으로 미화될 수도 있겠지만, 반복되는 생 각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무력감(건축에 대한 무지함이 올바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은 공포가 되기도 한다. 나름대로 이러한 아쉬움을 줄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장치(방법)를 만들기도 하고, 예민해지려는 마음을 잡는 내공도 생겼지만,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솔직 한 현실이며, 건축적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아쉬움이 사라질 때 “이제 그만해야 하는가?”란 질문도 사라질까? ⓦ
파주 데몰리션의 모습(형태)은 주어진 프로그램의 솔직한 반영이다. 영화의 특수 효과를 업으로 하고 있는 데몰리션은 작업 및 생활 방식 또 한 매우 특수(?)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이러한 독특한 생활 환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데몰리션은 내년(2013년) 초 준공 을 목표로 공사 중이며, 극단적인 공사비와 초현실적인 공사 기간의 제 한 속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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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 09-10
2012•09-10 -
트 포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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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 리포트 |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 임진영> 공통의 토대에서 길을 잃은 한국관 104
ⓦ <근대 건축 탐사 29 | 손장원 > 김천의 근대 건축 107
ⓦ <사진 더하기 건축 09 | 나은중+유소래 >
구조적 직관 Structural Intuition — 헬렌 비넷Hélène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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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1 |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3 공모전>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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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eye 2 | 노휘의 Maximum Living in Micro Studio – TRANSFORMER 전> 123
ⓦ 전진삼의 FOOTPRINT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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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리포트 |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공통의 토대에서 길을 잃은 한국관 글 | 임진영(건축 전문 기자)
건축을 통해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다. ⓦ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전시는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라는 주제가 쓰여진 벽 앞에 놓인 작은 우물로 시작한다. 담백한 글씨체로 쓰여진 올해 주제의 타이포그라 피는 베니스 골목마다 붙여져 있는 표지판의 글씨체를 가다듬어 사용했 다. 언제부터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오랜 시간 도시를 안내해 온 친 밀하고 낯익은 글씨체, 그리고 식수 해결을 위해 베니스의 광장마다 놓인 마을의 공동 우물은 평범하지만 공공의 영역에 함께 모여 정수를 길어내 는 은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 지난 8월 29일 개막한 제13회 베니스비 엔날레는 총감독 데이빗 치퍼필드의 지휘 아래 ‘공통의 기반’이라는 주제 를 제시한다. 데이빗 치퍼필드는 이 주제를 통해 지속성, 컨텍스트, 그리 고 기억을 바탕으로 그 영향력과 기대감을 나누며, 전문가와 사회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다루고자 했다. 다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 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베니스비엔날레 이사장인 파올로 바라타(Paolo Baratta)의 말대로 올해 주제는 많은 생각, 아이 디어와 갈등을 내포한다. 지난 시기 건축가들은 주변 건물과 도시 개발의 평범함에 대항해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오 브제를 만들어 왔지만 결국 도시나 개별적인 삶의 조직에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이 전시는 바로 그 건축과 시민 사회 사이의 균열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시의 의도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들을 함께 전시하고, 과거와 현재 모두와 건축 사이의 관계, 그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깨닫는 장소를 제공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개별 작 품을 기념하는 대신 다양한 건축가들의 작업으로 채우려는 의도도 포함해서 말이다. 데이빗 치퍼필드 역시 개별적인 스 펙타클이 아니라 집단 가치의 현상을 드러내고 일상을 위한 환경으로서 건물의 중요함을 주목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 에 대한 감성과 이해가 중요함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 ‘공통의 기반’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문구 아래, 비엔날레는 건 축과 사회, 도시 계획과 건축, 수많은 갈등과 모순, 질문도 담고 있다. 케네스 프램프튼의 ‘비판적 지역주의’와 렌조 피 아노의 홍콩 HSBC 빌딩 등의 출현이 구닥다리같다는 시선을 던지는 저널이나, 건축의 타협을 비난하는 쿱 힘멜블라우 의 성명, 그리고 열정과 영감이 사라진 건축에 대한 프랭크 게리의 공개적인 비난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극명한 두 입장 이 충돌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결국 올해 건축 비엔날레는 지난 십여 년 동안 거대 자본과 밀월 관계를 가져온 오 브제 중심의 건축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금융 위기 이후 우리가 함께 모색해야 할 공동의 가치, 건축의 본질과 근원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비전, 태도를 공유하기 위한 열린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1 사진 임진영.
Wide AR no.29 : 09-10 2012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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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설계 사무소와 젊은 건축가의 어색한 동거 ⓦ 그런 의미에서 대형 설계 사무소와 신진 건축가를 한 자리에 모은 한 국관의 주제는 어쩌면 전체 주제에는 적합한 대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공통의 기반’이라는 주제에서 건축의 윤리와 사 회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한국 건축의 대중적인 측면을 담고자 했다는 한국관 커미셔너 김병윤 교수의 말처럼, ‘우리 건 축 현장에서 불협화음의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왜 우리의 건축 현장은 폐쇄적이고 과열되며 분열되고 있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는 무엇을 담보하고 있는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건축은 턴키 위주의 대형화로 치닫고 있고 일부 대형 사무실만 참여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건축의 과열과 긴장, 비대한 현상, 과도한 경쟁, 출혈, 비리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 건축의 증상을 가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드러냄으로써 기록해 보자는 바람이었다.” 커 미셔너 김병윤 씨의 설명이다. “대형 설계 사무소 대표들을 작가로 내세워 세계에 자랑한다는 개념이나 면죄부를 주고 자 하는 것이 아니다. 턴키 같은 제도도 우리 시대가 만들어 놓은 산물이기 때문에 그 영역에도 건축이라는 요소가 포함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목표였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역량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건축물들이 건축가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의견과, 왜 우리가 이런 건축물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라는 의도도 포함한다. ⓦ ‘건축을 걷 다’라는 주제는 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한국관 안에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나무의 숲을 조성하는 것이 초기 컨셉트였다. 전시장의 구성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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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 마치 파편화된 영상이 파열음처럼 흩뿌려 진 숲을 거닐며 건축을 관람하는 방식으로 구상했다. “건축가는 보이지 않고 건물만 보이도록 한 것이 초기 의도였다. 그러나 건축가들이 부각 되길 원하는 바도 있어서 영역을 구분하고 8개의 다른 표현으로 점점 방 향이 바뀌었다.” 여기에 “각기 다른 태도를 가진 건축가와 작업이 의도 적으로 모호한 하나의 풍경으로 읽히도록 하기 위해(부큐레이터 유현준 홍익대 교수)”, 각각의 영상 작업에 대한 소개와 작가의 이름은 없앴다. 5개의 소주제로 써내려 간 8개의 시나리오 ⓦ 커미셔너가 제시하는 한국관의 키워드 중 주목할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대형화되고 있는 모습을 주목한 ‘포스트 맥스(Post-Max)’와 경쟁과 선택의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건축의 표 정에서 읽어낸 ‘포스트 그레이(Post Grey)’다. 여기에 ‘상호 작용성’, ‘친환경성’, ‘장소의 기억’, ‘감각의 구축’, ‘섬세함 과 감촉성’이라는 5개의 소주제를 통해 한국 건축의 대중적인 측면을 담고자 했으며, 각각 지명 공모와 일반 공모로 선 정한 대형 설계 사무소와 신진 건축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주제를 제시했다. 8명의 참여 건축가는 이 소주제를 바탕으 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영상으로 풀어내 각각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상과 직조, 김태만(해안건축 대표)>, <회상, 한 종률(삼우건축 부사장)>, <느림과 재편, 이상림(공간 대표)>, <장소와 정서, 박승홍(DMP 건축 대표)>, <지속, 오영욱 (odda 소장)>, <연결, 박진택(Jtparchitecture 대표)>, <표현, 윤창기(경암건축 대표)> 등이다. ⓦ 전시장은 단순한 목구 조물과 한지를 사용하여 8개의 영역을 만들고, 각각의 영역에 개별 건축가의 영상을 설치하고, 입구에는 각각 다른 지 위,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일상을 보여 주는 영상물을 두고 있다. 개별 영상에서 김태만은 <Floating & waved ground>를 통해 서울 추모 공원, 플로팅 아일랜드, 여수세계박람회 국제관을 소개하며, 각 건축물을 활용하는 사 람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박승홍은 <Reconciliated ground>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장소와 배경에 따라 다른 해석
2 한국관 포스터. 사진 임진영. 3 한국관 커미셔너 김병윤. 사진 구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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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상이한 결과를 가져오는 과정과 이를 해석하는 건축가의 시선을 보여 주고자 했다. 즉 서울시청 응모작, 노들섬 복 합 공연 예술 공연장, 경기도청사라는 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가가 그려낸 스케치를 실제 그 장소의 소리, 빛, 환경을 촬영한 동영상과 함께 보여 주는 방식이다. <Slow & recited ground>라는 주제로 접근한 이상림은 건축 설계 뿐만 아니라 공간지, 공모전과 문화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공간 의 복합적이고 독특한 활동을 보여 주기 위해 ‘정보 시각화’의 방법을 택 했다. 즉 전세계에 걸쳐 진행되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각화된 수치로 보여 주고 각각의 프로젝트를 재해석해 건축 지표에 따라 분류, 전달하는 영상을 보여 준다. 한종률은 <Remembrance ground>라는 주제로,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역 문화공간,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세 근대 건축물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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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이션 작업을 통해, 일제 시대 근대 건축 활용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사람들의 기억에 대한 영상을 담았다. ⓦ <Juxtaposed ground>라 는 주제를 풀어간 오영욱은 도심 보행권이 박탈 당해 차와 사람이 늘 엉켜 있는 강남의 작은 교차로를 관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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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작업 안내 마네킹 로봇을 주인공으로 삼아 서울 도심의 이면도로에 거리 주차를 막는 새로운 직업을 제안하는 우화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인 간을 위한 보행 공간을 말한다. 김현수는 예술가들과 함께 <Restructured ground>라는 주제로 비워진 공간을 탐구하는 영상을 소개한다. 빈 여백 을 먹으로 그려 나가며 채우는 행위와, 작은 사찰의 빈 공간을 30명의 학 생들과 함께 빛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 빈 공간 자체의 미학 과 의미를 나누고자 했다.
모호한 주제와 불명확한 태도 ⓦ 불행하게도 한국관의 전시가 초기 의도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 니다. 오히려 전시는 서로 연관 없는 작업의 연속으로 흐르며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목재와 한지라는 박제된 전통 요 소의 차용은 전시 주제와 어떤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고, 전시의 일관성과 컨셉트를 표현해야 할 포스터 역시 아마추어 수준의 디자인을 드러내면서 한국관 전시의 힘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건축을 걷다’라는 평화롭고 시적인 주제는 한국 의 건축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열 경쟁과 불협화음, 방치된 대형 설계 사무소의 영역을 함께 끌어들이겠다는 커미셔너의 의도와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출발부터 모순을 드러낸다. 결국 참여 건축가 각자의 위치나 태도, 건축 방식에 대한 고민 이나 반성, 현실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에서 전시 의도는 실제 전시와 긴밀한 연관과 메시지를 담지 못하고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대형 설계 사무실의 참여를 통해 한국 건축 현장의 다양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커미셔너의 의도는 한지의 불투명한 그림자처럼 모호해지고, 건축계의 평가나 비평이 개입되지 않고 어떤 성찰도 없는 개별 사무실 프로젝 트에 대한 소개 영상만 남은 셈이다. 여기에 일부 참여 건축가가 직접 영상에 등장해 소개하는 방식은 전시의 몰입을 방 해하는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홍보 영상의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자막의 길이나 속도를 맞추지 못해 실제 내용을 전혀
4 사진 구본준. 5 사진 구본준. 6 사진 구본준.
Wide AR no.29 : 09-10 2012 Report
전달하지 못하는 <Floating & waved ground>의 기술적인 문제 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며, 특히 발자국을 따라 가며 주위 소리와 풍경을 상상하면 새로운 건축의 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국제 전시 수준에 미 치지 못하는 <Linked & signposted ground>의 영상 표현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영상이라는 매체는 건축을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영상이 쉬운 매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전체 전시에서 전달하는 정보의 양 도 문제다. 개별 영상의 길이는 짧게는 6분, 길게는 15분을 훨씬 넘는 분량으로 제작되어 과연 관람객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조건이었는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영상의 길이가 2분 30초대에 머물러서 개별 영상의 메시지가 관람객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커미셔너의 의도에 참여 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따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이상림)” ⓦ 결과적으로 ‘의도된 모호함’을 통해 한국 건축의 다양한 태도와 현장을 보여 주려는 커미셔 너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국관은 불명확한 인문학적 수사 아래 각기 다른 건축가의 불명확한 태도가 한데 엮이고 있으 며, 여기에는 자신을 작가로서 드러내고자 하는 건축가의 욕망도 뒤섞여 있다. 모호함은 민망함과 구태의연함으로 바뀌 고, 한국관이라는 공통의 기반 위에 이렇다 할 이슈나 메시지 대신 동상이몽을 드러내고 있는 형상이다. 주제를 중심으 로 참여 건축가를 선정한 커미셔너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주제의 모호한 표현과 개별 건축가의 의지만 부각된 결과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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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는 국제적인 건축 축제다 ⓦ “처음부터 대중성에 대해 더 진진하게 보여 주려고 했다면, 정확하게 그 과 제에 해당하는 프로젝트를 사건별로 구분해서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건축의 사회성과 대중성을 보여 주기에 적정했 겠구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김병윤)” 특히 한국관에서 아쉬운 것은 대형 설계 사무소와 아틀리에, 소규모 사무실 등 다양한 규모와 조직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건축 지형을 보여 주기 위한 객관적이고 일관된 태도를 가진 비평의 시각일 것이다. 건축가 선정 과정의 갈등과 오해, 비판에서 보듯, 누가 그곳에 나가야 하는가라는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논쟁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태도, 결과물을 통해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전세계 건축 전시 중 단일 규모로 가장 큰 전시이자 수많은 평론가와 건축인들이 치열한 개 념과 사유, 담론과 논쟁으로 건축의 이슈를 제기하는 자리다. 주변 국가관이나 주제관의 예리하고 참신한 주제, 유럽과 미국의 건축인들이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성장하며 발언을 획득하는 치열한 과정을 지켜본다면, 단 지 우리가 가진 정체성을 과거나 전통에서 빌려와 포장하고, 자기 성찰과 현실에 대한 분석 없이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내 놓은 전시에 좋은 평가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세계적인 건축 수준에 걸맞는 한국 건축이나 건축가를 제시하거나, 한국 건축 현실에 대한 냉철한 성찰과 수준 높은 전시 방식을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 건축 전은 국가관과 주제관, 수많은 초청 건축가들 사이에서 단지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상을 남기느 냐가 중요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
7 사진 임진영. 8 사진 구본준.
ⓦ 임진영은 월간 공간 편집팀장을 거쳐 해외 건축 전문지인 MARK와 AR Asian Pacific에 한국 건축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으며, 대중 매체에 한국 건축과 도시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도시와 건축을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 고 건축가 모노그래프의 에디터로도 참여하며, 현재 하와이대학 서울스튜디오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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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근대 건축 탐사 29
김천의 근대 건축 손장원 | 본지 자문 위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
직지사역—김천시 대항면 덕전리 1056에 위치한 경부선 기차역으로 신암역과 김천 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25년 9월 15 일 영업을 시작하여 1927년 보통역으로 승격하였고, 이때부터 직지사역으로 불리 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역에서 직지사에 가 려면 약 4km를 더 가야 한다. 이렇듯 먼 거리에 위치한 역에 ‘직지사’란 이름을 붙 인 것은 철도를 이용한 관광객 유치를 목 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불국사 역에서 불국사 입구까지는 약 3km 정도이 다. 한편, 직지사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수 천에 달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1927년 2 월부터는 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자동차 가 운행되기도 했다.
김천(金泉)이라는 지명이 문헌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 김천역이 설치되면서 부터이나 현재와 같은 행정 구역을 갖추게 된 것은 1914년의 일이다. 우리나라를 강 점한 일제는 이때에 이르러 지방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하여 김산군, 지례군, 개령군, 성주면, 신곡면을 통합해 김천군을 발족시켰다. 3년 뒤인 1917년에는 포항과 함께 자 치 기능이 있는 특별면이 되었다. 1931년 읍으로 승격된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행 정 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후 김천읍은 1949년 김천시로 승격되었으며, 시역을 제 외한 다른 지역은 금릉군이 되었다. 1983년 금릉군 일부가 김천시로 편입되었고, 1995 년 금릉군을 포함한 전 지역이 김천시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된 도농 통합시가 되었다. 철도는 지방 소도시 김천이 근대 도시로 변모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교 통 요지인 김천에는 경부선(1905년)에 이어 경북선(1924년)이 개설되었고, 경북 북 부 지역 농산물 집결지였던 김천과 삼천포를 연결하는 철도 부설이 추진되기도 했다. 1910년 당시 김천의 인구는 4,742명으로 대구(30,713명), 안동(8,429명), 상주(6,833 명) 등 경북의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작은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부선과 경북선 개통으로 철도 교통의 요지가 된 김천은 인구가 급격히 성장하여 1944년에는 35,007 명으로 30여년 만에 8배 가까이 늘어났다. 인구 증가는 여러 가지 도시 문제를 촉발했 으나, 도시 기반 시설은 더디게 설치되었으며 그마저도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이 루어졌다. 전기(1921년), 도립병원(1921년), 상수도(1926년) 등 1920년대에 근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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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고등학교—1924년 1월 17일에 김천고보 준비 위원회가 구성되었 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931년 2월 5일 최송설당(→)이 전 재 산 30만 2100만 원을 희사하여 재단법인 송설학원(松雪學園)을 설립 하면서 가시화되었다. 그해 3월 17일 김천 고등보통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5월 9일에 개교했다. 이 학교를 세운 최송설당은 영친왕의 보모로 귀비(貴妃)로 책봉되었다. ‘송설당’은 고종황제가 그녀에게 하 사한 호이다. 김천고등학교 뒷산에는 송설당이 거처하던 집과 무덤이 있으며, 송설역사관에는 1935년 11월 30일에 세운 송설당의 동상(등 록문화재 496호)이 있다.
↑ 최송설당 상. ↗ 최송설당이 살던 집.
시가 갖추어야 할 기반 시설이 세워졌다. 초등 교육 기관은 성의학교(1901년), 김천 심상소학교(1907년), 광흥학교, 개진학교(1909년) 등과 같이 1900년대 초반에 지 어졌으나, 중등 교육 기관은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 세워지기 시작해 김천 고등보 통학교(1930년), 김천 공립 고등여학교(1935년), 김천 공립 상업학교(1942년)가 연 이어 개교했다. 내륙 지방인 김천에 일본인이 유입된 것은 1904년 1월경으로 다른 지방에 비해 비 김천고등학교 본관—1931년 11월 17일 일본인 건축 회사가 낙찰 받아 12월 1일 착공을 거쳐 그 이듬해 3월 31일에 준공 한 건물이다. 당시 가장 질이 좋은 것으 로 알려진 평양에서 생산된 벽돌을 이용 하여 연면적 1,323㎡, 2층 규모로 세웠으 며 기초에는 쇠만큼 단단하다는 황등석이 사용되었다.
교적 늦은 편이다.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를 맡은 일본 회사가 사무소를 개설하고 주 임과 직원을 상주시켰는데, 이들이 김천에 거주한 최초의 일본인이었다. 같은 해 3 월에는 일본인이 잡화점을 열었다. 이후 많은 철도 공사 기술자와 노무자들과 일본 인 상인들이 김천으로 들어왔다. 철도 공사가 끝난 뒤 기술자들이 김천을 떠났지만 상인들은 계속 남아 있었고, 1906년에는 거류민 단체가 조직되기도 했다. 이들은 감 천변에 위치하고 있던 시장 주위에 터를 잡고 상업과 주거에 필요한 시설을 세웠다. 필요에 따라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일본인의 건축은 1915년부터 2년간 진행된 ‘시가 지 정리 사업’으로 본격화되었다. 이때 총 136채의 건물이 세워졌는데 71채가 일본 식 주상 병용 건물이었으며, 이것이 김천 최초의 2층 건물로 알려져 있다. 공공 건축 물은 일본 양식 중심의 민간 건축물과 달리 일본식 의양풍(김천읍사무소)과 서양식 (조선식산은행 김천 지점)으로 세워졌다. 일본인이 터를 잡은 곳을 중심으로 시가지 가 형성되고 공공 기관이 들어섬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던 감호동, 남산동, 황금동, 성내동은 도시의 주변부로 전락했다. 가로 정비 등 각종 도시 기반 시설은 일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거주
김천고등학교 과학관—1938년 11월말 김 천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건축업자와 계약 해 건축에 착수했지만 공사비가 부족해 설 계를 변경했다. 철제 창은 목제 창으로, 일 본산 삼목은 국산 목재로, 화강석은 인조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1939년 12월 중순 에 준공된 박공 지붕의 벽돌조 단층의 T 자형 건물이다.
하는 곳은 생활 환경이 열악했다.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던 용두동, 모암동은 침수 지 역을 매립하여 조성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침수가 적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던 감호동 일대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김천에서 거주하던 우리나 라 사람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시가 정리 문제로 시민의 불평이 만만. 김천 시가에서 조선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통행이 가장 많은 감호동은 도로도 좁 고 구불구불하며 하수구가 부실해 비가 오면 우수가 길바닥에 고여 통행이 불편하여 이를 정리하기 위해 예산을 편성했으나 회계 연도 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행하 지 않고 있음. — <동아일보>, 1927년 3월 6일, 4면.” 교통 물류 도시였던 김천에 조선철도주식회사 김천 지점(1920년), 조선운수주식회 사 김천 지점(1930년)과 같은 물류 회사 지점이 속속 들어섰다. 또한 김천의 경제 규 모를 반영하듯 1909년 조선식산은행 김천 지점과 금릉금융조합이 설립된 것을 필두 로 지례금융조합(1919년), 김천금융조합(1919년), 대신금융조합(1925년), 금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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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항지서 망루. ↗ 부항지서 망루 지하 통로.—한국 전쟁 당시 부항면민과 경찰이 쌓은 망루로 등록문화재 450호다. 북한군이나 빨치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운 망루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부항지서 망루 외에 호룡보루(장수군 산서면), 보령경찰서 망루, 태백경찰서 망루 가 있다. 이 중에서 부항지서 망루만 4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 망루는 높이 7m, 하단부 너비 3.7m, 상단부 너비 3.1m이며, 20m 정도 떨 어진 곳에 위치했던 부항지서와의 사이에는 지하 통로를 설치했다. 축조 당시에는 양철 지붕과 종, 사이렌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사라지고 콘크리트 구조물과 지하 통로만 남아 있다. 2012년 봄에 정비 공사를 실시하여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이 망루는 1951년 1월 빨치산과 교전 하여 경찰과 주민 5명이 전사하면서도 이 일대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곳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음으로써 지리산 삼도봉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빨치산의 활동은 크게 억제되었다. 이현상의 남부군 산하 ‘불꽃부대’는 인근 월곡리(부항면의 또 다른 중심지로 부항우체 국이 위치하고 있음)를 점령한 뒤 부항지서를 둘러싼 문필봉, 할인산 등 사방의 산들을 점령하고 부항지서를 공격했다. 첫 번째 공격에 실패 한 빨치산은 민주지산 너머에 위치한 전북 무주군 무풍지서를 습격해 무기를 빼앗은 뒤 부항지서를 재차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물러났다. 경북 과 전북 사이에 놓인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던 불꽃사단은 부항지서는 물론 이보다 남쪽에 위치한 증산면 소재지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877 경비대와도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1950년 10월 24일 밤 자정 무렵 불꽃사단 일부가 증산지서를 습격하여 6명의 경찰관을 사살했으며, 11 월 18일에도 경찰관 2명을 사살하고 도주하였다. 이때부터 국군과 경찰은 증산 지역에 주둔한 공산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벌였다. 1951년 2월 불꽃사단이 증산지서를 재차 공격하는 과정에서 피아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1951년 7월 14일에도 경찰 병력과 교전을 벌이다 패퇴했다. 이후 빨치산의 세가 크게 위축되어 큰 공격은 없었다. 빨치산의 증산지서 습격은 이보다 앞선 1948년 10월 19일에도 있었 다. 정부 수립 이후 좌익 인사 색출에 쫓겨 산으로 숨어든 사람들이 여순사건을 계기로 증산지서를 습격하여 지서장 등 경찰관 4명을 사살하 고 건물을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부금융조합(1931년)와 같이 여러 개의 금융 기관이 세워졌다. 이외에도 많은 근대 건축물이 지어졌지만 당시에 세워진 건물 중 현존하는 것은 별로 없다. 다른 도시처럼 1980년대 이후 개발 압력에 밀려 철거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한국 전쟁기에 소 실되었다. 전재가 가장 심했던 김천은 시가지의 80% 정도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 김천 근대 건축 기행의 주제는 민족 교육 과 한국 전쟁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김천고등학교와 부항지서 망루를 가 봐야 한다. 직지사역과 직지사를 거쳐 김천고 등학교, 황금동 성당을 보고 부항면에 위치한 부항지서 망루를 방문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하루 일정을 더 추가하여 부항지서 에서 1089번 도로를 따라 가목재를 넘어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에 남아 있는 한국 전쟁 전후기 빨치산과 우리나라 군경이 벌 인 격전의 현장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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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 사진 더하기 건축 09
구조적 직관 Structural Intuition
헬렌 비넷
Hélène Binet
나은중・유소래 | 본지 자문 위원, NAMELESS 공동 대표
“당신의 눈을 사물 위에서 좌우로 움직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를 보라. 당신이 가까이 감에 따라 그들이 확장되는 것을 보 게 될 것이며, 당신의 위치를 변화시킴에 따라 그들은 무리 짓기도 하며, 다시 해체되기도 할 것이다. 관계들은 점진적으로 드러 나, 때로는 최후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사진이다.” - 아론 시스킨트, 『사물의 드라마』, 1945년. “The Drama of Objects, Move on objects with your eye straight on, to the left, around to the right. Watch them grow large as you approach, group and regroup themselves as you shift your position. Relationships gradually emerge and sometimes assume themselves with finality. And that’s your picture.” - Aaron Siskind, 『The Drama of Objects』, 1945. 사진기를 들고 특정 장소를 배회할 때면 발걸음의 이동에 따라 재배열되는 수많은 시각적 관계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걸음 옮기면 숨어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걸음을 옮기면 대상은 배경과 각을 틀며 왜곡되기도 한다. 한 발자국에 의해 공간의 깊이가 드러나기도 하며, 다음 발자국에 의해 그 공간이 모호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장소와 관찰자의 관계를 고려할 때, 사진가는 하 나의 장면을 구성해 낸다기보다 오히려 장면을 해석해 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하다. ⓦ 스위스 태생의 헬렌 비넷(Hélène Binet, 1959년~ )은 장소를 매개체로 장면을 해석하는 현대 사진가이다. 그녀의 장소는 산비탈의 바위 틈에서부터, 현대 건축 그리고 도 시의 풍경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공간의 층위를 소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한 시선의 객관화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파생된 해석 혹은 압축에 가깝다. 이는 사회적 기록 사진으로부터 출발해 사진의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를 구체화시킨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의 방식과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갖는다. 아론 시스킨드가 1945년 그 의 에세이 『사물의 드라마』에서 언급한 ‘사진’은 비록 현실의 객관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 은 보편적 논리로는 설명되기 힘든 직관에 의지하고 있다. 헬렌 비넷의 작업 방식 역시 많은 부분 이러한 직관 혹은 개인적 해석에 의 존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사진 행위는 매우 구조적인 양상을 띤다. 이는 건축물이라는 대상을 재현하는 데 있어 미학적인 관점을 넘어 공간의 재료, 구조 그리고 빛 사이의 치밀하게 논리적인 관계를 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진 행위에 서 그녀는 그 관계들을 해석하는 몇 가지 단서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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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imitris Pikionis, Landscaping of the Acropolis Surrounding Area, Athens, Greece, 1957, photographed 1989. Courtesy of Hélène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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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프레이밍(Framing the Sensation) ⓦ 우리는 다양한 감각 기관을 통해 장소를 경험한다. 새로운 장소에 들어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공간의 대략적인 형상을 파악하게 되고, 발걸음을 내딛으며 바닥의 질감을 느낀다. 또한 장소를 둘러싸 고 있는 빛과 색상에 의해, 때론 그곳의 자연적 혹은 인공적 재료의 특성에 의해 공간의 냄새를 맡게 된다. 이러한 인지의 과정은 사 실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장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다양한 감각 기관의 작용과 편견이 압축되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의 복잡성 때문에 오히려 사진이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광학적 정보를 수집하는 사진의 속성은 장소에서 발생하 는 다층적인 감각의 정보들을 걸러내고, 동시에 렌즈의 시야를 통해 물리적 프레임을 제한함으로써 철저히 작가의 의도 안에서 재정 의된다. 이는 장소에서 인지될 수 있는 수많은 감각을 사진 행위의 프레이밍을 통해 걸러내어 한두 가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 그리스 건축가 디미트리스 피키오니스(Dimitris Pikionis)의 <Landscaping of the Acropolis Surrounding Area>를 촬 영한 사진에서 헬렌 비넷은 풍경을 만들고 있는 돌의 파편들에 렌즈를 고정시킨다. 그곳에는 다양한 감각의 정보가 내재되어 있다. 풍경에 발을 내디디면 느껴질 돌의 요철과 거친 듯 연약해 보이는 대리석의 질감 그리고 그 표면에 반사되는 늦은 오후의 따듯한 기 운 등, 수많은 감각의 정보들을 희미하게 억제하며 작가는 이를 한 장의 흑백 화면에 압축한다. 헬렌 비넷은 만일 사진에서 발현되는 이러한 압축된 감각(sensation)이 부재하다면 그것은 사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부분에서 전체로(From Part to Whole) ⓦ 헬렌 비넷은 그녀의 많은 사진에서 전체가 아닌 물리적으로 잘린 장면을 통해 건축 사진 의 구조적 틀을 제한한다. 특정 장소에서 발생한 재료와 빛의 관계 혹은 공간과 시간의 상호 작용 등을 매우 제한된 프레임으로 기록 함으로써 공간의 형태적, 구조적 시선들은 낯설고 추상화된 이미지를 재구축한다. 이렇게 재현된 장소의 추상성은 은유적인 해석에 도 불구하고 건물 전체를 온전하게 찍은 보편적인 의미의 건축 사진보다 건물의 개념(건축가의 초기 의도)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이러한 사진의 추상성은 때로는 장소의 불확실성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사진이 시각적 재현도구로서 관찰자의 경험을 한정시 킨다는 비판에 대응한다. 불확실성은 사진을 읽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함축된 언어 뒤의 의미를 상상하고 창조해 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 헬렌 비넷은 협업을 진행해 온 몇몇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공사 단계에서부터 기록해 왔다. 그녀는 오히려 공사가 진행 중
2. Zaha Hadid, Phaeno Science Centre, Wolfsburg, Germany, 2005, 3. Zaha Hadid, Phaeno Science Centre, Wolfsburg, Germany, 2005, photographed 2003. Courtesy of Hélène Binet. photographed 2003. Courtesy of Hélène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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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Peter Zumthor, Kolumba Diocesan Museum,Cologne, Germany, 2007, photographed 2008. Courtesy of Hélène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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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건물의 골조와 마감되지 않은 구조체에서 건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더 순수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사 중에 찍은 그녀의 사진들은 반대로 건축가에게 또 다른 영감을 주기도 한다. ⓦ 그녀가 기록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Phaeno Science Center>시리즈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유동적 곡선을 그리며 심연을 향해,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구치 는 마감되지 않은 순수한 콘크리트 구조체는 자하 하디드의 어떠한 건물 사진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는 중력에 저항하는 과장 된 몸짓과 거친 구조체의 질감으로 인해 정제되지 않은 건축가의 초기 개념 스케치를 연상케 한다. 추상화된 때로는 완성되지 않은 장소의 불확실성은 건축의 내재된 성질을 더 명확히 드러내는 힘이 있다. 물론 이런 결과는 의식적일 수도, 직관적일 수도, 자동적일 수도 있다. 명확한 관심일수록 그 결과 또한 명확하다. 어둠과 밝음(Dark and Light) ⓦ 사진(Photography)은 그리스 어원인 ‘PHOS’(빛)와 ‘GRAPHOS’(그리다, 묘사하다)가 결합된, 다시 말해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헬렌 비넷은 대부분의 사진을 통해 이 물질의 본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빛 을 하나의 생명으로 간주하며, 공간은 이로 인해 매 시각 매초 살아있고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기록한 사진은 장 소에 대한 단 하나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작가가 느낀 한 순간의 경험이 노출된 것이다. 이러한 빛의 성질, 변화하는 어둠과 밝음의 관 계는 흑백 사진을 사용할 때 더 극적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색이 건축물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면 주로 흑백 사진을 고집하는데, 이 는 어둠과 밝음 사이의 세밀한 디테일을 노출시키며 동시에 모노크롬의 절제된 감각을 통해 작은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소화된 감각에만 집중하게 될 때, 예를 들어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평소보다 청각이나 촉각이 예민해지 는 것처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지각 요소가 줄어들면 남아있는 감각에 더 집중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헬렌 비넷의 공간과 재료 그리고 이를 점유하는 빛에 대한 해석은 그녀가 오랫동안 협업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 피터 줌터 (Peter Zumthor)의 건축 사진에 밀도있게 표현되고 있다. 그녀가 촬영한 피터 줌터의 <Kolumba Diocesan Museum> 내부 사진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곳에서 벽돌 사이를 채우는 빛은 건축의 주 재료인 벽돌과 동일 선상의 건축 재료로 사용된다. 헬렌 비넷은 이 두 재료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 작용을 수동적 풍경으로 인지하기보다는 재료들 사이의 강렬한 부딪침을 통해 만들어진 능동적 인 대화로 포착한다. 벽과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가 그 대화의 무대이다. 벽돌 사이로 흘러드는 빛 줄기들은 천장의 콘크리트 면 위 에서 수많은 간섭을 만들며 마치 계곡물이 흐르는 듯한 유동성을 만든다. 이는 건축가가 언급한 밀도, 공간, 율동, 음색을 통해—형 태는 견고하고 추상적이지만 분위기는 아름답고 유동적이어야 한다—는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 또한 피터 줌터의 2007년 작 품 <Bruder Klaus Kapelle>에서는 건축가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시선이 느껴진다. 독일 쾰른에서 멀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에 위치 한 이 작은 예배당은 장소, 구축의 방법, 재료 등 풍부한 건축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이 건물에 그녀만의 이야기를 담기로 한 다. 그러나 완공 직후의 새 건물보다 시간이 지난 후 보여질 모습을 기대하며 완공 시점에 건물을 찍지 않기로 결정한다. 1년여의 시 간이 흐른 후, 건축물의 많은 이야기 중 작가가 집중한 부분은 예배당과 자연이라는 장소의 만남이다. 그녀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 이 건물이 절대적인 존재(신이든 자연이든)와 땅에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라 생각했다. 이러한 연유로 땅과 하늘 그리고 건물 을 사각 프레임 안에 간결하게 배치시키고, 불필요한 디테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가 진 후 어두운 외부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 건 물은 스케일 감을 잃은 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하나의 검고 거대한 모놀리스(monolith)로 재현되며, 배경인 밤하늘은 장노출을 통해 만들어진 별의 궤적으로 인해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작가는 이를 구름과 별 등의 자연의 요소로 치환한다)와 건축 사이의 관 계를 만들어 낸다. ⓦ 앞서 언급한 대로 작가는 색이 건물의 핵심 요소일 때 칼라 사진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피 터 줌터의 <Therme Vals>는 색이 건물의 핵심 요소가 아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회색 규암으로 적층된 무거운 무채색의 공간임에 도 헬렌 비넷은 이 건물을 경험할 당시 돌과 빛 그리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물이 건물의 핵심 재료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벽 과 바닥 그리고 수면이 만나는 지점에 프레임을 고정하고 셔터를 누른다. 그 결과물은 물과 빛의 작용에 의해 산란되는 한없이 심연 에 가까운 푸른빛의 공간으로 재현된다. ⓦ 헬렌 비넷은 자연과 도시의 현상을 바라보는 개인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피터 줌터, 스튜디오 뭄바이, 자하하디드, 다니엘 리벤스킨드 등의 현대 건축가들과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녀는 음악가가 연주를 위해 악보를 필요로 하듯이, 자신에겐 건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리고 불편하며 소모적인 4×5 플레이트 필름카메라 를 사용하여 형식적으로는 전통적인 사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장소를 바라보는, 특히 동시대 현대 건축을 재현하는 그녀 의 시선은 건축 사진에서 일반화된 기술적(descriptive) 묘사 너머 구조적이며 동시에 직관적인 사색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아름 다움을 만들고 있다. 그녀를 통해 다시 사진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건축을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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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Peter Zumthor, Therme Vals, Switzerland, 1996, photographed 2006. Courtesy of Hélène 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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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1 |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3 공모전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 지난 3월 30일 공식 웹사이트 오픈으로 시작된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3> 공모전이 수상작 전시(8월 14일~20 일)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이라는 주제 아래 서울시 종로구 서인사마당에 신축될 전통문화복합시 설을 대상으로 개최된 이번 공모전은 종로구청과의 MOU체결을 통해 당선작의 현실화 방안을 모색하고 실제로 시행 가능한 공모전으로 발전시켜 보다 심도 있는 고민과 탐구의 장이 되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과년도에 비해 건축 실무자들의 높은 참여율(1회 17%, 2회 19%, 3회 43%) 또한 큰 성과로 남았으며, 1등 상인 ‘헤리티지 투모로우’ 수상자에게는 종로구청에서 시 행하는 본 대상지 제안서 입찰 참여의 기회가 주어졌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심사위원장)와 안상수 홍익대학교 교수(초청 크 리틱)가 심사에 참여하여 송률+크리스티안 슈바이처(Christian Schweitzer(supa architects))의 <헤리티지 투모로우 서인사 마당 — 전통 복합 문화 센터>를 ‘헤리티지 투모로우’로 선정하였다. ⓦ 공모전의 미디어파트너로서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 젝트3>의 행보를 지켜본 본지는 그 과정의 골자를 지면상에 기록해 둔다. 해를 거듭하여 진일보하려는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 로젝트>가 공모전의 진정성과 우리 전통 문화의 발전 가능성을 한층 두텁게 축적해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주) ⓦ
공모 내용 ⓦ — 설계 범위 : 서인사마당 복합 문화 시설 아이디어 설계 — 전통 문화 복합 시설에 요구되는 프로그램 제안 — 설계 시 기존 한옥의 활용 방안 고려(차량 진입 동선의 확보를 위해 이전이 가능하며, 신축 건물과 프로그램은 상호 교환 가능하다) — 지하 주차장 시스템 제안 — 과제 :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을 주제로 지역적, 문화적, 역사적 특성과 시대성, 장소성 등을 고려한 복합 문화 시설 설계 — 계획 규모 : 지상 5층 복합 문화 시설, 지하 4층 주차장(지하 1~2층 중형 관광버스 20면 이내, 지하 3~4층 일반 차량 73면 이내) — 프로그램 : 다목적 문화 예술 공연장 및 인사동 방문자를 위한 지역 재생에 기반을 둔 지속 가능한 시설 (전시장, 공연장, 세미나실 및 기타 공용 공간 둥), 홍보관의 기능은 반드시 포함할 것 — 법규의 적용 : 대상지에 해당하는 모든 관련 법규 준수 대상지 ⓦ — 대지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85-18, 관훈동 192-20 — 부지 규모 : 토지 1,588.10m2, 건물(인사동 홍보관) 134.10m2 — 지역 지구 : 지상 문화 시설, 지하 주차장(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600% 이하, 5층(22m) 이하) — 도시 계획 : 일반 상업 지역, 인사동 지구단위계획 구역 — 현재 용도 : 공영 주차장—평면식 47면(일반 차량 용도), 인사동 관광 홍보관—지상 1층 건물 1동(134.1m2)
주제 :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 참여자 : — 승효상(이로재 대표) — 안창모(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 전봉희(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김광현(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김찬중(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정현아(DIA ARCHITECTURE 소장)
진행 일정 ⓦ 수상작 전시 (인사동 홍보관)
참가 신청
3.30~4.23 | 2012 3.30 4.4 헤리티지 투모로우 종로구청과 MOU체결 프로젝트 3 공식 웹사이트 오픈
| 5.10 세미나
| | | 6.21 6.25 6.29 작품 접수 작품 심사 당선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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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8.20 | | 8.9 8.14 수상자 시상식 해외 건축 (16:00, 탐방 인사동 홍보관)
양의 건축에선 찾기 어렵고 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라는 사
ⓦ 1 주제 발표 :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
실을 시니컬하게 보여준 결과가 아니었을까. ⓦ 료안지 마당의 사진은 내가 1998~1999년 북런던대학 객원교수로 영국에 체 류할 당시 동료 교수들의 세미나에서 종종 보았던 사진이었는 데, 또 이 사진과 더불어 가끔 듣던 말이 ‘불확정적 비움(Indeterminate Emptiness)’이다. 불확정적 비움이란, 결정된 기능 과 용도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지대로 그 용도를 수용하도록 비워진 공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건축은 우 리 삶의 인프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새로운 시대
ⓦ 이 글은 지난 5월 16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됐던 <아
새로운 건축의 키워드라고 하며,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이 료안
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3 세미나>의 주제 발표
지의 마당이라는 것이었다. ⓦ 나는 근사한 단어라고 생각하면
를 녹취하여 정리한 것이다.
서도 과연 료안지의 마당이 실제로 불확정적 비움의 실체일까,
ⓦ 발표자 | 승효상(심사위원장)
라는 의문을 갖는다. 료안지의 마당은 신발을 벗고 긴 마루 위 에 올라서면 길게 펼쳐지는, 많은 사람들이 정좌를 하고 침묵 의 풍경을 즐기는 아주 근사한 마당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 2000년, 21세기를 시작하는 새로운 첫 해에 ‘덜 미학적인 것
비움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 마당은 어느 하나 움
이 더 윤리적’(Less Aesthetics More Ethics)이라고 하는 어귀
직일 수 없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 스님이 빗질을 끝내
가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로 채택됐다. 나도 초청을 받았었는데,
면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돌덩이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어
윤리라는 단어를 그들이 사용하는 것에 적잖히 놀랐다. 윤리.
떤 것도 움직일 수 없으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 비어있
내가 그 동안 알아왔던 서양 건축사는 미학의 역사였다. 단일
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치 투명한 얼음이 가득차 있는 것처럼 이
건축물이나 기념물에 대한 양식의 열거였고 재료와 크기, 형태,
는 완전히 결정된 비움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비움이라고
장식, 색채 등에 관한 해설서였다. 윤리는 상대가 있어야 하
할 수 있다.
며 그 관계를 설명할 때 비롯되는 것 아닐까. 20세기 산업시대 를 겪은 서양인들이 새로운 시대, 소위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 반면, 우리는 우리 선조가 만든 고요하고 아름다운 비움의
미학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들고 나왔을 것
공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난 개발 시대의 광풍으로 이 아
이다. ⓦ 그러나 당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제출된 많은 안들이
름다움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어릴 때 판자촌에서 나고 자란
과연 이 표제에 적절히 대응했는가에 대해서는 전시장을 둘러
나는 깊은 마당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이 료
본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다. 그와 관련하여 <도무스>지는
안지 마당의 비움은 진정한 비움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
“과연 윤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특집 기사를 게재한
다. ⓦ 예를 들어 우리 옥산서원의 마당은 그야말로 어떤 행위
바 있다. 그 특집의 커버스토리로 게재한 것이 한스 홀라인의
가 이루어져도 괜찮은 곳이다. 노동이나 놀이 등 여러 가지 행
작품이었다. 그는 물 위에 판을 띄워 놓고, 흰 쇄석을 깔고 몇 개
위들이 일어났다가 물러나면 다시 고요한 비움으로 남아 우리
의 돌무더기를 얹어 놓음으로써 윤리라는 주제에 응답했다. 한
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서양인들이 불확정적 비움을 새로
스 홀라인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포스트모더니
운 시대, 새로운 건축의 키워드로 생각했다면 우리 선조들이 만
즘의 선두 주자로서 몇몇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든 이런 마당이야말로 그 키워드에 적합한 예일 것이다. 바로
남긴 건축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 교토의 료안지
불확정적 비움의 실체이다.
마당을 패러디한 작품을 출품한 것이다. ⓦ 안강에 옥산서원을 지나면 독락당이란 집이 있다. 이 집은 ⓦ 한스 홀라인 같은 위대한 건축가가 왜 료안지를 패러디했을
안채가 중심 건물이고 그것을 구심점으로 독락당, 행랑채, 몇
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윤리라는 문제는 서
개의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 집은 다른 주택에 비해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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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현저히 낮다. 마치 땅으로 꺼져 들어갈 듯한 분위기를 풍
장 중심된 자인 듯한 존재감을 드높이게 된다. 즉, 바깥의 경치
기는데, 뭔가 은둔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주변으로는 산들이 아
를 관찰하고 제어하고 지배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중심된 자
주 아름답게 둘러싸여 있다. 솟을대문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집은 자연과 대립적 관계
후대에 추가로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대문이 없었다고 한다.
이며, 그 지배의 우월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언덕 위에 모뉴멘탈
왜냐하면 주변의 4개의 산이 경계가 되어 대문이 필요 없기 때
한 형태로 우뚝 솟아야 근사하다.
문이었다. ⓦ 사랑채인 독락당은, 불과 한 단 위에 세워진 네 칸 의 집이 위엄 있는 사대부가의 사랑채와 달리 별로 위용이 없어
ⓦ 이후로 이 집을 모사한 사례를 굉장히 많이 찾을 수 있다. 심
보인다. 그보다는 담으로 위요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암시를 하
지어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현대의 건
고 있는 점이 눈에 띄며, 사랑채도 공간을 한정하기 위한 도구
축가들이 지은 집들도 이것의 번안이었다. 예를 들어 빌라 사보
로 쓰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 심지어 사당도
아는 램프를 이용한 건축적 산책으로 집안의 풍경을 장악하고,
두 개의 마당이 겹쳐져 전혀 다른 세계, 은밀한 곳이 됐다. 이
2층에서는 수평의 창을 통해 외부 풍경을 지배하며, 옥상에 이
집에서 결정적인 것은 정자 ‘계정’이다. 보통 정자는 언덕 위에
르면 자신의 세계를 갖게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이
파빌리온의 형태를 띠게 마련인데, 여기서는 정자가 독립된 것
런 생각은 비단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까지 이어진다. 르
이 아니라 벽체의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계곡을 흐르는 자계천
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 만들어진 팔마노바를 보면 쉽게 이해
너머에서 아름답게 독립적으로 솟아있는 정자이지만, 그것마저
될 것이다. 팔마노바의 구조는 모든 길들이 도시의 중심부로 집
마당을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 사
중되어 있는 방사상 형태이며, 이는 중심에 있는 사람이 모든
실 이 집을 이해하기 위한 도면은 현재의 건축학자가 서양의 방
것을 주도하고 도시 밖 주변부는 적으로 간주하는 것과 다르지
식으로 그린 것이다. 예전에는 이렇듯 디테일한 도면을 그렸을
않다. 르네상스 인들은 이런 단일 중심의 도시를 이상도시로 여
리가 없다. 물론 회재 선생이 집을 지을 때 목수에게 당신의 생
기고 유럽 전역에 건설했다. 심지어 당시 변방이랄 수 있는 스
각을 전달하기 위해 뭔가를 그렸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각도
웨덴의 도시 하마르에서도 이러한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가 어떠하든 간에 공간의 조직에 관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방의 칸 수와 그 칸 수에 의해 정해지는 공간의 크기, 공간과 공간이
ⓦ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쓴 책 『유토피아』는 르네상스 시대
만나는 방식, 또 이런 것들이 모여서 어떤 류의 공간이 될 것인
의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유토피아
가에 대한 그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집 뿐만이 아니라 자
를 설명하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의 유토피아는 위쪽에 그려진
곡산과 자계천, 주변 산들과 바위 등, 풍경과 집의 관계를 맺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며,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하기 위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마당이 중심이 된
정해진 입구에 도달해야 한다. 모든 출입을 감시하는 망루가 입
도면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회재 선생에게는 집의 디테일보다
구에 솟아 있고, 이를 통과하면 내부를 해자가 또 감싸고 도는
도 독립된 공간들과 자연과의 관계가 더 큰 관심사였다.
데, 곳곳에 설치된 감시 망루를 거쳐 섬의 가운데로 들어가면 이 땅을 다스리는 영주의 성채가 나타난다. 즉 한 통치자의 지
ⓦ 거의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비첸자에 지어진 팔라디오의 빌
배하에서 철저한 감시 체계를 거쳐 안전을 담보 받는 세계가 유
라 로툰다를 보자. 이것은 서양 건축사에서 전환기적 건축으로
토피아의 모습인 셈이다.
평가받으며, 오랫동안 서양 건축의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고, 심 지어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한적한 동네
ⓦ 실제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많은 도시들이 이와 같은 모양
의 가장 높은 언덕 한가운데에 세워진 이 집은 정방형의 평면을
으로 지어졌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념은 같은 도시들이다. 철저
십자로 가른 다음 가운데 둥근 홀을 두어 이를 로툰다라고 불렀
하게 둘러싸인 성벽 안에 격자든, 방사선이든 구조가 치밀하게
다. 이 로툰다 홀의 둥근 천장과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 그림
조직되고, 중앙에 영주가 점유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르네상스
에는 신들로 둘러싸인 우주가 묘사되어 있다. 홀의 중앙에 서면
사람들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도시의 형태였다. 이 도시들은
동서남북으로 뚫린 통로를 통해 밖의 풍경이 한눈에 파악되는
대단히 기하학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하학이란 인간의 이
데, 정점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마치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
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양인들은 도시를 지을 때 항상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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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생각하고 다이아그램을 그린 다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땅
작품 제목만을 확일할 수 있다. 납으로 마감된 표면에 방문객
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의 계획 도시를 보면 대부분
들의 낙서—시민들은 이 탑을 지날 때마다 파시스트에게 당했
이 평지이다. 물론 산에 지어진 도시도 있지만, 그것은 자연발
던 기억들, 괴로움, 슬픔, 분노 등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기록
생적인 도시이거나 군사용으로 계획된 도시이다. 그밖에는 대
했고, 결과적으로 약 7만 명의 사람들이 기억을 흔적으로 남겼
부분이 평지에 들어서서 오늘날 서양 건축의 근간이 되고 있다.
다—가 채워질 때마다 2m씩 가라앉는, 이른바 ‘사라지는 기념
ⓦ 심지어 근대에 들어와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근원은 같은 도
비’로 1993년 완전히 사라져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 기
시가 계획되기도 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1924년 발표한 파리 브
념비를 만든 설치미술가 요한 게르츠는 기념탑에 대해 “불의에
와쟁 계획은 파리 중심가를 허물어 땅을 백지화시킨 다음에 건
대항하는 것은 이 기념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했
폐율을 작게 하고 용적률을 크게 하여 사이사이 공간에 녹지를
다. 기억만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확보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이것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도 시계획 마스터플랜’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도시를 만들거나 도 시를 재개발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다. ⓦ 이런 류의 도시 계획을 보면, 땅에 어떤 의미를 가진 색이 칠해져 있다. 색이 더 해지는 순간 땅은 상업 지역, 주거 지역, 공업 지역 등으로 등급 을 받게 되고, 건폐율과 용적률을 갖게 되고, 땅값의 차이가 있
ⓦ 2 강연 발표 : 서울, 북촌 그리고 인사동
게 된다. 또 도로는 고속 도로 / 자동차 전용 도로 / 간선 도로 / 군사 도로 / 골목길로 구분이 되면서 도로의 폭과 속도가 제한 되고 서열화된다. 도시 자체도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나뉘어 져 철저하게 위계화된다. 이성과 합리를 주장하는 모더니즘 시
ⓦ 이 글은 지난 5월 16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됐던 <아
대에 만들어진 산물이다. 이것으로 인간은 행복할 줄 알았지만,
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3 세미나>의 강연 발표
실상 도시의 범죄는 전통적 도시에서보다 훨씬 증가하고 빈부
를 녹취하여 부분 정리한 것이다.
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계층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 갔다.
ⓦ 발표자 | 안창모(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 경기대학 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 그런데, 문제는 우리 땅이다. 실제로 우리 땅은 평지의 땅이 아니었고, 모든 땅은 배산임수라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었고, 그 래서 건축은 산을 향해 겸손하고 검박하게 들어서는 방식을 취
ⓦ 인사동은 너무나 잘 알려져서 그 자체로 누구나 알 수 있는
했다. 그것은 곧 삶의 모습이었는데, 서양의 그것과는 매우 다
곳이지만, 인사동이 지내온 시간을 꼭 짚어서 말할 수 있는 것
르다. 이미 우리는 건축의 윤리를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 많지 않다. 구체적으로 사람의 기억과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자연의 형태에 의해서 그런 삶의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나
인사동의 모습은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사동의 역사를 짚
는 얼마전 부터 ‘터무늬’란 단어로 나의 건축을 이야기하기 시
어보기 위해서는 인사동 자체보다는 그 주변을 포함해서 살펴
작했다. 터에 새겨진 무늬를 존중하면서 터무니 있는 건축을 하
보아야 한다. ⓦ 옛 지도와 역사도시 서울에 대한 많은 연구들
자는 것이다. 한자로는 지문, 영어로는 LANDSCRIPT로 바꿔
은 서울이 오늘날과 다른 형태의 계획도시로서, 성리학으로 무
서 쓰고 있다.
장한 사대부들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녹아 있는 도시 구조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지형적, 내용적으로 강한 틀을 가지고
ⓦ 지난 5월 초 함부르크 남쪽의 하르부르크란 작은 마을에
있는 전체 도시 구조에 비해 인사동은 독립적인 위상을 드러낸
들른 적이 있다. 이 마을은 매우 의미있는 홀로코스트 기념탑
적이 거의 없는 무색무취의 땅이 아닌가, 싶다.
(1986년)이 서 있는 곳이다. 이 <하르부르크(Harburg) 반파시 즘 기념비>는 높이 12m, 가로세로 1m의 속 빈 기둥 형태였지
ⓦ ‘인사동이란 어떤 곳인가?’란 질문에 대략적으로 답해 본다
만, 현재는 완전히 땅 속으로 가라앉아 기둥 꼭대기에 새겨진
면, 우선 지형적으로는 비교적 평탄하고 작은 물길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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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사대문 안에서 드물게 평지다. 또 물리적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물길의 흔적을 찾았듯이 능선의 흔적을 찾
으로는 도성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역사적으로 큰 사
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인사동 동쪽의 두 물길 사이는 중앙
건이 없었고 중요한 관공서도 없었던 만큼 주목받을 일이 드물
의 대지 경계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은 또한 골목으로 이어
었다. 그래서 역사의 기록 속에서 인사동의 흔적을 찾기란 무척
지지 않았는데, 이는 여기에 능선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어렵다. ⓦ 그렇다면, 인사동은 언제부터 주목을 받았을까? 우
이 능선의 양쪽 땅은 주인이 다르다. 이처럼 필지의 형태와 골
리가 알고 있는 인사동의 정체성은 골동품 상가와 화랑가를 거
목의 존재 방식에서 미세한 지형의 변화를 읽어 내는 것도 가능
쳐 전통 문화의 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
하다. ⓦ 또한, 필지가 굉장히 큰 걸로 봐서 인사동이 조선 시대
성의 형성과 유지에 걸린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실 우리가 오
에는 아주 근사한 도시 공간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
늘날 이야기하는 인사동의 정체성이 형성된 기간은 600년 역사
선시대 관공서의 위치가 대부분 알려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속에서 50여년 안팎으로 아주 짧다. 사실 더 냉정하게 말하자
인사동에 위치한 큰 필지는 관공서가 아닌 주거 용도였다는 것
면, 1970년대 후반에 생겨난 정체성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대갓집들이 많이 분포한 지역이었음을
같다. ⓦ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사동의 정체성이 형성
알 수 있다. 이는 인사동 지역이 조선 시대에 중상류층의 주거
되는 사이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통 문화의 상징인 한옥은 인
지로 오늘날 북촌에 버금가는 주거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사동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이는 인사동이 일반적인 전통 문화
을 의미한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사진
거리처럼 전통 건축이라는 물리적인 이미지로 정체성이 형성된
에 찍힌 지역은 도시의 상황이 아주 열악한 곳이거나 혹은 식민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사동을 이해하는 데 매
통치로 개선된 모습이 뚜렷한 지역이 대부분인데, 인사동은 사
우 중요한 사실이다.
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열악하지도 그렇다고 식민통지로 인해 개선된 지역이 아니라고 추정한 바 있는데, 위와 같은 필지 분
ⓦ 그런데, 조선 시대 말 근대기의 인사동 사진은 거의 없다. 일
석은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 인사동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할 수
반적으로 사진이 찍히는 장소는 사진을 찍는 이의 눈을 사로잡
있다. 1962년의 또 다른 지도를 보면, 물길에 교차되는 길이 하
을 만한 특별한 장면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사진이 수십 년 동
나 더해진 것 밖에는 거의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인사동 지
안 남아 있지 않는 곳의 경우는 어느 누구에게도 카메라의 앵글
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길만 하나 생긴 것 이외에
을 갖다 댈 만큼의 매력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는 거의 변화 없이 오랫동안 원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민지 통치자의 입장에서 그 성과를 보여 주는 장소였다면 그 들은 당연히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바뀌기 전의 비루한 모습과
ⓦ 인사동의 주요한 건물들을 살펴보자. 우선 안국 로터리에는
바뀐 후의 모습을 비교하여 찍고 변화된 모습을 식민통치의 성
박길룡이 설계한 이문당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신민당 당사
과를 보여 주는 선전 수단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
로 쓰였다가 일찌감치 철거된 비운의 건물이다. 박길룡의 작품
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없다는 것은 인사동이 그다지 물리적으
중에서 가장 빼어난 근대 건축의 하나였으며, 1960년대까지만
로 나쁘지 않은 동네였고, 식민지 통치의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하더라도 인사동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건물이었다. 이밖에
서 노력을 한 지역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의미는 인
사동궁으로 알려진 의친왕 이강 저택, 현재는 경인미술관으로
사동이 조선 시대 도시 공간의 정체성을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활용되고 있는 박영효 고택 등이 일제 강점기부터 인사동에 자
있었던 지역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리잡고 있던 대표적인 건물들이다. 특히 박영효 고택의 경우는 임오군란 직전까지 일본공사관으로 쓰였는데, 이러한 사실에서
ⓦ 1912년의 지도는 지금 인사동의 주요 도로가 물길이었음을
인사동이 외국 공사관이 소재할 정도로 도심 내에서도 꽤 번듯
보여 준다. 물길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물길 주변으로 조그
한 동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처에는 박길룡이 설계한 민가
만 길이 나란하게 놓여 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다헌이 있는데, 이 건물은 工 자형 평면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
나라의 물길은 양쪽 동네를 갈라놓는 경계로서의 역할을 한 것
다. 바로 옆에 똑같은 건물이 한 채 더 있었으나 도로 개설로 철
이 아니라 통로(패스)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이 물길은 양
거되어 월계동에 이축되었다. 서북학회회관은 인사동의 근대적
쪽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물이다. 1908년 결성된 애국 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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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단체인 서북학회에서 지은 건물인데, 이 건물은 현재 건국
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동네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학교로 이전되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고등 교육의 산실과 다 름이 없다. 보성전문학교를 비롯하여 해방 후 국민대, 단국대,
ⓦ 골동품 상가 관련 기사는 1970년대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협성실업학교, 건국대 등 이 건물을 거쳐 갔기 때문이다. 서북
1950~60년대에도 인사동에는 골동품 상가와 화랑이 있었지만
학회회관을 거쳐간 대학이 많았던 것은 많은 대학의 창립자들
주로 외국인들이나 소수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했던 골동품 상
이 서북학회 출신이기도 했다. 이러한 서북학회의 위상은 일제
가와 화랑은 인사동보다는 호텔이나 당시 고급 상권이었던 반
강점기 인사동의 지역적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태화기
도조선아케이드에 있었다. 따라서 1970년대 골동품 상가와 화
독교사회관은 한양절충식 건물로 건축적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랑가가 인사동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은 이들에 대한 수요가 외
건축물이지만, 여성들의 사회 교육 시설로 활용되며 인사동에
국인 중심에서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서 가장 지명도가 높았던 건물었는데,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되
여기서 인사동이 골동품 상가와 화랑가로 선택된 것은 인사동
었다. 그밖에 한인을 대상으로 운영했던 조선극장은 식민지 자
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도심에서 물리적으로 가
본주의 하에서 대중 위락 시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장소
까웠기 때문이다.
였다. 1960년대 주목할 만한 건물은 파고다 공원을 둘러싸고 만 들어진 낙원상가와 파고다 아케이드였다. 1970년대 초 파고다
ⓦ 1980년대 들어서면 골동품이 사치품으로 여겨지면서 중과세
공원을 둘러싸고 지어졌던 파고다아케이드는 지금 철거되었지
대상이 됨에 따라 인사동의 골동품 상권은 급속히 몰락하게 되
만, 이곳은 반도조선아케이드와 함께 서울에서 대표적인 근대
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아파트 보급에 따른 라이프스
적 상가이기도 했다. 낙원상가는 세운상가를 모델로 건설된 주
타일의 변화가 골동품과 그림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확대시켰
상 복합 건축물이다. 이 일대는 1960년대 가장 도시화된 지역
다는 점이다. 새로 장만한 아파트에 그림이나 도자기를 장식하
이었으며,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상권을 형성했
는 것이 유행하면서 동양화나 서양화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
던 지역의 한 곳이었다. 인사동 길을 걷다 보면 모던하면서도
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인사동의 쇠퇴하는 골동품 상가를 화랑
정감있는 표정을 갖고 있는 통인빌딩을 만날 수 있다. 창이 적
이 대신 점유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인사동의 가장 큰 변화
어 무뚝뚝해 보이지만 검은 벽돌이 문화적 친근감을 더해 주는
다. 초창기 화랑은 표구사에서 시작했지만 화랑의 거점이 명동
건물이다.
이나 을지로 입구에서 인사동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청담동으로 확대되었다.
ⓦ 현재 인사동은 소위 전통 문화의 거리로 불린다. 그런데 이 호칭이 인사동의 정체성에 적합할까? 과연 언제부터 인사동이
ⓦ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역사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외국인에
전통 문화 거리가 되었을까? 그러나 인사동에 관한 공식적인 기
게 보여 줄 수 있는 장소로 인사동이 선택되었고, 1990년대에
록에서 인사동이 전통 문화의 거리였다는 오래된 기록은 찾아
는 그간 미뤄져 왔던 도심 재개발 사업이 부분적으로 진행되면
볼 수 없다. 또 일제 강점기에 ‘전통’, ‘고가구’, ‘화랑’ 등과 관련
서, 인사동의 골동품 상가와 화랑들은 밀려나거나 업종 전환이
된 기사를 찾아보아도 인사동이 전통 문화의 거리였다는 기록
모색되었는데, 흥미롭게도 인사동이 골동품 상가로서의 명성이
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에 인사동은 전
사라져 가면서 옛 정취를 보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
통의 이미지나 고가구, 화랑과는 상관없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었다. 이는 1990년대 들어 경제 성장과 함께 우리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북촌이 재발견되면서 인사동에서 사라
ⓦ 일제 강점기에 인사동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통해 확인한 인
져 가는 골동품 상가가 마치 우리의 전통 문화의 소멸로 인식되
사동의 주요 시설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계명구락부, 조선노동
면서, 보호해야 할 지역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인식되었기 때문
공제회, 조선체육회, 조선어학연구회 등이 있었고, 의원들의 개
이다. 이때부터 인사동에 ‘걷고 싶은 거리’나 ‘문화의 거리’로
업 관련 기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인사동
만들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 인사동이라는 정체성이 형성
이 지식인들이 모이는 지역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 기생
된 것은 30여년에 불과하다. 조선 시대 권문세가의 거주지에서
과 관련된 기사도 보이는데, 일제 강점기 인사동은 꽤 재력 있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거리, 해방 후에는 외국인을 위한 골동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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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거리로 변모된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우리 모두의 거리
ⓦ 주차 계획
로 거듭나고 있는 지역이 인사동이다.
지하 4층 규모 주차장 입구 대지 북쪽 위치, 주차장 출구 대지 남쪽 위치
ⓦ 앞으로 어떠한 시간 속에서 인사동의 정체성이 더욱 공고화
지하 1층 및 지하 2층 : 중형 관광버스 14면(한옥 지하까지 주
될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욱 빠른 변화로 이어질지 아무도 예측
차장 사용 시 20면)
하기는 어렵지만, 오늘날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통 문화의 거
지하 3층 및 지하 4층 : 일반 차량
리라는 정체성은 상당 시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 통 문화의 거리라는 정체성을 가진 인사동의 주연은 한옥이 아
ⓦ 설계 의도
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우리 문화의
본 현상 대지인 서인사마당은, 현재 인사동 홍보관으로의 동선,
정체성은 한옥과 함께’라고 생각하지만, 인사동은 우리의 문화
주차장으로의 동선, 인사동으로의 동선, 인사동 방면에서 우정
적 정체성이 반드시 한옥과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
국로 또는 종로방향 통행으로, 그리고 주위 사무소 직원들의 흡
여 준다. 인사동이 하드웨어 없이 콘텐츠만으로 우리 문화의 정
연 장소로까지 매우 다양하며 복잡한 활동들이 빈번하게 일어
체성을 구현한 곳이라는 사실은 역사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
나고 있다. ⓦ 본 서인사마당 복합 문화 시설 계획안은 새로운
는 데 있어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 공간으로 이러한 도심 한가운데의 다양한 이벤트(activity) 를 계속적으로 연결시켜 주며, 동시에 인사동 주변의 다양한 문 화 이벤트와 홍보를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다. ⓦ 본 복합 문화 시설 볼륨과 배치는 각 방향에서 어느 쪽으로 접근을 하여도 대
ⓦ 3 당선작 : <헤리티지 투모로우 서인사마당 —전통 복합 문화 센터>
지가 보행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힘을 갖도록 하였다. ⓦ 본 계획안의 새로운 건물 두 체가 만들어 낸 골목길은 대지 북쪽과 남쪽의 길을 연결하여 필요에 의 해 자동차와 보행자들이 대지를 가로질러 통행할 수 있으며, 이 골목길과 두 건물 그 리고 한옥의 배치 상관관계는 자연스럽게 휴식 공간으로서의 도심 안 새로운 공터 를 형성하였다. ⓦ 이 새로운 골목길과 공 터는 인사동 방문자와 주변 근무자들, 인 사동에서 종로와 우정국으로의 통행인들
ⓦ 송률+크리스티안 슈바이처 Christian Schweitzer(supa architects)
에게 목적 없이 떠돌 수 있는 산책로로, 외 국인들이 잠깐 앉아 서울의 지도를 펴볼 수 있는, 한 여름 밤에 동네 주민들이 나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 프로그램
그저 도시의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지길 바란다. ⓦ 2006년에
한옥 : 인사동 특별 전시장 및 한옥 공간의 체험
건축된 한옥(현 인사동 홍보관)은 그 역사가 짧지만, 최대한 역
서쪽 건물 : 1층—인사동 홍보관, 2층—상설 전시장
사적인 한옥의 정서를 갖도록 변용 완공하여, 인사동 특별 전시
동쪽 건물 : 1층—공연장 출입구 및 로비/카페, 2층—다목적
장으로서 인사동 서인사마당 복합 문화 시설을 방문한 외국인
문화 예술 공연, 3층(서쪽 건물과 동쪽 건물 연결 시작 층)—공
들에게 가장 가깝게 한국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연장, (교류)전시장, 세미나실, 도서관(자료실), 4층—목욕탕
있을 것이다. ⓦ 한옥이 위치한 대지 북쪽의 건물은, 이 새로운
(특히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의 시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신체
건물과 한옥을 이어주는 경사를 사용하여 볼륨을 낮춤으로써
적인 경험을 위하여 목욕탕을 제안하였으며, 인근 주민들도 이
새로운 건물이 한옥의 작은 스케일을 압도하지 않으며, 한옥과
용할 수 있다), 5층—관리 및 경영 사무실
5층 건물 사이의 자연스러운 루프 랜드스케입(roof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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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하였다. ⓦ 본 복합 문화 시설 건물의 파사 드는, 전면 유리 파사드 앞에 차양과 시야 차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라믹 바(bar)가 설치되어 있다. 이 바(bar)는 한옥 지붕 에 사용되는 기와를 접합하여 세로로 회전 가능하도록 설치되 어 있어 관점에 따라 건물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거나 반쯤 열 려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시간과 관점에 따라 파사드가 항상 변 할 수 있는 특성을 갖는다. ⓦ 장소의 관념은 시간의 관념과 불 가분한 관계이다. 인사동이라는, 어떠한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 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현재의 인사동 에서는 ‘한국성’이라는 것이 아주 단편적으로 상점들의 쇼윈도 우 상품과 스트리트 퍼니쳐의 조잡한 디테일에서 그저 의문스 럽게 나타나고 있다. ⓦ 역사적인 문화가 있는 대지에서의 행위 는 시간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시간에서 역사성 을 강조하고 구축하려는 것은 자주 조잡한 결과를 가져오는 실 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 서인사마당의 한옥이 2006년에 지 어진 역사가 없는 가짜 한옥이기 때문에 완전히 허물거나 이전 시킨다는 것 또한 짧지만 지나온 몇 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인사동의 역사성은 시간의 경과에 의한 기억의 축 적이며, 그 기억을 소유한 개인, 행위 또는 시대를 환기시키려 하는 것이며, 시간의 경과에 대항하여 싸우며 그의 정체성을 지 키려 하는 기념비적 장소가 아닌, 이제는 현대의 건축과 행위가 행하여지는 하나의 노스텔지어의 장소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 이다. 보이는 역사성을 고집하지 않는, 역사의 철학을 담는 인 사동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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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2 | 노휘의 Maximum Living in Micro Studio – TRANSFORMER 전
Maximum Living in Micro Studio – TRANSFORMER 기존 집합 주택에서 구현하기 힘들었던 주거 환경을 제안하는 전시회가 지난 8월 6일에서 14일까지 서울디자인재단 강남 트렌 드센터에서 열렸다. 시성 N.U.D.L 과 엑시아 머티리얼스(www.nudl.co.kr + www.axia-m.com) 주최로 건축가 노휘와 디자인 팀, 그리고 머티리얼 컨설팅에 진양석이 함께한 이번 전시는 한국 주택 시장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즉, 20대와 30대의 생활방식 이 1인 가구 및 독신자로 늘어나면서 주택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가 한국의 도시 구조에서 가능할까, 하 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결과적으로 전시에서는, 기존 공동 주택에서 탈피하여 개발 여력이 적은 곳의 도시 정비를 겸한 콤팩 트 하우스의 유니트 인테리어 연구를 통해 기존 집합 주택에서 구현하기 힘들었던 주거 환경이 제안되었다. ⓦ 구체적인 전시 내용은 첨단 신소재를 활용한 단일 스튜디오, 단일 스튜디오를 연결한 다세대용 스튜디오, 단일 스튜디오 및 공동 시설을 배치 한 아티스트 레지던스 마을, 첨단 신소재 정보, 응용 디테일 및 활용 사례 등이다. ⓦ SOM을 거쳐 정림건축 엔유디엘(NUDL 비정형 설계팀)의 디렉터로 활동한 바 있는 건축가 노휘의 건축적 대안들에 와이드AR의 시선을 고정시켜 본다. (편집자 주) ⓦ
ⓦ 여기에 소개되는 몇 장의 이미지는 전시 패널에서 일부 발췌했다.
↑ Maximum Living in Micro Studio – TRANSFORMER Perspective.
↑ 전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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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ilt in Furniture.
실생활에 필요한 新프로토타입 제안 ⓦ 레저 산업의 성장, 귀농과 귀촌으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 및 산업의 발전은 단기용 주거, 농촌 주택 등 비도시 지역을 위한 건축 수요를 늘이고 있다. 그런데 농촌 혹은 전원으로 구분되는 지역의 상황과 특징은 도시형 건축에서는 고려하지 않는 다양한 요소를 고민해야 한다. 농가 주택, 귀촌 주택, 숙박용 주택, 별장 주택 등 같은 주택 이라도 형식이 매우 다양하며, 마을 회관, 창고 및 각종 작업장 등 공공적이거나 주거 이외의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총체 적으로 마을을 구성한다. ⓦ 그런데 비도시 지역의 건물 대부분은 저가형 임시 건물을 위한 재료를 이용하거나, 본래 건축용 이 아닌 제품을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안타까운 것은 건축가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용도들이 분화되어 전문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건축 계획적으로는 불합리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경관으로서는 어울리지 못하며, 미기후적 성능은 취약하여 삶의 질이 열악하다. 이처럼 건물 형식의 획일성, 지역성 과 무관한 정체불명의 정체성 및 저급한 성능은 건축계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심각하다. ⓦ 건축 가는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해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 건설에서 공장 생산 자재의 필요성은 19세기 미대륙의 발전 에서 시작되었다. 세계 대전 이후 베이비 붐으로 부족해진 주거 문제는 대량 생산 주거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여러 가지 이유 로 200년 이상 생산을 전제로 한 건축에 대한 시도와 연구는 지속되어 왔으며, 건축가들 또한 프리패브(조립식) 건축의 가능 성을 제안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 소비되는 규격화된 생산형 건물은 이상적인 제안과는 거리가 먼, 다소 성능이 떨 어지더라도 혹은 문화적 경관을 해치더라도 저렴하고 성능이 낮은 제품 위주로 활성화되어 있다. ⓦ 저가형 건설 시장의 문제 는, 조금 더 세련된 디자인을 제안하거나 공간의 활용도를 향상시키는 등, 단순히 건축 계획만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 제이다. 경제적인 구축 방식, 최적화된 재료의 합리적 이용, 물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환경적 아이디어 등, 소재와 건설 과정을 포함하는 총괄적인 설계를 경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때 건축가에게 역할을 허락할 것이다. ⓦ 시성 N.U.D.L과 엑시아 머티 리얼스는 이런 어려운 난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첨단 신소재와 효율적 구축 방식을 연구하여 이데아로서의 새로운 건축이 아 닌 실생활에 필요한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제안한다. 이로 인해서 도심을 벗어난 지역에서도 정서와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건 축적 대안들이 환경 개선과 지역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
↑ Material Option, Style-A.
Wide AR no.29 : 09-10 2012 Report
와이드 AR 29 | Wide Architecture Report 29 | 2012.09-10
전진삼의 FOOTPRINT 08 이 란은 본지 전진삼 발행인의 ‘공적/사 적’ 기록의 장으로 구성된다. 현장성에 바탕을 둔, 건축계 이슈와 개인의 동선 이 이뤄 내는 건축과 문화판의 지형도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본지 편집위 원들의 ‘공적 동선’이 박스 기사로 제공
자한 ‘양재 뚝방 건축가 모임’이 열 렸다. 지정우, 전성은, 김정임, 강권 정예 씨 등이 참석하여 이들의 수상 을 축하해 주었다. (사진 제공: 박
조상훈(한메건축), 박인석(명지대), 박인 수(파크이즈), 윤승현(인터키드건축) 씨 등 건축가 및 건축과 교수들의 모습을 확 인할 수 있었다.(사진 제공: 박인수)
인수)
되어 한층 강화된 뉴스 지면으로서 독자 들을 찾아가게 된다.
7월 7월 4일 (수) 오후 4시 성현건축 임 종대 대표가 본지 편집실을 방문했다. 사 무소 작품집 제작 견본품 관련 자문을 구 하는 자리였다. 7월 4일 (수) 오후 5시, 시간건축 박유진 대표와 동교동삼거리 카페베네에 서 만났다. 경기 침체 여파로 건축가의 자 존감 지키기가 무척 어렵고 괴로운 시기, 건축가 스스로 엮어 가는 힐링 프로그램 이 궁금했다. 2시간 가까이 특별한 주제
7월 13일 (금) 저녁 7시, 인천 연수 7월 18일 (수) 서울 강남호텔 에서 건축5단체의 교류 및 친목 도 모 모임이 열렸다.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대한건축학회, 새 건축사협의회,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의 실무자들이 모여 회의 및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김창수, 권병조, 김 의중, 김태우, 강부성, 박순천 씨 등 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박인수)
동 구립 연수도서관 지하 강당에서 정재 은 감독의 건축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 감상 및 해설의 시간을 가졌다. 도서관을 찾는 100여 명의 주민들과 인천 지역 건축가들이 동참한 이날의 강연회를 통해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건축 의지를 공유하는 자리가 되었다. 박현주(연수도 서관), 이윤정(현일건축), 김승환(인천가 톨릭대), 홍성규(예진건축), 김정숙(씨앤 아이건축), 강정연(삼정건축), 조경연(본
없이 근황 얘기부터 시작하여 그가 최근
지 자문위원), 손도문(비타그룹건축) 및
작업하고 있는 미술관 프로젝트의 디자인
지역 시민 문화계 인사들 다수가 자리를
자문 등 간단없는 얘기를 통해 서로는 생
함께했다.(사진 제공: 박현주)
업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자리가 되었다.
● 박인수 편집 위원 7월 6일 (금) 서울 강남호텔 에서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주최한
7월 11일 (수) 오후 2시, 서울 대
워크숍이 열렸다. 이날의 주제는 ‘공
학로 예술가의 집(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
공 건축물 기획 업무에 관한 연구’(
학로 구청사) 2층, 새건축사협의회가 주
서수정 박사 책임 연구, 건축도시공
최하는 ‘2012 건축명장’ 시상식에 참석했
간연구소)였다. 서수정, 조시은, 이
다. 중소규모 건설 회사를 대상으로 빛나
언화, 박인수, 신승수, 김창균, 조준
는 건축 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13개 업체
배 씨 등이 참석하여 지방의 공공 건
및 개인을 선정하여 건축명장 패를 전달
축물 기획의 문제와 개선 방안 등에
하는 이날의 자리에는 내로라하는 중원의
대해 논의하였다.
시공사 대표, 임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7월 10일 (화) 서울 양재동
상의 의미를 돈독히 하였다. 함인선 새건
바우건축에서 권형표, 김순주 씨의
협 회장, 이필훈 전임 회장(포스코A&C),
2012 젊은 건축가상 수상 기념을 빙
김용미(금성건축), 이충기(서울시립대),
122 / 123
7월 18일 (수) 오후 3시, 와이드SA 저널리즘워크숍 3기생을 대상으로 한 네 번째 강의 첫 수업이 토즈 홍대점에서 열 렸다. 수업 준비물로 사전에 촬영하여 제 출한 사진 작업 평가 시간에 이어서 건축 사진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내용 으로 구성된 이날 강의는 김재경(건축 사 진) 씨가 맡았다.
7월 18일 (수) 저녁 7시, 제69차 땅 집사향이 서울 신당동 그림건축 안방마루 에서 열렸다. ‘건축가 초청 강의’ 시즌3, New POwer ARchitect 시리즈 19번째 시 간으로 초대된 건축가는 김희준(스튜디오 ANM 디렉터) 씨. 대학 졸업하고 조병수 건축연구소 2년 재직 후 과감히 독립. 그 기간 건축 현장에서 투쟁하듯 스스로 익 힌 ‘몸의 건축’이 그의 캐릭터다. 그가 들 려주는 말보다 행동하는 건축, 함께한 이 들은 그것의 진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 었다. 공철(Kc건축), 지정우(아이오아 주
부의 환경 정책 개관, 현재 진행 중 인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독일 도시학 연구소에서는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 자치 단체 분야에서 제기되는 환경 관련 문제 를 연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 법의 제시, 사례 연구 성과물 등을 안내 받았다. 또한 독일 연방정부 환 경청에서 환경 정책의 실천에 관한 문의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제공 받 았다.(사진 제공: 김영철)
립대), 이진오(SAAI건축), 김재경, 진효 숙(건축사진), 홍윤경(큐레이터), 최충욱 (공간전달연구소), 김태인(동우건축) 씨 등이 참석했다.(본문 ‘New POwer ARchitect’ 김희준의 글 참조) 7월 19일 (목) 오후 1시, 와이드SA 저널리즘워크숍 다섯 번째 강의 첫 수업 은 본지 디자인을 맡고 있는 수류산방 박 상일(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씨와의 만남
기’를 주제로 한 집담회가 열렸다. 문화재
으로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이어진 두
단 강경석 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회
번째 수업은 시공문화사 김기현 사장의
의는 생태 전문가의 시각으로 본 콤팩트
인솔로 경기도 파주에 자리잡고 있는 대
시티를 박병상(인천도시생태연구소) 씨
형 인쇄소와 제본소를 견학하는 시간으로
가 발제했고 전진삼과 유진수(희망을 만
진행되었다.
드는 마을사람들) 씨의 토론으로 꾸려졌
7월 25일 (수) 오전 10시, 인천문화
다.
재단 부평아트하우스에서 문화판의 젊은
7월 27일 (금) 저녁 7시, 서울 서교
리더들이 모여서 ‘지역 공동체 문화 만들
동 주점 보난자에서 건축평론동우회 정례 모임이 열렸다. 이일훈(후리건축)의 책
● 김영철 편집 위원
『제가 살고 싶은 집은』, 함성호(스튜디오
7월 19일(목)~20일(금), 24
이온)의 책 『반 건축』 출간을 축하하는 자
일(화) 독일 베를린 도시개발
리였다.
환경부(Senatsverwaltung für
7월 30일 (월) 저녁 6시, 서울 현
Stadtentwicklung und Umwelt), 독
저동 시공문화사 편집실에서 건축 사진가
일도시학연구소(DIFU), 독일연방
김재경과 동 출판사 김기현 대표의 미팅
정부 환경, 자연보호, 핵안전부를 방
을 주선했다. 오는 10월 경기도 파주 헤이
문했다. 독일 내 정부 및 연구 기관
리 갤러리MOA에서 17인의 건축사진가
에서의 환경 문제 제기 방식과 해결
그룹전이 열리는데 그 시기에 맞춰 작품
방안 모색의 사례 분석을 하기 위함
집 성격의 책자를 발간하기 위한 의사 타
이었다. 그곳에서 독일 베를린 주정
진의 자리였다.
및
Wide AR no.29 : 09-10 2012 Report
8월
인수(파크이즈건축), 공철(Kc건축), 박
시간 동안 이루어졌고, 석식 이루 장소를
준호(EAST4), 박상일(수류산방), 김재
본지 편집실로 옮겨 일간지 문화 담당 기
경, 진효숙(건축 사진), 손승희(유리 조
자와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를 맡은
● 김영철 편집 위원
형), 손도문(비타그룹건축), 정수진(SIE
구본준(한겨레신문)기자는 기자의 제1덕
8월 1일(수)~14일(화) 핀란
건축), 전연재(dmp건축), 황은순(주간조
목이 왜 글쓰기여야 하는가와 어떻게 쓸
드 에스포시 문화회관 (Espoo Cul-
선), 차영민(NES코리아), 심영규(공간)
것인가를 시종 흥미진진하게 전달했다.
ture Center, Finland)에서 핀란
씨 등이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했다.(사진
드 도코모모가 주관한 제12회 국제
제공: 김재경)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모던의 생존 (Survival of Modern)이라는 주제 의 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근 대건축의 영향과 그 보존 활동의 내 용을 확인하고 도코모모 국제 회원 들과의 교류가 목적이었다. 도코모
8월 8일 (수) 오전 10시, 동교동
● 최춘웅 편집 위원
모 회의 마지막 행사에서 2014년 제
본지 편집실에서 제7차 편집 위원 회의가
8월 9일(목) 원오원건축(대표
13회 국제컨퍼런스를 서울에 유치
열렸다. 최춘웅(고려대), 박인수(파크이
최욱) 사무소에서 2012 문광부 주최
하기 위해 주관 단체인 도코모모 코
즈건축) 씨가 참석하여 9/10월호(통권29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 이동준 씨 초
리아(회장 김태영)가 단독 프레젠테
호)의 진행 상황과 30호 및 31호(2013년
청 강연회가 있어 참석했다. 이날 파
이션을 하였고, 이견 없이 차기 국제
1/2월, 창간 5주년호)에 대한 아이템 논
트너인 아내와 두 딸과 함께한 이동
컨퍼런스의 장소로 서울이 확정되었
의를 하였다.
준 씨는 그가 활동하고 있는 스위스
다. 사진은 제13회 도코모모 국제컨
8월 8일 (수) 저녁 7시, 서울 신당
지역 건축과 최근 작업에 대해 발표
퍼런스 서울 개최 확정에 대해 대표
동 그림건축 안방마루에서 제70차 땅집사
했다.
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김종성 선생
향이 열렸다. 개최 일정이 한 주 앞당겨져
● 박인수 편집 위원
의 수락 연설 장면이다.
흥행 전선에 어둠이 감돌았지만 막상 뚜
8월 9일(목) 서울 강남 논현
껑을 열어 보니 기우였다. 참가 열기 폭
동 건설회관에서 일조 관련 건축 기
발, 이야기 손님으로 나선 최종훈(NIA건
준 구체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축) 씨의 주제 발표는 참석자들의 공감과
준주거 지역의 일조권 적용 여부와
감동을 이끌어냈다. 건축가 초청 강의 시
국내 일조권의 적용 기준, 도시에서
즌3, New POwer ARchitect 시리즈 20번
일조권이 필요한 범위 등에 대해 폭
째 초대작가로 출연한 최 대표는 독립 건
넓은 토론이 있었다. 한국의 일조 관
축 사무소가 갖는 규모의 한계를 네트워
련 기준은 허가 등 관리의 편리성을
크의 방법론으로 지혜롭게 풀고 있는 운
위한 일조 기준이란 논의가 있었고,
영의 묘에서나, 외부의 조건에 굴하지 않
일조 성능을 위한 기준으로 개선되
8월 7일 (화) 저녁 7시, 서울 서교동
고 건축가 스스로가 프로젝트마다 목표로
어야 한다고 논의하였다. 윤혁경, 유
NES코리아 3층 사랑에서 제3회 NESⓌ
삼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끝내 도달하고야
광흠, 이상천, 최찬환 씨 등이 참석
건축영화스터디클럽이 열렸다. 강병국
마는 근성으로 살아온 궤적을 시종 담담
했다.
(동우건축) 씨의 해설을 곁들여 조르지오
하게 전달했다.(본문 ‘New POwer AR-
8월 21일(화) 서울 강남 노보
모러더 감독 버전의 <메트로폴리스>를 감
chitect’ 최종훈의 글 참조)
텔에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
상했다.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 이날 모임
8월 9일 (목) 오후 5시, 토즈 홍대
을 위한 건축계 설명회가 열렸다. 지
은 공지 하루만에 30인 정원이 꽉 찰만
점에서 와이드SA 심화코스 저널리즘워크
난해 국회 회기 만료로 입법이 취소
큼 성황을 이뤘다. 최동규(서인건축), 이
숍 6강 첫 수업이 전진삼의 주관으로 ‘건
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을 위
충기(서울시립대), 박유진(시간건축), 박
축 현안 세미나-건축 잡담’의 형식으로 2
(사진 제
공: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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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선배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두 번째
구 간석동 인천광역시건축사회를 방문하
수업은 워크숍 1, 2기 선배들과의 만남 자
여 조동욱 회장과 만났다. 인천건축의 시
리로 이어졌다.
민 문화적 저변 확충과 함께 건축 전문가
8월 16일 (목) 오후 6시 30분, 장
들의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는 것에 뜻을
정제(숙명여대), 김기현(시공문화사) 씨
같이 하고, 지역에 필요한 건축 기획 프
가 본지 편집실을 찾아주었다. 하반기
로그램의 성안에 대하여 본지와 상호 협
spacetime 저자클럽 운영 기획 등 의사
력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손
를 교환하고, 인근 주점에서 ‘저녁이 있
도문(비타그룹, 본지 대외 협력 위원) 씨
는 삶’을 즐겼다.
가 배석했다.
8월 17일 (금) 오후 3시, 개업 당시
8월 22일 (수) 오후 6시, 서울 인사
향후 5년 내에 사옥을 건립하겠다는 직원
동을 중심으로 한 북촌 일대 미술관, 갤러
들과의 약속 이행에 성공한 오섬훈(본지
리에서 다수의 전시들이 동시에 개관하는
발행위원) 대표의 어반엑스건축을 방문
날이다. 인천건축재단 회원이기도 한 김
했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은
승환(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환경
행 대출을 끼고 호기롭게 시작한 사옥 건
조각가 교수의 개인전 관람을 하였다. 그
립. 빠듯한 건축비를 위협하는 이웃집 민
가 소속되어 있는 현대공간회 회원 22명
원 등 곳곳에서 부딪히는 일로 고단하기
이 북촌 일대 22개 전시장에서 ‘북촌 프로
도 했지만 입주 후 대 반전. 서울 혜화동
젝트’라고 명명된 ‘그룹-개인전’을 동시
대학로 문화권에 편입됨으로써 삶의 질이
다발적으로 수행하고, 오프닝 파티는 한
좋아지고, 임대료 부담도 덜게 되었다며
업소를 통째로 빌려 공동으로 손님맞이를
위안을 삼았다. 사옥은 주거와 사무 공간
하고 있는 것이 특징. 구영민(인하대), 박
그리고 일부 임대 세대로 구성되었다.
혜선(인하공전), 강정연(삼정건축), 이윤
8월 17일 (금) 오후 4시 30분, 서
정(현일건축), 김정숙(씨앤아이건축), 이
울 대학로 복판에 위치한 운생동 건축사
태상(간삼건축) 씨 등 인천건축재단 주요
무소를 방문하여 장윤규(국민대) 씨를 만
멤버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났다. 근황을 묻자 사무소의 안정적 운영
8월 23일 (목) 낮 12시, 국내 건축
을 위해서도 스스로는 디자인 실험과 연
서적 출판의 명문, 기문당을 방문하여 강
구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해작 사장을 만났다. 3년 전부터 1년에 두
껏의 성과에 대해 과거 10여 년 전에 실
어 차례 비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이지만
험해 온 디자인들을 현재화해 온 것으로
늘 반갑게 맞아 주는 건축 출판계의 전설
정리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의 시간을 예
로 통하는 선배다. 출판인으로 나서게 된
비하는 이유다. 나오면서 외부 일을 보고
배경을 필두로 기문당의 성장 과정의 비
들어오던 신창훈(본지 발행 위원) 대표를
화를 듣고, 일본 출판계의 현황과 대비한
만나 사무소 인접 커피점에서 본지의 마
국내 전문 출판업의 위기 상황에 대해 공
케팅 지원 방안 등과 관련하여 대화했다.
유했다.
8월 10일 (금) 오후 5시, 와이드SA
8월 21일 (화) 오전 10시 30분, 인
8월 23일 (목) 오후 2시 30분, 서
저널리즘워크숍 7강 첫 수업이 토즈 홍대
천 학익동에 위치한 단건축을 방문했다.
울 강남 신사동 원도시건축을 방문하여 9
점에서 열렸다. 건축 잡지 편집장, 기자들
백승국 사장은 지역 경기의 침체가 건축
월 13일 부로 재개되는 2012 원도시아카
과 만나는 자리다. 이경일(건축문화), 심
사무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 오래라며
데미세미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9월
영규(공간), 이오주은(한국건설신문) 씨
설계 및 감리 전 부문에 걸쳐 위기상황이
강좌는 인하대 철학과 김진석 교수가 출
가 초대되어 2시간에 걸쳐 직업으로서의
지속되고 있음을 경계했다.
연한다. 그는『초월에서 포월로』, 『니체에
기자 그리고 건축 잡지 기자의 비전에 대
8월 22일 (수) 오전 10시, 인천 남동
서 세르까지-초월에서 포월로 2』, 『소외
한 건축계의 설명회였다. 국가건축 정책위원회, 국토해양부, 건축5단체 의 관련인에게 그간 정리된 법안의 내용과 입법취지를 설명하였다. 이 날 행사에는 건축5단체 회원 약 70 여 명이 참석했다. 8월 22일(수)~24일(금)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 국제회관에서 7 개국에서 참여한 학생과 건축과 교 수 및 부산 지역 건축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부산국제건축디자인워크숍 이 열렸다. ‘나눔과 살림’이란 주제 로 부산의 동래읍성을 재생하기 위 한 리서치 워크숍이었다.(사진 제 공: 박인수)
Wide AR no.29 : 09-10 2012 Report
9월
에서 소내로』, 『기우뚱한 균형』, 『포월과
세대 대학원에서 건축 공학 석사 및 미국
소내의 미학』, 『더러운 철학』 등의 저작
펜실베이니아대학 디자인대학원에서 도
을 통해 지식인의 행동을 강조하는 독특
시 설계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연
한 현대철학의 지평을 열고 있는 장본인
세대에서 도시 설계 분야 연구로 건축학
9월 3일 (월) 낮, ‘ICON PARTY
이다. 원도시건축 교육팀의 김종수 실장
박사를 취득했다.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
001’의 이메일 및 SNS 홍보를 시작으로
과 대화했다.
에서의 연구 경력이 눈에 띈다. 인천건축
본격적인 프로젝트 알리기 작업에 돌입했
8월 24일 (금) 오후 3시, 서울 안
재단과 본지가 함께 주최하고 인천광역시
다. 9월 25일 오후 6시 인천 배다리에 위
국동 정림건축문화재단(이사장 이필훈)
건축사회가 후원하는 ‘ICON PARTY(인
치한 스페이스 빔(옛 인천양조장 건물)에
을 방문하여 박성태 사무국장과 만났다.
천건축 컨퍼런스 파티) 001’ 프로그램의
서 6개 팀의 건축가가 참여한 가운데 ‘공
건축가 고 김정철 선생의 건축 문화를 향
장소 협찬 등 향후 프로젝트 추진에 따른
유+’를 주제로 말판을 꾸리게 된다. 오
한 뜨거운 열정의 유지를 받들어 다양한
협의를 위한 만남이었다.
섬훈(어반엑스), 권형표+김순주(BAU건
프로그램으로 건축 신진 작가들을 응원해
8월 30일 (목) 오후 5시, 인천광역
축), 안기현+이민수(AnL studio), 이윤
오고 있는 재단은 최근 타블로이드판형의
시건축사회를 방문하여 조동욱 회장과 독
정(현일건축), 홍덕기+장익수(hAUS건
<건축신문>을 창간하여 새로운 시각의 건
대했다. ‘ICON PARTY’에 대한 건축사
축), 황순우(바인건축) 씨가 강연자로 참
축 저널리즘을 구현하고자 애쓰고 있다.
회의 후원 약속을 확인받는 자리였다.
여하고 민운기(스페이스 빔), 전진삼이
김정철건축상의 홍보 등과 관련하여 본
공동 사회를 본다.
지와의 협력 관계 타진을 위한 자리였다. 8월 27일 (월) 낮 12시, 올 초 경 기도 성남시에 판교신사옥 시대를 연 시 공테크(회장 박기석)를 방문하여 김석곤 전무를 만났다. 2012 여수엑스포 주제관, 빅오 등 주요 시설물의 전시 설계 제작 연 출 및 프로그램 운영 주체로 깊숙이 참여
8월 31일 (금) 오후 3시, 부산 센
한 시공테크의 야전 사령관으로서 맹활약
텀시티 그린타워 5층으로 이전한 가가건
한 그였다. 국내 전시 사업의 프론티어 그
축을 찾아 안용대(본지 발행 위원) 대표
룹에서 명실상부 세계적인 기업으로 급성
와 만났다. 마침 저녁 7시부터 부산 경
장해 온 시공테크는 시공미디어 부문의
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및 교
9월 4일 (화) 도서출판 동녘에서 신
신설을 통해 디지털 기반 교육 및 콘텐츠
수, 건축 전문인들이 함께 꾸리고 있는 ‘
간『한옥과 한국주택의 역사』(전봉희, 권
사업으로 영역의 확장을 해 나가고 있다.
도시건축포럼B’의 세미나 ‘ABC포럼—부
용찬 지음)를 보내왔다. 선사 시대의 움집
8월 28일 (화) 오전 10시, 서울 현저
산의 건축가를 말하다: 안용대 편’이 가
부터 오늘날의 아파트까지 온돌, 마루, 부
동 시공문화사 편집실에서 이강민(건축도
가건축의 이전 축하 집들이 형식을 겸하
엌으로 한국 주택의 변천사를 연구한 책
시공간연구소 국가한옥센터장, 제4회 심
여 열렸다. 안 대표는 ‘집짓기와 짝짓기’
이다. 공동 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전봉희
원건축학술상 당선자)와 동 출판사 김기
를 화두로 사무소가 주력해 온 병원건축
(서울대) 씨는 한국의 주거사와 목조 건
현 대표와의 미팅을 주선했다. 내년 6월
의 디자인 전략을 소개했다. 김승남(일신
축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도시 건축
발간 목표로 당선작 초고의 사전 검수를
건축), 안성호(시반건축), 오신욱(라움도
문화의 비교 연구를 주된 테마로 삼고, 건
통해 편집상의 기술적 문제, 탈고 일정 등
시건축), 한승욱(부산발전연구원), 강혁,
축 아카이브와 한옥의 현대화 등에 노력
에 대하여 논의했다.
김종국(경성대), 신병윤(동의대), 강대화
을 기울이고 있는 건축 사학자이며 이론
8월 30일 (목) 오전 11시, 인천 연
(토탈건축), 이인미(비온후), 정달식(부
가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권용찬(서울
수구 송도동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산일보), 이상헌(희담건축) 씨 등 20여 명
대 공학연구소) 씨는 전 교수의 석·박사
208호실을 찾았다. 동 대학 환경디자인과
이 참석하였다.
과정 제자로 현재 아주대에서 한국 건축
이승지 교수와의 첫 대면. 올 초 부임한 그
사를 가르치고 있다.(구압문의: 031-955-
녀는 이화여대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연
3014, 3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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