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2013~2014년도) SIMWON Architectural Award for Academic Researchers
지난 해 11월 15일 접수 마감된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의 예비심사 결과 아래와 같이 추천작을 선정, 발표합니다. ◇ 추천작 총 3편
◇ 공모요강 Ⓢ 당선작: 1편
접수번호: S-6-1-A
부상: 상패 및 고료 1천만 원과 단행본 출간
제목: 한국 영화에 드러난 아파트 이미지
Ⓢ 최종 당선작 결정
(응모자: 문근종)
상기 추천작 및 전회 추천작(최종 심사 진출작) 중에서 심사 하여 1편을 선정함
접수번호: S-6-1-B
Ⓢ 당선작 발표
제목: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 19세기 말∼
2014년 5월 15일(격월간 <와이드AR>
20세기 초, 한성부 일본인 거류지의 공간과 사회 (응모자: 이연경)
2014년 5-6월호 지면) Ⓢ 시상식 별도 공지 예정
접수번호: S-6-1-C
Ⓢ 출판일정
제목: 근대 서울의 도시사: 상업 공간(종로)의 변용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1년 이내
(응모자: 김은진) Ⓢ 운영위원회 ◇ 심원건축학술상은
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전진삼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의
Ⓢ 주최
세계를 이해하고 건축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졸
심원문화사업회
지에 유명을 달리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
Ⓢ 주관
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속 깊은 후원회가 심원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이하 사업회)이다.
Ⓢ 기획 및 출판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사업인 <심원건축학술상>은
격월간 <와이드AR>|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
Ⓢ 후원
는 유망한 신진학자 및 연구자의 저작지원프로그램으로 마
(주)엠에스 오토텍
련되었다.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응모 받아 그 중
Ⓢ 문의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070-7715-1960, 02-2235-1960
출간과 저술지원비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업회는 1, 2, 4차년도 사업을 통해 박성형의 『벽전』, 서정 일의 『소통의 도시_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1960∼1974)』, 이강민의 『도리 구조와 서까래 구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 고, 출판한 바 있다.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 빌라/BCHO Architects_조병수 | 사진_문정식
(주)제효에서 지은 집 건축가 상상 속의 건물을 구현하다 | www.jehyo.com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groundscape groundscape Hyundai Card DesignCard Library Exhibition Hyundai 2014 Library Exhibition Design 02. 28 - 06. 29 2014 02. 28 - 06. 29
ONE O ONE architects ONE O ONE architects www.101architects.com www.101architec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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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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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연 에 사 람 을 더 합 니 다
곧게 뻗은 나무처럼 언제나 바른 마음으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겠습니다 품격 있는 건축과 도시의 미래 가치를 선도하는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건축사회는 인천시민의 삶과 역사,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하며 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오늘도 모든 정성과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건축사는 건축물의 설계•공사 감리 업무를 수행 조형창작 예술인
KIRA Incheon
A Chapter of Korea Institute of Registered Architect
회장 조동욱 부회장 윤희경 이사 강종오, 김학성, 류재경, 신중식, 양철웅, 이종필, 이창호, 양인성 감사 김현미, 정재남
History, Present & Global with Goodhaus 굿하우스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2014년도 제5기 모집요강] The 5th Journalism School of WideAR 2014 2010∼2013년에 걸쳐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1∼4기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에 힘입어 본지는 2014년도를 맞아 제5기 교육에 돌입합니다. 올해는 이론과 실제를 결합시킨 현장 중심의 교육과정을 보다 강화시키고 저널리 스트의 기본 덕목인 글쓰기 훈련과 본격적인 저널 작업의 기회를 확충하게 됩니다.
◆ 교육 과정
[수료자 특전 등]
Ⓦ 입교식 및 Introduction
1) 최종 과정 수료 시 ‘수료증’ 발급(단, 전체 교육 과정 중 70% 이상의
Ⓦ 코스 1_글쓰기 훈련 과정
출석자에 한하여 ‘수료증’ 발급됨.)
Ⓦ 코스 2_워크숍 과정
2) 수료성적우수자에 한하여 언론사 취업 시 ‘추천서’ 발급
Ⓦ 수료식 및 Review
3) 실제 <저널>(가칭) 제작 기회 부여하여, 최종 수료자 포트폴리오로 활용
◆ 모집요강 [교육 기간 및 강의 장소]
[등록비]
: 2012년 3월∼8월(입교 및 수료식 포함 5개월 과정)
등록비: 50만원 (단, 과정 중 발생되는 개인별 필요경비(교통비 등)는 각자 부담함을 원칙으로 함)
[강의 코스] 입교식 및 Introduction: 3월 29일(토) 4:00pm, 토즈홍대점
[신청자격]
코스 1_글쓰기 훈련 과정: 4월∼7월_3.5개월에 걸쳐 웹상에서 개별지도
대학 4학년 재학생 이상으로서 건축, 도시, 디자인, 조경, 인테리어 관
코스 2_워크숍 과정: 7월 28일(월)∼8월 2일(토), 2:00∼8:00pm/1일
련학과 전공생(휴학생 및 졸업생 포함)에 한함
기준, 그룹지도 수료식 및 Review: 8월 20일(수) 4:00pm, 토즈홍대점
[신청서류] 1) 자기소개서(양식, 다운로드 받아 활용)
[강의 구성 수요 시간 및 장소]
2) 지원동기서(양식, 상동 )
: 코스 1 글쓰기 훈련 과정은 주 1회 테마별 글쓰기 과제를 수행하며,
3) 재(휴)학 또는 졸업증명서
1:1 첨삭 지도 : 코스 2 워크숍 과정의 매 강좌는 2시간 단위로 이뤄지며 2∼3개 강의
[신청서류 양식 다운로드 방법]
와 실습, 견학 프로그램으로 운영됨(최종 프로그램은 별도 공지 예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건축저널리즘스쿨’ 게시판에서 다운로드 가능
: 강의 장소_서울, 토즈홍대점 및 기타 실습 현장 [서류 제출방법 및 주소] [수강생 모집 개요]
이메일 제출로 한함.
-모집인원: 5인 내외
e-mail: widear@naver.com
-신청기간: 2014년 2월 3일(월)∼2월 16일(일) 자정까지 -전형방법 및 합격자 발표
[등록방법]
1) 1차 서류심사 합격자 발표: 2월 22일(토)
1) 합격자는 교육과정 등록비를 아래 지정 방법을 통해 입금함으로써
2) 인터뷰심사: 개별 통지
등록 완료함 (미 입금 시, 예비 합격자에게 자격을 부여함)
3) 2차 인터뷰심사 합격자 발표: 3월 1일(토)
2) 통장이체 : 국민은행, 491001-01-156370 (예금주: 전진삼(간향미
4) 합격자 등록기간: 3월 7일(금)∼3월 11일(화)
디어랩))
5) 추가 합격자 발표: 개별 공지 6) 추가 합격자 등록기간: 3월 14일(금)∼3월 18일(화)
[강사진]
7) 최종 합격자 발표: 3월 22일(토)
: 총괄_전진삼(본지 발행인, 와이드AR 저널리즘스쿨 디렉터)
* 네이버 카페_‘와이드AR’ 게시판 발표 및 개별 통지 예정.
: 강사진_본지 발행편집인단 구성원을 포함한 국내 건축·미술·디자
* 내부 방침에 의한 최소 등록인원 미달 시 개설하지 않을 수 있음.
인잡지 데스크 및 주요 매체에서 활약해오고 있는 기자, 칼럼니스트, 비평가, 건축 책 저자 및 대학교수로 구성 예정
[교육목표 및 추진방안] 학생에게 건축잡지사를 포함한 주요 언론사 입사를 위한 준비 과정을
●교육 프로그램 등 상세 내용은 네이버 카페 <와이드AR> ‘저널리즘
제공해주고, 각 언론사에는 기자로서의 소양과 저널리즘에 입각한 윤
스쿨 게시판’ 참조 바람.
리의식 및 실무능력에도 충실한 인력을 공급하고자 한다.
이종건 비평집
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인식과 지식이 분명
를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오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198쪽 | 신국판 10,000원 판매대행_ 시공문화사 영업팀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건축 없는 국가 이종건 비평집
건축 없는 국가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건축비평 총서> 제1탄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02-3147-1212, 2323 우리 건축 사회에 속한 이들은 누구나 알고 느끼듯, 우리 건축의 문제는 늘 비평의 부재다. 비평 작업은
이종건의 말·말·말 1장. 건축과 국가, 그리고 존재
그리고 비평가로 사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울 뿐이다.
여기서 내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 타자를 적극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은 그 때 비로소 희미하나마 새벽빛을 볼 수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2장.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를
우리 건축 사회는 오랫동안 아키텍처의 세계를 접했고, 그래서 비스듬하게 그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언어를 체득하고 구사해왔다. 그런데 우리 건축 사회가 알고 구사하고 있다고 믿는 그 언어는, 토마스 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이/훼손”된 언어다.
오늘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인식과 지식이 분명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3장. 건축 없는 국가 김효만의 건축은 극히 비현실적인 공간을 상상하도록 하는 공간, 혹은 그러한 공간적 감성마저 현실적인 토대에서 구축된다. 이것이야말로 서구 자본주의에 점령된 우리 사회에서 작업하는 우리가 따르고 지켜야 할 귀중한 덕목이 아닌 가 싶다. 4장. 국가 없는 건축 조민석은 문화 전쟁에서 벗어나 있다기보다 다른 형식의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배제된 모종의 무엇에 목
저자 이종건
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으로 분할된 감각 혹은 감성을 재분배시키기
경기대학교 교수. 저서로 『건축의 존재와 의미』, 『
를 요구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다.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 빈 충만』 등이 있고, 역서로 『기능과 형태』, 『추상과 감통』, 『차이들: 현대 건축의 지형들』,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 『건축과 철학: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바바』 등이 있고, 작품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초대작가 전에 출품한 <삼가>가 있다.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약칭, 땅집사향)
1월(제85차)과 2월(제86차)의 이야기손님과 주제의 방향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난 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땅집사향은 국내에서 맹활약 중인 건축사진가를 초청하는 <건축사진가 열전>(시즌1)으로 개최합니다. 대주제는 ‘이미지 건축의 거처’(The abode of architecture on image)이며, 매회 건축사진가별 소주제가 따로 준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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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제85 차
2014년 2월 제86 차
이야기손님 조명환(건축사진가)
이야기손님 박재영(건축사진가)
일시
1월 15일(수) 7:30pm
일시
2월 12일(수) 7:30pm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장소
그림건축 안방마루
주제
Amphibious Eye Project
주제
문화의 유전자 전통건축
|주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약칭,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 (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CONTENTS
Issue
Work
Work1
21 와이드 COLUMN | 정만영
4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민현준
Mihn Hyunjun
경험과 실험, 그리고 역사
25 이종건의 COMPASS 34
시간의 문턱에서
29 전진삼의 PARA-DOXA 06
아직 김(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54 DIALOGUE
정림건축을 통해 읽는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
오래된 땅에 미래를 짓다
64 CRITIQUE 01 | 황인 35 와이드 FOCUS | 김태일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설계 경기가 보여 준 슬픈 현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장소와 공간
75 CRITIQUE 02 | 김인성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
Work2
79 호텔 마누
Hotel MANU
정기정
Jung Kijung
84 CRITIQUE | 우영선
가면의 꿈: 호텔 마누의 대지와 창
Editor's Letter
Report
39 와이드 REPORT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92 와이드 EYE | 이보경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과
도시학자 최종현
김용관
관계의 기록
108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이인미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114 사진 더하기 건축 16/나은중+유소래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주상연 Sangyon Joo
謹賀新年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2014
NESⓌ 건축영화스터디클럽
주최: 간향 미디어랩 & 커뮤니티 주관: 와이드AR 후원: NES코리아(주)
NESⓌ건축영화스터디클럽 <시즌3>, 2월 개막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정을 꼭 확인 바랍니다. ◇ 장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9-13 NES사옥 3층, NES 영화사랑방
◆ 14th: 6월 2일(월) 7:00pm 상영작: 오브젝티파이드(Objectified)
◇ 강사: 강병국(본지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게리 허스트윗 감독, 2009
◇ 참석대상: 고정 게스트 20인 및 본지 독자와 후원회원 중
개관: 일상의 디자인에 관한 영화
사전 예약자 포함 총 30인 이내로 제한함
◆ 15th: 8월 11일(월) 7:00pm ● 사전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예약접수 *참가비 없음
상영작: 비주얼 어쿠스틱스(Visual Acoustics) 에릭 브릭커, 2008 개관: 세계적인 건축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먼에 관한 다큐 멘터리
◇ 주요 프로그램
(*본 프로그램은 주최 측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음)
◆ 16th: 10월 6일(월) 7:00pm 상영작: 푸르이트 아이고(Pruit-Igoe)
◆ 12th: 2월 10일(월) 7:00pm 상영작: 마천루(Fountainhead) 킹 비더 감독, 1949
차드 프리드리히 감독, 2011 개관: 근대건축의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건축 다큐멘터리
개관: 건축영화의 영원한 고전!!
◆ 17th: 12월 1일(월) 7:00pm ◆ 13th: 4월 7일(월) 7:00pm
상영작: 홀리루드 파일(The Holyrood File)
상영작: 레이크 하우스(Lake House)
스튜어트 그릭 감독, 2005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 감독, 2006
개관: 스페인 건축가 Enric Miralles의 작품 스코틀랜드 의
개관: 전형적인 헐리웃 건축가 영화
사당 건축에 얽힌 정치적 마찰과 스캔들을 다룬 영화
Wide Issue | 와이드 이슈
I
S
S
U
E
와이드 COLUMN
경험과 실험, 그리고 역사 정만영 서울과기대 건축학부 교수
Issue
경험과 실험 건축의 다양한 양상들을 접하면서, 어디서부터 접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
21 와이드 COLUMN | 정만영
경험과 실험, 그리고 역사
25 이종건의 COMPASS 34
시간의 문턱에서
29 전진삼의 PARA-DOXA 06
아직 김(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정림건축을 통해 읽는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
35
와이드 FOCUS | 김태일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설계 경기가 보여 준 슬픈 현실
다. 물론 어떤 입장이 있어야만 뭔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것저것 열심히 보
와이드 COLUMN
다 보면 자연히 정리되겠지만, 한두 번 보다 말 일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 는 일에 무조건 덤벼들기는 부담스럽다. 상황을 파악하는 시작 단계에서 넘치는 것 과 모자란 것을 따져보는 것은 어떤가? 과잉을 더 넘치게 하고 결핍을 더 죄고 쪼는 수도 있지만, 대개는 넘치는 것을 덜고 모자란 것에 보태면서 균형을 잡을 것이다. 이 런 의미에서 우리 건축계에 넘치는 것과 모자란 것은 무엇일까? 평소 생각하는 답변 은 경험(experience)과 실험(experiment)이다. 한글과 영어 둘 다 같은 글자인 ‘험/ experi’를 사용하면서 반대 벡터를 갖는 기묘함 때문에, 개념적으로 다소 무리가 있 더라도 즐겨 한 쌍으로 사용하게 되는 대구이다. 경험을 통해 확증된 관성에 의존하 는 태도와 실험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태도라 풀어 쓰면 좀더 말하려는 의도에 가깝다. 먼저, 경험을 통해 확증된 관성의 체계는 완성도가 높은 세계에서 형성된다. 역사적 으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더 나은 결과를 검증해 온 메커니즘 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문제들과 고투하는 경험을 거치면서 몸에 가장 잘 맞 는 유효성을 획득한 체계만이 관성을 갖게 된다. 검증을 통과해 익숙하게 구사하게 된 관성의 체계는 탁월한 경쟁력을 갖기 마련이다. 보편성에 근거하면서도 가변적 인 변화에 유연한 체계, 부분과 전체의 층위 모두가 하나로 꽉 맞물리는 정합성이 높 은 체계, 명석하게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효율적인 체계, 견고하면서도 몸에 잘 맞는 체계 등… 역사적으로 개인적으로 검증에 유리한 관성의 체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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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관성의 체계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크게 애쓰지 않고도 일정 수준의 특질을 보 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관성에 의존하는 습성이 과도해지면 관성은 점점 두꺼워지고, 이를 벗어나는 힘을 거머쥐고 무력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창작은 동일성의 궤도에 머물고 정체되기 쉽다. 하지만 유의할 점은 관성의 체계가 내부적인 결점에 의해 손상될 만큼 허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마땅치 않 아서 다른 것을 찾아보겠다는 식의 안이한 논리로 맞설 수 있는 손쉬운 체계가 아니 다. 이렇게 허술한 논리와 부딪칠 때 관성은 오히려 생동감을 갖게 된다. 관성의 체계 는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관성의 체계에서 바깥에 있다는 것은 열등한 것, 다시 돌 려져야 할 부차적인 것을 의미할 뿐이다. 끊임없이 되돌려지도록 만드는 반복. 이 반 복이 주는 생동감이 사라질 때 관성은 지루해진다. 역설적으로 관성은 생동감을 잃 고 스스로에만 푹 빠져 있을 때, 즉 관성에 젖을 때 위기에 봉착한다. 관성의 유일한 결점은 지루함인 것이다. 반면, 실험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검증 기회가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실험은 항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모험을 요구한다. 과학에서 실 험은 (실험실 같은 인공적 환경을 포함해서) 통제된 방식의 조건을 투입하여 가설이 나 이론을 입증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실험의 상대어는 이론이다. 하지만 건축에서 실험은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려는 탈주적 창작 태도이며, 상대어는 경험을 지층화시 킨 관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새로움이 지루함으로 뒤집혀 공박되는 사태이
와이드 COLUMN
다. 새로움이 반복되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반복된 새로움은 더 이상 충격을 줄 수 없다는 논리. 실험은 지루해졌다는 논리. 관성의 결점을 새로움에 투영한 기묘한 논 리다. 새로움 자체가 아니라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고갈된 심리적 토양을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실험은 일회용이 아니라, 니체의 표현대로 영원 회귀하는 것이다. 같은 것(동일성)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면서 끊임없이 새로움과 다양성을 생성한다는 의미에서. 실험의 모색은 직교 기하학을 비틀거나 휘는 식의 피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경험으 로 구축된 관성 vs. 실험을 통한 새로움의 충돌 양상은, 이미 검증되어 익숙해진 감 각 vs. 미숙하지만 생동적인 감각, 매끈하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정합적인 구성 vs.비완결적이고 산만하게 흐트러져 다양성이 출몰하는 구성,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흐르는 시선에서 비롯된 덤덤한 장면 vs. 시선의 흐름에 거스르고 끊어내는 도발적 인 장면, 재료/구조와 디테일의 일관성과 완성도 vs.거칠게 드러나고 상호 무관한 듯 한, 정확하지 않은 위치와 크기의 병치 등 (부분에서 전체에 이르는 건축의 모든 층 위에서 또 설계 구상에서 건물 감상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전방위적으로 서로 다른 벡터를 갖고 맞서는 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 역사 박길룡은 헤이리의 젊은 건축가들이 자유롭고 풍부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서 “무엇 이 한국 청장년 건축가들을 이렇게 겸손해지도록 몰고 있는가. 차이와 자유와 개별 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에 무엇이 이들을 머뭇거리게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건축을 사유로 시작하는 개념 건축이 그 이유라고 대답했다. 개념의 과잉, 사유의 확 장으로 인해 조형은 메마르고 창백해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같은 물음에, 현실적 제 약을 돌파하고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가는 공세적 논리가 아니라, 현실적 제약 안에 머물면서 안전하게 견디려는 수세적 논리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는 서 두에서 실험에 의존하는 새로움은 결핍되고, 경험에 의존하는 관성은 과잉이라는 진 단과 맥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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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21세기의 맥락에서 왜 이토록 관성과 안전한 지대에 머물려는 수세적 논리가 압도적 인가는 최근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형성된 심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우선 20 세기는 일제 강점과 전쟁으로 파탄지경에 빠졌던 전반기와, 경제 성장과 더불어 조 금씩 자신감을 회복해 나갔던 후반기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로의 전 환 직전인 1997년에 발생한 IMF 사태에서 우리는 한 세대가 넘도록 경험한 적이 없 었던 경제 후퇴를 다시 경험했다. 이 사태가 가져온 심리적 충격은 비단 건축 설계 기 회가 줄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결정적인 실수가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었다. 밀레니엄 전환이라는 큰 변화의 기운이 솟아오를 수 있었던 바 로 그 시기에, 젊은 건축가들의 심리가 움츠러들고, 활동이 위축된 것은 지금도 아쉽 다. 그 이후 금융 위기와 부동산 침체로 이어진 15년간의 흐름은 건축의 심리적 지형 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 턴키, BTL, PF사업 등 규모의 경제학이 무분별하게 건축 계에 밀려들면서 대형 사무소 위주의 흐름으로 바뀌고, 설계 시장(?)이 처음에는 건 설회사에, 다음에는 금융에 편입되는 광범위한 흐름 속에서 디자인은 철저하게 경제 의 종속적인 변수로 변질되었다. 건축가들은 저항의 지점을 거머쥐지도 못한 채 변 화의 흐름에 떠내려간 셈이다. 우선적인 관심사가 생존이 되는 상황은 아직도 헤어 나지 못한 조건이며, 그 여파는 교육의 붕괴와 건축을 벗어나려는 충동으로 이어지 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지키고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미지의 영역으로 던지 며 나가야 한다. 역사는 그렇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 9항에서 진보를 (설령 너무 애착이 가서 떨어지기 싫을 때일지라도) 과거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드는 폭풍으로 묘사한다. 파울 클레의 그 림인 ‘새로운 천사’를 역사에 빗대 묘사한 유명한 대목에서, 미래로 향하는 힘은 가차 없고 냉혹하기까지 해서 온정적인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와이드 COLUMN
인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결코 구미에 맞춰 이리저리 주물럭거릴 수 있는 것이 아니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떨어지려 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 의 입은 열려 있으며 또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 일깨우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는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또 그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 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성완 편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1983년 민음 사, 348쪽) 진보는 에스컬레이터처럼 힘들이지 않고 선선히 타고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결사적으로 되돌아가려는 의지까지도 무력하게 만들며 사정없이 떠미는 폭풍 이다. 그 폭풍은 저항하는 잔해들을 파도처럼 휩쓸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현재 시점에서 어떤 태도가 위험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짚어 보는 것에, 100년 전 근대건축의 발흥시점에서 근대건축이 승리한 역사 이면에서 폭풍에 휩쓸 려 사라진 역사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20세기 초 여전히 주류였던 에꼴 데 보자르의 영향력은 어떻게 따듯한 햇살에 눈 녹듯이 단번에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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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에꼴 데 보자르! 루이 14세는 1671년에 건축 분야의 최고 엘리트 교육 기관인 Académie (Royale) d'Architecture를 설립했으며, 체계를 정비한 초대 교장은 17세 기 말 끌로드 뻬로와의 신구논쟁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강력하게 견지했던 프랑스와 블롱델이었다. 이 기관은 1816년에 미술, 조각, 음악 아카데미와 합쳐진 Académie des Beaux-Arts로 전환되었고, 다시 1863년 나폴레옹 3세 집권기에 국가에서 독립 하면서 L'Ecole des Beaux-Arts로 개명되었다. 에꼴 데 보자르는 국제적으로 강력 한 영향을 미쳐 전 유럽과 미국에서 이 체제를 모델로 한 건축 교육이 진행되었다 해 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연을 통해 그랑프리 수상자에게 부여했던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에서의 체류 교육은 이 기관의 전통을 강력하게 견지하는 근간이 되었다. 수상자들은 프랑스 정부의 후원을 받아 국가의 공식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건축계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근대건축과 대대적인 충돌을 거치면서 보자르의 존재감은 희미해졌으며, 1968년 파리 5월 혁명의 소란 속에서 300년 가까 이 구체제의 질서와 가치를 보존하던 건축학교는 폐교되었다. 현재는 미술, 조각 분 야를 가르치는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로 남아 있다. 가장 강력한 엘리트 집단인 보자르 출신 건축가들과 대적했던 근대건축의 주동자들 은 거의 아웃사이더들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 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근대건축의 거장 건축가들은 정규 대학에서 건축 교육을 받 은 바 없으며, 보자르 출신으로 근대건축에 기여한 인물은 졸업자인 토니 가르니에
와이드 COLUMN
와 중퇴자인 오귀스트 뻬레 정도가 언급될 수 있을 뿐이다. 당대의 좋은 가문에서 가 장 우수한 인재로 교육받고,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후원되던 수많은 보자르 출신 건 축가들이 갑작스럽게 몰락한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재능이 나 능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배경이 뒤쳐진 것도 아니고, 노력을 덜했기 때문도 아 니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에 의지해, 200년 넘도록 아무 문제가 없다고 굳게 믿었던 안정적인 시스템에 편하게 머물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성이 너무 두꺼워져서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보증 하는 안전한 영역으로 착각되었던 것이다. 근대건축의 선동자들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전투적 선언들을 앞세워 (경 험한 바 없기에 당연히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온몸을 던질 때, 반대 전선에 있던 보자르 건축가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었 다. 하지만 역사를 미는 폭풍 또는 파도는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경험으로 구축된 관 성을 벗어나 끊임없이 실험을 감행하는 태도가 정당하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주 는 가혹하고, 차가운 교훈이다. 결어 무명의 젊은 건축가였던 르 코르뷔지에가 미래의 방향을 타진하면서 당시 건축의 습 속과는 완전히 벗어난 도미노 계획안을 제안했던 1914년에서 정확히 백년이 지났 다. 르 코르뷔지에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우리 시대를 앞으로 미는 데 전력을 다하 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라 움츠러들기보다는 현실을 냉정히 판단하고 공세적 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 이미 확인된 안정감과 견실함을 떨치고, 익숙하 지 않은 지형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감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 고투하는 것. 눈 앞의 쉬운 목표를 취하기보다 시야를 더 멀리 확장해 보려고 애쓰는 것. 자신으로부 터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를 자신의 역량으로 판단하는 것. 실험이 요구하는 덕목 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창의성의 핵심은 해법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 다. 실험은 이 창의적 문제를 미래로 투사하는 벡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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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이종건의 COMPASS 34
시간의 문턱에서 이종건 본지 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Issue
시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신의 영역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시간의 경계 언저리에 앉아 글쓰기 작업에 돌입했다.
21 와이드 COLUMN | 정만영
경험과 실험, 그리고 역사
25 이종건의 COMPASS 34
시간의 문턱에서
29 전진삼의 PARA-DOXA 06
아직 김(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정림건축을 통해 읽는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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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 김태일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설계 경기가 보여 준 슬픈 현실
나는 주로 생각하면서 쓰고 쓰면서 생각하는 까닭에, 글의 제목은 나중에 붙인다. 물론 대개 글쓰 기 며칠 전부터 틈틈이 쓸 거리를 생각하며 대충 윤곽을 잡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 쓸 ‘때’만 잡
이종건의 COMPASS 34
아 두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대면할 수 있는 강도 높은 시간에, 시간을, 사색하고 싶었기 때문이 다. 사색. 그렇다. 나는 바야흐로 고대 인도에도 그러했고, 플라톤에게도 그러했듯, 인간 행위의 가장 높은 형태(그들에게 삶의 목적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달리,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을 올바로 보는 것이었다)인 사색, 곧 오 년 넘도록 두 달마다 어김없이 행해 온 의례를 행하는 중 이다. 뭇사람들이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2013년(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털어내기 위
해 술잔을 기울였겠지만, 당대 최고 지식인 오세재가 자신보다 38살 연하인 이규보 와 앎의 벗으로 삼은 사연에서 비롯한 망년지교(忘年之交)의 말뜻은 새길 수 없었 을 것이다. 진/선/미(이 또한 플라톤의 유산이다)의 맛을 나눌 벗을 가진 사람은 얼 마나 축복받은 존재인가. 이제 곧 한 해의 삶은 2014년으로 기입되고, 우리 모두 나 이 한 살 더 먹게 될 것이다. 이제는 제법 나이 들었다 해야 사회적으로 걸맞은 나 는, 새해 각오 따위는 부질없다.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니, 그저 여생을 딱 그만큼 이나마 더 진하게/소중하게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나이를 언급하니, 얼마 전 후 학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드니, 세상사 시시해진다고 말이다. 건축은 특 히 더 그렇다고 했다. 종교처럼 우러러봤던 유명한 작품들이며 건축가들이, 마치 그 리도 넓어 보이던 초등학교 운동장의 현실처럼(올바른 비유는 아니지만 느낌은 크 게 다르지 않다), 어느덧 그리 대단치 않은 것으로 현상한다고 말이다. 얼마 전 혜화 로터리 주변을 우연히 걷다가 완공 중인 건물(들)을 보며, 유학 갔다 온 지 얼마 안 된 재벌가 젊은 건축가 자식이 뭔가 보여 주고 싶은 욕구에 참 유치한 난리를 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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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있나 보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었 다. 그 순간 안도가 그렇게 시시할 수 없었다. 해를 나누고 호명하는 시간 개념은, 그 것이 아무리 인간이 정한 것이라 한들, 아니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인 간은 인간이 만든 것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지암바티스타 비코의 주장에 따르건대, 우리의 삶을 단단히 구속하고 지배한다. 설령 모든 공간을, 만물을 지배한다한들 무 조건 그러하다. 사색은 남겨진 뱀의 허물처럼 시차로 존재하고 현상한다. 글을 쓰고 건축하는 행위 또한 당연히 그러하다. 나는 나의 생각을 나중에야 볼 것이고, 이 글 의 독자는 적어도 보름이 지나고서야 나의 생각을 만날 것이고, 어느 건축가의 고독 한 생각은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 비로소 우리가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대 인의 믿음처럼 인간에 속한 공간과 달리 시간은 절대적으로 신에 속한 것이다. 성경 은,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의 것이라 하지 않던가. 인간의 욕구와 세상의 사건 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건들과 사고들로, 그리고 프로파간다들과 상술들로 채워진 다. 물론 사건과 사고는 특정 장소에서 발생한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 들은 오직 그 조건에 따라 삶의 에너지를 얼마든 기꺼이 쓴다. 정월에는 점집을 찾 는 사람들도, 헬스장에 등록하는 사람들도 그 수가 엄청나다. 단 하나의 욕구, 곧 ‘오 직 자신(들)이’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로써 잘 살게 된다면 좋을 일이다. 탄자니
이종건의 COMPASS 34
아에는 선천성 유전 질환자인 알비노(멜라닌 결핍으로 인한 백색 피부 흑인)의 신 체 일부가 부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막대한 돈으로 청부업자를 고용해 서 우악스럽게 팔을 잘라 가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어떤 초등학생은 수업을 마치 고 교문을 나서다가 강제로 붙들려 생짜로 팔을 잘리기도 했다. 지난 24시간 동안에 는 소치 동계 올림픽을 한 달 남짓 남긴 러시아에서 두 건의 사고가 터졌다. 기차역 사에서 발생한 여인의 자살 테러로 적어도 16명이 죽었고, 시장을 지나가던 전차가 폭발해 10명 이상 죽었다. 확실히 추정컨대, 러시아 정부군에 의해 남편이나 연인 을 잃은 이슬람 여성들 곧 소위 ‘검은 과부’들이 사건의 책임자다. 북한은 “온갖 형 태의 테러 행위를 반대”하는 입장을 “다시금 천명”하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동정과 위문을 표시한다”고 했다. 우리 공권력의 민주노총 강제 진압에 대해서 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언급하며 맹렬히 비난했다. 지나가는 소가 (비)웃을 일이다. 이집트는 작년에 무바라크 30년 독재를 시민 혁명으로 무너뜨리고, 독립 이후 9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 선거로 무르시 정권을 세웠다. 그런데 군부가 일 년 만에 축출 하고, 과도 정부를 구성해 이슬람주의를 희석하고, 군부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 법 개정 국민 투표를 발표하면서 테러 공격이 잇달아 터져 사흘이 멀다 하고 사람들 이 죽어 가고 있다. 역시 오랜 독재에 맞선 민주화 저항 운동으로 촉발된,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세속주의 이슬람주의의 대결이 낳은 내전이 3년째 접어든 시리아는, 그로 인해 900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는데,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 무기로 인 해 어린이와 여인 등 민간인이 1000여 명 이상 죽었다. 오바마가 군사 개입을 천명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화학 무기 폐기 이행이 지체되고 있다. 이태석 신부 와 대한민국 평화유지군 파견으로 널리 알려진 수단에서는 정권을 장악한 아랍계 이슬람 정부가, 학대와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무장봉기한 기독교계 흑인 원주민들 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무자비한 인종 청소를 자행해 3년에 걸쳐 30만 명을 죽였다. 차별에 대한 오랜 저항의 결과로 2년 전 독립한 남수단은 내전이 격화되어 일상이 유혈 사태로 점철된 상태인데, 19세기 초 침략해서 이슬람 통치로 속국화함으로써 비극의 씨앗을 뿌린 이집트, 그리고 19세기 말 나일강 통제 명분으로 식민지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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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남부에는 기독교와 영어를, 북부에는 기간 시설을 심어 이분화시킨 영국이 목하 유 엔 평화유지군으로 활동 중이다. 안녕들...하세요? 장성택을 갑작스레 처형한 북한은 일주일 전 “전쟁은 언제 한다고 광고하지 않는 다”며 또다시 한반도 긴장을 한껏 조성시켰고, 일본은 군국주의 수순을 밟아 나가는 아베 총리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 데니스 말을 인용하면 “911테 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인, 그래서 “그 대 가를 치르게 될”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분별없고 무모한 행보를 밟아 우리와 더 차갑고 나쁜 이웃이 되었고, 중국은 방공 식별 구역 문제로 우리와 갈등의 불씨를 품고 있다. 이로써 동북아 정세는 무력 과시와 충돌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 다. 우리 내부도 사정은 아주 나쁘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의 총체적 대선 개입 에 대한 천주교계, 기독교계, 불교계, 문화예술계, 지식계 등의 규탄과 박근혜 대통 령 퇴진 요구, 목하 관객 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변호인>이 보여 주는, 인권 유린까지 서슴없이 자행하는 불법적 공권력 남용/오용에 근접한 밀양 송전탑 사태 (12월 1일부터 21일까지 하루 평균 1666명의 경찰병력 동원), 철도노조 지도부 검 거를 위한 경향신문사/민주노총 강제 진입 사건(경찰병력 5000명),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등의 대선 공약 파기, 뜬금없는 메카시즘 종북몰이,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 갈등, 전교조 법외노조 처리 등으로 인한 인권/역사 퇴행, 원 세가 상승,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민생 문제 등은 쉬이 해결되기는커녕 악화 될까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또 돌아가는 세상 속 우리 세상 안팎이 이렇게 사건/사고투성이인데도, 거의 총체적 난국인데도, 세상은 한
이종건의 COMPASS 34
칙이라는 이름의 불통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정치 독단주의, 아파트 값 하락과 전
치 오차 없이, 촌각의 멈춤 없이 돌아가고, 세상의 엔진인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희 한하고 야릇하게도, 산업화도 생산도 아니고, 오락이다. 재미와 여흥 곧 지루함에서 벗어날 욕구의 조작과 창출이 자본주의의 동력이니까 말이다(멀지 않아, 마약도 오 락 상품이 될 것이다). 오늘을 사는 인간은 지독한 지루와 무의미의 덫에 걸려 있다 는 뜻이다. 오락이 몰고 가는 세상에서 건축이 차지할 자리는 있을지, 있다면 그 자 리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또 그 자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있을지, 묻 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 없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한 후에도, 그리고 그 이 후 또 다시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세상은 (각자 달리 호명하고, 달리 생각하 는)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육과 파괴로 넘친다. 기독교의 세속버전인 휴머니즘 도 진보주의도 작동 오류에 접어든 지 오래되었지만, 분명히 진보적인 과학과 기술 과 달리 인간은, 문화 혹은 문명은 결코 그러하지 않지만(기술의 진보와 파괴의 세 기/크기는 같이 이루어진다), 여전히 거기에 신념을 굳게 둔 채 삶을 기꺼이 헌신하 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진화가 선택하는 것은 쓸모 있는 오류이고, 인간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자유와 진리가 아니라 빵과 즐거움이며, “단지 괴롭힘을 당하는 자만 이 진리를 원”하고, 여타의 동물처럼 “음식과 성공과 여자를 원한다. 인간은, 마음이 고통을 받아 행복이 무너졌을 때만, 자신의 삶을 가둔 새장을 증오하며 그것을 넘어 서려 한다.”(로빈슨 제퍼스) 더 아픈 진리는 이것일 것이다. 인간의 비극은 옳고 그 른 것 간의 충돌/갈등에서가 아니라 “용기나 지성으로 고칠 수 없는 환경에 복종하 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러니까 “가능성 없는 도박에 도전”할 때 찾아온다는 사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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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정치적 불복종으로 인해 지금 이 순 간도 고통스럽게 살고 죽는다.(마흔 살의 이남종씨는 “국정원 특검,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며 분신자살했다. 그는 유서 말미에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라고 썼다.) 구원을 찾는 사람은 구원 불가능성이 구원이라는 점을,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해결 불가능성이 해결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2013년을 기억하며 2013년을 보내면서 나는 2013 이란 숫자를, 바로 그 해에 역사화된 두 사람 곧 만 델라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인해 오래 기억할 것이다. 물론 속세에 사는 우리 모 두, 감히 엄두조차, 심지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만델라의 초월적 용서와 포용/관용 (자신의 적을 부통령에 앉힌 것은 단 하나의 사례다), 그리고 이교도와 비천한 자와 궁핍한 자에 대해 보여준 교황의 사랑(그는 자신의 첫 교황 생일날 손님으로 세 명 의 노숙자를 초대했다)은 그 숫자보다 더 오래, 아니 평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종건의 COMPASS 34
러한 행위가 시사하는, 요청하고 재촉하는 건축적 의미를 무시로 묵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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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전진삼의 PARA-DOXA 06
아직 김(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정림건축을 통해 읽는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
Issue
1967년 설립한 정림건축이 올해로 47년의 발걸음을 뗀다. 서울에서 세계건축가연 맹의 총회가 열리는 2017년, 이들 집단은 50년의 기념비적인 시간을 맞이하게 된
21 와이드 COLUMN | 정만영
경험과 실험, 그리고 역사
25 이종건의 COMPASS 34
시간의 문턱에서
다. 김정철, 김정식 형제 사무소로 알려져 있는 이 건축 설계 회사의 초창기 비사 가 목천건축아카이브 한국현대건축의 기록 1권 『김정식 구술집』(도서출판 마티,
전진삼의 PARA-DOXA 06
전진삼 본지 발행인
2013)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29 전진삼의 PARA-DOXA 06
아직 김(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정림건축을 통해 읽는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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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 김태일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정림(正林)이라는 이름은 우리 형제가 다 바를 정(正)자 돌림이거든요. 그리고 수 풀 림(林)은 형제가 숲을 이룬다는 뜻에서 수풀 림(林).(중략) 일단 부르기도 좋고, 바르게 숲을 이루어서 번성한다는 뜻도 있고 여러 가지로 그게 좋겠다고 해서 정림 으로 이름을 택했습니다.(김정식, 2013)
설계 경기가 보여 준 슬픈 현실
사무소 개업은 김정식(정림건축 명예회장)이 그의 형 김정철과의 의논을 통해 1967 년 단독으로 회사를 만들면서 출 발하였으며 정작 김정철은 개업 후 3년이 지난 70 년 초에 정림건축에 본격 합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로는 초대형 프로젝트 라 할 수 있는 8천 평 규모의 인천 대성목재 합판 공장 설계를 필두로 기라성 같은 선배 건축가들을 제치고 당선한 외환은행 본점 등의 설계로 업계의 중심에 진입한 이들에게 당대 건축의 본좌로 통하던 김중업과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 건축가 김수 근은 극복하기에 부담스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이 르러 정림건축은 한국 현대 건축의 태두라 일컫는 두 거장의 그림자를 딛고 한국 건 축의 최정상에 서서 김(金)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현대 건축은 김중업, 김수 근, 김종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김정철, 김정식 형제가 바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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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정림건축은…건축에 대한 기본을 지키고, 본연에 충실해 왔으며, 앞으로도 “건강 한 건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정림건축, 2014 연하장) 정림건축사관학교에 대하여 본지 2013년 9/10월호(통권 35호)에서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하 목천재단)의 행 보에 대하여 기술하면서 나는 김정철, 김정식 형제의 존재감에 대하여 재론해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솔직히 이전까지 이들 형제가 이끌던 정림건축의 시절에 대하여 깊은 시선을 두지 아니하였던 바라 그것이 부정확한 정보로부터의 선입견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정식이 자신이 만들고 키워낸 모체 정림건축에서 이탈하여 디엠피건축(디엠피건축은 김정식의 맏사위 문진호와 정림건축 재직 시 회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을 박승홍의 연 대로 설립된 사무소로 당당히 이 시대의 젊은 건축인들이 주목하는 건축사사무소로 우뚝 섰다)을 설립하는 시점을 전후해서였다. 그때도 여전히 풍설에 의존한 채 이들 형제의 갈라섬의 이유에 대한 진실 게임에만 귀를 열어둔 채 뒷짐을 지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다. 이들의 건축 시대사적 궤적을 따라잡기보다는 재미삼아 이웃집 싸 움질 보는 양했다. 동시에 디자이너 개인의 이름이 드러나기보다는 정림이라는 집
전진삼의 PARA-DOXA 06
단의 이름으로 디자인의 크레딧을 정리해 온 저간의 행태에 대하여 조직이라는 무 덤 속에 파묻히고 있는 젊고 유능한 건축가들의 이름을 호명해 내고픈 얄팍한 허영 심이 작용했다. 정황이 이러했으니 이들 형제가 정림건축을 통해 이룬 업적을 외면 했음은 물론이려니와 김정철 사후 이어지고 있는 정림의 행보와 목천재단을 통해 노익장을 불태우고 있는 김정식 선생의 초기 작업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던 것이 다. 김정식이 문진호와 박승홍과 함께 정림건축을 나와 디엠피건축을 설립하는 시점에 정림건축은 사외 인물 중 이필훈과 이충노를 영입하여 공동 대표 체제로 운영하며 디자인 경영의 혁신과 시스템의 정비를 통해 위기의 정림을 바로 세운다. 그리고 다 시 이 둘의 체제를 이어서 현재의 김진구, 경민호 공동 대표 체제를 통해 비로소 사 내 출신 인물 중심의 후계 구도를 정립하였다. 정림건축은 형제 간의 우애와 신앙심을 바탕으로 했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자라난 게 아닌가 해요.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어요.(중략) 또 한 가 지는 우리가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림건축이 건축의 사 관학교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모였어요. 신입사원 교육 뿐 아니
정림건축 수주 실적(2010년·2011년·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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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건축 매출 실적(2010년·2011년·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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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1년차, 3년차, 5년차, 이렇게 교육을 자꾸 시킵니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해요. 그 렇게 인재를 양성해 내니 인재의 풀이 생긴 거지요. 결과적으로 디자인이란 게 사람 이 해야 하는 거잖아요.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가가 중요하지 아틀리 에가 아닌 한 혼자의 능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거든요.(김정식, 2013) 큰 조직의 건축사사무소가 아틀리에와 비교되는 것이 인력풀이 풍부하다, 라는 점 에서 쉽게 수긍되지만 건축의 사관학교라는 표명은 이례적이다. 연차별 교육 프로 그램에 의거하여 양질의 인력을 배양하여 건축 사회에 내보낸다는 경영 철학이 묻 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조직을 위한, 조직에 의한 인력 관리 측면에서 의의 를 찾는 편이 좋을 듯하다. 건축 사회를 위한 좋은 인재를 배출한다는 의미하고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당선의 배후에 신예 디자이너 박승 홍의 이름을 거명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외부 수혈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 럼 정림건축사관학교는 내수용에 불과했다는 나의 지적은 정당한가. 전술했듯 김정철과 김정식의 결별 이후 새 경영진 또한 외부로부터의 영입이었다는 사실은 건축 인재의 요람임을 천명했던 정림건축사관학교가 여러 면에서 자기 한계 를 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때까지 정림건축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던 수뇌부가 조직을 동반 이탈한 상태였으므로 지도부의 외부 수혈은 크게 문제시 되 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정림건축의 오너십(ownership)이 로 표출되었다. 정림건축의 회생 프로그램은 고비를 넘기며 결과적으로 제2의 전성 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 기업의 창업주가 그러하듯 성공적으로 이어갈 후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김정철 회장 생전에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필훈, 이충노 편대가 단순 외 부 처방전은 아니었다는 점이며, 그런 배경 하에 새 리더십을 향한 내외의 의구심은 오래지 않아 기우였음이 증명되었다. 김정철 사후 생성된 정림건축문화재단의 독립 된 운영과 기존 정림건축 내부 구성원의 재정비를 통한 구심력이 회복되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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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자기 사람 심기 전략은 자체로 혁신의 상징성과 생존을 향한 강한 정신력으
다. 과도기의 특수 임무를 직전 수뇌부가 완벽하게 맡겨진 중임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다. 정림 출신의 새 공동 대표 체제 그리고 2011년 현재의 김진구, 경민호 체제로 새 진용을 짜면서 업계의 관심은 상 대적으로 일찌감치 건축판에 이름이 회자되어온, 오리지널 정림사람으로서의 김진 구(61) 대표가 아닌 젊은 피 경민호(48) 대표에게로 모아졌다. 그를 아는 주변인들 은 어렵지 않게 경 대표의 친화력, 영업력 등에 방점을 찍었다. 하루아침에 화제의 중심에 선 경 대표는 이타미준건축과 서울건축을 경유하여 1994년 정림건축에 입 사 후 17년 만에 대표의 자리에 오른 초고속 승진의 기염을 토한다. 이 글의 작성을 위해 나는 두 차례 그와의 면담을 가졌다. 위기관리 능력을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극단적 혁신보다는 중간자 역할을 기대했 을 거구요. 회사를 안정적으로 꾸려가기 위해선 구세대와 젊은 세대의 조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보고자 하는 것이 오너십의 깊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경민호, 인터 뷰 중) 정림건축 용도별 매출 실적(2010년·2011년·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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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새 대표 체제에 맡겨진 임무는 지속가능한 회사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를 시스템적 으로 어떻게 현실로 정착시킬 것인가가 과제로 던져졌다. 이직률이 낮은 정림건축 내부 정황상 장기 근속자에 대한 적절한 예우가 현실적 문제로 직면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하여 보직과 연령 불문 능력과 건강이 뒷받침되는 한 계속 사무소에 남을 수 있는 평생직장 시스템을 구축하여 디자인, 기술, 고객 관리의 파트너로서 시니어급 임직원들이 정년 이후에도 공존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정림건축의 특별함이다. 경 대표는 큰 조직의 사무소가 생존하기 위해선 건축의 본질적 어빌리티(ability)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설계 사무소의 본질은 좋은 건축을 잘 해야 하는 곳이며, 영 업력 이전에 생산하는 디자인이 우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법론적으로는 다양 성에 대한 전문성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해외 사업, 주거, 의료 시설, 복합 대형 프 로젝트, 기타 시설(호텔 등)의 부문별 특화를 위해 자체 세미나를 수행해 오고 있으 며 이를 통해 미래 도시와 건축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정림건 축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실천 방안으로 현재 장기 발전 실행 매뉴얼을 작업 중에 있다고 했다. 산업의 변화와 시스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디렉 션을 제공함으로써 당장 앞으로 다가온 창립 50주년과 이후 정림건축의 지속가능 한 미래를 위해 디자인/기술/마케팅 파트 공히 전문성을 갖추고 활동할 수 있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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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구축을 우선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많은 회사를 만들자 지난 해 10월 경민호 대표는 박근혜대통령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 경제 사절단 71인 의 일원으로 수행하고 돌아왔다. 산업자원통상부가 주관한 이 경제 사절단은 수행 할 기업을 공개 모집 했는데 건축계에선 정림건축과 희림건축의 대표가 참가하였 다. 통상의 대통령 경제 사절단이 청와대 혹은 외교부 중심으로 모집되었을 시 대 기업 중심의 수행이었던 것에 반해 중소·중견 기업에 비중을 둔 이 사절단에 건축 사사무소 대표자로서 선택되었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없지 않았 다.(희림건축 정영균 사장은 베트남 경제 사절단 참가 이후 두 번째다.) 일본의 경우 경제 사절단을 모집할 때 니켄 세케이, 가지마 등 건축계의 큰 조직의 책임자가 거의 매번 동행해 오고 있습니다. 외국에 진출할 때는 건축가, 도시 인프 라를 개척하는 전문가 수행이 당연시 되는 문화이지요. 제3국가에의 원조 자금 지 원과 동시에 건축과 리서치 전문가들의 참여를 필수로 하고 있는데 이는 산자부, 환 경부가 주도하고 건축가, 엔지니어 등이 순발력 있게 조응함으로써 직접적으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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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건축 인원 현황(2010년·2011년·2012년·2013년),
정림건축 인원 현황(남·여 현황),
2013.11.30 기준
2013.11.30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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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건축가의 위상, 사회적 대우를 인위적 조정을 통해 상승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보다는 전문가 집단이 여러 형식으로 국가의 발전과 사회 변화에 주도적인 모습으로 비출 수 있게끔 상응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요.(경민호, 인터뷰 중) 정림의 혼, 정림건축의 미션 정림건축은 2002년 이래 사무소 작업과 경향성에 대한 연간 보고서 『Junglim Architecture Works』를 11권째 발행해 오고 있다. 또한 해비타트 설계 봉사 및 자 원봉사, 정림스튜디오와 연계한 장학 제도 및 각 대학 도서 기부, 협회나 학회 후원 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김정철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한 정림건축문화재단 (이하 정림재단)은 정림학생건축상, <건축신문>, 포럼앤포럼, 라운드테이블, 어린 이·청소년 건축학교, 김정철건축문화상을 기획, 주관해 오고 있는 등 건축판의 활 력을 매개하고 있는 센터로 부상하며 학생 및 젊은 건축가 그리고 타장르 아티스트, 학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림건축의 미션’을 실행하는 공 익 법인이라는 기치로 인해 종종 정림건축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없지 않다. 목천재단, 정림재단, 정림건축 모두가 두 분 창립자가 뿌리내린 한 나무에 열린 열매 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해가 없지 않아요. 그러나 외부 시각과 다르게 재단은 정림건 터 오히려 정림건축과 정림재단 둘 간의 교류가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정도입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서로 구속하는 관계는 없을 겁니다. 같은 얼굴로 보이는 것까지는 말릴 수 없지만 철저히 독립체로서의 제 위치를 지킬 겁니 다.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지요.(경민호, 인터뷰 중) 김정철, 김정식 형제 간 다른 성품의 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이 끝내 사업체 분리의 수순을 거치게 되었지만 정작 정림건축 내부자들이 느끼는 두 사람의 이미지는 다
전진삼의 PARA-DOXA 06
축의 마케팅 홍보를 염두에 둔 기관이 절대 아닙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분들로부
르지 않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함께 정림의 혼이라는 아우라에 대하여 의심의 여 지가 없다는 후배들의 인식이 그걸 증거한다. 디자인 결정 과정과 세대교체에 대한 이견 등이 표면적으로나마 형제의 갈라섬의 배경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의 정도의 심각성을 간접 경험하는 것은 아래 기술된 김정식의 회고에 잘 드러나 있다. 형과 내가 프로젝트를 하면 서로 간섭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끼어들어서 간섭하니 까 프로젝트 담당하는 간부는 혼란스러운 거예요. 크리틱할 때도 자꾸 충돌하고,(중
정림건축 인원 현황(연령별 현황),
정림건축 인원 현황(자격증 보유 현황),
2013.11.30 기준
2013.11.30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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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략) 형이 나한테 재떨이를 던지기까지 했어요. 나도 말 안 듣는다고.(중략) 결국 프 로젝트를 나누게 되면서부터 큰 마찰은 없었어요. 그래도 개념의 차이는 많아서 크 리틱할 때는 사정없이 얘기했지.(김정식, 2013) 80년대 후반부터 세대교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게 나 혼자의 생각으로 되는 게 아니고 형과 일치되어야 하니까 형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첫째는 후배에 게 다 물려줄 것이냐 하는 거였어요. 정림의 재산이 만만치 않게 있었다고. 지적 재 산권도 그렇고 정림의 빌딩 등 건물 자산, 또 정림의 이름, 네임 밸류라 하죠. 그런 데 이런 것을 다 물려준다는 것이 가능한 건지 아니면 그냥 와서 일만 맡아 달라고 해야 하는지 이런 논의를 10년 이상 해온 거 같아요. 이게 의견 일치가 안돼요. 나는 이것들을 다 맡기고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 했고 형은 그걸 찬성하지 않고. 의견이 갈려서 우리의 의견 일치도 힘들었지만 누구에게 맡기냐도 큰 고민이었다고. 디자 인 회사이니까 디자인 잘 하는 사람이 할 거냐, 그거와는 관계없이 경영을 잘 할 사 람이냐, 그게 헷갈리는 거예요. 둘 다 잘 할 수 있는 후배를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 이 아니에요.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김정식, 2013) 결과적으로 김정철, 김정식 형제의 결별은 한국 현대 건축에서 이들 형제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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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재조명케 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 두 개의 성격 다른 재단과 건축사사무소의 운 영을 통해 이전 시기 이들이 이룩한 건축의 업적과 별개 의미에서 특별한 자취를 남 기고 있다는 면에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제껏 설립 후 반세 기의 역사를 지닌 건축사사무소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경험한 바 없고, 이 땅에 건 축의 새로운 활로와 지평을 마련한 채 신·구세대를 아우르며 지속적인 건축문화 커뮤니티를 가져본 기억이 김수근의, 김수근에 의한 1970∼80년대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나마도 과거지사이고 보면, 유명을 달리 한 김정철과 현역 노 장 건축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정식의 존재로부터 찾을 수 있는 건축문화의 일 단은 소중하기 짝 없다 할 것이다. 현대 건축의 맥락 안에서 정림건축의 본산으로부터 분기한 목천파로서의 디엠피건 축과 목천재단을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은 정림이라는 이름의 거목이 건재하기에 분 파의 생성에 대하여 도타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한다. 둘 이 다르지 않은, 하나의 본산으로부터 발전적으로 파생된, 결국은 하나라는 넒은 의 미에서 인식의 공유와 그로부터 더 큰 협력의 힘을 건축 사회에 나눠줄 수 있는 정 림건축 가계도의 완성은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을 한층 명랑하게 만들 것이다. 그랬 으면 한다. 지금처럼 상호 견제의 미덕을 즐기며, 우리 건축 토양의 부족한 지점을 찾아내고 보양해 온 역할이 오래도록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뿌리깊은 나 무로 정림의 숲이 무성해질 때라야 비로소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한국 현대 건축 사에 있어서 김(金)의 시대에 대한 의미 부여가 빛을 발할 것이다. 취임 후 사장실부터 없앴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표 2인의 개실은 유지하는 것으로 했지만, 이 또한 최소화하고자 했습니다. 궁극에는 임직원이 수평적 관계로 조화하 며, 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오픈 시스템으로 안착되어야 하겠기에 취한 결정 이었어요. 우리는 탄탄한 조직을 기반으로 기후 변화에의 대응, 친환경에 대한 사회 적 수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기술, 솔루션의 개발에 앞장선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있 습니다. 디자인과 기술력, 서비스의 품질에서 최고 평가를 받는 세계적 건축 설계 전문 기업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경민호,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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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 와이드 이슈
와이드 FOCUS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설계 경기가 보여 준 슬픈 현실 김태일 본지 자문위원,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Issue
들어가며 최근 지면을 통해 좋은 건축물 소개와 함께 건축가의 삶과 직업, 설계 작업의 의미를
21 와이드 COLUMN | 정만영
경험과 실험, 그리고 역사
25 이종건의 COMPASS 34
시간의 문턱에서
29 전진삼의 PARA-DOXA 06
아직 김(金)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정림건축을 통해 읽는
한국 현대 건축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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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FOCUS | 김태일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설계 경기가 보여 준 슬픈 현실
다루는 내용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라 생각된다. 부동산
와이드 FOCUS
적 가치를 중시하는 건축이 모든 것이었던 과거와 달리, 건축 그 자체를 하나의 문화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건축인으로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건축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높아진 면도 있 겠으나 건축으로 세상을 바꾼 좋은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건축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설계 경기 등을 통해 좋은 건축물을 건립하려는 건축계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사업비의 많고 적음에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 입찰 방식, 턴키 방식 과 달리 설계 경기는 설계자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물로서의 건축물이 어느 정도 질적으로 담보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공공 기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설계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인지 설계 경기의 결과가 발표되면 항상 이런저 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설계 경기 결과에 대한 불평이 그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뒷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 일 필요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설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이야기 는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특히, 최근 제주도에서 진행되었던 가칭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이하 김창열 미술 관) 설계 경기는 추진 과정과 심사 종료 후 제출 모형의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지 면과 SNS 등을 통해 논란이 된 바 있는데, 이는 제주 건축계의 슬픈 단면을 보여 주 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또한 설계 경기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단순히 제출 모형의 처리 문제만으로 온라인상에서 불만의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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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토로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에,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 설계 경기 추 진 과정상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이를 통해 공공성과 창의성,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 는 설계 경기의 개선을 위한 몇 가지 구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논쟁1. 공공성 강한 미술관의 위치 검토는 적절했는가 현재 제주도 내에는 제주도립미술관, 저지현대미술관, 기당미술관을 비롯하여 사 설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 문화예술 향 유, 문화예술의 대중화가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창열 미술관의 건립 위치 도 저지리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문화지구 내에 위치하게 되어 시민의 사랑을 한껏 받 으며 대중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잡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자칫 예술가를 위한 예술 공간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미술관과 공원 정비를 통해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를 만든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도시 문 제와 시민의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미술관의 위치 검토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미술관의 부지 선정 과정에서 관계 전문가뿐만 아 니라 미술관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과 그에 대 한 논의가 다소 미흡했다. 이 점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행정 편의 중심의 설계 경기 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쟁2. 도립미술관으로서 규모는 적정한가
와이드 FOCUS
김창열 미술관 예정지에 인접해 있는 제주현대미술관은 2007년 개관되어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문제는 김창열 미술관이 제주현대미술관(연면적 1,773m2, 지하 1층 지상 2층)과 흡사한 규모, 즉 연면적 1,300m2에 지하 1층 지상 2 층 규모로 건립될 뿐만 아니라 미술관 내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거의 유사하다는 점 에 있다. 이는 유사 기능과 유사 규모의 미술관을 집중시킴으로써 문화예술 공간의 편중화, 상호 보완적 기능의 약화는 물론이고, 그마나 유지되어 온 제주현대미술관 의 정상적 기능마저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논쟁3. 프로그램을 신중하게 검토하였는가 프로그램은 미술관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이며, 기존 미술관과의 기능적 관 계 설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실 김창열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기 에 앞서 제주도 중장기 문화예술 정책의 틀 속에서 기존 미술관과 상호 보완적 관계 와 운영 프로그램 등에 대해 핵심적인 논의가 선행되지 못한 점은 김창열 미술관 건 립 후 운영 관리 측면에서도 심각한 오류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가칭이기는 하지만 김창열 제주도립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예정이라면, 기존의 제주도립미술관 과의 관계나 기능도 신중히 고려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일례로 최근 서울관 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존의 과천관, 덕수궁관과 함께 서울관 체제 아래 각 미술관의 특성을 살려 과천관은 원로 작가, 청년 작가 지원과 현대 미술사 연구 중심 과 전시, 덕수궁관은 근대 미술 전시와 연구, 그리고 서울관은 동시대의 현대 미술 전 시 중심으로 운영이 된다고 한다. 이와 유사하게 제주도 문화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이 <제주도 2차 제주 향토 문화예술 진흥 중장기 계획>에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김창열 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지적되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제주도 문화예술의 중장기 계획 측면에서 미술관의 위치와 규모, 프로그램 등 을 재론할 여지는 없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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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아키플랜 건축 + 오름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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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4. 심사위 구성은 적절했는가 턴키 방식과 달리 설계 경기에서 다루는 도면은 계획 단계 도면이라고 할 수 있 다. 즉 최상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어떠한 형태와 공간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를 보여 주는 일종의 아이디어 공모인 셈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공간적으로 기능적으로 계획되어 있는가, 도시적 맥락에서 형태가 수용될 수 있 는가 등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심사에는 구조 전문가, 시공 전문가 혹은 미술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다. 심사 도면은 구조적인 문제를 논의할 정도 의 도면도 아니거니와 구조 검토는 기본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 전문가의 협조 를 받기 때문에 불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심사의 공정성 을 위해 모든 도면을 흑백으로 제출하게 해 놓고선 건축물 색상 평가를 위해 미 술 전문가를 참여케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물론 설계 경기의 성격에 따 부지(붉은색 부분)
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건축 계획과 설계 분야 전문가를 중심으로 진지한 논 의가 이루어지는 심사위원 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심사위원 선정과 구성 비율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김창열 미 술관 설계 경기도 관례대로 심사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각 대학별로 심사위 원을 추천 받아 일을 진행했다. 이는 추천의 형식을 빌렸을 뿐 과거 행정 기관이 나 발주처의 담당 부서가 각 대학별 배려 차원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를 선정하 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필요에 따라 제주도 외부의 전문가를 참여시키긴 하지 만 한정된 인적 자원으로 인해 매번 돌아가며 참여케 하는 형식이 될 수밖에 없 는 것이다. 축 시공, 건축 설비, 미술관, 미술 평론, 예술 분야와 같이 애매한 분야로 구분되 어 구성되었고, 당초 발표된 심사위원에는 기증 당사자인 김창열 화백도 포함되 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사의 공정성 시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와이드 FOCUS
특히 이번 김창열 미술관 심사위원 구성은 건축 설계, 건축 디자인, 건축 계획, 건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논쟁5. 심사 다음날 쓰레기로 처리된 제출 모형 이처럼 김창열 미술관 설계 경기는 시작 단계에서 미술관이 들어설 장소 문제와 과업 지시서의 적절성 문제로 논란이 있었고, 공모 작품에 대한 심사 직전에는 심사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계 경기 심사 다음날 출품 모형들이 쓰레기로 처리되어 크게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현실 을 보면서 행정 기관이나 일반 시민들의 건축에 대한 인식 수준이 여전하다는 생 각을 하게 된다. 건축 설계는 인문학적 가치를 갖는 땅의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 로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 조건을 공간화하는 창조적 작업이기에 고도의 전문 지 식과 힘든 작업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출품작 하나하나가 참여 건축가의 전 문 지식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일 수밖에 없는데 쓰레기로 처리되 었으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참가 희망자들에게 배포된 과업 지시서의 당선작 및 입상작에 관한 사항 중에 “낙선작에 대한 응모 작품의 반환은 입상작 발표일로부터 7일 이내에 반환 받아야 하며 반환에 따른 비용은 응모자가 부담한다”라는 항목이 명기되어 있어 서 규칙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할 일이다. 오히려 당선작과 낙 선작 모두를 공공 장소에 전시하여 일반 시민들이 참여 건축가의 노력과 열정을 공유(共有)하는 것도 의미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이와 같은 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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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발주처의 노력과 애로사항, 행정 기관의 활동 등을 홍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 관 완공 후 실질적인 이용자인 시민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참여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건축에 대한 다양한 생각 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건설 경제 측면의 건축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환경으로서의 건축의 가치와 의미를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 음은 물론이다. 이런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김창열 미술관 설계 경기 주 관 부서가 문화정책과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개선의 방안은 없는 것인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설계 경기의 제출 도면은 계획 도면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들 이다. 그러나 과업 지시서의 대부분은 기본 도면으로 명기, 공고되고 있다. 어떤 경우 는 당선작의 기본 도면 작성과 검토 작업이 생략된 채 실시 설계 작업을 요구하기도 하고, 기본 설계 비용 지불은 없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과업 지시서에는 구체성 없이 포괄적이고 애매한 내용, 예를 들어 “지역성을 느 낄 수 있도록 하고” 라든지 “경관에 어울릴 수 있도록” 등의 내용뿐만 아니라 불필요 한 작업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조감도와 모형을 동시에 요구한다든지 설계 설명 서 등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과업 지시서가 오히려 설계자의 비용 부담을 증 가시켜 참신하고 능력있는 작은 설계 사무소의 참여를 막는 것이다. 애매하고 모호 이러한 내용들을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검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와이드 FOCUS
와이드 REPORT
한 과업 지시서의 내용은 설계 작업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심사 과정에서 특히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능력을 갖춘 건축가들을 추천받고 관계자 협의를 거쳐 심사 인력풀을 구성하고, 이들의 참여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설계 경 기에 참여한 업체의 입장에서는 모든 과정이 폐쇄적으로 진행되다보니 어떤 기준으 로 심사위원을 구성하였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사 진행 과정도 모른 채 결과 만을 일방적으로 기다릴 뿐이다. 이러다 보니 심사가 끝난 후에야 심사자로부터 이 런저런 이야기를 비공식적으로 전해들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 속에 갖가지 억측과 추측들이 난무하게 된다. 작품이 당선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탈락되었는지, 내 작품이 어떠한 문제가 있는 지 정확한 이해를 통해 다음 작업 과정에서 수정, 보완하고자 희망하는 건축가가 실 제로 많다. 또 그래야 발전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사 과정를 온라인상에 실시간으 로 공개함으로써 심사위원들의 발언이 책임감과 공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심사 결과에 대해서도 개별 작품에 대한 심사평의 작성과 공개, 그리고 설계 경기의 규모에 따라 크고 작은 심사 작품집을 작성하여 기 록으로 보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는 제주의 건축이 어떻게 발전 변화되어 왔 는가를 정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건축사, 건축인의 사회적 위치는 어느 정 도인가? 최근 김창열 미술관 설계 경기를 둘러싼 건축계의 논란을 보면서 건축의 사 회적, 문화적 가치와 행정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와 관련 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우리끼리 흥분하고 불쾌해 하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서 건축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와 실천적 행 동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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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부지의 지적 현황(황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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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좌담 사진_진효숙 본지 전속 사진가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21세기 도시 한옥의 미래 와 지속가능성을 탐구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설계 공모전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4(Heritage Tomorrow Project 4)>를 개최한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 도시한옥’이라는 주제로 이 시대의 한국인이 살아 가는 주거 형식으로서의 한옥과 건축의 근본적인 부분을 탐구한다. '한옥'을 전통 가옥이 아닌 한국 인이 사는 집이란 광범위한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2가 39~44, 56~60번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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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필지)를 대상지로 진행되고 있는 이 공모전 은 좌담회와 공모전 설명회 등 부대 행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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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92 와이드 EYE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과
도시학자 최종현
이보경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김용관 관계의 기록
108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이인미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114 사진 더하기 건축 16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주상연 Sangyon Joo
참가 접수한 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와이드 REPORT
이 이번 주제의 첫걸음이다.
있다. 작품 접수는 오는 2월 11일까지이고, 심사는 2월 14일 진행될 예정이다. 본지는 지난 11월 22일 진행된 바 있는 좌담회 내 용을 일부 소개한다. 한옥의 정의, 도시 한옥에서 다세대 주택 등으로 변한 한국인의 주거 양상, 역 사·지역·문화·밀도 등을 고려한 삶의 형태, 도 시와 밀도, 이 시대 젊은 건축가의 역할 등에 관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공모전과는 별개로 건축인 들의 관심사가 되는 주제들이다. 더불어 이 기록은 이후 심사 과정을 거쳐 좋은 아이디어로 채택된 안 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것이다. www.arumjigicompetition.org 김봉렬(운영위원장/좌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종규(심사위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인석(초청 크리틱, 명지대학교) 민현식(기오헌) 송인호(서울시립대학교) 김준성(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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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를 열며
한옥을 일종의 보전 내지는 계승 필요성이 있는 유
김봉렬 : 올해의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는
산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시한옥을 문화
김종규 선생을 심사위원장으로 하여 이 시대의 집합
재의 성격으로 보기보다는 진화 과정물로 간주하면
도시한옥을 주제로 한국인의 주거 형태에 대한 아이
서 진화가 완성된 모습을 제안하기 위한 참조 대상으
디어 설계를 과제로 내놓았다. 대상지는 도시한옥과
로 바라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를 좀더 설명하자면,
다세대주택, 그리고 상가가 혼재해 있는 동소문동의
도시한옥은 도시화 과정 중에 도시 토지에 대한 밀도
11필지이다. 원래는 도시한옥이 들어차 있었던 곳이
요구가 본격화되면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최초의 고
지만 다세대주택이 잠식해 들어오고 북측 대로 쪽으
밀화된 건축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후 아파
로는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다시 말해 전통적 도
트의 등장으로 도시한옥은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시 구조가 바뀌어 나가는 전형적인 사이트이다. 대상
못했다는 견지에 선다면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밀도
지를 선정하면서 한옥을 보존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
요구에 완전히 적응한 건축 유형의 비전을 보여 줄
도 거론이 됐다. 그러나 ‘보존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
수도 있을 것이다.
고, 오히려 한옥에 대한 해석, 새로운 도시 주거에 대
송인호 : 대상지는 동소문동 재개발2구역에 속한
한 해석 등을 여기서 좀 보겠다’ 라는 의도가 있다.
지역으로, 경기가 좋았더라면 이미 주상복합건물이
오늘 이 자리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땅이다. 공모전 대상지로 이 대
다는 공모전 제목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 도
지를 선택한 이유는 지금의 이 상태를 현재의 지형으
시한옥’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나누는 자리 가 되었으면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의 방향을
와이드 REPORT
제시해 본다면, 우선 ‘한옥의 경계’란 말은 한옥과 다 세대주택 사이의 물리적 경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1960년대까지 형성된 도시 구조가 1980년대 들어와 서 한번 바뀌고 그 후에 또 바뀌게 되는 시간적 경계 의 의미도 있다. 한편으로는 주거의 기본 형식에 대 한 경계를 의미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단독주택에서 집합 주택으로, 혹은 4인 가족의 1세대 주택에서 1인 가구 주택으로 바뀌는 최근의 현상과 연관이 있다.
김봉렬
‘이 시대의 집합 도시한옥’과 관련해서는 우선 ‘집합’ 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 어쨌든 도시 주거 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도시 서울은 어떻게 가야 할
로 인식하고 거기에 건축가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것인가의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좌담회는
를 보겠다는 뜻 아닐까? 한옥이 있는 상태든 다세대
‘한옥’이라는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이 시대 살림집
건축이 있는 상태든 그것을 대지로 보고 거기에 건축
정도의 포괄적인 의미, 또 도시와 관계되는 단독, 집
가는 어떻게 개입을 할 것인가. 그런데 그 개입의 정
합, 밀도 등등에 대한 의견들을 주고 받는 자리가 되
도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10만큼 개입하는 사람도
었으면 한다.
있을 것이고 90만큼 개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인석 : 실제로 이 설계 주제는 현실 법제도적인
도시한옥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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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와 물려 있다. 2011년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
박인석 : 고민할 거리로 짚이는 것들이 몇 가지
비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소위 가로주택정비사업, 주
있다. 그 중에는 한옥 문제와 밀도 문제가 있고, 좀더
거환경관리사업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사업 수단이
일반적인 문제로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가 있을 것이
들어왔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것은 기존의 도시
다. 우선 한옥 이야기를 하면, 대상지는 한 줄은 한옥
조직을 유지하면서 블록 단위 내에서 정비 사업을 벌
이고 한 줄은 한옥 아닌 것이 경계를 이루며 섞여 있
이는 것이다. 즉 도시 계획 도로는 그대로 두고 블록
는 블록이다. 물론 주최측은 그것을 의식하고 선정한
단위에서 필지 전체 혹은 일부 필지를 합필하여 정비
듯한데, 이 대상지를 놓고 응모자들이 취할 수 있는
사업을 할 수 있다. 대상지는 실제로 가로주택정비사
태도는 두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업으로 프로젝트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규모다.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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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서는 밀도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크겠지만 어 쨌든 이런 사업이 가능한 법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해 보고 싶고 해 볼 수 있는 것의 구현 김종규 : 이게 공모전이고, 더구나 계속 의문을 가 지고 진행하는 공모전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을 제시
송인호 : 2013년 상반기에 성북구청의 의뢰로 성
하게 되면 스스로의 사유에 오히려 신선한 가능성을
북구에 한옥이 몇 채 있는지 조사하였다. 성북구는
배제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제출안으로
다른 구에 비하여 재개발예정구역이 많은 편인데, 성
이곳에 실제로 집을 지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북구에 한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가 생각할 때 이것은 의미 있다, 없다 하는 가치를 너
조사였다. 한옥의 정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
무 고민하지 말고서라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혹은
단 한식 지붕의 서까래를 식별할 수 있으면 한옥으로
해 보고 싶고 해 볼 수 있는 것을 구상해 보는 것도 괜
간주하였다. 조사결과 삼선동·보문동·성북동을 중
찮지 않겠느냐, 싶었다. 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상당
심으로, 비교적 외관이 양호한 한옥에서 변형된 한옥
히 많지 않나. 한옥의 보존 여부, 다세대 건축에 대한
에 이르기까지 1,618채의 한옥이 남아있었다. 2008
비판적 시각 등등, 이런 것에 대한 과도한 고민 없이
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서울 전체의 한옥은 14,000여
진짜 이 블록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
채, 도성 안의 한옥은 4,000여 채로 추산된다. 이에
지, 도시의 집합 주거 한옥을 생각해 보고 한옥의 정
견주어 성북구에 1,600여 채의 한옥이 남아있으니,
의도 나름 내려 보고 또 현재의 상황들도 이해해 보
문화자산으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면서 하고 싶은 바를 끄집어 낼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김준성 : 개인적으론 이 시대에 한옥을 놔두는 것 만이 방법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약 실제로 이런 고민으로 보낼 것 같다. 밀도에 관한 문제와도 부딪힐 것 같은데, 현행법 적용이 조건이라면 최대로 하여 밀도를 산정할 수 있지만 그것도 자유롭게 하라 고 하면 직감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민현식 : 최대 밀도에 대한 과제는 아주 쉽고(?)
와이드 REPORT
이 공모전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가장 많은 시간을
재미있기는 하지만, 실은 너무 흔히 해 왔던 진부함
김종규
이 있긴 하다. 김종규 : 사실 집합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성북천을 따라 한옥들이 비교적 잘 보존
집합이란 개념이 들어가려면 단독 필지는 분명히 아
되어 있는데, 이번 공모전의 대상지 또한 그 한옥밀
닐 것이다. 집합의 형태로 커뮤니티를 생각하다 보면
집지역 안에 입지하고 있다. 근래에 건축법시행령에
어느 정도 밀도는 갖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한옥의 정의가 추가되고 한옥 건축을 존중하는 방향
있었다. 현재의 세대수도 많은 수가 아니다. 11개 필지
으로 건축법 완화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방자
에 16세대이다. 집합을 만들면서 그 정도 세대를 기본
치단체를 중심으로 한옥 보존과 조성을 위한 정책이
적으로 가지고 가면 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실행되고 있다. 성북구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최초 로 구민들을 대상으로 한옥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하 여 운영하는 등, 한옥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상지를 경계 지역으로 고른 이유 송인호 : 합필의 규제가 밀도의 문제, 전체 볼륨의 제어로 귀결되긴 하지만, 사실은 길과 만나는 방식
김봉렬 : 한옥은 기존 상태로 놔두고 나머지 다세
혹은 블록 자체의 조직을 통제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대주택으로 바뀐 부분만 대상지로 줄 것이냐, 아니면
나는 적어도 이것에 대한 입장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
전체를 줄 것이냐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한
한다. 밀도를 최대한 찾는 것이 되거나, 땅이 가지는
옥을 제외한 필지만으로 하기에는 너무 제약이 심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되거나. 지역에 대한 문제
니까 전체를 묶어서 주되, 그랬을 때 한옥은 어떻게
를 요청한 사람의 기본적인 철학, 시선 그 정도는 필
할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부여하게 된 것이다.
요할 것 같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 장소에서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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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지고 있었던, 남루하지만 진화되어 온 듯한 스케일을
주 전형적인 예인데 요즘은 다가구주택조차도 그렇
존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극대화된 땅의 가치를
다. 개개 집들의 삶의 모습들은 닫혀 있고 소통되지
결국 밀도로 계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밀도
않는다. 만약 이런 문제가 없을 수 있다면 합필을 한
는 적절하게 낮추면서 다른 것으로 가치를 만드는 사
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될까? 1, 2층 정도에 있는 집
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입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
들에서 도시한옥들이 골목길과 맺고 있던 그런 관계
다. 도시 차원의 스케일이나 기존의 것에 대한 주최
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다소 고층이 된다고 한들 무슨
측의 태도나 입장은 결국 왜 여기를 대상지로 삼았는
문제가 있겠는가. 규제를 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현상
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이 나올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개발 행
김봉렬 : 1980년대에 들어서 전통 주거지들이 다
위 속에서 경제성만 고려한 부정적인 개발 가능성이
세대주택으로 파괴되어 가는 상황을 보면서, 결국 주
농후하기 때문에 일반 규제로 그것을 못하게 막아 버
거지들은 변화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경계에 다세대
리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 본다
주택의 형식이 최선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변화의
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실제로 필
현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같은 조건, 똑같은
요한 것이기도 하고)은 공공이 개발하는 퍼블릭 하우
밀도 하에 다른 대안들은 무엇인가를 찾아보게 하고
징(public housing)을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싶었다. 대상지로 경계 지역을 고른 이유이다.
공공이 이런 개발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박인석 : 가만히 놔두면 남아있는 것들도 이와 비
도시 조직 속에 게릴라 식으로 점점이 퍼블릭 하우징
슷한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송인호 : 그러나 이 집과 저 집이 짝을 이뤄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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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나 새로운 도시 건축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은 1937년에 돈암지구라 는 이름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도성 밖에 새로 공급된 주거지이다. 조선주택영단에 의하여 40m × 100m정도의 블록이 조성된 후, 다시 4열 × 10열 정 도로 분할되어 각 대지에 도시한옥이 건설되었다. 보 문동 도시한옥 주거지의 경우 길에 면한 바깥쪽 도시 한옥들은 모두 다세대주택으로 대체되었고, 안쪽 켜
박인석
의 한옥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 한옥들은 짧은 골 목을 통해 진입하는데, 어느덧 80여 년 진화해 온 도 시 조직도 흥미롭거니와 다세대주택과 한옥이 연합
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도시 조직을 유지하
하여 이루고 있는 도시 풍경이 꽤 그럴싸하다. 이번
면서 저소득 계층과 중산층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가
대상 지역 역시 집들의 관계를 잘 맺어주고, 집합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상지를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거나, 결여된 기능이나 부분을
공공이 개발한다고 가정하면, 개체들의 삶의 양식에
채워줄 수 있다면 창의적인 도시 건축으로서 지속될
대한 제안과 함께 공공적 차원에서 이 동네가 필요로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약간의 인프라(infra)까지를 포함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합필
집합과 관계 김봉렬 : 집합의 방식도 꼭 수직적이거나 연립적 인 것 말고 입체적인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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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경제성을 따지는 개발을 걱정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보다 나은 도시를 위해서 유 지해야 할 속성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만 만
박인석 : 합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도시
들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공의
그레인이 커지는 것을 간접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
개입을 상정하고 퍼블릭 하우징을 생각해 보자든가,
라면, 그것이 커졌을 때 우려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동네에 기여할 수 있는 것, 개별적인 삶들이 계속 유
것이다. 그렇다면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결국 골
지해야 할 퀄리티(quality) 등을 존중해 가면서 제안
목이라는 공공 공간과 개체들이 직접 접속하는 방
하라고 한다면 굳이 다른 콘트롤(control)은 필요 없
식이 깨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닐까. 아파트가 아
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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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호 : 한 가지 덧붙인다면, 대상지 자체가 자기
이다. 이 대상지는 개별적인 지분의 합만으로 좋은
완결적인 것으로 설계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대지에
도시 주거지를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면, 골목에 면한 다른 한옥들이
다. 그러다 보니 대개는 개발업자가 개입하여 자본을
피해볼 가능성이 있다. 함께 동네를 이루고 있던 이
대고, 결국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도시를 개조하는 것
웃집들과, 또는 그 집들이 이후에 새 건물로 변화하
아닌가. 따라서 적절한 수위로 공공이 개입하여 그
더라도 더불어서 길을 만들겠다는 자세를 갖기를 기
간격을 채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본적으로는
대한다. 이 지역이 변화하는 주기에 대해서도 배려하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 수 있으면 좋
는 건축을 기대한다.
겠다. 아주 소박한 예를 들자면, 개인이 공용 공간을 내놓기는 어려우니까 공공이 다세대주택 한 채를 사
공공의 개입 민현식 : 주택공사나 서울시 등 공공 기관이 개발 을 주관한다면, 그것은 ‘사적 소유’가 아닌 체제로 집 을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 특 히 한국에서 집합 주거 즉 아파트에 대한 비판을 받
서 하다못해 관리실이나 샤워실, 공부방 등의 기능으 로 공동의 삶을 엮어줄 수 있을 것이다. 노후화 되어 가는 지역에 대하여 도시재생의 대안을 기대한다. 민현식 : 모든 집, 모든 개발이 공공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게 된 사유를 추적하면, 그것 중의 중요한 것이 사적 소유에 기인한다. 만일 공모전의 전제가 공공이 주관
자율적인 공공성 김종규 : 옛날에도 셋방과 주인집이 같이 살곤 했 다. 공공과 사적 영역의 혼재, 다양한 세대, 다양한 삶 의 공존은 사실 예전부터 있었던 거다. 지금 이 시대 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정도의 차이인 것 같다. 얼마 만큼 그런 쪽을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김봉렬 : 도시에 공공성은 필요하지만 공유의 개 념만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전지전 능한 소수가 계획하고 공급한 수많은 공유의 실패 사
와이드 REPORT
가 요구하는 것에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
례들을 봐 왔다. 이 대상지의 조직은 공공이 한 것이
민현식
지만, 단순히 택지만 쪼개 주었을 뿐 집은 개별적으 로 알아서 지은 것이다. 다만 필지의 제약이 있기 때 하며 사적 소유를 제한한다면, 상당히 많은 자유로운
문에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인데, 나는 그게
생각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도시의 삶이 아닌가 한다. 공용 개발에만 의존
김봉렬 : 사적 소유가 아닌 체제라 함은?
해서는 뭐가 나올까 싶기도 하고…. 도시한옥이 작긴
민현식 : 소유권은 공공이 가지고 있으며, 일정 자
하지만, 방금 김종규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문간채
격 조건을 갖춘 시민들이 임대하는 집, 또한 개발 이
는 1인, 2인 하숙 혹은 자취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익을 공공이 가지게 되어 그것이 다시 시민에게 되돌
주인집과 셋집이 마당을 공유하는 형태로(눈치는 봐
려지는 체제이다. 이는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를
야 했겠지만) 공공성이 약간은 있었던 거다.
벗어난다는 뜻이고….
김종규 : 이 공모전에서는 집합이란 단어가 공공
또 다른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누가 사는 집인가’에
성을 대체하고 있다. 공공 기관에 의한 공공성이 아
대한 문제이다. 즉 여러 연령대의 그룹, 다양한 소득
니라 자율적인 공공성, 또 이러한 방식의 집합 주거
계층들이 어떻게 섞여서 살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의 가능성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송인호 : 그저 공공적인 도시는 좀 건조한 느낌
박인석 : 쓸어버리거나 획일적인 방식만을 보여
아닌가? 좋은 도시는 각각의 개별 지분이 분명하되
왔던 공공의 개입은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
그 사이를 공유 공간으로 조율하면서, 개인의 욕망을
다. 소필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
선한 방향으로 모아가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한편 공
에 보통 공공이 하는 일은 공원이나 도서관을 만들
공이 개입하더라도 공과 사의 적절한 비율이 있을 것
어 주는 건데, 더 중요한 것은 공공 임대 주택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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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성 주거지 정비 프로젝
도록 하지만 으레 건물 내부에서의 공간 배분 문제로
트의 딜레마는, 정비를 통해 주거지 환경이 좋아지
접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은 이러
면 당연히 임대료가 올라갈 텐데 그러면 지금 살고
한 공용 시설을 어반 쉐어(urban share), 어반 스페이
있던 돈 없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사는가 하는 문제
스(urban space)로 확장한 개념이다. 훨씬 재미있고
다. 이것은 사적 영역에서는 풀 수 없는 딜레마다. 그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다.
래서 이런 소규모 프로젝트 중 몇 개는 공공 임대 주
민현식: 요즘 목욕탕이 많이 없어진 이유는 집집
택으로 만들어서 해소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공모전은
마다 욕실이 있기 때문이다. 동숭동에 있는 목욕탕이
이것저것 전제를 달지 않고 사적 영역에서 자발적으
사무실로 변한 것도 근처 시민아파트를 헐면서 이용
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모델을 한번 제시해 보는
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고. 정기용 선생이 무주의 동
것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
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든 것도 굉장히 중요한 아이디
별 필지에서 일어나는 행위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어였다. 사는 사람들의 의식주 해결 방법에 관심을
않겠지만, 합필을 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합필로 인
가지게 되면 상당히 기발한 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한 에너지가 발생할 텐데 그런 에너지를 몽땅 사적인 것으로 전유하는 게 우려되기 때문에 문제로 삼는 것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아니겠는가. 사적 전유만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필
김봉렬 : 대상지에 집합 주택이 형성되면 어떤 사
요한데 그것을 제안해 달라는 거다. 합필을 모두 해
람들이 살 것 같은가? 왠지 4인 가구는 살 것 같지 않다.
도 좋고, 부분적으로 서너 개로 나눠서 해도 좋고, 한 두 개는 놔두고 나머지만 합필해도 좋으니 그것으로
와이드 REPORT
생기는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어디에다가 배분할 것인가, 그것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야 할 것 이다. 김봉렬 : 다세대주택은 계단실 빼고는 공적 영역 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비판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민현식 : 진해에서 1년 여 지냈던 적이 있다. 진해
송인호
에는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하숙집’이 없고 단 순히 방만 빌려주는 집만 있을 따름이어서 식사는 밥 집에서, 샤워 등은 인근 목욕탕에서 하곤 했다. 차량
민현식 : 요즘엔 4인 가구 자체가 없지 않나 싶다.
이 출근 시 밥집으로 데리러 오고 퇴근 시 밥집에 데
김봉렬 : 부부만 있는 가구, 1인 가구들이 도시에
려다 주었고, 목욕비는 월급날 약속한 금액을 지불했
가까운 쪽을 주로 찾는데 이 사람들 사는 걸 보면 주
다. 궁색한 샤워실보다 훨씬 나았고, 목욕탕은 안정적
말에도 거의 밥을 안 해 먹는다.
인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다. 이미 그곳
박인석 : 2010년 센서스상으로도 부부와 자녀가
은 ‘방의 도시’였다. 주거 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이 대
포함된 가구가 반이 안 된다. 자녀가 있든 없든 ‘부부’
부분 도시가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요즈음 다가구,
가 포함된 가구를 다 합쳐도 전체 가구의 56% 정도
다세대주택, 원룸 등을 만들면서 모든 기능들을 갖추
로 절반이 겨우 넘는 수준이고, 이것도 금방 50% 이
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수월한 해결 방법이 아닐
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미 부부가 있는 가구가 보편
까 여겨진다. 그것이 현대적 노마드(nomade)들의 가
적이지 않은 상황이 됐다.
장 자연스런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다. 따라서 대상
민현식 : 4인 가구라 조사된 가구라도 자녀가, 아
지에 사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버지 또는 어머니가 다른 곳에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
‘특별한 주거’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이다. 이것이 현재의 일반적 가족의 모습이 아니겠
박인석 : 재미있는 말씀이다. 요즘 관심을 모으 는 쉐어 하우징(share housing) 개념은 개인 영역으 로는 방만 제공하고 공용 시설은 한데 몰아서 공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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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김봉렬 : 홍콩은 오래 전부터 부엌이 없더라. 음식 을 사와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장소, 식당 정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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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식 : 사실은 식당도 거실을 겸하는 게 대부분
아마도 도시한옥 또는 단독주택을 기본으로 하되 공
이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유 영역과 집합의 질서로 조직된 도시 주거지로 진
앞서 얘기한 거주민들의 성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화된 모습은 아닐까. 집합이란 것은 물리적인 집합일
져야 할 것이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의 네트워크일 수도 있겠다. 그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곳의 ‘식당’들은 점심시간에
런 정도가 주어진 과제일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렴한 ‘식단’을 팔고, 저녁에는 점심 메뉴가 없어진
아무리 착한 이웃끼리 만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
‘주점’으로 바뀐다. 이와 같은 시간적인 쉐어(share)
지는 않는다. 땅값이라는 현실도 있고 다른 지역과의
는 주택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내 친숙한 친구 두
불균형의 구조도 있고, 그래서 나는 반드시 공공의
분은 ‘방’ 하나를 빌려서 주중과 주말로 나누어 사용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개입은 자본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쯤에 오면 우리가 정의한 ‘기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법제를 통해서도 이루어
능’들이 현대에 얼마나 변화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하
질 수도 있고, 창의적인 인력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
리라 본다.
을 수 있다.
김봉렬 : 방 하나를 2교대로 쓰는 것은 오래 전 구로공단에서 벌어졌던 상황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동네로서의 가치
민현식 : 언젠가 TV에서 본 소위 ‘닭장집’은 낮에
김봉렬 : 개발이 안 될 것만 남았다는 얘기인데,
는 부모가 쓰고, 밤에는 자녀들이 쓰는 집이었다. 부
그렇다면 앞으로의 운명은? 현재 성북구에만 1,600 여 채가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송인호 : 그래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소 위 개발업자의 입장에서는 이익만 발생한다면 아무 는 골목이든 다 지워지고 말 것이다. 공공의 역할이 라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도시의 정 체성이 담겨 있는 장소들을 지켜 주는 것 아닌가? 이 지역에 대하여 공공이 투자한다면, 거시적으로 보면 가치가 발생할만한 지역이다. 2000년에 북촌가꾸기
와이드 REPORT
리 좋은 한옥이든, 풍경이든, 공동의 기억을 담고 있
사업을 시행한 이후, 북촌의 한옥 1,000채는 다세대
김준성
주택으로 대체되지 않고 지켜졌다.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는 있으나 북촌과 서울 도심의 전체적인 가치는 모가 밤에 장사를 하고 자녀들은 낮에 학교에 가게 되니, 밤과 낮의 집의 사용자가 바뀐다.
상승되었다. 민현식 : 북촌에도 문제가 많다. 생활하는 주택으 로서의 한옥이 아닌 상업 시설로 전환된 한옥이 많아
낯선 도시와 익숙한 한옥의 만남,
져서, 상대적으로 24시간 생활하는 주민의 수가 급격
그리고 그것의 진화
히 줄어들었다. 그것은 서촌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
송인호 : 물론 새로운 유형의 주택과 주택들의 집
면 무서워지는 동네가 되어 버린다. 소위 도시 공동
합은 필요하다. 그러나 도시한옥은 근대의 도시 조직
화 현상이 주거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번 공모전
에 전통적인 한옥 유형이 적응하여 진화된 도시 주택
에 사는 동네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아이디어
유형이다. 도시한옥 자체로서도 그 시대에 적합한 주
가 필요한 이유이다.
거 형식이었고, 도시한옥들이 모여 만든 동네도 참조
송인호 : 말씀하신 대로 지난 10여 년 동안 북촌
할 만한 도시 조직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말 빠
에는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정책이 없었고, 지역이
른 속도로 지가가 상승하고 도시가 불균형한 상태로
가지고 있는 역사 층위에 대한 존중도 부족했다. 북
개발되면서 도시와 한옥이 유지해 왔던 변화의 흐름
촌의 한옥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아 내었다는 점에 대
이 크게 위협받게 된 것이다. 만일 그 변화가 정상적
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지금 지적하신
인 속도로 진행되었더라면, 그리고 바라건대 우리 사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북촌
회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면,
과 서촌의 경험과 반성을 바탕으로 한옥이나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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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골목과 같은 건조 환경과 더불어 그것을 지탱해 온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속하는 체계에 대해서 논의해 야 한다. 민현식 : 북촌의 풍경이 달라졌다. 예전엔 골목길 에서 할머니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
박인석 : 대상지에 비워진 땅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김봉렬 : 유료 주차장으로, 주차장의 필요성도 조 건이 될 것이다.
만, 이제는 관광객의 행렬이 그것을 대신한다. 물리적
박인석 : 일본에서는 차고지 증명제 때문에 이런
인 공간은 남겨졌으나, 생활이 바뀐 골목길은 ‘그 골
유료 주차장이 동네마다 있다. 일본에서는 도시를 다
목길’이라 할 수 없다.
공질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유료 주차장
박인석 : 그게 항상 부딪히는 딜레마인데 해결 논
이 그런 효과가 있다. 차고지 증명제 등으로 주차장
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도시한옥은 서울시의
확보가 의무화되어 주차장 수입이 일정 수준 보장된
단독주택 필지 전체 중에서 비율이 몇 퍼센트밖에 되
다면, 다가구, 다세대주택을 함부로 지으며 사업 리스
지 않는다. 이 얼마 남지 않은 도시 조직과 건축 유형
크를 감수하는 것보다 그쪽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날
을 굳이 현대에 맞는 삶의 양식이나 주거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유에서 없애야 할까. 그것은 다른 곳에서 찾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 자체는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또
와이드 REPORT
다세대, 다가구, 원룸, 도시형 생활 주택
김봉렬 : 다세대, 다가구주택의 탄생과 미래에 대 해서 말씀을 좀 해 달라.
다른 더 큰 가치를 향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지
박인석 : 다세대주택이 먼저다. 다세대주택을 처
원을 통해서든 이것은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음 만든 동기는 아주 나이스(nice)하다. 1984년에 건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갖는 가치
축법에 다세대주택이라는 유형이 새로 만들어졌다.
때문에라도 상업화될 우려가 있다. 주거를 위한 집
그때까지는 대부분의 단독주택이 문간방에 세를 주
대신 모양만 유지하는 박물관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릴
거나 미니 2층을 만들어서 아래층에 세를 놓는 형태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공공의
였다. 잘 사는 집 몇 채 빼고 거의 모든 단독주택들이
개입으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한옥, 퍼블릭 한옥을 만
2가구 이상의 다가구 동거 패턴을 갖고 있었던 것이
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한옥은 가치 측면
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은 주택 불경기 때문에 주
에서라도 그대로 유지하는 게 합리성이 큰 방향이고,
택건설이 매우 부진한 상태였다. 실제로 주택보급률
그것을 사람이 사는 풍경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이 70%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묘수
정책이 개입해야 할 지점이다. 물론 그랬을 때 그 방
로 탄생한 것이 다세대주택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
향에서 보여줘야 할 시범적 설계란 도대체 무엇인가
독주택에 세를 주어 여러 가구가 사는 것은 불법이
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었다. 단독주택은 모두 1가구 주택으로 허가를 내줬
김준성 :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지하철 안에서
기 때문에 미니 2층을 지을 때도 마치 2층집인 것처
은평구 한옥 마을 분양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걸 보
럼 허가를 받은 후 계단을 막아서 세를 주는 편법들
면서 내가 생각했던 한옥 동네, 보이지 않는 질서로
을 썼다. 그것을 양성화시켜서 주택 건설량을 늘리려
나열된 한옥과 찌그러진 부재와 구불구불한 골목, 그
는 의도로 만들어 낸 것이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
리고 집과 집, 집과 골목 사이의 관계들이 나타나 있
택이란 이름으로 한 필지에 여러 세대용 주택을 지
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개량 한옥으
을 수 있게 했으니 하위 주택시장이 붐업(boom up)
로 도시 구조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됐다. 20세대 이상은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사업승
생각을 했다. 이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도 재미있을
인을 받아야 하므로 이것을 피할 수 있는 19세대까
것 같다.
지 다세대주택으로 지어졌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
김봉렬 : 쓸어버리고 새로움을 만드는 것은 손쉬
주택경기 상승기에 이것이 과잉 공급되기 시작하자
운 해결이다. 이런 조건을 준 것은 기존의 상황, 밀도
1990년에 다시 만들어진 주택 유형이 다가구주택이
와 용도들을 존중하면서 어떤 해결책을 찾아내느냐,
다. 다세대주택과 거의 같은 것을 세대별로 분양은
이런 게 사실은 숨겨져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못 하고 임대만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다가구
존중은 꼭 보존의 문제라기보다 조금 바꾸든지, 조금
주택은 단독주택이고 다세대주택은 공동 주택이다.
솎아 내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세대주택은 부분 등기가 가능한, 분양이 되는 집 이고 다가구주택은 부분 등기가 불가능하고 주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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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살면서 세만 줄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다가구주택
다. 설계뿐만 아니라 기획, 편집 등등 다양한 일을 해
도 전부 담장조차 없는 빌라처럼 짓는다. 그것도 원
나가면서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제
룸으로.
도화된 건축가와 많이 다르다. 이처럼 설계업을 기피
김봉렬 : 다가구 패턴이 진화한 것이 원룸 형식 인가?
하기도 하지만 또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그야말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 한
박인석 : 19세대까지 가능하니 더 잘게 쪼개서 세
다. 한쪽에서는 좌절과 도태로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
대 수를 늘린 것이다. 초기의 다가구주택은 대부분
이 있고, 거기서 버틴 친구들은 기존의 건축가 개념
3~4인 가족용으로 지었는데, 1인 가구의 수요가 늘
과는 다른 개념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
어나면서 원룸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다. 보통 젊은 건축가의 기준을 45세로 잡고 있는
김봉렬 : 서울의 인구는 20년 동안 정체되어 있
데, 여기 계신 분들은 45세 때 거의 입지를 굳히지 않
는 상태고, 반면 가구 수는 막 늘어났다. 1인 가구가
았나. 어쩌면 젊음이란 게 10년 이상 연장된 건지도
많아진 것이다. 아마도 그것에 맞춰서 나온 것이 도
모르겠다. 아무튼 젊은 건축가를 통해 기대하는 것을
시형 생활주택 등일 것이다.
짤막하게 적긴 했다. 젊음의 특권은 도전과 질문으로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기성 세대들은 그것에
이 있다. 하나는 단지형 연립(단지형 다세대)이고 또
기대를 갖는다. 그래서 전체 과제도 스스로 물어보고
하나는 원룸형이다. 도시형 생활주택 입법은 두 가지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조건들을 풀어 놓은 것 같다. 스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1인 가구가 늘어나니
스로 질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공을
빨리 대응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차장을 완화
들여야 하겠지만, 이번 공모전이 원하는 것 중의 하
해 주면서 원룸을 장려하였다. 또 하나의 목적은 단
나가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독주택지를 언제까지 열악하게 놔둘 수 없다는 입장
하다.
에서 나온 것이었다. 놀이터도 없고 주차장도 전쟁터
민현식 : 끝으로 책을 읽다가 쓸 만한 내용이 있
인데 그것을 해결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어 소개할까 한다. 심사하는 데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그래서 300세대 이하의 단지를 만들어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자본론의 어느 각주에 있는 말을 데이비드
것이 단지형 연립, 단지형 다세대이다. 작은 단지를 만
하비(David Harvey)가 변용한 것이다.
들겠다는 이야기이다. 그게 인기가 없어서 다행이지
‘우선, 이 집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둘
불붙기 시작한다면 정말 큰일 날 일이다. 아직은 원룸
째, 이 집이 지어짐으로 해서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
만 붐이 좀 불다가 공급 과잉으로 멈칫한 상황이다.
적 관계는 무엇인가. 셋째, 이 집을 지으면서 동원된
와이드 REPORT
박인석 :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것도 두 가지 타입
새로운 기술과 재료는 무엇인가. 넷째, 이 집이 가지 젊은 건축가의 전문가적 대안을 기대하며 김봉렬 : 마지막으로 젊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 를 해 보자. 이번 공모전은 ‘젊은 건축가를 위한 설계
고 있는 상징적이고 정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다섯째, 이 집의 생산 방식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이 집으 로 하여 생활의 질은 얼마나 향상되었는가’ 등이다.
공모전’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특히 이로써 학생 공모 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젊은 건축 가는 건축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민현식 : 역차별이 있는 것 같다.(웃음) 송인호 : 학생도 젊은 건축가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김봉렬 : 학생은 건축가라기보다 예비 건축가라 고 보았다. 어렵게 5년제 학제가 되었지만 거의 모 든 대학이 50명 졸업에 10여 명 정도의 설계업 종사 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 10명도 정착 못 한 채 부유하 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젊은 건 축가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시장에 서 살아남은 친구들 얘기이긴 하지만 젊은 건축가에 겐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뭐든 안 가리고 일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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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돈암지구의 형성 과정
업지구 가운데 돈암지구와 영등포지구는 가장 먼저 사
대상지(동소문동 2가 39~44, 56~60 총 11개 필지)
업이 착수되고 완료된 지역이다. 나머지 지구들은 대현
는 현재의 돈암동, 동선동 1-5가, 동소문동1-5가, 안
지구와 신당지구를 제외하고 해방 이전까지 별다른 공
암동1-4가, 삼선동1-3가, 보문동 1-5가와 함께 일제
사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빈 땅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
강점기에 돈암지구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총독부에
고 해방 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토지구획정리사업지
의해 토지구획정리사업(1936년)이 시행되어 현재까
구 내 방치되어 있던 땅들은 피난민이나 전쟁 난민들
지도 당시의 도시 조직이 잘 남아있다. 따라서 돈암지
에 의해 점유되면서 본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변하게 되
구에서 진행된 사업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대상지
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토지구획정리사업의 본래 계
가 형성된 시기와 배경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획대로 사업이 진행된 곳은 돈암, 영등포, 대현, 신당 등
것이라 기대한다.
네 군데 정도의 지역이고 나머지는 행정 및 재정의 부재
돈암지구 일대는 조선 시대에는 도성과 인접한 성저십
로 인해 사업이 본래의 의도대로 완료되지 못하였다.
토지구획정리사업 대상지(10개 지역, 1937-1939년), 서울시 토지구획정리백서 참조
와이드 REPORT
리 지역에 해당하던 곳으로 주로 서울에 채소 및 쌀을 공급하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돈암지구 내 도시한옥의 등장
까지는 몇 개의 소규모 취락이 있었을 뿐 돈암지구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돈암지구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규모가 큰 주거 지역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서울의
계획되어 서울의 도시 성장과 더불어 조성된 새로운 주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하던 1930년대까지도
거지(사업 시작 불과 3-4년 만에 대규모 주거지로 바
이 지역 인구가 4,000명 미만이었음을 감안할 때, 주거
뀌게 되었다)로 본래의 사업 계획이 반영된 몇 안 되는
지로서의 기능은 미미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지구이다. 그런데 여기로 흥미로운 점은 돈암지구에 공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되어 개발되기 이전에
급된 주거 유형이 조선총독부의 계획 의도와는 다르게
도 돈암지구는 총독부에 의해 몇 차례 도시계획(대
건축되었다는 것이다. 즉 총독부는 돈암지구 내 토지구
경성계획에 포함)이 이루어졌으나 이들 계획들은 실
획정리사업을 수립하면서 건축될 주거 유형을 일식 주
제로 실행되지는 못하였고, 본격적으로 주거지로 개
거를 바탕으로 계획하였으나 실제로 지어진 주거 유형
발되기 시작한 것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면서
은 일식이 아닌 한식 목조의 도시한옥이 많은 부분을
주거지 블록(사방이 도로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여
차지하였다.
러 필지가 모여 형성된 구획의 단위)이 형성되고 블
도시한옥은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도
록들에 필지가 분할되어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 환경(대규모 필지 공급, 대량 생산, 분양을 목적으
1937년 이후였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돈암지구 외에
로 하는 근대적 경영 방식의 도입)에 대응하여 출연한
도 1936년 새롭게 편입되어 확대된 서울의 경계 내
도시 주거 유형으로, 도시 환경의 물리적 변화에 따라
(경성부)에 10개의 지구를 지정하여 토지구획정리사
전통적인 구축 원리(채의 구성 및 결합, 주변과의 관계
업을 실시하였다.
등)가 변화하여 새로운 도시 조직 속에 자리잡게 된 도
이처럼 조선총독부가 돈암지구를 비롯하여 도심부
시주택(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서울에 집중적으
주변으로 토지조성사업을 확대하게 된 이면에는 서
로 지어진)이다. 따라서 도시한옥은 주거지 구조(지형,
울의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한 무질서한 도시의 팽창
필지의 공급과 분할 방식, 규모, 형태 등)와 밀접한 관
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도시 관리적 측면과,
계를 갖는다.
주거지 및 공업지의 공급을 통한 도시 기반 시설을 확 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러한 조선총독부의 정책
블록/필지 계획과 주택 유형의 불일치
은 당시 급격한 인구 성장에 따른 주거지 부족과, 우
대상지가 속해 있는 돈암지구의 경우 개별 필지의 크기
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한성부를 경성부로 바꾸면서
는 북촌과 같은 도심부의 도시한옥 주거지 모습과 유
시행한 행정 조직 및 구역의 개편 시기와 맞물려 빠르
사하지만 주거지 블록의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는 차이
게 진행되었다.
를 보인다. 즉 유사한 격자형 도시 조직을 하고 있지만
1900년대 이후 서울의 인구 변화를 살펴보면 1910년
공급하려는 주거 유형이 달랐기 때문에 블록의 규모와
이전까지 20만 정도의 인구를 유지하다가 1910년 우
형태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북촌에서의 대규모 필
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되면서 24만 명으로 늘었고, 이
지 구획이 주로 한옥을 짓기 위한 것이었다면 토지구획
후 1925년 30만 명, 1935년 40만 명으로 가파르게
정리사업지구 내 주거지 조성은 일식 주거가 그 기준
상승한다. 그리고 1936년 서울의 경계가 다시 조정되
이었다. 대상지를 비롯해 돈암지구의 동서 가로에 면한
면서 서울 인구는 70만 명을 넘어 1942년 100만 명
장방형 주거지 블록이 많이 발견되는 것(312개 블록
에 이르는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이 같은 급속한 서
중 94개, 전체의 약 30%에 해당한다)은 북촌 등의 다
울의 인구 증가는 많은 부작용을 낳기 시작하였다. 먼
른 지역 도시한옥 주거지와의 차이점이며, 이는 곧 필
저 주거지가 부족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기반 시설도
지 공급이 도시한옥을 위한 것은 아님을 보여 주는 예
부족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주택
이다. 이러한 블록/필지 계획과 주택 유형의 불일치는
지를 필요로 하게 되면서 조선총독부는 토지구획정
1990년대 초 변화된 밀도에 대응함에 따라 일부 필지
리사업 같은 대규모 주택지 공급 사업을 실시하게 되
에 다가구 건물이 들어서며 더욱 심화되어 현재에 이르
었다.
고 있다.
돈암지구를 포함한 10개 지구에 대한 토지구획정리
자료 정리_정평진/본지 인턴 기자
토지구획정리계획 평면도
1972년 한옥군집
1991년 최초 개별 필지의 건물 변화
1993년 나머지 세 필지의 건물 변화
1996년 주차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한 필지의 한옥 제거
사업은 해방 이전 대부분의 사업을 착수하였으나 공 사 진행 및 잔무 처리 과정 중에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
<참고 문헌>
이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환지 처분이나 등기, 잔
동대문 밖 돈암지구 주거지의 형성과 변천,
공사와 같은 업무가 중단되어, 사업이 시작된 이래 20
서울학연구 제37호 pp.1-46, 김영수 돈암지구
여 년이 지난 후에야 모든 사업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1940-1960) 도시한옥 주거지의 도시조직,
이들 해방 이전 실시된 10개 지구의 토지구획정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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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연구 제22호 pp.171-197 김영수
2005년 최근의 모습
Wide Work | 와이드 워크
W O R K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민현준 Mihn Hyunjun
1 진행_정귀원 본지 편집장 사진_남궁선 본지 전속 사진가
설계 엠피아트 시아플랜 컨소시엄 위치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65 외 4필지 대지 면적 27,264.37m2 연면적 52,101.38m2 건폐율 41.06% 용적률 70.34% 규모 지상 3층, 지하 3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철골 트러스조 설계 기간 2010.08-2011.08 공사 기간 2011.12-2013.06
민현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U.C.버클리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Wo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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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민현준
Mihn Hyunjun
SOM샌프란시스코에서 실무를 쌓았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엠피아트(mp_Art Architects) 대표로 활동하면서 홍익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초기 작업으로 다양한 분야의 도시 오픈 스페이스에 대한 작업들을 해 왔다. 공원, 교량, 포켓공원 가로설계, 간판설계, 환경조각 등의 작업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기능이
54 DIALOGUE
오래된 땅에 미래를 짓다
64 CRITIQUE 0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장소와 공간
75 CRITIQUE 02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
고정되기보다는 가변적으로 작동하는 공간, 비워가면서 기능을 부여하는 공간 배열 등을 탐구했다. 최근의 건축 작업들은 유사 건축, 즉 환경 디자인의 기초 작업으로부터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건축에 적용한 결과이다. 행복도시 중앙공원 국제 현상 설계(2007), 마곡지구 교량 아이디어 공모(2008), 공주미술관(2009), 수변 도시 비전 공모(2009) 등,
Wo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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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마누
Hotel MANU
정기정
Jung Kijung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 경력이 있다.
84 CRITIQUE
가면의 꿈: 호텔 마누의 대지와 창
사진 박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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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교육 시설에서 남쪽을 바라본 전경. 기무사와 종친부 건물을 품은 대지는 경복궁과 북촌을 이웃하며 서울의 역사적 중심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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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복원된 종친부 건물에서 바라본 전경. 자세를 한껏 낮춘 납작한 육면체들은 관람자, 마당, 도시의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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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전시 공간에서 바라본 북쪽 전경. 입면의 주재료로 쓰인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테라코타
열린마당에서 종친부 건물에 이르는 공공 보행 통로
미술관 경험 후 여운을 담고 올라가는 계단. 경복궁마당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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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마당은 삼청길의 연장이기도 하고 활짝 열린 미술관의 대문이기도 하다.
기무사 본관 뒤쪽으로 연결되는 미술관. 테라코타 타일이 기무사 본관의 벽돌 건물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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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DIALOGUE
오래된 땅에 미래를 짓다
‘기무사 본관’이란 존재 2009년 서울관 건립 확정 후 아이디어 공모전과 본 공모전을 거쳐 설계 안을 선정한 국립현대미술 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이 지난 해 11월 완공되어 문을 열었다. 무엇보다 서울관은 기무사와 종친부 등의 역사적 건물과의 갈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 왔다. 특히 2008년 이미 등록문화재 제375호로 등록된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이하 기무사 본관)은 미술관 신임 관장의 “기무사 본관 철 거 불가피” 주장으로 2009년 한 해 역사문화유산계와 건축계/미술계 등의 뜨거운 감자가 되기도 했 다. 철거는 잠정 보류되었고, 2009년 11월 아이디어 공모전을 앞두고 ‘구 기무사 사령부의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 활용 및 방향성에 대한 연구’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발주로 그나마 다행히 이뤄졌다. 이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국군기무사령부 본관(구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은 1928년 개원한 경성 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 진찰소 건물로 1932년 일부 준공한 이후 1933년 증축을 통해 완성된 철근 콘크리트 3층 건물이다. 외벽은 벽돌조로 내부 칸막이벽은 목조심벽으로 구성되어 있고, 평활한 벽면, 수평창, 비대칭적 입면 등 초기 모더니즘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존 건물이 거의 없는 일제 시대 병원 건축물로서 근대 의료사적인 측면과, 1970년대 이후 당시 보안사령부 본관으로 사용 되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무대인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이상 위의 보고서)
WORK 1
이처럼 기무사의 존재가 부각된 상황에서, 근대 건축물이 지닌 다양한 가치를 보존/활용한 사례가 많 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만한 체계적인 시스템도 미비한 상황에서, 그리고 정해진 공사비와 공사 기간 이 조건으로 내 걸린 상황에서, 설계자의 해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건축가 : 우선 등록문화재는 다른 용도로의 활용을 전제로 하는 문화재 형식임에 근거하여 기무사가 미술관으로 변경 활용된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외부보다는 근대 건축의 특징이 철근 콘 크리트와 공간이란 점을 보존하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간 구조의 원형은 대체로 살리고 전시가 가능하도록 층고를 조정하기 위해 일부 층을 오픈하고 보강하는 방법을 택했어요. 공간 활용 에 더 집중한 거지요. 원래 전시장으로 계획했던 3층 공간은 창문이 있어서 나름 독특한 분위기가 연 출되었어요. 장소특정적인 전시장으로 좀 작은 작품을 전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공사 중에 서울관의 위상이 변하면서 더 많은 사무실 공간이 요구되었고, 결국 전시장은 사무실로 바 뀌게 됐어요. 그런데, 보고서가 제시한 활용 대안은 건물 전체를 보존하는 방법과, 전면/측면을 포함한 외피, 중앙 홀, 두 개의 계단 등을 보존하고 나머지는 건축가의 해석에 따라 활용하는 방법, 외피는 보존하여 전 체적인 근대 건축의 인상을 유지하고 내부는 건축가의 해석에 따르는 방법 등이었다. 건축가 : 문화재 위원들은 외관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 형식의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 니다. 우리가 제시한 안에서 기무사의 창호는 그냥 매끈한 유리 면의 형태였어요. 단열이 의무화되어 완벽하게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미술관으로서의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공사 중에 문화재 위원들의 자문을 받으면서 외피는 원형을 유지하는 방향이 됐어요. 저는 원형 복원도 좋 지만, 작게 그려진 옛날 도면을 보고 비슷하게 만드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50/1, 30/1 창호 입면 상 세도로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부분인데….심의 과정에서 문제는 지적해도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관 심을 많이 안 가지는 것 같아요. 저희가 설계 변경을 해서 옛날 단조로 제작된 철제 창호의 느낌을 내 야 하는데 어느날 가 보니까 저렇게 현대식 철제 창호로 완성되어 있더라고요. 무엇보다도 기무사 본관 건물의 1층 전체를 활짝 열어 지금처럼 옹색한 출입에서 벗어나고자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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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은 원래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것은 수많은 방문객이 예상되는 대형 미술관이란 팩트에 주목한 것으로 열리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건축가 : 저희와 문화재 심의위원들은 기무사가 입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엔 생각을 같이했지만, 상황 은 1,000평 건축물의 입구가 아니라 10,000평 건축물, 그것도 개방적인 용도로 연인원 200만 명이 출입하는 입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입구와 캐노피가 중요하다고 보는 문화재 위원들과 대화 를 통해 협의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원형대로 복원되었는데, 미술관 입구가 여러 개 생길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예요. 입면의 주재료는 기무사 본관의 벽돌 건물과 어울릴 수 있도록 흙이라는 공통의 원료를 가진, 따뜻하 고 밝은 느낌의 테라코타 타일을 선택했다. 건축가 : 감리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체 건물 마감은 의도적으로 거칠게 했지만, 외 부 테라코타 타일 마감 만큼은 설계할 때 목업까지 진행하면서 디테일을 정확하게 살렸습니다. 두꺼 우면서도 휘어진 형태의 테라코타는 국내에 없어서 독일에서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인데, 곡면의 디테 일과 재료의 성질, 음영 스터디를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시킨 거지요. 결과적으로 계절과 시간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고요. 아마 세월이 흐르더라도 풍화된 기와지붕처럼 근사 한 멋을 지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무사 본관의 협소한 입구와 수익 시설 현재 기무사 1층은 로비의 일부로 쓰이면서 아트숍 자리로 활용된다. 기무사 본관의 협소한 입구는 건축가 : 기무사 입구가 축소되니 자연스럽게 수익 시설의 입구가 더 커 보여서 걱정이 됩니다. 테이 트 모던에서처럼 이상적인 업체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조달청 발주를 통해 더 상업적인 업체가 자리 잡기도 하고요. 기무사는 시내에서 진입할 때 삼청동 길에서 만나게 되는 미술관의 첫 인상인데 그러 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해요. 원 설계와 비교해 보면, 미술관 입구는 축소되고 상업 시설은 부각된 셈이죠.
WORK 1 dialogue
미술관 마당에서 로비나 카페테리아로 드나드는 출입문을 통해 보완이 됐다.
예전에 비해 미술관 시설에서 수익 시설의 비중은 커졌다. 그 위상도 관람자의 시점에서 변화하고 있 는데, 즉 미술관 안에서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외부로 과감히 나와 미술관을 보조하면서도 독립적 으로 관람자를 유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건축가 : 무엇보다도 수익 시설의 규모가 커진 듯하여 걱정스러워요. 게다가 미술관의 수익 시설이 라면 개념을 갖고 신중하게 들였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의문이고요. 맛집에도 철학이 있지 않 나요? 미술관의 레스토랑이라면 품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겠죠. 아트숍도 좀더 대중을 타깃으로 대중과의 소통에 촉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 래도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테이트 모던의 식당을 생각합니 다.(웃음) 역사의 파편과 새로운 기능 삼청동 길에서 미술관 너머 보이는 한옥은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으로, 원래 기무사 터는 부속의원 설 치가 결정될 당시 총독부 학무국 소유로 있던 소격동의 종친부 터였다. 종친부 건물 10여 채 중 모진 세월 속에서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건물이 경근당과 옥첩당이다. 이들은 테니스장 건립에 자리를 뺏 겨 근처 정독도서관으로 이전을 했고, 일련의 서울관 건립 과정에서 다시 원 위치 복원이 제기됐다. 이들의 원 위치 복원은 기단부와 주변 시설 터의 기초 유구가 발굴되면서 더욱 힘을 받았다. 결국 건 축가는 경근당과 옥첩당을 원 위치에 복원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옛 건물을 바라보는 역사문화유산 전문가와 건축가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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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건축가 : 저는 남아있는 유적은 존중하고 보존해야 하지만,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복원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소격동 165번지에는 종친부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친부 건물을 부수고 들어온 기무사도 문화재가 된 역설이 있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있는 기능인 미술관을 전체로 보 고 기무사 종친부 등은 조각난 파편들로 봤습니다. 로마시대 유적이 갖는 폐허의 분위기는 방문자에 게 역사의 여운을 주거나, 새로운 상상력의 근원으로 다가서지 않나요? 우리는 마당을 약간 변형해서 종친부의 안마당과 바깥마당의 형식을 보존하고 종친부의 기본적인 공간 구조만 유지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문화재 쪽의 의견은 종친부의 배치 형식을 완벽히 보존하고 솟을대문부터 세우길 원했어요. 저는 기무사 문화재를 없애야 가능하다고 했죠. 결국 솟을대문에서 경근당에 이르는 전통 형식을 재현하기 위해 미술관의 주요 기능은 지상에서 좌 우로 나뉘어졌고, 지하층에서 연결을 도모하게 됐다. 건축가 : 축선상에 중문이 있었고 솟을대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종친부 터와 경복궁의 동측 담장 사 이에는 중학천이 흘렀고, 다리가 하나 있었다고 해요. 다리가 있던 자리와 솟을대문 자리는 비워 놓 고 언제든 복원 가능하게 두는 것으로 문화재 측과 합의했습니다. 기무사가 솟을대문 자리를 치고 들 어 오니 복원은 현실적으로 어렵거든요. 종친부 입장에서 기무사는 외부 유입종인데 지금은 그것도 문화재이니…. 앞서도 말했지만 살아있는 새로운 기능(미술관)이 이와 같은 파편들을 잘 엮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원 같은 건축, 풍경 같은 미술관
WORK 1
기무사와 종친부 건물을 품은 이 대지는, 경복궁과 북촌을 이웃하며 서울의 역사적 중심부에 위치한 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미술관이 도시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됐다. 자세를 한껏 낮춘 네모 반듯한 육면체들은 마당과 관람자의 배경이 된다. 이를 두고 건축가는 어느 매체의 기고문에서 ‘공원 같은 건축, 풍경 같은 미술관’이란 표현을 썼다. 건축가 : 서울관의 배치상 특징은 다양한 정형의 마당을 대지 경계에 두어 미술관의 마당이면서 동시 에 이웃의 마당을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후에 종친부를 고려한 마당이 중심 마당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마당들은 미술관의 마당이기도 하고 카페테리아 공간의 확장이기도 하다. 또 도서 공간의 마당으 로, 종친부 공간의 일부로 볼 수도 있고, 단순히 휴게 공간일 수도, 이웃에 한껏 열린 미술관의 대문일 수도 있다. 건축가 : 공공 건축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공원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원은 기능이 고정되 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배척적이지 않아요. 마당이야말로 가장 공공적인 공간이에요. 물론 마 당과 같은 외부 공간은 건물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마당의 성격은 건물과의 관계에 따른 것이죠. 군도형 미술관 19세기 미술관은 대체로 2층 규모의 건축물에 상부는 전시장, 하부는 기타 부대시설을 두고 전시장 내부에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형태였다. 이후 인공광이 주광원으로 바뀌면서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가 가능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선형의 동선은 미술관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다. 건축가 : ‘루브르 박물관’형 미술관은 하나의 연결된 동선 중심으로 작품을 시대순 혹은 사조순으로 배열하고 관람자를 한 줄로 늘어서게 합니다. 관람객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것처럼 앞사람 을 따라가고 뒷사람에게 민폐주지 않으면서 함께 움직여야 하는 거죠.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입구에서 시작해 출구로 이어지는 선형의 동선이 아니라 여러 길 이 있는 네트워크형 동선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미술관 내에 섬처럼 흩어진 전시장을 선 택적으로 찾아가서, 보고 싶은 전시를 즐길 수 있는데, 이는 지극히 관람자와 작품 간의 집중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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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을 필요로 하는 현대미술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건축가는 이것을 관람자 중심의 동선 행태가 고려 된 군도형 미술관이라고 말한다. 건축가 : 앞사람을 따라갈 필요도, 뒷사람에 밀릴 필요도 없지요. 오로지 자신의 감각에 따라 작품에 집중하면 됩니다. 현대미술은 또한 표현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요. 회화나 사진, 조각, 공예와 같 은 전통적인 매체는 물론이고 필름이나 비디오, 오디오, 설치, 퍼포먼스, 텍스트, 컴퓨터 등이 예술 표 현의 매체가 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무용, 연극, 음악 등의 장르가 복합되기도 하고요. 이번 서울관 개관전에도 작품과 관람자가 쌍방향 소통하거나, 관람자의 행동과 반응이 작품의 일부가 되고 있는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작품을 담는 공간에도 어떤 변화가 필요하겠죠. 군도형 미술관은 선택적 전시 관람 이외에도 각 공간의 개장 시간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 다. 필요한 경우, 부분적으로 야간 개장이나 휴일 개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전시장은 개별적 전시 공간이지만 하나의 연속적 전시공간으로도 활용가능한 가변성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 한 섬과 같은 전시장, 정해진 동선이 없는 전시장은 어떠한 정보도 없이 미술관을 처음 방문한 관람 객들에게 혼선을 빚게 하는 맹점도 있다. 건축가 : 이런 식의 미술관은 프로그램과 하드웨어의 관계가 중요해요. 그런데, 서울관의 경우는 운영 진이 공간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기도 전에 사이니지(signage)가 만들어져서 설계 의도와 다르 게 된 점이 있어요. 하지만 개관 이후 공간을 이해하게 됐다면 조금씩 개선될 거라 생각해요. 서울관은 군도형 배열에 따라 다양한 형식과 다양한 규모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실을 갖추고 단순한 박스 형태지만 각각 다른 높이와 깊이, 빛의 환경 등을 가지고 있어서 보다 신중한 전시 기획 이 필요해 보인다. 건축가 : 근대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아우르는 전시실들은 서로 연계 전시가 고려됐어요. 문화재 심의를 받으면서 종친부 하부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대폭 축소된 전시실도 있고요. 대신 지하 3층 주 차장과 연결되는 부분에 창고형 전시장이 마련됐어요. 지하 1층 전시실과 연결이 되는데, 그곳에서
WORK 1 dialogue
있다. 지상 2층의 특별전시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시장은 층고가 충분히 확보된 대형 공간들이다.
창고형 전시장이 내려다 보이죠. 창고와 전시장을 연결하여 특유의 예술 형식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서울관에서는 특징적인 전시장입니다. 최근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죠. 현대의 전시 기획은 점점 다변화, 다원화되고 있고, 작품도 주로 설치 미술이나 실험적인 장르가 많아지고 있어요. 사실 서울관을 설계할 때만 해도 과천관은 근대 미술 중심으로, 서울관은 현대 미술 중심으로 구분이 됐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구분이 없어졌죠. 두 개의 중심 공간 탈중심적 군도형 미술관인 서울관에도 중심 공간은 존재한다.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인포박스와 전시 마당이 그것이다. 대형 설치 미술의 전시가 가능한 인포박스 주변에는 화이트 큐브의 전통적 전시실 이, 지하 선큰 마당인 전시마당 주변에는 뉴미디어, 퍼포먼스, 애니메이션 등 실험적 예술을 위한 공 간들이 포진해 있다. 건축가 : 대부분의 전시장이 지하에 위치하지만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두 개의 중심 공간 주변에 배치 되어 있어서 어둡다는 느낌을 덜 받습니다. 인포박스는 가공된 산란광을, 전시마당은 직사광선을 끌 어들이고 있는데요, 전자가 인지되지 않는 빛이라면 후자는 그라데이션이 생기는, 다소 강한 느낌을 주는 빛이죠. 인포박스는 미술관의 대표 공간으로서 (부드러운 산란에 유리한 카피룩스-T를 사용하여) 반투명 측창으 로 유입되는 자연광에 의해 빛이 충만한 전시 공간을 제안한다. 전시마당은 오로지 빛을 위한 마당으로, 건축가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빛이 유입되어 겨우내 조명 없이도 주변 공용 공간의 사용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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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전시장의 빛 그밖에 서울관의 전시장은 자연채광과 더불어 전반 확산 조명을 주 광원으로 하고, 필요시 국부 조명 으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차라리 대형마트의 빛에 가까운 이러한 조명 방식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 는 밝은 확산광으로 관람자와 작품을 대등하게 비춘다. 건축가 : 전시장의 조명 역시 작품 중심의 근대적 연출 기법과는 다릅니다. 작품이 요구하는 적절한 조도에 맞춰 국부 조명으로 작품만 비추는 방식은 관람자를 빛으로부터 소외시키죠. 서울관의 전시 장은 작품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밝고 균질하게 비추도록 했습니다. 천장에서 빛이 떨어지게 하여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했고요. 또 가능하면 균질광 위에 자연채광을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런 데 관람자는 이 자연광을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단지 작품에 스며들어 알게 모르게 작품을 강조할 뿐이죠. 작품 설치와 관련있는 벽과 바닥에 비해 천장은 건축가가 제약을 덜 받으며 디자인할 수 있는 부분이 다. 서울관 전시장의 천장은 자연광과 인공 조명의 이중 방식으로 내부 얼개가 드러나 보이지만, 천 정 마감재로 쓰인 익스펜디드 메탈이 하나의 매끈한 정육면체 공간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건축가 : 자연스러운 빛의 유입을 위해 외곽 루버, 내부의 전동 루버, 익스펜디드 메탈 천정재로 구성 하였습니다. 원래는 불투명한 재료를 써서 확산(Diffusing)시키려고 했지만 효율성 때문에 메쉬로 바꾸게 됐죠. 아쉬운 것은 프레임이 좀 얇으면 좋았을 텐데, 관리의 용이를 위해 두꺼워졌다는 겁니 다. 당연히 간섭이 생기니까 얼룩이 질 수밖에요. 공사 중에 샘플 만들어서 불을 한번 켜 봐야 하는데 공사 끝날 때까지 그러지 않더군요. 도면대로 했으니 감리나 시공자 책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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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물어내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건물 퀄리티만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 게 전체 완성도를 떨어뜨 리는 거죠. 감리를 못하니 그저 답답한 마음만…. 어디 조명뿐이겠습니까. 관공서들의 완성도가 낮은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건축가는 다양한 작품, 특히 규모가 크고 무게가 나가는 작품까지도 고려하여 조도의 범위, 빛의 디 퓨징과 스팟, 음영의 여부, 하중 등을 최대한으로 설정하였지만, 시공/감리 측은 설계 VE(Value Engineering)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건축가 : 왜 문의 크기가 5m인지, 바닥이 마감없는 모놀리틱 콘크리트인지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는 거죠. 조명만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작품에 굉장히 밝은 조명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조도에 따라 서 작품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단 최대한의 가능 범위를 설정해 놓은 건데, 무조건 에너지 효 율이 높아야 한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광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으로 줄이라는 것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설득했죠. 그런데 지금 보니까 전시하면서 다 켜 놓 고 쓰더라고요.(웃음) 작품과 관람객과 장소의 만남 건축가 : 전시마당 옆에 천장을 색색의 컬러 패널로 부착한 공간이 있습니다.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 에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과 같은 걸출한 작가가 나온 것처럼, 그런 좋은 예술가가 나 오길 기대한 공간이에요. 다른 미술관에서 성공한 작품이 아니라 딱 그 장소에 맞는 새롭고 독특한 작업들이 구상되기를 바랐던 거죠. 신진작가의 발굴과 전시는 공공 미술관의 중요한 임무가 되고 있기도 하다. 개관전에서 이 장소에 선 보인 양민하 작가의 ‘엇갈린 결, 개입’이란 미디어 아트가 기억에 남는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물 결이 변하는, 작품과 관람자가 쌍방향 소통하는 작품은 미술관을 하나의 즐거운 놀이 공간으로 만들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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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 또 다시 예를 들면, 설치작가 카스텐 휠러(Carsten Holler)는 테이트 모던의 터빈 홀에 초대 형 미끄럼틀 5개를 설치하여 전시장을 아이들의 놀이동산으로 변신시킨 바 있죠. 전시 공간을 제대 로 이해하여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거예요. 그곳의 큐레이터가 이러한 현대미술의 전시 장에 대해 ‘매직박스’란 표현을 썼는데요, 루브르 박물관처럼 예측 가능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새로 운 형식의 작업을 기대하게 하는 공간이란 의미에서였어요. 매직박스 안에서 관람객들은 어느 작가 가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전시장을 채울 것인가를 기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종친부 마당에 설치 된 김승영 작가의 ‘따뜻한 의자’ 같은 작품이지요. 사람의 체온을 유지하는 따뜻한 의자에 앉으면 경 복궁과 북촌이, 인왕산의 능선이 시야 한가득 들어옵니다. 장소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든 작품이에요. 이처럼 작품에 영향을 주는 공간, 의외의 장소들이 서울관 안에 꽤 숨어 있습니다. 다른 전시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군도형 배열은 이러한 매직박스에도 적절한 방식이다. 그런데, 어떤 작품이라도 수용 가능한 서울관의 다른 전시장과 달리, 이 사이 공간은 전시마당의 직사광선을 받으 면서 항온 항습도 되지 않는 다소 거친 공간이다. 그야말로 장소의 맥락과 작품의 관계가 중요한 공 간인 것이다. 한편 현대미술의 설치 작품은 작업장과 같은 전시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작가들은 작품 설치 를 위해 전시장에서 일정 시간 작업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현되기도 한다. 또 작업 과 정을 관람자와 공유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 건축가 : 아무래도 이와 같은 전시장은 완성된 형태보다는 미완성적 전시장이나 산업 구조물을 거칠 게 재활용하는 편이 낫겠죠. 아무튼 중요한 것은 가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팔레 드 도쿄(Palais de 터클에 반대하여 작품과 관람자 간의 작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대 미술관의 디자 인은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실재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라야 하겠죠. 건축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나 마음에 드는 이야기예요. 화이트 큐브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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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의 관장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말했듯이 현대미술의 특징이 “인터넷의 스펙
건축가는 서울관의 전시 공간에 대해 2차원 벽에서 3차원의 흰 볼륨으로 진화한 장소 특정적 화이트 큐브라고 정의한다. 특히 그는 작년 초 ‘현대미술관 전시장의 군도형 배열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에서 현대 미술관 전시장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축가 : 자료 차원의 논문이지만, 스위스의 화가 겸 큐레이터 레미 차우크(Remy Zaugg)의 제안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그는 세 가지 전시 담론-화이트 큐브 모델, 작업장 모델, 장소 특정성 모델-을 포 괄하는 전시장을 제한했지요. 화이트 큐브를 통한 집중과 소통, 작품과 관람자가 하나의 공간으로 일 체화되는 상황, 전시 장소의 맥락에 적합한 작품 창작의 과정, 작품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장 소 등은 현대 미술관의 진화를 보여 줍니다. 2차원적 화이트 큐브에서 발전된 ‘볼륨의 화이트 큐브’는 작업장을 겸한 전시장으로 새로운 작품 제작을 요구하지요. 그러한 미술관의 방향에 저도 공감을 합 니다. 한마디로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가 탈맥락을 의도했다면 진화된 화이트 큐브는 장소 특정적인 재맥락 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중적이고 독립적인 의미에서 탈맥락적인 서울관의 화이트 큐브는 다시 투 명한 외피를 통해 주변 환경의 맥락, 도시의 맥락과 연결되고자 한다. 도시를 향한 창이나, 인포박스 상 단부의 종친부를 향한 가로로 긴 투명창 또한 미술관에 장소의 의미를 더하고 있는 요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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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마당에서 바라본 로비
솟을대문에서 경근당에 이르는 전통 형식을 재현하기 위해 미술관의 주요 기능은 지상에서 좌우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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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마당에서 멀리 인왕산 능선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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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본관의 외벽을 공유하는 미술관 로비
로비에서 바라본 미술관 마당. 카페테리아와 마당을 공유한다.
미술관 마당에서 진입 가능한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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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선큰 마당인 전시마당 주변에는 뉴미디어, 퍼포먼스, 애니메이션 등 실험적 예술을 위한 공간들이 포진해 있다.
전시마당 옆 색색의 컬러 패널이 천장에 부착된 공간은 장소에 맞는 새롭고 독특한 작업들이 구상되기를 바랐던 공간이다. 오로지 빛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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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박스는 미술관의 대표 공간으로 반투명 측창으로 유입되는 자연광에 의해 빛이 충만한 전시 공간을 제안한다.
인포박스 상단부의 종친부를 향한 가로로 긴 투명창은 미술관에 장소의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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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01
황인 미술평론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장소와 공간
장소로서의 삼청로 서울 시내에 드디어 본격적인 미술관이 들어섰다. 세계 유수의 도시에 가 보면 그 도시의 문화적 감 성이 집중된 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최근 세계적 도시로 부상한 서울은 이런 점에선 항상 아쉬운 도 시였다. 그 아쉬움을 감사함으로 바꾼 곳이 삼청로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삼청로는 경복궁 동쪽 건춘문이 자리한 담벼락을 왼쪽에 끼고 북상하는 복개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사간동, 소격동, 팔판동, 화동, 삼청동 등 여러 동네들이 모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일대를 통칭하여 삼청동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선 곳은 소격동이다. 요즘은 수많은 시민들의 나들이와 외국인들의 관광으로 붐비는 삼청동이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하여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한갓진 동네였다. 삼청로의 많은 부분을 기무사와 국군병원이 차지하고 있었 다. 유월이면 붉은 장미꽃이 흐트러지게 피는 담벼락이 있었건만 초병의 긴장된 시선은 접근을 배척 했다. 70년대만 하여도 삼청로에는 문화적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 중에도 특기할 것은 이 길에 현 대화랑과 프랑스문화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삼청로는 80년대까지는 영화의 길이었다. 프랑스문화원(현재의 폴란드대사관)에 가면 검열에서 자 유로운 무삭제판 프랑스 영화를 값싸게 볼 수가 있었다(서울 시내 개봉관이 250원 할 때 여기는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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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지하영사실 ‘살 드 르누아르’(르누아르의 방)는 하루 종일 영화를 틀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7,80년대에 세련된 유럽 문화를 동경하던 젊은이, 그리고 영화감독 지망의 청년들이 모여들어 영화를 통해 이국의 꿈을 꾸던 해방구였다. 결국 삼청로는 미술의 길이 되었는데 그 시작은 현대화랑으로부터 출발한다. 1970년, 인사동에서 개 관하여 1975년 삼청동에 당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화랑 전용 건물을 지어 이전한다. 이 건물은 지 금도 갤러리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 신축 때와 별로 변하지 아니한 구조이므로 천정고, 면적 등을 통해서 70년대의 한국 현대 미술이 지향하고 구현했던 ‘최선의 공간’을 가늠해 볼 수가 있다. 1988년 갤러리현대(원래는 앙드레김 의상실과 광장건축이 있었던 4층 건물), 이어서 90년대 당시 초현대적 감각의 전시 공간인 국제화랑, 선재미술관 등의 등장으로 삼청로는 면모를 일신한다. 인사 동에 집중적으로 포진되어 있던 화랑가가 드디어 삼청동으로 중심 이동을 하게 된다. 20년 이상 미술 인들의 염원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의 극적인 개관에 앞서 이를 촉발시킨 많은 움직임들을 간략하게 기록해 보았다. 장소-공간-‘장소’ 건축이란 ‘주어진 장소(Topos)에서 공간(Space)을 발견하고 그 공간에서 다시 새로운 장소(Topos) 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소박한 견해에서 출발해 보자. 미술관 건축이라는 집합 안에는 과거형인 ‘주어진 장소’와 완료형인 ‘건축적 공간’ 그리고 여기에 아 비땅(habitant/사용자)들이 더해져 만들어 내는 사건으로서의 진행형인 ‘새로운 장소’, 이 셋이 공존 한다. 뮤지엄은 뮤제(muse)를 어원으로 두고 있는데 이는 미술관 속에 담길 컨텐츠(뮤제는 여러 학예를 관 장하는 여신)에 해당한다. 미술관과 변별적인 역할과 기능을 갖는다는 뜻으로 굳어진 화랑(gallery) 은 원래 컨텐츠에 접근하고 열람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황인
화랑은 그림이 걸린 회랑(回廊, gallery)을 말한다. 회랑을 따라가며 양쪽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 및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이른바 순로(順路)의 감상 방식이다. 미술관(museum) 안에는 눈에는 보 이지 않지만 회랑(gallery)의 감상 방식, 혹은 회랑을 따라가는 신체 동선(動線)이 숨어 있었다. 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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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미술대학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미술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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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회로도를 따라 전기가 흘러가듯이 관람객은 오로지 그 동선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마치 깃발을 들고 앞서가는 가이드를 충실하게 따라가듯이. 그리고 그 동선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길 때도 마치 암묵적으로 방향성과 순차적 질서가 있는 것처럼 작용을 한다. 전시장A 다음에는 반드시 전시장 B가 오고 C가 와야 한다는 방식이다. 질서정연하나 소극적인 감상 방식이다. 서울관의 공간 구조는 회랑의 순로를 따르는 감상 방식을 무력화시킨다. 이른바 군도(群島)형 미술 관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공간 배치 방식이다. 군도형 미술관은 순로를 따라 한 방향의 선형으로 진행 하는 감상 방식을 해체시켜 감상자의 신체와 시선을 전 방향으로 자유롭게 향하도록 하였다. 기판은 있는데 회로도가 없는 꼴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의 건립을 앞두고 자체적으로 연구한 자료를 볼 때, 군도형 미술관을 앞서 1. 군도형 미술관으로서의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에 대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의식하고 2009년 에 발표된 최효준(서울관 팀장) 의 논문이 잘 정리해 주고 있다.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의 건립 개념 구현 사례 분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1집 2009년.
실현시킨 일본 가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SANAA 설계)을 많이 의식했음을 알 수가 있다.1 실제로 서울관의 설계 공모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21세기 미술관을 설계한 가즈요 세지마 (SANAA 대표)가 참여하기도 했다. 2004년에 개관한 21세기 미술관, 그리고 역시 SANAA가 설계 하여 2012년에 개관한 루부르-랑스 미술관, 또 이번에 개관한 서울관을 보면 외관적인 형태에 있어 유사성이 많이 발견된다. 건물의 높이를 최대한 자제하고 미술관이기에 앞서 널따란 공원이라는 느 낌이 먼저 들게 하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서울관은 원래 이 터의 주인이었던 종친부 건물을 정독도서관으로부터 되찾아 제자리에 배 치한 점, 지하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점, 한동안 이 부지의 주인이었던 기무사를 리노베이션하여 미술관의 일부로 활용한 점 등에 있어서 이들과는 많은 변별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미술관을 찾은 관계자, 관람객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했던 것이 순로가 없는 미술관에서의 낯 감각을 상실했다는 건 그만큼 예측불허의 전방향성의 동선이 많이 나왔다는 뜻이 된다. 주어진 장소에서 새로운 장소가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완결형인 건축 공간에 진행형의 ‘사건’이 더 해져야 한다. 사건이란 솔리드(solid)한 공간적 구조와 습관적인 질서에 깃드는 것이 아니라 건축 ‘공 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장소’를 만들어 나가는 아비땅(habitant)들의 액상적인(liquid) 유동성 에 기대려 한다. 이 유동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아비땅의 행동이 예측불허면 예측불허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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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방향 감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서울관은 군도형 미술관으로서는 일단 성공한 셈이 된다. 방향
사건성은 높아진다. 미술관 건축이 될 수 있는 대로 중성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건축적 공간이 미학적 구조물로 완성되어 끝나는 게 아니고 거기에 사건성, 즉 새로운 장소성을 발생시킬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 사건성을 일구어 내는 건 아비땅인데, 미술관에서의 아비땅은 큐레이터, 관객, 작품, 전시 개념, 행 사 등이 포함된다. 사건성을 북돋우기 위해서 건축적 공간 구조는 다소 느슨할 필요가 있다. 구조가 너무 치밀하거나 관객의 신체성이 순로를 따라야 하는 제한성을 갖는다면, 우발성의 ‘노이즈’는 발생 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다. 전시 존(zone)에서 전시가 벌어지는 일도 그 전시를 감상하는 일도, 또 교류 존을 스치며 사람과 사 람이 서로 만난 것도 모두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성이다. 이 사건성이 풍부한 미술관이야말로 새로 운 개념의 바람직한 미술관이다. 서울관의 공간 감각 이번 서울관의 개관전은 크게 5개의 전시로 이루어져 있다(건물 내부). 자이트 가이스트-시대정신, 연결_전개, 알레프 프로젝트,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서도호), 현장 제작 설치 프로젝트(최우람, 장 영혜중공업) 등이 그렇다. 이중에서 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원형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시대정신전’이 열리고 있는 1층 의 제1전시실과 지하 1층의 제2전시실이다. 제1전시실의 바닥재는 나무고 제2전시실의 바닥은 콘크 리트 마감이다. 둘 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몇 개의 트렌치가 지나가고 있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공 조시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라인이 바닥에 설치된 작품에 상당한 시각적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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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바닥에 깔린 금속 트렌치는 그 자체로서 재료적 부조화를 드러내고 있다. ‘시대정신’전은 언론,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악평을 받았는데,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된 평가를 떠 나 단순하게 전시 기술 그 자체만을 놓고 보아도 건축과 미술 사이에 놓여야 할 제3의 장치를 놓친 점 이 너무나 아쉬웠다. 작품은 건축물의 공간 속에 그냥 날것으로 놓여지는 게 아니고 디스플레이란 장치와 행위를 통해서 ‘장소화’된다. 디스플레이는 별개의 영역인 공간과 작품을 섞어서 ‘새로운 장소’로 바뀌게 하는 일종 의 계면활성제이다. 장소화되지 않는 전시란 없다. 장소성은 관람객에게 내재된 오감을 최대한 환기 시켜 지각(perception)의 세계를 전개시킨다. 심지어 장소성을 극도로 배격하며 인식(recognition) 의 세계, 즉 장소를 초월한 절대적 개념 세계를 주창하는 미니멀 아트조차 화이트 큐 브라는 섬세한 연극적 조작을 통해 관람객에게 지각의 세계를 유도해 내려는 전략 이 숨어있다. ‘시대정신’전에 출품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휑하게 방치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건축 과 미술 사이를 중재해야 할 배치, 조명 등의 기술과 감각이 동원되는 ‘디스플레이’ 라는 단계가 생략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우환과 이불의 작품이 이리도 초라하게 보인 적은 처음이리라(건물 내부의 중정에 설치된 이우환의 또 다른 작품 ‘사방에 서’가 뿜어내는 강력함과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 준다). 그리하여 작품에 집중하지
스가 기시오의 작품. 눈에 거슬리는 바닥의 트렌치
못하는 대신, 허전한 미술관 공간을 의식하게 되는 어색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물론 이건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관 측의 무능으로 돌려야 할 일이다. 이들 두 개의 전시실을 연결하는 통로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다. 그런데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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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하는 통로가 매우 인색하여 직관적 접근이 유도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하를 연 결하는 계단의 벽과 천장이 어색할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어서 불필요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준다. 국내외의 여러 기획자와 작가들이 참여한 ‘연결_전개’전은 큰 전시 공간에 가벽을 설치하여 작게 분할된 공간 속에 작품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그동안 우리의 신체 감 각에 가장 익숙했던 방식의 디스플레이였기에 공간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에 집중할 수가 있었던 대신 낯선 사건으로서의 장소성의 체험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레프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융복합적 작품들을 보여 주는 전시다.
1층 입구에 전시된 최인수의 조각.
특히 사운드 아트를 위한 무향실(無響室/멀티프로젝트홀)의 구축은 그동안 국내의 여타 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건축적인 배려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이 있어 보였던 전시는 지하 1층 및 지하 3층 창고 전시실(이 둘 은 계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서울관에서 가장 황량하고도 거친 감각의 전시 실이다)에서 열린 장영혜중공업의 전시다. 대부분의 미술관 전시가 그렇듯, 작품이 전시 공간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그것에 압도되어 작품 본연의 에너지가 죽어 버 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텍스트 아트만이 가진 특유의 능력, 즉 장소성조차 아예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이 전시된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려 시종일관 메시지의 힘을 잃지 않았다.
창고 전시실.
미술관으로부터의 그리고 장소로부터의 해방이라고나 할까, 그런 당돌함에서 오는 강력한 힘이 느껴 졌다. 텍스트 아트는 본질적으로 장소성을 초월한 영역의 미술 장르인데, 이것이 황량한 전시 공간과 충돌하면서 의외의 강력한 힘을 발생시켰을 수도 있겠다. 관객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전시실로 제8전시실이 있다. 2층이라 하였으나 사실은 1.5층에 해당하는 비밀스런 다락방 같은 공간이다. 당연히 천정고가 낮다. 여기서는 서울관 건립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관의 전시실은 거의 천정고가 높다. 그런데 작품에 따라서는 천정고가 낮아야 할 작품도 있다. 계속 까마득히 높은 천장만을 보다가 이 전시실에 들어오면 왠지 안도감이 든다. 널따란 전시실을 돌 아다니다가 자칫 압도당할 수도 있는 신체가 어리숙한 쉼터의 편안함을 찾은 듯하다. 사적 공간의 내 밀한 느낌이 진하게 전해지는 곳이다. 전시 기획자에겐 이 전시 공간에 딱 들어맞는 작가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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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저절로 떠올리게 하는 재미난 공간이기도 하다. 건물 내부의 중정 같은 느낌을 주는 서울박스에는 서도호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전시 공간과 작품 이 맞춤복처럼 잘 어울리는 경우라 하겠다. 서울관의 매력은 건물 외부에도 참 많다. 여러 야외조각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종친부 마 당에 설치된 김승영의 ‘따뜻한 의자’에 앉아 인왕산을 바라보는 감상법은 기분이 각별하다. 그리 높지 않은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서쪽으로 전망이 확 트여 있다. 경복궁의 낮은 기와지붕이 시야를 열어 주 고 있다. 경복궁 너머 인왕산 자락의 서촌은 조선 시대 화원들이 살던 곳이다. 현대 미술 작품에 걸터 앉아 대선배 미술가들의 삶을 상상하면서 ‘주어진 장소’의 역사를 떠올리는 일은 숙연하기조차 하다. 새로운 ‘장소’를 향하여 미술관, 관람객, 작품, 작가는 각각 따로 독립된 게 아니라 생태계의 유기체처럼 상 호의존적이다. 이 편의 변화가 저 편의 변화를 촉발하고 그 변화가 다시 이 편으로 피드백되는 양상을 띤다. 미술 작품이란 전시가 되는 순간부터 필경 장소성을 띠게 된다. ‘지각’의 세계를 다 루면서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의식하는 모노파 미술은 물론이고, ‘인식’의 세계만을 다루는 미니멀 아트 역시 이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블로 작품이든 영상 작 품이든 모든 미술품은 전시되는 순간 일종의 설치 미술로 변해 버린다. 작품은 최종 적으로 장소 속에서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화랑이 밀집된 인사동의 경우, 처음부터 갤러리 전용 건물로 지은 게 아니었기 이 들었다. 갤러리 전용 건물로 지었던 사간동 현대화랑의 천정고도 그리 높지가 않 다. 80년대 말까지 갤러리의 천정고 300cm는 상당한 높이의 감각이었다. 이때까지 제작된 국내 미술 작품들을 보면 대형 작업이 별로 없다. 1988년 대학로에 개관한 ‘인공화랑’은 천정고가 압도적으로 높은 충격적인 공간 감 각의 갤러리였다. 이는 천정고 10m가 넘는 일종의 가건물이었다. 이 높이 감각이 한
WORK 1 critique 01
때문에 천정고가 상당히 낮았다(270cm 내외). 천정고를 10cm 올리는 데 엄청난 힘
국 현대 미술 작가들의 상상력을 상당히 변화시켰다. 웬만한 크기의 작품은 인공화 랑의 높은 천정고와 맞지가 않았다. 작품이 크든지, 작더라도 밀도가 단단하든지 해 야만 했다. 이후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많이 변했음은 기지(旣知)의 사실이다. 반대로 천정고가 상당히 낮은 전시장도 있다. 최근 매각된 서울 원서동 공간사 사옥 의 공간갤러리가 그랬다. 여기는 벽면이 붉은 벽돌 그대로다. 화이트 큐브의 대척 공 간에다 작품을 거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열악하다면 열악하다 할 수 있는 조 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만드는 것 또한 작가의 능력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작가의 대응력과 기량은 향상되어 간다고 할 수가 있다. 김승영의 따뜻한 의자와 풍경
오랜 꿈이 영글어 드디어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군도형 미술관’이란 낯 선 공간 감각을 제시하고 있다. 관객의 신체적 참여를 최대한 많이 끌어내려는 건축
가의 의지가 역력하다. 여기에 대응하는 미술 작품 또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들에 관객들 의 개입이 더해져서 장소로서의 미술관은 완성과 해체 그리고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개관을 하자마자 서울관은 도심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봄이 되면 아직 개방이 안 된 교육동이 문을 연다. 그리고 마당에는 여러 퍼포먼스가 펼쳐질 것이다. 까페테리아 ‘그라노’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 셔 본다. 눈 쌓인 마당에 멈추었던 시선이 멀리 사양(斜陽)의 인왕산 능선을 향하며, 다가올 봄을 기 다려 본다. 참 아름답구나. 미술도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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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도
북측면도
서측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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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 마당 서측 입단면도
미술관 마당 북측 입단면도
미술관 마당 서측 입단면도
미술관 마당 남측 입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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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직원 사무실-1 2.직원 사무실-2 3.회의실 4.예비실 5.직원식당 6.학예연구실 7.갱의실 8.직원 복지 시설 9.워크숍 갤러리 10.멤버쉽 라운지 11.세미나실 12.열람실 13.비공개 열람실 14.아카이브홀 15.아카이브
지상 3층 평면도
1.특별 전시실 2.레스토랑 3.주방 4.VIP라운지 5.사무실 6.관장실 7.물품보관소 8.국제 화상 회의실 9.문서보관소 10.워크숍 갤러리 11.휴게실 12.강의실 13.디지털 북카페 14.열람실
지상 2층 평면도
1.로비 2.전시실-2 3. PIT 4.카페테리아 5.푸드코트 6.크레이트보관고 7.하역장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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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포박스 2.전시실-3 3.전시실-4 4.전시실-5 5.전시실-6 6.다목적홀 7.영화관 8.프로젝트 갤러리 9.전시실-7 10.수장고(회화) 11.수장고(조각) 12.수장고(크레이트) 13.상태 점검 공간 14.수장고(필름) 15.사진 촬영실 16.보존 처리실
지하 1층 평면도
17.물품 보관소 18.전시마당
1.주차장 2.팬룸 3.쓰레기 집하장 4.재활용품 보관실
지하 2층 평면도
1.주차장 2.창고형 전시장 3.정화조 4.우수조 5.공조실 6.저수조 7.기계실 8.전기실
지하 3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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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실 창밖의 종친부 건물과 미술관
집중적이고 독립적인 의미에서 탈맥락적인 서울관의 화이트 큐브는 다시 투명한 외피를 통해 주변 환경의 맥락, 도시의 맥락과 연결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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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빛에 가까운 조명 방식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밝은 확산광으로 관람자와 작품을 대등하게 비춘다.
서울관의 전시장은 자연채광과 더불어 전반 확산 조명을 주 광원으로 하고, 필요시 국부 조명으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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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가능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작업을 기대하게 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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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02
김인성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교수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울하다. 우울한 우리 시대 우리나라의 민낯이 스스로 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울하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 건축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우울하다. 그 극을 향해 달리는 자본주의적 자유와 인터넷의 무제한적 소통 속에 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오히려 고독하다. 고독한 군중의 틈바구니에서 권위주의의 망령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다. 이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건축은 더 이상 세상과의 대화를 포기한 채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 모든 우리 현실의 총체적 발현이라 할 만하다. 자유주의 경제학과 장소의 상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장 체험은 서울 삼성동 지하의 코엑스 몰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가 자 신이 영화관, 커피숍, 마트에 가는 것과 같은 미술관을 원했다 하니, 그 의도가 잘 구현되었다 할 수도 있겠다. 그는 미술관 경험이 ‘특별한 것’이 된 문제점을 지적하며 일상적인 재방문이 가능한 미술관 을 제안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상이란 쇼핑과 소비 밖에 남지 않은 탓일까? 이를 위한 대안은 쇼 핑몰 혹은 지하상가다. 소위 ‘관람자 중심형 미술관’은 ‘고객 중심형 쇼핑몰’과 오버랩된다. 코엑스 몰의 입구는 무수히 많다. 그 입구들은 지하철로, 길거리로, 백화점으로, 호텔로, 전시장으로 초현실은 진짜 현실로부터의 구분과 해석을 봉쇄하려는 듯, 아니 오히려 현실을 집어삼키려는 듯 그 촉수를 내뻗고, 그것은 고객을 맞이한다기보다 ‘코드화된’ 고객들을 거리로 내뿜는다. 그것은 카프카 의 『성』에 나오는 ‘수많은 입구들’이거나 적의 침입에 대비한 베트콩 땅굴의 무수한 구멍들이다. 서울관에도 무려 여섯 개 이상의 입구 혹은 구멍이 있다. 개별 상점, 직원 입구, 지하 주차에서의 접 근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역시 그리 고객을 반기지는 않는 모양새로 무덤덤한 그것들
WORK 1 critique 02
연결된다. 아니 차라리 뻗어 나간다. 하이퍼리얼 혹은 가상계라고도 불리는 자본주의적 비현실 혹은
은 입구라기보다는 출구들이고, 그나마 대부분은 잠겨 있거나 카프카의 입구들처럼 많은 ‘문지기’들 이 지키고 섰다. 개관 초기라 그렇다는 변명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정녕 코엑스 몰을 원했다면, 여섯 개 혹은 그 이상의 입구가 평등한 위계여야 했으나, 그는 그럴 수도 없었 다. 미술관 내부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위계들을 넘어설 만한 확신이 없었고, 이미 장소성의 이름으로 포진한 미술관 밖의 수많은 위계들에의 대응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건축가는 ‘절충’했고, 그 근원적 모순은 미술관 측에 슬쩍 떠넘겨졌다. 미술관은 단지 입구가 많다 해서 쉽사리 쇼핑몰이 되지는 않는 다. 쇼핑몰이 현실 위의 가상을, 그 기호와 코드를 현실 위로 투사할 때, 현대 예술은 현실 밑의 의미 들을 캐내어 우리 앞에 내보인다. 미술관은 예의 엄숙함이 모두 사라진 뒤에라도 여전히 ‘특별하다’. 특별함과 배타성을 연결시키는 도식은 아무래도 너무 단순하다. 오히려 범람하는 기호의 바다에 ‘합 리적 행위자’로 코드화된 고객들은 그 특별함에 목말라 미술관을 찾고 또 찾는 것 아닐까? 김인성
혹자는 이런 수많은 입구들, 그리고 그와 연계된 소위 ‘관람자 중심의 네트워크형 공간 조직’을 보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들뢰즈류의 리좀(rhizome)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뿌리줄기의 뜻에서 유래하여 중심을 가지지 않는
원도시건축에서 실무를 익힌 뒤 영국 쉐필드 대학(The University of
분지의 모델로 사용되곤 하는 리좀의 용어는 근래 건축 개념으로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현실태적인
Sheffield)의 PhD by Design
공간적 다양체’와 ‘잠재태적인 시간적 다양체’를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들뢰즈에 있어서
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건축적 재현과 건축의 시간성 문제
리좀을 사유한다는 것은 굳어진 수목형(tree structure)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접속 가능성이 유동
를 연구하였으며, 박사 연구를 정리한
하는 잠재태의 차원으로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결국 다시 현실태로 함께 떠올라 이전과는 다른
책 『Drawing Time with Temporal Drawing』을 출간한 바 있다.
접속들을 실험하기 위함이지 현실을 ‘리좀처럼’ 구조화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다자
현재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multiple)의 문제가 아닌 다양체의 문제이다. 필요한 것은 잠재성이 끊임없이 떠오를 수 있는 형식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 표현을 찾는 것이지 잠재성을 ‘짓는’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들뢰즈적 리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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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SANAA 류의 ‘균질 공간’이 뒤섞여 읽히는 것은 나만의 오독일는지도 모르겠다. SANAA는 차라리 단호하다. 프로그램으로부터 기인한 불투명성을 머금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균 질 공간은 정녕 투명성에의 신념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표현의 형식’에 관한 문제로, ‘내용의 형식’인 프로그램/다이어그램적 참신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SANAA의 투명성은 가히 자본주의의 뼈대가 되는 자유주의적 투명성과 합리적 개인주의의 구현이라 할 만하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바깥 으로 탈출하기보다 그 복판에서 그들의 표현을 발견했고, 그것은 이미 코드화된 우리들에게 기이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건축이야말로 정신을 위한 쇼핑몰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단호히 포기한 것은 육체와 영혼의 근원이자 안식처로서의 ‘장소들’이다. 이제 자본주의 의 폭풍우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장소성에 대한 담론은 마치 먹어 보기도 전에 상해 버린 음식처럼 골방 신세가 된 듯하지만, ‘이기주의적이며 합리적인 효용 극대화의 존재자’로서 자유주의 경제학에 의해 투명하게 정의된 우리들이 그 얄팍한 투명성에서 공허를 발견할 때마다, 그 골방 속 개념은 여 러 다른 이름을 달고 ‘큰 이야기’가 해체된 건축 속에 다시 얼굴을 내민다. 코엑스 몰에서, SANAA의 건축에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우리의 몸과 시선은 ‘자유롭게’ 미끄러지듯 흐른다. 그 것은 공간적 거리, 크기, 장애물의 문제라기보다는 한 점에서 느껴지는 미분적 문제이고, 그 건축에서 소거된 질감과 형태, 감각과 몸의 문제다. 끝없이 흘러야 하는 우리의 눈에 비친 스펙터클이 잠시 우 리를 매혹할지 몰라도, 머물 곳 없는 우리의 영혼은 황량하다. 흐름은 무엇에 ‘대해’ 흐르는 한에서 유 효하다. 맹목적인 떠내려감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은 그 흐름의 정지가 아니라 흐름을 흐름으로 이 해할 수 있는 ‘정박점’, 혹은 흐름의 접힘 속에서 피어나는 장소들이다. 여전히 서울관의 건축가는 두 가지 장소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지에 존재했던 역사적 흔적과 전시
WORK 1
를 위해 설정된 몇몇 ‘박스’들이다. 이것이 장소들이라면, 미술관에게 전자는 너무 멀고 후자는 너무 가깝다. 전자는 멀찍이 떨어져 알 수 없는 남일 뿐이고 후자는 단순한 자기동일성을 향한 데카르트식 의 빈곤한 ‘자아’다. 전자를 위해 ‘배경’의 개념이, 후자를 위해 ‘화이트 박스’의 개념이 사용되는 것은 어쩌면 뻔할 만큼 당연하다. 미술관은 애초부터 장소성을 품고 기르는 데 무관심했고, 그래도 지워 지지 않았던 최후의 장소들이 손쉽게 ‘배치’되었을 뿐이다. 경계와 관계 속에서 태어나는 장소성이란 자유주의 경제학이 추구하는 투명한 경제 사회 질서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인터넷 사회학과 고독한 군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구성은 인터넷 환경 속 SNS와 그 사용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을 항 해하는 사용자들은 저마다 하나의 섬이다. 이 미술관에는 이를 상징이라도 하듯이 ‘군도형’ 전시장들 이 떠다닌다. 아니 떠다니고자 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행위자로서의 개인과 마찰 없는 평면으로서의 세계처럼 거리와 마찰이 소거된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자는 단자적으로 존재한다. 존재론적 무중력 상태에서 개인은 자신의 외연 없이 스스로에 의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카르트적 백치’로 그 실체 없는 기호로서의 섬이 된다. 하지만 진정한 주체란 세계와의 교류, 타자와의 관계 속 에서 끊임없이 자기 동일성을 갱신하는 자이다. 무시간적, 무관계적, 선험적으로 정의된 빈약한 자아 는 차라리 마찰 없는 평면의 한 요소로 기능할 뿐이다. 남은 건 왜소한 군중들과 광대한 허허벌판이 다. 그들의 무한해 보이는 자유는 실은 넓고 얄팍한 코드 속 자유이고, 무제한적 소통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외롭다. 서울관의 구성에서도 그러한 이분법이 뚜렷한데, 전시장 박스와 그 주변 공간으로 구분된 그것은 소 위 ‘피규어 앤드 그라운드(figure & ground)’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이 용어는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도시 계획에서 다양하게 차용되곤 했지만, 이는 지각심리학과 미학 등에 서 다루어온 깊이에 비해 꽤나 피상적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피규어 앤드 그라운드가 단순한 흑과 백이나 디지털 영과 일의 이분법과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형태와 그 여백이라기보다 는 형상과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형상은 바탕으로부터 고립되어 떠오르려 하고 바탕은 그것을 잡아끈다. 그들은 단지 옆에 있는 관계가 아니라 차라리 부둥켜안고 서로를 생성한다. 진정 ‘다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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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를 원했다면, 서울관의 피규어와 그라운드는 서로를 부둥켜안음으로 하나의 미술관을 세워 내야 했 다. 그렇다고 그것이 둘 사이의 유기적이거나 서술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서울관 은 상투적 대조에 의해 양분된 요소들이 ‘군도’라기에는 너무나 유기적으로 ‘조직’되고 말았다. ‘경계’ 의 모든 무게는 섬에게로, ‘관계’의 모든 짐은 대양에게로 양분되었다. 남은 건 외로운 개인들과 일의 적 ‘공간’뿐이고, 그마저도 그리 구성적이지도 균질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로 남겨졌다. 그렇다면 건축은 예의 질서로 회귀해야 했을까? 아니, 오히려 많은 섬들은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독립’해야 했다. 그것은 인터넷 공간을 부유할 뿐인 고독한 섬과는 전혀 다른 진정한 주체가 되는 것 이다. 독립은 그것이 독립하고자 하는 바탕과 오히려 치열하게 투쟁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렇게 독립한 섬들이야말로 모든 이웃 섬들과의 힘겨루기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만들어 낸다. 이는 단지 연결될 뿐인 단순 접속과는 다른 것으로, 이럴 때라야 비로소 그라운드에는 잠재적 통로와 장소들이 무수히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와 가면을 쓴 권위주의 섬들의 독립성과 힘겨루기가 삭제되어 버린 서울관의 ‘공공의 대양’에서 관람객은 방황한다. 직각의 미로 속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군중의 혼란은 거의 대재난 수준이다. 대양 여기저기에 구색을 갖춰 놓여진 ‘작품’들은, 그것이 흐름이나 변화에 대한 작품일 때조차도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 하다. 방향도 마찰도 없는 공간에서 장소를 만들어 내려 안간힘을 쓰는 작품과 우왕좌왕 흘러 다니는 관람객들은, 건축가가 의도한 ‘빈 공간의 유연한 흐름’이기보다는 한편의 값비싼 코미디를 연출한다. 길목 곳곳에는 미술관 직원과 자원봉사자로 가득하다. 그들은 때론 막아서고 때론 안내한다. 들뢰즈 벽, 입구와 사인(sign) 등에 더 가깝다. 즉, 그들은 단지 미술관 운영의 요소이기 이전에 건축의 문제 가 되는 것이다. 전통적 건축 구성이 자유와 ‘사용자 참여’의 이름을 달고 거부된 현장에서, 새로운 방 식의 억압이 등장한다. 모든 권력과 진정한 주체가 사라진 공간에서 또 다른 독재가 싹트기 시작한 다. 간단한 가설 경계선들과 안내 요원들은 종래의 구성적 구조보다 한결 가벼워 보이지만, 그들의 힘은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하다. 미술 작품에의 참여가 있을지는 몰라도 건축 공간에의 참여는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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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미술관-기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미술관 건물의 일부다. 그들은 관람자보다는 공간이나
하다. 모든 종류의 관람객을 만족시키려 야심차게 기획된 미술관은 이제 어느 누구의 만족을 이끌어 내기도 버겁다. 맑스가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며 생산과 소비의 비대칭성와 자본주의에서의 그 분리현상 을 지적한 대로, 코엑스 몰과 그를 닮으려는 미술관은 철저한 소비의 공간이자 수동적 기계고, 허용 되는 것은 소비의 자유뿐인 이 공간에서 생산으로서의 참여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진보의 신 념을 폐기한 포스트모던 환경에서 역사적 기억이나 시간적 연속성 또한 함께 폐기된다. 남은 것은 단 속적 현재들뿐이고, 관람객의 경험이란 ‘순수하고도 연관성을 갖지 않는 일련의 현재’ 차원으로 환원 된다. 미술관에서 건축가가 말하는 참여란 언제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일 뿐이다. 현재의 시간성만을 가진 그곳에서 미래는 영원히 유예된다. 건축이 ‘사라지고’ 시간이 떠난 자리의 지배자는 표백된 모든 것 뒤의 절대 구조로서의 순수 공간과 이를 관장하는 절대 권력이다. 동일성의 철학을 폐기하고 무한한 차이의 공존을 꿈꾼 현대 사회는 언제나 가면을 쓴 정치가를 불러들일 위기 에 처한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동일성의 폐기나 차이의 억압이 아닌, 동일성을 포괄하는 차이의 개 념을 찾아내는 일이다. 건축을 위한 건축과 백색 존재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배치도는 한국 건축사 자격 2차 시험의 1교시 두 번째 과제로 등장하는 배 치 계획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그 규모까지도 유사해서인지 서울관의 배치도는 마치 시험의 모범 답안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만큼 서울관의 배치 구성과 외부 공간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전히 많은 안내 요원이 있지만 그 정도는 개관 초기라는 양해가 가능하다. 야심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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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부에 기획된 ‘미술관 마당’과 ‘전시 마당’ 보다 주변부의 여러 마당들이 훨씬 기분 좋은 것으로 미 루어, 이는 대지 안팎에 존재하는 삶과 역사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강하긴 하지만 말이다. 새로 들어 선 건축은 그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거부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따뜻한 이웃으로 남아 있다. 그런 이 웃들 덕에 관람객은 방향을 잃지 않고 저마다의 장소들을 찾아낸다. 경계의 소거를 위해 두께 없음을 지향했던 건축의 표면들도 외려 적당한 경계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시험 과제의 모범 답안이라는 느낌은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측면에서 어떤 아쉬움과 한계를 남 긴다. 첫째로 건축사 시험은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첫 대면한 프로젝트를 직접 손으로 그려내 야 하는 만큼 어떤 새로움을 찾는 ‘설계’라기보다는 건축의 기본 상식에 충실한 ‘계획’의 측면이 강하 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전략은 경계선 외부의 도시, 자연적 조건을 살피고 내부의 제약 조건을 고려 하며 건물들의 조닝과 기능적 관계를 생각하고 건물에 의해 형성되는 외부 공간을 다듬으며 보행자 와 차량의 동선을 정리하는 일이다. 서울관은 이러한 배치의 기본 필요 조건을 만족하고 딱 거기에 멈춰 선다. 소위 ‘순수한’ 건축의 영역을 한 발짝도 넘어서지 않는 모범 건축사다. 그래서 느껴지는 두 번째 한계는 이 서울관이 건축적인 너무나 건축적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시험장에서 바 쁘게 움직이는 아이자와 삼각자가 담겨 있다. 근대의 순수주의자들이 찬양해 마지않았던 순수 공간 이란, 실은 르네상스 이래 발전해 온 건축 도면에의 찬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서울관 안팎의 공 간에서 내용과 표현이 증발된 형식의 건축과, 형식을 잃어버린 삶의 내용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한 채 미끄러진다. 아직도 우리에게 남은 길은 ‘무의미의 건축’뿐인가? 서울관의 건축은 ‘shapeless’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단지 3차원 추상 공간의 틀 안에서만이 shapeless 하다. 꺾이고 굴곡진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그러한 추상 공간 자체는 스스로 하나의 강력한 ‘sh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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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된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이덴티티를 주변에 광고하는 용도로는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에 항복하고 자신만의 은신처로 숨어드는 척했던 건축은 이제 자신의 온몸으로 세상 한복판에서 자신만의 시위를 한다. 이것은 우리 건축인들이 일구어 낸 쾌거라 해야 할까? 어쩌면 이러한 계획안 이 설계 경기에서 당선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이 안은 최신의 언어들로 포장된 ‘도면 들’이고, 그 도면들은 심사위원들에게 익숙한 예의 그것들과 다르지 않다. 신선한 언어로 설명되는 익 숙한 도면이란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축은 우리 시대의 수많은 현상과 담론들을 파상적으로 건드린다. 그것들은 때론 우울한 시대의 병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때론 그에 대한 이런저런 처방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뒤섞인 처방들의 약효가 의심스러운 건 왜일까? 수많은 나열과 절충들이 못내 미덥지 않은 건 왜일까?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세계 많은 현대미술관들은 우리 서울관에 비해 차라리 단순한 전 략들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그 수많은 답안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수많은 문 제들 깊숙이 자리한 한 가지 답을, 부글대는 표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하나의 힘을 붙잡으려는 발버 둥 뒤에 힘겹게 얻어진 나름의 결과가 아닐까? 성공도 실패도 아닌 답 꾸러미보다는 실패를 각오한 큰 도전이 이젠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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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와이드 워크
W O R K 호텔 마누 Hotel MANU
2 진행_정귀원 본지 편집장 사진_신경섭 건축 사진가
정기정 Jung Kijung 사업명 남풍빌딩 외관 변경 및 용도 변경 공사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84-16 지역 지구 일반 상업 지역, 방화지구, 중심 미관 지구 대지 면적 667.80m2 건축 면적 300.00m2 연면적 4,075.64m2 건폐율 44.92% 용적률 449.23% 규모 지하 3층, 지상 10층 높이 36.4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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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키즈 어린이집
Geo Kids
박인수(파크이즈건축사사무소)
Park Insoo(PARKiz Architects)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정기정
41 CRITIQUE
건축주 없는 건축의 틈
김종헌
55 DIALOGUE
결론은 기획이다
Wo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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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관
The Museum of Korean Modern Literature
황순우(건축사사무소 바인)
Hwang Soonwoo(Design Group VINE)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창조건축, (주)해안건축, (주)테제건축을 거쳐 2004년부터 (주)건축사사무소 유오에스의 대표로 있다. 2010년 제3회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에는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선정되었다. 2013년 제1회 신인건축사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동대문구 제천수련원, 원당리주택, 파주자유학교, 하기동주택 등과 현재 설계 중인 청주주택, 양평주택 등이 있다.
64 DIALOGUE
보존과 해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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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고가도로처럼 내달리는 유동적인 피막의 선들.
저층부 피막의 투명하고 불투명한 표피들.
건물 윗부분은 창문들의 배열 패턴이 사선을 이룬다.
창은 내부를 드러내고 외부를 반사한다.
고가도로에 의해 잘린 호텔 마누의 표면. 윗부분은 옥상층에 난 개구부들이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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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와 돌출된 창문들. 면을 이루는 복도측 창과 객실의 돌출창이 다양한 패턴을 만든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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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공간의 실체를 모호하게 감추는 창문의 배열. 돌출 창문은 두 개의 방향성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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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가면의 꿈: 호텔 마누의 대지와 창 우영선
삼각형의 대지 윤곽
프롤로그 쉼 없이 흐르는 시냇물마냥 현대의 관광객들이 박제된 르네상스의 거리를 누비는 도시 피렌체. 무수한 이들이 낭만의 도시로 기억하는 피렌체는 내게 탐욕스러운 느낌의 도시이자 단테를 저버린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석양의 그을린 빛을 받으며 화 려하게 빛나는 베키오 다리의 보석들에 질리고, 피티궁의 사치스러운 내부 공간 앞에서 그 금빛 찬란함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 아찔함에 혼미해져서인지 피렌체를 떠나오며, 산타마리아노벨라 역의 대합실에서 여행의 유일한 친구였던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기도 했다. 이 나쁜 기억의 원인은 바로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 건너편에 위치한 호텔에서 겪은 불편 한 일들 때문이었다. 반면에 알바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을 답사하기 위해 찾은 핀란드 서부 해안의 평범한 작은 도시인 포리 시는 마치 고향처럼 향수를 일으키는 곳이 되었다. 눈보라의 겨울을 뚫고 지구의 북쪽 머나먼 곳까지 가고서도 이 주택의 내부를 못 들 어가 보았지만, 맑고 차가운 겨울 햇살에 비친 투명한 눈 들판들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아있다. 핀란드의 가정집을 개조한 호텔에 서 정다운 일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핀란드의 기억은 소중한 액자처럼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 서울역 인근의 호텔 마누에 잠시 머물렀던 여행자들은 서울을 어떻게 기억할까. 호텔 마누는 남대문로 5가에 위치한 4성 호텔이다.
WORK 2 Critique
80년대에 지어진 오피스 건물인 남풍빌딩을 호텔로 리모델링하여 2012년부터 영업을 시작하고 있다. 고층 건물로 막힌 답답한 전 망과 퇴계로와 고가도로에서 새어 들어오는 소음에 불편을 느낀 투숙객들도 있다. 반면에 단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고, 서 울역 인근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이점이 강조되기도 한다. 국내외의 투숙객들이 남긴 리뷰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언급들이 있는 데, 그것은 창문과 건물 외형에 대한 감상들이다. 객실에 창이 두 개나 나 있고, ‘돌출창’에서 좋은 인상을 받은 투숙객은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며 객실 내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외국인 투숙객들은 호텔 건물 외관이 주는 멋진 인상을 기억해 냈으 며,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창이 특이하다고 지적한 젊은 투숙객들은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도 시의 어둠 속에 새져지는 한밤중에 과감하게도 커튼을 걷고 도시 야경을 즐기기도 했다. “존재의 표면에 있는 하나의 점은 일견 그 표면에 속하거나 표면에서 생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점으로부터 존재의 심연으로 추 를 드리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1
1. 게오르그 짐멜, 「대도시의 정신적 삶」,
유행: 호텔과 표면 기존의 사무소는 인근에 위치한 높은 연세빌딩이나 대우빌딩에 비하면, 규모나 외관 면에서 존재감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새물결, 40쪽
이 거의 없는 건물이었다. 한류열풍에 힘입어 동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해외 여행객들이 서울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 사무소 건물은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호텔로 재탄생했다. 지명 현상 설계로 진행된 공모전에서 건축가 정기정의 설계안을 선택한 이는 경영 일선에 뛰어든 젊은 사업가였다. 정 기정의 안은 독특한 외관으로 젊은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러한 외관의 특이함은 호텔의 상품성을 광 고하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 세계화와 한류라는 정체불명의 유행과 이 열풍에 촉을 세우는 기업들의 사업적 유행 못지않게 호텔 마누의 스토리는 몇 가지 건축적 유행들과도 얽혀 있다. 호텔이라는 빌딩타입과 표면에 대한 강박증 도 그중 일부다. 근래에 들어 건축학부의 설계 수업에서 호텔과 상업 건물이 더 빈번히 다뤄지며, 이 두 빌딩타입에 대한 연구 논문들의 편수도 급증하고 있고, 관련 연구 항목들도 다양해졌다. 또한 노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루이스 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울로 솔레리와 미래도시』, 『세계 건축의 이해』를 번역했고, 건축 관련 전문 번역가로
근리 평화기념관, 예화랑, 부띠크 모나코, 청계천문화관, 테티스, 임페쏘, 덕원갤러리 등처럼 표면 혹
활동하고 있다. 철학아카데미와
은 표피의 건축, 약동하는 매스들, 이질적인 것들의 부딪힘과 느슨한 결합성을 공략한 건물들이 최근
종로도서관에서 <건축과 영화>를
십여 년 동안 건축문화대상에 이름을 올려 오고 있다. 건축가 정기정이 건축 훈련을 받던 80년대 후 반부터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는, 미국발 해체주의 건축 열풍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학생들은 작품집의 사진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형상들의 자태와 그 자유로운 열기에 매료되었다. 호 텔 마누는 이러한 해체주의적인 역동성의 잔재와 건축 표면을 강조하는 근래의 뜨거운 열풍이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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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선
강의했으며, 건축과 철학 강좌를 기획해 오고 있다. 한국교통대학에서 근현대건축사를 강의하고 있다. 대안저널을 통해 등대, 바위, 문, 다리, 물, 뿌리 등의 물질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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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2 Critique
유선형 볼륨의 캐노피
호텔 마누와 서울역 인근의 풍경과 고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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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평면도
9
9
9
9 8
9
9
9
9
WORK 2 Critique
9
9
기준층 평면도
6
7 2
1.로비
1
2.프론트 데스크 3.라운지 4.레스토랑 5.짐 보관소 6.사무실
4
3
5
7.방재실 8.홀 9.객실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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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도
WORK 2 Critique
배면도
좌측면도
우측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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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드러나 있는 건물이다. 특정 유행의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는 관행 차원에서 볼 때, ‘글’은 오히려 사진의 선배다. 70년대 후반 에 기디온의 역사서가 번역된 후, 기디온의 종합 선물 세트인 내외부 공간의 통합 개념을 한국의 전
철거 전
통 건축에 적용하려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르 코르뷔지에 연구가 국내에서 무르익어 가자 많은 구 민회관이나 미술관에서 공간의 전이 개념이 선풍적으로 설계에 접목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벽체 철거 후
젬퍼와 아돌프 로스의 피복론에 대한 연구들과,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의 비-투명성과 니힐리즘적 특성들에 대한 글들이 담론의 세계에서 큰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편 국내의 건축계에서도 들뢰즈 의 ‘주름 바람’이 일면서 표면의 이슈들은 바로크의 찬양과 함께 격조 높은 유행의 맹아로 떠올랐다.
구조용 형강 설치
이 유행의 밥상에 처음 눌러 앉은 주체들은 색다른 가면 혹은 필살기가 필요한 정치가와 기업들이다. 그 밥상에 개나 소나 기웃거리면 원래의 주인들은 또 다른 종류의 밥상을 준비하러 은밀히 다른 냄새 들을 쫓느라 분주한 법이다. 내부 공간으로부터 분출해 나온 검은 매스가 표피를 뚫고 나와 큰 요철
각파이프 설치
을 만들고 있는 장누벨의 미술관, 기술과 자연을 상징한다며 기괴하게 큰 원과 사선의 접선을 표면에 들러 붙인 리베스킨트의 대기업 건물, 정치가의 무대에서 거론하기도 귀찮은 호화 쇼를 부린 동대문 의 뱀 춤은 이러한 유행의 속성이 그 속내들 잘 드러낸 이벤트들이다. 마리오 보타는 자신만의 기념
창호 설치
비적인 벽의 미학과 솔리드와 보이드의 공존을 고수하며, 강남대로의 랜드마크라는 포석을 던졌다. 이러한 마리오 보타의 표피적 솔리드를 비웃기라도 하듯, 건너편의 구멍 숭숭 뚫린 어반하이브는 구 조체 자체가 표피가 되고 공간 미학의 근원이 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다름’의 수를 두며 랜드마크
합판 설치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WORK 2 Critique
유행의 속성은 같음과 다름의 팽팽한 줄다리기 시합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같음’의 포석과 ‘다름’의 한 수를 두려고 했던 건축가 정기정은 호텔 마누 리노베이션 작업을 얼굴 화장에 비유했다. 기존 건
crc보드
물의 골조를 그대로 둔 채 벽체와 창을 모두 제거하고 새로운 창문과 세라믹패널 벽으로 표면을 구축 했기 때문에 이 리노베이션 작업은 화장이라기보다 일종의 성형 수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수술의 결과로 건물은 가면의 휘장을 두른 채 현실로 야심차게 컴백했다. 건물 표피에 매달린 창문들은 대지
단열재
의 형상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내부 공간의 차이들을 감춤으로써 가면 특유의 이중적 몸짓을 자아내 고 있다. 랜드마크를 꿈꾸며 재탄생한 이 건물의 얼굴은 그래서 이청준의 『가면의 꿈』을 연상시킨다. 이청준은 여러 작품을 통해 맨 얼굴의 가면과 덧씌워진 가면, 안경이나 가발 등의 단편적 오브제가
세라믹 패널 설치
부착된 가면의 인물들을 묘사함으로써 표피로서의 얼굴에 일종의 ‘장소성’을 부여한 바 있다. 도시에 서 랜드마크처럼 우뚝 서기 위한 길을 달려온 주인공은 일상의 가면을 벗고 밤마다 자유의 가면을 쓴 최종
다. 개인을 겨냥한 현실의 힘과 억압들이 거세질수록 이청준의 가면들은 점점 더 깊은 미로로 말려들 어가며 결국엔 비극적인 막다른 길에 이른다.2 그러나 만족을 모르는 충격적 효과들, 돈의 계산성과 시간의 정확성이 지배하는 대도시에서 냉담이라는 가면을 쓴 개인은, 그 가면 뒤에 조성된 주관성의
2.
세계 속에서 오히려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짐멜의 주장에 기대본다면, 막다른 길에서 비극의 미로에
이청준, 2002,
좌초되기보다는 작은 창을 내고 그 창가에서 열망의 몸짓과 기다림을 투영해 내는 가면의 꿈에 의지 해 보는 낙관론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가면의 꿈1: 대지의 기억 서울역 7번 출구에 인접한 대지는 남대문로에 이르는 길과 퇴계로의 윤곽선이 만나 날카로운 각도를 이루는 삼각형 형상을 띤다. 이 모양은 호텔의 대지가 속해 있는 도시 블록의 형상과도 닮아 있다. 일 제 강점기에 조성되어 상업 공간을 이끌던 이 가로들은 해방과 함께 남대문로, 퇴계로라는 애국적인 새 이름을 부여 받았다. 서울역과 남대문, 명동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이루는 이러한 삼각형 모티브는 호텔 마누의 곳곳에서 단편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옥상 정원의 조경 배치에서도 이 모티브의 선들 이 나타나며, 저층부의 유선형 피막에서도 두 방향성이 각인되어 있다. 또한 벽체에서 돌출된 창문들 도 이 모티브 형상의 평면 윤곽을 띤다. 교차하는 두 사선을 이룬 채 벽체에 점점이 박혀 있는 이 창문 들 중 한 열은 남대문 방향으로, 또 다른 한 열은 서울역 방향으로 유동하는 움직임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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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꿈』, 열림원, 378쪽
강 설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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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들과 동일한 모양의 옥상층 개구부들의 배열 형상에서도 두 개의 사선이 만나는 모티브가 디자 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공용 공간이 부족한 비즈니스호텔 특유의 약점도 보완하고 독특한 체험을 통해 호텔의 상품성을 높일 수도 있는 이 옥상 정원은 아직 꿈의 무대가 되고 있지는 않다. 단체 투숙 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오르기도 하지만, 이 옥상 공간은 투숙객이 정원의 용도로 이용하 기에는 접근성이 낮고 그 어떤 공간적 프로그램도 아직 추진되고 있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니 거대한 가벽으로 둘러싸인 옥상에서 대지의 선을 닮은 삼각형의 조경 요소들만이 도심의 텅 빈 공간에서 홀 로 침잠하고 있는 모양새다. 1층의 공용 공간과 2층의 객실 공간들에 걸쳐 있는 저층부의 유선형 유리 피막은 퇴계로의 상승하는 고가도로의 선형적 양상을 흉내라도 내듯 서울역과 남대문 방향을 향해 내달린다. 이 유선형 피막은 바닥에서부터 곧장 뻗어 나옴으로써 건물이 기단 위에 고착되어 있기보다는 땅에서 부유하는 느낌을 준다. 퇴계로 쪽으로 난 이 유선형 피막은 로비 공간을 넘어 수평 방향으로는 레스토랑 공간과 수직 방향으로는 객실 영역까지 뻗어 나가며, 상이한 여러 공간들을 하나로 엮어 준다. 이 유선형 피막에 는 투명한 표피와 불투명한 표피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두 곡선 중 하나는 내부에서 사 선으로 변모함으로써 다시 한 번 유사성에 호소하며 대지의 기억을 토해 낸다. 남대문 방향의 길 쪽으로 난 유선형 피막은 입구의 캐노피와 만나고 있다. 이 캐노피 역시 서로 다른 방향성을 지닌 두 개의 유선형 볼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기정은 이 캐노피를 우산과 연관시켰다. 5 성급 이상의 호텔에서처럼 투숙객을 환대하는 모습, 우산을 들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리며 이 캐노피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매스에 비해 규모가 작고 시선을 크게 끌지도 못하는 이 캐노피는 적극적인 반김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연출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 피의 솔리드한 부분과 대비되면서도 유사한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이 유선형 유리 피막은 각자의 방 향으로 분리되려는 힘과 건물의 두 면을 한 데 엮으려는 결합의 힘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건물이 대지와 만나는 지점에서 모종의 건축적 사건을 공모해 내는 방식이 정기정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 견된다. 식물이 빛을 향해 굽어지듯이 대지를 향해 휘어지는 이 유선형의 모티브는 1층 프론트 공간 을 에워싸는 두 곡선 벽에서도 반복된다. 두 곡선의 일부분은 객실이 있는 각 층마다 재등장한다.
WORK 2 Critique
저층부의 두 유선형 피막이 만나 형성하는 가면적 보이드는 옥상 공간을 에워싸는 가벽과도 같은 표
널 설치
가면의 꿈2: 매스-표면을 열망하는 창 남대문과 서울역 사이, 그리고 두 가로가 이루는 삼각형의 대지에 세워진 이 호텔의 창으로는 서울역 일대의 모습, 대우빌딩 후면의 모습, 연세빌딩 옆면의 모습, 남대문과 남대문시장의 모습이 비춰진다. MVRDV의 암스테르담 집합주택을 연상시키는 이 호텔에서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벽으로부터 돌출 해 있는 창과 그 복잡한 배열들이다. 건물 내부의 공간 구성이 표면에 드러나는 여타의 다른 호텔이 나 오피스들과 달리 호텔 마누에서는 각 층을 구별하기 쉽지 않으며 건물이 도대체 몇 층에 달하는지 즉각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호텔 마누에서 창은 드러내 주는 요소가 아니라 모호하게 감추는 요 소가 된다. 그러나 건물의 모든 벽면에 동일한 형상의 크고 작은 창들이 반복적으로 설치됨으로써 건 물은 통합적으로 읽힌다. 건축가는 도시에서 이 건물이 표면보다는 매스로 읽히기를 원했다. 모서리 가 직각을 이루지 않고 사선으로 경미하게 잘려 나가있는 벽면 위에도 동일한 형상의 창을 냄으로써 전체의 통일성이라는 열망은 강박의 수준에까지 이른다. 삼각형 윤곽의 창들은 대지의 삼각형 모티브를 닮은 것이기도 하며, 건축가의 주된 건축적 특징이 표 출된 것이기도 하다. 정기정의 주택 작품이나 자유학교를 보면, 기존의 질서에서 돌발적으로 분출되 는 자유로운 매스나 공간들이 있는데, 이 창은 마치 내부 공간 한 줌이 대기를 향해 융기하고 있는 듯 한 모습처럼 보인다. 기존의 벽체 두께가 그대로 유지된 채 새로운 창문 프레임이 설치됨으로써 창문 은 80센티 정도 벽의 안쪽 선에서 돌출해 있다. 이 넓은 턱을 통해 하나의 물질적 요소인 창문은 공 간이 되려는 열망을 꿈꾼다. 그러나 이 꿈의 시나리오는 훨씬 더 원대하게 쓰여졌지만 실리에 발맞추 어 실제 드라마에서는 각색되어 버렸다. 건축주는 이윤의 극대화를 꿈꾸며 90개의 객실을 요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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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기존의 기둥 간격을 그대로 반영해 기준층 평면을 구성해야 했기 때문에 객실 크기는 협소해질 수밖 에 없었다. 비교적 좁은 이러한 객실 공간에서 각각 아래쪽과 위쪽으로 난 두 개의 창은 약간의 공간 적 확장감을 줄 수도 있다. 투숙객이 누웠을 때 천장 가까이에 난 창으로는 하늘을, 바닥 가까이에 난 창으로는 땅을 볼 수 있도록 건축가는 돌출한 창문의 윗면과 아랫면도 유리로 계획했다. 이 계획대로 라면 창문은 삼각형 평면의 유리 볼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비 문제나 유지 관리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한 건축가는 꿈을 접고 건축주의 각색에 따라 창문의 위아래 두 면을 알루미늄으로 처리했다. 이 창문으로 보이는 서울 도심의 풍경이 마치 서양건축의 벽감에 걸린 도상처럼 보였으면 하는 열망 도 각본에 있었다. 그러나 지친 여행의 몸을 이끌고 밤에 도착한 어느 여행객은 창문 앞에 선 채로 도 시를 바라보면서, 유리 위에 드리워진 낯선 도시 풍경 위로 거울처럼 반사되어 겹쳐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타자들을 경험하려는 여행 속에서 투숙객은 창문 벽감의 안쪽에 그려진 자신의 초 상을 보며 마치 자신이 낯선 풍경 속의 이방인이 된 듯한 감상에 빠질 수도 있다. 엄밀하게 생각해 보 면, 창에 거울처럼 반사되어 나타난 자신의 모습은 원본을 기억하는 타자이자 투영된 가면일 뿐이다.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지니는 존재들의 테마는 호텔 마누의 창문 형상들에서도 드러나 있다. 건물 표면의 창문들은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내부 공간의 층을 헤아릴 수 없도록 뚫린 삼각형 창들 중에서 옥상 부분의 네 열은 유리가 없는 개구부며, 그 벽은 흔한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가벽이다. 그러나 객실 영역의 벽은 내부 공간을 감싸고, 옥상의 벽은 내-외부 공간을 감쌈으로써 동 일한 벽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가벽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젬퍼와 아돌프 로스 등의 주장대 로라면 공간을 에워싸려는 벽의 태고적 열망은 아직도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창들은 매스를 향한 건
WORK 2 Critique
축가의 꿈을 위해 통합적인 표피에 순응하면서도, 각자의 위치가 지니는 차이를 드러내려고 안간힘 을 쓰는 형국이다. 가벽의 속성을 지닌 채 동일한 창문 요소들이 서로 다르게 배열된 벽면으로 이루어진 매스를 통해 건 축가는 도시 속의 랜드마크를 꿈꾸고, 건축주는 이 매스-표면에서 돌출된 독특한 창문들의 진기함을 통해 관광업계의 랜드마크를 꿈꾼다. 호텔 마누는 10층 건물이지만 두 개층에 해당하는 벽체가 옥상 위까지 뻗어 올라가 있기 때문에 실제 층수보다 높은 건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높게 보이려는 가면 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고층 빌딩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의 호텔 마누는 랜드마크의 꿈에 바 짝 다가서지는 못하고 있는 편이다. 가면의 꿈3: 좌절과 기다림 시각 작용에 호소하는 랜드마크가 아니라 기억과 체험의 촉각 작용에 기대며 랜드마크를 꿈꾸어도 좋지 않을까. 여행자들은 일상으로 돌아온 후 일종의 향수병에 시달리곤 한다. 그만큼 여행자들에게 한때 묵었던 호텔은 일종의 주거가 되고 방문지는 고향이 된다. 여행자는 도착과 동시에 떠남을 준비 하는 자다. 여행자는 그 순간의 거주지에서 도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하루라는 시간이 영 원이 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가 호텔이라는 빌딩타입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보들레르의 화자가 거리에서 한 번의 눈길로 찰나의 사랑을 느꼈던 여인처럼, 호텔은 일시성에서 영원성을 찾게 되는 근 대성의 한 표상적 장소가 될 수도 있겠다. 건축가의 매스와 건축주의 랜드마크라는 꿈을 꾸는 호텔 마누 역시 자신이 품었던 여행자들의 시간들이 그들 마음속에 영원히 거주하기를 바랄 것이다. 호텔 마누는 특이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인근의 별 다섯 이상의 호텔의 이미지를 꿈꾼다. 어쩔 수 없 이 별 네 개짜리라는 소식에 가면은 좌절하고, 별 다섯이 부럽지 않다는 지적과 잊지 못할 추억이 되 었다라는 감상을 듣노라면 가면은 다시 웃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퇴계로 대로변에서 가면은 다시 한 번 좌절하기도 한다. 도로 중앙에 고가도로가 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대한 기억을 여행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각층의 복도 끝에는 서울역과 고가도로가 보이는 사각형 창이 설치되어 있다. 이 창 은 삼각형을 이루지 않고 사각형을 이루는데, 어느 투숙객의 감상처럼 마치 액자처럼 보인다. 복도 끝에서 사각형 창틀은 액자틀이 되고, 서울역 인근의 야경은 그 틀에 에워싸인 하나의 풍경화가 된 다. 서울역에서 바라보면, 호텔 마누는 냉담히 질주하는 콘크리트 고가도로 뒤에서 왜소하게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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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로변 건물로 인식될 뿐이다. 비교적 넓은 트리플 룸의 창과 복도의 액자 창으로 내려다보이 는 이 고가도로에서 얼마 전 40대 남자가 분신자살을 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에서 일고 있는 미스 터리한 싸움의 일환이며 이 싸움은 바로 서울의 초상이기도 하다. 가면의 꿈과 그 비상을 꺾는 또 하 나의 암초는 서울역 7번 출구다. 외국인 투숙객들 중 많은 이들이 7번 출구를 피하라고 경고해 준다. 7번 출구로 이어지는 지하철 통로는 꽤 넓지만 양쪽으로 십여 명의 노숙자들이 서울시에서 배급한 침낭을 집 삼아 ‘거주’하고 있다. 호텔 산업도 붐을 일으키고, 노숙자도 점점 더 많아지는 모순적인 현 상 또한 서울의 실체다. 호텔 마누가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노숙자들이 진짜 집을 구할 수 있는 사 회가 오거나, 아니면 노숙자들을 도시의 더 후미진 곳으로 몰아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군중들은 전자를 원하고, 어쩌면 위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는 이들은 편리한 후자를 원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꿈 꾸는 자들은 몫은 열망 어린 기다림을 품는 일이다. 에필로그 매스를 꿈꾸지만 가면적 속성을 품고 있는 호텔 마누의 표면들을 보면서 다시금 노벨라 성당을 떠올리게 된다. 피렌체 의 노벨라 성당이 보이는 어느 옥탑방 목재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외로움과 피로에 지친 여행자는 알베르티의 꿈을 보았고 노벨 라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부분 속에 전체가 녹아들어야 한다는 알베르티의 꿈과 너희는 내 피부에 난 작은 점이 라고 일러주는 듯한 성당지기의 속삭임. 어쩌면 호텔 마누의 얼굴을 뜯어고치며 건축가 정기정은 이 꿈과 속삭임에 사로잡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정기정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 회의실 창가에는 몇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건축서가 아니 라 이 속삭임의 거처인 성경이었다. 벽면에서 돌출한 창문들은 대지와 역사적 가로라는 전체를 형상화하면서도 역동적인 힘들을 표출하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생의 여행자들은 대지의 심연에 발을 디디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지의 심연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이 대도시의 초상들이다. 표면에서 심연을 향해 드리운 추가 요동칠 때 메트로폴리스의 여행자들은 좌절과 기다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할지 모른다.
WORK 2 Critique
객실 창으로 보이는 서울의 빌딩 숲. 위아래 두 개의 창으로 도시의 풍경을 조망한다.
레스토랑으로 진입해 들어온 사선
로비. 프론트 공간을 에워싸는 곡선 벽
객실층에서 반복되는 곡선 모티브. 복도 끝 액자 창문이 도시 풍경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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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EYE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과 도시학자 최종현
전시장 배치도
와이드 EYE
이보경
전시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전시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이보경
지난 2013년 11월 16일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스페이스 필룩스에
한양대학교에서 건축학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전시에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는 이 작은 방
한국건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에서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Expanded Cabinet of Curiosity>이
시작했으나 도시로 관심이
라는 이름의 전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이국적 공예품을 연상시키는 포개진 원숭이들 상이 양쪽으로 서서 사람들을 맞이한다[구동희의 ‘삼중고’]. 전시장 안은 거대한 서 울 지도가 바닥 전체를 채우고 있다. 홍제천 중심의 이 지도는 서울 의 현재 모습은 아니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연상케 하는 산맥들 이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 줄기를 따라 그려져 있다[최종현의 ‘1957 의 서울’]. 전시장의 바탕이기도 한 지도 위 한 지점에 몇 개의 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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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했다. 근현대서양건축과
옮겨갔다. 월간 <건축문화> 기자, 서울연구원 연구직으로 일한 바 있다. 현재는 개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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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들이 천장을 뚫을 기세로 삐딱하게 구축되어 있다. 바닥에 놓인 손 톱만한 인형들은 투명 봉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높이의 빌딩임을 암 시하고 있고, 투명봉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깨알 같은 글씨가 흐 르듯 적혀 있다. 아마도 공동 작업자인 배명훈의 소설 『접점의 실루 엣』에서 따온 글들이 아닐까 싶다[문훈의 ‘TEXED SPACE’]. 전시 장 바닥에는 사람들의 발부리에 치이고 있는 것이 있는데, 침술용 귀 모형이다[구동희의 ‘귀@외’]. 어떤 이들은 귀만 돌아다니는 모습에 서늘함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피해가기도 한다. 전시장 안쪽 스크린 에서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찍은 듯한 영화 다.[이행준의 ‘기준틀’]. 그 앞쪽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이 자유 롭게 배치되어 홍제천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고 있고[안건형 의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또 화면 바로 앞에는 한 글 자씩 쓰여진 달걀들이 여럿 놓여 있는, 제법 푹신해 보이는 매트리스 가 설치되어 있다.[구동희의 ‘ttacci’]. 사람들은 매트리스에 앉아 영 상을 보기도 하고, 매트리스 위 달걀들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글자 조각들을 맞춰보기도 한다. 한편, 전시장 측면에는 투명 아크릴 상자 안에 6,70년대의 공보들, 반공과 농민 근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하는 각종 인쇄물들이 시대 를 대변하듯 ‘반듯’하게 놓여 있고, 과거 대통령의 존영과 그에 대한 설명도 있다[이경민의 ‘반공이라는 이름의 경이의 방:박정희 시대 그 방을 연결하는 벽엔 각종 반공 구호와 표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Report
[이경민의 ‘반공구호’] 방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은 반공 활동이 담긴 대한뉴스와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더빙된 영상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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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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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과
도시학자 최종현
이보경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김용관 관계의 기록
108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이인미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114 사진 더하기 건축 16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주상연 Sangyon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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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79)를 중심으로’]. 전시장 측면에는 또 다른 방이 있는데,
다.[김경만의 ‘삐 소리가 울리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문지문화원 사이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일 년 가까운 시간과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투입되어 경이의 방을 확장시키기 위해 분투해 왔다. 전시 활동이 익숙한 분야의 사람들 (미술가, 건축가, 사진작가, 영상작가)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소설 가, 도시학자)이 협업자로 선택됐다. ‘창작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 는 ‘픽션의 방’ 프로젝트 A에는 김태용(소설가)+구동희(미술가), 배 명훈(소설가)+문훈(건축가)이,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 프로 젝트 B팀에는 이경민(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김경만(다큐멘터 리 감독)+이행준(영상작가), 최종현(통의도시연구소 소장)+안건형 (다큐멘터리 감독)이 참여했다.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이 협업을 통해 서로 다른 분야를 엿보는 기회 를 갖고 또 거기서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시도는 결코 새로 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물 론 이러한 시도 자체를 이슈로 만들고자 했다면, 기획자는 현재 참 여한 작가들보다 훨씬 더 유명한 작가들을 섭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제대로 된 협업의 가능성을 보장하는가? 이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인 유운성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제도권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들의 참여는 단순히 ‘보여 주기’로 그칠 수 있 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여 작가 선정에서 ‘제도권에 있지 않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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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A
구동희의 ‘ttacci’
문훈의 ‘TEXED SPACE’
BHJ
안건형의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이행준의 ‘기준틀/ 구동희의 ‘ttacci’
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고, 더불어 진정한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 자기 분야에 철저한 사람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시쳇말로 숨은 고수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공동 작업을 위해서는 타인의 작업과 작업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단시간에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봤다. 다시 말해 장기 프로젝트로 2년 이 상의 시간 투자를 각오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작업을 중간 점검하는 차원에서 이번 전시가 마련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미완성일 수 있는 전시다. 물론 미완성 전시라고 해도 개별 작품을 감상하기에 불편한 전시 공간과 다소 부족한 작품 설명은 안타까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아직 경이로움으로 나아가는 길은 불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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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D
구동희의 ‘삼중고’
구동희의 ‘귀@외’
일상적인 것이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마르셸 뒤상에 의해 이 미 파괴되었지만, 아직도 우리가 예술에서 기대하는 것은 굳이 설명 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갑자기 마주하는 신선함, 비일상적인 파격이 나 강렬한 인상, 그리고 그런 것들이 주는 감동일 것이다. 이런 측면 에서 “쉬이 범주화되거나 어떤 분류 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여러” 대 상들을 우연한 짜임에 열어 놓는 것은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고, 결 국은 무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물론 개개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 여다본다면, 그리고 조금 더 성의를 내어 전시 연계 책자와 함께 작 품을 살펴본다면, 재미있는 가능성들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의 작품이 전체적으로 조명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고 ‘확장된 개념의 경 이의 방’이라는 주제에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책자 발간 외의 장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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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좀더 필요하지 않을까. 독자나 관람객들이 전시장 밖에서 뭔가를 더 찾을 만한 여유로움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힘드니까 말이다. 경이의 방, 무엇이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런데, 이 전시의 구심점은 어디서 찾아질 것인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젝트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아마도 확장되기 이전 의 “경이의 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전시 안내서에 따르면 “특정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여러 가지 진기한 대 상들을 한데 모아 놓은 사적 수장고를 일컫는 용어”인데, 영어로는 Cabinet of Curiosity 또는 Cabinet of Wonder로 표현되고 독일어 로 Wunderkammer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Cabinet은 가 구라는 의미보다는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고, Curiosity를 굳이 ‘경이’라고 해석한 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경이에 이르기를 바라는, 아마도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르네상스기를 즈음하여 상업의 확장과 항해술의 발달로 서구인들 은 그 활동 영역이 기존의 유럽 세계를 넘어 동방, 이슬람, 아프리카 지역까지 넓어졌다. 낯선 지역에서 발견한 낯선 물건은 호기심을 일 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권세가들은 이러한 진기한 물건을 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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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집된 물건들, 딱히 어느 한 범주로 분류되지 않은 물건들(돌이나 조개 껍질에서부터 동물의 박제, 해골, 기형 생 물, 때로 기이한 발명품이나 예술품까지)을 특정한 장소에 보관하며 전시하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진기한 캐비닛, 즉 ‘경이의 방’이다. 당시 귀족 계층에 유행처럼 번진 탓인지 서구 문화권에서는 상당한 수의 ‘경이의 방’을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문에 서구에서는 이미 이 '경이의 방'에 대한 논의가 꽤 많이 진행 되었고 현대적 방식으로의 재생산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각도의 전시도 있어 왔다. ‘특정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신기하고 진기한 한 종류, 형태 등을 가리지 않고 죄다 모 아 놓았기 때문에, 애초에 분류되지 않은 로-데이터(raw data)라고 도 할 수 있으며, 이는 분류와 가공의 방법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박물관의 전신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이 경이 의 방은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한편으로는 지식의 보고(寶庫)였고 더 불어 그 자체로서도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경이의 방이 만들어진 것 에서부터 접근하거나 바라보는 방법, 또는 그곳에 담긴 수집품을 모 으고 분류하는 방법 등이 논의돼 왔다. 이 지식의 창고는 서구의 귀 납법적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데, 즉 서구의 지적 체계를 구축하는 데 에 깊게 기여해 왔던 만큼 서구인들에게 중요한 대상이고 장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경이의 방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 수 있는가? 혹시 우 리에게도 경이의 방 같은 것이 있었나를 떠올려 본다. 하지만 서적이 나 고서화, 글씨, 골동품 같은 고상한 것들을 수집한 사람은 있을지 언정(그나마도 많지 않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즉 어떻게 말 하면 실체가 제대로 파악되기 이전의, 범상치 않은 것들을 분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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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of Curi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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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만큼의 개체수로 수집한 경우가 있었던가. 경이의 방과 유사한 것 을 우리 역사에서 빗대 보려 할 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수집’이 라는 개념 자체가 소유욕의 발로라고 생각되어 유교적 관점에서는 사치로 치부된, 금기시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을 제외한 무언가가 수집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경이의 방’을 가져 보지 못한, 또는 갖지 않았던 우리의 상황 은 서구와 다른 근본적인 사고 체계의 차이를 말해 준다. 우리는 근 대 이후 경이의 방이 진전된 형태인 박물관을 들여왔을 뿐이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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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의 ‘반공이라는 이름의 경이의 방: 박정희 시대(1961-1979)를 중심으로’
와 더불어 완성된 서양의 분류 체계, 지식의 구조를 가져왔을 뿐이 다. 때문에 경이의 방에 대한 문예사적 의미를 논하고 또 다른 지식 의 분류 체계 등을 논하는 것은, 그 체계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어쩐 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서구 사상가들의 생각을 따 라가기에 급급하다. 이 프로젝트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을 따라 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경이의 방’은 이렇듯 생략된 역사로 인해 무엇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우리를 자 연스럽게 이끈다. 우리는 지금, 비록 서구에서 지리상의 발견을 했던 때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인식이 확장되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를 살고 있다. 따라서 17세기 정보의 범람을 고민했던 베이컨의 주장이 상기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데이터 자체의 중요 성은 물론이요, 빅데이터 큐레이팅이 강조되는 시대가 아닌가? 경이 는 ‘전통’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경이의 방이 없었다는 것을 아쉬워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1. 최종현은 1945년 심양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
최종현1, the man of curiosity 다시 전시장으로 가 보자. 전시장 바닥에 그려진 지도로 인해 문훈의
료했다. 우리의 공간, 즉 건축에서 시작하여 취락 및
비현실적 공간은 특정한 지리적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현실과 비현
도시로 확장된 연구를 하고 여러 대학의 강단에 섰다.
실의 사이에 놓임으로써 상상력은 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작
이후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1년 퇴임하였으며, 퇴직 후에는 평생을 살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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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방으로부터 이어지는, 집단 지성을 가능하게 한 ‘자료의 공유’라
품들 역시 대한민국의 한 장소, 서울에서 일어난 점이라는 측면이 상
통의동 서재에 사단법인 통의도시연구소를 설립하여
기된다. 관람객이 밟고 서 있는 최종현의 [1957의 서울] 지도는 우리
우리 도시 역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가 살고 있는 공간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전시 장을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로, 1957년이라는 시간으로 확장시킨다. 이 프로젝트에서 영상 작업자인 안건형과 협업한 최종현은 참여자 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사실 그는 얼마 전까지 한 대학의 도시 공학과 교수였다. 원로라면 원로라 할 수 있는 나이이고, 원로인 사 람들의 행보는 대체로 자문이나 고문 역할이다. 이처럼 현장에 뛰어 드는 일은 보기 드물다. 하지만 최종현은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하는 작가처럼, 아니 더 열심히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자신만의 활 동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전시장 바닥에 제작한 지도 작업 외에 최종현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홍제천이라는, 어찌 보면 청계천과 유사한, 그러나 청계천만큼 이슈 는 되지 않았던, 서울의 지천 중 하나인 이 장소를 새롭게 조명한다. 이미 정비된 형태에 대해 실제 자연 개천으로 제대로 복원되었느냐 를 논하지는 않는다. 그 지역, 그 장소가 서울의 역사적 시발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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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는 점에 주목한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남경으로 오는 길로서 바라 본 것이다. 그 이전에 이미 이 지역에는 진흥왕 순수비가 있었고, 장 의사가 있었고, 승가굴이 있었다. 조선의 수도로서 자리매김하기 이 전에 서울이라는 장소가 새로운 것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는 땅이라 는 걸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들 장소 역시 중요하다. 홍제천 주변의 역사를 파악하는 작업의 시간적 범위는 그렇게 설정됐다. 그런데 홍제천 주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그의 작업은, 그간 그가 해 오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아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 어 보인다. 사실 그는 이미 서울에 관한 전문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서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경복궁 옆에서 살아 왔던 터에 근대 서울 중심부의 변화상을 몸으로 겪은 탓도 있겠으나, 그 세세한 공간 변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모으는 것은 단지 그곳에 살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당시의 변화상 을 기록하는 동시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과거의 자료 들을 뒤지고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서적을 모으고, 사 진을 찍고, 지도를 그렸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서 울이라는 도시에 관한 경이의 방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가 아닐까? 서울 정도 600주년이었던 1994년을 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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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하여 많은 행사들에 자문 역할을 하고, 서울학연구 소의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 그였다. 그보다 앞선 1989년 밀라노트리엔날레 서울관 전시에 수많은 자료를 건넨 일도 드러나지 않은 그의 공로다. 또한 그는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된 서 울시립박물관 초기에 전시 기본 계획을 맡기도 했다. 최종현의 도시 자료 수집은 비단 서울에만 국한된 것 은 아니었다. 취락 형성에 관심을 갖고 접근 가능한 마 을들은 자료를 수집했다. 마구잡이 국토개발로 수몰되 는 지역의 자료를 남기기 위해 조사를 다녔다. 가치를 채 발견하기도 전에 쉽게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았 다. 일단 기록하고 모으는 일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 었다. 어떻게 정리할까는 차후의 문제였다. 조금은 숨
최종현
가쁘게 진행되어 온 시절, 개인적으로 건축 설계 뿐 아 니라 도시 설계나 조경 설계까지 참여할 수 있는 일은 많았지만, 그 렇다고 기록하고 자료를 모으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설계 의 근간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뛰었다. 아마도 지금의 건축가들처럼 우리 상황에 맞는 건축이란, 도시란 무엇인가 를 고민했기 때문이리라. 그 외에도 그가 모아 놓은 자료들은 특정 분야, 특정 지역에 한정되 어 있지 않다. 당장의 호기심에 이끌려 마구잡이로 모아 놓은 듯 보이 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의 관심사는 땅과 그 땅을 딛고 사는 인간, 특히 홀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인이자 문화인으로서의 인 간으로 귀착된다. 건축이 대형선박을 만드는 일과 다른 것은, 잠시 동 안 머무르는 공간이 아닌 정주하고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서 삶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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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이경민의 ‘반공구호’
H 이행준의 ‘기준틀’
김경만의 ‘삐 소리가 울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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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 대지에 구축된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땅을 살피고 땅에 정주 해 온 방식을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종현의 연구는 먼저 땅 자 체를 읽어 내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단순히 지도만 보는 것이 아니다. 지도가 없던 시절, 지도의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의 땅을 알기 위해 그 는 문헌을 근거로 상상하며 ‘스스로 밟아 보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 처럼 토목 공사가 무지막지하지 않았던 시절의 땅은 그나마 변화가 미세한 실체였으니까. 그가 체득한 방법을 가시적으로 나타내 본 것 이 어쩌면 산맥도라 하겠으나, 산맥도는 지리 상황을 극히 일부만 드 러낼 뿐이며, 미세한 고저차와 주변을 읽어 내는 것은 직접 밟아 보지 않는 이상 전달하기 힘들다. 이 프로젝트에 굳이 답사 프로그램을 넣 어 사람들과 함께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체를 파악해 가며 그간의 연구에서 오류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사실 우리에겐 풀리지 않는 숙제같은 일이 남아 있다. 단절의 역사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조차 맥락을 상실한 상황에서, 물론 이 역사가 발목을 잡는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탓하는 대신에 이 끊 어진 인식의 접점을 찾기 위해 공간과 장소의 단절을 지속적으로 연 결하는 노력들에 주목해 보자. 최종현의 작업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 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공간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일은, 물리적 실체가 사라진 우리에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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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들은 인간과 사건 관 계에 치우쳐 있고, 실제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나 인물이 거주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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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 다 보니 역사적 인물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같은 한양도성이라 는 장소에 시간만 달리하여 존재했음에도 죄다 왕궁에 살거나 아득 한 세트장 같은 곳에 사는, 다른 나라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고, 자연히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거리를 좁히려면 그들이 실제 살았던 곳이 우리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곳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장소의 복원은 한계가 있다. 가령 서울은 900년에 이르는 도 시인데, 시간을 달리했을 때 각각의 공간과 장소의 사용자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굳이 복원을 한다면 또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 왕실에서 줄곧 이용한 궁궐마저도 여 러 차례 중수가 있었던 터라 그 복원의 시점을 찾기 쉽지 않지만, 그 나마 어느 시점에 변화가 멈추었고, 실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 니 복원이란 것이 가능했던 것일 게다. 세종이 태어난 곳 지척에는 이완용도 살았다. 세종 이후 줄곧 사람들 이 그렇게 인식한 것은 아닐진대 어느날 갑자기 세종마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 변화를 변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 제가 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지 않는가. 대신 그 장소에 살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상기해 보자. 어떤 장소는 대대로 이용되어 오랫동안 살아남은 반면, 어떤 장소는 한 시대도 풍 미하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살아남은 장소 는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걸까. 사실 건축가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 만, 우리 역사에서 건축물 자체가 어떠했는지에는 의미를 크게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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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형의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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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것 같다. 기록을 자세히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그 반증이 다. 대신 입지와 사용자는 중요하다. 선조들에게 집은 점유자 그 자 체, 혹은 점유자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호(堂號)라는 이름이 말해 주지 않는가? 우리가 늘상 경험하는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공간을 점유했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맥 락을 이어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하지만, 누가 과연 이 엄청난 공간과 시간을 호기심만 가지고 접근할 수 있겠는가? 이는 역사적 인물들을 하나하나씩 공간에 대비해 가며 따져 봐야 하는, 재미있을 것 같지만 엄두를 내기는 힘든 작업이다. 게다가 공간의 점유자를 파악한다는 것은 연도별 지도를 층층이 겹 쳐 보는 일 같은, 시간의 축에 따른 공간 구조의 지층을 파헤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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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앞서야 하는 일이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도시 구조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900년이라는 시간을,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은 지도 없이 문헌에 의지해 공간적으로 파악 해야 하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런데 최종현은 그 작업을 이제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간의 조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서울에 대한 자료를 무 수히 모았고, 무수한 기록을 읽어온 그였다. 건축물, 그리고 건축물이 이루어진 집합체로서의 도시는 비록 수집 될 수 없는 것이지만, 최종현이라는 사람에 의해 기록되고 있다는 점 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이로운 것들은 아닐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모 없는 것이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퇴직 후 그는 사단법인 통의도시연구소를 설립했다. 모은 자료들에
와이드 EYE
을 기억하자. 우리에게 당장 그의 수집품이, 기록이, 그간의 조사들
다른 것들을 덧붙여 체계화할 필요가 있음은 늘 절실했지만, 이제 그 것이 비단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의 공부방이자 작업실이었던 자군당(子群堂)은 자료에 목마른 학도들이 드나들 수 있던 곳이었다. 덕분에 자료들이 유실되 기도 했고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여전히 그는 이 자료들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곳에 공개하고 제공할 의지가 있다. 도시학자로서 ‘공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최종현의 ‘1957의 서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이의 방이 서구의 의학, 자연사학 등의 과 학적 지식 체계를 갖추는 데 기여한 것처럼 최종현과 통의도시연구 소가 우리만의 도시, 건축에 대한 지식 체계가 구축되는 것에 일조하 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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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정기용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정기용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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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건축가와 건축 사진가의 관계
김용관
나는 건축 사진가다. 나의 작은 재능은 도시와 사회, 문화
관계의 기록
의 일부분을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과 건축가들 의 인생도 함께 기록하는 멋진 재능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업계에 몸담았던 수많은 시간과 그 동안 찍어 온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이것은 나의 일이고 건축가와 건축 사진가의 관계 는 숙명처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며 두 사람은 분 명 어떤 시기의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는 사람들이라는 생 각을 하게 됐다. 건축은 건축가의 것이기도 하지만, 건축 사진가의 눈을 통해 전달된다. 그렇게 해서 만드는 관계의 기록은 먼 훗날의 역사에도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 와 건축 사진가의 관계는 서로의 가치를 더욱더 존중해야 하는 관계이다. 사진은 단순히 건축물을 소개하는 수단이 아니라,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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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와이드 REPORT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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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학자 최종현
이보경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김용관 관계의 기록
108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이인미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114 사진 더하기 건축 16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주상연 Sangyon Joo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의 또 다른 시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최근 건 축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국립현대미술관 과 천관에는 건축 전문 전시실이 마련되어 앞으로도 꾸준히 건축에 대한 전시를 수용하게 됐다. 미술관 안에서 건축을 보여 주는 방식은, 건물을 그 안에 들여 세우는 것이 아니 라 하나의 건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글과 사진으로 기 록을 담는 방식이다. 이런 관계의 기록 또한 엄연한 문화이 며 앞으로도 더욱 중요하게 인정받을 가치라고 생각한다.
건축, 장소에 감성을 더하다 “저 힘은 무엇일까?” 자연, 땅 위에 무심히 얹어 놓은 듯한 단순한 형태의 건축, 고 이타미 준 선생의 제주 비오토피아 미술관을 보고 난 후 나의 첫 느낌이다. 그 장면은 쉽게 잊 히지 않았다. 그해 겨울, 제주의 폭설 뉴스를 보면서 문득 설경 속의 그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푸르른 8월에 이미 작업을 마쳤지만, 자꾸만 그림처럼 그 모습이 눈에 밟혔고, 나는 주저 없이 제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을 다시 내 카메라와 내 감성에 담았다. 이타미 준 선생이 생전에 나를 안아 주었던 사진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감성은 또 다른 감성을 움직이는 강한 전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축에 대한 생각을 다시 던져 준 건물, “좋은 건축 이란 무엇일까?” 건축 사진을 찍는 사람인 나에게도 언제나 궁금한 것이 있 었다. 바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이다. 새로운 디자인, 완성도 높은 시공, 보다 풍성한 디테일…. 어느 사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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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제주 핀크스 돌 미술관, 이타미 준 설계
제주 핀크스 바람 미술관, 이타미 준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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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촬영 대상이다. 물론 나도 그런 사진 가 중의 한 명이지만, 최근 다녀온 어떤 곳에서 ‘좋은 건축’ 에 대한 또 다른 힌트 한 가지를 어렴풋이 얻었다. 바로 부 암동의 윤동주 문학관(건축가 이소진)이 그것이다. 20여 년 건축 사진가로 살아오며 그 누구의 요청 없이 스스로 발걸음을 옮겨 촬영을 한 최초의 현대 건축물이었다. 이곳 을 처음 찾은 날, 나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다. 온전히 관람자의 입장에서 건물을 느껴 보고, 관찰해 보고 싶은 마 음에서였다. 열린 중정에서 무심한 듯 자란 풀과 물때의 흔 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벽의 질감, 색감… 그때 올려다본 파란 하늘과 제 3전시실의 영상까지…. 그 동안 수많은 건 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사 진으로 빛날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다시 들 여다보고 만져 보고 느끼면서 나는 이곳에 꼭 다시 카메라 와 함께 오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뒤 이번엔 건축 사진가로 서 카메라와 함께 다시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그런데 그 곳을 찾은 관람객들이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을, 느꼈 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만져 보고, 올려다보고…. 그들도 나처럼 마음이 그 공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감성의 장면을 기록하면서 ‘과연 좋은 건축, 건축가의 정의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
술관, 윤동주 문학관, 이소진 설계
로에게 해 보았다.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많은 이들에게 ‘장소의 기억’을 만들어 주는 건축, 건축가. 바로 그런 것이
미술관,
훌륭한 건축이고 건축가 아닐까?
건축계의 희망이자 미래의 파트너, 젊은 건축가 요즘 또 하나의 관심사는 젊은 건축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들과 많은 작업을 할 수는 없지만, 진정성 있는 태도로 요청을 하면 거절할 이유도, 방법도 없다. 10년 전 조민석 소장과의 첫 만남이 기억난 다. 지금이야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 가지만, 당시에는 작고 당돌한 픽셀하우스를 세상에 내놓 윤동주 문학관, 이소진 설계
은, 그러나 그 자신감만은…. 당시 나는 젊은 신진 건축가 였던 조민석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만남 이후 10 년,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되었고 나에게도 최고 의 파트너가 되었다.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허락된다면 젊 은 건축가 그들과도 관계의 기록을 시작하고 싶다.
건축 사진가에서 건축잡지 발행인으로 최근 내게는 건축 사진가 위에 건축잡지 발행인이란 직함 이 더해졌다. 15년 전 계획하고 꿈꿔 왔던 일이기에 차근 차근 신중을 기울여 준비하였고, 마침대 지난달 창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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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호가 나왔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빠르게 독립하여 프리랜 서 전속 작가로서 건축과 환경(현 C3), 공간지에서 일하며 두 잡지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많은 것이 온라인으로 전달 되는 시대지만 지면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 을 좋아한다. 때로는 직접 가보지 않아도 건축 사진가의 사 진 한 장이 그 건축물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 주기도 하고, 또 그곳에 직접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관계를 기록하고,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 이제는 잡지를 통해서도 그런 일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
다큐멘텀 창간 준비호
도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픽셀하우스, 조민석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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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조민석 설계
제주 다음사옥, 조민석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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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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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공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 짓기’에 대한 생각
이인미
나의 사진의 처음은 건축으로부터이다. 단순하게 보면 대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다는 이유가 가장 직접적일 수 있 고, 좀더 내면적인 이유를 들자면 건축이 내포하고 있는 견 고한 조형성, 빈 공간을 흐르고 있는 다양한 움직임, 또 그 안을 채우는 것에 따라 변하는 예상치 못하는 우연성, 이들 이 교차하고 뒤섞이며 만드는 무한한 변화에 대한 관심 때 문이기도 하다. 건축 사진은 건축이 가진 구성의 조형성을 사진 프레임 안 에 가두고 잘라 내는 작업이다. 그러나 “건축을 어떻게 하 면 더욱 조형적으로 보이도록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담을 것인가” 라는 문제가 건축 사진의 중심은 아니다. 늘 한결 같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무채색 콘크리트의 육중한 무게
cityscape 05
digitalprint,140 × 110cm(1/5 ed)
감에 시간이 입혀져 미묘한 질감이 더해지면, 같은 건물이
Busan, 2004
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만나러 가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Report
39 와이드 REPORT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92 와이드 EYE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과
도시학자 최종현
이보경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김용관 관계의 기록
108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이인미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114 사진 더하기 건축 16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주상연 Sangyon Joo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보이게 마련이다. 그 찰나가 만드는 서사를 찾고 또 찾는 것이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건축 사진을 찍으면서 개 인적인 서사를 만드는 즐거움에 빠져 있던 나는 건축과 도 시, 미술에 관한 몇 번의 기획전에 참여하게 되면서 건축에 서 도시로 시선이 넘어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건축이라 는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생각하게 되었고, 거기서 또 한 걸음 더 물러섰다. 그러다 보니 ‘넘어다보기’나 개체로의 공간보다는 공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 짓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산이라는 도시 이러한 생각을 갖고 도시 사진 작업을 진행해 왔던 장소는 대부분 부산이다. 반드시 부산이어야 한다는 필연성이나 부산에 사는 사진가로의 기록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은 없 었다. 자연스런 익숙함이랄까, 유년 이후 지금까지 살고 있 는 개인의 시간적 축적의 정체성이 부산이었기 때문이란 게 자타가 공인하기 가장 쉬운 이유였다. 부산은 역사적으로 보면 자생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친 도 시는 아니다. 근대 이전 조선 시대엔 동래현 변방에 있는 포구에 불과했다. 그러다 무방비 상태에서 외부의 힘이 밀 려 들어왔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 대규모 해안 매립이 이루 어졌다. 그 결과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가 새로 형성되었다. 부산이라는 근대 도시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 후로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들로 인해 인구가 급 격히 늘어났다. 또다시 도시 산업화란 이름 아래 공단 지역 이 만들어졌고 많은 농촌 인구가 삶의 터전을 부산으로 옮 겨왔다. 결국 몸집만 또 한 번 확장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cityscape 01
digitalprint, 140 × 110cm(1/5 ed) Busan, 2004
부산은 해운대 마린시티나 센텀시티, 북항재개발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스펙터클한 메가폴리스로의 변신을 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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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나 시
는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덧붙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간들은 남겨질 겨를도 없이 급하게 밖으로 쫓겨나거나 사 라지고 있다.
리턴 캠프 하야리아 & 영도 브릿지 또 한 갈래는 <Return-Camp Hialeah>와 <Youngdo
시티스케이프 & 어나더프레임
Bridge> 시리즈로 거대한 메가폴리스의 꿈을 향해 달려가
지금까지 부산이라는 도시를 상대로 진행해 왔던 시리
고 있는, 지금의 근육질이 충만한 부산에서 그나마 남아 있
즈 중 대표적인 것에는 <Cityscape>, <Anotherframe>,
었던 과거의 기록들이다. 지리학적으로 오래전부터 도시
<Return-Camp Hialeah>, <Youngdo Bridge> 등이 있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으면서도 감히 담을 넘어 들여
다. 이들을 크게 두 갈래의 흐름으로 묶어 보면 한 갈래는
다볼 수도 없었던 부산 안의 미국 땅. 이제는 하야리아부대
<Cityscape>와 <Anotherframe> 시리즈로 도시에 덩그러
가 주둔하고 있던 곳이 공원으로 바뀌고 있다. 공원 공사가
니 주춤거리는 건물들, 건조하게 복제된 반복, 낯선 부대
시작되기 전에 주어진 시간적 사이의 틈을 바삐 찍었다. 그
낌, 도시의 한편으로 조여진 풍경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리고 더이상 다리를 들어올리지는 않지만 애환의 장소로
것들은 부산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
기억되던 영도다리가 철거되고 새로운 도개다리가 건설되
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하고 있
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사진이 그렇겠지만 이 두
는 도시, 그 속을 무심하게 걸으면서 힐끗힐끗 넘겨보는 파
시리즈는 사진이 가지는 부재의 기록이라는 의미가 부가
편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된 작업이다.
새로운 장소와 그 틈 사이로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이 혼재
<Return-Camp Hialeah> 시리즈는 미군들이 집기만 가지
하는 장면을 한 장의 사진에 압축하여 보여 주고 싶었다.
고 빠져나가 비어 있는 군사 지역을 촬영한 것으로 일시적
<Cityscape>시리즈는 위협적으로 서 있는 초고층 복합 건
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던 시기에 작업한 것이다. 지금
축물들과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는 부산의 장소와 기억이
은 부산시가 유명한 외국 디자이너를 통해 세계적인 공원
다. 한 장의 사진에 보이는 두 가지의 상충된 풍경, 그 안에
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공사를 하고 있다. 잠
있는 단순히 비교할 수 없는 시간들과의 거리감을 보여 주
시 멈춘 시간 속의 모습. 사람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 무엇
고자 했다. 마치 오랜 시간을 두고 촬영한 사진들을 합성한
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연의 시간만이 흐르고 있는 곳. 높은
비현실적인 도시 이미지처럼. 늘 습관처럼 보았던 친숙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직된 채 경계선에 맞대어 살고
거리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건축물들의 섬뜩함과 이질적
있는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변화의 속도에
인 형태 때문에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 있는 듯이 보인다.
발맞추지 못했고, 그렇다고 정지해 있지도 않은 채 조금씩
<Anotherframe> 시리즈는 늘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는 일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라지고 있는 장소를 기록
상이지만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창, 문, 난간, 지붕, 복도, 다리…, 매일 집 현관문을 열고 나왔을 때 얼핏 보는 풍경들을 카메라 너머 프레임을 통 해 고정시켜 버린 도시의 모습들이다. 아파트의 긴 복도 나 비상계단이 연출하는 프레임들은 도시를 바라보는 시 점을 집중시켜 주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구름과 하늘, 강줄 기, 바다 등은 평범한 일상을 극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런 데 <Anotherframe> 시리즈는 단지 프레임 너머 풍경으로 보이는 도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이 시점이, 명확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여기라는 사실에서 출 발한다. 해운대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아파트들의 조 망이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받지만, 지어진 지 20년이 넘는 복도식 아파트에도 그에 못지않은 전망이 있었다. 단지 상 업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 스스로 서 있는 지점을 매일매일 인지할 수도 없을 만큼 익숙해져 있던 곳 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정지 화 면처럼 또렷이 보였고, 그 프레임 안에, 사진 안에 숨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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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samdong01 digitalprint, 120 × 80cm(1/5 ed) Busan, 2009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anotherframe 01
digitalprint, 100 × 140cm (3/5 ed) Busan, 2006
Hwamyoungdong 01
digitalprint, 100 × 140cm(2/5 ed)
Busa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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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영도다리 2010 #05 digitalprint, 70 × 100cm(1/5 ed) Busan, 2010
영도다리 2010 #01 digitalprint, 100 × 240cm(1/5 ed) Busa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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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한다기보다는 이 엇갈린 시간들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Youngdo Bridge> 시리즈는 2010년 6월부터 영도다리 해체 및 복원 기록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 작되었다. 도시의 시간의 흐름에서 제 몫을 다해 온 영도 다리가 구조적 안전과 늘어나는 교통량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해체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개교가 들어서는 과정을 3년의 시간을 쪼개어 찍는 일이었다. 2013년 11 월에 영도다리가 완공되었고, 지금은 매일 12시쯤이면 도개하는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드는 어르신들로 영도다리 주변이 북적거린다. 나는 도시를 사진으로 담 을 때 부산이라는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감성적 반응으 로 보기보다는 서로의 관계로 만들어 내는 시각적인 이 미지를 통해 기억을 확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도다리 역시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서정적인 풍경보다 구조물들 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특성을 주변과 함께 보여 주려 고 했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밝음과 어두움의 순간을 사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진으로 재구성하고, 기록이라는 사명 아래 가지는 관찰 된 현실과 나의 사진 프레임으로 편집된 현실을 겹쳐 보 고 싶었다. 우리와 함께 자라고 있는 도시 일련의 작업들이 처음부터 익명성을 가진 근대 도시를 보여 주려는 의도로 진행되어 온 것은 아니지만, 지나 온 과정을 생각해 보면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 는 몰개성화되어 가는 도시 풍경에 대한 몰입과 몰두라 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업은 도시를 이끌어 가는 개 발, 거대한 구조물을 통해 변해 가는 도시 풍경을 과거의 기억이나 장소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내맡겨 진 채 맹목적으로 도시화되어 가는 삶을 무덤덤하게, 그 러나 대형 카메라가 만드는 명료한 이미지로 재현하고 자 했다. 나의 무덤덤함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한발 다가설 수 있는 여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와 보는 이 가 시간적 차이는 있을 지라도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일 치의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한 장소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 겹쳐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늘 하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도시는 완성의 순간이 아니라 우리 와 함께 자라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return002-hialeah digitalprint, 90 × 180cm(1/5 ed) Busa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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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사진 더하기 건축 16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나은중+유소래 본지 자문 위원 NAMELESS 공동 대표
주상연 Sangyon Joo
사진 더하기 건축 16
untitled, from <Wonder on Parnassus> series, 2007
2007년 먼 타지에서 마주친 전시는 신비로웠다. 전시된 사진에서 느껴지는 부유하는 것과 땅에 발
Report
을 디디고 있는 것 사이의 관계는 적절한 이성적인 판단이 허락되지 않을 만큼 비일상적이었고 실재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초현실적인 혹은 비일상적인 주변의 기록은 건축을 하는 이들 에게 꽤나 낯설고 해석하기 힘든 사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본 후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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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공모전 4
주제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을 위한 좌담
않는 한 장의 이미지가 있었다. 한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무언가에 둘러싸인 소년의 뒷모습은 주변과 하나되어, 마치 아이의 꿈속 환영을 재현한 듯한 이미지는 한동안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당시 사진에 서 느껴진 기이함에 이끌러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아 짧은 이메일만을 주고받았 었다.
92 와이드 EYE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과
도시학자 최종현
이보경
102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3
2013년 11월 건축 매체의 지인으로부터 짧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은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가 있 는데 겸사겸사 그곳에서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좋은 안목을 갖추고 있는 그였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108 건축 사진가 열전 : 이미지 건축의 거처 04
이인미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도시
향한 전시 오프닝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전시를 준비한 사진 작가와의 짧은 첫인사 후
114 사진 더하기 건축 16
마술적 리얼리즘 Magic Realism
작품들을 꽤나 오랫동안 둘러보았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의 자연스러운 사물들을 기록한 사진
주상연 Sangyon Joo
은 낯설기도 하며 때로는 익숙하기도 한 풍경을 담고 있었다. 특히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기록한 거미줄 사진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확히 거미줄이라기보다는 그곳에 맺힌 물방울과 투명하게 반 사되고 있는 빛의 잔향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더불어 하늘과 숲 그리고 이들을 펼쳐 놓은 바닥의 사 진 설치물까지 기품 있는 사진가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전시 작품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테이블에 놓인 도록과 작품집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뗄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을 마주하게 되었다. 2007년 유학 시절 타지의 작은 갤러리에서 마주했던 사진 속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잊고 있 던 기억은 언제나 우연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느낄 때 그 우연성은 더욱 강력하 다.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 안에서 경험되는 관통하듯 찌르는 순간과 감각을 찌르는 상처, 배인 자국 등을 의미하는 푼크툼(punctum)이라고 명명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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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관 관계의 기록
좌담
거처 03
거처 04
어온 도시
<Light on Ground> series, 2013
1. 사진의 두 번째 요소는 스투디움을 깨뜨리기 위해 온다…
사진을 해석하는 언어로서가 아닌 실재하는 경험, 즉 지각하고 기억하고 회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 한 그 순간의 찔림은 사진 작가 주상연과의 우연한 두 번째 마주침이었다.
그것 스스로가 마치 화살처럼 그 장면을 떠나, 나를 꿰뚫기 위해서 온다. 라틴어에는 뾰족한 도구에 의한 이 상처, 이 찌름, 이 상흔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문장의 구두점을 생각나게 하고, 또 내가 이야기하는 사진들은
사진 한 장이 가지는 힘은 강렬했다. 7년 전 이메일로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던 당시 그녀의 전시는 미 국 서부 버클리에서 열린 <Sangyon Joo, Wonder on Parnassus, 2007>이었으며, 이번 서울에서의 전시는 <주상연, 지상의 빛, 2013>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녀를 마주하고도 알아채지 못한 것은 기억 하고 있는 작가의 영문 이름과 낯선 한글 이름 사이에 발생한 난독증에 때문이며, 동시에 적지 않은
사실 예리한 점으로 찔려서, 때로는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무뎌진 기억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연성을 가장한 일련의 필연적 행
얼룩져 있으므로, 더욱 내 마음에
위들, 즉 지인의 우연한 초대가 아니었더라면, 혹은 전시를 둘러보며 그곳에 놓인 책들에 무심했더라
드는 단어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 자국, 이 상처들은 점이다.
면,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사진 한 장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이 인연은 단순한 스침에 불과했을 것
스투디움을 방해하러 오는 이
이다. 그리고 이 개인적인 경험은 사진으로부터 발현된 우연성을 넘어 건축을 하는 내게 특정 시간과
두 번째 요소를 나는 푼크툼 (punctum)이라고 부르겠다.
사진 더하기 건축 16
전 4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장소의 기억을 완전히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푼크툼은 찌름,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흠이며또한 주사위 던지기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흔히 도시를 건축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풍경으로 기억하곤 한다. 이는
사진은 푼크툼의 그 자체가 나를
많은 경우, (특히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과 도시 구조 안에서는) 시각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며 공간
찌르는 (또한 상처 입히고
의 형태와, 질감, 물성, 혹은 특정 장소의 프로그램들과 사람들의 행위 등 대부분 물리적인 행태로 읽
괴롭히는) 이 우연이다.
혀진다. 다시 말해 내가 기억하는 버클리라는 도시는 대학캠퍼스를 중심으로 직교의 그리드 안에서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발생되는 다양한 물리적인 관계들, 즉 거리의 밀도 변화, 채워짐과 비워짐 그리고 자연과 건축물, 건 물과 사람들의 행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을 경험했던 주상연의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은 건축가의 그것과 상당 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04년의 3번째 개인전 이후 새로운 삶과 지속적인 작업의 틀을 마련하기 위
115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untitled, from <Wonder on Parnassus> series, 2007 116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untitled, from <Grace and Gravity> series, 2009
untitled, from <Grace and Gravity> series, 2009 117
와이드 AR no.37 | Wide AR no.37
해 미국 서부로 유학을 떠난 주상연은 SFAI (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수학하며 이방인으 로서 도심의 낯선 장소를 낯선 시선을 통해 바라본 연작<Wonder on Parnassus, 2007>2을 발표한다. 이 작업을 통해 새로운 장소 안에서 인간의 이성과 의식을 넘나드는 신비한 관계들을 포착하며 사물 과 정신 사이에 고착되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신화적 은유를 통해 제시한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아 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그래서 어쩌면 자유로움을 획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2. Mount Parnassus is a mountain of Greece, According to Greek Mythology, this mountains was scared to Apollo, the Corycian nymphs,
또한 2009년 작품인 <중력과 은총, Grace and Gravity, 2009>은 작가가 미국 서부의 공기와 물과 바 람의 기운에 충만한 경험을 담고 있다. 이는 그녀가 거주한 정원이 딸린 작은 집을 배경으로 버클리 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데, 도시의 거시적인 프레임이라기보다는 사적으로 경험되는 시 각 너머의 장소의 촉각과 청각, 후각 심지어 사물의 미감까지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관찰하고 있다. 주상연은 그 작은 정원을 숨쉬는 자연을 잉태하는 장소로서 공기적인 움직임과 중력의 힘이 상호작 용하는 지점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혹은 하늘과 땅 사이에 견고한 경계가 무너진, 즉 둘이 아닌 하
and the home of the muses. The name Parnassus in literature typically refers to its distinction as the home of poetry, literature, and learning - Sangyon Joo, 『Wonder on Parnassus』 (Edition One Studio)
나됨을 사진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그녀가 택한 사진의 형식에서 비롯된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 결과물에서 인지되는 빛과 공기, 공간의 울림, 풀벌레의 진동, 바람에 흔들리는 풀내음은 내가 그때 경험했지만 지금은 잊고 있던 장소의 감각을 놀랍게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현대 사진은 시각 예술 범주의 중심에 있지만 그녀가 전달하고 있는 것은 건축가들이 쉽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아니 쉽게 인지하기도 힘든 장소의 감각, 즉 실체로서의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지상소(onground)에서 열린 최근 전시 <지상의 빛, 2013> 사진은 감각의 풍경을 만드는 방식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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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중력과 은총>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그것들이 경험되는 지점, 즉 장소와 시 간이 변화됐을 때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화된다. 그녀는 미국 서부의 자연은 강한 냄새를 지니고 있다. 나무와 땅 그리고 하늘은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으며, 따뜻한 날씨와 강한 햇살은 식물의 질감과 색채를 풍성하게 한다. 2009년에 미국 서부에서 기록한 나무(untitled, from <Grace and Gravity> series, 2009) 사진은 실로 매혹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반면 2013년 소쇄원, 부산 등 을 돌며 촬영한 나무(Wood #1014, <Light on Ground> series, 2013)는 빛이 안으로 스며들어 오래
untitled, from <Grace and Gravity> seri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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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 #1014, < Light on Ground> series, 2013
Wide Report | 와이드 리포트
응시할 수 있는 풍광을 지니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풍경 속의 빛을 통해 담 은 그녀의 한국 풍경 사진은 이 땅의 중력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사진을 쉽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주상연의 사진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사진들은 치밀한 계 획과 동시대성의 분석을 통해 자신의 개념을 역설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직면한 현실과 그 너머의 초월적이고 신성한 관계를 찾아가는 도구이다. 작가는 지상소에서의 전시에 앞서 자연광이 드는 그 장소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기록한다. 사진 <Hand #1114, 2013>는 지상소의 공간 내부로 들 어오는 빛을 한 손으로 만지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이다. 이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한 손의 박수 소 리’처럼 정해진 답 없는 수많은 굴레를 의미한다. 작가에게 빛은 사진의 근본인 동시에 인간의 이성 과 지식을 넘어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이다. 빛과 공기를 마주치는 손뼉을 통해 물질과 비물질이 만나는 접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찾고 있다. 최종 사진은 작가의 한 손과 사진을 찍는 순간 우연히 지나가던 다른 사람의 손이 필름에 겹쳐지면서 두 손이 되어 질문에 답을 하는 듯하다. 그녀 의 사진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들여다 봐야 느껴지고, 읽혀지고 그리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작품에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만 비밀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보이는 것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한 겹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주상연 작가는 사진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보다는 새롭게만나게 되는 마주침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지만 꾸준한 작업과 더 나은 예술가들의 교류의 장 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그녀가 발행하는 아티스트 인터뷰지 <깃>, 사진가들이 작품집을 기획 출 그녀가 현실의 단단한 토대 위에 부유하는 예술적 삶의 프레임을 확장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속됨 과 성스러움 사이에서 주상연의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 펼쳐질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상상한다.
Marsh #0713, 2013, < Light on Ground> serie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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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할 수 있는 ‘닻 프레스’, 전시와 교류의 장인 ‘닻 미술관’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Hand #1114, 2013, <Light on Ground> serie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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